디지털노마드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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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파스넷 3,383 105,365 2020.10.22 13:29
디지털노마드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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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1 18:37
https://m.naver.com
kolaswqetsrq 11.01 18:47
이 가을엔 우리 모두 사랑을 하자

이 가을엔 우리 모두 사랑을 하자

이 가을엔 우리 모두

사랑을 하자

지난 계절 한 여름 밤을

하얗게 밝힌 상처받은

가슴을 깨끗이 털고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친구여

이 가을엔 사랑과 동행을 하자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아무도 듣고 있지 않는 것처럼

아무런 돈도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춤추고, 노래하고,

일하며 살아가자

지나쳐 버린 세월의 수레바퀴

봄, 여름이 떠나고

조심스런 몸짓으로 찾아온 계절

우리에게 뿌린 만큼 거둔다는

진리를 가르치며 조용히

일깨움을 주는 그런 계절

산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하나, 둘 늘어가는

이마 위 주름살을 보며

애살스런 나잇살을 챙기는 계절

인간은 사랑없이 살 수 없기에

이런 계절엔

우리 모두 사랑과 동행을 하자...

-좋은생각 중에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17.html
kolaswqetsrq 11.01 18:48
이 가을엔 우리 모두 사랑을 하자

이 가을엔 우리 모두 사랑을 하자

이 가을엔 우리 모두

사랑을 하자

지난 계절 한 여름 밤을

하얗게 밝힌 상처받은

가슴을 깨끗이 털고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친구여

이 가을엔 사랑과 동행을 하자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아무도 듣고 있지 않는 것처럼

아무런 돈도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춤추고, 노래하고,

일하며 살아가자

지나쳐 버린 세월의 수레바퀴

봄, 여름이 떠나고

조심스런 몸짓으로 찾아온 계절

우리에게 뿌린 만큼 거둔다는

진리를 가르치며 조용히

일깨움을 주는 그런 계절

산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하나, 둘 늘어가는

이마 위 주름살을 보며

애살스런 나잇살을 챙기는 계절

인간은 사랑없이 살 수 없기에

이런 계절엔

우리 모두 사랑과 동행을 하자...

-좋은생각 중에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17.html
kolaswqetsrq 11.01 18:49
별을 보려면 어둠이 꼭 필요하다.

별을 보려면 어둠이 꼭 필요하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반드시 어두운 밤이 있습니다

질병이라는 밤

이별이라는 밤

좌절이라는 밤

가난이라는 밤 등등

인간의 수만큼이나 밤의 수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밤을 애써 피해왔습니다

가능한 한 인생에는 밤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왔습니다

그러나 밤이 오지 않으면 별이 뜨지 않습니다

별이 뜨지 않는 인생이란,

죽은 인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누구도 밤을 맞이하지 않고서는

별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밤을 지나지 않고서는

새벽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꽃도

밤이 없으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없습니다

이른 아침에 활짝 피어난 꽃은

어두운 밤이 있었기 때문에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봄에 꽃을 피우는 꽃나무도

겨울이 있었기 때문에 꽃을 피웁니다

신은 왜 인간으로 하여금

눈동자의 검은자위로만 세상을 보게 했을까요?

눈을 만들 때 흰자위와 검은자위를

동시에 만들어 놓고 말입니다

그것은 어둠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라는 뜻이 아닐까요?

어둠이 통하지 않고서는

세상의 밝음을 볼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요?

별은 밝은 대낮에도 하늘에 떠 있습니다

하지만, 어둠이 있어야 별을 바라볼 수 있듯이

고통과 시련이라는 어둠이 있어야만

내 삶의 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의 캄캄한 밤,

그것이 비록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밤일지라도

그 밤이 있어야 별이 뜹니다.

그리고 그 별들은 따뜻합니다.

-정호승-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47.html
kolaswqetsrq 11.01 18:49
사랑해서 좋은사람

사랑해서 좋은사람

가을 하늘만큼이나

투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날마다 햇살처럼 내려와

내 가슴에 앉아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옷깃에 닿을 듯 말 듯

살며시 스쳐 다가와서

나의 살갗 깊숙이 머무는

내 입김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때문에

내가 언제부터인지

마음 한쪽을 깊게 도려내어

가장 크게 들여놓고

날마다 심장처럼 끌어안고 사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사랑해서 좋은 사람입니다

가슴에 무한정 담아두어도

세월이 흐를수록 진한 여운으로 다가오는

포도주 같은 사람입니다

마실수록 그 맛에 취하는

진한 그리움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 사람을 가슴에 넣습니다

사랑해서 좋은 사람을

한번 더 내 안에 넣어 봅니다

-이준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96.html
kolaswqetsrq 11.01 18:50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언제나 머무르기를

좋아합니다.

지나치게 주관이 강하고

마음이 굳어 있고

닫혀 있는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떠나가는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고

열린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한다면

그 사람 가까이에

있고 싶어할것입니다.

다른 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마음을 받아 주는 것은

그 사람이 낮아지고

겸손한 사람일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애써 주려고 하지 않아도

열린 마음으로 남의 말을

경청하려 든다면 그 사람

곁에 늘 사람들이

머물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춰

저 평지와 같은 마음이

되면 거기엔 더 이상

울타리가 없으며

벽도 없을 것입니다.

봄이 되면 넓디 넓은

들판엔 수많은 들꽃들이

제각기 색깔이 다르지만

어울려서 잘들 살아가듯이

그렇게 열려 있는 마음은

편안하게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들판에 피어 있는 들꽃들은

여러 모양과 향기가 달라도

서로 시기하지 않으며

싸우려고 들지 않으며

아무런 갈등도 없이

살아갑니다.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 곁에는 그 것처럼

열린 마음은 자유로운

마음입니다.열린 마음은

강합니다.

나를 낮추고

마음을 열어 두십시요.

진정 강해지려면 마음을 열고

끝없이 자신을 낮추 십시요.

저 광활한 들판이어떤 것과도

자리다툼을 하지 않듯이

열린 마음에는 일체의 시비가

끼어 들지 않습니다.

-정성을 담은 글 중에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6.html
kolaswqetsrq 11.01 18:51
창밖을 내다 봐.

창밖을 내다 봐.

창밖을 내다 봐.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으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거야.

조용히 귀를 기울여 봐.

너의 가슴에서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거야.

눈을 감아 봐.

입가에 살짝 미소가 띠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거야

 "
-영화 클래식 중에서-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40.html
kolaswqetsrq 11.01 18:51
지혜로운 랍비

지혜로운 랍비

중세때 슈무엘 이라는 고명한 한 랍비가 있었습니다. 그는 시인이며 지혜롭고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는 당시 아라비아의 그라나다 왕의 고문을 맡을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왕과 행차를 하게 되었는데 느닷없이 한 행색이 아주 남루한 남자가 와서 랍비에게 욕을 하였습니다. 이에 왕이 노하여 고문인 랍비에게 명령을 하였습니다. "저 사나이를 당장 붙잡아다가 혀를 뽑으라고 호위병에게 명령하시오."

그러나 랍비는 그 남자가 자신에게 왜 욕을 했는지 알아 보라고 호위병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나이는 주거지도 없고 의식도 부자유스러운 가난한 시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랍비는 즉시 그를 위해 집을 마련해 주고 생활에 필요한 돈을 주었습니다. 얼마 안 되어 두 사람은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왕이 또 어느 날 랍비를 대동하고 거리를 걸어가니 그 가난한 시인이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왕과 고문에게 감사하고 칭송하며 축복하였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왕은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그대에게 저 사나이의 혀를 뽑으라고 명한 바 있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은거요?"

그때 랍비 슈무엘이 대답하였습니다.

"왕이시여 저는 분명 왕의 명령대로 행하였습니다. 단지 저는 그 사나이의 나쁜 혀를 뽑아내고 그 대신 좋은 혀를 다시 넣어 주었을 뿐입니다."

사랑의 혀를 뽑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행동이 바뀌질 않습니다. 좋은 혀와 나쁜 혀는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마음이 좋게 바뀌면 혀도 좋은말을 하게 되어있고 마음이 악하면 혀도 악하게 말을 합니다.

혀를 바꾸려면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박성목, 가슴으로 읽는 탈무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8.html
kolaswqetsrq 11.01 18:52
믿음 하나로 / 이소연

믿음 하나로 / 이소연

풀잎은

이슬을 좋아해서

싱그러움으로 빛나고

여름은

그대를 사모해서

푸르게 푸르게 물이 듭니다

해바라기는

외롭고 힘들어도

오직 태양을 향해 돌듯

어여쁜 사랑이

변함없는 믿음 하나로

당신의 마음만을 담았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80.html
kolaswqetsrq 11.01 18:52
인생을 최고로 여행하라

 "
인생을 최고로 여행하라
",

-니체-

인생의 첫걸음은

자신에 대한 존경심에서부터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실적을 이루지 못한

자신을 존경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자신을 존경하면

악한 일은 결코 행하지 않고

인간으로써 손가락질당할 행동 따윈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이상에 차츰 다가가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타인의 본보기가 되는 인간으로 완성되어 간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 꿈을 이루는데

필요한 능력이 된다.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스스로를 존경하라.

-카 스토리 에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73.html
kolaswqetsrq 11.01 18:53
외투

외투

낯선 외로움까지

깊이 감싸주는

한 벌의 외투이고 싶다.

한켠에 구겨져 있다가도

그대가 나를 찾을 때

스스럼없이 그대 곁으로 다가설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한,

내내 익혀온 그대의 체온

가슴 속속들이 묻어 두었다가

그대에게 풀어 건네느라

혼자 웃음 지으며 흐뭇해지는

조금은 허름하고 얼룩도 졌지만

마음 내킬 때면 언제나

쉽게 들쳐 입고 나설 수 있는

이야기 나누기 편한 오랜 친구처럼

항상 함께 할 수는 없지만

곁에서 머무르다

누군가의 숨결이 그리울 때

안아내는 넉넉한 공간이 되어

세상의 가장 깊은 고독과

그대만의 넘칠 듯한 환희까지도

가만 아우를 수 있는

따뜻한 그대만의 공간이 되고 싶다

온전한 그대만의 사랑이 되고 싶다.

-장창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1.html
kolaswqetsrq 11.01 18:54
당신에게 보내는 아침편지

당신에게 보내는 아침편지

찻잔에 영롱한 이슬을 만들고

새벽 별 두 눈에 가득 채우면

따뜻한 당신의 미소는

마음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하루를 걷는 아침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늘 부족하고

채워 질수 없는 가슴엔

당신 심장에 내가 있고

내 심장에

붉게 물든 꽃잎되어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랑하는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세상 속 에서 배운게 없었고

등지고 돌아서는

무서움을 알게 되었지만

당신 속에서

많은것을 배웠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동자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늘 욕심 많은 날 이지만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이 만큼만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당신안에서 숨을 쉬는 동안

더 이상은 욕심 부리지 않고

당신 곁에 있어

고마운 하루에 감사하며

살아 갈수 있도록

마음을 조금은 비워두며 살겠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옮긴 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61.html
kolaswqetsrq 11.01 18:54
가끔씩 안부를 전합니다

가끔씩 안부를 전합니다

계절이 가는 날들이 아쉬워

새롭게 맞는 날들이 아쉬워

오늘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의 인사를 전합니다

살아가면서 만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더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서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더는 좋은 인연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살아보니 알게되더이다

많이 아파봤기에

아픈 눈물을 알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조금씩 웃었기에

늘 웃는 즐거움을 알게되고

혼자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

참 행복한 길임을 알게되더이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렵니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렵니다

가끔식 안부를 전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당신이

새롭게 맞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의 인사를 전합니다

-송곡-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87.html
kolaswqetsrq 11.01 18:55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서로 다른 얼굴로 모여 사는 세상

아픈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상처주지 않고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좋다.

서로를 위로하고 챙겨주는 사람이 나는 좋다.

단점이 있어도 덮을 줄 아는 사람

장점만을 골라서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나는 좋다.

작은 것이라도 배려하며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나는 좋다.

격려하고 위로해주고

훈훈한 정으로 마주 앉아 웃음 지으며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사람이고 싶다.

-이광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5.html
kolaswqetsrq 11.01 18:56
9월의 약속

9월의 약속

산이 그냥 산이지 않고

바람이 그냥 바람이 아니라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약속이 되고 소망이 되면

떡갈나무 잎으로 커다란 얼굴을 만들어

우리는 서로서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

손내밀면 잡을만한 거리까지도 좋고

팔을 쭉 내밀어

서로 어깨에 손을 얹어도 좋을 거야

가슴을 환희 드러내면

알지 못했던 진실함들이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산울림이 되고 아름다운 정열이 되어

우리는 곱고 아름다운 사랑들을

맘껏 눈에 담겠지

손잡자

아름다운 사랑을 원하는 우리는

9월이 만들어놓은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에서

약속이 소망으로 열매가 되고

산울림이 가슴에서 잔잔한 울림이 되어

하늘 가득히 피어오를

변치 않는 하나를 위해!

-오광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9_12.html
kolaswqetsrq 11.01 18:56
그대의 아침인사

그대의 아침인사

지난 하루 쌓인 피로를 간밤

비몽사몽 뒤척거리던 잠결 속에선

온전히 떨쳐버릴 수가 없었으매

이 아침 "안녕?"이란 그대의 상큼한

인사말이야말로 애벌레 허물 벗듯

몸속에 축적된 피로 훌훌 털고

일순, 세상을 반갑고도 밝게

맞아들이게 하지요

그대의 아침인사는 언제나

밥솥에서 금방 퍼담은 밥그릇에서

전해져오는 따뜻함과도 같아서

그것은 어쩌면 마법과도 같아서

알 수 없는 자양분들이 몸속으로

샘물처럼 졸졸졸 흘러 전해져와

새 하루, 전장에서 버틸

왕성한 에너지가 되곤 하지요

한 첩 보약인들 그에 비할까요

그대의 아침인사엔 또한

아침 햇살과도 같은 신선함이 있고

지난 하루 도심 속에서 혼탁해진

피와 정신마저 정제해 줄 정도의

감미로운 선율도 있어서

뻐득뻐득 건조해진 온몸의 정기를

부드럽게 흠뻑 적셔주곤 하지요

그대의 아침인사는 언제나 한 끼

식사보다도 따뜻하고 푸근하여

지난 하루 차갑게 식어버린 내 몸

다시 속속들이 데워내곤 하지요

그대의 아침인사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그대가 아니고선

누구나 쉬 뿜어낼 수 없을 것 같은

특유하고도 은은한 향기지요

마법과도 같은 그대만의 힘이지요

-안재동-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3.html
kolaswqetsrq 11.01 18:57
진실로 그대를 사랑한다면

진실로 그대를 사랑한다면

그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노라고 말하지 말라.

사랑은, 주면 줄수록 더욱 넉넉히 고이는 샘물 같은 것.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그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노라고 말하지 말고

마지막 남은 눈물마저 흘릴 일이다.

기어이 가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붙잡지 말라.

사랑은, 보내 놓고 가슴 아파하는 우직한 사람이 하는 일.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떠나는 그의 앞길을 막아서지 말고

그를 위해 조용히 고개 끄덕여 줄 일이다.

사랑이란 그런 거다.

그를 위해 나는 한 발짝 물러서는 일이다.

어떤 아픔도 나 혼자서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를

내 안에만 가둬 두지 않을 것이다.

-이정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30.html
kolaswqetsrq 11.01 18:58
부중지어ᅵ釜中之魚

부중지어ᅵ釜中之魚

○ 눈앞에 닥칠 위험도 모른 채 쾌락에 빠져 있는 사람

○ 釜(솥 부) 中(가운데 중) 之(어조사 지) 魚(물고기 어)

솥 안의 물고기, 곧 삶아지는 것도 모르고 솥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 눈앞에 닥칠 위험도 모른 채 쾌락에 빠져 있는 사람을 말한다.

後漢(후한)말께 20여 년간 황제의 외척인 梁翼(양익)형제는 권력을 멋대로 휘둘렀다. 양익이 대장군이 되고 그의 아우 不疑(불의)가 하남 태수가 되었을 때 그들 은 여덟 명의 使者(사자)를 각 고을에 파견, 순찰하도록 했다. 그 여덟 명의 사자 중에는 張綱(장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烙陽(낙양) 숙소에다 수레바퀴를 묻어버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산개와 이리 같은 양익 형제가 요직을 차지하고 설쳐대는데 여우나 살쾡이 같은 지방 관리들을 조사하며 돌아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면서 장강은 도처에 양익 형제를 탄핵하는 15개 조항의 상소문을 올렸다. 이 때문에 장강은 양익 형제의 미움을 사서 광릉군의 태수로 쫓겨났다. 더구나 광릉군은 양주와 서주 지방을 10여 년간 휩쓸고 다니는 장영이 이끄는 도적떼의 근거지다.

광릉군에 부임한 장강은 곧바로 혼자서 도적떼의 소굴을 찾아가 장영에게 간곡히 귀순을 권했다. 장영은 장강의 설득에 깊은 감명을 받고 울면서 말했다.

"벼슬아치들의 가혹한 처사에 배기다 못해 모두가 모여서 도적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목숨이 붙어있지만 마치 솥 안에서 물고기(釜中之魚)가 헤엄치는 것과 같아 결코 오래 갈 수는 없겠지요."

이리하여 만여 명의 도적들은 모두 항복했고 장강은 그들에게 큰 잔치를 베푼 뒤 모두 풀어주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62.html
kolaswqetsrq 11.01 18:58
각화무염ᅵ刻畵無鹽

각화무염ᅵ刻畵無鹽

○ 무염 얼굴에 치장을 하다

○ 刻(새길 각) 畵(그림 화) 無(없을 무) 鹽(소금 염)

無鹽(무염)은 중국의 지역 이름이다. 그곳 출신의 한 여인이 무척 박색이었다. 아무리 얼굴을 꾸며보아도 성형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얼굴이 어디 가겠는가? 밑바탕이 천한데 고급스러운 물건을 사용해본들 격에 어울리지 않음을 나타내는 우리 속담 ‘짚신에 국화 그리기’나 ‘석새짚신에 구슬감기’와 같은 말이다. 석새는 성글고 굵은 삼베를 뜻한다. 흔히 하는 속된 표현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나’라고 하면 뜻이 더 분명하다. 여기에서 도저히 비유가 되지 않는데 억지로 갖다 붙이거나 너무 차이가 나는 물건을 비교할 때 쓰이게 됐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의 무염이란 읍에 鐘離春(종리춘)이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얼마나 못 생겼던지 나이가 마흔이 되도록 시집도 못가고 늙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혜가 뛰어난 종리춘이 宣王(선왕)을 찾아가 당시 나라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조목조목 제시하며 해결책을 올렸다. 왕이 재능에 감복하여 종리춘을 왕후로 삼고 無鹽君(무염군)에 봉했다. 미녀의 대표를 西施(서시)라 칭하듯이 아무리 왕후가 되었어도 못생긴 얼굴은 어디 가지 않아 사람들은 무염을 추녀의 대명사로 불렀다.

唐太宗(당태종)때 房玄齡(방현령) 등이 편찬한 ‘晉書(진서)’에 명확한 쓰임이 보인다. 진나라 元帝(원제)때 周顗(주의, 顗는 즐길 의)라는 곧은 선비가 있었다. 신하들 중 일부가 주의에게 당신을 고결하기가 樂廣(악광)과 같이 여긴다고 말했다. 악광은 그의 말을 들으면 마치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는 것과 같다는 칭송을 들을 정도로 사물의 이치를 통달한 진나라의 현인이었다. 이런 사람과 비교하자 주의는 펄쩍 뛰며 말했다. ‘어찌 무염에게 화장을 한다고 하여 갑자기 서시가 되겠는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55.html
kolaswqetsrq 11.01 18:59
불비불명ᅵ不蜚不鳴

불비불명ᅵ不蜚不鳴

○ 큰 일을 하기 위해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는 뜻

○ 不(아닐 불) 蜚(날 비) 不(아닐 불) 鳴(울 명)

제위왕(薺威王) 때의 일이다. 왕은 수수께끼와, 음탕하게 놀면서 밤새워 술 마시기를 즐겨 정사(政事)는 경(卿)이나 대부(大夫)에게 맡겼다. 그렇게 되자 백관들 간에는 위계 질서가 서지 않게 되었고, 제후들의 침입으로 나라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측근의 신하들은 왕에게 충성스런 간언을 감히 못하였다. 이때 순우곤(淳于곤)이 왕에게 이런 수수께끼를 냈다. 나라 안의 큰 새가 대궐 뜰에 멈추어 있습니다. 3년이 지나도록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왕께서는 이것이 무슨 새인 줄 아십니까?” 왕이 대답했다. “이 새는 날지 않으면 그뿐이나 한 번 날면 하늘에 오르며, 울지 않으면 그뿐이나 한 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그 후 왕은 여러 현(懸)의 영장(令長) 72명을 조정으로 불러 그 중 한 사람은 상을 주고, 한 사람은 벌을 주었다. 그리고는 군사를 일으켜 출정하였다. 제후들이 크게 놀라서 그 동안 침략하여 차지한 제나라 땅을 모두 돌려주었으며, 이로써 제나라의 위엄이 36년간에 걸쳐 떨쳐졌다.

또한 여씨춘추(呂氏春秋) “중언(重言)”편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초(楚)나라 목왕(穆王)이 죽고 아들 장왕(莊王)이 즉위하였다. 장왕은 황하 남쪽까지 세력권을 확장한 목왕과는 달리, 밤낮으로 주색에 파묻혀 있으면서 간언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했다. 왕의 이런 생활은 어느덧 3년 세월이 흘렀다. 충신 오거(五擧)가 연회석 자리에 나와 이렇게 말하였다.

“언덕 위에 새 한 마리가 있는데,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이는 어떤 새입니까?” 장왕은 매서운 눈초리로 오거를 보더니 말했다.

“3년 동안 날지 않았으니 한 번 날면 하늘까지 이를 것이고, 3년 동안 울지 않았으니 한 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오. 알았으면 물러가시오.” 장왕은 오거의 질문의 의미를 모르는 듯 여전히 음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자 대부(大夫) 소종(蘇從)이 다시 간언을 했다. 장왕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가?” 소종은 머리를 조아린 채 말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눈을 뜨시기를 간언하는 것입니다.” 그 후 장왕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조정으로 나와 정사를 돌보았다. 장왕은 수많은 인물을 다시 등용하는가 하면, 부패와 부정을 일삼는 관리들을 벌 주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91.html
kolaswqetsrq 11.01 19:00
적우침주ᅵ積羽沈舟

적우침주ᅵ積羽沈舟

○ 새털처럼 가벼운 것도 많이 실으면 배가 가라앉는다

○ 積(쌓을 적) 羽(깃 우) 沈(잠길 침) 舟(배 주)

새털처럼 가벼운 것도 많이 실으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뜻으로, 1작은 일도 쌓이고 쌓이면 큰 일이 됨 2또 작은 것, 힘없는 것도 많이 모이면 큰 힘이 됨

작은 물건이라도 꾸준히 모으면 나중에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대표적인 속담이 ‘티끌모아 태산’이고 들어맞는 성어가 塵合泰山(진합태산)이다. 90세 되는 노인이 마을 앞뒤의 산을 대를 이어 옮긴다는 愚公移山(우공이산)이나 도끼를 갈아 바늘 만들기란 磨斧作針(마부작침). 또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水滴穿石(수적천석), 이슬이 바다를 이루는 露積成海(노적성해) 등이 있다. 여기에 더하여 새의 깃이라도 쌓이고 쌓이면(積羽) 배를 가라앉힐 수 있다(沈舟)는 이 성어도 작은 힘을 합치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7개 강국을 오가며 외교전을 펼쳤던 張儀(장의)에 의해 이 말이 유래했다. 七雄(칠웅)으로 일컬어졌던 秦楚燕齊韓魏趙(진초연제한위조) 사이에 세력을 넓히려고 쓴 전술이 合從連衡(합종연횡, 衡은 저울대 형, 또는 가로 횡)이다. 장의와 함께 鬼谷(귀곡) 선생에 사사한 蘇秦(소진)은 최강국인 진나라에 맞서려면 6국이 힘을 합쳐야 된다며 合縱策(합종책)을 주장했다. 여기에 맞서 장의는 합종이 일시적 허식이며 진을 섬겨야 안전하다고 설득하여 동맹을 맺는데 성공했는데 이것이 연횡책이다.

진나라의 재상이었던 장의는 위나라의 哀王(애왕)을 찾아가 변설을 늘어놓으며 설득한다. 前漢(전한)시대의 학자 劉向(유향)의 ‘戰國策(전국책)’ 중에서 魏策(위책)에 실린 내용을 보자. 합종론자들은 군주를 설득하면 侯(후)에 봉해지므로 벼슬에 눈이 어두워 유세하기 때문에 현혹되면 나라가 기울어진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제가 듣기에 가벼운 깃털도 쌓이고 쌓이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짐도 모이면 수레의 굴대를 부러뜨리며, 민중이 입을 모아 외치면 쇠도 녹인다고 했습니다(臣聞 積羽沈舟 群輕折軸 衆口鑠金/ 신문 적우침주 군경절축 중구삭금).’ 합종론자들의 감언이설에 놀아나지 말라는 이야기다. 애왕은 합종에서 탈퇴하고 진나라와 연횡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36.html
kolaswqetsrq 11.01 19:00
미생지신ᅵ尾生之信

미생지신ᅵ尾生之信

○ 미생의 믿음, 약속을 굳게 지킴

○ 尾(꼬리 미) 生(날 생) 之(갈 지) 信(믿을 신)

미생의 믿음, 1 약속을 굳게 지킴의 비유. 2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음의 비유.

춘추 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尾生高)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는 사나이였다. 어느 날 미생은 애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정시에 약속 장소에 나갔으나 웬일인지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생이 계속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생은 약속 장소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결국 교각(橋脚)을 끌어안은 채 익사하고 말았다. 전국 시대, 종횡가로 유명한 소진(蘇秦)은 연(燕)나라 소왕(昭王)을 설파할 때 신의 있는 사나이의 본보기로 미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같은 전국 시대를 살다간 장자(莊子)의 견해는 그와 반대로 부정적이었다.

장자는 그의 우언(寓言)이 실려 있는《장자》〈도척편(盜 篇)〉에서 근엄 그 자체인 공자와 대화를 나누는 유명한 도둑 도척(盜 )의 입을 통해 미생을 이렇게 비평하고 있다. "이런 인간은 책형( 刑:죄인을 기둥에 묶고 창으로 찔러 죽이던 형벌)당한 개나 물에 떠내려간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명목에 구애되어 소중한 목숨을 소홀히 하는 인간은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59.html
kolaswqetsrq 11.01 19:01
병사지야ᅵ兵死之也

병사지야ᅵ兵死之也

○ 전쟁은 목숨을 던질 각오를 하고 해야 된다는 뜻

○ 兵(군사 병) 死(죽을 사) 之(어조사 지) 也(어조사 야)

전쟁이란 사람이 죽는 것, 전쟁은 목숨을 던질 각오를 하고 해야 된다는 뜻이다

조사(趙奢)는 본래 조(趙)나라의 부세를 징수하는 낮은 관리였다. 한번은 평원군(平原君) 집에서 조세를 내지 않으려고 하자, 법에 따라 그 집의 책임자 아홉 명을 사형에 처하였다. 이때 평원군이 진노하여 조사를 죽이려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조나라의 귀공자이십니다.

지금 당신의 집에서 공사(公事)를 받들지 않는 것을 그대로 둔다면 국법은 흔들릴 것이고, 국법이 약해지면 나라도 약해지게 됩니다. 나라가 약해지면 제후들이 병사를 모아 침범할 것이고, 제후들이 군사를 일으키면 조나라는 멸망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공께서 이와 같은 부를 누리실 수 있겠습니까?”

이 일로 조사는 국가 세금을 관장하는 자리에 발탁되었고, 후에는 마복군(馬服君)에 봉해져 염파, 인상여와 같은 지위가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진나라와 조나라는 다시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진나라가 몇 번이나 싸움을 걸어 와도 염파는 방벽을 굳게 쌓고 끝내 응전하지 않았다. 그러자 진나라에서 이런 소문을 퍼뜨렸다.

“진나라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마복군 조사의 아들 조괄(趙括)이 장수가 되는 것뿐이다.” 이 소문은 사실무근이었으나, 조나라 왕은 조괄을 장수로 삼아 염파를 대신하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인상여는 그 일을 반대하며 말했다. “대왕께서는 조괄의 명성만으로 그를 쓰려고 하시는데, 그것은 거문고 기둥을 풀로 붙여 둔 채 거문고를 타려는 것과 같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23.html
kolaswqetsrq 11.01 19:01
지금, 여기에, 내가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내가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내가 있습니다.

뒤돌아보지 말자.

만 번쯤 다짐하며 달려온 곳입니다.

충실한 오늘은 곧 후회 없는 어제가 되고,

준비된 미래가 된다고 하지만

내가 뒤돌아보지 않음은

어제가 너무 아프기 때문입니다.

 "
멈춤도 전진이라고 합니다.
",

조금...조그만...잠시 쉬었다

내 초라하고 깊은 한숨은 멈추고

다시 달려가겠습니다.

 "
-한·꿈·그리움 중-
",

♨ 좋은글 더보기 : iusan.com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81.html
kolaswqetsrq 11.01 19:02
방약무인ᅵ傍若無人

방약무인ᅵ傍若無人

○ 곁에 사람이 없는 것 같이 여긴다

○ 傍(곁 의지할 방) 若(갈을 약) 無(없을 무) 人(사람 인)

곁에 사람이 없는 것 같이 여긴다. 주위의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마구 행동함을 이르는 말

전국 시대도 거의 막을 내릴 무렵, 즉 진왕(秦王) 정(政:훗날의 시황제)이 천하를 통일하기 직전의 일이다. 당시 포학 무도한 진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자객 중에 형가(荊軻)라는 사람이 있었다.

 "
그는 위(衛)나라 사람이었으나 위나라 원군(元君)이 써주지 않자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연(燕)나라에서 축(筑:거문고와 비슷한 악기)의 명수인 고점리(高漸離)를 만났다. 형가와 고점리는 곧 의기투합(意氣投合)하여 매일 저자에서 술을 마셨다. 취기가 돌면 고점리는 축을 연주하고 형가는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감회가 복받치면 함께 엉엉 울었다.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傍若無人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94.html
kolaswqetsrq 11.01 19:03
도리불언ᅵ桃李不言

도리불언ᅵ桃李不言

○ 복숭아 자두나무는 말 하지 않는다, 덕이 있으면 사람이 모여 든다.

○ 桃(복숭아 도) 李*오얏 리) 不(아닐 불) 言(말씀 언)

복숭아(桃)와 오얏(자두)(李)은 꽃이 곱고 열매가 맛이 좋으므로, 오라고 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그 나무 밑에는 길이 저절로 생긴다는 뜻으로,덕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따름을 비유(比喩ᆞ譬喩)해 이르는 말

복숭아나무와 오얏, 요즘의 자두나무는 그 열매나 꽃이 아름다워 합쳐 말한 桃李(도리)로 자주 쓴다. 시에도 자주 인용됐다. 白樂天(백낙천)의 ‘長恨歌(장한가)’에는 ‘봄바람 산들 불어 복사꽃 오얏꽃 피는 밤(春風桃李花開夜)’에는 그리움이 더욱 사무친다고 했다. 남이 천거한 어진 사람이나 사제지간의 뜻도 있다. 桃李滿門(도리만문)이라 하면 재주나 풍모가 뛰어난 제자가 문하에 가득하다는 이야기다.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桃李)는 말을 하지 않는다(不言)는 뜻의 이 성어는 뒤에 下自成蹊(하자성혜)라는 말이 따라야 완전한 뜻을 이룬다. 이들 나무의 아래에는 길이 저절로 생긴다는 뜻이다. 蹊는 지름길 혜. 成蹊(성혜)라고 줄여서 사용하기도 한다.

복숭아꽃과 자두꽃은 매우 아름다워 오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다투어 찾아오게 되므로 그 아래에 길이 저절로 생겨난다. 덕이 있는 사람은 조용히 있어도 사람들이 그 덕을 사모하여 따르게 된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하든지 떠벌리지 않고 꾸준히 갈 길만 가는 것을 일컫기도 한다. 이 성어는 ‘史記(사기)’의 李將軍(이장군) 열전이나 ‘漢書(한서)’의 李廣蘇建傳(이광소건전) 등에 예부터 내려오는 말이라며 李廣(이광) 장군을 평가하는데 썼다. 前漢(전한) 초기의 장수 이광은 말타기와 활쏘기에 출중한 재능을 지녀 바위를 호랑이로 알고 쏘았더니 화살이 박혔더라는 中石沒鏃(중석몰촉)의 주인공이다.

또 이광은 변방의 匈奴(흉노)가 침입할 때 70여 차례나 물리쳐 飛將軍(비장군)이라 불리며 두려워했다. 인품도 훌륭해 따르는 사람이 많았지만 눌변인데다 조정에 줄도 없어 중용되지 못하던 중 대장군 衛靑(위청)의 핍박으로 자결하고 만다. 司馬遷(사마천)은 그를 가리켜 ‘몸이 바르면 영을 내리지 않아도 실행되고, 몸이 바르지 못하면 영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 기신정 불령이행 기신부정 수령부종)’면서 속담에 이르기를 ‘복숭아와 오얏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아래 저절로 길이 생긴다(桃李不言 下自成蹊/ 도리불언 하자성혜)’고 높이 기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43.html
kolaswqetsrq 11.01 19:04
역천자망ᅵ逆天者亡

역천자망ᅵ逆天者亡

○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

○ 逆(거스릴 역) 天(하늘 천) 者(놈 자) 亡(망할 망)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무서운 구절은 ‘孟子(맹자)’에 나온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덕이 작은 자가 덕이 큰 자에게 부림을 당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어진 사람에게 부림을 당한다. 천하에 도가 없으면 힘이나 세력이 약한 자가 큰 자에게 부림을 당한다. ‘이 두 가지는 하늘의 이치이니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자는 살아남고, 이를 거스르는 자는 멸망한다(斯二者天也 順天者存 逆天者亡/ 사이자천야 순천자존 역천자망).’ 도덕적 원리가 통하는 세상에는 덕에 의해 양자 관계가 규정되지만, 그것이 통하지 않는 난세에는 무력이나 금력이 그 기준이 된다는 의미다. 離婁(이루) 상편에 있다.

인격 수양을 위한 한문 교양서 秋適(추적)의 ‘明心寶鑑(명심보감)’에도 같은 글귀가 天命(천명)편에 실려 있다. 선을 지키고 악을 버리는 하늘의 진리, 하늘의 명, 천도에 관한 글귀들을 모은 부분이다. 여기에 나오는 몇 구절을 보자. ‘오이씨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서 성글기는 하지만 사소한 것 하나라도 빼놓지는 않는다(種瓜得瓜 種豆得豆 天網恢恢 疎而不漏/ 종과득과 종두득두 천망회회 소이불루)’는 말은 老子(노자)가 한 말로 天網恢恢(천망회회)서 소개했다. ‘만일 사람이 착하지 못한 일을 하여 세상에 이름을 드높인 자는 비록 사람이 해치지 않더라도 하늘이 반드시 벌할 것이다(若人作不善 得顯名者 人雖不害 天必戮之/ 약인작불선 득현명자 인수불해 천필륙지).’ 戮은 죽일 륙. 莊子(장자)가 한 말로 나온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42.html
kolaswqetsrq 11.01 19:04
참 좋다/ 김해정

참 좋다/ 김해정

늘 한결같은

사람이 좋다

늘 똑같은 사람

비슷한 마음이라 느끼면서

참새처럼 재잘대는

내 말을 따뜻하게 받아주는

그대의 따뜻함이 좋다

시절 인연 운운하며

적당한 자신감이

몸에 베여

자존심보다 자존감을 앞세워

은근히 나의 철부지 성격을

맞춰주며 웃어주는

그런 당신이 좋다

급하지 않게, 조금 천천히

쉬어가는 휴식의 공간

나만의 자리를 만들어 주는

좋은 것에 이유가 없다며

변함없이 늘 있던 자리에

샘솟는 비타민을 제공해 주는

그런 사람

오늘따라 참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51.html
kolaswqetsrq 11.01 19:05
인생의 이정표

인생의 이정표

흰 눈 밭의 발자국처럼 앞선 이의 발자국을 보며 따라가면 되는 이정표가 있었음 좋겠다.

인생에도

삶에도

행복이라는 목적지로 가는 안전한 앞선 이의 길이 있음 좋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얼만큼 노력하면 되는지?

정답이 있음 좋겠다.

알 수 없는 미로 속의 길을 무작정 걸어가는 인생 두렵다.

따라가기만 하면

따라하기만 하면

행복해지는 그런 길을 걷고 싶다.

인생의 이정표처럼 편하게 걷고 싶다.

 "
-인생은 아름다웠다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95.html
kolaswqetsrq 11.01 19:06
네가 좋다 참말로 좋다

네가 좋다 참말로 좋다

네가 좋다 참말로 좋다.

이 넓디넒은 세상

널 만나지 않았다면

마른나무 가지에 앉아

홀로 울고 있는 새처럼

외로웠을 것이다.

너를 사랑하는데

너를 좋아하는데

내 마음은 꽁꽁 얼어버린 것만 같아

사랑을 다 표현할 수 없으니

속 타는 마음을 어찌하나.

모든 계절은 지나가도

또다시 돌아와

그 시절 그대로 꽃피어나는데

우리들의 삶은 흘러가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어

사랑을 하고픈 걸 어이하나.

내 마음을 다 표현하면

지나칠까 두렵고

내 마음을 다 표현못하면

떠나가 버릴까 두렵다.

나는 네가 좋다 참말로 좋다.

네가 좋아서 참말로 좋아서

사랑만 하고 싶다.

-용혜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92.html
kolaswqetsrq 11.01 19:06
후회한다

후회한다

후회한다.

사람들의 눈치를 너무 보고

지내왔던 것.

나의 감정 표현을

너무 상대방에 맞춰 했던 것.

너무 늦었다 생각했는데

그때가 가장 빨랐던 것.

걱정만 하고

시도는 해 보지 못했던 것.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를 사랑해 주고

힘내라는 응원이었다.

힘들다면 힘들다고,

울고 싶다면 울고 싶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는 위로였다.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사랑해 줄 사람은

바로 나 자신밖에 없었는데.

결국 인생 끝까지 남을 건

나 자신이다.

나를 가장 사랑할 사람도 나 자신이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중에서 / 이숙명-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85.html
kolaswqetsrq 11.01 19:07
삶의 여백

삶의 여백

여백은 참 아름답습니다.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움에서 오는 위로가 있으니까요.

공간도 시간도 여백과 여유가 있을 때 진짜 아름다움을 갖게 되지요.

조금 비워두세요.

욕심만 내버려도 당신이 훨씬 아름다워질 거에요.

모든 전자기기는 메모리가 꽉 차지 않고 저장 공간이 충분하게 확보 될수록 잘 돌아갑니다.

우리에 삶도 무엇으로 채워지지 않은 자리,

즉 빈곳이 있어야 행복을 가득 채울 수 있지 않을까요?

-정애리, 축복 중에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25.html
kolaswqetsrq 11.01 19:08
9월 11일 오늘의 꽃

9월 11일 오늘의 꽃

이 름 : 알로에(Aloe)

학 명 : Aloe arborescens mill

과 명 : 백합과

분 포 : 아프리카

서 식 : 재배

크 기 : 높이 30∼100cm

개 화 : 여름

꽃 말 : 꽃도 잎새도(flowers, and leaves)

노회, 또는 나무노회라고도 하고, 알로에속(Aloe)에 속하는 식물 전체를 가리키거나 그 한 종을 가리킨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이고, 전세계에 약 300종이 있다. 관엽식물로 온실에서 재배하거나 약으로 쓰려고 가정에서 기르기도 한다.

잎은 뿌리와 줄기에 달리며 어긋나고 반원기둥 모양이며 잎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 모양의 가시가 있고 밑 부분은 넓어서 줄기를 감싸며 로제트 모양으로 퍼진다. 잎 뒷면은 둥글고 앞면은 약간 들어간다.

꽃은 여름에 귤색으로 피고 총상꽃차례를 이루며 밑을 향해 달린다. 화피 조각은 6개이고, 수술도 6개이며,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삭과이고 3개로 갈라진다. 알로에란 아라비아어로 ‘맛이 쓰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고, 노회란 Aloe의‘로에’를 한자로 바꾼 이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알로에의 성분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결과의 의하면, 세균과 곰팡이에 대한 살균력이 있고 독소를 중화하는 알로에틴이 들어 있으며, 궤양에 효과가 있는 알로에우르신과 항암효과가 있는 알로미틴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스테로이드·아미노산·사포닌·항생물질·상처치유 호르몬·무기질 등 다양한 성분이 들어 있다. 알로에는 과로로 인한 피로 회복과 과음으로 인한 숙취 해소 등에 효과가 있고, 알로에의 잎을 잘라두면 유난히 쓴 황색 물질이 흘러나오는데, 이것은 변비에 특히 효과가 있다.

민간에서는 알로에 잎의 액즙을 위장병에 내복하고 외상이나 화상 등에도 이용한다. 또한 건성 피부와 지성 피부를 중성화시키고 피부 보습 효과가 있어 화장품 원료로도 쓰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9-11.html
kolaswqetsrq 11.01 19:0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정희성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 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 있다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22.html
kolaswqetsrq 11.01 19:09
9월 8일 오늘의 꽃

9월 8일 오늘의 꽃

이 름 : 갓(Mustard)

학 명 : Brassica juncea var. integrifolia

과 명 : 겨자과

분 포 : 한국, 중국

서 식 : 식용 재배

크 기 : 높이 1m

개 화 : 봄부터 여름까지

꽃 말 : 무관심(indifference)

한자로 개채(芥菜) 또는 신채(辛菜)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BC 12세기 주(周)나라 때 이 종자를 향신료로 사용하였다고 하며, 한국에서도 중국에서 들여온 채소류로 널리 재배한다.

높이가 1m 정도로 곧게 서며 가지를 친다. 뿌리잎은 넓은 타원형 또는 거꾸로 세운 달걀 모양으로 끝이 둥글고 밑부분이 좁아져 짧은 잎자루가 되며 불규칙한 톱니가 있고 갈라지지 않는다. 줄기잎은 긴 타원형 바소꼴로 가장자리가 밋밋하거나 희미한 톱니가 있고 잎자루가 없으나 줄기를 감싸지 않으며, 양면에 주름이 지고 흔히 흑자색이 돈다.

봄부터 여름까지 총상꽃차례에 노란꽃이 많이 달린다. 꽃받침은 4개, 꽃잎도 4개로 밑부분이 좁아져 자루 모양으로 된다. 각과(角果)는 길고 비스듬히 서며, 종자는 노란색으로 구슬 모양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9-8.html
kolaswqetsrq 11.01 19:10
9월 6일 오늘의 꽃

9월 6일 오늘의 꽃

이 름 : 한련(Nasturtium)

학 명 : Tropaeolum majus

과 명 : 한련과

분 포 : 멕시코와 남아메리카

서 식 : 화분과 화단

크 기 : 길이 1.5m 안팎(덩굴진다)

개 화 : 5월 ~ 8월

꽃 말 : 애국심(patriotic spirit)

한련화라고도 한다. 멕시코와 남아메리카 원산은 여러해살이풀이지만 원예에서는 한해살이풀로 다룬다. 잎은 어긋나고 거의 둥글며 긴 잎자루 끝에 방패같이 달린다. 9개 내외의 맥이 사방으로 퍼지고 잎맥 끝이 다소 파진다.

꽃은 6월에 피고 잎겨드랑이에서 1개의 대가 나와서 끝에 1개의 꽃이 달린다.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5개씩이고, 꽃받침조각의 밑부분은 합쳐지며 뒷부분은 상투 모양이 된다. 꽃색은 붉은색·오렌지색·크림색·노란색 등이고 만첩꽃도 있다.

유럽에서는 승전화(勝戰花)라고 하며 화분과 화단에 심는다. 최근에는 덩굴이 짧은 종류가 개발되고, 꽃은 온도가 적당하면 연중 핀다. 종자로 번식하지만 덩굴을 잘라서 꺾꽂이를 해도 뿌리가 잘 내린다. 배수가 잘 되는 곳이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9-6.html
kolaswqetsrq 11.01 19:10
9월 4일 오늘의 꽃

9월 4일 오늘의 꽃

이 름 : 뱀무(Geum)

학 명 : Geum japonicum

과 명 : 장미과

분 포 : 한국·일본·중국

서 식 : 산과 들

크 기 : 높이 25∼100cm

개 화 : 6월

꽃 말 : 만족된 사랑(satisfied love)

산과 들에서 자란다. 높이 25∼100cm이다. 전체에 털이 난다. 뿌리에 달린 잎은 잎자루가 길고 깃꼴로 갈라지며, 옆의 작은잎은 1∼2쌍이고 작으며 작은잎 같은 부속체가 있다. 꼭대기 작은잎은 넓은 달걀 모양으로서 크고 흔히 3개로 갈라지며 길이와 나비가 각각 3∼6cm이다. 양면에 짧은 털이 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줄기에 달린 잎은 어긋나고 작으며 3개로 갈라지고 잎처럼 생긴 턱잎이 있다.

꽃은 6월에 노란색으로 피며 가지 끝에 1개씩 달린다. 작은꽃자루에 벨벳 같은 털이 난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며 털이 빽빽이 나고 꽃이 핀 뒤 젖혀진다. 열매는 수과가 둥글게 모여 있는 형태이며 나비 약 15mm이다. 암술대는 끝까지 남으며 갈고리와 비슷하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한방에서 이뇨제로 쓰기도 한다. 한국·일본·중국에 분포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9-4.html
kolaswqetsrq 11.01 19:11
꽃은 핀다

꽃은 핀다

땡볕이 화살처럼 쏟아지는

돌 틈에서도, 모래 가운데서도

꽃은 핀다

비바람이 내리꽂는 벼랑 끝에서도,

숨을 헐떡거리는 물속에서도

꽂은 핀다

벌나비가 오지 않아도 꽃은 핀다

열매를 맺지 못해도 꽃은 핀다

때려 죽여도 꽃은 핀다

내일 이름 없이 그냥 꺾일 때 꺾일지라도

메마른 세상에 한 줄기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꽃은 그렇게 말없이 활짝 핀다

-김형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14.html
kolaswqetsrq 11.01 19:11
고건 모르지요

고건 모르지요

어둠이

커다란 어둠이

꽃들을 재웠다고

큰소리치치만

꽃들은

자는 척

향기로 이야기 나누는걸

어둠은

고건 모르지요

-이화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66.html
kolaswqetsrq 11.01 19:12
나뭇잎을 닦다

나뭇잎을 닦다

저 소나기가 나뭇잎을 닦아주고 가는 것을 보라

저 가랑비가 나뭇잎을 닦아주고 가는 것을 보라

저 봄비가 나뭇잎을 닦아주고 기뻐하는 것을 보라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 고이고이 잠드는 것을 보라

우리가 나뭇잎에 얹은 먼지를 닦는 일은

우리 스스로 나뭇잎이 되는 일이다

우리 스스로 푸른 하늘이 되는 일이다

나뭇잎에 앉은

먼지 한번 닦아주지 못하고 사람이 죽는다면

사람은 그 얼마나 쓸쓸한 것이냐

-정호승-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32.html
kolaswqetsrq 11.01 19:13
바로 말해요

바로 말해요

바로 말해요 망설이지 말아요

내일 아침이 아니에요 지금이에요

바로 말해요 시간이 없어요

사랑한다고 말해요

좋았다고 말해요

보고 싶었다고 말해요

해가 지려고 해요 꽃이 지려고 해요

바람이 불고 있어요 새가 울어요

지금이에요 눈치 보지 말아요

사랑한다고 말해요

좋았다고 말해요

그리웠다고 말해요

참지 말아요 우물쭈물하지 말아요

내일에는 꽃이 없어요 지금이에요

있더라도 그 꽃이 아니에요

사랑한다고 말해요

좋았다고 말해요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

-나태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63.html
kolaswqetsrq 11.01 19:13
9월 3일 오늘의 꽃

9월 3일 오늘의 꽃

이 름 : 마거리트(Marguerite)

학 명 : Chrysanthemum frutescens

과 명 : 국화과

분 포 : 유럽과 아시아,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서 식 : 산, 들판

크 기 : 높이는 1m 정도

개 화 : 여름부터 가을

꽃 말 : 마음속에 감춘 사랑(Love one in mind)

높이는 1m 정도이다. 가지가 많으며 밑 부분은 목질이다. 잎은 깃 모양으로 길게 갈라지며, 쑥갓잎처럼 생겼다.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흰색, 노란색 따위의 두상화(頭狀花)가 피는데 들국화와 비슷하다. 꽃이 피어 있는 기간이 길다. 아프리카 카나리아 섬이 원산지이다.

원산지에서는 높이 1m 정도 자라며 상록 초본성 다년생 숙근초로 난대 지역에서는 노지에서 월동한다. 줄기는 목질화하며 줄기와 잎은 마치 쑥갓 같고 털이 없으며 잎은 가장자리가 우상과 같은 거치가 있다. 가을에는 줄기와 잎이 무성하며 가지 끝에 여러 개의 꽃이 핀다. 꽃은 두화로 직경이 5∼6cm 정도 되는 꽃이 긴 꽃대 끝에 설상화가 순백색으로 피며 중심부의 화심은 황색이 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높이가 30cm 내외이고 개화기는 3∼5월이다. 화분용, 화단용, 절화용으로 이용한다. 원산지는 유럽과 아시아, 북아메리카, 아프리카에 분포하는데 전세계에 약 100∼200종이 난다. 한국에는 17종이 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9-3.html
kolaswqetsrq 11.01 19:14
사람의 멋

사람의 멋

덜어내고 털어내고

비워낸다 해서

사람이 가져야 할

멋을 잃게 되거나

삶의 맛이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의 멋,

 "
삶의 맛은 채움에서
",

오는 것이 아니라

 "
비움에서 오기 때문이다..
",

그 길은 진정으로

나 되기 위해 걷는 길이다.

그러니 빨리 걷는 길이기보다

느리게 걷는 길이고,

여럿이 더불어 걷는 길이기보다

홀로 고독하게 걷는 길이다.

물론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고독하지만

쓸쓸하지 않게 말이다.

어쩌면

사람은 나이 들어서

죽는 게 아니라

점점 편하게

주저 앉으면서

조금씩 사그라져 가는 게

아닌가 싶다.

 "
-정진홍의 마지막 한 걸음을 혼자서 가야한다 중에서-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16.html
kolaswqetsrq 11.01 19:14
엉킨 실타래, 사실은 실 한 가닥

엉킨 실타래, 사실은 실 한 가닥

손쓸 수 없는 역경에

부딪혔다고 해서 정말로

손을 놓고만 있을 작정인가요? 도저히 풀 수 없을 것같이 생긴 실타래에 한 번 손을 댔더니

스르륵하고 풀린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복잡하게 엉켜버린

실타래라 해도 일단 풀고 보면

단순한 실 한 가닥일 뿐입니다. 해결하려 시도하지 않고

방치하다 보면

사실 단순한 실 한 가닥이었던 것은

영원히 복잡한 실타래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문제는 해결하기 위해

도전하는 순간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
-임하나의 당신의 빛나는 하루 중에서-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0.html
kolaswqetsrq 11.01 19:15
세상사 마음 먹기에

세상사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데

뒤쳐질까 부족할까

좋은 마음만 먹고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이

골고루 차려진 밥상,

오늘 아침엔 어떤 걸

먹을까 생각하다

역시 좋은 마음을 먹습니다.

 "
-좋은생각(큰글씨)(8월호)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56.html
kolaswqetsrq 11.01 19:16
돌담이 바람에 무너지지 않는 까닭은

돌담이 바람에 무너지지 않는 까닭은

돌담이 바람에 무너지지 않는

까닭은 틈 때문 입니다.

돌과 돌 사이에

드문드문 나있는 틈이

바람의 길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시멘트 담장을

무너뜨려도,

제주의 돌담을 허물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돌담"은 바람의 길을

막아서지 않기 때문 입니다.

그런 돌담을 바람도

굳이 허물고 지날 이유가

없기 때문 입니다.

나는 그런 돌담같은

사람이 좋습니다.

담장처럼 반듯하고 격이 있어 보여도,

군데군데 빈틈이 있어

그 사이로 사람 냄새가

새어 나오는 그런 사람이 좋습니다.

꼭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완벽이란 이름으로

힘들게 찾은 사람냄새 나는 빈틈을

메워버리는 바보만 있을 뿐..

바람이 돌담에 스며들듯 사람이

사람에게 스며들 수 있도록...

 "
-서영식, 툭하면, 인생은 중에서-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35.html
kolaswqetsrq 11.01 19:16
삶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될 때

삶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될 때

삶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될 때

겸손함을 배워가게 되고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다는 걸 알게될때

자만심을 버리게되고

세상에

쉬운일이 없다는 걸 알게될때

깨달음을 얻게되고

사는게

달콤하지 만은 않다는걸 알게될때

어른이 되어갑니다

-유지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37.html
kolaswqetsrq 11.01 19:17
9월에 드리는 기도 / 정정기

9월에 드리는 기도 / 정정기

9월에 드리는 기도가

당신에게 위로가 되어 다시 일어설수 있기를

내가 그리는 그림이

당신의 눈이 밝아져 새로운 희망을 볼수있기를

내가 쓰는 詩한편이

당신의 마음에 격려가 되어

쉼없이 달려온 지난날들에 축복이 되어

높고 푸르러지는 가을하늘에

사랑의 연서를 날리는 9월이 되게 하소서

내가 들려주는 말한마디에

지쳐있는 당신의 마음에 평안한쉼이 되어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수 있기를

내가 웃어주는 웃음속에

피곤이 풀리고 막힘이 뚫리는

긍정의 힘이 되는 9월이 되게 하소서

9월에는

들판에 화려하게 수놓은 구절초 처럼

어디서곤 힘차게 비상하는 꿈과

꾸준히 흐르는 옹달샘물 처럼

삶이 목마르지 않기를 기도하게 하옵소서

9월에 드려지는 기도속에

어제가 빛나게 하고

오늘이 감사가 되고

내일이 회복되어

가을의 풍성함을 기대해도 좋은

아름다운 9월이 되게 하옵시며

9월은

내가 너로 인해

너는 나로 인해 축복의 안부를 전하게 하옵소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9.html
kolaswqetsrq 11.01 19:18
담담하게 받아들이라

담담하게 받아들이라

어느 날 당신의 존재가

가까운 사람에게 치여 피로를 느낄 때

눈감고 한 번쯤 생각해보라

당신은 지금 어디 있는가

무심코 열어두던 가슴속의 셔터를

철커덕 소리 내어 닫아버리며

어디에 갇혀 당신은 괴로워하고 있는가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이

두렵고 낯설어질 때

한 번쯤 눈 감고 생각해보라

누가 당신을 금 그어 놓았는가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

만나야 할 사람과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가리고 분별해 놓은 이 누구인가

어느 날 당신의 존재가

세상과 등 돌려 막막해질 때

쓸쓸히 앉아서 생각해보라

세상이 당신을 어떻게 했는가

세상이 당신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어느 날 당신의 존재가

더 이상 어쩔 수 없이 초라해질 때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용서하라

용서가 가져다줄 마음의 평화를

아름답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라

-김재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13.html
kolaswqetsrq 11.01 19:18
예전엔

예전엔

누군가 나를 오해하면

어떻게든 풀어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는데

지금은

그냥 내버려둔다.

처음부터

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을 위해

소모해야 하는 감정조차

이젠 너무 아깝다.

 "
-다 그렇게 산대요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10/blog-post_12.html
kolaswqetsrq 11.01 19:19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닙니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최선을 다 한다 해도

안 되는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일들도 뒤돌아 보면 별거 아닙니다.

쉬지 않고 달려야 할 때도 있고

가만히 숨을 고를 때도 있는 법입니다.

놓친 차는 다시 오는 차를 타면 되고

돌아가더라도 그 곳만 가면 될 일이며

노력해도 안 되는 건 버리면 됩니다.

훗날 힘들고 아팠던 일들도

뒤돌아 보면 별거 아닙니다.

전레오 / 별거 아닙니다

#좋은글 #인생 #최선 #명언 #낙담 #훗날 #노력 #절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505.html
kolaswqetsrq 11.01 19:19
오늘만큼은

오늘만큼은

"기분좋게 살자"

남에게 상냥한 미소를 짓고, 어울리는 복장으로 조용히 이야기하며, 예절 바르게 행동하고, 아낌없이 남을 칭찬하자.

오늘만큼은

"이 하루가 보람되도록 하자"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한꺼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하루가 인생의 시작인 것 같은 기분으로 오늘을 보내자.

오늘만큼은

"계획을 세우자"

매 시간의 예정표를 만들자. 조급함과 망설임이라는 두가지 해충을 없애도록 마음을 다지자. 할 수 있는데까지 해 보자.

오늘만큼은

"30분정도의 휴식을 갖고 마음을 정리해 보자"

깊이 생각하고 인생을 관조해 보자. 자기 인생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얻도록 하자.

오늘만큼은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자"

특히, 아름다움을 즐기며 사랑하도록 하자.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을 의심하지 말자.

-시빌F.패트리지 ‘오늘만큼은’ 中-

#명언 #행동 #기분 #칭찬 #예절 #보람 #복장 #오늘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106.html
kolaswqetsrq 11.01 19:20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아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세상살이에 항상 불평불만을 가지고

남을 미워하며

괴로움에 시달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입니다.

온갖 빛깔의 꽃들과 파란 새싹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이건 정말 큰 행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인생을

비관해야 합니까?

남을 좋아하면 내가 즐겁고,

남을 사랑하면 내가 기쁘고,

남을 이해하면

내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

이 모두가 나를 사랑하는 법입니다.

-법륜 스님-

#괴로움 #세상 #명언 #불평불만 #사람 #좋은글 #자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443.html
kolaswqetsrq 11.01 19:21
부부의 정을 저축하는 지혜

< 부부의 정을 저축하는 지혜 >

1. 일주일에 한 번은 대화의 시간을 가져라.

 “수요일 밤 9시는 우리부부 차 마시는 날”부부의 대화를 통하여 오해를 풀고 서로를 이해하는 기틀을 마련한다.

2. 공동의 취미를 가져라

함께할 수 있는 취미를 가지면 같이 활동하여 공감대를 이룰 수 있어 부부간의 정이 더욱 깊어진다.

3. 따뜻한 관심을 보여라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은 관심을 받고 싶어 하고 관심을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마음도 커지게 된다.

4. 입으로 애정을 표현하라

오래된 애정도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애정표현이 인색할수록 마음도 굳어진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주 많이 표현해야 한다

5. 배우자의 건강을 먼저 보살펴라

아픈 곳을 챙겨주는 만큼 고마운 것은 없다. 배우자가 아플 때일수록 가장 가까이 가서 자리를 지켜주고 건강에 관심을 가져주라. 그 마음이 전해져서 그이상의 관심과 애정을 받을 것이다

6,편지를 써라

얼굴을 맞대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표현은 편지를 써서 대신하라. 글로 쓰다보면 미안하고 감사했던 마음들이 정리되어 그 편지 한통이 큰 감동을 가져다 줄 것이 이다.

7. 집안일을 함께하라

집안일을 부부가 역할을 분담하여 정해진 날에 함께 하면 부부가 함께한 일의 보람을 곳곳에서 드러날 때 큰 보람을 느낄 것이다

8. 부부만의 공간을 만들어라

집안 식탁이나 거실이라도 좋고 동네의 찻집에도 좋은 곳을 골라 부부만이 오붓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가짐으로 중요한일을 상의할 때나 화해하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라

9. 지난 앨범을 함께 보라

함께 살아온 시간이 묻어나는 앨범을 꺼내서 보면 젊은 시절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여 부부의 사랑이 더욱 돈돈해질 것이다.

10. 둘만의 여행지를 만들어라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조용히 쉬고 싶을 때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둘만의 여행지를 만들어 일상의 생활을 벗어나서 찾아가자. 새로운 환경이 되면 대화의 내용과 깊이가 훨씬 풍부해질 것이다

#마련 #저축 #좋은글 #시간 #관심 #수요일 #활동 #명언 #공동 #기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577.html
kolaswqetsrq 11.01 19:21
건강들 하신지요?

건강들 하신지요?

행복들 하신지요?

사랑이 힘겹진 않으신지요?

부모와 형제가 미치게 버거워도

여전히 껴안고들 있으신지요?

잠자리에선 꿈없이 주무시는지요?

비 오는 날엔 울음 없이들 비를 보시는지요?

맑은 날도 좋아들 하시는지요?

낙엽이나 고목들을 보면서도

기대들을 버리지신 않으신지요?

하얀 눈이 좋으신지요?

내린눈이 녹아 없어지는것이 안타까우신지요?

한 겨울 눈속에서 핀다는

상사화를 혹여 보셨는지요?

정말 불행하지 않기를 원하는데,그러신지요?

지금 그리운 것들이 모두

그대들 옆에 있으신지요?

저는 괜찮은데,

정말 그대들도 괜찮으신지요?

노희경 / 안부를 묻다

#아들 #울음 #낙엽 #건강 #명언 #고목 #사랑 #우신 #행복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941.html
kolaswqetsrq 11.01 19:22
남편을 감동시키는 말

남편을 감동시키는 말

01. 여보 사랑해요

02. 아이가 당신 닮아 저렇게 똑똑하나봐요.

03. 내가 시집 하나는 잘 왔지.

04. 내가 복받은 여자지.

05. 당신이라면 할수있어요.

06. 내가 당신 얼마나 존경하는지 모르지요?

07. 역시 당신밖에 없어요.

08. 내가 시어머니 복은 있나봐요.

09. 여보, 작전 타임 아시지요?

10. 당신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11. 다리 쭉뻗고 낮잠이라도 푹 주무세요.

12. 이제는 쉴때도 되었어요.

13. 당신 덕분에 이렇게 잘살게 되었어요.

14. 당신곁에 사랑하는 가족 있는거 알죠?

15. 이제, 제가 나서볼께요.

16. 여보, 여기 보약을 한재 지어 두었어요.

17. 당신만 믿어요.

18. 건강도 생각하세요.

19. 당신 없이 난 하루도 못 살거야.

20. 여보, 고마워요.

21. 당신은 언제봐도 멋있어요.

22. 세상에 당신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요?

23. 당신이니까 내가 이렇게 살지.

24. 당신은 다른 남자들과는 질적으로 달라요.

25. 역시 수준 있네요.

26.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요?

27. 당신은 하나님 다음이에요.

28. 다시 태어나도 당신밖에 없어요.

29. 당신위해 이렇게 꾸몄는데 나 예쁘죠?

30. 당신 품에 있을때가 제일 편안해요.

31. 당신 아닌 다른 사람은 어림도 없었을꺼야.

32. 여보 나보다 먼저 가면 안돼요.

33. 당신은 타고난 인격자에요.

34. 당신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35. 당신이랑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몰라요.

36. 여보, 내가 당신 극성 팬인것 모르지요?

37. 당신이 원하는건 뭐든지 다 해주고싶어.

38. 당신은 남달라요.

-인터넷 옮김-

#성공 #명언 #사랑 #남편 #시집 #감동 #공감 #좋은글 #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831.html
kolaswqetsrq 11.01 19:23
남편과 아내가 꼭 지켜야할 10계명

남편과 아내가 꼭 지켜야할 10계명

■ 남편이 꼭 지켜야할 10계명

1. 결혼 전과 신혼 초에 보였던 관심과 사랑을 변치 말라

2. 결혼 기념일과 아내의 생일을 잊지 말라

3. 평소의 아내의 옷차림과 외모에 관심을 가지라

4. 아내가 만든 음식에 말이나 행동으로 감사를 표시하라

5. 모든 일을 아내와 의논하고 결정하는 습관을 기르라

6. 아내에게 상처를 주는 농담이나 행동을 삼가라

7. 가정의 불화가 있을 때 아내에게 한 걸음을 양보하라

8. 가정의 경제는 아내에게 일임하여 아내가 보람을 갖게 하라

9. 아내의 개성과 취미를 존중하고 키워주도록 하라

10. 하루에 두 번 이상 아내의 장점을 발견하여 즉시 일러줌으로써 아내에게 기쁨을 주는 습관을 기르라

■ 아내가 꼭 지켜야할 10계명

1. 자신과 가정을 아름답게 꾸밀 줄 아는 재치와 근면성을 기르라

2. 음식준비에 신경을 쓰고 남편의 식성에 유의하라

3. 혼자서만 말하지 말고 남편에게 말할 기회를 주라

4.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남편의 결점과 지나친 자랑을 하지 말라

5. 남편에게 따질 말이 있을 때 남편의 기분상태를 참작 하라

6. 남편 홀로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라.

7.중요한 가정 일을 결정할 때는 남편의 뜻에 따르도록 하라

8. 남편의 수입에 맞추어 알뜰한 살림을 하라

9. 모든 일에 참을성을 가지라

10. 하루에 두 번 이상 남편의 장점을 발견하여 말해 줌으로써 남편이 긍지를 갖게 하라

#신혼 #남편 #좋은글 #명언 #관심 #계명 #사랑 #결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10_4.html
kolaswqetsrq 11.01 19:23
기다리는 행복이해인

기다리는 행복(이해인)

온 생애를 두고

내가 만나야 할 행복의 모습은

수수한 옷차림의 기다림 입니다

겨울 항아리에 담긴 포도주처럼

나의 언어(言語)를 익혀

내 복된 삶의 즙을 짜겠습니다

밀물이 오면 썰물을

꽃이 지면 열매를

어둠이 구워 내는 빛을 기다리며 살겠습니다

나의 친구여

당신이 잃어버린 나를 만나러

더 이상 먼 곳을 헤매지 마십시오

내가 길들인 기다림의

일상(日常) 속에 머무는 나

때로는 눈물 흘리며

내가 만나야 할 행복의 모습은

오랜 나날 상처받고도 죽지 않는 기다림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나의 소임입니다

#어둠 #모습 #행복 #썰물 #좋은글 #겨울 #옷차림 #밀물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837.html
kolaswqetsrq 11.01 19:24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남입니다.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남입니다.

진실한 의미에서 우리들의 인생이 외로울 때 힘이 되어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당신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먼저 당신에게 다가가렵니다. 내가 만든 인연 하나... 우리는 서로 만남에 의하여 오래전에 기다려 왔는지 모릅니다.

해서, 잊히지 않은 추억을 만들기를 원하기 보다는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서로 소중한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오십시오! 그리운 사람 냄새가 나는 내가 만든 인연 하나로...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중-

#인생 #인연 #손길 #만남 #사람 #명언 #가슴 #좋은글 #진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434.html
kolaswqetsrq 11.01 19:25
놀라운 인생의 법칙

놀라운 인생의 법칙

인생에는

놀라운 법칙이

숨어 있답니다.

자기 자신이

믿고 생각한대로

삶은 흘러가며

세상은 무엇이든

시도하는 사람에게

길을 열어줍니다.

성공이 행복을

부르는게 아니라

행복이

성공을 부른다는 것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 할 때

성공할 확률은 반반이지만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은

전혀 없다는 것!

-BLOG 글 옮김-

#좋은글 #자신 #법칙 #생각 #인생 #세상 #명언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162.html
kolaswqetsrq 11.01 19:25
마음이 편한게 좋다

<마음이 편한게 좋다>

살다 보니

돈 보다, 잘난 거 보다, 많이 배운 거 보다 마음이 편한 게 좋다.

살아가다 보니

돈이 많은 사람보다, 잘난 사람보다, 많이 배운 사람보다, 마음이 편한 사람이 좋다.

잘난 게 다가 아니고, 많이 배운 게 다가 아닌 마음이 편한 게 좋다.

내가 살려 하니

돈이 다가 아니고 사람과 사람에 있어 돈보다는 마음 잘남보다는 겸손을, 배움보다는 깨달음을,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너를 대함에 있어

이유가 없고 계산이 없고 조건이 없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은 물의 한결같음으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산다는 건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알고 그 마음을 소중히 할 줄 알고 너 때문이 아닌 내 탓으로 마음의 빚을 지지 않아야 한다.

내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맑은 정신과 밝은 눈과 깊은 마음으로 눈빛이 아닌 시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좋은글 #사람 #명언 #마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136.html
kolaswqetsrq 11.01 19:26
멈추지 마라

멈추지 마라

비가와도

가야할 곳이 있는

새는 하늘을 날고

눈이 쌓여도

가야할 곳이 있는

사슴은 산을 오른다

길이 멀어도

가야할 곳이 있는

달팽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길이 막혀도

가야할 곳이 있는

연어는 물결을 거슬러 오른다

인생이란 작은 배

그대 가야할 곳이 있다면

태풍 불어도 거친 바다로 나아가라

-양광모-

#명언 #인생 #걸음 #좋은글 #하늘 #물결 #사슴 #태풍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103.html
kolaswqetsrq 11.01 19:27
삶에 후회를 남기지 말고

삶에 후회를 남기지 말고

사랑하는 데 이유를 달지 마세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머리 속으로 고민하지 말고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사는 일에

직접 부딪쳐보세요

거짓으로 겸손을 가장하지 마세요

세상에 그보다 더 오만한 짓은 없습니다

진짜 사랑은 누군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가짜 사랑은 아무래도 내 옆에

있기만을 바라는 것이지요

주위에 성공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서들이 있다면 내다버리세요

당신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당신만의 지침서를

써 내려가는 것입니다.

파울로 코엘료 / 마법의 순간

#세상 #명언 #행복 #오만 #고민 #사랑 #겸손 #좋은글 #거짓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636.html
kolaswqetsrq 11.01 19:28
가슴 속 항상 기억나는 사람

<가슴 속 항상 기억나는 사람>

함께 있을 때

설레이는 사람보다는 편해지는 사람이 좋고

손을 잡으면 손이 따뜻해 지기 보다는

마음이 따뜻 해져 오는 사람이 좋고

밥을 먹으면

신경 쓰이는 사람보다는 함께일 때

평소보다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좋고

문자가 오면

혹시나 그 사람일까 기대되는 사람 보다는

당연히 그 사람이겠지 싶은 사람이 좋고

걱정해 줄 때

늘 말로만 아껴주고 걱정해 주는 사람보다는

오직 행동 하나로 묵묵히 보여주는 사람이 좋고

친구들 앞에서

나를 내세워 만족스러워 하는 사람보다는

나로 인해

행복하다고 쑥스럽게 말해주는 사람이 좋고

술을 마시고 전화하면

괜찮냐고 걱정해 주는 사람보다는

다짜고짜 어디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좋고

첫눈이 오면 전화로 첫눈이 왔다며 알려 주는

사람보다는 지금 나와 집 앞이다.

이 한마디로 보여주는 사람이 좋고

겨울날 함께 걷고 있을 때

따뜻한 곳으로 데려가는 사람보다는 자기 옷

벗어주면서 묵묵히 손 꽉 잡아주는 사람이 좋고

내가 화났을 땐

자존심 세우면서 먼저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보다는 다신 서로 싸우지 말자고

날 타이를 수 있는 사람이 좋고

전화 통화를 하면

조금은 어색한 침묵과 함께 목소릴

가다듬어야 하는 사람보다는 자다 일어난 목소리로

하루 일과를 쫑알쫑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좋고

감동 줄 때

늘 화려한 이벤트로 내 눈물 쏙 빼 가는

사람보다는 아무 말 없이 집 앞에서 날

기다려서 마음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이 좋고

서로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일시적인 감정보다 사랑에

믿음이 더해진

영원한 감정을 공유 할 수 있는 사람이 좋고

낯선 사람보다는 아직은 서로 알아가고 있는

이미 익숙해서 편한 사람이 좋고

내 옆에 없을 때

곧 죽을 것 같은 사람보다는 그 사람 빈자리가

느껴져서 마음이 허전해지는 사람이 좋다.

당신이 머문자리는 아름답습니다 에서

#명언 #좋은글 #신경 #마음 #가슴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820.html
kolaswqetsrq 11.01 19:28
불행은 욕심 때문에 일어납니다.

불행은 욕심 때문에 일어납니다.

만약 욕심이 없다면

남과 비교하며 괴로울 일도 없고

불행할 일도 없습니다.

가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 이대로 편안하게 생활하면

스트레스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냥 꾸준히 노력하면 됩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내 노력이 부족한 것이지

괴로울 일은 아닙니다.

잘하려 하지 않고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내가 좋아 열심히 하다 보면

바라는 것도 이루어지고

행복하게 살 게 됩니다.

-법륜 스님-

#생활 #편안 #좋은글 #마음 #노력 #욕심 #명언 #불행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333.html
kolaswqetsrq 11.01 19:29
오랫동안 연락없던 동창 녀석이 전활 걸어와서

오랫동안 연락없던 동창 녀석이 전활 걸어와서

며칠 전에 내가 어느 거리를 지나가고 있는 걸

봤다고 얘길했다.

왜 아는체 안했냐고 했더니 운전중이었다고.

너무 멀어서 부르지 못하고 그냥 갔다고.

그래도 우연히 지나가는 나를 만나서

반가웠다고 얘길했다.

그래, 그런거다.

세상은 생각밖으로 너무 좁고,

우연은 수시로 일어난다.

그러니 난 좀 더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어야겠다.

아는체하러 달려 올 일은 없지만

어디선가, 어디선가 날 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박정현 / 만나러 가는 길

#우연 #명언 #연락 #운전 #생각 #며칠 #세상 #오랫동안 #좋은글 #동창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961.html
kolaswqetsrq 11.01 19:30
탈무드에서 배우는 68가지 지혜

탈무드에서 배우는 68가지 지혜

정보에 대한 감성이 비즈니스를 좌우한다

1. 가난해도 부자의 줄에 서라

2. 정보에 대한 감성이 비즈니스를 좌우한다

3. 최후의 경제 수단까지 빼앗지 말라

4. 위험이 클수록 이익도 증가한다

5. 철회는 하더라도 취소는 하지 말라

6. 고객을 끝까지 안전하게 보호하라

7. 상품을 확인한 후 장사를 시작하라

 "
8. 나보다는 우리를 소중히 생각하라
",

시간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9. 신속하게 소유권을 확보하라

10. 장사에 너무 빠지면 현명해지지 못한다

11. 자신의 힘으로 생활하라

12. 시간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13. 국제화는 행동으로 성취하라

14. 사람은 과오를 범하는 존재다

15. 위기에 미연에 방지하라

16. 지위가 높을수록 과실에 대한 책임은 무겁다

상대의 선의를 역으로 이용하지 말라

17. 원인을 제공했다면 반드시 책임을 져라

18. 처음부터 지침을 명확히 하라

19. 예견할 수 있는 위험은 책임져라

20.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책임 소재를 파악하라

21. 현인을 먼저 구출하라

22. 이익의 절반을 얻고 싶거든 직접 사업을 하라

23. 상대의 선의를 역으로 이용하지 말라

24. 변화를 포착하라

일관된 사람만이 성공한다

25. 빌려주는 것도 좋은 사업이다

26. 일관된 사람만이 성공한다

27.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는 쉬어라

28. 계약할 때는 해약도 생각하라

29. 적어도 세 방향에서 관찰하라

30. 스스로의 노력만이 소유권을 보장한다

31. 네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32. 만장일치가 더 위험하다

어설픈 프로보다 진취적인 아마추어가 낫다

33. 한 번의 거래라도 최선을 다하라

34. 비용 절약이 이익을 내는 지름길이다

35. 노하우가 알려지는 것을 도려워하지 말라

36. 소비자의 상품 지식이 시장을 발전시킨다

37. 권한을 부여했다면 책임도 함께 져라

38. 위기가 없을 때 미리 대책을 세워라

39. 어설픈 프로보다 진취적인 아마추어가 낫다

40. 컨설턴트에게 묻지 말고 고객에게 물으라

 "
41. 답을 가르치지 말고 질문하게 하라
",

최악을 대비한 후 최선을 기대하라

42. 젊은 사람부터 발언하게 하라

43. 물건을 빌릴 때는 용도를 분명히 밝혀라

44. 저비용·저위험을 지향하라

45. 여유 있을 때 배우겠다고 변명하지 말라

46. 비전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다

47.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인생을 지배한다

48. 비즈니스의 최종 목적은 고객 만족이다

49. 지혜를 활용해 부를 쌓으라

50. 최악을 대비한 후 최선을 기대하라

지혜로운 사람은 앞에서는 말을 아껴라

51. 배워서 깨달았다면 즉각 실천에 옮겨라

52.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가 고급 정보다

53. 충분히 이해될 때까지 의문을 제기하라

54. 지혜로운 사람 앞에서는 말을 아껴라

55. 기계를 과신하지 말라

56.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57.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다.

58. 재무와 상법을 배워라

59. 모든 발전의 원천은 혁신이다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축복도 먼저 받는다

60. 편견을 버리면 친구를 얻는다

61.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축복도 먼저 받는다

62. 물건을 사지 않겠다면 가격을 묻지 말라

63. 창조적인 지혜는 무(無)에서 나온다

64. 기적이나 이변을 기대하지 말라

65.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하라

66.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67. 질책은 엄하게, 칭찬은 흡족하게 하라

68. 번뜩이는 직감이 발명을 낳는다

#위험 #고객 #이익 #안전 #감성 #가난 #좋은글 #수단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68.html
kolaswqetsrq 11.01 19:30
사랑이라는 이름의 선물

사랑이라는 이름의 선물

미안해 하지 말아요

늘 부족하다 하지 말아요

당신의 존재로 꿈을 빚는 나는

마음의 보석 상자를 간직했는데요

힘들어 하지 말아요

늘 안타까와 하지 말아요

당신의 마음 하나로 깨어나는 나는

또 하나의 선물로 채우는 걸요

빛을 삼켜먹은 어둠이

어제를 유린했던 시간 이었지만

다시 그려나가는 내 안의 아름다움은

당신이란 이름의 선물 때문인걸요

한 세상 키 작은 잎새가 된다해도

바람이 할퀴고 간 들녘으로 남는다해도

당신이 함께 하는 하루는

눈부신 선물인걸요

사랑이라는 선물은 손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차 하나 되어버릴 때

사랑은 안개처럼 스며듭니다

사랑이라는 선물은 손으로

풀어보는 것이 아니며

마음으로 바라보면

스스로 풀리는 선물입니다.

마음에 사랑이

서로를 향해 당기고 있다면

그 사랑은 향기가 진동합니다

사랑이라는 선물은 한없이 퍼 주고 나눠주어도

깊은 산골 샘물처럼 마르지 않습니다

-월간 ‘좋은 생각’ 중-

#명언 #부족 #보석 #사랑 #좋은글 #이름 #간직 #미안 #마음 #선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122.html
kolaswqetsrq 11.01 19:31
내 마음속에

내 마음속에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람은

내가 가장 외로울 때

내 손을 잡아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손을 잡는다는 것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일인 동시에

서로의 가슴속 온기를

나눠가지는 일이기도 한 것이지요.

사람이란

개개인이 따로 떨어진 섬과 같은 존재지만

손을 내밀어 상대방의 손을 잡아주는 순간부터

두 사람은 하나가 되기 시작합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었을 때,

그때 이미 우리는 가슴을 터놓은 사이가 된 것입니다!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이정하-

#가슴 #기억 #사람 #체온 #명언 #마음속 #좋은글 #개개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970.html
kolaswqetsrq 11.01 19:31
조금 부족한 듯이

조금 부족한 듯이

마음을 비우고

나 자신만은 완벽한 것처럼

말들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자신들만은 잘못된

것들 전혀 없고 남들의

잘못만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남들의 잘못된

일에는 험담을 일삼고

자신의 잘못은 숨기려 합니다.

그러면서..

남의 아픔을 즐거워..

하며 나의 아픔은 알아 주는

이가 없어 서글퍼 하기도 합니다.

남의 잘못을 들추어 내며..

허물을 탓하고 험담을 입에

담는다면 남들은 돌아서면 자신의

허물과 험담이 더욱 더..

부풀려져 입에 오른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조금 부족한 듯이..

마음을 비우고 조금 더

덜 채워지는 넉넉한 마음으로

조금 물러서는 여유로움으로

조금 무거워지는 입의 흐름으로

간직 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누가 봐도 부담이 없는 순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 대사전-

#행동 #좋은글 #마음 #자신 #잘못 #명언 #부족 #완벽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141.html
kolaswqetsrq 11.01 19:32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18가지

<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18가지 >

1. 100% 자신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친구를 가져라. 함께 꿈을 공유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같이 맘껏 웃을 수 있는 친구가 단 한 명이라도 옆에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2. 자신을 알고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라.

3.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기쁜 소식은 전해주고, 힘들 때 전화로라도 응원해 줄 수 있는 친구를 사귀어라. 이런 종류의 우정이야말로 시공간을 초월할 변치 않을 우정이다.

4. 인생은 소중하고 그 누구도 확실한 미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라. 감사해야 할 사람 또 감사한 일을 생각하며 마음을 표현해 보라.

5. 세상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도 있음을 받아들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미와 인생의 좋은 점을 발견하며 다시 살아간다.

6. 타인에 대해서 연민을 갖고 진심으로 공감하라. 단, 대가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에게 느끼는 동지애만으로도 보상은 충분하다.

7. 본인의 약점을 인정하고 자신을 사랑하라. 약점을 개선하려고 꾸준히 노력해라. 단, 완벽함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스스로 지치게 된다.

8. 사랑에 몰두하라. 두려움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을 포기해선 안된다. 가족, 친구, 연인, 자녀, 주변 사람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라. 인생의 중요한 가치가 여기에 있다.

9. 저절로 열정이 생기고 동시에 마음이 평안해지는 일은 찾아라.

10. 추억을 많이 만들어라. 당신을 웃게 만드는 추억, 때론 민망한 기억의 추억, 그리고 당신을 울게 만드는 추억을 많이 만들어 보라.

11. 스스로 인생의 로드맵을 그려라.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라.

12. 경청하라. 누구나 말하고자 하는 게 있고 그 가운데 들을 내용이 있다.

13. 안 좋은 습관은 극복하라. 당신의 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다. 머뭇거릴 이유가 있는가?

14. 당신이 겪은 모든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라. 새로운 교훈으로부터 미래를 다시 설정하라. 그리고 그 교훈을 친구, 동료, 타인과 기꺼이 공유하라. 마지막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적절한 시기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15. 과감하게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라.

16. 인종, 문화, 경제적 계층, 나이, 성, 성적 취향, 종교랑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대하라.

17. 만약 건강하고 잘 곳이 있고 깨끗한 물과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당신이 이 세상 누구보다 운 좋은 사람임을 명심하라. 중요한 사실이다.

18. 웃는 법을 잊지 마라. 나이가 들어도 아이처럼 호기심과 경외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라. 성숙함과 명랑함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표정 #명언 #자신 #소식 #좋은글 #행운 #모습 #인생 #나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18.html
kolaswqetsrq 11.01 19:33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은? 비행기의 일등석이다. 퍼스트클래스는 비행기 좌석의 3%이고, 부유층 구성비도 3%이다. 성공한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면 당신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 1등석 담당 스튜어디스가 발견한 3%의 성공 습관. 16년 동안 일본 항공사와 외국 항공사를 넘나들며 국제선 1등석 객실을 담당한 전직 스튜어디스 미즈키 아키코가 발견한 3% 승객의 작지만 성공을 만드는 5가지.

(1) 1등석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항상 메모하는 습관이 있고 모두 자신만의 필기구를 지니고 다녔다. 메모는 최강의 성공 도구로 기록하는 행위는 신뢰를 주고, 아이디어를 동결건조시켜 보존해준다.

(2) 성공한 사람들은 전기와 역사책을 읽는다.

유독 퍼스트클래스에서는 신문을 가져달라는 요청이 드물다. 지독한 활자의 중독자들로 베스트셀러가 아닌 잘 알려지지 않은 투박하고 묵직한 책을 읽는다.

(3) 성공한 사람들은 자세가 다르다.

퍼스트클래스의 승객은 일단 자세가 바르다. 그리고 시선은 각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자세가 좋은 사람은 범접지 못할 당당한 분위기를 풍긴다. 행동거지가 당당한 사람은 정면을 바라보기 때문에 시선의 각도도 자연히 높아진다.

(4) 대화를 이어주는 ‘톱니바퀴’ 기술

퍼스트클래스의 승객은 정말 흥미진진하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요?”,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승무원에게 고자세를 취하지 않고, ‘바쁜 중에 미안하지만’과 같이 항상 완충어구를 덧붙이며 말을 건다.

(5) 주변 환경을 내편으로 만들어라.

퍼스트클래스에 동승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승객에게 인사하는 것은 매우 효율적인 인맥 형성 방법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아내를 극진히 모시는 이유는 높은 지위에 올라도 개의치 않고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늘 아내를 존중하고 아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미즈키 아키코-

#사람 #명언 #세상 #성공 #좋은글 #부자 #공감 #감동 #승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822.html
kolaswqetsrq 11.01 19:33
나에게 힘을 주소서.

나에게 힘을 주소서.

지치고 힘든 일에 부딪칠 때마다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날 힘을 주소서.

남 탓으로 세상 탓으로 원망하지 않게 하소서.

오로지 나의 실수로 인정하게 하소서.

전신이 삶의 상처로 피고름이 흘러내려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지나친 집착과 헛된 욕망에 빠져

남의 삶을 살지 않게 하소서.

나에게 힘을 주소서.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나를 신뢰하는 믿음의 기도로

헤쳐 나갈 수 있게 하소서.

사랑으로 믿음으로 끌어안을 수 있게

강한 자신감을 주소서.

가치 없는 걱정을 물리칠 수 있는

현명함을 주소서.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나를 더 신뢰하고 나를 더 사랑하여

나날이 만족해하는 내가 되게 하소서.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걱정하는

어리석은 내가 아니라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지혜로운 내가 되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단단한 삶을 살아가게

나에게 강한 힘을 주소서.

- 내 마음 들여다보기 中 ,김정한 -

#욕망 #집착 #좋은글 #어려움 #인정 #명언 #원망 #세상 #전신 #피고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267.html
kolaswqetsrq 11.01 19:34
되고 법칙

< 되고 법칙>

돈이 없으면 돈은 벌면 되고,

잘못이 있으면 잘못은 고치면 되고,

안 되는 것은 되게 하면 되고,

모르면 배우면 되고, 부족하면 메우면 되고,

힘이 부족하면 힘을 기르면 되고,

잘 안되면 될 때까지 하면 되고,

길이 안 보이면 길을 찾을 때까지 찾으면 되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되고,

기술이 없으면 연구하면 되고,

생각이 부족하면 생각을 하면 되고,

내가 믿고 사는 세상을 살고 싶으면 거짓말로 속이지 않으면 되고

미워하지 않고 사는 세상을 원하면 사랑하고 용서하면 되고

사랑 받으며 살고 싶으면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진실하면 되고

세상을 여유롭게 살고 싶으면 이해하고 배려하면 되고

이와 같이 ‘되고 법칙’에 대입해서 인생을 살아가면 안 되는 것이 없다.

#명언 #부족 #기술 #생각 #잘못 #법칙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518.html
kolaswqetsrq 11.01 19:35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

힘들겠지만 어쩌겠니? 힘을 내야지.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길거야.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해.

이런 말들이 다 옳은 말이긴 합니다.

그런데도 정작 힘들어하는 그에겐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말들입니다.

큰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에게 지금 필요한 건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마음이고

그 마음을 알아주는 따뜻한 한 마디입니다.

그 한마디는 특별한 것도 아니요

별 다른 것도 아닙니다.

바로 이 한 마디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힘을 내라는 말은 너무나 흔하고 식상합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힘을 주는 말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읽어주고

하나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김이율 힐링에세이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 중-

#그동안 #마음 #식상 #명언 #특별 #좋은글 #나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110.html
kolaswqetsrq 11.01 19:35
기도

기도

소유가 아닌 빈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받아서 채워지는 가슴보다

주어서 비워지는 가슴이게 하소서

지금까지 해왔던 내 사랑에

티끌이 있었다면 용서하시고

앞으로 해나갈 내 사랑은

맑게 흐르는 강물이게 하소서

위선보다 진실을 위해

나를 다듬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바람에 떨구는 한 잎의 꽃잎일지라도

한없이 품어 안을 깊고 넓

바다의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바람 앞에 스러지는 육체로 살지라도

선(善)앞에 강해지는 내가 되게 하소서

크신 임이시여 그리 살게 하소서

철저한 고독으로 살지라도

사랑 앞에 깨어지고 낮아지는

항상 겸허하게 살게 하소서

크신 임이시여

-김옥진 시인-

#지금 #티끌 #가슴 #명언 #좋은글 #사랑 #마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571.html
kolaswqetsrq 11.01 19:36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줄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면

싫어하든 말든

그냥 내버려두고 사십시오.

싫어하는 것은 엄격히 말하면

그 사람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닙니다.

-혜민 스님-

#공감 #명언 #부자 #세상 #성공 #사람 #좋은글 #스님 #감동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727.html
kolaswqetsrq 11.01 19:37
매일 보면 좋을 8가지 명언

< 매일 보면 좋을 8가지 명언 >

1. 사흘 마다 작심삼일을 반복하라.

2. 너가 포기하는 그 순간이 성공하기 5분 전이다.

3.

구상은 낙관적으로

계획은 비관적으로

진행은 공격적으로

4.

당신이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르겠지...

그 길에 조용한 오솔길이 있을지

낭떠러지가 있을지

전망좋은 산길에 새소리가 들릴지

사나운 짐승을 만나게 될 지 알 수 없다.

어떻게 생긴 길이건 나의 길이다.

5.

하자, 한다, 하고야 만다

시작했으면 끝장을 보자

실패할지라도 멈추진 말자

6. 자신없는 가능성보다는 불가능한 것 같이 보이는 것이 차라리 언제나 낫다

- 아리스토 텔레스 -

7. 위를 보고 걸으면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꿈은 크게 가지되 현실을 바로 볼 줄 아는 냉철한 머리를 함께 가져라.

- 탈레스 -

8. 미래를 예측하는 최상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 데니스 게이버 -

#반복 #작심삼일 #명언 #구상 #성공 #순간 #낙관 #좋은글 #사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8_2.html
kolaswqetsrq 11.01 19:37
인생은 여행이다.

인생은 여행이다.

여행은 떠나는 일이다.

오늘의 나를 떠나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를 만나는 일이다.

힘들여 오늘을 살아가는

나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나와 소통하는 일은

살아가면서 얼마나 중요한가.

타지에서의 깊은밤

낯선 침대에 누워

어둠에 안겨있노라면

내가 있던 자리에 두고 온

많은 일들이

그 동안 내 삶을 얼마나

꽁꽁 묶어놓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사람에 치이고 생활에 찌든

현실의 무게는 늘 버거웠고

사랑에 배고픈 일상은 언제나 외로웠다.

오늘..아무리 삶이 버겁고 외로울지라도

언제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한마디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행복은 늘 품 안에 있다.

-고도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중-

#여행 #소통 #어둠 #명언 #좋은글 #내일 #인생 #오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425.html
kolaswqetsrq 11.01 19:38
칭찬의 25가지 기적

< 칭찬의 25가지 기적 >

1. 칭찬은 바보를 천재로 만든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에게 기적을 만들어 주었다.

2. 칭찬은 저절로 확장된다.

칭찬받은 사람은 다시 칭찬받으려 노력한다.

칭찬하고 칭찬하라.

3. 칭찬은 건강을 되살린다.

몸에서 엔돌핀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4. 칭찬을 받으면 즐겁다.

칭찬을 받으면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콧노래가 나온다.

5. 돈을 짧고 칭찬은 길다.

돈은 순간의 기쁨을 주지만 칭찬은 평생의 기쁨을 준다.

6. 칭찬을 증폭된다.

본인도 모르는 부분을 찾아 칭찬하라.

기쁨이 열배, 백배로 증폭된다.

7. 나부터 칭찬하라

자기 자신을 칭찬할 수 있어야 남을 칭찬할 수 있다.

8. 누구라도 칭찬할 수 있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찾아보면 무수한 칭찬 거리가 있다.

9. 칭찬은 윈윈이다.

칭찬은 상대와 나를 동시에 행복하게 한다.

10. 칭찬이 세상을 밝힌다.

누구를 만나든지 칭찬으로 시작하여 칭찬으로 끝내라.

11. 칭찬은 자신감을 일으킨다.

운동선수는 응원 소리에서 힘을 되찾고 사람은 칭찬을 들으며 자신감을 얻는다.

12. 칭찬은 적을 친구로 바꾼다.

미운 사람일수록 칭찬을 해 주어라.

언젠가 나를 위해 큰일을 해 줄 것이다.

13. 칭찬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큰 비용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부분까지도 해결해 준다.

14. 칭찬은 가장 큰 훈장이다.

15. 칭찬은 보물찾기와 같다.

보물은 많이 찾을수록 좋은 것이다.

16. 칭찬은 사랑하는 마음의 결정이고 비난은 원망하는 마음의 결정이다.

한 방울의 꿀이 수많은 벌을 모으지만 가시는 아무리 많아도 벌이 없다.

17. 칭찬은 적을 친구로 만들고 원수를 은인으로 만든다.

18. 칭찬은 고객감동과 고객만족 두 가지를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19. 칭찬은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는 것이다.

사람은 너나없이 칭찬에 목마름을 느끼고 있다. 칭찬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어떤 것으로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20. 칭찬은 불가능을 깨뜨리는 놀라운 힘이 있다.

21. 칭찬은 사람의 참모습을 나타나게 한다.

칭찬을 통해서 행복한 가정, 신나는 세상이 펼쳐진다.

22. 칭찬은 의식을 개혁한다.

한마디 칭찬이 의식개혁의 시작이다.

23. 칭찬은 웃음꽃을 피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웃음이다.

24. 칭찬하면 칭찬받는다.

내가 칭찬하면 상대도 칭찬을 되돌려 준다.\u3000

칭찬을 주고받는 세상이 지상천국이다.

25. 칭찬을 받으면 앞길이 열린다.

마음을 열고 활력 있게 행동을 하게 되고 불가능도 가능으로 바뀐다.

#좋은글 #기적 #사람 #확장 #명언 #칭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25_3.html
kolaswqetsrq 11.01 19:39
사람은 곁에서 누군가가 함께 있어야

사람은 곁에서 누군가가 함께 있어야

심신이 건강해지는 존재다

함께 밥을 먹든지 얘기하든지, 잠자든지

이게 안되면 자주 아프고 서글퍼져

몸과 마음에 구멍이 생긴다

서로 목표나 생각이 조금씩 달라도

나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위로가 필요하다

그렇게 함께 함으로써

마음에 쌓인 고단함이 사라진다

누군가를 만났고 알았다는 기쁨이야말로

가치 있는 사람의 감정이요

상처받기 쉬운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가장 따뜻한 삶의 순간이겠지

인생은 짧고 우리 여행 동반자들을

기쁘게 해줄 시간은 많지 않다

그러니 민첩하게 사랑하고 서둘러 친절하라

-헨리 프레데릭 아미엘 ‘함께 한다는 것’-

#명언 #생각 #구멍 #기쁨 #심신 #사람 #마음 #좋은글 #건강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281.html
kolaswqetsrq 11.01 19:39
억대 연봉자들의 7가지 성공비결

억대 연봉자들의 7가지 성공비결

@첫째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라. 우선 이들은 하나같이 가정적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둘째

나이 들어 늙는 게 아니라 꿈을 잃어 늙는다. 이들의 두 번째 특징은 항상 젊게 산다는 것.

@셋째

우선 자신을 구조 조정하라. 억대 연봉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업데이트시키고 있다.

@넷째

전직을 두려워 마라. 대부분 전직을 한 후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은 최선을 다해 노력을 했는데도 받아주지 못하는 회사가 있다면 과감하게 떠나라는 말을 한다. 기회는 자신이 만든다는 요지다.

@다섯째

독서와 인맥 만들기는 필수이다. 현대는 전문가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되어버렸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지식을 재충전하고 주위에 많은 전문가를 두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여섯째

위기는 정면 돌파하라. 이들의 여섯 번째 특징은 위기 때일수록 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곱째

자신감이 시작이자 끝이다. 자신의 생활에 있어서 적극적이고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노력하다보면 자신감도 생긴다.

-베드로 시안-

#비결 #공감 #감동 #연봉 #부자 #좋은글 #명언 #행복 #성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7_19.html
kolaswqetsrq 11.01 19:40
삶을 바꾸는 마음가짐

< 삶을 바꾸는 마음가짐 >

1. 남에게 상처 줄 수 있는 말은 되도록 하지 마세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속으로 울고 있을지도 몰라요.

2.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무조건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버리세요. 그건 이해가 아니라 강요랍니다.

3. 힘들 때 누군가 위로해 줄 것을 바라지만 말고 혼자서 이겨내 볼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당신의 고민보다 더 큰 고민을 안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4. 진심을 장난으로 말하지 마세요. 그럴수록 당신의 진심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게 돼 있거든요.

5.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머리보다 마음으로 사랑하세요. 머리로 잰 마음은 줄자처럼 다시 되감겨지게 마련이거든요.

6. 당신이 외롭다고 느낄 때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보세요. 이 세상엔 언제나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될 거예요.

7. 그리고 기억하세요. 단어 몇 글자로 이루어진 말들이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이 당신의 삶을 바꿀지도 모르니까요.

#마음가짐 #방법 #고민 #명언 #마음 #진심 #좋은글 #사람 #생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767.html
kolaswqetsrq 11.01 19:41
오프라 윈프리 성공 10계명

<오프라 윈프리 성공 10계명>

1. 남들의 호감을 얻으려 애쓰지 말라.

남들의 호감을 얻으려다가는 자신에 대해서 소홀해진다. 그러다보면 자꾸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된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신에게 인정받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외적인 것에 의존하지 말라.

외적인 화려함은 외적인 것이다. 그것이 내면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사라지기 마련이다.외적인 것에 의존하다보면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보기보다는 자신을 겉으로 꾸미려고 할 것이다.내면이 충실한 사람만이 자연스럽게 외적인 빛이 나는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외적인 치장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가지고 있다.

3. 일과 삶이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라.

평생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우리의 삶의 가치는 일이 아니라 행복이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휴식과 여유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일중독에 빠질 것이고 그로인해 현대병에 걸림으로써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될지도 모른다.

4. 주변에 험담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부정적인 사람은 부정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다. 험담을 잘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게된다. 그러한 사람은 주변까지도 오염을 시키기 때문에 되도록 그러한 사람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사람은 어느 순간 닮아가기 때문이다.

5.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하라.

가식적인 행동이나 말은 결국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을 만남에 있어서 진실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한순간의 욕심으로 사람을 사귀어서는 안된다. 진실만이 나로부터 떳떳하고 당당하고 항상 자신있는 삶을 만들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먼저 진실되어야 할 것이다.

6. 중독된 것들을 끊어라.

중독은 사람의 마음을 서서히 병들게 한다. 술이나 알코올 같은 중독도 사람의 정신의 약하 게만든다. 사람중독도 사람에 대한 강한 집착을 낳는다. 마약도 그러하다. 이러한 모든 중독의 현상은 사람을 서서히 약하게 만들며 결국 삶 자체를 피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7. 당신에 버금가는 혹은 당신보다 나은 사람들로 주위를 채워라.

좋은 사람들은 좋은 에너지를 주기 마련이다. 내가 살아감에 있어서 나에게 조언을 해주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멘토가 있다면 많을수록 좋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조언을 진심으로 듣고 이행한다면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8. 돈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면 돈 생각은 아예 잊어라.

봉사를 하면서도 대가를 바래서는 안된다. 희생을 하면서도 대가를 바래서는 안된다. 내가 어떠한 대가나 돈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에 대해서는 그냥 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마음에서 돈 생각이 든다면 자신의 순수한 의도마저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9. 당신의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말라.

우리의 삶의 주인은 바로 나이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해서 무책임하고 회피하게 되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러한 무책임은 인간의 삶을 우울하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들게 된다. 내가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당장 결정해야 한다.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당장 해결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남들이 나를 선택하게끔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10. 포기하지 말라.

포기는 또다른 장벽을 만든다. 포기라는 것도 습관이 되기에 자꾸 도망다니기 마련이다. 우리의 삶은 도전을 통해서 체험과 경험을 얻는다. 포기하는 순간 인생의 값진 참 교훈을 얻지 못할 것이다. 포기하는 마음보다는 도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꾸려가야 할 것이다.

#계명 #의식 #좋은글 #호감 #자신 #명언 #사람 #성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10_76.html
kolaswqetsrq 11.01 19:41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없다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없다

난 이 세상에 유일한 내 삶의 주인이다

그런 내 인생을 주변상황,

시시한 사람들 때문에 속 끓이고

억울해하고 불행해할 이유가없다

내가 왜 시어머니 때문에

직장상사때문에 불행해져야하나

내가 허락하지 않는한

아무도 날 불행하게 만들수 없다고 생각하면

행복은 아주 쉽게 다가온다

눈을 떴을때 비치는 아침햇살 ,

좋아하는음악, 사랑하는이의키스,

향긋한 커피한잔, 친구의 따스한 안부전화,

마음에드는 그림, 아기의볼, 레이스가 달린커튼....

내 가슴을 파닥거리고 행복하게 하는것들을

잔뜩 적어놓고 수시로 읽어보면

우리는 매일 행복해질수 있다

행복은 남의것이 아니라 내 것이고

누가 준 다이아몬드 반지가 아니라

내가 꿰어 만든 구슬 목걸이니까..

유인경 / 해피먼데이 중

#유일 #명언 #상황 #주변 #좋은글 #사람 #주인 #세상 #인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215.html
kolaswqetsrq 11.01 19:42
내가 산을 좋아하는데

내가 산을 좋아하는데

산이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산을 미워하게 되지는 않지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지 않으면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미워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바라기 때문에

그 사람이 미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산을 좋아하지만

미워하지 않는 것은

산이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인 것처럼,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게 없으면

나도 상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쁨을 얻으려면

베풀어야 할 뿐만 아니라

베풂에 따르는 보상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바라는 마음이 괴로움의 근원입니다.

바라는 마음 없이 베풀어 보세요.

-법륜 스님-

#명언 #사랑 #사람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362.html
kolaswqetsrq 11.01 19:43
치유하는 힘은 가지고 태어납니다

치유하는 힘은 가지고 태어납니다

살다보면 나이에 상관없이 아픔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옵니다.

 "
괜찮다고 괜찮으리라고 괜찮을거라고 다짐해도 누군가 정말, 괜찮니? 라는 한마디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가 있습니다.
",

그사람이 엄마일수도 사랑하는 사람일수도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눈물을 쏟게 만든다는 것은 위로를 받고 의지하고 싶을만큼 힘들다는 말입니다. 곁에 힘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해서 서러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단지 사용방법을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으로 나눠질 뿐입니다.

사용방법을 아는 사람은 치유의 순간이 오면 스스로 작동을 시켜 자가치유를 합니다. 그러나 사용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누구에게 의지합니다.

괜히 약한척 하며 술에 의지하거나 곁에 있는 사람에게 기댑니다. 한번 기대면 힘들때마다 타인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
지독히 힘들 때는 차라리 주문을 걸어 보세요. 해리포터’에서 처럼 지팡이를 들고 오블리비아테(Obliviate)라고 외쳐보세요.
",

어쩌면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한꺼번에 사라질지도 모르니까요.

-김정한 ‘조금은 서툴고 흔들리는 그대에게 왜 사느냐고 묻거든’ 중-

#사람 #명언 #다짐 #눈물 #아픔 #좋은글 #사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916.html
kolaswqetsrq 11.01 19:43
영혼을 울리는 기도

영혼을 울리는 기도

가진 것이 많을수록

줄 수 있는 것은 적습니다.

가난이야말로 놀라운 선물이며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제가 남보다 부유하다고 생각될 때

저는 두렵습니다. 당신께서는

가난한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남보다 높다고 생각될 때

저는 두렵습니다. 당신께서는

낮은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남보다 지혜롭다고 생각될 때

저는 두렵습니다. 당신께서는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남보다 선하다고 생각될 때

저는 두렵습니다. 당신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 좋은글 중에서

#생각 #선물 #사랑 #좋은글 #명언 #가난 #영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751.html
kolaswqetsrq 11.01 19:44
▶ 이겨서 손해 보는 싸움

▶ 이겨서 손해 보는 싸움

1. 아내하고 싸워서 이기면 손해 본다. 아내가 가정을 지옥으로 만들기 때문에

2. 자식(子息)하고 싸워서 이기면 손해 본다. 자식을 이기면 자식이 곁길로 가던지, 기(氣)가 죽는다

3. 하늘(의 뜻)하고 싸우면 손해 본다. 맹자의 글에도, 하늘의 뜻에 따른느 자는 흥하고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고 했다.

▶ 꼭 이겨야되는 싸움 5가지

1. 질병(疾病)

2. 가난(家難)

3. 무지(無知)

4. 시련(試鍊)

5. 자기(自己)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하다면 뭐든지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 행복 구계명입니다.

1) 사랑하세요~~ 모든 것을

2) 건강하세요~~ 항상

3) 친절하세요~~누구에게나 말이죠

4) 용감하세요~~ 어떤 일에 대하여

5) 효도하세요~~ 부모님께는 꼬옥이요

6) 노력하세요~~ 살아있는 날까지

7) 진실하세요~~ 언제까지나

8) 겸손하세요~~ 모든 일에

9) 밝게 웃으세요~~ 힘들 때도

#좋은글 #자식 #지옥 #싸움 #가정 #곁길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917.html
kolaswqetsrq 11.01 19:45
삶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아슬아슬합니다

삶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아슬아슬합니다

걱정이 없는 날이 없고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날이 없으니까요

어느 것 하나 결정하거나

결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내일을 알 수 없어 늘 흔들리기 때문이지요

말로는 쉽게 행복하다 기쁘다고 하지만

누구에게나 힘든 일은 있기 마련입니다

얼마만큼 행복하고

어느 정도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저 모두들 바쁩니다

나이 들고 건강을 잃으면 아!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될 터인데

왜 그렇게 열심히 어디를 향해

무엇 때문에 바쁘게 가는 건지 모를 일입니다

결국, 인생은 내가 나를 찾아 갈 뿐인데 말입니다

고통, 갈등 ,불안, 등등은

모두 나를 찾기까지의 과정에서 만나는 것들입니다

나를 만나기 위해서 이렇게 힘든 것입니다

나를 찾은 그 날부터 삶은 고통에서 기쁨으로,

좌절에서 열정으로,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불안에서 평안으로 바뀝니다

이것이야말로 각자의 인생에서 만나는

가장 극적이 순간이요, 가장 큰 기쁨입니다

아무리 화려해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 하듯이

아무리 멋진 풍경도 마음이 다른데 있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듯이...

내가 아닌 남의 삶을 살고 있으면 늘 불안합니다

잠깐 쉬면서 나를 먼저 돌아 보십시오

내가 보일때 행복과 기쁨도 찾아 옵니다

오늘도 잠깐 돌아보고 출발 하시길요

인생은 나를 찾아 가는 길 / 좋은글 대사전

#행복 #결심 #명언 #좋은글 #건강 #내일 #부족 #결정 #걱정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720.html
kolaswqetsrq 11.01 19:45
나이는 칠을 더할 때마다

나이는 칠을 더할 때마다

빛을 더해가는 옻과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이를 멋있게 먹을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는 한 해 두 해 세월이 거듭 할수록

매력이 더해지는 사람과

세상이 거듭 될수록

매력을 잃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이를 먹고 싶지 않다고

발버둥 치는 사람 일수록,

세월이 지나갈 때마다 매력의 빛이

희미 해지기 마련 입니다.

나이를 먹는 것은 결코 마이너스가 아닙니다.

한 번 두 번 칠을 거듭할 때마다

빛과 윤기를 더해가는 옻처럼 말이예요.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기회가 적어 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나이를 거듭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기쁨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나이를 거듭하는 기쁨! 그 기쁨을 깨달았을 때,

당신은 비로소 멋진 삶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이를 더할때 마다 / 내 영혼의 비타민

#사람 #매력 #발버둥 #좋은글 #명언 #세월 #세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413.html
kolaswqetsrq 11.01 19:46
자신감을 향상하는 10가지 방법

<자신감을 향상하는 10가지 방법>

살다 보면 자신감이 떨어지는 건 누구든 느끼게 되는데 그런 상황을 꼭 이겨내야 한다

1. 익숙한 곳에서 일부러 탈출하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계속 맞닥뜨리면 자신의 한계가 점점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도 매일 새롭게 시도하면 자신감 상승에 큰 도움이 되며 조만간에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기분이 저절로 생길 것이다.

2. 미안해하지 말고 자기 뜻대로 살자.

우리가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는 걸 기억하자.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되 꼭 그런 의견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나만의 스타일을 찾도록 하자. 내 취향에 맞는 옷을 입자.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자.

3. 두려워하는 부분을 인정하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정상이다. 맹점은 두려움이 나를 지배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두려워하는 부분을 인정하고 그 해법을 고민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4. 완벽함이란 없다.

완벽을 추구하다가는 오히려 자신에 대한 불신이 더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실수에 대해 관대해야 한다.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면 성장도 불가능하다.

5. 나는 대단한 사람이란 걸 잊지 말자.

자신에 대한 인식과 인정이 있어야 더 높은 목표와 임무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과 의식을 가질 수 있다.

6.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신체 상태를 유지하자.

특정한 행동이 자신감을 향상시킨다. 어떤사람은 음악을 들으며..또 어떤사람은 거울을 보며 자신감을 향상 시킨다. 자신만의 패턴을 만들어 보자.

7. 몸가짐에 신경 쓰자.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상태로 걸으면 자신의 기분도 처질뿐더러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신호를 주게 된다. 그리고 팔짱을 낀다든지, 축 처져 있든지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는 동작은 조심하도록.

8.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는 것을 연습하자.

자신이 필요한 것을 표현한다면 기적이 생길 것이다. 그러니 당당히 자신의 원하는 것을 요구해보라.

9. 자신 있게 생각하자.

가장 극단적인 결과를 생각하는 것은 필요 이상의 불안을 자초한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헤아리는 데 에너지를 쓰자. 그중 한 가지에 집중한 다음, 거기서 기대할 수 있는 결과를 상상하자.

10. 자책하지 말고 용서하라. 내일이 있다. 과거가 미래를 좌우하지 않는다.

위의 10가지 방법을 실현한다면 부족한 자신감이 향상되며 자신이 가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알게 될 것이다.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한 삶을 위해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자신감이다.

#좋은글 #탈출 #명언 #향상 #자신 #자신감 #방법 #상황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10_81.html
kolaswqetsrq 11.01 19:47
마음에 두면 좋은 11가지 메시지

마음에 두면 좋은 11가지 메시지

첫번째 메시지.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그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일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더욱 가슴 아픈 일은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그 사람에게 당신이 그사람을 어떻게 느끼는지 차마 알리지 못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 메시지.

우리가 무엇을 잃기 전까지는 그 잃어버린 것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얻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세 번째 메시지.

인생에서 슬픈 일은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이 당신에게 소중한 의미로 다가왔지만 결국 그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메시지.

누군가에게 첫 눈에 반하기까지는 일 분밖에 안 걸리고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기까지는 한 시간밖에 안 걸리며,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기까지는 하루밖에 안 걸리지만 누군가를 잊는 데는 평생이 걸립니다.

다섯 번째 메시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대부분의 것들을 저절로 다가 오게 만듭니다.

여섯 번째 메시지.

꿈꾸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꿈을 꾸세요.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가세요. 되고 싶은 것은 되도록 노력하세요. 왜냐하면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할 수 있는 인생은 오직 하나이고 기회도 오직 한 번이니까요.

일곱 번째 메시지.

진정한 친구란 그 사람과 같이 그네에 앉아 한 마디 말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낸 후 헤어졌을 때, 마치 당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대화를 나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입니다.

여덟 번째 메시지.

외모만을 따지지 마세요. 그것은 당신을 현혹시킬 수 있습니다. 재산에 연연하지 마세요. 그것들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당신에게 미소를 짓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세요. 미소만이 우울한 날을 밝은 날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아홉 번째 메시지.

부주의한 말은 싸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잔인한 말은 인생을 파멸시킬 수도 있습니다. 시기 적절한 말은 스트레스를 없앨 수 있습니다. 사랑스런 말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열 번째 메시지.

항상 자신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 두세요. 만약 당신의 마음이 상처받았다면 아마 다른 사람도 상처받을 겁니다.

마지막 메시지.

사랑은 미소로 시작하고 키스로 커가며 눈물로 끝을 맺습니다. 당신이 태어났을 때 당신 혼자만이 울고 있었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당신 혼자만이 미소 짓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울도록 그런 인생을 사세요.

-Vingle 글 옮김-

#명언 #사랑 #성공 #감동 #부자 #마음 #사람 #공감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11_3.html
kolaswqetsrq 11.01 19:47
진심 어린 맘을 주었다고 해서

진심 어린 맘을 주었다고 해서

작은 정을 주었다고 해서

그의 거짓 없는 맘을 받았다고 해서

그의 깊은 정을 받았다고 해서

내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깊은 사랑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를

한동안 이유 없이 연락이 없다고 해서

내가 그를 아끼는 만큼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만큼

그가 내게 사랑의 관심을 안 준다고 해서

쉽게 잊어버리는

쉽게 포기하는

그런 가볍게 여기는 인연이 아니기를

이 세상을 살아가다 힘든 일 있어

위안을 받고 싶은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살아가다 기쁜 일 있어

자랑하고 싶은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내게 가장 소중한 친구

내게 가장 미더운 친구

내게 가장 따뜻한 친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이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지금의 당신과

나의 인연이

그런 인연이기를

출처 : 법정 스님 글 중에서

#사랑 #좋은글 #진심 #연락 #수렁 #명언 #관심 #거짓 #동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406.html
kolaswqetsrq 11.01 19:48
부드러운 것은 언제나 강하다

부드러운 것은 언제나 강하다

나무 막대기처럼 딱딱한 것은 부러지지 쉽고

바위처럼 굳고 단단한 것은 깨지기 쉽다.

오히려 물처럼 부드러운 것은

쇠망치로도 깨트릴 수 없다.

부드러운 것은 소리없이 스며든다.

물의 흐름을 막아버리면

물은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돌다가

물 길 트인 곳으로 흘러간다.

사람들이 제아무리 웅벽을 치고 막아놓아도

물은 보이지 않는 틈 사이로 스며든다.

세상에 스며드는 것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며든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게

젖어들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것이 언제나 강하다.

부드러운 것을 이기려,

길을 갈고 망치를 준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오기나 배짱으로 부드러움을 이길 수는 없다.

막무가내로 막아서다가는

어느 순간 부드러움 앞에 무릎 끓고 만다.

부드러운 것은 따뜻하여

무엇이든 포용할 수 있다.

우리의 생각도 물처럼 부드러워야 한다.

생각에 부드러움이 스며들면

얼굴이 너그러워진다.

감추어도 절로 피어나는

넉넉한 미소가 핀다.

고향의 저녁 연기처럼

아늑한 어머니 얼굴이 된다.

-‘생각을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중-

#순간 #명언 #흐름 #좋은글 #무릎 #세상 #배짱 #포용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476.html
kolaswqetsrq 11.01 19:49
행복의 향수

행복의 향수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

뿌릴 때 자신에게도

몇 방울은 튄다

-유대인 격언-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도 행복해야 합니다. 다른 이와 상관없이 나만의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 입니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에서 찾아옵니다.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하면 내가 행복하고, 내가 행복하면 다른 이도 행복합니다.

자식이 행복하면 부모가 행복하고 아내가 행복하면 남편이 행복합니다. 이웃이 행복하면 우리 집도 행복하고, 고객이 행복하면 회사가 행복합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행복의 향기가 내게로 돌아와 나도 그 향기에 젖을 것입니다.

-BAND 글 옮김-

#격언 #방울 #행복 #명언 #좋은글 #자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781.html
kolaswqetsrq 11.01 19:49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은 잘 해낼 거예요.

힘을 주고 용기를 얻는 건,

언제나 그런 작은 마음이었습니다.

더 나아지겠다는 다짐도, 더 잘하겠다는 열정도,

잘 해낼 거라고 믿어준 당신의

흔들림 없는 눈빛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고비들을 넘겨

원하는 결승점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배미향 / 쉬면서, 길에게 길을 묻다

#인생 #미향 #눈빛 #결승점 #좋은글 #가능 #다짐 #명언 #열정 #마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256.html
kolaswqetsrq 11.01 19:50
인생 덕목 8가지

인생 덕목 8가지

1. 말(言)

말을 많이 하면 필요 없는 말이 나온다. 양 귀로 많이 들으며, 입은 세 번 생각하고 열라.

2. 책(讀書)

수입의 1%를 책을 사는데 투자하라. 옷이 헤어지면 입을 수 없어 버리지만...책은 시간이 지나도 위대한 진가를 품고 있다.

3. 웃음(笑)

웃는 연습을 생활화 하라. 웃음은 만병의 예방약이며...치료약이며...노인을 젊게하고,,,젊은이를 동자(童子)로 만든다.

4. TV(바보상자)

텔레비젼과 많은 시간 동거하지 말라.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마약에 취하면 이성을 잃지만..텔레비젼에 취하면 모든게 마비 된 바보가 된다.

5. 성냄(禍)

화내는 사람이 언제나 손해를 본다. 화내는 사람은 자기를 죽이고 남을 죽이며 아무도 가깝게 오지 않아서 늘 외롭고 쓸쓸하다.

6. 이웃(隣)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거울이다.

이웃이 나를 마주할 때..외면하거나 미소를 보내지 않으면...자신을 곰곰히 되돌아 봐야 한다.

7. 사랑(慈愛)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낮춤이 선행된다.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 말씀,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온는데 칠십년 걸렸다."

8. 멈춤(止觀)

가끔은 칠흑같은 어두운 방에서 자신을 바라보라. 마음의 눈으로...마음의 가슴으로..주인공이 되어"나는 누구인가...어디서 왔나... 어디로 가나"조급함이 사라지고...삶에 대한 여유로움이 생기나니.

#웃음 #덕목 #좋은글 #인생 #연습 #명언 #수입 #시간 #생활 #생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8_3.html
kolaswqetsrq 11.01 19:51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는 10가지 지혜

<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는 10가지 지혜 >

1. 지금의 고민이 1년후에도 유효한가? 라고 상상해보자.

인생의 원칙은 두 가지다. 첫째,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말라. 둘째 모든 문제는 다 사소하다. 이것만 알면 삶의 평온함은 당신의 것이다.

2.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하라.

소중하고 중요한 일들을 미루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일은 하나도 이루지 못한 채 인생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3. 불완전한 상태에 만족하라.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그만두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지나치게 집착하고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반드시 어떤 식으로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려 할 때마다 자신에게 제동을 걸어라.

4. 매일 한번 이상 남을 칭찬하라.

마음은 있으나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자신이 상대를 얼마나 좋게 생각하는지를 들려주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 또한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된다. 칭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초 밖에 안 되지만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 모두에게 그 날 중 최고로 멋진 시간이 된다.

5. 자신에 대한 비판에 동의해 보라.

모두 당신의 유연성에 놀랄 것이다. 자신에 대한 비판에 적대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에게 자신이 내린 결론이 정확하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 뿐이다.

6. 갖고 싶은 것 대신 갖고 있는 것을 바라본다.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종이에 적어보라. 건강하고 밝은 아이들, 화목하고 든든한 부모 형제, 배우자, 인정 많은 이웃들, 친구들..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눈을 돌리면 행복은 늘 자신의 곁에 있다.

7. 성공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라.

의미있는 성취란 무엇일까. 큰 돈을 버는 것? 승진하는 것? 인정을 받는 것? 오로지 외형과 물질적인 성취에만 집착하지 말고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하도록 하자.

8. 자랑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라.

겸손과 내적 평화는 나란히 존재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려는 욕망이 적은 사람일수록 얼굴에 평온함이 가득하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고 애쓸수록 사람들은 등뒤에서 흉을 보고 속으로 경멸한다.

9. 날아온 공을 반드시 잡을 필요는 없다.

미안하다고 거절을 한다고 해서 친구를 소중히 생각 않는다거나 무례하고 냉정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다른 사람 때문에 희생되었다고 느끼지 않도록 언제 어떤 공을 잡아야 할지 알아야 하고 선택해야 한다.

10. 자신을 제 1순위 채권자로 생각하라.

금전계획을 세울 때 다른 청구서의 지불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 지불하라. 다른 사람들의 돈을 다 갚을 때까지 저축을 미루게 되면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자신을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남을 도울 수 없다.

출처 :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리처드 칼슨)

#상상 #좋은글 #연연 #평온 #고민 #명언 #원칙 #인생 #지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10_41.html
kolaswqetsrq 11.01 19:51
타인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 12가지

< 타인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 12가지 >

1. 공통점을 찾아라!

누구나 자신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쉽게 설득하기 마련이다.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선 우선 공통점을 찾아내 그에 대해 칭찬하는 것이 좋다.

2. 너무 말을 잘해도 마이너스

너무 말을 명료하게 잘하면 오히려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조금은 저자세로 상대방에게 당신을 웅변가가 아닌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면, 그들은 오히려 당신을 돕고자 할 것이다.

3. 자신의 고민을 공개하라.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면,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기꺼이 자신의 고민을 당신에게 공개하려고 할 것이다.

4. 유머 감각을 키우자.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은 어디서든 환영 받는 존재가 된다.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갈등과 긴장감은 웃음으로 완화될 수 있다.

5. ‘No’ 할 줄 알아야 한다.

너무 마음이 약해서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줄 모르면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게 된다. 자신이 하기 힘든 것은 미리 안된다고 거절할 줄 아는 결단력과 배짱이 필요하다

6. 고집 센 사람들은 이렇게!

그러나 고집 센 사람들은 의외로 연약한 면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 센 척 고집을 피우지만 사실 이런 사람들은 의외로 외로움을 달래주면 쉽게 마음을 연다.

7. 먼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어라.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나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를 상대방에게 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우선 먼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준 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해야 한다.

8. 푸념하지 마라.

이것은 무엇보다도 당신을 실패자처럼 보이게 만든다.

9. 당신의 주장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마라.

질서 정연하게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당신 말을 듣는 사람들을 이끌어라. 당신의 목적을 분명하게 말하라.

10. 말하기보다 먼저 들어야 하는 이유

다른 사람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서는 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상대방과 나를 하나의 끈으로 묶어줄 것이다.

11. 자신을 설득 상대라고 가정한다.

의견 조율을 할 때 설득 당하는 입장에서 자신이 설득할 내용을 들어본다. 스스로 납득할 수 없다면 이미 그 방법은 틀린 것이다.

12. 서두르지 마라.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겠다는 성급한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면 무리한 전략을 세워 좋지 못한 결과를 거두게 된다.

#공통점 #명언 #방법 #자신 #좋은글 #타인 #사람 #설득 #칭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12_3.html
kolaswqetsrq 11.01 19:52
나를 아름답게 하소서

<나를 아름답게 하소서>

날마다 하루 분량의 즐거움을 주시고

일생의 꿈은 그 과정에 기쁨을 주셔서

떠나야 할 곳에서는 빨리 떠나게 하시고

머물러야 할 자리에는

영원히 아름답게 머물게 하소서.

누구 앞에서나 똑같이 겸손하게 하시고

어디서나 머리를 낮춤으로써

내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하소서.

마음을 가난하게 하여

눈물이 많게 하시고 생각을 빛나게 하여

웃음이 많게 하소서.

인내하게 하소서.

인내는 잘못을 참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깨닫게 하고

기다림이 기쁨이 되는 인내이게 하소서

용기를 주소서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드러내는 용기를 주시고

용서와 화해를 미루지 않는 용기를 주소서

음악을 듣게 하시고 햇빛을 좋아하게 하시고

꽃과 나뭇잎의 아름다움에 늘 감탄하게 하소서

누구의 말이나 귀 기울일 줄 알고

지켜야 할 비밀은 끝까지 지키게 하소서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게 하시고

그 사람의 참 가치와 모습을 빨리 알게 하소서

사람과의 헤어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그 사람의 좋은 점만 기억하게 하소서.

나이가 들어 쇠약하여질 때도

삶을 허무나 후회나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지혜와 너그러움과 부드러움을 좋아하게 하소서

삶을 잔잔하게 하소서

그러나 폭풍이 몰려와도 쓰러지지 않게 하시고

고난을 통해 성숙하게 하소서.

건강을 주소서

그러나 내 삶과 생각이

건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소서.

질서를 지키고 원칙과 기준이 확실하며

균형과 조화를 잃지 않도록 하시고

성공한 사람보다 소중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사랑만큼 쉬운 길이 없고

사랑만큼 아름다운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늘 그 길을 택하게 하소서.

좋은 글 中

#겸손 #기쁨 #명언 #좋은글 #과정 #마음 #얼굴 #일생 #분량 #즐거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670.html
kolaswqetsrq 11.01 19:53
살아온 세월은 아름다워

살아온 세월은 아름다워

살아온 세월은 아름다웠다

비로소 가만 가만 끄덕이고 싶습니다

황금 저택에...

명예의 꽃다발로 둘러 싸여야 만이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길지도 짧지도 않았으나

걸어온 길에는 그립게

찍혀진 발자국들도 소중하고

영원한 느낌표가 되어주는 사람과

얘기 거리도 있었노라고

작아서 시시하나 잊히는 사건들도

이제 돌아보니

영원히 느낌표가 되어 있었노라고

그래서 우리의 지난 날들은 아름다웠으니...

앞으로 절대로 초초하지 말며

순리로 다만 성실하게 살면서

이 작은 가슴, 가슴이

영원한 느낌을 채워가자고

그것들은 보석보다 아름답고 귀중한

우리들의 추억과 재산이라고

우리만 아는 미소를 건네주고 싶습니다

미인이 못되어도

일등이 못되어도

출세하지 못해도

고루, 고루 갖춰놓고 달리지는 못해도

우정과 사랑은 내 것이었듯이

아니 나아가서 우리의 것이었듯이

앞으로 나는 그렇게 살고자 합니다

 "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중-
",

#좋은글 #세월 #영원 #황금 #발자국 #꽃다발 #명언 #사람 #저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287.html
kolaswqetsrq 11.01 19:53
인생의 깊이를 더해주는 조언 20가지

인생의 깊이를 더해주는 조언 20가지

01.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더 많이, 그리고 진심으로 기뻐하며 주라.

02.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를 외우라.

03. 들리는 모든 것을 믿지는 말라.

04. 때로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써버려라. 아니면 실컷 잠을 자라.

05.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으라.

06. 다른 사람의 꿈을 절대로 비웃지 말라. 꿈이 없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니까.

07. 사랑은 깊고 열정적으로 하라. 상처 받을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완전한 삶을 사는 유일한 길이다.

08. 위대한 사랑과 위대한 성취는 엄청난 위험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배움을 얻는 일까지 실패하지는 말라.

09. 때로는 침묵이 가장 좋은 해답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

10. 변화하는데 인색하지 말라. 그러나 자신의 가치관을 지켜라.

11. 무엇보다 바람직하고 존경할만한 삶을 살라. 늙어서 자신의 생을 돌아 볼 때 또다시 그것을 살게 될테니까.

12. 당신의 지식을 남과 나누라. 그것이 영원한 삶을 얻는 길이므로.

13. 기도하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힘이 거기에 있다.

14. 자신이 실수한 것을 깨닫는 순간 즉시 바로 잡으라.

15.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늙으면 그것이 아주 중요해질 테니까. 하지만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라.

16. 일 년에 한 번은 전에 전혀 가보지 않았던 곳을 찾아 가라.

 "
17. 돈을 많이 벌었다면 살아 있을 때 다른 사람을 돕는데 써라. 그것이 부 가 가져다주는 가장 큰 만족이다.
",

18. 자신이 원하는 걸 얻지 못하는 것이 때로는 큰 행운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19. 규칙을 배우고 나서 그 중 몇 가지를 위반하라.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가를 자신의 성공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으라.

20. 자신의 성격이 곧 자신의 운명임을 기억하라.

-BAND 글 옮김-

#진심 #좋은글 #첫눈 #인생 #조언 #사람 #사랑 #명언 #자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20.html
kolaswqetsrq 11.01 19:54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지금의 고통, 현재의 아픔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겨낸 후의 나는 지금보다 더 단단해져

내공도 늘고, 삶을 보는 눈도 깊어져 있을 것입니다.

인생이 던진 커브 공에 맞아 힘들어하는 나를

내가 먼저 응원해 주세요.

"화이팅! 넌 생각보다 더 강해. 걱정마.

그리고 사랑해. 너무나."

-출처 혜민스님 글에서-

#감동 #부자 #명언 #아픔 #좋은글 #성공 #고통 #지금 #공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155.html
kolaswqetsrq 11.01 19:55
어두운 곳에서 혼자 울지 마라.

어두운 곳에서 혼자 울지 마라.

빛나는 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는 너로 인해 빛나는 것이고

너 또한 그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다.

때가 되면 모두가

너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낮는 곳에서 혼자 떨지 마라.

높은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낮은 것들의 인정을 알지 못하는

그는 너보다 더 외로워 떨고 있다.

때가 되면 모두가

너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슬프다고 돌아서서 혼자 눈물짓지 마라.

즐거움도 때가 되면 슬픔이 되어

돌아오기 마련인 것을.

외롭다고 울지 마라.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너의 슬픔은 그의 행복이고

그의 슬픔은 너의 행복일진대

때가 되면 모두는

모두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모두는 모두의 반쪽일 뿐

외롭다고 울지마라.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글 모음집 "열두 마음

#좋은글 #행복 #인정 #즐거움 #명언 #슬픔 #반쪽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713.html
kolaswqetsrq 11.01 19:55
포기하고 싶을 때 힘을 주는 명언들

포기하고 싶을 때 힘을 주는 명언들

01. 지옥을 걷고 있다면, 계속해서 걸어가라. (윈스턴 처칠)

02. 우표를 생각해보라. 그것의 유용성은 어딘가에 도달할 때까지 어떤 한 가지에 들러붙어 있는 데 있다. (조시 빌링스)

03. 당신은 있는 걸 보고 "왜?"냐고 묻지만, 나는 결코 없던 것을 꿈꾸며 "안 될 게 뭐야?"라고 묻는다. (조지 버나드 쇼)

04. 사람들은 의욕이 끝까지 가질 않는다고 말한다. 뭐, 목욕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매일 하는거다. 목욕도, 동기부여도. (지그 지글러)

05. 당신이 지금 달린다면 패배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당신이 달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진 것이다. (버락 오바마)

06. 진정한 프로는 자신에게 전력을 다하게 하는 프로젝트에 힘을 쏟을 것이다. 자신을 가장 깊은 물 속에 빠트리고, 가장 깊은 무의식 속으로 끌고 갈 과제를 수행한다. 그가 겁먹었냐고? 물론이다. 미친듯이 겁에 질렸다. (스티븐 프레스필드)

 "
07. 누군가 해내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브루스 웨인)
",

08. 용기는 항상 크게 울부짖는 것이 아니다. 용기는 하루의 마지막, "내일 다시 해보자"라고 말하는 작은 목소리일 때도 있다. (메리 앤 라드마커)

09. 어떤 것이 당신에게 중요하다면, 당신은 길을 찾을 것이다. 뭐, 중요하지 않다면야 변명을 찾겠지만(작자 미상)

10. 손에 쥔 밧줄이 미끄러질 것 같다면 매듭을 묶고 매달려라. (프랭클린 루즈벨트

11. 승자는 한번 더 시도해본 패자다. (조지 무어 주니어)

12. 용기란 계속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용기란 아무 힘이 없을 때 계속하는 것이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13. 얼굴이 계속 햇빛을 향하도록 하라. 그러면 당신의 그림자를 볼 수 없다. (헬렌 켈러)

14. 돌담은 우리를 막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외에 다른 사람들을 막기 위해 있는 것이다. (랜디 포시)

15. 비록 아무도 과거로 돌아가 새 출발을 할 순 없지만, 누구나 지금 시작해 새 엔딩을 만들 수 있다. (칼 바드)

16. 아무도 산에 걸려 넘어지진 않는다. 당신을 휘청이게 하는 것은 모두 작은 조약돌 뿐이다. 당신 길에 놓여있는 모든 조약돌들을 지나가라. 그럼 산을 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작자 미상)

#생각 #명언 #사람 #지옥 #도달 #목욕 #유용 #매일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20.html
kolaswqetsrq 11.01 19:56
세상은 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세상은 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어린아이의 미소가

아름다운 건

그대 안에

동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맑은

아침햇살이

반가운 건

그대 안에

평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듣기 좋은 건

그대 안에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하루가



감사한 건

그대 안에

겸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대가

바라보는 대로

그대가

느끼는 대로

변하는 것.

모든 것은

그대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누구를

탓하고

누구에게

의지하겠습니까?

오늘

마주친

사람들이

소중한 건

그대 안에

존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삶이



향기가 나는 건

그대 안에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열린생각 좋은글’-

#좋은글 #명언 #동심 #세상 #빗방울 #겸손 #아침 #사람 #햇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59.html
kolaswqetsrq 11.01 19:57
상대편을 내편으로 만드는 10계명

<상대편을 내편으로 만드는 10계명>

 "
1. 스몰토크를 준비한다.
",

 "
잠시 만나고 헤어지는 그 짧은 시간에 나누는 대화가 바로 스몰토크 간지럽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재치 또한 능력이다. 하다못해 날씨나 상대방의 옷에 대해서라도 가볍게 얘기해보라. 그리고 신문을 꼼꼼히 훑어 대화의 재료를 풍부하게 하자.
",

2. 내가 하고픈 것은 나중에

남들에게 내 욕구나 목적을 먼저 얘기해버리면 작은 일에도 거부감이 일어 그의 호감을 잃어버리기 십상. 내 편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앞에서만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얘길 먼저 꺼내지 말도록.

3. 당당하게 SOS를!

가끔씩 도움을 청하는 건 오히려 정을 끈끈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가? 왠지 거절당할 것 같아 속만 졸인다면 나중에 더 큰 일이 일어났을땐 손조차 댈 수 없다. 부탁하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다는 생각을 버려라. 필요할때 당당하게 도움을 청할 줄 알아야 남도 도와줄수 있으니까.

4. 눈 딱감고 긍정적으로 보기

 "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일단은 성실한 사람! 무조건 안된다고 말하기 보다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잘 모르겠다고 말하기보다 한번 알아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인정 받는 사회다.
",

 "
5. 강요는 NO
",

남들이 다 내 맘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고 나와 틀리다고 불편해하고 그의 생각을 어떻게든 내것에 끼워 맞추려고 한다면 폭발하고 만다. 그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려면 결론을 내릴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6. 고무줄 처럼 말하기

점심 산다고 하고선 사람들이 꾸벅꾸벅 졸때까지 연설하는 것만큼 황당한 것도 없다. 상황에 따라 말을 늘였다 줄였다 할 줄 알아야 한다.

7. 눈동자 쳐다보기

눈동자를 쳐다보기 민망하면 뺨이나 이마도 좋다. 그것만으로도 상대방의 표정 변화나 제스처를 보며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 상대방을 사로잡으려면 얼굴을 바라보며 열심히 맞장구를 쳐야한다.

8. 스타일로 승부하기

"옷을 잘 못 입은 여성을 보면 사람들은 그녀의 옷에 주목하지만 옷을 잘 입은 여성을 보면 사람들은 그녀라는 사람을 주목 할 것이다." 디자이너 샤넬의 말이다. 분위기에 맞는 옷차림과 태도를 익혀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도 능력이다.

9. 거절에도 테크닉이 필요하다

얼떨결에 부탁은 받았는데 거절은 못하고 혼자 궁시렁대며 짜증을 낸다고 묘한 수가 생기나? 거절을 하려면 그 자리에서 정확하게 하는게 좋다.

10. 잘못한 그 일에 대해서만 꼬집는다.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이런 저런 일을 장황하게 추궁하면 반발만 생긴다. 야단을 치려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야하며 자신의 감정이 들어가서는 절대 안된다.

#내편 #신문 #시간 #나중 #좋은글 #능력 #상대편 #명언 #상대방 #계명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10_24.html
kolaswqetsrq 11.01 19:57
복 받고 살아가는 방법

< 복 받고 살아가는 방법 >

-웃음으로 시작하고 웃음으로 마감하라. 여기가 천국이다.

-기쁨으로 수용하라. 기뻐하면 기뻐할 일만 생겨난다.

-힘든 것에는 뜻이 있다. 감사함으로 수용하라.

-믿음의 열도를 10배로 늘여라.100배의 수확이 보장된다.

-모두를 위하는 사람이 되라. 그것이 나를 위하는 지름길이다.

-진리가 아니면 따르지 말라. 길 한번 잘못 들면 평생 후회한다.

-인연을 소중히 하라. 인연 중에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다

-인생 드라마는 스스로 연출한다. 명연기를 보여주라.

-건강해야 건강한 운을 만든다. 과욕을 버려라.

-잠에서 깨어나라. 그래야 지혜의 눈을 크게 뜰 수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늘이 좋아하는 자가 되라.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 어리석은 사람은 길을 두고 모로 간다.

-자신의 무한 능력을 발견하라. 복된 나날이 펼쳐진다.

-머리를 써라. 머리는 하늘이 나에게 준 보물창고다.

-실패를 뒤집어보라. 그 속에 성공이 들어있다.

-아낌없이 베풀어라. 샘물은 퍼낼수록 맑은 물이 솟아난다.

-자신의 눈을 믿지 말라. 남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라.

-최대의 기쁨으로 하루를 맞이하라. 살아있는 날은 경축일이다.

-먼저 부모를 공경하라. 자손대대로 번영한다.

-눈앞의 문제에 집착하지 말라. 문제 뒤에 해답을 찾아내라.

-나날이 향상하라. 향상하지 않으면 퇴보한다.

-남의 말을 좋게 하라. 없던 복도 굴러온다.

-음식만 골라 먹지 말라. 말도 골라서 하라.

-복을 많이 지어라. 내가 지은 것만이 내 것이 된다.

-복을 달라고 안달하지 말라. 복을 담을 그릇을 먼저 만들어라.

#명언 #천국 #마감 #시작 #웃음 #좋은글 #방법 #수용 #기쁨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40.html
kolaswqetsrq 11.01 19:58
만날 때 마다 하면 좋은 말 25가지

<만날 때 마다 하면 좋은 말 25가지>

1. 상대의 걷잡을 수 없는 화를 가라앉히는 말 : 미안해

2. 겸손한 인격의 탑을 쌓는 말 : 고마워

3. 상대의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 말 : 잘했어

4. 화해와 평화를 부르는 말: 내가 잘못했어

5. 존재감을 쑥쑥 키워주는 말 : 당신이 최고야

 "
6. 상대의 기분을 업 시키는 말 : 오늘 아주 멋져 보여
",

7.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말 : 네 생각은 어때?

8. 든든한 위로의 말 : 내가 뭐 도울 일 없어?

9. 상대의 자신감을 하늘로 치솟게 하는 말 :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10. 열정을 샘솟게 하는 말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11. 상대의 능력을 200% 이끌어내는 말: 당신을 믿어

12. 용기를 크게 키우는 말 : 넌 할 수 있어

13. 부적보다 큰 힘이 되는 말 : 널 위해 기도할께

14. 충고보다 효과적인 공감의 말 : 잘되지 않을 때도 있어

15.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호감을 사는 말: 당신과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

16. 자녀의 앞날을 빛나게 하는 말: 네가 참 자랑스러워

17. 반복되는 일상에 새로운 희망을 선사하는 말: 첫 마음으로 살아가자

18. 환상의 짝꿍을 얻을 수 있는 말: 우리는 천생연분이야

19.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말: \x82I찮아. 잘 될거야

20. 상대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말 : 보고 싶었어

21. 배우자에게 사는 보람을 주는 말 : 난 당신밖에 없어

22. 상대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말: 역시 넌 달라

23. 상대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말: 그동안 고생 많았어

24.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에 눈뜨게 해주는 말: 한 번 해볼까?

25. 백번, 천번, 만번을 들어도 기분 좋은 말 : 사랑해

#미안 #인격 #존재감 #기분 #겸손 #명언 #자신감 #하늘 #생각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25.html
kolaswqetsrq 11.01 19:59
내 나이 가을에서야..

내 나이 가을에서야..

젊었을 적

내 향기가 너무 짙어서

남의 향기를 맡을 줄 몰랐습니다.

내 밥그릇이 가득차서

남의 밥그릇이 빈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고

사랑에 갈한 마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세월이 지나 퇴색의 계절

반짝 반짝 윤이나고 풍성했던

나의 가진 것들 바래고,

향기도 옅어 지면서

은은히 풍겨오는 다른 이의 향기를

맡게 되었습니다.

고픈 이들의 빈 소리도

들려옵니다.

목마른 이의 갈라지고 터진 마음도

보입니다.

이제서야 보이는

이제서야 들리는

내 삶의 늦은 깨달음!!

이제는

은은한 국화꽃 향기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 밥그릇 보다

빈 밥그릇을 먼저 채우겠습니다.

받은 사랑 잘 키워서

풍성히 나눠 드리겠습니다.

내 나이 가을에

겸손의 언어로 채우겠습니다.

-좋은 글 대사전-

#마음 #좋은글 #세월 #가을 #퇴색 #명언 #사랑 #밥그릇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42.html
kolaswqetsrq 11.01 19:59
축혼가

축혼가

두 사람이 화목하기 위해서는

어수룩한 편이 좋다.

너무 훌륭하지 않은 편이 좋다.

너무 훌륭하면

오래가지 못한다고 깨닫는 편이 좋다.

완벽을 지향하지 않는 편이 좋다.

완벽 따위는 부자연스럽다고

큰소리치는 편이 좋다.

두 사람 중 어느 쪽인가

장난치는 편이 좋다.

발랑 넘어지는 편이 좋다.

서로 비난할 일이 있어도

비난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었는지

후에 의심스러워지는 편이 좋다.

바른말을 할 때

상대를 마음 상하게 하기 쉽다고

깨닫는 편이 좋다.

훌륭해지고 싶거나

올바르고 싶다고 마음 쓰지 말고

천천히 느긋이

햇빛을 쬐고 있는 편이 좋다.

건강하게 바람에 흔들리며

살아 있는 것의 그리움에

문득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런 날이 있어도 좋다.

그리고

어째서 가슴이 뜨거워지는지

잠자코 있어도

두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길 바란다.

-요시노 히로시-

#좋은글 #완벽 #명언 #사람 #비난 #축혼 #지향 #화목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429.html
kolaswqetsrq 11.01 20:00
게으름을 벗어나기 위한 7가지 법칙

< 게으름을 벗어나기 위한 7가지 법칙 >

1. 내 삶의 쓰임을 알아야 한다.

게으름에 대한 가장 확실한 처방은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왜 해야 하는가!’를 발견하는데 있다. ‘내 안의 나’를 만나야 하고 ‘내가 원하는 나’를 알아야 목표가 생기는 법이고 그에 따라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절실히 알 수 있게 된다.

2. 자기 통제력이 약하다면 자기외적 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되게 강제성을 동원하라는 것이다. 학원이나 클럽을 등록하거나 내기를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언을 하는 방식 등이다.

3. 자극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좋은 경쟁상대를 만들어라.

긍정적인 동기를 부추겨줄 수 있는 좋은 친구와 라이벌을 가까이 하고 있을수록 좋다.

4. 해낼 수 있고 짧은 기간의 계획부터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루었다면 충분히 보상하라. 예를 들면 3일 동안의 계획을 세우고 작심삼일 하라. 그리고 자축하고 나서 또 새로운 3일의 계획을 세워라.

5. 육체적으로 피로한 사람은 늘 정신적 피로감과 무기력감을 달고 다닌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맞는 이야기이다. 운동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천연의 보약이다.

6. 일의 경중과 완급을 구분하라.

중요한 것부터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모든 일에 부지런한 사람은 없다. 부지런한 부분이 있고 게으른 부분이 있다. 명심하라! 모든 일에 부지런하려고 하는 순간 당신은 게을러지고 만다.

7.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주고 구체적인 질문이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난 왜 운동을 못할까?’라는 질문 대신에 ‘체중을 5KG 정도 빼려면 하루에 얼마를 운동해야 하고 몇 칼로리 정도로 식사량을 조절해야 하지?’와 같이 구체적인 질문을 해야 실천적인 답이 나온다.

#명언 #좋은글 #처방 #발견 #쓰임 #게으름 #법칙 #통제력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7_3.html
kolaswqetsrq 11.01 20:01
험담을 멈추는 방법

< 험담을 멈추는 방법 >

1. 입을 다물어라

인간과 동물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의사 소통 능력이다. 오직 인간만이 복잡한 사고와 섬세한 감정, 철학적인 개념을 주고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귀한 선물을, 사랑을 전하고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불의를 바로 잡는데 써 왔는가?

아니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멀어지도록 했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 줄 좋은 말이 없거든 차라리 침묵을 지켜라.

2. 화제를 돌려라

험담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나쁜 마음을 먹고 말하는 쪽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듣는 쪽이다.

대화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는 스포츠, 날씨, 경제 등 안전하고 흥미로운 화제로 바꾸어라. 험담이 시작될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면 상대방은 험담을 해도 아무 소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의할 것이다

3. 믿지마라

법정에서 증인이 해서는 안될 말을 검사가 교묘하게 유도했을 때, 배심원들은 지금 들은 말을 무시하라는 판사의 요청에도 쉽게 그 말을 지우지 못 한다.

그 말은 이미 배심원들의 뇌리에 또렷하게 새겨졌기 때문이다. 들은 사실을 믿지 않기란 어렵다. 하지만 험담을 들었다면 믿지마라. 험담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4. 용서하는 방법을 개발하라

링컨 대통령은 자기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장관들 때문에 좌절과 분노를 느끼면 그 사람들 앞으로 온갖 욕설과 비난을 퍼붓는 편지를 쓰곤 했다.

그리고는 편지를 부치기 직전에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림으로써 자신을 괴롭히는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 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분노와 증오를 극복해라.

5. 충동을 이겨내라

험담하고 싶은 욕망을 이겨 낼 때마다 자기를 칭찬하고 부정적인 말을 꺼내기 전에 자신을 다잡아라. 물론 험담하지 않는다고 박수를 쳐 줄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당신은 스스로 올바른 일을 한 것이다.

세상을 바꾸자, 한 번에 한 마디씩..

#소통 #험담 #동물 #좋은글 #인간 #차이점 #능력 #방법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33.html
kolaswqetsrq 11.01 20:01
너를 만나러 가는 길

너를 만나러 가는 길

나의 삶에서 너를 만남이 행복하다

내 가슴에 새겨진 너의 흔적들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나의 삶의 길은

언제나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리움으로 수놓는 길

이 길은 내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도

내가 사랑해야 할 길이다

이 지상에서

내가 만난 가장 행복한 길

늘 가고 싶은 길은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용혜원-

#흔적 #마지막 #명언 #만남 #세상 #행복 #사랑 #그리움 #가슴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99.html
kolaswqetsrq 11.01 20:02
되는 집안, 안되는 집안 2

< 되는 집안, 안되는 집안 2 >

1.되는 집안은 계획세워 살아가고 안 되는 집안은 대충대충 뒤죽박죽 살아간다.

2.되는 집안은 하루하루를 금쪽같이 사용하고 안되는 집안은 휴지처럼 낭비한다.

3.되는 집안은 사랑과 의욕이 불타고 안 되는 집안은 증오와 원망이 불탄다.

4.되는 집안은 좋은 글 좋은 말이 보물이고 안되는 집안은 연속극이 보물이다.

 "
5.되는 집안은 위하여살아가고 안 되는 집안은 건배할 때만 위하여!다.
",

6.되는 집안은 좋은 친구가 많고 안되는 집안은 나쁜 친구가 많다.

7.되는 집안은 상대의 말에 귀기울이고 안되는 집안은 혼자 열변을 토한다.

8.되는 집안은 노래소리 드높고 안되는 집안은 고함소리 드높다.

 "
9.되는 집안은 나부터 잘해야지하는데 안 되는 집안은 너나 잘하라한다.
",

10.되는 집안은 가슴을 맞대고 안 되는 집안은 등을 맞댄다.

11.되는 집안은 보람으로 일하고 안되는 집안은 죽지 못해 일한다.

12.되는 집안은 팥으로 메주쑨대도 믿어주고 안되는 집안은 콩으로 쑨대도 안믿는다.

13.되는 집안은 절망도 희망이고 안되는 집안은 희망도 절망이다.

14.되는 집안은 좋은 방법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안 되는 집안은 말만 무성하다.

15.되는 집안은 약속이 생명이고 안되는 집안은 부도가 생명이다.

16.되는 집안은 하늘을 두려워하고 안 되는 집안은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한다.

17.되는 집안은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고 안되는 집안은 외면하고 살아간다.

18.되는 집안은 남이 잘할때 박수치고 안되는 집안은 남이 못될때 통쾌한 웃음을 날린다.

19.되는 집안은 친절이 상표이고 안 되는 집안은 교만이 상표다.

20.되는 집안은 문제를 개선하여 향상하고 안되는 집안은 문제를 덮어둬 속으로 썩게된다.

#좋은글 #사용 #계획 #명언 #금쪽 #집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16.html
kolaswqetsrq 11.01 20:03
거리에 많은 사람들

거리에 많은 사람들

어딘가로 향하는 빠른 발걸음

그렇게 모두 살아가지

가슴 속 깊은 사연들

저마다 아픈 구석 하나쯤은 있네

그렇게 모두 살아가지

가끔은 뭐 하나 되는 일이 없고

한없이 작아지고 주저앉고 싶어도..

하지만 단 한가지 나에겐 꿈이 있다네

힘들다 뭐래도 난 그냥 웃으며 넘길래

세상을 모른다 해도

아직 많은 길이 남았대도

내 가슴이 뛰네 언제나 그렇듯..

웃으며 넘길래

제이레빗 / 웃으며 넘길래

#명언 #발걸음 #사람 #사연 #가슴 #세상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34.html
kolaswqetsrq 11.01 20:04
행복해지는 9가지 방법

< 행복해지는 9가지 방법 >

1. 실패한 일일수록 미련을 버린다.

실패한 과거를 잊지 못하면 그 불행은 과거로 끝나지 않고 더욱 어둡고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므로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빨리 잊어 버려라. 고민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행동으로 옮기는 현명한 태도에서 어려운 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2. 자신의 실수나 단점에 집착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단점과 실수가 있는 법. 그것을 자신의 영원한 업보인양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 있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극복하는 노력과 함께 자신감을 가져라.

3. 최악의 순간보다는 최상의 모습을 상상한다.

실패를 먼저 생각하는 일은 성공하기 어렵다. 긍정적인 상상만으로도 자신감과 극복의 의지를 가질 수 있다.

4. 효과적인 기분 전환법을 알아 둔다.

고민을 떨쳐 버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일이나 취미에 몰두함으로써 마음의 변온을 유지하는 것이다.

5. 스스로 격려하고 칭찬한다.

잘못한 일을 자신이 했다고 하더라도 자책보다는 칭찬 요법이 더 효과적이다. 자기 장점을 정리해서 잘 보이는 곳에 부착하고 자기 최면을 거는 것이 바람직하다.

6. 체념하고 포기하는 법을 배운다.

세상 모든 일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대로 받아 들이고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7. 주위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

남과 똑같지 않은 나만의 장점에 대해 감사하고 자신을 가꾸는 일에 열중해 보라.

8. 막연한 계획이나 기대보다는 자신이 반드시 할 수 있는 명확한 한계를 정한다.

사람의 욕망을 끝이 없는데 그 끝없는 욕망만을 쫓다보면 자신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므로 한계를 정하고 자기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더 현명한 법이다.

9. 행복 프로그램밍을 만든다.

무엇이든 잘되는 것이라는 자기 암시법을 이용한 행복 프로그래밍은 당신을 정말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미련 #고민 #출발 #행복 #방법 #불행 #명언 #행동 #좋은글 #자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9_79.html
kolaswqetsrq 11.01 20:04
사랑으로 도전하라

사랑으로 도전하라

우리 영혼에

장애가 느껴질 때

그 장애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노래했다.

"사랑은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고,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유한 사람도 없다."

사랑은 살아가는 힘이다.

누군가를 향해 웃어줄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을 나눌 수 있을 만큼

따뜻한 사람이다.

사랑으로 도전하라!

 "
-착한 웃음 / 이요셉. 채송화 중-
",

#명언 #도전 #좋은글 #사랑 #사람 #영혼 #가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62.html
kolaswqetsrq 11.01 20:05
사랑하고 사랑 받는다는 것은

사랑하고 사랑 받는다는 것은

태양을 양쪽에서 쪼이는 것과 같다.

서로의 따스한 볕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성을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태양이 되자.

그리하여 영원히 마주보며 비추어 주자.

그대의 운명을 사랑하라.

어떤 운명이든지 간에

항상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쪽 얼굴은 어둡고 우울하며

다른 한쪽 얼굴은 따뜻하고 밝다.

어두운 얼굴을 가리고 밝은 얼굴을 택하여

그것만을 눈 여겨서 바라보라.

그것이 험한 운명의 바다를

노저어 가는 항해술이다.

현명한 사람이 되려거든 사리에 맞게

묻고, 조심스럽게 듣고, 침착하게 대답하라.

그리고 더 할 말이 없으면 침묵하기를 배워라.

사랑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그 순간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만으로 할 수도 있지만,

사랑이라는 마음을 주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과 아픔과 어둠까지도 껴안을 수

있는 넉넉함을 간직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 우리는 중요하지 않게,

다복하지 않게 태어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 가에 있다.

물 위에 글을 쓸 수 없다.

물 속에서는 조각도 할 수 없다.

물의 본성은흐르는 것이다.

우리의 성난 감정은

바로 이 물처럼 다루어야 한다.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고뇌와 인고 속에서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이 시작될 때,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

그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으며, 사랑에 대한

순수한 기쁨만으로 충만해 있다.

세상의 첫째 조건은 그 마음의 순결함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견딘 시련들이야 말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승리이다.

위대한 사람들이 처음부터

영광의 월계관을 쓰는 일은 극히 드물다.

종종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힘은

경험과 역경을 통해서 자라난다.

-앨런 코헨-

#양쪽 #좋은글 #운명 #태양 #명언 #정성 #사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25.html
kolaswqetsrq 11.01 20:06
사람이 살아가면서 꼭 위로 높아지는 것만이

사람이 살아가면서 꼭 위로 높아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아.

옆으로 넓어질수도 있는 거잖아.

마치 바다처럼

넌 지금 이 여행을 통해서

옆으로 넓어지고 있는거야.

많은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그리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니까.

너무 걱정마.

내가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너보다 높아졌다면,

넌 그들보다 더 넓어지고 있으니까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 / 김동영

#지금 #시간 #경험 #여행 #좋은글 #정답 #사람 #걱정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45.html
kolaswqetsrq 11.01 20:06
아침이면

아침이면

가장 먼저 당신이

문을 열고 들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나를

살짝 간질여 깨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는 커튼 너머

아침 햇살이 넘쳐나고 있음을

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별다른 얘기거리는 아니어도

당신이 하는 이야기를

눈 비비며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날마다 그런 재미로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이면

가장 먼저 당신이

내 앞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내 하루의

처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종일토록

당신이 내 안에 있어

내가 당신을 호흡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이면

날마다 가장 먼저

당신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용혜원 / 당신이 내 하루의 처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침 #햇살 #커튼 #사람 #명언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79.html
kolaswqetsrq 11.01 20:07
그래도 사랑하라

그래도 사랑하라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거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하라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참된 적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내일은 잊혀질 것이다

그래도 선을 행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당신이 여러 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지 모른다

그래도 만들라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 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줘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길로 차일 것이다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라

켈커타 어린이집 쉬슈 브라반 벽에 있는 표지판

#좋은글 #사람 #사랑 #성실 #거짓 #중심 #명언 #비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58.html
kolaswqetsrq 11.01 20:08
인간관계가 능숙한 사람들의 10가지 비법

<인간관계가 능숙한 사람들의 10가지 비법>

1. 과거가 현재의 관계를 정의하지 않게 한다.

우리는 헤어짐을 피할 수 없다. 싫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예전의 파트너와 깨끗이 헤어지고 그의 행복을 기원한다. 혹시 새로운 관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지금의 짝이 예전의 짝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현재에 충실한 해법을 구한다.

2. 주고받는 균형 있는 관계를 지향한다.

단단한 관계일수록 서로 동등하게 주고받는다. 이는 물질적인 교류가 아니다. 가까워지고 싶으면 그사람에게 자신의 많은 부분을 보여줘야한다.

3.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언제인지 잘 안다.

어떤 사람은 애인이 생김과 동시에 모습을 감춘다. 무슨 말이냐 하면 갑자기 친구, 가족, 또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활동, 이런 것들을 관계를 위해 희생한다. 그런데 정말로 건강한 관계란, 관계를 맺으면서도 자신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4. 진정한 대화법을 안다.

 진정한 대화를 가능케 하려면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하고도 사랑이 가득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걸 말하는 것은 두려울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마음 한 구석에 꾹 눌러 놓는 것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5.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를 파악하고 서로 열심히 이용한다.

사랑의 언어는 5가지의 기본적인 형태로 나타나는데, 격려, 신체접촉, 오붓한 시간, 헌신, 그리고 선물이라고 한다. 파트너가 이런 사랑의 언어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터득하면 서로에게 요구하는 사항을 제대로 충족할 수 있다고 한다.

6. 서로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어떤 때는 다 내려놓고 함께 한바탕 크게 웃는 것처럼 건강한 게 없다. 웃음은 몇 초 전만 해도 너무 진지하게 생각했던 문제가 아무것도 아닌 듯 사라지게 한다.

7. 잘못된 기대로부터 상대방을 해방한다.

상대방은 나와 똑같이 보잘것없는 인간이다. 누구와 몇 주만 살아보면 이 사실이 자명해진다.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잘못된 태도다. 왜냐하면 그에게도 똑같이 결함, 문제, 불안감 그리고 연약함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점이 그와 당신의 관계를 특별하고 아름답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8. 나의 성향을 상대방에게 투영시키지 않는다.

이것 하나로 관계에서 오는 문제의 90%가 해결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불안감과 결함을 상대방에게 투영하는데 그 이유는 그런 약점이 바로 나에게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9.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한다.

긍정적으로 기대하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 정말이다. 둘의 관계가 실패할 거로 생각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왜냐하면 어떤 것을 오랫동안 믿으면 그런 믿음을 자신에게 입증하기 위한 행동을 취하기 때문이다.

10. 무엇보다 이들은 온전히 사랑한다.

관계에 능숙한 사람은 자신과 상대방, 그리고 이웃을 사랑한다. 또 그들은 자신이 100% 온전한 사람이고 상대방이 그런 자신을 보완해준다는 확신이 있다.

#기원 #사람 #인간 #명언 #지금 #행복 #예전 #좋은글 #비법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10_17.html
kolaswqetsrq 11.01 20:08
인연이시향 詩

인연(이시향 詩)

인연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랍니다.

인연은

긴 기다림의 끝에

꼭 필요한 사람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로 할 때

꼭 필요한 것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와 나는

필연이 되는 것입니다.

#필연 #명언 #인연 #시향 #사람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75.html
kolaswqetsrq 11.01 20:09
산다는 일

산다는 일

호흡하고 말하고 미소할 수 있다는 일

귀중한 일이다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지금 나는 아주 작은 것으로 만족한다

한 권의 책이 맘에 들때

또 내 맘에 드는 음악이 들려올 때

또 마당에 핀 늦장미의 복잡하고도 엷은

색깔과 향기에 매혹될 때

또 비가 조금씩 오는거리를 혼자 걸을 때

나는 완전히 행복하다

전혜린 / 긴 방황 중

#색깔 #음악 #호흡 #마당 #매혹 #방황 #좋은글 #명언 #만족 #행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89.html
kolaswqetsrq 11.01 20:10
내 마음을 읽어 주는 사람

내 마음을 읽어 주는 사람

오래전부터 나를 아는 듯이

내 마음을 활짝 열어본 듯이

내 마음을 읽어 주는 사람.

눈빛으로 마음으로

상처 깊은 고통으로 다

알아 주기에 마음 놓고 기대고 싶다.

어느 순간에 나보다 날

더 잘 알고 있다고 여겨져

내 마음을 다 풀어 놓고 만다.

내 마음을 다 쏟고 쏟아

놓아도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들어주기에 나의 피곤한

삶을 기대고 싶다.

삶의 고통이 가득한 날에도

항상 사랑으로 덮어주기에

내 마음이 참 편하다.

-용혜원 ‘내 마음을 읽어 주는 사람’ 중-

#마음 #눈빛 #명언 #좋은글 #사람 #오래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67.html
kolaswqetsrq 11.01 20:10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10가지 격려 한마디

<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10가지 격려 한마디 >

(단 한마디의 말이 한 사람의 삶을 변하게 할수 있습니다.)

1. 내 잘못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다면 실수를 바로잡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2.미안합니다.

 "
미안합니다‘라고 말할 때 상대방의 입장을 알 수 있으며 관계를 개선할수 있으며 상대의 장점을 볼 수 있습니다.
",

3. 할 수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비난과 비웃음에 대한 걱정이 있겠지만, 목표를 갖고 도전하십시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4. 당신을 믿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 중 하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의지입니다.

5. 당신을 신뢰합니다.

우리 사회의 성공은 상대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서로에게 보여주는 믿음 사람들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6.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 자신감이 필요한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 어느 누구든 삶의 매 순간마다 대화와 메모 또는 행동으로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라는 격려가 필요합니다.

7.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배려에 대한 감사를 보이는 일이며 사려 깊은 생각에 대한 인정입니다.

8. 당신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식될 때 긍정적이며 더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됩니다.

9. 사랑합니다.

사랑은 우리 주변에 항상 있습니다. 배우자, 가족과 친구 또한 우리의 커뮤니티를 위해 사랑을 찾고 또 사랑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10. 존경합니다.

존경 받고자 한다면 먼저 존중 하십시오.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은 존경 받습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격려가 어느 것에서도 긍정을 찾지 못할 때 우리 국가와 사회는 고통스럽습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태도로 살고자 결심한다면 우리 자신과 사회 국가와 세계까지도 변화시킬수 있습니다.

-리치 디보스-

#모색 #해결책 #좋은글 #긍정 #사람 #명언 #인정 #잘못 #자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10_90.html
kolaswqetsrq 11.01 20:11
행운을 부르는 대화법칙 14가지

< 행운을 부르는 대화법칙 14가지>

★실천하기 7가지

01. 맺고 끊음을 분명히 한다.

02. 사소한 말에 정성을 기울인다.

03. 장점부터 말한다.

04. 승자처럼 말한다.

05. 끼어들 때와 침묵할 때를 구분한다.

06. 근사한 자기소개 문장을 만들어 둔다.

07. 먼저 말문을 연다.

★하면 안되는 7 가지

08. 테스트하는 말을 삼간다.

09. 공감 표시를 생략하지 않는다.

10. 조급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11. 자기만의 원칙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12. 알고 있는 것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혼동하지 않는다.

13.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다.

14. 자기 자신을 비하하지 않는다.

출처 : 말할 때마다 행운을 부르는 대화법 (이정숙 지음)

#실천 #좋은글 #명언 #구분 #행운 #법칙 #침묵 #정성 #문장 #장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14.html
kolaswqetsrq 11.01 20:12
최고의 삶을 위한 15가지 지혜

최고의 삶을 위한 15가지 지혜

- 막스 에르만

1. 세상의 소란함과 서두름 속에서 너의 평온을 잃지 말라. 침묵 속에 어떤 평화가 있는지 기억하라.

2. 너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서도 가능한 한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

3. 네가 알고 있는 진리를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말하라. 다른 사람의 얘기가 지루하고 무지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들어주라. 그들 역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으므로.

4. 소란하고 공격적인 사람을 피하라. 그들은 정신에 방해가 될 뿐이니까.

5. 만일 너 자신을 남과 비교한다면 너는 무의미하고 괴로운 인생을 살 것이다. 세상에는 너보다 낫고 너보다 못한 사람들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니까.

6. 네가 세운 계획 뿐만 아니라 네가 성취한 것에 대해서도 기뻐하라.

7. 네가 하는 일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그 일에 열정을 쏟으라.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그것이 진정한 재산이므로.

8. 조심하되 그것이 너를 장님으로 만들어 무엇이 덕인가를 못보게 하지는 말라. 많은 사람들이 높은 이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모든 곳에서 삶은 영웅주의로 가득하다. 하지만 너는 너 자신이 되도록 힘쓰라.

9. 특히 사랑을 꾸미지 말고 사랑에 냉소적이지도 말라. 왜냐하면 모든 무미건조하고 덧없는 것들 속에서 사랑은 풀잎처럼 영원한 것이니까..

10. 나이 든 사람의 조언을 친절히 받아들이고 젊은이들의 말에 기품을 갖고 따르라.

11. 갑작스런 불행에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정신의 힘을 키우라. 하지만 상상의 고통들로 너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지는 말라. 두려움은 피로와 외로움속에서 나온다.

12. 건강에 조심하되 무엇보다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

13. 너는 우주의 자식이다. 그 점에선 나무와 별들과 다르지 않다. 넌 이곳에 있을 권리가 있다.

14. 너의 일과 계획이 무엇일지라도 인생의 소람함과 혼란스러움 속에서 너의 영혼을 평화롭게 유지하라.

15. 부끄럽고, 힘들고, 깨어진 꿈들 속에서도 아직 아름다운 세상이다. 즐겁게 살라. 행복하려고 노력하라.

#명언 #가능 #세상 #사람 #평온 #소란 #좋은글 #기억 #자신 #침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15_21.html
kolaswqetsrq 11.01 20:12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에게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 곁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 행복

#우체국 #행복 #하늘 #좋은글 #명언 #창문 #오늘 #사람 #사랑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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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스타그램 #시스타그램 #독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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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친구 #인생 #삶

#자연 #풍경 #하늘 #파란하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51.html
kolaswqetsrq 11.01 20:13
마음에 무엇을 담겠습니까?

마음에 무엇을 담겠습니까?

 "
병(甁)에 물을 담으면 물 병이 되고,
",
 "
꽃을 담으면 꽃 병
",
 "
꿀을 담으면 꿀 병이 됩니다.
",

 "
통(桶)에 물을 담으면 물 통이 되고,
",
 "
똥을 담으면 똥 통
",
 "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 통이 됩니다.
",

 "
그릇에 밥을 담으면 밥 그릇이 되고,
",
 "
국을 담으면 국 그릇
",
 "
김치를 담으면 김치 그릇이 됩니다.
",

병(甁)이나 통(桶)이나 그릇은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좋은 쓰임으로 쓸 수도 있고

허드레 일에 쓰일 수도 있읍니다.

꿀 병이나 물 통이나 밥 그릇등

좋은 것을 담은 것들은

자주 닦아 깨끗하게 하고

좋은 대접을 받는 대신,

좋다고 여기지 않는 것을 담은 것들은

한 번 쓰고 버리거나,

가까이 하지 않고 오히려

멀리하려는 나쁜 대접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병, 통, 그릇들은

함부로 마구 다루면 깨어지거나

부서져서 곧 못쓰게 되기 쉽습니다.

 "
우리 사람들의 마음도 이 것들과 똑 같아서,
",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좋은 대접을 받을 수도 있고

못 된 대접을 받아 천덕꾸러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즉 우리 마음 속에 담겨 있는 것들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람 대접’을 받느냐

아니냐로 달라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불만, 시기, 불평등

좋지 않은 것들을 가득 담아두면

욕심쟁이 심술꾸러기가 되는 것이고

감사, 사랑, 겸손등

좋은 것들을 담아두면 남들로부터

대접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담느냐 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오직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월간 ‘좋은 생각’ 중-

#쓰임 #마음 #좋은글 #그릇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27.html
kolaswqetsrq 11.01 20:14
▶아들아..애비가 살아보니 이렇더라

▶아들아..애비가 살아보니 이렇더라

1. 주말엔 마누라를 집에 두지마라.

(집구석에 박혀있으면 외모관리 안한다. 마누라가 뚱뚱해지는건 니도 책임있다.)

2. 바람피되 들키지 마라.

(능력안되면 하지말아라 꼴깝떨다 걸리면 죽는다. 니 걸리면 나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거라.)

3. 명령식으로 말하지 마라.

(지금이 조선시대냐?말년에 천대받기 싫으면마누라한테 말이라도 곱게해라.)

4. 쓸데없는 자존심 세우지 마라.

( 마누라한테 이겨봤자 좋은거 하나도 없더라.. )

5. 지키지 못할 약속하지 마라.

( 약속을 어기면 존경하지 않는다. 가장의 위엄은 언행일치에 있으니 약속을 하면 꼭 지키거라.)

6. 거짓말은 티안나게 해라

(물론 너는 다 걸리게 되어있다.)

7. 다른 여자 오래 보지마라.

(그림의 떡이다, 니 마누라나 잘 챙겨라 그 여자들이 너랑 눈마주치면 아저씨가 추태부린다고 더럽다고 한다.)

8. 기념일은 꼭 챙겨라.

(일년에 몇번만 챙겨도 자상한 남편소리 평생듣고 살수가 있다)

9.농담이라도 이혼이라는 말은 하지마라.

(싸울 때마다 계속 머릿속에 맴돌게 된다. )

10. 마누라가 실수해도 작은일은 다 용서해라

(차곡차곡 적립해두면 나중에 니가 사고쳤을 때 잔소리를 반으로 줄일 수가 있다.)

.....오래 살다보니 부모,형제,친척,친구들 다 이래저래 떠나고 니 엄마 밖에 없구나. 젊을 때 좀더 잘해줄 걸 아쉬움이 크단다. 너라도 마누라 한테 잘해라 가정이 화목해야 인생이 성공이라는걸 이제야 깨닫는구나..

#능력 #바람 #좋은글 #책임 #집구석 #아들 #명언 #명령식 #지금 #주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2.html
kolaswqetsrq 11.01 20:14
투명한 사람이 참 좋다

<투명한 사람이 참 좋다>

목적을 두지 않는 편안한 만남이 좋다.

속에 무슨 생각을 할까

짐작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말을 잘 하지 않아도

선한 눈웃음이 정이 가는 사람

문득 생각나 차 한잔 하자고 전화하면

밥 먹을 시간까지 스스름없이 내어주는 사람

장미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풀꽃처럼 들꽃처럼 성품이 온유한 사람

머리를 써서 상대를 차갑고 냉철하게 하는 사람보다,

가슴을 써서 만나고 나면 가슴이 따뜻해 지는 사람

마음이 힘든 날엔 떠올리기만 해도

그냥 마음이 편안하고 위로가 되는 사람

흐린 날에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면

왠지 햇살같은 미소 한번 띄워줄 거 같은 사람

사는게 바빠 자주 연락하지 못해도

서운해 하지 않고, 오히려 뒤에서 말없이 기도해 주는 사람

내 속을 하나에서 열까지 다 드러내지 않아도

짐짓 헤아려 너그러이 이해 해 주는 사람

욕심없이 사심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

진심으로 충고를 해주면 진심으로 고마워 하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어딘가 꼬여서 항상 부정적인 사람보다

매사에 감사하고 긍정적인 사람

열마디의 말보다 한마디의 침묵에도

내 속을 알아주는 사람

양은 냄비처럼 빨리 끓지 않아도

뚝배기처럼 느리고 더디게 끓어도,

한번 끓은 마음은 쉽사리 변치 않는 사람

스스로 교만하지 않고 남이 나를 인정할때 까지,

그 때를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겸손한 사람

사람을 물질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마음에 더 중심을두는 사람

진솔함이 자연스레 묻어

내면의 향기가 저절로 베어나오는 사람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서

그에 흔들림없이 자신을 지키는 사람

세상 풍파 사람 풍파에도

쉬이 요동치지 않고, 늘 변함없고 한결같은 사람

그래서 처음보다 알수록 더 편한 사람

#만남 #짐작 #명언 #투명 #좋은글 #목적 #생각 #편안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64.html
kolaswqetsrq 11.01 20:15
좋은 인연인 당신

<좋은 인연인 당신>

좋은 인연인

당신을 만나 행복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어떠한 인연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좋은 하루속에

함께 할수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좋은 마음 나누며

웃을수 있다면 더이상의

생각들은 않기로 합니다

늘 좋은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속에

당신에게 전해질

간절한 마음으로 바랄뿐

이글이 당신에 마음에

작은 힘 이되고 위안이 된다면

저는 너무 행복하겠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우리도 기억속에 잊혀지겠지요

하지만 그 기억속에

우리가 함께한 마음들은

잊지않았으면 합니다

세월이 흘러 흘러

추억속에 남을

나의 소중한 인연인 당신

이렇게 마음 나눌수 있음에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의 감사함을

우리 마음껏 행복하게 살아요

3000 번의 옷깃의 인연이

한번의 만남으로

이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당신과의 큰 인연

내안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인연을

고이고이 간직하겠습니다

환한 미소뒤에

슬픔일랑 가슴 한켠에 묻어버리고

나와 함께하는 시간은

예쁜 마음으로

맑고 행복한 웃음만이

얼굴에 가득할수 있길 소망하며

당신 에게는

내 사랑받을 그럴자격 이

충분히 있는 이 세상에서

선택된 사람입니다,

하루가 열리는 아침부터

당신이 잠드는 늦은밤까지

옆에서 늘 지켜주고

언제나 행운이 가득해

얼굴엔 방글 방글 웃음꽃으로

당신의 하루 하루가 행복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렵니다

사랑하는 당신 당신과 나의

만남이 다하는 그날까지.

내사랑 다 받고 가세요,

좋은글 중에서

#이상 #마음 #인연 #명언 #모습 #행복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84.html
kolaswqetsrq 11.01 20:16
행복한 사람의 비결

< 행복한 사람의 비결 >

★지혜로운 사람은

걱정과 근심이 있을 때도 나약해지기보다는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릴 줄 알며

남다른 뛰어난 능력으로 모든 일을 잘 이겨나가는 사람이고

★베풀 줄 아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작은 것에서부터 진정한 사랑을 나눌 줄 아는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따뜻한 사랑이 있는 사람이고

★칭찬 받을 만한 사람은

억울한 일로 참을 수 없는 순간에도 감정을 억제하며 깊은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마음이 넓고 부드러운 사람이고

★믿음이 있는 사람은

남의 허물과 단점이 보일 때도 쉽게 드러내기 보다 넓은 가슴으로 감싸 안으며 그 영혼이 잘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겸손한 마음으로 무릎 끓고 두 손 모아 기도해 주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생활은 덕에 의한 경우가 많습니다. 덕을 실천하는 사람, 덕을 생활 속에 베푸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행복이 따릅니다. 행복하고 싶거든 덕에 의한 생활을 하세요.

- 아리스토텔레스

#행복 #비결 #마음 #사람 #좋은글 #근심 #걱정 #명언 #나약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15.html
kolaswqetsrq 11.01 20:16
도덕경에서 배우는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법칙

<도덕경에서 배우는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법칙>

노자(老子)는 주나라의 궁정 도서실의 기록 계장(도서 관리인)이었다가 후에 궁중 생활이 싫어 유랑의 길을 떠났다.

 "
노자의 행적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노자의 도덕경에 나타난 사상에서 인간관계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고 한다.
",

1. 진실함이 없는 아름다운 말을 늘어놓지 말라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사람을 추켜세우거나 머지않아 밝혀질 사실을 감언이설(甘言利說)로 회유하면서 재주로 인생을 살아 가려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언젠가는 신뢰 받지 못하여 사람 위에 설 수 없게 된다.

2. 말 많음을 삼가라, 말이 없는 편이 좋다.

말 없이 성의를 보이는 것이 오히려 신뢰를 갖게 한다. 말보다 태도로서 나타내 보여야 한다.

3. 아는 체하지 말라.

아무리 많이 알고 있더라도 너무 아는 체하기보다는 잠자코 있는 편이 낫다.지혜 있는 자는 지식이 있더라도 이를 남에게 나타내려 하지 않는 법이다.

4.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돈은 인생의 윤활유로서는 필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돈에 집착한 채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5. 다투지 말라.

남과 다툰다는 것은 손해다. 어떠한 일에나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자기의 주장을 밀고 나가려는 사람은 이익보다 손해를 많이 본다. 다투어서 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재능이 있어도 인간 관계가 좋지 않아서 실패한 사람도 많다. 좋은 인간 관계는 인생의 윤활유이자 처세의 기본이기도 하다.

#계장 #궁정 #관리인 #좋은글 #기록 #인간 #법칙 #궁중 #명언 #도서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76.html
kolaswqetsrq 11.01 20:17
행운이 오는 방법

<행운이 오는 방법>

 "
1.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좋은날 하고 큰 소리로 외쳐라.
",

좋은 아침이 좋은 하루를 만든다.

2. 거울을 보며 활짝 웃어라.

거울 속의 사람도 나를 보고 웃는다.

3. 사촌이 땅을 사면 기뻐하라.

사촌이 잘 되어야 나도 잘 되게 마련이다.

4. 마음 밭에 사랑을 심어라.

그것이 자라나서 행운의 꽃이 핀다.

5. 밝은 얼굴을 하라.

얼굴 밝은 사람에게 밝은 운이 따라온다.

6. 힘들다고 고민하지 말라.

정상이 가까울수록 힘이 들게 마련이다.

7.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라.

8. 사람을 존중하라.

9. 끊임없이 베풀어라.

샘물은 퍼낼수록 맑아지게 마련이다.

10. 안될 이유가 있으면 될 이유도 있다.

11. 밝고 힘찬 노래를 불러라.

그것이 성공 행진곡이다.

12. 푸른 꿈을 잃지 말라.

푸른 꿈은 행운을 만드는 청사진이다.

13. 미운놈 떡 하나 더 줘라.

14. 말로 상처를 입히지 말라.

칼로 입은 상처는 회복되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평생 간다.

15.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

16. 마음을 활짝 열라.

대문을 열면 도둑이 들어오고,

마음을 열면 행운이 들어온다.

17. 집안 청소만 말고 마음도 매일 청소하라.

마음이 깨끗하면 어둠이 깃들지 못한다.

18. 원망 대신 모든 일에 감사하라.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생겨난다.

19.욕을 먹어도 화 내지 말라.

그가 한 욕은 그에게로 돌아간다.

20. 잠을 잘 때 좋은 기억만 떠올려라.

밤 사이에 행운으로 바뀌어진다

#명언 #방법 #오늘 #행운 #좋은글 #아침 #거울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4.html
kolaswqetsrq 11.01 20:17
당신은 무엇을 가지고 다니십니까?

<당신은 무엇을 가지고 다니십니까?>

사랑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친구가 있고

선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외롭지 않고

정의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함께 하는 자가 있고

진리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듣는 사람이 있으며

자비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화평이 있으며

진실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기쁨이 있고

성실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믿음이 있고

부지런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즐거움이 있으며

겸손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화목이 있습니다.

반면,

거짓 속임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불신이 있고

게으름과 태만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멸시 천대가 있고

사리 사욕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원망 불평이 있고

차별과 편견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불화가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가지고 다니십니까?.

#좋은글 #사랑 #화평 #사람 #명언 #곳곳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68.html
kolaswqetsrq 11.01 20:18
뒤늦게 깨달으면 후회할 것 10가지

< 뒤늦게 깨달으면 후회할 것 10가지 >

1.이별은 사랑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준다.

진실로 사랑했다면 그 사랑은 결코 사라지거나 죽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자리에도 사랑은 그대로 남아 더욱 견고하고 아름다워진다.

2.아무리 좋은 부모라도 훌륭한 스승이 되기는 어렵다

끊임없이 규칙을 만들고 강요하며 통제해야만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아이를 나약하고 비관적인 사람으로 만들 뿐이다.

3.어떤 사람은 아프다는 핑계로 책임을 회피한다

아픈 사람에 대해서는 관대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거나 혹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회피하고 싶을 때 우리는 몸져눕는 방법을 선택하곤 한다.

4.불필요한 두려움은 진정한 기쁨을 방해할 뿐이다

이 사회는 온갖 다양한 것들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전쟁과 테러, 가난, 질병, 사업 실패...그것들은 단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의 행복을 방해한다.

5.부모가 자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훌륭한 부모가 되고 싶다면 통제하는 대신 따라오게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를 심어주는 일이다.

6.아쉬운 기억일수록 낭만적으로 채색되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기억은 곧잘 낭만적인 환상으로 부활한다. 과거의 낭만적인 기억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문제는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7.인생의 마지막 의무는 아름다운 노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외로운 노년을 자식에게 기대려는 것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노년의 상실감을 품위와 의지로 견뎌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마지막으로 용감해질 수 있는 기회다.

8.세상에 실망할 수는 있지만 심각하게 살 필요는 없다

온갖 부조리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9.시련에 대처하는 방식이 삶의 모습을 결정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상황을 자유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다. 시련에 대처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시련을 대처하는 여러 방식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10.용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용서는 포기나 망각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적극적인 의지이다. 원망이나 복수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내면의 성숙이 필요하고, 내면의 성숙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 #스승 #이별 #좋은글 #사랑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10_21.html
kolaswqetsrq 11.01 20:19
주는 것은 아름답다

주는 것은 아름답다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행복한 마음에서

싹트는 것입니다.

받으려고만

하는 마음속엔

거짓스러움만 있을 뿐

평화가 없습니다.

주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넉넉함이 꽃송이처럼

벙글어 있습니다.

주는 것은 사랑이며

받으려고만 하는 것은

사랑을 잃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주는 마음이 되려면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사랑을

나누어줄 수 있고

그 사랑으로 인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중-

#마음 #좋은글 #명언 #거짓 #마음속 #행복 #얼굴 #사람 #사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94.html
kolaswqetsrq 11.01 20:19
지칠 때 힘이 되는 11가지 기도문

<지칠 때 힘이 되는 11가지 기도문>

우리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오니

힘든 일에 부딪칠 때마다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찢어진 상처마다 피고름이 흘러내려도

그아픔에 원망과 비난하지 않게 하소서

어떤 순간에도 잘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헛된 욕망과 욕심에 빠져

쓸데없는 것들에 집착하지 않게 하소서

고통당할 때 도리어 믿음이 성숙하는

계기가 되도록 강하고 담대함을 주소서

불안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불만 가득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아무런 가치 없는 일로 인해

걱정을 쌓아놓지 않게 하소서

걱정을 구실 삼아 믿음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소서

있지도 않은 일로 인해

근심을 쌓아놓지 않게 하소서

내 마음에 걱정이 파고 들어와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게 하소서

어려울 때일수록 자신에게만

빠져 있지 말게 하시고

주변을 돌아보며 바라보게 하소서

일부러 근심 걱정을 만드는 삶이

아니라 기쁨을 만들어가며 살게 하소서

#사랑 #원망 #명언 #기도문 #아픔 #연속 #피고름 #비난 #고난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11.html
kolaswqetsrq 11.01 20:20
정상에 오른 자들을

정상에 오른 자들을

시기하지 말아라.

그들이 목숨걸고

산 비탈을 오를 때

그대는 혹시 평지에서

팔베게 하고 달디단 낯잠에

빠져 있지는 않았는가.

때로는

나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도 죄악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이외수-

#정상 #죄악 #좋은글 #명언 #비탈 #사실 #명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3.html
kolaswqetsrq 11.01 20:21
내가 받은 것은 가슴에 새겨두세요. 미움은 물처럼 흘러 보내고 은혜는 황금처럼 귀히 간직하세요.

내가 받은 것은 가슴에 새겨두세요. 미움은 물처럼 흘러 보내고 은혜는 황금처럼 귀히 간직하세요.

사람은 축복으로 태어났으며 하여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함부로 하지 말며, 몸은 타인의 물건을 맡은 듯 소중히 하세요.

시기는 칼과 같아 몸을 해하고 욕심은 불과 같아 욕망을 태우며, 욕망이 지나치면 몸과 마음 모두 상하게 합니다.

모든 일에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고 억지로 잘난 척하는 것은 아니함만 못합니다.

내 삶이 비록 허물투성이라 해도 자책으로 현실을 흐리게 하지 않으며 교만으로 나아감을 막지 않으니

생각을 늘 게으르지 않게 하고 후회하기를 변명 삼아 하지 않으며, 사람을 대할 때 늘 진실이라 믿어야하며 절대 간사한 웃음을 흘리지 않으리니

후회하고 다시 후회하여도 마음 다짐은 늘 바르게 하세요.

-‘좋은 글 대사전’ 중-

#간직 #미움 #좋은글 #축복 #생명 #황금 #타인 #가슴 #명언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55.html
kolaswqetsrq 11.01 20:21
향기로운 말

향기로운 말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게 하소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시고

남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보는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소서

매일 정성껏 물을 주어

한 포기의 난초를 가꾸듯

침묵과 기도의 샘에서 길어올린

지혜의 맑은 물로

우리의 말씨 가다듬게 하소서

겸손의 그윽한 향기

그 안에 스며들게 하소서

-‘마음을 벗다’에서-

#좋은글 #침묵 #겸손 #명언 #여운 #마음 #입장 #사랑 #긍정 #상대방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96.html
kolaswqetsrq 11.01 20:22
아침마다 눈을 뜨면

아침마다 눈을 뜨면

사는것이 온통 어려움 인데

세상에 괴로움이 좀 많으랴

사는 것이 온통 괴로움인데

그럴수록 아침마다 눈을 뜨면

착한 일을 해야지 마음속으로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서로 서로가 돕고 산다면

보살피고 위로하고 의지하고 산다면

오늘 하루가 왜 괴로우랴

웃는 얼굴이 웃는 얼굴과

정다운 눈이 정다운 눈과

건너보고 마주보고 바로보고 산다면

아침마다 동트는 새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우랴

아침마다 눈을 뜨면 환한 얼굴로

어려운 일 돕고 살자 마음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박목월-

#사람 #아침 #어려움 #명언 #괴로움 #마음속 #세상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98.html
kolaswqetsrq 11.01 20:23
목표를 이루기 위한 마법같은 명언모음

< 목표를 이루기 위한 마법같은 명언모음 >

1. 자기의 목표를 마음 속에 명확히 그려라. 그리고 다짐을 되풀이하라. 그러면 그것을 현실로 이루는 힘이 솟아날 것이다.

2.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당신의 생각은 옳다. - 헨리 포드

3. 중요한 것은 목표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며 얼마나 성장하느냐이다. -앤드류 매튜스

4. 의욕적인 목표가 인생을 즐겁게 한다. -로버트 슐러

5. 치밀하고 합리적인 계획은 성공하지만, 어떤 느낌이나 불쑥 떠오른 생각에 의한 행동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큰 목표일수록 잘게 썰어라. -디오도어 루빈

6.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당신이 원하는 발전을 이루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당신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폴 J. 메이어

7. 정확한 목표 없이 성공의 여행을 떠나는 자는 실패한다. 목표 없이 일을 진행하는 사람은 기회가 와도 그 기회를 모르고 준비가 안되어 있어 실행할 수 없다. -노만 V. 필

8. 작은 일도 목표를 세워라. 그러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슐러

9. 위대한 인물에게는 목표가 있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소망이 있을 뿐이다. - 워싱턴 어빙

10. 살아가는 기술이란, 하나의 공격목표를 골라서 거기에 집중하는 데에 있다. -앙드레 모로아

11. 목표를 보는 자는 장애물을 겁내지 않는다. -한나 모어

12. 뜻을 세운다는 것은 목표를 선택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도록 할 행동 과정을 결정하는 것이다. 결정한 다음에는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결정한 행동을 계속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마이클 핸슨

13. 그 무엇도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목표도 좌절과 방해를 겪지 않고 이루어지는 법은 없다. -앤드류 매튜스

14.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 니체

15. 가장 큰 문제는 당신이 지금 그 모험을 진정으로 원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 조셉 캠벨

#명언 #생각 #현실 #마음 #다짐 #마법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46.html
kolaswqetsrq 11.01 20:23
비난과 칭찬은 한 뿌리

<비난과 칭찬은 한 뿌리 >

상대방에게 비난의 소리를 들을 때,

맞받아 대꾸하지 말라.

다만 그 마음을 가만히 비추어 보라.

내면에서 올라오는

화와 원망의 소리없는 소리를

분별없이 바라보라.

만약 분노하여 그들을 해치거나

맞받아쳐 함께 욕을 하고 헐뜯는다면

상대에게 지는 것이다.

그러나 묵언을 지키고,

마음의 빛을 안으로 거두어

속 뜰의 울림을 비추어 볼 수 있다면

상대에게 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승리하는 것이다.

상대가 칭찬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가만히 올라오는 기쁜 마음,

우쭐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볼 수 있어야 한다.

칭찬에 마음이 들떠 있음을 가만히 지켜보라.

그렇지 못하고 칭찬에 휘둘려 들떠 있게 된다면

똑같이 비난에 휘둘리는 것처럼

상대에게도 지고 나 자신에게도 지는 것이다.

칭찬과 비난은 한 뿌리

칭찬에 휘둘리지 않아야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 법상스님 -

#칭찬 #비난 #상대방 #묵언 #원망 #마음 #좋은글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24.html
kolaswqetsrq 11.01 20:24
좋은 것이 좋은 것을 부른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을 부른다

거리에는

일방통행길이 있지만

사람의 감정에는

일방통행이 없다.

내가 좋아하면

당신도 나를 좋아하고

내가 미워하면

당신도 나를 미워한다.

그가 슬프면

내 마음에도 슬픔이 번지고

그가 웃으면

내 마음에도 기쁨이 퍼집니다.

서로서로 기대고 산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연이겠지요.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중-

#일방통행 #기쁨 #사람 #마음 #명언 #좋은글 #감정 #슬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36.html
kolaswqetsrq 11.01 20:25
그대가 있어 행복한 날

그대가 있어 행복한 날

푸른 하늘만 바라보아도

행복한 날이 있습니다.

그 하늘 아래서..

그대와 함께 있으면

마냥 기뻐서

그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집니다.

그대가 나에게 와주지 않았다면

내 마음은 아직도

빈 들판을 떠돌고 있을 것입니다.

늘 나를 챙겨주고

늘 나를 걱정해 주는

그대 마음이

너무나 따뜻합니다.

그대의 사랑을

내 마음에 담을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합니다.

이 행복한 날에...

그대도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그대를 사랑하는지

그대와 함께 하는 날은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워지고

꿈만 같아 행복합니다.

-용혜원-

#하늘 #행복 #좋은글 #걱정 #명언 #마음 #들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72.html
kolaswqetsrq 11.01 20:25
남편과 아내를 위한 십계명

< 남편과 아내를 위한 십계명 >

♥아내들이여-

1. 진실한 사랑의 의미를 배우십시오.

 "
2. 완전한 결혼에 대한 꿈을 버리고, 행복한 결혼을 위해 노력하십시오.
",

3. 남편의 독특한 성격과 필요한 점을 발견하여 만족시키도록 하십시오.

4. 부모님에 대한 의존과 친척들의 비평을 상관하지 마십시오.

5. 무엇을 요구하는 대신 칭찬과 이해를 해 주십시오.

6. 소유욕과 질투심을 버리십시오.

7. 불평이나 요구보다, 사랑으로 남편을 맞아들이십시오.

8. 비판이나 공격으로 남편을 바꾸어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9. 공주와 같이 되려는 꿈을 버리고 성장하십시오.

10.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남편들이여-

1. 아내를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대하십시오.

2. 많은 찬사와 확신을 주십시오.

3. 책임의 범위를 정하십시오.

4. 비판을 하지 마십시오.

 "
5. 작은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6. 아내가 늘 당신과 함께 있고싶어하는 마음을 인정하십시오.

7. 아내에게 안정감을 주십시오.

8. 아내의 기분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 주십시오.

9. 생활을 향상시키려는 아내의 노력에 협조하십시오.

10. 아내의 독특한 욕망을 발견하여 그것을 충족시키도록 노력하십시오.

#사랑 #결혼 #완전 #명언 #십계명 #남편 #좋은글 #행복 #진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93.html
kolaswqetsrq 11.01 20:26
살면서 잊으면 안될 10가지

<살면서 잊으면 안될 10가지>

1.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될 사랑

2. 나이가 들수록 돋보이는 지적 성숙

3. 여유와 이해력이 늘어가는 넉넉함

4. 달빛 아래에서도 체조할 정도로 건강한 몸

5. 나만의 일 찾기

6. 비굴하게 살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인 인정

7. 외모에 대한 관심 늦추지 않기

8. 적당한 취미생활

9. 가족을 인격체로 대해주는 일

10. 손 내밀어 줄 친구

#사랑 #좋은글 #지적 #달빛 #성숙 #비굴 #인정 #건강 #이해력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10_74.html
kolaswqetsrq 11.01 20:27
현명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한 명언 모음

< 현명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한 명언 모음 >

1. 아무렇게나 사는 40살 사람보다는 일하는 70살의 노인이 더 명랑하고 더 희망이 많다.

-올리버 웬델 홈즈-

2.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좋은 포도주처럼 익는 것이다.

-필립스 -

3. 나이가 어리고 생각이 짧을수록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삶이 최고라고 여기는 법이며,

나이가 들고 지혜가 자랄수록 정신적인 삶을 최고로 여기는 법입니다.

-톨스토이-

4.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조심성이 많아질 뿐이다.

-헤밍웨이-

5. 무언가 큰 일을 성취하려고 한다면, 나이를 먹어도 청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괴테-

6. 바쁜 사람에게는 나쁜 버릇을 가질 시간이 없는 것처럼 늙을 시간이 없다.

-앙드레 모로아-

7. 사십세가 지난 인간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링컨-

8. 스물 전에 아름답지 못하고, 서른 전에 강하지 못하고, 마흔 전에 돈을 모으지 못하고, 쉰 전에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평생 동안 아름다울 수도 강할 수도 돈 벌수도 현명해질 수도 없다.

-조지 허버어트-

9.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 해도 배울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젊다.

-아이스큐로스 -

10.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라 로슈푸코-

11. 주름이 생기지 않는 마음, 희망에 넘치는 친절한 마음과 늘 명랑하고 경건한 마음을 잃지 않고 꾸준히 갖는 것이야말로 노령을 극복하는 힘이다.

-토마스 베일리-

12. 중년이 된 다음에 젊었을 때의 소원이나 희망을 실현시키려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부질없는 기대를 거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란 10년마다 달라지는 나름대로의 운명이 있고 희망이나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괴테-

13. 청년은 사랑을 추구하고 장년은 지위를 추구하고 노인은 탐욕스러워 지위도 명예도 모두 손에 넣으려고 한다

-알랭-

14. 훌륭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나이를 먹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실수를 범하려 할 때마다 그것은 전에 범했던 실수란 것을 깨닫게 된다.

-괴테-

#좋은글 #명언 #희망 #사람 #노인 #현명 #생각 #물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44.html
kolaswqetsrq 11.01 20:27
사람들은 세상이 복잡하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세상이 복잡하다고 하지만

세상은 복잡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그런 거예요.

날씨도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 켜고

조금만 추워도 히터 켠다고 난리지만

변덕을 부리는 건 사람일 뿐,

날씨는 늘 그랬습니다.

늘 맑기만 해도 살 수 없고

늘 비만 와도 살 수 없어요.

맑은 날도 있고 비 오는 날도 있어서

지금의 우리 삶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욕구에 안 맞으면

맑은 걸 시비하고 비 오는 걸 시비하지요.

자기 관념의 틀에 세상을 꿰맞추려드니

자기 관념의 틀로 이해가 될 때는

세상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가

자기 틀에 안 맞으면

세상이 복잡하고 혼란스럽다고 한탄합니다.

자기가 세상을 잘못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복잡한 것은 우리들의 생각이고

어리석은 것은 우리들의 마음이지

세상은 어리석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아요.

세상은 그냥 그런 것 입니다.

#에어컨 #변덕 #좋은글 #사람 #세상 #명언 #비만 #지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91.html
kolaswqetsrq 11.01 20:28
봐줘라, 좀봐줘, 라는 말은

봐줘라, 좀봐줘, 라는 말은

어머니가 제일 많이 쓰시던 말씀이었습니다.

서로 봐주니깐 우리는 살아있는거라고,

그런게 가족이고 친구고 사랑이라고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저는 별로 달가와 하지 않았습니다.

정의도 없고, 교훈도 없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는 어머니의 말씀을

다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봐주는거,

친구끼리, 사랑하는 사람끼리, 가족끼리

아니면 그냥 사람끼리 서로 봐주는거

공지영 /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생각 #가족 #명언 #사랑 #교훈 #말씀 #좋은글 #순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50.html
kolaswqetsrq 11.01 20:29
나는 소망합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볼 때 내가

더욱 작아질 수 있기를

그러나 나 자신의 죽음이 두려워

삶의 기쁨이 작아지는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다른 이가 내게 주는 사랑이

내가 그에게 주는

사랑의 척도가 되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언제나 남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살기를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내 용서를 구할

만한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언제나 나의 한계를

인식하며 살기를

그러나 내 스스로

그런 한계를 만들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소망을 품고 살기를

-헨리 나우엔 ‘친밀함’ 중-

#소망 #자신 #죽음 #사람 #좋은글 #기쁨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26.html
kolaswqetsrq 11.01 20:29
말의 습관

<말의 습관>

언어가 거친 사람은

분노를 안고 있는 사람입니다.

부정적인 언어습관을 가진 사람은

마음에 두려움이 있는 사람입니다.

과장되게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궁핍하기 때문입니다.

자랑을 늘어 놓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안정감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음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비판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비통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헐뜯는 사람은

그 마음이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려는 사람은

그 마음이 조급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항상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진실되게 이야기 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담대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사랑이 많은 사람이

위로의 말을 내어 줍니다.

겸손한 사람이

과장하지 않고 사실을 말합니다.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이

말하기에 앞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습니다.

#부정 #두려움 #좋은글 #습관 #사람 #명언 #마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69.html
kolaswqetsrq 11.01 20:30
노자에게 배우는 인간관계 5계명

<노자에게 배우는 인간관계 5계명>

첫째

진실함이 없는 아름다운 말을 늘어 놓지 말라. 남의 비위

를 맞추거나 사람을 추켜 세우거나 머지 않아 밝혀 질 사

실을 감언이설로 회유하면서 재주로 인생을 살아가려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언젠가는 신뢰받지 못하여 사

람위에 설 수 없게 된다

둘째

말 많음을 삼가라. 말이 없는 편이 좋다. 말없이 성의를 보

이는 것이 오히려 신뢰를 갖게한다. 말보다 태도로서 나

타내 보여야 한다

셋째

아는체 하지 말라. 아무리 많이 알고 있더라도 너무 아는

체 하기보다는 잠자코 있는 편이 낫다. 지혜 있는 자는 지

식이 있더라도 이를 남에게 나타내려 하지 않는 법이다

넷째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돈은 인생의 윤활유로서는 필

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돈에 집착한 채 돈의 노

예가 되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

다섯째

다투지 말라. 남과 다툰다는 것은 손해다. 어떠한 일에나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자기의 주장을 밀고 나가려는 사

람은 이익 보다 손해를 많이 본다. 다투어서 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재능이 있어도 인간관계가 좋지 않아

서 실패한 사람도 많다

#진실 #집착 #인간 #계명 #좋은글 #감언이설 #사람 #명언 #인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5.html
kolaswqetsrq 11.01 20:31
이런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가슴에 꿈을 품고 있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실패와 낙심으로 힘들어 해도 곧 일어나 꿈을 향해 힘차게 달려갈테니까요.

그 마음에 사랑이 있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외로워도 그 마음의 사랑으로 곧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테니까요.

그 마음이 진실한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손해를 보고 답답할 것 같아도 그 마음의 진실로 곧 모든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게 될테니까요.

그 손길이 부지런한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어 보여도 그 성실함으로 곧 기쁨과 감사의 기도를 하게 될테니까요.

누구 앞에서나 겸손한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초라하고 부족한 것 같아도 그의 겸손이 곧 그를 높여 귀한 사람이 되게 할테니까요.

늘 얼굴이 밝고 웃음이 많은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가볍게 보여도 곧 그 웃음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어 그가 행복한 세상의 주인이 될테니까요.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어리석게 보여도 그 마음의 작은 기쁨들로 곧 행복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테니까요.

항상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아쉽고 아깝게 보여도 양보받은 사람들의 고마운 마음이 더 큰 양보와 존경을 불러올 테니까요.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속도 없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여도

그의 감사하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각박한 마음을 녹여줄 테니까요.

마음속에 늘 믿음이 있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오해 받거나 박해를 받더라도 머지않아 진실은 밝혀지고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게될 테니까요.

매사를 미리 미리 준비하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남들처럼 즐기지 못하고 일만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모든 일이 다 되어 있어서 느긋하게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고통이 영혼을 숭고하게 만드는 영약이라고 믿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너무 괴롭고 힘들어 보여도 이겨낸 후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게될 테니까요.

-무라카미 하루키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 중-

#좋은글 #명언 #낙심 #사랑 #사람 #걱정 #마음 #가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73.html
kolaswqetsrq 11.01 20:32
가정이 행복해지는 열 단어

< 가정이 행복해지는 열 단어 >

1. 용서

용서는 위로의 다른 이름입니다. 사회가 등을 돌리더라도 가정에서만은 서로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2. 이해

공감하고 받아들여주어야 힘을 얻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3. 대화

가정에서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조언해주는 시간은 소중합니다.

4. 공간

작은 공간이라도 가족마다 혼자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5. 안식

피곤에 지친 몸과 마음을 편안히 쉬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인정

가정에서 인정해주어야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7. 유머

가족이 함께 모이면 웃음이 넘쳐야 합니다. 유머는 가족의 정감을 넘치게 합니다.

8. 어른

연장자로서의 어른이 아니라, 언행에 모범을 보이는 어른이 있어야 합니다.

9. 사랑

잘못한 것은 꾸짖고 잘한 것은 칭찬해주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10. 희망

미래를 향한 희망을 함께 품으면 가정의 단결이 더욱 단단해집니다.

#진실 #가정 #이름 #명언 #노력 #좋은글 #마음 #행복 #공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52.html
kolaswqetsrq 11.01 20:32
타인의 인정 을 얻기 위한 인정욕구 를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
타인의 인정 을 얻기 위한 인정욕구 를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

남의 이목에 신경쓰느라 현재 자신의 행복을 놓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

내가 아무리 잘 보이려고 애써도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그 누구도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나만큼 오래 들여다 보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 이목 때문에 내 삶을 희생하는 바보같은 짓이 어디 있느냐

-기시미 이치로 ‘미움받을 용기’ 중-

#이목 #사람 #신경 #인정 #좋은글 #명언 #행복 #타인 #자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11.html
kolaswqetsrq 11.01 20:33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듯이

내 마음도 날마다 깨끗하게 씻어

진실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면 좋겠습니다.

집을 나설 때

머리를 빗고 옷매무새를 살피듯이

사람 앞에 설 때마다

생각을 다듬고 마음을 추스려

단정한 마음가짐이 되면 좋겠습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치료를 하듯이

내 마음도 아프면 누군가에게

그대로 내보이고

빨리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으면

그 내용을 이해하고 마음에 새기듯이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

그의 삶을 이해하고 마음에 깊이

간직하는 내가 되면 좋겠습니다.

위험한 곳에 가면

몸을 낮추고 더욱 조심하듯이

어려움이 닥치면

더욱 겸손해지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내가 되면 좋겠습니다.

어린아이의 순진한 모습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듯이

내 마음도 순결과 순수함을 만나면

절로 기쁨이 솟아나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불을 켜듯이

내 마음의 방에 어둠이 찾아들면

얼른 불을 밝히고 가까운 곳의

희망부터 하나하나

찾아내면 좋겠습니다.

-정용철 ‘마음이 쉬는 의자’ 중-

#아침 #거울 #명언 #진실 #좋은글 #마음 #생각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0.html
kolaswqetsrq 11.01 20:34
편지를 쓰고 싶은 날이 있다

편지를 쓰고 싶은 날이 있다

메마른 갈비뼈 사이

바람소리로 갇혀있던 그 말을

조심스레 꺼내어

편지를 띄우고 싶은 날이 있다.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린다고 쓰고 싶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분다고 쓰고 싶다.

마음을 툭 털어

바다 한켠 떼어낸 푸르디 푸른 그리움으로

편지를 보내고 싶은 날이 있다.

가끔 우리 삶은 아득한 저음의

통곡소리처럼 외로운것

아무도 오가지 않는 뒷골목에서

나즈막히 부르는 노래처럼 서러운것

한번은 푸른 기억의 끝을 동여맨

긴 편지를 부칠 것이다.

어깨 너머 긴 휘파람 소리가 스쳐지나면

한번쯤 붐비는 거리에 서서

누군가 보낸 편지라고 생각하라.

편지를 펼치면 푸른 바다가 출렁

추억으로 흔들릴 것이다.

편지를 쓰고 싶은 날 / 이지현

#뒷골목 #좋은글 #그리움 #통곡 #바람 #명언 #마음 #저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19.html
kolaswqetsrq 11.01 20:34
우리는 모두 자기 나름대로

우리는 모두 자기 나름대로

순간순간 최선의 선택을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결과가 나쁘면

항상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남편, 아내, 부모, 자식을

잘못 만나서 그렇다며

남을 고치려 듭니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부처님, 하느님, 용왕님에게 매달립니다.

이래도 저래도 안되면

사주팔자 탓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하나 따져보면

결국 이 모든 것은

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똑같은 비가와도

어떤 씨앗을 심었느냐에 따라

제각기 다른 것이 싹을 트듯이

자기 내면에 그런 씨앗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시각을 밖으로 돌리지 말고

안으로 돌려 내면을 깊이

관찰해야 합니다.

-법륜스님-

#해결 #용왕 #최선 #결국 #하느님 #남편 #좋은글 #선택 #자식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5/blog-post_43.html
kolaswqetsrq 11.01 20:35
긍정의 삶

긍정의 삶

행운은 행복을 끌고 다니고 불운은 불행을 끌고 다닌다. 행운과 불운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앞 뒷면처럼 함께 있는 것이다.

 "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좋은날 하고 큰 소리로 외쳐라. 좋은 아침이 좋은 하루를 만든다. 거울을 보며 활짝 웃어라. 거울 속의 사람도 나를 보고 웃는다. 가슴을 펴고 당당히 걸어라. 비실비실 걷지 말라.
",

사촌이 땅을 사면 기뻐하라. 사촌이 잘 되어야 나도 잘 되게 마련이다. 마음 밭에 사랑을 심어라. 그것이 자라나서 행운의 꽃이 핀다.

세상을 향해 축복하라. 세상도 나를 향해 축복 해 준다. 밝은 얼굴을 하라. 얼굴 밝은 사람에게 밝은 운이 따라온다.

힘들다고 고민하지 말라. 정상이 가까울수록 힘이 들게 마련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라. 그림자는 빛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어둠을 타박말고 몸을 돌려 태양을 보라.

사람을 존중하라. 끊임없이 베풀어라. 샘물은 퍼낼수록 맑아지게 마련이다. 안될 이유가 있으면 될 이유도 있다.

가정을 위해 기도하라. 가정은 희망의 발원지요, 행복의 중심지다.

장난으로도 남을 심판하지 말라. 내가 오히려 심판 받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기죽지 말라. 기가 살아야 운도 산다.

교만하지 말라. 애써 얻은 행운 한 순간에 날아간다. 밝고 힘찬 노래를 불러라. 그것이 성공 행진곡이다.

오늘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말라. 푸른 꿈을 잃지 말라. 푸른 꿈은 행운을 만드는 청사진이다.

말로 상처를 입히지 말라. 칼로 입은 상처는 회복되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평생 간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 어두운 생각이 어둠을 만든다. 마음을 활짝 열라.

대문을 열면 도둑이 들어오고 마음을 열면 행운이 들어온다.

집안 청소만 말고 마음도 매일 청소하라. 마음이 깨끗하면 어둠이 깃들지 못한다.

원망 대신 모든 일에 감사하라.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생겨난다.

욕을 먹어도 화 내지 말라. 그가 한 욕은 그에게로 돌아간다. 잠을 잘 때 좋은 기억만 떠올려라. 밤사이에 행운으로 바뀌어진다.

-Facebook 글 옮김-

#긍정 #부자 #공감 #성공 #행운 #행복 #명언 #감동 #좋은글 #불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431.html
kolaswqetsrq 11.01 20:36
사랑받는 여자의 18가지 법칙

< 사랑받는 여자의 18가지 법칙 >

1. 웃자! 웃어라! 남자든 여자든 눈이 마주치면 웃어라. 꼭 호탕한 웃음이 아니더라도 미소만으로 충분하다.

2. 로맨티스트가 되고 싶다면 편지를 한 통의 전화보다는 한 통의 편지를 써라. 글로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많은 것을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다.

3. 귀 기울여라! 상대방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 것처럼? 사랑스러운 모습은 없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좋아한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효과만점!

4. 함께 있는 사람을 최고로 만들어줘라. 꼭 말로 "넌 최고야. 정말 잘한다!"라고 해주라는 것이 아니라 신뢰의 눈빛을 보내라는 이야기!

5.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관심을..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생각으로 조금 마음에 안 들더라도 먼저 다가가는 용기. 당신을 더 빛나게 해줄것.

6. 매일 만나지 말아라. 아무리 친한 사이, 좋아하는 사이라도 매일 만나는 것은 별로다. 당신을 만나기 쉬운 사람이라고 여기면 곤란하다.

7. 바라지 않는다. 당신이 무엇인가 상대방에게 해주고 싶다면? 조건 없이 해주어라. 그리고 상대방에게 그와 상응하는 것을 바라지 말아라.

8. 솔직하게! 하지만 신비롭게! 솔직하게 자신을 보여 주는 것은 좋지만 어느정도의 신비감은 그 사람에 대한 궁금증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

9.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여라.\u3000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의 인상이 좋을 리 없다. 희망차고 기분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면 먼저 생각을 바꿀 것.

10. 눈물 남발 금지!\u3000눈물을 자주 흘리지 말아라. 위로해줄 지는 모르지만 당신의 매력지수는 그만큼 내려가고 있을 것.

11. 자주 뭐 할래? 라고 묻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루하고 심심하다는 표현으로 들려 부담을 줄 수 있다.

12. 사랑과 친절을 구분하자.\u3000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것까지는 좋으나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우유부단한 행동은 하지 말 것.

13. 스타일리시!\u3000옷을 많이 사서 유행에 따르라는 소리가 아니다.\u3000자신만의 스타일로 개성을 표현한다면\u3000호감 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14. 적당한 겸손.\u3000겸손하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적당히 겸손하고 당당해질 때는 당당해지는 것이 사랑받는 요인.

15. 책임감.\u3000자신이 벌려놓은 일에 대해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모습은 무엇보다도 당신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16. 도전하는 사람.\u3000해보지도 않고 쉽게 포기해 버리는 사람보다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이 더 멋져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

17. 의심하지 말아라.\u3000"거짓말! 에이~ 정말?"이라는 소리를? 자주하지 말아라.

의심하는 습관은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으로 들린다.

18. 배려해줘라. "내가 먼저"라는 생각을 버릴 것. 배려심 많은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모습 #좋은글 #법칙 #명언 #표현 #웃음 #상대방 #사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8_30.html
kolaswqetsrq 11.01 20:36
페이지를 넘겨요.

페이지를 넘겨요.

이미 지나간 일은 돌아보지 말고,

현재에 머물지도 말고, 페이지를 넘기라고

지금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스스로 페이지를 넘기는 것 뿐이라고

페이지를 넘기는 일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지 않느냐고

그리고 그 페이지를 새롭게 써나가라고.

앞으로 펼쳐질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라고.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다시 꿈꿀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다시 뛸 수 있고

그리고 고통에서 벗어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삶은 뜨거운 것이고

살아봐야 삶이 되는 거라고

그러니 페이지를 넘기라고.

빵빵빵, 파리 / 양진숙

#좋은글 #지금 #대신 #시작 #자신 #순간 #어려움 #명언 #고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1242.html
kolaswqetsrq 11.01 20:37
행복의 완성

행복의 완성

행복이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도움이 필요한 법이죠.

누군가는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면 됩니다.

행복의 완성은

내 것을 채우는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채우는 일이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만 찾지 말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보자.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자.

그리고 먼저 손을 내밀자.

남에게 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남에게 주는 일을 게을리 하면

내게 필요 없는 것조차도

남에게 주지 못하게 된다.

아주 큰걸 바라는 게 아니다.

다정한 미소,

따뜻한 손길,

마음이 담긴 한 마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김이율 ‘가슴이 시키는 일’ 중-

#사람 #좋은글 #행복 #세상 #명언 #도움 #완성 #완벽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847.html
kolaswqetsrq 11.01 20:38
오늘 당신이 만나는 사람에게 웃음을 활짝 지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고맙다고 말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훌륭하다고 칭찬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함께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오늘 당신이 만나는 사람에게 웃음을 활짝 지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고맙다고 말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훌륭하다고 칭찬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함께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그말이 당신에게 두배로 메아리가 되어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이 나가는 일터와 하는 일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져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그 감사하는 마음이 일과 일터로부터 당신을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과 한솥밥을 먹는 가족에게 따뜻한 웃음을 보여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수고한다, 고생한다 라고 말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그 따뜻한 웃음과 따뜻한 말이 바로 행복의 문을 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웃음으로 시작하고 감사하는 당신이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내 삶을 변화시키는 96가지 지혜’ 중-

#가족 #명언 #마음 #사람 #웃음 #한솥밥 #좋은글 #칭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543.html
kolaswqetsrq 11.01 20:39
인생의 계단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습니다

인생의 계단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습니다

삶의 기준 세상에 두기보다

나의 상황, 나의 환경에 둔다면

나 됨의 긍지와 자부심으로

모든 여건은 기쁨이요 축복일 것입니다.

우여곡절이 없는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이 있고

어둠이 없다면 찬란한 별도 빛을 잃고 말겠지요.

실수는 잘하려는 연습일 뿐이며

실패는 성공을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한순간 삶을 바꿔놓는 기상천외한 일은 없으며

기적 또한 바라지 마십시오

행운은 결코 그냥 오지 않습니다.

불굴의 의지가 기회를 만들며

운이 없다는 말은

공허한 사람의 변명은 아닐런지요

행복의 기준을 물질에 두기보다

사람의 가치와 사고에 둔다면

그 뜻과 의미만큼 살게

그만큼의 자유와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행복은 가꾸는 사람의 몫이지요.

포기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한 걸음씩 성실과 인내로써 전진하십시오

인생의 계단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습니다

-이채 "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 중

#좋은글 #상황 #인생 #계단 #기준 #세상 #명언 #자부심 #환경 #여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763.html
kolaswqetsrq 11.01 20:39
별거 없더이다

별거 없더이다

부자인줄 알았는데,

마음이 빈껍데기 이더이다.

똑똑한 뇌를 가진줄 알았는데

지혜가 없더이다.

정이 많아서 마음까지 따스한 줄

알았는데 차갑더이다.

항상 웃고 다니길래 행복한줄

알았더니 아니더이다.

별거없더이다.

당신이 진실로 미소를 머금을때,

세상에서 가장 갚진

삶을 살고 있다는것을..

미소 별거없더이다.

웃으세요.

행복 별거없더이다.

작은것에 감사하세요.

별거없이,

이까짓거 이더이다.

기억하세요 괜찮아,

이까짓거..

 "
-행복의 기원 중-
",

#명언 #성공 #부자 #감동 #세상 #행복 #좋은글 #마음 #공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299.html
kolaswqetsrq 11.01 20:40
좋은 사람의 20가지 특징

<좋은 사람의 20가지 특징>

1.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잘못과 약점을 시인한다.

2. 종교적이기보다는 영적이다.

3. 다른 사람의 권면에 방어적이기보다 수용적이다.

4. 의로운 체하기보다 겸손하다.

5. 용서를 구할 뿐만 아니라 변한다.

6. 자신의 문제를 고치려고 한다.

7. 신뢰하라고 요구하기 보다는 신뢰를 쌓는다.

8.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책임을 진다.

9. 거짓말하기보다는 진실을 말한다.

10. 정체하기보다는 성장한다.

11. 가까이 있기보다는 친밀감을 추구한다.

 "
12. 나 보다는 우리 를 추구한다.
",

13. 다른 사람에게 험담하기보다는 직접 본인에게 말한다.

14. 정죄하기보다는 용서한다.

15. 수직적인 관계보다는 대등한 관계를 선호한다.

16. 변덕스럽기보다는 일관성이 있다.

17.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18. 소문을 내기보다는 비밀을 지킨다.

19. 상대방의 자유로운 선택을 좋아한다.

20. 친밀하게 마음을 나누고 행동으로 옮긴다.

#좋은글 #완벽 #생각 #약점 #특징 #시인 #잘못 #사람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20_73.html
kolaswqetsrq 11.01 20:41
요 몇 가지 교훈을

요 몇 가지 교훈을

네 기억에 새겨둬라.

네 생각을 발설하지 말아라.

절도 없는 생각을

행동에 옮기지도 말고.

친절하되

절대로 천박해지면 안 된다.

있는 친구들은

겪어보고 받아들였으면,

그들을 네 영혼에

쇠고리로 잡아매라.

허나 신출내기 철없는

허세꾼들 모두를 환대하느라

손바닥이 무뎌지면 안 된다.

싸움에 낄까 조심해라.

허나 끼게 되면,

상대방이

널 알아모시도록 행동해라.

귀는 모두에게,

입은 소수에게만 열고

모든 의견을 수용하되

판단은 보류해라.

지갑의 두께만큼

비싼 옷을 사입되

요란하지 않게,

고급으로 야하지 않게.

왜냐면 복장을 보고

사람을 아는 수가 많으니까.

돈은 꾸지도 말고

빌려주지도 말아라.

왜냐하면 빚 때문에

자주 돈과 친구를 함께 잃고,

또한 돈을 빌리면

절약심이 무디어진단다.

무엇보다도

네 자신에게 진실되거라.

그러면 밤이 낮을 따르듯

남에게 거짓될 수 없는 법.

잘 가라.

축복으로 끝낸 말이

네 안에서 여물기를.

햄릿 / 세익스피어

#행동 #좋은글 #기억 #교훈 #천박 #명언 #생각 #발설 #친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8619.html
kolaswqetsrq 11.01 20:41
돈 없이 성공적인 삶을 사는법

<돈 없이 성공적인 삶을 사는법 >

1. 자신을 알고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라.

2. 100% 자신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친구를 가져라. 함께 꿈을 공유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같이 맘껏 웃을 수 있는 친구가 단 한 명이라도 옆에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3.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기쁜 소식은 전해주고, 힘들 때 전화로라도 응원해 줄 수 있는 친구를 사귀어라. 이런 종류의 우정이야말로 시공간을 초월할 변치 않을 우정이다.

4. 인생은 소중하고 그 누구도 확실한 미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라. 감사해야 할 사람 또 감사한 일을 생각하며 마음을 표현해 보라.

5. 세상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도 있음을 받아들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미와 인생의 좋은 점을 발견하며 다시 살아간다.

6. 타인에 대해서 연민을 갖고 진심으로 공감하라. 단, 대가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에게 느끼는 동지애만으로도 보상은 충분하다.

7. 본인의 약점을 인정하고 자신을 사랑하라. 약점을 개선하려고 꾸준히 노력해라. 단, 완벽함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스스로 지치게 된다.

8. 사랑에 몰두하라. 두려움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을 포기해선 안된다. 가족, 친구, 연인, 자녀, 주변 사람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라. 인생의 중요한 가치가 여기에 있다.

9. 저절로 열정이 생기고 동시에 마음이 평안해지는 일은 찾아라.

10. 추억을 많이 만들어라. 당신을 웃게 만드는 추억, 때론 민망한 기억의 추억, 그리고 당신을 울게 만드는 추억을 많이 만들어 보라.

11. 스스로 인생의 로드맵을 그려라.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라.

12. 경청하라. 누구나 말하고자 하는 게 있고 그 가운데 들을 내용이 있다.

13. 안 좋은 습관은 극복하라. 당신의 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다. 머뭇거릴 이유가 있는가?

14. 당신이 겪은 모든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라. 새로운 교훈으로부터 미래를 다시 설정하라. 그리고 그 교훈을 친구, 동료, 타인과 기꺼이 공유하라. 마지막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적절한 시기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15. 과감하게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라.

16. 인종, 문화, 경제적 계층, 나이, 성, 성적 취향, 종교랑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대하라.

17. 만약 건강하고 잘 곳이 있고 깨끗한 물과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당신이 이 세상 누구보다 운 좋은 사람임을 명심하라. 중요한 사실이다.

18. 웃는 법을 잊지 마라. 나이가 들어도 아이처럼 호기심과 경외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라. 성숙함과 명랑함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행운 #명언 #인생 #성공 #모습 #소식 #좋은글 #자신 #표정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118.html
kolaswqetsrq 11.01 20:42
나의 사랑은 고요한 침묵입니다

나의 사랑은 고요한 침묵입니다

말 없이 바라만 보아도

깊어가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아무 말 없이 침묵하는 사람은

진정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살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침묵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다툼으로 오는 그 어떤 아픔도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당신의 생각이

고스란히 전달될 것입니다.

침묵은 어떤 말보다도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랑의 아픔을

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지요.

오해를 풀어 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엉켜버리기 마련입니다.

진정 사랑한다면 때론 침묵하십시오.

어느 순간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의 진심을 이해해 줄 것입니다.

사랑에 대해 생각이 많을 때

말을 아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오해 하거나

마음을 아프게 할 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실이 알려질 때까지 침묵하십시오.

오해를 풀려고 하면

더욱 마음 아파지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김옥림-

#명언 #마음 #사랑 #좋은글 #침묵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127.html
kolaswqetsrq 11.01 20:43
즐거운 하루를 만드는 방법

<즐거운 하루를 만드는 방법>

1.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과 교제하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의 기분과 행동은 우리의 기분과 행동에 전염성이 있다

2. 지나친 죄의식을 갖지 말라

다른 사람의 기분파 감정이 모두 당신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3. 자신감을 가져라

자신의 약점보다 장점을 바라보고 자기 비판보다는 자선의 성공과 행복을 스스로에게 확신시킬 수 있는 사람만이 성공한다

4. 남과 비교하지 말라

세상엔 당신보다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5. 행복해지겠다고 결심하라

사람은 자신이 작정한 만큼 행복해 질 수 있다. 자신의 태도가 주위 여건 보다 훨씬 중요하다

6. 자신에 대한 불행감이나 삶에 대한 허무감을 버려라

그런 느낌은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데서 나오는 것이다

7. 완벽주의자가 되지 말라

실수하는 것은 인간이고, 용서하는 것은 신이다.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라

8. 당신을 구속하는 것은 바로 당신의 생각이다

인식전환을 통하여 행동의 변화와 운명의 변화를 꾀하자

9. 어린아이처럼 하루를 시작하라

어린아이들은 매일매일 자기에게 좋은 날이 될 거라는 새로운 기대속에서 새 날을 시작한다

10. 모든 일에 머리를 쓰라

성공한 사람들은 항상 작은 일에도 머리를 써서 향상시킬 방법을 찾는다

-출저: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기분 #긍정 #방법 #명언 #행동 #사람 #좋은글 #낙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856.html
kolaswqetsrq 11.01 20:43
가끔 아무 이유없이 찾아 오고,

가끔 아무 이유없이 찾아 오고,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참 희한한 마음의 감기가 있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수도 있고,

어쩌면 한번도 겪어보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그걸보고 시련 당했냐 묻고,

또 어떤 이는 우울증이냐 묻는다.

뭐냐고, 왜냐고 묻지 말고 그냥

안아주길..토닥토닥~ 쓰담쓰담~

이유를 묻는다는 건 알려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왜냐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판단하기 마련이고,

남의 걸린 암보다 자신의 감기가

더 아프다고 느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뻥 뚫린 마음 한켠 메우기가

상처에 후시딘 바르듯

그리 쉬우랴...

때론 우리가 살면서

다 알지 못하고 겪게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그럴 땐 이해하려 하지말고

그냥 마음으로 안아주라..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마음 나눔이

아니겠는가...

-‘좋은 글 대사전’ 중-

#경험 #판단 #사람 #명언 #자신 #우울증 #해결 #마음 #좋은글 #시련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133.html
kolaswqetsrq 11.01 20:44
기억 속 놓쳐선 안될 세 가지

<기억 속 놓쳐선 안될 세 가지>

*인간의 3가지 좋은 습관

1.일하는 습관

2.운동하는 습관

3.공부하는 습관

*인간을 감동시키는 3가지 액체

1.땀

2.눈물

3.피

*남에게 주어야 할 3가지

1.필요한이에게 도움

2.슬퍼하는 이에게 위안

3.가치있는 이에게 올바른 평가

*내가 진정 사랑해야 할 세사람

1.현명한 사람

2.덕있는 사람

3.순수한 사람

*반드시 소유해야 할 3가지

1.건강

2.재산

3.친구

*인생의 3가지 후회

1.참을껄

2.즐길껄

3.베풀껄

*살면서 한번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3가지

1.시간

2.말

3.기회

*살아가는데 가장 가치있는 3가지

1.사랑

2.자신감

3.긍정적 사고

*성공적인 사람을 만들어 주는 3가지

1.근면

2.진실성

3.헌신과 전념

*실패하는 사람을 만들어주는 3가지

1.술

2.자만

3.화냄

*인생에서 한번 무너지면 다시 쌓을 수 없는 것 3가지

1.존경

2.신뢰

3.우정

#운동 #인간 #습관 #기억 #명언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739.html
kolaswqetsrq 11.01 20:45
생각나는 사람으로 살자

생각나는 사람으로 살자

우리 가끔은

생각나는 사람으로 살자

적당히 걱정도 해주며

궁금해하기도 하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아주 가끔은 생각하자

네가 있는

그곳에는 눈이 오는지

가장 힘들 때면

누가 많이 생각나는지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

괜스레

서로 물어보고 싶어지도록

생각나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바람 부는 날대로

비 오는 날대로

눈이 오면 더욱

그리운 날대로 생각하자

스치는 세상사에

하고많은 인연이 아니라

신이 주신

필연적인 만남이라 믿으며

서로에게

생각나는 사람으로 살자

-Story 글 옮김-

#걱정 #명언 #좋은글 #생각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915.html
kolaswqetsrq 11.01 20:45
인생을 붙잡아 주는 20가지 지혜

< 인생을 붙잡아 주는 20가지 지혜 >

1. 좋은 취미를 가지면 삶이 즐겁지만, 나쁜 취미를 가지면 늘 불행의 불씨를 안고 살게 됩니다.

2. 오늘 하루도 좋은 날로 만들려는 사람은 행복의 주인공이 되고, `나중에` 라고 미루며 시간을 놓치는 사람은 불행의 하수인이 됩니다.

3. 힘들 때 손 잡아주는 친구가 있으면 이미 행복의 당선자이고 그런 친구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행복낙선자입니다.

4. 사랑에는 기쁨도 슬픔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행복하고, 슬픔의 순간만을 기억하는 사람은 늘 불행합니다.

5. 작은 집에 살아도 잠잘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사람이고 작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6. 남의 마음까지 헤아려 주는 사람은 이미 행복하고, 남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것만 섭섭한 사람은 이미 불행합니다.

7. 미운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은 반비례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은 정비례합니다.

8. 너는 너, 나는 나라고 하는 사람은 불행의 독불장군이지만, 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연합군 입니다.

9.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미움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10.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누구는 저렇게 사는데 나는`이라고 생각하면 불행한 사람 입니다.

11. 나를 닦고 조이고 가르치는 사람은 행복기술자가 되겠지만 게으른 사람은 불행의 조수가 됩니다.

12. 아침에 `잘잤다` 하고 눈을 뜨는 사람은 행복의 출발선에서 시작하고, `죽겠네` 말하는 사람은 불행의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13. 도움말을 들려주는 친구를 만나면 보물을 얻은 것과 같고, 잡담만 늘어놓는 친구와 만나면 보물을 빼앗기는 것과 같습니다.

14. 웃는 얼굴에는 축복이 따르고, 화내는 얼굴에는 불운이 괴물처럼 따릅니다.

15. 미래를 위해 저축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의 주주가 되고, 당장 쓰기에 바쁜 사람은 불행의 주주가 됩니다.

16.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17. 불행 다음에 행복이 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행복표를 예약한 사람이고, 불행은 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의 번호표를 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18. 시련을 견디는 사람은 행복 합격자가 되겠지만, 포기하는 사람은 불행한 낙제생이 됩니다.

19.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가진 사람은 행복의 주인공이 되고, 고난에 굴복하고 희망을 포기한 사람은 비극의 주인공이 됩니다.

20. 남의 잘됨을 기뻐하는 사람은 자신도 잘되는 기쁨을 맛보지만, 두고두고 배아파 하는 사람은 고통의 맛만 볼 수 있습니다.

#인생 #명언 #나중 #사람 #행복 #주인공 #시간 #불행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20_29.html
kolaswqetsrq 11.01 20:46
말을 하면서 피해야할 7가지

말을 하면서 피해야할 7가지

1. 격렬한 화약 같은 말

"당신은 늘 그래!", "똑바로 좀 들어!", "이제는 당신 좀 변해!" 하며 불같이 말해서 문제를 확대시킨다. 자신의 말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 줄을 항상 본인이 알면서도 그 말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과는 대화를 하고 싶지 않게 된다.

2. 침묵

침묵은 의심, 혼동, 추측, 경멸, 무관심, 냉정함을 상대방에게 전한다. 침묵 속으로 빠지지 말고, 험한 말로 남을 침묵 속으로 빠뜨리지 말라.

3. 실망시키는 말

"어린애도 너보다는 낫겠다" 상대방의 잘못을 인식시키겠다는 의도로 이런 말을 하지만 이런 말은 태도 변화를 이끄는데 가장 부적합한 말투이다. 처음에는 약간의 효과가 있어 보이나 나중에는 그 말을 아예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말을 할 때도 \녹음기 틀어놓은 말\로 무시해 버린다.

4. 빗대어 하는 말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도 나\x92이야기인 것처럼 남을 끌어들여 말한다. 선한 이야기는 그렇게 해도 좋지만 나쁜 이야기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5. 방어적인 말

불편한 말을 들었다고 대뜸 맞대응해서 짜증 섞인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상대방의 필요에 대한 민감성이 부족한 사람이다.

6. 감정 섞인 말

큰 소리, 화난 소리, 격렬한 소리,극적인 소리도 좋지 않다. 그것은 감정의 솔직한 반영이라기보다는 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나쁜 획책이다.

7. 많은 말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분위기를 장악하려고 하거나 자신의 분노와 좌절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BAND 글 옮김-

#화약 #좋은글 #자신 #사람 #명언 #혼동 #본인 #의심 #침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7_65.html
kolaswqetsrq 11.01 20:47
자기 삶을 당당하게 가꾸는 십계명

자기 삶을 당당하게 가꾸는 십계명

누구나 인정할 만한 권위를 쌓아라.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위대한 승리자가 될 수 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

01. 힘차게 일어나라.

02. 당당하게 걸어라.

03. 오늘 일은 오늘 끝내라.

04. 시간을 정해놓고 책을 읽어라.

05. 웃는 훈련을 반복하라.

06. 좋은 말을 하는 훈련을 하라.

07. 하루 한 가지씩 좋은 일을 하라.

08.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라.

09.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말라.

10. 매일매일 점검하라.

-Vingle 글 옮김-

#시간 #명언 #사람 #훈련 #인정 #십계명 #반복 #좋은글 #마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409.html
kolaswqetsrq 11.01 20:48
호감을 얻을 수 있는 10가지 방법

호감을 얻을 수 있는 10가지 방법

01.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는 습관을 길러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관심이 충분치 못하다는 것을 뜻한다.

02. 당신과 같은 사람이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을 만큼 마음이 편한 사람이 되라. 그에게 그의 익숙한 옷이나 익숙한 신발과 같은 사람이 되라. 당신과 같이 있는 사람이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마음 편한 사람이 되라.

03. 일 때문에 화를 내지 않도록 한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골 무슨 일이든 넉넉하게 처리할 수 있는 특성을 길러라.

04. 이기적이 되지 말라. 당신이 다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하라. 자연스럽고 정상적으로 겸손하라.

05. 다른 사람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자질을 길러라. 그러면 그들은 당신과 함께 있기를 바랄 것이며. 또한 그들은 당신과의 교제에서 그들을 고무시키는 가치있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
06. 당신의 성격에서 까다로운 것들을 제거하라. 다른 사람들이 그것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그렇게 하라.
",

07. 당신의 마음속에서 불평거리를 빼내 버려라. 당신이 가지고 있었거나 지금 가지고 있는 갖가지 모든 오해들을 정직한 종교인의 입장에서 풀어버리도록 진지하게 노력하라.

08. 당신이 먼저 사람들을 좋아하도록 노력하라. 당신이 거짓 없이 다른 사람들을 좋아하기를 체득하게 될 때까지 사람들을 좋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09. 그 누구의 성공에 대해서도 축하할 기회를 결단코 놓치지 말라. 남의 슬픔이나 실패에는 위로의 말을 잊지 말라.

10. 사람들에게 힘을 주라. 사람들의 더 강해지고 더 효과적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게 당신 스스로 깊은 영정 체험을 갖도록 하라. 그러면 그들은 자신들의 애정을 당신에게 준다.

-Vingle 글 옮김-

#호감 #습관 #상대방 #기억 #이름 #좋은글 #명언 #방법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0_69.html
kolaswqetsrq 11.01 20:48
행복한 대인관계를 위한 10가지 조언

< 행복한 대인관계를 위한 10가지 조언 >

1. 당신의 혀에 자물쇠를 채워라.

항상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적게 말하라. 낮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길러라. 때때로, 당신이 무엇을 말하는가 보다 어떻게 말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2. 약속을 쉽게 하지 말되, 한 번 한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라.

3.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말이나 힘을 북돋울 수 있는 말을 건넬 수 있는 기회를 절대 지나치지 말라.

대상이 누구이더라도 잘한 일에 대해 칭찬하라. 만약 비판이 필요하다면 도움이 되는 방식을 선택해야지, 절대 꾸짖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4. 다른 사람들에게 흥미를 가져라.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 그들의 일, 가정과 가족들에게 흥미를 가져라. 기뻐하는 사람과 흥겹게 어울려라. 슬퍼하는 사람과도 어울려라.

5. 항상 명랑하고 쾌활하라.

당신의 작은 아픔이나 고통, 실망감이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거나 그들을 우울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기억하라. 모든 사람들은 나름의 심로(心勞)를 가지고 있음을.

6. 열린 마음을 가져라.

토론하되 논쟁하지 말라. 불쾌함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내 의견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표시이다.

7. 당신의 덕(德)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

다른 사람의 악덕에 대해 말하지 말라. 뒷담화를 피하라. 그것은 소중한 시간의 낭비이며, 극도로 파괴적일 수 있다.

8. 다른 사람의 감정에 유의하라.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는 유머는 대부분 가치가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외로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9. 당신에 관한 험담에 귀 기울이지 말라.

당신에게 그 메시지를 전달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리포터가 아닐 수 있음을 명심하라. 그저 아무도 그 말들을 믿지 않도록 살면 된다. 오히려 험담에 신경을 씀으로써 생기는 신경과민과 소화불량이 험담의 원인을 제공한다.

10. 당신에게 주어지는 평판에 대해 너무 조급증을 갖지 말라.

최선을 다하고, 인내심을 가져라. 당신 스스로를 잊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을 "기억"하도록 하라. 성공은 그럴 때 훨씬 더 달콤하다

#생각 #조언 #설득력 #사람 #대인 #행복 #명언 #약속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0_74.html
kolaswqetsrq 11.01 20:49
세상은 좋은 일을 했다고

세상은 좋은 일을 했다고

꼭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쁜 일을 했다고

꼭 나쁜 결과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노력을 했음에도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우리의 삶은 상처 입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전부는 아니다.

비록 세상은 우리가 노력한 만큼

꼭 그만큼의 눈에 보이는

결과는 주지 않을지라도

항상 우리에게

그에 합당하는 많은 것들을 준다.

세상은 항상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않지만

꼭 노력한 그만큼의 성장을

우리에게 약속해 준다.

세상이 주는 시련과 실패는

우리를 부유하게는 만들지 않지만

인내와 지혜를 선물한다.

나는 알고 있다.

노력한 그만큼 세상은

정확하게 우리에게 그 무엇인가를 준다고

만일 오늘을 우리가 성실히 돌본다면

세상은 우리의 내일을 돌볼 것이다.

#노력 #그만큼 #합당 #세상 #좋은글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204.html
kolaswqetsrq 11.01 20:50
너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너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푸른하늘처럼 투명하게

새벽공기처럼 청아하게

언제나 파란 희망으로 다가서는

너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들판에 핀 작은 풀꽃같이

바람에 날리는 어여쁜 민들레같이

잔잔한 미소와 작은 행복을 주는 사람

너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따스한 햇살이 되어

시린 가슴으로 아파할때

포근하게 감싸주며 위로가 되는 사람

너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긴 인생여정에 정다운 벗되어

꼭 사랑이 아니여도

꼭 가슴이 뜨겁지 않아도

어깨동무하며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사람

너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가장 힘들때 생각나는 사람

가장 기쁠때 보고싶은 사람

가장 외로울때 그리운 사람

너에게 나는 그런 한사람이고 싶다.

-‘가을 이야기’ 중-

#하늘 #풀꽃 #명언 #좋은글 #사람 #희망 #들판 #투명 #새벽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887.html
kolaswqetsrq 11.01 20:50
그냥이라는 말

그냥이라는 말

그냥이라는 말

참 좋아요

별 변화 없이 그 모양 그대로라는 뜻

마음만으로 사랑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난처할 때

그냥했어요 라고 하면 다 포함하는 말

사람으로 치면

변명하지 않고 허풍 떨지 않아도

그냥 통하는 사람

그냥이라는 말 참 좋아요

자유다 속박이다 경계를 지우는 말

그냥 살아요 그냥 좋아요

산에 그냥 오르듯이

물이 그냥 흐르듯이

그냥이라는 말

그냥 좋아요

-조동례-

#포함 #사랑 #마음 #명언 #모양 #좋은글 #사람 #허풍 #변명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116.html
kolaswqetsrq 11.01 20:51
좋아하는데 헤어지면 고통이 생기고

좋아하는데 헤어지면 고통이 생기고

미워하는데 만나도 고통이 생깁니다.

만나는 인연과 헤어지는 인연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만날 인연일 때는

미워함에 구애 받지 말고,

헤어질 인연일 때는

사랑하는 마음에 구애 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갖고 싶다’, ‘버리고 싶다’ 하는

그 마음을 놓아버리고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자기 주관을 중심으로

바깥을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깥이 내 뜻대로 변하지 않으니

힘이 든 것이죠.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은 내 업식,

즉 마음이 가진 습관으로부터 일어나는데

그것을 놓아버리게 되면 자유로워집니다.

이것이 해탈입니다.

자기로부터의 자유

내 까르마로부터의 자유

욕구로부터의 자유를 얻을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법륜 스님-

#명언 #고통 #인연 #연일 #마음 #사랑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506.html
kolaswqetsrq 11.01 20:52
하루를 감동의 선물로 해 주는 사람

하루를 감동의 선물로 해 주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가장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

마음을 기쁘게 하고

속삭임이 다정한 사람

마음속에 희망을 주는 사람

작은 메모지에

사랑합니다 라고 써 주며

하루를 감동의 선물을 해 주는 사람

내 무지함을 뛰어난

장점으로 승화 시켜주는 사람

하늘이 푸르다는 것을

미소로 일깨워주는 사람

어떠한 좋은 일을 해 놓고도

미소 지으며 떠나갈 줄 아는 사람

하찮은 일이라도 귀찮아 하지 않는 사람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한

해와 달의 속삭임 처럼

은은한 미소를 가진 사람

바로 당신입니다.

-좋은 글 대사전-

#마음 #속삭임 #사람 #가슴 #감동 #선물 #좋은글 #명언 #세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137.html
kolaswqetsrq 11.01 20:52
이런게 인연이지 싶습니다

이런게 인연이지 싶습니다

살다보면 만나지는 인연중에

참 닮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비슷하다

싶은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한 번을 보면 다 알아버리는 그 사람과

속마음과 감추려는 아픔과 절망까지

다 보여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도 전생에 무언가 하나로 엮어진게

틀림이 없어 보이는 그런 사람이 있나봅니다

깜짝 깜짝 놀랍기도 하고

화들짝 반갑기도 하고

어럼풋이 가슴에 메이기도 한

그런 인연이 살다가 보면 만나지나 봅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보단 속내가 더 닮은

그래서 더 마음이 가고 더 마음이

아린 그런 사람이 있나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어렵고 그리워하기엔

목이메고 모른척 지나치기엔 서로에게

할 일이 아닌 것 같고

마냥 지켜보기엔 그가 안쓰러워 보듬어가며

그런 하나하나에 마음을 텨야 하는사람

그렇게 닮아 버린 사람을 살다가

보면 만나지나 봅니다

좋은 글 대사전

#마음 #영혼 #아픔 #좋은글 #명언 #사람 #인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348.html
kolaswqetsrq 11.01 20:53
필요한 자리에 있어주는 사람

필요한 자리에 있어주는 사람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큼 행복도 없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보고싶을 땐 보고싶은 자리에,

힘이들 땐 등 토닥여 위로해주는 자리에,

혼자라는 생각이 드는 날엔

손잡아 함께라고 말해주는 자리에,

그렇게 필요한 날, 필요한 자리에

그 자리에 있어줄 사람이 있다는 거

너무도 행복한 일이겠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요 누군가가

필요한 순간이 참 많구나 하구요.

무엇을 해주고 안 해주고가 아니라

행복은 내가 필요한 자리에

누군가가 있어주는 것이란 생각.

세상엔 필요한데, 너무도 필요한데,

함께 해 줄 수 없는 이름의 인연이

말 못해 그렇지 너무도 많으니까요.

-‘새벽편지’ 중-

#생각 #좋은글 #사람 #행복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901.html
kolaswqetsrq 11.01 20:54
자신감 상승 10가지 비법

<자신감 상승 10가지 비법>

1. 익숙한 곳에서 일부러 탈출하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계속 맞닥뜨리면 자신의 한계가 점점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도 매일 새롭게 시도하면 자신감 상승에 큰 도움이 되며 조만간에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기분이 저절로 생길 것이다.

2. 미안해하지 말고 자기 뜻대로 살자.

우리가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는 걸 기억하자.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되 꼭 그런 의견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나만의 스타일을 찾도록 하자.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자.

3. 두려워하는 부분을 인정하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정상이다. 맹점은 두려움이 나를 지배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두려운 것을 인정한다고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 두려워하는 부분을 인정하고 그 해법을 고민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4. 완벽함이란 없다.

완벽을 추구하다가는 오히려 자신에 대한 불신이 더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실수에 대해 관대해야 한다.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면 성장도 불가능하다. 또 어떤 사물을 너무 지나치게 고민하는 것도 같은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5. 나는 대단한 사람이란 걸 잊지 말자.

유명한 라이프스타일 코치 잭 캔필드는 "자신에 대한 인식과 인정이 있어야 더 높은 목표와 임무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과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정말로 대단한 이유를 목록화하자. 그리고 거기다가 이제까지 내가 성취한 모든 것을 포함하자.

6.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신체 상태를 유지하자.

최근 한 고객이 이렇게 말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를 몸으로 느낀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그런 느낌이 날 때를 잘 살폈다가 반복하라고 조언했다. 그녀의 말로는 차 안에서 노래를 들을 때 자신감이 향상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특정 노래만 들으면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고 했다. 간단한 방법이다.

7. 몸가짐에 신경 쓰자.

몸짓에도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상태로 걸으면 자신의 기분도 처질뿐더러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신호를 주게 된다. 그리고 팔짱을 낀다든지, 축 처져 있든지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는 동작은 조심하도록.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고 웃자.

8.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는 것을 연습하자.

자신이 필요한 것을 표현한다면 기적이 생길 것이다. 그러니 당당히 자신의 원하는 것을 요구해보라. 지금 당장.

9. 자신 있게 생각하자.

가장 극단적인 결과를 생각하는 것은 필요 이상의 불안을 자초한다. 그렇다면 어떤 행동도 가능하지 않다. 그보다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헤아리는 데 에너지를 쓰자. 그중 한 가지에 집중한 다음, 거기서 기대할 수 있는 결과를 상상하자.

10. 자책하지 말고 용서하라. 내일이 있다. 과거가 미래를 좌우하지 않는다.

위의 10가지 방법을 부족한 자신감이 향상되며 자신이 가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알게 될 것이다.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한 삶을 위해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자신감이다.

#비법 #자신감 #상승 #좋은글 #탈출 #상황 #명언 #자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0_880.html
kolaswqetsrq 11.01 20:54
오늘도 마음에 주문을 외웁니다.

오늘도 마음에 주문을 외웁니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행복하다고

행복해지고 싶다고

그래서 웃습니다.

오늘도 마음에 주문을 외웁니다.

웃자, 웃자

웃어보자고

웃다 보면 마음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 어느새

밝은 빛으로 물들이고

불행은 행복의 꽃을 피웁니다.

오늘도 마음에 주문을 외웁니다.

먼저 건네는 미소가

누군가의 얼굴에

작은 행복의 미소 짓기를

그 미소에 내 마음도 행복해집니다.

오늘도

행복하다, 행복하다고

웃자, 웃어보자고

마음에 주문을 외웁니다.

 "
-가끔은 그렇게 살고싶다 중-
",

#명언 #행복 #좋은글 #마음 #오늘 #주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1925.html
kolaswqetsrq 11.01 20:55
내 마음 대로 안되는 일은

내 마음 대로 안되는 일은

좀 내려놓고 살아도 됩니다

내 뜻대로 안되는 일은

좀 비워내며 살아도 됩니다

내 의지 대로 안되는 일은

좀 버리고 살아도 괜찮습니다

삶의 모든 고뇌는

내 뜻대로 이루기위해

몸부림 치는 욕심과 욕망에서 오게됩니다

-유지나-

#욕심 #마음 #욕망 #좋은글 #몸부림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666.html
kolaswqetsrq 11.01 20:56
가족강재현 시인

가족(강재현 시인)

맑은 공기나 물처럼

늘 함께 있기에 그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 익숙해진 탓에

배려하지 않고 내뱉는 말들로

가장 큰 상처를 주게 되는 사람들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기에

기다릴 필요도, 이유도 없기에

그리움의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 사람들

함께 있을수록

더 많이 보아야 할 사람들

가까이 있을수록

더 깊이 보아야 할 사람들

익숙해서 편안할수록

더 살뜰히 챙겨야 할 사람들

더 뜨겁게,

서로의 가슴을 안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입니다.

-강재현 ‘공감’ 중-

#가족 #좋은글 #사람 #명언 #시인 #이름 #그리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1945.html
kolaswqetsrq 11.01 20:57
인맥관리 지혜 14가지

<인맥관리 지혜 14가지>

1. 지금 힘이 없는 사람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나중에 큰 코다칠 수 있다.

2. 평소에 잘해라.

평소에 쌓아둔 공덕은 위기 때 빛을 발한다.

3. 고마우면 고맙다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큰 소리로 말해라.

입은 말하라고 있는 것이다. 마음으로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사가 아니다. 남이 네 마음속까지 읽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4. 남을 도와줄 때는 화끈하게 도와줘라.

처음에 도와주다가 나중에 흐지부지하거나 조건을 달지 마라. 괜히 품만 팔고 욕먹는다.

5. 회사 바깥 사람들도 많이 사귀어라.

자기 회사 사람들 하고만 놀면 우물안 개구리가 된다. 그리고 회사가 너를 버리면 너는 고아가 된다.

6. 남의 기획을 비판하지 마라.

네가 쓴 기획서를 떠올려 봐라

7. 조의금은 많이 내라.

부모를 잃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엾은 사람이다. 사람이 슬프면 조그만 일에도 예민해진다. 2,3만 원 아끼지 마라. 나중에 다 돌아온다.

8. 수입의 1퍼센트 이상은 기부해라.

마음이 넉넉해지고 얼굴이 핀다.

9. 수위 아저씨, 청소부 아줌마에게 잘해라.

정보의 발신지이자 소문의 근원일뿐더러, 네 부모의 다른 모습이다.

10. 옛 친구들을 챙겨라.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느라 지금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재산을 소홀히 하지 마라. 정말 힘들 때 누구에게 가서 울겠느냐?

12. 너 자신을 발견해라.

다른 사람들 생각하느라 너를 잃어버리지 마라.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 혼자서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라.

13.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지금 네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은 나중에 네 인생의 가장 좋은 추억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마음껏 즐겨라.

14. 아내(남편)를 사랑해라.

너를 참고 견디니 얼마나 좋은 사람이냐?

#사람 #명언 #인맥 #나중 #마음 #미안 #좋은글 #공덕 #생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4_29.html
kolaswqetsrq 11.01 20:57
행복

행복

가슴 뛰는 행복

거창한 것도 아니더라

속깊은 한마디에

가슴 따뜻해지고

작은 정성에

가슴가득 설레이고

토닥토닥 손길에

맘까지 따스하더라

겨우내 잘 견딘

초록빛 고운싹 얼굴 내밀면

새로운 희망이 솟고

어둔밤 반짝이는 별빛이

메마른 나뭇가지를 지키는것도

기분좋은 행복이고

향기나는 여린꽃 한송이에

마음까지 향기가 느껴지더라

행복

가슴뛰는 행복

그거 별거 아니더라

-글: 해밀 조미하-

#좋은글 #초록빛 #가슴 #명언 #손길 #정성 #행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863.html
kolaswqetsrq 11.01 20:58
나의 삶은

나의 삶은

내가 만들어간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나의 작은 습관들이 모여

나를 만들어갑니다.

알게 모르게

수년이 지나면

내 습관이 나를

얼마나 변하게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0년이 지나고나면 작지만

좋은 습관들을 만들어가는

성공자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습관,

항상 긍정의 말만 하는 습관,

남에게 뭔가 주는 것을 기뻐하는 습관,

문제만 제시하지 않고

대안도 제시할 줄 아는 습관,

그런 습관들을 만들며

승자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나쁜 습관들은

하나씩 지워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말,

좋은 행동을 늘 반복으로

그 반복들이 모여서

좋은 습관이 만들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최복현 ‘마음을 열어주는 따뜻한 편지’-

#습관 #수년 #자신 #명언 #좋은글 #긍정 #성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820.html
kolaswqetsrq 11.01 20:59
인생의 품격

인생의 품격

역경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배신을 당해도 섭한 시간 낭비마라.

질타를 받아도 의기소침 말고

어떤 어려움도 긍정으로 대처하라.

다른 사람의 꿈이라도 뜨겁게 응원하고

저들의 행복에 힘차게 박수쳐라.

저들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고

활짝 웃음으로 온 주위를 밝게 하라.

나쁜 일은 빨리 잊고

 "
질투심으로 사명인생 망치지 마라.
",

좋은 것으로 골라 취하고

힘 빼는 언어는 사용하지 마라.

격려와 박수로 용기 주고

기쁜 소식에 맞장구쳐라.

순간마다 때우듯이 살지 말고

두 눈을 부릅뜨고 일할 거리 찾아라.

어떤 명함을 내밀어도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품격을 유지하라.

-소천-

#어려움 #인생 #의기소침 #긍정 #명언 #시간 #배신 #좋은글 #품격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292.html
kolaswqetsrq 11.01 20:59
소유가 아닌 빈 마음으로

소유가 아닌 빈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받아서 채워지는 가슴보다

주어서 비어지는 가슴이게 하소서

지금까지 해왔던 내 사랑에

티끌이 있었다면 용서 하시고

앞으로 해나갈 내 사랑은

맑게 흐르는 강물이게 하소서

위선보다는 진실을 위해

나를 다듬어 나갈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바람에 떨구는 한 잎의 꽃잎으로 살지라도

한 없이 품어 안을

깊고 넓은 바다의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바람 앞에 쓰러지는 육체로 살지라도

선 앞에서는 강해지는 내가 되게 하소서

철저한 고독으로 살지라도

사랑 앞에서 깨어지고 낮아지는

항상 겸허하게 살게 하소서.

-칼릴 지브란-

#명언 #사랑 #마음 #티끌 #지금 #가슴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432.html
kolaswqetsrq 11.01 21:00
행복의 비밀 한 가지

행복의 비밀 한 가지

행복해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십시오. 얼굴에 웃음을 자주 띠십시오. 팔을 높게 올리고 손뼉을 힘껏 치십시오.

힘차게 걷고 몸을 자주 흔드십시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자연과 자주 접촉하십시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주 떠올리고, 사랑할 사람들을 찾아보십시오. 좋은 한마디, 힘이되는 글 하나 깊이 간직하십시오.

좋은 공기 속에서 살거나 좋은 물을 계속 마시면 몸이 회복되고 건강해지듯이 좋은 생각,

행복한 느낌을 자주 접하다 보면 어느새 행복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습니다. "자기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BAND 글 옮김-

#비밀 #시간 #얼굴 #좋은글 #웃음 #명언 #손뼉 #친절 #행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421.html
kolaswqetsrq 11.01 21:01
누군가가 우리에게

누군가가 우리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미소 지을 수 있고

또 언젠가 실패했던 일에

다시 도전해볼 수도 있는 용기를 얻게 되듯이

소중한 누군가가

우리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며 활기를 띠고

자신의 일을 쉽게 성취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소중한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우리들 스스로도

우리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을 때

어떤 일에서든 두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듯이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든 외로움은

우리가 누군가의

사랑을 느낄 때 사라지게 됩니다.

카렌 케이시 /

우리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입니다.

#사람 #두려움 #좋은글 #한구석 #도전 #자신 #명언 #마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750.html
kolaswqetsrq 11.01 21:02
★ 마음 다지기 ★

★ 마음 다지기 ★

☆ 강해져라 - 누구도 망가뜨릴 수 없도록.

☆ 독해져라 - 누구도 널 상처 따윈 줄 수 없도록.

☆ 냉정해져라 - 아닌건 후회없이 짜를 수 있도록.

☆ 힘을 키워라 - 힘 자랑하는 사람과 맞설 수 있도록.

☆ 지혜로와져라 - 누구나 널 상대할 수 없도록.

☆ 울지 마라 - 누구나 쉽게 볼 수 없도록.

☆ 배워라 - 누구든 널 무식하다 할 수 없도록.

☆ 맘을 넓혀라 - 진심으로 용서를 받을 수 있도록.

☆ 감사하라 -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것에.

☆ 피하지 마라 - 또 다시 찾아오게 되니까.

☆ 웃어라 - 복이 찾아 올 수 있도록.

☆ 현명하라 - 모든건 선택에 불과하니까.

☆ 비웃지 마라 - 어느날 같은 입장이 될수 있으니.

☆ 겸손하라 - 가진자의 여유이니.

☆ 비교하지 마라 - 넌 이미 지고 있는 것이니.

☆ 어울려라 - 혼자 사는게 아니니.

☆ 베풀어라 - 나중에 다 돌아올수 있으니.

☆ 사랑을 배워라 ᅳ 진심으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 사랑하라 ᅳ 후회하지 않도록.

#마음 #냉정 #좋은글 #무식 #현명 #진심 #자랑 #사람 #선택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696.html
kolaswqetsrq 11.01 21:03
늘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늘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나 고른 숨으로

뜻한 바 곧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

가식 없고 아집 없는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잔잔한 일상을 맞이하는 사람

행운을 기다리지 않고

행복을 염원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끝없이 움직이는 사람

상대의 눈을 맞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가슴 가득

잔잔한 웃음과 미소를 건네는 사람

백 마디 말보다

한번 따뜻하게 안아주고

천 마디 말보다

자주 문안 인사 드리는 사람

옳고 그름을 잘 가려

선한 벗을 널리 하며

악한 일에 휘말리지 않고

늘 호수처럼 깊이를 더하는 사람

 "
-윤성완 늘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중-
",

#아집 #사람 #일상 #자신 #행운 #좋은글 #가식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184.html
kolaswqetsrq 11.01 21:03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순간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푸쉬킨-

#좋은글 #나날 #마음 #순간 #절망 #기쁨 #명언 #그리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999.html
kolaswqetsrq 11.01 21:04
상대방의 호감을 깊게 하는 10가지 방법

< 상대방의 호감을 깊게 하는 10가지 방법 >

1. 이름을 기억하자.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관심이 충분치 않다는 뜻이다.

2. 편안한 사람이 되자.

오래 입은 옷이나 익숙한 신발같은 사람이 되어라, 그가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3. 일 문제로 화내지 말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무슨 일이든 넉넉하게 처리하는 품성을 길러라.

4. 겸손하자.

알아도 아는 척 하지 말자.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겸손하라.

5. 다른 사람 사정에 관심을 가지자.

그러면 그들은 당신과 오래 함께 하기를 바랄 것이다. 당신과의 교제에서 정말 가치있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6. 까탈 부리지 말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하라.

7. 불평을 제거하라.

당신이 가지고 있었거나 지금 가지고 있는 갖가지 모든 오해들을 정직한 종교인의 입장에서 풀어버리도록 진지하게 노력하라.

8. 내가 먼저 좋아하자.

당신이 거짓없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 때까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노력해야 한다.

9. 그 누구의 성공도 축하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

남의 슬픔이나 실패에는 위로의 말을 잊지 말라.

10. 사람들에게 힘을 더하라.

사람들이 더 강해지고 더 효과적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게 당신 스스로 깊은 영적 체험을 갖도록 하라. 그러면 그들은 자신들의 애정을 당신에게 준다.

#상대방 #기억 #좋은글 #이름 #호감 #방법 #사람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0_32.html
kolaswqetsrq 11.01 21:05
朱子十悔訓 - 주자십회훈

朱子十悔訓 - 주자십회훈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하기 쉬운 후회 가운데, 중국 송대(宋代)의 유학자 주자가 제시한 열 가지 해서는 안 될 후회.)

01. 不孝父母, 死後悔(불효부모 사후회) - 부모님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후회한다.

02. 不親家族, 疎後悔(불친가족 소후회) - 가족에게 친절히 대하지 않으면 멀어진 뒤에 후회한다.

03. 少不勤學, 老後悔(소불근학 노후회) - 젊었을 때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나이 먹은 뒤에 후회한다.

04. 安不思難, 敗後悔(안불사난 패후회) - 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한 뒤에후회한다.

05. 富不儉用, 貧後悔(부불검용 빈후회) - 부유할 때 아껴 쓰지 않으면 가난하게 된 뒤에 후회한다.

06. 春不耕種, 秋後悔(춘불경종 추후회) - 봄에 밭 갈고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이 된 뒤에 후회한다.

07. 不治垣墻, 盜後悔(불치원장 도후회) - 담장을 미리 고치지 않으면 도둑맞은 뒤에 후회한다.

08. 色不謹愼, 病後悔(색불근신 병후회) - 이성을 삼가지 않으면 병든 뒤에 후회한다.

09. 醉中妄言, 醒後悔(취중망언 성후회) - 술 취해서 망언한 것은 술 깨고 난 뒤에 후회한다.

10. 不接賓客, 去後悔(부접빈객 거후회) - 손님을 잘 대접하지 않으면 손님이 떠난 뒤에 후회한다.

-Story 글 옮김-

#가족 #좋은글 #평생 #명언 #근학 #회훈 #사람 #소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268.html
kolaswqetsrq 11.01 21:05
바로 지금 하라

바로 지금 하라

위대한 인물에게는

목표가 있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소원이 있을 뿐이다.

내일의 일을

훌륭하게 하기 위한

최선의 준비는 바로

오늘 일을 훌륭하게

완수하는 것이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면 내가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이면 최선을 다 하고

어짜피 해야 할 일이면

기쁘게 하고

언젠가 해야 할 일이면

바로 지금 하라!

-‘명언의 힘’-

#인물 #최선 #내일 #명언 #소원 #사람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208.html
kolaswqetsrq 11.01 21:06
행복의 첫째 조건

행복의 첫째 조건

같은 땅

같은 씨라도

먼저 피는 꽃이 있고,

늦게 피는 꽃이 있다.

그래도

출발이 늦은 꽃은

앞서 만개한 꽃과

비교하지 않는다.

포기 하는 법도 없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타인과 비교 하지 않는 것,

또 포기 하지 않는 것,

그것이 행복의 첫째 조건이다.

-정병일-

#타인 #세상 #모습 #조건 #좋은글 #명언 #출발 #행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082.html
kolaswqetsrq 11.01 21:07
이별은 단지 사람 사이에서만

이별은 단지 사람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 습관이나 생활 패턴,

이미 지나간 인생의 시간과도 이별을 합니다.

이별은 적절한 시기에

꼭 거쳐야 하는 성장통입니다.

새로움은 오래된 것을 놓아줄 때에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자유롭게 놓아주십시오,

과거를 놓아준 만큼 미래가 열립니다.

과거를 놓아 주면 마음이 유연해집니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

습관과 우리를 신뢰하는 모든 것과

하루에 몇 번씩이라도 이별을 고하세요.

그것만이 현재에 당신이 존재할 수 있으며,

새로움에 문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안젤름 그륀 / 머물지 말고 흘러라

#좋은글 #시간 #패턴 #사람 #이별 #습관 #인생 #명언 #생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535.html
kolaswqetsrq 11.01 21:07
날마다 일어나는 기적들

날마다 일어나는 기적들

코를 꼭 잡고 입을 열지않은 채 얼마쯤 숨을 쉬지 않을 수 있는지 참아보십시오. 30초를 넘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숨을 쉬지않고 참아보면 그제야 비로소 내가 숨쉬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숨을 쉬려고 노력했습니까? 훗날 병원에 입원해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숨을 쉴 때야 비로소 숨쉬는 게 참으로 행복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이미 행복을 놓친 것입니다.

뛰는 맥박을 손가락 끝으로 느껴보십시오. 심장의 박동으로 온몸 구석구석 실핏줄 끝까지 피가 돌고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날마다 무수히 신비롭게 박동하고 있는 심장을 고마워했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기적을 일구고 있습니다. 심장이 멈추지 않고 숨이 끊기지 않는 기적을 매일매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아침에 눈을뜨면 벌떡 일어나지 말고 20초 정도만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읊조리듯 말하십시오.

첫째, 오늘도 살아있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둘째, 오늘 하루도 즐겁게 웃으며 건강하게 살겠습니다. 셋째, 오늘 하루 남을 기쁘게 하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서너달만 해보면 자신이 놀랍도록 긍정적으로 변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물론 말로만 하면 자신에게 거짓말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말한 대로 실행하십시오. 그러면 잔병치레도 하지 않게 됩니다. 아픈곳에 손을대고 읊조리면 쉽게 낫거나 통증이 약해지기도 합니다.

당신은 1년후에 살아 있을 수 있습니까? 1년후에 우리 모두 살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합니다.

살던대로 대충,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웃고, 재미있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신나게,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자신을 면밀히 살펴보십시오. 내 육신을 학대하지는 않았는가, 마음을 들쑤시지는 않았는가 돌아 보아야 합니다.

몸이 원하는 것 이상의 음식을 먹는 것도 학대이며, 몸이 요구하는 편안함을 거부하는 것도 학대이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는 것도 학대입니다.

 "
-김홍신 인생사용 설명서 중-
",

#노력 #명언 #훗날 #좋은글 #병원 #맥박 #행복 #기적 #입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318.html
kolaswqetsrq 11.01 21:08
마음이 맑아 지는 글

마음이 맑아 지는 글

시간의 아침은

오늘을 밝히지만

마음의 아침은

내일을 밝힌다.

열광하는 삶보다

한결같은 삶이

더 아름답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서나 배웁니다.

부족한 사람에게서는

부족함을

넘치는 사람에게서는

넘침을 배웁니다.

스스로를 신뢰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성실할 수 있다.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소금 3퍼센트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 마음 안에 있는

3퍼센트의 좋은 생각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좋은 글 대사전’-

#시간 #마음 #좋은글 #내일 #열광 #오늘 #명언 #아침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516.html
kolaswqetsrq 11.01 21:09
♡자식에게 전해주고 싶은 7가지 이야기♡

♡자식에게 전해주고 싶은 7가지 이야기♡

세상사는 이야기는 누가 뭐래도 남이 해주는게 아니고 내 자신이 실천을 해야 하는 법 입니다

*건강 이야기*

1,보약보다 효가가 있는것은 운동이다

<하루1시간 땀나게>

2,보약보다 효과가 있는것은 음식 잘먹는것이다

<편식은안됨>

3, 보약보다 효과가 있는것은 나쁜버릇 고치기다

<생활 습관>

*정신 이야기*

1,매사에 세번 생각하고 세번 인내 하기

<실수가 없다 많은 실수 사고를 막는 비법이다>

2,내가 남보다 잘낫다는 망상은 버려라

<절대 잘난게 아니다>

3,남의 잘못을 따지기전에 내잘못을 돌아보자

<먼저 반성 해야 한다>

*대인관계 이야기*

1,상대를 대접하라 그래야 내가 대접 받을 수 있다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라는 말이다>

2,상대를 무시하면 또 하나의 적이 생긴 것과 같다

<상대에게 주는 모멸감 상대방은 절대 잊지 않는다>

3,상대에게 내 속내를 보이지 말라

<가벼운 행동은 훗날 내 약점이 된다>

*친구 이야기*

1,믿음과 신의가 있어야 한다

<친구 함께 술 마시고 즐긴다고 친구일까>

2,거짓은 없는 진실로 맺은 우정 이어야 한다

<친구는 진실이 친구라고 말한다>

3,친구의 흉은 내흉으로 생각하고 내가 막아라

<친구의 흉 바로 내흉이라 생각해라>

*경제이야기*

1,저축은 꼭해야 된다

<살다보면 어려울때가 반드시 있으니>

2,보증은 절대서지말라

< 목에 밧줄을 맨것과 같다 항상 불안 위태 위태>

3,기분 나는대로 사업상 약속은 하지 말라

<약속은 반드시 빚이된다>

*가족 이야기*

1,매사에 사랑이 담겨야 한다

<가족에게 신의를 잃으면 모든 신용을 잃은 것과 같다>

2,가사일은 서로 돕는다는것 필연이다

<집안일 항상 내가 먼저다>

3,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언행을 조심하여야 한다

<가족간에도 고운 말로 인격을 존중하자>

*세상사는 이야기*

1,세상은 혼자 사는게 아니라 모두 함께 사는 것이다

<남에게 해 끼치는 일 내 욕심 채우는 일 해서는 안된다>

2,인생 사는것은 세상 순리와 같다

<한달이 크면 한달이 작다 고개를 넘으면 평지가 있다>

3,세상사 가장 안전한 방법은 정신차려 사는 법이다

<항상 내가 누구이며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잊어서는 안된다>

4,남에게 하는 욕 , 따져 보면 그 욕 피해자는 자신이다

<욕 하는 자신 생각해봐라 그 모습 비참한 모습일 것이다>

#자식 #운동 #좋은글 #명언 #음식 #보약 #실천 #건강 #자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7_37.html
kolaswqetsrq 11.01 21:09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나갈 인생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나갈 인생

언제 떠나는지 서로 몰라도

가다보면 서로 만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애절한 사연 서로 나누다

갈랫길 돌아서면,

어차피 헤어질 사람들...

왜 그리 못난 자존심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하고 미워했는지...

사랑하며 살아도 너무 짧은 시간

베풀어 주고 또 줘도 남는 것들인데

웬 욕심으로 무거운 짐만 지고 가는

고달픈 나그네 신세인가...

그 날이 오면 다 벗고 갈 텐데...

무거운 물질의 옷도,

화려한 명예의 옷도,

자랑스런 고운 모습도,

더 그리워하면 더 만나고 싶고,

더 주고 싶고, 보고 또 보고,

따뜻이 위로하며 살아야 하는데...

왜 그리 마음에 문만 닫아걸고

더 사랑하지 않았는지,

아니 더 베풀지 못했는지,

천년을 살면 그리할까?

만년을 살면 그러리요.

사랑한 만큼 사랑 받고

도와준 만큼 도움 받는데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만

몸부림쳤던 부끄러운 나날들...

우리가 서로 아끼고 사랑해도

허망한 세월인 것을

어차피 저 인생의 언덕만

넘으면 헤어질 것을...

미워하고 싸워 봐야

상처난 흔적만

훈장처럼 달고 갈텐데...

이제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이제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사랑해야지.

우리는 다 길 떠날 나그네들 이라네.

좋은 글 중에서

#좋은글 #욕심 #사람 #사연 #비판 #사랑 #시간 #자존심 #명언 #인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475.html
kolaswqetsrq 11.01 21:10
법정스님의 8가지 명언

< 법정스님의 8가지 명언 >

1.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 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2.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3.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4.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5.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6.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7.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8.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물음 #해답 #좋은글 #자신 #스님 #건성 #얼굴 #명언 #법정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8_25.html
kolaswqetsrq 11.01 21:11
삶의 과정이 행복인 것을..

삶의 과정이 행복인 것을..

산꼭대기에 오르면 행복할 거라 생각 하지만 정상에 오른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어느 지점에 도착하면 모든 사람이 행복 해지는 그런 곳은 없다.

같은 곳에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있다.

같은 일을 해도 즐거운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있다.

같이 음식을 먹지만, 기분이 좋은 사람과 기분 나쁜 사람이 있다.

좋은 물건, 좋은 음식, 좋은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대하는 태도이다.

무엇이든 즐기는 사람에겐 행복이 되지만, 거부하는 사람에겐 불행이 된다.

정말 행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 자신이 가진 것을 만족해하는 사람,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 갈 곳이 있는 사람, 갖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다.

-김홍식 ‘죽어도 행복을 포기하지 마라‘ 중-

#행복 #지점 #명언 #과정 #좋은글 #도착 #생각 #정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937.html
kolaswqetsrq 11.01 21:11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이 와도 견뎌내고

꿈을 이루어 낼 수 잇는 힘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하지 않았음을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면 용기를 얻게 된다

어둠의 터널을 아직 들어가보지 않고서는

내가 가장 힘들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다만, 힘들다고 느낄 뿐이다.

그러나 나는 힘들다고 느끼고

있는 그대들을 응원한다

지금 힘들다고 느끼고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인생을 경주하고 있다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도전이 아니더라도

지금 괴로울 만큼 힘들다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절망과 한숨이 희망과 경탄으로 바뀌는 것

그것이 삶의 드라마다

지금 힘들다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전옥표 / 지금 힘들다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터널 #자격 #인생 #상황 #응원 #세상 #지금 #좋은글 #어둠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8983.html
kolaswqetsrq 11.01 21:12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자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자

사람들은 무수한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

그 인연속에 고운 사랑도 엮어가지만

그 인연속에 미움도 엮어지는게 있다.

고운 사람이 있는 반면,

미운 사람도 있고

반기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외면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고운 인연도 있지만 피하고 싶은 악연도 있다.

우린 사람을 만날 때

반가운 사람일 때는 행복함이 충족해온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만날 때는

그다지 반갑지 않아 무료함이 몰려온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에게 괴로움을 주는 사람도있다.

과연 나는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있는가

과연 나는 남들에게 어떤 인상을 심어 주었는가.

한번 만나면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한번 만나고 난 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진솔하고 정겨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나는 분명 좋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야 말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아닐까

이런 사람이야 말로.

다시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한번 만나고 나서

좋은 감정을 얻지 못하게 한다면,

자신뿐만아니라 타인에게도 불행에 속할것이다.

언제든 만나도 반가운 사람으로

고마운 사람으로.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언제든 만나고 헤어져도

다시 만나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자

좋은글 중에서

#사랑 #좋은글 #사람 #명언 #미움 #인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1402.html
kolaswqetsrq 11.01 21:13
언젠가

언젠가

우리가 지나온 삶을 뒤돌아 봤을때

미련이 많아 질척이는 삶보다

쿨하게 후회없이 살았다고

얘기할 수 있기를

언젠가

당신이 나를 떠올렸을때

그저 기억에서 지우고픈 한사람이 아니라

항상 그림자처럼 내 주위를 살펴준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우리는 잠시 하늘에서 소풍나온

순서를 기다리다 어렵게 나온

각자 부여받은 삶을 위해 사는거라네

무엇을 위해 살면 좋을까

묵묵히 지켜주는 사랑도 해보고

마음에 품은 큰 꿈을 이루면서

여한없이 삶을 만끽해야지

나를 위한 무대에서

한바탕 후회없이 놀아도 보자

남자라면 대범함을

여자라면 아름다움을

평생 추구하며 살기를

장용숙 / 꿈꾸는 원덕사

#기억 #미련 #사랑 #명언 #사람 #하늘 #좋은글 #소풍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622.html
kolaswqetsrq 11.01 21:13
나를 표현하는 방법 10가지

나를 표현하는 방법 10가지

01.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다.

개인감정이나 고정 관념을 보태지 않고 듣는 습관을 가져야 상대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02. 논리적으로 말한다.

정확한 근거도 없이 무책임하게 말하면 의사전달이 모호해져 상대방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03.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언어에 감정이 개입되면 참뜻을 파악하기 힘들다.

04. 핵심을 요약하고 압축한다.

말도 돈처럼 절약해야 한다. 쓸데없이 길게 말하면 핵심이 흐려진다. 또 말을 자꾸 반복하는 습관은 좋지 않다.

05. 예의를 지킨다.

무례하게 말하는 것과 나의 주장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것과는 다르다.반대 의견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상대의 대응도 달라진다는 것을 명심한다.

06. 상황과 대상에 따라 말하는 요령이 다르다.

어떤 말을 할 때 급박한 상황과 여유 있는 상황에서의 요령이 다르며, 어린이에게 설명하는 방법과 어른에게 설명하는 방법은 분명 다르다.

07. 긍정적으로 말한다.

매사에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긍정적으로 말하게 된다.

08. 말하기 전에 철저하게 준비한다.

생각나는 대로 불쑥 말하면 금방 후회하기 십상이다. 말하기 전에 심호흡을 하면서 내용을 가다듬은 다음 입을 열어라.

09. 바른 발성과 발음을 의식한다.

정확한 발음과 확신에 찬 음성은 상대에게 호감을 준다. 목소리 훈련을 통해 말을 잘하기 위한 기초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좋다.

10. 태도와 표정을 일치시킨다.

말하는 내용과 태도, 표정이 일치해야 주제의 전달이 쉽고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준다.

-Vingle 글 옮김-

#표현 #상대방 #습관 #관념 #방법 #개인 #명언 #감정 #좋은글 #고정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0_40.html
kolaswqetsrq 11.01 21:14
이런 약속 지켜보신 적 있으십니까?

이런 약속 지켜보신 적 있으십니까?

언제 한 번 저녁이나 함께 합시다.

언제 한 번 차나 한잔 합시다.

언제 한 번 만납시다.

언제 한 번 모시겠습니다.

언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언제 한 번 다시 오겠습니다.

언제 한 번 연락드리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의 입에 붙어버린 말, "언제 한번" 오늘은 또 몇 번이나 그런 인사를 하셨습니까.

악수를 하면서 전화를 끊으면서 메일을 끝내면서 아내에게 아들딸에게 부모님께 선생님께 친구에게 선배에게 후배에게 직장 동료에게, 거래처 파트너에게

′언제 한번′은 오지 않습니다. ′오늘 저녁약속′이 있느냐고 물어보십시오. ′이번 주말′이 한가한지 알아보십시오. 아니 ′지금′ 만날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십시오.

′사랑′과 ′진심′이 담긴 인사라면 ′언제 한번′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미루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대한민국 이야기’ 중-

#명언 #연락 #메일 #저녁 #한잔 #약속 #아들딸 #오늘 #좋은글 #선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8529.html
kolaswqetsrq 11.01 21:15
상한마음 빨리 극복하기

<상한마음 빨리 극복하기>

마음은 종이와 같다. 종이는 한번 구겨지면 다시 원상태로 돌리기가 쉽지 않다. 이 종이를 책으로 눌러놓거나 다리미로 다려서 펼 수는 있다. 그러나 원상태로 펴기란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우리의 마음을 구겨진 상태로 그대로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구겨진 종이를 펴듯 우리의 마음을 펴야 할 것이다.

상한 마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1. 기분이 나빠지거나 속이 상할 때면 가능한 빨리 그 기분을 수습해야 한다. 단 1초라도 상한 마음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본인에게는 물론 주위사람에게도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이 상하여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쀼루퉁 해져서 상한 마음을 계속 유지하지 말라. 원한의 마음이나 상처 입은 마음은 스스로 치료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길어지는 시간만큼 자신에게 손해다.

2. 상한 마음을 발산해라. 상한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병이 된다. 믿을만한 사람이나 존경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자문을 구 하거나 불만을 마음껏 토로하라. 혹시 어느 누구에게도 말 못할 상황이라면 신에게 기도하라. 그리고 불만이나 상한 마음을 잊어버려라.

3. 마음에 상처를 입힌 당사자에게 섭섭하다는 내용을 정확히 알려라. 누구에게나 사람은 실수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또한 섭섭하다는 내용의 말을 해야 한다. 그래야 빨리 풀어진다. 내성적인 사람은 직접 말하기 어려우므로 편지로 써라. 편지가 오히려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용서를 구하면 과감하게 용서하라. 그리고 마음을 풀어라.

4. 혹시 상한 마음이 자신의 과민으로 상황을 부풀리지 않았나를 점검해 보라. 상대방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한 말인데 정작 본인은 무슨 계획을 가지고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고자 하거나 고통을 주고자 한다고 과민 반응을 하지나 않았는지 점검해 보라.

5. 마음을 상하게 한 당사자에게 가장 귀한 선물을 하라. 사람이 원수에게 선물을 한다는 것은 죽음보다 어렵다. 그러나 마음은 전혀 베풀고 싶지 않으나 반대 행동을 취하여 스스로 귀한 선물을 사서 자신이 전해주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시켜 보내주라. 상대방은 생각하지 못할 만큼의 속도로 빠른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6. 반드시 상한 마음은 치료가 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희망찬 날을 기대하라. 인생은 희로애락이다. 화가 날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불행할 때가 있으면 행복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어두움의 터널을 지날 때 터널의 끝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상한 마음도 반드시 희망의 마음으로, 밝은 마음으로 된다는 그 자랑스러운 마음, 바로 이 마음을 가져라.

#마음 #좋은글 #상한 #극복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113.html
kolaswqetsrq 11.01 21:15
일이 막힐 때는 무조건 걸어라

일이 막힐 때는 무조건 걸어라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에 맞서는

최고의 방법은

잡념이 생기지 않은 몸을 만드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몸은 날아갈 듯 가볍고,

기분은 상쾌하고,

에너지는 가득 차오르게 됩니다.

내 몸의 상태가 좋을 때는

어떤 문제도

더 이상 문제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일이 막힐 때는

무조건 걸어보세요.

걷다보면

불필요한 생각은 떨어져 나가고,

누군가에게

그 답을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답을 알게 됩니다.

신선한 에너지가

몸 구석구석까지 흐르기 시작하면

의식은 명료해지고 사고는 단순해집니다.

그래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되고

행동도 진취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걸음을 잘 걷는 습관 한가지가

여러분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걸음아 날 살려라, 장생보법’ 중-

#구석구석 #이상 #잡념 #방법 #운동 #명언 #기분 #생각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401.html
kolaswqetsrq 11.01 21:16
말은 마음의 그림

말은 마음의 그림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보입니다

마음이 말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잔잔하면 말도 잔잔하고

마음이 거칠면 말도 거칩니다

마음이 부드러우면 말도 부드럽고

마음이 차가우면 말도 차갑습니다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

그 사람 옆에 내 마음이

그려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말이 부드러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말을 하기 위하여

좋은 마음을 품게 될 것입니다

좋은 마음이 좋은 말을 하고

좋은 말이 좋은 그림을 그립니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유창한 표현보다

내 마음의 진실이 중요하겠죠?

-‘사랑의 인사’ 중-

#마음 #그림 #명언 #사람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524.html
kolaswqetsrq 11.01 21:17
성공하는 18가지 말의 법칙

<성공하는 18가지 말의 법칙>

1.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듯 말의 파장이 운명을 결정짓는다.

2. 아침에 첫 마디는 중요하다. 밝고 신나는 말로 하루를 열어라.

3. 말은 에너지다. 좋은 에너지를 충전시켜라.

4. 말에는 각인효과가 있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 그대로 된다.

5. 밝은 음색(音色)을 만들어라. 소리 색깔이 변하면 운세도 변한다.

6. 정성을 심어 말하라. 정성스런 말은 소망 성취의 밑바탕이다.

7. 투명스러운 말투는 들어온 복도 깨뜨린다. 발성 연습을 게을리 말라.

8. 불평불만만 쏟으면 안되는 일만 연속된다. 투덜대는 버릇은 악성 바이러스 이다.

9. 열심히 경청하면 마음의 소리까지 들린다. 상대 말에 집중하라.

10. 시비에 끼어들지 말고 자기 길로 가라. 두고두고 후회한다.

11. 말에는 견인력이 있다. 없는 말 퍼뜨리면 재앙이 따른다.

12. 부정적인 언어는 불운을 초래한다. 긍정적인 언어로 복을 지어라.

13. 때로는 침묵하라. 침묵은 최상의 언어 이다.

14. 눈으로 말하라. 눈은 입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15.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좋은날 입니다." 를 항상 사용하라.

16. 대화에도 질서가 있다. 끼어들기, 가로채기는 예의가 아니다.

17. 잘못하면 용서를 빌고, 용서를 빌면 용서하라. 그래야 사랑과 평화가 깃든다.

18. 좋은 책은 소리 내서 읽고 또 읽어라. 놀라운 변화가 나타난다.

#법칙 #좋은글 #성공 #운명 #아침 #명언 #충전 #각인 #파문 #파장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8_21.html
kolaswqetsrq 11.01 21:18
친구에 관한 13가지 명언

친구에 관한 13가지 명언

01. 친구는 모든 것을 나눈다. - 플라톤

02. 누구에게나 친구는 어느 누구에게도 친구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03. 성공은 친구를 만들고, 역경은 친구를 시험한다. -퍼블릴리어스 사이러스

04. 친구를 고르는 데는 천천히, 친구를 바꾸는 데는 더 천천히. -벤자민 프랭클린

05. 새벽 4시에 전화를 걸 수 있는 친구라면 중요한 친구이다. -마를렌 디트리히

06. 불행은 누가 진정한 친구가 아닌지를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

07. 풍요 속에서는 친구들이 나를 알게 되고, 역경 속에서는 내가 친구를 알게 된다. -존 철튼 콜린스

08. 집을 가장 아름답게 꾸며주는 것은 자주 찾아오는 친구들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09.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으로 삼지 말라. (無友不如己者 / 무우불여기자) -공자

10. 만약 누군가를 당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다면, 먼저 당신이 그의 진정한 친구임을 확신시켜라. -에이브러햄 링컨

11. 우정이라는 기계에 잘 정제된 예의라는 기름을 바르는 것은 현명하다. -콜레트

12. 전화번호부를 뒤져 전화를 걸고 차로 공항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라. 데려다 주는 사람이 당신의 진정한 친구다. 나머지는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저 지인일뿐이다. -제이 레노

13. 여러분과 리무진을 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정작 여러분이 원하는 사람은 리무진이 고장났을 때 같이 버스를 타 줄 사람입니다. -오프라 윈프리

#불행 #우정 #새벽 #시험 #좋은글 #링컨 #명언 #확신 #성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3_25.html
kolaswqetsrq 11.01 21:18
진실로 강한 사람은 웃음으로 무장한 사람입니다.

진실로 강한 사람은 웃음으로 무장한 사람입니다.

웃음은 상대방에게 친근감을 갖게 하고 즐거움을 느끼게 합니다.

얼굴을 찌푸린 미인보다는 바보의 웃는 얼굴이 우리를 더욱 기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웃을 일이 없을 때, 기분이 좋지 않을 때라도 웃어야 합니다. 웃음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자신의 기분도 전환시키기 때문입니다.

미소를 짓지 않는 사람은 은행에 억만 불을 맡겨 놓고 수표장을 갖지 않은 사람과 같습니다.

 "
미소란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 덕분에 나는 행복합니다. 당신을 만나 정말 기쁩니다란 무언의 신호입니다.
",

행복은 어떤 여건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행복을 원한다면 행복만 생각하십시오.

오늘 이 시간부터 미소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그러면 성공인이 되고 행복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삶의 행복을 주는 지혜’ 중-

#웃음 #좋은글 #친근감 #사람 #즐거움 #상대방 #무장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084.html
kolaswqetsrq 11.01 21:19
왠지 그런 날 있잖아요

왠지 그런 날 있잖아요

술 한잔 하고 싶은 날

내 맘속 모든 걸 털어놓고

나 이런 사람이었어

나 이런 날이었어라고

하소연 하고 싶은 날이요

사랑하는 사람이

오늘 어땠냐며

힘들었지 라며

넓은 어깨를 빌려주는

그런 날이요

피곤한 날이지만

친구들이 그 피로

우리가 풀어줄게라며

기어코 불러내는 날이요

왠지 모를 기대가 되고

무엇이든 해야 할 그런 날이요

있잖아요

전 그런 날이 늘 오늘이었으면 해요

당신도 즐겁고 나도 즐거운

웃음이 가득한 그런 날

왠지 그런 날 있잖아요

전레오 / 왠지 그런날

#피곤 #사랑 #오늘 #맘속 #하소연 #사람 #좋은글 #명언 #한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241.html
kolaswqetsrq 11.01 21:20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그저 하고 대충 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하다 혹 운이 좋아

작은 성취를 이룬다 해도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노력이 따르지 않은 한때의 행운은

복권 당첨처럼 오히려 그의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남이 미치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려면

미치지 않고는 안 된다.

미쳐야 미친다.

미치려면(及) 미쳐라(狂)

지켜보는 이에게 광기로 비칠 만큼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우고,

미친 듯이 몰두하지 않고는

결코 남들보다 우뚝한 보람을 나타낼 수가 없다.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 / 미쳐야 미친다

#대충 #행운 #인생 #명언 #노력 #불급 #복권 #좋은글 #당첨 #세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1032.html
kolaswqetsrq 11.01 21:21
버려야할 마음 5가지

버려야할 마음 5가지

1. 의심(疑心)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 자신이 가고 있는 길,

자신이 보고 있는 것, 자신이 듣고 있는 것,

자신의 생각, 자신의 판단력, 자신의 능력,

자신의 귀한 존재를 의심하지 말라.

2. 소심(小心)

마음을 대범하게 쓰는 사람,

무엇이 두렵겠는가.

큰사람이 되자, 큰마음을 갖자.

당당함을 내 보이는 자가 되라.

3. 변심(變心)

끝은 처음과 같아야 한다.

견고한 믿음으로부터 목표를 향해 언제나 첫마음으로

흔들리지 말자.

4. 교심(驕心)

교만해지면 사람을 잃는다.

매사 도전적이되, 머리 숙일 줄도 알아야 한다.

승부를 즐기되, 승리에 집착하지는 말라.

5. 원심(怨心)

원망하는 마음은 스스로를 피곤하게 한다.

소심하게 살아 왔음도, 굳건하지 못했음 마저도

원망하지 말자.

옹졸한 마음을 버리면 앞이 보인다.

마음 안에 원(怨)이 없어야 바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좋은글 #명언 #자신 #마음 #의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5_25.html
kolaswqetsrq 11.01 21:21
웃음의 34가지 테크닉

웃음의 34가지 테크닉

01. 힘차게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라. 활기찬 하루가 펼쳐진다.

02. 세수할 때 거울을 보고 미소를 지어라. 거울 속의 사람도 나에게 미소를 보낸다.

03. 밥을 그냥 먹지 말라. 웃으며 먹고 나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

04. 모르는 사람에게도 미소를 보여라. 마음이 열리고 기쁨이 넘친다.

05. 웃으며 출근하고 웃으며 퇴근하라. 그 안에 천국이 들어있다.

06. 만나는 사람마다 웃으며 대하라. 인기인이 될 수 있다.

07. 꽃을 그냥 보지 말라. 꽃처럼 웃으며 감상하라.

08. 남을 웃겨라. 내가 있는 곳이 웃음 천국이 된다.

09. 결혼식에서 떠들지 말고 큰 소리로 웃어라. 그것이 축하의 표시이다.

10. 신랑 신부는 식이 끝날 때까지 웃어라. 새로운 출발이 기쁨으로 충만해 진다.

11. 집에 들어올 때 웃어라. 행복한 가정이 꽃피게 된다.

12. 사랑을 고백할 때 웃으면서 하라. 틀림없이 점수가 올라간다.

13. 화장실은 근심을 날려 보내는 곳이다. 웃으면 근심 걱정 모두 날아간다.

14. 웃으면서 물건을 팔라. 한 살 것 두 개를 사게된다.

15. 물건을 살 때 웃으면서 사라. 서비스가 달라진다.

16. 돈을 빌릴 때 웃으면서 말하라. 웃는 얼굴에 침뱉지 못한다.

17. 옛날 웃었던 일을 회상하며 웃어라. 웃음의 양이 배로 늘어난다.

18. 실수했던 일을 떠올려라. 기쁨이 샘솟고 웃음이 절로 난다.

19. 웃기는 책을 그냥 읽지 말라. 웃으면서 읽어 보라.

20. 도둑이 들어와도 두려워말고 웃어라. 도둑이 놀라서 도망친다.

21. 웃기는 개그맨처럼 행동해보라. 어디서나 환영 받는다.

22. 비디오 웃기는 것을 선택하라. 웃음 전문가가 된다.

23. 화날 때 화내는 것은 누구나 한다. 화가 나도 웃으면 화가 복이 된다.

24. 우울할 때 웃어라. 우울증도 웃음 앞에서는 맥을 쓰지 못한다.

25. 힘들 때 웃어라. 힘이 저절로 생겨난다.

26. 웃는 사진을 걸어 놓고 수시로 바라보라. 웃음이 절로 난다.

27. 웃음 노트를 만들고 웃겼던 일 웃었던 일을 기록하라. 웃음도 학습이다.

28. 시간을 정해놓고 웃어라. 그리고 시간을 점점 늘려라.

29. 만나는 사람을 죽은 부모 살아온 것 같이 대하라. 기쁨과 감사함이 충만해진다.

30. 속상하게 하는 뉴스를 보지 말라. 그것은 웃음의 적이다.

31. 회의할 때 먼저 웃고 시작하라.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32. 오래 살려면 웃어라. 1분 웃으면 이틀을 더 산다.

33. 돈을 벌려면 웃어라. 5분간 웃을 때 오백만원 상당의 엔돌핀이 몸에서 생성된다.

34. 죽을 때도 웃어라. 천국의 문은 저절로 열리게 된다.

-BLOG 글 옮김-

#시작 #마음 #거울 #테크닉 #사람 #명언 #웃음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34_25.html
kolaswqetsrq 11.01 21:22
서로 기대고 사는 인연

서로 기대고 사는 인연

우리는 많은 사물과

자연에 기대어 살아 갑니다.

우울한 날에는

하늘에 기대고 슬픈 날에는

가로등에 기댑니다.

기쁜 날에는 나무에 기대고

부푼 날에는 별에 기댑니다.

사랑하면 꽃에 기대고

이별하면 달에 기댑니다.

우리가 기대고 사는 것이

어디 사물과 자연뿐이리요.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대어 살아 갑니다.

내가 건네는 인사는

타인을 향한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 아닌 타인입니다.

나를 울게하는 사람도 타인

나를 웃게하는 사람도 타인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비스듬히

기댄다는 것은

그의 마음에

내 맘이 스며드는 일입니다.

그가 슬프면 내 마음에도

슬픔이 번지고 그가 웃으면

내 마음에도 기쁨이 퍼집니다.

서로 기대고 산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연이겠지요.

그 인연의 언덕은

어느 날은 흐리고

어느 날은 맑게 갤 겁니다.

흐리면 흐린 대로

개면 갠 대로

그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이 서로 기대고 살아가는

인연의 덕목이겠지요

-송정림 ‘참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中-

#좋은글 #사물 #인연 #하늘 #자연 #가로등 #명언 #사랑 #이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8876.html
kolaswqetsrq 11.01 21:22
친구가 안 좋은 일로 찾아와

친구가 안 좋은 일로 찾아와

푸념을 늘어 놓거든

논리적인 관점은 조금 밀어두고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세요.

친구가 필요한건 충고가 아닌

내편입니다.

친구가 찾아와 안 좋은 일로

하염없이 울거든

그만 울라고 핀잔 주지 말고

그 울음을 다 토해내고 시원 해 질 때

까지 눈물을 닦아 주고

등을 토닥여 주세요.

친구에게 필요한건

누군가의 따스한 품과

위로의 손길입니다.

-유지나 ‘지필문학(2014.12)’-

#관점 #명언 #공감 #좋은글 #푸념 #내편 #울음 #손길 #눈물 #핀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837.html
kolaswqetsrq 11.01 21:23
용서는 사랑의 완성입니다

용서는 사랑의 완성입니다

용서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랑은

용서하는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용서는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설령 상처를 받았다 할지라도

상대방의 실수를 용서해주세요.

나도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니까요.

-우리들의 아름다운 삶-

#사랑 #명언 #생각 #세상 #좋은글 #완성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080.html
kolaswqetsrq 11.01 21:24
성공을 부르는 승자의 조건

성공을 부르는 승자의 조건

1. 성공은 또 다른 시작이다,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라. 성공은 결코 끝이 없는 과정이다. 시작하지 않으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간신히 바꾼 나쁜 습관으로 되돌아간다.

2. 극복 못할 역경은 없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좌절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교훈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꿈을 포기하고 주저 앉을 것인가? 어디에나 희망의 여지는 있다.

3. 무서울만큼 끈기를 지니고, 자기 자신을 이겨내라. 사람을 계속 훌륭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끈기이다. 모든 잠재력을 계속 발휘하게 되는 것도 끈기이다. 꿈의 추구를 중지하지 말라.

4. 압박감을 이용하라,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겪게 되는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이겨라. 더욱 정력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5. 본받을만한 사람을 찾아,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배워라.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여행을 마친 사람들에게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성공은 자신의 경험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6. 대화의 기술을 계발하여, 좋은 인간 관계를 맺어라. 더 많이 듣고, 더 적게 말하여, 좋은 인상을 심어주어라. 그리고 항상 자기가 옳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7. 좋은 습관은 키우고, 나쁜 습관은 버려라. 성공의 비결은 좋은 습관을 계발하고 반복하여 그것을 제2의 천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늘 실천하라.

8.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오늘을 즐겨라. 긍정적인 태도를 갖지 못하면 성공가능성은그만큼 줄어든다. 그리고 현재에 충실하며, 현재를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9. 목표는 조금 벅차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세워라. 목표는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공은 일상생활에서 이루는 작은 성공들이 모인 결과이다. 작은 성공의 흥분감을 이어가라.

10. 자부심 없이는 어떤 성공도 이룰 수 없다. 강한 자부심 없이는 어떤 성공도 거둘 수 없다. 먼저 자부심을 반드시 획득해야 한다. 자신의 프로정신과 의지를 향상시켜라.

-릭 피티노-

#시작 #과정 #성공 #유혹 #조건 #좋은글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570.html
kolaswqetsrq 11.01 21:24
좋은 인간 관계를 맺는 7가지 습관

좋은 인간 관계를 맺는 7가지 습관

1. 자신을 잘 관리하라.

항상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라. 최고의 컨디션은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스러움이다.

 "
2. 3비를 절대 금하라.
",
 "
3비란 비난, 비판, 불평을 말한다. 링컨의 성공 비결은 절대 비판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 것이다.
",

3. 정중한 예의를 갖춰라.

실력 없는 것은 용납이 돼도 예의 없는 것은 용납이 안된다. 예절 있는 사람이 되라.

4. 상대방을 존중하고 세워주라.

사람에게는 인정 받고 대접 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상대를 높여 주어라. 인정해 주어라. 칭찬을 아끼지 말아라.

5.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 주어라.

마더 테레사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한 일은 사람들이 내게 와서 무언가 말할 때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준 것뿐입니다"

6. 인색하지 마라.

사람은 돈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인색한 사람은 부모라도 그 자식을 싫어한다. 돈을 잘 쓰면 그 돈이 그 사람을 빛나게 한다. 그러나 인색하면 사람들과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없다.

7.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고 배려하라.

낚시를 갈 때 아이스크림을 가져가지 않고 물고기가 원하는 미끼를 가져가는 것처럼 내 주장만 하지 말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으로 채워주어라.

-Facebook 글 옮김-

#자신 #습관 #인간 #기쁨 #마음 #좋은글 #노력 #명언 #컨디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7_25.html
kolaswqetsrq 11.01 21:25
여행

여행

인생은 기차여행과 같습니다.

역들이 있고,

경로도 바뀌고,

사고도 발생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이 기차에 타게되며

차표를 끊어주는 분은

부모님입니다.

우리는 부모님들이

항상 우리와 함께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들은

우리를 남겨두고

어느 역에서 내려 버립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른 승객들이 기차에 오르며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형제 자매들,

친구들, 자녀들 그리고

우리가 인생에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이들이 여행 중에 하차하여

우리 인생에 영원한 공허를 남깁니다.

많은 사람들은 소리도 없이 사라지기에

우리는 그들이 언제

기차에서 내렸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이 기차여행은 기쁨과 슬픔,

환상, 기대, 만남과 작별과 이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좋은 여행이란,

우리와 동행하는 승객들을

돕고 사랑하며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여행이 편안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될것입니다.

-‘보다’ 중-

#승객 #인생 #흐름 #명언 #시간 #발생 #좋은글 #여행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611.html
kolaswqetsrq 11.01 21:26
나이보다 젊게 사는 법 5가지

나이보다 젊게 사는 법 5가지

1. 물을 잘 마셔라.

식사하기 전 30분 전부터 식사하는 도중, 식사 뒤1시간까지는 물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이때 물을 많이 마시면 포도당의 흡수 속도가 빨라져 혈당과 인슐린 농도도 높아지는데, 다른 혈중 영양소는 모두 지방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또한 물을 위산을 희석시켜 소화를 방해한다. 그러나 이 시간대 외에는 하루 6~8컵 가량 물을 충분히 마셔주는 것이 신진 대사와 노폐물 분비를 촉진해 다이어트에도 좋다.

2. 바르게 걸어라.

걷기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정도로 당뇨, 고혈압, 심장병 등 성인병의 80퍼센트를 예방할 수 있다. 또 걸으면 뇌세포가 활성화되면서 스트레스도 사라진다. 체지방은 걱기 시작해서 15분 정도 지나야 분해되기 시작하므로 최소한 30~40분 정도 쉬지 않고 걸어야 효과적이다. 또 걸을 때에는 가볍게 숨이 찰 정도의 속도로 걷는다. 걷고 난 뒤에는 저지방 우유나 요구르트 등 유제품으로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근육의 피로 회복을 돕는다.

3. 소리내어 웃어라.

독일의 한 의학 전문지에 의하면 웃음은 소화액 분비를 촉진시켜 식욕을 생기게 하고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웃는지 진지하게 따져보고 재미난 이야기를 기억해 두었다가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과 나누어 보자. 가까운 사람끼리 나누는 칭찬과 웃음은 어떤 보약보다도 건강에 이롭다.

4. 수면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창조적인 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하루 8시간 정도의 잠을 자야 한다. 깊은 수면에 방해가 되는 커피는 오후 2시 이후엔 마시지 말고 흡연, 음주 등을 멀리한다. 또 취침 전 3~4시간 사이에는 심한 육체 활동을 삼간다. 잠자리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면 빛과 소리가 수면에 나쁜 영황을 준다는 점도 잊지 말자.

5. 사랑하면 신난다.

긴장, 초조, 걱정, 짜증 등 부정적인 감정은 질병을 일으키는 요소 중 하나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좋아할 만한 것을 찾자. 평생 살면서 사랑하는 것 한 가지만 있어도 증오의 감정이 싹틀 수가 없다.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모든 것이 신나기 때문이다.

-BLOG 글 옮김-

#저장 #도중 #좋은글 #혈중 #포도당 #시간 #지방 #혈당 #명언 #인슐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5_22.html
kolaswqetsrq 11.01 21:26
걱정하는 습관을 버리는 방법 6가지

걱정하는 습관을 버리는 방법 6가지

1. 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꿔라.

문제를 두고 걱정부터 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이 아니라, 나쁜 습관에 불과하다. 걱정하는 습관을 버리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내게 생긴 문제들이 골칫거리가 아니라, 해결점을 찾기 위해 도전하는 힘을 주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자.

2. 기분 좋은 잠, 상쾌한 아침을!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면서 그날의 걱정거리들을 되뇌는 것은 내일까지 걱정하는 하루로 만들어 버린다. 잠자리에 들 때 마음을 편한히 하고,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자.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나면, 어제의 문제들을 냉철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3.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라.

오늘 해결해야 할 산더미 같이 쌓인 일과 문제들을 헤아려 보느라 마음을 무겁게 하지 말라.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신께 모든 것을 먼저 아뢰자. 믿음으로 하는 기도는 마음을 평안하게 하며 용기를 준다. 기도하는 순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출발점이 된다.

4. 긍정적인 말을 하라.

생각을 말로 하지만 말에 따라서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난 못해", "큰일이야!", "어떻게 하지?" 이런 식의 부정적인 말들을 모두 버리자. 긍정적이고 확신에 찬 말들로 생활을 채우라. 말하는 습관을 바꾸는 것은 매순간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5. 도움을 주는 글귀들을 외우자.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고, 힘을 내게 하는 좋은 말들을 외워 두자. 마음에 와 닿는 말들이 나를 성장시켜 주는 한마디가 될 수 있다. 그런 말들이 무의식중에 창조적인 생각으로 바뀌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한다.

6.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만남을 가져라.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마음과 생각을 풍요롭고 새롭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내 모습을 반성 해 보고, 서로를 격려함으로써 약한 의지를 다시 세울 수 있다. 종교모임이나 자원봉사단체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기회다.

#자연 #감정 #시각 #방법 #인간 #걱정 #명언 #습관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6_23.html
kolaswqetsrq 11.01 21:27
소중한 사람이 이유 없이 화를 낸다고 생각되면

소중한 사람이 이유 없이 화를 낸다고 생각되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세요

당신은 믿었던 사람한테 상처받은 적 있나요?

그 아픔이 그 어떤 일보다

몇 배 더 크게 느껴진 적 없나요?

가까우니까, 사랑하니까, 믿으니까

잘못한 일이 있어도 용서해주고

다른 사람보다 당신을

더 많이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상대방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아픈 가시가 되어 마음에 와 박힌 적은 없나요?

어쩌면 오늘 당신의 소중한 그 사람도

그 때의 당신과 똑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모든 사람이 당신의 고통에

동참할 것이라고 믿지 마세요.

당신이 슬플 때 그 사람이

같이 울어주길 기대하지도 마세요.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남의 고뿔보다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프게 느껴지는 법이랍니다.

내가 힘들면 상대방은 더 힘들 거라 생각하세요.

나의 어려움을 누가 덜어주길 바라지 마세요

소중한 사람을 위해,

내가 좀 더 무거운 짐을 진다고 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신영란 / 나를 위한 저녁 기도

#사랑 #자신 #아픔 #명언 #사람 #좋은글 #생각 #상대방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8250.html
kolaswqetsrq 11.01 21:28
소크라테스의 조언

소크라테스의 조언

01. 가장 적은 것으로도 만족하는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02. 살기 위해서 먹어야지 먹기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된다.

03. 자신을 화나게 했던 행동을 다른 이에게 행하지 말라.

04. 모든 언행을 칭찬하는 자보다 결점을 친절하게 말해주는 친구를 가까이 하라.

05. 반드시 결혼하라. 좋은 아내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다. 악처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

06. 인간사에는 안정된 것이 하나도 없음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성공에 들뜨거나 역경에 지나치게 의기소침하지 마라.

07. 바르게, 아름답게, 정의롭게 사는 것은 결국 모두 똑같은 것이다.

08.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09.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

10. 죽음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축복 중 최고의 축복이다.

#조언 #자신 #사람 #좋은글 #언행 #칭찬 #만족 #행동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8057.html
kolaswqetsrq 11.01 21:28
오뚝이

오뚝이

많이 넘어진 사람이

더 쉽게 일어납니다.

살다 보면 넘어질 일이

더 자주 생길지도 모릅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음이 흔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그냥 주저앉지 마세요.

다시 일어나세요.

넘어진 자리가 끝이 아닙니다.

넘어진 그 자리가,

포기하려던 그 자리가

새로 시작할 자리입니다.

시작만 하면

모든 게 다 가능합니다.

당신이니까,

당신이니까,

뭐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는 당신을 격려합니다.

당신을 믿습니다.

 "
-김이율 힐링북 중-
",

#마음 #가능 #명언 #링북 #사람 #좋은글 #시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414.html
kolaswqetsrq 11.01 21:29
5분의 시간 철학

5분의 시간 철학

01. 아침에 일어나려고 생각했던 시간보다 5분 먼저 일어나고,

02. 출근하는 직장에 다른 사람보다 5분 먼저 도착하고,

03. 착수하려고 마음 먹은 일은 5분 먼저 시작하고,

04. 각종 회합과 약속 장소에는 5분 먼저 도착하며,

05. 상사나 직장에서 지시했던 모든 업무는 그 지시 받은 시간보다 5분 먼저 달성하여 보고하고,

06. 실수를 했을 때는 5분 먼저 고백하고,

07. 상사에게 건의할 일이 있을 때는 잘 생각해 보고 5분 늦게 건의하고,

08. 직장에서 사표를 써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5분만 더 생각하고,

09. 또한 누가 내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더라도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5분 동안 생각하고 그 때 가서 말을 하고,

10. 무슨 결정을 내릴 때에는 5분 늦게 결정하고 5분 빨리 착수하며,

11. 목표를 세울 때에는 5분 빨리 세우도록 할 것이며,

12. 남의 장점을 다른 사람보다 5분 먼저 칭찬하고,

13. 장거리를 자동차로 달릴 때에는 5분 늦게 달리도록 하고,

14. 남과 토론할 때나 교섭할 때는 상대방보다 5분 늦게 말하고,

15. 남의 집에 방문할 때는 용무를 마치고, 예정된 시간보다 5분 먼저 일어 나고,

16. 상대방의 이야기의 핵심을 5분 빨리 인식하여 감을 잡고,

17. 다른 사람이나 실수에 대해서 비판할 일이 있을 때에는 남보다 5분 늦게 비판하며,

18. 실패할 일이거나 기분 나쁜 일이 생겼을 때에는 5분 빨리 잊어버리고,

19. 무슨 일이 잘 안되거나 어려울 때에는 즉시 포기하지 말고 5분 늦게 포기할 일이다.

20. 전혀 용서할 수 없는 상대의 잘못이라도 그 상대가 잘못을 뉘우치기 전에 그 잘못을 5분 먼저 용서하고,

21. 상대방의 질책이나 하소연을 5분 정도 들어주고 나의 변명이나 설명은 5분 늦게 시작하고,

22. 시간을 제압하는 사람이 운명을 제압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내가 차고 있는 시계의 바늘을 5분 빨리 돌려놓으며,

23. 잠자리에 들 때엔 예정된 시간보다 5분 늦게 취침한다

-‘성공하는 사람들’ 중-

#명언 #아침 #직장 #시간 #생각 #출근 #사람 #철학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5_23.html
kolaswqetsrq 11.01 21:30
인연은 받아들이고 집착은 놓아라

인연은 받아들이고 집착은 놓아라

미워한다고 소중한 생명에 대하여

폭력을 쓰거나 괴롭히지 말며,

좋아한다고 너무 집착하여

곁에두고자 애쓰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기고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증오와 원망이 생기나니

사랑과 미움을 다 놓아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너무 좋아할 것도 너무 싫어할 것도 없다.

너무 좋아해도 괴롭고,너무 미워해도 괴롭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고,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이 두 가지 분별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늙는 괴로움도 젊음을 좋아하는데서 오고,

병의 괴로움도 건강을 좋아하는데서 오며,

죽음 또한 삶을 좋아함,

즉 살고자 하는 집착에서 오고,

사랑의 아픔도사람을 좋아하는 데서 오고,

가난의 괴로움도 부유함을 좋아하는데서 오고,

이렇듯 모든 괴로움은 좋고 싫은

두 가지 분별로 인해 온다.

좋고 싫은 것만 없다면 괴로울 것도 없고

마음은 고요한 평화에 이른다.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그냥 돌처럼

무감각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사랑을 하되 집착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더라도

거기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마음이 그 곳에

딱 머물러 집착하게 되면

그 때부터 분별의 괴로움은 시작된다.

사랑이 오면 사랑을 하고, 미움이 오면

미워하되 머무는 바 없이 해야 한다.

인연따라 마음을 일으키고,

인연따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집착만은 놓아야 한다.

이것이 인연은 받아들이고 집착은 놓는’

수행자의 걸림없는 삶이다.

사랑도 미움도 놓아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수행자의 길이다.

-- 법정스님--

#명언 #좋은글 #사람 #사랑 #생명 #폭력 #집착 #인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230.html
kolaswqetsrq 11.01 21:30
좋은 친구란

좋은 친구란

친구가 안 좋은 일로 찾아와

푸념을 늘어 놓거든

논리적인 관점은 조금 밀어두고

잘 들어 주고 공감해주세요.

친구가 필요한 건

충고가 아닌 내 편입니다.

친구가 찾아와

안좋은 일로 하염없이 울거든

그만 울라고 핀잔 주지 말고

그 울음을 다 토해내고

시원해 질 때까지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토닥여 주세요.

친구에게 필요한건

누군가의 따뜻한 품과

위로의 손길입니다.

-유지나-

#울음 #명언 #손길 #핀잔 #공감 #눈물 #좋은글 #푸념 #관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549.html
kolaswqetsrq 11.01 21:31
길가에 풀처럼 그냥 살면 됩니다.

길가에 풀처럼 그냥 살면 됩니다.

우리는 흔히 왜 사느냐고

인생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러나 삶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은 의미를 갖고 사는게 아니라

그냥 사는 겁니다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 마세요

그러면 또 하나의 굴레만 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풀꽃입니다.

길가에 풀처럼

그냥 살면 됩니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나는 특별해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하루 하루 삶에 만족 못하고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중생이 되는 겁니다.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같은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인생이 그대로 자유롭습니다.

내가 남보다 잘 나고 싶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인생이 피곤한 겁니다.

진정으로 자유를 원하고

행복을 바란다면

마음을 가볍게 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삶이 별게 아닌 줄 알면

도리어 삶이 위대해 집니다.

-법륜 스님-

#명언 #인생 #특별 #풀꽃 #생각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548.html
kolaswqetsrq 11.01 21:32
간절하지 않으면 꿈도 꾸지 마라.

간절하지 않으면 꿈도 꾸지 마라.

높은 목표를 달성하려면

간절한 바람이 잠재의식에까지

미칠 정도로 곧고 강해야 한다.

주위의 시선에

우왕좌왕하지 말아야 한다.

하고 싶다면, 하고자 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길을 가겠다고 굳게 다짐하라.

그리고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어라.

그런 간절함이 없다면

처음부터 꿈도 꾸지 마라.

 "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중-
",

#시선 #달성 #다짐 #좋은글 #바람 #처음 #명언 #우왕좌왕 #잠재의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248.html
kolaswqetsrq 11.01 21:32
삶은 나에게 일러주었네

삶은 나에게 일러주었네

나에게 없는 것을 욕심내기 보다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소중히 하고

감사히 여기라는 것을

삶은 내게 또 일러주었네

갖고 있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기를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면

외려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가?

내가 가질 수 있고

가질 수 없는 것은 또 무엇인가?

나는 여지껏 욕심만

무겁게 짊어지고 있었네

하지만 그 욕심을 잃을지라도

결행하는 것은 결코 욕심이 아니라고

내 마음이 나에게 이야기 하네

우리는 언젠가 때가되면

육신마저 버리고 가야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필요할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노력해야 할 것은

사실 얼마만큼 소유할 것인가가 아니라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얼마만큼

감사해야 할까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의 삶은 유한합니다.

반복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집착도 미련도 버려야 할 것이라면

가지고 있는 것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해야 할것이 아니라

버려야 할것은 과감이 버리고

새로운 것을 향해 희망찬 행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생각’ 중-

#좋은글 #집착 #육신 #명언 #마음 #결행 #욕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1053.html
kolaswqetsrq 11.01 21:33
이젠 울고 떼쓰고

이젠 울고 떼쓰고

그런게 통하지 않는 나이가

됐다는걸 다 알면서도

그러고 싶어질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맘껏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질때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늘 어른인 척 꼿꼿하게 서있기엔

우리의 삶이

그렇게 만만치만은 않으니까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 강세형

#어리광 #좋은글 #명언 #어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493.html
kolaswqetsrq 11.01 21:34
어느날, 다윗왕이 반지가 하나 갖고 싶었다. 그래서, 반지 세공사를 불러 그에게 말했다.

어느날, 다윗왕이 반지가 하나 갖고 싶었다. 그래서, 반지 세공사를 불러 그에게 말했다.

"나를 위한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내가 승리를 거두고 너무 기쁠때에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절망에 빠지고 시련에 처했을 때엔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넣어라"

"네, 알겠습니다. 폐하!"

세공사는 그 명령을 받들고 멋진 반지를 만들었다. 반지를 만든 후 어떤 글귀를 넣을지 계속 생각했지만... 좀처럼 다윗이 말한 두가지 의미를 지닌 좋은 글귀가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하고 고민해도 마땅히 좋은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다윗의 아들 지혜의 왕 솔로몬을 찾아갔다.

"왕자시여, 다윗왕께서 기쁠때 교만하지 않게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반지에 새기라고 하시는데, 어떤 글귀를 적으면 좋겠나이까?"

솔로몬이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이것 또한 지나 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Twitter 글 옮김-

#명언 #절망 #명령 #다윗 #교만 #생각 #좋은글 #시련 #고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234.html
kolaswqetsrq 11.01 21:34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
요즘은 세상에 재미있는 게 없어 라고 말한다.
",

나는 그말을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못하면서 어색하게 웃고 만 있다.

장난감 하나로 마음껏 행복해질수 있었던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행복해지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행복이 뭔지도 몰랐지만 행복했던 때 였다.

너무 복잡하게 살아온 걸까?

나는 생각을 최대한 단순화 시키려고 애를 쓴다.

과거의 추억은 씁쓸하고

현재의 일상은 지루하지만

그래도 지푸라기같은 행복의 끝자락은

어딘가에 있을거라고 믿어 본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과 재미있는 책과 좋은음악 과

보고싶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친구가 웃는다. 나도 웃는다.

 "
좋잖아?
",

나는 친구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속삭인다.

 "
살아 있으니까
",

황경신 / PAPER

#오랜만 #허탈 #요즘 #좋은글 #장난감 #행복 #부정 #인정 #세상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233.html
kolaswqetsrq 11.01 21:35
사업가와 장사꾼의 차이

< 사업가와 장사꾼의 차이 >

1. 사업가는 사업을 시스템으로 본다. 장사꾼은 사업을 눈앞의 돈으로만 본다.

2. 사업가는 1억을 투자해서 10억 벌겠다는 마인드가 있다. 장사꾼은 1억이 아까워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는다.

3. 사업가는 열매를 얻기 위해 씨를 뿌리지만, 장사꾼은 열매를 얻을려고 바구니를 챙겨온다.

4. 사업가는 파이를 키우는데 관심이 있다. 장사꾼은 내가 먹을 파이만 관심이 있다.

5. 사업가는 장사란 말을 싫어한다. 장사꾼은 본인이 사업가란 사실을 모른다.

6. 사업가는 자신이 프로 장사꾼이라고 생각한다. 장사꾼은 작은 이익이라도 챙기려 한다.

7. 사업가는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 장사꾼은 방법은 중요지 않고 결과만 중요하다고 본다.

8. 사업가는 남의 이목을 고려한다. 장사꾼은 남의 이목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9. 사업가는 전문지식습득에 공을 들인다. 장사꾼은 공부와 담을 쌓는다.

10. 사업가는 노후에 편안한 삶을 꿈꾼다. 장사꾼은 죽을때까지 장사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한다.

11. 사업가는 전문가를 알아보고 대우해준다. 장사꾼은 자기가 최고의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12. 사업가는 명예를 지키려 한다. 장사꾼은 돈을 지키려 한다.

13. 사업가는 거래 이후까지도 생각한다. 장사꾼은 거래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본다.

14. 사업가는 세계를 무대로 꿈을 펼친다. 장사꾼은 동네를 상대로 장사한다.

15. 사업가 가운데 무늬만 사업가가 있는가 하면, 동네장사라 하더라도 사업가의 마인드가 있어 사업가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490

#사업 #본인 #사실 #시스템 #좋은글 #관심 #눈앞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09.html
kolaswqetsrq 11.01 21:35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열가지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열가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지 말아야 할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원망하지 말 것,

자책하지 말 것,

현실을 부정하지 말 것,

궁상떨지 말 것,

조급해하지 말 것.

해야 할 것 다섯가지는 무엇일까요?

자신을 바로 알 것,

희망을 품을 것,

용기를 낼 것,

책을 읽을 것,

성공한 모습을 상상하고 행동할 것.

이 열가지가 우리의 삶을 결정 짓는다고 하네요. 실수하며 보낸 인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인생보다 훨씬 존경스러울 뿐 아니라 훨씬 더 유용합니다.

-김소벽-

#좋은글 #성공 #자신 #현실 #자책 #원망 #희망 #부정 #인생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289.html
kolaswqetsrq 11.01 21:36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일 중에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을 때야. 맛있는 것도 사주고, 경치 좋은 곳도 구경시켜 주고 싶은데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없을 때란 말이야.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일 중에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을 때야. 맛있는 것도 사주고, 경치 좋은 곳도 구경시켜 주고 싶은데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없을 때란 말이야.

오늘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고 오늘이 사랑을 받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어. 그러니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사랑 표현을 내일로 미루지 마.

내일은 상상 속에만 있는 거야. 아무도 내일을 살아 본 사람은 없어. 세월이 가도 매일 오늘만 사는 거야.

사랑도 오늘뿐이지

내일 할 수 있는 사랑은 없어.

-인생 9단 중에서-

#사람 #세상 #이름 #명언 #구경 #좋은글 #대답 #사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181.html
kolaswqetsrq 11.01 21:37
보고 싶다는 말은

보고 싶다는 말은

생전 처음 듣는 말처럼

오늘은 이 말이 새롭다

보고 싶은데......

비 오는 날의 첼로 소리 같기도 하고

맑은 날의 피아노 소리 같기도 한

너의 목소리

들을 때마다

노래가 되는 말

평생을 들어도

가슴이 뛰는 말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감칠맛 나는

네 말 속에 들어 있는

평범하지만 깊디깊은

그리움의 바다

보고 싶은데.......

나에게도

푸른 파도 밀려오고

내 마음에도 다시

새가 날고.......

-이해인 『작은 위로』-

#감칠맛 #마음 #오늘 #그리움 #평생 #사랑 #좋은글 #가슴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360.html
kolaswqetsrq 11.01 21:37
행복하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마세요.

행복하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마세요.

지금이 행복한 줄 알아야 합니다.

학생은 공부하는 게 좋아야 하고,

직장 다니는 사람은

직장 다니는 게 재미있어야 하고,

결혼한 사람은 결혼생활이 좋아야 해요.

저처럼 늙으면 늙은 것이 좋아야 하고,

혼자 살면 혼자 사는 게 좋아야 합니다.

저는 혼자 사니까 얼마나 좋아요?

전 세계를 돌아다녀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같이 있으면 같이 있어서 좋고,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서 좋아야 합니다.

살아 있을 때는 삶을 만끽하고,

때가 되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늘 주어진 상황이 좋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대로 좋아야 돼요.

-법륜스님-

#명언 #학생 #결혼 #좋은글 #행복 #사람 #직장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819.html
kolaswqetsrq 11.01 21:38
그래 그렇게 사는거야

그래 그렇게 사는거야

나 혼자 버거워

껴안을 수조차 없는 삶이라면

적당히 부대끼며

말없이 사는거야

그냥 그렇게

흘러가듯이 사는게야

인생이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모두가 똑같다면

어떻게 살겠어

뭔지 모르게

조금은 다를거라고

생각하면서 사는게지

단지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사는게

또 우리네 인생이지

숨가쁘게 오르막길

오르다 보면

내리막길도 나오고

어제 죽을듯이

힘들어 아팠다가도

오늘은 그런대로 살만해

어제의 일은

잊어버리며 사는게

우리네 인생이 아니겠어

더불어 사는게 인생이지

나 혼자 동떨어져

살 수만은 없는 거잖아

누군가 나의 위로가

필요하다면

마음으로 그의 어깨가

되어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 그렇게 사는거야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싶어지면

마음속에 가두어둔 말

거짓없이 친구에게 말하면서

함께 살아가는거야

그래 그렇게 살아가는거야

좋은글중에서

#인생 #조금 #오늘 #명언 #기대감 #내일 #생각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676.html
kolaswqetsrq 11.01 21:39
"그냥"이라는 말 참 좋아요.

"그냥"이라는 말 참 좋아요.

늘 변화 없이 그 모양 그대로라는 뜻

마음만으로 사랑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난처할때

"그냥" 했어요 라고 하면 다 포함하는 말, 사람으로 치면 변명하지 않고 허풍 떨지 않아도 "그냥" 통하는 사람

"그냥"이라는 말 참 좋아요.

자유다 속박이다 경계를 지우는 말

"그냥"살아요

"그냥" 좋아요.

산에 "그냥" 오르듯이

물이 "그냥" 흐르듯이

"그냥"이라는 말

"그냥" 좋아요.

-책 『행복한 우산』중-

#포함 #좋은글 #변명 #모양 #사랑 #명언 #허풍 #마음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778.html
kolaswqetsrq 11.01 21:39
충고하는 이를 미워하지 마세요

< 충고하는 이를 미워하지 마세요 >

충고하는 이를 미워하지 마세요.

그 사람이 정말 당신을 아끼는 사람일테니까요.

험담하는 이와 얘기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분명 당신 험담도 하고 다닐테니까요.

칭찬하는 이는 멀리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필히 당신이 배울점이 있을테니까요.

불평하는 이와 약속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당신이 힘들땐 부탁을 거절할 테니까요.

삶이 바쁜 이와 절교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훗날 특별한 시간을 선물할 테니까요.

돈 못버는 이를 무시하지 마세요.

그 사람이 성공해 도움을 줄 수도 있을 테니까요.

나이 적은 이는 싫어하지 마세요.

그 사람의 잠재력은 당신보다 더 높을 테니까요.

떠나가는 이 때문에 슬퍼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당신의 행복한 모습만 바랄테니까요.

핑계 많은 이와 여행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당신이 위험에 빠지면 모른체 할테니까요.

허세떠는 이와 함께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언젠가 당신을 이용하려 할테니까요.

실패당한 이를 아파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큰 교훈을 얻어서 더 커갈테니까요.

곤경당한 이를 외면하지 마세요.

그 사람도 꼭 기억하고 몇배로 갚아줄 테니까요.

좋아하는 이와 일을 하지 마세요.

그 사람과 분명히 다투게 될 수도 있을테니까요.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지 마세요.

그 사람과 함께 했었던 추억은 소중 할테니까요.

끝으로 나태하지 마세요.

모든 이가 당신을 응원하고 성공하길 바라니까요

#사람 #험담 #명언 #불평 #칭찬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895.html
kolaswqetsrq 11.01 21:40
내가 이런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꾸미지 않아 아름다운 사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과

아는 것을 애써 난척하지 않고도

자신의 지식을 나눌 수 있는

겸손함과 지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돋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있는 모습 그대로

아름답게 비치는 거울이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남에게 있는 소중한 것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선한 눈을 가지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화를 내거나 과장해 보이지 않는

온유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특함으로 자신의 유익을 헤아려

손해보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마음보다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남의 행복을 기뻐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삶의 지혜가 무엇인지 바로 알고

잔꾀를 부리지 않으며,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깊은 배려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잠깐동안의 억울함과 쓰라림을

묵묵히 견뎌 내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꾸며진 미소와 외모보다는

진실 된 마음과 생각으로 자신을 정갈하게

다듬을 줄 아는 지혜를 쌓으며,

가진 것이 적어도 나눠주는 기쁨을 맛보며

행복해 할 줄 아는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Story 글 옮김-

#겸손 #거울 #명언 #자신 #지식 #사람 #좋은글 #모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777.html
kolaswqetsrq 11.01 21:41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아주 많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어린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절로 웃음이 나고

내일의 걱정보다 지금의 순간에

최선을 다했던 그 시절처럼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싹틀 때

세상의 옷들은 다 벗어 버리고

순수하게 오로지 사랑만을 바라 봤던 그 시절처럼

이별에 대한 걱정보단, 나의 진심을 주고

더 주지 못함에 아쉬워했던 그 시절처럼

벗을 사귐에 있어

오로지 그에게만 집중하며

작은 것 하나에도 웃고 떠들고

서로를 위해 온전히 나의 시간을

내어 주었던 그 시절처럼.

그래, 그렇게 행복했던 시절처럼

당신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의 행복도 늘 함께였으면 좋겠다.

아주 오래 행복이 당신과 함께이면 좋겠다.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또 다른 추억을 쌓기 위해

행복한 고민을 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던 그 행복한 시절을 떠올리며

모두가 부러워하는 일은 아니더라도

소소하게 내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며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아갈 날을 떠올리며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로 힘든 일도 있겠지만,

가족이 오손도손 웃음꽃을 피우고

따뜻하게 살아갈 날을 떠올리며

하루하루 버텨내는 삶이 버겁더라도,

버티고 있는 내 모습과

나를 보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에 위안과 행복을 느끼고 떠올리며

함께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아주 많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전레오 /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웃음 #순간 #지금 #최선 #내일 #좋은글 #걱정 #행복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8107.html
kolaswqetsrq 11.01 21:41
성공SUCCESS 법칙

성공(SUCCESS) 법칙

S (Story)

이야기가 있어야한다. 인생의 최대 성공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다. 내용이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U (Understanding)

목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한다. 통찰력이 성공의 원동력이다. 하는 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개발해야 한다.

C (Confidence)

자신감이 있어야한다. 위대한 지도자들은 신념을 가진 자들이다. 위기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줄기차게 전진하는 자이다.

C (Communication)

소통이 있어야한다. 소통없는 일방 독주는 절대 안된다.

E (Enthusiasm)

열정이 있어야한다. 열정이란 단어 enthusiasm은 "안에"를 뜻하는 en 과 "신"을 뜻하는 theos의 합성어다. 즉 "우리 내부에 신이 있다 "는 것을 의미한다.

S (Smile)

웃음이 있어야한다. 매사를 즐거운 마음 으로 일해야 한다. 일을 취미화시키는 것이다. 일을 열심히하는 사람은 좋아서 하는 사람을 당해낼 수 없고 좋아서 하는 사람은 즐겨서 하는 사람을 당해 낼 수 없다.

S (Service)

봉사가 있어야 한다. 남을 성공시키는 사람이 성공하고,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행복해진다.

-Story 글 옮김-

#통찰력 #내용 #성공 #사람 #즐거움 #법칙 #인생 #좋은글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success_23.html
kolaswqetsrq 11.01 21:42
사람의 마음

사람의 마음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의 마음도 잘 모르는데

어찌 남의 마음까지 알 수 있을까

믿음보다는

불신의 골이 훨씬 깊은 세상

서로가 믿지 못하기에

서로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먼저 진실된

마음을 가질 일이다.

내가 거짓되면

상대도 거짓되고

내가 진실하면

상대도 진실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얻은 자가

세상을 얻을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자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무엇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까

돈으로 살 수 없고

권력으로 빼앗을 수 없다.

마음은 마음으로 얻는 법

사람의 마음은..

오직

진실된 마음으로 얻을 수 있다.

-좋은 글 대사전‘ 중-

#믿음 #마음 #명언 #좋은글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058.html
kolaswqetsrq 11.01 21:43
누군가 찾아오고 누군가 떠나간다.

누군가 찾아오고 누군가 떠나간다.

분명 나는 제자리에 이렇게 있는데

그런 과정들이 수차례 반복된다.

처음보다는 조금 덜 슬퍼하게 됐고

조금씩 더 무신경해져버렸다.

새로운 인연에 대한 기대 또한

하지 않게 되었고 애써 인연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아직은 없다.

지금까지 한번도 내곁을 떠난적 없고

내곁을 지켜주는 이들을 위해

신의를 지킬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함께하고 있음에 내 마음과 그들의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도록.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

앤서니 그랜트,앨리슨 리 공저

#생각 #명언 #처음 #인연 #지금 #좋은글 #과정 #조금 #반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638.html
kolaswqetsrq 11.01 21:43
마음을 울리는 최고의 명언

마음을 울리는 최고의 명언

01. 빛을 퍼뜨릴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촛불이 되거나 또는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이디스 워튼)

02. 사람은 오로지 가슴으로만 올바로 볼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생텍쥐페리)

03. 승리하면 조금 배울 수 있고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매튜슨)

04. 두려움 때문에 갖는 존경심만큼 비열한 것은 없다. (카뮈)

05. 당신이 잘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행복에 도움이 된다. (러셀)

06. 스스로를 신뢰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성실할 수 있다. (에릭 프롬)

07. 큰 재주를 가졌다면 근면은 그 재주를 더 낫게 해줄 것이며, 보통의 능력밖에 없다면 근면은 부족함을 보충해 줄 것이다. (J.레이놀즈)

08. 부지런함에도 의와 이의 구분이 있다. 닭이 울 때부터 부지런하기로는 순임금이나 도적이나 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가정집)

09.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마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조지 오웰)

10. 노동은 세개의 큰 악, 즉, 지루함, 부도덕, 그리고 가난을 제거한다 . (괴테)

11. 지성을 소유하고 또 그렇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열 사람에게 언제나 승리한다. (버나드 쇼)

12. 재물을 스스로 만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쓸 권리가 없듯이 행복도 스스로 만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누릴 권리가 없다. (버나드 쇼)

13. 힘 있을 때 친구는 친구가 아니다. (헨리 애덤스)

14.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한편 그것을 이겨내는 일로도 가득차 있다. (헬렌 켈러)

15. 사람은 부지런하면 생각하고, 생각하면 착한 마음이 일어나는데, 놀면 음탕하고, 음탕하면 착함을 잊으며, 착함을 잊으면 악한 마음이 생긴다. (소학)

16. 미래는 일하는 사람의 것이다. 권력과 명예도 일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게으름뱅이의 손에 누가 권력이나 명예를 안겨줄까. (힐티)

17. 배움이 없는 자유는 언제나 위험하며, 자유가 없는 배움은 언제나 헛된 일이다. (존 F. 케네디)

18. 당신이 자신은 2위로 만족한다고 일단 말하면, 당신의 인생은 그렇게 되기 마련이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존 F. 케네디)

19. 무례한 사람의 행위는 내 행실을 바로 잡게 해주는 스승이다. (공자)

20. 군자가 예절이 없으면 역적이 되고, 소인이 예절이 없으면 도적이 된다. (명심보감)

21. 쓰러진 자 망할까 두렵지 않고, 낮춘 자 거만할까 두렵지 않다. (J.버넌)

22. 예의는 남과 화목함을 으뜸으로 삼는다. (논어)

23. 겸손한 자만이 다스릴 것이요, 애써 일하는 자만이 가질 것이다. (에머슨)

24. 산이 높을수록 골은 낮다. (T.풀러)

25. 우선 겸손을 배우려 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O.메러디드)

26. 백권의 책에 쓰인 말보다 한 가지 성실한 마음이 더 크게 사람을 움직인다. (B.프랭클린)

27. 말도 아름다운 꽃처럼 그 색깔을 지니고 있다. (E.리스)

28. 시간은 위대한 스승이기는 하지만 불행히도 자신의 모든 제자를 죽인다. (베를리오즈)

29.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생텍쥐페리)

30. 가장 하기 힘든 일은 아무 일도 안하는 것이다. (유대인 격언)

-BLOG 글 옮김-

#촛불 #좋은글 #방법 #본질 #거울 #가슴 #사람 #명언 #마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399.html
kolaswqetsrq 11.01 21:44
세상에서 가장 못난 변명 시간이 없어서...

 "
세상에서 가장 못난 변명 시간이 없어서...
",

나태하자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풀어질 수 있는게 사람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한 약속, 앞으로 5년 후에는 어떤 단계로 발전할 것이고, 그것을 위해 올해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또 이번달, 그리고 오늘 무엇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각인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을 대충 보내고,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뤄두고, 하긴 해야하는데 귀찮으니까, 술한잔 먹고 잊어버리고, 그러다 보면 내가 꿈꾸던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락에 빠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사람들이 둘러대는 변명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고 못된 것은 시간이 없어서라는 변명이다. 시간은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이면서도 또한, 가장 잘못쓰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

시간을

방목하지 말라.

\u3000\u3000\u3000

 "
-이기는 습관 중-
",

#발전 #고민 #사람 #약속 #시간 #명언 #변명 #세상 #좋은글 #이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472.html
kolaswqetsrq 11.01 21:45
그런 친구가 있습니까?

그런 친구가 있습니까?

살아가면서 친구가 많다는 것처럼 마음이 넉넉한 것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재산보다도 더 값진 것이 사람이지요.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는가."가 아니라, "진정한 친구가 있는가." 입니다. 내 기쁨 위에 기쁨을 더해 줄 수 있는 친구, 내 불편을 미리 알아 말없이 해결하려고 수고하는 친구, 내가 힘들 때 슬며시 옆에서 손잡아 주는 친구,

아무 말 하고 싶지 않을 때 말없이 기다려 주는 친구, 내 일부분만 보고 경솔하게 판단하지 않는 친구,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보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친구, 그런 친구가 있습니까 ?

당신이 그런 친구를 찾고 기다리듯 당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 준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가장 소중한 사람이 됩니다. 먼저 그런 친구가 되어 주는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입으로 사랑을 말하지 않겠습니다.

-최일도-

#해결 #명언 #불편 #기쁨 #재산 #사람 #마음 #일부분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1736.html
kolaswqetsrq 11.01 21:45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탓으로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탓으로

내 곁에서 사라지게 했던 사람들.

한때 서로 살아가는 이유를 깊이 공유했으나

무엇 때문인가로 서로를 저버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관계의 죽음에 의한

아픔이나 상실로 인해

사람은 외로워지고 쓸쓸해지고

황폐해지는 것은 아닌지.

나를 속이지 않으리라는 신뢰,

서로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는 사람이 주변에 둘만 있어도

살아가는 일은 덜 막막하고 덜 불안할 것이다.

마음 평화롭게 살아가는 힘은

서른이 되면 혹은 마흔이 되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내 아픔과 기쁨을 자기 아픔과 기쁨처럼

생각해주고 앞뒤가 안맞는 이야기도 들어주며

있는 듯 없는 듯, 늘 함께 있는 사람의 소중함.

그것이 온전한 사랑이라는 생각을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누리는 행복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인연은 한 번 밖에 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지난날 내 곁에 머물렀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덜 주었을 것이다.

결국 이별할 수 밖에 없는 관계였다 해도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시의 한 구절 처럼

우리가 자주 만난 날들은 맑은 무지개 같았다고

말할 수 있게 이별했을 것이다.

진작, 인연은

한번 밖에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았더라면.

-신경숙 ‘인연은 한번 밖에 오지 않는다’-

#사람 #좋은글 #죽음 #확신 #상실 #인연 #명언 #아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535.html
kolaswqetsrq 11.01 21:46
인생을 바꾸는 습관의 차이

인생을 바꾸는 습관의 차이

1.하루 30분이상 책을 읽는다

2.평생 교육을 통한 자기개발의 힘을 믿는다

3.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4.매일 할 일을 적어둔다

5.구체적인 목표 달성에 집중한다

6.일주일에 4번 이상 운동한다

7.자녀에게 매일 성공하는 습관을 가르친다

8.목표를 기록해둔다

9.자동차 안에서 오디오북을 듣는다

10.출근하기 3시간 전에 일어난다

토마스 C.콜리 / 부자되는 습관

#좋은글 #습관 #달성 #평생 #명언 #개발 #집중 #인생 #교육 #이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744.html
kolaswqetsrq 11.01 21:47
삶이 내게 말한다

삶이 내게 말한다

그만하면 되었다고

넌 충분히 노력했다고

안되는걸 어떡하냐고

지치는 게 당연하고

외로운 게 당연하고

실패하는 게 당연하다고

그렇게 최선을 다 한다 해도

안 되는 일이 분명히 있다고

그러니,

아프지는 말라고

마음이 무너지면 안된다고

네가 가진 용기 있는 마음을

꼭 붙들고 있으라고

그렇게,

삶이 내게 말한다

내 삶이 나를 응원한다

전레오 / 내 삶이 나를 응원한다

#최선 #명언 #마음 #노력 #좋은글 #응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8736.html
kolaswqetsrq 11.01 21:47
인간에게서 가장

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요?

신이 대답했다.

돈벌기 위해

건강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는

건강 되찾기 위해 돈 잃는 것.

미래 염려하느라

현재 놓쳐버리는 것,

그리하여

현재도 미래도 살지 못하는 것.

-‘신과의 인터뷰’ 중-

#명언 #좋은글 #건강 #대답 #인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82.html
kolaswqetsrq 11.01 21:48
정신 건강을 지켜줄 10가지 수칙

정신 건강을 지켜줄 10가지 수칙

1. 긍정적으로 세상을 본다. 동전엔 양면이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2.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생활에 활력이 된다.

3. 반갑게 마음에 담긴 인사를 한다.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성공의 바탕이 된다.

4. 하루 세끼 맛있게 천천히 먹는다. 건강의 기본이요 즐거움의 샘이다.

5.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핏대를 올릴 일이 없어진다.

6. 누구라도 칭찬한다. 칭찬하는 만큼 내게 자신이 생기고 결국 그 칭찬은 내게 돌아온다.

7. 약속 시간엔 먼저 가서 여유있게 기다린다. 오금이 달지 않아 좋고 신용이 쌓인다.

8. 일부러라도 웃는 표정을 짓는다. 웃는 표정만으로도 기분이 밝아진다

9. 원칙대로 정직하게 산다. 거짓말을 하면 죄책감 때문에 불안해지기 쉽다.

10. 때로는 손해 볼 줄도 알아야 한다. 당장 내속이 편하고 언젠가는 큰 것으로 돌아온다.

-‘마음에 희망을 심다’ 중-

#명언 #좋은글 #사실 #동전 #정신 #긍정 #양면 #세상 #수칙 #건강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0_31.html
kolaswqetsrq 11.01 21:49
인맥을 형성하는 열 가지 방법

< 인맥을 형성하는 열 가지 방법 >

1. 처음 만남에서 강력한 이미지를 심어라

발길에 차이는 하찮은 돌이 되지 말고, 반짝 반짝 빛나는 보석처럼 가슴에 남으라.

2. 먼저 인간이 되어라

유유상종에는 예외가 없다. 좋은 인간을 만나고 싶거든 먼저 자기 자신부터 좋은 인간이 되라.

3. 적을 만들지 마라

열 명의 친구가 한 명의 적을 당하지 못한다. 쓸데없이 남을 비난하지 말고, 항상 악연을 피해 적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

4. 헤어질 때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라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 유익한 사람이 되라. 든사람, 난사람, 된사람, 그도 아니면 웃기는 사람이라도 되라.

5. 만나는 사람마다 생명의 은인처럼 대하라

항상 감사하고 어떻게 보답할지 고민하라.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운명이 바뀌었다고 여겨라.

6. 하루 세 번 웃으면서 참아라

세 번 참으면 살인도 면한다.

7. 내 일처럼 기뻐하고, 내 일처럼 슬퍼하라

애경사가 생기면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라. 네 일이 내 일 같아야 내 일도 네 일 같아진다.

8. 주고, 또 주고, 잊어라

먼저 주고, 조건 없이 주고, 더 많이 주어라. 그러고 나서 모두 잊어버려라.

9. 한 번 맺은 인맥을 영원한 인맥으로 만들어라

잘나간다고 가까이하고, 어렵다고 멀리하지 마라. 100년을 넘어서 대를 이어 만나라.

10. 먼저 스승을 찾아라

인맥에는 지도자, 협력자, 추종자가 있는데, 그중 첫째는 지도자, 즉 스승이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 성공의 50%를 차지한다.

#형성 #보석 #만남 #방법 #좋은글 #가슴 #발길 #명언 #인맥 #인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687.html
kolaswqetsrq 11.01 21:49
상대가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상대가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두 가지 반응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저 사람을 어떻게든 기를 꺾어서

제대로 하게 해야지.’ 하는 것.

이것을 집착이라고 해요.

몇 번 해보고 안 되면

‘아이고, 저 인간은 안 된다.

네가 알아서 해라. 난 모르겠다.’ 합니다.

이것을 외면이라고 해요.

집착도 외면도 다 내 문제일 뿐이지

그 사람의 문제는 아니에요.

계속 상대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시비하며 괴로워하는 거예요.

내 고집을 탁 내려놓고

스스로 편안해져 보세요.

편안한 마음으로 상대를 연구하다보면

그 사람이 왜 그러는지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법륜스님

#집착 #반응 #좋은글 #생각 #사람 #인간 #외면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514.html
kolaswqetsrq 11.01 21:50
딸이 부모님께 듣고 싶은 말들

딸이 부모님께 듣고 싶은 말들

1. 쿨한 사과

 "
부모님들도 사실 인간인지라 틀린말 하실때도 있고, 실수하실 때도 있는 거잖아? 그럴 때에는 너무 자존심 세우지 마시고 쿨하게 사과해주셨음 좋겠어.. 나는 많은 걸 바라지 않고 그냥 엄마가 미안해 라는 한마디 말이면 되는데, 아직 한번도 못들어봤다.
",

2. 비교 없는 충고

 "
부모님은 경험도 많으시고, 걱정과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인거 아니까 충고해주시고 조언해주시고 이런 거 감사한데 누구 자식은 이런데 너도 이렇게 해라~던지 요즘 20대들 컴퓨터 자격증 다 있던데 너도 하나 따야지.. 스펙이 중요하다던데 너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같은 비교?경쟁?이 담긴 그런 충고는 압박이 돼..ᅮ 물론 적당한 건 괜찮지만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충고를 해주셨음 좋겠어
",

3. 외적 칭찬

사실 이건 주관적일 수도 있는데 .. 자존감이 외적으로도 많이 연관돼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집에서 이쁘다 소리 별로 못 듣고 자라서 부모님이 우쭈쭈해주고

 "
내 새끼 최고! 이쁘다 이런거 해주는 거 너무 부럽거든 ᅮ 우리 딸정도면 최고지같은 말 들으면 없던 자신감도 생길 것 같아ᄏᄏᄏᄏᄏ
",

4. 비난, 막말이 아닌 비판

내가 잘못해서 혼나야 할 상황일 때 잘못했으니까 혼나는 건 당연하지만 이성을 잃고 아무 상처주는 말 막하면 가슴에 다 남더라구..ᅲ 나는 엄마 상처받을까봐 말 가려서 하는데.. 내가 잘못한 거랑 별 상관도 없는 말들도 막 하고..ᅮ 화내지 말구 조근조근 대화로 풀어갔음 좋겠는데 그게 쉽지 않지ᅮ

5. 온전한 믿음,지지

 "
사실 인생사가 항상 잘 풀릴리 없잖아? 돌아갈 때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조급해하시지 않고 나를 지지하고 믿어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아 니가 잘돼야지 우리가 살지 너만 믿는다 같은 압박주는 믿음? 말고 니가 어떤 선택을 하든 엄마는 너를 지지해 파이팅 과 같은 말을 듣는다면 정말 무슨일이든 열심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

6. 무조건적인 위로

 "
밖에서 너무 지치고 힘들었어서 집에 들어와서 위로받고자 하는 맘에 하소연 좀 했는데 위로해주기보다는 잘잘못 따지거나 그러면 너무 힘빠져ᅲ 물론 나중에 충고해줄 수 있어도 일단은 나를 다정하게 위로해주셨으면 좋겠어 우리딸 많이 힘들었지? 이렇게..
",

7 .애정 어린 관심

 "
너 공부 했니? 이번 학기 성적은 얼마나 나왔어? 같은 관심 말고 나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어린 말들을 받고 싶어.. 그때 그 친구랑 잘 풀었어? 오늘 하루는 어땟어? 같은 맘 편한 대화
",

8.칭찬

이건 너무 뻔하지만 .. 부모님은 거는 기대치가 높으시니까 아직 어린 우리가 부족해보일 수도 있고 더 잘했음 싶고 해서 칭찬에 박할 수도 있어 부모님 세대가

그랬던 것도 있고..ᅮ 잘못한 것만 찾아내시지 말고 소소하게 잘한 일들도 기분좋게 칭찬해주셨으면 좋겠어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잖아?

9. 사랑해

 "
니가 내 딸이어서 엄청 행복해 우리딸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가슴이 따뜻해지고 누구보다 행복해지는 주문..
",

--BAND 글 옮김-

#사랑 #경험 #인간 #조언 #자존심 #미안 #말씀 #걱정 #명언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927.html
kolaswqetsrq 11.01 21:51
힘들지만 견뎌 보는 것.

힘들지만 견뎌 보는 것.

하루를 견디고 나면,

다음 날도 그만큼은

견딜 수 있게 되는 것,

살다보면 알게 된다.

이렇게 우리 모두에게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이

분명히 온다는 것을....

 "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중-
",

#다음 #좋은글 #눈물 #명언 #타이밍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287.html
kolaswqetsrq 11.01 21:51
삶이란 선물입니다

삶이란 선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삶을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들만이

당신의 마음속에 발자국을 남기지요.

스스로를 조절하려면

당신의 머리를 사용해야 하고

다른이를 조절하려면

당신의 마음을 사용해야 하지요.

노여움(anger) 이란 위험(danger)에서

한글자가 빠진 것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을 처음 배신했다면

그건 그의 과실이지만

그가 또다시 당신을 배신했다면

그땐 당신의 과실입니다.

커다란 마음으로 사건에 대해 토론하고

중간의 마음으로 사건에 대해 토론하며

작은 마음으로 사람에 대해 토론합니다.

돈을 잃은 자는 많은 것을 잃은 것이며

친구를 잃는 자는 더 많은 것을 잃은 것이며

신의를 잃은 자는 모든 것을 잃은 것 입니다.

아름다운 젊음은 우연한 자연의 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작품입니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테리이며

오늘은 선물입니다.

 "
-루즈벨트 대통령 영부인 에레나여사-
",

#명언 #좋은글 #사용 #조절 #사람 #발자국 #선물 #마음속 #마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011.html
kolaswqetsrq 11.01 21:52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는 법

<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는 법 >

1. 그 사람을 존중하라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을 고유의 인격체로서 존중해주어야 마음을 열 수 있다. 아주 어린 아이조차도 자신을 존중하는지 아닌지를 100% 직감할 수 있다.

2. 먼저 그 사람의 입장에 서보라

무엇이든 나의 마음을 전달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과 내가 주고자 하는것을 일치 시킬 수 있다.

3.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라

일시적인 관심은 무관심보다 더 큰 상실감을 준다. 한두 번 존중하고 배려해주다가 참지 못해 포기하거나 관심을 꺼버리는 것은 상처만 남길 뿐이다.

 "
4. 그 사람 자체에 감사하라
",

 "
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거나 무엇이 되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내 곁에 존재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내 삶은 더 풍부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사람 자체에 감사하라
",

5. 그 사람을 자세히 관찰하라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좋아할 수 있고 좋아하는 만큼 배려해줄 수 있다. 가까운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으로 관찰을 실천하라.

6.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라

자신은 누군가로부터 상처받아 있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배려할 수 있겠는가.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전할 수 있다

7. 그 사람을 격려하라

잘한 일에 대한 칭찬에 그치지 말라. 힘들어하고 지쳐 있을 때 실패하고 좌절하고 실망에 빠져 있을 때 다치고 병들었을 때 갈등을 겪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할 때 격려만이 그 난관을 극복하게 해주는 유일한 힘이다.

#명언 #사람 #존중 #좋은글 #마음 #상대방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044.html
kolaswqetsrq 11.01 21:53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01. 돈으로 사람(person)을 살 수는 있으나 그 사람의 마음(spirit)을 살 수는 없다.

02. 돈으로 호화로운 집(house)을 살 수는 있어도, 행복한 가정(home)은 살 수 없다.

03. 돈으로 최고로 좋은 침대(bed)는 살 수 있어도, 최상의 달콤한 잠(sleep)은 살 수 없다.

04. 돈으로 시계(clock)는 살 수 있어도, 흐르는 시간(time)은 살 수 없다.

05. 돈으로 얼마든지 책(book)은 살 수 있어도, 결코 삶의 지혜(wisdom)는 살 수 없다.

06. 돈으로 지위(position)는 살 수 있어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존경(respect)은 살 수 없다.

07. 돈으로 좋은 약(medicine)은 살 수 있어도, 평생 건강(health)은 살 수 없다.

08. 돈으로 피(blood)는 살 수 있어도, 영원한 생명(life)은 살 수 없다.

09. 돈으로 섹스(sex)는 살 수 있어도, 진정한 사랑(love)은 살 수 없다.

10. 돈으로 쾌락(pleasure)은 살 수 있으나, 마음속 깊은 곳의 기쁨(delight)은 살수 없다.

11. 돈으로 맛있는 음식(food)은 살 수 있지만, 마음이 동하는 식욕(appetite)은 살 수 없다.

12. 돈으로 화려한 옷(clothes)은 살 수 있으나, 내면에서 우러난 참된 아름다움(beauty)을 살수는 없다.

13. 돈으로 사치(luxury)를 꾸리면 살수는 있으나, 전통어린 문화(culture)를 살수는 없다.

14. 돈으로 고급품(articles goods)을 살수는 있으나, 아늑한 평안(peace)을 살수는 없다.

15. 돈으로 미인(beauty)을 살수는 있으나, 정신적인 평화로움(stability)은 살 수 없다.

16. 돈이 있으면 성대한 장례식(funeral)을 치를 수 있지만, 행복한 죽음(glorious death)은 살 수 없다.

17. 돈으로 종교(religion)는 얻을 수 있으나, 소망하는 구원(slavation)은 얻을 수 없다.

18. 돈은 일상생활에 절대 필요하고 편리한 수단이지만, 어디까지나 생활의 수단이지 인생의 목적은 결코 아니다.

19. 돈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돈만 가지고는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고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것은 살 수 없다. 진정한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에서 온다.

-Peter Lives(미국 신학자, 작가)-

#최상 #마음 #행복 #가정 #가슴 #좋은글 #사람 #명언 #시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518.html
kolaswqetsrq 11.01 21:53
인간관계 달인의 다섯 가지 법칙

인간관계 달인의 다섯 가지 법칙

1, 노크의 법칙, Knock

"당신이 먼저 노크하라" 마음의 문을 열려면 내가 먼저 노크하라. 그리고 나를 공개해라. 내가 먼저 솔직한 모습, 인간적인 모습, 망가진 모습까지 보여주면 상대방도 편안하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2, 거울의 법칙, Mirror

"거울은 주인이 아니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내가 웃어야만 거울속의 내가 웃듯이 인간관계도 내가 먼저 웃어야한다. 내거 먼저 관심을 갖고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의 법칙이다.

3, 베품의 법칙, Give & Take

"먼저 주어라. 그 다음에 받아라"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얻고 싶으면 먼저 호감을 품어야 한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항상 좋은 감정을 갖고 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4, 짝지의 법칙, Couple

"저절로 통하는 사람이 있다" 짚신도 짝이 있듯이 사람마다 맞는 짝이 있기 마련이다. 싫은 사람과 억지로 친해 지려고 애쓰지 마라. 인간관계가 많다 보면 악연이 생기기 쉽다. 모든 사람을 친구로 만들려 하지말고 나와 통하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5, 낭만의 법칙 Romance

"당신만 낭만이 아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모두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한다. 인간관계에서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으면 이런 이중잣대를 버리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

-BAND 글 옮김-

#좋은글 #달인 #명언 #인간 #모습 #마음 #법칙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074.html
kolaswqetsrq 11.01 21:54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하기에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가보지만

그것 참, 쉽지가 않다.

가까이 있음에도 멀게 느껴지는 거리

만족보다는 후회가 많고

기대보다는 걱정이 많은 탓이다.

내가 못하는 것에 낙심하기보다

내가 잘하는 것에 기뻐할 수 있도록

자만이 아닌 자신감으로

나를 칭찬하고 다독여주는 시간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는

나와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힘찬 ‘감성제곱’ 중-

#만족 #사람 #좋은글 #걸음 #자신 #사랑 #명언 #걱정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8671.html
kolaswqetsrq 11.01 21:55
어떤 사람의 입은 마음에 있어

어떤 사람의 입은 마음에 있어

생각을 마음에 담지만

어떤 사람의 마음은 입에 있어

생각을 무심코 내 뱉습니다

사람의 혀는 야수와 같아.

한번 고삐가 풀리면

다시 잡아 묶어 두기가 어렵죠

내뱉은 말을 다시 담을 수는 없습니다

말이란 내뱉는 사람에겐 가볍게 느껴져도

듣는 사람에겐 큰 무게를 지닙니다.

마땅히 말해야 할 때는 말해야 하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전진할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말을 해야 할 때는 겸손하고 부드럽게 하고

주장해야 할 때는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고

분명하게 말해야 상대방에게 확신을 줄 수 있습니다

주의 깊게 듣고, 지혜롭게 질문하고,

조용히 대답을 합시다

섣부른 말은 어떤 이에게

또 다른 어려움을 만들기도 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말

확신이 없는 말들이

너무나 홍수처럼 범람하는 시대

잠시 말의 무게를 생각해봅니다

-지혜와 평정-

#명언 #생각 #좋은글 #마음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999.html
kolaswqetsrq 11.01 21:55
말의 숨은 의미

< 말의 숨은 의미 >

 "
어디서 많이 뵌 거 같아요라는 말은,
",

`친해지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거래요..

 "
나중에 연락할께라는말은,
",

`기다리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거래요..

 "
나 갈께라는 말은,
",

`제발 잡아줘`라고 말하는 거래요..

 "
사람은 괜찮아라는 말은,
",

`다른 건 별로야`라고 말하는 거래요..

 "
어제 필름이 끊겼나봐라는 말은,
",

`챙피하니까 그 얘긴 꺼내지마`라고 말하는 거래요..

 "
왜 그게 궁금하세요?라는 말은,
",

`대답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거래요.

 "
잘 지내고 있어?라는 말은,
",

`그립다` 고 말하는 거래요..

 "
좋아 보이네라는 말은,
",

`난 행복하지 않거든` 이라고 말하는 거래요..

 "
뭐 하면서 지내?라는 말은,
",

`난 아무것도 할수 없어` 라고 말하는 거래요..

 "
좋은 사람 만났니?라는 말은,
",

`난 너밖에 없더라` 라고 하는 거래요..

 "
행복해라..라는 말은,
",

`다시 돌아와 달라` 고 하는 거래요..

 "
가끔 내 생각나면 연락해 라는 말은,
",

`영원히 기다릴거야` 라는 말이래요..

#나중 #대답 #연락 #필름 #좋은글 #사람 #행복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1854.html
kolaswqetsrq 11.01 21:56
씨앗의 법칙 7가지

씨앗의 법칙 7가지

1. 먼저 뿌리고 나중에 거둔다.

거두려면 먼저 씨를 뿌려야 한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 인과응보가 원인을 지어야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는 법이다. 집을 2층부터 짓는 방법은 없다.

2. 뿌리기 전에 밭을 갈아야 한다.

씨가 뿌리를 내리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상대에게 필요한 것과 제공시기 및 방법을 파악하라. 밭을 갈지 않고 심으면 싹이 나도 뿌리를 내리기 힘들고, 싹이 난 후에 밭을 갈려고 하면 뿌리를 다칠까 손대기 어렵다.

3. 시간이 지나야 거둘 수 있다.

어떤 씨앗도 뿌린 후 곧 바로 거둘 수는 없다. 무슨 일이든 시작했다고 해서 즉각 그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지 마라. 음식점 장사도 한 자리에서 1년은 열심히 뛰어 보아 야 성패를 알 수 있고, 글씨나 그림도 3년은 열심히 배워보아야 소질이 있는지 알 수 있다.

4. 뿌린 씨, 전부 열매가 될 수 없다.

10개를 뿌렸다고 10개 모두에서 수확을 할 수는 없다. 모든 일에 성공만 있기를 기대하지 마라. 주식도 5종목 사서 2종목 올랐어도 총체로 플러스 났으면 잘 살 것이고, 세상에서 나를 좋다는 사람이 열에 일곱만 되면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다.

5. 뿌린 것 보다는 더 많이 거둔다.

모든 씨앗에서 수확을 못해도 결국 뿌린 것 보다는 많이 거둔다. 너무 이해타산에 급급하지 마라. 인생은 길게, 그리고 크게 보아야 한다. 알몸으로 왔다가 옷 한 벌은 입고 간다 하질 않았던가?

6.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선을 행하면 상으로 돌아오고(상선), 악을 행하면 벌로 돌아온다(벌악) 악을 행하는 것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이왕에 심으려거든 귀하고 좋은 씨를 가려서 심어라.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세상에 유익한 것을 심는 것이다.

7. 종자는 남겨 두어야 한다.

겨울에 아무리 굶주리더라도 내년에 뿌릴 종자 씨는 남깁니다.

 "
-이민규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중-
",

#좋은글 #제공 #시작 #원인 #씨앗 #방법 #명언 #나중 #법칙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7_76.html
kolaswqetsrq 11.01 21:57
어떤 관광객이 나이아가라 폭포의 장관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구경하다가 목이 말라 폭포의 물을 떠서 맛있게 마셨습니다.

어떤 관광객이 나이아가라 폭포의 장관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구경하다가 목이 말라 폭포의 물을 떠서 맛있게 마셨습니다.

“아, 물맛 좋네!”하고 걸어 나오던 그는 폭포 옆에 ‘포이즌’(POISON)이라고 쓰여 있는 팻말을 보았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독 성분이 든 물을 마신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배가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창자가 녹아 내리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급히 병원에 달려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을 전해들은 의사는 껄걸 웃으면서 “포이즌은 영어로는 ‘독’이지만 프랑스어로는 ‘낚시금지’란 말입니다. 별 이상이 없을 테니 돌아가셔도 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의사의 이 말 한 마디에 그렇게 아프던 배가 아무렇지도 않게 됐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상식이나 믿음은 우리의 마음 뿐만 아니라 몸까지도 다스리고 지배합니다. 덥다고 짜증을 부리면 몸도 마음도 상합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신경질을 부리면 나머지 가족들까지 신경질에 영향을 받게되고 부정적 바이러스는 모든 가족에게 번져서 기분을 망치게 됩니다.

행복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 때문에 행복하고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마음가짐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

 "
자살이라는 글자를 반대로 하면 살자가 되며, 영어의 스트레스(stressed)를 반대로 하면 디저트(desserts) 란 말이 됩니다.
",

나폴레옹은 유럽을 제패한 황제였지만 "내 생애 행복한 날은 6일 밖에 없었다"고 고백했고, 헬렌 켈러는 "내 생애 행복하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는 고백을 남겼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갈림길이 됩니다.

신라의 원효 대사도 해골에 고인 물를 마시고 깨달음을 얻어 득도하였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Facebook 옮김-

#명언 #장관 #좋은글 #팻말 #물맛 #구경 #연발 #관광객 #자신 #성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866.html
kolaswqetsrq 11.01 21:57
세상은

세상은

뻔뻔해지는 만큼

만만해지는 것 같아

뭔가 삐걱거리고 잘못된 것 같으면,

왠지 가까운 누군가의 기분이 나빠 보이면,

 "
습관적으로 내가 또 뭘 잘못했나?
",

전전긍긍하는 후천적 소심함을 버리고,

웬만한 일에는 미동조차 않는

대범한 기상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래, 가끔은 뻔뻔해지자.

성수선 / 혼자인 내가 혼자인 너에게

#기분 #후천 #미동 #기상 #세상 #전전긍긍 #명언 #좋은글 #습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987.html
kolaswqetsrq 11.01 21:58
나이에 대한 명언 모음

나이에 대한 명언 모음

아무렇게나 사는 40살 사람보다는

일하는 70살의 노인이

더 명랑하고 더 희망이 많다.

(올리버 웬델 홈즈)

나이가 어리고

생각이 짧을수록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삶이 최고라고 여기는 법이며,

나이가 들고 지혜가 자랄수록

정신적인 삶을 최고로 여기는 법입니다.

(톨스토이)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분별력과

삶에 대한 애착이 깊어지는 것이다.

(그라시안)

무언가 큰 일을 성취하려고 한다면,

나이를 먹어도 청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괴테)

바쁜 사람에게는

나쁜 버릇을 가질 시간이 없는 것처럼

늙을 시간이 없다.

(앙드레 모로아)

사람은 30이 되어서

자신을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사십세가 지나면 인간은

자신의 습관과 결혼해 버린다.

(메러디즈)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 해도

배울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젊다.

(아이스큐로스)

50대와 70대 사이의 20년간은

인생에서 가장 고달픈 시기다.

그 연대에서는 많은 요청을 받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거절할 만큼

충분히 늙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T.S. 엘리엇)

20대에는 욕망의 지배를 받고,

30대는 이해타산,

40대는 분별력,

그리고 그 나이를 지나면,

지혜로운 경험에 지배를 받는다.

(그라시안)

젊은 시절에는 하루는 짧고 1년은 길다.

나이를 먹으면 1년은 짧고 하루는 길다.

(베이컨)

25세까지 배우고,

40세까지 연구하고,

60세까지 완성하라.

(오슬러)

주름이 생기지 않는 마음,

희망에 넘치는 친절한 마음과

늘 명랑하고 경건한 마음을 잃지 않고

꾸준히 갖는 것이야 말로

노령을 극복하는 힘이다.

(토마스 베일리)

#노인 #정신 #모음 #희망 #사람 #물질 #명언 #생각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092.html
kolaswqetsrq 11.01 21:58
남편 나무

남편 나무

어느 날 남편이라는 나무가 내 옆에 생겼습니다. 바람도 막아주고, 그늘도 만들어주니 언제나 함께하고 싶고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나무가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무 때문에 시야가 가리고 항상 내가 돌봐줘야 하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가 사랑하는 나무이기는 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그런 나무가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불편하게 함으로 날 힘들게 하는 나무가 밉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괜한 짜증과 심술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나무는 시들기 시작했고,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심한 태풍과 함께 찾아온 거센 비바람에 나무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럴 때 나는 그저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 다음날 뜨거운 태양 아래서, 나무가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여겼던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사랑을 주지않으니 쓰러져버린 나무가 나에겐 얼마나 소중한 지를,

내가 남편나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이에 나무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그늘이 되었었다는 것을...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는 쓰러진 나무를 일으켜 다시금 사랑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필요한 존재임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나무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여러분들의 남편나무는 혹시 잎이 마르거나 조금씩 시들진 않는지요? 남편이란 나무는 사랑이란 거름을 먹고 산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KBS 라디오 여성시대‘에 소개되었던 글-

#그늘 #시작 #사랑 #남편 #명언 #바람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045.html
kolaswqetsrq 11.01 21:59
성공한 사람들의 15가지 특징들

성공한 사람들의 15가지 특징들

1. 현실 중심적이다.

거짓, 가짜, 사기, 허위, 부정직 등을 진실로부터 구별하는 능력이 있다.

2. 문제 해결 능력이 탁월하다.

어려움으로부터 도망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려움과 역경을 문제 해결을 위한 기회로 삼는다.

3. 수단과 목적을 구분할 줄 안다.

목적으로 수단을 정당화 하지 않으며 수단이 목적 자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즉, 과정이 결과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자세를 갖는다.

4. 사생활을 즐긴다.

남들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에 종종 더 편안함을 느낀다.

5. 환경과 문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주위 환경에 의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더 의존한다.

6. 사회적인 압력에 굴하지 않는다.

항상 사회에 순응하며 살진 않는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반사회적이거나 부적응 자의 심리를 갖고 있기도 한다.

7. 민주적 가치를 존중한다.

인종, 문화, 개인의 다양성에 열린 자세를 취한다.

8. 인간미가 있다.

사회적 관심, 동정심, 인간미를 지니고 있다.

9.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는다.

수많은 사람들과 피상적인 관계를 맺기 보다는 가족이나 소수의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한다.

10. 공격적이지 않은 유머 감각이 있다.

자기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유머를 즐겨 사용한다. 남을 비웃거나 모욕하는 유머는 삼간다.

11. 자신과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남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태도에 연연해 하지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남에게도 마찬가지, 남을 가르치거나 바꾸려 하지않고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한 있는 그대로 내버려둔다.

12.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즐긴다.

꾸미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13. 감성이 풍부하다.

주위의 사물을 평범한 것일지라도 놀라움으로 바라볼 수 있다.

14. 창의적이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며 발명가적 기질이 있다.

15.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고 하고 경험하려한다.

경험의 정점에 다다르기를 좋아한다.(학문, 종교, 철학, 스포츠등) 경험의 순간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초월적인 기쁨과 자유를 느낀다 그리고 이 경혐이 머릿속에 남아 계속 그 경험을 쌓으려 노력한다.

- 매슬로우 -

#사람 #명언 #좋은글 #중심 #거짓 #진실 #구별 #현실 #특징 #성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5_21.html
kolaswqetsrq 11.01 22:00
괄호를 치자

괄호를 치자

살다가 힘들면

괄호를 쳐보자

어려움이 생기면

그안에 (잘 될거야) 라고 쓰자

슬픈일이 생기면

그 안에 (다 지나간다) 라고 쓰자

아픔이 생기면

그안에 (다 이길수 있다)라고 쓰자

이렇게 나만의 괄호속에서

행복을 찾아가다보면

어려운일도 쉽게 풀리게 될 것이다

그때 괄호를 벗겨내자

그 다음에

나의 마음속에

가벼운 깃털을 달고

훨훨 날아가 보자

힘차게 한발 한발 나아가자

이래서 우리들 삶도

가끔은 괄호가 필요하다

-청마 정종복-

#좋은글 #다음 #아픔 #행복 #명언 #깃털 #어려움 #마음속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8746.html
kolaswqetsrq 11.01 22:00
안중근 의사 어머니의 편지

안중근 의사 어머니의 편지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님의 편지 전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발렌타인데이, 2월 14일 오늘이 바로 우리나라의 영웅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날인데, 이날을 일본인과 일부 초콜릿 (chocolate) 제조 회사들이 의도적으로 초콜릿을 주고 받는 날로 만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기억하세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전해주세요. 31세 젊은 나이로 형장에서 이슬로 사라져버린 대한민국의 영웅이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며, 참 믿기 힘든 역사적 치욕입니다.

"일본인으로서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안중근은 내가 만난 사람들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 -안중근을 조사했던 일본 검사-

"혁명가가 되려거든 손문처럼 되고, 대장부가 되려거든 안중근처럼 되라" -중국 속담-

"안중근은 조선의 안중근, 아시아의 안중근이 아니라, 세계의 안중근이다" -중국의 석학 \장타이옌\-

내가 죽거든 내 시체는 아직 조국으로 옮기지 말고, 조국이 자유독립을 쟁취하게 되면 그때 조국으로 옮겨서 매장하여 다오. -사형직전 동생과의 면회에서 남긴 안중근 의사의 유언-

#생각 #명언 #좋은글 #만약 #구걸 #공분 #죽음 #사람 #목숨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166.html
kolaswqetsrq 11.01 22:01
사랑받는 사람의 비밀

사랑받는 사람의 비밀

사랑받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직장이나 가정 혹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진 비밀은 무엇일까?

일본의 정신 의학자 사이토 시게타가 쓴 "사랑받는 사람들의 9가지 공통점"에 보면 사랑받기의 가장 중요한 비밀은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1. 남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은 사랑받는다. 또 너무 완벽을 추구하지 않고 알맞게 너그러우며 인생을 80퍼센트로 사는 사람에게는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지는데, 이런 사람은 남에게도 지나친 요구를 하지 않으며, 과잉 친절이나 배려로 부담을 주지 않는다.

2. 기다릴 줄 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은 기다려야하는 시간을 헛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시간으로 바꾼다. 모임에서 늦는 사람이 있을 때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즐거운 이야기로 지루한 시간을 잊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과연 누가 더 인기가 좋을까?

3. 의지가 된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든든한 의논 상대가 되어 주는 사람은 대개 인내심이 강하고 일관성이 있는 사람이다.그들은 남의 실패도 진심으로 걱정해 주며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이나 나쁜 소문이 돌았을 때 퍼뜨리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서 멈춘다. 위로나 충고를 할 때에는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생각한 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말해준다. 사람들은 이런 이에게 신뢰감을 느끼고 마음을 털어놓는다.

4. 다른 사람을 높여준다.

누구에게나 한가지 좋은 점은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남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찾아내고 이를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잘 이해하고 개성이나 약점까지도 감싸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내가 나 자신을 싫어한다면 다른 이가 나를 좋아할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생각’ 중-

#명언 #행복 #직장 #가정 #비밀 #사랑 #좋은글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297.html
kolaswqetsrq 11.01 22:02
삶이 힘겨울 때 해볼 7가지

삶이 힘겨울 때 해볼 7가지

1. 삶이 힘겨울 때

새벽시장에 한번 가보십시오. 밤이 낮인듯 치열하게 살아가는 상인들을 보면 힘이 절로 생깁니다. 그래도 힘이 나질 않을 땐 뜨끈한 우동 한그릇 드셔보십시오. 국물맛이 희망을 줄것입니다.

2.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작게 느껴질 때

산에 한번 올라가 보십시오.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세상은 백만장자 부럽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빌딩도 내발 아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큰소리로 외쳐보십시오. 난 큰손이 될 것이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럴땐, 그냥 한번 웃어주세요.

3. 죽고 싶을 때

병원에 한번 가보십시오. 죽으려 했던 내 자신,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난 버리려 했던 목숨! 그들은 처절하게 지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흔히들 파리 목숨이라고들 하지만 쇠심줄보다 질긴게 사람 목숨입니다.

4. 내 인생이 갑갑할 때.

버스여행 한번 떠나보십시오. 몇천원으로 떠난 여행,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무수히 많은 풍경을 볼 수 있고, 많은 것들을 보면서 활짝 펼쳐질 내 인생을 그려보십시오. 비록 지금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갑갑하여도 분명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은 탄탄대로일 것입니다.

5.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싶을 땐

따뜻한 아랫목에 배 깔고 엎드려 재미난 책을 보며 김치 부침개를 드셔보십시오. 세상을 다 가진듯 행복할 것입니다. 파랑새가 가까이에서 노래를 불러도 그 새가 파랑새인지 까마귀인지 모르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분명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6. 사랑하는 사람이 속 썩일 때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그래 내가 전생에 너한테 빚을 많이 졌나보다, 맘껏 나에게 풀어, 그리고 지금부턴 좋은 연만 쌓아가자, 그래야 담 생애도 좋은 연인으로 다시 만나지!

7. 하루를 마감할 때

밤 하늘을 올려다 보십시오. 그리고 하루 동안의 일을 하나씩 떠올려 보십시오. 아침에 지각해서 허둥거렸던 일, 간신히 앉은 자리 어쩔 수 없이 양보하면서 살짝 했던 욕들, 하는 일마다 꼬여 눈물 쏟을뻔한 일, 넓은 밤 하늘에 다 날려버리고, 활기찬 내일을 준비하십시오.

#치열 #명언 #그릇 #시장 #좋은글 #우동 #새벽 #국물 #상인 #희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7_39.html
kolaswqetsrq 11.01 22:02
잃어버린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잃어버린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다.

그러나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에 매달리다 보면

결국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내가 의미있게 써야 할 시간,

내가 더 사랑해야 할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상처가 두려워 새로움에 빠져들지 않으려는 사람,

그는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배울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달라질 수 없으며, 성장할 수 없다.

기억하라. 상처 없는 사랑은 없다.

중요한 건 사랑의 치명적인 상처를

어떻게 피해 가며,

상처를 입었을 때 어떻게 치유해 나가느냐다.

김혜남 / 어른으로 산다는 것

#사람 #성장 #고통 #좋은글 #사랑 #명언 #자신 #슬픔 #시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602.html
kolaswqetsrq 11.01 22:03
천재와 싸워 이기는 방법

천재와 싸워 이기는 방법

살다 보면 꼭 한번은 재수가 좋든지 나쁘든지 천재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우리들은 이 천재와 경쟁하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주눅 들어 살든지, 아니면 자신의 취미나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 못 가본 길에 대해서 동경하며 산다.

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추월할 수 없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다. 어릴 때 동네에서 그림에 대한 신동이 되고, 학교에서 만화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만화계에 입문해서 동료들을 만났을 때, 내 재능은 도토리 키 재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중에 한 두 명의 천재를 만났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매일매일 날밤을 새우다시피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내 작업실은 이층 다락방이었고

매일 두부장수 아저씨의 종소리가 들리면 남들이 잠자는 시간만큼 나는 더 살았다는 만족감으로 그제서야 쌓인 원고지를 안고 잠들곤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한달 내내 술만 마시고 있다가도 며칠 휘갈겨서 가져오는 원고로 내 원고를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타고난 재능에 대해 원망도 해보고 이를 악물고 그 친구와 경쟁도 해 봤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상처만 커져갔다. 만화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고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점점 멀어졌다. 내게도 주눅이 들고 상처 입은 마음으로 현실과 타협해서 사회로 나가야 될 시간이 왔다.

그러나 나는 만화에 미쳐 있었다. 새 학기가 열리면 이 천재들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꼭 강의한다. 그것은 천재들과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천재들은 항상 먼저 가기 마련이고, 먼저 가서 뒤돌아보면 세상살이가 시시한 법이고, 그리고 어느 날 신의 벽을 만나 버린다. 인간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신의 벽을 만나면 천재는 좌절하고 방황하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리고 종내는 할 일을 잃고 멈춰서 버린다.

이처럼 천재를 먼저 보내놓고 10년이든 20년이든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산다는 것은 긴긴 세월에 걸쳐 하는 장거리 승부이지 절대로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만화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매일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10장의 크로키를 하면 된다.

1년이면 3500장을 그리게 되고 10년이면 3만 5000장의 포즈를 잡게 된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자세와 패션과 풍경이 있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그려보지 않은 것은 거의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좋은 글도 쓰고 싶다면,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면 된다. 가장 정직하게 내면 세계를 파고 들어가는 설득력과 온갖 상상의 아이디어와 줄거리를 갖게 된다.

자신만이 경험한 가장 진솔한 이야기는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만화가 이두호 선생은 항상 “만화는 엉덩이로 그린다.”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이 말은 언제나 내게 감동을 준다. 평생을 작가로서 생활하려면 지치지 않는 집중력과 지구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가끔 지구력 있는 천재도 있다. 그런 천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천재들은 너무나 많은 즐거움과 혜택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들의 갈 길을 제시해 준다. 나는 그런 천재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잠들기 전에 한 장의 그림만 더 그리면 된다. 해 지기 전에 딱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어느 날 내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만화가 이현세-

#경쟁 #평생 #주눅 #방법 #좋은글 #명언 #직업 #재능 #자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836.html
kolaswqetsrq 11.01 22:04
어떤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갔더랍니다. 가서 보니까, 천사들이 뭘 열심히 포장하고 있더랍니다. 뭘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까, 사람들에게 줄 복을 포장하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복이 사람들에게까지 잘 전해지도록 포장을 해서 보내는 거랍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갔더랍니다. 가서 보니까, 천사들이 뭘 열심히 포장하고 있더랍니다. 뭘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까, 사람들에게 줄 복을 포장하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복이 사람들에게까지 잘 전해지도록 포장을 해서 보내는 거랍니다.

그리고 복을 포장하는 포장지는 고난이라는 겁니다. 고난은 단단해서 내용물이 파손되지 않고 잘 벗겨지지 않으니까 포장용으로는 제격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천사가 하는 말이, 그런데 사람들이 고난이라는 껍데기만 보고 그 안에 복이 들어있는 줄도 모르고 ‘어이쿠 무섭다’ 하면서 받지 않고 피해버리거나, 받아놓고서도 껍질을 벗기고 그 안에 들어있는 복을 꺼낼 생각을 하지 않고 고난만 붙잡고 어쩔 줄 몰라 한다는 겁니다.

포장지를 어떻게 벗기는 거냐고 물으니까, 고난이라는 포장지를 벗기고 복을 꺼내는 열쇠는 감사라는 겁니다. 고난을 무서워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말고 감사하면서 받으면 그 껍질이 벗겨지고 그 속에 들어있는 복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고난으로 포장된 선물을 받으면 감사하기보다는 불평을 해서, 껍질이 더 단단해지는 바람에 그 안에 있는 복이 세상에 나와 보지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Facebook 글 옮김-

#명언 #사람 #천국 #포장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447.html
kolaswqetsrq 11.01 22:04
그랬다.

그랬다.

나는 어른이 되면서

어른이 된 만큼 외로웠다.

사랑하면 사랑한 만큼 외로웠다.

무엇이든 완전한 것은 없었다.

불완전한 것 투성이였다.

불완전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나름대로 새롭게 만드는 것은

역시 사랑을 통해서

자기를 표현할 때 외엔 없었다.

그러나 넋을 잃을 정도로

반한 사람과 똑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한다 해도 고독은 있었다.

아무리 깊게 빠진 사랑일지언정,

틀림없이 고독은 있었다.

그런데 겁도없이 나는

죽을때까지 누군가를 사랑하리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고 독 / 카페 페닌슈라

#좋은글 #사랑 #불완전 #완전 #명언 #어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275.html
kolaswqetsrq 11.01 22:05
괜찮냐고 묻지 마.

괜찮냐고 묻지 마.

그럴 리가 없잖아.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물어보면

나는 괜찮다고 밖에

대답할 수가 없잖아.

괜찮지 못하다는

말은 배운 적이 없으니.

힘내라고 하지 마.

이미 힘을 내고 있잖아.

그러고 있는데

또 그러라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울어버리고 싶은걸.

모든 게

잘될 거라고 말하지 마.

잘되지 않았으니

이렇게 된 거잖아.

잘되지 않았고

잘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신은 내 곁을

지켜주겠다고만 말해줘.

-황경신 ‘생각이 나서’ 중-

#대답 #명언 #좋은글 #생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084.html
kolaswqetsrq 11.01 22:06
갑부 운전사

갑부 운전사

홍콩의 화교계 최고 갑부인 홍콩 이가성 회장의 운전수는 30여년간 그의 차를 몰다가 마침내 떠날 때가 되었다.

이가성 회장은 운전수의 노고를 위로하고 노년을 편히 보내게 하기 위해, 200만위엔의 수표를 건냈다.

그랬더니, 운전수는 필요없다고 사양하며, "저도 이천만위엔 정도는 모아 놓았습니다"하더란다.

이가성 회장은 기이하게 여겨 물었다. "월급이 5-6천위엔 밖에 안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거액의 돈을 저축해 놓았지? "

운전수는 "제가 차를 몰 때, 회장님이 뒷자리에서 전화하는 것을 듣고, 땅 사실때마다 저도 조금씩 사놓았고요, 주식을 살때, 저도 따라서 약간씩 구입해 놓아, 지금 자산이 이천만위엔 이상에 이르고 있어요 !"

인생에 누구를 만났느냐는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

파리의 뒤를 쫓으면 변소 주위만 돌아다닐 것이고, 꿀벌의 뒤를 쫓으면 꽃밭을 함께 노닐게 될 것이다. 물론, 사람만 잘 만난다고 잘 되는 것은 아니다. 기회를 잘 붙잡아야 된다.

경견칙 필유후회(輕見則 必有後悔), 함부로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긴다 -孔子-

-작가 이우재-

#명언 #거액 #월급 #사양 #저축 #좋은글 #회장 #노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423.html
kolaswqetsrq 11.01 22:06
우리는 하루에도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

그냥 스쳐가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참 좋은 인연으로

오래오래 함께 하는 인연이 있다

처음엔 간 쓸개까지

빼줄 것처럼 다가왔다가

뒤돌아설 땐 온갖 좋지 않은

모습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참 좋은 인연이란

처음이 좋은 인연이 아니라

끝이 좋은 인연이라는 이 말이

너무나 가슴 깊이 다가오는 말이다

한 번쯤 그 사람을 떠올렸을 때

좋은 기억으로 남아

무얼 하고 사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다는 여운을 남겨두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글ᆞ캘리 : 해밀 조미하

#명언 #좋은글 #사람 #모습 #인연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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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1 22:07
사는데 제일 중요한 7가지 기氣

< 사는데 제일 중요한 7가지 기(氣) >

1. 눈에는 - 총기

상대를 흡입하듯 바라보는 맑은 눈, 마음속의 평안, 기쁨, 정성을 보여주는 관심에 표현, 상대를 제압하고 이끌어가는 힘이 나타납니다.

2. 얼굴에는 - 화기

웃음이 가득한 모습으로 대해야 웃음으로 돌아오는 법입니다. 항상 스마일한 모습, 자신감 있는 표정 관리는 중요한 성공의 자세라는 것을 알고, 속으로는 울어도 얼굴로는 웃을 수 있는 자세로 사업에 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3. 마음에는 - 열기

열정이 있어야 자신감이 생기는 법입니다. 사업의 비전을 알고 뜨거운 열정을 느끼지 못하면

사업에 열중하여도 진행이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매사에 뜨거운 열정으로 자신감 있는 성공의 자세, 그것만이 성공의 지름길로 가는 길입니다.

4. 몸에는 - 향기

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복장부터 최고의 복장으로, 몸가짐도 과거에 모든 것을 버리고 숙일 줄 알며, 존경할 줄 아는 마음자세로써 항상 몸에서는 향기로 가득한 자세로 고객의 마음을 잡을 때 나의 변하는 모습을 보고 궁금증이 유발되어 시선을 끌게 됩니다.

5. 행동에는 - 용기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에 임하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마음의 자세 또한 성공할 수 있는 자의 용기라 할 수 있지요.

부정을 버리고 긍정적인 자세로 어려움을 앞서 해결하고, 기다리지 않고 일을 찾아서 하는 것 또한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6. 어려울 때는 - 끈기

어떠한 일도 어려움이 없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누구나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마음자세와 끈기있는 정신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7. 자존심이 꺽 일 때는 - 오기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사업에서 가장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가족들의 외면, 친구들의 믿음을 저버리는 것, 가장 믿은 자가 나를 믿어주지 못할 때입니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다른 그분들께는 반드시 오기심이 생깁니다. 오기심으로 반드시 성공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자세 또한 성공의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평안 #마음속 #흡입 #표현 #정성 #명언 #제압 #관심 #기쁨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7_82.html
kolaswqetsrq 11.01 22:08
때로는 안부를 묻고 산다는게

때로는 안부를 묻고 산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이 어딘가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그럴 사람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사람 속에 묻혀 살면서

살마이 목마른 이 팍팍한 세상에

누군가 나의 안부를 물어준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가슴 떨리는 일인지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걸

깨우치며 산다는건 또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나는 오늘 내가 아는 사람들의 안부를

일일이 묻고 싶다.

김시천 / 때로는 안부를 묻고 산다는게

#세상 #다행 #사람 #명언 #좋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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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1 22:08
감사感謝

감사(感謝)

한 소녀가 산길을 걷다가 나비 한 마리가 거미 줄에 걸려 버둥대는 것을 발견하고는 가시덤불을 제치고 들어가 거미줄에 걸려있던 나비를 구해 주었습니다.

나비는 춤을 추듯 훨훨 날아갔지만 소녀의 팔과 다리는 가시에 찔려 붉은 피가 흘러 내렸습니다.

그때 멀리 날아간 줄 알았던 나비가 순식간에 천사로 변하더니 소녀에게 다가왔습니다. 천사는 자기를 구해준 은혜에 감사하면서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를 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 때 천사는 소녀의 귀에 무슨 말인가 소근거리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소녀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서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도록 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녀를 사람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우러러 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예쁜 소녀가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임종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할머니가 죽기 전에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웃으시며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소녀였을 때 나비 천사를 구해 준 적이 있지, 그 대가(代價)로 천사는 나를 평생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 주었어... 그때 천사가 내게 다가오더니 내 귀에 이렇게 속삭이는 거야.

 "
구해주어서 고마워요 소원을 들어 드릴께요, 무슨 일을 당하든지 감사하다고 말하면 평생 행복하게 될 거에요
",

그때부터 무슨 일이든지 감사하다고 중얼거렸더니 정말 평생 행복했던 거야. 사실 천사가 내 소원을 들어준 게 아니야, 누구든지 만족한 줄 알고 매사에 감사하면, 세상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

이 말을 끝으로 눈을 감은 할머니의 얼굴에는 말 할 수 없는 평온함이 가득했습니다.

-BAND 글 옮김-

#산길 #소원 #행복 #발견 #거미줄 #순식간 #세상 #좋은글 #명언 #가시덤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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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1 22:09
어느 목수 이야기

어느 목수 이야기

한 나이 많은 목수가 은퇴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고용주에게 지금부터는 일을 그만 두고 자신의 가족과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고용주는 가족들의 생계가 걱정되어 극구 말렸지만, 목수는 여전히 일을 그만 두고 싶어 했습니다. 목수는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였습니다.

고용주는 훌륭한 일꾼을 잃게 되어 무척 유감이라고 말하고는, 마지막으로 손수 집을 한 채 더 지어 줄 수 있는 지 물었습니다. 목수는 "물론입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일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형편없는 일꾼들을 급히 모으고는 조잡한 원자재를 사용하여 집을 지었습니다. 집이 완성 되었을 때, 고용주가 집을 보러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집을 보는 대신, 목수에게 현관 열쇠를 쥐어주면서 "이것은 당신의 집입니다. 오랫동안 당신이 저를 위해 일해준 보답입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목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리고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일 목수가 자신의 집을 짓는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그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100년이 지나도 수리를 할 필요가 없는 튼튼한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수리할 필요가 없는 훌륭한 집에서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기보다는 단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차선책으로 견디려 합니다. 최선을 다해 일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상황, 자신이 대충 지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결코 유쾌하지 못한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인생이라는 집을 나의 집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집을 지을 것입니다. 못을 박고 판자를 대거나 벽을 세우는 매 순간마다 정성을 다해 지을 것입니다.

-Facebook 펌글-

#좋은글 #가족 #자신 #걱정 #지금 #여생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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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1 22:10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옷은 사람이래요.

그래서 추운날

누군가를 안으면,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이 사람이래요.

결국 우리들은

누군가의 옷인지도 몰라요.

점점 옷 깃을 여미게하는

계절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나두 누군가에게

몸과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그런 옷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입니다.

-BAND 글 옮김-

#계절 #사람 #좋은글 #세상 #명언 #물론 #마음 #생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989.html
kolaswqetsrq 11.01 22:10
차 한 잔과 좋은 생각

차 한 잔과 좋은 생각

누구를 만나

좋아하게 되고

친구를 삼게 되어도

진정 아름다운

우정으로

남고 싶다면

그에게 반대 급부를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그가 나의

친구가 되었으므로

그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어쩌다 그가 나를

모질게 떠나 간데도

그가 내곁에

머무는 동안

내게 준 우정으로

내게 준 기쁨으로

내게 준 든든한 마음으로

그냥 기뻐하면 됩니다.

진정한 우정은

세월이 지날 수록

더 아름다워집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더 가까이 느껴져야 합니다.

보이는 것으로만

평가되는 이 세상에서

마음을 어긋 맡기며

서로에게 마음의 의지가 되는

참 좋은 친구

아픈 날에

어려운 날에

외로운 날에

정말 좋지 않은

날들 일수록

정말 몹쓸 환경에

처 할 수록

우정이 더

돈득해지는

너와 나의 만남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최복현『세상살이』-

#명언 #마음 #우정 #사실 #기쁨 #동안 #생각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984.html
kolaswqetsrq 11.01 22:11
말을 잘하는 7가지 방법

말을 잘하는 7가지 방법

1. 머리속에 그려지게 말하라. 영화를 보듯 말하면 효과가 있다. 비유와 예시는 더 효과적이다.

2. 듣는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라. 그가 당신을 어떻게 보는지 생각하지 말라. 어떻게 하면 당신의 말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지 생각하라.

3. 듣는 귀를 가져라. 말하기와 듣기는 49대 51이 좋다. 2% 부족한 말하기가 되어야 한다.

4. 책을 많이 읽어라. 재치는 많이 알고 정확히 아는 지식에서 나온다.

5. 결과를 먼저 말한다. 두괄식 말하기는 오해와 지루함을 제거한다.

6. 유머를 구사하라. 웃음은 제대로 된 윤활유다.

7. 낯익은 얼굴을 보고 말하라. 많은 사람 앞에서 떨리기 시작하면 그 중 낯익은 얼굴을 찾아내 그와 만났던 좋은 추억을 떠올리면 여유가 생길 것이다.

-Vingle 글 옮김-

#생각 #파악 #사람 #부족 #방법 #명언 #도움 #상대방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7_22.html
kolaswqetsrq 11.01 22:12
우생마사牛生馬死

우생마사(牛生馬死)

아주 커다란 저수지에 말과 소를 동시에 던져 넣으면 둘 다 헤엄쳐서 뭍으로 나옵니다. 말의 헤엄 속도가 훨씬 빨라 거의 소의 두배의 속도로 땅을 밟는데 네발 달린 짐승이 무슨 헤엄을 그렇게 잘치는지 보고 있으면 신기 하죠.

그런데, 장마기에 큰물이 지면 이야기가 달라 지죠. 갑자기 불어난 물에 소와 말을 동시에 던져 보면, 소는 살아서 나오는데, 말은 익사를 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말은 헤엄은 잘 치지만 강한 물살이 떠미니깐 그 물살을 이겨 내려고 물을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려 합니다. 1미터 전진 하다가 물살에 밀려서 다시 1미터 후퇴를 반복 합니다. 한 20분 정도 헤엄 치면 제 자리에서 맴돌다가 지쳐서 물을 마시고 익사해 버립니다.

그런데 소는 절대로 물살을 위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냥 물살을 등에 지고 같이 떠 내려 갑니다. 저러다 죽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10미터 떠내려가는 와중에 1미터 강가로 10미터 떠 내려 가다가 또 1미터 강가로 그렇게 한 2~3 킬로 내려가다 어느새 강가의 얕은 모래밭에 발이 닿고 나서야 엉금엉금 걸어 나오죠.

 "
신기한 일 입니다. 헤엄을 두배나 잘치는 말은, 물살 거슬러 올라 가다 힘이 빠져 익사 하고 헤엄이 둔한 소는 물살에 편승해서 조금씩 강가로 나와 목숨을 건졌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 유명한 우생마사입니다.
",

인생을 살다 보면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일이 아무리 애써도 꼬이기만 하죠. 어렵고 힘든 상황일 때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소와 같은 지혜를 가지시길...

-인터넷 글 옮김-

#좋은글 #헤엄 #짐승 #네발 #물살 #우생 #다음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748.html
kolaswqetsrq 11.01 22:12
긍정과 부정

긍정과 부정

항상 부정적인 사람과

항상 긍정적인 사람은

시작이 다르고 끝이 다르다.

부정에는 부정적 마음으로 시작되어

부정의 얼굴 표정이 나오고

부정의 말이 나오며

부정의 행동이 나오게 된다.

결과적으로 부정하는 삶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긍정에는 긍정하는 마음으로 시작되어

긍정의 얼굴표정이 나오고

긍정의 말이 나오며

긍정의 행동이 나오게 된다.

결과적으로 긍정하는 삶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성공하고 싶은가?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경제적 독립과 시간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절대 좋지 않은 감정표현을

입밖에 내지 않아야 하며,

남을 헐뜯고 시기 질투하지 말며,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는 식의

부정적 마인드를 쓰레기통에 버려라.

무엇이든 잘 될 것이라는 무한긍정과

확신이 정답이다.

성공자는 무얼 해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있다.

부정적인 사람은 평생 불쌍해지며,

긍정적인 사람은 평생 행복해진다.

그 선택은

지금의 당신에게 달려있다.

-GNBU총장 홍창준 박사-

#좋은글 #명언 #시작 #긍정 #부정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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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1 22:13
당신이 아름다운 이유

당신이 아름다운 이유

당신이 아름다운 이유는 소중한 것과 사소한 것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과 빨리 잊어야 할 것의 판단이 성숙하고 간직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알며 슬플 때 슬퍼할 수 있고 힘들 때 힘들다 말할 수 있는

진솔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린 풀잎처럼 신선하고 하늘처럼 맑으며 아이의 웃음처럼 싱그러운 느낌을 영혼 가득 담고 있기에... 가끔 철없이 투정을 하여도 밉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귀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선 오랜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고 여유롭고 침착할 수 있으며 그렇다고 기도하기를 멈추거나 헛된 망각의 시간으로... 자신을 내몰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이라며 언제나 마음을 곱게 가꾸려 애쓰고 때로는 침묵과 미소로 말할 줄 알기에 늘 따뜻한 가슴과 순수한 열정으로 하루를 채워가기 때문입니다.

지혜롭고 총명함은 머리를 쓸 때가 아니라 마음을 쓸 때 발휘된다는 것을 잘 알며 삶은 그 어느 특정한 부분이 아니라 그 전체가 가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당신이 아름다운 이유는 늘 부족하다고 투덜대면서도 그러한 자신을 진정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 당신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BAND 글 옮김-

#구분 #진솔 #하늘 #좋은글 #간직 #가슴 #풀잎 #성숙 #판단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1404.html
kolaswqetsrq 11.01 22:14
나에게 호감 가지게 하는 10가지 방법

나에게 호감 가지게 하는 10가지 방법

01. 자꾸 웃어라.

웃는 얼굴을 외면하기는 힘들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났다면 그저 웃는 얼굴 보이는게 첫 단계, 방긋웃는 모습이 효과적이다. 의도적인 방긋웃음은 일단 상대방의 관심을 유도하게 된다.

02. 개방적인 태도.

턱을 괴거나 팔짱 끼는 것, 말할 때 입을 가리는 등의 행동은 심리학에선 방어적인 태도로 친다. 그것은 상대방을 경계한다는 표현이다. 이럴 땐 그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접근하긴 힘들다. 무심코 하는 습관적인 자신의 행동을 체크해 볼 것. 속마음과 달리 상대는 당신의 태도에서 방어벽을 발견하게 된다.

03. 앞으로 기울이기.

 "
미팅 같은 데서 마주앉아 뒤로 기대앉는 건 너한테 관심 없어. 지루해하는 표현. 의자를 테이블에 붙여 앉고 상체를 약간 앞으로 숙이며 상대방을 대하는 건 너한테 관심 있어, 네 생각은? 이라는 의미다. 테이블 절반 이상 앞으로 넘어가는 건 오히려 부담을 준다. 잊지 말 것!
",

04. 스킨쉽.

 "
자신의 양팔을 쭉 편 공간이 개인적인 공간. 이 공간 안에 누가 들어오면 굉장히 신경 쓰이고 긴장하게 된다. 이 거리 안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람이 바로 호감 가는 사람. 극장에서 옆에 앉거나 여러 명이 미팅하는 자리에서 맘에 들면 일단 옆 자리를 확보해 앉는 것이 최고!
",

05. 눈을 맞춰라.

홀깃홀깃 기분 나쁘게 훔쳐보지 말고 정식으로 마주보고 눈을 맞출 것. 상대방과 맘이 통하면 그 쪽에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첫눈에 반한다는 얘기다.

06. 맞장구쳐라.

 "
호들갑 떠는 맞장구가 아니더라도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든가,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든가 하는 약간의 모션만으로도 상대방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 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 라는 의미에서 맞장구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사람은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이 자신의 얘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데에 안도하고 호감을 갖는다.
",

07. 깜짝 놀래켜라.

놀이동산에 놀러 갔을 때 롤러코스트 같은 스릴 넘치는 기구를 타면 사람은 흥분상태에 있기 마련이다. 그 때 상대방을 보면 호감이 생겨난다. 이때가 절호의 기회이다.

08. 여운을 남겨라.

 "
데이트를 마칠 무렵 오늘 즐거웠어요, 이만은 끝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오늘 할 일을 다 끝냈다는 느낌이 들면 다음에 또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 다음에 만나면 영화 봐요, 어디에 가요라는 식으로 무언가 미진하고 미완성된 느낌을 남겨 두어야 다음에 만날 기회가 또다시 생기는 것이다.
",

09. 전염성이 강하다.

 "
한 사람의 심리적인 상태가 상대방에게 전염되는 것을 거울 효과라고 한다. 하품을 하면 곧 여러 사람이 하품을 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관심을 끊임없이 표현하면 역으로 그의 반응이 곧 온다! 특히 연애에 있어서는 자신의 밝고 명랑한 성격을 어필하는 것이 좋다.
",

10. 두 번째 인상이 더 중요하다.

오히려 첫 인상이 나쁜 사람이 연애 성공률이 오히려 높다. 처음에 좋은 인상이었던 사람은 그 다음에 기대치가 높아서 본래보다 더 멋진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별 기대 없이 나간 두 번째 만남에서 좋은 면을 더 쉽게 발견하기가 쉽다. 심리학에서는 첫인상보다도 두 번째 인상을 중요시 여긴다.

 "
-출처 : Vingle chremata-
",

#호감 #웃음 #얼굴 #방법 #모습 #명언 #좋은글 #외면 #마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0_67.html
kolaswqetsrq 11.01 22:15
4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4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01. 제2의 성인식을 올려라.

02. 10대에 했던 일을 다시 시작하라.

03. 지금부터 행동체력을 단련하라.

04. 평소에 열심히 운동하라.

05. 정신력이 필요한 분야에 도전하라.

06. 10대처럼 상쾌하게 웃어라.

07. 추억을 떠올리며 웃어라.

08. 진정한 어른의 웃음을 웃어라.

09. 밝은 메세제로 메시지를 남겨라.

10. 작은 실수에도 즉시 사과하라.

11. 부하직원에게도 번저 인사하라.

12. 멋있게 인사하는 사람을 따라하라.

13. 반복연습을 통해서 성장하라.

14. 쓸모없는 일에 도전하라.

15.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라.

16. 많이 고민하고 많이 반문하라.

17. 성공 느낌에 휩싸이지 마라.

18. 자유시간을 많이 만들어라.

19. 새로운 것에 온 몸을 내던져라.

20. 순수하게 기쁨을 느끼는 일을 하라.

21. 사람들이 반대하는 전직을 하라.

22.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라.

23. 골인 지점이 없는 경쟁을 하라.

24. 라이프 워크를 가져라.

25. 승패보다 미의식에 집착하라.

26.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즐겨라.

27. 자신의 정열을 모두 불태워라.

28. 연봉을 줄이기 위해서 고민하라.

29. 적당한 시기에 일부러 실패하라.

30. 대역이 없는 일을 하라.

31. 일을 부하직원에게 넘겨줘라.

32. 인생의 스승을 발견하라.

33.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나라.

34. 새로운 일에 도전하라.

35. 어린시절에 모았던 작품을 다시 보라.

36. 스스로 영웅이 되라.

37. 스스로 책임을 떠맡아라.

38. 몸과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라.

39. 치밀하게 계산하지 마라.

40. 자기 스스로 유령이 되라.

41. 결벽주의에서 벗어나라.

42. 남의 행복을 위해 일하라.

43. 나중에 시작하는 사람을 응원하라.

44. 효도를 함으로써 행복해져라.

45. 능력을 과시하지마라.

 "
46. 막무가내 돌격형에서 졸업하라.
",

47. 인생의 키워드를 만나라.

48. 실패확률이 높은 일에 도전하라.

49. 자신을 향해 활을 쏘아라.

50. 항상 영혼을 의식하라.

-나카타니 아키히로-

#좋은글 #운동 #정신력 #명언 #성인식 #지금 #행동 #단련 #시작 #체력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40-50_21.html
kolaswqetsrq 11.01 22:15
여자가 지켜줘야하는 남자의 6가지

여자가 지켜줘야하는 남자의 6가지

1. 존경심

 "
남자를 존경하라는 말로 단순히 받아들이지 말라. 올가가 주장하는 내용은 이렇다. 남자들은 존경심을 먹고 자라는 나무와 같다는 것이다. 남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라는 뜻이다. 남자들은 자신의 친구나 동료들에게 존경을 받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
",

2. 감사

올가는 "모든 남성들이 \감사\라는 가치를 잃게 되면 사실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한다. 남자들은 자신이 한 행동과 일에 대해서 칭찬을 받고 싶어한다. 소년들을 보라, 얼마나 칭찬에 굶주려 있는지. 남자는 평생 소년일 뿐이다.

3. 긍정적인 마인드

당신의 긍정적이고 상냥한 미소가 얼마난 중요한 힘을 발휘하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남성들은 대부분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다. 속으로야 어떻게 생각하든지 겉으로는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것이 남성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런 남성들은 다소 허풍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긍정적인 마인드가 있다. 그런 남자에게 현실적인 상황만 이야기 한다면 기를 죽이는 것일 수 있다.

4. 생각할 시간

남자들은 생각을 그렇게 빨리 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일들이 벌어지면 한동안 생각을 오래해야 한다. 때로는 오래도록 고민하고 주저할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상황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둘다 고민하고 그런 자신들이 존중 받기를 바란다. 결국 생각할 시간을 조금 더 줄 필요가 있다.

5. 남자의 일에 대한 칭찬

남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역시 칭찬이다. 설령 그가 한 일이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이 아닐지라도, 칭찬을 해주는 것이 좋다. 여자의 말 한마디에 남자는 용기를 내고 힘을 얻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6. 미소

남자의 미소처럼 멋진 것도 많지 않다. 부드럽고 인자한 미소는 남자를 더욱 남자답게 만들어 주는 무기라고 할 수 있다. 남자의 미소를 지켜주는 방법은 너무나 쉽다. 남자의 미소는 거울과 같다. 여자가 먼저 미소를 보내주면 쉽게 반사되어 돌아온다. 일부 여성들은 왜 여자가 먼저 미소를 지어야 하냐고 볼멘 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
-아메리칸키 중-
",

#존경심 #좋은글 #내용 #자신 #사람 #명언 #존경 #주장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6_21.html
kolaswqetsrq 11.01 22:16
여자와 남자

여자와 남자

여자는 모를수록 좋은 일을 너무 많이 알고, 남자는 꼭 알아두어야 할 일을 너무 모른다.

여자는 과거에 의지해서 살고, 남자는 미래에 이끌려 산다. 여자는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아야 하고, 남자는 망원경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여자는 마음에 떠오른 말을 하고, 남자는 마음에 먹은 말을 한다. 여자는 말속에 마음을 남기고, 남자는 마음속에 말을 남긴다.

남자가 여자를 꽃이라 함은 꺾기위함이요, 여자가 여자를 꽃이라 함은 그 시듦을 슬퍼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모르는 것도 아는체 하고, 여자는 아는 것도 모르는체 한다.

모든 남자들의 결론은 `여자는 할 수 없어`이고, 모든 여자들의 결론은 `남자는 다 그래`이다. 오직 한 여자와 사랑을 오래 나눈 남자가 사랑의 본질을 더 잘 알고 있다.

사랑이 식으면 여자는 옛날로 돌아가고,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 간다. 여자는 `약하기` 때문에 `악하기` 쉽고, 남자는 `착하기` 때문에 `척하기`쉽다. 여성을 소중히 할 줄 모르는 남자는 여성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괴테-

#명언 #결론 #마음 #마음속 #현미경 #좋은글 #망원경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538.html
kolaswqetsrq 11.01 22:17
나를 위로하는 날이해인 수녀

나를 위로하는 날(이해인 수녀)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 일 아닌데도

세상에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날 잠못들게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닫고 숨고싶을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내라고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거울앞에 설 때가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명언 #얼굴 #거울 #부끄러움 #세상 #마음 #약점 #허물 #좋은글 #죽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859.html
kolaswqetsrq 11.01 22:17
꿈을 포기하고 싶을 때

꿈을 포기하고 싶을 때

01. 20년 넘게 글을 쓰면서도 평론가들로부터 "너저분한 잡동사니 같은 글만 쓴다."는 비판을 받았던 작가의 이름은 도스토예프스키다.

02. 영하 10도의 날씨에 알몸으로 밖에 나가 "나는 할 수있다!"라고 외치던 한 무명배우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 중 한 명이 된다. 그의 이름은 전광렬이다.

03. 신용호는 한국의 저명인사 99명으로부터 "당신이 하려는 사업은 무조건 실패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이 "안된다"고 했던 사업은 "교보생명"이었다. 신용호는 교보그룹 창업자다.

04. NBA시절 9,000번의 슛을 실패하고 3,000회의 경기에서 패배한 선수의 이름은 마이클 조던이다.

05. 빈민가에서 남들이 먹다 버린 빵을 주워먹던 한 청년은 디즈니랜드를 설립한다. 그의 이름은 월트 디즈니다.

06. 근육 무력증에 걸려서 5년 가까이 누워서 지내던 박성수는 이랜드를 창업한다.

07. 끝도 보이지 않는 가난에 절망한 나머지 독약을 마신 남생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중국 음식점 "하림각"의 사장이 된다.

08. 수십 곳의 의상실로 부터 "당신은 절대로 패션 디자이너가 될수없다.!"는 말을 들은 한 청년은 패션의 전설이 된다. 그의 이름은 크리스찬 디오르다.

09. 한 잡지 편집장으로부터 "이런 글 실력으로는 절대로 작가가 될 수 없다." 라는 핀잔을 받은 한 무명 작가는 노인과 바다 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10.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음식으로 주린 배를 채우던 한 술집 웨이터는 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가 된다. 그는 조지 소르스라는 이름을 \x9bkm2

11. 신춘문예에 탈락에 이어 출판사에 직접 투고한 원고까지 거절 받는 아픔을 겪은 한 청년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가 된다. 그의 이름은 이문열이다.

-Facebook 글 옮김-

#좋은글 #사업 #이름 #유명 #비판 #무명 #알몸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238.html
kolaswqetsrq 11.01 22:18
"세계 제1의 갑부가 된 비결은 무엇입니까?"

"세계 제1의 갑부가 된 비결은 무엇입니까?"

어느 날 기자가 빌게이츠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저는 날마다 스스로에게 두가지 최면을 겁니다.

하나는

 "
오늘은 왠지 큰 행운이 나에게 있을 것이다
",

그리고 또 하나는

 "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
",

라고 상상합니다."

- 운명을 바꾸는 작은 습관 / 진희정

#상상 #운명 #행운 #명언 #최면 #비결 #대답 #좋은글 #습관 #오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_21.html
kolaswqetsrq 11.01 22:19
세상을 바꾸는 단 한 가지 방법

세상을 바꾸는 단 한 가지 방법

설령 고약한 이웃이 있더라도?

그저 너는 더 좋은 이웃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야.

착한 아들을 원한다면?

먼저 좋은 아빠가 되는 거고,

좋은 아빠를 원한다면?

먼저 좋은 아들이 되어야겠지.

남편이나 아내,

상사 부하 직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간단히 말해서?

세상을 바꾸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자신을 바꾸는 거야.

 "
-어린왕자, 두 번째 이야기 중-
",

#아들 #좋은글 #세상 #방법 #이웃 #노력 #남편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723.html
kolaswqetsrq 11.01 22:19
세상에 아닌 것은 없다

세상에 아닌 것은 없다

나도 옳고 너도 옳다

다만 다를 뿐이다

내 맘에 들지는 않지만

너의 생각도 나름의 뿌리와 색깔을 가졌다

각기 다르다는 것을 부정하며 살았다,

우리는 하나만을 고집했으며

일등만 사는 줄 알았다

편을 가르고 따로따로 살아 왔잖은가

기러기 떼가 먼길을 갈 때에

제 각각 순번을 내어 끼룩끼룩 어기여차

앞에서 안내하는 선두에게 울음짓,

날개짓을 보내며 간단다

우리는 한 시대를 날아가는 기러기떼

혼자서는 못 가는 것, 다 같이 가는 세상

세상은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며 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짓이어야 한다

세상을 처음 배우는 아기에게

도리도리 대신에 끄덕끄덕을 가르치자

잼잼 대신에 짝짝궁을 가르치자

세상에 아닌 것은 없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

다만 다를 뿐이다.

다만 다를 뿐이다 / 강희창

#울음 #고집 #세상 #순번 #생각 #좋은글 #명언 #부정 #색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431.html
kolaswqetsrq 11.01 22:20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보고 싶다고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나의 사랑이 깊어도

이유 없는 헤어짐은 있을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없어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사람의 마음이란 게

아무 노력없이도 움직일 수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움직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 속에 있을 때

더 아름다운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

사람도 기억도 이렇게 흘러가는 것임을

공지영 /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노력 #명언 #사랑 #기억 #마음 #사람 #좋은글 #가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401.html
kolaswqetsrq 11.01 22:21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을 밝히는 일은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을 밝히는 일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내 신념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만약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에게

뭔가를 강요하는 버릇이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을

옆에 두려고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신념과 생각이 그 사람으로부터

비평받고 함부로 평가되는 데서 오는

불쾌감 때문입니다.

내 생각만이 최고이고

진리라는 독선과 아집은

서로를 피곤하게 할 뿐입니다.

똑같은 문제를 보더라도

판단은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와 포용,

그리고 존중하는 마음은

의사소통을 위한 기본 예의입니다.

따라서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고든 리빙스턴 /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생각 #자신 #신념 #사람 #좋은글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478.html
kolaswqetsrq 11.01 22:21
한 심리학자가 스트레스 해결법에 대한 강연을 하러 강의실에 들어왔습니다.

한 심리학자가 스트레스 해결법에 대한 강연을 하러 강의실에 들어왔습니다.

심리학자가 한손에 물이 들어있는 물컵을 들자, 강의실에 있는 학생들은 "컵에 물이 반밖에 없네 또는 반이나 차있네"라는 시시콜콜한 질문이나 하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자는 웃는 얼굴로 "이 물컵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요?"라고 물었고, 학생들은 각각 250g~500g 사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심리학자가 말했습니다.

물의 실제무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물컵을 얼마나 오랫동안 들고 있느냐입니다. 만약 물컵을 1분동안 들고 있는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러나 물컵을 1시간 동안 들고 있는다면, 팔이 저려오고 아파올겁니다. 그리고 만약, 물컵을 하루 종일 들고 있었다면, 팔의 감각이 없고 제 팔은 마비될 것입니다.

각각 물컵을 들고 있는 시간이 다르지만, 물의 실제 무게는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걱정은 물컵에 들어있는 물과 같습니다. 내게 닥쳐온 스트레스를 잠깐동안 생각하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조금 더 생각하면 할수록, 문제가 되고 머리가 아파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생각한다면 당신은 마비됨을 느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버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절대 잊지 마세요. "물컵 내려놓기"

#학생 #물컵 #명언 #질문 #강의실 #좋은글 #해결 #생각 #강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029.html
kolaswqetsrq 11.01 22:22
위대한 선택 17가지

위대한 선택 17가지

01.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해라. 옳다고 확신한다면 믿어라. 믿는다면 흔들리지 말라.

02. 결과를 확신하라.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이다. 세상을 위한 선택을 하라.

03. 3년 뒤를 생각하라. 선택의 순간에는 한 발 물러서서 전체 그림을 보라.

 "
04. 다양하게 예측하라. 항상 여러 각도에서 상황을 살피고 분석하라.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반복효과에 속지 말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을 경계하라.
",

 "
05. 현실을 직시하라. 지도가 아닌 지형을 관찰하라. 진실을 외면하지 말라.
",

 "
06. 무모한 도전보다 현명한 후퇴가 낫다. 닭의 30cm 시야 보다 독수리의 3km 시야를 가져라. 창의적인 끈기를 추구하라.
",

 "
07. 고통의 이면에 집중하라. 과거를 닫고 미래로 향한 창문을 열어라.
",

08. 상상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라. 절대 포기하지 말라. 걱정은 나중에 하라.

09. 두려움은 이미지일 뿐이다. 선택했다면 집중하라. 바로 지금, 두려움 속으로 뛰어들라.

10. 과거에 발을 딛고 미래를 보고 현재를 살라. 고난을 지혜롭게 견뎌라. 현재와 미래의 균형을 잡아라.

11. 잠재력을 깨워라. 자신 안의 보물을 발견하라. 꿈을 이루는 것도 기술이다.

12. 보이지 않는 가치를 선택하라.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13. 다른 사람의 기준에 휘둘리지 말라. 결과보다 동기가 중요하다.

14. 홈런을 치고 싶으면 계속 방망이를 휘둘러라. 실패는 여전히 성공의 어머니이다.

15. 전문가에게 도움을 구하라. 전문가의 힘으로 기회를 구하라.

 "
16. 스스로 위기를 만들지 말라. 하늘을 스스로 무너뜨리지 말라.
",

17. 결국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다. 더 멀리 더 깊게 더 넓게 보라.

-다니엘R. 카스트로 ‘위대한 선택’-

#확신 #선택 #세상 #좋은글 #생각 #명언 #마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7_98.html
kolaswqetsrq 11.01 22:23
‘힘들다’ ‘힘들다’ 말하면

‘힘들다’ ‘힘들다’ 말하면

더 힘들어 집니다

‘안된다’ ‘안된다’ 말하면

될 일도 안됩니다

‘어렵다’ ‘어렵다’ 말하면

더 어려워 집니다

‘죽겠다’ ‘죽겠다’ 말하면

고통스런 일만 생겨납니다

‘잘된다’ ‘잘된다’ 말하면

안 될 일도 잘 되어줍니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말하면

행복한 일이 찾아옵니다

혼잣말을 하지만

운명의 귀는

내 생각을 감지하고

내 말을 듣고 있습니다

-유지나 ‘지필문학(4월호)’ 중-

#운명 #문학 #좋은글 #명언 #행복 #혼잣말 #생각 #고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899.html
kolaswqetsrq 11.01 22:23
선입견과 편견

선입견과 편견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두 마리의 개를 키운다고 합니다. 이 두 마리의 개에게는 이름이 있는데, 하나는"선입견"이고, 또 하나는 "편견"이라고 합니다. 그저 웃고 흘리기에는 그 숨은 뜻이 가슴을 찌릅니다.

인간은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거대한 감옥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도 가볍게 이야기해서 "선입견"과 "편견"이지, 사실 이것들은 "교만"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죄입니다.

이런‘선입견’과 ‘편견’이라는 두 마리 개를 아 버리는 한 마리의 특별한 개가 있습니다.

개 이름이 좀 긴데,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는 개입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

직접 보지 않고 들은 얘기로 상대를 판단하면 큰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이 개의 애칭은‘일견’이라 합니다.

"일견"을 키우면 "선입견"과 "편견"을 억누르고 조절할 수가 있습니다. 항상 "일견"을 키우시면서 상대을 바르게 보는 혜안을 가져야 할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보여지는것이 "전부" 가 아닐 때도 있는것 같습니다. 거짓말보다 더 나쁜 말은 "빈말" 이라고 했던가요.

그 빈말속에 진실이 가려져 오해란것이 생기고 그 오해란것이 또 다른 선입견과 편견을 만드는것 같습니다. 그 결과, 인연을 악연으로도 만드는 것 같습니다.

-BAND 글 옮김-

#마음속 #좋은글 #이름 #사람 #편견 #가슴 #명언 #선입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965.html
kolaswqetsrq 11.01 22:24
나를 변화시키는 10가지 조언

나를 변화시키는 10가지 조언

01. 버리는 일 부터 시작하라.

쓸데없는 것은 소유하지 않는 일, 바로 이것을 습관화 하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 진다. 그저 시간 때우기식으로 만났던 인간관계도 산뜻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02.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라.

쓸데없는 잡담이나 나누면서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 책을 읽는 편이 훨씬 생산적인 일이다.

03.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부터 하라.

행복의 기준은 자신이 만들어라. 평범하긴 하지만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은 건강이다. 건강한 몸 안에서 자라나게 될 무한한 가능성을 떠 올린다면 행복도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04. 계획보다 50% 여유 시간을 잡아라.

하루 활동하는 시간 중에도 일의 능률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있게 마련이다.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아내 그 시간 내에 하루 처리할 업무의 대부분을 해결하라.

05. 단순하게 생각하라.

무슨 일이든 단순하게 생각하면 중요한 부분에 자신의 능력을 집중시킬 수 있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피하려고 하기 보다는 어떻게 쉽게 생각할지 방법을 궁리하면 어느 순간 집안사정처럼 환히 꿰뚫어 보게 될 것이다.

06. 쉽게 그리고 즐겁게 일하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곧장 행동으로 옮겨라.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즐겁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일에 뛰어든다. 지금이라도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보자.

07. 나만의 능력을 찾아라.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이라도 스스로 자랑 할만 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나만의 능력이다. 능력은 단시간에 생기는 게 아니다. 바로 그 점이 도전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가진 사람 모두에게 자신감과 긍지를 갖게 한다.

08. 목표는 구체적으로 숫자화 시켜라.

목표는 나는 할 수 있다, 나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세우는게 효과적이다. 이왕이면 목표를 숫자화 시키고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결과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1%정도라면 누구나 쉽게 도전할 만한 수치다. 매일 1%의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한다면 한달 아니 1년후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09. 일을 인생의 수단으로 삼아라.

일은 인생의 수단일 뿐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언제든지 회사를 박차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웬만한 일은 대수롭지 않게 할만한 베짱이 생기지 않겠는가? 자신감과 노력이 뒤따르는 그 정도의 배짱은 일상의 여유를 선물 해 줄 것이다.

10. 한가지 일에만 집착하지 말아라.

한 가지 일에만 너무 집착하지 않도록 하라. 단지 하고 싶다는 이유로 자신을 몰아치는 동안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진정한 재능이 그대로 잠들어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카츠 후미히토 ‘나를 변화시키는 초 정리법’-

#건강 #명언 #시간 #조언 #마음 #좋은글 #인간 #시작 #습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0_8.html
kolaswqetsrq 11.01 22:25
즐거운 하루를 만드는 10訓

즐거운 하루를 만드는 10訓

01.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과 교제하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의 기분과 행동은 자신의 기분과 행동에 전염성이 있다.

02. 지나친 죄의식을 갖지 말라. 다른사람의 기분파 감정이 모두 당신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03. 자신감을 가져라. 자신의 약점보다 장점을 바라보고 자기 비판보다는 자신의 성공과 행복을 스스로에게 확신시킬 수 있는 사람만이 성공한다.

04. 남과 비교하지 말라. 세상엔 당신보다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05. 행복 해지겠다고 결심하라. 사람은 자신이 작정한 만큼 행복해 질 수 있다

06. 자신에 대한 불행감이나 삶에 대한 허무감을 버려라.

07. 완벽주의자가 되지 말라. 실수하는 것은 인간이고 용서하는 것은 신이다.

08. 당신을 구속하는 것은 바로 당신의 생각이다. 인식 전환을 통하여 행동의 변화를 꾀하자.

09. 어린 아이처럼 하루를 시작하라. 어린이들은 매일 자기에게 좋은 날이 된다는 기대속에 새날을 시작한다.

10. 모든 일에 머리를 쓰라. 성공한 사람들은 항상 작은 일에도 머리를 써서 향상 시킬 방법을 찾는다.

-원빈 스님 ‘같은 하루 다른 행복’ 중-

#명언 #낙관 #기분 #사람 #자신 #행동 #긍정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0_44.html
kolaswqetsrq 11.01 22:25
마요네즈 병과 두잔의 커피

마요네즈 병과 두잔의 커피

한 교수가 그의 철학 수업 시작 전에 앞에 서 있었고, 그의 앞에는 몇 가지 물건이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말없이 그는 매우 큰 빈 마요네즈 병을 들어올렸고 그 안을 골프공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학생들에게 이 병이 꽉 차있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교수는 조약돌 한 상자를 들어 그 병 안에 쏟았다. 교수는 가볍게 그 병을 흔들었다. 조약돌은 골프공 사이의 공간으로 굴러 들어 갔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학생들에게 이 병이 가득 차있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교수는 다음으로 모래 한 상자를 들어 그 병 안에 쏟아 부었다. 역시 모래는 빈 공간을 채웠다. 그는 다시 한 번 이 병이 가득 차 있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단호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교탁 아래에서 두 잔의 커피를 꺼내 그 내용물을 병 안에 모두 쏟아 넣었고, 커피는 모래 사이의 빈 공간을 효과적으로 채웠다. 학생들은 웃기 시작했다.

"이제," 웃음이 가라앉자 교수가 말했다.

"나는 자네들이 이 병이 자네들의 인생임을 알았으면 하네. 골프 공은 매우 중요한 것들이야. 자네들의 가족, 자녀, 자네들의 믿음, 건강, 친구 그리고 자네들이 가장 좋아하는 열정 말이네. 자네들 인생에서 다른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이것들만 남는다해도, 그 인생은 여전히 꽉 차있을 거야.

조약돌은 문제가 되는 다른 것들이네. 자네들의 직업, 집 그리고 차 같은 것들이지. 모래는 그 외 모든 것들이지. 작은 것들 말이야."

"만약 자네들이 모래를 병 속에 가장 먼저 넣는다면,"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다면 조약돌이나 골프공이 들어갈 자리는 없을거네. 인생도 이와 같네.자네들이 자네들의 시간과 힘을 그 작은 것들을 위해 써버리면, 평생 자네들에게 중요한 것이 들어갈 공간이 없을게야.

자네들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에 집중하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게. 낚시를 가도 좋고, 강검진을 위한 시간도 갖게. 배우자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가게. 다른 (골프)경기를 하게. 언제나 집을 치우고 고장난 것을 고칠 시간은 있을거네. 가장 중요한 골프공을 먼저 생각하게.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게. 그리고 남은 것들은 그냥 모래일 뿐이네."

학생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커피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교수는 미소를 지었다.

"물어봐줘서 고맙네. 이건 단지 자네들의 인생이 얼마나 가득찼든지 간에, 언제나 친구와 커피 한 잔 할 여유는 있다는 것을 보여주네."

-BAND 글 옮김-

#철학 #명언 #시작 #수업 #좋은글 #골프공 #물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49.html
kolaswqetsrq 11.01 22:26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과, 아는 것을 애써 난 척하지 않고도 자신의 지식을 나눌 수 있는 겸손과 지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과, 아는 것을 애써 난 척하지 않고도 자신의 지식을 나눌 수 있는 겸손과 지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돋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있는 모습 그대로 아름답게 비치는 거울이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남에게 있는 소중한 것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선한 눈을 가지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화를 내거나 과장해 보이지 않는 온유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특함으로서 자신의 유익을 헤아려 손해보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마음보다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 서라도 남의 행복을 기뻐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꾸며진 미소와 외모 보다는 진실된 마음과 생각으로 자신을 정갈하게 다듬을 줄 아는 지혜를 쌓으며 가진 것이 적어도 나눠주는 기쁨을 맛보며 행복해 할 줄 아는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삶의 지혜가 무엇인지 바로 알고 인내심을 가지고 진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의 정거장’ 중-

#자신 #지식 #모습 #거울 #좋은글 #명언 #과장 #겸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179.html
kolaswqetsrq 11.01 22:27
어느 아일랜드 왕의 충고

< 어느 아일랜드 왕의 충고 >

너무 똑똑하지도 말고, 너무 어리석지도 말라.

너무 나서지도 말고, 너무 물러서지도 말라.

너무 거만하지도 말고, 너무 겸손 하지도 말라.

너무 떠들지도 말고, 너무 침묵 하지도 말라.

너무 강하지도 말고, 너무 약하지도 말라.

너무 똑똑하면 사람들이 너무 많은걸 기대할 것이다.

너무 어리석으면 사람들이 속이려 할 것이다.

너무 거만하면 까다로운 사람으로 여길 것이고

너무 겸손하면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말이 많으면 말에 무게가 없고

너무 침묵하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것이다.

너무 강하면 부러질 것이고

너무 약하면 부서질 것이다.

#존중 #침묵 #사람 #좋은글 #명언 #겸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641.html
kolaswqetsrq 11.01 22:27
진정한 사랑어느 병원장의 일기

진정한 사랑(어느 병원장의 일기)

아침 8시 30분쯤 되었을까? 유난히 바쁜 어느 날 아침, 80대의 노신사가 엄지 손가락의 봉합사를 제거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그는 9시에 약속이 있어서 매우 바쁘다고 하며 나를 다그쳤다.

나는 노신사의 바이털 사인을 체크하고 의자에 앉으시라고 권했다. 아직 다른 의사들이 출근하기 전이어서 그를 돌보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시계를 연신 들여다보며 초조해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내가 직접 돌봐 드리기로 마음을 바꿨다. (때마침 나는 한가한 편이었다.)

 "
다행히 노신사의 상처는 잘 아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의사를 불러, 노신사의 봉합사를 제거하고 드레싱을 갈아 드려야 하니 관련 장비와 소모품 일체를 챙겨 달라고 부탁했다.
",

나는 노신사의 상처를 치료하며 그와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서두르시는 걸 보니, 혹시 다른 병원에 진료 예약이 되어 있으신가 보죠?" 라고 물으니, 노신사는 "요양원에 수용되어 있는 아내와 아침 식사를 해야 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부인의 건강상태를 물으니, 노신사는 "아내는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나는 부인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으며, "어르신이 약속 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으시면, 부인께서 언짢아하시나 보죠?" 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신사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뇨, 아내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지 5년이나 됐는걸요."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부인이 선생님을 알아보시지 못하는데도 매일 아침마다 요양원에 가신단 말입니까?"

노신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나를 몰라보지만,

난 아직 그녀를 알아본다오."

노신사가 치료를 받고 병원을 떠난 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애써 참아야 했다. 내 인생을 걸고 찾아 왔던 사랑의 모델을 드디어 발견했다는 기쁨에, 내 팔뚝에서는 소름마저 돋았다. 진정한 사랑은 육체적인 것도 로맨틱한 것도 아니다.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느 병원장의 일기-

#아침 #좋은글 #손가락 #방문 #병원장 #병원 #명언 #노신 #사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285.html
kolaswqetsrq 11.01 22:28
버려야 할 마음 5가지

버려야 할 마음 5가지

1.의심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 자신이 가고 있는 길, 자신이 보고 있는 것, 자신이 듣고 있는 것, 자신의 생각, 자신의 판단력, 자신의 능력, 자신의 귀한 존재를 의심하지 말자.

2. 소심

마음을 대범하게 쓰는 사람. 무엇이 두렵겠는가. 큰사람이 되자. 큰 마음을 갖자. 당당함을 내 보이는 자가 되라.

3. 변심

끝은 처음과 꼭 같아야 한다. 견고한 믿음으로부터 목표를 향해 언제나 첫마음으로 흔들리지 말자. 유혹으로 부터 도전적 자세를 갖자.

4. 교심

교만해지면 사람을 잃는다. 매사 도전적이되, 머리 숙일 줄도 알아야 한다. 승부를 즐기되, 승리에 집착하지는 말라.

5. 원심

원망하는 마음은 스스로를 피곤하게 한다. 소심하게 살아 왔음도, 굳건하지 못했음 마저도 원망하지 말자. 옹졸한 마음을 버리면 앞이 보인다. 마음 안에 원이 없어야 바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BAND 글 옮김-

#생각 #의심 #명언 #좋은글 #자신 #마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5_85.html
kolaswqetsrq 11.01 22:29
소중한 나의 친구야

소중한 나의 친구야

친구야

향기를 뿜는 녹음이

노랗고 붉게 변하더니

낙엽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도 뜸하고

술에 취한 듯 붉게 상기되어

핏빛처럼 선명하던 단풍잎도

거의 다 떨어져

이렇게 지나가나 싶어 애처롭다

친구야

소중한 나의 친구야

숱한 세월을 함께하다 보니

우리도 때론

감정이 앞서 감성을 건드릴 때도 있었고

내가 나에게 화가나

못마땅하고 언짢은 때도 있었지만

그 순간이 지금 잎이 다 떨어져

돌담을 둘러싼

앙상한 담쟁이 넝쿨 같은 기분이었다

친구야

우리 옛 일은 그냥 추억만 하자

지나쳐 가는 가을

갈대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지만

우리 마음속엔 은혜로움이

깨어있고 살아있고 숨을 쉬는구나

친구야

너는 나의 영원한 사랑이며

현재 나의 벗이며

놓을 수 없는 나의 진정한 친구다

사랑한다

나의 친구야

-‘두 친구 이야기’ 중-

#사람 #단풍잎 #좋은글 #핏빛 #산책 #명언 #선명 #낙엽 #녹음 #공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527.html
kolaswqetsrq 11.01 22:29
리더십의 필수요건 8가지

리더십의 필수요건 8가지

1. 리더는 끊임없이 조직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코치하며 격려와 배려를 하여야 한다.

2. 리더는 비전을 제시하고 직원들이 비전 속에서 숨쉬며 살아가게 해야 한다. 직원들의 머리속에 리더가 제시한 비전이 항상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함은 기본이고 비전을 실천하는 직원에게는 보상이 따르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3. 리더는 긍정적 에너지와 낙관주의를 발산해야 한다. 조직이 긍정과 희망의 에너지가 넘치도록 끊임없이 메세지를 주고 분위기를 조성하며 스킨십을 하여야 한다.

4. 리더는 공평하고 투명하며 신뢰가 있어야 한다. 공평성과 투명성은 리더에 대한 신뢰의 기본이고, 신뢰가 있어야 조직원이 따른다.

5. 때로는 인기없는 결단을 내릴 수도 있어야 한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할 때는 어려운 결정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리더가 좋은 소리만 들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6. 리더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직원들에게 끊임 없이 질문함으로써 길을 찾아가게 한다. 현명한 리더는 직원들을 그냥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게 만든다. 비전을 숙지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는데 질문기법이 유익하다.

7. 리더는 직원들에게 도전정신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리더는 스스로 실수를 인정하고 거기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말함으로써 직원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며 실패에서 배우도록 한다.

8. 리더는 상을 주는 사람이다. 직원들에게 보상이나 시상은 조직이 나를 인정했다는 자부심과 긍정적 에너지를 심어 준다.

-Story 글 옮김-

#인력 #비전 #리더십 #직원 #조직 #명언 #성장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8_60.html
kolaswqetsrq 11.01 22:30
그래도 해라.

그래도 해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오늘은 슬피 울어도

내일은

기쁨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오늘은 분도로 가득 차나

내일은

소리내어 크게 웃을지도 모른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허무해도

내일은 희망이

푸른 날개를 퍼득이며

찾아올올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오늘은 내 주머니가

비록 초라하지만

내일은 가득 찰지도 모른다

오늘은

날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내일은

날 찾아주는 사람들로

차고 넘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비방을 해도

자신의 일이 옳다면

결코 주눅들거나 멈추지 마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당신에게 주어진

영광에 대해

시샘하거나 따돌릴지라도

당신의

노력으로 이룬 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더욱 더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내 마음 같이

믿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등을 돌리고 떠나갈지도 모른다

진실로 당신이

그를 이해한다면

그를 용서하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매몰차게 물리치지 마라

내일은

당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지고 모른다

있는 그대로를 믿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여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어제는

오늘을 몰랐던 것처럼

내일도 잘 알 수 없지만

삶은

늘 그렇게 지내왔고

그래서 미래는

언제나 신비롭고 영롱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오늘 하늘은

맑고 푸르지만

내일은 그 하늘을

영원히 못 볼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당신에게 주어진 일에

묵묵히 정성을 다하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오늘도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어제와 같은

삶일지라도

우리는

삶의 흔적을 남기며 산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의 점들이 모여

우리 인생의

곡선을 만들어간다.

우리의 인생의 점을

확실히 찍으면서 살아가길

오늘 아침 소망해 본다.

-김옥림 ‘행복한 빵점짜리 남자’ 중-

#명언 #기쁨 #내일 #인생 #오늘 #마지막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648.html
kolaswqetsrq 11.01 22:31
기적의 열 마디

기적의 열 마디

01. 내 잘못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다면 실수를 바로잡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02. 미안합니다.

 "
미안합니다라고 말할 때 상대방의 입장을 알 수 있으며 관계를 개선할수 있으며 상대의 장점을 볼 수 있습니다.
",

03. 할 수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비난과 비웃음에 대한 걱정이 있겠지만, 목표를 갖고 도전하십시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04. 당신을 믿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 중 하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의지입니다.

05. 당신을 신뢰합니다.

우리 사회의 성공은 상대가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서로에게 보여주는 믿음 사람들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06.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 자신감이 필요한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 어느 누구든 삶의 매 순간마다 대화와 메모 또는 행동으로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라는 격려가 필요합니다.

07.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배려에 대한 감사를 보이는 일이며 사려 깊은 생각에 대한 인정입니다.

08. 당신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식될 때 긍정적이며 더 잘할 수 있게 됩니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됩니다.

09. 사랑합니다.

사랑은 우리 주변에 항상 있습니다. 배우자, 가족과 친구 또한 우리의 커뮤니티를 위해 사랑을 찾고 또 사랑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10. 존경합니다.?

존중받고자 한다면 먼저 존중 하십시오.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은 존경받습니다.

-BLOG 글 옮김-

#미안 #자신 #잘못 #모색 #해결책 #기적 #인정 #명언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96.html
kolaswqetsrq 11.01 22:31
말 한마디 없는

말 한마디 없는

침묵 속에서도 어색하지 않고,

한 참을 떠들어도

시끄럽다 느껴지지 않는,

그저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 속에

서로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사람, 그냥 좋은 사람이

느낌이 좋은 사람입니다 ....

-느낌이 좋은 사람-

#침묵 #시간 #사람 #마음 #명언 #느낌 #좋은글 #공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86.html
kolaswqetsrq 11.01 22:32
딸에게 전하는 ‘데이트 조언’

딸에게 전하는 ‘데이트 조언’

01. "사랑하는 사람은 만났다가 헤어지기도 하지만 가족은 늘 너의 곁에 있단다."

02. "네가 화장을 하지 않아도 널 아름답게 바라봐줄 남자를 만나거라."

03. "연애를 할 때 \노(no)\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04.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너 자신부터 정말로 사랑해야 한단다."

05. "너 자신이 누구인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해."

06. "너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누구도 너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07. "너의 결점까지 받아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렴."

08. "남자 때문에 너의 눈물을 낭비하지 말아야 해."

09. "이별을 하게 되면 세상이 끝날 것 같지? 그렇지 않단다. 더 멋진 남자가 다시 찾아온단다."

-온라인 미디어 ‘버즈피드’-

#화장 #가족 #사랑 #명언 #좋은글 #사람 #조언 #자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761.html
kolaswqetsrq 11.01 22:33
우물과 마음의 깊이

우물과 마음의 깊이

보이지 않는 우물이 깊은지 얕은지는 돌멩이 하나를 던져보면 알게 됩니다. 돌이 물에 닿는데 걸리는 시간과 그때 들리는 소리를 통해서 우물의 깊이와 양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깊은지 얕은지는 다른 사람이 던지는 한 마디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깊으면... 그 말이 들어 들어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깊은 울림과 여운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흔들리고 흥분한다면 내 마음이 아직도 얕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깊고 풍성하면 좋습니다. 이런 마음의 우물가에는 사람들이 모여 들어 갈증을 해소 하며 새로운 기운을 얻습니다.

비난이나 경멸의 말 던짐에 내 우물은 어떻게 반응을 보일까요? 내 마음의 우물은 얼마만큼 깊고 넓을까요?

-정용철 ‘가슴에 남는 좋은 느낌 하나’-

#명언 #마음 #시간 #좋은글 #우물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134.html
kolaswqetsrq 11.01 22:33
어머니

어머니

나에게 티끌 하나 주지 않는 걸인들이 내게 손을 내밀때면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전부를 준 당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나한테 밥 한번 사준 친구들과 선배들은 고마웠습니다. 답례하고 싶어 불러냅니다. 그러나 날 위해 밥을 짖고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당신이 감사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드라마 속 배우들 가정사에 그들을 대신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일상에 지치고 힘든 당신을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본 적은 없습니다.

골방에 누워 아파하던 당신 걱정은 제대로 해 본적이 없습니다. 친구와 애인에게는 사소한 잘못 하나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한 잘못은 셀 수도 없이 많아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제서야 알게되서

죄송합니다.

아직도 전부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
-서울여대 사랑의 엽서` 공모전 대상작-
",

#티끌 #좋은글 #대신 #명언 #일상 #눈물 #걸인 #생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967.html
kolaswqetsrq 11.01 22:34
날마다 하루 분량의 즐거움을 주시고

날마다 하루 분량의 즐거움을 주시고

일생의 꿈은 그 과정에 기쁨을 주셔서

떠나야 할 곳에서는 빨리 떠나게 하시고

머물러야 할 자리에는

영원히 아름답게 머물게 하소서.

누구 앞에서나 똑같이 겸손하게 하시고

어디서나 머리를 낮춤으로써

내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하소서.

마음을 가난하게 하여 눈물이 많게 하시고

생각을 빛나게 하여 웃음이 많게 하소서.

인내하게 하소서.

인내는 잘못을 참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깨닫게 하고

기다림이 기쁨이 되는 인내이게 하소서.

용기를 주소서.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드러내는 용기를 주시고

용서와 화해를 미루지 않는 용기를 주소서.

음악을 듣게 하시고 햇빛을 좋아하게 하시고

꽃과 나뭇잎의 아름다움에 늘 감탄하게 하소서.

누구의 말이나 귀 기울일 줄 알고

지켜야 할 비밀은 끝까지 지키게 하소서.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게 하시고

그 사람의 참 가치와 모습을 빨리 알게 하소서.

사람과의 헤어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그 사람의 좋은 점만 기억하게 하소서.

나이가 들어 쇠약하여질 때도

삶을 허무나 후회나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지혜와

너그러움과 부드러움을 좋아하게 하소서.

삶을 잔잔하게 하소서.

그러나 폭풍이 몰려와도 쓰러지지 않게 하시고

고난을 통해 성숙하게 하소서.

건강을 주소서.

그러나 내 삶과 생각이

건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소서.

질서를 지키고 원칙과 기준이 확실하며

균형과 조화를 잃지 않도록 하시고

성공한 사람보다 소중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사랑만큼 쉬운 길이 없고

사랑만큼 아름다운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늘 그 길을 택하게 하소서.

나를 아름답게 하는 기도

#기쁨 #과정 #좋은글 #즐거움 #겸손 #얼굴 #분량 #명언 #마음 #일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407.html
kolaswqetsrq 11.01 22:35
말에 담긴 지혜

< 말에 담긴 지혜 >

01. 무시당하는 말은 바보도 알아듣는다.

02. 말은 입을 떠나면 책임이라는 추가 기다린다.

03. 지적은 간단하게, 칭찬은 길게

04.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도 잔소리는 용서가 안 된다.

05.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 말라.

06. 농담이라고 해서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07. 표정의 파워를 놓치지 말라.

08 소소한 변화에 찬사를 보내면 큰 것을 얻는다.

09. 말을 하기 쉽게 하지 말고, 알아듣기 쉽게 하라.

10. 흥분한 목소리 보다 낮은 목소리가 더 위력이 있다.

11. 덕담은 많이 할수록 좋다.

12. 잘난 척 하면, 적만 생긴다.

13. 두고두고 괘씸한 생각이 드는 말은 위험하다.

14. 말을 독점하면 적이 많아진다.

15. 작은 실수는 덮어주고 큰 실수는 단호하게 꾸짖는다.

16. 지나친 아첨은 누구에게나 역겨움을 준다.

17.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한 비밀을 털어 놓는 것은 무덤을 파는 일이다.

18. 쓴 소리는 단맛으로 포장해라.

19. 험담에는 발이 달렸다.

20. 단어하나 차이가 남극과 북극의 차이다.

21. 진짜 비밀은 차라리 개에게 털어 놓아라.

22. 말도 연습해야 나온다.

23. 허세에는 한 번 속지 두 번 속지 않는다.

24. 약점은 농담으로도 들추어서는 안 된다.

25. 넘겨짚으면 듣는 사람 마음의 빗장이 잠긴다.

26. 때로는 알면서 속아 주어라.

27.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

#좋은글 #이름 #농담 #표정 #책임 #사랑 #명언 #칭찬 #흥분 #지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155.html
kolaswqetsrq 11.01 22:35
나를 송두리째 바꾸는 10가지 방법

나를 송두리째 바꾸는 10가지 방법

1.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라

쓸데없는 잡담이나 나누면서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 책을 읽는 편이 훨씬 생산적인 일이다

2. 버리는 일 부터 시작하라

쓸데없는 것은 소유하지 않는 일, 바로 이것을 습관화 하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 진다. 그저 시간 때우기식으로 만났던 인간관계도 산뜻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3.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부터 하라

행복의 기준은 자신이 만들어라. 평범하긴 하지만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은 건강이다. 건강한 몸 안에서 자라나게 될 무한한 가능성을 떠 올린다면 행복도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4. 계획보다 50% 여유 시간을 잡아라

하루 활동하는 시간 중에도 일의 능률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있게 마련이다.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아내 그 시간 내에 하루 처리할 업무의 대부분을 해결하라

5. 단순하게 생각하라

무슨 일이든 단순하게 생각하면 중요한 부분에 자신의 능력을 집중시킬 수 있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피하려고 하기 보다는 어떻게 쉽게 생각할지 방법을 궁리하면 어느 순간 집안사정처럼 환히 꿰뚫어 보게 될 것이다

6. 쉽게 그리고 즐겁게 일하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곧장 행동으로 옮겨라.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즐겁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일에 뛰어든다. 지금이라도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보자

7. 나만의 능력을 찾아라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이라도 스스로 자랑 할만 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나만의 능력이다. 능력은 단시간에 생기는 게 아니다. 바로 그 점이 도전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가진 사람 모두에게 자신감과 긍지를 갖게 한다

8. 일을 인생의 수단으로 삼아라

일은 인생의 수단일 뿐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자신감과 노력이 뒤따르는 배짱은 일상의 여유를 선물 해 줄 것이다

9. 한가지 일에만 집착하지 말아라

한 가지 일에만 너무 집착하지 않도록 하라. 단지 하고 싶다는 이유로 자신을 몰아치는 동안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진정한 재능이 그대로 잠들어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0. 목표는 구체적으로 숫자화 시켜라

목표는 나는 할 수 있다, 나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세우는게 효과적이다. 이왕이면 목표를 숫자화 시키고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결과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잡담 #이용 #좋은글 #시작 #시간 #습관 #방법 #명언 #생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0_47.html
kolaswqetsrq 11.01 22:36
어떠한 경우라도 사람을

어떠한 경우라도 사람을

잃지 마십시요...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장왕이 전쟁에서 돌아온 장수들을 위해 잔치를 벌였습니다. 밤늦도록 연회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광풍이 불어와 촛불이 전부 꺼지고 말았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왕이 총애하던 여인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전하, 지금 어둠을 틈타 누군가가 저를 희롱하였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제가 그자의

갓끈을 뜯어 손에 쥐고 있사오니 어서 불을 밝혀 범인을 잡아주시옵소서.”

그러나 장왕은 촛불을 켜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는 갓끈을 끊으라.

그러지 않는 자는 연회를 즐기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모두 끈을 끊은 뒤에야 촛불이 켜졌고, 결국 여인을 희롱한 범인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3년 후 초나라는 진나라와 전쟁을 벌였는데 전황이 매우 불리했습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죽음을 무릅쓰고 군대를 이끌고 적진 깊숙이 들어가 삽시간에 전세를 뒤집었습니다.

전투를 마치고 장왕은 그 장수를 찾았습니다. 장왕이 장수를 치하하자 장수는 왕 앞에 엎드려 고백했습니다.

“사실 저는 몇 년 전 연회장에서 여인을 희롱했던 장수입니다. 제가 엄한 벌을 받아야 했던 상황에서 폐하의 아량으로 목숨을 건졌기에 언젠가는 이 한 목숨을 바쳐 폐하를 위해 싸울 것이라 다짐했습니다.”

원수를 갚는 것은 적을 이기는 것이지만 용서하는 일은 친구를 얻는 것입니다.

완벽한 선인도 없고, 완벽한 악인도 없습니다. 장왕과 같은 아량과 여유로운 관용이 때로 위대한 구성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대적 감각과 리더쉽은 풍성한 인간관계에서 만들어집니다.

어떤 경우라도 사람을 잃지 마십시오. 능력보다

나를 더욱 빛내 줄 위대한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경우라도

사람을 잃지 마십시오.

사람이 당신의 재산입니다.

#전쟁 #광풍 #전국 #좋은글 #어둠 #명언 #사람 #촛불 #여인 #칠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562.html
kolaswqetsrq 11.01 22:37
쿨한 부부로 사는 지혜

<쿨한 부부로 사는 지혜>

1. 자잘한 일에 핏대 높이지 마라.

핏대 올리다 보면 혈압만 오르고 남는 건 성질 더럽다는 소리만 듣게 된다. 늘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면 이것이다. "본질적인 것인가? 비본질적인가?" 그러므로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주어라.

2. 습관은 무조건 존중해 주어라.

수 십 년 동안 안 고쳐진 게 지금 와서 갑자기 고쳐지겠는가? 나에게도 고쳐지지 않은 버릇이 있듯이 상대방에게도 버릇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라. 더군다나 습관과 인격은 다르지 않는가?

3. 웬만한 것은 빨리 잊어 버려라.

이렇게 물어 보아라. "무덤에 내려갈 때까지 간직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미리 털어 버려라. 그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4. 싸우려거든 징징거리거나 짜증만 내지 말고 분명히 화를 내라.

어설프게 봉합해 놓으면 병만 커진다.

5. 포기할 것은 일찍 포기해라.

고름이 오래된다고 살 되지 않는다. 더구나 내가 싫은 것은 상대방도 싫다. 그러므로 강요하는 습관을 버려라.

6. 바라는 게 있다면 솔직히 이야기해라.

어차피 상처받을 일이라면 은근히 기다리다. 스스로 상처받는 것보다 직접 거절당해 받는 상처가 더 떳떳하지 않는가?

7. 나와 다른 것에 속상해 하지 마라.

항상 부부가 같아야한다는 것처럼 큰 모순도 없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각기 다른 색이 조화된 데 있다. 더구나 물과 시멘트가 합쳐져서 콘크리트가 되지 않는가 말이다.

8. 역할분담을 분명히 해라. 업무규정을 가지듯 합의된 생활규칙을 가져라.

일테면 경제권은 누가 쥐고 용돈은 얼마를 써야 하며 시댁이나 친정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보다 명확하게 하라.

9. 홀로 서기를 미리 연습하라.

부부도 언젠가는 홀로 된다. 가끔은 떨어져도 보아라. 그리고 남자들은 요리하는 법을 여자들은 전기나 기구 다루는 것을 배워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10. 신랑과 신부, 남편과 아내로 보다는 영혼의 친구가 되어라.

그 때 비로소 서로를 속박하지 않으면서 친밀감은 배가된다.

#좋은글 #혈압 #본질 #습관 #질문 #성질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358.html
kolaswqetsrq 11.01 22:37
나를 최고로 사랑하라

나를 최고로 사랑하라

당신의 존재는 우연이 아니다. 당신은 대량 생산되지 않았고, 일괄 조립된 상품도 아니다.

당신은 창조주에 의해 신중하게 계획되었고, 특별한 재능을 받았으며, 사랑을 받으며 세상에 나왔다.

-막스 루카도(작가)-

#신중 #대량 #일괄 #명언 #생산 #조립 #상품 #우연 #좋은글 #사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57.html
kolaswqetsrq 11.01 22:38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첫 번째 방법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만나 인사를 안 할 수도 있고, 내 욕을 할 수도 있고, 날 싫어할 수도 있고, 내가 최선을 다했음을 못 알아줄 수도 있고, 오히려 비웃을 수도 있다는 것.

나아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그 사람의 사정에 따라 그를 만나고 싶은 순간에 못 만날 수도 있고, 그에게 나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러면 잠깐 내 존재를 소홀히 여기거나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가 나를 만나도 피곤하고 지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가 날 싫어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일에 지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때로 “힘들겠구나” 한 마디 외에는 어떤 위로도 도움이 안 되는 순간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의해 그럴 수 있다는 것.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 날 완벽하게 사랑해 줄 사람도 없고 단지 사람들은 현재 그 시점에서 자기에게 더 중요한 것에 마음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어떤 경우에도 상처를 덜 입을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애적인 존재다. 하지만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인해 조금 더 인간다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상처는 치유되고 사랑도 굳건해지지 않을까.

-양창순-

#명언 #사람 #방법 #좋은글 #인간 #최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27.html
kolaswqetsrq 11.01 22:39
김수환 추기경님의 8가지 명언

김수환 추기경님의 8가지 명언



말을 많이 하면 필요 없는 말이 나온다. 양 귀로 많이 들으며, 입은 세번 생각하고 열라.



수입의 1%를 책을 사는 데 투자하라. 옷이 헤어지면 입을 수 없어 버리지만 책은 시간이 지나도 위대한 진가를 품고 있다.

노점상

노점상에서 물건을 살 때 깍지 말라. 그냥 돈을 주면 나태함을 키우지만 부르는 대로 주고 사면 희망과 건강을 선물하는 것이다.

웃음

웃는 연습을 생활화 하라. 웃음은 만병의 예방약이며, 치료약이며 노인을 젊게 하고, \x8c은이를 동자로 만든다.

TV는 바보상자

텔레비전과 많은 시간 동거하지 말라.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마약에 취하면 이성을 잃지만 텔레비전에 취하면 모든 게 마비된 바보가 된다.

성냄

화내는 사람이 언제나 손해를 본다. 화내는 사람은 자기를 죽이고 남을 죽이며 아무도 가깝게 오지 않아서 늘 외롭고 쓸쓸하다.

기도

기도는 녹슨 쇳덩이도 녹이며 천년 암흑 동굴의 어둠을 없애는 한 줄기 빛이다. 주먹을 불끈 쥐기보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가 더 강하다. 기도는 자성을 찾게 하며 만생을 요익하게 하는 묘약이다.

이웃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 거울 이다. 이웃이 나를 마주할 때, 외면하거나 미소를 보내지않으면,목욕하고 바르게 앉아 자신을 곰곰히 되돌아 봐야 한다.

사랑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포용,동화,자기를 낮춤이 선행된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년 걸렸다."

-김수환 ‘바보가 바보들에게’ 중-

#물건 #명언 #좋은글 #수입 #생각 #노점상 #추기경 #시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8_19.html
kolaswqetsrq 11.01 22:39
천국에서 쓰는 7가지 말

천국에서 쓰는 7가지 말

1, 미안해요( I AM SORRY )

 "
2, 괜찮아요( THATS OKAY )
",

3, 좋아요( GOOD )

4, 잘했어요!(WELL DONE )

5, 훌륭해요( GREAT )

6, 고마워요(THANK YOU )

7, 사랑해요( I LOVE YOU )

# 이 말들을 즐겨 쓰면, 죽지 않아도 현재를 천국처럼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명언 #사랑 #좋은글 #천국 #미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7_26.html
kolaswqetsrq 11.01 22:40
친구는 내가 싸워서

친구는 내가 싸워서

이겨야 할 사람이 아닌

협력해서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멘토다.

경쟁은

내가 어제의 나하고 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경쟁자이자 본받지

말아야 할 사람은

오로지 어제의 나이다.

친구이지만 서로를 라이벌이라 느낀다면

오래전부터

어른들이나 학교에서

잘못된 세뇌를 당해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란 그러라고 있는 게 아니다.

살아가면서

마음 터 놓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친구 외에는 어디에도 없다.

그 정도로

친구라는 존재는

단순히 동갑에 같이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인생을 함께하는 또 다른 동반자라는 것.

친구는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또 다른 나인 것이다.

-『도종환의 교육 이야기』중-

#사람 #해결 #어른 #좋은글 #라이벌 #인생 #협력 #경쟁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409.html
kolaswqetsrq 11.01 22:41
수첩에 적어놔야할 삶의지혜 28가지

<수첩에 적어놔야할 삶의지혜 28가지>

1. 누워있지 말고 끊임없이 움직여라.

 움직이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2. 하루에 하나씩 즐거운 일을 만들어라.

 하루가 즐거우면 평생이 즐겁다

3. 마음에 들지 않아도 웃으며 받아 들여라.

 세상 모두가 내 뜻대로 되는게 아니다.

4. 자식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

 아무리 효자도 간섭하면 싫어한다.

5. 젊은이들과 어울려라.

 젊은 기분이 유입되면 활력이 생겨난다.

6. 한번 한 소리는 두번이상 하지 말라.

 말이 많으면 따돌림을 받는다.

7. 모여서 남을 흉보지 말라.

 나이 값하는 어른만이 존경을 받는다.

8. 지혜롭게 처신하라.

 섣불리 행동하면 노망으로 오해 받는다.

9. 성질을 느긋하게 가져라.

 급한 사람이 언제나 망신을 한다.

10. 나이가 들수록 냄새가 나니까 몸욕을 자주 하라.

 그래야만 사람들이 피하지 않는다.

11. 돈이 재산이 아니라 사람이 재산이다.

 돈 때문에 재산을 잃지 마라.

12. 좋은 책을 읽고 또 읽어라.

 마음이 풍요해지고 치매가 예방된다.

13. 대우 받으려고 하지 마라.

 어제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14. 먼저 모범을 보여라.

 그래야 젊은이들이 본을 받는다.

15 주는데 인색하지 마라.

 되로 주면 말로 돌아온다.

16. 하루에 10분씩 웃어라.

 수명이 연장되고 인자한 어른으로 기억된다.

18. 걱정은 단명의 주범이다.

 걱정할 가치가 있는 일만 염려하라.

19. 남의 잘못을 보며 빈정대지 말고

 잘하는 점만을 보며 칭찬을 하라.

20.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지 말라.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밝은 눈으로 바라보라.

21. 좋건 나쁘건 지난 날은 무효다.

 소용없는 일에 집착하지 말라.

22. 누가 욕한다고 속상해 하지 말라.

 참고 스스로 자신을 발견하라.

23. 고마웠던 기억만을 간직하라.

 괴로웠던 기억은 깨끗이 지워버려라

24. 즐거운 마음으로 잠을 자라.

 잠 속에서도 행복한 꿈을 꾼다.

25. 지혜로운 사람과 어울려라.

 바보와 어울리면 어느새 바보가 된다.

26. 그날에 있었던 좋은 일만 기록하라.

 그것이 행복의 노트다.

27. 작은 일도 크게 기뻐하라.

 기쁠 일이 늘어난다.

28. 내가 가지고 떠날 것은 없다.

 남기고 갈 것이 있는가를 살펴라.

#명언 #기분 #마음 #수첩 #평생 #자식 #세상 #유입 #좋은글 #간섭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28_19.html
kolaswqetsrq 11.01 22:41
화살은 뒤로 당겼을 때만

화살은 뒤로 당겼을 때만

앞으로 날아 갈 수 있다.

삶이 너를 어려움으로

잡아끈다고 생각될 때,

그건

삶이 너를 더 멋진곳으로

보내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계속 집중하고 목표를 향해라.

-인터넷 글 편집-

#좋은글 #어려움 #명언 #인터넷 #집중 #화살 #편집 #생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016.html
kolaswqetsrq 11.01 22:42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면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면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면 자기 몸 옆에 두려고 하지 말고 자기 마음 옆에 두려고 하세요.

자기 몸 옆에 둔 사람은 떠나면 그만이고 쉽게 떠날 사람이죠. 하지만 자기 마음 옆에 둔 사람이라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며 평생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될 거예요.

하지만 자기 마음 옆에 둔 사람이 평생 있을거라는 당연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뭐든지 꾸준한 노력과 관심 없이는 오래 가질 못하는 법이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자기 마음 옆에 둘 수 있고 상대방 마음 옆에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선 욕심을 버려야 해요. 내 마음 옆에만 두려고 하는 욕심을요. 그리고 먼저 상대방 마음 옆에 평생 있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본인 스스로 꾸준한 노력과 관심을 가져야 하겠지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평생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우리"가 되어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하나 예를 들어볼까요? 아름답고 소중한 꽃을 보기 위해서는 땅과 씨앗의 첫 만남으로 시작하지요. 그리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랜 시간동안 함께 이겨내야 아름다운 꽃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지요. 하지만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하여 내 옆에서 평생 아름다운 꽃으로 존재할 수 있을 거라는 당연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면 늘 배려해 주는 마음을 가지는 게 어떨까요? 시간의 흐름 속에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사람으로...

-제보 받은 글-

#좋은글 #사람 #평생 #명언 #마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466.html
kolaswqetsrq 11.01 22:43
내가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내가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꾸미지 않아 아름다운 사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솔직함과

아는 것을 애써 난척하지 않고도

자신의 지식을 나눌 줄 아는 겸손함과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돋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있는 모습 그대로 아름답게 비치는

거울이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남에게 있는 소중한 것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선한 눈을 가지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화를 내거나 과장해 보이지 않는

온유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특함으로 자신의 유익을 헤아려

손해보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마음보다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남의 행복을 기뻐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삶의 지혜가 무엇인지 바로 알고

잔꾀를 부리지 않으며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깊은 배려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잠깐동안의 억울함과 쓰라림을

묵묵히 견뎌내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꾸며진 미소와 외모보다는

진실된 마음과 생각으로

자신을 정갈하게

다듬을 줄 아는 지혜를 쌓으며,

가진것이 적어도 나눠주는 기쁨을 맛보며

행복해 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BLOG 글 옮김-

#좋은글 #명언 #겸손 #사람 #모습 #거울 #지식 #자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683.html
kolaswqetsrq 11.01 22:43
후회거리보다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라

후회거리보다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라

화날 때 말을 많이 하면 대개 후회거리가 생기고 그때 잘 참으면 그것이 추억 거리가 됩니다. 즉, 화가 날때는 침묵을 하십시오. 불길이 너무 강하면 고구마가 익지 않고 껍질만 탑니다.

살다보면 기쁘고 즐거울때도 있고 슬프고 괴로울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결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는것은 즐거움과 기쁨엔 깊이가 없지만 고통에는 깊이가 있기 때문 일 것입니다.

즐거움은 그순간이 지나면 금새 잊혀지지만 고통은 우리의 마음깊속이 상처를 남기지만 그로인해배우고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격할때는 한걸음 물러서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일단 참으십시오. 또한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억지로라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십시오.

뭔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랬을거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면 실수하거나후회 할 수 있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불길이 너무 강하면 정작 익어야 할 고구마는 익지 않고, 그 고구마 마저 태워버려 먹을수 없는 것처럼 화는 우리를 삼킬 수 있습니다.

말하기는 더디하고 듣기는 속히 하라는 교훈처럼 화가날때 우리의 생각과 말을 성능좋은 브레이크처럼 꽉 밟으십시오. 그리고 서서히 브레이크에서 발을 뗀다면 무리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좋은 생각-

#껍질 #순간 #불길 #좌절 #추억 #명언 #좋은글 #침묵 #고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986.html
kolaswqetsrq 11.01 22:44
걱정 없는 사람

걱정 없는 사람

01. 가슴에 꿈을 품고 있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실패와 낙심으로 힘들어 해도 곧 일어나 꿈을 향해 힘차게 달려갈테니까요.

02. 그 마음에 사랑이 있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외로워도 그 마음의 사랑으로 곧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테니까요.

03. 그 마음이 진실한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손해를 보고 답답할 것 같아도 그 마음의 진실로 곧 모든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게 될테니까요.

04. 누구 앞에서나 겸손한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초라하고 부족한 것 같아도 그의 겸손이 곧 그를 높여 귀한 사람이 되게 할테니까요.

05. 늘 얼굴이 밝고 웃음이 많은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가볍게 보여도 곧 그 웃음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어 그가 행복한 세상의 주인이 될테니까요.

06.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어리석게 보여도 그 마음의 작은 기쁨들로 곧 행복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테니까요.

07. 항상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아쉽고 아깝게 보여도 양보받은 사람들의 고마운 마음이 더 큰 양보와 존경을 불러올 테니까요.

08.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속도 없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여도 그의 감사하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각박한 마음을 녹여줄 테니까요.

09. 마음속에 늘 믿음이 있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오해 받거나 박해를 받더라도 머지않아 진실은 밝혀지고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게될 테니까요.

10. 매사를 미리 미리 준비하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남들처럼 즐기지 못하고 일만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모든 일이 다 되어 있어서 느긋하게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11. 고통이 영혼을 숭고하게 만드는 영약이라고 믿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너무 괴롭고 힘들어 보여도 이겨낸 후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게될 테니까요

-BLOG 글 옮김-

#마음 #사랑 #좋은글 #명언 #사람 #가슴 #걱정 #낙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93.html
kolaswqetsrq 11.01 22:45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서늘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며

고즈넉한 찻집에 앉아

화려하지 않은 코스모스처럼

풋풋한 가을 향기가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그립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 한 잔을

마주하며 말없이 눈빛만 마주 보아도

행복의 미소가 절로 샘솟는 사람

가을날 맑은 하늘 빛처럼

그윽한 향기가 전해지는 사람이 그립다.

찻잔 속에 향기가 녹아들어

그윽한 향기를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사람

가을엔 그런 사람이 그리워진다.

산등성이의 은빛 억새처럼

초라하지 않으면서

기품이 있는 겉보다는

속이 아름다운 사람

가을에 억새처럼 출렁이는

은빛 향기를 가슴에 품어 보련다.

-이외수-

#눈빛 #인연 #찻집 #옷깃 #명언 #가을 #사람 #좋은글 #기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455.html
kolaswqetsrq 11.01 22:45
아직은 꽃이고 싶다

아직은 꽃이고 싶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깊은 밤 빗소리에 흐느끼는 가슴으로 살고 싶다

귀뚜라미 찾아오는 달밤이면 한 권의 시집을 들고

달빛 아래 녹아드는 촉촉한 그리움에 젖고

가끔은 잊혀진 사랑을 기억해내는

아름다운 여인이고 싶다

아줌마라고 부르지 마라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저무는 중년을 멋지게 살고 싶어하는

여인이라고 불러다오

내 이름을 불러다오

사랑스런 그대라고 불러다오

가끔은 소주 한 잔에 취해 비틀거리는 나이지만

낙엽을 밟으면 바스락거리는

가슴이 아름다운 중년의 멋진 여인이라고 불러다오

아직은 부드러운 남자를 보면

가슴이 울렁거리는 나이

세월의 강을 소리없이 건너고 있지만

꽃잎같은 입술이 달싹이면

사루비아 향기가 쏟아지는 나이

이제는 아줌마라고 부르지 말고

사랑하고 싶은 여인이라고 불러주면 좋겠다

아줌마라고 부르지마라 / 김경훈

#기억 #명언 #여인 #가슴 #달밤 #좋은글 #그리움 #사랑 #시집 #달빛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429.html
kolaswqetsrq 11.01 22:46
자주 쓰면 좋은 말들

자주 쓰면 좋은 말들

1. 상대의 능력을 200% 이끌어 내는 말은 "당신을 믿어"입니다.

2. 껌처럼 작아지는 용기를 크게 키우는 말은 "넌 할 수 있어"입니다.

3. 부적보다 더 큰 힘이 되는 말은 "널 위해 기도 할께"입니다.

4. 충고보다 효과적인 공감의 말은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어"입니다.

5. 돈 한 푼 들지 않고 호감을 사는 말은 "당신과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입니다.

6. 자녀의 앞날을 빛나게 하는 말은 "네가 참 자랑스러워"입니다.

7. 반복되는 일상에 새로운 희망을 선사하는 말은 "초심으로 돌아가자"입니다.

8. 환상의 짝꿍을 얻을 수 있는 말은 "우린 천생연분이다"입니다.

9.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말은 "괜찮아 잘 될거야"입니다.

10. 상대에게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말은 "보고 싶었어"입니다.

11. 배우자에게 보람을 주는 말은 "난 당신 밖에 없어"입니다.

12. 상대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말은 "역시 넌 달라"입니다.

13. 상대의 지친 마음을 어루 만져 주는 말은 "그 동안 고생 많았어"입니다.

14. 인생에 새로운 즐거움에 눈뜨게 해주는 말은 "한번 해 볼까"입니다.

15. 백번 천번 만번을 들어도 기분좋은 말은 "사랑해"입니다.

-BLOG 글 옮김-

#능력 #자랑 #반복 #좋은글 #공감 #부적 #호감 #기분 #명언 #앞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940.html
kolaswqetsrq 11.01 22:47
우리가 삶에 지쳤을 때나

우리가 삶에 지쳤을 때나

무너지고 싶을때

말없이 마주 보는것 만으로도

서로 마음 든든한 사람이 되고

때때로 힘겨운 인생의 무게로 하여

속마음 마저 막막할때

우리 서로 위안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자.

누군가 사랑에는 조건이 따른다지만

우리의 바램은 지극히 작은 것이게 하고

그리하여 더 주고 덜 받음에 섭섭해 말며

문득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먼 회상

어느날 불현듯 지쳐 쓰러질 것만 같은 시간에

우리 서로 마음 기댈수 있는 사람이 되고

혼자 견디기엔 한 슬픔이 너무 클때

언제고 부르면 달려올 수 있는 자리에

오랜 약속으로 머물며,

기다리며 더없이 간절한 그리움으로

저리도록 바라보고픈 사람

우리 서로 끝없이 끝없이 기쁜 사람이 되자.

서로 위안이 되는 사람으로...

좋은생각 중에서 / 서로 위안이 되는 사람

#조건 #사랑 #사람 #마음 #좋은글 #명언 #인생 #위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50.html
kolaswqetsrq 11.01 22:48
현명한 큰스님이 젊은 스님을 제자로 받아 들였다. 그런데 제자는 모든 일에 뭔 불만이 그렇게 많은지 늘 투덜거렸다.

현명한 큰스님이 젊은 스님을 제자로 받아 들였다. 그런데 제자는 모든 일에 뭔 불만이 그렇게 많은지 늘 투덜거렸다.

어느날 아침, 큰스님은 제자를 불러 소금을 한줌 가져오라 하고 소금을 물컵에 털어넣게 하더니 그 물을 마시게 했다. 그러자 제자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그 물을 마셨다.

큰 스님이 물었다.

“맛이 어떠냐?”

“짭니다...”

큰스님은 다시 소금 한 줌을 가져오라 하시더니 근처 호숫가로 제자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소금을 쥔 제자의 손을 호숫물에 넣고 휘휘 저었다. 잠시뒤 큰스님은 호수의 물을 한컵 떠서 제자에게 마시게 했다.

“맛이 어떠냐?”

“시원 합니다.”

“소금맛이 느껴지느냐?”

“아니요...”

그러자 큰스님이 말했다.

“인생의 고통은 순수한 소금과 같다 하지만 짠맛의 정도는 고통을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지지, 지금 니가 고통속에 있다면, 컵이 되지말고 스스로 호수가 되어라.”

그늘이 넓은 나무밑엔 새들이 모이고 가슴이 넓은 사람 밑에는 사람들이 모인다. 사람을 얻을때 욕심으로 얻을 수도 있고 마음으로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욕심으로 얻으면 그 사람의 욕심을 얻고, 마음으로 얻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

-BAND 글 옮김-

#현명 #소금 #좋은글 #아침 #한줌 #스님 #큰스님 #명언 #불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018.html
kolaswqetsrq 11.01 22:48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내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 당신의 사랑이 쓰러지는 나를 일으킵니다.

내게 용기, 위로, 소망을 주는 당신. 내가 나를 버려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당신.

내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는지, 나는 정말 당신과 함께 할 자격이 없는데, 내 옆에 당신을 두신 신에게 감사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커다란 힘입니다.

-장영희의《생일》중-

#전생 #명언 #부족 #세상 #좋은글 #자격 #소망 #사람 #사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12.html
kolaswqetsrq 11.01 22:49
정말 우리 마음이란 미묘하게 짝이 없다.

정말 우리 마음이란 미묘하게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는 여유조차 없다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사람들음 말한것이다

법정스님 / 무소유

#명언 #세상 #바늘 #사람 #주인 #좋은글 #마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505.html
kolaswqetsrq 11.01 22:50
♡ 나의 등 뒤에서 ♡

♡ 나의 등 뒤에서 ♡

미국에 수잔 앤더슨(Suzanne Anderson)이란 여인이 어느 날 눈 수술을 받다 그만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의 직장 출퇴근을 도와주었습니다.

얼마 후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계속 이럴 수 없으니 내일부터는 혼자 출근해요.”

그 말에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낀 그녀는 이를 악물고 혼자 출퇴근을 했습니다.

여러번 넘어지며 서러워 눈물도 흘렸지만

점차 출퇴근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버스를 탔을 때 운전기사가 무심코 말했습니다.

“부인은 좋겠어요. 좋은 남편을 두셨어요. 매일 한결같이 부인을 살펴주시네요.”

알고 보니 남편은 매일 아내가 버스를 타면 같이 타 뒷자리에 앉으며 아내의 출퇴근 길을 말없이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때로는 넘어지고 서러운 눈물도 흘리고, 상처와 고독도 있지만 그때마다 나의 등 뒤에선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내 곁에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없는 것 같으나

내 뒤에는 그 누군가가 반드시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랑을 떠나도

그 사랑은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명언 #좋은글 #내일 #직장 #실명 #여인 #출퇴근 #남편 #수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106.html
kolaswqetsrq 11.01 22:50
집중력을 강화하는 20가지 방법

집중력을 강화하는 20가지 방법

01. 추상적인 목표보다 구체적인 목표를 정한다.

02. 목표 달성을 위한 마감 시간을 구체적으로 표기한다.

03. 상황에 관계없이 늘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
04. 잘 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의 힘을 활용한다.
",

05. 생각과 동시에 입버릇처럼 반복함으로써 자신을 만들어 간다.

06. 지나치게 긴장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자주 웃는다.

07. 편안한 상태에서 아이디어와 힌트가 잘 떠오른다.

08. 기회가 올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
09. 이번에 모든 것을 건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놀라운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

10. 뚜렷한 테마나 문제의식을 갖고 생활한다.

11. 집중력은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휴식을 중간 중간에 취한다.

12. 하루 종일 일하는 것보다는 며칠에 나누어서 일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
13. 이 부분만 한다 혹은 이 시간까지만 한다는 식으로 범위와 시간을 정한다.
",

14. 조금 빠른 속도로 걷는다.

15. 러닝 머신이 아니라 밖에서 걷는다. 사람이나 풍경 등이 풍부한 자극을 준다.

16. 피곤하면 잠시라도 휴식을 취한다.

17. 지나친 공복은 금물이다. 뇌는 하루 120그램의 포도당을 필요로 한다.

18. 콜레스테롤은 집중력에 중요한 요소이다.

19.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시작함을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알린다.

20. 하체가 튼튼해야 집중력이 생겨난다.

 "
-나카지마 다카시 3초간 집중력 단련법-
",

#시간 #집중력 #상황 #방법 #달성 #긍정 #추상 #명언 #좋은글 #마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20_18.html
kolaswqetsrq 11.01 22:51
내가 두 귀로

내가 두 귀로

들은 이야기라 해서

다 말할 것이 못되고

내가 두 눈으로

본 일이라 해서

다 말할 것 또한 못된다

들은 것을 들었다고

다 말해 버리고

본 것을 보았다고

다 말해버리면

자신을 거칠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궁지에 빠지게 한다.

현명한 사람은

남의 욕설이나 비평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또 남의 단점을

보려고도 않으며

남의 잘못을 말하지도 않는다.

모든 화는 입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입을 잘 지키라고 했다.

맹렬한 불길이

집을 다 태워버리듯이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입이 불길이 되어

내 몸을 태우고 만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칼날이다.

내 마음을 잘 다스려

마음의 문인 입을 잘 다스려야 한다.

입을 잘 다스림으로써

자연 마음이 다스려 진다.

앵무새가

아무리 말을 잘한다 하더라도

자기소리는

한마디도 할 줄 모른다.

사람도 아무리

훌륭한 말을 잘한다 하더라도

사람으로써 갖추어야 할

예의를 못했다면

앵무새와 그 무엇이 다르리요!

세 치의 혓바닥이

여섯자의 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법정스님-

#자신 #좋은글 #잘못 #불길 #단점 #현명 #비평 #사람 #명언 #욕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821.html
kolaswqetsrq 11.01 22:52
매력적인 사람

매력적인 사람

01. 인생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늘 넓고 길게 바라 보면서 생각을 높여가는 사람

02. 좌절할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희망을 더 높여 절망과의 거리를 떼어놓는 사람.

03. 실패할 \x8b\x9a도 있지만 실패의 이유를 알기 때문에 새로운 희망을 품는 사람.

04. 사람에 대한 욕심이 있지만 그 사람 개인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길줄 아는 사람.

05. 간혹은 게을러지지만 일할 때는 불꽃같은 열정으로 창조의 꽃을 피우는 사람.

06. 불만이 있지만 현실을 이해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과 미래의 기쁨을 나누는 사람.

07. 산만하긴 하지만 핵심을 놓치지 않고 자신이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사람.

08. 보수적이긴 하지만 변화의 가치를 알고 끊임없이 성숙해가는 사람.

09.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만 한 사람에게 깊이 안길수있는 사람.

10.가끔은 흔들리지만 일단 결심하면 자신이 갈 길을 주저 없이 가는 사람.

-BAND 글 옮김-

#좋은글 #희망 #명언 #매력 #좌절 #사람 #절망 #생각 #인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70.html
kolaswqetsrq 11.01 22:52
친구가 되고 싶다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친구가 되고 싶다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

01. 뒤에서 몰래 험담하지 않는다

02. 인신공격하지 않는다

03. 무의미한 논쟁은 하지 않는다

04. 대화중 말을 끊지 않는다

05. 목표에 대해 낙담하게 하지 않는다

06. 과거에 대해 흉보지 않는다

07. 난처한 상황에 처하도록 두지 않는다

08. 성공을 질투하지 않는다

09. 친구를 ‘판단’, ‘수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10. 우정에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lifehack Communication-

#상황 #낙담 #성공 #논쟁 #판단 #좋은글 #험담 #행동 #명언 #인신공격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73.html
kolaswqetsrq 11.01 22:53
인간 관계를 좋게하는 열가지

인간 관계를 좋게하는 열가지

01. 열심

형식적으로 대하지말고 열심히 대하라.

02. 진심

거짓으로 대하지말고 진심으로 대하라.

03. 관심

무관심이 아닌 깊은 관심을 가져라.

04. 선심

악한 마음 버리고 선한 마음으로 대하라.

05. 애심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06. 조심

잘못이나 실수가 없도록 조심히 대하라.

07. 인심

실수나 잘못을 모른척 눈감아 주면서 대하라.

08. 배심

좋은것을 먼저 양보하고 배려하며 대하라.

09. 양심

받은것을 계산하지 말고 양심적으로 대하라.

10. 물심

빈손이 아닌 가끔 선물을 주면서 대하라.

-BLOG 글 옮김-

#인간 #좋은글 #명언 #열심 #진심 #거짓 #관심 #형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753.html
kolaswqetsrq 11.01 22:54
인간관계에서 어느 때는

인간관계에서 어느 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에 시달린다는 느낌이 든다.

또 어느 때는 목이 타도록 사람이 그립다.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건 항상 숙제다.

세상은 아직 내게 배울 것이 많다고 말한다.

파울로 코엘료 / 연금술사

#느낌 #감당 #세상 #명언 #좋은글 #인간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88.html
kolaswqetsrq 11.01 22:54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그대에게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그대에게

꿈을 꿀수 있을 때

많이 꾸어라.

세상의 현실은

그대를 차가운 존재로 만들 것이니.

사랑할수 있을 때

많이 사랑하라.

사람들이

그대를 불신하게 만들 것이니.

모든걸 느껴 보아라.

바람이 불면 시원하다고 느낄 것이며,

비가 내리면 촉촉하다고 느낄 것이며,

해가 뜨며 이 세상에

살아 있음을 느낄 것이다.

힘들어도 피하지 마라.

그것들은 그대를 결심하게 해주고

투지를 갖게 해 줄것이니.

사랑은 때론 나도 모르게 찾아오니

언제나 맞을 준비를 하여

놓치고 후회하지 않도록 하자.

행복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니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다가가 행복과 친해져라.

이 모든것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당신에게

해 주고 싶은 충고이자 사랑이다.

-BAND 글 편집-

#바람 #현실 #불신 #명언 #좋은글 #세상 #사랑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57.html
kolaswqetsrq 11.01 22:55
딱 십 년만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다면,

딱 십 년만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길로 걸어가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모든 사람의 길은 십 년,

아니 이십 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 한들,

지금의 그 길로 다시 갈 수밖에 없을는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이 장소는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간에

우리가 서 있을 수밖에 없는 필연의 장소가 아닐까?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누구든

어디에 서 있든 간에 후회하지 말자.

황주리 / 마흔 살의 자화상

#명언 #지금 #사람 #필연 #좋은글 #시간 #자화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414.html
kolaswqetsrq 11.01 22:56
친구가 나더러 이렇게 살아보라 하네

친구가 나더러 이렇게 살아보라 하네

01.말이 많으면 말을 많이 하면 반드시 필요 없는 말이 섞여 나온다. 원래 귀는 닫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입은 언제나 닫을 수 있게 되어 있다.

02.허허허 잘 웃는 것을 연습하라. 세상에는 정답을 말하거나 답변하기에 난처한 일이 많다. 그때에는 허허허!~ 웃어 보라. 뜻밖에 문제가 풀리는 것을 보게 된다.

03.화를 내면 화 내는 사람이 손해 본다. 급하게 열을 내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 대개 싸움에서 지며, 좌절감에 빠지기 쉽다.

04.미소의 힘. 미소짓는 얼굴은 결코 밉지 않다. 아무리 곱고 멋지게 생겨도 찡그리면 흉하다. 미소를 연습하고 그 힘이 얼마나 큰지를 경험하라.

 "
05.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잘 사용하라. 모든 갈등과 다툼이 어느새 가라앉게 한다.
",

06.노래, 힘들 때 짜증 내면 더 힘들게 느껴지지만, 노래를 들으면 새 힘이 솟는다.

07.훌륭한 대화 남의 말을 듣는 것을 잘 하라. 사람들은 입으로 자기를 다 드러내기 쉽기 때문에 잘 듣기만 해도 훌륭한 대화가 된다.

08. 욕은 어떤 것이든지 하지 마라. 장난삼아 하는 욕설이 습관이 되면 많은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게 된다.

09.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사람이 이긴다. 빈 그릇은 부딪히는 소리가 심하고, 열등의식이 강한 사람은 목소리라도 높여서 자기를 나타내려고 한다.

10.늙어서는 젊은 사람과 대화에서 이겨서는 안된다. 설령 이겼다 해도 젊은 사람들은 절대 수긍하지 않는다.

-BLOG 글 옮김-

#답변 #사람 #연습 #명언 #좋은글 #정답 #내면 #싸움 #세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35.html
kolaswqetsrq 11.01 22:56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덕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가 보고싶다

외할머니가 보고싶다.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 시인-

#방망이질 #부뚜막 #냇물 #좋은글 #겨울 #생각 #명언 #찬밥 #점심 #종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8037.html
kolaswqetsrq 11.01 22:57
50대 여자가 하지 말아야 할 일

50대 여자가 하지 말아야 할 일

● 며느리한테 엄마처럼 생각하라고 하지 마라. 며느리가 절대 그렇게 생각할리 없다. 당신도 며느리랑 딸은 확실하게 구분 짓지 않는가, 딸한테 엄마 노릇이나 잘하라.

●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 받아도 놀라지 마라. 젊은이들 눈에는 할머니로 보일 수 있다. 고민하지 말고 그냥 앉아라. 얼굴 붉히면서 그냥 서 있는게 더 민망하다.

● 며느리한테 카카오스토리 친구 신청 하지 마라. 며느리 진짜 곤란하다. 아들놈이 처가에 가서 애교 떠는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는 카스 보면 괜히 속만 상한다.

● 남편한테 잔소리 하지 마라. 지금까지 못 고쳤으면 안 되는 거다. 그냥 그렇게 살게 내버려둬라. 애들 떠나고 나면 남는 건 그 넘 한 넘이다.

● 유행하는 브런치 가게 가지 마라. 밀가루와 기름기 많은 느끼한 음식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 브런치가 곧 아점 아닌가. 점심시간 보다 좀 일찍 가서 밥을 먹어라.

● 친구나 후배 인생 상담하지 마라. 내 인생도 엉망인데 누구에게 조언을 하는가.

● 비싼 그릇 모으지 마라. 딸 시집갈 때 준다고 비싼 그릇 세트로 사지마라. 나 혼자 밥 먹을 때 좋은 그릇에 담아서 먹어라.

● 종교에 빠지지 마라. 교회나 절에서 봉사활동 하는 거 반만 집에서 봉사하라. 굶는 가족도 당신이 보살펴야 할 중생이고 자매들이다.

● 손주에게 올인 하지 마라. 키워준 은공 몰라주기 쉽다. 괜히 마음만 더 공허해 지고 팔다리 쑤신다.

● 자식 자랑 하지 마라. 한 번 우등생이 영원한 우등생은 아니다. 언젠가 자식 때문에 피눈물 흘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함부로 자식 자랑 하지 마라.

 "
● 등산복에 돈 쓰지 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맞춤 아웃도어는 오히려 촌스럽다. 일상복과 아웃도어를 적당히 섞어서 입어라. 그게 진정한 산 속의 패셔니스타다.
",

● 살림살이를 과감하게 정리하라. 시집 올 때 해온 혼수품부터 정리하라. 20년 넘게 썼으면 그만 써도 된다.

#신청 #지하철 #노릇 #명언 #고민 #얼굴 #생각 #좋은글 #구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50_18.html
kolaswqetsrq 11.01 22:58
내가 누군지 아십니까?

내가 누군지 아십니까?

나는 당신의 영원한 동반자입니다. 또한 당신의 가장 훌륭한 조력자이자 가장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기도 하고 실패의 나락으로 끌어내리기도 합니다

나는 전적으로 당신이 하는 대로 그저 따라갑니다. 그렇지만 당신 행동의 90%가 나에 의해 좌우됩니다. 나는 당신의 행동을 빠르고 정확하게 좌지우지합니다. 나에겐 그것이 매우 쉬운 일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몇 번 보고나면, 나는 자동적으로 그 일을 해냅니다.

나는 위대한 사람들의 하인일 뿐 아니라 실패한 모든 이들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나는 인공지능 기계처럼 정밀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계는 아닙니다.

나를 당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수도 있고, 당신의 실패를 위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되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나를 착취하십시오.

나를 훈련시키십시오.

나를 확실하게 당신 것으로 만든다면 나는 당신의 발 앞에 원하는 것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가볍게 여긴다면 난 당신을 파멸의 길로 이끌 것입니다.

내가 누군지 아십니까?

.

.

.

난 당신의 습관입니다.

-스토리 글 옮김-

#나락 #정확 #명언 #성공 #전적 #행동 #좋은글 #영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861.html
kolaswqetsrq 11.01 22:58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글쎄.. 돈 버는 일. 아니면 밥 먹는 일?"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막여우에게 어린왕자가 대답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말이야.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야.

-어린 왕자-

#대답 #명언 #사람 #마음 #세상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93.html
kolaswqetsrq 11.01 22:59
허허실실虛虛實實

허허실실(虛虛實實)

건물(建物)은 높아졌지만 인격(人格)은 더 작아졌고, 고속도로(高速道路)는 넓어졌지만 시야(視野)는 더 좁아졌다.

소비(消費)는 많아졌지만 기쁨은 더 줄어들었고, 집은 커졌지만 가족(家族)은 더 적어졌다.

생활(生活)은 편리(便利)해졌지만 시간(時間)은 더 부족(不足)하고,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소중(所重)한 가치(價値)는 더 줄어들었다.

학력(學力)은 높아졌지만 상식(常識)은 더 부족(不足)하고, 지식(知識)은 많아졌지만 판단력(判斷力)은 더 모자란다.

전문가(專門家)들은 늘어났지만 문제(問題)는 더 많아졌고, 약(藥)은 많아졌지만 건강(健康)은 더 나빠졌다.

돈을 버는 법(法)은 배웠지만 나누는 법(法)은 잊어 버렸고, 평균수명(平均壽命)은 늘어났지만 시간(時間) 속에 삶의 의미(意味)를 넣는 법(法)은 상실(喪失)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고, 우주(宇宙)를 향해 나아가지만 우리 안의 세계(世界)는 잃어버렸다.

공기(空氣) 정화기(淨化器)는 갖고 있지만 영혼(靈魂)은 더 오염(汚染)되었고, 원자(原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偏見)을 부수지는 못한다.

자유(自由)는 더 늘었지만 열정(熱情)은 더 줄어들었고, 세계평화(世界平和)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마음의 평화(平和)는 더 줄어들었다.

-반기문(유엔 사무총장)-

#건물 #기쁨 #명언 #좋은글 #고속 #인격 #허허실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445.html
kolaswqetsrq 11.01 23:00
급난지붕急難之朋

급난지붕(急難之朋)

명심보감에 급난지붕(急難之朋)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급(急)하고 어려울(難) 때 힘이 되어주는친구(朋)라는 뜻입니다.

주식형제천개유(酒食兄弟千個有)-술먹고 밥먹을 때 형, 동생하는 친구는 천 명이나 있지만, 급난지붕일개무(急難之朋一個無)-급하고 어려울 때 막상 나를 도와주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

정말 요즘 현실이 그러하기에 이 말이 더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을 때는 후하게 선심쓰며,그렇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내 앞에서 그렇게 잘 하던 사람이 내가 막상 큰 시련을 맞았을 때, 나를 외면한다면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들까요?

제가 잘 아는 선배 한 분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직장 그만두고 1년 공백기동안 진실한 인간관계가 무엇인지 확실히 재정리가 되더라. 정말 값진 1년이었다."고...

나의 친구들이 주식형제(酒食兄弟)인지, 급난지붕(急難之朋)인지, 또한 나도 그들에게 진정한 급난지붕(急難之朋)인지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친구의 잘못은 모래 위에 적는 답니다.밀물에 지워지라고! 친구의 고마움은 바위 위에 새긴답니다. 비바람에 견디면서 영원히 기억하라고! 친구의 눈물은 구름에 올려 놓는답니다. 힘들면 비가 내릴 때 같이 울어주라고! 더불어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섭섭한 일도 생기고, 고마운 일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
-명심보감 교우편 글 인용-
",

#좋은글 #급난 #명언 #제천 #주식 #지붕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878.html
kolaswqetsrq 11.01 23:00
아껴주고 더 사랑해주기

아껴주고 더 사랑해주기

소중한 사람이 이유 없이 화를 낸다고 생각되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세요.

당신은 믿었던 사람한테 상처받은 적 있나요? 그 아픔이 그 어떤 일보다 몇배 더 크게 느껴진 적 없나요?

가까우니까, 사랑하니까, 믿으니까 잘못한 일이 있어도 용서해주고 다른 사람보다 당신을 더 많이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상대방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아픈 가시가 되어 마음에 와 박힌 적은 없나요?

어쩌면 오늘 당신의 소중한 그 사람도 그때의 당신과 똑같은 심정 아니었을까요? 모든 사람이 당신의 고통에 동참할 것이라고 믿지 마세요. 당신이 슬플때 그 사람이 같이 울어주길 기대하지도 마세요.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남의 고뿔보다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프게 느껴지는 법이랍니다. 내가 힘들면 상대방은 더 힘들 거라 생각하세요. 나의 어려움을 누가 덜어주길 바라지 마세요.

소중한 사람을 위해, 내가 좀 더 무거운 짐을 진다고 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신영란 ‘나를 위한 저녁 기도’-

#아픔 #사람 #생각 #사랑 #명언 #좋은글 #자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88.html
kolaswqetsrq 11.01 23:01
참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참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욕구를 충촉시키는 생활이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삶이어야 한다. 의미를 채우지 않으면 삶은 빈 껍질이다.

소유란 그런 것이다. 손안에 넣는 순간 흥미가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단지 바라보는 것은 아무 부담없이 보면서 오래도록 즐길 수 있다. 소유로 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사랑도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말이 많은 사람은 안으로 생각하는 기능이 약하다는 증거이다. 말이 많은 사람에게 신뢰감이 가지 않는 것은 그의 내면이 허술하기 때문이고 행동보다 말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말을 아끼려면 가능한 타인의 일에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을 두고 아무 생각없이 무책임하게 타인에 대해 험담을 늘어 놓는 것은 나쁜 버릇이고 악덕이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얻는 것을 좋아하고

잃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전 생애의 과정을 통해 어떤 것이 참으로 얻는 것이고 잃는 것인지 내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잃지 않고는 얻을 수가 없다.

나그네 길에서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거든 차라리 혼자서 갈 것이지 어리석은 자와 길벗이 되지마라. 사람의 허물을 보지마라. 남이 했든 말았든 상관하지 마라. 다만..내 자신이 저지른 허물과 게으름을 보라. 비난받을 사람을 칭찬하고 칭찬해야 할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 그는 죄를 짓고.그 죄 때문에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눈으로 보는 것에 탐내지 말라. 속된 이야기에서 귀를 멀리하라.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마침내 근심이된다.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근심 할 길도 없다.

날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날때부터 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그 행위로 말미암아 천한 사람도 되고 귀한 사람도 되는 것이다.

사람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분수에 맞는 삶을 이루어야 한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남의 영역을 침해 하면서 욕심을 부린다면 자신도 해치고 이웃에게도 피해를 입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전문 지식을 익히고 그 길에 한 평생 종사하는 것도 그런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몫이기 때문이다.

-법정스님-

#인간 #껍질 #손안 #좋은글 #생활 #명언 #순간 #부담 #사랑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08.html
kolaswqetsrq 11.01 23:02
가슴 찡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이야기

가슴 찡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이야기

내 나이 11살에 아버지가 돌아내가셨다. 내 아래로는 여동생이 하나 있다. 전업 주부였던 엄마는 그때부터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다. 못먹고, 못입었던 것은 아니였지만 여유롭진 않았다.

대학졸업 후 입사 2년만에 결혼을 하였다.처음부터 시어머니가 좋았다. 시어머님도 처음부터 날 아주 마음에 들어하셨다.

10년 전 결혼! 만1년만에 친정 엄마가 암 선고를 받으셨다. 난 엄마 건강도 걱정이였지만, 수술비와 입원비 걱정부터 해야했다.

남편에게 얘기했다. 남편은 걱정 말라고 하며 내일 돈을 융통해 볼 터이니 오늘은 푹 자라고 얘기를 했다.

다음 날, 친정엄마 입원을 시키려 친정에 갔지만, 엄마도 선뜻 나서질 못하셨다.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몇 개 있으니 4일 후에 입원 하자 하셨다. 엄마가 마무리 지을게 뭐있겠나 병원비 때문이지...

집에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 때 시어머님께서 전화가 왔다.

"지은아. 너 울어? 울지말고 내일 나에게 3시간만 시간 좀 내 다오"

다음 날, 시어머님과의 약속 장소에 나갔다. 시어머님이 무작정 한의원으로 날 데려가셨다. 미리 전화 예약 하셨는지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원장님은 "간병을 하셔야 한다고요?.." 하시며 맥을 짚어보시고 몸에 좋은 약을 한 재 지어주셨다.

그리고 또 백화점에 데려가셨다. 솔직히 속으론 좀 답답했다. 어머님께 죄송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트레이닝 복과 간편복 4벌을 사주셨다. 선식도 사주셨다. 함께 집으로 왔다. 어머니께서 그제서야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환자보다 간병하는 사람이 더 힘들어. 병원에만 있다고 아무렇게나 먹지 말고, 아무렇게나 입고있지 말고.." 하시더니 봉투를 내미셨다.

"엄마 병원비 보태써라~.네가 시집온 지 얼마나 됐다고 돈이 있겠어... 그리고, 이건 죽을 때까지 너랑 나랑 비밀로 하자! 네 남편이 병원비 구해오면 그것도 보태 쓰거라.. 내 아들이지만, 남자들 본래 유치하고 애같은 구석이 있어서 부부싸움 할 때 꼭 친정으로 돈 들어간 거 한 번씩은 꺼내서 속 뒤집어 놓는단다. 그니까 우리 둘만 알자."

마다했지만 끝끝내 내 손에 꼭 쥐어주셨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시어머님께 기대어 엉엉 울고 있었다. 2천만원이였다......

친정엄마는 그 도움으로 수술하시고 치료도 받으셨지만, 이듬 해 봄.. 엄마는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오늘이 고비라고 하였다. 눈물이 났다. 남편에게 전화했고, 갑자기 시어머님 생각이 났다. 나도 모르게 울면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시어머님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남편보다 더 빨리 병원에 도착하셨다. 엄마는 의식이 없으셨다. 엄마 귀에 대고 말씀드렸다.

"엄마... 우리 어머니 오셨어요... 엄마~~ 작년에 엄마 수술비 어머님이 해주셨어.. 엄마 얼굴 하루라도 더 볼 수 있으라고..."

엄마는 미동도 없으셨다. 당연한 결과였다. 시어머님께서 지갑에서 주섬주섬 무얼 꺼내서 엄마 손에 쥐어주셨다. 우리의 결혼 사진이였다.

"사부인... 저예요.. 지은이 걱정말고. 사돈처녀 정은이도 걱정말아요. 지은이는 이미 제 딸이고요.... 사돈처녀도 내가 혼수 잘해서 시집 보내줄께요..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

그때 거짓말처럼 친정엄마가 의식 없는 채로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는 듣고 계신 거였다. 가족들이 다 왔고 엄마는 2시간을 넘기지 못하신 채 그대로 눈을 감으셨다.

망연자실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날 붙잡고 시어머니께서 함께 울어주셨다. 시어머님은 들어 가시라고 해도 3일 내내 빈소를 함께 지켜주셨다. 우린 친척도 없다. 사는게 벅찼기에 엄마도 따로 연락 주고받는 친구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빈소는 시어머님 덕분에 3일 내내 시끄러웠다.

"빈소가 썰렁하면 가시는 길이 외로워...."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고 시어머님는 내 동생까지 잘 챙겨주셨다. 가족끼리 외식하거나, 여행 갈 땐 꼭 내 동생을 챙겨주셨다. 내 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동생과 시어머님은 고맙게도 정말 나 이상으로 사이좋게 잘 지내주었다. 시어머님이 또 다시 나에게 봉투를 내미신다.

"어머님! 남편이랑 따로 정은이 결혼 자금 마련해놨어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께요"

도망치듯 돈을 받지 않고 나왔다. 버스정류장에 다 달았을 때 문자가 왔다. 내 통장으로 3천만원이 입금되었다. 그 길로 다시 시어머님께 달려갔다. 어머니께 너무 죄송해서 울면서 짜증도 부렸다. 안받겠다고.... 시어머님께서 함께 우시면서 말씀하셨다.

"지은아... 너 기억안나? 친정 엄마 돌아가실 때 내가 약속 드렸잖아~~ 혼수해서 시집 잘 보내주겠다고... 나 이거 안하면 나중에 네 엄마를 무슨 낯으로 뵙겠어"

시어머님은 친정엄마에게 혼자 하신 약속을 지켜주셨다. 난 그 날도 또 엉엉 울었다. 시어머님께서 말씀하신다.

"순둥이 착해 빠져가지고 어디에 쓸꼬.... 젤 불쌍한 사람이 도움을 주지도,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야... 그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고 울고싶을 땐 목놓아 울어버려"

제부될 사람이 우리 시어머님께 따로 인사드리고 싶다해서 자리를 마련했다. 시부모님, 우리부부, 동생네. 그 때 시어머님이 시아버님께 사인을 보내셨다. 그 때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초면에 이런 얘기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사돈처녀 혼주자리에 우리가 앉았음 좋겠는데..."

혼주자리엔 사실 우리 부부가 앉으려 했었다.

"다 알고 결혼하는 것이지만, 그 쪽도 모든 사람들에게 다 친정 부모님이 안 계시다고 말씀 안드렸을 텐데... 다른 사람들 보는 눈도 있고...."

그랬다. 난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였다. 내 동생네 부부는 너무도 감사하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 동생은 우리 시아버지 손을 잡고 신부입장을 하였다. 내 동생 부부는 우리 부부 이상으로 우리 시댁에 잘 해주었다.

오늘!

우리 시어머님의 49제였다. 가족들과 동생네 부부와 함께 다녀왔다. 오는길에 동생도 나도 많이 울었다.

오늘 10년 전 어머니와 했던 비밀 약속을 남편에게 털어 놓았다. 그 때, 병원비 어머니께서 해주셨다고... 남편과 난 부등켜 안고 시어머님 그리움에 엉엉 울어버렸다.

난 지금 아들이 둘이다. 난 지금도 내 생활비를 쪼개서 따로 적금을 들고 있다. 내 시어머님께서 나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나중에 내 며느리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내 휴대폰 단축번호 1번은 아직도 우리 시어머님이다. 항상 나에게 한없는 사랑 베풀어 주신 우리 어머님이다. 어머님.... 우리 어머님... 너무 감사합니다.

어머니 가르침 덕분에 제가 바로 설 수 있었어요. 힘들 시간 잘 이겨낼 수 있었고요.. 어머님... 넘 사랑합니다..그립습니다... 제가 꼭 어머니께 받은 은혜, 많은 사람들게 베풀고 사랑하고 나누며 살겠습니다!

너무 보고싶어요...

어머니~~

-BAND 글 옮김-

#좋은글 #결혼 #명언 #대학 #처음 #졸업 #가슴 #전업 #시어머님 #여동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514.html
kolaswqetsrq 11.01 23:03
침묵하는 연습

침묵하는 연습

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뒷일수록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말이 얼마나 사람을 탈진하게 하고 얼마나 외롭게 하고 텅비게 하는가? 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안에 설익은 생각을 담아두고 설익은 느낌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려 무르익히는 연습을 하고 싶다.

다 익은 생각이나 느낌 일지라도 더욱 지긋이 채워 두면서 향기로운 포도주로 발효되기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침묵하는 연습, 비록 내 안에 슬픔이건 기쁨이건 더러는 억울하게 오해받는 때에라도 해명도 변명조차도 하지 않고 무시해버리며 묵묵하고 싶어진다.

그럴 용기도

배짱도

지니고 살고 싶다.

-유안진-

#뒷일 #침묵 #탈진 #좋은글 #명언 #연습 #사람 #수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37.html
kolaswqetsrq 11.01 23:03
2만 5천 달러짜리 조언-메모의 중요성

2만 5천 달러짜리 조언-메모의 중요성

아이비 리는 록펠러, 모건, 카네기, 듀퐁과 같은 거물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는 컨설턴트였다. 어느 날 베델레헴 철강회사의 찰스 스왑이 리에게 소리쳤다.

“나는 경영에 대해서는 이미 알 만큼 알고 있소. 내가 아는 것만큼 경영이 잘 안 돼서 문제란 말이오. 나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더 나은 행동 방법이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의 반만이라도 실천하게 해 줄 수 있다면, 행동 방법을 말해준다면...., 요금은 얼마든지 지불하겠소.”

“그럼 지금부터 20분 동안 그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좋소, 기차 시간까지 딱 20분 여유가 있소. 어떤 방법이오?”

리는 메모지를 꺼내서 슈왑에게 건네며 말했다.

“하루를 끝내기 전에 매일 10분씩 그날 한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오늘 내가 잊어버리거나 소홀히 하거나 실수한 일은 무엇일까? 앞으로 그런 잘못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의 일을 개선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런 다음 5분 정도 더 시간을 내서 이 메모지에 내일 꼭 해야 할 일 다섯 가지를 쓰십시오.”

여기까지 이야기하는데 8분이 걸렸다.

“그 다음에는 중요한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십시오. 그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음날 아침에 제일 먼저 1번을 읽어 본 다음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1번 일이 끝날 때까지 시간마다 메모지를 쳐다보십시오. 그 다음에는 2번으로 넘어갑니다. 그 후에는 3번으로 이렇게 하나하나 번호를 지워가면서 마지막 번호까지 이동하십시오.”

이렇게 3분이 더 지났다.

“2번이나 3번까지 밖에 못 끝내더라도 신경 쓰지 마십시오. 1번을 지키느라 하루가 다 걸리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가장 중요한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다른 일들은 미뤄도 됩니다. 이 방법으로 끝낼 수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도 끝낼 수 없습니다. 이 방법이 아니면 어떤 일이 가장 중요한지 결정조차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일 할 일을 결정할 때 오늘 끝내지 못한 일들을 옮겨 적으세요. 매일 저녁 15분씩 할애해서 내일 꼭 해야 할 일을 결정하십시오. 이 방법을 시험해본 후에, 간부급 임원들에게도 권해보세요.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지 마음껏 시험해 보십시오. 그 후 저의 방법이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하신 만큼의 액수를 수표로 보내 주십시오.”

슈왑은 25,000달러 수표를 리에게 보냈다.

“하찮게 보이는 이 방법이 내 평생 배운 것 중에서 가장 실용적이었습니다. 아홉 달을 미뤘던 전화를 걸게 했고, 그 전화가 2백만 달러어치의 철재 주문을 받아 냈습니다. 나는 이 방법을 임원들에게도 알려 주었지요. 그것이 임원들과 수십 번 미팅을 한 것보다 더 확실하게 베들레헴 철강회사를 세계 제일의 철강회사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리더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오늘 내가 이 조직을 위해서 공헌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퇴근하기 전에 내일 할 일 다섯가지를 중요한 순서대로 정해보자. 그리고 하루 하루 중요한 순서대로 일을 해 나간다면, 당신은 훌륭한 성과를 내면서 의미 있는 행복한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글 편집-

#모건 #고객 #철강 #명언 #조언 #거물 #베델 #경영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2-5.html
kolaswqetsrq 11.01 23:04
상처

상처

"칼로 베인 상처는 쉽게 아물지만, 말로 베인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날카로운 칼로 베인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아물게 되지요. 하지만 세치 혀로 입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상처를 입힌 사람은 잊고 살게 되지요. 상처받은 사람만 속이 곪아있기 마련이지요.

또한 어느 한사람의 얘기만 듣고 판단하는 무모함 또한 없어야겠지요.

저 또한 이글을 읽고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 상처를 준건 아닌지 또 잊고 살아 가는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하게 됨을 느낍니다.

제공 : 해밀우체통 해밀 조미하

#제공 #좋은글 #판단 #명언 #신중 #사람 #시간 #반성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181.html
kolaswqetsrq 11.01 23:05
아름다운 고백유진하

아름다운 고백(유진하)

먼 어느날 그대

지나온 세상 돌이켜 제일로 소중했던 이

그 누구였느냐고 묻는 말 있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당신이라 말하겠습니다

먼 어느날

꽃잎 마저 어둠에 물들어

별리의 문 닫힌 먼 어느날

그대 두고 온 세상 기억 더듬어

제일로 그리웠던 이

그 누구였느냐고 묻는 음성 들리면

나는 다시 주저없이 그 사람

당신이라 대답하겠습니다

혼자 가는길 끝에

어느 누구도 동행 못하는

혼자만의 길 끝에 행여 다음 세상 약속한 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내겐 늘 안개같은 이름

당신을 말하겠습니다

당신 사연 내 들은 적 없고

내 사연 또한 당신께 말한 적 없는 그리운 이

세월 다 보내고 쓸쓸히 등 돌려 가야하는

내 막다른 추억 속에서 제일로 가슴 아픈 사랑

있었느냐고 묻는 말 있으면

그 사랑 당신이었느라고

내 마지막 한마디

그 사랑 당신이었느라고

고백하겠습니다.

#명언 #기억 #어둠 #세상 #꽃잎 #고백 #좋은글 #제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48.html
kolaswqetsrq 11.01 23:06
매력적인 사람들의 대인관계법 41가지

매력적인 사람들의 대인관계법 41가지

01.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인간관계에 있다

02. 내 인생에서 소중한 20명을 꼽아라

03. 정직과 신용을 무기로 삼아라

04. 행복해지려면 인간관계에 충실하라

05. 인간은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한다

06. 인간은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다

07.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

08. 마음을 열고 자기 자신을 먼저 알려라

09. 먼저 다가가 호감을 표현하라

10. 친밀한 협력자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11. 매너가 경쟁력이다

12. 유머를 사랑하고 유머를 즐겨라

13.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하라

14. 즐거움을 전염시켜라

15.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라

16. 상대방을 긍정하고 존중하라

17. ‘우리’가 되는 공통점을 찾아라

18. 좋은 이미지를 가꿔라

19. 편안한 관계가 될 때까지 시간을 투자하라

20. 상대에게 협조하라

21. 고객은 수단이 아니다

22. 만족이 최상의 관계를 만든다

23. 상사를 존경하라

24. 부하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라

25.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26. 평등하게 대하라

27. 주먹을 펴야 악수를 할 수 있다

28. 권위주의를 버려라

29. 부하를 친구로 생각하라

30. 커뮤니케이션은 공기와 같다

31.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돼라

32. 아킬레스의 건은 건드리지 마라

33. 적이란 적은 모두 없애버려라

34. 스스로 쾌감을 조성하라

35.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대화하라

36. 감정이 담긴 커뮤니케이션을 하라

37. 배려하라

38. 겸손하라

39. 편견 없이 대하라

40. 서비스 정신을 갖추어라

41. 화를 통제하라

?

-안상윤 ‘매혹당할 확률 99%’-

#지옥 #인생 #매력 #천국 #좋은글 #인간 #명언 #사람 #정직 #대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41.html
kolaswqetsrq 11.01 23:06
부유한 사람들의 몸에 밴 10가지 습관

부유한 사람들의 몸에 밴 10가지 습관

01. 무엇이든 메모한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매일 아이디어를 메모했고 그것은 종종 애플의 혁신적인 제품의 플랫폼으로 탄생했다.

02. 일의 경중을 따진다.

겉으로 중요해 보이는 업무가 사실은 가볍게 넘겨도 되는 일일 수도 있고, 업무에 소요되는 시간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03. 매일 운동한다.

운동을 하지 않는 일반적인 이유 중 하나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지만, 부유한 사람들은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운동한다.

04. 작은 지출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듯, 작은 지출이 모여 큰 손실이 될 수 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재산을 구축하는 동안 사치와 필수적인 지출을 식별하는 능력을 키워 검소함이 몸에 배어 있다.

05. 하루를 빨리 시작한다.

부유한 사람 중 대부분은 아침형 인간이다. 하루 중 아침을 생산성이 가장 높은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충분한 숙면을 취하되 일찍 일어나 경기 전 워밍업처럼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명상을 하거나 독서를 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06. 책을 항상 곁에 둔다.

부유한 사람들 사이에는 실제로 독서광이 많다. 그들이 독서 습관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폭넓은 간접 경험과 정보를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늘 손이 닿는 곳에 책을 두거나 자녀들 교육법으로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도 독서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07. 주변인에게 소홀히 하지 않는다.

부유한 사람들은 진심을 담아 주변인에게 감사함을 표현할 줄 안다. 이들은 사람들과의 유대를 중요시하고 다른 사람과 오래 지속되는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08.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부유한 사람들은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진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즐길 줄 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울 점을 취하면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09. 긍정적 사고력을 유지하려 애쓴다.

부유한 사람들은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에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비판적이지 않으며, 긍정적인 측면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10. 플러그를 뽑는다

부유한 사람들은 하루 TV 시청 시간이 한 시간 미만이라고 한다.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단순한 재미를 포기할 줄 아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이다.

-원문출처 : 인사이트-

#탄생 #좋은글 #제품 #사람 #습관 #시간 #혁신 #명언 #플랫폼 #경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0_94.html
kolaswqetsrq 11.01 23:07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야할 말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야할 말들...

정말 잘했어요. 역시 당신이네요

당신하고 떨어져 있으면 왠지 허전해...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때 당신 판단이 옳았어..

당신이 있어서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몰라.

날마다 이 모든 일을 해줘서 정말 고마워...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가 누군지 알아?

바로 당신이야..

결혼을 다시 해야 한다면,

그때도 난 당신과 할거에요..

하루종일 당신 생각한거 알아요?

아침에 눈을 떴을때,

당신이 옆에 있어서 좋아요..

죽을때까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뿐이야..

당신은 언제봐도 멋있어요...

난 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나한테 얼마나

큰 의지가 되어주는지 모르죠?

우울하다가도 난 당신만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내가 세상 에서 유일하게 잘한 일이 있다면,

그건 당신과 결혼한 일이야...

미안해, 내 잘못이야..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어?

당신 생각은 어때?

당신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야

내가 뭐 도와줄일 없어?

날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나와 함께 살아줘서 고마워..

스티브 스티븐스 /

우리는 다시 만나기 위해 태어났다 중에서

#명언 #좋은글 #결혼 #생각 #안심 #판단 #종일 #사랑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20.html
kolaswqetsrq 11.01 23:08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살고 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은 삶이 버겁고

겉으로는 웃고있지만 속으로는 늘 울고 있는

옛 과거의 나쁜 기억에서 발목을 잡혀

매일매일 괴로워 신음하고 있는

하루에도 몇번 씩 죽고싶다고 생각하는 너에게

그렇게 특별하다 믿었던 자신이

평범은 커녕 아예 무능력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고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설레이던 이성으로 부터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고

분신으듯 잘 맞던 친구로부터

정이 뚝 떨어지는 순간이 있고

소름돋던 노래가 지겨워지는 순간이 있고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것이

그저 짝사랑에 불과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다

삶에 대한 욕망이나 야망 따위가

시들어 버리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삶이 치명적일 정도로

무의미하게 다가오는 순간 또한 있다

우리는 여지껏 느꼇던

평생 간직하고 싶던 그 감정은 무시한채

영원할것 같이 아름답고 순수하던

감정이 다 타버려

날아가는 순간에만 매달려 절망에 빠지곤 한다

순간은 지나가도록 약속되어있고

지나간 모든것은 잊혀지게 마련이다

어차피 잊혀질 모든 만사를 얹고

왜 굳이 이렇게 힘들어하며 사냐는게 아니다

어차피 잊혀질테니,절망하지 말라는 거다.

겁내지 마라.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기죽지 마라.끝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걱정하지 마라.아무에게도 뒤쳐지지 않는다.

슬퍼하지 마라.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조급해하지 마라.멈추기엔 너무 이르다.

울지 마라. 너는 아직 어리다.

#명언 #발목 #자신 #생각 #신음 #순간 #기억 #특별 #능력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141.html
kolaswqetsrq 11.01 23:08
구조정에 남은 한 자리

구조정에 남은 한 자리

부부가 해상에서 위험에 부딪혔는데, 부인을 돌보지 않고 남편이 혼자 도망쳤다면?

한쌍의 부부가 유람선에서 해상 재난을 당했는데 구조정에는 자리가 하나 밖에 없었다. 이 때 남편은 부인을 남겨두고 혼자 구조선에 올랐고 부인은 침몰하는 배 위에서 남편을 향해 소리쳤다.

선생님은 여기까지 얘기하고는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여러분, 부인이 무슨 말을 했을까요?" 학생들은 모두 격분하여 말하기를, "당신을 저주해요. 내가 정말 눈이 삐었지!!"

이때 선생님은 한 학생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학생에게 다시 물었더니, 그 학생은, "선생님, 제가 생각했을 때, 부인은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 우리 아이 잘 부탁해요"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너 이 얘기 들어봤니?"

학생은 머리를 흔들며, "아니요. 그런데 제 엄마가 돌아가실 때 아버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선생님은 감격해 하며, "정답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습니다.

배는 침몰했고 남편은 집으로 돌아와 딸을 잘 키웠고, 몇년 후 병으로 죽었습니다. 딸이 아빠의 유물을 정리하던 중 아빠의 일기장을 발견하는데, 아빠와 엄마가 배여행을 갔을 때 엄마는 이미 고칠 수 없는 중병에 걸려있었고, 그 때 마침 사고가 발생하였고, 아빠는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빠의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 때 나도 당신과 함께 바닷에서 죽고 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었지. 우리의 딸 때문에, 당신만 깊고 깊은 해저 속에 잠들게 밖에 할 수 없었어."

이야기를 끝내자, 교실은 조용했다. 선생님도 알 수 있었다. 학생들도 이미 이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다는 것을,,

세상에서 선과 악이란 어떤 때는 복잡하게 얽혀있어 쉽게 판단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만 상대를 가볍게 판단해서는 안된다.

먼저 밥값 계산을 하는 이는 돈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돈보다 우정을 더 중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할 때 주동적으로 하는 이는, 바보스러워서 그런게 아니라 책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말싸움 후에 먼저 사과하는 이는, 잘못해서 그러는게 아니라 주변의 사람을 아끼기 때문이다.

너를 나서서 도와주려는 이는, 너에게 빚진 게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너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늘 너에게 정보를 주는 이는, 한가하고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는게 아니라 마음 속에 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Story 글 옮김-

#재난 #남편 #유람선 #명언 #조정 #부인 #해상 #좋은글 #위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33.html
kolaswqetsrq 11.01 23:09
친구라는 아름다운 이름

친구라는 아름다운 이름

친구라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또한 없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대가 힘들 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친구이고 싶습니다.

서로 사랑이란 말이 오고가도 아무 부담없는... 혼자 울고 있을때 말없이 다가와 "힘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그대와 함께 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걱정하고 칭찬하는 친구이고 싶습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어도 ,그대가 있으면, 그대도 내가 있으면 만족하는 그런 친구이고 싶습니다.

사랑보다는 우정, 우정보다는 진실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고맙다는 말보다 아무 말 없이 미소로 답할 수 있는.. 둘보다는 하나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그대보다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할 수 있는 그런 친구이고 싶습니다. 아무 말이 없어도, 서로를 더 잘 아는... 그대가 나를 속여도, 전혀 미움이 없는 잠시의 행복, 웃음보다는 가슴깊이 남을 수 있는 행복이 더 소중합니다.

그냥 지나가는 친구보다 늘 함께 있을 수 있는 힘없이 깔려 내리는 목소리에도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아낌의 소중함보다, 믿음의 소중함을 더 중요시하는 먼 곳에서도 서로를 믿고 생각하는 친구이고 싶습니다.

그대가 괴로울 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대가 즐거울 때 세상 누구보다 더 즐거워합니다. 그대보다 더 소중한 친구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에게 처음으로 행복을 가르쳐 준 좋은 친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기도 하겠습니다. 내 그리운 친구를 위하여.....

-스토리채널 글 옮김-

#마음 #만족 #사랑 #걱정 #칭찬 #부담 #이름 #좋은글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247.html
kolaswqetsrq 11.01 23:10
노력의 문

노력의 문

일생동안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죽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번도 문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문밖에서 서성거리다가 죽을 무렵이나 되서야 문지기에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문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문지기는 반가워서 말했습니다.?

"이 문은 당신의 문입니다. 당신이 말하면 문을 열어 드리려고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습니다. 문지기에게 열어달라고 부탁을 했거나 열어 보려고 노력을 했더라면 벌써 그 문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절로 문이 열리기만을 바랐기 때문에 그 문으로 들어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내 삶을 사는데 내가 선택하지 않고 내가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건 나이를 먹는 것 밖에 없습니다. 우린 세상을 살면서 늘 이렇게 시도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나만의 오늘. 주어진 내 시간과 내 선택의 날, 오늘. 결코 시도하지 않아서 후회되는 삶이 적어도 오늘 만큼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어제는 꿈에 불과하고 내일은 단지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을 잘 살아간다면 모든 과거를 행복한 꿈으로 미래를 희망적인 환상의 세계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인터넷 글 옮김-

#일생 #노력 #문밖 #동안 #좋은글 #사람 #명언 #문안 #부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06.html
kolaswqetsrq 11.01 23:10
반석평 이야기

반석평 이야기

조선시대 노비 신분으로 참판 댁 종으로 살던 반석평은 주인집 아들이 공부하는 동안 몰래 밖에서 도둑 공부를 하는 등 공부에 대한 열의를 보였습니다.

이에 반석평의 재능이 대단하다는 것을 눈치 챈 주인은 그의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반석평을 어느 돈 없는 양반집의 양자로 들어 가도록 주선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반석평은 양반 신분을 얻게 되고 1507년 과거에 급제 하여 후에 형조판서의 자리에 오릅니다.

형조판서 시절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자신의 노비 신분을 없애 준 주인의 아들을 만나게 되는데, 주인 집안은 몰락했고 그 아들인 이오성은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 2품인 반석평은 그를 보자 바로 수레에서 내려와 절을 합니다.

후에 반석평은 중종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이오성에게 벼슬을 내려줄 것을 청합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중종은 반석평의 지위를 유지함과 동시에 이오성에게 벼슬을 내리게 됩니다. 노비 신분에서 재상의 자리에 오른 반석평은 후에 종1품 좌찬성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직계 후손은 나중에 바로.....

건물(建物)은 높아졌지만

인격(人格)은 더 작아졌고,

고속도로(高速道路)는 넓어졌지만

시야(視野)는 더 좁아졌다.

소비(消費)는 많아졌지만

기쁨은 더 줄어들었고,

집은 커졌지만

가족(家族)은 더 적어졌다.

생활(生活)은 편리(便利)해졌지만

시간(時間)은 더 부족(不足)하고,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소중(所重)한 가치(價値)는 더 줄어들었다.

학력(學力)은 높아졌지만

상식(相識)은 더 부족(不足)하고,

지식(知識)은 많아졌지만

판단력(判斷力)은 더 모자란다.

전문가(專門家)들은 늘어났지만

문제(問題)는 더 많아졌고,

약(藥)은 많아졌지만

건강(健康)은 더 나빠졌다.

돈을 버는 법(法)은 배웠지만

나누는 법(法)은 잊어 버렸고,

평균수명(平均壽命)은 늘어났지만

시간(時間) 속에 삶의 의미(意味)를 넣는 법(法)은 상실(喪失)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고,

우주(宇宙)를 향해 나아가지만

우리 안의 세계(世界)는 잃어버렸다.

공기(空氣) 정화기(淨化器)는 갖고 있지만

영혼(靈魂)은 더 오염(汚染)되었고,

원자(原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偏見)을 부수지는 못한다.

자유(自由)는 더 늘었지만

열정(熱情)은 더 줄어들었고,

세계평화(世界平和)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마음의 평화(平和)는 더 줄어들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됩니다.

-BLOG 글 옮김-

#참판 #주인 #신분 #동안 #양반집 #아들 #주인집 #명언 #재능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432.html
kolaswqetsrq 11.01 23:11
피그말리온 효과

피그말리온 효과

지중해 어느 섬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있었다. 그는 여인들을 멀리하고 오로지 조각에만 매달렸는데 어느새 자신이 만든 조각상 갈라테이아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를 껴안고 입을 맞추며 그는 매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빈다.

저 조각상 같은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달라고. 그의 기도에 감동을 받은 아프로디테는 갈라테이아에게 생명을 주었고 피그말리온이 조각상을 껴안고 키스하는 순간 사람으로 변한 갈라테이아는 그를 향해 몸을 기울인다.

 "
이처럼 무엇이 될 것이라는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대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피그말리온 효과다. 오늘날 피그말리온 효과는 교육은 물론 곳곳에서 응용된다. 긍정으로 무엇이 될 수 있다는 태도로 대해주면 상대는 거기에 부응해 노력을 하게 되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
",

부정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칭찬하고 긍정해 결국 더욱 좋은 결과를 얻는 효과라 하겠다.

-최선옥 시인-

#여인 #사랑 #자신 #지중 #좋은글 #피그말리온 #명언 #조각 #조각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304.html
kolaswqetsrq 11.01 23:12
행복해지는 14가지 행동

행복해지는 14가지 행동

01.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02. 깔깔 웃으면서 일한다.

03. 유머러스하게 말한다.

04. 열정적으로 일을 즐긴다.

05. 무언가에 푹 빠진다.

06.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한다.

07.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08. 고통이 끝나는 순간을 상상한다.

09.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10.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한다.

11. 내가 먼저 인사한다.

12. 유머스러한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

13. 부정적인 사람은 되도록 멀리한다.

14. 하기 싫은 건 더 빨리 끝내버린다.

-Story 글 옮김-

#명언 #열정 #고통 #좋은글 #상상 #최선 #행동 #행복 #순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4_76.html
kolaswqetsrq 11.01 23:13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가슴 아파하지 말고

나누며 살다 가자.

버리고 비우면

또 채워지는 것이 있으리니

나누며 살다 가자.

내 마음이 예수님, 부처님마음이면

상대도 예수, 부처로 보이는 것을...

누구를 미워도,

누구를 원망도 하지 말자.

몸도 마음도 따뜻한 날 되세요.

많이 가진다고 행복한 것도

적게 가졌다고 불행한 것도

아닌 세상살이

재물 부자이면 걱정이 한 짐이요.

마음 부자이면 행복이 한 짐인 것을...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은

마음 닦는 것과 복 지은 것뿐이라오.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갈 날도 많지 않은데....

누군가에게 감사 하며

살아갈 날도 많지 않은데....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된다고

가슴 아파하며 살지 말자.

버리고 비우면

또 채워지는 것이 있으니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다 가자.

-김수환 추기경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중-

#명언 #원망 #마음 #좋은글 #불행 #가슴 #사람 #행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41.html
kolaswqetsrq 11.01 23:13
많이 넘어지는 사람만이

많이 넘어지는 사람만이

쉽게 일어나는 법을 배웁니다.

살다보면 지금보다 더 많이

넘어질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축 처진 어깨로

앉아 있지 마세요.

일어나세요.

넘어진 자리가

끝이 아닙니다.

넘어진 그 자리가,

눈물 흘린 그 자리가,

포기하려 했던 그 자리가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시작하는 순간

모든 일이 가능해집니다.

당신이니까 가능합니다.

당신이니까 해낼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니까.

힘내서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는

당신을 격려합니다.

오늘도 당신을 믿습니다.

-김이율 힐링북 (톡) 중-

#마음 #눈물 #명언 #출발점 #사람 #좋은글 #가능 #순간 #시작 #지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64.html
kolaswqetsrq 11.01 23:14
나를 혁신하는 10가지 방법

나를 혁신하는 10가지 방법

1.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라

잡담이나 나누면서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이 내 인생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2. 버리는 것부터 시작하라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는 것, 이것이 몸에 배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 그저 신변잡기로 만났던 인간관계도 산뜻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3. 가장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라

행복의 기준을 만들어라.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이 건강이다. 건강한 신체에서 비롯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떠올린다면 행복도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4. 50%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라

하루 활동하는 시간 중에도 일의 능률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있게 마련이다.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아내 그 시간 내에 하루 처리할 업무의 대부분을 해결하라

5. 단순하게 생각하라

무슨 일이든 단순하게 생각하면 중요한 부분에 자신의 능력을 집중시킬 수 있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피하려고 하기 보다는 어떻게 쉽게 생각할지 방법을 궁리하면 어느 순간 집안사정처럼 환히 꿰뚫어 보게 될 것이다

6. 쉽게 그리고 즐겁게 일하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곧장 행동으로 옮겨라.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즐겁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일에 뛰어든다. 지금이라도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보자

7. 나만의 능력을 찾아라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이라도 스스로 자랑 할만 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나만의 능력이다. 능력은 단시간에 생기는 게 아니다. 바로 그 점이 도전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가진 사람 모두에게 자신감과 긍지를 갖게 한다

8. 일을 인생의 수단으로 삼아라

일은 인생의 수단일 뿐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자신감과 노력이 뒤따르는 배짱은 일상의 여유를 선물 해 줄 것이다

9. 한가지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라

한 가지 일에만 너무 집착하지 않도록 하라. 단지 하고 싶다는 이유로 자신을 몰아치는 동안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진정한 재능이 그대로 잠들어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0. 목표를 숫자로 구체화하라

목표는 나는 할 수 있다, 나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세우는게 효과적이다. 이왕이면 목표를 숫자화 시키고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결과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BAND 글 옮김-

#시간 #혁신 #방법 #인생 #명언 #잡담 #이용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0_4.html
kolaswqetsrq 11.01 23:15
행운이 오는 31가지 방법

행운이 오는 31가지 방법

 "
01.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좋은날 하고 큰 소리로 외쳐라. 좋은 아침이 좋은 하루를 만든다.
",

02. 거울을 보며 활짝 웃어라. 거울 속의 사람도 나를 보고 웃는다.

03. 가슴을 펴고 당당히 걸어라. 비실비실 걷지 말라.

04. 사촌이 땅을 사면 기뻐하라. 사촌이 잘되야 나도 잘되게 마련이다.

05. 마음 밭에 사랑을 심어라. 그것이 자라나서 행운의 꽃이 핀다.

06. 세상을 향해 축복하라. 세상도 나를 향해 축복해준다.

07. 밝은 얼굴을 하라. 얼굴 밝은 사람에게 밝은 운이 따라온다.

08. 힘들다고 고민하지 말라. 정상이 가까울수록 힘이 들게 마련이다.

09.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라.

10. 그림자는 빛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어둠을 타박 말고 몸을 돌려 태양을 보라.

11. 사람을 존중하라.

12. 끊임없이 베풀어라. 샘물은 퍼낼수록 맑아지게 마련이다.

13. 안 될 이유가 있으면 될 이유도 있다.

14 가정을 위해 기도하라. 가정은 희망의 발원지요, 행복의 중심지다.

15 장난으로도 남을 심판하지 말라. 내가 오히려 심판 받는다.

16. 어떤 일이 있어도 기죽지 말라. 기가 살아야 운도 산다.

17. 목에 힘주면 목이 굳는다.

18. 교만하지 말라. 애써 얻은 행운 한 순간에 날아간다.

19. 밝고 힘찬 노래를 불러라. 그것이 성공 행진곡이다.

20. 오늘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말라.

21. 푸른 꿈을 잃지 말라. 푸른 꿈은 행운을 만드는 청사진이다.

22. 미운놈 떡 하나 더 줘라.

23. 말로 상처를 입히지 말라. 칼로 입은 상처는 회복되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평생간다.

24.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

25. 죽는 소리를 하지 말라.

26. 어두운 생각이 어둠을 만든다.

27. 마음을 활짝 열라. 대문을 열면 도둑이 들어오고 마음을 열면 행운이 들어온다.

28. 집안 청소만 말고 마음도 매일 청소하라. 마음이 깨끗하면 어둠이 깃들지 못한다.

29. 원망 대신 모든 일에 감사하라.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생겨난다.

30. 욕을 먹어도 화내지 말라. 그가 한 욕은 그에게로 돌아간다.

31. 잠을 잘 때 좋은 기억만 떠올려라. 밤사이에 행운으로 바뀌어진다

-BAND 글 편집-

#오늘 #방법 #거울 #좋은글 #명언 #아침 #사람 #행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31_17.html
kolaswqetsrq 11.01 23:16
오십이 넘어서야 이해되는 말 18가지

오십이 넘어서야 이해되는 말 18가지

01. 인생은 운칠기삼. 운이 70%, 의지가 30%.

02. 인생에서 제일 안 좋은 것이 초년성공, 중년상처(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남), 노년빈곤

03. 잘난 사람보다 약간 무능한 사람이 회사를 오래 다닌다.

04. 동창 모임에 가보면 학교 다닐 땐 별 볼일 없었던 이들이 성공한 경우가 많다.

05. 인생의 가장 큰 실수는 사람들 관계에서 영양가를 따지는 것.

06. 무엇이든 20년은 해야 겨우 전문가 소리를 듣는다.

07. 만나는 사람마다 명함을 뿌리지만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08. 업계를 떠나면 그쪽 인맥은 거의 남지 않는다.

09. 월급은 내가 회사에 공헌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기회손실에 대한 비용으로 받는 것이다.

10. 남자는 40대 초반에 자뻑이 제일 심하고 40대 후반부터 급속하게 비겁해진다.

11. 다음의 5가지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입 밖에 낸 말, 쏴버린 화살, 흘러간 세월, 놓쳐버린 기회, 돌아가신 부모님.

12. 결국 남는 건 배우자가 아니라, 자식과 사진이다.

13. 재능보다 중요한 건, 배짱과 끈기다.

14. 사람들의 추억이나 기억은 매우 부정확하다.

15. 회사는 기억력이 없다.

16. 행복해지려면 두 가지를 해야 한다. 첫번째는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낮추는 것이다. 두번째는 자신의 엉뚱하고 무모한 꿈으부터 떠나는 것이다.

 "
17. 인생은 당신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누구를 만나느냐는 대부분 운이다.
",

18. 삶은 생각할수록 비극이지만, 그래도 즐겁게 살려고 마음을 먹으면 즐거운 게 꽤 많다.

-인터넷 글 옮김-

#초년 #좋은글 #빈곤 #명언 #노년 #세상 #성공 #중년 #인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8_17.html
kolaswqetsrq 11.01 23:16
행복이 별건가요

행복이 별건가요

1) 보고 싶은 사람 보고.

2) 먹고 싶은 음식 먹고.

3) 하고 싶은 일만 하며.

4) 즐겁게 살면 그게 바로 행복입니다.

사는 날까지

1) 꿈을 버리지 마세요.

2) 마음을 닫지 마세요.

3) 남 원망하지 마세요.

4) 죽는 소리하지 마세요.

5) 사람을 미워하지 마세요.

6) 자신을 포기하지 마세요.

7) 말로 상처를 주지 마세요.

8) 손에서 일을 놓지 마세요.

9) 부정적 생각을 하지마세요.

-움터-

#원망 #사람 #마음 #명언 #좋은글 #음식 #자신 #행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90.html
kolaswqetsrq 11.01 23:17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는 10계명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는 10계명

1. 반갑게 만나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환영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는 환한 미소, 밝은 목소리로 반가움을 표시하라.

2.관심을 보여라.

다른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에게 관심을 보여라. 조지 버나드 쇼는 “인간에 대한 가장 나쁜 죄는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이다”라고 말했다.

3.경청하라.

상대방의 말을 들으며 눈을 바라보고, 적절하게 고개를 끄덕여 이해를 표시하고, 추임새를 통해 반응을 나타내라.

4.따뜻한 말을 하라.

가장 좋은 말은 칭찬이다. 칭찬은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먼저 연습해서 버릇을 들여야 한다.

5.호의를 제공하라.

다른 사람을 만나면 호의를 베풀어라. 호의는 돈, 물질, 선물, 식사대접, 음료제공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밥값은 내가 계산하라. 식사 후에는 커피를 타 줘라.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상대방을 먼저 타고 먼저 내리게 하라.

6.기분 좋은 만남을 만들어라.

다른 사람을 만나면 함께 했던 시간이 유쾌하고 편안한 만남이 되도록 노력하라. 나와 함께 있었던 시간이 불쾌하고 불편하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진다. 인간관계에서는 쇼맨십도 중요한데 쇼맨십은 관중을 즐겁게 해 주려는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7.각인시켜라.

인간관계가 유지되려면 첫 단계에서 각인과정이 필요하다. 자기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거나 특이한 별명을 말하거나 특색 있는 자기소개를 하라. 노래, 성대모사, 악기연주, 춤 등 개인기가 있으면 보여줘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다른 경험을 한 일이 있으면 그 이야기를 들려줘라.

8. 기대감을 형성하라.

헤어질 때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만남과 인연이 이어진다. 자기소개를 하거나 대화를 할 때는 나에 대한 기대감을 형성시켜라. 기대감은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형성된다.

9. 아쉽게 헤어져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에게 좋은 감정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을 만났다 헤어질 때는 상대방을 만나게 된 것에 대한 기쁨, 앞으로 소중한 인연이 이어지길 바라는 기대감,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 수 있기를 바라는 아쉬움과 감사의 인사말을 표현하라.

10.겸손하라.

지금까지 말한 아홉 가지 사항이 실천되려면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다. 나보다 잘났거나 도움이 될 사람을 만나면 시키지 않아도 반갑고, 관심과 칭찬을 넘어 아부까지 건네지만 나보다 못났거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 무관심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사람의 간사한 마음이다.

-Facebook 글 옮김-

#명언 #자신 #좋은글 #반가움 #사람 #계명 #환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0_30.html
kolaswqetsrq 11.01 23:18
남자가 말했다.

남자가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야 한다고,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알아야 한다고,

그리워하는 거 생각하는 거 보고 싶은 거..

사랑하는 거..

여자가 말했다.

다 알고 있어도 듣고 싶다고,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어도 듣고 싶다고,

그립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남녀관게에서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서로에게 적절한 시기에 등장하는 가이다.

미칠 듯이 끌리고 죽도록 사랑해도

서로에게 적절한 시기가 아니고

기가 막힌 타이밍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다.

서로에게 기가 막힌 타이밍에

서로의 인생에 자연스레 등장해 주는 것

그래서 서로의 누군가가 되어 버리는 것.

그게 "운명"이자 "인연"이다.

배수아 - 에세이스트의 책상

#표현 #좋은글 #명언 #생각 #결국 #사랑 #등장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39.html
kolaswqetsrq 11.01 23:18
처세 명심보감

처세 명심보감

01. 부르는 데가 있거든 무조건 달려가라. 불러도 안 나가면 다음부터는 부르지도 않는다.

02. 여자와 말싸움은 무조건 져라. 여자에게는 말로서 이길 수가 없고 혹 이긴다면 그건 소탐대실이다.

03. 일어설 수 있을 때 걸어라. 걷기를 게을리하면 어느날 일어서지도 못하게 되는 날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올 것이다.

04. 남의 경조사에 갈때는 제일 좋은 옷으로 차려 입고 가라. 내 차림새는 나를 위한 뽐냄이 아니라 남을 위한 배려다.

05. 더 나이 먹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도전하여 시작해 보라. 일생 중에 지금이 가장 젊은 때라고 생각해라.

06. 옷은 좋은 것부터 입고, 말은 좋은 말부터 해라. 좋은 것만 하여도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07. 누구든지 도움을 청하거든 무조건 도와라. 나같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자.

08.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는 "이만하길 다행이다." 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 당했다면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고 젊은 사람에게 무시를 당했으면 "그러려니"하고 살자.

09. 범사에 감사하며 살자.

10. 나이 들었어도 인기를 바란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11. 어떤 경우에라도 즐겁게 살자.

12. 보고싶은 사람은 미루지 말고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아 만나라. 내일이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자.

-Vingle 글 옮김-

#좋은글 #다음 #일생 #지금 #명언 #말싸움 #도전 #소탐대실 #시작 #생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824.html
kolaswqetsrq 11.01 23:19
인간 관계의 5가지 법칙

인간 관계의 5가지 법칙

1.노크의 법칙

마음의 문을 열려면 먼저 노크하라. 그리고 나에 대해 알려 주라. 내가 먼저 솔직한 모습, 인간적인 모습,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면 상대방도 편안하게 마음의 문을 열게된다.

2.거울의 법칙

거울은 먼저 웃지않는다. 내가 웃어야만 거울속의 내가 웃듯이 인간 관계도 내가 먼저 웃어야 한다. 내가 먼저 관심을 갖고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의 법칙이다.

3.상호성의 법칙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얻고 싶으면 먼저 호감을 가져야 한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항상 좋은 감정을 갖고 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4.로맨스의 법칙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모두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한다. 인간관계에서 좋은관계를 만들고 싶으면 이런 이중잣대를 버리고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하라.

5.짚신의 법칙

짚신에도 짝이 있듯이 사람마다 맞는 짝이 있기 마련이다. 싫은 사람과 억지로 친해지려고 애써지마라. 인간관계가 많다보면 악연이 생기기 쉽다. 모든 사람을 친구로 만들려 하지말고 나와 통하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호연을 구하고 악연을 피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잘하는 비결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BAND 글 옮김-

#법칙 #명언 #인간 #마음 #좋은글 #모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5_17.html
kolaswqetsrq 11.01 23:20
멋진 中年을 위한 7계명誡命

멋진 中年을 위한 7계명(誡命)

■ 첫째 : 클린업 (clean up).

몸을 깨끗하게, 아울러 생활 주변도 청결을 유지하라.

■ 둘째 : 리슨 업 (listen up).

내 주장만 고집하지 말고 상대방 말을 듣는 자세로 전환하라.

■ 셋째 : 셧 업 (shut up).

가능한 입을 다물고 가능한한 말을 아껴라.

■ 넷째 : 드레스 업 (dress up).

옷은 날개다, 아무렇게나 입지 말고 당당하게 잘 차려 입어라.

■ 다섯째 : 쇼우 업(show up).

자기를 사회에 적당히 노출시켜라. 일이나 모임이 있을 때마다 사양하지 말고,가능한 한 참석해서 사교적인 인간관계를 하라.

■ 여섯째 : 오픈 업(open up).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내마음&지갑을 열줄도 알아야된다.

■ 일곱째 : 기브 업(give up).

세상 것들에 너무 미련과 집착을 두지 말자.

#클린업 #주장 #계명 #청결 #명언 #중년 #생활 #좋은글 #주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7_17.html
kolaswqetsrq 11.01 23:20
남의 손을 씻어 주다보면

남의 손을 씻어 주다보면

내 손도 따라서 깨끗해지고

남에 귀를 즐겁게 해주다 보면

내 귀도 따라서 즐거워 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 불을

밝히다 보면

내 앞이 먼저 밝아지고

남을 위해 기도를 하다보면

내 마음이 먼저 맑아짐니다!!

지금 말하세요 사랑한다고...

내일은 나의 시간이 아닙니다.

-Facebook 글 편집-

#사랑 #좋은글 #마음 #시간 #내일 #명언 #편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54.html
kolaswqetsrq 11.01 23:21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피천득 / 인연

#명언 #사람 #보통 #옷깃 #인연 #좋은글 #현명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030.html
kolaswqetsrq 11.01 23:22
한 인터뷰에서 김수미씨가 했던 말

한 인터뷰에서 김수미씨가 했던 말

김수미씨가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김수미씨의 남편이 사업 실패를 겪으면서 빚더미에 올라 앉아 쩔쩔 매는 상황까지 맞았다고 합니다.

돈이 많았던 친척들도 김수미씨를 외면했습니다. 김수미씨는 급한 대로 동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몇백만원씩 돈을 빌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안 김혜자씨가 김수미씨에게 정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얘, 넌 왜 나한테 돈 빌려달라는 소리 안 해? 추접스럽게 몇 백씩 꾸지 말고 필요한 돈이 얼마나 되니?" 하며 김수미씨 앞에 통장을 꺼내 놓았습니다.

"이거 내 전 재산이야. 나는 돈 쓸 일 없어. 다음 달에 아프리카 가려고 했는데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다 찾아서 해결해. 그리고 갚지 마. 혹시 돈이 넘쳐나면 그 때 주든가."

김수미씨는 그 통장을 받아 그때 지고 있던 빚을 모두 청산했습니다. 그 돈은 나중에야 갚을 수 있었지만 피를 이어받은 사람도 아니고 친해봐야 남인 자신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내어 준 것에 김수미씨는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입장이 바뀌어 김혜자씨가 그렇게 어려웠다면 자신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면서요. 김수미씨는 그런 김혜자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언니, 언니가 아프리카에 포로로 납치되면 내가 나서서 포로교환 하자고 말할 거야. 나 꼭 언니를 구할 거야."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전 재산을 내어준 김혜자씨에게 김수미씨는 자신의 목숨도 내놓을 수 있을 정도의 강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살면서 이런 친구 한명만이라도 함께 한다면 세상 참 잘 살았다 할텐데 말입니다.

-BAND에서 옮겨온 글-

#사업 #외면 #친척 #남편 #우울증 #사실 #고통 #좋은글 #명언 #상황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00.html
kolaswqetsrq 11.01 23:22
나이가들면

나이가들면

아는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알고 싶은게 많아진다

나이가 들면

모든게 이해될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해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어른으로 보이기 위해

오히려 긴장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모든게 편해질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많이 공부해야하고,

더 많이 이해해야하고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더욱 애써야 한다.

끝없이...끝없이....

나이가 들면서

짙은 향기보다는 은은한 향기가

폭포수보다는 잔잔한 호수가

화통함 보다는 그윽함이

또렷함보다는 아련함이

살가움보다는 무던함이

질러가는 것보다 때로는 돌아가는게 좋아진다.

천천히

눈을 감고 천천히

세월이 이렇게 소리 없이 나를 휘감아 가며

끊임없이 나를 변화시킨다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나를"나이가 들면서..."

최정재 / 나이가 들면

#좋은글 #세월 #어른 #명언 #긴장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83.html
kolaswqetsrq 11.01 23:23
부부 대화 십계명

부부 대화 십계명

1. 맞장구를 쳐주자. 아무리 신나는 장구도 맞장구만 못하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높여주는 맞장구는 멋진 인간관계를 만들어준다.

2. 분위기에 맞는 말을 하자. 때와 장소와 분위기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라고 하였다.

3. 자존심 상하는 말을 쓰지 말자.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으면 적개심이 생긴다. 생각 없이 불쑥 나온 말이 상대방의 가슴에 상처로 남을 수 있다.

4. 정감 있게 말하자. 말을 할 때에 한 음정 낮추어서 말을 하게 되면 정감 있게 들릴 것이다. 정감 어린 말의 습관은 분위기를 만든다.

5.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를 주어라. 대화는 주고받는 것이지 혼자 떠드는 것이 아니다. 말을 잘하는 것은 혼자 떠드는 것이 아니라 들어주는 것이다.

6. 같은 소리를 두 번 이상 반복하지 말자.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계속 반복하게 되면 신경질이 나고 기분이 상하게 된다. 한두 번이면 족하다.

7. 칭찬의 말을 세 번 이상 하자. 바보 온달도 평강공주의 칭찬이 없었더라면 바보로 끝났을 것이다. 좋은 칭찬은 마음에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8. 좋은 말만 골라서 사용하자.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어떤 말을 쓰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장래가 어떻게 될까 가히 짐작할 수 있다.

9. 유머의 소재를 스스로 개발하자. 유머로 남을 웃길 줄 아는 사람은 재벌, 자기가 웃을 줄 아는 사람은 부자다. 웃음꽃보다 값지고 아름다운 꽃은 없다.

10. 알아주는 말을 해 보자. 아무리 나를 몰라주어도 아내(남편)만큼은 알아주기를 원한다. 알아주는 말에 힘이 생기고 몰라주는 말에 가슴이 미어진다.

-BAND 글 옮김-

#명언 #인간 #십계명 #쟁반 #좋은글 #자존심 #인정 #적개심 #상대방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87.html
kolaswqetsrq 11.01 23:24
부모로서 해줄 단 세가지

부모로서 해줄 단 세가지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물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 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였다

-박노해-

#평생 #침묵 #명언 #동물 #살생 #좋은글 #뼛속 #자연 #거짓 #개성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38.html
kolaswqetsrq 11.01 23:24
매력 십계명

매력 십계명

01. 항상 명랑하라.

02. 단정하게 차려입어라.

03. 부드럽게 말하라.

04. 남이 말하면 귀를 기울여라.

05. 약속을 생명같이 여겨라.

06.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

07. 감사하는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라.

08. 꼭 해야 한다면 주저하지 마라.

09. 끝까지 꿈을 품어라.

10. 써야 할 때는 과감하게 써라.

-Story 글 옮김-

#판단 #생명 #사람 #약속 #십계명 #마음 #명언 #좋은글 #매력 #겉모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69.html
kolaswqetsrq 11.01 23:25
마법의 주문呪文들

마법의 주문(呪文)들

01.상대의 화를 가라 앉히는 주문

미안해~^^

02.겸손한 인격의 탑을 쌓는 주문

고마워~~^^

03.상대의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 주문

잘 했어*^^

04.화해와 평화를 부르는 주문

내가 잘했어.ᅲ

05.존재감을 쑥쑥 키워주는 주문!!!

당신이 최고야!!!

 "
06.상대의 기분을 업시키는 주문
",

오늘 아주 멋져 보여~^^

07,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 내는 주문

네 생각은 어때?

08.든든한 위로의 주문

내가 뭐 도울 일없어?

09.상대의 자신감을 치솟게 하는 주문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10.열정을 샘솟게 하는 주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11.상대의 능력을 200% 이Rm는 주문

당신을 믿어♡

12.용기를 크게 키우는 주문

넌 할 수 있어!

13.부적보다 큰 힘이 되는 주문

널 위해 기도할께_0_

14.충고보다 효과적인 공감의 주문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어^^

15.호감을 사는 주문

당신과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

16.자녀의 앞날을 빛나게 하는 주문

네가 참 자랑스러워~^^

17.반복되는 일상에 희망을 선사하는 주문

첫 마음으로 살아가자~^^

18.환상의 짝꿍을 얻을 수 있는 주문

우리는 천생연분이야~♡

19.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주문

괜찮아. 잘 될거야!

20.상대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주문

보고 싶었어♡

21.배우자에게 사는 보람을 주는 주문

난 당신밖에 없어...

22,상대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주문

역시 넌 달라~

23.상대의 지친 마음을 어루\x90쳅주는 주문

그동안 고생 많았어!!!

24.백 번, 천 번 들어도 기분 좋은 주문

사랑해..!!!♡

?

-BAND 글 옮김-

#명언 #좋은글 #주문 #겸손 #인격 #미안 #마법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41.html
kolaswqetsrq 11.01 23:26
끌리는 사람이 되는 10가지 방법

끌리는 사람이 되는 10가지 방법

01. 좋은 인상을 유지하라. - 첫인상이 아무리 좋았더라도 부정적인 정보를 접하면 쉽게 나쁜 쪽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02. 좋아하면 판단할 필요가 없다. -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한다. 따라서 성공적인 설득을 하고 싶다면 우선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사고(에토스), 감정에 호소한 다음(파토스), 필요성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고(로고스), 마지막으로 상대방이 마음을 바꾸지 않도록 다시 에토스를 이용하는 순환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03. 신은 마음을, 사람은 겉모습을 먼저 본다. - 옷차림은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우리자신의 태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문 밖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우리의 옷차림은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04. 초록은 동색, 가재는 게 편 -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는 반면 자기와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반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자주 보면 정이 들고 만나다 보면 좋아진다. 가까이서 자주 만날수록 호감도가 커지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간간이 안부를 묻고, 만나기가 힘들다면 책이나 신문 등 상대가 흥미를 느낄 만한 내용을 메일로 보내는 등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05 . 칭찬은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 또한 면전에서 칭찬하는 것보다 제3자에게 칭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칭찬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자랑하고 싶은 욕구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

06. 나는 왜 나를 사랑해야 하는가 - 자기애가 깊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과장해서 과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교만하지 않으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당당함으로 주변사람들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게 만든다.

07 . 다름을 인정하면 공감이 쉬워진다. - 인간관계의 갈등을 줄이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머릿속에서 ‘다른 것=나쁜 것’이라는 공식을 삭제해야 한다.

08. 사람들은 옳은 말을 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 사람들은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관계의 문제는 말을 못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듣지 못해서 생기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슬픔이나 분노가 해소되고 마음이 후련해진다. 또한 존중받고 이해 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09 . 작은 빈틈이 마음을 열게 한다 . - 너무 완벽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만든다. 또 사람들은 결점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에 대해 위선적이고 인간미가 없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스펀지가 공간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물을 빨아들이듯이 누군가가 다가오게 하려면 그가 들어올 수 있는 빈틈을 마련해두어야 한다.

10. 뒷담화, 만족은 짧고 후회는 길다. - 검지 하나로 손가락질을 하면 나머지 세 개의 손가락이 나를 향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뒷담화의 유혹에 빠질 땐 스스로에게 ‘또 시작이야!’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꿔보자.

-인터넷 글 편집-

#좋은글 #명언 #부정 #방법 #사람 #명심 #판단 #인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0_98.html
kolaswqetsrq 11.01 23:27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 16가지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 16가지

1. 변화를 수용 하는가 vs 변화를 두려워하는가

세상은 매우 빠르고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뒤로 숨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 다른 사람의 성공을 원하는가 vs 은밀히 실패하길 바라는가

당신이 한 그룹의 일원이 됐을 때 성공하기 위해선 모두가 성공하길 원해야 한다. 만약 주위사람의 실패를 원한다면, 그런 실패한 사람과 일하고 싶은가?

3. 즐거움이 넘치는가 vs 분노가 넘치는가

일을 함에 있어서,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것은 항상 옳다. 이러한 행복은 전염성을 갖고 있어 다른 사람들 또한 기분을 좋게 만든다.

4.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가 vs 실패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가

실패한 경험에 대해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다음에 같은 실패를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5. 아이디어에 대해 말하는가 vs 사람에 대해 말하는가

가십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은 사실무근이며 부정적이고 시간낭비다. 주변사람을 흉보기보단, 사람들과 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해라.

6. 정보와 자료를 공유하는가 vs 정보와 자료를 축적하는가

타인과 정보와 자료를 공유한다면 당신은 타인의 정보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만 보기 위해 좋은 정보를 간직하고 있다면 이기적이며 삶을 짧게 보고 있는 것이다.

7. 성공의 공을 사람에게 돌리는가 vs 다른사람의 공을 빼앗는가

팀워크는 성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팀을 꾸려 일을 할 때 그들의 공헌에 대해 무시하지 마라. 성공의 순간을 함께 누려야 한다.

8. 삶의 목표와 계획을 세우는가 vs 목표를 세우지 않는가

당신의 삶에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면 성공에서 멀어질 것이다. 길게는 10년, 짧게는 3년의 예측을 하고 각 연간 계획이 필요하다.

9. 일기를 쓰는가 vs 일기를 쓰자고 말만 하는가

매일 일기를 쓰면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을 수 있고 잊기 쉬운 일들을 기록해 나중에 아이디어로 승화시킬 수 있다. 휴대폰을 이용해 적을 수도 있고, 노트에 직접 적어도 무방하다.

10. 매일 독서를 하는가 vs 매일 TV를 보는가

꼭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블로그의 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잡지, 혹은 책. 당신이 읽는 활자는 모두 좋은 학습거리가 될 것이다. 반면 TV를 보는 것은 좋은 여가거리가 될 순 있지만 성공을 하기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11. 유연한 관점으로 일을 처리하는가 vs 틀에 박힌 관점으로 일을 처리하는가

유연한 사고를 가진 리더는 끊임없이 새로운 경지를 향해 도달해 간다. 그들은 팀 구성과 함께 동기부여,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면 조화로울지에 대해 고민한다.

12. 끊임없이 배우는가 vs 눈앞의 일만 처리하는가

쉴 새 없이 배우고 향상시키는 것은 성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또한 당신의 경쟁자를 앞설 수 있으며 아는 것이 많아지면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다.

13. 남을 칭찬하는가 vs 남을 비판하는가

칭찬은 사람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며, 기분을 좋게 한다. 비난하는 것은 그 어떤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14. 남을 용서하는가 vs 원한을 품는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분노를 계속 품고 있는 것은 당신에게 이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다.

15. To-Be 리스트를 지키는가 vs 무엇을 할지 모르는가

To-Be 리스트는 미래를 계획하는데 필요한 목록이다. “나는 TED의 강연자가 되겠다” 혹은 “나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될 것이다”와 같은 목록을 만들어라.

16.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가 vs 세상이나 주위 사람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가

당신과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라. 감사는 성공하는 사람들이 가진 가장 큰 공통점이다.

-라이커블 로컬 경영자 Dave Kerpen-

#성공 #지속 #좋은글 #적극 #포용 #수용 #사람 #명언 #세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6_17.html
kolaswqetsrq 11.01 23:27
당신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늘 가슴에 담고 그리워만 했는데

오늘은 그대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대를 만나

달빛 고운 냇물을 건너

당신과 자작나무 숲을 거닐고 싶습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만날날이 있겠지

궁금한 만큼 멀리 있는 당신!

오늘은 당신을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강물이 가로 놓일 수 있고

태풍이 막아설 수 있겠지만

이리도 간절한데

당신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깊은 물과 강한 바람도

당신이 보고 싶은 오늘은

간절한 그리움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두 눈에 담을 수 있게 만나고 싶습니다

어쩌면 나처럼

나만큼 그리워하고 있을 당신!

오늘은 내 그리움의 주인인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윤보영 시-

#좋은글 #냇물 #명언 #강물 #오늘 #달빛 #바람 #가슴 #태풍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145.html
kolaswqetsrq 11.01 23:28
밝은 얼굴을 하라.

밝은 얼굴을 하라.

얼굴 밝은 사람에게 좋은 운이 따른다.

힘들다고 고민하지 말라.

정상이 가까울수록 힘이 들게 마련이다.

사람을 존중하라.

끊임없이 베풀어라.

샘물은 퍼낼수록 맑아지게 마련이다.

안될 이유가 있으면 될 이유도 있는 법이다.

#정상 #샘물 #존중 #얼굴 #고민 #좋은글 #명언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206.html
kolaswqetsrq 11.01 23:29
그러려니 하고 살자

그러려니 하고 살자

인생길에 내마음 꼭맞는 사람이 어디있으리

난들 누구 마음에 그리 꼭 맞으리

그러려니 하고 살자

내 귀에 들리는 말들 어찌다 좋게만 들리랴

내말도 더러는 남의 귀에 거슬리리니

그러려니 하고 살자

세상이 어찌 내마음을 꼭 맞추어주랴

마땅찮은일 있어도

세상은 다 그런거려니 하고 살자

사노라면 다정했던 사람 멀어져갈수도 있지 않으랴

온것처럼 가는것이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자

무엇인가 안되는일 있어도 실망하지 말자

잘되는일도 있지 않던가

그러려니 하고 살자

더불어 사는것이 좋지만

떠나고 싶은 사람도 있는것이다

예수님도 사람을 피하신 적도 있으셨다

그러려니 하고 살자

사람이 주는 상처에 너무 마음쓰고 아파하지 말자

세상은 아픔만 주는것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살자

누가 비난했다고 분노하거나 서운해 하지 말자

부족한데도 격려하고 세워주는 사람도 있지 않던가

그러려니 하고 살자

사랑하는 사람을 보냈다고

너무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말자

인생은 결국 가는것

무엇이 영원한 것이 있으리

그러려니 하고 살자

컴컴한 겨울날씨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자

더러는 좋은햇살 보여줄때가 있지 않던가

그러려니 하고 살자

그래 우리 그러려니 하고 살자

-손영호-

#인생길 #좋은글 #명언 #마음 #세상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940.html
kolaswqetsrq 11.01 23:30
부끄러운 과거는 없습니다

부끄러운 과거는 없습니다

부끄러운 과거는 없습니다.

부끄러운 미래만 있습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마세요.

과거는 과거일 뿐

당신을 붙잡을 수는 없답니다.

과거에 붙잡혀

현재를 사랑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미래만 있게 됩니다.

과거는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반성을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얽매여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반복되는 부끄러움 속에서

살게 될 뿐입니다.

 "
-소중하니까 통하는 거야 중
",

#반복 #사랑 #최선 #좋은글 #부끄러움 #반성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642.html
kolaswqetsrq 11.01 23:30
사람으로 인하여

사람으로 인하여

슬프고..

아프고..

속상하고 괴로워도

그래도 사람이 좋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그런 일 들이

없을 순 없으니까요

사람으로 인하여

슬프고 괴로웠듯이,

사람으로 인하여

또한 기쁘고 행복하잖아요.

사람이 산다는 것은

결국 함께 일 때,

모든 것에 의미가 있고

행복이 있는 거랍니다.

사람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은 중심이 아닌

조건들에 불과 하답니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사람 때문에 슬프고

괴로운가요?

고통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특권이랍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당신을 힘들게 하는 그 사람 때문에

당신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마음을 돌이켜

그사람을 축복해 보세요.

먼저 당신의 마음속에

놀라운 평안이 깃들 거예요.

함께.. 더불어 살아갈

더욱 빛이 나는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그래도..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그래도..

사람을 사랑합니다.

어떤 인연은 마음으로 만나고

어떤 인연은 몸으로 만나고

어떤 인연은 눈으로 만난다

어떤 인연은

내 안으로 들어와 주인이 되고

또 어떤 인연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된다

-김정한 ‘잘 있었나요 내인생’-

#부자 #사람 #성공 #명언 #좋은글 #공감 #감동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572.html
kolaswqetsrq 11.01 23:31
마음 주고 믿어주는 만큼

마음 주고 믿어주는 만큼

사람을 쉽게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실망을 합니다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언제나 그만큼의 거리에서만

사람을 대합니다

쉽게 믿는 사람도, 또 믿지 않는 사람도

한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주고 믿어주는 만큼

내가 행복하다는 것이지요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없으면

우선 내마음이 편합니다

그리하면 서운하거나

배신감 또한 없을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기대하는 만큼, 바라는 만큼 사람들에게

애정과 관심이 있기때문에

서운하거나 배신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알아가는데는

오랜 세월이 흐르지만

그것은 두고 두고

우리를 커다란 믿음과 행복으로

가득 채울 것입니다

오랜시간의 변치않는 행동으로

그 사람의 마음의 진실을 보게 되니까요

그것은 어떠한 시련에서도

변치않을 믿음을 줄 것입니다

좋았다가 돌변하는

순간의 짧은 인연이 아닌

오랫동안 변치 않는

좋은 인연으로 남았으면...

-‘사색의 향기, 아침을 열다’-

#마음 #명언 #사람 #좋은글 #실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384.html
kolaswqetsrq 11.01 23:32
사랑이 왜 ♡모양인지 아세요?

사랑이 왜 ♡모양인지 아세요?

사람은 처음 태어나게 되면

마음이 □ 모양이래요

그래서 네모난 모서리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차츰 자라면서

이 네모난 모서리는 이리 부딪히고

또 저리 부딪히고 하면서

차츰 깍여지고 다듬어지게 된답니다

나이를 점점 더 먹어가면

그 모서리는 다 깍여 버리고

□가 ○이 되어야 비로소 철이 들었다고 하지요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둥근 맘...

그러다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둥근 맘은 변한답니다

어느 때에 부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토라져서 삐지기도 하고...

그렇게 사랑을 하면

둥근 맘은 어느새 ♡모양이 됩니다

그렇지만

♡도 하나의 모서리를 가지고 있죠

그 모서리로 인 해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도 한답니다

글쎄!

그렇지만 ♡를 자세히 보세요

뾰족한

부분이 있는 반면에

움푹 들어간 부분도 있지요?

그래요...

사랑은 움푹 들어간 부분으로

뾰족한 부분을 감싸 줄 수 있어요

그래서

사랑은 ♡ 모양이래요

이제

사랑이 왜 ♡모양인지를 아셨으니

너 ᆞ나가 아닌

우리 서로 사랑해요!!!마니요^~^

#모양 #사람 #좋은글 #사랑 #명언 #마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blog-post_782.html
kolaswqetsrq 11.01 23:32
연애할 때는 100일, 200일, 생일에

연애할 때는 100일, 200일, 생일에

깜짝 이벤트를 해주는 남자가 좋아 보이지.

하지만 결혼하고 나면 네가 무엇을 하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이 더 중요해져.

남편이 자주 이벤트를 해준다고

행복한 건 아니야.

매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면서

장미꽃을 안긴들,

육아와 살림에는 나 몰라라 하면서

선물 공세를 한들 무슨 소용이겠니.

생일이나 기념일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아도

너를 늘 응원하고 아껴주는 마음이 있으면 돼.

이 남자와 결혼해도 될까 고민하고 있다면

네 꿈을 인정해주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먼저 따져봐.

네 꿈을 응원하는 남자라면

주저하지 말고 결혼해.

김재용 / 엄마의 주례사

#지원 #남편 #명언 #장미꽃 #행복 #생일 #좋은글 #결혼 #살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4/100-200.html
kolaswqetsrq 11.01 23:33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고 그럽디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고 그럽디다.

능력 있다고 해서 하루 열 끼 먹는 거 아니고, 많이 배웠다해서 남들 쓰는 말과 틀린 말 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발버둥 거리며 살아봤자 사람사는 일 다 거기서 거깁디다.

백원 버는 사람이 천원 버는 사람 모르고, 백원이 최고인 줄 알고 살면 그 사람이 잘사는 것입디다. 많이 벌자고 남 울리고 자기 속상하게 살아야 한다면 벌지 않는 것이 훨 나은 인생입디다.

어차피 내 맘대로 안되는 세상, 그세상 원망하고 세상과 싸워봤자 자기만 상처받고 사는 것,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자기 속편하고 남 안울리고 살면 그 사람이 잘 사는 사람입디다.

욕심, 그거 버리고 살면 그 순간부터 행복일텐데 뭐 그렇게 부러운게 많고, 왜 그렇게 알고 싶은게 많은지, 전생에 뭘 그리 잘 쳐먹고 살았다고 그렇게 버둥대는지 내 팔자가 참 안됐습디다.

예쁘게 웃던 입가에는 어느덧 싸구려 미소가 자리잡아 있고 적당히 손해보며 살던 내 손에는 예전보다 만원짜리 몇장이 더 들어 있습디다. 그 만원짜리 몇장에 그렇게도 예쁘던 내 미소를 누가 팔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도매로 넘겨 버렸습디다.

그럽디다.

세상 사는 일 다 그렇고 그럽디다.

넓은 침대에서 잔다는 것이 좋은 꿈 꾸는 것도 아닙디다. 좋은 음식 먹고 산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닙디다. 사람 살아가는 것이 다 거기서 거깁디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들 갑디다. 내 인생인데 남 신경 쓰다보니 내 인생이 없어집디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언가를 살 때 TV 광고를 그대로 믿고, 친구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살때가 좋은 때였습디다. 그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디다. 언젠가부터 술이 오르면 사람이 싫어집디다.

술이 많이 올라야 내 진심이 찾아오고 왜 이따위로 사느냐고 나를 몹시 괴롭힙디다. 어떻게 살면 잘 사는건지? 잘 살아가는 사람은 그걸 어디서 배웠는지 안 알려줍디다.

남에 눈에 눈물 흘리게 하면 내 눈에는 피눈물 납디다.

-Facebook 글 옮김-

#능력 #사람 #인생 #좋은글 #발버둥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3/blog-post_8519.html
kolaswqetsrq 11.01 23:34
세상에는 내 존재를

세상에는 내 존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나의 행동이나 말, 성과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존재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내가 실수나 실패를 해도

그 사랑, 변함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친구이고 가족입니다.

서로의 존재를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되세요.

-출처 혜민스님 글-

#명언 #좋은글 #행동 #사랑 #세상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3/blog-post_8562.html
kolaswqetsrq 11.01 23:34
♥음악이 좋아질 땐

♥음악이 좋아질 땐

누군가가 그리운 거구요

♥바다가 좋아질 땐

누군가 사랑하는 거랍니다

♥별이 좋아질 때는

외로운 거구요...

♥하늘이 좋아질 때는

꿈을 꾸는 거랍니다

♥꽃이 좋아질 때는

마음이 허전해서 이구요

♥엄마가 좋아질 때는

힘이 드는 거래요...

♥친구가 좋아질 땐

대화의 상대가 필요한 거구요

♥창밖에 비가 좋아질땐

그 누군가를 기다리는 거래요.

♥먼 여행하고 싶을 때는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거래요

♥그리고~아침이 좋아질땐

행복한 거랍니다.

-페이스북 글에서-

#행복 #마음 #여행 #좋은글 #사랑 #하늘 #아침 #명언 #음악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3/blog-post_4008.html
kolaswqetsrq 11.01 23:35
삶을 가로지르는 무수한 인연들 중에

삶을 가로지르는 무수한 인연들 중에

어떤 인연이 과연 좋은 인연일까 생각해보면,

시작이 좋은 인연이 아니라

끝이 좋은 인연이

참으로 좋은 인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연 따라 와서 인연 따라 가는 사람들을

어찌 막을 있을까마는

그 인연의 끝을 어떻게 매듭짓는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혜민 스님 글에서-

#인연 #좋은글 #생각 #명언 #시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3/blog-post_2255.html
kolaswqetsrq 11.01 23:36
※인연을 지키는 법※

※인연을 지키는 법※

1. 존중하라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을

고유의 인격체로서 존중해주어야 마음을 열 수 있다.

아주 어린 아이조차도 자신을 존중하는지 아닌지를

100% 직감할 수 있다.

하물며 성인은 어떻겠는가

2. 입장을 바꿔라

무엇이든 나의 마음을 전달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과

내가 주고자 하는 것을 일치시킬 수 있다.

3. 꾸준한 관심을 가져라

일회성 관심은 무관심보다 서글프다.

잠깐 신경쓰다가 이내 무심한 것은 날카로운 상처를 남긴다

 "
4. 그 사람 자체에 감사하라
",

그 사람이 무엇을 주었거나,

무엇이 되어 주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 곁에 존재하는 것으로

내 인생이 얼마나 풍부해졌는지,

 "
그러므로 그 사람 자체에 감사하라
",

5. 관찰하라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좋아할 수 있고

좋아하는 만큼 배려할 수 있다.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라

6. 나 자신부터 치유하라

자기가 상처받아 아프면서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배려할 수 있겠는가?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전할 수 있다

7. 격려하라

좋은 일에 칭찬을 그치지 말라.

힘들고 지쳤을 때, 실패하고 좌절했을 때,

다치고 병들었을 때, 초조해하고 불안해할 때,

격려가 난관을 이기는 유일한 힘이다. "

#자신 #좋은글 #존중 #인연 #마음 #명언 #사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3/blog-post_9203.html
kolaswqetsrq 11.01 23:37
인맥이란?

인맥이란?

1. 인맥이란..

당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는가가 아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알고 있냐는 것이다. 키포인트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인정하고 있느냐이다.

2. 인맥은..

당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소통하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도적으로 당신과 소통하길 원하느냐이다.

3. 인맥은..

당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용하는가가 아니고, 당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돕고 있는가이다.

4. 인맥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 면전에서 당신에게 아첨하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뒤에서 당신을 칭찬하는가이다.

5. 인맥은..

당신이 잘나갈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떠 받들어 주는가가 아니고, 당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도와주려 하는가이다.

#인맥 #감동 #사람 #성공 #명언 #공감 #부자 #좋은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2/blog-post_7639.html
kolaswqetsrq 11.01 23:37
힘들면 한숨 쉬었다 가요.

힘들면 한숨 쉬었다 가요.

사람들에게 치여 상처받고 눈물 날 때,

그토록 원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사랑하던 이가 떠나갈 때,

우리 그냥 쉬었다 가요.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친구를 만나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말들,

서럽고 안타까웠던 이야기,

조근조근 다 해버리고

힘든 내 마음을 지탱하느라 애쓰는 내몸을 위해

운동도 하고 찜질방도 가고

어렸을 때 좋아했던 떡볶이, 오뎅 다 사먹어요.

평소에 잘 가지 않던 극장에도 가서

제일 웃긴 영화를 골라

미친 듯이 가장 큰 소리로 웃어도 보고

아름다운 음악,

내 마음을 이해해줄 것 같은 노래

재생하고 재생해서 듣고 또 들어봐요.

그래도 안 되면

병가 내고 며칠 훌쩍 여행을 떠나요.

경춘선을 타고 춘천으로 가도 좋고

땅끝마을의 아름다운 절 미황사를 가도 좋고

평소에 가고 싶었는데 못 가봤던 곳,

그런 곳으로 혼자 떠나요.

그런 시간들을 보낸 후

마지막으로 우리 기도해요.

종교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나를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요.

그리고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요.

그래야 내가 사니까.

그래야 또 내가 살아갈 수 있으니까

제발 용서하게 해달라고 아이처럼 조르세요.

힘들어하는 당신이

곧 나이기에

오늘도 그대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혜민스님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명언 #좋은글 #눈물 #사람 #공감 #사랑 #감동 #부자 #한숨 #성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2/blog-post_1586.html
kolaswqetsrq 11.01 23:38
한번뿐인 내 인생이니까

한번뿐인 내 인생이니까

세상살이가

내 마음 같지 않다.

눈물 쏟게 만드는 일,

주저 앉히는 일,

가슴치며 원통한 일,

짜증나고 고달픈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그 누구 하나

위로해 줄 사람 없고,

내 마음과 같은

사람이 없다는 걸

문득 느낄 때가 있다.

그렇지만 어찌할 건가.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내 인생이니까..

내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추슬러야 한다.

김현태, 다짐하며 되새기며

#좋은글 #성공 #명언 #부자 #마음 #감동 #인생 #눈물 #공감 #가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2/blog-post_8836.html
kolaswqetsrq 11.01 23:39
1년만 미쳐라!

1년만 미쳐라!

당신이 미쳐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1. 당신은 서 있고 다른 사람은 뛰고 있다.

2. 경쟁력이 없다면 라이프 플랜도 없다.

3. 자기경영에 실패한 사람도 신용불량자다.

4. 무엇을 할지 모르는 사람은 바보다.

5. 행동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다.

6. 숨겨진 재능은 아무 가치가 없다.

7. 성공하고 싶다면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라.

8. 미치면 성공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경력이 20년이라도 배운게 1년밖에 안된다면 그건 1년동안 배운 일을 20년간 계속 반복 하는 것 밖에 아닙니다.

-인터넷 글 편집-

#부자 #감동 #명언 #좋은글 #사람 #경쟁력 #경영 #플랜 #성공 #공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2/1_20.html
kolaswqetsrq 11.01 23:40
어디서 많이 뵌분 같아요라는 말은,

어디서 많이 뵌분 같아요라는 말은,

`친해지고 싶어요`라는 말이래...

나중에 연락할께라는말은,

`연락 기다리지 마세요`라는 말이래...

나 갈께라는 말은,

`제발 잡아줘`라는 말이래...

사람은 참 좋아라는 말은,

`다른 건 다 별로지만`이라는 말이래...

어제 필름이 끊겼나봐라는 말은,

`챙피하니까 그 얘긴 꺼내지마`라는 말이래...

왜 그게 궁금하세요?라는 말은,

`대답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이래..

잘 지내고 있어?라는 말은,

`그립다` 라는 말이래...

좋아 보이네라는 말은,

`난 행복하지 않거든` 이라는 말이래...

뭐 하면서 지내?라는 말은,

`난 아무것도 할수 없거든` 이라는 말이래...

좋은 사람 만났니?라는 말은,

`난 너밖에 없더라` 라는 말이래...

행복해라..라는 말은,

`다시 돌아와 주라` 라는 말이래...

가끔 내 생각나면 연락해 라는 말은,

`영원히 사랑할께` 라는말이래...

-Facebook 인기 글-

#사람 #명언 #좋은글 #부자 #나중 #감동 #연락 #공감 #성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2/blog-post_5464.html
kolaswqetsrq 11.01 23:40
끝까지 버리지 말아야할 10가지

끝까지 버리지 말아야할 10가지

01. 끝까지 꿈을 버리지 마세요. 다 꺼진 불씨가 살아나 산을 불태웁니다.

02. 끝까지 사람을 미워하지 마세요.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세요.

03. 끝까지 말로 상처를 입히지 마세요. 칼로 입은 상처는 회복되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평생 갑니다.

04.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마세요. 내가 나를 먼저 믿어줘야 남도 나를 믿어줍니다.

05. 끝까지 죽는 소리를 내지 마세요. 사람은 그렇게 쉽게 안 죽어요.

06. 끝까지 어두운 생각을 하지 마세요. 캄캄한 골방으로 들어가지 말고 햇빛 찬란한 밖으로 나오세요.

07. 끝까지 마음을 닫지 마세요. 대문을 열면 도둑이 들어오지만 마음을 열면 기회와 행운이 들어옵니다.

08. 끝까지 일을 손에서 놓지 마세요. 할 일이 없으면 주변 청소부터 하세요. 주변과, 몸과, 마음이 깨끗하면 어둠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09. 끝까지 원망하지 마세요. 원망하면 원망할 일이 더 생겨나고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막 생겨납니다.

10. 잠자리까지 고민을 가지고 가지마세요. 잠자기 전에는 좋은 기억만 떠올리세요. 잠을 자는 동안 행운으로 바뀝니다.

-인터넷 글 옮김-

#부자 #좋은글 #명언 #자신 #평생 #공감 #사람 #회복 #성공 #감동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2/10_72.html
kolaswqetsrq 11.01 23:41
멘탈이 강한 사람들의 12가지 특징

멘탈이 강한 사람들의 12가지 특징

1. 환경이나 주변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 처한 환경에 대해 한탄하거나 남들이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서운해 하느라 허송 세월을 보내지 않는다. 그들은 삶이 항상 쉽거나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

2. 그들은 정신력을 낭비하지 않는다. -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자신도 남을 휘두르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그들은 변화가 두려워서 피하지 않는다. - 불평을 하기보다는 변화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고, 그것을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찾는다. 그들은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자신들은 그 변화에 적응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4. 그들은 자신들이 컨트롤 하지 못하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 교통체증 등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들은 인생에서 컨트롤 가능한 것들에 집중한다.

5. 그들은 남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 그들은 자신이 항상 모든 사람들의 기분을 맞춰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친절하고 공정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예의를 갖추지 않으면 그들도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다.

6. 그들은 예상된 문제점을 피하지 않는다. - 그들은 무모하거나 어리석은 위험에 뛰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예측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마다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들은 큰 결정을 내리기 전에 위험과 이익을 재보는데 시간을 쓴다.

7. 그들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들은 지나간 시간 속에 머물면서, 그 때 일이 달랐으면 좋았을텐데.... 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인정하고 그것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으려고 한다. 그들은 현재에 살면서 미래를 계획한다.

8. 그들은 같은 실수를 계속적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며 과거의 실수로부터 새로운 것을 배운다. 그리고 실수들을 계속 반복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계속 움직이며 미래를 위해 더 나은 결정을 한다.

9. 그들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고 억울해 하지 않는다. -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인생에서 거둔 성공을 축하하고 인정할 줄 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자신들을 뛰어 넘는 성공을 거두었을 때, 질투나 배신감을 키우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열심히 노력한 결과 성공을 하게 된 것이라 인정하고 자신들의 성공을 위한 기회를 찾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

10. 그들은 한번의 실패로 포기하지 않는다. -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은 실패를 포기의 이유로 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성장과 개선을 위한 기회로 실패를 이용한다. 그들은 그것을 바르게 해낼 때까지 계속 시도한다.

11. 그들은 홀로 있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 홀로 있는 것을 견뎌내며 침묵을 두려워 하지 않고 정체된 시간을 무의미하게 낭비하지 않으며 생산적으로 이용한다. 그들은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며 홀로 있으면서도 행복 할 수 있다.

12. 그들은 세상이 그들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돌봐줘야 한다거나 세상이 그들에게 뭔가를 해주어야 한다는 식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BAND 글 옮김-

#특징 #사람 #부자 #감동 #공감 #환경 #좋은글 #멘탈 #명언 #성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2/12_90.html
kolaswqetsrq 11.01 23:42
삶의 10계명

삶의 10계명

1 1만 하지 마라. (때때로 자신의 인생을 즐겨라.)

2 2일 저일 끼어들지 마라. (한번 실패하면 골로 갈 수 있다.)

3 3삼오오 놀러 다녀라. (인생은 외로운 존재이니 어울려 다녀라.)

4 4생결단하지 마라. (여유를 갖고 살아라.)

5 5케이(OK)를 많이 하라. (되도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6 6체적 스킨십을 즐겨라. (스킨십 없이 홀로 지내면 빨리 죽는다.)

7 70%에 만족하라. (올인하지 말고 황혼의 여유를 가져라.)

8 8팔하게 운동하라. (인생은 짧으니 게으르지 말아라.)

9 9차한 변명을 삼가라. (변명하면 사람이 몹시 추해 보인다.)

10소득의 10%는 친구(동료)들을 위해 투자하라. (노년에 가장 소중한 벗이 있어야 자산이다)

-인터넷 글 편집-

#감동 #계명 #명언 #좋은글 #인생 #자신 #성공 #공감 #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2/10_44.html
kolaswqetsrq 11.01 23:42
마음을 다스리는 10훈

마음을 다스리는 10훈

1. 먼저 인간이 되라!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나부터 먼저 좋은 인간이 되라.

2. 적을 만들지 말라! 친구는 성공을 가져오나 적은 위기를 가져오고 성공을 무너뜨린다.

3. 스승부터 찾아라!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은 인생에 있어 50%이상을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4. 생명의 은인처럼 만나라! 만나는 사람마다 은인처럼 대하라.

5. 첫사랑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겨라! 첫 만남에서는 첫사랑보다 강렬한 이미지를 남겨라.

6. 헤어질 때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라! 함께 있으면 즐겁고 유익한 사람이 되라.

7. 하루에 3번 참고,3번 웃고,3번 칭찬하라!

8.내 일처럼 기뻐하고, 내 일처럼 슬퍼하라! 애경사가 생기면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라.

9. Give & Give & Forget 하라! 먼저 주고, 조건 없이 주고, 더 많이 주고 그리고 모두 잊어버려라.

10. 한 번 인맥은 영원한 인맥으로 만나라!

-좋은 글 대사전-

#사람 #명언 #마음 #감동 #부자 #좋은글 #공감 #성공 #인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2/10_58.html
kolaswqetsrq 11.01 23:43
나를 생각하게 하는 글

나를 생각하게 하는 글

나는 믿는다고 하면서 의심도 합니다.

나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잘난 체도 합니다.

나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하면서 닫기도 합니다.

나는 정직하자고 다짐하면서 꾀를 내기도 합니다.

나는 떠난다고 하면서 돌아와 있고

다시 떠날 생각을 합니다.

나는 참아야 한다고 하면서

화를 내고 시원해 합니다.

나는 눈물을 흘리다가

우스운 일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나는 외로울수록 바쁜 척합니다.

나는 같이 가자고 하면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으라 하면 같이 가고 싶어집니다

나는 봄에는 봄이 좋다 하고

가을에는 가을이 좋다 합니다.

나는 남에게는 쉬는 것이 좋다고

말하면서 계속 일만 합니다.

나는 희망을 품으면서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나는 벗어나고 싶어하면서 소속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변화를 좋아하지만 안정도 좋아합니다.

나는 절약하자고 하지만

낭비할 때도 있습니다.

나는 약속을 하고나서

지키고 싶지 않아 핑계를 찾기도 합니다.

나는 남의 성공에 박수를 치지만

속으로는 질투도 합니다.

나는 실패도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내가 실패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나는 너그러운 척하지만 까다롭습니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하지만

불평도 털어놓고 싶습니다.

나는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하지만

미워할 때도 있습니다

흔들리고 괴로워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이 있습니다.

그 내일을 품고 오늘은

이렇게 청개구리로 살고 있습니다.

-정용철 ‘마음이 쉬는 의자’ 중-

#감동 #부족 #명언 #성공 #마음 #의심 #부자 #좋은글 #공감 #생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2/blog-post_645.html
kolaswqetsrq 11.01 23:44
이건희 회장의 명언들

이건희 회장의 명언들

01. 남의 잘 됨을 축복하라. 그 축복이 메아리처럼 나를 향해 돌아온다.

2. 항상 기뻐하라. 그래야 기뻐할일이 줄줄이 따라온다.

03. 부자처럼 생각하고 부자처럼 행동하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자가 되어있다.

04. 부자옆에 줄을 서라. 산삼밭에 가야 산삼을 캘 수 있다.

05. 힘들어도 웃어라. 절대자도 웃는사람을 좋아한다.

06. 자꾸 막히는 것은 우선멈춤 신호이다. 멈춘 다음 정비하고 출발하라.

07. 써야할 곳 안써도 좋을 곳을 분간하라. 판단이 흐리면 낭패가 따른다.

08. 들어온 떡만 먹으려 말라. 떡이 없으면 나가서 만들어라.

09. 기도하고 행동하라. 기도와 행동은 앞바퀴와 뒷바퀴이다.

10. 자신의 영혼을 위해 투자하라. 투명한 영혼은 천년 앞을 내다본다.

11.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하라. 마음이 무거우면 세상이 무겁다.

12.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돈 앞에서 진실하라

13. 씨 돈은 쓰지말고 아껴두어라. 씨 돈은 새끼를 치는 종자돈이다.

14. 샘물은 퍼낼수록 맑은물이 솟아난다. 아낌없이 베풀어라.

15. 헌돈은 새돈으로 바꿔 사용하라. 새돈은 충성심을 보여준다

16. 적극적인 언어를 사용하라. 부정적인 언어는 복나가는 언어이다.

17. 깨진 독에 물을 붓지 말라. 새는 구멍을 막은 다음 물을 부어라.

18. 요행의 유혹에 넘어 가지 말라. 요행은 불행의 안내자이다.

19. 자신감을 높여라. 기가 살아야 운이 산다.

20. 장사꾼이 되지 말라. 경영자가 되면 보는 것이 다르다

21. 검약에 앞장서라. 약중에 으뜸은 검약이다.

22. 서두르지 말라. 급히 먹은 밥은 체하기 마련이다.

23. 세상에 우연은 없다.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하라.

24. 돈 많은 사람을 부러워 말라. 그가 사는 법을 배우도록 하라.

25. 본전 생각을 하지 말라. 손해가 이익을 끌고 온다.

26. 돈을 내 맘대로 쓰지말라. 돈에게 물어보고 사용하라.

27. 돈을 애인처럼 사랑하라. 사랑은 기적을 보여준다.

28. 말이 씨앗이다. 좋은 종자를 심어라.

29. 기회는 눈깜빡하는 사이에 지나간다. 순발력을 키워라.

30. 작은것 탐내다가 큰것을 잃는다.무엇이 큰 것인지를 판단하라.

31. 돌다리만 두드리지 말라. 그 사이에 남들은 결승점에 가있다.

32. 느낌을 소중히 하라. 느낌은 신의 목소리이다.

33. 인색하지 말라. 인색한 사람에게는 돈도 야박하게 대한다.

34. 돈의 노예로 살지 말라. 돈의 주인으로 기쁘게 살아라.

35. 불경기에도 돈은 살아서 숨쉰다. 돈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36.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 희망만이 희망을 키운다.

37. 더운밥 찬밥 가리지말라. 뱃속에 들어가면 찬밥도 더운밥이 된다

#부자 #축복 #좋은글 #명언 #성공 #회장 #감동 #공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1/blog-post_2055.html
kolaswqetsrq 11.01 23:44
행복한 사람들의 12가지 습관

행복한 사람들의 12가지 습관

01. 정기적으로 운동한다.

02.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03.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

04. 휴식을 취한다.

05. 사실대로 말한다.

06. (적절한 때에)하고 싶은 대로 표현한다.

07.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다.

08. 감사를 표한다.

09.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

10. 스마트폰과 단절한다.

11. 기회를 노린다.

12. 계속 배우고 성장한다.

-Facebook 글 옮김-

#공감 #감동 #행복 #부자 #명언 #사람 #운동 #좋은글 #성공 #습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1/12_28.html
kolaswqetsrq 11.01 23:45
★ 나로부터의 시작 ★

★ 나로부터의 시작 ★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고,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너머 일하면 소명입니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습니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합니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입니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삽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습니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릅니다.

갈 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지옥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 미워하면 됩니다.

천국 만드는 방법도 간단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 사랑하면 됩니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됩니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합니다.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합니다.

상처를 지킬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합니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입니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고,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옵니다.

거칠게 말할수록 거칠어 지고,

음란하게 말할수록 음란해 지고,

사납게 말할수록 사나워 집니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일 겁니다.

나를 다스려 뜻을 이룹시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감동 #시작 #부자 #명언 #성공 #좋은글 #사람 #공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1/blog-post_604.html
kolaswqetsrq 11.01 23:46
감정관리 7단계

감정관리 7단계

 "
1 참자!
",

그렇게 생각하라. 감정 관리는 최초의 단계에서 성패가 좌우된다. 욱 하고 치밀어 오르는 화는 일단 참아야 한다.

 "
2 원래 그런거라고 생각하라
",

예를 들어 아이들이 속을 상하게 할 때에 아이들은 원래 그런거 라고 생각하라

 "
3 웃긴다고 생각하라
",
 "
세상은 생각할수록 희극적 요소가 많다. 괴로울 때는 심각하게 생각할수록 고뇌의 수렁에 더욱 깊이 빠져 들어간다. 웃긴다고 생각하며 문제를 단순화시켜 보라
",

 "
4 좋다 까짓 것 이라고 생각하라
",
 "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는 좋다 까짓 것 이라고 통 크게 생각하라. 크게 마음먹으려 들면 바다보다 더 커질 수 있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

 "
5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라고 생각하라
",
 "
억지로라도 상대방의 입장이 돼보라. 내가 저사람이라도 저럴 수밖에 없겠지 뭔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럴거야라고 생각하라
",

 "
6 내가 왜 너때문에라고 생각하라
",
 "
당신의 신경을 건드린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고 있는데 그사람 때문에 당신의 속을 바글바글 끓인다면 억울하지 않는가. 내가 왜 당신 때문에 속을 썩어야 하지? 그렇게 생각하라
",

 "
7 시간이 약임을 확신하라
",
 "
지금의 속상한 일도 며칠. 아니 몇시간만 지나면 별 것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라. 너무 속이 상할 때는 세월이 약 이라는 생각으로 배짱 두둑히 생각하라.
",

-Facebook 글 옮김-

#생각 #좋은글 #감동 #부자 #공감 #명언 #감정 #성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1/7_72.html
kolaswqetsrq 11.01 23:46
마법에 걸린 화살

마법에 걸린 화살

먼 옛날 한 신이 화살에 마법을 걸었는데 그 마법은 화살이 끝없이 세상을 돌며 사람들을 차례로 쏘아 죽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화살에는 숨어있는 마법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화살을 쏘아 상대방을 다 죽이고 나면 결국 되돌아와서 그 화살을 쏜 사람마저 죽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시간이 흘러 결국 모든 사람들이 화살에 희생 되었는데... 그런데 그 화살은 이제 신에게 방향을 돌리는 것이 아닌가!!

결국, 신은 자신이 마법을 건 그 화살을 피해 다니는데 영겁의 세월을 바쳐야 했는데... 그 화살의 이름은 바로 ‘험담’ 이었다.

 "
이렇듯 ‘험담 이라는 활시위는 상대방을 겨누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자신의 가슴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

험담의 대상자

험담을 듣는자

그리고 험담을 하는 사람 모두를 죽인다는

‘험담’

-BAND 글 옮김-

#마법 #좋은글 #공감 #감동 #옛날 #부자 #명언 #성공 #화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1/blog-post_761.html
kolaswqetsrq 11.01 23:47
지금 힘드신 거

지금 힘드신 거

지나가는 구름입니다.

인생 전체를 두고 봤을 때

잠시 지나가는 구름입니다.

그러니, 기죽지 말고

힘내세요. 파이팅!

-출처 혜민스님 글에서-

#공감 #인생 #성공 #명언 #좋은글 #구름 #부자 #감동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5/01/blog-post_88.html
kolaswqetsrq 11.01 23:48
무슨나무인가요

무슨나무인가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877.html
kolaswqetsrq 11.01 23:49
【산닥나무】

【산닥나무】

전국 어디서든지 재배가 가능하나 주로 강화도·진해·진도·남해도에서 자라고 있다. 계곡과 산록의 나무 밑에서 자라며 물기가 있는 곳과 토심이 깊고 비옥한 곳이 최적지이다.

나무껍질의 인피섬유와 뿌리의 섬유질은 질이 훌륭하여 종이의 원료로 사용하여왔다. 지금도 지폐·증권·사전·지도 등의 고급용지의 원료로 쓰인다.

▷ 학명 : Wikstroemia trichotoma

▷ 분류 : 팔꽃나무과

▷ 분포지역 : 한국(전남·경남·인천)·일본

▷ 서식장소 : 산지

▷ 특징 :산지에서 자란다. 높이 약 1m이다. 작은가지는 털이 없고 붉은 갈색이다. 잎은 마주나며 달걀 모양이고 길이 3∼4cm, 나비 1∼3cm이다. 끝은 둔하고 밑은 둔하거나 뾰족하며, 양면에 털이 없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뒷면은 흰색이고 잎자루는 길이 2mm 정도이다.

꽃은 양성화로서 7∼8월에 노란색으로 피고 총상꽃차례로 7∼15개가 달린다. 꽃받침통은 길이 7∼8mm이고 끝이 4개로 갈라져서 옆으로 퍼진다. 수술은 8개이며 2줄로 늘어서고 암술은 1개이다. 씨방은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며 대가 있다. 열매는 건과로서 달걀 모양 긴 타원형이며 길이 약 5mm이다. 양 끝이 좁고 털이 없으며 9∼10월에 성숙한다. 나무껍질로 한지나 밧줄을 만든다. 한국(전라남도·경상남도·인천광역시)·일본에 분포한다.

잎이 어긋나고 꽃이 가지 끝에 둥글게 모여 달리는 것을 안피(W. sikokiana)라고 하는데, 나무껍질로 종이를 만들며 일본 중부 이남에서 자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584.html
kolaswqetsrq 11.01 23:49
【층층둥굴레】

【층층둥굴레】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식물 2급에 등록된 층층둥굴레입니다.

중부 이북 지방에 귀하게 자라는 층층둥굴레는 꽃이 층층으로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유사종으로 갈고리층층둥굴레가 있습니다.

▷ 학명 : Polygonatum stenophyllum

▷ 분류 : 백합과

▷ 분포지역 : 한국 ·중국 동북부 ·우수리

▷ 서식장소 : 산지나 초원

▷ 특징 : 산지나 초원에서 자란다. 높이 30~90cm로 굵은 뿌리줄기가 옆으로 자라면서 번식한다. 잎은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분백색이며 다른 종류의 둥글레와 달리 3∼5개가 똑바로 선 줄기의 마디마디마다 돌려나고 바소꼴 또는 줄 모양이며 너비 5∼10mm로 밑부분이 점점 좁아져서 줄기에 달린다.

꽃은 6월에 피고 연한 황색이며 잎겨드랑이에 달리고 짧은 꽃줄기에 2개씩 밑을 향하여 핀다. 소포는 2개씩이고 열매는 장과(漿果)로 둥글며 9월에 검게 익는다. 연한 순과 뿌리줄기를 식용한다. 한방에서 자양 ·강장 ·종염 ·종창 ·당뇨 등에 약재로 사용한다. 한국 ·중국 동북부 ·우수리에 분포하며,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141.html
kolaswqetsrq 11.01 23:50
【매화마름】

【매화마름】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식물 2급에 등록된 매화마름입니다.

꽃의 모양이 꼭 매화처럼 생겼고 마름처럼(=말밤) 자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오래된 논이나 수로에 자라는 물풀입니다.

옛날에는(오늘도 마찬가지) 물 논에 자라는 물풀이라고 하여 모내기 직전에 모두 걷어내어 버리고 하여 지금은 서해안과 강화도 일부 지역에만 자라는 귀한식물이 된 것입니다.

강화도 자생지 보존을 위해 환경단체에서 땅을 구입하여 자생지를 잘 지키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 학명 : Ranunculus kazusensis

▷ 분류 : 미나리아재빗과

▷ 분포지역 : 남부, 중부지방 서해안

▷ 서식장소 : 들녘 논도랑

▷ 특징 : 늪이나 연못에서 자란다. 길이 약 50cm이다. 마디에서 뿌리가 내리고 속이 비어 있다. 잎은 어긋나고 전부 물속에 들어 있으며, 3∼4회 깃꼴로 갈라져서 갈래조각은 실같이 가늘다. 잎집과 잎자루는 짧고 털이 난다.

꽃은 4∼5월에 피고 흰색이며 잎과 마주난 꽃자루가 물 위에 나와서 끝에 1개의 꽃이 달린다. 꽃지름 약 1cm, 꽃자루 길이 3∼7cm이다. 꽃잎은 5장이고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며 꽃받침조각은 5개이고 길이 3∼4.5cm이다. 수술과 암술은 여러 개 이다. 열매는 수과(瘦果)로서 납작하며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고 마르면 옆으로 달린 주름이 생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56.html
kolaswqetsrq 11.01 23:51
【덩굴꽃마리】

【덩굴꽃마리】

덩굴꽃마리는 줄기 끝에 꽃송이이가 달리고, 참꽃마리는 마디 위에 한송이씩 달리는 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꽃마리는 줄기의 끝에 꽃이 돌돌 말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잘 알고 있는 물망초와 같은 집안으로 덩굴꽃마리의 곷과 유사합니다.

▷ 학명 : Trigonotis icumae

▷ 분류 : 지치과

▷ 분포지역 : 한국(남부·중부지방)

▷ 서식장소 : 산과 들

▷ 특징 : 덩굴꽃말이·만부지채(蔓附地菜)라고도 한다. 들에서 자란다. 전체에 털이 있고 옆으로 누우며 잎겨드랑이에서 나오는 가지가 길게 자라서 덩굴로 된다. 높이는 7∼20cm이다. 잎은 어긋나고 막질(膜質)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은 달걀 모양으로 길이 3∼5cm, 나비 1.5∼2.5cm이고 아래쪽 잎의 잎자루는 길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짧아진다.

5∼6월에 엷은 남색 꽃이 가지 옆에서 총상꽃차례를 이루어 5∼9송이 핀다. 포는 없으며 작은꽃자루는 길이 1∼1.5mm로서 비스듬히 선다. 녹색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며 그 갈래조각은 긴 타원형 또는 달걀 모양 바소꼴이다. 화관은 길이 2mm 정도이고 수술은 5개로서 통부(筒部)의 가운데보다 위에 달린다.

열매는 견과로 끝이 뾰족한 삼각형이며 잔 털이 있다. 어린 순은 나물로 식용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569.html
kolaswqetsrq 11.01 23:51
【한계령풀】

【한계령풀】

모단초(牡丹草)·메감자라고도 한다. 깊은 산의 양지바른 풀밭에서 자란다. 뿌리는 땅속 깊이 곧게 들어가며 높이 30∼40cm이고 털이 없다. 턱잎은 잎처럼 생기고 반원형 또는 원형이며 원줄기를 완전히 둘러싼다.

관상용으로도 심는다. 설악산 오색계곡의 한계령 능선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므로 한계령풀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중북부 지방에 분포한다. 환경부에서 희귀종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학명 : Leontice microrhyncha

▷ 분류 : 매자나무과

▷ 분포지역 : 설악산, 중북부 지방

▷ 서식장소 : 깊은 산의 양지바른 풀밭

▷ 특징 : 한계령풀은 우리나라 중부 이북의 고산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반그늘 혹은 양지의 토양이 비옥하고 물 빠짐이 좋은 곳에서 자란다. 키는 30~40cm이고, 잎은 1개가 달리고 1cm 정도 자란 후 3개로 갈라진 다음 다시 3개씩 갈라지며 반원형 또는 원형으로서 원줄기를 완전히 둘러싼다. 꽃은 황색으로 길이와 폭이 약 1cm 정도이며 많은 꽃이 원줄기 끝에 달린다. 열매는 7~8월경에 둥글게 달린다. 주로 관상용으로 쓰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01.html
kolaswqetsrq 11.01 23:52
【노랑붓꽃】

【노랑붓꽃】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과거 울릉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 분포했으나 현재는 전북, 전남, 경북의 일부 지역에서만 관찰되는 한국 고유종이다. 산기슭, 숲 가장자리, 등산로와 인접한 계곡 주변의 습한 곳에 잘 자란다. 키는 11~20cm로 작고 노란 꽃이 4~5월에 피며 꽃줄기 끝에 2송이씩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원예 식물로서 가치가 높고 눈에 잘 띄는 곳에 피어 남획되기 싶다. 자생지 보존과 인공 증식을 통한 복원 등의 보전 방안이 필요하다.

▷ 학명 : Irs koreana Nakai

▷ 분류 : 붓꽃과

▷ 분포지역 : 전북(부안군, 정읍시), 전남(장성군), 경북(칠곡군)의 일부 지역

▷ 서식장소 : 산기슭, 숲 가장자리, 등산로와 인접한 계곡 주변의 습한 곳

▷ 특징 : 꽃피는 식물 중에서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을 구분하는 여러 형질이 있는데, 그중에서 꽃의 구조도 빠질 수 없다. 쌍떡잎식물은 4~5수성(4~5-merous), 외떡잎식물은 3수성(3-merous)을 보인다. 즉 쌍떡잎식물은 꽃잎, 꽃받침잎, 수술 등이 4 또는 5의 배수로 달리며, 외떡잎식물은 3의 배수로 달린다. 또 쌍떡잎식물은 꽃잎과 꽃받침잎이 뚜렷이 구분되는 반면에 외떡잎식물은 잘 분화되지 않아 외화피와 내화피로 남아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915.html
kolaswqetsrq 11.01 23:53
화단에 심어져 있는데, 무슨 꽃인가요?

화단에 심어져 있는데, 무슨 꽃인가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685.html
kolaswqetsrq 11.01 23:53
按 àn

按 àn

=> 누르다, 제쳐놓다, 억누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an.html
kolaswqetsrq 11.01 23:54
【점나도나물】

【점나도나물】

해넘이한해살이로 식물체 전체에 짧은 털이 있고, 줄기 밑에서 갈라지지만 모여 나고, 흑자색을 띤다.

잎은 마주나며(對生), 양면에 털이 있고, 잎자루는 없다.

▷ 학명 : Cerastium holosteoides var. hallaisanense

▷ 분류 : 석죽과

▷ 분포지역 : 한국·일본·중국

▷ 서식장소 : 밭·들

▷ 특징 : 이채(耳菜)·권이(卷耳)·파파(婆婆)·지갑채(指甲菜)라고도 한다. 밭이나 들에서 흔히 자란다. 높이 15∼25cm로 가지가 갈라져서 비스듬히 자라고 검은 자줏빛이 돌며 윗부분에 선모가 있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 또는 달걀 모양 바소꼴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양끝이 좁으며 잔 털이 있다.

꽃은 5∼7월에 피고 흰색이며 취산꽃차례에 달리고 꽃이 진 다음 작은꽃줄기 끝이 밑으로 굽는다. 꽃받침조각은 5개이고 길이 4.5mm 정도이다. 꽃잎도 5개로서 꽃받침 길이와 비슷하며 끝이 깊게 2개로 갈라진다. 수술은 10개, 암술은 1개, 암술대는 5개이다. 열매는 연한 노란빛을 띤 갈색의 삭과로서 원통형이며 수평으로 달리고 길이 9mm 정도이다. 종자는 갈색이고 사마귀 같은 작은 돌기가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714.html
kolaswqetsrq 11.01 23:55
【홀아비바람꽃】

【홀아비바람꽃】

산림청 지청 희귀식물 등록된 홀아비바람꽃, 한 송이의 꽃이 줄기 끝에 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홀아비바람꽃은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대표적인 바람꽃(Anemone)속 식물이다.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며, 환경부 특정식물종 4등급에 해당한다. 이른 봄 개화기에 남획이 많이 이루어져 자생지를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 꽃대가 1개씩 자라 홀아비바람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학명 : Anemone koraiensis

▷ 분류 : 미나리아재비과

▷ 분포지역 : 한국

▷ 서식장소 : 금오산을 비롯하여 경기도와 강원도에 분포

▷ 특징 : 굵은 뿌리는 끝에 몇개의 비늘 같은 조각이 있다. 뿌리잎은 1∼2개이고 높이 3∼7cm로 잎몸은 손바닥 모양으로 5개로 갈라지며, 나비 4cm 내외이다. 꽃은 4월에 피고 백색이며, 꽃줄기 끝에 1개가 위를 향하여 핀다. 총포는 잎 같고 3개로 갈라지며 꽃줄기에 긴 털이 있다.

꽃받침조각은 5개이고 도란형이며 끝이 둥글지만 가운데가 뾰족하다. 씨방은 털이 있고 암술머리는 난형이며 대가 없다. 수술은 많고 꽃밥은 황색이다. 꽃대가 1개씩 자라므로 홀아비바람꽃이라고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997.html
kolaswqetsrq 11.01 23:55
■ 김기범 교수의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 김기범 교수의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 현관 풍수인테리어 기법 10

현관 풍수인테리어 기법으로 신발장에 신발정리는 기본이다.

신발은 반드시 신발장 안에 수납하고 외출 하였다가 돌아오면 꼭 신발장 안에 신발 앞부분이 앞쪽으로 보이도록 가지런하게 정돈하여야 좋은 운기(運氣)가 들어온다.

특히, 여자의 신발이 신발장 밖에 많이 노출되어 있으면 애정 운(運)이 떨어지거나 가족 간에 불화나, 금전적인 고통을 많이 받을 수 도 있다. 신발장 안에 공간이 부족하여 전부 들어가지 않는다면 상자에 넣거나 천을 씌워 별도 장소에 보관하여야 한다.

가정에 우산 꽂이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은 보이지 않는 곳에 보관하고, 특히 비닐 우산은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보이지 않게 보관 하여야 가정에 운(運)이 상승한다.

또한 현관은 풍수인테리어 기법으로 볼 때 사업 운과 재물(財物) 운의 시작 공간이라 할 수 있으며, 좋은 기운(氣運)은 받고자 한다면 현관을 매일 깨끗이 쓸고 청소를 하면, 집안 운이 상승하고 직업 관련 이유가 아니면서 귀가 시간이 늦은 가족이 있다면 귀가 시간이 빨라진다.

♣ IFSA 국제풍수협회 선정 2018 대한민국 최고 풍수인테리어 전문가

♣ 문의 : 010-2432-5522, http://cafe.daum.net/kkb2005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789.html
kolaswqetsrq 11.01 23:56
【만주바람꽃】

【만주바람꽃】

희귀식물 만주바람꽃입니다.

만주에서 처음으로 발견이 되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만 이제는 남부지방에도 살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바람꽃 중에서 작은 꽃을 피우며 한 줄기에 두 송이의 꽃이 일반적으로 핍니다.

▷ 학명 : Isopyrum mandshuricum

▷ 분류 : 미나리아재빗과

▷ 분포지역 : 중부지방 경기도, 강원도 이북

▷ 서식장소 : 산기슭 숲 속 그늘

▷ 특징 : 산지에서 자란다. 높이 약 20cm이다. 보리알 같은 덩이뿌리가 달린 땅속줄기 끝에서부터 잎과 줄기가 나온다. 뿌리에 달린 잎은 밑부분이 흰색 막질(膜質:얇은 종이처럼 반투명한 것)이고 넓어지며, 원줄기 밑에는 비늘 같은 조각과 흰 털이 조금 난다.

줄기에 달린 잎은 2∼3개이고 짧은 잎자루 끝에서 3장의 작은잎이 나며 작은잎은 다시 3장씩 1∼2회 갈라진다. 마지막갈래조각은 끝이 둔하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털이 약간 나고 뒷면이 흰빛이다. 턱잎은 막질이며 달걀 모양이다.

꽃은 4∼5월에 흰색이나 노란색으로 피고 긴 꽃자루가 있으며 줄기 윗부분 잎겨드랑이에 1송이씩 달린다. 꽃 지름은 약 1.5cm이다. 꽃받침은 긴 달걀 모양이고 5장이며 길이 약 7mm이다. 수술은 30여 개, 암술은 2개이다. 열매는 삭과로서 2개씩 달리고 6월에 익는다. 부리와 열매자루의 길이는 각각 2mm 정도이다. 한국, 중국 동북부, 우수리강 등지에 분포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295.html
kolaswqetsrq 11.01 23:57
【중의무릇】

【중의무릇】

이름의 유래는 무릇과 닮았다고 하여 "무릇" + 깊은 산 속에 스님(중)과 같이 산다고 하여 "중"

합성의 "중의무릇"이라고 합니다.

▷ 학명 : Gagea lutea

▷ 분류 : 백합과

▷ 분포지역 : 한국·일본·중국·사할린·시베리아·유럽 등지

▷ 서식장소 : 산과 들

▷ 특징 : 산과 들에서 자란다. 비늘줄기는 달걀 모양이고 길이가 10∼15mm이며 황색을 띠고 줄기와 잎이 각각 1개씩 나온다. 줄기는 높이가 15∼25cm이고, 잎은 줄 모양이며 길이가 15∼35cm, 폭이 5∼9mm이고 약간 안쪽으로 말리며 밑 부분이 줄기를 감싼다.

꽃은 4∼5월에 황색으로 피고 줄기 끝에 산형꽃차례를 이루며 4∼10개가 달린다. 꽃자루는 길이가 1∼5cm이고, 포는 2개이며 바소꼴이고 길이가 3∼6cm이다. 화피 조각은 6개이고 줄 모양의 바소꼴이며 길이가 12∼15mm이고 끝이 둔하며 뒷면에 녹색이 돈다. 수술은 6개이고 화피보다 짧으며,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삭과이고 거의 둥글며 길이와 지름이 각각 7mm이고 3개의 모가 난 줄이 있다. 한방에서는 비늘줄기를 정빙화(頂氷花)라는 약재로 쓰는데, 심방 질환에 효과가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258.html
kolaswqetsrq 11.01 23:57
しゅみ趣味

しゅみ趣味

=> 취미, 멋, 정취, 취향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80.html
kolaswqetsrq 11.01 23:58
爱好 àihào

爱好 àihào

=> 애호하다, 자애하다, 취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aihao.html
kolaswqetsrq 11.01 23:59
【뚝갈】

【뚝갈】

뚝갈이 정명입니다. 이명으로는 뚝깔, 뚜깔, 흰미역취라고도 부릅니다

생약명으로는 패장(敗醬), 황굴화(黃屈花)이라고 합니다.

패장이란 개화시 꽃 향기가 썩은 된장 냄새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한번 맡아 보세요. 어린잎은 나물, 된장국 등으로 먹습니다.

▷ 학명 : Patrinia villosa

▷ 분류 : 마타리과

▷ 분포지역 : 한국 ·일본 ·중국

▷ 서식장소 : 산과 들

▷ 특징 : 패장(敗醬)이라고도 하며, 높이는 1m 정도이며 백색 털이 많다. 잎은 어긋나며 단순하거나 우상(羽狀)으로 갈라진다. 길이는 3∼15cm로서 양면에 백색 털이 드문드문 있다. 꽃은 백색으로 7, 8월에 피고 산방화서를 이룬다. 우리나라 각처의 산지에서 자라는데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다.

진통·보간·해독·소종·배농(排膿)의 효능이 있어 한방에서는 위장동통·산후복통·간기능장애·간염·간농양(肝膿瘍)·위궤양(胃潰瘍)·자궁내막염·적백대하·안질·유행성이하선염·옹종(癰腫)·개선(疥癬) 등에 사용한다. 여름에 전초(全草)를 채취하여 말리거나, 가을에 뿌리를 채취하여 말렸다가 달이거나 환제로 만들어 복용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95.html
kolaswqetsrq 11.01 23:59
【이질풀】

【이질풀】

옛날에 이질병이 걸렸을 때 사용한 유독성 식물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길 가에 연분홍색, 흰색 등이 있으며 모두 이질풀이라고 합니다.

조금 물기가 있는 곳에 잘 자랍니다.

▷ 학명 : Geranium thunbergii

▷ 분류 :

▷ 분포지역 : 한국·일본·타이완

▷ 서식장소 : 산과 들

▷ 특징 : 노관초라고도 한다. 산과 들에서 자란다. 높이 약 50cm이다. 뿌리는 곧은뿌리가 없고 여러 개로 갈라지며, 줄기가 나와서 비스듬히 자라고 털이 퍼져 난다. 잎은 마주달리고 3∼5개로 갈라지며 나비 3∼7cm이고 흔히 검은 무늬가 있다. 갈래조각은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으로서, 끝이 둔하고 얕게 3개로 갈라지며 윗부분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마주나며 길다.

많은 양의 타닌과 케르세틴이 들어 있어 소염·지혈·수렴·살균 작용이 있다. 민간에서는 대장 카타르·이질·위궤양·십이지장궤양 등에 약재로 사용하고, 한방에서는 현초(玄草)라고 하며 지사제로 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935.html
kolaswqetsrq 11.02 00:00
【용담】

【용담】

뿌리의 쓴맛이 마치 용의 쓸개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화관(花冠)은 종처럼 생기고 가장자리가 5개로 갈라지며 갈래조각 사이에 부편이 있다. 5개의 수술은 통부에 붙어 있고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삭과(蒴果)로 11월에 익고 시든 화관 안에 들어 있으며 종자는 넓은 바소꼴로 양 끝에 날개가 있다. 어린 싹과 잎은 식용하며, 뿌리를 용담이라고 하며 고미건위제(苦味健胃劑)로 사용한다.

▷ 학명 : Gentiana scabra Bunge

▷ 분류 : 용담과

▷ 분포지역 : 한국 ·일본 ·중국 동북부 ·시베리아 동부

▷ 서식장소 : 산지의 풀밭

▷ 특징 : 산지의 풀밭에서 자란다. 높이 20∼60cm이고 4개의 가는 줄이 있으며 굵은 수염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잎은 마주나고 자루가 없으며 바소 모양으로서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3개의 큰 맥이 있다.

잎의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연한 녹색이며 톱니가 없다. 꽃은 8∼10월에 피고 자주색이며 잎겨드랑이와 끝에 달리고 포는 좁으며 바소꼴이다. 꽃받침은 통 모양이고 끝이 뾰족하게 갈라진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008.html
kolaswqetsrq 11.02 00:01
【키큰산국】

【키큰산국】

산림청 희귀식물에 등재된 "키큰산국"입니다.

꽃은 구절초와 비슷하지만 잎을 유심히 보면 삼지창과 같습니다.

구절초는 국화잎을 닮았고 등산로 옆에 자라는데 비하여 키큰산국은 산지습지에 주로 자랍니다.

금정산습지, 천성산습지, 신불산습지, 장산습지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 학명 : Leucanthemella linearis (Matsum.) Tzvelev

▷ 분류 : 국화과

▷ 분포지역 : 백두산 및 중부 이북의 고산지대

▷ 서식장소 : 고산지역 습지

▷ 특징 : 백두산 및 중부 이북의 고산지대 습지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햇볕을 많이 받는 습지의 가장자리 또는 물이 깊지 않은 곳에서 자란다. 키는 80~120cm이고 줄기에는 잔털이 많으며, 잎은 길이 4.5~9cm, 폭 2~3cm로 표면은 거칠어 까실하고 잎끝은 밋밋하거나 세 갈래로 갈라져 뒤로 말리며 뒷면에는 작은 점이 있다.

꽃은 백색이며 지름은 3~6cm이고 수술과 암술이 있는 곳은 노란색을 띄고 있으며 폭은 약 1.5~2cm 정도이다. 위에 달리는 꽃이 가장 큰 송이이며 곁가지에서도 많은 꽃들이 핀다. 열매는 11월경에 맺는다.

점점 고산지역 습지가 사라져가기 때문에 머지않아 주변에서 사라지는 품종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식물 중의 하나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635.html
kolaswqetsrq 11.02 00:02
【층꽃나무】

【층꽃나무】

층꽃나무입니다. 꽃이 층층으로 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유사종으로 층층이꽃, 두메층층이꽃, 산층층이꽃 등이 있으나 과명이 서로 다릅니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꽃이 다르지요

또, 층층나무가 있으나 이것은 키가 큰나무이기 때문에 구별이 가능합니다.

반목본성 식물이다. 지상으로 드러난 밑부분은 목질화하여 살아 있으나 그 윗부분은 죽는다. 속명은 희랍어 karyon(호도)와 pteryx(날개)의 합성어로 종자에 날개가 있음을 나타내고 종명은 부드러운 털로 덮여 있음을 나타낸다.

▷ 학명 : Caryopteris incana

▷ 분류 : 마편초과

▷ 분포지역 : 한국(경상남도, 전라남도 남쪽 섬, 제주도), 일본, 중국 대만

▷ 서식장소 : 햇볕이 잘 드는 척박하고 건조한 절개 사면지 또는 바위곁

▷ 특징 : 줄기가 무더기로 나와서 높이 30∼60cm이고 작은가지에 털이 많으며 흰빛이 돈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이며 끝이 뾰족하다. 양면에 털이 많고 가장자리에 5~10개의 굵은 톱니가 있다.

꽃은 여름에 피고 취산꽃차례를 이루며 꽃이삭이 잎겨드랑이에 많이 모여 달리면서 층층이지므로 층꽃나무라는 이름이 생겼다. 화관은 5개로 깊게 갈라지며 제일 큰 갈래조각의 가장자리는 실같이 갈라진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866.html
kolaswqetsrq 11.02 00:02
あい愛

あい愛

=> 사랑, 애정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76.html
kolaswqetsrq 11.02 00:03
【수까치깨】

【수까치깨】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벽오동과 식물종은 1년생 초본뿐인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까치깨와 수까치깨다. 두 종은 구분하기 어렵지만, 줄기 상부에 별모양 털이 있고, 꽃받침이 뒤로 젖혀졌으면 수까치깨이고, 일반적으로 꽃도 한 달 정도 늦게 핀다. 일본에는 까치깨만 분포하고, 우리나라와 중국 만주지역에는 두 종 모두 분포한다. 까치깨는 수까치깨에 비해 한반도와 중국 내에서 훨씬 드물게 분포한다.2)

수까치깨는 까치깨보다 더욱 건조하고 불안정한 서식처에까지 살고 있다. 남부지방 퇴적암 셰일(혈암)이 노출된 하천 절벽 또는 옛 물길구간(舊河道) 절벽 하부의 퇴적암 입지에서 두 종이 함께 사는 것도 종종 관찰된다.

▷ 학명 : Corchoropsis crenata Siebold & Zucc.

▷ 분류 : 벽오동과

▷ 분포지역 : 한국, 일본, 중국 동북부

▷ 서식장소 : 산과 들

▷ 특징 : 야화생·전마·모과전마라고도 한다. 산과 들에서 잘 자란다. 높이 60cm 내외이며 전체에 털이 나 있고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며 밑부분이 둥글다. 잎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고 양면에 털이 나 있으며 잎자루는 길이 0.5∼5cm로 털이 있다.

꽃은 8∼9월에 노란색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에서 1개씩 달린다. 작은포는 줄 모양이고 곧게 서며 작은꽃자루와 함께 털이 있다.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각각 5개씩이고, 10개의 수술과 5개의 헛수술이 있다. 열매는 삭과로 10월에 익는데, 길이 3∼4cm이고 겉에 털이 나 있으며 3개로 갈라진다. 관상용으로 심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60.html
kolaswqetsrq 11.02 00:04
【무릇】

【무릇】

우리나라 각처의 들이나 산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양지바른 곳이면 어디서든지 자란다. 키는 20~50cm이고, 잎은 선처럼 가늘고 길며 여러 장의 잎이 밑동에서 나온다. 잎끝은 날카로우며 길이는 15~30cm, 폭은 0.4~0.6cm이다.

▷ 학명 : Scilla scilloides

▷ 분류 : 백합목 백합과

▷ 분포지역 : 아시아 동북부의 온대에서 아열대까지

▷ 서식장소 : 약간 습기가 있는 들판

▷ 특징 : 약간 습기가 있는 들판에서 무성하게 자란다. 줄기는 곧게 서며, 높이 20∼50cm이다. 땅속에 길이 2∼3cm의 달걀모양의 둥근 형태의 비늘줄기가 있고, 잎은 봄과 가을에 2개씩 나온다. 꽃은 7∼9월에 피고 길이 20∼50cm의 꽃줄기가 나와 끝에 길이 4∼7cm의 총상꽃차례가 발달한다.

꽃은 연한 홍자색이고 화피갈래조각과 수술은 각각 6개이며 암술은 1개이다. 씨방은 타원형이고 잔털이 3줄로 돋아 있다. 열매는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으로 길이 4mm이다. 비늘줄기와 어린 잎을 엿처럼 오랫동안 조려서 먹으며, 구황식물(救荒植物)의 하나이다. 뿌리를 구충제로 사용한다. 한국, 아시아 동북부의 온대에서 아열대까지 널리 분포한다. 백색 꽃이 피는 것을 흰무릇(for. alba)이라고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025.html
kolaswqetsrq 11.02 00:04
【참나리】

【참나리】

나리 중에서 가장 우아하고 크기가 가장 큽니다.

백합의 순수 우리말이 나리입니다.

나리 중 유일하게 잎겨드랑이에 검은 구슬 같은 주아(=씨앗은 아니고 어미와 꼭 닮은 비늘줄기입니다.)가 있는 것이 참나리입니다.

유사종으로 하늘나리, 말나리, 땅나리, 섬말나리, 솔나리, 털중나리, 중나리, 누른말나리, 하늘말나리, 큰솔나리 등이 있습니다. 가짜나리도 많이 있지요. 개나리, 애기나리, 진부애기나리 등 **나리라는 이름이 많이 붙어 있습니다.

▷ 학명 : Lilium tigrinum

▷ 분류 : 백합과

▷ 분포지역 : 한국·일본·중국·사할린 등지

▷ 서식장소 : 산과 들

▷ 특징 : 꽃은 7∼8월(여름)에 피고 노란빛이 도는 붉은 색 바탕에 검은빛이 도는 자주색 점이 많으며 지름이 10∼12cm이고 4∼20개가 밑을 향하여 달린다. 화피 조각은 6개이고 바소꼴이며 뒤로 심하게 말린다. 밀구(蜜溝)에 털이 있고, 6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길게 꽃 밖으로 나오며, 꽃밥은 짙은 붉은빛을 띤 갈색이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 5∼18cm의 바소꼴이며 녹색이고 두터우며 밑 부분에 짙은 갈색의 주아(珠芽)가 달린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잎 밑 부분에 있는 주아가 땅에 떨어져 발아한다. 한방에서 비늘줄기를 약재로 쓰는데, 진해·강장 효과가 있고, 백혈구감소증에 효과가 있으며, 진정 작용·항알레르기 작용이 있다. 한국·일본·중국·사할린 등지에 분포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54.html
kolaswqetsrq 11.02 00:05
【사위질빵】

【사위질빵】

장모님이 사위에게 나뭇짐을 적게 지게 할려고 이 줄기를 사용하도록 하였고, 다른 사람에게는 칡덩굴을 사용하도록 하였다는 것에서 유래하여 붙은 이름 "사위질빵"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장모의 사랑은 사위인가! 백년손님 사위인가!

▷ 학명 : Clematis apiifolia

▷ 분류 : 미나리아재비과

▷ 분포지역 : 한국·일본·중국

▷ 서식장소 : 산과 들

▷ 특징 : 질빵풀이라고도 한다. 산과 들에서 흔히 자란다. 길이 약 3m이다. 어린 가지에 잔털이 난다. 잎은 마주나고 3장의 작은잎이 나온 잎이거나 2회 3장의 작은잎이 나온 겹잎이며 잎자루가 길다. 작은잎은 달걀 모양이거나 달걀 모양 바소꼴로서 길이 4∼7cm이다.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깊이 패어 들어간 모양의 톱니가 있으며 뒷면 맥 위에 털이 난다.

꽃은 7∼8월에 흰색으로 피고 지름 13∼25mm로서 잎겨드랑이에 취산상 원추꽃차례로 달린다. 꽃받침조각은 넓은 바소꼴이며 4개가 십자(十字) 모양으로 달린다. 꽃잎은 없으며 수술과 암술은 많다. 꽃밥은 줄 모양이며 길이 약 2mm이다. 열매는 수과(瘦果)로서 5∼10개씩 모여 달리고, 9∼10월에 익으며 흰색 또는 연한 갈색 털이 난 긴 암술대가 있다. 어린 잎과 줄기를 식용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387.html
kolaswqetsrq 11.02 00:06
【짚신나무】

【짚신나무】

화단이면 어느 곳에 심어도 잘 자란다.

물은 잎이 많은 시기인 봄에만 2~3일 간격으로 주고 나머지 기간에는 4~5일 간격으로 준다.

이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옛날에 짚신을 신고 다녔을 때 짚신에 붙어 이곳저곳을 붙어 다녔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품종의 종자에는 갈고리 같은 털이 있어서 사람들의 옷이나 동물의 털에 쉽게 붙게 되며 그로 인해 여기저기 퍼져 나가게 된다.

▷ 학명 : Agrimonia pilosa

▷ 분류 : 장미과

▷ 분포지역 : 한국·일본·중국·인도·히말라야·몽골·아무르·시베리아·유럽·사할린 등지

▷ 서식장소 : 풀밭이나 길가

▷ 특징 : 꽃잎은 5개이고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 또는 둥근 모양이며, 수술은 5∼10개이다. 열매는 수과이고 길이가 3mm이며 꽃받침에 싸여 있는데, 꽃받침에 있는 갈고리 같은 털 때문에 물체에 잘 붙는다. 어린순을 나물로 먹는다.

한방에서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를 전체를 용아초(龍芽草)라는 약재로 쓰는데, 지혈제로 소변출혈·자궁출혈·각혈·변혈 등 각종 출혈 증상에 사용한다. 유럽에서는 이와 비슷한 종을 만성인두염·설사·간장통·신장결석·담석증 등에 사용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36.html
kolaswqetsrq 11.02 00:06
감기 걸렸을 때 피해야 할 음식

감기 걸렸을 때 피해야 할 음식

1. 커피

감기약과 복합 진통제에는 카페인이 들어가 있는경우가 많아서 커피와는 궁합이 맞지 않습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 감기약과 커피를 함께 먹게 되면, 카페인 과다섭취로 인한 불면증, 현기증, 가슴두근거림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음을 기억해주세요.

2. 술

알코올 성분은 체내 염증을 일으켜 백혈구를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탈수 증상까지 일으킬 수 있고, 다음날 숙취로 감기 증상은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3. 사탕 이나 초콜릿

사탕이나 초콜릿, 탄산음료 처럼 당분 이 많이 포함된 식품은 우리 몸에서 감기 바이러스와 싸우는 백혈구 를 약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약이 쓰다고 사탕으로 입가심하는 버릇은 좋지 않으니 삼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31.html
kolaswqetsrq 11.02 00:07
발냄새 예방법

발냄새 예방법

각질층에 번식하는 세균이 습한 환경의 도움을 받아 단백질이 분해하면 식초, 오래된 치즈, 젓갈, 청국장과 같은 냄새를 풍기게 된다. 바로 발냄새다. 발냄새는 선천적으로 땀이 많은 사람일수록 강하게 날 수 있으며, 식초로 발을 열심히 닦는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평소 발냄새가 신경이 쓰여서 집에 돌아온 후 양말의 냄새를 자주 맡는다면, 위생상 매우 나쁠 수 있으니 조심하자. 냄새나는 양말에는 세균과 곰팡이 포자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실제로 매일 양말 냄새를 맡던 한 중국 남성이 폐병에 걸린 사례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발냄새가 걱정이라면 냄새를 맡는 것보단 냄새를 예방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1. 각질 제거

큰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기본은 발을 청결하게 관리해주는 것이다. 샤워할 때 발도 꼼꼼하게 닦아주어야 하며, 기왕이면 세균의 먹이가 되는 각질도 말끔하게 제거를 해주는 것이 좋다. 밀가루와 식초를 섞어서 반죽한 뒤 발 뒤꿈치에 바르고 랩을 1~2시간 정도 감아두면 자극을 주지 않고 부드럽게 각질 제거를 할 수 있다.

2. 신발 소독

발냄새의 강도를 줄이고 싶다면 신발도 청결하게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신발 내부가 항상 건조할 수 있도록 관리를 해주어야 하며, 수시로 깔창을 분리해서 햇볕에 말리는 것이 좋다. 베이비파우더를 신발에 뿌려두는 것도 괜찮고, 구리를 신발에 넣어두고 균이 번식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도 좋다.

3. 발냄세 제거 제품 사용

고양이 모래, 과일 껍질, 식초, 탄산수소나트륨, 살균제, 옥수수 전분 등, 발냄새 제거에 효과가 있다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발냄새가 심한 사람은 사실 효과를 늘낄 수 없다. 그냥 전용 제품을 사용하자. 시중에는 다양한 발냄새 제거 제품들이 나와있으며, 그랜즈레미디가 특히 발냄새 제거에 효과적이다. 가격적인 부담이 크지 않으며, 효과가 강력하기 때문에 가장 만족스러운 발냄새 제거 방법이 될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06.html
kolaswqetsrq 11.02 00:08
식초 활용법

식초 활용법

식초는 혈당 조절, 면역력 강화, 고혈압 완화, 해독, 입냄새 제거 등의 다양한 효능과 효과가 있다. 하지만 적당한 방법으로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우유 식초

따뜻한 우유에 식초를 한 두 방울 정도 넣고 설탕도 조금 넣은 뒤 잠들기 전에 마셔주면 불면증을 해결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유에 포함된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이 세로토닌 형성에 도움을 주면서 불안감을 해소하고, 식초의 산성분이 긴장을 완화시켜주기 때문이다. 단, 설탕을 넣지 않는다면 우유가 응고될 수 있다.

2. 물 식초

감기가 찾아올 때 목이 따끔한 증상이 있다면 물 한 컵 정도에 식초를 한 큰술 정도 넣고, 소금도 작은 큰술로 두 번 넣은 뒤 입을 헹궈주면 된다. 식초는 면역력과 활력을 높여주는 효능이 있으며, 이렇게 식초 희석액으로 입을 헹구면 목감기도 빨리 나을 수 있다.

3. 칼슘 식초

식초는 칼슘이 잘 흡수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만약 골밀도 유지에 관심이 많다면 칼슘이 풍부한 음식을 먹되 식초도 들어간 음식 역시 함께 먹도록 하자. 그럼 칼슘 흡수율이 높아지는 동시에 체내의 과잉 염분이 빠르게 배출되면서 뼈가 강화될 수 있다.

4. 스타킹 식초

여러 번 신은 스타킹이나 양말은 세탁을 해도 발 냄새가 빠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미지근한 물에 식초를 몇 방울 풀고 스타킹과 양말들 담가두면 된다.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 흐르는 물에 헹궈주면 발 냄새가 말끔하게 빠진 양말과 스타킹을 볼 수 있다.

5. 거즈 식초

식초에 포함된 아미노산은 타박상으로 인해 손상된 세포를 빠르게 재생하도록 해준다. 만약 타박상이 빠르게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깨끗한 거즈를 식초에 적신 뒤 환부에 올려두면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268.html
kolaswqetsrq 11.02 00:09
블랙커피가 몸에 미치는 놀라운 5가지 영향

블랙커피가 몸에 미치는 놀라운 5가지 영향

1. 두뇌

매일 8온스(약 227ml)컵으로 4잔의 커피를 마시는 여성은 우울증 발병 위험이 20%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8온스 커피 컵 2잔에는 약 200mg의 카페인이 들어있는데 이 정도 양은 장기 기억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 심장

매일 200~300mg의 카페인을 섭취하면 휴식을 취할때 혈류량이 향상돼 심장이 기능을 더 잘 수행하도록 만든다.

3. 간

하루에 2잔 정도의 커피를 마시면 간경변증과 같은 간 질환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4. 당뇨병

28개의 연구결과를 조사한 하버드대 연구팀에 따르면 커피를 마시면 2형 당뇨병 발병 위험을 33%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 피부

연구결과에 따르면 매일 3잔 이상의 커피를 섭취하는 여성은 세포암에 걸린 위험이 크게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91.html
kolaswqetsrq 11.02 00:09
붓기 빼는데 좋은 음식 7가지

붓기 빼는데 좋은 음식 7가지

▶ 맛도 좋고 구수한 잡곡밥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잡곡밥은 체내 소화기능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필요치 않은 수분 배출에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 때문에 부종에 상당히 효과적이며, 검정콩이나 붉은 팥이 듬뿍 들어간 잡곡밥이 부종에 더욱 좋습니다. 팥은 우리 몸에 불필요한 수분들을 소변을 통해서 몸 밖으로 배출시켜주고, 소화가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콩은 혈관을 부드러우면서도 튼튼하게 만들어 혈압상승을 막아주고,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등 혈액순환에 굉장히 좋은 식품입니다.

▶ 호박

호박은 그 면면을 뜯어본다면 우리 몸에 아주 좋은 음식입니다. 호박을 먼저 속을 파내고 그 속에 팥을 채워넣어 삶습니다. 그리고 잘 익혀진 호박을 바로 빻아 식사전에 드시게 되면 부종과 이뇨작용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호박은 이뇨작용을 돕는데 효과적이면서 출산을 한 임산부들 붓기에 특히 좋은 음식이라고 하네요

▶ 옥수수 수염

옥수수수염은 이뇨작용에 도움을 많이 주는 식품입니다. 붓기를 제거하고, 지방도 제거해주고, 피부탄력에도 도움을 주는 식품으로 붓기에 좋은 음식이기도 하면서 다이어트에도 좋은 음식입니다.

▶ 토마토

토마토의 경우 아침에 얼굴이나 손 발이 자주 붓는 사람에고 좋은 음식인데, 식이섬유가 풍부해 해독작용을 하여 몸 속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아침마다 토마토 하나씩 갈아 쥬스로 마신다면, 부종 뿐만 아니라 다른 건강도 챙기실 수 있을 거예요.

▶ 율무

율무는 신장에 좋은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이 때문에 신장 기능 이상으로 몸이 자주 붓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이며, 이뇨작용을 도와 몸의 붓기를 빼는데 아주 효과적입니다.

▶ 오이

식감이 아삭아삭하니 좋은 오이는 체내 불필요한 노폐물을 소변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해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 때문에 부종 및 신장염에도 좋으며 방광 건강도 챙겨줍니다. 오이를 먹어 부종에 효과를 볼 때에는 요리를 만들어 짜게 섭취를 하는 것 보다, 생 오이 그대로 드시는게 더욱 효과적입니다.

▶ 해조류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는 식이섬유, 미네랄, 칼륨이 풍부해서 우리몸 주요 부위에 산소공급을 원활하게 해줍니다. 특히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고 회복하는데 도움을 많이 주는데 해조류의 미끈한 성분이 지방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하니 붓기에 좋은 음식이기도 하면서 다이어트에도 정말 좋은 음식이라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7_70.html
kolaswqetsrq 11.02 00:10
나를 돌아보는 10가지 지혜

나를 돌아보는 10가지 지혜

1. 지금의 고민이 1년 후에도 유효한가? 라고 상상해보자

인생의 원칙은 두 가지다.

첫째,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말라.

둘째, 모든 문제는 다 사소하다.

이것만 알면 삶의 평온함은 당신 것이다.

2. 중요한 일 부터 먼저 하라.

소중하고 중요한 일들을 미루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일은 하나도 이루지 못한 채 인생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3. 불완전한 상태에 만족하라.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그만두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지나치게 집착하고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반드시 어떤 식으로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려 할 때 마다 자신에게 제동을 걸어라.

4. 매일 한번 이상 남을 칭찬하라.

마음은 있으나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자신이 상대를 얼마나 좋게 생각하는지를 들려주면 그런말을 하는 사람 또한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된다.

칭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초 밖에 안되지만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 모두에게 그날중 최고로 멋진 시간이 된다.

5. 당신에 대한 비판에 동의해 보라.

모두 당신의 유연성에 놀랄것이다.

자신에 대한 비판에 적대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오히려 상대에게 자신이 내린 결론이 정확하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 뿐이다.

6. 갖고 싶은 것 대신 갖고 있는 것을 바라본다.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종이에 적어보라.

건강하고 밝은 아이들, 화목하고 든든한 부모형제, 배우자, 인정많은 이웃들, 친구들..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눈을 돌리면 행복은 늘 자신 곁에 있다.

7. 성공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라.

의미있는 성취란 무엇일까?

큰 돈을 버는 것? 승진하는것? 인정을 받는 것?

오로지 외형과 물질적인 성취에만 집착하지 말고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하도록 하자.

8. 자랑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라.

겸손과 내적 평화는 나란히 존재 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 하려는 욕망이 적은 사람일수록 얼굴에 평온함이 가득하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고 애쓸수록 사람들은 등뒤에서 흉을 보고 속으로 경멸한다.

9. 날아온 공을 반드시 잡을 필요는 없다.

미안하다고 거절을 한다고 해서 친구를 소중히 생각 않는다거나 무례하고 냉정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다른 사람 때문에 희생 되었다고 느끼지 않도록 언제 어떤 공을 잡아야 할지 알아야 하고 선택해야 한다.

10. 자신을 제 1순위 채권자로 생각하라.

금전계획을 세울 때 다른 청구서의 지불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 지불하라.

다른 사람들의 돈을 다 갚을 때까지 저축을 미루게 되면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자신을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남을 도울 수 없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24.html
kolaswqetsrq 11.02 00:11
과일속에 숨은 민간요법

과일속에 숨은 민간요법

1. 사과

이질, 설사, 변비, 구토,두통에 좋은 약이 된다.

얼굴에 마른버짐이 생기거나 피부에 윤기가 없고 푸석푸석할때는 사과잼을 바른다.

저녁에 바르고 다음날 아침에 닦아내고 깨끗이 세수하는데 열흘정도 하면 피부가 깨끗해지고 40-50대 여인도 10대 소녀 같은 피부가 된다.

2. 배

기관지, 해수, 천식, 숙취에 신효하다.쇠고기를 먹고 체한 데는 배즙을 마시면 된다. 허약해진 노인들의 심한 기침에는 배 삶아낸즙 한 되에 토종꿀 400g 생지황즙 한 되를 약한불에 달여서 식힌 뒤에 수시로 조금식 먹는다.

3. 감, 곶감

고혈압, 중풍, 이질, 설사, 하혈, 위장염, 대장염에 좋다. 떫은 감 반 말 가량을 찧어 마른북어 세 마리와 같이 넣고 푹 삶아 그 국물을 조금씩 수시로 마시면 고혈압에 특효이다. 떫은 감즙은 중풍에 신효하다.

뼈가 썩어 고름이 흘러 내리는 골수염 등에는 떫은 감을 찧어 붙이면 신통하게 낫는다. 딸국질에는 곶감 네 개를 삶아 그 물을 마시면 영원히 없어진다.

4. 밤

하혈, 토혈, 설사, 외상, 구갈 도는 종독 등에 밤밥을 지어먹으면 큰 효과가 있다.

양고기를 먹고 체한 것이 오래된때에는 밤 껍질을 진하게 달여 마시면 효과가 있다.

5. 대추

독성이 없고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며 안색이 좋아지고 비위를 튼튼하게 한다.

식욕부진, 소화불량, 강장보양, 불면, 불안초조 등에 좋다. 대추를 먹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은 파, 어패류와 같이 먹지 말아야 한다. 어패류와 먹으면 복통이 생긴다.

6. 귤

귤껍질은 담을 없애고 기운을 순조롭게 하지만 살은 많이 먹으면 담이 생기기도 한다. 귤껍질은 진피라 하여 유행성 독감, 위장병, 부종, 어패류 중독 등에 쓰인다. 감기에 자주 걸리는 사람을 귤껍질을 설탕물에 끓여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고 감기가 들지 않는다.

7. 수박

허리 삔 데, 주독, 소변불통, 신장염, 기관지질환, 하혈 등에는 수박 속살에 꿀이나 설탕을 넣어 졸여 먹으면 좋다. 비장, 위장이 약한 사람은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 수박을 그냥 먹으면 속이 냉한 사람은 해로우니 수박탕을 해 먹는다. 신장염, 수종병에 매우 효험이 있다.

8. 토마토

혈압을 내리게 하고 정력을 보강시키며 신장과 심장을 편케 하고 당뇨에도 좋다. 또 피부병과 위를 진정시키는 데도 좋은 식품이다. 토마토는 삶아도 좋고 날 것을 먹어도 좋다. 장복하면 효험이 있다. 각종 피부병에는 잎, 줄기, 뿌리를 다 같이 넣고 고아 그 물에 자주 씻으면 없어진다.

9. 복숭아

부인병에 아주 좋은 과일로서 꽃, 잎, 열매, 껍질, 뿌리가 모두 약이 된다. 대소변이 원활하지 않을 때는 복숭아 껍질이나 잎을 삶아 하루에 세 번 보리차 마시듯 마신다. 타박상으로 몸이 부었을때는 복숭아 시를 찧어 참기름에 개어 환부에 고약처럼 두껍게 바른다. 손발 튼데도 아주 좋다.

10. 참외

간질환을 치료하고 풍습을 물리피고 요퇴동통을 다스리며 광기를 진정시키고 타박상에도 쓰이는 등 좋은 약으로 쓰이지만

많이 먹으면 오히려 해롭다. 참외를 많이 먹고 식중독에 걸렸을 때는 오징어를 구워 먹으면 곧 풀린다.

11. 포도

건포도나 포도잼을 만들어 준비해 두면 훌륭한 가정 상비약이 될 것이다. 신장병, 수종병, 구토, 설사, 임산부가 놀란데, 원기부족, 단식, 금식, 보조식 등으로 아주 좋다. 암이나 중병환자나 금.단식을 할 때는 하루 세 번, 식사시간에 포도알을 일곱알식 먹으면 아주 좋은 영양소와 영약이 된다.

12. 매실

술이나 식초로 만들어 이용해야 좋은 약이 되는데 이질, 설사, 하혈, 구토, 타박상, 기관지, 해수, 천식에 명주영약이다.

술을 담근지 삼 년이 지난 것은 천식, 해수, 기관지에 좋고 식초로 담가 먹으면 정력증강, 고혈압, 비만에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337.html
kolaswqetsrq 11.02 00:11
■홍의장군 곽재우 5편

■홍의장군 곽재우 5편

일본군이 먼저 침입한 경상도에서 의령의 곽재우가 의병을 제일 처음 일으켰고, 합천의 정인홍(鄭仁弘), 고령(高靈)의 김면(金沔)이 의병을 모아 경상우도를 지켰다. 영천의 권응수(權應銖)는 관군과 협동작전을 전개해 영천을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웠다. 전라도에서는 담양(潭陽)의 고경명(高敬命), 유팽로(柳彭老), 고종후(高從厚) 등이 의병을 조직해 거사했다.

충청도에서는 조헌과 승려 영규(靈圭) 등이 활약했으며, 경기도에서는 홍계남(洪季男), 우성전(禹性傳) 등이, 황해도에서는 전 연안부사 이정암(李廷馣)이 부대를 조직한 뒤 강화의 김천일(金千鎰) 부대 등과 연합해 일본군을 물리쳤다. 함경도에서는 정문부(鄭文孚) 등이 나서 길주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승병들의 활약도 컸다. 평안도에서는 승려 휴정(休靜, 서산대사)이 묘향산에서 전국 승려에게 격문을 보내어 일본군에 맞서 싸울 것을 호소했다. 그는 승병부대를 조직해 평양성 수복전투에 공을 세웠다. 강원도의 유정(惟政, 사명대사) 등도 거사했다. 이외에도 김덕령(金德齡), 최경회(崔慶會), 유종개(柳宗介) 등이 의병활동을 했다. 이로써 1593년(선조 26)에는 전국적으로 활동한 의병의 규모가 2만여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과 명나라의 화의가 진행되어 전쟁이 지지부진하게 장기화되었고, 그 가운데 대부분 농민이었던 의병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조정에서 전후 경제적 안정을 위해 농민에 대한 징세(徵稅)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건만, 논공행상은커녕 돌아온 것은 가혹한 세금 통지였던 것이다. 그 와중에 의병 모집을 핑계로 세력을 모은 이몽학(李夢鶴) 등이 1596년(선조 29)에 난을 일으키고, 여기에 의병장 김덕령이 무고로 연루되어 옥사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로써 의병 활동은 위축되었고, 의병 출신들의 조정에 대한 신뢰는 더욱 떨어졌다.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어 김덕령이 체포되었을 때 곽재우의 이름도 거론됐다. 다행히 곽재우는 죄가 없음을 인정받아 곧 풀려났다. 그러나 본래 관직에 뜻이 없는 선비였던 곽재우는 억울한 누명을 당하고 교유하던 의병장 김덕령이 옥사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출사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더구나 통제사 이순신이 죄 없이 잡혀 오는 것을 보고서는 더욱 관직에 미련이 없었다. 조정에서는 계속 관직을 내렸지만 곽재우는 정유재란 때를 제외하고 출사하지 않았다.

- 6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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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12
■ 홍의장군 곽재우 3편

■ 홍의장군 곽재우 3편

7월에는 현풍ᆞ창녕 등지에서 승리해 경상우도에서 왜군의 진격을 차단했고, 왜군에 항복해 길잡이 노릇을 하던 공위겸(孔撝謙)을 매복작전으로 체포해 처형했다. 10월에는 왜란 초반의 가장 중요하고 규모가 큰 전투였던 제1차 진주성 전투에 참전했다. 그들은 진주성 외곽에서 일본군을 교란해 승전에 기여했다.

 "
곽재우가 구사한 전술은 기본적으로 유격전이었다. 그는 단기(單騎)로 적진에 돌진하거나 위장술과 매복전술 등의 변칙적 방법으로 적을 교란하고 무찔렀다. 이것은 전력과 물자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었던 의병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술이었을 것이다. 곽재우는 이런 전공으로 벼슬을 받았고 계속 승진했다. 그는 유곡찰방(幽谷察訪. 1592년 6월. 종6품)·형조정랑(8월. 정5품)을 거쳐 경상도 조방장(助防將. 정3품)에 임명되었고, 1593년 4월에는 성주목사에 제수되었다. 왜란이 발발한 지 1년 만에 그는 경상우도 방어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군사 지휘관에 올랐다. 싸움을 할 때면 곽재우는 붉은 비단 철릭(帖裏)을 입고 백마를 탄 채 천강홍의대장군(天降紅衣大將軍)의 깃발을 내걸고 의병들을 진두지휘했다. 그래서 곽재우는 본명보다도 홍의장군으로 더 잘 알려지기도 했다.
",

일본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금방 끝날 것 같던 임진왜란은 내륙의 의병과 해전의 이순신이 활약하면서 1593년 후반부터 장기전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전황의 변화에 따라 곽재우의 역할도 바뀌었다. 그 동안도 그는 왜군의 대규모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으려면 산성을 거점으로 방어전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져 1594년부터 삼가(三嘉)의 악견(岳堅)산성, 가야산의 용기(龍起)산성, 지리산의 구성(龜城)산성 등 경상도 일대의 산성을 정비하는 데 주력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이순신ᆞ원균 등과 함께 거제도를 탈환하는 작전에 참여했지만, 왜군이 대응하지 않아 성공하지 못했다. 12월에는 가장 주요한 격전지 중 한 곳인 진주목사에 임명되었고, 경상도 관찰사ᆞ경상우수사 같은 요직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관군들이 수급(首級:적군의 머리)을 챙겨 공을 인정받기 급급할 때 곽재우는 부하들을 처음부터 단속해 수급을 베지 못하게 했다. 곽재우의 출병은 출세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오직 나라를 지키고 고향을 보호하기 위한 충정에서 우러난 일이었다. 그런 곽재우가 이후 전쟁 기간 동안 관직을 받아들인 것은 의병들에게 부족한 무기와 군량미를 관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충당받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곽재우는 명과 일본의 강화협상이 본격화되던 1595년 가을에 관직을 버리고 본관인 현풍으로 낙향했고, 거기서 2년 동안 칩거했다. 승전을 거듭해 계속 중용되던 의병장이 갑자기 낙향한 이례적인 사태의 가장 큰 까닭은 조정과의 불화였다. 그 뒤 은둔해 곡기를 끊고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행적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곽재우는 기본적으로 직선적이고 비타협적인 성격이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그는 이런저런 갈등을 겪었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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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13
■ 홍의장군 곽재우 1편

■ 홍의장군 곽재우 1편

곽재우(郭再祐:1552~1617)는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크게 공헌한 장수 중 한 사람이다. 곽재우는 많은 의병 중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고, 여러 전투에서 홍의(紅衣)를 입고 지휘해 뛰어난 무공을 세웠다. 그러나 29세의 젊은 나이로 억울하게 옥사한 김덕령(金德齡:1567~1596)의 사례가 대표하듯이, 전란이 끝난 뒤 의병장들은 대체로 공훈에 합당한 포상이나 예우를 받지 못했다. 선무(宣武)공신에 책봉되지 못했고, 이런저런 관직을 거치기도 했지만 끝내는 은둔하면서 ‘익힌 곡식을 끊고 솔잎만 먹다가(벽곡찬송:辟穀餐松)’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보여주듯이, 곽재우도 그런 사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죽고 죽이는 처절한 살육이 난무한 전장보다 현실의 정치적 여건은 의병장에게 더 가혹했다.

곽재우는 1552년(명종 7년) 8월 28일 경남 의령현(宜寧縣) 세간리(世干里)에서 태어났다. 자는 계수(季綬), 호는 망우당(忘憂堂),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그가 태어난 의령은 외가인데, 그 뒤 그가 의병장으로 활동한 주요 지역이었고, 그래서 지금 그를 대표하는 지역이 되었다. 역시나 이런 측면은 조선시대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 남자가 결혼하여 여자의 본가에 가서 삼)의 흔적을 보여준다. 곽재우는 1567년 15세의 나이로 만호(萬戶) 김행(金行. 본관 상산)의 둘째 딸과 혼인했다. 일찍이 영남의 유학자인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하였으며, 함께 동문수학한 김우옹과 함께 스승 조식의 외손녀사위가 됨으로써 동서간이 되었다. 이 혼사는 그의 자질과 그것에 대한 인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조식은 두 외손사위를 직접 선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곽재우는 18세 때인 1570년(선조 3년)부터 활쏘기와 말타기 · 글쓰기 등을 고루 익히고 병법서도 공부했다. 1575~76년에는 의주목사에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의주에서 살았으며, 1578년(선조 11)에는 명에 사신으로 파견된 아버지를 수행해 중국 북경에 다녀왔다. 이때 중국에서 가져온 비단은 그 뒤 임진왜란에서 그의 상징이 된 홍의(紅衣)의 옷감이 되었다.

10대 후반부터 문무를 함께 연마하던 곽재우는 32세 때인 1585년(선조 18) 별시에서 2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하지만, 답안지에 왕의 뜻에 거슬린 글귀가 있었다 하여 합격을 모두 취소시켰다. 구체적 내용은 기록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그는 크게 낙망했을 것이다. 불행은 거듭 찾아왔다. 이듬해 8월 6일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곽재우는 선산인 현풍 신당(新塘)에서 삼년상을 치르고 1588년에 탈상했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그 뒤 그는 과거를 포기하고 의령 동쪽 남강(南江)과 낙동강의 합류 지점인 기강(岐江) 근처 둔지(遯池)에 정자를 짓고 낚시질을 하면서 지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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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13
■ 왜군과 싸운 왜군 2편

■ 왜군과 싸운 왜군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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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가의 우리말 이름은 김충선(金忠善)이다. 전쟁이 끝난 후 사야가는 진주목사의 딸과 결혼해 우록동에 내려와 김충선(金忠善)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살았다. 사야가의 유품이 전시된 충절관에는 사야가 집안의 족보도 있다.
",

1592년 4월, 조선 침략을 위해 출병한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는 부산에 상륙했다. 사야가는 바로 가토 기요마사 휘하의 선봉장이었다. 사야가는 부산 상륙 후 경상도 좌병사 박진에게 강화서를 보내 투항의지를 밝힌다.

『임진년 사월 일본국 우선봉장 사야가는 삼가 목욕재계하고 머리 숙여 조선국 절도사 합하께 글을 올립니다. 이번에 일본이 이유 없이 군사를 일으키며 저를 선봉장으로 삼으매, 저의 소원인 조선에 한번 나가보고 싶은 생각으로 본의 아닌 선봉이 되어서 군사를 이끌고 본국 조선에 이른 것입니다. 다만 저의 소원은 이 나라의 예의문물과 의관풍속을 아름답게 여겨 예의의 나라에서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따름입니다.』

조선군에 투항한 사야가는 곧 바로 경상도 의병들과 힘을 합쳐 동래, 양산, 기장 등지에서 왜군과 전투를 벌였고, 한 달 동안 여덟 차례나 승전보를 올리는 개가(凱歌)를 이루었다. 한때 곽재우장군의 군대와도 연합, 경상도 연안의 일본군을 격퇴하기도 했다. 가토 기요마사의 제1부대를 전멸하는 공적을 세운 사야가는 선조에게 무관 정3품인 가선대부, 지금의 차관급 지위를 하사받기에 이른다. 사야가는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도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우록마을 입구에서 100m 쯤 떨어진 곳에 녹동 서원이 있다. 서원 뒤에는 김충선(金忠善)의 위패를 모신 사당 녹동사가 있다. 서원과 사당은 김충선의 사후 유림이 조정에 상소를 올려 지은 것이다. ‘중국의 문명을 그리워한다’는 뜻의 모하당(慕夏堂)이라는 호를 지을 정도로 김충선(金忠善)은 유교 문물과 예의를 따른 철저한 조선인이었다.

마을 뒷산 그의 무덤은 일본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김충선(金忠善)은 1642년 72세의 나이로 두 번째 고향인 조선 땅 우록동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사후 조정은 대신급에 해당하는 정2품 정헌대부의 벼슬을 내렸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2_25.html
kolaswqetsrq 11.02 00:14
■ 우리말 나들이

■ 우리말 나들이

1. 판에 박다

우리나라 전통 음식으로 ‘다식(茶食)’이라는 게 있다. 녹말, 송화가루, 콩가루, 참깨가루 등을 꿀에 반죽해서 만드는데, 흰색, 노란색, 녹색 등 색깔도 넣어서 나무로 판(틀)을 만들어 그 안에 재료를 넣어서 모양을 낸다. 그래서 다식은 여러 개를 만들어도 모양이 똑같다. 물건이 여러 개 있는데 모양이 똑같거나 별 차이가 안 날 때 ‘판에 박았다’고 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붕어빵’과 같은 의미라고 할까? 사물이 모두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을 때 ‘천편일률(千篇一律)’이라는 한자성어를 쓰는데, 이는 모두 한결 같이 비슷하거나 똑같아서 개성이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2. 한풀 꺾이다

한창이던 기세나 열기가 어느 정도 수그러지는 것을 ‘한풀 꺾이다’라고 한다. 이 말은 옛날에 옷을 손질하던 방법과 관련이 있다. 옛날에는 옷을 빨 때 솔기를 모두 뜯어 분리해서 빨래를 하고, 잘 말린 다음 다시 꿰매서 입어야 했으니 거의 옷을 새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때 천에다 풀을 먹여 새 옷감처럼 올을 곧게 펴준다. 풀은 쌀가루나 밀가루를 물에 풀어서 끓여서 만드는데, 풀을 천이나 종이에 바르면 풀이 마르면서 빳빳해진다. 이것을 ‘풀을 하다’ 또는 ‘풀을 먹이다’라고 한다. 풀을 먹이면 천에 광택도 나고 때도 덜 탄다. 풀을 먹여 천이 빳빳해지는 것을 ‘풀이 선다’라고 하고, 풀이 선 상태를 ‘괄괄하다’고 한다. 성품이 억세거나 목소리가 크고 거센 사람을 괄괄하다고 하는 것도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괄괄하던 옷도 시간이 지나면 풀기가 죽어 후들후들해지고 볼품이 없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한풀 꺾이는 것이다. ‘한풀 죽다, 풀이 죽다’ 등도 같은 말이다.

3. 깡통 차다

가진 돈을 모두 잃고 쫄딱 망했을 때 ‘깡통 찼다’는 말을 쓴다. 원래 옛날부터 같은 뜻으로 쓰던 말은 ‘쪽박 차다’였다. ‘쪽박’은 조롱박을 반으로 쪼개서 만든 작은 바가지인데, 거지들이 쪽박을 들고 다녔던 데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바가지 대신 깡통이란 말을 쓰게 되었다. ‘깡통’은 영어의 ‘캔(can)’과 우리말의 ‘통’이 합쳐진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된 후 미군이 들어오면서 캔도 함께 들어왔다. 캔이 깡으로 소리가 바뀌고, 같은 뜻을 가진 통이란 말까지 더해져 깡통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본 깡통은 대부분 미군들이 내용물을 쓰고 버린 빈 깡통이었다. 그러다 보니 깡통이라고 하면 으레 속이 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는 것 없이 머리가 빈 사람을 ‘깡통’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미군이 버린 빈 깡통은 그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용도로 주워서 쓰기도 했는데, 주로 거지들이 밥을 빌어먹을 때 옛날 바가지 대신 깡통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쪽박 차다’의 쪽박 대신 깡통이란 말이 들어가 그대로 똑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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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15
■ 명량대첩 2편

■ 명량대첩 2편

이순신은 기본적으로 임진왜란에서 조선의 바다가 얼마나 중요한지 철저히 인식하고 있었다.이런 전략 개념이 불명확한 조정에서는 한때 남은 군함이 12척에 지나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고 “약한 수군력으로 더 이상 해전을 수행할 수 없으면 육지로 올라와 육전을 해도 좋다”는 명령까지 내린다. 그러나 그는 절대 해전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12척의 군함으로 적을 막아내겠다는 강한 결의를 보였다.

명량해전(울돌목해전)은 이순신의 해전 가운데 가장 눈물겹고 감동적인 전투이다. 조선 수군이 사실상 궤멸된 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수군을 동원해 일본의 대 함대에 맞서 기적 같은 승리를 쟁취했기 때문이다. 당시 명량해전 직전까지 이순신이 동원할 수 있었던 배는 군함 13척과 초탐선 32척뿐이었다. 초탐선은 첩보선으로 활용할 수는 있었으나, 승선 인원이 적고 무장력도 약해 실제 해전을 수행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에 반해 칠천량에서 승리한 일본 수군은 최소 133척 이상의 군함으로 이뤄져 있었다.

아무리 우수한 배와 무기가 있다고 해도 13척 대 133척은 감당하기 힘든 전력 차이다. 그렇다면 이순신에게 또 다른 무기가 있었을까? 일본 함선이 통과하려는 해협은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와 진도 사이에 있는 길이 2km 정도의 수로이다. 평균 폭이 500m지만, 배가 다닐 수 있는 가장 좁은 곳은 150m에 지나지 않는다. 암초가 많기 때문이다. 최저수심은 1.9m이며, 조류의 속도가 11.5노트로 매우 빠르다. 예부터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울음소리 같다고 해서 울돌목이라고 불렀다. 바로 이 울돌목(鬱陶項)의 엄청난 조류를 또 하나의 무기로 삼은 것이다. 요즘도 웬만한 배가 아니고서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이순신 장군은 울돌목(鬱陶項)에서 가장 폭이 좁은 진도와 해남 우수영에 쇠줄을 연결해서 당겨 왜적을 격파하는 ‘쇠사슬 전법’을 썼다. 울돌목(鬱陶項)의 폭은 280~320m 안팎이다. 여기에다 배를 끄는 데 필요한 쇠사슬의 길이를 감안하면 450m 안팎의 쇠사슬이 필요했을 것이다. 수중 철쇄는 지금의 진도대교가 있는 폭이 가장 좁은 자리에 걸었을 것이다. 양쪽에 막개를 박아놓고 쇠줄은 물속에 잠기게 숨겨놓은 뒤 일본 수군을 기다리는 것이다.

1597년 9월 16일 오전 11시경! 어란진에서 출발한 133척의 일본 대 선단은 우수영으로 흐르는 밀물을 타고 빠른 속도로 울돌목(鬱陶項)에 들어선다. 일본 수군은 명량의 순류를 타고 거침없이 전진해왔다. 일본군 함대는 해협을 따라 좁고 길게, 거의 2km에 걸쳐 행렬을 이룬 채 다가왔다. 이순신은 군함 13척을 일렬횡대로 쭉 늘어세워서 적과 맞섰다. 그러나 이순신의 독려에도 조선 수군의 전열(戰列)은 무너졌다. 명량의 급류를 역류해서 맞아야 했기 때문에 격군들이 노를 힘껏 저어도 조금씩 뒤로 밀린 것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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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16
■ 이순신과 어머니 3편

■ 이순신과 어머니 3편

이순신장군의 어머니 변씨의 네 가지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가르침: 충성(忠誠)

여수 고음천으로 자신을 문안 온 이순신이 하직 인사를 하자 "어서 가서 나라의 치욕을 씻으라!"고 말한다. 못 봐서 섭섭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억누르고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이 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이순신은 이런 가르침을 이어받아 자신을 파직하고 감옥에 가둔 선조에 대해서조차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았고 부하와 백성을 누구보다 마음으로부터 깊이 사랑하여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가득 받았다. 모친 변씨는 아버지 변수림으로부터 배운 \공사를 구분하는 일\을 늘 아들에게 엄격하게 가르쳤다. 그 결과 사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득을 계산하지 않았고, 뇌물을 용납하지 않았고 주지도 받지도 않았다.

두 번째 가르침: 정성(精誠)

모친 변씨는 매 순간, 하나도 소홀히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도록 가르쳤다. 이순신에게 그것은 유비무환의 임전태세를 갖는 것이었다. 전라좌수가가 된 후 1년 2개월간 그는 불철주야 임전 준비에 매진했고, 확실한 승산이 없는 전투는 도전하지 않을 정도로 매사 준비가 철저했기에 23전 전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세 번째 가르침: 정의(正意)

어린 시절부터 강직한 이순신에게 정의로움이 무엇인지 가르치며, 원칙을 지키며 손해 보는 일은 감수하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그 결과 이순신은 항상 올바르고 항상 정직하며 항상 정의로웠다. 체면을 내세우거나 과대포장하거나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감옥에 갇혔을 때조차 무죄방면을 위해 노심초사하며 위로하러 면회 온 조카에게 이렇게 말했다. "애쓰지 말라. 공연한 일이다."

네 번째 가르침: 자력(自力)의 삶

그는 생전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오직 남에게 도움을 구하지 말고 스스로 힘을 길러 싸워 이겨라." 그 말대로 이순신은 자력이 아닌 것에 기대지 않았고, 당파나 정치적 세력에게 기대지 않았다. 심지어 덕수 문중 가까운 사이였던 이조판서 이율곡조차 만나보라는 주위의 권유를 물리쳤다. 스스로 일어서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결국 이순신으로 하여금 임진왜란이라는 절체절명의 국난을 슬기롭게 이겨내게 만들었다.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를 가르치고 길러낸 어머니의 위대함도 그에 못지않게 주목받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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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17
전 세계 인구 10%, 음식 때문에 아파

전 세계 인구 10%, 음식 때문에 아파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 인구 10명 중 1명이 안전하지 않은 음식 때문에 질병이 생긴다. 식품 오염으로 인한 사망은 연간 약 42만 명이다.

음식에 든 미생물이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음식에 든 이물질이 부상을 입히기도 한다. 미생물로 인한 질병 발생은 박테리아, 바이러스부터 바퀴벌레를 비롯한 해충이나 기생충 등으로 건강상 위해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물질로 인한 부상은 금속, 유리, 돌 조각 등이 음식에 포함돼 있어 질식하거나 치아 손상을 입는 사례 등이다. 세제나 농약 잔류물, 아플라톡신 같은 미생물에 의해 생성된 독소에 중독돼 몸이 아플 수도 있다.

음식물이 오염되는 가장 주된 원인은 처리 불량이다. △손을 제대로 씻지 않고 조리하거나 △비위생적인 도구 및 환경에서 요리하거나 △과일·채소 등을 충분히 세척하지 않거나 △음식을 적절한 온도에서 보관하지 않거나 △충분히 익히지 않는 상황 등이 이에 해당한다.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오염이 일어나기도 한다. 농작물 재배 시 살충제, 항생제 등을 과도하게 사용하거나 오염된 물 또는 토양에서 농산물을 재배하거나 적절하게 처리하지 않은 퇴비를 사용한 케이스 등이다.

저소득국가에서는 길거리 음식도 음식 오염의 주된 원인이다. 길거리 음식은 가격이 저렴하고 재빨리 구입해 섭취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상수도 등에 대한 접근도가 떨어져 적절한 위생 관리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오염된 음식을 먹었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장티푸스, 콜레라, 리스테리아증 등 음식 매개 질병은 200가지가 넘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증상은 구토, 설사, 복통이다.

심하면 신경 질환, 장기 부전, 심지어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특정 음식을 먹거나 음료를 마신 뒤 구토, 설사 등이 계속 발생한다면 병원에 방문해보는 것이 좋다.

5세 미만 소아는 식중독에 걸리기 더욱 쉬우니 보호자가 잘 관리해야 한다. 성인 대비 위생 관념이 부족하고, 면역체계도 덜 발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뿐 아니라 특정 질환으로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 고령층, 임신부들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식품 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깨끗한 물로 식재료 세척하기 △적절한 온도에 음식 보관하기 △위생적인 환경에서 조리하기 △식사 준비나 식사 때 손 씻기 △날 음식과 익힌 음식 별로 보관하기 등을 지켜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17.html
kolaswqetsrq 11.02 00:17
집중력 높이는 뇌 휴식법 3가지

집중력 높이는 뇌 휴식법 3가지

연구에 따르면 잠깐의 휴식만으로도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주의력과 집중력이 현저하게 증가한다. 하지만 휴식을 취하지 않고 집중력을 북돋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오랜 시간 일에 몰두하면 몸의 주된 에너지인 산소와 포도당 소모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적인 영역에 장시간 공을 들이는 일은 진이 빠질 만큼 에너지가 소비된다”며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국 인터넷 매체에 따르면 다시 일에 몰두하기 위해 갖는 잠깐의 휴식 시간을 적절하게 보내는 방법이 있다.

1 스크린에서 떨어지기

일을 하다가 잠시 한숨을 돌리는 시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취하는 휴식 방법은 인터넷 서핑이나 스마트폰으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확인하는 일이다. 집중력을 회복하는 데는 고효율의 방법과 저효율의 방법 두 가지가 있다.

인터넷 서핑이나 SNS 확인은 저효율적인 방법이다. 효율적으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의자에서 일어나 몸의 움직임을 늘리고 혈액 순환을 돕는 것이 좋다. 야외 공기를 쐬며 걷는다면 정신을 맑게 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된다.

2 90분 일 하고 쉬기

전문가들은 “생체리듬 이론에 따르면 90분간 일하고 잠깐 휴식을 취하는 ‘휴식-활동 주기’를 지키는 게 좋다”고 말한다. 이 생체주기가 인간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효율적인 주기라는 것이다.

3 25분 낮잠 자기

낮잠은 기억력을 개선하고 창조성과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수면전문가들은 “25분~30분 정도의 낮잠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북돋우는 방법”이라며 “특히 밤잠이 부족해 낮 시간 피로를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연구에 따르면 평일 스케줄에 여유가 있거나 주말처럼 낮잠을 넉넉하게 잘 수 있는 경우라면 60분~90분의 낮잠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1시간에서 1시간 30분정도의 낮잠은 매일 8시간의 수면을 취하는 것만큼이나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3_17.html
kolaswqetsrq 11.02 00:18
아침에 꿀물이 건강에 좋은 9가지 이유

아침에 꿀물이 건강에 좋은 9가지 이유

1. 체중 감량 효과

꿀물을 마시는 것은 음료의 단맛에도 불구하고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됩니다. 꿀의 천연 설탕은 청량 음료에 사용되는 가공된 백설탕이나 옥수수 시럽보다 훨씬 건강하며 칼로리의 건강한 원천입니다. 청량 음료를 꿀물로 대체하면 밤새는 아니지만 차이점을 볼 수 있습니다.

2. 건강한 배변 유지

어떤 사람들은 이 주제에 대해 부끄러워하지만 논쟁에 부끄러운 점은 없습니다. 하루에 1잔의 꿀물은 소화 기관을 도와 배변을 규칙적으로 유지해줍니다. 꿀의 항박테리아 성질은 복통과 소화 불량을 예방하고 몸속 위장기관을 강화하도록 도와줍니다.

3. 면역 체계 강화

꿀은 천연 항균 물질로 효소, 비타민 및 미네랄이 풍부한데요. 특히 유기농 꿀이 우리 몸을 세균으로부터 보호합니다. 몇몇 연구에서 마누카꿀, 뉴질랜드 공장에서 만든 꿀 등이 심지어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를 죽이고 헬리코박터균을 위한 자연적 치료로 사용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4. 알레르기 증상 감소

연구에 따르면 국내산 꿀을 먹으면 신체가 지방화된 꽃가루에 익숙해져서 알레르기 증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계절성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 토종꿀을 먹으며 물 한 컵과 섭취하세요.

5. 아픈 목 치료

어르신들은 모든 꿀이 인후염과 기침에 완벽한 치료법이라고 알려줄 것 입니다. 꿀물을 마시면 식도 주위에 코팅이 형성되어 기침과 통증을 진정시켜 목구멍이 부드럽고 쾌적한 느낌을 줍니다. 얼마전 나혼자산다에서 헨리가 꿀을 먹으면 성대에 좋다며 강조한 적이 있는데요. 이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 정보입니다.

6. 건강한 에너지 활력 증가

가벼운 탈수증 조차도 피로감을 느끼게 할 수 있으므로 물과 꿀이 당신의 에너지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상상해 보세요. 커피와 달리 에너지 활력은 가라 앉지 않습니다. 대신, 몸은 오랜 기간 동안 활력을 유지합니다.

7. 해독작용

꿀물은 항균성 뿐 아니라 결장을 도우면서 몸에서 독소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몸을 정기적으로 해독하면 기분이 나아지고 감염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는데요. 해독을 높이려면 갓 짜낸 레몬을 꿀물에 넣으세요. 레몬은 항박테리아 성질을 포함하고 이뇨작용을 하며 간 기능을 돕습니다.

8. 건강한 마음 유지

 "
무엇보다 꿀물은 좋은 콜레스테롤(HDL) 수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몸이 심장 및 심장 혈관계에 압력을 가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생성하는 것을 방지합니다.
",

9. 팽만감 감소

팽만감이 들면서 가스가 흐르는 느낌이라면 꿀물 한잔을 마시세요. 몸속 가스를 중화시키면서 팽만감을 줄여주는데 도움이 됩니다. 특히 과식을 한 후에 마시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9_84.html
kolaswqetsrq 11.02 00:19
계란 노른자의 놀라운 비밀 6가지

계란 노른자의 놀라운 비밀 6가지

1 간편한 비타민 D 섭취

가장 쉽고 편하게 비타민 D를 섭취할 수 있다. 계란 노른자 한 개를 먹으면 40IU의 비타민 D를 보충할 수 있다. 비타민 D 결핍은 골절뿐만 아니라 암, 심혈관질환, 당뇨병 등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2 키 성장에 도움

 "
노른자에 함유된 비타민 D는 칼시페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칼시페롤은 칼슘의 흡수를 도와 뼈를 자라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비타민 D를 충분히 섭취하면 키가 더 자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비타민 D는 달걀노른자 외에 버터와 우유에도 많이 들어있다.
",

3 혈중 콜레스테롤 떨어뜨려

계란 노른자에 유화제의 역할을 하는 레시틴이라는 성분은 혈중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또한 계란에 함유된 비타민 B 복합체의 하나인 콜린은 동맥경화와 상관성이 높은 혈중 호모시스테인이라는 아미노산의 농도를 낮추어 준다.

4 기억력이 좋아진다

계란 노른자의 콜린 성분은 뇌 속의 신경전달 물질인 아세틸콜린 분비를 활성화시킨다. 아세틸콜린 분비가 늘어나면 기억력과 근육을 조절하는 능력이 좋아진다.

5 기형아 출산 예방과 태아의 두되발달에 도움

노른자의 콜린은 몸 세포의 기능을 돕는 영양분이어서 임신부의 기형아 출산을 예방하고 태아의 두뇌 발달과 기억력 향상에 효과적이다.

6 시력이 좋아진다

역시 노른자에 들어있는 루테인은 눈의 산화와 노화를 막는 역할을 한다. 또 노른자에 많은 비타민 A는 야맹증을 예방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6_98.html
kolaswqetsrq 11.02 00:19
염증 줄이는 식사요령

염증 줄이는 식사요령

만성 염증은 몸속 이곳저곳을 돌며 질병을 일으킨다. 염증이 발생하는 덴 식습관이 큰 영향을 미친다. 건강한 식사로 몸속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살이 찌는 것도 막고, 질병이 발생하는 것도 예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음식은 먹고, 어떤 음식은 먹지 않아야 할까?

✅ 먹지 말아야 할 음식

 "
극도로 가공된(ultra-processed) 식품은 멀리해야 한다. 전자레인지로 간단히 조리할 수 있도록 가공된 식품, 설탕이 든 시리얼, 가공육, 과자, 소스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음식들은 영양적 가치는 떨어지면서 혈당을 갑자기 높이거나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 콜레스테롤 수치는 올리는 소금, 설탕, 포화지방 등의 함량이 높다. 이러한 성분들은 체내 염증을 촉진한다.
",

극도로 가공된 식품에 든 설탕, 소금, 곡물 등은 장내 박테리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는 소화관 내벽에 손상을 입히고 염증성 유전자를 활성화한다. 이는 수명을 단축하고 암, 심장질환, 심장마비, 뇌졸중, 당뇨 등의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흰색빵, 흰색면, 흰쌀밥, 정제된 밀가루로 만든 음식 등도 염증을 촉진하는 음식군에 속한다. 과자, 버터, 치즈, 샐러드드레싱, 가공된 토마토소스, 소세지와 같은 가공육, 탄산음료 등도 모두 피해야 할 음식이다.

✅ 먹어야 할 음식

염증을 줄이기 위해서는 설탕 함량을 최대한 낮춘 가공하지 않은 음식들을 우선적으로 먹어야 한다. 과일, 채소, 통곡물, 콩류, 생선, 가금류, 견과류, 씨앗류, 약간의 저지방 유제품, 올리브 오일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당근, 브로콜리, 시금치, 호박 등의 녹황색 채소에 든 항산화성분은 세포에 손상을 입히는 활성 산소를 제거하는데 도움을 주므로 먹는 것이 좋다.

채소와 과일, 콩과식물과 통곡물에 든 식이섬유도 항염증에 도움을 준다.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생선, 카놀라유나 아마씨유와 같은 식물성 오일, 녹색잎 채소 등도 먹어야 할 식품이다. 폴리페놀 성분이 든 베리류 과일, 다크 초콜릿, 차, 양파, 커피, 사과, 감귤류 등도 도움이 된다. 아몬드, 호두 등의 견과류, 올리브유 등의 식물성 기름 등에 든 불포화지방산도 염증을 줄이는 음식군에 속한다.

이러한 음식들로 염증 수치를 떨어뜨리고 소화기관과 심장 건강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한 식습관의 포인트다. 하지만 식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극적인 음식을 즐겨먹던 사람이 음식의 간을 줄이고 밋밋하게 먹으면 건강 식단을 포기하기 쉽다. 우선은 자주 먹는 가공식품 섭취를 조금씩 줄이는 것으로 개선해나가도록 한다.

현재 식단에 건강한 음식의 비중을 의도적으로 늘려나가는 것도 식습관을 개선하는 전략이다. 과일을 잘 안 먹는 사람은 생과일주스를 만들어 먹거나 오후 시간 견과류를 간식처럼 먹는 등의 방법으로 건강한 음식 섭취를 늘려나가는 것이 체내 염증과 싸우는 방법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94.html
kolaswqetsrq 11.02 00:20
체중 늘고 피 탁해진 뜻밖의 식사 습관은

체중 늘고 피 탁해진 뜻밖의 식사 습관은

핏속에 총 콜레스테롤, ‘나쁜’ 콜레스테롤(LDL), 중성지방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면 고지혈증(이상지질혈증)에 이어 혈관이 좁아지는 동맥경화증, 아예 막히는 뇌졸중(뇌경색-뇌출혈), 심장병(협심증-심근경색) 등으로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증상이 없는 이상지질혈증을 잘 관리해야 위험한 혈관병을 예방할 수 있다. 피를 탁하게 하는 뜻밖의 식습관에 대해 알아보자.

◆ 20대부터 쌓이는 혈관 속 지방... 중년 되면 그 크기가?

동맥 혈관벽에 쌓이는 지방은 10대 후반~20대 초반부터 시작돼 나이 들면 점점 늘어난다. 혈관벽에 노폐물 등이 쌓여 혈관 속이 좁아지고 딱딱해지는 현상이 바로 죽상경화다. 고지혈증(이상지질혈증)은 죽상경화의 중요 위험인자 중 하나다. 혈액 중 총 콜레스테롤이나 나쁜 콜레스테롤(LDL)이 높은 경우, 중성지방이 높은 경우, 혹은 좋은 콜레스테롤(HDL)이 낮은 경우가 이상지질혈증에 해당한다. 의학적으로는 고지혈증보다 이상지질혈증이란 용어가 더 정확하다.

◆ 지방 뿐 아니라 탄수화물 너무 많이 먹으면... 피 탁해진다

식사를 통한 지방 과다 섭취, 탄수화물 과다 섭취, 음주, 흡연, 스트레스, 운동 부족, 나이 증가 등이 이상지질혈증의 원인이다. 당뇨병이 있으면 이상지질혈증이 같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중성지방이 높고, HDL 콜레스테롤은 낮아 죽상경화증이 특히 잘 생긴다. 비만이나 일부 염증이 생길 경우 지방 조직에서 간으로 지방산이 더 많이 공급된다. 이 때 콜레스테롤 합성이 증가해 이상지질혈증이 생길 수 있다.

◆ 중년 여성의 혈관 위험... 나이 들면 중성지방 농도 남녀 역전

20~50대까지는 남성이 여성보다 중성지방 농도가 크게 높지만 60대가 넘으면 여성의 중성지방 농도가 약간 더 높아진다. 30대까지 매우 낮게 유지되다가 40대 중반 이후(갱년기)에 증가하기 시작해 65세 정도에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한다. 혈관을 보호하던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이 사라지는 영향이 크다. 남성의 중성지방 농도는 10세부터 40세까지 빠르게 증가해 40~60세에 높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60세 이후에 서서히 감소한다.

◆ 살 찌고 피 탁해지는 나쁜 식습관들은?

1) 식사 때 채소 반찬, 해조류, 콩류 거의 안 먹는 경우

밥, 빵, 떡, 국수 등 탄수화물을 먹을 때 채소 반찬, 샐러드 등을 거의 안 먹는 사람이 있다. 채소에 많은 식이섬유는 몸속에서 콜레스테롤 흡수를 줄이고 담즙산을 통해 몸밖으로 콜레스테롤 배설을 촉진해 핏속 중성지방 수치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질병관리청 건강정보). 식사 때 꼭 여러 종류의 채소를 많이 먹는 게 혈액 건강에도 이롭다. 식이섬유는 통곡물, 해조류, 콩류, 과일에도 많다.

2) 이런 고기는 주의해야... 가공육도 조심

한국 지질·동맥경화학회 진료지침(2022)에 따르면 갈은 고기, 갈비, 내장(간 허파 콩팥 곱창 모래주머니 등), 껍질을 안 벗긴 육류, 튀긴 닭은 주의해야 한다. 먹는 횟수와 섭취량이 많아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햄 소시지 베이컨 등 지방이 많은 가공육도 조심해야 한다.

3) 채소에 뿌리는 드레싱?... 팝콘 등도 절제해야

치즈나 치즈크림, 커피크림, 아이스크림도 많이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건강에 좋은 채소에 뿌리는 샐러드 드레싱도 성분표를 잘 살펴야 한다. 치즈로 만들었거나 포화지방이 많은 제품은 오히려 혈액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버터, 마가린이 주성분인 빵, 케이크, 피자, 도넛, 고지방 과자, 비스킷, 칩, 팝콘 등도 절제해야 한다. 채소-과일도 튀긴 채소, 당이 들어간 과일 주스-통조림도 많이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080.html
kolaswqetsrq 11.02 00:21
우울증 감자튀김, 생각보다 깊은 관계

우울증 감자튀김, 생각보다 깊은 관계

튀김 음식은 위험하다. 맛있지만, 몸에는 좋지 않다. 게다가 최근 연구에 따르면 튀긴 음식은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의과대학 연구에 따르면 튀긴 음식, 그 중에서도 감자튀김은 불안 및 우울의 위험을 높인다고 미국 건강매체가 보도했다.

이번 연구는 14만 728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튀긴 음식을 정기적으로 섭취할 경우 불안과 우울증 발병 위험이 각각 12%, 7%나 높아졌다. 연구진은 튀긴 음식에 들어 있는 오염 물질인 아크릴아마이드를 주원인으로 꼽았다. 이 물질은 신경염증을 일으킬 수 있으며, 지질대사 장애를 유발에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튀긴 음식은 조직에 달라붙어 조직을 손상시키고 염증을 유발하는 화합물을 생성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2017년 연구에 따르면 12주 동안 채소 등 항염증 식품이 많이 포함된 식단을 섭취한 대조군의 정신건강 상태가 훨씬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튀긴 음식에는 뇌 건강에 도움을 주는 섬유질, 식물성 영양소 및 건강한 지방이 부족하다. 이는 결국 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화합물들이 부족하면 장과 뇌가 서로 소통하는 방식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면서 “세로토닌의 90~95% 이상이 장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이 이러한 신경전달물질의 생성에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의 기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도 있다”고 설명했다.

튀긴 음식은 지방이 분해되어 에너지로 저장되는 과정인 지질 대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뇌의 지질 구성은 뉴런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이러한 뉴런은 뇌가 소통하는 방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이같은 소통에 장애가 생기면 불안 및 또는 우울증 같은 기능적 행동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튀긴 음식을 자주 섭취하는 것과 정신 건강 사이의 관계는 분명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튀긴 음식 섭취를 줄이는 것이 현명하고 건강한 선택이라는 점이다.”라고 강조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93.html
kolaswqetsrq 11.02 00:22
딴딴하고 불룩한 뱃살 빼기

딴딴하고 불룩한 뱃살 빼기

▶ 슈퍼푸드는 없다

나이가 들수록 쌓이는 뱃살은 많은 이들의 고민 거리다. 특히 내장지방이 쌓여 나타나는 단단하고 불룩한 뱃살은 건강 악화를 알리는 가장 분명한 적신호 중 하나다. 무엇보다 내장지방은 간, 췌장, 신장 등 주요 장기를 둘러싸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그렇다면 뱃살 빼기를 위한 황금 원칙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내장지방을 줄이고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지켜야 하는 수칙들을 소개한.

❎ 풍부한 섬유질은 필수

섬유질은 내장지방을 몸에서 줄이기 위해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일이나 채소만 섭취해야 할 필요는 없다. 통곡물, 견과류 및 콩 등 다양한 식품들 포함돼 있으니, 다양한 식품을 즐기면서도 내장지방을 없앨 수 있다.

❎ 내장지방 태우는 슈퍼푸드?

내장지방을 태워버리는 ‘슈퍼푸드’는 없다. 일부에서는 특정 음식이 지방 줄이기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라고 선전하지만, 전문가들은 수퍼푸드보다 일상 속에 축적된 건강한 습관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웹엠디 “식습관을 조금씩 건강하게 바꾸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조언했다.

❎ 포화지방의 철저한 제한

뱃살을 줄이기 위해서는 동물성 식품, 전지방 유제품 등 포화지방이 들어있는 식품들을 제한하는 하는 노력은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 일단 이런 식품들의 절대적 섭취양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 영양 표시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대신 오메가-3가 풍부한 식물성 식품이나 연어, 참치, 고등어와 같은 생선을 통해 지방을 섭취하는 게 좋다.

❎ 운동은 시간 아닌 강도가 중요

뱃살을 빼기 위해서는 시간보다는 강도에 집중해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연구에 따르면 1시간 이상의 유산소보다는 30초 스프린트 또는 강렬한 풀업 세트와 같은 몇 차례의 고강도 운동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뛸 때도 짧은 시간에 빠르게 뛰다가 속도를 늦춘 뒤 다시 몇 차례 이런 회차를 반복하는 인터벌 러닝이 좋다.

❎ 딱 좋은 수면시간 찾기

수면시간이 5시간 미만으로 너무 적으면 뱃살이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8시간 이상 너무 많이 자는 것도 뱃살을 줄이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때문에 적절한 수면 시간을 찾아 이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전자기기는 멀리해야 한다.

❎ 지방흡입술은 도움을 줄까

뱃살을 줄이기 위해 지방흡입술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시술은 복벽 안쪽까지 도달하지 않는다. 때문에 내장지방을 제거하기는 힘들다. 원푸드 등 단기간 체중 줄이는 다이어트 역시 최악의 선택 중 하나다. 더 느리고 꾸준한 방법, 즉 오랫동안 실천할 수 있는 생활습관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뱃살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

❎ 스트레스 조절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지만, 특히 비만에는 좋지 않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지방과 설탕을 섭취할 가능성이 높이지고, 뱃살 증가에 영향을 주는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또한 잠을 덜 자고, 운동을 덜 하고,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만들어 뱃살을 늘리게 만든다. 명상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야 한다.

❎ 절주와 금연

건강을 위해서 술과 담배는 멀리해야 한다. 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음료가 칼로리를 가지고 있다. 술을 마시면 식욕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흡연은 지방 축적에 영향을 준다. 엉덩이와 허벅지보다 배에 지방을 더 많이 축적하게 만든다.

❎ 근력운동은 필수

한 연구에서 매일 20분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건강한 중년 남성은 같은 시간 동안 자전거 타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을 한 남성보다 복부 지방이 덜 늘었다. 근력 운동은 여성에게도 좋다. 유산소 운동도 필요하기는 하지만, 근력 운동도 병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672.html
kolaswqetsrq 11.02 00:22
운동하면 좋아지는 것 10가지]

운동하면 좋아지는 것 10가지]

운동은 다가오는 여름에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해변을 걸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힘, 근지구력, 심장 강화, 유연성 등을 모두 향상시켜 삶의 질 전반을 개선하는 기능을 한다. 운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정리했다.

1. 암 예방

대장암은 섬유질을 적게 먹고 동물성 지방을 과도하게 섭취할 때 발생한다. 대장암을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은 운동 부족이다. 연구에 따르면 규칙적인 운동이 대장암의 위험도를 40% 낮추는 역할을 한다. 또 대장암에 걸린 사람이 지속적인 운동을 하면 암세포 전이나 재발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신체 활동이 월경주기를 개선하고 유방암의 위험도를 낮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 혈압 감소

혈관 내에 불필요한 물질이 쌓이면 혈압이 상승하게 된다. 운동은 이러한 노폐물들을 제거하고 혈관을 탄력 있게 만든다. 단, 무거운 기구를 드는 근력 운동은 혈압을 상승시킬 수 있으므로 고혈압이 있다면 과격한 운동을 삼가는 것이 좋다.

3. 관절 움직임 증가

유연성을 기르는 운동을 하면 경직되고 뻣뻣한 관절이 풀리면서 몸을 움직이기 수월해진다. 따라서 활동할 때 발생하는 통증이나 관절염을 일으키는 염증도 줄어들게 된다.

4. 나쁜 콜레스테롤 감소

규칙적인 운동은 혈액 순환 장애를 유발하는 나쁜 콜레스테롤(LDL)수치를 떨어뜨린다. 반면 혈관 벽에 쌓인 콜레스테롤을 간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좋은 콜레스테롤(HDL)수치는 높이는 역할을 한다.

5. 수면의 질 향상

적당한 운동은 수면의 질을 향상시킨다. 잠들기 6시간 전쯤 중간 강도의 운동을 하면 피로감이 서서히 쌓이면서 잠들기 좋은 상태가 된다. 과도한 운동이나 잠자기 직전의 운동은 수면 장애를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하는 것이 좋다.

6. 불안감, 우울증 감소

정기적인 운동은 우울증 치료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즐거운 기분을 북돋울 수 있다는 것이다.

7. 심장질환 감소

빠른 도보나 조깅으로 심장박동 수를 높이는 유산소 운동을 하면 심장 기능이 강화된다.

8. 대사율 상승

운동은 몸에 축적된 칼로리를 태울 뿐 아니라 ‘안정 시 대사율’을 높여 휴식을 취할 때도 보다 많은 칼로리를 태울 수 있도록 돕는다.

9. 체력 향상

운동을 하면 체력이 좋아지기 때문에 기능적인 활동을 하기도 쉬워진다. 엘리베이터가 붐빌 때 계단을 이용해도 많은 힘이 들지 않고 물건을 들거나 옮기기도 수월해지는 등 활동 능력이 향상된다.

10. 자신감 상승

운동을 통해 탄탄하고 날씬한 몸매와 균형 잡힌 근육이 생성되면 활동성이 강해진다. 또 생기가 넘치는 만큼 자신감이 상승해 대인관계까지 개선될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61.html
kolaswqetsrq 11.02 00:23
항암식품 제대로 먹는 법

항암식품 제대로 먹는 법

1. 빨간 피망

기름에 살짝 볶아 다른 야채와 섞어 샐러드로 하루 1개를 먹으면 항암 효과가 있는 카로틴과 비타민 E를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특히 빨간 피망이 좋은데,카로틴 함량이 청피망의 2. 8배, 노랑 피망의 5. 5배가 더 많기 때문이다.

2. 단호박

단호박은 암 유전자의 출현과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시키는 식품이다. 호박 안의 색이 샛노랄수록 암 억제 효과가 크며, 기름으로 조리해 먹으면 카로틴을 제대로 흡수할 수있다. 씨에도 비타민이 풍부하므로 버리지 말고, 말려서 먹는다.

✅ 생으로 먹으면 더 좋은 항암식품

3. 바나나

바나나는 몸의 면역성을 높여 주는 백혈구를 활성화시켜 암 예방에 효과적이다. 껍질이 검은 바나나, 푸른 바나나, 노랗게 익은 바나나 순으로 효과가 좋다. 효과 지속 시간이 짧으므로 매일 1~2개씩 생으로 먹는다.

4. 베리류

스트로베리(딸기), 라즈베리(산딸기), 블랙베리(흑딸기),블루베리(청딸기) 등의 과일은 암과 암의 원인이 되는 활성산소를 억제한다. 가열하면 효과가 반으로 떨어지므로 깨끗이 씻어 껍질째 생으로 먹는다. 과당이 많으므로 하루 5개 내외가 적당하다.

5. 참치 & 꽁치

하루 한 번 싱싱한 회로 먹는 것이 최선. 생으로 먹기 힘들다면 굽거나 조려 먹는 것이 튀기는 것에 비해 좋다. 참치와 꽁치에 풍부한 DHA는 발암에 관련되는 효소의 합성을막아 대장암, 유방암, 자궁경부암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6. 레몬

생선이나 고기를 그냥 먹지 말고 탄 부분에 레몬즙을 뿌려 먹는다. 레몬에 풍부한 비타민 C가 탄 음식의 발암 물질을 없애 준다.

7. 감자

감자는 깨끗이 씻어 껍질까지 갈아 즙으로 마시는 것이 가장 좋지만 힘들다면 쪄서 먹는 것도 방법이다. 이때 껍질째 먹는 것이 좋은데, 껍질에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 삶아서 먹으면 더 좋은 항암식품

8. 메밀

메밀에는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이 풍부해 암의 발병과 증식을 억제한다. 껍질이 더 효과적이므로 껍질을 포함한 전체를 원료로 만든 거뭇거뭇한 메밀을 선택한다. 메밀국수로 요리해 국물까지 먹는 것이 좋다.

9. 팽이버섯

된장국이나 전골에 넣어 1일 10g씩 국물과 함께 먹는다. 발암 위험을 없애고, 암을 막는 방어 기능을 강화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10. 야채 수프

당근, 감자, 양배추 등의 야채를 깨끗하게 씻은 뒤 껍질째 썰어 단시간에 가열해 수프를 만든다. 야채를 수프로 만들어 국물까지 먹으면 생으로 먹을 때보다 항암 효과가 50배 이상 높아진다.

✅ 어떻게 먹어도 좋은 항암식품

11. 가지

항암 효과로 잘 알려진 브로콜리에 버금가는 항암 식품이다. 생으로 먹거나 무침,튀김, 절임 등 어떤 조리 방법이든 비슷하게 발암 억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12. 사과

사과의 펙틴은 발암 물질과 활성 산소를 제거하고 배설을 촉진시켜 대장암 예방에 특효약이다. 푸른 사과보다는 붉은 사과로 하루 한 개씩 먹으면 되는데,사과를 가열하면 활성 산소 제거 능력이 더욱 커지므로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는다.

13. 송이버섯

송이버섯은 암세포만 선별해 공격하는 단백질이 있다. 때문에 항암 효과가 뛰어난 버섯 중에서도 효과가 으뜸이다. 직접 불에 굽는 대신 쪄 먹는 것이 좋다.

14. 시금치

피부암과 대장암 억제에 효과적인 루테인이 풍부한 식품으로, 기름에 무쳐 먹으면 효과적으로 섭취할 수 있다. 데칠 때에는 단시간에 빨리 데쳐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하는 것이 요령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88.html
kolaswqetsrq 11.02 00:24
중년 뱃살 영원히 없애는 방법 5가지

중년 뱃살 영원히 없애는 방법 5가지

어떤 사람도 불룩한 아랫배를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칼로리 과잉 섭취 등으로 인해 뱃살이 늘어나고 소위 술배 혹은 똥배로 불리는 불룩한 아랫배를 갖게 된다. 무심코 마시는 맥주 한잔의 열량은 약 150칼로리다. 이런 맥주를 자주 여러 잔 마시게 되면 간은 지방 대신 알코올을 연소시키고 이에 따라 배에 지방이 쌓이면서 뱃살이 생기게 된다. 불룩한 아랫배를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방법 5가지를 소개한다.

1 근력운동을 하라

아랫배가 나왔다면 섭취 칼로리가 소모하는 칼로리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기나 아령 등의 기구를 이용해 하는 근력운동은 근육을 강화시키고 신진대사를 증강시킨다.

근력운동을 하면 몸매가 멋있어질 뿐만 아니라 대사율을 높여 하루 종일 칼로리를 연소시키게 된다. 특히 신체 근육의 60%가 형성되는 다리와 하체의 근력운동에 초점을 맞춰서 하는 게 좋다.

2 술 마시는 양을 점검해 보라

술배를 없애려면 술 마시는 양을 줄여야 한다. 한 가지 방법으로 일주일에 하루만 술을 마시는 것이 있다. 5일은 술이나 탄수화물이 많이 든 음료를 자제하고 딱 하루만 술을 마시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술을 한잔 마실 때마다 물 한 컵을 마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위장을 채워 술이나 다른 칼로리가 높은 음식의 먹는 양을 줄일 수 있다.

3 강도 높은 유산소운동을 하라

30분 이상 가볍게 뛰는 것 이상의 유산소운동을 해야 뱃살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 전력질주나 인터벌 트레이닝 등의 강도 높은 유산소운동이 필요하다.

가벼운 산책이나 달리기만으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뱃살을 제거하려면 이런 운동과 함께 휴식시간을 짧게 해 단시간에 칼로리를 소모시키는 인터벌 트레이닝 등을 병행해야 한다.

4 잠 잘 자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라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잠을 충분히 잘 자면 고 탄수화물 간식에 대한 욕구를 없앨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체중을 줄일 수 있다. 미국 임상영양학저널에 의하면 하루에 8시간30분을 잤을 때 체중 감량 효과가 가장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TV 등을 보는 시간을 줄이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게 좋다. 적당한 수면은 건강 체중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줄이고 기억력을 향상시킨다.

5 적절한 음식을 섭취하라

흰 빵이나 크래커, 칩, 쿠키 같은 정제 곡물과 당분이 많이 든 음식을 많이 먹으면 뱃살을 빼기가 어렵다. 뱃살 즉 복부비만 상태는 염증과 상관성이 있어 염증을 증가시키는 식품들은 최소한으로만 먹어야 한다. 이런 식품 대신 과일, 채소 그리고 통곡물을 섭취하면 항산화제가 풍부해 염증을 막거나 없애 뱃살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20.html
kolaswqetsrq 11.02 00:24
젊을 때처럼 뇌를 생생하게 만드는 방법

젊을 때처럼 뇌를 생생하게 만드는 방법

나이가 들면 뇌 부피는 줄어든다. 뇌 부피가 급속도로 줄면 치매 파킨슨병 뇌경색 뇌출혈, 조기 사망까지 가져올 수 있다. 머리카락, 피부, 장 부위의 세포들은 새롭게 재생되지만 뇌세포는 태어날 때 평생 사용할 세포를 가지고 태어난다. 뇌의 노화를 막는, 뇌를 단련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40세 이상 성인 3명 중 1명은 뇌혈관에 실제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천의과대 길병원 뇌건강센터가 40대 이상 성인 594명을 대상으로 자기공명혈관영상(MRA) 검사, 인지기능검사 등을 거쳐 분석한 결과다.

검사 대상자 중 기억력 저하를 호소한 185명의 뇌를 MRA로 검사한 결과 이들 중 60명(32.4%)에게서 뇌혈관의 일부가 막히거나 좁아져 있는 것이 확인됐다. 특히 뇌혈관이 막힌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인지능력이 떨어졌으며 집중력과 문제해결능력뿐만 아니라 시각적 공간적인 기억력이 전반적으로 감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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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뇌의 노화로 기억력이 나빠졌더라도 낙담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뇌를 잘 쓰며 단련하면 뇌의 전두엽은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일본 알츠하이머병 전문의인 이시우라 쇼이치 박사는 뇌, 새로 고침이라는 책에서 10가지 뇌 건강을 관리하는 수칙들을 제시했다. 다소 평범해 보이는 생활습관이지만 잘 지키면 뇌가 노화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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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2∼3회 이상, 1회 30분 이상 반드시 운동을 한다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균형 있게 하면 좋다. 매일 30분 이상 걷는 것을 추천한다.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은 혈액순환을 돕는다. 체내 혈액순환이 좋아지면 뇌 혈류의 흐름이 좋아져 몸과 뇌의 기능이 활발해진다. 정기적으로 유산소운동을 하면 최대 산소섭취량이 유지되고 산소를 몸속 구석구석까지 보낼 수 있어 몸도 뇌도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 과식은 금물, 균형 잡힌 식생활을 한다

야채를 많이 먹고 지방과 동물성 단백질을 줄이는 것이 기본이다. 육류의 포화지방산은 혈액순환을 악화시키고 동맥경화, 뇌중풍(뇌졸중)의 원인이 된다. 반면 어류에 들어있는 불포화지방산은 혈액 응고를 막고 콜레스테롤을 낮춘다. 식사법은 혈액 순환과 관계가 있다.

동물성 단백질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고 혈관을 딱딱하고 좁게 만든다는 것은 이미 상식하다. 당연히 뇌혈관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과식을 하지 않으면 당연히 고지혈증이나 고혈압도 막을 수 있다. 또 공복일 때 분비되는 식욕증진 호르몬 ‘그렐린’이 뇌에 작용해 뇌 기능을 좋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 뇌건강에 좋은 음식

치매 예방을 염두에 둔다면 엽산을 보충하자. 쇠고기, 버섯, 양배추에는 엽산이 많이 함유돼 있어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소나 닭의 간도 뇌의 인지기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콜린과 레시틴이 많이 함유돼 있어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학습능력을 개선시켜주기 때문이다.

우유, 달걀, 견과류, 육류 등엔 스트레스를 다스리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트립토판과 타이로신이 많이 함유돼 있다. 견과류를 먹는 것도 좋다. 스트레스를 억제하는 마그네슘 성분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초콜릿을 먹으면 즐거운 기분을 느끼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페닐에틸아민이라는 물질이 많이 함유돼 있어 엔도르핀 생성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페닐에틸아민은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수치가 높아질 때 뇌가 자극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 스트레스는 가능하면 피하자

손톱을 깨물고 발을 떠는 습관이 있다, 쉽게 안절부절못한다, 성격이 급하고 인내심이 부족하다, 음주 흡연을 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 만약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면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뇌에 피로가 누적된 게 아닌지 의심해 보자. 뇌는 다른 기관보다 스트레스에 민감하다. 작은 자극에도 뇌세포가 파괴되거나 활동이 위축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혈관이 수축되고 혈압을 상승시켜 혈액이 쉽게 굳고 위점막의 혈류 저하를 초래한다. 노르아드레날린이 자주 분비되면서 심근경색, 뇌경색 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평소 와락 화내는 사람에게 뇌중풍이 생기는 이유다.

▶ 매일 대화를 많이 하자

대화는 신체의 모든 기능을 발휘하게 한다. 대화가 없으면 치매에 걸리기 쉬운 이유다. 중요한 것은 가족 간의 대화다. 오래 세월 서로의 곁을 지켜준 부부가 대화를 주고받고 자녀와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면 뇌에 자극을 줄 수 있다.

▶ 호기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라

호기심은 뇌 안의 물질인 도파민과 깊은 관련이 있다. 기쁨과 쾌락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적당히 분비되면 정보전달이 원활해지고 뇌를 잘 쓸 수 있다. 작심삼일로 끝난다고 해도 도전해본다. 의욕과 호기심을 갖는 한 뇌는 활발히 움직인다.

▶ 세 살 공부 여든까지 하자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고 과거의 경험만으로 일을 한다면 뇌는 점차 쇠약해진다. 일상적인 일들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에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꾸 반복하다 보면 어느 정도 이를 극복할 수 있다.

▶ 마감 기한과 목표를 정하자

바둑을 두는 사람은 급수를 따겠다는 목표를,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이 곡만큼은 연주해보겠다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 일의 집중력과 속도를 높일 수 있고 이는 뇌를 활성화시킬 가장 좋은 방법이다.

▶ 자신에게 성공 보수를 주자

보수를 기대하면 도파민이 활발하게 분비된다. 나이가 들면 성과는 당연해지고 칭찬은 들리지 않는다. 사회에서 보수를 주지 않는다면 목표를 달성했을 때 스스로 보수를 주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방법이다.

▶ 독서는 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책을 읽으면 뇌의 언어를 관장하는 부위와 함께 여러 부위가 함께 움직인다. 언어는 뇌의 기본 능력이므로 독서는 뇌의 기초체력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소리 내어 책을 읽는 음독도 권할 만하다. 명확히 발음해 읽고 귀로 소리를 들으면 뇌의 여러 기능을 한꺼번에 사용하게 된다.

▶ 의식적인 생활로 뇌에 부담을 주자

무엇이든 익숙해지면 특별히 신경을 기울이지 않고도 능률적으로 할 수 있다. 뇌의 시냅스가 잘 연결돼 있어 일처리 방식에 따라 신속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뇌가 에너지를 절약하는 요령이다. 따라서 복잡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 뇌에 부담을 줘야 뇌가 깨어있게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68.html
kolaswqetsrq 11.02 00:25
방모두단房謀杜斷 – 방현령의 지모와 두여회의 결단력

방모두단(房謀杜斷) – 방현령의 지모와 두여회의 결단력

방 방(戶/4) 꾀 모(言/9) 막을 두(木/3) 끊을 단(斤/14)

어지러운 亂世(난세)에 반하여 나라를 잘 다스린 시대를 治世(치세)라 한다. 잘 알려진 貞觀之治(정관지치)는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했고, 문화를 꽃피웠다는 唐(당)나라 2대 황제 太宗(태종)의 치세(626∼649)를 일컫는 말이다. 태종이 훌륭한 정치를 베풀 때의 연호가 貞觀(정관)이다.

물론 임금 혼자의 힘으로 나라를 잘 다스린 것이 아니라 뛰어난 신하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굽힐 줄 모르는 直諫(직간)으로 태종을 괴롭혔던 魏徵(위징, 580~643)과 함께 房玄齡(방현령, 578~648), 杜如晦(두여회, 585~630) 등이 그들이다.

이들 중 방현령의 지모(房謀)와 두여회의 결단력(杜斷)이란 말에서 나온 것이 이 성어다. 구성원 각자가 특색이 있고 장점이 있는데 이것을 잘 조화시켜 일을 원만하게 해 나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지략이 있어도 추진력이 없으면 일이 안 되고, 또 그것을 아울러 이끄는 지도력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중앙집권제를 확립하고 영토를 확장하여 당 왕조의 기초를 튼튼히 한 태종에겐 좌우로 방현령과 두여회라는 명재상이 있어 조건이 완비되어 있었다.

房杜(방두)로도 불린 이들 두 명신은 개국 초기의 모든 제도와 법령도 협의하여 만들었다. 두 사람은 장점이 달라서 두여회는 결론을 내리는데 과감했고, 방현령은 일을 도모하는데 뛰어났다(如晦長于斷 而玄齡善謀/ 여회장우단 이현령선모). 매번 황제의 처소에서 국사를 논할 때마다 방현령은 훌륭한 계책과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지만 결단을 머뭇거릴 때가 많았다.

태종은 그때마다 두여회를 불러 의견을 묻고 분석토록 했는데 즉시 방현령의 계책을 지지하면서 명쾌하게 추진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마음으로 태종을 보필할 수 있었다. ‘新唐書(신당서)’와 ‘舊唐書(구당서)’ 모두 다 실려 있다.

일을 맡아 처리할 때 멋진 아이디어를 내고도 실행 방법이 잘못돼 그르칠 수 있다. 한 계책을 추진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 나올 수가 있다. 여러 계책과 실천하는 길 중에서 가장 나은 방법을 채택하는 길은 항상 소통하는 지도자의 식견과 결단력이다. 항상 좋은 지략과 바른 실행 방법을 알려주는 방모와 두단이 있으면 금상첨화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20.html
kolaswqetsrq 11.02 00:26
과이능개過而能改 - 허물을 인정하고 능히 고칠 수 있다.

과이능개(過而能改) - 허물을 인정하고 능히 고칠 수 있다.

지날 과(辶/9) 말이을 이(而/0) 능할 능(肉/6) 고칠 개(攵/3)

많은 사람들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 것보다 뉘우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는 격언이 있다. 그만큼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잘못이 없을 수 없고, 뉘우침으로써 마음에서 해방되려 한다. 하지만 뉘우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잘 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란 속담대로 일이 안될 때 그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것이 상정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오를 고쳐 改過遷善(개과천선)이 있도록 孔子(공자)는 좋은 말을 많이 남겼다. ‘과오는 아무 거리낌 없이 고쳐야 한다(過則勿憚改/ 과즉물탄개)’거나 ‘잘못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잘못이다(過而不改 是謂過矣/ 과이불개 시위과의)’ 등이다.

잘못을 인정(過而)하고 능히 고칠 수 있다(能改)는 이 성어는 論語(논어)가 아닌 ‘左氏傳(좌씨전)’에서 유래했다.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의 靈公(영공)은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올라 장성한 뒤에도 제멋대로인 昏君(혼군)이었다. 성내에 桃園(도원)을 설치하여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을 넘어 누대에서 재미로 탄환을 쏘아 백성들을 다치게 하는 등 사치와 난폭을 일삼았다.

곰 발바닥 요리를 입맛에 맞지 않게 했다고 요리사를 토막 내는 만행도 저질렀다. 이를 보다 못한 대부 士會(사회)와 원로대신 趙盾(조돈, 盾은 방패 순, 사람이름 돈)이 차례로 간하기로 했다. 한꺼번에 간하다 죽음을 당하면 이을 사람이 없어서였다.

어렵게 찾아간 사회에게 영공이 대뜸 말했다. ‘나도 잘못을 알고 있으니 이제부터 고치겠소(吾知所過矣 將改之/ 오지소과의 장개지).’ 사회는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으나 그것을 능히 고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습니다(人誰無過 過而能改 善莫大焉/ 인수무과 과이능개 선막대언)’고 간곡히 말했다. 영공이 단번에 고칠 리가 없어 조돈이 다시 조목조목 따졌다. 귀찮아진 영공이 간신 屠岸賈(도안고)와 함께 주연을 베풀고 없애버릴 계획을 세웠다. 수하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조돈은 이웃 나라로 피신했다.

말로만 잘못을 안다고 순간을 회피하려 한 영공은 물론 오래가지 못했다. 원성이 하늘을 찌른 끝에 바로 조돈의 종제인 趙穿(조천)에게 죽음을 당했다. 모든 백성이 환호한 거사였음에도 재상인 조돈이 영공을 시해했다고 한 것이 바로 董狐直筆(동호직필)이다. 이러한 엄격한 필법과는 상관없이 잘못을 알면서도 그것을 고치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부작용이 드러나도 고치는 것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시행한 정책을 고치지 않는 것도 바로 공자가 말한 대로의 잘못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161.html
kolaswqetsrq 11.02 00:26
마정방종摩頂放踵 - 정수리부터 발꿈치까지 닳아 없어지다, 자기를 돌보지 않고 남을 사랑하다.

마정방종(摩頂放踵) - 정수리부터 발꿈치까지 닳아 없어지다, 자기를 돌보지 않고 남을 사랑하다.

문지를 마(手/11) 정수리 정(頁/2) 놓을 방(攵/4) 발꿈치 종(足/9)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온 힘을 다하여 일을 할 때 粉骨碎身(분골쇄신)이라 한다. 원뜻대로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질 정도는 아니라 해도 못지않은 과장의 말이 있다. 머리 꼭대기부터 갈아 닳아져서(摩頂) 발꿈치까지 이른다(放踵)는 이 성어다. 자기 일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기보다 온몸을 바쳐 남을 사랑하고 타인에 희생한다는 뜻이 담겨 더 고귀하다.

孟子(맹자)가 兼愛說(겸애설)을 주장한 墨子(묵자)를 가리켜 이렇게 표현한 것이 ‘맹자’ 盡心(진심) 상편에 실려 전한다. 性善說(성선설)의 맹자가 유가에 대립되는 묵자를 이렇게 평가한 것은 그만큼 利他(이타)의 사랑엔 인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본명이 墨翟(묵적)인 묵자는 孔子(공자)와 거의 같은 시기의 사람으로 처음에는 유학도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신분의 고하와 재산의 빈부, 힘과 지식의 우열에도 모두 평등해야 한다는 점에서 번거로운 예의를 숭상하는 유가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타를 구별화지 않는 묵자의 평등, 박애 사상은 상류층에 고통 받는 백성들에 큰 인기를 끌어 천하의 학설이 한때 爲我說(위아설)을 주장한 楊朱(양주)와 겸애설의 묵적에 모두 돌아갔다고 맹자가 한탄했다. 양주의 자기만의 쾌락 추구와 묵자의 차별 없는 사랑은 군주와 어버이를 부정하는 것이라 비판한 것이다.

그래 놓고서 魯(노)나라의 현자 子莫(자막)과 함께 세 사람을 평가한 대목에서는 점수를 준다. 양주는 나만을 위할 것을 주장해 천하를 이롭게 하는데 자기의 털 한 올도 뽑지 않는다며 이어간다. ‘묵자는 차별 없는 사랑을 주장해 정수리부터 발뒤꿈치까지 닳아 없어지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했다(墨子兼愛 摩頂放踵利天下 爲之/ 묵자겸애 마정방종리천하 위지).’ 또 중간을 택한 자막에 대해서는 그것을 붙잡기만 하고 융통성이 없다면 집착과 같다며 좋은 것이 아니라 했다. 군신과 친족은 차등이 있어야 함에도 모든 사람을 위한 사랑에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랑의 차이는 별개로 하고 단체나 나라를 위해서 분골쇄신하겠다고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는 지도자일수록 실천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묵묵히 남을 위한다. 국토를 방위하는 장병들이나 항상 사고에 대비하는 119 소방대원 등이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인간사회에 재앙을 뿌리는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 자신의 감염위험을 개의치 않는 의사나 간호사들이다. 온 몸을 감싼 방호복으로 땀에 뒤범벅된 모습에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성할 데가 없이 희생하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97.html
kolaswqetsrq 11.02 00:27
이령지혼利令智昏 -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만든다.

이령지혼(利令智昏) -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만든다.

이할 리(刂/5) 하여금 령(人/3) 슬기 지(日/8) 어두울 혼(日/4)

눈앞에 이익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는 완전히 초월한 도인이 아니고선 없을 것이다. 그 이익이 합당한 것이 아니면 취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많다. 孔子(공자)는 ‘이익에 끌려 행동하면 원망이 많아진다(放於利而行 多怨/ 방어리이행 다원)’라 했고 孟子(맹자)는 梁惠王(양혜왕)에게 인과 의를 말씀하지 않고 어찌 이익을 찾느냐고 면박 준다(何必曰利/ 하필왈리). 그러나 이런 성인이 꾸짖더라도 인간은 날 때부터 이기적이니 누구나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아 이익에 눈이 어둡게 되면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하게 되니 탈이다.

利令智昏이 바로 이익은 지혜를 혼미하게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성어다. 이익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라는 見利思義(견리사의)나 이름을 돌아보며 의를 생각하라는 顧名思義(고명사의)와 대조적이다.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韓(한)나라가 秦(진)의 침략을 받았을 때 이웃 성의 성주 馮亭(풍정, 馮은 성 풍)이 망하기 직전 趙(조)나라에 성을 넘겨줄 테니 보호해 달라고 했다.

왕이 대신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한 사람은 명분 없는 이익을 추구하면 재앙을 초래한다며 반대했고 平原君(평원군)은 대가없이 주는데 안 받으면 어리석은 일이라며 접수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왕이 평원군을 따라 趙括(조괄)을 대장군으로 하여 출병시키자 분노한 진나라는 白起(백기) 장군에 대군을 주어 잔인한 살육전을 펼쳤다. 조괄은 전사하고 40만 조나라 군사는 생매장을 당했다. 이것이 유명한 長平(장평)전투다.

司馬遷(사마천)이 ‘史記(사기)’에서 평원군을 평하면서 이 말을 썼다. ‘그는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능력과 지혜가 빛났던 공자였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에는 어두웠다.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한다(利令智昏)고 했는데 잘못 판단하여 40만 군사를 잃고 도읍인 邯鄲(한단, 邯은 조나라서울 한, 鄲은 한단 단)마저도 잃을 뻔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25.html
kolaswqetsrq 11.02 00:28
노마지지老馬之智 - 늙은 말의 지혜

노마지지(老馬之智) - 늙은 말의 지혜

늙을 로(老/0) 말 마(馬/0) 갈 지(丿/3) 지혜 지(日/8)

늙은 말이면 인간 사회에선 뒷방 늙은이 퇴물이다. 이 늙은 말의 지혜(老馬之智)를 잘 끌어내어 위기를 모면한 이야기에서 이 성어가 나왔다. 작금 우리나라는 모든 문제에서 첨예하게 대립되는 갈등사회다.

조금도 손해 보려 하지는 않고 상대방의 양보만 강요하여 늘상 시끄럽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원로들의 경험과 지혜가 녹은 일침이다. 하지만 모두 존경하는 종교인 등 원로들이 세상을 뜬 뒤부터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탓에 웬만해선 어른들이 나서지 않는다. 하찮은 동물 말의 지혜도 빌렸는데 원로들의 경험을 사장할 판이다.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桓公(환공)을 도와 齊(제)나라를 부국의 지위에 올린 명재상 管仲(관중)과 관련된 이야기가 ‘韓非子(한비자)’에 나온다. 환공이 관중과 대부 隰朋(습붕)을 거느리고 소국 孤竹(고죽)을 공격한 일이 있었다. 간단히 제압할 줄 알았던 소국과의 싸움이 의외로 길어져 그해 겨울에야 겨우 철수를 시작했다. 그런데 혹한 속에 귀국을 서두른 나머지 제나라 병사들은 길을 잃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게 되었다. 이때 관중이 나서 안심시켰다.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老馬之智). 그들이 우리를 안내해 줄 것이다.’ 앞장세운 말이 고스란히 봄에 왔던 길을 찾아 갔기 때문에 무사히 회군할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산길을 행군하다 식수가 떨어져 갈증에 시달렸다. 이번엔 습붕이 나섰다. ‘개미는 겨울철엔 산 남쪽 양지에 집을 짓고 산다. 흙 쌓인 개미집 땅 속을 파면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개미집을 찾아 파 내려가니 과연 물이 나와 갈증을 벗어났다.

‘지혜로운 관중과 습붕이라도 알지 못하는 일에 봉착하면 늙은 말과 개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런데도 지금 사람들은 성인의 지혜를 본받을 줄 모른다‘고 2200년이나 앞선 시대에 한비자가 개탄했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30.html
kolaswqetsrq 11.02 00:29
사본축말捨本逐末 - 기본을 버리고 지엽적인 것을 쫓다.

사본축말(捨本逐末) - 기본을 버리고 지엽적인 것을 쫓다.

버릴 사(扌/8) 근본 본(木/1) 쫓을 축(辶/7) 끝 말(木/1)

‘뿌리 없는 나무가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말은 모든 사물에는 근본이 있다는 뜻이다. ‘물은 근원이 없어지면 끊어지고 나무는 뿌리가 없어지면 죽는다’고 모두 근본을 중시했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으로 돌린다는 狐死首丘(호사수구)는 난 곳을 그리워하는 것을 나타냈다. 짐승도 그러한데 사람은 더하다. 막돼먹은 짓을 하면 근본도 없는 놈이라고 호통 친다. 원래 있을 자리에 있지 않고 발이 위에 있는 足反居上(족반거상)이나 머리에 쓸 관이 신발과 자리가 바뀐 冠履倒置(관리도치)는 사물의 위치가 뒤집힌 것을 뜻했다. 本末倒置(본말도치)와 같다.

정작 필요한 본질적인 것을 버리고(捨本) 지엽적인 것을 쫓는다(逐末)면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지 못해 일을 그르친다. 중국 前漢(전한)의 왕족 출신으로 많은 저작을 남긴 劉向(유향)은 특히 ‘戰國策(전국책)’으로 잘 알려졌다.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에 활약한 전략가들의 일화를 흥미진진하게 엮어 春秋時代(춘추시대)를 잇는 시대를 명명했을 정도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齊策(제책) 부분에 백성이 근본이고 왕은 그에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 부분이 나온다.

趙(조)나라의 威后(위후)는 惠文王(혜문왕)의 사후 아들이 孝成王(효성왕)에 오르자 수렴청정을 하며 슬기롭게 난국을 이끌었다. 秦(진)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친정 나라인 齊(제)에 구원병을 청하여 막아내기도 하는 등 명망이 높았다. 제나라 襄王(양왕)이 어느 때 사신을 위후에 보내 국서를 전달하게 했다. 위후가 사신을 맞아 농사는 어떤지 백성들은 평안한지 물었다. 왕의 안부를 먼저 묻지 않았다고 사신이 지적하자 위후가 백성 없는 왕이 어디 있겠느냐며 답했다. ‘그렇게 한다면 근본을 버리고 지엽적인 것을 묻는 것과 같습니다(故有問 舍本而問末者耶/ 고유문 사본이문말자야).’ 집 舍(사)는 버릴 捨(사)의 뜻도 있다.

지엽말단에만 매달려 일을 하다 보면 전체의 줄기를 잃어 실패하기 쉽다. 본질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서 파생될 문제점을 점검하여 대비해야 한다. 그렇다고 근본만 중요하다고 하여 이론대로 신념을 굽히지 않으면 종교에서 문제가 되는 근본주의, 펀더멘털리즘(fundamentalism)이 되기 쉽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해 끊임없는 분란이 일어난다. 다른 사람도 옳을 수 있으므로 상대존중 傾聽(경청)이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43.html
kolaswqetsrq 11.02 00:30
마이동풍馬耳東風 – 말의 귀에 동풍이 지나가다, 말을 흘려듣다.

마이동풍(馬耳東風) – 말의 귀에 동풍이 지나가다, 말을 흘려듣다.

말 마(馬/0) 귀 이(耳/0) 동녘 동(木/4) 바람 풍(風/0)

말의 귀로 동풍이 스쳐 지나가도 무엇이 갔는지 알 턱이 없다. 아무리 이렇게 하라고 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이런 사람과 마주 하려면 속 터진다. 알아듣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을 말할 때 관련 속담이나 성어가 많다. ‘쇠귀에 경 읽기’, ‘말귀에 염불’, ‘담벼락하고 말하는 셈이다’ 등을 번역이나 한 듯이 들어맞는 말이 牛耳讀經(우이독경), 對牛彈琴(대우탄금)이다. 가을바람이 귀를 스쳐갔는데도 무엇이 지나갔는지 시치미를 떼고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秋風過耳(추풍과이)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비슷한 뜻의 많은 성어 중에서도 말 귀로 동풍이 스쳐간다는 이 말이 가장 유명한데 출처가 唐(당)나라 李白(이백, 701~762)의 시구에서 나와 가치를 높인다. 詩仙(시선)이라 불리는 이백은 그러나 혼돈의 시기에 태어나 이상을 펴보지도 못하고 술과 시로 보낸 불운의 시인이었다. 이백은 王去一(왕거일)이란 지인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한탄하며 불우한 처지를 적어 보낸 시 ‘寒夜獨酌有懷(한야독작유회)’에 공감했다.

겨울 밤 밝은 달 아래 독작을 하고 있을 그를 생각하며 지금 세상은 당시 왕족들 사이에서 인기 있던 鬪鷄(투계)의 기술도 없고, 변경의 싸움에서 작은 공을 세워 충신이나 된 듯이 날뛰는 세상에서 흉내도 낼 수 없는 처지를 한탄했다. 그러면서 이백은 답한다. ‘북창에 기대 앉아 시를 읊고 부를 짓는다지만(吟詩作賦北窓裏/ 음시작부북창리), 수많은 말이라도 술 한 잔 가치도 없네(萬言不直一杯水/ 만언부직일배수), 세상사람 이를 듣고 머리를 흔드는 것이(世人聞此皆掉頭/ 세인문차개도두), 마치 동풍이 말귀를 스치고 지나는 듯하구나(有如東風射馬耳/ 유여동풍사마이).’ 자신들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한탄하며 훗날 올바른 평가를 기다리자는 당부도 곁들였다.

사회생활에서 자신의 의견만 고집할 수는 없다. 자신이 생각하면 가장 좋은 방안인데도 다른 사람들은 그르다고 한다. 이럴 때는 한 발 물러서 다시 검토한다. 조그만 조직도 의견이 대립될 때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 하물며 국사를 논하는 국회에서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일이 다반사다. 상대 당의 의견은 말귀에 스치듯 흘려버리는 일이 없어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56.html
kolaswqetsrq 11.02 00:30
노화삽관蘆花揷冠 - 갈대꽃을 관에 꽂다, 비밀리에 찬성 여부를 확인하다

노화삽관(蘆花揷冠) - 갈대꽃을 관에 꽂다, 비밀리에 찬성 여부를 확인하다

갈대 로(艹/16) 꽃 화(艹/4) 꽂을 삽(扌/9) 갓 관(冖/7)

비밀리에 모여 어떤 결의를 할 때 자신들의 편인지 반대하는 측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럴 때 동의 반대를 알아보는 행위로 左袒(좌단)이란 말이 있다. 왼쪽 소매를 걷는다는 뜻이다. 중국 前漢(전한)때 呂后(여후)의 국정농단을 뿌리 뽑기 위해 공신 周勃(주발)이 내린 지령에서 나왔다. 군대를 모아놓고 왕실 바로잡기에 찬성하는 사람에게 왼쪽 소매를 벗으라고 하자 모두 호응하여 거사에 성공했다. 이와 유사한 高句麗(고구려) 때의 이야기도 있다. 갈대꽃(蘆花)을 모자에 꽂으라(揷冠)는 말로 어떤 일에 찬성 여부를 비밀리에 확인하는 일을 뜻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정사 ‘三國史記(삼국사기)’ 권17에 실린 고구려 15대 美川王(미천왕)의 옹립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쥘 만큼 흥미진진하다. 서기 280년 13대 西川王(서천왕, 재위 270~292) 때 만주의 肅愼(숙신)족이 변경을 침략해 백성을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했다. 여러 신하의 추천으로 서천왕은 아우 達賈(달고)를 대장으로 삼아 퇴치하도록 했다. 달고는 뛰어난 지략으로 이들을 물리치고 그 지역의 여러 고을을 평정하자 백성들은 침이 마르도록 그의 공을 칭송했다.

서천왕이 죽고 뒤를 이어 즉위한 아들 烽上王(봉상왕, 재위 292~300)은 평판 좋은 숙부 달고와 왕의 아우 咄固(돌고, 咄은 꾸짖을 돌)를 누명을 씌워 처단했다. 돌고의 아들 乙弗(을불)은 화를 피해 피신하여 고용살이와 소급장수 등 온갖 고생을 다했다. 봉상왕이 사치와 향락으로 인심을 잃자 國相(국상)으로 있던 倉租利(창조리)는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왕손 을불을 찾게 했다. 뱃사공으로 변신한 을불을 찾아 도성에 숨겨놓고 왕의 사냥 때 창조리는 거사를 선언했다. ‘나와 뜻을 같이 할 사람은 따르라고 하며 갈대 잎을 관에 꽂았다(與我同心者 効我 乃以蘆葉揷冠/ 여아동심자 효아 내이로엽삽관).’

학정에 지친 군사와 백성들이 너도나도 갈대 잎을 꽂으니 창조리 이하 중신들은 바로 왕을 폐하고 을불을 모셔 와 옥새와 인수를 바쳤다. 15대 왕이 된 미천왕(재위 300~331)은 玄菟郡(현도군, 菟는 호랑이 도, 새삼 토), 樂浪郡(낙랑군) 등 漢四郡(한사군)을 빼앗아 국토확장에 큰 업적을 남겼다. 민심과 동떨어진 악정을 펼치던 왕은 백성들에 의해 쫓겨났다. 고구려 때의 이런 교훈을 잊었던 오늘의 우리나라도 경험한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23.html
kolaswqetsrq 11.02 00:31
추주어륙推舟於陸 - 육지에서 배를 밀다.

추주어륙(推舟於陸) - 육지에서 배를 밀다.

밀 추(扌/8) 배 주(舟/0) 어조사 어(方/4) 뭍 륙(阝/8)

이치에 맞지 않는데도 억지로 일을 밀어붙인다. ‘홍두깨로 소를 몬다’는 속담이 잘 나타냈다. 바른 길인 줄 알고 일을 처리하는데 잘못이 드러났지만 모른 체 계속한다. 그럴 뿐 아니라 자신이 택한 길이 옳다고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러한 사람이 예나 지금이나 많은지 나타내는 성어는 많다. 牽强附會(견강부회), 我田引水(아전인수)가 있고 漱石枕流(수석침류)와 指鹿爲馬(지록위마)는 이 난에서도 소개했다. 육지에서 배를 민다는 이 성어도 고집으로 일을 무리하게 밀고 나가려고 하는 것을 꼬집는 말이다.

道家(도가)의 대표적 사상가 莊周(장주)의 저작 ‘莊子(장자)’에 이 성어가 나온다. 처음 책은 10만여 자에 달하는 대작이었다는데 대부분 표현이 재미있는 寓言寓話(우언우화)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장자는 꾸며낸 이야기지만 漁夫(어부), 盜跖(도척, 跖은 밟을 척)편 등에서 孔子(공자)를 비꼬아 특이하다. 형이상학적인 사유와 자연을 추구한 장자는 세속적이고 형식을 중시한 공자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天運(천운)편에 실린 내용에도 장자의 입장에서 공자의 행동을 반박한다. 魯(노)나라 음악장인 太師(태사) 師金(사금)이란 사람의 입을 빌어서다.

공자 제자 顔淵(안연)이 衛(위)나라로 유세를 떠난 스승의 앞날에 대해 묻자 사금이 욕을 보실 거라며 대답한다. 물위를 가려면 배만한 것이 없고 땅에서는 수레 이용이 좋다면서 설명이 이어진다. ‘옛날 주나라와 노나라의 차이는 배와 수레의 차이인데, 옛날의 도를 노나라에서 행하려고 하면 마치 배를 육지에서 미는 것과 같아, 애를 쓰나 공이 없고 그 몸에는 반드시 재앙이 올 것입니다(周魯非舟車與 今蘄行周於魯 是猶推舟於陸也 勞而無功 身必有殃/ 주로비주거여 금기행주어로 시유추주어륙야 노이무공 신필유앙).’ 蘄는 풀이름, 구할 기. 공자를 무한한 변전의 도를 모른다고 비판한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96.html
kolaswqetsrq 11.02 00:32
수주대토守株待兎 –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다, 어리석게 요행을 바라다.

수주대토(守株待兎) –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다, 어리석게 요행을 바라다.

지킬 수(宀/3) 그루 주(木/6) 기다릴 대(彳/6) 토끼 토(儿/5)

누구나 자신을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덜떨어진 사람이라도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찬한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재주 있는 사람을 속이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이러니 보통의 상식으로도 뻔히 알 수 있는 길을 두고 샛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자신은 자칭 현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法句經(법구경)"에 깨우치는 말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다고 스스로 생각하면 벌써 어진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이 어질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심히 어리석은 것이다(愚者自稱愚 常知善默慧 默人自稱智 是謂愚中甚/ 우자자칭우 상지선묵혜 묵인자칭지 시위우중심).‘

어리석은 행동을 꼬집는 말은 많지만 농부가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고 앉아(守株) 토끼가 부딪쳐 죽는 것을 기다린다(待兎)는 이 성어가 가장 유명하다. 어리석고 고지식하여 힘들이지 않고 요행수를 바라거나, 융통성은 없이 구습과 전례만 고집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줄여서 守株(수주) 또는 株守(주수)라고도 한다. 중국 法家(법가)의 확립자 韓非(한비)가 쓴 ‘韓非子(한비자)’의 五蠹(오두, 蠹는 좀 두)편에 나온다.

다섯 가지 좀은 五賊(오적)과 같이 나라를 갉아먹어 황폐하게 하는 사람들을 지칭했다. 春秋時代(춘추시대) 宋(송)나라의 한 농부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밭 가운데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토끼 한 마리가 튀어나오다가 부딪쳐 죽었다. ‘농부는 쟁기를 풀어 놓고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얻으려 했지만 한 마리도 얻지 못했다(因釋其耒而守株 冀復得兎 兎不可復得/ 인석기뢰이수주 기부득토 토불가부득).’ 耒는 쟁기 뢰. 밭갈이는 작파하고 가만히 앉아 토끼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으니 농사가 잘 될 리가 없다. 요행을 바라다 농사 망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만 당했다. 한비자는 堯舜(요순)의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이라며 그루터기를 지키는 농부와 같다고 했다.

자신에게 행운이 비켜간다며 하염없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모두 어리석다고 할 것이다. 남의 어리석음을 비웃기는 쉽지만 막상 자신의 행위는 모르기 쉽다. 행운이 찾아오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사람에게 하늘이 도와준다. 자신을 알고 남의 실패담을 교훈삼아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11.html
kolaswqetsrq 11.02 00:33
괴기치재 乖氣致災 - 어그러진 기운이 재앙을 불러 오다.

괴기치재 (乖氣致災) - 어그러진 기운이 재앙을 불러 오다.

어그러질 괴(丿/7) 기운 기(气/6) 이를 치(至/4) 재앙 재(火/3)

불여튼튼이란 말을 흔히 쓴다. 같지 않다는 不如(불여)에 갖다 붙여 자주 쓰는 조어로 보이지만 사전에도 올라 있다. 모든 일에 튼튼하게 대비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뜻이다. 한술 더 떠 萬事不如(만사불여)튼튼이라고 까지 한다. 일이 터지기 전에 잘 준비하라는 교훈이다. 그런데도 갑작스런 사고나 재해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은 알면서도 대비를 게을리 했거나, 눈가림으로 대충 했을 경우가 많아 人災(인재)라고 욕을 먹는다.

어그러진 기운(乖氣)이 재앙에 이르게 된다(致災)는 이 성어는 사소한 조짐을 놓쳤다가 나중 큰 화를 입게 되는 것을 뜻한다. 乖(괴)는 서로 어긋나 동떨어진 상태를 이르는 乖離(괴리)나 마음은 끌리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는 牽攣乖隔(견련괴격, 攣은 손발굽을 련) 등 어려운 말에 쓰인다.

이 성어는 먼저 나오는 ‘後漢書(후한서)’에 전해지는 말이라면서 전한다. 四知先生(사지선생)이라 불린 청렴의 대명사 後漢(후한)의 楊震(양진) 열전에 언급된다. ‘화합된 기운은 상서로움을 불러오고, 어그러진 기운은 재앙을 불러온다(和氣致祥 乖氣致災/ 화기치상 괴기치재)’라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기운이 먼저 뻗친다고 했다.

이 짧고도 대조적인 명구는 우리나라의 고전에서 약간씩 바뀌면서 더 많이 사용됐다. 栗谷(율곡) 李珥(이이, 1536~1584, 珥는 귀고리 이)의 선조를 위한 제왕학 ‘聖學輯要(성학집요)’ 내용을 옮겨보자. ‘임금이 능히 선정을 행하여 화한 기운이 위에 감응하면 아름다운 상서가 이르고, 무도한 일을 많이 행하여 괴이한 기운이 감응되면 재앙이 일어납니다(人君能行善政 和氣感乎上 則休祥至焉 多行非道 乖氣感乎上 則災異作焉/ 인군능행선정 화기감호상 즉휴상지언 다행비도 괴기감호상 즉재이작언).’

孤山(고산) 尹善道(윤선도, 1587~1671)의 상소에는 ‘화기는 상서를 불러오고 괴기는 혼란을 불러오는 법이니 외구가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내치의 부족에서 기인한다(和氣致祥 乖氣致亂 外寇之興 必因內治之不足/ 화기치상 괴기치란 외구지흥 필인내치지부족)’라고 썼고, 實錄(실록)이나 承政院日記(승정원일기) 등에는 和氣致祥 乖氣致異(화기치상 괴기치이)로 이변이 따른다고 했다. 질병이나 재난은 미리 철저히 대비하면 대부분 막을 수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46.html
kolaswqetsrq 11.02 00:33
덕본재말德本財末 - 덕이 근본이고 재물은 맨 나중

덕본재말(德本財末) - 덕이 근본이고 재물은 맨 나중

큰 덕(彳/12) 근본 본(木/1) 재물 재(貝/3) 끝 말(木/1)

德(덕)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이상을 실현해나가는 인격적 능력이라고 사전은 풀이한다. 이렇게 말해도 철학이나 종교의 중심적 과제인 덕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덕이 무엇인가’ 하고 동서양의 철인들이 말한 것도 아리송하다. ‘동등한 모든 사람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덕에 있다’, ‘덕은 힘을 정복한다’ 등은 서양 격언이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군자지덕풍 소인지덕초)’은 孔子(공자)말씀이고, ‘덕은 재주의 주인이요, 재주는 덕의 종(德者才之主 才者德之奴/ 덕자재지주 재자덕지노)’이란 말은 菜根譚(채근담)에 나온다.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는 것이 덕이라 해도 유교의 四書(사서)중의 하나인 ‘大學(대학)’에 흥미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 대학은 아주 짤막하여 원래 禮記(예기)의 한 편이던 것을 독립시킨 것이다. 經(경) 1장은 공자의 말을 曾子(증자)가 기술했고, 傳(전) 10장은 증자의 제자가 기술했다고 한다. 첫 부분에 ‘대학의 도는 자신의 밝은 덕성을 밝히는 데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대학지도 재명명덕)‘고 나온다. 인간은 누구나 선한 본질을 갖고 태어나는데, 먼지를 벗겨내고 세속의 욕심을 이겨내야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덕은 근본(德本)이고 재물은 말단(財末)이란 이 성어도 선후를 잘 깨달아 근본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덕에 신중을 기하여 덕으로 사람들을 끌어야 한다며 실제는 나라를 다스리는 군자의 마음가짐을 말한 것이지만 일반인에게 해당되기도 한다. 이어지는 말은 이렇다. ‘덕이 근본이고 재물이 말단인데, 근본을 소홀히 하고 말단을 가까이 하면 백성들이 이익을 다투어 서로 빼앗게 된다(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덕자본야 재자말야 외본내말 쟁민시탈). 덕이 앞서지 않으면 분란이 끝이 없다는 이야기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깨끗한 재물은 비난받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결탁하여, 다른 사람을 속여, 아니면 부당한 투기로 재산을 끌어 모은 졸부들은 근본인 덕을 무시했기에 세상에 자기뿐인 줄 안다. 또 그 자녀들은 금수저를 갖고 태어나 더 眼下無人(안하무인)의 갑질을 일삼는 경우가 많다. ‘덕으로 패한 일 없고 악으로 이룬 일 없다’고 한 옛 가사의 말을 사회에 발 디딜 때부터 빚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에겐 도저히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38.html
kolaswqetsrq 11.02 00:34
슬행마시膝行馬矢 - 무릎걸음으로 말똥 위를 기다, 누구에게나 아첨하다.

슬행마시(膝行馬矢) - 무릎걸음으로 말똥 위를 기다, 누구에게나 아첨하다.

무릎 슬(肉/11) 다닐 행(行/0) 말 마(馬/0) 화살 시(矢/0)

돈이나 권세 있는 자에게 알랑거리는 阿諂(아첨)을 모두들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인간은 아첨하는 동물’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자신도 모르게 힘 앞에 무력해지는 사람은 많다.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왔다 갔다 하면서 살살 듣기 좋은 소리로 비위 잘 맞추는 사람은 ‘오래 해 먹은 面主人(면주인)’이라는 속담으로 남았다. 비슷한 성어는 많은데 이중에 몇 개만 보면 奴顔婢膝(노안비슬), 五方猪尾(오방저미), 搖民乞憐(요민걸련), 長立待令(장립대령) 등이다. 仰人鼻息(앙인비식)이나 嘗糞之徒(상분지도)는 아첨의 최고봉이다.

변까지 핥는 냄새나는 嘗糞(상분)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말똥(膝行) 위에서 무릎으로 긴다(膝行)는 이 성어도 못지않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지조와 체면을 내던지고 여기저기 누구에게나 아첨하는 것을 가리켰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徐居正(서거정, 1420~1488)은 여러 중요저작 외에 설화문학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太平閑話滑稽傳(태평한화골계전)’도 남겼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각계서 떠돌던 해학적인 기문과 일화를 엮은 책이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옮겨보자.

한 內侍別監(내시별감)이 날이 더워 냇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 타고 왔던 말이 남의 콩밭에 들어가 마구 뜯어 먹었다. 화가 난 밭주인이 그의 종을 잡아서 매질을 했다. 이를 본 내시가 황급히 물에서 나와 물에 젖은 머리카락 위에 紗帽(사모)를 쓰고 벌거벗은 몸 위에 冠帶(관대)를 찬 채 양반에게 무례하다고 호통 쳤다. 꼴에 양반 행세한다고 아니꼽게 여긴 밭주인이 흘겨보면서 비웃었다.

 ‘나도 정승댁 종 출신인데 다른 내시들이 우리 대감을 뵈러 올 때에는 말똥 위에서 무릎으로 기다시피 쩔쩔 매었소(謁家公膝行匍匐於馬矢之上/ 알가공슬행포복어마시지상).’ 행색을 보니 그들과 다름이 없다는 소리에 별감은 무안만 샀다. 匍는 길 포, 匐은 길 복.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64.html
kolaswqetsrq 11.02 00:35
일엽지추一葉知秋 - 나뭇잎 한 잎을 보고 가을이 옴을 알다

일엽지추(一葉知秋) - 나뭇잎 한 잎을 보고 가을이 옴을 알다

한 일(一/0) 잎 엽(艹/9) 알 지(矢/3) 가을 추(禾/4)

나뭇잎 한 잎(一葉)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온 것을 안다(知秋)는 말은 작은 움직임만 보고도 전반적인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가만히 앉아서 천하의 움직임을 감지한다는 천리안을 갖지 않았더라도 예지력은 뛰어난 사람이다. 하지만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라는 영국 격언이 말해주는 것처럼 사소한 증거를 가지고 전체를 파악하지 말라는 경고도 담고 있다.

이처럼 중의적으로 쓰이는 성어가 나타나는 곳은 많다. ‘文錄(문록)’이라는 책에 唐(당)나라 무명시인의 시구라며 인용한 ‘山僧不解數甲子 一葉落知天下秋(산승불해수갑자 일엽낙지천하추/ 산 속 스님은 세월을 헤아리지 않고도, 낙엽 하나로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가 유명하다. 같은 당나라 李子卿(이자경)의 ‘聽秋蟲賦(청추충부)’라는 시에는 ‘一葉落兮天地秋(일엽낙혜천지추/ 나뭇잎 한 잎이 떨어지니 천지는 가을이네)’라는 구절도 있다.

또 중국 前漢(전한)의 劉安(유안)이 쓴 ‘淮南子(회남자)’에는 고깃국이 끓고 있는데 그 맛이 궁금하다면 국을 다 먹어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며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를 보면 한 해가 장차 저물려는 것을 알 수 있고, 병 속의 물이 언 것을 보면 천하가 곧 추워지리라는 것을 안다(見一葉落而知歲之將暮 覩甁中之氷而天下之寒/ 견일엽낙이지세지장모 도병중지빙이천하지한)’고 했다.

覩는 볼 도. 조선 후기의 문신 心庵(심암) 趙斗淳(조두순)도 비슷하지만 더 멋진 시구를 남겼다. ‘오동 한 잎 날리자 천하가 가을이라, 가을바람 가을비만 외로운 누각에 가득하네(一葉梧飛天下秋 秋風秋雨滿孤樓/ 일엽오비천하추 추풍추우만고루).’

성어의 뿌리야 어떻든 예민한 감지력은 항상 간직하는 것이 좋지만 또 한편으로 한 부분만 가지고 일을 처리하는 어리석음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짧은 가을은 후딱 지나쳐 버릴 테니 이젠 결실을 생각하여 거두어들이고 저장하는 寒來暑往 秋收冬藏(한래서왕 추수동장)의 천자문 구절도 생각해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96.html
kolaswqetsrq 11.02 00:35
몸의 열을 내려주는 의외의 음식

몸의 열을 내려주는 의외의 음식

1. 매실

천연 소화제라 불리는 매실은 몸 속의 열을 내려주는데도 효과적인 식품이다. 매실은 더위로 지칠 때 더위를 해소하고 기력을 회복하는데 탁월하다고. 또한 감기나 몸살을 앓을 때 매실 농축액을 물에 타서 마시면 열이 가라앉는데 도움이 된다. 더욱이 체내 열로 인한 피부 염증을 진정시키는데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2. 장미

장미는 보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효능이 다양해 우리 몸에도 이롭다. 장미가 가진 특유의 향은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어 차로 마시면 좋다고 한다. 또한 장미는 천연 항산화제로써 체내 비정상적으로 발생한 열을 내리는 역할을 하여 신체 균형을 유지해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장미는 비타민과 에스트로겐도 풍부해 여성들이 특히 챙겨 먹으면 좋다.

3.가지

다양한 영양성분을 가지고 있는 가지 또한 몸의 열을 내리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가지의 차가운 성질이 몸의 열을 내리고 정신을 맑게 해준다. 가지는 해열 효과 이외에도 심장병 및 암을 예방하는 항산화 물질이 풍부해 꾸준히 섭취하면 전반적인 신체 건강에 좋은 식품이다. 가지는 반찬이나 다양한 요리로 활용하기 좋으며 가지 물을 만들어 섭취해도 좋다.

4. 미역

붓기를 완화하는데 효과적인 미역은 열을 내리는데도 좋은 음식이다. 미역의 ‘알긴산’ 성분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체내에 쌓인 열을 가라앉히기 때문. 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번열증에도 효과가 있다. 또한 미세먼지 속 중금속 같은 노폐물을 배출하는데도 효과적이다. 미역은 오이와 함께 먹어도 좋은데, 이 두가지 음식이 만나면 갈증을 해소해주는 최고의 궁합이기 때문이다.

5. 씀바귀

쓴 맛이 특징인 씀바귀는 성질이 차 몸의 열을 내려 주고, 내장에 좋지 못한 기운을 없애주는 효능이 있다. 씀바귀의 쓴맛을 내는 트리테르페노이드는 면역력을 강화시켜주며 소화기능을 향상시키는데도 효과적이다. 씀바귀는 뿌리 채 먹는 나물이므로 다양하게 섭취하기도 좋다. 또한 씀바귀와 비슷하게 치커리, 깻잎, 미나리 등 쓴 야채 종류도 속열을 내려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24.html
kolaswqetsrq 11.02 00:36
한국인의 장수 비결

한국인의 장수 비결

❶ 무조건 소식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보다 적게 먹어라.

❷ 어떻게 먹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정한 양만 먹어라.

❸ 튀긴 음식을 피하고 짠 음식을 멀리하라.

❹ 간염, 당뇨병을 조심하라. 백세인은 간염, 당뇨병이 없다.

❺ 일하는 사람의 평균 수명은 노는 사람보다 14년 길다.

❻ 자식에게 의존하지 말라. 문제는 자신이다.

❼ 바쁜 노인은 치매가 없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대화하라.

❽ 시계추처럼 살아라. 규칙적인 기상, 식사, 노동, 취침이 건강 비결이다.

❾ 친구를 많이 사귀어라. 외로움은 장수의 적이다.

❿ 등산은 장수운동이다.

⓫ 중산간(中山間)지역에 장수 마을이 많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06.html
kolaswqetsrq 11.02 00:37
우울증에 먹으면 효과 좋다는 신기한 음식

우울증에 먹으면 효과 좋다는 신기한 음식

1 카레

카레에 재료로 쓰이는 강황에는 커큐민 성분이 풍부한데 이 성분은 우울함을 개선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실제 뉴욕 시립대 심리학 교수인 글렌 샤피가 진행한 쥐 실험 결과에 의하면 커큐민이 과거 공포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무섭고 두려운 기억이 뇌속에 새로 저장되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2 호두

하버드 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임상영양학 저널에 실린 자료에 따르면 호두의 식물성 오메가3 성분과 비타민E는 우울증 예방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3 녹차

녹차에 함유된 테아닌 성분은 뇌를 편안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실제 일본 도호쿠대학 대학원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녹차를 매일 4잔 이상 마시는 70세이상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44프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4 매운 음식

매운 음식을 먹고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껴보신 분들이 있으실텐데요. 이는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 세포가 느끼는 고통으로 매운 음식을 먹고 나면 신체가 이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을 분비 하기 때문입니다.

5 버섯

버섯은 인슐린 분비를 억제해 혈당을 낮춰주며 이로 인해 기분이 편안해지게 됩니다. 또 버섯의 프로바이오틱 성분은 건강에 좋은장 내 유익균을 증가시켜 세르토닌이 생성되게 도와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6 바나나

바나나에 풍부한 트립토판 성분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7 토마토

중국 티안진 의과대학 연구팀이 20세 이상 일본인 여성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매주 2~6차례 토마토를 먹는 사람은 한번도 토마토를 먹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 위험이 46프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이는 토마토의 풍부한 엽산과 비타민B가 우울감을 줄여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8 굴

굴에는 풍부하게 함유되어있는 아연! 이 아연이 우울증 치매 예방에 아주 좋은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9 해조류

다시마, 미역등의 해조류에 풍부한 요오드 성분이 부족할 경우 우울한 기분을 느낄수 있습니다.

10 연어

연어에는 풍부하게 함유된 마그네슘이 우울한 기분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11 오리고기

오리고기에 풍부한 비타민B1은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주며 비타민B2는 세르토닌 분비를 촉진시켜 우울증을 예방해줍니다.

12 베리류

라즈베리, 블랙베리 등의 베리류에 풍부한 항산화 성분은 우울감을 줄이고 몸의 활력을 불어넣는데 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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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38
■ 이순신과 어머니 1편

■ 이순신과 어머니 1편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시작한 직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4월 13일). 그는 나흘 동안(4월 16~19일) 말미를 얻어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다시 종군했다. 이 때의 난중일기, 특히 맨 마지막 구절은 슬픔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마음을 느끼게 한다.

『16일 병자. 흐리고 비가 내렸다. 배를 끌어 중방포(中方浦)에 옮겨 대고 영구를 상여에 실어 본가로 돌아왔다. 마을을 바라보고 통곡하니 찢어지는 마음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집에 이르러 빈소를 차렸다. 비가 크게 퍼부었다. 남쪽으로 떠날 일도 급박했다. 부르짖어 통곡하며 속히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아버지 이야기는 별로 없고, 어머니 변씨 이야기만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만큼 어머니가 이순신에게 미친 영향이 절대적이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더구나 변씨의 아버지 변수림이 무장 출신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변씨가 이순신의 무과 진로에 대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다.

이순신의 아내로 보성군수 출신 방진의 외동딸 방씨를 얻도록 중매를 선 것이 동고 이준경 대감이었다고 전하는데, 어머니 변씨가 주도적으로 이를 받아들이도록 권유했다고 한다. 다소 유약하고 소극적이던 아버지 이정에 비해 똑 부리지는 성격의 소유자였던 어머니 변씨는 이순신에게만은 장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문무(文武) 양면을 살펴보도록 도와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녀는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에게 문과 급제에 대한 기대를 품으면서 셋째 아들 이순신에게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립심을 길러준 것이다.

서울 건천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 훈련원(조선시대 군사 교육 기관)이 근처에 있었던 것 또한 그의 진로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어린 시절 동네 대장으로 활쏘기를 즐겼다는 이야기를 보면 무장의 딸이었던 변씨로서는 이순신의 앞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무인은 문인에 비해 낮은 급으로 여겨져 일반 사대부 집안에서 무과를 준비하는 경우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훗날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했을 때 선영에 성묘를 갔다가 묘소 앞의 망주석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하인들 몇이 달려들어도 들어 올리지 못하자 혼자 힘으로 이를 일으켰다는 기록이 있다. 이순신의 체력이 보통 선비들과는 남달랐다는 것이다. 어머니 변씨는 이러한 아들의 면면을 일찍이 눈여겨보고 당시 사회 통념과 상관없이 그의 무과 진로를 추천한 것이다. 자신과 같이 무장 출신의 딸인 며느리 방씨를 맞도록 한 것도 이순신의 적성과 취미, 남다른 체력과 커오면서 보여준 리더십 및 대장적 기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무과로의 진로선택 폭을 넓혀준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방씨는 이순신이 서른두 살에 급제할 때까지 무과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아버지 방진과 함께 남편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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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38
■ 거북선 1편

■ 거북선 1편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배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다. 조선 함대의 무기 위력은대단했다. 조선은 초기부터 신기전, 화차 등 여러 화약 무기를 개발했다. 그 중 화약을 이용해 발사하는 화살인 화전과 천자총통, 지자총통 등 성능이 우수한 화포도 있었다. 그럼, 뛰어난 발상과 첨단 기술력을 토대로 만들어져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거북선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거북선이 우리 역사 속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기부터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413년 태종 임금 때 『왕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으로 꾸민 배가 해전 연습을 하는 것을 보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1415년 탁신이라는 문신이 『거북선의 전법으로 싸우면 많은 적과 충돌하더라도 적이 우리를 해칠 수 없으니, 거듭 정교하게 만들어 승리의 도구로 갖추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절의 거북선은 크기가 작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거북선은 3층으로 되어 있어 몸체가 매우 높다.

1592년 4월 11일, 그 동안 정걸과 나대용을 중심으로 개량해 온 불가사의한 신비의 돌격선 귀선(거북선)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배의 이름이 귀선(龜船)이 된 것은 완성된 돌격선의 모습이 흡사 거북과 비슷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 이순신장군은 모두 3척의 거북선을 건조하였는데, 전라좌수영인 진남관 앞 지금의 중앙동에서 이순신 자신이 직접 감독하며 만든 영귀선과 돌산섬 군내리에서 만든 방답귀선, 그리고 여천군 쌍봉면 조선소에서 만든 순천귀선이 그것이다. 1592년 4월 12일 아침, 이순신 함대의 최선봉 돌격선으로서의 새로운 임무를 담당하게 될 첫 번째 귀선(龜船) 영귀선이 건조되어 진수식이 거행되었다.

거북선에 대한 내용은 정조 19년(1795년)에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거북선의 좌우 뱃전에 신방이라는 난간을 설치했고, 난의 머리에 가룡이라는 횡량을 걸쳐 뱃머리까지 닿게 하였다. 그 난간을 따라 판자를 깔고 그 둘레에 방패 판을 둘러 꽂았다. (중략)

방은 각각 12칸인데, 철물 보관소 2칸을 쓰고 나머지는 화포. 창검. 활과 화살 등의 무기고로 썼다. 아래층에는 19칸의 병사들 숙소가 있고, 왼쪽 포판 위에 선장실이 있고, 오른쪽에는 장교실이 있으며, 병사들은 평소 아래 칸에서 쉬다가 전투 시에는 포판위로 올라와 대포를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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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39
■ 난중일기 1편

■ 난중일기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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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불패의 신화를 이룬 이순신 장군은 1592년 1월1일부터 시작해 전사하기 이틀 전인 1598년 11월17일까지의 진중(陣中)일기인 《난중일기》를 남겼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가장 사랑하던 맏아들 쓰루마츠(鶴松)가 죽자 전쟁을 선포하고, 명나라 정벌 기일을 1592년 3월 1일로 정했다. 전쟁을 예감한 이순신은 1592년 정월부터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각 진영에 무기를 정비하고 본격적으로 전쟁 대비를 시작하였다. 아직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가 남긴 《난중일기》에는 진영과 군대의 상황, 전쟁 업무에 관한 일들이 망라되어 있다. 부득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날을 제외하고는 당시 벌어진 전황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였다.
",

원래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임진일기·계사일기·갑오일기 등으로 연대별로 쓴 친필 일기를 1795년 정조가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수록하는 과정에서 ‘난중일기’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다. 친필 초고(初考)본은 국보 76호로 지정돼 있다.

《난중일기》는 교전상황이나 이순신장군의 개인적인 소회 등 임진왜란의 구체적인 경과와 전술, 병사들의 심리 등 전쟁의 여러 정황이나 전쟁영웅으로서의 모습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 류성룡과의 우정, 부하에 대한 배려 등 인간적인 면면이 잘 피력돼 있다. 특히 어머니와 관련된 일화가 여러 장에 담겨 있어 이순신 장군의 효심을 엿볼 수 있다. 《난중일기》는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장군 이순신이 거의 매일 쓴 일기가 현재까지 전해온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갖지만, 《난중일기》로 인해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더욱 인간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크다.

《난중일기》에는 첫 기록에서부터 『새벽에 아우 우신(禹臣)과 아들 회가 와서 이야기했다. 다만 어머니를 떠나 남쪽에서 두 번 설을 쇠니 간절한 회포를 참을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1593년 5월4일의 일기에서 이순신은 『오늘이 어머니 생신이지만 적을 토벌하는 일 때문에 가서 오래 사시기를 축수하는 술잔을 올리지 못하니 평생의 한이다』라며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또 『탐후선이 들어와 어머님이 평안하신 줄 알다. 다행이다(1594년 5월5일)』라는 기록에서는 효심이 깊은 장군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1597년 4월13일 이순신은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금 있다가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했다.(중략) 길에서 바라보는,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이야 어찌 이루 다 적으랴』라며 어머니를 잃은 아픔을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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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40
■ 이순신 6편

■ 이순신 6편

임진왜란 당시 남해 일대에서 일본 수군을 연파해 일본의 조선 점령과 중국 진출을 저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이순신이다. 일본은 평양성을 점령한 고니시 유키나가군과 함경도까지 진격한 가토 기요마사군에게 전라도를 돌아 황해를 북진하는 수군의 보급선이 연결된다면 조선 점령을 매듭짓고 중국까지 치고 들어간다는 수륙병진책(水陸竝進策)을 세워놓고 있었다. 이 전략은 일본군의 침략을 거의 유일하게 대비한 조선군 지휘관이자,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던 이순신의 활약으로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일본이 그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수군의 연전연패 소식에 놀라 아예 “조선 수군과는 교전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린 데서도 알 수 있다.

당시 붕당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던 조정에서는 이순신의 전과(戰果)를 놓고서도 논의가 분분했다. 특히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이 문제가 되었는데, 조정 대신들은 대체로 원균의 편에 서서 여러 차례 이순신을 탄핵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명나라와 강화교섭을 하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휘하의 요시라(要時羅)라는 인물이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다시 조선을 침략하러 바다를 건너오니 수군을 보내 이것을 막으라는 거짓 계책을 조정에 전달했고, 이를 믿은 조정은 도원수 권율을 통해 이순신에게 수군을 이끌고 출정하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왜군의 계략에 빠져 큰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한 이순신은 출정하지 않았고, 결국 그 책임으로 파직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이순신을 모함하는 원균 등 악독한 지배층과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 선조의 독단이 낳은 결과이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기에 급급했던 비겁한 자신에 비해 뛰어난 이순신의 활약을 거북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선조와 조정 대신들은 이순신을 한 달 가까이 투옥된 상태에서 압슬형과 같은 혹독한 고문을 가하였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순신의 맹활약으로 지켜지고 있던 전라도 지역은 1597년 이후 처참한 지옥으로 변했다. 선조의 명령으로 이순신을 투옥시키고 대신 원균을 삼군수군통제사로 세운 뒤 조선 수군은 1597년 7월16일 일본 수군에게 대패하였다. 이 패전 뒤 채 20일도 안되어 전라도는 살육과 방화, 고문, 인신매매, 구타 등등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조선인의 코와 귀를 무더기로 잘라 일본으로 가져간 일본군의 악랄한 만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조선 수군이 패배한 한 달 뒤부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유재란 때 조선으로 출병한 일본 다이묘(大名·영주)들에게 “전공(戰功)의 증명은 수급(首級:적군의 머리)의 수로 하지 않고 베어서 가져온 코의 수로 계산한다.”는 군령을 내린 것이 1597년 8월이다. 당시 일본군은 임진왜란 때 돌파하지 못한 곡창지대이자 전략 요충인 전라도 지역을 대대적으로 공략하고 있었다. 주로 전라도 백성의 코를 베어낸 뒤 소금으로 절여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 10만에 이른다고 일본 역사가들은 추정한다. 전공에 눈이 먼 일본군은 조선군은 물론 남녀노소, 승려, 노비,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비전투원의 코까지 무더기로 베어냈던 것이다.

- 7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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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41
내 몸 살리는 음식

내 몸 살리는 음식

1. 비트

땅속에서 나는 혈액이라 불리는 비트

비트에 있는 질산염 성분은 체내에 흡수되면 인체에 좁아진 혈관을 확장시키는 일산화질소의 생성을 도와서 혈압을 직접적으로 떨어뜨릴 뿐 아니라 혈관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기체의 일종인 일산화질소는 좁아진 혈관을 확장시켜 정상 혈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물질입니다. 비트에는 철분도 많아 빈혈예방과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됩니다.

2. 양파

양파의 성분 중 루틴은 혈관벽을 강화시키고 유화아릴 성분은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며 퀘르세틴은 혈전 생성 방지해 주어 혈압 개선에 효과적입니다. 빨간양파에는 안토시아닌 성분이 많아서 더 효과적이라 할수 있습니다.

3. 녹두

녹두는 원기를 충전해주고 칼륨, 식이섬유, 비타민C도 풍부하며 열을 내리고 해독에 탁월한 식품입니다.

혈액이 탁해져서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다 보면 혈압이 올라가게 됩니다. 녹두는 혈액 속에 있는 독소를 해독해 밖으로 배출해서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줍니다.

4. 검은콩

검은콩에는 비타민E, 칼륨이 풍부하여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압을 낮춰주며 혈관 근육을 부드럽게 해주는 칼슘도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또한 리놀레산도 풍부해 저혈압에도 좋은 식품입니다.

5. 키위

키위에는 황색 색소 호르몬인 루테인은 항산화 물질로 고혈압을 유발하는 유해산소를 억제하여 혈압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6. 꾸지뽕

꾸지봉의 가바 성분은 혈액 내에서 중성 지방을 낮춰주고 간 기능을 높여줘 고혈압을 개선시켜 주며 루틴은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모세혈관을 강화시켜 혈압을 강하시켜 줍니다.

7. 복분자

복분자에는 적포도주보다 약 30% 많은 폴레페놀을 함유하고 있어서 고혈압을 비롯한 협심증, 심근경색등의 심혈관 질환에 효과적입니다.

8. 청국장

청국장에 든 펩티아드 성분이 혈압을 상승하게 하는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의 활동을 억제시켜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청국장의 바실러스균은 혈관 속 혈전과 노폐물을 제거해주어 혈관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33.html
kolaswqetsrq 11.02 00:41
청국장의 기적효능

청국장의 기적효능

1.소화를 촉진한다.

1g의 청국장에는 10억마리 이상의 균이 들어있는데 이는 유산균 음료의 100배에 달한다. 이 균은 위와 장에서 소화와 흡수를 돕고 변비와 설사를 예방한다. 청국장 속의 유익한 균이 정장작용을 해 장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만든다. 섬유질도 다른 식품보다 5배 이상 많고, 사포닌도 변비 개선에 도움을 준다. 비타민 B군(B1, B2, B6)이 간을 보호하기 때문에 음주 뒤에 청국장을 먹으면 숙취가 빨리 해소된다.

2.항암 효과가 있다.

콩이 가지고 있는 사포닌은 발암 억제 작용을 한다. 또한 청국장에 많은 제니스테인은 유방암, 결장암, 직장암, 위암, 폐암, 전립선암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파이틱산, 트립신 억제제 같은 항암 물질도 풍부하다.

3.노화를 막는다.

비타민 E의 항산화 작용으로 우리 몸속에서 세포가 파괴되는 것을 막는다. 또한 비타민 B군이 풍부하여 피부 노화를 막는다.

4.비만을 막는다.

청국장에는 비타민 B군과 칼슘을 비롯한 미네랄이 풍부하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신진대사를 촉진해 비만을 막고, 레시틴과 사포닌이 혈액속의 과도한 지방을 흡수하여 배출한다.

5.뇌졸중을 예방ᆞ치료한다.

레시틴과 단백질 분해 효소가 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이나 콜레스테롤을 녹여 뇌졸증과 같은 혈전질환을 예방ᆞ치료한다.

6.치매를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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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의 레시틴이 분해되면서 콜린이라는 물질이 생긴다. 콜린은 치매환자에게 부족한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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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당뇨병을 예방한다.

섬유질이 풍부하여 당의 흡수가 천천히 되도록 돕는다. 또한 비타민 B2는 당뇨병 예방에 효과적이다. 레시틴도 인슐린의 분비를 왕성하게 만들어 당뇨병을 예방ᆞ치료하는데 도움을 준다.

7.고혈압을 치료한다.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바실러스균에 의해 아미노산이 만들어지는데, 아미노산은 고혈압을 일으키는 주요 인자인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의 활성을 억제해 혈압을 떨어뜨린다.

8.골다공증을 예방한다.

청국장 100g에 칼슘 90mg이 들어 있고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K가 풍부하여

칼슘의 흡수를 돕는다.

9.심장질환을 예방한다.

단백질 분해 효소가 심장 관련 혈관에 존재할 수 있는 혈전을 녹여 심장질환과 40대 이후에 찾아올 수 있는 돌연사를 예방한다.

10.빈혈을 막는다.

청국장 100g당 3.3mg의 철분이 들어 있고 악성 빈혈을 막는 비타민B12도 함께 있어 빈혈을 예방한다.

11.피부미용에 좋다.

레시핀이 장 속에 있는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하고 피부에 주름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피부미용에 좋은 비타민 E와 비타민B군도 많다. 청국장 특유의 점액질은 피부 보습에 효과적이다.

12.피부병을 치료한다.

피부병 예방과 치료에 좋은 비타민 B2와 B6이 풍부하고 리놀렌산 등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 무좀을 비롯한 각종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

13.정력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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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에 있는 아르기닌이라는 아미노산과 레시틴은 남성의 정액을 이루는 구성 성분이다. 아르기닌 아미노산은 일산화질소의 전구물질(전 단계물질)로 일산화질소는 음경의 혈액 흐름을 개선시켜 성생활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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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42
뭘 해도 잘 되는 사람들의 비밀

뭘 해도 잘 되는 사람들의 비밀

1. 일찍 일어나야 한다.

하루를 미리미리 준비하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그런 사람들은 미리 계획을 준비하면서 하루에 큰 그림을 먼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일이 더 잘 풀릴 수밖에 없습니다.

2.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고 흥미를 느껴야 한다.

본인이 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재미를 느낀다면, 그것을 의무적으로 하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3. 책 읽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매일매일 적은 시간이라도 독서를 하는 사람들은 폭넓은 사고와 이해력을 갖추게 되고, 상황에 대한 유연한 사고와 대응력을 가지게 됩니다.

4. 인사성이 밝아야 한다.

어디서나 인사성 밝은 사람은 모든 사람들에게 인상이 각인되기 마련이고, 그것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예절이다.

5. 겸손해야 한다.

여전히 겸손은 미덕이다. 겸손은 나아가는 사람에게 자신의 뒤를 돌아보게 해주는 마음가짐이다.

6.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세상 모든 것을 나쁘게 생각하게 하고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반면 긍정적인 생각은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힘이 있다.

7.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기막힌 발상과 세상을 바꿀만한 아이디어는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에도 열심히 업무를 보고 있을 때에도 생기지 않는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산책을 하다가, 목욕을 하다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한 순간에 발상을 캐치해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성공하는 사람의 습관 중 하나이다.

8. 칭찬은 구게적으로 한다.

면전에서 칭찬하는 것보다 제3자에게 칭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칭찬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자랑하고 싶은 욕구 두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

9. 좋은 인상을 유지한다.

첫인상이 아무리 좋았더라고 부정적인 정보를 접하면 쉽게 나쁜 쪽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10. 다름을 인정한다.

다름을 인정하면 공감이 쉬워진다. 인간관계의 갈등을 줄이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머릿속에서 ‘다른 것=나쁜 것’이라는 공식을 삭제해야 한다.

11. 작은 빈틈을 보여줘 마음을 연다.

너무 완벽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만든다. 또 사람들은 결점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에 대해 위선적이고 인간미 없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스펀지가 공간을 갖고 있기 때문. 물을 빨아들이듯이 누군가가 다가오게 하려면 그가 들어올 수 있는 빈틈을 마련해두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62.html
kolaswqetsrq 11.02 00:43
건강한 목욕 법 10가지

건강한 목욕 법 10가지

1. 귤 목욕

비타민 C는 몸의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피부와 점막을 튼튼하게 해 주는 작용을 한다. 또한 헤스페리딘이라는 비타민 P선분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만들어 붉은 피부를 개선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런 귤을 이용해 목욕을 하면 피부가 매끈하고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특히 귤 목욕은 냉증이 있는 사람에게 매우 효과적이다. 또한 체내에 쌓인 노폐물과 불순물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뭉친 근육도 풀어주므로 피로 회복에도 좋다.

2. 우유 목욕

완전 식품인 우유는 피부에 부작용이 거의 없기 때문에 피부가 약하거나 민감한 사람, 여드름 피부나 지성피부에도 좋으며 트고 갈라진 피부를 부드럽게 만든다. 또한 뜨거운 물이 피부의 필요한 지방분까지 제거해 몸에 자극을 주는 데 반해, 우유에는 적당한 지방 성분이 함유돼 있어 피부에 지방분을 보충해주는 작용을 하므로 피부가 부드럽게 유지된다. 우유는 묵은 각질을 부드럽게 제거하기 때문에 목욕할 때 사용하면 피부 청결에 좋다. 갑자기 살이 찌거나 무리한 다이어트 등으로 인해 살이 튼 사람에게도 효과적이다.

3. 레몬 목욕

귤보다 비타민이 몇 배나 더 많이 들어 있는 레몬은 피부를 부드럽게 만들고 이완과 수축 작용을 반복하는 효능이 있다. 그러므로 피부 탄력을 잃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레몬을 사용해 목욕하면 레몬이 피부를 긴장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탄력적인 피부를 가꿀 수 있다. 수분 증발로 피부가 건조해졌을 때 레몬 목욕이 효과적이다. 레몬은 피부 미백효과도 뛰어나 피부를 맑고 하얗게 가꾸어주는데,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도 탁월하다. 또한 피부 가려움증이 있거나 피곤하고 지친 피부에 좋다.

4. 알로에 목욕

알로에는 입욕제로 사용하면 전신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혈행이 좋아져서 피부가 윤기나는 젊은 피부로 바뀐다. 뾰루지나 습진 등 심하지 않은 피부 트러블이라면 자연히 없어지며, 몸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따뜻해져서 목욕 후 한기를 느끼는 일이 없다. 사용해 보고 만일 피부가 따끔거리거나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면 몸을 씻어내고 다음부터 알로에의 양을 줄여서 사용하도록 한다.

5. 장미 목욕

마른장미, 생화 모두 가능하다. 뜨겁게 데운 욕조물에 장미꽃잎을 낱개로 뜯어 넣는다. 되도록 꽃잎의 양을 많이 첨가한다. 혈액순환에 효과적이며 무독성이기 때문에 여드름, 노화, 민감성 피부에 좋다. 목욕시은은한 장미향이 배어나와 목욕의 색다른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6. 솔잎목욕

솔의 생잎이나 말린잎을 베주머니에 싸서 목욕물에 넣는 솔잎목욕은 피부가 매끄러워지고 특히 신경통에 효과적이다. 심장기능을 강화하기 때문에 예부터 장수노인들이 즐겨하던 목욕법으로 알려져 왔다.

7. 박하 목욕

박하목욕법도 있다. 잘 썰은 박하를 구입해 찬물에 씻은 후 거즈나 면주머니에 싸서 욕조에 넣으면 된다. 박하에 함유된

멘톨(MENTHOL)이라는 성분이 가려움증과 염증을 치료해주며 나른한 몸에 활기를 찾아준다.

8. 소금 목욕

스트레스 해소 및 체질개선, 비만해소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소금목욕은 천일염을 구워 독소를 제거한 생금·죽염을 사용한다. 물의 온도는 38~42°C가 적당하다.

9. 해초 목욕

지성피부에는 해초목욕이 좋다. 미역이나 다시마를 따뜻한 물에 씻어 거즈나 면주머니에 100g정도 싸서 욕조에 담근다. 목욕후 건조해지기 쉬운 단점이 있으므로 보디오일이나 로션을 발라주는 것이 좋다.

10. 약쑥 목욕

먼저 약쑥을 찬물에 씻은 후 적당량을 면주머니에 담근다. 다음 뜨거운 물에 넣고 20분 정도 우려낸다. 약쑥에는 항균 소염작용이있어 여드름과 습진, 피부 트러블, 알레르기를 치유해 주는 효과가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98.html
kolaswqetsrq 11.02 00:43
허리 건강에 독이 되는 5가지

허리 건강에 독이 되는 5가지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운동 부족, 바르지 않은 자세를 반복할 뿐 아니라 흡연, 과도한 음주, 복부 비만 등의 생활습관이 허리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허리는 앉고 걷고 굽히고 서고 하는 사람의 모든 행동에서 중심 구조가 되는 중요한 부분인데요,, 허리가 아프면 걷기도 힘들 정도로 고통을 주기 때문에 건강한 허리를 가지는 것이 건강의 첫걸음이 됩니다. 건강한 허리를 위해 바꾸어야 할 습관과 좋은 운동을 알아보기로 합니다.

1. 뱃살

허리둘레가 남성은 36인치 이상, 여성은 32인치 이상이면 복부 비만이라고 합니다. 복부 비만으로 복부 무게가 앞으로 쏠리면 척추가 활처럼 휘어지게 되고, 허리를 지탱하는 근육이 쉽게 자극을 받아 요통이 생기기 쉬운데요,, 심할 경우 허리디스크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2. 음주

알코올은 척추 디스크에 혈액과 수분 공급을 방해합니다. 혈액순환이 저하되면 척추의 탄력성이 떨어져 외부 충격에 약해지고, 알코올이 분해될 때 몸속 단백질이 소비되어 척추를 지탱하는 근육과 인대를 약하게 만듭니다.

3 흡연

흡연을 하게 되면, 뼈 조직 내의 미네랄 성분이 감소하여 뼈가 손상되기 쉽게 하고, 뼈를 생성하는 조골세포의 활동을 억제하여 골다공증을 유발하는데요,, 골다공증이 유발되면, 척추의 작은 뼈들이 부러지면서 척추 신경을 눌러 허리의 통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4. 잘못된 자세

몸을 앞으로 굽힌 자세,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장시간 누워 척추 곡선을 일자로 펴는 자세 등을 오래 반복하면 척추 주위 인대와 근육이 무리가 되고, 과도한 힘을 받아 척추 변형을 일으키거나 요통, 디스크 질환 등을 유발한다고 합니다.

5. 운동부족

척추를 감싸고 있는 허리부위의 근육은 척추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운동부족으로 허리 근육이 약해지면 요추염좌 등 척추와 추간판에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특히 중년부터는 노화와 요통 예방을 위해 운동은 필수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55.html
kolaswqetsrq 11.02 00:44
얼굴에 나타나는 오장육부

얼굴에 나타나는 오장육부

얼굴이 칙칙하고 탁하다~뾰루지가 난다

이 것은 피부만의 문제일까요?

내 몸속의 노화가 그대로 얼굴에 나타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 방광

뾰루지가 나면 염분, 지방, 치즈나 버터 등의 유제품을 과잉 섭취해 방광이 병들었다는 신호!

2. 대장

이마에 윤기가 없고 거칠면 대장 기능에 장애가 발생한 것!

단백질이나 지방, 당분, 과일, 약 등의 과다 섭취가 주요 원인. 설사, 우울증 등도 생김!

3. 소장

이 부분이 붉은색, 거무스름한 색, 녹색 등으로 변하면 주의.

특히 녹색으로 변하면 소장에 종양이 생기거나 발암물질이 쌓여가고 있다는 신호!

4. 비장ᆞ췌장

관자놀이에 혈관이 불거지거나 핏줄이 서거나, 혹은 뾰루지ᆞ기미가 생긴다면 비장과 췌장이 악화된 상태!

5. 간

눈이 시리고 쉽게 피로해지거나, 눈썹 위에 주름이 깊게 패여 있다면, 기름기 많은 음식을 즐겨 먹어 간이 부었거나, 혹은 간이 굳어지고 있는 것.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31.html
kolaswqetsrq 11.02 00:45
몸이 따뜻하면 살고 차가워지면 죽는다

몸이 따뜻하면 살고 차가워지면 죽는다

어느 유명한 의사가 40년간 의사생활을 마치고 운명하면서 자기가 40년동안 환자를 치료하면서 건강비법을 알고 있는데 내가 죽거든 금고속에 있는 건강 비법을 확인하고 널리 알리라고 하였는데 의사가 죽고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속에 금고속을 열어보니 그비법은 다름아닌 頭寒足熱 胃八分度는 무병장수한다고 써있다고 하였다.

頭寒 足熱- 머리는 차고 발은 뜨겁게

胃八分度 - 위의 팔할만 채워라 즉 과식하지 말라

(거북이나 학이 오래사는 이유는 과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몸이 차가워지면 나타는 증상 ≫

- 감기에 잘 걸린다.

- 비만이 된다.

- 살이 마른다.

- 두뇌건강이 약해진다.

- 피부질환이 생긴다.

- 머리카락이 빠진다.

- 눈물이 잘나온다.

- 시력이 나빠진다.

- 목소리가 약해진다.

- 남성질환이 생긴다. (정력약화)

- 여성질환이 생긴다. (수족냉증, 부인병등 )

- 자세가 흐트러진다.

- 오장육부의 기능이 저하된다.

- 추위와 더위를 잘탄다.

<그러면 몸이 따뜻하게 만들려면>

- 밥따로 물따로 먹어서 속기운을 배양해야 한다.

- 따듯한 음식을 먹되 적은 듯이 먹어라. (찬물을 먹지 말고 물을 따뜻하게 마셔라,)

- 식사후에 물을 먹지 말라 물은 식후 2시간 후에 먹어라 2시간후에도 반드시 따뜻한 물을 먹어라 그래야 속기운이 배양된다.

 "
- 몸은 찬물 벼락을 맞으면 몸이 움츠러든다. 찬 기운은 위축시키고 굳게 하는 성질이 있다. 이와 같은 이치로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위와 장이 위축되고 굳어간다. 그래서 급체가 생긴게 된다.
",

- 우리몸에서 따뜻해야 할 부분은 위장, 신장,방광, 팔다리, 등 , 배등이며 차가워야 할 부분은 머리이고 그 중간부분으로 가슴인 심장과 폐는 차가워지거나 뜨거워지면 안되고 중간정도가 되어야 한다.

- 따뜻한 음식은 몸을 따뜻하게 한다. 따뜻한 음식을 먹자 찬우유도 데워먹자 (따뜻한 음식은 위장에서 분해나 소화 시키기가 좋아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차가운 음식은 위장에 들어오면 위장은 차가운 음식을 위장의 따뜻한 기운으로 데워서 소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많은 기운이 소모된다)

- 따듯한 차를 마시면 몸이 따뜻해진다. (생강차 )

아침 일찍 일어나면 뜨거운 차를 마셔 뱃속을 편안하게 해주고 식사 후에 2시간이 지난후에 뜨거운 차를 마셔보라! 저절로 몸이 따뜻해 지며 피가 순환이 잘 된다.

- 매운 음식, 발효 음식이 몸을 따뜻하게 한다. (마늘과 생강은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매운 맛을 몸에 들어가 열을 내게하여 따뜻하게 해준다. 시골에서 닭이 비실 비실대면 꼬추장 비빈 보리밥을 주면 닭이 금방 좋아진다. (밥맛 없을때 고추장에 비벼먹자)

- 위가 차가워져서 암이 생기는데 마늘이 맵기 때문에 열을 내어 위장약이 되고 보약이 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39.html
kolaswqetsrq 11.02 00:46
동의보감이 알려주는 맨손 건강 노하우 10가지

동의보감이 알려주는 맨손 건강 노하우 10가지

1. 배를 자주 문질러 줍니다.

옛부터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말이 있죠?

결코 헛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배를 쓰다듬어 주면 실제 효과가 있는데요.

미국에서는 손 테라피(기치료법이나 마사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해요.

손으로 배를 만져주면 자율신경을 자극하여 장운동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배 마사지는 양손을 포개어 배꼽 주위부터 나선형으로 배 전체를 둥글게 돌리며 10여분 간 주무르면 좋습니다.

2. 항문에 힘을 줍니다.

동의보감에서 말하길 "곡도" 는 안으로 끌어들이라 하였습니다.

이 곡도가 바로 항문을 칭하는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항문의 힘이 점차적으로 줄어든답니다.

옛 선조들은 항문을 보고 건강한지를 판단했다고 합니다.

3. 귓볼을 자주 주물러 줍니다.

귀는 장기중에 신장을 뜻한다고 하네요.

귀가 잘 생긴 사람은 비뇨생식기와 신장 기능이 건강해지며, 소화가 잘되는 등 많은 점이 좋다고 합니다.

4. 머리카락을 손으로 자주 빗어줍니다.

손으로 자주 빗어줍니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빗어주면, 두피에 자극이되어 머리가 맑아지며, 탈모 증상이 개선되고

머리카락에 윤이 난다고 합니다.

5. 입안에서 혀를 자주 굴려 줍니다.

잇몸 쪽도 핧아주고, 입천장도 핧아줍니다.

그러면 침이 생기겠죠. 침은 회춘을 하게 해주는 비타민이라고도 합니다.

소화도 잘되며, 여러가지 좋은점이 많다니, 습관적으로 혀를 굴려 침이

풍부하게 하세요.

6. 치아를 두드려 줍니다.

이를 고치법이라고 합니다.

치아 단련을 위해 딱딱 아래위로 조금씩 두드려줍니다.

아랫니,윗니를 계속 부딪히면 머리가 울리며, 전선에 떨림을 줍니다.

잇몸과 이 주변의 질병예방, 울리는 떨림이 전신으로 퍼지면서 기혈의 흐름까지 원활하게 합니다. 이와 잇몸건강 뿐 아니라 뼈와 신장, 뇌의 신경 순환을 원활하게 합니다.

7. 등을 따뜻히 합니다.

여름에는 등목을 하고, 추울때는 등골이 오싹하다는 표현을 합니다. 이는 등으로 체열 발산을 하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체열을 잃으면 건강에 좋지 않으므로, 가능한 등을 따뜻히 합니다.

8. 탁한 것은 버리세요.

침은 좋은것이라 삼키라고 하지만, 가래는 해로우니 뱉어야 합니다.

가래는 색깔에 따라서 상태를 결정하며, 흰색,노랑색의 가래로 나뉘며, 기관지상태가 나빠진것을 의미하는 신호일수도 있다합니다. 이런 가래들은 노폐물이니 뱉어내야합니다.

9. 눈을 자주 굴려서 움직입니다.

눈을 감고 눈동자를 돌려줍니다. 위 아래, 양 옆으로 굴려줍니다.

눈이 맑아지며, 정신이 또렷해지고 집중력도 높아집니다.

10. 얼굴을 자주만지고 두드려주세요.

얼굴만 자주 만져 주는 것만으로도 동맥경화나 고혈압 등과 같은 혈관 질환의 치료를 도울수 있다고 합니다.

허리가 아프신분들은 인중을 두번째 손가락으로 문질러주세요.

콧물날 때 닦듯이 문질러주면 효과가 금방 나타난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46.html
kolaswqetsrq 11.02 00:46
양파의 대표적인 비움 효과

 "
양파의 대표적인 비움 효과
",

1. 암을 몰아낸다.

양파의 대표적인 성분인 케르세틴은 암 예방에 중요한 성분 중 하나로 밝혀졌다. 위암, 대장암 등 소화기계통의 암에 좋으며 전립선암, 유방암, 폐암 등 다양한 암의 발생을 예방하고 감소시킨다.

2. 혈액을 청소한다.

양파의 유황 화합물에는 혈중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의 수치를 낮춰 혈액을 맑게 하고 혈전을 방지한다. 그 때문에 고혈압, 고지혈증, 협심증, 심근경색, 뇌경색 등 다양한 성인병 예방 효과가 있다.

3. 독을 해소한다.

양파에 풍부한 폴리페놀이 몸에 쌓여 있는 독소를 해독시킨다. 폴리페놀은 녹차의 카테킨, 와인, 검은콩 등의 식품에도 많이 함유된 성분으로 특히 니코틴을 해독하는 기능이 탁월하다.

4. 활성산소 발생을 막는다.

양파의 케르세틴은 강력한 항산화 효과가 있는 물질로 인체의 노화를 촉진하는 활성산소의 발생을 억제한다. 꾸준히 섭취하면 잔주름 예방 등 미용 효과도 볼 수 있다.

5. 콜레스테롤을 분해한다.

양파는 지방 함량이 적으면서 단백질이 풍부해 뛰어난 다이어트 식품 중 하나다. 몸에 불필요한 젖산과 콜레스테롤을 분해하는 성분이 들어 있어 지방 축적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과다한 영양분이 체내에 흡수되는 것을 막는다.

6. 피로물질을 내보낸다.

에너지대사에 중요한 영양소인 비타민 B1의 흡수를 촉진하기 때문에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된다. 원기 회복뿐 아니라 식욕부진, 불면, 초조함 등을 해소하는 데에도 좋다. 비타민 B1이 풍부한 돼지고기와 양파를 함께 먹으면 그 효과가 배가되는데, 삼겹살을 먹을 때 양파를 구워 먹으면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520.html
kolaswqetsrq 11.02 00:47
■이순신 5편

■이순신 5편

이때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는 일부 대신들과 대간의 반대를 받기도 했지만, 상당히 빠르고 순조롭게 승진했다. 1589년(선조 22년) 2월 이산해(李山海)의 추천으로 다시 관직에 나서게 된 이순신은 감사 이광(李洸)의 군관으로 전라도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그 해에 조방장(助防將)과 선전관(宣傳官) 등을 거쳐 정읍현감이 되었으며, 1591년(선조 24년)에는 진도군수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부임하기도 전에 다시 전라좌도(全羅左道)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로 임명되었다.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에 부임한 이순신은 전함을 건조하고 군비를 확충하며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그의 나이 46세였고, 임진왜란을 14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무과에 급제한 지 15년 동안 한 번의 백의종군을 포함해 여러 곤경과 부침을 겪은 끝에 그는 수군의 주요 지휘관에 오른 것이다.

변방의 말직만을 전전하다가 삶을 마감했을 장수도 분명히 적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그의 역정은 수준 이상의 보상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눈앞에 다가왔지만 거의 대비하지 않고 있던 거대한 국난을 앞두고, 전쟁 직전 그가 북방의 말단 장교가 아니라 남해의 수군 지휘관이 되었다는 사실은 국가적으로도 참으로 다행스러운 천행(天幸)이었다.

조선 최대의 국난인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포로 출항하면서 발발했다. 7년 동안 이어진 전란으로 조선의 국토와 민생은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전쟁이 시작된 뒤 보름 여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5월 2일), 선조는 급히 몽진(蒙塵:난리를 피해 옮김)해 압록강변의 의주(義州)에 도착했다(6월 22일). 개전 두 달 만에 조선은 멸망 직전의 위기에까지 몰린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의 요청을 받아 경상도 해역으로 출정해 왜군과의 해전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두었다. 6월 16일(음력 5월 7일) 옥포(玉浦)와 합포(合浦)에서 왜선 30여척을 격파하는 큰 승리를 거둔 것을 시작(옥포해전)으로 20여 회의 전투를 치러 모두 승리했다. 그 승전들은 그야말로 패색(敗色)이 짙은 전황을 뒤바꾼 결정적인 계기였다.

왜란이 일어난 1년 뒤인 1593년 8월 삼도수군통제사로 승진해 해군을 통솔하면서 공격과 방어, 집중과 분산의 작전을 치밀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나라는 전란에 휩싸였고 그는 국운을 책임진 해군의 수장으로서 엄청난 책임과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지만, 험난했던 그동안의 관직 생활에서 보면 최고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한 기간이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활약으로 조선 수군은 해상권을 장악했고, 북상하던 왜군은 병력 보충과 군수품 보급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화의(和議)가 시작되어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호남지역으로 들어오는 피난민들을 돌보고, 전쟁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둔전(屯田)을 일구고 병사들을 조련하였다.

- 6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30.html
kolaswqetsrq 11.02 00:48
■ 이순신 3편

■ 이순신 3편

이순신은 5년 뒤인 1572년(선조 5년) 8월 훈련원 별과(別科)에 처음 응시했다. 그러나 시험을 치르던 중 타고 있던 말이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물론 낙방했지만, 다시 일어나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다친 다리를 싸매고 과정을 마친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무장으로서 이순신의 공식적인 경력은 그로부터 4년 뒤에 시작되었다. 그는 1576년(선조 9년) 2월 식년무과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했다. 그의 나이 31세로 임진왜란을 16년 앞둔 시점이었다. 그의 일생 전체가 그러했지만, 이때부터 순탄치 않은 관직 생활이 시작되었다.

첫 임지와 직책은 급제한 해 12월 함경도 동구비보(董仇非堡, 현재 함경도 삼수)의 권관(權管: 종9품)이었다. 동구비보는 험준한 변경이었다. 이순신은 그곳에서 햇수로 3년간 근무했다. 그렇게 만기를 채운 뒤 1579년(선조 12년) 2월 서울로 올라와 훈련원 봉사(奉事:종8품)로 배속되었다. 앞서는 거친 환경이 힘들었을 것이지만, 이번에는 사람 때문에 불운을 겪었다. 병조정랑(정5품) 서익(徐益)이 가까운 사람을 특진시키려고 하자 이순신은 반대했고, 8개월 만에 충청도절도사의 군관으로 좌천된 것이다. 핵심적인 요직인 병조정랑의 뜻을 종8품의 봉사(奉事)가 반대했으니 즉각 불리한 인사조처로 이어진 것은 그리 이례적인 일은 아니었다.

많은 위인들의 이러한 측면이 평범한 사람들과 구분시키는 결정적인 차이지만, 이순신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면모는 원칙을 엄수하는 강직한 행동일 것이다. 이 사건으로 처음 표출된 그의 강직한 자세는 일생 내내 그를 크고 작은 곤경에 빠뜨렸다. 그러나 그런 현실적 불이익은 그의 명성을 조금씩 높였고, 궁극적으로는 지금까지도 그를 존경하는 인물로 남을 수 있게 하는 역사의 보상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으로 비로소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인지, 얼마 뒤 이순신은 파격에 가까운 승진을 하게 되었다. 1580년(선조 13년) 7월 발포(鉢浦:현재 전라남도 고흥군) 수군만호(水軍萬戶:종4품)로 임명된 것이다. 이 인사는 그 파격성도 주목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처음으로 수군에 배치되었다는 것이다.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성박이 거문고를 만들려고 발포 객사(客舍)의 오동나무를 베어가려고 하자, 이순신이 관청의 물건이라고 제지한 유명한 일화는 이 때의 사건이다. 특별한 인사조치가 뒤따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때의 항명은 큰 문제없이 넘어갔다고 판단되지만, 서익과의 악연이 다시 불거졌다. 서익은 병기(兵器) 상태를 점검하는 군기경차관(軍器敬差官)으로 발포에 내려왔는데, 이순신이 병기를 제대로 보수하지 않았다고 보고한 것이다. 급속히 승진했던 이순신은 1581년(선조 14년) 5월 두 해 전의 관직인 훈련원 봉사로 다시 강등되었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3_16.html
kolaswqetsrq 11.02 00:48
■ 이순신 1편

■ 이순신 1편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손꼽히는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를 추앙하는 수식어 ‘성웅(聖雄)’이라는 칭호는 그 자체로 그가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있음을 나타내지만, 그는 천부적 재능과 순탄한 운명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 수많은 역경과 난관을 강직한 성품과 치열한 노력으로 돌파한 인물이다.

이순신은 조선 인종 1년(1545) 3월 8일 서울 건천동(乾川洞:현재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다. 본관은 덕수(德水)로 아버지는 이정(李貞)이고 어머니는 초계 변씨(草溪卞氏)다. 그는 셋째 아들이었는데, 두 형은 이희신(李羲臣), 이요신(李堯臣)이고 동생은 이우신(李禹臣)이다. 그와 형제들의 이름은 중국 고대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중에서 복희씨와 요·순·우 임금에서 따온 것이다. ‘신(臣)’은 돌림자여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지만, 부모는 아들들이 그런 성군을 섬기는 훌륭한 신하가 되라는 바람을 담았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이순신이 성군을 만났는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훌륭한 신하의 한 표본이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순신은 원래 문신 가문이다. 이순신의 5대조 할아버지 이변은 세종 이후 역대 임금을 모신 외교 전문가였고, 덕수 이씨 가문을 크게 일으킨 인물이었다. 그는 중국어에 능했고 성품이 강직했으며, 홍문관 대제학을 거쳐 영중추부사에 이른다. 증조부 이거는 타협하지 않는 성품으로 ‘호랑이 장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고, 성종과 연산군 시절의 고위 공직자였다. 비교적 순조롭고 성공적인 출세를 이어왔던 이순신의 가문은 조부 이백록(李百祿)과 아버지 이정 모두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고, 벼슬길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 주요한 까닭은 조부 이백록이 조광조(趙光祖) 일파로 간주되어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은 벼슬길에 뜻을 두지 않았고, 어머니인 변씨가 바느질품을 팔아 어려운 살림살이를 겨우 꾸려나갔다.

아버지 이정과 어머니 변씨는 장남 이희신과 차남 이요신을 문과로 보내길 희망했다. 특히 이요신의 경우 문재(文才)가 아주 뛰어나 류성룡과 막역한 친구가 될 만큼 장래가 촉망되는 문과 지망생이었고, 동생인 이순신도 문과 급제를 위해 학문에 힘쓰고 있었다. 그런 이순신이 왜 무과에 도전하고, 재수를 해 가면서까지 급제하여 후일 조선의 국난을 극복하는 삼도수군통제사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운명이었을까?

몇 살까지라는 확실한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이순신은 태어난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에 이순신은 자신의 일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뛰어난 인물을 만났다. 나중에 영의정이 되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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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49
■임진왜란 2편

■임진왜란 2편

원래 조선의 속령이었던 대마도는 일본과 조선의 눈치를 살피며 살던 중 이번에 히데요시 편에 붙어 함께 이 전쟁에 참가하였다. 제1군에 소속된 요시토모가 부산진성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그의 안내에 따라 고니시의 제1군은 거침없이 부산진성을 공격할 수 있었다. 무조건 항복하라는 고니시의 협박에 분노한 정발 첨사는 60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700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진의 선두에 서서 결사적으로 왜적의 진공을 막았다.

그러나 왜병들은 조총으로 무장하여 재래식 활로 맞선 조선군의 결사적인 항전을 무색하게 하였다. 부산진성의 위급상황을 알게 된 다대포 첨사 윤흥신은 정발을 지원하기 위하여 달려와 왜적들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노장 정발과 함께 최후까지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 700명의 병사들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부산진성에거 갑자기 총소리와 함성소리가 멎었다. 정발 첨사를 비롯한 700명의 조선 병사들이 모두 전사한 것이다. 개전(開戰)한지 불과 2시간여가 흘렀을 뿐이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군대는 일본군에게 함락당하고 성 안의 백성들은 몰살당했다. 일본군은 이후에 서평포, 다대포를 공격하였다. 서평포도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곧이어 다대포도 적의 수중에 떨어졌다. 다대첨사 윤흥신과 백성들이 희생당하고, 유키나가 군은 동래성으로 진격한다. 지원군으로 가던 경상좌병사 이각은 중과부적이라 판단하여 도주하였고, 동래부사 송상현은 끝까지 성을 지키다 전사했다. 이어서 일본군은 김해로 전진해 김해성의 남녀노소 1천명을 몰상하고 김해성도 함락시켰다.

연이어 부산 웅천, 그리고 낙동강하구 등에서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들어온 일본군은 제1군에서 9군까지 15만 8천여명의 병력이 조선으로 물밀 듯 올라왔다. 4월 20일엔 밀양도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파죽지세로 적은 서울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선조는 류성룡을 도체찰사로 임명하고 북상하는 일본군을 막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문인으로 전쟁을 잘 모르는 류성룡은 여진족과의 전공으로 유명한 신립을 추천하여 삼도순변사로 임명한다.

신립장군은 기병 3천을 이끌고 충주로 향했다. 도중에 모집한 병사들을 합하여 총 8천의 병사가 충주에 주둔했고, 일본군에 패한 경상도순변사 이일이 충주의 신립에게 합세하였다. 일본군이 조령으로 몰려오자 신립은 탄금대를 중심으로 포진하여 적과 결전을 벌이고, 이 탄금대전투에서 조선군 3천명이 전사하고, 신립과 그의 부하 김여물 등이 모두 전사하였다. 충주의 패전 소식을 접한 조정에서는 임금의 피난을 결정하였고, 4월 30일 새벽에 피난을 떠나 개성으로 향했다. 궁의 주인이 떠나자, 도둑들이 궁에 침입하여 약탈과 방화가 자행되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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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50
■ 조선의 별별 직업 5편

■ 조선의 별별 직업 5편

1. 프로 바둑기사 ‘기객’

삼국시대부터 사랑받던 바둑은 조선후기에 이르면 온 가족이 즐기는 놀이가 되었다. 영조 때 ‘김석신’이라는 사람은 내기 바둑에서 딴 돈으로 생활했다. 그러나 내기만으로 생계를 꾸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세력가의 후원을 받아 생계 걱정을 덜고 오직 기량을 갈고닦는 데 몰입할 수 있었다. 후원자가 있는 일종의 프로 바둑기사는 ‘기객’이라 하고,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국수’라 했다.

2. 전업 가수 ‘가객(歌客)’

가곡, 시조, 가사 등을 노래로 부르는 전업 가수를 ‘가객(歌客)’ 이라 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자신의 집에 ‘가비(歌婢)’ 나 ‘가동(歌童)’을 두고 노래를 즐기기도 했다. 직업적인 ‘가객’은 17세기 이후에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8세기 전후로 전성기를 맞았다. 가객의 노래는 신분이 높고 부유한 사람이 주로 향유했는데, 공연료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18세기 한양의 대표적인 ‘가객’이었던 ‘손고사’의 사례에서 생계형 가수의 수입을 추정할 뿐이다. 그의 노래가 절정에 이르면 사람들이 던지는 엽전이 비처럼 쏟아졌는데 열 냥 정도가 모이면 곧 일어나 떠나곤 했다. 열 냥이면 당시 쌀 한 가마 값이다. 부잣집이나 왕실행사의 공연료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객의 노래는 당시 사치스러운 문화상품이었던 것이다.

3. 유랑극단의 원조 ‘사당패’

떠돌아다니며 공연을 선보여 먹고 사는 무리를 ‘사당패’라 불렀다. 사당들은 무리를 지어 유랑하면서 재주를 선보이며 돈을 벌었고, 추워지면 본거지인 사찰로 돌아가 겨울을 나면서 기예를 연마했다. 이들은 어느 절에서 왔다는 사찰의 신표를 들고 다니며 공연을 하고 부적을 팔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사찰로 모여들었고 사당패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 명색은 사당패이지만 사실은 오갈 데 없는 유랑민이었다. 사당패는 공연과 함께 매춘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조선시대 문인들은 사당패에 대한 부정적인 기록을 많이 남겼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사당패는 본거지와 특기에 따라 다양한 집단으로 분화되었는데, 그 중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 영화 ‘왕의 남자’에도 등장하는 모두 남자로 구성된 ‘남사당패’이다. 꼭두쇠를 중심으로 농악연주, 대접을 돌리는 묘기, 땅재주, 줄타기, 가면극 등을 선보이며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공연 중 부상으로 젊은 나이에 지팡이를 짚은 채 잘 걷지도 못한다거나, 성병으로 고생하기도 했다고 하니 그들의 고단한 삶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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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50
심장을 지키는 8계명

심장을 지키는 8계명

1. 꼭 금연하세요.

흡연은 동맥경화와 암을 부르는데 하루 반 갑만 피워도 위험이 3배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2. 체중과 허리둘레를 신경 쓰세요.

복부비만은 인슐린의 기능을 저하시킴으로써 동맥경화의 위험을 2.5배 증가시킨다고 합니다.

3. 운동하세요.

규칙적인 운동은 근육과 골격을 건강하게 유지시킴으로써 좋은 자세를 유지 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며 다양한 대사기능 및 심혈관기능의 개선을 유도합니다.

4.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섭취하세요.

채소와 과일 그리고 도정하지 않은 곡물류(현미, 잡곡 등), 콩류는 다양한 복합 탄수화물, 섬유질, 칼륨, 비타민, 항산화제 등 미세영양소를 제공하여 혈압을 낮추고 당 및 지질 대사를 호전시키며, 심혈관질환의 발병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5. 짜게 먹지 마세요.

짜게 먹는 식습관은 고혈압 및 동맥경화증을 촉진함으로써 심혈관질환의 발생을 증가하므로 음식은 싱겁게 먹어야 합니다.

6. 등푸른 생선을 섭취하세요.

생선, 특히 등푸른 생선에는 EPA 및 DHA라는 오메가-3 다가불포화지방산이 포함되어 있어서 심뇌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으므로 1주에 2회(약 230g) 이상 생선을 섭취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7. 과음을 피하세요.

포도주를 포함하여 적당량의 음주는 항산화 효과와 함께 HDL콜레스테롤을 증가시키거나, 혈전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서, 심혈관 질환의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지나친 음주는 간 및 위장질환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8. 숙면을 취하세요.

수면은 심혈관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과 삶의 질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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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51
10년 젊어지는 47가지 방법

10년 젊어지는 47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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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10년 젊어진다.를 선언하라.
",
→ 선언에는 놀라운 에너지가 있다

2. 항상 웃어라.

→ 웃음은 노화를 몰아내고 젊음을 되살린다.

3. 즐거운 친구를 만나라.

→ 기쁨이 공유되면 행복도 넘친다.

4. 화초를 키워라.

→ 자신도 화초처럼 아름답게 꽃 핀다.

5. 여승과 수녀는 2~30년 젊다.

→ 마음의 평화가 젊음을 관리하는 것이다.

6. 밝고 신나는 노래를 불러라.

→ 힘이 넘치고 기쁨도 넘친다.

7. 자신을 위한 주문을 만들어 암송하라.

→ 주문대로 변화된다.

8. 천지 만물을 축복하라.

→ 천지만물은 나를 위해 축복한다.

9. 좋은 책을 많이 읽어라.

→ 좋은 책에서는 놀라운 에너지가 분출된다.

10. 한 번 뿐인 인생 즐기며 살아가라.

→ 즐겁게 살면 80도 청춘이다.

11. 병을 관리하라.

→ 관리를 잘하면 병도 친구가 된다.

12. 아픔도 감사하라.

→감사하는 마음이 노화를 정지시킨다.

13. 작은 기쁨도 크게 느껴라.

→ 느낌의 분량과 젊음의 분량은 정비례한다.

14. 남의 말을 좋게 하라.

→ 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에게로 돌아온다.

15. 누가 뭐란다고 속상해하지 말라.

→ 속이 상하면 겉(피부)도 상한다.

16. 화는 노화를 끌고 다닌다.

→화가 나면 "나는 살아 있다."를 외쳐라.

17. 욕심을 절반만 줄여라.

→ 노화도 절반으로 줄어든다.

18. 어디서나 필요한 사람이 되라.

→ 필요한 사람은 늙을 겨를이 없다.

19. 미운 마음이 급격한 노화를 가져온다.

→ 미움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켜라.

20.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려라.

→ 나도 옳고 남도 옳다.

21. 잘 때는 장갑과 양말을 사용하라.

→ 보온이 되면 면역력도 강화된다.

22. 과욕 과로 과식 과음 과속 과체중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 부족한 듯 살아가라.

23. 술은 3잔이상 마시지 말라.

→ 조금 마시면 약, 지나치면 독이 된다.

24.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늘여라.

→ 산성체질이 알칼리 체질로 변한다.

25. 올리고당은 비피더스균의 먹이다.

→ 장이 튼튼하면 신체 기능이 놀랍게 변한다.

26. 식탁 위에 견과류를 올려 놓아라.

→ 보약보다 더 효과가 있다.

27. 하루에 한알 비타민을 장복하라.

→ 미량이지만 큰 역할을 한다.

28. 몸의 70%가 물이다.

→물이 충분하면 물을 만난 물고기가 된다.

29. 변비는 노화의 주범이다.

→ 섬유소가 많은 식품을 섭취하라.

30. 행복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어라.

→ 마음이 음식성분까지 변화시킨다.

31.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녀라.

→ 운동량이 부족하면 신진대사에 문제가 생긴다.

32. 순수한 마음의 주인이 되라.

→ 아이들은 결코 늙지 않는다.

33. 정수기의 알칼리 수는 마시고 산성수는 모아둬라.

→ 산성수는 최고의 미용수다.

34. 미지근한 물로 세안하고 찬물로 마무리하라.

→얼굴도 작아지고 피부도 탱탱해진다.

35. 보습에 신경써라.

→ 촉촉한 피부는 젊음의 상징이다.

36. 피로하기 전에 휴식하라.

→ 휴식처럼 좋은 보약도 없다.

37. 싸워서 이기려 말라.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찾아내라.

38. 즐겁고 유익한 방송프로만 보라.

→ 의식이 변하면 몸도 변한다.

39. 긍정적인 사람에게서는 좋은 기가 나온다.

→ 이들과 친구가 되라.

40. 걱정해서 해결될 문제만 걱정하라.

→ 해결될 수 없는 문제와는 씨름하지 말라.

41. 인생은 한편의 연극이다.

→ 일생 일대의 명연기를 펼쳐라.

42. 스트레스를 두려워 말라.

→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게는 그것도 오락이다.

43. 좋았던 일만 기록하라.

→ 볼 때 마다 에너지가 충전된다.

44. 늦어도 밤 11시에는 잠을 자라.

→ 이 때 못자면 노화가 가속된다.

45. 뜨겁게 사랑하라.

→ 기쁨에너지가 젊음을 꽃피운다.

46. 자기 전에 기도하라.

→ 마음의 평온이 탄력과 활력을 샘솟게 한다.

47. 신선처럼 살아가라.

→ 신선에게는 나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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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52
■ 조선의 별별 직업 3편

■ 조선의 별별 직업 3편

1. 글씨 써주는 남자 ‘서수’

모든 기록물을 직접 붓으로 작성했던 시대에 글씨는 지식인이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뛰어난 서법(書法)을 익힐 수는 없었다. 글씨를 대신 써 주는 전문가가 있었으니, 이들을 서수(書手)라 불렀다. 서수에 대한 언급은 고려시대부터 등장한다.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目)》에는 고려시대 문하부(門下府) 이속(吏屬)에 서수의 직(職)을 두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18세기 후반을 전후해 서수들은 뛰어난 글씨로 민간 분야에서 전문가 집단을 형성했다. 영조실록에 ‘이제동’이라는 인물이 신씨 집안에서 10년 넘게 서수 노릇을 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서수들은 주로 어떤 활동을 했을까?

서수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곳은 과거시험 현장이었다. 조선 후기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은 좋은 자리를 잡아주는 ‘선접군’ 답지를 대신 작성해 주는 ‘거벽’ 작성된 답지를 깔끔하게 필사해 주는 ‘서수’가 한 팀을 이뤄 시험을 치렀다. 이익이 과거시험 답지를 스스로 작성하는 사람이 10%도 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기록을 보면, 이러한 모습은 당시 매우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서수의 대필(代筆)은 부정행위로 연결되고 사회문제로도 부각됐다. 그래서 정조는 거벽과 서수의 과거시험장 출입 금지령을 내렸으나 완전히 근절하지는 못했다.

관청에 제출하는 공문서작성 및 필사 역시 서수가 담당했다. 서수는 작문이 불가능한 사람들의 문서작성을 대행하거나 훌륭한 글씨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수수료를 받고 글씨를 써주었다. 서수들은 사대부가의 기록물, 고전소설, 과거시험 답지, 그리고 각종 공문서 등의 필사를 담당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2. 기생 매니저 ‘조방(助房)’

기생과 고객을 연결해주고 기생의 스케줄과 수입까지 관리해 주는, 요즘으로 치면 연예인의 매니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전문가를 가리켜 ‘조방(助房)’이라 불렀다. 기생은 각종 국가행사 에 동원되어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우는 것이 본분이다. 이들은 나라에 소속돼 있었기 때문에 일반 남성을 접대하는 것은 원래 불법이다. 하지만, 양반이나 그 자제들의 연회를 주최하고 기생들을 조달해 주는 비밀영업으로 조방들은 큰돈을 벌었다. 조방에 대한 인식은 다소 부정적이었다. 조방은 기생을 착취하는 포주나 기둥서방 같은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고 실제로 그런 존재이기도 했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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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52
■조선의 별별 직업 1편

■조선의 별별 직업 1편

1. 월천군

우리나라는 산이 많고 강과 개울(시내)도 흔하다. 큰 강은 뱃사공이 노를 젓는 나룻배를 타고 건넜고, 작은 강이나 개울은 다리를 놓아 건너 다녔다. 더 작고 얕은 개울(시내)은 징검다리를 놓아 건너다니면 된다. 하지만, 다리나 징검다리가 없거나 있어도 건너다가 발을 헛디디거나 이끼에 미끄러지면 물에 빠져 낭패를 보게 된다. 특히 양반가의 여인들은 남 보는 데서 신을 벗고 맨발을 드러낼 수 없었고, 양반 남성들 역시 체면 때문에 신 벗기를 주저했다.

이런 사람들을 등에 업고 시내를 건네준 뒤 돈을 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월천(越川)군’이라 했다. 월천군은 평소에는 다른 생업에 종사하다가 여름철 시내의 물이 불어 물살이 거세졌을 때나 얼음이 단단하게 얼기 전, 또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 일을 했다. 월천군은 발이 깨질 듯한 얼음물에 견디기 위해 물이 새지 않고 어깨까지 오는 가죽바지를 만들어 입기도 했다. 월천군과 함께 물에 빠지는 일도 적지 않았다.

2. 조화 만드는 사람 ‘화장(花匠)’

보존기간이 짧은 꽃을 원하는 대로 장식하고 오래 보기 위해 만드는 것이 조화(造花)다. 요즘은 조화(造花)를 하도 잘 만들어서 생화(生花)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지만, 싼 티가 나 보인다는 편견 탓인지 생화를 더 선호한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생화를 장식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을 오히려 찾기가 힘들다. 왕비와 궁녀의 머리장식인 잠화(簪花), 장원급제자의 사모에 꽂는 어사화(御賜花), 각종 궁중행사의 장식 등이 모두 조화였다. 지금처럼 사시사철 생화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예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조화의 종류도 국화, 모란, 장미, 복분자꽃, 연꽃 등 다양했으며 비단과 종이, 밀랍 등을 이용해 만들었다. 행사에 쓰인 물품과 비용을 기록한 의궤를 보면 한 차례 연회에서 사용되는 조화의 수는 보통 수천 개에 달했으며, 화환의 크기가 9척 5촌(약 3m)인 것도 있었다. 당시 조화의 개당 가격은 종류에 따라 6전에서 20냥까지 갔다. 쌀 한 가마니가 두세 냥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고가(高價)이다. 이 조화를 만드는 사람이 전문기술자인 화장(花匠)이다. 화장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있다. 관청에 소속되어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소집되어 조화를 만들었다. 왕실 연회에 쓰이는 조화의 종류와 수량은 갈수록 늘어났고,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 기술자가 대개 그랬듯이 화장도 고된 노동을 했지만 대접은 제대로 받지 못했다. 국가 소속이더라도 행사가 없으면 월급은 한 푼도 나오지 않았다. 화장은 속장(俗匠:속된 장인)이라며 무시당했지만, 이들의 정교한 작업은 전문가가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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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0:53
■ 화담 서경덕 5편

■ 화담 서경덕 5편

1546년(명종 1년) 57세 때 서경덕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이미 2년 가까이 병들어 지내 온 터였다. 마지막으로 목욕을 하고 임종을 앞 둔 그에게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지금 심경이 어떠십니까?” 서경덕이 답했다. “삶과 죽음의 이치를 깨달은 지 이미 오래이니, 내 지금 마음이 편안하구나.” 서경덕의 마지막 말이었다. ‘사람의 죽음을 애도함’(挽人)이라는 서경덕의 시에서도 죽음을 ‘애도’보다는 ‘평정심’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서경덕의 마지막 글>

『만물은 어디에서 왔다가 또 어디로 가는지

음양이 모였다 헤어졌다 하는 이치는 알듯 모를 듯 오묘하다

구름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것을 깨우쳤는지 못 깨우쳤는지

만물의 이치를 보면 달이 차고 기우는 것과 같다

시작에서 끝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항아리 치며 노래한 뜻을 알겠고

아, 인생이 약상(弱喪) 같다는 것을 아는 이 얼마나 되는가

제 집으로 돌아가듯 본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일지니』

서경덕이 죽은 뒤, 황진이는 한 많은 유람을 마치고 정든 송도 땅으로 돌아왔으나, 누구 하나 반겨줄 이 없는 슬픔이 밀려든다. 자연은 옛 그대로이나 자기와 사랑하던 임, 서경덕은 물과 같이 흘러갔으니 허전한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스승처럼 애인처럼 흠모해 오던 서화담을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지고 설움이 밀려와 지은 시조이다.

산(山)은 옛 산(山)이로되 물은 옛 물 아니로다.

(산은 옛날 그대로의 산이지만, 물은 옛날 그대로의 물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손가

(밤낮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옛날 물이 남아 있을소냐?)

인걸(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노매라.

(뛰어난 사람도 물과 같아,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구나)

떠나간 임(서경덕)은 잊어야 하건만,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줄 것을 기대해보는 절절한 황진이의 심정이 여실히 잘 나타나 있다.

서경덕은 명종 1년(1546년)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벼슬을 하지 않고 진사도 아닌 생원시에만 급제했기 때문에 묘비에도 ‘생원서경덕지묘’라고만 새겼다고 한다. 또 황진이가 죽기 전에 서경덕을 간병을 했으며, 사후에도 지극한 정성으로 제사를 올려주었다고 전한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22.html
kolaswqetsrq 11.02 00:54
■ 화담 서경덕 3편

■ 화담 서경덕 3편

황진이와의 에피소드는 매우 유명한 일화이다. 콧대 높은 벽계수를 나귀에서 떨어지게 하였고, 또 면벽참선하던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삼십년 공부를 도로아미타불로 만들었던 황진이는 서경덕도 자기 치마폭에 무릎 꿇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넘어오지 않는 남자가 없다는 자신감에 차 있던 황진이가 그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황진이는 서경덕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주기를 청한다. 처음 제자로 들어가 이리 저리 기회를 엿보며 서경덕을 유혹하려는 계획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서경덕은 황진이의 유혹에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다. 날이 저물어도 돌아갈 생각을 않고 있던 황진이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배를 움켜쥐고 쓰러져 뒹구는 것이었다. 물론 꾀병이었다. 화담이 알면서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어쨌든 아프다는 황진이에게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이부자리를 내어주고 자신은 옆방으로 건너가 밤늦게까지 책을 읽었다. 황진이가 밤새 화담이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렸으나 화담은 밤새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해서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얼마 뒤에 황진이가 또 화담에게 찾아갔는데,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황진이는 먼저 지족선사에게 써먹어 성공한 그 수법을 다시 동원했다.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고 비에 흠뻑 젖어 육감적인 몸의 곡선과 속살이 훤히 비쳐 보이는 차림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래도 화담 선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황진이가 온갖 교태를 다 부려도 빙긋이 웃기만 한 채 요지부동이었다. 마침내 천하의 황진이도 두 손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황진이가 감탄하여 "지족선사는 30년 면벽수련에도 내 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서경덕은 함께 오랜 시절을 지냈으나 끝까지 나에게 이르지 않았으니 진정 성인이다." 라고 말하고 서경덕에게 제자로 받아 줄 것을 부탁했다. 화담의 고매한 인품에 탄복한 황진이는 그 뒤로 자주 화담선생을 찾아가 술도 권하고 시도 주고받고 때로는 거문고를 연주하며 우정(?)을 나누었다. 화담은 황진이가 올 때마다 흔쾌히 맞아 즐거운 한때를 더불어 보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제 간과 같은 사이였지 남녀 간의 만남은 아니었다.

황진이는 서경덕에게서 우주의 진리, 인성의 본질, 인간의 참된 삶과 사랑을 배웠다. 그래서 그곳에서 서경덕과 영원한 스승과 제자 사이로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때부터 기생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친분을 나누었다. 요즘말로 하면 남사친 · 여사친 관계라고나 할까! 서경덕이 어찌 천하의 재녀(才女) 황진이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의 고매한 인품과 학식과 도력(道力)이 본능을 이겨낸 것이리라.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3_15.html
kolaswqetsrq 11.02 00:55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군고.

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군고.

출세 하기 싫은 사람 누군고.

시기 질투 없는 사람 누군고.

흉허물 없는 사람 어디 있겠소.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 말고

못 배웠다 주눅 들지 마소.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외다.

가진 것 많다 유세 떨지 말고,

건강하다 큰소리 치지말고

명예 얻었다 목에 힘주지 마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더이다.

잠시 잠깐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음을 편 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평가 하지 말고,

얼기 설기 어우러져 살다나 가세.

다 바람같은 거라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 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 바람이고,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오.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돈다오.

다 바람이라오.

버릴 것은 버려야지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하리요.

줄게 있으면 줘야지.

가지고 있으면 뭐하겠소.

내 것도 아닌데...

삶도 내 것이라고 하지마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뿐인데 묶어 둔다고

그냥 있겠오.

흐르는 세월 붙잡는다고 아니 가겠소.

그저 부질없는 욕심 일 뿐,

삶에 억눌려 허리 한번 못피고

인생 계급장 이마에 붙이고 뭐그리 잘났다고

남의 것 탐내시요.

훤한 대낮이 있으면 깜깜한 밤하늘도 있지 않소.

낮과 밤이 바뀐다고 뭐 다른게 있겠소?

살다보면 기쁜일도 슬픈일도 있다만은,

잠시 대역 연기 하는 것일 뿐,

슬픈표정 짓는다 하여 뭐 달라지는게 있소.

기쁜표정 짓는다 하여

모든게 기쁜 것만은 아니요.

내 인생 네 인생 뭐 별거랍니까?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고 불다 보면

멈추기도 하지 않소.

그렇게 사는겁니다.

- 서산대사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67.html
kolaswqetsrq 11.02 00:55
자기 건강을 체크하는 방법

자기 건강을 체크하는 방법

1. 입맛이 어떠한가?

사람의 원기는 식사에 의해 보충되며 식사를 얼마나 하는가 하는 것은 입맛이 어떠한가에 많이 관계된다. 입맛은 사람 몸의 건강을 잘 반영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할 때에는 입맛을 잃는 일이 없다. 입맛이 없다고 하여 덮어놓고 소화제 같은 것을 쓰지 말고 그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찾아보고 제때에 올바른 대책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2. 잠을 잘 자는가?

잠을 잘 못자면 주의력이 낮아지고 운동기능도 약해질 뿐 아니라 신경도 긴장된 상태로 있게 되고,간기능도 낮아지는 등 몸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야 하며 술이나 약을 먹고 잠을 자는 습관은 좋지 않다.

3. 신경질이 나지 않는가?

정신적인 과긴장상태가 오랜 기간 계속되면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신경질이 나고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정신적인 과긴장은 어지러움, 두통, 기억력장애, 피로감을 가져오는 수도 있고 소화장애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정신적인 과긴장상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운동과 휴식을 합리적으로 배합하여야 한다.

4. 대소변이 잘 보는가?

건강한 어른은 하루에 소변을 5-6번 정도 본다. 소변 회수가 이보다 훨씬 잦거나 혹은 줄면 몸에 이상이 생긴 징조로 보면 된다. 물론 땀을 많이 흘린 후나 맥주나 음료수를 많이 마신 후 등은 변화가 생기는 것이 정상이다. 만약 별다른 이유 없이 소변의 색이 변하거나 회수가 바뀌면 건강에 이상이 생긴 징조이다. 설사나 변비는 위장관의 이상으로 오게 되는데, 평소의 변의 상태를 눈여겨 보았다가 변화가 있으면 곧 주의를 돌리도록 하는 것이 필요 하다.

5. 호흡, 맥박, 체온에 이상이 없는가?

상조건하에서 1분 동안의 호흡수는 갓난아이 40-60회, 어린이 20-30회, 어른 15-20회 정도 이다. 호흡수가 이보다 많은 경우는 숨이 가빠지며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맥박의 수와 긴장도, 규칙성은 심장의 기능상태를 반영하는데, 평소 자신의 맥박에 대해 알고 있으면 이상이 온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열이 나는 것에 의해서도 맥박을 짐작할 수 있는데, 체온이 40도까지 오를 때는 0.5도씩 오를 때마다 1분 동안의 맥박수가 10회정도 많아진다. 맥박의 수와 긴장도, 규칙성이 변하면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체온은 흔히 겨드랑이 혹은 입안에서 재는데, 정상조건에서는 36도-36.9도 정도인데 일반적으로 밤에는 낮고 낮에는 약간 높다.

6. 월경이 순조로운가

건강한 여자의 월경은 28-30일만에 한번씩 하게 되는데 7일 이상 차이가 있으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본다. 또한 생리혈이 있는 기간은 3-7일 정도를 정상으로 본다. 생리혈의 색은 붉거나 약간 검붉은 색이며 피의 양은 50-100g인데 30g보다 적거나 150g보다 많으면 병이라고 본다. 기초체온은 생리상태, 호르몬 상태, 임신상태 등을 반영하는데 매일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아침 잠자리 에서 재어 보면 어느날부터 37도이상으로 오르고 그것이 지속되는 때가 있는데 보통 체온이 오른 날에서 14일정도 후에 생리를 하게 된다. 생리후에는 체온이 36도정도로 다시 내려가게 되며 생리가 없으면서 기초체온이 계속 높은 상태를 유지 하는 것은 임신한 상태에서 흔히 보는 현상이다. 생리가 이유없이 중단되거나 또는 고르지 않을 때에는 물론 생리가 정상인 여성들도 약 3달동안 기초체온을 재볼 필요가 있다.

7. 혈압이 정상인가?

어른의 정상혈압은 120/80 정도인데 개인에 따라 혹은 상태에 따라 차이가 많으나 보통 150/90이상이면 고혈압에 속하게 되므로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보아야 한다.

8. 체중은 어떠한가?

표준몸무게를 정해놓고 그것이 변하지 않는 가를 일상적으로 살펴보면 된다. 표준몸무게를 구하는 공식은 (키-100) X 0.9 = 표준몸무게 여기서 허용한계는 10%로 본다. 예를 들어 170cm의 신장을 가진 사람의 경우(170-100) X 0.9=63kg, 따라서 63kg이 표준몸무게가 되며 57-69kg정도가 정상 몸무게가 된다. 그러나 30세이후에는 체중이 좀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20-29세의 평균몸무게를 표준 몸무게로 보는 것이 좋다. 식사의 변화없이 체중이 계속 줄어드는 경우에는 질병을 의심해 볼 수 있으며 체중이 계속 늘어날 때에는 중년기의 비만으로 볼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98.html
kolaswqetsrq 11.02 00:56
건강해지고 예뻐지는 콩의 효능

건강해지고 예뻐지는 콩의 효능

1 피부노화 예방

콩에는 비타민E와 사포닌 성분이 풍부하다. 비타민E와 사포닌은 혈액순환을 원활히 하고 기미를 방지해주는 효과가 있다.

2 고혈압예방

현대인들은 서구화된 식생활로 육류소비가 많지만 웰빙바람으로 콩의 고혈압 예방 효능이 알려지며 재조명 받고 있다. 콩에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

3 항암작용

콩의 항암효과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데, 특히 검은콩의 껍질에는 항암물질인 글리시테인이 함유되어 있다. 때문에 콩식품을 많이 먹는 사람들은 위암, 유방암, 전립선암, 폐암 등 각종 암의 발병 위험이 낮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4 골다공증 예방

콩에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있다. 여성이 폐경기로 인해 체내에 에스트로겐이 부족할 때 이 식물성 에스트로겐을 투여하면 골다공증을 예방한다.

5 치매예방

콩에는 뇌의 노화방지에 탁월환 효능을 지닌 레시틴이 풍부하기 때문에 콩의 섭취는 뇌의 집중력을 향상시킴은 물론 건망증과 치매를 개선 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6 당뇨 억제

콩 속의 식이섬유는 위와 장에서 포도당의 흡수 속도를 낮추어 천천히 흡수되게 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당뇨병을 억제한다.

7 콜레스테롤 감소

두부와 같은 콩 단백질 식품은 악성 콜레스테롤인 저밀도지단백을 크게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25g 이상의 콩 단백질을 섭취하면 심장질환의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8 뇌의 건강과 활력에 관여

알츠하어머형 치매는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지만, 이들 환자의 뇌에서는 아세틸콜린이란 물질이 감소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대뇌활동이 활발할수록 아세틸콜린 소비도 많아지는데, 콩에는 레시틴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어 뇌 속의 아세틸콜린의 감소를 막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54.html
kolaswqetsrq 11.02 00:57
솔 잎의 효능

솔 잎의 효능

1. 니코틴 해독

담배에는 수많은 유해물질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 중독성을 유발하는 물질인 니코틴

이 니코틴을 해독하는데 솔잎이 아주 좋은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흡연자나 간접흡연을 경험하는 비흡연자들에게 니코틴을 해독하는 역할을 하며 기관지 건강의 향상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2. 자양강장

예로부터 솔 잎차는 자양강장이 필요할 때 섭취했던 전통차입니다.

스트레스나 피곤함이 쌓여있을 때 피로감을 감소시켜 주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데 도움을 줍니다.

3. 혈관 건강

솔잎차 속에는 다양한 무기질과 비타민성분이 풍부하여 함유되어 있다고 합니다.

혈관 내 노폐물 배출을 돕고 혈관벽을 튼튼하게 만들어주어 고혈압이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데 기대를 해볼 수 있습니다.

4. 노화 방지

솔잎 속에는 항산화 작용을 하는 성분도 있습니다.

몸 속에 노화의 원인인 활성산소를 제거해주어 신체의 노화를 늦춰줍니다.

5. 심신 안정

마음이 불안하거나 예민할 때 몸과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데 도움을 줍니다.

또한 통증을 가라앉히는 역할도 하여 두통이나 신경통에도 좋다고 하네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42.html
kolaswqetsrq 11.02 00:57
간이 나쁘면 나타나는 증상들

간이 나쁘면 나타나는 증상들

1. 감기에 잘 걸리거나 한번 걸린 감기는 잘 떨어지지 않는다 / 2. 혈당치가 높아진다 / 3. 가스가 차고 변비나 설사가 생긴다 / 4. 쉽게 피로하여 회복이 잘 안된다 / 5. 입에서 구취가 나며 입안이 텁텁하다

6. 혈압이 높거나 낮아진다 / 7. 신장이 안좋아 몸이 붓고 저리기도 하며 소변장애가 생긴다 / 8. 숨이 차면서 심장에 무리가 온다 / 9. 식욕이 없고 나른해진다 / 10. 헛배가 부르고 소화장애가 생긴다

11. 최근에 갑자기 살이 찌거나 빠진다 / 12. 조금만 활동해도 근육에 피로감이 느껴지며 어혈이 생긴다 / 13. 평상시나 양치때 구역질이 느껴진다 / 14. 머리가 자주 아프다 / 15. 잠잘 때 다리가 잘 땡기거나 저린다

16. 호르몬이 급격히 감소하며 성욕이 감퇴한다 / 17. 손 발이 차고 잘 저린다 / 18. 귀에서 소리가 난다 / 19. 소화가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하거나 설사를 한다 / 20. 눈에 이상이 오는 것 같다

21. 온종일 나른하다 / 22. 어깨나 목 뒤가 자주 결린다 / 23. 휴식을 해도 늘 피로감이 가시지 않는다 / 24. 모든일이 의욕이 없고 귀찮고 원기가 없다 /25. 신경이 예민해지고 스트레스가 잘 풀리지 않으며 자주 화가 난다

26. 몸이 무겁고 머리가 띵하다 / 27. 집중력이 떨어져 일의 능률이나 학업에 진전이 없다 / 28. 기억력이 떨어진다 / 29.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비염이나 인후염 기관지염이 자주 찾아온다 / 30. 충분한 수면을 이루지 못하거나 힘들 정도로 피곤할 수 도 있다

31. 갈증으로 필요없는 물을 많이 마신다면 당뇨를 의심해 볼 것 / 32. 현기증이 나고 기분이 나쁘다 / 33. 기운이 떨어지면 코피가 자주 난다 / 34. 입안이 자주 헐고 잇몸이 붓거나 잇몸이 붓고 피가나며 치아가 흔들리기도하고 입술 주변이 잘 부르트거나 부스럼같은 종기가 생기기도 한다 / 35. 피부가 가렵기도 하고 피부병으로 의심할 수 있는 증상이 오기도 한다

36. 긁으면 피부가 두드러기처럼 일어난다 / 37. 치질이나 무좀으로 오인할 수 있는 증상이 오기도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128.html
kolaswqetsrq 11.02 00:58
등산과 친해지면 좋은 7가지 이유

등산과 친해지면 좋은 7가지 이유

1. 등산은 젊어지는 비결이다

활동량이 줄어들면 노화가 더 빨리 찾아온다. 등산은 충분한 운동량을 보장하기 때문에 노화를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2. 등산은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산을 오르는 과정이 힘들면 힘들수록 성취감은 더 커진다. 등산을 하고 나면 자신감이 충만해지고 집중력이 향상되는데 이런 효과는 24시간 이상 지속된다

3. 등산은 심장을 강하게 만든다

혈액 속에 지방이 쌓이면 혈관이 막혀 심장발작이 일어난다. 등산은 피 속의 지방을 걸러내고 심근을 단련시킨다. 등산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심근경색에 걸릴 확률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4. 등산은 폐기능을 강화시킨다

등산은 폐의 활성을 높여 신체가 충분한 산소공급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5. 등산은 골밀도를 높인다

체중이 실리는 걷기, 등산, 달리기, 줄넘기 같은 운동이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

6. 등산은 관절과 연골에 좋다

연골세포는 뼈나 근육처럼 혈액이 아니라 관절액에서 영양을 공급받는다. 무릎을 구부렸다. 펴는 동작은 연골 세포 사이에 관절액이 스며들게 해 영양공급과 노폐물 배출을 원활하게 한다

7. 등산은 비만을 예방한다

등산은 대표적인 유산소운동으로 체내에 축적된 잉여 에너지를 태워 성인병의 근본 원인인 비만을 막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7_44.html
kolaswqetsrq 11.02 00:59
혈관을 젋게 만들어주는 10가지 식품

혈관을 젋게 만들어주는 10가지 식품

1. 마늘

마늘은 동맥 정화에 가장 좋은 음식이다. 높은 항산화 성분이 체내의 활성 산소와 싸우면서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추고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는 높여준다. 마늘의 훌륭한 효능은 혈류를 개선하고 고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2. 귀리

특히 귀리는 아침식사로 추천한다. 소화에 좋을 뿐 아니라 하루 종일 쓸 에너지도 공급해준다. 귀리를 섭취하면 콜레스테롤이 동맥벽에 붙지 못하게 된다. 이로 인해 동맥 경화 및 다른 심장 질환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

3. 사과

사과에는 펙틴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UC Davis의 스포츠 영양학과 교수인 Liz Applegate 박사에 따르면, 펙틴이라는 섬유소가 콜레스테롤과 결합되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춘다고 한다. 또한 사과에 있는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심장병 발병 확률을 최대 50%까지 줄여준다고 한다.

4. 생선

지방질이 풍부한 생선은 착한 지방인 오메가-3 지방산의 공급원이다. 이 성분은 우리 몸이 제대로 활동하고 막힌 동맥을 뚫는 데 필요하다. 그중 효과가 좋은 생선은 연어, 고등어, 참치, 송어, 청어, 정어리이다.

5. 강황

강황의 주요 성분 중 하나인 커큐민은 심장 보호에 훌륭한 역할을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커큐민으로 인해 강황이 혈관 폐색과 관련된 동맥 손상을 예방할 수 있다.

6. 시금치

잎 푸른 채소 시금치에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하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시금치는 콜레스테롤 산화나 동맥 경화와 같은 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7. 견과류

견과류 또한 동맥 폐색 예방 및 혈관 정화 자극에 훌륭하다. 견과류의 단일불포화 지방산과 오메가-3 지방산은 동맥 건강에 필수적이다. 특히 추천하고 싶은 종류는 헤이즐넛, 아몬드, 피칸, 땅콩이다.

8. 올리브 오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은 매우 다양한 효능이 있다. 그중에서도 심장병을 예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올리브오일은 단일불포화 지방산으로, 잘 산화되지 않아 콜레스테롤이 동맥벽에 달라붙는 것을 예방한다.

9. 토마토

토마토는 리코펜이라는 성분을 공급하는 매우 중요한 식품이다. 이는 나쁜 콜레스테롤이 동맥벽에 달라붙는 것을 예방하는 항산화 물질이다. 연구에 따르면, 매일 토마토를 먹으면 지방 딱지가 동맥 내에 자라는 위험이 줄어든다고 한다.

10. 석류 주스

석류 주스에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다는 점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블랙베리, 블루베리, 오렌지 주스 등과 같은 모든 주스보다 풍부하다. 항산화제로 인해 석류 주스는 손상된 동맥, 즉, 동맥 경화를 치료하는 데 매우 효과가 좋다고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27.html
kolaswqetsrq 11.02 00:59
생활 속 동의보감 처방전

생활 속 동의보감 처방전

01. 눈이 침침하면 결명자차를 드세요

02. 포도는 껍질까지 드세요.(골다공증 예방약)

03. 성인병 예방에 해바라기씨가 그만입니다.

04. 위장, 비장 기능이 약할 때 밤을 드세요.

05. 콜레스테롤이 걱정되면 녹차 요구르트를 드세요.

06. 스트레스 해소에는 토란줄기가 그만입니다.

07. 신장이 약한 분은 달팽이를 달여서 마시세요.

08. 소변보기가 어려울 땐 가오리가 정말 좋아요

09. 피로할 때 인삼대신 잔대(일명백삼)를 드셔보세요

10. 고혈압이 걱정일 때 뽕나무차를 마시세요.

11. 기억력 증진에 오미자가 좋습니다.

12. 마음이 불안하고 장이 나쁠 때 사과파이를 드세요.

13. 무 꿀 즙은 감기 특효약이랍니다.

14. 몸의 각종 신진대사를 돕는 다시마를 많이 드세요.

15. 천식에 비파차 만한 게 없습니다.

16. 숙취엔 감식초를 드세요

17. 동맥경화 예방엔 귤이 좋습니다.

18. 잇몸이 약할 땐 숙지황을 드세요

19. 목이 뻣뻣할 땐 모과를 이용해 보세요.

20. 뱃속이 좋지 않은 분은 도토리묵을 드세요

21. 흥분성 신경쇠약에 연꽃씨가 잘 듣습니다.

22. 간이 약할 때 모시조개도 좋습니다.

23. 식초를 먹으면 무조건 좋습니다.

24. 여드름이 많이 나면 삼백초차를 드셔보세요

25. 두통에는 들국화차를 마시세요.

26. 꿈이 많고 잠을 이루지 못할 때 차좁쌀을 달여 드세요

27. 요로결석을 풀어주는 데는 조기가 좋답니다.

28. 위, 십이지장궤양에는 율무차도 좋아요

29. 술 마신 다음날은 부추를 드세요.

30. 기관지에는 영지가 좋습니다.

31. 가래가 끓으면 살구씨 기름을 드세요.

32. 여름철 감기 인삼, 오미자차를 드세요

33. 당뇨병에 식초를 이용하시면 좋습니다.

34. 당뇨병엔 두릅나물이 좋습니다.

35. 당뇨병엔 가시오갈피를 드세요.

36. 소갈증(당뇨)엔 다래가 좋습니다.

37. 관절염엔 솔잎을 이용해 보세요.

38. 치질엔 모란꽃 끓인 물로 좌욕하세요.

39. 간경화엔 매실조청이 그만입니다.

40. 위궤양엔 감초를 달여 드세요

41. 초기 위궤양엔 연뿌리 경단이 좋습니다.

42. 위암에는 옻닭이 좋습니다.

43. 양파는 동맥경화나 고혈압에도 좋습니다.

44. 오십견일 때는 엄나무껍질을 끓여서 차처럼 마시세요.

45. 요통에는 부추술 과 술 목욕이 효과 있어요.

46. 신경불안증에는 멸치와 백합 달인 물이 좋아요.

47. 어지럼증이 심할 땐 오리고기가 좋습니다.

48. 추울 땐 쑥이 좋으니 자주 드세요.

49. 신경피로, 전신권태에 얼룩조릿대를 써보세요

50. 산성체질을 개선하려면 얼룩조릿대를 끓여 드세요.

51. 장마철 피부병에는 녹두가 최고입니다.

52. 기침이 심하면 머위꽃대를 달여 드세요.

53. 잔기침이 심할 땐 생강차에 엿을 녹여 드세요.

54. 계속되는 요통에는 돼지 콩팥을 이용하세요.

55. 간 기능 이상에는 동물의 간이 좋습니다.

56. 편도선염엔 새우젓 태운 것을 이용해 보세요.

57. 수험생들에겐 생선류와 연근즙이 좋아요.

58. 속눈썹이 눈동자를 찌르면 들국화 다린 물을 드세요.

59. 고혈압에는 무즙, 감즙이 좋습니다.

60. 잠 많은 수험생에게 대추씨를 날로 먹이세요.

61. 목이 아플 때는 돼지기름을 조려 꿀을 섞어 드세요

62. 잇몸 염증이 생기면 소금, 산초를 식초에 달여 드세요.

63. 식욕이 없을 땐 도주를 한잔 마시면 입맛이 살아납니다.

64. 부기를 가라앉히는 데는 팥즙에 꿀을 섞어 드세요.

65. 노인성 변비에는 꿀1숟가락에 파 3뿌리를 넣고 달여 드세요.

66. 중풍 예방에는 채소즙이 좋습니다.

67. 웃음은 만병통치약 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54.html
kolaswqetsrq 11.02 01:00
장수의 비결

장수의 비결

단명하는 사람과 장수하는 사람 그 차이는 무엇일까? 미국인 7,000名을 대상으로,9년 간의 추적조사에서 아주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흡연, 음주, 일하는 스타일, 사회적 지위, 경제상황, 인간관계 등에 이르기까지 조사한 끝에 의외의 사실이 밝혀졌다. 담배나 술은 수명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이색적인 결과가 나왔다. 일하는 스타일, 사회적 지위, 경제상황 등 그 어느 것도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오랜 조사 끝에 마침내 밝혀낸 장수하는 사람들의 단 하나의 공통점은 놀랍게도 “친구의 수” 였다고 한다. 즉, 친구의 수가 적을수록 쉽게 병에 걸리고,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친구들이 많고 그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스트레스가 줄며, 더 건강한 삶을 유지하였다는 것이다.

✅ 친구란?

1. 환경이 좋든 나쁘든 늘 함께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다.

2. 제반 문제가 생겼을 때 저절로 상담하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3. 좋은 소식을 들으면 제일 먼저 알리고 싶은 사람이다.

4. 다른 사람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일도 말해주고 싶은 사람이다.

5.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다.

6. 쓰러져 있을 때, 곁에서 무릎 꿇어 일으켜주는 사람이다.

7. 슬플 때, 기대어서 울 수 있는 어깨를 가진 사람이다.

8. 내가 울고 있을 때, 그의 얼굴에도 몇 가닥의 눈물이 보이는 사람이다.

9. 내가 실수했다 하더라도 조금도 언짢은 표정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10. 필요에 따라서 언제나 진실된 충고도 해주고 위로도 해주는 사람이다.

11. 나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는 사람이다.

12. 갖고 있는 작은 물건이라도 즐겁게 나누어 쓸 수 있는 사람이다.

13. 친구란 서로 재거나 비판하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는 사이.. 그저 말만 같이해도 같이 마음이 좋아지는 사이.

✅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 당신이 먼저 연락하라.

우테크는 재테크처럼 시간과 노력을 들인 만큼 성공 확률도 높아진다.우연히 마주친 친구와 ‘언제 한번 만나자’는 말로 돌아설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점심 약속을 잡아라. 아니면 그 다음날 전화나 이메일로 먼저 연락하자.

둘째 : 기꺼이 봉사하는 직책을 맡아라.

평생 ‘갑’으로 살아온 사람일수록 퇴직하면 더 외롭게 지내는 것을 종종 본다. 항상 남들이 만나자고 하는 약속만 골라서 만났기 때문이다. 날짜와 시간을 조율하고 장소를 예약하고 회비를 걷는 일은 성가시다. 그러나 귀찮은 일을 묵묵히 해낼 때, 친구는 늘어난다.

셋째 : 젊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 보라.

젊은 친구들과 함께 영화도 보고 문자메시지도 교환하라. 자기 나이보다 스무살 이상 적은 사람도 언제나 존댓말로 대하고 혼자서만 말하지 마라. 교훈적인 이야기로 감동시키려 들지 말 것이며 가끔은 피자를 쏠 것.

넷째 : 매력을 유지하라.

항상 반짝 반짝하게 잘 씻고 가능하면 깨끗하고 멋진 옷을 입어라. 동성 끼리라도 매력을 느껴야 오래 간다. 후줄근한 모습을 보면, 내 인생도 함께 괴로워진다. 육체적 아름다움만 매력이 아니다. 끊임없이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새로운 음악도 들어야 매력 있는 대화상대가 될 수 있다.

다섯째 : ‘우테크’ 1순위 대상은 배우자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안에 원수가 산다면 그것은 가정이 아니라 지옥이다. 배우자를 영원한 동반자로 만들기 위해 우선 배우자의 건강을 살펴야 한다. 혼자 자는 일도 삼갈 일이다.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져도 모르면 큰일이다. 공동의 관심사를 갖기 위한 하나로 취미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자기 취미를 강요해서도 안된다.

함께 하는 취미를 만든답시고 등산하는데 데리고 가서는 5시간 동안 부인에게 한 말이라고는 ‘빨리 와!’ 뿐이 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후로 사이가 더 나빠졌음은 물론이다.

여섯째 : 명문 카페를 찾아 열심히 활동하라.

열심히 출석부에 체크하고 산행, 정기모임, 번개모임, 봉사 등 카페 활동을 하며 각종 행사에 참여해 보라. 그곳에서 당신은 멋진 친구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57.html
kolaswqetsrq 11.02 01:01
◇ 5분 도리도리 우울증 · 거북목 · 뇌졸중 싹 날려

◇ 5분 도리도리 우울증 · 거북목 · 뇌졸중 싹 날려

✅ 도리 도리 뇌운동 방법과 효과

▶️ 갑작스러운 혈압 상승 위험

갑작스러운 혈압 상승으로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뇌졸중(중풍, 뇌경색, 뇌출혈)이 평소보다 4배가 급증한다는 것을 아시나요?

▶️ 뇌혈관은 1mm 미만으로 얇은 혈관입니다!

혈관크기가 좁아지거나 막히게 되면 순식간에 주변 뇌세포들의 기능을 정지되어 치매, 전신마비, 언어장애, 혼수상태로 이어지고 또 사망까지 이르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5분에 한 명씩 발생하고 20분마다 1명씩 사망한다니 정말 조심해야겠죠?

✅ 뇌졸중 전조증상 체크

1 갑자기 사물이 두 개로 보인다.

2 말이 어눌해진다.

3 어지럼증이나 구토 증상이 나타난다.

4 팔다리에 힘이 빠진다.

5 두통이 생긴다.

✅ 도리도리 뇌혈관 운동

뇌혈관을 이어주는 길목인 목 부위가 경직되면 뇌로 전달되는 산소와 혈액의 공급이 원활해지지 않게 되어 뇌혈관과 뇌졸중 등 질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제 목만 풀어주어도 뇌혈관의 혈류량이 증가한 실험연구결과도 있는 만큼 목이 중요한 관리 부분인데요. 가장 대표적인 뇌혈관운동! 도리도리 뇌운동(뇌파진동)은 스트레스로 긴장된 목과 어깨 부위를 풀어주어 뇌혈류량을 증가시켜 줍니다.

현대의학은 도리도리 운동을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순환장애로 인한 뇌 출혈, 뇌경색, 치매, 풍,등의 예방에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200회 3~4일 정도만 매일 하여도 모든 두통이 사라집니다. 잇몸질환으로 인한 통증도 사라집니다. 잇몸질환을 방치하면 뇌출혈 풍 치매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도리도리를 통해 혈액순환이 잘되어서 분명 기억력이 좋아지고 기억력의 깜박 거림도 현저히 줄어듭니다. 꼭 실행 하시길 바랍니다.

✅ 목 운동의 방법

첫째 : 도리도리,

둘째 : 좌 우로 회전,

셋째 : 앞 뒤로 끄덕임,

넷째 : 좌 우 옆 으로

횟수는 능력에 따라 많이 하셔도 됩니다. 한 종류를 200번 가량 합니다. 뒷 골이 땡긴다는 증상이 현저히 줄어 듬을 느낌니다. "해보세요" 분명히 느낄 것입니다. 심장에 관한 순환장애의 극복은 바로 30분걷기 운동만으로도 혈관을 튼튼히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25.html
kolaswqetsrq 11.02 01:02
중년층은 하루 8000보로 충분

중년층은 하루 8000보로 충분

하루에 1만보가 건강을 준다는 속설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 몇 걸음이나 걸어야 건강해질까.

중년층은 하루에 8000보 이상을 걸으면 사망 위험이 크게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연구팀은 2005~2006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하고 일주일 동안 속도계를 착용한 평균 연령 50세인 성인 3101명의 데이터를 조사하고, 10년 뒤 사망원인도 조사했다.

참가자들은 일주일에 8000보 이상 걸은 날에 따라 0일, 1~2일, 3~7일 그룹으로 나뉘었다. 그 결과 8000보 이상 걸은 일수가 많을수록 10년 뒤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및 심혈관 질환 사망 위험이 낮아졌다. 평균 8000보 걸은 날이 일주일에 1~2일이면 사망 위험이 15%, 3~7일이면 17% 줄었다.

65세 이상 노년층은 8000보 걷기의 위력이 훨씬 컸다. 일주일에 단 하루도 8000보 이상을 걷지 않은 사람은 사망 위험이 40%로 높았지만 1~2일 이 목표를 채우면 사망 위험은 절반인 20%로 줄고, 3~7일인 경우 12%로 더 낮아졌다.

"매일 충분히 운동할 수 없는 사람도 일주일에 1~2일 정도만 권장 걸음 수를 채워도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1만보는 19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만보계를 팔려는 한 일본 기업의 영리한 마케팅 전략을 통해 널리 퍼지게 됐다. 당시 일본에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기업들은 이를 영업에 활용하려고 했다. 1만보가 아니더라도 걷기는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젠 상식에 속한다. 전문가들은 숨이 약간 찰 정도의 중등도 이상 걷기가 건강에 많은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8000.html
kolaswqetsrq 11.02 01:02
해초의 놀라운 건강효과 6가지

해초의 놀라운 건강효과 6가지

먹을거리로 많이 쓰는 해초로 김·미역·다시마·톳 등을 꼽을 수 있다. 김은 홍조류이고, 나머지는 갈조류에 속한다. 해조류는 물 속에 사는 식물·원생생물·세균계 생물을 뜻하는 보다 더 폭넓은 개념이다. 육상 생물을 뺀 온갖 광합성 생물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각종 회와 해초를 함께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엔 건강에 관심이 높은 식도락 고객을 겨냥한 해초 전문 음식점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들 음식점은 해초를 넣은 칼국수, 비빔밥 등 각종 해초 요리를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간판을 내걸고 있다. 해초의 놀라운 건강 효과 6가지’를 소개한다.

1.지방 흡수

해초를 먹으면 체중 증가를 걱정하는 사람은 한시름 놓을 수 있다. 연구 결과(2016년)를 보면 해초는 허리둘레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해초는 소화 효소인 리파아제의 효과를 억눌러 지방 흡수율을 75%까지 줄일 수 있다. 리파아제는 췌장에서 만들어져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 가운데 하나다.

2.뼈를 튼튼하게

해조류는 유제품처럼 칼슘을 섭취할 수 있는 식재료다. 미역 2테이블스푼에는 15mg의 칼슘이 들어 있다. 칼슘은 뼈의 성장 및 복구를 돕는 필수 요소다. 남성은 55세쯤부터, 폐경기에 들어간 여성은 51세쯤부터 골밀도가 감소한다. 뼈 손실은 골절 위험을 높인다. 하루에 칼슘을 1000~1200mg 섭취하는 게 바람직하다.

3.풍부한 철분 공급

철분을 더 많이 얻고 싶다면 다시마를 추가로 섭취하면 좋다. 다시마는 동물성 단백질이 풍부한 철분 공급원이다. 다시마 2테이블스푼에는 철분이 0.28mg 들어 있다. 유명 셰프이자 체중 감량 코치인 데빈 알렉산더는 해초를 바삭한 간식(스낵)으로 활용하면 좋다고 말했다.

4.갑상샘 조절

해초, 특히 미역에는 갑상샘(갑상선) 건강에 필수적인 요오드가 풍부하다. 갑상샘은 우리 몸의 신진대사에 관여한다. 요오드는 몸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음식으로 이를 섭취해야 한다.

5.혈압 낮추는 데 도움

혈압을 조절하지 않으면 심장마비, 뇌졸중 위험이 높아진다. 연구 결과를 보면 클로렐라를 매일 1.5g씩 6개월 동안 먹은 고혈압 환자의 혈압이 크게 낮아진 걸로 나타났다.

6.우울증 완화 및 기분 전환

연구 결과(2015년)에 따르면 클로렐라는 우울증을 누그러뜨리는 데 큰 효과를 낸다. 클로렐라는 주요 우울장애로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는 환자의 우울증과 불안 증상을 완화하는 데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6_15.html
kolaswqetsrq 11.02 01:03
잘못된 건강속설 10가지

잘못된 건강속설 10가지

 "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는 건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인지 예로부터 건강에 관한 여러 속설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조상들은 지혜로웠지만, 그들이 믿었던 속설 중에는 틀린 것도 생각보다 훨씬 많다. 그동안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건강 속설들의 진실을 파헤쳐 본다.
",

1. 바닥에 떨어진 음식도 5초 안에 주워 먹으면 괜찮다?

 "
흔히 말하는 5초의 규칙은 사실이 아니다. 박테리아는 1천분의 1초 이내에 음식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촉촉한 음식은 마른 음식보다 훨씬 더 쉽게 박테리아에 오염된다. 떨어뜨린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여부는 음식을 줍기까지 시간에 달린 게 아니라 떨어뜨린 곳의 표면이 깨끗한지 여부에 달려있다.
",

2. 몸을 따뜻하게 하면 감기를 치료할 수 있다?

바이러스 형태로 전파되는 감기나 독감은 냉기·온기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사람들이 겨울철에 감기에 더 잘 걸리는 이유도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가까이 붙어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감기 바이러스에 전염될 확률이 높아진다.

3. 하루 사과 한 알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

사과에는 비타민C와 섬유질이 풍부해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우리의 몸에 침투했을 때 몸을 보호해주는 기능은 없다. 독감 예방 주사를 맞는 게 사과 한 알씩을 꾸준히 먹는 것보다 건강을 지키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4. 커피는 키가 자라는 것을 방해한다?

완벽한 증거는 없지만 대부분의 연구에서는 카페인과 뼈 성장 간의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성인들에게는 카페인이 아주 약간의 칼슘 흡수를 방해할 수 있지만, 이렇게 방해받는 칼슘의 양은 1티스푼 분량의 우유와 같은 아주 작은 양이다.

 "
과거 커피 대용 차를 판매하던 미국 회사가 미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료인 커피를 견제하려 절대 아이들에게 주어선 안 되는 음료라고 광고한 것이 정설처럼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

5.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감기가 악화된다?

아이스크림 등 유제품이 가래, 콧물 등의 분비를 촉진한다는 속설은 사실이 아니다. "편도선이 부었을 때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도움이 된다"

6. 머리로 체온의 90%가 빠져나간다?

꼭 그렇지는 않다. 아론 E. 캐롤(Aaron E. Carroll) 박사와 레이첼(Rachel C. Vreeman) 박사는 "체온은 우리 몸에서 외부에 노출된 모든 부위를 통해 균일하게 빠져나간다"고 설명했다.

우리의 머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노출되어 있으므로 이와 관련한 낭설이 나온 것 같다. 하지만 다른 곳은 꽁꽁 싸맨 채 반바지를 입고 있다면 다리에서, 반팔을 입고 있다면 팔에서 가장 많은 열이 빠져나간다.

7. 종합비타민을 복용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종합비타민은 우리에게 필요한 여러 종류의 영양분이 담겨 있으므로 꾸준히 먹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 그러나 비타민과 관련한 수십 년간의 연구에 따르면 종합비타민이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일부 연구결과에서는 종합비타민이 다양한 종류의 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결과도 나왔다.

8.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먹은 후 주스를 마시면 해독 작용을 한다?

주스는 과일과 채소의 섬유질 등 각종 영양분을 섭취하려는 목적으로 섭취하는 것이지 해독 작용을 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우리 몸의 유해 화학 물질을 제거하는 것은 간, 신장 및 위장이다.

9. 요구르트를 먹으면 소화에 도움이 된다?

업체들은 요구르트에는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와 몸에 좋은 박테리아가 들어 있어 소화를 돕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게 한다고 광고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분이 우리 몸에서 어떤 효과를 내는지와 관련해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요구르트의 효능은 과장됐다.

특히 시중에 파는 요구르트에는 설탕이 듬뿍 들어있기 때문에 많이 섭취하면 비만 등 여러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10. 껌을 삼키면 소화시키기까지 7년이 걸린다?

다행히도 우리의 소화기관은 꽤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어떻게든 껌 조각이 남아서 몇 년 동안이나 우리 뱃속에 남아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껌에 들어간 향료와 감미료, 유연제는 쉽게 분해되는 것에 비해, 껌 베이스는 분해되는 데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결국엔 모두 분해되어 소화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49.html
kolaswqetsrq 11.02 01:04
미국에서 화제인 혈액형 별 다이어트

미국에서 화제인 혈액형 별 다이어트

✅ 혈액형을 알야야 살을 뺀다

대부분의 식물에 들어 있는 단백질 레크틴은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인체대사를 방해하는 요인, 이 레크틴에 대한 반응이 혈액형마다 달라 혈액형에 따라 레크틴이 들어있는 식물을 피하는 식사법이나 운동법을 실행하면 살을 뺄 수 있다는 것이 다다모 박사의 이론입니다.

1. O형

O형의 소화기관은 튼튼하며 강한 면역성을 지녔지만, 빵이나 파스타 같은 곡류에 포함된 레크틴 칼로디를 에너지로 연소시키는 기능을 약하게 하기 때문에 피하도록 해야 한다.

▶ 효과적인 식품 : 쇠고기, 간, 고등어, 파인애플 쥬스, 시금치, 브로콜리, 마늘 등

▶ 피해야 할 식품 : 옥수수, 파스타류, 베이컨, 귤, 딸기, 요구르트

▶ 운동 : 심장 박동수를 적당히 올려주는 유산소 운동

2. A형

야채중심의 식사가 가장 적절.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콩류나 곡류로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도록 한다. 고기를 일절 먹지 말고 1주일에 3∼4회는 생선류를, 그 외에는 야채 중심의 식사를 한다.

▶ 효과적인 식품 : 대구, 고등어, 두유, 콩, 국수, 당근, 파슬리, 호박, 파인애플, 요구르트

▶ 피해야 할 식품 : 고기,유제품(요구르트 제외),감자,피망,토마토,오렌지,바나나,옥수수,파스테류,베이컨,귤,딸기,요그르트

▶ 운동 : 요가나 명상 등 기분을 안정시킬 수 있는 운동이 좋다. 다이어트 중이라면 유산소 운동인 하이킹이나 수영, 스트레칭 같은 것이 아니라 기력과 체력을 보강 할 수 있는 운동이 좋다.

3. B형

B형이 뚱뚱해지는 확실한 식품은 옥수수, 국수, 땅콩, 들깨. 여기에 들어 있는 레크틴은 모두 B형의 신진대사 를 낮춘다. 또한, 이 식품을 밀가루와 같이 먹으면 대사가 더욱 악화되고 지방으로 축적된다.

▶ 효과적인 식품 : 양고기, 정어리, 대구, 고등어, 요구르트, 시금치, 가지, 무, 피망, 바나나

▶ 피해야 할 식품 : 옥수수, 땅콩, 닭고기, 밀가루, 토마토, 참기름

▶ 운동 : 심하지 않은 테니스와 에어로빅 등 다른 사람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이 이상적이다. 반드시 스트레칭 등 워밍업을 해 근육을 풀어주도록 한다.

4. AB형

두부를 중심으로 해 소량의 고기와 요구르트, 생선, 달걀, 녹색 야채로 식단을 꾸미는 것이 좋다. 빵은 AB형에게 어울리는 식품이지만 다이어트 중 밀가루 음식은 좋지 않다.

▶ 효과적인 식품 : 양고기, 고등어, 치즈, 요구르트, 현미, 백미, 샐러리, 오이, 레몬, 키위

▶ 피해야 할 식품 : 국수, 버터, 밀가루, 후추, 바나나, 오렌지

▶ 운동 : 요가나 명상 등 기분을 안정시킬 수 있는 운동이 좋다. 다이어트 중이라면 유산소 운동인 하이킹이나 수영, 스트레칭 같은 것이 아니라 기력과 체력을 보강할 수 있는 운동이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75.html
kolaswqetsrq 11.02 01:04
체질에 맞는 차茶 고르는 노하우 13가지

체질에 맞는 차(茶) 고르는 노하우 13가지

1. 황기차

<땀이 많은 사람, 비만인 사람> 황기는 땀의 양을 조절하고 이뇨작용을 도우며 또한 피부를 튼튼하게 하고, 농을 배출하며 붓기를 가라 앉히는 효능, 만성피로를 풀어주며, 불면증과 허약체질의 개선에도 효과적이다.

2. 녹차

<혈압이 낮은 사람> 녹차는 호흡기와 만성적인 심장질환에 효과적이며, 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 당뇨병 환자, 술독이 생겼을 때 혈압이 낮은 사람에게 더 좋으며, 다이어트 및 노화방지에도 좋다.

3. 다시마차

<혈압이 높은 사람> 심한 스트레스로 뒷머리가 뻣뻣한 증상이 있을 때 마시면 효과적이다.

4. 율무차

<변비,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사람> 율무는 무릎이나 관절의 부종에 좋고 특히 변비나 불면증인 사람에게, 또 칼슘, 철, 단백질, 탄수화물 등이 고루 들어있어 피부미용과 사마귀 제거, 기미와 주근깨 제거에 좋고 체력을 튼튼하게 하고 머리를 좋게하는 효능까지 있다.

5. 귤차

<다이어트와 피로회복> 귤은 비타민C가 풍부하고 구연산과 레몬을 함유하고 있어 피로를 풀어주며,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여 칼로리 소모를 높여 주기 때문에 다이어트 시 마시는차로는 딱!

6. 칡차

<비만, 어깨결림, 고혈압> 칡은 기침, 감기, 두통, 고혈압에 효과적이며,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여 칼로리 소모도 높일 뿐 아니라 설사, 갈증완화 그리고 중년 이후의 어깨결림에 좋다.

7. 구기자차

<추위 예방> 구기자에는 비타민C와 혈액을 원활하게 하는 성분, 또 단백질이 비교적 많아 눈을 맑게 하고, 피로에 지친 몸을 회복시켜주며 힘줄과 뼈를 튼튼하게 해 추위를 타지않게 한다.

8. 결명자차

<변비와 눈에 좋다> 결명자는 혈압을 내려주고 만성변비, 노안에 개선 효과가 있으며 장시간 책이나 모니터를 보는 수험생에게 좋은 차라고 할 수 있으며 코피를 멈추게 할 때도 쓰인다고 한다.

9. 둥글레차

<남성정력, 피부미용> "신선초"라고 불리는 둥글레는 구수한 향과 맛이 일품! 피부미용과 간기능 장애에도 뛰어난 효능이 있다.

10. 인삼차

<피로회복> 단백질, 당질, 무기질, 비타민B 등이 풍부한 인삼은 속이 냉한사람에게 맞는 약초다. 감기초기나 위장병, 당뇨병과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에게 특히 효과적이라고 한다.

11. 흰파뿌리 생강차

<몸살감기> 소화기능이 약하고 몸이 찬사람이 감기에 걸렸을 때, 열은 나지만 오싹하지만 할 때, 흰파뿌리와 생강을 달여 먹으면 땀과 함께 나쁜 기운이 빠져 나가 감기가 낫게 된다.

12. 오미자차

<기억력 감퇴> 다섯가지 맛을 낸다는 오미자는 과로로 인한 기억력 감퇴, 시력 감퇴, 간염, 천식을 진정시키며 감기에도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13. 계피차

<몸이 찬 사람> 유난히 손발이 찬사람과 기운이 약한사람, 소화기능이 약한 사람이 마시면 좋은 이유는 몸 속에 뭉쳐있는 냉기를 풀어주고 아랫배나 손발의 냉증을 풀어 주기 때문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3_15.html
kolaswqetsrq 11.02 01:05
쑥 활용법과 먹는 방법

쑥 활용법과 먹는 방법

1 쑥 차

어린 쑥을 그늘에서 바싹 말린다. 말린 쑥을 가루 내어 쌀가루와 적당량 섞는다. 병에 담아 놓고 따뜻한 물 한 잔에 1~2 숟갈씩 타서 마신다.

몸이 뚱뚱하면서 찬 사람의 경우 고혈압이나 콧병, 손발 저림 등 혈액 순환 장애를 겪을 때 쑥을 달여 수시로 차처럼 마시면 좋다. 자궁 기능 이상으로 생기는 각종 부인병에는 쑥을 달여 아침저녁 빈속에 참깨 한 숟갈을 곁들여 먹으면 좋다.

보통 한 번에 말린 쑥 12g 정도를 달여 먹지만, 증상이나 사람에 따라 양을 조절한다. 몸이 펄펄 끓고 머리가 아픈 감기에는 마른 쑥 100g에 물 10컵을 넣은 뒤 진하게 달여서 마시고 땀을 내면 효과가 있다.

2 쑥 술

위장병, 손발이 시리고 찬 데, 각종 부인과 질환에 쑥술을 담가 마시면 좋다.

음력 5월 단오 이전에 채취한 쑥 30g 을 끓는 물에 데친 다음 꼭 짜서 그늘에서 말린다. 말린 쑥을 독에 담고 소주 1되를 부어 밀봉한 뒤 2~3개월 지나서 찌꺼기는 걸러 내고 하루 한 잔씩 마시면 된다.

3 피부에 좋은 쑥

쑥에는 비타민C가 듬뿍 들어 있어 노화를 예방하고 피부재생을 촉진하는데 탁월하다. 또 향균, 소독 효과도 탁월해 주부습진, 여드름 등의 피부 관리에 좋다.

4 쑥 뜸

쑥이 가진 양기가 차가운 기운 즉, 한사를 몰아내는 곳에 제격이기 때문에 쑥을 뜸의 재료로 많이 이용한다. 양기, 원적외선 효과나 쑥 진이 발휘하는 각종 면역 기능은 쑥뜸의 가장 큰 장점이다. 여름에도 쑥뜸을 뜨는 것은 도움이 되지만 겨울보다는 좀 약하게 뜨는 것이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79.html
kolaswqetsrq 11.02 01:06
갈불음도천수渴不飮盜泉水 - 목말라도 도천 샘물은 마시지 않는다.

갈불음도천수(渴不飮盜泉水) - 목말라도 도천 샘물은 마시지 않는다.

목마를 갈(氵/9) 아닐 불(一/3) 마실 음(食/4) 도둑 도(皿/7) 샘 천(水/5) 물 수(水/0)

사람은 죽어도 이름은 남는다. 이름을 훔치는 것은 돈을 훔치는 것과 같다. 이름을 중요시한 동서양의 금언이다. 사람의 이름도 중요하지만 사물의 이름을 바로 짓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 孔子(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름을 바로잡는(正名/ 정명) 일을 우선하겠다고 답했다. 각종 불의를 자행하면서도 이름엔 태연히 정의를 갖다 붙이는 당시 세태를 빗대 말했다.

이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이름에 나쁜 의미가 들어 있으면 그것을 피했다는 것이 도둑의 샘이란 우물은 목말라도 마시지 않는다는 이 성어다. 제아무리 괴롭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도 부정과 불의에 더럽혀지지 않도록 처신에 조심하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여기에도 물론 공자가 수제자인 효자 曾子(증자)와 함께 등장한다. 戰國策(전국책)을 쓴 前漢(전한)의 劉向(유향)이 고대부터 내려온 온갖 지혜와 고사를 모은 설화집 ‘說苑(설원)’ 談叢(담총)편에 실려 있다. ‘하루는 증자가 승모라는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때는 이미 해가 져서 사방이 어둡고 배도 고팠지만 머물지 않고 발길을 재촉했다.

공자가 도천이라는 샘을 지나칠 때 몹시 갈증이 났지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그 곳을 떠났다. 모두 그 이름을 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邑名勝母 曾子不入 水名盜泉 孔子不飲 醜其聲也/ 읍명승모 증자불입 수명도천 공자불음 추기성야).’ 도둑의 샘물이란 뜻을 지닌 도천의 물을 마시는 것은 군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를 이긴다는 승모라는 마을에서 유숙한다는 것은 효자인 증자에겐 어머니에 대한 불경이요 불효였다.

秦漢(진한)이후 중국의 대표적인 시문을 모은 ‘文選(문선)’에는 晉(진)나라의 시인 陸機(육기, 261~303)의 시 猛虎行(맹호행)을 소개한다. 선비가 바르게 살아가자면 여러 가지 난관이 많음을 설명하면서 자세를 흩뜨리지 말 것을 권한 글이다. 첫 머리에 이 말이 나온다. ‘목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으며, 더워도 악목의 그늘에서 쉬지 않노라. 악목인들 어찌 그늘이 없겠나마는 뜻있는 선비에게는 고심이 많구나(渴不飮盜泉水 熱不息惡木陰 惡木豈無枝 志士多古心/ 갈불음도천수 열불식악목음 악목개무지 지사다고심).’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84.html
kolaswqetsrq 11.02 01:07
도원낙토桃源樂土 – 복숭아꽃 피는 살기 좋은 땅, 속세 떠난 이상향

도원낙토(桃源樂土) – 복숭아꽃 피는 살기 좋은 땅, 속세 떠난 이상향

복숭아 도(木/6) 근원 원(氵/10) 즐길 락(木/11) 흙 토(土/0)

영국의 토머스 모어(Thomas More)가 창조한 유토피아(utopia)는 이상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1515년에 쓴 이 공상 사회소설에서 유토피아는 정치와 경제, 종교의 자유가 완벽하게 갖춰진 나라이지만 그리스어가 뜻하는 바대로 ‘어느 곳에도 없는’ 나라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이상향은 동양에도 있었다. 여기에는 복숭아꽃 피는 아름다운 극락세계를 비유한 桃源境(도원경)이다. 도원의 살기 좋은 땅(樂土)은 武陵(무릉) 지방의 한 어부가 발견했다고 武陵桃源(무릉도원)이라고도 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현실세계에선 존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해서 이 지역도 가상이다.

동양의 이상향을 창조한 사람은 중국 六朝(육조) 최고의 시인인 陶淵明(도연명, 365~427)이다. 東晉(동진) 출신으로 이름이 潛(잠)인 그는 歸去來辭(귀거래사)에 못지않게 유명한 ‘桃花源記(도화원기)’를 썼다. 작자가 살던 동진 말기는 전화가 계속되어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었다. 이 글은 어두운 현실에서 도피하는 이상세계를 풍부한 상상력으로 묘사하여 仙境(선경)의 전승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내용을 간추려보자.

진나라 무릉이란 곳에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는 어부가 살고 있었다. 어부가 흐르는 물을 따라 배를 몰고 가다 길을 잃었는데 홀연히 복숭아나무 숲이 나타났다(緣溪行 忘路之遠近 忽逢桃花林/ 연계행 망로지원근 홀봉도화림). 숲을 따라가다 작은 굴을 발견하여 안으로 들어가 보니 새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서 사는 남녀노소 모두들 고기와 술, 음식을 대접하며 어부를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그들은 秦(진)나라 때 난세를 피해 왔으며 그 후 漢(한)나라의 건국과 멸망도 모르고 있었다. 집집마다 융성한 대접을 받고 떠날 때 당부했다. ‘외부 사람들에게 말할 거리가 못됩니다(不足爲外人道也/ 부족위외인도야).’ 마을에 돌아와서 태수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고 즉시 사람들을 동원하여 찾아보았으나 어느 곳에서도 그런 이상향은 없었다.

이상향은 가상의 세계지만 정치인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집권하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렇지만 국민들의 삶이 나아졌다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말만 앞세우기 때문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을 바라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삶이 모두에 보장되면 만족하는 법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90.html
kolaswqetsrq 11.02 01:07
군주인수君舟人水 – 임금은 배, 백성은 물

군주인수(君舟人水) – 임금은 배, 백성은 물

임금 군(口/4) 배 주(舟/0) 사람 인(人/0) 물 수(水/0)

임금은 배(君舟)이고 백성은 배를 띄우는 물(人水)이라는 말은 예부터 지도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말로 유명하다. 백성들이 임금을 잘 받들 수 있지만, 잘못 다스릴 때는 배를 엎을 수 있다며 명군들은 명심하고 경계를 한다. 똑 같은 뜻으로 이전에 소개한 載舟覆舟(재주복주)가 있다. 역시 배를 실어가기도 하고 뒤엎기도 하는 물을 백성에 비유했다. 戰國時代(전국시대) 때의 荀子(순자)에서 언급된 후 여러 곳에서 비슷하게 인용됐는데 풀어 써서 水可載舟 亦可覆舟(수가재주 역가복주) 혹은 水能載舟 亦能覆舟(수능재주 역능복주)라 하면 뜻이 더 명확하다.

唐(당)나라 2대 太宗(태종) 李世民(이세민)이 신하들과 문답을 주고받은 ‘貞觀政要(정관정요)’는 吳兢(오긍)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제왕의 필독서로 꼽혔다. 태종은 隋(수)나라 말기의 혼란상을 바로잡고 중앙집권을 강화하여 중국 역사상 최고의 영주로 꼽힌다. 부친 高祖(고조) 李淵(이연)을 도와 각지의 반란군을 제압하고 수나라 수도 長安(장안)까지 점령하여 나라를 건립했다.

재위(626∼649) 23년간 공정한 정치를 펼쳐 貞觀之治(정관지치)라는 찬사도 받는다. 하지만 부친이 정권 창출에 큰 공이 있음에도 형 建成(건성)을 황태자로 삼자 왕자의 난을 일으켜 황궁의 북문인 玄武門(현무문)에서 형을 제거하고 양위를 받았다. 뛰어난 능력에도 힘겹게 왕위에 오른 태종은 그러나 건성의 측근이었던 魏徵(위징)을 간의대부로 삼는 등 고언을 받아들여 항상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를 폈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하루는 태종이 신하들을 불러놓고 왕은 궁궐 깊은 곳에 있어 천하의 일을 다 알지 못하니 참된 눈과 귀가 되어 달라고 했다. 위징이 답하여 항상 깊은 연못을 지나고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일을 처리하면 나라가 오래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다.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는 옛말이 있습니다(君舟也 人水也 水能載舟 亦能覆舟/ 군주야 인수야 수능재주 역능복주).’ 政體(정체)편에 실려 있다. 民水(민수)가 人水(인수)로 된 것은 태종 이름이라 避諱(피휘)한 것이라 한다.

항상 소통을 강조하며 자신은 아랫사람의 의견을 잘 듣는다는 지도자라도 듣기 좋은 말만을 담게 된다. 반대되는 측의 쓴 소리라도 반영해야 진정한 소통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일이라도 1400년 전의 당태종이 가장 소통 잘한 군주로 남아 있으니 실천은 어려운 모양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11.html
kolaswqetsrq 11.02 01:08
장수선무長袖善舞 -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춘다.

장수선무(長袖善舞) -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춘다.

긴 장(長/0) 소매 수(衣/5) 착할 선(口/9) 춤출 무(舛/8)

긴 소매로 된 윗옷을 입고 추는 전통춤은 보기에 우아하다. 화사한 색상에 유려한 선으로 된 옷차림만으로 어깨춤이 절로 따른다. 특히 승무에서 남색 치마에 흰 저고리, 흰 장삼을 걸치고 추는 춤은 나비와 같다고 표현한 시인도 있다. 이처럼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 한다’는 우리 속담과 똑 같은 뜻이 이 성어다. 수단이나 밑천이 넉넉한 사람은 일을 하거나 성공하기가 쉽다는 말인데 ‘韓非子(한비자)’에 나오는 원전에서도 長袖善舞 多錢善賈(장수선무 다전선고)로 되어 있다. 善은 착하다는 뜻 외에 잘한다는 뜻, 賈는 성 가, 장사 고. 多財善賈(다재선고), 多錢善買(다전선매)로도 쓴다.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 法治主義(법치주의)를 주창한 韓非(한비)의 논저인 이 책의 五蠹(오두)편에 실렸다. 蠹는 좀벌레를 말하는데 ‘오두’는 五賊(오적)과 같이 나라를 갉아먹어 황폐하게 하는 사람들을 지칭했다. 공론만 일삼는 유가와 종횡가, 무력으로 질서를 해치는 유객, 권문귀족, 그리고 농민들의 이익을 빼앗는 상공인을 포함한다.

한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군주가 나라 다스리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잘 다스려 강력하게 하는 것은 외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국내 정치에 달려 있는데 국내에서 법치로 다스리지 않고 국외에서 지모 쓰는 것을 일삼는다면 강대해 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속담에 "긴 소매 자락은 춤추기에 좋고 많은 돈은 장사하기에 좋다(鄙諺曰 長袖善舞 多錢善賈/ 비언왈 장수선무 다전선고)"는 말이 있다. 이것은 밑천이 많아야 일을 잘하기가 쉬움을 말한 것이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강대하면 계책을 세우기가 쉽고, 나라가 약하고 어지러우면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운 것이다’고 덧붙인다. 鄙는 더러울 비, 鄙諺은 품위가 매우 낮은 말이나 속담을 뜻한다.

이런 정치적 측면은 줄었지만 同價紅裳(동가홍상)이란 말과 같이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능력과 함께 물질적인 것이 갖춰져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뜻으로 넓혀졌다. 그렇더라도 요즘은 소매가 긴 집안이 너무 길고, 대대로 긴 것이 탈이다. 부모 재산 정도에 따라 금수저, 흙수저로 젊은이들이 나눠진다며 아무리 노력해도 損富益貧(손부익빈)에서 언급한대로‘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사라졌다고 자조한다. 젊은이들에 긴 소매를 달아 줄 묘책은 없는가.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94.html
kolaswqetsrq 11.02 01:09
계포일낙季布一諾 - 계포의 승낙. 한 번 약속은 끝까지 지킴

계포일낙(季布一諾) - 계포의 승낙. 한 번 약속은 끝까지 지킴

- 계절 계(子-5) 베 포(巾-2) 한 일(一-0) 허락할 낙(言-9)

마음속의 언약까지 굳게 지킨다는 季札(계찰)의 季札掛劍(계찰괘검)만큼, 季布(계포)라는 楚(초)나라 무장의 이름이 들어간 이 성어도 약속의 가치를 말해주는 말로 자주 인용된다. "장부의 한 말이 천금같이 무겁다"는 우리 속담도 있듯이 계포의 승낙을 받는 것이 일백 근의 황금을 얻는 것보다 낫다고 한 말에서 왔다.

계포는 項羽(항우)와 劉邦(유방)이 천하를 두고 각축하는 楚漢(초한) 전쟁 때 양쪽에서 모두 귀한 대접을 받았다. 젊었을 때부터 의협심이 강했고 한번 약속을 하면 끝까지 지키는 사람으로 평이 났다. 처음 항우의 장수로 출전해 여러 차례 유방을 괴롭혔다. 항우가 패망하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뒤 계포는 쫓기는 신세가 됐다.

천금의 상금을 걸고 계포의 목을 노렸지만 사람들은 신망을 받았던 그를 숨겨줬다. 朱家(주가)라는 협객은 유방의 측근에 손을 써 계포를 사면되게 했을 뿐 아니라 더하여 벼슬을 얻게 했다. 적지에 있게 되었어도 그는 시비가 명확하고 성심을 흐리지 않아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 당시 초나라 사람으로 曹丘(조구)라는 사람이 뛰어난 변설로 실력자와 어울리고 있었다. 왕의 외숙인 竇長君(두장군, 竇는 구멍 두)에게도 뻔질나게 드나들자 계포는 조구를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편지를 보냈다.

이 말을 듣고 조구가 도리어 소개장을 갖고 계포를 만나러 왔다. "초나라 사람들의 말에 황금 백 근을 얻는 것보다 계포의 승낙을 얻는 것이 더 낫다(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 득황금백근 불여득계포일낙)는 말이 있습니다. 나도 동향인데 돌아다니며 당신의 이름을 천하에 날리게 할 수 있는데 어찌 멀리 하십니까" 하고 말했다. 계포는 조구를 받아들이고 그 후 각국에 선전을 하여 더욱 명성을 높이게 됐다. "史記(사기)" 季布欒布(계포난포, 欒은 단란할 란)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78.html
kolaswqetsrq 11.02 01:09
염화미소拈華微笑 - 꽃을 집어 들고 웃음 짓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다.

염화미소(拈華微笑) - 꽃을 집어 들고 웃음 짓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다.

집을 념, 점(扌/5) 빛날 화(艹/8) 작을 미(彳/10) 웃음 소(竹/4)

어떤 일을 가르치거나 전달하려할 때 받아들이는 사람이 먼저 알아챈다면 그 이상 수월할 수가 없다. 이해가 빨라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이해하는 제자가 기특하다. 부처님이 불교의 진수를 전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법했다. 三處傳心(삼처전심)이다.

그 세 가지 중에서 靈山會上擧拈花(영산회상거염화)가 말을 통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을 뜻하는 拈華微笑의 유래가 됐다. ‘大梵天王問佛決疑經(대범천왕문불결의경)’에 전한다고 한다.

釋迦牟尼(석가모니)가 인도 고대의 마가다국에 있던 靈鷲山(영축산, 鷲는 독수리 취로 읽지만 불교선 축으로 읽음. 양산 영축산도 영취산, 취서산으로 읽히다 2001년 영축산으로 통일)에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부처님이 그중 연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자 모두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마하가섭(摩訶迦葉, 訶는 꾸짖을 가 또는 하, 葉은 잎 엽이지만 고을이름 섭도 됨)만이 뜻을 알아채고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에 부처님은 자신의 가르침이 문자나 교리로가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제자에게 전해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敎外別傳(교외별전)이고 以心傳心(이심전심)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석가는 ‘내가 체득한 불가사의한 진리 正法眼藏(정법안장)과 현묘한 깨달음으로 말이나 문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경지의 불법 涅槃妙心(열반묘심)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포하였다. 이뿐만 아니다. 다자탑 앞에서 설법할 때 가섭에게 자리를 반 비워 준 일, 쌍림에서 열반에 드실 때 가섭이 오자 관에서 발을 밖으로 내민 일 등도 뜻을 이어받게 한 일이라 한다. 이로써 가섭은 10대제자 중에서도 上首第子(상수제자)로 치며 부처님 이후의 법통을 말할 때 개조가 되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48.html
kolaswqetsrq 11.02 01:10
세이공청洗耳恭聽 – 귀를 씻고 남의 말을 경청하다.

세이공청(洗耳恭聽) – 귀를 씻고 남의 말을 경청하다.

씻을 세(氵/6) 귀 이(耳/0) 공손할 공(心/6) 들을 청(耳/16)

세상을 피해 산야에 묻혀 사는 隱者(은자)라 하면 대뜸 중국의 許由(허유)와 巢父(소보)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친구 사이라는 이들은 실제 인물이라기보다는 堯(요) 임금 때 살았다는 전설에만 나온다. 아비 父(부)는 어른 경칭일 땐 보. 許繇(허요, 繇는 성할 요)라고도 하는 허유는 임금 자리를 맡아달라는 소리에 귀가 더럽혀졌다며 귀를 씻었다(洗耳).

속세를 떠나 나무에서 살았다는 소보는 그런 귀를 씻은 강물을 자신의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하여 상류로 끌고 갔던 사람이다. 이렇게 하면 귀를 씻는다는 말이 세상과 완전 담을 쌓은 고집불통을 연상하나 여기에 공손히 듣는다(恭聽)란 말과 결합하려 쓰이면서 귀를 씻고 남의 말을 경청한다는 뜻으로 변했다.

西晉(서진)의 학자 皇甫謐(황보밀, 215~282, 謐은 고요할 밀)은 벼슬을 하지 않고 숨어 사는 학덕이 높은 선비들을 모아 ‘高士傳(고사전)’을 저술했다. 두 은자가 등장하는 내용을 보자. 沛澤(패택)이란 곳에서 살던 허유는 사람됨이 의리를 지키고 행동이 바르며 부정한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성군 요임금이 이런 훌륭한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찾아가자 정치에 뜻이 없던 허유는 箕山(기산)이란 곳으로 숨었다. 요임금은 처음 허유가 겸손해서 그러는 줄 알고 다시 사람을 보내 九州(구주)의 장이라도 맡으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허유는 한층 역겨워하면서 산 아래의 潁水(영수)라는 강가에 내려가 귀를 씻었다(由不欲聞之 洗耳於潁水之濱 /유불욕문지 세이어영수지빈). 濱은 물가 빈. 이 고장에 은거생활을 하던 친구 소보가 송아지를 끌고 와 물을 먹이려다 마침 이 모습을 보고 연유를 물었다.

허유의 이야기를 들은 소보는 쓸데없이 떠다니며 명예를 낚으려는 행동은 옳지 않다고 나무랐다. 강물에 귀를 씻었으니 송아지의 입이 더러워지겠다며 상류로 끌고 가서 물을 먹였다.

귀를 씻는다는 말이 경청하는 뜻으로 바뀐 것은 元(원)나라 이후 잡극에서 사용됐다. 작가 關漢卿(관한경)이 關羽(관우)에 대해 쓴 ‘單刀會(단도회)’에선 ‘군후께서는 말씀하십시오. 소관은 귀를 씻고 경청하겠습니다(請君侯試說一遍 下官洗耳恭聽/ 청군후시설일편 하관세이공청)’란 대사가 등장한다고 했다.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듣고서 바로 의견을 내친다면 그 조직은 발전할 수 없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두루 들으면 현명해진다는 兼聽則明(겸청즉명)이란 말도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반대 측의 좋은 방안도 받아들여야 진정한 화합을 이루는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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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11
담박명지淡泊明志 - 마음이 맑고 깨끗해야 뜻을 밝게 펼칠 수 있다.

담박명지(淡泊明志) - 마음이 맑고 깨끗해야 뜻을 밝게 펼칠 수 있다.

맑을 담(氵/8) 머무를 박(氵/5) 밝을 명(日/4) 뜻 지(心/3)

諸葛亮(제갈량, 181~234)은 三國志(삼국지)에서 蜀(촉)의 劉備(유비)를 도와 맹활약을 펼친 군사전략가다. 그의 자를 딴 死孔明 走生仲達(사공명 주생중달)은 죽은 뒤 인형으로 적장 司馬仲達(사마중달)을 쫓았다는 전설적 지략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명재상으로 충절로도 이름을 남긴 제갈량은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제갈량이 남긴 出師表(출사표)는 우국충정이 절절한 명문으로 읽히는데 그에 못지않게 알려진 아들을 위한 글도 남겼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86자의 편지 ‘誡子書(계자서)’다. 8세가 된 늦둥이 아들 諸葛瞻(제갈첨, 227~263)에게 보낸 배움과 수신에 관한 당부이고 처세의 잠언이다.

마음이 맑고 깨끗해야(淡泊) 뜻을 밝게 펼칠 수 있다(明志)는 이 성어는 글 중에서도 잘 알려져 서예를 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구절이다. 첫 부분부터 군자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한다며 이어지는 글에 등장한다. ‘군자의 행동은 마음을 고요히 하여, 몸을 닦고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덕을 쌓아야 한다(夫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 부군자지행 정이수신 검이양덕).

마음이 넉넉하고 깨끗하지 않으면 뜻이 밝을 수가 없고, 마음을 한 곳에 모아 평온하지 않으면 큰일을 도모할 수 없다(非澹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비담박무이명지 비녕정무이치원).’ 원문의 澹白(담백)은 淡白(담백)과 같고, 뒤의 寧靜致遠(영정치원)과 함께 많이 쓰인다.

이 문장 다음의 이어지는 글도 학문의 자세를 일러주니 함께 보자. ‘무릇 배움이란 반드시 평온한 마음으로 임해야 하며, 재능은 모름지기 배움에서만 길러진다(夫學須靜也 才須學也/ 부학수정야 재수학야), 배우지 않는다면 재능을 넓힐 수가 없고, 뜻이 없다면 학문을 이룰 수가 없다(非學無以廣才 非志無以成學/ 비학무이광재 비지무이성학).’

이런 교육을 받은 아들 제갈첨은 곧게 자라 후주 劉禪(유선)의 駙馬(부마)가 되고 환관의 발호를 막는 등 정권을 바로잡으려 애썼다. 魏(위)나라의 총공세에 항복하면 琅耶王(낭야왕)에 봉하겠다는 제의도 뿌리치고 전사했다. 항복하여 즐거움에 나라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樂不思蜀(낙불사촉)의 후주와 대조적이었다.

제갈량이 빈한한 가정에서 자랐어도 초야에 묻힌 지혜의 臥龍(와룡)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인재를 찾던 유비가 三顧草廬(삼고초려)한 이야기는 잘 알려졌는데 그 때 젊은 공명이 읽었다는 시 구절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꼿꼿한 자세를 보여줬다.

‘봉황은 하늘 천 길을 날아도 오동나무 아니면 깃들이지 않고(鳳翱翔於千仞兮 非梧不棲/ 봉고상어천인혜 비오불서), 선비는 외로운 땅 쓸쓸히 있어도 참되고 어진 주인이 아니면 따르지 않네(士伏處於一方兮 非主不依/ 사복처어일방혜 비주불의).’ 翱는 날 고, 翺(고)와 같다. 곧은 자세로 높은 지위에 있었어도 주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던 그는 공직자의 표상이기도 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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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11
일금일학一琴一鶴 - 거문고 하나와 학 한 마리, 청렴결백한 관리

일금일학(一琴一鶴) - 거문고 하나와 학 한 마리, 청렴결백한 관리

한 일(一/0) 거문고 금(玉/8) 한 일(一/0) 학 학(鳥/10)

곧고 깨끗하여 주변의 뇌물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법을 집행한다. 이런 관리라면 항상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淸白吏(청백리)를 먼저 떠올린다. 조선시대에 정착된 제도로 살아있는 경우에는 廉勤吏(염근리)라 칭하며, 孟思誠(맹사성), 黃喜(황희) 등 명재상을 포함하여 모두 217명이 배출됐다고 한다.

중국에도 이런 사람이 없을 수 없다. 後漢(후한)때 四知三惑(사지삼혹)으로 알려진 楊震(양진)과 楊秉(양병) 부자가 있고, 강직한 관리의 대명사 包靑天(포청천)으로 유명한 北宋(북송)의 包拯(포증), 그리고 이보다 조금 후세의 趙抃(조변, 1008~1084, 抃은 손뼉칠 변)을 꼽을 수 있다.

조변이라 하면 거문고 하나(一琴)와 한 마리의 학(一鶴)이 전 재산이란 청렴결백한 관리의 대명사다. 그는 아호부터 그릇됨을 아는 知非子(지비자)로 사람 됨됨이가 강직했다. 처음 진사로 벼슬을 시작하면서 주변의 추천을 받고 殿中侍御使(전중시어사)란 자리로 승진했다.

조변은 재상이 조정의 업무를 처리하는 재능이 없고, 불법을 저지른 고관은 보두 파면되어야 한다는 등 權貴(권귀)를 두려워않고 잘못을 따져 탄핵하여 鐵面御史(철면어사)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다 시기를 받아 파직되고 지방 태수로 내려가서도 잘못된 기풍을 바로잡으며 백성들의 높은 신망을 받았다.

元(원)나라 때 托克托(탁극탁) 등이 편찬한 ‘宋史(송사)’에 조변의 후일담이 실려 있다. 북송의 6대 황제 神宗(신종)이 즉위하자 조변을 다시 중앙으로 불러올려 감찰 업무를 맡겼다. 신종은 조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가 지방 태수로 부임할 때 말 한 필로 갔다면서 ‘거문고 하나와 학 한 마리만을 함께 했는데, 그의 청렴결백한 다스림은 칭찬받을 만하다(以一琴一鶴自隨 爲政簡易 亦稱是乎/ 이일금일학자수 위정간역 역칭시호)’고 했다.

조변의 강직한 성품은 조선의 中宗(중종)실록에도 인용됐다. ‘하루 동안 한 일을 그날 밤에 반드시 분향하고 하늘에 고하였으니(一日所爲 其夕必焚香告天/ 일일소위 기석필분향고천), 이러한 일들은 제 몸에 매우 유익한 일이다(如此之事 有益於身至矣/ 여차지사 유익어신지의).’ 거문고와 학이든 우리의 청백리 전통이든 다수의 관리들은 지키려 노력한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인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 큰 단위의 독직은 사라졌다고 해도, 은연중 편의를 봐주며 뒷돈을 요구하는 비리는 있는지 감시를 늦춰서는 안된다.

더군다나 범죄를 저질러도 노골적으로 자기편을 봐주는 일까지 드러나 억장이 무너지게 하는 일까지 있었다. 조변의 좌우명 중에서 재물에 관한 명언이 있다. ’큰 집이 1000칸이라도 밤에 눕는 것은 여덟 자의 공간이면 된다(大廈千間 夜臥八尺/ 대하천간 야와팔척).‘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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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12
대불핍인代不乏人 - 어느 시대나 인재가 부족한 적은 없다, 인물은 곳곳에 있다.

대불핍인(代不乏人) - 어느 시대나 인재가 부족한 적은 없다, 인물은 곳곳에 있다.

대신할 대(亻/3) 아닐 불(一/3) 모자랄 핍(丿/4) 사람 인(人/0)

‘사람 살 곳은 골골이 있다’란 속담이 있다. 人間到處 有靑山(인간도처 유청산)이란 구절과 같이 사람 닿는 곳 어디에나 푸른 산이 있다는 말인데 여러 뜻을 가진다. 세상 어디에 나가도 살 길이 있으니 큰 뜻을 품어라, 어디에 가도 몸 눕힐 곳은 있다, 죽으라는 법은 없어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는 등등의 희망을 북돋운다.

곳곳에 재주를 가진 인물이 있다. 다만 때를 만나지 못하거나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묻혀 있을 뿐이다. 늙은 천리마가 구유에 엎드려있으면 재능을 펼치지 못한다는 老驥伏櫪(노기복력, 櫪은 말구유 력)의 성어가 말해주는 것과 같다.

어느 시대이든 재주 가진 사람이 모자라지 않는다(不乏人)는 말도 마찬가지다. 시대에 적합한 인재가 나오기 마련인데 알아보지 못하거나 소인배들이 날뛰는 곳에는 섞이지 않으니 찾기 어려울 따름이다. 이 말이 그대로 사용되지 않았지만 예를 든 것이 중국 前漢(전한)의 劉向(유향)이 쓴 ‘戰國策(전국책)’이다.

강국 秦(진)나라에 진사 사절로 온 趙(조)나라 변사 諒毅(양의)는 조왕의 동생을 죽여야 한다는 昭襄王(소양왕)의 강압에 차분히 설득한다. ‘둥지가 뒤집히고 알이 깨질 곳에는 봉황이 날지 않고(有覆巢毀卵 而鳳皇不翔/ 유복소훼란 이봉황불상), 태를 가르고 어린 새끼를 구워먹는 곳에 기린은 가지 않는 법입니다(刳胎焚夭 而騏驎不至/ 고태분요 이기린부지).’ 刳는 가를 고.

살벌한 풍토에는 인재가 곳곳에 있어도 모이지 않으나 진왕은 그렇지 않아 주변에 인물이 많다는 칭찬에 흐뭇해져 소국 조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무리한 해석 말고 우리 고전에는 멋진 글귀가 많다. 고려 李穡(이색)의 ‘牧隱藁(목은고)’에는 ‘우리 삼한에는 고아한 유풍이 있어 예로부터 인재가 많다고 일컬었다(三韓儒雅 古稱多士/ 삼한유아 고칭다사), 그리하여 고상하고 탁월한 시문을 짓는 이들이 시대마다 모자람이 없이 배출되었다(高風絶響 代不乏人/ 고풍절향 대불핍인)’고 했다.

다른 예로 鄭道傳(정도전)의 ‘三峰集(삼봉집)’에도 있다. ‘우리 산수의 아름다움은 천하에 제일이라 산악의 기운이 모여(山水之美甲天下 氣鍾岳降/ 산수지미갑천하 기종악강), 문무의 훌륭한 인재가 대대로 끊어지지 않았다(文武英材 代不乏人/ 문무영재 대불핍인).’

도처에 인재는 넘쳐도 필요한 자리에 실제 발탁되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이것은 지도자가 사람을 보는 안목이 모자라거나 주변에 아첨배나 간신배들이 막아서기 때문이다. 전문 지식이 필요한 곳에서도 좁은 시야의 안목으로 끼리끼리 노른자 자리를 주고받으면 싹수가 노랗다. 이런 곳에서는 봉황의 알이 깨지니 깃들지 못하고 기린이 모일 턱이 없다. 無虎洞中 狸作虎(무호동중 이작호)란 말대로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는 말이 그른 데가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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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13
주자십회朱子十悔 - 주자의 열 가지 후회

주자십회(朱子十悔) - 주자의 열 가지 후회

붉을 주(木/2) 아들 자(子/0) 열 십(十/0) 뉘우칠 회(心/7)

이전의 잘못을 깨우치면 항상 늦다. 후회할 일을 하지 않으면 가장 좋은 일이련만 결혼은 해도 후회, 하지 않아도 후회한다는 말과 같이 후회하지 않을 일이란 좀체 없다. 무슨 일을 잘못 생각하거나 못쓰게 그르쳐놓은 뒤에야 깨닫고 이랬으면 저랬으면 해봐야 소용없다. 그래서 ‘미련은 먼저 나고 슬기는 나중 난다’는 속담이 생겼겠다.

이런 중에서도 선인들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후회할 일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 있다. 중국 北宋(북송)의 재상 寇準(구준, 961~1023)이 남긴 六悔銘(육회명)도 있지만, 가장 알려진 것이 宋(송)나라 유학자 朱熹(주희, 1130~1200)의 열 가지 후회(十悔)다. 朱子十訓(주자십훈), 朱子訓(주자훈)이라고도 한다.

열 가지를 차례대로 보자. 어느 것이나 쉬운 글로 간략하게 교훈을 준다.

첫째,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뉘우친다(不孝父母死後悔/ 불효부모사후회).’

둘째, ‘가족에게 친하게 대하지 않으면 멀어진 뒤에 뉘우친다(不親家族疏後悔/ 불친가족소후회).’

셋째, ‘젊어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뉘우친다(少不勤學老後悔/ 소불근학노후회).’

넷째, ‘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한 뒤에 뉘우친다(安不思難敗後悔/ 안불사난패후회).’

다섯째, ‘풍족할 때 아껴 쓰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에 뉘우친다(富不儉用貧後悔/ 부불검용빈후회).’

여섯째, ‘봄에 씨 뿌려 가꾸지 않으면 가을에 뉘우친다(春不耕種秋後悔/ 춘불경종추후회).’

일곱째, ‘담장을 고치지 않으면 도둑맞은 뒤에 뉘우친다(不治垣墻盜後悔/ 불치원장도후회).’

여덟째, ‘색을 삼가지 않으면 병든 뒤에 뉘우친다(色不謹愼病後悔/ 색불근신병후회).’

아홉째, ‘술에 취해 망령된 말을 하고 술 깬 뒤에 뉘우친다(醉中妄言醒後悔/ 취중망언성후회).’

열째,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떠난 뒤에 뉘우친다(不接賓客去後悔/ 부접빈객거후회).’

장성한 자식이 봉양하려 하나 부모는 이미 떠난 뒤이기 쉬우므로 살아계실 때 잘 모시라는 이야기와 가족과의 우애를 가장 먼저 내세웠다. 학문을 닦는데 게으르지 말고 항상 다가올 어려움을 생각하라는 가르침이 따른다. 어느 것이나 모두 일에는 항상 때가 있고, 그 때를 놓치면 사후에 뉘우쳐도 소용없음을 강조했다. 오늘날에도 잘 들어맞는 교훈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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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13
인생조로人生朝露 - 사람의 생은 아침 이슬과 같다.

인생조로(人生朝露) - 사람의 생은 아침 이슬과 같다.

사람 인(人/0) 날 생(生/0) 아침 조(月/8) 이슬 로(雨/13)

‘인생은 짧다’고 하면 대뜸 ‘그러나 예술은 길다’는 대구를 떠올린다. 히포크라테스(Hippokrates)가 이 말을 했을 때는 배워도 끝이 없는 의술을 말했다지만 예술로 굳어졌다. 이것을 패러디하여 ‘인생은 짧고, 청춘은 길다’,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다’ 등등의 말이 나왔다. 정작 인생이 긴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은 인생이 짧다고 한다. 인생이 헛되고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은 유독 동양에 많다. 한 지역을 30년 동안 다스리며 부귀영화를 누렸다가 깨어 보니 잠깐 동안의 잠결이었다는 南柯一夢(남가일몽)이 그렇고 낮에 노동하는 인부가 꿈속에서는 왕후가 되는 役夫夢(역부몽)이 그렇다. 모두가 一場春夢(일장춘몽)이다.

사람의 생(人生)은 덧없는 아침 이슬(朝露)과 같다는 시적인 표현은 삶의 덧없음을 잘 표현했다. 이국 땅에서도 꺾이지 않은 절개로 모두의 우러름을 받았던 중국 漢(한)나라 武帝(무제) 때의 장군 蘇武(소무, 기원전 140~80)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왕의 명을 받고 匈奴(흉노)에 사신으로 갔을 때 그들의 내분에 휘말려 우두머리 單于(선우, 홑 單은 오랑캐이름 선)의 포로가 되었다. 아무리 회유해도 복속하지 않는 소무에게 선우는 ‘숫양이 새끼를 낳으면 귀국 시키겠다’며 멀리 北海(북해, 바이칼호)로 보내 19년간 유폐시켰다. 식량도 주지 않아 들쥐와 풀뿌리로 연명했다.

소무와 절친했던 무장 李陵(이릉)은 그즈음 흉노를 정벌하러 왔다가 8만의 대군에게 포위되어 항복하고 그곳서 살고 있었다. 司馬遷(사마천)이 변호해 주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宮刑(궁형)을 받게 된 바로 그 사람이다. 투항이 부끄러워 찾지 않던 이릉이 선우의 명으로 소무에게 와서 말한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다고 하지 않던가, 덧없는 인생 어찌하여 자신을 이렇게 괴롭히고 있는가(人生如朝露 何久自苦如此/ 인생여조로 하구자고여차).’ 고생만 하다 죽게 될 친구를 위해 간곡히 회유했으나 소무가 꿈쩍도 않자 충절에 감동한 이릉은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後漢(후한)의 班固(반고)가 20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 ‘漢書(한서)’에 실려 있다.

인간은 다 죽기 마련이다. 그것도 되돌아보면 허무한 인생이다. 목숨을 걸고 지조를 지킨 소무는 다음 임금 때 풀려와 노후에 영광을 누렸다. 宋(송)나라 충신 文天祥(문천상)은 그 일생을 성심을 갖고 청사를 빛낼 일이라 했다(過零丁洋/ 과영정양). 이들의 충절을 기리기만 하는 보통 사람들은 조그마한 이해에도 싸우고 볶고 지지지는 않는지. 나라를 이끈다는 지도자들의 당과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다툼은 갈수록 더하다. 아침 이슬과 같은 목숨을 가지고서.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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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14
노심초사勞心焦思 – 몹시 마음을 쓰며 애를 태우다.

노심초사(勞心焦思) – 몹시 마음을 쓰며 애를 태우다.

일할 로(力/10) 마음 심(心/0) 탈 초(灬/8) 생각 사(心/5)

매사에 천하태평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일에 비관적인 사람이 있다. ‘내일 일을 오늘 걱정하지 말라’고 성인이 깨우쳐도 소용이 없다. 杞(기)나라 사람들처럼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늘 조심했다는 것과 같이 ‘걱정도 팔자’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깊은 뜻이 없을 때는 근심도 없고, 큰일을 생각하고 보면 근심도 많다’(이광수)는 말처럼 앞날을 위해, 나라를 위해 걱정한다면 염려스러울 것도 없다. 마음으로 애를 쓰며(勞心) 속을 태운다(焦思)는 이 성어도 중대한 일을 앞두고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史記(사기)’의 夏本紀(하본기)에는 치수사업에 성공한 禹王(우왕)의 업무에 임하는 태도를 이 성어에 비유했다. 堯舜(요순)의 치세 때 20년 동안이나 홍수가 계속돼 禹(우)의 아버지 鯀(곤)이 물길을 잡는 일을 맡았지만 실패하자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치수를 이어받게 된 우는 아버지의 불행을 잊지 않으려 항상 마음을 다짐했다. 그 부분을 보자. ‘우는 아버지 곤이 공을 이루지 못하고 처형을 받은 것을 마음 아파하여 애를 태웠다(禹傷先人父鯀功之不成受誅 乃勞身焦思/ 우상선인부곤공지불성수주 내노신초사).’ 이어지는 부분이 밖에서 13년을 지내면서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過門不入(과문불입)의 고사다.

越(월)나라 句踐(구천)이 吳(오)의 夫差(부차)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한 뒤 곁에 쓸개를 두고 앉으나 서나 쓴맛을 보며 會稽(회계)의 치욕을 상기할 때도 이 말이 나온다. 월왕 구천은 포로로 있다가 돌아온 뒤 ‘몸을 수고롭게 하고 속을 태우면서, 자리 옆에 쓸개를 놓아두고 앉거나 누우면 쓸개를 바라보았고, 먹거나 마실 때 또한 쓸개를 맛보았다(乃苦身焦思, 置膽於坐, 坐臥卽仰膽, 飮食亦嘗膽也/ 내고신초사 치담어좌 좌와즉앙담 음식역상담야)’고 했다. 역시 ‘사기’의 월왕구천 세가에 실려 있다.

옛 사람의 시에 ‘인생은 백년을 못다 살면서, 늘 천세의 근심을 가슴에 품는다(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 생년불만백 상회천세우)’란 것이 있다. 나라를 생각하는 큰 지도자의 걱정이다. 시정인도 후세를 위한 걱정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주변인과 사소한 일에 애를 태우거나 마음을 쓴다면 건강에 좋을 리는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21.html
kolaswqetsrq 11.02 01:15
절치부심切齒腐心 - 이를 갈고 마음을 썩인다, 비장한 각오로 노력하다.

절치부심(切齒腐心) - 이를 갈고 마음을 썩인다, 비장한 각오로 노력하다.

끊을 절(刀/2) 이 치(齒/0) 썩을 부(肉/8) 마음 심(心/0)

잠을 잘 때 코를 고는 것과 같이 이를 가는 뽀드득 가는 소리는 거슬린다. 그렇지만 자신도 모르게 가는 것 말고 일부러 아래 윗니를 힘주어 부딪칠 때는 서슬이 퍼렇다. ‘자식은 오복이 아니라도 이는 오복에 든다’고 하는데 소중한 이를 간다면 필시 정상이 아니다. 거기에다 마음까지 썩인다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짐작할 만하다.

이를 갈고(切齒) 속을 썩인다(腐心)는 말은 몹시 화가 나거나 분을 참지 못하여 독한 마음을 품고 벼른다는 각오가 드러난다. 눈앞에 닥친 난관을 헤쳐 나가려고 비상한 결심을 할 때 이를 악문다는 표현도 있다. 어금니를 악물고 이를 가는 咬牙切齒(교아절치)도 같다.

司馬遷(사마천)은 ‘史記(사기)’에 刺客(자객) 열전을 두고 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때 활약한 다섯 명의 자객을 다루며 어지러운 세상에서 제 한 몸을 던졌던 협객들의 의기를 높이 평가했다. 이 중에 秦(진)의 始皇帝(시황제)를 암살하려던 荊軻(형가, 軻는 수레 가)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형가는 원래 衛(위)나라 사람이었지만 진에 의해 망하자 燕(연)나라로 가서 살았다. 독서와 칼 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태자 丹(단)에 의해 발탁되어 상경의 존대를 받았다.

태자는 진나라에 볼모로 가 있다가 도망쳐 온 적이 있어 진시황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 진의 세력이 점차 동북쪽의 연나라까지 뻗치자 태자는 형가에게 계책을 물었다. 당시 진의 樊於期(번오기)란 장수가 망명 와 있었는데 그의 목과 연나라 지도 속에 비수를 가져가서 황제를 암살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태자 단이 머뭇거리자 형가는 번오기를 직접 찾아갔다.

잔혹하게 대했던 진시황에게 원수를 갚는 방법은 현상금이 걸린 장군의 목을 가져가서 처치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번오기가 비장하게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밤낮으로 이를 갈고 가슴을 치며 고대하던 것입니다(此臣之日夜切齒腐心也/ 차신지일야절치부심야).’ 그러면서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이렇게 비장하게 거사에 나섰지만 최후의 순간에 실패하고 형가는 피살됐다.

한 두 번의 실수로 치욕을 당했더라도 잊지 않고 되갚을 각오를 가져야 옳은 길이다. 성인이라면 그 상대를 감화시켜 더 좋은 길로 이끌겠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어렵다. 조선시대 淸(청)과 倭(왜)에 유린당하고도 이를 악문 채 대비를 하지 않았기에 연속으로 치욕을 안았다. 오늘의 국제관계서도 마찬가지다. 사방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피해를 끼치는데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하니 말이다. / 제공 : 안병화 (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79.html
kolaswqetsrq 11.02 01:16
고루과문孤陋寡聞 - 홀로 배워 학문이 얕고 견문이 좁다.

고루과문(孤陋寡聞) - 홀로 배워 학문이 얕고 견문이 좁다.

외로울 고(子/5) 더러울 루(阝/6) 적을 과(宀/11) 들을 문(耳/8)

낡은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주장만 옳다고 하는 壅固執(옹고집, 壅은 막을 옹)을 固陋(고루)하다고 한다. 혼동하기 쉬운 孤陋(고루)는 보고 배운 것이 적어 속이 좁다는 뜻인데 마음가짐이나 하는 짓이 융통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 들은풍월도 적은 寡聞(과문)이 겹치면 더욱 답답할 텐데 다만 남에게 억지를 부려 피해는 주지 않으니 낫다고 할까.

배움이 적어 무식한 것은 흠이 아니다. 모르면서도 꽉 막힌 채 자기만 옳다고 하면 허물이 된다. 학문이 얕고 견문이 좁다는 뜻의 이 성어가 유교 五經(오경)의 하나인 ‘禮記(예기)’에서 배우고 가르칠 때 주의할 점을 이야기하면서 등장하니 역사가 오래다.

學記(학기)편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세세하게 설명한다. 잘못이 있기 전에 미리 교육하고, 배우는 시기에 맞게 가르치고, 또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넘지 않게 하며, 서로 착한 길로 이끌게 해야 한다며 이어진다.

‘홀로 배워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으면, 독단적이고 편협하게 되며 견문이 적게 된다(獨學而無友 則孤陋而寡聞/ 독학이무우 즉고루이과문).’ 여기에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지나치게 놀기만 하는 벗과 어울리면 스승의 뜻을 거스르고, 향락에 빠져 학문을 못하게 된다(燕朋逆其師 燕辟廢其學/ 연붕역기사 연벽폐기학).’ 제비 燕(연)은 잔치, 즐긴다는 뜻도 있다.

학식이 천박하여 쓸모가 없고 보고 들은 것이 좁아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는 이 말이 똑 같이 ‘千字文(천자문)’에도 나온다. 모두 1000자의 한자를 처음 배우는 입문서로 여기지만 단순 학습서를 넘어 우주와 자연의 섭리, 역사와 인간의 도리 등을 함축하여 수준이 높다. 매 4자로 만든 250句(구)에 2구씩 125聯(련)으로 된 명시이기도 한데 마지막 앞의 124련에 나온다.

‘깊이 없이 홀로 배워 깨우치는 바가 적으면, 어리석고 몽매한 자와 똑같이 책망을 듣는다(孤陋寡聞 愚蒙等誚/ 고루과문 우몽등초)’고 했다. 誚는 꾸짖을 초. 천자문을 지은 중국 南朝(남조) 梁(양)나라의 周興嗣(주흥사)가 白首(백수)가 되도록 심혈을 기울이고선 식견이 좁다고 꾸짖지 않을지 두려워한다고 겸손해했다.

홀로 학문을 닦아 일가를 이룬 사람도 많은데 이들 모두가 학식이 쓸모가 얕고 어리석다고 한 것은 물론 아니다.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훌륭한 스승을 본받아서 도나 학문을 닦은 私淑(사숙)한 위인도 많다. 다만 혼자 공부하여 대가인척 우쭐대고, 같은 방면의 연구자와 교류를 않는다면 우물 안 개구리와 다를 바 없다. 더군다나 얕은 지식과 견문을 가진 사람들이 남을 이끄는 자리에 오르게 되면 모두를 뒷걸음질 치게 만든다. 넓게 보고 다른 사람의 지혜를 잘 받아들여야 우러름을 받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11.html
kolaswqetsrq 11.02 01:16
젊어도 조심해야 할 성인병 4가지

젊어도 조심해야 할 성인병 4가지

나이 든 사람들이 걸린다고 생각되는 노인병을 앓는 젊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조기 진단 기술이 발달한 덕분이기도 하고 부실한 식사와 운동 부족 탓인 점도 있다. 젊고 건강하다고 해서 안심하면 안되는 이유, 네가지 노인병의 위험을 알려드립니다.

1 당뇨병

통상 진단 연령은 40~50대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발병할 수 있다. 미국 메드스타 당뇨병연구소의 책임자인 전문의 미셸 매기는 “제2형 당뇨병에 걸리는 젊은이가 많은 것은 부적절한 식사와 계속 앉아 있는 생활방식 탓이 크다”고 말한다. 그는 “당뇨병 환자는 진단 시 대부분 과체중이며 특히 허리둘레가 길면 위험이 높다”며 “혈당을 높이는 섬유질이 적은 음식, 질산염이 많은 음식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2 뇌졸중

통상 진단 연령은 65세 이상이지만 20~30대에서 조기 발병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뇌졸중 예방을 위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것은 금연이다. 만일 담배를 가끔씩이라도 피운다면 지금 끊어야 한다. 흡연은 뇌졸중 위험을 2배로 높인다. 또 다른 위험 요인은 고혈압, 당뇨, 비만, 고 콜레스테롤 혈증이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뇌졸중 프로그램 책임자인 사잠 후세인은 “이 같은 병은 조기에 치료하고 통제해야 한다”며 “여기에 소금 및 트랜스지방 섭취를 줄이고 일주일에 두 차례 생선을 먹고 운동을 하라”고 말했다.

3 유방암

통상 진단 연령은 45세 이상이지만 10대에서도 발병할 수 있다. 미국 데이너파버 암연구소의 전문의인 앤 패트리지는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알코올은 하루 와인 한 잔으로 제한해야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만일 분명한 가족력이 있다면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는 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4 통풍

통상 진단 연령은 50~60대이지만 최근 30대 환자가 늘고 있다. 통풍은 과음을 피하고 체중을 조절하면 예방할 수 있다. 미국 관절염재단의 로버트 해리스는 “젊은이들이 통풍에 걸리는 최대 이유는 과체중과 과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하지만 지나친 다이어트로 인한 급격한 체중 감소는 통풍의 원인인 요산의 증가를 유발한다”고 덧붙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4_79.html
kolaswqetsrq 11.02 01:17
연골 재생에 도움 되는 음식

연골 재생에 도움 되는 음식

연골은 신체 곳곳에 있는 중요한 결합 조직이다. 연골은 완충 작용을 하며 에너지를 흡수하는 기능을 한다. 이런 연골이 있는 관절이 손상을 입으면 통증과 염증, 움직임 제한, 강직 증상이 발생하고 결국 퇴행성관절염에 걸릴 수 있다.

퇴행성관절염을 예방할 수 있는 포괄적인 조치의 하나로 연골 재생에 좋은 음식을 7가지 먹는 방법이 있다.

1 콩류

최적의 관절 기능을 위해서는 가능한 한 염증을 물리치는 것이 중요하다. 염증은 콜라겐과 연골 파괴의 주요 원인이다. 콩류 식품은 항염증 효과가 탁월하다.

콜라겐은 단백질이기 때문에 콩류에 들어있는 단백질은 연골을 재건하는데 필요한 콜라겐을 보충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콩에는 연골 재생에 중요한 아미노산인 라이신이 풍부하다. 콩, 완두콩, 땅콩 등이 모두 콩류에 속하기 때문에 맞는 것으로 골라서 먹을 수 있다.

2 오렌지

콜라겐은 연골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의 하나다. 단백질인 콜라겐을 신체가 만들려면 비타민C가 필요하다. 비타민C는 콜라겐 형성뿐만 아니라 세포 치유도 증강시켜 연골 재생과 보호에 도움이 된다.

비타민C는 오렌지를 비롯해 키위, 붉은 피망, 케일, 딸기 등의 과일, 채소에 풍부하다. 콜라겐은 피부를 젊게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3 석류

석류는 항산화와 항염증 성분이 많이 포함된 과일로 유명하다. 석류가 퇴행성관절염에서 연골 이화작용 (생물의 조직 내에 들어온 물질이 분해돼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일)의 몇 가지 조정물질의 표현이나 생산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류는 견과류와 함께 먹으면 신체가 연골을 보호하는 물질을 생산하는데 도움이 된다. 레몬 비네그레트 드레싱과 석류와 호두가 들어간 샐러드는 석류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4 녹차

녹차에 들어있는 카테킨과 폴리페놀 같은 화합물은 연골 재생과 퇴행성관절염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이런 성분들은 연골을 보호하고 회복시키는 효과도 있다.

5 현미

관절과 관련된 여러 가지 질환의 치료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히알루론산이 있다. 이 성분은 충격 흡수재로서 관절에 윤활 작용을 한다. 퇴행성관절염이 있을 때 히알루론산이 풍부한 식품을 식단에 추가하는 게 좋다. 히알루론산을 함유한 식품으로는 현미 외에 당근, 소고기 등이 있다. 또 호박씨는 신체가 히알루론산을 생산하는데 도움이 된다.

6 견과류

위에서 언급한 히알루론산을 음식을 통해 최대한 얻으려면 신체는 히알루론산의 섭취를 돕는 마그네슘을 필요로 한다. 아몬드, 브라질너트, 참깨 같은 견과류는 마그네슘의 보고다. 하지만 견과류는 칼로리가 높기 때문에 적당히 먹어야 한다. 견과류 외에도 고등어, 대구, 참치에도 마그네슘이 풍부하다.

7 방울 양배추

방울다다기 양배추, 브뤼셀 스프라우츠로도 불리는 이 채소에는 비타민K가 풍부하다. 비타민K는 뼈와 관절 건강을 위해 중요한 영양소다. 방울 양배추를 조리할 때 항염증 성분 및 비타민K를 함유하고 있는 올리브 오일을 사용하면 건강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13.html
kolaswqetsrq 11.02 01:18
달걀 섭취 시 생기는 놀라운 신체 변화 10가지

 달걀 섭취 시 생기는 놀라운 신체 변화 10가지

1. 면역체계를 강화시킨다

달걀 한 개에는 셀레늄 하루 섭취 권장량의 22%가 들어있다. 신체 면역체계를 지원하고 갑상샘 호르몬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영양소다. 어린이는 달걀을 꼭 먹어야 한다. 어린이나 사춘기 때 셀레늄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면 심장근육병에 걸릴 수 있다.

2. 좋은 콜레스테롤 수준을 높인다

콜레스테롤에는 건강에 좋은 콜레스테롤과 나쁜 콜레스테롤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달걀 한 개에는 보통 212mg의 콜레스테롤이 들어있지만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준다.

3. 심장질환 발병 위험을 낮춘다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은 지방 분자를 동맥벽에 달라붙게 해 죽상동맥경화증을 일으킨다. 반면에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은 이런 지방 분자를 동맥벽에서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4. 활력을 북돋운다

달걀 한 개에는 비타민B2 하루 섭취 권장량의 15%가 들어있다. 리보플라빈으로도 불리는 비타민B2는 신체가 음식을 연료로 전환시키는 것을 돕는다. 즉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5. 피부와 머리털을 개선시킨다

비타민B 복합체는 피부와 머리털, 눈, 간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영양소다. 또한 신경계가 적절하게 기능하도록 돕는다. 달걀에는 이런 비타민B군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6. 두뇌를 보호한다

달걀은 두뇌 음식이다. 달걀에는 세포막의 구성 요소이자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아세틸콜린을 합성하는 데 꼭 필요한 물질인 콜린이 들어있다. 콜린 결핍은 신경질환과 관련성이 있으며 인지 기능을 저하 시킨다.

7. 스트레스와 불안 증상을 완화한다

달걀에 들어있는 아미노산이 부족하면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아미노산의 일종인 라이신을 섭취하면 신경기관에서 세로토닌 수치를 조절함으로써 불안과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8. 뼈와 치아를 튼튼하게 한다

달걀에는 뼈와 치아 건강에 중요한 비타민D가 포함된 몇 안되는 천연식품 중 하나다. 비타민D는 칼슘의 흡수를 돕는 효능이 있다.

9. 포만감을 느끼게 해 덜 먹게 만든다

달걀에는 양질의 단백질이 들어있다. 연구에 의하면 고단백질 식품은 조금만 먹어도 배를 든든하고 포만감을 오래 지속시켜 식욕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

10. 살을 빠지게 한다

아침에 빵을 먹은 사람과 달걀을 먹은 사람들로 나눠 연구한 결과 달걀을 먹은 사람들은 베이글을 먹은 사람보다 체중이 65% 더 빠졌다. 또 체지방은 16%, 체질량지수는 61%, 허리둘레는 34%가 더 빠졌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15.html
kolaswqetsrq 11.02 01:19
뒷짐 산책 요법

뒷짐 산책 요법

뒷짐을 져야 사는 시대가 되었다. 상당수의 병은 등뼈에서 문제가 생겨서 온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치료해도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 그러나 척추 교정을 하고 나면 놀라운 치료를 경험하게 된다.

또 상당수의 병은 복부비만에서 온다. 비만 문제만 해결해도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이어트하기 위해서 전국민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척추 문제와 비만 문제를 간단히 동시에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이것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뒷짐을 지는 자세이다. 우리 국민은 부지런한 국민이어서 뒷짐 자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뒷짐자세는 귀중한 가슴을 열어 주고 목과 허리를 곧게 하여 척추로 인해서 오는 각종 질병치료에 좋을 뿐 아니라 뇌의 명령으로 복부비만을 어느 다이어트보다 확실히 처리해 준다.

원리는 간단하다. 뒷짐을 지면 굽은 가슴이 펴지고 척추가 꼿꼿해 지게 된다. 그리고 자세가 굽을 때 뇌는 몸의 불안을 느끼고 앞에다 지방을 실어 주었는데 뒷짐 자세로 상황이 반대가 되니 배에 실어 놓은 지방을 처리하는 것이다.

우선 뒷짐부터 져보라. 가슴이 시원할 것이다. 시원함은 뒷짐을 지는 순간부터 내 몸이 치료 되기 시작하는 증거다. 뒷짐을 지고 다리에 힘주지 않고 가볍게 걸으면 파워위킹보다 다이어트 효과가 낫다. 다리에 힘주지 않아야 할 이유는 뇌에 내민 배를 인식시키기 위함이다.

매일 30분씩만 걸으면 월중 10키로 감량은 어렵지 않다. 폐장 위장 간장 심장 비만 신장 디스크 등에 생긴 질병도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뒷짐자세를 습관화하면 곧게 생활하게 된다. 이제 뒷짐은 부덕이 아니라 건강을 지키는 미덕인 것이다.

과거 조선시대 선비들은 하루종일 방안에서 정좌하며 글 읽고 쓰기를 반복하면서도 하루 일과 중 꼭 한 가지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하루 세번을 어김없이 밖으로 나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고 먼 산천을 향해 깊은 호흡을 하면서 마을을 한바퀴 천천히 걷는 것입니다. 그냥 걸은 것이 아니라 뒷짐을 지고 걸었습니다. 이는 땅의 기운을 받고 하늘의 기운을 받아 오장육부의 활동을 자유롭게 하고 소화를 촉진시키는 뒷짐산책요법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36.html
kolaswqetsrq 11.02 01:20
공복에 먹으면 나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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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복에 먹으면 나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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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나나

먹기도 쉽고 맛도 좋고 든든해서 아침에 공복으로 많이 챙겨 드시는 음식 중 하나인 바나나 바나나는 마그네슘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과일입니다. 그런데 공복에 바나나를 섭취하게 되면 혈액 속에 마그네슘 수치가 급격하게 높아져 칼륨의 균형이 깨지게 되는데요. 이때 심혈관 억제 작용이 일어나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는 음식입니다.

2. 고구마

고구마에 함유되어 있는 아교질 성분은 위벽을 자극하고 더 많은 위산을 분비하게 하는데 공복에 이것을 먹었을 때 속쓰림,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한 혈당 수치가 급격히 오를 수 있어 식사 후 두 시간 정도 뒤에 간식으로 먹는 것이 좋습니다.

3. 귤

귤에는 유기산, 주석산, 구연산 등 다양한 산 성분들이 함유돼 있습니다. 그래서 빈속에 먹게 되면 위점막에 자극을 줘 속쓰림, 역류성 식도염 등의 증상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비슷한 과일인 오렌지, 자몽, 레몬 등 산도가 높은 과일은 식후에 먹는 것이 좋습니다.

4. 토마토

다이어트 식단을 짤 때에 항상 포함되는 식재료 중 하나인 토마토에는 많은 타닌산이 들어있는데 빈속에 먹게되면 타닌산이 위장의 산도를 높여 위궤양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또한 토마토에 함유된 용해성 수렴성분과 펙틴이 위산과 만나 화학 반응을 일으키면서 위 내부의 압력이 높아지고 그로인해 소화불량, 통증 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5. 우유

공복에 우유를 섭취하면 몸이 우유의 단백질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양적인 효과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유가 장의 연동운동을 빨라지게 해 영양소가 체내에 흡수되는 것을 방해하는데요. 우유는 밀가루 음식과 함께 섭취하거나 식후 2시간 후나 취침 전에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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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복에 먹으면 좋은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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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걀

달걀은 대표적인 저칼로리 고단백 식품 중 하나로 꼽히는데요. 두 개만 먹어도 일일 권장 단백질량의 20%는 채운다고 합니다.

공복에 달걀을 섭취하게 되면 공복 혈당을 낮춰주고 포만감을 오래 느낄 수 있어서 과식을 예방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2. 감자

감자의 녹말성분이 위를 보호해주고 공복에 생감자를 갈아서 하루 1~2스푼 정도 먹으면 위궤양 예방에 아주 좋다고 합니다. 감자에는 사과 못지 않게 비타민C가 풍부한데 이 비타민C가 고혈압을 예방해주고 스트레스와 피로를 푸는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3. 베리류

블루베리, 아사히베리, 라즈베리, 아로니아 등 베리류에는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게 들어있습니다. 항산화 물질은 혈압과 신진대사를 조절해주고 기억력 증진에도 도움이 될 뿐더러 암 예방에도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베리류가 공복에 좋은 이유는 공복에 베리류를 섭취하게 되면 그 효과가 두 배로 늘어난다고 하네요

4. 양배추

양배추는 위장 점막 강화에 도움을 줍니다. 위염, 위궤양, 장염, 대장질환 환자들에게 좋은 음식 중 하나로 비타민과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섬유질도 많아 공복감을 빠르게 해소해 줍니다. 평소에 위가 약하다면 아침마다 양배추 즙을 먹으면 좋다고 합니다.

5. 미지근한 물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미지근한 물이 모든 병을 예방하는 약이라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물은 밤새 쌓였던 노페물을 배출시켜주고 또 밤사이 손실된 수분 보충과 장 운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줍니다. 공복에 차가운 물을 마시는 사람도 많은데 위장에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아침엔 미지근한 물이 제일 좋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41.html
kolaswqetsrq 11.02 01:20
귀에 양파 한 조각을 넣으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귀에 양파 한 조각을 넣으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많이들 알고 있다시피, 양파는 그저 그런 야채가 아니다. 오히려 만병통치약에 가깝다. 실제로, 양파는 상상 이상으로 몸에 좋고, 질병 예방에도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 당신의 웰빙을 위해, 양파의 대표적인 8가지 효능을 골라보았다. 이것들은 모두 금보다도 귀한 팁이니 잘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1. 감기

일단, 고전적인 것부터 시작하자. 그다지 복잡한 효능은 아니다. 혹시 감기나 독감에 걸렸다면, 끓는 물에 양파 몇 조각을 넣은 후, 잠시 우려내자. 이렇게 만든 양파차가 사실 맛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2시간 안에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 몸살 기운을 완화시킬 뿐 아니라, 가래도 가라앉힐 수 있다. 감기 증세가 심하다면, 양파 몇 조각을 날 것 채로 더 먹으면 된다. 그렇더라도, 양파차를 조금만 마셔보라. 숨쉬는 것 마저 편해질 것이다.

2. 귀가 아플 때

귀가 아파본 적이 있다면, 이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 거다. 머리까지 깨질 것 같은 이 고통은 어떤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양파 한 조각을 귀에 넣으면 놀랍게도 통증이 바로 사라진다. 양파가 귀 안의 염증을 가라앉혀주기 때문이다.

3. 눈에 이물질이 들어갔을 때

눈에 뭔가 들어가면, 가능한 빨리 빼고 싶어진다. 그래서 눈을 문지르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 방법은 틀렸다. 당신은 그저 이물질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망막을 긁어대고 있는 것이다. 보다 나은 방법은, 양파를 컵 처럼 눈 위에 얹는 것이다. 바로 눈물이 나와서 어떤 이물질이라도 즉시 한 방에 흘려보내 줄 것이다.

4. 칼에 베거나 찢어졌을 때

부엌에서 칼로 베였다면, 양파야말로 (심지어 대*밴드를 가지고 뛰어오는 애인보다) 당신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줄 수 있다. 양파를 상처 위에 대고 있으면, 즉시 지혈이 될 뿐 아니라 소독을 해주는 효과도 있어서 염증을 예방해준다. 심지어, 상처도 훨씬 빨리 낫는다.

5. 흉터

누구나 하나쯤은 흉터를 가지고 있다. 사고로 얻은 흉터이건, 수술 이후의 흉터이건, 대부분 평생 몸에 남기 마련이다. 그런데 양파를 잘라 체에 거른 즙을 사용하면 상처의 변색된 부분을 제거할 수 있다. 천 조각에 양파즙을 적신 후 상처 위에 대어보라. 하루에 몇 번만 반복하면 3일 후에는 원래 피부색이 돌아올 것이다!

6. 염증이 있을 때

피부에 염증이 있다면, 약간의 우유에 빵 몇 조각과 신선한 양파를 넣어 연고처럼 될 때까지 끓여보자. 염증이 생긴 부위를 잘 닦아낸 후, 이 연고를 조금만 발라보라. 그리고 잘 마를 때까지 2 시간 정도 기다린 후, 남은 양파 연고를 깨끗이 씻어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염증은 사라질 것이다.

7. 햇볕에 탔을 때

피부가 햇볕에 타게 되면, 표피층이 대부분 파괴되면서 피부 표면이 빨갛게 변한다. 양파 한 조각을 해당 부위에 대고 있어보라. 그리고 나서 계란 흰자를 조금 발라주면 피부를 보호하는 동시에 양파의 영양분을 녹여내는 역할을 한다. 효능은 즉시 나타나서 3시간 안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8. 벌레에 물렸을 때

특히 말벌 혹은 벌에 쏘였을 경우 그 부위가 빨갛게 부어오르기 마련이다. 즉시 찬물로 씻어내고 양파를 대어보라. 양파즙이 증발하면서 피부에 남아있는 독을 빼낼 뿐 아니라 붓기도 훨씬 빨리 가라앉힌다. 효과는 몇 분 안에. 벌에 쏘였다면, 양파보다 더 나은 치료제는 없다.

정말이지 환상적이다. 양파는 가격 부담도 크지 않으면서 다방면으로 유용하다. 가장 좋은 점은 100% 천연 치료제라서, 피부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화학성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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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21
일궤십기一饋十起 - 식사 중에 열 번이나 일어나다, 손님맞이에 정성을 기울이다.

일궤십기(一饋十起) - 식사 중에 열 번이나 일어나다, 손님맞이에 정성을 기울이다.

한 일(一/0) 먹일 궤(食/12) 열 십(十/0) 일어날 기(走/3)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는 지도자들의 모습은 여러 성어로 남아 있다. 훌륭한 인재를 맞이하기 위해 세 차례나 찾아간다는 三顧草廬(삼고초려)의 劉備(유비), 귀한 손님이 찾아왔을 때 식사도 중단하고 영접하는 吐哺握髮(토포악발)의 周公(주공)이 잘 알려져 있다. 이들보다 훨씬 앞선 중국 전설상의 夏(하) 왕조 시조 禹王(우왕)에게는 관련성어가 훨씬 많다.

성군 堯舜(요순)의 뒤를 이어 禹(우)가 천자가 된 것은 대홍수의 물길을 잡은 治水(치수)의 공이 컸다. 그는 이 일을 맡은 동안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 들어가지 않았다는 過門不入(과문불입)을 13년간이나 실천했다.

그간 머리는 바람에 의해 빗질이 되고, 몸은 비를 맞은 것으로 목욕이 되는 櫛風沐雨(즐풍목우)의 생활을 견뎠다. 이런 육체적 고생 말고도 찾아온 손님을 잘 맞이하기 위한 이야기가 또 있다. 한 끼의 밥을 먹는데(一饋) 열 번이나 일어나(十起) 반갑게 맞이했다. 그만큼 모든 일상을 온통 나라를 다스리는데 집중했다.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의 손자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편찬한 ‘淮南子(회남자)’의 氾論訓(범론훈)에 이 내용이 실려 있다. 학문을 즐겼던 회남왕은 빈객과 方術家(방술가) 수천 명을 모아 제자백가의 여러 학설을 모은 책이다.

우임금의 통치자로서의 자질을 묘사한 대목에 이 성어가 나온다. 우왕은 鐘鼓磬鐸鞀(종고경탁도)라고 하는 다섯 종류의 악기를 설치해 놓고 자신에게 의견을 말하라고 했다. 鞀는 작은 북 도. 가르침을 주려면 북을 치고, 의를 깨우치려면 종을 치고, 사건을 말하려면 경쇠를 두들기며, 근심을 말하려면 방울을 흔들고, 소송을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작은 북을 치라고 했다.

이렇게 의견을 주는 어진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우임금은 ‘한 번 식사하는 동안 열 번이나 일어났고, 한 번 머리감을 때 세 번이나 머리를 움켜쥐고 나왔다(一饋而十起 一沐而三捉髮/ 일궤이십기 일목이삼착발)’. 우임금은 이런 노력으로 이상적 聖代(성대)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인재의 중요성을 말할 때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도 인사 때마다 잡음이 따른다. 흠집이 많으면서 높은 자리에 가려는 것도 문제고, 그 사람의 조그만 흠집을 침소봉대하려는 움직임도 있겠다. 하지만 지도자가 발탁할 때 인재를 찾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 (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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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22
궁구물박窮寇勿迫 – 궁지에 몰린 도적을 쫓지 말라

궁구물박(窮寇勿迫) – 궁지에 몰린 도적을 쫓지 말라

다할 궁(穴/10) 도적 구(宀/8) 말 물(勹/2) 핍박할 박(辶/5)

‘독 안에 든 쥐’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처지를 빗댄 말이다. 그런데 독 안으로 몰리기 전까지 순순히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막다른 지경에 이르면 약한 자도 마지막 힘을 다하여 반항한다는 ‘궁지에 빠진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도 있으니 말이다. 성어 窮鼠齧猫(궁서설묘, 齧은 깨물 설)와 똑 같다. 비슷한 뜻의 말이 많다.

쫓기는 짐승은 강적에게도 덤비는 困獸猶鬪(곤수유투), 사로잡힌 새도 막다르면 수레를 엎어버린다는 禽困覆車(금곤복거), 새가 막다른 곳까지 쫓기면 상대방을 쫀다는 鳥窮則啄(조궁즉탁) 등이다. 어느 것이나 곤란한 지경에 있는 사람을 모질게 다루면 해를 입게 되니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다.

전쟁판에도 이 말은 통용된다. 적을 막다른 곳으로(窮寇) 몰아넣지 말라(勿迫)는 것으로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의 전략가 孫子(손자)가 타일렀다. 적을 사지로 몰아넣어 맹공을 퍼부으면 결사적으로 반격하여 도리어 아군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손자병법’에서 말한다. 적을 완전히 섬멸하고 완전한 승리를 눈앞에 두고서 퇴로를 열어둔다는 것은 소극적인 전법이라 할 수 있지만 어찌 보면 미래를 위해 인간적인 배려를 한 것이라 더 가치가 있다.

적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패배를 안겼기 때문이다. 서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유리한 기회나 장소를 확보하는 것을 다룬 軍爭(군쟁)편에 실려 있다. 전쟁 중에 지켜야 할 여덟 가지 금기사항을 나열하면서 제일 끝에 내세운다. 내용을 보자. ‘용병의 원칙은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적을 올려다보면서 공격하지 말고, 언덕을 등지고 있는 적과 싸우지 않는다(故用兵之法 高陵勿向 背丘勿逆/ 고용병지법 고릉물향 배구물역).

거짓으로 패한 척하는 적은 추격하지 말고, 적의 정예부대를 공격하지 않는다(佯北勿從 銳卒勿攻/ 양배물종 예졸물공). 미끼로 유인하는 부대는 공격하지 말고, 돌아가는 군대의 퇴로를 끊지 않는다(餌兵勿食 歸師勿遏/ 이병물식 귀사물알). 포위된 적군은 한 쪽을 트게 하고, 궁지에 몰린 적은 성급하게 공격하지 않는다(圍師遺闕 窮寇勿迫/ 위사유궐 궁구물박).’

佯은 거짓 양, 遏은 막을 알. 힘이 있는 위치에 있을수록 아랫사람의 사정을 잘 이해하면 진정한 마음을 얻는다. 99를 가진 사람이 마지막 1을 가진 사람에게서 1을 빼앗는다면 이판사판으로 나와 99도 잘 지켜내지 못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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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23
자구다복自求多福 - 많은 복은 스스로 구해서 이루어진다.

자구다복(自求多福) - 많은 복은 스스로 구해서 이루어진다.

스스로 자(自/0) 구할 구(氺/2) 많을 다(夕/3) 복 복(示/9)

노력하지 않고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얌체다. 훌륭한 옥이 있더라도 깎는 노력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다는 말이 玉不琢 不成器(옥불탁 불성기)다. 산을 옮겨 평지로 만든 愚公移山(우공이산)이란 성어에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란 누구나 아는 속담을 떠올린다.

서양에서도 똑 같이 격언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가 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 복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찾아오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하늘이 주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구하는데 따라서(自求) 많은 복을 얻을 수 있다(多福)는 것이 이 성어다.

중국에서 약 3000년 전부터 전해지는 시를 집대성한 ‘詩經(시경)’에서 이 말이 처음 사용된 이래 여러 곳의 고전에서 인용됐다. 시경 大雅(대아)편은 궁중 조회 때 쓰인 음악을 모았다. 가장 먼저 나오는 文王之什(문왕지십)은 周(주)나라 건국의 기반을 닦았다는 文王(문왕)의 공적을 노래했다. 부분을 보자.

‘길이길이 하늘에 맞게 하여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할지어다(永言配命 自求多福/ 영언배명 자구다복)’라며 문왕이 천명을 받아 商(상)나라를 대신하게 했으니 그 덕을 기려 후손을 훈계한 내용이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서 혼인은 상대가 비슷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한 鄭(정)나라 태자 忽(홀)의 이야기에서 사용됐다. 齊(제)나라 왕이 사위로 삼고 싶어 했으나 태자는 齊大非耦(제대비우), 제나라는 너무 커 짝이 될 수 없다며 사양했다. 그리고 말했다.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해야 한다고 했으니, 내 복은 내가 구할 따름이라 대국이 무슨 소용인가(自求多福 在我而已 大國何爲/ 자구다복 재아이이 대국하위).’

소국의 왕자가 대국의 사위를 마다할 만큼 자신을 잘 알았던 것이다. ‘孟子(맹자)’에는 시경의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여 하늘의 명을 따라 스스로 복을 구한다는 내용이 公孫丑上(공손추상)과 離婁上(이루상)에 실려 있다. 재앙과 복은 모두 스스로 부른다고 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줄리의 법칙(Jully’s law)이란 용어가 있다. 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소망을 간절하게 바라게 되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 결국 그 꿈이 이루어진다는 법칙이란다. 좋지 않은 일만 계속되는 머피의 법칙(Murphy’s law), 행운만 계속되는 샐리의 법칙(Sally’s law)에 비해 운이 아닌 의지에 의해서 성공하는 것이니 역시 하늘이 돕는 것이다. 복이 많은 사람을 부러워만 말고 그것을 이룬 것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가다가 중지하게 되면 처음부터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옛 말도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061.html
kolaswqetsrq 11.02 01:23
대혹불해大惑不解 - 무엇에 크게 홀린 사람은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한다.

대혹불해(大惑不解) - 무엇에 크게 홀린 사람은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한다.

큰 대(大/0) 미혹할 혹(心/8) 아닐 불(一/3) 풀 해(角/6)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가 어리석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까.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에게 피해가 닥쳐야 깨닫기 때문에 어리석다. 釋迦牟尼(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모은 法句經(법구경)에 잘 깨우친 말이 있다.

‘어리석은 자가 어리석은 줄 알면 그는 지혜롭다. 그러나 어리석으면서 지혜롭다고 한다면 그는 참으로 어리석다((愚者自稱愚 常知善黠慧 愚人自稱智 是謂愚中甚/ 우자자칭우 상지선힐혜 우인자칭지 시위우중심).’ 黠은 약을 힐. 음식을 떠먹는 숟가락이 국 맛을 모르듯이 어리석은 사람은 한평생 어진 사람을 가까이 섬길지라도 참된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고 하기도 했다.

극단에서 극단으로 재미있게 비유를 하여 깨우치는 ‘莊子(장자)’가 이러한 것을 빠뜨릴 수 없다. 이 책의 外篇(외편) 天地(천지)편에는 無爲(무위)의 정치사상을 다루고 있다. 옛날에 세상을 이끄는 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처음 타고난 도를 따르면 백성은 평안했다는 이야기다.

어리석음에 대해 언급한 부분에선 법구경의 말과 상당히 닮았다. 화려하게 꾸미고 미사여구로 세상을 향해 아첨하는 사람은 본인이 그런 줄 모르고, 그런 자와 한 패가 된 사람들은 또한 자신이 대단한 줄 여기는 어리석음의 극치라며 꼬집는다. 정신이 무엇에 홀려 크게 미혹한 사람(大惑)은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한다(不解)는 말과 연결된다.

어리석음에 대해 말한 부분을 보자.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고 있는 자는 크게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知其愚者 非大愚也/ 지기우자 비대우야), 자신이 무엇에 홀려 미혹에 빠졌음을 안다면 크게 홀린 사람이 아니다(知其惑者 非大惑也/ 지기혹자 비대혹야), 정신이 깊이 홀린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이를 깨닫지 못하며(大惑者 終身不解/ 대혹자 종신불해), 크게 어리석은 자도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한다(大愚者 終身不靈./ 대우자 종신불령).’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이 어리석은 줄을 모르고 자만하고 있으니 가련한 일이라 했다.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가 어리석은 것을 모르는 것과는 반대로 어리석게 보여도 어리석지 않은 경우도 있다. 大智如愚(대지여우)라고 큰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보기에 너무 깊고 오묘하여 어리석게 보인다. 마치 나무로 만든 닭과 같이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닭이 싸움닭 중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는 呆若木鷄(매약목계)와도 같다. 呆는 어리석을 매.

淸(청)나라 鄭燮(정섭)은 총명하기는 어렵고 어리석기는 더 어렵다고 難得糊塗(난득호도)라 했지만 실제로는 어리석은 사람이 총명하다며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런 사람은 깨닫지도 못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24.html
kolaswqetsrq 11.02 01:24
선담후농先淡後濃 - 처음에는 담담하게 뒤로 갈수록 진하게

선담후농(先淡後濃) - 처음에는 담담하게 뒤로 갈수록 진하게

먼저 선(儿/4) 맑을 담(氵/8) 뒤 후(彳/6) 짙을 농(氵/13)

먼저 무엇을 하고 나중에 어떻게 하라는 先~後~류의 성어가 제법 된다. 공적인 일을 앞세우고 사사로운 일은 뒤로 先公後私(선공후사)와 같이 예를 배움보다 먼저 중시해야 한다는 先禮後學(선례후학), 그리고 세상의 근심할 일은 남보다 먼저 하고 즐길 일은 나중에 하라는 先憂後樂(선우후락)의 좋은 말이 있다.

처음에는 담담하게 하다가(先淡) 뒤로는 점차 진하게 한다(後濃)는 말도 濃淡(농담)이 색깔이 짙고 연하거나 용액이 진함과 묽음을 나타내듯이 水墨畵(수묵화)의 기법에서 여러 가지 일에 폭넓게 깨우쳐주는 교훈이 담긴다.

먼저 서화가의 먹 쓰는 법을 소개한 글이다. ‘화가는 먹물을 진하게도 묽게도 쓸 줄 알아야 한다(墨水或濃或淡/ 묵수혹농혹담), 어떤 경우는 처음엔 묽게 썼다가 뒤로 가면서 진하게 한다(或先淡後濃/ 혹선담후농), 어떤 때는 먼저 진하게 쓰고 나중에 묽게 쓴다(或先濃後淡/ 혹선농후담).’ 明(명)나라 화가 唐志契(당지계)가 한 말이라고 정민 저서 ‘習靜(습정)’에서 소개했다. 이런 전문적인 기법에서 친구를 사귀는 도리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일반에 와 닿는다. 명말청초의 문인 陸紹珩(육소형)이 좋은 말을 남겼다.

그의 저서 ‘醉古堂劍掃(취고당검소)’는 딱딱한 도덕적 설교보다 부드러운 만필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격언과 경구를 모은 책이란 평을 받는다. 벗은 이렇게 사귀어야 한다고 나오는 集醒(집성)편을 보자.

‘처음엔 담담하다가 차차 진하게, 앞서는 소원한 듯 나중엔 친하게(先淡後濃 先疎後親/ 선담후농 선소후친), 먼저는 멀리 하다 끝에는 가까워지는 것이 벗을 사귀는 도리이다(先遠後近 交友道也/ 선원후근 교우도야).’ 이후에도 좋은 말이 이어진다. ‘사귀기 전에 잘 살피고 사귄 뒤에는 믿어야 한다’, ‘한 마음으로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지만 두마음으로는 한 명의 친구조차 사귈 수 없다’ 등이다.

이 친구 사귀는 법은 우리 속담에도 적합한 비유가 있다. 처음엔 자신에 득이 된다고 ‘간이라도 빼어 먹일 듯’ 접근한다. 다른 곳의 이익이 더 크게 보이면 ‘간에 붙었다 염통에 붙었다’ 한다. 이렇게 하다간 나중에 모두를 잃을 수가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크게 인심을 쓴다고 혹했다가 돌아오는 것은 배반감일 때가 많다. 명구가 많은 菜根譚(채근담)에서도 점잖게 가르친다. ‘은혜는 마땅히 엷음으로부터 짙어져야 하는데, 만일 먼저 짙고 나중에 엷으면 사람들이 그 은혜를 잊는다(恩宜自淡而濃 先濃後淡者 人忘其惠/ 은의자담이농 선농후담자 인망기혜).’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62.html
kolaswqetsrq 11.02 01:25
법불아귀法不阿貴 - 법은 권력자에 아첨하지 말아야 한다.

법불아귀(法不阿貴) - 법은 권력자에 아첨하지 말아야 한다.

법 법(氵/5) 아닐 불(一/3) 언덕 아(阝/5) 귀할 귀(貝/5)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이 법이다. 그 강제력이 힘 있는 권력자나 돈 있는 부자를 피해 가면 법이 아니다. 作法自斃(작법자폐)에서 나왔듯이 法 집행은 물 흐르듯이 해야 하고, 옛 글자 灋(법)에 유무죄를 아는 상상의 동물 해태 廌(치)가 들어 있는 것이 그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정의의 여신이 한 손에는 칼, 다른 한 손에는 죄의 무게를 다는 저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저울 없는 칼은 물리적인 폭력에 지나지 않고 칼 없는 저울은 무력한 것이 될 뿐이므로 저울과 칼이 함께 갖추어질 때에만 법은 지켜진다’고 독일의 법학자 예링은 말했다.

중국 法家(법가)의 확립자 韓非(한비)는 원칙에 의해서 통솔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지름길이라 강조하여 秦(진)의 시황제에게 발탁됐다. 나라를 다스리는데 法度(법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은 ‘韓非子(한비자)’의 有度(유도)편에 법은 만인에게 공평해야 한다는 法不阿貴의 성어가 실려 있다.

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고 먹줄은 굽은 모양에 따라 구부려 사용하지 않는다. 법률의 제재를 가하면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논쟁할 수 없으며 용맹스런 사람이라도 감히 저항할 수 없다.

대신이라고 해서 잘못을 저지르고도 형벌을 피할 수 없으며 착한 행동을 칭찬하고 상주는 일에는 평범한 백성이라 해서 제외되지 않는다(法不阿貴 繩不撓曲 法之所加 智者弗能辭 勇者弗敢爭 刑過不避大臣 賞善不遺匹夫/ 법불아귀 승불요곡 법지소가 지자불능사 용자불감쟁 형과불피대신 상선불유필부).’ 繩은 노끈 먹줄 승, 撓는 휠 요, 弗은 아닐 불. 그러면서 군주가 법도를 버리고 자신의 의사만으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면 군주와 신하의 구별이 없어질 뿐이라고 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00.html
kolaswqetsrq 11.02 01:26
나트륨 줄이기

나트륨 줄이기

국립암정보 센터에 따르면 짠 음식을 적게 섭취한 사람에 비해 많이 섭취한 사람의 위암 발병 위험도가 4.5배나 높다.

한국인이 특히 주의해야하는 나트륨 줄이는 법 알아보자.

1. 국물 섭취 줄이기

저염 습관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국물 음식의 섭취를 줄이는 것이 좋다.

우리가 자주 먹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한 그릇 분량에는 2000mg 이상의 나트륨이 들어 있다.

국이나 찌개를 먹을 때는 숟가락 보다는 젓가락을 이용해 건더기 위주로 먹는게 좋다.

2. 음식은 식힌 후 간 보기

요리 중 음식이 뜨거운 상태에서 간을 보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음식이 뜨거울 때, 미각이 둔해진다.

소금이나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도 뜨거울 때 먹으면 싱겁게 느껴질 수 있다.

음식에 간을 할 때는 약간 식힌 상태에서, 조금 싱거운 느낌이 들 정도로만 해주는 것이 좋다.

3. 칼륨 함유 음식 자주 먹기

나트륨 과다 섭취가 체내 칼륨 흡수를 저해한다. 반대로 칼륨이 풍부한 음식을 먹으면 체내에 쌓인 염분을 빠르게 배출할 수 있다.

아보카도, 감자, 해조류 등등이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78.html
kolaswqetsrq 11.02 01:27
■ 성종과 소춘풍 3편

■ 성종과 소춘풍 3편

임금의 여인으로 한평생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소춘풍으로서는 목숨을 걸고 한 말이었다. 일개 기생이 임금의 요청을 정면으로 거부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던 성종은 “인생에 있어서는 네가 제왕이로구나.” 하고 빙그레 웃었다. 자기는 임금이면서도 자기 인생을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하건만, 소춘풍은 일개 기생이면서도 자기 인생만은 자기 뜻대로 살려는 의지와 자유가 부러웠던 것이다.

성종의 요구를 거부(?)하고 곱게 돌아온 소춘풍도 ‘그 분이 임금만 아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누가 대문을 두드린다. 그래서 등불을 밝혀 방안으로 인도하고 보니 아무리 미복잠행(微服潛行)을 하였어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성종이 아니신가. 소춘풍이 놀라 부복(俯伏)하며 “성상께서 이 어인 일이시오니까?” 하니 성종은 시종 시치미를 떼면서 “허허! 이 사람 나 이서방이라고 하네.” 했다. 이리하여 성종과 소춘풍은 궁궐 밖에서 임금과 기생이 아닌 한 여자와 남자로서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그 후에도 성종은 궁중에 연회가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소춘풍을 불렀다. 그녀도 전과 다름없이 발랄하게 행동하였다. 궁궐에 들어가면 임금과 기생이요, 밖에서 은밀히 만나면 이서방과 그의 연인으로 지냈다. 그리하여 임금의 성은을 입었으면서도 기생의 신분으로 자유롭게 살아간 소춘풍이란 기생의 역사가 생긴 것이다.

성종이 승하한 후 연산의 등극에 따라 소춘풍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졌고, 승하한 임금의 총애 받던 기생은 그리 오래 기억되지 않았다. 성종이 38세의 나이로 승하할 때 그녀의 나이 28세. 그 후 소춘풍은 영흥에 들렀으나 수양모가 이미 죽고 없는 집은 그를 정붙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처 없이 길을 떠나 안변의 석왕사에 들러 임종 전에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모습의 운야대사를 만났다.

암자를 내려오던 소춘풍은 언뜻 운야대사가 자신의 아버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다시 석왕사로 돌아갔으나, 그때는 이미 운야대사는 그곳을 떠나고 없었다. 얼마 후 금강산 유첩사에서 운야대사가 입적했다는 전갈을 받고 떠나는 석왕사 주지스님에게 애원하여 머리를 깎고 운야대사의 법사에 참석하기 위해 주지스님을 따라 나섰다. 소춘풍의 법명은 운심(雲心). 그때 그녀의 나이 스물여덟 한창 고운 나이였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3_75.html
kolaswqetsrq 11.02 01:27
■ 성종과 소춘풍 1편

■ 성종과 소춘풍 1편

조선 왕 중에 대표적인 호색한이라 하면 당연히 연산군을 꼽지만, 연산군의 그런 성정(性情)은 성종으로부터 유전된 것이 아닌가 싶다. 성종은 술을 몹시 즐겼고, 색도 밝혔다. 성종은 열세 살에 왕위에 올라 25년간 용상에 있다가 서른여덟 살에 죽었다. 여색을 좋아했음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38세에 요절하면서도 왕비가 셋이나 되고, 후궁은 무려 14명, 28자녀(16남 12녀)를 두었던 성종은 ‘주요순 야걸주(晝堯舜 夜桀紂)’라는 말도 들었다고 하니 소춘풍과의 염문도 한 몫을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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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차천로의 야담집인 《오산설림》엔 성종과 함경도 영흥의 이름난 기생인 소춘풍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봄바람에 웃는다. 는 뜻의 소춘풍은 기명일 뿐, 그의 본명과 정확한 생몰 년대(生歿年代)는 전하지 않는다. 그녀의 탄생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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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두메산골에 홀로 사는 과부가 있었는데 얼굴이 박색이라 아무도 찜하는 남자가 없어 무지무지 외롭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석양 무렵 칠십이 다 된 늙은 탁발승이 과부의 집에서 머무르기를 청했다. 그날 밤 노승은 과부와의 동침을 요구하며 어젯밤의 꿈 얘기를 했다. 꿈에 만경창파(萬頃蒼波)가 눈앞에 전개되고 잠시 후에 그 망망대해 한 복판에 연꽃 한 송이가 피어오르더니, 그 꽃을 보고 있는 동안에 꽃이 자꾸만 커져서 바다 전체가 꽃 한 송이로 가득 차버렸다는 것이었다. 기이한 것은 그 과부도 그 전날 저녁에, 산 속에서 웬 백발노인이 과부에게 연꽃 한 송이를 주며 집에 가지고 가 정성스럽게 키우라면서 홀연히 사라지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과부는 그날 밤 노승을 받아들였다. 다음 날 아침 노승은 떠나면서 애가 태어 난 후에는 상관없으나, 애가 태어나기까지는 일체의 외간 남자를 삼가하라는 다짐을 했다. 과부는 떠나는 탁발승에게 이름이라도 알려 달라고 하였으나, 떠도는 몸이라고 이야기하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 후 태어난 아기가 소춘풍이다.

성도 이름도 모르는 늙은 탁발승에게서 태어난 소춘풍은 태어나면서부터 미모가 뛰어났고 총명하기까지 했다. 5살 때부터 쌍용사의 선원에서 글을 배우고 불경을 배웠는데, 열 살이 지났을 때에는 불경에 무불통지(無不通知)했다 한다. 그녀가 12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쌍용사의 중들이 입적하기를 권유하는 것을 뿌리치고 있다가, 어느 날 불공을 드리러 왔던 어느 기생의 수양딸이 되어 영흥으로 오게 되었다. 이름에서 풍기듯 인생을 봄바람에 웃듯 유유자적하게 살다 가기 위하여 스스로 기생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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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28
■ 황진이의 남자들 6편

■ 황진이의 남자들 6편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시조의 뜻을 풀어 보면 『벽계수님아, 그렇게 급히 가지 마세요. 여기를 한 번 지나가 버리면 (혹은 인생이란 한 번 지나가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언제 다시 자신과 만날 수 있을지 모르니) 내가 이렇게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데 함께 즐겨봄이 어떤가요?』 라는 뜻이다.

 "
시조를 읊는 황진이의 아름다운 모습에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다 놀란 벽계수가 타고 가던 나귀에서 떨어졌다. 큰소리 친 것과는 달리 별로 군자답지 못한 벽계수를 보고 실망한 황진이는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단지 풍류랑일 뿐이다”라며 다시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노래는 벽계수 낙마곡으로도 유명하고 현재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만, 사실은 이는 좀 과장된 소문일 가능성이 높다. 황진이가 벽계수를 만난 것이 이사종과 동거하기 이전인지, 그 뒤의 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그때는 이미 황진이의 명성이 온 나라 안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

여섯 번째 남자는 이생이다. 아버지가 정승을 지냈다는 이생은 황진이를 만나자 함께 금강산 유람을 가자고 권했다. 황진이가 좋다 하여 함께 유람길에 올랐다. 그렇게 길을 떠난 두 사람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샅샅이 누비고 다니며 빼어난 경관에 넋을 잃었는데, 금강산 구경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만 노잣돈이 떨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이 절 저 절을 찾아다니며 얻어먹어야 했고, 나중에는 황진이가 몸을 팔아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행이 끝나고 두 사람은 미련 없이 헤어졌다.

일곱 번째 남자는 지족선사(知足禪師)이다. 황진이 때문에 가장 대표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면벽(面壁) 수련 30년 지족선사가 황진이의 눈웃음 한 번에 넘어가 파계(破戒)를 했다고 사람들은 비웃는다.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개성 교외의 천마산 청량봉 기슭에 지족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이곳에는 30년 동안 면벽수행을 하여 생불(生佛) 소리를 듣는 지족선사라는 고승이 있었다. 사람들은 지족선사는 아무리 어여쁜 황진이가 와서 유혹해도 눈썹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어느 비오는 날 황진이가 소복을 하고 지족암을 찾아갔다.

-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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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29
■ 황진이의 남자들 4편

■ 황진이의 남자들 4편

두 번째 남자는 개성 유수 송공이었다. 개성 유수 송공(송염 또는 송순이라고도 한다)이 처음 부임했을 때 관아에서 조그만 잔치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 황진이가 불려왔는데, 풍류깨나 즐길 줄 아는 송공은 황진이의 빼어난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황진이가 범상치 않은 여자임을 알아보고 좌우를 돌아보면서 말하기를 “이름을 헛되이 얻지 않은 것이로군!” 하고 칭송했다. 그때부터 황진이가 유명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황진이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원근을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자칭 타칭 풍류호걸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목적은 오로지 하나, 송도에 새로 나타난 기생 황진이를 꺾어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명기에게 허신(許身)은 있어도 허심(許心)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황진이는 웬만한 사내에게는 허심은커녕 허신의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재주와 미모가 빼어난 만큼 황진이는 호락호락 아무 사내에게나 헤프게 정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 대신 황진이는 이처럼 자신을 찾아오는 양반의 자제들이나, 잘난 척 거드름이나 피우는 당대의 명사들을 마음껏 농락하는 것으로 쾌감을 느끼는 듯 했다. 황진이의 이런 태도는 신분차별, 남녀차별이 극심했던 시대적 모순과 사회적 병폐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저항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빼어난 용모와 재주를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천한 신분의 어미 몸에서 태어난 탓에 보통 여자들과는 달리 정상적인 혼인은 물론, 떳떳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었기에 그런 한을 이런 식으로 풀어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세 번째 남자는 선전관(宣傳官) 이사종이다. 황진이와 선전관(宣傳官) 이사종과의 러브스토리는 야사를 모아놓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나온다. 웬만한 남자는 눈에 차지도 않았던 황진이와 6년간이나 함께 동거한 행운의 사나이다. 이사종은 당대의 소문난 명창이요 풍류객이었다. 황진이와 이사종의 만남에 대해 야사에서는 천수관 근처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사종을 황진이가 발견하고 먼저 접근하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황진이가 이사종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는 반면, 이사종은 시종일관 무뚝뚝한 태도로 황진이를 대한다. 그러나 이사종의 그러한 태도로 인해 황진이는 더욱 그의 눈빛을 흔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나서 처음에는 서로의 노래에 반하고 다음으로는 서로의 인물에 반해 더불어 살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매우 기발했다. 6년간 함께 살 되, 3년씩 상대방의 집에서 번갈아가며 살기로 하고, 그 동안의 생계 또한 집주인이 책임지는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황진이와 이사종은 이미 500여 년 전에 계약동거를 실행한 선구자였던 것이다. 황진이는 스스로 짐을 꾸려 한양 이사종의 집에 가서 첩살이를 자청했다. 이사종의 가솔(家率)을 극진히 돌보면서 3년을 보내고, 다음 3년은 이사종이 황진이의 집으로 와서 함께 살았다. 6년이 지나자 처음 약속대로 깨끗이 미련 없이 헤어져 남남으로 돌아갔다.

-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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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29
■ 황진이의 남자들 2편

■ 황진이의 남자들 2편

개성 명기 황진이는 시와 노래에 능하고, 용모도 빼어나게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고루한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던 조선왕조시대에 그것도 천대받던 기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명사들과 거리낌 없는 교분을 나누며 자유분방하게 살다간 비범한 여인이었다. 시‧서‧화‧창‧무(詩‧書‧畵‧唱‧舞)는 물론 아름다운 용모에 가야금과 거문고 등 악기연주능력 그리고 음주와 손님 접대 등 뛰어난 재능과 교양을 갖춘 개성이 낳은 만능 연예인이며, 당대 대표적인 예술인이었다.

그녀의 정확한 생존연대는 알 길이 없지만, 1520년대에 나서 1560년대쯤에 죽었을 것이라는 것을, 황진이와 사귄 사람들의 일화로부터 추측할 수 있다. 40대에 죽었다고도 하고, 50대에 죽었다고도 하고, 믿기 어렵지만 60이 넘어 죽었다는 설도 있다. 틀림없는 사실은 황진이보다 30년쯤 연하인 백호 임제가 그녀의 무덤을 찾은 해가 선조 16년(1583년)이니, 그 이전에 죽었다는 점이다. 임제는 명종 4년(1549년)에 나주에서 태어나 29세 때인 선조 10년(1577년)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다. 35세 되던 선조 16년에 평안도사로 임명되어 부임하는 길에 개성을 지나게 되었다. 임제 또한 당대의 풍류 호걸이라 평소에 황진이를 만나고 싶었으나, 그는 너무 늦게 태어났고 황진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사 들고 그녀의 무덤을 찾아간 임제는 술을 부어놓고 한바탕 통곡한 다음 그녀를 그리워하는 시 한 수를 읊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을 어듸 두고 백골만 무첫는다.

잔 잡아 권할 이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이 소문이 금세 퍼져 임제는 선비의 몸으로 일개 천한 기생의 묘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통곡까지 했다는 점에서 사대부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부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파직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일설(一說)에 불과하고 부임 1년 뒤에 서울로 돌아와 예조정랑을 지냈다고 한다. 어쨌든, 황진이는 그때까지 사회적으로 천대받기만 하던 기생의 존재를 존중의 대상으로도 바라볼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황진이를 가리켜 기생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기생의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든 명기 중의 명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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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30
열어보지 않은 선물

열어보지 않은 선물

우리가 맞이하는

하루 하루는 `열어보지 않은 선물` 입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마음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 하나 그것을 열어 봅니다.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내 마음이 내 눈과 귀와

손 끝이 발걸음이 그 것을

좋아하면 기쁨이라는 이름의

선물이 될 것이고

사랑이라 느끼면 사랑이라는

이름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불평과 불만의 마음으로 열면

그 것은 불평과 불만의 상자가 될 것이고

걱정과 후회의 마음으로 열면 그 것은

당신에게 힘들고 괴로운 날을 안기게 될 것입니다.

하루 하루 그 것은 당신에게 스스로 내용물을

결정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귀한 선물입니다.

당신의 하루 하루가

사랑과 기쁨의 선물이 되면 좋겠습니다.

 "
-부름과 대답이 있는 삶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77.html
kolaswqetsrq 11.02 01:31
늙은 호박의 효능

늙은 호박의 효능

1. 비타민 A가 풍부한 늙은 호박의 효능

노란 색을 띠는 베타카로틴은 우리 몸 안에서 비타민A로 바뀌는데 이 비타민A는 심장병이나 뇌졸증, 시력감퇴, 암예방, 노화방지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하고 늙은 호박에는 항산화 영양소인 비타민E도 넉넉하게 들어 있다고 합니다.

2. 항암작용과 폐암 예방에 특히 좋은 늙은 호박의 효능입니다

늙은 호박의 진한 빛을 내는 카로티노이드 색소는 흡수되면서 몸에 좋은 베타카로틴이 되는데요.. 베타카로틴이 암세포의 증식을 막아 주는 강력한 항암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특히 폐암으로부터 인체를 지켜 주는 세 가지(당근, 고구마) 채소 중 하나가 호박인데요. 호박을 많이 먹은 사람일 수록 폐암 발생률이 낮게 나타났다는 미국 국립 암 연구소의 조사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호박은 최고의 폐암 예방제로 좋다고 합니다.

따라서 흡연하시는 분들이 꾸준히 섭취하면 좋은 식품입니다

3. 피부미용과 다이어트에 좋은 늙은 호박의 효능

비타민B와 C, 미네랄, 식이섬유 등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많이 들어 있으며 비타민A가 풍부하여 피부미용에 좋고, 또한 호박의 열량은 쌀에 비해 10분의 1에 불과하며 노폐물을 내보내 이뇨작용을 돕고 지방의 축적을 막아 주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아주 좋은 식품이랍니다. 쪄서 먹으면 열량이 25Kcal로 줄어들어 체중조절에 효과적입니다

4. 불면증을 예방하고 이뇨작용을 돕는 늙은 호박의 효능도 있답니다.

신경완화 작용을 하는 비타민B12가 들어 있어 불면증을 예방하고 강력한 이뇨작용으로 부종을 낫게하고 노폐물의 배출을 촉진 시킨답니다. 출산 후 늙은 호박 속에 꿀을 넣고 쪄서 먹으면 부기를 빼고 영양분을 공급해 준다고 합니다.

5. 당뇨를 예방하는 늙은 호박의 효능

체내 나트륨 배출을 조절하는 칼륨이 풍부하고 섬유소 양은 고구마와 비슷하지만 5분의 1에 불과한 당질이 포만감은 오래가게 하고 혈당을 천천히 오르게 하는 작용을 한답니다.

6. 위장을 보호하고 영양식인 늙은 호박의 효능

신체 에너지의 근원인 당질은 호박이 늙을수록 함량이 많아지는데 소화흡수가 잘 되면서 위점막을 보호하는 효능이 있어 노약자나 위장이 약한 사람, 위궤양 질환이 있는 사람이 섭취하면 좋다고 합니다.

7. 변비와 대장암을 예방하는 늙은 호박의 효능

풍부한 식이섬유가 노폐물을 체외로 배출시켜 주기 때문에 변비를 예방하고 장내 독소가 쌓이는 환경을 차단하기 때문에 대장암이 발생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외 체내 유독물질을 없애 주며 백내장이나 야맹증의 예방에도 뛰어난 늙은 호박의 효능입니다.

★늙은 호박 섭취 시 주의사항

1. 호박엔 포타슘이라는 칼슘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어 고혈압, 간질환 등으로 이뇨제를 복용하는 사람에게는 좋지가 않답니다.

2. 항암효과가 뛰어난 물질인 카로틴은 기름과 만나면 흡수가 더 잘 되므로 참기름, 들기름, 콩기름 등 식물성 기름에 살짝 볶아 먹거나 곁들여 먹으면 맛도 좋고 흡수율도 좋아진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40.html
kolaswqetsrq 11.02 01:32
뱃속이 따뜻해야 건강하다

뱃속이 따뜻해야 건강하다

1. 비만은 몸이 차가워져서 생기는 병

사람의 몸이 차가워지면 대표적으로 몸이 굳어가고 화를 자주 내

머리의 차가운 기운이 몸으로 내려와 누적되고 누적이 쌓이며 통증이 생기고

각종 염증과 전염병 그리고 암을 유발 시킨다.

아울러 부종이 생기고 결국 죽게 된다.

몸의 상태는 비만과도 관련이 깊은데, 비만은 몸이 차가워져서 생긴 것이므로

몸을 따듯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도 일상생활 속에서 몸을 차갑게 하면 다시 비만이 된다.

또한 몸이 따뜻하고 머리가 차가워야 건강하다고 했을 때

차가운 부위는 머리와 얼굴 전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머리카락 부위의 이마는 차가워야 하지만, 나머지 얼굴 부위는 몸과 같이 따뜻해야

건강하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몸이 따뜻한 남성은 정력이 있고 마음이 차분하면 각종 성 질환을 이겨내지만

몸이 차가워진 남성은 기운이 약하여 양기 부족, 조급함, 성질환 등이 찾아온다.

2. 화를 내거나 말이 많아도 몸이 차가워진다.

화를 내면 머리가 뜨거워지고 몸이 차가워진다. 반복해서 자주 화를 내면 머리는 항상 무거워져

정신이 맑지 못하고 몸은 차가워져 순환이 안 되어 각종 질병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또한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해도 문제가 된다. 말이 많다는 것은

오장육부의 기운을 입과 혀를 움직이는데 필요한 신경과 근육 쪽으로

몰리게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상이 누적되면 기운이 약한 사람은 오장육부가 기운이

부족하여 차가워지고 병이 생긴다.

하루 종일 앉아서 머리만 쓰고 다리는 쓰지 않으면 다리의 기운이 약해진다.

기운이 약해지면 역시 오장육부의 기능이 저하되고 머리가 무거워진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장시간 일을 해도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진다.

3. 따뜻한 음식은 몸을 따뜻하게 한다.

따뜻한 음식은 위장에서 분해, 소화 시키기가 좋아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차가운 음식이 위장에 들어오면 위장은 차가운 음식을 위장의 따뜻한

기운으로 데워서 소화를 시켜야 하므로 많은 기운이 소모된다.

처음에는 기운이 있어 차가운 음식을 녹일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반복되면 차가운 기운에 지게 되어 움츠러들며

소화 장애가 생기고 반복되면 위장은 기운을 잃게 된다.

또 차가워진 위는 붓거나 통증이 생기고 세균의 침범을 받아 염증과 암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따뜻한 음식은 건강한 사람, 건강하지 못한 사람 가릴 것 없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장수 노인들의 식습관을 살펴보면 야채를 생으로 먹기보다 살짝 데쳐서

나물 반찬으로 먹는 경우가 더 많다.

야채를 데치는 과정에서 차고 나쁜 기운이 빠져나가고 따뜻한 에너지가 보충되어

먹기 좋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46.html
kolaswqetsrq 11.02 01:32
우리 몸을 살리는 슈퍼푸드 효능

우리 몸을 살리는 슈퍼푸드 효능

1. 라즈베리

항암성분이 풍부하여 자궁암, 식도암, 대장암에 좋다

2. 블랙베리

비타민A의 함량이 높아 눈의 건강에 좋고 노화예방에 좋다

3. 포도

해독작용이 있어 몸속의 독소를 제거해 준다, 흡연자가 먹으면 좋다

4. 망고

배탈이나 설사에 효과적이며 안구건조증 치료에 도움을 준다

5. 자몽

비만관리에 도움을 주며, 여드름치료에 효과적이다

6. 파인애플

영양소의 흡수를 도와 소화작용을 도와준다

7. 키위

비타민C가 오렌지 보다 많고, 염증으로 인한 통증과 부기를 완화

8. 바나나

변비와 천식에 효과가 있고 긴장을 완화시켜줌

9. 딸기

노화방지에 탁월한 효능, 동맥경화 예방하고 종양을 억제

10. 수박

92%가 물로 이루어져 있어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 적격

11. 사과

심장질환 예방에 좋고, 천식치료에 도움을 준다

12. 배

섬유질 분해 능력이 좋아 변비예방에 좋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

13. 토마토

라이코펜 성분으로 항암효과에 탁월하다

14. 아보카도

지방분해에 도움을 주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춘다.

15. 체리

혈관을 깨끗하게 해주어 노화방지에 좋다

16. 레몬

당뇨, 변비, 고혈압을 예방하고 소화불량에 좋다

17. 오렌지

엽산이 많아 빈혈증세를 완화시켜줌

18. 블루베리

노화방지에 탁월한 효능이 있고 알츠하이머, 파킨슨병을 예방

19. 파파야

효소 분해를 돕고 소염제 기능이 있어 면역력을 증진시켜준다

20. 복숭아

비타민A의 함량이 높아 면역력을 높여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35.html
kolaswqetsrq 11.02 01:33
건강십훈

건강십훈

1. 小怒多笑 (소노다소)

화를 적게 내고 많이 웃어라.

2. 小煩多眠 (소번다면)

번뇌하지 말고(고민을 적게 하고) 잠을 많이 자라.

3. 小慾多施 (소욕다시)

욕심을 적게 내고 많이 베풀어라.

4. 小言多行 (소언다행)

말을 적게 하고 많이 행하라.

5. 小承多步 (소승다보)

차를 적게 내고 많이 걸어라.

6. 小衣多浴 (소의다욕)

옷을 적게 입고 목욕을 자주하라.

7. 小食多定 (소식다정)

음식을 적게 먹고 많이 명상하라.

8. 小肉多菜 (소육다채)

고기를 적게 먹고 채소를 많이 먹어라.

9. 小塘多果 (소당다과)

단 것을 적게 먹고 과일은 많이 먹어라.

10. 小厚多薄 (소후다박)

진한 음식은 적게 먹고 담백한 음식은 많이 먹어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83.html
kolaswqetsrq 11.02 01:34
기상 후 물 한 잔의 중요성

기상 후 물 한 잔의 중요성

아침 에 일어나서 제일 처음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
건강해지는 가장 쉬운 비결은 아침에 마시는 물 한잔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중요하다.
",

✔ 아침 물 한잔의 효과

1. 노화방지

노화를 촉진하는 몸 속의 나쁜 성분을 씻어내고, 피부 세포가 회복되는 효과가 있다.

2. 통증완화

복부근육 풀어주면서, 원활한 혈액순환으로 통증을 가라앉게 도움을 주는 효과가 있다.

3. 체중감량

아침에 마시는 물은 몸의 온도를 높여서 신진대사율도 높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열량을 더 태우는 효과가 있다.

4. 소화기능 의 개선

기상 후 따듯한 물 한잔은 수면시간동안 굳어있던 소화기관과 위장의 활동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5. 변비예방

따듯한 물은 특히 배변 운동에 도움을 준다.

✔ 조심 할 것

일어나자마자 너무 차가운 물을 마시게 되면, 내장기관이 놀라 경련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꼭 따듯한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꿀팁

자는 동안 입속 세균이 많아져 있기 때문에 기상 후에는 가글이나 양치를 하고 물을 마시면 더욱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69.html
kolaswqetsrq 11.02 01:34
■ 추노推奴 2편

■ 추노(推奴) 2편

추노에 대한 기록은 숙종, 경종, 영조실록에 주로 기록되어 있다. 나라에서 기근이 들었을 때마다 금지하였지만 관리들이 이를 어기고 도적을 잡는다는 핑계로 사사로이 이들을 붙잡아서 사고 파는 행위로 돈을 벌었고, 이 과정에서 관리들끼리 결탁하여 노비가 아니라 민가의 백성들을 잡아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조선 후기에 들어 돈이 궁해진 몰락양반이 과거 자신의 소유였던 외거노비로부터 몸 삯을 받으러 몇 십 년 전의 호적이나 노비매매문서 하나 달랑 들고 추쇄에 나서기도 하였다. 노비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는 노비 아니라고 잡아떼기 마련인데, 명확한 증거가 없어서 송사가 질질 끌기 십상이라 관가에서는 싫어했다고 한다. 노비에게 돈을 받으러 다닐 정도인 양반의 경제력과 사회적 영향력은 노비만도 못한 경우가 많아서 이를 이용한 노비 쪽에서 뇌물로 관리를 매수하거나 양반을 몰래 죽여 버리는 일도 있었다.

조선의 계급 체계는 모순 그 자체였다. 양민에서 노비가 되거나, 양반에서 노비로 전락할 순 있어도 노비가 그 신분을 벗어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조선 사회에서 노비를 벗어날 길은 도망이나 죽음뿐이었다. 모순된 계급 사회에서 필요에 의해 탄생한 추노꾼은 조선의 어두운 사회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추노를 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주인이 노비가 있는 지역에 가 집에 있는 호적의 내용을 바탕으로 관에 소지(민원서류)를 작성해서 당사자를 불러온 뒤, 추궁해서 사실이면 다시 잡아가는 형태였다. 지방관청 공문서가 왜란, 호란, 일제강점기,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죄다 소실되어버려 관청의 노비 관리나 추노 등을 제대로 연구하기는 매우 어렵게 되었다. 실록에 있는 내용으로 사실을 알 수는 있지만, 1차 사료가 아니므로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게 한계이다.

‘추노’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중 하나는 참신한 소재의 드라마라는 점이다. 역사 속 음지에 가려져 있던 \추노\들의 삶을 조명해 조선시대의 어두운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은 이 드라마가 갖는 특별한 매력이었다. ‘추노’에는 "종으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며,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민초(民草)들의 생생한 절규가 있었다. 노비로 전락해 이마에 낙인이 찍히고, 도망갔다는 이유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으며, 가축보다 못한 존재로 업신여김을 받는 조선시대 하층민들의 모습을 잔인할 만큼 자세히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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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35
■ 도량형 2편

■ 도량형 2편

그럼 미터법이 사용되기 전에는 어떻게 거리와 길이를 재고 표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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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길이 단위는 약 3000년 전 중국의 주(周)나라에서 사용한 주척(周尺)이다. 1주척은 20cm 정도 된다고 한다. 그 후 중국 한나라 때 한척(1한척 : 약 23.7cm)이라는 단위가 만들어졌고, 당나라에서는 당대척(1당대척 : 약 29.7cm)을 만들어 길이를 재는 데 이용했다. 우리나라는 삼국 시대부터 나름의 도량형을 만들어 사용했다. 고구려는 한나라에서 사용하던 한척 대신 35.6cm를 1척의 단위로 사용하였는데 이를 고구려척이라 부른다. 신라에서는 중국의 주척을 가져와 그대로 사용하다가, 통일신라부터는 주로 당대척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에도 주척과 당대척을 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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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여러 단위를 사용하다가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단위가 만들어진 것은 조선 시대이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신하 박연이 그 주인공이다. 박연은 기장이라는 곡물 중 크기가 중간 정도의 것을 골라 100알을 나란히 놓은 길이를 1척(황종척)으로 정했다. 1척의 길이는 대략 34.48cm 정도이다. 그리고 10척은 1장, 척을 10등분 한 것은 1촌, 1촌을 10등분 한 길이는 1분이라 정했다. 이후 이 황종척을 기준으로 관청 건물이나 배나 수레를 만들 때 사용한 영조척,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그릇(예기)을 만들 때 적용한 예기척, 옷감을 사고 팔거나 옷을 만들 때 사용된 포백척 등 여러 가지 척이 쓰임새에 따라 만들어져 사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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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은 우리말로 촌을 치라고도 부르고, 척은 자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8~10자 정도로 되는 길이를 1길이라고 불렀다. 우리 속담 중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길이 바로 길이를 표현하는 길이다. 또 ‘세치 혀’라는 말도 있다. 부피를 측정할 때는 홉(合)·되(升)·말(斗)·섬(石)이라는 단위를 사용했고, 무게를 잴 때에는 관·근·량·돈 4개의 단위를 사용했다. 이렇게 길이, 부피, 무게를 재는 도량형은 세금을 매기고 걷거나, 물건을 사고 팔 때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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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탐관오리들은 이 도량형을 마음대로 바꾸어 백성의 곡식과 돈을 마구 빼앗기도 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서 정한 도량형을 사용하도록 하고, 지키지 않으면 무거운 벌을 내렸다. 조선 시대에 임금은 암행어사를 임명할 때, 마패와 함께 유척(鍮尺)이라고 부르는 놋쇠로 된 자 2개를 주었다. 유척은 마을 사또들이 도량형을 잘 지키는지 감시하거나 세금을 걷을 때 도량형을 함부로 바꾸지 않았는지 단속하는 데 썼다. 또 죄인을 매질하는 기구의 크기를 재는 데도 유척을 사용했다. 탐관오리들이 법에서 정한 것보다 더 큰 매를 만들어 백성들을 가혹하게 매질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유척은 도량형을 측정하던 도량형기인 동시에 백성을 보살피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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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36
■ 단청 3편

■ 단청 3편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인들은 궁실(宮室)을 수축하기 좋아하며, 왕이 거처하는 궁궐의 구조는 둥근 기둥에 모난 두공(頭工)으로 되었고, 날아갈 듯 연이은 대마루는 울긋불긋 광채나게 꾸며졌다.』고 기록하여, 12세기 전후의 고려시대 궁전의 규모와 장엄성을 엿볼 수 있다.

또, 단청장식의 호화로움에 대하여 『난간은 붉은 칠을 하고 동화(銅花)로 장식하였고, 단청의 무늬와 채색이 매우 힘차고 아름다워 다른 전각들보다 뛰어났다.』고 하였다. 고려시대 건축물로서 현재까지 남아 있어 단청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은 영주 부석사조사당,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수덕사 대웅전에서는 건립 당시에 그려졌던 벽화를 비롯하여 단청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채색과 선이 밝고 부드럽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우리나라의 단청은 더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변화하였다. 조선시대 단청의 일반적인 특성은 단청의 단위무늬의 구성이 세련되고 장식구성이 매우 복잡해지고 다채로운 색조의 대비가 화려하게 된 점이다. 조선시대의 단청색조는 건물 내외의 장식에 따라 외부단청을 밝은 색 계통의 등황색을 현저하게 증가시켜 장식의 명도를 높였고, 내부단청은 광선의 명도가 외부의 단청보다 낮은 것을 고려하여 주로 녹청색으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의 단청들은 무늬의 체계와 함께 색채 구사에 있어서도 일정한 법칙성을 가지고 색의 조화를 이루었다.

단청장식의 색조는 시대성을 반영하여 시대에 따라 표현수단 및 방법에 있어서 특수성·독자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통일신라시대 이전의 지상건물의 단청색조는 유구(遺構:잔존물)가 전하지 않으므로 확실히 밝히기는 어렵다. 물론, 지상건물과는 똑같다고 할 수 없으나 고구려고분의 벽화에 나타난 다양한 색채는 당시 선조들의 색채에 대한 감각이 세밀하고 예민함을 말하여 준다.

단청의 종류는 건축물에 따라 다르다. 궁궐에는 무늬가 큰 모루단청을 하고, 절에는 무늬가 조그맣고 고운 비단단청을 한다. 새로 올리는 단청을 신단청이라고 하며, 빛이 낡아 다시 칠하는 단청을 물단청이라고 한다. 단청을 만들 때는 처음에 초벌 그림(초상)을 만든 다음, 애벌 색칠(가칠)을 한다. 그리고 검은 색깔로 그림의 윤곽을 칠하고(골채), 무늬의 윤곽을 그린 다음에(기화) 색깔을 칠한다(빛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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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37
■ 단청 1편

■ 단청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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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이란 붉을 단(丹)과 푸를 청(靑)자가 합쳐진 말이다. 원래 붉은색과 푸른색의 그림 재료를 말하는 것인데, 그 말이 건축물의 벽·기둥·천장 등에 여러 빛깔로 그림과 무늬를 그리는 것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찰이나 궁궐 등 전통 목조 건축물에 여러 가지 색으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려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목조 건축물 뿐 아니라 조각품과 공예품 등에 그림이나 무늬를 그리고 색을 칠하여 장식하는 것도 단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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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은 건물을 아름답고 장엄하게 꾸밀 뿐만 아니라, 목재가 썩는 것을 막아 주어 건물의 수명을 늘리기도 한다. 단청에 쓰이는 기본색은 빨간색 · 노란색 · 파란색 · 하얀색 · 검은색의 5가지이다. 이 5색은 오행사상을 상징하는 색으로서 각 색마다 해당되는 오행·계절·방위·방위신이 정해져 있다. 또한 오행의 상관관계에서 중간색이 나오는데 청백의 중간색은 벽(碧), 청황의 중간색은 녹, 황흑의 중간색은 유(騮), 청흑의 중간색은 자(紫), 적백의 중간색은 홍(紅)색이다. 또한 단청의 무늬는 건물에 쓰인 부재에 따라 서로 다를 정도로 종류가 다양했다.

고구려 고분이나 백제의 왕릉에서도 단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단청은 이미 삼국시대에 널리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통일신라 말기에는 최상류 계층 이외에는 집에 단청으로 치장하는 것을 금지했다는 기록도 있다. 단청을 왕궁과 사찰에만 사용하도록 해 왕권이나 종교의 권위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 뒤로 고려시대에는 주로 사찰에, 조선시대에는 주로 궁궐의 목조 건축물에 단청으로 장식을 했다.

목조 건축물에 단청을 한 이유는 비바람이나 갑작스러운 기후변화에 대비해 내구성을 강화하여 건물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이지만, 목재 표면에 나타난 각종 옹이나 흠집 등을 감추는 데도 효과적이다. 건축물의 기능과 위계성에 맞추어 아름답게 장식함으로서 격에 맞는 장엄함과 위엄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음양오행 사상을 중심으로 길흉화복을 기원하는 뜻도 담겨 있었다고 한다.

단청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즉, 옛 궁궐이나 절 · 비각 · 문루 등에 그림이나 무늬를 그리는 일에 뛰어난 솜씨를 지닌 사람들을 일컬어 단청장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단청 솜씨의 문화적 값어치를 높이 사고, 전통문화를 길이 이어 가기 위하여 단청장을 중요 무형 문화재 제48호로 지정하고 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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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37
■ 조선어학회 사건

■ 조선어학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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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은 일제는 일본 헌병과 경찰을 우리 땅 곳곳에 배치해 한국인들을 무력으로 억누르는 무단통치를 실시했다. 3.1운동이 일어난 후 1920년대에는 한국 전통과 문화를 존중해주는 척하며 한국인을 다스리는 문화통치로 한반도를 지배했다. 그러나 1930년대가 되면서 미국·유럽에서 경제 대공황(제1차 세계대전 직후 과잉 생산과 실업자 증가 등으로 불거진 불경기)이 시작되자, 일본 역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일제는 전쟁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1931년 만주를 침략하는 만주사변(滿洲事變)을 일으켰고, 더 나아가 1937년엔 중국을 상대로 전쟁(중일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한반도를 자기들 전쟁에 필요한 인력이나 물자를 공급하는 병참기지로 삼고, 한편으로는 한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뭉개 없애려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른바 민족문화 말살정책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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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하는 창씨개명(創氏改名:일본식 성을 새로 만드는 것)을 실시했고, 나라 곳곳에 일본의 조상신과 일본 황실을 섬기는 신사를 만들어 참배를 강요했다. 학교에서도 한국 역사 대신 일본 역사를 배우도록 했고 한국어 교육을 완전히 없애고 일본어만 사용하게 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한글로 발간되는 신문과 한글로 된 잡지도 전부 발간하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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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도 이어졌다. 조선어학회는 주시경선생 등을 중심으로 우리말과 우리글 연구와 보급을 위해 앞장섰던 민간 학술단체이다. 1908년 8월 국어연구학회라는 이름으로 창립됐다가 이후 배달말글돋음 한글모 조선어연구회 등을 거쳐 1931년 1월 조선어학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1926년엔 오늘날의 한글날인 가갸날을 제정했고, 잡지 한글을 만들고 조선어사전 편찬을 위해 애썼다. 장지영, 최현배, 이윤재, 이희승 등이 중심이 돼 활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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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사건은 1942년 일어난 작은 사건 하나가 빌미가 됐다. 한 기차 안에서 함흥영생고등여학교 학생이던 박영옥이 친구들과 한국말을 쓰다가 조선인 경찰관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게 되었다. "너는 조선어 사용 금지도 모르나? 어째서 한국말을 쓴 거야?" 박영옥을 윽박지르던 경찰관은 박영옥이 서울의 정태진이라는 인물로부터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태진이란 인물을 뒷조사한 결과 그가 서울에서 ‘조선어사전’을 편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본 경찰은 정태진을 잡아다 ‘조선어학회’라는 모임이 순수 학술 연구 모임이 아니라 민족 독립운동을 하는 단체라는 \거짓\ 자백을 받아냈다. 일제는 조선어학회와 관련된 학자들을 33명이나 붙잡아 혹독하게 고문하고 28명을 감옥에 가두었다. 모진 고문과 고통스러운 감옥 생활 끝에 이윤재, 한징 등은 목숨을 잃었고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정태진 등은 실형을 받아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재판부는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 운동의 형태"라며 내란죄(內亂罪:폭동 등에 의해 국가 존립과 헌법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범죄)를 적용했다. 이처럼 일제가 조작한 ‘조선어학회 사건’ 이후 조선어학회는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가 1945년 광복 후 조직을 다시 정비해 활동을 시작했다. 1949년에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조선어 사전\ 편찬 사업을 이어받아 1957년 6권으로 된 \큰사전\을 펴냄으로써 그 결실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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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38
■ 비밀 프로젝트 훈민정음 1편

■ 비밀 프로젝트 훈민정음 1편

1443년 12월, 세종대왕이 신하들을 불러서 다음과 같은 발표를 했다. "과인이 직접 글자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소. 간단한 글자이지만 수없이 많은 말을 표현할 수 있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글자)\라는 뜻을 담아서 이 글자의 이름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지었소."

이 발표에 신하들은 깜짝 놀랐다. 임금이 우리글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기 때문이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를 아주 비밀리에 진행했다. 세종은 우선 믿을 만한 신하에게 지시하여 우리 조상이 사용한 언어는 물론 중국·인도·몽골·티베트·일본 등 세계 각국의 언어에 대한 자료와 책들을 직접 구해오게 했다. 그리고 그 책들을 참고하여 눈병이 생길 정도로 열심히 글자를 연구하고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눈병이 심해져서 치료 차 지방으로 요양을 갔을 때도 글자 연구에 필요한 책과 자료를 가지고 갔을 정도였다. 건강이 나빠지자 세자인 향(훗날의 문종)에게 나랏일을 맡기면서도 한글 창제에 끝까지 힘을 쏟았다. 세종은 이토록 중요하게 여긴 한글 창제 작업을 왜 비밀리에 진행하였을까?

세종이 훈민정음을 발표하자, 집현전 부제학이던 최만리 등은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하는 상소를 잇달아 올렸다. "우리 조선은 예로부터 중국의 예법과 제도를 본받아 왔고, 이미 한자를 널리 쓰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중국에서 이를 알게 된다면 중국에 비난을 당하여 부끄러울 것입니다." "한자와 다른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무리는 몽골, 여진, 일본 등 오랑캐들뿐입니다. 우리가 이들처럼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쓴다면 중국을 따르는 것을 버리고 스스로 오랑캐와 같아지는 것입니다." 훈민정음은 간단하고 배우기가 쉬운 문자였기 때문에, 백성이 글자를 알게 되어 나라의 법과 제도를 업신여기고, 학문을 공부한 선비들을 함부로 대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양반들도 있었다. 세종대왕이 우리말에 어울리는 우리 글자를 왜 비밀리에 만들려고 했는지 그 이유가 짐작될 것이다. 상소에서 보듯, 이에 대한 반발이 몹시 거셀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이처럼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반포한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세종대왕은 농사를 잘 짓는 방법, 시간과 날짜를 제대로 세는 방법, 간단한 병을 치료하는 법, 도덕과 예절을 잘 지키는 법 등을 책으로 엮어서 백성이 이를 배우고 익힘으로써 생활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책을 만들어도 백성이 글자를 모르면 읽을 수가 없으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또한 백성이 글자를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해도 관아에 제대로 호소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토지나 재산을 못된 관리나 권력자에게 억울하게 빼앗기는 일도 많았다. 이를 항상 안타깝게 여겼던 세종대왕은 백성 누구나 글자를 읽고 쓸 줄 알게 되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쉽고 간단하게 익히고 쓸 수 있는 글자인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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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39
함께 먹으면 효과 만점인 음식 궁합

함께 먹으면 효과 만점인 음식 궁합

1. 생선과 마늘

심장 건강을 위해 고기 대신 생선을 선택할 수 있다. 이때 마늘을 곁들이면 일부 암을 예방할 뿐 아니라 자연적인 면역력 촉진제가 되기도 한다. 마늘은 나쁜 콜레스테롤(LDL)의 증가를 억제하고 심장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2. 강황과 후추

카레에 주로 쓰이는 황금색 양념인 강황에는 당뇨 예방 등 몇 가지 장점이 있다. 특히 후추와 함께 쓰면 생물학적 이점이 더 충분히 발휘된다.

3. 구운 고기와 로즈마리

구운 고기나 스테이크를 먹을 경우 발암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로즈마리를 곁들이면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양념에 있는 자연적인 항산화 성분이 요리되는 동안 발암물질의 형성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더욱이 고기의 맛을 덜하지 않고 냄새가 강하지 않은 로즈마리 추출물을 살짝 뿌리기만 해도 효과가 있다.

4. 시금치와 레몬

샐러드에 감귤류를 살짝 뿌리면 먹음직스럽고 잎채소들은 영양의 보고로 변한다. 시금치, 케일, 근대 등 식물에 있는 철분은 비타민C와 함께 먹으면 더 흡수가 잘 된다. 레몬주스나 딸기 조금, 약간의 피망을 더하면 식물성 철분이 생선이나 고기에 있는 형태로 변한다. 그것은 인체의 면역력을 향상시키고 기운을 북돋아준다.

5. 브로콜리와 토마토

라이코펜이 풍부한 토마토와 브로콜리를 함께 먹으면 전립샘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6. 사과와 포도

사과나 딸기류에 있는 항산화물질인 케르세틴이라는 플라보노이드는 호흡장애와 특정 암을 퇴치하고 기억력을 좋게 해준다. 특히 다른 플라보노이드인 카테킨을 함께 섭취하면 혈전을 방지하고 심장 건강을 지켜준다. 포도에 있는 카테킨은 적포도주, 초콜릿, 녹차에도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70.html
kolaswqetsrq 11.02 01:40
숯으로 가족 건강 지키는 생활 지혜 17가지

숯으로 가족 건강 지키는 생활 지혜 17가지

1. 과일이나 채소, 쌀을 씻는 물에 숯을 넣고 10-20분 놓아두면 숯이 농약성분을 빨아들인다.

2. 음식을 끓일 때 넣으면 음식물이 으깨지지 않아 요리의 모양을 예쁘게 유지할 수 있다.

3. 숯은 물속의 유해물질을 흡착, 분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정수 효과를 낸다. 수돗물에 넣어두면 소독약 냄새도 나지 않고 물맛도 좋아진다.

4. 튀김 기름에 넣으면 기름이 잘 산화되지 않고 요리의 선도가 유지된다.

5. 숯을 넣어 밥을 하면 좋지 않은 쌀이나 묵은 쌀이라도 햅쌀로 지은 밥처럼 밥맛이 좋다.

6. 집안 구석 구석에 놓아두면 공기정화 역할을 한다.

7. 냉장고에 넣어두면 김치냄새 등의 여러가지 냄새를 없앨 수 있다.

8. 구두속에 넣으면 퀴퀴한 발냄새를 없애 준다.

9. 후미진 곳에 놓아두면 바퀴벌레나 개미를 퇴치하는 효과도 있다.

10. 쌀통에 숯을 넣어두면 바구미가 생기지 않는다.

11. 컴퓨터나 텔레비젼 등의 전자파를 흡수한다.

12. 화초를 심을때 숯가루를 뿌리면 화초가 잘 자란다. 화분위에 뿌리거나 숯덩이를 올려놓아도 화초가 잘 자란다.

13. 숯을 욕조물에 넣어 체내의 유해한 화학물질이 피부에서 배출된다. 아토피성 피부염과 피부미용에 좋고 신경통과 요통을 완화시킨다.

14. 숯가루를 탄 물로 관장을 하면 체내에 쌓인 숙변을 제거하고 변비를 예방한다.

15. 간장을 띄울 때 숯을 넣으면 잡균이 생기지 않는다.

16. 숯을 바구니에 담아 잠자리 옆에 두거나 침대밑에 두면 숙면과 피로회복 및 에너지 충전 효과가 크다. 숯가루를 잘 싸서 베개에 넣어두는 것도 좋다.

17. 습도를 조절, 가습기 역할을 해 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7_14.html
kolaswqetsrq 11.02 01:40
아침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9가지 이유

아침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9가지 이유

1. 뇌를 깨우는 아침밥

아침밥은 두뇌 회전에 필요한 당질을 공급하여 창의력, 기억력 등을 향상시켜줍니다. 아침밥을 거르면 점심때까지의 공복시간이 약 17시간이 되어 장시간 저혈당 상태에 있게 되고, 점심때는 과식을 하게 되면, 두뇌 회전에 필요한 당질이 부족하여 집중력과 사고력이 저하되고 무기력해집니다.

2. 비만 예방

밥에는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비만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특히 밥과 함께 해조류, 나물류 등 반찬을 섭취하게 되어 영양의 균형과 체지방을 조절해 비만이 줄어듭니다.

3. 위장병 예방

아침밥을 굶으면 점심이나 저녁을 과식하게 되어 영양 불균형과 장기적으로 영양 결핍을 초래하여, 위장병 등 소화기질환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4. 수명 연장

아침식사와 평균수명과의 상관관계에 관한 조사연구에 의하면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침식사를 꼭 하는 사람들보다 남자는 40%, 여자는 28%정도 사망률이 더 높습니다.

5. 집중력 향상

아침식사를 하는 사람들과 안하는 사람들의 활동력을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아침식사를 거르는 사람들이 집중력이 떨어지고 신경질적이며 문제해결 능력이 감소합니다.

6. 당뇨병 예방

당뇨병을 예방하거나 당뇨병 환자의 경우 빵 식사보다는 밥을 위주로 한 식사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되며 밥식을 하더라도 흰 쌀밥보다는 잡곡밥을, 죽이나 떡의 형태보다는 밥의 형태로 먹는 것이 좋습니다.

7. 영양 공급

우리들이 주로 밥을 지어 먹을 때 이용하는 백미의 영양 성분을 보면 당질(탄수화물) 73.1%, 단백질 9.2%, 지방 1.3%, 수분 15.5%, 조섬유 0.3%, 회분 0.6%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쌀에는 비타민 B1,B2, 비타민 E, 염산, 나아신 등 인체에 중요한 여러 가지 비타민을 공급하며 식이섬유의 공급원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8. 성인병 예방

밥은 염분이나 콜레스테롤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병의 예방에 유효합니다. 쌀에 있는 지방 성분은 동물성 지방성분인 포화지방산이 아닌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이 대부분이므로 고지혈증을 예방합니다

9. 대장암 예방

밥은 정장작용을 가진 식물섬유와 같은 작용을 하는 난소화성전분을 포함, 변비나 대장암의 예방에 유효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9_49.html
kolaswqetsrq 11.02 01:41
■ 단군신화 1편

■ 단군신화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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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은 개천절(開天節)이다. 하늘(天)이 열린(開) 날이라는 뜻으로, 우리 민족 최초로 국가가 세워진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먼 옛날 하늘이 열리자 누군가가 지상으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르치며 세상을 다스렸고, 또 누군가가 그 뒤를 이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를 세웠다는 ‘단군신화’로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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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하느님(天神)에게 \환웅\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환웅은 하느님에게 인간이 사는 세상에 내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저는 인간 세상에 내려가 인간을 이롭게 하며, 그들을 이끌고 싶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며 지상으로 내려가게 하였어요. 천부인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환웅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짐작된다. 환웅은 무리 3000명을 이끌고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비·구름·바람을 다스리는 관리(농경사회)를 거느리고,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 등에 관련된 지혜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며 세상을 다스렸다고 한다. 하늘에서 내려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려고 했던 존재는 바로 \환웅\이었고,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주변에 살던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환웅에게 찾아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말했다. "이것을 먹으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되게 해주겠노라." 곰과 호랑이는 쑥과 마늘을 받아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호랑이는 답답한 동굴 속에서 마늘과 쑥만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워 그만 뛰쳐나오고 말았다. 호랑이와 달리 곰은 꿋꿋하게 참아 삼칠일(三七日·21일) 만에 여자가 되어 \웅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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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웅녀는 혼인할 사람이 없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웅녀의 기도를 들은 환웅은 이를 딱하게 여겨 잠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하였고, 얼마 후 웅녀가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단군왕검(檀君王儉)이다. ‘단군’은 제사장을 뜻하고, ‘왕검’은 통치자를 뜻한다. 단군왕검은 자라서 평양성에 새로 도읍을 정하고, 우리 민족 최초의 나라를 세웠다. 나라 이름은 조선이라고 했다. 그 후 백악산 아사달로 도읍을 옮겨 1500여 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산신이 되었는데, 그때 나이가 1908세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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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_14.html
kolaswqetsrq 11.02 01:42
■ 울어야 사는 여인, 곡비哭婢

■ 울어야 사는 여인, 곡비(哭婢)

곡비(哭婢)는 조선 시대 왕실이나 사대부집에서 상(喪)이 났을 때, 곡성(哭聲)이 끊어지지 않도록 상주를 대신하여 울어주고 삯을 받는 여성이었다. 대개 왕실의 국장(國葬)인 경우는 궁인(宮人)을, 사대부의 경우는 자기 집의 비(婢)를 시켰으나, 여의치 않을 때는 민가(民家)의 여자를 고용하기도 하였다. 요즘 예식장에서 하객 아르바이트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곡비(哭婢)는 소쩍새가 피를 토하듯 서럽게 우는 것처럼 울어야 한다. 상가집 빈객(賓客)의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엉엉 크게 울어야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유가(儒家)에서 전해지고 있는 예서(禮書)의 상례편(喪禮篇)에 따르면, 고인의 호흡이 멈췄을 때부터 애곡병용(哀哭倂用)하는 것을 상례의 시작으로 규정하고 있다. 애곡병용이란 부모님을 잃은 슬픔으로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서럽게 우는 것으로, 부모상과 조부모 상에는 애곡(哀哭: 아이고 아이고), 그 밖에는 어이곡(어이 어이)을 한다. 주자(朱子)의 가례(家禮)에도 망자가 숨을 거두면 애곡병용하고, 시신을 묶고 싸는 소렴(小殮) 대렴(大殮:입관)까지 대곡하고 빈소에 모신 후에야 대곡을 멈추라고 했다. 입관을 마친 후 빈소가 차려지면 상주는 굴건제복(屈巾祭服)으로 갖춰 입고, 고인의 영전에 아침저녁으로 제사를 올리며 무시곡(無時哭)으로 울어야 한다고 규정(規定) 해 놓았다. 효(孝)를 중시하는 우리 조상들은 부모님이 죽음에 이르면 곧 자식이 불효를 저질러 잘 봉양하지 못한 탓이며, 따라서 자식은 천하의 불효자가 된다고 믿었다. 특히 양반으로서 체면을 중히 여기던 시절, 겉치레의 관습 때문에 부모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식음을 전폐하는 등 때로는 상주가 몸이 상하는 경우도 빈번하여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되자, 국가 차원에서 장례식 때 곡성 하는 방법을 법으로 규정하여 반포할 정도였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상주들은 구슬프게 우는 것이 예의였다. 겉치레가 날로 심해지고 초상집에서는 상을 마치는 날까지 곡성이 그치지 않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하지만, 장례를 치르는 집안의 여성들이 장례식장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음식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곡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곡을 전문으로 하는 곡비(哭婢)를 고용하는 것이다. 당시 곡소리의 크기와 애절함은 상가(喪家)의 위세를 판단하는 척도였으므로 체면을 세우기 위해 매우 능숙한(?) 곡비를 채용하기도 했다. 곡비는 어린 여성부터 나이든 여성까지 다양했지만, 목소리가 크고 심금을 울리는 울음소리가 낭랑한 여인들이 연습을 거듭하여 곡비로 나서게 되었다. 처량하고 구성지게 곡성(哭聲)을 잘하는 여인들은 인근 고을까지 소문이 나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도 했다.

곡비로 나서는 여인들은 대체로 불우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돈을 받는다고 해도 장례식장에 드나들면서 억지로 우는 걸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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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43
■ 왕릉王陵 2편

■ 왕릉(王陵) 2편

현재의 경기도 고양시의 서오릉(西五陵)은 서쪽에 있는 5개의 왕릉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곳에 조성된 왕릉은 예종의 창릉과 숙종의 명릉 2기이고, 추존된 왕 덕종(성종의 아버지)의 창릉까지 합해도 3기이다. 서오릉이라 한 것은 왕비의 능인 익릉(숙종의 첫째부인 인경왕후)과 홍릉(영조의 정비인 정성왕후)이 포함되어 5개의 능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숙종과 첫 번째 계비(繼妃)인 인현왕후가 나란히 묻혀 있을 뿐 아니라, 10세 때 혼인한 조강지처 인경왕후와 두 번째 계비 인원왕후의 무덤까지 함께 있다. 인현왕후는 숙종과 나란히 묻혀 있고, 유언을 남기면서까지 숙종 곁에 묻히고 싶어 했던 인원왕후는 숙종과 인현왕후의 무덤 좌측의 언덕 높은 곳에 조금은 초라한 모습으로 조성되어 있어 두 사람을 질투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한때는 숙종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았던 장희빈이 1970년 이곳에 왔다. 사후 270년 만이다. 원래 숙종에게 사약을 받고 죽은 장희빈의 무덤은 경기도 광주(오포면 문형리)에 거의 폐허로 자리하고 있었으나, 장희빈의 무덤이 발견되자 후세 사람들이 알아서 숙종 곁에 모시고 온 것이다. 비극적인 최후만큼이나 장희빈의 무덤은 서오릉 경역에 옮겨진 이후에도 봉분이나 석물들이 모두 초라하고 옹색하다. 그러나 어쨌든 3명의 정비(正妃)와 한 명의 후궁(장희빈도 한때는 왕비의 자리에 올랐던 여인이다) 등 4명의 사랑했던 여인과 죽어서도 함께한 숙종은 생전에 그러했듯이 죽어서도 가장 여복(女福)이 터진 행복한(?) 왕이 아닐까. 물론 재위 시절에는 이들 여인들과 얽힌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이 여러 차례 전개되기도 했지만....

여기에 숙종의 며느리인 정성왕후(영조의 정비)의 무덤인 홍릉(弘陵)이 숙종의 무덤 근처에 있다. 영조는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면서 어렵게 왕비의 자리에 오른 정성왕후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와의 사이에는 후사가 없었고, 1757년 정성왕후는 사망하였다. 영조는 왕비의 무덤을 부친인 숙종의 무덤 근처에 만들고 옆 자리를 비워 두게 하였다. 훗날 자신도 죽으면 그 옆자리에 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1759년 66세의 영조는 15세의 신부(정순왕후)를 맞이했고, 1776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정조는 영조의 무덤을 동구릉 자리에 만들었다. 아직 살아 있는 왕대비 정순왕후(영조의 계비)를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영조의 무덤(원릉)은 동구릉 내에 조성되었고, 무덤 옆의 빈 자리는 1805년에 사망한 정순왕후의 차지가 되었다. 결국 애매하게 정비인 정성왕후의 무덤은 홀로 서오릉에 남겨진 셈이다. 죽어서도 시아버지 숙종과 네 명의 시어머니를 모시는 가혹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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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43
손·발이 계속 차갑다면 의심해 봐야 하는 질병

손·발이 계속 차갑다면 의심해 봐야 하는 질병

사람 중엔 추위를 느끼지 않을 상황인데도 유난히 손발이 차가운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대다수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는 것인데 사실 손발이 차가운 건 우리 몸에 뭔가 이상이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❶ 레이노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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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노 증후군은 우리가 흔히 부르는 수족냉증과 비슷한 질병으로 손발 끝이 차가워지면서 색이 하얗거나 파랗게 변하는 증상이다. 심한 경우 근육이 꼬이듯 아픈 통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원인은 분명하게 밝혀진 바가 없지만 따뜻한 장갑을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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❷ 자가 면역 질환

손발이 차갑다면 면역체계에 문제가 생긴 것일 수 있다. 특히 자가 면역 질환을 의심해 봐야한다. 이는 자신의 장기조직에 대해 항체가 생산되는 알레르기 질환이다.

한마디로 우리 몸의 면역 세포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류머티즘, 크론병, 아토피, 궤양성 대장염 등이 있다.

❸ 갑상선 기능 저하증

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갑성선 내에 호르몬이 잘 생성되지 않아 체내의 갑상선 호르몬 농도가 저하되거나 결핍된 상태가 지속되는 증상이다. 갑상선은 우리 몸의 체온계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시 당연히 손발이 차가워지는 수밖에 없다.

손발이 차가워지면서 체중 증가, 피로, 변비 등의 증상이 함께 수반된다면 병원으로 가 검진을 받아봐야 한다.

❹ 혈액 순환 문제

산소와 영양분이 풍부한 혈액이 체내에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면 손발이 차가워지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혈액순환 악화는 동맥 경화나 심부전 같은 심각한 질병을 유발해 심장마비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❺ 빈혈

여자들이 흔히 가진 질병 빈혈 역시 손발을 차갑게 하는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빈혈은 혈중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거나 적혈구 수치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정상적인 상태의 혈액이 손발에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빈혈은 주로 철분 결핍으로 발생하는 질병이지만 궤양, 위장 출혈 등으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으니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자들이 흔히 가진 질병 빈혈 역시 손발을 차갑게 하는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빈혈은 혈중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거나 적혈구 수치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정상적인 상태의 혈액이 손발에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빈혈은 주로 철분 결핍으로 발생하는 질병이지만 궤양, 위장 출혈 등으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으니 간과해서는 안 된다.

❻ 저혈압

저혈압은 혈액 손실, 내분비 장애, 특정 약물 복용, 그리고 단순한 탈수증의 결과일 수 있다. 혈압이 떨어지면 신체는 내부 장기와 같은 중요한 기관으로 먼저 혈액을 흘려보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손가락엔 혈액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따라서 손발이 차갑게 되는 증상과 함께 메스꺼움, 피로, 현기증 등이 유발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94.html
kolaswqetsrq 11.02 01:44
아침식사에 관한 중요한 사실 8가지

아침식사에 관한 중요한 사실 8가지

1. 무엇을 먹는지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먹는 것

사실 몸에 안 좋은 음식을 제외하면 아침식사로 적합하지 않은 메뉴는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무엇이든지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침에 무엇인가 음식물을 섭취하면 뇌가 깨어나 활발히 활동하는 것을 돕기 때문에 일의 능률이 오를 뿐 아니라, 장의 움직임이 활발해져 변비 해소에도 효과적이다.

2. 기상 후 30분, 오전 9시 이전에

아침식사는 일반적으로 식욕이 가장 왕성한 기상 후 30분 정도 지난 때 먹는 것을 추천한다. 30분 이전에는 잠이 다 깨지 않아 식욕이 나지 않고, 소화하는 데 무리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아침식사는 웬만하면 9시 이전에 먹는 것이 좋다.

이후에 아침을 먹으면 오히려 점심식사를 하는 데 방해가 되어 규칙적인 식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아침식사 시간을 놓쳤다면 너무 거한 아침 식사보다는 간단히 허기를 때울 수 있을 정도의 간식을 먹는다.

3. 식사 전 30분 생수 한 잔

기상 즉시 공복에 마시는 생수는 밤새 위벽에 끼어 있던 노폐물을 씻어낼 뿐 아니라 위의 활동을 촉진하고 위액을 분비시켜 소화 활동을 돕고 식욕을 돋운다.

평소 아침에 식욕이 없거나 아침에 소화기능이 활발하지 않아 식사를 하는 데 무리를 느꼈다면 아침식사 30분 전, 일어난 즉시 생수 한 잔을 마셔보자.

4. 탄수화물을 두려워하지 말라

탄수화물을 살이 찌게 하는 주범이라고 생각해 아침식사에서도 탄수화물을 배제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원인 포도당은 탄수화물이 분해되며 생기는 것으로, 밤사이 낮아진 포도당을 아침식사로 보충해야 뇌가 활발히 운동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5. 양질의 지방은 몸에도 좋다

최근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아침에 지방이 가득한 기름진 음식을 먹는 것이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보다 오히려 비만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아침식사에서 섭취하는 지방은 몸에 축적될 확률이 적기 때문에 조금은 더 자유롭게 섭취해도 된다는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지방 또한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이기 때문에 적절히 섭취하도록 하며 특히 견과류와 해산물, 올리브유 등 양질의 지방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6. 단백질을 꼭 섭취한다

단백질은 신체 구성 성분이자 우리 몸의 에너지를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 중 하나이므로 아침식사에서도 빼놓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단백질을 풍부하게 포함한 메뉴로 식사를 하면 포만감이 오래갈 뿐 아니라 식욕을 조절하고 혈당치가 급격히 올라가는 것을 방지해 비만을 예방하고 체중을 감량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7. 아침이라도 과식은 금물

"아침은 왕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먹는 것이 좋다고 해서 아침에는 과식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아침을 든든히 먹는 것을 넘어 과식하게 되면 머리로 가야 할 혈액이 소화를 돕기 위해 위로 몰려 뇌 운동에 방해가 돼 오전 내내 졸릴 수 있다.

또한 아침식사를 하는 것이 비만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아침부터 지나치게 높은 칼로리를 섭취하면 오히려 체중이 증가할 수 있다.

8. 야식을 피하라

야식을 먹으면 다음 날 아침까지 속이 더부룩해 아침을 먹는 데 방해가 된다. 이러다 보면 아침을 거르게 되고 또다시 야식을 찾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야식을 끊고 싶으면 아침을 먹고, 아침을 맛있게 먹고 싶다면 야식을 피한다. 하지만 아침을 꼭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전날 야식을 먹어 속이 더부룩한데도 꾹 참고 푸짐한 아침 식사를 할 필요는 없다. 이런 경우 주스 한 컵 등으로 간단하게 해결하는 것이 낫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8_14.html
kolaswqetsrq 11.02 01:45
잠 잘 오게 도와주는 음식

잠 잘 오게 도와주는 음식

❶ 완두콩, 마른 멸치, 말린 새우, 참깨

칼슘이 부족하면 신경과민으로 잠이 잘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슘을 충분히 흡수하게 되면 신경의 흥분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❷ 파래, 미역

마그네슘은 칼슘의 흡수를 도와 신경계의 흥분을 억제하고 진정시켜줍니다. 체내 효소의 활동을 도와 수면을 유도합니다.

❸ 허브티

캐모마일, 라벤더, 로즈마리같은 허브티는 긴장 완화 효능이 있어 심신안정을 통하여 편안한 잠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❹ 양상추, 상추

락투코피크린이라는 성분은 수면호르몬으로 불리는 멜라토닌과 흡사한 작용을 하며 신경계 진정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❺ 양파, 마늘, 파, 부추, 염교

이러한 채소 속에 들어있는 디아릴디설파이드라는 성분은 최면과 진정 효과가 있어 섭취하거나 향을 맡았을 때 심신안정을 유도하고 혈액을 맑게 해주어 가뿐한 몸을 만들어주어 잠을 잘 오게 해줍니다.

❻ 바나나, 두유, 붉은색 육류, 청국장, 생선

수면물질인 멜라토닌은 콩류, 어류 등에 풍부한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을 재료로 체내에서 만들어집니다.

❼ 발아현미, 녹차, 발효식품, 초콜릿

가바(GABA)라는 뇌 활동 억제 계통 신경전달물질입니다. 신경세포의 흥분을 억제해 안정을 시켜줍니다.

불면증이 증가하는 계절 독자님들 꿀 잠 주무시길 바랄게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18.html
kolaswqetsrq 11.02 01:46
폐에 좋은 약초

폐에 좋은 약초

환절기에 들어서면 많은 분들이 기침, 감기, 폐렴 등으로 고생 하시는데요. 어른 뿐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먹어도 좋은 폐에 좋은 약초들을 알아볼게요. 평상시에 알아두셨다가 기침이 심해 질 때 마시면 좋은 천연약재라고도 할 수 있답니다.

❶ 도라지 꽃 차

도라지 하면 뿌리 식물로 나물이나 무침을 해 먹는 것만 알고 있지만 폐에 좋은 약초로 꽃차도 효능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라색, 흰색 꽃들은 목감기, 가래제거, 폐렴 뿐 아니라 편도염에도 좋고 산후 조리에도 효과적인 차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❷ 달맞이 꽃 차

노란색의 아름다운 달맞이 꽃차는 폐에 좋은 약초가운데 하나로 피부염 에도 효과적이고 기관지염 등에 좋으며 갱년기나 생리통 증상에도 효과적이랍니다. 관절염에도 좋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건강을 선사해주는 차입니다.

❸ 만삼

폐에 좋은 약초가운데 폐암이신 분들 이 많이 찾는다는 약초는 만삼입니다. 백혈병이 있을 때나 정신적으로 불안 할때, 심신안정이

필요할 때에 효과적 이라고 하며 아직 재배기술이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니라 자연산이 대부분 이기 때문에 비싼 몸값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❹ 와송

혹시 와송이라고 들어본 적 있나요? 돌사이 혹은 기와집 지붕에서 자라 난다는 와송은 항암효과가 좋아 암 환자분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약초 인데요! 폐에 좋은 약초이기도 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좋은 약초라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79.html
kolaswqetsrq 11.02 01:46
몸을 따뜻하게 하는 쑥의 효능

몸을 따뜻하게 하는 쑥의 효능

1 암 예방

쑥의 효능 중 대표적인 것은 암을 예방해 주는 것이다. 쑥은 발암 촉진 물질의 기능을 떨어뜨려주고, 항암 작용을 통하여 암을 예방해 주는 효능이 있다.

2 살균 작용

쑥의 효능에는 살균 작용이 있다. 쑥은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체내에 있는 각종 세균들을 살균해주는 효능이 있다.

3 노화 방지

쑥은 세포의 노화를 방지해 주는 효능이 있다. 쑥에는 활성산소를 억제해 주는 비타민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불포화 지방산과 산소의 결합을 억제해 세포가 노화 되는 것을 방지해 주는 효능이 있다.

4 위장 기능 강화

신체를 알칼리성으로 바꿔 주고 위장 기능을 강화해 주는 효능이 있다.

쑥은 위의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 주고, 소화 흡수를 도와주며 위장의 피로를 덜어 주어 강하게 해준다.

5 여성 질환

쑥의 효능에는 불임이나 자궁 출혈, 생리불순과 같은 여성질환에 특효가 있다. 쑥은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성질이 있어서 꾸준하게 섭취할 경우 각종 여성 질환을 치료해주는 효능이 있다.

6 고혈압

피를 맑게 해 주고 섬유질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어, 고혈압을 개선해 주는 효능이 있다. 쑥은 콜레스테롤을 제거해주고, 체내의 노폐물을 제거하여 혈압을 낮춰 주는 효능이 있다.

7 간 보호

쑥의 효능에는 간 기능을 개선해 주는 효능이 있다. 쑥은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나 흡연, 음주 등으로 약해진 간 기능을 보호해 주며, 기운을 북돋아 주는 효능이 있다.

8 악취 제거

악취와 나쁜 성분을 흡수하는 작용이 있어 공기를 맑게 만든다. 쑥은 사람에게는 약이 되지만 해충에게는 독이 되기 때문에 구충제로도 쓰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29.html
kolaswqetsrq 11.02 01:47
치매의 비밀

치매의 비밀

"치매는 나이 먹어

늙어서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치매는 물을 잘 마시지 않아

생기는 병 중 하나입니다.

우리 몸은

면역체계가 가동 됩니다.

우리 몸에

물이 부족하면

물이 없어도 살 수 있는 부분부터

물 공급을 줄여 나갑니다.

이 때가

물을 잘 마시지 않는 30대 부터입니다.

4~50대는 더 마시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 몸 중 어디가 먼저 늙어갈까요.

피부 입니다.

피부가 말랐다고 죽지 않습니다.

피부가 늙어 갑니다.

그래도

물이 부족하면

어디를 줄여 나갈까요.

장기 입니다.

이 때는 5~60대가 되겠네요.

그래서 이 때 많이 아프지요.

물론 많이 사용하기도 했죠.

최종적으로

물이 부족하면

뇌에 물 공급이 잘 되지 않습니다.

뇌가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질환에서

뇌 관련 질환이 많습니다.

물 부족은 만병에 근원입니다.

반대로

물 만 잘 드셔도

질병 80프로는 낫는다고 합니다.

물을

잘 드시면

치매 예방도

치매도 늦출수 있습니다.

문제는

물이 목에 걸려서

먹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노인들이 하시는 말씀 중

물이 되어(세어) 마시지 못한다며

한 모금도 못 마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늙어서 죽을 때는

몸에 수분이 거의 빠져

양자 파동이 없을 때 죽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될 중요한 정보입니다.

꼭! 숙지하시고 생활습관으로 만드세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32.html
kolaswqetsrq 11.02 01:48
노화의 종말

노화의 종말

✔ \건강·장수법\ 6가지 "장수유전자로 늙지 않고 젊어져요"

1 적게 먹어라

장수하는데 최고 지름길이다. 고대 그리스 히포크라테스도 알았으며 많은 종교적 단식도 건강 측면에서 확실히 긍정적 측면이 있다. “영양실조에 걸리라는 말이 아니다. 이 풍요로운 세상에서 절식(단식)을 통해 우리 몸을 더 자주 결핍 상태에 두는 것이 분명히 우리 건강과 장수에 좋다."

일본 장수촌인 오키나와인들이 본토 사람들에 비해 열량 섭취가 20~30%가 적다는 사실을 비롯 수많은 연구를 통해 ‘영양실조 없는 열량 제한(calorie restriction without malnutrition, CR)’이 장수로 이어진다는 것을 소개했다.

종종 허기진 상태로 지내면 몸의 생존회로가 거기에 맞게 적응해 스스로 체중, 혈압, 혈당 모두 더 건강한 상태에 맞게 만든다(대부분 감소)는 것이다.

2 때때로 단식하라

같은 이유로 간헐적 단식(정상적으로 식사 하다가 주기적으로 식사를 중단하는 방식)은 혁신적인 새로운 건강 방식이다. 값비싼 인삼, 녹용이나 한웅큼 영양제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좋다는 뜻이다.

이미 1940년대부터 생쥐실험을 통해 사흘마다 굶긴 쥐들이 삼시세끼 먹는 쥐들보다 15~20% 수명이 더 늘었다는 점은 입증됐다. 당시는 그저 단식이 몸에 ‘휴식’을 제공하는 정도로만 알았지만 이후 현대의학은 ‘주기적 열량 제한’이 엄청난 건강 혜택을 준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중국 장수촌인 바마야오족 자치현 주민들은 하루 중 대개 16시간 이상 음식을 먹지 않고 지낸다고 한다. 이른바 ‘주기적 단식’이다. 줄곧 굶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중 일부만 허기지게 함으로써 우리 생존회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방법은 아침 거르고 점심을 늦게 먹는 것이다.(16:8 식단) 또 한 방법은 일주일에 이틀은 열량을 75%로 줄인 식사를 하는 것이다.(5:2 식단), 일주일에 이틀은 식사를 아예 거를 수도 있다.(먹고 거르고 먹기). 어떤 이는 분기마다 일주일씩 굶는 경우도 있다.

3육식 줄여라

이미 일본 오키나와, 코스타리카 니코야, 이탈리아 사르데냐 등 100세 이상 사는 사람들이 많은 장수마을의 장수식단에서 입증됐다.

육류, 유제품, 설탕 덜 먹고 채소, 콩, 통곡물 더 많이 먹는 것이다. 쉽게 말해 채소를 더 먹고, 가공식품을 줄이고 신선한 식품을 더 먹는다.

알다시피 아미노산이 없으면 우리는 금방 죽는다. 육류에는 이 9가지 필수아미노산이 다 있고, 우리는 육식을 통해 더 건강-장수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대가도 크다. 심혈관질환, 비만 등이 그렇다. 이는 장수를 방해한다.

때문에 동물성 단백질을 식물성 단백질로 더 많이 대체할수록 우린 이런 질병 등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한 우리가 채식을 많이 할 경우 아무래도 육식할 때보다 아미노산 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몸이 스트레스를 받아 생존 회로를 더 활성화하게 된다. 마치 절식 내지 단식 하는 효과와 비슷하다.

4 땀 흘려라

운동은 혈액흐름을 개선하고, 근육을 강화시키며 신체 전부문의 활성화에 기여한다. 적어도 일주일에 5일 30분씩 달리기를 하는 정도면, 앉아서 생활하는 사람보다 거의 10년 이상 젊은 텔로미어를 지녔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운동이 텔로미어의 마모(노화)를 막는 것이다.

운동 역시 몸에 스트레스를 준다. 몸에 부하를 줘 신체 각기능과 회로가 활성화되고 더 튼튼하게 만든다. 나이 먹을수록 운동은 더 필요하다. 고강도도 좋다. 단 모든 것이 그 사람에 맞게 적당해야 한다. 과부화가 되면 오히려 중노동 내지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5 몸을 차갑게 하라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우린 추우면 몸을 웅크리고 집안 기온을 높이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연로하거나, 몸살 기운이 있으면 당연히 찬바람을 쐬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경우는 당연하다. 취약한 몸 상태에서 추운 기온은 더 상황을 악화시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평소 건강한 몸을 가정하면 그저 따뜻한 날씨에 지내는 것보다 차가운 날씨를 접하면 잠자던 몸의 기관이 여기에 적응하기 위해 활발히 작동하게 된다. 호흡패턴, 혈액흐름, 근육 강직 등 신체내 생존투쟁이 일어난다. 생쥐실험을 통해 체온을 의도적으로 낮췄더니 더 오래 살았다.

평소 생활습관으로 너무 실내 온도를 높이지 말고 서늘하게 지내며, 잘 때 창문을 열어두거나 얇은 이불 덮고 자는 것도 좋다. 겨울에 춥다고 웅크리지 말고 바깥에 나가 몸이 추위에 적응케 하는 것도 좋은 습관이다.

6 유해물질 멀리하라

환경적인 자극에 변화하는 유전적 변형의 경우, 우리 건강과 장수를 해칠 수 있다. 담배, 매연, 플라스틱 용기 등에서 나오는 화학물질, 용매, 세정제, 살충제, 유압유 등에서 나오는 물질들이 우리 DNA를 손상시킬 수 있다.

베이컨 등 가공식품은 물론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 등 방사선도 유의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36.html
kolaswqetsrq 11.02 01:48
간이 안 좋을 때 나타나는 증상

간이 안 좋을 때 나타나는 증상

간이 안 좋으면 많은 증상들이 나타나는데요 무심코 지나쳤던 증상들은 없는지 확인하시고 아울러 간에 좋은 음식이 어떤것들이 있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1. 충분히 쉬어도 피곤함을 느낀다.

2. 어깨나 목이 뻐근하고 이유 없는 근육통에 시달린다.

3. 모든 일에 의욕이 없다.

4. 눈이 피로하고 시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5. 배에 가스가 차고 구역질과 변비 증상이 있다.

6. 술을 자주 마시거나 폭음을 한다.

7. 소변 색이 누렇고 냄새가 많이 나며 거품이 인다

8. 방귀가 자주 나오며 냄새가 심하다.

9. 기운이 없고, 권태를 자주 느낀다.

10. 얼굴에 기미와 실핏줄이 보인다.

11. 가슴과 등에 작고 붉은 반점이 생긴다.

12. 두드러기나 피부 가려움이 있다.

13. 빈혈이 있고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

14. 감기에 자주 걸린다.

15. 코, 잇몸, 항문에 피가 날 때가 있다.

16. 정신이 멍해지고,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진다.

17. 매사에 짜증이 나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이 난다.

18. 팔다리가 시리거나 저리며, 귀 울림이 있다.

19. 손 가장자리가 유난히 붉다.

20. 몸에 부스럼이 잘 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70.html
kolaswqetsrq 11.02 01:49
생식하지 말아야 할 건강상식

생식하지 말아야 할 건강상식

◉ 생닭

생닭은 박테리아를 제거하기 위해 최소 섭씨 165도에서 조리해야 한다. 충분히 익히지 않은 닭을 먹을 경우 인체의 내장이 파괴될 수 있다.

◉ 가지

가지는 솔라닌이라는 알칼로이드 배당체를 함유하고 있다. 솔라닌의 독성은 신경계와 위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구토와 위경련, 현기증, 설사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가지를 날 것으로 먹어서는 안된다.

◉ 감자

감자의 싹이나 껍질 등 초록부분에는 솔라닌 성분이 다량 들어있다. 또한 차코닌이라는 독성 성분도 있어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따라서 감자의 초록 부분은 날 것으로 먹지 말아야 한다.

◉ 일부 콩류

흰제비콩이나 리마콩은 날 것으로 먹기에는 위험한 식품이다. 이 콩들은 독성 아미노산인 청산 글리코시드를 함유하고 있다. 이런 독소를 제거 하기 위해서는 물에 담근 뒤 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강남콩도 역시 렉틴이라는 독성 성분을 갖고 있어 날 것으로 먹으면 곤란하다. 렉틴은 메스꺼움을 초래한다,

◉ 과일 속 부분

배나 사과를 쪼개면 씨를 포함한 속부분을 먹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씨를 품고 있는 배나 사과의 속부분은 먹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다. 배나 사과 씨에는 아미그달린" (Amygdalin)이라는 시안배당체가 들어있다. 시안 배당체는 청산가리 성분으로 인체에 과다 흡수되면 경련과 호흡 곤란을 일으킬 수 있다.

아미그달린이 항암작용을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미국 식품의약국 (FDA)은 이 물질이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의약품 제조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복숭아와 살구씨 등에도 아미그달린 성분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36.html
kolaswqetsrq 11.02 01:50
염증을 막아주는 식품 5가지

염증을 막아주는 식품 5가지

1 케일

전문가들은 "케일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영양소가 밀집한 음식으로 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채소로 위장한 비타민과 미네랄 알약이라고 불릴 정도다. 케일에는 오메가-3 지방산과 오메가 6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케일이 치료 잠재력에 있어 녹색 잎채소계의 슈퍼스타로 불리는 이유다.

2 표고버섯

신체의 면역반응을 증가시키고 감염을 퇴치하는데 도움이 되는 화합물이 들어있다. 항균성이 있어 암 치료에도 이용되고 있다. 표고버섯에 있는 다당류는 항암 화학요법이나 방사선으로 인해 생기는 면역 손상 현상을 감소시킨다.

3 참깨

면역 체계를 조절하고 과잉 반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식물성 스테롤이 들어있다. 전문가들은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루푸스처럼 면역 체계가 신체 조직을 공격해 생기는 자가 면역 질환을 다룰 때가 있는 데 이렇게 면역 체계에 대한 과잉 반응이 있을 때는 정상으로 되돌려 놓은 면역 균형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씨앗에는 칼슘, 철분, 마그네슘, 비타민 B1, B3와 망간, 아연 뿐만 아니라 비타민 B1, B3, E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4 호박

몸속에서 녹 방지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항산화제인 카로티노이드가 들어있다. 이 성분은 세포와 DNA에 손상을 줌으로써 질병의 싹을 만드는 유해산소를 흡수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호박에는 피부와 폐의 염증 상태에 효과적인 베타카로틴이 들어있다.

5 베리류

베리류에는 폴리페놀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이 성분은 대표적인 항산화제이며 항염증제다. 연구에 따르면, 염증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서구식 아침식사를 할 때 딸기주스를 마시면 서구식 식단의 나쁜 효과를 상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딸기와 블루베리, 아사이베리 등 베리류 외에 치아시드와 호두, 토마토, 다크 초콜릿 등에도 이런 효과가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14.html
kolaswqetsrq 11.02 01:51
불면증에 즉효 검은콩 달인 물 만드는 방법

불면증에 즉효 검은콩 달인 물 만드는 방법

잠 잘 주무시나요?

불면증으로 고생하시는 분들 많죠..

숙면을 돕는 여러 음식들 중에 간단한 한가지 음식을 소개해 드립니다. 바로 검은콩을 다려 마시는 것인데요.

검은콩에 있는 이소플라본 성분은 몸을 진정시켜주는 효과가 있으며 특히 이 이소플라본 성분은 갱년기 이후 중년 여성에게 더욱 효과적입니다.

★ 검은콩 달인물이 불면증에 도움이 되는 이유

오래전부터 검은콩 달인물은 해독제로 사용이 되어왔는데 검은콩 달인물은 독소 제거 및 스트레스 제거 그리고 소화 기능도 강화시켜주기 때문에 이러한 기능이 불면증에도 도움이 됩니다.

<검은콩 달인 물 만들기>

1. 검은콩 150g에 물 2L를 붓는다.

2. 1시간동안 충분히 달여준다.

하루 한 컵 정도 드시면 도움이 됩니다.

Tip. 여기에 치자 30g을 첨가하면 숙면에 더 도움이 됩니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 저녁에는 과식을 하지 않는다.

- 소화에 에너지를 쓰면 불면증을 유발하게 되어 과식은 절대 금물입니다.

- 일이나 책을 보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잠자리에 든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40.html
kolaswqetsrq 11.02 01:52
염증에 좋은 음식 베스트

염증에 좋은 음식 베스트

만성 염증은 뇌졸중, 암, 비만, 알츠하이머병, 심장병, 우울증 등 각종 질환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노화가 될수록 몸속 면역체계가 약화되면서 만성 염증이 생길 가능성이 더 커지는데요. 염증이 생길 위험을 줄일 수 있으며 먹는 음식에서부터 시작하면 되는데, 염증을 퇴치하는데 좋은 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 연어

강력한 오메가 -3 지방산인 EPA와 DHA가 풍부하게 들어있습니다. 이 성분들은 염증을 감소키고 암과 심장질환, 천식, 자가 면역질환 위험을 낮춰줍니다.

2. 두부

두부 같은 콩으로 만든 식품에는 이소플라본과

오메가-3 지방산이 들어있습니다. 이 성분들은 몸속의 염증 수피는 낮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3. 토마토

염증 퇴치제로 꼽히는 항상화제인 라이코펜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열을 가하면 라이코펜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에 토마토는 요리를 하면 항염증 특성이 증폭됩니다.

4. 마늘

마늘은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이 생성되는 것을 막아주고 특히 마늘에 열을 가하면 항염증 효과가 증강된다고 합니다.

5. 호박

호박에는 피부와 폐의 염증 상태에 효과적인 베타카로틴이 들어 있고 몸속에서 녹 방지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항산화제인 카로티노이드가 들어있습니다. 이 성분은 세포와 DNA에 손상을 줌으로써 질병의 싹을 만드는 유해산소를 흡수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6. 비트

혈압을 낮추고 스테미나를 증강시키는 효능이 있습니다. 염증을 퇴치하는 효과도 갖고 있어 비트에는 베타인 이라는 아미노산이 들어 있어 염증 위험을 감소시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13.html
kolaswqetsrq 11.02 01:52
돈 안들이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 9가지

돈 안들이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 9가지

1. 잠을 충분히 자라

수면 부족은 몸을 쇠약하게 만든다. 교통 사고, 우울증, 질병의 원인이다. 밤에 마시는 차, 커피, 알코올 양을 줄이면 수면 시간도 길어지고 같은 시간이라도 더 깊이 잘 수 있다. 적절한 운동은 숙면에 도움이 될뿐만 아니라 잠자는 동안 몸을 뒤척이거나 몸부림치게 만드는 우울증과 불안감을 덜어준다.

2. 숲속에서 산책하라

숲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걷거나 뛰거나 아니면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건강에 이롭다. 숲과 가까이 지내면 신체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에도 좋다.

3. 조리 시간을 줄여 영양분을 높여라

야채를 끓는 물에 살짝 넣었다가 가능한 재빨리 꺼내면 식비를 줄일 뿐만 아니라 음식의 질을 높여준다. 많은 양의 물에 야채를 오래 삶아내면 야채에 들어있는 많은 영양분을 잃어버리게 된다.

4. 마음을 편하게 먹어라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하고 취미 생활을 갖는 것이 요즘처럼 풍파 많은 시대에 정신적 균형감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준다.

5. 나쁜 습관을 버려라

담배를 피우려면 돈이 많이 든다. 금연하면 몸도 건강해지고 적잖은 돈도 절약할 수 있다.

6. 해독용 드링크는 끊어라.

우리가 복용하는 화학 제품은 몸에 해롭다. 알코올이 좋은 예다. 그래서 우리 몸에는 간(肝)이라 불리는 해독 기관이 달려 있다. 간이 훌륭하게 제기능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간장 보호, 숙취 제거, 알코올 중독 예방을 내세운 약은 지금부터당장 끊어라.

7. 저렴한 헬스클럽에 등록하라.

지방자치단체 등이 운영하는 헬스클럽은 서설 운동 시설보다 값이 싸다. 매주 4회 이하로 간다면 이번 기회에 헬스클럽을 바꾸는게 좋다. 그리고 자주가서 운동하라.

8. 치과 질환을 예방하라.

치과에 자주 가면 적잖은 돈이 든다. 치아를 건강하게 하는 비결은 이빨은 썩게 만드는 박테리아의 번식을 막는것이다. 칫솔질과 치실을 규칙적으로 하면 물리적으로 박테리아를 제거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박테리아가 살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게 중요하다. 단것을 먹지 않는 것이다.

9.값비싼 슈퍼푸드를 끊어라.

블루베리, 산딸기 등은 건강에 좋은 생화학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블랙베리,비트뿌리,시금치,케일 등도 마찬가지다. 매주 과일 채소와 곡류 각 5인분, 지방이 풍부한 생선2인분, 적당량의 육류만 섭취하면 충분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9_14.html
kolaswqetsrq 11.02 01:53
‘혈액순환 펌프’ 건강한 종아리 만드는 운동법

‘혈액순환 펌프’ 건강한 종아리 만드는 운동법

‘제2의 심장’으로 불리는 종아리는 건강수명을 좌우하는 바로미터이다. 종아리는 심장에서 발 밑으로 내려온 혈액을 다시 심장으로 올려주는 혈액순환의 펌프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몸의 균형을 유지해서 낙상 사고를 막고, 하지정맥류나 부종을 예방하는 기능도 있다. 보기 좋게 날씬한 종아리가 아닌, 단단하고 건강한 종아리를 목표로 하는 운동법을 소개한다.

1 종아리 근육을 위한 필수 스트레칭

종아리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종아리 스트레칭은 필수이다. 근육이 제대로 이완되지 않으면 통증이 발생하거나, 심한 경우엔 근육이 다칠 수도 있다. 간단한 수건 스트레칭으로 종아리 근육을 풀어주면 좋다.

발 끝을 수건으로 감싸고 당겨주는 동작으로 이완을 충분히 해주는 운동이다. 한쪽씩 15~30초 정도 유지하고, 3세트 정도 진행하면 좋다. 근육을 풀어주는 ‘마사지건’도 효과적이다. 손쉽게 종아리 근육을 풀어줄 수 있고, 단시간에 효과를 볼 수 있다.

2 일상 생활에서 가장 손쉬운 계단 오르기

종아리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일상 생활에서 가장 손쉬운 계단 오르기가 효과적이다. 계단을 오르기는 장소와 시간에 제약 없이 종아리 포함 하체 단련에 효과적인 운동법이다. 특히 계단 오르기는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을 단련하는 데 효과적이다. 다만 운동량이 많고 힘들어서 긴 시간을 지속하기는 어렵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면 좋다.

3 종아리 근육을 위해 쉽지만 효과적인 까치발 운동

집이나 사무실에서 가장 쉬운 종아리 운동은 바로 ‘까치발(발 뒤꿈치 들기) 운동’이다. 먼저 양손을 벽 혹은 의자에 의지하고 몸은 수직으로 세운 후 발 뒤꿈치를 들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뒤꿈치를 들 때는 최대로 들며, 뒤꿈치부분이 새끼발가락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뒤꿈치를 수직으로 똑바로 드는 게 중요하다. 종아리 근육을 강화하는 까치발 동작을 20회 3세트 정도 하거나, 종아리를 늘려주는 운동을 10~15초 3번 반복하면, 심장병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4 종아리 근육과 하체 단련에 좋은 스쿼트 운동

앉았다 일어서는 스쿼트 운동을 하면, 종아리와 허벅지 등 하체 전반을 단련할 수 있다. 30~40대부터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을 관리하면, 중년과 노년에 큰 병 없이 보낼 수 있다. 육류, 견과류, 콩류 등 단백질 음식도 함께 먹으면 근육 운동에 효과적이다. 다만, 무릎 관절이 약하거나 통증이 있다면, 전문가와 상담이 필요하고 스쿼트 운동에 주의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92.html
kolaswqetsrq 11.02 01:54
병촉지명炳燭之明 - 밝은 촛불의 빛, 노년의 배움의 재미

병촉지명(炳燭之明) - 밝은 촛불의 빛, 노년의 배움의 재미

불꽃 병(火/5) 촛불 촉(火/13) 갈 지(丿/3) 밝을 명(日/4)

자그마한 초 하나가 빛을 발한다.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 스스로는 비추지 않고 주위를 환하게 밝힌다. 시인들은 그것을 겉으로는 눈물짓고 속이 탄다고 했고, 타인을 위한 희생으로 느낀다. ‘촛불 하나가 다른 촛불에게 불을 옮겨 준다고/ 그 불빛이 사그라지는 건 아니다’고 박노해 시인이 잘 표현했다. 그뿐 아니다.

색깔을 입힌 신방의 華燭(화촉)은 가냘프지만, 촛불이 하나둘 야간의 광장에 모이면 추모하는 의미에서 거대한 혁명을 이뤄내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렇게 촛불의 다양한 의미를 사그라지는 절망 속에 희망을 갖다 주는 존재로 표현한 것이 초의 불꽃(炳燭)이란 이 성어다.

중국의 악성으로 불리는 師曠(사광)은 소리만 듣고도 길흉을 점치는 능력을 가진 현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 쑥 잎을 태운 연기를 눈에 씌어 앞을 못 보는 장님이었다. 그래서 사광은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의 平公(평공)을 도와 즉위 초기에는 주변 여러 나라가 감히 엿보지 못하는 강국으로 위세를 떨치게 했다.

새소리만 듣고도 적의 침입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평공이 나이가 들어 노쇠했을 때 사광과 나눈 대화에서 초의 불꽃 비유가 나온다. 戰國策(전국책), 新序(신서) 등 많은 저작을 남긴 前漢(전한)의 학자 劉向(유향)의 ‘說苑(설원)’에 실려 있다.

고대의 제후나 선현들의 행적을 모은 이 책의 建本(건본)편을 보자. 평공이 70이 되어 공부를 하려 해도 늦은 것이 아닐까 하자 촛불을 밝혀보라고 사광이 답한다. 말장난 같다며 화를 내는 평공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젊어서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떠오르는 아침 햇살과 같고(少而好學 如日出之陽/ 소이호학 여일출지양), 장년에 좋아 하면 중천에 떠 있는 해와 같으며(壯而好學 如日中之光/ 장이호학 여일중지광), 노년에 공부함은 촛불의 밝음과 같습니다(老而好學 如炳燭之明/ 노이호학 여병촉지명).’ 사광의 지혜에 평공이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가냘픈 몸집에 희생만 하다 힘을 모으면 거대한 힘을 발휘하는 촛불이 노년층에 희망을 주는 상징이 되니 흥미롭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평균수명이 늘어난 데다 출산율은 점차 줄어 급속도로 고령사회에 진입했기에 더욱 관심을 끈다. 노인 빈곤층이 어느 나라보다 높다는 악조건에도 활동하는 노인층이 늘어나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뒷방 늙은이로 퇴물 취급당하는 것보다 생활이든, 취미든 어떤 방면이든지 촛불이 밝히는 희망을 누려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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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55
상유이말相濡以沫 - 거품으로 서로 적셔주다, 어려울 때 서로 돕다.

상유이말(相濡以沫) - 거품으로 서로 적셔주다, 어려울 때 서로 돕다.

서로 상(目/4) 젖을 유(氵/14) 써 이(人/3) 물거품 말(氵/5)

게가 물고 있는 빈 방울 게거품을 사람이 물면 싸움난다. 거품을 품는다는 것은 감정이 격하여 몹시 흥분한 상태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거품이 많은 것도 환영받지 못한다. 어떤 일을 겉포장만 잘 하고 실질적인 내용이 없을 때를 비유한다. 거품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물고기가 뭍으로 나왔을 때 피부가 마르기 전에 서로 거품을 끼얹어주면 숨을 계속 쉴 수 있어 그 때는 생명이다.

거품을 서로 적셔준다는 이 말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끼리 서로 돕는 相扶相助(상부상조)를 의미한다. 젖을 濡(유)가 들어가는 성어 爭魚者濡(쟁어자유)는 고기를 서로 잡으려면 옷 젖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고생을 감수해야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재미있는 비유로 심오한 뜻을 전하는 ‘莊子(장자)’에 이야기가 나온다. 자연의 질서를 터득하고 그 질서에 따라 살아가는 인격체 眞人(진인)이 이상을 설명하는 大宗師(대종사)편을 먼저 보자. ‘샘물이 마르면 물고기들은 바닥이 드러난 곳에서 서로 입김을 불어 상대방을 적셔주거나 서로 거품을 내어 뿌려준다(泉涸 魚相與處於陸 相呴以溼 相濡以沫/ 천학 어상여처어륙 상구이습 상유이말). 그러나 이는 강이나 호수 속에서 서로를 잊고 지내는 것만 못하다(不如相忘於江湖/ 불여상망어강호).’ 涸은 마를 학, 呴는 숨내쉴 구, 溼은 젖을 습. 서로 돕는 것은 가상한 일이지만 원래의 상태가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老子(노자)가 孔子(공자)의 仁義(인의)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그것이 도리어 마음을 번거롭게 한다는 내용이 天運(천운)편에 실려 있다. 똑같이 물고기의 거품을 예로 들고 서로 문질러주면서 축여 주지만 서로 상대의 존재를 잊고 노는 것만 못하다고 반박한다. 장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유교서 말하는 仁(인)이나 忠(충), 孝(효) 등은 모두 인위적인 것이니 자연에 맡기는 것만 못하다는 주장이다. 장자의 또 다른 물고기 비유,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라는 涸轍鮒魚(학철부어)는 몹시 곤궁한 처지를 말한다. 涸은 물마를 학.

以沫相濡(이말상유)라고 해도 되는 거품 덮어주는 물고기의 同病相憐(동병상련) 이야기는 같은 처지에 서로 돕는다는 좋은 의미를 지녔다. 그런데 이 말은 중국 시진핑習近平/ 습근평 국가주석이 2014년 서울대를 방문했을 때 인용하는 등 자주 애용하는 말이라 한다. 하지만 2016년 사드(THAAD)사태 때 속 좁은 보복을 하는 것을 보면 자기 필요할 때만 쓰는 것 같다. 서로 거품을 발라주는 것보다 힘을 길러 넘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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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55
방휼지쟁蚌鷸之爭 - 조개와 도요새의 다툼, 양보 않고 싸우다 제삼자가 득보다.

방휼지쟁(蚌鷸之爭) - 조개와 도요새의 다툼, 양보 않고 싸우다 제삼자가 득보다.

조개 방(虫/4) 도요새 휼(鳥/12) 갈 지(丿/3) 다툴 쟁(爪/4)

토끼를 쫓는 개가 산을 몇 번 오르내리다 모두 지쳐 쓰러진다. 지나던 농부가 개와 토끼를 노력 없이 잡는다. 욕심을 부려 많이 차지하려다 모두 잃게 되는 犬兎之爭(견토지쟁), 田父之功(전부지공)의 고사다. 농부는 불로소득이지만 개와 토끼는 엉뚱한 사람에게 이로운 일을 했으니 이럴 때 ‘죽 쑤어 개 준다’는 말이 들어맞는다.

같은 이야기로 새가 조개의 살을 먹으려고 부리를 넣자마자 입술을 꼭 다물어 오도가도 못 한다. 지나가던 어부가 조개도 줍고 새도 잡는다. 남들 싸우는 틈에 가만히 앉아 득을 보는 漁父之利(어부지리)이고 漁人之功(어인지공)이다.

같은 뜻인데 무명조개와 도요새(蚌鷸)의 싸움(之爭)이란 어려운 글자로 된 이 성어다. 열을 내려주고 주독을 풀어준다는 조개와 부리가 길고 꽁지가 짧은 도요새가 싸운다면 둘 모두 꼼짝 못한다. 개와 토끼를 얻은 농부와 마찬가지로 지나가던 어부만 새도 잡고 조개도 얻어 횡재를 했다.

어금버금한 두 세력이 조금도 양보 않고 싸우다 결국은 제삼자에게 득을 보게 하는 경우를 가리키게 됐다. 중국 前漢(전한) 시대 학자 劉向(유향)이 전략가들의 책략을 모은 ‘戰國策(전국책)’에서 유래했다. 이 책은 春秋時代(춘추시대)를 잇는 戰國時代(전국시대)란 말을 낳게 했다 해서 유명하다.

약육강식이 판치고 싸움으로 지새던 당시 북부의 燕(연)나라에 蘇代(소대)라는 세객이 있었다. 合從說(합종설)을 주장한 유명한 종횡가 蘇秦(소진)의 동생이다. 연나라를 노리고 趙(조)나라가 침범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왕은 소대를 파견하여 막도록 했다. 조나라 惠王(혜왕)을 만난 소대는 易水(역수)를 건너면서 본 이야기를 전했다.

‘조개가 입을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는데 도요새가 보고 조갯살을 쪼려 하자 얼른 오므려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蚌方出曝 而鷸啄其肉 蚌合而鉗其喙/ 방방출포 이휼탁기육 방합이겸기훼).’ 曝는 쬘 포, 鉗은 집게 겸, 喙는 부리 훼. 조나라와 연나라는 싸우면 이와 같이 이웃 강국 秦(진)나라만 좋은 일 시킨다고 설득하여 공격 계획을 중지시켰다.

경쟁을 하더라도 서로 발전을 위한 것은 쌍방이 바람직하다. 사이가 나쁜 이웃이 잘 되면 배가 아프다며 적을 끌어들이면 나중엔 칼끝이 나를 향할 수 있다. 당이 다르다고 항상 으르렁거리며 화합을 모르는 정치권은 민생은 아랑곳없다. 상대방이 잘 되는 것은 보지 못한다고 ‘너 죽고 나죽자‘식 끝장을 보려 하면 진짜 망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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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56
여시아문如是我聞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불교 경전의 첫머리에 쓰는 용어

여시아문(如是我聞)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불교 경전의 첫머리에 쓰는 용어

같을 여(女/3) 옳을 시(日/5) 나 아(戈/3) 들을 문(耳/8)

이와 같이(如是) 나는 들었다(我聞), 또는 내가 들은 바는 이와 같다는 뜻의 이 말은 불자가 아니라도 불경을 암송할 때 처음 나오는 것이라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조금도 거짓이 없이 진실 되게 옮긴다는 의미를 갖는다. 我聞如是(아문여시), 聞如是(문여시)라고도 한다.

부처님은 釋迦牟尼(석가모니)의 존칭으로 고대인도 샤카Sākya/ 釋迦 민족의 성인을 뜻하는 모니muni/ 牟尼란 뜻이다. 본명은 성이 고타마Gautama/ 瞿曇(구담), 이름이 싯다르타Siddhārtha/ 悉達多(실달다)인 것도 상식이 되어 있다. 4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부처님 말씀은 어떻게 불경으로 남아 전해졌을까.

훌륭한 말씀이라도 전하는 사람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면 신뢰받지 못한다. 부처님의 말씀은 涅槃(열반)하기 전까지 25년간 시중을 들었던 阿難陀(아난타)의 기억으로 전해졌다. 석가모니의 사촌이며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아난타는 곁에서 가장 많은 말을 들었으므로 多聞第一(다문제일)이라고도 불린다. 그렇더라도 자기 개인의 의견이 아닌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다는 뜻을 강조하여 경전 앞에 썼다. 초기 불교의 경전은 석가의 사후 제자 중의 영도자 역할을 하여 頭陀第一(두타제일)이라 불린 摩訶迦葉(마하가섭)의 영도로 결집사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大般若經(대반야경)의 전반적인 주석서 ‘大智度論(대지도론)’에 아난이 모든 경전의 앞에 어떤 글자를 붙여야 하는지 여쭙자 부처님께서 답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모든 경전의 앞에 제가 들은 바는 이와 같습니다란 말을 두면 된다(一切經首置 如是我聞等言/ 일체경수치 여시아문등언).’

좀 더 풀이를 옮겨 보면 불법의 큰 바다는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고 지혜로 건널 수 있는데 ‘이와 같이(如是/ 여시)’의 의미가 바로 믿음이라 했다. 그러면서 깨끗한 믿음이 있어야 불법에 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믿음을 말하는 표현은 열반 500년이 지나 편찬된 초기 경전에도 그대로 전통이 이어졌다고 한다.

부처님이 어디서 누구에게 설법한 내용은 이와 같다고 전한 아난의 말은 사실대로 전하는 뉴스와 닮았다. 없는 사실을 전하고 실제보다 부풀려 말하고,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느끼게 하는 점이 크다. 목소리 크게, 여러 매체를 동원하여 동시다발로 전한다고 해도 사실이 아니면 일시적인 믿음은 곧 사라진다. 전하는 사람이나 그 내용이나 믿음이 앞서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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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57
시사여귀視死如歸 - 죽음을 편안히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다.

시사여귀(視死如歸) - 죽음을 편안히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다.

볼 시(見/5) 죽을 사(歹/2) 같을 여(女/3) 돌아갈 귀(止/14)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대문 밖이 저승이라’고 했다. 사람 목숨이 그만큼 덧없다. 왕이나 거지나 죽음은 모두에 공평하게 다가온다. 사람은 어차피 한 번 죽게 마련인데 쓰임에 따라 이룬 일에 따라 泰山鴻毛(태산홍모)의 차이가 있다고 했다.

구차하게 목숨을 빌다 개죽음을 당하는 貪生怕死(탐생파사, 怕는 두려워할 파)도 있고, 영광의 최후를 맞아 영원히 추앙받기도 한다. 적탄을 맞고도 왜군을 물리치고 승리로 이끈 忠武公(충무공)이 바로 죽음으로써 살아난 必死則生(필사즉생)의 삶을 살았다.

죽음을 여기기(視死)를 마치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으로 안다(如歸)는 이 말도 용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옳은 길을 향하여 돌진하는 용사들이 떠오른다. 중국의 고전 곳곳에 이 말이 사용됐다.

먼저 呂不韋(여불위)가 빈객들의 지혜를 모은 ‘呂氏春秋(여씨춘추)’의 士節(사절)을 보자. ‘어려운 일에 임해서는 이익을 잊고, 생명을 돌보지 않고 의로움을 행할 때는 죽음 보기를 마치 편안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여긴다(臨患忘利 遺生行義 視死如歸/ 임환망리 유생행의 시사여귀).’ 죽음으로 보답하는 선비들의 절개에 대해서 강조했다.

齊(제)나라 桓公(환공)이 管仲(관중)에게 관리를 뽑으면서 조언을 구했다. 관중은 청렴한 사람에 형벌을 관장하게하고, 공손한 사람에게 접객을 맡겨야 한다며 잇는다. ‘삼군을 지휘하고 진영을 만들어 병사들로 하여금 죽음을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바라보게 하는(三軍既成陣 使士視死如歸/ 삼군기성진 사사시사여귀)’ 成父(성보)란 공자가 제일이라고 추천했다. 그러면서 관중은 覇王(패왕)이 되려면 역시 자신을 등용해야 한다고 자신만만했다.

‘韓非子(한비자)’ 外儲說(외저설, 儲는 쌓을 저) 좌하에 실려 있다. 列子(열자)에 나오는 視死如生(시사여생)도 죽음을 삶과 같이 보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똑 같다. 부를 가난과 같이 여긴다는 視富如貧(시부여빈)의 대구로 仲尼(중니)편에 등장한다.

사람이 죽은 후 비로소 평가가 제대로 된다는 蓋棺事定(개관사정)이란 말은 杜甫(두보)의 시구에서 왔다. 떵떵거리던 삶을 산 사람이 오명이 만대에 이르고 이름 없던 삶을 살다가 流芳百世(유방백세)인 사람도 있다.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한 구국선열들과 적과 싸워 목숨을 바친 전몰장병들은 후자의 사람들이다.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장병들을 자그마한 규정에 의해 섭섭하게 대우한 사례가 종종 드러난다. 특혜를 바란 희생은 아니라 해도 우대는 많이 할수록 좋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36.html
kolaswqetsrq 11.02 01:58
출곡반면出告反面 - 나갈 때 아뢰고 들어올 때 뵙는다.

출곡반면(出告反面) - 나갈 때 아뢰고 들어올 때 뵙는다.

날 출(凵/3) 고할 고, 뵙고청할 곡(口/4) 돌이킬 반(又/2) 낯 면(面/0)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때는 매번 부모에게 가는 곳을 아뢴다(出告). 집에 돌아 왔을 때도 반드시 부모님을 뵙고 귀가했음을 알린다(反面). 옛날 효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께 자식으로서 지녀야 할 도리로 생각했던 효의 덕목이다. 원래는 出必告 反必面(출필곡 반필면)이라 했다.

고할 告(고)는 뵙고 청한다는 뜻으로는 음이 ‘곡’이 되어 ‘출곡’으로 읽는 것이 좋다. 중국 五經(오경)의 하나인 禮(예)에 관한 경전 ‘禮記(예기)’에서 상세한 것이 실린 후 아동들의 한학서 ‘小學(소학)’에 까지 실려 널리 알려진 성어이다.

먼저 예기 曲禮(곡례) 상편에 있는 내용을 보자. 곡례는 각종 행사에 몸가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을 설명한 예법을 말한다고 한다. ‘모든 자식된 자는 나갈 때에는 반드시 나간다고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에게 낯을 보여야 한다(夫爲人子者 出必告 反必面/ 부위인자자 출필곡 반필면).’ 형제와 친구, 연장자에 대한 태도 등에도 가르침을 주는데 부모에게는 늙었다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있다.

‘평상시 자신을 늙은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恒言不稱老/ 항언불칭로)’는 것은 부모가 늙은 것을 더욱 느끼게 되니 삼가라는 것이다. 70세가 된 효자 老萊子(노래자)가 그 부모를 위해 색동저고리를 입고 재롱을 떤 것도 그런 뜻이 있었다.

소학은 南宋(남송)의 대유학자 朱熹(주희)의 저작이라 되어 있지만 실제 그의 친구인 劉淸之(유청지)의 원본에 가필한 것이라 한다. 여기에 인용한 내용이 어려워 우리나라서 四字一句(사자일구)로 엮은 것이 ‘四字小學(사자소학)’이다. 아동들도 알기 쉽게 정리한 것이라 千字文(천자문)과 함께 교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충효와 윤리도덕, 벗과의 교유 등 올바른 인성을 갖추도록 권장하고 있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父生我身 母鞠我身/ 부생아신 모국아신)’로 시작되는 孝行(효행)편에 성어가 나온다.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오면 반드시 뵈어라(出必告之 反必面之/ 출필곡지 반필면지). 먼 곳에 가 노는 것을 삼가고, 놀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곳에 있게 하라(愼勿遠遊 遊必有方/ 신물원유 유필유방).’

부모의 은혜를 알게 되는 것은 자식을 낳고 기를 때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복잡한 요즘 세상에 집을 나서고 들 때 이처럼 번거롭게 행하기는 어렵다. 또 멀리 떨어져 있다면 매번 알리지는 않더라도 부모에 걱정을 끼치지 않을 정도로 가끔씩 안부를 여쭙는다면 흡족해 할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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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1:58
복경호우福輕乎羽 - 복은 새털보다 가볍다.

복경호우(福輕乎羽) - 복은 새털보다 가볍다.

복 복(示/9) 가벼울 경(車/7) 어조사 호(丿/4) 깃 우(羽/0)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길 꿈꾼다. 사람은 평생을 행복을 구하며 불철주야 노력한다. 福(복)이라는 글자는 조상의 신주를 나타낸 보일 示(시) 옆에 음식이나 술이 가득한 항아리 畐(복)을 붙여 나타냈다고 한다. 조상에게 음식을 바쳐 복을 기원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남이 봤을 때 충분히 성공하여 행복하게 보일지라도 자신은 더 이상을 욕심낸다. 행복을 자기 자신 이외의 곳에서 발견하려고 바라는 사람은 그릇된 사람이다. 어릴 때 누구나 읽는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의 ‘파랑새’는 행복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지만 결국 집안의 새장에서 찾는다.

복은 나눌수록 커지고 남을 행복하게 하는 자가 자신 또한 행복하다. 행복에 관한 동서고금 철인들의 명언은 수없이 많다. 복이 왔다고 자만하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것은 찰나이며 그 변화는 끝이 없다는 잘 알려진 성어가 塞翁之馬(새옹지마)다.

塞翁(새옹)이란 노인이 기르던 말이 주인에게 吉凶禍福(길흉화복)을 번갈아 갖다 준다. 천지만물을 풍자와 寓言寓話(우언우화)로 풀어내는 道家(도가)의 중심인물 莊周(장주)도 그답게 복은 깃털보다 가볍다고 한 마디 보탰다. 그의 책 ‘莊子(장자)’의 內篇(내편) 人間世(인간세)에서다. 개인이 혼란한 시기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 이 글에서 戰國時代(전국시대) 楚(초)나라의 은자로 알려진 接輿(접여)를 등장시켜 지나가는 孔子(공자)에게 한 마디 한다. 중간 부분을 보자.

‘행복은 깃털보다 가볍지만 아무도 그것을 간직할 줄 모르고(福輕乎羽 莫之知載/ 복경호우 막지지재), 재앙은 땅덩어리보다 무겁지만 아무도 그것을 피할 줄 모르오(禍重乎地 莫之知避/ 화중호지 막지지피).’ 이 말은 접여가 공자를 鳳凰(봉황)으로 지칭하며 혼탁한 현실 정치에서 벗어날 것을 충고하는 내용이라 해석한다. ‘論語(논어)’의 微子(미자)편에도 접여가 鳳兮歌(봉혜가)를 부르며 도가 없는 세상에서 덕을 베푸는 일은 위험하다고 했다.

깃털은 가볍다. 하지만 그것이 모여 배도 가라앉힐 수 있다고 積羽沈舟(적우침주)라 했다. 행복이 자그마하다고 가벼이 여기고 아무렇게나 대하면 순식간에 빠져 나간다. 행복은 남의 정원에서 따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복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것이 복인지 모른다(身在福中不知福/ 신재복중부지복)’는 말과 같이 가까이서 복을 찾아야 한다. 또 복이 왔을 때 소중히 여기는 것도 중요하다. 그 복이 언제 화가 되어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을 만족하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지혜다. / 제공 : 안병화 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14.html
kolaswqetsrq 11.02 01:59
인면수심人面獸心 - 사람의 얼굴에 마음은 짐승사람 인人-0 낯 면面-0 짐승 수犬-15 마음 심心-0

인면수심(人面獸心) - 사람의 얼굴에 마음은 짐승사람 인(人-0) 낯 면(面-0) 짐승 수(犬-15) 마음 심(心-0)

사람이 몹쓸 짓을 저질렀을 때 비유하여 짐승 같다, 짐승보다 못하다, 짐승보다 더 하다고 수시로 짐승에 갖다 붙인다. 그러나 실제 동물들은 억울하다. 사람보다 더 부모를 위할 줄 알고, 새끼들을 귀여워하고, 사랑하고 은혜를 안다.

대충의 성어를 떠올려 봐도 反哺之孝(반포지효)의 까마귀, 老牛舐犢(노우지독)의 소, 鴛鴦之契(원앙지계)의 원앙, 黃雀銜環(황작함환)의 꾀꼬리 등을 사람에게 본받으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의 얼굴(人面)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짐승과 같다(獸心)는 이 말은 잘못 갖다 붙인 것일지라도 사람들이 멋대로 쓴다. 도리를 지키지 못하고 배은망덕하고, 또 음탕하거나 흉악한 짓을 한 사람에게 손가락질하면서 욕한다.

성어가 처음 사용된 곳은 "漢書(한서)"다. 班固(반고)가 20년에 걸쳐 완성하여 史記(사기)와 비견되는 책이다. 열전 속의 匈奴傳(흉노전)에 처음 묘사했을 때는 흉악하기보다는 오랑캐들을 일반적으로 지칭한 것으로 나온다. 흉노는 기원전 3세기 말부터 기원후 1세기 말까지 몽골고원과 만리장성 일대를 중심으로 거주했던 유목 기마민족이다. 周(주)나라 때부터 괴롭혔던 종족의 후예라거나 유럽의 훈족과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이들이 자주 침공하여 漢(한)나라는 절세미인 王昭君(왕소군)을 흉노 족장에게 보내 화친을 도모하기도 한 것은 알려진 이야기다. 흉노를 가리킨 부분을 인용하면 이렇다. "오랑캐들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며, 사람의 얼굴을 하였어도 마음은 짐승과 같다(夷狄之人 被髮左衽 人面獸心/ 이적지인 피발좌임 인면수심)." 狄은 오랑캐 적, 衽은 옷깃 임. 옷깃을 한족과 반대쪽으로 여미는 풍습을 가리켜 미개하다 하고, 자신들을 많이 괴롭혀 흉악하다 한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0-0-15.html
kolaswqetsrq 11.02 02:00
천택납오川澤納汚 - 하천이나 못은 오수도 받아들인다, 지도자는 결점 있는 사람도 널리 포용해야 한다.

천택납오(川澤納汚) - 하천이나 못은 오수도 받아들인다, 지도자는 결점 있는 사람도 널리 포용해야 한다.

내 천(巛/0) 못 택(氵/13) 들일 납(糸/4) 더러울 오(氵/3)

마음이 넓고 아량이 있으면 모두에 환영받는다. 개인 간에도 그러한데 지도자라면 크건 작건 선악의 사람들을 포용해야 크게 성공한다. 바로 떠오르는 말이 있다. 秦始皇(진시황)의 신임을 받은 이웃나라 출신 李斯(이사)가 모략으로 추방의 위기에 처하자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아 높게 되었다는 泰山不辭土壤(태산불사토양)의 諫逐客書(간축객서)로 위기를 면했다.

이후 이사는 통일제국 확립에 큰 공헌을 했다. 이어지는 부분 하해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아 이뤄졌다는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도 알려져 있는데 이 말은 앞서 하천이나 못(川澤)은 더러운 물도 받아들인다(納汚)는 伯宗(백종)을 연상시킨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의 宣公(선공) 15년 조에 일촉즉발의 전략 싸움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다. 楚(초)나라의 莊王(장왕)이 五覇(오패)에 오르기 전 한창 세력을 키울 때였다. 齊(제)나라에 사신을 보내면서 지나치게 되는 이웃 소국 宋(송)나라에 통보도 하지 않았다.

빌미가 잡히면 침략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대신 華元(화원)이 주권을 지켜야 한다며 사신을 잡아 처형하고 만반의 수비태세를 갖췄다. 화가 난 초의 장왕이 대군을 일으켜 공격했으나 송나라는 여러 달 전투를 끌면서 북방의 晉(진)나라에 사신 樂嬰齊(악영제)를 보내 구원을 청했다.

진나라 景公(경공)은 형제의 나라 송나라를 구하기 위해 출병준비를 시켰다. 이때 대부 백종이 나서며 진나라가 강하다고 하나 지금은 하늘이 초나라를 돕고 있으니 출병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간언했다. 그러면서 말을 잇는다.

‘뜻을 굽히고 펴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습니다(高下在心/ 고하재심). 하천이나 연못은 오수와 탁수를 받아들이고, 산과 늪은 독충을 숨어 살게 하며, 아름다운 옥도 흠을 가지고 있습니다(川澤納汚 山藪藏疾 瑾瑜匿瑕/ 천택납오 산수장질 근유닉하).’ 藪는 늪 수. 그러니 지금의 조그만 오점은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옳다고 여긴 경공은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곧 지원하겠다는 말만 하고 끝냈다.

조그만 흠을 찾아내 서로 옳다, 그르다며 지지고 볶는다면 통합은 하세월이다. 유리한 측에서 관용을 베풀고 선의로 대해야 입장이 바뀌었을 때도 마음이 넓어진다. 높은 사람의 관용은 충성을 빼앗는 전략이라 낮춰 보는 시각도 있지만 계속 쌓이면 그렇지 않다.

菜根譚(채근담)에 있는 좋은 말도 음미해 보자.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은 마치 봄바람이 따뜻하게 하여 길러주는 것과 같아서 만물이 이를 만나면 성장한다(念頭寬厚的 如春風煦育 萬物遭之而生/ 염두관후적 여춘풍후육 만물조지이생).’ 煦는 따스할 후.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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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00
부지지병不知知病 - 모르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

부지지병(不知知病) - 모르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

아닐 불, 부(一/3) 알 지(矢/3) 알 지(矢/3) 병 병(疒/5)

‘아는 것이 힘’이란 말이 있다. 어떤 어려운 일에 닥쳤을 때 처리할 방법을 알면 해결이 수월하다. 또 내막을 잘 알고 상대하면 어떤 난관도 뚫을 수 있다는 知彼知己(지피지기)가 병법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많이 아는 사람은 혼자 있을 때나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나 여유롭고 담담하다고 해서 大知閑閑(대지한한)이라고 莊子(장자)는 말했다. 이런 사람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을 실천하듯 잘 알아도 모든 일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소크라테스(Socrates)의 겸손과 닮았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는 것이 병이 되는 경우가 있다. 조금 아는 일에 함부로 덤볐다가 패가망신하거나, 몰랐으면 그냥 넘어갈 일을 알고선 지나칠 수가 없어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이 될 때다. 모르거나 듣지 않았으면 마음이 편안했을 것이라고 聞則是病 不聞是藥(문즉시병 불문시약)이라 한역했다.

이보다 더 큰 병이 있으니 모르면서도(不知) 아는 체 하는 병(知病)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빈 깡통이 더 요란한 경우가 많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없는 놈이 있는 체 못난 놈이 잘난 체’하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다. 老子(노자)가 ‘道德經(도덕경)’에서 이것을 경계했다.

71장인 知病章(지병장)에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을 꼬집는다. ‘알면서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知不知上 不知知病/ 지부지상 부지지병). 병을 병으로 알아야만 병이 되지 않는다(夫唯病病 是以不病/ 부유병병 시이불병).’ 그러면서 성인이 병이 없는 것은 자신의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에 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알지만 모르는 체하는 것이 무슨 꿍꿍이속이 있어 그렇다면 욕먹을 짓이지만 아무데나 나서며 자랑하지 않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그렇게 되면 다양한 분야에서 실제 몰랐던 부분을 배울 수 있는 이득도 있으니 더욱 그렇다.

세상의 복잡한 일을 모두 알 수도 없고, 전부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잘 알고도 곤경에 빠진 사람에 도움을 주지 않거나 모르면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나댄다면 문제다. 孔子(공자)님도 좋은 말씀을 남겼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처마 끝의 제비가 이렇게 지저귄다는 그 구절이다. 부작용이 뻔히 보이는데도 옳다고 우기며 정책을 강행하는 등 제비도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데 요즘 모르는 것을 안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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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01
천하오흑흑天下五黑黑 – 다섯 가지의 어두운 나쁜 것, 지도자가 잘 알아야 할 것

천하오흑흑(天下五黑黑) – 다섯 가지의 어두운 나쁜 것, 지도자가 잘 알아야 할 것

하늘 천(大/1) 아래 하(一/2) 다섯 오(二/2) 검을 흑(黑/0) 검을 흑(黑/0)

세상에는(天下) 다섯 가지의 어둡고 어두운 나쁜 것이 있다(五黑黑)는 뜻의 성어다. 어찌 나쁜 것이 다섯 가지뿐이겠는가 만은 그것마저도 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에게는 보여도, 눈을 다 뜬 정상인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사물을 살펴 앞을 내다보는 마음의 눈 心眼(심안)을 가진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의 악사 師曠(사광, 기원전572~532)이 통치를 하는 임금이 보지 못하는 다섯 가지를 지적한 데서 나온 얘기다. 중국의 樂聖(악성)이라 칭송받는 사광은 눈이 보이지 않고, 서양의 악성 베토벤(Beethoven)은 귀가 들리지 않았으니 마음으로 음을 다스린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晉(진)나라 平公(평공) 때의 유명한 궁정악사 사광은 가장 귀가 밝고 시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솜씨가 정밀하지 못한 것은 마음을 집중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 그는 쑥 잎을 태운 연기로 눈에 씌어 멀게 했다. 이후로는 음악에 전념하여 마침내 소리만 듣고도 기후의 변화를 살피고 미래의 길흉까지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師曠之聰(사광지총)이란 말이 귀가 밝음의 대명사가 될 정도였다. 앞이 안 보이면서도 최고 관직 太師(태사)가 되어 왕을 수행하고 전장 터마다 수행했다. 그가 새소리만 듣고 예측한대로 주둔하고 적군이 물러갔으니 더욱 신임을 받았다.

사광이 평공과 대좌했을 때 나눈 대화에 성어가 등장한다. 前漢(전한)시대의 학자 劉向(유향)이 쓴 ‘新序(신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자. 앞을 못 보는 사광에게 답답하고 고통이 심하겠다고 말하자 사광이 대답한다. ‘세상의 어둡고 어두운 다섯 가지를 보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天下有五墨墨 而臣不得與一焉/ 천하유오묵묵 이신부득여일언).’ 임금이 보지 못하는 것을 五墨墨(오묵묵)으로 표현했다. 관리가 뇌물을 받고 백성을 수탈해도 모르고, 사람을 바로 기용할 줄 모르며, 현인을 쫓아내고 간신이 부정축재해도 모른다고 했다. 또 전쟁을 자주 일으켜 백성을 힘들게 하고, 그러면서 그들의 어려운 삶에 관심이 없는 것이라 직언한 것이다.

앞이 안 보이는 사광에게도 백성이 귀하고 그들의 삶을 보살펴야 나라가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높은 자리의 임금은 자만하여 보이지 않는다.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거나 위정자들은 어떻게 아랫사람의 마음을 잘 읽어야 할지 마음의 눈을 잘 가꿔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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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02
육회명六悔銘 - 여섯 가지 뉘우칠 일에 대한 계율

육회명(六悔銘) - 여섯 가지 뉘우칠 일에 대한 계율

여섯 륙(八/2) 뉘우칠 회(心/7) 새길 명(金/6)

때에 맞춰 일을 처리하면 좋으련만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기회를 놓치고 뒤늦게 후회하는 일을 많이 본다. 성인이나 앞을 내다보는 예언자가 될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은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며 땅을 치지만 되돌릴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회를 놓쳐서 별 볼 일 없게 되면 ‘파장에 수수엿 장수’ 신세가 된다. 그렇더라도 후회한다고 소용이 없다면서 후회만 해서는 앞날이 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거나 ‘도둑맞고 사립 고친다’고 비아냥대더라도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다.

가장 좋은 일은 좋은 자리에 있을 때, 잘 나갈 때 후회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인데 이게 어렵다.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잘 알면서도 잘 잊고 까마득히 지나간다. 잘 알려진 朱子十悔(주자십회)와 함께 여섯 가지의 뉘우칠 일에 대한 계율, 즉 六悔銘(육회명)을 보면 더욱 그렇다. 보배로운 말과 글을 모아 옛날 서당에서 학동들에 가르치던 ‘明心寶鑑(명심보감)’에 실려 누구에게나 익었다. 고려 말기 명신 秋適(추적)이 편찬한 이 책의 存心(존심)편에 寇萊公(구래공)이 한 말이라면서 나온다. 구래공은 北宋(북송)의 정치가 겸 시인 寇準(구준, 961~1023)의 별칭이다.

내용을 보자. ‘관원은 사사롭고 굽은 일을 행하면 벼슬을 잃을 때 후회하고(官行私曲失時悔/ 관행사곡실시회), 부자는 검소하지 않으면 가난해졌을 때 후회하며(富不儉用貧時悔/ 부불검용빈시회), 어렸을 때 배우지 않으면 시기가 지났을 때 뉘우치고(學不少勤過時悔/ 학불소근과시회), 일을 보고 아니 배우면 필요할 때 뉘우치며(見事不學用時悔/ 견사불학용시회), 취한 뒤에 함부로 말하면 술이 깨었을 때 후회하고(醉後狂言醒時悔/ 취후광언성시회), 몸이 편안할 때 조심하지 않으면 병이 들었을 때 후회한다(安不將息病時悔/ 안불장식병시회).’

조선 英祖(영조)때의 대학자 李瀷(이익, 1681~1763, 瀷은 강이름 익)도 ‘星湖僿說(성호사설, 僿는 잘게 부술 사)’에서 육회명을 남겼다. ‘행동이 때에 못 미치면 지난 뒤에 후회하고(行不及時後時悔/ 행불급시후시회), 이익 보고 의를 잊으면 깨달을 때 후회하며(見利忘義覺時悔/ 견리망의각시회), 등 뒤에서 논단하면 면대할 때 뉘우치고(背人論短面時悔/ 배인론단면시회), 일을 처음에 못 살피면 실패할 때 뉘우치며(事不始審僨時悔/ 사불시심분시회), 분으로 인해 몸을 잊다 어려울 때 후회하고(因憤忘身難時悔/ 인분망신난시회), 농사에 게으르면 수확할 때 후회하네(農不務勤穡時悔/ 농불무근색시회).’ 僨은 넘어질 분. 두 육회명 모두 상식적으로 아는 일인데 실천이 어렵다. / 글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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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03
이유극강以柔克剛 - 부드러운 것으로 굳센 것을 이기다.써 이人/3 부드러울 유木/5 이길 극儿/5 굳셀 강刂/8

이유극강(以柔克剛) - 부드러운 것으로 굳센 것을 이기다.써 이(人/3) 부드러울 유(木/5) 이길 극(儿/5) 굳셀 강(刂/8)

물은 부드럽다. 물은 항상 낮은 곳에 임한다. 하지만 물은 다스리지 못하면 배를 뒤집고 홍수로 휩쓸기도 한다. 물을 부드러움의 상징으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라고 깨우친 사람은 老子(노자)다. 지극히 선한 것은 물과 같다고 한 上善若水(상선약수)가 그것이다. 노자는 병석의 스승 常摐(상창, 摐은 칠 창)에게서 혀는 부드러워 남아있고 치아는 단단해서 빠져 없어진다는 齒亡舌存(치망설존)의 교훈을 이어 받았다. ‘道德經(도덕경)’ 곳곳에서 부드러운 것이 약하지 않고 결국은 강한 것을 이겨낸다고 강조했다.

노자가 남긴 무위의 處世訓(처세훈)인 이 책 8장 易性章(역성장)에서 물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물기에 가장 도에 가깝다고 했다. 36장 微明章(미명장)에서 부드러운 것으로 강한 것을 이겨낸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柔弱勝剛强/ 유약승강강). 물고기가 깊은 곳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나라를 다스리는 심오한 도리를 함부로 내보여서는 안 된다(魚不可脫於淵 國之利器不可以示人/ 어불가탈어연 국지리기불가이시인).’ 이것을 권도로 해석하는 일면, 나라를 다스리는 道(도)로 풀기도 한다.

78장 任信章(임신장)의 내용은 더 명확하다. ‘천하에 유약하기로는 물보다 더한 것이 없다(天下莫柔弱於水/ 천하막유약어수). 그러나 굳고 강한 것을 꺾는 데는 물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而攻堅强者莫之能勝/ 이공견강자막지능승). 아무 것도 물의 본성을 대체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以無以易之/ 이무이역지).’ 그러면서 다시 강조한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억센 것을 이긴다(弱之勝强 柔之勝剛/ 약지승강 유지승강).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실천하는 사람이 없다(天下莫不知 莫能行/ 천하막부지 막능행).’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듯이 약자가 강자를 이긴다. 억지로 힘으로 복속시키면 겉으로 순종하지만 나중에는 뒤집어진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 사람은 도를 떠나 살 수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도를 지키지 않고는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은 독재가 뒤집힌 각국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작은 조직을 이끌든 큰 나라를 다스리든 물의 부드러움이 강하고 굳셈을 이겨낸다는 점을 깨달아야겠다. / 글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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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03
복룡봉추伏龍鳳雛 - 엎드려 있는 용과 봉황의 새끼, 초야에 숨어있는 인재

복룡봉추(伏龍鳳雛) - 엎드려 있는 용과 봉황의 새끼, 초야에 숨어있는 인재

엎드릴 복(亻/4) 용 룡(龍/0) 봉새 봉(鳥/3) 새새끼 추(隹/10)

전설상의 네 가지 동물을 가리키는 四靈(사령)은 용, 봉황, 기린, 거북을 이른다. 이 중 용과 봉황은 신령스런 존재로 상서로움의 상징이 되어왔다. 용은 천자를 지칭하며 龍顔(용안), 龍床(용상) 등과 같이 임금을 가리키는 용어로 높여 불렀다. 鳳凰(봉황)은 성인의 탄생에 맞춰 세상에 나타나는 상상의 새인데 鳳(봉)이 수컷이고 凰(황)이 암컷이란다. 엎드려 있는 용(伏龍)과 봉황의 새끼(鳳雛)라는 이 성어는 신령스런 힘을 발휘하기 전의 초야에 숨어있는 훌륭한 인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이 처음 가리켰던 인물은 중국 삼국시대 諸葛亮(제갈량, 181~234)과 龐統(방통, 179~214)이었다. 자가 孔明(공명)이고 臥龍(와룡)선생이라고도 불렸던 제갈량은 삼국 중에서 가장 세력이 약했던 蜀(촉)을 도와 천하를 삼분한 뒤 통일을 꾀했던 전략가였다. 劉備(유비)가 제갈량을 모시기 위해 三顧草廬(삼고초려)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자가 士元(사원)인 방통도 제갈량과 함께 유비를 도와 촉의 세력을 넓히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두 사람을 얻기 전까지 유비는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근거지를 얻지 못하고 荊州(형주)라는 곳에서 지방관인 劉表(유표)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인재를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유비가 어느 때 사람 보는 눈이 남달라 水鏡(수경)선생이라 일컬어졌던 司馬徽(사마휘)를 찾았다.

시국의 흐름에 대해 가르침을 구하자 서생이라 아는 것이 없다며 넌지시 일러준다. ‘시무를 아는 것은 준걸들인데 이 곳에 복룡과 봉추가 있습니다(識時務者在乎俊傑 此問自有伏龍鳳雛/ 식시무자재호준걸 차문자유복룡봉추)’며 들 중 한 명만 얻어도 왕업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이 누구냐고 물으니 제갈공명과 방사원이라고 답했다. ‘三國志(삼국지)’ 촉지의 注(주)에 실려 있다.

세상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재주와 지혜가 탁월한 사람이 묻혀 있게 마련이다. 조그만 조직에도 사람을 잘 써야 발전하는 것이 당연한데 나라를 이끄는 정부조직에서 인재를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자주 본다. 여러 번 찾아가 읍소해 보았는지, 아니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에게만 한정하여 감투를 맡겼는지 곰곰 생각하면 알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86.html
kolaswqetsrq 11.02 02:04
만수무강萬壽無疆 - 아무런 탈 없이 아주 오래 삶

만수무강(萬壽無疆) - 아무런 탈 없이 아주 오래 삶

일만 만(艹/9) 목숨 수(士/11) 없을 무(灬/8) 지경 강(田/14)

새해가 되었을 때 친지가 서로 만나 인사를 하면서 잘 되기를 바라는 德談(덕담)을 주고받는다. 한때 ‘부자 되세요’란 말이 광고카피나 덕담이나 막론하고 휩쓴 적이 있다. 이 말은 실제 18세기 조선시대 때부터 ‘아들 낳으세요’와 함께 가장 많이 오간 덕담이었다 한다. 세시풍속의 하나인 덕담은 崔南善(최남선)에 의하면 ‘이제 그렇게 되어라’고 축원하는 것이 아니라 ‘벌써 그렇게 되셨다니 축하합니다’라고 경하하는 것이 특색이라 했다.

시대 따라 덕담이 바뀌어도 장수와 행복이 빠질 수는 없다. 지금은 좀 뜸하지만 만세까지 목숨을 유지하고(萬壽) 한이 없이(無疆) 이어지라는 이 성어는 오랫동안 웃어른께 덕담으로 썼던 만큼 고사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친숙하다. 지경 疆(강)에는 한계, 끝이란 의미도 있다. 萬歲無疆(만세무강), 壽考無疆(수고무강)이라 써도 같은 뜻이다.

孔子(공자)가 손수 정리할 만큼 애지중지했다는 ‘詩經(시경)’에 이 말이 나오니 3000년 정도의 역사를 지녔다. 岐山(기산) 북쪽에 위치했던 豳(빈, 豳은 나라이름 빈) 땅 농민들의 세시생활과 농촌의 정경을 노래한 豳風(빈풍)에 먼저 등장한다. 周公(주공)이 섭정을 그만 두고 나이 어린 조카 成王(성왕)을 세운 뒤 백성들의 농사짓는 어려움을 알리기 위해 지은 노래라는데 그 부분만 인용해보자. ‘염소와 양을 잡아 어른들 대접하지, 저 공당에 올라가서 뿔 술잔을 높이 들어 만수무강 기원하네(曰殺羔羊 躋彼公堂 稱彼兕觥 萬壽無疆/ 왈살고양 제피공당 칭피시굉 만수무강).’ 羔는 새끼양 고, 躋는 오를 제, 兕는 외뿔소 시, 觥은 뿔잔 굉.

시경 小雅(소아) 편에도 나온다. 白華之什(백화지십, 什은 열사람 십)의 南山有臺(남산유대) 내용도 소개하면. ‘남산에는 뽕나무, 북산에는 버드나무가 있다네. 즐거운 군자여 국가의 영광이로다. 즐거운 군자여 만수무강하리라(南山有桑 北山有楊 樂只君子 邦家之光 樂只君子 萬壽無疆/ 남산유상 북산유양 낙지군자 방가지광 낙지군자 만수무강).’ 덕성이 있고 지위가 높은 사람을 기리는 내용이다.

세기가 바뀌어 새로운 다짐을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24년이 됐다. 새 날이 밝으면 모두들 희망에 들떠야 할 텐데 지난 해 분위기가 이어지면 기대할 것이 없어 심란해 할 사람은 더 많을 듯하다. 국민들은 내편, 네 편 갈라져 상대방은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상반기엔 총선이 기다리고 있어 더욱 치고받고 시끄러울 것이다. 나라를 이끄는 위정자들은 한없이 실망만 안겨주지만 위기를 잘도 넘겨 온 저력을 발휘하여 국민들만이라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희망의 말을 건네자.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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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05
입냄새 제거방법

입냄새 제거방법

1. 아침에 일어나면 입 냄새가 더욱 심한이유는?

잠을 자는 동안 침의 분비량은 현저히 줄어들고 원활한 침의 흐름이 없으면 입 냄새를 일으키는 박테리아들은 급속히 성장해 그 수가 불어나게 되는데, 이는 숙면동안 박테리아와 함께 규칙적으로 침을 삼키는 작용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잠을 자기 전에 꼭 치아를 닦아야 한다는 권유도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과일이나 야채 한 조각을 먹는 것은 침샘의 활동을 증가시켜 주어 입 냄새를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커피나 녹차등은 카페인이 들어있으므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마시는 것은 침샘의 활동을 억제하여 역효과를 가져옵니다.

2. 입 냄새가 심해지는 때는?

입 냄새는 특히 오랫동안 이야기를 할 때 증가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 만큼 입안은 마르게 되고 상대적으로 침의 세정작용이 왕성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녁 식사 전에는 하루 중 침샘의 활동이 가장 낮은 시간입니다. 이는 주로 점심 식사후 장기간 침의 흐름을 자극시켜 줄 음식물이나 음료등이 공급되지 않은 이유에서 비롯됩니다.

여성은 생리기간 중에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sulfur 복합체의 분비가 잦아질 수 있기에 더욱 구강 청결에 신경 써야합니다. 운동중에도 입안이 건조해지기 쉬우므로 잠시 틈을 내어 수분 보충과 함께 침의 생성을 도와주도록 해야 합니다.

3. 구강 세정제는 입 냄새를 없앨 수 있나요?

요즘 TV광고에서 구강세정제가 완전히 입 냄새를 없애주는 것처럼 선전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연구 보고에 의하면 구강세정제의 효과는 10분 정도밖에 지속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입안에 축적된 박테리아는 몇 백겹으로 층층이 번식되기에 표면에만 닿는 세정제만으로는 입안 구석구석에 위치한 프라그를 제거해 입냄새를 없애기란 어렵습니다.

4. 입 냄새 제거에 더욱 좋은 치약과 칫솔은 없나요?

따로 그 해결책을 구강용품에서 찾기보다는 올바른 사용법을 배우는게 중요합니다. 바쁜 현대인들이 양치질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30초도 채 안된다고 한다. 음식 찌꺼기를 없애고 박테리아의 축적을 막아야만 입냄새가 줄어들기에 부드러운 칫솔로 돌려가며 특히 치아과 잇몸사이 그리고 치아 사이 등에 신경쓰며 닦아야 합니다.

잇몸과 혀 바닥등도 닦아야 합니다.

특히 혀에는 악취를 발생시키는 박테리아들이 넓게 기생하기 때문에 잊지 말고 닦도록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28.html
kolaswqetsrq 11.02 02:05
잠잘때 머리방향 어디가 좋을까?

 잠잘때 머리방향 어디가 좋을까?

잠자리 방향에 따라 가정운과 직업운 금전운 학업운 등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잠잘때 머리방향 어디로 자야 좋을까요?

옛날부터 동쪽에 머리는 두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고 남쪽잠자리는 장수하고 서쪽에머리를 두고 자게 되면 가난해지며

북쪽에 머리를 두면 명이 짧아진다고 합니다.

특징에 따라 다른 머리 방향을 살펴 볼까요 ?

1. 동쪽

동쪽방향은 하루중 아침을 뜻하고 사계절중에는 봄으로 기운이 솟아오르는방향에 해당되는데요. 잠자리 머리방향을 동쪽으로 두어야할 사람은 많은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직업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성장기 어린이나 공부하는 학생이 동쪽으로 머리를 두면 좋다고 합니다.

2. 서쪽

서쪽은 하루중 해가 질때를 뜻하고 사계절중 가을을 나타내므로 기운이 점차적으로 사그라드는 방향에 해당되는데요.

잠잘때 서쪽으로 머리방향을 두어야 할 사람은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 할아버지 안정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좋은 방향이라고 합니다.

3. 남쪽

사계절로 여름을 나타내는 남쪽은 무덥고 열이 많은 방향인데요.

스트레스를 많이받는 사람 몸에 열이 많은 사람등에게는 좋지 않다고 합니다.

4. 북쪽

북쪽으로 머리방향을 두고 자게 되면 깊은잠을 이루지 못하고 꿈자리가 뒤숭숭하여 혼란스러워지고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예전부터 복쪽은 음기에 해당되어 죽음을 뜻하여 더욱 그런의미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95.html
kolaswqetsrq 11.02 02:06
냉찜질 vs 온찜질

냉찜질 vs 온찜질

다치거나 통증이 생기면 으레 찾는 것이 찜질이다. 하지만 찜질의 온도를 어떻게 해야 효과적일까 하는 것은 언제나 혼란스러운 부분이다. 언제 냉찜질을 해야 하고, 언제 뜨거운 온찜질을 해야 치료효과를 최상으로 나타낼 수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자.

1. 냉찜질

통증과 부기를 줄여주는데 냉찜질만한 것도 없다. 발목을 삐거나 근육이 놀랐을 때 누구나 한번쯤 냉찜질을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뿐 아니라 멍든데, 벌레 물린데, 경미한 화상 같은 여러 증상에도 냉찜질의 효과는 놀랍다. 통증을 줄여주고 부기를 줄여주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조직은 손상을 받으면 혈관에서 조직액이 새어 나온다. 그런데 온도가 낮아지면 혈관이 수축되면서 조직액이 흘러나오는 것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또한 냉기는 근육의 경련과 염증을 완화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이 두 가지 작용 때문에 통증도 적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근육이나 인대에 손상을 받은 즉시 냉찜질을 하면 회복도 빨라진다.

통증과 부기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허리통증 같은 만성통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통증이 처음 나타나기 시작할 때는 냉찜질을 먼저 해주는 것이 좋다.

냉찜질은 보통 2-3일간 해주는 것이 좋다. 그러나 환부에 직접 냉찜질을 하는 시간은 20분 정도로 제한하고, 2-4시간 마다 반복해주도록 한다. 피부에 감각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너무 차가운 온도로 보고, 냉찜질을 일단 멈추어야 한다. 또한 냉찜질이라고 해도, 얼음을 피부에 직접 갖다 대는 것은 금물이다.

냉기로 인한 이차적인 손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수건으로 찜질팩이나 얼음주머니를 감싼 뒤 냉기를 이용해서 찜질해주어야 한다. 또한 당뇨병이 있거나 혈액순환이 나쁜 사람, 혈관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냉찜질을 하기 전에 의사에게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2. 온찜질

기본적으로 ‘열’은 혈액순환을 늘려주고 손상된 조직이 회복되는 것을 돕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온찜질을 하면 관절의 부기나 통증, 근육경련 같은 증상들을 줄여주는데 도움이 된다. 삐거나 관절염으로 인한 통증, 허리통증, 근육경련이 일어나면 뜨거운 온찜질을 해주는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온찜질을 처음부터 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처음 하루 이틀 정도 냉찜질을 한 후, 통증이 남아 있거나 만성화되면 온찜질로 바꿔준다. 허리통증의 경우에는 너무 높지 않은 온도로 온찜질을 해주는 것이 진통제를 먹는 것보다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전기로 데워지는 것이든 전통적인 뜨거운 물주머니든 모두 수건으로 덧감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화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뜨겁지 않은 온도라고 해도 오랫동안 대고 있으면 저온화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하도록 한다. 시간은 한 번에 20-30분 정도가 알맞다. 발목을 삐거나 했을 때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충동에 사로잡히는 것이 당연하지만, 당장 온찜질부터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손상을 입은 곳에는 며칠간 냉찜질을 한 후 그 다음에 온찜질을 해주는 것이 좋다. 온찜질을 하려면 아픈 곳의 부기가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도록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vs.html
kolaswqetsrq 11.02 02:07
커피를 마셔야 하는 이유 10가지

커피를 마셔야 하는 이유 10가지

1. 커피에는 항산화 물질을 있다.

2. 커피향이 스트레스를 막아줍니다.

3. 파킨슨병의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4. 커피는 간에 좋다.

5. 커피는 당신을 행복하게 한다.

7. 커피는 특히 여성의 피부암을 낮춰 준다.

8. 커피는 당뇨병 발병위험을 낮춘다.

9. 커피를 마시면 두뇌건강을 오래 유지한다.

10 .커피는 인지능력을 향상시킨다.

커피는 두뇌의 각성뿐아니라 집중력을 높이고, 효율적인 사고를 하도록 도움을 준다고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14.html
kolaswqetsrq 11.02 02:08
심장에 좋은 식품 9가지

심장에 좋은 식품 9가지

1. 견과류

아몬드, 호두, 잣, 캐슈넛 등의 견과류에는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다. 이런 성분들은 나쁜 콜레스테롤(LDL)을 감소시키는 반면 좋은 콜레스테롤(HDL)은 증가시켜 준다. 하지만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이지만 지방 함량이 많은 만큼 적당히 먹는 게 좋다. 이런 견과류는 하루에 4분의 1컵 정도 분량이 적당하다.

2. 마늘

심장 건강에 좋은 각종 항산화제와 비타민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마늘에 들어있는 알리신이라는 성분은 심장질환을 예방하고 나쁜 콜레스테롤과 혈압을 낮춰주고, 세포 손상을 막아 각종 암 발병 위험을 낮추며 알츠하이머 성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3. 콩류

렌틸콩, 검은콩, 강낭콩 등의 콩 종류에는 수용성 섬유질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이런 섬유질은 혈압을 낮추고 나쁜 콜레스테롤 감소시키는 효능이 있다. 심장에 좋은 엽산도 많이 들어있어 포화지방이 많은 동물 단백질을 대신할 완벽한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4. 토마토

강력한 항산화제인 라이코펜이 많이 들어있어 세포 손상을 막아 고혈압, 심장질환을 예방하고 콜레스테롤을 낮춰준다.

5. 연어

연어에는 혈압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킴으로써 심장마비 위험을 줄여주는 오메가-3 지방산과 항산화 성분이 많이 들어있고, 이런 성분들은 심장부정맥 위험도 감소시켜준다. 고등어, 청어, 정어리 등도 이런 건강 효과를 갖고 있다.

6. 오트밀

귀리 가루로 죽을 쑤어 소금, 설탕, 우유 등을 넣어 먹는 오트밀에는 오메가-3 지방산과 엽산, 칼륨, 섬유질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이런 성분들은 나쁜 콜레스테롤을 줄이고 동맥폐색을 막는 효능이 있다.

7. 녹차

녹차에 들어있는 항산화제가 혈관 속 세포 계를 튼튼하게 해 심장질환을 예방하는 효능이 있다.

8. 자몽

비타민C, 섬유질, 콜린, 라이코펜 등을 함유하고 있는 과일로 혈중 지질 그중에서도 중성지방을 조절하는데 도움을 주고, 여기에 펙틴과 수용성 섬유질도 들어있어 동맥 경화증을 예방해준다.

9. 다크초콜릿

항산화 성분인 플라보놀이 들어있어 혈압을 낮추고 신진대사를 촉진해 지방을 태우는데 효과적이다. 다크 초콜릿에 들어있는 항산화 성분은 동맥벽에 나쁜 콜레스테롤이 달라붙는 것을 차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9_11.html
kolaswqetsrq 11.02 02:08
나의 성공을 위한 습관

나의 성공을 위한 습관

▶ 잠을 잘 자야 아침이 상쾌하다.

밤이 편안해야 아침도 편안하다. 밤에 잠을 설치거나 잠이 부족하면 몸이 천근만근이어서 일어나기 어렵고 정신이 맑지 못하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우선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면 숙면을 취할 수 있다.

▶ 아침 공복에 냉수 한 컵은 보약이다.

아침이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화장실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섬유질이 부족한 음식을 많이 섭취하고 운동량이 충분하지 않은 현대인에게 내린 달갑지 않은 선물 중 하나가 변비다. 우리나라 사람의 20~30%가 변비로 고생한다고 한다.

▶ 일어날 때의 분위기도 중요하다.

물론 자명종 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부득이 자명종 소리에 맞춰 일어나더라도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아니라 기분 좋은 소리에 맞춰 눈을 뜨자.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경쾌한 음악이나 귀엽고 맑은 아기 목소리를 내는 자명종도 좋을 것이다.

▶ 가벼운 아침운동을 한다.

눈을 뜨자마자 간단한 스트레칭이나 맨손체조를 하자. 침대에 누운 채 스트레칭이나 심호흡을 해도 좋다.

▶ 아침밥을 꼭 먹는다.

산책하고 돌아와서는 아침밥을 꼭 챙겨 먹도록 하자. ‘조반석죽(朝飯夕粥)’이라는 말이 있다.

즉, 아침에는 밥을 먹고 저녁에는 죽을 먹는다는 말로, 아침을 든든히 먹어 두라는 말이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사람치고 아침밥을 제대로 챙겨 먹는 사람은 없다.

▶ 5분 빨리 출발하면 하루가 편안하다.

평소보다 5분 빨리 출발하면 하루가 편안하며 일이 잘 풀린다. 그러나 5분 늦게 출발하면 하루를 허둥대며 스트레스 속에서 보낼 것이다.

▶ 과욕은 금물이다.

주변에서 본 많은 사람이 아침형 인간이 되어 보고자 아주 일찍 일어나고 열심히 운동도 하였건만 오히려 피로만 쌓이고 일의 능률도 잘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사람 중에는 정말 선천적인 체질이나 타고난 생체리듬이 아침에 맞지 않는 사람도 많다.

▶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가 필요하다.

지나친 욕심에서 하루아침에 바꾸려는 무리수를 두기보다 적응해 가면서 조금씩 바꾸어 나가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진정한 아침형 인간이 되려면 지나치면 부족하니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14.html
kolaswqetsrq 11.02 02:09
유익한 민간요법 10가지

유익한 민간요법 10가지

1. 배탈설사는 오이를 많이 먹어라.

배탈이 나서 설사할 때는 얇게 썬 오이를 흑설탕에 재어 양껏 먹으면 좋다.

2. 나빠진 위는 콩나물이 좋다.

콩은 인체에 없어서는 안될 식품이고 영양가도 높지만 소화가 잘 안된다.

이럴 때 콩나물을 먹는 것이 대단히 좋다. 콩나물에는 비타민C가 많고 요즈음에는 항암물질인 셀렌이라는 물질이 발견되어 붐이 일기도 했다.

3. 음주한 다음날에는 이온음료를 마셔라.

술을 마시면 몸과 뼈에서 칼슘이 빠져 나가는데, 이럴 땐 다음날에 반드시이온음료(포카리스웨트, 게토레이)를 마심으로 해서 보충해줄 수 있다. 이온음료는 말 그대로 이온이기 때문에

흡수가 잘되고 효과도 빠르게 나타나는데, 그러나 신장에 이상이 있는 사람(담석증)은 삼가야 한다.

4. 위염, 위궤양을 앓을 때.

현대인들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나 심한 음주습관 등으로 위염이나 위궤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은 데, 이 때에는 양배추 특히 푸른 부분을 날로 썰어 먹거나 주스로 만들어 보름정도

먹으면 효과가 좋다.

5. 불면증을 쫓으려면.

온갖 잡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잠을 잘 이루지 못할 때는 손으로 엄지발가락을 아래로 여러번 세게 구부려주면 된다. \u3000

6. 빈혈 예방에 좋은 식품.

갑자기 나른하고 어지러울 때는 피가 부족해 발생하는 빈혈증세로 보아야 하는데, 이럴 때는 기름기 적은 생선, 두부, 콩, 유부, 멸치, 간, 계란, 탈지유 등 철분생성을 돕는 식품을 많이 먹으면 좋다.

7. 치아를 희게 하려면.

누렇게 된 치아를 희게 하려면 레몬을 거즈에 적셔 닦으면 되는데 레몬의 비타민C 작용으로 잇몸까지 튼튼해지는 일석 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8. 감자 싹 안 나게 보관하려면.

우선 누런봉투를 구입해서 거기에 감자를 담아 서늘한 곳에 보관하면 싹이 나지 않는다.

특히 사과와 함께 봉투에 넣어 보관하면 싹이 나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9. 감기로 코가 막힐 때.

감기 때문에 코가 막혔을 때 양파를 갈아서 면봉으로 찍어 바르면 코가 시원하게 뚫린다.

말린 쑥을 가볍게 비벼서 콧구멍에 잠깐 넣어 두어도 된다.

10. 수제비 반죽에 레몬즙을.

수제비 반죽을 만들 때 레몬즙을 한 술 넣고 반죽을 하면 더욱 쫀득하고 맛있는 수제비를 만들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76.html
kolaswqetsrq 11.02 02:10
소화를 방해 하는 습관 5가지

소화를 방해 하는 습관 5가지

1. 식후의 과일

보통 식사 후에 바로 후식으로 과일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요, 식사 후에 바로 과일을 먹게 되면, 혈당을 또다시 급상승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게다가 음식물이 소화되는 과정에서, 음식보다 빨리 소화되는 과일이 정체되면서 발효되고 가스가 나오면서 배가 부글부글한 현상이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일은 식후 두세 시간 후나, 식전에 먹는 것이 좋겠습니다.

2. 식후의 커피

역시 식사 후에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커피 한잔, 생각보다 우리 건강에는 좋지 않습니다.

식후에 바로 커피를 마시게 되면 카페인 성분이 식도와 위장사이의 근육을 자극해서 소화를 방해하고, 심한 경우 역류성 식도염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커피는 식사를 마치고 최소한 30분 이후에 먹는 것이 좋겠습니다.

3. 식후의 낮잠

식후 30분~1시간 후의 낮잠은 괜찮지만, 식사를 끝내고 포만감에 바로 잠드는 습관은 좋지 않습니다. 음식물의 이동시간을 지연시키서 더부룩함, 소화 장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4. 식후의 담배

흡연은 안 좋지만, 식후의 흡연은 더욱 좋지 않습니다. 식후에는 위장의 연동운동으로 혈액순환이 빨라지는데, 평소보다 연기를 빨아들이는 능력도 강해져서 흡연을 통한 유독물질들이 대량으로 몸속으로 전달된다고 합니다.

5. 식후의 허리띠 풀기

식사 후에 배가 너무 불러서 갑자기 허리띠를 푸는 단순한 동작이지만, 갑자기 복강 내의 압력을 떨어드려서 소화기관의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심한경우 위하수와 장폐색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맛있는 음식이라도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적당한 양을 지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15.html
kolaswqetsrq 11.02 02:11
폐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 5가지

폐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 5가지

지속적인 흡연은, 호흡기 질환과 폐기능 약화를 불러옵니다.

특히 니코틴은 기관지를 자극하여 기침과 가래를 만들고, 호흡기능이 약해지게 합니다.

오래 담배를 피운 경우에는 폐 속 깊이 가래가 남아있어 늘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나기도 하지요. 그래서 각종 폐질환, 만성 기관지염 등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 당장 담배를 끊지 못한다면, 평소에 폐 건강에 도움되는 식단이 좋겠지요?

<1> 토마토

토마토에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 라이코펜이라는 항산화 성분이 흡연으로 인해 몸 속에 증가된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역할을 통해 폐손상을 억제합니다.

라이코펜은 기름과 친한 지용성 영양소이기 때문에 올리브유와 함께 먹으면 흡수율이 더 좋아집니다.

<2> 오메가3 지방산

혈액순환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 오메가3 지방산은 만성폐질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오메가3지방산을 음식으로 섭취할 때는 고등어와 같은 생선류, 올리브유, 들깨 등에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평소 식단에 꾸준히 넣어주면 좋습니다.

<3> 연근

연근은 폐나 기관지가 안좋은 사람이 먹으면 좋다고 알려져있는데, 특히 흡연자에게는, 폐기능 손상을 예방하고 노폐물도 잘 배출되도록 도와준다고 합니다. 연근은 밥에 두어 함께 먹어도 좋고, 갈아서 먹거나, 즙을 내서 차처럼 먹어도 좋습니다. 마디마디에도 영양분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버리지 말고 음식에 활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4> 브로콜리

브로콜리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설포라판이라는 성분이 노폐물 제거에 탁월하고, 비타민C도 풍부하게 들어있어서 면역력 향상에도 좋은 음식입니다. 줄기까지 모두 드시는게 좋고, 물에 넣어 데치는 것보다는 찜기에 넣어서 쪄먹는 편이 좋습니다.

<5>파래

파래는 니코틴을 해독하고 중화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해조류입니다.

게다가 니코틴을 체외로 배출시켜주는 ‘메틸메티오닌’이 풍부하게 들어있고, 폐점막을 보호하고 항산화 작용을 하는 비타민 A도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51.html
kolaswqetsrq 11.02 02:11
천연재료로 집안 냄새 제거하는 법

천연재료로 집안 냄새 제거하는 법

1. 향초

왁스로 구성된 향초가 타면서 탈취 기능을 한다. 냄새를 빨아들이면서, 은은한 향기를 더해 화장실의 꿉꿉한 냄새를 잡는데 그만이다

2. 원두커피_찌꺼기

탈취 효과 있는 커피 찌꺼기를 스타킹이나 망사 주머니에 넣어 집안 곳곳에 두면 쉽게 빠지지 않는 냄새도 없앨 수 있다. 악취 나는 신발에도 하룻밤 정도 넣어두면 냄새가 빠진다

3. 신문지

신문지를 뭉쳐 신발 속에 넣어두면 냄새를 모두 흡수한다

4. 쌀뜨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밀폐용기에 베인 냄새를 깔끔하게 제거해준다. 밀폐용기에 쌀뜨물을 붓고 30~40분 뒀다가 수세미로 문지르면 냄새 및 얼룩도 제거된다. 김치 국물이 묻어 변색된 행주도 쌀뜨물에 담가두자

5. 식초

배수구에서 냄새날 때 식초를 얼음과 함께 넣고, 찬물을 틀어두면 효과가 있다. 식초물을 냉동실에 얼리면 냉동실의 퀴퀴한 냄새까지 없애준다. 혹은 음식물 쓰레기통에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려도 냄새가 줄어든다

6. 레몬 or 오렌지_껍질

도마나 칼 등 납작한 주방용품에 레몬을 바르고, 한 시간 정도 흡수시킨 후 햇볕에 말리면 냄새와 얼룩이 줄어든다

7. 베이킹소다

산과 염기 두 가지 특성을 다 갖고 있어, 많은 냄새를 흡수한다. 싱크대나 욕조, 샤워기 곳곳에 뿌리면, 퀴퀴한 냄새가 제거된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붙박이장에도 베이킹소다를 따로 담아 넣어두면 냄새가 빠진다

8. 숯

숯은 부패한 균의 발생을 억제해 냄새를 없애주는 탈취 효과가 있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음식의 악취 냄새를 없애주고, 밥이 탄 솥에 숯을 넣어둬도 냄새가 빠진다

9. 과일_껍질

집안 가득 생선 냄새가 빠지지 않을때, 껍질을 넣고 끓이면 과일향이 냄새 정화 및 방향제 역할을 한다. 먹다 남은 과일을 거실에 둬도 향기가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16.html
kolaswqetsrq 11.02 02:12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

1. 불고기와 들깻잎

2. 스테이크와 파인애플

3. 돼지고기와 표고버섯

4. 돼지고기와 새우젓

5. 닭고기와 인삼

6. 닭고기와 잉어

7. 간과 우유

8. 추어탕과 산초

9. 복어와 미나리

10. 조개탕과 쑥갓

11. 생선회와 생강

12. 잉어와 팥

13. 굴과 레몬

14. 우거지국과 선지

15. 아욱과 새우

16. 두부와 미역

17. 콩국과 국수

18. 딸기와 우유

19. 옥수수와 우유

20. 커피와 치즈

21. 된장국과 부추

22. 쌀과 쑥

23. 시금치와 참깨

24. 그린샐러드와 양파

25. 녹즙과 식초

26. 토란과 다시마

27. 약식과 대추

28. 냉면과 식초

29. 당근과 식용유

30. 매실과 차조기

31. 죽순과 쌀뜨물

32. 인삼과 벌꿀

33. 수정과와 잣

34. 초콜렛과 아몬드

35. 소주와 오이

36. 홍어와 막걸리

37. 콩과 식초

38. 감자와 치즈

39. 카페와 요구르트

40. 새우와 표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34.html
kolaswqetsrq 11.02 02:13
관절에 좋은 약초 모음

관절에 좋은 약초 모음

1. 황칠나무

황칠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우리나라 고유의 나무입니다. 주로 전남 등지에서 자생하며 사람에 따라 노란옻나무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황칠나무 같은 경우 뼈의 재생을 돕는 나무로 유명하며, 뼈의 밀도를 높여주어 다양한 뼈 질환 관절 질환을 예방하여 줍니다. 특히 이런 효험 덕분에 뼈에 구멍이 뚫리는 골다공증과 같은 질환에 탁월한 효과를 보여줍니다.

2. 우슬뿌리

관절에 좋은 약초하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약초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슬뿌리인데, 우슬뿌리는 이름만 보더라도 관절에 좋은 효과를 가져다주는 약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슬이란 이름은 소의 무릎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죠. 우슬뿌리 같은 경우 관절에 생긴 염증을 치료해주고, 또 관절 이상으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통증을 줄여주는 진통 효과가 있습니다.

3. 울금

울금 같은 경우 향신료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졌지만 사실 선조 때부터 사용해오던 중요한 약초 입니다. 울금의 경우 염증에 직접 작용하여 염증을 치료하는 효과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통증이 너무 심해 통증을 줄이고자 할 때 진통제로써 울금을 사용하며, 보통 관절 치료에 사용되는 약재와 함께 사용하거나, 병행하면서 사용해 효과를 보는 약재이죠.

4. 오가피

외국에서 오가피는 갖은 병을 치료하는 가시나무라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져 불릴 만큼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약초입니다. 오가피는 기침, 혈압, 암, 간 건강 등 다양한 곳에 효능을 보여는 약초이지만, 특히 관절 건강에 중요한 작용을 합니다. 오가피에는 아콘토 사이드D라 불리는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이 성분의 역할은 뼈의 밀도를 증진시켜주고 근육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죠. 이 덕분에 퇴행성, 류마티즘 관절염에 좋은 효과를 보여주며 옛날에는 허리가 아플 때에도 오가피를 활용했습니다.

5. 쇠비름

이번에 알려드릴 관절에 좋은 약초는 쇠비름으로, 간혹가다 쇠비름을 잡초 정도로 알고 넘어가시는 분이 많습니다. 사실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풀이고 농촌에서는 작물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잡초가 맞지만, 약초라는 시선에서 접근한다면 결코 무시하지 못할 풀이 바로 쇠비름입니다. 쇠비름은 예로부터 생즙을 내어 관절이 아픈데 사용한 약초이며 말려서 가루를 낸 후 환을 만들어 먹어 효과를 보기도 합니다. 관절염뿐만 아니라 각 종 염증 치료에도 좋습니다.

6. 개다래

개다래는 국내 도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약용 열매이며 지역에 따라 말다래, 묵다래라고도 불리는 약초입니다. 개다래는 현재 통풍 치료에 좋다고 알려져 있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통풍 치료 이외에 관절염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류머티즘 관절염과 허리 통증 치료에는 예로부터 개다래는 사용해오고 있으며 개다래의 경우 진통 효과까지 함께 겸비하고 있어 통증을 줄이면서 치료해나가는데 좋은 역할을 합니다.

7. 마가목

마가목의 경우 도심 공원 곳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어 관상용 나무로 알고 있으신 분들이 많은데, 옛 말에 마가목으로 만든 지팡이만 짚고 다녀도, 관절 통증과 신경통이 낫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관절 건강에 좋은 효과를 보여주는 약초입니다. 마가목의 경우 나무의 껍질과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활용하여 관절 통증 치료에 사용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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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14
귀 지압으로 건강해 지는 방법

귀 지압으로 건강해 지는 방법

★고혈압

귓바퀴 뒤 움푹 패인 곳을 누른다.

무리했거나 일시적 흥분이 원인이 되어 혈압이 높아 진 경우에는 귀 잡아당기기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다.
 "
귓바퀴의 위쪽 뒷면을 만져보면 움푹 패인 곳이 있는데 이곳을 강압구라고 한다.
",
우선 귀 뒤쪽에 있는 강압구에 엄지손가락을 대고 귀 표면을 검지로 눌러준다.

이렇게 누른 채 귓불의 밑부분까지 쓸어내리며 잡아 당겨 준다.

양쪽 귀를 동시에 7~8회 반복한다.

또 귓불을 당겨주면 뒷목 부위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고 고혈압 환자 특유의 뒷목이 뻣뻣해지는 증상을 부드럽게 해준다.

늘 혈압이 높은 사람이라면 습관적으로 아침에 잠자리에서 귀 잡아당기기를 해주면 하루종일 맑은 정신으로 지낼 수 있다.

★두통

귓불을 잡아당긴다.

간단한 습관성 두통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일 때는 귀 잡아당기기로 해결할 수 있다.

두통은 혈관이 확장되거나 수축될 때 일어나는 현상 .

고혈압으로 뒷목이 뻣뻣해질 때와 마찬가지로 귓불을 조금 세게 잡아당겨 주면 두통이 곧 사라진다.

만성 두통으로 인하여 고생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두 통의 반사구를 잡아당기는 것이 좋다.

★눈이침침할때

귓볼을 늘려 아래로 잡아당긴다.

눈이 침침해지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

노화현상에 의한 것과 피로에 의한 것이다.

노화에 의한 눈의 피로는

심하면 백내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귀 잡아당기기를 습관화하면 눈이 침침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백내장의 진행을 예방할 수 있다.

또 장시간의 시험공부나 TV 시청, 컴퓨터 작업 등으 로 피로해진 눈을 회복시키는 데도 효과적이다.

눈의 반사지점은 귓불의 한가운데 있다 .

귓불 가운데를 엄지와 검지로 누른 후 밑으로 잡아 당긴다. 처음에는 약간 강한 듯하게 누르면서 약 50회 정도 계속해서 반복한다.

★정력감퇴

귓볼 위 돌기를 얼굴 쪽으로 잡아당긴다.

정력은 나이 들면서 감퇴되어 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피곤함이나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감소되는 경우도 있다.

정력과 관계가 깊은 것은 고환의 반사지점이다. 남성의 경우에는 그곳을 자극함으로써 정력 이 증강 되고 스태미너가 생기게 된다.

귓불의 위쪽에는 작은 돌기가 있는데 이 돌기의 안 쪽이 고환의 반사지점이다.

이곳에 검지 손가락을 깊숙이 넣어 돌기 밑으로 손 가락을 거는 듯한 느낌으로 얼굴 쪽을 향하여 잡아당긴다.

그런데 돌기 부분의 가장 아래쪽으로는 내분비와 난 소의 반사지점이 있다.

따라서 이 지점을 자극하면 호르몬 분비가 원활해져 정력증강에 한층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피부를 윤택하게 가꾸어 주기도 한다.

★소화불량

이륜각 위 오목하게 들어간 지점을 자극한다.

귀의 색이 누렇고 귓구멍이 작으며 귀가 얇으면 만성 위장병의 위험이 있다고 한다.

이런 상태가 아니라도 식욕이 없거나 트림을 하고 배에 가스가 잔뜩 차 더부룩하다면 장이 안 좋은 것이다.

대장, 소장, 십이지장의 반사구는 귓구멍 위 꼬리처럼 생긴 이륜각 바로 위의 오목하게 들어간 지점이다.

이 지점을 돌아가면서 자극한다. 귀 전체를 돌아가면서 자극해주는 것도 장을 튼튼하 게 하는 한 방법.

★어깨결림, 요통

귀 중앙 대이륜 주변을 자극한다.

어깨 결림이나 요통은 건강 상태를 깨뜨리는 원인.

이럴 때 귀를 통해 통증을 해소할 수 있다.

어깨, 허리의 반사구는 귀 중앙에 크게 불룩 튀어나 온 대이륜 주변. 이곳을 바깥쪽으로 잡아당기면서 목을 위로 쭉 늘려 본다든지 전후 좌우로 돌리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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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14
■ 왕릉王陵 1편

■ 왕릉(王陵) 1편

왕릉은 대개 왕과 왕비의 무덤까지를 포함한다. 왕과 왕비(정비)의 무덤을 일컬어 능(陵)이라고 하였고, 왕의 사친(私親)이나 왕세자(세자빈포함)의 무덤은 원(園) 이라고 칭하였다. 사도세자의 무덤은 원래 현륭원(顯隆園)이었다가, 장조 (莊祖)로 추존되면서 융릉(隆陵)으로 능호(陵號)가 바뀐 것은 능과 원의 위상 차이를 보여준다. 이외에 왕으로 있다가 폐위된 연산군이나 광해군의 경우에는 대군·공주·옹주·후궁 등의 무덤처럼 묘(墓)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왕릉은 단순한 왕의 무덤이라는 측면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덤을 조성한 지역과 곁에 묻힌 인물을 통해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압축적으로 살펴볼 수 있고, 왕릉 주변에 조성된 석물을 통해서는 당대의 건축과 미술의 흐름까지도 읽을 수 있다. 조선시대 왕릉 조성에서 가장 크게 고려된 것은 풍수지리와 지역적 근접성이었다. 풍수 지리적으로 명당(明堂)이면서도 서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이 왕릉 조성의 적합지였다. 후왕(後王)들이 선왕(先王)의 능을 자주 참배하려면 우선 거리가 가까워야하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 있는 왕릉 대부분이 서울과 구리, 고양, 파주 등 경기 북부 지역에 분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상대적으로 한강 이남에 조성된 왕릉(태종의 헌릉, 세종의 영릉, 단종의 장릉, 성종의 선릉, 중종의 정릉, 효종의 영릉, 정조의 건릉, 순조의 인릉)이 적은 것은 뱃길을 이용하는 데 따르는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동구릉(東九陵)이나 서오릉(西五陵)처럼 왕실의 무덤이 집중적으로 조성된 것은 이 지역이 명당이라는 점과 함께 선왕의 무덤에 함께 묻히고 싶어 하는 후대 왕들의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선시대 왕릉은 죽기 전 왕이 뜻하는 대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무덤을 만드는 주체인 후대 왕의 생각과 정치적 상황, 신하들의 의견 등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왕릉을 조성하는 과정에는 기본적으로 풍수지리적인 측면 외에도 정치적인 이해관계, 정비와 계비의 갈등 등 다양한 변수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 보기에는 그냥 비슷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왕릉들은 저마다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선의 왕들은 선왕의 무덤 참배를 국가의 중요행사로 여겼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을 양주에서 수원(화성)으로 옮긴 뒤 매년 아버지 묘소를 참배했으며, 그때마다 과거시험과 경로잔치를 열었다. 이것은 단순한 아버지에 대한 추모인 것이 아니라 사도세자에 대한 존숭(尊崇) 작업을 통해 ‘죄인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벗고 왕권을 강화하여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이 담겨 있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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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15
■ 국장國葬 4편

■ 국장(國葬) 4편

산릉도감은 왕의 능을 조성하는 기관이다. 공조판서 등이 제조로 임명되고 왕이 승하 후 5개월 후에 있을 장례의식 전까지 왕릉조성을 마무리해야 한다. 산릉도감이 설치되면 지관이나 대신이 능을 조성할 지역을 결정하는데 이를 ‘택지(擇地)’라 한다. 때로는 왕이 생전에 직접 묻힐 곳을 정하고 무덤을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수릉’이라 한다. 풍수지리를 중요시했던 조선사회에서 택지는 중요한 사안으로 정치적 대립이 있기도 했다. 회의를 거쳐 공사일정과 필요인력을 정하여 왕릉 조성을 시작했다. 조선 초기에는 백성들에게 부역의 형태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으나 17세기 이후 인력을 고용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태조의 건원릉을 조성할 때는 6,000~9,000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3도감의 도제조(都提調:총책임자)는 좌의정이 맡았고, 장례에 관한 모든 일은 총골 처리했다.

시신을 넣는 관을 ‘재궁(梓宮:가래나무로 만든 국왕의 관)’이라 하는데, 왕이 즉위하는 해에 만들어서 1년에 한번 씩 옻칠을 한다. 그 뒤 왕이 죽으면 붉은 비단을 사방에 붙이고 네 모퉁이에 녹색 비단을 붙인다. 칠성판(七星板:관속에 까는 얇은 판자)을 까는 등 여러 가지 치장을 하고, 모든 준비가 완료되면 발인을 한다. 발인(發靷) 전, 출관(出棺)을 위해 빈전을 여는 절차로 ‘계빈의(啟殯儀)’라고 하는데, 곡을 하며 슬퍼하는 의식이다. 빈전에서 재궁이 능지를 향하여 움직이는 것을 ‘발인의’라고 한다. 궁을 떠나 정해진 능지로 가는 행렬을 ‘발인반차(發引班次)’라 하고, 국장행렬을 그린 그림을 ‘발인반차도’라 한다. 발인을 하면서 길에서 제사를 지내는 절차는 ‘노제의’라 한다. ‘대여(大輿)’는 궁궐문 밖에서 능까지 왕의 시신이 담긴 관을 운반하는 가마다. 가마를 메고 가는 사람을 ‘담배군’이라고 하는데, 정조 발인에는 2,200명이 동원되기도 했다고 한다. 왕의 재궁을 왕릉에 안치한 후에 신주(神主:위패)를 받들어 궁으로 돌아와 혼전(魂殿)에 모신 후, 3년 상이 끝나면 종묘로 모신다. 이를 ‘부묘(祔廟)’라 한다. 왕은 삼년상이 끝나는 대로 부묘하고, 왕이 살아생전에 죽은 왕비는 삼년상이 끝나더라도 계속 혼전에 모셔졌다가 왕의 삼년상이 끝나면 함께 부묘하였다. 부묘의 준비와 진행은 부묘도감이 담당하였다.

국장이 끝나면 국장도감, 빈전도감, 산릉도감 등 각 기관에서는 국장을 치를 때마다 진행하는 업무내용을 세밀하고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즉, 국장을 한번 치르고 나면 『국장도감의궤(國葬都監儀軌)』, 『빈전도감의궤(殯殿都監儀軌)』,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라는 3종의 의궤가 동시에 작성되었다. ‘의궤’는 조선시대 국장의 진행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었고, 조선시대 기록 문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의궤’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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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16
■ 국장國葬 2편

■ 국장(國葬) 2편

시신을 목욕시킨 후에는 두 번에 걸쳐 시신을 묶고 이불과 옷에 싸는 렴(殮)과 관에 넣는 입관(入棺)을 행한다. 처음 하는 렴이 소렴(小殮), 두 번 째가 대렴(大殮)이다. 소렴과 대렴 시에 사용되는 의복과 이불은 소렴 시 19겹, 대렴 시 90겹이다. 영조의 경우에는 90벌의 옷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선조 비(妃)인 의인왕후의 경우에는 임진왜란 직후에 상이 있었기 때문에 시집올 때 해온 옷을 집어넣기도 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아무튼 이 렴은 갖은 종류의 옷과 옷감이 모두 사용되는 엄청난 물량을 요하는 행사였다. 그러나 렴(殮)은 단순히 시신을 묶고 관에 넣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조선시대 왕의 장례기간은 보통 3개월에서 5개월이다. 겨울이라도 이 기간은 시체가 부패할 우려가 높은데 더운 여름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물론 평상을 마련하여 그 위에 관을 놓고 평상 밑에는 빙반이라 하여 석빙고에서 떠온 얼음을 채워 넣기는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시체에서 흐르는 액과 악취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따라서 이 엄청난 양의 옷과 이불은 이 기간 동안의 불쾌함을 없애는데 요긴하게 사용되었던 것이다. 렴이 끝나고 입관을 하면 왕과의 관계에 따라 각기 상복을 입게 된다. 왕과 부자(父子) 관계면 3년 복, 조손(祖孫) 관계면 1년 복을 입고,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도 흰 소복(素服)을 입는다. 왕이 죽은 지 3일 후 종묘에 왕의 죽음을 고하고, 5일을 기다렸다가 입관한다. 이 닷새 동안 옥새는 왕실의 가장 어른, 통상적으로 대비에게 전달된다. 다행히 적장자가 있으면 자연스레 그에게 왕위가 이어지지만 후사가 없는 경우는 대비의 결정에 따라 다음 왕이 정해진다. 6일이 지나면 왕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의식으로 국새를 전해 받고 왕위계승을 공포한다. 유교적 장례절차에서 새 왕은 선왕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인에 해당한다. 하지만 중요한 국정을 비울 수 없으니 자신의 능력을 보이기 위해서는 최고의 예를 갖춰 왕위를 이어받아야만 한다.

새 국왕은 전 국왕의 장례 절차가 한창 진행되는 도중에 간략한 의식을 거쳐서 왕위에 올랐다. 그러므로 즉위식의 분위기는 한껏 침울하다. 왕의 즉위식은 궁궐의 중심인 정전(正殿)에서 하지 않는다. 아직 왕도 아니고 죄인이기 때문에 즉위식은 궁궐의 중심인 정전의 문 앞에서 한다. 경복궁에서는 근정전으로 들어가는 근정문 앞에서 열었다. 문 앞에서 옥새를 받아 왕이 된 다음에 정전으로 이동해서 새 국왕은 즉위 교서를 반포한다. 그 내용은 대체로 선왕의 공적을 찬양하고 부족한 자신이 이를 계승하여 국왕이 되었음을 천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왕으로서 처음 해야 하는 국가 대사가 선왕에 대한 장례가 된다. 이 절차를 어긋남이 없이 잘 마무리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고, 왕의 정통성과 능력을 검증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선왕의 장례는 새로 등극한 왕과 신하들의 시험대이기도 했다. 즉위식을 마친 후에는 아침과 저녁의 문안과 곡(哭), 초하루와 보름날에 의정부에서 모든 관리를 거느리고 제사를 지내는 등의 여러 제사가 장례일 까지 이어진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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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16
■ 의적 임꺽정 4편

■ 의적 임꺽정 4편

1562년 1월 8일, 임꺽정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들은 명종은 “국가에 반역한 임꺽정 무리가 모두 잡혀 내 마음이 몹시 기쁘다”고 말하며 공을 세운 자들에게 큰 상을 내렸다. 임꺽정은 조정에서 그의 이름을 알고 대대적인 수색을 벌인 지 약 3년 만에 잡혀 서울로 압송되었고, 잡힌 지 약 15일 만에 사형 당하였다.

이익(李瀷)은 『성호사설』에서 앞 시대의 홍길동(洪吉童), 뒷시대의 장길산(張吉山)과 함께 임꺽정을 조선의 3대 도둑으로 꼽았다. 성호가 3대 도적으로 이들을 꼽은 것은 비단 대도(大盜)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당시 위정자들은 이들을 도적떼로 몰고 갔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는 위정자에 대한 농민의 저항이자 신분해방의 부르짖음이 담긴 의적(義賊)이라는 시각이 담겨있다고 본다.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임꺽정 집단의 활동은 정부·지배층에게는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며 농민들에게는 희망을 안겨 주었다. 이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도 상반되어 지배층은 그를 흉악무도한 도적이라고 했고, 백성들은 의적으로 영웅시했다. 그 뒤 임꺽정에 관한 많은 설화가 민간에 유포되었고, 그의 행적이 소설로 그려지기도 했다.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의 『임꺽정』이 가장 유명하다. 홍명희가 생각한 임꺽정은 도적이 아닌 민중의 영웅이었다. 실존하는 인물에 역사적 해석을 달리하여 새로운 역사 인물을 재창조한 것이다. 1928년부터 10년간 조선일보에서 연재된 소설 임꺽정은 민족해방운동이자 현실적 저항 운동의 일환이었다.

임꺽정의 난은 역대 반란 가운데서도 상당히 장기적으로 지속되었고 조선 전체를 뒤흔들었다. 영의정 상진, 좌의정 안현, 우의정 이준경, 중추부 영사 윤원형등 당대 최고의 실권자가 모여서 황해도를 휩쓰는 도적떼를 없앨 대책을 세운 것이 1559년(명종14년) 3월 27일이었다. 이후 관군에 의해 소탕된 것이 1562년(명종 17년) 1월 초였으니 무려 3년이 넘게 황해도를 중심으로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명종실록》의 사관(史官)은 이렇게 평하였다. “나라에 선정이 없으면 교화가 밝지 못하다. 재상이 멋대로 욕심을 채우고 수령이 백성을 학대해 살을 깎고 뼈를 발리면 고혈이 다 말라버린다. 수족을 둘 데가 없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기한(饑寒)이 절박해도 아침저녁거리가 없어 잠시라도 목숨을 잇고자 해서 도둑이 되었다. 그들이 도둑이 된 것은 왕정의 잘못이지 그들의 죄가 아니다.”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오늘날 재상들의 탐오한 풍습이 한이 없기 때문에 수령들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권력자들을 섬겨야 하므로 돼지와 닭을 마구 잡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런데도 곤궁한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여 정치만 잘했다면 임꺽정의 난이 일어날 리 없다는 말이다. 임꺽정을 흉악범으로 기록해 놓은 《명종실록》이지만, 사관(史官)은 그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읽고 있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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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17
■ 의적 임꺽정 2편

■ 의적 임꺽정 2편

임꺽정은 힘이 천하장사였다. 그는 아마도 도적떼뿐만 아니라 수백 년 이래의 장사들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가는 힘의 소유자일 것이다. 임꺽정은 십여 명의 의형제를 모아 휘하의 두령으로 삼았다. 임꺽정은 백정 출신이었지만, 그와 뜻을 같이 했던 사람들은 신분이 다양했다. 상인, 대장장이, 노비, 아전, 역리 등 실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었고, 임꺽정은 자신만의 리더십으로 이들을 이끌었다. 임꺽정의 활동 무대는 처음에는 구월산·서흥 등 산간지대였으나 점차 시간이 흐르고 따르는 무리들이 많아지면서 평안도와 강원도, 안성 등 경기 지역으로까지 확대되어 갔다. 관군들이 임꺽정의 세력이 커질 때까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황해도 일대의 아전과 백성들이 임꺽정과 비밀리에 결탁하여 관에서 잡으려고 하면 그 사실을 미리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임꺽정 부대의 규모 · 전술과 활동 거점에 대해서는 《명종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창, 칼, 활, 도끼 등 단순한 무기로 무장했을 뿐 총포류 등의 화약 무기는 없었으므로, 관군에 비해 화력과 병력면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고, 관군과 맞대고 교전할 수는 없었다. 대신 지형지물에 익숙하여 기동력 면에서 탁월하였으므로 산악 지형을 활용한 게릴라 전술을 구사하였다. 당시 지배층은 임꺽정 부대가 수령들을 거리낌 없이 처단한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나라를 욕보이고 국가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행위이다. 임꺽정 부대는 단순히 물자를 약탈하는 도적떼인 ‘군도(群盜)’가 아니라 국가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역집단인 ‘반적(叛賊)’으로 간주되었다.

1559년(명종14년)에는 개성(開城)까지 쳐들어가 도둑질을 하자, 포도관(捕盜官) 이억근(李億根)이 군사를 거느리고 그의 소굴을 소탕하러 갔다가 오히려 살해되기도 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개성부 유수에게 도둑의 두목을 잡으라는 엄명을 내렸다. 한 달이 지나도 잡지 못하자 임금은 도둑잡기를 게을리 하는 수령에게는 엄벌을 가하고 공을 세우면 후한 상을 내리는 조처를 취하였다. 그러나 작은 도둑무리만 잡았을 뿐 별 성과를 올리지 못하였다. 1560년 8월에는 서울까지 임꺽정과 그 일당이 출몰하였다. 장통방(長通坊: 종로구 종로2가 부근)에서 그들을 잡으려 하자 활을 쏘아 부장(部將)을 맞히고 달아났는데, 이 때 임꺽정의 아내와 졸개 몇 사람이 붙잡혔다. 임꺽정의 아내는 형조 소속의 종으로 삼게 하였다.

이 해 10월에 금교역(金郊驛)을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길을 봉쇄하고 연도를 삼엄하게 경비하였지만, 이들은 봉산에 중심 소굴을 두고 평안도의 성천·양덕·맹산과 강원도의 이천 등지에 출몰하며 더욱 극성을 떨었다. 이들은 황해도에서 빼앗은 재물을 개성에 가서 팔기도 하고 서울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약탈을 일삼기도 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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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18
■정여립 모반사건과 기축옥사 6편

■정여립 모반사건과 기축옥사 6편

정여립(鄭汝立) 역모사건은 당시 서인의 영수 정철(鄭澈)이 동인을 핍박하기 위해 확대 조작한 사건이다. 정철(鄭澈)은 이 옥사를 공정하게 처리한 것이 아니라 동인을 누르고 서인이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겼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사적인 감정이 그대로 표출됐다. 기축옥사(己丑獄事)를 주도하여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긴 정철(鄭澈)은 본격적인 당쟁 시대를 연 장본인이기도 했다.

단재 신채호의 정여립에 대한 평가를 보면, 『정여립(鄭汝立)은 400년 전에 군신(君臣) 강상론(綱常論:삼강과 오륜,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을 타파하려고 한 동양의 위인으로, 계몽사상가인 루소와 견줄 만하다. 하지만 루소와 같이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루소의 사상은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졌지만, 정여립(鄭汝立)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하면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17세기 영조 때 남하정이 당쟁에 관해 쓴 책인 《동소만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정여립(鄭汝立)이 변승복의 꾐에 빠져 진안군 죽도에서 놀고 있을 때 선전관이 현감과 같이 두들겨 죽이고는 자살했다고 아뢰었다.』

정여립(鄭汝立)의 시체는 한양에 도착하여 능지처사 되었으며, 한 토막씩 잘린 다음 8도에 흩어졌다. 선조는 정여립(鄭汝立)의 집터를 파헤치고 숯불로 지져 그 맥을 끊고 연못으로 만든 다음, 제왕의 기운이 있다고 전해 오던 정여립(鄭汝立)의 조상 묘 터까지 파헤쳐 유골을 꺼내어 가루로 만들어 날려버렸다고 한다. 연산군 때 유행했던 쇄골표풍(碎骨飄風)이 여기서도 등장했다. 1584년부터 정권을 잡지 못해 울분에 차 있던 서인들은 정여립(鄭汝立)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이 기회를 이용하여 동인의 싹을 자르려고 했던 듯하다.

기축옥사로 인해 김시민, 이억기, 신립, 이순신 등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장수들을 이끌고 이탕개의 난을 평정했던 우의정 정언신(鄭彦信)은 정여립과 9촌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하였고,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은 정여립과 역모를 모의했다는 죄목으로 묘향산에서 끌려가 선조에게 친히 국문을 받았으며, 사명당(四溟堂) 유정은 오대산에서 강릉부로 끌려가 조사를 받는 등 훌륭한 인사들이 고초를 겪었다. 역모 사건이 당쟁으로 까지 확대 되어 공안 정국으로 치닫게 되었고 피를 부르는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기축옥사는 조선 최대 비극 중 하나인 사건이다. 당시 조선의 인구가 500만이라고 하는데(노비와 천민을 합하면 1,000만명) 그 중 1,000여 명이 죽고 유배에 처해졌으면 엄청난 사건이었다.

기축옥사(己丑獄事)를 계기로 동인은 북인과 남인으로 나뉘었다. 사건을 조작한 서인을 불구대천지 원수로 본 사람들은 북인(北人), 온건파는 남인(南人)이 되었다. 기축옥사(己丑獄事)의 진실이 채 밝혀지기도 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 진실은 역사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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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19
■정여립 모반사건과 기축옥사 4편

■정여립 모반사건과 기축옥사 4편

정여립(鄭汝立)이 대동계를 조직해 전주 지역에서 활동을 전개하고 있던 선조 20년, 전라도 해안지방에 왜구가 쳐들어왔다. 당시 전주부윤이던 남언경은 여러 고을에 병력파견을 요청했으나 여의치 않자, 정여립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여립(鄭汝立)은 즉시 수백 명의 대동계 계원들을 집합시키고 믿을 수 있는 무사를 출정시켜 왜구를 물리쳤다. 뒤에 남언경은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는데, 그는 대동계(大同契)를 왜구를 대비한 지역 방어조직으로 보았고, 허약한 국가의 방위체제를 보안하기 위하여 사병(私兵)을 양성한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진보 지식인이었던 정여립(鄭汝立)은 풍수와 천문지리, 병법에도 일가견이 있었는데, 당시의 성리학 관점에서 볼 때 이런 것들은 모조리 이단이었다. 거기다가 대동계(大同契) 계원들까지 수백 명을 거느리고 있으니, 서인들이 보기에는 영 꺼림칙했으므로 역모로 몰아 죽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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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1589년) 10월, 안악군수 이축, 재령군수 박충간, 신천군수 한웅인 등이 고변을 했다. 정여립(鄭汝立)이 전라도에서 역모를 꾸미는 것을 안악에 사는 조구가 밀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선조는 즉시 금부도사를 보내 정여립(鄭汝立)을 체포하도록 했다. 그 무렵 황해도 안악에 있던 변승복은 조구가 정여립(鄭汝立)을 고변했다는 말을 듣고 금구까지 나흘만에 달려가 정여립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변승복은 별명이 호랑이라고 알려질 만큼 용맹한 인물로 정여립의 측근이었다. 소식을 들은 정여립(鄭汝立)은 아들 정옥남, 그리고 박연령의 아들 박춘룡을 데리고 밤을 틈타 도망쳤다. 이튿날 금부도사가 들이닥쳤으나 정여립(鄭汝立)은 이미 도망친 후였고, 그 집에는 승려 지영과 사장, 그리고 창고에는 백미 200석과 잡곡 100석 정도가 있을 뿐 이었다. 당시 정여립(鄭汝立)은 동인에 속해 있었고, 동인들은 아무도 정여립의 모반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금부도사가 정여립(鄭汝立)의 집에서 편지들을 모조리 압수해 한양으로 가져갔다. 이로써 정여립(鄭汝立)과 편지를 주고받은 자들은 모두 역모의 연루자로 몰려 애매한 죽임을 당한 자가 지천으로 생겨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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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구에서 도망친 정여립은 진안 죽도 산골에 들어가 숨었으나 진안 현감 민인백의 포졸들에게 발견되었다. 산골짜기에 들어가 마른 풀을 쌓아놓고 그 속에 숨어 있다가 관군이 사면으로 포위해 들어오자, 칼을 빼어들고 관군에게 달려들려 했다. 이에 변승복이 말렸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우리가 자결할 것이지 관군이 무슨 죄가 있소? 우선 나부터 죽여주시오." 이 말을 들은 정여립(鄭汝立)은 변승복을 칼로 쳐서 죽이고 아들 옥남이도 베었으나 칼이 빗나가 옥남이는 죽지 않았다. 진안 현감 민인백이 투항을 권고하자 정여립(鄭汝立)은 칼자루를 땅에 꽂아놓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스스로 칼끝에 목을 찔러 죽었다고 한다. 근데 여기서 의문인 점은 칼자루를 어떻게 땅에 똑바로 꽂을 수 있었을까? 자살을 위장한 타살이 아니었을까.

-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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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19
■정여립 모반사건과 기축옥사 2편

■정여립 모반사건과 기축옥사 2편

정여립(1546년∼1589년)의 본관은 동래, 자는 인백(仁伯)으로 전주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무예와 활쏘기에 뛰어나고 총명하여 한 번 배우면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밤을 새워 책을 읽을 만큼 책을 좋아하여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학문에 두루 능통했으며, 글씨와 시에도 능해 전주 일대에서는 그를 능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언변이 뛰어난 호남(好男)인데다가 사리분별력이 있어 강직하고 비굴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수의 기록에 정여립을 조선 중기의 끔찍한 모반자(謀反者)로 성격이 포악하고 잔인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두고 전주부윤이며 양명학자였던 남언경은 “정공(鄭公)은 학문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 재주도 다른 사람이 가히 따르지 못할 바이다.”라고 하면서 정여립을 주자에 비유하였고, 이이 역시 “호남에서 학문하는 사람 중 정여립이 최고”라 하였다. 이렇듯 정여립은 당대의 뛰어난 인물이기는 하였으나, 그가 가진 남다른 재주와 개혁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비운의 주인공이 된 것은 아닐까.

정여립(鄭汝立)은 선조 3년 24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를 했다. 조선시대 평균 급제나이가 30세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른 성공이었다. 과거에 급제하여 도성으로 올라간 정여립(鄭汝立)은 서인 이이(李珥)의 문하로 들어갔다. 이이(李珥)의 문하에는 인재가 넘쳤으나 그 중에서도 정여립(鄭汝立)은 재주가 뛰어나 다른 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이(李珥)는 그의 재주를 아껴 기회가 닿는 대로 조정에 천거했다. 그런데 1584년 서인의 거두 이이(李珥)가 사망했다. 이이는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았으며, 마음이 그리 넉넉한 편이 못 되어 경솔하고 편견과 아집이 있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생전에 이이(李珥)를 신뢰했던 선조도 이이가 죽고 나자 그에 대한 신뢰감이 점점 사라져갔다. 동인들은 이이(李珥)를 탄핵하며 공격했다. 정여립도 이에 가세하여 율곡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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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李珥)의 추천으로 조정에 발을 디딘 정여립(鄭汝立)이 스승을 공격하기 시작한 이유는 확실치 않다. 그가 이조전랑의 물망에 올랐을 때 죽음 직전의 이이(李珥)가 한사코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와 그의 기질이 동인의 영수인 이발(李潑)과 좀 더 잘 맞았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어쨌든 이이(李珥)는 겉과 달리 속으로는 정여립(鄭汝立)의 과격성을 많이 걱정한 듯하다. 이조전랑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1년 후 조정에 다시 들어온 정여립(鄭汝立)은 경연(經筵:어전에서 경서를 논함)에서 서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스승인 이이(李珥)를 나라를 망친 소인 이라고 혹평하며 스승을 배반했다. 동인으로 변신하여 당적(黨籍)을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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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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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20
■선조宣祖 3편

■선조(宣祖) 3편

정유재란이 끝난 후인 1600년 의인왕후 박씨가 세상을 떠나자, 선조(宣祖)는 2년 뒤 51세가 되던 해에 김제남의 딸(19세)을 새 왕비로 맞이하였다. 그녀가 인목왕후(仁穆王后)이다. 역사 드라마 속에서 ‘인목대비’로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4년 후 인목왕후(仁穆王后)가 적자(嫡子)인 영창대군을 낳으면서 후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선조(宣祖)의 맏아들 임해군과 둘째 광해군은 공빈 김씨 소생이었고, 셋째 아들 의안군과 넷째 신성군은 인빈 김씨 소생이었다. 그리고 인목왕후(仁穆王后)가 낳은 영창 대군이 바로 선조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정비 소생이었으니, 이때부터 선조(宣祖)의 마음은 광해군에게서 떠나기 시작했다.

선조(宣祖)는 재위 41년을 맞으면서 병세가 심해졌다. 가망이 없음을 안 선조는 전교(傳敎)를 내리기 위해 세 정승을 불렀다. 이때 영창대군의 나이는 겨우 2살이었다. 아무리 정비(正妃) 소생의 적자(嫡子)라 해도 세자의 직무를 16년이나 그것도 국난을 극복하고 전후 수습 등의 난제(難題)를 잘 수행해 온 34세의 세자가 있는데, 이를 폐하고 두 살배기를 세자로 책봉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선조(宣祖)가 죽고 광해군(光海君)이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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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宣祖)의 죽음에 대해 광해군이 왕이 되는 것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북인(北人)이 기록한 선조실록에는 선조가 병으로 죽었으며, 마지막 임종을 왕비 인목대비가 지켰다고 했다. 그런데 광해군을 몰아낸 서인 측의 기록인 선조수정실록에는 선조(宣祖)가 승하하는 당일 미시에 광해군(光海君)이 찹쌀떡을 올렸는데, 선조가 이것을 먹고 갑자기 기가 막히며 위급한 상태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같은 상황을 두고 이렇게 기록이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당연히 집권세력 당(黨)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집권한 서인이 주도해서 다시 기록한 선조수정실록은 역시 승자의 기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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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긍익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도 ‘선조 독살설’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입시(入侍)했던 의원 성협이 “임금의 몸이 이상하게 검푸르니 바깥소문이 헛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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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21
■선조宣祖 1편

■선조(宣祖) 1편

조선 14대 왕 선조(1552~1608년)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학문과 문화의 전성기를 이끈 군주라는 평가도 있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마자 도성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에만 급급했던 비겁한 군주였다는 평가도 있다. 또한 아들 광해군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전쟁 영웅인 이순신의 공을 시기하는 편협한 군주로 인식되기도 한다.

선조 시대는 사림파들이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면서 붕당정치가 시작되던 때였다. 중심인물은 이황, 조식, 이이, 이준경, 유성룡, 정철, 윤두수, 이산해, 이원익, 이항복, 이덕형, 신흠, 이수광 등으로 그 뿌리는 사림파였다. 이처럼 쟁쟁한 학자들이 동시에 배출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조 시대는 학문의 진흥과 사림파 학자들의 정치 참여 기반을 조성했다는 긍정적인 요소도 엿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라는 위기에서 보여준 무능함, 동서분당(東西分黨)으로 전개된 당쟁의 시작, 1589년의 기축옥사와 같은 대형 정치 참극의 방관자라는 등 선조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인 요소가 많다.

선조는 조선 왕실에서 방계(傍系) 출신으로 최초로 왕이 된 인물이다. 방계(傍系)출신 그것도 아홉 번째 서자의 세 번째 아들로 태어나 왕위는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였다. 이런 방계(傍系) 승통은 선조(宣祖)의 가장 큰 컴플렉스가 되기도 했다. 선조 이균(李鈞)은 중종의 손자로, 아버지 덕흥대원군은 후궁인 창빈 안씨의 소생이고 인종과 명종은 이복형제 사이였다. 선조 이전까지 왕자의 난이나 계유정난, 중종반정과 같은 정변(政變)이 있었지만, 그래도 왕실의 적통에서 왕위가 계승됐다. 그럼 왜 왕실의 방계에서 왕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까? 명종의 아들인 순회세자가 요절(夭折)한 후 적통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적통은 정비나 계비 소생 왕자를 말한다.

그나마 명종이 생전에 미리 후계자를 지목해 둔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중종과 창빈 안씨 소생인 덕흥군의 세 아들 중 하원군과 하릉군을 제치고 세 번째 하성군을 지명했다. 어차피 후궁 출신 왕자 중에서 후계자를 정해야 함으로 서열보다는 왕자로서의 자질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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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21
■ 제주 의녀 장덕 1편

■ 제주 의녀 장덕 1편

조선시대 의녀(醫女)로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은 당연히 ‘장금’이다. 드라마 ‘대장금’에서는 장금이 관비로 제주에 내려갔을 때 제주출신 의녀 장덕과 인연을 맺은 뒤 그녀로부터 여러 가르침을 받는다는 내용이 나왔었다. 이 때문에 장덕의 존재와 그 능력이 널리 알려지기는 했으나, 장금이 장덕과 인연을 맺고 의술을 전수받았다는 것은 드라마적인 재미를 위한 허구로 보여 진다. 장덕은 세종 말엽에 궁궐에 들어가 성종 19년(1488년)경 까지 활동하였고, 장금은 중종 10년(1515년)이후에 활동했던 것으로 보아 두 의녀가 만나기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다.

세종 이후 의녀제도가 체계화되면서 의술의 정밀도에 따라 초학의(初學醫)·간병의(看病醫)·내의(內醫)의 3등급으로 분류됐고, 침의녀(鍼醫女)·맥의녀(脈醫女)·약의녀(藥醫女)와 같은 직능상의 분화도 이루어졌다. 더욱이 의서를 배우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의녀들에게 문자 교육을 강화하고, 의료전문인으로 양성하기 위해 의학교육도 심화했다. 그 내용은 실용적이고 쉽게 익혀서 사용 가능한 임상지식과 산부인과에 중점을 둬 이뤄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녀의 의학교육은 독자적 전문 의료인이라기보다는 유교사회의 특성상 필요에 의해 남성 의사의 보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천민 신분으로 의료뿐 아니라 수사관, 검시관, 기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멀티엔터테이너로 활약했어야 했다.

전통적으로 제주 의녀는 전국의 다른 곳에 비해 치과·안과·이비인후과의 치료에 뛰어났던 것 같다. 당시 지금의 중국 상하이, 일본의 후쿠오카, 그리고 우리나라의 제주도 사이에 삼각무역이 이뤄졌던 것을 감안하면, 제주도에는 이미 치아를 치료하는 기술이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리하여 장덕은 제주에서 전통적으로 전수되어 오던 의술을 도제(徒弟)식으로 철저히 전수받아 치충 제거에 탁월했던 한편, 코와 눈 등의 부스럼을 제거하는 의술에도 뛰어났던 의녀이다. 그녀는 주로 치과 관련 의술을 궁궐에서 펼치던 중 성종 19년(1488년) 경에 세상을 떠났다. 장덕 사후 중앙정부에서 그녀의 부재에 대해 대책을 강구할 정도로 존재감이 큰 여의였다. 치통을 앓아오던 성종은 장덕의 의술에 비견할만한 의료 능력을 가진 의사가 없다며, 이·눈·귀의 아픈 곳에서 벌레를 잘 제거하는 사람이면 남녀를 불문하고 알리라는 내용의 문건을 속달로 제주목사에게 보냈을 정도이다.

이륙의 《청파극담》에 의하면, 장덕은 제주의 여비(女婢)였고, 가씨로부터 의술을 배웠다고 한다. 가씨는 치충(齒虫), 곧 치아의 벌레를 제거하는 의술에 탁월했던 제주의 여의사였다. 그런 만큼 장덕도 치통 치료에 뛰어났던 것이다. 장덕이 치과 관련 의술에 탁월했음은 그녀가 국왕의 치통 때문에 대궐로 들어가게 됐다는 ‘청파극담’의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에는 장덕이 대궐에서 행한 치료가 효험이 있었다는 사실도 나온다. 그녀는 혜민서(惠民署) 소속의 여의(女醫)가 됨으로써 제주출신 첫 국가공인 의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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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22
■ 창의적 난방장치, 온돌

■ 창의적 난방장치, 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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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놀랍도록 인상적으로 받아들이는 한국문화 중의 하나가 온돌이라고 한다. 온돌(溫突)은 한자를 그대로 풀어 해석해 보면 따뜻한溫 굴뚝突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구들’이라고도 하는데, 방바닥을 뜨끈하게 만드는 우리나라 특유의 난방장치를 말한다. 과거에 비해 주거형태가 대부분 아파트로 바뀌었고, 나무를 때던 재료가 기름이나 가스 등 다양한 형태로 바뀌었지만, 방바닥을 데워서 따뜻하게 하는 온돌의 기본적인 난방 방식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뜨거운 불기운이 고래라고 부르는 방바닥 밑의 공기 통로를 타고 이동하면서 방바닥인 구들장을 달구게 하는 방식이다. 서양의 벽난로는 위로 빼놓은 높은 굴뚝으로 연기를 바로 내보내지만, 온돌은 불을 눕혀 방바닥 밑으로 흐르게 하면서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집을 따뜻하게 하고, 방 내부에 연기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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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온돌을 개발해 사용했을까? 학자들은 온돌이 철기시대 한반도 북부나 중국의 동북부 지방에 살던 사람들이 개발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고고학적으로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원시적 온돌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온돌문화가 2000년 이상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중국 구당서에 『고구려 사람들은 겨울철에는 긴 구덩이를 만들어 밑에서 불을 때어 따뜻하게 한다』는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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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처음부터 온돌이 계층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고구려 등 북쪽의 추운 지방에서 사용하다가 북쪽에 살던 사람들이 점차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고구려를 거쳐 백제와 신라로 전해졌고,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방 전체에 구들장을 놓은 것이 아니라, 일부 공간만을 온돌방으로 꾸몄다. 집의 일부에만 구들을 설치했다고 해서 쪽구들이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태종 17년(1417년) 온돌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는데, 성균관 학생이 아픈 경우에 온돌방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온돌방을 지으라는 내용이 있다. 집 전체에 온돌을 설치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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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구들을 집 전체에 까는 방식은 조선 후기(16~17세기경)부터 널리 퍼져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이전의 사극(史劇)을 보면 의자에 앉아 생활하는 장면이 나온다. 17세기 이후 온돌이 널리 퍼지게 되면서 조선은 의자에 앉아서 생활하는 문화에서 방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좌식 문화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문화재청은 2018년 온돌문화라는 이름으로 온돌을 국가무형문화재(제135호)로 지정했다. 온돌이 사회문화적으로 한국인의 삶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특히 온돌문화를 통해 한반도가 처한 기후 환경에 지혜롭게 적응하고 대처해온 우리 선조들의 창의성을 높이 평가하고,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의 난방 방식과 구별되는 고유한 양식이라는 독자성에도 중요한 의미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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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23
■ 붕당정치朋黨政治 3편

■ 붕당정치(朋黨政治) 3편

1589년 정여립이라는 신하가 반란을 꾀하였다는 혐의를 받아 도망을 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벌어졌다. 정여립은 원래 서인의 편에 있었다가 나중에 동인의 편에 서서 서인을 비판했던 인물이었다. 정여립 역모 사건의 처리는 서인의 우두머리였던 정철이 맡았는데, 정철은 사건을 확대하여 동인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이후 1591년 정철은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자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선조의 미움을 받고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서인이 힘을 잃자, 반대로 동인들은 힘을 얻게 되었다. 정철의 처벌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문제로 동인들 사이에서 의견이 나뉘게 되었다.

동인 중 이산해와 이발 등은 "정철을 죽이고 서인을 완전히 몰아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을 폈고, 유성룡과 우성전 등은 "정철은 유배 보내고 서인들 중에서도 인재는 조정에 등용해야 한다"고 상대적으로 온건한 주장을 폈다. 이 일로 인해 동인은 북인과 남인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산해와 이발을 따르는 강경파들을 북인이라고 불렀는데, 이산해의 집이 한강 북쪽이었고 이발의 집이 북악산 밑에 있었기 때문이다. 온건한 주장을 했던 유성룡과 우성전을 따르는 사람들은 남인이라고 불렀는데, 우성전의 집이 남산 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인과 남인은 학파에서도 조금 차이가 있었다. 원래 동인은 이황과 조식, 서경덕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영남학파 출신들인데, 북인은 그중에서도 조식과 서경덕의 제자들이 중심이었고, 남인은 이황의 제자들이었다. 결국 정철은 온건한 남인들의 주장대로 유배형으로 결론이 났다.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이 즉위하자 북인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되었다. 북인은 광해군을 세자로 세우자고 한 정철을 비판하고 강력한 처벌을 주장했었는데 어떻게 광해군의 신임을 받았을까? 북인 중에는 광해군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한 사람(소북파)도 있었지만 광해군을 지지한 사람(대북파)도 있었다. 광해군은 북인(그 중에서도 대북파)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왕위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1623년에 서인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나고 광해군의 배다른 동생 능양군이 왕이 되면서 다시 세력의 중심은 서인에게 넘어갔다. 이 때 남인들은 서인들과 뜻을 함께했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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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24
■ 붕당정치朋黨政治 1편

■ 붕당정치(朋黨政治) 1편

훈구파(勳舊派)는 왕을 도와주고 그 대가로 높은 벼슬에 올랐던 조선 초기 공신세력들을 일컫는 말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는 데 공을 세운 개국 공신과 세조가 조카인 단종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일으킨 계유정난에서 공을 세운 공신들이 이에 해당한다. 세조와 예종을 이어 성종이 즉위했을 때는 주로 세조 때 공을 세운 훈구파의 세력이 매우 강하였다.

성종은 훈구파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들을 관직에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지방에서 제자들을 기르며 학문연구에 힘쓰던 사림파이다. 이들은 주로 고려 말의 유학자인 길재·이색이나 조선 건국에 동참하지 않았던 정몽주 등의 학통을 이어받았다. 사림파는 벼슬을 하지 않는 대신 지방 서원을 중심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며, 향촌 사회를 안정시키는 일종의 마을 약속인 향약을 운영하면서 그들 나름대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왕의 부름을 받자 관직에 나서면서 중요 요직을 차지하고 훈구파와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성종 때에는 경상도 지역에서 김종직을 따르는 선비들이 사림파의 중심 세력을 이루었고, 중종 때에는 조광조를 중심으로 경기·충청도 지역 출신 선비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때부터 조선 조정에서 훈구파와 사림파의 세력 다툼이 벌어진 건 당연한 흐름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림파 선비들이 큰 화를 당해 죽거나 내쫓기는 4번의 사화(士禍)를 겪게 되었다. 그 뒤 약 10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사림파와 훈구파 둘 중 어느 편이 살아남았을까? 지방 서원을 중심으로 인재양성에 힘썼던 사림파는 매번 화를 입어도 즉각 부활하여 선조 때 이르러서는 크게 세력을 키우는 시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명종이 미처 왕위 계승자를 정하지도 못한 채 갑자기 병세가 위독해져 34세의 나이로 죽자, 영의정 이준경이 명종 비인 인순왕후에게 물어 생전에 정해 놓은 중종의 서자 덕흥군(德興君)의 셋째 아들 하성군(河城君)으로 후계가 정해졌다. 이가 바로 선조이다. 조선시대에 서자도 아닌 서손(庶孫)이 임금이 된 유일한 사례이다.

선조가 아직 어린 탓에 대비인 인순왕후 심씨(명종 비)가 수렴청정을 했는데, 7개월 만에 섭정을 거두어 선조는 매우 어린 나이에 친정(親政)을 하게 되었다. 선조는 대학자인 이황과 이이의 학문과 인품을 존경하여 스승처럼 여겼던 왕이다. 그래서 왕위에 오르자 초기부터 기대승, 이황, 이이 등 높은 학식을 바탕으로 한 사림(士林)들이 크게 세를 이루어 조정을 좌우하게 되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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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24
생기있는 하루를 위한 팁

생기있는 하루를 위한 팁

1. 물

몸에 수분이 부족하면 피곤을 느끼게 된다. 물을 충분히 마셔라.

2. 커피

카페인을 섭취하면 정신이 반짝 든다. 단, 에너지 드링크보다는 커피를 마시는 편이 낫다. 에너지 드링크에는 카페인 외에도 과라나 같은 각성제 성분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타이밍에도 유의해야 한다. 오후 4시 이후에 마시는 커피는 숙면을 방해할 수 있다.

3. 걷기

자꾸 눈꺼풀이 감긴다면? 제일 좋은 해결책은 일어나 걷는 것이다. 걷기는 순환을 촉진하고 근육을 활성화한다. 특별한 장소를 찾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냥 일어나서 정수기가 있는 곳까지 걸어라. 아니면 복도를 왕복하든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4. 긍정적 사고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커튼을 걷어라. 햇볕을 듬뿍 받으며 그날 하루,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라. 감사할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괜찮다. 긍정적인 생각이 귀중한 에너지를 쓸 데 없는 곳에 낭비하는 것을 막고, 건강한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5. 점심은 밖에서

햇볕을 쐬어야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날씨가 어떻든 점심은 회사 밖에서 먹도록. 이동 시간이 10분에서 15분 정도만 되더라도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 D를 만들어 내기에는 충분하다.

6. 낮잠

참을 수 없이 졸음이 쏟아진다면? 잠깐 낮잠을 자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숨을 곳을 찾아라. 시간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 수면을 연구하는 앨리슨 콜 박사는 “20분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보다 길어지면 오히려 멍한 상태가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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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25
■ 조선의 과학수사대 ‘오작인’

■ 조선의 과학수사대 ‘오작인’

조선시대에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고을의 수령(사또)이 수사와 재판을 총괄하게 되지만, 시신을 직접 검시 하지는 않았다. 변사체를 만지는 것은 매우 험하고 천시되는 일이었고, 시체의 상흔(傷痕)을 판독하는 전문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검시(檢屍)는 ‘오작인’이라 불리는 전문가가 하였다. 오늘날의 과학수사대인 것이다. 오작인은 법의학서인 무원록(無寃錄)에 근거해서 사인(死因)을 찾았다. ‘무원록’은 중국 원나라 시대의 책이지만, 조선의 실정에 맞게 개정(改正)과 증보(增補)를 거듭하여,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검시와 문서 작성법을 정리한 검고(檢考)가 간행되기도 했다.

검시는 기본 두 번이고, 세 번 하기도 했다. 부족하거나 의심스런 점이 있을 때는 이미 매장한 시신을 파내서 다시 검시하는 굴검(掘檢)을 하기도 했다. 검시 때마다 각각 다른 관료와 오작인이 함께 진행해서 객관성을 확보했다. 변사체라도 시신을 훼손하고 칼을 대는 일은 금기시 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부검(剖檢)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작인은 변사체의 상태나 상흔을 꼼꼼히 관찰하고, 사인을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법물(法物:조사도구)도 이용했다.

법물은 10여 가지였다. 식초는 흉기에 뿌려 핏자국을 찾는 데 썼고, 술지게미로 상처 부위를 닦아 상흔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은비녀를 항문이나 입에 넣어 색이 변하는지 살피고, 흰 종이를 눈 코 입에 붙여 독기가 묻어나오는지를 보며 독살 여부를 가렸다. 단목탕(檀木湯:향나무 끓인 물)은 시신을 닦는 용도이고, 삽주(국화과 풀) 뿌리는 태워서 악취를 없애는 데 쓰였다.

검시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04년 5월 경상도 문경에 살던 양반 안재찬은 아내 황씨가 목을 매 자살했다고 관아에 신고했다. 오작인 김일남이 문경군수와 검시를 했다. 시체는 은비녀를 입에 넣었을 때 색이 변하지는 않았으나 곳곳에 구타한 상흔이 뚜렷했다. 또 뒷목에 끈으로 조른 흔적이 있었다. 검시 결과를 토대로 황씨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교살(絞殺)로 판명났다.

사건의 내막은 이랬다. 같은 마을에 살던 천민 정이문이 황씨를 겁탈하려다가 도주했다. 남편 안재찬은 정이문을 놓치자 대신 정이문의 할아버지를 잡아 고문하여 황씨와 정이문이 오랫동안 내연관계였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이에 안재찬은 격분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아내를 구타하고 올가미로 목을 졸라 살해했던 것이다.

오작인은 연고가 없는 시신을 처리하는 일도 했기 때문에 훼손된 시체가 나오면 오작인이 잘라 팔았다는 낭설이 돌기도 했다. 오작인은 변사체를 만진다는 이유로 매우 천시받았지만, 그들 덕분에 말을 할 수 없는 시체는 억울함을 씻을 수 있었고, 오늘날과 같은 과학수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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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26
■ 고려장高麗葬은 고려의 풍습일까 2편

■ 고려장(高麗葬)은 고려의 풍습일까 2편

기로국 설화든 원곡 이야기든 혹은 그 둘이 뒤섞인 것이든, 고려장(高麗葬)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민간에서 떠돌면서 살이 붙고 구체화되었다. 이를테면 “산을 파고 그 속에 기름불 하나 켜놓고 밥 한 사발 갖다 놓고 묻는다”거나, “밥 들어갈 만한 구멍 하나를 남겨서 한 달 동안 밥을 갖다 주다가 한 달이 지나면 문을 딱 닫는다”는 구전(口傳)도 있다. 아마 나병(癩病:한센병)같은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격리시켜 살게 했던 풍습이 이야기에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고려장을 고려 때 실제 있었던 장례 풍습이라고 일반인들이 두루 믿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이후로 조선시대까지 나온 역사책, 지리책, 수많은 문집 어디에서도 노인을 산 채로 버리는 고려장 이야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반면, 일제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거나 일제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고려장 이야기를 알고 있고, 자기 동네에 고려장했던 곳이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바위나 굴이 있었다는 기억을 갖고 있기도 한 것을 보면, 일제시대에 고려장 이야기가 널리 보급되었음은 사실인 것 같다. 일제시대에 고려장 이야기를 보급하는 역할을 한 것은 놀랍게도 동화(童話)였다. 1919년 평양고보 교사를 지낸 적 있는 일본인 미와 다마끼(三輪環)가 《전설의 조선(傳說の朝鮮)》이란 책을 간행했는데, 여기에 ‘불효식자(不孝息子)’란 제목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것이 현재까지 확인된 문헌에 남아 있는 최초의 고려장 이야기이다.

그보다 40여 년 전인 1882년, 미국인 그리피스의 저서 《은자(隱者)의 나라 한국》에 ‘고리장’에 대한 기록이 짤막하게 나오긴 하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고려장 이야기 보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1924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동화집》이었다. 《조선동화집》은 비록 일본어로 쓰이긴 했어도 우리나라 최초의 전래동화집으로, 제목은 동화집이지만 전설이나 민담을 모아놓은 것이다. 여기에 실린 총 25편의 이야기 중 《어머니를 버린 남자(親を捨てる男)》’가 바로 고려장 이야기다.

『옛날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마음씨가 고약한 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늙어서 몸이 약해진 어머니와 마음씨가 착한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중략)...· “집은 이처럼 가난한데 네 할머니는 조금도 일하지 않으니 어딘가 산속에 할머니를 버려두고 오려고 한다. 너는 지게에 할머니를 태워 와라.” ...·(중략)...·오 리, 십 리를 가면서 길은 점점 산속으로 접어들어 두 사람은 인적이 없는 깊은 곳에 이르렀습니다. 남자는 어머니를 지게에서 내려놓았습니다. 어머니가 땅에 넘어지듯 엎어져 있는 것을 뒤로하고 남자는 그대로 아들과 함께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였습니다....·(후략)...·』

《조선동화집》에 실린 이야기들은 다른 동화집에 그대로 혹은 약간 변형된 채 재수록되면서 확대 재생산되게 된다. 《어머니를 버린 남자》가 그 후에 나온 수많은 동화집에 그대로 옮겨 실리게 된 것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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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26
역류성 식도염에 좋은 음식

역류성 식도염에 좋은 음식

식후 약 30분 이내 위의 내용물이 식도로 역류해 식도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역류성 식도염이 계속되면 미란, 궤양 등이 생겨 식도가 좁아지는 식도 협착이 생길 수 있고 심하게 되면 식도암 까지 유발하게 된다고 합니다.

1. 바나나

바나나는 대표적으로 역류성 식도염에 좋은 음식입니다.

PH 5.6의 알칼리성 식품으로 위산을 중화하는 천연 제산제 역할을 하기 때문인데요. 평소 위산 역류가 자주 일어나거나 속쓰림이 심한 사람이 먹으면 좋다고 합니다. 특히 덜 익은 바나나보다는 푹 익어 껍질이 검게 변한 바나나를 먹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2. 양배추

양배추 역시 역류성 식도염에 좋은 음식으로 꼽히는데요.

양배추에 들어있는 비타민 U가 위장 점막을 강화하고, 상처 난 점막의 재생을 도우며, 비타민 K는 출혈을 막는 지혈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 풍부한 섬유질은 천연소화제와 같은 역할을 해 음식물이 역류되지 않고 빠르게 소화되도록 돕는다고 합니다. 단, 양배추를 익히면 영양소가 손실되므로 되도록 생으로 먹는 것이 좋습니다.

3.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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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끈적끈적한 뮤신 성분은 위벽을 코팅해 보호해주며, 위산의 과다 분비를 억제해 줍니다. 따라서 위산과다로 인한 속쓰림 완화에 도움이 되며, 소화 촉진 및 위염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신선한 마를 갈아 먹으면 가장 좋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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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감자

감자는 대표적인 알칼리 식품으로 위산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고, 갈아서 즙으로 마셔도 좋고, 쪄서 먹어도 좋습니다. 단, 감자튀김처럼 기름을 이용해서 튀길 경우 오히려 위산 분비를 촉진하므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5. 멜론

대부분의 과일은 산도가 높지만 멜론은 PH 6.1로 산도가 높지 않아 오렌지, 자몽, 귤, 레몬 등의 신 과일보다 역류성 식도염 환자들이 먹으면 좋습니다.

6. 민들레

민들레는 위산을 중화시키는 효과가 탁월합니다. 뿐만 아니라 염증 완화에도 효과가 좋아 식도에 생긴 염증을 치료해주고, 속쓰림이나 가슴 통증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7. 계란 흰자

역류성 식도염 환자들은 소고기, 돼지고기와 같이 기름기 많은 붉은색 육류 섭취를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름진 음식들은 하부식도괄약근을 느슨하게 해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달걀흰자는 지방함량이 낮고, 산도가 낮으며, 단백질 함량이 높아 식도의 염증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8. 생강

생강은 맵고 자극적이지만, 적당량 섭취할 경우 오히려 역류성 식도염에 좋은 음식입니다. 요리에 첨가해 먹어도 되고, 생강차를 끓여 마셔도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9. 귀리

귀리 역시 위산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서 위산역류를 억제하는데요. 귀리로 밥을 지어 먹어도 좋고, 귀리로 만든 씨리얼 (오트밀, Oatmeal) 을 먹어도 좋다고 합니다. 귀리는 포만감을 오래 지속시키므로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좋습니다.

10. 알로에

알로에는 피부를 진정시키고 염증을 완화하는 효험이 뛰어나 피부에 바르는 용도로 많이 사용하는데, 알로에를 직접 섭취하면 식도나 위장의 염증을 가라앉혀주기도 합니다.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알로에 쥬스가 실제로 위산역류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부작용도 없었고, 기존 약 만큼이나 효과가 좋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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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27
■ 명필名筆

■ 명필(名筆)

우리 조상들은 글씨 모양으로 그 사람의 재능과 성격, 품격을 판단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해서 관리를 뽑을 때에도 지원자의 행동거지와 말투, 그리고 글씨를 보았다. 명필(名筆)로 이름을 떨쳤던 대표적 인물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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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은 711년에 태어난 통일신라시대의 인물로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쓴 것으로 유명했다. 평생 서예에만 몰두해 80세가 넘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글씨체를 두루두루 잘 써 후세의 사람들은 김생을 해동의 서성(書聖)이라 부르며 그가 쓴 글씨를 보물처럼 여겼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김생의 글씨에 얽힌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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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숙종 때 홍관이라는 고려 관리가 중국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을 때의 일이다. 홍관을 찾아온 송나라 관리들에게 홍관이 김생의 글씨를 보여주자 "오늘 이곳에서 명필 왕희지(진(晉)나라 인물로 중국 최고의 명필)의 글씨를 보게 될 줄 몰랐다"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에 홍관이 "이건 왕희지가 쓴 글씨가 아니라 옛 신라 사람인 김생이 쓴 것"이라고 대꾸하자 송나라 관리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 김생의 글씨는 중국에도 널리 알려졌고, 고려를 찾는 중국 사신들은 김생이 쓴 글씨를 사정사정해서 얻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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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김생처럼 왕희지에 견줄 만한 명필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 있었다. 한석봉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한호이다. ‘석봉’은 한호를 편하게 부르는 그의 호(號)이다. 조선 선조 때 인물인 한호는 가난한 양반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열심히 글쓰기 공부를 했다. 한호도 김생처럼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뛰어난 명필로 인정을 받았는데, 한호가 당시 조선의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이다.
",

한호가 쓴 외교문서를 본 중국 관리들은 한호의 글씨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명나라의 유명한 학자 왕세정은 한호의 글씨를 보고 "성난 사자가 돌을 헤치는 것 같고, 목마른 말이 물가로 달려가는 것 같다"고 말했고, 명나라의 사신으로 조선에 왔던 주지번도 "한호의 글씨는 왕희지와 다툴 만하다"며 칭찬했다. 선조도 한호의 글씨를 아주 좋아하여, 한호에게 천자문을 책으로 쓰게 한 뒤 전국에 배포해 글씨를 배우는 아이들은 모두 한호의 글씨를 따라 쓰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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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대의 명필인 김생과 한호는 당연히 한글이 아닌 한자를 잘 쓰는 명필이었다. 한글을 잘 쓰기로 이름난 한글 명필은 헌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를 모신 서사(書士)상궁 이담월이다. 당시 조선 궁궐에서는 사대부들이 잘 쓰지 않는 한글을 권장하기 위해 왕이 내린 명령이나 왕실의 편지 등을 한글로 옮겨 쓰도록 했는데, 서사상궁은 왕비나 공주를 대신해 한글로 편지나 글을 쓰는 일을 맡은 상궁이다. 조선 중기에서 후기 무렵, 궁체라는 새로운 한글 글씨체가 만들어졌는데, 서사상궁들은 이 궁체로 아름다운 한글 글씨를 남겼다. 이담월은 신정왕후를 대신해서 여러 장의 편지를 적었는데, 이 편지에 남은 이담월의 글씨를 본 후세 사람들이 ‘조선 최고의 한글 명필’이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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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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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28
달리기보다 지방 더 태우는 운동

달리기보다 지방 더 태우는 운동

좋아하든 안 하든 달리기는 아주 좋은 유산소운동임에 분명하다. 시속 6마일(약 9.7km)의 속도로 달리기를 하면 한 시간에 약 557 칼로리를 태울 수 있다. 필요 이상의 칼로리를 소모 시키면 쓸데없는 지방을 연소 시킬 수도 있다. 그런데 달리기를 싫어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달리기를 안 하더라도 칼로리를 더 많이 소모 시키는 운동 6가지를 소개한다.

❶ 자전거 타기

실내 자전거를 타기만 하더라도 1시간에 약 398 칼로리를 태울 수 있는데 이는 조깅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산악 자전거를 타거나 실내 자전거 수업에 참가한다면 시간당 483 칼로리의 열량을 소모 시킬 수 있다.

❷ 인라인 스케이팅

달리기보다 재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 당 426 칼로리의 열량을 태울 수 있다.

❸ 줄넘기

어릴 적 하던 줄넘기는 실제로 아주 훌륭한 운동이다. 줄넘기는 시간당 670 칼로리를 태울 수 있다.

❹ 복싱

한 시간만 해도 727 칼로리의 열량이 소모된다. 킥복싱 수업에 참여하면 1시간 만에 585 칼로리를 태울 수 있다.

❺ 수영

평영을 하면 시간당 585 칼로리를 배영은 540 칼로리를, 접영은 784 칼로리를 태울 수 있다.

❻ 계단 뛰어오르기

달리기만큼 힘이 드는 운동이다. 하지만 회사나 아파트 등에서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계단 뛰어오르기는 시간당 852 칼로리를 태울 수 있으며 틈틈이 할 만한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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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29
뼈 건강 위해 신경 써야 할 것

뼈 건강 위해 신경 써야 할 것

나이가 든 사람이 삶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뼈 건강에 신경 써야 한다. 뼈가 다치거나 부러지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뼈 부러짐(골절)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는 생활 습관을 소개한다.

1. 적정 체중 유지

너무 마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체구가 작고 체중이 덜 나가는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뼈 질량도 적어 뼈가 부러지기 쉽다. 적절한 몸무게를 유지하면 골절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비만도 바람직하지 않다. 살이 너무 찌면, 넘어졌을 때 뼈에 큰 충격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2. 걷기 등 운동

걷기나 달리기처럼 체중이 실리는 운동은 뼈를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루에 세 번, 10분씩 빨리 걸으면 된다. 일단 뼈가 약해지면, 운동을 한다고 골절을 막기 힘들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서도 계속 운동하는 사람들은 낙상 확률이 덜하다. 낙상을 피할 수 있다면 뼈가 부러질 가능성도 낮아진다.

3. 집안 정돈

넘어져서 엉덩이뼈가 부러진 노인이 다시 독립성을 회복하기란 어렵다. 낙상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집안을 돌보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미끄러질 수 있는 카펫 등은 치우고, 계단과 욕실에는 손잡이를 다는 게 좋다.

4. 담배 멀리하기

흡연은 뼈를 구성하는 세포에 영향을 미친다. 여전히 뼈를 만들고 있는 서른 살 미만의 젊은이라면 더욱 금연해야 한다. 흡연자들은 골 강도가 약한 측면도 있지만, 보통 말랐기 때문에도 위험하다. 보호막이라고 할 게 딱히 없다 보니 넘어졌을 경우 골절이 올 확률이 높다.

5. 호르몬 요법

여성은 남성에 비해 골다공증에 걸릴 확률이 4배나 높다. 폐경 이후, 에스트로겐 수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호르몬 요법이 뼈를 강하게 유지하고 골절을 예방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대신 신속히 판단해야 한다. 일단 골다공증이 시작되면 별로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6. 비타민D 보조제

칼슘 보조제가 골다공증의 위험을 낮춘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유해한 침전물을 생성해 심장 발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그러나 비타민D 보조제는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 건강한 뼈를 위해서는 하루 10 μg(마이크로그램)의 비타민D가 필요하다. 보통 햇볕을 통해 필요량 대부분을 얻을 수 있지만, 야외 활동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비타민D 보조제를 섭취하는 게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93.html
kolaswqetsrq 11.02 02:30
돌연사 막는 심장 튼튼하게 하는 방법

돌연사 막는 심장 튼튼하게 하는 방법

심장은 보통 자기 주먹보다 약간 크고, 근육으로 이루어진 장기다. 주된 역할은 산소와 영양분을 싣고 있는 혈액을 온몸에 흐르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1분에 60~80회 정도 심장 근육이 수축한다. 심장이 기능을 멈추는 순간 생명도 끝난다. 이 때문에 심장은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로 꼽힌다. 이런 중요한 심장 건강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심장 건강 지키는 방법을 알아봤다.

1. 유산소 운동

유산소 운동의 또 다른 이름은 ‘심장 강화운동’, ‘심폐 운동’, ‘에어로빅(aerobic)’이다. 이는 심장, 폐, 혈관의 건강을 향상시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심장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선 유산소 운동이 필수다.

유산소 운동은 ·심장 강화 ·혈압 수치 안정화 ·건강한 체중 유지 ·스트레스 완화 ·기분 개선 ·수면 장애 극복 등 건강을 위한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유산소 운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운동 초보자라면 트레이너와 같은 운동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또 심장 건강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심장병 전문의와의 상담 후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심장병 전문의에게는 ·하루 운동량 ·일주일 기준 운동 횟수 ·꼭 해야 할 운동 ·피해야 할 운동 ·운동과 약물 복용 스케줄 등에 대한 조언을 받고, 각별히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유산소 운동의 종류는 걷기, 달리기, 줄넘기, 자전거 타기, 수영하기, 춤추기 등 매우 다양하므로 본인이 지속적으로 흥미를 두고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을 택해야 한다.

2. 악력 운동

연구에 따르면 악력기로 하는 손 운동을 4주 정도만 해도 혈압이 10% 정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운동은 혈관 기능을 향상시키는 전단 응력을 발생시킨다. 양손으로 2분씩 4번 정도 악력 운동을 하는 데 매회 1분 정도 휴식을 하면 된다.

3. 심호흡

잠시 일을 중단하고 오랫동안 심호흡을 해보라. 30초 동안 6번 심호흡을 하는 게 좋다. 이렇게 하면 1분 안에 수축기 혈압(최고 혈압)을 4mmHg 정도 낮출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심호흡을 꾸준히 하면 혈압이 낮아지는 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4. 긍정적 사고

연구에 따르면 밝은 인생관을 가지면 심장병 위험을 반이나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스트레스와 염증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5. 아침식사

아침식사를 건너뛰는 사람은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27%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는 아침을 안 먹으면 혈당이 오르내리고 혈액 속 중성지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6. 호두 등 오메가-3 식품 섭취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호두 반 컵 정도를 꾸준히 먹으면 혈관 기능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두에는 염증을 퇴치하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7. 트랜스 지방 피하기

트랜스 지방 섭취를 1%만 줄여도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크게 감소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트랜스 지방은 주로 인위적으로 만든 가공 유지를 이용하여 조리된 가공 식품을 통해서 체내에 섭취된다. 부분 경화유를 원료로 한 마가린 및 쇼트닝으로 마요네즈, 케이크, 빵 등을 제조하거나 감자튀김, 팝콘 등 부분 경화유로 튀긴 음식에는 트랜스 지방이 들어있다.

8. 칼륨 식품 섭취

매일 칼륨 1000mg을 더 섭취하면 수축기 혈압을 감소시킬 수 있다. 칼륨이 많이 들어있는 식품으로는 바나나와 고구마, 황다랑어 등이 있다.

9. 오염된 공기 피하기

미세먼지로 오염된 공기를 마시면 경동맥(목동맥)의 벽이 두꺼워져 심장 마비 위험이 커진다. 새벽에 먼지 농도가 가장 심하기 때문에 이때를 피해 운동은 오후에 하는 게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36.html
kolaswqetsrq 11.02 02:30
◇ 혈관 걱정에 들깨·들기름 먹었더니, 몸의 변화가?

◇ 혈관 걱정에 들깨·들기름 먹었더니, 몸의 변화가?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던 식품 중에는 건강수명에 좋은 음식이 많다. 들깨, 들기름이 대표적이다. 들깨는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재배한 한민족 고유의 작물이다. 각종 나물무침, 비빔밥, 볶음, 국 등 다양한 음식에 사용돼 왔다. 식용은 물론 약용으로 먹을 만큼 건강효과가 뛰어나다. 들깨, 들기름에 대해 다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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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액-혈관 걱정 덜어주는 이 성분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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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깨로 만든 들기름은 불포화지방산이 많다. 고기의 비계 등에 있는 포화지방산은 혈액 속에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늘려 혈관을 막히게 할 수 있다. 불포화지방산은 그 반대의 작용을 한다. 탁해진 혈관을 청소하는 기능이 뛰어나 혈관질환 예방에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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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농업과학원에 따르면 들기름의 지방산 중 오메가3가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63% 이상으로 식물기름 중 가장 높다. 이 성분은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출 뿐만 아니라 뇌세포 기능을 좋게 한다. 적절한 양을 먹으면 뇌졸중, 심장병 등 혈관질환 예방에 좋고, 기억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

✅ 염증, 몸의 산화(노화) 늦추는 이유는?

들기름과 깻잎 추출물은 알레르기성 염증에 효과가 있고 항암 작용 등 다양한 효능이 보고되고 있다. 학술지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 실린 논문을 보면 들깨 추출물의 항산화 성분 함량 및 활성을 측정한 결과, 암세포의 주요 특징인 빠른 성장, 이동 등을 억제하는 효과가 나왔다. 깻잎에 많은 로즈마린산, 비타민 E 등은 피부 탄력 유지에 도움을 준다.

✅ 들기름 참기름 섞었더니, 뜻밖의 효과가?

들기름과 들깨가루는 쉽게 향기가 달아나는 단점이 있지만, 참기름과 섞어 쓰면 향기가 거의 남는다. 역시 혈관에 좋은 참기름의 불포화지방산과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들깨가루는 그때그때 먹을 만큼 만들어 먹는 것이 좋다. 들깨가루는 국, 나물, 죽 등에 가장 많이 사용한다. 최근에는 크림파스타, 드레싱, 라떼 등에도 넣는 경우가 있다.

✅ 산패 빨라 냉장 보관해야... 과다 섭취하면 살 찔 수도

들기름은 산패가 빠른 편이다. 불쾌한 냄새가 나고, 맛이 떨어지며 빛깔이 변할 수 있다. 냉장고에 보관해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게 좋다. 들깨는 직사광선을 피하고 장기 보관 시 밀봉하여 냉동하는 게 안전하다. 건강에 좋다고 들기름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살이 찔 수 있다. 들기름도 기름이기 때문이다. 매일 채소 등에 넣어 적정량을 먹는 게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76.html
kolaswqetsrq 11.02 02:31
블랙커피가 몸에 미치는 영향

블랙커피가 몸에 미치는 영향

커피는 중독성이 있다. 그리고 사람을 초조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설탕이나 크림 등이 들어가 있지 않은 블랙커피를 적당히 마시면 건강상 여러가지 효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커피가 신체에 미치는 효능에 대해 소개한다.

⓵ 두뇌

매일 8온스(약 227ml)컵으로 4잔의 커피를 마시는 여성은 우울증 발병 위험이 20%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 성분은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같은 뇌 화학물질에 영향을 준다. 또한 8온스 커피 컵 2잔에는 약 200mg의 카페인이 들어있는데 이 정도 양은 장기 기억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⓶ 심장

매일 200~300mg의 카페인을 섭취하면 휴식을 취할 때 혈류량이 향상돼 심장이 기능을 더 잘 수행하도록 만든다.

⓷ 간

하루에 2잔 정도의 커피를 마시면 간경변증과 같은 간 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⓸ 당뇨병

28개의 연구결과를 조사한 하버드대 연구팀에 따르면 커피를 마시면 2형 당뇨병 발병 위험을 33%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⓹ 발

매일 커피를 마시는 남성의 경우 통풍 위험을 59%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피는 혈액속의 요산수치를 낮추는 효능이 있다.

⓺ 피부

연구결과에 따르면, 매일 3잔 이상의 커피를 섭취하는 여성은 기저세포암에 걸린 위험이 크게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77.html
kolaswqetsrq 11.02 02:32
의사들이 인정한 민간요법

의사들이 인정한 민간요법

❶ 불면증에는 파뿌리와 대추

파뿌리와 대추를 달여 먹으면 좋습니다. 파뿌리는 발한 작용을 해서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대파의 뿌리 부분만 5개, 대추 10개에 물 세 사발을 부어 그 물이 1⁄3정도 까지 줄도록 달여서 잠자기에 들기 전에 마십니다. 10일 정도 시도하면 효과가 나타납니다.

❷ 발 냄새는 무

큰 무 1개를 깍둑썰기 해서 큰솥에 담고 물 세 바가지를 부어서 무가 충분히 우러나도록 끓입니다. 다 끓은 것에 소금 1홉을 넣고서 5분 더 끊인 다음 대야에 부어 적당히 식힌 후 발을 담급니다. 일주일 정도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❸ 발목을 삐었을 때

관절을 삐었을 때 처음 하루는 냉찜질을 해주고 며칠 후부터는 온찜질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계란 노른자와 밀가루를 반죽해서 발라주면 피하 출혈되었던 곳이 빨리 흡수되어 아픔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계란 노른자만 풀어 밀가루에 넣어 섞은 다음 거즈에 묻혀 발목에 고정시켜 줍니다. 3일 후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❹ 피로, 권태감은 마늘과 생강

마늘 세 쪽과 생강 세 쪽을 강판에 갈아 컵에 넣고 따뜻한 물을 부어서 차 마시듯 먹습니다. 마늘과 생강은 피로 해소와 근육 회복에 효과적입니다.

❺ 헛배 부르고 가스가 찰때

파를 깨끗이 씻어서 10 뿌리만 잘라 넣고 물 두 대접을 부은 다음 물을 팔팔 끓여서 한번 끓으면 은근한 불로 조절해서 물이 반으로 줄 때까지 달입니다. 맛이 좋지 않지만 아침저녁으로 3일 정도 복용합니다. 파뿌리는 능금산, 당, 인산, 휘발성 정유를 함유하고 있어서 소화제 효과를 주고 위를 편안하게 해주는 작용을 합니다.

❻ 과음했을 때는 오이즙

오이에는 무기 염료 질이 있어 알코올을 중화하고 소화기에 들어가서 완화 작용을 합니다. 오이 11⁄2개를 강판에 갈아서 즙을 내어 음주 후에 마시면 됩니다.

❼ 코가 막혔을 때는 무

바람 들지 않고 맵지 않는 싱싱한 물로 조금만 갈아 베 보자기로 즙을 짭니다. 탈지면에 그 즙을 묻혀서 막힌 콧속에 가볍게 넣어주면 한 번에 쉽게 뚫립니다. 자극 요법의 일종입니다.

❽ 구역질이 날 때는 생강

입덧에 시달리는 임산부나 배 멀미, 차멀미 예방에도 좋습니다. 여행 떠나기 30분 전에 생강차 1컵을 마시면 멀미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❾ 피부 가려움증에는 오트밀

오트밀을 품 목욕물에 몸을 푹 담그면 여러 가지 피부염증으로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벌레에 물리거나 햇볕에 타서 가려운 것도 포함) 미지근한 물을 욕조에 채우고 오트밀 한 두 컵을 탑니다. 베이킹소다도 벌에 쏘이거나 발진으로 인한 피부 통증을 진정시키는 효능이 있습니다. 벌에 쏘인 곳을 진정시키려면 베이킹 소다에 물을 넣어 반죽한 다음 피부에 붙이면 됩니다.

❿ 재채기, 코감기

무에는 비타민 C가 풍부하고 생리적으로 중요한 작용을 하는 효소가 많아 노화방지, 미용, 소화, 기침, 감기에도 좋습니다. 중간 크기의 무 1⁄2개를 잘라 강판에 갈아 약한 불에 5분간 서서히 달입니다. 여기에는 마늘 1⁄2 큰 술 가량을 넣고 잘 저어 하루에 세 번가량 먹으면 됩니다.

⓫ 과식에는 파인애플

파일애플에는 단백질 소화를 돕는 효소가 있습니다. 과식을 했을 때 파인애플을 먹으면 속이 편해집니다.

⓬ 불면증에는 뜨거운 목욕

잠자리에 들기 전에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목욕을 하면 숙면을 취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⓭ 습관성 변비

통증이 없는 습관성 변비는 무청과 고구마를 이용합니다. 무청 세 포기와 고구마 1개를 적당히 잘라 믹서기에 갈아주면 됩니다. 이것은 먹기 직전에 갈아서 신선한 상태로 먹어야 효과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1⁄2컵, 어른은 1컵을 마십니다. 심함 경우에는 하루 1컵씩 한 달간 복용합니다. 무청과 생고구마 즙은 점액질과 섬유질이 풍부하기 때문에 소화나 변비에 도움을 줍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17.html
kolaswqetsrq 11.02 02:32
암세포 얼씬도 못하게 하는 항암 음식

암세포 얼씬도 못하게 하는 항암 음식

1.콩가루의 항암력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수는 무려 60조 개. 이것들의 주성분이 단백질이다. 따라서 단백질을 적게 먹거나 질이 나쁜 것을 먹으면 절대로 건강해질 수 없다. 콩은 양질의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식품 이다. 따라서 세포를 건강하게 하는 데 일조하고, 이는 암의 발생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콩에는 리놀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만병을 예방하는 첨병이 된다. 리놀산 은 동물성 지방으로 생긴 핏속 또는 혈관벽에 달라 붙어 있는 진득진득한 물질인 콜레스테롤을 녹여 몸 밖으로 몰아 내 버리고 혈관을 유연하게 하는 놀라운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콩을 많이 먹으면 동맥경화증이나 고혈압 뿐만 아니라 만병에 효과 가 있다.

2. 마늘의 항암력

자연이 준 최고의 양념 마늘 또한 항암효과가 월등한 식품 중 군계일학 이다. 그 동안의 연구 결과 마늘은 암균의 증식을 강력하게 억제해서 초기 치료 또는 연명에 효과가 뛰어난 것 으로 밝혀졌다. 마늘 속에는 항암작용을 하는 게르마늄과 기타 미지의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3. 깨의 항암력

고소해서 맛이 좋은 깨도 빼 놓을 수 없는 항암제다. 참깨를 100일 먹으면 모든 병이 완치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깨에 풍부한 식물성 지방 성분인 리놀산은 우리 몸의 신경세포를 구성하는 중요한 성분이다. 따라서 이 성분이 부족하면 머리가 나빠지고 신체 각 부에 병이 생긴다. 특히 리놀산은 피와 살을 맑게 하고 혈관을 청소해주는 효과가 있다.

4. 식초의 항암력

새콤한 맛으로 입맛을 사로잡는 식초는 우리 육체를 정화시키는 최고의 식품이다. 우리 몸은 해로운 음식을 먹거나 과식을 하면 몸 속에서 썩어서 독을 만들고 병이 생긴다. 식초는 이러한 나쁜 균을 없애 주는 강력한 살균제다. 따라서 식초는 우리 몸의 피와 살을 깨끗이 하는 정화제 이고, 신진대사를 원활히 하는 촉진제 이며, 자연 치유력을 최고도로 높여 주는 면역 증강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51.html
kolaswqetsrq 11.02 02:33
상추의 기막힌 효능

상추의 기막힌 효능

❶ 신경질, 통증을 완화시킨다

상추에 들어 있는 락투세린과 락투신이 짜증과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리고 통증을 완화시키는 효능이 있어 불면증 치료에 효과적이다. 본초 강목(本草綱目)에 보면, ‘상추는 가슴에 뭉쳐진 화를 풀어주며 막힌 경락을 뚫어 준다’고 쓰여져 있다.

❷ 피로 회복에 좋다

긴장을 완화시키고 신진대사를 도와 피로 회복에 좋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해 천연 강장제 역할을 한다.

❸ 몸속 독소를 해독한다

피를 맑게 하며 해독 작용도 뛰어나다. 각종 오염으로 인해 몸속에 쌓인 독소와 노폐물을 없앤다.

❹ 빈혈을 예방한다

조혈 효과가 있는 철분이 많이 들어 있어 빈혈 예방에 효과적이다.

❺ 숙취 해소를 돕는다

간장의 기능을 돕고 피를 맑게 해주어 음주후 컨디션을 되찾는데 효과적이다. 숙취로 인한 두통을 해소해주는 역할도 한다.

❻ 이뇨 작용을 돕는다

풍부한 수분과 미네랄이 신장 기능을 활성화해 체내 노폐물 배출을 돕는다.

❼ 변비를 치료한다

섬유소가 풍부해 장운동에 효과적이다. 또 비타민과 미네랄, 수분이 신진대사를 촉진해 배변을 원활하게 한다.

❽ 피부 건강에 좋다

피부 노화를 막는 비타민 B가 풍부하다. 또한 피를 맑게 해 몸속의 독소로 인한 피부 트러블을 진정시킨다.

❿ 눈 건강에 좋다

상추에 들어 있는 루테인은 눈의 신경을 보호하고 눈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도록 돕는다. 루테인은 상추뿐만 아니라 브로콜리나 시금치 같은 녹색 식물에도 많이 들어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50.html
kolaswqetsrq 11.02 02:34
배에 가스가 차는 이유

배에 가스가 차는 이유

눈치 없이 야속하게 주인의 애타는 마음도 모른 채 시종일관 꼬르륵 거리며 소리를 내는 배에 가스가 차는 게 큰 병은 아니지만 당사자에게는 남모를 고통입니다. 특히 점심을 먹고 난 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계속 나는 경우가 있는데 가장 큰 불편은 역시 다른 사람 앞에서 실례를 할까 봐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생리현상 중 하나일 수 있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눈치를 보게 되는 것 역시 사실이죠. 그럼 지금부터 우리를 항상 괴롭게 만드는 뱃속 가스가 도대체 왜 생기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배에 가스가 차는 이유

⓵ 가스 생성을 촉진하는 나쁜 음식

기름지거나 매운 음식 등 각종 인스턴트식품은 가스 생성을 촉진하는 나쁜 음식입니다. 우선 배에 가스차는 현상이 계속된다면 증상이 완화될 때까지는 육류(고기)는 멀리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육류는 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 소화하는데 오래 걸립니다. 그만큼 가스도 쉽게 차도록 하기 때문에 증상이 계속 나타날 경우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밖에도 감자, 옥수수, 콩은 장내 가스 팽만의 원인이 될 수 있어 배에 가스가 많이 차는 사람들이 피해야 할 대표적인 음식들입니다. 몸에는 좋지만 배에 꼬르륵 소리가 계속된다면 반드시 피해야 할 음식입니다.

⓶ 몸속 독소를 만들어 내는 변비

변비 때문에 고상하시는 분들 정말 많죠. 변비는 몸속에 독소를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가스가 생기게 합니다. 따라서 배에서 계속 꼬르륵 소리가 난다면 변비탈출을 통해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⓷ 오래 앉아있는 습관

배에 가스가 차는 현상은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긴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 주로 나타납니다. 오래 앉아 있고 적게 움직이는 것은 배에 가스를 가득하게 만드는 악습관 중 하나입니다.

⓸ 과민성 대장증후군

과민성대장 증후군은 복부 팽만감의 주범입니다. 현대인들의 약 15%가 스트레스 등의 원인으로 과민성대장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소화기계에 이상이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계속 나거나 배가 아프다면 과민성대장 증후군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⓹ 긴장, 스트레스 등 심리적 요인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사람들을 보면 심리적인 요인으로 장이 민감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긴장을 하거나 과민성대장 증후군처럼 스트레스를 받으면 복통, 설사, 배에 가스가 차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2. 배에 가스 빼는 법(꼬르륵 소리 없애는 방법)

⓵ 가벼운 스트레칭

배에 가스를 몸 밖으로 빼내기 위해서는 가볍게 걷는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가장 먼저 주기적으로 유산소 운동을 해보세요. 러닝, 수영, 자전거, 에어로빅, 줄넘기 등은 배에 가스를 제거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운동입니다. 하지만 운동을 하기에 여의치 않다면 중간중간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만 해줘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⓶ 요가를 해보자

요가는 명상, 호흡, 스트레칭이 결합된 복한적인 심신 운동으로 복부 팽만감 개선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운동입니다. 특히 고양이 자세, 바람 배기 자세, 굴렁쇠 자세 등 배에 가스 빼는 자세들이 많으므로 자신에게 맞는 요가를 통해 복부 팽만감을 예방해보시길 바랍니다.

⓷ 배를 따뜻하게 해주자

배가 차가우면 소화기관 장애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반대로 배가 따뜻하면 소화기관 활동이 원활해지며 가스 배출이 잘 됩니다. 따라서 배에 가스가 차거나 꼬르륵 소리가 계속될 경우 5~10분 정도 배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손으로 가볍게 마사지를 해주면 효과적입니다.

⓸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섭취하자

섬유질이 많은 과일이나 채소를 많이 먹어보세요. 이 중에서도 소화불량을 해결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은 양배추와 파인애플, 매실입니다.

매실 같은 경우 해독작용을 하는 카테킨산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장내 살균성을 높여 염증을 예방해줍니다. 또한 박테리아가 많은 김치도 소화에 도움이 됩니다.

이 밖에도 바나나, 미역, 상추, 시금치, 율무차 등 유산균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도 장 개선에 좋은 음식입니다. 무엇보다 물을 다량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물은 신진대사 및 혈액 순환을 활발하게 만들어 장내 가스를 빨리 배출시키고 변비를 예방해주기도 합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자주 나고 가스가 찬다면 식습관 개선이나 운동이 필요하다고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입니다. 자신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진단 후 그에 맞는 해결책으로 뱃속 가스를 탈출해봅시다.

건강 해지는 날까지 파~~이팅 하세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59.html
kolaswqetsrq 11.02 02:35
동의보감의 상큼한 조언

동의보감의 상큼한 조언

1. 위장,비장 기능이 약할 때 밤을 드세요 .

2. 신장이 약한 분은 달팽이를 달여서 마시세요.

3. 소변 보기가 어려울 땐 가오리가 정말 좋아요 .

4. 피로할 때 인삼대신 잔대(일명백삼)를 드셔 보세요 .

5. 고혈압이 걱정일 때 뽕나무차를 마시세요.

6. 기억력 증진에 오미자가 좋습니다.

7. 눈이 침침하면 결명자차를 드세요.

8. 포도는 껍질까지 잡수세요.(골다공증 예방약)

9. 성인병 예방에 해바라기씨가 그만입니다.

10. 스트레스 해소에는 토란줄기가 그만입니다.

11. 콜레스테롤이 걱정되는 분 녹차 요구르트를 드세요 .

12. 마음이 불안하고 장이 나쁠 때 사과파이를 만들어 드세요.

13. 무, 꿀즙은 감기 특효약이랍니다.

14. 우리 몸의 각종 신진대사를 돕는 다시마를 드세요.

15. 천식에 비파차만한게 없습니다.

16. 숙취엔 감식초를 드세요.

17. 동맥경화 예방엔 귤이 좋습니다.

18. 잇몸이 약할 땐 숙지황을 드세요.

19. 목이 뻣뻣 할 땐 모과를 이용해 보세요.

20. 뱃속이 좋지 않은 분은 도토리묵을 드세요.

21. 흥분성 신경쇠약에 연꽃씨가 잘 듣습니다.

22. 간이 약할 때 모시조개도 좋습니다.

23. 식초를 먹으면 무조건 좋습니다.

24. 여드름이 많이 나면 삼백초차를 드셔보세요.

25. 두통에는 들국화차를 마시세요.

26. 꿈이 많고 잠을 못잘 때 차좁쌀을 달여 드세요.

27. 요로결석을 풀어주는 데는 조기가 좋답니다.

28. 위, 십이지장궤양에는 율무차도 좋아요.

29. 술 마신 다음날은 부추를 드세요.

30. 기관지에는 영지가 좋습니다.

31. 가래가 끓으면 살구씨 기름을 드세요.

32. 여름철 감기, 인삼, 오미자차를 드세요.

33. 당뇨병에 식초를 권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34. 당뇨병엔 두릅나물이 좋습니다.

35. 당뇨병엔 가시오가피를 드세요.

36. 옻닭이 암에 좋다는 거 아세요?

37. 관절염엔 솔잎을 이용해 보세요.

38. 치질엔 모란꽃 끓인 물로 좌욕하세요.

39. 간경화엔 매실조청이 그만입니다.

40. 위궤양엔 감초를 달여 드세요.

41. 양파는 동맥경화나 고혈압에도 좋습니다.

42. 소갈증엔 다래가 좋습니다.

43. 초기 위궤양엔 연뿌리 경단이 좋습니다.

44. 오십견일때는 엄나무껍질을 끓여서 마시세요 .

45. 요통에는 부추술과 술 목욕이 효과 있어요.

46. 신경불안증에는 멸치와 백합 달인 물이 좋아요.

47. 어지럼증이 심할 땐 오리고기가 좋습니다.

48. 추울 땐 쑥이 좋으니 자주 드세요 .

49. 신경피로, 전신권태에 얼룩조릿대를 써 보세요 .

50. 고혈압에는 무즙, 감즙이 좋습니다 .

51. 장마철 피부병에는 녹두가 최고죠 .

52. 기침이 심하면 머위꽃대를 달여 드세요 .

53. 간기능 이상에는 동물의 간이 좋습니다 .

54. 계속되는 요통에는 돼지 콩팥을 이용하세요 .

55. 잔기침이 심할 땐 생강차에 엿을 녹여 드세요.

56. 편도선염엔 새우젓 태운 것을 이용해 보세요.

57. 수험생들에게는 생선류와 연근즙이 좋아요.

58. 속눈썹이 눈동자를 찌르면 들국화를 다려 드세요.

59. 산성체질을 개선하려면 얼룩 조릿대를 끓여 드세요.

60. 잠 많은 수험생에게 대추씨를 날로 먹이세요

61. 목이 아플 때는 돼지기름을 조려 꿀을 섞어 드세요

62. 잇몸에 염증이 생기면 소금이나 산초를 식초에 달여 마시세요

63. 노인성 변비에는 꿀1숫가락에 파3뿌리를 달여 마시세요

64. 중풍 예방에는 채소즙이 좋습니다.

65. 웃음은 만병통치약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99.html
kolaswqetsrq 11.02 02:35
암세포를 굶겨 죽이는 항암식품

암세포를 굶겨 죽이는 항암식품

❶ 위암을 예방하는 마늘

마늘속 알리신 성분이 위암 발생 물질로 지목되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의 감염을 효과적으로 예방해줍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플라이 샤워박사는 일주일에 마늘 18g을 먹으면 위암 50%를 예방할 수 있고 결장암은 30%를 예방할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❷ 유방암을 예방하는 검은콩

콩에는 식물성 여성 호르몬인 이소플라본이 풍부해 여성호르몬이 지나치게 분비되는 것을 막아 암을 예방해줍니다. 콩을 많이 먹으면 유방 조직의 밀도가 낮아져 가슴이 부드러워지며,폐경기 증상까지 줄여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❸ 폐암을 예방하는 시금치

시금치에 많은 엽록소는 암을 저지하며,엽산과 비타민B12는 암세포가 될수 있는 전암 단계의 세포를 정상 세포로 바꾸어 줍니다.미국 텍사스 대학 세클교수에 의하면 시금치를 많이 먹는 흡연자는 폐암에 걸릴 확률이 1/8로 줄어든다고 합니다.시금치는 데치거나 볶아 먹어도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으며 하루 7~8뿌리 정도 섭취하면 적당합니다.

❹ 간암을 예방하는 양송이버섯

버섯에는 단백질이 풍부하여 손상된 간이 재생하기 위해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할수 있고,베타글루칸 성분은 면역 강화와 암예방 및 암세포가 자라는 것을 억제해줍니다.버섯속 AHCC성분은 암을 공격하는 자연 살상 세포를 활성화해줍니다.일본 간사이 의대 야수오 가미야마교수는 실험을 통해 버섯의 우수한 항암 효과를 밝혀낸 바 있습니다.

❺ 자궁암을 예방하는 미역

일본 이로사키 대학 의학부는 실험을 통해 미역에 함유된 U-푸코단이라는 섬유소가 암세포를 없애는 것을 발견했습니다.특히 U-푸코이단은 정상 세포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암세포만을 자멸하도록 유도했으며 72시간뒤 거의 모든 암세포가 소멸했다고 합니다.또한 미역속 알긴산은 중금속이나 발암물질 등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❻ 혈액암을 예방하는 녹차

녹차속 카테킨 성분은 정상 효소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암세포가 증식하는데 필수적인 효소의 활성을 억제합니다.

❼ 전립선암을 예방하는 토마토

토마토 속 리코펜,비타민C,셀레늄등의 항암 성분은 전립선암 세포의 증식을 지연시키고 암 유발 물질이 형성되기 전에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합니다.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연구팀의 연구에 의하면 일주일에 최고 10번 이상 토마토가 들어간 음식을 먹은 사람은 전립선암 발생률이 45%낮았다고 합니다.토마토는 하루 1~2개만 섭취하여도 충분합니다.

❽ 대장암을 예방하는 생강

생강의 진저롤 성분은 장을 연동시켜 변비를 예방하고 장내 이상 발효를 억제하며,진행 단계에서 암 증식 세포를 억제한다고 알려져있습니다.

❾ 식도암을 예방하는 당근

당근에 많이 들어 있는 베타카로틴은 암 발생과 진행을 억제하며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부족한 베타카로틴을 보충하게해 식도암 폐암 위암을 예방합니다.미국 국립암연구소의 매리 워드 박사는 식도암과 위암의 위험이 40~60%낮은 사람들의 메뉴에 당근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❿ 피부암을 예방하는 늙은 호박

늙은 호박에 들어있는 루테인은 피부암을 예방하며 베타카로틴은 항산화 작용을 합니다.미국 마운트 사이나이 의대 제임스 스펜서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피부암 환자에게 5년간 베타카로틴을 먹게 한 결과 몇가지 피부암 세포 형성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45.html
kolaswqetsrq 11.02 02:36
늙지 않는 뇌 비결 9가지

늙지 않는 뇌 비결 9가지

❶ 두뇌 건강 보충제를 먹지마라

성분이 천연재료라고 하더라도 고혈압, 소화불량,불임, 우울증 등의 잠재적 부작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❷ 냉정하라

스트레스는 기억과 관련된 해마나 두뇌의 다른 부위에 다량의 해로운 화학물질이 생기게 함으로써 두뇌에 해를 입힌다. 일부 과학자들은 균형 잡힌 생활이나 요가 등의 이완운동, 사교활동이 스트레스를 줄여 기억력 감퇴를 늦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❸ 생선을 먹어라

식단에 생선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인지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오메가3와 같은 필수지방산은 뇌기능에 결정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우울증과 같은 뇌질환을 치료하는데 유용한 것이 입증됐다.

오메가3의 효능에 대한 연구는 복합적인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아마씨와 생선, 초식동물 등의 음식으로부터 추출한 것을 복용하는 것이 좋다.

❹ 커피를 즐겨라

카페인을 먹는 습관이 두뇌를 보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규모 종단적 연구에 따르면 하루 두 번에서 네 번 정도 카페인 만족을 얻으면 인지능력, 쇠퇴를 피할 수 있고 알츠하이머 병에 걸릴 확률을 30~60프로까지 줄일 수 있다.

이러한 효과가 카페인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커피나 차에 함유된 산화방지제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❺ 잠을 자라

잠을 자고 꿈을 꾸는 동안 어떤 기억들은 걸러져 버려지고, 어떤 기억은 정리되어 저장된다.

최근의 한 연구에서 잠을 자지 않으면 시냅스에 단백질이 쌓여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배우는 것이 어렵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욱이 인과관계와는 무관할 수도 있지만 만성적으로 수면이 부족하면 나이가 들어 인지 능력이 저하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❻ 몸을 돌보라

일반적으로 2종 당뇨(Type II diabetes)와 비만, 고혈압과 같이 예방이 가능한 질병들은 두뇌에 영향을 미친다. 금연과 포화지방을 피하는 등의 생활습관으로 순환계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은 나이로 인한 뇌의 손상을 줄일 수 있게 해준다.

❼ 칼로리에 유념하라

과식은 두뇌를 나태하게 만들어 두뇌에 장기적인 손상을 주는 반면 너무 적은 량의 칼로리를 섭취하면 두뇌의 기능을 손상 시킨다.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만성적인 식욕부진을 초래하는 문제도 있지만 주의력 결핍이나 정신착란, 기억력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❽ 먹고, 또 먹어라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에너지는 두뇌의 민감한 기관에 문제를 야기한다. 적당한 지방과 단백질, 높은 섬유질의 저 혈당식은 설탕과 분질 녹말 같은 고 혈당 음식에 비해 몸에서 훨씬 천천히 분해된다. 내장에서 안정된 속도로 소화되는 것은 뇌에 훨씬 안정된 에너지의 흐름을 제공해 뇌의 기관이 보다 오래 동안 건강하고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만든다.

❾ 뭔가를 하라

과학자들은 오랜 기간 두뇌 건강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방법을 꼽으라면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이라고 말한다. 심장과 폐는 런닝머신에서 달리기 운동을 할 때 격렬하게 반응하지만 두뇌는 한발 한발 뛸 때마다 조용한 상태에서 더욱 건강해진다.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는 운동을 하려면 이틀에 한번 적어도 30분 이상의 육체적 활동을 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9_64.html
kolaswqetsrq 11.02 02:37
대장에 좋은 음식, 나쁜 음식

대장에 좋은 음식, 나쁜 음식

✅ 대장에 좋은 음식

⓵ 고구마

항암물질 강글리오사이드 함유 되어 꾸준히 섭취하면 암발병률도 낮추는 효과. 비타민c 소화 돕고 신체기관이 건강하게 작동되도록 한다.

⓶ 양배추

셀레눔 성분, 베타카로틴함유 암 억제 노화예방 효과 날 것으로 섭취하는 것이 좋고 샐러드나 익혀서 먹는다.

⓷ 사과

폴리페놀이 풍부 항암효과. 식이섬유 다량 함유되어 소화돕는효과 변비예방.

⓸ 마늘

항암식품. 셀레늄 항암물질 다량 함유. 대장뿐 아니라 각종 암의 발병을 예방. 면역력을 높여 튼튼한 몸을 만드는 효과

⓹ 토마토

라이코펜과 베타카로틴 항산화물질 비타민과 무기질, 열을 가하거나 기름에 볶아먹는 것이 체내흡수율 높인다.

녹황색채소 뿌리채소 : 다량의 미네랄 섬유질이 대장암 예방 및 장내 유해세균 번식을 막는다.

✅ 대장에 나쁜 음식

⓵ 자주 마시는 술

술은 다른 영양분들을 파괴 시킬 수 있고 엽산 부족이 일어나게 합니다. 엽산은 사람에게 중요한 물질로써 세포의 유전자를 강화합니다. 따라서 술을 많이 마시게 되면 엽산의 부족으로 대장암의 원인을 제공합니다.

⓶ 인스턴트 식품

대장암에 나쁜 음식으로 가장 많이 먹는 것이 바로 인스턴트음식입니다. 스피드를 중요시 여기는 한국사회에서 시간부족 때문에 빠르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을 찾으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 가고 있는데요 인스턴트는 화학물질이 가득하고 고칼로리 음식으로서 주의해야 합니다. 대장암을 피하기 위해 꼭 피해야 하는 음식 중 하나 입니다.

⓷ 기름에 튀긴 음식

기름에 튀기는 음식은 콜레스테롤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죠? 콜레스테롤은 우리 대장의 활동을 둔화시키고 길을 좁게 하여 대장의 찌꺼기를 발생시켜 대장암의 원인을 만들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튀김은 되도록 멀리 하시는 게 좋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84.html
kolaswqetsrq 11.02 02:37
갑상선에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

갑상선에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

갑상선은 우리 인체의 필수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으로 체내 대사 과정을 조절할 뿐만 아니라 신생아나 소아의 성장과 두뇌 발달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데요. 이처럼 중요하고 많은 역할을 하는 갑상선인 만큼 각별한 관리가 필요한데요. 특히 갑상선암은 국내 암 발생률 1위에 올라 있는 만큼 갑상선 기능 대한 국민들의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답니다.

▲ 갑상선에 좋은 음식

1. 복숭아

복숭아는 갑상선에 좋은 음식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과일인데요. 복숭아는 수분을 보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체내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하는데 효과적이며 갑상선의 기능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2. 브로콜리

브로콜리에는 테인, 셀레늄, 비타민C가 풍부해 발암 물질의 대사 활성을 저해 암 예방에 도움을 주며 면역력을 높여주는 비타민A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데요. 하지만 갑상선 기능저하증이 있는 사람인 경우에는 브로콜리의 하루 섭취 권장량 160G을 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3. 검은콩

검은콩에는 식물성 단백질인 이소플라본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줄 뿐만 아니라 갑상선 호르몬 분비 조절에도 효과가 있는데요. 특히 여성호르몬과 비슷한 천연성분이 함유돼 여성 갱년기 증상에도 도움을 주며 필수 아미노산, 섬유질, 미네랄, 철분 등의 영양소도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4. 토마토

세계 10대 슈퍼푸드 토마토에는 암의 발병률을 낮춰주고 항산화작용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리코펜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데요. 그뿐만 아니라 비타민C도 풍부하여 갑상선암 예방에 도움을 주는 식품입니다. 단 토마토는 차가운 성질을 갖고 있으므로 몸에 냉증이 있거나 면역력이 저하되어 있다면 일일 섭취량 이하로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5. 해조류

김이나 미역 같은 해조류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요오드는 갑상선의 원활한 기능을 위해 필요한 성분 중 하나인데요. 미역에는 항산화물질인 베타카로틴. 비타민C E 등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동의보감에 따르면 미역은 독이 없으며 목 주변의 기가 뭉친 것을 치료하고 이뇨작용, 노폐물 배설작용을 돕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앓고 있다면 미역을 과도하게 먹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6. 브라질너트

항암 미네랄이라고 불리만큼 항암성분이 뛰어난 셀레늄은 갑상선 호르몬 생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연어보다 약 6배나 높은 브라질너트는 셀레늄 함유 1위로 굴과 참치와 비교해도 훨씬 많이 함유하고 있습니다. 셀레늄은 체내 대사과정에서 암세포에 침투하여 사멸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며 이외에도 호두와 잣 등의 견과류에 들어있는 비타민 E도 발암물질인 ‘니트로사민’의 생성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7. 육류

갑상선기능저하증을 겪고 계신 분들이 주로 아연 결핍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아연은 갑상선 호르몬의 원활한 합성을 도와주는 효소에 필요한 미네랄인데요 갑상선 분비 호르몬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며 뇌하수체에 신호를 보내 갑상선 자극 호르몬을 만들어 내도록 하는데요. 아연은 육류에서 손쉽게 섭취할 수 있으며 1일 아연 권장량은 약 8.5mg으로 하루 약 300g 정도의 소고기를 섭취할 경우 인체에 필요한 아연의 하루 섭취량이 충족됩니다.

▲ 갑상선에 나쁜 음식

1. 글루텐

밀, 호밀, 보리 등의 글루텐은 갑상선의 단백질 구조와 유사하여 갑상선으로 쉽게 침투하여 면역세포가 과잉 활성화되면서 갑상선의 손상을 초래할 수 있는데요. 그뿐만 아니라 글루텐이 체내에 들어오면 면역에 혼선을 주게 됨으로써 우리의 몸은 글루텐에 대한 항체를 만들게 되고 이 항체가 갑상선을 비롯한 여러 신체 부위를 공격하게 됩니다.

2. 인스턴트식품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이들에게 패스트푸드와 같은 인스턴트식품은 빠질 수가 없는데요. 이처럼 인스턴트식품을 자주 섭취할 시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아져 갑상선 항진증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내분비 호르몬 대사와 면역기능에 악영향을 끼쳐 갑상선에 무리를 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최대한 인스턴트식품 등 내분비 호르몬 대사 및 면역 기능에 나쁜 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21.html
kolaswqetsrq 11.02 02:38
치매예방과 노화예방

치매예방과 노화예방

 "
▶ 늙지 않는 ,뇌 만드는 비법 10가지
",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관절이나 폐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인정하면서 정신적인 노화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과학전문 인터넷 언론 라이브 사이언스는 정신의 노화를 막는데 유용한 10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1. 두뇌를 끊임없이 괴롭혀라

크로스워드퍼즐(십자단어풀이)이나 큐브 놀이와 같이 두뇌를 사용하는 것이 뇌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는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교육의 부족이 인지력을 떨어트린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나이 들어 정신 건강이 더 좋다. 핵심은 새로운 어떤 것에 도전하는 것이다. 같은 조각을 반복해서 맞추는 것보다 모르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훨씬 더 유용하다.

2. 두뇌 건강 보충제를 먹지마라

최근 두뇌건강보충제가 복합비타민제와 비슷하게 돈 낭비일 뿐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은행나무나 멜라토닌(수면장애치료약) 등의 뇌 관련 약품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성분이 천연재료라고 하더라도 고혈압, 소화불량, 불임, 우울증 등의 잠재적 부작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건강한 사람에게도 은행잎으로 만든 약은 플라시보효과(위약효과) 외에 두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몇몇 경우에서 플라시보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3. 냉정하라

스트레스는 기억과 관련된 해마나 두뇌의 다른 부위에 다량의 해로운 화학물질이 생기게 함으로써 두뇌에 해를 입힌다. 일부 과학자들은 균형 잡힌 생활이나 요가 등의 이완운동, 사교활동이 스트레스를 줄여 기억력 감퇴를 늦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4. 생선을 먹어라

식단에 생선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인지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오메가3와 같은 필수지방산은 뇌기능에 결정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우울증과 같은 뇌질환을 치료하는데 유용한 것이 입증됐다.

오메가3의 효능에 대한 연구는 복합적인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아마씨와 생선, 초식동물 등의 음식으로부터 추출한 것을 복용하는 것이 좋다.

5. 커피를 즐겨라

카페인을 먹는 습관이 두뇌를 보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규모 종단적 연구에 따르면 하루 두 번에서 네 번 정도 카페인 만족을 얻으면 인지능력 쇠퇴를 피할 수 있고 알츠하이머 병에 걸릴 확률을 30~60%까지 줄일 수 있다.

이러한 효과가 카페인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커피나 차에 함유된 산화방지제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6. 잠을 자라

잠을 자고 꿈을 꾸는 동안 어떤 기억들은 걸러져 버려지고, 어떤 기억은 정리되어 저장된다. 최근의 한 연구에서 잠을 자지 않으면 시냅스에 단백질이 쌓여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배우는 것이 어렵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욱이 인과관계와는 무관할 수도 있지만 만성적으로 수면이 부족하면 나이가 들어 인지 능력이 저하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7. 몸을 돌보라

일반적으로 2종 당뇨(Type II diabetes)와 비만, 고혈압과 같이 예방이 가능한 질병들은 두뇌에 영향을 미친다. 금연과 포화지방을 피하는 등의 생활습관으로 순환계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은 나이로 인한 뇌의 손상을 줄일 수 있게 해준다.

8. 칼로리에 유념하라

과식은 두뇌를 나태하게 만들어 두뇌에 장기적인 손상을 주는 반면 너무 적은 량의 칼로리를 섭취하면 두뇌의 기능을 손상시킨다.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만성적인 식욕부진을 초래하는 문제도 있지만 주의력 결핍이나 정신착란, 기억력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9. 먹고, 또 먹어라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에너지는 두뇌의 민감한 기관에 문제를 야기한다. 적당한 지방과 단백질, 높은 섬유질의 저 혈당식은 설탕과 분질 녹말 같은 고혈당 음식에 비해 몸에서 훨씬 천천히 분해된다

내장에서 안정된 속도로 소화되는 것은 뇌에 훨씬 안정된 에너지의 흐름을 제공해 뇌의 기관이 보다 오래 동안 건강하고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만든다.

10. 뭔가를 하라

과학자들은 오랜 기간 두뇌 건강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방법을 꼽으라면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이라고 말한다.

심장과 폐는 런닝머신에서 달리기 운동을 할 때 격렬하게 반응하지만 두뇌는 한발 한발 뛸 때마다 조용한 상태에서 더욱 건강해진다.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는 운동을 하려면 이틀에 한번 적어도 30분 이상의 육체적 활동을 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27.html
kolaswqetsrq 11.02 02:39
오청이윤五請伊尹 - 이윤을 다섯 번 청하다, 인재 영입에 정성을 다하다.

오청이윤(五請伊尹) - 이윤을 다섯 번 청하다, 인재 영입에 정성을 다하다.

다섯 오(二/2) 청할 청(言/8) 저 이(亻/4) 성 윤(尸/1)

人事(인사)가 萬事(만사)라고 하듯이 크건 작건 일을 이루려면 도와주는 사람을 잘 발탁하고 능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귀중한 손님이 찾아오면 식사 때라도 열 번 일어나 맞이한 중국 夏(하)나라 禹王(우왕)의 一饋十起(일궤십기), 음식을 뱉고 감던 머리를 감싸 쥐고 나가 영접한 周公(주공)의 吐哺握髮(토포악발)은 윗사람이 인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말해준다. 그런데 벼슬에 뜻이 없어 초야에 묻혀 사는 인사의 초빙에는 諸葛亮(제갈량)이 살던 누옥을 세 번이나 찾아가 모신 蜀(촉)나라 劉備(유비)의 三顧草廬(삼고초려)를 대표적인 예로 든다.

이 유비보다 2000년 정도 앞의 商(상)나라 시조 湯王(탕왕)은 노예 출신의 현자를 모시기 위해 다섯 번이나 청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재상으로 나오는 伊尹(이윤)이 다섯 번 청한(五請) 주인공이다. 탕왕은 이윤이 지혜롭다는 소문을 듣고 초청했으나 이웃 부족 有莘氏(유신씨, 莘은 나라이름 신)의 방해로 번번이 좌절됐다. 그러다 귀족 딸과의 혼약을 맺고 남자 종 媵臣(잉신, 媵은 보낼 잉)으로 맞이하는데 성공했다. 이윤은 솥을 짊어졌다는 伊尹負鼎(이윤부정)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자신이 능한 요리에 빗대 탕왕에 천하의 정세를 설파했다. 이윤은 재상의 직책을 맡아 탕왕이 夏(하)의 폭군 桀王(걸왕)을 쫓아내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윤은 간략하나마 여러 책에 등장하는데 출생과 업적에 대해서는 조금씩 다르다. 司馬遷(사마천)은 ‘史記(사기)’ 殷本紀(은본기)에서 이윤의 이름을 阿衡(아형)이라 하며, 탕왕을 만나려 자진해서 종이 되고 음식 맛으로 설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달리 전하는 것이라며 소개한다. ‘이윤은 벼슬하지 않는 선비였는데 탕왕이 사람을 시켜 맞아들이려 했으나 다섯 번이나 거절한 뒤에야 탕에게 가서 따랐다(伊尹處士 湯使人聘迎之 五反然後肯往從湯/ 이윤처사 탕사인빙영지 오반연후긍왕종탕).’ 이후 이윤은 옛 제왕과 아홉 명의 이상적 군주에 대해 이야기하며 보좌했고 탕 사후에도 바르게 이끌었다.

孟子(맹자)는 이윤을 4대 聖人(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일컬으며 미천한 신분에도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현명함을 높이 기렸다. 뛰어난 인재는 초야에 묻혀 이름이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도자의 안목과 열의에 따라 세 번이나, 다섯 번이나 간절히 청하면 자신의 재주를 발휘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고위 공직자 청문회를 볼 때마다 인재를 널리 살피지 않고, 자신의 진영에서만 사람을 구하려 하기 때문에 온 나라에 추문으로 칠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34.html
kolaswqetsrq 11.02 02:40
적자지심赤子之心 - 순수하고 거짓이 없는 어린이 마음

적자지심(赤子之心) - 순수하고 거짓이 없는 어린이 마음

붉을 적(赤/0) 아들 자(子/0) 갈 지(丿/3) 마음 심(心/0)

갓난아이의 마음같이 순수하고 거짓이 없는 마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선인들은 어린이 예찬을 한다. "어린 아이들의 존재는 이 땅위에서 가장 빛나는 혜택이다. 죄악에 물들지 않은 어린애들의 생명체는 한없이 고귀한 것‘이라고 ‘아미엘의 일기‘로 유명한 아미엘(H. F. Amiel)은 말했다. 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한데 나쁜 환경이나 물욕으로 악하게 된다는 性善說(성선설)은 유교 도덕실천의 근거가 되어 발전했다. 孟子(맹자)가 처음 주창한 만큼 순수하고 선한 갓 태어난 아이를 붉은 아이(赤子)라고 하고 이런 마음을 지녀야 대인이라고 가르친다.

몸이 붉은 색을 띠기 때문에 신생아를 赤子(적자)로 표현했다. 書經(서경)에는 백성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다지만 赤(적)의 뜻에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나 옷을 걸치지 않고 몸을 드러낸다는 뜻도 있으니 갓난아기가 더욱 합당하다. 맹자가 강조한 離婁下(이루하) 편을 보자. 도덕적 인격을 갖춘 대인은 남들이 믿어주기를 바라지도 않고, 어떤 결과를 바라고 행동하지 않으며, 義(의)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라 했다. 그러면서 ‘대인이란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 대인자 불실기적자지심자야)’이라며 순진하고 거짓이 없는 어린애의 마음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성어는 우리의 옛 문헌에도 수없이 인용되었다. 문집과 승정원일기에도 보이는데 그 중 고려 말 문신이자 학자인 牧隱(목은) 李穡(이색, 1328~1396, 穡은 거둘 색)의 ‘赤子吟(적자음)’ 시 일부에는 다음과 같이 읊는다. ‘맘이 한 번 외물의 유혹에 빠지면서부터는, 충동하는 욕심과 정을 억누르기 어려워,.. 겉모양 꾸미어 끝내는 거짓을 부리나니, 어린애의 마음을 누가 다시 찾으리오(直從知誘始逐外 欲動情勝方難齊.. 冶容飾貌竟狙詐 赤子之心誰復稽/ 직종지유시축외 욕동정승방난제.. 야용식모경저사 적자지심수부계).’ 외부의 유혹을 이기려면 어린애의 마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순수한 마음을 가진 어린이가 학대받는 일이 수시로 터져 나온다. 친자녀를 때리고 굶기며, 심지어 살해한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하늘을 때리는 것(輕勿打兒 打兒卽打天矣/ 경물타아 타아즉타천의)’고 가르쳤건만 막무가내인 어른이 부끄럽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69.html
kolaswqetsrq 11.02 02:40
연미지급燃眉之急 – 눈썹에 불붙은 듯이 위급하다.

연미지급(燃眉之急) – 눈썹에 불붙은 듯이 위급하다.

탈 연(火/12) 눈썹 미(目/4) 갈 지(丿/3) 급할 급(心/5)

‘눈썹에 불이 붙는다’는 표현이 있다. 예기치 않은 큰 걱정거리가 닥쳐 매우 위급하게 된 것을 이른다. 눈과 가장 가까운 눈썹까지 위험을 느끼게 되면 막다른 곳에 몰린 것으로 이에 비유한 성어가 많다. 禪(선)의 대의를 밝힌 입문서라 하는 五燈會元(오등회원)에서는 불이 눈썹을 태우는 것이 가장 화급하다며 火燒眉毛(화소미모)라 했다. 눈썹에 불이 붙은(燃眉) 듯이 위급하다(之急)는 이 성어도 여기에서 나와 燒眉之急(소미지급)이나 焦眉之急(초미지급) 등의 비슷한 말이 더 만들어졌다. 落眉之厄(낙미지액)이나 焦眉之厄(초미지액)에도 눈썹이 들어간다.

중국 삼국시대의 吳(오)나라에 張昭(장소, 156~236)라는 모사가 있었다. 그는 赤壁大戰(적벽대전)에서 魏(위)의 대군을 물리치게 되는 周瑜(주유)의 추천으로 오왕 孫策(손책)의 막하에 들어간 이후 문무의 모든 일을 처결할 정도로 신임을 얻었다. 손책이 유명을 달리 하면서 장소에게 동생 孫權(손권)을 보좌하도록 특명을 내렸다. 장소는 성품이 강직하여 자주 직간을 했는데 손권은 張公(장공)이라 높여 부르면서도 무척 어려워했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장소의 불같은 성격을 나타내는 대목이 나온다. 위나라의 曹操(조조)가 승상이 되어 천자를 끼고 전횡을 일삼자 각 지역의 세력들은 반항하기 시작했다. 蜀(촉)의 劉備(유비)와 오왕 손권도 조조의 대군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에 오나라와 연합하기 위해 원병을 청하러 온 諸葛亮(제갈량)에게 장소가 논쟁을 벌인다.

자신을 戰國時代(전국시대)의 명신 管仲(관중)이나 樂毅(악의)와 비교한다고 들었는데 유비의 휘하에 들어간 지 오래인데도 계속 땅을 내주고 달아난다고 비난하며 말한다. ‘이는 마치 눈썹에 불이 붙은 꼴로서 어찌 관중과 악의의 만분의 일이나 되겠소(有燃眉之急 豈有管樂萬分之一耶/ 유연미지급 기유관악만분지일야)?’

장소는 제갈량과 같은 徐州(서주) 출신으로 흥미를 위해서 설정한 허구라고 한다. 실제로는 이렇게 험담을 하지 않고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고 정사에는 나온다. 이들의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위험한 일을 눈썹까지 불이 붙을 때라야 알게 되는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 산적한 문제를 앞에 두고 잘 되겠지, 설마 하는 마음가짐으로는 눈썹이 타올라도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28.html
kolaswqetsrq 11.02 02:41
부저유어釜底游魚 - 솥바닥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상황이 극히 위험한 상태

부저유어(釜底游魚) - 솥바닥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상황이 극히 위험한 상태

가마 부(金/2) 밑 저(广/5) 헤엄칠 유(氵/9) 고기 어(魚/0)

몹시 위험한 처지에 놓여 목숨이 간당간당한 경우를 이를 때를 비유한 성어가 제법 많다. 여기저기 들쑤시며 음식을 훔치는 쥐가 독 안에 빠지면 꼼짝달싹 못하는 入甕之鼠(입옹지서)가 된다. 도마 위에 오른 고기 俎上之肉(조상지육)이나 약간 나은 못 속의 물고기와 새장의 새, 池魚籠鳥(지어농조)도 부자유스럽긴 마찬가지다.

莊子(장자)가 비유한 涸轍鮒魚(학철부어, 涸은 물마를 학)도 있다.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라는 뜻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솥바닥(釜底)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游魚)도 다를 바 없는 신세다. 곧 삶길지도 모르고 놀지만 사람 목숨으로 치면 命在頃刻(명재경각), 風前燈火(풍전등화)인 셈이다.

光武帝(광무제) 劉秀(유수)가 서기 25년 재건한 後漢(후한)은 초기에는 서역까지 뻗어 국력을 과시하다가 외척과 환관의 농간으로 급격히 쇠락했다. 외척의 대표적인 인물 梁冀(양기)는 여동생이 8대 順帝(순제)의 왕후가 된 후 4대에 걸쳐 帝位(제위)도 마음대로 폐립하는 등 무소불위의 횡포를 자행했다.

이 때 하급관리 張綱(장강)이란 강직한 사람이 양기를 규탄하여 눈 밖에 났다. 윗물이 흐린데 아랫물이 맑을 수 없어 지방서도 비리가 들끓자 황제는 장강을 비롯한 8명에게 규찰을 시켰다. 장강은 더 큰 도둑을 두고 갈 수 없다며 수레를 묻고 양기를 탄핵한 埋輪攬轡(매륜남비, 轡는 고삐 비)의 고사로 남았다.

앙심을 품은 양기는 장강에게 지방관을 죽이고 모반을 일으킨 張嬰(장영)을 진압하도록 보냈다. 장강은 양기의 속셈을 알고도 두려움 없이 부임하여 장영을 설득했다. 장강의 사람됨을 믿은 장영 일당들은 살기 위해 이렇게 도적이 됐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희들은 마치 솥 안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과 같아 잠시 숨만을 쉬고 있을 뿐입니다(若魚游釜中 喘息須臾間耳/ 약어유부중 천식수유간이).’ 이들이 용서를 구하자 장강은 용서하고 평안을 찾았다.

황제는 큰 공을 세운 장강을 중용하려 했으나 양기의 반대에다 장영 등이 상소를 올리며 지역에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자 더 근무토록 했다. ‘後漢書(후한서)’ 장영 열전과 ‘資治通鑑(자치통감)’에 실려 전한다.

‘끓는 물 속 개구리’란 말이 있다. 물이 끓는 통에 넣은 개구리는 바로 뛰쳐나오지만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닥칠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개구리는 솥 안의 물고기보다 족을 시간이 빨리 닥쳐도 유유히 헤엄친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우리나라가 국내외 여건으로 성장이 예전만 못하다고 아우성이다.

소득이 높아지자 세금을 펑펑 쓰고 온갖 명목의 복지제도를 만들어 낭비하는 경쟁을 한다. 미래세대는 이럴 줄도 모르고 좋아하다가 솥 안의 물고기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제도가 잘못 되어 부작용이 나타나면 고하를 막론하고 장강 같은 지사가 나타나 바로잡아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74.html
kolaswqetsrq 11.02 02:42
인간삼락人間三樂 - 인간이 누리는 세 가지 즐거움

인간삼락(人間三樂) - 인간이 누리는 세 가지 즐거움

사람 인(人/0) 사이 간(門/4) 석 삼(一/2) 즐길 락(木/11)

사람은 저마다의 재주가 있고, 목적하는 바가 달라서 각기 느끼는 행복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인간의 즐거움을 세 가지로 나타내보라 할 때 내세우는 것이 다르다. 욕심이 덕지덕지 엉겨 붙은 대부분의 인간은 부귀와 명예를 갖고서도 만족을 못한다. 그런데 다른 행복, 다른 즐거움을 드는 선현들이 말하는 행복은 의외로 단순하다.

먼저 모든 유학자의 영원한 스승 孔子(공자)의 三樂(삼락)을 보자. 배우고 때에 맞게 익힘(學而時習/ 학이시습),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는 일(有朋自遠方來/ 유붕자원방래),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음(人不知而不慍/ 인부지이불온)을 꼽았다. 論語(논어) 첫머리 學而(학이)편에서다.

공자 다음의 亞聖(아성)인 孟子(맹자)는 부모 살아 계시고 형제가 탈이 없는 것(父母俱存 兄弟無故/ 부모구존 형제무고), 하늘 우러러 부끄럼이 없고 굽어 봐 사람에 부끄러울 일이 없는 것(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영재들을 가르치는 것(得天下英才而教育/ 득천하영재이교육)을 들었다. 모두 남이 주는 것보다 자기가 닦는 데서 오는 것이다. 怍은 부끄러워할 작.

우리의 茶山(다산)선생은 젊은 시절 ‘수종사에서 노닐던 기록(游水鐘寺記 /유수종사기)‘에서 세 가지 즐거움을 나타냈다. ’어렸을 때 뛰놀던 곳에 어른이 되어 오는 것(幼年之所游歷 壯而至/ 유년지소유력 장이지), 곤궁했을 때 지냈던 곳을 출세한 뒤 오는 것(窮約之所經過 得意而至/ 궁약지소경과 득의이지), 홀로 외롭게 찾던 곳을 마음 맞는 벗들과 오는 것(孤行獨往之地 携嘉賓挈好友而至/ 고행독왕지지 휴가빈설호우이지)‘이다.

挈은 거느릴 설. 仁祖(인조)때 학자 申欽(신흠)의 삼락은 이렇다. ’문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閉門閱會心書/ 폐문열회심서), 문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는 것(開門迎會心客/ 개문영회심객), 문을 나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出門尋會心境/ 출문심회심경).‘

선인들은 주변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찾고, 조그만 성취에도 자족할 수 있는 것을 가장 크게 쳤다.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기만 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 자기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서양 격언처럼 자기의 분수를 알고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 철학자 安秉煜(안병욱)의 말도 기억하자. ‘행복과 불행은 같은 지붕 밑에 살고 있으며, 번영의 바로 옆방에 파멸이 살고 있고, 성공의 옆방에 실패가 살고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54.html
kolaswqetsrq 11.02 02:42
괄모귀배刮毛龜背 - 거북 등의 털을 긁다, 보람 못 찾고 쓸데없는 수고만 하다.

괄모귀배(刮毛龜背) - 거북 등의 털을 긁다, 보람 못 찾고 쓸데없는 수고만 하다.

긁을 괄(刂/6) 털 모(毛/0) 거북 귀(龜/0) 등 배(肉/5)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도 그 결과가 시원찮으면 허탈하다. 오랫동안 공들여 해 온 일이 허사가 됐을 때 곧잘 ‘십년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라 한다. 처음부터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고서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없다.

한 때의 잘못으로 애만 쓰고 아무런 보람이 없을 때 勞而無功(노이무공), 萬事休意(만사휴의)가 된다. 그런데 남이 보기에는 성공을 못할 일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기름에다 그림을 그리고 얼음에다 조각을 한다는 畵脂鏤氷(화지루빙)이나, 실컷 힘들여 게를 잡고서는 놓아준다는 捉蟹放水(착해방수)가 그것이다.

‘게 등에 소금 치기’라는 속담도 두꺼운 게 껍질에 아무리 소금을 쳐 봤자 쓸데없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거북의 등(龜背)에는 털이 없는데도 아무리 긁어봤자(刮毛) 얻을 수가 없다. ‘거북의 털’이란 비유가 있듯이 도저히 구할 수 없는 물건을 쓸데없이 수고만 한다는 성어가 됐다.

중국 北宋(북송)의 문장가족 三蘇(삼소) 중에서 장남인 蘇東坡(소동파, 1037~1101)의 시에서 유래했다. ‘거북 등 위에서 터럭 긁어 보았자, 언제나 털방석을 만들어볼지(刮毛龜背上 何時得成氈/ 괄모귀배상 하시득성전).’ 氈은 담요 전. 동파와 교유가 있던 馬正卿(마정경)이란 친구의 도움을 받고도 고생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우리의 문장가들도 다수 인용한 것이 고전에서 검색된다. 고려의 문호 李穡(이색, 1328~1396)은 ‘처음엔 기린 뿔에 받히나 했더니, 점차로 거북 털을 긁기와 같구나(初疑觸麟角 漸似刮龜毛/ 초의촉린각 점사괄구모)’ 하며 ‘有感(유감)’이란 시에서 읊었다. 기린의 뿔은 학문의 성취를 말한다고 한다.

조선 초의 학자 徐居正(서거정, 1420~1488)은 ‘만사는 참으로 말 머리에 뿔나기 같은데, 길은 막혀 어느새 거북 등 털 긁고 있네(萬事眞成馬頭角 途窮已刮龜背毛/ 만사진성마두각 도궁이괄구배모)’라며 세상사 있을 수 없는 해괴한 일 속에서 자신이 애써온 일이 허망할 뿐이라고 탄식한다.

한 가지 목표를 정해 두고 꾸준히 노력하라는 선현의 말은 많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고 한 楊士彦(양사언)의 시조 구절도 남 탓 하지 말고 묵묵히 나가라고 했다. 그런데 태산이 울리더니 쥐 한 마리 나오는 泰山鳴動鼠一匹(태산명동서일필)의 결과로는 모두 허탈할 수밖에 없다.

없는 거북의 털을 깎는 어리석은 일이 아닌 박수 받는 일이라도 앞만 보고 나가다가 의외의 상황이 닥치면 방향을 트는 지혜가 필요하다. 初志一貫(초지일관)이 중요하다고 황소같이 나가다가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이 드러날 땐 돌이킬 수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01.html
kolaswqetsrq 11.02 02:43
격물치지格物致知 -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온전한 지식에 이르다.

격물치지(格物致知) -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온전한 지식에 이르다.

격식 격(木/6) 물건 물(牛/4) 이를 치(至/4) 알 지(矢/3)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다스린다는 修身齊家(수신제가)는 보통 사람이라도 지켜야 하는 덕목이다. 더 큰 뜻을 펼치려는 平天下(평천하)할 사람은 더욱 먼저 갖춰야 함은 물론이다. 이처럼 좌우명 이전의 기본인 이 말이 유교 四書(사서)의 하나인 ‘大學(대학)’에서 유래했다는 것도 상식이 됐다.

원래 孔子(공자)의 제자 曾子(증자)가 지었다고 하는데 관혼상제와 일상의 예절이 담긴 禮記(예기)에서 독립시킨 것으로 분량은 아주 적다. 대학이 오늘날 학제의 대학은 당연히 아니고, 큰 뜻을 배우고 닦는 글이란 의미로 朱熹(주희)가 저술한 大學章句(대학장구)의 연구가 집중된 데서 왔다고 본다.

대학의 수신제가 다음으로 알려진 말이 실제적 사물을 통하여(格物) 그 이치를 연구하고 온전한 지식에 이른다(致知)는 이 성어다. 格致(격치)라 줄여 써도 같다. 유학의 전문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깊이 다뤄 온 깊은 뜻을 쉽게 알 수는 없으나 와 닿는 설명들을 종합하면 治國平天下(치국평천하)의 기본이 되는 것이라 했다.

대학의 구성은 공자의 가르침인 經(경) 1장이고 증자를 비롯한 제자들이 해설한 傳(전) 10장으로 되어 있고, 제일 첫머리 三綱領(삼강령)에 이어 등장한다. 삼강령은 자신의 밝은 덕성을 밝히는 明明德(명명덕), 백성을 자기 몸처럼 아끼는 新民(신민), 지극한 선의 경지에 머무는 止於至善(지어지선)이다.

부분을 보자. 제가나 치국 등 모든 것에 앞서는 것이 수신이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자신을 수양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려면 자신의 뜻을 성실하게 하며(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욕수기신자 선정기심 욕정기심자 선성기의),

뜻을 성실하게 하려면 먼저 지식을 넓혀 사물의 이치를 깨치는데 있다(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욕성기의자 선치기지 치지재격물).’ 주희는 이처럼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캐 들어가면 통달하게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明(명)의 王陽明(왕양명)은 사물의 이치를 파악하는 것을 넘어 가치의 도덕적 실천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라 했다.

삼강령과 함께 八條目(팔조목)이 되는 格物(격물), 致知(치지), 誠意(성의), 正心(정심)은 修身(수신)을 위한 자신의 수양이 되고, 이후 齊家(제가), 治國(치국), 平天下(평천하)는 외적 확산의 과정이 된다. 전문적인 것을 모를지라도 한 가지 일에 집중하여 실력을 닦으면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도 성공적으로 이를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욕심이 앞서 무턱대고 나서기만 한다면 얼마 가지 않아 밑천이 들통 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52.html
kolaswqetsrq 11.02 02:44
빈이무첨貧而無諂 - 가난해도 굽실대지 않는다.

빈이무첨(貧而無諂) - 가난해도 굽실대지 않는다.

가난할 빈(貝/4) 말이을 이(而/0) 없을 무(灬/8) 아첨할 첨(言/8)

가난을 좋아하거나 일부러 원하는 사람은 없다. 가난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고 아무리 대범한 척 해도 불편한 생활일 수밖에 없다. 가난을 즐기지는 않더라도 일부러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고 초연하게 보내 성어로 남은 예화가 제법 된다. 安貧樂道(안빈낙도)의 대표적인 몇 사람을 들어보자.

대나무 그릇의 밥에 표주박에 든 물만으로 簞食瓢飮(단사표음)의 생활을 하고도 학문을 즐긴 顔回(안회)가 먼저 꼽힌다. 한 달에 식사는 아홉 끼가 고작인 三旬九食(삼순구식)의 陶淵明(도연명)은 歸去來辭(귀거래사)를 남겼고, 냉이 국과 굳은 죽을 잘라 먹었다는 斷薺劃粥(단제획죽, 薺는 냉이 제)의 范仲淹(범중엄)은 岳陽樓記(악양루기)가 유명하다.

이같이 도통한 성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은 가난에 대해서 태연하기 어렵다. 더구나 한 끼의 밥을 해결하려는 사람은 죽기보다 싫다 해도 허리를 굽실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 孔子(공자)가 이와 관해서 제자와 문답을 주고받았다.

十哲(십철) 중의 한 사람이고 큰 재산을 모은 理財家(이재가)이기도 했던 子貢(자공)이 여쭈었다. ‘가난하면서도 남에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는데 스승은 더 이상을 기대한다. ‘論語(논어)’ 學而(학이)편에 나오는 뒷부분을 보자.

공자는 괜찮다면서 덧붙인다. ‘가난하면서도 즐겁게 살고, 부유해도 도를 즐기는 것만 못하다(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미약빈이락 부이호례자야).’ 가난하면서 즐겁게 살기는 어려우니 貧而樂(빈이락) 뒤에 道(도)가 빠졌다고 보고 도를 즐긴다고 해석한다.

빈자이거나 부자거나 간에 아첨과 교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스스로 지키는 바를 알아야 즐거울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禮記(예기)’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가난하면서도 즐거움을 좋아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며, 가족이 많으면서 편안해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몇 명이나 되겠는가(貧而好樂 富而好禮 衆而以寧者 天下其幾矣/ 빈이호락 부이호례 중이이녕자 천하기기의)?’ 백성들의 잘못을 막는다는 坊記(방기)편이다.

가난한 자나 부자라도 아첨과 교만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만큼 상대를 대하는 것은 더 어렵다. 宋(송)나라의 蘇東坡(소동파)가 말한 것이 明心寶鑑(명심보감)에 인용된다. ‘상대가 부자라고 친한 척 하지 않으며, 가난한 자라고 멀리 하지 않는 것이 인간 세상에서 대장부(富不親兮貧不疎 此是人間大丈夫/ 부부친혜빈부소 차시인간대장부).’ 좀 더 여유 있는 쪽에서 마음을 넓게 베풀어야 세상이 훈훈할 텐데 가진 자의 교만에다 욕심은 잇따른다. 높은 자리에서 갑질이 그렇고 약자 상대로 한 폭리가 그렇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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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45
추인낙혼墜茵落溷 - 방석에 떨어지고 뒷간에 떨어지다, 운명에 따라 처지가 달라지다.

추인낙혼(墜茵落溷) - 방석에 떨어지고 뒷간에 떨어지다, 운명에 따라 처지가 달라지다.

떨어질 추(土/12) 자리 인(艹/6) 떨어질 락(艹/9) 어지러울 혼(氵/10)

運(운)에 관한 격언이 있다. ‘행운과 불운은 칼과 같다.‘ 운이 좋아 칼자루를 쥐면 쓸모가 있게 되고, 칼날을 쥐게 되면 상처를 입는다. 또 한 가지만 계속되지 않으니 절망할 것도 없다. 뜻밖에 행운을 만나면 ’홍두깨에 꽃이 피기‘도 하고 운수가 나빠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 경우도 맞닥뜨린다.

낙엽이 떨어졌을 때 책장에 고이 간수되는 것도 있고, 떨어지자 말자 쓰레기통에 처박히기도 한다. 좋은 자리에 떨어지고(墜茵) 냄새나는 뒷간에 떨어지기도 한다(落溷)고 어려운 글자로 썼지만 이것도 꽃잎의 운수를 말했다. 墜溷飄茵(추혼표인), 墮溷飄茵(타혼표인)으로 순서를 달리 해도 뜻은 같다.

꽃잎이 제 의지대로 앉을 수 없으니 바람 부는 대로 깨끗한 방석이나 변소에도 떨어진다는 것은 운명에 따라 처지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사람에게는 좋은 때를 만나거나 그렇지 못할 때가 있음을 비유한다.

중국 南北朝(남북조)시대 梁(양)나라에서 활동한 꼿꼿한 선비 范縝(범진, 縝은 고울 진)의 일화에서 성어가 유래했다. 그는 어렵게 공부하여 경전과 학술에 능통했고, 어려서부터 귀신을 믿지 않은 무신론자로 당시 성행하던 불교를 반대했다. 독실한 신도였던 竟陵王(경릉왕) 蕭子良(소자량)이란 왕자와 논쟁하면서 이 이야기로 반박한다.

소자량이 범진에게 인과를 믿지 않는데 세상에는 왜 부자와 빈자가 있게 되는지 물었다. 범진은 사람의 삶이란 것이 나무에 핀 꽃에 비유할 수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한 가지의 같은 꼭지에서 피었던 꽃이 바람에 따라서 ‘주렴에 스치면 방석에 떨어지고 울타리에 걸리면 뒷간에 떨어집니다(自有拂簾幌墜於茵席之上 自有關籬牆落於糞溷之側/ 자유불렴황추어인석지상 자유관리장락어분혼지측)’고 했다. 방석에 떨어지면 왕자의 처지이고 자신은 뒷간에 떨어진 것과 같다는 논지였다. 南朝(남조) 네 왕조의 역사를 唐(당)나라 李延壽(이연수)가 쓴 ‘南史(남사)’의 열전에 수록돼 있다.

낙화가 떨어진다고 하니 연상되는 시조가 있다. 광풍에 배꽃이 떨어져 이리저리 날리다 거미줄에 걸렸는데 ‘저 거미 낙화인줄 모르고 나비 잡듯 하누나’하는 李鼎輔(이정보)의 작품, 간밤에 부는 바람에 뜰 가득 복사꽃이 떨어졌는데 아이가 쓸려 하자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라고 한 鮮于浹(선우협)의 시조다.

바람에 처지가 바뀐 꽃잎이라도 모두 같은 꽃이라고 한 것에는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래서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나보다(이형기).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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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45
비필충천飛必沖天 - 날게 되면 하늘을 꿰뚫다, 침묵하다 놀라운 큰일을 하다.날 비飛/0 반드시 필心/1 화할 충氵/4 하늘 천大/1

비필충천(飛必沖天) - 날게 되면 하늘을 꿰뚫다, 침묵하다 놀라운 큰일을 하다.날 비(飛/0) 반드시 필(心/1) 화할 충(氵/4) 하늘 천(大/1)

어떤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는데 더욱 힘을 내도록 격려할 때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고 한다. 속담성어로 走馬加鞭(주마가편)이다. 그런데 재주는 있는듯해도 도통 열성을 보이지 않으면 보는 사람이 답답하다. 어떤 큰일을 하는데 준비태세가 영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개구리 움츠리는 뜻은 멀리 뛰자는 뜻이다‘란 비유가 있다.

똑같은 의미로 웅크리고 있다가 날게 되면 반드시 하늘을 꿰뚫는다는 이 성어다. 평소에 침묵하던 사람이 한 번 기지개를 켜면 모두 놀라게 할 큰일을 한다는 뜻이다. 一鳴驚人(일명경인)이란 말과 유래가 같다.

이 말은 여러 곳에서 이름만 약간 달리해서 전하는 유명한 고사가 있다. 먼저 ‘史記(사기)’ 楚世家(초세가)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 春秋時代(춘추시대) 초기 五霸(오패)의 한 사람인 楚(초)나라 莊王(장왕)이 즉위하고 3년 동안 국정을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졌다. 그러면서 신하들에게 간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보다 못한 충신 伍擧(오거)가 죽음을 무릅쓰고 왕을 찾아 수수께끼를 냈다. ‘언덕 위에 새가 한 마리 있는데 삼년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三年不飛又不鳴/ 삼년불비우불명).’ 무슨 새일까 물으니 왕이 답한다. ‘삼년이나 날지 않았으니 한 번 날면 하늘까지 차고 오를 것이요, 삼년동안 울지 않았으니 한 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오(此鳥不飛卽已 一飛沖天 不鳴卽已 一鳴驚人/ 차조불비즉이 일비충천 불명즉이 일명경인).’

그 후로도 몇 달이 지나도록 난행이 그치지 않아 이번엔 대부 蘇從(소종)이 또 죽음을 각오하고 직간했다. 그러자 이후부터 사람이 달라진 듯 국정에 전념했다. 장왕이 방탕을 가장하여 충신과 간신을 선별하기 위해 쓴 계책이었다. 오거와 소종에게 중책을 맡기며 수백 명의 간신을 쳐내고, 나라를 바로잡아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다. 비슷한 이야기로 滑稽(골계) 열전에는 齊(제)의 威王(위왕)에 淳于髡(순우곤, 髡은 머리깎을 곤)이 간한 것으로 나오고, ‘呂氏春秋(여씨춘추)’ 審應覽(심응람)편과 ‘韓非子(한비자)’의 喩老(유로)편에도 실려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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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46
명불허전名不虛傳 - 이름이 헛되이 전해진 것이 아니다.이름 명口/3 아닐 불一/3 빌 허虍/6 전할 전亻/11

명불허전(名不虛傳) - 이름이 헛되이 전해진 것이 아니다.이름 명(口/3) 아닐 불(一/3) 빌 허(虍/6) 전할 전(亻/11)

이름 名(명)이란 글자는 저녁 夕(석)자 아래에 말하는 입 口(구)를 받쳐 어두운 밤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입으로 이름을 부른다는 뜻에서 나왔다. 구분하기 위해 나온 이름은 자연의 것이 아니지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으면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김춘수 시인은 ‘꽃’에서 자신에게 무의미한 존재였던 것이 이름을 불러 주자 꽃과 같이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왔다고 노래했다. 존재의 이유인 이름을 그래서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고 豹死留皮 人死留名(표사유피 인사유명/ 표범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이란 좋은 말도 남았다.

보람 있는 일을 남겨 立身揚名(입신양명)하는 것이 효라 생각한 선인들은 더구나 惡名(악명)이나 汚名(오명)이 남을까 두려워했다. 이름이 널리 퍼졌을 때 그러한 명성이나 명예가 헛되이 전해진 것이 아니라는 이 말은 모두 이름날 만한 까닭이 있음을 가리킨다. 司馬遷(사마천)이 ‘史記(사기)’에서 몇 가지 예를 들었다. 戰國時代(전국시대) 각 제후국에서 세력을 떨친 戰國四公子(전국사공자) 중에서 孟嘗君(맹상군)이 잘 알려졌다.

그는 인재들을 후하게 대접하여 식객이 3000명이나 됐고 하찮은 재주를 가진 사람들도 내치지 않아 鷄鳴狗盜(계명구도)의 성어까지 남겼다. 사마천이 열전 후기에서 ‘세상에 전하기를 맹상군이 객을 좋아하고 스스로 즐거워하였다고 하니 그 이름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世之傳孟嘗君好客自喜 名不虛矣/ 세지전맹상군호객자희 명불허의)’고 좋게 평했다.

떠돌이 건달이지만 신의를 지키고 남을 위했던 협객들을 특별히 모은 游俠(유협)열전에도 언급한다. 漢(한)나라 이후 유명했던 朱家(주가) 劇孟(극맹) 郭解(곽해) 등의 협객들은 때로 법에 저촉되기도 했지만 남을 위하고 품성이 깨끗했다면서 ‘그들의 명성은 결코 거짓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고, 선비들이 이유 없이 그들을 따랐을 리 것도 없다(名不虛立 士不虛附/ 명불허립 사불허부)’고 칭찬했다.

실력에 걸맞은 이름을 떨치는 사람들이 각계에 포진하고 있겠지만 예로 칸 국제영화제서의 켄 로치 감독을 들 수 있다. 80세의 영국 노장인 그는 빈곤층의 사회보장제도와 고용문제를 비판한 작품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로 최고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2006년에도 대상을 수상한 바 있고, 지금까지 13차례나 칸영화제에 초청됐다니 그 이력을 알만하다. 단지 노장으로서의 예우가 아니라 노동 계층의 현실을 통찰한 영화의 업적을 인정한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3-3.html
kolaswqetsrq 11.02 02:47
여고금슬如鼓琴瑟 - 거문고와 비파 합주와 같이 부부가 화합하다.

여고금슬(如鼓琴瑟) - 거문고와 비파 합주와 같이 부부가 화합하다.

같을 여(女/3) 북 고(鼓/0) 거문고 금(玉/8) 큰거문고 슬(玉/9)

모르던 남녀 두 사람이 만나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는 부부는 그래서 二姓之合(이성지합)으로 二身同體(이신동체)가 된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속담은 서로 싸워도 금방 화해하는 사이라 夫婦之訾 如刀割水(부부지자 여도할수, 訾는 헐뜯을 자)로 한역되기도 했다.

부부는 3주간 서로 연구하여 3개월간 사랑하고, 3년간 싸움을 한 뒤 30년간은 참고 견딘다는 말이 있다. 사랑이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맞지 않는 것도 맞춰가는 것이 부부생활이다. 그래도 미워하고 헤어지는 부부도 나타나는 법이라 예부터 화합을 바라는 성어가 많이 내려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말이 琴瑟(금슬)일 것이다. 서기전 11세기에서 6세기까지 중국 고대 周(주)나라의 노래를 모은 ‘詩經(시경)’에 등장한다. 琴(금)은 거문고, 瑟(슬)은 큰 거문고를 말하는데 비파를 가리키기도 한단다. 제일 첫 머리가 國風(국풍)이고 周南 關雎(주남 관저, 雎는 물수리 저)에 이것을 썼다. ‘올망졸망 마름풀을 이리 뜯고 저리 뜯고, 아리따운 아가씨를 금슬 좋게 사귀려네(參差荇菜 左右采之 窈窕淑女 琴瑟友之/ 삼치행채 좌우채지 요조숙녀 금슬우지).’ 差는 다를 차 또는 어긋날 치, 荇은 마름풀 행. 얌전하고 정숙한 窈窕淑女(요조숙녀)가 다섯 번이나 반복된다.

거문고와 비파(琴瑟)를 두드리는 것과 같다(如鼓)고 표현한 부부의 화합이 함께 쓰인 부분은 잔치 때 불렸다는 小雅(소아)의 常棣(상체, 棣는 산앵두나무 체)에서다. ‘처자식의 정과 뜻이 잘 맞음이 금슬을 타는 듯하네. 형제 사이도 잘 맞아 화락하고 또한 즐겁도다(妻子好合 如鼓瑟琴 兄弟歸翕 和樂且湛/ 처자호합 여고슬금 형제귀흡 화락차담).’ 翕은 모을 흡, 湛은 즐길 담. 시경 원문은 이 부분에서만 차례가 바뀌어 如鼓瑟琴(여고슬금)으로 나오는데 孔子(공자)가 인용한 中庸(중용)에서나 우리 고전 예문도 모두 같이 따랐다.

금슬이나 슬금이나 이 두 악기가 함께 소리를 내면 화음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고 하여 부부의 화합을 나타내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때는 변하여 ‘금실’로 표기하지만 성어는 금슬상화(琴瑟相和), 琴瑟之樂(금슬지락), 和如琴瑟(화여금슬) 등으로 사용된다. 이렇게 부부애를 강조해도 거문고와 비파 소리를 듣는 것이 드물어서인지 오래 같이 산 부부가 돌아서는 黃昏離婚(황혼이혼)이 늘어난다고 한다. 여러 사정이 겹쳐 젊은이의 결혼도 기피하는 추세다. 금슬의 화음이 곳곳에 퍼져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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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47
노갑이을怒甲移乙 - 갑에 당한 노여움을 을에게 화풀이하다.

노갑이을(怒甲移乙) - 갑에 당한 노여움을 을에게 화풀이하다.

성낼 노(心/5) 갑옷 갑(田/0) 옮길 이(禾/6) 새 을(乙/0)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했거나 손해를 입었을 때 태연할 사람은 드물다. ‘노하더라도 죄를 짓지 말라’, ‘분노하는 자에게 분노로써 갚지 말라’라는 좋은 말은 성인의 가르침만으로 존재할 때가 많다. 더하여 예수님은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대주라며 사랑을 강조했지만 보통 사람들은 당한 이상으로 갚아야 속이 후련하다. 그런데 해를 끼친 상대방이 지위가 높거나 가까이 할 수 없을 때는 자기 속만 끓일 수도 없어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한다. 갑에 당한 노여움(怒甲)을 을에게 화풀이 한다(移乙)는 뜻과 같은 우리 속담이 유달리 많은 것은 백성들의 억울함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일 듯하다.

굳이 비슷한 뜻의 쓰임새를 찾는다면 중국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의 昭公(소공) 19년 조를 든다. 楚(초)나라의 子瑕(자하)라는 사람이 엉뚱한 보복을 삼가라고 하면서 제후에게 말하는 데서 나왔다. ‘그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속담에 집에서 화를 내고 시장가서 화풀이한다고 한 것은 우리 초나라를 두고 한 말입니다(彼何罪 諺所謂室於怒 市於色者 楚之謂矣/ 피하죄 언소위실어노 시어색자 초지위의).’ 여기에서 室於怒 市於色(실어노 시어색), 줄여서 室怒市色(실노시색)이라 쓰기도 한다.

여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속담은 풍부하다. ‘다리 밑에서 원을 꾸짖는다’는 직접 말을 못하고 잘 들리지 않는 곳에서 욕이나 불평을 늘어놓는다는 뜻이다. 맞서서는 아무 소리도 못하면서 돌아서서 큰소리치는 소심한 사람을 비웃기도 한다. 旬五志(순오지) 번역으로 橋下叱倅(교하질쉬)다. 倅는 버금, 원 쉬.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鐘樓批頰 沙平反目(종로비협 사평반목)으로 쓰이는데 ‘서울서 매 맞고 시골에서 주먹질 한다’, ‘영에서 뺨 맞고 집에 와서 계집 찬다’, ‘시어미 미워서 개 배때기 찬다’ 등 무궁무진하게 변용된다.

화를 정당하게 푸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화를 낼 줄 모르는 것은 바보이고 화를 내지 않는 것은 현명한 사람이란 서양 격언이 있다. 화가 났을 때 정당하게 풀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엉뚱하게 약자에게 화풀이하거나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끔찍한 일이 종종 일어난다. 큰 죄인은 요리조리 법망을 빠져 나가고 올챙이만 걸린다. 지은 행위에 걸맞게 벌을 가하지 않는다면 일반 사람들까지 화가 나는 분노사회가 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57.html
kolaswqetsrq 11.02 02:48
반구부추反裘負芻 - 가죽옷을 입고 꼴을 지다, 어리석어 본말을 모르다.

반구부추(反裘負芻) - 가죽옷을 입고 꼴을 지다, 어리석어 본말을 모르다.

돌이킬 반(又/2) 갖옷 구(衣/7) 질 부(貝/2) 꼴 추(艸/4)

‘오이를 거꾸로 먹어도 제멋’이란 말이 있다. 제 일은 스스로 할 것이니 남은 상관하지 말라는 뜻이다. 짐승의 털가죽으로 안을 댄 옷이 갖옷이고 裘(구)로 쓴다. 겨울 추위를 막아주는 옷으로는 가장 유용하여 夏葛冬裘(하갈동구)는 철이나 격에 맞는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런데 갖옷을 뒤집어 입고 짐승에게 먹이는 풀을 지고 간다(負芻)면 멋을 부려서는 아닐 터이고 어떤 연유일까. 아껴야 될 옷을 험한 농사일을 하면서 입는 것도 그렇지만 뒤집은 것은 어리석어 일의 본말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성어가 됐다.

중국 前漢(전한) 시대 왕족 출신의 학자 劉向(유향)은 유명한 戰國策(전국책) 외에도 說苑(설원), 列女傳(열녀전)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 중 과거사를 거울삼아 후대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한 고사집 ‘新序(신서)’에 이 말이 사용됐다. 卷二(권이) 雜事(잡사)에 실린 내용을 보자. 戰國時代(전국시대) 초기 魏(위)나라의 文侯(문후, 재위 기원전 445~396)는 훌륭한 인재를 등용하고 공평한 정치를 펼쳐 초기의 강국으로 만든 개명군주였다.

문후가 어느 때 나들이를 나갔다가 ‘길에서 가죽옷을 뒤집어 입은 채 꼴을 지고 가는 사람을 보고(見路人反裘而負芻/ 견로인반구이부추)’ 그 연유를 물었다. 그 농부는 가죽옷의 털을 아끼기 위해서 뒤집어 입었다고 했다. 문후는 다시 ‘그렇다면 가죽옷의 안이 닳게 되면 털이 붙어 있을 곳이 없지 않느냐(若不知其裡盡 而毛無所恃耶/ 약부지기리진 이모무소시야)?’고 나무랐다. 恃는 믿을 시. 멋을 부리거나 아끼기 위해 뒤집어 입거나 상관하지 않으면 그뿐이라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음을 깨우친 것이다.

털과 가죽이 들어가는 또 다른 성어가 있다. 가죽도 없는데 어떻게 털을 붙일 수 있겠는가(皮之不存 毛將安傅/ 피지부존 모장안부)는 근본적인 일을 제쳐 놓고 부차적인 문제에만 매달린다는 뜻이다. 이런 일은 알게 모르게 일상에서도 흔하다. 나라 전체로 보아 경제는 뒷전인 채 복지를 늘린다며 여기저기 현금 지원하는 것도 나중에는 빚이 커져 가죽을 다 닳게 만드는 일이 되기 쉽다.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후를 잘 살필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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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49
하로동선夏爐冬扇 -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 쓸모없는 물건

하로동선(夏爐冬扇) -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 쓸모없는 물건

여름 하(夊/7) 화로 로(火/16) 겨울 동(冫/3) 부채 선(戶/6)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이 가장 값지다. 겨울을 따스하게 보내는데 햇볕만큼 값진 것이 없다며 이것을 임금께 드리려는 농부의 獻曝之忱(헌폭지침, 忱은 정성 침) 선물이라도 어리석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성이 담겼더라도 격이나 때에 맞춘 것이 아니면 도무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농부의 햇볕 선물을 땀 흘리는 여름에 줬다면 주고도 벌 받을 일이다.

마찬가지로 여름철에 화로(夏爐)를 내놓거나 겨울철에 부채(冬扇)를 선물한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필요할 때는 환영받다가 불편해지면 천대받는 사물, 또는 아무 소용없는 말이나 재주를 비유하는 성어가 됐다. 冬扇夏爐(동선하로), 秋風團扇(추풍단선), 秋扇(추선)이라 해도 같은 뜻이다.

後漢(후한) 초기의 사상가이자 학자인 王充(왕충, 27~97)은 독창성이 넘치는 자유주의, 언론자유를 내세워 속된 신앙, 유교적 권위를 비판해 중국사상사에서 지위가 우뚝하다. 대표적 저서인 ‘論衡(논형)’은 당시의 전통적인 학문과 정치를 비판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逢遇(봉우)편의 내용을 보자. 벼슬길에 나아감에 있어서의 운명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어질고 총명한 사람은 중용되어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자신의 잘못이라 주장한다. ‘이로울 것 없는 재능을 바치고 보탬이 되지 않는 의견을 내는 것은 여름에 화로를 올리고 겨울에 부채를 바치는 것과 같다(作無益之能 納無補之說 以夏進爐 以冬秦扇/ 작무익지능 납무보지설 이하진로 이동진선).’

이것은 군주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고,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는 것이니 화를 입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했다. 그런데 군주와 신하가 연이 닿지 않으면 유익한 진언을 해도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반대로 부덕을 지적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복을 받는 경우도 있다. 비록 여름의 화로라도 축축한 것을 말릴 수 있고 겨울철 부채도 불씨를 일으킬 수 있으니, 빛을 받지 못해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각박하게 취급하지 말라는 이야기의 전제다. / 글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19.html
kolaswqetsrq 11.02 02:49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

 "
이 말은 고대 희브리어로 말한 대로 이뤄진다는 뜻이라 합니다.
",

빌 게이츠는 아침마다 이렇게 주문을 되새긴다고 합니다.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난 할 수 있어!”

말은 잠재의식을 자극 합니다. 인간의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은 자율 신경계에 자동으로 입력돼 그대로 실현 가능성을 높여 줍니다.

자신의 희망을 매일 아침 입버릇처럼 주문하십시오. 그러면 그 희망은 이뤄집니다.

“Abracadabra!” 말한 대로 이루어지리라!!!!!

- 좋은 글 중에서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abracadabra.html
kolaswqetsrq 11.02 02:51
암에 좋은 음식 11가지

암에 좋은 음식 11가지

1. 꿀

꿀은 비타민, 단백질, 미네랄, 아미노산등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천연 종합영양제이다.

2. 단호박

단호박은 암세포의 증식을 막아주고, 암을 억제해 주는 효과가 있다.

3. 마늘

구운 마늘에는 미량원소인 게르마늄이 다른 건강식품보다 풍부하게 들어있다.

4. 베리류

블루베리, 딸기, 산딸기 등의 베리류는 활성산소를 억제해 준다.

5. 브로콜리

헬리코박터균을 죽이는 설포라페인 성분이 들어있어 암 예방 및 치료에 효과적이다.

6. 빨간색 파프리카

베타카로틴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7. 수박

수분이 많이 들어있어 노폐물 배출에 효과적이고 전립선 암 예방 및 치료에 효과가 있다.

8. 오리고기

불포화지방이 많아 항암치료중인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9. 콩

콩 껍질에 있는 글리시테인 성분은 항암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콩이 들어간 음식인 두부, 두유, 된장, 청국장 등을 꾸준히 먹는 것이 좋다.

10. 토마토

토마토의 붉은색을 나타내는 라이코펜 성분은 항암작용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특히 유방암, 전립선암, 소화기 계통의 암 예방 및 치료에 효과적인 항암치료 음식이다.

11. 현미밥

현미에 들어있는 섬유질은 수분을 흡수하여 발암성분을 희석해서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해 주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정상으로 돌려주는 효과가 있어 암 뿐만 아니라 고혈압, 당뇨병, 동맥경화 등의 각종 성인병 예방 및 치료에 효과적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1_24.html
kolaswqetsrq 11.02 02:51
위를 건강하게 하는 식품 11가지

위를 건강하게 하는 식품 11가지

1. 귤(귤껍질)

소화가 잘 안 되어 헛배가 부르고 식욕이 떨어질 때 먹으면 좋다.

2. 토마토

다량의 비타민과 무기질 성분이 위 점막을 보호하고 위염을 예방한다. 특히 토마토 속의 라이코펜성분은 위의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 효과적이다.

3. 당근

당근에 함유된 비타민A 성분은 위 기능을 강화한다.

4. 양배추

대표 성분은 비타민U다. 비타민U는 위 점막을 보호하고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을 개선한다.

또 위의 상처를 치유하는 효능이 있다.

5. 브로콜리

항산화물질인 베타카로틴, 셀레늄이 풍부해 위암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6. 부추

위를 따뜻하게 해준다. 부추를 꾸준히 먹으면 복부팽만감과 더부룩함 등의 증상이 개선된다.

7. 단호박

섬유질, 탄수화물, 무기질, 비타민이 풍부하다. 특히 카로틴 형태의 비타민A가 많고 위를 따뜻하게 해준다.

8. 생강

소화불량, 설사, 구토에 효과가 좋다. 위를 따뜻하게 하고 위벽을 보호해 위산으로 인한 속쓰림을 예방한다.

9. 김

항궤양 성분인 비타민U가 풍부하게 들어 있어, 위궤양 또는 십이지장궤양 등에 좋다. 약해진 위벽을 튼튼하게 하고, 장운동을 활발하게 해 원활한 배변활동에 도움이 된다.

10. 사과

주성분인 펙틴은 탄수화물의 하나로 위장운동을 도와 정장 작용을 한다.

11. 검은콩

체내 독소를 없애고 위궤양과 위염을 예방한다. 또, 신장 기능을 강화해 배뇨를 원활하게 하고, 위암 등 소화기 암을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1_10.html
kolaswqetsrq 11.02 02:52
전자레인지 청소하는 방법

전자레인지 청소하는 방법

1. 레몬즙을 짜서 그릇에 담는다.

먼저 레몬즙을 그릇에 짜서 담는다. 꼭 레몬즙이 아니더라도 귤껍질과 물을 함께 그릇에 담으면 레몬즙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레몬즙이나 귤껍질에는 구연산 성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살균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2. 3분~5분간 돌린다.

레몬즙 또는 귤껍질이 담긴 그릇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3분에서 5분간 돌린다. 그럼, 전자레인지가 구연산 성분을 가진 습기로 가득 차게 된다. 이후 3분에서 5분간 대기하면서 전자레인지의 묵을 때를 불린다.

3. 마른 행주로 닦아낸다.

습기로 불어난 묵은 때는 마른 행주로 구석구석 닦아내면 쉽게 청소가 된다. 위 방법으로 전자레인지의 눌어붙은 묵은 때뿐만 아니라 살균 청소까지 가능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03.html
kolaswqetsrq 11.02 02:53
■세종의 싱크탱크Think Tank, 집현전 3편

■세종의 싱크탱크(Think Tank), 집현전 3편

집현전은 세종의 각별한 배려 속에서 수백 종의 연구 보고서와 50여종의 책을 편찬하였다. ‘향약집성방’, ‘삼강행실도’, ‘자치통감’, ‘국조오례의’, ‘역대병요’와 같이 의학, 역사, 의례, 국방 등 전 분야에 걸쳐 많은 책들이 편찬되어 세종시대 문화의 꽃을 활짝 피우게 하였다. 집현전의 설치는 무엇보다 세종이 혼자만의 힘으로 국가정책을 결정하지 않고 다수 인재들에게 학문 연구를 지원하고 그 성과를 국가정책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리고 집현전에서 배출된 쟁쟁한 인적자원은 15세기 찬란한 민족문화를 완성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집현전이라는 국가의 인재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함께하는 정치’의 모범을 보였다는 점에서 세종은 가장 위대한 국왕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세종이 집현전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과도 함께 정치 현안을 의논하고자 했던 점은 토지 세법에 관한 의견을 직접 물어 본 것에서 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1430년(세종 12년) 세종은 ‘공법’이라는 새로운 세법(稅法) 시안을 갖고 백성들에게 그 찬반 의사를 묻는, 요즈음으로 치면 ‘국민투표’를 실시하였다. 토지 1결당 일정하게 10두(斗)의 세금을 정하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이전까지 관리가 직접 논밭을 돌아보면서 수확량을 확인하고 그에 따라 세금을 정하는 방식이 부정이 저질러지면서 문제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1430년 3월 5일부터 8월 10일까지 무려 5개월간에 걸쳐 찬반 투표가 실시되었다. 17만 여명의 백성들이 투표에 참여해 9만8000여명이 찬성, 7만4000여명이 반대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찬반 상황은 지역별로 ‘세종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국가의 총역량이 집중된 사업이었다. 당시 인구수를 고려하면 17만 여명의 참여는 전 백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찬반 의견이 워낙 팽팽했기에 세종은 바로 세법을 확정하지 않고 다시 면밀한 조사를 거쳤다. 1437년 8월 전라도와 경상도부터 공법의 시범 실시가 이루어졌고, 1441년(세종 23년)에는 충청도까지 확대되었다. 1444년(세종 26년) ‘공법’은 마침내 토지의 크기와 풍흉(豐凶)의 수확량을 모두 고려하는 ‘연분 9등법’ ‘전분 6등법’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국민투표를 실시한 지 14년 만의 일이었다.

농업이 근본 산업이었던 당시, 백성들이 경작하는 토지에 대한 세금 결정은 백성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이처럼 중요한 사안이었기에 세종은 오랜 시간을 두고 신하와 백성들의 충분한 의견을 수렴한 끝에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흔히들 왕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전제왕권 시대에 이처럼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이 실로 놀랍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think-tank-3_10.html
kolaswqetsrq 11.02 02:53
■세종의 싱크탱크Think Tank, 집현전 1편

■세종의 싱크탱크(Think Tank), 집현전 1편

세종대왕은 그 자신의 능력도 뛰어났지만 나라의 인재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한 군주였다. 능력을 우선하면서도 포용성과 객관성을 가진 세종의 인재등용은 오늘날의 정치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황희와 같은 명재상, 북방을 개척한 김종서, 집현전의 성삼문과 신숙주, 음악가 박연, 천민 출신의 과학자 장영실까지 세종대에 배출된 인재들은 우리 역사에서 가히 ‘드림팀’이라고 부를 만하다. 인재를 알아본 세종의 눈이 이들을 역사의 인물로 영원히 남게 한 것이다.

왕으로서, 정치가로서 세종의 위대함을 부인하는 한국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 백성들을 위한 ‘농사직설’ ‘향약집성방’ 등의 농서와 의서 간행,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발탁과 해시계·자격루·측우기 등의 각종 과학기구들의 발명, 박연으로 대표되는 궁중음악의 완성 등 세종대의 찬란한 민족문화의 성과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면면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이 바로 역량 있는 국가 인재들을 폭넓게 활용했다는 점이다.

특히, 집현전의 설치는 세종의 인재활용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은 즉위와 함께 집현전을 국가기관으로 승격시켜 학문의 중심기구로 삼았고, 집현전에 재주와 행실이 뛰어난 젊은 인재들을 모았다. 신숙주, 성삼문, 정인지, 최항 등 세종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속속 집현전에 모여들었다.

집현전은 1420년(세종 2년)에 설치되어 세조 2년에 없어질 때까지 약 37년간을 존속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집현전이 우리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은 이곳에서 세종시대의 대표적인 학문과 문화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집현전은 세종대에서 단종대까지 총 96명의 학자가 거쳐 갔다. 조선시대 문과 합격자 명단을 기록한 ‘국조방목’의 기록을 보면 집현전 학자 전원이 문과 급제자 출신임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수석인 장원급제자가 정인지를 비롯한 16명, 2등이 6명, 3등이 신숙주 등 11명, 4등이 7명으로 전체 집현전 학자 중 절반에 가까운 46명이 5등 안에 합격한 그야말로 국가의 최고 인재들이 발탁되었다. 이들 우수한 인재에게 세종이 부여한 임무는 독서와 학문연구,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정책 결정과 편찬 사업이었다.

집현전은 현재의 경복궁 수정전 자리로, 국왕이 조회와 정사를 보는 근정전이나 사정전과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만큼 세종이 집현전에 대한 관심이 컸음을 의미한다. 세종은 학문이 매우 뛰어난 군주였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정책을 결정하지 않았다. 집현전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충분히 반영하려 했다는 점에서 인재를 활용하는 세종의 면모가 잘 나타나고 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think-tank-1_10.html
kolaswqetsrq 11.02 02:54
■ 조선의 싱크탱크Think Tank 2편

■ 조선의 싱크탱크(Think Tank) 2편

태조에게 정도전이 있었다면 태종에게는 하륜(河崙, 1347~1416년)이 있었다. 하륜은 태종을 왕위에 올리는 데 기여하고, 왕이 된 태종을 보필하면서 마지막까지 ‘태종의 참모’로 살아갔다. 하륜이 본격적으로 태종의 참모가 되어가는 과정에는 ‘관상(觀相)’에 관한 일화가 있다.(태종실록) 하륜이 본래 관상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친구이자 태종의 장인인 민제를 보고, “내가 관상을 많이 보지만 공의 둘째 사위 같은 사람은 없었다. 내가 뵙고자 하니 공은 그 뜻을 말해주십시오”라 부탁했고, 결국 민제의 주선으로 태종을 만난 하륜은 마음으로 태종을 섬기게 됐다고 한다. 관상을 본 하륜이 이방원의 풍모(風貌)를 보고 먼저 접근했다는 것은 킹메이커로서 하륜의 자질을 잘 보여준다.

1402년(태종 2년) 하륜은 명 영락제의 등극을 축하하는 사절로 가서 이듬해 4월에 명나라 사신 고득(高得) 등과 함께 황제의 고명(誥命)과 인장(印章)을 받고 귀국했다. 궁궐 안 신문고 설치와 지폐인 저화(楮貨) 유통과 같은 태종 시대의 주요 정책에도 늘 하륜이 있었다. 1401년 태종은 백성들의 민원을 듣는 신문고 설치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조정 신료들 다수가 우려를 표방했으나, 하륜은 신문고의 설치가 백성들에게는 큰 혜택이 될 수 있음을 역설했다. 태종의 절대적인 신임 속에 하륜은 고령임에도 관직에 있었다. 하륜은 70세가 되던 1416년 선왕의 능침을 순시하러 함길도(함경북도와 함경남도 지역의 조선 전기 명칭)에 들렀다가 객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죽는 날까지 태종의 참모로서 그 역할을 다했던 것이다.

조선 역사상 가장 큰 전란은 임진왜란이었다. 7년에 걸친 장기전이 지속되면서 백성들의 희생은 컸고, 농업 경제 기반도 무너졌다. 왕은 백성을 버리고 피난을 갔고, 경복궁 등 문화재 손실도 엄청났다. 이런 위기의 시기에도 명 참모는 있었다. 전란 전 이순신을 천거하고 임진왜란 때 현장 지휘자의 역할을 했던 유성룡(柳成龍·1542~1607년)이나, 외교와 국방·경제 모든 분야에 능통하며 선조에서 인조대에 이르기까지 여섯번이나 영의정을 지낸 이원익과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유성룡은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좌의정과 병조판서·도체찰사를 겸하면서 전시 정부의 최고 책임자가 됐다. 그는 평양성 사수를 포기하고 의주로 피난하려는 선조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해놓고 또 골짜기까지 들어간다면 다시는 한양을 수복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6월11일 선조는 최흥원·정철 등과 영변을 향해 길을 떠났고, 유성룡은 순찰사 이원익 등과 함께 명나라 장수를 맞이하기 위해 평양에 머물렀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think-tank-2.html
kolaswqetsrq 11.02 02:55
■ 정미수

■ 정미수

정미수는 문종의 외손(外孫)으로 아버지는 영양위(寧陽尉)에 봉해진 정종이고, 어머니는 문종의 적녀(嫡女)인 경혜공주이다. 정미수가 태어날 당시 아버지 정종이 세조에 대한 반기를 들었다가 광주(光州)로 유배를 가 있던 바람에 정미수는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나이 2살 때 외숙부 단종이 영월에서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으며, 곧이어 아버지 정종도 처형당했다. 7살 때인 1462년(세조 8년) 어명으로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들어왔다. 일반적으로 역신(逆臣)의 가족들은 대명률에 따라 연좌(緣坐)되어야 하나, 세조의 특명으로 경혜공주와 정미수는 연좌를 면하였고, 직위도 모두 회복하였다. 성종이 왕이 되기 전 아직 사저(私邸)에 있을 때 같은 유모인 백어리니의 손에서 자랐다. 그 인연으로 성종이 왕이 된 후, 그는 1473년(성종4년) 돈녕부직장을 거쳐 형조정랑이 되었다.

죄인의 자식이 관리가 되었다 하여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았으나, 성종의 도움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1476년 중부참봉을 거쳐 이듬해에는 선전관이 되었고, 그 뒤 사헌부장령·충청도관찰사·도승지·공조참판·한성부판윤 등을 지냈다. 어머니인 경혜공주가 병석에 누워 있을 때, 당시 16세이던 정미수는 항상 약물을 먼저 맛보고 옷도 벗지 않았으며, 경혜공주의 대변을 직접 맛보는 등 병간호를 극진히 했던 효성 깊은 아들이었다고 한다.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이 되어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올랐으며,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정미수에게는 외숙모가 되는 단종 비 정순왕후는 폐위 후 정업원에서 살다가 정미수의 집에서 승하하였다. 그래서 단종과 정순왕후의 제사도 정미수가 받들었다. 정순왕후는 정미수의 선산에 안장되었는데, 현재의 사릉(思陵)이다. 사릉은 왕비릉으로 복위되기 전까지 해주 정씨 집안에서 관리하였다. 2012년 7월 경혜공주가 정미수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내용을 담은 《경혜공주 분재기(分財記)》가 발견되었다. 해당 문서는 해주 정씨 종가(宗家)에서 소유하고 있던 문서로, 정미수가 정선방에 있는 집과 통진(지금의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집 등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는 내용이 담겨있다. 유자광에 의하면 정미수가 현덕왕후(경혜공주의 어머니)의 복권(復權)을 처음 주장했고, 남효온(南孝溫)과 김일손(金馹孫)을 사주하여 복권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1512년(중종7년) 음력 4월 15일 향년 5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그는 이덕량의 딸과 혼인하였고 첩도 따로 두었으나, 자녀가 없어 7촌 조카인 정승휴로 하여금 후사를 이었다.

〈연산군 일기〉에는 정미수에 대해 "문종의 외손으로 궁중에서 자라나 호화와 사치가 습관이 되었으나, 선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며 청의(淸議)를 말하여, 갑자사화에서 사람들을 구하기에 힘썼다."라고 평하고 있다. 정미수의 신도비문(神道碑文)을 지은 강혼은 정미수에 대해 "외모가 수려하고 옥사(獄事)에 대해 논의할 때에는 매사에 깐깐하여 일의 경중을 꼼꼼히 따졌다. 형조에 있으면서 억울한 처지에 놓인 죄 없는 사람들을 살렸다." 등의 평이 남아 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42.html
kolaswqetsrq 11.02 02:55
우리 몸에 좋은 과일 7가지

우리 몸에 좋은 과일 7가지

1. 키위

포타시움 마그네시움 비타민E와 섬유질이 풍부합니다. 비타민C는 오렌지의 두배나 있습니다.

2. 사과

하루에 사과 한 알씩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지요. 비록 비타민C는 적지만 플라보노이드가 있어서 비타민C의 작용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직장암 심장마비 중풍의 위험을 낮추어 줍니다.

3. 딸기

몸을 보호하는 과일입니다. 과일가운데 항산화제가 높아서 암을 유발하고 혈액을 응고시키는 물질에서 몸을 보호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4. 오렌지

매우 귀한 과실이지요. 하루에 2-4개 먹으면 감기 안 걸리고 콜레스트롤을 내리고 신장결석을 녹여주고, 직장암 위험을 감소시킵니다.

5. 수박

갈증 해소에 최고입니다. 92%가 물이고 글루틴이 많아 면역을 높이고 암을 이기는 항산화제가 많습니다. 비타민C와 포타시움도 많습니다.

6. 구아바와 파파야

비타민C가 풍부하고 섬유가 많아서 변비에 좋습니다. 파파야는 카로틴이 많아서 눈에 좋습니다.

7. 보라색 과일

포도와 블루베리는 대표적인 보라색 과일입니다. 포도는 적포도주의 심장병 예방 효과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껍질에 들어있는 플라보노이드는 동물성 지방이 혈관에 달라붙는 것을 막고 좋은 콜레스테롤 수준을 높여줍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7_10.html
kolaswqetsrq 11.02 02:56
스트레스 해소법 5가지

스트레스 해소법 5가지

1. 사랑

사랑을 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을 억제하는 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지고 도파민 분비도 늘어난다. 도파민은 사람이 즐겁고 유쾌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데, 사랑에 빠지면 분비량이 늘어난다. 사랑의 건강효과는 사랑한다는 말로도 나타난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김재엽 교수팀이 노인 남성을 대상으로 7주간 배우자에게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표현을 매일 하게 했더니 매일 이 말을 반복한 그룹은 혈액 내 산화 스트레스 지수가 50% 감소했고, 항산화 능력 지수는 30% 증가했다. 이 외에 우울증이 개선되고 심장 박동이 안정됐다.

2. 스킨십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옥시토신이 분비되는데, 옥시토신은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에 모두 좋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특히 키스나 포옹을 하면 옥시토신이 많이 분비돼 연인의 애정을 높여 주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키스를 하면 스트레스를 자극하는 글루코 코르티코이드의 생성을 억제해 스트레스를 줄여 주며, 뇌를 자극해 엔도르핀이 나오게 해 아픈 통증을 줄여 준다. 엔도르핀은 모르핀보다 200배 강한 천연 진통제다. 키스를 하면 교감신경이 침샘을 자극해 침 분비가 늘어난다. 침에는 항균물질이 있어 면역기능을 높인다. 키스할 때 뇌에선 코르티솔의 분비를 막아 준다. 키스를 즐기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평균 5년 정도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3. 웃음

"15초 동안 크게 웃기만 해도 엔도르핀과 면역세포가 활성돼 수명이 이틀 연장된다"는 미국 인디애나주 메모리얼 병원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있다. 18년 동안 웃음을 연구한 리버트 박사는 웃는 사람의 혈액을 분석한 결과, 바이러스나 암세포를 공격하는 NK세포가 활성화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웃음이 보약"이라는 말이 사실인 셈이다. 웃음은 혈류량을 증가시켜 산소 공급을 늘려 준다. 웃을 땐 진통제 역할을 하는 엔도르핀, 엔케팔린, 옥시토신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특히 한바탕 크게 웃고 나면 온몸 근육에서 수축과 이완이 자연스럽게 일어나 체내 대사율이 증가하며, 관절 범위의 유연성이 10% 증가한다.

4. 명상과 심호흡

명상은 뇌에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뇌파(알파파)를 활성화한다. 조용하고 쾌적한 장소에 앉아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배로 천천히 깊게 숨을 쉬는 복식호흡을 5분 동안 하면 긴장을 푸는 데 효과적이다. 명상할 때는 한 가지 단어를 생각하거나, 해변 같은 평화로운 광경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부드러운 음악은 평온한 마음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심호흡과 함께 점진적으로 근육을 이완하면 효과가 배가된다. 심호흡을 하면 팽창된 허파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 위해 부교감 신경계가 작동되면서 몸이 이완되고 답답함이 진정된다. 긴장 상황일 때 3~5분간 천천히 심호흡하는 것만으로 맥박과 호흡이 감소하고 긴장이 풀어져 심신이 편안해진다.

5. 일광욕·산림욕

일광욕은 정신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하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의 분비를 늘려 준다.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겨울에 우울증이 많은 것은 세로토닌 부족과 관계가 있다. 하루 30분 이상 햇볕을 쬔다. 산림욕을 하는 것도 행복에 도움이 되는데, 산림이나 폭포 주변 공기에 많이 포함돼 있는 음이온은 부교감 신경을 일깨워 기분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36.html
kolaswqetsrq 11.02 02:57
■ 백어리니白於里尼

■ 백어리니(白於里尼)

백어리니는 문종이 세자이던 시절 세자빈 권씨가 친정에서 데리고 온 여종이었다. 그녀는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총명했다. 세자빈 권씨는 경혜공주를 출산한 후 총명한 백씨를 경혜공주의 유모(乳母)로 들였다. 하지만 계유정난 이후 경혜공주의 남편 정종이 역모로 몰려 죽자, 백어리니는 수양대군에게로 넘겨졌다.

파란만장 기구한 삶을 살았던 경혜공주가 원수같은 세조가 왕으로 있는 궁궐에 자식들을 맡기고 홀로 떠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인 현덕왕후의 친정노비이자 유모였던 백어리니의 도움이 컸다. 백어리니는 당시에 세조의 손자인 자을산군(성종)의 유모였는데, 정희왕후 윤씨(세조 비)와 함께 "자식들을 위해서 왕(세조)을 용서해야한다" 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수양대군은 총명한 백씨를 자신의 큰아들(의경세자)에게 주었고, 그 인연으로 백씨는 훗날 성종이 되는 자을산군의 유모가 되었다. 자을산군은 백씨를 마치 생모처럼 존중했으며, 훗날 인수대비(성종 비)가 되는 수빈 한씨 역시 백씨를 극진히 신임했다. 이 같은 인연으로 백씨는 성종이 즉위한 후 봉보부인(奉保夫人)의 자격으로 입궁(入宮)했다. 이처럼 인수대비와 백씨의 인연은 정희대비와 조두대의 인연 못지않게 돈독하여, 정희대비가 조두대를 측근으로 중용했듯이 인수대비 역시 백씨를 측근으로 중용하여 제2의 비선실세로 국정농단을 또 다시 자행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정희대비 사후(死後)에는 궁중의 비선실세가 조두대 한명에서 백씨까지 더하여 두 명으로 늘었난 셈이다. 당연히 권력실세에 빌붙으려는 자들은 조두대와 백어리니에게 줄을 댔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공(李拱)이라는 인물이다. 이공은 세종 대의 유명한 역법학자 이순지의 아들인데, 실록에는 이들의 국정농단 실태가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 이공(李拱)이 봉보부인 백씨의 조카딸을 첩으로 삼고 백씨 부부를 부모처럼 섬겼다. 순천부사가 되어서는 몰래 뇌물을 들여 백씨와 깊이 사귀었다. 임기가 만료되어 곧 승지가 되었다가 불상사(不祥事)로 파직되었는데 또 얼마 안 되어 특별히 가선대부에 올라 호조판서가 되었다. 백씨가 아들을 장가 보내던 날, 이공이 백씨의 집안일을 마치 늙은 종처럼 맡아 보았으므로 보는 사람들이 다 비웃었다. 하지만 이공은 권세와 이익을 달게 여겨 스스로 좋은 계책이라고 생각하였다. 안주목사가 되어서는 더욱 부지런히 섬겨 뇌물을 땅으로 나르고 바다로 날라 바쳤다.” 《성종실록: 성종 18년(1487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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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58
■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3편

■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3편

광주 유배지는 통진에 비해 감시가 훨씬 심했다. 집 주변으로 담장과 난간이 높직하게 둘러 처져 있었으며, 감시병들도 많았다. 게다가 남자 종은 부릴 수 없었고, 여종 세 명만 부릴 수 있었다. 남자 종들을 시켜 무슨 음모를 꾸밀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공주의 동생인 단종은 상왕(上王)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 갔다가 이듬해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세조 3년(1457년) 10월 이후에는 정종에 대한 감시가 더더욱 강화되었다. 정종은 공공연히 세조에게 반감을 품은 발언을 하고 다녔고, 결국 세조 7년(1461년) 반역을 도모하였다는 죄로 단종이 죽은 지 4년 뒤에 능지처참(陵遲處斬)에 처해져 죽었다. 그의 시신마저도 팔도로 흩어져 흔적조차 없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부모도, 동생도, 남편도 모두 잃은 공주의 나이는 겨우 스물여섯이었다. 남편이 사형당할 때 그녀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임산부에 애까지 딸린 공주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일자, 이를 의식한 수양대군(세조)은 공주를 사면(赦免)하고 한성으로 불러들였다. 실록에서는 공주가 무척 가난하여 세조가 노비를 보내주고 내수사(內需司:궁중 물품관리 기관)로 하여금 집을 지어주게 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야사(野史)인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사육신 사건 이후 경혜공주는 전라도 순천부의 노비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순천부사가 그녀를 노비로 부리려 하자, 공주가 수령 집무실인 동헌에 들어가 의자에 앉으면서 “나는 왕의 딸이다. 비록 죄가 있어 귀양을 왔지만, 수령이 어찌 감히 내게 노비의 일을 시킨단 말이냐?”며 호통을 친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주의 신분을 끝까지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 역모죄로 죽었으니 원래대로라면 연좌제로 경혜공주와 두 자녀는 노비가 되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실록에도 정종이 죽고 반년만인 1462년 5월에 세조가 경혜공주에게 노비를 내려줄 것을 지시한 기록이 있고, 2012년에 발견된 경혜공주 사망 3일 전에 외아들 정미수에게 남긴 재산 상속에 관한 기록인 《경혜공주 분재기(分財記)》에서 "내가 불행히 병이 들어 유일한 아들인 미수가 아직 혼인도 못했는데 지금 홀연히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노비는 갑작스러운 사이에 낱낱이 기록해 줄 겨를이 없어 먼저 정선방(貞善坊)에 있는 하사받은 집과 통진(지금의 경기도 김포)에 있는 전답(田畓)을 준다"고 적혀 있다. 그러므로 야사가 허구라는 게 확실히 입증되었다.

경혜공주는 딸을 출산한 이후 두 아이를 왕궁에 맡기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수양대군의 손자인 성종이 재위할 때 서른여덟의 짧은 삶을 마감하게 된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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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58
■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1편

■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1편

경혜공주(敬惠公主)는 조선 제5대 왕인 문종의 적장녀(嫡長女)이다. 조선시대 임금 중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여운 단종의 친누이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왕위에 올라 삼촌에게 왕위도 빼앗기고 목숨도 빼앗긴 단종 못지않게 파란만장하고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여인이다. 10여 년 전 《공주의 남자》라는 드라마에서 그 삶이 다루어 진 적이 있다.

경혜공주는 세종이 왕위에 있을 때인 1436년에 세자 이향(李珦 :문종)과 권씨(현덕왕후)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왕이 아닌 세자인 데다가 어머니가 세자의 첩이었기 때문에, 출생 당시의 경혜공주는 공주가 아니라 옹주였다. 세자의 정실부인, 즉 세자빈이 낳은 딸에게는 정2품 군주(郡主), 세자의 첩이 낳은 딸에게는 정3품 현주(縣主)라는 작위를 수여했다. 그것도 출생 직후 곧바로 작위를 주는 게 아니라, 보통은 일곱 살 이후에 작위를 수여했다. 아마도 유아 사망율이 높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경혜공주는 처음에는 ‘현주’였던 것이다.

비록 첩의 딸이기는 했지만, 어린 공주의 삶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두 살 때, 어머니가 세자빈으로 승격되면서, 동궁전 즉 세자의 처소인 경복궁의 자선당(資善堂)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어린 소녀는 아버지가 왕이 되면 공주가 될것이라는 꿈을 안고 살았으리라. 하지만, 여섯 살 때 어머니가 동생(훗날의 단종)을 낳자마자 죽는 바람에 궁을 떠나야만 했다. 당시의 관습대로 재액(災厄)을 피하기 위해 궁(宮)이 아닌 조유례의 집에서 그 부인 및 외가의 여종인 유모 백씨의 손에 컸다. 그녀는 미모가 한양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로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때까지도 그녀의 삶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이 무렵부터는 정2품 평창군주(平昌郡主)라는 작위를 받고 그에 따른 특권과 대우를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 세종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열네 살 때부터 경혜공주의 삶에는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열다섯 살이 되어도 세종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왕실에서는 그녀의 혼인을 서둘렀다. 만약 세종이 사망한다면 삼년상(三年喪) 동안은 혼인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삼년상의 기간은 36개월이 아니라 윤달을 제외한 25개월이었다(윤달이 있으면 25개월보다 길어졌다). 왕실 식구들은 보통 10대 초반에 결혼했기 때문에, 삼년상을 치를 경우 경혜공주는 혼기를 놓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왕실에서 급히 얻은 배우자는 전(前) 한성부윤 정충경(鄭忠敬)의 아들인 정종(鄭悰)이었다. 한성부윤은 오늘날로 치면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공주와 정종은 세종 32년 1월 24일(1450년 2월 6일) 혼인하였다. 이때 공주는 열다섯 살이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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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2:59
뇌졸중에 좋은 음식 4가지

뇌졸중에 좋은 음식 4가지

1. 꽁치

뇌졸중에 좋은 음식으로 먼저 꽁치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꽁치에 들어있는 오메가-3 지방산이 심근경색을 비롯해 고혈압과 같은 심각한 성인병을 예방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또한 혈액의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늘려주기 때문에 동맥경화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비타민A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시력 발달에도 좋으며 빈혈을 예방하고 뼈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데요~ 이로인해 꽁치를 섭취하면 뇌졸중 전조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2. 당근

당근은 여러가지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이 영양분들이 골고루 균형을 이루고 있어 뇌졸중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비타민A가 부족해서 생길 수 있는 안구건조, 만성피로 등에 매우 효과적이며 혈압을 내려주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어 뇌졸중에 좋은 음식입니다. 당근 100g을 생즙으로 만들어 하루 3번씩 섭취해주면 고혈압에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유나 주스와 함께 섭취하면 변비에 도움을 줍니다. 시중에 파는 당근주스 또한 류마티즘, 노안 백내장, 뇌경색에 효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3. 샐러리 생즙

샐러리는 여성들의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유명한데요~샐러리 특유의 향과 맛때문에 생즙으로 먹기 거북할 수 있지만, 섭취할 경우 뇌졸중 예방에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 많이 사용되는 식품으로 비타민B의 함량이 높아 강장제로 인기가 좋습니다. 또한 비타민C와 철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경련을 진정시키며 혈압을 내리고 정혈, 이뇨작용으로 뇌졸중 전조증상을 완화시켜줍니다. 고혈압과 생리불순을 치료하는 데 매우 좋은 음식이기도 하죠!

4. 다시마

다시마는 바닷물속에 90여종이나 있는 미네랄을 흡수해 자라왔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철 건강 관리에도 좋은 음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혈중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어 뇌졸중에 좋은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합니다. 염분이 적고 미끌미끌한 다시마의 섬유질이 혈액의 나쁜 콜레스테롤을 내보내 탄력성을 유지시켜줍니다. 또한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 칼륨이 나트륨의 배설을 촉진하여 고혈압, 심장병, 동맥경화와 같은 성인병을 치료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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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00
건강유지와 스트레스 방지법

건강유지와 스트레스 방지법

⊙ 건강을 유지하는 5대 요소

1. 좋은 영양상태

2. 운동

3. 좋은 정신적 성향

4. 유머감각

5.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것

⊙ 스트레스를 줄이는 5가지 방법

1. 어떤일이 일어나도 최선을 다한다.

2. 날마다 자연과 만나고 발밑의 땅을 느낀다.

3. 일 또는 산책을 하면서 몸을 움직인다.

4. 날마다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 나눈다. 혼자이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5. 삶과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고, 생활에서 유머를 찾는다.

⊙건강을 누리게 해주는 7가지 비결

1. 건강에 좋은 것을 먹고 마시라.

2.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라.

3. 담배를 피우지 말라.

4.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

5. 스트레스에 대처하라.

6. 긴밀한 사회적 유대 관계를 유지하라.

7. 질병과 사고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신중한 예방 조처를 취하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69.html
kolaswqetsrq 11.02 03:00
빈 속에 먹으면 안되는 음식 9가지

빈 속에 먹으면 안되는 음식 9가지

1. 고구마

고구마에는 타닌과 아교질이 함유되어 있기에 위벽을 자극하여 더욱 많은 위산을 분비하여 속이 쓰리는 등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2. 감

감에는 비교적 많은 펙틴과 타닌산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 두 가지 물질이 위산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위결석을 형성할 수 있다.

3. 우유

우유에는 대량의 단백질이 함유되었다. 때문에 빈속에 마시면 단백질이 열량으로 전화하여 소모되기에 영양·보양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우유는 응당 과자, 빵과 같이 밀가루를 함유한 식품과 함께 먹거나 식후 2시간 혹은 잠자기 전에 먹어도 된다.

4. 사탕

사탕은 쉽게 소화되고 흡수되는 식품으로서 빈속에 많은 사탕을 먹으면 인체는 단시간에 충분한 인슐린을 분비하여 혈당의 정상치를 유지할 수 없기에 혈액 중 혈당이 갑자기 상승하여 눈병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사탕은 산성식품이기에 빈속에 먹으면 유기체내의 산성·알칼리성의 평형과 여러 가지 미생물의 평형을 파괴하여 건강에 해롭다.

5. 귤

귤은 대량의 유기산, 주석산, 구연산 등을 함유하고 있어 빈속에 먹으면 위산이 급증하여 위점막에 해로운 자극을 조성하게 된다.

6. 토마토

토마토에는 비교적 많은 펙틴과 타닌산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 두 가지 물질이 위산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용해되기 어려운 겔덩어리를 산생하여 위결석을 형성할 수 있다.

7. 요구르트

빈속에 요구르트를 먹으면 요구르트의 보건작용이 감소된다. 식후 2시간 혹은 잠자기 전에 먹으면 보양·보건, 소화촉진 작용뿐만 아니라 배기·변통작용도 일으킬 수 있다.

8. 바나나

바나나에는 비교적 많은 마그네슘원소가 함유되어 있기에 빈속에 먹으면 인체 내의 마그네슘이 급증하여 인체 혈액 중 마그네슘·칼슘 평형을 파괴하는바 심혈관에 억제작용을 일으켜 신체건강에 해롭다.

9. 두유

두유에는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다. 때문에 빈속에 마시면 단백질이 열량으로 전화하여 소모되기에 영양·보양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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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01
■ 조선시대 국정농단 사건 5편

■ 조선시대 국정농단 사건 5편

돌이켜보면 정희대비의 불명예 퇴진은 사소하다면 사소한 익명서 사건이 발단이었다. 그리고 익명서의 발단은 정희대비의 친정과 측근 조두대의 국정농단으로 최개지가 억울하게 패소했다고 하는 소송사건이었다. 그런데 실제 최개지의 패소가 국정농단 때문인지 아니면 최개지 본인의 잘못 때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개지 사건은 흐지부지되었고, 정희대비의 친정과 조두대에 대한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종 14년(1483) 정희대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조두대의 영향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비록 정희대비의 수렴청정은 끝났지만 왕실 최고 어른으로서의 영향력은 여전했고, 조두대에 대한 신임 역시 여전했기 때문이다. 정희대비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조두대는 연이어 인수대비의 강력한 신임을 확보함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았다.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이른바 변처녕(邊處寧) 사건이었다.

성종 22년(1491년) 겨울, 명나라 황태자가 조만간 책봉되리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성종은 이를 축하하기 위해 진하사(進賀使:축하사절)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성종 23년 봄에 진하 정사에 정괄, 부사에 변처녕이 임명되었다. 당시 조선의 거상(巨商) 재벌들은 북경무역을 통해 큰 이익을 남겼다. 조선에서 북경으로 갈 때는 인삼을 가져다가 팔아 이익을 남겼고, 올 때는 또 비단이나 고급 약재를 가져와서 이익을 남겼다. 하지만 북경무역을 위해서는 사신 행렬에 합류해야만 가능했다. 이에 따라 명나라 사행(使行)이 결정되면 조선을 대표하는 거상(巨商)들 사이에 격렬한 경쟁이 벌어졌다.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거상(巨商) 재벌은 고귀지(高貴枝)와 조복중이었다. 고귀지는 정희대비의 친정인 파평 윤씨에 줄을 대고 있었고, 조복중은 조두대의 조카였다.

진하부사에 임명된 변처녕은 처음에 고귀지의 아버지 고윤량(高允良)을 수행군관 명목으로 사신 행렬에 합류시켰다. 본래 수행군관은 사신을 호위하기 위한 무관이기에 장사꾼이 할 수 없는 임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귀지의 아버지는 돈과 인맥을 동원해 그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가 갑자기 조복중으로 교체되었다. 당연히 고귀지는 조복중이 자신보다 더 많은 뇌물을 썼거나, 아니면 조두대를 이용했을 것이라 짐작했다. 분개한 고귀지는 조복중을 찾아가 크게 따졌다. 싸움이 커져 결국 사헌부에 적발되었고 정치문제로 비화되었다.

-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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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02
■ 조선시대 국정농단 사건 3편

■ 조선시대 국정농단 사건 3편

조두대는 정희대비는 물론 인수대비(의경세자의 부인이자 성종의 어머니)와도 깊은 신뢰가 있었다. 인수대비의 대표작인 <내훈(內訓)>의 발문(跋文)을 조두대가 썼다. “(...) 신(臣)이 가만히 살펴보니 역대의 어진 왕비는 시부모를 부지런히 섬겨 인효(仁孝)의 덕을 다했고, 자식을 엄히 키워 국가의 경사를 이룬 자가 많았지만, 직접 교훈서를 지어 훈계한 자는 거의 없었습니다.(...)”는 내용으로 볼 때, 조두대는 분명 역사(歷史)와 고사(古事)에 두루 능통했다.

수렴청정을 하는 정희대비의 말씀을 관장하는 궁녀일 뿐만 아니라, 국왕 성종의 생모인 인수대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전언(典言) 조두대의 영향력은 실로 상상하고도 남을 만했다. 당연히 조두대의 영향력에 빌붙으려는 자들이 줄을 섰다. 이러한 비선실세를 이용해서 절대 권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내알(內謁)이었다. 말 그대로 안에서 은밀하게 자행되는 알현과 청탁이 내알(內謁)이다. 한마디로 ‘조선판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이라고 할 수 있다.

조두대는 자신의 내알, 나아가 그 내알에 빌붙으려는 자들을 이용해서 거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물론 자신은 궁중에 있었으므로 직접 나서지 않고, 대신 조카 조복중(曹福重)을 내세웠다. 천민 신분의 조복중은 고모인 조두대를 배경으로 국내외의 각종 이권에 개입해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조두대는 큰돈을 시주해 영감암(靈鑑庵)을 중창하기도 했다. 영감암은 오대산 상원사 주변에 있는 암자로 고려 말에 나옹대사가 수도하기도 했지만 조선 건국 후 퇴락했다. 세조 12년(1466) 국왕의 상원사 행차에 동행했던 조두대는 영감암의 사연을 듣고 중창하기로 결심했다. 본인의 입신양명과 부모의 극락왕생 그리고 세조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서였다. 중창공사는 세조 13년 봄부터 예종 1년 가을까지 2년 반이나 걸린 대공사였다. 성종 5년(1474)에는 암자에서 수도하는 스님들의 생활을 위해 논 10섬지기를 시주했는데, 대략 1만 6천 평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이렇게 정희대비의 수렴청정과 더불어 조두대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온갖 구설이 난무했다. 궁중 비화(祕話)에는 거의 빠짐없이 조두대가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성종 6년(1475년) 11월 익명서 사건이 발생했다. 조정중신들이 작당하여 역모를 도모한다는 내용의 괴문서가 승정원 문에 붙었던 것이다. 익명서는 묻지 않고 바로 소각하는 것이 당시 관행이었지만, 이미 소문이 널리 퍼졌고 이름이 거론된 조정중신들은 사퇴의사를 밝혔다. 성종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큰 상을 내걸어 주모자를 색출하려 했다. 만약 주모자가 자수하면 면죄해주고, 모의에 참여한 자가 고발하면, 천인이면 면천하고 양인이면 3품 관직을 내리고, 주모자를 체포 또는 고발하는 자도 같은 상을 내린다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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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국정농단 사건 1편

■ 조선시대 국정농단 사건 1편

조선시대의 궁녀는 “아는 것을 말하지 말고, 들은 것을 기억하지 말라!”는 것을 철칙(鐵則)으로 삼아야했던 신분이었지만, 여종에서 궁녀가 된 성종 시대의 ‘조두대’는 당대의 권력실세로 국정을 농단했던 인물이었다.

조선 제8대 왕 예종이 승하한 뒤, 성종이 왕위에 올랐다. 예종이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후사도 없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13세의 성종은 후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세조의 큰아들로 세자로 책봉되었다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의경세자(덕종)의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신숙주를 비롯한 조정의 중신들은 왕실의 최고 어른인 정희대비(세조 비)에게 수렴청정을 요청했다. 정희대비는 “나는 문자를 몰라 국정을 결단하기 어렵지만, 주상의 생모인 수빈(粹嬪:인수대비)은 문자도 알고 사리도 알아 감당할 만하다”며 사양했지만 대신들의 간청 끝에 수락했다.

이렇게 시작된 정희대비의 수렴청정은 심각한 문제를 불러왔다. 조선시대 행정문서는 한문으로 작성되었고, 그 한문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남성이었기에 문제는 더 심각했다. 문자를 모르는 정희대비의 수렴청정은 우선 승정원에 모이는 문서를 승지들이 모두 한글로 번역했다. 그 다음 번역 문서를 승전색(承傳色:임금의 뜻을 전달함) 환관을 통해 정희대비에게 전달된다. 정희대비가 결재하거나 명령하는 한글 문서는 다시 승전색 환관을 통해 승지들에게 전달되고, 승지들은 이 문서를 한문으로 번역해 해당 관청에 발송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정희대비는 수시로 승전색 환관과 승지들을 만나야 했다. 여성인 정희대비는 이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대안으로 한문에 능숙한 측근 여성을 한명 내세우게 되었다. 당시 정희대비의 측근 여성 중 한문에 능숙한 여성이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성종의 생모이자 정희대비의 큰며느리인 수빈 한씨(인수대비)였고, 다른 한 명은 조두대(曹豆大)라는 여종이었다. 큰며느리 수빈은 한문을 잘 안다는 이유로 수렴청정 적격자로 추천되기까지 됐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희대비는 조두대라는 여종을 측근으로 두게 되었다.

조두대는 환관과 승지를 대신해 정희대비의 결재문서와 명령문을 작성했다. 그리하여 정희대비에게 가는 모든 행정문서는 조두대를 거쳤고, 결재문이나 명령문 역시 조두대의 손을 거치게 되었다. 정희대비와 조두대의 역할에 따라 승정원을 비롯한 궁중기구는 물론 의정부와 6조 등 중앙정부조직이 유명무실화될 수도 있었다. 천민 출신인 궁녀 조두대가 정희대비와 함께 권력구조의 정점에 자리하고 모든 문서를 담당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_22.html
kolaswqetsrq 11.02 03:03
몸에 엄청나게 좋은 청국장의 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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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엄청나게 좋은 청국장의 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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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화를 촉진한다.

1g의 청국장에는 10억마리 이상의 균이 들어있는데 이는 유산균 음료의 100배에 달한다. 이 균은 위와 장에서 소화와 흡수를 돕고 변비와 설사를 예방한다. 청국장 속의 유익한 균이 정장작용을 해 장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만든다. 섬유질도 다른 식품보다 5배 이상 많고, 사포닌도 변비 개선에 도움을 준다. 비타민 B군(B1, B2, B6)이 간을 보호하기 때문에 음주 뒤에 청국장을 먹으면 숙취가 빨리 해소된다.

2. 항암 효과가 있다.

콩이 가지고 있는 사포닌은 발암 억제 작용을 한다. 또한 청국장에 많은 제니스테인은 유방암, 결장암, 직장암, 위암, 폐암, 전립선암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파이틱산, 트립신 억제제 같은 항암 물질도 풍부하다.

3. 노화를 막는다.

비타민 E의 항산화 작용으로 우리 몸속에서 세포가 파괴되는 것을 막는다. 또한 비타민 B군이 풍부하여 피부 노화를 막는다.

4. 비만을 막는다.

청국장에는 비타민 B군과 칼슘을 비롯한 미네랄이 풍부하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신진대사를 촉진해 비만을 막고, 레시틴과 사포닌이 혈액속의 과도한 지방을 흡수하여 배출한다.

5. 뇌졸중을 예방ᆞ치료한다.

레시틴과 단백질 분해 효소가 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이나 콜레스테롤을 녹여 뇌졸증과 같은 혈전질환을 예방ᆞ치료한다.

6. 치매를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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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의 레시틴이 분해되면서 콜린이라는 물질이 생긴다. 콜린은 치매환자에게 부족한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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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당뇨병을 예방한다.

섬유질이 풍부하여 당의 흡수가 천천히 되도록 돕는다. 또한 비타민 B2는 당뇨병 예방에 효과적이다. 레시틴도 인슐린의 분비를 왕성하게 만들어 당뇨병을 예방ᆞ치료하는데 도움을 준다.

8. 고혈압을 치료한다.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바실러스균에 의해 아미노산이 만들어지는데, 아미노산은 고혈압을 일으키는 주요 인자인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의 활성을 억제해 혈압을 떨어뜨린다.

9. 골다공증을 예방한다.

청국장 100g에 칼슘 90mg이 들어 있고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K가 풍부하여

칼슘의 흡수를 돕는다.

10. 심장질환을 예방한다.

단백질 분해 효소가 심장 관련 혈관에 존재할 수 있는 혈전을 녹여 심장질환과 40대 이후에 찾아올 수 있는 돌연사를 예방한다.

11. 빈혈을 막는다.

청국장 100g당 3.3mg의 철분이 들어 있고 악성 빈혈을 막는 비타민B12도 함께 있어 빈혈을 예방한다.

12. 피부미용에 좋다.

레시핀이 장 속에 있는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하고 피부에 주름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피부미용에 좋은 비타민 E와 비타민B군도 많다. 청국장 특유의 점액질은 피부 보습에 효과적이다.

13. 피부병을 치료한다.

피부병 예방과 치료에 좋은 비타민 B2와 B6이 풍부하고 리놀렌산 등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 무좀을 비롯한 각종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

14. 정력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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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에 있는 아르기닌이라는 아미노산과 레시틴은 남성의 정액을 이루는 구성 성분이다. 아르기닌 아미노산은 일산화질소의 전구물질(전 단계물질)로 일산화질소는 음경의 혈액 흐름을 개선시켜 성생활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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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28.html
kolaswqetsrq 11.02 03:04
암세포를 파괴하고 예방하는데 효과적인 식품들

암세포를 파괴하고 예방하는데 효과적인 식품들

1. 위암을 예방하는 마늘

마늘속 알리신 성분이 위암 발생 물질로 지목되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의 감염을 효과적으로 예방해줍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플라이 샤워박사는 일주일에 마늘 18g을 먹으면 위암을 50% 예방할 수 있고, 결장암은 30%를 예방할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2. 간암을 예방하는 양송이버섯

버섯에는 단백질이 풍부하여 손상된 간이 재생하기 위해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할수 있고, 베타글루칸 성분은 면역 강화와 암 예방 및 암세포가 자라는 것을 억제해줍니다. 버섯속 AHCC성분은 암을 공격하는 자연 살상 세포를 활성화해줍니다. 일본 간사이 의대 야수오 가미야마교수는 실험을 통해 버섯의 우수한 항암 효과를 밝혀낸 바 있습니다.

3. 유방암을 예방하는 검은콩

콩에는 식물성 여성 호르몬인 이소플라본이 풍부해 여성호르몬이 지나치게 분비되는 것을 막아 암을 예방해줍니다. 콩을 많이 먹으면 유방 조직의 밀도가 낮아져 가슴이 부드러워지며, 폐경기 증상까지 줄여준다고 알려졌습니다.

4. 자궁암을 예방하는 미역

일본 이로사키 대학 의학부는 실험을 통해 미역에 함유된U-푸코단이라는 섬유소가 암세포를 없애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U-푸코이단은 정상 세포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암세포만을 자멸하도록 유도했으며, 72시간뒤 거의 모든 암세포가 소멸했다고 합니다. 또 미역속 알긴산은 중금속이나 발암물질 등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5. 폐암을 예방하는 시금치

시금치에 많은 엽록소는 암을 저지하며, 엽산과 비타민B12는 암세포가 될수 있는 전암 단계의 세포를 정상 세포로 바꾸어 줍니다. 미국 텍사스 대학 세클교수에 의하면 시금치룰 많이 먹는 흡연자는 폐암에 걸릴 확률이 1/8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시금치는 데치거나 볶아 먹어도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으며 하루 7~8뿌리 정도 먹으면 적당합니다.

6.대장암을 예방하는 생강

생강의 진저롤 성분은 장을 연동시켜 변비를 예방하고 장내 이상 발효를 억제하며, 진행 단계에서 암 증식 세포를 억제한다고 알려졌습니다.

7. 식도암을 예방하는 당근

당근에 많이 들어 있는 베타카로틴은 암 발생과 진행을 억제하며,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부족한 베타카로틴을 보충하게해 식도암, 폐암, 위암을 예방합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매리 워드 박사는 식도암과 위암의 위험이 40~60% 낮은 살람들의 메뉴에 당근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8.전립선암을 예방하는 토마토

토마토 속 리코펜, 비타민 C, 셀레늄등의 항암 성분은 전립선암 세포의 증식을 지연시키고 암 유발 물질이 형성되기 전에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연구팀의 연구에 의하면 일주일에 최고 10번 이상 토마토가 들어간 음식을 먹은 사람은 전립선암 발생률이 45% 낮았다고 합니다. 토마토는 하루 1~2개만 먹어도 충분합니다.

9. 피부암을 예방하는 늙은 호박

늙은호박에 들어 있는 루테인은 피부암을 예방하며 베타카로틴은 항산화 작용을 합니다. 미국 마운트 사이나이 의대 제임스 스펜서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피부암 환자에게 5년간 베타카로틴을 먹게 한결과 몇가지 피부암 세포 형성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10. 혈액암을 예방하는 녹차

녹차속 카테킨 성분은 정상 효소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암세포가 증식하는데 필수적인 효소의 활성을 억제합니다.

▶암 세포가 좋아하는 영양분

1. 설탕은 암을 키운다.

설탕섭취를 줄이는 것은 암 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중요한 한 가지를 없애는 것이다. 아스파탐과 같은 대용품 역시 해롭다. 좋은 자연적 대용품은 마누카 꿀 또는 당밀 같은 것이지만, 이것도 매우 적은 분량이어야 한다.

2. 우유는 인체 특히 위장 내관에서 점액을 생산하도록 한다.

암은 이점액을 먹는다. 따라서 우유를 줄이고 무가당 두유로 대체하면, 암 세포는 굶어 죽을 것이다.

3.암 세포는 산성 환경에서 나타난다.

육식 중심의 색생활은 산성이다. 생선을 먹는 것과 소고기나 돼지고기보다 약간의 닭고기가 최선이다. 또한 육류는 가축 항생제, 성장 호르몬과 기생충을 포함하고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08.html
kolaswqetsrq 11.02 03:05
비타민E의 노화방지 효과

비타민E의 노화방지 효과

비타민E는 노화에 대한 강력 방어제이며 심장질환과 암을 예방하고 면역력을 증강시켜 줍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의 몸에 이롭게 작용하는 강력한 항산화제이기에 만일 비타민E를 복용하고 있지 않다면 오늘부터 즉시 복용하세요~

⓵ 동맥경화를 방지한다

비타민E는 노화에 대한 우리의 가장 큰 두려움인 동맥경화를 박아준다.LDL 콜레스테롤이 동맥벽을 침투하여 혈액 찌꺼기의 누적이 동맥 폐쇠의 첫단계라 할수있다. 따라서LDL콜레스테롤의 산화와 분해를 막으면 동맥의 폐쇠, 경색 및 붕괴를 초기에 차단할 수 있다.

⓶ 심장발작을 봉쇄한다

미 하버드대학에서 비타민E를 복용 하면 심장질환의 발생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⓷ 면역력을 소생시킨다

면역력 반응은 거의 청년의 수준으로 증가시킨다. 병에 대항하는 백혈구의 증식과 같은 면역기능이 10-50% 이상을 증가 시킨다. 비타민E가 면역세포막의 지방이 유리기 공격에 의해 산화 되는 것을 막는데 도움을 준다.

⓸ 암을 막는다

비타민E를 건강식품의 형태로 복용한 사람은 결장암에 걸릴확률이 낮아진다. 비타민E를 복용할 경우 입과 목의 암이 발생할 위험성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항암 효과는 대부분 비타민E의 면역항진 기능에 의한 것이다. 또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한다.

⓹ 관절염을 완화 시킨다

최대 1200mg의 비타민E를 복용한 결과 류마티즘 관절염으로 인한 통증, 부종 및 관절강직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흔히 사용하는 항염증성 약물과 동일하다.

⓺ 백내장을 지연 시킨다

백내장 발생을 예방하고 호전시킨다. 비타민C의 효과가 더욱 강력하기는 하지만 비타민E를 보조 섭취하면 위험성을 30-40% 낮출수 있다.

⓻ 뇌및 혈액의 노화를 지연 시킨다

뇌에서 혈액순환도 향상시키고 비타민E가 치매를 포함하여 노화와 관련된 정신기능 상실을 호전 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⓼ 퇴화된 동맥을 소생 시킨다

비타민E가 동맥의 기름 찌꺼기를 제거 시킨다. 주요 심혈관성 위험을 낮춰준다. 또 심장발작을 막아준다.

9 노화방지 기능

비타민E는 강력한 지용성 항산화제로 지방이 많은 곳에서 활발하게 작용한다. 특히 뇌동맥및 면역체계의 퇴화현상을예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0 식품과의 관계

비타민E는 지용성으로 식물성 기름(콩기름, 해바라기 기름, 및 옥수수기름), 견과류(호두,아몬드,땅콩,잣 등) 및 녹황색 채소류(시금치,아스파라거스 등) 에 풍부하며 달걀,현미 등에도 소량 들어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e.html
kolaswqetsrq 11.02 03:05
혈관에 보약이 되는 음식들

혈관에 보약이 되는 음식들

❶ 콩

콩의 주요 성분인 레시틴, 사포닌, 이소플라본은 혈액을 깨끗하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콩에 들어 있는 레시틴은 물이나 기름과도 잘 융화하는 성질이 있어, 혈액 중에 레시틴이 충분하면 콜레스테롤은 혈액에 녹아 장으로 운반되어 처리된다.그 결과 혈액 속의 불필요한 콜레스테롤이 혈관 벽에 붙어 있지 않아 동맥경화 예방에 도움이 된다.

❷ 견과류

땅 콩, 아몬드, 호두 등 견과류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영양소가 비타민E다. 또한 베타카로틴과 치매 예방에 유효한 레시틴도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땅콩의 떫은 껍질에는 레스베라트롤이라는 폴리페놀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는 강력한 항산화작용을 한다. 콜레스테롤을 낮춰 혈액을 깨끗하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❸ 해조류

섬유질이 풍부한 대표적인 저열량 식품이다. 다시마, 미역 등의 해조류는 건강에 좋을뿐더러 살이 찌지 않는 식품으로 인기가 있다. 또한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등의 수치를 낮추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특히 다시마에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알라닌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는 혈압을 낮추는 작용을 한다.

❹ 녹황색 채소

깨끗한 혈액, 탄력 있는 혈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활성산소와 대응해야 한다. 토마토, 당근, 호박, 시금치 등의 녹황색 채소는 뛰어난 항산화 성분을 갖고 있다.녹황색

채소에 풍부한 대표적인 영양성분은 비타민C, 베타카로틴, 비타민E. 이러한 항산화 비타민이 활성산소로부터 몸을 보호해준다.

❺ 등푸른 생선

신선한 등푸른 생선에 들어 있는 EPA와 DHA는 나쁜 LDL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을 감소시키는 작용을 한다. 또한 좋은 HDL 콜레스테롤을 증가시키고 혈전을 녹이는 작용도 한다. 이는 혈액을 깨끗하게 해 동맥경화 예방에 도움이 된다.

❻ 토마토

토마토는 타임지에서 선정한 10대 건강식품 중 하나. 토마토의 대표적인 영양성분은 바로 빨간 색소인 리코펜. 독성이 강한 활성산소는 혈관에 상처를 입혀 각종 질병과 노화를 촉진시킨다. 강력한 항산화 성분으로 밝혀진 리코펜은 우리 몸을 지키는 효소를 생성한다. 하루 1개씩 토마토를 섭취하면 원활한 혈액순환에 효과를 볼 수 있다.

❼ 마늘

마늘은 강력한 항산화작용을 한다. 항산화작용은 동맥경화 예방 및 건강한 혈관 유지에 효과적이다. 특히 마늘의 매운맛의 근원이 혈액을 맑게 해준다

❽ 양파

양파에 있는 유효성분 중 하나가 퀘르세틴인데, 이는 양파의 황색 색소 성분으로 황산화작용에 의해 동맥경화를 방지하는 효능이 있다. 또 하나는 매운맛을 내는 유황 화합물인 유화프로필이다. 조리법에 따라 혈당치, 중성지방,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작용을 한다.

❾ 깨

깨에는 깨끗한 혈액이나 건강한 혈관 유지에 도움을 주는 세사미놀과 세사민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하지만 열량이 높기 때문에 하루에 큰 숟가락으로 한 스푼 정도만 섭취하도록 한다.

❿ 현미와 보리

현미에는 백미보다 3~4배 많은 섬유질과 비타민E를 비롯한 항산화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또한 보리에 들어 있는 비타민B2는 산화를 억제하고 비타민B1은 혈액을 맑게 해준다. 통곡식에는 섬유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혈액순환에 효과적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05.html
kolaswqetsrq 11.02 03:06
몸에서 나오는 엄청난 항암 치료제

몸에서 나오는 엄청난 항암 치료제

어떠한 항암제, 어떠한 치료제와도 비교할 수 없는 대단한 효과를 지닌 제품이 있는데 우리는 암에 걸리면 어쩌나 걱정하고 살고 있습니다. 팔지도 않고 돈으로 살수도 없는 치료제를 소개합니다.

1. 엔돌핀

1 특징 : 우리 몸속에서 생성되는 약이다. 웃으면 나오는 희한한 제품이다. 배꼽을 쥐고 눈물이 나올정도로 웃을 때 가장 많이 생산된다. 돈으로는 살 수는 없는 약이다. 그냥 웃으면 된다.

2 효능 : 진통효과(몰핀의 200배), 소염효과, 면역력 증강, NK세포(암을 죽이는) 증가시킴, 심장질환을 없애준다. 스트레스해소, 그 밖에 무지하게 많은 효과가 있다.

3 부작용 : 주름살이 조금 생기지만 별 지장이 없다. 머리카락도 안빠지고, 피부가 망가지지 않고 좋아진다. 그러므로 부작용은 없다.

2. 세로토닌

1 특징 : 편안할 때 나오는 호르몬제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자주 만들어지고 좋은 곳에 갈때마다, 좋은 소식을 들었을 때,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 감사한 생각을 할 때, 수시로 생산되는 약이다. 돈으로는 살 수는 없는 약이다. 쉽게 만들수도 있지만 별 신뢰를 하지 않는 약이다.

2 효능 : 마음의 긴장을 없애주고 혈압을 안정시켜준다. 멜라토닌(잠이 오게 하는) 호르몬을 분비케 해주고 엔돌핀도 생산케 도와준다. 우울증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밖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많은 효과가 있다.

3 부작용 : 물론 없다.

3. 도파민

1 특징 : 몸을 유연하게 해준다. 주로 연애할 때, 사랑 할 때, 사랑을 받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로맨틱한 분위기에 젖었을때 나오는 약이다. 돈으로는 살 수 없으나 사랑만 하면 나오는 구하기 쉬운 제품이다.

2 효능 : 엔돌핀과 세로토닌과 함께 생성될 때가 많으며 불편한 남녀의 관계를 금방 뜨거운 관계로 만들어주는 대단한 효과가 있다. 전신의 유전자가 활성화 되게 하는 기적적인 효과를 가졌으며 혈액순환을 도우므로 여성의 얼굴이 예뻐지게 만든다.

3 부작용 : 사랑이 끊어지면 심한 허전함을 몰고 오기 때문에 사랑이 끊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된다. 도파민의 정체를 아는 사람과 사랑을 할 것(참 중요!) 조금 어지러운 증상이 있으며 심장이 약한 사람들은 서서히 복용을 해야 된다.

4. 다이돌핀

1 특징 : 지금까지 제시한 제품 중에 가장 우수한 제품이다. 우리 몸에서만 생산되며 다른 사람에게서 받을수도 줄 수도 없는 제품이다. 노래를 들을 때, 감동 받을 때 나오는 호르몬이다. 감동의 정도에 따라 생성되는 양의 차이가 난다.

2 효능 : 엔돌핀 효과의 4,000배다. 어떻한 크기, 어떠한 형태의 암도 하루 아침에 없어질 수 있게 한다. 통증도 순간에 없어지게 한다. 모든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한다. 죽음의 고통도 벗어나게 하는 대단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3 부작용 : 물론 없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40.html
kolaswqetsrq 11.02 03:07
배를 따뜻하게 하면 100살 이상 살 수 있다

배를 따뜻하게 하면 100살 이상 살 수 있다

○ 화를 내거나 말이 많아도 몸이 차가워진다.

화를 내면 머리가 뜨거워지고 몸이 차가워진다. 반복해서 자주 화를 내면 머리는 항상 무거워져 정신이 맑지 못하고 몸은 차가워져 순환이 안 되어 각종 질병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또한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해도 문제가 된다.

말이 많다는 것은 오장육부의 기운을 입과 혀를 움직이는데 필요한 신경과 근육 쪽으로 몰리게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상이 누적되면 기운이 약한 사람은 오장육부가 기운이 부족하여 차가워지고 병이 생긴다.

하루 종일 앉아서 머리만 쓰고 다리는 쓰지 않으면 다리의 기운이 약해진다. 기운이 약해지면 역시 오장육부의 기능이 저하되고 머리가 무거워진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장시간 일을 해도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진다.

○ 따뜻한 음식은 몸을 따뜻하게 한다.

따뜻한 음식은 위장에서 분해, 발효(소화)시키기가 좋아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차가운 음식이 위장에 들어오면 위장은 차가운 음식을 위장의 따뜻한 기운으로 데워서 소화를 시켜야 하므로 많은 기운이 소모된다.

처음에는 기운이 있어 몸에 들어온 차가운 음식을 녹일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반복되면 차가운 기운에 지게 되어 움츠러들며 소화 장애가 생기고 위장은 기운을 잃게 된다. 또 차가워진 위는 붓거나 통증이 생기고 세균의 침범을 받아 염증과 암(癌)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따뜻한 음식은 건강한 사람, 건강하지 못한 사람 가릴 것 없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장수 노인들의 식습관을 살펴보면 야채를 생으로 먹는 것보다 살짝 데쳐서 나물 반찬으로 먹는 경우가 더 많다. 야채를 데치는 과정에서 차고 나쁜 기운이 빠져나가고 따뜻한 에너지가 보충되어 먹기 좋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 몸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

1. 따뜻한 물을 마셔라.

2. 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마라.

3. 바른말, 고운말, 존댓말을 써라.

4. 다리를 많이 움직여라.

5. 땀을 흘려라.

6. 일과 운동을 열심히 하라.

7. 목욕을 하라.

8. 11자 자세로 걸어라.

9. 따뜻한 차를 많이 마셔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0_9.html
kolaswqetsrq 11.02 03:08
탈모를 막아주는 기특한 식품

탈모를 막아주는 기특한 식품

1. 검은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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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발을 구성하고 발모를 촉진 한다. 검은콩은 단백질의 주공급원으로 모발 성장에 꼭 필요한 시스테인이 함유되어 탈모를 방지하고 지연시킨다. 신장을 강화하고 해독력이 뛰어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영양분이 두피에 골고루 전달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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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흑임자

신진대사와 원활한 혈액순환을 돕는다. 신장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혈액순환이 안 돼 두피와 모발 끝까지 영양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탈모가 생긴다. 검은깨는 신장의 기운을 보충하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레시틴과 불포화지방산, 비타민 E가 풍부해 신진대사를 활성화시킨다.

3. 다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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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발 발육 촉진제 함유. 해조류에는 모발 발육 촉진제인 옥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모발의 구성성분인 케라틴의 형성을 돕는 각종 비타민과 요오드, 아연, 유황, 철분, 칼슘 등이 들어 있어 모발을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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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기자

탈모의 원인인 두피의 열을 내려준다. 신경이 흥분하면 여성형 탈모가 찾아오기 쉬운데 이럴 때 구기자 달인 물을 마시면 신경이 안정된다. 또한 구기자는 모발을 만드는 세포와 조직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 효과가 있다.

5. 잣

모낭을 조여주고 튼튼하게 만든다. 잣은 오장의 기능을 높이는 기능이 뛰어나 피부와 모발에 근본적으로 작용하는 두피 건강 음식이다. 특히 비타민 A와 E가 풍부해 두피의 모공을 튼튼하게 조이는 효과가 있다.

6.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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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 유발 호르몬 DHT 억제. 녹차의 카테킨 성분은 탈모를 유발하는 호르몬 DHT 생성을 억제해 탈모를 예방한다. 또한 녹차의 타닌 성분은 모세혈관을 확장, 신체의 끝부분인 두피의 혈액순환을 도와 탈모를 막고 폴로보노이드 성분은 모공을 조여 청결하게 해준다.
",

7. 사과

탈모를 막는 아연의 훌륭한 공급처. 아연이 부족하면 모낭이 약해져 머리가 쉽게 빠지고 호르몬 불균형으로 세포가 쉽게 재생산되지 않는다. 인체에 아연이 부족하면 탈모, 손톱 기형 등의 증상이 보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 사과는 아연 함유량이 많아 아연 부족으로 인한 탈모에 효과적이다.

8. 호두

비타민과 불포화지방의 보고, 호두의 대표적인 영양분인 비타민 B1과 E는 두피의 노화를 방지하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발모를 촉진한다. 불포화지방산과 미네랄은 피를 맑게 하고 영양분을 공급해 탈모를 예방한다. 특히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 불균형과 신진대사 문제로 인한 탈모에 효과적이다.

9. 석류

천연 에스트로겐의 콜라겐 합성으로 두피에 영양 공급. 석류씨에 풍부한 에스트로겐은 피부의 탄력과 두피 환경에 관여하는 콜라겐 합성을 도와 모발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며,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해 영양을 공급한다.

0. 솔잎

머리털이 솟아나게 하는 양의 기운. 한방에서는 솔잎에 양의 기운이 있어 두피에 에너지를 준다고 한다. 동의보감에도 "솔잎은 머리털을 나게 하며 오장을 편하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비타민 A·C·K는 물론 엽록소와 칼슘이 함유되어 담즙 분비를 촉진해 탈모를 예방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77.html
kolaswqetsrq 11.02 03:08
각종 버섯별 효능 총정리

각종 버섯별 효능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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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야에 널리 여러가지 빛깔과 모양으로 자라나는 버섯들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쉽게 사라지기 때문에 예로부터 신비한 요정의 화신이라고도 불렸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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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은 면역력을 강화시키고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며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손색이 없는 건강 식품이에요. 종류도 이름도 참 다양한 버섯들. 각각의 효능은 어떤지 알아볼까요?

1. 영지버섯

피를 맑게 하고 혈액의 흐름이 원활하도록 돕는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피 속의 노폐물을 없애 당뇨병에 좋다. 간염, 위염, 위궤양 등 소화기 지병에도 효과가 있다.

2. 상황버섯

면역력을 강하게 하고 해독 작용을 한다. 부인병과 식중독, 감기 등에 효과가 있으며 항암 효과도 뛰어나다. 독성이 있어 지나치게 복용하면 위험할 수 있다.

3. 동충하초

기침을 멎게 하고 피로를 푼다. 모세혈관을 넓혀 피부와 근육에 탄력을 준다. 면역 기능을 활성화하여 각종 질병을 예방하며 항암 효과도 뛰어나다.

4. 운지버섯

간세포를 보호하는 성분이 있어 간염 등 만성 간질환에 좋다. 항암 성분이 뛰어나 암 연구에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5. 말굽버섯

소화기 질병에 좋다. 식도암과 위암, 자궁암 등에 효과가 있다. 지혈, 염증, 음식을 먹고 체한 것을 치료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기와버섯 핵산, 단백질, 다당류가 풍부하다. 유선암, 자궁암, 폐암 등의 수술 뒤에 3~4g씩 하루 3번 복용하면 재발을 막을 수 있다.

6. 송이버섯

‘동의보감’에는 송이버섯이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고 매우 향기롭다. 솔 기운을 받으면서 돋는 것으로 버섯 가운데 제일이다’라고 적혀 있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고 혈액순환을 좋게 하는 성분이 있어 동맥경화, 심장병, 당뇨병, 고지혈증 등에도 효과가 있다. 햇볕에 말린 송이버섯은 비타민D 덩어리라 할수 있을 만큼 영양분이 많다. 비타민은 호르몬의 균형을 유지하고 면역력을 키운다.

7. 표고버섯

주변에서 구하기 쉽고 값도 싸서 우리 식탁에 자주 오르는 표고버섯은 예로부터 불로장생의 명약이라 알려졌을 만큼 영양이 풍부하다.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서는 ‘기를 강하게 하고 허기를 느끼지 않게 하여 풍을 고치고 혈액순환을 돕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피를 맑게 하고 식욕을 돋워주는 효과도 있는데, 돼지고기 요리를 할 때 같이 넣으면 흡수가 더 잘된다. 또한 표고버섯에 들어 있는 레티난은 강력한 항암 물질로 면역 체계를 활성화한다. 따라서 암뿐만 아니라 감기 같은 바이러스 질병과 고혈압, 당뇨에도 효과가 있다. 햇볕에 말린 표고버섯은 생표고버섯보다 2배 정도 영양이 많은데, 특히 칼슘 흡수를 돕는 비타민D가 많아 이를 튼튼하게 하고 골다공증을 예방한다.

8. 느타리버섯

요리에 널리 이용되는 느타리버섯은 90% 이상이 수분이며 나머지를 단백질과 지방, 무기질 등이 차지하고 있다. 칼로리가 거의 없고 맛이 좋아 다이어트 식품으로 좋다.

느타리버섯은 비타민 B2, 니아신, 비타민D가 풍부한데 비타민 B2는 성장을 촉진하고 지방, 단백질, 당질의 소화 흡수를 돕는다. 느타리버섯에서 추출한 진액을 암 환자들에게 임상실험한 결과 유방암과 폐암, 간암에 큰 효과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일본에서 발표되기도 했다. 암 치료 과정에서 일어나는 구토, 탈모, 설사 등의 부작용에도 효과가 있다

9. 팽이버섯

각종 아미노산과 비타민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혈압을 조절하고 면역력을 높이며 암과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탁월하다.

특히 팽이버섯을 자주 먹는 사람의 경우 식도암, 위암, 췌장암 발생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반 이하로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10. 양송이버섯

소화를 돕고 정신을 맑게 하며 비타민 D와 비타민 B2, 타이로시나제, 엽산 등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고혈압 예방과 빈혈 치료에 효과가 있다. 전분이 없어 당뇨병과 비만에도 좋다. 항암 작용, 항바이러스 작용, 고혈압 강하 작용, 동맥경화 등에도 큰 효능이 있다.

11. 목이버섯

간장이나 위장이 부었을 때도 사용하며, 편도선염에도 효과가 있다. 한방에서는 나무 종류에 따라 사용을 다르게 한다.

뽕나무에서 자라는 목이버섯은 갱년기 장애에 좋으며, 회화나무 목이버섯은 하혈에 효과가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21.html
kolaswqetsrq 11.02 03:09
체지방을 분해하는 차

체지방을 분해하는 차

❶ 진피차

귤껍질을 진피라고 하는데 이 진피에 들어 있는 히스페리틴 성분이 지방 분해 효과가 있다. 과육보다 많은 양의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어 피로 회복, 피부 미용에도 좋다.

<마시는 법>

귤껍질을 깨끗이 씻어 그늘진 곳에서 바싹 말린다. 진피 50g에 물 1l를 붓고 은근한 불에 끓이다 물이 정도로 줄어들면 불을 끈다. 농약의 위험이 있을 수 있으므로 유기농 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❷ 연비차

감비차라고도 하는 연잎을 끓여 만든 차로 지방 제거 효과가 있기로 유명하다. 중국인들이 기름진 음식을 먹은 후 살을 빼는 다이어트 차이기도 하다. 살이 빠지면서 피부도 고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마시는 법>

깨끗이 씻어 말린 연잎 60g, 율무·산사자 10g씩, 진피 5g, 끓는 물 600ml을 믹서에 넣고 간다. 이것을 다기에 넣고 끓는 물을 부어 우려 마신다.

❸ 오매 산유수차

시고 단맛을 나는 산유수는 지방산이 풍부해 지방 분해를 촉진하고 소화 흡수를 돕는다. 오매는 장의 운동을 원활하게 하기 때문에 소화는 물론 변비, 피부 미용에도 효과적이다.

<마시는 법>

오매 150g, 산유수 75g, 계화원고 2작은술, 설탕 약간을 준비한다. 오매와 산유수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뒤 2l의 물과 함께 강불에서 올려 끓어오르면 약불로 줄여 40분 정도 더 끓인다. 마지막에 계화원액과 설탕을 넣고 좀 더 끓인 다음 2분간 그대로 두었다가 따라 마신다.

❹ 맥아차

맥아는 보리 이삭 가운데 싹이 난 부분을 말린 것. 소화를 돕고 복부 팽만감을 없애주며 지방을 제거하고 변비 해소에도 효과적이다.

<마시는 법>

용기에 물 600ml를 넣고 끓어오르면 맥아 75g을 깨끗이 씻어 넣고 약불에 10분간 끓인 다음 맥아를 걸러내고 마신다.

❺ 상지차

『동의보감』에 비만에 좋은 한방차로 소개되었을 만큼 다이어트에 응용되었다. 식욕을 억제하고 섭취한 음식물의 흡수를 막는다. 탄수화물 흡수억제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공복에는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마시는 법>

잎이 피기 전의 어린 뽕나무 가지를 잘게 썰어 그늘에 말려 볶은 것 30g을 준비해 뜨거운 물 500ml에 우려내 마신다. 한꺼번에 많이 끓여서 식후와 식전에 물처럼 마신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01.html
kolaswqetsrq 11.02 03:10
대장 건강 지키는 8가지 생활습관

대장 건강 지키는 8가지 생활습관

❶ 규칙적인 배변 습관!

붉은색 육류 등 음식물이 장을 통과하는 시간이 길면 발암물질과 장 점막과의 접촉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따라서 대장암 예방을 위해서는 매일 규칙적으로 배변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우리 몸에 음식물이 들어오면 결장에 쌓여 있던 대변 재료가 직장으로 이동하면서 그 자극이 대뇌피질로 전달되어 배변욕구가 일어난다. 이것을 "위대장반사운동" 이라고 하는데, 아침식사 후가 가장 강하다.

배변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데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물 한잔을 마시는 것이 도움이 된다. 배변욕구를 오래 참으면 대장 센서가 마비되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배변욕구 자체를 느낄 수 없다. 물이나 우유, 커피 등을 마셔 가급적 오전 시간에 배변 활동을 하는것이 좋다.

❷ 반찬은 채소와 해조류, 후식은 과일!

배변 활동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채소와 해조류, 과일등 섬유질이 많은 음식이 좋다. 하루에 야구공 크기의 과일 2개, 채소 2접시, 나물 한 접시 분량을 각각 선택해서 먹어보자.

과채류의 색이 진할수록 항산화물질이 풍부해 발암물질을 막아 준다. 색깔마다 비타민C, 베타카로틴, 안토시아닌, 엽산 등 암 억제 물질이 다르므로, 다양한 색깔의 채소와 과일을 고루 먹으면 더 좋다. 엽산을 충분히 섭취하면 대장암과 대장용종 위험이 40-60%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❸ 현미나 잡곡밥, 통밀빵!

탄수화물을 섭취한 뒤 흡수 속도를 반영해 수치화한 값이 당지수다. 당지수가 높은 식품은 탄수화물의 체내 흡수가 빨라 혈당을 급격히 올리고 2차적으로 대장암 발생을 높일 수 있다. 평소 흰쌀밥이나 흰빵 대신에 당지수가 낮은 현미나 잡곡밥, 통밀빵을 자주 먹는 것이 좋다. 대장암 예방에 좋을뿐 아니라 다이어트에도 도움이되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❹ 저녁 과식이 위험한 이유!

아침, 점심식사는 부실하게 하면서 저녁이나 야식은 과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식습관은 대장 건강에 최악이다.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동부지부 건강증진의원 박정범 원장은 "저녁에 섭취 칼로리가 많고 술까지 마시면 하루 총 칼로리가 크게 늘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식습관은 장 안에 부패물질을 한꺼번에 많이 발생시켜 장염이나 궤양 등 대장 관련 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고 했다.

❺ 식후 야외 활동!

직장인이라면 점심식사 뒤에 사무실 밖에서 최소 20분정도 햇볕을 쬐면서 산책을 하자. 스트레스 해소 효과와 함께 햇볕을 받으면 몸 안에서 저절로 생성되는 비타민D로 인해 대장암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스트레스는 그 자체가 대장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 더욱이 한국 남성은 스트레스를 술과 담배로 푸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

❻ 적색육 대신 닭고기와 생선으로!

적색육(붉은 고기)은 소화과정에서 발암물질인 니트로소화합물을 생성한다. 적색육에 함유된 철은 소화되면서 역시 발암물질인 철이온으로 바뀐다. 소주와 삼겹살을 배부르게 먹는 우리의 회식 문화가 대장암 발병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회식 메뉴에 닭고기 등 백색육이나 생선을 포함시키면 대장암 예방은 물론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❼ 술안주는 멸치나 노가리!

부득이 2차를 가야한다면 순한 술을 고르고 안주는 멸치, 노가리 등 뼈째 먹는 생선을 주문하자. 칼슘이 대장암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소주, 양주 등 독주에 소시지 등 적색육 가공식품을 곁들이는 건 최악의 조합이다.

❽ 땀 날 정도로 운동!

매일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을 하자. 집 주변을 뛰는 조깅이나 산책, 줄넘기 등이 좋다. 운동은 장의 움직임을 촉진해 변비를 예방하고, 면역체계를 강화해서 대장암을 예방한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 대장암 위험이 30% 낮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땀 날 정도로 운동을 해야 대장암 위험인자인 비만과 당뇨병을 막을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8_9.html
kolaswqetsrq 11.02 03:11
흑설탕의 효능

흑설탕의 효능

⓵ 잔주름에 효과만점 바나나 흑설탕팩

바나나는 비타민A가 풍부하여 건성피부나 잔주름이 많은 노화피부에 좋아요. 껍질을 벗낀 바나나를 강판에 갈아낸 뒤 흑설탕 에센스와 섞어 세안한 얼굴에 펴바르면 끝! 30분 뒤 미지근한 물로 닦아내면 내 피부두 꿀피부~ 천연팩이니 트러블 걱정도 없겠어요

⓶ 비누와 흑설탕에센스 세안

세안은 피부의 각질과 더러움을 없애주는 가장 기본적인 첫 번째 단계인데요. 피부건조가 심한 환절기에는 흑설탕을 이용하여 세안을 해보세요. 비누에 거품을 내어 세안하고 마지막에 흑설탕과 물을 1:1 비율 로 섞고 끓여 시럽상태로 만든 흑설탕에 센스를 화장솜에 묻혀서 얼굴을 마사지 하듯 닦아내면 되요.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깨끗하게 헹구어 내면 돈답니다. 사실 간단한거 같으면서도 간단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래도 큰 돈 들이는 게 아니니 실천해 보세요

⓷ 보습에 최고! 흑설탕 목욕

표백을 하지 않은 흑설탕은 비타민 미네랄을 공급하여 피부를 윤기 있게 가꾸어 주는데요. 기능성 화장품보다 효과 좋은 천연재료 흑설탕으로 깨끗한 피부를 만드는 게 가능하답니다.

⓸ 리프팅효과 백점! 흑설탕팩

피부의 탄력이 떨어졌을때는 흑설탕으로 팩을 하면 금세 탱탱한 피부가 되는것을 느낄 수가 있는데요. 세안을 한 뒤 흑설탕에센스를 화장솜에 묻혀 얼굴에 올려두는데요. 15분 정도후 미온수로 씻어낸 뒤 찬물로 씻어내면 효과만점 이랍니다.

⓹ 흑설탕 핸드마사지

손이 거칠어 졌을 때에는 흑설탕 에센스를 미지근하게 중탕한 우유를 섞어 손을 마사지하는데요. 마사지한뒤 비닐장갑을 끼고 10분정도 있다가 헹구어내면 손이 한결 보송보송해 진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78.html
kolaswqetsrq 11.02 03:12
체온 1도만 올려도 암癌 이긴다

체온 1도만 올려도 암(癌) 이긴다

현재, 사람의 체온은 36.5°C가 아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36.5°C에 못 미치는 저체온증의 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데 체온 1도만 높여도 암·당뇨·고혈압 이길 수 있다?

“체온 1도만 높이면 만병 이긴다!”

내 몸 건강 완전히 바꿔 줄 잃어버린 체온 1도 되찾는 최고의 건강 비결은?

체온 저하는 신체 대사력, 생명력, 면역력 감소에 관계가 높으며 암 발생 가능성이 증가 합니다. 암 진단을 받은 환자의 대부분이 35도대의 저체온 상태임을 확인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저체온증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암세포가 가장 생존하기 이상적인 온도는 35도 이며 네옵트린이라는 독성 물질을 지속적으로 분비하여 인체의 자율신경계를 교란시켜 체온을 자꾸 낮추게도 합니다.

인체는 항상 정상 체온을 유지하려는 항산성 기능이 있는데 암 환자의 경우 이 항산성 기능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인위적으로 체온을 상승시키고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즉 암은 평생 관리하여야 하는 질병이기에 현대의학적 치료가 끝났다고 방심을 하여서는 안되며 너무 두려워하거나 지나친 심리적 불안감은 좋지 않습니다.

✅ 체온 1°C 올리는 방법.

❶ 반신욕과 족욕

반신욕은 38~40°C의 온도로 10분 이상, 족욕은 40~43°C의 온도로 30분 이상 유지해야 몸 속 온도를 1°C 이상 높일 수 있다. 또 족욕은 잠들기 전 30분~1시간 전에 하면 숙면에 도움을 준다.

❷ 상온의 물 먹기.

냉수 먹고 속차리다 면역력 떨어져 속 망가진다.

❸ 꾸준한 운동 운동을 하게 되면 근육의 활동량을 높이고 체온이 올라가서 면역력도 높아지기 때문에 근육 운동을 해주시는 것이 좋다.

❹ 하루 1시간 정도 햇볕 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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❺ 가벼운 스트레칭과 운동.

우리 몸의 수축된 혈관을 이완시켜 피부까지 온도 전달.

❻ 체온 올리기 필수품 착용.

겨울철에 목도리를 착용하면 체온이 보호한다.

❼ 팥 찜질팩 하기.

집안일을 할 때나 외출 후 귀가 했을 때.

❽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식 섭취.

미역, 다시마, 마늘, 생강등.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_80.html
kolaswqetsrq 11.02 03:12
암 예방을 위한 식사습관

암 예방을 위한 식사습관

1. 조리 시 가급적 기름과 설탕을 적게 사용한다.

2. 패스트푸드를 피하고 섬유소가 많은 자연식품으로 대체한다.

3. 총 에너지 섭취량을 조절해서 자신의 정상 체중과 체지방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4. 백반보다는 잡곡밥과 현미밥을 주식으로 한다.

5. 다양한 곡류와 콩류로 만든 식단을 꾸민다.

6. 곡류는 건조하고 시원한 곳에 보관하고 오래 저장하지 않는다.

7. 매일 다섯 가지 색상(빨강, 초록, 노랑, 보라, 하양)의 과일과 채소를 챙겨 먹는다.

8. 매끼 김치 이외 서너 종류 이상의 채소 반찬을 먹는다.

9. 채소와 과일은 가공되지 않은 신선한 것을 구입하여 바로 사용한다.

10. 과일은 매일 1회 이상 먹는다.

11. 붉은색 육류는 1회 1인분 일주일에 2회를 넘기지 않도록 한다

12. 햄, 소시지 등 가공육을 가능한 삼간다.

13. 육류 조리 시에는 직화구이를 피하고 탄 부분은 먹지 않는다.

14. 눈에 보이는 지방은 제거하고 먹는다

15. 닭, 오리 등 가금류는 껍질을 벗기고 먹도록 한다.

16. 음식을 만들 때는 소금, 간장의 사용을 줄인다.

17. 국물은 짜지 않게 만들고, 양 또한 적게 먹는다.

18. 김치는 싱겁게 저염으로 담가 먹는다.

19. 유제품을 구입할 때는 저지방 제품을 선택한다.

20. 특히 성인 여성은 가능한 하루 한 컵의 우유를 마시는 습관을 들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21.html
kolaswqetsrq 11.02 03:13
증삼살인曾參殺人 - 증삼이 사람을 죽이다, 엉뚱한 소문

증삼살인(曾參殺人) - 증삼이 사람을 죽이다, 엉뚱한 소문

일찍 증(曰/8) 석 삼(一/2) 죽일 살(殳/7) 사람 인(人/0)

증삼이 살인을 했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사람됨을 가장 잘 아는 어머니가 믿을 리 없다. 증삼이 누구인가? 孔子(공자)의 제자로 曾子(증자)로 불리며 顔子(안자)와 함께 가장 훌륭한 제자에 드는 사람이다.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이 한 일을 반성한다는 三省吾身(삼성오신)의 주인공으로 공자의 도를 계승하여 동양의 五聖(오성)중 한 사람으로 불린다. 공자와 안자, 그리고 子思(자사), 孟子(맹자)와 함께이다. 그 뿐 아니다. 어머니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신 효행은 二十四孝(이십사효)의 한 사람으로 꼽게 했다. 이런 증삼이 살인을 하다니 어찌된 일일까.

증삼이 魯(노)나라의 費城(비성)이란 곳에 있을 때였다. 이 마을에 증삼과 이름과 성이 같은 일족이 살았는데 이 同名異人(동명이인)이 사람을 죽여 체포된 적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달려와 어머니에게 증삼이 살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그럴 리 없다며 태연하게 베 짜는 일을 계속했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뛰어와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태연히 할 일을 계속했다. 다시 얼마 뒤 다른 사람이 달려와 증삼의 어머니께 아들이 살인을 했다고 외쳤다. 그러자 증삼의 어머니는 착한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믿고 두려운 나머지 담장을 넘어 도망했다. 증삼의 현명함과 어머니의 신뢰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이 그를 의심하자 가까운 식구조차 믿음을 거두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劉向(유향)이 전국시대 전략가들의 책략을 모은 ‘戰國策(전국책)’의 秦策(진책)에 비유로 든 것이다.

三人成虎(삼인성호)와 똑 같은 말이다. 한 사람이 번잡한 거리에 범이 나타났다고 해도 믿지 않다가 두 사람, 세 사람이 거듭해서 말하면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듭 자기에 유리한 말을 퍼뜨려 남을 모해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게 됐다. 반면 여러 사람이 바른 말을 해도 자기 유리한 대로만 고집을 부리고 전연 믿지 않는 吾不關焉(오불관언)도 문제다. / 제공 : 안병화 (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04.html
kolaswqetsrq 11.02 03:14
포정해우庖丁解牛 - 포정이 소의 뼈와 살을 발라내다.

포정해우(庖丁解牛) - 포정이 소의 뼈와 살을 발라내다.

부엌 포(广/5) 고무래 정(一/1) 풀 해(角/6) 소 우(牛/0)

‘선무당이 장구 탓한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 기술이나 능력이 부족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애매한 도구나 조건만 가지고 나쁘다고 탓함을 비꼬는 말이다. 기술이 뛰어난 명인은 손이 안 보인다. 달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고수는 일을 처리하며 리듬을 탄다. 이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반복 훈련을 거쳤을 것인가.

戰國時代(전국시대) 梁(양)나라에 庖丁(포정)이라는 소잡이 명인이 있었다. 소를 잡아 뼈와 살을 해체하는 솜씨가 신기에 가까웠다. 어느 날 포정이 文惠君(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은 일이 있었는데 소에 손을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짓누르고, 무릎을 구부려 칼을 움직이는 동작이 모두 음률에 맞았다.

그것을 본 문혜군이 감탄하여 어떻게 이런 경지에 이르렀는지 물었다. 포정은 ‘제가 처음 소를 잡았을 때는 소의 겉모습만 보였고, 3년이 지나니 소의 모습은 사라지고 부위별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19년이 지난 지금은 눈으로 소를 보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봅니다.

소의 살과 뼈, 근육 사이의 틈새를 보고 그 사이로 칼을 지나가게 하는데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한 번도 실수로 살이나 뼈를 다치게 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莊子(장자)’의 養生主(양생주)편 첫머리에 나온다. 같은 뜻의 目無全牛(목무전우)도 여기서 나왔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공부를 하고 기술을 익히고 도를 닦아 포정이 된 사람이 많이 있다. 이들이 19년의 포정과 같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생각지 않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따라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입문만 하고선 달인이 된 듯이 자만하다가 사고를 친다. 전문인을 홀대하는 사회는 발전이 늦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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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14
지리멸렬支離滅裂 - 이리저리 흩어지고 찢기다.

지리멸렬(支離滅裂) - 이리저리 흩어지고 찢기다.

지탱할 지(支/0) 떠날 리(隹/11) 멸할 멸(氵/10) 찢어질 렬(衣/6)

한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一絲不亂(일사불란)하게 일을 해 나가다 성공이 보이지 않을 땐 무리에서 뛰쳐나온다. 끝까지 함께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各自圖生(각자도생) 제 갈 길을 찾는다. 그러면서 조직에 피해를 끼치면 風飛雹散(풍비박산)이 되어 망한다.

이럴 경우 자주 쓰이는 성어가 四分五裂(사분오열)이나 土崩瓦解(토붕와해)로 총선 이후의 정당 수습과정을 비유해 소개한 바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이리저리 흩어지고(支離) 찢겨 없어질 정도(滅裂)로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사용되는 것이 이 말이다.

지탱할 支(지)에는 흩어진다는 뜻도 있어 이렇게 풀이되지만 여기에 따르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莊子(장자)’에는 지리가 지체장애를 지닌 사람 이름이고, 멸렬은 엉터리로 아무렇게나 한다는 뜻으로 썼다. 먼저 지리가 나오는 ‘人間世(인간세)’편의 내용을 보자. 支離疏(지리소)란 사람은 턱이 배꼽까지 내려 온 데다 어깨는 머리보다 높고 허리는 두 넓적다리에 끼어있는 장애자였다. 하지만 바느질이나 빨래하는 일로 호구는 어렵지 않았다.

징병할 때도 면제돼 팔을 휘두르며 다녔고 병자에게 곡식을 나누어 줄 때는 다른 사람보다 더 받았다. 그러면서 꼬집는다. 육신이 뒤죽박죽된 사람도 잘 살아가는데 ‘하물며 위선의 덕을 내던진 작자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又況支離其德者乎/ 우황지리기덕자호)?’하고 유가를 비판한다.

‘則陽(칙양)‘편에는 멸렬이 나온다. ’그대는 정치를 하면서 거칠고 서투르게 해서는 안 된다. 백성을 다스리면서 아무렇게나 성의 없이 해서도 안 된다(君爲政焉勿鹵莽 治民焉勿滅裂/ 군위정언물로망 치민언물멸렬).‘ 여기서도 한 문지기가 孔子(공자)의 제자에게 충고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鹵는 개펄 로, 莽은 풀 망.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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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15
민지위도民指爲盜 - 백성들이 도둑이라 일컫다.

민지위도(民指爲盜) - 백성들이 도둑이라 일컫다.

백성 민(氏/1) 가리킬 지(扌/6) 하 위(爪/8) 도둑 도(皿/7)

백성을 다스리고 기르는 지방행정관이 牧民(목민)이다. 순박한 양을 이끄는 사람이란 뜻을 갖는다. 공공의 세금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공직자가 이에 해당된다. 이들이 공정하고 옳은 도의를 행하면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는 韓非子(한비자)의 이야기는 이상일 뿐인지, 가혹한 세금을 징수하는 관리들을 큰 쥐라는 뜻의 碩鼠(석서)나 목을 벨 듯이 겁을 줘서 백성들의 재물을 쥐어짜는 苛斂誅求(가렴주구)란 말이 더 이전부터 있었다.

고려시대부터 淸白吏(청백리)의 전통을 이어 온 우리나라선 어떨까. 소수의 청렴관리를 제외하면 백성을 수탈하는 탐관오리는 여전했던 모양이다. 지방관의 폐해를 비판하며 지켜야 할 도리를 엮은 茶山(다산) 선생의 명저 牧民心書(목민심서)에 보자. 전번 刻意矯革(각의교혁)에서 나온 대로 청렴은 목민관의 기본 임무이고, 모든 선과 덕의 근원이니 그렇지 않고서 목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律己(율기)편 淸心(청심)조의 첫 부분에 이어서 어떤 수령을 도둑이라 하는지 설명한다. ‘목민관이 청렴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가락질하며 도적이라 하고, 마을을 지나게 되면 추하다고 욕하는 소리가 들끓을 것이니, 이 또한 수치스러운 노릇이다(牧之不淸 民指爲盜 閭里所過 醜罵以騰 亦足羞也/ 목지불청 민지위도 여리소과 추매이등 역족수야).’ 閭는 마을 려, 罵는 꾸짖을 매, 騰은 오를 등.

도둑이라 손가락질하는 예로 이야기가 따른다. 어떤 벼슬아치가 도둑을 잡아 심문하는데 물건을 훔친 자신이 도둑이 아니고 관원을 진짜 도적이라 우긴다. ‘유생이 백성들에게 혜택을 베푸는 일은 생각지 않고 권력을 쥐고 일확천금할 생각만 하고, 큰 토호가 대낮에 살인을 해도 뇌물 들어가면 풀려나와 거리를 활보합니다. 관원들이 고래 등 같은 저택에 노복과 기첩의 시중을 받으며 수만의 돈을 긁어모으니 이보다 더 큰 도적이 어디 있겠소?’ 이 말을 들은 관원은 즉시 도둑을 풀어 주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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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16
노어해시魯魚亥豕 - 비슷한 글자를 잘못 쓰거나 읽는 일

노어해시(魯魚亥豕) - 비슷한 글자를 잘못 쓰거나 읽는 일

노나라 로(魚/4) 고기 어(魚/0)돼지 해(亠/4) 돼지 시(豕/0)

노나라 로(魯)자와 고기 어(魚)자를 잘못 쓰거나, 돼지라는 뜻의 亥(해)자와 豕(시)자를 잘못 읽는 일은 인쇄술이 발달한 오늘날엔 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 죽간, 목판에 새길 때 실수가 자주 있었던 모양이다.

글자 모양이 서로 비슷하여 잘못 쓰거나 읽어서 틀리기 쉽다는 말이 전해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거기에 잘못 알고 글자가 틀려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도 가리키게 됐다. 요즘의 출판이나 신문 제작에 교열, 교정을 필수로 두고 있는 것도 이런 오류를 막기 위함이다. 사소한 잘못 하나라도 역사가 되는 신문에선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秦始皇(진시황)의 생부로 알려졌고 정치가이자 대상인이었던 呂不韋(여불위)가 편찬한 ‘呂氏春秋(여씨춘추)’에 이 성어가 나온다. 孔子(공자)의 제자 子夏(자하)가 晉(진)나라로 가는 길에 누군가가 역사책을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들어보니 ‘진나라 군대가 진을 칠 때 돼지 세 마리로 황하를 건넜다(晉師伐秦 三豕渡河/ 진사벌진 삼시도하)’라는 뜻으로 잘못 풀이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자하는 三豕(삼시)가 아니고 己亥(기해)라고 바르게 고쳐줬다. 그러면서 몸 기(己)와 석 삼(三)자가 모양이 비슷하고, 돼지 시(豕)자와 돼지 해(亥)자도 닮아 잘못 읽기 쉽다고 했다. 己亥는 옛날 사람들이 60갑자로 날짜를 표시하는 것이므로 ‘기해 날에 강을 건넜다(己亥渡河/ 기해도하)’로 되는데 잘못 읽은 것이다. 진나라에 가서 다시 알아보니 ‘진나라 군대가 기해년에 황하를 건넜다’라고 되어 있었다. 六論 察傳篇(육론 찰전편)에 실려 있다.

어떤 사항을 옮길 때 어중간하게 아는 말로 하면 자칫 망신을 당하기 쉽다. 신문과 방송 등 전통적인 미디어 외에 인터넷과 스마트폰 SNS가 보편화된 오늘날에는 잘못된 정보가 진실인양 인식될 우려가 크다. 눈 깜짝할 새 퍼지는 이들의 영향력은 한곳에서 잘못 인용한 것이 순식간에 진실이 된다. 보도경쟁이 과열돼 사안의 본질과 동떨어진 선정적 기사, 자극적인 제목의 보도를 쏟아내 우려를 자아냈다. 잘못된 보도라도 영원히 남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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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17
【여름새우난초】

【여름새우난초】

희귀식물에 등록된 여름새우난초입니다.

줄기(=위구경)의 모양이 새우의 등과 같이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유사종으로 새우난초, 섬새우난초, 한라새우난초, 큰새우난초, 금새우난초 등이 있는데 꽃의 크기나 색깔로 분류합니다.

▷ 학명 : Calanthe reflexa Maxim.

▷ 분류 : 난초과

▷ 분포지역 : 한국(제주도 서귀포시), 일본, 중국, 대만

▷ 서식장소 : 숲속

▷ 특징 : 뿌리 줄기는 짧고 비늘줄기와 비슷하며 잎이 나와서 원줄기처럼 서고 높이 40cm 정도이다. 잎은 긴 타원형이고 세로주름이 지며 끝이 뾰족하고 길이 10∼30cm, 나비 3∼8cm이다. 꽃은 8월에 피고 연한 홍자색이며 길이 20∼40cm의 윗부분에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꽃받침조각은 3개이며 옆갈래조각은 젖혀진다. 꽃잎은 좁고 입술꽃잎은 3개로 갈라지며 꽃받침조각과 길이가 비슷하다. 가운데의 갈래조각은 다소 크고 가장자리가 다소 물결 모양이며 꿀주머니가 없다. 관상용으로 이용한다. 한국(제주)·일본에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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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17
해옹호구海翁好鷗 - 바닷가 노인이 갈매기를 좋아하다.

해옹호구(海翁好鷗) - 바닷가 노인이 갈매기를 좋아하다.

바다 해(氵/7) 늙은이 옹(羽/4) 좋을 호(女/3) 갈매기 구(鳥/11)

해안과 조수가 밀려드는 강 하구서 군무를 펼치는 갈매기,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고 깨우쳐주는 갈매기(리처드 바크). 그런데 바닷가에 사는 노인(海翁)이 갈매기를 좋아한다(好鷗)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 갈매기를 좋아해주면 따르지만 흑심을 가지고 다가가면 미물이라도 그것을 알고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列子(열자)’의 고사에서 나왔다.

열자는 성이 列(열)이고 이름은 禦寇(어구)인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사상가다. 老子(노자), 莊子(장자)와 함께 道家(도가)의 주요 경전으로 치는 열자는 후세에 많이 가필한 것이라지만 주옥같은 내용들로 無爲(무위)의 도를 따르고 자연에 순응하라는 유익한 가르침을 준다.

黃帝(황제)편에 실려 있는 내용을 보자. ‘바닷가에 사는 한 사람이 갈매기를 무척 좋아했다. 매일 아침 바닷가로 나가 갈매기들과 어울려 놀았는데 많을 땐 200마리가 넘게 모여들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갈매기들이 너를 잘 따른다고 하니 자신도 갖고 싶다면서 잡아오도록 부탁했다. 아들이 다음 날 아버지의 청을 들어주기 위해 바닷가로 나갔으나 갈매기들은 그의 머리 위만 맴돌 뿐 내려오지 않았다(明日之海上 漚鳥舞而不下也/ 명일지해상 구조무이불하야).’ 漚는 담글 구이지만 갈매기 구도 된다.

열자는 이 이야기 끝에 덧붙인다. ‘지극한 말이란 말을 떠나는 것이고 지극한 행위란 작위가 없는 것이다. 보통 지혜 있는 자들이 안다고 하는 것은 곧 천박한 것이다(至言去言 至爲無爲 齊智之所知 則淺矣/ 지언거언 지위무위 제지지소지 즉천의).’ 도덕이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은 말도 없고 작위도 없으니 미물인 새도 함께 어울리지만 일단 욕망을 가지면 멀리 하게 된다고 깨우친다. / 제공 : 안병화 (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93.html
kolaswqetsrq 11.02 03:18
할수기포割鬚棄袍 - 수염을 자르고 도포를 버리다, 황망히 도주하다.

할수기포(割鬚棄袍) - 수염을 자르고 도포를 버리다, 황망히 도주하다.

벨 할(刂/10) 수염 수(髟/12) 버릴 기(木/8) 도포 포(衤/5)

곤란에 처하거나 불리함을 알았을 때는 즉시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병서 三十六計(삼십육계)에 나오는 유명한 마지막 走爲上計(주위상계)다. 최후의 판단은 그렇더라도 사전에 잘 대비하는 것만 못함은 말할 것도 없다. 전장에서 판단을 잘못하여 후퇴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가는 장수에 달렸다.

모양 빠지게 우두머리가 먼저 황망히 도주하는 모습을 풍자하는 것이 이 성어다. 나중 삼국을 통일하게 되는 曹操(조조)가 한 싸움에서 패하여 달아날 때 수염을 자르고(割鬚) 홍포를 벗어버린(棄袍) 것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삼국시대 蜀(촉)나라의 劉備(유비)는 關羽(관우), 張飛(장비)와 결의형제하고 세력을 떨치던 중 서기 219년 독립하여 한중왕에 올랐다. 유비가 전장에서 뛰어난 활약을 한 장수들을 오호장군이라 불렀는데 이 중에서 馬超(마초)가 바로 조조를 혼쭐나게 한 사람이다.

마초는 조조를 제거하려다 사전에 발각돼 처형된 부친 馬騰(마등)의 원수를 갚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마침내 潼關(동관, 潼은 물이름 동)이란 곳에서 복수할 기회가 왔다. 마초는 긴 창을 들고 조조를 호위하던 장수를 물리친 뒤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조조군은 우왕좌왕하며 혼란에 빠지고, 조조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기 바빴다.

마초의 군사가 쫓으며 붉은 전포를 입은 사람이 조조라 하자 깜짝 놀라 벗어버리고 도망쳤다. 수염이 긴 놈을 잡으라고 소리치자 조조가 이번엔 검으로 수염까지 자르고 달아났다. 이렇게 쫓기는 모습을 후세 사람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정신없이 쫓긴 조조 비단 전포를 벗어던지고, 검으로 수염까지 잘랐으니 간담이 서늘했을 것(孟德愴惶脫錦袍 劍割髭髯應喪膽/ 맹덕창황탈금포 검할자염응상담).’ 愴은 슬플 창, 惶은 두려울 황, 髭는 윗수염 자, 髯은 구레나룻 염. 孟德(맹덕)은 조조의 자. ‘三國演義(삼국연의)’에 실린 이야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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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19
조도상금操刀傷錦 - 칼을 다루다 비단을 상하게 하다.

조도상금(操刀傷錦) - 칼을 다루다 비단을 상하게 하다.

잡을 조(扌/13) 칼 도(刀/0) 다칠 상(亻/11) 비단 금(金/8)

가지 않았던 길에는 뛰어난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빛을 발한다. 일상의 생활을 영위하는 대부분의 일에는 노하우, 경험이 중요할 때가 더 많다. 우리들의 지식은 모두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 철학자도 있다. 경험이 풍부할 것으로 보고 ‘구관이 명관’이란 속담이 콕 집어 표현한다.

앞사람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라고 不踏覆轍(부답복철)이란 말로 가르치기도 한다. 그런데도 경험을 중시하지 않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는 많다. 칼을 다루는 재주도 없이 잘못 잡아(操刀) 귀한 비단만 못쓰게 한다(傷錦)는 이 말이 그런 경우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대로 능력이 못 따라 제구실을 못하면서 함부로 하다가 큰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과 같다.

春秋時代(춘추시대) 때 조그만 鄭(정)나라는 대국인 楚(초)와 晉(진) 사이에 끼여 기를 펴지 못했지만 公孫僑(공손교)라 불린 子産(자산)이 집정했을 때 정치가 안정되고 대외적으로도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느 때 재상 子皮(자피)가 젊은 사람에게 자신의 영지를 봉하려 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성실하고 곧 다스리는 법을 알게 될 것이라며 맡기려 하자 그 젊은이가 너무 어리고 능력도 없음을 안 자산이 반대했다.

‘이는 칼질이 서투른 사람에게 물건을 자르게 하는 것과 같아 다치게만 할 뿐입니다(猶未能操刀而使割也 其傷實多/ 유미능조도이사할야 기상실다).’ 그러면서 ‘고운 비단이 있다면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배우라고 재단을 시키지 않을 것(子有美錦 不使人學製焉/ 자유미금 불사인학제언)‘인데 나라는 비단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피는 이 말이 옳다고 여겨 임명을 중단하는 한편, 자산이 현명하고 원대한 식견을 가진 것을 알고 집정 자리를 양보했다. 左丘明(좌구명)이 쓴 ’左傳(좌전)‘의 襄公(양공)전에 실려 있다. 美錦學制(미금학제)도 같은 뜻으로 쓴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낙하산 인사가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전문지식도 없이 큰 자리에 덥석 앉는 것도 문제지만 그런 사람을 앉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88.html
kolaswqetsrq 11.02 03:19
인욕부중忍辱負重 - 치욕을 참아가며 중대한 책임을 지다.

인욕부중(忍辱負重) - 치욕을 참아가며 중대한 책임을 지다.

참을 인(心/3) 욕될 욕(辰/3) 질 부(貝/2) 무거울 중(里/2)

칼날(刃/ 인)을 다스리는 마음이 참을 忍(인)이란 글자다. ‘참을 인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는 말은 그만큼 참는 것이 어렵다는 말도 되고 앞으로의 큰일을 위해 눈앞에 닥친 치욕을 잘 참았을 때 성공한다는 뜻도 갖고 있다.

원수를 갚기 위해 섶에서 자고 곰쓸개를 핥는 臥薪嘗膽(와신상담) 뿐만 아니다. 百忍堂(백인당)으로 알려진 唐(당)나라 張公藝(장공예)는 9대가 화목한 九世同堂(구세동당)을 이뤘고, 큰 뜻을 품은 韓信(한신)은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가 受袴下辱(수과하욕)도 이겨냈다. 한 때의 욕되는 것을 참아(忍辱) 무거운 책임을 진다(負重)는 이 성어도 같은 부류다.

陳壽(진수)의 정사 ‘三國志(삼국지)’에 유래가 있다. 蜀漢(촉한)의 劉備(유비)는 의형제인 關羽(관우)가 吳(오)나라의 협공에 빠져 참수되자 충격을 받았다. 복수를 위해 전쟁 준비를 하는 중 張飛(장비)도 암살된다. 諸葛亮(제갈량), 趙雲(조운) 등 중신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유비는 군사를 일으켜 오를 치기로 했다.

오나라 孫權(손권)은 화친을 청했지만 거절당하자 38세의 陸遜(육손)을 대도독에 임명하고 5만의 병력을 주어 방어하게 했다. 유비가 長江(장강) 남쪽 夷陵(이릉) 지역 600여 리에 걸쳐 병영을 설치했을 때, 오의 선봉에 있던 孫桓(손환)이 포위됐다고 육손에게 구원을 청했다.

자생할 수 있다며 구원병도 보내지 않고 촉의 군대와 전투도 하지 않자 육손의 휘하에 있던 노장들은 부글부글했다. 육손이 장수들을 소집하고 검을 쥐며 말했다. ‘내 비록 서생이지만 주상의 명을 받았소. 나에게서 취할 부분이 있어 능히 굴욕을 참고 중요한 임무를 맡을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오(以僕有尺寸可稱 能忍辱負重故也/ 이복유척촌가칭 능인욕부중고야).’ 군령을 따르라고 훈시하자 진정이 됐고 7, 8개월을 기다리다 촉의 군대가 지쳤을 때 화공으로 대승했다. 이 싸움이 赤壁(적벽), 官渡(관도)와 함께 삼국지 3대 대전으로 꼽히는 이릉전투이다. 吳書(오서) 육손전에 실려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21.html
kolaswqetsrq 11.02 03:20
【계요등】

【계요등】

열매나 잎, 줄기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므로 붙여진 이름. 아래 사진의 둥근모양은 개화 직전의 봉오리 모습 같습니다.

꽃은 저렇게 아름답지만 고약한 냄새를 풍기니 누가 좋아 할까요?

열매는 녹색에서 서서히 노란색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냄새는 더욱 고약합니다.

▷ 학명 : Paederia scandens

▷ 분류 : 꼭두서니과

▷ 분포지역 : 한국(제주·전남·전북·충남·경북·경기)·일본·타이완·

▷ 서식장소 : 산기슭 양지바른 곳이나 바닷가 풀밭

▷ 특징 : 구렁내덩굴·계각등이라고도 한다. 산기슭 양지바른 곳이나 바닷가 풀밭에서 자란다. 길이 5∼7m이다. 어린 가지에 잔털이 나고 독특한 냄새가 난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이거나 달걀처럼 생긴 바소꼴이며 길이 5∼12cm, 나비 1∼7cm이다. 끝은 뾰족하고 밑부분은 심장 모양이거나 수평이다.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뒷면에 잔털이 있거나 없으며 잎자루는 길이 1∼6cm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58.html
kolaswqetsrq 11.02 03:21
용두사미龍頭蛇尾 - 용의 머리와 뱀의 꼬리. 처음은 왕성하나 끝이 부진한 현상.

용두사미(龍頭蛇尾) - 용의 머리와 뱀의 꼬리. 처음은 왕성하나 끝이 부진한 현상.

용 룡(龍/0) 머리 두(頁/7) 긴뱀 사(虫/5) 꼬리 미(尸/4)

용의 머리가 뱀의 꼬리가 된다는 쉬운 비유로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상상의 동물 중 가장 으뜸인 용은 서양에선 악과 異敎(이교)를 상징해 퇴치의 대상이지만 동양에선 신성시된다. 용의 머리는 낙타駝, 뿔은 사슴鹿, 눈은 토끼兎를 닮는 등 모두 9가지 동물들과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그려진다.

큰 눈과 긴 수염을 가지고 불이나 독을 내뿜으면 혼비백산하지 않을 동물이 없다. 이런 용의 무서운 머리가 뱀의 가느다란 꼬리로 변한다는 비유는 아주 거창하게 떠들고 나왔지만 결말이 초라하게 되는 일의 따끔한 질책이다. 말만 앞세우고 결과가 따르지 못할 때 이 말을 많이 써서 담당자를 주눅 들게 한다.

이 쉬운 성어도 지난 雪上加霜(설상가상)과 같이 宋(송)나라 때의 불서 碧巖錄(벽암록)에 나오니 출전은 심오하다. 圜悟禪師(원오선사, 圜은 두를 환이지만 둥글 圓과 통용)가 완성한 이 책은 선승들의 대표적인 선문답이 수록돼 있다 한다. 龍興寺(용흥사)란 절에 이름난 陳尊宿(진존숙)이란 스님이 있었다. 학인이 와서 질문하면 바로바로 답을 해 주는데 어투가 날카로워 쩔쩔맸지만 사방에서 흠모해 가르침을 구하러 모여들었다.

한 젊은 승려가 찾아와 말을 주고받는데 갑자기 스님께 ‘할!’ 하고 고함을 친다. 喝은 꾸짖을 갈이지만 참선하는 사람을 인도할 때 질타하는 일종의 고함소리다. 陳尊宿이 깜짝 놀라 ‘내 그대에게 한 번 당했군.’ 하자 기고만장해져 다시 할! 하고 소리친다.

陳尊宿이 속으로 ‘젊은 승려가 제법 도를 닦은 것처럼 보이지만 깨치지는 못한(似則似 是則未是)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가 아닐까 의심스럽다(只恐龍頭蛇尾)’고 생각했다. ‘그대는 위세는 좋은데 이번에도 할! 하고 나면 다음 마무리는 어쩔 것인가?’ 하고 꾸짖으니 속셈을 드러내게 된 승려는 우물쭈물하며 뱀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04.html
kolaswqetsrq 11.02 03:22
치망설존齒亡舌存 - 이는 빠져도 혀는 남아있다.

치망설존(齒亡舌存) - 이는 빠져도 혀는 남아있다.

이 치(齒/0) 망할 망(亠/1) 혀 설(舌/0) 있을 존(子/3)

이를 나타내는 齒牙(치아)는 어금니까지 전체를 아우른 말이다. 齒(치)는 그칠 止(지) 아래에 이가 나란히 박힌 모양을 한 글자다. 하얀 이와 가지런한 치열을 드러낸 미소는 丹脣皓齒(단순호치), 明眸皓齒(명모호치, 眸는 눈동자 모) 등에서 보듯 미인의 대명사다.

이는 생장과 깊은 관계에 있으므로 나이를 높인 年齒(연치)나 노인을 공경하는 鄕黨尙齒(향당상치)란 말에도 쓰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입술과 이, 그리고 혀와의 관계를 단단하고 무른 것에 비유한 교훈적인 말이 많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脣亡齒寒(순망치한)과 함께 이는 빠져도(齒亡) 혀는 남아있다(舌存)는 이 성어가 대표적이다. 齒弊舌存(치폐설존)이라 써도 같다.

아무리 강한 힘이라도 부드러움이 이긴다는 柔能制剛(유능제강)의 老子(노자)와 관련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굳어져 단단해지지만 부드럽고 연약할 때가 살아있을 때다. 군대도 거칠고 사납기만 하면 승리하지 못한다고 道德經(도덕경)에서 말한다. 이 가르침의 가장 적절한 실례로 이와 혀의 차이를 들어 설명한 것이 ‘說苑(설원)’에 실려 있다. 劉向(유향)이 편찬한 책으로 고대의 제후나 선현들의 행적, 일화 등을 수록했다. 여기엔 노자가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내용이다.

스승 常摐(상창, 摐은 칠 창)의 병석을 찾은 노자가 남겨줄 가르침이 없느냐고 여쭸다. 뛰어난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훌륭한 제자 노자는 말씀마다 척척 알아듣는다. 고향을 지나갈 때 수레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스승의 말씀에 고향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높은 나무 아래를 지나갈 때는 종종걸음을 하라는 당부에 어른을 공경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수레서 내린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예의를, 높은 나무는 가장 오래된 나무이므로 조심조심 걸어 윗사람을 존경해야 한다고 알아들은 것이다.

스승은 이어 입을 벌려 혀와 이가 그대로 있느냐고 물었다. 노자가 혀는 아직 있고 치아는 없다고 대답하니 스승이 그 까닭을 말해보라고 했다. 이에 노자는 ‘혀가 아직 있는 것은 부드럽기 때문이고, 치아가 빠지고 없는 것은 그것이 너무 단단하기 때문입니다(夫舌之存也 豈非以其柔耶 齒之亡也 豈非以其剛耶/ 부설지존야 개비이기유야 치지망야 개비이기강야)’라고 답했다. 敬愼(경신)편에 실려 있다.

여섯 살(6)부터 영구치(9)가 나기 시작한다는 ‘이의 날’이 오늘이다. 오복의 하나라는 이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귀중하고 단단한 이를 소홀하게 다루지 않아야 하는데도 강한 힘만 믿고 거들먹거리는 사람은 그 힘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정당이나 국가도 우세한 힘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노자의 가르침은 어디에서나 통용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35.html
kolaswqetsrq 11.02 03:22
삼순구식三旬九食 - 삼십 일 동안 아홉 끼니 먹다.

삼순구식(三旬九食) - 삼십 일 동안 아홉 끼니 먹다.

석 삼(一/2) 열흘 순(日/2) 아홉 구(乙/1) 밥 식(食/0)

가난이 불명예는 아니다. 또 죄악도 아니다. 살아가는데 불편할 뿐이다. 문제는 그 가난의 원인이다. 개인의 나태나 일확천금을 노리다 가산을 탕진했을 때는 누구를 원망할 수 없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면 사회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이웃돕기가 있고 사회보장제도가 있다. 그래도 충분할 수가 없어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이 나왔겠다.

가난이 일상화된 옛날이라 그것을 표현하는 말도 숱하다. 이 난에서도 簞食瓢飮(단사표음), 家徒四壁(가도사벽)을 올린 적이 있다. 열흘이 세 번 되도록(三旬) 아홉 끼니밖에 먹지 못한다(九食)는 이 성어는 굶기를 밥 먹듯 하는 가난한 생활을 바로 나타냈다.

‘歸去來辭(귀거래사)’로 유명한 陶淵明(도연명)의 시구에서 유래했다. 東晋(동진) 말기부터 宋(송)까지 六朝(육조) 최고의 시인으로 불리는 도연명은 采菊東籬下(채국동리하)에서 나왔듯 가난하지만 국화를 사랑하는 선비였다. 상급기관의 관리가 거들먹거리는 꼴을 못보고 다섯 말의 녹봉 때문에 어찌 허리를 굽히랴 하며 낙향하여 五斗米折腰(오두미절요)란 말을 남겼다.

본명인 陶潛(도잠)보다 자로 더 많이 불리는 도연명의 安貧樂道(안빈낙도)를 강조한 노래가 ‘擬古詩(의고시)’다. 魏晉(위진)시대 유행한 고시의 모방을 따랐다. 그 다섯 번째의 부분을 보자. ‘동방에 한 선비가 있으니 옷차림이 항상 남루하였고, 한 달에 식사는 아홉 끼가 고작이요 십년이 지나도록 관직 하나로 지내더라. 고생이 이에 비할 데 없건만 언제나 좋은 얼굴로 있더라(東方有一士 被服常不完 三旬九遇食 十年著一冠 辛勤無此比 常有好容顔/ 동방유일사 피복상불완 삼순구우식 십년착일관 신근무차비 상유호용안).’ 著는 나타날 저, 입을 착.

기초생활보장수급자에서 탈락한 비수급 빈곤층 10명 중 4명이 밥을 굶은 적이 있다고 한다. 겨울철 난방비 부족과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한 비율도 비슷하게 나왔다. 빈부 차이가 수명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사실도 확인한 적도 있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이라는 나라에서 아직까지 이처럼 한 달에 몇 끼니를 거르는 사람이 제법 된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저소득층엔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활이 이뤄지도록 보장제도가 촘촘했으면 좋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82.html
kolaswqetsrq 11.02 03:23
소이부답 笑而不答 - 웃을 뿐 대답하지 않는다.

소이부답 (笑而不答) - 웃을 뿐 대답하지 않는다.

웃음 소(竹/4) 말이을 이(而/0) 아닐 불, 부(一/3) 대답 답(竹/6)

‘웃는 낯에 침 뱉으랴’란 말대로 웃음은 뭇 사람들에게 슬픔을 가시게 하고 즐거움을 준다.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웃음도 지나치면 좋지 않다. ‘웃음 속에 칼이 있다(笑裏藏刀/ 소리장도)’거나 ‘어리석은 자가 웃음이 많다(痴者多笑/ 치자다소)’라는 말이 있으니 말이다.

목적에 따라 만족감도 나타낼 수 있고, 비밀이나 악의를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런데 웃음을 띨 뿐(笑而)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不答)는 이 성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요즘 정가에서 딱 잘라 이야기할 수 없을 때 미소로 답하는 때가 많았는데 질문이 단순하여 대답할 가치를 못 느끼거나 어처구니없을 경우, 또는 긍정을 의미할 때도 있고, 반대의 경우라도 굳이 표현하기 싫을 때 등등이겠다.

詩仙(시선)으로 일컬어지는 唐(당)나라 李白(이백, 701~762)의 시 구절에서 나왔다. 그는 詩聖(시성) 杜甫(두보)와 함께 李杜(이두)로 불린다. 이백은 술에 취해 일필휘지로 시를 썼고 두보는 推敲(퇴고)를 거듭하여 완성했다고 한다. 이백의 대표적인 시 ‘山中問答(산중문답)’은 궁중을 떠나 산속에 조용히 묻혀 살면서 자연과 함께 悠悠自適(유유자적)하는 심정이 잘 나타나있다. 4구절로 된 전문을 보자.

‘왜 푸른 산속에 사느냐고 내게 묻기에, 나는 웃을 뿐 대답은 않지만 마음은 한가롭네, 복사꽃잎이 떠 흐르는 물 아득히 내려가니, 여기는 신선 사는 별천지지 인간 세상이 아니로구나(問余何事栖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窅然去 別有天地非人間/ 문여하사서벽산 소이부답심자한 도화류수요연거 별유천지비인간).’ 栖는 棲와 같이 깃들일 서, 窅는 깊고멀 요. 아득할 苗(묘)라 쓴 판본도 있다.

속세의 사람들이 물어도 대답을 않고 빙그레 웃기만 하는 것은 산속에 사는 사람의 즐거움은 본인만 느껴 알뿐 무어라 표현할 수 있으랴 하는 심정이다.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마지막 구절도 자주 인용되는데 武陵桃源(무릉도원)같은 별천지를 가리킨다.

웃을 뿐 대답하지 않은 정치인은 많더라도 자신의 회고록 이름으로 쓴 김종필 전 총리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정치는 虛業(허업)’이라면서 즉답을 회피하고 미소로 답하는 것을 본뜨는 것은 아니겠지만 함께 하자고 했을 때 웃음 짓기만 했다고 한다. 왜 깊은 뜻을 모르고 자꾸 묻는가 하는 뜻도 있겠다. 그래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은 구구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83.html
kolaswqetsrq 11.02 03:24
【잠자리난초】

【잠자리난초】

산지 습지에 자라는 난초입니다. 희귀식물로 등재된 잠자리난초는 꽃의 모양이 꼭 잠자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주로 여름에 개화하기 때문에 쉽게 동정을 할 수 있습니다.

▷ 학명 : Habenaria linearifolia

▷ 분류 : 난초과

▷ 분포지역 : 한국, 중국 북동부, 우수리강, 헤이룽강, 일본

▷ 서식장소 : 햇볕이 잘 드는 습지

▷ 특징 : 잠자리난초는 전국 각처에 분포하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햇살이 좋고 물살이 빠르지 않은 습지와 고산 혹은 낮은 산의 습지에서 자란다. 키는 40~70cm이고, 잎은 어긋나고 길이가 10~20cm, 폭은 0.3~0.6cm이며 1~2개의 큰선 모양의 잎은 끝이 뾰족하다. 뿌리는 구근(알뿌리)으로 되어 있다. 꽃은 백색이고 지름은 1~1.5cm이며, 줄기 윗부분에 10~15개 정도의 꽃이 무리지어 핀다.

입술 모양의 꽃잎은 길이가 약 1.5cm, 폭은 약 2cm 정도로서 중앙에서 3개로 갈라지고 아래로는 길게 꼬리와 같은 것이 붙어 있다. 열매는 10월경에 검은색으로 달리고 안에는 먼지와 같은 미세 종자들이 수없이 들어 있다. 관상용으로 쓰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42.html
kolaswqetsrq 11.02 03:24
구미속초狗尾續貂 - 담비 꼬리가 모자라 개 꼬리로 잇다, 좋은 것 뒤에 나쁜 것이 따르다.

구미속초(狗尾續貂) - 담비 꼬리가 모자라 개 꼬리로 잇다, 좋은 것 뒤에 나쁜 것이 따르다.

개 구(犭/5) 꼬리 미(尸/4) 이을 속(糸/15) 담비 초(豸/5)

겉으로 내세운 그럴듯한 간판의 양과는 달리 실제로는 뒤떨어지는 개고기를 파는 것이 羊頭狗肉(양두구육)이다. 처음에는 용의 머리로 요란하게 시작했다가 뱀의 꼬리로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것은 龍頭蛇尾(용두사미)다. 이처럼 처음과 끝이 한결같지 못하고 보잘 것 없는 결과가 따르는 것에 개의 꼬리(狗尾)가 담비 꼬리에 이어진다(續貂)는 이 성어도 있다. 담비는 족제비와 비슷하지만 부드럽고 광택이 나는 털은 고급 모피로, 길고 끝이 가는 꼬리는 고급 붓으로 사용되어 개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담비 꼬리에 개꼬리를 잇는다는 이 말이 겉보기와 실제가 다르다는 뜻 외에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높은 벼슬자리에 앉히거나 불필요하게 관직을 늘리는 것도 비유한다. 담비 꼬리와 매미 날개라는 뜻의 貂蟬(초선)이란 말이 있듯이 높은 벼슬아치의 冠(관) 장식으로 썼다. 여기에는 중국 西晉(서진)의 왕족 8명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물고 뜯는 16년간의 내란인 八王(팔왕)의 난과 관계가 있다.

삼국시대 魏(위)나라의 군략가인 司馬懿(사마의)와 아들 司馬昭(사마소)가 기반을 닦아 손자 司馬炎(사마염)이 통일된 晉(진)을 세우고 초대 武帝(무제)가 된다. 무제는 일족들을 각지의 왕으로 봉하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으나 무능한 2대 惠帝(혜제)때 추한 용모의 악독한 賈皇后(가황후) 등 외척의 득세로 극도로 혼란해졌다. 무제의 동생 司馬倫(사마륜)이 외척을 축출하고 왕위에 오르자 다른 지역의 왕들이 힘을 합쳐 서로 몰아내는 16년간의 난리가 이어져 나라는 폐허가 되었다.

사마륜이 황제가 됐을 때 그를 도운 사람들은 벼락출세를 하게 되어 종들과 심부름꾼까지 초선관을 씌웠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말로 ‘담비 꼬리가 부족하게 되니 나중에는 개 꼬리로 대체하는구나(時人爲之諺曰 貂不足 狗尾續)’하고 비아냥거렸다. 唐(당)의 房玄齡(방현령) 등이 지은 ‘晉書(진서)‘ 趙王倫傳(조왕륜전)에 실린 내용이다.

고위공무원이 재직 중 특히 관련 있던 공기업이나 특수법인 등의 대표, 임원 등으로 임명되는 낙하산 인사는 이제 너무나 예삿일이 됐다. 야당으로 있을 때 그렇게 공격하던 이런 인사를 정권이 바뀌면 한 술 더 뜨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권 창출에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나눠주는 것을 이해할 만도 하지만 이전에 했던 독설에 사과라도 해야 ‘내로남불‘의 뻔뻔스러움이 덜하기라도 할 터이다. 명분만 그럴듯하고 개 꼬리가 이어지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03.html
kolaswqetsrq 11.02 03:25
건강해지는 식초

건강해지는 식초

▶ 몸에 좋은 알칼리성 식품, 식초

식초는 초산, 구연산, 사과산, 호박산, 주석산 등 총 60여 종의 유기산이 들어 있는 항산화제로 노화와 질병을 일으키는 활성산소를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뇌세포에 쌓여 사고 능력을 떨어뜨리는 젖산과 힘든 육체노동을 했을 때 생기는 근육의 젖산을 분해해 배설시키고, 혈액순환을 도우며 피로회복에도 좋다. 식초는 산성이지만 몸속에 들어가면 혈액 속의 무기질을 알칼리성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에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산성 체질을 약알칼리성 체질로 바꿔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단, 마시는 식초는 식후가 좋고 위가 약한 사람은 찬물이나 우유 등에 섞어 마신다.

▶ 마시는 식초가 인기 있는 이유

1. 성인병 예방 효과가 있다

식초가 성인병 예방에 좋은 이유는 소금 섭취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소금 속 나트륨은 인체에 꼭 필요하지만 혈압을 높이고 고지혈증 같은 질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짠 음식에 입맛이 길든 사람이 하루아침에 음식 맛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조리할 때 소금, 식초, 간장 순으로 양념하면 소금을 적게 넣어도 신맛 때문에 싱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2. 소화 기능을 돕고 변비를 예방한다

식초의 신맛은 침샘을 자극해 침이 많이 나오게 하고 입맛이 돌게 하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위액 분비를 촉진하고 소화기의 신경을 자극해 음식물의 소화, 흡수율을 높인다. 뿐만 아니라 식초의 유기산은 장의 연동운동을 활발하게 도와 장을 튼튼하게 하고 배변을 돕는다.

3. 칼슘 흡수율을 높인다

식초를 꾸준히 마시면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은 칼슘이 구연산과 결합하면 흡수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따라서 칼슘 흡수율이 떨어지는 임산부나 폐경기 여성들의 경우 식초를 마시면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병을 앓고 있거나 생리 중일 때도 식초를 복용하는 것이 좋다. 혈액 속에는 노폐물이 많고, 인체는 이 노폐물을 배출하기 위해 칼슘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 각양각색 건강 식초 궁금증 해결

-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감식초

감은 다른 과일이나 채소보다 월등히 많은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어 면역력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감기 같은 질병을 예방하고 피로회복을 돕는다. 한편 감식초는 고혈압 등의 성인병을 예방하고, 체내 과다 지방을 분해하기 때문에 다이어트 효과도 얻을 수 있다.

- 소화를 돕는 포도식초

포도에는 몸속의 불필요한 활성산소를 제거해 세포의 노화를 막는 폴리페놀 성분이 들어 있다. 따라서 포도로 만든 식초는 다른 식초에 비해 노화 억제와 심장병 예방 효과가 크며, 소화기관을 자극해 소화, 흡수를 돕고 풍미가 뛰어나 식욕을 불러일으킨다.

- 피로회복제 역할을 하는 현미식초

피곤하고 지친 몸을 회복시켜줘 갑자기 무리한 운동을 했거나 과음이나 야근으로 몸이 피로할 때 마시고 자면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 성인병 예방에 좋은 흑초

현미나 맥아를 원료로 만드는 흑초는 신맛이 약한 대신 단맛과 향을 지녀 식초를 음료로 마시는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1천5백여 년 전 중국에서 처음 제조됐다는 흑초는 일반 식초보다 유기산과 아미노산이 풍부해 비만과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

- 요리풍미 더해주는 발사믹식초

발사믹식초는 특유의 깊은 맛과 향이 나 유럽에서는 고품질 식초로 애용되고 있다. 일반 포도주와 농축시킨 포도주를 섞어 참나무통에 넣고 발효시킨 뒤 여과해 다시 밤나무나 벚나무통에 넣고 5년 이상 숙성시킨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30.html
kolaswqetsrq 11.02 03:26
암을 예방할 수 있는 생활습관 5가지

암을 예방할 수 있는 생활습관 5가지

1. 차를 자주 마셔라

백차와 녹차에는 세포 건강을 돕는 식물성 항산화 물질 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 (EGCG)가 들어 있다.

2. 산책하라

매일 30분 정도 활기차게 산책을 하면 잠을 잘 자고 기운을 돋우며, 당뇨와 암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3. 생강을 먹어라

생강은 소화관의 염증을 가라앉힘으로써 대장암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4. 가족끼리 건강에 대해 얘기하라

나이 든 친척들과 함께 집안 건강 이야기를 하면 어떤 질병에 얼마나 자주 신경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있다.

5. 샐러드를 먹어라

케일에는 발암물질을 없애주는 이소티오시안산염이 있고, 사과는 대장암을 예방해 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54.html
kolaswqetsrq 11.02 03:27
냉장보관하면 안되는 식품

냉장보관하면 안되는 식품

냉장고는 식품을 부패하지 않도록 저온에서 보관하거나 또는 적정 온도를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고, 식품의 저장 기간을 크게 늘리고 신선도를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채소나 과일을 무조건 냉장고에 넣는다고 식품의 신선도를 늘려주지 않는다. 일부 식품들은 오히려 냉장보관 하면 곰팡이가 생기거나 변형이 일어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1. 마늘

‘마늘’은 냉장고에 보관하면 안 된다. 공기가 잘 통하는 약 16°C의 상온에서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다. 만약 통마늘을 냉장고에 보관하면 습기가 생기고 곰팡이가 번식할 수 있다. 또한 신선한 마늘을 다지거나 갈았다면 밀폐용기에 넣어서 짧은 기간 동안 냉장 보관이 가능하다. 하지만 금방 상하기 때문에 빨리 사용해야 한다. 특히 마늘을 전구 빛 등에 노출될 경우 마늘에 싹이 자랄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2. 토마토

‘토마토’도 냉장 보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냉장고의 찬 공기가 토마토의 수분을 빼앗아 숙성을 방해하고 풍미가 떨어질 수 있다. 또한 화학구조의 변형으로 토마토의 맛을 내는 휘발성 성분의 양이 감소한다. 특히 토마토는 5°C 이하에서 보관할 경우 저온 장애로 인해 물렁해지고 표면에 문드러진 듯한 자국이 생길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토마토는 가급적이면 햇볕이 없는 서늘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다.

3. 감자

감자는 4°C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보관하다 조리를 하면 ‘아크릴아마이드’라는 발암물질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감자의 올바른 보관법은 건조하고 서늘한 실온에 보관하는 것이다. 건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종이로 감싸거나 구멍 뚫린 비닐 팩에 담아 보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감자를 보관할 때 양파처럼 수분이 많은 식재료와 함께 보관하면 감자가 수분을 먹어 금세 물러지고 싹이 더 빨리 나게 되니 절대 따로 보관해야 한다.

4. 양파

‘양파’도 껍질을 까지 않은 상태라면 냉장보관을 피해야 한다. 습기가 양파를 물러지게 하고, 그로 인해 곰팡이가 피게 만드는 조건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양파를 냉장 보관할 때는 껍질을 모두 벗기고 뿌리 쪽을 잘라내 밀폐용기나 랩 등으로 싸서 냉장고 야채 칸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때 꼭 주의해야 할 점이 양파를 물로 씻지 말고 껍질만 까서 그대로 보관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껍질을 까지 않은 양파는 실온에서 양파 망에 넣어 그대로 건조하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58.html
kolaswqetsrq 11.02 03:27
심장에 좋은 음식

심장에 좋은 음식

1. 신선한 허브

신선한 허브는 다른 음식들과 함께 먹으면 염분, 지방,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낮춰준답니다. 음식의 맛과 향을 더해 줄뿐 아니라 심장 질환, 뇌졸중, 고혈압, 당뇨, 고 콜레스테롤에도 좋다.

2. 검은 콩

부드럽고 고소한 검은 콩은 심장을 건강하게 하는 영양소인 엽산, 산화방지제, 마그네슘 등이 들어있어 혈압을 낮춰주고, 검은 콩의 들어있는 풍부한 섬유소는 콜레스테롤과 혈당을 낮춰준다.

3. 레드 와인

알코올이 심장에 무리가 갈까 걱정이라면 레드와인이 좋다. 레드 와인에 들어있는 항산화 물질인 레스베라트롤과 카테친은 혈관 내벽을 보호한다. 아무리 좋은 와인이라도 과음은 오히려 해가 되므로, 하루에 한잔 정도가 적당하다.

4. 연어

심장에 가장 좋은 영양소를 꼽으라면 오메가-3와 EPA, DHA이다. 연어에는 이 좋은 영양소가 모두 들어있다. 오메가-3는 돌연 심장사를 일으키는 불규칙적인 심박동의 위험을 낮춰준다. 연어는 중성지방을 낮춰주고, 염증을 줄여준다.

5. 참치

참치에는 오메가-3가 듬뿍 들어있고, 연어보다 싸다는 장점이 있다. 고등어, 청어, 송어, 정어리, 멸치에도 오메가-3가 들어있으니 골고루 먹는 것이 좋다. 참치는 기름 없이 굽거나 물에 데쳐서 먹는 것이 좋다.

6.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올리브를 따서 첨가물 없이 바로 짜낸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은 특히 폴리페놀이라는 항산화 물질과 건강에 좋은 불포화지방이 들어있어 심장에 아주 좋다. 폴리페놀은 혈관을 튼튼하게 해준다. 버터나 다른 포화지방이 들어있는 오일 대신 사용하면 콜레스테롤 수치까지 줄여준다.

7. 호두

하루에 호두 40g씩 먹으면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아지고, 심동맥의 염증도 줄여준다. 호두에는 몸에 좋은 오메가-3, 단일불포화지방, 섬유소가 어우러져 있다.

8. 아몬드

아몬드는 야채, 생선, 닭고기, 심지어 디저트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 견과류이다. 아몬드에는 비타민 E, 식물성 스테롤, 섬유소, 심장에 좋은 지방이 들어있고, LDL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낮춰주고, 당뇨병도 예방할 수 있다.

9. 에다마메(줄기째 자른 풋콩)

에다마메는 일식집의 에피타이저로 많이 등장하는 껍질째 나오는 푸른 콩인데, 혈내 중성지방 수치를 낮춰주는 콩 단백질이 듬뿍 들어있다.

10. 두부

두부에 들어있는 심장건강에 좋은 무기질, 섬유소, 콩의 불포화 지방은 모두 혈관을 막는 포화지방을 없애주는 역할을 해 준다.

11. 고구마

저당지수 음식으로 감자와 달리 혈당을 급격히 높이는 일이 없다. 섬유소, 비타민 A, 리코펜 등 모두 심장에 좋은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다.

12. 오렌지

달콤하면서도 수분이 많은 오렌지는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섬유소 펙틴과 혈압을 조절하는데 도움을 주는 칼륨이 들어있다. 연구에 따르면 오렌지 주스는 혈관의 기능을 높여주고 헤스페리딘이라는 항산화물질은 혈압을 낮춰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60.html
kolaswqetsrq 11.02 03:28
인생을 변화시키는 법칙 20계

인생을 변화시키는 법칙 20계

01. 재탄생의 법칙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해 산고를 즐겨라

02. 다이아몬드의 법칙

‘나’를 최고의 보석으로 만들어라

03. 목숨의 법칙

두 번 없는 한 번이기에 불꽃처럼 치열하게 살아라

04. 장인정신의 법칙

하는 일에 혼을 담아라, 그러면 결국 알아준다

05. 빨간 하이힐의 법칙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림자로 살지 마라

06. 다이어트의 법칙

핵심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버려라

07. 재능의 법칙

건드려서 꽃을 활짝 피어나게 하라

08. 열정의 법칙

남극을 녹일 만한 뜨거움, 가슴에서 꺼내라

09. 특화의 법칙

나만의 신무기를 개발하라

10. 라이벌의 법칙

질투와 시기를 자극하는 자, 항상 곁에 둬라

11. 씨앗의 법칙

씨앗 한 톨 안에 거대한 숲이 있다는 걸 알아라

12. 인간관계의 법칙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각을 지어라

13. 진심의 법칙

진심은 견고한 벽도 뚫는다는 걸 알아라

14. 휴식의 법칙

잠시 세상을 잊고 여행 가방을 꾸려라

15. 책벌레의 법칙

책이라는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워라

16. 실수의 법칙

이제부터는 낯설고 새로운 실수를 저질러라

17. 스피드의 법칙

시대보다 항상 한걸음 더 앞서 나가라

18. 고독의 법칙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발전된 나를 만나라

19. 창조의 법칙

새 틀을 짜는 사람이 되어라

20. 준비의 법칙

소나기는 언제라도 내릴 수 있다, 미리미리 우산을 준비하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20_9.html
kolaswqetsrq 11.02 03:29
지혜로운 사람은 행동으로 말을 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행동으로 말을 증명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말로 행위를 변명한다.

지혜로운 사람의 노년은 황금기이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노년은 겨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일단 실행해보고 결과를 기다리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해보지도 않고 실패할 걱정부터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새벽을 깨우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지혜로운 사람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무엇인가 배우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그에게서 이익을 취하려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결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려 노력을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결점만 걱정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어디를 가야하는지 알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만 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이 최대의 지혜라. 여기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남을 이기는 것을 최고로 여긴다.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는 당신에게 주는 말>中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08.html
kolaswqetsrq 11.02 03:29
뇌건강에 위한 채소 섭취 방법

뇌건강에 위한 채소 섭취 방법

1. 오이나 가지처럼 껍질이 있는 채소는 깨끗이 씻어 껍질째 먹는 것이 좋다.

2. 양배추나 아스파라거스, 브로콜리, 시금치는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는 정도의 조리가 가장 적당하다.

3. 깻잎이나 케일, 상추 같은 잎채소는 깨끗이 씻어 별다른 조리 과정 없이 쌈이나 샐러드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

4. 채소류는 갈아 주스로 마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5. 고기와 함께 부추나 양파를 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환상의 조합이다. 고기를 과잉 섭취하면 혈액이 탁해지고 혈관이 좁아지는데 고기에 부추, 양파, 파를 곁들이면 몸을 따뜻하게 만들고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며 뇌세포 손상을 막아준다. 이때 부추나 양파, 파도 다른 채소들과 마찬가지로 생으로 먹는 것이 뇌 건강에 훨씬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31.html
kolaswqetsrq 11.02 03:30
젊어서는 재력이 있어야 살기가 편한 하나,

젊어서는 재력이 있어야 살기가 편한 하나,

늙어서는 건강이 있어야 살기가 편안하다.

젊어서는 재력을 쌓느라고 건강을 헤치고,

늙어서는 재력을 허물어 건강을 지키려한다.

재산이 많을수록 죽는것이 더욱 억울하고,

인물이 좋을수록 늙는것이 더욱 억울하다.

재산이 많다해도 죽으면 가져갈 방도는 없고,

인물이 좋다해도 죽어서 안썩을 도리는없다.

노인학 교수도 제 늙음은 깊이 생각해 보지 못하고,

호스피스 간병인도 제 죽음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옆에 미인이 앉으면 노인이라도 좋아하나,

옆에 노인이 앉으면 미인일수록 싫어한다.

아파 보아야 건강의 가치를 알수있고,

늙어 보아야 시간의 가치를 알수 있다.

권력이 너무 커서 철창신세가 되기도 하고.,

재산이 너무 많아 쪽박신세가 되기도 한다.

육신이 약하면 하찮은 병균마저 달려들고,

입지가 약하면 하찮은 인간마저 덤벼든다.

세도가 등등할 때는 사돈에 팔촌도 다 모이지만,

쇠락한 날이오면 측근에 모였던 형제마저 떠나간다.

지나가 버린 세월을 정리하는 것도 소중하나,

다가오는 세월을 관리하는 것은 더 소중하다.

늙은이는 남은 시간을 황금 같이 여기지만,

젊은이는 남은 시간을 강변의 돌 같이 여긴다.

개방적이던 사람도 늙으면 폐쇄적이기 쉽고,

진보이던 사람도 늙으면 보수적이기 쉽다.

거창한 무대일지라도 자기 출연시간은 얼마 안되고,

훌륭한 무대일수록 관람시간은 짧게 생각되게 마련이다.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자식 있는 것을 부러워하나,

자식이 많은 사람은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말한다.

자식 없는 노인은 노후가 쓸쓸하기 쉬우나,

자식 많은 노인은 노후가 심난하기 쉽다.

못 배우고 못난 자식도 효도하는 이가 많고,

잘 배우고 잘난 자식도 불효하는 자가 많다.

있는 부모가 병들면 자식들 관심이 모여들지만,

없는 부모가 병들면 자식들 걱정만 모이게 된다.

세월이 촉박한 매미는 새벽부터 울어대고,

여생이 촉박한 노인은 저녁부터 심난하다.

제 철이 끝나 가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처량하게 들리고

앞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의 웃음소리는 그마저 서글프다.

육신이 피곤하면 쉴 자리부터 찾기 쉽고,

인생살이 고단하면 설자리도 찾기 어렵다.

출세 영달에 집착하면 상실감에 빠지기 쉽고,

축재 부귀에 골몰하면 허무감에 빠지기 쉽다.

악한 사람은 큰 죄를 짓고도 태연하지만,

선한 사람은 작은 죄라도 지울까 걱정한다.

- 좋은 글 중에서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19.html
kolaswqetsrq 11.02 03:31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세 가지 버릇을 바꿔라.

첫째는 마음버릇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버리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둘째는 말버릇이다. 비난과 불평은 삼가고 칭찬과 감사를 입버릇으로 만들어라.

셋째는 몸버릇이다. 찌푸린 얼굴보다는 활짝 웃는 사람, 맥없는 사람보다는 당당한 사람이 성공한다.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독서와 교육, 그리고 훈련을 통해 마음버릇, 말버릇, 몸버릇을 바꿔라.

성공도 버릇이요, 실패도 버릇이다.

- 양광모의 『비상』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58.html
kolaswqetsrq 11.02 03:32
당신의 뱃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

당신의 뱃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

▲ 식사 시간이 불규칙하다

불규칙한 식습관은 식욕을 억제하는 렙틴 호르몬과 배고픔을 느끼게 하는 그렐린 호르몬의 불균형을 유발하여 심한 공복감 후 식사를 할 때는 폭식을 유도하고, 식간에 간식의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지방 분해를 촉진하는 아디포넥틴 호르몬 분비가 감소하여 지방이 쌓이는 역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뱃살관리를 위해서는 우선 ‘규칙적인 식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푼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분비되는 ‘코티졸’이 공복감을 느끼게 하는 그렐린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면서 뭔가를 계속 먹게 만든다. 흔히 달거나 매콤한, 맛이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되는데 이는 미각을 강하게 자극해 일시적인 정서적 마취제 역할을 하는 것일 뿐 스트레스 해소에도,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국 인지신경심리학과 데이비드 루이스 박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근육의 긴장이 풀어지고 심박수가 낮아지는 등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측정한 결과 1위는 독서, 2위는 음악감상, 3위는 커피 마시기, 4위는 산책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책을 6분 정도 읽으면 스트레스가 68%감소되고 심박수가 낮아지며 근육 긴장이 풀린다고 설명하면서 어떤 책을 읽던 작가가 만든 상상의 공간에 푹 빠져 일상의 걱정 근심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 가까운 거리도 자가용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두발로 서서 걷는 특권을 멀리하고, 자가용, 엘리베이터 등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져 신체활동이 줄면 뱃살이 찔 수 밖에 없다. 적당한 운동은 칼로리 소비를 통한 뱃살 방지는 물론, 스트레스 해소와 규칙적인 수면습관을 유지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은 운동시간이 부족하다고 핑계만 대지 말고, 계단이용하기, 가까운 거리 걸어가기, 점심 산책하기 등 짬이 날 때마다 몸을 움직이는 게 도움되며, 특히 지방을 태우려면 달리기, 걷기, 자전거 타기 등과 같은 유산소 운동과 역기, 바벨 등과 같은 근육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 늦게 자는 편이고, 잠이 부족한 편이다

‘깨어 있는 시간’과 ‘식욕과 먹을 기회’는 비례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야식이 유혹할 때까지 있지 말고, 잠자리에 일찍 들며, 규칙적인 수면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수면장애는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주어 식욕과 공복감을 자극하여 과체중과 비만의 원인이 된다는 다양한 연구결과들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53.html
kolaswqetsrq 11.02 03:33
■ 새 도읍지를 정하라 4편

■ 새 도읍지를 정하라 4편

태조는 그동안 도읍을 옮기기 위해서 서운관, 풍수지리학자, 무학대사, 여러 신하들로부터 문서로 보고를 받거나 얼굴을 맞댄 논의를 거쳤고 찬·반 의견도 낱낱이 들었다. 태조는 지리서도 공부하고 계룡산, 무악, 남경을 현장 답사했다. 태조는 조선의 지혜를 망라했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이제 태조의 결정만 남았다.

태조는 남경(한양)을 택했다. 이로써 조선의 도읍으로 한양이 탄생한 것이다. 태조 3년 8월 13일이었다. 여기서 도읍을 정하는 좁은 의미로는 궁궐터를 정하는 것도 포함된다. 현재의 경복궁은 태조가 정한 남경(청와대 터)이 아니라 약간 남쪽으로 내려 와 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태조는 한양을 그냥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한양을 도읍으로 사실상 결정했지만 소수의견을 낸 광실원 동쪽, 개성, 도라산 등도 살피고, 무악도 다시 갔다. 현장을 확인하고 중론을 모아 마침내 조선의 도읍 한양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태조가 천도를 결심한 이후 3년의 시간이 흐른 뒤의 결정이었다.

태조는 신도궁궐조성도감을 설치했다. ‘ᄋᄋᄋ도감’은 어떤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설치하는 임시기구이다. 조선은 도읍을 건설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종묘, 사직, 궁궐, 시장, 도로의 터를 구체적으로 정하기 위해서 준비단을 파견했다. 이들 준비단은 태조가 정한 남경의 궁궐터가 너무 좁다고 판단하여 그 남쪽의 평탄하고 넓은 곳을 궁궐터로 정했다. 현재의 경복궁이다. 경복궁이 태조가 정한 최초의 자리보다 약간 남쪽으로 내려온 이유다. 북쪽의 산을 주맥으로 하고 여러 산맥이 굽어 들어와서 지세가 좋은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태조는 2개월 후인 10월 25일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3일 후 10월 28일 서울에 도착해서 한양부 객사를 이궁(離宮)으로 삼아 임시로 거처한다. 아직 궁궐 건설에 착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 시민의 날이 10월28일로 정해진 것은 이 때문이다.

태조는 도평의사사, 서운관과 함께 사전 준비단이 도면으로 그려서 올린 종묘와 사직의 터도 둘러보았다. 도평의사사는 종묘, 궁궐, 성곽의 공사를 서둘러야 한다고 태조에게 건의했다. 태조 3년 12월 4일 오방(五方)의 지신(地神)에게 제사를 올리고 종묘와 궁궐 공사를 동시에 시작했다. 궁궐의 터파기를 시작한 것은 스님들이었다. 관청에서 스님들을 모집해서 옷과 먹을 것을 주었다. 공사 초기에 백성들은 동원하지 않았지만, 궁궐 건설에 스님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태조 4년 8월 궁궐 건설을 위해서 농사철이 끝난 백성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했다. 총 15,000명이 부역(赴役)으로 동원된다. 약 50일 후 종묘와 경복궁이 완공되었다. 궁궐 공사를 시작한 지 10개월 후의 일이다. 즉위 4년 만에 법궁(法宮:으뜸궁)인 경복궁이 탄생한 것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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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34
■ 새 도읍지를 정하라 2편

■ 새 도읍지를 정하라 2편

태조는 개성을 떠난 20여 일 후 계룡산에 도착했다. 태조는 계룡산의 산수와 형세를 돌아보면서 조운(뱃길), 도로, 성곽 터를 신하들에게 살피게 했다. 또한 풍수학자 이양달 등에게 땅의 형세를 살펴보게 하고, 땅을 측량하게 하였다. 태조는 계룡산을 조선의 도읍지로 결정하기 위해 매우 구체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태조는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지세를 살펴보고 무학대사의 자문을 구했다. 무학대사는 “능히 알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계룡산 도읍지가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조는 계룡산을 도읍지로 결정한다. 태조 즉위 2년 차(1393년) 2월 13일의 일이다. 태조는 예문춘추관 대학사 김주 등 일부 신하들을 계룡산에 남겨서 도읍지 건설을 감독하게 하고 개성으로 돌아갔다.

태조는 2개월 후 계룡산을 중심으로 한 81개의 주현(州縣),부곡(部曲),향소(鄕所)의 행정구역을 개편함으로써 제도적으로도 조선의 도읍지가 확정되고, 공사도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계룡산 도읍지는 10개월 후 운명이 바뀌게 된다. 그 운명을 바꾼 사람은 경기 좌·우도 관찰사 하윤이었다. 하윤은 태조가 계룡산을 답사할 때 동행하지 않았다. 그는 풍수학을 내세워 계룡산의 단점을 들추어냈다. 도읍은 나라의 중앙에 있어야 하는데 계룡산은 지대가 남쪽에 치우쳐서 동, 서, 북쪽과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물이 오랜 생명을 다해서 쇠하고 패망이 곧 닥치는 땅’이므로 도읍지로 적당치 않다고 상소를 올렸다.

태조는 계룡산을 도읍 후보지로 물색했던 권중화, 판삼사사 정도전, 판중추원사 남재 그리고 하윤으로 하여금 검증단을 꾸렸다. 검증단은 고려왕조 여러 능의 길흉(吉凶)을 조사했다. 그 결과 하윤의 주장과 일치했다. 태조는 새 도읍지 건설을 중지시켰다. 도읍을 옮기기 싫어했던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은 모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태조의 두 번째 도읍지 계룡산도 이렇게 좌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태조는 포기하지 않았다. 태조 3년, 서운관의 모든 문서를 하윤에게 주면서 천도(遷都)의 땅을 다시 고르게 했다. 권중화, 정도전 등 핵심관료 11명에게 여러 현인들의 <비록(祕錄)>을 참고해서 요점을 정리해 바치게 했다. 또한 태조 자신도 신하들과 지리서인 <비록촬요>를 공부했다. 태조는 조준, 권중화, 하윤 등 11명과 서운관 관리 등을 무악(서울 서대문구)으로 보내 <비록촬요>의 내용과 부합하는지 지세를 살펴보게 했다. 일주일 후 이들은 현장을 돌아보고 와서 보고했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2_40.html
kolaswqetsrq 11.02 03:34
■ 조선의 시작 3편

■ 조선의 시작 3편

이로부터 열흘 후 7월 28일 태조는 즉위교서를 발표했다. 태조는 즉위교서에서 “나라 이름은 그 전대로 고려라고 하고, 의장(儀章)과 법제(法制)는 모두 고려의 고사(故事)에 의거한다”라고 밝혔다. 태조는 고려의 국새를 받아서 고려의 왕으로 즉위한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름이 정해진 것은 이로부터 약 7개월 후의 일이었다.

태조는 즉위 며칠 후 밀직사 조임을 명나라에 파견해서 공양왕을 대신해서 자신이 군국의 사무를 통솔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황제의 재가(裁可:허가)를 바라는 표문(表文)을 올렸다. 이 때 태조가 사용한 직명은 ‘권지고려국사(權知高麗國事)’였다. 태조는 황제의 재가를 아직 받지 않았기 때문에 ‘왕’대신 ‘국사’의 직책을 사용한 것이다. 조임은 3개월 후 명나라 황제의 외교문서를 받아와서 보고했다.

“고려는 산이 경계를 이루고 바다가 가로막아 하늘이 동이(東夷)를 만들었으므로 우리 중국이 통치할 바는 아니다. 나라의 국호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빨리 와서 보고하라.”

명 황제는 고려는 자신이 통치할 범위가 아니라고 선을 긋고 국호를 정해서 보고하라고 한 것이다. 새 나라의 건국을 인정해 준 것이다. 태조는 국호를 정해 명나라에 보낼 외교 적임자를 고민하고 있었다. 예문관 학사 한상질이 자청해서 가겠다고 나섰다. 한상질은 세조의 책사(策士) 꾀주머니로 잘 알려진 한명회의 할아버지이다. 한상질은 신하들이 모여서 논의한 ‘조선(朝鮮)’과 ‘화령(和寧)’의 두 가지 국호(國號)를 가지고 명에 갔다. 조선은 단군조선·기자조선에서 따 온 것이고, 화령은 이성계의 고향 함경도 영흥의 옛 이름이다.

명 황제는 조칙을 내렸다. “동이(東夷)의 국호로 ‘조선’의 칭호가 전래된 것이 오래 되었고 아름답다. 이 이름(조선)을 근본으로 해서 하늘을 본받고 백성을 다스려서 후사(後嗣)를 영구히 번성하게 하라.”

명의 황제는 ‘조선’과 ‘화령’ 중에서 동이의 역사가 오래된 ‘조선’을 택한 것이다. ‘조선’의 이름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래서 단군이 세운 조선은 고(古)를 붙여 고조선(古朝鮮)이라 하게 되었다 태조는 바로 나라 이름을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꾸어 선포했다. 1393년 2월 15일이었다. 태조는 국호가 정해진 기쁨으로 전국에 사면령을 내렸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3_12.html
kolaswqetsrq 11.02 03:35
■ 조선의 시작 1편

■ 조선의 시작 1편

7월 17일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제정·공포된 제헌절(制憲節)이다. 1392년 7월 17일은 조선이 시작된 날이고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제일 첫 문장은 “태조가 수창궁(壽昌宮)에서 왕위에 올랐다”이다. 수창궁은 고려의 수도 개경(개성)에 있던 왕의 정전(正殿)이다. 그 날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배극렴, 조준, 정도전 등의 대소신하 50여 명과 한량기로(閑良耆老, 70세가 넘어서 퇴직한 2품 이상의 벼슬아치)들은 하루 전인 7월 16일 국새(國璽:나라를 대표하는 도장)를 받들고 태조의 사저(私邸)로 찾아간다.

사람들이 골목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태조는 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 씨와 밥을 먹고 있었다. 태조의 첫 번째 부인인 신의왕후 한 씨는 태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보지 못한 채 1년 전 이미 돌아가셨다. 태조는 문을 걸어 잠그고 신하들을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밖에서 기다리던 배극렴 등 신하들은 해 질 무렵까지 기다리다가 마침내 대문을 밀치고 마당으로 들어가서 국새를 마루 위에 내려놓았다.

이보다 앞서 시중 배극렴 등은 공민왕의 부인 왕대비에게 “현재의 왕(공양왕)이 도리를 잃고 백성의 민심도 떠났으므로 사직과 백성을 다스릴 수 없으니 왕을 폐하소서” 라고 아뢰었고, 왕대비는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여서 공양왕을 폐위하는 교지(敎旨)를 내렸다. 남은과 문하평리 정희계가 왕대비의 교지(敎旨)를 받들고 공양왕이 머물고 있는 궁으로 가서 공양왕의 폐위를 선포했다.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은 이렇게 왕위를 물려주고 원주로 내려갔다. 왕의 자리가 빈 것이다. 태조가 왕위에 오르기 5일 전이었다.

왕대비는 국새를 받아 보관하고 그 다음날 교지를 내려 태조로 하여금 국사를 맡아보도록 하였다. 태조는 즉위하기 4일 전에 이미 사실상 국정을 손아귀에 넣었던 것이다. 태조의 사저 마루 위에 놓여있는 국새는 왕대비가 공양왕으로부터 받아서 보관했던 것을 신하들이 왕대비로부터 다시 받아서 태조의 사저로 가지고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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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36
■ 해태해치 1편

■ 해태(해치) 1편

우리에게 제과회사 이름과 로고로 익숙한 해태(獬廌·獬豸:haetae)는 오랫동안 경복궁 앞을 지키고 있으면서 서울의 상징이 되었다. 그림 속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민화 속의 해태는 익살스럽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그려져 무서운 존재가 아닌 귀여운 동물로 묘사되어 있기도 한다.

해태는 동아시아 고대 전설 속에서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해치라고도 한다. 얼굴은 사자와 비슷하나 기린처럼 머리에 뿔이 있는 ‘해치’는 목에 방울을 달고 있으며, 몸 전체는 비늘로 덮여 있다고 한다. 또, 겨드랑이에는 날개를 닮은 깃털이 나 있고, 여름에는 늪가에 살며 겨울에는 소나무 숲에 산다고 알려져 있다. 한자로 해(獬)는 부정한 사람을 보면 뿔로 받는다는 ‘신수(神獸)’ ‘신통한 양’ 등을 뜻하고, 치(豸)는 ‘웅크리고 노려보다’ ‘풀리다’ 등의 의미가 있다. 영어로는 ‘the unicorn-lion(외뿔 달린 사자)’ 또는 ‘an omniscient mythical beast(모든 것을 다 꿰뚫어보는 능력을 갖춘 상상의 동물)’이라고 풀이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릉 해치상과 같이 정수리에 뿔이 나 있는 것과 광화문 해치상처럼 뿔이 없는 것 두 종류가 발견되고 있다. 각종 고전을 통해 본 해치의 성격에 관한 공통된 내용은 법과 정의를 수호하는 신수(神獸)라는 점이다. 해치는 정확한 판단력과 예지력을 가지고 있어서 언행만 봐도 그 사람의 성품과 됨됨이를 알아차리며, 사람들 상호 간에 분규나 충돌이 있을 때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 이치에 어긋난 행동을 한 자를 뿔로 받는다고 한다. 더군다나 극악한 죄를 지은 사람은 뿔로 받아 죽이고 먹어 치우기까지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탐관오리나 나쁜 관리들이 뜨끔하도록 의도적으로 노려보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분하는 속성 때문에 해태는 재판과 관계 지어져 있어서, 후세에는 해치의 모습이 재판관의 옷에 그려졌다. 조선에서 관리들을 감찰하고 법을 집행하는 사헌부의 우두머리인 대사헌은 관복의 흉배에 해치를 새기고 해치관을 썼다. 대사헌의 흉배에 새겨진 해태의 모습을 보면, 녹각과 같은 뿔이 달린 머리에 갈기가 돋았고, 크게 벌린 입, 포효하는 듯한 경쾌한 몸집, 그리고 꼬리 끝에 긴 털이 돋아 있다.

또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의 의미로 경복궁 앞에 한 쌍의 해치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설도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서울은 나라의 수도로 더없이 좋은 곳이기는 하지만 불에는 약하다고 한다. 특히 관악산은 유달리 불의 기운이 강한 산으로, 경복궁 뒤의 북악산이 관악산보다 낮아서 그 기운을 막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불의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세우면서 화재를 막기 위해 경복궁 앞에 좌우로 두 개의 해치 석상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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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37
■ 조선의 소방관 1편

■ 조선의 소방관 1편

1426년(세종8년) 2월 한양에서 방화(放火)로 인한 큰 화재로 한성부 남쪽에서 집 2,170채와 행랑채 106칸을 태우고 32명이 불에 타 죽는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한양 인구는 약 10만 명에 백성이 사는 집은 1만6921채 정도였으니 얼마나 큰 피해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불은 때마침 세차게 불어오는 서북풍 때문에 순식간에 한성의 중부, 북부, 남부 민가로 번져갔고, 일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잿더미로 변했다. 집들이 서로 가까이 붙어 있어 한 집에 불이 나면 온 동네를 태우고 나서야 꺼졌기 때문에 화재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다행히 종묘와 궁궐로는 불이 옮겨 붙지 않았지만, 거리에는 어린아이와 노인 등 급작스러운 화재에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이들의 시체가 즐비하였다.

세종은 강원도 횡성에서 사냥을 하고 있다가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시시각각 화재 대책을 지시하면서 환궁(還宮)을 서둘렀다. 이 화재 사건을 계기로 세종은 종루 옆에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관청인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했다. 하지만 요즘 소방서와 다른 점은 불이 나도 금화도감에서는 직접 불을 끄러 출동하지는 않았다. 금화도감은 백성들에게 예방교육을 철저히 실시하고, 대비책을 강구하는 업무에 힘썼다. 불이 이웃집으로 번지는 것을 막도록 가옥과 가옥 사이에 방화장(防火墻)을 쌓았는데, 이 때 울타리나 담은 불에 잘 타지 않는 나무로 짓게 했다. 또, 불이 났을 때 신속히 끌 수 있도록 사다리와 물 푸는 그릇 따위를 각 마을마다 준비하게 하고, 우물이 부족한 마을은 물독을 다섯 집마다 한 개씩 갖춰 방화수를 저장해 두는 등 방화 업무를 총괄하는 관청이었다. 또 화재로 해를 입은 사람들이 당분간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 이재민 구휼에도 힘썼다.

불이 난 지 한 달 만인 3월 6일, 방화범 이영생과 장원만 등 일곱 명이 붙잡혔다. 동전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죄로 관청에서 재산을 몰수하자, 이에 원한을 품고 화재를 일으킨 것이었다. 조선은 1425년(세종7년) 2월 처음으로 동전인 조선통보(朝鮮通寶)를 유통시켰는데, 4월에는 저화(楮貨:고려 말 만들어진 닥나무로 만든 종이돈) 사용을 금지하고 동전만 사용하도록 했다. 따라서 이를 어기면 경제사범이 되는 것이다. 특히 죄가 중한 자는 군중이 보는 곳에서 곤장 1백 대를 때리고 수군으로 강제 편입시켰으며, 재산은 관에서 몰수했다. 또 범인을 고발한 자에게는 죄인의 재산 반을 상금으로 주었다. 이 형벌이 너무 과해 한때 방화를 저지르는 자들이 창궐하기도 했다고 한다.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 때 이미 ‘금화령’이 만들어져 있어 방화범(放火犯)은 대부분 극형인 능지처참에 처해졌고 가족들은 모두 노비가 되었다. 대사령(大赦令) 때도 사면되지 않는 상사소불원(常赦所不原)에 해당하는 범죄였다. 실수로 불을 냈다 해도 엄벌에 처하고, 자기 집을 태운 사람은 볼기 40대, 남의 집을 태운 사람은 볼기 50대 맞았다. 종묘(宗廟)와 궁궐을 태운 자는 설령 실수라 할지라도 교수형(絞首刑)에 처해졌고, 궁궐 창고를 지키거나 죄인을 간수하는 관리들이 불이 났을 때 혼자 도망가면 곤장 100대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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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37
■ 엿 먹어라! 1편

■ 엿 먹어라! 1편

먹을거리가 많지 않던 옛날에는 귀한 군것질거리였던 ‘엿’. 달콤하고 맛있는 간식 ‘엿’이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일상 언어생활에서 부정적인 경우나 비속어로 쓰이게 되었다. ‘엿 먹어라’의 유래는 확실치 않고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膾炙)되게 된 사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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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는 초등학생이 중학교 진학을 위해 입학시험을 치르는 시대였다. 1965년 입학시험에서 지금의 과학에 해당하는 자연과목에서 엿을 만드는 재료에 대한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엿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을 묻는 이 문제의 정답은 디아스타아제였다. 하지만 보기 중에 ‘무즙’도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한문제로 당락(當落)이 결정된 불합격자에게는 정말 억울한 일이었다. ‘무즙’을 정답으로 쓴 학생들의 부모가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문제를 출제한 서울시 출제위원회는 어떠한 경우든 정답은 하나라는 원칙을 고수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직접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보여주며 무즙에도 디아스타아제가 있으니 그것을 이용해서 엿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학부모들이 증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난감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없었던 것으로 하고 모든 학생에게 1점의 가산점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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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에는 ‘디아스타아제’를 정답으로 쓴 학생의 학부모들이 항의를 시작했다. 틀린 학생도 점수를 주면 불공평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출제위원회는 다시 원래 입장으로 돌아가서 ‘디아스타아제’만 답으로 하기로 결정했는데, 또 다시 혼란을 야기 시키고 말았다. ‘무즙’도 정답이라고 항의했던 학부모들이 다시 들고 일어났다. 학교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하며 서울시 교육위원회를 찾아가기도 했다.

지금도 대학입시에서 복수정답이 나오면 복잡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초등학생의 중등입시에서부터 극성스런 치맛바람이 일던 시절이니 정말 큰 사건이었다. 합격자 발표까지 다 된 상황에서 그 1점 때문에 원하는 중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38명 학생의 학부모들은 교육감 면담까지 했다. 항간에는 화가 난 학부모들이 무즙으로 만든 엿을 들고 가서 교육감에게 "엿 먹어라"며 던졌다는 소문으로 퍼지게 되었다. 학부모들은 무즙으로 엿을 만드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합격 처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복수 정답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를 인정하게 되었고, 그 학생들을 "정원 외 합격"으로 지원하는 중학교에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엉뚱하게 고위 관료의 자녀들을 슬그머니 끼워 입학시키는 부정입학 사건이 벌어져서 또 한 번 난리를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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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38
■ 왕의 요리사, 숙수 4편

■ 왕의 요리사, 숙수 4편

궁궐에서는 수백 명의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솥 같은 주방 용품도 크고 무거웠다. 또 하루에 보통 두 끼만 먹는 일반인들에 비해 왕실은 훨씬 더 자주 식사를 했기 때문에, 궁궐 주방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 음식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래서 숙수의 일은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사옹원은 노동력 확보에 늘 골머리를 앓았다. 궁궐 주방을 기피하는 남자 숙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 궁궐 주방에서 근무하다가도 중노동을 못 견디고 도망가는 숙수도 많았다. 그래서 숙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은 사옹원의 핵심 과제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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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때 ‘말손’ 이라는 숙수가 있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그는 팀장급 셰프였다. 그의 신분은 노비가 아닌 양인이었다. 중종 7년 3월 16일(1512년 4월 2일) <중종실록>에 따르면, 말손은 궁궐 주방 일이 너무나 힘들어 어느 날부터 궁궐에 출근하지 않았고, 그런 날이 5개월이나 계속됐다. 반년 가까이 무단결근을 했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이런 일은 매우 흔했다. 힘들다고 도망가는 숙수가 많았기 때문에 말손처럼 무단결근하는 것은 어찌 보면 소극적 저항인 셈이었다. 그런데 사옹원 책임자인 사옹원 제조는 특단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말손에 대한 중징계를 내리기로 했다. 주로 왕족이나 사대부 중에서 임명되는 사옹원 제조들은 숙수들의 고충을 잘 몰랐다. 그는 말손을 단단히 혼내줌으로써 일벌백계의 효과를 거두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법에도 없는 징계를 내렸다. 양인 신분인 말손을 사옹원 노비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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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손은 5개월씩이나 무단결근할 정도로 배짱이 좋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사옹원 제조의 불법 징계를 고분고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그는 정부에 사옹원 제조의 징계가 불법적이고 부당하니 취소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징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 셈이었다. 이 탄원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는 중종 임금이었다. 신하들은 말손에 대한 징계가 법에도 없는 것이고 너무 과하다고 하면서 징계 철회를 주장했다. 하지만, 중종의 생각은 좀 달랐다. 징계가 위법한 것은 사실이지만, 숙수들의 근무 행태를 고쳐놓으려면 이참에 본때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중종은 말손의 아내가 제기한 탄원을 기각했다. 이로써 말손은 사옹원 노비가 되어 죽을 때까지 궁궐 주방에서 일하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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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39
■ 왕의 요리사, 숙수 1편

■ 왕의 요리사, 숙수 1편

최근에는 요리를 소재로 하는 TV프로그램이 많다. 가정에서 요리를 주로 하는 사람은 분명 여성이고, 예로부터 우리는 어머니의 손맛을 최고로 여겨왔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요즘은 남자 요리사가 대세이다. 요즘 소위 맛집으로 유명한 음식점이나 고급 레스토랑의 주방은 남자요리사로 가득 차 있다. ‘요섹남’이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요리 잘하는 남자’는 요즘 여성들에게 매력적이고 인기도 많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남자요리사가 있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유교이념이 지배하는 조선시대에 남자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광경은 상상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숙수’라고 불리우는 남자 궁중요리사들이 존재했다. 조선시대의 풍속화로 어느 고관댁의 잔칫날 풍경을 생생하게 그린 그림이 있다. 음식준비로 바쁜 부엌에 재료를 나르고 불을 피우고 음식을 만드는 남자들이 가득하다. 고관의 명으로 출장 나온 궁중요리사들인 것이다.

조선시대 존엄한 존재였던 임금님의 안녕과 건강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임금님의 안녕과 건강의 근본은 음식, 즉 수라(水刺)였다. 일반적으로 궁녀와 나인, 상궁들이 만들었을 거라는 인식과 달리 왕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조선 수라간의 주역은 모두 남자들이었다. ‘대장금’이라는 드라마에는 수라간에서 요리하는 나인과 상궁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실제로 진귀한 왕실 요리를 만들어 내는 수라간에는 고기요리, 찜요리, 채소요리 등 각각의 분야에 전문가들인 남자 요리사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궁중의 요리사들은 까다로운 레시피의 궁중요리 수백 가지를 재래식 요리도구를 이용해 준비해야했다. 또, 왕이 원하면 언제라도 요리를 대령할 수 있도록 24시간 상시 대기해야했고, 때로는 고관들의 집에 불려가 출장요리를 하기도 했다. 이들의 신분은 관노(官奴)였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상을 받거나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지만, 왕실의 잔치와 제사는 끝이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조선시대 왕실 요리사들은 모두가 기피할 정도로 고된 직업 중 하나였다고 한다. 게다가 행여 음식에 문제라도 생기면 처벌을 면치 못했다.

1903년, 왕의 수라에 관한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다. 홍합을 먹은 고종의 이가 부러진 것이다. 요리의 책임자로 ‘숙수 김원근(金元根), 사환 김만춘(金萬春), 숙수패장 김완성(金完成), 각감 서윤택(徐潤宅)’ 등이 처벌을 받았다. 모두 남자였다. 이렇듯 수라간의 주역은 남자였다. 그렇다면 그 많은 나인과 상궁들은 무엇을 했을까. 기미상궁은 임금의 수라에 이상이 있는지를 확인하며 맛보는 역할을 했고, 나인들은 수라간에서 대전 혹은 침전으로 음식을 나르거나 식재료 운반, 설거지 등 요리사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았다. 수라상궁들은 이런 나인들을 지휘하고 감독하며 수라간 일을 주재했지만 직접 요리를 하지는 않았다. 임금님의 음식은 남자가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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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39
혈관을 청소해주는 음식

혈관을 청소해주는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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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혈액의 응고를 막는 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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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에 들어 있는 비타민 C, 카로틴, 비타민 E가 혈관이나 조직을 산화시키는 활성 산소의 활동을 막아 깨끗하고 탄력 있게 혈관을 유지한다. 아침마다 사과 반 개와 당근 한 개를 함께 갈아 주스를 만들어 마시면 맛도 좋고 혈액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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❷ 혈액의 길을 뚫어주는 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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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은 강한 방향 성분이 혈액 순환을 촉진해 찌꺼기들로 막히고 좁아졌던 혈관을 뚫어준다. 생강차를 마시면 온몸에서 땀이 나면서 열이 내려가는 것도 혈액의 이런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또 생강이나 마늘처럼 향이 강한 야채들은 혈소판의 응집을 막아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등을 예방한다. 즙을 내서 먹으면 효과가 더 빠르다. 생강차를 끓여 마시거나 생강즙을 내서 홍차에 섞어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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❸ 고지혈증을 예방하는 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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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는 식물성 단백질과 리놀레산이 풍부하다. 리놀레산은 혈액 안에 들어 있는 응어리진 지방을 녹여 고지혈증을 예방하는 영양분. 막힌 혈관을 뚫는 기능이 뛰어나 한의학에서는 뇌졸중에 두부 습포를 했을 정도라고 한다. 고혈압 환자들은 두부를 날로 차게 해서 먹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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❹ 콜레스테롤을 녹이는 꽁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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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나 고등어 같은 등푸른 생선에 들어 있는 불포화 지방산은 응고된 콜레스테롤을 녹이고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추는데 탁월해 심장 질환 예방에 그만이다. 조리할 때 구우면 불포화 지방산이 많이 유실되므로 조림을 해서 먹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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❺ 묵은 피를 걸러내는 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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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는 궂은 피를 내보내고 새로운 피로 혈관을 채우는 작용을 한다. 부추에는 유화아릴이라는 자극 성분이 있어 에너지 대사를 촉진하고 혈액 순환을 활발하게 한다. 부추는 어떻게 조리하든 소화가 잘 되지만 피를 맑게 하기 위해서는 생채를 만들거나 샐러드에 곁들여 생으로 먹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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❻ 혈액의 독소를 빼내는 미역·다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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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류에 많은 요오드는 신진 대사를 높이고 혈액의 독성을 뽑아 내는 무기질이다. 각종 인스턴트 식품으로 인해 혈액에 녹아든 독성을 해독하므로 인스턴스 식품을 많이 먹는 청소년들에게 특히 좋다. 요오드는 참기름과 함께 조리하면 흡수율이 높아진다. 미역국을 끓이기 전 참기름에 달달 볶아 끓이면 맛과 영양이 모두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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❼ 활성 산소를 제거하는 카레 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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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는 혈액의 지방질을 산화시켜 성인병을 발생시키는 활성 산소를 없애는 데 탁월하다. 카레에 들어 있는 크로프, 터머릭, 코리앤더 등의 성분은 마늘이나 생강처럼 강력한 산화 작용을 하기 때문. 당근이나 감자 같이 혈액을 깨끗하게 하는 다른 야채들을 듬뿍 넣고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먹으면 효과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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❽ 혈관과 조직의 산화를 막는 검은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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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에 포함된 항산화 물질 중 세사미놀과 세사민은 강력한 황산화 작용으로 깨끗한 혈액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중에서도 블랙푸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검은깨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은깨는 가루를 내었다가 선식이나 우유에 타 먹으면 고소함이 더해져 맛도 좋고 영양도 훨씬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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❾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녹차 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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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는 카테닌 성분이 활성 산소를 제거하고 카페인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어 깨끗한 혈액을 만드는 데 2배로 효과가 좋은 식품이다. 잎을 우려내는 것도 좋지만 차의 영양을 100% 이용하려면 녹차 가루를 사용한다. 가루로 차를 타 마시거나 음식 위에 솔솔 뿌려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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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40
무병장수 비결 10가지

무병장수 비결 10가지

인간의 생로병사는 누구든 피할 수 없다. 지구상의 독재자 김일성 김정일도 천하 수천년 묵은 산삼을 못 먹어서 죽었을까?

노화는 인간에게 오는 자연의 이치이다. 노화는 돈 있는 자나 권력을 가진 자나 아무것도 없는 자나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그래서 최대한 죽고 사는 노화를 늦추는 길만이 무병장수의 길이다. 노화예방의 첫 번째는 산삼이나 명약이나 보약에 있지 않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에 있다.

❶ "음식으로 병을 얻고 음식으로 병을 고친다"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음식은 신선하고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음식으로 골고루 섭취한다. 매일 먹는 식사량을 줄이되 저녁은 7시 전에 마치고 저녁식사는 가급적 굶거나 요기만 할 정도로 또는 평상시의 1/3 정도만 먹는다. 저녁 과식이 건강을 망치기 때문이다. 장수한다는 鶴의 胃는 항시 절반만 차있다고 한다.

❷ 몸속의 염도와 당도를 1:1로 유지해야 한다.

각종 성인병, 노인병, 생활습관병은 몸속 당도와 염도의 비율이 깨져 몸 속 항상성이 무너지며 면역력과 자연치유력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이다. 너무 싱겁게 먹는 것도 문제가 된다. 외부 가공 음식, 단음식을 삼가하고 질 좋은 죽염으로 몸 속 염도를 유지한다. 매일 먹는 음식에 신경을 써야 한다. 탄산음료를 금하고 당도가 많고 좋지않은 음식은 피해야 한다.

❸ 따뜻한 물을 적당히 마셔야 한다.

물을 자주 마시되 따뜻한 물을 마시고, 물은 반드시 식사 30분전, 식후 2시간 지나서 마신다. 식사하면서 물이나 음료수를 마시면 안된다. 음식에는 이미 충분한 수분이 들어있다.

❹ 매일 30분 정도 걸어야 한다.

다리는 제2의 심장이고 노화는 다리로부터 온다. 시선은 15 도 상단을 보고 걸는다. 땅을 보고 걸으면 다리가 벌어진다. 간단한 운동을 하며 호흡은 복식호흡을 한다.

❺ 죽어라 운동하지 말아야 한다.

과도한 운동은 수명이 단축되고, 무리한 유산소 운동은 활성산소(세포毒)가 생겨 세포에 악영향이 와서 피로독성물질이 발생한다. 그리고 아침에 눈 뜨자 마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발치기를 300회 이상하고 근육을 깨우는 간단한 운동을 20~30분 정도 한다.

❻ 죽을 때까지 할일을 만들어야 한다.

할일을 만들고, 즐겁게 살며 봉사하고, 적당한 취미생활을 한다. 놀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죽을 때까지 일하다 죽는다는 각오로 제2.제3의 직업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들면 학교에서 전공이 전기공학을 하였다 하여 평생 직업을 전기공학에서 찾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다. 인생 100세 시대에 한우물만 고집하는 시대는 지났다. 자신의 직업에도 창조와 혁신이 필요하다. 과감한 변신과 도전의식이 자신을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

❼ 항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혹자는 친한 친구가 없으면 인생을 실패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말은 구시대적인 사고이다. 친한 친구가 한 사람도 없더라도 가족과 배우자에게 신경쓰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즐기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

❽ 내 가족, 내 형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가급적 저녁 모임을 끊고 가족과 지낸다. 서양에서는 저녁 모임이 없어 식당들이 일찍 문을 닫는다. 동양은 저녁이 흥청망청이다. 저녁모임은 가정과 건강에는 최악의 독이다. 저녁 모임에서 술과 기름진 음식과 안주는 당신을 병자로 만든다. 저녁을 황제처럼 매일 먹는한 당신의 건강은 장담할 수 없다. 대부분 사람들의 식습관이 아침 굶고 점심 적당히 먹고 저녁을 황제처럼 먹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❾ 의학전문가를 친구로 두면 좋다.

틈날 때마다 건강관련 지식을 쌓고, 필요할 때 자신의 건강을 자문받을 수 있은 의사나 한의사, 의학박사, 한의학박사 등 의학계열 전문가를 알아두면 건강생활에 도움이 된다.

❿ 안마지압술을 꾸준하게 시술받아라. 건강을 위한 예방생활 중 하나는 안마지압술에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91.html
kolaswqetsrq 11.02 03:41
걷기 운동의 방법과 효능

걷기 운동의 방법과 효능

✅ 걷기 운동 방법

⓵ 근력운동과 함께

걷는 중간 중간 팔굽혀펴기, 스쿼트 등 근력운동과 함께 하면 더 많은 열량을 소모한다. 가장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다.

⓶ 빠른 걷기

걷는 속도는 체중 감소를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더 많은 열량을 소모하려면 더 빨리 걸어야 한다.

⓷ 편안한 산책

다이어트 뿐 아니라 마음을 휴식까지 원한다면 가까운 공원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을 해보자. 또한, 걷기는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고 기분을 좋게 한다.

⓸ 멀티 태스킹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그만. 걷기는 자연스러운 동작이기 때문에 다른 일에 집중하면서도 쉽게 할 수 있다. 통화를 할 때, 책을 읽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보자.

⓹ 멀리 걷기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정도는 멀리 걸어보자. 평소 2km가량을 걷는다면 1~2km더 추가로 걷는다면 원하는 목표에 좀 더 빨리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⓺ 함께 걷기

가족, 친구들과 함께 걸으면 훨씬 더 즐겁다. 주위에 비슷한 목표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힘은 덜 들고 좀 더 많은 양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⓻ 언덕 걷기

경사진 곳을 걷는 것은 처음에는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충분히 해볼만한 가치가있다. 우리몸에서 가장 근육분포도가 높은 하체근력을 자극해 체중감소에 효과적이다.

✅ 걷기운동의 놀라운 효능

1. 면역기능이 좋아진다.

2. 심근경색이 있더라도 더 오래산다.

3. 심 질환의 위험이 줄어든다.

4. 체내 에너지 활용이 높아진다.

5. 산소섭취량이 는다.

6. 근력이 증강된다.

7. 혈압을 정상적으로 유지시킨다.

8. 인대와 힘줄이 강하게 된다.

9. 심장의 혈액순환이 좋아진다.

10.좋은 콜레스테롤은 증가,나쁜 콜레스테롤은 감소한다

11. 동적 시력이 향상되고 녹내장이 조절된다.

12. 당뇨발생이 줄어든다.

13. 관절의 노화를 늦추어 준다.

14. 성욕, 성기능, 만족도가 좋아진다.

15. 대장암, 전립선암, 유방암의 발생위험이 감소한다.

16. 뇌졸증의 발생위험이 감소한다.

17. 관상동맥질환의 발생 위험이 감소한다.

18. 요통의 도움이 된다.

19. 비만이 개선된다.

20. 심박동수가 감소한다.

21. 변비에 도움이 된다.

22. 각 장기의 혈액순환이 좋아진다.

23. 골다공증이 예방된다.

24. 작업능력이 증가된다.

25. 균형감각이 향상된다.

26. 자신감이 생긴다.

27. 수면의 질이 좋아진다.

28. 스트레스해소에 도움이 된다.

29. 금연시도에 도움이 된다.

30. 우울증, 불안감이 줄어든다.

31. 단기 기억력이 향상된다.

32. 만성두통이 사라진다.

33.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

34. 무기력해지지 않는다.

35. 삶의 질이 향상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62.html
kolaswqetsrq 11.02 03:42
맛있게 먹었는데, 살 빠지는 식품 5가지

 맛있게 먹었는데, 살 빠지는 식품 5가지

음식은 보통 먹으면 먹을수록 살이 찐다. 하지만, 일부 음식은 체내 지방 분해와 배출을 도와 오히려 살 빼는 데 도움을 준다. 지방 감량에 도움을 주는 음식들을 알아본다.

❶ 미역

미역에 함유된 알긴산은 뱃살의 주요 원인인 혈중 중성지방 배출에 도움을 준다. 또한 혈관 손상을 일으키는 나쁜 콜레스테롤(LDL 콜레스테롤)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데 효과적이어서, 이상지질혈증과 동맥경화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❷ 고추

고추에 든 캡사이신은 체지방을 태운다. 캡사이신이 갈색지방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갈색지방은 비만을 유발하는 백색지방을 에너지로 연소시킨다. 캡사이신은 신체의 교감신경을 자극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며 지방 분해를 촉진하기도 한다. 단, 매운 음식으로 지방을 태울 수 있는 열량은 전체 섭취 열량의 10% 정도다.

❸ 검은콩

검은콩에 풍부한 단백질은 지방산과 콜레스테롤 생성을 억제한다. 또한 펩타이드 성분은 체중 감소에 도움을 준다. 함유된 레시틴 성분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해주는데, 혈관 내 지방 성분을 흡착해 배설시킨다. 천연 토코페롤 성분은 피부 탄력에도 영향을 줘 노화방지 효과를 낸다.

❹ 커피

커피를 마시면 주성분인 카페인이 갈색지방을 자극해 체중 감량에 이롭다. 영국 앵글리아 러스킨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매일 2~3잔 커피를 마신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체지방량이 3.4~4.1% 더 적었다. 마찬가지로 커피를 마신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복부 지방량이 1.8% 적었다. 이외에도 카페인은 몸의 대사활동이 잘 이뤄지게 해 지방 연소를 돕는다. 단, 설탕이나 우유를 넣지 않은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여야 다이어트 효과를 볼 수 있다.

❺ 녹차

녹차에 함유된 카테킨 성분은 몸속에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억제한다. 카테킨이 체내 콜레스테롤 흡수를 억제하고 배설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이 40세 이상 1856명을 대상으로 마시는 차 종류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사한 결과, 녹차를 주로 마시는 사람은 몸에 나쁜 콜레스테롤(LDL)과 총콜레스테롤 수치가 가장 낮았다. 카테킨은 지방분해효소인 리파아제를 활성화하기도 한다. 리파아제는 섭취한 지방질 소화를 도와 배출을 원활하게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47.html
kolaswqetsrq 11.02 03:42
주름살 줄이는 방법 5가지

주름살 줄이는 방법 5가지

나이를 들어 보이는 원인 중 하나가 얼굴의 주름살입니다. 원숙함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주름살이 많으면 늙어 보이기 마련인데요. 주름살을 줄이는 놀라운 방법 5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❶ 얼굴을 너무 자주 씻지 마라

수돗물로 너무 자주 씻으면 주름살을 막아주는 보호막 역할을 하는 지방과 수분이 없어집니다. 피부 보호 성분이 없는 비누를 쓰고 있다면 젤이나 크림 형태의 세안제로 바꾸는 게 좋습니다.

❷ 등을 대고 반듯하게 자라

엎드리거나 해서 자면 피부에 수면선을 남기게 되고 일어난 뒤에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옆으로 누워 자면 볼과 턱에 주름살이 남게 되고, 얼굴을 침대에 파묻고 자면 이마에 생길 수 있습니다.

❸ 눈을 가늘게 뜨지 마라

눈을 가늘게 뜨고 것과 같은 반복적으로 얼굴 근육을 찡그리는 동작은 피부 표면 아래에 홈을 만들게 됩니다. 이 홈이 결국 주름살이 됩니다.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게 좋으며 필요하면 안경을 쓰고 햇살로 생기는 눈가 주름을 막으려면 선글라스를 쓰는게 좋습니다.

❹ 연어와 콩을 먹어라

연어는 아름다운 피부를 가꾸는 데 좋은 단백질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오메가-3 지방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습니다. 오메가-3 지방산은 피부에 영양분을 제공해주고 주름살을 없애는 데 좋습니다. 또 콩은 피부가 햇빛에 노출돼 나타나는 광노화를 막아주며 콩을 6개월만 먹으면 피부의 구조를 바꿔주고 단단하게 해준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❺ 커피 대신 코코아를 마셔라

코코아는 에피카친과 카테킨이라는 두 가지 플라보노이드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피부를 햇빛으로부터 보호하고, 피부세포 순환을 개선시켜 주며 피부를 더 부드럽게 보이게 해줍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39.html
kolaswqetsrq 11.02 03:43
병을 낫게 해주는 기막힌 차

병을 낫게 해주는 기막힌 차

옛날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평소 잘만 마시면 병을 낫게 해주는 기막힌 차들이 있어 소개해드립니다.

1.간장에 좋은차 : 들국화,구기자,두충,들깨,모과,뽕잎,산딸기,산수유,새삼,오갈피

2.간염에 좋은차 : 감초,민들레,오미자,인동,질경이,결명자,회화

3.눈병에 좋은차 : 현미,모과,감잎,당귀,두충,보리,복숭아,결명자,솔잎

4.지혈에 좋은차 : 냉이차,식류차,연차,인동차,칡차,호도차

5.진통에 좋은차 : 계피차,들국화차,치자차,칡차,홍화차,으름차,율무차,두충차,대추차,당귀차

6.천식에 좋은차 : 감초차,도라지차,들깨차,살구차,율무차,은행차,호도차

7.충농증에 좋은차 : 은행차,산수유차,산딸기차

8.항문염증에 좋은차: 동과차,감잎차

9.치질에 좋은차 : 호도차,계피차,쑥차,탱자차,냉이차,호박차,식류차

10.콜레스테롤저하 : 더덕차,해바라기

11.탈항에 좋은차 : 감잎차,단너삼차,만삼차,식류차,탱자차

12.패혈증에 좋은차 : 인동덩쿨차

13.편도섬염에 좋은차 : 더덕차,도라지차,민들레차,인동넝쿨차,홍화차

14.폐결핵에 좋은차 : 구기자차,더덕차,매실차,모과차,산수유차,호도차

15.폐렴에 좋은차 : 들국화차,인동넝쿨차,살구차,율뮤차,모과차

16.풍열증에 좋은차 : 박하차,들국화차,결명자차.계피차,율무차,칡차

17.피로회복에 좋은차 : 만삼차,더덕차,박하차,검정콩차,녹차,매실차,오미자차,인삼차,두충차

18.피부미용에 좋은차 : 감잎차,산딸기차,구기자차,대추차,둥굴래차,매실차

19.향균작용 : 으름덩쿨차,음양각차,은행차,쑥차,인동넝쿨차,매실차,치자차,민들레차

20.항알레르기 : 감초차

21.항암 : 감초차,다랴차,마름차,율무차.옥수수차, 산수유차,영지차,표고차,오갈피차,쑥차

22.항염소염 : 감초차,들국화차,오갈치차,인동넝쿨차,치자차,박하차,귤피차,옥수수차 으름덩쿨차

23.해독 : 감초차,들국화차,민들레차,냉이차,칡차,다래차,대추차,더덕차,마름차,검정콩차 인동차,녹차

24.해열,칭열에 좋은차 : 질경이차,구기자차,냉이차,대추차,도라지차,둥글래차,감국차

25.협심증에 좋은차 : 칡차

26.황달에 좋은차 : 질경이차,다래차,삽주차,옥수수차,으름덩쿨차,결명자차,칡차, 하늘타리차,쑥차,치자차,검정콩차

27.가래에 좋은차 : 도라지차,더덕차,진달래차,오미자차,치자차,감초차,녹차,다시마차 귤피차

28.건망증에 좋은차 : 삼지구엽차,식창포차,솔잎차,인삼차

29.개고기 먹고 체한데 : 유자차,살구차

30.결막염에 좋은차 : 결명자차,민들레차,질경이차,으름덩쿨차,치자차

31.고기먹고 체한데 : 귤피차,살구차,연차,생강차

32.고혈압 : 감잎차,검정콩차,냉이차,당귀차,다시마차,더덕차,들국화차,삼지구엽차,솔차 쑥차,연차,

33.곽란(콜레라)에 좋은차 : 도토리차,귤피차,모과차,박하차,생강차,삽주차,들국화차

34.관절염,관절통 : 다래차,오갈피차,들국화차,복숭아차,삼지구엽차,결명자차,두충차 으름덩쿨차,유자차,율무차,대추차,다시마차,모과차,검정콩차,계피차박하차,만병초차,마름차,뽕잎차,삽주차,탱주차,생강차,해당화차

35.괴혈병에 좋은차 : 감잎차

36.구내염에 좋은차 : 도라지차,들국화차,홍화차,결명자차

37.구충에 좋은차 : 도토리차,매실차,살구차.식류차,호박차,회화

38.구토에 좋은차 : 계피차,다래차,비파차,삽주차,생강차,칡차,귤피차

39.기가 약한 사람 : 보리차,검정콩차,비파차

40.기관지염에 좋은차 : 감초차,더덕차,도라지차,모과차,민들레차,비파차,살구차,잔대차 진달래차,질경이차.뽕잎차,박하차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34.html
kolaswqetsrq 11.02 03:44
심장 건강을 지키는 간단한 방법들

심장 건강을 지키는 간단한 방법들

❶ 호두를 먹어라

하루에 호두 반 컵을 먹으면 혈관 기능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두에는 염증을 퇴치하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❷ 맥박수를 측정하라

아침에 일어나서 슬리퍼를 찾기 전에 맥박부터 재보라. 건강한 사람은 맥박수가 분당 70이나 그 이하여야 한다. 맥박수가 일주일이나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점점 높아진다면 진단을 받는 게 좋다.

❸ 오염된 공기를 피하라

미세먼지로 오염된 공기를 마시면 경동맥(목동맥)의 벽이 두꺼워져 심장마비 위험이 커진다. 새벽에 먼지 농도가 가장 심하기 때문에 이때를 피해 운동은 오후에 하는 게 좋다.

❹ 악력 훈련을 하라

연구결과, 악력기로 하는 손 운동을 4주 정도만 해도 혈압이 10% 정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운동은 혈관 기능을 향상시키는 전단 응력을 발생시킨다. 양손으로 2분씩 4번 정도 악력 운동을 하는 데 매회 1분 정도 휴식을 하면 된다.

❺ 달걀을 믿어라

달걀을 먹으면 나쁜 콜레스테롤(LDL)이 증가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연구에 따르면, 달걀 섭취와 심장동맥이 더 맑아지는 것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른자에 들어있는 비타민 E와 B12, 엽산 덕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단 달걀은 칼로리가 높으니 하루 4개 이상 먹어서는 안 된다.

❻심호흡을 하라

잠시 일을 중단하고 오랫동안 심호흡을 해보라. 30초 동안 6번 심호흡을 하는 게 좋다. 이렇게 하면 1분 안에 수축기 혈압을 4mmHg 낮출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심호흡을 꾸준히 하면 혈압이 낮아지는 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❼ 트랜스지방을 피하라

트랜스지방 섭취를 1%만 줄여도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크게 감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❽ 칼륨을 좋아하라

매일 칼륨 1000mg을 더 섭취하면 수축기 혈압을 감소시킬 수 있다. 칼륨이 많이 들어있는 식품으로는 바나나와 고구마, 황다랑어 등이 있다.

❾ 아침을 반드시 먹어라

아침식사를 건너뛰는 사람은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27%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침을 안 먹으면 혈당이 오르내리고 혈액 속 중성지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❿ 긍정적으로 살아라

밝은 인생관을 가지면 심장병 위험을 반이나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스트레스와 염증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17.html
kolaswqetsrq 11.02 03:45
장수 하는 비법 38가지

장수 하는 비법 38가지

밝은 마음으로 살라.

마음이 밝아지면 몸에 병이 발 붙이지 못한다.

병을 두려워 말라.

병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죽는다.

불평을 하지 말라.

불평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저승사자이다.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여라.

손발이 건강해지면 온 몸이 건강해진다.

열심히 웃어라. 웃다보면 즐겁고 즐거우면 활력이 넘친다.

열 받지 말라.

열을 잘 받는 사람이 쉽게 간다.

음식을 적게 먹어라.

소식하는 사람이 오래 산다.

일을 즐겁게 하라.

즐겁게 일하면 인생이 천국이 된다.

오래 살려면 담배를 끊어라.

담배처럼 백해무익한 것도 드물다.

헬스클럽에 갈 필요가 없다.

맨손체조가 헬스클럽이다.

마음을 안정 시켜라.

충격처럼 위험한 것도 없다.

호기심을 가져라.

호기심은 젊음을 만든다.

끊임없이 머리를 써라.

머리를 쓰면 치매가 예방된다.

술은 보약이다.

그러나 적당히 먹어라.

신앙을 가져라.

자신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된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어라.

성질 급한 사람이 먼저 간다.

부부 사랑에 힘써라.

사랑의 열도가 높아지면 20년 더 산다.

고민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고민하지 말라.

고민은 생명을 좀 먹는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미움은 자신의 피를 탁하게 하여 없던 병도 끌어들인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밤 늦게까지 자지 않으면 노화가 빨리 온다.

아침에 일어나 생수를 3잔 마셔라.

좋은 물은 인삼 녹용보다 더 좋은 보약이다.

틈이 있으면 흙을 밟아라.

자연처럼 위대한 의사도 없다.

잠을 잘 자라.

잘 자는 사람이 건강하다.

무리를 하지 말라.

무리를 하면 무리가 생긴다.

의사 친구를 사귀어라.

의사는 내 생명을 지켜주는 파수꾼이다.

음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라.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괴로워 말라.

괴로움이 피를 말린다.

수양되는 글을 읽고 또 읽어라.

수양된 만큼 장수한다.

봉사하는 데 앞장 서라.

봉사하는 마음이 축복이다.

매일 밝고 힘찬 노래를 1곡씩 불러라.

살아있는 기가 온 몸에 생겨난다.

맑은 공기를 마셔라.

숨을 잘 쉬어야 장수한다.

고독은 병을 만든다.

좋은 친구를 사귀어라.

화내지 말고 이해하라.

이해하는 사람에게 생명 에너지가 생성된다.

편식하지 말라.

편식은 단명의 원인이다.

그 날 있었던 좋은 일만 기록하라.

넘치는 의욕이 장수를 보증한다.

할 일이 없어도 움직여라.

좋은 차도 오래 세워 놓으면 폐차가 된다.

좋은 취미를 길러라.

즐거움이 살 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준다.

희망을 가져라.

희망대로 이뤄진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38.html
kolaswqetsrq 11.02 03:45
◇ 아메리카노는 살 안 쪄요.. 방심하면 안 되는 이유

◇ 아메리카노는 살 안 쪄요.. 방심하면 안 되는 이유

당도 높은 카페 음료에 비하면 아메리카노는 열량이 낮은 편이다. 아이스 캐러멜마키아토는 약 160kal, 아이스 카페모카는 약 250kcal지만 아메리카노는 약 5~10kcal다. 그러나 열량이 낮다고 해서 마음 놓고 마시는 건 좋지 않다. 아메리카노에 든 카페인이 ‘가짜 식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다.

카페인은 교감신경을 활성화해, 심장이 빨리 뛰게 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량도 늘린다. 체내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면 신진대사 균형이 무너져, 식욕 억제 호르몬인 렙틴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배가 고플 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계속 음식을 찾게 될 수 있다.

아메리카노를 많이 마셔 다량의 카페인을 섭취하면 지방이 잘 분해되지 않을 수 있다. 코르티솔이 지방 분해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분해되지 않은 지방은 몸에 고스란히 쌓인다. 코르티솔 수용체는 복부에 특히 많아 뱃살이 찌기 쉽다.

카페인을 처음 섭취했을 땐 교감 신경이 활성화되지만, 이 상태가 오래가면 교감신경의 작용을 억제하려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빨라졌던 심장 박동이 다시 느려지고, 이뇨 작용이 덜 활발해진다. 신체 균형이 깨지다 보니 살 찌기 쉬운 몸이 될 수 있다.

열량이 낮은 아메리카노라도 카페인 섭취량을 고려해 적당히 마셔야 한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의하면 테이크아웃 아메리카노 한 잔에 든 카페인 함량은 평균 125mg이다. 한 잔 정도 마시면 카페인이 에너지 소비율을 늘리면서도, 코르티솔은 크게 활성화하지 않는다. 어쩌다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더라도 식약처가 제시한 카페인 성인 하루 최대 섭취량인 400mg을 넘지 않는 게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27.html
kolaswqetsrq 11.02 03:46
병원에 즉시 가야 하는 10가지 증상

병원에 즉시 가야 하는 10가지 증상

✅ 미루다가 병 키운다

 "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큰 병을 키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정말 심각한 상태일 때만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작더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할 증상이 있다. 병원에 가야 하는 열 가지 증상을 살펴보자.
",

1. 머리를 부딪힌 경우

머리를 어딘가에 부딪혔다면 뇌진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지럽거나 메스껍거나 구토하거나 집중하기 어렵거나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 경우, 기분이 급작스레 변하고 빛과 소음에 민감해진 경우 의사를 찾아가자.

2. 고열이 나는 경우

고열이 나거나 열이 오래가면 심각한 상황일 수 있다. 고열이나 오래 계속되는 열은 심각한 징후일 수 있다. 39도 이상 열이 나거나 3일 이상 열이 나면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수도 있다. 열이 내렸다가 하루 정도 지나 다시 오르는 상태도 안전하지 않다. 만약 3개월 미만의 아기에게 열이 있다면 즉시 의사를 찾아가자.

3. 기침이 2주 이상 기침 계속되는 경우

기침이 좀처럼 낫지 않는다면 심각한 상태일 수 있다. 만약 기침이 나면서 굵은 가래, 녹색이나 노란색 가래가 있거나 호흡곤란이 있는 경우, 발목에 부종이 있는 경우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4. 급작스레 체중이 감소한 경우

살을 빼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 6개월 동안 몸무게의 5~10%가 빠졌다면 의사를 찾아가자. 갑상선 질환이 있거나, 당뇨병, 간 질환, 크론병, 셀리악병, 혹은 궤양성 대장염일 수 있다. 우울증이나 암에 걸린 경우, 약물 부작용이 있는 경우에도 급작스레 살이 빠질 수 있다.

5. 가슴, 복부, 골반에 심한 통증이 있는 경우

가슴이나 복부 또는 골반 부위에 심한 통증이 있다면 내장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가슴 통증은 심장마비, 아랫배 통증은 맹장염의 증후일 수 있다. 며칠이 지나도 낫지 않는 통증이 있다면 검진을 받자.

6. 기분 변화가 심한 경우

비정상적인 기분 변화나 혼란을 겪는다면 정신 건강에 이상이 있거나 약물의 부작용일 수 있다. 혹은 치매의 초기 징후일 수도 있다. 다소 기분 변화가 있는 것은 정상이다. 하지만 몇 주 동안 계속해서 큰 변화가 있다면 의사를 찾아가자.

7. 심한 설사를 하는 경우

설사는 대부분 저절로 사라진다. 이틀이 지나도 설사가 낫지 않거나 하루 10회 이상 배변하는 경우, 배변이 검거나 혈변을 보는 경우는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만약 입이 마르거나 소변 색이 짙거나 양이 적은 경우, 어지럽거나 고열이 있고 급성 복통이 있는 경우 탈수 상태일 수 있다.

8. 호흡 곤란인 경우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고도가 높은 곳에 가면 몇 분 동안 숨이 차는 것은 정상이다. 혹은 잠시 공황 상태에 빠졌을 때 숨이 찬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때 숨이 가쁘면 의사를 찾는 게 좋다.

9. 약물 부작용이 심한 경우

약은 대부분 부작용이 있다. 어떤 부작용은 가볍다. 심각한 경우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부작용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의사가 지시하는 대로 약을 먹는 게 좋다. 또 복용하고 있는 다른 모든 약과 보조제가 있다면 의사에게 말하고 의논하는 게 안전하다.

약의 상호작용을 줄이기 위한 예방책이다. 그리고 만약 새로운 약을 먹은 후에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빨리 의사와 상의하자. 다른 약을 추천하거나 복용량을 조정해 줄 수 있다.

10. 수술 부위에 고름이 나거나 열이 나는 경우

시술하거나 수술받은 후에 새로운 증상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수술 부위가 붓거나 열이 나고 붉어지는 경우, 혹은 고름이 나는 경우는 이상이 있을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증상이 있으면 병원에 가자. 특히 피부나 입술이 파래지거나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 곤란이 오는 경우, 흉통 등이 있는 경우에는 바로 의사를 찾아가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65.html
kolaswqetsrq 11.02 03:47
비만 부르는 식습관

비만 부르는 식습관

▶ 나이 들어 왜 살찌지?

늘어나는 뱃살과 체중은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의 고민거리다. 나이가 들면 신진대사가 느려져 살이 찌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들은 성인이 된 이후 매년 평균 0.7kg씩 체중이 늘어난다. 불규칙한 호르몬, 근육 손실, 스트레스 등을 조절하지 않으면 50 대에는 대략 20kg의 체중이 불어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체중 증가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필연적 현상은 아니다. 식이 조절을 통해 체중 증가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살찌게 만드는 나쁜 식습관에 대해 소개한다.

❶ 흰색 탄수화물 섭취

흰색 탄수화물, 즉 정제 탄수화물은 흰쌀, 밀가루, 설탕 등의 식품을 말한다. 이런 식품은 혈당을 빠르게 높이고, 또 빠르게 떨어뜨려 체중 관리에 악영향을 미친다. 흰 쌀밥을 잡곡밥으로 흰 밀가루를 통곡밀로 대체하면 섬유질 섭취량이 늘어나 신진대사가 향상된다.

섬유질 섭취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체중이 천천히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매일 과일과 채소를 통해 섬유질을 섭취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❷ 식사량 부족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서는 칼로리 섭취량을 줄여야 하지만 지나치게 적게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본적인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칼로리보다도 더 적은 양을 먹게 되면 신진대사를 조율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칼로리를 소모하는데 도움이 되는 근육 조직도 파괴된다.

여성의 경우 체중 감량을 하는 동안 최소 1200 칼로리는 섭취해야 한다. 3, 4 시간마다 식사를 하고 식사 중간에 430 칼로리 이내로 간식을 먹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 과식을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진대사도 떨어지지 않게 된다.

❸ 단백질, 철분 부족

우리 몸은 적당한 근육을 유지해야 체력을 보존하고 지방을 태울 수 있다. 단백질은 근육을 생성하는데 필요한 영양소이고, 철분은 근육에 산소를 운반해 지방을 태우는 영양소다. 특히 여성들은 매달 월경 때마다 철분을 손실하게 되므로 손실된 양을 채워야 신진대사가 떨어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❹ 카페인 음료 금지

카페인은 중추 신경계를 각성하는 역할을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매일 카페인이 든 차나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면 신진대사가 12% 상승한다. 녹차의 떫은맛을 내는 성분인 카테킨은 항산화제로 작용해 신진대사를 북돋운다. 불면증 등 카페인 음료에 대한 부작용이 없으면 하루 1, 2 잔 정도의 적당량은 대사 증진에 도움이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44.html
kolaswqetsrq 11.02 03:47
사과의 건강 효과 7가지

사과의 건강 효과 7가지

1. 다이어트 효과

식사 15분 전에 사과 한 개를 먹으면 살을 빼는데 도움이 된다. 보통 후식으로 먹는 과일을 식사 전에 먹으면 포만감을 줘서 밥을 덜 먹게 된다는 것이다.

2. 대장암, 유방암 예방

사과에 들어 있는 식이섬유인 펙틴은 대장암을 예방하는 유익한 지방산을 증가시킨다. 붉은색 사과에 풍부한 폴리페놀 성분은 대장 내에 머무는 동안 장 내의 항암 물질 생산을 돕는다.

사과는 유방암도 예방한다. 유방암을 일으키는 발암 물질을 주입한 실험용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24주 동안 한 그룹에는 사과 추출물을 먹이고, 다른 그룹에는 먹이지 않았다.

그 결과, 사과 추출물을 먹지 않은 쥐의 81%에선 치명적 유방암인 선암이 발생했지만, 사과 추출물을 먹은 쥐에게선 선암 발생 빈도가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과를 포함한 과일과 채소에 들어 있는 파이토케미컬로 통칭되는 식품 속 페놀 화합물이나 플라보노이드가 항산화, 종양 증식 억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 변비 해소

변이 대장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수분이 빠져 변은 더 단단해지고 작아져 변비가 심해진다. 변비약은 내성이 생기므로 변비약보다는 신체활동으로 장운동을 촉진시키거나 음식으로 배변을 유도하는 것이 좋다.

사과의 펙틴 성분은 식이섬유의 하나다. 식이섬유는 고기를 먹을 때 증가하는 지방질을 빨아들여 변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하는 기능을 한다. 장운동이 활발한 아침 식전에 사과를 먹으면 심한 변비뿐 아니라 설사에도 효과적이다. 펙틴성분은 껍질에 더 많이 들어있다.

4. 편두통 완화

풋사과 냄새는 뇌를 쿵쿵 두드리는 증세를 일으키는 편두통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두통이 있을 땐 풋사과를 반으로 잘라 냄새를 맡아보라는 것이다.

두통은 물론 관절 통증을 완화한다는 보고도 있다. 단, 인공적으로 사과향이 나도록 만든 향수나 방향제, 항균제는 두통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단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5. 태아 천식 예방

임신 중에 과일을 많이 먹으면 뱃속 아이가 출산 후 천식에 덜 걸린다. 영국 애버딘 대학교 연구팀이 5세 이상의 자녀를 둔 여성 2000명의 식습관과 자녀들의 건강 상태를 조사한 결과, 매주 4~5개의 사과를 먹는 여성의 자녀가 매주 1개 이하로 사과를 먹는 여성의 자녀보다 천식 유병률이 50% 정도 낮았다.

연구팀은 "사과는 성인들의 폐 건강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아마도 인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유해 산소를 없애는 사과의 항산화 성질이 질병 예방 효과를 나타내는 것 같다"고 밝혔다.

6. 뽀얀 피부 만들기

사과는 노화를 방지하며 하얗고 뽀얀 피부를 만들어주는 성분인 폴리페놀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영국 식품연구소 연구팀이 폴리페놀 성분을 따로 추출할 수 없는 과일인 사과, 복숭아, 천도복숭아를 분석했다.

그 결과, 폴리페놀 성분을 추출할 수 있는 포도 같은 과일보다 최고 5배까지 더 많은 폴리페놀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폴리페놀은 식물에 많이 들어 있는 물질로 포도에 들어있는 프로안소시아니딘과 엘라그산, 녹차에 함유된 카테킨 등이 대표적인 폴리페놀 화합물이다.

이 화합물들은 산화를 억제하는 활동을 하며 항암, 미백, 노화방지 등의 기능을 하고 콜레스테롤이 소화관으로 흡수되는 것을 막아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게 해주는 작용도 한다.

7. 두피 청결

사과 식초를 이용해 머리를 감으면 두피에 낀 기름기를 제거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과 식초 한 티스푼을 물에 희석시켜 머리를 감을 때 린스처럼 사용하면 된다.

이는 샴푸의 잔여물을 씻어내는데도 도움을 준다. 식초 냄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머리카락이 마르면서 전부 사라지기 때문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7_78.html
kolaswqetsrq 11.02 03:48
금보다 귀한 양파의 8가지 효능

금보다 귀한 양파의 8가지 효능

1. 감기

혹시 감기나 독감에 걸렸다면 끓는 물에 양파 몇 조각을 넣은 후, 잠시 우려내자. 이렇게 만든 양파차가 사실 맛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2시간 안에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 몸살 기운을 완화시킬 뿐 아니라 가래도 가라앉힐 수 있다. 감기 증세가 심하다면, 양파 몇 조각을 날 것 채로 더 먹으면 된다. 그렇더라도, 양파차를 조금만 마셔보라.

숨쉬는 것 마저 편해질 것이다.

2. 귀가 아플 때

귀가 아파본 적이 있다면 이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 거다. 머리까지 깨질 것 같은 이 고통은 어떤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양파 한 조각을 귀에 넣으면 놀랍게도 통증이 바로 사라진다. 양파가 귀 안의 염증을 가라앉혀주기 때문이다.

3. 눈에 이물질이 들어갔을 때

눈에 뭔가 들어가면, 가능한 빨리 빼고 싶어진다. 그래서 눈을 문지르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 방법은 틀.렸.다. 당신은 그저 이물질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망막을 긁어대고 있는 것이다. 보다 나은 방법은, 양파를 컵 처럼 눈 위에 얹는 것이다. 바로 눈물이 나와서 어떤 이물질이라도 즉시 한 방에 흘려보내줄 것이다.

4. 칼에 베거나 찢어졌을 때

부엌에서 칼로 베였다면, 양파야말로 (심지어 대*밴드를 가지고 뛰어오는 애인보다) 당신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줄 수 있다. 양파를 상처 위에 대고 있으면, 즉시 지혈이 될 뿐 아니라 소독을 해주는 효과도 있어서 염증을 예방해준다. 심지어, 상처도 훨씬 빨리 낫는다.

5. 흉터

누구나 하나쯤은 흉터를 가지고 있다. 사고로 얻은 흉터이건, 수술 이후의 흉터이건, 대부분 평생 몸에 남기 마련이다. 그런데 양파를 잘라 체에 거른 즙을 사용하면 상처의 변색된 부분을 제거할 수 있다. 천 조각에 양파즙을 적신 후 상처 위에 대어보라. 하루에 몇 번만 반복하면 3일 후에는 원래 피부색이 돌아올 것이다!

6. 염증이 있을 때

피부에 염증이 있다면 약간의 우유에 빵 몇 조각과 신선한 양파를 넣어 연고처럼 될 때까지 끓여보자. 염증이 생긴 부위를 잘 닦아낸 후, 이 연고를 조금만 발라보라. 그리고 잘 마를 때까지 2 시간 정도 기다린 후, 남은 양파 연고를 깨끗이 씻어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염증은 사라질 것이다.

7. 햇볕에 탔을 때

피부가 햇볕에 타게 되면 표피층이 대부분 파괴되면서 피부 표면이 빨갛게 변한다. 양파 한 조각을 해당 부위에 대고 있어보라. 그리고 나서 계란 흰자를 조금 발라주면 피부를 보호하는 동시에 양파의 영양분을 녹여내는 역할을 한다. 효능은 즉시 나타나서 3시간 안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8. 벌레에 물렸을 때

특히 말벌 혹은 벌에 쏘였을 경우 그 부위가 빨갛게 부어오르기 마련이다. 즉시 찬물로 씻어내고 양파를 대어보라. 양파즙이 증발하면서 피부에 남아있는 독을 빼낼 뿐 아니라 붓기도 훨씬 빨리 가라앉힌다. 효과는 몇 분 안에. 벌에 쏘였다면 양파보다 더 나은 치료제는 없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8_60.html
kolaswqetsrq 11.02 03:49
사벌등안捨筏登岸 - 뗏목은 버리고 언덕을 오르다.

사벌등안(捨筏登岸) - 뗏목은 버리고 언덕을 오르다.

버릴 사(扌/8) 뗏목 벌(竹/6) 오를 등(癶/7) 언덕 안(山/5)

강을 건너려면 뗏목이 필요하지만 기슭에 닿고 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맙게 잘 타고 왔더라도 남은 일은 언덕을 오르는 일인데 거추장스럽다. 물고기를 잡은 뒤에는 유용했던 통발이 요리를 해서 먹을 때는 필요 없어 잊어버린다는 得魚忘筌(득어망전)을 소개했다.

이 말은 목적을 달성하고 난 뒤에 도움을 받은 것을 깡그리 잊는 배신의 뜻이 강한 반면, 뗏목은 메고 언덕을 오를 수 없으니 잊어야 다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두고 가면 뒤의 사람이 다시 강을 건너는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제자 須菩提(수보리)에게 설법한 ‘金剛般若波羅蜜經(금강반야바라밀경)’에서 이 성어가 나왔다. 간단히 金剛經(금강경)이라고 하는 이 경전은 불교를 신봉하는 동양에서 주석서만 600여 종에 이르는 대표적인 것이라 한다. 해당되는 부분이 나오는 6장 正信稀有分(정신희유분)의 마지막은 이렇다. 부처님이 마땅히 법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은 내 설법을 뗏목의 비유로 알아야 한다. 법도 마땅히 버려야 하는 것인데 하물며 법이 아닌 것이랴(汝等比丘 知我說法 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여등비구 지아설법 여벌유자 법상응사 하황비법).’ 강을 건너려면 뗏목이 필요하지만 이 세상에서 저세상 彼岸(피안)에 이른 뒤에는 버려야 한다. 즉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배운 말과 글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으로 사용됐다.

함석헌 선생이 ‘열두 바구니’에서 한 말도 의미가 상통한다. 골리앗을 때려 넘겼기로서니 조약돌을 비단에 싸서 제단에 둘 필요는 없다. 다윗이 위대하지 돌은 흔하다. 조약돌을 섬기는 자가 어찌 그리 많은고! 골리앗이 죽었는데 다음 싸움은 돌로 못하니 마땅히 버려야 한다. 정민 교수의 ‘조심’에서 요지를 인용했다. / 제공 : 안병화(전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02.html
kolaswqetsrq 11.02 03:50
【갯까치수염】

【갯까치수염】

꽃은 7~8월에 흰색으로 아름답게 피며 총상꽃차례는 정생하고 길이 4~12cm이며 꽃자루는 비스듬히 퍼지고 길이 1~2cm로서 포보다 짧거나 같다. 꽃잎은 지름 1~1.2cm로서 넓은 피침형이며 끝이 둔하고 뒷면에 흑색 점이 약간 있거나 없으며 꽃부리는 끝이 5개로 갈라져서 수평으로 퍼지고 열편은 쐐기같은 긴 타원형이며 끝이 둔하다.

▷ 학명 : Lysimachia mauritiana

▷ 분류 : 앵초과

▷ 분포지역 : 한국(제주도, 울릉도, 남해안 지역)

▷ 서식장소 : 바닷가

▷ 특징 :갯까치수염은 제주도와 울릉도를 비롯한 남해안에서 자라는 다육질의 2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볕이 좋은 곳의 바위틈이나 마른 토지에서 자란다. 키는 약 10~40cm 정도이고, 잎은 광택이 많이 나며 두터운 육질로 되어 있고 주걱처럼 뒤로 약하게 말리며 길이는 2~5cm, 폭은 1~2cm 정도이다. 꽃은 흰색으로 줄기 끝에 여러 송이가 뭉쳐 피며 길이는 1~2cm이다. 꽃은 끝이 5갈래로 갈라졌고 뒷면에 흑색 점이 있는 것도 있다. 열매는 10월경에 지름이 0.4~0.6cm의 둥근 갈색으로 달리고 안에는 작은 종자들이 들어 있다. 관상용으로 쓰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28.html
kolaswqetsrq 11.02 03:50
몽환포영夢幻泡影 - 꿈과 환상, 거품과 그림자. 인생의 헛되고 덧없음

몽환포영(夢幻泡影) - 꿈과 환상, 거품과 그림자. 인생의 헛되고 덧없음

꿈 몽(夕/11) 헛보일 환(幺/1) 거품 포(氵/5) 그림자 영(彡/12)

사람은 날마다 꿈을 꾼다. 단지 자각하지 못하는 꿈이 많을 따름이다. 사람은 모두 꿈을 갖고 있다.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인 이런 꿈은 모두 가져야 한다. 반면 흔히 개꿈이라 하듯이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의 꿈은 허황하다. ‘아이 못 낳는 X이 밤마다 용꿈 꾼다’며 꾸짖는 이유다.

꿈 夢(몽)이 나오는 성어에는 희망의 꿈이 아니라 대부분 실현될 수 없는 것을 이뤘다가 사라지는 헛된 것이 많아 인생의 덧없음을 나타낸다. 한 지역을 30년 동안 다스리며 부귀영화를 누렸다가 깨어 보니 잠깐 동안의 잠결이었다는 南柯一夢(남가일몽)이 대표적이다.

꿈과 허깨비(夢幻), 그리고 금방 사라지는 거품과 그림자(泡影)란 이 말도 인생이 헛되고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른다. 이 말은 고사에서 온 다른 성어와 달리 金剛經(금강경)이란 불경서 나왔다. ‘金剛般若波羅蜜經(금강반야바라밀경)’이 본 이름으로 부처님이 제자 須菩提(수보리)에게 한 설법이 주된 내용이라 하고 주석서만 600여 종에 이른다는 그 경전이다. 끝부분 32장의 화함은 진리가 아니라는 應化非眞分(응화비진분)에 나온다.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만약 어떤 사람이 수없이 많은 칠보로 보시를 했더라도 선남선녀들이 四句偈(사구게, 偈는 불시 게)를 지녀 읽고 외우며 그것을 실천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면서 일러준다. ‘일체 모든 진리라는 법은, 꿈과 허깨비고 물거품과 그림자에 불과하고, 이슬방울이나 번개와도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하느니라(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허망한 꿈이고 환영은 분명 있다가도 잡으려면 없다. 물거품은 금방 사라지고 그림자도 해에 따라 변한다. 이슬은 곧 마르고 번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러니 어떤 모양을 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보리는 물론 남녀 신자들은 모두들 기뻐하며 가르침을 실천에 옮겼다고 한다.

검찰의 꽃이라는 검사장에 오르고도 더 이상 만족 못하고 끊임없이 탐욕을 취하다가 허망하게 나락에 떨어지게 되는걸 본적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패가망신을 넘어 바른 길을 가려는 후배검사를 좌절시켰고, 그렇지 않아도 꿈을 포기한 칠포세대에 더욱 분노를 안겨준 죄도 크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18.html
kolaswqetsrq 11.02 03:51
투서기기投鼠忌器 - 쥐를 잡고 싶어도 그릇 깰까 두렵다.

투서기기(投鼠忌器) - 쥐를 잡고 싶어도 그릇 깰까 두렵다.

던질 투(扌/4) 쥐 서(鼠/0) 꺼릴 기(心/3) 그릇 기(口/13)

사람에게 이득을 안기는 것이라곤 도무지 없다. 쥐란 조그만 동물이 잘 하는 것은 음식을 훔치고 병균을 옮기는 일이다. 애완용으로 기르는 사람이나 실험실에서 희생되는 쥐가 있지만 왕성하게 번식하는 숫자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이 고약한 쥐를 보고도 잡지 못하니 분통터진다.

몰래 들어간 쥐가 눈을 깜박거리며 쌀을 축내는 중인데도 쌀독 깰까봐 어쩌지 못할 경우다. ‘쥐 잡으려다가 쌀독 깬다’는 속담이 나온 연유다. 쥐에게 물건을 던져서 때려잡고 싶지만(投鼠) 곁에 있는 그릇을 깰까 두려워하여(忌器) 속만 태운다는 말은 나쁜 습관이지만 오랫동안 편하게 지냈던 터라 고쳐야 하는데 그러려면 더 이상의 불편이 따를 때 쓴다.

이 성어는 임금 곁의 간신을 제거하려 해도 임금에게 누가 미칠까 두려워한다는 말에서 나왔다. 시문에 뛰어나고 제자백가에 능통하여 약관의 나이로 최연소 박사가 된 賈誼(가의, 서기전200~서기전168)는 前漢(전한)의 6대 황제 景帝(경제) 때 많은 제도를 개정하고 관제를 정비하기 위한 많은 의견을 상주했다. 당시 왕의 측근에 위세를 부리는 한 무리의 측근들을 알고 있었으나 황제에게 누가 될까 두려워하여 어찌하지 못했다. 어느 때 가의는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하고 왕을 알현한 뒤 말했다.

‘폐하께서는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쥐를 때려잡고 싶지만 그릇을 깰까봐 겁낸다(俚諺曰 欲投鼠而忌器/ 리언왈 욕투서이기기)란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하면서 계속 이어간다. 俚는 속될 리. 쥐가 구멍에서 나와 주인에게 들켰을 때 재빨리 쌀독에 숨었는데 어찌하는 것이 좋겠는지 물으니 왕은 쥐를 잡으면서 독도 깨지 않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 답했다. 가의는 같은 이치로 왕의 주위에 횡포를 부리는 신하가 많지만 아무도 말을 못하는 것도 항상 곁에 두기 때문이라고 아뢰었다. 班固(반고)가 쓴 ‘漢書(한서)’의 가의전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문제점을 알면서 부작용을 두려워해 미루고 미룬 결과는 더 큰 난관이 가로막기 마련이다. 기업의 문제점은 진작에 들어왔어도 입으로만 개혁을 외칠 뿐 남의 일이었다. 정피아, 관피아 등이 대거 낙하산을 펼쳤던 기업 구조조정은 곪은 뒤에야 마지못해 손을 댄 이유다. 더 튼튼한 쌀독을 위해선 작은 것은 과감히 깨뜨릴 필요도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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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3:52
편복지역蝙蝠之役 - 박쥐구실, 줏대 없는 행동

편복지역(蝙蝠之役) - 박쥐구실, 줏대 없는 행동

박쥐 편(虫/9) 박쥐 복(虫/9) 갈 지(丿/3) 부릴 역(彳/4)

박쥐는 모습은 쥐처럼 생겼지만 앞다리와 뒷다리 사이에 막이 있어 날 수도 있다. 쥐도 새도 아니면서 편리한 대로 양쪽 편에 모두 낄 수 있다. 중국에선 의외로 행복의 상징이라며 蝙蝠(편복) 외에 나타내는 말이 긍정적이다. 낮에는 엎드려 있고 날개가 있다 하여 伏翼(복익), 飛鼠(비서)에서 仙鼠(선서), 天鼠(천서)라고까지 이른다.

서양에선 박쥐를 마녀의 상징이나 악마의 대명사로 사용하고 우리나라서도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박쥐구실이란 말이 생겼다. 자기 이익만을 위해 이리 붙고 저리 붙는 줏대 없는 행동을 말한다. 교묘하게 변명을 하면서 상황과 조건에 따라 오가는 절개 없는 사람, 기회주의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조선 인조 때의 학자 玄默子(현묵자) 洪萬宗(홍만종)의 ‘旬五志(순오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의 시가나 중국의 작품을 평론한 외에 130여 종의 우리 속담을 수록한 책으로 보름이 걸려 완성했다고 하는 책이다. 이야기를 간추려보자. 새들끼리 모여 봉황을 축하하는 자리에 박쥐가 불참했다. 봉황이 박쥐를 불러다 부하이면서 축하도 해주지 않고 거만하다며 꾸짖었다. 박쥐는 네 발 가진 짐승인데 새들 모임에 왜 가느냐고 도로 반박했다.

얼마 지나 이번엔 기린을 축수하는 잔치가 있었는데 온갖 짐승들이 다 모였어도 박쥐만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기린이 박쥐를 불러다 어찌 축하잔치에 안 올 수 있느냐고 꾸짖었다. 박쥐가 이번에는 새인데 왜 짐승들의 잔치에 갈 필요가 있느냐고 하면서 날개를 펼쳐보였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 박쥐는 날짐승과 길짐승 양쪽에서 미움을 받게 되어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고 어두운 동굴 속에 숨어 지내게 되었다.

조선 전기의 대학자 徐居正(서거정)은 ‘蝙蝠賦(편복부)’에서 이런 박쥐를 애틋해한다. ‘쥐 몸에 새 날개, 그 형상 기괴하다, 낮 아닌 밤에만 나다니니, 그 종적이 음침하고 창황하다(身鼠而翼鳥兮 何形質之怪奇而難狀也 不晝而卽夜兮 何蹤跡之暗昧而惝恍也/ 신서이익조혜 하형질지괴기이난상야 부주이즉야혜 하종적지암매이창황야).’ 蹤은 발자취 종, 惝은 경황없을 창, 恍은 황홀할 황. 그러면서 홀로 조용히 살 수 있는 것을 부러워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22.html
kolaswqetsrq 11.02 03:53
도리불언桃李不言 – 복숭아 자두나무는 말을 하지 않는다, 덕이 있으면 사람이 모여 든다.

도리불언(桃李不言) – 복숭아 자두나무는 말을 하지 않는다, 덕이 있으면 사람이 모여 든다.

복숭아 도(木/6) 오얏 리(木/3) 아닐 불(一/3) 말씀 언(言/0)

복숭아나무와 오얏, 요즘의 자두나무는 그 열매나 꽃이 아름다워 합쳐 말한 桃李(도리)로 자주 쓴다. 시에도 자주 인용됐다. 白樂天(백낙천)의 ‘長恨歌(장한가)’에는 ‘봄바람 산들 불어 복사꽃 오얏꽃 피는 밤(春風桃李花開夜)’에는 그리움이 더욱 사무친다고 했다. 남이 천거한 어진 사람이나 사제지간의 뜻도 있다. 桃李滿門(도리만문)이라 하면 재주나 풍모가 뛰어난 제자가 문하에 가득하다는 이야기다.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桃李)는 말을 하지 않는다(不言)는 뜻의 이 성어는 뒤에 下自成蹊(하자성혜)라는 말이 따라야 완전한 뜻을 이룬다. 이들 나무의 아래에는 길이 저절로 생긴다는 뜻이다. 蹊는 지름길 혜. 成蹊(성혜)라고 줄여서 사용하기도 한다.

복숭아꽃과 자두꽃은 매우 아름다워 오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다투어 찾아오게 되므로 그 아래에 길이 저절로 생겨난다. 덕이 있는 사람은 조용히 있어도 사람들이 그 덕을 사모하여 따르게 된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하든지 떠벌리지 않고 꾸준히 갈 길만 가는 것을 일컫기도 한다.

이 성어는 ‘史記(사기)’의 李將軍(이장군) 열전이나 ‘漢書(한서)’의 李廣蘇建傳(이광소건전) 등에 예부터 내려오는 말이라며 李廣(이광) 장군을 평가하는데 썼다. 前漢(전한) 초기의 장수 이광은 말타기와 활쏘기에 출중한 재능을 지녀 바위를 호랑이로 알고 쏘았더니 화살이 박혔더라는 中石沒鏃(중석몰촉)의 주인공이다.

또 이광은 변방의 匈奴(흉노)가 침입할 때 70여 차례나 물리쳐 飛將軍(비장군)이라 불리며 두려워했다. 인품도 훌륭해 따르는 사람이 많았지만 눌변인데다 조정에 줄도 없어 중용되지 못하던 중 대장군 衛靑(위청)의 핍박으로 자결하고 만다.

司馬遷(사마천)은 그를 가리켜 ‘몸이 바르면 영을 내리지 않아도 실행되고, 몸이 바르지 못하면 영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 기신정 불령이행 기신부정 수령부종)’면서 속담에 이르기를 ‘복숭아와 오얏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아래 저절로 길이 생긴다(桃李不言 下自成蹊/ 도리불언 하자성혜)’고 높이 기렸다.

돈이나 권력이 있을 때는 그 집이 門前成市(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러나 그것을 잃고 나면 사람들이 썰물같이 빠져나가 휑하게 된다. 세태를 탓하기 쉽지만 잘 나갈 때 어떤 몸가짐이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덕으로 사람들을 대했다면 그 집 앞의 길은 계속 붐빌 것이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35.html
kolaswqetsrq 11.02 03:53
수도호손산樹倒猢猻散 - 나무가 넘어지면 원숭이들이 흩어진다.

수도호손산(樹倒猢猻散) - 나무가 넘어지면 원숭이들이 흩어진다.

나무 수(木/12) 넘어질 도(亻/8) 잔나비 호(犭/9) 원숭이 손(犭/10) 흩을 산(攵/8)

막강한 세력의 방패막이 아래서 안온한 생활을 하다 위의 힘이 다하여 자신을 막아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거느리는 윗사람이 잘 해야 그 성원들이 행복할 것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아랫사람이 취하는 행동 중 은혜를 입었으므로 충성을 다하여 끝까지 행동을 같이 하는 경우가 있다.

좀처럼 드물지만 보금자리가 부서지면 알도 깨진다는 巢毁卵破(소훼난파)가 될 것이다. 반면 자기 살길을 찾아 各自圖生(각자도생)하는 경우는 나무가 무너지면 그 곳에 깃들어 살던 새가 날아간다는 樹倒鳥飛(수도조비)란 말이 어울린다.

나무가 쓰러지면(樹倒) 그 곳에서 살던 원숭이들도 흩어진다(猢猻散)는 이 성어도 우두머리가 낭패를 당해 망하면 그 수하들까지 줄줄이 패가망신한다는 의미다. 猢猻(호손)은 沐猴而冠(목후이관)처럼 후베이(湖北) 성에 사는 원숭이의 종류라고 한다.

明(명)나라 때 陶宗儀(도종의)의 ‘說郛(설부, 郛는 외성 부)’에 실린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宋(송)나라 때 승상 秦檜(진회, 檜는 전나무 회)는 岳飛(악비)를 모함하여 살해한 희대의 간신이었다. 曺詠(조영)이라는 사람이 이에 빌붙어 관직이 시랑에 이르고 나는 새도 떨어뜨릴 지경으로 거들먹거렸다.

하지만 그의 손위 처남인 厲德新(여덕신, 厲는 갈 려)만은 아부하여 얻은 관직이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조영을 멀리 했다. 과연 진회가 죽자 그를 추종하던 무리들이 모두 실각했고 조영도 오지로 좌천되었다.

여덕신이 이런 자들을 풍자하는 글을 지었는데 제목이 樹倒猢猻散賦(수도호손산부)였다. 진회를 큰 나무에, 조영과 같은 무리들을 그 나무에 사는 원숭이에 비유하여 권세를 믿고 백성을 괴롭힌 악행을 폭로한 뒤, 큰 나무가 쓰러져서 원숭이들도 사방으로 흩어져 온 나라가 기뻐할 일이라는 내용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24.html
kolaswqetsrq 11.02 03:54
서과피지西瓜皮舐 - 수박 겉 핥기, 내용도 모르면서 겉만 건드리다.

서과피지(西瓜皮舐) - 수박 겉 핥기, 내용도 모르면서 겉만 건드리다.

서녘 서(襾/0) 외 과(瓜/0) 가죽 피(皮/0) 핥을 지(舌/4)

여름철에 인기 있는 과일 수박은 재배 역사가 오래다.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가꿔져 왔고, 우리나라에선 조선 燕山君(연산군)때 기록이 있어 그 이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름도 西瓜(서과), 水瓜(수과), 寒瓜(한과), 時瓜(시과) 등 다양하다.

그런데 수박은 껍질이 두꺼워 벗기고 먹어야 하는데 겉만 핥고서는(皮舐) 맛을 알 수 없다. ‘수박 겉 핥기’란 속담과 같은 이 말은 사물의 속 내용은 모르고 겉만 건드리는 일을 비유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 하거나 일을 차근차근 하지 않고 건성으로 하는 것을 꾸짖을 때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 속담을 한역한 대표적인 旬五志(순오지) 외에 正祖(정조) 때의 실학자 丁若鏞(정약용)이 엮은 ‘耳談續纂(이담속찬, 纂은 모을 찬)’도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말이다. 표지 이름이 埜言(야언, 埜는 들 야)인 이 책은 모두 241수의 속담을 한자 8자로 표현하고 그 아래 한문으로 뜻을 적어 놓아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내용을 보자.

‘수박의 겉을 핥는 것은 속의 좋은 맛을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외모만 가지고 판단하고 알려 한다면 옳지 못하다(西瓜外舐 不識內美 言人不可以外貌知也(서과외지 불식내미 언인불가이외모지야).’

잘 모르면서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교훈의 속담과 성어는 이외에도 숱하다. ‘개 약과 먹듯 한다’는 개가 약과의 참맛을 알 수 없으니 如狗食藥果(여구식약과)라 한다. ‘후추를 통째로 삼킨다’란 말도 내용은 모르고 겉만 취하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약간 어려운 囫圇呑棗(홀륜탄조)라 했다. 囫은 온전할 홀, 圇은 완전할 륜.

대추를 통째로 삼켜 역시 자세히 분석하지도 않고 받아들임을 꼬집었다. ‘봉사 단청 구경’은 앞을 못 보는 장애인이 아름다운 그림이나 무늬를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사물의 참된 모습을 보지 못한다고 盲玩丹靑(맹완단청)이라 했다.

실력을 닦지 않고 별로 든 것이 없는 사람이 앞에 나서 떠벌리면 되는 것이 없다. 바로 ‘속이 빈 깡통이 소리만 요란하다’고 손가락질 당한다. 瓦釜雷鳴(와부뇌명)도 같다. 모든 것을 안다고 우쭐대던 사람이 자리를 잡고 막상 일을 맡고서는 하는 일마다 서투르기 짝이 없다.

전문가 아닌 사람이 정책을 펴다 일이 꼬이니 직접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죽을 맛이다. 光而不耀(광이불요)라고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는데 맛도 모르면서 수박 겉만 핥는 일이 너무 잦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25.html
kolaswqetsrq 11.02 03:55
양수집병兩手執餠 - 두 손의 떡. 가지기도 버리기도 아깝다.

양수집병(兩手執餠) - 두 손의 떡. 가지기도 버리기도 아깝다.

두 량(入/6) 손 수(手/0) 잡을 집(土/8) 떡 병(食/8)

만약 배가 고파 허덕일 때 양손에 떡이 쥐어졌다고 하자. 한 번에 먹으려면 한손의 떡도 바로 먹지 못하고 체한다. 눈앞의 욕심만 부리니 한손에 주어졌을 때보다 더 못하게 된다. 이와 같이 두 손(兩手)에 떡을 쥐고 있다(執餠)는 뜻의 兩手執餠은 한꺼번에 두 가지 좋은 일이 생기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도 조선 인조 때의 학자 玄默子(현묵자) 洪萬宗(홍만종)의 문학평론집 ‘旬五志(순오지)’에 나온다.

한 가지 좋은 일이 닥쳤는데 다시 좋은 일이 생긴다면 錦上添花(금상첨화)라고 누구나 좋아할 일이다. 하지만 "福無雙至 禍不單行(복무쌍지 화불단행/ 복은 짝지어 오지 않으며 재앙은 홀로 다니지 않는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화는 두 가지 연속으로 올 수 있어도 복은 연속으로 오는 일이 좀처럼 없다고 하니 兩者擇一(양자택일)의 갈등은 크게 걱정 안 해도 될까. 만일을 대비할 일이다.

鷄肋(계륵)이라는 말도 쓰임이 비슷하다. 닭의 갈비뼈를 말하는데 맛이 없는 이 부위를 먹기는 싫고 버리려 하니 아깝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쓸모가 없다. 魏(위)나라 건국의 기초를 닦은 曹操(조조)의 수하였던 楊修(양수)가 이 말의 뜻을 잘 헤아려 오늘날까지 이른다.

劉備(유비)를 치기 위해 漢中(한중)을 진격했을 때 별다른 이득이 없어 進退兩難(진퇴양난)이 되자 조조가 암호로 ‘계륵’을 내렸는데 지혜 많은 양수가 철군을 시켰다고 한다. ‘한중 땅이 아깝지만 먹기에 맛이 없어 버리려 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먹고 체하더라도 양손에 떡이 쥐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하나라도 버리기 아까운 두 가지 진로가 눈앞에 닥쳤다고 하면 주위의 의견도 물어보고 먼 후일까지 생각하여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96.html
kolaswqetsrq 11.02 03:55
결자해지結者解之 - 맺은 사람이 풀다.

결자해지(結者解之) - 맺은 사람이 풀다.

맺을 결(糸/6) 놈 자(耂/5) 풀 해(角/6) 갈 지(丿/3)

일을 벌여 놓기만 하고 마무리를 못한다면 중간 과정이 좋더라도 결과가 없다. 이 일엔 적격이라 큰 소리를 떵떵 치다가 마지막 단계서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발을 빼거나 남에게 미뤄버린다면 책임감 있는 사람이 못된다.

본의 아니게 실수를 했다고 해도 일을 저지른 당사자가 깨끗이 책임지는 자세가 바로 매듭을 묶은 사람(結者)이 풀어야 한다(解之)는 이 성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한 사람이 실컷 일을 꼬이게 해 놓고 수습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을 자주 보는데 올바른 조직이 아니다.

부록에 130여 종의 속담이 한역되어 있는 ‘旬五志(순오지)’의 우리 성어다. 여러 번 나왔듯이 조선 인조 때 洪萬宗(홍만종)이 보름이 걸려 완성했다고 하여 책 이름에 열흘 旬(순)자를 썼다. 여기에는 ‘맺은 자가 그것을 풀고 일을 시작한 자가 마땅히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結者解之 其始者 當任其終/ 결자해지 기시자 당임기종)’고 되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라 어원은 밝히지 못하더라도 이 말은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문집에 종종 비유로 사용됐다. 한 예로 熱河日記(열하일기)를 쓴 燕巖(연암) 朴趾源(박지원, 趾는 발 지)은 당시 지식인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글과는 달리 문체가 파격적이어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독자들엔 인기를 끌어 모방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正祖(정조)가 직접 하교를 내렸다.

‘열하일기가 세상에 유행한 뒤로 문체가 이와 같으니 마땅히 문제를 만든 자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熱河記行于世後 文軆如此 自當使結者解之/ 열하기행우세후 문체여차 자당사결자해지).’ 軆는 몸 체, 體와 같다. ‘燕巖集(연암집)’에 실려 있다.

똑 같은 뜻으로 중국에서는 방울을 풀 사람은 방울을 단 사람이란 解鈴繫鈴(해령계령)을 쓴다. 일을 야기 시킨 사람이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南唐(남당) 泰欽(태흠)선사의 고사 解鈴還是 系鈴人(해령환시 계령인)에서 나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76.html
kolaswqetsrq 11.02 03:56
수오지심羞惡之心 -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부끄러울 수(羊/5) 악할 악, 미워할 오(心/8) 갈 지(丿/3) 마음 심(心/0)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의 사상가 孟子(맹자, 기원전 372~289)는 孔子(공자)의 유교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亞聖(아성)으로 불린다. 공자의 손자인 子思(자사)의 문하생에게서 가르침을 받았고 도덕정치인 王道(왕도)를 실현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맹자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들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한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의 고사와 함께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하게 태어났다는 性善說(성선설)일 것이다. 그리고 이 성선설을 설명하며 내세운 四端(사단)이다.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羞惡(수오)의 마음도 그 중의 하나다. 맹자의 제자인 公孫丑(공손추)와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공손추 上(상)’에는 왕도와 覇道(패도)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浩然之氣(호연지기)가 충만한 인간상을 주창한다. 끝부분에 성선설의 근거가 되는 不忍人之心(불인인지심), 사람들은 누구나 남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면서 유명한 비유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孺子入井/ 유자입정) 이야기가 따른다. 누구라도 그 아이의 위험을 보고 측은히 여겨 구하려 할 것인데, 이는 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해서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며,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싫어서는 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거나,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거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라고 강조한다(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무측은지심 비인야 무수오지심 비인야 무사양지심 비인야 무시비지심 비인야). 惻隱(측은) 羞惡(수오) 辭讓(사양) 是非(시비)의 마음이 四端說(사단설)이고, 그것이 각각 仁(인) 義(의) 禮(예) 智(지)의 근원을 이루는 단서라고 했다.

올바른 것에서 벗어난 것은 자신이나 남이나 가리지 않고 미워해야 한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해서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넘본다거나, 또는 지위를 남용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게을리 하는 일은 모두 배척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부터 수시로 추문만 돌아 어쩐지 정의가 아득한 것 같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66.html
kolaswqetsrq 11.02 03:57
면후심흑面厚心黑 - 얼굴이 두껍고 마음이 검다.

면후심흑(面厚心黑) - 얼굴이 두껍고 마음이 검다.

낯 면(面/0) 두터울 후(厂/7) 마음 심(心/0) 검을 흑(黑/0)

우리는 자기의 얼굴을 선택하는 자유는 없다. 하지만 ‘사람의 얼굴은 열 번 변한다’는 속담이 내려오는 것으로 보아 마음을 가꾸는 데 따라 달리 보이게 할 수는 있다. 자기 얼굴 못생긴 것은 생각지 못하고 거울만 깨뜨려서는 나아지지 않는다.

사람의 첫 印象(인상)은 人相(인상)이 좌우하기 마련이다. 아주 험악하게 생기지 않았다면 사람의 얼굴이 두꺼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厚顔無恥(후안무치)는 남에게 피해가 가건 말건 제 잇속만 차리는 사람을 일컬으니 행동에 따른 말이겠다.

앞서 소개한 적이 있는 대로 厚顔(후안)은 詩經(시경)에서부터 등장했다. 小雅(소아) 巧言(교언)편에 ‘피리 불듯 교묘한 말은 창피도 모르는 뻔뻔한 자들이 내뱉는다네(巧言如簧 顔之厚矣/ 교언여황 안지후의)’란 구절에서 왔다. 簧은 생황 황. 낯이 두꺼운 것(面厚)을 넘어 마음까지 시커멓다(心黑)면 더 가관이겠다. 이것을 줄여 厚黑(후흑)이라고도 한다.

중국 淸(청)나라 말기의 기인 李宗吾(이종오)가 저술한 ‘厚黑學(후흑학)’에서 유래한다. 그를 소개한 것을 보면 고대 역사를 통해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뻔뻔하고 음흉해야 한다고 했다. 왕조의 흥망성쇠를 논한 사관들의 평은 잘못됐고, 낯가죽이 두껍고 마음은 시커먼 사람들이 나라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고 결론 낸다.

최후의 지도자는 다른 사람의 공격에 상처받지 않고 마음이 미동도 않아야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春秋時代(춘추시대) 越(월)나라의 句踐(구천)은 吳(오)의 夫差(부차)에게 패한 뒤 애첩 西施(서시)를 바치고 10년 동안 신하를 지내면서 치욕을 견뎌내어 마침내 설욕한다. 臥薪嘗膽(와신상담) 고사의 주인공 부차가 중국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후흑 대가라 평가했다.

국내서 발간된 ‘楚漢志(초한지) 후흑학’(신동준 저)에서는 項羽(항우)와 劉邦(유방)의 쟁패전 때 활약한 영웅들을 面薄心白(면박심백)부터 면후심흑까지 4단계로 나눠 분석하여 흥미롭다. 더 잔인하고 뻔뻔했던 유방이 모든 조건에서 앞선 항우를 물리치고 최후의 승리를 차지했다. 이처럼 나라를 이끌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사람 말고 일반 사회에서 이런 낯을 가져서는 배척받는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제갈 길만 가다가 역풍을 맞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91.html
kolaswqetsrq 11.02 03:58
【고추나물】

【고추나물】

열매가 고추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유사종으로 좀고추나물, 애기고추나물이 있음

▷ 학명 : Hypericum erectum

▷ 분류 : 물레나물과

▷ 분포지역 : 한국(제주·남부지방)

▷ 서식장소 : 들판의 약간 습한 곳

▷ 특징 : 한방에서는 6∼8월에 풀 전체를 캐서 말린 것을 소연요(小蓮翹)라 하며 토혈·코피·혈변·월경불순·외상출혈·타박상·종기 등에 처방한다. 민간에서는 7월에 잎을 따서 말려 구충제로 사용하고, 수종(水腫)에는 고추나물 잎 15g에 후박나무 열매 10g을 섞어 달여 먹는다. 성분으로는 타닌이 들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82.html
kolaswqetsrq 11.02 03:58
오늘의 운세 9월 30일음력 8월 16일

오늘의 운세 9월 30일(음력 8월 16일)



96년생 총명한 두뇌를 동료와 업무에 활용하면 길 하겠다/84년생 현재까지 재물을 많이 모으지 못했으나 점차 좋아진다/72년생 재물을 얻을 수 있으니 부부 합심하여 노력과 행동하라/60년생 친구로부터 오해를 받으나 시간이 지나야 해결된다/48년생 건강이 나쁘다면 앞으로 점차 적으로 호전된다



97년생 분수를 알아서 처신하면 금전적인 행운도 같이 따라온다/85년생 새로운 분야를 구상하나 결정은 연기함이 좋다/73년생 업무 때문에 고통을 겪지만 익월부터 좋은 결실을 본다/61년생 사회적으로 신망을 얻을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49년생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였으나 오후부터 점차 좋아진다

호랑이

98년생 지출은 있으나 마음이 상쾌하고 하는 일이 원활하다/86년생 부동산 변동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참고하라/74년생 많은 곳에 신경을 쓰지만 대부분 어려우니 한 가지에 노력하라/62년생 사업은 시기적으로 이르므로 여유를 가지고 검토하라/50년생 모든 일이 순조로우나 고독함을 많이 느낀다

토끼

99년생 미뤄왔던 일로 고통 받을 수 있으니 확인하라/87년생 열악한 여건에도 업무에 충실하니 상사의 신임을 얻는다/75년생 생각지도 않았던 재물이 들어오고 일이 순조롭겠다/63년생 하는 일에 만족하고 변화에는 시간적 여유를 검토하라/51년생 금전적인 고통이 있다면 점차 적으로 좋아지겠다



88년생 인내심을 가지고 업무를 추진하면 좋은 결실을 본다/76년생 덕망 있게 업무에 임하니 오후에 동료에게 신임을 받는다/64년생 자존심을 버리고 업무상 유연함을 보이면 길하다/52년생 금전적인 문제로 가정에 갈등을 겪을 수 있으나 해결된다/40년생 금전 거래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다음으로 미뤄라



89년생 일 처리를 충동적으로 하면 손해를 볼 수 있다/77년생 변화를 꾀하면 나쁜 기운이 있으니 현재에 만족하라/65년생 가정이 화목하니 어떤 일을 하여도 순조롭게 진행된다/53년생 자금이 필요하다면 친구나 가족과 상의해서 해결하라/41년생 위장장애에 조금만 신경을 기울이면 모든 면이 좋다



90년생 변화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으니 좀 더 기다림이 필요하다/78년생 갑작스런 일이 생겨 고민하니 친구와 상의하라/66년생 투자는 아직 시기적으로 이르니 더 여유를 갖고 검토하라/54년생 지출할 자금이 부족하지만 해결되겠다/42년생 필요 없는 근심을 하고 있으니 마음을 비우는 것이 좋다.



91년생 직장인이라면 노력한 일의 성과가 보이기 시작한다/79년생 하고자 하는 일을 추진하면 결과가 좋다/67년생 사업적 걱정할 일이 생길 수 있으나 원활하게 해결되겠다/55년생 고민하던 문제들이 해결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43년생 주위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하며 노력한 보람을 느낀다

원숭이

92년생 급한 성격 탓에 구설수가 예상되오니 언행에 유의하라/80년생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니 성과도 좋게 나타난다/68년생 기획한 일 덕분에 동료나 상관에게 신임을 받겠다/56년생 자녀 혼사 문제로 갈등하지만 좋은 계기가 마련된다/44년생 자녀 일로 걱정하지만 시간이 지나야 해결된다



93년생 직업 면에선 진취적이나 부부나 이성간 양보가 필요하다/81년생 고집 탓에 손해를 볼 수 있으니 상사의 조언을 들어라/69년생 직장에서 좋은 일이 생기나 부부 불화가 우려된다/57년생 지나친 허욕을 탐하면 오히려 해가 되어 돌아온다/45년생 금전적으로 가정불화가 예상되니 계획을 세워라



94년생 겉으로는 좋아 보이나 내실이 적으니 노력하라/82년생 판단 착오로 손해를 볼 수 있으니 신중하게 검토하라/70년생 직업 변화를 원한다면 배우자와 충분한 대화 후 결정하라/58년생 사소한 일로 부부 불화가 예상되니 조금씩 양보하라/46년생 계획하던 일을 실행에 옮길 계기가 마련된다

돼지

95년생 기혼자는 업무상 무난하며 미혼자는 마음고생을 하겠다/83년생 직업 문제로 갈등하지만 시기가 적절치 않으니 기다려라/71년생 노력한 보람으로 주위 사람의 인정을 받겠다/59년생 친구와 구설수가 예상되니 언행에 조심하라/47년생 관절이 좋지 않다면 더 나빠지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라.

♨ 자료 제공 : 김기범교수 인문·地理 연구소 소장

(사)한국역술인협회지부 회장

♨ 문의: 010-2471-0380 / gb1616@naver.com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9-30-8-16.html
kolaswqetsrq 11.02 03:59
얼굴에 나타나는 건강 이상

얼굴에 나타나는 건강 이상

○ 기미와 주근깨

기미와 주근깨는 간과 신장 등의 혈액순환에 이상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상이 있으면 혈액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여 불순물이 남아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기미는 후천적이고 주근깨는 선천적이라는 것이 다를 뿐 알로에나 레몬 녹차 등이 미백효과에 좋다고 한다.

○ 붉은 얼굴

술 마신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진다면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는 심장의 활동이 지나치게 왕성하거나 몸에 열이 있을 때 나타나게 된다. 심장질환에 좋은 녹차를 마시거나 구기자팩을 하면 좋다.

○ 누렇게 뜬 얼굴

얼굴이 누렇게 뜬 사람은 소화기관이 약한 경우 소화에 관하여 담즙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내려가지 못하고 피부에 넘쳐서 누렇게 된다고 한다. 쑥팩을 하면 좋다.

○ 거무스레 한 얼굴

얼굴이 갈수록 어두운 빛이 돈다면 신장의 이상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피로가 쌓이거나 스트레스 잠이 부족할 때도 나타날수 있다. 감잎차나 산수유차를 마시거나 녹두팩이나 바나나팩을 하면 좋다.

○ 창백한 얼굴

누구나 부러워하는 하얀 우유빛 피부를 말하는게 아니고 윤기와 혈색이 없어 보이고 왠지 푸른 빛이 도는 창백한 얼굴이라면 우선 폐에 이상이 있는지 의심해보아야한다. 폐에 기운을 주는 뽕잎차를 마시거나 율무팩 살구팩을 하면 효과적이다.

○ 자주트는 입술

유난히 입술이 자주 트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비장(위의 왼쪽뒤에 있는 내장)과 위장이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체내의 필요한 수분이 부족하여 입술이 거칠어 지고 트게 된다. 이럴때는 참외나 고구마, 꿀, 흑설탕차 등의 단음식이 효과적이다 특히 흑설탕차는 위벽을 튼튼하게 하며 다른 설탕처럼 살이 찌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빠지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 다크서클

눈밑이 검은 것은 간이나 위가 좋지 않았다는 증거다. 몸 안의 기운이 제대로 흐르지 않아서 문제가 생겨도 다크서클이 생긴다. 이럴 때는 위와 간에 도움을 주는 포도나 딸기주스 상추 등을 자주 먹도록 한다. 또 눈가의 혈액순환을 돕기 위하여 눈밑 지압점을 눌러주면 효과적이다.

○ 검고 푸르스름한 얼굴

검푸른 색을 띠면 간이 약하다는 신호. 기의 순환이 잘 안되므로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는 혈액인 어혈이 뭉쳐 피부를 검푸르게 만든다. 피로회복에 좋은 오가피를 마시거나 사과팩 오이팩 해초팩이 효과적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88.html
kolaswqetsrq 11.02 04:00
질환별 맞춤 식품 추천 12가지

질환별 맞춤 식품 추천 12가지

1. 고혈압에는 키위와 현미가 좋다. 비타민A·B·C 등은 동맥경화와 심장 질환을 예방하고, 비타민 E와 비타민 B군, 무기질 등은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준다.

2. 호흡기 질환에는 도라지와 미역이 좋다. 안토크산틴은 기침, 가래 등을 가라앉히고, 알긴산은 몸속에 침투한 중금속이나 미세먼지, 농약 등을 흡착해 배출하여 기관지와 폐를 씻어낸다.

3. 간 질환에는 조개와 콩나물이 좋다. 담즙을 원활하게 분비하려면 타우린이 함유된 음식을 섭취하고,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를 해독하려면 아스파라긴산을 섭취하라.

4. 위 질환에는 양배추와 무가 좋다. 비타민U와 비타민K는 위출혈을 지혈해주고 위의 점막을 강화한다. 디아스타아제와 옥시다아제 등의 효소는 위 점막을 재생해 위 질환에 효과적이다.

5. 전립선 질환에는 토마토와 굴이 좋다. 라이코펜은 전립선비대증이나 전립선암 예방에 효과적이고, 인과 아연 성분은 이뇨와 소염 작용이 뛰어나 전립선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좋다.

6. 장 질환에는 사과와 김이 좋다. 펙틴은 장운동을 촉진하는 동시에 장을 보호하기 위해 벽을 만들고, 식이섬유가 다량 함유되어 있는 해조류에는 변비에 좋은 카로틴도 많아 장 건강을 지켜 준다.

7. 갑상선 질환에는 버섯과 해바라기 씨가 좋다. 셀레늄이 결핍되면 갑상선 기능을 저하시키고, 티아민은 체내의 에너지대사를 원활히 한다.

8. 치매에는 견과류와 올리브오일이 좋다. 식물성 오메가-3와 비타민E는 고콜레스테롤혈증에 의해 발생될 수 있는 혈관 손상을 줄여주고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늦추고, 단가불포화지방산은 경미한 인지 능력의 손상을 줄일 수 있다.

9. 유방 질환에는 석류와 콩이 좋다.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다량 함유된 식품을 섭취하면 유방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 콩의 성분인 제니스테인, 다이드제인은 이소플라본의 일종으로 유방암 세포의 증식을 억제하기도 한다.

10. 뼈 질환에는 멸치와 달걀이 좋다. 칼슘은 뼈째 먹는 생선, 유제품 등에 풍부하고, 칼슘을 흡수하는 데 기여하는 비타민D를 음식을 통해 충족하기 위해서는 달걀노른자, 등 푸른 생선, 동물의 간 등을 섭취한다.

11. 방광 질환에는 밤과 바나나가 좋다. 타닌에 들어 있는 플라보노이드 성분과 켈세틴은 면역 증강 작용과 항염증 작용을 하며 생체 내 산화 작용을 억제한다.

12. 면역력에는 귤과 브로콜리가 좋다. 비타민 C는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며 면역세포의 기능을 조절하고, 비타민E는 면역세포의 식균 능력을 길러 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2_2.html
kolaswqetsrq 11.02 04:01
근수누대近水樓臺 - 물 가까이 있는 누각, 권력자에 접근하여 덕을 봄

근수누대(近水樓臺) - 물 가까이 있는 누각, 권력자에 접근하여 덕을 봄

가까울 근(辶/4) 물 수(水/0) 다락 루(木/11) 대 대(至/8)

관청에서나 민간기업이나 일을 처리하는데 능력을 중시해야 한다며 흔히 人事(인사)가 萬事(만사)라 한다. 막상 인재를 구할 때는 어려움에 부닥쳐 亡事(망사)가 된 일이 많았다. 귀한 손님이 오면 식사하던 것을 뱉고 감던 머리카락을 쥔 채 吐哺握髮(토포악발)로 맞았던 周公(주공)의 정신이 이상적이다.

일을 맡겼으면 다른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任賢勿貳(임현물이)로 밀어줘야 함은 물론이다. 인재를 이렇게 찾고 이끌게 하는 것과는 반대로 힘쓰는 자리에 앉았을 때 집안은 물론 개나 소나 출세시킨다는 鷄犬昇天(계견승천)의 비아냥도 있다.

물 가까이에(近水) 있는 누각이나 정자(樓臺)란 멋진 비유가 어떻게 권력이나 힘을 가진 사람에게 접근하여 덕을 보는 것을 뜻하게 됐을까. 중국 北宋(북송) 4대 仁宗(인종) 황제 때 유명한 정치가이자 학자인 范仲淹(범중엄, 989~1052)이란 사람이 있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고학하여 높은 관직에 올랐어도 사람됨이 겸손하여 아랫사람들과도 흉허물 없이 어울렸다. 범중엄이 杭州(항주) 지역에서 知府(지부)란 벼슬을 하고 있을 때 성내의 문무관원들 중에는 그의 추천을 받아 발탁된 사람이 상당수 되었다.

그런데 외지의 순찰직을 맡고 있었던 蘇麟(소린)이란 사람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해 불만이 많았다. 소린이 어느 날 항주 관아로 들어갔을 때 범중엄을 만나 시 한 수를 지어 올렸다. ‘물가의 정자에서는 달을 먼저 볼 수 있고, 태양을 향한 꽃나무가 봄을 쉽게 맞는구나(近水樓臺先得月 向陽花木易逢春/ 근수누대선득월 향양화목이봉춘).’ 시를 읽은 범중엄은 소린의 속내를 짐작하고 지체 없이 원하는 부서로 추천서를 써 주었다고 한다. 송나라 兪文豹(유문표)란 사람의 ‘淸夜錄(청야록)’에 실려 전한다.

이런 아름다운 고사가 따르더라도 청탁은 청탁이라 후세 사람들은 실력 있는 사람에게 접근하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가리켰다. 전문성이나 실력은 불문하고 측근 인사를 요직에 내려 보내는 낙하산 인사는 최근 들어서도 더하면 더했지 나아질 줄 모른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41.html
kolaswqetsrq 11.02 04:01
【삼백초】

【삼백초】

희귀식물 삼백초입니다. 꽃이 필 때 꽃, 잎, 뿌리가 흰색이라 3곳이 백색이지요.

여기에서 삼백초라고 붙인 이름입니다.,

지금은 많이 재배하여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가 있지만 자생지는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희귀식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 학명 : Saururus chinensis (Lour.) Baill.

▷ 분류 : 삼백초과

▷ 분포지역 : 한국( 제주도와 지리산 일부지역)

▷ 서식장소 : 습한 땅

▷ 특징 : 뿌리, 잎, 꽃이 흰색이기 때문에 삼백초라고 불리는데요. 꽃은 백색으로 아래로 처지다가 끝부분은 위로 올라가며 잎과 마주나고 길이는 10~15cm이고 꼬불꼬불한 털이 있다. 열매는 9~10월경에 꽃망울에 한 개씩이 둥글게 달린다. 관상용으로 쓰이고, 꽃을 포함한 잎과 줄기 뿌리는 약재로 쓰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12.html
kolaswqetsrq 11.02 04:02
불출호 지천하不出戶 知天下 - 집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알다, 도리를 깨친 경지

불출호 지천하(不出戶 知天下) - 집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알다, 도리를 깨친 경지

아닐 불(一/3) 날 출(凵/3) 집 호(戶/0) 알 지(矢/3) 하늘 천(大/1) 아래 하(一/2)

집을 나서지 않아도(不出戶) 천하를 알 수 있다(知天下)는 알쏭달쏭한 말이다. ‘외짝문‘을 뜻했던 戶(호)가 문, 출입구에서 집이란 의미로 넓어졌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세상의 모든 일을 알 수 있다면 어떤 경지일까. 방 안에서 온갖 나라의 시시콜콜한 정보를 알려주는 TV나 인터넷이라도 단편적일 텐데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이 老子(노자)가 한 말이라면 어렴풋이 뜻이 떠오른다. 그는 스스로를 숨겨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그대로의 無爲自然(무위자연)을 내세웠으니 심오한 도리를 깨친 경지를 말하는 것이겠다.

노자의 ‘道德經(도덕경)’은 상하 두 편 모두 81장으로 된 책이다. 간단한 운문체로 되어 있지만 箴言(잠언)이나 呪文(주문)을 엮어놓은 듯하여 함축된 의미는 연구하는 사람마다 해석을 달리 할 수 있을 정도로 심오하다. 하편 47장의 鑒遠(감원) 내용을 보자. ‘집 나서지 않고 천하의 모든 것을 알고(不出戶 知天下/ 불출호 지천하), 창밖을 엿보지 않고도 하늘의 도를 아네(不窺牖 見天道/ 불규유 견천도).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아는 것은 더욱 적어질 뿐(其出彌遠 其知彌少/ 기출미원 기지미소).’ 窺는 엿볼 규, 牖는 들창 유, 미륵 彌(미)는 두루, 멀리의 뜻.

‘버려서 얻고 비워서 채운다’는 뜻대로 지식을 가득 채우기만 하여 아는 것이 먼 곳까지 미치게 되면 가까이 있는 일을 모를 수 있다. 반면 과거와 현재를 알면 미래를 거울처럼 알 수 있다. 어디까지나 이성의 원칙을 세우고 그에 따라 사유하면 구체적인 현장을 가거나 사물을 살피지 않더라도 파악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어진 말에는 ‘성인은 행하지 않고도 알며, 보지 않고도 밝힐 수 있고, 직접 하지 않아도 이루어낸다(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 불행이지 불견이명 불위이성)’고 했다. ‘낙엽 하나로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아는(一葉落知天下秋/ 일엽낙지천하추)’의 도승 경지다.

밖을 나서지 않고도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좋겠는데 영국의 4인조 그룹 비틀즈가 이런 내용으로 노래한 것이 있어 흥미롭다. 한국팬클럽서 소개한 ‘The Inner Light(내면의 빛)’의 가사는 노자를 번역한 듯하다. 앞부분을 보자. ‘Without going out of my door/ I can know all things on earth(나는 문 밖을 나가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네), Without looking out of my window/ I could know the ways of heaven(나는 창문 밖을 보지 않아도/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알 수 있다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07.html
kolaswqetsrq 11.02 04:03
여보게 친구

여보게 친구

산에 오르면 절이 있고

절에 가면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에 가면 인간이 만든 불상만

자네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던가.

부처는 절에 없다네...

부처는 세상에 내려가야만

천지에 널려 있다네.

내 주위 이웃이 부처고

병들어 누워있는 자가 부처라네.

그 많은 부처를 보지도 못하고

어찌 사람이 만든 불상에만

허리가 아프도록 절만 하는가.

천당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천당은 살아았는 지금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 마음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가 살면서 즐겁고 행복하면

여기가 천당이고

살면서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하면

거기가 지옥이라네.

자네 마음이 부처고

자네가 관세음보살이라네.

여보시게 친구

죽어서 천당가려하지 말고

사는 동안

천당에서 같이 살지 않으려나

자네가 부처라는 걸 잊지 마시게

그리고 부처답게 살길 바라네.

부처답게....

- 법정스님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09.html
kolaswqetsrq 11.02 04:03
알고 먹자! 잡곡의 효능

알고 먹자! 잡곡의 효능

1. 팥

팥은 달고 독이 없으며, 성질이 따뜻하다. 성분은 섬유질, 단백질, 지방, 당질, 회분, 비타민B1이 다량 함유되어 각기병등의 치료약으로도 널리 쓰이며, 삶아 먹으면 신장염을 낫게 하고, 팥꽃의 즙을 내어 바르면 주근깨를 퇴치해 준다. 고혈압 치료와 설사를 멈추는 효능이 있다.

2. 강낭콩

식물성 섬유질과 아미노산, 단백질, 사포닌의 성분들이 있어, 활성산소를 몰아주며 변비해소, 간 건강, 면역력강화, 이뇨작용, 당뇨병개선, 여성갱년기완화, 항암효과가 있다.

3. 찰현미

현미에는 비타민E, D, F가 풍부하여 피부를 좋게 하며, 뼈 강에도 좋다. 현미에 함유되어 있는 섬유소는 혈중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낮춰주며, 음식내의 콜레스테롤이 장으로부터 혈액으로 흡수되는 것을 막아준다. 또, 현미에 있는 섬유소는 당분의 흡수를 늦춰주어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의 부담을 덜어주므로 당뇨환자들에게도 좋으며, 현미가 대변량을 증가시켜 대변이 장내를 통과하는 시간을 단축시켜주고 대장암을 예방한다.

4. 찰수수

소화를 도우며, 몸을 따뜻히 해주고 냉한체질에 좋다. 위장을 보호해주며 소화를 도와준다. 설사를 멈추게하고, 신진대사를 도우며, 철, 무기질, 인의 성분이 풍부하여 단백질생성을 돕는다. 페놀성분이 있어 항암효과도 뛰어나다. 면역기능향상과 항진작용을 하며, 청혈제역할과 빈혈치료에도 쓰인다.

5. 보리

비타민B1, B2, 섬유질, 베타클루칸이 풍부하여, 각기병예방에 좋으며, 변비, 포만감을 통한 다이어트효과, 혈당저하로 인한 당뇨병개선, 대장암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베타클루칸의 효능으로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

6. 서리태

안토시아닌, 이소플라본이 풍부하다. 피부를 매끄럽게 하는 효능 및 갱년기장애를 앓는 여성에게 좋으며, 노화방지, 두뇌발달, 치매예방에 좋다. 검은콩에 함유된 풍부한 레시틴은 혈관벽과 세포에 쌓인 콜레스테롤과 노폐물을 녹여냄으로써 혈액순환 개선에 기여한다. 체내독소제거에도 탁월하며, 탈모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7. 조

소화기계통의 과잉된 열을 없애주고, 소변이 잦고 붉을 때, 눈 충혈, 코피가 자주 나는 사람들에게 좋으며, 신장에 이로움을 주고, 습열 제거, 발육촉진, 산후회복 등에 좋다.

8. 녹두

비타민B1, B2, B6, 판토텐산, 니아신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항산화 기능을 가진 플라보노이드 함량도 높으므로 간의 해독과정에서 발생하는 활성산소를 잡아준다. 본초강목에도 녹두에 대해 해독작용이 강하며, 위와 장을 튼튼하게 하고, 오래도록 섭취해도 부작용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껍질에 광택이 없고, 거칠고, 진녹색을 띈 작은 크기의 녹두가 좋다.

9. 찰기장

지방질, 비타민A, 당분, 단백질 등이 풍부하다. 예전에는 떡을 만들 때나 쓰였지만, 웰빙식을 우선으로 하는 요즘엔 밥에 섞어서 먹는다. 장을 튼튼하게 하며, 신장병개선, 풍열억제, 혈류개선을 통하여 해독작용을 한다고 한다.

10. 흑미

흑미를 꾸준히 섭취하게 되면 면역기능 향상 및 질병예방에 효능이 있다. 셀레늄이 다량함유 되어 있어 암의 예방에 효과적이며, 임산부들의 빈혈에도 좋고 당뇨와 고혈압 같은 성인병에도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20.html
kolaswqetsrq 11.02 04:04
산행 후 건강한 목욕법

산행 후 건강한 목욕법

보통 산행 후 뜨거운 탕 안에 푹 몸을 담구는 것으로 피로한 몸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산행 후 무릎, 골반, 발목 관절의 연골은 다 열로 부어 있다. 열로 인해 부어있는 연골에 뜨거운 물은 연골을 더 빨리 파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산행 후에 뜨거운 물에 들어가서 시원함을 느끼는 것은 근육의 이완작용 뿐이다.

1. 따뜻한 물에 간단히 샤워만 한 후 찬물에 골반까지 담그고 반신욕으로 열을 식혀 준다. 10분 ~ 30분 정도 해주면 찬 기운이 없어지고, 오히려 온몸이 훈훈해지며 각 관절에 탄력이 느껴진다.

2. 산행 전 비닐주머니에 물을 채워 놓거나 cold pack을 냉동실에 얼려둔다. 산행 후 골반 밑 각 관절에 얼음 비닐주머니나 cold pack 으로 감싸준다. 10분~30분 정도 해주는 게 좋다.

3. 잠자기 전 두 다리를 벽에 45도 각도로 올려준다. 10분후 다리를 내렸다가 다시 10분정도 올려준다. 다음날 아침에 다리 뭉침이나 다리 피로도가 사라진다. 특히 종아리를 이쁘게 만들어준다.

4. 산행 후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것은 48시간이 지난 이후에 들어가는 게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07.html
kolaswqetsrq 11.02 04:05
연잎의 지혜

연잎의 지혜

빗방울이 연잎에 고이면

연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일렁이다가

어느 만큼 고이면 수정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없이 쏟아 버린다.

그 물이 아래 연잎에 떨어지면 거기에서 또

일렁거리다가 도르르 연못으로 비워 버린다.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을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 버린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받아들이면 마침내 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세상사는 이치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욕심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

사람들은 가질 줄만 알지 비울 줄은 모른다.

모이면 모일수록,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무겁게 짓누른다.

삶이 피로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놓아버려야 할 것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짓누르는 물방울을

가볍게 비워버리는 연잎처럼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사람이 욕심에 집착하면 불명예 외에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

좋은 것을 담으려면 먼저 그릇을 비워야 한다.

욕심은 버려야 채워진다.

악기는 비어 있기 때문에 울린다.

비우면 내면에서 울리는

자신의 외침을 듣는다.

- 법정 스님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28.html
kolaswqetsrq 11.02 04:06
엉겅퀴의 효능

엉겅퀴의 효능

1. 항암효과

우리나라 질병 중에서 사망원인 1위는 단연 암이다. 아무래도 환경적으로도 많이 오염이 되었고, 먹는 식습관이나 각종 스트레스, 음주, 흡연 등등이 그 원인이 될 것이다. 엉겅퀴는 암세포를 억제시키는 ‘실리비닌’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2. 관절염 예방

엉겅퀴에는 항염증 효과가 있다.

3. 지혈작용

피를 엉겨 지혈을 한다고 해서 엉겅퀴라고 불리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혈작용이 뛰어난 식물이다. 여성들이 하혈을 할 경우, 엉겅퀴 뿌리로 즙을 내서 먹으면 효과를 볼 수 있다.

4. 혈액순환

어혈을 풀어주기 때문에 혈액순환에 좋고, 고혈압이나 혈관질환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5. 결석 제거

엉겅퀴에 함유되어 있는 실리마린 성분은 요석이나 담석 같은 결석을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엉겅퀴를 꾸준히 복용하면 결석 제거와 예방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6. 정력 증진

예로부터 엉겅퀴는 강장 증혈에 좋은 약재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약으로 먹었을 뿐만 아니라 나물 등 반찬으로도 만들어서 많이 먹었다고 한다.

7. 산후 붓기 완화

출산 뒤 붓기 완화에 도움이 되는 식물이다.

8. 간 보호

엉겅퀴의 실리마린 성분은 간 질환 치료제로도 쓰이는 성분이다. 술을 마시기 전에 실리마린을 섭취하면 알콜로 인한 간 손상을 예방할 수도 있다고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95.html
kolaswqetsrq 11.02 04:06
불면증 타파 식품

 불면증 타파 식품

1. 우유

잠이 잘 오지 않으면 따뜻한 우유를 먹고 자면 좋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우유는 칼슘이 풍부해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또 잠을 부르는 성분인 세로토닌의 주성분인 트립토판이 풍부해 불면증 치유에 효과적이다.

2. 바나나

바나나는 아침을 상쾌하게 여는 데 도움이 되는 과일이다.

동시에 잠을 잘 자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바나나에는 마그네슘과 칼륨이 풍부한데 이는 근육의 긴장을 이완시켜 몸을 편안하게 하고 휴식을 취할 때 좋다.

3. 체리

체리는 멜라토닌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멜라토닌은 수면 사이클을 조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호르몬이다. 또 체리는 불면증의 강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만성적인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체리를 먹으면 양질의 수면을 취할 수 있다.

4. 양파

양파는 피로를 많이 느끼는 불면증 환자에게 특히 효과적이다.

양파에 풍부한 매운맛을 내는 알리신은 뇌를 자극해 혈액 순환을 돕고 심신을 안정시킨다.

5. 대추

초조하고 불안함을 느껴 불면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좋다.

대추는 심장 기능을 촉진할 뿐 아니라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대추는 그냥 먹어도 좋지만, 따뜻한 차로 먹어도 좋다.

6. 아몬드

아몬드에는 마그네슘이 풍부하다.

마그네슘은 근육을 적절히 이완시켜 편안한 상태의 수면을 돕는다. 다만 견과류인 아몬드는 자기 전에 많이 섭취하면 설사나 탈수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소량 섭취하는 것이 좋다.

7. 파

파는 비타민A, B1, B2, C, D, E 등 다양한 비타민이 풍부한 채소다.

특히 파의 특유한 향기를 내는 유화알릴 성분은 진정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신경과민이나 흥분, 불안으로 불면증이 있는 경우 이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 진정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다.

8. 샐러리

샐러리는 체내 열을 내리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자기 전 샐러리를 섭취하면 수면을 도울 뿐 아니라 두통 완화에도 효과적이다.

9. 키위

키위에는 이노시톨과 엽산이 많이 함유돼 있다.

이노시톨과 엽산은 신경전달 기능을 돕는 신경계에 중요한 성분으로 숙면을 돕는다.

10. 호박

예로부터 불면증에는 호박을 삶아 먹으면 좋다는 말이 전해진다.

호박은 잠들기 전인 수면 잠복기를 짧게 하고, 숙면을 취하게 도와준다. 또 아침에 상쾌함을 느끼는 데 도움을 준다. 삶아 먹는 방법 외에도 구워 먹거나 죽을 쒀 먹어도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41.html
kolaswqetsrq 11.02 04:07
아침에 꿀물을 마셔야 하는 이유 9가지

아침에 꿀물을 마셔야 하는 이유 9가지

01. 체중 감량 효과

꿀물을 마시는 것은 음료의 단맛에도 불구하고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됩니다. 꿀의 천연 설탕은 청량음료에 사용되는 가공된 백설탕이나 옥수수 시럽보다 훨씬 건강하며 칼로리의 건강한 원천입니다. 청량 음료를 꿀물로 대체하면 밤새는 아니지만 차이점을 볼 수 있습니다.

02. 건강한 배변 유지

어떤 사람들은 이 주제에 대해 부끄러워하지만 논쟁에 부끄러운 점은 없습니다. 하루에 1잔의 꿀물은 소화 기관을 도와 배변을 규칙적으로 유지해줍니다. 꿀의 항박테리아 성질은 복통과 소화 불량을 예방하고 몸속 위장기관을 강화하도록 도와줍니다.

03. 면역 체계 강화

꿀은 천연 항균 물질로 효소, 비타민 및 미네랄이 풍부한데요. 특히 유기농 꿀이 우리 몸을 세균으로부터 보호합니다. 몇몇 연구에서 마누카꿀, 뉴질랜드 공장에서 만든 꿀 등이 심지어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를 죽이고 헬리코박터균을 위한 자연적 치료로 사용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04. 알레르기 증상 감소

연구에 따르면 국내산 꿀을 먹으면 신체가 지방화된 꽃가루에 익숙해져서 알레르기 증상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계절성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 토종꿀을 먹으며 물 한 컵과 섭취하세요.

05. 아픈 목 치료

어르신들은 모든 꿀이 인후염과 기침에 완벽한 치료법이라고 알려줄 것 입니다. 꿀물을 마시면 식도 주위에 코팅이 형성되어 기침과 통증을 진정시켜 목구멍이 부드럽고 쾌적한 느낌을 줍니다. 얼마전 나혼자산다에서 헨리가 꿀을 먹으면 성대에 좋다며 강조한 적이 있는데요. 이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 정보입니다.

06. 건강한 에너지 활력 증가

가벼운 탈수증 조차도 피로감을 느끼게 할 수 있으므로 물과 꿀이 당신의 에너지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상상해보세요. 커피와 달리 에너지 활력은 가라 앉지 않습니다. 대신, 몸은 오랜 기간 동안 활력을 유지합니다.

07. 해독작용

꿀물은 항균성 뿐 아니라 결장을 도우면서 몸에서 독소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몸을 정기적으로 해독하면 기분이 나아지고 감염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는데요. 해독을 높이려면 갓 짜낸 레몬을 꿀물에 넣으세요. 레몬은 항박테리아 성질을 포함하고 이뇨 작용을 하며 간 기능을 돕습니다.

08. 건강한 마음 유지

 "
무엇보다 꿀물은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몸이 심장 및 심장 혈관계에 압력을 가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생성하는 것을 방지합니다.
",

09. 팽만감 감소

팽만감이 들면서 가스가 흐르는 느낌이라면 꿀물 한잔을 마시세요. 몸속 가스를 중화시키면서 팽만감을 줄여주는데 도움이 됩니다. 특히 과식을 한 후에 마시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9_8.html
kolaswqetsrq 11.02 04:08
■ 김구 암살의 진실 4편

■ 김구 암살의 진실 4편

권중희씨의 안두희에 대한 추적 및 응징은 안두희가 부인과 자녀를 모두 미국에 보내고 서울 가락동의 한 아파트에서 안영준이라는 가명으로 필사적인 은둔생활을 하며 외롭게 숨어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1983년 본격화되었다. 1987년 3월 28일 그를 알아본 「민족정기구현회장」 권중희씨는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몽둥이로 그를 폭행했다. 병원에 실려가 치료를 받던 안두희는 언론과 세인들의 관심이 쏟아지자 병원에서 몰래 도망쳐 다시 몸을 숨겼다.

1992년 2월에 다시 안두희를 찾아낸 권씨는 안두희를 강제로 백범 묘소에 참배케하였고, 같은 해 9월에는 안두희를 납치해 경기도 가평의 한 농장에 감금해 놓고 동아일보 기자와 함께 사건진상을 캐물었다. 이때 안두희는 중대한 고백을 했다. 안두희는 범행 직전 이승만 대통령을 만났고, 김창룡으로부터 김구 살해를 지시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 증언은 큰 화제가 되었으나, 증언의 세부 내용이 번복되거나 내용의 진위가 의심되는 부분들이 있어 논란이 되었다.

역사의 심판은 박기서(1950년~ )씨에게로 넘어갔다. 1996년 10월 23일 경기도 부천에서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던 박기서씨는 백범 김구 암살범인 안두희를 처단하기로 결심한 후, 부천시장의 그릇가게에서 홍두깨(40cm크기의 몽둥이)를 4천원 주고 샀다. 홍두깨에는 ‘정의봉(正義棒)’이라는 글씨를 직접 크게 썼다. 같은 날 오전 11시 30분 인천광역시 중구 신흥동에 있는 안두희가 사는 아파트에 들어가 안두희와 같이 살고 있던 부인을 묶어두고 안두희에게는 장난감 권총을 겨누며 두 손을 묶고, 정의봉으로 사정없이 내려쳐 때려 죽였다.

박기서씨는 안두희가 숨진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한 뒤 경찰에 자수했다. 그는 범행동기에 대해 자신은 학창시절부터 김구를 존경해 왔고 1995년 초 『백범일지』를 읽은 뒤 백범의 유지를 이어야겠다고 결심했으며, 권중희가 쓴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라는 책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박씨가 언론에 밝힌 안두희 살인의 동기는 순전히 애국심과 백범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그는 경찰에 자수한 직후 “의로운 일을 했으니 후회라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리고 당시 기자들에게 “나는 비록 배운 것은 없으나, 최소한 민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인간쓰레기 하나를 처단하는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
범행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사회 각계 인사들은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 처단 박기서 의사 석방 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9,200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인천지방법원에 제출하는 등 구명 운동을 펼쳤다. 시민들은 그의 자택에 격려금과 위로 편지들을 보내기도 했다. 1997년 3월 검찰은 징역 8년을 구형하였으며, 4월 인천지법은 정황을 참작하여 살인죄 최소형량인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후 항소심에서 징역 3년으로 형량이 감형되었고, 1997년 11월 대법원 상고심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되었다. 재판부는 박씨의 범행 동기는 주관적으로는 정당성을 가지고 있으나, 법질서 전체 관점에서는 용인될 정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라며 형량 확정의 취지를 밝혔다. 박기서는 1998년 3월 13일, 1년 3개월 만에 정부의 대사면 때 풀려났다.
",

- 5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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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09
■ 김구 암살의 진실 3편

■ 김구 암살의 진실 3편

1960년 4·19혁명 직후인 6월 26일 결성된 「백범김구선생 시해진상규명위원회」는 10여 개월의 추적 끝에 1961년 4월 18일 안두희를 붙잡아 김구 암살의 배후를 자백 받고 본인의 요청에 의해 검찰에 인계하였다. 하지만,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의 원칙에 따라 형사처벌 불가의 판정을 받았다. 또한 테러당할 우려가 있으니 당국에서 보호조치를 하기로 결정되었으며,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에 귀가 조치되었다.

하지만, 안두희에 대한 응징은 계속되었다. 가장 먼저 응징을 다짐하고 이를 행동에 옮긴 사람은 곽태영씨다. 곽씨가 백범 암살범을 응징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의 나이 19세 때였다. 곽씨는 “고향인 김제에서 서울로 올라와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효창공원에 있는 백범 묘소에 참배를 갔다. 그 때 나는 10년 안에 어떤 일이 있어도 암살의 진상을 밝히고 안두희를 처치해 한을 풀어드리겠다고 선생님께 다짐했다”라고 그 때를 회상했다.

곽씨가 응징의 의지를 실천에 옮긴 것은, 안씨를 처단하겠다고 맹세했던 ‘10년 기한’의 마지막 해인 1965년 12월이었다. 당시 안두희는 강원도 양구에서 ‘신의기업사’라는 군납회사를 운영해 도내 납세 실적 1~2위를 다툴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행상을 가장해 양구에 잠입한 곽씨는 며칠 동안 안씨 집 주변을 배회하며 치밀하게 기회를 엿본 끝에 12월 22일 ‘거사’를 결행했다. 아침 9시쯤 안씨 집에 침입하여 세수하던 안씨와 격투를 벌인 끝에, 그의 목덜미를 칼로 찌르고 마당에 있던 돌로 머리를 내리쳤다.

안씨는 이 사건으로 뇌수술을 세 번이나 한 끝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이듬해 2월 곽씨는 춘천지법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1심에서 5년 실형을 언도 받았다가 2심에서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고 1966년 7월30일 풀려났다.

이 사건이 잊혀갈 무렵, 백범 암살에 대한 진상 규명 문제를 다시 사회적 관심사로 끌어올리며 민족반역자 안두희 응징의 바톤을 이어받은 사람은 권중희씨(1936-2007)다. 권중희씨가 안두희를 응징할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안두희가 미국으로 도피하기 위해 은밀히 여권을 발급 받았다는 신문 기사가 보도된 1981년 12월 즈음이었다. “중학교 때 존경하던 백범 선생 암살범이 안두희라는 소리를 듣고 마음 한구석에서 응징의 칼을 갈아왔다”는 권씨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안두희를 붙잡아 암살의 진상을 자백하게 하고, 그에게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된 사죄를 받아내겠다고 다짐했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3_43.html
kolaswqetsrq 11.02 04:10
■ 홍살문 2편

■ 홍살문 2편

홍살문은 대개 효행을 중심으로 포상의 형식으로 많이 주어졌으나, 조선에 들어와서는 의부(義夫)나 절부(節婦, 열녀) 등에게도 내려져 효행과 여성의 절개를 중시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사용하였다. 다시 말해 유교를 대중화시켜 유교 국가를 실현시키려는 조선의 의지가 담긴 것이다. 성리학이 향촌사회에 뿌리내리면서 서원(書院)이 많이 건립되고, 유명 서원에서는 선현(先賢)들의 위폐를 모시는 경우가 많아 홍살문을 세워 신성시하기도 했다.

효자나 열녀가 나오면 고을 원님의 보고를 받은 임금은 암행어사를 보내어 조사하고 내용이 합당하면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 또는 살던 집 앞에 그 행실을 널리 알리고 본받도록 하기 위하여 홍살문을 세우도록 하였다. 홍살문이 고을에 내려지면 웬만한 죄수는 방면되고 각종 세금도 면제되었다. 천민이 그 대상이라면 곡식과 옷감 등의 상이 내려졌고, 때로는 면천(免賤)을 통한 신분 상승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양반이라면 종6품의 관직까지도 내려졌는데, 종6품은 과거에서 진사시에 합격하고 대과에서 장원급제를 해야 받을 수 있는 품계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대규모의 전쟁은 효자·충신·열녀들이 대량 발생하는 여건이 제공되었다. 오랜 전쟁으로 사회가 어지러워지자 나라에서는 충신이나 효자, 열녀를 열심히 찾아내어 상을 줬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남편에게 절개를 지키는 것이 성리학의 바탕이기 때문이었다. 열녀문이 많이 만들어진 것도 이때였다. 광해군 초기에는 임진왜란 때 효자·충신·열녀들의 실제 행적을 모아 〈동국신속삼강행실도〉를 만들었다. 15~17세기에 효자로 포상 받은 자의 신분을 보면, 양반이 차지하는 비율은 점차 줄고 양인과 천민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늘어났다. 명예뿐만 아니라 잡역을 면제받고 신분이 상승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조선 초기에 열녀문을 받은 여성들은 대개 남편이 죽은 뒤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재혼하지 않은 것만으로는 열녀로 인정받기 힘들었다. 열녀로 인정받기 위해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거나, 약혼자가 죽어도 평생 결혼하지 않고 수절(守節)하기도 했다.

 "
조선 후기 양반의 숫자가 늘어나자 같은 양반이라도 여러 층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가문이 있는가 하면 낮은 관리직을 얻어 양반 체면을 겨우 유지하는 집안도 있고, 몇 대째 벼슬을 못 해 평민보다 못한 양반과 직접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양반 그리고 빈털터리에 가까운 양반도 있었다. 그래서 며느리나 딸이 죽어 집안에서 열녀가 나오면 더할 나위 없는 가문의 영광인데다가 몰락한 양반은 부귀영화를 되찾을 기회를 얻게 된다. 그래서 집안사람들은 남편이 죽어 홀로 남은 여성에게 은근히 따라 죽기를 강요하기도 했다. 마을 입구나 집 앞에 자랑스럽게 서 있는 홍살문은 그러한 남성위주의 봉건적 발상으로 희생을 강요당한 여인들의 한과 피눈물이 서려있지는 않을까.
",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2_63.html
kolaswqetsrq 11.02 04:10
■ 태실胎室 수난기 3편

■ 태실(胎室) 수난기 3편

그 시절 수습되어 온 왕실의 태항아리는 우선 시내 당주동 128번지 의 이왕직봉상소(李王職奉常所)에 임시 봉안되었다가 이듬해 봄에 모두 서삼릉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원래 명당만을 골라 모셨을 태실 자리를 포기하고 구태여 태항아리를 한곳에 모으려고 했던 까닭은 또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망국의 왕실이 겪어야 할 수난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태실을 옮겨오기 위해 이 일을 관장한 이왕직의 전사(典祀) 이원승과 유해종이 전국 각처의 태실을 순방한 것이 1928년 8월 무렵이었다. 그 때가 순종 임금이 세상을 떠난 직후였으니, 태실을 한곳에 정리하고자 하는 계획을 구체화하는 데에는 별다른 걸림돌이 없던 시점이었다.

실제로 충남 홍성군 구항면 태봉리에 봉안했던 순종의 태실조차도 1928년 8월 18일에 봉출했다가 홍성군청을 거쳐 그 다음날 서울로 옮겨지는 등 왕실의 위세가 전혀 작용하지 못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어디랄 것도 없이 태실의 관리 현황이 너무 엉망이었다는 점이었다. 이들이 돌아다녀 본즉, 역대 국왕의 태실은 여러 곳이 이미 도굴을 당했고, 심지어 태실이 명당이라 하여 그 자리에다 민간인들이 시체를 암장한 곳도 수두룩한 지경이었다. 그러니 온전하게 태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태항아리를 모두 한자리에 모아야 한다는 그들의 명분도 고스란히 먹혀 들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가령 충남 예산의 현종(顯宗) 태실은 태항아리 마저 온데간데없었고, 충남 홍성의 순종 태실에는 암매장한 시신 두 구가 나왔다고 전해진다. 현재 서삼릉 태실 구역으로 옮겨진 역대 국왕의 태실 가운데 소화(昭和) 연호가 새겨진 탑지와 더불어 신규 제작된 외호(外壺)에 담겨져 태항아리가 모셔진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결국 대다수 역대 국왕과 왕실의 태실이 서삼릉으로 옮겨져 마치 공동묘지와도 같은 형태의 군락을 이루게 된 데는 나라 잃은 슬픈 우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창경궁으로 옮겨진 성종의 태실도 말이 태실이지, 그저 이왕가 박물관의 야외 진열품으로 전락한 채로 남겨졌던 것이다.

더구나 세월이 흘러 창경원은 다시 창경궁이 되었고 이왕가 박물관은 사라진 지 오래니, 이제 성종 태실은 딱히 오갈 데가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성종태실이 더 이상 창경궁 안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앞으로의 처리 문제를 문화재청에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논의해 소중한 문화재로서 대접을 받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그런데 원래 창경궁은 성종 14년에(1483년) 정희왕후(성종의 할머니), 소혜왕후(성종어머니), 안순왕후(예종 비)를 위해 건립한 궁궐이라 하니, 성종 태실이 이곳까지 흘러온 것은 우연이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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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11
■ 태실胎室 수난기 1편

■ 태실(胎室) 수난기 1편

일제강점기 일본은 풍수설을 역이용하여 명산마다 쇠말뚝을 박고 지맥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터이다. 조선왕조의 기운을 쇠하게 만들기 위함이라 하는데, 그 만행이 조선왕조의 태봉에까지도 미쳐 태실은 수난을 당하게 된다. 태실지가 왕조의 번영을 위한 목적에서 조성된 것이라는 것을 간파한 일제는 전국의 태실 주변에 신작로를 내거나, 태실을 고의적으로 훼손하기 시작했다.

조선왕조가 멸망한 1910년, 일제는 왕실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11월에 일본 궁내성 소속 이왕직(李王職)이라는 기관을 설치했다. 이왕직은 조선왕조를 이씨조선(李朝)이라고 폄하하는 작업부터 시작해 왕실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에 몰두한다. 경복궁 일부를 헐어내어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건립하고, 궁에서 철거한 목재는 일본인들의 별장이나 요정을 짓는데 사용했다. 또한 창경궁을 유원지화 하여 동물원과 식물원을 개설하고 관람을 이유로 일반인의 출입을 자유롭게 하였다. 순종 서거 2년 후인 1928년 조선총독부는 이왕직의 이름으로 태실 정리를 계획하고 전국에 묻어둔 조선 왕의 태 53기를 파헤쳐 ‘서삼릉’으로 옮겼다. 태를 담았던 조선 백자들은 거의 모두 도굴 당했음은 물론이다. 태실이 있던 명당자리에는 일제시대 권력가(조선인, 일본인)들의 무덤이 들어앉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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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삼송리에 있는 사적 제200호인 서삼릉(西三陵)은 조선말기 왕실의 가족 묘지이다. 서삼릉은 희릉, 효릉, 예릉의 3릉이 서울 서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칭호이다. 희릉(중종계비 장경왕후 윤씨), 효릉(인종과 인성왕후), 예릉(철종와 철인왕후)과 조선 역대 왕들의 태(태)가 묻혀있는 태실 54위, 폐비 윤씨의 회묘, 공주, 옹주, 후궁들의 묘지 등 7개 구역으로 이뤄져 있다. 또한 역대 3세자의 묘인 의령원(사도세자의 장자인 의소세손), 효창원(정조의 장자인 문효세자), 소경원(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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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왕릉 경역 내에는 후궁, 왕자, 공주 등 왕이 아닌 신분의 묘나 태실을 둘 수 없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망하자, 일제가 망국왕실을 관리한다는 명목 하에 전국 각지에서 왕자, 공주, 옹주들의 태를 옮겨와 서삼릉에 일괄 집장(執藏)함으로서 서삼릉은 왕릉으로서의 존엄과 품격마저 잃게 된 것이다. 일제는 태실을 마치 공동묘지처럼 서삼릉에 한꺼번에 안치했는데, 그 배열을 날 일(日)자 형태로 하여 신사 분위기를 연출하기까지 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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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12
■ 명나라 황제 만력제 1편

■ 명나라 황제 만력제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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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황제 만력제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선을 도와주기 위해 원군 파견을 결정했던 명나라의 황제이다. 이 만력제에게는 고려천자 조선천자라는 별명이 있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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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력제는 명나라 제13대 황제로, 명나라에서 제일 오랜 기간인 48년 동안 황제의 자리에 앉아 있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만력제는 황제의 자리에 있던 48년의 세월 중, 자그마치 30년간이나 정사를 돌보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나마 정사를 돌보았던 나머지 18년의 재위기간 중 7년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도와주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말 그대로 황제가 파업을 선언하고, 국가 정사를 돌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아부하는 신하를 재상으로 앉히거나, 술과 여자를 밝히며 내탕금(개인 재산)을 축적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더군다나 만력제는 워낙 성격이 낙천적이고 놀기를 좋아했던 황제였는데, 그는 무덤 공사와 자신의 보물을 감상하는 것을 즐겼고, 자금성의 궁궐 깊숙한 곳에서 무려 10만 명의 궁녀와 환관의 시중을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황제가 얼마나 신하들에게 얼굴을 비치지 않았으면, 새로 관리가 된 신하들 중에서는 한참동안 황제의 얼굴을 전혀 몰랐던 인물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황제가 나라를 돌보지 않자 명나라는 깊은 수렁에 빠졌고, 그의 사치에 나라의 국고는 점점 비어만 갔지만 만력제 개인 재산은 쌀과 금은보화가 넘쳐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조선에서 임진왜란이 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의 상황은 눈꼽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던 만력제가 마치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위기에 빠진 조선을 위해(?) 모든 국력을 동원하여 파병을 결정했다. 하지만 명나라 조정의 신하들은 이런 결정에 반대했다. 아직 명나라 본토가 공격을 받지도 않았는데 굳이 서둘러 파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여태까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던 황제가 느닷없이 나타나 조선 원군(援軍) 파병을 명하니 신하들은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력제는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4만 명의 군사를 이여송이라는 장수에게 내어주어 조선에 파병했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한양이 함락당하고 임금이 의주까지 피난 와서 요동으로 망명을 타진할 정도로 암담한 상황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명나라의 지원군은 천군만마와 같았을 것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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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13
피부를 젊게 만드는 5가지 건강식품

피부를 젊게 만드는 5가지 건강식품

▷ 고구마

베타-카로틴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베타-카로틴은 피부 산성도를 맞춤으로써 피부가 건조해지는 것을 막는다. 또 피부의 각질 현상을 개선시켜 매끈한 피부를 갖게 한다.

▷ 연어

붉은 항산화제로 불리는 아스타잔틴이 들어있다. 이 성분은 세포막과 DNA에 손상을 주는 유해산소를 퇴치한다. 연구에 의하면 5일에 한 번씩 연어를 먹으면 피부암의 전구 질환인 광선각화증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토마토

토마토에 풍부한 라이코펜은 자외선 차단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토마토를 올리브 오일과 함께 먹으면 라이코펜을 최대한 흡수할 수 있다.

▷ 감귤류

오렌지, 레몬, 귤, 자몽 등 감귤류에는 피부를 젊게 하는 콜라겐 생성에 필수적인 비타민C가 풍부하게 들어있다. 또한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고 세포가 죽는 것을 방지하는 바이오플라보노이드 성분도 들어있다.

▷ 잎채소

시금치, 케일 등의 잎채소에는 루테인이 많이 들어있다. 이 성분은 햇볕으로 인한 염증과 주름살이 피부에 생기는 것을 막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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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13
여성에게 좋은 건강음식 베스트6

 여성에게 좋은 건강음식 베스트6

1. 딸기, 블루베리 등 각종 베리

베리에는 노화를 방지하는 항산화성분이 어떤 다른 음식보다 많이 들어있어요. 이 성분들은 단순히 성인병의 위험을 낮출 뿐만 아니라, 기억력 감퇴도 방지하는 효과가 있어요.

▶얼마나 먹어야 할까? 하루에 한 컵 분량이 적당해요. 딸기이건 라즈베리이건 블루베리이건 상관없어요. 최소 1주일에 3번은 먹어야 효과가 있어요. 간식을 베리로 대신한다면 섬유질 섭취량이 늘어 변비를 해소하고 체중 증가도 막을 수 있어요.

2. 연어

연어는 건강에 유익한 지방 성분인 오메가3지방산을 공급하는 주요 식품. 오메가3지방산은 암의 발병 위험을 줄이고 기억력을 높이는 한편, 혈압 조절과 노화 방지에도 효과적이에요. 알약으로 만들어진 오메가3제를 먹는 것보다는 생선을 통해 자연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좋아요.

▶얼마나 먹어야 할까? 1주일에 두번은 식탁위에 올리도록 해요.(연어 대신 참치를 먹어도 좋아요).

3. 푸른잎 채소

시금치와 상추, 케일 등 적녹색 채소를 많이 먹으라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어보셨죠? 이같은 채소에는 섬유소와 비타민C와 K, 엽산, 칼슘과 마그네슘, 아연과 철 등의 미네랄 성분도 풍부해요.

▶얼마나 먹어야 할까? 하루에 두끼 이상 섭취 하면 좋아요.

4. 땅콩 등 견과류

단백질과 마그네슘, 비타민 B와 E를 공급하며 심장병과 암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어요. 물론, 견과류는 열량이 높다는 단점이 있어요. 그러나, 견과류 속 지방은 건강에 이로운 성분으로 적정량만 섭취한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얼마나 먹어야 할까? 1주일에 5줌 정도.(땅콩과 아몬드, 호두,캐슈넛 등을 섞어 한 번에 1/4 컵씩 먹기)

5. 당근, 살구, 고구마

진한 노랑이나 주황빛을 띈 야채들은 암발생 위험을 낮추는 베타 카로틴 성분을 잔뜩 함유하고 있어요. 또한 감기를 예방하고 자외선으로 손상된 피부를 치유하는 기능을 해요. 혈압을 낮추고 심장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해요.

▶얼마나 먹어야 할까? 하루에 반 컵 정도 분량을 먹는 것이 좋아요. 고구마 1개 또는 당근 큰 것 1개, 살구 12개 등을 번갈아 가며 먹어요.

6. 요거트

반드시 설탕 첨가물이 없는 플레인 요거트여야 해요. 이런 요거트에는 비타민 B와 칼슘, 유익한 유산균이 들어있어 위를 튼튼하게 하고 면역력을 길러줘요. 변비 치료에도 좋으며, 효과적인 다이어트 식품이기도 해요.

▶얼마나 먹어야 할까? 1주일에 4컵 이상 먹는 것이 효과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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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14
■ 사직단社稷壇

■ 사직단(社稷壇)

사직단(社稷壇)은 토지신인 사(社)와 곡물 신인 직(稷)의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종로구 사직동에 있다(사직동이라는 지명이 붙은 이유).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한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고려의 제도를 따라 경복궁 동쪽(왼쪽)에 종묘가, 서쪽(오른쪽)에는 사직단이 대칭되게 배치되어 있다. 이것은 종묘가 양 (陽)에 해당하는 사람人의 신주를 모신 곳이고, 사직은 음(陰)에 해당하는 땅의 신주를 모신 곳이기 때문이다.

사직은 사단과 직단이라는 두 개의 사각형 제단으로 구성되었는데, 동쪽에는 사단이 서쪽에는 직단이 있다. 사직단의 제단이 사각인 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전통적인 관념에 따른 것이었고,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원구단(圜丘壇:환구단)의 모양이 둥근 모양인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네모반듯한 단의 4면에는 3층의 돌계단을 설치하였고 단상 네 귀퉁이에는 구멍 난 돌이 박혀 있고 큰 쇠고리가 꽂혀 있는데, 이는 제사 때 필요한 기둥을 세우고 차일을 치도록 설비하였던 것이다.

종묘는 서울에 하나만 있었으나, 사직은 지방의 각 군현에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지방의 사직도 음(陰)의 방향에 배치했기 때문에 관아 건물의 서쪽에 자리했다. 서울의 사직 제사는 국왕이 주관했으나, 지방에 있는 사직 제사는 국왕 대신 지방의 수령이 주관 했다. 현재 규장각에 있는 조선 후기 지방 지도를 보면 지방 관아 근처에 있는 사직단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농업이 주된 산업인 조선시대에 토지신과 곡물신을 모신 사직은 서울과 지방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종묘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사직단의 사방에는 홍살문(紅箭門)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북쪽에만 3개의 문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신이 출입하는 곳이 북쪽이므로 북문의 격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종묘에는 국왕의 신주가 계속해서 추가되었으므로 여러 번 건물이 증축해야 했다. 종묘의 증축이나 제도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종묘의궤’가 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 본이 전해진다. 반면 사직단은 1395년 완공된 이후 제도상 큰 변화 없이 그대로 내려져 왔고 임진왜란 때 불 탄 이후 한 차례 중건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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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15
■ 정난정鄭蘭貞 5편

■ 정난정(鄭蘭貞) 5편

의금부에서는 구슬이를 비롯한 10여 명의 여종들에게 자백을 강요했다. 그들이 거부하자 잔혹한 고문이 이어졌다. 결국 장독을 이기지 못한 여인들이 모두 죽고 한 사람만 살아남았다. 짜 맞추기 수사와 고문에 의한 자백이 증거로 인정되던 시절의 공식적인 악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된 결과가 나오지 않자, 그해 10월 14일 좌부승지 홍인경은 명종에게 정난정을 잡아 가두고 추국하기를 청했다

의금부는 사건의 진상 파악보다는 정난정 한 사람에 대한 공격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명종은 어머니 문정왕후의 국상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삼촌과 외숙모를 죽이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으므로 차일피일 시간을 끌었다. 막다른 상황을 감지한 정난정은 냉정하게 최후를 대비했다. 그녀는 국청에 마소처럼 끌려가 뭇 양반들의 망신과 조롱 속에 목숨을 잃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정경부인이 되었어도 천비는 끝내 천비인가 보다. 그래도 나는 정경부인으로 죽으련다.”

1565년(명종 20년) 11월 3일 마침 금부도사가 죄를 지은 평안도 장수를 체포해 오던 도중 금교역에서 말을 바꾸어 탔다. 그 장면을 오해한 노비가 정난정에게 금부도사가 오고 있다고 알렸다. 그러자 정난정은 갖고 있던 비상으로 미련 없이 목숨을 끊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에 넋을 잃은 윤원형도 그로부터 5일 후 같은 방법으로 자살했다. 윤원형 부부의 동반자살 소식을 들은 신료들은 쾌재를 부르며 정난정을 천민으로 환원시켰지만 아들 윤효와 윤충원은 해당되지 않았다. 그들은 부모가 죄안에 오르기 전에 죽었으므로 공식적으로 죄인의 자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양반들은 사서(私書)에서 정난정을 남편 윤원형을 사주하여 국정을 파탄 내고 강상을 어지럽힌 요녀로 묘사했다.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정난정의 동복 둘째 오빠는 담(淡)인데, 그는 언젠가는 정난정이 반드시 화근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일체 그녀와 왕래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가 찾아올까봐 집 입구의 담을 꼬불꼬불하게 쌓아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통로를 만들었다. 정난정은 늘 가마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가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 때문에 정난정은 그의 집에 가볼 수가 없었고, 덕분에 윤원형과 정난정이 몰락한 뒤에도 화를 입지 않았다. 정난정에 대한 기록은 이처럼 정사나 야사 모두 정난정을 조선의 질서를 어지럽힌 타락한 여성으로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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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15
■ 정난정鄭蘭貞 3편

■ 정난정(鄭蘭貞) 3편

을사사화를 계기로 조정을 완전히 장악한 윤원형은 사림 세력을 완전히 축출한 데 이어, 정적으로 돌아선 친형 윤원로를 남원으로 귀양 보낸 뒤 목숨을 빼앗았다. 하지만 이는 윤원형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권력에는 부모형제도 없다고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 무렵 문정왕후는 정난정을 통해 보우대사를 소개받고, 그를 통해 고려시대의 선종과 교종을 부활시켰으며, 전국에 3백여 개의 사찰을 공인하고 도첩제를 부활시켰다. 이에 정난정은 불사 중창에 거금을 기부하고 다양한 불교 행사를 마련하여 그녀의 노력을 뒷받침했다. 정난정의 깊은 불심에 감동한 문정왕후는 1549년(명종4년) 윤원형의 공이 크다는 이유로 그의 첩인 정난정의 소생인 자녀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다른 집 적자와 통혼하고 벼슬길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는 은전을 베풀었다.

기세가 오른 윤원형은 1551년(명종6년) 2월 명종에게 조강지처 김씨의 악행을 고발하며 집안에서 내치게 해달라고 청원했다. 명종이 이 청원을 받아들이자 윤원형은 즉시 조강지처 김씨를 쫓아내고 정난정을 정실(正室)로 삼았다. 일찍이 그녀를 소실(小室)로 들일 때의 서약을 지킨 것이었다. 그 후 김씨는 가난과 모멸 속에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정난정이 보낸 음식을 먹고 죽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요녀이자 독녀라는 그녀의 별명이 붙은 이유였다.

문정왕후는 수렴청정을 거두기 넉 달 전인 1553년(명종8년) 3월 명종에게 ‘윤원형의 첩에게 직첩을 주도록 하라’는 명을 내리게 했다. 그리하여 정난정은 합법적으로 윤원형의 부인이 되었다. 당시 윤원형은 종1품 의정부 좌찬성이었으므로 그녀는 단숨에 외명부 종1품 정경부인(貞敬夫人)이 되었고, 자식들은 천역에서 벗어나 어엿한 양반이 되었다. 하지만 정난정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해 10월 윤원형으로 하여금 서얼허통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게 함으로써 자신과 같은 처지의 백성들을 구원하려고도 했다.

“인재의 우열은 타고난 기질의 순수함과 그렇지 않음에 좌우되는 것이지 출생의 귀천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만일 재질이 뛰어난 사람이 첩의 몸에서 났는데, 서얼이라 하여 등용하지 않는다면 어찌 왕자가 인재를 취함에 귀천을 가리지 않는 도라고 하겠습니까.”

윤원형이 영의정 심연원, 좌의정 상진, 우의정 윤개 등과 함께 올린 이 상소는 서얼들도 과거를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조 판서 안현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얼호통법이 통과되자 숨죽이고 있던 서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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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16
■ 정난정鄭蘭貞 1편

■ 정난정(鄭蘭貞) 1편

조선 명종 때의 여인 정난정은 천민이었지만 타고난 미모와 재기를 발휘하여 정경부인의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윤원형은 문정왕후의 친정동생으로 20년 동안 권력의 실세로 군림하면서 부정부패를 일삼았던 인물이다. 사시사철 전국 각지에서 뇌물을 실은 수레가 올라왔고, 곳곳에 농장이 있었고, 한양에만 대저택이 10여 채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윤원형의 주변 인물 중 가장 주목 받는 인물이 정난정이었다. 정난정은 부총관을 지낸 정윤겸과 관비(官婢)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庶女)로 엄청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남자를 유혹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여자였다고 한다. 윤원형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그의 첩이 되었고, 한 발 더 나아가 정실부인을 내몰아 죽인 후 스스로 정실이 되어 정경부인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난정(蘭貞)이 낳은 서자들을 적자로 만들었으며, 서자들도 벼슬에 나갈 수 있도록 법을 바꾸는 등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누렸다.

정난정은 문정왕후의 사랑도 듬뿍 받아 궁궐을 수시로 드나들었고, 윤원형의 권세를 배경으로 상권(商權)을 장악하여 전매(專賣), 모리(牟利) 행위로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당시 윤원형과 정난정 부부와 사돈을 맺고 싶어 하는 자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대저택을 지어놓고 비단 휘장을 치고 금은 그릇으로 밥을 먹었으며, 궁궐에서처럼 팔진미(八珍味)를 넣어 끼니마다 1만 전을 썼다고 한다. 더구나 형인 윤원로(尹元老)가 대우에 불만을 표하자 죽여버렸다. 철의 여인 문정왕후를 보필하고 보우대사를 막후지원하면서 불교 중흥과 신분타파를 시도하여 강고한 유교 사회에 일대 변혁을 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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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부패와 패륜에 조정신료들과 온 백성들이 모두 치를 떨었고, 사관들도 윤원형을 개만도 못하다 벌레나 다름없다 등으로 악평을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잘 나가던 윤원형(尹元衡)도 명종 20년 문정왕후가 죽자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으며, 3사에서는 그를 탄핵하는 상소가 빗발쳤다. 평소에 외삼촌 윤원형(尹元衡)의 행실을 거슬려하던 명종(明宗)은 윤원형을 파직하고 낙향시켰다. 윤원형이 힘을 잃고 낙향하자 윤원형의 처소에 돌이 날아들고 화살이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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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이 난 윤원형은 정난정(鄭蘭貞)과 노비 몇 명만 데리고 산으로 숨어들었다.

언제 자신들을 잡으러 금부도사(禁府都事)가 내려올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살던 어느 날, 옆 동네에 다른 죄인을 압송하기 위해 금부도사가 내려왔다. 그러자 자신들을 잡으러 온 것으로 착각한 정난정은 늘 소지하고 다니던 독을 마시고 자살했고, 윤원형(尹元衡)은 죽은 아내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다가 5일 뒤 자신도 뒤를 따랐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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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17
놀라운 박수拍手의 효과

놀라운 박수(拍手)의 효과

박수는 매우 평범한 동작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건강 비결이 숨어 있다. 인간의 손에는 14개의 기맥(氣脈)과 손목에서 손가락 끝까지 345개의 경혈이 있다고 한다. 박수를 치면 손바닥에 있는 경혈을 자극해 이와 연결된 심장과 폐 등 내장기능을 활성화시키고 기의 흐름과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손을 많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무병장수한다는 실질적인 통계자료도 있다.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건강하게 오래 산 사람들 중 1위는 지휘자, 2위는 피아니스트였다. 두 직업의 공통점은 손을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1. 경직된 몸을 풀어주어 긴장을 해소시키고, 자신감을 높여 스트레스를 해소해준다.

2. 온몸으로 박수를 치면 달리기보다 운동 강도가 높아서 군살이 생길 틈이 없어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

3. 우리 몸의 축소판인 손바닥 자극으로 몸의 구석구석까지 생기가 넘치고 건강해져 질병 예방 및 치료 효과가 있다.

4. 누구나 손쉽게, 언제 어디서나 돈 한 푼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운동이다.

5. 양손 운동이기 때문에 좌뇌와 우뇌가 고르게 발달되고, 집중력이 향상되어 머리가 좋아진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37.html
kolaswqetsrq 11.02 04:18
내 몸속 염증 줄이는 식생활

내 몸속 염증 줄이는 식생활

1. 산성식품을 적게 먹는다

육류 등의 산성식품은 염증 덩어리다. 콜레스테롤이 많고 포화지방산도 많아 소화되는 과정에서 활성산소를 대량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활성산소는 우리 몸 곳곳에 염증반응을 일으킨다. 따라서 육류 섭취는 되도록 줄여야 한다.

2. 알칼리성 식품을 많이 먹는다

과일, 채소 등의 알칼리성 식품은 염증반응을 줄이는 천연 항산화제나 식물영양소가 많이 들어있다. 이들 성분은 활성산소를 무력화 시킨다. 따라서 평소 채소, 과일을 많이 먹으면 염증수치를 낮추는 데 효과가 있다.

3. 지방 섭취를 줄인다

트랜스지방, 포화지방, 오메가-6지방산은 필연적으로 염증반응을 일으킨다.

4. 가공식품을 피한다

가공식품에는 액상과당, 트랜스지방, 기타 여러 가지 화학첨가물이 들어 있다. 가공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화학물질이 들어갈수록 만성염증이 생길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5. 패스트푸드를 피한다

패스트푸드는 트랜스지방, 포화지방, 각종 화학물질이 첨가돼 있어 소화되는 과정에서 많은 활성산소를 발생시킨다. 이것은 결국 우리 몸속에 염증반응을 발생시키는 주범으로 작용한다.

6. 소식을 한다

기본적으로 적게 먹으면 염증반응 또한 적게 생긴다.

7. 항산화제를 적당량 섭취한다

항산화제는 염증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염증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밝혀진 영양소나 성분으로는 코엔자임Q10, 라이코펜, 마그네슘, 글루코사민, 퀘시틴 등이다.

8. 오메가-3 등 천연 항염증제를 섭취한다

좋은 불포화지방산의 섭취를 늘리면 염증이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메가-3나 한류성 어류, 올리브유나 카놀라유를 섭취하면 좋다. 오메가-3는 가능한 한 오염되지 않은 바다에서 잡은 멸치류 성분으로 만든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9. 질 좋은 유산균을 섭취하자

유산균은 장내를 유익균이 지배하는 환경으로 만들어준다. 장내에 유익균이 많으면 음식을 통해 들어오는 독성물질도 해독해버리므로, 장내는 유해균보다 유익균이 지배하는 환경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좋고, 그것은 염증의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05.html
kolaswqetsrq 11.02 04:18
꼭 알아 두어야 할 올바른 수면습관

꼭 알아 두어야 할 올바른 수면습관

1. 생체시계를 일정하게

수면시간을 정하고 매일 밤 그 시간을 지키세요.

2. 잠자리에 들기 전에 느긋해져라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일하고 싶은 유혹은 뿌리치고 긴장을 푸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따듯한 음료(우유, 차)를 마시고 30분정도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3. 몇 시간 자야할지 파악하라

숙면을 취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자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적정 시간 동안의 수면은 당신의 생산성을 늘 높게 유지합니다. 사람은 적어도 5-8시간을 자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므로 이 시간을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휴일 잠자리에 들 때 알람을 맞추지 말고 일어나보세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시간이 당신의 수면시간을 알려 줍니다.

4. 침실에서 컴퓨터, tv, 스마트폰 불빛을 피하라

침실에서 컴퓨터, tv, 스마트폰 불빛을 없애면 주의가 분산 되지않고 불빛이 없어져 숙면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5. 침실을 시원하게

추운 겨울이지만 난방 온도를 너무 덥지 않게 맞추세요. 숙면에 최적인 실내 온도는 15-18도 로, 잘 때는 시원한 방에서 이불로 온기를 얻는 것이 숙면하는데 최고입니다.

6. 침실은 잘 때만 가도록 한다

침실은 일하거나 노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뇌가 침실을 자는 곳으로 인식하게 되면 밤에 잠들기가 더욱 쉬어집니다. 침대에 앉아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하게 되면 습관이 돼서 잠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질 않습니다.

7. 내일 할 일의 목록을 잠들기 전에 써라

저녁에 내일 할 일을 적고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마세요. 적어 놓고 잊어버리는 것이 걱정 없이 잠들기 좋겠죠.

8. 카페인은 아침까지 참으세요

밤 늦게까지 깨어 있으려고 카페인 음료를 마시면 다음날 컨디션을 안 좋게 만듭니다.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게 되면 각성 효과가 있어 밤에 잠을 잘 수 없고 사람에 따라 그 영향이 최고 14시간까지 갑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10.html
kolaswqetsrq 11.02 04:19
고혈압에 좋은 차

고혈압에 좋은 차

1. 국화차

향이 좋아 평소 마시기 좋은 국화차는 관상동맥경화로 인해 나타나게 되는 고혈압, 협심증, 뇌혈관장애 개선, 동맥경화 개선 등에 도움이 되는 차이다.

2. 녹차

녹차에 들어있는 카테킨은 혈압상승을 억제하고 체내에 쌓여있는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 혈압을 낮추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차이다.

3. 여주차

여주는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고혈압, 동맥경화, 뇌졸중 등의 혈관질환을 예방한다.

4. 어성초차

천연 항생제로 플라보노이드 등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고, 꾸준히 복용하면 모세혈관 확장 및 성인병 예방 등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고혈압에 좋은 차이다.

5. 와송차

와송은 체내에 있는 나쁜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등 피를 깨끗하게 하고 혈류 증진에 도움이 되는 약초 중 하나로 고혈압, 동맥경화 등의 성인병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6. 현미차

시중에서 구하기 쉬운 현미차는 피토스테롤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체내에 있는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주는 효과가 있어 동맥경화, 고혈압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

7. 팥물

팥물에는 폴리페놀이 풍부하여 체내 활성산소 제거,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준다.

8. 쑥차

몸을 따뜻하게 하는 쑥차는 콜레스테롤을 제거하고 고혈압을 개선 및 나트륨 배출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고혈압에 좋은 차이다.

9. 도라지차

사포닌, 이눌린 등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항암효과도 뛰어난 도라지차도 나쁜 콜레스테롤 제거 및 고혈압을 낮춰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10. 뽕잎차

뽕잎차는 혈압을 낮추고,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 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91.html
kolaswqetsrq 11.02 04:20
여성 갱년기에 좋은 음식

여성 갱년기에 좋은 음식

갱년기가 되면 흔히 나타나는 증상으로, 심장 박동수가 늘거나 혈압이 올라가기도 하고 혈관이 수축해서 혈액순환이 악화되기도 한다. 위장 상태가 나빠지기도 한다. 그 결과 울렁거림, 발한, 냉증, 불면, 두통, 짜증, 현기증, 어깨 결림, 변비나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자율신경 변조와 더불어 내분비도 균형을 잃어 부정 출혈이나 월경 불순, 관절통, 비만이 생긴다.

- 갱년기 증상에 좋은 식품

1. 인삼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을 맞추어 정상으로 만들어 준다.

자율신경 조절뿐만 아니라, 체력 증강, 혈액순환 촉진, 건위 작용 등 여러 가지 작용이 있기 때문에 갱년기 여성에게 권할만한 식품이다.

2. 자연의 정신안정제라고 불리는 것이 칼슘이다.

보통 100ml의 혈액 안에는 칼슘이 9~11mg 녹아 있는데, 이 양이 30% 이상 감소되면 초조해지거나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칼슘은 근육의 수축, 경련을 예방하거나 개선하는 작용도 한다. 수영을 하다가 장딴지에 쥐가 날 때나 어깨가 결릴 때 보중해 주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3. 사프란(크로커스)은 갱년기 초조감을 진정시키는 약으로 예로부터 유명하다.

사프란 꽃의 수술을 주로 사용하는데 공급이 많지 않아 요즘은 대체용으로 홍화를 많이 쓰고 있다. 홍화의 붉은 색소에는 흥분을 가라앉히는 진정작용이 있다. 사프란과 홍화에는 혈액순환을 개선하는 작용도 있다.

4. 뇌에 포도당 공급이 부족하면 초조해지거나 화를 잘 내게 되는데, 비타민B와 마늘을 함께 먹으면 초조감을 줄일 수 있다.

5. 한방에서는 호두, 연꽃씨, 대추가 불면증 치료약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들 식품은 흥분된 신경을 가라앉혀 잠이 잘 오게 한다.

6. 여성호르몬과 아주 비슷한 작용을 하는 것이 석류씨와 대두의 이소플라본이다.

여성호르몬의 분비가 줄어도 이들 식품을 잘 먹으면 비슷한 작용을 기대할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05.html
kolaswqetsrq 11.02 04:21
꿀과 마늘의 효능

꿀과 마늘의 효능

1. 혈액순환 개선

마늘의 황 성분은 꿀과 섞이면 혈액순환에 아주 좋다.

이 두 가지는 혈전을 예방하고 정맥을 강화해 혈전증과 정맥류와 같은 질환을 막는다.

2. 혈압 감소

고혈압은 전체적인 심혈관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질환이다. 자연적으로 고혈압을 조절하기 위해 매일 공복에 꿀과 마늘의 섭취를 잊지 말자.

3. 유해 콜레스테롤 조절

생마늘을 으깰 때 방출되는 알리신은 혈류를 깨끗하게 하고, 과다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며, 트리글리세라이드 수치를 조절하는 데 아주 뛰어나다.

4. 염증 완화

사람들이 겪는 많은 만성 질환들이 염증을 유발하는 체내 불균형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 연구들에서 밝혀졌다. 꿀과 마늘의 효능은 염증을 완화하고 천연 진통제 역할을 하므로, 관절염, 체액저류, 근육 장애 등의 질환에 도움이 된다.

5. 면역력 강화

꿀과 마늘의 항박테리아, 항진균 성분은 면역력을 강화하는 데 아주 좋다. 두 가지 모두 바이러스, 박테리아 및 기타 병원균에 대한 몸의 방어력을 향상시킨다.

6. 기침 완화

기침이 박테리아 감염에 의해서든 혹은 바이러스 때문이든, 꿀과 다진 마늘을 섞어서 만든 간단한 시럽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이것은 자극을 완화하고 가래 제거를 촉진하는 거담제 역할도 할 수 있다.

7. 감기와 독감으로부터 회복 촉진

모든 감기와 독감 증상은 꿀과 마늘의 치료제를 지속적으로 섭취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 이것은 바이러스를 막고 기도를 보호하는 항체의 생성을 촉진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38.html
kolaswqetsrq 11.02 04:21
과학적으로 입증된 1분 30초

과학적으로 입증된 1분 30초

밤에 자다가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야 할 때, 지켜야 할 매우 중요한 사항입니다.

누군가가 건강상태가 좋았는데, 밤에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사망했다고 하는 얘기를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 화장실에 가기 위해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뇌가 조금 더 쉬어야 할 시간이 필요한데 쉬지 못함으로 인해 뇌졸중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모든 조직들이 퇴화하고 있는 중장년들에게는 긴 시간 앉았거나, 잠을 자다 일어나면 온 몸에 가라앉았던 혈액이 뇌에까지 전달될 시간이 필요합니다.

잠에서 깨었거나, 누었다가 일어날 때 필요한 1분 30초는?

1. 눈을 뜨고도 약 30초가량 그냥 누워 있는다.

2. 일어나면 침대 아래로 발을 내리거나 앉은 자세로 30초가량 그대로 있는다.

3. 곧게 일어설 때도 위기를 염두에 두고 30초 정도 느린 동작으로 몸을 세운 뒤 움직인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면 나이에 관계없이 갑작스런 뇌졸중을 예방할 수가 있습니다.

"예방은 치료보다 낫다." 는 사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30.html
kolaswqetsrq 11.02 04:22
■ 문정왕후 5편

■ 문정왕후 5편

문정왕후 사후에 논쟁이 가장 치열한 부분이 문정왕후에 의한 불교 부흥이다. 문정왕후에 의한 불교부흥은 숭유억불을 국정이념으로 삼은 성리학자들이 보기에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우리나라 전체 역사적으로 보면 커다란 치적이 될 수 있기도 하다. 문정왕후는 승려 보우(普雨)를 신임해 1550년 선교 양종을 부활시키고, 승과와 도첩제를 다시 실시하는 등 불교 부흥을 꾀했다. 문정왕후가 도첩제를 다시 시행하여 2년 여 년 동안 5000여 명의 승려를 뽑고 폐지 됐던 승과시를 부활시켜 훌륭한 승려를 배출했다. 그 대표적 역사적 인물이 바로 휴정(休靜) 서산(西山)대사, 유정(惟政) 사명(泗溟)대사이다.

이 승려들은 명종 이후 선조 대에 발발한 임진왜란 때 승군으로서 위기의 나라를 구하는 주체가 됐으니 문정왕후와 보우의 불교 중흥 정책은 역사적으로 보면 치적(治績)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정왕후는 조선의 성리학자들로부터는 정권을 휘두른 악후(惡后)로 평가절하되지만, 남성중심, 성리학 중심의 조선사회에서 여자의 몸으로 정권을 잡고 불교를 중흥시키는 등 탁월한 전략가이자 정치가로서의 역할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만약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여성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지는 않을까.

명종은 어머니 문정왕후의 등쌀과 외숙부윤원형(尹元衡)의 전횡으로 재위 내내 아무것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외아들 사망 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재위 22년만인 1567년 허무하게 죽으니 그의 나이 겨우 34세였다. 이렇듯 반정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앞세운 중종도 뚜렷한 업적도 남기지 못했고, 그의 아들들인 인종과 명종 역시 외척들의 갈등 속에서 제대로 기를 펴지도 못하고 존재감 없이 사라져갔다.

명종은 부인 심씨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었을 뿐, 후궁으로부터도 자녀를 하나도 얻지 못했다. 그런데 그 하나 뿐인 아들(순회세자)이 열세 살의 나이로 죽고 말았다. 이에 후사를 걱정하던 명종은 배다른 형제 덕흥군의 아들 셋을 불러 자신이 쓴 익선관을 벗어서 써보라고 했다. 위의 두 아들은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익선관을 머리에 써보았는데, 다른 아들들과 달리 셋째인 하성군은 “성상께서 쓰시는 것을 신하된 자가 어찌 쓸 수 있겠나이까”라고 하여 명종의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이 하성군이 명종의 뒤를 이어 선조가 되었다.

문정왕후와 윤씨 일파가 모두 죽은 후, 이들의 자리를 메운 것은 사림파들이었다. 그동안 4번에 걸친 거듭되는 사화로 사림은 많은 유학자를 잃었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 은거하며 학문을 닦고 제자를 길러낸 덕분으로, 문정왕후가 죽자 봇물처럼 정계에 등장하여 윤원형 일파를 제거하는 등 오랜 만에 중앙무대를 장악하면서 권력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제부터 역사는 이들 사림파간의 붕당정치로 인한 당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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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23
■ 문정왕후 3편

■ 문정왕후 3편

1545년 을사사화에 이어 벌어진 1547년의 ‘양재역 벽서(壁書)사건’으로 인해 사림파는 재기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1547년(명종 2년) 9월 18일의 《명종실록》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여주(女主)가 위에서 정권을 잡고 간신 이기(李芑) 등이 아래에서 권세를 농간하고 있으니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서서 기다릴 수 있게 됐다』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문정왕후를 ‘여주(女主)’라 조롱하고, 그 아래에서 이기 등이 권세를 농간하고 있다는 벽서의 파장은 컸다. 중종의 아들(서자)인 봉성군 등 3명이 역모 혐의로 처형되는 등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또 사림파의 중심 이언적, 백인걸, 노수신, 유희춘 등 20여명이 처형되거나 유배를 갔다. 윤원형은 독재 권력을 유감없이 휘두르며 반대파의 씨를 말렸다.

상황이 계속 심해지다 보니 1555년 조식은 상소문을 올려 명종을 고아, 문정왕후를 과부로 표현하면서 나라가 심각한 위기 상태임을 지적했다. 1559년부터 3년간 전국을 휩쓴 임꺽정의 출현도 외척정치의 결과물로 농민 생활이 파탄에 이르렀음을 말해 주는 사건이었다.

문정왕후는 민생은 외면한 채 자신의 뜻대로 정치를 했다. 불교 중흥 정책이 대표적이다. 1550년(명종5년) 12월 문정왕후는 친서를 내려 선종과 교종 양종의 복립(復立)을 명하면서 봉은사를 선종의 본사로, 봉선사를 교종의 본사(本寺)로 삼았다. 사찰이 일방적으로 빼앗겼던 토지를 반환하게 하고, 연산군 때 폐지된 승과 제도까지 부활시켰다. 조선이 취한 불교 탄압 정책을 정면으로 거스른 정책이었던 만큼 신하들의 반대는 물론이고 성균관 유생들까지 나서서 동맹휴학으로 맞섰지만 문정왕후는 뚝심 있게 불교 중흥을 추진했다. 특히 봉은사 주지로 임명된 보우는 온갖 비난의 대상이 되어, 보우를 죽이라는 장계가 75건이나 올라올 정도였다.

현재 서울 강남의 최대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는 봉은사는 450년 전 문정왕후가 보우와 함께 불교 중흥의 꽃을 피워보려 했던 공간이었다. 당시 사관들은 이렇게 문정왕후의 불교 중흥 정책을 비판했다.

『이때 세자(순회세자)를 잃자 요승 보우가 복을 기원해야 한다는 말을 떠벌려 무차대회(불교 법회의 한 종류) 베풀기를 청했는데, 문정왕후가 그 말에 혹해 그대로 따랐다. 승려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몇 천 명이나 되는지 모를 정도였으며, 조각이나 장식을 극도로 화려하게 해 옛날에도 보지 못하던 정도였다. (중략) 또 배위(拜位)를 마련해 마치 왕이 부처에게 배례하게 하는 것처럼 했으니, 그 흉악함과 패악을 형언할 수 없었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3_77.html
kolaswqetsrq 11.02 04:24
■ 문정왕후 1편

■ 문정왕후 1편

조선의 13대 왕 명종(1534~1567년)은 왕으로서 그다지 우리 기억에 남지 않는 존재감 0의 왕이다. 오히려 그의 어머니인 문정왕후(文定王后)가 훨씬 강한 이미지로 남아있고, 사극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이기도 했다. 아주 오래 전 ‘여인천하’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드라마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인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12세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아들 경원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문정왕후는 수렴청정(垂簾聽政:발을 드리우고 왕의 뒤에서 하는 정치)에 나섰다. 이전에 예종과 성종이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은 적이 있지만 거의 형식적인 선에서 그쳤다. 제대로 수렴청정을 받은 최초의 왕은 아마도 명종일 것이다. 명종 시대에는 문정왕후 이외에도 외삼촌 윤원형과 그의 정부 정난정, 그리고 문정왕후가 힘을 실어준 승려 보우(普雨)까지 막강한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명종은 왕이면서도 늘 뒷전이었다.

조선의 왕비 중에는 특히 윤씨(尹氏)가 많았는데 중종의 두 계비(繼妃)도 모두 윤씨였다. 그래서 첫째 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집안을 대윤, 둘째 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집안을 소윤(小尹)이라 불렀다. 장경왕후는 다음 왕이 된 인종을 낳았고, 문정왕후는 인종을 이은 명종(경원대군)을 낳았다. 장경왕후가 일찍 죽자 당연히 문정왕후는 자기가 나은 경원대군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두 동생인 윤원로와 윤원형을 동원했다. 인종이 즉위하자 당연히 왕의 외척으로 대윤이 정권을 장악했으나 즉위 8개월 만에 후사도 없이 왕이 죽자, 인종의 죽음에 소윤(小尹)들의 음모가 있다고 믿은 대간들이 윤원로를 탄핵했다. 음모와 술수의 대가인 문정왕후(文定王后)는 할 수 없이 윤원로를 실각시키고(형식적인 조치) 대신 윤원형(尹元衡)을 내세웠다. 하지만, 인종의 뒤를 이어 자신이 나은 경원대군이 명종으로 즉위하자 대세는 완전히 소윤 쪽으로 기울어졌다.

문정왕후(文定王后)는 앞서 윤원로를 실각시킨 배후에 죽은 장경왕후의 오빠인 형조판서 윤임(尹任)이 있다고 믿어, 몰래 윤원형을 시켜 윤임과 그 일당을 치죄하도록 했다.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밀지와 윤원형 일당의 모함으로 윤임을 비롯한 대윤(大尹)들은 죄도 없이 억울하게 역모로 몰려 모조리 지방으로 유배되고, 드디어 윤원형(尹元衡)일파가 조정을 장악하게 되었다. 유배를 당한 윤임, 유관, 유인숙 등이 유배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들을 사사(賜死)하라는 명종(明宗)의 어명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대윤(大尹)일파가 사그리 죽자 윤원형, 정순봉, 이기, 임백령, 허자 등 소윤일파가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문정왕후(文定王后)와 간신들이 짜고 반대파를 숙청한 다음 저희끼리 공(功)을 나눠 먹은 것이다.

이것이 을사사화이다. 결국 을사사화는 사림파내에서 윤씨의 집안싸움으로 벌어진 사건이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_53.html
kolaswqetsrq 11.02 04:24
■ 남명南冥 조식과 퇴계退溪 이황 3편

■ 남명(南冥) 조식과 퇴계(退溪) 이황 3편

조식 하면 당대에 늘 비교되곤 했던 인물이 퇴계 이황(1501~1570년)이다. 대부분 이황과 가장 선명하게 비교되는 인물로 율곡 이이(1536~1584년)를 꼽지만 이이는 이황과 조식의 후배 학자며, 이황의 가장 큰 라이벌은 조식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해(1501년) 영남 지역에서 태어나, 당대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다. 경상도는 낙동강을 기준으로 경상좌도와 경상우도로 나뉘었는데, 이황의 근거지 안동과 예안이 경상좌도의 중심지였으며, 조식의 근거지 김해, 산청, 진주는 경상우도의 핵심 지역이었다. ‘좌퇴계 우남명’으로 지칭된 것도 두 사람이 지역을 대표한 학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두 학자는 기질과 학풍, 현실관 등에서 분명한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이황이 성리학을 이론적으로 심화·발전시켜간 유학자로서 당시의 지적 수준을 높여갔던 학자라면, 조식은 경과 의를 바탕으로 성리학의 실천을 중시한 학자였다. 이황이 기대승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논변한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은 성리학을 이론적으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조식은 ‘사단칠정’ 논쟁에 대해 “이것이 백성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일침을 가함으로써 그의 가치관을 분명히 말해주었다.

18세기 실학자 이익은 조식과 이황을 영남파의 양대 산맥으로 인정하면서 ‘이황의 학문이 바다처럼 넓다면 조식의 기질은 태산처럼 높다’고 비교했다. 조식의 의(義)는 상벌에 엄격한 무인의 기질에 어울리며, 그가 차고 다녔던 ‘칼’과 맥락을 같이한다.

두 사람의 차이는 현실 인식에도 반영됐다. 이황과 조식은 사화를 겪으며 관직에 오르기보다는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했다. 그러나 명종 대 이후 현실의 모순이 점차 해소됐다고 판단한 이황은 관직에 나아가 경륜을 펴는 것 또한 학자의 본분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황과 달리 조식은 자신이 살아갔던 시대를 모순이 절정에 이른 ‘구급(救急)’의 시기로 파악하고 끝까지 재야의 비판자, 처사로 남을 것을 다짐하고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왜적에 대한 입장도 서로 달랐다. 이황이 일본과의 강화 요청을 허락할 것을 청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등 주로 교린(交隣) 정책을 펼친 반면, 조식은 일본에 대한 강력한 토벌 정책을 주장했다.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왜적이 설치면 목을 확 뽑아버려야 한다’는 강경한 표현을 쓰기도 했다.

1501년 같은 해에 태어나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으로 활약하면서 명종 시대의 정국과 학문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친 두 사람, 이황과 조식. 비록 왕의 측근에서 활약한 정치 관료는 아니었지만 당대는 물론, 후대 조선에 미친 학문적, 사상적 영향은 매우 컸다. 당대의 대표적 지성이고 학자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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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25
■ 남명南冥 조식과 퇴계退溪 이황 1편

■ 남명(南冥) 조식과 퇴계(退溪) 이황 1편

1555년(명종10년) 조정에 한 장의 상소문이 올라왔다. 이 상소문의 주인공은 남명(南冥) 조식(1501~1572년)으로,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평생 관직을 사양하고 스스로 처사(處士)로 불리기를 원했던 선비학자 조식은 1555년 조정에서 제안한 단성현감을 마다했다. 이 과정에서 올린 당시 정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상소문은 명종 시대 정국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어떤 내용이었기에 이처럼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을까.

조식이 올린 상소문의 핵심은 명종(1534~1567년, 재위 1545~1567년)이 정치를 잘 못하고 있어 민심이 떠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하의 나랏일이 이미 잘못돼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했고 하늘의 뜻이 가버렸으며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비유하자면 큰 나무가 백 년 동안 벌레가 속을 먹어 진액이 이미 말라버려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어느 때에 닥쳐올지 까마득하게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 지경에 이른 지가 오래됐습니다.』

조식은 정치가 잘못된 원인을 무엇보다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에서 찾고 있었다. “자전(慈殿·왕의 어머니, 문정왕후)께서는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의 외로운 후계자(孤嗣)이실 뿐이니, 천 가지 백 가지의 천재(天災)와 억만 갈래의 인심을 무엇으로 감당하며 무엇으로 수습하시겠습니까.”

문정왕후는 인종 승하 후 자신의 소생인 11세의 명종이 왕위에 오르자 수렴청정을 하면서 윤원형 등 친정집 세력을 대거 끌어들였다. 이에 따라 왕을 정점으로 하는 정상적인 정치가 아니라 소수의 외척 세력에게 권력이 집중됐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이 떠안게 되는 형국이 됐다. 조식은 잘못된 정치 현실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선비의 책무로 여겼다. 왕에게 불경한 표현이 될지언정 이 상소문을 올린 것은 이런 생각에서였다.

이 상소문으로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특히 문정왕후를 과부로, 명종을 고아로 표현한 대목에 대해 명종이 ‘군상불경죄(君上不敬罪)’로 역정을 낼 만큼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문정왕후에 대한 불만이 벽서 형태로 나타난 경우는 있었지만, 조식처럼 직언하는 상소문으로 비판하는 경우는 없었다. 조식에 대한 처벌이 제기되고,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대신이나 사관들이 “조식이 초야에 묻힌 선비여서 표현이 적절하지 못한 것이지, 그 우국충정은 높이 살만하다”는 논리로 조식을 변호함으로써 파문은 가라앉았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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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26
■ 인종 죽음의 미스테리 2편

■ 인종 죽음의 미스테리 2편

조선 12대 왕 인종은 천성이 어질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계모인 문정왕후를 극진히 모셨고, 아들 나이 뻘인 이복동생 경원대군을 언제나 우애로 대했다. 그러나 문정왕후는 인종의 어진 성품을 이용하여 오히려 인종에게 억지를 부리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인종은 문정왕후를 더욱 지극히 대우하였다.

인종은 재위 8개월 만에 죽게 되는데, 이는 조선 왕 중 가장 재위기간이 짧은 것이다. 인종이 이렇게 단명한 데 대해 그 원인으로 보통 두 가지가 거론된다. 실록에는 왕위에 오른 인종이 효심이 지극하여 부친인 중종의 장례를 예법에 맞게 원칙적으로 극진히 지낸 관계로 몸이 혹사되었고, 이로 인해 신하들이 내내 “수라를 드시옵소서, 고기를 드시옵소서, 옥체보존은 선왕에 대한 제사 못지않게 중요하옵니다” 는 주청을 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결국 인종은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

한편, 야사에는 문정왕후가 자신의 아들인 경원대군을 보위에 올리기 위해 인종을 독살했다는 내용이다. 문정왕후의 전후 행태, 성품, 인종 사망 전까지의 각종 사건 사고, 세자시절에 특별히 지병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는 점, 보위에 오른 지 8개월 만에 갑자기 사망한 점 등을 들어, 인종 독살설을 기록하고 있는 야사가 많은 것으로 보아, 문정왕후의 인종 독살설도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어쨌든 왕 재목으로 촉망 받던 인종은 31세의 나이로 즉위 8개월 만에 죽고, 이복동생 경원대군이 13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명종이다.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황후는 왕이 어린 관계로 자연스럽게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고, 조선시대 최고의 여걸로서 조정세력을 손안에 쥐게 되었다.

문정왕후(대비)가 수렴청정을 시작하면서 조정의 실권은 윤임을 필두로 한 대윤에서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로, 윤원형을 필두로 하는 소윤으로 넘어갔다. 문정대비의 세력을 배경으로 한 소윤 측 윤원형은 그 측근인 임백령 등을 동원하여 대윤 측의 대표 윤임이 그의 조카인 봉성군을 옹립하는 역모를 꾀했다 하여 무고함으로써, 윤임·유관·유인숙 등 무수한 신료와 선비들을 사사하니 이것이 바로 을사사화(乙巳士禍)이다.

을사사화는 표면적으로는 윤씨 외척간의 싸움이었으나, 사림파에 대한 훈구파의 공격으로서, 연산군 4년의 무오사화 이후 약 50년간 이어온 신료와 선비들이 대규모 정쟁(政爭)이 이로써 마지막이 되었다.

※ 4대사화 : 무오사화, 갑자사화(이상, 연산군), 기묘사화(중종), 을사사화(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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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27
술 한달만 끊어도 몸에 생기는 좋은현상

술 한달만 끊어도 몸에 생기는 좋은현상

의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휴식기 없이 술을 마시면 간에 부담이 된다. 해외 매체 메트로 영국판이 지난 5일(현지 시간) 30일간 술을 끊었을 때 생기는 생체 변화들을 보도했다. 소주 한 잔, 맥주 한 캔에 흔들린 마음을 다잡을 시간이다.

1. 지방간 수치가 15프로 떨어진다 : 과음하면 간에 지방이 쌓인다. 30일간 금주하는 것만으로 지방간 수치를 15프로가량 줄일 수 있다.

2. 소식하게 된다 : 비만 저널(the journal of Obesity)의 실험 결과, 알코올 섭취가 많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30프로 이상 많이 먹었다.

3. 일의 효율성이 17프로 이상 증가한다 : 숙취가 없는 것만으로도 더 좋은 업무 성과를 낼 수 있다.

4. 숙면할 수 있다 : 잠들기 전에 술을 마시는 것은 뇌의 알파파를 활성화해 숙면을 방해한다.

5. 단 음식이 당긴다 : 금주 중인 사람들은 즐거운 기분을 내는 도파민이란 신경 물질을 분비시키고자 단 음식을 많이 먹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놀랄 필요 없다.

6. 암 발생률이 떨어진다 : 술을 많이 마시면 구강암, 간암, 유방암 등의 발병률이 높아진다. 30일간 금주하면 건강한 노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다.

7. 몸무게의 2프로를 줄일 수 있다 : 한 달간 술을 마시지 않는 것만으로 평균 2프로의 몸무게가 줄어든다.

8. 피부색이 좋아진다 : 술은 탈수 증상을 유발한다. 술을 끊으면 혈색이 좋아지고 피부가 촉촉해진다. 습진이나 비듬의 경과도 호전시킨다.

9. 술 마시는 습관이 평생 바뀔 수도 있다 : 857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30일간 술을 끊었던 참가자들은 6개월이 지나서도 이전보다 과음하지 않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67.html
kolaswqetsrq 11.02 04:27
암이 싫어하는 음식 30가지

암이 싫어하는 음식 30가지

○ 배 : 발암물질의 배출을 돕는다

○ 율무 : 결장암에 탁월한 항암효과

○ 고구마 : 하루 반개로 대장암과 폐암을 예방하는 식품

○ 콩 : 유방암과 전립선 암에 좋다

○ 된장,청국장 : 콩 발효과정서 더욱 높아지는 항암효과

○ 등푸른 생선 : DHA로 암을 예방하고 장수한다

○ 새우젓 : 면역력을 중강시켜 암을 예방한다

○ 녹황색 채소, 케일 : 녹색 밥상을 차려라

○ 브로콜리 : 유방암, 대장암에 효과, 큰 설포라판 풍부

○ 새싹채소 : 어리지만 효능이 뛰어나다

○ 양배추 : 위, 대장, 직장암 등에 좋다

○ 신선초 : 흡연자의 항산화 효과를 높여준다

○ 시금치 : 손상 DNA를 복구할 암 예방성분이 풍부

○ 미나리 : 끓는 소금물에 데치면 효과가 2배

○ 곰취 : 저공해 산나물의 힘

○ 도라지, 가지 : 암 세포의 소멸을 돕는다.

○ 당근 : 폐암과 유방암을 억제시킨다.

○ 고추 : 위암을 억제시킨다.

○ 마늘, 생강 : 미국립 암연구소가 선정한 항암식품

○ 양파 : 껍질 부분에 항암물질이 풍부하다.

○ 호박 : 주황색 식물의 대표주자.

○ 부추 : 부추가 들어가면 함암 효과가 두배.

○ 쑥 : 양지바른 언덕에 자라며 항암효과가 가득.

○ 버섯류 : 초기위암, 폐암, 후두암에 좋다.

○ 토마토 : 가공식품에 항암효과가 풍부하다

○ 알로에 : 암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막는다

○ 미역, 다시마, 김 : 바다에서 나는 최고의 해조류

○ 현미, 콩 : 현미, 콩밥으로 주식을 바꿔라

○ 딸기류 : 구강암, 식도암 등을 예방한다.

○ 머루 : 일반 포도보다 10배 뛰어난 항암효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30.html
kolaswqetsrq 11.02 04:28
진짜 피를 맑게 해 주는 음식들

진짜 피를 맑게 해 주는 음식들

1. 혈액의 응고를 막는 "당근"

당근에 들어 있는 비타민 C, 카로틴, 비타민 E가 혈관이나 조직을 산화시키는 활성 산소의 활동을 막아 깨끗하고 탄력 있게 혈관을 유지한다. 아침마다 사과 반 개와 당근 한 개를 함께 갈아 주스를 만들어 마시면 맛도 좋고 혈액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2. 혈액의 길을 뚫어주는 "생강"

생강은 강한 방향 성분이 혈액 순환을 촉진해 찌꺼기들로 막히고 좁아졌던 혈관을 뚫어준다. 생강차를 마시면 온몸에서 땀이 나면서 열이 내려가는 것도 혈액의 이런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또 생강이나 마늘처럼 향이 강한 야채들은 혈소판의 응집을 막아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등을 예방한다. 즙을 내서 먹으면 효과가 더 빠르다. 생강차를 끓여 마시거나 생강즙을 내서 홍차에 섞어 마신다

3. 고지혈증을 예방하는 "두부"

두 부는 식물성 단백질과 리놀레산이 풍부하다. 리놀레산은 혈액 안에 들어 있는 응어리진 지방을 녹여 고지혈증을 예방하는 영양분. 막힌 혈관을 뚫는 기능이 뛰어나 한의학에서는 뇌졸중에 두부 습포를 했을 정도라고 한다. 고혈압 환자들은 두부를 날로 차게 해서 먹으면 좋다

4. 콜레스테롤을 녹이는 "꽁치"

꽁치나 고등어 같은 등푸른 생선에 들어 있는 불포화 지방산은 응고된 콜레스테롤을 녹이고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추는데 탁월해 심장 질환 예방에 그만이다. 조리할 때 구우면 불포화 지방산이 많이 유실되므로 조림을 해서 먹는 것이 좋다

5. 묵은 피를 걸러내는 "부추"

부추는 궂은 피를 내보내고 새로운 피로 혈관을 채우는 작용을 한다. 부추에는 유화아릴이라는 자극 성분이 있어 에너지 대사를 촉진하고 혈액 순환을 활발하게 한다. 부추는 어떻게 조리하든 소화가 잘 되지만 피를 맑게 하기 위해서는 생채를 만들거나 샐러드에 곁들여 생으로 먹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6. 혈액의 독소를 빼내는 "미역·다시마"

해조류에 많은 요오드는 신진 대사를 높이고 혈액의 독성을 뽑아 내는 무기질이다. 각종 인스턴트 식품으로 인해 혈액에 녹아든 독성을 해독하므로 인스턴스 식품을 많이 먹는 청소년들에게 특히 좋다. 요오드는 참기름과 함께 조리하면 흡수율이 높아진다. 미역국을 끓이기 전 참기름에 달달 볶아 끓이면 맛과 영양이 모두 풍부하다

7. 활성 산소를 제거하는 "카레 가루"

카레는 혈액의 지방질을 산화시켜 성인병을 발생시키는 활성 산소를 없애는 데 탁월하다. 카레에 들어 있는 크로프, 터머릭, 코리앤더 등의 성분은 마늘이나 생강처럼 강력한 산화 작용을 하기 때문. 당근이나 감자 같이 혈액을 깨끗하게 하는 다른 야채들을 듬뿍 넣고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먹으면 효과가 더 좋다

8. 혈관과 조직의 산화를 막는 "검은깨"

깨 에 포함된 항산화 물질 중 세사미놀과 세사민은 강력한 황산화 작용으로 깨끗한 혈액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중에서도 블랙 푸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검은깨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은깨는 가루를 내었다가 선식이나 우유에 타 먹으면 고소함이 더해져 맛도 좋고 영양도 훨씬 좋아진다

9.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녹차 가루"

녹 차는 카테닌 성분이 활성 산소를 제거하고 카페인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어 깨끗한 혈액을 만드는 데 2배로 효과가 좋은 식품이다. 잎을 우려내는 것도 좋지만 차의 영양을 100% 이용하려면 녹차 가루를 사용한다. 가루로 차를 타 마시거나 음식 위에 솔솔 뿌려 먹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56.html
kolaswqetsrq 11.02 04:29
콜록콜록 환절기 기침감기 잡는 음식

콜록콜록 환절기 기침감기 잡는 음식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환절기 하지만 환절기는 단순히 계절이 변화는것 뿐만 아니라 우리 건강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는 일교차가 커서 몸의 적응력이 떨어지고 피로감이 더해 감기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감기약 대신 호흡기에 좋은 음식으로 감기로부터 "굿바이"를 외쳐 봅니다.

1 "감기 초기 증상" 파뿌리

파뿌리는 몸의 혈액순환을 도와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발한, 해열, 소염 등의 효과가 있습니다. 보통 파뿌리를 제외한 부분만 요리에 사용하게 되는데 파뿌리를 잘라 생강과 함께 차로 끓여 마시면 초기에 감기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2 "기침 이제 그만!" 배

감기 예방에 효과적인 루테올린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배는 기침을 멎게 해주고 가래를 없애주며 기관지염,천식 등 탁월한 효능이 있습니다. 배는 그냥 먹어도 좋지만 곱게 갈아낸 후 약간의 꿀과 섞어 마시면 좋습니다. 대추, 생강과 함께 배 중탕을 만들어 먹으면 목에 생긴 염증도 완화 시킬 수 있습니다.

3 "기관지에 아주 좋아!" 모과

모과는 폐를 튼튼하게 해주어 가래를 삭여주고 기침을 멎게 해 만성 기관지염에 효과가 있습니다. 말리지 않은 모과를 얇게 썰어 꿀이나 설탕에 절여 두었다가 차로 즐기거나 말린 모과를 생강과 함께 끓여 마시면 좋습니다. 체력이 약해 쉽게 피로감을 잘 느끼는 사람에게 면역력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으니 자주 섭취하도록 합니다.

4 "가래가 심할 땐" 무

비타민, 철 등 식이섬유소가 풍부한 무입니다. 기침과 가래가 심할 경우 무를 얇게 썰어 꿀을 부어 무즙을 만들어 드세요. 매일 하루

두 수저 씩 먹으면 기침감기에 좋습니다. 또한 니코틴 중화와 해독작용이 뛰어난 무는 흡연자에게 제격입니다. 무를 삶아서 자주 섭취 하면 가래를 없애는데 도움이 됩니다.

5. "감기 회복" 감

단백질, 비타민, 철분, 칼슘 등 영양 성분이 매우 풍부한 감은 감기 바이러스의 저항성을 높여줍니다. 감을 하루 한 개 씩 먹으면 감기 예방과 피로 회복 개선에 도움을 줍니다. 또한 감잎에는 비타민C가 레몬의 20배 이상 들어 있어 감잎을 말려 차로 마시면 좋습니다.

★ 환절기 감기 예방법

1 "청결한 실내공기 유지"

미세먼지가 적고 따뜻한 날에는 자주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 실내에 깨끗한 공기를 유지시켜 줍니다.

2 "수분 섭취"

하루 2L씩 충분한 수분 섭취로 목을 촉촉하게 유지해 줍니다.

3 "실내 온도와 습도 조절"

가습기나 수건에 물을 적셔 실내가 건조하지 않도록 습도를 조절합니다.

4 "균형 잡힌 일상"

하루 30분 이상 가벼운 산책으로 체력을 보강해 면역력을 길러줍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77.html
kolaswqetsrq 11.02 04:29
◇ 20살 젊어진다, 우엉의 놀라운 효능 10가지

◇ 20살 젊어진다, 우엉의 놀라운 효능 10가지

1. 혈관건강에 좋다.

 "
우엉차의 리그닌과 사포닌 이라는 성분은 혈관에 쌓인 콜레스테롤을 효과적으로 배출해주기 때문에 뇌졸증·심근경색 등 다양한 심혈관계 질병 예방에 효과적이며, 평소 혈액순환에도 도움이 됩니다.
",

2. 노화방지와 피로회복에 좋다.

 "
강력한 항산화 효과 또한 앞서 언급한 우엉의 사포닌은 강력한 항산화 효과를 지니고 있어 노화방지 효능이 매우 탁월하며, 피로를 해소해줍니다.
",

3. 면역력향상, 강력한 항암효과

 "
우엉의 껍질에 특히 많이 함유된 알카로이드성분은 인체의 치유력을 향상시켜 줍니다. 또한 이 성분은 산삼하고도 견줄 만큼의 강력한 항암효과를 자랑하며, 각종 잔병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해줍니다.
",

4. 변비해소, 숙변제거

 "
우엉에 함유되어 있는 식물성 섬유질인 셀룰로오스는 장운동을 활발하게 하며, 수분 흡수력이 좋아 변비를 개선하고 숙변을 제거해줍니다.
",

5. 여성의 호르몬 조절

우엉에는 성호르몬(특히 여성의) 분비를 조절해주는 효능이 있어 여성의 생리통·생리불순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6. 당뇨, 비만 예방
 "
우엉에는 당분·지질의 흡수를 제한해주는 팔미트산이라는 성분이 있어 당뇨 및 비만을 예방하는데 좋으며, 칼로리에 비해 포만감이 높습니다.
",

7. 빈혈, 골다골증 예방

우엉차에는 철분이 풍복하게 함유되어 있어 빈혈 환자에게 좋으며, 칼슘이 풍부해 성장기 아이들과 골다공증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노인들에게 좋습니다.

8. 신장기능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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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엉에 함유된 이눌린은 신장을 보해주는 효능이 있는데, 이 효능이 몸의 붓기를 효과적으로 빼줄뿐더러 이뇨작용을 원활하게 해줍니다.
",

9. 소염, 향균작용

 "
우엉에 함유된 탄닌 성분은 소염작용이 있어 두드러기·아토피·습진 등의 증상을 완화해주며, 항균작용이 있어 여드름을 완화하는데도 좋습니다.
",

10. 치매 예방

 "
우엉에 함유된 아르기닌이라는 성분은 뇌를 튼튼하게 하고 치매를 예방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20-10.html
kolaswqetsrq 11.02 04:30
◇ 나이 들면 물 덜 마신다.. 몸의 변화가?

◇ 나이 들면 물 덜 마신다.. 몸의 변화가?

 "
물 마시기의 중요성을 여기서 다시 얘기할 필요는 없다. 혈액, 뇌척수액을 구성하는 수분이 부족하면 곧바로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영양소 운반, 노폐물 배출 등도 멈출 수 있다. 하지만 평소 공기의 고마움을 못 느끼는 듯 물도 홀대 받기 일쑤다. 물에 대해 다시 알아보자.
",

◆ 나이 들면 왜 갈증을 덜 느낄까?

 "
중년이 넘으면 물을 덜 마시는 경향이 있다. 20~30대에 비해 목이 마르다는 신호가 제 때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화 현상처럼 갈증을 느끼게 하는 중추신경 기능이 무뎌 진다. 물을 덜 찾게 되니 수분 비중이 큰 혈액 등 주요 장기에 탈이 날 수 있다. 뒤늦게 목이 마른 것을 느끼면 이미 몸속에서 탈수 증상이 진행된 상태다. 피가 끈끈해져 혈전이 생기기 직전이다. 갈증을 느끼지 않아도 수시로 물을 마시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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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적정량 마시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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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의 60% 이상이 물 등 수분을 적정량 마시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몸에 들어가는 수분은 물을 비롯해 채소-과일 등 음식 중의 수분, 우유 등 맹물 이외의 음료를 포함한다. 학술지 영양과 건강 저널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의 하루 평균 수분 섭취량은 2167ml로, 전체의 62%가 본인 나이대의 수분 섭취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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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도 안 마시고 채소-과일도 싫어한다면?

물도 적게 마시고 채소-과일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액체인 커피나 탄산음료를 자주 마시니까 괜찮을까? 카페인이 든 음료는 오히려 몸의 수분을 빼앗아간다는 표현이 나올 수 있다. 녹차도 카페인이 들어 있다. 이뇨 증상을 촉진해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보면 몸의 수분 부족이 드러난다. 커피를 즐긴다면 옆에 물 잔을 놓고 수시로 맹물을 보충하는 게 좋다.

◆ 공장 거친 가공음료보다...순수한 물

액체 수분의 하루 평균 섭취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종류가 문제다. 갖가지 가공 음료를 찾는 사람은 늘고 있지만 당류, 카페인 등이 포함된 음료가 적지 않다. 몸의 수분은 공장에서 만든 가공음료보다는 순수한 물로 보충해줘야 한다. 그래야 혈액, 림프액, 관절액, 뇌척수액, 타액 등이 원활하게 작동하고 영양소 운반, 노폐물 배출, 신진대사, 체온조절 등 다양한 기능을 제대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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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 노년의 물 마시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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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외출 시 작은 물병을 휴대하는 게 좋다.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물병을 의식해 틈틈이 수분을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기를 낳을 때의 산통보다 더 아프다는 결석(요로-신장)이 생기면 물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물은 세상에서 가장 싼 보약이다. 물론 지나치게 많이 마시는 것은 좋지 않지만 내 몸에 맞는 적정량을 섭취해야 한다. 목이 마를 때만 약간씩 물을 마시는 것은 수분 부족을 불러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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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65.html
kolaswqetsrq 11.02 04:31
◇ 늘 피곤한 뜻밖의 이유

◇ 늘 피곤한 뜻밖의 이유

일상에서 피로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증상이 흔하다 보니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피로감이 심하다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만성 피로 증후군은 쉽게 피곤하고 지치며 몸이 나른해지는 등의 피로 증세가 6개월 이상 만성적으로 지속하는 증세를 말한다.

만성 피로 증후군이 있으면 잠깐의 휴식으로 회복되는 일과성 피로와 다른 증상이 나타난다. 휴식을 취해도 잘 호전되지 않으면서 사람을 쇠약하게 만드는 피로가 지속된다. 만성 피로를 유발하는 의외의 원인과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만성 피로 유발하는 원인>

▷ 과도한 카페인 섭취

카페인은 적당히 섭취하면 집중력과 긴장 상태를 유지하게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심장박동 수와 혈압 등을 높인다. 카페인을 과도 섭취하면 피로감을 초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 부실한 식사

너무 적게 먹거나 좋지 못한 음식을 먹으면 피로감을 느낀다. 음식을 균형 있게 먹음으로써 혈당을 알맞게 유지해 피로감을 없앨 수 있다. 단백질과 복합 탄수화물이 고르게 포함된 아침식사를 해야 한다.

▷ 수면 부족

성인은 하루에 7시간은 자야 한다. 충분히 잠을 못 자면 집중력과 건강에 영향을 준다. 수면 환경도 중요하다. 잠을 자는 환경이 너무 밝거나, 시끄럽거나, 온도 혹은 습도가 적절치 않다면 권장 수면시간인 7~8시간을 누워 있어도 수면의 질이 떨어져 만성 피로가 발생할 수 있다.

▷ 수면 무호흡증

코골이 등으로 인해 자는 동안 호흡이 잠시 멈추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이때마다 잠을 깨게 되고 당사자는 이를 알아채지 못한다. 8시간 동안 잤다고 해도 실제 잠잔 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체중을 줄이고 담배 등을 끊으면 무호흡증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 빈혈

여성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빈혈이다. 월경 때는 출혈로 인해 몸속 철분이 결핍되기 싶다. 빈혈을 방지하기 위해 철분 보충제와 살코기, 간, 조개류, 콩 등 철분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 당뇨병

당뇨 환자의 혈액 속에는 당이 많이 함유돼 있다. 당이 체세포로 들어가 에너지로 전환돼야 하지만 잘 되지가 않는다. 따라서 많이 먹어도 몸에서는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다. 설명하기 힘든 피로감이 계속되면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 우울증

우울증은 정신적인 장애뿐 아니라 여러 가지 신체적 증상을 초래한다. 피로감, 두통, 식욕 부진이 대표적 증상이다. 전문의에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

▷ 갑상선 기능 저하증

갑상선(갑상샘)은 몸속 신진대사 작용을 관장한다. 갑상선 기능이 떨어질 경우, 쉽게 지치고 살이 찔 수 있다. 갑상선 호르몬이 부족하면 합성 호르몬 처방을 받으면 된다.

<만성 피로에서 벗어나는 법>

▷ 원인 파악

정확한 상태를 아는 것이 우선이다. 일시적으로 졸린 현상인지, 피곤한 건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졸린 사람은 하품을 참기 힘들고, 버스든 어디든 앉으면 고개를 숙인 채 잠들게 된다. 반면 피곤한 사람은 짜증이 나고, 기운이 없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만약 피곤한 게 맞다면 원인이 스트레스인지, 빈혈인지, 아니면 호르몬 불균형인지 살펴야 한다.

▷ 30분 일찍 자기

30분 늦게 자면 다음날 내내, 즉 깨어 있는 16시간 내내 피곤할 것이다. 관점을 바꾸면, 30분만 일찍 자도 다음날 16시간을 생생하게 보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전문가들은 "매일 30분 더 자는 게 커다란 변화를 만든다"면서 "한 달 동안 꾸준하게 실천한다면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숙면 위한 규칙

밤에 잘 자면 낮에 피곤할 확률이 낮아진다. 숙면을 위해 필요한 규칙들을 지켜야 한다. 우선 술과 담배, 카페인은 멀리 해야 한다. 한밤중에 치킨과 맥주처럼 거한 음식을 먹는 버릇도 버려야 한다. 대신 따뜻한 우유나 캐모마일차를 마시면서 독서를 하는 게 좋다. TV나 휴대폰 등 디지털기기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는 숙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 단백질 식품 섭취

단백질 섭취에 신경을 써야 한다. 영양학자들은 "단백질을 충분히 먹으면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오후에 당과 함께 기운이 뚝 떨어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기, 생선, 달걀, 견과류와 씨앗류 등 단백질 식품을 챙겨 먹어야 한다.

▷ 휴대폰 멀리두기

자다가 중간에 깰 수는 있다. 자다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고, 안심하며 다시 잠드는 것이다. 이는 진화 과정에서 생긴 경계의 습관으로,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시 눕는 대신 휴대폰을 집는다면 잠에 방해가 된다. 침실에는 휴대폰을 들이지 않는 게 좋다. 알람으로 이용한다거나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유가 있다면, 자다 깬 정신으로는 집어 들기 어렵도록 잠자리에서 멀찍이 두는 게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43.html
kolaswqetsrq 11.02 04:32
표고버섯의 효능 12가지

표고버섯의 효능 12가지

1. 고대 기록에는 신의 음식

고대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신의 음식이라 했고, 중국에서는 "불로장생의 명약"이라 했습니다.

2. 처음 채식하는 분들께 고기 대체용으로 가능

표고버섯은 맛이 좋아 여러 방법으로 조리할 수 있으며 조리를 잘하게 되면 고기와 비슷한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고기대체용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3. 혈압을 낮춰주는 효능

미국 심장학회에서 HDL콜레스테롤을 높이고 LDL은 낮추는 효과 입증. 표고버섯에는 레시틴 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레시틴은 형관의 혈액 흐름을 막는 유해한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4. 다이어트 효능

표고버섯의 효능에는 칼로리가 미미하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좋은 음식입니다.

5. 면역력 향상

표고버섯의 효능에는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꾸준한 섭취는 면역력을 강화하는데 효과가 좋아, 감기 등의 잔병을 예방해 줍니다.

6. 비타민D 풍부

골다공증에 최고. 직접 집에서 말려 이용하는 것이 비타민D를 섭취하는데 도움이 되며 건조기에 말린 것은 안됩니다. 비타민D는 햇볕에 말린 표고버섯에는 칼슘의 흡수를 돕는 비타민D가 풍부하게 들어있습니다.

7. 항암효과

레티닌이라는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된 표고버섯의 효능은 항암작용이 뛰어난 것인데, 특히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기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8. 성장발육에 도움

표고버섯의 효능에는 비타민D 성분이 들어 있어 뼈에 칼슘을 공급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9. 대장암 예방

표고버섯의 섬유질은 장내의 발암물질을 밖으로 배출해주는 기능을 해주어 대장암과 만성 장염 또한 예방해준다고 합니다.

10. 설사 구토를 진정

동의보감에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고, 전신이 좋아지며 구토와 설사를 멎게 하며 아주 향기롭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두뇌 발달

렌티오닌이라는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된 표고버섯의 효능은 머리를 맑게 하며 두뇌활동을 많이 하는 분들에 좋습니다.

12. 피부 미용에 최고

표고버섯 차는 골다공증뿐만 아니라 피부미용에도 효과적입니다. 감기 바이러스와 싸우는 인터페론의 생성을 촉진하는 기능도 있으므로 차를 끓여 마시면 효과만점 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2_7.html
kolaswqetsrq 11.02 04:32
혈관의 피를 맑게 해주는 음식

혈관의 피를 맑게 해주는 음식

❶ 자색 고구마

자색 고구마는 폴리페놀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혈압을 감소 시켜준다. 혈관을 강화시켜 고혈압, 동맥경화, 심근경색 등의 질병을 예방하는데 좋다. 고구마에는 많이 함유된 칼륨은 고혈압의 원인이 되는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 시키는 역할도 한다.

❷ 검정 콩

검정 콩을 꾸준히 섭취하면 혈관 벽에 쌓인 콜레스테롤과 노폐물이 제거돼 혈액 순환이 원활해 진다. 콜레스테롤 또한 몸 밖으로 배출하는 역할도 한한다.

❸ 배

시원한 맛이 일품인 배는 글루타티온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이 성분은 항산화 및 항암 효과가 있으며 혈압을 정상화 시켜 뇌졸중을 예방한다.

❹ 견과류

견과류에는 불포화 지방산과 플라보노이드, 항산화제 성분이 풍부해 몸 속 나쁜 콜레스테롤를 감소 시킨다. 고지혈증, 고혈압, 뇌졸중 같은 심혈관계 질병을 예방한다.지속적으로 섭취하면 장이 건강해지고 변이 좋아진다. 특히 잣은 피부 미용에, 호두는 뇌혈류를 좋게 한다.

❺ 단 호박

단호박에는 카로티노이드 성분이 많이 들어있다. 이 성분은 유해 산소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노화 예방에 좋다. 덧붙여 심혈관 질병에 걸릴 위험을 낮춰 준다.

❻ 사과

사과는 수용성 섬유인 펙틴을 함유하고 있다. 펙틴은 장에서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차단한다. 또 황산화 성분인 폴리페놀이 유해산소의 세포 손상을 억제해 혈관 질병을 막아 준다.

❼ 오일류

올리브 오일은 항산화작용이 뛰어나 혈액을 맑게 하고 혈관을 깨끗하게 해 준다. 참기름, 들기름은 혈관건강에 이로운 오메가3 지방산이 함유돼 있어 혈액순환을 돕고 혈관의 염증을 가라 앉혀 준다.

❽ 녹황색 채소

카로티노이드라는 항산화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녹황색채소는 항암, 항노화 효과는 물론 혈관을 청소하고 피를 맑게 해 분다. 대표적인 채소로는 당근, 토마토, 가지가 있으며, 샐러드나 갈아서 주스로 마시면 좋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72.html
kolaswqetsrq 11.02 04:33
칼륨이 풍부한 식품 10가지

칼륨이 풍부한 식품 10가지

칼륨은 신체 발달 및 성장을 최적화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무기질이다. 이 때문에 식단에 포함 시킬 수 있도록 칼륨이 풍부한 식품이 어떤 것인지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몸은 영양을 공급받고 제대로 작동을 하기 위해 다양한 무기질을 필요로 한다. 균형 잡힌 식생활을 하고 칼륨이 풍부한 식품을 섭취하는 것은 몸에 다양한 비타민과 무기질을 공급하고,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양호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칼륨은 몸의 성장 과정을 돕는 전해질 안에 저장되는 무기질이다.

• 칼륨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기능도 수행한다.

* 혈압 조절

* 신경근 활동 조절

* 전해질 균형 유지

* 산-염기 균형 유지

* 특정한 효소 활성화

* 탄수화물 대사

* 단백질 생성

* 질병 예방

이런 성분 덕분에 칼륨이 풍부한 식품을 식단에 더하는 것이 중요하다.

▶ 칼륨이 풍부한 식품

1. 당근

비타민 A, 영양소, 항산화제가 풍부한 당근에는 칼륨도 풍부하다. 당근 100g 마다 칼륨 약 321mg이 있다. 게다가 당근은 아주 다용도이다. 샐러드, 수프, 소스, 심지어 디저트에 넣을 수도 있다.

2. 호박

비타민 및 무기질에 더해 칼륨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또 다른 채소는 호박이다. 호박 100g에 칼륨 190mg이 있다. 이것은 모든 종류의 스튜, 수프, 캐서롤에서 아주 중요한 재료이다. 호박을 요리로 활용하기 위해 제철에 많이 나오는 시기를 이용하자.

3. 칸탈로프멜론

칸탈로프멜론 캔털루프 100g에는 칼륨이 267mg 함유되어 있다. 이것은 맛이 있고, 즙이 많으며, 영양가 있는 메론이다. 몸에 수분을 보충해 주며, 간식으로 먹거나 메인 요리에 곁들여 이용할 수 있다.

4. 수박

수박은 달콤하고 즙이 많은 과일이다. 수박은 수분 함량이 아주 높아 몸에 수분을 보충해 준다. 수박 한 조각이면 몸에 320mg의 칼륨을 공급할 수 있다.

5. 건포도

건포도는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으로 먹을 수 있는 인기 있는 과일이다. 건포도는 간식으로 그냥 먹을 수도 있으며, 디저트의 재료나 장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건포도 100g은 749mg의 칼륨을 공급한다. 건포도는 칼륨이 풍부한 것에 더해 섬유질 함량이 높아 변비를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6. 맥아

칼륨은 맥아와 같은 곡물에도 있는데, 100g에 1.09g이 함유되어 있다. 맥아의 단점은 이것의 지방질이 쉽게 손실되면서 금방 망가지고 성분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효기간이 짧으므로 제대로 보관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7. 피스타치오

피스타치오는 작고, 짭짤하며, 맛있는 견과류로, 100g마다 칼륨 1g이 함유되어 있다. 물론 피스타치오의 짭짤함이 갈증을 유발해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8. 양송이 버섯

신선한 양송이 버섯 100g에는 칼륨이 318mg 함유되어 있다. 여기에는 칼륨에 더해 편두통과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비타민 B5도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다.

9. 닭고기

칼륨은 닭고기와 같은 흰살 육류에도 있다. 닭고기는 비타민 B3과 같은 비타민과 기타 영양소가 함유되어 있어 아주 좋은 식품이다. 닭고기 100g에는 칼륨이 264mg 함유되어 있다.

닭고기, 특히 닭가슴살은 부드러우면서도 육즙이 많다. 이것은 육수, 샐러드, 샌드위치, 혹은 주요리로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

10. 기름진 생선

기름진 생선은 100g마다 칼륨이 384mg 함유되어 있어, 칼륨의 아주 좋은 원천이다. 다른 종류의 생선과는 혼동해서는 안 되는데, 생선마다 칼륨 함량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름진 생선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송어, 참치, 청어,잉어, 고등어 보다시피 칼륨은 다양한 식품에서 많은 양을 얻을 수 있어 식단에 포함시키기 아주 쉽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7.html
kolaswqetsrq 11.02 04:34
수두색이垂頭塞耳 - 머리를 숙이고 귀를 막다, 아첨하며 비난에는 아랑곳 않다.

수두색이(垂頭塞耳) - 머리를 숙이고 귀를 막다, 아첨하며 비난에는 아랑곳 않다.

드리울 수(土/5) 머리 두(頁/7) 막힐 색, 변방 새(土/10) 귀 이(耳/0)

‘간에 가 붙고 쓸개에 가 붙는다’는 속담은 阿諂(아첨)의 대명사다. 지조 없이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면 이편에 붙었다 저편에 붙었다 하는 사람이다.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는 아첨을 모두들 욕한다. ‘아첨하는 자는 위선자’, 입에 꿀이 흐르지만 배에는 칼을 숨긴 口蜜腹劍(구밀복검) 등이다.

개가 꼬리를 흔들며 알찐거리는 搖尾乞憐(요미걸련)이나 돼지가 사방으로 꼬리를 흔드는 五方猪尾(오방저미)는 짐승이라 이해할 수 있다. 상사의 변을 맛보고 종기의 고름을 빨아주는 嘗糞吮癰(상분연옹)의 사람은 이보다 못하다. 그래서 ‘인간은 아첨하는 동물’이라 했다.

같은 아첨이라도 점잖은 표현에 자신의 안일을 위해 머리를 숙이고(垂頭) 세상의 비난에 귀를 막는다(塞耳)는 말이 있다. 중국의 학자 顏之推(안지추, 531~591)가 지은 ‘顔氏家訓(안씨가훈)’에 나온다. 南北朝(남북조)시대의 혼란기와 隋(수)나라 통일기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안지추는 자녀들을 위해 수신과 학문, 처세를 익히도록 이 책을 남겼다. 모두 20편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12편 省事(성사)에 실려 있다. 난세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규범을 세워 세상을 바르게 볼 것을 훈계한다.

임금이나 어른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말하는 諫爭(간쟁)에 대해서 충고하는 대목이다. 간쟁을 하려면 그러한 지위에 있어야 하고 바로잡아 돕는 법규를 다해야 한다면서 이어진다. ‘구차스럽게 자신의 책임을 면하거나 편안함만을 위해 머리를 숙이고 귀를 막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不容茍免偷安 垂頭塞耳/ 불용구면투안 수두색이).’ 그러면서 ‘믿음이 없으면서 간언하면 남들이 비방하는 자라 여긴다(未信則以爲謗己/ 미신즉이위방기)’는 論語(논어)의 말도 덧붙이고 있다.

이렇게 아첨을 비난해도 자신이 실제로는 벗어나기 어렵고 주위서도 자주 본다. ‘권세가의 문전에서 종일 머리박고 아첨하면서. 시골 사람 볼 때마다 제가 양반인 양 우쭐거린다(周門盡日垂頭客 若對鄕人意氣全/ 주문진일수두객 약대향인의기전)’란 우리의 풍자가객 김삿갓金笠/ 김립의 시도 같은 표현이다. 자기를 보호해주는 상사를, 또는 따르는 보스를 옳지 않은 일도 온갖 궤변으로 옹호하는 행위는 역겹기만 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33.html
kolaswqetsrq 11.02 04:35
우유구화迂儒救火 - 어리석은 선비가 불을 끄다, 원칙만 지키다 일을 그르치다.

우유구화(迂儒救火) - 어리석은 선비가 불을 끄다, 원칙만 지키다 일을 그르치다.

에돌 우(辶/3) 선비 유(亻/14) 구원할 구(攵/7) 불 화(火/0)

글은 많이 읽었어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있는 사람을 선비라 했다.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행동과 예절이 발라 고결한 사람의 대명사도 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서투르고 현실에 어두워 일반 백성들이 보기엔 답답한 존재였기에 비아냥대는 말도 많다. 일상적으로 신을 신이 없어 맑은 날에도 나막신을 신는 가난한 선비는 ‘남산골 딸깍발이’이고 白面書生(백면서생)이었다. ‘게으른 선비 설날에 다락에 올라가서 글 읽는다‘거나 ’게으른 선비 책장 넘기기‘에선 물정을 모르는데다 게으르기까지 하다고 수군댄다.

물정에 어두워 어리석은 선비(迂儒)가 불을 끈다(救火)는 이 성어도 급한 상황에서 원칙만 지키다 일을 그르치는 것을 비유한다. 빠른 길을 두고 먼 길을 에둘러 迂廻(우회)하는 선비의 답답한 행동으로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집을 홀랑 태우는 우를 범한다. 明(명)나라 때 학자 宋濂(송렴, 1310~1381)은 전통적인 유학공부를 많이 하여 누구보다도 정통적인 시문을 많이 남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우화체의 산문집 ‘燕書(연서)’에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사다리가 없어 애태운다는 迂儒惜梯(우유석제)라 하기도 한다.

옛날 趙(조)나라에 成陽堪(성양감)이란 선비가 살았다. 어느 때 그의 집에 불이 났다. 지붕에 올라 불을 꺼야 하는데 사다리가 없어 아들에게 이웃집으로 가서 빌려 오도록 시켰다. 아들은 평소 배운 대로 의관을 갖추고 이웃집에 가서 주인에게 세 번 절하고 점잖게 앉았다. 주인도 손님에게 술상을 대접하며 어떤 일로 방문했는지 물었다. 그제야 집에 불이 나 사다리를 빌리러 왔다고 했다. 주인이 탄식했다. ‘어찌 그리 세상 물정을 모르시오(子何其迂也 子何其迂也/ 자하기우야 자하기우야)?’ 급히 사다리를 갖고 달려갔을 때는 집이 잿더미로 변한 뒤였다.

이런 어리석은 선비의 행동이 오늘의 일상에도 자주 반복된다. 응급환자를 급히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데 할 짓 다하고 옮긴다거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데 왜 위험한 곳에 갔느냐고 꾸짖는 식이다. 나라의 정책을 시행하는 때는 더하다. 국민을 위하여 좋은 정책을 도입했는데 막상 시행해보니 부작용이 만만찮다. 그런데도 조금의 착오가 있을 뿐이라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며 고칠 생각을 않는다. 그런 사이 국민들의 마음속엔 불길이 치솟고 어리석은 선비는 원칙 타령만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73.html
kolaswqetsrq 11.02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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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jjjjjjj.html
kolaswqetsrq 11.02 04:36
근묵자흑近墨者黑 -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어진다.

근묵자흑(近墨者黑) -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어진다.

가까울 근(辶/4) 먹 묵(土/12) 놈 자(耂/5) 검을 흑(黑/0)

검은 먹을 가까이 하면(近墨) 묻힐 수밖에 없으니 자신도 검어진다(者黑). 나쁜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나쁜 버릇에 물들기 쉬움을 조심하라고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람의 성격이나 능력은 주변의 환경이나 친구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는 것을 깨우치는 말은 부지기수다.

주변의 시세보다 10배나 되는 집을 샀다는 百萬買宅 千萬買隣(백만매택 천만매린)은 훌륭한 이웃을 찾아서였고 孟子(맹자) 어머니가 세 번이나 이사한 三遷之敎(삼천지교)는 아들의 좋은 교육환경을 위한 것으로 유명한 이야기다. 몇 가지만 더 같은 성어를 소개하면 南橘北枳(남귤북지), 蓬生麻中(봉생마중), 染絲之變(염사지변) 등이다.

검은 먹에 비유한 말보다 앞서 붉은 朱沙(주사)를 가까이 하면 자신도 붉어진다는 近朱者赤(근주자적)이 먼저 나온다. 주사는 진한 붉은 색의 수은으로 된 광물이라는데 도장 찍는 印朱(인주)의 원료다. 중국 西晉(서진) 때의 학자이자 문인이었던 傅玄(부현, 217~278)의 ‘太子少傅箴(태자소부잠)’에 실려 있다. 쇠와 나무는 일정한 형상이 없어 틀에 따라 모나게도 되고 둥글게도 되는데 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면서 이어 말한다.

‘붉은 주사를 가까이 하는 사람은 붉은 물이 들고, 먹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검은 물이 든다. 소리가 조화로우면 음향도 청아하며 몸이 단정하면 그림자 역시 곧다(近朱者赤 近墨者黑 聲和則響淸 形正則影直/ 근주자적 근묵자흑 성화즉향청 형정즉영직).’ 앞의 두 구절을 간략히 줄여 近朱近墨(근주근묵)이라고도 하고 近朱必赤 近墨必緇(근주필적 근묵필치)라 쓰인 곳도 있다. 緇는 검을 치.

고려 秋適(추적)의 明心寶鑑(명심보감)과 달리 明(명)나라의 范立本(범립본)이 편찬한 ‘명심보감’에 姜太公(강태공)이 말한 것이라며 더 많은 대구가 있다. 近朱者赤 近墨者黑 뒤로 따르는 것은 이렇다. ‘어진 이를 가까이하면 밝아지고, 재능 있는 이를 가까이하면 슬기로워진다. 우매한 자를 가까이하면 어리석어지고, 착한 이를 옆에 두면 덕성스러워진다.

지혜를 가까이하는 사람은 현명해지고, 어리석은 자를 옆에 두면 암매해진다. 말만 번지르르한 자를 가까이하면 아첨에 능해지고, 탐욕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도둑이 된다(近賢者明 近才者智 近癡者愚 近良者德 近智者賢 近愚者暗 近佞者諂 近偸者賊/ 근현자명 근재자지 근치자우 근량자덕 근지자현 근우자암 근녕자첨 근투자적).’ 佞은 아첨할 녕, 諂은 아첨할 첨, 偸는 훔칠 투.

‘물은 모나고 둥근 그릇에 따라 달라지고, 사람은 착하고 악한 친구에 의해 달라진다’란 말이 있다. 한자 명구로는 水隨方圓之器 人依善惡之友(수수방원지기 인의선악지우)다. 나쁜 곳에 발을 디디지 않는 것이 최상이지만 주변 환경에 따라 어쩔 수없이 변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 지레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작은 힘이라도 잘못된 것은 고쳐나갈 것인가는 의지에 달렸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26.html
kolaswqetsrq 11.02 04:37
화이부실華而不實 - 꽃뿐이고 열매가 없다, 겉만 화려하고 실속이 없다.

화이부실(華而不實) - 꽃뿐이고 열매가 없다, 겉만 화려하고 실속이 없다.

빛날 화(艹/8) 말이을 이(而/0) 아닐 불, 부(一/3) 열매 실(宀/11)

속은 채울 생각을 않고 겉만 꾸미기에 힘을 들이는 사람은 단번에 들통 나기 마련이다. 보기에 먹음직스러운 빛깔을 띠고 있어도 시고 떫기만 한 개살구로 비유한 ‘빛 좋은 개살구’란 속담이 잘 나타냈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성어로 이 난에 나왔던 羊頭狗肉(양두구육)이나 羊質虎皮(양질호피)도 겉 다르고 속 다른 물건이나 사람을 가리킨다. 꽃만 있고 열매가 없다는 이 말도 그럴싸한 겉모양에도 실속이 없는 경우를 나타낸다. 또한 말만 화려하게 앞세우고 실행이 따르지 않거나 문장의 용어는 미사여구지만 내용이 공허할 때도 사용된다.

여러 곳에서 출처를 찾을 수 있는데 먼저 ‘論語(논어)’의 구절부터 보자. ‘싹이 돋고서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꽃을 피우고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느니라(苗而不秀者有矣夫 秀而不實者有矣夫/ 묘이불수자유의부 수이부실자유의부).’ 곡식 중에는 싹이 피어도 이삭이 패지 않는 것이 있고, 이삭이 패어도 알이 들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빼어날 秀(수)는 이삭이 팬다는 뜻으로 秀而不實(수이부실)이라 해도 뜻이 같다. 子罕(자한)편에 나온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는 비유가 확실하다.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의 대신 陽處父(양처보)가 어느 때 魯(노)나라의 한 집에서 묵게 되었다. 집주인 嬴(영, 嬴은 찰 영)이란 사람이 양처보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흠모하여 따라나섰다. 따르던 영이 수행하며 양처보와 온갖 얘기를 나눴는데 한 곳에 이르러 생각이 바뀌었다. 집에 돌아와 부인에게 연유를 말했다.

‘그 사람은 겉으로야 그럴듯하지만 속으로는 덕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원망을 집중시키고 있소(且華而不實 怨之所聚也/ 차화이부실 원지소취야).’ 과연 양처보는 1년 뒤 살해당했다. 文公(문공) 5년 조에 실려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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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38
낙극생비樂極生悲 - 즐거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 세상일은 돌고 돈다.

낙극생비(樂極生悲) - 즐거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 세상일은 돌고 돈다.

즐길 락(木/11) 다할 극(木/8) 날 생(生/0) 슬플 비(心/8)

아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태산을 넘으면 평지를 본다’거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격려한다. 자주 쓰는 성어로는 苦盡甘來(고진감래)이고, ‘음지가 양지 된다’는 陰地轉 陽之變(음지전 양지변)이다. 반면 좋은 자리에서 떵떵거리거나 가진 것이 많아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은 그것이 오래 갈 줄 안다. ‘십년 세도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이 남의 이야기인줄 안다. 權不十年(권불십년)이고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인데도 말이다.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樂極) 슬퍼지게 된다(生悲)는 이 말도 흥겨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는 興盡悲來(흥진비래)와 똑같다. ‘史記(사기)’의 滑稽(골계)열전은 뛰어난 언변과 해학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쳤던 인물들을 모은 곳이다. 첫 머리를 장식하는 淳于髡(순우곤, 髡은 머리깎을 곤)의 고사에서 나왔다. 그는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 威王(위왕) 때의 인물로 미천한 신분에 몸집도 왜소해 볼품이 없었지만 반어와 풍자에 능해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단 한 번도 굴욕을 당한 적이 없었다.

楚(초)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했을 때 순우곤이 趙(조)나라의 구원병을 청해 물리쳤다. 놀고 마시기를 일삼던 위왕이 잔치를 베풀고 노고를 치하했다. 왕이 순우곤에게 얼마나 술을 마시면 취하는지 물었다. 분위기에 따라 한 말을 마셔도 취할 때가 있고, 한 섬을 마셔야 취할 때가 있다며 말을 잇는다. ‘예부터 술이 지나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지나치면 슬퍼진다고 했으니 모든 일이 이와 같습니다(故曰酒極則亂 樂極則悲 萬事盡然/ 고왈주극즉란 악극즉비 만사진연).’ 이 간언에 따라 위왕은 밤새워 벌이던 술잔치를 그만 두고 순우곤을 더욱 중용했다.

권력이나 부유함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돌고 돈다고 믿는다. 그래야 밑바닥에서 고생하는 사람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차지하는 정당은 인기를 끌게 되면 몇 10년을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오만함이 지지를 갉아 먹는다. 또 있다. 이전의 정경유착으로 부를 긁어모은 재벌들은 모든 수단을 다 써서 대물림하려 한다. 지나치면 바람 앞에 스러질 재산인데 말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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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38
석복수행惜福修行 - 복을 아껴 검소하게 생활하다.

석복수행(惜福修行) - 복을 아껴 검소하게 생활하다.

아낄 석(心/8) 복 복(示/9) 닦을 수(亻/8) 다닐 행(行/0)

넘치는 것은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過猶不及(과유불급)이 나타내는 바다. 재물이 계속 나온다는 보물단지 화수분이 아닌 다음에야 아무리 풍부한 재물을 갖고 있더라도 흥청망청하면 바닥이 난다. 욕심이 지나쳐 전성기가 지나면 쇠퇴하게 된다는 교훈을 주는 말은 숱하다. 苦盡甘來(고진감래)고 權不十年(권불십년)이며, 月滿則虧(월만즉휴)에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이 잘 알려졌다. 과음을 경계하는 戒盈杯(계영배)의 가르침을 새기며 과욕을 부리지 않아 조선 후기의 거상 林尙沃(임상옥, 1779∼1855)은 거부가 되었다고 했다.

삶에서 만족할 만한 행운을 말하는 福(복)도 마찬가지다. 행복한 사람이라도 자기에게서 떠나가지 않을 것이라 믿고 절제하지 않는다면 달아날 것이다. 그래서 검소하게 생활하여 복을 오래 누리는 惜福(석복)이 중요하다고 예로부터 성현들이 교훈을 많이 남겼다. 복을 아끼라는 말이 나오는 곳이 많지만 몇 군데만 보자.

중국 元(원)나라 때 托克托(탁극탁) 등이 편찬한 ‘宋史(송사)’에는 태조가 공주의 사치를 나무라는 말이 나온다. ‘너는 귀하고 풍요롭게 자랐으니 복 받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지나침이 없도록 하라(汝生長富貴 當念惜福/ 여생장부귀 당념석복).’ 北宋(북송)때 승상을 지낸 張商英(장상영, 1043~1122)은 ‘일은 끝장을 보아서는 안 되고, 세력은 온전히 기대면 곤란하다. 말은 다 해서는 안 되고, 복은 끝까지 누리면 못 쓴다(事不可使盡 勢不可倚盡 言不可道盡 福不可享盡/ 사불가사진 세불가의진 언불가도진 복불가향진)’고 말했다.

蘇東坡(소동파)의 戒殺詩(계살시)라 알려져 있는 경구도 보자. ‘먹는 것에 어찌 끝이 있으랴(口腹貪饕豈有窮/ 구복탐도기유궁), 목구멍을 넘겨도 비게 되는데(咽喉一過總成空/ 인후일과총성공), 어떻게 복을 아껴 남길 수가 있을까(何如惜福留餘地/ 하여석복류여지), 맑게 비우는 마음에 즐거움이 있도다(養得淸虛樂在中/ 양득청허락재중).’ 饕는 탐할 도. 조선의 許筠(허균, 1569~1618)도 문집 ‘惺所覆瓿藁(성소부부고, 瓿는 단지 부)’에서 좋은 말을 남겼다.

‘일은 완벽하게 끝을 보려 하지 말고, 세력은 끝까지 의지하지 말며(事不可使盡 勢不可倚盡/ 사불가사진 세불가의진), 말은 끝까지 다하지 말고, 복은 끝까지 다 누리지 말라(言不可道盡 福不可享盡/ 언불가도진 복불가향진).’ 어느 선에서 만족할 줄 알고 절제하며 더욱 낮추어 생활하는 수행은 道人(도인)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욕심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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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39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 선행을 쌓은 집은 필히 경사가 따른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 선행을 쌓은 집은 필히 경사가 따른다.

쌓을 적(禾/11) 착할 선(口/9) 갈 지(丿/3) 집 가(宀/7)

반드시 필(心/1) 있을 유(月/2) 남을 여(食/7) 경사 경(心/11)

선행을 많이 하거나 옛날 동냥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적선이라 했다. 선행을 많이 쌓은 집안(積善之家)은 그 자손들에게 필히 경사로운 일이 넘쳐난다(必有餘慶)고 믿었다. 앞뒤의 두 글자씩을 따서 積善餘慶(적선여경)이라 줄여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격언은 예부터 집안마다 가훈으로 좌우명으로 삼고 권장되어 왔다. 착한 일과 악한 일을 하면 그에 따라 좋고 나쁜 결과가 있다는 善有善報 惡有惡報(선유선보 악유악보)도 같은 말이다. ‘삼대 거지 없고 삼대 부자 없다’는 속담이 전하지만 적선해도 오래 가지 않는다기보다 계속적으로 선행을 해야 한다고 보면 좋다.

이 성어는 비슷한 표현으로 여러 곳에서 전하는데 ‘易經(역경)‘에 실린 것이 최초일 것이다. 三經(삼경)의 하나로 周(주)나라 때부터 전한다고 周易(주역)이라고도 하는 책이다. 八卦(팔괘) 중에서 乾卦(건괘)와 坤卦(곤괘)의 해설을 담은 文言傳(문언전)의 부분에 있다. ‘선을 쌓는 집안은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고, 착하지 못한 일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재앙이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불선지가 필유여앙)’. 그러면서 신하가 임금을 죽이거나 자식이 아비를 해치는 것은 모두 그 집안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했다.

前漢(전한)의 학자 劉向(유향)의 고사를 모은 설화집 ‘說苑(설원)’에는 ‘積善之家 必有餘慶 積惡之家 必有餘殃/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악지가 필유여앙)’이라고 談叢(담총)편에 실려 있다. 敬愼(경신)편에 나오는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으로써 보답하고,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으로써 보답한다(人爲善者 天報以福 人爲不善者 天報以禍/ 인위선자 천보이복 인위불선자 천보이화)’는 말은 ‘明心寶鑑(명심보감)’ 繼善(계선)편 첫머리에 올랐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떠벌리는 것보다는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 더욱 값지다. 그래서 洪自誠(홍자성)이 菜根譚(채근담)에서 말했다. ‘드러난 선은 공이 작고, 숨긴 선은 공이 크다(善之顯者功小 而隱者功大/ 선지현자공소 이은자공대).’

세상에는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더 많은 것같이 보인다. 살인, 강도가 끊이지 않고 사기범도 넘쳐난다고 매체마다 보도한다. 국제적으로는 시민을 학살하는 테러도 줄이어 일어난다. 하지만 선행하는 사람은 더욱 많다. 다만 드러나지 않게 선행을 쌓아가기 때문이다. 악행이든 선행이든 하늘이 언젠가는 갚음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09.html
kolaswqetsrq 11.02 04:40
화표학귀華表鶴歸 – 학이 되어 화표에 앉다, 세상 변천이 덧없다.

화표학귀(華表鶴歸) – 학이 되어 화표에 앉다, 세상 변천이 덧없다.

빛날 화(艹/8) 겉 표(衣/3) 학 학(鳥/10) 돌아갈 귀(止/14)

사람은 자신의 근본을 잊지 않거나 혹은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 한다. 여우마저도 죽을 때 처음 굴이 있던 언덕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首丘初心(수구초심)이란 말이 잘 말해 준다. 멋진 古詩(고시)도 있다. ‘호마는 북풍 따라 북으로 머리 돌리고, 월 땅의 새는 남쪽 나뭇가지에 깃들인다(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 호마의북풍 월조소남지).’

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을 가리키는 망주석 등이 華表(화표)다. 이 화표 위에 학이 한 마리 돌아왔다(鶴歸)는 이 성어는 丁令威(정령위)라는 사람의 전설 같은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前漢(전한) 때의 遼東(요동) 사람이었던 정령위는 젊어서 고향을 떠나 靈虛山(영허산)이란 곳에서 仙道(선도)를 닦았다. 나중에 그는 학으로 변신해 천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성문 앞에 있던 화표주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 어느 날 한 소년이 지나가다가 학을 보고는 활을 겨누면서 쏘려고 했다. 그러자 학은 하늘로 올라 빙빙 돌더니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새가 있네, 새가 있네 정령위라는 새지(有鳥有鳥丁令威/ 유조유조정령위), 집 떠난 지 천년 만에 이제야 돌아왔다네(去家千年今始歸/ 거가천년금시귀), 성곽은 옛날과 다름없건만 사람들은 바뀌었네(城郭如故人民非/ 성곽여고인민비), 어찌 선도를 배우지 않아 무덤만 많아졌단 말인고(何不學仙塚壘壘/ 하불학선총루루).’ 이런 말을 남기고 학은 하늘 높이 솟구쳐 날아가 버렸다.

세태에 따라 돌변하는 인간 세상에는 어울릴 수 없어 부득이 떠나게 되는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순서를 바꿔 鶴歸華表(학귀화표)라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陶淵明(도연명)이 지었다고 하는 志怪(지괴)소설 ‘搜神後記(수신후기)’에 실려 있다. 지괴소설은 魏晉(위진)남북조 시대 떠도는 신화나 전설, 민담 등 기이한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엮은 것을 말한다.

타향에서 고생을 하며 번듯하게 자리를 잡고도 고향에 돌아가 보니 옛날 같지 않다. 노래로도 많이 불리지만 고향에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고 많이 변했다. 인걸도 간 데 없으니 실로 꿈인가 싶다. 출향해서 출세한 사람들은 고향 덕을 입었든 입지 않았든 늦기 전에 뒤돌아 볼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90.html
kolaswqetsrq 11.02 04:40
여세추이與世推移 - 세상이 변하는 대로 따라 변함

여세추이(與世推移) - 세상이 변하는 대로 따라 변함

줄 여(臼/7) 인간 세(一/4) 밀 추(扌/8) 옮길 이(禾/6)

세상의 흐름에 독불장군처럼 변화를 거부하고 獨也靑靑(독야청청)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줏대 없이 몸을 맡기는 것이 옳은가. 상황에 따라 결과가 달리 나올 수 있겠지만 세상이 변하는 대로 따라서(與世) 몸을 맡겨 밀리는(推移) 것을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이라 찬양하기도 하고, 올곧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못할 일이라 타기하기도 한다. 자신을 흐름에 맡겨야할지 그것에 맞서야할지, 잘 판단하여 어느 것이나 대의에 맞아야 하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楚(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우국시인 屈原(굴원)은 懷王(회왕)에게 강국 秦(진)과 대항하기 위해선 齊(제)와 동맹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張儀(장의)의 술책에 솔깃해진 정적들의 모함을 받아 좌천되고 실의에 빠져 湘江(상강)의 물가를 어슬렁거리다 한 어부를 만났다. 어찌하여 귀인이 이곳을 거니느냐고 물으니 온 세상이 흐리고 모두 취했는데 혼자 깨어 있었기 때문이라 했다. ‘성인은 사물에 엉키고 막히지 아니하고 세상과 더불어 변하여 옮겨가는 것(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성인부응체어물 이능여세추이)’이란 어부의 말에 굴원은 펄쩍 뛴다.

어찌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며 차라리 물에 뛰어들어 물고기의 뱃속에 장사지내는 것이 낫다고 했다. ‘漁父詞(어부사)’에 나오는 이야기로 혼탁한 세파에 맡기는 것은 성인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고 흐름을 잘 타야 성현이라 한 사람도 있다. 後漢(후한)때 崔寔(최식)이라는 선비는 벼슬자리를 사양하고 글 한 편을 공표한다. ‘대저 성인은 어떤 일에도 구애받지 않고 세상의 변천에 따라 행동한다. 평범한 선비는 융통의 재능이 부족하여 마음으로만 괴로워할 뿐 시대의 변천에 적응하지 못한다(故聖人能與世推移 而俗士苦不知變/ 고성인능여세추이 이속사고부지변).’ ‘後漢書(후한서)’ 열전에 실렸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71.html
kolaswqetsrq 11.02 04:41
산중수복 의무로山重水複 疑無路 – 산 첩첩 물 겹겹이라 길이 없을까 의심 된다.

산중수복 의무로(山重水複 疑無路) – 산 첩첩 물 겹겹이라 길이 없을까 의심 된다.

메 산(山/0) 무거울 중(里/2) 물 수(水/0) 겹칠 복(衣/9) 의심할 의(疋/9) 없을 무(灬/8) 길 로(足/6)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난관에 부닥칠 때가 있다. 산이 앞을 가로 막고 물줄기는 끊어져 더 갈 길이 없는 山窮水盡(산궁수진)일 경우다. 이럴 때 절망하여 주저앉을 것인가, 막다른 골목에서 이때까지의 일은 포기하고 돌아설 것인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을 믿고 방법을 찾을 것인가. 산이 첩첩이고 물 또한 겹겹이 앞을 가로막으면(山重水複) 당연히 길이 없을 것이라 여겨(疑無路) 주저앉는다. 중국 南宋(남송)시대의 애국시인이었던 陸游(육유, 1125~1209)의 유명한 시구에는 그렇지만 절망은 없다.

호를 예법에 구속받지 않는다고 放翁(방옹)이라 지어 육방옹이라 불렸던 육유는 기울어져가는 남송에서 나라를 걱정하는 열정으로 분방한 시를 많이 남겼다. 그는 당시 실력자인 간신 秦檜(진회)에 밉보여 말단 벼슬로 지방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육유는 애국, 울분, 그러면서도 희망이 담긴 우국시를 많이 남겼는데 시집 ‘劍南詩稾(검남시고)’를 비롯, 수량에 있어서는 고금 제일인 모두 1만 4000여 수의 시가 전한다고 한다. 1167년 육유가 고향인 山陰(산음)의 서쪽에 있는 마을을 찾아가 읊은 ‘遊山西村(유산서촌)’ 시에서 암울한 조국의 어두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성어가 나오는 앞부분을 보자. ‘농가의 섣달 술이 탁하다고 비웃지 말게나(莫笑農家臘酒渾/ 막소농가랍주혼), 풍년이라 손님 머물면 닭고기 돼지고기 풍성하다네(豊年留客足鷄豚/ 풍년유객족계돈), 산에 또 산이고 물에 또 물이라 길이 없나 했더니(山重水複疑無路/ 산중수복의무로), 버들 우거지고 꽃 밝게 핀 저쪽에 또 마을이 보이는구려(柳暗花明又一村/ 유암화명우일촌).’ 臘酒(랍주)는 섣달 납제를 위해 담근 술. 막다른 곳에서도 또 다른 마을이 있으니 희망이 있다. 끝의 柳暗花明(유암화명)은 버들은 그윽하고 꽃은 피어 밝다는 뜻으로 자연경치의 아름다움을 나타낼 때 쓰이기도 한다.

정치인이나 재계에서 새해에 앞날이 밝지 않고 난관이 중첩했을 때 종종 이 구절전체나 앞부분 山重水複(산중수복)만 잘라서 인용한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이어지는 대구처럼 꽃피는 화려한 봄이 따라오니 희망은 잊지 말아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45.html
kolaswqetsrq 11.02 04:42
전자렌지 활용법

전자렌지 활용법

1. 시금치 데치기

시금치를 데칠 때는 끊는 물에 시금치를 데치는데요. 이 과정에서 자칫하면 시금치의 영양소가 파괴될 수 있습니다. 시금치를 깨끗하게 씻어 랩으로 싸서 1분 정도 돌려주면 간편하게 시금치를 데칠 수 있습니다.

2. 식기 살균 효과

식기세척기가 없는 분들은 전자레인지를 이용하여 식기 살균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릇이나 접시, 도마 등 살균이 필요한 식기를 헹궈서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주면 살균효과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3. 굳은 꿀 및 버터녹이기

벌꿀이나 물엿이 딱딱하게 굳었을 때도 병 뚜껑을 열고 20초정도 가열하면, 처음처럼 끈끈한 액체가 됩니다.

4. 후추, 소금 건조시키기

습기로 눅눅해진 소금이나 후추를 접시에 담아서 랩을 씌우지 말고 15초정도 가열하세요. 이때 소금 용기도 함께 가열하세요. 병이 완전히 비어 있으면 위험하므로 바닥에 소금을 1cm 정도 남겨놓고 가열하는 것이 좋습니다. 소금에 깨를 1 작은술 정도 섞어서 가열하면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5. 마늘 껍질 쉽게 까는 법

통마늘을 반으로 쪼개 주세요. 그런 다음 마늘 윗부분을 칼로 살짝 잘라 주세요. 윗부분을 살짝 자른 후 전자렌지용 그릇에 담아 주신 후 20초 돌려주기만 하면 껍질이 쏙쏙 빠집니다.

6. 어묵의 기름기 제거

어묵이나 유부 등 가공 식품은 조리 전에 살짝 데치거나, 뜨거운 물을 부어 기름기를 제거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자렌지를 사용할 때는 비늘봉지에 어묵을 넣고 봉지 입구를 묶지 않은 채 30초간 가열 후 봉지에 물을 붓고 어묵을 씻어내면 기름기가 없어집니다.

7. 콩나물 데치기

콩나물을 씻어 물기가 있는 그대로 접시에 담아 소금을 살짝 뿌린 뒤 전자렌지에 1분정도 돌리면 끝.

8. 오래된 빵 촉촉하게 하기

젖은 키친타올로 빵을 감싼 후 전자렌지로 10초씩 돌리면서 빵이 촉촉해질 때까지 반복하면 됩니다.

9. 감자,고구마 맛있게 삶기

감자나 고구마를 비닐에 넣어 봉지에 입구는 묶지 않고 물기가 있는 상태로 2분 정도 돌린 후 눌러봐서 말랑해지면 완성됩니다. 고구마의 단 맛을 더하고 싶을 땐 고구마에 랩을 씌운 후 젖은 신문지에 싸서 가열하면 됩니다.

10. 김 맛있게 굽기

김을 접시에 올린 후 랩이나 뚜껑없이 1분정도 가열하면 바삭바삭한 김이 된다네요.

11. 감자칩 만들기

감자를 3mm 두께로 자른 후 물에 30분 정도 담궈 전분기를 빼준 후 흐르는 물에 2~3번 씻어 체에 올려 물기를 빼준 뒤 소금으로 간을 해줍니다. 그 후 키친타올로 물기제거 후 렌지에 1분30초정도 돌리면 끝. 중간 중간 확인해주세요.

12. 눅눅한 과자 되살리기

비가 올 때나 날이 습할 때 먹다 남은 과자는 쉽게 눅눅해지는데, 이럴 때 전자렌지를 활용해보세요. 15초간 가볍게 가열해줘도 금새 바삭바삭해 집니다.

13. 양파 쉽게 까기

일반적으로 양파를 까게 되면 눈이 매워 눈물이 나오게 되는데, 양파 끝 부분을 자른 후 전자렌지에 30초 정도 돌려주면 눈이 시리지 않고 깔 수 있게 됩니다.

14. 토마토 껍질 까기

토마토는 채소 중에서도 유달리 껍질을 까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토마토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2분가량 돌려주면 껍질을 쉽게 깔 수 있습니다.

15. 빵가루 만들기

튀김류 음식을 조리하다 보면 빵가루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미리 사놓은 빵가루는 없고, 먹다 남은 빵이 조금 남아 있다면 전자레인지로 빵가루를 손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식빵이나 카스테라를 종이 위에 올려 전자레인지에 2분에서 2분 30초 가량 돌려줍니다. 이후 굳어진 빵을 손으로 부숴주면 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85.html
kolaswqetsrq 11.02 04:43
적당한 거리의 법칙

적당한 거리의 법칙

나무와 나무 사이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한정된 영양분을 나눠 먹어야 하기에

튼실하게 자랄 수 없습니다.

고슴도치와 고슴도치 사이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뾰족한 가시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서로 그리워할 만큼의 거리,

서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

서로 소유하지 않고 자유를 줄 수 있는 거리,

서로 불신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거리

그 거리를 유지해야만

관계가 더 오래갈 수 있습니다.

내 편으로 만들고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집착보다는, 때로는 제3자인 것처럼

한 걸음 물러나 관망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 <내 마음 들었다 놨다> 中 김현태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46.html
kolaswqetsrq 11.02 04:43
【참좁쌀풀】

【참좁쌀풀】

희귀식물 참좁쌀풀입니다. 노랑 좁쌀의 알맹이와 같이 꽃봉오리가 맺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좁쌀풀과 달리 잎이 타원형이고 잎자루가 있으며 꽃잎 안쪽에 붉은색 무늬가 있음.

▷ 학명 : Lysimachia coreana Nakai

▷ 분류 : 앵초과

▷ 분포지역 : 한국(경기 ·경북 ·강원 ·함남 ·함북)

▷ 서식장소 : 깊은 산 초원

▷ 특징 :

깊은 산 초원에서 자란다. 줄기는 곧게 서고 전체에 털이 거의 없다. 높이 50∼100cm이고, 모서리각이 있으며 가지가 많이 갈라지는 것이 있다. 잎은 돌려나거나 마주나고 잎자루가 있으며 타원형 또는 달걀 모양이다. 잎 끝이 뾰족하고 밑부분이 둥글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양면과 가장자리에 잔털이 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29.html
kolaswqetsrq 11.02 04:44
내장지방 줄이기

내장지방 줄이기

1. 정제 탄수화물 줄이기

설탕·액상과당 같은 정제 탄수화물은 과다섭취하면 중성지방 수치가 상승하고 내장지방이 축적된다. 탄수화물 섭취를 하루 50g 이하로 철저히 제한하면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2. 단백질 섭취 늘이기

탄수화물 섭취가 줄어들면 몸은 우선 근육의 단백질을 당으로 바꿔 사용한다. 그러다가 근육 단백을 계속 쓸 수 없으니깐 어쩔 수 없이 지방을 쓴다. 근육이 빠지면 기초대사량이 줄어들므로 근육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백질 섭취량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한 번에 소화·흡수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으므로 단백질은 아침·점심·간식·저녁 4회로 나눠서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닭고기, 생선, 해산물, 콩·두부, 달걀, 플레인 요거트 등은 체지방 감량에 좋은 고단백 식품이다.

3. 고강도 인터벌 운동

고강도 인터벌 운동은 말 그대로 고강도 운동을 짧게 반복하는 운동법이다. 숨이 턱에 찰 정도의 고강도 운동을 1~2분간 하고 다시 1~3분간 가볍게 한다. 이를 3~7회 반복하면 좋다. 여기에 근육 운동을 더해야 기초대사량을 유지할 수 있다.

4. 12시간 이상 공복을 유지

단식을 하면 혈당과 인슐린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서 지방 대사가 합성 모드에서 분해 모드로 바뀐다. 저녁식사와 아침식사 사이 12시간 공복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이미 인슐린저항성이 있는 사람은 지방 대사가 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더 길게 단식해야 한다. 일주일에 1~2회 16~24시간 짧은 단식을 시행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5. 오메가3지방산 섭취

오메가 3지방산은 간과 근육에서 지방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도록 돕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37.html
kolaswqetsrq 11.02 04:45
환절기 목 통증 해소하는 4가지 방법

환절기 목 통증 해소하는 4가지 방법

1. 소금물로 입을 가셔라

소금물로 가글하라. 소금은 세균을 죽인다. 이 때문에 방부제로도 쓰인다. 연구에 따르면 소금물은 목의 통증을 줄이고 원인이 된 감염을 퇴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 마늘을 캔디처럼 빨아라

마늘 한 쪽을 입에 넣고 캔디처럼 혀로 핥아 보라. 목의 통증을 가라앉히고 감염을 퇴치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늘에 들어있는 강력한 항생물질인 알리신이 바이러스와 세균을 죽인다.

목이 간질간질 할 때 생마늘 한 쪽을 입안에 넣고 있으면 감염을 방지할 수 있다. 마늘을 입안에 5~10분 정도 넣고 있으면 적당하다.

3. 꿀을 먹어라

비타민이 풍부한 꿀은 면역력을 증강시키고 감염을 퇴치하는데 도움이 된다. 꿀의 색깔이 진할수록 항산화제가 더 많이 들어있어 효과가 더 좋다.

4. 닭 국물을 먹어라

닭고기 국물은 맛도 좋지만 목 통증을 완화하는 데도 좋다. 닭고기에 들어있는 아미노산은 폐 속의 점액을 묽게 해 나쁜 물질을 빨리 기침으로 내뱉게 해서 목감기의 가장 큰 원인인 후비루를 개선한다. 후비루는 콧물이 목뒤로 넘어가는 현상을 말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4_56.html
kolaswqetsrq 11.02 04:46
■ 인종 죽음의 미스테리 1편

■ 인종 죽음의 미스테리 1편

중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은 조선 제12대 왕 인종이다. 인종은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보아도 무슨 업적을 남겼는지 떠오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왕이다. 그만큼 재위기간도 짧았고 외척들의 정쟁 속에서 제대로 기를 펴보지도 못하고 사라져간 인물이기 때문이다. 인종은 중종의 첫부인인 신씨가 폐비되고 맞이한 첫 번째 계비(繼妃) 장경왕후의 아들이다. 태어난 이듬해에 장경왕후가 산후병으로 죽어 궐 밖으로 보내져 재상가에서 성장하였는데, 그 총명함에 신료들이 모두 탄복할 지경이었다.

인종은 관례보다 빠른 6세의 나이로 세자에 책봉 되었고, 커가면서 이상적인 군주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었다. 그러나 어린 세자를 둘러싼 주위 환경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즉, 중종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경빈 박씨의 소생인 복성군이 있었고, 새로 중전이 된 문정왕후가 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인 중종은 외척(대윤-소윤)들의 정쟁 속에서 불안한 자신의 왕위 보존에만 관심이 있을 뿐, 대승적 견지에서 세자의 입지를 뒷받침 할 만 한 토대를 전혀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세자(인종)의 어린 시절에 ‘작서의 변(경빈 박씨와 복성군 사사, 그 후 진범인 김안로 사사)’과 같은 해괴한 사건이 일어나는 등 인종은 말만 세자일 뿐, 장차 앞날이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한편, 문정왕후는 왕비에 책봉된 지 무려 17년 만에 아들(경원대군)을 낳아 문정왕후의 힘과 야심은 더욱 커지고, 세자의 입지는 더욱 불안해졌다. 이 후 정국(政局)은 세자의 후원자 역할을 자청(自請)한 세자의 외삼촌 윤임과 문정왕후의 친동생인 윤원형이 대립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전자를 대윤(大尹), 후자를 소윤(小尹)이라 불렀다. 외척간의 충돌이 시작된 셈이다.

세자의 나이 서른이 되도록 후사가 없자, 기회를 노리던 소윤 측의 야심은 더욱 불타올랐다. 문정왕후는 자신의 아들인 경원대군을 왕으로 만들 야심을 갖고 세력을 불려나갔고, 그 전면엔 동생 윤원형이 있었다. 중종 38년에는 동궁전에 큰 불이 났는데, 야사에는 이 불이 소윤 측에서 세자를 제거하기 위해 낸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자의 입지는 불안했다. 사실여부는 알 수가 없으나, 어쨌든 결국 소윤 측은 세자를 제거하지 못했고, 중종이 죽은 후 세자가 왕위에 오름으로써 그들의 희망도 사라지는 듯 보였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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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46
■ 인종과 김인후 1편

■ 인종과 김인후 1편

조선의 왕 중 가장 짧은 기간 동안 왕위에 있었던 사람은 고작 8개월 재위한 조선의 12대 왕 인종(1515~1545년)이다. 왕으로서 재위 기간은 짧았지만 인종은 사실 준비된 왕이었다. 1515년 2월 중종과 장경왕후 사이에서 태어나 1520년 6세의 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됐다. 25년간 왕세자로 있다가 1544년 중종을 이어 왕위에 올랐다. 인종은 세자로 있던 시절 사림파를 적극 중용했는데, 그 핵심 인물이 스승이던 김인후(金麟厚, 1510∼1560년)였다.

16세기는 조선 사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은 신진 세력인 사림파가 정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였다. 비록 훈구파와 정치적 대결에서 패배하면서 몇 차례의 사화로 피해를 당했지만, 사림파는 시대가 흘러가면서 제자가 양성되면서 자연적으로 성장했다. 사림파는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됐지만 호남 지역에서도 주목할 만한 학자들이 나타났는데, 김인후가 그 대표자이다. 그는 장성에서 성장해 호남 지역에 성리학을 전파한 학자였다.

‘시경’을 탐독하고 성리학에 전념하던 김인후는 22세던 1531년 사마시에 합격해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때 이황과 함께 공부했는데, 이황은 “더불어 교유한 자는 오직 김인후 한 사람뿐이다”라고 할 만큼 김인후에게 돈독한 우의를 표현했다. 1540년 31세로 별시문과에 급제해 본격적으로 관직에 진출했다. 1541년에는 독서당에 들어가 사가독서(賜暇讀書·조선시대에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줘 학문에 전념하게 한 제도)를 지냈으며, 이후 홍문관 저작, 시강원 설서, 홍문관 부수찬 등을 지냈다.

김인후는 관직 생활을 하면서 1519년 기묘사화 때 죽임을 당한 조광조 등의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인종 대 이후에는 주로 고향인 장성에 은거하면서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조광조 등의 학맥을 이으면서 그 한계를 극복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당시 ‘영남에 이황이 있다면 호남에 김인후가 있다’고 할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인종이 세자로 있던 1543년 4월 세자를 보필하는 시강원의 설서(說書)가 된 김인후는 한 달에 10일을 궁궐에 머물면서 인종의 학습을 도와줬다. 시강원의 여러 스승 가운데서도 인종이 김인후를 특히 믿고 따랐다. 하지만 인종과 김인후의 인연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543년 12월 김인후가 부모의 봉양을 위해 옥과현감을 자청해 지방으로 내려갔고, 인종은 다음 해 11월 즉위했다가 1545년 7월 승하했기 때문이다. 정작 왕이 된 인종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필할 기회는 없었다. 김인후는 인종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탕약을 만들기 위해 약방에 참여하려 했지만 결국 인종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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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47
【섬말나리】

【섬말나리】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

울릉도에서 자라는 다년초이며 인경은 달걀모양이고 약간 붉은 빛이 돌며 간혹 비늘 모양의 조각에 관절이 있다.

꽃잎이 열편에 검은 점이 없는 것을 새섬말나리라고 하며 울릉도의 동쪽 사면에서 자라고 있다. 섬말나리와 더불어 좋은 관상자원의 하나이며 일본에도 분포한다

▷ 학명 : Lilium hamsonii LEICHTL.

▷ 분류 : 백합과

▷ 분포지역 : 울릉도 및 한국 동북부 지역, 만주·연해주 지역, 일본

▷ 서식장소 : 산과 들

▷ 특징 :

아름답고 꽃을 볼 수 있는 기간도 길어 관상식물로도 인기가 있다. 한국 특산종으로 강원도 금강산, 함경도 원산·무산령 등지와 만주·아무르·우수리 지방까지 분포한다. 일본에서는 관상용으로 건너간 것이 귀화하여 널리 자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33.html
kolaswqetsrq 11.02 04:48
■ 중종의 여인들 경빈 박씨 1편

■ 중종의 여인들 경빈 박씨 1편

중종의 조강지처인 신씨가 폐비되고 중종의 후궁이 된 경빈 박씨! 연산군 11년에 채홍사(採紅使)에 의해 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 이듬해 중종반정이 일어나 반정공신 박원종이 그녀를 양녀로 삼았고, 그의 힘으로 후궁이 될 수 있었다. 슬하에 아들 복성군과 혜순옹주와 혜정옹주를 낳았다. 복성군은 세자(인종)보다 나이가 많았다. 중종의 제1계비인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가 세자를 낳고 산후병으로 죽자,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경빈 박씨는 자기 소생인 복성군을 세자로 책봉할 야망을 품게 되었다. 왜냐하면 중종이 특별히 그녀를 가장 총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비(繼妃)인 장경왕후가 일찍 죽은 후, 경빈 박씨가 중전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가문이 좋지 않다는 이유(흥청출신)로 무산되었다. 문정왕후 윤씨가 중종의 두 번째 계비가 되어 경원대군(명종)을 낳음으로써 경빈 박씨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오히려 억울한 누명을 쓰고 폐출되는 운명이 되고 만다.

중종 22년(1527년) 2월25일, 동궁(세자:호)의 13세 생일잔치가 경복궁에서 열렸다. 당시 동궁은 장경왕후 윤씨의 아들로 훗날 인종이 되는 인물이다. 잔치에 동원된 궁녀들은 복잡한 화장실을 피해 으슥한 곳으로 가서 볼일을 봤다. 한 궁녀가 소변을 보려고 동궁 뒷동산으로 갔다. 볼일을 보다가 나무 위를 올려다보니 죽은 쥐 한마리(사지와 꼬리를 자르고 입·귀·눈을 불로 지짐)가 매달려 있었고, 생나무 조각으로 만든 방서(榜書: 써서 걸어둔 글)가 걸려있었다.

동궁(東宮)은 세자가 거처하는 곳으로 동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세자는 해생(亥生)이고, 2월 25일이 생일인 데다가 ‘해(亥)’는 돼지에 속하고 쥐도 돼지와 비슷하므로 당시의 조정 대신들은 동궁을 저주한 주술이라고 하여 난리가 났다. 유모는 정현대비 윤씨(중종의 어머니)에게 보고하는 한편 동궁의 외할아버지 윤여필에게도 알렸다. 범인을 색출해 처벌하라는 뜻이었다. 궁중에서의 이런 저주사건을 조사하면 모든 궁녀들이 혐의 대상이었다. 말로만 조사해서는 안되기에 참혹한 고문이 뒤따랐다. 그 과정에서 온갖 개인사정과 원한관계가 폭로되면서 궁중의 여러 사람이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우려한 정현대비(성종비)는 그냥 조용히 덮기로 했다. 하지만 동궁에 대한 저주보다 더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3월1일, 정현대비는 중종과 왕비에게 특별 점심을 내렸다. 장경왕후 승하 후 두 번째 왕비로 들어온 문정왕후 윤씨는 중종의 사랑을 못 받는 형편이었다. 당시 중종이 경빈 박씨에게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정현대비는 함께 점심이라도 하며 부부간의 정을 쌓으라는 뜻에서 특별 점심을 내렸던 것이다. 중종은 대비의 뜻에 따라 강녕전으로 가서 문정왕후와 함께 점심을 들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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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_46.html
kolaswqetsrq 11.02 04:49
■ 중종의 여인들 문정왕후 1편

■ 중종의 여인들 문정왕후 1편

장경왕후가 죽고 다시 왕비 자리가 공석이 되자, 그해 10월 영의정 유순, 좌의정 정광필, 우의정 김응기 등이 왕비 책립을 건의했지만, 중종은 이미 국본이 정해졌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거절하다가 결국 처녀간택을 허락했다. 그리하여 17세의 새 왕비가 간택되었으니 바로 파산부원군 윤지임(尹之任)의 딸 문정왕후 윤씨이다. 그녀의 자태는 비록 아름다웠으나 성질이 매우 앙칼스러워 앞으로의 순탄치 않은 궁중생활이 예상되었다.

문정왕후는 인수대비와 정순왕후 등과 함께 사극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이되었다. 그만큼 정치사에 있어서도 최고의 치맛바람을 일으켜서 그런 것 같다. 그녀로 말미암아 전비(前妣) 장경왕후 소생인 인종의 수명까지 단축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문정왕후 이전에는 왕비가 사망하면 후궁에서 왕비를 선발했었는데, 문정왕후는 후궁을 거치지 않고 바로 왕비에 책봉된 조선 왕조 최초의 외부 간택 왕비이다.

1529년(중종 24년) 9월 13일에도 부여의 선비 김식이 다시 상소를 올려 신씨 폐출의 부당함을 제기했지만 무시되었다. 이제 폐비 신씨의 복위 논의는 완전히 물 건너가 버렸다. 중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인종은 승정원에 명하여 폐비 신씨의 거처를 폐비 궁으로 부르고, 모든 일을 후궁의 거처인 자수궁의 예와 같이 행하라고 전교했다. 조선의 임금 중에 가장 짧은 8개월의 재위 기록을 세운 인종이 왕비 중에 7일이라는 가장 짧은 기록을 가진 폐비 신씨를 살뜰하게 배려했다하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 후 사가(私家)에서 홀로 살던 폐비 신씨는 1557년(명종12년) 12월 7일, 71세를 일기로 외로운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부음을 들은 명종은 신하들에게 명하여 왕후의 예로 장사지내게 했다. 또 왕실 가족의 관을 다루는 장생전의 관을 내리게 하고, 부의를 보냈으며 자식이 없는 그녀의 사정을 고려하여 친정조카인 신사원에게 상주가 되어 제사를 받들게 했다.

그처럼 인종과 명종은 모두 폐비 신씨가 중종의 원비(元妃:조강지처)로서 모후와 같은 위상을 지녔고, 그녀를 대신하여 자신들의 어머니가 중전의 자리에 올랐음을 인식하고 나름대로의 예를 다했던 것이다. 그 후 신씨의 복위 문제는 1698년(숙종 24년) 신규의 상소문에서 단종 복권 문제와 함께 거론되었지만 주목받지 못했지만, 결국 신씨의 복위는 1739년(영조15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루어졌다. 당시 유생 김태남이 복위 상소를 올리자 영조는 흔쾌히 받아들여 그녀의 신주를 대궐 안에 옮겨 모시게 했다. 이어서 대신들과 논의 끝에 시호를 단경(端敬)으로 하고 능호를 온릉(溫陵)으로 올렸다. 그렇게 해서 폐비 신씨는 궁궐에서 쫓겨난 지 무려 232년 만에 단경왕후(端敬王后)라는 왕비의 칭호를 얻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_81.html
kolaswqetsrq 11.02 04:49
■ 중종의 여인들 장경왕후 1편

■ 중종의 여인들 장경왕후 1편

 "
중종은 부인 12명(왕비와 후궁), 자녀 20명(9남 11녀)를 두었다. 아버지 성종처럼 부인도 많고 자녀도 많다. 父傳子傳(부전자전) 이라고 할까. 중종은 성종과 정현왕후 사이에 태어난 진성대군이다. 성종과 폐비윤씨 사이에 태어난 이복형 연산군을 몰아내고 반정군에 의해 추대되어 왕위에 올랐다. 이를 중종반정이라고 한다.
",

반정공신들은 조강지처인 첫째부인 신씨를 7일 만에(최단기 중전) 사가(私家)로 내친 다음날부터 중종에게 서둘러 중전을 책봉하라고 보챘다. 그들의 내심은 하루빨리 자신들의 세력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이미 내정된 공신의 여식(女息)을 왕비로 삼아 내명부를 장악하여 권력을 다지려는 것이었다. 중종의 어머니 정현대비는 “중궁 간택은 용모만 보아서는 안 된다. 두세 명의 처녀를 간택하여 후궁에 두었다가 그 행실을 보아 중궁으로 임명하자.” 라고 제안했다.

공신들은 그녀의 뜻을 받아들여 숙의 윤씨, 숙의 박씨, 숙의 홍씨가 입궁했다. 숙의 윤씨는 박원종의 조카딸(윤여필의 딸)로서 훗날 인종을 낳은 장경왕후 윤씨이다. 또 숙의 박씨는 상주 출신으로 복성군을 낳고 궐내에 숱한 파란을 일으켰던 경빈 박씨이다. 숙의 홍씨는 반정공신이자 훗날 기묘사화를 주도한 홍경주의 딸이다.

1508년(중종 2년) 1월 18일 실권을 쥐고 있던 박원종은 유순정과 함께 중종을 찾아와 서둘러 중궁을 정하라고 재촉했다. 중종이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자 5월에는 대간을 동원하여 왕비 간택을 재촉했다. 그들의 등쌀에 지쳐버린 중종은 6월 17일 숙의 윤씨를 왕비로 결정하고, 두 달 뒤인 8월 4일 근정전에서 책봉례를 거행했다. 이처럼 단경왕후 신씨의 폐출이나 장경왕후 윤씨의 책립은 모두 박원종의 뜻대로 이루어졌다.

새로운 중전이 책봉됨과 동시에 이미 쫓겨난 신씨(단경왕후)는 혹시나 하는 기대도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완전히 짝 잃은 기러기 신세가 되어 버렸다. 자식도 없고 남편도 없는 그녀는 재혼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원망과 그리움으로 쓸쓸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두 번째 부인이 된 장경왕후는 성종 22년(1491년) 7월에 파평 윤씨 윤여필과 어머니 순천 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8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인 월산대군의 부인에게서 자랐다. 외삼촌은 당연히 반정의 주역인 박원종이다. 신씨가 쫓겨나자마자 16살에 후궁으로 입궐하여 숙의에 봉해졌다가 중종 즉위 2년 8개월 만에 중전이 되었다. 그로부터 8년 후 딸 하나(효혜공주)와 아들 하나(원자:뒷날 인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25세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장경왕후의 산후병을 돌본 사람이 바로 ‘대장금’ 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장금에 대한 기록이 요리사가 아닌 의녀로 10번 등장한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_95.html
kolaswqetsrq 11.02 04:50
천연 보약 청국장의 효능

천연 보약 청국장의 효능

1. 암을 막는 탁월한 항암식품

청국장에는 제니스테인이라는 물질이 풍부한데, 이 물질은 유방암, 결장암, 직장암, 위암, 폐암, 전립선암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포닌 또한 암 예방에 큰 역할을 하며, 파이틱산, 트립신 억제제 같은 항암물질도 들어 있다.

2. 뇌졸중(중풍) 치료 예방제

청국장에 들어 있는 레시틴과 단백질 분해효소는 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이나 콜레스테롤을, 녹여내는 효과가 탁월하므로 뇌졸중의 치료와 예방에 최선책이 될 수 있다.

3. 치매를 막아주는 건뇌식품

청국장에 있는 레시틴이 분해되면 콜린이란 물질이 생성되는데, 이 콜린이 치매 환자에게 부족한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늘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4. 당뇨병을 다스리는 천연 인슐린

청국장에는 섬유질이 풍부하여 당의 흡수가 서서히 일어나도록 돕고, 트립신 억제제와 레시틴은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키므로 인슐린이 부족한 당뇨 환자에게 도움을 준다.

5. 고혈압을 다스리는 천연혈압강하제

청국장이 바실러스균에 의해 발효되면 수많은 아미노산조각들이 만들어지고, 이 조각들이 고혈압을 일으키는 주요 인자인 안지오텐신 전환효소의 활성을 억제하여 혈압을 떨어뜨린다.

6. 간 기능 개선 및 숙취 해소제

청국장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비타민 B2는 알코올 분해를 촉진시켜 간의 기능을 좋게 하며, 아미노산들도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된다.

7.피부노화를 막아주는 뛰어난 피부 미용제

청국장에 있는 레시틴은 내장에 있는 독소들을 청소할 뿐만 아니라 노화로 인해 피부가 쭈글거리는 것을 방지해준다. 피부에 좋은 비타민 E와 비타민 B군도 많다.

8.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천연 칼슘제

청국장은 100g에 칼슘이 90mg이나 들어 있는 고칼슘 식품. 칼슘은 양질의 단백질과 같이 섭취하면 흡수율이 높아지는데, 청국장에는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K, 제니스테인 또한 풍부하여 칼슘의 인체 흡수율을 높여준다.

9.심장병 & 돌연사 예방제

심장병과 돌연사는 심장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혈전으로 인해 막힐 경우 발생한다. 청국장에 있는 바실러스 단백질 분해효소는 심장 관련 혈관에 존재할 수 있는 혈전을 녹여주는 역할을 한다.

10. 빈혈을 막아주는 천연 조혈제

청국장에는 100g당 3.3mg의 철분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악성빈혈을 막아주는 비타민 B12도 함께 있어 빈혈 예방에 도움이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59.html
kolaswqetsrq 11.02 04:51
하루 물 2L씩 마시면...........

하루 물 2L씩 마시면...........

다이어트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내용으로, 하루에 물 2L씩을 꾸준히 섭취해주면 몸에 좋다고 한다. 특히, 다이어트로 인해 헬스장에 등록했을 때, 많은 헬스 트레이너들이 권장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권장사항을 지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물을 2L씩 조금씩 나누어 하루 종일 마신다는 건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짚어보고자 한다. 하루에 물 2L씩을 마실 경우 몸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1. 장 기능 개선

매일 물 2L씩을 섭취할 경우 장 기능 개선에 도움을 준다. 흔히 직장인들은 불규칙한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으로 인해 아랫배가 더부룩함을 많이 느낀다. 또한 장 기능도 원활하지 못하여 배변활동에도 문제가 생긴다. 이는 대장에 수분 공급이 충분하지 않아 일어날 수도 있다. 때문에 물을 자주 섭취해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2. 피부 주름 개선

하루의 물 2L씩은 피부 주름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 특히 피부가 건성일 경우 효과를 빨리 볼 수 있다. 당연히 잦은 수분 섭취는 피부의 수분 함유도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분 보충은 독소 배출을 도아 염증 완화 및 주름 개선의 효과도 볼 수 있다.

3. 피로 회복

물은 피로회복에도 도움을 준다. 충분한 수분 섭취는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노폐물 배출을 활발하게 하기 때문에 피로 회복이 빨라진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에 질병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4. 다이어트

하루 물 2L는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준다. 물은 앞서 말했듯이 노폐물 배출과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기 때문에 물 섭취만으로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또한 식사 전에 물을 마셔주는 것은 약간의 포만감을 채워주기 때문에 식사량 조절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공복에 물과 위액이 만날 경우 소화기능이 저하될 수 있으니 소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2l.html
kolaswqetsrq 11.02 04:52
놀라운 계피의 효능

놀라운 계피의 효능

1. 생리통 완화

계피를 섭취하면 소화기계통은 물론 자궁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따라서 생리통, 생리불순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2. 감기 개선

계피가 감기를 개선하는 것은 민간요법에서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감기 때문에 코가 막히거나 열이 날 경우엔 계피 달인 물을 마시거나 간단한 계피차를 마시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또 계피는 몸을 따뜻하게 하며, 혈액순환을 돕는 효능이 있습니다.

3. 항균효과

계피는 항균 효과가 뛰어납니다. 세균을 죽이기 때문에 계피용액을 물에 타서 양치를 하면 충치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4. 탁월한 살충효과

여름철 모기는 성가시게 하면서 질병을 옮기기도 합니다. 이런 모기를 퇴치하는 데도 계피는 요긴합니다. 모닥불에 계피나무나 계피가루를 함께 태우면 모기를 퇴치할 수 있고 집안 곳곳에 두면 개미도 없어집니다. 또한 계피가루를 물에 타서 이불 등에 뿌려주면 진드기 역시 없앨 수 있습니다.

5. 수족냉증에 좋음

계피는 따뜻한 성분인 음식이기 때문에 먹으면 우리 몸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6. 입냄새에 좋은 계피

계피가루를 물에 탄 것으로 양치질을 하면 입냄새 제거에 도움이 된답니다. 계피는 세균이 잘 자라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계피로 양치를 하면 충치예방에도 좋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19.html
kolaswqetsrq 11.02 04:52
젊고 건강하게 사는 방법

젊고 건강하게 사는 방법

1. 하루에 5분씩 달려라!!

달리기를 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평균 3년을 더 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달리기의 효과는 거리나 빈도, 속도와 상관없이 동일하게 나타났습니다.

2. 책임감을 가져라!!

자신의 건강과 웰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화초를 가꾸거나 저녁시간 어떤 영화를 볼지 선택을 하거나 하는 등의 사소한 일이라도 집안일을 돌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결정 사항을 주위 사람에게 의지하는 사람보다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 자원봉사를 하라!!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사망률이 20% 감소하며 우울증은 크게 낮아지는 대신 삶에 대한 만족감과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 때로는 다소 비관주의자가 될 필요도 있다!!

긍정적인 태도는 건강에 아주 좋은 영향을 준다. 하지만 약간의 건전한 비관주의도 같은 효과를 냅니다. 이상만 추구하기보다 현실적인 사람들은 삶에 대해 더 신중하고 시련에 더 준비가 잘 되어 있으며 낙관주의적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삽니다.

5. 일어서라!!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일어서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58.html
kolaswqetsrq 11.02 04:53
겨드랑이 마사지

겨드랑이 마사지

겨드랑이는 몸 안의 독소가 빠져나가는 림프선이 모여있는 곳인데, 만약 이곳의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하면 독소가 쌓여 겨드랑이가 뭉치고 딱딱해질 수 있으며, 또 상체에 부종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독소로 인해 혈액 순환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 몸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혈액 속 수분을 늘리고 자연스럽게 몸이 붓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겨드랑이 마사지를 습관화 하는 게 좋다.

1. 방법

- 팔을 든 상태에서 겨드랑이 부분을 공으로 마사지를 해 주든지 공이 없으면 두드려 준다.

- 양쪽 각각 50번씩, 총 100번을 아침 저녁으로 시행한다.

2. 효과

- 상체의 부종을 제거한다.

- 혈액순환이 잘 돼 손이 찬 것이 개선된다.

- 노폐물로 인해 검게 변한 겨드랑이 색소 침착을 완화한다.

- 겨드랑이와 그 밑 팔뚝이 슬림해 진다.

- 면역 기능을 활성화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15.html
kolaswqetsrq 11.02 04:54
따라해 볼 만한 생활의 지혜

따라해 볼 만한 생활의 지혜

1. 변기가 막혔을 때 샴푸 몇 방울을 떨어뜨린 후 30분 뒤에 물을 내리면 뚫려요.

2. 욕조, 세면대, 싱크대는 베이킹파우더로 닦으면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3. 계란이 바닥에 깨지면 밀가루를 뿌려 닦으면 끝.

4. 상추를 말려 가루로 만든 후 치약에 묻혀 이를 닦으면 새하얀 치아를 얻을 수 있습니다.

5. 상한 우유는 가죽 쇼파, 구두 등을 닦으면 광택이 납니다.

6. 방바닥의 볼펜은 물파스로 닦으면 잘 지워집니다.

7. 주차스티커는 모기약을 뿌리고 닦으면 아주 말끔히 떨어집니다.

8. 전자렌지 청소는 물을 8분간 돌려 수증기를 만든 후 행주로 닦으면 끝.

9. 개미가 생기면 장롱 밑이나 구석에 소금을 뿌리면 퇴치.

10. 바퀴벌레가 생기면 가을 은행잎을 모아 비닐봉지에 구멍을 뚫어 집안 곳곳에 두면 바퀴벌레가 없어집니다.

11. 화분에 식물이 잘 자라지 않을 때는 마늘 몇 개를 으깨어 물에 희석해 뿌려주세요. 화초가 무럭무럭 잘 자라요.

12. 쓰레기봉투가 양이 다 안 찼는데 냄새가 심하면 고민되시죠. 이럴 땐 신문을 물에 적셔 쓰레기봉투 위에 얹어두세요. 신문이 냄새를 쏙 빨아들입니다.

13. 달걀을 삶을 때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리면 나중에 껍질이 잘 벗겨집니다.

14. 열쇠 구멍이 뻑뻑할 때 연필심을 열쇠에 고루 묻힌 뒤 열쇠 구멍에 넣고 돌리세요. 여러 번 반복하면 매끄럽게 잘 열립니다.

15. 프라이팬에 음식 등이 눌어붙어 잘 안 닦이죠. 그럴 땐 팬을 불에 달구었다가 소금을 뿌리고 신문지로 닦아보세요. 냄새도 없어지고 프라이팬도 깨끗해집니다.

16. 색깔 있는 옷을 빨 때 식초나 소금을 약간 넣고 세탁하세요. 원색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옷이 완전히 잠기도록 식초물에 넣고 30분 후 정도 지나면 다음 세탁기에 돌리세요.

17. 흰옷을 빨래할 때 가루세제와 함께 주방세제를 조금 넣어 세탁하세요. 흰옷이 더욱 희게 됩니다.

18. 유리창에 페인트가 묻는 것을 방지하려면 유리창에 비눗물을 미리 묻히세요. 페인트가 묻어도 물걸레로 쉽게 닦입니다.

19. 냉장고 냄새가 심하다면 소주 한 병을 뚜껑을 연 채로 냉장고에 넣어 두세요. 간단한 방법이지만 그 효과는 놀랄 정도랍니다.

20. 감자는 유리나 거울의 기름때, 소주는 냄비의 탄 바닥, 식초는 생선 냄새가 밴 팬을 닦으면 좋아요.

21. 마늘을 빻아 보관할 때 위에 설탕을 살짝 뿌려두면 마늘 색이 변하지 않아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16.html
kolaswqetsrq 11.02 04:54
스마트폰 분실에 대비한 꿀팁

스마트폰 분실에 대비한 꿀팁

전화걸기에서 * # 06 # 을 누르면 IMEI 화면이 뜹니다.

거기 나오는 15자리 숫자가 개인 스마트폰 고유번호입니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그 숫자를 수첩에 메모하여 두었다가 휴대폰 분실 시 각 통신사의 고객센터에 연락해서 고유번호를 불러주면 바로 위치추적을 할 수 있다고 하네요.

주변 분 들 끼리 이 정보를 공유하고 핸드폰에 나온 고유번호를 서로 촬영하여 보관해두면 분실 시 상호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각 통신사에서는 이 방법을 잘 안 알려준다고 합니다. 이 좋은 방법을 왜 안 알려 주는 건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12.html
kolaswqetsrq 11.02 04:55
오줌 적당히 참는 것이 약?

오줌 적당히 참는 것이 약?

소변이 마려울 때 참는 것이 맞을까? 참지 않는 것이 좋을까? 결론은 소변을 적절히 참는 것이 약이 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배뇨 활동은 식습관이나 수분 섭취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성인은 하루 약 1500~2000ml의 소변이 신장에서 만들어지고 방광을 통해 배출된다. 밤 수면 중에는 배뇨를 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수면 도중 소변을 보기 위해 1회 이상 잠에서 깬다면 정상적인 배뇨 형태가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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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방광은 밤에는 배뇨 활동이 없고 낮 동안에 7회 이하로 배뇨를 하며, 1회 배뇨량은 약 300~350ml다. 만약 배뇨 후 2시간 이내에 다시 배뇨 활동을 한다면 빈뇨라고 말하며, 과민성 방광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과민성 방광은 소변을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 없게 돼 약간의 소변이 방광에 모였을 때도 방광에 경련이 일어나며 심한 요의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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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적인 방광의 최대 용적은 약 500ml 정도로, 보통 200ml 정도 소변이 방광에 저장되면 소변이 조금 마렵다는 느낌이 든다. 300ml 정도가 저장되면 화장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350ml 이상 저장되면 소변이 급하다, 400ml 이상이면 소변을 당장 쌀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따라서 약 3~5시간 동안 요의 없이 생활하다 잔뇨 없이 대부분의 소변을 배출하는 것이 가장 정상적인 것이다.
",

과민성 방광 치료는 정확한 진단 이후에 학습·행동치료, 약물치료, 수술치료 등의 방법이 있는데, 이 중 쉽게 할 수 있고 약물치료 이상의 효과적인 방법이 학습·행동 치료법이다. 이 치료법은 정상 배뇨습관을 모방해 비슷하게 배뇨를 시도하는 것으로, 본인의 잘못된 배뇨 습관을 인식하고 스스로 고쳐 나가는 방식이다. 화장실에 너무 자주 간다면 일부러 3시간 이상 소변을 참아내고 배뇨 연습을 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말처럼 쉽지 않다. 아랫배가 터져나가는 느낌이 들고 뭉치고, 아프고, 심지어 소변을 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30초를 잘 참아내면 다음 3분을 참을 수 있으며, 다음으로는 30분까지 소변을 참아낼 수 있게 된다.

잘못된 배뇨 습관을 고치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변을 참는 연습을 하는 것이 단순 약물치료 이상으로 효과를 나타낼 수도 있기 때문에 소변을 적절히 참는 것은 결국 약이 되는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43.html
kolaswqetsrq 11.02 04:56
근심과 희망의 차이

근심과 희망의 차이

근심과 희망의 차이를 당신은 알고 있나요?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근심은 미래에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고,

희망은 미래에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에 대한 기대이다.”

과거 근심에 휩싸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

바들바들 떨 때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근심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흔히 하는 말처럼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내가 근심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고,

내 힘으로 좌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근심으로 낭비할 시간에 사력을 다해

희망을 갖고 뛰는 것이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위해서 지금도 최선을 다하자고

자기 설득을 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당신은 결정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관점을 근심으로 둘 것인지,

희망으로 둘 것인지.

– ‘자기설득 파워’ 중에서/백지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30.html
kolaswqetsrq 11.02 04:57
■ 중종의 여인들-단경왕후 신씨 2편

■ 중종의 여인들-단경왕후 신씨 2편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갔다. 반정 공신들이 끈질기게 요구했다.

“거사할 때 먼저 신수근을 제거한 것은 대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신수근의 친딸이 궁중에 있습니다. 만약 왕비로 책봉한다면 인심이 불안해지고, 인심이 불안해지면 종묘사직에 관계될 터이니, 은정을 끊고 밖으로 내치소서.”

종묘사직을 위해 이혼하라는 뜻이었다. 중종은 “아뢰는 바가 심히 마땅하지만 조강지처인데 어찌 그리하랴?” 라고 되물었다. 내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도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공신들은 “종묘사직의 대계를 위해서는 주저하지 마시고 쾌히 결단하소서”라며 중종을 압박했다.

결국 중종반정 직후 8일 만에 신수근의 딸인 왕비 신씨는 신하들의 강권에 의해 궁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중종은 신하들의 강압에 못 이겨 신씨를 사저로 폐출하기는 했으나, 그녀에 대한 정은 잊을 수가 없었다. 잠을 잘 때나 조석을 들 때나 매양 신씨가 곁에 있는 것만 같았고, 폐출되었다는 사실이 느껴질 때마다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에 그리움이 더욱 더 짙어만 갔다. 신씨 생각에 밤잠을 못 이루던 젊은 중종은 그녀가 나가 있는 집이라도 바라보리라는 일념으로, 자주 높은 누각에 올라 망연히 신씨가 있는 집을 바라보곤 하였다. 신씨는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인왕산에 살며 아침마다 집 뒤 바위에 궁중에 있을 때 잘 입던 분홍치마를 걸어놓아 자신의 안부를 알렸다. 그래서 전설로 전하는 이 바위를 치마바위라고 한다.

이후 중종 역시 중국 사신을 영접하는 곳인 모화관에 행차할 때마다 자신의 말을 신씨에게 보냈는데, 그때마다 신씨는 죽을 쒀서 보냈다. 비록 강제로 이혼을 당하기는 했지만 부부간의 애정은 여전했던 것이다. 그렇게 50여년을 살던 신씨는 71세 때 세상을 떠났다.

그 애절한 사연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죽은 지 180여년이 지난 영조 때 단경왕후로 책봉되었다. 권력의 비정함이 불러온 비극이었다. 비록 폐위되었지만,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 단지 연산군의 장인(신승선)의 일족이자 신수근(신승선의 아들)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폐위되었기 때문에 나중에 정상 참작이 된 것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2_86.html
kolaswqetsrq 11.02 04:57
■ 류성룡과 징비록懲毖錄 2편

■ 류성룡과 징비록(懲毖錄) 2편

선조가 1567년 왕위에 오르면서 유성룡은 선조 재임 기간 동안 대사간, 도승지, 대사헌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며 선조의 신임을 받았다. 1589년 이조판서 재임 시절 정여립 역모 사건이 일어나 그 여파로 동인(東人)내에서 남인(南人)과 북인(北人)으로 당파가 분리되었는데, 이때 북인과 맞서는 남인의 영수(領袖)가 되었다. 붕당의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1590년 5월 우의정을 거쳐, 1591년 좌의정과 이조판서를 겸한 것으로 보아 선조의 신망이 두터웠던 듯하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발발(勃發) 1년 2개월 전 정읍현감으로 있던 이순신을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로, 권율을 의주목사로 천거한 것만 보아도,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도 탁월한 것 같다. 류성룡의 결단과 위기 때마다 그의 지혜로움과 리더십으로 인해 어려운 전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류성룡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 덕분에 해상에서는 이순신이 불리한 전세를 이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여 왜구를 해상에서 물리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은 평양성 사수를 포기하고 피난하려는 선조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해놓고 또 신의주까지 간다면 다시는 서울을 수복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선조는 영변을 향해 길을 떠났고, 류성룡은 순찰사 이원익 등과 함께 명나라 장수를 접대하기 위해 평양에 머물렀다. 이후 류성룡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평양성 탈환을 계획했다. 1593년 1월 평양성을 탈환한 후 이여송이 왜군과의 강화(講和) 협상에 나서자, 이에 반대하고 왜군에 대한 총공세를 주장했다. 1594년 전쟁이 소강상태에 이르자, 선조에게 ‘전쟁에서서 마땅히 지켜야 할 10조목’ 등을 올리면서 전쟁대비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난 후에도 류성룡은 왕명으로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을 순시하면서 전쟁 최전방에서 활약했다. 서애집(西厓集)에는 이런 류성룡의 활약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하지만, 참으로 답답하게도 선조와 대신들은 전란 중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누군가의 공이 커지는 것을 질투해서 모함하는 일 들이 일어난다. 의병을 일으켰던 합천의 곽재우나 이순신 장군이 대표적인 예이다. 류성룡까지도 사사로운 이유를 들어 파직시키려 한 선조를 보면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류성룡같은 재상과 이순신같은 장군이 있었기에 무능하고 시기심 많은 조정 대신들이 득실거리던 조선이 왜군에게 망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파직 당한 후 류성룡은 1599년 2월 고향인 안동 하회로 돌아왔고, 형 유운룡과 옥연정사에서 뱃놀이를 하는 등 여유자작한 생활을 하면서 징비록 집필에 들어갔다. 1604년 7월에는 임진왜란 때의 공을 인정받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녹훈됐지만, 그럼에도 그는 주로 집필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607년 6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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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58
■ 오명汚名을 남긴 남곤 1편

■ 오명(汚名)을 남긴 남곤 1편

‘중종의 참모’라고 하면 대부분 조광조의 이름을 먼저 떠올리지만, 조광조는 한때 중종의 총애를 받았을 뿐, 결국 중종에 의해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조광조를 제거하는 데 1등 공신이자, 영의정까지 지냈던 남곤(南袞, 1471~1527년)이야말로 진정한 중종의 핵심 참모였다.

남곤의 자는 사화(士華), 호는 지정(止亭)이요, 본관은 의령이다. 1489년(성종20년) 생원과 진사시에 합격하고, 1494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남곤이 본격적으로 관직 생활을 한 것은 연산군 시대였다. 1496년(연산군2년) 홍문관 수찬에 임명됐으며 이어 사간원 정언(正言·사간원에 속한 정6품 관직)을 지냈다. 실무에도 상당히 능한 관료였고, 특히 문장력을 인정받았다.

1504년 갑자사화 때 남곤은 서변(西邊)으로 유배됐으나,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연산군 시대의 유배는 오히려 훈장이 됐다. 1509년에는 황해도 관찰사에 올랐으며, 1511년 4월에는 대사헌이 됐다. 남곤은 뛰어난 문장력과 정치적 감각으로 중종의 신임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대제학, 이조판서 등을 지내면서 미래 정승 후보로 떠올랐다.

이런 남곤의 순탄한 행보에 강력한 정치적 라이벌이 등장했으니 바로 조광조였다. 중종 10년 담양부사 박상과 순창군수 김정이 올린 상소문은 정국의 이슈가 됐다. 중종의 첫 왕비(단경왕후)로 반정 후 7일 만에 폐위된 신씨의 복위를 청하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각각 남평과 보은으로 유배됐다. 그런데 조광조가 이에 대한 부당성을 제기하면서, 박상과 김정의 유배를 묵과하면 자신이 사직을 하겠다고 청했다. 이 발언은 정치 신인 조광조의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리는 큰 계기가 됐다.

우참찬으로 있던 남곤은 조광조의 의견에 동의하며 박상과 김정의 처벌에 반대했다. 이처럼 남곤은 조광조가 정계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우호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후 조광조가 중종의 절대적인 총애를 받으면서 신진 세력의 리더로 급부상하자 이를 시기하여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다. 조광조가 정국의 중심에 자리 잡으면서 성리학 이념에 입각한 다양한 개혁 정책이 진행되고, 급기야 기득권 세력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는 ‘위훈삭제’를 감행하자 남곤은 이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지 않았다.

친구인 심정을 끌어들이고 중종 즉위에 공을 세운 홍경주를 포섭했다. 이들은 중종과 잦은 면담을 통해 조광조의 전횡을 알렸으며 ‘주초위왕(走肖爲王)’으로 시작되는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주도하였다. 실록뿐 아니라 ‘연려실기술’ 등 거의 모든 기록에 남곤이 기묘사화의 주모자임을 적시하고 있다. “중종이 조광조와 같은 선비들을 싫어하는 기색이 있는 것을 짐작하고 꾀를 내어 일을 꾸미기 시작했다”는 기록에서는 조광조 제거라는 중종의 의중을 파악한 남곤이 결국 해결사로 나섰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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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4:59
■ 류성룡과 징비록懲毖錄 1편

■ 류성룡과 징비록(懲毖錄) 1편

임진왜란의 일등공신(一等功臣)을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을 첫 번째로 꼽을 것이다. 하지만, 백성과 조정을 버리고 살길을 찾아 피난을 간 선조를 대신해서 영의정으로 전쟁 현장에서 중요한 상황을 판단했던 전시(戰時) 최고 참모로 활약한 류성룡과 그가 남긴 징비록(懲毖錄)의 가치를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선조실록을 통해서 본 류성룡의 공과(功過)에 대해 기록은 대체로 부정적인 기록이 많다. 이는 당시 집권세력인 서인(西人)의 관점에서 기록되었으므로 남인의 영수(領袖)인 류성룡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으로 왜곡되고 폄하되었을 것이다.

징비록(懲毖錄)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1592년(선조 25년)부터 1598년까지의 7년에 걸친 임진왜란의 원인과 경과, 전황, 상황에 대한 반성 등을 자세히 기록한 것이다. 징비록(懲毖錄)에서 ‘징비’는 시경 소비편(小毖篇)에 나오는 문장 “여기징이비후환(予其懲而毖後患)”, 즉 “미리 징계해 후환을 조심한다” 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류성룡은 징비록 서문의 첫머리에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목적을 밝히고 있다. 전란(戰亂)의 발단과 원인을 규명하고 경과를 밝힘으로써 전란에 대한 반성과 재발을 방지하기 위함인 것이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임진왜란을 경험한 류성룡은 1598년 11월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와 ‘징비록(懲毖錄)’을 남겼다. 임진왜란에 관한 기록은 징비록 외에도 오희문의 ‘쇄미록’, 정경운의 ‘고대일록’, 이노의 ‘용사일기’, 조경의 ‘난중잡록’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류성룡이 전란 당시 좌의정과 병조판서, 영의정, 도체찰사 등 최고 직책을 맡고 있었던 상황을 고려하면 류성룡이 남긴 징비록의 가치는 매우 크다. 구체적인 전개 과정과 명나라 군대의 참전과 강화 회담의 뒷이야기, 백성들의 참상 등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는 위치에서 저술한 기록이란 점에서 객관성과 신뢰성이 큰 자료이며, 임진왜란의 역사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징비록은 조선과 일본, 명나라 사이의 외교전을 비롯해 전란으로 인해 극도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생활상, 이순신, 신립, 곽재우 등 전란 당시 활약했던 인물의 공적과 인물평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징비록은 1633년(인조 11년) 아들 유진이 류성룡의 문집인 서애집을 간행하면서 그 안에 처음 수록하였고, 이후 1647년 그의 외손자인 조수익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던 중 16권으로 구성된 징비록이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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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00
■ 조광조의 등장과 죽음 5편

■ 조광조의 등장과 죽음 5편

조광조와 신진사류는 개혁정책을 눈치 없이 끝까지 밀어부친다. 이에 중종도 어쩔 수 없이 위훈삭제를 일부 받아들이지만 중종은 조광조에 대해 마음 속 깊이 앙심을 품게 되었다. 공신 재조사가 이뤄졌을 때 위훈자의 숫자는 70명이 넘었다. 조광조는 가짜로 훈작을 받은 자들을 조사해 이들에게 준 관직, 토지, 노비와 저택 등을 몰수하면서 정치권 대변혁을 준비해나갔다. 조광조의 입장에서 훈구파는 반드시 청산해야 할 대상이자, 적폐 세력이었다. 이 조치로 117명 중 초기에 거짓이 적발된 12명 말고도 76명이 공신 명단에서 삭제됐고, 당연히 직책과 재산도 몰수되었다.

이러한 급진적인 개혁은 훈구파의 강한 반발을 야기시킬 게 뻔한 일이었다. 훈구파들은 중종의 마음이 조광조에게서 이미 떠나있음을 눈치챘다. 중종은 용렬한 자질을 지닌 범상한 인물이었다. 임금에게 도학정치를 끊임없이 설파했으나 임금은 지루하고 귀찮아했다. 더욱이 임금은 조광조 앞에서 자세를 흐트릴 수도 없어 오랜 시간을 꼿꼿하게 앉아 있어야 했고, 눈을 들어 조광조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으며, 무식이 탄로 날지 몰라 질문도 마음 놓고 하지 못했다. 그러니 어떤 때에는 조광조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노골적으로 훈구파 기득권을 박탈하려는 조광조의 움직임에 훈구 세력도 더 이상 방관하지 않았다. 이들은 왕실이나 정치권에 심어둔 정치 세력을 적극 활용해 반격의 기회를 엿봤다. 훈구파는 왕에게 수시로 조광조의 위험성을 알렸다. 경연을 통해 왕을 압박하는 조광조가 왕권까지 넘보는 인물임을 강조했다. 남곤, 심정, 홍경주 등 훈구파들은 후궁인 경빈 박씨와 희빈 홍씨를 통해 중종에게 조광조를 모함하는 한편, 궁중 나인을 시켜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走와 肖를 합하면 趙가 되므로 조 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라는 글씨를 새겨, 거기에 꿀을 발라 벌레가 글자대로 갉아먹게 한 것이다. 그리곤 글자가 새겨진 나뭇잎을 역모의 증거로 중종에게 바치는 정치공작을 벌였다. 또 조광조 일파가 당파를 조직하여 조정을 문란하게 한다고 무고했다. 곧 공신들을 헐뜯어 몰아내고 권력을 잡으려 한다고 끊임없이 모략질을 해댄 것이다.

한때 최고의 참모였지만 왕을 압박할 만큼 강한 개혁 드라이브에 지친 중종은 더 이상 조광조의 후원자가 될 수 없었다. 중종 역시 개혁조치를 한 치의 양보 없이 강도 높게 요구하는 조광조 등의 사림세력에 부담을 느꼈다. 모든 상황은 조광조 일파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1519년 11월 조정은 조광조를 전격 체포하고, 그의 죄상을 알렸다. 중종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사건을 계기로 사림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였다. 기묘사화(1519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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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00
■ 조광조의 등장과 죽음 3편

■ 조광조의 등장과 죽음 3편

개혁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공신에 의해 왕권이 제약당했던 중종 역시 이들을 견제할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성종 때 김종직을 필두로 조정에 등용된 바 있던 사림세력이었다. 이들은 개국공신세력을 뿌리로 하는 훈구파와 달리, 불사이군의 성리학 원칙을 견지하면서 정치에 뛰어들지 않고 향촌에 묻혀 성리학을 탐구하던 재야세력이었다. 사림세력은 도덕성과 수신을 강조하는 성리학이 사회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학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세력을 대표해 개혁의 전면에 나선 인물이 바로 조광조 (1482~1519)였다.

기세가 왕 못지않던 반정공신들 중 박원종 등 반정 실세들이 중종 7년에 이르러 대부분 죽게 되자, 힘의 공백이 생겼고. 중종은 비로소 왕 노릇을 할 기회를 잡게 되었다. 이때 중종은 성균관 유생으로 있던 조광조를 만나게 되었다. 중종은 조광조의 이상정치의 실현방법을 수용하고 실천에 옮기려고 애썼다. 당시는 폭군 연산군이 정치와 사회를 휘저어 놓은 직후라서, 그 수습방안으로 조광조의 이상적인 정치관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종은 홍문관 부제학, 동부승지 등에 조광조를 임명해 늘 가까이에 뒀다. 1518년 10월에는 오늘날 검찰총장에 해당하는 대사헌으로 발탁했다. 파격적인 승진이었다.

조광조는 중종의 신임을 바탕으로 개혁 세력의 선두에 서서 성리학에 입각한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젊은 피를 수혈해 연산군과 차별화되는 왕이 되고자 했던 중종과 조광조의 개혁 의지가 맞물리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깊어졌다. 조광조의 개혁정치를 한마디로 말하면 유교적 이상정치와 도덕정치의 실현이다. 왕이 왕도정치를 수행하고 성리학 이념에 입각한 교화가 백성에게 두루 미치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그가 추진한 개혁정치의 핵심이었다.

민생을 위한 개혁에도 착수해 농민을 가장 괴롭힌 공물(貢物·지방 특산물을 바치는 세금)의 폐단을 시정하고, 균전제 실시로 토지 집중을 완화했다. 아울러 토지 소유 상한선을 정해 부유층의 재산 확대를 막았다. 조광조는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정치 세력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과거시험 대신에 현량과(賢良科)를 실시하여, 숨은 인재등용에 힘썼다. 조광조는 과거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풍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현량과 실시를 강조하여, 1519년 처음으로 현량과가 실시되었다. 현량과의 선출 방법은 유관 기관의 추천을 받아 성품 · 기국(器局) · 재능 · 학식 · 행실 · 지조 · 생활태도 등 일곱 가지를 중심으로 뽑아 임금이 참석한 자리에서 대책(對策, 시무의 방안을 적은 글)만으로 최종 시험을 보여 뽑았다. 과거시험과는 방법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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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01
■ 조광조의 등장과 죽음 1편

■ 조광조의 등장과 죽음 1편

선비는 물에 빠져도 개헤엄을 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조광조(趙光祖, 1482~1519)는 너무나 곧아서 휘어지지 않고 부러져버리는 사람으로, 조선시대 개혁의 아이콘, 곧은 선비의 상징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이름을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하면 총 910건이 나온다. 38세 짧은 생을 살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많은 숫자이다. 그만큼 조광조는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한때는 중종의 절대적인 총애를 받았던 참모였지만, 한순간 역모 혐의를 쓰고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 그러나 그가 죽고 난 뒤, 사림파가 정치의 실권을 차지하면서 조광조는 사림파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된다.

조광조는 감찰 조원강(趙元綱)의 둘째 아들로 한성에서 태어났다. 조광조는 17세 때 북쪽의 어천도 찰방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희천에서 유배중인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수학(修學)했다. 조광조는 천성이 총명할 뿐 아니라 부지런하고 수수해 한훤당의 문하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조광조는 이때부터 시문은 물론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는 데 힘을 쏟아, 20세를 전후해서 가장 성실하고 촉망받는 청년학자로 꼽혔다. 점필재(김종직의 호)의 학통을 이은 한훤당 문하에서도 군계일학이 되었던 것이다.

1499년 한산 이씨와 혼인한 조광조는 이듬해 부친이 사망하자, 부친의 묘소 아래에 초당을 짓고 3년상을 치렀다. 1510년 과거 초시에 응시해 장원으로 합격했으나 이듬해 모친상을 당해 관직 진출이 늦었다. 학문이 깊고 행실이 올곧은 조광조는 관계(官界)에 나가기도 전에 사림파의 촉망받는 선비가 되었고, 그로 인해 23세 때에는 유배되는 몸이 되었다.

1504년(연산군10년) 임사홍(任士洪)이 궁중세력과 결탁하여 신진사림들의 제거를 꾀했다. 곧 연산군의 생모 윤씨가 폐위될 때 신진사류인 이극균 · 김굉필 등이 찬성했다 하여 이들을 처형하게 하고, 나머지 신진사류들을 삭탈관직하거나 유배를 보낸 것이다. 이것을 갑자사화(甲子士禍)라고 하는데, 아직 관직에 오르지도 않은 조광조도 여기에 끼어있었다.

정계의 매서운 현실을 몸소 겪은 조광조는 첫 유배지에서 학문에 더욱 힘쓰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는 1510년(중종5년) 29세 봄, 진사회시(進士會試)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본격적으로 관계에 진출했다. 관계에 진출한 뒤, 조광조는 뛰어난 학문과 인격으로 중종의 신임을 두텁게 받았고 사류들의 명망을 한 몸에 모았다. 조광조의 정치관은 유교를 정치와 교화의 근본으로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한다는 것이었다. 왕도정치의 구체적인 실현방법은 왕이나 관직에 있는 자들이 도학(道學)을 실제로 이행하는 도학(道學)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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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02
■ 중종반정 3편

■ 중종반정 3편

박원종은 곧바로 대비전을 찾아가 정현왕후 윤씨를 설득하여, 진성대군이 왕위를 잇도록 교지를 내리게 했다. 반정군에 동조하거나 도망쳐서 텅 빈 궁에서 반정군은 대비를 모시고 나와 진성대군 이역(李懌)을 왕으로 추대하는 교서를 발표했다.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愼守勤), 신수영(愼守英) 형제와 임사홍을 처단했다. 연산군의 여인 장녹수는 반정군의 칼을 맞은 후, 분노한 군중으로부터 돌을 맞아 순식간에 돌무덤이 만들어졌으며, 연산군의 아들들은 각기 따로 유배되었다가 곧 사사되었다. 연산 역시 군으로 강등되어 강화도 교동에 유배 되었다가 두 달 만에 역질로 죽고 말았다. 잔인한 폭정으로 민심을 잃은 대가였다. 자기 세력도 없이 오직 피바람만으로 절대 권력을 향해 질주했던 최악의 군주 조선 10대 왕 연산군. 20세에 왕위에 올라 12년을 왕위에 있으면서 피바람으로 세운 절대 권력을 오로지 자기의 향락에만 사용했기에 사후 묘호를 받지 못함은 물론, 종묘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폭군의 대명사로 남아있다.

별다른 저항이나 충돌 없이 거사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정현왕후 윤씨의 아들이자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이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오르니 그가 조선왕조 11대 중종(中宗, 재위 1506~1544)이다. 이것이 조선 건국 이후 최초의 반정인 중종반정(中宗反正)이다. 조선왕조에서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을 바꾼 첫 번째 사건이다. 왕조를 바꾸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역성혁명조선건국과는 다르다. 폭정을 일삼는 연산군을 물리치고 새로운 임금을 새워 옳은 정치를 이루려는 반정의 대열에 신하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은 조선 시대 군신 간의 권력 관계가 서서히 재편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중종은 준비되지 않은 왕이었다. 중종반정 당일 날 자기 집 앞으로 군사가 밀려오고 있다는 소리를 듣자, 중종은 이복형인 연산군이 자기를 죽이러 보낸 군사인 줄 알고 자살하려 했다. 그러나 중종 부인 신씨(연산군 궁중세력 대표인물 신수근의 딸)가 집에 도착한 군사가 말머리를 어디로 향하는 가를 보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며 자살을 만류했다. 신씨 말대로 군사들의 말머리는 집 바깥쪽을 향해있어 중종을 죽이러 온 것이 아니라 보호하러 왔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종종은 반정 당일까지도 자기가 왕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 중종이기에 즉위 초에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다. 박원종, 성희안 등 반정공신의 위세에 눌려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오죽하면 중종반정으로 역적이 된 신수근의 딸인 조강지처 신씨 부인도 궁으로 데리고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조강지처 신씨를 지척에 두고도 신씨가 죽을 때까지 궁으로 부르지 못한 채 생이별을 하고 말았다. 신씨가 중종이 궁궐에서 자기 치마라도 볼 수 있도록 인왕산에 자기가 입었던 치마를 항상 걸어 놨다는 애뜻한 인왕산 치마바위 전설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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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종반정 2편

■ 중종반정 2편

그러던 어느 날 박원종에게 신윤무가 찾아왔다. 같은 무과 출신에다 동네 주민이라 그들은 이전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신윤무는 연산군 축출 의사를 은근히 내비쳤다. 누이의 죽음 이후 연산군 축출을 고대하던 박원종은 신윤무의 말을 듣자마자 크게 공분(公憤)하였다. 그날 저녁 성희안이 박원종을 찾아와 마주앉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평생을 충성과 의리로 살았으니 마땅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대장부의 생사는 천명에 달렸으니 어찌 경각에 달린 종묘사직을 보고 구하지 않겠습니까?”라며 반정(反正:나쁜 임금을 폐하고 새 임금을 세움)을 결의했다. 반정 후에는 진성대군(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의 아들)을 옹립하기로 합의했다.

그날 이후 반정 계획은 박원종과 성희안에 의해 착착 진행됐다. 박원종은 무사들을 포섭했고, 성희안은 문신들을 포섭했다. 박원종은 조정 대신들의 의견을 하나씩 물었는데, 조정 대신들 대부분은 망설임 없이 반정계획에 동참하였다. 마침 연산군이 며칠 후 개성으로 행차하겠다는 명령을 공포했다. 박원종과 성희안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연산군이 한양을 비운 사이에 거사를 하면 성공 확률이 높기에 그날을 거사일로 정했다. 연산군 12년 9월2일이었다.

박원종은 거사를 며칠 앞두고 연산군의 처남이자 중종(진성대군)의 장인인 신수근을 찾았다. 아직 중종에게는 반정계획을 알리지 않은 상황이라, 그의 장인인 신수근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신수근과 장기를 두던 박원종은 은근슬쩍 궁(宮)을 들어 바꿔놓았다. 장기의 궁은 왕이기에 궁을 바꿔놓는 것은 곧 왕을 바꾸겠다는 암시였다. 그때 신수군은 장기판을 밀치며 “내 머리를 베라”고 외쳤다. 절대 찬성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신수근은 연산군에게 알리지는 못했다. 박원종이 새로 옹립하려는 왕이 자신의 사위였기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것이다.

전 이조참판 성희안은 지중추부사 박원종, 이조판서 유순정, 군자감부정 신윤무 등과 함께 왕이 장단(長湍) 석벽(石壁)을 유람하는 날을 기하여 거사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왕의 행차가 취소되면서 거사에 차질이 생겼다. 이때 호남 지역에서의 연산군 폐위 거사 격문이 서울에 나돌게 되면서 결국 당초 계획을 강행하였다. 연산군(燕山君) 12년 9월 1일 밤!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등 반정 3대장은 반정(反正)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조선 개국 이래 최초로 신하가 임금을 갈아치우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반정군이 궁으로 들이닥치자 연산군(燕山君)을 위해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박원종은 신수근, 임사홍 등 극소수의 연산군 측근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하들의 호응을 얻어 경복궁에 무혈 입성하였다. 사태를 파악한 시종이나 내관들, 갑사들 모두 도망가 버린 궁궐에는 연산군만이 남아 있었고, 연산군은 옥새를 내어 놓으라는 반정군에게 마치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는 듯이 순순히 옥새를 내 놓고 실성한 사람처럼 멍하니 있었다 한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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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03
■ 사도세자의 죽음 2편

■ 사도세자의 죽음 2편

사도세자는 과연 아버지와의 갈등에서 오는 정신적 압박감으로 광인(狂人)이 되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로 정신병자로 몰렸던 것은 아닐까? 정치적인 이유는 아니었을까?

영조의 아버지 숙종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으나 장성한 왕자는 후에 경종이 된 세자와 연잉군(영조) 단 두 명이었다. 이복형인 세자는 생모 장희빈이 숙종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왕위를 계승하기에는 건강이 약해 세자이면서도 왕위계승자로서의 위치가 견고하지 못했다. 경종은 생모 장희빈의 친정집을 중심으로 한 소론의 지지를 받았고, 장희빈의 죽음으로 복위한 인현왕후를 등에 업고 정국을 주도하던 노론은 세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잉군(영조)을 공공연히 왕위계승자로 거론하였다. 연잉군(영조)은 정쟁(政爭)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조용히 소심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복형인 경종은 왕위에 오르기는 했으나 얼마 있지 않아 후사 없이 죽고, 노론의 주장으로 왕세제로 책봉되었던 영조가 노론의 지지를 받으며 즉위하게 되었다. 노론과 소론의 첨예한 대립을 조절하면서 정치적 안정을 꾀하기 위해 ‘탕평책’을 폈지만, 노론의 적극적인 지지로 왕위에 올랐음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면서 노론의 독주를 깨닫고 이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당시 정권에서 소외된 소론이 정계로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노론에게는 자신들의 기반을 흔드는 위기였다. 따라서 노론은 사도세자를 제거해야만 했다.

영조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생모가 비천한 신분이었던 데 대해 늘 자격지심이 있었고, 왕이 되는 과정에서 일부 세력(소론)에 의해 경종 독살 의혹을 받았음을 의식하면서 심리적으로도 늘 불안했다. 이에 소론과 놀아나는 세자를 희생시킴으로써 자신은 물론 자신을 지지하는 노론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영조는 세자가 죽은 후,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려 그의 지위와 신분을 회복시켜 주었다.

왜 그랬을까? 애원하며 죽어가는 아들을 외면했고, 아비를 살려달라는 세손(정조)의 눈물도 외면했던 그가. 이는 다음 왕위를 이을 세손(정조)을 보호하여 왕실의 안녕을 지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 제공 : KIMSEM과 함께 역사 다시보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2_19.html
kolaswqetsrq 11.02 05:04
중풍 위험 신호

중풍 위험 신호

동의보감에는 엄지와 검지가 뻣뻣해지고 힘이 없어지는 마비 증상이 있으면 곧 중풍이 생길 수 있다는 경고가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증세는 중풍 전조증에서뿐만 아니라 손목의 이상, 목뼈의 이상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증입니다. 반드시 전후 상황을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증상이 실상은 중풍 전조증일 수도 있습니다. 뇌출혈의 경우는 대부분 특별한 전조증이 없습니다. 하지만 뇌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중풍의 경우는 일이 터지기 전에 한 번 두 번 경고 메시지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 글씨를 쓰다가 볼편을 놓치게 된다

- 넥타이를 매는데 잘 매지지 않고 헤맨다

- 젓가락질이 잘 되지 않는다

- 갑자기 혀가 잘 돌아가지 않고 어눌해진다

- 잠깐이지만 정신이 깜빡 나가서 아찔하여 넘어진다

- 어딘가 한쪽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시야 결손

- 물건이 두 개로 보이는 복시 현상

잠깐 이러한 형산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면 그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면서 무심히 넘기기 쉽지만 중년의 나이고 평소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부정맥, 심장병 같은 질환이 있던 사람이라면 이러한 증세가 나타나면 반드시 전문의료인의 진찰을 받아봐야 합니다.

추가로 이러한 증세가 종종 있는 중 아침에 잠자고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는데 한쪽으로 쓰러진다거나 말이 어눌해진다거나, 밥 먹는데 사래가 들린다거나 멀미를 하는 것처럼 심하게 어지럽거나, 두통이 심하거나 또는 술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리면서 구토를 한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지체하지 말고 응급실로 달려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 중풍에 좋은 음식

옥수수, 녹두, 토마토, 바나나, 아몬드, 도토리, 감자, 토란, 당근, 죽순, 오이, 가지, 솔잎 둥

▶ 중풍에 좋은 약초

천마, 강활, 꾸찌뽕, 백련초, 산사, 삼백초, 겨우살이, 익모초, 도꼬마리(창이자), 마가목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43.html
kolaswqetsrq 11.02 05:05
왼쪽으로 자야하는 중요한 이유 7가지

왼쪽으로 자야하는 중요한 이유 7가지

✅ 혹시 잠잘 때 어느쪽으로 해서 주무세요?

잠자는 자세에 따라 우리 몸에 큰 변화가 있다고 하는데요. 수면 자세를 왼쪽 방향으로 해서 자면 건강에 놀랄만큼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왼쪽으로 자면 좋은점 7가지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❶ 속쓰림, 더부룩함 등의 증상을 완화한다

왼쪽으로 누우면 위산이 식도로 역류되는 현상을 방지해 속쓰림 완화와 소화 불량 개선에 도움이 된다. 반면 오른쪽으로 자면 식도괄약근이 이완돼 속 쓰림을 더 악화시킨다.(역류성 식도염의 원인)

❷무호흡증, 코고는 것을 방지한다

주무실때 코고는 분들은 무호흡증도 함께 발생할 확률이 높은데 이 증상을 방치하면 매우 위험하다고 한다. 왼쪽으로 자세를 비틀어 누우면 아래턱이 처지는 것을 방지해 코를 고는 것과 무호흡증을 완화 시킨다.

❸ 소화력을 향상시킨다

왼쪽으로 누워 자면 옆구리와 복부를 자극시켜 장 기능이 개선돼 소화력이 증진된다. 내장 기관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시켜 변비 개선에도 탁월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❹ 심장 질환을 예방한다

심장은 인체의 가장 중요한 장기이다. 왼쪽으로 누워서 잘 경우 심장이 원할하게 박동하여 전신에 피를 공급할 수 있다. 이는 혈액 순환에도 좋기 때문에 숙면에도 도움이 된다.

❺ 태아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임신부일 경우 왼쪽 방향으로 똑바로 누워 자면 태반에 연결된 탯줄에 혈액순환이 더 원활해져 태아의 건강에 유리하다. 반면 오른쪽으로 누워 자는 경우 태아에게 산소, 영양분 등을 공급할 수 없다.

❻ 기억력을 높일 수 있다

순환계의 발달에 도움을 주고 지능 발달과 기억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또 정맥혈의 역류를 방지해 혈액 순환을 향상시킨다.

❼ 독소를 배출한다

림프계의 순환을 도와 몸에 쌓인 독소를 배출해주며 혈액 순환을 돕는다. 혈액이 원활이 공급되면 얼굴이 붓고 피부가 푸석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7_99.html
kolaswqetsrq 11.02 05:05
고지혈증 확 잡는 음식 총정리

고지혈증 확 잡는 음식 총정리

1. 고구마

고구마에는 칼륨이 많이 함유되어있어 혈액속의 나트륨이 배출을 도와 혈관건강을 지켜줍니다. 또 섬유질과 비타민 등 여러 영양소가 풍부합니다.

2. 양파

양파에 들어있는 스테로이드 프로필기이류 화합물의 유지휘발액체는 혈액 안의 지질을 낮추고 동맥경화를 막으며 심근경색을 미리 막고 혈압을 낮춰줍니다.

3. 완두콩

비타민C가 풍부하게 들어있어 몸속에 쌓이는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줍니다.

4. 대추

대추에 함유된 사이클릭 AMP성분은 뇌혈관을 확장해주고 혈액순환을 원활히 해주며 근육과 신경기능을 개선시켜주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5. 등푸른생선

고등어, 참치, 정어리, 연어, 청어 등의 등 푸른 생선에 많이 함유된 오메가3지방산은 혈액 속의 중성지방과 혈압을 낮추는데 효과적입니다.

6. 가지

고지혈증의 원인인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며, 모세혈관을 강화해주어 고지혈증 치료에 좋습니다.

7. 표고버섯

표고버섯에는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을 저하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표고버섯의 렌티나신 성분은 피가 굳어 엉키는 혈전현상에 대항하는 형혈전 작용이 탁월합니다.

8. 오이

오이에 들어있는 섬유소는 음식 찌꺼기를 내보내는 것을 촉진시키고 장관의 콜레스트롤 흡수를 줄입니다. 그리고 오이에 들어있는 말론산프로파놀은 몸 안의 당류가 지방으로 전환되는 것을 억제합니다. 고지혈증에 걸린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인 경우 오이를 많이 먹으면 좋습니다.

9. 마늘

마늘의 효과는 혈중 콜레스테롤, 특히 우리 몸에 유해한 콜레스테롤인 엘디엘(LDL)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혈압을 낮추며 혈전 생성을 감소시켜 줍니다.

10. 땅콩

땅콩에는 불포화지방이 들어있어 피 속의 콜레스테롤을 줄이는데 효과적입니다. 또한 비타민 E도 많이 들어있어 혈관 벽에 혈소판이 들러붙는 수를 줄여주고 핏줄의 유연성을 유지하는데 효과적입니다.

11. 옥수수기름

옥수수기름은 소화율이 높고 안정성이 좋을 뿐 아니라 심장 혈관계질병을 예방 및 치료하는데 좋습니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함유되어있어 콜레스트롤이 동맥벽에 달라붙지 못하게 막아줍니다.

12. 천마

천마는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혈관을 깨끗하게 해주어 고지혈증에 좋습니다.

13. 뽕잎

뽕잎차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며, 루틴이라는 성분이 있어 혈관을 강화시켜줍니다.

14. 호두,밤

오메가3가 함유되어있어 콜레스트롤 수치9 조절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혈중 중성지질 제거하는 작용에도 도움이 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74.html
kolaswqetsrq 11.02 05:06
【연잎꿩의다리】

【연잎꿩의다리】

식물 꿩의다리 중 잎이 연잎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연잎꿩의다리"

꿩의다리가 그렇게 날씬한가요! 그래서 식물 이름에 꿩의다리라고 붙였다고 하네요.

멸종위기식물 2급에 등록되어 자생지는 자꾸 없어지는 희귀식물입니다.

유사종으로 꿩의다리, 참꿩의다리, 좀꿩의다리, 은꿩의다리 등 꿩의다리가 많습니다.

▷ 학명 : Thalictrum coreanum

▷ 분류 : 미나리아재비과

▷ 분포지역 : 한국(강원·황해·평북·평남·함남)

▷ 서식장소 : 산지의 숲

▷ 특징 :

높은 산 바위지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뿌리는 흑갈색이고 곤봉 모양으로 된 굵은 뿌리도 있다. 줄기는 높이 30-60cm이다. 잎은 1-2번 3갈래로 갈라지는 겹잎이며, 둥근 방패 모양이고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잎 뒷면 아래에 방패 모양으로 붙는다. 꽃은 5-8월에 줄기 끝의 원추꽃차례에 피며, 자주색 또는 흰색이다. 꽃받침잎은 4-5장, 꽃이 피자마자 떨어진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98.html
kolaswqetsrq 11.02 05:07
장 건강에 좋은 음식 7가지

장 건강에 좋은 음식 7가지

장 건강에 좋은 음식 다이어트를 위해 장 해독을 하면 체중의 변화뿐 아니라 피부도 깨끗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장해독은 숙변을 제거해 변비를 해결할 뿐 아니라 장내 독소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피부 탄력성 저하, 여드름, 피부 가려움증, 피부염 등의 질환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 해독으로 장을 깨끗하고 튼튼하게 만들려면 채소나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섭취해서 장 기능을 살리고 쾌변을 통해 노폐물과 유해균을 잘 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 속이 깨끗해지면 유익균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림프구가 증가하기 때문에 면역력도 함께 좋아진다.

특히, 식이섬유는 깨끗한 장내 환경을 만드는 데 중요한 성분으로, 장에서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 때문에 변의 부피를 늘려 장벽을 자극해 장의 기능을 활발하게 만든다. 또한 유익균의 영양공급원이 되어 대장 내에서 유익한 균의 성장을 촉진한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 과일 외에 ‘장 건강에 도움을 주는 음식’은 물, 유산균, 해조류, 버섯류, 뿌리채소, 발효음식 등이 있다.

1. 장내 트러블 개선하는 ‘양배추’

양배추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의 연동 운동을 촉진시켜 원활한 배변활동에 도움을 주어 변비 치료 및 예방에 도움이 된다. 또한 양배추에 들어 있는 ‘글루 타민’이란 아미노산이 위장관 세포의 성장과 재생에 도움을 주며, 비타민 U, K가 풍부해 장내 염증과 트러블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

2. 장 운동을 개선하는 ‘사과’

사과에는 불용성 섬유소와 수용성 섬유소인 ‘펙틴’이 풍부해 대장균 등의 유해균을 억제하고 유익균이 번식하기 좋게 만들어주며, 유해물질, 콜레스테롤, 중성 지방 등을 흡착, 배설해 장을 청소하는 등 장의 운동성을 개선해 변비와 설사 해소에 도움을 준다.

3. 변비를 예방하는 ‘우엉’

우엉에는 변비에 좋은 ‘식이섬유’와 ‘올리고당’이 풍부한 데, 식이섬유는 장내 변의 부피를 증가시켜 장을 자극해 변을 쉽게 볼 수 있게 도와준다. 올리고당 성분은 장내 유산균 중 비피더스균의 먹이가 돼 비피더스 균을 증가시키므로 장의 연동운동을 활발하게 해줘 변비를 완화와 체중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4. 배변량을 늘리는 ‘무’

실험 결과에 의하면 변비 유발 물질을 계속 섭취함에도 불구하고 무즙을 투여할 시 배변량이 증가해 무가 변비 개선에 뛰어난 효과가 있음이 나타났다. 또한 무는 식이섬유는 풍부하지만, 칼로리는 낮아서 다이어트에도 좋다.

5. 장을 깨끗하게 하는 ‘쑥’

쑥에는 ‘치네올’이라는 성분이 있어 장 속 대장균 등의 나쁜 균을 죽이고 소화액의 분비를 왕성하게 해 소화작용을 돕는다. 또한 쑥은 장 속 환경의 개선에도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대장이나 소장에 궤양이나 염증이 생겨 잘 치료되지 않는 염증성 장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

6. 장 운동을 촉진하는 ‘생강’

생강, 마늘과 같은 향신채 식품은 장내로 들어가는 음식을 살균해주어 식중독, 장염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생강은 식이섬유가 참외의 7배가 들어 있으며, 매운맛인 진저롤이 위액을 촉진해 소화를 돕고 장을 연동시켜 음식물의 소화를 도와 변비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인 음식이다. 또한 신진대사를 활발히 해 잦은 설사와 장 건강에 도움이 된다.

7. 장 점막을 튼튼하게 ‘당근’

당근에는 장 점막을 튼튼하게 하는 비타민 A가 풍부하며, 식이섬유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장 운동을 도와준다. 또한 장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도와주는 비피더스균 생성 조력자인 비피더스 인자가 있어 변비 등의 기능성 장 질환에 도움이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7_6.html
kolaswqetsrq 11.02 05:08
두부의 효능 총정리

두부의 효능 총정리

❶ 치매 예방

두부에는 레시틴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뇌를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이소플라본 성분이 뇌혈관을 깨끗하게 해주기 때문에 치매 예방에 탁월합니다.

❷ 골다골증 예방

콩에 칼슘이 많다는 사실은 많이 알고 있으시겠죠? 그러니 두부에도 칼슘이 풍부할 수 밖에요. 칼슘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두부에 함유되어있는 이소플라본 성분이 뼈 조직을 새롭게 형성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❸ 심장병 예방

두부에 함유되어 있는 피토스테롤 성분이 심장병 예방에 효과가 있습니다.

❹ 변비 효과

두부에는 식이섬유인 올리고당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변비에 좋습니다.

❺ 노화 억제

아마 사포닌은 인삼하면 많이 생각하는데 두부에도 많이 들어있어요. 이 사포닌이 장을 깨끗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어요.

사포닌은 지방산의 산화를 막아줘 노화를 억제해주고 암과 에이즈의 발병을 억제해주는 효능도 있고요. 또 두부에는 비타민B 와 E가 있는 항산화 작용을 해 세포의 노화를 막아 동안이 되는데 도움을 드립니다.

❻ 다이어트

두부가 다이어트 제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데요 두부는 100g당 79칼로리 정도로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 하는데 그만이죠!

두부를 먹으면 포만감이 오래 가서 다른 음식을 먹지 않게 됩니다. 또 두부는 단백질로 이루어져있고 체내의 지방이 쌓이는 것을 막아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운동하시는 분들이 두부를 많이 섭취하는 것도 바로 이 단백질 때문이랍니다!

두부의 영양성분

❶ 레시틴

신경세포의 활동에 관여하는 신경전달 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원료가 되며 뇌졸중 예방에 효과가 있으며 고시생, 수험생 등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수험생들에게 유익한 식품입니다.

❷ 이소플라본

여성호르몬과 비슷한 작용을 해 식물성 에스트로겐으로 불립니다. 이 성분이 많이 들어있는 콩이나 두부를 갈아 마시게 하였더니 안면홍조, 불면증 개선 등에 도움이 되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❸ 사포닌

이 성분은 혈중 콜레스테롤 낮추고 혈액 속에 과산화지질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아 동맥경화, 고혈압 예방에 좋으며 특히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챙겨 먹어야 할 음식 성분입니다.

❹ 리놀레산과 리놀산

혈관 벽에 끼여 있는 콜레스테롤을 씻어내 혈관 벽을 튼튼하게 하며 고혈압, 동맥경화, 비만개선에 도움이 됩니다.

❺ 불포화 지방

콩이나 두부에 들어 있는 기름성분의 대부분은 불포화지방 혈관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❻ 콩으로 먹을 때보다 두부로 먹을 때

콩으로 먹을 때 65% 영양흡수율을 보이지만 두부로 먹을 땐 95% 영양흡수율을 보이기 때문에 두부로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89.html
kolaswqetsrq 11.02 05:08
식초로 좋아질 수 있는 병 13가지

식초로 좋아질 수 있는 병 13가지

1. 당뇨

당뇨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탄수화물,지방 등 에너지원의 분해를 촉진해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야 하는데 식초가 이러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음식물과 함께 섭취할 경우 어육이나 채소에 식초를 친 요리 등도 많이 먹어 주면 좋다.

2. 고혈압

지방의 합성을 저지하는 작용과 더불어 지방의 분해를 촉진하며, 염분 섭취를 억제하는 기능도 하고, 이뇨작용을 돕는다.

3. 동맥경화

동맥경화는 동맥 속에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이 축적돼 혹처럼 돌출하거나 혈관이, 노화함으로써 일어나게 되며 식초의 일정한 복용이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효과를 낸다.

4. 간장병

간기능이 저하돼 흡수되지 않음과 동시에 각종 유해물질이 해독되지 않고 전신으로 퍼져가는 병인데, 이러한 유해물질의 배설을 촉진시키며 또한 아미노산의 섭취로 인한 단백질 부족현상을 막아 준다.

5. 위장병

위액의 분비를 촉진시켜 줄 뿐만 아니라 강한 살균작용까지 가지고 있어 위장내의 유해한 세균의 번식도 억제해 줌과 동시에

비타민 B1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식욕 부진 해소에 효과적이다.

6. 신장병

신장에(신우염이나 신장염) 이상이 생기면 불필요한 물질을 체외로 배출하는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을 식초를 복용함으로써

항이뇨 호르몬을 조절해 신장이 제기능을 찾도록 만든다.

7. 변비

체내의 신진대사를 높이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장내의 활동이 원활해지고 탄산가스가 발생해 변의를 일으켜 변비가 해소된다.

한 컵의 우유에 술잔 하나의 사과식초를 섞어 마시거나 우유 대신 물에 희석해서 꿀을 섞어 마시면 좋다.

8. 비만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은 것은 남녀 모두의 희망사항으로 특히 주부들의 경우 당질이, 지방으로 변하는 것을 막고 지방의 분해를

촉진하기 때문에 비만 방지효과를 가지고 있다.

9. 불면증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해 찾아오는 불면증을 식초가 칼슘의 흡수 및 정신적인 긴장을 완화시켜 준다.

10. 골다공증

식품 속의 칼슘이 체내에 흡수되는 것을 돕고 칼슘의 체내 흡착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부신피질 호르몬을 조절해 골다공증에 대단히 효과가 있다.

11. 요통

식초에는 초산, 구연산 등의 유기산이 많이 함유돼 있어 젖산의 분해를 촉진하기 때문에 피로를 방지해 허리의 유연성을 부여해 준다.

12. 기미, 피부노화

식초는 피부나 근육내의 젖산을 분해해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작용을 하므로 피부의 노폐물을 남기지 않는다.

13. 만성피로

영양의 밸런스가 깨지거나 무리한 운동으로 대량의 에너지를 소비하면 불완전 연소 된 영양분의 찌꺼기가 혈액 속에 남게돼 피로를 자주 느끼게 된다.

가벼운 운동 후에도 피로가 쉽게 가시지 않는다면 식초 또는 구연산 10~15g정도를 물에 희석해 마시면 단맛도 있고 음료수로

마시기에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3_6.html
kolaswqetsrq 11.02 05:09
건망증 없애는 6가지 확실한 방법

건망증 없애는 6가지 확실한 방법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꾸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것도 많아진다. 하지만 뇌를 잘 이해하면 기억력을 보존할 수 있는 해답이 보인다. 해마의 뇌 신경세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조금씩 파괴되기 시작해, 20세 이후엔 그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다. 1시간에 약 3600개의 기억 세포들이 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이 속도를 늦출 방법은 있다.

1. 걷기 / 뇌 혈류 증가

미국 일리노이대 의대 연구팀이 평균적인 뇌 크기를 가진 사람 210명에게 1회 1시간씩, 1주일에 3회 빨리 걷기를 시키고, 3개월 뒤 기억을 담당하는 뇌세포의 활동 상태를 조사 했더니, 자신의 연령대 보다 평균 세 살 어린 활동력을 보였다. 연구팀은 걷기 운동을 하면 운동 경추가 자극돼 뇌 혈류가 두 배로 증가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이 동영 교수는 “혈류 공급이 원활하면 뇌세포를 죽이는 호르몬이 줄어 뇌가 훨씬 복합적이고 빠른 활동을 수행해 낼 수 있다. 이런 운동은 장기적으로 기억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2. 와인 / 기억 수용체 자극

뉴질랜드 오클랜드의대 연구팀은 하루 1~2잔의 와인이 기억력을 크게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뇌에는 NMDA라는 기억을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있는데, 이것이 알코올에 민감하게 반응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 건국대병원 신경과 한 설희 교수는 “소량의 알코올은 NMDA를 자극할 뿐 아니라 혈관을 확장시켜 혈류도 좋게 한다. 특히 적포도주의 항산화 성분은 뇌세포 파괴도 동시에 막아줘 기억력을 증대시켜준다. 그러나 하루 5~6잔 이상의 과도한 음주는 오히려 뇌세포를 파괴시켜 기억력을 감퇴시킨다”고 말했다.

3. 커피 / 중추신경 흥분제

프랑스국립의학연구소 캐런리치 박사가 65세 이상 성인 남녀 7000명을 대상으로 4년 동안 연구한 결과, 커피를 하루 세 잔 이상 마신 그룹은 한 잔 정도 마신 그룹에 비해 기억력 저하 정도가 45% 이상 낮았다.

캐나다 오타와대 연구팀이 1991~1995년 4개 도시 6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카페인을 꾸준히 섭취한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기억력 테스트에서 평균 31%가량 높은 점수를 받았다.

4. 잠 / 스트레스 호르몬 감소

정신의학자 스틱골드가 인지신경과학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지식을 습득한 날 최소 6시간을 자야 한다.

수면전문 병원 예송수면센터 박동선 원장은 “수면 중 그날 습득한 지식과 정보가 뇌 측두엽에 저장이 된다. 특히 밤 12시부터는 뇌세포를 파괴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 졸이 많이 분비되므로 이때는 꼭 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5. 메모 / 기억을 돕는 노력

우리 뇌의 장기기억 (오랫동안 반복돼 각인된 것) 용량은 무제한이다. 하지만 단기기억(갑자기 외운 전화번호, 그 날의 할 일의 목록, 스쳐 지나가는 상점이름 등)의 용량은 한계가 있다.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정신과 연 병길 교수는 “기억세포가 줄어든 노인은 하루 일과나 전화번호 등은 그때그때 메모하는 것이 좋다. 오래 외울 필요 없는 단기기억들이 가득 차 있으면 여러 정보들이 얽혀 건망증이 더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6. 독서 / 기본 기억력 향상

치매 예방법으로 알려진 화투나 바둑보다는 독서가 더 기억력 유지에 좋다. 경희대병원 연구팀이 바둑, 고스톱, TV 시청, 독서 등 여가 생활과 치매와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독서를 즐기는 노인의 치매 확률이 가장 적었다. 바둑이나 고스톱은 치매 예방효과는 거의 없었다.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원장원 교수는 “독서를 하면 전후 맥락을 연결해 읽게 되므로 단기 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반복해서 훈련하게 돼 기억력증진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6_6.html
kolaswqetsrq 11.02 05:10
【나도풍란】

【나도풍란】

"너도 풍란이가! 나도 풍란이다!" 이란 우스게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나도"란 풍란과 다른 종이지만 비슷하기 때문에 앞에 나도풍란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멸종위기식물 1급종인 나도풍란은 자생지에서는 찾아 보기가 어려운 식물입니다.

지금 우리가 키우고 있는 것은 그 종자를 채종하여 배양한 것입니다.

▷ 학명 : Sedirea japonica

▷ 분류 : 난초과

▷ 분포지역 : 한국(제주·전남)·일본·중국

▷ 서식장소 : 따뜻한 곳의 상록수 나무 줄기나 바닷가 바위 위

▷ 특징 :

한국 남부 지방 따뜻한 곳의 상록수 나무 줄기나 바닷가 바위에 붙어서 자란다. 뿌리는 굵고 긴 수염뿌리인데 땅 속에 있지 않고 공기 중에 노출된 기근(氣根)이다. 줄기는 짧고 마디 사이가 좁으며 비스듬히 선다. 잎은 3∼5개가 2줄로 달리며 줄기 각 마디에 하나씩 어긋나게 나고 두껍고 긴 타원 모양이며 표면에 광택이 있고 끝이 갈라지며 길이가 8∼15cm, 폭이 1.5∼2.5cm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39.html
kolaswqetsrq 11.02 05:11
늙지 않는 비법 10가지

늙지 않는 비법 10가지

평소 습관만 잘 들여도 늙지 않는 비법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매일 매일 아래의 방법대로만 해도 나이에 비해 엄청 젊은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칼로리 섭취를 절반으로 줄인다.鶴의 胃는 항시 절반만...

2. 열을 가해 조리한 음식을 가능한 삼가하고 단순한 재료를 단순하게 조리하여 적당량만 먹는다.

3. 물을 매일 2,000 cc 정도 마신다.

- 사람다운 체형 유지

- 식사 전 30분, 식후 2시간에 마신다.

- 취침 전. 취침 후에 꼭 마신다.

4. 매일 30분정도 걷는다.

- 다리는 제2의 심장이라고 한다.

- 노화는 다리로부터 온다.

- 시선은 15 도 상단을 보고 걷는다.

- 땅을 보고 걸으면 다리가 벌어진다.

5. 호흡을 깊게 서서히 고요히 한다.

6. 무리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

- 과도한 운동은 수명단축,

- 무리한 유산소 운동은 활성산소(세포毒)가 생겨 세포에 악영향

7. 즐겁게 살며 보람을 갖는다.

-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다.

- 현명한 이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것

-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을 발견하는 것

-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으므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8. 항상 타인(他人)과 사귄다.

-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므로 타인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다양한 자극이 되어 생명력을 높인다.

9. 적당한 취미 생활을 한다.

- 몸이 둔하여 움직이기 싫지만 등산, 산책 등 가벼운 운동을 생활화하여유연성을 키우고

- 두뇌 활동을 많이 하게되어 치매예방 도움되는 독서, PC, 두뇌 스포츠인 바둑, 당구 등 많이 하고

10. 자신에게 맞는 약제를 구입 복용한다.

- 延年 益壽開心益智, 건망증 및 불노환 등 관련 약초가 있다

- 식초를 물에 타서 자주 먹으면 血栓症(혈액이 막히는증세) 예방과 지방분해로 인해 혈액순환이 잘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6.html
kolaswqetsrq 11.02 05:11
일단 걸어라

일단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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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걷기는 뇌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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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걷기는 건망증을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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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걷기는 의욕을 북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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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걸으면 밥맛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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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걷기는 비만 치료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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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걷기 요통 치료에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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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걸으면 고혈압도 치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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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걷기는 금연 치료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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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걷는 사람도 뇌 가 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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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스트레스가 쌓이면 일단 걸어라.

11.자신감을 잃었다면 일단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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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몸이 찌뿌드하면 일단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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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마음이 울적하면 일단 걸어라.

14.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일단 걸어라.

15.분노 일면, 일단 걸어라.

16.인간 관계로 얽히는 날, 일단 걸어라.

17.할일 없는 날, 일단 걸어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70.html
kolaswqetsrq 11.02 05:12
손 지압 방법

손 지압 방법

손과 발은 우리 몸의 장기를 모아 놓은 축소판이라고 말할 정도로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매일 3~5분씩 지압점을 꾹꾹 눌러주면 손 지압으로도 온몸의 건강을 시킬 수 있습니다.

✅ 증상별 지압부위

1 머리아플때 2~5분 간격으로 30~50회 눌러준다

2 눈이 충혈되거나 자주 깜빡일 때 2~5분 간격으로 30~50회 눌러준다

3 설사할 때 2~3분 동안 100~400회 밀어주기 (위에서 아래로)

4 식욕이 없을때 1~2분동안 문질러주기

5 변비와 설살 고생할 때 2분간 30회씩 누르기

6 자다가 깨서 울 때 문지르거나 두드리기

7 딸꾹질 날 때 2~5분 동안 30~50회 자극

8 불면증이 있을 때 자기전에 2~3분간 30~50회 누르기

9 자주 깨서 칭얼거릴 때 2~3분 간격으로 30~50회 누르기

10 식욕부진 2~3분 동안 부르럽게 쓸어주기 (위에서 아래로)

11 축농증, 알레르기성 위, 아래로 자주 문질러준다

12 배 아플 때 100~300회 문지르기

13 코가 막힐 때 위,아래로 30회 이상 누르기

어른에게 지압을 할 때는 전용 지압봉이나 나무젓가락, 펜의 뒷부분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아이는 피부도 약하고 어른과 누르는 세기가 다르기 때문에 엄마 손으로 눌러만 줘도 충분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73.html
kolaswqetsrq 11.02 05:13
섹스는 신이내린 최상의 보약이다

섹스는 신이내린 최상의 보약이다

정액 성분이 난소암 세포를 죽이는 효과가 뛰어나다는 연구결과가 화제가 되고 있다. 새삼 섹스가 그렇게 건강에 좋다는 말인가 라는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섹스는 대략 10가지의 건강상 혜택을 주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육희(女六喜) 남육보(男六寶)

여인이 갖추어야 할 육희(六喜)

1) 착 (窄) ᅳ 좁고,

2) 온 (溫) ᅳ 따뜻하며,

3) 치 (齒) ᅳ 꽉 물고 잘근잘근 깨물며,

4) 요본 (搖本) ᅳ 엉덩이를 돌려 흔들며,

5) 감창 (甘唱) ᅳ 즐거워 숨막히는 소리를 지르고,

6) 속필 (速畢) ᅳ 빨리 음액(陰液)이 나와야 한다.

✔ 남자가 갗추어야 할 육보(六寶)

1) 昻 (앙) ᅳ 솟아 오르고,

2) 溫 (온) ᅳ 따뜻하며,

3) 頭大 (두대) ᅳ 머리가 커야 되고,

4) 莖長 (경장) ᅳ 줄기도 길어야 되며,

5) 健作 (건작) ᅳ 건강히 작동하여,

6) 遲畢 (지필) ᅳ 더디게 끝내야 한다.

1. 섹스는 그 자체가 좋은 운동

심폐기능을 향상시키며, 체중 감량에도 도움이 된다.

혈관을 팽창하게 만들어 혈액순환을 좋게하는 것은 물론, 신진대사를 촉진해 몸속 노폐물 제거에 큰 도움이 된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며, 몸에 좋은 고밀도 지단백(H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2. 다이어트 효과

한 차례의 오르가슴에 도달할 때까지 소비되는 칼로리량은 200m를 전력 질주했을 때, 소비되는 칼로리량과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한 번 섹스에 보통.200~400Kcal가 소모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섹스를 상상만 해도 칼로리가 소모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3. 통증 완화

섹스는 몸 구석구석 근육의 긴장을 풀어 휴식상태로 돌아가게 해준다. 이는 마사지 효과와 비슷하다. 섹스는 뇌 속에서 엔돌핀 호르몬 분비를 촉진, 두통 요통 근육통 생리통, 그외 치통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통증을 감소 시키거나 없애 준다고 한다.

실제로 편두통에 걸린 사람의 절반은 섹스행위 중 통증이 훨씬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4. 면역력 강화

성행위 도중에는 면역 글로블린 A의 분비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물질은 감기, 독감 등에 잘 걸리지 않도록 우리 몸을 방어한다.

골반 내로 흡수되는 남성의 정액이 여성의 면역력을 증강 시킨다는 보고도 있다.

5. 순환기 질환 예방

2000년 11월 영국 브리스톨대 샤에이브라힘 박사팀은 10년간 건강한 남성 2,400명을 조사한 결과 1주일에 적어도 3번 이상 섹스할 경우, 심근경색과 뇌졸중 발생률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섹스가 순환기 계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땀을 흘릴 정도로 적어도 20분 이상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섹스가 심장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지만, 부부의 정상적인 성행위 시에는 계단을 걸어 올라갈 때와 같은 압박이 심장에 가해지기 때문에 이로 인해 심장마비가 발생 할 확률은 전체 심장마비의 1%에 불과하다.

6. 미용에도 좋다.

정기적으로 섹스하는 여성은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분비가 활발해져 피부가 좋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스코틀랜드 로열 에든버러병원 연구팀이 3,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 3회 이상 섹스를 하는 사람은 평균 10년(남자 12년 1개월, 여자 9년 7개월) 더 젊게 산다고 평가됐다. 영국 여배우 조앤 콜린스 (70)는 "나는 아직도 40대 처럼 보인다. 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섹스 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7. 노화 방지

성생활은 뇌를 자극해 노화와 치매, 건망증 진행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는 섹스를 통해 분비가 촉진되는 두 호르몬(엔돌핀은 스트레스 완화, 성장호르몬은 체지방 줄이고 근육을강화)의 작용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남성의 경우 음경의 퇴화를 늦춰 발기부전을 예방하며,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증가시켜 근력을 강화한다. 여성의 경우 에스트로겐 분비의 활성화로 뼈가 단단해져 골다공증을 예방 할 수 있다.

8. 전립선 질환 예방

많은 남성들은 나이가 들면 전립선 질환으로 인해 소변을 보는 데,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성생활을 계속해온 남성은 이런 고통을 피할 수 있고, 전립선암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사정할 경우 고환에서 1억 마리 정도의 정자가 배출되면서 전립선 염증을 완화시킨다는 보고가 있다.

9. 자궁 질환 예방

여자가 정기적으로 섹스를 하면 자궁 질환이 줄어들고 자궁이 건강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폐경 후 성관계를 정기적으로 하지 않으면, 질 내부조직과 근육이 약화돼 세균감염에 취약해진다.

10. 정신건강에 좋다.

아름다운 성관계는 따뜻한 사랑을 주고 받는다는 진한 감정을 갖게 해준다. 결과적으로 자긍심을 높여주며 우울증, 무기력, 의욕 저하 등을 치료하는 데에도 효과가 크다고 한다. 이런 효과들 때문에 ‘섹스는 신이 내린 최상의 보약’ 이라는 말까지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02.html
kolaswqetsrq 11.02 05:14
여리박빙如履薄氷 - 살얼음 밟듯이 아슬아슬하다.

여리박빙(如履薄氷) - 살얼음 밟듯이 아슬아슬하다.

같을 여(女/3) 밟을 리(尸/11) 엷을 박(艹/13) 얼음 빙(水/1)

사람은 살아가면서 원하지 않아도 위험과 맞닥뜨린다. 미리 알고 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선조들은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숱한 금언을 남겼다. 바람 앞으로 등잔을 갖다놓지 않아야겠고(風前燈火/ 풍전등화), 한 가닥의 머리칼로 무거운 물건을 매달아서는(一髮千鈞/ 일발천균) 단번에 떨어지니 피해야 한다.

‘세 살 난 아이 물가에 놓은 것 같다’는 속담은 바라보는 부모가 속이 타니 안전한 곳으로 데려갈 일이다. 마찬가지로 초겨울 살짝 언 살얼음(薄氷)을 겁 없이 밟는 것(如履)과 같다는 이 성어도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일을 피하라고 비유적으로 말할 때 많이 사용된다. 줄여서 履氷(이빙)이라고도 한다.

앞서 매사가 두려워 겁을 먹고 벌벌 떨며 조심한다는 戰戰兢兢(전전긍긍)을 소개했는데 이 말도 함께 동양 최고의 시집이라 하는 ‘詩經(시경)’에서 유래한다. 小雅(소아)편 小旻(소민)의 마지막 6연에 나오는 내용을 다시 보자.

‘두려워 벌벌 떨며 삼가는데, 마치 깊은 연못을 건너는 듯하네, 마치 엷은 얼음 위를 걷는 듯하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전전긍긍 여림심연 여리박빙).’ 周(주)나라 말기의 학정에 살아가려면 깊은 연못가에 있는 것처럼,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불안에 떨며 조심한다는 이야기다.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여 피해야 한다는 말이 한꺼번에 3개가 연결되어 특이하다.

‘論語(논어)’ 泰伯(태백)편에는 공자의 문인 가운데 효행으로 으뜸가는 曾子(증자)가 병이 깊어지자 제자들을 불러 한 말에 그대로 인용했다. 자신의 손과 발이 손상된 곳이 없는지 펴 보이게 하면서 말한다. ‘시경에 두려워하고 삼가기를 못가에 서 있듯 하고, 얇은 얼음을 밟듯 하라 했는데 이제야 그런 걱정을 면하게 되었구나(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시운 전전긍긍 여림심연 여리박빙 이금이후 오지면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신체를 훼손할까 두려워하던 근심에서 벗어났다고 그제야 안심하는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11.html
kolaswqetsrq 11.02 05:15
오유선생烏有先生 -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사람

오유선생(烏有先生) -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사람

까마귀 오(灬/6) 있을 유(月/2) 먼저 선(儿/4) 날 생(生/0)

까마귀 烏(오) 글자는 새 鳥(조)와 비슷하지만 한 획이 빠져 조류에 끼워주지 않고 불 灬(화) 부수에 넣는다. 왜 그럴까. 몸체가 온통 검은 까마귀는 눈까지 까매 보이지 않으므로 점을 뺀 글자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까마귀라는 뜻 외에 烏骨鷄(오골계)에서 보듯 ‘검다’는 것을 뜻하고 ‘탄식하다, 왜, 어찌’ 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烏有(오유)는 ‘어찌 있겠느냐’는 뜻으로, 있던 사물이 없게 되는 것을 이른다. 나아가 점잖게 선생을 붙이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중국 前漢(전한)의 문인 司馬相如(사마상여, 기원전 179~117)는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賦(부)의 대표적 작가로 일컬어진다. 그는 戰國時代(전국시대) 趙(조)나라 재상 藺相如(인상여, 藺은 골풀 린)를 흠모하여 이름을 따랐다고 했다. 또 卓文君(탁문군)과의 사랑으로 家徒四壁(가도사벽)의 가난을 이겨낸 이야기는 유명하다.

서정적인 것보다 빼어난 문장으로 직접 서술하는 산문인 부는 한대에 특히 성행했다고 한다. 대표작 ‘子虛賦(자허부)’와 그에 이은 후편 ‘上林賦(상림부)’에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앞의 오유, 子虛(자허), 亡是公(망시공)선생이다. 이름만 봐도 자허(헛것), 어찌 있으리오(오유), 이런 것이 없다(망시공) 등 가공인물을 등장시켜 풍자하는 내용이다.

楚(초)의 사신으로 齊(제)나라에 간 자허가 자국의 성대한 수렵의 모습을 자랑하자, 오유선생은 지지 않고 땅의 광활함을 내세우고, 이를 지켜본 망시공은 모두 잘못됐다고 꾸짖는다. 천자제후의 호화로운 수렵을 꼬집고 군주에 근검절약을 깨우치는 깊은 뜻을 포함했다. ‘史記(사기)’와 ‘漢書(한서)’에 두루 나온다.

우리나라서도 사람이 사라지거나 소식이 없을 때 자주 사용했다. 고려 말기 문신 牧隱(목은) 李穡(이색, 1328~1396)의 ‘午睡(오수)‘라는 시에는 잠을 깨운 아이들을 혼내려 하였더니 사라졌다며 노래한다. ’아이놈들이 모여들어 서로 떠들면서(童稚聚相喧/ 동치취상훤), 악다구니하는 소리 홀연히 귀에 들려(聲急忽觸耳/ 성급홀촉이), 잠을 깨고 불러다가 혼내려 하였더니(覺來欲相質/ 각래욕상질), 모조리 오유선생이요 무시공일세(烏有與亡是/ 오유여망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상식에 어긋나는 사람을 종종 본다. 높은 사람일수록 이전의 잘못을 까마득히 잊고 떵떵거린다. 모두 존재하지 않아야 할 오유들이다. 이들은 건망증이 심하다는 까마귀 고기를 먹은 오유선생임에 틀림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26.html
kolaswqetsrq 11.02 05:15
심광체반心廣體胖 - 마음이 너그러우면 몸도 편안해진다.

심광체반(心廣體胖) - 마음이 너그러우면 몸도 편안해진다.

마음 심(心/0) 넓을 광(广/12) 몸 체(骨/13) 살찔 반(肉/5)

마음과 몸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 중에 ‘마음에 없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범에게 열두 번 물려 가도 정신을 놓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 처했더라도 정신을 차려야 몸을 추스를 수가 있다는 이야기다. 서양의 격언이 떠오른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A healthy mind in a healthy body)’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Decimus Junius Juvenalis)의 시구다.

몸을 우선하여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이 말도 처음에는 검투사들의 육체미에 홀린 젊은이들에게 육체만 신경 쓰지 말고 정신을 위한 공부도 열심히 하라는 충고에서 나왔다고 한다.

서양의 이 말과 통하는 성어가 ‘大學(대학)’에서 유래한 마음이 너그러우면(心廣) 몸이 편해 살이 찐다(體胖)는 이 말이다. 心寬體胖(심관체반)이라고도 한다. 특히 비만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에게는 기겁할 말이지만 마음이 편안하고 관대해야 몸이 항상 윤기가 흐르고 혈색이 좋아 보인다고 이해하면 좋다. 군자는 홀로 있을 때 더욱 언행을 조심한다는 愼獨(신독) 부분 다음에 孔子(공자)의 제자 曾子(증자)가 한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자신의 뜻을 성실히 한다는 전6장의 誠意(성의)편이다.

증자가 말한다. ‘부유함이 집을 윤택하게 하듯이 덕은 자신을 윤택하게 하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빛난다. 그러니 군자는 반드시 자신의 뜻을 성실히 해야 한다(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부윤옥 덕윤신 심광체반 고군자필성기의).’ 이 이야기의 앞부분에 소인배는 한가할 때 좋지 못한 일을 한다는 小人閑居爲不善(소인한거위불선)이나 수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는 十目所視(십목소시) 등의 성어가 등장하여 유명하다.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너그러워져 몸이 항상 상쾌하고 편안하게 되는데 덕이 몸을 윤택하게 만든다고 해석한다.

물만 마셔도 살이 붙는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국민 상당수가 굶주리던 饑饉(기근)이 옛 이야기가 되고 음식물 쓰레기가 산을 이룬다고 하는데 비만의 걱정도 겹쳤다. 이런 사람에게도 음식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남의 이목보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편이 더 낫다는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내면의 세계를 떳떳하게 넓혀 나가면 그 경지가 밖으로 드러나 몸이 편안해지고 항상 혈색이 좋아진다고 보면 좋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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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16
정위지풍鄭衛之風 - 정나라와 위나라의 노래, 노골적인 문장이나 음란한 노래

정위지풍(鄭衛之風) - 정나라와 위나라의 노래, 노골적인 문장이나 음란한 노래

나라 정(阝/12) 지킬 위(行/9) 갈 지(丿/3) 바람 풍(風/0)

중국의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는 고대 周(주) 왕조가 洛陽(낙양)으로 옮긴 東周(동주)부터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이전까지 100여개 제후국이 있었다고 한다. 많게는 1800개국이란 곳도 있는데 그 많은 나라 중에 이름이 남은 五覇(오패) 말고 鄭(정), 衛(위)나라가 오명으로 오르내린다.

두 나라의 노래가 남녀의 애정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것이 ‘詩經(시경)’에 많이 실려 있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약 3000년 전부터 전해지는 시를 모은 가장 오래된 이 시집은 孔子(공자)가 五經(오경)으로 중시하면서 더욱 많이 연구하고 읽힌 책이기도 하다.

시경에는 風(풍) 雅(아) 頌(송) 등으로 구분돼 있고 열다섯 나라의 민요들이 실린 國風(국풍)에 鄭風(정풍)과 衛風(위풍)이 나온다. 오래된 시집인데도 신화적인 내용은 드물고 사회의 현실을 비판한 것이 많아 악랄한 위정자를 비꼬고 전장에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읊었다. 그런 중에 남녀가 자유로이 만나는 연애시가 유난히 많은 곳이 정풍과 위풍이다.

사람의 눈을 피하여 만나는 남녀 간의 사랑을 그린 노래 將中子(장중자), 남자에 버림받은 여자의 안타까운 심정 遵大路(준대로), 우연히 만난 남녀의 사랑 野有蔓草(야유만초), 봄철에 불어난 강물 가로 난초를 꺾어 모르는 남녀끼리 구경 가자고 유혹한다는 溱洧(진유, 溱은 많을 진, 洧는 물이름 유) 등이 정풍에 나오는 노래다.

위풍에는 상대적으로 적으나 남자의 유혹에 넘어가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받은 여인 氓(맹), 남녀 간에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부르는 노래 木瓜(모과) 등이 나온다. 이러한 시가 다른 것에 비해 더욱 음란하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하는 학자도 있는데 음풍의 대명사가 된 것은 공자 이후라고 대체로 본다.

衛靈公(위령공) 편에서 정나라의 음악은 음란하니 몰아내야 한다고까지 했다. 정위의 노래를 이야기한 것은 아니라도 즐거움이 방종으로 치닫지 않아야 한다는 樂而不淫(낙이불음)이나 슬프더라도 도를 넘어 마음을 상하게 할 정도는 안 된다는 哀而不傷(애이불상)을 강조한 것도 같은 의미다.

우리 고전에서도 음탕한 망국의 노래를 정위의 노래라고 인용한 부분이 다수 있다. 근엄한 도학자의 눈으로 보면 도의에 어긋나는 것일 수 있지만 정풍은 너무 심한 낙인이 되어 음란한 남녀의 노래나 시의 대명사가 된 것은 아닐까. 희로애락을 모두 줄 수 있는 음악이 극히 퇴폐적이 아니라면 민간에서 즐기는 것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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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17
빈계사신牝鷄司晨 - 암탉이 울어 새벽을 알리다.

빈계사신(牝鷄司晨) - 암탉이 울어 새벽을 알리다.

암컷 빈(牛/2) 닭 계(鳥/10) 맡을 사(口/2) 새벽 신(日/7)

널리 알려진 속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집안의 여자들을 주눅 들게 하는 남정네의 전유물이었다. 날이 샜다고 울어야 할 수탉이 제 구실을 하지도 못하면서 암탉이 우는 것도 막았다. 가정에서 부인이 남편을 제쳐놓고 떠들고 간섭하면 집안일이 잘 안된다고 나무라는 것이다. 男尊女卑(남존여비)가 뚜렷했던 옛날이라도 무작정 여성을 비하한 것이 아닌 것은 여기서 가리킨 암탉이 중국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음란한 독부 妲己(달기, 妲은 여자이름 달)였기 때문이다.

고대 夏殷周(하은주)의 3왕조 중에 商(상)이라고도 하는 은나라의 마지막 왕이 폭군으로 유명한 紂王(주왕, 紂는 주임금 주)이다. 초기 군사를 잘 이끌어 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주왕에 전리품으로 바쳐진 달기는 요염을 앞세워 완전히 왕을 요리했다. 달기의 환심을 사기 위해 주왕은 가혹하게 세금을 거둬 酒池肉林(주지육림)에서 질탕하게 향락을 즐겼고, 간하는 충신들에겐 숯불로 달군 구리기둥에 기름을 발라 맨발로 건너가게 한 炮烙之刑(포락지형, 炮는 통째로구울 포)을 내렸다.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르자 周(주)의 武王(무왕)이 제후들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주왕 토벌에 나섰다. 은나라의 牧野(목야)라는 곳에서 도탄에 빠뜨린 주왕의 죄상을 열거하며 분투할 것을 당부하는 말을 남긴 것이 牧誓(목서)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으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하는 법이다(古人有言曰 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 고인유언왈 빈계무신 빈계지신 유가지삭). 지금 주왕은 계집의 말만 듣고 백성을 학대하며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 무왕은 사기가 떨어진 70만 군사를 패주시키고 주왕도 자살하자 주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고대 중국의 기록 ‘書經(서경)’ 목서편에 실려 있다.

오늘날 암탉 운운의 속담은 사어가 될 정도로 각계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우선 주민등록 여자인구가 남자를 추월한 女超(여초)사회에 진입했고 여성 공무원 수는 절반을 넘어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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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18
삼심양합三心兩合 - 세 가지 마음가짐과 합쳐야할 두 가지, 독서할 때 바람직한 태도

삼심양합(三心兩合) - 세 가지 마음가짐과 합쳐야할 두 가지, 독서할 때 바람직한 태도

석 삼(一/2) 마음 심(心/0) 두 량(入/6) 합할 합(口/3)

책의 이로운 점이나 독서로 얻게 되는 격언, 성어는 무척 많다. 책을 많이 소장하거나 환경을 이겨내며 잡념을 잊고 공부에 열중하는 선인들을 나타낸 것도 부지기수다. 五車之書(오거지서), 汗牛充棟(한우충동) 등은 많은 책의 소장, 懸頭刺股(현두자고), 螢窓雪案(형창설안) 등은 각고의 노력을 말한 하나의 보기다.

이렇게 열심히 책을 가까이 하고 공부하는 것은 후일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가장 직접적인 이익을 말한 것이 ‘글 속에 천 종의 녹이 있고, 책 가운데 황금의 집이 나온다(書中自有千鍾粟 書中自有黃金屋/ 서중자유천종속 서중자유황금옥)’는 勸學文(권학문)이고 책을 펼치기만 해도 이익이 있다는 開卷有益(개권유익)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이득 말고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을 실천하며 수양에 더 중점을 두는 말도 다수다. 인간의 뇌는 정보에 따라 반응하고 좋은 정보는 독서에 의한 것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독서할 때 세 가지 마음가짐(三心)과 다른 것과 합쳐야 할 두 가지(兩合)란 이 성어도 마음을 단련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정민 지음)에 소개된 내용을 보자. 중국 淸(청)나라 말기의 혁명가 쉬시린徐錫麟/ 서석린, 1873~1907의 독서법이란다. 그는 일찍 독일, 일본 등지로 유학하여 혁명사상을 흡수, 청나라를 타도하려 무장 봉기했다가 실패하고 처형된 사람이다.

세 가지 마음은 먼저 모든 잡념을 배제하고 마음을 오롯이 모아 독서에 몰두하는 전심(全心), 꼼꼼히 놓치지 않고 세밀히 보며 중요 구절이나 대목은 표시하고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물어 깨우치는 세심(細心), 기복 없는 꾸준한 마음 즉 항심(恒心)이다. 두 가지 합칠 것은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길러야 하는 ‘독서와 수신양덕’, 우겨 넣기만 하지 말고 신체 단련을 통하여 공부로 긴장한 심신을 이완하라는 ‘독서와 신체단련’을 가리킨다고 했다.

諸葛亮(제갈량)의 誡子書(계자서)에 군자의 행동을 말한 ‘마음을 고요히 하여 몸을 닦고, 검소하게 덕을 쌓아야 한다(靜以修身 儉以養德/ 정이수신 검이양덕)’란 구절을 좌우명으로 했다니 잘 들어맞는다.

더 앞선 사람의 좋은 말도 보자. 唐(당)의 시인 韓愈(한유)가 아들에게 독서를 권하며 쓴 시 구절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은 뱃속에 들어있는 시와 글들에 달려 있단다(人之能爲人 由腹有詩書/ 인지능위인 유복유시서).’ 宋(송)의 朱子(주자)는 讀書三到(독서삼도)라 하여 책을 읽을 때 입으로 다른 말을 하지 않는 口到(구도), 눈으로 다른 것을 보지 않는 眼到(안도), 마음을 하나로 가다듬고 집중하여 깊이 새기는 심도(心到)를 들었다. 어느 것이나 공부하는 태도, 옳은 사람이 되기 위한 독서를 강조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91.html
kolaswqetsrq 11.02 05:18
창해일속滄海一粟 - 큰 바닷속의 좁쌀 한 알, 매우 하찮고 작은 것

창해일속(滄海一粟) - 큰 바닷속의 좁쌀 한 알, 매우 하찮고 작은 것

큰바다 창(氵/10) 바다 해(氵/7) 한 일(一/0) 조 속(米/6)

‘바닷속의 좁쌀알 같다’란 과장된 비유의 속담이 있다. 넓고 넓은 바닷속에 뜬 조그만 좁쌀 알 만하다면 그 존재가 어떻겠는가. 아주 많거나 넓은 것 가운데 있지만 무시해도 좋을 만큼 매우 작고 하찮은 경우를 이른다. 똑 같은 뜻의 넓고 큰 바다(滄海)에 떠 있는 좁쌀 한 알(一粟)이란 이 성어다. 중국을 대표하는 탁월한 문장가로 北宋(북송) 때의 제1의 시인 蘇東坡(소동파, 1037~1101)가 처음 이 말을 썼을 때는 대자연 속 존재하는 인간의 미미함을 가리켰다.

이름이 軾(식)인 동파는 부친 蘇洵(소순), 동생 蘇轍(소철)과 함께 모두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 들 정도로 문명을 떨쳤다. 대표작이 유명한 赤壁賦(적벽부)다. 적벽은 원래 三國時代(삼국시대) 吳(오)나라의 周瑜(주유)가 蜀(촉)나라와 연합하여 曹操(조조)의 백만대군을 화공으로 격파했던 곳이다.

여기의 적벽은 소동파가 도성에서 쫓겨나 黃州(황주)란 곳으로 좌천되었을 때 자주 들러 울분을 토했던 명승지였다. 동파도 물론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영웅들의 활약상을 생각하면서 전편과 후편의 적벽부를 지었다. ‘전적벽부’에 달밤에 놀이하는 광경을 묘사하고 동료와 인생에 대해 논쟁하던 모습을 기술하면서 이 성어의 비유를 썼다.

바람도 없이 고요한 달빛 아래 일렁이는 물결의 모습은 선경과도 같아 영웅들이 활약했던 적벽대전을 떠올렸다. 주유와 조조가 일전을 벌일 때 배는 천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을 텐데, 그 영웅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한탄하며 자신들의 처지를 비유한다.

‘나뭇잎같은 조각배를 타고 술잔을 들어서 서로 권하니, 우리의 인생은 영원한 천지 속의 하루살이 같이 덧없는 생명이요, 저 드넓은 바다에 뿌려진 한 알의 좁쌀과도 같은 미미한 존재일 뿐이요(駕一葉之扁舟 舉匏樽以相屬 寄蜉蝣與天地 渺滄海之一粟/ 가일엽지편주 거포준이상속 기부유여천지 묘창해지일속).’ 匏는 박 포, 樽은 술통 준, 蜉는 하루살이 부, 蝣는 하루살이 유, 渺는 아득할 묘.

이 성어와 함께 아주 많은 수 가운데서 매우 적은 수를 말하는 九牛一毛(구우일모)나 쌀 창고 속의 쌀 한 톨을 가리킨 太倉稊米(태창제미)도 같은 뜻이다. 어느 것이나 보잘 것 없는 존재를 말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세상 넓은 것을 알고 자신의 위치를 알면 더욱 빛을 발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93.html
kolaswqetsrq 11.02 05:19
물부충생物腐蟲生 - 만물이 썩으면 벌레가 생긴다.

물부충생(物腐蟲生) - 만물이 썩으면 벌레가 생긴다.

물건 물(牛/4) 썩을 부(肉/8) 벌레 충(虫/12) 날 생(生/0)

모든 생물은 반드시 죽어 썩는다. 생명이 없는 무생물이라도 영원히 그 모습을 유지하지는 못한다. 유기물이 미생물의 작용에 의해 분해되는 것이 부패다. 고약한 냄새를 동반한다. 만물이 썩으면(物腐) 벌레가 생겨난다(蟲生)는 이 말은 재앙이 생기는 것에는 반드시 내부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외부의 침입을 부르는 것도 내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부패하게 하는 세균은 권력과 돈과 그리고 명성’(이어령)이라고 했다. 유한한 인간이 이러한 것들에 의해 부패를 재촉하고 생명도 단축되는 것이다.

성어가 먼저 등장하는 곳은 ‘荀子(순자)’의 勸學(권학)편이다. 性惡說(성악설)을 주장했던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의 유학자 순자의 사상을 모은 책이다. 그 부분을 뽑아 보자. ‘모든 사물의 발단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고, 영예와 치욕이 오는 것도 반드시 사람의 덕에 의한다.

고기가 썩으면 벌레가 나오고, 물고기가 마르면 좀이 생기며, 게을러서 사람의 도리를 잊게 되면 재앙이 생기게 된다(物類之起 必有所始 榮辱之來 必象其德 肉腐出蟲 魚枯生蠹 怠慢忘身 禍災乃作/ 물류지기 필유소시 영욕지래 필상기덕 육부출충 어고생두 태만망신 화재내작).’ 蠹는 좀 두. 고기가 부패한 뒤 벌레가 생긴다고 肉腐生蟲(육부생충)이라 한 곳도 있다.

이것이 모든 생물로 넓혀져 널리 사용된 것은 宋(송)나라의 문인이자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의 한 사람 蘇軾(소식, 1037~1101)이 쓴 ‘范增論(범증론)’에서다. 범증은 秦(진)나라 말기 군사를 일으킨 項羽(항우)가 亞父(아부)라 칭할 정도로 믿었던 모사였다. 비록 실패했지만 鴻門之宴(홍문지연)에서 항우에게 劉邦(유방)을 죽이라고 한 그 사람이다.

위협을 느낀 유방은 陳平(진평)의 계책대로 항우와 범증의 사이를 이간질하는데 성공했고 그로써 漢(한)을 세우게 된다. 소식은 이 사실을 언급하고 평한다. ‘사물은 반드시 먼저 썩은 뒤에 벌레가 생기고, 사람은 반드시 먼저 의심하고 난 뒤에 모함이 먹혀든다(物必先腐也 而後蟲生之 人必先疑也 而後讒入之/ 물필선부야 이후충생지 인필선의야 이후참입지).’ 讒은 참소할 참.

어느 정권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지도층의 낯부끄러운 행위가 많이 있었고,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현직 부장판사가 거액의 금품을 받아 구속됨으로써 현직 검사장과 검사장 출신 변호사 등 ‘법조 3륜’이 모두 부패의 치욕을 기록한적도 있었다. 청와대선 비리와 위법이 확인된 관료를 감싸고,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부끄러운 행위로 만신창이가 되어도 아랑곳 않는다. 이 모두 냄새가 진동하는데 당사자만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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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20
역지사지易地思之 -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 -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다.

바꿀 역, 쉬울 이(日/4) 따 지(土/3) 생각 사(心/5) 갈 지(丿/3)

세상에서의 모든 葛藤(갈등)은 자기주장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데서 비롯된다. 칡과 등나무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감아 올라간다. 똑 같은 곳을 가는데 서로가 얽히기만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랑곳 않고 내 주장만 강조하면 평행선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처럼 자기중심적 사고다. ‘너도 옳고 나도 옳은’ 조선 초기 黃喜(황희) 정승의 자세가 언뜻 주관이 없어 보이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할 줄 아는 자세다. 만일 모두가 상대방과 처지를 바꾸어서(易地) 생각해 본다면(思之) 대부분의 오해는 사라지고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孟子(맹자)’의 離婁編(이루편) 하에서 비롯됐다. 夏(하)나라의 시조 禹(우)는 堯(요) 임금 치세 때 홍수를 잘 막아 왕위를 선양받았다. 后稷(후직)은 중국에서 농업의 신으로 숭배 받는다. 이들은 자기의 일을 완성하기 위해 자기 집을 세 번 지나치면서도 들르지 않았다(三過其門而不入/ 삼과기문이불입).

顔回(안회)는 孔子(공자)의 제자로 다른 사람들은 견디지 못할 정도의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安貧樂道(안빈낙도)의 태도를 지켰다. 이 세 사람은 모두 공자에게 어질다는 평을 들었다. 그래서 맹자는 ‘우와 후직, 안회는 모두 같은 길을 가는 사람으로, 서로의 처지가 바뀌었더라도 똑 같이 행동했을 것(禹稷顔子 易地則皆然/ 우직안자 역지즉개연)’이라 표현했다. 여기서 처지가 바뀐다는 것은 태평성대와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라는 뜻이었지만 오늘날 뜻이 확장됐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14.html
kolaswqetsrq 11.02 05:21
수미이취數米而炊 – 쌀 낟알을 세어 밥을 짓다, 몹시 인색하다.

수미이취(數米而炊) – 쌀 낟알을 세어 밥을 짓다, 몹시 인색하다.

셈 수(攵/11) 쌀 미(米/0) 말이을 이(而/0) 불땔 취(火/4)

조의 낟알을 말하는 좁쌀이 작아서인지 작은 물건이나 좀스러운 사람을 말할 때 잘 비유된다. 도량이 좁고 옹졸한 사람을 좁쌀영감이라고 비아냥대는 것이 좋은 보기다. 조그만 것을 아끼려다 오히려 큰 손해를 입을 때도 ‘좁쌀만큼 아끼다가 담돌 만큼 해 본다’란 속담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와 같이 쌀알을 하나하나 세어(數米) 밥을 짓는다면(而炊) 참으로 계획을 세워 일을 잘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참으로 빈한하여 낟알을 센 뒤 밥을 짓는다고 볼 사람은 적고, 아끼는 것이 지나쳐 인색하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 뻔하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아끼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지나치게 인색한 것에는 고개를 돌렸다.

낟알을 세어 밥을 짓는다는 성어는 곳곳에 나온다. 다른 비유와 함께 알기 쉽게 설명한 것에는 먼저 ‘淮南子(회남자)’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중국 前漢(전한)의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전국의 빈객과 방술가들을 모아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泰族訓(태족훈)에 나오는 구절을 보자. ‘땔나무를 재어가면서 부엌의 불을 지핀다든가, 쌀알을 헤아리면서 밥을 짓는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작은 것은 다스릴 수는 있어도, 큰 것은 다스릴 수가 없다(稱薪而爨 數米而炊 可以治小 而未可以治大也/ 칭신이찬 수미이취 가이치소 이미가이치대야).’ 爨은 불땔 찬.

詮言訓(전언훈)에도 등장한다. ‘좁쌀을 헤아려 방아를 찧고, 쌀을 되어 밥을 짓는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 데에는 좋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쓸모가 없다(量粟而舂 數米而炊 可以治家 而不可以治國/ 양속이용 수미이취 가이치가 이불가이치국).’ 舂은 찧을 용. 결국 쩨쩨한 도량으로 큰일을 이룰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여기에서 稱薪而爨(칭신이찬)이나 量粟而舂(양속이용) 등 같은 뜻의 성어를 함께 썼다.

‘莊子(장자)’에는 老子(노자)의 제자 庚桑楚(경상초)라는 사람이 열변을 토하는 데에서 이 말이 나온다. 유능한 사람에게 관직을 주고, 선량한 사람을 높이고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堯舜(요순) 때부터 해온 것이라면서 크게 칭송할 것은 못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한다.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씩 빗질하거나, 쌀알을 한 알 한 알 세어서 밥을 짓는, 그런 쪼잔한 방식으로 어떻게 세상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簡髮而櫛 數米而炊 竊竊乎又何足以濟世哉/ 간발이즐 수미이취 절절호우하족이제세재)’

나라의 예산은 온 국민의 땀으로 모은 것이기에 허투루 사용돼서는 안 된다, 쌀알을 세듯이 지출에 신경 써야 하고, 또 감시도 철저히 한다. 하지만 수시로 공금 유용이나 엉뚱한 곳으로 보조금이 새는 사건이 나타나 국민들의 속을 뒤집는다. 세금에서 작은 돈을 따져도 인색하다는 소리는 안 듣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08.html
kolaswqetsrq 11.02 05:21
부이세어附耳細語 - 귀에 대고 조용히 말하다, 남의 장단점을 함부로 말하지 않다.

부이세어(附耳細語) - 귀에 대고 조용히 말하다, 남의 장단점을 함부로 말하지 않다.

붙을 부(阝/5) 귀 이(耳/0) 가늘 세(糸/5) 말씀 어(言/7)

제 허물은 모르고 남의 흉 들추기는 쉽다. ‘남의 흉이 한 가지면 제 흉은 열 가지’란 속담 그대로다. 그렇게 쉬운 말이라도 한 번 잘못 뱉은 말은 두고두고 올가미가 된다. 이 난에서도 나왔던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란 뜻의 口禍之門(구화지문)이 가장 잘 알려졌다.

남의 말은 하기 쉽고 또 조심해야 한다고 깨우쳐도 설화는 계속되니 그 전에 남의 장점과 단점을 말하지 않는 것이 먼저다. 귀를 가까이 당겨(附耳) 가는 소리로 소곤거리며(細語) 남이 듣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 이 성어다.

조선 초기의 명신 黃喜(황희, 1363~1452)의 일화에서 유래됐다. 그는 18년간 영의정에 재임하며 어진 인품과 청렴한 생활 태도로 백성들이 존경했고 세종에게서 아낌없는 신임을 받았다. 모두의 옳은 점만을 본다고 하여 好好先生(호호선생)이라 불렸던 황희 정승의 젊을 때 이야기가 ‘芝峯類說(지봉유설)’에 실려 전한다. 조선 중기의 명신 李睟光(이수광, 1563~1628, 睟는 바로볼 수)의 저작으로 서양과 천주교 지식을 소개한 책이다. 줄거리를 보자.

벼슬에 오르기 전 황희가 어느 날 길을 가다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들판에서 농부가 두 마리의 소에 멍에를 씌워 밭을 갈고 있는 것을 보았다. 두 마리 소 중에서 어느 소가 일을 더 잘 하는지 물었지만 농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밭가는 것을 멈춘 뒤 황희에게 다가와 귀에 바짝 대고 한 쪽이 낫다고 말한다(輟耕而至 附耳細語曰 此牛勝/ 철경이지 부이세어왈 차우승). 輟은 그칠 철. 황희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왜 귀에 대고 조용히 말하는지 다시 물었다.

‘소가 비록 짐승이지만 마음은 사람과 똑 같습니다(雖畜物 其心與人同也/ 수축물 기심여인동야). 이 소가 나으면 저 소가 못할 것이니 그 말을 들으면 어찌 불평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사려 깊은 농부의 말을 듣고 황희는 벼슬에 오른 뒤 다른 사람들의 장단점을 쉽게 말하지 않았다. 不言長短(불언장단)이나 畜心同人(축심동인)이란 말이 여기에서 함께 나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49.html
kolaswqetsrq 11.02 05:22
물언아사勿言我死 - 나의 죽음을 말하지 말라.

물언아사(勿言我死) - 나의 죽음을 말하지 말라.

말 물(勹/2) 말씀 언(言/0) 나 아(戈/3) 죽을 사(歹/2)

세계 해군의 지휘관 중에도 가장 우뚝한 성웅 李舜臣(이순신) 장군이라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壬辰倭亂(임진왜란) 때 왜선을 연파하여 궤멸시킨 세계 최초의 철갑선 거북선 제작이 첫 손 꼽힐 것이다. 이 거북선이 다시 영광을 차지하는 일이 있었다.

미국해군연구소가 2만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세계해군 역사상 7대 명품 군함에 선정된 것이다. 忠武公(충무공)의 시호를 독점하는 이런 업적 외에 장군의 명언 중에서도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많다.

먼저 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비겁하게 피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가 있다. 장군의 좌우명으로 전투를 할 때마다 이런 각오였으니 연전연승했으리라. 그 뒤에 따르는 말까지 알아두자.

一夫當逕 足懼千夫(일보당경 족구천부, 逕은 길 경)는 죽기로 싸운다면 한 사람이 길을 막아도 천 사람을 두렵게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吳子(오자)의 治兵(치병)편에 요행을 바라면 죽는다는 必死則生 幸生則死(필사즉생 행생즉사)로 나온다는데 목숨을 건 각오이니 그보다 더욱 비장하다.

‘나의 죽음(我死)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勿言)’고 한 이 말도 숨을 거둘 때까지 오직 왜적에 대한 승전과 나라를 위한 임무 완수의 정신이 투철한 데서 나왔다. 왜적이 장군의 용맹에 겁을 먹은 상태에서 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도리어 역습을 하여 아군이 불리해지는 것을 염려했다. 이런 장군도 초기에는 지극히 관운이 없었다. 무과에 급제하고서 평안도와 함경도 등지의 변방을 15년 동안 전전하다 46세 때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제수된 것이다. 왜란 발발 1년 2개월 전이었다.

왜국의 침략이 있을 것에 예상하여 전선을 건조하고 군비를 확충하는 등 철저한 대비를 했기 때문에 1592년 4월 왜란이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맞아 적선을 불태웠다. 玉浦(옥포)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뒤 閑山島(한산도) 대첩과 1597년 丁酉再亂(정유재란) 때의 鳴梁(명량)까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露梁(노량)에서 철수하던 적선을 대파하고도 유탄에 맞고 말았다.

이 때 ‘싸움이 지금 한창 급하니 조심하여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戰方急 愼勿言我死/ 전방급 신물언아사)’는 말을 남기고 바로 숨이 끊어졌다고 ‘李忠武公全書(이충무공전서)’ 등에 기록돼 있다. 그 자리에서 조카인 李莞(이완)이 장군의 죽음을 숨긴 채 전투를 독려했다고 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1545년 음력으론 3월8일)이다. 충무공의 높은 충의를 길이 빛내고 후손들에 애국정신을 높이기 위해 기념일로 제정됐다. 기념행사의 규모가 부침이 있었지만 애국, 희생의 충무공 정신만은 우리 모두가 새길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89.html
kolaswqetsrq 11.02 05:23
중구난방衆口難防 - 여러 사람의 입은 막기가 어렵다.

중구난방(衆口難防) - 여러 사람의 입은 막기가 어렵다.

무리 중(血/6) 입 구(口/0) 어려울 난(隹/11) 막을 방(阝/4)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이 일치되긴 어렵다. 더군다나 이해가 갈린 경우라면 사람마다 각각의 처방을 낸다. 조금씩 양보를 하고 합리적인 차선책을 찾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교육은 받아왔지만 막상 자신이 관련되면 싹 무시한다. 여러 사람이 입을 모아 주장하면(衆口) 막기 어렵다(難防)는 성어는 처음엔 이같이 支離滅裂(지리멸렬)을 뜻하지 않았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앞의 周(주, 기원전 1046년∼771년)나라 때 있었던 이야기가 ‘十八史略(십팔사략)’에 실려 전해오는 이야기는 이렇다. 이 책은 元(원)나라의 曾先之(증선지)가 편찬한 중국의 역사서로 초학자들의 교과서 구실을 했다.

주의 厲王(여왕)은 국정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차 없이 벌을 줬다. 백성들은 불만이 있어도 밀고가 두려워 입을 닫았다. 여왕은 반대하는 백성들이 사라지자 정치를 잘 하는 줄 알고 기고만장했다. 이 때 召公(소공)이 탄압정책에 반대하며 이렇게 간했다.

‘나라가 조용한 것은 비방을 억지로 막은 것에 불과합니다. 백성들의 입을 막는 것은 개천을 막는 것보다 어렵습니다(防民之口 甚於防川/ 방민지구 심어방천)’라며 개천이 막혔다가 터지면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백성들 또한 이와 같으니 다스리는 사람은 그들이 생각하는 말길을 틔워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여왕은 이런 충언을 무시했다가 백성들이 난을 일으키자 달아나 평생 숨어 살게 되었다고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03.html
kolaswqetsrq 11.02 05:23
건강한 삶을 위한 10의 법칙

건강한 삶을 위한 10의 법칙

1. 내 돈의 10%와 내 시간의 10%는 건강에 투자하라.

2. 내 몸의 활력을 10% 더 올리기 위해 10% 더 자고, 10% 더 휴식하라.

3.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10% 더 늘려라.

4. 식사량은 10% 줄여라.

5. 식사시간을 10% 더 늘려라.

6. 물을 하루 10잔 마셔라.

7. 섬유질을 하루 10g 더 섭취하라.

8. 소금섭취를 10g 줄여라.

9. 하루에 10번 웃고 10번 포옹하라.

10. 알코올 섭취량은 10% 줄여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81.html
kolaswqetsrq 11.02 05:24
오이를 꼭 먹어야 하는 이유 14가지

오이를 꼭 먹어야 하는 이유 14가지

오이는 전 세계에서 4번째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야채이며 ‘수퍼 푸드’라 불릴 만큼 건강에 좋습니다.

1. 오이는 체내에 수분을 공급해줍니다.

2. 오이는 신체 안팎의 열을 식혀줍니다.

3. 오이는 독소를 제거해줍니다.

4. 오이는 일일 권장 비타민을 공급해줍니다.

5. 오이는 피부에 좋은 미네랄을 공급해줍니다.

6. 오이는 소화와 체중감소에 도움을 줍니다.

7. 오이는 눈에 활기를 줍니다.

8. 오이는 항암효과를 가집니다.

9. 오이는 당뇨를 치료해주고, 콜레스테롤과 혈압을 낮춰줍니다.

10. 오이는 구강건강에 좋습니다.

11. 오이는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부드럽게 해줍니다.

12. 오이는 뼈의 건강을 촉진시키고, 관절염과 통풍의 통증을 완화시킵니다.

13. 오이는 숙취에 좋습니다.

14. 오이는 신장을 건강하게 해줍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4_5.html
kolaswqetsrq 11.02 05:25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는 법 7가지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는 법 7가지

1. 그 사람을 존중하라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을 고유의 인격체로서 존중해주어야 마음을 열 수 있다. 아주 어린 아이조차도 자신을 존중하는지 아닌지를 100% 직감할 수 있다.

2. 먼저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라

무엇이든 나의 마음을 전달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과 내가 주고자 하는것을 일치 시킬 수 있다.

3.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라

일시적인 관심은 무관심보다 더 큰 상실감을 준다. 한두 번 존중하고 배려해주다가 참지 못해 포기하거나 관심을 꺼버리는 것은 상처만 남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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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 사람 자체에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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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거나 무엇이 되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내 곁에 존재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내 삶은 더 풍부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사람 자체에 감사하라
",

5. 그 사람을 자세히 관찰하라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좋아할 수 있고 좋아하는 만큼 배려해줄 수 있다. 가까운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으로 관찰을 실천하라.

6.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라

자신은 누군가로부터 상처받아 있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배려할 수 있겠는가.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전할 수 있다

7. 그 사람을 격려하라

잘한 일에 대한 칭찬에 그치지 말라. 힘들어하고 지쳐 있을 때 실패하고 좌절하고 실망에 빠져 있을 때 다치고 병들었을 때 갈등을 겪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할 때 격려만이 그 난관을 극복하게 해주는 유일한 힘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7_75.html
kolaswqetsrq 11.02 05:26
식탁에 붙여 놓아야 할 13가지 생활신조

식탁에 붙여 놓아야 할 13가지 생활신조

1. 절제 - 배가 부르도록 먹거나 마시지 말라.

2. 침묵 - 자신과 남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말은 삼가며, 천박한 대화는 피하라.

3. 질서 -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정돈하며, 모든 일은 제 때에 하라.

4. 결심 - 성취해야 할 일은 하도록 결심을 하고 한번 결심한 것은 반드시 행하라.

5. 검소 - 낭비는 하지 말되 너와 이웃에게 선한 일을 주저 말라.

6. 근면 -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항상 유용한 일에 전념하며 필요 없는 행동은 삼가라.

7. 성실 - 속이지 말고 솔직하게 바르게 생각하고 말할 때는 경우에 맞게 하라.

8. 정의 -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남에게 득이 되는 일을 무시하지 말라.

9. 중용 - 극단적인 것을 피하고 당연하다 생각되는 화풀이도 삼가하라.

10. 청결 - 신체, 의복, 집안을 깨끗이 하라.

11. 침착 - 사소한 일이나 부득이하거나 일반적인 사건 때문에 침착함을 잃지 않도록 하라.

12. 순결 - 건강이나 자손을 위한 목적 이외에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평화나 명성을 무디게 하거나 약하게 하거나 해치는데 정절을 사용하지 말라.

13. 겸손 - 겸손은 최고의 무기이며, 소크라테스를 본받아라.^♡^

❤ 이쑤시게 10개를 뭉쳐. 고무줄로 고정 요럴 때 활용해보세요. 효과 끝내줍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3_5.html
kolaswqetsrq 11.02 05:26
오십견

오십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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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들어올리기 힘들어지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질환이 바로 오십견이다. 그렇게 특별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질환이지만, 저절로 나아지는 병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전문의들은 입을 모았다. 특히 조금만 알면 병원에 오지 않고도 조기에 자가치료로 회복하거나 심한 통증과 운동 제한으로 잠 못자는 고통을 예방할 수 있고, 이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면 적극적인 치료로 다시 즐거운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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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견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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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견은 쉽게 말해 어깨가 굳어버리는 질환으로 중년 환자의 어깨 통증의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다. 질환이 생기는 나이대가 주로 40~60세이기에 오십견이라고 부르지만, 경우에 따라 30대나 60대 이상의 고령층에서도 발생한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오십견의 정식 병명은 유착성 관절낭염이다. 또 어깨가 얼음처럼 굳어 있다고 해서 동결견(frozen shoulder)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동결견의 대표적인 증상은 극심한통증과 어깨관절 운동의 제한을 들 수 있다. 어깨관절 주머니의 만성 염증반응으로 인해 극심한 통증이 발생하게 되고, 그 이후에 염증이 가라 앉으면서 염증반응의 결과로 관절주머니가 두꺼워지고 섬유화되면서 어깨관절을 이루는 위팔뼈(상완골)에 유착, 관절 움직임이 제한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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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십견 관리와 치료법

통증 심하지 않으면 꾸준히 스트레칭을 해야 하고, 통증 심하면 약물복용·주사 치료 후 점진적 운동으로 진행 악화 막아야 증상이 호전된다. 그래도 안되면 시술·수술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탓에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딱히 어깨를 많이 쓰지도 않고 운동도 안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서서히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옷도 못 갈아 입는다 △밤에 잘 때 아파서 몇 번을 깬다 △팔이 안 들린다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또 손을 뒤로 돌리는 내회전 동작이 어려워 대변의 처리가 어렵거나 옷이나 속옷을 입고 벗는 것이 매우 힘들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점차 팔을 앞으로 혹은 옆으로 들어올리는 등 전방향의 동작도 할 수 없게 되어 머리를 감거나 빗는 동작도 힘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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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에 따라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하게 된다. 1단계는 통증기다. 이 시기에는 서서히 통증이 심해지면서 그 통증으로 인해 관절운동의 범위가 줄어드는 시기다. 이때 통증은 밤에 누워있는 상태에서 더 심해지기 때문에 수면장애가 동반되기도 하고, 어깨 관절주머니 안의 염증이 심한 단계다. 2개월에서 9개월간 지속된다. 2단계는 강직기로 통증으로 인해 어깨 사용이 줄어들어 통증은 줄지만 견관절 가동범위가 감소하게 된다. 염증은 줄어들어 통증은 감소되지만 이미 관절주머니가 두꺼워져 유연성이 상당히 떨어져 있기에 팔을 들어올리거나 등뒤로 돌리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로, 약 4개월에서 12개월간 지속된다. 마지막 3단계인 용해기는 견관절의 움직임이 점차 정상으로 회복되지만, 일부의 환자에서는 관절운동이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기도 한다. 이런 과정은 1년에서 3년6개월까지 다양한 기간동안 지속되고, 심한 경우 10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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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과 치료방법은

동결견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특별한 원인이 없이 발생하는 일차성, 그리고 회전근개 파열이나 건염, 퇴행성 관절염 등의 어깨의 질환에 의한 통증으로 제한된 어깨운동범위가 지속되거나 상완골 골절, 쇄골 및 견갑골의 골절 등의 외상에 대한 고정치료 후 발생하는 이차성 등이다.

이차성 동결견은 동측 유방수술, 심장 및 호흡기 질환, 경추 신경병증 등의 어깨 외적인 요인과 연관되어 발생하기도 한다. 또 당뇨, 갑상선 질환, 부신피질기능 저하증 등의 전신적 질환을 가진 환자에게서 발생 빈도가 높고, 인슐린 의존성 당뇨병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병의 회복이 더딘 경향이 있다.

동결견은 무엇보다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이에 동결견 유발과 관련된 외상이나 수술 후에는 최소한의 기간 동안 안정을 취한 후 조기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뇨나 갑상선, 부신기능저하증 등의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서 어깨의 간헐적인 통증이 발생하고 그 정도가 점차 심해진다면 조기에 적극적인 치료를 시행해야 한다.

이후 염증이 시작되는 단계로 통증이 심하지 않다면 어깨 스트레칭을 통해 어깨가 굳어가는 강직기로의 진행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 염증이 심해져 극심한 통증이 있는 경우는 스트레칭이 어렵기 때문에 진통소염제와 근이완제등의 경구 약물 복용이나 견관절내 스테로이드 주사를 통해 통증을 경감시킨 후 점진적인 운동치료로 병의 악화를 막는게 중요하다. 가만히 있을 때는 아프지 않은데 운동하면 통증이 생기는 경우는 목욕이나 온찜질 등의 온열치료로 관절의 유연성을 높인 후 스트레칭 운동을 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런 노력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을 경우 수면 마취 후 의사가 환자의 어깨를 조작해 굳어진 어깨 관절 주머니를 이완시켜 주는 마취하 도수 조작술이나 관절경을 이용해 관절 주머니를 유리시키는 관절경적 관절낭 유리술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시술 및 수술 직후 관절운동 범위가 정상에 가깝게 회복되며 보존적 치료에 비해 병의 회복 기간이 짧다. 이런 탓에 증상이 심하고 오래 되거나 빠른 회복을 원하는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치료 방법 중 하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08.html
kolaswqetsrq 11.02 05:27
각성 효과의 에너지 드링크, 예기치 못한 건강 상의 해악

각성 효과의 에너지 드링크, 예기치 못한 건강 상의 해악

에너지 드링크가 몸에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이를 간과하고 별생각 없이 마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피곤한 하루, 각성 효과가 도움이 될 때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작은 캔에 든 엄청난 양의 설탕과 카페인을 고려한다면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습니다. 250mL의 음료에는 설탕이 무려 27.5g이나 들어있다고 하니까요. (각설탕 9개에 달하는 수치랍니다!) 또, 카페인은 80mg이나 들어있습니다.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 보다 훨씬 더 많은 수치죠.

지속적인 에너지 드링크 섭취가 불러오는 건강 상의 문제점과 대신 마실 수 있는 음료수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세요.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고 10분이 지나면, 카페인이 혈관을 타고 온몸에 퍼지며 심장 박동 수가 올라갑니다.

10~45분 뒤, 카페인 효과가 극대화되고 각성 효과 때문에 집중력이 살아납니다. 그러나 30~50분 정도가 지나고 나면 카페인은 체내에 완전히 흡수되고 간은 계속해서 당을 혈관으로 배출합니다. 뇌는 중추신경계를 자극하며 보람이나 행복 등의 감정을 조절하는 호르몬, 도파민을 분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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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뒤면 설탕의 효과는 모두 사라지고, 다시 짜증이 나고 몸이 피곤해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슈가크래시 현상입니다. 약 5~6시간 뒤, 흡수한 카페인의 절반 정도가 사라지고 내적 평화와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 됩니다. 섭취한 카페인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2시간입니다. 몸은 이때 균형을 되찾게 되죠. 이때 되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섭취한 사람의 나이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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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으로 에너지 음료를 섭취하시면 두통이나 짜증, 변비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약 7~12일 동안 매일 마시면 몸은 카페인 섭취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면역을 갖추게 됩니다. 만약 카페인 물질에 몸이 익숙해지면 문제가 커집니다. 잠을 깨기 위해서 더 많은 에너지 음료를 찾게 되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78.html
kolaswqetsrq 11.02 05:28
■ 청계천을 조성한 태종 1편

■ 청계천을 조성한 태종 1편

1410년 8월 8일, 큰비가 내려 청계천의 흙다리였던 광통교(廣通橋)가 무너졌다. 당시 왕이었던 태종은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돌다리를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에 사용한 돌은 정릉에 있는 석물(石物)들로, 이를 모조리 파내 돌다리를 만들게 했다. 정릉은 태조의 계비이자, 태종의 계모인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이다. 원래 덕수궁 근처에 위치했지만, 태종은 왕이 되면서 정릉을 지금의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겼다.

신덕왕후는 세자가 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이방원(태종)의 거듭된 부탁에도 불구하고 정도전과 함께 자신의 아들인 방석(태조의 막내아들)을 세자로 추대했다. 격분한 태종은 ‘1, 2차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방석과 정도전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고, 이 과정에서 태종의 신덕왕후에 대한 미움은 극에 달했다. 왕비의 무덤을 장식한 돌을 파내 다리를 만들었다는 것은 신덕왕후에 대한 태종의 증오가 그만큼 컸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태종은 백성들이 오가며 이 다리를 밟는 것을 상상하며 신덕왕후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꿈꾸었을 것이다. 이처럼 청계천 광통교는 그냥 다리가 아니다. 조선 초기 왕권 장악을 위한 권력 다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의 발전과정에서 복개되었던 청계천이 십 수 년 전 복원되었다. 원래 청계천은 자연적으로 생긴 하천이 아니라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인공하천이다. 1405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 태종이 의욕적으로 새롭게 만든 인공하천이다.

한양이 조선의 수도로 결정되는 과정에 몇 차례 우여곡절이 있었다. 1392년 7월 조선의 수도는 개성이었지만, 태조 이성계의 강력한 의지로 2년 뒤인 1394년 10월 28일 한양으로 천도(遷都)했다. 정종이 왕위에 오르고 1399년 3월 다시 개성으로 천도하면서 한양은 잠시 수도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1400년 왕위에 오른 태종은 5년 뒤 1405년 11월 한양으로 재천도했다.

한양은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한강이 서해 바다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수도로 적합했다. 여기에 동서남북으로 낙산, 인왕산, 목멱산(남산), 북악산 등으로 둘러싸인 분지형의 구조는 도시 방어와 백성 관리에 매우 유리했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한강이 남산 아래에 있다 보니 도심에 흘러드는 물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했다. 도심에 모인 물이 남산에 막혀 바로 한강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비가 많이 오면 한양 도심은 홍수 피해로 큰 몸살을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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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으로 돌아온 태종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도심의 홍수 피해를 미리 막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1406년 1월 인공하천을 만드는 개천(開川) 공사를 실시했다(청계천은 조선시대에 줄곧 개천으로 불렸다. 청계천(淸溪川)이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이후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성부(漢城府)에 소속된 600명에게 개천을 파게 한 것이 청계천 공사의 역사적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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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29
■ 강직의 표상 김종직 1편

■ 강직의 표상 김종직 1편

성종(成宗, 1457~1494년)은 조선전기 문물과 제도를 정비한 업적을 인정받고 있지만, 신숙주, 정인지, 서거정, 정창손 등의 훈구파 대신에 대항해 새로운 정치, 사회 세력을 성장시켜 사화(士禍)라는 피비린내 나는 정쟁(政爭)의 씨앗을 뿌린 점에서 상대적으로 평가절하가 되는 면이 없잖아 있다. 물론 성종이라는 왕의 정치적 리더십이 있었기에 조선 전기 문물과 제도 정비가 가능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사림파라는 신진 세력 적극적인 등용은 성종 시대를 더욱 빛나게 했다. 특히 김종직(金宗直, 1431~1492년)으로 대표되는 영남 사림파의 등장이 주목된다. 사림파의 영수라 불리는 김종직은 누구인가?

김종직은 1498년 무오사화의 단서를 제공하고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한 인물로 기억된다. 조선 전기 훈구파에 대항한 참신한 정치 세력인 사림파의 핵심 인물이고, 후배 사림파를 두루 배출해 조선 전기 영남 사림파가 정치와 사상의 중심을 확보하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했다.

김종직의 자는 계온(季溫), 호는 점필재, 본관은 선산이다. 김숙자의 아들로 1431년 6월 밀양부 서쪽 대동리에서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김숙자는 경상도 선산에 은거한 길재에게 성리학을 배우고, 정몽주, 길재로 이어져 내려온 사림파 성리학을 계승했다. 김종직은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사림파의 학문과 사상을 접할 수 있었다. 1446년 과거에 낙방하는 아픔을 겪었으나, 그때 지은 문장은 모두가 감탄할 정도로 명문이었다고 한다. 결국 1453년 봄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고, 겨울에는 창녕 조씨와 혼례를 치렀다. 1456년 부친상을 당해 낙향해 여묘살이(무덤 근처에서 여막을 짓고 살면서 무덤을 지키는 일)를 했는데, 이때 인근에서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1459년 문과에 합격한 후 중앙 관직에 진출해 승문원의 저작, 박사 등을 역임했으며, 뛰어난 문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1464년 8월에는 당시 조정에서 학자들에게 유행처럼 퍼져있던 천문·지리·음양·율려(律呂)·의약·복서(卜筮)·시사(詩史)의 7학(學)을 유자(儒者)로서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잡학’이라 하여 비판하다가 파직 당했다. 세조는 “김종직은 경박한 사람이다. 잡학은 나도 뜻을 두는 바인데, 김종직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은가?”라며 관직에서 내쫓았던 것이다. 젊은 관료 시절부터 성리학 이념에 매우 충실했던 강직한 김종직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다.

김종직이 본격적으로 활약한 시대는 성종 대였다. 성종은 즉위 후 집현전의 예에 의거해 예문관 인원을 늘려 문학하는 선비를 선발해 모두 경연관을 겸하게 했는데, 김종직은 수찬(修撰)에 선발됐다. 1470년 겨울 김종직은 어머니의 봉양을 이유로 지방 관직을 자처했고, 함양군수로 나가게 됐다. 이때 관내 정자에 유자광이 쓴 시를 걸어둔 것을 보고 즉시 명해 불태워버리게 했다. 유자광과 같은 훈구파 간신을 매우 경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훗날 유자광이 앙심을 품고 무오사화 때 김종직에게 복수의 칼을 휘두르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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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29
■ 다모茶母 1편

■ 다모(茶母) 1편

다모(茶母)는 ‘차(茶) 심부름을 하는 여자’, 즉 관청에서 차를 끓이는 등의 잡무를 담당하는 여성을 말한다. ‘식모(食母)’, ‘침모(針母)’와 더불어 관가나 사대부 집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던 천민이다. 조선시대 사헌부 관원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날 다시청(茶時廳)에 모여 차를 마시곤 했다. 이를 위해 관사에는 궁궐 무수리처럼 허드레일을 도맡아하는 다모(茶母)가 필요하였다. 그러한 본래 역할에서 더 나아가 남성이 수사하기 어려운 양반 부녀자들의 사건에서부터 중요한 역모 사건까지 다루는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 범죄 수사관의 역할까지 맡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오늘날의 여자 경찰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 다모. 그러나, 다모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단 몇 줄뿐이다. 다모는 조선 초 왕족을 치료하는 의녀에서 시작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의술에 관한 시험을 치르는 의녀가 세 번 낙제하면 차 수발을 드는 관비로 전락하여 다모가 되는 것이다.

『의녀는 혜민국 제조(惠民局提調)가 매월 공부한 것을 시험 보아 통(通: 잘함)하고 불통(不通: 잘 못함)한 것을 적어두어, 매월 성적이 좋은 사람 3명을 일일이 베껴 써서 왕에게 아뢰어 월급을 주도록 하되, 그 중에 3번 불통한 자는 혜민국 다모(惠民局茶母)로 정하였다가 3략(略: 보통 잘함) 이상을 채우면 본래 직임에 돌려보내소서.』 《세조실록 9년 5월 22일》

《조선왕조실록》의 이 기록은 의녀로 선발된 여자가 공부를 잘 못하면 일종의 벌로 혜민국의 다모로 보내졌던 사실을 말해준다. 이는 마치 장악원 기생이 재주(가무 능력)가 없으면 함경도 변방의 수자리(국경을 지키는 초소 또는 민병) 군인들을 위한 하급 기생으로 보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모는 부녀자들에 대한 범죄 수사에 가끔 차출되기 시작하였고, 중종 이후 조선 중기부터는 정보·수사 형사로 범죄 수사에만 전념하는 여자 수사관으로 활약하면서 남자들이 상대하기 어려운 사대부 여성들에 대한 수사 및 수색, 부녀자 사체확인, 호화 혼수 등 미풍양속 저해사범 및 과부 보쌈(납치) 단속 등의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처럼 의녀와 다모 사이에는 직분의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에 그들이 담당하던 업무도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즉 여성 수사관의 역할 같은 것은 원래 의녀에게 부여된 임무였으나 의녀들이 때때로 다모로 좌천되어 본래 의녀가 하던 일과 다모의 일이 모호하게 섞이게 되면서 다모에게도 점차 수사관의 역할이 부여된 것으로 보인다. 가령 처음에는 좌천된 의녀들만 수사에 동원되었으나, 긴급하거나 인원이 많이 필요한 사건이 생겼을 때에는 좌천된 의녀뿐만 아니라 본래의 다모도 동원되는 일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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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30
■ 의녀醫女 4편

■ 의녀(醫女)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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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의녀 중 가장 뛰어난 의녀는 중종때 왕을 보필했던 어의녀, 드라마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대장금’이다. 기록에 의하면 약 30년 동안 중종의 ‘어의녀’로 지냈다. 대장금은 의술은 물론이고 요리 솜씨도 뛰어나 중종의 총애를 받았지만, 요리사였다거나 어의라는 구체적 기록은 사실상 없고, 그녀의 행적에 대해서도 뚜렷한 자료는 없다. 사실 ‘장금이’에 대해 직접 언급된 실록의 기록은 딱 9건 뿐이다. (직접 이름이 거론 된 게 9번이고 이름이 거론되진 않았지만 ‘장금이’로 추정되는 의녀에 관한 언급은 물론 더 많다.) 대장금에 대한 첫 실록은 중종 10년이고 마지막 기록은 39년이니, 최소 29년간 궁에서 일했던 의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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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녀의 집안은 양인에게 부과하는 조세나 요역의 부담으로부터 감면 받거나 면제 받았다. 즉, 그녀들은 공로에 따라 물질적 포상을 받았다. 포상 중 가장 으뜸은 천인 신분에서 벗어나 양인이 되는 것이지만, 그 기회가 드물기는 해도 의녀의 신분상승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의녀는 의료에 관한 일만 했을까? 의료 이외에도 의녀들의 활동 분야는 다양했다. 그녀들은 여성범죄 혐의자나, 여성 피해자에 대한 수색, 조사 그리고 사치풍조를 단속할 때는 규방까지 들어가 조사를 할 수 있었다.

의녀의 활동과 지위에 가장 많은 영향(해악(害惡)에 가깝다)을 끼친 왕은 연산군이다. 연산군은 ‘채홍준사(採紅駿使)’ 라는 관청을 두고 의녀를 기생화 했다. 의녀는 시가(詩歌)와 글에 능했기 때문에 사대부와 대적할 정도의 지적 수준을 겸비했기 때문에 술자리 시중을 들게 한 것이다. 한양 각 관청에서 잔치가 있을 때마다 의녀에게 강제로 음악을 배우게 해 기생의 역할까지도 함께 수행하게 하여, 연회가 있거나 행사가 있을 때 기생의 수가 부족하면 화장을 하고 기생으로 참가하여 술자리 시중도 들게 했다. 연산군이 잔치의 흥을 돋울 때 기녀와 함께 의녀를 동원한 것이다.

내의원의 별칭이 약방(藥房)이고, 기생으로 동원되니 의녀들이 ‘약방 기생’이라 불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 후 국가 연회, 양반집 잔치에도 불려 다녔다. 사대부들이 교양을 갖춘 의녀들을 통해 잔치의 품격을 높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천민 여성이지만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유일한 집단으로, 의원을 보조하고 본업 외 수사관, 거기에다가 기생 역할까지 하게 된 것이다. 주요한 임무는 궁녀들에게 침을 놓아 주거나, 비빈들의 해산에는 조산원 노릇을 하는 것이었지만, 한편으로 궁중의 크고 작은 잔치가 있을 때에는 기생이 되어, 원삼을 입고, 머리에 화관을 쓰고, 손에는 색동 한산을 끼고 춤을 추는 무희의 역할도 수행하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의녀가 의술을 배울 시간이 부족해지고 그 폐단이 심해지자, 중종 때부터는 이를 금지하고 아주 엄하게 단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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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31
■ 의녀醫女 2편

■ 의녀(醫女) 2편

의녀의 출신성분은 관비(官婢)이다. 의녀 장금이 "大"라는 칭호를 받아 ‘대장금’이라고 불리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품계를 받았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나마 왕의 주치의로서 활약한 기록을 추측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신분상승을 했다는 기록 또한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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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신체와 관련한 정보는 나라의 극비 사항에 속한다. 조선시대 역대 왕은 믿고 의지하는 의사가 각각 있었다. 선조는 허준, 광해군은 허임, 인조는 이형익을 신뢰하였다. 중종(재위 1506∼1544)이 가장 신뢰하고 의지한 사람은 ‘대장금’이었다. 남성 위주 사회에서 그녀는 어떻게 중종의 신뢰를 얻었을까? 대단한 의술을 가진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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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의녀의 의술 활동이 효과를 거두자 의료 혜택을 확대하기 위해 의녀의 수를 늘렸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3년에 한번 150명을 뽑았는데, 실력이 출중한 70명은 내의원에, 나머지는 지방 의원에 소속하게 했다. 1409년에는 별좌를 두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병자를 치료하게 하였다. 1412년에는 한양 개천 작업에 동원된 역군들이 병이 있을 때 전의감· 혜민국과 함께 치료활동을 했고, 1460년(세조 6년) 혜민국에 합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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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녀는 일반 궁녀와 달리 결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의녀들은 관비 신분이었고 일반 관비보다 더 천시 당했기 때문에 결혼 생활이 쉽지 않았다. 결혼 전 이미 정절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고, 아비 없는 자식을 키우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세간에서는 관기 못지않은 추잡한 여자로 취급당했고, 결혼을 여러 차례 하기도 했으며, 결혼해도 구박받거나 버림받기도 했다. 의녀에게 가장 행복한 결말은 양반의 첩이 되는 것이었다. 의녀를 첩으로 삼을 때는 의녀 대신에 여종 한명을 바쳐서 관비로 넣으면, 의녀는 양인이 되었고 자녀는 서출 양인 신분으로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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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상으로는 천인일 수밖에 없었지만, 체계적인 전문 교육을 받았던 의녀(醫女)들은 왕실 및 명문가 며느리 간택에도 동원되었다. 배꼽이나 은밀한 부위까지 검사해 며느리감을 뽑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목한 배꼽은 아이를 잘 낳고, 얕으면 잘못 낳는다." "배꼽은 우리 몸의 중심이며 오장육부의 관문으로 재운과 건강, 운세까지 판단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의녀의 주된 임무는 궁궐 내 여성의 진찰과 치료였다. TV드라마를 보면 왕실에서 의원과 환자 사이에 발이 처져있고, 실 끝을 잡고 진맥하는 장면을 흔히 보았을 것이다. 제대로 진찰이 될 리가 없다. 특히 대비나 세자빈, 공주, 후궁, 조정 중신들의 부인 등은 남자의원이 직접 진찰하기가 곤란했기에 의녀가 먼저 진찰을 해 내의원과 의논하여 진단한 후 치료까지 직접 담당했다. 또 제생원에서 보관하는 온갖 약재 등을 정리하고 관리하는 일도 겸하고, 사약을 내릴 때도 그 죄인이 여성이면 의녀가 사약을 들고 해당 지역까지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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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32
■ 처용무處容舞에 빠진 연산군

■ 처용무(處容舞)에 빠진 연산군

연산군은 음악과 춤을 좋아했다. 악기 중에서는 특히 호가(胡茄)를 좋아했다. 호가는 북방 유목민들이 갈댓잎을 말아서 만든 악기로 풀피리와 비슷하다. 호가를 좋아한 연산군은 특별히 전국에서 풀피리를 잘 부는 사람들을 불러들이기도 하고, 최고의 호가 연주자인 귀손에게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

연산군은 특히 처용무를 즐겼다.(신라 설화인 《처용설화》에서 비롯하여 처용가면을 쓰고 추는 춤. 국가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는 원래 악귀를 쫓는 놀이였다. 연산군은 처용 탈에 금·은·주옥같은 보석들을 장식해 화려하고 풍성하게 만들고는 그것을 ‘풍두(豊頭)’라고 불렀다. 궁중에서는 연말연시에 악귀를 물리치거나 만복을 기원하기 위해 처용무를 공연했고, 처용무는 흥겨운 축제의 마당이었다. 처용무의 마지막 마당에선 처용들이 너울너울 어지럽게 춤을 추며 빠른 곡조와 격렬한 율동으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연산군은 처용무를 거창하게 공연하기 위해 ‘흥청’이라고 하는 수천 명의 여성예술단과 ‘광희’라고 하는 1000명의 남성예술단을 조직했다. 처용무에서 가장 중요한 춤 동작은 팔을 꺾으며 옷소매를 휘두르는 동작인데, 이 핵심 동작을 일사불란하게 통일시키기 위해 연산군은 당시 최고의 처용무 춤꾼으로 이름 높았던 여산을 초빙해 춤 선생님으로 삼았고, 자기 자신도 여산에게서 처용무를 배웠다. 이렇게 처용무의 춤사위 하나하나까지 눈여겨보고 그것을 통일시키려 한 연산군은 매우 날카로운 광기에 가까운 예술 감각을 소유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불교를 혐오한 연산군은 처용무의 마지막 마당에서 합창되던 ‘영산회상불보살’ ‘나무아미타불’ 등의 불교 가사를 개작(改作)함으로써 처용무를 전혀 다른 형태로 탈바꿈시켰다. 처용무에서 불교 색채를 빼고 나면 무속 분위기가 물씬 풍겨난다. 연산군은 재위 10년이 넘어가면서 한밤중에 직접 처용 탈을 쓰고 광기어린 춤을 추는 일이 잦아졌다. 죽은 자의 말을 하고 죽은 자의 모습을 표현했는데, 마지막에는 죽은 자의 우는 모습을 흉내 내기도 했다.

당시 연산군이 처용무를 추며 불러낸 죽은 자는 다름 아니라 폐비 윤씨, 즉 연산군의 생모였다. 폐비 윤씨의 원혼이 연산군에게 빙의되어 원통한 사연을 처용무를 통해 하소연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산군에게 처용무는 즐거운 예술이 아니라 원귀의 굿판이었고 원한의 통곡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처용가면 뒤에 숨은 연산군의 실제 모습은 통한과 서러움으로 마음의 병을 앓고, 외로움과 처절한 복수심으로 몸부림치는 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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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32
담배보다 더해 내 수명 깎아먹는 1등 요인

담배보다 더해 내 수명 깎아먹는 1등 요인

맛이 있는 것은 물론 몸에 좋은건 쓰다라는 말을 확실하게 뒤집는 식품 한 가지 바로 과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맛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건강상에 있어서도 아주 좋은 영향을 주는 식품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다양한 과일들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고 아울러 많이 먹는 과일 한 가지 바로 사과라고 할 수가 있겠다.

1. 동맥경화 예방

2. 고혈압 예방

3. 잇몸건강에 도움

4. 피부미용 효과

등등 건강상 유익한 다양한 효능 들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 사과는 독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저녁에 사과를 먹으면 위험한 일이 생기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 않나 생각이 된다.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독이라고 이야기를 하기에는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지 않나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저녁에 먹는 사과가 좋다고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그 이유는

1. 활발한 장운동으로 인해 숙면에 방해가 될 수 있다.

2. 아침에 일어나서 속이 더부룩 할 수가 있다.

등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이러한 증상들이 생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사과에 있는 풍부한 식이섬유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아무튼 결론은 보면 알겠지만 독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왠만하면 저녁에 먹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는 것이다. 사과를 떠나서 사실 잘밤에 무언가를 먹는 것 자체가 별로 좋지 않은 건 이미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저녁은 피하고 아침에는 사과를 통해서 건강한 삶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_6.html
kolaswqetsrq 11.02 05:33
저녁에 먹는 사과 정말 독일까요

저녁에 먹는 사과 정말 독일까요

맛이 있는 것은 물론 몸에 좋은건 쓰다라는 말을 확실하게 뒤집는 식품 한 가지 바로 과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맛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건강상에 있어서도 아주 좋은 영향을 주는 식품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다양한 과일들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고 아울러 많이 먹는 과일 한 가지 바로 사과라고 할 수가 있겠다.

1. 동맥경화 예방

2. 고혈압 예방

3. 잇몸건강에 도움

4. 피부미용 효과

등등 건강상 유익한 다양한 효능 들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 사과는 독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저녁에 사과를 먹으면 위험한 일이 생기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 않나 생각이 된다.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독이라고 이야기를 하기에는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지 않나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저녁에 먹는 사과가 좋다고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그 이유는

1. 활발한 장운동으로 인해 숙면에 방해가 될 수 있다.

2. 아침에 일어나서 속이 더부룩 할 수가 있다.

등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이러한 증상들이 생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사과에 있는 풍부한 식이섬유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아무튼 결론은 보면 알겠지만 독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왠만하면 저녁에 먹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는 것이다. 사과를 떠나서 사실 잘밤에 무언가를 먹는 것 자체가 별로 좋지 않은 건 이미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저녁은 피하고 아침에는 사과를 통해서 건강한 삶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한다. 오늘도 모두들 건강한 하루 되시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16.html
kolaswqetsrq 11.02 05:34
◇ 비 오는 날 생선회 피하라는 건 옛날 얘기

◇ 비 오는 날 생선회 피하라는 건 옛날 얘기

비가 내리는 날에는 회를 먹으면 안 된다는 속설이 있다. 건강에 나쁘다거나 맛이 없다는 등 가지각색의 이유가 붙는다. 사실일까?

과거에는 그랬을 수 있다.

먼저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은 여름인데 날이 더워 식재료가 부패하기 쉽다. 또 유통 및 보관 기술이 발전하지 않아 소비자에게 오기까지 신선도가 유지되기 어려웠다.

게다가 비가 오는 장마철엔 어업이 중단돼 오래 보관된 생선으로 회를 뜨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이유가 맞물려 비 오는 계절엔 생선회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을 수 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냉장유통 기술이 발전하기도 했고 횟감 대부분은 양식으로 조달된다. 식중독균 역시 비와는 별 상관이 없다. 부경대 식품공학과 조영제 교수가 넙치 살을 식중독균에 옮긴 뒤 겨울철 평균 습도인 40%, 여름철 70%, 비 오는 날 90%에서 각각 배양했더니 세균 수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습도가 식중독균 증식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 셈이다.

물론 주의해야 할 점은 있다. 생선회 식중독의 주범인 비브리오균은 생선의 살이나 근육까지 침투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껍질 및 내장엔 남아있기 때문에 해당 부위는 되도록 생으로 먹지 않는다. 또 습도 대신 여름철의 높은 기온은 식중독균 증식에 확실히 영향을 끼친다. 조리도구에 의한 교차 오염이 활발히 이뤄지기 때문에 비위생적인 시설에서 다뤄진 생선회는 피하는 게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09.html
kolaswqetsrq 11.02 05:34
제철 양파의 놀라운 효능 7가지

제철 양파의 놀라운 효능 7가지

최근 농수산물 가격이 급등했다. 양파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격이 15kg 기준으로 1년 전보다 96.6%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대책을 내놓고 물가 안정에 나선다고 하니 양파 가격도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가격이 올랐지만 양파의 가성비는 여전히 높다"며 "양파를 자주 먹으면 여러 가지 건강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양파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먹을거리의 하나이면서 건강 증진과 치료를 위해 전통 의료요법에서 약으로 사용돼 왔다. 양파는 대표적인 항암 식품 중 하나다.

음식 섭취로 질병이나 외상으로 인한 통증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질병을 예방하고 증상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식품들이 있다. 만성 통증은 염증 및 염증성 질환들과 연관성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통증을 누그러뜨리는 데 좋은 식품으로 첫 손에 꼽히는 게 바로 양파다. 양파의 놀라운 효능에 대해 알아본다.

1. 면역력 강화

중간 크기의 양파 한 개 기준으로 44칼로리를 지닌 양파는 비타민C 하루 권장량의 20%를 제공한다. 또한 5~10%의 비타민B6, 엽산, 칼륨, 망간을 함유한다. 특히 양파에는 항 알레르기 기능과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케르세틴으로 대표되는 항산화 성분이 들어있다.

2. 골밀도 향상

연구에 따르면, 50세 이상 폐경기 여성을 대상으로 양파 섭취량과 뼈 건강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양파 섭취량이 높은 사람은 골밀도 상태가 더 좋았다. 양파를 전혀 먹지 않는 사람과 골반 골절 위험이 20%넘게 차이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3. 항암 효과

연구에 따르면, 양파에 풍부한 알리신 성분은 돌연변이 물질을 퇴치해 각종 암을 예방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 스위스인과 이탈리아인의 양파 및 마늘 섭취 빈도를 조사한 결과, 양파 및 마늘의 섭취 빈도가 높을수록 암 유발 위험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파 속 항산화 물질은 암과 심장병 예방에 효과적이다.

4. 변비 예방, 다이어트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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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에는 천연 인슐린이라고 불리는 식이섬유인 이눌린이 풍부해 소화에 좋다. 장내 유익한 미생물의 성장을 돕는 이눌린은 변비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혈당량 조절과 영양소 흡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런 식이섬유는 소화 작용과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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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콜레스테롤 감소

한 연구에서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 있는 비만 또는 과체중 여성을 대상으로 양파를 많이 먹는 식단과 양파를 적게 먹는 식단으로 나누어 임상 시험을 진행했다. 8주간의 임상 시험 결과, 두 그룹은 모두 콜레스테롤 감소가 확인됐는데 양파를 많이 섭취한 그룹에서 콜레스테롤 감소폭이 더 컸다.

양파 속 폴리페놀 성분이 이런 효과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양파에 풍부한 알리신은 간세포에 있는 HMG-CoA 환원효소를 억제함으로써 콜레스테롤 생성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알리신은 항 세균, 항바이러스, 항 진균 작용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 혈당 조절

양파에는 크로뮴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크로뮴은 포도당 대사의 항상성을 유지시키는 미량 무기질이다. 크로뮴은 지방대사에 필수적으로 인슐린 작용을 촉진시키고 당뇨병 환자들의 당 수치를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된다.

7. 혈압 낮추기

양파 속 알리신은 일산화질소를 배출해 혈관의 강직성을 떨어뜨려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혈소판이 엉기는 것을 방지하고 혈관 내의 섬유소 용해 작용을 한다. 이러한 효능들을 가진 양파는 결국 심장동맥질환, 말초혈관질환, 뇌졸중 위험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7_5.html
kolaswqetsrq 11.02 05:36
당뇨를 의심해야 하는 뜻밖의 증상

당뇨를 의심해야 하는 뜻밖의 증상

▶ 항상 피곤하고 자꾸 화난다면 검사 받아야

우리 몸은 포도당을 에너지로 이용한다. 그 과정에 필요한 게 인슐린이라는 호르몬. 그런데 당뇨병에 걸리면, 즉 인슐린 분비가 부족하거나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혈중 포도당 수치, 즉 혈당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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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당이 많이 오르면 갈증이 나서 물을 많이 마시게 되고, 소변량이 늘어 화장실을 자주 가고 체중이 빠진다. 흔히 피가 끈적해진다고 표현하는 고혈당 상태가 장기간 유지되면 합병증이 발생한다. 끈적한 피가 미세한 혈관을 막으면 손과 발이 저리고, 심혈관 질환을 유발한다. 고혈당이 유발하는 뜻밖의 증상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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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피로

종일 피곤하다. 심지어는 밤에 푹 잤는데도 그렇다면 당뇨가 원인일 수 있다. 혈당 수치가 높으면 몸은 당분을 처리하기 위해 과로하게 된다. 그 결과 피곤이 가시질 않는 것. 혈당이 높으면 탈수를 유발하기 때문에도 피곤해질 수 있다. 심한 피로와 더불어 갈증이 나고 소변이 자주 마렵다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❷ 산만함

이상하게 일이 안 되고 집중하기 어렵다면 당뇨 검사를 받아보자. 혈액 속 포도당의 양이 너무 많으면 작은 혈관에 손상이 간다. 뇌에 산소와 영양을 충분히 공급하기 어려워지고 그 결과 생각하고 말하고 배우는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❸ 디저트

기운이 없으면 단 음식이 생각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설탕은 쉽게 분해되기 때문에 빠르게 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다. 그러나 단 음식을 갈망하는 일이 최근 들어 빈번하다면 혈당 수치가 균형을 잃은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❹ 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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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널을 뛴다. 급격히 화를 내다가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무슨 일이지? 생각하는 일이 잦다면 당뇨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혈당이 너무 높거나 낮으면 에너지 수준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그 결과 신경이 곤두서고 분이 일고 안절부절못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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❺ 시력

혈당이 높으면 시야가 흐릿해진다. 시력도 떨어질 수 있다. 드물지만 눈앞에 먼지나 벌레 같은 게 떠다니는 비문증 증상이나 사물이 비뚤게 보이는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이상을 느꼈다면 방치하지 말고 즉시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99.html
kolaswqetsrq 11.02 05:36
내 몸이 보내는 위험신호 20가지

내 몸이 보내는 위험신호 20가지

1. 눈꺼풀 안쪽이 새빨갛다.(결막염)

스트레스에 의한 다혈증.

눈꺼풀 안쪽이 빨갛고 동시에 가렵거나 아프고 눈곱이 끼면 결막염을 의심 하지만 이러한 증상없이 단지 붉기만 한 경우에는 다혈증(적혈구 증가)을 생각해 보는것이 좋음.

2. 눈꺼풀이 심하게 떨린다 - (갑상선 기능 항진증)

눈꺼풀이 잔물결치듯이 떨리면 갑상선 기능항진증을 의심

3. 검은자위가 뿌옇게 흐리다 - (백내장)

검은 자위의 한 중간에는 수정체라는 것이 있는데 거울로 봤을 때 이것이 뿌옇게 흐려 있으면 백내장일 가능성이 높다

4. 흰자위가 선명한 황색으로 변해간다 - (황달)

나이가 들어 흰자위가 누렇게 탁해지는 것은 단순한 노화현상이나 젊은 나이에 선명한 황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황달을 의심

5. 혀에 갈색 이끼같은 태가 낀다 - (위염)

혀를 봤을때 갈색의 이끼같은 것이 있다면 위의 이상을 나타내는 신호 옅은 갈색이면 걱정할 정도는 아님

6. 혀 뒤쪽의 정맥이 붓는다 - (심부전)

7. 혀를 내밀 때 똑바로 내밀 수 없다 - (가벼운 뇌혈전)

뇌에 무엇인가의 장애를 일으키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 판단은 의사에게...

8. 입에서 냄새가 난다 - (설태, 기관지 확장증)

일반적으로 구취는 치질환에 의해 발생하나 소화기 이상으로 혀에 하얗게 설태가 껴 냄새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드물게 폐에 이상이 있을때 냄새가 나며 일년내내 담이 나오고 구취가 심한 경우에는 기관지 확장증을 의심.

9. 손톱의 흰 반달모양이 작아진다 - (영양불량)

손톱뿌리 부분에 반달 모양의 흰부분의 성장이 좋으면 커지고 나쁘면 작아지며 때로는 없어진다. 평소보다 작은 경우 건강상태가 약간 나빠진 것임.

10. 손톱 모양이 숟가락처럼 휘었다 - (철 결핍성 빈혈)

11. 혈변 - (치질, 대장암 등 항문질환)

혈변을 볼때는 반드시 병원을 찾는다. 치질은 보통 변에 피가 묻어나오며 변에 섞여 나오면 대장질환을 의심

12. 악취가 심한 방귀가 나온다 - (장내 종양)

방귀 냄새가 아~주 심한 경우 조심하는 것이 좋음. 장에 종양이 있는 경우 대사작용이 안되고 세균에 의해 독소가 생겨 극히 고약한 냄새가 난다. 방귀의 냄새는 약할수록 건강한 것임.

13. 배뇨시 요도가 아프다 - (요도염)

오줌을 누기 시작할 때 아픔을 느낀다면 요도이 출구에 염증을 의심.

14. 배뇨시 아랫배가 아프다 - (방광염)

소변을 다 누고서 바로 아랫배에 통증이 있을 때 또는 배뇨 중에 따끔따끔 하는 아픔이 있을때 방광염을 의심

15. 가슴이나 얼굴에 거미 모양의 반점이 생긴다 - (간경변, 만성간염)

얼굴, 목덜미, 가슴 부분에 작은 거미가 발을 펼치고 멈춰있는 것 같은 모양의 붉은 반점이 있으면 간경변이나 만성 간염 등 간 기능 저하 의심.

16. 식사 후 트림이 자주 나온다 - (위염)

트림은 위장속에 발생한 가스가 나오는 현상임. 너무 자주 트림이 나오면위염 등을 의심

17. 배가 울퉁불퉁하고 부어 보인다 - (간 경변)

배꼽을 중심으로 복벽의 정맥이 좀 부풀어 보이는 일이 있다. 이러한 징후가 보일 때는 간 중심으로 한 혈액순환이 원활치 못한 경우로 간경변을 의심.

18. 음식물이 목에 잘 걸린다 - (식도암)

목에서 위까지 걸쳐 음식물을 먹었을때 거부감이 있거나 음식물이 걸리는 느낌이 있으면 주의가 필요하다. 의사와 상의해보는 것이 좋음

19. 오른쪽 배가 아프다 - (맹장염)

윗배가 아프고 메슥거리다 오른쪽 배에 심한 통증이 느껴지면 충수염(맹장염)일 가능성 높음.

20. 가슴에 손을 대면 박동치는 곳이 여러군데 있다 - (심신장애)

가슴, 특히 왼쪽 유방 밑 근처에서 박동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움직이는 곳이 한 곳이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느껴질 때는 심신장애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20_5.html
kolaswqetsrq 11.02 05:37
현시혹청眩視惑聽 - 보는 것을 흐릿하게 듣는 것을 헷갈리게 하다,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하다.

현시혹청(眩視惑聽) - 보는 것을 흐릿하게 듣는 것을 헷갈리게 하다,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하다.

어지러울 현(目/5) 볼 시(見/5) 미혹할 혹(心/8) 들을 청(耳/16)

‘가랑잎으로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 눈을 가려 어린애를 속인다고 해도 천진한 애가 넘어갈 리가 없다. 掩耳偸鈴(엄이투령) 성어와 같은 ‘귀 막고 방울 도둑질하기’란 것도 있다. 제 귀만 막으면 다른 사람도 듣지 못하는 줄 안다.

순진하거나 어리석은 행동을 비웃는 뜻으로 쓴다. 하지만 어린애에게도 통하지 않는 이런 일이 이전부터 알게 모르게 힘을 쓰는 세계에서 자주 일어나 어지럽게 한 일이 많았다. 보는 것을 흐릿하게 만들고(眩視) 듣는 것을 헷갈리게 한다(惑聽)는 말은 상대의 판단을 헷갈리게 하여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을 뜻했다.

이렇게 네 글자로 풀어 쓴 성어는 중국 淸(청)나라의 혁명 운동가이자 국학자로 이름난 章炳麟(장병린, 1869~1936)의 ‘正名雜義(정명잡의)’란 글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나오니 의외로 역사가 짧다. 하지만 어지럽거나 아찔하다는 뜻의 眩(현)은 오래된 유교 경전 中庸(중용)에 ‘대신을 공경하면 현혹되지 않는다(敬大臣則不眩/ 경대신즉불현)’라는 구절부터 사용돼 아득하다.

두 글자로 줄인 眩惑(현혹)은 정신을 빼앗겨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거나 그렇게 되게 하는 행위로 대표하는 용어가 됐다. 우리나라의 고전 시문집이나 實錄(실록)에도 수두룩하게 검색되는데 몇 가지만 보자.

世宗(세종)때 요승 信眉(신미)는 스스로 生佛(생불)이라며 ‘겉으로는 선을 닦는 방법을 하는 체 하고, 속으로 붙여 사는 꾀를 품어서(陽爲修善之方 陰懷寄生之謀/ 양위수선지방 음회기생지모), 인심을 현혹(其眩惑人心/ 기현혹인심)’시켰다고 나온다.

中宗(중종) 때의 문신 李彦迪(이언적, 迪은 나아갈 적)은 조정에 봉황과 꿩조차도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득시글거려 ‘군주 마음 이로 인해 현혹된다(君心以之而眩惑/ 군심이지이현혹)’고 한탄했다. 임금의 눈과 귀를 가려 바른 길을 가지 못하게 하고 제 욕심만 채운 간신배들은 시대마다 있었고, 몰랐거나 막지 못한 어리석음도 昏君(혼군)이라 욕을 먹었다.

오래전부터 이름을 떨친 중국 간신은 趙高(조고)나 梁冀(양기), 李林甫(이임보), 秦檜(진회) 등 수두룩하다. 우리나라도 왕이나 권력자의 눈과 귀를 가려 나라를 어지럽힌 사람이 적지 않다. 고려 말의 辛旽(신돈, 旽은 밝을 돈)이나 조선 초기 柳子光(유자광), 韓明澮(한명회, 澮는 봇도랑 회) 등은 왕의 신임을 업고 권세를 휘둘렀다.

‘人(인)의 장막’을 둘러 눈귀를 가리고 권력을 독점하는 것은 21세기의 민주국가에서도 이어져 최순실이 비선으로 농단할 때는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기도 했다. 문고리 권력이 배타적으로 암약하는 것은 어느 때라도 없을까.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85.html
kolaswqetsrq 11.02 05:38
고침무우高枕無憂 – 베개를 높이 자면 걱정이 없다.

고침무우(高枕無憂) – 베개를 높이 자면 걱정이 없다.

높을 고(高/0) 베개 침(木/7) 없을 무(灬/8) 근심 우(心/11)

‘잠자는 것을 사랑하게 되면 가난하게 된다’, ‘잠은 인생의 절반을 훔쳐가는 도둑이다’ 등과 같이 잠을 시간을 빼앗는 것이라고 경계한 서양 격언이 있다. 반면 잠이 없으면 꿈도 없다는 말이 있다. 인간생활에서 가장 원활해야 하는 三快(삼쾌)에 快食(쾌식), 快便(쾌변)과 함께 快眠(쾌면)이 들어있는 이유다. 과한 잠을 줄이라는 말은 휴식을 잘 취한 뒤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라는 뜻이 담겼다. 베개를 높이 하여(高枕) 자면 근심 없이 지낼 수 있다(無憂)는 말은 편안히 지내는 것을 나타냈다.

앞서 兎營三窟(토영삼굴)에서 나온 대로 이 성어도 戰國四公子(전국사공자) 중의 한 사람인 孟嘗君(맹상군)의 식객 馮驩(풍환, 驩은 기뻐할 환)에게서 유래했다. 齊(제)나라의 재상으로 3000명이 넘는 빈객을 거느렸던 맹상군은 재산이 많았어도 薛(설)땅의 田稅(전세)를 받아들여 고리로 농민들에게 빌려주고 큰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제때 이자를 잘 내지 못하는 농민들도 많아 골치가 아팠다. 이 때 일 년간 빈둥거리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던 풍환이 자청해서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전세를 낼 채무자를 불러 모은 뒤 맹상군이 받지 않기로 했다면서 차용증을 모아 불태워버렸다.

돌아온 풍환이 맹상군에게 전후를 말하고 이 집에 없는 의리를 사왔다고 말했다. 그 후 재상에서 밀려난 맹상군이 설 지역으로 갔을 때 백성들이 백리 앞까지 나와 환영하는 것을 보고 사 온 의리가 이것이라며 탄복했다.

풍환은 재빠른 토끼라도 세 개의 굴을 준비하는데 이제 하나를 팠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웃 魏王(위왕)에 계략을 써서 맹상군을 초빙하게 한 것을 齊王(제왕)이 알아 재상으로 복직시켰다. 또 왕을 설득해 설 땅에 종묘를 세우게 한 뒤 풍환이 말했다. ‘이젠 굴이 셋이니 베개를 높이 베고 근심 없이 잠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三窟已就 君姑高枕爲樂矣/ 삼굴이취 군고고침위락의).’ ‘戰國策(전국책)’ 齊策(제책)편에 실린 내용이다.

베개를 높이 하여 잠을 자면 걱정이 사라진다, 또는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다며 高枕安眠(고침안면), 高枕而臥(고침이와)란 말도 내려온다. 반대로 高枕短命(고침단명)이란 말도 있으니 실제 베개가 어떤 것이 좋을까. 전문가들은 베개가 높으면 일자목이나 자라목이 될 수 있고, 너무 낮으면 어깨에 부담을 주게 되어 좋지 않다고 한다. 어떤 것이든 충분히 편안하게 자는 것을 가리키는 것에는 같다고 보면 되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03.html
kolaswqetsrq 11.02 05:39
개과천선改過遷善 - 지난날의 잘못을 고쳐 착하게 되다.

개과천선(改過遷善) - 지난날의 잘못을 고쳐 착하게 되다.

고칠 개(攵/3) 지날 과(辶/9) 옮길 천(辶/12) 착할 선(口/9)

사람은 누구나 알게 모르게 과오를 저지른다. 그렇지만 자신은 잘못이 없이 완전하고, 남의 잘못은 針小棒大(침소봉대)하여 미주알고주알 나무란다. 남의 눈 티끌은 보여도 제 눈 들보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그것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負荊請罪(부형청죄)의 소중함을 얘기했다.

과오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고치기까지 한다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桀王(걸왕)을 내치고 商(상)을 건국한 湯王(탕왕)은 과실이 있으면 즉시 고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改過不吝/ 개과불린)고 했고, 孔子(공자)도 잘못은 아무 거리낌 없이 고쳐야 한다(過則勿憚改/ 과즉물탄개)고 가르쳤다.

지난날의 과오를 고쳐(改過) 착한 사람이 된다(遷善)는 성어는 글자대로는 아니지만 여러 곳에서 비슷한 용례가 확인된다. 먼저 周易(주역) 하경 42괘인 風雷益(풍뢰익)에 나오는 ‘바람과 우레로 이루어진 것이 익괘의 상이니, 군자는 선함을 보면 곧 실행에 옮기고 잘못이 있으면 즉시 고쳐야 한다(風雷益 君子以見善則遷 有過則改/ 풍뢰익 군자이견선즉천 유과즉개)’라는 말이 가장 오래일 것이다.

唐(당)나라 재상을 지낸 문장가 陸贄(육지, 754~805)라는 사람은 임금에 상주한 글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의 글귀 중에 ‘지혜로운 사람은 허물을 고쳐 착하게 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허물을 부끄럽게 여겨 잘못된 길로 나아간다(智者改過而遷善 愚者恥過而遂非/ 지자개과이천선 우자치과이수비)’는 것은 오늘날 쓰이는 뜻과 유사하다.

이외에 직접 출처는 아니라도 예화에 많이 등장하는 사람이 晉(진)나라 周處(주처)다. 그는 태수의 아들로 태어나 재주도 뛰어났지만 10세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로는 제멋대로 커 골칫덩이였다. 영특하고 힘이 좋아도 남을 괴롭히는 데만 사용해 마을 사람들은 그를 호랑이, 교룡과 함께 三害(삼해)라 부르며 멀리 했다.

주처가 자라면서 차차 철이 들어 사람들이 왜 자신을 멀리 하는지 물어보니 삼해 때문이라 했다. 이에 주처는 믿음을 되찾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악전고투 끝에 맹호와 교룡을 처치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미심쩍어 완전히 마음을 열어주지 않자 잘못을 고치고 새 사람이 되겠다며 길을 떠났다.

東吳(동오)지역의 대학자 陸機(육기), 陸雲(육운) 형제를 찾아 지금까지 자신이 겪었던 얘기를 하며 도움을 청했다. 육운이 충고한다. ‘옛사람들은 아침에 허물을 들었으면 저녁에 뉘우치는 것을 귀하게 여겼네(古人貴朝聞夕改/ 고인귀조문석개).’ 주처는 앞날이 밝다는 말을 듣고 이후 10여 년 동안 학문과 덕을 익혀 마침내 대학자가 되었다. 唐太宗(당태종)이 房玄齡(방현령) 등을 시켜 펴낸 ‘晉書(진서)’에 실려 전하는 이야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80.html
kolaswqetsrq 11.02 05:40
일리만기日理萬機 - 하루에 처리할 일이 일만 가지, 사소한 일도 직접 처리하다.

일리만기(日理萬機) - 하루에 처리할 일이 일만 가지, 사소한 일도 직접 처리하다.

날 일(日/0) 다스릴 리(玉/7) 일만 만(艹/9) 틀 기(木/12)

일만 가지의 베틀이란 뜻을 가진 萬機(만기)는 임금이 보는 여러 가지 정무, 많은 기밀이라 사전에 풀이한다. 機(기)가 베틀에서 機微(기미), 천기나 기밀, 문서라는 뜻으로 확장되었다는데 많이 익은 말이 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핀다는 萬機親覽(만기친람)이다.

아래에서 올리는 모든 문사를 친히 읽고 판단하여 행한다는 이 성어는 유능한 군주일 때는 나라가 융성할 수 있었어도 재능이 없으면서 일일이 간섭한다면 잘 돌아갈 수가 없다. 이 장단점보다 하루에 다스려 처리할 일(日理)이 만 가지나 된다(萬機)는 말이 처음 ‘書經(서경)‘에서 사용되었다니 먼저 살펴보자.

유교의 주요 경전 四書三經(사서삼경)에 드는 서경은 중국 고대왕국의 기록인데 숭상해야 하는 책이라며 尙書(상서)로도 불린다. 성군 堯舜(요순)의 치적이 실린 虞書(우서)에 후일 夏(하)나라의 시조가 되는 禹(우)와 皐陶(고요)의 대화 중에 성어가 등장한다. 질그릇 陶(도)는 사람이름일 때는 ‘요‘로 읽힌다.

고요는 舜(순)임금 시절의 명신으로 법리에 통달하여 형벌을 제정하고 감옥을 만들었다는 사람이다. 순임금 앞에서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덕과 자신의 정치 이념을 말하는 중에 임금은 하늘의 뜻과 질서에 따라 백성들을 예와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분을 보자. ‘안일과 욕심으로 나라를 다스리려 하지 말고, 삼가 조심하여 두려워해야 합니다(無敎逸欲有邦 兢兢業業/ 무교일욕유방 긍긍업업),, 하루 이틀 일이 틀어지기 시작하면 만 가지 일이 그르쳐지니, 모든 관리에 일을 저버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一日二日萬幾 無曠庶官/ 일일이일만기 무광서관).’

처음 쓰인 萬幾(만기)는 비롯하다, 시작하다의 뜻으로 여러 가지 일의 발단을 뜻하다가 지금은 萬機(만기)로 굳어졌다. 고대의 임금이 일상적으로 처리하는 자질구레한 일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자칫하면 틀어진다니 무척 피곤했을 것도 같다.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런 스타일의 대표가 秦始皇(진시황)이다. 하루에 검토할 문서를 저울에 달아 미달하면 만들어 올리도록 했다니 이렇게 무리하고 건강이 좋을 수가 없었다. 끼니를 거르며 일에 파묻혀 食少事煩(식소사번)한 諸葛亮(제갈량)도 수명이 길지 못했다.

우리의 世宗大王(세종대왕)이나 正祖(정조)도 널리 의견을 구해 업적을 많이 남겼다. 이러한 예들은 능력이 특출하면서도 부지런하여 역사에 남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문제다. 아랫사람이 능히 처리할 일도 보고하라며 일일이 간섭하면 쉽게 될 일도 그르친다. 작은 조직이나 큰 사회에도 이런 사람은 꼭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06.html
kolaswqetsrq 11.02 05:40
명계양지冥契陽贄 - 보이지 않게 덕을 쌓으면 드러나게 보답한다.

명계양지(冥契陽贄) - 보이지 않게 덕을 쌓으면 드러나게 보답한다.

어두울 명(冖/8) 맺을 계(大/6) 볕 양(阝/9) 잡을 지(手/11)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악을 멀리 하고 덕을 많이 쌓으라는 것은 당장 빛을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한 선행을 경계한다. 어려운 이웃을 받는 사람도 모르게 살짝 돕는 많은 의인과 선인들은 누가 보든 안 보든 체질화되어 있다. 그런데 아무런 보답을 바란 것이 아니지만 언제인가는 복이 따른다는 의미의 성어가 많으니 덕을 더욱 기린 데서 나왔겠다.

선행을 쌓으면 경사가 따르는 積善餘慶(적선여경), 착하고 옳은 일을 하면 자손까지 복이 미친다는 善善及孫(선선급손)에 드러내지 않고 덕을 쌓으면 복이 저절로 온다는 陰德陽報(음덕양보) 등이 그것이다.

조금 어려운 말로 같은 뜻을 가진 것이 안으로 감춰진 좋은 인연(冥契)이 겉으로 드러나게 보답을 한다(陽贄)는 이 성어다. 맺을 契(계)는 약속 외에 교분, 정을 말하고 폐백 贄(지)는 예물 또는 선물이다. 약간 생소한 이 말이 알려진 것은 한학자 정민 교수가 성어 모음집 ‘옛 사람이 건넨 네 글자’에 소개하고서 부터일 것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沈梓(심재, 1624~1693)의 ‘松泉筆譚(송천필담)’에 실려 있다고 했다. 이 책은 당시의 학문과 정치, 경제를 비롯하여 미담과 가화를 정리한 수양서라 수신과 제가에 필요한 연구의 지침서가 된다고 한다.

성어의 부분을 요약해 보자. 과거 급제의 어려움을 토로한 내용이다. 과거에 응시했던 한 수험생이 좋은 글은 뽑히지 않고 뽑힌 글은 좋지도 않더라고 낙방을 변명하며 투덜댔다. 듣던 사람이 그렇지 않다며 시험관이란 두 눈을 갖춘 자라 글이 좋고 나쁜지를 한 번만 봐도 알아차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합격한 사람 중에는 조상이 덕을 지녀 후세에 보답을 받는 사람도 있고, 그 자신이 덕을 쌓아 저승에 미리 기록되는 경우도 있다고 설득한다. 그래서 선비 된 사람은 마땅히 글을 닦아 겉으로 드러나는 보답 陽贄(양지)로 삼고, 마음을 닦아 후세에 덕을 쌓는 冥契(명계)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과거에 합격하면 양반이 되는 길이 열리지만 모든 것을 여기에 걸어 패가망신하는 사람도 당연히 나타난다. 시험 때마다 壯元(장원)하는 행운아도 있고 몇 년을 도전해도 실패하는 浪人(낭인)도 있다. 떨어질 때는 자신의 실력부족을 인정하지 않고 남 탓, 제도 탓을 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불운을 투덜대지 말고 평시에 음덕을 쌓으라는 가르침이다.

앞길이 그리 탄탄하게 열리지 않아 당장 오늘이 답답한 현대인들에겐 실감이 나지 않을 이야기라도 하늘이 복으로 보답한다니 믿어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65.html
kolaswqetsrq 11.02 05:41
공경혜의恭敬惠義 - 공손하고 경건하며 은혜롭고 의롭다, 군자가 갖춰야 할 네 가지 덕목

공경혜의(恭敬惠義) - 공손하고 경건하며 은혜롭고 의롭다, 군자가 갖춰야 할 네 가지 덕목

공손할 공(心/6) 공경 경(攵/9) 은혜 혜(心/8) 옳을 의(羊/7)

자신의 처신이나 몸가짐이 공손하고 윗사람을 섬길 때 예의바르게 받든다(恭敬). 아랫사람을 다룰 때는 더 많은 혜택을 베풀고 일을 시킬 때도 명분이 옳다고 한다(惠義)면 이보다 더 훌륭한 인물은 없을 것이다. 작은 조직에서도 크게 떠받들어질 이런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의 자리에 있다면 그 국민은 복 받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모든 예법의 기준을 설정한 성인 孔子(공자)에게서 이러한 극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바로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鄭(정)나라의 명신 子産(자산)이다. 공자보다 한 세대 앞의 인물로 공자가 흠모하여 사상적 선구가 되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자산은 정나라 국군이었던 穆公(목공)의 손자로 이름은 僑(교)이며 公孫僑(공손교)라고도 불린다. 정나라는 공자의 나라 魯(노)와 함께 강대국 晉(진)과 楚(초)의 위세에 눌린 소국이었다. 자산은 기원전 543년 내란을 진압한 뒤 재상이 되어 정치와 경제 개혁을 시행하고, 강국 사이에서 뛰어난 학식과 언변으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중국 최초의 成文法(성문법)을 완성하고 농지를 정리하여 국가재정을 강화하며 귀족정치를 배격했다. 정나라를 탄탄한 반석에 올리는데 기여한 그를 백성들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자산에 대해 공자가 ‘論語(논어)’ 公冶長(공야장)편에서 높이 평가한 부분에 성어가 등장한다.

자산에게는 군자의 네 가지 도를 다 갖추고 있다며 말한다. ‘그의 행위와 태도는 공손했고, 윗사람을 섬길 때는 항상 삼가 겸손했다(其行己也恭 其事上也敬/ 기행기야공 기사상야경). 백성을 보살필 때에는 은혜로웠고, 백성을 부릴 때에도 도리에 맞게 했다(其養民也惠 其使民也義/ 기양민야혜 기사민야의).’

군자의 도리에 자신의 완성을 恭敬(공경)에서 찾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는 惠義(혜의)에 뒀다. 자산이 모두에 해당되니 훌륭할 수밖에 없겠다. 憲問(헌문)편에도 공자에게 어떤 사람이 자산에 대해 묻자 ‘그는 은혜를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惠人也/ 혜인야)’고 말한 부분이 나온다.

공자가 칭찬일색인 자산에 대해 孟子(맹자)는 비판적이라 이채롭다. 자산이 타는 수레에 사람들을 태워 꽁꽁 언 강 위를 건너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꼬집었다. 얼기 전에 다리를 완성했으면 백성들이 강을 건너는데 수고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 자산이 은혜롭기는 하지만 정사는 모자랐다는 이야기다.

공자는 자산의 인품을 보아 훌륭하다고 했고 맹자는 정사의 꼼꼼하지 못함을 지적했다. 오늘날 국민들을 위해 나라를 다스리려는 정치인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자산과 같은 마음가짐을 갖고 세세하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할 텐데 신뢰감이 떨어지기만 하니 갈수록 난망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91.html
kolaswqetsrq 11.02 05:42
이모취인以貌取人 - 얼굴만 보고 사람을 쓰다

이모취인(以貌取人) - 얼굴만 보고 사람을 쓰다

써 이(人/3) 모양 모(豸/7) 가질 취(又/6) 사람 인(人/0)

人事(인사)가 萬事(만사)라는 말을 흔히 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예를 표한다는 인사는 물론 아니다. 한자는 똑 같지만 사람을 어떤 자리에 임용하는 일을 가리킨다. 작은 단체나 직장에서도 適材適所(적재적소)가 중요한 일인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결국 用人(용인)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말은 쉬워도 마땅한 자리에 적합한 인물을 고르는 것은 정말 어려운 모양이다. 모든 것에 완벽했을 孔子(공자)도 선입견으로 사람을 잘못 판단했다고 후회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사의 중요성을 말한 이 성어는 공자가 제자를 평하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공자의 제자 子羽(자우)는 얼굴이 매우 못 생겼던 모양이다. 처음 가르침을 받으러 왔을 때 공자가 재능이 모자라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자우는 이후 학문과 덕행을 닦는데 힘쓰고 공사가 분명하게 일을 처리해 따르는 제자가 300명이나 됐다고 한다. 宰予(재여)라는 제자는 언변이 좋았다. 하지만 그는 낮잠을 자다가 공자에 혼나기도 하고 삼년상이 길다고 주장했다가 꾸중을 들었다.

천성이 게을러 ‘썩은 나무는 조각을 할 수 없다(朽木不可雕/ 후목불가조)’고 까지 지적했을 정도다. 뒷날 공자는 이렇게 탄식했다. ‘나는 말로 사람을 골랐다가 재여에 실수했고, 외모로 사람을 보았다가 자우에게 실수했다(吾以言取人 失之宰予 以貌取人 失之子羽/ 오이언취인 실지재여 이모취인 실지자우).’ ‘史記(사기)’의 仲尼弟子(중니제자)열전에 실려 있다. ‘論語(논어)’에도 ‘군자는 말을 보고 사람을 등용하지 않는다(君子 不以言擧人/ 군자 불이언거인)’란 구절이 衛靈公(위령공)편에 나온다.

우리 사회에 외모지상주의(lookism) 열풍이 거세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특히 청소년의 관심이 심각하다고 한다. 한 조사에는 성형수술을 희망하는 여대생이 무려 80%에 달했다고 했다. 겉보기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를 떠나 내면의 아름다움이나 실력을 볼 수 있어야 단체나 국가나 발전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26.html
kolaswqetsrq 11.02 05:43
민귀군경民貴君輕 - 백성은 귀하고 임금은 가볍다.

민귀군경(民貴君輕) - 백성은 귀하고 임금은 가볍다.

백성 민(氏/1) 귀할 귀(貝/5) 임금 군(口/4) 가벼울 경(車/7)

‘민심은 天心(천심)’이란 말이 있다. 백성의 마음은 하늘의 뜻과 같으니 그들과 어긋나게 해서는 나라가 성립될 수 없다는 속담이다. 국가는 거주하는 국민의 것이니 그들을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면 혁명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 말했다. 하지만 헌법이 없었던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말기의 유교 사상가 孟子(맹자)는 링컨보다 까마득히 먼저 백성들을 앞세웠다.

하늘과 백성이 원하지 않으면 天子(천자)의 자리에 오를 수 없으며, 올랐다 하더라도 내려와야 한다고 혁명을 인정했다. 폭군 桀紂(걸주)가 쫓겨난 것은 민심 잃은 사람을 처단한 것이라 본 것이 그것이다.

맹자는 도덕을 바탕으로 한 王道(왕도)정치와 백성을 근간으로 하는 民本(민본)정치를 주장했다. 이 정도로 앞선 생각을 가졌으니 백성은 당연히 귀하고(民貴) 임금은 가볍다(君輕)고 볼 수밖에 없다. ‘맹자’의 盡心(진심) 下篇(하편)에 실린 말씀내용을 보자.

‘백성이 가장 귀중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군주는 대단하지 않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 천자나 제후가 제사를 지내던 토지신이 社(사), 곡물신이 稷(직)인데 이 둘을 합쳐 나라의 의미로 사용됐다. 땅과 곡식이 백성들의 삶과 직결되므로 왕가의 선조인 宗廟(종묘)와 함께 복을 비는 제사를 모신 것이다.

맹자의 설명은 이어진다.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천자가 되고, 천자의 마음을 얻으면 제후가 되며, 제후의 마음을 얻으면 대부가 된다고 하여 역시 백성을 우선했다. 살진 희생을 마련하고 정결한 곡식으로 제사를 지내도 가뭄이 들거나 물난리가 나면 사직의 신을 바꾸듯이 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제후가 있으면 또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宋(송)의 朱熹(주희, 熹는 빛날 희)가 주석문을 덧붙여 저술한 ‘孟子集註(맹자집주)’는 이 부분을 제후가 무도하여 사직이 멸하면 ‘마땅히 어진 임금으로 바꾸어 세우니 임금이 사직보다 가볍기 때문(則當更立賢君 是君輕於社稷/ 즉당경립현군 시군경어사직)’이라 해석했다.

정치인이나 지도급 인사 치고 국민을 모든 것에 앞세운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비록 한 표를 가진 유권자라도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높은 자리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온갖 달콤한 말로 목표한 권력을 잡게 되면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듯 眼下無人(안하무인)인 사람이 흔하다. 민을 귀중히 여기지 않는 이러한 태도는 곧 버림을 받는다는 것을 잊기 때문에 權不十年(권불십년)이 되풀이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98.html
kolaswqetsrq 11.02 05:43
■ 연산군의 여인들 월하매

■ 연산군의 여인들 월하매

연산군은 수천 명의 ‘흥청’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를 총애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는 왕과 잠자리 한번 해보지 못한 흥청이 더 많았고, 한두 번의 잠자리로 끝난 흥청도 많았다. 반면 연산군의 특별한 총애를 받은 흥청도 있었는데, 원주 출신의 월하매(月下梅)가 그 경우이다.

월하매가 언제 태어났는지 확실하지 않아 나이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연산군은 어릴 때 친모를 잃어서 생긴 모성결핍 때문인지, 특히 연상의 유부녀를 좋아했다. 연산군을 매혹시킨 장녹수도 그러하였고, 늦은 나이에 장악원(掌樂院)에 입성해 흥청까지 오른 월하매도 미루어 짐작하건대 분명 연상의 유부녀였을 것이다. 나이도 많고 미인은 아니었지만, 누이처럼 어미처럼 연산군을 품어주는 넓은 마음을 가져 연산군이 많이 의지하고 위로받았다고 한다. 또한, 비파를 타는 솜씨가 일품이라, 연산군은 종종 월하매의 비파 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한다.

원주 출신의 기생 월하매는 장악원(조선시대 궁중의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의 선상기(選上妓·노래하고 춤추는 기생)로 뽑혔다가 연산군의 눈에 들어 흥청이 되었다. 실록에 따르면 월하매는 음악을 잘 이해했고 희학(戱謔)을 잘했는데, 그래서 연산군은 늘 월하매를 호방(豪放)하다고 칭찬하며 총애했다는 것이다. 희학이란 ‘희롱과 해학’의 합성어이다. 즉 월하매는 단순하게 가무만 잘한 것이 아니라 ‘희롱과 해학’도 잘했다는 뜻이다. 월하매가 남자 무당이 되어 놀이를 할 때는 신내림을 받아 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당연히 월하매는 신과 같은 권위를 가지고 어떤 말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연산군을 아이 취급하며 희롱하기도 했다. 보통 배짱을 가진 흥청이라면 감히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월하매는 분명 배짱도 두둑하고 머리도 영리한 흥청이었을 것이다.

그런 월하매에게서 연산군은 어머니에게서 느끼는 위안과 행복을 느꼈음이 분명하다. 그런 월하매가 죽자 연산군은 마치 어머니를 잃은 어린아이처럼 상심했다고 한다. 월하매가 병에 걸리자 연산군이 직접 문병도 하였고, 월하매가 죽자 조정 관리들에게 장례를 담당하라고 명령하고, 묘자리를 알아봐주고 제문도 지어주었다. 제사를 지낼 때는 정승들을 참석하게 하고, 직접 술도 따라주고 통곡하며 애도하는 시를 지어 바쳤다.

‘지극한 슬픔에 눈물 그치지 않고(悼極難收淚)/ 깊은 비통으로 잠 못 이루누나( 悲深睡不成)/ 어지러운 마음에 애끊는 듯하니(心紛腸似斷)/ 이제 깨어나면 어찌 살아가려나(從此覺傷生).’

이 시에는 월하매를 잃은 연산군의 비통함이 절절이 느껴진다.

♣ 제공 : KIMSEM과 함께 역사 다시보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12.html
kolaswqetsrq 11.02 05:44
■ 연산군의 여인들 장녹수 3편

■ 연산군의 여인들 장녹수 3편

왕의 총애를 등에 업은 장녹수는 권력을 함부로 휘둘렀다. 그녀는 남의 재산을 함부로 빼앗았으며, 각종 뇌물과 인사 청탁을 받았다. 장녹수의 형부 김효손(金孝孫)도 함경도 전향 별감(傳香別監)에 제수되는 혜택을 받았다. 1506년 1월에는 내수사의 여종이었던 언니 장복수(張福壽)와 조카들을 면천해 양인(良人)의 신분으로 올렸다. 1502년(연산군8년)~1503년(연산군9년) 무렵에 이르러서는 연산군이 장녹수에게 빠져 날로 방탕이 심해지고 포악한 짓을 많이 하자, 왕실의 최고 어른인 할머니 인수대비(소혜왕후:성종의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누차 타일렀지만, 도리어 왕의 원망만 사게 되었다.

할머니의 근심 어린 충고를 듣지 않고, 연산군은 장녹수를 더욱 가까이 하였다. 장녹수는 입궁한 직후에는 종4품의 숙원(淑媛)으로 있었는데, 이듬해에는 종3품의 숙용(淑容)에까지 올랐다. 궁녀로 들어와 초고속 승진을 한 셈이었다. 품계가 올라간 장녹수는 더욱 권력을 남용하였다. 장녹수는 궁 밖의 사가(私家)를 재건하기 위해 민가를 헐어버리게 하였으며, 미모가 뛰어난 여인을 시기하여 여인의 부모형제를 아무 죄도 없이 하루아침에 다 죽이게도 했다. 옥지화(玉池花)라는 기녀는 장녹수의 치마를 한 번 잘못 밟았다가 참형을 당하기까지 했으니, 장녹수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엿볼 수 있다.

그녀의 위세를 믿고 장녹수 집의 하인들마저 행패를 부렸다. 동지중추부사 이병정(李秉正)은 장녹수의 집 하인에게 크게 모욕을 당했는데, 오히려 사재(私財)를 털어 뇌물을 바치고서야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모두가 출세하기 위해 장녹수 앞에 줄을 서게 되었다. 날로 장녹수와 그 측근들의 횡포로 심해지면서 백성들의 원망은 높아졌고, 결국 연산군의 몰락과 함께 그녀의 몰락도 이어졌다.

기생에서 후궁의 반열에 올라 연산군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던 장녹수. 독재정치로 종말을 향해 치닫던 연산군의 말년 치세, 그녀는 왕의 광기를 거의 유일하게 제어할 수 있는 존재였지만, 오히려 그녀는 연산군의 음탕한 생활과 악행을 더욱 부추기기만 했다.

무수한 금은보화와 전택(田宅) 등을 하사받았고, 연산군의 몸과 마음을 손위에 놓고 주무르며, 백성들을 괴롭히는데 한 몫을 한 장녹수는 1506년 중종반정 후 반정 세력에 의해 제거 대상 1호로 떠올랐다. 반정군들에게 붙잡혀 군기사(軍器寺) 앞에 끌려온 장녹수는 참형(斬刑)에 처해졌다. 길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시체에 기왓장과 돌멩이를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 잠깐 사이 시체 위로 돌무더기가 이루어졌을 정도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연산군에게 향하여야 할 민중들의 분노가 모두 그녀에게로 향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양반가의 여식도 아니었고, 가장 천한 신분의 여인이었으니, 백성들에게는 연산군 대신 화풀이를 할 대상으로 딱 알맞았기 때문이었다.

♣ 제공 : KIMSEM과 함께 역사 다시보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3_40.html
kolaswqetsrq 11.02 05:45
■ 연산군의 여인들 장녹수 1편

■ 연산군의 여인들 장녹수 1편

연산군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여인이고, 총애했던 후궁 중 가장 유명한 여인이 바로 장녹수이다. 드라마나 영화에도 많이 등장하여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다. 장녹수는 충청도 문의 현령(文義縣令)을 지낸 장한필(張漢弼)과 그의 첩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선시대에는 철저한 신분제도가 시행되었으므로 ‘일천즉천(一賤則賤)’의 법령에 따라 부모 중 한쪽이 천민이면 그 자식 역시 천민이 된다. 그러므로 장녹수는 어엿한 양반의 핏줄을 이어받았지만 어머니의 신분을 이어받아 천민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녀의 친언니 장복수는 내수사(內需司)의 여종이었다.

장녹수의 아버지 장한필이 문의 현령으로 재임할 때 관기와 관계하여 장녹수를 낳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장녹수처럼 양반과 천첩 사이에서 태어난 여식을 얼녀(孼女)라 한다. 유명한 기생 황진이가 얼녀였고, 월매의 딸 춘향이도 얼녀였다. 그러므로 장녹수는 어머니의 운명을 이어받아 어릴 적부터 기적에 들어 관기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연산군일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성품이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맞추었는데, 처음에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서 생활을 했으며 시집을 여러 번 갔었다. 그러다가 제안대군(大君) 가노(家奴)의 아내가 되어서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娼妓)가 되었는데,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 나이는 30여 세였는데도 얼굴은 16세의 아이와 같았다. 왕이 듣고 기뻐하여 드디어 궁중으로 맞아들였는데, 이로부터 총애함이 날로 융성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따랐고, 숙원(淑媛)으로 봉했다.

- 연산군일기 1502년(연산군 8) 11월 25일

연산군이 제안대군(예종의 아들)의 집에 놀러갔다가 장녹수의 노래를 듣고 크게 기뻐하여, 흥청(興淸)이라는 기생으로 발탁하여 궁궐로 맞아들였고, 왕의 총애가 날로 깊어져 마침내 후궁의 반열에 오르며 숙원으로 봉해졌다는 것이다. 연산군 시대의 신데렐라였다고나 할까?

일설에는 장녹수의 얼굴은 그리 빼어난 미모는 아니었으나, 남자를 구스르는 재주와 요사스런 교태가 장난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연산군이 얼마나 장녹수에게 빠졌는지 《연산군 일기》에 장녹수가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했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더구나 그녀는 연산군이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해도 그다지 질투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종친이나 사대부 부인들을 농락하는 것을 즐겨 도와주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연산군의 음란한 생활과 비뚤어진 욕망을 부추기며 자신의 욕망을 채워나갔던 것이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과 함께 역사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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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46
■ 연산군의 여인들 거창군 부인 신씨 3편

■ 연산군의 여인들 거창군 부인 신씨 3편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연산군 내외는 폐왕(廢王)이 되고 폐비(廢妃)가 되었지만, 욕은 남편과 남편의 애인 장녹수가 다 먹고 거창군부인 신씨는 별다른 비난이나 욕을 먹지 않았다. 죽음을 당할 처지임에도 그녀를 죽이라는 사람들이 없었고, 중종은 그녀를 빈(嬪)의 예로 대하게 하였다. 그녀는 중종의 배려로 1521년(중종 16) 11월에 속공(屬公)한 죄인 안처겸(安處謙)의 집을 받았다. 또 중종반정 이후 신씨 집안의 노비들은 그녀를 떠나지 않았는데 이것은 그녀가 착하고 선한 인품이었기 때문이다. 폐비(廢妃)된 후 중종은 그녀에게 한다.

일반적으로 폐왕이나 폐비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는 것과 달리 왕비 시절 온화한 성품으로 윗전에는 공손하고 궁인들에게는 자애롭고 덕이 있는 왕비로서 존경을 받았기 때문에, 큰 모욕을 당하지도 않고 편안한(?) 삶을 살며 여생을 마칠 수 있었다. 물론 반정공신들 때문에 자식들은 다 죽거나 삶이 험해졌으니 편안한 여생이라고 하는 것은 어폐(語弊)가 있다. 어미의 심정으로는........

우이 계곡 입구에서 방학 사거리 방향으로 따라가면 고개를 넘어서기 전 좌측에 연산군 묘가 위치해 있다. 묘역 입구에는 재실이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총 5기의 묘가 있는데, 최상단에 있는 2기가 연산군과 거창군부인 신씨의 묘이다. 연산군과 거창군부인의 묘는 대군의 예에 의해 조성되어 묘표 2기, 혼유석 2기, 상석 2기,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 2쌍, 장명등 2기 등을 갖추고 있다. 묘표에는 각각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 ‘거창신씨지묘(居昌愼氏之墓)’라 새겨져 있다. 최하단에는 연산군의 딸 휘순 공주와 사위 구문경(具文璟)의 묘가 있다.

 "
연산군은 죽음을 앞두고 부인 신씨가 보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죽을 때가 되니 제정신이 돌아와 ‘조강지처’가 그리웠나 보다.
",

1506년 11월 8일 연산군이 역질로 사망하자 강화도 교동에서 장사를 지냈는데, 1512년(중종 7년) 왕에게 이장(移葬)하기를 청하였으며, 중종은 이를 허락하고 왕자의 예로 정중히 개장하도록 하였다. 1512년 신씨가 연산군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해 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이곳이 거창군부인 신씨의 외할아버지인 임영 대군의 땅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실제 인근에 임영대군파 오산군 묘역이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연산군이 죽고 난 후 그의 신주를 직접 모신 것으로 추정되며, 중종에게 자기가 죽으면 자신을 연산군 옆에다 묻어달라는 요청을 한다. 1537년(중종 32) 신씨가 사망하자 중종은 연향(宴享)을 미루고 왕후(王后)의 고비(考妣)의 예로 장사지내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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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46
■ 연산군의 여인들 거창군부인 신씨 1편

■ 연산군의 여인들 거창군부인 신씨 1편

거창군부인 신씨의 아버지는 두 번에 걸쳐 장원급제하고 현임 병조판서와 영의정을 지낸 신승선이고, 어머니는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의 딸 전주 이씨로, 종친세력이었다. 워낙 연산군의 악명(?)이 높다보니 왕비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도 없고, 남편을 잘못 만나 우리 역사에서 거의 존재감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왕실 유례 상 간택 없이 세자빈으로 직접 뽑힌 인물이다. 13세가 되는 1487년 3월 신씨를 세자빈으로 삼으라는 성종의 교지가 내려진 뒤 이듬해 2월 14세에 두 살 어린 세자 이융(연산군)과 결혼했다.

결혼하는 날 몹시 비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이 날의 비바람은 앞으로 순탄하지 못한 그녀의 인생을 예고한 것은 아닐까. 왕세자(王世子)로 있던 융(연산군)과 가례를 치르고 세자빈(世子嬪) 신분으로 입궁하였으며, 1494년 연산군 즉위와 함께 왕비(王妃)에 봉해졌다.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제인원덕왕비(齊仁元德王妃)”라는 존호를 받았으나,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면서 폐비(廢妃)가 되어 거창군부인(居昌郡夫人)으로 강등되었다. 연산군이 쫓겨난 왕이므로 죽은 뒤 시호를 받지 못한 것과 같이 신씨 부인도 역시 시호(〇〇왕후)를 받지 못하고 그냥 ‘거창군 부인 신씨’라 불리우고 종묘에도 위패가 모셔지지 못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신씨(愼氏)는 온순하고 근면하여, 아랫사람들을 은혜로써 어루만지는 훌륭하고 덕이 있는 인품의 소유자였다. 왕은 비록 미치고 폭정을 일삼았지만, 왕이 총애하는 사람이 있으면 비(妃)가 또한 더 후하게 대해주어, 연산군마저도 그녀의 덕을 높이 사고 매우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신씨는 내명부를 이끄는 왕비였으면서도 궁녀와 후궁에게 존댓말을 사용했을 정도로 순진한 성격이었다. 오죽했으면 사관들마저 "중전이 너무 답답하다."라고 한숨을 내지을 정도였다. 왕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음란하고 방종의 극치를 이루는 것을 볼 적마다 밤낮으로 근심하였으며, 때론 울며 간곡하고 절실하게 간하였다. 연산군도 그녀가 \궐내 야당\으로 직언을 해도 듣기만 할 뿐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칭찬했다. 중종반정 당시 울부짖으며 왕(연산군)을 따라 가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남편인 연산군은 강화도로 유배를 갔지만, 별다른 죄가 없는 신씨는 폐비로 강등되기만 했을 뿐, 별다른 처벌없이 외가에서 지낼 수 있었다.

연산군은 강화 교동에서 31세(1506년)로 곧 죽은 반면, 폐비 신씨는 30여년을 더 살다가 1537년에 사망하였다. 슬하에 5남 1녀를 낳았는데, 이 중 폐세자 이황, 창녕 대군(昌寧大君) 이성(李誠), 휘순 공주(徽順公主)를 제외하고는 모두 요절했다. 그나마 살아남은 두 아들마저 중종반정 때 폐서인-위리안치 과정을 거쳐 모두 사약을 받아 죽고, 휘순공주만 남았다. 다른 후궁들의 자식들도 비명횡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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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47
■ 간신 임사홍 4편

■ 간신 임사홍 4편

임사홍의 간교함은 자신의 아들마저 희생양으로 삼는 지경에 이르렀다. 임희재는 임사홍의 둘째아들로 사림파 영수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로 무오사화 때 유배길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 임사홍이나 동생 임숭재와 달리, 연산군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하루는 연산군이 임사홍의 집에 갔다가 병풍에 적혀 있는 시를 보게 되었다.

祖舜宗堯自太平(요순을 본받으면 저절로 태평할 것인데)

秦皇何事苦蒼生(진시황은 무슨 일로 백성들을 괴롭혔는가)

不知禍起所墻內(화가 집안에서 일어날 줄은 모르고)

虛築防胡萬里城(공연히 오랑캐를 막으려고 만리장성을 쌓았구나)

이 시는 임희재가 쓴 것으로, 겉으로는 진시황을 비판하고 있는 내용이지만 실제로는 진시황에 빗대어 연산군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연산군은 불편한 심기를 내보이며 누가 쓴 것인지를 물었고, 임사홍은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연산군은 “경의 아들이 불충하니, 내가 그를 죽이려고 하는데 경의 생각은 어떠한가?”라고 그의 뜻을 물었다. 임사홍은 연산군의 지적에 바로 동의를 했고, 결국 임희재는 처형되었다. 혹자는 임희재가 항시 그 아버지의 잘못을 간하였으므로, 임사홍이 그를 좋아하지 아니하여 참소(讒訴)한 것이라고 하는 설(說)도 있다. 설마 아무리 간신배 임사홍이라 해도 자신의 아들 목숨까지 내버릴 수 있었을까.

여하튼, 임희재 사건 이후 연산군은 그를 더욱 신임하였고, 사람들은 그를 더욱 잔인한 사람으로 여겨 매우 경계하게 되었다.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잔치를 열었던 임사홍. 그에게 있어서 권력의 단맛은 아들의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이후 임사홍은 연산군의 입맛에 맞는 최측근으로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조선 팔도의 아름다운 여자를 뽑아 연산군에게 바치는 채홍사(採紅使)로 임명된 것이다. 임사홍은 채홍사로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운평(運平: 연산군 때에 여러 고을에 모아놓은 가무기생)과 흥청(興淸:운평 가운데서 대궐로 뽑혀온 기생)을 뽑아 연산군에게 바쳤다.

흥청들과 어울려 ‘흥청망청’하고 폭정(暴政)을 일삼던 연산군은 결국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면서 종말을 맞았고, 최측근 임사홍 역시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뒤 20여일 후 부관참시 당하고 가산(家産)을 몰수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몰수된 재산의 일부는 한때 함께 사화를 일으켰지만, 중종반정 공신으로 배를 갈아 탄 또 다른 간신 유자광에게 돌아갔다. 그리하여 임사홍에게는 조선시대 대표적 간신이라는 오명(汚名)과 낙인이 영원히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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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48
■ 간신 임사홍 2편

■ 간신 임사홍 2편

임사홍은 조정 공신들과 외척들이 권력을 남용한다고 비판하였으며, 당대 권신인 한명회, 신숙주 등의 월권행위를 줄기차게 비난하기도 했다. 그래서 조정의 대신들에게 ‘소인배’라는 말을 들을 만큼, 임사홍은 조정 대신들의 공공의 적(敵)으로 몰리게 된다. 하지만, 종친세력인 동시에 성종의 총애로 탄탄대로를 걷던 임사홍도 1478년(성종9년) ‘흙비사건’으로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게 되었다.

‘흙비’는 지금으로 말하면 ‘황사(黃砂)비’를 말하는데, 1478년 4월 초하루에 흙비가 심하게 내리자, 사람들은 이를 하늘의 변괴로 생각하여 모두 두려워하였다. 이에 사간원·사헌부·홍문관에서는 성종에게 이것을 하늘의 경고로 받아들여 근신해야 하며, 당분간 전국에 금주령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도승지 임사홍은 흙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재앙(災殃)으로 보지 않았고, 국가의 제사가 연이어 있는 이 시점에서 술을 금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삼사(三司:사간원·사헌부·홍문관) 등에서는 임사홍을 맹렬히 성토했다. 그들은 임사홍을 소인(小人)이라 하고, 그가 하는 말은 모두 아첨에서 나온 응큼하고 간사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임사홍의 아버지인 임원준까지 탐오(貪汚: 욕심이 많고 하는 짓이 더러움)한 사람이었음을 언급하며, 가풍이 바르지 못하여 임사홍이 간사한 인간이라고 몰아갔다. 이처럼 대간들이 임사홍을 심하게 탄핵한 이유는, 임사홍이 성종의 총애를 믿고 거만하게 행동하는 것이 꼴 보기 싫었을 뿐만 아니라, 왕실과 혼인으로 맺어진 연줄을 이용하여 권력을 누리고 국정을 농단(壟斷: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종은 처음에는 대간들의 탄핵을 제지하며 임사홍을 감싸주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대간들의 탄핵이 점점 격화되자, 성종도 대간들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때 효령대군의 손녀인 임사홍의 부인이 남편의 무고함을 상소했다. 그리고 첫째 며느리인 현숙공주(당시에는 정숙공주라 함)는 아버지 예종이 돌아가신 후로 임사홍을 친아버지와 같이 의지하고 있다며 울면서 읍소(泣訴)했다. 이처럼 왕실의 여인들까지 나서서 만류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임사홍은 의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임사홍의 당인(黨人)이었던 유자광(柳子光)도 동래로 유배를 갔다. 그 뒤, 유자광과 임사홍은 성종이 죽을 때까지 숨죽이며 복수의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성종 사후 연산군이 즉위하자, 마침내 그들은 연산군의 비위를 맞추면서 재기할 수 있었고, 각각 무오사화(戊午士禍)와 갑자사화(甲子士禍)라는 피비린내 나는 사화를 주도하는 주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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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49
■ 황희 3편

■ 황희 3편

황희는 조선 초기에 활동한 훌륭한 정치가로 첫손가락에 꼽힌다. 또 청빈과 근면을 생활지표로 삼았다. 오늘날 공직자들이 본받아야할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무골호인(無骨好人)으로 보일 행동을 많이 했다. 그가 순하고 사람 좋기로 알려진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자기 집 계집종들이 싸움박질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 한 계집종이 황희 앞으로 달려와 고자질을 하자, “그래, 네 말이 옳다.” 그러자 다른 계집종이 억울하다는 듯이 달려와서 울며 말했다. “대감마님, 거짓말입니다.” 하자, “그래, 네 말도 옳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황희의 아들이 물었다. “어찌 아버지께서는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다고 하십니까?” 황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네 말도 옳구나!”

그러나 그는 결코 무골호인(無骨好人)만은 아니었다. 그는 세상 자질구레한 일들에 대해서는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한 치의 빈틈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는 작은 일에는 너그럽고 큰일에 엄격했던 것이다. 그는 또한 청렴결백했다. 벼슬자리에 오르면 그 권세로 재물을 늘리는 도구로 삼는 자들이 많다. 하지만 그는 녹봉(祿俸:나라의 봉급)만으로 가족과 종들의 생활을 꾸려 나갔다. 그러다 보니 늘 살림은 쪼들렸고, 그의 집은 지붕을 제대로 잇지 못해 늘 비가 샜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비 오는 날이면 방 안에서 우산을 받치고 책을 읽었다고 하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그는 공직자로서의 몸가짐을 철저히 했고, 친척이나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벼슬자리를 주지 않고, 과거시험이나 능력에 따라 정당하게 벼슬을 주도록 했다.

그는 90세까지 장수를 누렸다. 그가 죽자, 임금은 3일 동안 조회를 중지했다. 『조정에서나 민간에서나 모두 놀라고 탄식하면서 조상(弔喪)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여러 관청의 아전들과 종들도 모두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 지냈으며, 이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 《문종실록》 권12, 2년2월조 -

오늘날 그의 유적은 파주 일대에 보존되어 있다. 특히 임진강 언덕 위에 있는 반구정(伴鷗亭:기러기와 벗하는 정자)은 그가 만년에 임진강 철새들을 바라보면서 유유자적했던 곳이다.

황희의 초상화는 불행하게도 일본의 천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는데, 초상화를 보면 무골호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체격이 크고 가슴과 어깨가 벌어져 있으며, 수염과 짙은 구렛나루가 무인(武人)과 같은 인상을 주기까지 한다. 실제로 그의 행적과 조선 전기의 야사를 보면 그는 도량이 크고 선이 굵은 인물로, 소소한 일에 구애 받지 않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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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49
■ 황희 1편

■ 황희 1편

황희(1363년~1452년)는 고려시대(공민왕12년)에서 조선시대(문종2년)에 걸쳐 관직에 있으면서 누구나 인정하는 조선 최고의 명재상(名宰相)이다. 세종의 모든 업적은 황희라는 명재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만큼, 그는 명망 높고 관리들의 롤모델이 되는 모범적인 관리였다. 후대 벼슬아치들의 청렴을 강조할 때마다 황희의 이름이 어김없이 등장하며, 조선시대 청렴한 벼슬아치를 뽑아서 청백리로 지정하고 기릴 때에도 언제나 그의 이름이 맨 앞줄에 올랐다.

황희는 고려가 망할 징조가 뚜렷했던 혼란한 시기에 태어났고, 세종의 탁월한 정책들이 이룩되어 조선왕조의 기틀이 다져진 뒤에 죽었다. 조상의 고향은 남원(또는 장수)이었으나, 그는 개경에서 태어났다. 그가 성균관에서 학관(學官)으로 있을 때 고려가 망했는데, 그는 고려에 대한 충절을 달랠 길 없어 개경 언저리에 있는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 숨어 살았다.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성계가 유능한 그를 그대로 둘 리가 없었다. 그는 끝내 이성계의 끈질긴 간청을 물리치지 못해 뜻을 꺾고 벼슬에 올랐다.

황희는 조선왕실에 들어와서 세자를 가르치는 우정자(右正字)를 시작으로, 태종 때는 6조 판서를 두루 지냈다. 그에 대한 태종의 신임은 아주 두터웠다. 태종은 그에게 “이 일은 나와 경만이 알고 있소. 만약 누설된다면 경 아니면 내가 한 것이오.” 라고 하면서, 기밀업무를 전담하게 했다. 또한 하루 이틀이라도 만나지 못하면 꼭 불러다가 둘이 의견을 나누었다.

그런데, 태종16년 11월, 황희에 대한 태종의 신임에 금이 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세자인 양녕대군이 점점 더 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자, 태종은 황희를 불러 의논하였다. 황희는 “세자가 아직 젊어서 그러한즉 큰 허물은 아닙니다.” 라고 대답했다. 태종은 황희가 양녕대군을 두둔한 것으로 오해하여 좌천 시켜버렸다. 이후 태종18년에 판한성부사로 발령을 받았으나 4개월 만에 양녕대군에 대한 폐위 논의가 일어났고, 황희는 이때 또 폐위를 반대하였다. 이에 다시 태종의 노여움을 사서 경기도 교하로 귀향 갔다가 다시 남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태종은 일찍부터 황희를 재상감으로 지목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세종이 등극하자 태종은 상왕이 되어 국정의 일부를 전담하였는데, 이때 세종에게 이르기를 “전날의 일은 어쩌다가 그릇된 것이다. 이 사람은 끝내 버릴 수 없다. 나라를 다스리려면 이 사람이 없어서는 안된다.”고 하며 황희를 예조판서에 제수했다. 세종7년(1425년)에 대사헌을 지냈고, 이어서 이조판서를 걸쳐 우의정이 되었다. 세종 13년(1431년)에 영의정이 되었는데, 이후 세종 31년(1449년)에 사임할 때까지 영의정으로 재임하면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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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50
■ 소혜왕후인수대비 4편

■ 소혜왕후(인수대비) 4편

인수대비는 《내훈》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며느리가 잘못하면 이를 가르칠 것이고 가르쳐도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릴 것이고, 때려도 고치지 않으면 쫓아내야 한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 말은 그대로 실행되었다. 유학적 소양을 갖춘 엄격한 성격의 인수대비는 윤비의 행동을 결코 용납하지 못하였다. 인수대비는 윤비의 폐출(廢黜)과 사사(賜死)에 깊이 관여했고, 이는 평탄하지 않은 불행한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성종 주변에는 많은 여성들이 있었고, 윤비는 이를 참지 못했다. 성종이 엄귀인과 정귀인을 총애하자 윤비는 왕의 총애를 되찾고자 했다. 왕실 여성들 사이에는 이른바 압승(壓勝)이라 불리는 이른바 저주행위가 있었는데, 들키게 되면 큰 화(禍)가 되었다. 윤비의 처소에서 극약인 비상과 이를 바른 곶감이 발견되자, 인수대비와 성종은 이 곶감이 왕과 후궁을 죽이려는 의도라 생각했다. 야사에는 윤씨가 성종과 다투면서 얼굴에 손톱자국을 냈다고도 하나, 확실치는 않다. 결국 윤비는 왕비가 된지 8개월 만에 폐비(廢妃)가 되어 사가로 쫓겨났고,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받아 결국 1482년(성종13년) 8월에 사사(賜死)되었다.

대신들은 윤씨의 폐비와 사사 문제를 원자의 친모라는 이유로 반대했으나, 성종의 입장은 단호했다. 인수대비 또한 폐비 윤씨가 살아 있으면 화근(禍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폐비 윤씨를 대신하여 윤호의 딸 파평 윤씨가 왕비로 책봉되었다. 파평 윤씨는 대비들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고, 인수대비는 “이제 중전다운 사람이 들어왔으니 낮이나 밤이나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며 기뻐했다. 며느리를 죽임으로써 후환을 없애고자 생각한 인수대비의 판단은 완전 오판(誤判)이었다. 윤씨를 죽인 이듬해 인수대비는 정희왕후(세조 비)와 함께 온양을 갔는데, 여기서 정희왕후가 죽고, 성종 또한 재위 25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성종은 자신의 사후 100년 동안 폐비 윤씨의 사사 사건을 절대로 공론화 하지 않도록 유언을 남겼다.

인수대비는 왕위에 오른 손자 연산군으로부터 많은 원망을 받았다.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연산군은 폭군으로 변해갔고, 방탕한 생활로 국정을 파멸로 몰아갔다. 인수대비는 연산군의 광폭함을 누차 지적하고 타일렀으나 오히려 원망만 살 뿐이었다. 연산군은 부친의 후궁이자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간 엄숙의(嚴淑儀)와 정숙의(鄭淑儀)를 궁 안뜰에 결박하고서는 아들인 안양군 항(㤚)과 봉안군 봉(㦀)을 불러 모친들을 때리게 만들었다. 이어서 분이 풀리지 않은 연산군은 항과 봉의 머리채를 쥐고 인수대비의 침전으로 가 방문을 열고 “이것은 대비의 사랑하는 손자가 드리는 술잔이니 한 번 맛보시오.” 하며, 항을 독촉하여 술잔을 드리게 하니, 인수대비가 놀라 잔을 받았다. 연산군은 엄숙의·정숙의를 죽인 뒤 시신을 가져다 찢어 젓을 담그고 산과 들에 흩어 버렸다고 하나 진위는 확실치 않다.

-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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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5:51
■ 소혜왕후인수대비 2편

■ 소혜왕후(인수대비) 2편

세조의 맏아들 도원군이 의경세자로 책봉되자, 자신의 딸 한씨도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수빈(粹嬪)이 되었다. 수빈 한씨가 된 그녀가 왕비 자리에 오르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부친인 한확이 세자책봉의 고명(誥命:중국 황제가 주는 임명장)을 받아 조선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망하고 말았다. 세자빈이 된 이듬해의 일이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위세가 등등했던 한확이었지만, 객사(客死)라는 불운을 맞이한 것이었다. 부음(訃音)을 듣고 놀란 세조는 압록강으로 관리를 급파하여 그의 시신을 호송하였다. 수빈 한씨는 부친이자, 막강한 정치적 후견인을 하루아침에 잃고 말았다.

부친의 사망에 이어 불운은 계속되었다. 수빈 한씨는 결혼 직후 맏아들 월산대군과 명숙공주를 낳았고, 이어서 1457년(세조3년)에 둘째 아들이자 훗날 성종이 되는 자을산군(자산군)을 출산하였다. 그러나 남편인 의경세자가 갑작스런 질병으로 사망하는 청천벽력(靑天霹靂)과도 같은 불행이 찾아왔다. 이때 의경세자의 나이 20세였고, 한씨는 21세에 불과하였다. 불과 2년 3개월의 짧은 세자빈 생활이었다. 부친과 남편이 1년 간격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슬픔에 빠져 있을 새도 없이 그녀는 왕비의 꿈을 접고 사가(私家)로 물러나야했다. 세조가 맏며느리 한씨에게 특별히 궁궐에서 살아도 좋다고 하였음에도 이를 사양하고 두 아들과 궁궐을 떠나려하자, 이를 가엽게 여긴 세조는 그녀를 위해 특별히 집을 지어주었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덕수궁이다. 한씨의 죽은 남편 의경세자 사당 옆에 건설되었으며, 일반적으로 고위 사대부나 왕족이 살던 사저보다 그 규모가 크고 웅장하여 훗날 선조가 임진왜란 중에 임시 거처로 사용하기도 했다. 후에 한씨의 작은 아들 자산군이 보위에 올라 임금의 어머니로서 다시 궁궐에 들어가자, 그녀의 큰아들 월산대군이 사저를 물려받았다.

남편이 죽지 않았더라면, 아니 부친이라도 살아 있었더라면 최소한 세자 자리는 의경세자의 맏아들이자 세조의 장손인 월산대군에게 주어졌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8살에 불과한 시동생 황(晄-예종)이 세자로 책봉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세자 시절에는 건강했던 예종은 부친인 세조의 병간호와 즉위 후의 격무에 시달려 건강이 좋지 못했다. 죽어서 예종이라는 시호를 받고 싶다는 말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종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예종의 아들(제안대군)이 아직 어려, 정희왕후는 후계자를 빨리 정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독촉에 한씨의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자산군)을 후계자로 지목하였다. 서열상 장남인 월산군이 왕위에 올랐어야 하지만, 월산군은 병치레가 잦고 동생인 자을산군의 도량이 왕재감이라 하여 자을산군이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는 핑계에 불과하고(물론 기록에는 없지만), 자을산군의 장인인 한명회의 정치적 위상이 작용했음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을 일이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과 함께 역사 다시보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2_5.html
kolaswqetsrq 11.02 05:52
알츠하이며 병의 원인은 치주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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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며 병의 원인은 치주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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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소문 없이 조용하게 시작되어 더욱 무서운 병, 알츠하이머. 현관문 열쇠를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잘 모르겠고, 냉장고 문을 열긴 했는데 뭘 꺼내야 할지 기억이 나지 않는 등의 순간이 종종 있다. 그저 건망증이겠지,라고 다들 생각하게 될 거다. 하지만 이런 건망증도 기억력이 감퇴하면서 더 심해진다는 사실.만약 병세가 깊어지면 환자는 매일처럼 하던 젓가락질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때가 찾아온다. 자신의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주위 환경이 낯설어 공황 장애에 빠지기도 한다. 더 이상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말이 어물어물 서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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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병으로 인한 치매 환자 수는 매년 증가 추세이다. 심평원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의 수는 359,705명이다. 이는 2010년에 측정된 환자 수(131,513명)에 비해 확연하게 늘어난 수이다. 이 비극적인 병은 아직까지도 현대 의학으로 완치가 불가능하다.

<알츠하이머 병에 걸리면 나타나는 증상>

알츠하이머 병에 걸리면 뇌 조직이 변한다. 신경 세포 사이에 저장된 단백질이 뇌의 기능을 저해하고 뉴런과 시냅스를 잃게 되어 사고가 둔해진다. 죽은 신경 세포는 다시 살아나지 않아서 뇌는 점차 퇴화되고 만다.

<알츠하이머 병의 원인>

그렇다면 이토록 무서운 병, 알츠하이머의 원인은 무엇일까? 제아무리 뛰어난 의사도 이 병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밝혀내진 못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가까운 가족이 알츠하이머 환자라면 발병 확률이 덩달아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전이 직접적인 발병 원인인 경우는 전체 환자 중 단 1%뿐이다. 고혈압이나 당뇨병도 알츠하이머 발병률을 높이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알츠하이머에는 한두 개로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요인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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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안의 염증, 위험?>
",

올해 초, 여러 나라에서 모인 의사가 팀을 이루어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그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입 안이 비위생적이고 건강하지 않으면 알츠하이머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치매를 막기 위해서는 이를 열심히 닦아야 한다. 언뜻 들으면 농담 같은 이론이나 그 신빙성을 뒷받침해줄 여러 가지 근거가 있다. 먼저, 치주염을 일으키는 세균인 포르리포모나스 진지발리스(Porphyromonas gingivalis)가 구강 건강과 알츠하이머의 첫 번째 연결 고리이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90%의 뇌에서 이 세균이 발견되었다. 건강한 사람의 뇌에서 이 세균이 발견될 확률은 20%에 지나지 않는다.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균의 수는 알츠하이머 환자에 비해 훨씬 적다.

포르리포모나스 진지발리스 균은 혈관을 따라 입에서 뇌로 흘러들어간다고 짐작되고 있다. 그도 그럴게, 보렐리아증이나 매독 등의 질병도 병균이 혈관을 통해 뇌로 이동한 경우에 발병한다. 연구진이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치주염 균이 입에서 혈관을 타고 뇌에 들어가면 알츠하이머 병과 유사한 염증이 발생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뇌는 이러한 균의 공격을 받으면 세포를 보호하느라고 본 기능은 저하된다. 뇌에 세균이 들어가는 걸 막은 실험 통제군의 경우 뇌에 아무런 이상 증세가 발생하지 않았다.

<연구에 대해 제기되는 의문들>

알츠하이머 병 환자의 대다수가 치아 건강 문제도 안고 있다. 치주염은 노년층에게 흔히 나타나는 병이기 때문이다. 임플란트나 틀니 등의 치아는 원래 치아만큼 위생적으로 관리하기 어렵다. 특히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이 위생 관리를 하기는 더욱 어렵다. 따라서, 알츠하이머 병과 치주염의 인과관계가 뒤바뀐 것이 아니냐 의구심을 품는 이도 있다. 덧붙여, 신경학자 로버트 모어(Robert Moir)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혈관은 정상인에 비해 약해 병균이 훨씬 침투하기 쉽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치주염 균이 뇌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은 당연하며, 치주염 균이 병의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편, 치주염이 알츠하이머 병을 유발한다는 사례 연구는 이미 여러 번 발표됐다. 게다가 앞서 언급된 동물 대상 실험 연구는 그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밝혀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약학계는 현재 이 연구를 기반으로 한 치료약을 개발하는 중이다.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상황이다.

약이 출시되기 전까지는 "이를 자주 닦고, 치실을 꼭 사용하라"라고 연구에 참여했던 피오틀 마이델(Piotr Mydel)은 밝혔다. 치주염 균이 알츠하이머 병의 유일한 원인인 건 아니지만, 분명 잘 관리한다면 알츠하이머 병을 막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44.html
kolaswqetsrq 11.02 05:53
남의 심리와 행동을 조종하는 트릭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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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심리와 행동을 조종하는 트릭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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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라는 게 참 쉽지 않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할까, 대체 그 사람의 행동 뒤에는 어떤 숨은 의미가 있을까 등의 고민으로 노심초사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행동을 나의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일부 행동은 조종할 수 있다. 신경 언어학적 프로그래밍(Neurolinguistic Programming) 방법만 잘 이해하고 있다면 말이다. 심리학자들은 환자의 사고 처리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실제로 이 방법을 사용한다. 어떤 사람에게 적용해도 실제로 효과가 있다. 그 사람의 사고가 얼마나 복잡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단순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이 프로그래밍 기법을 매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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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심리 트릭 13가지만 알고 있으면 주위 사람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끔 조종할 수 있다. 듣기만 해도 짜릿하지 않은지? 집중해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1. 브로콜리 먹이기

아이들이 브로콜리를 너무나도 먹기 싫어하진 않는지? 아이들에게 브로콜리 먹고 싶으냐고 물어보는 대신에 "한 두세 개 먹을래?"라고 물어보자. 이렇게 하면 브로콜리가 오늘 반찬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확실하게 인지시키는 동시에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게 된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브로콜리를 먹겠다고 자신이 결정했다고 착각한다. 이 트릭은 물론 브로콜리 외에 다른 채소에도 적용할 수 있다.

2. 권위를 이용하기

타인에게 충고를 할 때 제대로 듣지 않는다면, 나보다 높은 권위자에 기대어 말해보도록 하자. 예를 들어, "우리 엄마(아빠)가 그러는데..." 등의 서문이 있겠다. 사람들은 높은 사회적 권위를 가진 사람들의 말을 조금 더 귀 기울여 듣는 경향이 있다.

3. 부탁하기

친구나 가족에게 부탁이 하고 싶다고 가정해보자. 가령, 이사를 가야 하는데 짐을 옮겨달라는 부탁을 예로 들어보자. 이럴 땐 작은 부탁부터 시작하면 좋다. "미안한데, 이 주소로 편지하나 만 보내줄래?" 이런 간단한 부탁을 거절할 사람은 없다. 이사 날이 다가오면 이미 당신의 사정을 아는 친구는 당신을 필시 도와줄 거다. 이런 수법을 일명 "문에 발 밀어 넣기 테크닉"이라고 부른다. 이 테크닉의 재미있는 점은 반대로 해도 효과가 있다는 거다. 예를 들어, 친구가 꼭 거절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부탁을 해보자. 친구는 아마 당연히 거절할 거다. 그다음에 이사와 관련된 이야길 꺼내보자. 친구는 아마 앞서 부탁을 거절했다는 죄책감에 이 부탁은 들어줄지도 모른다.

4. 긍정적인 답변 얻기

면접을 보러 갔는데, 면접 위원들이 너무나 딱딱하고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당신이 질문을 물었을 때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물어보면서 고개를 중간에 끄덕끄덕하도록 하자. 그 행동을 본 상대방은 당신의 질문이 정확하며 진실되다고 믿게 착각하게 된다. 이 기법은 의외로 큰 효과가 있어, 레스토랑 직원들도 손님들이 더 많은 음식을 주문하게끔 유도할 때 쓴다.

5. 가위바위보 이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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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트릭만 알고 있으면 다시는 가위바위보에서 질 이유가 없다. 게임을 하기 전,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할 질문 하나를 물어보자. 머릿속이 어지러워진 상대방은 필시 가위를 낼 것이다. 당신은 주먹만 내면 쉽게 이길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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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노려보지 못하게 하기

어떤 사람이 계속 당신을 노려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마주 노려보는 대신에 그 사람의 신발을 주의 깊게 바라보자. 신발만 오랫동안 바라보면 상대방도 당신의 시선을 불편하게 느끼고 고개를 돌리게 된다.

7. 진실된 답변 얻기

만약 상대방이 제대로 답변을 해주지 않는다면, 말을 잠깐 멈추고 굳은 표정으로 그의 두 눈을 바라보도록 하자. 잠시 뒤 그도 포기하고 진실을 털어놓게 될 것이다.

8. 나에게 호감 있는지 보기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지? 귀를 잡거나 목을 긁거나, 팔을 한 번 접어보자. 만약 그가 나를 좋아한다면 무의식적으로 그 행동을 따라 할 것이다.

9. 머릿속에 맴도는 노래 지우기

머릿속에 콕 박혀 하루 종일 같은 노래만 반복해서 부르고 있다면, 이 트릭을 스스로에게 사용해보도록 하자. 일명 "포인터 효과"라는 테크닉을 이용한 트릭으로, 인간은 종료된 일보다는 끝나지 않은 일을 더욱 오래 기억한다는 무의식적 반응을 이용했다. 노래의 코러스 부분이 아닌 마지막 가사를 몇 번 불어보도록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그 노래를 잊을 수 있게 된다. 끝났으니까!

10. 다른 사람의 집중 방해하기

대화를 하고 싶은 상대방이 전화 통화에 열심이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팔을 뻗어 몸에 손을 얹자. 이렇게 하면 그의 집중을 깨고 당신의 말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11. 나를 좋아하게 만들기

사이가 좋지 않은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고 싶다면, 펜을 빌려달라 물어보면 된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이에게만 자신의 물건을 빌려주려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펜과 같은 사소한 물건은 빌려주지 않기에도 좀 뭐한 느낌이 있다. 어쩔 수 없이 펜을 내어주면,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에 대한 인식이 다소 좋아진다. 나중에 펜만 잘 잊지 않고 돌려준다면 당신이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12. 도움 요청하기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 "혹시 이거 해줄 수 있어?"라는 투로 이야기하지 말자. "나 이런 도움이 필요한데..." 식의 어투가 훨씬 설득력있다.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의 양심에 호소할 수 있어 훨씬 효과적이다. 만약 이 부탁을 거절하면 전자를 거절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죄책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13.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기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방법도 생각보다 무척 간단하다.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그 사람의 이마 중앙을 바라보면 된다.

미디어, 광고,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다양한 심리 조작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 위의 트릭을 다 알았으니, 어떤 누가 나의 심리를 조작하려고 해도 휘말리지 않게 된다. 또, 다른 사람을 내가 원하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릴 수도 있는 무서운 트릭이다. 그래도 항상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는 갖추도록 하자. 당신에 대한 인식이 나쁘다면 아무런 트릭도 통하지 않을 테니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3.html
kolaswqetsrq 11.02 05:54
아침을 꼭 챙겨야 하는 5가지 이유

아침을 꼭 챙겨야 하는 5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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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커피 한 잔, 또는 담배 한 개비가 아침 식사의 전부인 이들이 꽤 많다. 대부분 일어나면 통 식욕이 없다고 말한다. 일부는 다이어트를 위해 두 주먹 불끈 쥐고 아침을 꾹 참곤 한다. 그러나 건강과 다이어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다면 아침 식사 거르는 습관은 좋지 않다. 아침 식사를 꼭 챙겨야 하는 5가지 이유를 소개한다. 내 사전엔 아침 식사란 없다고 평생을 자부한 당신도,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내일 아침 메뉴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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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분 전환

아침을 배고픈 채로 시작하면, 신경계가 이를 제일 먼저 알아차린다. 신경계는 제대로 먹지 않거나, 몸에 안 좋은 음식을 섭취할 때 행복하지 않다고 투정을 부린다. 문제는, 불행한 신경계가 당신의 기분까지 끌어내린다는 것. 과일이나 채소, 통곡물이나 단백질 성분이 가득한 달걀이나 수제 버거와 같은 건강한 음식을 아침 메뉴로 정하자. 정제 탄수화물이나 설탕을 다량 섭취하면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 따라서 아침부터 과도한 당 섭취는 자제하는 게 좋다. 건강한 음식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시작해보자. 온종일 기분이 훨씬 가뿐하고 행복할 것이다.

2. 관계 증진

친구나 가족과 함께하는 아침 식사는 늘 즐겁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시간은 없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하는 아침 식사는, 아이가 부모의 관심과 주의를 느끼게 하고, 자연스럽게 사회적 교류의 장을 마련해 아이들의 하루를 기분 좋게 열어준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향후 고독이나 우울감에 빠지지 않는다. 식사를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또는 자기 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몇 분 덜 보는 것)이 정 힘들다면, 가볍게 시작하자. 월-금 중 적어도 하루는 다 같이 모여 아침 식사를 하는 건 어떨까?

또한, 3개월에 1번씩 자주 보기 힘든 친구나 가족을 초대해 아침 식사를 함께하면, 이를 핑계로 그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된다. 바쁜 일상에 따로 시간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아끼는 사람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면 신체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많은 사람은 하루의 끝에 저녁을 함께하거나, 술자리를 마련한다. 그러나 그때쯤이면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이고, 때론 약속이 겹쳐 한 군데는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3. 집중력 및 기억력 향상

건강한 음식으로 속을 채우면 근육뿐 아니라 당신의 뇌도 고마워할 것이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을 앞두고 있다면, 단순히 커피 한 잔으로 때우기보단, 뇌에 좋은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해주자. 건강한 아침 식사는 일의 능률을 높인다.

4. 체중 감소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적당한 양의 식사를 꾸준히 섭취하면 신진대사가 높아진다. 그 결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지방 연소 작용이 활발해진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무작정 굶게 되면, 신진대사율이 떨어져 살이 (다시) 찔 확률이 높아진다. 또한, 체내 혈당 수치가 낮아져서 당뇨병과 같은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올라간다.

5. 체력 증진

통곡물이나 과일, 또는 단백질로 구성된 식품처럼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아침 식사는 우리 몸에 충분한 양의 에너지를 공급한다.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의 공급과 더불어, 온종일 쌩쌩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루를 온전히 버티기 위해 2잔 이상의 커피나 달콤한 간식은 필요 없다. 건강한 아침 식사 하나면 충분하다.

아침(밥)형 인간이 아니라도, 이 5가지 이유를 듣고 나니 건강한 아침 식사가 당기지 않는가?

빈속으로 하루를 시작하지 말자. 간단한(또는 풍족한) 아침 식사 한 끼면, 기분이 좋아지고, 신체와 뇌에 활력을 불어넣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더 돈독해질 수 있다. 이제 더는 거르지 말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5.html
kolaswqetsrq 11.02 05:54
코코넛오일 탄 모닝커피로 일주일 완성 다이어트

코코넛오일 탄 모닝커피로 일주일 완성 다이어트

편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가장 큰 적, 비만. 보기 좋지 않을 뿐 아니라, 당뇨나 심질환과 같은 건강상의 문제를 초래하기도 하죠. 열심히 다이어트하는 우리가 바라는 건 바로 이겁니다. 감량을 통해 보기에도 좋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 감량이요? 사실 말이 쉽죠. 식습관에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사람에 따라 생활 방식 전체를 바꿔야 할지도 모릅니다. 비만이 정신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경우라면 특히나 말이죠. 일상으로 들어가 보면, 매일이 도전의 연속입니다. 친구가 손수 구운 맛있는 케이크를 대접한다면, 이를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단기 감량 프로그램이나 단식요법 등, 짧은 시간 내에 몸무게를 쏙 빼준다는 광고도 흔히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으로 요요 현상 없이 감량에 성공한 사람은 극히 드문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쫄쫄 굶거나 헬스장에 가서 살지 않아도 감량에 성공할 수 있는 팁이 있답니다.

아래의 홈메이드 드링크 레시피로 쉽고 간단히 칼로리를 불태울 수 있습니다.

준비물:

물 1컵

꿀 2큰술

계피가루 1작은술

코코넛오일 1작은술

위의 재료를 모두 섞어서 자기 전에 반 컵, 아침에 일어나 공복에 반 컵 마셔보세요.

이 음료수를 하루 2회 날마다 마시면, 일주일 만에 2.5kg 감량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가능하죠? 바로 신진대사를 촉진해서 지방 분해 속도를 높여주는 원리입니다. 이 음료에서 가장 중요한 성분은 바로 계피입니다. 계피엔 몸에 열을 내도록 하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죠. 게다가 식욕 감퇴 효과도 있어서 하루 동안 먹는 양이 자연히 줄어듭니다. 한 가지 더, 계피는 혈당을 낮추는 작용도 합니다. 그 결과,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여 체지방 분해를 도와주죠. 계피를 만만히 보면 안 되겠네요!

몇몇 연구에 따르면 계피 향만 맡아도 식욕 감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단 것이 당길 때 효과가 좋다고 하네요. 계피와 함께 중요한 또 다른 성분은 꿀입니다. 꿀에 듬뿍 함유된 아미노산, 비타민, 미네랄을 무시할 수 없죠. 또한, 꿀은 정제당보다 천천히 체내에 흡수됩니다. 코코넛오일은 엄연히 말해서 지방이지만, 건강한 지방입니다. 체중 감량을 도와주는 중간사슬지방산이 바로 핵심 성분이죠. 코코넛오일은 빠르게 흡수돼 에너지 공급원으로 쓰이거나 케톤체로 전환합니다. 이 오일은 신진대사를 높이고 지방을 분해합니다.

겨우내 비축한 지방을 덜어내고 체중 감량을 원하신다면, 꼭 시도해보세요. 기호에 따라 모닝커피에 위의 재료를 섞어 드셔도 좋습니다. 늘 마시는 커피에 달콤함을 더해줄 뿐만 아니라, 살도 같이 빼는 거죠. 커피는 신진대사를 높이고 식욕을 억제하는 기능도 한답니다. 위의 음료와 함께, 장기 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위해 건강한 생활 방식과 식습관도 잊지 마세요. 삼박자가 갖춰지면 체중 감량이 한결 쉬워진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82.html
kolaswqetsrq 11.02 05:55
다이어트에 좋은 아보카도, 우울증과 고혈압에도 탁월한 효능

다이어트에 좋은 아보카도, 우울증과 고혈압에도 탁월한 효능

아보카도가 요즘 대세입니다. 건강식품으로 알려지면서, 큰 사랑 받고 있는 식품이죠. 그런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길래 없어서 못 먹는 걸까요?

1. 체중 감량

하루에 아보카도 한 개씩 먹으면, 체중 감량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뉴트리션 저널>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점심마다 섬유소와 L-카르티닌이 풍부한 아보카도 반 개만 먹어도 감량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고지방임에도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이거였군요.

2. 몸에 좋은 지방이 풍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아보카도는 심혈관 질병 예방 및 콜레스트롤 수치 정상화에 대단히 좋습니다. 해로운 콜레스테롤(LDL) 수치는 내려가는 동시에 이로운 콜레스테롤(HDL) 수치는 올라가는 효과가 있죠. 단, 과도한 지방 섭취를 막기 위해 아보카드 외의 지방 소비는 줄이는 게 좋습니다.

3. 혈압 조절

아보카도 한 개엔 하루에 필요한 칼륨의 28%가 함유돼 있습니다. 미국 심장 협회는 혈압이 높은 분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식으로 아보카도를 꼽은 바 있죠.

4. 풍부한 비타민 및 미네랄

다음은 아보카도에 한 개당 들어있는 비타민 및 미네랄 수치입니다.

하루 필요량 비타민 C의 33%

하루 필요량 비타민 K의 53%

하루 필요량 비타민 E의 21%

하루 필요량 비타민 B6의 26%

하루 필요량 구리의 19%

하루 필요량 엽산의 41 %

하루 필요량 칼륨의 28%

하루 필요량 판테놀의 28%

5. 영양소 흡수율 향상

아보카도 자체에 영양이 풍부할 뿐아니라, 다른 영양소의 흡수도 도와줍니다. 아보카도에 풍부한 지방산은 비타민 A, E, D, K의 흡수를 효과적으로 돕는답니다.

6. 항산화 기능

아보카드 반 개와 샐러드 채소, 당근, 시금치를 곁들여 드세요. 녹황색 채소에 풍부한 항산화 성분이 아보카도를 만나면 몸에 더 쉽게 흡수됩니다. 아보카도와 함께 먹을 때, 루테인은 4.3배, 베타카로틴은 13.6배, 알파카로틴은 8.3배 흡수율이 높아집니다.

7. 당뇨 예방

해마다 발병률이 치솟는 현대인의 병 당뇨. 날마다 아보카도 반개를 먹으면 혈당이 조절돼 당뇨예방에 좋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8. 통증 완화

아보카도에 풍부한 지방산은 소염효과가 뛰어나 만성 관절염이나 통풍에 잘 듣습니다.

9. 눈 건강

루테인과 제아잔틴이 풍부한 아보카도는 눈 건강에 대단히 좋습니다. 아보카도만 꾸준히 먹어도 시력을 보호하고 눈 피로를 줄일 수 있답니다.

10. 임산부 건강

칼륨과 엽산, 비타민 C, B가 풍부한 아보카도는 임산부의 건강을 튼튼히 지켜줍니다. 특히, 엽산은 임산부 뿐아니라 태아의 온전한 발육에도 매우 중요한 영양소입니다.

11. 항암 효과

수많은 연구에서 아보카도의 항암 기능이 밝혀진 바 있습니다. 아보카도 추출액이 암세포의 발육을 저해한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죠. 항암치료를 받는 분들에게 아보카도는 대단히 유익한 식품입니다. 항암 보조 뿐아니라, 치료 부작용도 줄여주는 역할을 하니까요.

12. 뼈 건강

엽산과 비타민 K, 구리가 풍부한 아보카도를 꾸준히 섭취하면 뼈가 튼튼해집니다. 우유를 단품으로 섭취하는 것보다 훨씬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13. 소화력 증진

풍부한 섬유소 및 미네랄이 소화 작용을 돕고 변비를 예방합니다.

14. 기분 업

칼륨과 엽산 등, 풍부한 미네랄 및 비타민을 함유한 아보카도는 기분을 좋게 유지하고 감정 기복을 완화합니다. 아보카도에 함유된 엽산이 우울증 완화에도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여러 차례 나온 바 있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13.html
kolaswqetsrq 11.02 05:56
몸속의 노폐물을 빼주는 음식

몸속의 노폐물을 빼주는 음식

몸속의 노폐물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되는 식품을 섭취하기 시작하면, 면역력이 더욱 강화되고, 체내 다른 기능들도 최적화할 수 있게 된다. 건강한 몸을 위해서 몸속의 노폐물을 빼주는 음식을 알아보도록 하자.

1. 미역

미역은 몸 안에 있는 중금속을 제거해 준다. 미역을 비롯한 다시마와 해조류는 우리 몸에서 소화가 잘 안 되고 남아 몸에 해로운 중금속, 불필요한 지방, 환경호르몬, 발암물질 같은 것 들을 흡수하여 몸 밖으로 배출시킨다.

2. 된장

된장은 흡연자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음식이다. 된장은 담배의 주성분인 니코틴을 제거해 준다. 또 된장은 식욕을 돋게 하는 효과도 있으며, 피로할 때나 머리가 무거울 때 된장국을 먹으면 기분이 상쾌해 진다. 된장은 콩을 발효시킨 음식으로 항암작용도 뛰어나다.

3. 돼지고기

돼지고기 부위 중 붉은 살코기 부분은 위장의 중금속 배출 및 해독을 해준다. 황사철에 먼지를 없애려고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돼지고기가 황사 속에 섞여 있는 중금속을 배출시켜주기 때문이다. 돼지고기 속의 불포화 지방산은 탄산가스를 중화해 폐에 쌓여 있는 공해물질을 제거해 준다.

4. 미나리

미나리는 매연이나 먼지를 많이 흡입하는 기관지를 보호하고 이를 배출하는 효능이 있다. 또한 복어의 독을 중화시켜 주는 효능도 가지고 있어 복어국에는 미나리를 항상 넣는 것이다.

5. 양파

양파의 케르세틴 성분은 광합성 식물에서만 독특하게 발견되는 성분으로 항암효과는 물론 항산화 효과를 휘해 체내에서 중금속, 독성분 니코틴 등의 흡착을 용이하게 해 해독에 도움을 준다.

6. 마늘

마늘에 다량 함유되어 있는 유황 성분은 몸속의 수은과 결합해 장을 통해 배변되도록 도와줍니다. 마늘의 알리신 성분 역시 간 기능을 강화시키고 수은 등 중금속 배출에 탁월하다.

7. 클로렐라

클로렐라는 매우 작은 단세포 녹조류로 클로렐라에 함유된 칼슘, 아연, 마그네슘 등이 소장의 혈액 속에 남아 다이옥신, 카드뮴, 납을 우리 몸에서 배출시킨다.

8. 물

하루 1.5L이상의 물을 마시는 습관을 들이면 체내 노폐물이나 중금속을 배출시키는 것은 물론 활성산소로부터 우리 몸의 세포를 지켜줍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08.html
kolaswqetsrq 11.02 05:57
젊음 유지하며 장수하는 16가지 비결

젊음 유지하며 장수하는 16가지 비결

1. 운동과 다이어트로 DNA를 보호하라

나이가 들면 염색체를 양끝에서 보호하는 마개(텔로미어)의 길이도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질병에 취약해진다. 한 예비연구에 따르면 다이어트와 운동같은 건전한 생활습관은 텔로미어의 길이를 늘이는 효소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 매사에 성실하라

80년에 걸쳐 시행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장수 여부를 예측할수 있는 최고의 변수는 성실한 성격이었다.

3. 친구를 사귀라

오스트렐리아의 연구진은 사교성이 있는 노인은 친구가 적은 동년배와 비교했을 때 10년안에 사망할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4. 친구를 현명하게 선택하라

건강한 생활방식을 가진 친구를 찾는게 중요하다.

5. 담배를 끊어라

50년간 실시된 영국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30세에 담배를 끊으면 수명이 10년 연장되며 40세 때는 9년, 50세 때는 6년, 60세 때는 3년 수명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 낮잠을 자라

규칙적으로 낮잠을 즐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병으로 죽을 확률이 37%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7. 지중해식 다이어트를 하라

지중해식 다이어트는 과일과 채소, 곡물, 올리브유, 그리고 생선을 위주로 한다.

8. 오키나와 사람처럼 먹어라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푸른색과 노란색 채소 위주의 저칼로리 다이어트 식단을 유지함으로써 한때 세계 최장수 지방의 위치를 지켰다.

9. 결혼하라

결혼한 사람은 혼자 사는 사람보다 오래 사는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큰 혜택을 준다.

10. 움직여라

1주일에 2시간 30분 동안 적당한 수준의 운동을 하라. 이렇게 하면 심장병, 뇌졸중, 당뇨, 우울증 등에 걸릴 위험이 줄어들고,

나이가 들어도 정신력을 예민하게 유지할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11. 약간의 술을 마셔라

술을 적당량 마시는 사람은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심장병에 걸릴 가능성이 낮다. 미국심장협회는 하루에 여자는 1잔, 남자는 1-2잔 정도를 적당량으로 추천한다.

12. 신앙을 가져라

65세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12년간 실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매주 한차례이상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면역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3. 용서하라

원한을 털어버리면 불안감이 줄어들고, 혈압이 떨어지며 숨쉬기가 편안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이같은 효과는 커진다.

14. 숙면하라

잠자는 시간이 5시간 이하인 사람은 일찍 사망할 위험이 크다. 잠을 충분히 자야 각종 질병도 예방하고, 병에서도 빠르게 회복된다.

15. 스트레스를 관리하라

요가나 명상, 복식 호흡을 해보자. 하루에 몇분만 이렇게 투자하면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생활이 달라진다.

16. 목표를 가져라

취미생활을 비롯해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활동을 하면 오래 살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6.html
kolaswqetsrq 11.02 05:58
매일 생기는 암세포 죽이는 신비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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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생기는 암세포 죽이는 신비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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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우리몸에서 매일 암세포가 생성된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매일 4천개 이상 발생하는 암세포는 건강한 사람도 예외없이 발생한다고 하는데요. 끊임없는 분열과 변이로 장기에 문제를 일으키는 암세포는 정상적인 세포까지 죽게 만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해드릴 음식들을 꾸준히 섭취하게 되면 암세포를 억제하고 자살시키는데 효과적이라고 하는데요.
",
그 좋은 음식들이 무엇인지 지금 바로 확인해 보시죠!

1. 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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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미역은 항산화 성분들이 풍부해서 암세포를 억제하고 사멸을 유도하는데 매우 뛰어난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실제로 외국 유명 H대학 발표에 따르면 미역에 함유된 후코이단 성분의 용액을 암세포에 주입 한 결과,
", "
72시간 후에 거의 모든 암세포가 소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정상세포에서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직 암세포만을 자멸하도록 유도했다고 합니다. 또한 미역속에 풍부하게 함유된 무기질과 점질성 다당류 성분들이 암예방 효과와 함께 악성종양의 진행을 억제하고 심지어 전이 과정에서까지 억제작용을 한다고 하며, 미역의 알긴산 성분으로 인해 스폰지처럼 중금속이나 발암물질을 흡착하여 몸 밖으로 배출하는데도 뛰어난 효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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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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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종의 채소 가운데 항암효과가 단연 1위를 차지한 고구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식품 1위로 선정된 만큼 최고의 항암식품이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아시아 유명 D대학 의과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고구마의 발암 억제율은 항암효과가 있는 여러 채소 중에 단연 1위를 차지하며 변종 세포에 대응하는 풍부한 베타카로틴 성분 역시 풍부해서 각종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고 발암 물질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입증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고구마를 매일 먹게 되면 폐암 발병률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 "
미국 국립 암연구소의 발표와 폐경기 전 여성과 난소암에서 유방암의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많은 연구 결과들은 고구마가 암세포를 자살시키는 항산화 성분들이 정말 풍부하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데요.
",
 "
특히 고구마 껍질에는 식이섬유를 비롯한 항산화 성분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기 때문에 대장암을 예방하고 항암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반드시 껍질채 섭취하는 것이 중요! 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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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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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즐겨 먹는 카레의 원료인 강황은 뛰어난 효능으로 인해 치유의 가루라고도 불리고 있는데요. 특히 카레 속에 풍부하게 함유된 커큐민 성분은 종양과 같은 암세포를 자살하도록 유도하며 증식과 성장을 억제 시키는 효능이 있어 위암 과 대장암 그리고 신장암 과 같은 각종 암을 예방하는데 큰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커큐민을 입으로 섭취하게 되면 장내에서 테트라히드로커큐민 이라는 강력한 항산화 물질로 바뀐다는 사실인데요. 이 성분이 암세포 를 억제하고 생성되는 것을 막아 준다고 합니다.
",
 "
또한 서울대학교 약학 대학 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커큐민은 암세포의 자살을 유도하고 더이상 암세포가 증식하는 것을
", "
막아주며, 항염증 작용 을 발휘해 염증에 의한 암화 작용을 차단하는 효능이 있다고 밝혔는데요. 이로 인해 암세포의 발현 과정에서 경로를 차단하고 생성을 억제하는데 뛰어난 효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92.html
kolaswqetsrq 11.02 05:58
슬기롭게 화내는 방법 12가지

슬기롭게 화내는 방법 12가지

1. 다른 사람의 기분에 좌우되지 마라.

침착함을 잃지 않을 때야 비로소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공격에 대해서도 효과적으로 당신을 방어할 수 있다.

2. 당당하게 말하라.

공격자는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겨냥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약하게 만들기에 싸우지 않고서도 쉽게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냥감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자세가 필요하다.

3. 강박감에서 벗어나라.

이런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심리적 안정을 되찾는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일단 어떤 사람에게 화가 났다면 심호흡을 한 후 자신의 주위에 공간을 두며,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

4. 상대를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라.

이를 위해 제시한 방법은 다음 3가지다.

a. 상대의 자극적인 말을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 무시하라.

b. 눈을 부릅뜨고 상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아무 말도 않는 것이다. 혹은 오히려 친근하게 웃어주는 것이다.

c. 상대가 부주의하게 내뱉은 말이라면 아예 무시하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5. 화제를 바꿔라.

신경에 거슬리는 상대의 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완전히 다른 화제를 끄집어낸다.

6. 한 마디로 받아쳐라.

순발력 있고 재치 있는 반격을 위해 말을 많이 할 필요는 없다. 한 마디면 충분하다. 이때에도 상대를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는 것을 겨냥해야 한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예요?” 또는 “아하, 그래!” 정도면 적당하다.

7. 속셈을 드러내지 마라.

나를 공격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알려주려면 의미 없는 말을 해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도 괜찮다.

엉뚱한 속담을 인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8. 되물어서 독기를 빼라.

나에게 상처를 주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상대에게 그 즉시 되물어라. 상대에게도 건설적인 대화를 할 기회가 만들어진다.

9. 마음의 균형을 잃게 하라.

상대의 의견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나서 자신의 의견을 단호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상대를 칭찬해 궁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10. 감정적으로 받아치지 말라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라.

상대의 공격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상대를 자세히 관찰하여 상대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지적하라.

11. 모욕적인 말은 저지하라.

상대에게 나를 모욕했던 말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하고 얼굴을 마주 보며 사과를 요구하라. 한계를 명확히 설정하여 그런 식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12. 핵심을 명확하게 말하라.

무엇이 나를 아프게 했고 무엇이 나를 화나게 했는지 간단명료하게 말하라. 상대와 대화의 규칙을 정해보는 것도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2_4.html
kolaswqetsrq 11.02 05:59
녹내장 원인, 예방, 치료방법

녹내장 원인, 예방, 치료방법

1. 녹내장 원인

녹내장이란 안압의 상승으로 시신경이 눌리거나 혈액 공급에 장애가 생겨 시신경의 기능에 이상을 초래하는 질환입니다. 녹내장 원인은 아직 정확히 안 밝혀져 안압 상승으로 인한 시신경의 손상이 꼽히지만 아직까지 병을 일으키는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안압이 정상인 경우에도 녹내장이 생길 수 있어 안압이 정상인 경우에도 녹내장이 생기는 원인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안압은 정상 범위에 속하지만 개인 특성상 안압에 민감해 시신경이 손상되는 경우. 하루 중 안압 변동 폭이 커 시신경이 손상되는 경우도 여기에 속합니다.

두 번째,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생기는 경우로 정상 안압 녹내장 환자 중에는 손발이 차거나 편두통이 있거나 혈압이 불안정한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밖에 당뇨병 환자도 녹내장이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녹내장 원인에 관한 연구 내용

호주 멜버른대학 뱅 부이 교수팀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고혈압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안압을 상승시켜 녹내장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4주 동안 고혈압 상태를 유지시킨 실험쥐의 경우에 안압이 상승에 대처하는 능력이 감소해 녹내장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는데요 1시간 정도 고혈압 상태를 유지시킨 실험쥐는 눈으로 유입되는 혈류량을 유지해 안압 상승이 유발되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 고혈압이 유지되면 안구의 혈관 자체가 손상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연구결과를 소개했습니다.

3. 녹내장 예방

일상에서 녹내장을 예방하려면 눈에 압력이 가는 상황을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무거운 역기를 든다든지 트럼펫 같이 안면에 압력이 쏠리는 악기를 부는 것 엎드려서 책을 보는 것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드는 것 등은 안압 유지에 좋지 않고 타이트한 넥타이 역시 눈의 압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갑작스런 충혈이나 통증이 있으면 안과 진료를 받는 것이 좋고 편한 옷을 입는 것이 좋습니다. 녹내장 예방에는 정기 검사가 도움 돼 40세 이후에는 1년마다 한 번씩 녹내장에 대한 검사를 받는 것이 좋고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면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처럼 지속적인 관리를 받는 것이 장애 없는 건강한 노후를 위해 꼭 필요합니다.

4. 녹내장 치료

녹내장은 당뇨망막병증, 황반변성과 함께 실명에 이를 수 있는 3대 질환입니다. 현재는 치료 방법이 발달해 과거와 달리 실명으로 이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녹내장 치료 시에는 안압약을 투여해 녹내장 진행을 멈추거나 최대한 늦출수 있기 때문에 녹내장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최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40세 이후에는 1년마다 한 번씩 녹내장에 대한 검사를 받는 것이 좋고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면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처럼 지속적인 관리를 받는 것이 장애 없는 건강한 노후를 위해 꼭 필요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54.html
kolaswqetsrq 11.02 06:00
하루 한번 귀 잡아당기면 나타나는 놀라운 변화

하루 한번 귀 잡아당기면 나타나는 놀라운 변화

이름난 장수촌의 장수 비결 가운데 하나가 매일 밤마다 귀를 비비고 빨갛게 되도록 자극한 뒤 잠자리에 드는 것이라고 한다. 삼국지 유비는 귀가 어깨까지 축 늘어질 만큼 늘 귀를 만졌다고 전한다. 한방에서도 이침(耳針)이라 하여 귀를 인체의 축소판으로 보고 서로 상응하는 부위에 침을 놓아 치료했다고 한다.

귀의 중앙에 세로로 꼬리모양으로 크게 부풀어져 있는 부분을 대이륜이라 해 척추에 대응된다. 귀의 위쪽부분은 엉덩이와 다리에 해당하고, 귓불은 머리 부분이 된다. 귓구멍의 입구부분은 내장과 관련이 있는 반사구가 밀집되어 있다. 귀를 잡아당기는 방향은 귀 윗부분은 위쪽으로, 가운데 부분은 양옆으로 잡아당기며 밑 부분은 아래쪽으로 잡아당기는 것이 기본이다.

귀는 평소에 자주 손을 대지 않는 부분인 만큼 매우 민감하다. 따라서 잡아당기는 강도는 가볍게 통증이 느껴지면서 기분이 좋을 정도가 적당하며 너무 세게 잡아당기는 것은 좋지 않다. 귀 잡아당기기는 한 번에 약 1분 정도, 30~50회 가량 시행한다. 그러나 귀에 상처가 있거나 귓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귀를 잡아당기기 전에 양 손바닥을 비벼서 손가락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귀 잡아당기기의 효과를 높여준다.

▶ 고 혈 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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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바퀴 뒤 움푹 패인 곳을 누른다. 무리했거나 일시적 흥분이 원인이 되어 혈압이 높아진 경우에는 귀 잡아당기기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귓바퀴의 위쪽 뒷면을 만져보면 움푹 패인 곳이 있는데 이곳을 강압구라고 한다. 우선 귀 뒤쪽에 있는 강압구에 엄지손가락을 대고 귀 표면을 검지로 눌러준다. 이렇게 누른 채 귓불의 밑 부분까지 쓸어내리며 잡아당겨 준다. 양쪽 귀를 동시에 7~8회 반복한다. 또 귓불을 당겨주면 뒷목 부위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고 고혈압 환자 특유의 뒷목이 뻣뻣해지는 증상을 부드럽게 해준다. 늘 혈압이 높은 사람이라면 습관적으로 아침에 잠자리에서 귀 잡아당기기를 해주면 하루 종일 맑은 정신으로 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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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통

귓불을 잡아당긴다. 간단한 습관성 두통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일 때는 귀 잡아당기기로 해결할 수 있다. 두통은 혈관이 확장되거나 수축될 때 일어나는 현상. 고혈압으로 뒷목이 뻣뻣해질 때와 마찬가지로 귓불을 조금 세게 잡아당겨 주면 두통이 곧 사라진다. 만성 두통으로 인하여 고생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두통의 반사구를 잡아당기는 것이 좋다.

▶ 눈이 침침할 때

귓볼을 늘려 아래로 잡아당긴다. 눈이 침침해지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 노화현상에 의한 것과 피로에 의한 것이다. 노화에 의한 눈의 피로는 심하면 백내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귀 잡아당기기를 습관화하면 눈이 침침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백내장의 진행을 예방할 수 있다. 또 장시간의 시험공부나 TV 시청, 컴퓨터 작업 등으로 피로해진 눈을 회복시키는 데도 효과적이다.

눈의 반사지점은 귓불의 한가운데 있다. 귓불 가운데를 엄지와 검지로 누른 후 밑으로 잡아당긴다. 처음에는 약간 강한 듯 하게 누르면서 약 50회 정도 계속해서 반복한다.

▶ 정력 감퇴

귓볼 위 돌기를 얼굴 쪽으로 잡아당긴다. 정력은 나이 들면서 감퇴되어 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피곤함이나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감소되는 경우도 있다. 정력과 관계가 깊은 것은 고환의 반사지점이다. 남성의 경우에는 그곳을 자극함으로써 정력이 증강되고 스태미나가 생기게 된다. 귓불의 위쪽에는 작은 돌기가 있는데 이 돌기의 안쪽이 고환의 반사지점이다. 이곳에 검지손가락을 깊숙이 넣어 돌기 밑으로 손가락을 거는 듯 한 느낌으로 얼굴 쪽을 향하여 잡아당긴다. 그런데 돌기 부분의 가장 아래쪽으로는 내분비와 난소의 반사지점이 있다. 따라서 이 지점을 자극하면 호르몬 분비가 원활해져 정력증강에 한층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피부를 윤택하게 가꾸어 주기도 한다.

▶ 소화불량

이륜각 위 오목하게 들어간 지점을 자극한다. 귀의 색이 누렇고 귓구멍이 작으며 귀가 얇으면 만성 위장병의 위험이 있다고 한다. 이런 상태가 아니라도 식욕이 없거나 트림을 하고 배에 가스가 잔뜩 차 더부룩하다면 장이 안 좋은 것이다. 대장, 소장, 십이지장의 반사구는 귓구멍 위 꼬리처럼 생긴 이륜각 바로 위의 오목하게 들어간 지점이다. 이 지점을 돌아가면서 자극한다. 귀 전체를 돌아가면서 자극해주는 것도 장을 튼튼하게 하는 한 방법.

▶ 어깨 결림·요통

귀 중앙 대이륜 주변을 자극한다. 어깨 결림이나 요통은 건강 상태를 깨뜨리는 원인. 이럴 때 귀를 통해 통증을 해소할 수 있다. 어깨, 허리의 반사구는 귀 중앙에 크게 불룩 튀어나온 대이륜 주변. 이곳을 바깥쪽으로 잡아당기면서 목을 위로 쭉 늘려본다든지 전, 후 좌우로 돌리면 더 큰 효과를 분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62.html
kolaswqetsrq 11.02 06:01
아침 빈속에 물 마시면 놀라운 효과

아침 빈속에 물 마시면 놀라운 효과

아침에는 바쁜 일정 탓에 식사를 거르는 사람이 많은데, 잠깐 짬을 내서 물이라도 마시는 게 좋다. 아침 빈속에 마시는 물은 다양한 건강 효과를 낸다.

우선 아침에 잘 발생하는 심근경색과 뇌경색 위험을 줄인다. 자는 동안에는 땀과 호흡으로 체내 수분 500ml~1L이 방출돼 혈액 점도가 높아지는데, 물 섭취는 이 혈액을 묽게 만들어 질환 위험을 낮춘다.

체내 노폐물 배출에도 좋다. 기상 직후 물 한 잔은 혈액과 림프액의 양을 늘려 몸속 노폐물을 원활히 흘려보낸다.

장(腸) 운동을 촉진시켜 배변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장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무언가를 먹으면 위장이 움직이는 위대장 반사(gastro- colic reflux)가 일어난다. 아침 공복에 물 한 잔은 장 운동을 도와 배변을 원활하게 한다.

만성 탈수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어르신의 경우 항이뇨호르몬 분비가 저하돼 만성 탈수 상태인 경우가 많다. 자는 동안에는 수분 공급이 안 되면서 탈수가 더 심해지는데, 기상 직후 물을 마시면 탈수를 막고 신진대사·혈액 순환을 촉진시킬 수 있다.

한편, 아침 공복에는 체온보다 약간 낮은 30도 전후의 미지근한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찬물을 마시면 자율신경계를 과도하게 자극해 부정맥 등 심장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찬물을 마시면 우리 몸이 정상 체온으로 올리는 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게 된다. 특히 고령자나 허약자는 기초 대사량이 떨어져 시원한 물을 마시면 체온이 더 감소하고, 위장 혈류량이 떨어져 소화액 분비 저하 등이 생길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86.html
kolaswqetsrq 11.02 06:01
◇ 몸이 따뜻하면 살고 차가워지면 죽는다

◇ 몸이 따뜻하면 살고 차가워지면 죽는다

어느 유명한 의사가 40년간 의사생활을 마치고 운명하면서 자기가 40년동안 환자를 치료하면서 건강비법을 알고 있는데 내가 죽거든 금고속에 있는 건강 비법을 확인하고 널리 알리라고 하였는데 의사가 죽고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속에 금고속을 열어보니 그 비법은 다름아닌 頭寒足熱 胃八分度는 무병장수한다고 하였다.

頭寒 足熱 => 머리는 차고 발은 뜨겁게

胃八分度 => 위는 8할만 채워라 즉 과식하지 말라 (거북이나 학이 오래 사는 이유는 과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 몸이 차가워지면 나타나는 증상

- 감기에 잘 걸린다.

- 비만이 된다.

- 살이 마른다.

- 두뇌건강이 약해진다.

- 피부질환이 생긴다.

- 머리카락이 빠진다.

- 눈물이 잘나온다.

- 시력이 나빠진다.

- 목소리가 약해진다.

- 남성질환이 생긴다. (정력약화)

- 여성질환이 생긴다. (수족냉증, 부인병등 )

- 자세가 흐트러진다.

- 오장육부의 기능이 저하된다.

- 추위와 더위를 잘 탄다.

그러면 몸이 따뜻하게 만들려면

- 밥 따로 물 따로 먹어서 속 기운을 배양해야 한다.

- 따듯한 음식을 먹되 적은 듯이 먹어라. (찬물을 먹지 말고 물을 따뜻하게 마셔라,)

- 식사후에 물을 먹지 말라 물은 식후 2시간 후에 먹어라 2시간 후에도 반드시 따뜻한 물을 먹어라 그래야 속기운이 배양된다..

 "
• 몸은 찬물 벼락을 맞으면 몸이 움츠러든다. 찬 기운은 위축시키고 굳게 하는 성질이 있다. 이와 같은 이치로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위와 장이 위축되고 굳어간다. 그래서 급체가 생기게 된다.
",

• 살이 마르고, 찌고 모두가 배가 차가워져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래서 열체질은 비만이 되고 냉체질은 마르게 되는것이다.

• 우리몸에서 따뜻해야 할 부분은 위장, 신장,방광, 팔다리, 등 , 배등이며 차가워야 할 부분은 머리이고 그 중간부분으로 가슴인 심장과 폐는 차가워지거나 뜨거워지면 안되고 중간정도가 되어야 한다.

• 따뜻한 음식은 몸을 따뜻하게 한다. 따뜻한 음식을 먹자 찬우유도 데워 먹자 (따뜻한 음식은 위장에서 분해나 소화 시키기가 좋아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차가운 음식은 위장에 들어오면 위장은 차가운 음식을 위장의 따뜻한 기운으로 데워서 소화 시켜야 하기 때문에 많은 기운이 소모된다)

• 따듯한 차를 마시면 몸이 따뜻해진다. (생강차 )

아침 일찍 일어나면 뜨거운 차를 마셔 뱃속을 편안하게 해주고 식사 후에 2시간이 지난후에 뜨거운 차를 마셔보라! 저절로 몸이 따뜻해 지며 피가 순환이 잘 된다.

• 매운 음식, 발효 음식이 몸을 따뜻하게 한다. (마늘과 생강은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매운 맛을 몸에 들어가 열을 내게하여 따뜻하게 해준다. 시골에서 닭이 비실 비실대면 꼬추장 비빈 보리밥을 주면 닭이 금방 좋아진다. (밥맛 없을 때 고추장에 비벼 먹자)

• 위가 차가워져서 암이 생기는데 마늘이 맵기 때문에 열을 내어 위장약이 되고 보약이 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91.html
kolaswqetsrq 11.02 06:02
염증 가라앉히는 마실 거리

염증 가라앉히는 마실 거리

몸에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면역 시스템이 방출하는 염증성 물질이 세포에 해를 입히기 전에 염증을 가라 앉혀야 한다.

면역 시스템이 승기를 놓치면 염증이 만성화해 몸에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체중이 늘고 관절이 아프거나 피부에 트러블이 생기고 피곤이 가시질 않는다. 소화도 어렵다.

양배추 등 십자화과 채소, 계피나 강황 같은 향신료, 딸기 등 베리류 과일가 염증을 가라 앉히는 데 좋다. 보다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염증 빼는 음료를 정리했다.

❶ 파인애플 주스

파인애플에 풍부한 브라멜라인 효소는 각종 염증 질환을 일으키는 단백질 작용을 억제한다. 특히 관절의 통증과 부기를 가라앉히는 데 효과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골관절염 환자, 류머티즘성 관절염 환자 모두 브로멜라인의 항염증, 항진통 효과를 경험했다. 파인애플 주스는 운동으로 인한 염증 반응을 완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칼륨이 풍부한 덕분이다.

❷ 생강차

혈액 순환을 촉진해 몸을 따뜻하게 만든다. 위가 아프고 구역질이 날 때 생강차를 마시면 속이 편안해진다. 관절에 염증이 있을 때도 좋다. 골관절염 환자 247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관절이 아프고 뻣뻣할 때 생강을 먹으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❸ 사골곰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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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 닭의 뼈를 푹 고은 국물은 서양에서도 보신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단백질은 물론 각종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특히 콜라겐, 젤라틴, 글리신, 글루타민 등은 장내 생태계를 건강하게 이끌어 면역 시스템을 강화하고 만성 염증을 다스리는 데 기여한다. 소화, 흡수가 쉽다는 것도 장점이다.
",

❹ 녹차

카테킨이라는 강력한 항염증 성분이 풍부하다. 카테킨은 특히 대장에 염증을 일으키는 사이토카인을 줄여 대장 점막을 건강하게 만든다. 경북대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은 녹차가 염증성 장 질환을 앓는 이들에게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카테킨을 비롯한 폴리페놀 성분이 장내 상피 장벽을 강화하고 미생물 생태계가 건강한 쪽으로 조성되게 돕는 까닭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33.html
kolaswqetsrq 11.02 06:03
우유 마시면 생기는 좋은 일

우유 마시면 생기는 좋은 일

우유는 칼슘이 풍부한 대표적 음식이다. 비타민 D도 들어 있어서 뼈를 튼튼하게 만들고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우유에는 단백질, 아연, 셀레늄 등이 풍부하다. 매일 우유 한 컵을 마시면 얻을 수 있는 뜻밖의 건강 효과를 안내해 드립니다.

1. 비만

우유 속 양질의 단백질은 포만감을 제공한다. 허기는 줄고 폭식할 위험도 낮아진다. 단 것에 대한 갈망이나 탄수화물에 대한 욕구 역시 줄어든다. 즉 우유는 비만을 막는다. 단백질 중에도 유청과 카세인은 음식 섭취를 조절하고 혈당 수치를 낮추고 지방 연소를 늘림으로써 체지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2. 혈압

우유는 고혈압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칼륨, 마그네슘, 그밖에 다양한 미량 영양소 덕분이다. 호주의 모나시대 연구진은 관련 논문 5편을 분석한 결과, 매일 우유 등 유제품을 충분히 섭취한 이들은 수축기 혈압이 낮아지더란 사실을 확인했다.

3. 운동 능력

운동 후에 우유를 마시면 스포츠 음료를 마시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즉 우유는 운동 능력을 높인다. 영양학자 조단 마주르에 따르면, 이는 우유가 칼슘과 단백질을 비롯해 중요한 영양소를 13가지나 포함하고 있는 덕분이다. 특히 유청과 카세인은 근육의 양을 늘리고 운동 후 피로에서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4. 당뇨병

당뇨 전 단계에 있는 이들이 저지방 우유를 마시면 당뇨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639명을 10년 간 추적 관찰한 결과, 매일 저지방 우유를 마신 이들은 당뇨병으로 진행할 위험이 41% 낮았던 것. 단 우유는 반드시 저지방 우유여야 한다. 지방이 많은 유제품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고 심장병 위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63.html
kolaswqetsrq 11.02 06:04
◇ 내 심장은 건강할까?..심장병 징후 5가지

◇ 내 심장은 건강할까?..심장병 징후 5가지

심장병 징후와 유사하다고 해서 반드시 심장병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상 증상이 느껴진다면 절대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환자는 의사보다 자신의 몸 상태를 더 잘 알고 있다. 특정 증상이 익숙하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의료 조치가 필요하다. 심장병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증상 5가지를 소개한다.

1. 발기 부전

발기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면 심장 질환 및 동맥 손상이 있을 수 있다. 파라그는 “특정 부위의 혈관 문제가 있다면, 다른 신체 부위에도 혈관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중년남성이 발기부전 증상 호소 후 심장질환이나 뇌혈관 질환을 겪게 되는 경우가 있다.

2. 심한 피로감

심한 피로감은 심장 질환의 징후일 수 있다. 심한 피로감은 하루가 끝날 때 피곤함을 느끼는 것처럼 전반적인 피로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몇 층의 계단을 오를 수 있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계단 한 층을 오르기도 어렵고, 계단을 오를 때 심한 피로감이 동반된다면 심장병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심장 기능, 심장판막, 부정맥 등 심장 이상 여부에 따라 피로감이 더 느껴질 수 있다. 심한 피로감이 느껴질 경우 심장 주치의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3. 호흡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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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호흡곤란이 협심증의 증상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협심증이라는 단어는 질식을 의미하며, 협심증이 나타나면 목 조임과 목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이 증상을 질식할 것 같은 느낌으로 묘사한다.
",

4. 가슴 통증

전문가들은 흉통이 항상 심장마비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심장마비와 관련된 남녀의 흉통 증상을 더 자세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드라마에서 보듯이 극심한 흉통이 오는 사례는 드물다.

심장병으로 인한 흉통은 가슴 압박감이나 속 쓰림 같은 증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심장질환인 협심증, 심근경색을 앓으면 주로 휴식할 때보다는 운동할 때 흉통을 호소한다. 흉통은 특히 고령, 흡연, 고지혈증 등 위험요인이 있는 사람에게 흔하다.

5. 발목 부종

발목이 붓는 증상은 심부전의 징후일 수 있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발목 부종은 매우 흔한 증상이며, 이를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혈압약 등 많은 이가 복용하는 약제 역시 발목 부종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발목 부종이 나타났다면 정확한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82.html
kolaswqetsrq 11.02 06:05
장수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거

장수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거

하루에 쌓인 피로를 정말 제대로 풀 수 있는 시간 바로 잠을 자는 시간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기계의 전원을 틀어놓고 계속해서 가동하면 고장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역시도 쉬지 않고 일만 하게 된다면 건강에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잠을 자는 것 단순히 자는 것이 아니라 푹 잘 수 있는 이른바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다들 잘 알겠지만 숙면을 취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 피로누적

▷ 면역력 약화

▷ 정신건강 영향

등등 우리 건강상에 있어서 상당히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잠을 잘 자야 건강도 좋고 장수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숙면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서 행동으로 직접 실천하려는 노력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 낮잠은 저녁 숙면에 방해가 될 수 있다.

▷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항상 일정하게 맞추어야 한다.

▷ 규칙적인 운동을 하되 저녁시간은 피하도록 한다.

▷ 잠이 들기 전 찬물이나 음식물 섭취를 삼가한다.

숙면을 위한 필수 실천사항 아마 다들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이 된다. 여기에다가 한 가지 더 알아두어야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적당한 베개 높이에 관한 부분이 되겠다.

▷ 적당한 베개 높이는?

▷ 약 10cm 높이가 적당

24시간 중 수면시간은 7-9시간 정도 될 것이다. 인생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시간이다. 그만큼 중요한 시간이니 꼭 숙면 취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94.html
kolaswqetsrq 11.02 06:06
장마철 건강 지키는데 도움 되는 식품

장마철 건강 지키는데 도움 되는 식품

덥고 습한 장마철이다. 최근 시작된 올해 장마는 다음 달 중후반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장마철에는 입맛과 체력이 떨어지면서 건강에도 나쁜 영향이 미칠 수 있다. 또한 후덥지근하고 습한 날씨는 두뇌 회전을 느리게 만든다.

뇌가 흐릿해지면 머리가 멍해지며 사고가 정지한 듯 생각하기가 힘들어 진다. 이와 관련해 메디컬뉴스투데이닷컴 등의 자료를 토대로, 장마철 건강 지키는데 도움이 되는 음식에 대해 알아본다.

1. 물

여름철 신체기능을 강화하려면 수분 섭취가 중요하다. 여름엔 땀 배출량이 늘어나 탈수증이 나타나기 쉬운데 이를 예방해야 신체가 좀 더 원활하게 기능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에 1.5~2l의 물을 섭취할 것을 권고한다. 물의 밍밍함과 비릿한 맛이 싫다면 라임, 오렌지, 레몬, 오이 등을 얇게 썰어 물에 띄우거나 보리나 현미 차 같이 곡물을 우린 차를 대신 마시는 것도 좋다.

2. 우유, 달걀, 새우, 다랑어 등 비타민D 식품

장마가 오래 지속되면 햇볕을 쬘 기회가 줄어든다. 햇볕을 받으면 피부에서 비타민D가 합성된다. 여름철에는 강한 자외선이 문제가 되지만, 하루 15분 정도는 햇볕을 쬐어야 비타민D 합성에 문제가 없다.

비타민D가 결핍되면 혈액 속 칼슘과 인의 농도가 낮아져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따라서 흐린 날이 오래 지속되거나 평소 외출이 드문 사람은 음식 등으로 비타민D를 보충하는 것이 좋다.

비타민D는 다랑어, 정어리, 연어 등의 생선이나 우유, 새우, 달걀노른자, 소의 간, 표고버섯, 시금치 등에 많이 들어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최근 70세 이상 노인은 비타민D를 하루 800IU(국제단위) 이상 섭취할 것을 권장했다.

성인의 하루 비타민D 권장량(600IU 이상)보다 오히려 많은 양의 섭취가 노인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유 한잔(220ml)에는 약 100IU, 달걀노른자 1개엔 40IU, 참치 한 캔에는 150IU, 연어 100g에는 450IU, 버섯 100g에는 400IU의 비타민D가 들어 있다.

3. 채소, 과일, 통곡물로 구성된 아침

아침식사는 뇌를 비롯한 신체에 활력을 더 한다. 아침식사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보면 아침을 먹는 것이 기억력과 집중력 강화에 보다 유리하다.

아침식사를 한 연구 참가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수행능력이 보다 뛰어난 경향을 보인 것이다. 특히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와 과일, 통곡물, 유제품 등으로 구성된 아침식사가 좋다.

4. 견과류, 씨앗류 간식

견과류와 씨앗에는 영양소가 풍부해 장마철 지친 체력을 보강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항산화 역할을 하는 비타민E가 풍부한데 이 성분은 인지기능 감퇴를 늦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견과류를 너무 많이 먹으면 체중이 늘어날 수 있으니 하루에 견과류 한 줌 정도를 간식으로 먹으면 이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97.html
kolaswqetsrq 11.02 06:06
비견접종比肩接踵 - 어깨가 닿고 발뒤꿈치가 잇따른다, 사람이 많아 붐비다.

비견접종(比肩接踵) - 어깨가 닿고 발뒤꿈치가 잇따른다, 사람이 많아 붐비다.

견줄 비(比/0) 어깨 견(肉/4) 이을 접(扌/8) 발꿈치 종(足/9)

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복작인다는 표현으로 轂擊肩摩(곡격견마, 轂은 바퀴통 곡)를 소개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붐비는 것은 어깨가 서로 닿고(比肩) 발뒤꿈치가 서로 연이어진다(接踵)는 말을 쓴다.

어느 것이나 사람이 많은 모양을 나타내는데, 뜻이 확대되어 어떤 일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比肩(비견)을 따로 떼어 쓸 땐 어깨를 겨룰 만큼 능력이 비슷한 것을 말하고, 接踵(접종)은 남의 뒤를 바싹 붙어 따르거나 사건이 잇따라 생기는 것을 나타낸다.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齊(제)나라의 명재상 晏嬰(안영)은 3명의 왕을 잘 받들어 晏子(안자)라고도 불린다. 밥상에 고기반찬을 올리지 않았고 부인에겐 비단 옷을 입히지 않을 정도로 평생 근검절약하여 우러름을 받았다. 키가 작고 외모는 볼품없었지만 달변과 임기응변으로 유명했다.

어느 해 안자가 楚(초)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초왕은 나라가 강대함을 믿은 데다 지략이 뛰어나다는 안영을 모욕주기 위해 궁궐 대문 옆의 작은 문으로 들어오게 했다. 개의 나라에서 사신을 맞이하는 것이냐고 안영이 호통치자 성문이 열렸다. 초왕이 안영을 만났을 때 난쟁이를 보냈다며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느냐고 또 빈정거렸다.

안영은 사람이 너무 많아 ‘팔소매를 들어 올리면 태양이 가려져 그늘이 지고, 땀을 흘리면 비 오듯 하며 어깨가 서로 닿고 발뒤꿈치가 부딪치는데(張袂成陰 揮汗成雨 比肩繼踵而在/ 장몌성음 휘한성우 비견계종이재)’ 어찌 사람이 없다고 하느냐며 반박했다.

袂는 소매 몌. 그러면서 작은 사람을 보내는 나라는 무능한 나라의 무능한 왕에게 보내는 원칙이 있다고 태연히 말해 초왕의 코를 납작하게 했다. 함께 나온 揮汗成雨(휘한성우)도 땀이 비 오듯 하다는 뜻과 함께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것을 나타낸다. ‘晏子春秋(안자춘추)’ 雜篇(잡편) 하에 실린 내용이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99.html
kolaswqetsrq 11.02 06:07
좌회불란坐懷不亂 - 여자를 품에 안고도 흐트러지지 않음

좌회불란(坐懷不亂) - 여자를 품에 안고도 흐트러지지 않음

앉을 좌(土/4) 품을 회(心/16) 아닐 불(一/3) 어지러울 란(乙/12)

미인을 앞에 두고 마음이 뺏기지 않을 남자는 성인이거나 도인 아니면 없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절세미인 黃眞伊(황진이)의 온갖 유혹을 물리친 花潭(화담) 선생이나 가능한 일이 더 아득히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에도 있었다. 여자를 품에 안고서(坐懷) 하루 밤을 지내도록 흐트러지지 않았다(不亂)는 柳下惠(유하혜) 얘기다.

그는 魯(노)나라의 대부로 있으면서 덕행이 있고 예에 어긋나지 않게 국정을 이끌어 孔子(공자)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孟子(맹자)도 유하혜를 조화로운 성인 和聖(화성)으로 부르며 伊尹(이윤), 伯夷(백이), 공자와 함께 4대 성인으로 추앙했다고 할 정도다.

남녀가 함께 지내도 바르지 못한 행위는 없었다는 이런 스토리는 ‘荀子(순자)’ 大略(대략)편에 간단히 나온 것이 처음이다. 후대에 살을 붙여 前漢(전한) 毛亨(모형)의 주석에서 淸(청)나라 소설가 李汝珍(이여진)의 대표작 鏡花緣(경화연)에 이르기까지 수다히 인용됐다. 여기선 元(원)나라 胡炳文(호병문)의 ‘純正蒙求(순정몽구)’의 내용을 보자. ‘유하혜가 어느 때 먼 길을 다녀오느라 늦어서 성문 밖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갑자기 한 여자가 와서 잘 곳이 없으니 같이 자게 해달라고 했다. 유하혜는 얼어 죽을 것 같은 그 여인을 품에 안고 옷으로 덮어주었다. 새벽에 이르기까지 난잡하지 않았다(遠行夜宿都門外 時大寒 忽有女子來託宿 下恵恐其凍死 乃坐之於懐 以衣覆之 至曉不為亂/ 원행야숙도문외 시대한 홀유녀자래탁숙 하혜공기동사 내좌지어회 이의복지 지효불위란).’

莊子(장자)는 이런 유하혜에게 동생으로 무지막지한 악인의 대명사 盜跖(도척, 跖은 발바닥 척)을 등장시켰다. 성인의 동생이 ‘도적의 六道(육도)’를 운운하며 공자를 조롱하는 대도로 나오니 극과 극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형제의 재미있는 비유가 됐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58.html
kolaswqetsrq 11.02 06:08
절영지연絶纓之宴 - 갓끈을 끊고 노는 잔치

절영지연(絶纓之宴) - 갓끈을 끊고 노는 잔치

끊을 절(糸/6) 갓끈 영(糸/17) 갈 지(丿/3) 잔치 연(宀/7)

갓끈과 푸근한 술자리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옛 사람들은 주연에서도 근엄하게 의관을 정제하고 기품 있게 즐겼는데 갓끈을 풀어헤치다니 그만큼 격식을 잊고 분위기를 즐기라는 의미였겠다. 성대한 술자리에서 흥겹게 논다는 의미의 성어는 杯盤狼藉(배반낭자)나 觥籌交錯(굉주교착, 觥은 뿔술잔 굉, 籌는 산가지 주), 주야로 술 마시고 논다는 卜晝卜夜(복주복야) 등이 있다.

여기에 더한 절영지연(絶纓之宴)은 남에게 너그러운 덕을 베푸는 것을 비유하여 단순히 노는 술자리만이 아니고 화합이 잘 되어 생산성을 높이는 회의를 연상할 수 있는 뜻도 포함한다. 絶纓之會(절영지회)나 간단히 줄여 絶纓(절영)이라고도 한다. 劉向(유향)이 지은 說苑(설원)에서 유래했다.

春秋五覇(춘추오패)의 하나로 세력을 떨치던 楚(초)나라 莊王(장왕) 때의 얘기다. 어느 해 일어난 반란을 평정한 뒤 공을 세운 문무백관들을 궁중에 초청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 궁녀들로 하여금 시중을 들게 했다. 밤이 이슥하도록 주연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광풍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져 버렸다. 그 때 왕의 애첩이 비명을 질렀다. 어둠 속에서 누가 가슴을 더듬고 희롱했다며 갓끈을 끊었는데 불을 켜서 갓끈이 없는 사람을 잡아 처벌해 달라고 애소했다.

불만 켜면 왕의 애첩을 희롱한 자가 드러나고 목숨을 잃을 판이었다. 그러자 장왕이 ‘오늘은 과인과 함께 마시는 날이니 갓끈을 끊지 않은 자는 이 자리를 즐기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今日與寡人飮 不絶冠纓者不歡/ 금일여과인음 부절관영자불환)’며 모두에게 불 켜기 전에 갓끈을 끊도록 명령하고 여흥을 즐겼다. 3년 뒤 장왕은 晉(진)나라와의 전쟁에서 선봉으로 큰 공을 세운 장수에게 상을 내렸는데 그가 이미 왕에게 죽었던 목숨을 건졌던 사람이라고 실토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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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6:09
고보자봉故步自封 - 옛 버릇으로 스스로를 옭아매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다.

고보자봉(故步自封) - 옛 버릇으로 스스로를 옭아매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다.

연고 고(攵/4) 걸음 보(止/3) 스스로 자(自/0) 봉할 봉(寸/6)

‘만물은 유전한다(panta rhei)’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는 말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流轉(유전)하여 같은 상태로는 있을 수 없고 한 곳에 머무는 일도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우주 만물은 생기고 없어지며 끊임없이 변천한다는 生滅流轉(생멸유전)이란 성어도 마찬가지다.

산천은 옛 모습 그대로라며 依舊(의구)하다 해도 桑田碧海(상전벽해),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그런데 이랬다저랬다 하는 人心朝夕變(인심조석변)의 경망함 말고 몸에 익숙한 것을 세태의 변화에 맞추는 일은 어렵다. 잘 아는 분야나 가진 것이 많을수록 새 것을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한다.

이전부터 걸어오던 걸음걸이 故步(고보)는 옛 습관, 스스로를 옭아매는 自封(자봉)은 변화를 거부하는 것으로 따로 사용돼 오다 함께 성어로 쓴 역사는 짧다. 중국 淸(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초기의 계몽사상가로 이름 높은 량치차오梁啓超/ 양계초, 1873~1929의 ‘愛國論(애국론)’에서라 한다. 여자 아이의 纏足(전족, 纏은 얽을 전)에 대해 비판한 내용이다.

전족은 발이 작고 부드러운 여자를 미인으로 생각했던 중국 사람들의 낙후성을 잘 보여주는 상징이다. 어릴 때부터 엄지발가락 이외의 발가락들을 발바닥 방향으로 접어 넣듯 힘껏 헝겊으로 동여매어 자라지 못하게 했으니 큰 고통이었다.

여성을 압제에서 해방한다며 풀게 했는데 그것도 고통이었다. 발을 꽁꽁 묶었던 천을 풀었으나 걸을 때 받쳐줄 것이 없어 통증이 더 심해졌고 여자들은 제 손으로 발을 동여 전족의 속박으로 되돌아갔다. 이 부분에 관한 것을 고사성어집 ‘조심’(정민 지음)에서 소개하고 있다.

‘부인네들이 십년 동안 전족을 하다 보니(婦人纏足十載/ 부인전족십재), 묶은 것을 풀어주어도 오히려 다닐 수가 없다(解其縛而猶不能行/ 해기박이유불능행). 그래서 이전 걸음으로 스스로를 얽어매고 만다(故步自封/ 고보자봉).’ 불편하다고 해서 익숙한 것에서 급격한 변화를 주다가는 이전보다 못해 옛것을 고집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자기 몸에 익은 것을 시대가 변했다고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늙은 할미의 뜻이나 어린애의 떼쓰는 것을 못 이겨 그대로 따르는 것이 姑息之計(고식지계)다. 낡은 관습이나 폐단을 벗어나지 못하고 우선 편한 방법만 택한다.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을 끝까지 지키는 墨守成規(묵수성규)도 좋지만 자칫 변화를 따르지 못하면 기러기발을 묶고 거문고를 연주하는 膠柱鼓瑟(교주고슬)의 어리석음을 가져온다. 스스로가 잘났다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익힌 생각이 절대적이라 고집하고 새로운 흐름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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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6:09
고황지질膏肓之疾 - 오랫동안 앓고 있어 고치기 어려운 병이나 버릇

고황지질(膏肓之疾) - 오랫동안 앓고 있어 고치기 어려운 병이나 버릇

기름 고(肉/10) 명치끝 황(肉/3) 갈 지(丿/3) 병 질(疒/5)

고황에 든 병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膏(고)는 심장 아래 부분의 작은 비계, 肓(황)은 가슴 위의 작은 막으로 심장과 횡격막 사이를 말한다. 만약 병균이 이곳에 침범하면 고치기가 어렵다고 전해진 곳이다. 몸 깊은 곳에 병이 들었으니 침이 미치지 못하므로, 병을 고칠 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뜻이 넓혀져 사물의 고치기 어려운 병폐나 나쁜 버릇을 가리키게 되었다.

孔子(공자)의 春秋(춘추)를 주석하는 春秋三傳(춘추삼전) 중에서도 역사적 실증적 해석을 중심으로 한 左丘明(좌구명)의 ‘左氏傳(좌씨전)’에 이 말이 사용됐다. 晉(진)나라의 景公(경공)이 병이 위독해져 秦(진)나라에 명의를 부탁했다.

秦伯(진백)은 醫緩(의완)을 보내 병을 다스리게 했다. 의사가 도착하기 전 경공이 꿈을 꾸었는데 더벅머리 두 총각으로 변한 병이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한 놈이 ‘그 사람은 용한 의사라던데 우리가 어디로 숨어야 하지?’ 하고 말하니 다른 놈이 답하길 ‘황의 위쪽과 고의 아래쪽에 가 있으면 그도 어쩌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윽고 의원이 와서 진맥하더니 병을 고칠 수 없다며 말했다. ‘병의 뿌리가 황의 위쪽과 고의 아래쪽에 있어 뜸을 할 수도 없고 침을 찔러도 닿지 않으며 약을 써도 미치지 못합니다(在肓之上膏之下 攻之不可 達之不及 藥不至焉 /재황지상고지하 공지불가 달지불급 약부지언).’ 成公(성공) 10년 조에 실려 있다.

이렇게 고황에 든 병은 명의도 고칠 수 없다고 痼疾(고질)이라고도 했다. 痼(고)는 훈도 고질 고이지만 병중에서도 단단히 난(固) 병이고 疾(질)은 화살(矢)처럼 빠른 설사, 복통, 식중독 같은 급성질병을 말한다. 疾은 고칠 수 있어도 痼는 암이나 당뇨병 같은 쉽게 고칠 수 없는 병이라 고황과 통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질병처럼 깊음을 비유하는 泉石膏肓(천석고황)은 고황이라도 좋은 고황이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98.html
kolaswqetsrq 11.02 06:10
요원지화燎原之火 - 언덕에 번지는 불

요원지화(燎原之火) - 언덕에 번지는 불

횃불 료(火/12) 언덕 원(厂/8) 갈 지(丿/3) 불 화(火/0)

요원의 불길이란 말을 쓸 때가 있다. 이 때의 요원이 횃불, 불탄다는 뜻의 燎다. 너른 벌판에 삽시간에 번지는 불길이니 무서운 형세다. 바람이라도 불면 걷잡을 수 없다. 온 산을 물들이는 진달래는 철쭉의 명소인 지리산 바래봉이나 합천의 황매산 등지에 만산의 장관을 보여준다고 봄이오면 매체마다 소개하고 있다.

들판의 불길과 같이 멀리서 본 철쭉도 요원과 다름없다. 이와 함께 이 말은 세력이 매우 대단하여 원상태로 회복하기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됐다.

尙書(상서)라고도 하는 중국 고대의 기록 ‘書經(서경)’ 商書盤庚(상서반경)편에 이 말이 먼저 등장한다. 商(상)나라 반경은 19대 왕의 이름인데 시조 湯王(탕왕)의 10세 손이다. 상나라는 殷(은)나라라고도 부른다. 처음 亳(박, 은나라서울 박)이라는 곳에 도읍을 정했다가 몇 번 옮겨 그 때는 耿(경)이라는 곳이 수도였다.

경땅은 비교적 편리한 곳으로 백성들도 만족하고 살았는데 반경이 즉위할 때 홍수가 나 도읍을 옮길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천도가 쉬운 일이 아니고 백성들도 정착지를 바꾸려 하지 않아 왕이 먼저 조정의 문무백관을 불러 꾸짖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나에게 고하지 않고서 들뜬 말로 부추겨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가? 마치 불길이 들판을 태우는 것과 같아서 나아가 가까이 갈 수도 없는데 어찌 그것을 없앨 수 있겠는가(若火之燎于原 不可嚮爾 其猶可撲滅/ 약화지료우원 불가향이 기유가박멸)? 그대들이 스스로 편안치 못하게 한 것이니 내게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다.’

손해를 본다고, 귀찮다고 일을 하려하지 않는 벼슬아치들에게 무엇이 백성을 위한 길인가를 잘 알고 행정을 집행하라는 교훈을 주는 말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25.html
kolaswqetsrq 11.02 06:11
행재요화幸災樂禍 - 남이 재난과 화를 입는 것을 보고 기뻐하다.

행재요화(幸災樂禍) - 남이 재난과 화를 입는 것을 보고 기뻐하다.

다행 행(干/5) 재앙 재(火/3) 좋아할 요(木/11) 재앙 화(示/9)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대로 남이 잘 되는 것에 시기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퇴색되어 가는 요즘에는 인격이 성숙한 사람이라도 흥미로운 일에 더 관심이 갈수밖에 없다고 ‘남의 집 불구경 않는 군자 없다’란 속담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남의 불행을 자기의 행복으로 여기고 즐거워한다면 참으로 고약한 이웃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아닌 남의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고(幸災) 재앙을 즐거워하는(樂禍) 이 성어는 樂자가 즐길 락, 노래 악, 좋아할 요로 읽혀 행재낙화로 쓰기도 한다.

魯(노)나라 左丘明(좌구명)이 쓴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나오는데 幸災는 僖公(희공)조에, 樂禍는 莊公(장공)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晉(진)나라 惠公(혜공)은 왕에 오르기 전 망명했던 이웃 秦(진)나라에 성 5개를 준다고 약속하고 도움을 받았다. 왕이 되자 약속을 저버린 혜공은 어느 해 나라에 큰 흉년이 들자 이번엔 이웃에 식량을 청했다.

秦나라로서는 괘씸했지만 천재는 도와야 한다는 대부 百里奚(백리해, 奚는 어찌 해)의 권유로 식량을 줬다. 이번엔 秦나라가 흉년이 들어 晉 혜공에 도움을 청하자 거절당했다. 이 때 慶鄭(경정)이란 대부가 ‘베풂에 등 돌린다면 외롭게 될 것이고 남의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면 어질지 못한 일(背施無親 幸災不仁/ 배시무친 행재불인)’이라 간언했다. 하지만 못난 혜공이 듣지 않아 침략을 받고 포로 신세가 되고 말았다.

周(주)나라 莊王(장왕)이 죽은 뒤 대신들에 의해 왕위에 오른 꼭두각시 子頹(자퇴)는 아무 것도 모르고 주색과 가무에 도취되어 있었다. 이에 사람들은 ‘지금 왕자 퇴는 가무에 취해 지칠 줄 모르면서 화를 즐기고 있다(今王子頹歌舞不倦 樂禍也/ 금왕자퇴가무불권 요화야)’고 손가락질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18.html
kolaswqetsrq 11.02 06:12
술 마시며 맺은 친구는

술 마시며 맺은 친구는

술 끊으면 없어지고,

돈으로 만든 친구는

돈 없으면 사라지고,

카스 또한 탈퇴하면

그 인연 역시 끊어진다.

이제서야 느끼는 건

인연을 아주 우습게 아는 가벼움.

웃고 떠들고 놀다가도 홀연히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그 많은 분들...

나는 하늘에 별과 같이 많고

바다에 모래알같이 많은 사람들과

모두 인연을 맺고 싶지는 않다.

그저...

전화 한 통으로 안부를 물어주고

시간 내어 식사 한 번 하면서 서슴없이

마음이 통하는 친구 같은

좋은 인연을 맺고 싶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아지는 거..

인연을 가꾸는 것도 내 몫이요,

내 곁에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내 몫이며 내 소명인 것이다.

살다가 세월의 풍파로

연이 끊어져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돌이켜 생각하면 미소가 떠오르는

그런 인연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 바람에 띄운 그리움 中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42.html
kolaswqetsrq 11.02 06:13
■ 내시와 환관

■ 내시와 환관

조선시대의 내시는 남성 기능을 상실한 환관을 가리킨다. 하지만 고려시대의 내시는 성격이나 신분이 조선시대와 완전히 달랐다. 고려시대 내시는 환관이 아니었고, 성불능자도 아니었다. 고려 전기의 내시는 가문과 학식, 재능과 용모를 갖춘 엘리트 집단이었다. 과거급제나 음서(조상 덕에 특채로 관직을 받는 것)로 벼슬에 오른 문벌 집안의 아들이나 전장에 나가 군공을 세웠거나 학식이 뛰어난 사람들이 내시로 발탁됐다.

내시는 왕의 최측근 시종으로 국정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왕 행차 시 동행, 왕명 초안 작성, 국가 기무관리, 유교경전 강의, 왕실 재정 담당 등의 일을 했다. 때로는 왕을 대신해서 궁궐 밖 민정을 살피는 밀명도 주어졌다.

고려시대에도 물론 거세자(去勢者)는 있었다. 환관·또는 환자라 불린 이들은 액정국에 소속돼 궁중의 잡역을 담당했다. 내시가 엘리트 집단이었던 데 반해, 환관은 대부분 노비, 무녀, 관비 소생, 특수 행정구역인 부곡 출신이었다.

내시와 환관은 전혀 다른데도 내시 하면 으레 거세된 남성을 떠올리게 된 것은 고려 말 원나라의 영향 때문이다. 원나라에서는 환관의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컸다. 이 같은 현상은 고려 말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자연스레 우리 조정에도 전해졌고, 왕의 신임을 받는 환관이 내시로 임명되면서 내시제도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가문이 좋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에 국한되지도 않았고, 내시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질도 떨어졌다.

 "
게다가 1356년(공민왕 5년)에 환관의 관청이 새로 설치됐는데, 그 이름이 공교롭게도 내시부였다. 이때부터 내시부 소속 환관과 ‘원조’ 내시가 혼동되기 시작했다. 결국 최고 엘리트로 지칭되던 내시는 환관의 별칭으로 둔갑하고 만다. 조선 세종 때 내시와 환관 이 용어상 혼란을 야기 시킨다는 이유로 고려의 내시를 내직(內職)으로 개칭했다. 그것도 1466년(세종 12년)에는 이를 완전히 폐지하고 그들이 하던 일을 궁궐 숙위병인 충의위와 충찬위에 맡기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사극을 보면 임금의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거세한 남자 환관은 내시와 동일한 것이 되었다.
",

이로써 환관과 구별되는 고려 내시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조선의 환관제도 즉 내시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였다.

♣ 제공 : KIMSEM과 함께 역사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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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6:13
■ 생활 속 일본어 4편

■ 생활 속 일본어 4편

1. 마후라

영어 ‘muffler’의 일본식 영어발음 ‘まふら(마후라)’에서 온 말로, 우리말로 하면 ‘목도리’를 뜻한다. 자동차에서 배기가스가 나올 때 나는 소음을 줄여주는 소음장치(消音裝置) ‘muffler’의 일본식 영어발음이기도 하다.

2. 무데뽀

“저 사람 정말 무데뽀네!” 라고 할 때 무데뽀는 일본어 むてっぽう(無鐵砲:무텟뽀)이다. 의미는 방향과 때를 가리지 않고 맹목적으로 아무렇게나 마구 쏘아대는 발포행위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앞 뒤 생각 없이 무턱대고 행동하거나 분별없음, 경솔함 등을 뜻하는 표현인데, 우리말로 무턱대고, 저돌적으로, 막무가내, 무모함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3. 소데나시

 "
일본어에서 소데(そで)는 소매이고, ‘나시(なし)’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소데나시라 하면 소매 없는 이란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매 없는 옷’을 가리키는 말로서, 민소매라는 우리말로 바꿔 부르는 것이 좋겠다.
",

4. 시말서

직장에서 어떤 일을 잘 못했을 때, 상사로부터 시말서(始末書)를 작성하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것은 그 일의 경위를 서면으로 적고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서약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말(始末)’은 일의 시작과 끝 즉 과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전말(顚末)’과 비슷한 뜻이다. 글자 그대로 어떤 일의 시작과 끝을 가리키는 일본식 한자어이다.

5. 십팔번

‘나는 노래방에 가면 〇〇〇가 십팔번이야“에서 ‘애창곡(愛唱曲)’ ‘장기(長技)’의 뜻으로 쓰이고 있는 ‘십팔번(じゅうはちばん:쥬하치방) ’이란 말은 일본에서 건너온 말이다. 17세기 무렵, 일본‘카부끼’ 배우 중 이치가와 단쥬로라는 사람이 자신의 가문에서 내려온 기예 중 크게 성공한 18가지 기예를 정리했는데 이것을 카부끼 18번이라 불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잘 하는 것’ 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 5편에 계속

♣ 제공 : KIMSEM과 함께 역사 다시보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4_8.html
kolaswqetsrq 11.02 06:14
■ 생활 속 일본어 2편

■ 생활 속 일본어 2편

1. 엑기스

‘엑기스’는 진액(津液)이라는 의미로, 영어 엑스트랙트(extract:뽑아내다, 추출하다, 발췌하다)를 일본에서 일본식 영어 발음으로 줄여서 エキス(에키스)라고 한다. 엑기스란 말 자체를 영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2. 오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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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한 국물과 함께 먹는 우리의 간식 ‘오뎅’. 우리말로 표현하면 ‘어묵꼬지’ 꼬지어묵이라고 하면 되지않을까. 원래 일본에서 우리나라의 ‘어묵’에 해당하는 단어는 ‘가마보꼬’이고, ‘오뎅’은 우리나라처럼 따끈한 국물에 어묵 뿐 아니라 무, 곤약, 달걀, 유부, 야채 등등의 각가지 재료를 넣은 꼬치요리 자체를 일컫는 말이다.
",

3. 기스

‘내 차에 기스가 났어!’ ‘액정에 기스가 나서 잘 안보여’ 등에서 사용하는 ‘기스’는 흠 또는 상처의 뜻을 가진 일본어'きず(키즈)‘에서 온 말이다.

4. 가라오케

가라오케는 ‘비었다’ 는 의미의 ‘가라(から: 空)’와 영어의 ‘오케스트라(orchestra)’의 일본식 합성어이다. 악단이 없는 ‘가짜오케스트라, 무인 오케스트라’라는 뜻이다. 노래반주만을 녹음하여 그것에 맞추어 노래를 하기 위한 일본에서 수입된 기계식 반주테이프 또는 그 연주 장치를 가리킨다. 80년대 이후 유흥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 나갔으며, 그것이 한국식 노래방으로 변형되어 다시 일본으로 역수출되기도 했다.

5. 가마니

요즘은 보기 힘든 물건이 되었지만, ‘가마니’는 볏짚을 날(세로)과 씨(가로)로 엮어 천 짜듯이 만든 자루이다. 1908년에 일본에서 가마니틀이 들어와서 만들어 쓰게 되었다. 일본말 ‘가마스(かます)’에서 유래된 말이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과 함께 역사 다시보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2_98.html
kolaswqetsrq 11.02 06:15
■ 백범 김구 2편

■ 백범 김구 2편

당시 미국의 최대 적은 소련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이런 미국에게 한반도 내 공산당까지 아우르며 통일 대한민국을 만들려 했던 백범과 임시정부가 반가울 리 없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반가운 인물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이며 미국에서 다양한 정치활동과 외교활동을 펼친 이승만이었을 것이다. 일본의 무자비한 공격에 하루하루가 전쟁터 같았던 임시정부와는 달리, 일제의 탄압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미국에서 미국식 의회민주주의를 공부한 이승만은, 일본을 공격하는 것보다 식민지 한국의 사정을 외교로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그의 눈에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의 의거는 순간의 감정을 못 이기고 행한 테러 행위로 비쳤을 지도 모른다.

백범과 이승만은 과거 상해 임시 정부에서 초대 대통령과 경무국장으로 만난 이후 26년 만에 다시 서울에서 만났다. 당시 신탁통치문제 등의 복잡한 정세에서 이승만은 남한 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백범은 시간이 걸려도 통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서로 엇갈렸다.

김구는 1948년 2월에 통일정부수립을 호소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남북협상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북행길에 올랐다. 4월20일 평양에 도착한 백범은 23일에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연설을 하고, 4월26일부터 30일까지 개최된 남북요인회담에서 외국 군대의 동시철수와 민주주의 임시 정부 수립 등을 결의해 공동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5월5일 서울로 돌아와 남북통일에 대한 희망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1948년 8월에 남한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에는 9월에 조선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각각 수립되어 분단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백범이 친일파를 철저히 색출해서 제거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내세운 반면, 이승만은 친일 행위를 한 인물들을 대거 등용하기 시작했다. 나치의 통치기간 동안 친독 행위자 수천 명을 처단했던 프랑스와는 달리, 친일파들에게 관대했던 이승만의 정책에 백범은 강하게 반대 했다.

결국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는 당시 육군 소위 안두희(1917~1996)의 흉탄에 맞아 조국 통일의 강렬한 염원을 간직한 채, 경교장(김구의 사저)에서 서거하고 말았다. 그가 서거한 지 정확히 1년 후인 1950년 6월25일 백범의 예견처럼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이 전쟁은 씻지 못할 상처를 우리에게 남겼고 아직도 우리는 분단된 나라에서 살고 있다. 참으로 찬타까운 일이다. 서거 40여년 만에 이루어진 국회 조사활동에서 이 암살사건은 안두희의 우발적인 단독 범행이 아니라, 당시 군 수뇌부에 의한 정권차원의 범죄임이 밝혀졌다.

♣ 제공 : KIMSEM과 함께 역사 다시보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2_68.html
kolaswqetsrq 11.02 06:16
■ 도산島山 안창호 2편

■ 도산(島山) 안창호 2편

다시 미국으로 간 도산은 1912년 해외 한인사회를 조직적으로 통합하여 한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이익을 증진시킬 중추기관으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발족하였다. 대한인국민회는 미 국무성과 캘리포니아주 정부로부터 자치단체의 자격과 권위를 인정받아 한인사회의 자치와 권익을 신장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로 인해 당시 유학생과 망명 애국지사들은 여행권을 갖지 않고도 대한인국민회의 보증으로 입국이 가능하였고, 영주권을 발급받을 수도 있었다.

도산이 상해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상해에는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있었다. 임시정부 청사를 마련하고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로 업무를 시작한 도산은 독립운동의 전략을 세우고 헌법과 법률 제정을 검토했다. 또한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대한미국적십자회, 임시사료편찬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다방면에서 사업을 전개하였다.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국외 독립활동에 매진한 도산은 1932년 4월29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연류되어 체포되고 말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그는 심문 조사 후 4년 실형을 언도받았다. 일제의 모진 고문에도 도산은 꿋꿋이 버텨 출옥을 했고, 이후에도 허약해진 몸을 이끌고 일본 경찰의 감시와 방해를 무릎 쓰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강연을 다녔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 도산은 모든 활동을 금지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다시 일제에 체포되어 서울 종로경찰서에 수감되었다.

이후 재판을 거쳐 다시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되었으나 위장병과 폐결핵 증세로 위급한 상태에 빠지자 조선총독부에서는 급히 도산을 보석시켜 경성제국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당시 도산은 위하수증·간경화·만성기관지염 증세로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친형인 안치호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1938년 3월10일 60세의 나이로 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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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6:16
■ 아시아의 희망 청년 윤봉길 2편

■ 아시아의 희망 청년 윤봉길 2편

윤봉길 의사는 미리 봐 두었던 뒤편 오른쪽 군중 속에 들어가 투척 장소와 시간을 맞추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전 11시 50분 경, 윤봉길은 도시락으로 위장한 폭탄을 땅에 내려놓고 어깨에 메고 있던 수통의 폭탄 덮개를 벗기고 가죽 끈이 붙어 있는 채로 2m 가량을 전진하여 17m 정도 떨어진 중앙 단상 위로 힘껏 투척을 했다. 폭탄은 노무라와 시게미쓰의 면전에 명중하면서 폭발했고, 식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윤봉길은 재빨리 다음 폭탄을 꺼내 들었다. 자폭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안전핀을 뽑으려는 순간, 주변의 일본군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의 의거로 총사령관 시라카와는 전신에 탄편을 맞아 신음하다 결국 사망했고, 해군 총사령관인 노무라는 실명을 하였으며, 제9사단장 우에다는 다리를 절단하는 등의 치명상를 입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윤봉길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운 취조와 고문을 받았다. 6개월에 가까운 취조와 고문으로 윤봉길의 심신은 한계를 드러냈고, 11월16일 윤봉길 의사를 태운 배는 상해를 떠나 일본 고베로 향했다.

윤봉길은 1932년 12월18일 가네자와 형무소로 옮겨졌고, 다음날인 12월19일 7시30분 무장한 헌병들이 그를 교외의 미고우시 공병작업장으로 끌고 갔다. 일본 헌병은 윤봉길의 두 팔을 십자형 기둥에 묶었고 그의 눈을 흰 천으로 가렸다. 헌병의 총탄은 윤봉길의 이마를 관통했다. 25살 청년 윤봉길의 고귀한 순절의 순간이었다. 일본군은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그곳에서 3km 떨어진 가나자와시 공동묘지 한 모퉁이에 그를 암매장하고 봉분임을 알지 못하게 위장했다. 만약 그의 시신을 한국으로 보내게 되면 3·1운동 때처럼 분명 한국인들을 결집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대 죄인이라도 처형 후에 유족의 요청이 있으면 인도를 하든가 그렇지 못하면 형무소 내에 적어도 묘표를 세우도록 그들의 육군형법에도 명시되어 있었지만, 윤봉길 의사의 경우는 아무도 모르게 암매장을 했던 것이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일본 패전 후 환국한 백범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주도한 ‘윤봉길의사 유해 봉환단’에 의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유해발굴단은 1946년 3월2일부터 200명이 넘는 인원으로 3일 동안 작업한 끝에 모닥불을 피워놓은 묘지관리소 건물 바로 아래 길 한복판에서 그의 유해를 발굴하였다. 십자가 형틀이 나오고 나무뿌리와 엉킨 유골이 발견되었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그해 5월21일 이봉창, 백정기의사의 유해와 함께 부산에 환국하여 부산공설운동장에서 합동추도식을 올리고, 같은 해 7월7일 삼의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국민장으로 서울 효창공원 의사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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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6:17
■ 일본인도 감동한 안중근의사 2편

■ 일본인도 감동한 안중근의사 2편

1910년 3월26일은 안중근의사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안중근의사는 어머님이 보내주신 하얀 명주 한복으로 갈아입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고, 간수(看守) 치바 토시치는 부동자세로 그의 감방을 지키고 있었다. 치바는 일본군 헌병이면서 안중근을 감시하는 간수이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는 다른 일본인들처럼 일본인의 우상인 이토를 살해한 살해범인 안중근에 대해 분노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안중근의사가 단순한 살해범이 아닌 진정한 동양의 평화를 생각하는 굳은 의지와 높은 인품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존경하며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사형 당일 날, 안중근은 치바 토시치에게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나라 위해서 몸을 바침은 군인의 당연한 본분이다)’라고 유묵(遺墨)을 써서 선사했다. 치바 토시치는 군대를 제대하고 고향 센다이에서 철도원으로 일하면서 안중근의사의 위패와 안중근의사가 생을 마감하면서 선물한 그 유묵(遺墨)을 모셔놓고 평생 그의 명복을 빌어줬다고 한다. 그리고 1980년 이 유묵은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기증되었다.

형장에 도착한 안중근은 검찰관, 변호인 등이 입회한 가운데 교수대의 계단을 올랐다. 교수대에 오른 안중근은 잠시 마지막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사형집행문의 낭독이 끝나고 집행부는 최후의 유언을 묻는다. ‘나의 이 거사는 동양 평화를 위하여 결행한 것이므로 오늘 임검한 일본 관헌들도 앞으로 한일 화합에 힘써 동양의 평화에 이바지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3월26일 오전 10시4분 예정대로 사형은 집행됐고, 10시15분에 안중근의사는 순국했다. 검시가 끝나고 안중근의 유해는 작은 통 속에 넣어져 여순감옥 묘지에 매장되었다. 형제들의 간곡한 탄원과 절규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의사의 유해는 유족에게 인도되지 못했다. 일제는 안중근의사의 유해가 한국인의 손에 넘어가면 분명 그의 묘소가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이고, 이로 인해 많은 저항이 따를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를 거부한 것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중근의사의 유해는 정확한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달라는 유언을 아직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효창공원에 가면 김구 선생의 주선으로 만들어진 삼의사 묘가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무덤의 수는 4개인데 그 곳에 영면한 분은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사 뿐이다. 왼쪽에 비석 없는 무덤이 바로 안중근 의사의 빈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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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6:18
■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이방인, 앨버트 테일러

■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이방인, 앨버트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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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이 함성은 어떻게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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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선언을 세계에 알린 미국연합통신의 기사는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에 위치한 붉은 벽돌집에서 시작된다. 힌디어로 기쁨 이상향을 뜻하는 ‘딜쿠샤’라는 이름의 이 집은 미국 광산업자였던 앨버트 W. 테일러와 그의 아내 메리 린리 테일러가 살았던 집으로, 그 주인이 밝혀지지 않아 한 때 대한매일신보 사옥 혹은 베델의 집으로도 추측되기도 했다. 그러던 지난 2006년 브루스 티겔 테일러가 자신의 부모님이 살았던 딜쿠샤를 찾으면서 비로소 제 주인을 찾게 되는데, 동시에 3‧1운동과 테일러가(家)의 인연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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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2월 28일 메리 테일러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아들 브루스를 낳았는데, 그 때 마침 한 간호사가 브루스의 요람에 인쇄뭉치를 몰래 숨겨두었다. 우연히 이를 발견한 앨버트 테일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한 독립선언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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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미국연합통신사(AP통신)의 임시 한국 특파원으로 임명되었던 그는 서둘러 기사를 작성해 독립선언서와 함께 동생 윌리엄 구두 뒤축에 숨겨 도쿄로 보냈고, 얼마 후 무사히 미국으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3월 12일자 신문에 한국인들이 독립을 선언하다(Koreans Declare For Independence)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리며 3‧1운동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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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앨버트는 1923년 행촌동에 딜쿠샤를 짓고 이상향을 꿈꾸며 기자 활동을 이어갔지만,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로 인해 일제의 감시를 받다가 결국 이듬해 메리와 함께 강제로 추방을 당하게 되었다. 한국을 그리워한 앨버트는 해방 후 미 국방부에 통역사로 한국에 가게 해 달라며 편지를 쓰는 등 노력했지만, 1948년 심장마비로 사망해 끝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그의 유언에 따라 유해는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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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그의 사연은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딜쿠샤를 찾으며 전환점을 맞았다. 브루스를 통해 메리 테일러가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한 글(이후 호박목걸이란 이름으로 출판)과 당시 사진 등이 전해진 것이다. 지난 2016년 앨버트의 손녀 제니퍼 린리 테일러가 조부모의 유품들을 한국에 기증하면서 딜쿠샤는 복원공사에 들어갔고, 올해 2020년 시민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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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6:19
인생이란 끝까지 살아봐야

인생이란 끝까지 살아봐야

인생이란 그런거야

오늘 잘 나간다고

내일도 잘 나간다는

보장은 없고

오늘 못 나간다고

내일도

못 나가라는 법은

없는거지

오늘 주머니가

넉넉하다고 해서

어깨에 힘줄 필요없고

오늘 주머니가

텅 비었다고 해서

기죽고 살 필요는 없는거야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알수 있는 거거든

- 유지나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90.html
kolaswqetsrq 11.02 06:20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이 있어

진정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이 있어

진정 멋진 세상입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이 있어

진정 살맛 나는 세상입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이 있어

진정 행복한 세상입니다.

당신의 그 사랑 위에

조약돌처럼 작은

저의 사랑 하나도

가만히 얹어 놓겠습니다.

- 신소현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55.html
kolaswqetsrq 11.02 06:21
당신은 선물입니다

당신은 선물입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당신을 만난 건

너무나 소중한 선물입니다.

가슴이 따뜻한 당신을

마음이 깊고 깊은 당신을

따뜻한 배려가 묻어 나는

당신을 만난 것은 커다란 행운입니다.

그런 당신이

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어떻게 내게 왔을까요.

늘 웃는 당신은

늘 지켜 주는 당신은

늘 걱정하고 격려하는 당신은

내 가슴을 뛰게 하는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입니다.

- 꿈이 있는 한 나이는 없다 中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81.html
kolaswqetsrq 11.02 06:21
알몸으로 자면 좋은 5가지 이유

알몸으로 자면 좋은 5가지 이유

숙면은 우리 건강에 매우 중요합니다. 적절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당뇨병, 심장병, 심지어 암과 같은 질병에 쉽게 노출될 수 있습니다. 잠자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수면의 질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가능한 한 편안한 상태에서 푹 자는 것이 가장 좋죠. 알몸으로 잠을 자면 숙면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나체로 자면 좋은 이유 5가지를 소개합니다.

1. 신체 온도 조절

우리가 잘 때 몸은 숙면을 위해 체온을 떨어트립니다. 하지만, 두껍고 따뜻한 잠옷을 입고 잠들면 몸 속 열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해 생체 변화를 방해받게 됩니다. 이 경우, 잠을 설치기 쉽고 이튿날 찌뿌둥한 기분이 들죠. 이와 반대로, 알몸으로 잠들면 신체 온도가 치솟을 일이 없습니다. 고로 푹 잘 수 있죠.

2. 수면 호르몬 분비

수면 호르몬 멜라토닌 수치가 안정되면 숙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알몸으로 자면 멜라토닌의 수치가 자연스럽게 조절된다는 사실! 이러한 멜라토닌의 생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방 불빛의 세기와 온도인데요. 방은 완전히 어두운 상태로, 온도는 약 21°C가 가장 좋습니다.

3. 스트레스 호르몬 조절

코르티솔은 소위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몸속 신진대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죠. 너무 덥게 자면, 코르티솔 분비가 늘어납니다.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면 식욕이 왕성해지고(결국 체중도 늘겠죠?)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불안 증세를 보입니다. 알몸으로 자면 체온 조절이 용이해 코르티솔 수치를 낮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4. 행복감 증진

옷을 벗고 자면, 혈액의 흐름을 방해하는 옷가지들이 없기 때문에 혈액순환이 원활해집니다. 이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며 숙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불면증에 시달린다면, 한 번 알몸으로 잠자리에 들어보세요.

5. 관계 강화

나체 수면 시 연인 또는 부부간 관계가 돈독해집니다. 상대방과 침대에 나체로 눕게 되면 성호르몬 옥시토신이 분비되는데요. 이 호르몬은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숙면에 도움을 줍니다. 더욱이 사람 사이의 유대감, 즉 관계를 증진하죠.

이미 알몸으로 주무셨다면, 이 모든 이점을 고루 누리고 계신 겁니다! 답답한 잠옷을 입고 주무시는 분들은 오늘 밤 한번 시도해 보세요! 적응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몸이 고마워할 거예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67.html
kolaswqetsrq 11.02 06:22
건강에 해로운 습관 9가지

건강에 해로운 습관 9가지

비일상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사람은 반사적으로 조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상에 존재하는 위험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죠.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실은 건강을 해치는 습관이 몇 가지 있답니다. 앞으로는 그런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아래 기사를 꼼꼼하게 읽어 주세요.

1. 플라스틱 병에 담긴 음료를 마신다

플라스틱 병에는 건강에 해로운 마이크로 플라스틱이 들어 있습니다. 몸 안에 축적되면 생식 능력과 신경계에 이상이 생기죠. 유리나 스테인리스 재질의 물병을 사용하세요.

2. 즉석식품류로 식사를 한다

요리할 시간과 열의가 없을 때는, 슈퍼에서 파는 즉석식품류로 식사를 때우곤 하죠. 하지만 이게 습관이 되면 안 됩니다. 즉석식품에는 인체에 필요한 영양소는 거의 없고, 향미증진제와 보존제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즉석식품류 포장에 주로 쓰이는 전자레인지용 플라스틱 용기를 가열하면, 발암물질이 나온답니다.

3. 합성물질이 첨가된 화장품을 사용한다

요새는 점점 천연 화장품이 인기를 끄는 추세입니다. 기존 화장품에 포함된 합성물질이 호르몬을 교란시키고 암을 유발하는 등 건강에 해악을 미친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죠. 새로운 화장품을 구입할 때는, 성분표를 꼭 읽어 보세요.

4. 향수를 사용한다

향수는 몸에 해로운 각종 물질을 함유해, 두통이나 구역질은 물론 폐질환과 호르몬 교란까지 유발할 수 있습니다. 매일 뿌리지 않는 편이 좋겠죠. 에센셜 오일이나 식물 추출물을 사용한 천연 향수를 대신 사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5. 드라이클리닝 한 옷을 바로 입는다

드라이클리닝이 꼭 필요한 옷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드라이클리닝에 사용한 화학물질이 세탁 후에도 옷에 남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이 물질을 흡입하면 폐질환, 두통, 현기증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눈이 따갑거나 시야가 흐려지는 부작용도 있죠. 드라이클리닝을 맡긴 옷은, 다시 입기 전에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환기를 시켜 주세요.

6. 베개 커버를 자주 교체하지 않는다

매일 밤, 우리는 베개 위에서 6~8시간을 보냅니다. 비듬과 땀, 각종 분비물이 베개 커버 위에 차곡차곡 쌓이죠. 여기에 이끌려 먼지 진드기가 모이고, 결과적으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최소한 5일에 한 번씩은 베개 커버를 교체해 주세요.

7. 여드름을 짠다

여드름은 절대 손으로 짜면 안 됩니다. 흉터가 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코와 입 주변의 여드름은 신경과 직접 연결돼 있을 가능성도 있거든요. 이런 여드름을 잘못 건드리면, 세균이 혈관으로 침투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염증이 생기거나 시야가 흐려지는 정도는 양반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몸이 마비되기도 하죠.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여드름에는 절대 손을 대지 마세요!

8. 코털을 뽑는다

코털에도 나름의 역할이 있습니다. 공기 중에 먼지나 이물질이 비강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거죠. 그런 코털을 제거하면 우리 몸은 그만큼 감염에 취약해집니다. 코털은 필요한 경우 다듬기만 하고, 절대 뽑지는 마세요.

9. 재채기를 참는다

요새 같은 시국에서는 남들 앞에서 재채기를 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죠. 하지만 재채기를 참으면 밖으로 터져야 하는 공기가 안에 갇혀 고막을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눈이나 코의 혈관이 터지기도 합니다. 재채기가 나올 것 같으면, 절대 참지 말고 하세요. 다만 코랑 입은 가려야겠죠.

이제 아셨죠? 위험은 어디 우리가 모르는 곳뿐 아니라 화장품과 여드름 같은 일상에도 숨어 있다는 것을요. 건강을 위해 나쁜 습관은 버리세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9_32.html
kolaswqetsrq 11.02 06:23
욕실에 세균을 퍼트리는 7가지 실수

욕실에 세균을 퍼트리는 7가지 실수

독일의 통계에 따르면, 사람들은 평생 살면서 평균 3년을 욕실에서 보낸다고 합니다. 그 안에서는 정말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나지만... 역겨우니까 굳이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도 있습니다! 다들 심각성을 모르고 저지르는 7가지 문제 행동. 앞으로는 절대 욕실에서 이러지 마세요.

1. 안 씻고 넘어가는 부위

규칙적으로 몸을 씻어야 세균과 먼지에서 자유로울 수 있죠. 하지만 샤워를 하면서도 늘 간과하는 신체 부위가 있습니다. 등과 두피, 발바닥, 귓등이 그 대표 주자입니다. 바로 여기 세균과 먼지, 각질이 쌓이면서 트러블이 생기는 겁니다. 피부가 예민하면 더 위험하고요. 다음에 샤워할 때는 이런 곳을 잊지 말고 꼼꼼하게 씻어 주세요.

2. 샤워용 그물망 사용

샤워시 거품을 내는 데 쓰는 그물망 그 자체는 죄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래 쓰면 문제가 생기죠. 이걸로 몸을 문지르면 각질이 묻는데, 그 상태로 다시 욕실에 걸어 두면 완벽한 세균 배양소가 됩니다. 그물망 대신 비누용 수건 등을 쓰고, 사용한 다음 세탁기에 던져 빨아 주면 걱정이 없습니다.

3. 젖은 수건 욕실에 걸기

수건에서도 그물망과 비슷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용하고 젖은 채로 욕실에 두면 박테리아가 번식하는 거죠. 젖은 수건은 거실에 건조대를 펴고 말려 주세요. 3~4일 정도 사용한 뒤에는 새 수건으로 교체해 주시고요.

4. 수건으로 얼굴 닦기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건 좋지 않은 생각입니다. 얼굴용 수건을 따로 쓰더라도 세균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이 세균이 얼굴로 자리를 옮기면 트러블을 유발하죠. 민감성이나 여드름성 피부라면 더 조심해야 합니다. 심지어 젖은 수건을 욕실에 두고 말리기까지 하면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5. 변기 뚜껑 열고 물 내리기

뚜껑을 열기 변기 물을 내리면, 자잘한 물방울들이 6m까지 튄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다양한 대장균이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다가 수건에도 앉고, 선반에도 앉고, 물론 얼굴에도 내려앉겠죠. 그러니까 물 내리기 전에는 반드시 변기 뚜껑을 닫는 걸 잊지 마세요.

6. 칫솔을 바닥에 두기

따듯하고 축축한 욕실은 세균 번식에 최적화된 장소입니다. 여기에 변기 뚜껑을 열고 물까지 내리면 세균이 더욱 활개를 칠 거고요. 이 때문에 칫솔은 절대 세면대 위에 대충 던져두면 안 됩니다. 따로 담아서 잘 보관해야죠. 칫솔모에 세균이 붙으면, 다음 양치질을 기회로 입 안에 들어갈 겁니다. 더 확실히 하려면 칫솔 덮개를 씌우는 방법도 있습니다.

7. 욕실에 스마트폰 가져가기

스마트폰은 우리 일상의 어디에나 존재하죠. 욕실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은 볼일을 보고 손을 씻는 반면 스마트폰과 그 부속품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에는 세균이 어마어마해서 손을 통해 얼굴과 입으로까지 옮겨 갈 수 있습니다. 화장실에서는 전자기기 사용을 자제하거나, 볼일을 마친 뒤 소독해 주세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7_4.html
kolaswqetsrq 11.02 06:24
맥주가 몸에 좋은 이유 6가지

맥주가 몸에 좋은 이유 6가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맥주 사랑은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해외의 유명한 수입 맥주뿐만 아니라, 크게 인기가 없었던 국산 맥주까지도 요즘에 다시 인기를 끌고 있죠. 카스, 하이트 등 맥주 브랜드만 원산지에 따라 수십 가지는 됩니다. 이처럼 맥주를 사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큰 희소식이 있습니다. 세간의 오해와 달리, 맥주는 사실 건강에 좋다고 하네요! 알코올이 든 제품과 들지 않은 제품 둘 다 건강에 좋답니다. 다음은 그 6가지 이유입니다.

1. 골밀도가 높아진다.

맥주에는 규소 성분이 많다고 합니다. 규소는 근육과 뼈 조직의 연결을 돕고 골밀도를 높입니다.

2. 심혈관계 질환 발병률이 낮아진다\u2028.

맥주를 정기적으로 마시면 심혈관계 질환 발병률이 최소 25%에서 최대 40%까지 낮아진다고 합니다. 매분매초 쉬지 않고 열심히 뛰는 심장을 위해서라도 가끔은 맥주 한 잔을 마십시다.

3.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진다.

하루에 맥주를 두 잔 마시면 기분도 좋아지지만, 체내 콜레스테롤에도 좋은 영향을 줍니다.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 수치가 높아진다고 하네요.

4. 당뇨 발병률이 낮아진다.

한 비교 연구에서 정기적인 알코올 섭취로 제2형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더 낮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루에 맥주 약 295mL씩 1~4회 마신 실험군과 통제군을 분석한 결과라고 합니다.

5. 신장 결석을 예방한다.

하루에 맥주를 1병씩 마시면 신장 결석이 생길 확률이 40%까지 감소한다고 합니다.

6. 치매를 예방한다.

알코올 음료로 치매를 물리칠 수 있다니,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일까요. 맥주에 함유된 잔토휴몰은 나쁜 콜레스테롤과 치매의 원인으로 알려진 산화 스트레스를 줄입니다.

어쩌면 우린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맥주를 마시면 기분도 좋아지고, 몸도 좋아진다는 사실을 말이죠! 하지만 알코올이 든 음료이고 장점만큼 단점도 많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장점만 취하고 싶다면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는 게 더 좋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6_4.html
kolaswqetsrq 11.02 06:25
콜라를 마신 후 2시간 동안의 신체 변화

콜라를 마신 후 2시간 동안의 신체 변화

콜라는 비할 데 없이 사랑받는 음료입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콜라를 마시면 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고 계신가요? 500mL 들이 한 병이나 330mL짜리 작은 캔, 심지어 더 작은 잔에 조금만 마신다고 해도 당신은 장기적으로 건강에 해로운 행동을 하고 계신 겁니다. 대체 얼마나 나쁜 걸까요? 이 상쾌한 음료수를 마신 뒤 2시간 동안 신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확인해볼까요?

<10분 뒤>

500mL짜리 콜라 한 병에는 약 50g, 찻숟가락으로 10개 정도의 설탕이 들어있습니다. 성인 여성과 미성년자의 하루 평균 당 섭취 권장량인 25g을 훨씬 웃도는 양입니다. (성인 남성의 경우 38g입니다.) 달아서 구역질이 날 법도 한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양을 단숨에 마실 수 있을까요? 바로 콜라에 든 인산이 설탕의 단맛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때문입니다.

<20분 뒤>

혈당이 치솟고 인슐린이 급격히 분비됩니다. 간은 이런 변화에 대응하여 잔여 당분을 지방으로 바꾸기 시작합니다.

<40분 후>

몸이 카페인을 모두 흡수하여 동공이 확장되고 혈압이 상승합니다. 이에 간은 순환계에 더 많은 당분을 공급합니다. 이제 뇌의 아데노신 수용체가 차단되어 피로를 잘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120분 뒤>

카페인의 이뇨작용이 이루어져서 소변을 보게 됩니다. 이때 칼슘, 마그네슘, 아연, 비타민 등과 같은 뼈에 필요한 성분과 나트륨, 수분, 전해질이 함께 몸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그 이후>

 "
최고치를 찍었던 쾌감이 사그라들면서 슈거 크래시가 찾아옵니다. 무기력하고 짜증이 나는 현상입니다. 꽤 오래 지속되니 각오하시길!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2_23.html
kolaswqetsrq 11.02 06:25
통증을 줄이는 꿀팁 8가지

통증을 줄이는 꿀팁 8가지

신체는 복잡하게 구성된 유기체입니다. 통증 하나가 사라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통증이 찾아오죠. 몇 가지 방법만 숙지하면 코막힘, 편도선염, 여타 크고 작은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진통제를 먹을 필요가 없답니다.

1. 목 간지러움 해소

목구멍이 간지럽고 계속 기침이 난다고요? 이럴 때는 따뜻한 차도 소용 없죠. 간단한 방법으로 몇 초 안에 기침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귀를 힘차게 긁어보세요. 물론 황당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귀를 긁으면 목이 자극을 받고 간지러움이 줄어듭니다.

2. 스트레스 진정 효과

어깨에 판다 100마리를 얹은 듯, 스트레스에 찌든 날에는 뭘 해도 좀처럼 해소가 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 간편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얼굴에 몇 분간 얼음물을 뿌리세요. 이렇게 하면 포유류 잠수반사(MDR) 기제가 작동해, 신체가 더 많은 산소를 흡입하게 되어 몸과 마음이 진정됩니다.

3. 피 뽑는게 두렵지 않아요.

피 뽑는 걸 무서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느다란 바늘만 봐도 닭살이 돋는다면 이 방법에 주목하세요. 핵심은 시선 분산! 주삿바늘이 피부에 들어갈 때 기침을 힘차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두려운 주삿바늘로부터 생각을 분산시키는 거죠.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사전에 의사나 간호사에게 어떤 행동을 할지 미리 귀띔해두세요. 그리고 주의할 점은 기침 시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팔을 꼭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4. 코가 뻥 뚫리는 법

코가 막히면 정신이 없습니다. 코를 세게 풀면 보통 해결되지만, 코를 아무리 세차게 풀어도 소용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땐 몇 초간 혀끝으로 입천장을 누르는 동시에 둘째 손가락으로 미간을 누릅니다. 20초가 지나면 코가 뻥 뚫리며 숨 쉬기가 편안해집니다.

5. 물집 방지

가벼운 화상을 입으면 얼음팩을 대고 있으라고 배웠습니다. 대신, 화상 부위를 몇 분간 손가락 끝으로 눌러보세요. 이렇게 하면 화상 부위의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와 물집이 생기지 않습니다. 화상도 자연스럽게 나아집니다.

6. 치통, 이제 안녕

치통에 기가 막히게 효과적인 팁을 소개합니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얼음 조각을 집어 손등에 올려놓고 누르세요(곧바로 손등을 문질러 따뜻하게 만들고 싶어 질 거예요). 손등을 지나는 신경은 통각을 담당하므로, 얼음으로 이를 마비시키면 대다수 통증이 60~90% 정도 감소합니다.

7. 신경과민과의 작별

신경이 곤두선 긴장 상태가 지속되면 몸과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피곤해집니다. 긴장을 가라앉히려면, 몇 분간 엄지손가락을 불어 보세요. 호흡과 심장박동을 조절하는 미주신경이 진정돼 긴장감이 잦아듭니다.

8. 편두통 완화

편두통, 그 고통은 겪어본 분만 압니다. 이를 무작정 참거나 진통제를 먹는 대신, 이 방법을 써보세요. 엄지와 검지로 다른 손의 엄지와 검지 손가락 사이를 누르며, 적당히 힘을 가해 둥글게 마사지합니다. 편두통이 마법같이 사라진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8_4.html
kolaswqetsrq 11.02 06:26
■ 연산군과 갑자사화 3편

■ 연산군과 갑자사화 3편

나라는 연산군 편에 선 궁중세력과 부중세력훈구세력이 두 편으로 갈라져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부중파를 제거하고 조정의 권력을 잡으려고 음모를 꾸민 자가 바로 임사홍이었다. 그는 연산군의 복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였다. 예종과 성종의 외척으로 척신세력이던 임사홍(任士洪)은 윤씨의 폐비와 사사(賜死)에 얽힌 전말을 연산군에게 밀고하였다.

윤씨의 폐비론을 가장 강력하게 들고 나왔던 사람은 윤씨의 시어머니(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仁粹大妃)였다. 윤필상 등 훈구 세력도 이를 강력하게 지지했고, 김종직 문하의 사림 세력까지 폐비론에 가세했다. 당시 네 살이던 연산군은 뒤이어 왕비가 된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를 어머니로 알고 자랐으며, 생모 윤씨의 폐비 및 사사에 얽힌 구체적인 정황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 후폭풍은 엄청났다. 마치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것 같은 꼴이었다. 평소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이를 마무리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던 연산군은 먼저 선왕의 후궁이었던 엄숙의와 정숙의를 처벌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사약 회의에 참여했거나 또는 이를 힘써 간하지 못한 조정신하들은 물론, 앞서 무오사화에서 죽음을 면한 선비들까지도 협조자로 몰아 죽였다. 사약회의에 참석했던 신하로서 이미 죽은 한명회·정창손 등은 무덤을 파고 그 시신을 베었으며(부관참시), 생존했던 윤필상·한치형·이극균·성준 등과 사림파의 잔존자들은 모두 극형을 당하였다.

그리고 연산군이 모친 윤씨를 다시 왕후로 추존 복위하려 할 때, 아무도 간하는 신하가 없었다. 오직 권달수와 이행이 죽음을 무릅쓰고 반대했으나, 사리를 따질 리 없는 연산군은 대노하여 즉시 권달수의 목을 베고, 이행을 귀양보냈다. 연산군의 숙청 작업은 1504년 3월부터 무려 7개월 동안이나 계속됐다. 이를 갑자사화(甲子士禍)라고 한다. 연산군은 무오사화 때보다 훨씬 많은 인사들을 처단하여, 훈신 세력과 남아있던 잔여 사림 세력을 한꺼번에 제거할 수 있었다.

무오사화가 훈구세력과 사림세력 사이의 상호대립에서 생긴 것이라면, 갑자사화는 궁중 중심의 세력과 훈구세력 일파와의 충돌로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갑자사화는 표면상 생모 윤씨의 폐위, 사사 사건으로 인한 연산군의 포악하고 잔인한 복수심에서 폭발한 사건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그 내역을 살펴보면, 조정 신하간의 암투가 이 사건을 조장하고 격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연산군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폐비 윤씨의 죽음이 갑자사화의 계기 및 명분은 될지언정 직접적 원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연산군이 왕이 되기 전부터 어머니를 죽게 만든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마음 속으로 칼을 갈고 있다가 기회가 와서 사화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기에 ‘폐비 윤씨’가 원인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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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3_46.html
kolaswqetsrq 11.02 06:27
■ 연산군과 갑자사화 1편

■ 연산군과 갑자사화 1편

연산군이 자신의 생모가 폐위된 것을 안 것은 즉위한 다음해 3월 선왕(성종)의 묘지문을 보면서였다. 이때부터 연산군은 자식된 당연한 도리로 생모의 죽음을 애도하고 명예를 회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윤씨 묘를 이장하고, 그녀를 모시는 사당을 효사묘(孝思廟)로, 능을 회릉(懷陵)이라고 정하였다. 오늘날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 일대이다. 이때도 당시 젊은 삼사의 언관들은 몇 년을 두고 이를 반대하였다. 물론 언관들이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법으로써는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이들은 반대하면서 그 근거를 선왕의 뜻이 아니라는 것으로 일관했다. 하루는 대사헌 김심이 휘하의 여러 대관들을 거느리고 연산군 앞에 가서는 “선왕의 뜻이 아닙니다.” 하고 고집하여 뜰에서 10여 일이나 버틴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일은 연산군의 의도대로 시행되고야 말았다.

그러나 계속된 젊은 언관들의 반대는 왕조국가의 절대 지존인 국왕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평소 연산군은 삼사의 언관들을 비롯한 사림들을 왕을 능멸하는 존재라 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젊은 언관들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는 연산군뿐만이 아니고, 이극돈·유자광·노사신·윤필상·한치형 등의 훈구세력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갈등의 골은 싶어만 갔고, 김일손의 사초(史草)를 빌미로 훈구파와 사림파의 충돌이 일어났고(무오사화), 많은 사림들이 죽임을 당하고 낙향함으로써, 결과는 훈구파의 승리로 돌아갔다.

연산군은 무오사화로 자신에게 잔소리를 하던 사림들을 숙청하고 조정을 장악하였다. 무오사화 이후 나타난 가장 뚜렷한 주요 현상은 삼사(三司: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위축이었다. 이제 조정에는 더 이상 왕에게 간언하고 학문을 요구할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훈구대신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연산군의 향락을 지켜만 보거나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연산군의 비행을 막을 신하들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연산군의 향락은 더욱 더 극심해졌다. 삼사가 제 구실을 못하면서 국왕(과 대신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구상을 한결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연산군은 돌이킬 수 없는 우(愚)를 범하게 되었다.

그는 강화된 왕권을 정치나 제도 개혁 같은 곳이 아닌 사치·사냥·연회·음행 같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곳에 집중했다. 연산군은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 능상(凌上:깔보다)의 척결을 통한 전제적 왕권의 행사라는 정치적 목표의 달성이라고 판단하였다. 무오사화로 사림파가 제거되자 조정에는 언론 기능이 상실되었고, 연산군은 절대군주로서의 위상을 높여갔다. 날마다 연회를 열어 전국의 기생들을 불러 모았으며, 향락과 패륜을 일삼았다. 방탕하고 사치스런 생활로 급기야 국고가 바닥날 지경에 이르렀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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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_44.html
kolaswqetsrq 11.02 06:28
■ 연산군과 무오사화 2편

■ 연산군과 무오사화 2편

사화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던 것은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춘추관 기사관(記事官)이었던 제자 김일손이 사초(史草)에 실은 것이었다. 《조의제문》이란 \의제를 애도하는 글\이란 의미로 김종직이 생전에 꾼 꿈에 대해 쓴 글이었다. 꿈에 신(神)이 나타나서 "나는 초나라 회왕 손심(의제)인데 서초패왕 항우에게 살해되어 빈강에 잠겼다." 라고 말하곤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한다. 이 꿈을 꾼 후 김종직은 글을 지어 의제를 조문했는데, 그 글이 《조의제문》이다. 1498년 실록청(實錄廳)이 개설되어 《성종실록》의 편찬이 시작되자, 실록청의 당상관으로 임명된 이극돈은 ‘조의제문’이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고 즉위한 것을 빗댄 것으로 세조를 비방하는 내용이라고 유자광에게 알렸다.

유자광은 노사신·한치형·윤필상·신수근 등을 포함해서 당시 사림파로부터 탄핵을 받고 있던 외척과 함께 김종직과 김일손 일파를 연산군에게 고변(告變)했다. 무오사화의 발생과 전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신하는 단연 유자광이었다(물론 최종적이며 최대의 결정권을 행사한 사람은 국왕인 연산군이었다). 일찍이 성종 때 유자광은 김종직과 묵은 원한이 있었는데, 이극돈(李克墩)이 김일손의 사초와 관련된 문제를 상의하자, 누구보다도 민첩하게 사건의 확대를 주도했다. 김일손의 스승인 김종직은 유자광이 남이(南怡)를 무고(誣告)로 죽인 자라 하여 멸시하였다. 함양 군수 시절에 함양군의 한 정자에 걸려있던 현판을 간신이 쓴 현판이라 하여 떼어내어 불사른 적이 있었는데, 이 현판의 주인공이 바로 유자광이었다. 평소 서자(庶子)라 하여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고, 김종직에 대한 원한을 갖고 있었던 유자광은 이 일로 단단히 복수를 한 셈이다.

 "
유자광의 발고로 절대로 사초를 보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을 어기고, 훈구대신들은 김일손이 기록한 사초를 발췌하여 연산군에게 바쳤다. 김일손의 사초를 보고 조의제문을 검토하던 연산군은 분기탱천하였다. 세조가 과부가 된 자기 며느리 귀인 권씨를 범하려 했다는 소문이 사실인 양 기록되어 있었고, 단종의 시신을 산 속에 넣어 까마귀와 솔개가 날아와 쪼아 먹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산군은 원래 사림파의 간언(諫言)과 권학(勸學)에 증오를 느끼고 학자와 문인들을 경원(敬遠)했을 뿐 아니라 자기의 방종과 사치 행각에 추종하는 자를 좋아하였다.
",

열 받은 연산군은 이미 죽은 김종직의 제자들을 모조리 잡아 보름동안이나 직접 국문을 시작했다. 연산군은 이런 불충한 사초를 쓴 까닭을 날카롭게 추궁했다. “이것은 반심(反心)을 품은 것이 분명한데, 어째서 너는 세조의 후손이 다스리고 있는 조정에서 벼슬했는가?” 김일손은 반역의 혐의를 부인하면서 문제된 내용은 이런저런 사람들에게서 들었거나 자신의 소박한 판단에 따라 작성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연산군은 김일손 등을 7월 12일부터 26일까지 신문한 끝에 이 사건은 모두 김종직이 교사한 것이라 결론지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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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2_4.html
kolaswqetsrq 11.02 06:28
노년에 이런 꿈 자주 꾼다면..

노년에 이런 꿈 자주 꾼다면..

▶ 파킨슨병 경고 신호

노년에 꾸는 잦은 악몽이 파킨슨병을 예고하는 경고 신호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외신에 연구진에 따르면 67세 이상 노인 3818명을 최장 12년간 추적 조사한 자료를 분석한 끝에, 악몽을 자주 꾸는 사람이 파킨슨병 진단을 받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파킨슨병은 뇌 속 신경전달물질 중 운동에 필요한 ‘도파민’(dopamine)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원인 모르게 서서히 소실되어 가는 질환이다. 치매 다음으로 흔한 대표적인 퇴행성 뇌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근육 경직, 몸 떨림, 느린 동작, 자세 불안정 같은 운동장애 증상이 나타난다.

연구진은 악몽을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꾸는 노인(4.3%)은 그렇지 않은 노인(2.2%)보다 파킨슨병 발병률이 약 2배 더 높았다고 설명했다. 또 연구 기간에 91명이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는데, 이들 대부분 연구 시작 5년 이내에 증상이 발생했다. 잦은 악몽이 파킨슨병의 진행을 알리는 전조 증상일 수 있음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이같은 상관관계를 두고 연구진은 파킨슨병 초기 단계에서 수면 중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하는 뇌 부위의 퇴행이 시작되기 때문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악몽이 파킨슨병을 일찍 발견하게 되는 지표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렘(REM) 수면장애가 파킨슨병 위험 증가와 연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수면은 렘수면과 비렘(non-REM)수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렘수면은 꿈을 꾸는 수면으로 몸은 마비 상태이나 뇌는 활발히 활동한다. 반면 비렘수면은 몸은 움직일 수 있지만 뇌는 활동하지 않는 상태다.

렘수면 장애는 꿈속 내용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싸우는 꿈을 꾼다면 발로 벽을 차거나 옆 사람을 때리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다. 이같은 렘수면 장애의 70%는 파킨슨병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49.html
kolaswqetsrq 11.02 06:29
뇌 깨우고, 위 보호하는 아침에 먹으면 좋은 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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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깨우고, 위 보호하는 아침에 먹으면 좋은 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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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먹으면 피로를 풀고 장 운동을 촉진하는 등 건강에 더 이로운 식품들이 있다. 매일 아침 이 음식들을 챙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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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마토

토마토 속 라이코펜, 베타카로틴, 루테인 등 카로티노이드계 항산화물질은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혈압은 오전 중에 높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먹는 것이 좋다. 소화를 돕는 성분도 있어서 소화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식후에 한 개씩 먹으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다만 토마토는 혈압을 낮춰 몸을 차게 하는 작용이 있으므로 노약자들은 토마토를 생으로 먹지 말고 익혀 먹는 것이 좋다.

2. 요거트

요거트에는 프로스타글란딘 E2 라는 물질이 많이 들어 있어 궤양을 치료하고 흡연, 음주 시 인체로 흡수되는 유해한 물질로부터 위 내벽을 보호해준다. 밤에 먹으면 밤새 위장 운동을 활발하게 하기 때문에 숙면에 방해가 된다. 아침에 먹어야 장과 뇌가 활발해진다.

3. 꿀

꿀은 피로회복에 좋고, 갈증을 해소해준다. 특히 아침에 먹는 꿀은 몸에 활력을 가져와 잠을 깨는데 도움을 주며, 장 운동을 촉진하는 효능이 있어 변비에도 좋다. 꿀은 약 80% 이상이 당분으로 구성된 단당류이기 때문에 에너지원으로 흡수가 쉽고 영양가도 풍부하다.

4. 감자

감자의 녹말은 위를 보호하는 데 좋다. 감자에는 몸 속 점막을 튼튼하게 해 주는 판토텐산 물질과 비타민C 등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위산이 적은 아침 공복 시간에 먹으면 감자의 효능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

5. 당근

비타민, 카로틴, 섬유소가 풍부한 당근은 생즙으로 만들어 아침에 먹으면 활력 충전에 좋다. 반대로 볶아서 조리한 당근은 저녁에 먹으면 좋다. 당근의 대표 영양소인 베타카로틴은 껍질에 많으므로 껍질째 먹는 것이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93.html
kolaswqetsrq 11.02 06:30
평소 섬유질 잘 챙기면 생기는 변화

평소 섬유질 잘 챙기면 생기는 변화

이섬유는 장 건강을 유지하고 만성 질환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는 영양소다. 주로 채소나 과일, 통곡물, 콩류에 들어있으며 수용성 섬유질(soluble fiber)과 불용성 섬유질(insoluble fiber)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불용성 식이섬유는 물에 녹지 않고 변에 부피를 더해 변비를 예방한다.

수용성 식이섬유는 물을 흡수해 소화기관에서 젤과 같은 물질을 만들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혈당 수치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대부분의 고섬유질 식품에는 불용성과 수용성 식이섬유가 모두 들어있다. 따라서 차이를 생각하지 말고 전반적인 섬유질 섭취량에 신경쓰면 된다. 섬유질 섭취로 얻을 수 있는 건강상 이점을 알아본다.

1. 심장질환 예방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고섬유질 식단을 섭취하는 사람은 심혈관질환 위험이 유의하게 감소했고 이로 인한 사망률이 낮았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섬유질이 총콜레스테롤과 심장질환의 주요 위험요인인 ‘나쁜’ 콜레스테롤 즉,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가 있기 때문일 것으로 설명했다.

2. 장 건강 개선

섬유질을 충분히 섭취하면 노폐물이 몸 속을 원활하게 이동해 변비를 예방하거나 완화할 수 있다.또한, 장내 미생물(gut microbiota) 균형에도 도움이 된다. 연구에 의하면 식이섬유는 대변의 부피를 증가시키고, 규칙적인 배변을 촉진하며, 노폐물이 장 속에 머무는 시간을 줄인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식이섬유가 대장 궤양, 식도열공탈장, 위식도역류질환, 게실질환, 치핵 등 위장 장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섬유질 섭취가 대장암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3. 당뇨병 위험 감소

섬유질 섭취를 늘리면 당뇨병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섬유질은 신체가 당을 흡수하는 속도를 늦추기 때문에 식사 후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것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고섬유질 식단, 특히 곡물로 섬유질을 섭취하는 사람은 2형 당뇨병 발병 위험이 낮다고 한다. 이들의 혈당 수치 또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4. 체중 관리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단은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고섬유질 식품은 포만감을 오래가게 하기 때문이다. 식이섬유 섭취를 늘린 사람은 체중을 감량하고 칼로리 제한 계획을 잘 지킬 가능성이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62.html
kolaswqetsrq 11.02 06:31
혈당이 너무 높다는 미묘한 신호 5가지

혈당이 너무 높다는 미묘한 신호 5가지

한국인 3명 중 1명은 당뇨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적으로 한국인 10명 중 1명은 당뇨병, 10명 중 2.5명은 당뇨병 전 단계에 해당하기 때문. 이는 서구화된 식습관과 비만 환자의 증가에서 기인한다. 한국인의 대표적인 만성질환인 당뇨는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어 예방과 관리가 꼭 필요하다.

당뇨 예방의 핵심은 혈당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혈액 속에 포도당이 과도하게 많으면 소변을 통해 당이 배출되는 당뇨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혈당 검사를 받지 않고 혈당의 변화를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혈당이 높을 때 몸에는 미세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신호를 알고 있다면 변화를 감지하고 당뇨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고혈당의 미묘한 징후 5가지.

1. 소변이 자주 마렵고 심한 갈증을 느낀다

잦은 소변과 목마름은 고혈당의 대표적인 징후다. 고혈당으로 인한 갈증은 물을 마셔도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잦은 갈증을 의미한다. 혈당이 지나치게 높거나 인슐린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혈관 안쪽 농도가 짙어져 세포의 물을 혈관 안으로 끌어오는 삼투 현상이 생기고, 이로 인해 소변량이 많아지고 갈증을 느끼게 된다.

2. 감정 기복이 심하다

혈당이 심하게 올라가면 혈당 스파이크나 저혈당 등 혈당 변동을 유발하기 때문에 감정 기복이 심해질 수 있다. 또한 혈당의 변동은 예민함, 불안, 우울, 무기력함을 유발한다. 갑작스러운 감정의 변화가 있다면 고혈당의 증상일 수 있다.

혈당에 따른 감정 변화를 확인하고 싶다면 음식 일기를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섭취한 음식과 섭취 시간, 그리고 그때 나타난 증상을 기록하는 것이다. 꾸준히 음식 일기를 쓰다보면 혈당 변화와 감정 사이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3. 눈이 침침하다

눈의 수정체는 혈당의 농도와 변화에 민감하다. 혈당이 높아짐에 따라 수정체의 모양도 바뀔 수 있다. 수정체가 붓거나 모양이 바뀌면, 눈의 초점이 잘 맞지 않아 시야가 흐려진다. 고혈당으로 인해 안 좋아진 시력은 혈당이 안정될 때 다시 회복되는 경향이 있다.

또 백내장이나 녹내장 등의 질환이 시야를 흐리게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질환은 당뇨 환자에게서 더 자주 발생한다.

4. 배가 고프고 단 음식이 자꾸 당긴다

혈당이 높은 사람은 배고픔을 많이 느끼고 단 음식이 당기게 된다. 혈당이 높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기 쉬운데, 이로 인해 간과 근육에 포도당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 몸은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껴 식욕이 증가하는 것이다. 특히 포도당 함량이 높은 단 음식에 대한 갈망이 증가한다. 인슐린 저항성이 있으면 포도당이 세포로 잘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음식을 먹어도 배고픔은 계속된다.

5. 극심한 피로를 느낀다

혈당이 높으면 이미 몸속에 포도당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인식하게 된다. 또 혈당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몸의 기초대사량도 떨어져 만성피로와 무기력을 유발할 수 있다.

이외에도 혈당이 높다면 △갑작스러운 체중 감소 △팔다리 무감각 △건조한 피부 △잦은 감염 △느린 상처 회복 등의 증상을 경험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신호가 있다면 혈당 수치 검사를 해야 한다. 정상 혈당은 공복 혈당이 100mg/dL 미만, 식후 2시간 경구당부하 검사에서 140mg/dL 미만, 당화혈색소가 5.7% 미만인 경우를 의미한다. 정상 수치보다 혈당이 높다면 적극적인 혈당 관리가 필요하다.

정상 혈당을 유지하기 위해 과식을 피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식단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혈당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마다 음식에 따른 혈당 변화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어떤 음식이 혈당을 올리고, 어떤 음식이 혈당을 낮추는지 확인하여 꼼꼼한 식단 관리가 필요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80.html
kolaswqetsrq 11.02 06:31
이 음식 고혈압약 먹을 땐 보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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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식 고혈압약 먹을 땐 보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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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 환자는 음식을 매우 주의해서 먹어야 한다고 알려졌다. 실제 고혈압 환자는 한국인의 식사에 빠질 수 없는 김치조차도 자제해야 한다. 반면, 고혈압약을 먹을 때 함께 먹으면 더욱 좋은 음식도 있다. 고혈압약과 함께 먹으면 더 좋은 음식을 알아보자.

◇칼륨 풍부한 과일·녹황색 채소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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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약은 오랫동안 복용하기 때문에 종종 특정 영양소의 결핍을 유발한다. 특히 수분 배설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혈압을 조절하는 이뇨작용 혈압 저하 계열 고혈압약은 장기간 복용하면 칼륨 결핍을 일으켜, 저칼륨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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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에 이뇨작용 방식 고혈압약인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 푸로세미드‘, ’스피로노락톤‘ 등을 복용하고 있다면 칼륨이 풍부한 음식을 추가로 섭취하는 게 좋다. 칼륨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은 오렌지, 바나나, 건포도 등 과실류나 당근, 시금치 등 녹황색 채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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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음식·자몽은 독

고혈압 약을 먹고 있다면 피해야 하는 음식도 있다. 염분이 많은 짠 음식과 자몽이 든 음식이다. 염분의 섭취량이 늘어나면 혈압이 높아질 수 있으므로, 김치, 찌개, 국, 젓갈, 라면과 같이 염분이 많은 음식은 최소한으로만 먹어야 한다.

자몽은 고혈압약과 함께 먹을 경우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피해야 한다. 자몽은 칼슘채널 차단작용을 증가 시킨다. 칼슘채널을 차단하는 ‘암로디핀’ 등 고혈압약을 복용하는 경우, 약 복용 1시간 전이나 복용 후 2시간 이내에는 자몽이나 자몽주스를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38.html
kolaswqetsrq 11.02 06:32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는 징후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는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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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통의 바다라는 불가의 가르침을 새기지 않더라도 스트레스가 인간의 숙명이란 걸 우리는 온몸으로 깨달으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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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가 적당한 수준이면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기도 하지만, 과하면 건강을 해친다. 걱정, 우울, 분노, 두려움 등이 심할 때 몸이 먼저 반응한다. 스트레스 징후를 정리했다.

⓵ 가려움증

일본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은 만성 가려움증에 걸릴 위험이 두 배 높다. 불안, 긴장 등 심리적 스트레스는 신경 섬유를 활성화하는데 이때 피부에 가려운 느낌이 생긴다. 이런 스트레스가 장기화하면 피부염, 습진, 건선 등 기저 피부 질환을 악화할 수 있다.

⓶ 잇몸 염증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올라가면 면역 시스템을 손상하는데 이때 입안 박테리아가 잇몸에 침투한다. 야근 등으로 스트레스가 많을 땐 양치질을 자주 하는 게 유리하다. 장기적으로 잇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법은 충분한 수면과 운동이다.

⓷ 뾰루지

스트레스는 염증 반응을 유발한다. 사춘기를 훌쩍 넘긴 성인이 여드름으로 고생하는 이유다. 피부가 건조하지 않도록 로션을 잘 바르는 게 좋다.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여드름 치료제를 쓰는 것도 방법. 그러나 몇 주가 지나도록 개선되지 않는다면 피부과를 찾는 게 바람직하다.

⓸ 심한 생리통

하버드대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가 심한 여성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심한 생리통을 겪을 위험이 두 배 이상 크다. 스트레스로 호르몬 균형이 무너지는 탓이다. 배를 따듯하게 하면 교감 신경의 활동을 줄여 경련과 통증을 줄일 수 있다.

⓹ 복통

스트레스는 두통과 함께 복통을 유발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은 심리적으로 안정된 이보다 복통을 겪을 위험이 세 배 이상 컸다.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뇌와 창자가 신경 통로를 공유하기 때문에 뇌가 스트레스에 반응할 때 창자도 같은 신호를 받는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래서 명상으로 스트레스를 다스리면 의외로 복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59.html
kolaswqetsrq 11.02 06:33
소변으로 매일 건강 체크

소변으로 매일 건강 체크

❶ 소변량

소변량이 지속적으로 지나치게 많거나 적게 나올 경우 신장의 이상 신호로 볼 수 있으며, 비정상적인 소변량이 증가하는 경우에 의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당뇨병이나 요붕증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소변량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할 경우 흔히 당뇨병이 발병한 경우가 많으며, 드물게 요붕증이 발병한 경우에도 소변량의 급격한 증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들 질환은 소변량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지는 만큼 방광에 자주 소변이 차 소변 횟수도 증가하게 됩니다. 또한 방광염 등 방광에 염증이 있는 경우에도 소변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는 조금이라도 소변이 모이면 바로 방광을 자극하기 때문에 소변이 차지 않아도 급히 소변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중년 남자의 경우 소변량은 많지 않으면서 소변 횟수가 잦은 경우에는 전립선 비대증, 전립선염 등을 반드시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❷ 거품

소변을 볼때 약간의 거품이 생기는 것은 정상이며 대개는 1~2일 내에 없어집니다. 하지만 비누를 풀어놓은 듯 거품이 일어나는 경우는 비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소변에서 거품이 생기는 증상이 지속될 경우 단백뇨를 의심해 볼 수 있으므로 소변검사를 통해 단백뇨의 존재를 확인하여야 하며, 이는 만성사구체신염이 있을 때 흔히 발견됩니다. 또 이 밖에도 요로 감염증, 간염 등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❸ 색깔

건강한 사람도 심한 운동 후 일시적으로 혈뇨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 정상적인 소변 색깔은 물처럼 색깔이 없거나 황갈색입니다. 하지만 소변이 콜라색 또는 분홍색이면 혈뇨를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혈뇨는 콩팥에서 소변이 만들어져 요관, 방광, 요도를 거쳐 배설되는 과정 중 어느 부위에서 피가 새어 나온다는 것으로 만성사구체신염에서 가장 많이 발생되며 이외 신장, 요로, 방광 등의 염증이나 종양 등을 알리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❹ 혼탁함

정상적인 소변은 맑고 투명하나 소변색이 탁하다고 해서 무조건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한 사람도 피곤하면 소변이 탁해질 수 있으며 또 물을 적게 마시거나 땀을 많이 흘려 소변의 농도가 짙어져서 소변내의 배설 물질이 서로 응고하면 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고기나 야채 등 인산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섭취하거나 우유, 치즈와 같이 칼슘이 많이 함유된 식품이나 비타민제나 약을 복용한 후에도 소변색깔이 탁해질 수 있으나 이런 경우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혼탁한 소변이 일주일 이상 계속되면 몸의 이상을 의심해 보는것이 좋습니다.

❺ 냄새

정상적인 소변에서 지린내가 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코를 톡 쏘는 암모니아 냄새가 날 경우 세균감염을 의심해야 합니다. 세균에는 소변을 분해해 암모니아를 생성 시키는 효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09.html
kolaswqetsrq 11.02 06:34
손톱에 나타난 건강 이상 징후

손톱에 나타난 건강 이상 징후

1. 손톱점상의 홈이 파졌을 경우

손톱에 점상의 홈이 작게 파인 것으로 건선, 원형탈모증에서 하나의 특징적 증상으로 나타나는데 건선에서는 더 깊은 홈이 파진다. 기질에 부신 피질호르몬제를 주사함으로써 교정이 가능하다.

2. 손톱에 흰반점이 생겼을 경우

손톱 공장인 기질에서 완제품을 내보내지 못하고 덜 성숙된 손톱을 내보내 손톱 중간 부위에서 빛이 반사될 경우, 손톱과 손톱바닥이 분리되거나 손톱 바닥에 혈관 변화로 하얗게 보일 수 있다.

3. 조갑이 떨어져 나갔을 경우

손톱 끝쪽이 손톱 바닥과 분리되어 떨어진 부위가 대부분 허옇게 보이는 조갑박리증(onycholysis). 물일을 많이 하는 요리사나 주부 등의 경우, 손톱 바닥에 습기가 많아져 손톱이 분리되기도 한다. 치료는 원인을 제거하며, 물일할 때 조심하고, 분리된 손톱을 잘라낸 후, 손톱 바닥을 긁어내어 공기가 잘 통하게 만든다.

4. 손톱이 자꾸 부스러지는 경우

비누, 세제, 매니큐어, 아세톤 등 피부를 건조하게 만드는 요인들은 손톱에도 자극을 주어 손톱을 쉽게 부스러뜨린다. 여성에게 많고 나이가 들수록 부스러지기 쉽다. 그러나 보습제를 발라도 부스러진다면 예방이 불가능하다.

5. 손톱이 두꺼워졌을 경우

정상 손톱의 두께는 평균 0.5mm이며, 이 이상이 될 경우 두꺼워진 손톱으로 볼 수 있다. 외상이나 염증에 의한 기질 세포의 증식으로 손톱이 많이 만들어져 생길 수 있으며 곰팡이, 건선 등에 의해 두꺼워진다.

6. 조갑 주위에 염증이 생길 경우

홍반, 부종이 있고 건드리면 통증이 온다. 물일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주로 생기므로 물일을 가급적 줄이고 피하는 것이 최상의 치료법이다. 그러나 물일을 피할 수 없는 경우, 일단 속에 면장갑을 낀 후 고무장갑을 겉에 끼어 자극을 피해 주어야 한다. 소독을 잘 해주고, 자주 보습제를 발라주어 각피에 수분을 보충하여 건조를 방지해 주는 것도 필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25.html
kolaswqetsrq 11.02 06:35
와부뇌명瓦釜雷鳴 - 흙으로 만든 솥이 우레 소리를 낸다, 모르면서 아는 척 나선다.

와부뇌명(瓦釜雷鳴) - 흙으로 만든 솥이 우레 소리를 낸다, 모르면서 아는 척 나선다.

기와 와(瓦/0) 가마 부(金/2) 우레 뢰(雨/5) 울 명(鳥/3)

실속 없는 사람이 겉으로 더 떠들어댄다. 속에 든 것이 없는 사람이 알지도 못하면서 앞에 나서 잘난 체 설명한다. 이 경우 ‘속이 빈 깡통이 소리만 요란하다’거나 ‘빈 달구지가 더 요란하다’란 속담이 쓰인다. 벼는 익을수록 더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이럴 때는 비록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아는 체 떠드는 자의 속은 알아챈다. 단지 본인만 몰라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울음소리가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知之爲知之/ 지지위지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한다(不知爲不知/ 부지위부지)는 우스개의 제비보다 못한 인간이다.

흙으로 만든 솥(瓦釜)이 우레 같은 소리를 낸다(雷鳴)는 이 성어도 배우지 못한 사람이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나선다는 똑 같은 의미다. 혹은 질그릇과 솥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마치 천둥이 치는 소리로 착각한다는 말로 무식하고 변변치 못한 사람이 아는 체 떠드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는 뜻이 있는 현명한 자가 때를 얻지 못해 초야에 묻혀 있는데 우매한 자가 높은 자리에 앉아 떵떵거리는 것을 한탄한 屈原(굴원)의 글에서 나왔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楚(초)나라의 정치가이자 비극시인인 굴원은 초나라 문학인 楚辭(초사)의 시조로 추앙받는다.

초나라 문학을 모은 ‘초사’의 卜居(복거)란 작품에는 아첨배의 말만 듣는 왕에게 애절함을 느껴 떠나온 굴원이 卜官(복관)에게 점을 청한다. 거북점을 친 복관이 말한다. ‘세상이 혼탁하고 맑지 못해 매미 날개를 무겁다 하고 3만근 무게를 가볍다고 한다(世溷濁而不淸 蟬翼爲重 千鈞爲輕/ 세혼탁이불청 선익위중 천균위경), 황종의 선율이 깨지니 질그릇 솥이 천둥소리를 낸다(黃鐘毁棄 瓦釜雷鳴/ 황종훼기 와부뇌명).’

溷은 어지러울 혼, 鈞은 무거울 균, 서른근 균도 되니까 1000균은 3만근이 된다. 黃鐘(황종)은 12律(율) 중의 하나로 화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음이라 한다. 아첨꾼은 높이 이름을 날리고 어진 선비는 이름도 없다고 굴원의 심정을 대변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도 답답하지만 자신을 모르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은 불쌍하다. 보지 않는 곳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기 마련이다. 이에 못지않은 것이 뒷받침해주는 배경을 믿고 거들먹거리는 사람이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인사나 얄팍한 완장을 차게 된 사람은 눈꼴사납다. 보이는 것이 없는 이런 사람은 때가 훅 지나가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24.html
kolaswqetsrq 11.02 06:36
하루지유何陋之有 - 어찌 누추한 곳이 있겠는가, 자신이 만족하며 사는 곳이 제일

하루지유(何陋之有) - 어찌 누추한 곳이 있겠는가, 자신이 만족하며 사는 곳이 제일

어찌 하(亻/5) 더러울 루(阝/6) 갈 지(丿/3) 있을 유(月/2)

이사를 한 뒤 친구나 이웃들을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며 집을 구경시킨다. 번거로운 것을 피하여 점차 옛 풍습이 되어갈 정도로 드물어졌지만 집들이를 할 때 주인은 화려한 집이라도 꼭 좁고 너저분하다며 陋屋(누옥)이라고 겸손해한다.

자기를 낮춘다고 하더라도 정도가 심하면 孔子(공자)님이 꾸짖을 것이다. 거처하는 사람의 인품에 따라 향기가 날 수 있다며 ‘군자가 머무는 곳에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君子居之 何陋之有/ 군자거지 하루지유)’하고 말이다.

빈한한 생활에도 평안한 마음으로 도 행하기를 즐거워하며 근심을 잊는 安貧樂道(안빈낙도)와 樂以忘憂(낙이망우)를 최고로 쳤던 선비들은 공자의 교훈으로 주어진 불편을 능히 이겨냈다. 누추한 곳이라도 능히 교화할 수 있다는 말은 ‘論語(논어)’의 子罕(자한)편에 등장한다.

공자가 당시 中原(중원)에는 성인의 도가 행해지지 않아 동방의 아홉 夷族(이족)이 사는 땅으로 옮겨 살려고 했다. 한 사람이 누추할 텐데 어찌 지내려 하느냐고 묻자 군자가 가서 교화해 살면 되니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고 답했다.

唐(당)나라 시인 劉禹錫(유우석)은 ‘陋室銘(누실명)’에서 더 멋지게 표현한다. ‘산은 높음에 있지 않고 신선이 살아 명산이고(山不在高 有仙則名/ 산부재고 유선즉명), 물은 깊어서가 아니라 용이 살아 영험하다(水不在深 有龍則靈/ 수부재심 유룡즉령), 이 집은 누추하더라도 덕이 있어 향기롭다(斯是陋室 唯吾德馨/ 사시누실 유오덕형).’

조선의 許筠(허균)도 ‘누실명’을 남겼다. ‘사람들은 누추한 곳에 어찌 사느냐고 묻지만(人謂陋室 陋不可處/ 인위누실 누불가처), 내가 보기에는 맑은 신선의 세계란다(我則視之 淸都玉府/ 아즉시지 청도옥부).’ 군자가 산다면 누추한들 어떠리 하며 유유자적이다.

집들이가 사라지는 것은 형식적인 것을 꺼리는 풍조도 있겠지만 집 구하기가 어려운 것도 한 원인일 수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조그만 아파트가 수억대가 되니 젊은이가 봉급을 쓰지 않고 10년을 넘겨 모아도 감당을 못한단다. 이런 판이라 아무리 깨끗한 마음으로 살려고 해도 기본 환경이 조성될 리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69.html
kolaswqetsrq 11.02 06:36
재여부재材與不材 - 재목으로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음, 사람의 재능을 비유

재여부재(材與不材) - 재목으로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음, 사람의 재능을 비유

재목 재(木/3) 줄 여(臼/7) 아닐 불, 부(一/3) 재목 재(木/3)

이쪽으로 보나 저쪽으로 보나 아름다운 八方美人(팔방미인)은 용모뿐 아니라 여러 방면에 능통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러 곳을 손대다 보니 모두 깊이 있게 잘 할 수는 없어 반거충이라 놀릴 때도 쓴다. 사람의 능력은 정해져 있어 어느 한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라도 다른 일엔 젬병인 경우가 허다하다.

재주가 없다고 자조할 필요도 없는 것이 사람은 모두 한 가지는 쓸모 있는 분야가 있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대로 천대받던 것이 큰 구실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莊子(장자)가 말한 재목이 될 수 있는 나무와(材與) 아무런 쓸모없는 나무(不材)도 사람의 재능에 절묘하게 비유했다.

중국의 諸子百家(제자백가) 중 道家(도가)의 대표인 莊周(장주)의 사상서 ‘장자’에는 동식물이나 옛이야기로 풍자와 교훈을 전하는 寓言(우언)이 넘친다. 이 책의 山木(산목)편에는 장자와 제자들이 강과 숲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산속을 가다가 거대한 나무를 보았는데 벌목하러 온 사람이 손을 대지 않자 그 이유를 물었다. ‘쓸모가 없습니다(無所可用/ 무소가용)’고 대답하니 장자가 제자들에 덧붙인다. ‘이 나무는 재목이 못 되기 때문에 천수를 다할 수 있는구나(此木以不材 得終其天年/ 차목이부재 득종기천년).’ 일행이 산에서 내려가 옛 친구 집을 찾았을 때 정반대의 경우를 본다.

친구가 반가워하며 거위를 잡으라고 심부름하는 총각에게 시켰다. 잘 우는 놈과 울지 못하는 놈 중 어느 쪽을 잡을까 하니 ‘잘 울지 못하는 놈을 잡아라(殺不能鳴者/ 살불능명자)’고 한다. 다음날 제자가 장자에게 산속의 나무는 재목이 못되어 오래 살고 주인집 거위는 ‘재목이 되지 못해 죽었으니(以不材死/ 이부재사)’ 앞으로 처신을 어떻게 할지 여쭈었다. 장자가 답한다.

‘나는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 사이에 있으려고 한다(周將處乎 材與不材之間/ 주장처호 재여부재지간).’ 재목과 재목이 못되는 중간은 그럴듯하면서도 실은 아니라며 양쪽으로 얽히지 않고 자연의 이치에 따른다면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의 중간에 장자처럼 있을 수 있을까. 쓸모가 없어서 살아나고, 쓸모가 없어서 폐기처분되는 것을 보면 어느 쪽이든 한쪽으로만 집착할 때 화를 당한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다양한 변수를 생각하지 못하면 다른 가능성은 꿈도 못 꾼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누구든 전혀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그 분야를 찾는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한 분야에 특출한 능력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만하면 다를 사람이 치고 올라와 별 볼일 없이 내리막길만 기다린다. 재능에 초연한 것이 중간인 셈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89.html
kolaswqetsrq 11.02 06:37
승영시식蠅營豕息 - 파리가 앵앵거리고 돼지가 씩씩대다, 이익만 보면 체면 없이 달라붙다.

승영시식(蠅營豕息) - 파리가 앵앵거리고 돼지가 씩씩대다, 이익만 보면 체면 없이 달라붙다.

파리 승(虫/13) 경영할 영(火/13) 돼지 시(豕/0) 쉴 식(心/6)

파리를 긍정적으로 표현한 말은 드물다. 독침도, 날카로운 부리도 없지만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먹을 것을 찾아 날아다니는 파리는 인간에게 불쾌감을 주고 병균을 옮기니 좋아할 수 없다. 남을 미워할 줄 모르는 시인도 ‘썩은 쥐인지 만두인지 분간도 못하고, 흰 옷에는 검은 똥칠, 검은 옷에는 흰 똥칠’한다고 파리를 욕한다(한용운).

돼지는 더하다. 사람에게 고기를 제공하고 각종 제사 때는 온 몸을 희생한다. 그래도 미련하거나 탐욕의 대명사가 된다. 파리가 앵앵거리고(蠅營) 돼지가 먹을 것을 찾아 씩씩거린다는(豕息) 이 성어는 조그만 이익에도 체면 없이 달라붙는 사람들을 나타냈다.

파리가 왱왱대며 나무에 앉는 것을 간신에 비유한 것은 고대 중국 시모음집 ‘詩經(시경)’에서 비롯됐다. 小雅(소아)편의 靑蠅(청승)에 ‘윙윙대는 쉬파리 울타리에 앉았네(營營靑蠅 止于樊/ 영영청승 지우번)’하며 임금 주변에 시끄럽게 꼬여대는 간신들을 멀리 하라고 노래했다. 樊은 울타리 번. 淸(청)나라 때의 학자 王侃(왕간, 侃은 강직할 간, 1795~?)은 ‘江州筆談(강주필담)’에서 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청정하던 땅에 갑자기 똥을 버리면(淸淨地忽有遺矢/ 청정지홀유유시), 파리 떼가 몰려들어(蠅蚋營營/ 승예영영) 내쫓아도 다시 달라붙는다(驅之復集/ 구지부집).’ 그래도 하루만 지나면 흔적도 없는데 세상 사람들이 권세와 이익을 따르는 것과 닮았다고 꼬집는다. 蚋는 독충 예.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이 귀양살이할 때 黃君(황군)이라는 제자가 찾아와 집 이름을 醉夢齋(취몽재)로 짓고 취해 살다 가겠다며 글을 부탁했다. 다산은 제자가 성취한 것은 없으나 사람됨이 뛰어나고 순수하며 허세가 없다고 칭찬한다. ‘세상 사람들을 보면 파리처럼 분주하고 돼지처럼 씩씩대는데(視世之蠅營而豕息者/ 시세지승영이시식자), 그들과 비교하면 꽤 분명히 깨인 사람이다(殆了了然醒而悟者也/ 태료료연성이오자야).’

‘感興(감흥)’이란 시엔 豕息(시식)을 거친 숨 내쉰다는 표현으로 썼다. ‘세상살이 음주와 흡사하거니, 처음에 마실 때는 한두 잔(涉世如飮酒 始飮宜細斟/ 섭세여음주 시음의세짐).. 몽롱한 정신으로 백 잔 마시고, 거친 숨 몰아쉬며 계속 마시네(沈冥倒百壺 豕息常淫淫/ 침명도백호 시식상음음).’

돼지가 씩씩거리며 먹이를 찾는 것 대신 개가 등장하는 蠅營狗苟(승영구구)도 있다. 눈앞의 먹이를 보고 딴 놈이 가로챌까 두려워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구차한 개는 唐(당)나라의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인 韓愈(한유, 愈는 나을 유)의 送窮文(송궁문)에서 표현했다.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곤충이나 짐승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떳떳하지 못하게 이익을 탐하는 사람들은 숱하다. 남이 손가락질하는 줄도 모르고 자신은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척한다. 그러다 들통이 나면 모두 남 탓, 주위의 환경 탓을 한다. 탓할 줄 모르는 파리나 돼지보다 못한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31.html
kolaswqetsrq 11.02 06:38
명경지수明鏡止水 –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 맑고 깨끗한 마음

명경지수(明鏡止水) –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 맑고 깨끗한 마음

밝을 명(曰/4) 거울 경(金/11) 그칠 지(止/0) 물 수(水/0)

거울을 나타내는 鏡(경)은 물체의 외형을 비추는 것이고, 鑑(감)이나 鑒(감)은 龜鑑(귀감)이란 말이 말하는 대로 본받을 만한 모범을 가리킨다. 마음을 밝게 하는 보물과 같은 거울이 明心寶鑑(명심보감)이고, 殷(은)나라 사람들이 桀王(걸왕)의 폭정을 거울삼아 경계하여야 할 전례가 멀리 있지 않다고 한 殷鑑不遠(은감불원)이 그것이다.

자기의 눈으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으므로 거울로 자신을 본다. 거울이 없었던 더 옛날에는 물에 비친 모습으로 자신을 봤다. 흐르는 물로는 비춰볼 수 없으므로 고요한 물이 필요하다. 맑은 거울(明鏡)과 흐르지 않아 조용한 물(止水)은 그래서 헛된 욕심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뜻하게 됐다.

‘莊子(장자)’의 德充符(덕충부)편에는 형벌로 발이 잘린 육체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덕이 온전한 사람의 표본으로 그려져 있다. 이 성어는 두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외다리 申徒嘉(신도가)라는 사람은 같은 스승에게서 배운 子産(자산)이 국정을 관장하는 집정이 되자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 같아 충고한다.

‘거울이 밝으면 티끌이 앉지 않고, 먼지가 앉으면 밝지 못하오. 어진 사람과 오래 같이 있으면 허물이 없어지는 법이오(鑑明則塵垢不止 止則不明也 久與賢人處則無過/ 감명즉진구부지 지즉불명야 구여현인처즉무과).’ 자산은 孔子(공자)가 평가한 정치가였는데 장애인을 낮춰보다 일격을 당한 것이다.

魯(노)나라의 王駘(왕태, 駘는 둔마 태)도 발이 잘린 사람이었는데 따르는 제자가 어찌나 많았던지 공자에 버금갈 정도였다. 공자의 문하 常季(상계)는 서서도 가르치지 않고, 앉아서도 설명하지 않는데 말없는 가르침이 있는지 스승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흐르는 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지 못하고 고요한 물에 비춰본다. 오직 멈춰있는 물만이 고요하기를 바라는 모든 것을 고요하게 할 수 있다(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唯止能止衆止/ 인막감어유수 이감어지수 유지능지중지).” 공자의 설명은 왕태의 인품이 고여 있는 물같이 맑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따른다고 했다.

장자가 처음 이 말을 했을 때는 맑고 흔들리지 않는 무위의 경지를 뜻했는데 후일 그 의미가 글자대로 변하여 순진무구한 깨끗한 마음을 나타내게 되었다. 어떤 뜻이나 좋은 말이다. 이와 같은 마음을 유지하기는 어지러운 일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에는 수양을 통해서라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41.html
kolaswqetsrq 11.02 06:39
날마다 달걀 2개씩 먹으면 몸에서 일어나는 9가지 변화

날마다 달걀 2개씩 먹으면 몸에서 일어나는 9가지 변화

"날마다 달걀 먹으면 몸에 안 좋아. 콜레스테롤이 얼마나 많이 들어있는데! "

달걀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봤을 법한 말이죠. 심지어 먹으면 살찐다고 손사래 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밝혀진 연구 결과 다수에 따르면, 폭신한 달걀찜이나 계란말이를 포기할 필요가 없답니다. 대신, 날마다 달걀을 두세 개씩 먹으면 몸에 대단히 좋다고 하니, 어디 한 번 자세히 알아볼까요?

다음에서 달걀을 먹으면 좋은 9가지 사실을 확인하세요.

1. 심혈관 질환 발병률을 낮춥니다.

암탉이 낳은 달걀 하나엔 콜레스테롤이 400mg 정도 함유돼 있습니다. 상당한 양이죠.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는 심정지 및 기타 심혈관 질환 발병률이 치솟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기존에 알려진 바와 달리, 달걀은 콜레스테롤 수치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량의 콜레스테롤이 갑자기 체내에 들어오면 몸이 알아서 콜레스테롤 생성 속도를 늦추게 됩니다. 혈액에 들어있는 콜레스테롤의 3분의 1만이 식품을 통해 섭취된다는 사실, 아셨나요? 그밖의 콜레스테롤은 몸이 스스로 생성한 게 대부분입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생의학 리서치 센터에서 진행된 연구가 이를 입증합니다. 연구진은 152명의 과체중 대상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먹고 싶은 대로 아침밥을 먹고, 두 번째 그룹은 달걀 2개, 마지막 그룹은 베이글 빵을 먹었습니다. 이어서 나온 결과는 연구진을 화들짝 놀라게 했죠. 베이글을 먹은 그룹과 비교했을 때, 달걀 2개를 먹은 참가자들은 65%의 체중 감량 및 35% 뱃살 감소를 보였을 뿐 아니라 콜레스테롤 수치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답니다.

또한, 달걀에 듬뿍 들어있는 오메가3 지방산은 혈중 트라이글리세라이드 수치를 낮춰줍니다. 콜레스테롤과 마찬가지로, 높은 트라이글리세라이드 수치는 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달걀을 먹으면 이러한 위험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2. 엽산 결핍으로 인한 기형아 발생률을 낮출 수 있습니다

달걀 하나엔 0.7 mcg (마이크로그램)의 비타민 B9이 들어있습니다. 보통 엽산으로 알려져 있죠. 임신 중 엽산이 부족하면 태아의 중추신경계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오게 됩니다. 최악의 경우엔, 척수와 뇌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할 수도 있죠. 계란을 꾸준히 먹으면 엽산 결핍을 막을 수 있습니다.

3.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 샤리테 의학 센터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입니다. 자유롭게 풀어놓고 기른 닭이 낳은 달걀을 먹으면 노화 속도가 늦어지고 피부암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카롤리네 헤스터베르그(Dr. Karoline Hesterberg)와 유르겐 라데만(Jürgen Lademann) 교수는 방목한 닭의 달걀에서 노란빛을 띠는 천연 색소를 발견했는데요. 여기에서 노화를 늦추는 항산화제 카로티노이드가 다량 검출됐습니다. 카로티노이드는 체내 합성이 불가능한 성분인 만큼, 반드시 음식으로 섭취해야 합니다. 노화를 촉진하는 활성 산소로부터 몸을 지키는 대단히 중요한 성분입니다. 한편, 달걀이 선사하는 안티에이징 효과를 제대로 누리려면 먹는 방법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날로 먹는 것 보다 익혀 먹는 달걀에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하게 들어있습니다. 조리 열에 의해 화학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죠." 라데만 교수의 설명입니다.

4. 암 발병률이 내려갑니다.

유방암 리서치 센터에서 보고된 한 연구에 따르면, 학창시절 날마다 달걀을 먹은 10대 여학생의 추후 유방암 발병률이 18%까지 떨어졌다고 합니다. 아미노산, 미네랄, 비타민이 풍부한 달걀은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젠 수치를 효과적으로 조절합니다. 유방암의 발병 원인 중 하나로 에스트로겐 수치 증가가 있죠. 달걀을 꾸준히 먹으면 유방암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5. 피부, 머리카락, 간을 위하는 길입니다

비오틴, 비타민 B12, 단백질이 듬뿍 들어있는 달걀은 바로 윤기 나는 머리카락과 빛나는 피부의 비결입니다. 특히 단백질 및 달걀노른자에 풍부한 황이 부스스하고 잘 끊어지는 머리카락을 보호한다는 걸 기억하세요. 뿐만 아니라, 레시틴이 풍부한 달걀은 배변 작용 및 간의 해독 작용을 도와준답니다.

6. 초롱초롱 건강하게 눈을 지켜줍니다

달걀이 시력 보호도 한다는 사실, 아셨나요? 비타민 A, 루테인, 제아잔틴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달걀이기에 가능합니다. 비타민 A가 야맹증에 좋은 건 워낙 잘 알려져 있죠. 루테인과 제아잔틴은 활성산소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낮 동안의 시력을 지켜줍니다. 이 두 성분이 부족하면 시세포가 손상돼 시력 감퇴 및 백내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7. 체중이 보다 쉽게 줄어듭니다

탄수화물은 단백질에 비해 글리세믹 지수가 높습니다. 글리세믹 지수가 높은 고탄수화물 음식일수록 혈당을 치솟게 하죠. 급격히 올라간 혈당은 또 급격히 떨어지며, 빨리 배고픔을 느끼게 합니다. 체중 감량을 원하신다면 글리세믹 지수가 낮은 음식을 골라 드세요. 다이어트에 달걀이 제격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자그마치 글리세믹 지수가 0이거든요. 게다가, 단백질을 소화할 때 당이나 지방에 비해 더 많은 칼로리 소모가 이루어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죠.

8. 뇌를 보호하고 원활한 신진대사를 유지합니다

체내 신진대사를 돕는데 필수적인 콜린(비타민 B 복합체)을 함유한 달걀. 콜린은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으로 전환돼 뇌와 신경계에서 일어나는 자극을 전달합니다. 콜린이 부족하면 기억력 감퇴 및 조산, 미숙아 출산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달걀 두 개씩 먹으면 콜린 하루 필요량을 충족할 수 있답니다.

9. 칼슘 수치를 올리고 뼈를 튼튼히 합니다.

뼈와 치아 건강에 있어, 비타민 D와 칼슘의 역할은 어마어마합니다. 미국 메릴랜드의 생명공학 센터가 이 사실을 또 한 번 입증했습니다. 칼슘과 단백질은 함께 작용해 체내 칼슘 수치를 유지하고 뼈의 신진대사를 관장합니다. 비타민 D가 풍부한 달걀은 칼슘을 흡수하고 효율적으로 쓰도록 도와줍니다.

어떠셨나요. 겨우 콜레스테롤 함량만 가지고 논할 수 없을 만큼, 건강에 대단히 좋은 달걀! 조금 돈이 더 들더라도 방목한 닭이 낳은 달걀을 사 먹는 게 좋다는 것도 꼭 기억하시고요. 미국 정부가 발행한 미국인의 식습관을 위한 안내서에도, 하루에 한 개씩 먹는 달걀은 콜레스테롤 수치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심혈관 질환을 야기하지 않는다고 나와있습니다. 당뇨나 심장 질환 등의 특정 질환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하루에 두세 개씩 달걀을 섭취해도 전혀 문제없습니다. 위 두 가지의 질환이 있다면 일주일에 세 개로 섭취량을 제한하는 게 좋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2-9.html
kolaswqetsrq 11.02 06:40
올바른 양치 습관

올바른 양치 습관

【실수 1번째】 양치 전 칫솔을 물에 적신다

치약을 칫솔에 잔뜩 짠 뒤에, 물에 적신 뒤 입에 넣으시진 않으십니까? 칫솔을 물에 적셔버리면 치약이 금방 거품으로 변합니다. 얼마 칫솔질을 하지도 않았는데, 제법 양치를 한 기분이 들게 되죠. 이게 습관이 되어버리면 충치나 기타 치주질환의 원인이 되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칫솔을 물에 미리 적시면 치약에 든 불소 성분이 약화됩니다. 좋은 치약으로 양치해봤자 이렇게 양치하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그러니, 양치를 할 때는 꼭 칫솔을 물에 적시지 말고 마른 상태에서 치약을 짜고 입으로 쏙 넣으시길 바랍니다.

【실수 2번째】 입을 여러 번 헹군다

양치를 마치고, 입을 여러 번 물로 헹구십니까? 너무 많이 헹구었다간 충치 발생을 막아주는 불소 성분까지도 모두 씻겨 내려가버립니다. 양치가 끝나고, 소량의 물을 입에 머금고 20초 정도 입을 한 번 헹구어주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참고로, 불소 효능이 치아에 남아있도록 양치 후 30분 동안은 금식하는 게 좋습니다.

【실수 3번째】 칫솔을 젖은 채로 방치한다

빨래한 옷을 말리지 않고 젖은 채로 두면, 곰팡이가 피거나 눅눅한 냄새가 납니다. 칫솔도 옷과 마찬가지입니다! 젖은 채로 방치하면, 칫솔에 남아있는 세균이 번식합니다. 원래 사람의 입안에는 많은 균이 상주하고 있긴 합니다만, 치아를 깨끗하게 유지하겠답시고 세균이 득실득실한 칫솔로 닦아버리면 본말전도(本末転倒)입니다.

특히, 칫솔을 칫솔꽂이에 꽂지 않고 캡을 씌워도 문제는 같습니다. 이 경우, 바람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박테리아나 곰팡이가 필 수 있습니다. 양치 후에는 칫솔을 물로 헹군 뒤, 타월 등으로 물기를 제거한 후 건조해주시는 게 좋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10.html
kolaswqetsrq 11.02 06:40
당신은 귀한 분입니다

 당신은 귀한 분입니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주는

사람입니다.

당신 때문에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 때문에

살맛 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이 있어

위안이 되고

감사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 때문에

때로는 웃음 찾고,

행복해 하고,

당신이 주는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당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을

나 역시 느끼지 못했을 것 입니다.

당신도 누구 때문에

위안을 받기도 하고

감사해 하겠지만

당신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받아

들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85.html
kolaswqetsrq 11.02 06:41
집중력 유지하기

집중력 유지하기

늙으면 집중력이 약해진다. 두뇌의 집행기능이 쇠퇴하기 때문이다. 집행기능이란 계획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능력이다. 배로 치자면 선장의 역할이다. 집행기능은 20대 초에 절정에 달한 뒤 점점 약해진다. 언제부턴가 익숙한 작업에서 실수하고,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까먹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빈도가 잦아진다면 의사를 찾아야 한다. 경도 인지장애나 우울증, 공황장애의 조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노화에 따른 집중력 약화라면 그 속도를 늦추거나 개선할 수 있다. 미국 ‘하버드 헬스 퍼블리싱’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조엘 셀리나스 박사에게 방법을 물었다.

◆시간 쪼개기 = 학교 시간표처럼 업무시간을 적절한 덩어리로 나누는 방법이다.

덩어리 시간의 길이는 개인차가 크다. 대개 10~50분 단위가 좋다. 각 덩어리 사이에는 짧은 휴식 시간을 둔다.

◆설탕과 카페인 = 혈당이 급격하게 오르내리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채소, 과일,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으면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적절한 카페인은 단기적으로 집중력을 높이지만, 너무 많이 섭취하면 기분이 들뜨거나 불안해지면서 오히려 집중을 방해한다.

◆알림 끄기 = 끝없이 알림을 내보내는 스마트폰은 집중의 장애물이다.

집중해야 할 때는 알림을 꺼두는 게 좋다. 집중력 향상 앱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일정 시간 특정 앱을 사용하지 못 하게 하거나, 특정 사이트를 차단하는 앱들이 도움이 된다.

◆두뇌 훈련 = 집행기능을 이용하는 활동을 하면 좋다.

살리나스 박사는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취미활동을 추천했다. 그림 그리기, 요리, 춤추기, 외국어 배우기 등이다.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활동이면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울리기 = 외로움은 우울증, 불안,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이런 증상들은 모두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어울려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 관한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유지하는 사교생활은 두뇌의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53.html
kolaswqetsrq 11.02 06:42
인생은 구름이고 바람인것을

인생은 구름이고 바람인것을

누가 날 더러

청춘이 바람이냐고 묻거든

나, 그렇다고 말하리니...

그 누가 나더러

인생도 구름이냐고 묻거든

나, 또한 그렇노라고 답하리라.

왜냐고 묻거든 나, 또 말하리라.

청춘도 한 번 왔다 가고 아니 오며

인생 또한 한 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으니

이 어찌 바람이라,

구름이라 말하지 않으리오.

오늘 내 몸에 안긴 겨울바람도

내일이면 또 다른 바림이 되어

오늘의 나를 외면하며 스쳐 가리니

지금 나의 머리 위에

무심히 떠가는 저 구름도

내일이면 또 다른 구름이 되어

무량 세상 두둥실 떠가는 것을...

잘난 청춘도 못난 청춘도

스쳐 가는 바람 앞에 머물지 못하며

못난 인생도 저 잘난 인생도

흘러가는 저 구름과 같을 진대...

어느 날 세상 스쳐가다가

또 그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가는 생을 두고

무엇이 청춘이고

그 무엇이 인생이라고

따로 말을 하리까

우리네 인생도 바람과 구름과

다를 바 없는 것을....

- 이해인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92.html
kolaswqetsrq 11.02 06:43
행복과 행운

행복과 행운

나누다 보면 행복하다.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고통을 나누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 곁에 있어 행복하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고

소중한 것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구나

이런 소소함을 놓치지 않을 때

뜻하지 않은 행운도 찾아온다.

네잎 클로버처럼 말이다.

누구나 소망하는 행복과 행운은

스스로 찾아내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작은 행복을 느껴라

작은 울림에 감사하라

뜻밖의 행운이 주변에 대기하고 있다.

- 조미하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02.html
kolaswqetsrq 11.02 06:44
■ 태실胎室과 태항아리 4편

■ 태실(胎室)과 태항아리 4편

왕실에서 전국 방방곡곡의 명당을 찾아 태실을 조성한 배경에는 풍수사상이 만연해 있던 조선시대에 명당길지를 모두 왕실에서 차지할 의도도 숨어 있었다. 백성이나 왕실이 모두 풍수사상을 신봉하던 시대였던 만큼, 만약 일반 백성이 좋은 길지를 찾아 쓰면, 왕조에 위협적인 인물이 배출된다고 왕실에서는 생각했던 것이다.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뜻도 있었다. 각지의 길지를 찾아 태를 묻은 또 다른 의도는 왕실과 일반 백성간의 유대 강화다. 태실을 조성함으로써 도성과 먼 지방의 백성들에게도 왕실이 가깝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거기다가 태실이 조성되는 지방은 군(郡)으로 승격시키고 세금과 노역을 덜어주는 혜택까지 주어 왕족의 태실을 서로 자기 고장에 모시려는 경쟁심을 유발하여 왕실에 대한 충성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
현재 남아 있는 태실 중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고,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은 ‘사적444호로 지정된 세종대왕 왕자 태실이다. 세종대왕 왕자 태실은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태봉산에 있다. 월항면에 들어서서 크고 작은 몇 개의 고개를 넘어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걸으면 저수지를 만나게 되고, 이 저수지를 돌아 오르면 수려한 산세가 사방을 둘러싼 놀라운 풍경을 만나게 된다. 이곳이 태실이 있는 태봉산이다. 태실을 조성하기 위한 풍수학적 대길지라고 할 만한 충분한 조건을 갖춘 장소다.
",

이곳은 세종대왕이 낳은 18명의 아들 중 세자인 문종을 제외한 17명의 아들과 원손인 단종의 태를 묻은 곳이다. 세종대왕은 본처인 소헌왕후와의 사이에 태어난 8명의 대군을 포함하여 모두 18명의 왕자를 두었다. 이 중 세자였던 문종을 제외한 왕자들의 태실을 모두 이곳 서진산 자락의 태봉산에 모아 놓았다. 비운의 왕 단종의 태실은 숙부들과 멀리 떨어진 한 구석에 안치되어있다. 세종대왕 왕자태실 아래에는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선석사’가 있다. 이곳에 태실이 조성되면서 태실을 수호하는 절이 되었다.

태실은 조선왕조 초기부터 지방관의 책임 하에 엄격하게 관리되었다. 태봉에 불이 나서 군수를 좌천시켰다거나(중종실록), 태봉 관리를 소홀히 한 지방관을 잡아들인 일(선조실록)이 있는 것을 보면, 왕실에서 태를 안치한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성계의 태실 역시 옥계부사를 두어 수호케 하고 3년마다 안위제(安慰祭)를 지내는 것이 관례였다.

♣ 제공 : KIMSEM과 함께 역사 다시보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4_44.html
kolaswqetsrq 11.02 06:44
■ 태실胎室과 태항아리 2편

■ 태실(胎室)과 태항아리 2편

태의 처리를 위해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준비를 했으며, 아기가 태어나면 왕실은 물론 민간에서도 태를 항아리에 넣어 땅에 묻었다. 태항아리는 외항아리와 내항아리로 이루어져 있다. 내항아리에 태(胎)를 담은 후, 외항아리 속에 내항아리를 넣어 봉했다. 봉해진 태항아리를 좋은 땅에 묻으며 아기의 건강과 미래를 기원했다. 그럼 좋은 땅이란 어떤 곳일까? 우선 땅이 반듯하고 우뚝 솟아 위로 공중을 받치듯 하고 있어야 했다. 이런 곳을 길지(吉地)라 불렀다.

영아 사망률이 높고 평균수명이 짧았던 당시, 남자 아이는 가문의 대를 이을 존재였고, 태는 생명의 근원으로 간주됐다. 때문에 아기의 태를 몹시도 중하게 여겼던 당시 왕가에서는 왕족의 남아가 태어나면 아기의 태를 아름다운 항아리(주로 백자)에 담아서 길일을 택하여 매장하는 풍습이 전해오고 있다. 이러한 풍습이 왕가뿐 아닌 양반 가정에도 점차 전해지고 나중에는 일반 백성들도 이 풍습을 따랐던 것이다.

다만 구별 되는 것은 왕가나 양반들은 백자나 값나가는 항아리를 사용 했고, 일반 백성은 질 항아리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풍습은 근대까지도 전해져서 시골이나 산간 지방에서는 가끔 아장사리터라해서 그 흔적이 발견되곤 한다. 보통 서민들이 사용하던 장소는 돌들이 많은 곳을 택했는데, 그곳을 약간 파고 항아리를 묻고 그 위를 돌로 덮었다. 왜 하필 돌로 묻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아기를 묻으면서 아무도 보지 않는 밤이나 새벽녘에 간편하게 작업을 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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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왕실과 민간의 차이점은, 왕실은 길지를 전문가들이 전국을 대상으로 찾았고, 민간에서는 동네 뒷산이나 마당에 묻었다는 것이다. 왕실에서 왕의 자녀가 태어나면 관상감에서 태항아리를 묻을 좋은 터와 날짜를 따로 잡아서 안태식을 크게 치르고 태를 묻었다. 특히 왕세자의 태는 장래의 국운(國運)과도 관련이 크다 하여 의식에 더욱 정성을 쏟았다. 그러므로 태를 수습하고 태실을 만드는 일은 왕실의 일이기도 했지만 국가적 사업이기도 했다. 이 일을 관할하던 관청이 ‘관상감’이란 곳이고, 이를 관장하는 관리는 ‘안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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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6:45
■ 궁녀宮女 4편

■ 궁녀(宮女) 4편

입궁 연령은 지밀이 가장 어려 4∼8세, 침방·수방이 6∼13세, 그 밖은 12∼13세가 관례였다. 원칙적으로 신분, 조상, 건강 등의 까다로운 조건으로 선발하였다. 그러나 대개 연줄과 세습이라 할 수 있으며, 친인척을 들여놓는 경우가 많았다. 궁녀의 선출은 원칙적으로 10년에 한번이었지만 예외도 있었다. 지밀나인의 경우 조건이 까다로워서 상궁들이 두세번씩 선을 보러 나갔다. 왕실에선 좋은 출신의 궁녀를 원하여 양가에서 강제로 차출해 수차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10세 이상의 딸 가진 집안에서는 서로 다투어 혼인을 시켜 조혼의 풍습까지 생겼다. 조선 후기 경종 3년에 이를 금하는 어명이 내려졌고, 영조 22년(1746년)에 이르러 양녀(良女) 차출을 금지하는 제도가 세워져 양인 여성을 궁녀로 만들었을 경우 60대의 장형과 1년의 도형에 처해졌다.

근무는 대개 하루씩 당번과 비번을 교대로 했다. 궁궐내의 모든 궁녀들은 입궁(入宮)에서 퇴출(退出)까지 원칙적으로 종신제였다. 왕의 직계 및 그 배우자 외에는 후궁도 궁중에서 죽을 수 없었으므로, 늙고 병들면 궁녀는 궁궐을 나가야 했다. 가뭄으로 궁녀 방출이 결행될 경우(단, 젊은 궁녀), 모시고 있던 상전이 승하했을 경우에도 중도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궁궐에서 나온 뒤에도 혼인이 금지되는 등 행동에 제약을 받았다. 결국 궁녀 제도는 절대군주국가 시기의 희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궁궐에서 일하는 궁녀는 일단 모두가 ‘왕의 여자’인 셈이다. 그러므로 행동이 바르고 얼굴이 예뻐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궁녀라고 해서 다 예쁘게 생긴 것은 아니었다. 조선 시대에는 ‘고수대’라고 하는 궁녀가 있었는데, 고수대는 예쁘기는커녕 흉물스러울 정도로 덩치도 크고 못생겨서 고수대를 처음 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고수대는 오히려 못생긴 얼굴 때문에 궁녀로 뽑힐 수 있었다. 고수대와 같은 궁녀를 액막이 궁녀라고 하는데, 나쁜 기운이 궁으로 들어오다가 못생긴 액막이 궁녀를 만나면 되돌아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액막이 궁녀가 나쁜 기운을 쫓기 위해 특별히 어떤 일을 한 것은 아니고, 다른 궁녀들과 마찬가지로 부엌에서 불을 때거나 물을 긷는 일을 했다.

늙고 병들어 궁에서 나온 궁녀들은 함께 모여서 서로 의지하며 살았으며, 종교를 통해 외로움을 달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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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6:46
■ 궁녀宮女 2편

■ 궁녀(宮女) 2편

궁녀의 선출 방법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10세 전후에 애기나인으로 궁에 들어왔다. 왕과 왕비의 시중을 담당하는 지밀의 경우에는 4∼8세에 입궁했으며, 의복을 짓고 수를 놓는 침방과 수방도 상대적으로 입궁 시기가 빨라 6세에 궁으로 들어온 경우도 있었다. 궁에 처음 들어온 애기나인은 궁중 생활에 필요한 훈련을 받은 뒤 18세 정도가 되면 정식 나인이 되었다. 나인이 된 뒤에는 15년이 지나야 상궁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데, 만약 왕의 승은을 입게 되면 그 기한을 채우지 않고도 상궁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궁녀를 승은상궁(承恩尙宮)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다른 업무는 하지 않고 왕의 시중만 담당했다. 그리고 이들은 왕의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궁관인 상궁에 머물러 있지만, 아이를 낳은 뒤에는 내관인 종4품 숙원(淑媛) 이상으로 봉해지는 것이 상례였다.

궁녀는 입궁시기와 소속부서에 따라서 격이 달라진다. 그들 나름대로 위계질서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궁녀의 업무는 지밀(至密), 침방(針房), 수방(繡房), 소주방(燒廚房), 생과방(生果房), 세답방(洗踏房), 세수간(洗水間) 등으로 구분된다. 왕과 왕비의 시중을 담당하던 몸종격인 지밀(至密)의 지위가 가장 높았다. 지밀(至密)은 ‘매우 은밀하고 비밀스럽다’ 는 뜻으로 임금이 거처하던 대전(大殿)이나 왕비의 내전(內殿)을 가리키는 말이다. 침방과 수방은 궁궐에서 쓰이는 의복을 만들고 수를 놓았으며, 소주방은 음식을 담당하는 수라간으로 궁녀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왕의 건강이 나빠지거나 배탈이 나기라도 하면 수라간 궁녀들은 그 책임이 막중했다. 생과방은 음료와 과자 등을 만들었으며, 세답방은 빨래와 염색, 다리미 등 옷의 손질을 담당했다. 세수간은 세숫물과 목욕물, 타구(唾具:침뱉는 그릇)와 변기 등을 담당했다. 일반 개인 가정으로 비교해보면, 지밀나인은 몸종이고, 침방·수방나인은 침모(針母), 소주방과 생과방은 식모인 셈이다. 세수간이나 세답방을 담당하는 궁녀들이 가장 하급인 무수리이다.

궁녀는 입궁 후 15년이 되면 정식 나인이 되었다. 남색 치마에 옥색 저고리, 머리에는 개구리첩지를 단 제복이 일생 동안 그들의 유니폼인 셈이다. 나인이 된 뒤 다시 15년이 경과되면 상궁으로 승격했으므로, 가장 빠른 4∼5세 입궁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 35세 이후라야 상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대의 상궁도 있을 수 있는데, 임금의 승은을 입어 상궁으로 봉해진 승은상궁이다. 나인 출신이므로 당연히 상궁들 중에서 나이가 어리다. 그러나 신분은 상궁임에도 복식은 상궁의 복장이 아닌 후궁의 복장을 입게 된다. 다른 상궁과는 달리 승은상궁은 왕의 승은을 입는 그날 바로 상궁이 되는 특별상궁이다.

임금의 승은을 입은 터라 다른 상궁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일단 승은을 입게 되면 나인 시절 부여되었던 모든 직무에서 벗어나게 되나, 한번 승은을 입고는 왕이 다시 찾지 않아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상궁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승은상궁은 왕의 아기를 갖게 되는데, 이들이 왕의 아기를 가진다면 내명부 종4품 숙원(淑媛)의 후궁이 될 수 있었다. 대표적 일례로 숙종의 아들인 경종을 낳은 희빈 장씨와 숙종의 아들인 영조를 낳은 숙빈 최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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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6:47
■ 봉이鳳伊 김선달 6편

■ 봉이(鳳伊) 김선달 6편

10. 어느 날 김선달이 주막에 가서 외상술을 청했다. 주모는 식전에 외상술은 안 판다면서 거절했다. 주모가 식사하러 간 사이에 김선달이 하릴 없이 마당 끝에 쪼그려 앉아 있는데, 돼지 한 마리가 우리에서 빠져 나오더니 마당에 널어놓은 술밥을 먹으면서 더러운 발로 마구 헤집고 다녔다. 하지만 김선달은 돼지를 쫓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잠시 후 방에서 나온 주모가 깜짝 놀라 돼지를 붙잡아 우리에 집어넣은 다음 김선달에게 항의했다. “아니, 나리는 돼지가 술밥을 저 지경으로 만드는 걸 그냥 보고만 있었소?” 그러자 김선달은 멀뚱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돼지가 돈내고 먹는 줄 알았지.” 라고 했다. 주모가 외상술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선달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복수를 한 것이다.

11. 봉이 김선달의 옆집에 장님이 한 명 살았다. 어느 날 김선달은 장님에게 목욕하러 가자면서 동네를 대여섯 바퀴를 빙빙 돈 다음, 오줌통에 큰 돌을 넣어 ‘첨벙’ 소리를 낸 다음 “내가 먼저 물속에 들어왔으니 당신도 빨리 들어오게.”라고 재촉했다. 장님이 멋모르고 옷을 벗고 첨벙 들어갔다가 오줌만 실컷 들이 마시게 되었다.

이처럼 김선달 설화는 기발한 재치와 지혜, 익살, 유머가 총동원된 일종의 풍자극인 것 같지만, 여러 일화를 통해 그의 이기심과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고 괴롭히는 일면도 엿볼 수 있다. 김선달은 기득권자인 양반이나 그들과 결탁하여 큰돈을 번 부자를 목표로 삼기도 했지만, 무고한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는 어느 누구든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존재라면 이용하였고, 만일 상대가 자신을 골탕 먹이려 하면 몇 배로 고스란히 갚아주었다. 이런 그에게서 시대를 앞서가는 민중의식이나 변혁의지는 결코 보이지 않으며, 그가 서민의 친구이거나 정의의 사도 또는 호탕한 풍류객으로도 결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김선달의 기발한 행각은 당대의 백성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주기도 했다. 물론 그가 행한 방법을 현실에서 시도한다면 성공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고, 더구나 요즘 세상이라면 사기나 횡령죄에 해당할 것이 뻔하다. 이처럼 보통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오히려 그의 활약상에 대한 기대감과 성취감이 배가되었을 수도 있다. 김선달 설화에는 무능한 선비를 조소하는 이야기도 많이 등장한다. 바야흐로 공고했던 신분제가 흔들리면서 사회가 급격하게 바뀌고 있는데, 여전히 공자 왈 맹자 왈 하면서 무위도식을 일삼고, 한겨울에 홑옷차림으로 벌벌 떨면서도 겻불조차 쬐지 않는 몰락한 양반들이 한심스러웠던 것이다. 김선달은 이런 선비들을 마음껏 조소하고 희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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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달이 행한 여러 행동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교훈을 전해주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남을 속이는 행위를 통해 통쾌함을 유발시키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러기에 김선달설화 가운데에는 《고금소총》류의 음담패설도 많이 있다. 등장인물도 팥죽장수, 순라꾼, 고을사또, 평양감사 등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았고, 누구든 속일 수 있고 누구든 바보로 만들 수도 있었다. 돈 한 푼 없이 한양으로 갔다가 물에 빠진 척해서, 건져준 나그네에게 오히려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한 일화는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내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 는 속담의 유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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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6:47
■ 봉이鳳伊 김선달 4편

■ 봉이(鳳伊) 김선달 4편

봉이 김선달의 일화를 좀 더 살펴보자.

1. 평양 감사의 청으로 뇌물을 겸한 선물인 귀한 벼루(또는 고려청자)를 정승에게 대신 가져다준다. 그런데 아들의 장난으로 (주막에서 만난 기녀와 노는 중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는 가는 길에 술을 진탕 먹었다가 넘어졌다고도 하는 여러 버전이 있다) 벼루가 떨어져서 깨졌다. 이후 한양으로 간 김선달은 정승 집 문지기에게 일부러 시비를 건 다음에 그가 밀쳐서 넘어질 때 이미 깨진 벼루를 땅에 패대기쳐 박살을 내버린 다음 정승에게 벼루를 바치며 문지기 때문에 박살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것은 사기의 범주를 벗어나서 자해공갈에 가깝다. 그 후 문지기는 어떻게 됐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무사할 리가 없다. 어쨌든 그 정승은 문지기를 나무란 뒤, 평양감사에게 물건을 잘 받았다는 답변을 보냈다고 한다.

2. 나이든 노인을 상대로 한 사기극도 있었다. 김선달이 곡물을 파는 가게의 주인인 노인 앞에서 옷을 잡아당기며 "이게 뭐요?"라고 물어보니 노인이 "옷이오(오시오)." 라고 대답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 다음 잣을 가리키며 "이게 뭐요?" 하니 노인은 "잣이오(자시오)" 라고 했다 하여 잣을 몇 웅큼이나 집어먹었다. 지금도 싼 편이 아니지만, 당시 잣은 꽤나 고가의 물건이었다. 노인은 당연히 값을 치룰 줄 알았지만 김선달은 다 먹은 다음, 노인에게 다시 머리의 갓을 가리키면서 "이게 뭐요?" 라고 물었다. 노인은 "갓이오(가시오)." 라고 대답했고, 김선달은 그 말을 듣고 그냥 가게를 나오다가 노인에게 멱살을 잡혔다. 결국 노인의 아들이 와서 자초지종을 물으니, 김선달은 아들에게 "주인장이 오라고 해서 왔고, 자시라고 해서 자셨고, 가시오라고 해서 갔는데 뭐가 잘못됐단 말이오." 라며 역정을 냈다. 정신이 오락가락할 나이인 아버지를 모신 아들은 아버지가 정신이 나간 줄 알고 김선달을 그냥 보내줬다. 고가의 식품을 무전취식했으면서 멀쩡한 노인을 치매노인으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3. 잣을 실컷 먹은 김선달은 드디어 배탈이 났다. 급해진 나머지 한 대가댁에 가서 뒷간을 쓰자고 사정을 하니, 문지기가 텃세를 부리며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결국 돈 5냥을 주고 뒤를 본 김선달은 본전 생각이 나서 하루 종일 뒷간에 앉아 있었다. 그 댁 주인마님이 돌아올 시간이 되자 애가 탄 문지기는, 결국 받은 5냥의 몇 배를 돌려주고서야 김선달을 쫓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버전으로는 문지기가 아니라 집에 있던 마님이 돈을 받고 들여줬는데, 의심 많은 서방님이 돌아올 때가 되어 애가 타서 돈을 몇 배로 뜯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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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6:48
■ 봉이鳳伊 김선달 2편

■ 봉이(鳳伊) 김선달 2편

민간에서 전승되어 오던 김선달 설화가 처음으로 문헌으로 나타난 것은 1906년 황성신문에 연재된 한문소설 〈신단공안(神斷公案)〉의 네 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김선달이라는 인물이 있다. 여기에서 그려낸 김선달은 평양 출신의 선비 김인홍(金仁鴻)이고, 호가 낭사(浪士)이다. 하지만 이것도 소설 상의 설정일 뿐이고, 실존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

구전설화에서는 희대의 사기꾼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이 소설에서 김선달은 몰락양반 출신으로 큰 뜻을 품고 한양에 올라왔지만, 변변찮은 문벌과 서북인을 차별하는 풍조로 멸시 당하자, 권세가와 부유한 상인 등을 골탕 먹이고 당대의 정치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위트 넘치고 의식 있는 해학적(諧謔的)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선달은 과거에 급제하고도 벼슬을 얻지 못한 양반을 부르는 칭호이다. 사기꾼 기질이 강한 중년에 비해 젊었을 적에는 무술에 능한 청년이였기에 무과에 급제해 선달 호칭을 받았다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설(說)로 학질에 걸린 척하고 시험을 봤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용인즉, 한여름에 김선달이 솜옷을 둘둘 껴입고 시험장에 나타나자 시험관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에 학질에 걸렸다고 일러두자, 시험관이 병이 옮을까 무서워서 멀찍이 떨어져서 경전을 외우라고 했고,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김선달은 대충 아무렇게나 중얼거리고 있었다) 얼른 보내버려야겠다 싶어서 그냥 바로 합격시켰다는......???

이렇게 해서 초시(初試)에 합격했고, 이후 중앙의 유력자를 찾아가 적당히 뇌물(?)을 건네면서 말빨로 구워삶아 합격증을 샀다고도 한다. 아무튼 어느 쪽이든 제대로 시험을 본 것이 아님을 얘기하는 것 같다. 조선 후기에는 과거 응시자가 수만 명에 달했지만 관직은 제한적이었던 데다가, 세도정권의 매관매직이 성행하면서 재산이나 배경이 없는 급제자들은 평생 미관말직조차 얻지 못했다. 이런 사회상황을 비꼬는 설정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름 앞에 별호(別號)처럼 붙은 ‘봉이(鳳伊)’는 어떻게 얻어졌을까?

김선달이 장날에 시장 구경을 갔는데, 닭을 파는 가게 안에 유난히 큼직하고 빛깔이 좋은 닭 한 마리를 발견했다. 주인에게 저 봉황을 어디에서 얻었느냐고 묻자, 주인은 봉황이 아니라 장닭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봉황은 실존하는 새가 아니라 상상의 새이다. 김선달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계속 묻자, 닭 장수는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다가 김선달이 계속 봉황 같다며 값을 물어보자, 욕심이 생긴 주인은 마침내 봉황이 맞다고 말하고 비싼 값에 팔았다.

김선달은 그 장닭을 안고 관아로 달려가 희귀한 봉황을 구했다며 사또에게 바쳤다. 사또는 거짓임을 알고 화를 내며 볼기를 치자, 김선달은 자신은 닭장수에게 속았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관아에 끌려와 사또의 추궁을 받은 닭장수는 김선달에게 받은 닭값에 볼기 값까지 더하여 몇 배의 배상을 해주게 되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봉이(鳳伊) 김선달’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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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6:49
◇ 목 디스크 예방을 위한 생활속 건강 수칙

◇ 목 디스크 예방을 위한 생활속 건강 수칙

1. 물건을 들 땐 양 손을 번갈아 사용하기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많이 쓰는 쪽으로만 물건을 들고 가방을 자주 메는데 이는 몸의 균형을 깨는 행동이다. 이런 습관이 쌓이면 목과 어깨에 부담을 주고 반복되면 자세가 흐트러져 근육의 피로감을 가져오고 목과 연결된 척추 전체가 비뚤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도 있다. 따라서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은 작은 물건이나 가방이라도 양쪽 어깨에 번갈아 가며 메거나 들고 짐을 들 때도 양쪽 손에 번갈아 드는 습관을 갖도록 한다.

2. 바르게 앉고 50분마다 자리에 일어나 휴식 취하기

의자에 앉을 때 엉덩이를 의자 깊숙이 넣고 몸을 살짝 뒤로 젖혀 엉덩이부터 어깨 끝까지 등 전체가 등받이에 닿게 해 체중을 분산시켜야 한다. 의자에 살짝 엉덩이를 걸치듯 앉거나, 허리를 너무 꼿꼿이 세우고 앉으면 목과 허리에 부담을 주게 된다. 바른 자세로 앉아 있더라도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것은 척추 건강에 좋지 않다.

50분 마다 일어나 5분씩 몸을 움직이고 쉬게 하는 것이 몸에 무리가 없다. 필요하다면 목과 허리를 이완 시켜주는 스트레칭을 하거나 허리를 좌우로 돌리거나 실내를 가볍게 한 바퀴 도는 것이 뼈와 근육의 만성피로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3. 몸을 항상 따뜻하게 유지하기

찬물로 샤워를 하거나 머리 감기, 머리를 감은 후 머리카락을 말리지 않고 외출하는 등의 행동은 찬 기운이 근육을 수축시켜 결림 증상이나 통증을 유발할 수 있으니 삼가야 한다. 더운 여름이더라도 실내는 냉방시설로 온도가 낮기 때문에 시원함을 넘어 추위를 느낄 때도 있다. 이를 대비해 얇은 긴 팔 상의를 입거나 스카프를 두르면 목과 어깨를 냉기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4. ‘걷기’운동으로 지키는 목 건강

걷기는 목뿐만 아니라 척추 건강에도 가장 좋은 운동 중 하나이다. 몸 전체를 골고루 무리 없이 움직이게 할 뿐 아니라 혈액순환을 원활히 해주고 심폐기능과 장 기능 강화, 무엇보다 척추 균형을 잡아주고 지구력을 향상시키는 장점이 있다.

매일 30분간 1분에 100m 걷는 속도로 운동을 지속하면 최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운동 초기에는 몸에 무리가 되지 않도록 1분씩 30회로 나누어 걷는 것이 좋다. 걷기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걷는 자세이다.

걸을 때 패션모델이 된 듯 어깨를 쭉 펴고 복근에 힘을 준 다음 보폭을 어깨 넓이 이상으로 넓게 해 걸으면 약해진 근육과 인대가 튼튼해지고 구부정한 자세 교정에도 효과가 있다. 시선은 멀리 바라보되 15도 정도 고개를 살짝 들어 위쪽을 바라보면서 걷고 가슴과 어깨는 쫙 펴도록 한다.

5. 운전 중 일어날 충격에 대비하기

운전 중 목 디스크가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추돌사고로 인해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가 앞으로 튕겨나가면서 목 디스크가 발생하기도 하고, 긴장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고개를 돌리면서 목뼈에 무리가 가는 경우도 있다. 과속 방지턱을 통과할 때, 비포장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릴 때, 후진할 때 모두 디스크와 목뼈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의자 등받이 각도는 110~120도 정도로 뒤로 약간 젖힌 상태를 유지하면서 엉덩이와 등을 의자에 붙여 앉고 무릎은 60도 정도 굽히는 것이 좋다. 목 받침대는 양쪽 귀 뒤에 오도록 하고 목 받침대와 머리의 거리는 5cm이내로 유지되어야 한다.

6. 잘 때도 바른 자세로 자기

인생을 통틀어 약 3분 1 가량이 수면시간으로 쓰이는 만큼 잠은 낮 동안 쌓인 피로를 회복하고 틀어진 신체 골격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휴식 시간인 만큼 자는 자세가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열쇠 중에 하나이다. 잠자는 모습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데 아침에 일어나기 전 자신의 자는 자세가 어떤지 살펴보며 일주일간 가장 많은 횟수를 기록한 자세가 자신의 잠자는 타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신의 수면 습관이 파악되면 바른 수면자세와 비교했을 때 무엇이 문제인지 점검해봐야 한다.

척추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편안하게 이완되도록 해서는 천정을 바라보고 똑바로 자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가급적이면 이 자세를 유지하지만 하루아침에 수면 자세를 고치는 것은 어려우므로 최대한 척추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보완하면서 자세를 교정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옆으로 자는 경우 어깨와 목 사이만큼 베개 높이를 높여 베고, 견갑골 즉 날개죽지뼈가 눌리지 않도록 뒤로 빼고 자도록 한다. 엎드려서 자는 습관이 있다면 큰 인형이나 죽부인을 끼고 자면 척추를 편안하게 이완할 수 있다. 가족이라 해도 바닥 요와 이불은 따로 사용하고 팔베개를 해줄 경우 잠이 들면 바로 팔을 빼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도록 수면 습관을 교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7. 목 건강의 안 좋은행위

가끔 길을 가다 보면 아이를 무등 태워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무등을 태우면 목뼈가 앞으로 굽게 되고, 아이 체중이 목과 어깨에 실리면서 디스크 탈출이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놀이동산의 인기 0순위인 롤러코스터도 짜릿한 쾌감을 주긴 하지만 급강하를 반복하면서 척추 사이 디스크에 평소 몇 배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에 위험한 놀이기구이다. 평소 무심코 하는 어깨동무도 몸의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쳐 척추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11.html
kolaswqetsrq 11.02 06:50
○ 오래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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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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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고 싶다면 식사 습관부터 바꿔 보자. 기상 후 12시간 이내로 식사를 제한하고, 콩과 견과류 등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수명 연장에 도움됐다. 식단을 구성하는 음식 및 영양소와 수명의 상관관계를 조사해 장수하는 사람들의 식단에 공통된 특성을 몇 가지 추려냈다.

☞ 기상 후 11~12시간 내로만 식사하고 그 외엔 공복 유지

하루 중 일정 시간대에만 음식을 섭취하고 나머지 시간엔 빈속을 유지하면 지방이 줄어든다. 연구진이 검토한 한 논문에 따르면, 비만인 중년 여성들이 공복 16시간 후 8시간 내 식사하는 패턴을 3개월간 유지한 결과, 식사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은 집단보다 체중이 최대 4kg 감소했다. 식사 시간을 제한한 집단은 이외에도 자신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해 삶의 질이 향상됐으며, 심혈관계 질환은 최대 12% 감소했다.

식사 시간을 제한하면 살이 빠지는 이유는 공복으로 있는 동안 열량 섭취 없이 에너지만 소모하기 때문이다. 살이 빠지려면 섭취한 열량보다 소비하는 에너지가 커야 한다. 일과 중 특정 시간대에만 음식을 먹고 나머지 시간에 음식 섭취를 제한한다면, 열량 섭취 없이 에너지만 소모하는 시간대가 안정적으로 확보돼 체중 감소로 이어진다.

다만, 약 12시간 공복 후 11~12시간 이내에 식사하는 패턴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다. 식사 시간을 제한하면 체중이 줄어든다는 게 입증됐지만, 공복 시간과 식사 시간의 비율을 어떻게 조정하는 게 보편적으로 안전한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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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년층은 단백질 하루 권장량만큼 식물성으로 섭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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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수화물 식품을 줄이는 대신 단백질 식품을 더 먹어 하루에 필요한 총 열량을 섭취하는 사람도 있지만, 장년(長年)에겐 이것이 오히려 독이다. 특히 50~65세 장년층이 하루 총열량의 20% 이상을 단백질로 섭취하는 경우 사망률이 75% 증가하고, 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4배, 당뇨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5배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단백질 하루 섭취 권장량보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양을 동물성 급원이 아닌 ▲콩 ▲견과류 등 식물성 급원에서 섭취하기를 권장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몸무게 1kg당 단백질 약 0.8g을 섭취하도록 권한다. 몸무게가 60kg인 사람이라면 하루에 단백질 약 48g을 섭취하는 게 적당하단 뜻이다.

평균수명이 긴 지역의 주민은 동물성 식품을 적게 섭취하는 경향이 있었다. 100세 이상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은 일본 오키나와, 이탈리아 사르디니아, 미국 로마 린다 주민의 식습관을 조사한 결과, 오키나와의 전통적 식단에서 동물성 식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1%에 불과했으며, 사르디니아 및 로마 린다 주민들 역시 고개나 동물성 식품 섭취 빈도가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권장 섭취량만큼의 단백질을 식물성 단백질로 섭취할 경우, 콩과 식물의 섭취량이 늘어나 수명이 연장된다고 추정했다. 식물성 식품을 섭취하면 체내 염증 수치가 낮아져 다양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78.html
kolaswqetsrq 11.02 06:50
빠르게 숙취 해소를 돕는 식품 6

빠르게 숙취 해소를 돕는 식품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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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나나로 숙취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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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즐겨하는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과일이 바나나라고 하는데요. 바나나는 나트륨과 균형을 이루어 정상 혈압을 유지하고 몸속 노폐물 처리, 에너지 대사 및 뇌기능 활성화를 돕는 칼륨을 다량 함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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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많이 마셨을 때에는 몸에서 칼륨이 다량 배출됩니다. 이 때문에 바나나를 섭취하게 되면 칼륨을 보충시켜 숙취로 인한 고통을 줄여주게 됩니다. 때문에 만취 후, 잠들기 전 바나나를 섭취하신다면 다음날 보다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냥 바나나를 통채로 드셔도 좋을 테고, 여러 자연 숙취 해소 재료들을 섞어 바나나 스무디를 만들어 먹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바나나는 숙취 해소 뿐만 아니라 우울증, 생리통, 수면장애, 혈압문제, 두뇌활동, 변비, 속쓰림, 입덧, 신경불안에 도움이 됩니다. 심지어는 모기 물린 데에 바나나 껍질로 문지르면 통증까지도 완화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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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꿀을 먹어서 숙취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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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은 과당을 함유하고 있어 몸의 신진대사를 돕고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됩니다. 물론 바나나처럼 꿀도 칼륨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숙취가 정말 심하신 분들은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20분에 한번씩 꿀물을 드시면 좋습니다. 뜨거운 물에 타서 드시거나 직접 꿀을 드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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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추냉이 목욕을 통한 숙취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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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몸에 좋은 무언가를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섭취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배출입니다. 몸의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하기 위해 욕조에 고추냉이 한 스푼을 풀어 반신욕을 즐겨보세요. 이 방법은 몸의 해독을 도와 숙취 해소를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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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탄수화물 섭취로 숙취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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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적당히 섭취하면 빵이 위에 남은 알콜을 흡수해서 숙취 해소를 돕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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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토마토로 숙취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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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람들은 보통 토마토를 주스로는 잘 마시지 않는데요. 예외적으로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엔 토마토 쥬스 칵테일을 마십니다. 토마토는 비타민, 미네랄, 효소, 알콜을 분해하는 과당 등을 함유하고 있어 숙취 해소를 돕기 때문입니다. 토마토 스무디 레시피는 토마토에 매운 고추, 설탕, 라임을 넣어 갈아 마시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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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물을 많이 마셔서 숙취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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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온 후 잠자기 전에 술이 깰 때까지 충분한 물을 마셔보세요. 소주 1잔에 물 1잔씩 비운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술을 많이 마셨으면 그만큼 물을 많이 마셔야겠죠? 술을 마신 날과 다음날 아침에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면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6_3.html
kolaswqetsrq 11.02 06:51
◇ 전립선비대증 똑똑하게 극복하는 방법

◇ 전립선비대증 똑똑하게 극복하는 방법

1. 나이가 들면 커지는 전립선

전립선은 정액을 만들어 요도를 통해 내보내는 남성의 생식기관이다. 고환에서 생산되는 정자는 남성이 사정할 때 전립선액과 정낭의 분비물 등과 함께 섞여서 요도를 따라 배출된다. 전립선은 방광 아래 골반 깊숙한 곳에서 요도를 감싸고 있다. 바로 뒤쪽으로는 직장이 자리하고 있다.

전립선은 젊을 때는 호두알 정도의 크기이지만, 나이가 들면 호르몬 등의 영향으로 크기가 점점 커진다. 심하게 비대해지면 전립선 내부를 지나가는 요도를 눌러 배뇨 장애를 초래하는데, 이를 전립선비대증이라고 한다.

2. 소변보기 힘들면 전립선비대증 의심

전립선비대증은 초기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다. 하지만 전립선이 점차 커지면 요도를 압박해 소변줄기가 가늘어 지고 힘이 없어진다. 중간에 소변줄기가 끊기기도 한다. 화장실에 가도 소변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걸리고, 힘을 줘야 겨우 소변이 나온다. 소변 후에도 개운한 느낌이 없다. 평소 소변이 자주 마렵고 갑자기 소변을 참기 힘들다. 한밤중에 잠을 자다가 소변을 보는 경우가 잦다.

3. 남성 갱년기와 함께 발생

전립선비대증의 원인은 다양하다. 40대 이후부터 나타나 60대에는 60-70%, 70대에는 대부분이 경험할 정도로 흔한 노화 증상이다. 남성호르몬의 변화도 영향을 미치는데, 최근 남성 갱년기가 빨라지면서 전립선비대증도 일찍 시작되고 있다.

나이가 들면 고환에서 생산되는 남성호르몬의 양은 감소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에 남성호르몬 전환효소의 활성도는 증가한다. 따라서 활동형 남성호르몬의 양이 늘어나면서 전립선비대증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4. 요로 감염, 방광 결석, 신장 손상 위험

전립선비대증 환자는 요로 감염(방광염)이나 방광 결석이 생길 위험이 높다. 소변을 본 후에도 방광이 완전히 비워지지 않아 방광 속에 고여 있던 소변이 감염의 원인이다. 방광에서 요로를 통해 신장으로 압력이 가해지면 요로와 신우가 늘어나는 수신증이 발생해 신장이 손상될 수도 있다.

이성원 삼성서울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전립선 비대증을 단순히 불편한 증상을 초래하는 질병으로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방광 벽 일부가 밖으로 불거져 나오고 방광 결석, 방광과 연결된 신장 기능의 저하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5. 증상 비슷한 전립선암에 주의해야

전립선비대증과 증상이 비슷한 암이 바로 전립선암이다. 초기에는 증상이 없지만 암이 커지면 요도를 압박해 빈뇨, 잔뇨감 등 다양한 배뇨 장애 증상이 나타난다. 전립선암이 생긴 것을 모르고 있다가 전이가 된 후 뒤늦게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전립선에 생기는 질환에는 만성 전립선염도 있다. 전립선 염증으로 인해 배뇨 장애 또는 아래쪽 등이나 다리 사이 통증이 나타난다. 따라서 소변을 보기 힘들어지면 전문의와 상담해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게 좋다.

6. 건전한 성생활과 운동이 도움

고지방 고칼로리 음식 섭취, 비만 등은 전립선비대증의 위험요인이다. 과일과 채소를 자주 먹되 특히 토마토, 마늘, 녹차 등의 섭취를 늘리고, 육류 등은 제한하는 것이 좋다. 된장이나 두부 등 콩류도 전립선비대증에 좋은 음식이다. 너무 오래 앉아 있는 습관은 피한다. 건전하고 적절한 성생활, 운동으로 적정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소변을 너무 오래 참는 것은 좋지 않으며, 과음도 삼가야 한다. 피로를 피하고 좌욕을 자주하는 습관도 좋다. 김수웅 서울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요즘은 의료 정보들이 많아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환자가 미리 예단을 하고 잘못된 정보를 너무 믿는 경우도 있다"면서 "결국은 전문 분야의 의사와 깊이 상의를 해서 결정해야 될 문제들이 상당히 많다"고 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20.html
kolaswqetsrq 11.02 06:52
✅ 간의 지방배출을 돕는 구기자!!

✅ 간의 지방배출을 돕는 구기자!!

✅ 손상된 간 회복 시키는 구기자!!

✅ 간암 세포를 사멸하는데 완전 짱!!

※ 구기자를 오래 복용하면 늙지 않는다는 항노화 성분으로 50대 이후 노화현상을 줄여준다고 함

불로장생을 꿈꿨던 진시황이 즐겼던 열매 ‘구기자’ 예로부터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인삼 못지않은 귀한 약재로 쓰이던 구기자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구기자 효능

구기자는 탁월한 항산화식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1가지 필수 아미노산 역시 고르게 들어있는데요.

특히 베타인 이라는 성분은 지방간 예방 등 간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데요. 더불어 카로티오이드, 리코펜, 루테인 등 강력한 항산화 물질이 두루 들어있는 슈퍼푸드라 할 수 있습니다.

구기자 100g당 단백질 14g, 식이섬유 1.3g, 철분 14.7mg, 칼륨 2161mg, 칼슘 46mg 등이 들어있는데요.

특히 비타민A의 경우 하루권장 섭취량의 150%가 들어있으며 셀레늄, 비타민B2, 구리 같은 미네랄 성분 역시 풍부합니다.

구기자는 치매 예방에 도움을 주고 기억력 증진에도 도움을 준다고 하는데요. 비타민C가 오렌지의 500배가 넘게 함유돼 있으며 유해산소 억제와 피부건강에 탁월한 베타카로틴 역시 당근보다 많은 식품입니다.

빈혈이나 갑상선, 뇌 신경 발달 등에 있어 필수적인 철분 함량도 높은데요. 해외에선 영양학적 가치와 항산화 효능으로 일찌감치 슈퍼 과일로 불리고 있는 구기자! 신진대사를 활성화시키는 자양강장제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소화 개선과 간 세포 보호, 갱년기 증상 완화, 관절 및 근육통 완화에 효과를 보이며 안티에이징은 물론 수면장애 개선과 심혈관 질환 예방에도 효과적인데요.

뿐만 아니라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키며 체지방 감소와 체중 관리에도 도움을 주며 ‘셀룰라이트 분쇄기’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구기자 먹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구기자 먹는 방법

구기자는 과일처럼 생으로 섭취하기도 하며 말린 것은 차로 달여 마시기도 하는데요. 구기자 잎도 버리지 않고 국물을 우려내서 마시거나 나물처럼 무쳐 먹기도 합니다. 갈아내서 분말 형태로 판매하기도 하는데, 이 분말을 넣어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과일과 함께 갈아 마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나씩 상세하게 알아보도록 할게요.

1. 생과로 구기자 먹는 방법

동그란 열매를 생으로 먹을 경우 처음에는 달콤한 맛이 나지만 끝 맛은 씁쓸한 맛을 느낄 수 있어요.

7월에 꽃이 피고 초가을 무렵부터 열매를 따기 시작하는 구기자는 가을로 갈수록 햇빛을 많이 받으면서 단맛이 나고 대추 맛도 느낄 수 있답니다.

구기자 생과는 믹서기에 넣고 골고루 갈아준 다음 냄비에 부어 설탕을 넣고 30분 가량 조리해 주면 걸쭉한 상태가 되는데요. 냄비 바닥에 달라붙지 않게 주걱으로 저어주면 달콤한 구기자 잼이 완성되며, 다양하게 요리에 활용해 드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2. 말린 구기자 먹는 방법

구기자는 생으로 섭취하는 것보다 말려서 먹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말리기 전 흐르는 물에서 꼼꼼하게 세척해주시면 됩니다. 구기자는 과육이 연하기 때문에 수확과 동시에 바로 세척해서 말려주는 게 좋은데요. 자연 건조할 경우 한 달 이상 말려야 하며, 건조기를 이용할 경우 사나흘이면 말릴 수 있습니다.

잘 건조된 구기자는 냉동 보관을 하다가 필요할 때 꺼내 먹으면 됩니다. 말린 구기자를 물에 넣고 팔팔 끓여주면 원기회복에 도움이 되는 구기자차를 먹을 수 있습니다. 구기자 열매는 비타민 A, C, 각종 미네랄이 들어있기 때문에 노화방지에 도움을 주는데요. 체질상 열이 많은 분들을 제외하고는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과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구기자 잎 먹는 방법

구기자 잎을 먹을 땐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무쳐 먹기도 하며, 잎을 쪄서 밥에 싸먹기도 할 수 있습니다.

4. 구기자 가루 먹는 법

구기자 분말은 하루 3번 섭취하면 되는데 효능이 나타나는 시간은 개인 체질에 따라 다르므로 1~2개월 정도 꾸준히 섭취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오래 먹는 다해도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인뿐 아니라 아이들도 함께 먹으면 좋고 12세 이하의 어린이가 먹을 때는 성인 섭취량의 절반 정도를 먹으면 됩니다.

구기자와 궁합이 잘 맞는 대표적인 약재에는 벌나무, 헛개 열매, 인진쑥 등이 있는데요. 특히 헛개 열매의 경우 구기자와 함께 섭취하면 간 건강에 효과가 있습니다. 구기자와 흑미, 브로콜리, 토마토를 함께하면 노화방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살구씨와 요구르트, 단호박을 함께 섭취하면 피부 개선에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구기자와 국화, 블루베리를 함께 섭취하면 눈 피로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67.html
kolaswqetsrq 11.02 06:53
◇ 마늘을 꼭 먹어야 하는 이유

◇ 마늘을 꼭 먹어야 하는 이유

1. 마늘과 위장병

알리신은 위와 장의 점막을 자극, 소화효소의 분비를 촉진하므로 위 점막의 저항력과 소화능력을 제고 시키고 대장의 정장작용을 한다.

2. 마늘과 감기

감기가 걸리는 이유는 평소 대기 중에 부유하던 바이러스가 춥고 건조한 공기 때문에 코 점막의 저항력이 약화됐을 때 바이러스의 침입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마늘은 체력강화와 피로회복기능을 하므로 매일 마늘2-3쪽 분량을 장복하면 감기는 예방할 수 있다.

3. 마늘과 변비.설사

쾌변, 쾌식, 쾌면의 3쾌는 건강의 바로미터이다. 마늘을 상식하면 알리신이 대장을 자극하여 대장의 연동운동이 촉진되기 때문에 배변이 규칙화되며,

또 대장 활동의 정상화와 몸을 덥게 하는 상승작용을 하므로 설사를 멎게 하기도 한다.

4. 마늘과 불면증

마늘의 알리신이나 마늘비타민B1은 신경세포의 흥분을 억제하고 신경을 진정시키는 작용을 하는데 체내의 혈행이 개선되어 몸을 덥게 하고 숙면을 취하게 된다.

5. 마늘과 결핵

마늘의 알리신은 결핵균에 대해 강력한 살균 및 항균작용을 하고 체력을 증강시키는 작용을 하므로 예로부터 결핵에는 아주 효과적인 식품이다. 마늘알리신이 살균작용을 하는 데 특히 결핵균, 곰팡이균, 이질균, 장티프스균, 포도상구균, 연쇄상구균,뇌염균, 비브리오균, 콜레라균에 살균효과가 있다.

6. 마늘과 천식.기관지염

마늘은 진해거담작용을 하는데 마늘의 자극성있는 알리신 성분이 위를 자극하면, 위가 폐로 하여금 점액을 묽게하는 체액의 분비를 하도록 명령하기 때문에 폐가 스스로 담을 배출할 수 있게 된다.

7. 마늘과 당뇨병

마늘에는 에너지대사를 촉진하는 비타민B1과 주성분인 마늘알리신이 상호 결합, 알리치아민으로 전환되어 비타민B1보다 강력한 당질대사를 촉진한다. 또한 마늘알리신은 체내의 비타민B6 와 결합, 췌장의 세포를 활성화시킨다.

8. 마늘과 갱년기 증상

마늘은 갱년기 증상의 원인인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여 불균형을 복원시킨다.

9. 마늘과 치질

육식을 많이 하는 경우라도 마늘알리신이 대장을 자극하여 대장의 연동운동을 촉진하기 때문에 규칙적인 변통이 일어나고 변비는 없어진다. 그리고 살균작용으로 환부의 청결을 유지해준다.

10. 마늘과 해독작용

시스테인, 메티오닌 성분의 강력한 해독작용으로 간장을 강화시키며 알리인, 알리신 치오에텔, 멜가프탄, 유화수소 성분 및 그 유도체는 수은 등 중금속과 공해물질을 배설하고 세균을 제거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65.html
kolaswqetsrq 11.02 06:54
◇ 아플 때 피해야 할 음식 9가지

◇ 아플 때 피해야 할 음식 9가지

1. 장염(밀가루 음식)

장염에 걸렸을 때 밀가루는 장의 흡수 기능을 방해하기 쉬우므로 밀가루 음식은 피하세요.

2. 설사(과일주스)

과일주스는 삼투압이 높아 수분 흡수율을 증가시켜 설사 증상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3. 두통(햄)

햄, 소시지등에 들어가는 식품 첨가물은 두통을 악화시킨다고 합니다.

4. 신장(고구마, 감자)

과일, 고구마, 감자는 칼륨이 많이 함유되어서 신장이 안좋을때 먹으면 더 안좋습니다.

5. 간(달걀)

간기능이 안좋으면 단백질 분해 효소가 부족해 달걀 등의 고단백 음식은 피해야 합니다.

6. 열(견과류)

견과류는 체온을 높여주기 때문에 열이 있을 때는 먹으면 안됩니다.

7. 천식(맥주, 와인)

식품 첨가물에 민감한 천식환자는 맥주, 와인, 말린새우 등 음식은 피해야 합니다.

8. 식중독(치즈)

식중독에는 위벽을 자극하는 유제품을 피하고 충분한 수분 섭취가 필요합니다.

9. 탈수(스포츠 음료)

당분이 높은 스포츠 음료는 수분 전해질 보충이 필요한 탈수, 설사에는 안좋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9_30.html
kolaswqetsrq 11.02 06:55
◇ 남성 정력 보강해주는 토종 약초

◇ 남성 정력 보강해주는 토종 약초

약차는 기본적인 원리만 알면 누구나 손쉽게 끓여서 드실수 있습니다. 일반 주전자에 약초가 푹 담겨질 정도의 물을 붓고 은근한 불에서 1시간 정도 서서히 달여서 물만 따라낸 후 설탕이나 꿀을 약간 타서 하루 2~3잔 씩 마시면 됩니다.

1.복분자

한 노인이 산에서 나무를 하러 갔다가 복분자 열매를 발견하고 한껏 따 먹고 집으로 돌아와 소변을 보니 요강이 엎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복분자는 신장의 기능을 강하게 하고 정수를 기르는 작용이 있습니다. 소변을 자주 보거나 불임증, 정력이 약할 때 섭취하면 좋습니다.

2.음양곽(삼지구엽초)

음양곽은 가지가 세개로 갈라지고 잎이 각 가지에 3장씩 모두 9장이 붙는다고 해서 삼지구엽초라고 한답니다. 옛부터 음위의 특효이며 양기를 돋우는 명약입니다. 허리와 무릎을 보하고 남자의 양기가 떨어져 일어서지 않는데, 여자의 음기가 떨어져 임신이 안될 때, 중년의 건망증에, 노인의 노망증에 좋으며 기력을 나게 하고 근골을 굳세게 한답니다.

3.토사자

토사자는 구기자, 복분자, 오미자와 함께 쓰면 더욱 효과적인 정력제인데 오래 섭취하면 눈과 귀가 밝아지고 몸이 가벼워진다고 합니다. 남녀의 신장의 허약으로 인한 불임증을 낫게하고 음위증, 유정, 요통 등에 좋은 약초입니다.

4.오미자

오미자는 시고 달고 맵고 전체적으로는 떫고 해서 다섯가지 맛을 낸다고 해서 오미자라고 한답니다. 갈증이나고 밤에 땀이나고 가래와 기침을 하는데 효과적이며 마음이 불안하고 신경쇠약증이 있으며 전신쇠약증이나 육체적으로 피로할 때 섭취하면 좋은 효과를 볼수 있답니다.

5.두충

두충은 나무껍질의 일종인데 간장과 신장에 작용하여 허리 통증에 효과적이며 근육과 골격을 강건하게 한답니다. 몸 속의 노폐물을 배출하여 다이어트에도 좋으며 고혈압, 동맥경화, 관절염, 신경통, 습관성 유산에 특히 효과적입니다.

6.왕가시오갈피

왕가시오갈피 줄기 껍질 뿌리 잎 열매 모두 약용으로 씁니다. 피로회복과 정력감퇴, 기억력 상실 등에 오래 복용하면 좋으며 허리와 다리의 골격이 연약하여 통증이 있거나 잘 넘어지는 사람에게 좋으며 어린 아이의 성장에도 효과적이랍니다. 병 후의 회복에, 당뇨병, 동맥경화, 류마티스 관절염에 특히 효과적입니다.

7.산약

산약은 마 혹은 서여 라고도 하는데 드라마 서동요에 나오는 바로 그것이랍니다.

건강식품으로 많이 개발되어 있으며 병 후의 회복에, 전시쇠약증에, 피로회복에, 소화 기능 장애에, 병약자 특히 노인에게 좋은 보약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8.산수유

산수유는 신허를 다스리고 무릎이 시리거나 힘이 없으며 아픈 증상에 효과적입니다. 오줌을 찔끔 거리거나 유정, 몽정을 다스립니다. 노인의 당뇨병, 만성 신장염, 방광염, 동맥경화증에 좋습니다. 기침과 해수를 다스리고 귀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낫게 한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32.html
kolaswqetsrq 11.02 06:55
◇ 숙면을 취하는 방법

◇ 숙면을 취하는 방법

1. 근육을 느슨하게 해준다.

잠을 잘 때는 똑바로 눕는 것보다 오른쪽으로 모로 눕되 두 다리를 굽혀 근육을 느슨하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 자세로 자게 되면 취침 중에도 소화가 잘 되고, 심장의 압박을 주지 않아 혈액순환이 잘 됩니다.

2. 잠자기 전에 절대로 화내지 말라.

수면상태가 되는 과정은 체온과 혈압이 조금씩 떨어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화를 내거나 근심을 하게 되면 체온도 올라가고, 혈압도 높아집니다. 결국 화는 잠을 못 들게 하는 적입니다.

3. 잠자리에 누워 근심하지 말라.

근심을 하게 되면 정신이 더욱 깨어나 잠들기 어렵습니다. 또한 동양의학에서는 근심이 쌓여 "화병"이 된다고 합니다.

4. 잠자기 전에는 음식을 먹지 말라.

음식을 먹으면 위는 소화활동을 시작하고 장으로 옮겨 흡수합니다. 때문에 잠자기 전 음식을 먹으면 위를 움직이는 자율신경계는 쉬지 않고 움직이게 됩니다. 한마디로 피곤을 풀지 못하는 것입니다.

5. 머리는 항상 시원하게 하라.

양의 기운이 모여 있는 곳이므로 시원하게 해주어야 좋습니다. 머리를 시원하게 해주면 정신이 맑아지고 두통이 생기는 것을 방지합니다.

6. 얼굴을 덮지 말아야 한다.

잠잘 때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게 되면 산소가 부족해져 여러 문제를 야기합니다.

7. 이불은 꼭 덮어야 한다.

잠자리에서는 자신의 체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체온은 수면 상태에 빠지면 떨어지므로 체온 보호를 위해 이불은 꼭 덮습니다.

8. 베개의 높이는 6~9cm가 바람직하다.

이불의 무게는 4~5kg이 적당하나, 부드럽고 보온성이 좋은 2~2.5kg정도의 이불이면 더욱 좋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30.html
kolaswqetsrq 11.02 06:56
◇ 식후 7계명

◇ 식후 7계명

1. 일계(一戒) : 식후에 담배를 피우지 말 것.

식사 후에는 위장의 연동운동이 늘어나고 혈액순환이 빨라진다. 그러므로 인체가 연기를 빨아들이는 능력 또한 늘어나서 담배 연기 속에 들어 있는 유독물질이 더 많이 인체 내에 흡수되어 몸에 해를 끼친다.

2. 이계(二戒) 식사 후에 바로 과일을 먹지 말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식으로 과일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반대로 식사 뒤에 과일을 먹으면 몸에 해를 끼친다. 식사 후에 바로 과일을 먹으면 뱃속이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과일속에 포함된 단당류(포도당과 과당 따위) 물질이 위속에 정체되고 효소로 인해 발효되어 뱃속이 부풀어 오르고 부글부글 끓게 된다. 과일은 식사 후 2~3시간이 지나서 먹는 것이 가장 좋으며 밥 먹기 한 시간 전에 먹는 것도 괜찮다.

3. 삼계(三戒) : 식사 후에 허리띠를 풀지 말 것.

식사 후에 배가 부르기 때문에 허리띠를 풀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좋지 못한 식사 후에 허리띠를 늦추면 복강 내의 압력이, 허리띠를 풀자마자 갑자기 떨어지며 소화습관이다. 기관의 활동이, 증가되고 인대에 미치는 영향이 커져 위하수(胃下垂)와, 장폐색(腸閉塞)이 발생할 수 있다.

4. 사계(四戒) : 식사 후에 차를 마시지 말 것.

찻잎에 타닌 (Tannin)이 많이 들어 있는데 타닌이 음식물의 단백질과 결합해 소화하기 힘든 응고물을 만든다.

5. 오계(五戒) : 식사 후에 많이 걷지 말 것.

식사 후에 복강 내에 들어 있는 소화기 계통으로 피가 몰려 음식물의 소화흡수를 돕는다. 그런데 식사 후에 많이 걸으면 소화기 계통에 있던 피가 사지(四肢)로 옮겨기 때문에 식물의 소화 흡수에 지장이 생긴다.

6. 육계(六戒) : 식사 후에 목욕하지 말것.

식사 후에 바로 목욕을 할 경우 소화기 계통에 있는 피가 줄어든다. 그러므로 음식물의 소화흡수에 지장을 초래한다.

7. 칠계(七戒) : 식사 후에 잠을 자지 말 것.

식사 후에 바로 잠을 자면 음식물이 위장 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소화흡수에 지장을 초래한다. 그리고 위장병이 쉽게 발생하므로 주의를 요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7_24.html
kolaswqetsrq 11.02 06:57
◇ 중년의 회춘비법 꿀마늘

◇ 중년의 회춘비법 꿀마늘

✅ 꿀마늘의 효능

0. 오십견과 근육건강에 좋다.

근육이 피로하면 근육에 젖산이 쌓이고 그게 아주 불쾌감이나 통증을 유발하는데 이 근육에 있는 젖산을 좀 밖으로 배출하거나 해소하게 하는데 비타민B1이 필요합니다.

근데, 마늘에 있는 알리신 성분이 이 비타민B1을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꿀은 우리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과당이나 포도당이 굉장히 함축적으로 많이 들어 있는 음식입니다.

그래서 근육도 일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그런 당 성분은 근육에 에너지를 공급해 주고 마늘에 있는 알리신 성분은 근육에 쌓인 피로물질인 젖산을 해소하게 해주면서 근육량이 좋아지고 관절이 안정적으로 유지가 되면 오십견 통증도 좋아질 수 있습니다.

1. 다이어트 하느라 식사량을 줄여 공복감이 큰 사람들에게 공복감을 줄여준다.

2. 기운, 원기가 부족한 사람에게 기운을 만들어 준다.

3. 낮에 잠이 많이 쏟아지는 만성피로에 도움을 준다.

4. 산행, 골프 등 운동을 자주 하는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준다.

5. 술이 약한 사람의 간을 보호해준다.

6. 칼륨 성분이 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낮춰준다.

7. 몸이 찬 사람에게 열을 만들어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8. 혈액을 정화하여 동맥경화, 혈관질환에 도움을 준다

9. 게르마늄이 다량 함유되어 피부염, 알레르기에 좋다.

10. 항암 성분이 암이 크는것을 억제하고 예방한다.

11. 알리신 성분이 위액분비를 촉진 소화를 돕는다.

12. 체내에 불필요한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해준다.

▶ 꿀마늘 만드는 방법

1. 마늘을 까서 물기 없게 준비 하여 찜기에 5~10분 찐다.

(핵심은 마늘의 매운 맛이 없어질 만큼만 살짝)

2. 용기에 마늘을 담고 꿀을 조금 잠길만큼 붓는다

(이 꿀은 다음 번에 또 쓴다)

3. 1~2주 간 서늘한 곳에서 숙성하면 끝.

*꿀을 바닥에 조금 남기고 따라내어 다음 번에 또 쓴다

(당연히 마늘에 흡수된 양 만큼은 보충해 준다)

▶ 꿀마늘 먹는 방법

1. 아침 저녁으로 한 숫갈(6~8알)씩 섭취하며 증량하고 싶으면 점심에 더 먹어도 되고 맛도 좋으니 취향에 따라 복용량을 증감해도 된다.

2. 꿀마늘의 가장 좋은 점은 마늘을 익혔기에 부작용 걱정이 없어 안심이다. 다만 당뇨환자는 과다 섭취하지 않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07.html
kolaswqetsrq 11.02 06:58
◇ 입술로 알아보는 나의 건강

◇ 입술로 알아보는 나의 건강

입 안이 헐고 혓바늘이 돋고... ‘피곤해서겠지 특별한 이유가 뭐 있을까?’ 막연히 생각할지 모르지만 입술병에는 다 이유가 있다. 몸에 이상 증상이 발생했기 때문인 것. 우리에게 흔히 나타나는 각종 입병들, 증상별로 그 원인을 짚어보았다.

1.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간 기능이 뚝 떨어졌다. 유달리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도 몸이 좋지 않다는 신호다. 특히 간이 많이 지쳐 있을 때 일어나는 증상.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지나치게 긴장하면 뇌 신경에 무리를 주어 간기능이 저하, 입술이 마른다. (도움되는 한방차 : 박향차)

2. 입술 주변에 뾰루지가 난다

자궁, 방광에 혈액 순환 장애. 입 주변에 뭔가 많이 난다면 자궁이나 방광 쪽의 이상 여부를 체크해보아야 한다. 이런 증상은 생리 불순이나 냉 대하 등으로 자궁 주변에 혈액이 부족하거나 순환이 잘되지 않기 때문. 특히 인중이 탁하고 어두운 색을 나타내면 자궁 질환을 의심할 수도 있다. 그 색이 집중되어 점처럼 나타나면 자궁에 종양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도움되는 한방차 : 당귀차, 천궁차)

3. 입술 색이 검거나 푸르스름 하다

심장에 혈액 부족. 건강에 이상이 있으면 입술색에 변화가 생긴다. 입술이 검푸른색을 띤다면 어혈이 뭉쳐 있기 때문. 핏기가 없는 입술은 기가 허하고 피가 부족한 상태고, 지나치게 붉다면 열이 많고 피가 넘친다는 증상이다. 이처럼 혈액이 탁하냐 부족하냐 넘치냐에 따라 입술색은 달라진다. (도움되는 한방차 : 홍화잎차, 당귀차, 생기황차)

3. 입술에 물집이 생기거나 부어오른다

면역기능이 저하 상태. 비장은 몸의 면역기능을 관할하는 곳. 비장이 약해지면 몸이 피곤해지고 저항력도 약해져 평소에는 몸 속에 숨어 있던 헤르페스라는 바이러스가 입술에 물집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비장을 튼튼히 해주는 게 관건. (도움되는 한방차 : 인삼차, 황기차)

4. 입술이 잘 트고 갈라진다

위장에 열이 많기 때문. 입술은 비장과 위장의 지배를 받는다. 위장에 열이 많기 때문에 입술이 거칠어지고 트는 것. 위장에 영양을 공급해 비위를 건강하게 해주면 치료에 도움된다. 특히 신경을 많이 쓰거나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으면 이런 증상은 더욱 악화. 영양상으로 비타민 B2가 부족하면 트고 갈라지는 증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도움되는 한방차 : 백출차, 박향차)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83.html
kolaswqetsrq 11.02 06:58
◇ 홍시의 효능

◇ 홍시의 효능

감은 과수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과수로써 생감, 곶감(건시), 연시(홍시), 침시(우전감), 장아씨, 감식초, 수정과 등 예로부터 농경 사회 식생활에 많이 이용되어 왔으며 제사에는 빼놓을 수 없는 과실이다.

한방에서는 시상이라 하여 감꼭지를 말려 다려 먹으면 정력을 돕고 딸꾹질을 멎게 하며 생감의 즙(액)은 뱀, 모기 등 물린 곳에 바르면 특효가 있다 하였다.

곶감은 숙혈(피가 마르는 것)을 없애고 패열, 혈토, 반위(구역질), 장풍(창자 꼬임)과 치질을 다스리는데 쓰여왔다.

타닌 성분의 다량 함유로 설사, 지혈, 고혈압 등 약리 작용의 효과가 있다.

감은 다른 과실보다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 회분과, 철분 등이 많고 특히, 칼륨의 함량이 많아서 먹으면 일시 체온을 낮추기도 하고 또한 함유된 구연산은 청뇨, 근육탄력조장 등 문화병 환자들의 애호를 받는 과실이다.

️연시(홍시)는 심장과 폐를 좋게 하고 갈증을 멎게 하며 주독을 푸는데 효과가 있다.

️감은 처음에는 색이 푸르고 맛이 쓰고 떫으나 익으면 색이 붉고 떫은 맛이 없어진다. 떫은 맛을 내는 탄닌 성분은 수렴작용을 하기 때문에 장의 점막을 수축시켜 설사를 멎게 하고 또한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여 동맥경화, 고혈압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특별히 감을 1년 이상 숙성, 발효시켜 감식초를 만들어 복용하면 피로 회복, 체질개선 등의 효능이 있는데 소주 한컵 분량인 30cc정도를 매일 2~3회 장복하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으며 냉수, 요구르트, 꿀물, 야채즙 등과 섞어서 마시면 더욱 맛이 좋다.

️홍시는 맛은 달지만 성질은 차가우며 독이 없고 심폐를 부드럽게 하고 갈증을 멎게 하며 폐위와 심열(심화로 생기는 열)을 낫게 하고 열독(더위로 일어나는 발진)과 주독(술독)을 풀어주며 토혈을 그치게 한다.

곶감은 장위와 비위를 보하는데 음식의 소화를 돕고 얼굴의 기미를 없앤다.

또한 카로틴과 비타민 C(귤의 2배)가 많아 감기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포도당과 당질은 숙취를 풀어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69.html
kolaswqetsrq 11.02 06:59
매일 마시는 보약물 5가지

매일 마시는 보약물 5가지

1. 유근피(느릅나무 껍질)물 → 각종 염증 제거

•재료 : 유근피 50g(한 주먹), 물 5l(보통 물 끓이는 주전자 정도)

•만들기 : 주전자에 물 5l를 붓고 유근피를 넣어 30분 정도 끓인다.

색이 붉게 우러나면 식혀서 냉장고에 보관해두고 마신다. 비염, 축농증, 위염, 위궤양, 간경화, 간염 등 각종 염증을 없애 는 효과가 있다.

2. 구기자 치커리물 → 간, 눈 충혈, 폐, 심장에 좋다

•재료 : 구기자·치커리 50g씩, 물 5l

•만들기 : 특별한 병이 없다면 구기자와 치커리를 1:1 비율로 넣어 끓인다.

5l의 물에 각각 한 주먹씩 넣고 1시간 정도 끓인다. 피로를 많이 느낀다면 구기자와 치커리를 2:1 비율로 넣어 끓인다.

3. 갈근(칡) 오미자물 → 피로 회복, 갈증 해소

•재료 : 갈근 50g, 오미자 25g, 물 5l

•만들기 : 5l의 물을 붓고 재료를 넣는다.

오미자는 많이 넣으면 맛이 시어지므로 우선 조금만 넣고 끓여 본 뒤에 맛을 보고 오미자의 비율을 조정하는 게 좋다. 1시간 정도 끓인다.

4. 둥굴레 유근피물 → 장 튼튼, 항생 효과

•재료 : 둥굴레·유근피 50g씩, 물 5l

•만들기 : 주전자에 물 5l를 붓고 둥굴레와 유근피를 한 주먹씩 1:1 비율로 넣어 1시간 정도 끓인다.

5. 녹차 당귀 신선초물 → 성인병, 보혈, 변비 예방, 간, 피로 회복

•재료 : 녹차 50g, 당귀·신선초 25g씩, 물 5l

•만들기 :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면 녹차, 당귀, 신선초를 2:1:1 비율로 넣어 10~15분간 끓인다.

잎으로 된 약재는 오래 끓이면 쓴맛이 강해지므로 색이 우러나면 불을 끈다.

★ 쉽게 만드는 가정 상비보약

1. 칡 모과 당귀차 → 피를 맑게

•재료 : 칡 50g, 모과·당귀 25g씩, 물 5l

•만들기 : 물 5l에 칡, 모과, 당귀를 2:1:1 비율로 넣어 1시간 정도 끓인다.

2. 은행 도라지 맥문동 오미자차 → 기침 등 기관지

•재료 : 은행·도라지·맥문동 50g씩, 오미자 25g, 물 5l

•만들기 : 물 5l에 은행, 도라지, 맥문동을 넣고 30분 정도 끓이다.

오미자를 넣고 1~2분 더 끓인 뒤 불을 끈다.

3. 당귀 천궁 작약 숙지황차 → 냉증, 혈액 순환

•재료 : 당귀·천궁·작약·숙지황 50g씩, 물 5l

•만들기 : 물 5l에 재료를 한 주먹씩 넣고 30분 정도 끓인다. 몸이 찬 여성에게 적합하며,

혈액 순환은 물론 장도 튼튼하게 해준다.

4. 오미자 쑥 삼백초 영지차 → 피부 미용

•재료 : 오미자 25g, 쑥·삼백초·영지 50g씩, 물 5l

•만들기 : 물 5l에 오미자, 쑥, 삼백초, 영지를 1:2:2:2 비율로 넣는다.

단 쑥과 삼백초, 영지를 넣고 30분 정도 끓인 뒤 오미자를 넣고 1~2분 정도 더 끓인다.

5. 오미자 맥문동 황기차 → 감기 예방, 갈증 해소

•재료 : 오미자 25g, 맥문동·황기 50g씩, 물 5l

•만들기 : 5l의 물에 오미자, 맥문동, 황기를 1:2:2 비율로 넣어 1시간 정도 끓인다.

특히 기관지에 좋으므로 상비해두고 마시면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3.html
kolaswqetsrq 11.02 07:00
식사 후 꼭 지켜야 할 7가지 수칙

식사 후 꼭 지켜야 할 7가지 수칙

고대의 양생가들은 밥을 먹고 나서 산보(散步)를 하고 배를 문질러 주면 소화를 돕는다고 했다. 송나라 때 이지언(李之彦)은 <동곡소견(東谷所見)>에 ‘반후행삼십보(飯後行三十步), 불용개약포(不用開藥?)’라고 했다. ‘식사 후 삼십보를 걸으면 약방문을 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밥을 먹고 나서 지켜야할 일곱 가지 계율은 다음과 같다.

1. 일계(一戒), 식후에 담배를 피우지 말 것. 식사 후에는 위장의 연동(動) 운동이 늘어나고 혈액순환이 빨라진다. 그러므로 인체가 연기를 빨아들이는 능력 또한 늘어나서 담배 연기 속에 들어 있는 유독물질이 더 많이 인체 내에 흡수되어 몸에 해를 끼친다.

2. 이계(二戒), 식사 후에 바로 과일을 먹지 말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식으로 과일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반대로 식사 뒤에 과일을 먹으면 몸에 해를 끼친다.

식사 후에 바로 과일을 먹으면 뱃속이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과일 속에 포함된 단당류(單糖類 : 포도당과 과당 따위) 물질이 위 속에 정체되고 효소로 인해 발효되어 뱃속이 부풀어 오르고 부글부글 끓게 된다. 과일은 식사 후 2~3시간이 지나서 먹는 것이 가장 좋으며 밥 먹기 한 시간 전에 먹는 것도 괜찮다.

3. 삼계(三戒), 식사 후에 허리띠를 풀지 말 것. 식사 후에 배가 부르기 때문에 허리띠를 풀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좋지 못한 습관이다. 식사 후에 허리띠를 늦추면 복강 내의 압력이 허리띠를 풀자마자 갑자기 떨어지며 소화기관의 활동이 증가되고 인대에 미치는 영향이 커져 위하수(胃下垂)와 장폐색(腸閉塞)이 발생할 수 있다.

4, 사계(四戒), 식사 후에 차를 마시지 말 것. 찻잎에 타닌(Tannin)이 많이 들어 있는데 타닌이 음식물의 단백질과 결합해 소화하기 힘든 응고물을 만든다.

5. 오계(五戒), 식사 후에 많이 걷지 말 것. 식사 후에 복강 내에 들어 있는 소화기 계통으로 피가 몰려 음식물의 소화흡수를 돕는다. 그런데 식사 후에 많이 걸으면 소화기 계통에 있던 피가 사지(四肢)로 옮겨가기 때문에 음식물의 소화흡수에 지장이 생긴다.

6. 육계(六戒), 식사 후에 목욕하지 말 것. 식사 후에 바로 목욕을 할 경우 소화기 계통에 있는 피가 줄어든다. 그러므로 음식물의 소화흡수에 지장을 초래한다.

7. 칠계(七戒), 식사 후에 잠을 자지 말 것. 식사 후에 바로 잠을 자면 음식물이 위장 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소화흡수에 지장을 초래한다. 그리고 위장병이 쉽게 생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7_3.html
kolaswqetsrq 11.02 07:01
퇴피삼사退避三舍 - 충돌 피하기 위해 물러남, 양보하다.

퇴피삼사(退避三舍) - 충돌 피하기 위해 물러남, 양보하다.

물러날 퇴(辶/6) 피할 피(辶/13) 석 삼(一/2) 집 사(舌/2)

어떤 지위에 있다가 걸맞은 공적을 이뤘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더 영광된 자리를 갈망한다. 그러다 물러날 기회를 잃고 후진들에 양보하지 않았다가 두고두고 원망을 듣는 일이 많다. 여러 번 이 난에도 나왔던 시인 이형기 선생의 ‘落花(낙화)’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하고 노래한다.

앞서 功成身退(공성신퇴)에서 소개했듯 무위자연의 老子(노자)가 공을 세운 뒤 스스로 물러나라고 특히 강조했다.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면 이를 지키지 못한다(金玉滿堂 莫之能守/ 금옥만당 막지능수)’, ‘공을 이루고 명성과 지위를 얻었으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천지의 도이다(功成名遂 身退天之道/ 공성명수신퇴 천지도).’

대치하고 있는 적군으로부터 멀리 피한다는 이 말은 충돌을 막기 위해 일찌감치 물러앉거나 양보하는 것을 나타내는 성어다. 舍(사)는 옛날에 군대가 하루 30리를 행군하고 하룻밤 묵었는데 1宿(숙)을 가리켰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의 僖公(희공) 23년 조와 28년 조에 유래가 실려 있다. 晉(진)나라 獻公(헌공)에게는 驪姬(여희, 驪는 나귀 려)라는 애첩이 있었다. 자기 소생을 태자로 삼기 위해 여희는 왕에 모함하여 왕자 重耳(중이) 등 두 아들을 쫓아냈다. 중이는 이국땅을 떠돌아다니며 19년 동안 고초를 겪었다.

한번은 楚(초)나라에 갔을 때 成王(성왕)이 성대한 연회를 베풀며 환대했다. 앞으로 귀국하여 왕이 되면 꼭 보답 받고 싶다고 성왕이 말하자 중이는 대답한다. ‘만약 임금님의 은혜로 돌아가서 뒷날 진초 두 나라가 군사를 이끌고 중원에서 만나 싸우게 된다면 90리를 물러나서 호의에 보답하겠습니다(若以君之靈 得反晉國 晉楚治兵 遇于中原 其辟君三舍/ 약이군지영 득반진국 진초치병 우우중원 기피군삼사).’ 辟은 임금 벽, 또는 피할 피.

중이는 뒷날 진의 왕위에 올라 五霸(오패) 중의 하나인 文公(문공)이 되었다. 약속대로 문공이 宋(송)나라를 돕다 초나라와 싸우게 됐을 때 90리를 후퇴했으나 초의 장군 子玉(자옥)이 무서워 후퇴하는 줄 알고 계속 도전하자 우회작전을 펼쳐 격멸시켰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97.html
kolaswqetsrq 11.02 07:01
두점방맹杜漸防萌 – 퍼지기 전에 막아 싹이 못나오게 하다, 미연에 방지하다.

두점방맹(杜漸防萌) – 퍼지기 전에 막아 싹이 못나오게 하다, 미연에 방지하다.

막을 두(木/3) 점점 점(氵/11) 막을 방(阝/4) 움 맹(艹/8)

‘풀을 베면 뿌리를 없이하라’란 속담이 있다. 무슨 일이든 하려면 철저히 하라는 말이다. 나쁜 일을 없애려면 그 근본까지 없애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어 斬草除根(참초제근)과 똑 같은 뜻이다. 마찬가지로 범죄를 끝까지 추적하여 소탕할 때 악의 뿌리까지 뽑는다고 으스스하게 拔本塞源(발본색원)이란 말을 많이 쓴다. 이보다 더하게 나쁜 일의 조짐이 보일 때 젖어들기 전에 처음부터 막아(杜漸) 싹이 나오지 못하게 한다(防萌)는 이 말 역시 화를 초기에 제거해야 나중 큰 해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後漢(후한)의 초기에는 외척과 환관들의 세력다툼으로 혼란스러웠다. 3대 章帝(장제, 재위 75~88) 때는 선대 때와 달리 이들에 관대했기 때문에 서로 배척하거나 손잡거나 하며 권력을 장악했다. 4대 和帝(화제, 88~106)가 즉위할 때는 겨우 10세였기 때문에 장제의 황후인 竇太后(두태후)가 섭정을 하게 됐다. 자연히 그의 오빠인 竇憲(두헌)이 시중이 되어 국정을 좌우했고 동생들도 요직을 맡았다. 두헌은 지방의 호족들을 장악하고 사당을 조직하여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등 횡포를 자행했다.

당시 삼공의 하나인 司徒(사도)로 백성들의 신망을 받고 있던 丁鴻(정홍)이 나섰다. 두헌 형제가 사당 세력을 규합하여 반란을 꾀한다는 사실을 알고 화제에게 초기에 제거하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상주했다. ‘폐하께서 만약 직접 정무를 장악하고 초반에 손을 써서 싹을 자르면 저들의 흉포한 일은 없어질 것이고 화는 사라져 평안할 것입니다(若敕政責躬 杜漸防萌 則凶妖銷滅 害除福湊矣/ 약칙정책궁 두점방맹 즉흉요소멸 해제복주의).’

화제가 정홍에 전권을 주고 두헌의 인수를 거둬들인 뒤 두씨 일족을 소탕했다. ‘後漢書(후한서)’ 정홍전에 실려 있다. 함께 공을 세운 환관 鄭衆(정중)을 제후에 봉했다. 이후 번갈아가며 환관과 외척이 피비린내 나는 정권다툼으로 나라가 기울었다.

무슨 일이든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나쁜 조짐만 아니고 일을 처리할 때 승산이 없는데도 붙잡고 늘어지는 일이 있다. 들인 시간이 얼만데, 매몰비용이 어떠니, 돈이 얼마나 들었는데 하며 미련을 가진다. 이렇게 미적거리다 더 큰 화를 부를 수가 있다. 더 큰 손해를 보기 전에 자란 싹이라도 자르는 것이 옳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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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02
고장난명孤掌難鳴 - 외손뼉으로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혼자서는 일을 이루지 못한다.

고장난명(孤掌難鳴) - 외손뼉으로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혼자서는 일을 이루지 못한다.

외로울 고(子/5) 손바닥 장(手/8) 어려울 난(隹/11) 울 명(鳥/3)

혼자서 일을 잘 할 수 있는 특수한 영역 말고는 대부분 힘을 합쳐야 큰일을 이룬다. ‘도둑질을 해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 비유가 뭣하지만 잘 나타냈다. ‘외손뼉이 못 울고 한 다리로 가지 못한다’는 순화된 속담도 한 가지다. 두 손뼉이 마주 쳐야 소리가 나지 외손뼉만으로는(孤掌) 소리를 내기 어렵다(難鳴).

이 성어는 혼자서는 일을 이룰 수 없음을 말하거나,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성사가 지지부진할 때 비방하는 뜻이 담겼다. 대꾸하고 맞서는 사람이 없으면 싸움이 되지 않음을 비유할 때도 쓴다. 獨掌不鳴(독장불명)이나 외가닥 실은 선을 이루지 못한다는 單絲不成線(단사불성선)도 아무 쓸모가 없다는 의미다.

똑 같은 말은 아니지만 비슷한 뜻으로 쓰인 예를 ‘韓非子(한비자)’에서 찾는다. 중국 法家(법가)의 확립자 韓非(한비)가 쓴 이 책의 功名(공명)편에 나온다. 글자대로 공적과 명성이란 뜻의 이편에서 군주가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천시와 인심, 다스리는 기능도 중요하지만 권세와 지위가 우뚝해야 백성이 따른다고 했다. 어리석은 군주라도 현명하고 능력 있는 신하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권세와 지위가 있기 때문이다. 부분을 인용해 보자.

명성과 실제가 서로 의존하며 이루어지고 형체와 그림자가 서로 호응하듯 존립하듯이(名實相持而成 形影相應而立/ 명실상지이성 형영상응이립) 신하와 군주는 기대하는 것은 같으나 직분은 달리 하는 사이다. 군주의 걱정은 신하가 호응하지 않을 것을 걱정하니 ‘한 손으로 박수를 쳐서는 제아무리 빠르게 칠지라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一手獨拍 雖疾無聲/ 일수독박 수질무성)’고 했다. 그러면서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서는, 군주는 북채와 같고 신하는 북과 같으며, 신하의 재능은 마차와 같고 그의 임무는 마차를 끄는 말과 같다고 덧붙인다. 각각의 직분을 다하면서 서로 협조해야 나라가 편안해진다는 뜻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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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03
설중송탄雪中送炭 - 추위 속에 땔감을 보내다.

설중송탄(雪中送炭) - 추위 속에 땔감을 보내다.

눈 설(雨/3) 가운데 중(丨/3) 보낼 송(辶/6) 숯 탄(火/5)

날씨가 차가와지면서 양지쪽만 찾고, 난방에만 앉아 있으려 한다. 생활수준의 향상과 도시가스의 보급으로 요즘의 대도시에선 소비가 큰 폭으로 줄어든 연탄이지만 아직까지 고지대에선 난방의 주류인 곳이 많다.

시인이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안도현 ‘연탄 한 장’) 것이라고 노래했듯이 한 겨울에 연탄이 그득하면 그 이상 반가울 수가 없다. 눈 오는(雪中) 추운 날 땔감을 보낸다(送炭)는 고사는 오늘날 방을 데우지 못해 냉골에서 떠는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사랑의 연탄으로 남았다.

北宋(북송)의 2대 황제 太宗(태종)은 이름이 趙光義(조광의)로 처음 나라를 세운 太祖(태조) 趙匡胤(조광윤)의 아우다. 건국 초기부터 군인들을 억압하고 문관을 우대하는 등 강력한 중앙집권을 밀어붙였다. 토지합병으로 기득권층의 불만이 높아지고 일반 백성들은 생활이 궁핍해졌다. 차와 소금 등을 전매로 하자 밀매자가 늘어나는 등 불만이 팽배했다.

태종 4년인 서기 993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王小波(왕소파)와 李順(이순) 등을 우두머리로 하여 四川(사천)지방에서 들고 일어났다. 그해 겨울 여러 날 동안 눈이 내리고 강추위가 계속됐다. 태종은 이러한 추위에도 농민들이 봉기를 계속할까 염려하여 사람을 시켜 외롭거나 늙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얼마의 돈과 쌀, 땔감을 보냈다(雨雪大寒 遣中使賜孤老貧窮人千錢米炭/ 우설대한 견중사사고로빈궁인천전미탄). 이런 방식으로 민심을 수습하려 한 태종은 사관에게 기록까지 명했다. ‘宋史(송사)’ 태종 本紀(본기)에 나온다.

시작은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속보이는 당근책으로 나왔더라도 추위에 굶주린 백성들에겐 큰 도움이 됐기에 이 성어는 급히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는 뜻으로 자주 쓰인다. / 제공: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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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04
감당유애甘棠遺愛 - 선정 베푼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감당유애(甘棠遺愛) - 선정 베푼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달 감(甘-0) 아가위 당(木-8) 남길 유(辶-12) 사랑 애(心-9)

벼슬에 종사한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업적이 오랫동안 칭송되는 것이 꿈일 것이다. 지역 곳곳에 수령이나 관리가 백성을 아끼고 그 고장을 발전시켰을 경우 공적을 기린 善政碑(선정비)가 보존되어 있다. 비석은 탐관오리가 억지로 세우게 한 것도 있다고 하니 공덕을 노래한 찬가가 더욱 영광이다.

여기 周(주)나라 召公(소공)을 찬미하는 노래가 아마도 가장 오래된 것이 아닌가한다. 甘棠(감당)은 일명 팥배나무라고도 하고 배나무와 비슷하다고 한다. 키가 작고 흰 꽃이 피어 배보다 작은 열매가 열리는 것이 차이라는데 소공이 이 나무 아래서 송사를 듣고 공정하게 판결한데서 유래했다. 甘棠愛(감당애), 甘棠之愛(감당지애)로도 쓴다.

소공은 주나라의 현인으로 칭송받는 周公(주공)의 사촌동생인데 함께 어린 成王(성왕)을 보필하여 초기 기틀을 확립한 사람이다. 그들은 주나라가 다스렸던 지역을 동서로 양분하여 제후들을 관리하고 조정의 치세를 잘 도왔다. 소공이 남쪽을 순시하다가 漢水(한수) 상류 일대의 한 시골 마을을 들렀을 때 팥배나무 아래서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 큰 신망을 얻었다.

소공이 죽자 그의 공적을 대대로 그리워했다. 특히 폭군으로 유명한 12대 幽王(유왕)에 이르러서는 한층 더 소공이 사무쳐 이전 순시할 때 쉬어 갔다는 甘棠樹(감당수)를 정성껏 보호하고 민요까지 불리게 됐다고 한다. 그 내용이 "詩經(시경)"의 國風(국풍) 召南(소남)편에 있는 甘棠(감당)이다.

"우거진 팥배나무, 자르지도 베지도 마소, 소공이 여기서 쉬어 갔다오(蔽芾甘棠 勿翦勿伐 召伯所茇/ 폐불감당 물전물벌 소백소발)." 芾은 우거질 불, 翦은 자를 전, 剪과 같은 자, 茇은 풀뿌리 발. "史記(사기)"에는 "소공의 정치를 그리워하여 감당수를 베지 못하게 하고, 노래를 불러 칭송하며 감당이라는 시를 지었다(懷棠樹不敢伐 哥詠之作甘棠之詩/ 회당수불감벌 가영지작감당지시)"고 燕召公世家(연소공세가)에 기록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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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04
상명지통喪明之痛 - 눈이 멀 정도의 아픔, 자식의 죽음

상명지통(喪明之痛) - 눈이 멀 정도의 아픔, 자식의 죽음

잃을 상(口-9) 밝을 명(日-4) 갈 지(丿-3) 아플 통(疒-7)

죽음을 이르는 말에는 갖가지가 있다. 생전의 지위에 따라, 종교에 따라 각기 다르다. 하늘이 무너진 天崩(천붕)은 임금의 죽음을 말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아픔을 말하게 됐고 地崩(지붕)은 반대로 어머니의 죽음을 뜻했다.

부모나 조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갔을 때의 慘慽(참척)과 함께 쓰는 斷腸之哀(단장지애)는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끊어진 데서 나왔다고 했다. 이 성어는 西河之痛(서하지통)과 유래가 같다.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부모상보다 애끊고 눈이 멀게 된 자식의 죽음이 평생 가슴에 새겨진다는 말이겠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시력을 잃은 불행의 주인공은 孔子(공자)의 제자 子夏(자하)다. 그는 공자보다 44세 아래로 스승으로부터 詩經(시경)을 함께 논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문학이 뛰어난 孔門十哲(공문십철)의 한 사람이다.

먼저 "史記(사기)" 내용을 보자. "자하는 서하에 살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위문후의 스승이 되었다. 자식이 죽은 뒤 너무 슬퍼하여 소리 내어 울다가 눈이 멀었다(子夏居西河教授 爲魏文侯師 其子死 哭之失明/ 자하거서하교수 위위문후사 기자사 곡지실명)." 仲尼弟子(중니제자) 열전에 간단히 언급됐다.

"禮記(예기)" 檀弓上(단궁상)에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하가 아들을 잃고 상심하여 통곡하다 그만 시력을 잃고 말았다(喪其子而喪其明/ 상기자이상기명). 역시 공자의 뛰어난 제자 曾子(증자)가 문상했을 때 자하는 더욱 서러워하며 죄도 없는데 아들이 죽었다고 하늘을 원망했다. 증자가 꾸짖었다.

서하의 백성들이 공자로 떠받들어도 변명 않았고, 부모상을 당했을 때보다 더 애통해했고, 거기에 눈을 잃을 정도로 슬퍼하니 죄가 크다고 했다. 자하가 지팡이를 던지며 잘못을 시인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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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05
친구불피親仇不避 - 친구나 원수나 상관없이 추천하다.

친구불피(親仇不避) - 친구나 원수나 상관없이 추천하다.

친할 친(見-9) 원수 구(亻-2) 아닐 불(一-3) 피할 피(辶-13)

우리는 쉽게 適材適所(적재적소)니 適材適處(적재적처)를 거론한다. 자리에 알맞은 인재를 앉혀야 한다고 누구나 아는 소리를 한다. 자리를 이동시킬 권한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가장 적합한 인사를 했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아 잡음이 난다. 뒷거래에 의하거나 정실에 좌우되는 일이 많기 마련이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해 人事忘事(인사망사)라는 말이 괜히 꼬집는 말만은 아니다. 인재를 발탁하는 사람이 아주 곧게 능력에 따라서 추천하고, 받아들이는 인사권자가 공정하게 반영한다면 그 조직은 탄탄대로에 올라선다. 자신의 친척이거나 원수라도(親仇) 꺼리지 않고(不避) 자리에 내세운다.

능력에 따라서만 추천했고, 그 사람도 기대를 버리지 않고 업적을 쌓아 칭송받은 祁黃羊(기황양, 祁는 클 기)이라는 사람의 고사에서 나왔다.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보자.

기황양은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의 대부였는데 공정하기로 이름났다. 平公(평공)이 南陽(남양) 현령 자리에 적합한 사람은 누가 좋을까 물었다. 解狐(해호)라는 사람을 천거하자 그대의 원수가 아닌가 하며 왕이 놀랐다. "인재를 천거하라 하셨지 원수를 물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는 대답에 해호를 파견했다.

얼마 뒤 군사를 통수하는 尉(위)라는 자리에는 祁午(기오)가 적합하다 한다. 왕이 그대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되물으니 기황양은 적임자를 물어 그대로 답했을 뿐이라고 했다. 왕이 임무를 맡기자 추천한 이들은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孔子(공자)가 이 일을 두고 "밖으로는 원수라 하여 피하지 않았고, 안으로는 아들이라 하여 피하지 않았으니 기황양이야말로 공평무사하다(外擧不避讎內擧不避子 祁黃羊可謂公矣/ 외거불피수 내거불피자 기황양가위공의)"고 평했다. 讎는 원수 수, 讐와 같은 자. "呂氏春秋(여씨춘추)"의 孟春(맹춘)편 去私(거사)에 실려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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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06
탐낭취물探囊取物 -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다, 아주 쉬운 일

탐낭취물(探囊取物) -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다, 아주 쉬운 일

찾을 탐(扌/8) 주머니 낭(口/19) 가질 취(又/6) 물건 물(牛/4)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다. 새해 여러 사람이 도전했을 금연을 가장 쉬운 일이라고 한 사람은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이었다. 담배를 다시 피웠다가 또 끊으니 말이다.

이런 철학적인 말 말고 매우 손쉽게 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 ‘쉽기가 손바닥 뒤집기다’란 속담이다. 한자로 易如反掌(이여반장)과 같다. 비슷한 말로 주머니 속을 뒤져(探囊) 물건을 꺼낸다(取物)는 이 말도 아주 쉬운 일을 이른다. 자기 주머니의 물건을 가진다는 것만큼 용이한 일도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宋(송)나라 때의 정치가 겸 문인 歐陽脩(구양수, 脩는 길 수)가 쓴 역사서 ‘新五代史(신오대사)’에 실려 전한다. 오대라 하면 唐(당)이 멸망한 서기 907년부터 960년 송나라가 통일할 때까지의 시대를 말하는데 後粱(후량), 後周(후주) 등 後(후)자를 덧붙인다. 後唐(후당)의 명신이자 문학가인 韓熙載(한희재)가 지금의 山東省(산동성)인 北海(북해)에 살고 있었다.

그는 李穀(이곡)이라는 사람과 절친하게 지냈다. 고려 후기 학자와 이름이 똑 같다. 어느 때 한희재가 강남의 吳(오)나라로 떠나게 되자 이곡이 술자리를 마련하고 이별을 아쉬워했다. 술김에 한희재가 농담 삼아 강남에서 재상을 시켜준다면 중원을 일거에 빼앗겠다고 하자 이곡은 한술 더 뜬다.

‘중원에서 나를 재상으로 삼는다면 강남을 차지하는 것은 마치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과 같을 것이오(中國用吾爲相 取江南如探囊取物爾/ 중국용오위상 취강남여탐낭취물이).’ 둘은 허풍을 치고 호탕하게 웃었다. 南唐世家(남당세가)편에 나온다.

같은 뜻으로 囊中取物(낭중취물)은 ‘三國志(삼국지)’에서 關羽(관우)가 한 말로 나온다. 官渡(관도)전투에서 관우가 큰 공을 세우자 모든 장수들이 칭찬을 하는데 겸손하게 말한다. ‘내 아우 張飛(장비)에겐 백만 대군 속에서 적장의 목을 베어 오는 것이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처럼 쉬운 일입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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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07
요순고설搖脣鼓舌 - 말솜씨를 자랑하다, 궤변으로 선동하다.

요순고설(搖脣鼓舌) - 말솜씨를 자랑하다, 궤변으로 선동하다.

흔들 요(扌/10) 입술 순(肉/7) 북 고(鼓/0) 혀 설(舌/0)

말을 잘못하면 재앙을 받게 되니 입이 화근이라 口禍之門(구화지문)이란 말을 자주 쓴다. 하지만 말을 잘 하는 사람의 말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와 같다며 口若懸河(구약현하)라고 넋을 잃는다. 이런 사람은 드물기도 하고, 아무래도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가려듣는 지혜가 필요하다.

입술을 움직거리고(搖脣) 혀를 찬다(鼓舌)는 이 말도 말솜씨를 자랑하며 유세하거나 선동하면서 궤변을 늘어놓는 것을 뜻한다. 말 잘 하는 것을 비하하는 이 말이 천하의 도적 盜跖(도척, 跖은 발바닥 척)의 입으로 孔子(공자)를 꾸짖는데서 나왔다는 것이 흥미롭다. 비슷한 말로 巧舌如簧(교설여황)이 있다.

盜蹠(도척, 蹠은 밟을 척)이라고도 쓰는 도척은 春秋時代(춘추시대)때 무리 9000여 명을 이끌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면서 노략질을 일삼은 불한당이었다. 魯(노)나라에서 대부를 지낸 훌륭한 인격자 柳下惠(유하혜)의 망나니 동생이다.

공자의 친구이기도 한 유하혜는 어질고 덕이 있어 낯선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도 음란하지 않았다는 坐懷不亂(좌회불란) 고사의 주인공이다. 공자는 동생을 가르치지 못한 유하혜를 비난하며 자신이 직접 만나 사람을 만들겠다고 했다. 포악한 동생에 봉변당할까 유하혜가 만류했지만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도척이 머물던 太山(태산)으로 갔다.

도척의 부하에게 만나러 왔다고 전하자 공자를 향해 대뜸 화부터 낸다. 수다스럽게 허튼소리나 지껄이며, 농사짓지도 않고 밥을 먹으며, 옷감을 짜지도 않으면서 옷을 입고, 입술을 나불대고 혀를 놀려, 제멋대로 시비를 갈라 천하의 군주들을 미혹케 한다(多辭繆說 不耕而食 不織而衣 搖脣鼓舌 擅生是非 以迷天下之主/ 다사무설 불경이식 부직이의 요순고설 천생시비 이미천하지주).

繆는 얽을 무, 擅은 멋대로할 천. 이런 죄가 막중하니 당장 사라지라고 호통 치는 바람에 혼비백산 공자는 물러났다. ‘莊子(장자)’의 雜篇(잡편) 도척편에 실린 이 이야기는 유가에 대한 장자의 인식을 잘 나타낸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49.html
kolaswqetsrq 11.02 07:08
주옹반낭酒甕飯囊 - 술독과 밥주머니, 먹고 마실 줄만 아는 무능한 사람

주옹반낭(酒甕飯囊) - 술독과 밥주머니, 먹고 마실 줄만 아는 무능한 사람

술 주(酉/3) 독 옹(瓦/13) 밥 반(食/4) 주머니 낭(口/19)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에겐 술독을 지고 다닌다고 놀린다. 밥만 축내고 제구실도 못하는 사람을 밥통이라 낮춰 부른다. 이 두 가지에 다 해당되는 사람이 酒囊飯袋(주낭반대)의 골통이다. 아무 하는 일 없이 술독(酒甕)과 밥주머니(飯囊)만 차고 다닌다는 이 성어도 비슷하다.

다만 술은 항아리에 지니고 다니니 더 마시고, 밥은 주머니가 자루보다 덜 들어가겠다. 이런 양의 문제만이 아닌 것은 당연하고 무능한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것은 같으나 출처는 다르다. 만약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伴食宰相(반식재상)이란 말이 따로 있다고 앞서 소개했다.

‘三國演義(삼국연의)’에 등장하는 禰衡(예형, 禰는 아버지사당 예)이란 사람은 젊었을 때부터 말주변이 있었고 성격이 강직했다. 재주가 뛰어났어도 오만해 주변에서는 멀리 했지만 오직 학자 孔融(공융)과는 친히 지냈다. 曹操(조조)가 공융의 천거를 받고 불렀을 때도 예형은 여전히 뻣뻣한 채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천지는 넓으나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天地雖闊 何無一人/ 천지수활 하무일인)!’ 조조가 발끈하여 수하에 당대의 영웅이 수십 명인데 어찌 사람이 없느냐고 다그쳤다. 예형은 荀彧(순욱, 彧은 문채 욱)이나 蕭何(소하), 陳平(진평) 같은 명신들도 하급관리로 일을 시키면 적당하다고 깎아내리며 말한다.

‘그 나머지는 다 옷걸이요, 밥주머니고 술통에 고기자루일 뿐(其餘皆是衣架 飯囊酒桶 肉袋耳/ 기여개시의가 반낭주통 육대이)’이라고 한 마디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라 했다. 조조는 이런 독설가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나 공융의 청대로 등용했다. 예형은 그 후로도 좌충우돌 부딪치자 변방으로 보내졌다가 黃祖(황조)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抱朴子(포박자)’에는 더 신랄히 말했다고 나온다. 순욱 외의 사람들은 ‘나무나 진흙으로 만든 인형이라 사람과 비슷해도 정기가 없으니, 모두 술독이나 밥주머니일 뿐(皆木梗泥偶 似人而無人氣 皆酒瓮飲囊耳/ 개목경니우 사인이무인기 개주옹음낭이)’이라고 했다. 梗은 줄기 경, 瓮은 甕과 같이 독 옹.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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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08
지락막여독서至樂莫如讀書 - 최고의 즐거움은 독서에 있다.

지락막여독서(至樂莫如讀書) - 최고의 즐거움은 독서에 있다.

이를 지(至/0) 즐길 락(木/11) 없을 막(艹/7) 같을 여(女/3) 읽을 독(言/15) 글 서(曰/6)

독서의 중요성, 책 읽기의 즐거움을 나타내는 동서고금의 명구는 많다. 이 난에 언급된 것만 간단히 보면 책은 펼치기만 해도 이롭다는 開卷有益(개권유익),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口中荊棘(구중형극)이 있다. 책을 열심히 읽는 懸頭刺股(현두자고), 螢窓雪案(형창설안)도 있다.

책을 묶은 가죽 끈이 세 번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책을 읽은 孔子(공자)가 이 방면에 빠질 수가 없다. 독서를 열심히 하느라 끼니도 잊고 發憤忘食(발분망식), 알고 나면 즐거운 나머지 근심을 잊고 樂以忘憂(낙이망우), 늙어가는 것도 모를 不知老之將至(부지노지장지)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처럼 중요한 책 읽기는 자신에게는 물론 자식을 가르치는 데에도 우선시했다. 우선 千字文(천자문)을 뗀 후 기초과정의 교재로 널리 사용됐던 秋適(추적)의 ‘明心寶鑑(명심보감)’을 보자.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이었던 추적이 금언과 명구를 모아 놓은 책인데 자녀를 가르치는 訓子(훈자)편에 있다.

‘지극한 즐거움으로는 독서만한 것이 없고, 지극히 중요한 것으로 자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至樂 莫如讀書 至要 莫如敎子/ 지락 막여독서 지요 막여교자).’ 이 말은 원래 중국 魯(노)나라의 충신 子家子(자가자)가 한 말로 되어 있고 좋은 말이라 고전에 많이 인용됐다.

훈자편 이 구절 앞의 말도 유명하다. ‘황금이 상자에 가득하다 해도 자식에게 경서 한 권을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고,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준다 해도 재주 한 가지를 가르치는 것보다 못하다(黃金萬籝 不如敎子一經 賜子千金 不如敎子一藝/ 황금만영 불여교자일경 사자천금 불여교자일예).’ 班固(반고)의 漢書(한서)에 나온다.

籝은 바구니 영. 또 중국 南北朝(남북조) 시대 문필가 顔之推(안지추)도 顔氏家訓(안씨가훈)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남겼다. ‘많은 재물을 쌓아 두어도 얕은 재주를 몸에 지니는 것만 못하고, 배우기 쉽고 사람을 귀중하게 하는 재주는 독서만 한 것이 없다(積財千萬 不如薄伎在身. 伎之易習而可貴者 莫如讀書/ 적재천만 불여박기재신 기지이습이가귀자 막여독서).’ 伎는 재간 기.

책을 읽는 것은 옛날의 성인과 대화하는 것이라거나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선인들이 많이 깨우쳤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독서율이 가장 낮다고 조사할 때마다 나온다. 이는 자녀를 가르칠 때 독서의 중요성보다 경쟁에서 이기도록 사교육에 열과 성을 쏟은 결과가 아닐까.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00.html
kolaswqetsrq 11.02 07:09
검약무화儉約無華 - 검소하고 절약하여 사치함이 없다.

검약무화(儉約無華) - 검소하고 절약하여 사치함이 없다.

검소할 검(亻/13) 맺을 약(糸/3) 없을 무(灬/8) 빛날 화(艹/8)

사치하지 않고 수수하며 아껴 쓰는 儉約(검약)은 예부터 사람들이 지켜야 할 덕목이었다. 모든 것이 풍족하지 않아서였는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衣食住(의식주)만 해결할 수 있으면 그 이상은 욕심내지 말라며 安貧樂道(안빈낙도)를 가르쳤다. 하지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유유자적할 수 있는 성현들이나 가능할까 보통 사람들은 욕심을 제어하기 어렵다.

재산이 많을수록 욕심이 더 생긴다는 ‘아흔아홉 섬 가진 사람이 한 섬 가진 사람의 것을 마저 빼앗으려 한다’는 속담이 잘 표현한다. 일반인들이야 그렇다고 해도 나라의 재물은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검약하고 사치하지 않아야 한다(無華)는 이 가르침이다.

조선 후기의 뛰어난 經學者(경학자)이자 실학의 최고봉인 丁若鏞(정약용, 1762~1836)의 경책이라며 한학자 황종택의 성어집 ‘고전, 당신의 행동을 바꾼다(신온고지신)’에서 소개한다. 여기서 茶山(다산)은 ‘검소하고 절약하여 사치함이 없고, 관청에 있을 때도 내 집에 있는 것처럼 아껴야 한다(儉約無華 處官如家/ 검약무화 처관여가)’는 말과 함께 ‘안과 밖의 구별을 엄격히 하고 공사의 한계를 명확히 하라(嚴內外之別 明公私之界/ 엄내외지별 명공사지계)’고 강조한다.

백성을 다스릴 벼슬아치 牧民(목민)이 지켜야 할 도리를 조목조목 밝혀 공직자의 필독서가 된 牧民心書(목민심서)에는 똑 같은 표현이 아니라도 몸가짐,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관청의 재물을 아껴야 한다는 말이 곳곳에 들어있다.

나라의 재물이야 국민 모두가 낸 세금이니 당연히 검약이 필수인데 약간 이색적인 말도 있다. 검약만을 강조하다가 누추해서는 안 된다는 儉而不陋(검이불루)가 그것이다.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을 정도의 華而不侈(화이불치)와 함께 金富軾(김부식)의 三國史記(삼국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百濟(백제)의 시조 溫祚王(온조왕)이 새 궁궐을 지었을 때 그 자태를 평하면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절제미가 있다는 것을 잘 표현했다. 갑자기 큰돈을 벌어 재력을 과시한다며 덕지덕지 온갖 치장을 한 호화건물을 짓는다고 건축미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예술미의 은은한 절제가 다른 어떤 화려함을 압도한다.

아끼는 것을 권장하고 미덕이라고 해도 지나치게 인색하면 욕먹는다. 밥을 할 때 쌀알을 하나하나 세어서 짓는 數米而炊(수미이취)나 지방의 종이가 절 정도로 오래 쓰고, 생선을 만져 맛을 내는 玼吝考妣(자린고비, 玼는 옥티 자) 등은 유명하다. 이를 경계하며 菜根譚(채근담)에 좋은 말을 남겼다.

‘검약은 미덕이지만 지나치면 인색하고 비루해져 도리어 정도를 손상시킨다(儉美德也 過則爲慳吝 爲鄙嗇/ 검미덕야 과즉위간린 위비색).’ 慳은 아낄 간. 필요하지 않은 곳에 펑펑 낭비하는 것이나 쓸 데 쓰지 않는 인색이나 마찬가지로 욕먹는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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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10
방압득봉放鴨得鳳 - 오리를 풀어 봉황을 얻다, 작은 미끼로 좋은 결과를 얻다.

방압득봉(放鴨得鳳) - 오리를 풀어 봉황을 얻다, 작은 미끼로 좋은 결과를 얻다.

놓을 방(攵/4) 오리 압(鳥/5) 얻을 득(彳/8) 봉새 봉(鳥/3)

제 것을 전혀 들이지 않고 큰 이득을 보려는 얌체는 성공하기 어렵다. 아무리 비늘이 번쩍이는 잉어를 잡고 싶어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새우 미끼로 잉어 잡는다’는 속담은 旬五志(순오지)에 以蝦釣鯉(이하조리)라고 글자대로 한역했다. 작은 밑천으로 큰 이득을 보려고 하는 것을 꼬집는 한편 조그만 새우라도 들여야 나중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글을 조금 배워 나중에 효과적으로 써 먹는다는 ‘되 글을 가지고 말 글로 써먹는다’도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였기에 멋진 결과를 가져 올 바탕이 됐다. 멋진 비유의 성어 한 가지 더 오리를 놓아주고(放鴨) 봉황을 얻었으면(得鳳) 그 이상의 수확이 없다.

이 말은 諸葛亮(제갈량, 181~234)이 자신의 뒤를 잇게 되는 姜維(강유)를 끌어들일 때 사용하여 더 알려졌다. 중국 後漢(후한) 말기 魏蜀吳(위촉오)가 맞설 때 蜀(촉)의 劉備(유비)로부터 三顧草廬(삼고초려)의 부름을 받고 水魚之交(수어지교)로 극진한 대우를 받은 諸葛孔明(제갈공명)은 그만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인재를 찾는데도 정성을 기울여 강유를 기략으로 맞아들였다. 자가 伯約(백약)인 강유는 청렴하고 학문도 깊은데다 병법도 밝아 제갈량의 촉망을 받았다. 魏(위)나라의 관리로 있던 강유를 받아들이면서 봉황에 비유한 성어가 사용됐다. 羅貫中(나관중)의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실려 있다.

공명이 출사표를 後主(후주)에 올리고 위군을 치기 위해 출정했다. 曹操(조조)의 사위 夏侯楙(하후무, 楙(는 무성할 무)가 이끄는 군대를 격파하고 사로잡았다. 촉군은 내쳐 이웃에 있던 天水郡(천수군)을 공략했으나 강유의 계책으로 실패했다. 공명은 강유를 끌어들이기 위해 하후무를 풀어주고 이간질을 통해 위군을 분산시켜 항복을 받았다.

손을 잡고 환영하는 제갈량에게 작전을 성공했으니 이제 하후무를 잡으러 가지 않느냐고 강유가 물었다. 그가 대답한다. ‘내가 하후무를 놓아준 것은 오리 한 마리를 놓아 준 것에 지나지 않소(吾放夏侯楙 如放一鴨耳/ 오방하후무 여방일압이). 지금 백약을 얻었으니 한 마리 봉황이 온 것과 같소(今得伯約 得一鳳也/ 금득백약 득일봉야).’

이처럼 전력을 기울여 맞은 강유는 제갈량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촉한에 충성을 다했다. 제갈량이 후일 五丈原(오장원) 싸움에서 최후를 맞을 때 일러준 대로 수레에 좌상을 실어 司馬懿(사마의, 懿는 아름다울 의)의 위군을 물리친 것도 강유였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내쫓았다(死諸葛走生仲達)’란 말이 그로써 나왔다. 크게 쓰임새가 있을지 그렇지 않을지는 역시 받아들이는 사람의 안목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인재라고 힘들여 발탁했는데 능력 발휘는커녕 분위기만 흐리면 一魚濁水(일어탁수)의 실패를 부른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75.html
kolaswqetsrq 11.02 07:11
아자시술蛾子時術 - 개미새끼가 배우고 익혀 개미집을 짓는다, 부지런히 학문을 닦아 성취하다.

아자시술(蛾子時術) - 개미새끼가 배우고 익혀 개미집을 짓는다, 부지런히 학문을 닦아 성취하다.

누에나방 아(虫/7) 아들 자(子/0) 때 시(日/6) 재주 술(行/5)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알고 모든 일을 처리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날 때부터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生而知之(생이지지)인데 그것을 말한 孔子(공자)도 모르는 분야에 대해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不恥下問(불치하문)이라며 실제 孔子穿珠(공자천주)는 뽕따는 아낙에게 구슬에 실 꿰는 법을 물었다는 데서 나왔다.

미물로 태어난 개미새끼(蛾子)라도 그 어미가 하는 법을 보고 익혀(時術) 개미집을 짓고 큰 둑을 무너뜨릴 수 있게 된다. 처음부터 잘 알 수는 없어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면 나중에 큰 성과를 이루게 된다는 교훈이다. 누에나방을 말하는 蛾(아)는 개미 蟻(의)의 뜻도 있고, 蛾眉(아미)는 초승달 모양의 예쁜 눈썹을 가진 미인을 가리킨다.

학문을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개미의 교훈은 ‘禮記(예기)’에서 비롯됐다. 공자와 그 후학들이 편찬한 유학 五經(오경)의 하나로 學記(학기)편에는 중국 고대의 교육제도를 비롯해 학문을 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한다.

‘옥을 다듬지 않으면 쓸 만한 물건이 되지 못한다(玉不琢 不成器/ 옥불탁 불성기)’,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한다(敎學相長/ 교학상장)’ 등등의 잘 알려진 성어도 이 편의 앞부분에서 나왔다. 이후 夏殷周(하은주)의 교육제도가 이어지는데 25가구마다 塾(숙)이라는 학당이 있었고, 500가구에는 庠(상)이란 학교가, 1만2500가구에는 序(서)라는 교육기관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천자와 제후가 있는 도성에는 大學(대학)을 두고 매년 입학하여 격년마다 시험을 본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문에 힘쓰는지 스승을 공경하는지 벗과 잘 사귀는지를 보아 7년째에 도달하면 小成(소성), 9년에 이르러 사물에 능통하고 주관이 있으면 大成(대성)이라 했다.

이런 연후라야 백성을 교화시키고 풍속을 개량하며 먼 곳의 사람도 귀의하게 하는 인재로 클 수 있다면서 옛글을 인용한다. ‘개미새끼는 수시로 어미가 하는 일을 따라 배운다(蛾子時術之/ 아자시술지), 그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其此之謂乎/ 기차지위호).’ 작은 개미는 따라 배우는 학도나 문하생을 뜻했다.

개미가 배워 커가듯 사람의 학문도 꾸준히 하면 공을 이룬다는 조선 초기 명신 河崙(하륜)의 멋진 비유도 보자. ‘나무가 생장하기를 오래하면 반드시 산골에 높이 솟고(木之生久 則必聳于巖壑/ 목지생구 즉필용우암학), 물이 흐르기를 오래하면 반드시 바다에 도달한다(水之流久 則必達于溟渤/ 수지류구 즉필달우명발).’ 그런데 부지런히 배우려 해도 앞으로는 더 어려워질 것 같아 걱정이다. 인구가 줄어드는데 따라 학생은 급감하고 대학이 지역부터 문 닫는다. 초중등학교는 시군마다 폐교가 줄 잇는다. 25가구만 있어도 학당이 있었던 옛날의 교육이 꿈같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34.html
kolaswqetsrq 11.02 07:11
들꽃처럼 소박한 인생

들꽃처럼 소박한 인생

부담스러운 옷보다

편안한 옷이 좋아지고

멋진 신발보다

걷기 편한 신발이 좋아지고

불편한 사람보다

마음 편한 사람이 더 좋아진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너무 과해 화려한 삶보다

은은한 향기를 지닌

들꽃처럼 소박한 인생이

더 좋아진다.

욕심 없는

가벼운 삶이 주는 넉넉함이

얼마나 고마운지,

편안함이 주는 풍성함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 것 같다.

- 유지나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79.html
kolaswqetsrq 11.02 07:12
아로니아 효능

아로니아 효능

1.항암작용

우리 몸에는 유해산소라고도 불리우는 활성산소가 정상적인 세포를 파괴하여 암을 유발하거나 노화촉진,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데요. 아로니아에는 이러한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강력한 항암물질인 안토시아닌이라는 성분이 풍부해 항염 및 항암작용을 하여 암을 예방 및 치료에 좋을 뿐만아니라, 노화를 막아준다고 합니다. 특히, 아로니아의 안토시아닌 함유량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식품중에서도 가장 풍부하다고 합니다.

2. 피부미용

많은 연예인들이 피부미용을 위해 아로니아를 섭취한다는 내용이 보도되면서 많이 유명해 졌는데요. 아로니아를 평소에 챙겨 먹으면 우리 몸속에 있는 콜라겐과 지질층이 산화되는 것을 막아주면서 피부노화물질인 프리라디칼을 제거하여 탱글탱글하고 탄력있는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3. 면역력 향상

몸의 면역력이 강하면 외부의 바이러스와 세균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 김기나 비염 등의 각종 질병에 노출될 위험을 줄일 수 있는데요. 아로니아가 면역력에 영향을 미치는 백혈구의 생성을 촉진시켜 줄 뿐만아니라, 백혈구의 손상을 막아주기 때문에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아로니아 효능을 볼 수 있습니다.

4. 눈 건강

평소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이 많은분들도 눈 건강을 위해 아로니아를 섭취하면 좋은데요. 풍부한 안토시아닌 성분이 안구망막의 로돕신 색소의 생성을 도와주기 때문에 눈의 피로를 풀어주면서 시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준다고 합니다. 또한, 루테인과 제아잔틴이라는 성분이 시력을 보호해주고 백내장이나 녹내장 등의 각종 눈질환을 예방해 준다고 합니다.

5. 정력 증진

아로니아가 천연 비아그라라고 불리울 정도로 남성분들의 정력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요. 특히, 정력에 좋다고 알려져있는 복분자보다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로니아효능중에는 피가 흐르는 혈관을 확장시켜 생식기로 흐르는 피의 양을 증가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6. 뇌 건강

아로니아를 꾸준히 섭취하면 뇌 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 혈액속의 독소들을 제거하여 각종 뇌질환을 예방 및 개선하는데 좋을 뿐만아니라, 기억력을 향상시켜 치매를 예방해 주기때문에 나이드신 분들이 꾸준히 복용하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7. 혈관질환 예방

우리 몸에서 혈액이 흐르는 혈관내에 콜레스테롤이 많아지면 혈관이 좁아지고, 이렇게 혈관이 좋아지면 혈액의 흐름이 활발하지 못해 동맥경화, 뇌졸중, 고혈압, 협심증, 심장병, 고지혈증 등의 위험한 혈관질환을 일으키는데요. 아로니아를 섭취하면 혈관내에 침착되어 있는 콜레스테롤을 배출시키고, 혈관에 침전물이 쌓이는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각종 혈관질환을 예방하는데 아로니아 효능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8. 다이어트

아로니아에 함유되어 있는 클로로겐산이라는 성분이 체내에 지방과 탄수화물의 흡수를 억제시키는 작용을 하며, 카테킨이라는 성분은 체징방을 감소시켜 다이어트에 좋다고 합니다.

9. 당뇨 개선

당뇨를 개선시키고 당뇨로 인한 합병증을 줄일 수 있습니다. 아로니아를 꾸준히 섭취하면 췌장의 인슐린의 생성을 촉진시켜 주면서 당뇨 합병증을 유발시키는 물질은 감소시켜 주기때문에 당뇨병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7.html
kolaswqetsrq 11.02 07:13
인간관계를 망치는 10가지 실수

인간관계를 망치는 10가지 실수

1.첫번째 실수

버림받을 것이 두려워 중대한 사실을 숨기는 것. --진정한 사랑은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2.두 번째 실수

사랑하는 사람보다 내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기적인 태도는 가정을 파탄으로 만든다.

3.세 번째 실수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과민 반응하는 것. --지나치게 예민해 별 것 아닌 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조심해야 한다.

4.네 번째 실수

내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 --어리석은 지배욕과 책임 전가 의식은 누구의 인정도 받기 어렵다.

5.다섯 번째 실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쏟아붓는 것. --일의 우선 순위를 제대로 정해야 서로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

6.여섯 번째 실수

순간의 쾌락을 쫓으며 원초적 욕망만 채우는 것.--이런 미성숙함은 상대에게 실망을 안겨 준다.

7.일곱 번째 실수

도무지 사과할 줄 모르는 것.--실수를 인정하거나 책임지지 않는 태도는 관계를 악화시킨다.

8.여덟 번째 실수

부적절한 관계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

9.아홉 번째 실수

미심쩍고 내키지 않는 관계를 끊지 못하는 것. --우유부단함은 결국 더 큰 상처만 남긴다.

10.열 번째 실수

터무니없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
-로라 슐레징어 박사의 남녀 관계를 망치는 10가지 실수 -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42.html
kolaswqetsrq 11.02 07:14
■ 압구정狎鷗亭 1편

■ 압구정(狎鷗亭) 1편

서울의 ‘압구정동’이라는 동명(洞名)은 이곳에 조선 세조 때의 권신 한명회(韓明澮)가 지은 ‘압구정(狎鷗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데서 유래되었다. ‘압구정’은 한명회의 호로 일찍이 중국 송(宋)의 재상이었던 한기(韓琦)가 만년에 정계에서 물러나 한가롭게 갈매기와 친하게 지내면서 머물던 그의 서재 이름을 압구정(狎鷗亭)이라 했던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지금은 1970년대 이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한강물이 발 아래로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 북쪽으로 도성의 여러 산과 저 멀리 북한산 연봉과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이 바라보인다. 동남서쪽으로 강 건너 살곶이벌과 그 뒤의 아차산 남한산 청계산 관악산 등이 두루 바라다 보이는 뛰어난 경관을 가진 곳이다.

 "
경치가 이토록 빼어난 곳이니 역대 권문세가들이 항상 이곳을 탐내어 별장을 짓고자 했다. 압구정을 처음 지은 사람은 한명회였다. 그는 수양대군의 심복이 되어 김종서와 안평대군 등 조정대신과 왕자들을 죽이고, 수양대군으로 하여금 어린 조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게 한 장본인이다. 성종이 왕으로 즉위한 후 한명회의 위세는 더욱 커졌다. 권모술수의 달인 한명회(韓明澮)가 세조의 총애를 바탕으로 성종 대까지 꾸준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두 딸을 예종과 성종에게 각각 시집보냄으로써 왕실의 장인으로 오래도록 굳건한 지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13세의 사위 잘산군, 즉 성종(成宗)을 왕위에 올리는 데 정치력을 발휘함으로써 세조 때부터 승승장구해 온 그의 권력에는 ‘왕의 장인’이라는 프리미엄이 더해졌다.
",
 "
최고 권력을 구가하던 한명회는 1476년(성종 7년) 만년(晩年)에 한강가에 압구정(鴨鷗亭)이란 정자를 짓고, 명나라 사신인 문인 예겸에게 압구정, 즉 갈매기와 친하게 지내는 정자라는 뜻의 이름을 받는다. 갈매기를 벗하며 유유자적하게 여생을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기도 한 압구정은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한명회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공간이기도 했다. 당시 한강 주변에는 왕실 소유의 희우정(喜雨亭)이나 제천정(濟川亭) 등 만이 있었다. 최고 조망을 가진 곳에 신하의 신분으로 정자를 건립한 것 자체만으로도 한명회의 위상이 어떠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

압구정이 완성되던 날, 성종은 이를 기려 직접 시를 지어 내릴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듬해 한명회를 견제한 젊은 관료들의 반발로 현판에 걸린 성종의 시는 철거됐다. 하지만 압구정은 한명회의 화려했던 정치 인생에 종지부를 찍는 부메랑으로 날아왔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과 함께 역사 다시보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_56.html
kolaswqetsrq 11.02 07:14
■ 훈구勳舊와 사림士林의 대립 3편

■ 훈구(勳舊)와 사림(士林)의 대립 3편

예조판서 성현이 문제를 제기한 다음 날 사헌부 장령 강백진, 사간원 정언 이의손 등은 불교식 장례절차인 수륙재(水陸齋:떠도는 잡귀를 쫓는 재) 시행에 반대하면서 말하기를,

“대행대왕을 위하여 수륙재(水陸齋)를 시행하라는 전교(傳敎)를 들었습니다. 대행대왕께서 일찍이 불법(佛法)을 좋아하지 않으셨고, 또 지금 신정(新政)으로 신민이 좋은 정치를 바라는 시기이니, 사도(邪道)를 버리고 예문(禮文)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삼사(三司)의 반대에 연산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선왕께서 어찌 다 불법을 좋아하셨으랴마는, 수륙재의 거행은 선대(先代)로부터 이미 그러하였고, 대행대왕께서도 그만두라는 유명(遺命)이 없었으니, 이제 와서 폐지할 수는 없다.”

연산군의 의지가 분명히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에도 홍문관부제학 성세명, 예문관 봉교 이소 등은 불사(佛事)의 중단을 요구하였으며, 홍문관 관리 손주는 수륙재에 사용할 글을 지으라는 국왕의 명령을 거부하였다. 이후 이 일은 일파만파(一波萬波)로 확대되어, 해가 바뀌고 젊은 성균관 유생들마저 요즘으로 말하면 집단 등교거부로 공부를 버리고 집단상소하는 움직임까지 보이게 되었다. 물론 이를 반대한 경우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당시 정승의 지위에 있던 노사신은 연산군을 편들고 나섰다.

“일에는 늦출 것과 서두를 것이 있는데, 지금 재를 지내는 한 가지 일이 나라의 흥망(興亡)이 조석에 달린 중대한 일이라면 몰라도, 선왕을 위하여 재를 지내는 것은 선대왕(先大王)때 부터의 관습이니, 이 일을 가지고 불교를 숭상하는 것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곡위(哭位)에서 애달프신 이 때 할 일을 버리고 대궐에 모여서 논란만 하니, 신은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 여기며, 큰 일 외에 이런 일은 반드시 논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로 사림파들이 등용된 삼사(三司)는 자신들의 의견이 조금이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즉시 사직했다. 사직은 60~70번에서 1백 번까지 지속되기도 했다(1497년 6월 12일). 연산군도 이런 삼사의 행태에 큰 분노를 거듭 표명했지만, 그들은 좀처럼 제어되지 않았다. 스스로 인정했듯이 삼사는 연산군이 즉위한 이래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상소를 올렸고(1496년 3월14일), 사안에 따라 그 기간은 57일 동안 지속되기도 했다(1497년 4월25일).

훈구대신과 삼사의 갈등도 증폭되었다. 특히 대신들을 겨냥한 삼사의 탄핵이 매우 거칠어졌다. 이로써 연산군대 초반 국왕·대신·삼사의 상호관계는 명확해졌다. 국왕은 삼사의 강력한 언론활동을 가장 심각한 폐단인 능상(凌上:임금을 깔보다)으로 규정했고, 일부 대신들은 거기에 깊이 동조했다. 국왕은 삼사의 언론을 계속 불만스럽게 생각했고 강력히 경고했지만, 삼사는 훈구대신들을 극단적인 표현으로 탄핵했고,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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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15
■ 훈구勳舊와 사림士林의 대립 1편

■ 훈구(勳舊)와 사림(士林)의 대립 1편

조선은 사대부들에 의해 성립된 국가이며,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표방하였다. 세종과 문종 대에 융성했던 유학은 세조의 무단정치와 불교 숭상으로 한 때 저조하기는 했으나, 성종 대에 이르러 경국대전이 완성됨으로써, 유교적 집권체제가 확립되었고 유교 문화는 꽃을 피웠다.

성종은 원래 학문을 좋아했을 뿐 아니라 당시 중앙 정계를 장악하고 있었던 훈구대신(개국공신들의 후예)들을 견제하기 위해, 재야에 묻혀 지내면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던 사림(조선건국에 반대했던 세력의 후예)들을 등용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길재(吉再)의 학통을 이어받은 영남지방의 사림파 맹주(盟主)로 명성이 높았던 김종직(金宗直)을 중용하였고, 뒤이어 그의 제자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김일손 등 영남 출신의 신진들을 대거 불러들이게 되었다.

중앙에 진출한 신진 사림파들은 기성세력인 훈구파에게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특히 사림파들은 삼사(三司:사헌부, 사간원, 홍문관)를 중심으로 세력을 구축하였고, 주자학(朱子學)의 정통적 계승자임을 자부하면서 훈구파를 공격하였다. 즉 훈구파는 불의에 가담해 권세를 잡고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급급한 보수적 소인배라고 배척하였다. 이에 대해 훈구파는 사림들을 고고자존(孤高自尊:자신들만이 고결하다고 스스로를 높임)의 경조부박(輕佻浮薄: 언어 행동이 경솔하고 신중하지 못함)한 야심배라고 지탄하며 배격하였다.

세종대 이후 사전(私田)의 증가로 토지사유화가 과속화되면서, 기존 기득권 지배층의 사유지확대는 일반 서민의 경제생활을 압박할 뿐만 아니라, 새롭게 관리로 등용된 신진사림들의 경제생활까지도 위협하게 되었다. 관직에 올랐으나 지급받을 토지가 부족하게 된 것이었다. 기성세력인 훈구파들은 친인척들을 동원하여 벌족을 형성하고, 정권을 농단하면서 신진사림들의 진출을 막으려고 애썼다. 이렇게 현실사회의 모든 부조리를 시정하고 개혁하려는 사림파와 구질서를 고수하려는 훈구파 사이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성종이 김종직 일파의 신진사류 인사를 등용한 것은 표면적으로 유교적인 왕도정치를 펴려 한 결과이지만, 그 이면(裏面)에는 사회적 모순과 불합리성을 제거하고 시정하지 않으면 안 될 시대적 요청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종 치세 중반 이후부터 삼사(三司:사간원, 사헌부, 홍문관)를 육성해 기존의 대신을 제어하려는 성종의 정치적 계산이 현실정치에 적용된 것이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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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16
태도가 인생이 된다

태도가 인생이 된다

행복한 사람은

표정이 밝고 잘 웃습니다.

불행한 사람은

얼굴이 어둡고 잘 찡그립니다.

잘되는 사람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입니다.

잘 안되는 사람은

소극적이고 불평이 많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낙천적이고 희망적입니다.

실패한 사람은

비평적이고 이유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태도가

그 사람의 인생을 만들게 됩니다.

힘들 더라도 웃음을

잃지 말아야 하고

어렵더라도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하고

잘 안되더라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해야 합니다.

- 유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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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17
모든 것은 지나간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개울가에 앉아 무심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물만이 아니라 모든 것은 멈추어 있지 않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좋은일이든 궂은 일이든 우리가 겪는 것은

모두가 한 때 일 뿐, 죽지않고 살아 있는 것은

세월도 그렇고 인심도 그렇고

세상만사가 다 흘러가며 변한다

인간사도 전 생애의 과정을 보면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지나가는 한 때의 감정이다.

이 세상에서 고정불변한 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일이란 내 자신이

지금 당장 겪고 있을 때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런 일도

지내 놓고 보면 그 때 그곳에 그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이 세상일에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 누구도 아닌 우리들 자신이

파 놓은 함정에 우리 스스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과

그 고통을 이겨 내기 위한 의지적은 노력은

다른 한 편, 이 다음에 새로운 열매가 될 것이다.

이 어려움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는가에 따라 미래의 우리 모습은 결정된다.

- 법정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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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18
물처럼 마시면 보약인 차 7가지

물처럼 마시면 보약인 차 7가지

1. 기분 전환에 효과적인 과일 허브차

과일 허브차는 기분 전환 효과가 탁월하며 비타민이 다량 함유되어 환절기 감기 예방과 피로 해소, 스트레스 회복에 도움이 된다. 말린 과일과 허브를 이용할 경우 과일 맛이 우러나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뜨거운 물에 8~10분 정도 충분히 우리고, 찬물에 우릴 때는 냉장고에 하루 정도 넣어두었다가 마신다. 생과일과 생허브를 이용할 때는 찬물에 적당량을 우려 바로 마셔도 무방하다. 단. 좀 더 깊은 맛과 향을 얻으려면 뜨거운 물로 우린 다음 얼음이나 찬물을 섞어 마시는 것이 좋다.

2. 여성을 위한 재스민차

재스민차는 여자들을 위한 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스민은 모유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어 산모들에게 좋으며, 기분이 다운되고 편두통이 있거나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인, 수험생, 주부들의 머리를 맑게 해준다. 또한 몸속의 기름기를 걸러내는 효과가 있어 기름진 음식을 섭취했을 때 마시면 좋다. 물은 체온보다 약간 낮은 20~25°C 정도가 적당하므로 냉장고보다는 실온에 두고 하루에 7~8잔 마시도록 한다.

3. 항암 효과 탁월한 보이차

보이차는 꾸준히 마시면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 것은 물론 암과 고혈압을 예방하고, 폴리페놀과 카테킨성분이 노화를 억제하며, 성질이 따뜻하고 순해 위를 튼튼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특히 숙변 제거 효과가 탁월해 변비로 고생하는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차로 손꼽힌다. 보리차처럼 주전자에 2lm정도의 물을 끓이다가 불을 끄고 5~6g의 보이차를 넣어 10분 정도 우려 마신다. 보이차는 얼음이나 찬물을 넣지 말고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진 곳에서 식혀 마시도록 한다. \u3000

4. 몸이 가벼워지는 마테차

식욕을 억제하고 지방 분해를 촉진하는 성분이 들어 있어 체중 조절 효과가 탁월하며, 풍부한 사포닌 성분이 체내 면역력을 증진시켜 환절기 질환 예방에 효과적이다. 피로를 덜어주며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도 높여준다. 다만 마테차에는 소량이지만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어 임신부나 어린이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 뜨거운 물 400cc에 4g의 마테를 넣어 4~5분간 우려 마신다. 마테는 너무 뜨거운 물에 우리면 유효 성분을 잃게 되므로 한김 식힌 물(80°C 정도)을 사용하고, 차게 마실 때는 분량보다 적은 양의 뜨거운 물에 우린 뒤 얼음이나 찬물을 더해 물처럼 마신다.

5. 기관지에 좋은 도라지차

폐의 열을 내려주고, 기관지에 좋아 기침이 멎게 하는 것은 물론 목이 붓고 통증이 있을 때도 도움이 되며, 진통 해열 작용도 있다. 가슴이 답답한 것을 풀어주고 농혈을 제거하며 기혈을 보강하는 효과도 있다. 주전자에 1lm물을 붓고 말린 도라지와 감초를 10g씩 함께 넣어 끓인다. 끓기 시작할 때 불을 줄이고 약한 불에서 10분 도 더 끓인 다음 도라지와 감초는 내고 식혀서 물처럼 마시면 된다. 도라지의 쌉싸래한 맛이 싫다면 감초를 조금 더 넣고 끓여도 된다.

6.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메밀차

메밀은 오래전부터 고혈압이나 중풍 예방 식품으로 손꼽혀 왔다.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루틴과 필수 아미노산 및 비타민B 가 풍부하게 함유된 저칼로리 기능성 식품으로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활성산소를 억제해 성인병도 예방해준다. 다만 메밀차는 성질이 차가워 손발이 차거나 평소 몸이 찬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 주전자에 2lm의 물을 끓이다가 불을 끄고 3~4g의 메밀차를 넣어 10분 정도 우려 마신다.

7. 간 해독에 효과적인 오미자차

오미자차는 간 해독 작용을 도와 비뇨기를 활성화시키고 술독을 풀어주며 소화를 촉진해 내장 기능을 강화한다. 심혈관 질환이나 수족 냉증 개선 효과도 탁월하다. 또한 가래와 기침을 개선해주며 밤에 땀을 흘리거나 몸이 허약한 사람들의 체력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 물 2lm에 오미자 10g을 넣고 냉장고나 실온에서 12시간 정도 우려 냉장 보관하면서 수시로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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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18
체질에 꼭 맞는 음식궁합

체질에 꼭 맞는 음식궁합

소음인

● 특징 : 냉장고처럼 속이 차가운 체질. 소화기능과 배변습관을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

● 꼭 맞는 음식 : 따뜻한 음식. 입맛을 돋우는 적당한 양념.

찹쌀, 꿀, 닭고기, 쑥갓, 마늘, 당근, 아욱, 파, 양배추, 부추, 갓, 냉이, 감자, 시금치, 장어, 미꾸라지, 가자미, 조기, 북어, 뱅어, 멸치, 사과, 귤, 토마토, 복숭아, 대추, 인삼 등

● 안 맞는 음식 : 찬 음식과 날 음식, 기름진 음식

메밀, 우유, 돼지고기, 배, 수박, 참외, 오이, 밤, 팥, 호두, 녹두, 보리, 맥주, 새우, 게, 굴, 오징어, 밀가루, 빙과류 등

소양인

● 특징 : 몸에 열이 많은 체질. 감정기복이 심해 신경과민 증상에 유의!

● 꼭 맞는 음식 : 채소류와 해물류 등 서늘하고 맑은 음식.

복분자, 구기자, 돼지고기, 보리, 팥, 녹두, 메밀, 참기름, 오이, 배추, 우엉, 상치, 해삼, 굴, 전복, 복어, 우렁이, 참외, 수박, 딸기, 달걀 등

● 안 맞는 음식 : 너무 맵거나 기름진 음식. 건강보조식품.

인삼, 홍삼, 녹용, 닭고기, 우유, 꿀, 땅콩, 파, 참깨, 조기, 미역, 고구마, 찹쌀과 더불어 마늘과 생강, 고추, 후추 등

태음인

● 특징 : 물 먹은 스펀지 형. 순환기와 배변, 배뇨 등 배출 기능이 약해 비만하기 쉬움!

● 꼭 맞는 음식 : 칼로리가 적은 음식.

마, 오미자, 쇠고기, 우유, 율무, 밀가루, 콩, 두부, 수수, 들깨, 땅콩, 잣, 고구마, 호박, 무, 콩나물, 토란, 버섯, 미역, 김, 호두, 밤, 배, 살구, 자두, 은행 등

● 안 맞는 음식 : 간식, 야식.

닭고기, 달걀, 돼지고기, 배추, 커피, 겨자, 후추, 인삼, 홍삼, 생강 등

태양인

● 특징 : 마른 장작 형. 밖으로 빠져나가는 기운이 많아 수분과 혈액이 부족해지기 쉬움!

● 꼭 맞는 음식 : 담백한 음식. 흡수하기 쉬운 음식, 지방질이 적은 해물류, 채소류 등

메밀(냉면), 다래, 조개류, 문어, 붕어, 모과, 오징어, 포도, 앵두, 감 등

● 안 맞는 음식 : 기름진 음식과 육류.

쇠고기와 설탕, 무, 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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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19
■ 의적 임꺽정

■ 의적 임꺽정

임꺽정은 16세기 중엽 명종 때에 활동한 인물로 홍길동, 장길산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의적으로 불린다. 조선시대의 백정은 도살업, 유기제조업, 육류판매업 등에 종사하며, 신분적으로는 노비가 아니지만 그 직업이 천하다 하여 노비보다 더 심한 천대를 받았다.

임꺽정이 도적활동을 하게 된 원인으로는,

첫째, 잇따른 흉년과 기근으로 농민의 생활 상태 악화

둘째, 과중한 세금부담

셋째, 고을 수령의 착취를 들 수 있다.

임꺽정 부대의 규모 · 전술과 활동 거점에 대해서는 <명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창, 칼, 활, 도끼 등 단순한 무기로 무장했을 뿐 총포류 등의 화약 무기는 없었으므로, 관군에 비해 화력과 병력면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고 관군과 맞대고 교전할 수는 없었다. 대신 지형지물에 익숙하여 기동력 면에서 탁월하였으므로 산악 지형을 활용한 게릴라 전술을 구사하였다.

당시 지배층은 임꺽정 부대가 수령들을 거리낌 없이 처단한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나라를 욕보이고 국가 권위를 훼손시키는 행위이므로, 임꺽정 부대는 단순히 물자를 약탈하는 도적떼인 ‘군도(群盜)’가 아니라 국가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역집단인 ‘반적(叛賊)’ 이었다.

임꺽정은 관군과의 3년에 걸친 전투 끝에 생포되어 1562년 초 최후를 맞게 된다.

임꺽정의 반란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정작 임꺽정 자신의 문제인 천민 층의 신분해방은 해결하지 못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봉건지배층의 권위에 도전하는 반항심을 지니고 있었지만, 모순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사회의식은 지니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16세기 임꺽정의 활동은 봉건사회 변혁운동의 초기적인 형태로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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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20
■ 성종의 여인들-폐비 윤씨 5편

■ 성종의 여인들-폐비 윤씨 5편

성종은 왜 윤씨를 폐출시킨 것도 모자라 죽이기까지 했을까?

성종은 원자가 왕이 되었을 때 폐비 윤씨가 살아있다면, 왕의 모후로서 영향력을 발휘해 정국을 혼란하게 만들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성종은 폐비 윤씨를 죽이고 원자에게는 이 사실을 숨겨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폐비 윤씨 사사 사건 문제를 자신의 사후 100년간 언급하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그러나 이 유언은 지켜지지 않고 연산군의 폭정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훗날 연산군이 왕위에 올랐을 때 생모 윤씨가 폐출된 끝에 사사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관련자 모두에게 피바람이 몰아닥쳤다. 결국 연산군 대에 일어난 불행의 씨앗은 성종이 뿌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윤씨가 폐비(廢妃)된 이후 조정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원자의 생모인 윤씨를 다시 왕비(王妃)로 복위시켜야 된다는 상소와 시위가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그에 따라 많은 조정대신들이 파직당하거나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연산군이 즉위한 뒤, 윤씨를 복위시켜야 된다고 하여 유배를 갔거나 파직당한 대신들은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반대로 윤씨 폐위에 앞장섰거나 복위에 동참하지 않았던 대신들은 무자비한 보복을 당했다. 대표적으로 한명회 한치형 윤필상 등이 있다.

1480년(성종11년) 11월, 중전 윤씨를 폐한 지 1년 후, 인수대비는 원자가 더 자라서 자신의 어미를 기억할까봐 하루빨리 새 중전(中殿)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수대비는 총애하던 정소용을 왕비로 올리려 했지만, 간택의 결정권을 쥐고 있던 대왕대비 정희왕후는 성품이 무난하고 분쟁의 요소가 적은 숙의 윤씨를 왕비로 간택했다. 폐비 윤씨의 아들 융은 무사히 세자로 책봉되었지만, 세자 융이 13살이 되었을 때 새 왕비 정현왕후 윤씨에게서 진성대군(후에 중종)이 태어났다. 성종이 사망할 때 세자 융(연산군)은 18세였고, 진성대군 이역은 6세였다. 1494년 세자 융은 10대 임금 연산군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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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21
성종의 여인들-폐비 윤씨 2편

성종의 여인들-폐비 윤씨 2편

그로 인해 궁중이 발칵 뒤집히자 성종은 내명부에 봉작된 23명의 후궁들을 모조리 불러들여 문초했지만 범인을 색출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소용 정씨소행으로 결론 났으나, 중전 윤씨의 처소에서 주술 방법이 적혀있는 방양서(方禳書)와 극독(劇毒:지독한 독)인 비상(砒霜)이 발견되었고, 투서에 사용된 것과 똑같은 재질의 종이도 발견되면서 결국 윤씨의 소행이 드러났다. 비로소 진상(眞相)을 모두 알게 된 성종은 분노하였고, 윤씨를 빈(嬪)으로 강등하려 했지만 대신들이 앞 다투어 말렸다. 그녀가 원자(元子)의 생모(生母)였기 때문이었다.

성종은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불문에 붙였지만, 주술을 도와준 어머니 신씨의 직첩을 회수하고 궁궐 출입을 금했다. 그리고, 흉물을 궐내로 반입한 중궁전 나인 삼월이는 교수형에 처했으며, 나인 사비는 장형 100대를 때리고 변방(邊方)의 관비(官婢)로 내쫓았다. 가까스로 처벌을 면한 중전 윤씨는 별궁에서 근신하게 되면서 일단락되었다. 그로부터 2년여 동안은 은인자중(隱忍自重:참고 견디며 몸조심하다)하며 살았다. 하지만 성종의 여성편력은 여전히 계속되었고, 여러 후궁처소를 들락거리며 중전 윤씨 마음을 아프게 했고, 성종에 대한 원망이 가슴 속에 쌓여만 갔다.

이후 윤씨는 둘째 아들 즉 연산군의 동생까지 낳고 성종의 사랑을 되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성종이 후궁의 처소에 들었다는 것을 듣고 후궁의 처소까지 난입하여 패악을 부리던 윤씨는 결국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고야 마는 결정적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분노한 인수대비는 성종에게 즉시 그녀를 폐서인(廢庶人)하라고 요구했다. ‘내훈(內訓:훈계)’이라는 책을 써서 내명부를 교육시킬 정도로 여성의 예절을 중요하게 여기던 시어머니였다. 이미 윤씨에게 정나미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성종은 못이기는 척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때는 삼촌인 신숙주도 이미 죽고 없었으므로 그녀를 감싸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윤씨는 대비들은 물론 성종의 후궁들과도 관계가 틀어져 있었다. 이윽고 성종이 조정에서 폐비 문제를 거론하자, 대신들은 윤씨가 세자의 생모라는 이유로 격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이미 성종의 결심은 요지부동이었다. 성종의 결심이 굳건함을 알게 된 대신들은 만일 폐비하더라도 윤씨는 세자의 생모이므로 별궁에 안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성종은 대비의 뜻이라며 그녀를 친정어머니 신씨와 살도록 명했다. 1479년(성종 10년) 6월, 마침내 중전 윤씨는 직첩을 빼앗기고 폐서인(廢庶人) 되어 사가(私家)로 쫓겨났다. 원자(연산군)의 나이 4살이었다. 왕비를 폐출시킨 것은 조선 역사상 그때까지 처음 있는 일이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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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21
■ 광해군의 실리외교

■ 광해군의 실리외교

임진왜란은 조선, 명, 왜 삼국이 한반도에서 벌인 동아시아의 국제 전쟁이었다. 전쟁의 무대가 한반도였던 관계로 수많은 우리 백성들이 죽고 국토가 피폐해졌으며 국가체제는 무너졌다. 전쟁 이후 광해군에게 가장 시급했던 문제는 전후 수습과 복구였다.

당시 국제정세는 명이 쇠퇴하고 후금(청)이 강성해지면서 명나라를 위협하고 있었을 때였다. 명은 조선에게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것을 빌미로 명나라가 후금을 치는데 출병을 요구했다. 그러나 광해군은 후금이 명보다 우세하다고 판단, 명의 요청을 들어 주는 척하면서 당시 최고 사령관인 강홍립에게 비밀명령을 통해 적당히 싸운 척하다가 후금에게 투항하도록 해서 후금의 원성을 사지 않고 전쟁을 막아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 도탄에 빠져있는 백성들을 또 다른 전쟁에 내 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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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건국 초부터 사대교린(事大交隣)정책을 기본외교정책으로 삼았다. 여기서 사대(事大)는 큰 나라를 받들어 섬기고, 교린(交隣)은 이웃 나라와 화평하게 지낸다는 뜻이다. 즉 사대는 명나라에 대한 외교정책이고, 교린은 여진족과 일본에 대한 외교책이었다. 사대주의(事大主義)와 사대교린(事大交隣)정책은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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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교린(事大交隣) 정책은 서로의 독립성이 인정된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예속 관계에 의한 것은 아니다. 조공(朝貢:약소한 나라가 강대한 나라에 정치·군사적인 복속의 표시로 공물을 헌상)과 책봉(冊封:중국의 황제가 국내외 귀족이나 공신에게 왕 또는 공. 후 등의 작위를 주는 것)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대교린정책은 조선의 입장에서는 국제적 평화를 유지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외교였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사대부들은 명나라에 대해 성리학적 이념에 입각한 무조건적 충성의 맹목적 사대주의에 빠져 든다. 그리하여 서인들은 중립적 실리외교를 표방하던 광해군을 ‘폐모살제(廢母殺弟)’ 라 하여 쫓아내고(인조반정), 교린 상대에 불과했던 여진족인 후금을 우습게보고 배금정책을 쓰다가 또 다시 큰 전란(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겪게 되었다.

두 번의 호란(胡亂)으로 수십만의 백성들이 죽거나 청으로 납치되었고 수많은 문화재를 잃어버렸으며, 인조가 청 황제 앞에 나아가 ‘삼배구고두례(세 번 절하면서 한번 절할 때 땅에 머리를 세 번씩 부딪힐 정도로 조아림)’ 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국가적 수모(삼전도의 굴욕)를 당했다.

♣ 제공 : KIMSEM과 함께 역사 다시보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html
kolaswqetsrq 11.02 07:22
■ 왕이 된 남자, 광해 3/4

■ 왕이 된 남자, 광해 3/4

선조가 조금만 더 살았다면 광해군은 왕위에 오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선조의 애첩이었다가 광해군의 첩까지 된 일급참모 상궁 개시에 의해 선조가 독살 당하는 것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또 조선왕위를 승인하는 명에서도 광해군의 출신을 빌미로 왕위 계승을 인정하는데 주저하고 있었고 왕위를 이어 받은 후에도 계속 딴지를 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을 장악한 광해군과 대북파의 입장에서는, 자기네들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조정과 나라의 일을 제멋대로 농락하는 당파들을 왕권에 도전하는 세력이라고 생각했다. 왕권이 확립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왕권 확립이 최우선 과제였다.

유영경이 정계에서 쫓겨나 죽임을 당한 것도 무리한 조처는 아니었고, 광해군을 감싸던 정인홍 · 이이첨 등 대북파가 득세한 것도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정치과정이었다. 광해군은 즉위하자 조정의 기풍을 새롭게 하려고 했다.

당파를 따지지 않고 인재를 고루 쓰고 임진왜란으로 파탄이 난 국가재정을 튼튼히 하며, 난중에 불타 버린 경복궁 등 궁궐을 새로 짓거나 손보아서 왕실의 위엄을 살리고, 조세를 고르게 하여 민생을 구제하려고 했다(대동법 실시).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 한때 원병을 보내겠다고 까지 한 누르하치가 무서운 기세로 세력을 뻗고, 명나라는 늙은 호랑이로 쇠약해 가는 국제질서에서 한시도 눈길을 떼지 않았다.

이런 어려운 판국인데도 그의 형 임해군은 광해군의 정사를 비방하고 다녔고,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는 세력 또한 틈만 나면 광해군을 깎아내리려고 했다. 이들은 당인들과 결탁하여 왕권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언제나 광해군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광해군은 일단의 조치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 벼슬아치들은 임해군을 추대하려다 실패하자 장자계승권을 주장, 명나라에 이 사실을 알려 압력을 넣으려고 했다. 임해군 자신은 난행(亂行)을 거듭하면서 왕위를 동생에게 빼앗겼다고 분한 마음을 먹고 있었다. 끝내 임해군은 교동도에 유배를 당했다가 사약을 받았다.

- 4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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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34.html
kolaswqetsrq 11.02 07:23
■ 왕이 된 남자, 광해 1/4

■ 왕이 된 남자, 광해 1/4

광해군은 조선시대 왕들 중 소설이나 드라마 ·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이고, 시대적 상황 또는 작가나 PD, 영화감독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연산군과 같은 폭군의 부류로 인식되어 왔지만,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광해군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해석이 나와 그동안 우리가 알았던 폭군 광해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광해군이 살았던 시대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위기의 시대였다. 광해군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아픔이라 할 수 있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한 생애에 다 겪었다. 임진왜란 때는 세자로서 분조(分朝)를 이끌고 직접 전장을 누볐고, 병자호란 때는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 나 강화도와 제주도에 위리 안치되어서 겪었다. 왕이 아닌 신분으로 그런 참사를 보면서 자기를 돌보는 하녀들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19년간을 더 살았다.

광해군은 어떻게 해서 왕위에 올랐을까?

원래 선조는 정비 소생의 아들이 없었고 후궁 출신인 공빈 김씨가 임해군과 광해군을 낳았다. 따라서 장자인 임해군이 마땅히 왕위에 올라야 했지만, 그는 무식하고 난폭한 면이 있었다. 선조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후계문제를 놓고 고심하게 된다. 다른 후궁에게서 난 많은 왕자들이 각기 왕위를 넘보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인빈 김씨는 자신의 소생인 어린 신성군을 세자로 책봉시키려는 공작을 끊임없이 벌이고 있었다. 조정과 민간의 인심은 영민한 광해군에게 쏠리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세 살 때에 죽은 처지여서 스스로 처신에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북쪽으로 쫓겨 가는 몸이 되었고, 후사를 시급히 정해야만 했다. 대신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일단 세자책봉 문제는 일단락을 짓게 되었다. 광해군은 세자로서 분조(分朝, 임시로 세자에게 임금의 일을 대행하게 하는 제도)를 맡아 전란(戰亂) 중에 동분서주하며 그 소임을 다했고, 조정과 백성들의 명망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광해군의 왕위계승은 요지부동할 것 같았고 그 자신 또한 현군의 자질을 키워 나갔다.

- 2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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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4.html
kolaswqetsrq 11.02 07:24
관절염을 예방하고 완화하는 올바른 식습관

관절염을 예방하고 완화하는 올바른 식습관

45세 이상 인구의 약 절반은 관절 문제를 겪고 있으며 그 원인은 복합적이다. 무릎과 골반, 발목 등의 관절에는 지속적인 부담이 주어져 무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학적으로 말하자면, 관절은 소모품인 셈이다. 특히 퇴행성관절염에 걸리면, 뼈와 뼈 사이에서 보호막 역할을 하는 연골이 점차 파괴된다. 이렇게 되면 염증이 생겨 고통을 겪고, 관절이 붓기도 한다.

관절을 오래 사용해서 과부하가 걸리는 경우 말고도, 인대가 손상되는 사고 또는 선천적인 기형으로 인해 퇴행성관절염이 올 수도 있다. 그 밖에도 자세 불균형, 운동 부족, 잘못된 식습관 등의 요인이 결합되면 관절염 문제가 더 악화된다. 물리치료와 재활의학을 전공한 페르난다 멘데스 칼도소 박사는 "식습관은 관절염 진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1. 과체중

잘못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이 만나면 과체중으로 이어진다.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면 관절이 항상 부담을 지고 무리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나 먹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먹는지도 문제가 된다. 가령 포화지방산을 섭취하면 불포화지방산에 비해, 여분의 지방이 더 빨리 축적된다. 섭취한 칼로리가 동일해도, 불포화지방산 쪽이 더 나은 대사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2. 연골 약화

몸무게 증가로 인한 직접적인 과부하에 더해, 영양 상태도 연골의 형성 - 다시 말해, 관절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법 - 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몸은 새로운 연골 세포를 만들기 위해 고른 영양 섭취를 필요로 한다. 한 가지에만 치중하는 식습관은 관절에 좋지 않다. 불균형한 식습관은 체내 염증을 유발하는 호르몬을 분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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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 여파로 연골은 더 약해지고 탄성을 잃는다. 퇴행성관절염 때문에 관절에 염증이 생기고, 이 염증으로 인해 해당 질병이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다. 하지만 영양 공급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학계는 특히 동물성 식품에 풍부한 아라키돈산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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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골과 뼈 조직을 비롯한 세포들을 손상시키는 산화성 스트레스 역시 연골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생활습관과 식습관이 산화성 스트레스를 좌우하기 때문에, 매일 먹고 사는 문제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3. 피해야 할 음식

의료진은 퇴행성관절염을 예방하고 완화하기 위해, 다음 7가지 식품을 가급적 적게 먹을 것을 권고한다. 이들 식품은 체내 염증 반응과 세포의 산화성 스트레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붉은 육류와 소시지, 우유와 유제품, 달걀, 설탕, 커피와 홍차, 술, 담배

해당 식품을 전혀 먹지 말라는 뜻은 아니지만, 건강한 섭취량은 생각보다 적다. 가령 붉은 육류의 경우, 일주일에 2번 정도 적은 양을 식사에 포함시키면 충분한다. 유제품은 가급적 저지방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설탕과 커피, 홍차도 대량으로 소비하는 대신 적정선을 지켜야 한다.

4. 관절을 강화하는 음식

올바른 식습관은 연골을 새로 만들고 관절의 탄성을 개선하는 역할을 한다. 안 아프고 유연한 관절을 오래 유지하려면 과일과 야채가 특히 도움이 된다. 비타민이 풍부한 식품은 산화성 스트레스를 줄여 준다. 섬유질이 풍부한 식품은 항염증 효과가 있다.

생선과 올리브유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해서 관절에 좋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양파와 대파, 마늘이 관절을 강화한다. 브로콜리는 연골을 분해하는 효소의 활동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5. 건강한 관절과 식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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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식이 조절 대신, 각자의 생활습관과 입맛에 맞춰 조정된 식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 먹는 문제로 지나지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지속 가능한 성과를 거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규정하는 일반적인 분류법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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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음식이 퇴행성관절염을 유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마찬가지로 특정한 음식으로 관절염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것도 가능성이 희박한 얘기다. 건강한 관절을 위한 비결은 단순하다. 과일과 야채가 듬뿍 포함된 균형 잡힌 식단, 고지방 동물성 식품의 섭취 줄이기, 술은 거의 마시지 않기, 강도가 너무 지나치지 않고 적절한 운동이 전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9.html
kolaswqetsrq 11.02 07:25
계란 먹은 후 절대 하면 안되는 것들

계란 먹은 후 절대 하면 안되는 것들

계란은 저렴하고 편리하며 그 성질이 온화한 장점이 있으므로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총애를 받아 왔으며 중요한 양질의 단백질의 원천으로 인정받아 왔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음식물의 종류가 지극히 풍부해졌지만 매일 먹는 음식중에서 계란은 거의 빠지지 않는다.

이것은 역사적 원인도 있겠지만, 다른 한 측면으로는 계란과 인체의 영양수요와 잘 맞아 떨어진 때문이기도 하리라.

계란은 비록 맛있기는 하지만, 계란을 먹는데도 일부 금기사항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계란을 먹고나서 금기음식을 먹는데 자칫하면 중독되거나 심지어 폐결석이 생기게 되는데 나중의 두 가지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1. 계란을 먹은 다음 바로 약을 복용해서는 안된다

계란은 단백질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으므로 염증이 발생하였을 때는 단백질의 섭취에 각별히 주의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염증이 발생할 때는 계란을 먹은 후에 약을 복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소화기 질병이 있고 설사 증상이 있으면 더욱 계란을 먹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계란의 단백질 함량이 높기에 위장의 부담을 가중 시키기 때문이다.

2. 계란을 먹자마자 차를 마셔서는 안된다

어떤 이들은 계란을 먹고 나서 입안을 개운케 하려고 차를 마신다. 더우기 정신을 맑게 하려고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더욱 그리한다. 하지만 이 때 당신은 한 가지를 홀시 하였다. 바로 계란을 먹고 차를 마시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이다.

계란을 먹고 차를 마시면 건강에 해롭다. 차잎에는 대량의 타닌산을 함유하고 있는데 타닌산과 단백질이 합성하여 수렴성을 가진 타닌단백질을 형성하여 장의 운동을 느려지게 하여 변비가 쉽게 생길 뿐만 아니라 유독물질과 발암물질의 인체흡수 가능성을 높여 준다. 그러므로 계란을 먹은 후 1시간이 지난 다음에 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

3. 계란을 먹은 후 바로 감을 먹어서는 안된다

계란을 먹고 바로 감을 먹으면 가벼우면 음식물중독에 걸리고 심하면 급성위장염을 일으키고 또 폐결석을 초래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이 두 가지를 같이 먹으면 위로는 구토, 아래로는 설사, 복통을 위주로 한 급성위장염 증상들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만일 이 두 가지를 먹은지 1~2시간 이내이면 토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즉시 식염 20g을 끓인 물 200ml에 넣고 용해시킨 다음 냉각시켜서 단번에 마시게 한다. 그래도 토해내지 않으면 여러번 더 마시게 하여 빨리 토해내도록 해야 한다. 또는 생강을 짓찧어 즙을 내어 따뜻한 물로 충복하게 한다.

만일 먹은지 시간이 오래 되었으면 재빨리 사하약을 복용하게 하여 유독물질을 체외로 배출하게 해야 한다.

4. 계란을 먹고 바로 콩국(두유)를 마셔서는 안된다

매일 아침, 엄마들은 아이들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여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아이들이 아침부터 충분한 영양분을 얻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하여 많은 엄마들은 콩국에 계란을 터뜨려 넣어 준다. 또는 아이들이 계란을 먹은 다음 콩물로 목을 축이게 한다. 사실 단독으로 음용해도 매우 강한 자보기능을 가진 콩국에는 특수 물질--트립신(이단백매)이 있는데 이것이 계란 흰자위 속의 란송단백과 결합하여 영양성분의 손실을 가져오며 양자의 영양가치를 모두 떨어뜨린다.

♥ 주의

마트나 시장에서 계란을 살 때 반점이 있는 계란은 사지 않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이런 반점이 있는 계란은 오래 되어 신선하지않는 것들이다. 이런 계란은 먹지 말아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5.html
kolaswqetsrq 11.02 07:26
호손입포대猢猻入布袋 – 원숭이가 포대 안으로 들어가다, 행동이 구속돼 자유롭지 못하다.

호손입포대(猢猻入布袋) – 원숭이가 포대 안으로 들어가다, 행동이 구속돼 자유롭지 못하다.

잔나비 호(犭/9) 원숭이 손(犭/10) 들 입(入/0) 베 포(巾/2) 자루 대(衣/5)

원숭이는 사람과 가장 닮은 동물로 아주 영리하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동물계에서 가장 진화의 정도가 높기 때문이라 한다. 원숭이를 나타내는 한자는 犬猿之間(견원지간)의 猿(원)이 대표한다. 沐猴而冠(목후이관)의 猴(후)는 제후 후(侯)가 붙어 높은 관직을 뜻했다. 여기에 더 어려운 猢猻(호손)은 후베이(湖北) 성에 사는 원숭이의 종류로 그 생김새가 胡人(호인)을 닮은 데서 나왔다고 한다. 나무가 쓰러지면 살던 원숭이들도 흩어진다는 樹倒猢猻散(수도호손산)의 성어로 잘 알려져 있다.

원숭이(猢猻)가 포대 속에 들어갔다(入布袋)는 이 성어는 행동이 구속되거나 제약을 받아 자유롭지 못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줄여서 猢猻入袋(호손입대)라고도 한다. 宋(송)나라 시인 梅堯臣(매요신, 1002~1060)이 한 말로 교류가 깊었던 정치가 겸 문인 歐陽脩(구양수)가 지은 ‘歸田錄(귀전록)’에 실려 전한다.

매요신은 당시의 사회상을 시에 반영하여 구양수와 함께 송시의 혁신과 발전에 공헌했다는 평을 받는다. 杜甫(두보) 이후 최대의 시인이라는 상찬도 받는 재주를 가지고도 벼슬에 뜻이 없고 자유로운 생활을 지향하는 사람이었다.

왕명으로 구양수가 唐書(당서)를 수찬할 때 만년의 매요신도 함께 참여하라는 명을 받았다. 책이 완성되기 전에 매요신이 죽자 대신들이 모두 탄식하며 애석해했다. 구양수는 당시의 일화를 기록에 남겼다. 당서 중수 사업을 맡자 도무지 내키지 않았던 매요신이 부인에게 말했다.

‘내가 책을 편찬하는 일을 하는 것은 원숭이가 포대 속에 들어가는 격이오(吾之修書 可謂猢猻入布袋矣/ 오지수서 가위호손입포대의).’ 여기에 부인도 남편의 벼슬살이를 ‘메기가 대나무 장대를 타고 올라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亦何異鮎魚上竹竿耶/ 역하이점어상죽간야)’라고 응대한다. 그만큼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鮎은 메기 점.

어려운 일을 맡게 됐을 때 사람들은 모든 각오를 하게 된다. 내키지 않더라도 맡은 기간만큼은 최선을 다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흔히 하는 말로 결혼하면 감옥에 갇히는 격이라 말한다. 자식을 낳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밀쳐놓는 까닭이다. 그런데 감옥이든 포대 속으로 들어가든 젊은 청춘들이 결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텐데 참으로 큰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1.html
kolaswqetsrq 11.02 07:26
새옹지마塞翁之馬 - 새옹이 기르던 말, 길흉화복이 바뀜

새옹지마(塞翁之馬) - 새옹이 기르던 말, 길흉화복이 바뀜

변방 새, 막힐 색(土-10) 늙은이 옹(羽-4) 갈 지(丿-3) 말 마(馬-0)

세상사는 늘 돌고 돈다.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는 말이 있다. 운이 나쁜 사람이 좋은 수를 만날 수 있고, 운이 좋은 사람도 어려운 시기가 닥친다. 轉禍爲福(전화위복)에서 말한 대로 이런 뜻을 가진 가장 잘 알려진 성어는 "인간만사는 새옹지마라" 할 때 쓰는 이 말이다. 塞翁(새옹)이란 노인이 기르던 말이 주인에게 화도 가져 오고 그것이 또 복으로 바뀐다. 이것을 통해 吉凶禍福(길흉화복)은 항상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려우니 한 때의 일로 一喜一悲(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은 다양한 주제의 "淮南子(회남자)"란 책을 남겼다. 처세훈을 담은 人生訓(인생훈)에 나오는 유명한 얘기를 요약해 보자. 옛날 만리장성 변경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인이 살았다. 사람들은 그를 塞上老人(새상노인) 또는 塞翁(새옹)이라 불렀다. 어느 날 새옹이 기르던 말 한 마리가 오랑캐 땅으로 도망쳤다.

동네 사람들이 위로하자 복이 될지 모른다고 태연했다. 과연 몇 달 뒤 말이 준마를 데리고 돌아오니 이번에는 사람들이 축하했다. 하지만 화가 될지 모른다며 기뻐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의 아들이 준마를 타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고 사람들이 위로하니 또 모르는 일이라 했다. 얼마 지나 오랑캐들이 쳐들어 왔다.

마을 장정들이 전장으로 소집돼 열에 아홉은 죽었지만 다리 다친 노인 아들은 면제돼 무사했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등 변화는 끝이 없고 그 깊이는 예측할 수가 없다(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복지위화 화지위복 화불가극 심불가측야).""禍福如糾纆(화복여규묵, 纆은 노끈 묵)이란 약간 어려운 말도 같은 뜻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5.html
kolaswqetsrq 11.02 07:27
적빈여세赤貧如洗 - 맨몸뚱이에 씻은 듯이 아무 것도 없는 가난

적빈여세(赤貧如洗) - 맨몸뚱이에 씻은 듯이 아무 것도 없는 가난

붉을 적(赤/0) 가난할 빈(貝/4) 같을 여(女/3) 씻을 세(氵/6)

가난을 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란 속담은 남이 도운다고 모두 면할 길은 없다는 말이다. 貧室救助 國亦難能(빈실구조 국역난능)으로 한역된 말대로다. 입에 풀칠한다는 말이 뜻하듯 겨우 연명하는 사람이 많았던 옛날은 더욱 어려웠을 터다. 가난한 생활을 나타내는 성어가 그래서 수두룩하다.

의식주의 빈한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많은 중에 맨몸뿐이라는 赤貧(적빈)은 정도가 더한 표현이 된다. 붉을 赤(적) 글자가 색깔만이 아니고 ‘비다, 없다’의 뜻과 ‘벌거벗다’의 의미도 있다. 赤手(적수)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맨손, 赤手空拳(적수공권)이 맨손과 맨주먹이니 이때는 ‘없다’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의 숨김이 없을 때 赤裸裸(적나라)하다는 것은 ‘벌거벗다‘의 의미다. 몸뚱어리뿐인 진짜 가난, 알가난이 적빈인 셈이다.

물에 씻은 듯하다(如洗)면 아주 깨끗하다는 뜻 외에도 큰물 뒤끝엔 남는 것이 없다는 말과 같이 씻겨간 듯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다. 맨몸뚱이에 가진 것이 물에 씻긴듯하다는 이 두 말이 합쳐진 성어는 뜻으로 나타내서인지 사용이 드물다.

우리 고전에서는 한 단어씩 각각 사용된 경우는 제법 보이지만 합친 성어로는 db에서 전혀 검색되지 않는다. 중국에서도 淸(청)나라 때의 ‘儒林外史(유림외사)’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이라 하니 18세기 중반이다. 일본에선 에도江戶/ 강호 후기에 原善(원선)이 쓴 72명의 유학자 전기 ‘先哲叢談(선철총담)’ 이후로 자주 쓰게 됐다고 나온다.

과거제도를 둘러싼 비리를 통렬히 비판한 풍자소설 ‘儒林外史(유림외사)’는 청나라 문학자 吳敬梓(오경재, 1701~1754)의 작품이다. 성어가 사용된 부분은 ‘노인에게는 두 아들과 네 손자가 있고, 그 집은 여전히 매우 가난하다(老人家兩個兒子 四個孫子 家裏仍然赤貧如洗/ 노인가량개아자 사개손자 가리잉연적빈여세)’라 표현했다.

-家貧如洗(가빈여세)는 조금 앞선 元(원)나라서 사용됐다고 나타난다. 뜻을 바로 알 수 있는 이 말의 출전보다 의식주 별로 어떻게 가난을 나타냈는지 대표적인 것을 알아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겠다. 먼저 남루한 집은 家徒四壁(가도사벽), 窺如七星(규여칠성), 不蔽風雨(불폐풍우) 등으로 벽이 없고 천장에서 하늘이 보일 정도다. 옷과 신발이 너덜너덜함은 裘弊金盡(구폐금진), 衣結屨穿(의결구천) 등이 잘 나타낸다.

목숨을 부지할 양식이 떨어져 바닥인 말은 簞食瓢飮(단사표음), 釜中生魚(부중생어), 三旬九食(삼순구식), 朝虀暮鹽(조제모염) 등이 있다. 이러한 모든 부족함을 딛고 淸貧(청빈)하게 살아간 顔貧一瓢(안빈일표)의 제자 顔淵(안연)을 孔子(공자)가 극찬한 이후 安貧樂道(안빈낙도)를 이상으로 한 군자들은 있어 왔다. 하지만 이들이 나물 먹고 물마시며 팔베개 베고 잔다고 해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지 최소한의 의식주는 필요하다. 먹고 살기에 급급하고 팔다리 누일 데 없는 곳이 없어 하루하루를 쩔쩔 매는 오늘날의 신 하층민들에겐 사치일 뿐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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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28
유능제강柔能制剛 –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

유능제강(柔能制剛) –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

부드러울 유(木/5) 능할 능(肉/6) 절제할 제(刂/6) 굳셀 강(刂/8)

생명체가 세상에 태어나서는 똑 같을 수가 없다. 弱肉强食(약육강식)이라고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밥이다. 약자가 항상 당하기만 할까. 약한 자가 강한 자에 빌붙어 생명을 유지하거나, 약자끼리 연합하여 강자에 대항하는 수도 있다. 이런 인위적인 것을 제외하고도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결국은 강한 것을 이겨내고 살아남는다고 선인들은 가르친다.

어떤 일을 해결할 때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 이기는 듯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부드러움으로 감싸는 것보다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덕으로 감싸 안아 마음으로 복종하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기는 길임을 뜻한다.

굳센 것을 물리치는 것이 부드러운 것이라고 老子(노자)는 ‘道德經(도덕경)’ 곳곳에서 강조한다. 약간 변형시킨 노자에 앞서 이 성어가 그대로 나온 곳은 ‘六韜三略(육도삼략)’에서다. 周(주)나라 姜太公(강태공)의 저서라고 전하는 고대 병법서다.

감출 韜(도)는 화살을 넣는 주머니, 비결을 말한다고 한다. 부분을 보자. ‘군참에서 이르기를 부드러움은 강함을 제어하고, 약한 것은 능히 강함을 이긴다. 부드러움은 덕이고 굳셈은 적이다(軍讖曰 柔能制剛 弱能制强 柔者德也 剛者賊也/ 군참왈 유능제강 약능제강 유자덕야 강자적야).’ 군참은 전쟁의 승패를 예언적으로 서술한 병법서라고 알려져 있다.

도덕경 78장 任信章(임신장)에 잘 알려진 구절이 나온다. ‘이 세상에서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을 치는 데는 물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 莫之能勝/ 천하막유약어수 이공견강자 막지능승).’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기는 이치를 세상사람 모두가 알지만 능히 행하는 이가 없다(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 약지승강 유지승강 천하막부지 막능행).’노자가 스승에게서 부드러운 혀는 남아있고 단단한 치아는 빠진데서 가르침을 받는 齒亡舌存(치망설존)의 이야기는 劉向(유향)의 ‘說苑(설원)’에 실려 있다.

힘을 가졌을 때는 모든 일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그러나 그것이 자칫 오만함으로 비쳐 약자의 사정을 무시하는 것에서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힘은 오래 가지 않으니 부드러움으로 감싸 차근차근 일을 처리하는 것이 결국은 이기는 길이다. 노자의 말대로 세상 모든 사람이 알지만 당사자가 아는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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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29
우사생풍遇事生風 - 일을 앞두고 바람이 일다.

우사생풍(遇事生風) - 일을 앞두고 바람이 일다.

만날 우(辶/9) 일 사(亅/7) 날 생(生/0) 바람 풍(風/0)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 헤쳐 나가는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진척의 속도가 달라질 것은 빤한 일이다. 적극적인 사람은 신바람을 내며 맞서 해결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주눅 들어 자꾸만 피하려 한다. 특히 상급자의 불법적인 일 처리를 보고서 의욕에 찬 부하가 많으면 용기 있게 바로잡으려 할 것이고, 이를 어쩔 수 없다거나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간다면 결국 조직은 붕괴될 것이다.

일을 만나면(遇事) 바람을 일으킨다는(生風) 이 성어는 이처럼 긍정적인 의미를 가졌다. 그러던 것이 넘치는 것은 어디서나 탈이 나게 마련인지 바람을 너무 일으켜 사사건건 시비를 일으킨다는 부정적인 의미도 포함하게 됐다. 見事生風(견사생풍), 遇事風生(우사풍생)이라고도 쓴다.

史記(사기)와 함께 대표적 역사서로 꼽히는 班固(반고)의 ‘漢書(한서)’ 趙廣漢(조광한)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漢(한)나라 때 그는 涿郡(탁군, 涿은 칠 탁)에서 말단 관리로 근무했다. 매사에 성실하고 청렴한 조광한은 상관의 인정을 받아 수도를 관리하는 행정장관인 京兆尹(경조윤)까지 승진하게 되었다. 도성 근처의 경조관 杜建(두건)이라는 사람이 사리사욕에 어두워 많은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조광한이 몇 차례 그만두라고 주의를 줬어도 배경을 믿고 듣지 않자 그를 투옥했다.

두건을 옹호하는 세도가들이 석방하라고 윽박질렀지만 아랑곳 않고 참수형에 처했다. 이후 도성의 벼슬아치들은 조광한을 두려워하여 부정을 저지르려는 꿈도 못 꿨다. 조광한은 벼슬을 하는 집안의 젊은 자녀들을 즐겨 등용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투지가 있고 강건하며 예기를 드러내기 좋아하고, 어떤 일이든 맞닥뜨리면 바람이 일듯 신속하게 처리하며 피하지 않기(專厲彊壯蜂氣 見事風生 無所回避/ 전려강장봉기 견사풍생 무소회피)’ 때문이었다. 厲는 갈 려, 엄할 려. 이후 조광한은 너무 모가 났는지 간신들의 모함을 받고 죽게 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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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30
적선여경積善餘慶 - 착한 일을 많이 행하면 경사가 따른다.

적선여경(積善餘慶) - 착한 일을 많이 행하면 경사가 따른다.

쌓을 적(禾/11) 착할 선(口/9) 남을 여(食/7) 경사 경(心/11)

선행을 권장하는 말은 많다. 마음을 바르게 쓰면 神明(신명)도 알아 보살핀다는 ‘마음 한번 잘 먹으면 북두칠성이 굽어보신다’는 속담이 전한다. 조선 중기 가사문학의 대가 鄭澈(정철, 澈은 맑을 철)도 訓民歌(훈민가)에서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스라/ 사람이 태어나서 옳지 곧 못하면/ 마소를 갓 고깔 씌워 밥 먹이나 다르랴’고 옳은 일 하기를 권장했다. 착한 일을 많이 한(積善)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餘慶)는 이 말은 선행이 쌓인 집안에는 자신뿐 아니라 후손에 이르기까지 큰 복을 누린다는 말이다.

가훈으로도 적격인 이 성어는 積善之家 必有餘慶(적선지가 필유여경)의 준말이다. ‘易經(역경)’의 文言傳(문언전)에 실려 있다. 周(주)나라 때부터 내려왔다고 周易(주역)이라고도 하는 이 책은 三經(삼경)의 하나로 占卜(점복)을 위한 원전이라 일컫는다. 八卦(팔괘) 중에서 乾卦(건괘)와 坤卦(곤괘)의 해설을 담은 문언전의 부분을 옮겨보자. ‘선을 쌓는 집안은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고, 착하지 못한 일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재앙이 있다.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아비를 해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 유래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臣弑其君 子弑其父 非一朝一夕之故 其所由來者 漸矣/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불선지가 필유여앙 신시기군 자시기부 비일조일석지고 기소유내자 점의).’ 殃은 재앙 앙, 弑는 윗사람죽일 시.

금언과 명구를 모아 놓은 책 ‘明心寶鑑(명심보감)’에도 좋은 말이 빠질 수 없다. 姜太公(강태공)이 한 것으로 나오는 見善如渴(견선여갈), 莊子(장자)의 말이라며 一日不念善 諸惡皆自起(일일불념선 제악개자기/ 하루라도 착한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여러 악한 것이 모두 저절로 일어난다) 등이다. 洪自誠(홍자성)의 菜根譚(채근담)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선행이 더욱 값지다면서 ‘善之顯者功小 而隱者功大(선지현자공소 이은자공대)’라는 말도 남겼다.

예전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52조원을 딸을 위해 사회에 내놓겠다고 해서 전 세계에 감동을 줬다. 우리나라에선 1억 원 이상의 고액 기부자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2021년 말 기준 3000명 가까이 된다. 더욱 이들 중 상당수의 자녀들도 기부에 동참한다고 밝혀져 선행의 대물림이 이뤄진다고 보도됐다. 차곡차곡 선행이 쌓여져 이들 집안에 더 큰 영예가 따르길 기원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7.html
kolaswqetsrq 11.02 07:30
안도색기按圖索驥 - 그림대로 천리마를 찾다, 융통성 없이 일을 처리하다.

안도색기(按圖索驥) - 그림대로 천리마를 찾다, 융통성 없이 일을 처리하다.

누를 안(扌/6) 그림 도(囗/11) 찾을 색(糸/4) 천리마 기(馬/16)

길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이 매우 무디어 이전에 갔던 길도 곧장 헤매는 사람을 길치라고 놀린다. 요즘엔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으로 처음 가는 길뿐 아니라 등산로도 겁 없이 간다. 하지만 가르쳐주는 기계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더 좋은 길을 놓치는 일이 생긴다.

그림에 그려진 대로만 따라(按圖) 천리마를 찾아 나선다(索驥)는 이 말도 원리원칙만 따지고 융통성 없이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천리마라 하면 떠오르는 대로 伯樂(백락)의 아들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伯樂子(백락자)나 按圖索駿(안도색준)이라 써도 같다.

앞서 나왔던 伯樂一顧(백락일고)로 잘 알려진 백락은 春秋時代(춘추시대) 周(주)나라의 명마 감별사였다. 본명이 孫陽(손양)인 그는 秦(진)나라의 신하로 있으면서 相馬經(상마경)이란 저작도 남겼다. 하지만 아들까지 훌륭하게 키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조금 모자라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 고르는 법을 배우려 했다. 좋은 말이란 이마는 불쑥 나와야 하고 눈은 툭 튀어나와야 하며, 발굽은 누룩을 쌓아 올린 것처럼 생겨야 한다(隆颡蛈日 蹄如累麴/ 륭상철일 제여루국)고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열심히 익혔다. 颡은 이마 상, 蛈은 땅강아지 철.

아들은 책을 가지고 좋은 말을 구하려고 곳곳을 돌아다녔다. 며칠이 지나 아들이 큰 두꺼비를 잡아 와 아버지께 보이고선 책에 있는 명마와 똑 같다고 말했다. 백락은 기가 막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겨우 진정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 말은 잘 뛰기는 하겠지만 수레는 끌지 못하겠구나(此馬好跳 不敢御也/ 차마호도 불감어야).’ 明(명)나라 때의 학자 楊愼(양신, 1488~1559) 등이 쓴 ‘藝林伐山 (예림벌산)’에 나오는 이야기다. 지식과 경험은 없이 책에 있는 내용에만 의지해서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나아가 색인이나 목록 등 기존의 자료를 이용하여 필요한 부분을 찾는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4.html
kolaswqetsrq 11.02 07:31
하루 한번 귀를 당기면 나타나는 효과

하루 한번 귀를 당기면 나타나는 효과

이름난 장수촌의 장수 비결 가운데 하나가 매일 밤마다 귀를 비비고 빨갛게 되도록 자극한 뒤 잠자리에 드는 것이라고 한다.

삼국지 유비는 귀가 어깨까지 축 늘어질 만큼 늘 귀를 만졌다고 전한다. 한방에서도 이침(耳針)이라 하여 귀를 인체의 축소판으로 보고 서로 상응하는 부위에 침을 놓아 치료했다고 한다.

귀의 중앙에 세로로 꼬리모양으로 크게 부풀어져 있는 부분을 대이륜이라 해 척추에 대응된다. 귀의 위쪽부분은 엉덩이와 다리에 해당하고, 귓불은 머리 부분이 된다.

귓구멍의 입구부분은 내장과 관련이 있는 반사구가 밀집되어 있다. 귀를 잡아당기는 방향은 귀 윗부분은 위쪽으로, 가운데 부분은 양옆으로 잡아당기며 밑 부분은 아래쪽으로 잡아당기는 것이 기본이다.

귀는 평소에 자주 손을 대지 않는 부분인 만큼 매우 민감하다. 따라서 잡아당기는 강도는 가볍게 통증이 느껴지면서 기분이 좋을 정도가 적당하며 너무 세게 잡아당기는 것은 좋지 않다.

귀 잡아당기기는 한 번에 약 1분 정도, 30~50회 가량 시행한다. 그러나 귀에 상처가 있거나 귓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귀를 잡아당기기 전에 양 손바닥을 비벼서 손가락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귀 잡아당기기의 효과를 높여준다.

1. 고혈압

귓바퀴 뒤 움푹 패인 곳을 누른다. 무리했거나 일시적 흥분이 원인이 되어 혈압이 높아진 경우에는 귀 잡아당기기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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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바퀴의 위쪽 뒷면을 만져보면 움푹 패인 곳이 있는데 이곳을 강압구라고 한다. 우선 귀 뒤쪽에 있는 강압구에 엄지손가락을 대고 귀 표면을 검지로 눌러준다. 이렇게 누른 채 귓불의 밑 부분까지 쓸어내리며 잡아당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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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귀를 동시에 7~8회 반복한다. 또 귓불을 당겨주면 뒷목 부위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고 고혈압 환자 특유의 뒷목이 뻣뻣해지는 증상을 부드럽게 해준다.

늘 혈압이 높은 사람이라면 습관적으로 아침에 잠자리에서 귀 잡아당기기를 해주면 하루 종일 맑은 정신으로 지낼 수 있다.

2. 두통

귓불을 잡아당긴다. 간단한 습관성 두통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일 때는 귀 잡아당기기로 해결할 수 있다.

두통은 혈관이 확장되거나 수축될 때 일어나는 현상. 고혈압으로 뒷목이 뻣뻣해질 때와 마찬가지로 귓불을 조금 세게 잡아당겨 주면 두통이 곧 사라진다.

만성 두통으로 인하여 고생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두통의 반사구를 잡아당기는 것이 좋다.

3. 눈이 침침할 때

귓볼을 늘려 아래로 잡아당긴다. 눈이 침침해지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 노화현상에 의한 것과 피로에 의한 것이다. 노화에 의한 눈의 피로는 심하면 백내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귀 잡아당기기를 습관화하면 눈이 침침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백내장의 진행을 예방할 수 있다. 또 장시간의 시험공부나 TV 시청, 컴퓨터 작업 등으로 피로해진 눈을 회복시키는 데도 효과적이다.

눈의 반사지점은 귓불의 한가운데 있다. 귓불 가운데를 엄지와 검지로 누른 후 밑으로 잡아당긴다. 처음에는 약간 강한 듯 하게 누르면서 약 50회 정도 계속해서 반복한다.

4. 정력 감퇴

귓볼 위 돌기를 얼굴 쪽으로 잡아당긴다. 정력은 나이 들면서 감퇴되어 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피곤함이나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감소되는 경우도 있다.

정력과 관계가 깊은 것은 고환의 반사지점이다. 남성의 경우에는 그곳을 자극함으로써 정력이 증강되고 스태미나가 생기게 된다. 귓불의 위쪽에는 작은 돌기가 있는데 이 돌기의 안쪽이 고환의 반사지점이다.

이곳에 검지손가락을 깊숙이 넣어 돌기 밑으로 손가락을 거는 듯 한 느낌으로 얼굴 쪽을 향하여 잡아당긴다.

그런데 돌기 부분의 가장 아래쪽으로는 내분비와 난소의 반사지점이 있다. 따라서 이 지점을 자극하면 호르몬 분비가 원활해져 정력증강에 한층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피부를 윤택하게 가꾸어 주기도 한다.

5. 소화 불량

이륜각 위 오목하게 들어간 지점을 자극한다. 귀의 색이 누렇고 귓구멍이 작으며 귀가 얇으면 만성 위장병의 위험이 있다고 한다.

이런 상태가 아니라도 식욕이 없거나 트림을 하고 배에 가스가 잔뜩 차 더부룩하다면 장이 안 좋은 것이다.

대장, 소장, 십이지장의 반사구는 귓구멍 위 꼬리처럼 생긴 이륜각 바로 위의 오목하게 들어간 지점이다. 이 지점을 돌아가면서 자극한다. 귀 전체를 돌아가면서 자극해주는 것도 장을 튼튼하게 하는 한 방법.

6. 어깨 결림, 요통

귀 중앙 대이륜 주변을 자극한다. 어깨 결림이나 요통은 건강 상태를 깨뜨리는 원인. 이럴 때 귀를 통해 통증을 해소할 수 있다.

어깨, 허리의 반사구는 귀 중앙에 크게 불룩 튀어나온 대이륜 주변. 이곳을 바깥쪽으로 잡아당기면서 목을 위로 쭉 늘리거나 전, 후 좌우로 돌리면 더 큰 효과를 분수 있다.

-건강백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2.html
kolaswqetsrq 11.02 07:32
약 없이 혈압 쉽게 낮추는 방법 5가지

약 없이 혈압 쉽게 낮추는 방법 5가지

심장병, 뇌졸중, 치매, 신부전 등은 고혈압과 연관이 있는 질병이다. 그런데 좋은 소식이 있다.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을 주는 자연적인 방법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 5가지를 소개한다.

1. 아침을 많이 먹어라

아침을 하루 세끼 중 가장 적게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와는 반대로 해보라. 연구결과 아침을 많이 먹는 사람은 적게 먹는 사람에 비해 몸무게를 더 많이 빼고 혈압도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 햇빛을 자주 쬐라

비타민D 수치가 낮으면 고혈압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 피부는 햇빛 속 자외선을 만나 비타민D를 합성한다. 연구에 따르면 20분 정도 자외선에 노출되면 혈관이 팽창하고 심혈관 기능이 촉진되며 혈압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3. 휴대폰을 매너 모드로 돌려라

연구에 따르면 휴대폰의 벨이 울리면 혈압이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소리가 남으로써 생기는 혼란으로 인해 불안감이 생기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4. 채식주의자같이 주문하라

외식을 할 때 고기 대신 곡물과 채소로 만든 패티를 넣은 베지 버거를 주문하라. 미국의학협회저널 내과학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면 혈압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 혈압을 낮추려면 체중을 11파운드(약 5kg) 정도 빼야 한다.

5. 저녁식사 후 산책을 하라

아침에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도 저녁식사 후 TV 앞에만 앉아 있으면 안 된다. 활발한 사람이라도 TV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크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적당한 강도의 운동을 많이 하면 할수록 혈압이 낮아진다는 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85.html
kolaswqetsrq 11.02 07:33
배추 먹으면 생기는 몸의 변화

배추 먹으면 생기는 몸의 변화

배추는 흔히 김장배추를 떠올린다. 하지만 소금에 절이지 않은 생배추 그대로 국이나 된장국에 넣어 먹는 경우도 많다. 배추김치는 절이는 방식 때문에 짠 맛이 단점으로 꼽히지만 생배추는 자연 그대로의 맛을 살릴 수 있다. 배추의 건강효과에 대해 알아보자.

◆ 비타민 C 풍부... 열을 가해도 손실 적어

국립농업과학원에 따르면 배추 겉의 푸른 잎에는 비타민 C가 많이 들어 있다. 배추의 비타민 C는 열을 가해도 손실률이 낮아 국을 끓여 먹어도 비타민 C를 제대로 섭취할 수 있다. 감기 예방과 면역력 증진에 효과가 있다. 특히 배추의 푸른 잎에는 비타민 A의 이전 물질인 베타카로틴이 많아 면역력 강화, 폐·기관지 보호에 도움을 준다. 안의 심 부분은 단맛이 강하므로 생으로 썰어 무치거나 국을 끓여 먹어도 좋다.

◆ 장 활동 촉진, 변비 예방에 도움... 다이어트 지원

배추는 수분함량이 약 95%로 매우 높다. 원활한 이뇨작용을 도와주며, 열량은 낮다. 식이섬유 함유량은 많아 장의 활동을 촉진한다. 변비와 대장암 예방에 도움을 준다. 다이어트 할 때도 좋다. 고기·생선 등 구이 음식을 먹을 때 배추를 곁들이면 장 건강에 이롭다. 다만 만성 대장질환이 있는 사람은 배추를 익혀서 먹는 것이 좋다. 배추는 칼슘, 칼륨, 인 등 무기질도 많이 들어 있다.

◆ 배추와 양배추의 시너지 효과... 암세포 증식 억제

배추와 양배추 추출물은 생리활성 물질이 많아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한국식품영양학회지). 배추와 양배추에 들어 있는 항산화물질인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가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배추와 양배추 추출물을 간암, 위암 등 암세포에 처리하고 배양하는 시간이 24시간에서 48시간으로 길어질수록 암세포 성장 억제 효능도 늘어났다.

◆ 잎의 두께 얇고 부드러운 것 선택

배추를 구입할 때는 잎의 두께와 잎맥이 얇아 부드러운 것을 고른다. 뿌리 부위와 줄기 부위의 둘레가 비슷하고 흰 부분을 눌렀을 때 단단하고 수분이 많은 것이 싱싱하다. 속의 잎은 연백색이면서 뿌리가 완전히 제거된 것이 좋다. 각 잎이 중심부로 모이면서 잎 끝이 서로 겹치지 않는 것이 품질이 좋은 것이다.

◆ 냉장고에 세워 보관하면... 쉽게 물러지지 않아

이미 씻었거나 잘라 놓은 배추를 빨리 사용하지 않으면 무르거나 시들게 된다. 한꺼번에 사용하지 않을 배추는 밑동만 잘라 놓고 겉에서부터 한 잎씩 필요한 만큼 잘라 사용하는 게 좋다. 배추는 기본적으로 서늘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키친타올이나 종이에 싸서 냉장고에 세워 보관하는 것이 좋다. 세워두면 금세 물러지는 것을 늦출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9.html
kolaswqetsrq 11.02 07:34
증상별 치료 효과 높은 식품들

증상별 치료 효과 높은 식품들

1. 바나나 - 스트레스와 불안

‘스트레스를 느끼면 바나나를 찾아라.’ 중간 크기 바나나 한 개의 열량은 105kcal, 당분은 14g에 불과하다. 하지만 공복감은 가라앉히고 혈당은 서서히 올려준다. 또 비타민B6(피리독신) 하루 섭취권장량의 30%를 포함하고 있다. 비타민B6는 행복호르몬인 세로토닌 생산을 도와 위기를 평화롭게 넘길 수 있게 해준다.

2. 건포도 - 고혈압

한 움큼의 건포도(약 60알)는 섬유질 1g과 칼륨 212mg을 함유하고 있다. 두 성분은 고혈압 식사요법의 추천 대상이다. 건포도, 와인, 포도주스에 들어있는 폴리페놀이 심장혈관의 건강을 유지하고 혈압을 낮춰준다는 연구 결과는 수없이 많다.

3. 요구르트 - 변비와 복부 팽만감

발효 요구르트 한 컵 반을 마시면 음식물이 장내를 잘 통과한다는 연구 결과가 2002년 발표됐다. 요구르트 속의 유익한 박테리아는 장내에 가스를 발생시키는 콩과 유제품 젖당 소화를 돕는다.

4. 살구 - 신장결석

반으로 잘라 말린 살구 8쪽은 섬유질 2g과 나트륨 3mg, 칼륨 325mg을 함유하고 있다. 이들 성분은 미네랄이 콩팥에 쌓여 결석이 생기는 것을 막아준다.

5. 참치 통조림 - 우울한 기분

800mg의 오메가3 지방산을 함유하고 있는 85g의 참치캔 한 개는 기분이 저조하거나 불안한 증세인 우울증을 치료해줄 수 있다. 미국 심리학협회는 생선의 지방산이 우울증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추천한다. 탄수화물 37g이 기분을 끌어올려주는 세로토닌 호르몬의 생성을 돕는다.

6. 양배추 - 위궤양

양배추에 들어 있는 설포라판이란 화학물질이 위궤양과 소화성궤양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 균을 박멸해준다. 게다가 위종양 성장 억제에도 도움을 준다. 한 컵의 양배추에는 섬유질 3g과 비타민C 일일 섭취량의 75%가 들어 있고, 칼로리는 34kcal로 낮다.

7. 무화과 - 치질

무화과는 섬유질이 풍부하다. 말린 무화과 네 알에 3g의 섬유질이 들어 있다. 이 양을 매일 먹으면 부드러운 변을 규칙적으로 볼 수 있어, 치질 재발을 막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칼륨 일일 권장량(3.5g)의 5%, 마그네슘 일일 권장량(280mg)의 10%를 함유하고 있다.

8. 마늘 - 곰팡이 감염

마늘에 함유된 정유는 질염을 일으키는 칸디다 곰팡이의 증식을 억제한다. 이 곰팡이에 감염되면 질의 통증과 가려움, 분비물 이상이 생긴다. 소스나 샐러드 드레싱에 마늘을 첨가하라.

9. 카모마일 차 - 역류성 식도염

류머티즘과 당뇨병에 좋은 카모마일은 소화성 염증, 경련, 가스 완화 효능도 지니고 있다. 뜨거운 물 280ml에 카모마일 두 티스푼을 넣고 20분간 놓아두라. 정유가 날아가지 않도록 뚜껑을 덮어두어야 한다. 하루에 서너 차례 마시면 역류성 식도염의 타는 듯한 느낌을 막을 수 있다.

-‘건강과 생활’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4.html
kolaswqetsrq 11.02 07:35
내 몸을 위한 10가지 충고

내 몸을 위한 10가지 충고

1. 정신이 먼저라고 생각하지 마라

대부분의 현대인은 머리 쓰는 일에만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나는 반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을 관리하면 정신과 마음까지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신적인 부분만 관리하면 몸이 서서히 망가진다. 기억하자. 몸이 먼저다.

2.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숙면을 취하려면 밝을 때 일어나고 어두우면 자는 것이 좋다. 전문가들은 잠자리에 드는 시간에 따라 잠의 품질이 달라지니 너무 늦게 자는 것은 피하라고 조언한다. 낮에 몸을 최대한 많이 움직이고, 되도록 11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자.

3. 다이어트는 몸무게를 줄이는 게 아니다

 "
몸무게만 빼는 방법은 간단하다. 며칠 굶고 사우나에서 땀을 흘리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빠지지 말아야 할 수분과 근육이 빠진다. 장기적으로는 같은 양을 먹어도 살이 더 찌는 불량체질이 된다. 뺄 것은 빼고, 늘릴 것은 늘리자.
",

4. 바쁠수록 운동하라

분초를 쪼개 살 만큼 바쁘고, 높이 올라간 이들의 공통점은 운동에 일정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사는 게 힘들고 체력이 고갈되어 쓰러질 것 같다면 당장 운동을 시작하라. 그래야 버틸 수 있다. 운동이야말로 최고의 보약이다.

5. 의사에게 몸을 맡기지 말고 몸에 대해 공부하라

우리는 몸에 대해 너무 무지할 뿐 아니라 자기의 건강 관리를 의사 등 전문가에게 외주 주고 평소에는 신경을 끊는다. 하지만 이는 권장할만한 방법이 아니다. 건강하고 싶은가? 몸에 대해 공부하라. 그게 정말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다.

6. 차(茶)를 마셔라

 "
차수(茶壽)라는 말이 있다. 108세를 말한다. 한자의 차는 모양상 十十(20)에 八十八(88)을 보태어 108이 되기 때문이다. 평소 기분전환을 하며 곁들일만한 나만의 차를 즐겨보라. 머리도 맑아지고 몸에 좋은 수분도 섭취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

7. 소식(小食)하라

 "
현대인의 질병은 못 먹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긴다. 암(癌)이란 한자를 보면 입 구(口)가 세 개 있다. 최고의 음식은 적게 먹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배고플 때 나는 꼬르륵 소리가 최고의 건강 비결이자 동안 비결이라고 주장한다.
",

8. 의도적으로 많이, 자주 웃어라

긴장하면 근육이 뭉치고 얼굴 표정이 사라진다. 일을 할 때는 그래도 되지만 계속 긴장해 있으면 건강을 해친다. 긴장을 풀기 위해서는 얼굴 근육을 풀어주어야 한다. 그게 웃음이다. 가능하면 자주, 의도적으로라도 웃는 것이 좋다.

9. 쉬는 것도 능력이다

일을 잘하는 건 능력이다. 하지만 쉬는 것 역시 능력이다. 무엇이든 그칠 줄 모르면 문제가 생긴다. 쉬지 않고 일만 하는 것은 몸에 계속 비상을 거는 것과 같아서 결국에는 몸을 망친다. 나를 위해, 회사를 위해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자.

10. 호흡하고 명상하라

 "
음식, 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호흡이다. 명상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고 자신을 살피게 한다. 명상을 영어로는 메디테이션(meditation)이라 하는데 약(medicine)이라는 단어와 어원이 같다. 명상이 영혼에 약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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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뉴스 매거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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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0_2.html
kolaswqetsrq 11.02 07:36
염증 확실히 없애는 음식

염증 확실히 없애는 음식

○ 혈관 속 염증을 잡는 비타민P를 많이 섭취하세요.

우리 몸에 비타민P가 부족할 경우 출혈이 많이 생기고 멍이 잘 들 뿐 아니라 자가 면역질환에도 쉽게 걸리고 혈관 염증에도 취약해집니다. 비타민P는 보통 채소나 과일 껍질에 많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염증을 위해서는 채소나 과일의 껍질까지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 사과 껍질 : 사과껍질은 식이섬유가 많고 안토시아닌 성분도 많아 활성산소를 배출해주고 심장병을 예방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펙틴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콜레스트롤 흡수를 막고 중금속을 배출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평소에 사과를 즐겨 먹으면 대사증후군 위험이 20%이상 낮아진다고 합니다.)

✔ 포도껍질 : 포도껍질은 혈관 독소를 없애주는 효과가 있어 독소와 염증을 완화시키고 암을 예방합니다.이외에도 동맥경화와 심장병을 예방해주며, 혈전의 생성을 억제합니다.(포도주스나 포도주로 섭취하면 편하게 드실수 있습니다.)

○ 뼈 염증을 잡는 비타민D 많이 드세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특히 비타민D가 많이 부족한데, 비타민D가 부족하면 염증 억제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유방암과 대장암이 늘어나는 이유 역시 비타민D의 부족으로 나타나므로 평소 음식 섭취 및 햇볕을 쬐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루 최소 20분 이상 노출해 주세요)

✔ 연어, 목이버섯 : 연어에는 비타민D가 많고 오메가3가 풍부하며 EPA가 많아 관절염에 좋습니다. 목이버섯의 경우 마른 것이 생것보다 30배이상 좋은 효과가 있습니다.

○ 면역력을 키울 수 있게 비타민C를 많이 드세요.

비타민C는 면역세포를 활성화 시키고 피부를 좋게 만들어 줍니다. 비타민C가 많은 식품으로는 빨간 파프리카, 브로콜리, 키위, 풋고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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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뉴스 매거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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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2.html
kolaswqetsrq 11.02 07:36
걷기의 운동 효과

걷기의 운동 효과

걷는 것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건강을 꼬박꼬박 저축하는 것이다. 발은 제2의 심장으로 불린다. 발에는 무수한 혈관이 있다.

혈류의 흐름은 전신 건강의 지름길이다. 걷는 것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발바닥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피를 펌핑해 위로 올려보낸다. 혈액을 순환시키는 모터가 양쪽 발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더 중요한 것은 걷기가 죽음의 4중주(내장지방, 고지혈증, 내당능장애, 고혈압)를 멈추게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기관의 세포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할 뿐 아니라 혈관을 청소해 탄성을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걷기는 천천히 걸어도 1시간에 120kcal, 빨리 걸으면 300kcal까지 열량을 태운다.

죽음의 자객인 뱃살을 빼는 데 이보다 좋은 처방약은 없다. 걷기는 인체 골격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우주공간에 오래 머물렀던 우주비행사들에게 건강의 최대 적은 골다공증이다. 무중력 상태가 뼈 세포의 생성을 막아 뼈를 바람 든 무처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지구에 귀환한 뒤 가장 먼저 하는 운동이 걷기다.

걷기가 골격을 붙들고 있는 근육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할머니의 걸음걸이를 보면 안다. 보폭이 짧고, 작은 돌부리에도 쉽게 넘어진다. 하체의 근육이 퇴화해 뇌가 위험을 인지해도 순발력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걷기를 하면 근육이 유지될 뿐 아니라 만들어지기도 한다. 근력(근육)은 자극을 주면 향상하고, 방치하면 금세 위축한다. 지팡이를 짚어야 거동할 수 있는 90대

노인에게 두 달간 걷기 운동을 시켰더니 근력이 70%, 걷는 속도는 50% 빨라졌다는 미국의 연구논문도 있다. 우리 몸의 장기에서 근육만큼은 세월을 거스른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다리가 잘 붓는 사람에게도 걷기가 특효약이다. 부종은 정맥이나 림프관에 체액이 정체되는 현상. 따라서 걸으면서 근육이 혈관과 림프관을 꽉꽉 짜줘 체액의 흐름이 좋아지면 부종이 개선된다. 걷기가 달리기보다 좋은 것은 운동 손상이 적기 때문.

해부학적으로 보면 걷는 것은 발을 구성하는 26개의 뼈와 114개의 인대, 20개의 미세한 근육, 그리고 힘줄과 신경이 만들어내는 정교한 합작품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런 발을 공학의 최대 걸작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달린다는 것은 다리엔 고문이다. 착지하는 순간 한쪽 발에 실리는 무게는 체중의 2.3~2.8배에 달한다. 1km를 달릴 때 발이 받는 하중은 무려 16t. 아킬레스건염. 족저근막염이 생기는 것은 물론 발바닥의 아치가 무너지거나 무릎에 퇴행성관절이 일찍 생길 수도 있다.

뱃살을 줄이는 데도 빠르게 달리기보다 걷기가 유효하다. 문제는 지방과 탄수화물 소모 비율이 다르다는 것. 예컨대 달리기를 하면 지방보다 탄수화물 소모량이 많지만 걷게 되면 지방을 에너지로 더 많이 활용한다.

-SNS커뮤니티 글 편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html
kolaswqetsrq 11.02 07:37
피곤하고 힘이 없는 뜻밖의 이유 5가지

피곤하고 힘이 없는 뜻밖의 이유 5가지

1. 정크푸드를 너무 많이 먹는다

정크푸드는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식품 등과 같이 열량은 높은데 비해 필수 영양소가 부족한 식품을 말한다. 특히 당분이 많이 든 정크푸드는 에너지를 금세 올리는 것 같지 결국에는 사람을 축 처지게 만든다.

2.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체내 수분이 부족하면 피로감이 생긴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당분이 들어간 음료수보다는 물 한잔이 활력을 북돋울 수 있다. 입 안에 습기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물을 자주 마셔야 한다. 소변 색깔이 너무 진한 노란색이면 물을 더 마실 필요가 있다.

3. 비타민B가 부족하다

몸속 미토콘드리아가 포도당을 에너지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비타민B가 필요하다. 비타민B군은 모두 물에 녹는 수용성 비타민으로, 과도한 양을 섭취한다 하더라도 소변을 통해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심각한 부작용은 없다. 대신 몸에 잘 축적되지 않기 때문에 매일 일정량을 복용해야 한다. 비타민B는 녹색 채소와 곡류에도 포함돼 있지만, 주로 동물성 식품에 많이 들어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식으로부터 비타민B를 충분히 얻지 못한다. 따라서 보충제 등을 섭취할 필요도 있다.

4. 몸속 호르몬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활력을 주고 감정에 관여하는 수많은 호르몬이 있다. 호르몬 분비는 뇌의 시상하부와 뇌하수체가 담당한다. 하지만 두 곳에 문제가 생기면 갑상샘과 부신의 기능이 느려진다. 호르몬 분비 기관에 이상이 있는지 진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5. 인슐린 저항성 상태에 있다

인슐린 저항성은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져 세포가 포도당을 효과적으로 연소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인슐린 저항성은 당뇨병의 원인 중 하나다. 인슐린 저항성이 있는 사람은 만성 피로와 식곤증에 시달릴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_2.html
kolaswqetsrq 11.02 07:38
편두통 발작을 야기할 수 있는 요소들

편두통 발작을 야기할 수 있는 요소들

많은 경우 편두통을 유발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하는데만 몇 년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합니다. 편두통이 발생하는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편두통을 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식품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은 우리 몸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건강한 음식은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몸을 약화시켜 편두통 발작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1) 감귤류

오렌지와 레몬과 같은 감귤류 과일에는 체내 단백질 분해할 때 생성되는 티라민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티라민은 민감한 사람들에게 편두통 발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2) 커피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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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차에 함유된 카페인은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입니다. 일부 편두통 환자에게 카페인은 편두통을 예방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커피를 주기적으로 마시는 사람의 경우 평소보다 적은 양의 커피나 차를 마시면 편두통 발작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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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치즈

치즈에는 히스타민과 티라민이 들어 있는데요, 신체에 염증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편두통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입니다. 일반적으로 편두통 환자들은 장기간 숙성된 치즈보다 신선한 치즈를 섭취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4) 육류

슬라이스 햄과 같은 가공육의 섭취는 편두통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가공육 제품에 높은 함량의 질산염을 첨가하기 때문입니다.

2. 생활습관의 변화

인간에게 습관이란 굉장히 중요합니다. 생활습관의 변화는 신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1) 수면

불충분한 수면 또는 수면 시간의 변화는 편두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중과는 달리 적은 시간의 수면을 취하거나 평소와는 다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주말에 편두통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2) 끼니 거르기

편두통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혈당 수치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데요, 끼니를 거를 경우 편두통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은 포도당 수치가 너무 낮을 경우 편두통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3) 스트레스

편두통 환자들에게 발생하는 전형적으로 현상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기가 지난 후 다시 평소 생활로 돌아왔을 때 편두통 발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럴 때 편두통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체내에서 방출되는 물질이 감소하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3. 외부 요인

편두통은 외부 요인들로 인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사실 외부 요소의 영향은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외부 원인은 항상 막을 수는 없겠지만 알아두고 있으면 최소한 어느 정도 대비는 가능합니다.

1) 날씨

날씨가 편두통 발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환자들의 케이스에서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는 현상입니다. 일부 환자들은 폭염에 편두통을 겪기도 하고, 어떤 환자들은 비가 올 때 편두통을 겪는다고 합니다.

2) 감각의 자극

건설 현장의 시끄러운 소음, 영화관의 밝은 조명 또는 동료가 과하게 뿌린 향수 등.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요소들인데요, 의사들에 따르면 감각 자극이 편두통 발작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3) 신체 활동

운동 후 편두통 발작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사들에 따르면 이는 뇌에서 풍부하게 방출되는 화학 물질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운동을 막 시작한 초보자들에게 많이 나타납니다.

4. 신체적 영향

외부 요소뿐만 아니라 신체 내부 요소의 영향으로도 편두통 발작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1) 호르몬의 변화

여성의 몸은 삶의 여러 단계에서 다양한 호르몬의 변화를 겪습니다. 생리, 임신 또는 피임약 복용 등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는 편두통을 유발하거나 편두통 역치를 낮추어 다른 유발 요인에 더 민감하게 만듭니다.

2) 근육 경직

의사들은 목 근육의 경직이 편두통을 유발하는 원인인지, 증상인지 또는 편두통 발작의 결과인지에 대해 많은 논의를 나누고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다수의 편두통 환자가 목 통증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편두통 발작의 원인은 다양하며 무엇보다도 사람에 따라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편두통의 원인을 파악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편두통을 자주 유발하는 것에 대해 꾸준히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측 가능한 편두통 발작에 대비하거나 예방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6.html
kolaswqetsrq 11.02 07:39
■ 우리말 나들이 9편

■ 우리말 나들이 9편

1. 안성맞춤

“그 옷은 너에게 안성맞춤이다”에서 ‘안성맞춤’은 ‘안성’과 ‘맞춤’이라는 단어가 결합된 것이다. ‘안성’은 경기도에 있는 지명 ‘安城(안성)’이며, ‘맞춤’은 ‘맞추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예전의 ‘안성’은 대구, 전주 지역과 더불어 큰 장(場)이 서던 상업의 요충지였다. 안성 장에는 삼남(三南)에서 몰려드는 온갖 물산(物産)이 가득해, 서울의 장보다 질 좋은 물건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안성 장에서 팔리는 질 좋은 물건에는 다른 지역에서 들어온 것도 있었고, 이 지역에서 직접 제작한 것도 있었다. ‘안성’을 대표하는 것이 맞춤 유기(鍮器)였다. ‘유기’를 만들던 곳이 안성만은 아니었지만 안성의 ‘유기’는 튼튼하고 질 좋기로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안성’의 ‘유기’는 장에 내다 팔기 위해 대량으로 만드는 ‘장내기 유기’와 주문에 의해 만드는 ‘맞춤 유기’의 두 종류가 있었다. ‘안성맞춤’은 바로 ‘맞춤 유기’와 관련해서 생긴 말이다. 보통의 집안에서는 장날에 살 수 있는 ‘장내기 유기’를 사서 썼지만, 행세깨나 하는 집안에서는 직접 안성 유기점에 주문해서 ‘맞춤 유기’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장내기 유기’도 품질이 우수한데, 직접 맞춘 유기는 얼마나 품질이 뛰어났겠는가? 안성에 직접 주문하여 만든 유기가 주문자의 마음에 꼭 들 정도로 아주 훌륭했기 때문에 ‘안성 맞춤 유기’라고 하면 ‘아주 품질이 좋은 유기’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안성’ 하면 ‘유기’가 연상되므로 굳이 ‘안성 맞춤 유기’라 하지 않고 ‘유기’를 생략한 채 ‘안성 맞춤’이라고만 해도 ‘안성 맞춤 유기’와 같은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안성 맞춤’이라는 표현은 어느 시기부터인지는 몰라도 한 단어처럼 굳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유기’와는 관계없이 ‘안성맞춤’은 아주 잘 만든 ‘고품질의 물건’이라는 구체적 의미에서 ‘물건이 좋아 마음에 딱 들어맞음’ 또는 ‘경우나 상황에 잘 어울림’이라는 추상적 의미로까지 발전하였다.

2. 동가홍상(同價紅裳: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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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의홍상(綠衣紅裳:녹색치마에 다홍치마)은 과거 시집가기 전의 처녀가 입었던 옷 색깔에 근거를 두고 있고, 상징적으로는 ‘처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홍상(紅裳)의 반대말인 청상(靑孀)은 젊은 과부를 일컫는 말이고, 청상(靑裳)으로 다른 한자를 쓸 때는 기생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라는 말은 같은 값이면 과부나 유부녀가 아닌 처녀가 좋다는 뜻으로, 같은 값이면 예쁘고 좋은 물건을 선택한다 는 의미가 담긴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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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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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9_2.html
kolaswqetsrq 11.02 07:40
■ 사약賜藥을 받아라

■ 사약(賜藥)을 받아라

사약(賜藥)은 옛날부터 사용되어 왔으나 형전(刑典)에 인정된 제도는 아니었다. 형전에는 교수(絞首)·참수(斬首)만을 사형제도로 명시하고 있다. 왕족 또는 사대부들은 그들의 신분을 참작하여 교살시키는 대신에 사약을 내렸다. 참수형(머리를 벰), 요참형(허리를 자름), 능지처사형(사지를 찢어죽임) 보다 죽은 뒤의 신체가 온전한 상태로 남을 수 있으므로 가장 가볍고 온정(?)을 베푼 형벌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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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약(賜藥)의 사 는 죽을 사(死) 가 아니라 내릴 사(賜) 이다. 글자 그대로 ‘임금이 내리는 약’이라는 뜻인데, 영양제는 아닐 터이니 마시면 죽을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먹는 약이다. 일단 죄인에게 사약(賜藥)을 내리라는 왕의 명이 떨어지면 의금부(義禁府:중죄인을 다루는 기관)에서 금부도사(禁府都事:의금부의 수장)가 내의원을 찾아가 사약(賜藥)을 부탁하고 수령하게 된다. 사약을 만드는 내의원의 제조법은 극비사항이었기 때문에 처방(處方)전이 전해 오지 않아, 그 제조방법이나 재료가 확실치 않고 의견이 분분하나, 대체로 혈관확장제(血管擴張劑)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중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짐독(鴆毒)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비소(砒素)를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그밖에 금·수은을 먹이기도 하였고 생금(生金), 생청(生淸), 부자(附子), 게의 알(蟹卵) 등을 합제(合劑)하여 쓰기도 하였다. 주로 비상(砒霜)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명확한 문헌자료를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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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부자(附子) 종류에 속하는 초오(草烏: 미나리아제비과)가 많이 야생하고 있는데, 이것을 날것으로 또는 끓여서 먹으면 위장 안에서 점막출혈증상이 심하게 일어나 토혈을 하면서 생명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구하기 힘든 것을 사용하기보다는 비상이나 초오를 사약의 재료로 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흔히 사극에서 사약을 마신 죄인이 바로 피를 토하고 죽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설정된 장면으로 보인다. 금부도사는 사약(賜藥)을 받을 죄인의 집에 도착하면 사약(賜藥)의 약효가 잘 발휘되도록 죄인의 방에 불부터 땠다. 죄인은 사약 그릇을 상 위에 정중하게 놓고 왕명을 받드는 예의를 갖춘 뒤 임금이 있는 궁궐 쪽을 향해 4배를 하고 약을 받아 마셨다. 약을 마신 죄인을 뜨거워진 방안에 가두어 두면 약효가 빨리 돌아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나절을 고통스럽게 괴로워하다가 죽어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약효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사약(賜藥)을 마시고도 멀쩡한 사람들이 제법 있었던 모양이었다. 쉽게 얘기해서 약빨이 안 받는 체질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조선 중기 명종 때 사약을 받은 임형수라는 사람은 사약 16잔을 마시고 독주를 2잔을 더 마셨는데도 죽지 않았다. 죄인이 사약(賜藥)을 마셨는데도 눈을 멀뚱멀뚱 뜨고 빨리 죽지 않고 있으면, 금부도사는 데리고 온 나장들을 시켜 죄인의 목을 졸라 죽였다. 조선 후기 숙종 때 노론의 영수 송시열도 평소에 애들 오줌을 먹어 건강을 지킨 탓인지, 사약(賜藥)을 먹었는데도 멀쩡했다고 한다. 초조해진 금부도사는 결국 송시열의 입천장을 손톱으로 긁어 피를 낸 후 사약(賜藥)을 세 대접이나 더 마시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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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41
■ 제안대군 1편

■ 제안대군 1편

세조 12년(1466년) 당시 세자이던 아버지 예종과 그의 후궁이던 소훈(昭訓) 한씨(안순왕후) 사이에서 출생하였고, 이름은 현(琄)이다. 소훈 한씨는 예종의 첫 번째 세자빈이던 장순왕후 한씨(章順王后 韓氏:한명회의 딸)가 인성대군 이분(李糞)을 낳고 산후병으로 죽은 뒤 입궐한 세자의 후궁이었으나, 아들을 낳았기에 빈(嬪)의 예로 대우받았다. 이복형인 인성대군이 세조 9년(1463년) 3세의 나이로 죽자, 예종 즉위년(1468년)에 원자(元子:제안군)로 책봉되었다. 4세 때 부왕(父王)인 예종이 죽음으로써 왕위계승 제1후보가 되었으나, 할머니인 정희왕후(세조의 비)가 아직 어리고 총명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반대하여 왕위계승에서 밀려나고, 대신에 죽은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산군(성종) 이혈이 예종을 이어 왕위에 즉위하였다. 정희왕후는 왕위계승에서 밀린 왕족 달리기의 일환으로 성종 1년(1470년)에 제안군을 제안대군(齊安大君)으로 봉했다.

『패관잡기(稗官雜記)』에는 그를 ‘성품이 어리석다’ 고도 하는 한편, ‘진실로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몸을 보전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감춘 것’이라는 각기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종합해서 추론해 보면, 왕위계승을 둘러싼 왕실세력과 훈신(勳臣)세력의 각축 속에서 희생된 인물이었고, 정치를 멀리하고 음악에 묻혀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안위(安危)를 보전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듯하다.

제안대군은 여자를 병적으로 싫어하고 멀리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결혼생활은 아주 특이하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자 시절부터 제안대군은 늘 말하기를 “여자는 더러워서 가까이 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왕자가 된 제안대군은 10살이 되던 해에 김씨 부인과 혼인하여 궁을 나갔다. 그런데 15세가 되어 합방을 치러야 하는 데 부인과 마주 앉는 것조차 싫어했고, 김씨 부인을 미워했다. 당시 제안대군은 누군가의 부인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의 부인은 언제나 죽을려나?” 라며 몹시 부러워했고, 결국 이혼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제안대군은 곧바로 박씨 부인과 재혼을 했는데, 억지로 재혼한 제안대군은 후처도 아주 미워했다. 재혼 후에는 또 다시 보는 사람마다 자신의 부인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런 사실로 보면 제안대군은 전처나 후처는 물론이고 여자 그 자체를 싫어하고, 관심이 없었던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그럼에도 두 번이나 혼인을 한 것은 아마도 왕실 어른들의 성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일은 제안대군이 후처와 이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처와 재결합했다는 사실이다. 여자에 무관심한 제안대군이 전처를 사랑해서 재결합한 것은 물론 아니었을 것이다. 후처에 대한 무관심과 미움 때문이었다. 그처럼 여자를 싫어한 제안대군이 두 명의 부인을 거느리게 된 것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임에 틀림없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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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41
손톱 거스러미 제대로 없애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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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거스러미 제대로 없애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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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지면 거스러미가 생기기 쉽습니다. 보기에 흉할 뿐만 아니라, 아프기도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이 짜증나는 피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상식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 거스러미가 뭐지?

거스러미는 손톱 옆에 살갗이 일어나 얇게 갈라지고 터지는 부분을 일컫습니다. 주로 큐티클 위나 옆에서 쓸려 올라온 작은 피부 조각이죠. 한 번 생기기라도 하면 정말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옷을 입을 때마다 여기저기에 걸리기도 하고, 더 찢어지기라도 하면 큰 고통을 안겨주죠. 손톱 거스러미는 정확히 손톱에 나는 건 아니고, 표면에서 떨어져 나온 피부 조각입니다. 그래도 전체가 떨어지지 않고 끄트머리는 손가락에 붙어있습니다.

- 거스러미가 생기는 원인은?

손톱이 자라면서 큐티클이 일부 파열되면 거스러미가 생길 수 있습니다. 만약 큐티클이 손톱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바깥쪽으로 세게 당겨지게 되고, 각질이 찢어지면서 거스러미가 튀어나오게 되는 거죠. 또 다른 이유로는 큐티클이 너무 건조할 때 거스러미가 생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난방열은 피부를 건조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특히 큐티클이 바싹 마르고, 피부 조각이 찢어지게 됩니다. 너무 자주 손을 씻어도 거스러미가 생깁니다. 큐티클이 부드러워지면서 잘 찢어지는 성질을 갖게 되죠. 남들보다 손을 더 빈번히 소독하거나 세제를 많이 이용하는 직업을 가지신 분들의 손에서 거스러미를 발견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이밖에도 심리학적 요인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사람들은 곧잘 손톱을 물어뜯죠. 이는 거스러미의 원인이 되며, 손톱을 너무 자주 뜯으면 염증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있습니다.

- 거스러미를 없애는 방법은?

손톱 거스러미가 생겼다고 그냥 쥐어뜯어내시면 안 됩니다. 엄청나게 아픈 건 물론이고, 큐티클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찢어지거나 염증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거스러미가 거슬리신다면 큐티클 니퍼를 사용하세요. 큰 고통 없이 거스러미를 아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니퍼가 없으시다면 뾰족한 손톱 가위를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손을 따뜻한 물에 담가두시거나, 샤워/목욕을 하신 뒤에 거스러미를 제거하도록 합니다. 네일 밤이나 큐티클 연화제 등의 제품을 따로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피부가 부드럽고 유연해지면 제거하기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여러분의 손과 사용하는 도구가 깨끗한지 다시 한번 확인하시는 것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만약 더럽다면 상처 안으로 박테리아가 들어가 염증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만약 특별히 제거하기가 싫으시다면, 거스러미 위에 반창고를 붙이고 자라나기까지 기다리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 거스러미를 예방하는 방법은?

향후 거스러미가 생기는 걸 방지하고 싶으시다면 큐티클 푸셔로 큐티클을 뒤로 쭉 밀어두는 게 어떤가요? 이렇게 하면 큐티클이 터질 염려가 줄어듭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핸드크림을 자주 바르고, 손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외출할 땐 장갑을 꼭 착용하도록 합니다. 청소하거나 설거지, 빨래를 할 때에는 무조건 장갑을 착용하거나 화학 물질이 들어가지 않은 세제를 사용하도록 합니다. 식초와 레몬즙을 섞으면 세제 대용으로 쓸 수 있습니다. 손톱을 자주 물어뜯는 분이라면 씁쓸한 향이 나는 크림이나 팅크를 발라도 좋고, 약국에서 광택제를 사다가 발라보시기도 추천드립니다. 만약 스트레스와 걱정 때문에 손톱을 자주 뜯게 되신다면, 마음을 최대한 진정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셔도 좋겠죠.

절대로 거스러미를 뜯어내거나 입으로 끊어내면 안 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5.html
kolaswqetsrq 11.02 07:42
뱃살 감량을 위해 피해야 할 음식

뱃살 감량을 위해 피해야 할 음식

▶정제된 탄수화물

과자/빵/케이크 등 가공된 탄수화물은 혈당을 급격히 상승시킨다. 이때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이 포도당을 글리코겐으로 변환해 지방세포로 저장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인슐린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면서 더 많은 인슐린을 분비. 결국 뱃살이 늘어나게 된다.

▶포화 지방·트랜스 지방

육류나 유제품에 풍부한 포화지방, 마가린과 같은 트랜스지방은 혈관 내 노폐물 축적을 부추겨 혈액순환을 방해하여 지방 대사를 방해한다. 단, 무작정 지방 섭취를 줄이다보면 상대적으로 탄수화물 섭취량이 많아서 중성지방 수치가 증가하면서 내장지방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포화지방은 전체 칼로리의 7% 이내로 섭취하도록 하자.

▶짠 음식

우리 몸은 하루 5g 이상 소금을 섭취하면 조직 내에 수분을 축적시켜 염분을 희석하려고 한다. 이는 뱃살 및 부종의 원인이 되며 셀룰라이트까지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5.html
kolaswqetsrq 11.02 07:43
■ 쥐와 관련된 속담이나 비유

■ 쥐와 관련된 속담이나 비유

1.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2.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운다.

3. 쥐구멍에 홍살문 세우겠다.

4. 쥐구멍으로 소 몰려 한다.

5. 쥐꼬리는 송곳집으로나 쓰지.

6. 쥐뿔도 모른다.

7.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8. 가진 거라곤 쥐뿔도 없다.

9. 쥐도 막다른 길로 몰면 고양이를 문다.

10. 고양이 앞에 쥐걸음.

11. 독 안에 든 쥐.

12. 쥐 잡듯 한다.

13. 쥐도 도망갈 구멍을 보고 몰아라.

14. 쥐 꼬리만한 월급.

15. 소 뒷걸음치다가 쥐잡기.

16. 쥐가 뜯어먹은 것 같다.

17. 쥐 소금 나르듯 하다.

18. 물에 빠진 생쥐 같다.

19. 쥐구멍을 찾는다.

20. 코끼리는 생쥐가 제일 무섭다.

21. 쥐가 내리는 배는 타지를 말라.

22. 쥐 죽은 듯 조용하다.

23. 泰山鳴動 鼠一匹(태산명동 서일필)

24. 튼튼한 제방도 작은 쥐구멍으로부터 무너진다.

25. 집안이 결단 나려면 생쥐가 춤을 춘다.

26. 새도 염불 하고, 쥐도 방귀 뀐다.

27. 새앙쥐 입가심 할 것도 없다.

28. 개구멍에 쥐방울 드나들 듯 한다.

29. 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30. 주린 고양이가 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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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44
■ 성종의 여인들 공혜왕후 1편

■ 성종의 여인들 공혜왕후 1편

성종(成宗)은 이름 그대로 조선의 유교적 질서와 통치체계를 완성한 왕이었다. 성종은 학문이 매우 깊고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간, 조선역사상 성군(聖君)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성종은 열심히 일한 만큼 놀기도 좋아하여, 주연(酒宴)과 여색(女色)을 즐겼다. 그는 성품이 담대하고 비교적 키가 작았던 다른 왕들에 비해 기골이 장대하고 키가 컸다고 한다. (물론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165CM 내외?) 7년간의 수렴청정을 거치면서 임금이 되는 공부가 어느 정도 끝나자 성종은 사냥과 술, 여자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름 그대로 성(性)종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성종과 가까운 종실들이나 측근들을 대할 때면 반드시 작은 술잔치를 베풀어 기생과 음악이 따르게 했다. 그런 면에서 연산군은 아버지 성(性)종의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받았던 것은 아닐까. "연산군이 연락에 즐겨 빠진 것은 성종 때부터 귀와 눈에 배었으므로 그렇게 된 것이리라." 라고 《연려실기술》에 나올 정도였다.

성종은 3명의 왕후와 10명의 후궁을 두었고, 16명의 왕자와 12명의 공주와 옹주를 두었다. 성종의 첫 번째 왕비 공혜왕후 한씨는 한명회의 넷째 딸로, 1467년 12세의 나이로 한살 연하의 잘산군(자산군)과 혼인했다. <세조실록> 1467년(세조13년) 1월12일 기록을 보면 『잘산군이 영의정 한명회의 딸을 영응대군 이염(李琰)의 집에서 친영(親迎)하였다』 고 적혀 있다. 물론 이때만 해도 자신이 왕비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유순한 성품에 효심도 깊어 시조부인 세조한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세조께서 우리 주상 전하의 배필을 가리실 때에 뜻에 맞을 만한 사람이 없었는데, 왕후께서 덕용(德容)을 지녔음을 알고 불러 보고서 혼인을 정하셨다』 는 기록은 이를 증명해 준다. 2년 후 그녀에게는 큰 행운이 찾아왔다. 예종이 죽은 뒤, 제안대군과 월산대군에 이어 왕위 계승 서열 3위에 있던 남편 잘산군이 왕위에 올라 성종이 된 것이다. 성종은 일찍부터 왕의 재목으로 부족함이 없었으나, 실제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한명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셋째딸 장순왕후가 예종의 세자빈의 지위에서 사망한 만큼, 왕의 장인으로서의 권력을 맘껏 행사하지 못했던 한명회로서는 공혜왕후가 왕비가 됨으로써 그 한(恨)을 풀게 되었다. 천안군부인(天安郡夫人)으로 불리던 공혜왕후는 성종의 즉위와 동시에 정식으로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녀의 품성에 대해서는 『명문가 출신이면서도 검소한 덕이 일찍부터 나타나고, 유순하고 고요한 성품을 타고났다』 고 <성종실록>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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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종의 즉위 1편

■ 성종의 즉위 1편

어느 왕조이던 성종(成宗)이라는 묘호(廟號)는 큰 의미가 있다. 건국 초 새 왕조의 불안을 잠재우고 정치적 제도적으로 안정을 찾고, 새 왕조를 든든한 반석 위에 올려 완성시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성종시대는 조선이 개국하고 80년 정도 지난 시점으로, 조선 역사상 보기 드문 태평성대와 평화가 찾아 왔다. 외침도 없고, 큰 내란도 없었다. 성종 중반부터 연산군 초기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고 백성들도 살기 좋은 시대였다고 한다.

조선 9대 왕 성종은 1457년(세조3년) 세조의 큰아들 덕종(의경세자)과 한확의 딸 소혜왕후(후에 인수대비)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혈(娎)이며, 1461년(세조7년) 자산군(者山君)에 봉해졌다. 사실 성종은 왕위계승 서열에서는 애당초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성종의 친부(親父)인 세조의 큰아들 의경세자가 세자 시절 일찍 죽지 않고 왕위에 올랐다면, 성종은 왕위계승 서열이 2위였다. 그러나 의경세자가 갑자기 죽고, 세조의 차남인 의경세자의 동생이 예종으로 즉위하면서 성종은 왕위로부터 더 멀어져 갔다.

하지만, 예종은 왕위에 오른 지 1년 2개월 만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때 예종의 나이 20세. 예종은 훈신세력과 종친세력을 잘 저울질하여 자신에게 유리하게 써 먹었어야 했지만, 아직 어리고 정치적 경험이 미숙한 탓인지, 이 두 세력을 모두 적으로 만들고 말았다. 예종은 친모인 정희왕후(세조의 부인)마저 적으로 돌렸다는 설이 있다.

정희왕후는 예종에게 정치적인 부탁을 여러 번 했는데, 예종은 그때마다 꼬박꼬박 정희왕후의 부탁이 있었음을 신하들에게 밝혔다. 신하들 입장에서는 대비가 자주 부당하게 정사에 관여한다고 비난할 일이었다. 이런 일들이 공론화 되면서 정희왕후는 공개적으로 거듭 망신을 당하면서 아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위와 같은 모든 상황은 당시 예종독살설이 나올 만 한 근거가 되었다. 예종이 구공신을 공격하고 정희왕후를 무시하자 이들이 합작하여 예종을 제거했을 수도 있다. 실록에도 예종은 죽기 직전 까지 특별히 아팠다는 언급이 없다. 말 그대로 급서(急逝)였다. 예종의 시신을 염습할 때 시신이 변색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는 겨울이었으니 변색되었다는 것은 약물 중독을 뜻한다. 그런데 시신의 변색에 관해 정희왕후는 예종이 치료를 권할 때 잘 받지 않아서라고 둘러대며 넘어 가 버리고 만다. 예종 독살설은 조선 왕의 수많은 독살설과 마찬 가지로 단지 추론일 뿐이다.

예종의 급서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모인 공신들과 정희왕후는 태연했다고 한다. 특히 예종의 친모인 정희왕후는 자기 아들이 죽었는데도 누구보다도 침착하였으며, 바로 그 날 임금으로 누굴 정할 지를 물었다. 정희황후는 예종 다음 임금으로 뜬금없이 성종(자을산군)을 추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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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46
■ 예종의 여인들 3편

■ 예종의 여인들 3편

왕실의 최고 어른이던 정희왕후 윤씨(세조의 부인)는 표면적으로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이 아직 너무 어리다(4살)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당시 권력의 최고 실세인 한명회의 사위 자산군을 예종의 뒤를 잇게 하려는 의지가 강했을 것이다.

1471년부터 정희왕후 윤씨(세조의 부인)가 사망하는 1483년까지 왕실에는 왕대비인 정희왕후와 2명의 대비(예종 비 안순대비, 성종 母 인수대비)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정희왕후가 왕대비로서 왕실 최고 서열인 것은 당연했지만, 서열 2위 자리를 두고 안순왕후와 현왕(現王) 성종의 생모인 인수대비 간에 세력다툼이 일어났다. 상식적으로는 실제 왕을 역임했던 예종 비 안순왕후의 서열이 더 높아야 할 것 같았지만, 왕대비의 공식 발표로 현왕(現王)인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더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1472년 2월20일 <성종실록>에는 『안순왕후의 서차(序次)가 일찍이 인수왕후의 위에 있었으나, 세조가 항시 인수왕비에게 명하여 예종을 보호하게 하고 시양(侍養)이라고 일컬었으며, 또 장유(長幼)의 차례가 있으니, 그 위차(位次)는 마땅히 안순왕후의 위에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안순왕후보다는 인수왕후의 서열이 높음을 공식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아들 제안대군도 왕이 되지 못한 상황에서, 안순왕후는 실제 왕비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인수왕비보다도 왕실 서열에서 밀리는 아픔을 맛본 셈이다.

안순왕후는 예종과의 사이에서 제안대군과 현숙공주를 낳았는데, 현숙공주는 연산군 때 최고의 간신 반열에 오르는 임사홍의 아들 임광재와 혼인했다. 임광재는 부마(駙馬)의 신분으로 첩을 두었다는 죄로 유배에 처해지기도 했으며, 현숙공주와는 별거생활을 했다. 짧은 왕비생활과, 그 이후 대비의 삶도 별로 순탄하지 못했던 안순왕후는 1498년(연산군 4년) 12월23일 창경궁에서 승하했다. 왕비의 무덤은 이미 조성돼 있던 예종의 창릉(昌陵) 옆에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정자각을 사이에 두고 양쪽 언덕에 능이 조성)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생전에는 남편과 짧은 시간밖에 함께 하지 못했던 안순왕후였지만, 사후에는 예종과 영원히 함께하게 됐다.

하지만, 창릉은 화마(火魔)가 씌었는지 유난히 화재를 많이 겪었다. 인조 때 1년의 시간을 두고 2번(1625년, 1626년)이나 봉분이 타는 화재를 겪기도 했고, 영조 때에는 정자각이 불에 타서 정자각을 재건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종 때인 1896년과 1901년에도 봉분이 불에 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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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7:46
■ 예종의 여인들 1편

■ 예종의 여인들 1편

조선의 제8대 임금 예종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차남으로 왕자시절의 군호(君號)는 해양대군이었다. 단종을 제외하면 조선 왕조 27명의 역대 임금 중 가장 단명한 불운한 왕이기도 하다. 원래 그는 왕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맏형인 의경세자와의 나이차가 워낙 많은데다가(12살) 의경세자는 여러모로 유력한 후계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경세자가 만 19세의 나이로 급사해버렸다. 단종을 죽인 것에 대한 단종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의 저주란 야사도 있지만, 실제로는 의경세자가 단종보다 먼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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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로써 해양대군은 세자가 되었고, 세조가 죽기 하루 전에 선위를 받아 임금이 되었다. 세자 시절엔 얌전하고 똑똑해서 신하들이 문종‘ 같은 군주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몸이 안 좋았고 성년이 되기 전인 19세에 즉위했기 때문에 어머니인 정희왕후(세조부인)가 예종과 동석하여 수렴청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예종의 나이는 거의 성년에 가까웠기 때문에 수렴청정은 곧 거두어졌다. 실제적인 조선 최초의 수렴청정은 그 다음 성종 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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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1년 세자이던 예종은 11세의 나이로 16세의 장순왕후(章順王后·1445~1461년) 한씨를 세자빈으로 맞이했다. 장순왕후 한씨는 유명한 한명회의 셋째 딸이다. 권력의 단맛을 본 한명회가 세조의 둘째 아들인 해양대군에게 셋째 딸을 시집보낸 것이다. 혼인한 그 다음해에 세자빈은 회임(懷妊)하여 아들 인성대군을 낳았으나 한달만에 산후병으로 사망하였고, 인성대군 또한 얼마 살지 못하고 3세의 나이에 풍질(風疾:신경의 고장으로 생기는 병의 총칭)로 죽었다. 인성대군이 태어난 해가 1461년이니 예종의 나이 12세 때 이미 아버지가 된 것이다.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아들을 일찍 본 임금이기도 하다. 장순왕후 한씨는 남편이 왕이 되기도 전인 꽃다운 나이 열아홉에 죽었으므로, 남편이 왕이 되고 나서 왕후로 추존되었다.

한씨가 죽자 세자빈 자리가 공석(空席)이 되었다. 왕실에서는 한백륜의 딸을 세자궁에 들이고 종5품 후궁인 소훈(昭訓)에 오르게 했으니, 이 인물이 바로 훗날 예종의 비가 되는 안순왕후(安順王后·1445~1499년) 한씨이다. 세자빈으로 바로 선발하지 않고, 우선 후궁으로 들인 것은 아버지 문종시절 세자빈이 폐출된 후 후궁 출신인 승휘 권씨를 승격시켜 세자빈으로 삼은 관행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세자시절 예종에게는 이미 숙의 최씨와 이씨가 있었는데도, 한백륜의 딸인 소훈 한씨가 세자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평소의 행실이 단정함은 물론이고, 아들 제안대군(齊安大君)을 낳은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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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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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1_34.html
kolaswqetsrq 11.02 07:47
버섯, 물에 씻으면 영양 버리는 것

버섯, 물에 씻으면 영양 버리는 것

좋은 식품이어도 잘못된 방법으로 조리하면 영양 성분을 잃을 수 있다. 주의해야 할 조리법을 알아봤다.

▶ 버섯 씻으면 안 돼

버섯에는 항암 성분이 함유돼 있는데, 이는 물에 쉽게 녹는다. 물과 닿으면 영양뿐 아니라 맛도 떨어진다. 버섯은 따로 씻지 않고 요리해도 되지만, 찝찝하다면 물에 적신 행주를 이용해 이물질이 묻어 있는 부위만 살살 닦아 털어내는 게 좋다. 말린 표고버섯 역시 물에 너무 오래 불리지 않도록 한다.

▶ 감자는 통으로 쪄야 좋아

감자에는 비타민C가 많아 피로 해소와 면역력 증진에 좋다. 감자에는 전분이 들어 있어서 가열해도 비타민C 파괴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만, 잘게 썰어 삶으면 비타민C가 물에 녹아 손실될 가능성이 커진다. 감자는 통으로 찌는 게 좋다.

▶ 산나물 데칠 땐 맹물에

산나물을 데칠 때 물에 소금을 넣는 경우가 있다. 소금물은 염기성인데, 산나물에 풍부한 비타민은 염기성에 약하다. 소금을 넣은 물에 산나물을 데치면 나물 속 비타민이 파괴된다. 산나물 속 영양소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소금을 넣지 않은 물에 짧은 시간만 데치도록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8.html
kolaswqetsrq 11.02 07:48
아침 식사로 피해야 할 음식

아침 식사로 피해야 할 음식

아침 식사는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와 에너지를 공급해 준다. 아침에 식사를 해야 포만감을 적당히 유지해 점심 때 폭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식단을 실천하면 오히려 좋지 않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설탕을 지나치게 섭취해 비만하게 되거나 영양 불균형이 일어나기 때문에 아침 메뉴로 적절하지 않은 8가지 음식을 제시한다.

1. 설탕이 많이 들어간 시리얼

단 맛이 나는 시리얼엔 설탕이 많이 들어있다. 한 시리얼 제품의 1회 제공량(30g)에는 설탕이 10g 가까이 들어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하루 설탕 권장량은 25g이다. 시리얼 1회 섭취만으로 하루 설탕 섭취 권장량의 절반을 먹는 셈이다. 또, 시리얼은 포만감도 오래가지 않는다. 정제된 밀가루에는 포만감을 지속하도록 하는 섬유질, 단백질 같은 영양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점심이 되기 전에 공복감을 느낀다.

2. 소시지

미국 영양사 록사나 에사니(Roxana Ehsani)는 "많은 사람들이 아침이나 브런치로 소시지를 먹지만, 영양가 있는 식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소시지는 나트륨이 높아 혈압을 높일 수 있고, 포화지방이 많아서 나쁜 콜레스테롤의 혈중 농도를 높일 수 있다"며 "소시지 같은 가공육은 만성질환과 암 발생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3. 정제된 밀가루로 만든 빵

미국 영양사 던 잭슨 블래트너(Dawn Jackson Blatner)는 "대부분의 통밀빵은 정제된 밀로 만든 것이 많기에 진짜 통밀빵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제된 밀로 만든 흰 빵을 먹으면 혈당 스파이크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혈당 스파이크는 식후 혈당이 급격히 치솟았다 급격히 내려가는 현상이다. 이로 인해 식후 급격한 피로감과 졸음을 유발할 수 있고, 이 증상이 반복되면 동맥경화와 심근경색까지 발생할 수 있다.

4. 가당 커피 음료

졸음을 쫓기 위해 아침에 커피를 찾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카페모카, 캐러멜 마키아토같이 당이 첨가된 커피는 피해야 한다. 미국 영양사 매기 미칼치크(Maggie Michalczyk)는 "대부분의 가당 커피는 열량과 당분이 높은 반면 다른 영양성분은 거의 없다"고 조언했다.

5. 과일 주스

과일주스에 많이 포함된 당분은 인슐린 저항성을 높인다. 체내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지면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돼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병, 당뇨 같은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에모리대·코넬대(Emory University · Cornell Medical College) 연구팀이 2003~2007년 평균 연령 64세 남녀 1만 344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하루 총 섭취 칼로리의 10% 이상을 과일주스가 포함된 가당 음료에서 얻은 사람은 5% 이하인 사람보다 관상동맥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44% 높았다. 또, 다른 여러 원인으로 조기 사망할 위험도 14% 높았다.

6. 머핀

머핀에는 포화지방과 설탕이 매우 많이 들어있다. 시중의 초코머핀 1개(84g)의 영양성분을 보면, 열량은 680kcal, 지방은 32g이다. 탄수화물은 88g인데 이중 설탕이 46g을 차지한다. 단순당인 설탕은 체내 흡수 속도가 빨라 혈당 스파이크를 일으키기 쉽다. 단순당은 소화가 빠르고 신체에서 빠르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머핀에 든 단백질은 10g밖에 안 된다. 단백질 함량이 낮으면 포만감이 지속되지 않아 과식의 위험성도 커진다.

7. 페이스트리

대부분 페이스트리는 정제된 곡물로 만들어진다. 게다가 당도와 지방 함량이 높은 특징이 있다. 한 제과사 제품을 보면 90g의 페이스트리 한 조각에 43g의 탄수화물과 13g의 지방이 포함돼 있다. 밀가루 반죽과 버터를 층층이 쌓아 모양을 만들어 굽는 방식으로 페이스트리를 만들기 때문에 지방이 많이 함유될 수밖에 없다.

8. 플레인 요구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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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인 요구르트라는 이름으로 판매해도 당분을 첨가한 제품이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당분이 첨가된 플레인 요구르트를 섭취하면, 같은 크기의 아이스크림을 섭취했을 때와 비슷한 양의 설탕을 먹게 된다. 시중의 두 제품을 비교해 보면 실제로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한 플레인 요구르트(150g)의 탄수화물 함량은 16g이고 설탕은 12g인데, 바닐라 아이스크림(100ml)의 탄수화물 함량은 11g, 설탕은 10g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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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아침 식사로 적절하지 않은 음식 8가지에 대해 알아봤다.

그렇다면 아침에 어떤 음식을 먹는 것이 좋을까?

✅ 달지 않은 시리얼

최근에는 당분이 적게 함유된 시리얼도 많이 출시되고 있다. 설탕으로 코팅된 시리얼 대신 당분이 적은 시리얼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또, 시리얼만 섭취하면 섬유질과 단백질이 부족해질 수 있다. 따라서 우유에 시리얼을 넣을 때 라즈베리나 딸기 등을 함께 넣어 여러 가지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도 좋다.

✅ 달걀과 닭가슴살

가공육인 소시지는 생각보다 단백질이 많이 함유돼 있지 않고, 포화 지방도 많다. 소시지 대신 계란 프라이나 견과류 버터, 닭가슴살 같은 고단백 식단을 추천한다.

✅ 통곡물 빵

하이닥 영양상담 박지성 영양사는 하이닥 Q&A에서 “탄수화물은 꼭 섭취해야 하는 에너지원이지만 그 종류가 중요하다”며 “가능한 한 정제되지 않은 통곡물, 신선한 채소, 과일로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머핀, 페이스트리 같이 정제된 밀가루로 만든 빵 대신 ‘진짜 통밀빵’을 식단에 포함하는 것이다. 통밀로 된 빵은 식이섬유와 비타민 B군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다. 때문에, 심혈관 질환을 비롯한 성인병의 사망률을 낮춰줄 수 있다.

✅ 당을 첨가하지 않은 커피, 과일 주스, 그릭 요구르트

단맛이 강한 커피, 과일 주스, 요구르트보단 설탕을 첨가하지 않은 그대로의 식품을 먹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아메리카노, 콜드브루, 과일 과육, 그릭 요구르트 등이다. 매일 아침 마시는 음료를 바꾸는 작은 변화가 건강한 하루를 만들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2.html
kolaswqetsrq 11.02 07:49
◇ 방귀 자꾸 뀌는 사람들의 특징

◇ 방귀 자꾸 뀌는 사람들의 특징

1. 배추과의 채소를 먹을 때

브로콜리, 케일, 방울 양배추, 양배추 등과 같은 배추과의 채소류는 방귀를 유발하는데, 이 채소류는 우리가 자체적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내장에 있는 박테리아가 소화를 시킨다. 이 과정에서 부산물로 가스가 발생한다.

2. 유당불내증이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유제품을 소화하지 못하는 유당불내증을 갖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유당 소화를 돕는 효소를 잃는다. 한 주 동안 치즈를 끊었다가 먹기 시작했을 때 지독한 방귀가 나온다면 당신은 유당불내증일 확률이 높다.

3. 음식 알레르기가 있을 때

글루텐에 민감한 사람들은 배가 부풀어 오르고 끊임없이 방귀를 뀌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 또 과일에 들어있는 천연 당분이 또 다른 가스 촉매제가 될 수 있다.

4. 인공 감미료를 먹을 때

당신이 칼로리가 없는 인공 감미료를 먹은 후 지독한 방귀를 뀐다면, 천연 설탕으로 바꿔라.

5. 스트레스를 받을 때

스트레스와 불안감으로 당신이 긴장했을 때, 배 끓는 소리를 포함한 다양한 신체적 증상 나타난다.

위장기관은 호르몬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성적 스트레스는 위장 문제를 일으키고 위산을 과다 분비시킨다.

6. 탄산음료를 마실 때

탄산수든 샴페인이든 탄산이 든 음료는 거품을 만드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더 많은 방귀를 만든다. 이산화탄소는 어떻게 해서든 당신의 몸에서 나오려고 한다.

7. 항생제를 복용할 때

항생제는 끔찍한 세균 감염을 해결하는 데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장내 박테리아에도 영향을 미친다. 항생제를 복용해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가스 생성과 설사를 유발하는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의 이상 성장이다.

8. 장내에 유익한 세균이 없을 때

보통 우리 몸에 이로운 균과 해로운 균이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식단에 변화가 있거나 염증이 생겼을 때는 그 균형이 깨질 수 있다. 이 경우 수많은 해로운 균은 부패가스를 만들며 당신이 냄새가 심한 방귀를 뀌게 한다.

9. 음식을 급하게 먹을 때

서둘러 음식물을 흡입하는 것은 당신이 많은 공기를 먹는 것을 의미한다.

위장기관은 기본적으로 입부터 항문까지 이어진 긴 튜브다. 따라서 공기가 많으면 가스 발생이 많아지게 된다.

10. 병이 있을 때

만성적인 가스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 크론병, 소아 지방변증이나 또 다른 감염 등이 원인일 수 있다. 이들 질병을 방치하면 증상은 더욱 악화되고 당신의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계속해서 흡수하지 못할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1.html
kolaswqetsrq 11.02 07:50
◇ 당뇨병 잡는 차茶

◇ 당뇨병 잡는 차(茶)

1. 메밀차

메밀차를 식후 때마다 섭취를 하게 되면, 당뇨병이나 동맥경화증의 훌륭한 예방제가 되어 성인병에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다이어트 및 간 기능개선 등에도 도움을 준다.

2. 연삼잎차

미나리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며, 당뇨병을 치유하는 약이라고 약초꾼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고 합니다.

3. 오죽잎차

혈행 개선 및 혈액정화작용을 해주며, 고혈압과 당뇨에도 놀라운 효능을 보입니다. 간의 해독작용을 하여 눈을 맑게 해주고 피로개선을 합니다. 소염작용 및 항균작용으로 여드름이나 아토피 등의 피부질환에도 도움을 주며, 식이섬유 와 각종 미네랄 등이 풍부하여 변비나 장 질환 등에도 좋습니다.

4. 오미자차

오미자는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떫은맛이 모두 나는 식품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특히나 남성에게 좋다는 열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혈당의 안정을 찾을 수 있고, 높은 혈당으로 인한 소갈증세를 해소할 수 있게 해줍니다.

5. 천마차

혈관질환, 고혈압이나 뇌졸중 등의 성인병 약재로 많이 사용됩니다.

6. 여주차

여주는 먹는 인슐린 이라 하여 당뇨병이 있는 이들에게 인기 있는 식품 중 한가지입니다. 여주의 씨와 열매에는 풍부한 카란틴 성분이 있으며, 카란틴 성분은 포도당이 연소되는 것을 도움으로써 체내에 당분이 재 흡수됨을 방지하여 체내의 안정된 혈당 상태를 만들어줍니다.

7. 뽕잎차

뽕잎은 탁해져 있는 혈액을 정화해주는 효능이 있으며,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와 같은 질환을 예방을 해줍니다.

8. 뚱딴지 꽃잎 차

뚱딴지 꽃잎은 이름도 요상하지만 돼지 감자의 꽃잎이라 합니다. 돼지감자의 놀라운 효능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는데, 밭에서 나는 천연인슐린이라 하며, 인슐린성분이 일반 감자보다도 70배 이상 함유되어 식품 중에는 단연 으뜸이라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1.html
kolaswqetsrq 11.02 07:51
◇ 화를 다스리는 음식 8가지

◇ 화를 다스리는 음식 8가지

많은 사람이 화(火)와 분노가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시적인 감정이 분노라면 화는 장기적이며 의식적으로 억제해 누적된 감정이다. 즉, 분노가 쌓여 화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화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운동과 생활습관, 식이요법으로 스트레스에 대응할 수 있는 저항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데, 그 중에서도 식이요법이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1. 청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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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혈압강하제 라고도 불리는 청국장은 화로 인한 가슴 답답함과 통증을 완화 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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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추

대추과 대추씨인 산조인은 체내 진정 작용을 도와 불면증이나 불안증, 우울증, 노이로제, 히스테리 해소와 함께 긴장으로 지친 심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3. 우엉

우엉에는 이눌린이라는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혈당 상승을 완화 시켜주고 가슴이 답답할 때 도움을 준다.

4. 감자

감자에 풍부한GABA는 아미노산 신경전달 물질로 혈압 상승 억제 효과가 있으며, 감자에는 또한 비타민 C와 비타민 B1이 다량 함유돼 불안하고 초조한 심신 안정에 도움을 준다.

5. 호두

사람의 뇌와 비슷하게 생겨 머리가 좋아진다고 알려진 호두. 호두는 단순히 뇌를 맑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리놀산과 리놀레인산 등 필수 지방산이 신경전달 물질 생성에 도움을 주며 스테레스, 초조, 불안, 가슴 떨림 등에 효과적으로 화난 사람은 물론 스트레스가 많은 수험생들에게도 좋다.

6. 비타민 C가 풍부한 과일 (딸기&레몬 등등..)

심신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혈압이 올라가고 맥박이 빨라지며 혈당이 상승한다. 이때 비타민 C가 고갈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하루에 비타민 C 1~2g 만 복용해도 충분히 스트레스 호르몬을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므로 하루에 한 번 비타민 C가 풍부한 과일을 믹서에 갈아 마시거나 샐러드로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

7. 연근

연근을 믹서에 갈아 매 식전에 한 잔씩 마시면 노이로제, 불면증 등 뇌 신경의 피로를 회복 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8. 물

화를 다스리는 데 물만큼 좋은 것이 없다. 물론 우리 몸의 70%이상인 물로 인해 생성되는 아세틸콜린을 빠르게 체외로 배설 시키며 75%가 물인 뇌 신경을 진정 시킨다. 또한 92프%가 물로 구성된 혈관의 긴장을 이완 시키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이제 피부는 물론 순간 순간 치솟는 화를 다스리기 위해 하루 8~10컵의 물을 마시도록 하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8.html
kolaswqetsrq 11.02 07:52
◇ 노화를 막아주는 9가지 음식

◇ 노화를 막아주는 9가지 음식

1. 녹차

매일 3잔의 녹차를 마시는 사람은 장수한다는 연구결과가 일본에서 나온 바 있다. 녹차에는 강력한 항산화제인 EGCG(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이 성분은 심장병과 알츠하이머병, 그리고 여러 가지 암 위험을 낮춘다. 녹차 속에 있는 항산화 성분의 하나인 카테킨은 녹내장에 걸리는 것을 막는다.

2. 생선

연어, 참치, 고등어 등에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오메가-3 지방산은 심혈관 질환과 같은 늙고 쇠약해져서 생기는 질병들을 물리치는 효능이 있다. 미국심장협회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생선을 먹을 것을 권장한다.

3. 견과류

호두, 아몬드, 잣, 땅콩 등 견과류를 매일 약 57g씩 먹으면 오메가-3 지방산을 충분하게 섭취하게 된다. 오메가-3 지방산은 염증을 격퇴시키는 효능이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매일 견과류를 먹은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이하로 견과류를 먹은 사람에 비래 심장마비에 걸릴 가능성이 60%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4. 다크 초콜릿

초콜릿은 두뇌 기능을 촉진시키고 혈압을 낮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독일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초콜릿을 소량이라도 매일 먹으면 심장마비나 뇌졸중 위험을 40%나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5. 커피

커피에는항산화제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매일 3~5잔의 커피를 마시면 치매 위험을 65%나 낮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 커피는 심장병, 통풍, 전립샘암, 대장암 그리고 2형 당뇨병 등에 걸릴 위험을 크게 낮춘다고 한다.

6. 와 인

매일 2잔 정도의 적당량의 와인을 마시면 심장병과 알츠하이머병, 당뇨병, 비만, 충치와 몇 가지 종류의 암 등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와인은 피부암 발병 전의 병변을 감소시켜 피부를 보호하기도 한다.

7. 베리류

아사이베리, 라즈베리, 블루베리 등의 베리류에는 안토시아닌이라는 항산화제가 듬뿍 들어있다. 안토시아닌은 노화 작용을 늦추는 효능이 있다. 생으로 혹은 얼린 베리류를 매일 한 컵 정도 먹으면 노화를 이끄는 염증을 물리친다.

8. 토마토

항산화제의 일종인 라이코펜이 많이 들어 있다. 라이코펜은 피부를 젊게 하고 심장병과 몇 가지 암의 위험을 낮춘다. 일주일에 토마토나 토마토가 든 음식을 10번 정도 먹는 남성은 전립샘암에 걸릴 위험이 45%나 줄어든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9. 브로콜리

각종 비타민과 크롬과 같은 무기질이 들어 있다. 이런 성분들은 노화작용을 늦추고 두뇌 기능을 촉진한다. 또 브로콜리에서 발견되는 설포라판은 심장병과 뇌졸중, 암 발생 위험을 줄이는 효능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9_1.html
kolaswqetsrq 11.02 07:52
◇ 나이 들면 줄여야 할 음식들..

◇ 나이 들면 줄여야 할 음식들..

▶ 늘려야 할 습관은?

어느 순간 과식을 하면 하루 종일 부대끼는 경우가 있다. 젊을 때는 예사로 먹던 음식 곱빼기가 부담스럽다. 나이 들면 소화액 자체가 줄어 음식물 소화에 애를 먹는다. 중년이 되어도 20~30대와 같은 식탐을 가지면 몸에 탈이 나기 쉽다. 건강수명(건강하게 장수)을 위해 음식을 가려서 먹어야 한다. 중년을 잘 넘겨야 건강한 노년을 맞을 수 있다.

1. 소식, 본격적으로 실천할 때...

▶ 조금씩 자주 드세요

적게 먹는 것, 소식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90세, 100세 장수 노인들은 소식하는 경향이 있다. 중년이 되면 음식의 양을 줄여야 한다. 특히 저녁식사를 적게 하는 게 좋다. 몸의 움직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살이 찌기 쉽다. 속이 불편하면 숙면에도 방해가 된다. 하루 세끼를 고수하기 보다는 배고플 때마다 조금씩 자주 먹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2. 육류·튀김·과자 줄여야 하는 이유...

▶ 혈액·혈관 건강 챙길 때입니다

육류나 튀김, 케이크, 과자 등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그래도 나이 들면 절제해야 한다. 혈액·혈관 건강이 나빠지는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고지방·포화지방산·트랜스지방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혈액 속에서 중성지방·총 콜레스테롤·몸에 나쁜 LDL 콜레스테롤이 늘어난다. 반면에 좋은 HDL 콜레스테롤은 감소한다. 동맥경화의 원인이 되어 심장병(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중(뇌경색, 뇌출혈) 등 혈관질환 위험이 높아진다. 육류 등에 많은 포화지방산의 섭취량은 총 열량의 7% 이하, 과자 등에 포함된 트랜스지방은 총 열량의 1% 이하로 하는 게 좋다.

3. 맛과 달콤함의 유혹...

▶ 소금과 설탕 적게 드세요

맛을 내려면 설탕과 소금, 조미료를 넣지 않을 수 없다. 어렸을 적부터 길들여진 식습관을 나이 들어 고치기 어렵다. 하지만 노력은 해야 한다. 소금 과다 섭취는 고혈압, 심장병·뇌졸중 등 혈관질환의 원인이 된다. 단 음식을 즐기면 살이 찌기 쉽고 당뇨병 등 여러 질병이 동시에 발생하는 대사증후군 위험이 높아진다. 중년 이상이 되면 맛 보다는 몸을 생각할 나이다. 조금씩이라도 짠 맛과 단 맛을 줄여나가자.

4. 유행에 따른 보충제·건기식품 섭취... "

▶ 천연 음식이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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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건강이 대중매체의 광고 영향을 받는 경우가 있다. 한때의 유행이나 잘못된 식품영양정보에 현혹되어 지나치게 영양보충제나 건강기능식품을 가까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의사의 진단 없이 몸의 특정 부위에 좋다는 보충제를 과용하는 사람도 있다. 부작용이 나타나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식품영양 전문가들은 몸에 좋은 영양소는 공장에서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음식에 더 많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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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늘려야 할 생활습관...

▶ 앉거나 누워 있는 시간 줄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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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몸의 움직임도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식 운동만 중요한 게 아니다. 하루 중 앉거나 누워 있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주변의 90세, 100세 노인을 살펴보자. 누워 쉬면 편할 텐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가사는 물론 동네를 산책한다. 장수노인들의 생활습관은 논문을 통해 많이 검증됐다. 핵심은 소식과 몸을 자주 움직이는 것 그리고 낙천적인 성격이다. 강철도 그냥 내버려두면 쉽게 녹슨다. 몸의 산화와 노화를 늦추는 항산화물질이 많은 채소·과일을 자주 먹고, 몸을 움직이면 건강수명에 다가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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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9.html
kolaswqetsrq 11.02 07:53
유지자 사경성有志者 事竟成 - 뜻이 있는 사람은 결국 큰일을 이룬다.

유지자 사경성(有志者 事竟成) - 뜻이 있는 사람은 결국 큰일을 이룬다.

있을 유(月/2) 뜻 지(心/3) 놈 자(耂/5) 일 사(亅/7) 마침내 경(立/6) 이룰 성(戈/3)

무엇을 하겠다고 뜻을 굳히면 강인한 의지로 실천해야 한다. 큰 기러기와 고니의 뜻 鴻鵠之志(홍곡지지)나 배를 삼킬만한 큰 물고기 呑舟之魚(탄주지어)의 포부를 가진 사람은 주위의 흔들림에 상관없이 밀고 나간다.

서양 유명격언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Where there"s a will, there"s a way)’와 같이 전도가 양양해진다. 이런 사람들은 諸葛亮(제갈량)이 소나기로 火攻(화공)을 실패하고 탄식했다는 ‘계략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일이 이루게 하는 것은 하늘(謀事在人 成事在天/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란 말을 싫어한다.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有志者)은 마침내 성공한다(事竟成)는 이 말은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가 출전이다. 줄여서 有志事竟成(유지사경성), 有志竟成(유지경성)이라 해도 같다. 중국 前漢(전한)말기 외척 王莽(왕망, 莽은 풀 망)이 나라를 찬탈하고 新(신)나라를 세웠다.

정통이 아닌데다 급격한 개혁으로 민심이 돌아서 곳곳에서 왕망을 타도하려는 세력들이 나타났다. 왕족의 핏줄인 劉秀(유수)가 한 왕조의 재건을 기치로 내걸자 많은 인물들이 모여들었다. 유수의 휘하에 耿弇(경엄, 弇은 사람이름 엄)이란 장수도 들어왔다.

경엄은 어려서부터 병서를 읽고 무예를 익혔기에 단번에 두각을 드러내 유수가 光武帝(광무제)로 즉위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경엄은 각 지역의 세력들을 타도하는 웅대한 계획을 세워 건의했으나 유수는 실현 가능한지 의구심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山東(산동)지역의 막강한 張步(장보)군과 싸울 때는 많은 사상자를 내고 경엄도 화살을 맞아 중상을 입었다.

악전고투 끝에 적진을 함락하자 유수가 이전의 계책을 말할 때는 어렵게만 생각되던 것을 끝내 이룩해냈다면서 노고를 치하했다. ‘뜻을 가진 사람이 결국 일을 성공시키는구려(有志者事竟成也/ 유지자사경성야).’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뜻을 세워 노력하여 목적을 달성한 사람의 전기가 立志傳(입지전)이다. 이전에 흔했던 개천에서 용 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오늘날엔 빈부의 격차가 너무 크고 단계적으로 신분 상승하기도 어려워 젊은이들이 절망한다. 어떻게 하면 골고루 소득이 높아져 잘 살게 되고 큰 뜻을 이룬 입지전적인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을지 위정자들은 고민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58.html
kolaswqetsrq 11.02 07:54
안가근시晏家近市 - 재상 안영의 집이 번잡한 시장 근처에 있다.

안가근시(晏家近市) - 재상 안영의 집이 번잡한 시장 근처에 있다.

늦을 안(日/6) 집 가(宀/7) 가까울 근(辶/4) 저자 시(巾/2)

중국의 역대 재상 중에서 晏嬰(안영, 嬰은 어린아이 영)은 管仲(관중)과 함께 첫째, 둘째를 다툴 만큼 후대에까지 존경을 받는다. 둘 다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의 재상으로 100년 이상 앞선 관중이 桓公(환공)을 첫 覇者(패자)로 올리는 데 출중한 능력을 발휘했다면 안영은 세 임금을 모시며 나라를 바르게 이끌었다.

관중이 목적을 향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직진한 데 비해 안영은 몸소 검소하게 생활하며 작은 몸집에도 권력자에 굴하지 않고 바른 말을 하는 거인으로 晏子(안자)라며 존경받을 정도였다. 안영에 따르는 여러 고사 중에서 재상 신분임에도 그가 사는 집(晏家)은 초라하고 시장 가까이 번잡한 데 있었다(近市)는 이야기부터 보자.

안영이 모신 제나라 세 군주는 靈公(영공) 莊公(장공) 景公(경공)이다. 경공은 사냥을 좋아하고 세금을 무겁게 매겨 사치에 빠지고 혹형을 일삼아 어지러웠다. 장공의 횡사 후 은거하던 안영을 다시 불러들인 뒤 차츰 안정을 찾게 됐다. 경공은 백성들의 신망을 받는 안영의 집이 초라하고 비좁으며 시장과 가까워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바꿔 주겠다고 했다.

안영은 임금의 신하였던 부친에게서 물려받아 분에 넘치게 살고 있다며 사양한다. ‘게다가 소신은 시장 가까이에 살아 조석으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으니(且小人近市 朝夕得所救/ 차소인근시 조석득소구), 그것은 소인의 이익입니다(小人之利也/ 소인지리야).’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전하는 내용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안영은 검소한 삶이 생활화되어 있어 불편을 득이라 본 것이다. 안영의 재치 넘치는 간언으로 혹형을 폐지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경공이 시장 가까이 살고 있으니 물건의 비싸고 싼 것을 아는지 물었다.

당연히 안다며 ‘의족은 비싸고 보통 신발은 쌉니다(踊貴屨賤/ 용귀구천)’고 답했다. 뛸 踊(용)은 옛날 다리를 잘린 사람이 대신해 신던 의족, 屨는 신 구. 당시 경공은 형벌을 남용하고 있어 죄인의 발꿈치를 베는 刖刑(월형, 刖은 발꿈치벨 월)이 가혹하다는 진언이었다. 경공은 이 말을 듣고 처형을 완화한 것은 물론이다.

권세가 높을수록, 돈이 많을수록 더 높이 더 넓게 호화주택을 가지려는 요즘 사람들에겐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안자의 상상이 안 되는 검소한 생활과 젠 체하며 앞으로 나서지 않는 태도를 말하는 성어를 더 보면 명성을 실감한다. 晏嬰狐裘(안영호구)와 晏御揚揚(안어양양)이 그것이다.

안자는 재상이 된 뒤에도 한 벌의 여우갖옷을 30년이나 계속 입어 검소함으로 칭송을 받았다. 또한 안자의 수레를 끄는 마부가 키 크고 늘씬했던 모양인데 재상보다 제가 잘나 모두 엎드리는 줄 알고 거들먹거리다 부인의 이혼 요구를 받은 뒤 고쳤다는 이야기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4.html
kolaswqetsrq 11.02 07:55
호매호골狐埋狐搰 - 여우가 묻은 것을 여우가 다시 파다, 의심이 많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호매호골(狐埋狐搰) - 여우가 묻은 것을 여우가 다시 파다, 의심이 많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여우 호(犭/5) 묻을 매(土/7) 여우 호(犭/5) 팔 골(扌/10)

여우는 영리하고 꾀가 많은 동물로 알려져 있는데 정작 성어로 나타나는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힘이 없으면서도 배경을 믿고 거들먹거리는 狐假虎威(호가호위)는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군림하는 여우다. 관의 위세를 이용한 교활한 무리는 城狐社鼠(성호사서)다. 서양에서도 여우는 백발이 될지 모르나 결코 선량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 교화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여우는 의심의 대명사로 떠올린다.

남을 믿지 못하고 이것저것 재보다 좋은 기회를 날리는 狐疑不決(호의불결)이다. 이보다 더한 것이 여우는 자신이 물건을 묻고도(狐埋) 잘 있는지 남이 가져갔는지 자기가 파 본다(狐搰)는 이 성어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에 이웃한 吳越(오월) 두 나라는 吳越同舟(오월동주), 吳越之爭(오월지쟁)이란 말이 남았을 정도로 사이가 적대적이었다. 서로 죽고 죽이고 원수를 갚기 위해 온갖 수모를 견디며 복수의 칼날을 벼루는 臥薪嘗膽(와신상담)도 오왕 夫差(부차)와 월왕 句踐(구천)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두 나라가 서로 일진일퇴하던 중 오왕 부차가 압도할 때에 일어난 일에서 성어가 유래했다. 구천은 월나라를 멸하려는 오나라 공격에 맞서 싸우려 하자 대부 文種(문종)이 아직 때가 아니니 화해 사절을 보내야 한다고 종용했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을 쓴 左丘明(좌구명)의 역사서 ‘國語(국어)’에 상세히 전한다.

구천이 문종의 의견을 받아들여 오왕 부차에게 사절 諸稽郢(제계영, 郢은 초나라서울 영)을 보냈다. 찾아간 사신이 월나라는 작은 속국인데 대군을 보내 토벌하려 하는 것은 심히 부당하다며 봄가을에 공물을 보낼 터이니 제재를 거두어 달라고 부차에게 조아렸다. 그러면서 속담의 말을 덧붙인다.

‘여우는 의심이 많아서 일단 묻었다가 다시 파본다고 했는데(狐埋之而狐搰之/ 호매지이호골지), 그래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是以無成功/ 시이무성공).’ 오왕이 월나라를 속국으로 한다고 널리 알리고 난 뒤 다시 멸망시키려 한다면 사방의 제후들이 어찌 믿고 섬기겠느냐고 항의한 것이다.

여우의 의심을 가졌던 부차의 후일 어떻게 됐을까. 사절의 예물과 사죄로 흐뭇해진 부차가 침략을 멈춘 사이 구천은 미녀 西施(서시)를 바치며 안심을 시키고 국력을 기른 뒤 되레 오나라의 항복을 받아냈다. 묻은 것을 다시 파내는 것은 여우의 불신이라 한 뒤 구천은 그것을 역이용한 것이다.

믿고 일을 맡겼으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리저리 재어보는 것은 사전에 치밀히 해야지 못 미더워 도중에 의심하면 끝이 없다. 이면의 깊은 계략을 탐지하지 못한 부차는 자결로 끝을 맺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html
kolaswqetsrq 11.02 07:56
화발다풍우花發多風雨 - 꽃이 필 때는 비바람이 많다, 고난을 이겨내야 화락이 온다.

화발다풍우(花發多風雨) - 꽃이 필 때는 비바람이 많다, 고난을 이겨내야 화락이 온다.

꽃 화(艹/4) 필 발(癶/7) 많을 다(夕/3) 바람 풍(風/0) 비 우(雨/0)

꽃은 침묵의 언어를 가지고 사랑을 말하고 꿈을 말하며 인간의 마음을 아름답게 해 준다는 멋진 표현이 있다. 계절에 따라 아름답게 피는 꽃에 사람마다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봄꽃놀이, 단풍놀이를 즐긴다. 꽃이 피기 위해 수많은 나날을 보낸 뒤 활짝 핀 모습은 오래도록 간직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자연의 이치다.

‘봄꽃도 한 때’, ‘열흘 붉은 꽃이 없다’란 말과 똑같은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이 잘 나타낸다. 때가 지나면 반드시 쇠한다는 이 말과 비슷한 어감의 꽃이 활짝 피면(花發) 비바람이 많은 법(多風雨)이란 성어도 좋다. 꽃이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은 필연적으로 따르는 바람의 시샘을 이겨낸 결과인 것이다.

시가 만개했던 중국 唐(당)나라 후기의 시인 于武陵(우무릉)의 ‘勸酒(권주)’에서 나온 한 구절이다. 그는 초기 진사 시험에 낙방한 뒤 각지를 방랑하며 五律(오율)에 뛰어난 시를 남겨 ‘全唐詩(전당시)’에 실려 있다. 이 책은 淸(청)나라 康熙帝(강희제)의 명으로 시인 2200명의 작품 4만8900편의 시를 900권에 모았다는 방대한 규모다.

1권으로 편집된 우무릉의 잘 알려진 시 전문을 보자. ‘그대에게 금빛 술잔 권하니, 가득 채운 술 사양 마시게(勸君金屈卮 / 권군금굴치 만작불수사), 꽃 피면 비바람 많은 법이고, 세상살이 이별로 가득 차 있네(花發多風雨 人生足離別/ 화발다풍우 인생족리별).’ 卮는 잔 치.

화려한 꽃은 비바람의 고난을 잘 이겨낸 결과인 만큼 사삼의 인생살이도 좌절과 시련은 늘 따라다닌다는 의미를 지닌다. 우무릉의 시를 연상하는 우리의 좋은 시도 있다. 조선 宣祖(선조)때의 宋翰弼(송한필)의 ‘偶吟(우음)’을 보자.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네(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화개작야우 화락금조풍). 슬프다 봄의 한 가지 일도, 바람과 비에 왔다가는구나(可憐一春事 往來風雨中/ 가련일춘사 왕래풍우중).’ 세상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 스스로의 인생을 서글퍼하는 심정을 노래했다.

경북 醴泉(예천)의 선비로 알려져 있는 조선 후기의 崔成原(최성원)도 같은 심정이다. ‘세상에는 부귀를 오로지 누리는 일이 없고, 비바람은 꽃 필 때에 많다네(世無專富貴 風雨多花時/ 세무전부귀 풍우다화시), 어제까지 붉은 꽃이 나무에 가득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절반이나 빈 가지로구나(日昨紅滿樹 朝來半空枝/ 일작홍만수 조래반공지).’

겨우내 꽃을 피우기 위해 애태우던 꽃이 필 때는 꽃샘바람이 따른다. 활짝 핀 후에도 비바람을 이겨내듯이 사람의 한 평생도 喜怒哀樂(희로애락)이 없을 수 없다. 나에게만 고난이 따른다고 한탄만 한다면 꽃피는 시절은 오지 않는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8.html
kolaswqetsrq 11.02 07:57
가장주서家獐注書 - 개고기 요리를 바쳐 얻은 벼슬자리

가장주서(家獐注書) - 개고기 요리를 바쳐 얻은 벼슬자리

집 가(宀/7) 노루 장(犭/11) 부을 주(氵/5) 글 서(曰/6)

돈이나 재물을 주고 벼슬을 사는 賣官賣職(매관매직)은 다양한 말이 남아있는 만큼 예부터 성했던 모양이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錢可通神(전가통신)이라 했으니 ‘개도 멍僉知(첨지)’라며 누구나 벼슬을 사고팔 수 있다고 봤다.

중국에선 포도주 한 섬을 보내 지방관 벼슬을 땄다는 一斛凉州(일곡양주, 斛은 휘 곡)나 빚을 내어 장수가 되고 시장판이 된 관아라는 債帥市曹(채수시조)란 말이 있다. 우리나라선 큰 재물이 아니라도 특산 기호품으로 벼슬을 따낸 예화가 많다. 조선 중기 더덕을 바쳐 沙蔘宰相(사삼재상)으로 불린 韓孝純(한효순)이나 희귀한 채소를 상납한 雜菜判書(잡채판서)의 李冲(이충)이 그들이다.

여기에 개고기 요리를 권력자에 입맛에 맞게 한 덕에 벼락출세한 中宗(중종) 때의 李彭壽(이팽수)가 더해진다. 왕실과 민간 모두 널리 먹었다는 개장국은 집에서 기르는 노루(家獐)라 했는데 임금의 사돈인 권신 金安老(김안로)가 무척 즐겼다. 어릴 때 같은 동네서 자란 이팽수가 국가제사 관장의 奉常寺(봉상시)에 말단으로 있으면서 맛좋은 개고기 요리를 자주 상납했다.

틈만 나면 이팽수의 개고기 요리를 일품이라며 칭찬하던 김안로가 어느 때 그를 임금 비서실인 承政院(승정원)의 注書(주서)라는 정7품으로 발탁했다. 주위의 추천도 없었는데 벼락출세하자 면전에서 반대는 못하고 사신이 말한 것이 ‘中宗實錄(중종실록)’에 나온다.

이팽수가 개고기를 좋아한 김안로에게 크고 살진 개를 골라 구미를 맞췄으므로 매번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받았다며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청반에 올랐으므로(一日忽置淸班/ 일일홀치청반)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개고기 주서라고 불렀다(時人謂之家獐注書/ 시인위지가장주서).’ 淸班(청반)은 학식과 문벌이 높은 사람에게 시키던 앞날이 보장되는 벼슬이었다.

뒤에 따르는 이야기도 쓴웃음을 짓게 한다. 이팽수의 출세를 보고 역시 봉상시의 陳復昌(진복창)이 매일같이 김안로에게 개고기 구이를 갖다 바쳤고 개 요리는 자신이 제일이라 떠들고 다녔다. 하지만 고관의 입맛에 안 맞았는지 벼슬은 오르지 않고 비웃음만 샀다.

돈이면 죄를 없게도 하고 죽음도 면할 수 있다고 믿는 有錢無罪 無錢有罪(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상은 옳을 수가 없다. 예전의 벼슬자리는 專制(전제)의 절대자와 간신이 쥐락펴락했으니 그렇다고 해도 오늘날은 어떨까. 공직이나 대기업 등은 公採(공채)가 확립돼 있으나 그렇지 않은 정무적인 자리가 많다.

당파적 충성에 좌우되는 현대판 獵官制(엽관제)는 낙하산 인사에서 시퍼렇게 살아 있다. 능력을 감안하지 않은 인사도 수시로 나타난다. 개고기 주사를 떳떳하게 욕할 수도 없는 세상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85.html
kolaswqetsrq 11.02 07:58
금성옥진金聲玉振 - 종소리로 시작하고 옥소리로 끝맺다, 처음과 끝을 잘 조화시키다.

금성옥진(金聲玉振) - 종소리로 시작하고 옥소리로 끝맺다, 처음과 끝을 잘 조화시키다.

쇠 금(金/0) 소리 성(耳/11) 구슬 옥(玉/0) 떨칠 진(扌/7)

性善說(성선설)의 孟子(맹자, 기원전 372~289)는 200년가량 앞선 孔子(공자)의 仁(인) 사상을 계승한 유학의 정통으로 亞聖(아성)이라 불린다. 정통이라 자부한 만큼 맹자는 이전의 다른 성인보다 공자를 완벽하다고 여러 곳에서 언급한다. 맹자의 가르침과 제자들과의 대화를 기술한 ‘맹자’의 萬章(만장) 하편에선 특히 재미있게 비교한 부분이 나온다.

齊(제)나라 사람인 만장은 맹자의 제자로, 스승이 각 나라에서 유세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물러나 학문에 전념할 때 잘 받들어 편명으로 남게 됐다. 여기서 공자를 가리켜 시작과 끝을 잘 조화시키는 성인이라며 이 성어를 썼다.

이 뜻은 우선 쇠로 만든 鐘(종)같은 악기를 쳐서 나는 소리(金聲)로 시작하고, 옥으로 만든 磬(경)의 소리(玉振)로 끝을 맺는다고 풀이한다. 八音(팔음)이란 음악을 연주할 때 맨 처음 종을 쳐서 시작을 알리고 맨 끝으로 경을 쳐서 음을 거두어들인다는 의미란다.

여기에서 처음과 끝을 온전히 조화시키는 능력의 겸비를 말하고 지덕을 갖춘 공자가 그러한 성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伯夷(백이)와 伊尹(이윤), 그리고 柳下惠(유하혜) 등 이전의 성인을 등장시킨다. 백이는 폭군 紂王(주왕)을 치는데도 반대하여 굶어죽었고, 이윤은 桀王(걸왕)을 몰아내고 백성을 지켰다. 유하혜는 관직의 고하에 관계없이 자신의 뜻을 펼쳤다.

맹자가 이들을 평한다. ‘백이는 성인 중에 청렴 고결한 분이요(伯夷 聖之清者也/ 백이 성지청자야), 이윤은 성인으로서 천하를 스스로 책임지려 한 분이며(伊尹 聖之任者也/ 이윤 성지임자야), 유하혜는 성인 중에 온화한 사람이다(柳下惠 聖之和者也/ 유하혜 성지화자야).’

이들에 비해 공자는 시의에 적절하게 행한 분(聖之時者也/ 성지시자야)이라 이들 성인을 集大成(집대성)했다며 음악 연주에 비유하여 설명을 이어간다. ‘쇠로 만든 악기를 쳐서 나는 소리로 시작하고(金聲也者 始條理也/ 금성야자 시조리야), 옥으로 만든 악기의 소리로 끝내는 것과 같다(玉振之也者 終條理也/ 옥진지야자 종조리야).’

맹자는 공자의 조리 있게 시작하는 것은 지혜에 속하는 일이고, 조리 있게 마무리하는 것은 성스러움에 속하는 일이라고 결론 낸다. 맑은 성인인 백이, 책임감 있는 이윤, 조화에 능한 유하혜 모두 훌륭한 성인이지만 시의에 맞게 잘 행한 공자야 말로 성인의 집대성이라고 극찬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金聲(금성)을 외적으로 나타나는 善(선)이고 玉振(옥진)은 마음속에서 울리는 德(덕)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어떤 일이든 시작할 때는 지혜를 총동원하고 덕행으로 지속한다면 그 마무리가 나쁠 수가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5.html
kolaswqetsrq 11.02 07:59
인세리도因勢利導 - 형세에 맞춰 유리하게 이끌다, 오판하지 않고 잘 분석하다.

인세리도(因勢利導) - 형세에 맞춰 유리하게 이끌다, 오판하지 않고 잘 분석하다.

인할 인(囗/3) 형세 세(力/11) 이할 리(刂/5) 인도할 도(寸/13)

중국의 고대 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에는 諸子百家(제자백가)라 할 정도로 다양한 학파가 존재했다. 儒家(유가), 道家(도가) 등 잘 알려진 외에 兵家(병가)는 전략과 용병을 연구한 일파다. 바로 떠오르는 인물로 孫子兵法(손자병법)의 孫武(손무)와 吳起(오기)가 대표한다. 손무의 후손으로 이들보다 100년 정도 뒤에 태어난 孫臏(손빈, 臏은 종지뼈 빈)이 훌륭히 뒤를 잇는다.

젊은 시절 함께 병법을 배웠던 龐涓(방연의 모함에 의해 발꿈치 아래를 잘려 본명은 전하지 않고 손빈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전쟁에서는 당연히 이겨야 하고 그래서 주어진 형세를 잘 이끌어(因勢) 유리하게 이끌어야(利導) 승리를 가져오는 것도 당연하다. 손빈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손빈도 아주 후세인 1972년 孫臏兵法(손빈병법)이 발굴돼 그의 저작으로 인정됐는데 이 성어는 병가를 모아 소개한 ‘史記(사기)’의 孫子吳起(손자오기) 열전에 실려 있다. 齊(제)나라 사람인 손빈은 종횡가 鬼谷子(귀곡자) 밑에서 같이 공부했던 방연이 魏(위)나라에서 먼저 대장군이 되자 함께 가 벼슬하게 됐다.

손빈이 자신보다 재능이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한 방연은 은밀하게 죄를 뒤집어씌웠다. 억울하게 두발이 잘리는 형벌을 받은 손빈은 제나라 사신이 왔을 때 아무도 모르게 탈출에 성공하여 군사가 됐다. 趙(조)나라가 위나라 침략을 받고 제나라에 도움을 청했을 때 손빈은 텅 빈 위의 수도를 공격해 구해준 圍魏救趙(위위구조) 전략으로 지략을 떨쳤다.

13년의 세월이 지나 손빈이 방연에 복수할 날이 왔다. 위나라가 韓(한)을 칠 때 제나라 田忌(전기) 장군이 군사를 일으키자 방연이 맞섰다. 손빈이 방연 군사는 용맹을 믿고 제나라 병사를 겁쟁이라 부른다며 건의했다.

‘전술에 능한 장군이라면, 이런 형세를 잘 이용하여 스스로 유리하게 이끌어가야 합니다(善戰者 因其勢而利導之/ 선전자 인기세이리도지).’ 방연 군사에 쫓기듯 도주하여 길이 좁고 험산이 많은 馬陵(마릉)에서 궁수를 매복시켰다. 나무껍질에 ‘방연은 이 나무 아래서 죽을 것이다(龐涓死于此樹之下/ 방연사우차수지하)’라고 쓴 대로 우박 같은 화살이 쏟아져 방연은 벌집이 되었다.

형세가 불리한데도 오판하거나 만용을 부리면 필히 실패한다. 순서에 따르지 않고 거꾸로 일을 하는 倒行逆施(도행역시)가 그것이다. 명장은 전세에 따라 힘의 균형을 우세하게 잘 이끈다. 바람 따라 돛을 달고 물길 따라 배를 띄우는 順水推舟(순수추주)는 10년 홍수를 해결한 夏(하)나라 禹(우)임금의 물길을 막지 않고 바다로 빠지게 하는 방법과 같다.

한의학에서도 인체의 저항능력을 환자에 유리하도록 이용하는 因勢導之(인세도지) 치료방법이 있다고 한다. 선거에 출마한 사람은 모두가 내편이고 자기를 지지하는 줄 안다. 형세를 분석하지 않고 여론을 오판하다가 신세 망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32.html
kolaswqetsrq 11.02 08:00
채수시조債帥市曹 - 빚을 내어 된 장수와 시장판이 된 관아, 청탁과 뇌물이 판치는 세태

채수시조(債帥市曹) - 빚을 내어 된 장수와 시장판이 된 관아, 청탁과 뇌물이 판치는 세태

빚 채(亻/11) 장수 수(巾/6) 저자 시(巾/2) 무리 조(曰/7)

공정하고 적재적소에 앉혀야 할 인사를 뇌물을 받고 자리를 준다거나 각종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에게 혜택을 베푼다면 그 조직이 잘 될 수가 없다. 물론 중요한 자리에 능력만 있다면 원수라도 가리지 않고, 가족이라도 거리끼지 않고 추천한 親仇不避(친구불피)의 고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가 많다.

後漢(후한)때 포도주 다섯 말을 주고 凉州(양주)지역의 벼슬을 얻었다는 一斛凉州(일곡양주, 斛은 휘 곡)의 孟佗(맹타, 佗는 다를 타)가 있다. 조선 시대에도 다를 바 없었다. 온실을 지어 신선채소로 반찬을 임금께 올린 雜菜判書(잡채판서)의 李冲(이충), 인삼을 바쳐 재상에 올랐다고 沙蔘宰相(사삼재상)으로 불린 韓孝純(한효순)이 그들이다.

빚을 내어 오른 장수(債帥)와 벼슬을 팔고 사느라 시장판이 된 관아(市曹)라는 이 성어는 청탁과 뇌물이 판치는 세태를 조롱한다. ‘舊唐書(구당서)’와 ‘北史(북사)’에 따로 등장하는데 간략하게 그 내용을 보자. ‘장수가 되려면 내관에게 뇌물을 바쳐야 했는데 재산이 없는 자는 부잣집에서 돈을 꾸었다(禁軍將校當爲帥者 自無家財 必取資於人/ 금군장교당위수자 자무가재 필취자어인).’

이렇게 하여 장수가 된 사람은 고혈을 빨아 치부했다. 北魏(북위) 종실인 元暉(원휘)의 집에는 뇌물을 바치고 벼슬을 얻으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천하의 사람들은 시장바닥이라며 시조라 했다(天下號曰市曹/ 천하호왈시조).’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尹愭(윤기, 愭는 공손할 기)는 ‘無名子集(무명자집)’에서 청탁과 뇌물을 논함(論請託賄賂/ 논청탁회뢰)이란 글을 남겼다. 한 부분을 떼어본 부분에도 이 성어가 나온다. ‘관리는 간사한 무리와 서로 이익을 주고받고, 관청은 사사로운 청탁이 들어오는 문이 되어, 돈을 많이 바치면 좋은 곳을 얻고, 돈을 적게 바치면 나쁜 곳을 얻으니, 채수와 시조의 호칭이 생겼다(吏與姦爲市 官以私爲門 金多得善處 金少得惡處 而債帥市曹之號興/ 리여간위시 관이사위문 금다득선처 금소득악처 이채수시조지호흥).’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뇌물의 세태가 인재를 중시하고 능력을 우선시한다는 오늘날에는 어떨까. 젊은이들이 신의 직장이라며 몇 번이나 도전하는 공기업에 세력가의 자제나 추천으로 들어가는 일이 숱하게 적발됐다. 사기업에서 대주주의 자제라고 점수를 조작하고, 노조원의 자녀라고 우선권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방면에서 공정한 경쟁이 있어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5.html
kolaswqetsrq 11.02 08:00
면역력을 높여주는 7가지

면역력을 높여주는 7가지

1. 버섯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기운을 돋우고 식욕을 증진시켜 위장을 튼튼하게 해준다"고 기록되어 있는 버섯! 버섯은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고 비만, 변비를 막아주며 암을 예방하는 웰빙 · 장수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이 같은 효능의 중심엔 베타글루칸이 있는데 이 성분은 우리 몸의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항암 효과에 탁월합니다. 또한 버섯은 90% 이상이 수분이고 식이섬유가 풍부해 "만병의 근원"이라는 변비 예방 및 치료에 탁월합니다.

2. 단호박

호박에 풍부한 베타카로틴은 체내로 들어오면 비타민 A로 바뀌는데요. 베타카로틴은 유해 산소를 없애는 항산화성분으로 노화를 억제하고 암 · 심장병 · 뇌졸중 등 성인병을 예방해줍니다. 또한 체내 신경조직을 강화해주어 각종 업무로 쌓인 스트레스와 불면증을 해소하는 데 효과적이랍니다.

3. 사과

사과는 칼륨 · 비타민 C · 유기산 · 펙틴 · 플라보노이드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특히 사과에 포함된 칼륨은 소금 성분인 나트륨을 몸 밖으로 매출하기 때문에 고혈압 환자에게도 아주 좋습니다. 또한 사과에 풍부한 유기산은 피로를 풀어주는 동시에 면역력을 증강시켜주고, 식이섬유의 일종인 펙틴은 혈중 콜레스테롤과 혈당을 낮춰주며 플라보노이드 성분은 동맥에 찌꺼기가 쌓이는 것을 막아줘 심장병 등과 같은 혈관질환과 암 예방에 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 감

"감잎이 무성한 감나무 밑에 서 있기만 해도 건강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포도당과 과당이 많이 들어있어 먹으면 금세 힘이 나고 피로가 풀리는 과일입니다. 피부 미용과 감기 예방에 좋은 비타민 C와 A, B까지 모두 갖고 있는데요. 열매뿐만 아니라 감 잎에도 비타민 C와 폴리페놀이 풍부해 항산화 효과를 내기 때문에 고혈압, 심장병, 동맥경화증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단, 변비 · 빈혈 · 저혈압이 있는 사람이나 임신부는 감의 타닌 성분이 지닌 수렴효과로 인해 철분과 결합해 체외로 함께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5. 고등어

푸른 생선 고등어는 단백질과 필수 지방산인 오메가 3가 아주 풍부한데요. 동맥순환을 향상시켜 노화를 늦추고, 면역력을 향상시켜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DHA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뇌세포를 성장, 발달시켜주어 두뇌회전을 원활하게 해주기 때문에 기억력과 학습능력 향상에 도움을 줍니다.

6. 당근

당근에는 대표적인 웰빙 성분인 오렌지색 색소이자 카로틴의 일종인 베타카로틴이 있습니다. 베타카로틴은 몸 안에 들어가 비타민 A로 바뀌는데요, 비타민 C · E와 함께 3대 항산화 비타민으로 손꼽힙니다. 이것은 체내에서 유해산소를 없애주는 것 외에도 노화 억제와 면역력 증강, 암 예방에 효과적입니다.

7. 무

무에는 식이섬유, 비타민 C, 엽산, 칼슘과 칼륨 등이 풍부합니다. 특히 잎에 많습니다. 무는 음식의 소화를 돕는 다양한 소화효소가 들어있어 위 통증과 위궤양을 예방 · 개선하는 효과가 있으며 풍부한 비타민 C가 아세트알데히드의 분해를 도와 숙취해소에도 탁월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소사이오사이아네이트라는 항암성분은 우리 몸의 면역력을 길러준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7.html
kolaswqetsrq 11.02 08:01
피를 맑게 하는 음식

피를 맑게 하는 음식

1. 양파, 마늘

양파와 마늘에 많은 플라보노이드와 폴리페놀이란 성분은 혈관을 건강하게 해주는데 혈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해주기 때문입니다. 양파의 페쿠친이란 영양소는 우리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인 고밀도리포단백질을 많아지게하기 때문에 중국요리에서 돼지고기와 양파를 곁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늘의 알리신이란 영양소는 나쁜 콜레스테롤을 없애주기 때문에 혈관을 유연하게 해줍니다.

2. 다시마, 김

다시마와 김에는 헤모글로빈을 만드는데 필요한 철과 구리가 많습니다.

3. 우엉, 부추, 시금치

몸속 나쁜피를 배출해주고 피를 맑게 해줍니다. 시금치는 엽록소가 풍부하여 피를 깨끗하게 해줍니다.

4. 목이 버섯

목이 버섯은 우리가 흔히 탕수육에서 볼 수 있는 버섯입니다. 피를 맑게 하는 것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목이버섯과 대추를 3분간 물에 끊이고 약한 불에서 반정도 양까지 졸이고 체에 걸러 공복에 마시면 매우 좋습니다.

5. 미역

출산한 산모들이 많이 먹는 미역은 점액성인 알긴산이란 성분이 피를 맑게 해주고 각종 성인병 예방에도 좋습니다.

6. 쑥

단백질, 지방, 칼슘, 인, 철분, 비타민A, B1, B2, C 등 많은 영양이 골고루 들어있어 피를 맑게 하는 음식일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 좋은 종합영양제 같은 쑥입니다. 혈압을 내려주고 소화를 잘 시켜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90.html
kolaswqetsrq 11.02 08:03
꾸준한 운동 생활화하기

꾸준한 운동 생활화하기

1. 일상생활 속에서 신체활동량을 늘린다.

운동을 하라고 하면 거부감을 갖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요즘 미국에서는 당뇨병 환자들에게 ‘엑서사이즈(exercise, 운동)’라는 말 대신 ‘신체활동(physical activity)’이란 말을 즐겨 쓴다. 운동이라고 하면 운동화를 질끈 동여 매고,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고행이나 자기학대에 가깝게 몸을 혹사시키는 것을 떠올리는 등 부정적인 생각부터 든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평소 신체활동량을 늘려주는 것만으로도 운동화를 신고 짐(gym)에서 운동하는 것 못지 않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를테면, 목적지 한 정류장 전에 차에서 내려 걷기, 입구에서 멀리 주차하기,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하기 등이 그것이다.

2. 운동 파트너를 만들자.

당뇨병 클리닉이나 당뇨병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도 좋고, 이웃 사람도 좋다. 혼자 운동하면 의지가 약해져서 다녔다 쉬었다를 반복하기 쉬운데, 운동 파트너가 있으면 보다 지속성을 높일 수 있다. 이처럼 운동 파트너가 생기면 당뇨병 때문에 생기기 쉬운 우울증을 극복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3.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고른다.

아무리 좋은 운동도 재미가 없으면 오래 가기가 어렵다. 등산, 수영, 걷기, 자전거 타기 등 다양한 운동들을 해 보고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운동을 고르자. 평생 동반자인 당뇨병인만큼 운동 또한 평생 지속할 수 있으려면 나와 궁합이 맞아야 한다.

일례로 수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예전에 물에 빠져서 죽을 뻔 했던 사람은 커서 수영을 배워서 하는 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물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수영을 지속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대신 운동을 선택하기에 앞서 나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운동을 계획하도록 하자.

4. 운동을 몰아서 할 시간이 없다면 쪼개서 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루 30분~1시간 가량 운동을 하라고 의사로부터 권유받아도 꼭 이를 몰아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매일 45분씩 운동할 것을 처방받았다면 아침, 점심, 저녁 식후 15분씩 나눠서 하는 것도 방법이다. 바쁜 직장인이나, 운동을 몰아서 하기 어려운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다면 이와 같은 방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조지워싱턴대 연구팀은 공복혈당이 105~125mg/dL인 60세 이상 비만인 남녀 1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 매 식사 후 15분간 3회 운동하는 것도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5. 운동은 이틀 이상 거르지 않는다.

운동은 가능한 한 이틀 연속 쉬는 것은 삼간다. 하루 운동하고 하루 쉬고 해야 운동을 지속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지, 두 번을 연속으로 빠지게 되면 운동 생각이 멀어지면서 그만큼 중간에 포기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운동 효과 역시 매일 하거나 격일로 하는 것이 며칠 쉬었다가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절대로 운동은 이틀 연속으로 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28.html
kolaswqetsrq 11.02 08:03
마시면 건강해지는 식초

마시면 건강해지는 식초

식초는 초산, 구연산, 사과산, 호박산, 주석산 등 총 60여 종의 유기산이 들어 있는 항산화제로 노화와 질병을 일으키는 활성산소를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뇌세포에 쌓여 사고 능력을 떨어뜨리는 젖산과 힘든 육체노동을 했을 때 생기는 근육의 젖산을 분해해 배설시키고, 혈액순환을 도우며 피로회복에도 좋다.

식초는 산성이지만 몸속에 들어가면 혈액 속의 무기질을 알칼리성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에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산성 체질을 약알칼리성 체질로 바꿔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단, 마시는 식초는 식후가 좋고 위가 약한 사람은 찬물이나 우유 등에 섞어 마신다.

▶ 마시는 식초가 인기 있는 이유

1. 성인병 예방 효과가 있다

식초가 성인병 예방에 좋은 이유는 소금 섭취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소금 속 나트륨은 인체에 꼭 필요하지만 혈압을 높이고 고지혈증 같은 질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짠 음식에 입맛이 길든 사람이 하루아침에 음식 맛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조리할 때 소금, 식초, 간장 순으로 양념하면 소금을 적게 넣어도 신맛 때문에 싱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2. 소화 기능을 돕고 변비를 예방한다

식초의 신맛은 침샘을 자극해 침이 많이 나오게 하고 입맛이 돌게 하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위액 분비를 촉진하고 소화기의 신경을 자극해 음식물의 소화, 흡수율을 높인다. 뿐만 아니라 식초의 유기산은 장의 연동운동을 활발하게 도와 장을 튼튼하게 하고 배변을 돕는다.

3. 칼슘 흡수율을 높인다

식초를 꾸준히 마시면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은 칼슘이 구연산과 결합하면 흡수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따라서 칼슘 흡수율이 떨어지는 임산부나 폐경기 여성들의 경우 식초를 마시면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병을 앓고 있거나 생리 중일 때도 식초를 복용하는 것이 좋다. 혈액 속에는 노폐물이 많고, 인체는 이 노폐물을 배출하기 위해 칼슘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 각양각색 건강 식초 궁금증 해결

-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감식초

감은 다른 과일이나 채소보다 월등히 많은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어 면역력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감기 같은 질병을 예방하고 피로회복을 돕는다. 한편 감식초는 고혈압 등의 성인병을 예방하고, 체내 과다 지방을 분해하기 때문에 다이어트 효과도 얻을 수 있다.

- 소화를 돕는 포도식초

포도에는 몸속의 불필요한 활성산소를 제거해 세포의 노화를 막는 폴리페놀 성분이 들어 있다. 따라서 포도로 만든 식초는 다른 식초에 비해 노화 억제와 심장병 예방 효과가 크며, 소화기관을 자극해 소화, 흡수를 돕고 풍미가 뛰어나 식욕을 불러일으킨다.

- 피로회복제 역할을 하는 현미식초

피곤하고 지친 몸을 회복시켜줘 갑자기 무리한 운동을 했거나 과음이나 야근으로 몸이 피로할 때 마시고 자면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 성인병 예방에 좋은 흑초

현미나 맥아를 원료로 만드는 흑초는 신맛이 약한 대신 단맛과 향을 지녀 식초를 음료로 마시는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1천5백여 년 전 중국에서 처음 제조됐다는 흑초는 일반 식초보다 유기산과 아미노산이 풍부해 비만과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

- 요리풍미 더해주는 발사믹식초

발사믹식초는 특유의 깊은 맛과 향이 나 유럽에서는 고품질 식초로 애용되고 있다. 일반 포도주와 농축시킨 포도주를 섞어 참나무통에 넣고 발효시킨 뒤 여과해 다시 밤나무나 벚나무통에 넣고 5년 이상 숙성시킨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6.html
kolaswqetsrq 11.02 08:04
매일 매일 건강해지는 음식 BEST 6

매일 매일 건강해지는 음식 BEST 6

1. 베리류(아사이베리, 블루베리, 크랜베리 등)

아사이 베리는 원주민들에게 생명의 열매로 불리고 있는데요. 그 효능을 보면 항암효과, 백혈병 세포 치유, 근육과 관절에 효능, 불면증,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주고, 신장과 간 기능 향상, 혈류 개선으로 인해 심장질환 뇌졸중 등 예방, 노화 방지, 시력 기능 회복에 도움, 머리를 맑게 하여 정신적 질병에 도움을 준다 합니다.

2. 요거트

요거트는 발효식품으로써 발암물질, 암세포 증식을 억제시켜주며 간기능강화에 도움을 주어 피로 회복에도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콜레스테롤 흡수를 조절해주어 심혈관질환 예방에도 도움을 주며 칼슘 성분으로 인해 골다공증 예방, 뼈 기능 강화에도 도움을 준답니다.

3. 호두

호두는 생김새가 사람의 뇌와 비슷하게 생겼다 해서 좋은 성분이 뇌로 간다는 말이 있답니다. 호두에는 DHA, 무기질, 비타민A 비타민B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어 두뇌발달에 좋은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불포화지방산이 다량 함유되어 항산화 작용을 하며, 노화방지에 좋고 항암작용에도 좋습니다.

4. 토마토

마치 심장같이 빨간 토마토는 심장세포의 사멸 감소, 심장 손상 감소, 심장기능 향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으며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는 화합물이 있다고 합니다. 비타민B6 성분이 혈액을 깨끗하게 해주어 동맥경화증을 막아주며, 혈관을 튼튼하게 해주고 혈압을 낮추어 주므로 여러 성인병 예방에 탁월하답니다.

5. 시금치

시금치 속에는 나트륨을 제거하는 칼륨성분이 들어 있어서 몸밖으로 나트륨을 배출해내고 비만을 억제하며 혈관내 노폐물과 독소를 제거하는 효과로 혈액순환이 좋아집니다. 또한 엽산 성분과 철분이 함유되어 있어, 빈혈을 없애주고 뼈를 건강하게 유지시켜 준답니다.

6. 당근

당근은 비타민 A가 풍부하여 눈에 좋은 음식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식재료인데요! 식이 섬유도 풍부하여 대변을 부드럽게 만들어 배변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작용도 있습니다. 하복부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어 생리가 불규칙하거나 불임있는 여성을 치료해주고, 밤에 소변을 자주보는 아이들에게도 효과적이랍니다. 또한, 베타카로틴이 풍부하여 면역력을 향상시켜주고 위, 장을 튼튼하게 해줍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est-6.html
kolaswqetsrq 11.02 08:05
돈 안들이는 건강관리 비법

돈 안들이는 건강관리 비법

1. 침은 뱉지 말고 삼키자.

침은 소화에 도움을 주고 향균작용을 도와준다고 합니다.

2. 눈을 자주 힘차게 움직이자.

피곤할 때 눈 운동을 하면 눈이 맑아진다고 합니다. (눈이 피곤할때에는 양손을 숨을 멈추고 여러번 비비면 손이 뜨거워집니다. 이때 손바닥을 눈에 가져다 대고 눈을 뜨고 눈을 상하좌우로 움직이면서 운동을 하고 쉬면 눈이 시원하고 피로가 풀린답니다.)

3. 얼굴을 자주 만져 주자.

혈압, 동맥경화, 혈색효과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허리가 아플땐 인중을 자극하면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얼굴에도 혈자리가 많아서 자주 만져주면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4. 머리를 자주 두드려 주자.

머리가 맑아지고 잘 안 빠진다고 합니다.

머리도 깨끗하게 관리하고 두드려 주면 머리도 잘 안빠진다고 하네요.

5. 귀를 자주 만져 주자.

귀를 자주 만져주면 신장, 비뇨기, 생식기의 기능에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귀에도 각 장기와 연결이 되는 혈자리들이 있어서 자주 만져주고 귀를 당겨주면 건강에 좋은 효과가 있습니다.

6. 혀를 자주 굴려 준다.

회춘 비타민인 침을 삼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수면동안에 생긴 입안의 세균들을 양치질하고 물을 드시는것이 좋은것은 물론이고 혀를 입안에서 자주 굴려 주어 고인 침을 삼키는것이 좋습니다.

7. 치아를 자주 두드려 준다.

치아가 단련이 된다고 합니다. 고치법은 윗니와 아랫니를 마주쳐 소리가 나게 하는 운동법입니다. 회진법과 마찬가지로 생침을 넘겨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8. 즐거운 노래를 불러라.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노래를 부르면 기쁜마음이 회복이 되고 활기를 띄우게 됩니다. 즐거운 노래로 몸속에 있는 나쁜기운이 빠져나가는것입니다. 소리를 지르는것도 좋은 일이지요.

9. 배와 팔다리를 두드려라.

소화는 물론이고 피로회복과 관절에도 도움이 될것입니다. 배를 두드리는것은 소장이 위치하고 있어서 배를 따뜻하게 하고 배꼽밑에 있는 단전에도 영향을 미쳐서 몸의 온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배를 시간이 날적마다 자주 두드려주는것이 아주 좋다고 합니다. 습관을 들이도록 해 보세요.

10. 항문을 조이고 푸는 동작을 반복하자.

사람은 항문의 힘으로 산다고 합니다. 항문조이기 운동은 괄약근 운동법이라고도 하는데 항문근육을 조이는 방법으로 요실금 예방과 치질의 완화, 질수축운동을 통하여 삶의 질은 높여 줍니다. 일명 케겔운동이라고도 하지요. 남성들은 조루증을 예방하고 빨리 사정하지 않게 해 준다고도 합니다. 특히 만성변비에는 항문의 괄약근을 하루 300번 정도만 해도 만성변비가 조절이 된다고 합니다.

11. 박수를 자주 쳐라.

박수를 치되 숨을 멈추고 박수를 치면 손바닥이 빨리 따뜻해집니다. 따뜻해진 손으로 온몸을 두드리기만 해도 몸의 혈들이 풀리고 몸의 온도가 1도이상 올릴 수가 있습니다.

12. 종아리 맛사지를 자주 하자.

종아리 맛사지는 만병을 예방하고 개선시켜주며 언제 어디에서나 쉽게 할 수 있는것으로 치매, 요통, 무릎통증, 어깨결림, 냉증, 불면증, 갱년기증상까지도 좋아진다고 합니다. 종아리 맛사지는 하루 5분씩만 주룰러도 몸이 따뜻해지면서 면역력이 5배나 높아진다고 합니다.

13. 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 하자.

수승화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차가운 기운을 올라가게 하고 뜨거운 기운은 내려가게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한의학 원리의 하나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10.html
kolaswqetsrq 11.02 08:06
■ 예종 3편

■ 예종 3편

귀성군 준을 27세의 나이로 병조판서에 제수 했다가 곧바로 남이에게 병조판서를 넘기고, 다음해에는 귀성군을 28세의 나이에 영의정으로 임명했다. 병조판서가 된 남이 또한 귀성군과 같은 28세의 젊은 나이였다. 서른도 안 된 영의정과 병조판서는 조선역사 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파격적인 인사였다. 지금으로 보면 28세의 총리와 국방장관인 셈이었다.

세조는 그만큼 한명회, 신숙주등 권신들에게 신물이 난 것이었다. 하지만 귀성군 준이나 남이는 너무 젊었다. 그들이 노회한 권신들을 상대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게다가 세조는 이러한 일들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채 죽고 만다. 더 큰 문제는 세조가 예종의 왕권강화를 위해 파격적으로 등용한 귀성군 준과 남이를 예종이 아주 질투하고 경계했다는 것이다.

예종은 세자시절부터 세조가 그 둘을 너무 총애하는 것에 질투심을 느낀 듯하다. 귀성군 준과 남이는 예종에게 있어서 양날의 칼이었다. 그래도 귀성군은 젊지만 신중했고, 겸손한 편이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훈구파에도 가까웠지만, 신진세력 및 사림파와도 가깝게 지냈다. 권신들과도 두루 두루 잘 지내는 편이었다. 예종에게도 깍듯이 대하며 자기를 낮추었다. 한 마디로 귀성군 준은 성격이 원만하게 좋았고 적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남이는 달랐다. 세조의 권신 중의 한 사람인 권람의 사위였고, 태종 이방원의 외증손자이기도 했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출신인 남이에게는 남다른 패기와 야욕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런 남이가 나이 먹고 노회한 한명회 등의 구공신들의 좋은 먹이감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1468년 9월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했다. 세조의 둘째 아들인 예종은 형인 의경세자가 20세의 나이로 요절함으로써 세자가 되었고, 5년여의 세자 생활을 거친 후 등극하였다. 당시 조선은 한명회 등 공신들이 정사를 농단하는 공신의 시대였는데, 온건한 성품의 예종은 등극하자 의외로 강하게 공신들을 압박하였다. 조선 최대 비극인 4대 사화의 서막이 열리는 시점이었다. 예종이 조금만 깨어난 군주였고, 신진세력과 함께 기득권 세력들인 세조의 권신들에게 대항할 힘을 키웠다면 4대 사화는 아마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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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07
■ 예종 1편

■ 예종 1편

예종은 1450년(세종 32년)에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2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황(晄) 자는 명조(明照)이며, 세조가 즉위하자 해명대군(海陽大君)에 봉해졌다. 하지만 예종은 재위 1년3개월 만에 스무 살의 나이로 급사하고 만다. 독살설, 복상사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말 그대로 급사(急死)였다. 재위기간이 1년여 밖에 되지 않아 조선 역사에서는 별로 존재감이 없는 왕 중의 한 분이다.

예종은 본래 서열대로라면 형인 의경세자가 있어 왕이 되지 못했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의경세자는 용상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스무 살의 꽃다운 나이에 죽고, 후에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의경세자의 부인은 왕비가 되어 보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역사드라마 속에서 예종과 성종, 연산군시대를 거치면서 많이 보아 왔던 인수대비이다. 당시 인수대비는 시동생(의경세자의 동생)인 예종이 죽기 직전까지는 통한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인수대비에게는 의경세자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둘 있었는데, 예종이 죽은 후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잘산군, 자산군)이 왕이 되었다. 그가 바로 조선 전기 문물을 완성시키고 유교적 통치이념을 완성시킨 성종이다. 성종이 된 자을산군은 한명회의 사위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인수대비와 한명회의 합작으로 예종을 독살했다는 설도 있다. 설(說)일 뿐이지만 설(說)로만 볼 수 없는 당시의 여러 정황들이 있기는 했다.

야사에는 세조의 큰아들인 의경세자가 현덕왕후 권씨(단종의 친모)의 저주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의경세자가 단종보다 1년 먼저 죽었으므로 이것은 꾸며진 이야기로 보인다. 세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카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야사에 의하면 세조가 꿈을 꾸는 데 현덕왕후 권씨(단종 친모)가 저주를 내리면서 세조에게 침을 뱉었는데 그 자리에 피부병이 생겨 세조는 죽기 직전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피부병이 세조 얼굴까지 번졌고, 온 몸이 썩어 가고 세조에게서는 심한 악취도 풍겼다고 한다. 세조가 극심한 피부병에 시달렸다는 것은 실록에도 나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조 초기에 강력하게 실천했던 왕권강화와 부국강병 정책도 세조 말기로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한명회, 신숙주 등 권신들에게 힘이 실렸다. 세조는 재임기간동안 왕권강화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신녹훈을 했다. 그렇게 공신이 된 사람들은 계유공신과 적개공신으로 나뉘어진다. 이들을 각각 구공신과 신공신으로도 불리어 졌다. 구공신은 세조가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계유정란에 도움을 준 신하들인 한명회, 신숙주, 권람 등이고, 신공신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귀성군 준과 남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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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08
■ 조선의 에디슨, 장영실 3편

■ 조선의 에디슨, 장영실 3편

세종은 자동 물시계를 만들어 궁궐에 설치하고 싶었다. 장영실은 자신의 재주를 높이 사 면천(免賤)에다가 관직까지 내려준 세종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그 꿈을 이루고자 했다. 장영실은 당시 세종과 정인지, 정초 등이 조사하고 수집한 자료를 가지고 문헌에 전하는 소송의 물시계와 이슬람의 물시계를 비교하면서 ‘자격루(自擊漏)’라고 하는 새로운 자동 물시계를 만들어냈다. 자격루는 물을 넣은 항아리의 한쪽에 구멍을 뚫어 물이 일정하게 흘러나오게 만든 것으로,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의 양을 이용해 각각 시(時)·경(更)·점(點)에 따라 종·북·징이 울리거나 시패(時牌)를 든 인형이 나타나 시간을 알려주는 일종의 자동시간알림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자격루는 세종 16년 경복궁 경회루 남쪽에 있는 보루각(報漏閣)에 세워졌는데, 세종 때 만든 이 자격루는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덕수궁에 있는 것은 1536년(중종31년)에 장영실이 만든 것을 개량한 것이다. 장영실은 1438년 세종에 대한 보은의 뜻으로 자격루보다 더 정교한 물시계인 ‘옥루(玉漏)’를 만들었다. 임금을 위한 궁중 물시계인 셈이다.

또한 농사를 과학적으로 짓기 위한 노력도 빠질 수 없다. 그동안 빗물이 땅에 스며든 깊이로 비의 양을 쟀으나, 땅의 성질이나 위치에 따라 다 달라 정확하지가 않았다. 마침내 1441년 장영실은 물통에 떨어지는 빗물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빗물의 양을 재는 측우기를 만들었다. 측우기는 벽돌 모양의 돌기둥에 쇠로 만든 원통을 얹은 간단한 형태였지만, 비의 양을 효과적으로 정확하게 잴 수 있는 과학적인 기구였다. 원통형의 측우기 안에 빗물이 고이면 주척(周尺)이라 부르는 자로 측우기에 고인 물을 재서 강수량을 측정했다. 우리나라 측우기는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서 발명된 것이다.

하지만, 측우기를 처음 생각해내고 주도한 인물은 문종이라는 설(說)도 있다. 물론 문종이 측우기를 실험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장영실 등 과학기술자의 도움을 받았겠지만, 측우기 발명의 원조는 문종이라는 것이다.

장영실이 약 53세였던 1442년 3월(세종24년), 세종이 온천욕을 위해 이천을 다녀오던 중 어가(御駕)가 갑자기 부서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조정에서는 장영실이 기술자로서 그 책임이 있다 하여, 임금에 대한 불경죄로 간주하고 곤장 100대와 파직(罷職)을 구형했다. 이때 그토록 총애하던 장영실을 위해서 세종이 해주었던 것은 100대 맞을 것을 80대로 깍아 준 것뿐 이라하니 좀 야속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사건은 세종의 비대한 몸무게를 감안하지 않은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대신들의 눈치를 본 것일까, 아니면 결국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것일까.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다. 조선의 위대한 과학자 장영실은 이후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삼사(三司)의 건의로 사형을 당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장영실은 이순지·이천 등과 함께 조선 전기 최고의 과학자로 지금도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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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09
■ 조선의 에디슨, 장영실 1편

■ 조선의 에디슨, 장영실 1편

1400년 태종 때의 일이었다. 영남지방의 큰 가뭄으로 백성들의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때 관청에 소속된 한 노비가 강에서 물을 끌어 올려 논에 물을 대는 장치를 만들었다. 이 장치로 가뭄을 이겨낸 현감은 이 관노에게 큰 상을 내렸다. 이 관노가 바로 장영실(蔣英實)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 번 이름이 등장할 정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 장영실은 미천한 신분을 딛고 일어선 최고의 발명가였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장영실을 궁궐로 처음 부른 사람은 세종의 아버지 태종이다. 태종은 각 지방을 다스리는 관찰사가 추천한 지방의 우수한 인재들을 한양으로 불러들여 일하게 하는 ‘도천법(道薦法)’을 시행했다. 태종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추천하게 했다. 동래현의 관노였던 장영실이 한양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이 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1423년 평소 손재주가 좋은 장영실을 눈여겨 보고 있던 공조 참판 이천은 세종에게 장영실의 기술과 재주를 추천하였고, 세종은 장영실의 실력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세종은 관노에게 벼슬을 줄 수 없다는 신하들을 달래 장영실에게 벼슬을 주었다. 장영실은 세종의 뜻에 감사하며 과학 연구와 발명에 온 힘을 쏟았다. 뛰어난 재주와 능력을 인정받아 노비의 신분을 벗고 종3품의 벼슬자리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정작 그의 생몰(生沒:탄생과 죽음)은 물론, 성장 과정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장영실의 출신 성분 때문일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장영실의 조상은 원나라 출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에 귀화하여 아산군(牙山君)에 봉해졌던 장서(蔣壻)의 9대손이며, 그의 집안은 고려 때부터 대대로 과학기술분야의 고위관직을 역임하였다. 그의 부친은 고려 말 전서라는 직책을 지낸 장성휘이며, 모친은 관기(官妓)였다고 전해진다. 아버지는 노비가 아니었지만 장영실이 관노인 이유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조선시대의 신분제도 때문이다. 조선시대 관기(官妓)들은 신분상 천민에 해당하여 딸을 낳으면 어머니를 따라 관기(官妓)가 되었고, 아들을 낳으면 관노(官奴)가 되었다.

태조에서 세종대까지 조선은 귀화인들의 정착을 위해 조선 여자와의 혼인을 주선하였는데, 귀화인들과 혼인한 여성들은 대체로 관노 출신들이 많았다. 그러나 한족(漢族)같은 출신 배경이 좋은 귀화인들은 대체로 양인 여성과 혼인하였으므로, 장영실의 모친은 정실부인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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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성군 이준과 남이장군 2편

■ 귀성군 이준과 남이장군 2편

남이는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영의정을 지낸 남재의 증손자이며, 태종의 외손자로(어머니가 태종의 4녀:정선공주) 태어났다. 남이는 1457년(세조3년) 17세의 나이로 무과에 장원급제하였고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남이는 평소 강직하고 굽힐 줄 모르는 성품을 지녔고 무예도 뛰어났다. 남이는 이시애의 난(함경도 지방의 차별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난)이 일어났을 때 귀성군 이준과 함께 대장군으로 출전하여 뛰어난 무공을 발휘하고 출세 길에 올랐다. 이어서 남이는 여진족 정벌에도 참여하여 일약 영웅으로 부각되었다.

세조는 이런 남이를 귀성군의 뒤를 잇는 병조판서에 제수했다. 나이는 귀성군과 같은 스물여덟이었다. 한명회를 비롯한 훈신들은 외척을 병조판서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며 극렬하게 반대했지만 세조는 강행했다. 그만큼 남이를 믿고 총애했다. 그런데 남이는 귀성군 이준처럼 자신을 감출 줄 몰랐다. 남이는 자신의 야망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남이가 백두산에 올라 썼다는 시를 보면 남이의 호기(豪氣)와 기개(氣槪)를 짐작할 수 있다.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라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안하게 못 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요』

하지만 이 시(詩)는 나중에 남이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젊은 종친세력의 등장을 경계하고 있던 한명회와 신숙주 등 훈구대신들에게 드러내놓고 호탕한 기개를 뽐내는 남이는 좋은 명분을 안겨주었고, 귀성군과 남이를 시기 질투했던 예종의 눈에도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예종은 즉위하자마자, ‘외척은 군권을 가져서는 안된다’ 는 훈신들의 주장에 따라 남이를 병조 판서에서 겸사복장(정예 왕실 친위대인 겸사복의 지휘관)으로 좌천시킨다.

이때 쯤 조선의 최대 간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유자광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무예가 출중했던 유자광은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세조에게 자진 출병하겠다는 서한을 보내 세조의 눈에 든다. 그리고 이시애의 난 진압에 공을 세워 서얼출신인데도 파격적으로 등용되었다. 그러나 유자광의 입장에서는 서얼출신이라는 이유로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특히 나이가 비슷한 남이의 출세와 비교해 보면 더욱 그랬다. 그래서 불만이 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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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10
■ 예술가 안평대군

■ 예술가 안평대군

뛰어난 젊은 예술가이자 문필가 안평대군은 ‘안평(安平)’이라는 자신의 이름과는 달리 정치 투쟁에 희생되는 비극적 운명을 겪었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3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시·글씨·그림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 불렸다. 식견과 도량이 넓어 당대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망을 얻었으며 거문고에도 능했다. 도성 북문 밖에 무이정사(武夷精舍)와 담담정(淡淡亭)을 지어 수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었고, 문인들을 초청하여 시회(詩會)를 베푸는 등 호방한 생활을 하였다. 궁중에 소장된 서화와 자신이 모은 중국 서화가들의 작품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소개하여 당대의 서화(書畫)계에 큰 역할을 하는 등 당시 문화계의 중심인물로 활동했다.

1430년(세종12년)에는 형 수양대군, 동생 임영대군(臨瀛大君)과 함께 성균관에 입학했는데, 여러 사람들이 그들의 뛰어난 능력을 칭송했다고 한다. 안평대군은 기질이 호탕하여 무사들을 이끌고 매 사냥을 나서기도 했으나, 그의 주변에는 주로 문인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다.

안평대군은 당대 제일의 서예가로, 한석봉과 함께 조선 최고의 명필로 불린다. 그의 글씨는 고려 말부터 유행한 조맹부의 필체를 따랐으나,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한 활달한 기풍을 담고 있다. 활달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강인한 힘이 느껴지는 높은 경지의 그의 글씨는 풍류(風流)와 문화를 알던 그의 인품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고 전해진다. 중국 사신들로부터 "조맹부에게 배웠으나 조맹부보다 훌륭하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였고, 중국 사신들이 올 때마다 그의 필적을 얻어 갔다고 한다.

안평대군은 1450년 문종이 즉위한 뒤 황표정사(黃標政事:왕자들이 추천한 사람 가운데 왕이 적임자를 골라 임명하던 인사제도)를 장악하고, 측근의 문신들을 요직에 앉히는 등 조정의 배후 실력자로 등장했다. 하지만 더 큰 정치적 야심을 가지고 있던 수양대군은 1452년 7월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자신의 외교적 위상을 높이고 입지를 강화시켜 황표정사를 폐지해 버렸다. 이에 안평대군은 잃어버린 권력 회복에 힘쓰면서, 이징옥(李澄玉)으로 하여금 함경도 경성에 있는 무기를 서울로 옮기게 하여 무력을 기르고, 1453년(단종1년) 9월 황표정사를 다시 실시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의 힘겨루기가 본격화 된 것이었다.

하지만, 단종 즉위 이후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황보인, 김종서 등 학자 세력과 제휴하여 수양대군과 권력을 다투던 중, 수양대군이 선수를 쳐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황보인·김종서 등을 제거할 때, 안평대군 역시 반역을 도모했다 하여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후에 귀양지가 교동으로 옮겨지고 8일 만에 36세로 사사(賜死)되었다. 이후 그의 아들 이우직도 연좌제에 의해 강화도에서 진도(珍島)로 유배되었다가 처형되었고, 아내는 관비가 되었다. 며느리인 오대(五臺)와 딸 무심(無心)은 권람의 집의 노비로 분배되었다. 이후 선원계보(왕실족보)에서도 삭제되어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었다가, 숙종 때 복권(復權)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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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신 유자광 4편

■ 간신 유자광 4편

순탄하던 그에게도 위기가 닥쳐왔다. 발단은 성종8년 7월 ‘무술옥사(戊戌獄事)’로도 불리는 간통사건을 놓고 승지들의 의견이 갈라지면서 시작되었다. 현석규는 ‘강간’으로 결론지은 의금부의 판결에 찬성했지만, 임사홍을 비롯한 그 밖의 승지들은 거기에 반대했다. 일단 결론은 현석규와 의금부의 판단이 옳다는 쪽으로 내려졌다. 그러나 현석규가 다른 승지들과의 논쟁에서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사간원의 탄핵이 제기되면서 문제는 확대되었다. 매우 복잡하게 전개된 이 사건에서 유자광은 문제를 촉발시킨 현석규를 계속 승진시킨 성종의 조치에 반대하다가 이듬해 5월 결국 동래(東萊)에 유배되었다. 그는 4년 뒤 직첩을 돌려받을 때까지 침체의 시간을 보냈다.

유자광은 성종16년(1485년) 5월 숭정대부(崇政大夫, 종1품)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로 임명되어 7년 만에 조정으로 돌아왔다. 이때도 품계는 높았지만 실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이제 그는 46세의 장년이었다. 성종 후반에는 두 번이나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그러나 이때도 한성부 판윤(성종18년 6월)과 황해도 관찰사(성종22년 12월)에 제수되었지만 대간의 반대로 모두 무산되었다.

1494년에 연산군이 즉위했을 때 유자광은 55세였다. 유자광은 연산군 치세 12년도 무사히 넘겼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입지를 더욱 부각시켰다. 그 중요한 계기는 연산군4년(1498년) 7월에 일어난 무오사화(戊午士禍)였다. 김일손의 사초(史草)에 기록된 김종직의 <조의제문> 속의 숨은 뜻을 밝혀내, 직접 글귀마다 주석을 달아 해석하여(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는 것을 비방하고 있다고 해석함) 연산군이 알기 쉽게 했고, 사화로 확대되어 많은 사림파들이 숙청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집을 걷어다가 빈청 앞뜰에서 불사르기도 했다. 나아가 1498년에는 김종직과 그 제자들을 사초와 관련지어 모조리 제거하는데 앞장섰다. 연산군은 “유자광은 실로 나라에 충성한다.”는 말로 특별히 칭찬하고, 죄인들을 국문(鞫問)하도록 명하였다.

이후, 유자광은 조정에서 권력가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를 간신이자 악인으로 규정하게 만든 결정적 오명도 이 무오사화를 계기로 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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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12
■ 간신 유자광 2편

■ 간신 유자광 2편

유자광에 관한 여러 가지 야담(野談)이 전해지고 있다. 중종 때 사림 출신이면서도 기묘사화를 일으켜 간신으로 지탄받은 남곤은 《유자광전》을 통해 그를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유자광은 몸이 날래고 힘이 세며 원숭이처럼 높은 곳을 잘 타고 다녔는데, 도박을 좋아하고 여자를 강간하는 등 매우 광패해서 유규가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조 대의 문인 유몽인은 《어우야담》에서 유자광이 어린 시절 매우 영특하여 천출임에도 불구하고 유규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무튼 여러 기록을 종합해 보면, 유자광은 좋은 머리와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고, 서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출세한 인물이다. 유자광은 당시 사회에 순응해 가면서 서얼차대법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고 노력했다. 당시 조선사회에서 그럴 수 있는 방법은 딱 한가지 뿐 이었다. 왕실에 공을 세워 공신이 되는 것이었다. 공신이 되기 위해서는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거나 역모를 고변하여 사전에 진압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태종이나 세조처럼 아예 역모를 성공시켜 새로운 왕을 만들어 내는 것 뿐 이었다.

유자광은 평생 관직에 임명되거나 승진하려할 때마다 대간(감찰 임무를 맡은 대관(臺官)과 국왕에 대한 간언을 맡은 간관(諫官)의 합칭:사헌부, 사간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그 반대의 근거는 항상 그가 서얼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뛰어난 공로를 인정받아 두 번이나 1등 공신에 책봉되었지만, 실제 관직에는 거의 임명되지 못한 특이한 경력을 남겼다. 그에 관한 기록에는 ‘무령군(武靈君)’이나 ‘무령부원군’이라는 명예직으로만 기록되어있다.

유자광의 첫 직업은 갑사(甲士)였다. ‘으뜸가는 군사’라는 그 의미대로 갑사는 국왕 호위와 수도 경비를 맡는 정예병이었다. 그런 임무 상 그들은 뛰어난 무예를 갖춰야 했으며, 의장대로도 활동했기 때문에 용모와 체격도 뛰어났다. 그들은 정규 무관은 아니지만 상당한 지위를 인정받았고, 교대로 지방에 내려가 복무하기도 했다.

유자광이 출세하게 된 첫 계기는 세조13년(1467년) 5월에 일어난 ‘이시애의 난’ 이다. 그때 그는 28세의 갑사로 남원으로 내려가 복무하고 있었다. ‘이시애 난’이 일어나자 유자광은 즉시 도성으로 올라와 상소를 올렸다. 그때 전황은 관군이 상당히 고전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는 “갑사에 소속된 뒤 항상 변방에서 공을 세우고 나라를 위해 한번 죽으려고 했다”고 하며, “함길도가 험하지만 그런 조건은 적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라면서 과감한 결전을 주장했다.

세조는 유자광의 글을 보고 경탄했다. 유자광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유자광의 활약 덕분이었는지 ‘이시애 난’은 석 달 만에 진압되었고, 세조는 유자광을 더욱 총애하게 되었다. 서얼이라는 신분의 벽을 넘어 관직에 나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고, 병조정랑(정5품)에 임명했다. 파격적인 인사였다. 하지만 대신들의 반발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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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13
■ 풍류가 월산대군

■ 풍류가 월산대군

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예종은 별 다른 치적을 남길 새도 없이 즉위 1년 3개월 만에 죽었다. 왕세자 제안대군(이현)은 아직 4살 밖에 안 된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그렇다 치고 세조의 큰아들(의경세자:덕종으로 추존)의 장남(長男)인 월산대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째아들인 성종(잘산군)이 왕위를 이어받은 것은 정치적 내막이 깔려 있었다. 성종의 즉위는 세조의 부인 정희왕후(貞熹王后)가 궁중의 어른으로서 세조의 유명(遺命)을 받들어 시행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당시 최고의 권신이자 성종의 장인인 한명회(韓明澮)의 주장에 의한 것이었다.

뒤이어 비정상적인 성종의 즉위에 대한 종친들의 반발을 막기 위해 종실의 대표자격이며 당시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구성군(龜城君) 이준을 제거하였다. 당시 왕위 계승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왕위를 빼앗기다시피한 월산대군은 무마책으로 좌리공신(성종즉위 공신)에 책봉되었다. 월산대군은 세조가 매우 아끼고 사랑하여 궁중에서 자랐고, 활쏘기와 말타기를 비롯하여 여러 학문까지 친히 세조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천성이 원만하고 총명하기가 여느 사람과 달랐다. 하지만, 종친으로서 평온한 삶을 택한 월산대군은 현실을 떠나 자연 속에 은둔해 조용히 여생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일찍부터 학문을 좋아하였고, 성품은 침착하였다. 술을 즐기며 산수를 좋아하고 풍류가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고양(高陽)의 북촌에 있는 별장에서 자연에 묻혀 여생을 지냈다.

그는 서호(西湖)의 경치 좋은 양화도(楊花渡) 북쪽 언덕에 위치한 희우정(喜兩亭)을 개축하여 망원정(望遠亭)이라 이름 짓고, 서적을 쌓아두고 시문을 읊으면서 풍류생활을 즐겼다. 성종이 자주 그 집에 행차하기도 하였고, 그의 정자에 풍월정(風月亭)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월산대군은 어머니인 덕종 비(妃) 인수왕후(仁粹王后)가 병환이 깊어지자, 극진히 간호하다가 오히려 자신이 병이 들어 35세로 죽었다. 적자는 없고, 측실에서 난 아들이 둘 있었다.

부드럽고 격이 높은 문장을 많이 지었다고 하는데, 그의 시문 여러 편이 《속동문선》에 실릴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문집《풍월정집》이 남아있는데, 그 중 잘 알려진 그의 시 한 수이다.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돌아오노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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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14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

아침에 일어나서 습관처럼 물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실제 아침 공복에 물을 마시는 행위는 다양한 건강 효과를 가져다준다.

▶ 몸엔 어떤 변화가?

1) 심근경색·뇌경색 위험 줄임

자는 동안에는 땀, 호흡으로 체내 수분이 500mL~1L 방출되면서 혈액 점도가 높아져 심근경색, 뇌경색 위험이 커진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마신 물은 이와 반대로 혈액을 묽게 하는 효과가 있다.

2) 노폐물 배출

기상 직후 물 한 잔은 혈액과 림프액의 양을 늘려 몸속 노폐물을 원활히 흘려보낸다.

3) 배변 촉진

장(腸) 운동을 촉진시켜 배변에 도움을 준다. 아침에 일어나면 장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무언가를 먹으면 위장이 움직이는 위대장 반사가 일어난다. 아침 공복에 물 한 잔은 장 운동을 도와 배변을 원활하게 한다.

4) 탈수 예방

어르신의 경우 항이뇨호르몬 분비가 저하돼 만성 탈수 상태인 경우가 많다. 자는 동안에는 수분 공급이 안 되면서 탈수가 더 심해지는데, 기상 직후 물을 마시면 탈수를 막고 신진대사·혈액 순환을 촉진 시킬 수 있다.

물의 온도는 체온보다 약간 낮은 30도 전후의 미지근한 정도가 적당하다. 찬물을 마시면 자율신경계를 과도하게 자극해 부정맥 등 심장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찬물을 마시면 우리 몸이 정상 체온으로 올리는 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게 된다.

특히 고령자나 허약자는 기초 대사량이 떨어져 시원한 물을 마시면 체온이 더 감소하고, 위장 혈류량이 떨어져 소화액 분비 저하 등이 생길 수 있다.

물을 마시는 속도는 천천히 유지하는 게 좋다. 고혈압이 있으면서 뇌동맥류나 뇌출혈을 경험한 환자는 물을 빨리 마시면 뇌 혈류량이 갑자기 증가해 뇌혈관이 터지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적어도 5분 이상 시간을 두고 천천히 물을 마시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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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15
◇ 5少 하고 13多 하라

◇ 5少 하고 13多 하라

1. 5少

❶ 少食 (소식) 과식하지 마라.

십장생의 동물들은 위의 80%에만 음식을 채웠다.

❷ 少言 (소언) 말을 많이 하지 마라.

귀가 2개이며 입은 하나 뿐인 이유를 알라.

❸ 少怒 (소노) 화를 내지 마라.

스트레스가 극심해 나의 육체를 병들게 한다.

❹ 少慾 (소욕) 욕심은 만병의 근원이다.

사망의 지름길이다.

❺ 少車 (소차) 가능하면 많이 걷고 차를 적게 탄다.

다리는 제2의 심장이다. 이 심장은 걸을 때에만 운동한다.

2.13多 란?

❶ 多見 (다견) 많이 보고 새로운 것을 배워라.

세상과 주변은 이해한 만큼 보인다.

❷ 多動 (다동) 많이 움직여 많은 근육을 사용하라.

그래야만 건강이 유지된다.

❸ 多浴 (다욕) 따뜻한 물로 매일 목욕하라.

체온을 상승시켜 면역력을 수배 올려주므로 병이 사멸된다,

❹ 多泄 (다설) 눈물. 콧물. 땀. 대ᆞ소변을 잘 배설하라.

특히 대변은 하루에 한번 정해진 시간에 배설함으로 장에 독소가 쌓이지 않도록 특별 관리가 필수이다.

❺ 多接 (다접) 남녀가 서로 생각하고 만져주고, 접촉하면 활력이 생긴다.

생체 에너지의 활성은 이 때 일어나 기를 잘 나누어 줌으로 기분을 좋게 하여 만사가 성사되게 한다.

❻ 多笑 (다소) 많이 웃어라

웃음은 건강을 준다. 일소일소 일노일노

❼ 多忘 (다망) 될 수 있는 대로 지나간 과거를 잊어라.

과거는 다시 오지 않는다. 과거는 다시 오지 않는다. 학습 아닌 과거 삶의 기억은 현실에 혼란과 분란을 야기한다.

❽ 多靜 (다정) 고요한 마음을 자주 가져라.그리고 명상을 많이 하자.

평안과 자유를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이 생겨 너무 커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

❾ 多容 (다용) 항상 편안한 마음으로 너그러운 마음을 갖자.

세상에 당신이 남길 것이란 사랑뿐이다.

❿ 多忍 (다인) 매사에 많이 참는 습관을 들이고 끝까지 참자.

인내는 사랑의 결실을 안겨준다.

⓫ 多勇 (다용 ) 매사에 용기를 가져라

주저하면 오래 못 살고 얻는 것이 없다. 용기 있는 자가 대인을........

⓬ 多愛 (다애) 사랑을 많이 하자 사랑은 생동력을 주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생동력을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허물 많은 사람의 허물을 사랑은 가려준다.

⓭ 多步 (다보) 가능한 많이 걸어라

걷는 것이 건강을 좋게 한다. 걷는 것은 분명한 건강을 좋게 한다. 다리는 제2의 심장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5-13.html
kolaswqetsrq 11.02 08:16
◇ 술 때문에 지친 간 살리는 먹을거리

◇ 술 때문에 지친 간 살리는 먹을거리

술자리가 잦다 보면 ‘침묵의 장기’인 간은 부지불식간에 피곤해진다. 과음 등으로 간에 쌓인 독성 성분은 만성 피로 등 만병의 근원이 될 수 있다.

간이 지쳐있을 때 해독 기능을 가진 자연식품을 섭취하는 것도 간 건강을 위해 좋은 방법이다. ‘리버서포트닷컴’이 간 해독에 좋은 식품 5가지를 소개했다.

❶ 사과

사과는 식이섬유와 비타민, 미네랄, 그리고 플라보노이드와 같은 식물성 화학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이들 모두 해독 과정에 관여한다.

사과 한 개에 들어있는 플라보노이드 성분은 담즙 생산을 자극하고 담즙은 해독 작용을 한다. 또한 사과의 펙틴 성분(식물체에 널리 분포돼 있는 콜로이드 성 다당류)은 혈액 속 금속 성분을 제거하는데 기여한다.

❷ 자몽

비타민 C와 글루타티온을 다량 함유한 자몽은 간의 자연 정화 과정을 증진시킨다. 자몽 하나에는 70밀리그램의 글루타티온이 들어있다.

글루타티온은 간 해독 효소의 생산을 돕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게다가 자몽의 펙틴 성분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효과도 있다.

❸ 호두

호두와 같은 견과류는 아르기닌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아미노산의 일종인 아르기닌은 간에서 암모니아를 제거하는데 도움을 준다.

호두에는 글루타티온과 오메가-3 지방산 성분도 많이 들어있는데 이 역시 해독 작용에 도움이 된다.

❹ 십자화과 채소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등 십자화과 채소는 인체의 글루코시놀레이트 양을 증가시킨다. 이들 채소에 들어있는 글루코시놀레이트는 항암 작용을 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글루코시놀레이트는 비타민 C 등과 함께 해독 기능을 한다. 간에서 해독 효소를 증가시켜 독소를 배출하는 것이다.

❺ 마늘

마늘은 많은 건강상의 혜택을 갖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간 해독 기능이다. 마늘은 알리신 및 셀레니움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데 이들 성분이 간을 깨끗하게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마늘은 또한 황 성분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몸의 독소를 제거하는 작용을 한다. 아울러 마늘은 콜레스테롤과 트리글리세리드(혈중 지방 성분) 수치를 낮춰주는 효과도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64.html
kolaswqetsrq 11.02 08:17
◇ 각종 어지러움 증상에 좋은 약초

◇ 각종 어지러움 증상에 좋은 약초

1. 오리고기

오리고기는 건위(健胃), 기침, 폐결핵, 오리고기가 피를 보충 하므로 없애고, 이뇨, 부종, 어지러움 증 등을 없앤다.

2. 삼백초

약모밀차는 강심이뇨작용, 해독 작용, 세균성 설사, 완화작용, 이뇨작용으로 부종(浮腫)을 내리고 변비에도 효과 있으며, 생잎을 비벼 환부에 붙이면 고름이 잘 나오고 진통이 완화되며, / 차(茶) 代用으로 늘 마시면 어지러움 증, 변비, 동맥경화 등에 좋다.

3. 만형자

蔓荊子(순비기나무열매)는 풍열(風熱)로 오는 두통과 어지러움 증 진정, 진통, 해열, 감기, 수족 오그려 드는데, 시력향상, 항 알레르기등에 쓰이며, 만형자를 달여 마시면, 혈압과 두통, 어지러움 증에 좋다.

4. 고본

고본(藁本)은 고혈압, 풍한두통, 풍한표정, 치통, 창상, 옴 등에 효과 있으며, 혈압을 내려 풍한(風寒)으로 오는 두통으로 인한 어지러움 증에 좋다.

5. 유자차

유자차는 발한, 해열, 소염, 진해, 피부 미용, 숙취, 임산부가 입맛이 없을 때, 감기 몸살에 유자차를 뜨겁게 해서 마시면 몸에서 땀이 나고 열을 내리며, 기침으로 편도선이 부었을 때, 발한과 감기 몸살에 어지러움 증 있을 때와 요통이 심할 때 유자차를 수시로 마신다.

6. 구판(龜板)

남생이배딱지는 신허(腎虛)로 허리와 다리가 약해지는데, 식은땀, 이명(耳鳴), 어지러움, 가슴 두근거림, 유정, 자궁출혈, 치질, 학질, 이슬, 화상(火傷) 등에 쓴다.

7. 현호색

현호색은 어혈, 진통, 생리불순, 구토(嘔吐), 어혈로 생기는 복통, 징가, 적취, 요통, 타박상, 간암,위암, 자궁암, 폐암, 산후 어지러움 증 등에 달임약 알약, 가루로 먹는다.

8. 천마 酒

어지러움, 두통, 비증, 경풍, 전간, 수족이 오그라드는 데, 신경쇠약 등에 쓴다.

9. 연자 酒

교감 신경, 가슴 두근거림, 불안ᆞ초조, 강심, 간장, 소화불량, 정신안정, 빈혈, 어지러움, 불면증, 다뇨ᆞ야뇨ᆞ빈뇨증, 신경쇠약, 비위(脾胃)를 돕고 정신과 기운 돋운다.

10. 여정실 酒

肝과 신장(腎臟)의 陰이 虛하여 어지러움, 이명(耳鳴), 시력, 백발화(白髮化), 신경쇠약, 간 보호,강심, 이뇨. 유정, 백내장 등에 좋다.

11. 남사등 酒

풍습(風濕)으로 뼈마디 통증과 수족(手足)마비, 신경통, 근육통, 타박상, 구토와 복통, 요통, 두통과 어지러움, 양기(陽氣), 신경쇠약, 불면증, 혈행(血行), 무월경, 생리통 등에 좋다.

12. 잣죽

가루 30gᆞ맵쌀 250g〕노인의 변비와 쇠약, 어지러움, 마른기침, 혈토(血吐), 몸에서 수분이 많이 빠졌을 때, 하루 3번 먹는다.

13. 산수유 茶

신허(腎虛)로 허리와 무릎이 시큰거리며 아픈데, 이뇨, 고혈압, 소화, 항암, 억 균, 줄어든 백혈구 증식작용, 유정, 어지러움과 이명증(耳鳴症), 난청(難聽), 저절로 땀나는 데, 달거리 등.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41.html
kolaswqetsrq 11.02 08:18
◇ 현미가 우리 몸에 좋은 이유

◇ 현미가 우리 몸에 좋은 이유

1. 다이어트와 숙변제거

현미는 수용성과 불용성 식이섬유가 모두 들어있어 변비에 효과적이다. 변이 몸 안에 정체 시간을 짧게 해주고 노폐물이 체외로 배출되는 것을 촉진시켜 비만, 변비를 예방해준다.

현미는 백미에 비해 3배 이상의 섬유질이 많아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이 크고 소화의 흡수를 지연시키므로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또한, 현미는 100g당 354Kcal이며 채식과 함께 다이어트 식단을 계획하면 체내의 독성이나 노폐물도 효과적으로 배출하여 피부트러블에도 효과가 있다.

2. 당뇨와 동맥경화

현미에는 우리 몸에 좋은 HDL콜레스테롤을 높여주며 동맥경화를 예방해주는 피토스테롤(phytosterol)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피토스테롤은 콜레스테롤과 비슷한 물질인데 인체 내에 존재하는 우리 몸에 좋지 않는 LDL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낮춘다. 또한, 동맥경화증을 예방하는 비타민E가 쌀겨를 포함하여 현미에 많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고혈압, 심장질환 및 당뇨에도 좋다.

백미를 위주로 한 식습관과 기름진 음식을 과다하게 섭취하면 췌장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당이 과하게 되면서 당뇨가 발생한다.

현미의 성분 중 ‘가바’라는 성분은 식후 혈당치 상승을 억제하는 작용이 있어 인슐린을 조절해 당뇨의 수치를 조절하는데도 효과가 있다.

현미를 매주 2번 이상 먹는 사람은 한 달에 1번 먹는 사람에 비해 당뇨병 위험이 11% 낮았다고 한다.

3. 노화방지, 피부미용

현미에 비타민E성분이 노화를 방지해주고 비타민F가 피부를 좋게 해줍니다. 그리고 비타민D가 풍부해서 뼈도 튼튼해가 해줍니다.

4. 해독작용

쌀 외피에는 phytic acid와 섬유소가 인체에 축척되는 수은과 중금속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줍니다.

5. 임산부에게 좋은 효능

임산부가 현미 먹으면 특히 입덧이 많이 완화되어 입덧 심한 임산부들이 주로 현미를 먹고 산후증도 없애줍니다 또 젖이 생성될 때 필요한 비타민도 함유되어 젖양도 늘려줍니다.

6. 알레르기 체질

선천적인 알레르기성 체질로 어려서부터 허약한 아이에게는 현미를 볶아서 5배의 물을 붓고 끓여 채에 거른 현미스프를 3∼4일 먹이면 좋아진다.

7. 신경활동 증진작용

감마 오리자놀 이라고 하는 성분은 신경의 활동을 강하게 하고 특히 자율신경의 조정에 중요한 성분이다.

8. 식욕부진

식욕부진으로 기운이 없는 아이나 어른에게도 매우 큰 효과가 있다. 우선 현미 스프를 먹이고 나서 부드럽게 끓인 현미죽을 먹이는 것이 좋다.

여기에 연령에 따라 양파, 당근, 감자, 두부 등 여러 가지를 넣으면서 먹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고 뼈가 부러지거나 화농이 생기거나 하지 않고 튼튼한 아이로 자란다.

※ 현미차 만드는 법

재료준비 : 현미(공기밥그릇에 한 컵), 물 1리터, 후라이팬, 냄비, 채(현미찌꺼기를 거를 때 사용)

❶ 현미를 기름없이 후라이팬에 노랗게 될 때까지 타지 않게 저어서 볶는다.

❷ 냄비에 물 1리터와 현미를 넣고 20분 정도 끓인 후 5분간 서서히 식게 둔다.

❸ 현미를 채에 받쳐 우려낸 차는 병에 담아 수시로 복용하면 좋다.

❹ 남은 현미 찌꺼기는 버리지 않고 과자대용으로 먹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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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18
◇ 중년되면 시래기를 먹어야 하는 이유

◇ 중년되면 시래기를 먹어야 하는 이유

나태주 시인의 ‘풀꽃’중 유명한 한 구절이다. 채소인 시래기도 ‘그렇다’. 시래기라는 이름의 발음이나 모양새가 그리 아름답지 않지만 자세히 보아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시래기 뭉치’는 못생긴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며, 쓰레기와 비슷한 어감 탓에 무를 쓰고 남은 ‘쓰레기’가 ‘시래기’로 변형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근거없는 속설에 불과하며, 시래기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양소가 우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시래기는 중년층의 골다공증 예방 식품으로도 손꼽힌다. 채소임에도 불구하고 우유보다 칼슘 함량이 높기 때문이다.

시래기는 무청을 말린 것으로, 무청은 칼슘이 다량 들어있는 식품이다. “무청의 칼슘 영양밀도지수(INQ)는 30 이상으로, 이는 멸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영약학회가 우유와 시래기의 칼슘을 비교한 결과에서도 시래기 100g당 칼슘 함량은 335mg로, 우유(105mg) 보다 약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더욱이 시래기는 칼슘의 체내 흡수를 돕는 비타민 D도 풍부하다.

칼슘은 중년 여성에게 필수 영양소이다. 나이가 들수록 근골격량이 점진적으로 감소되므로 중년은 골밀도가 취약해진다.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서는 평소 식단에서 시래기처럼 칼슘 급원 식품을 자주 섭취하도록 신경써야 한다.

시래기는 ‘고칼슘’인 동시에 ‘고식이섬유’ 식품이기도 하다. 시래기 100g당 식이섬유는 4.3g 들어있다. 이는 포만감을 주면서 배변 활동을 도와 체중관리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 개선에 도움을 준다. 이외에 비타민C나 철분 등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시래기의 영양소가 주목받으며 웰빙 식재료로 언급되고 있다.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시래기 된장국, 시래기나물, 시래기밥, 시래기 만두, 시래기 떡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시래기초무침의 경우 식초가 칼슘의 체내 흡수율을 높여주므로 효과적으로 칼슘을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다. 또한 시래기를 오메가 3 지방산이 풍부한 들기름과 함께 먹는 것도 좋다. 들기름이 시래기의 식감을 살려주며, 영양소도 보충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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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19
◇ 허리를 삐었을 때 대처요령

◇ 허리를 삐었을 때 대처요령

▶ 허리를 삐었을 때 발을 곧게 뻗거나 똑바로 누우면 큰일

허리를 삐었을 때 발을 곧게 뻗거나 똑바로 누우면 오히려 요통이 증가하고, 발이 마비될 수 있습니다. 또, 이불이 너무 단단하거나 부드러워도 요통을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합니다.

▶ 허리를 삐었을 때는 이렇게

1. 반드시 누울 때는 머리를 높게 한다.

2. 새우등을 하고 옆으로 누워 통증을 완화한다.

3. 누워 안정을 취하도록 하고, 갑자기 움직이지 않도록 조심한다.

4. 반듯이 누울 때 장딴지 밑에 베개나 방석(2~3장)을 포개어 유지한다.

▶ 요통 유발 요인

1. 바르지 못한 생활자세

2. 비만

3. 운동부족에 따른 복부 근력의 약화

4. 요추를 지탱해 주고 있는 등배근의 기능 저하와 근력의 약화

5. 각종 스트레스

6.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의 감염, 종양이나 암, 자궁내막증과 골반염증, 선천적 척추 이상

▶요통 유발을 피하는 자세

1. 서 있을 때

- 허리를 쭉 펴고 될수록 키가 크게 서 있는다.

- 너무 높은 굽의 신발을 신고 오래 서 있는 것을 자제한다.

2. 앉아 있을 때

- 딱딱한 등받이의 의자를 사용하고, 회전의자나 바퀴가 달린 의자, 높은 의자는 피한다.

- 너무 오래 앉아 있지 말고, 가끔 일어나서 걷는다.

3. 운전할 때

- 등받이에 허리와 등을 붙여 앉도록 자세교정을 하고, 안전띠를 꼭 착용한다.

- 장거리 운전을 할 때는 자주 차를 세우고, 허리의 휴식을 취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한다.

4. 물건을 들어 올릴 때

- 물건을 들어야 할 때는 물건의 크기와 무게를 가늠하여 다리 간격을 넓게 벌려 안정된 자세로 시작하며, 허리 대신 무릎을 굽혀서 들며 몸에 가능한 한 붙여서 나르도록 한다.

- 물건을 끌어당기는 것보다는 밀고 가면서 이동하는 것이 좋다.

5. 잠잘 때

- 눈을 위로 향하고 누워있는 자세에서는 무릎 밑에 베개나 이불을 받친다.

- 옆으로 누워 잘 때는 무릎과 무릎 사이에 푹신한 베개를 끼워 넣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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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20
◇ 감식초의 깜짝 놀랄만한 효능

◇ 감식초의 깜짝 놀랄만한 효능

1. 소염다초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소금은 적게, 식초를 많이 먹는 것을 건강의 비결로 꼽았다. 또 식초는 소금의 짠맛을 부드럽게 해준다. 식초를 첨가하면 소금을 적게 넣어도 싱거워지지 않아, 소금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2. 소화촉진 작용

신맛은 침샘을 자극해 침 분비를 활성화시켜 소화작용을 돕는다. 식초에 들어 있는 살균 성분은 대장 내 각종 유해 세균의 번식을 억제한다.

3. 근육의 유연성에 도움

식초는 피로를 방지하고 근육의 유연성을 도와준다. 그래서 식초를 먹으면 몸이 부드러워진다는 속설도 있다.

4. 피로회복

신맛은 소화액의 분비를 자극함으로써 입맛을 돋우고, 인체의 에너지 대사에 관여하여 피로회복을 도와준다.

5. 동맥경화와 고혈압을 예방

식초의 유기산은 동맥을 보호하고 콜레스테롤 생성을 억제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6. 항산화 작용

식초의 유기산은 강력한 항산화 작용으로 피를 정화시켜 성인병을 막고 암에 대한 면역력을 높여준다. 식초만 많이 먹어도 암 발병률이 반으로 떨어진다.

7. 간과 폐 건강

식초의 초산은 간의 해독 작용을 도와 간을 튼튼하게 만든다. 또한 식초의 유기산은 폐의 기능을 활성화한다. 폐기종이나 혈관에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기 때문에 천연 식초를 충분히 섭취하면 만성 기관지염이나 천식에 걸릴 위험이 적다.

8. 뼈 건강

피가 산성이 되면 몸은 칼슘을 이용해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식초의 신맛은 체내에 들어가면 알칼리성으로 작용하고 식초의 구연산과 결합하면 흡수가 잘 된다.

9. 면역력 증진

식초를 꾸준히 먹으면 백혈구를 만들어내는 림프구가 많이 생성된다. 백혈구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몸의 면역력이 높아져 질병에 쉽게 걸리지 않는다.

10. 백내장 예방

안구 세포는 약하고 민감해서 몸의 피로를 가장 빨리 느끼는데, 식초의 유기산은 피를 정화하고 피로를 풀어 눈 세포를 건강하게 지켜준다. 망막을 청결하게 유지시켜 백내장을 예방해준다.

11. 알레르기 피부를 개선

피부 상태는 소화 기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식초의 유기산은 장을 청소하고 통변을 좋게 하기 때문에 천연 식초를 매일 한잔씩 마시면 알레르기 피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12. 비만예방

지방이 합성되는 것을 억제하고 체내의 과다한 지방을 분해시키는 작용을 한다. 또 음식의 산도를 높여 보존성을 좋게 하므로 식중독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때문에 식초를 꾸준히 먹으면 비만을 예방, 치료할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4/blog-post_7.html
kolaswqetsrq 11.02 08:21
춘당춘색 고금동春塘春色 古今同 - 춘당대의 봄빛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태평스런 세월

춘당춘색 고금동(春塘春色 古今同) - 춘당대의 봄빛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태평스런 세월

봄 춘(日/5) 못 당(土/10) 봄 춘(日/5) 빛 색(色/0) 예 고(口/2) 이제 금(人/2) 한가지 동(口/3)

조선시대의 작자 미상 소설 ‘春香傳(춘향전)’만큼 널리 사랑받는 작품도 드물 것이다. 판소리로 불리다가 소설로 되어 이본이 120여 종이나 된다고 하고, 창극이나 신소설 등으로 개작되기도 했다. 현대에도 연극, 영화로 수없이 만들어졌으니 알 만하다. 주인공 成春香(성춘향)과 李夢龍(이몽룡)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와 학정을 일삼는 특권 계급을 통쾌하게 응징하는 이야기를 담아 서민들이 더 열광했다.

창덕궁에 있는 춘당대의 봄빛(春塘春色)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古今同)는 멋진 글귀는 이몽룡이 과거를 볼 때 나온 시제였다. 시절이 태평스럽고 무사함을 뜻하는 말로 太平煙月(태평연월)이나 萬里同風(만리동풍)과 같다. 이르는 곳마다 같은 바람이 분다는 말은 먼 곳까지 통일되어 풍속이 같아지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을 수밖에 없다.

옛날 학동들이 익히던 五言(오언) 대구모음 推句(추구)에도 뜻이 통하는 구절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아침과 저녁으로 변하나, 산의 색깔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人心朝夕變 山色古今同/ 인심조석변 산색고금동).’

내용은 어떠하든 이몽룡의 응시모습을 보자. 글로는 李白(이백)이요, 글씨는 王羲之(왕희지)라 趙孟頫(조맹부, 頫는 구부릴 부)체를 받아 일필휘지하니 字字(자자)이 批點(비점)이요, 句句(구구)이 貫珠(관주) 받아 龍蛇飛騰(용사비등)하고 平沙落雁(평사낙안)이라 壯元及第(장원급제)는 당연했다.

이후 암행어사로 가는 곳이 南原(남원)이라 춘향을 괴롭히는 변사또를 벌하는 부분이 하이라이트였다. 춘향과 사랑을 나누다 1년 만에 응시하여 수석을 하고, 그리고 연고지에 발령받는다는 것은 당시의 相避制(상피제)를 무시한 어림없는 일이었지만 소설의 극적효과를 위한 것이니 이해할 만하다.

과거를 치르는 춘당대의 시제는 태평세월을 노래하는 것이었어도 남원에 이몽룡 부친의 후임으로 왔던 卞學道(변학도)가 춘향에게 가한 횡포는 이와는 멀다. 이몽룡 어사가 와서 읊은 시는 당시의 학정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아름다운 동이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뭇사람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 금준미주천인혈), 옥쟁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다(玉盤佳肴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 피와 기름을 강제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없이 바치게 되는 사람이 많으면 좋은 세상이 아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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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22
압승득길壓勝得吉 - 재앙을 없애고 해로운 기운을 제압해 눌러 길함을 얻다.

압승득길(壓勝得吉) - 재앙을 없애고 해로운 기운을 제압해 눌러 길함을 얻다.

누를 압(土/14) 이길 승(力/10) 얻을 득(彳/8) 길할 길(口/3)

壓勝(압승)은 글자대로 경쟁하는 상대에 크게 이기는 것을 말하는데 다른 의외의 뜻이 있다.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것을 누르고 채우는 裨補(비보)의 한 방법이다. 인간에 부닥치는 여러 문제들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신령의 힘을 빌거나 呪術(주술)에 의존하게 된다. 주술에 의하는 것은 글자가 비슷한 厭勝(염승)과 통한다.

인간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강한 힘을 억누르기 위해 갖가지 符籍(부적)이나 인형을 사용한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옛날부터 있어 왔다. 재앙을 없애고 해로운 기운을 제압해 자신의 운이 좋고 상서로움을 꾀하는(得吉) 행위가 상대방의 숨통을 누르는 咀呪(저주)의 목적으로도 악용돼 더 의외다.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지만 3000년도 더 이상의 姜太公(강태공)이 먼저 등장하여 흥미롭다. 周(주)나라 武王(무왕)이 殷(은)의 폭군 紂王(주왕)을 내쫓을 때 천하가 귀순했는데 丁侯(정후)만 승복하지 않았다. 무왕을 돕던 강태공이 정후의 상을 그린 뒤 화살을 쏘자 병이 났고 그것을 뽑으니 나아 복속했다는 내용이다.

新(신)을 세웠던 王莽(왕망)은 구리 다섯 섬으로 만든 威斗(위두)를 염승으로 썼다는 ‘漢書(한서)’의 기록이 있다. 서양에선 중미 카리브해의 나라 아이티(Haïti)에서 서아프리카 토착 신앙이 변형된 부두(Voodoo)가 대표한다. 누더기로 대충 꿰매 만든 조잡한 인형을 바늘로 찔러 저주 대상을 괴롭히고, 주술에 의해 움직이는 시체 좀비(Zombie)도 부두교 전설에서 나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염승의 역사가 다양하고 깊다. 전통 건물의 용마루 양쪽 끝머리 장식 기와인 鴟尾(치미, 鴟는 올빼미 치)는 화재 방지를 위한 것이었다. 宋(송)나라 徐兢(서긍)이 사신으로 왔을 때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高麗圖經(고려도경)’에는 당시 사람들의 압승 의식을 소개한다.

가족사이라도 병이 들면 저주와 염승을 할 따름이라 하고, 뱃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나무로 깎은 작은 배를 만들어 불경과 말린 양식을 싣고 배에 탄 사람의 성명을 써서 넣은 뒤 바다에 던졌다고 했다. 민간에선 짚으로 만든 사람 모양의 제웅은 안에 돈이나 쌀을 넣어 길가에 버림으로써 액막이를 하거나 병을 낫게 한다고 믿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에 하늘이나 민간신앙에 의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이기적으로 행해진 범죄도 많았다. 특히 조선의 궁중에서는 임금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비빈 궁녀들의 염승 암투가 사극의 단골소재가 됐다.

한 예로 成宗(성종)의 계비 尹氏(윤씨)는 다른 비빈들이 염승한다고 모함하다 되레 폐비가 됐고 처절한 甲子士禍(갑자사화)의 원인이 됐다. 乾坤一擲(건곤일척)의 일전에서 상대방을 정당한 방법으로 이겨 압승하면 두고두고 기림을 받는다. 온갖 승부조작을 하고 나쁜 모략을 써서 이긴다면 아무리 압승을 해도 언제든지 드러나 영원히 지탄을 받는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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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23
벌부당죄罰不當罪 - 형벌이 지은 죄에 비해 합당하지 않다.

벌부당죄(罰不當罪) - 형벌이 지은 죄에 비해 합당하지 않다.

벌할 벌(网/9) 아닐 불, 부(一/3) 마땅 당(田/8) 허물 죄(网/8)

잘못을 저지르거나 죄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죄인에게 벌을 주는 罰(벌)이란 글자를 분해하면 얼굴을 그물살 罒(망)처럼 찌푸리고 말로 꾸짖는 詈(리) 옆에 위엄을 보이는 칼 刀(도)가 있다. 그만큼 죄의 경중에 따라 공정하게 벌이 시행돼야 한다.

‘죄는 지은 데로 가고 덕은 닦은 데로 간다’는 말을 누구나 믿으면 좋으련만 같은 죄를 저지르면서 자신은 별 것 아니고 남의 행위는 용서 못할 중죄라 여긴다. 하지만 ‘죄는 막둥이가 짓고 벼락은 샌님이 맞는다’는 말대로 나쁜 짓을 하고 이익을 차지하는 사람과 벌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형벌(罰)이 지은 죄에 비해 합당하지 않다(不當罪)면 승복할 사람이 없이 불만만 쌓인다. 예의로써 사람의 성질을 교정해야 한다며 性惡說(성악설)을 주창한 荀况(순황)은 그의 사상을 모은 ‘荀子(순자)’에서 이에 관해 단언한다.

형벌을 가하는 본래의 뜻은 ‘난폭한 것을 금하고 악을 미워하며, 앞날을 경계하자는 것(禁暴惡惡 且懲其未/ 금폭오악 차징기미)‘인데 살인 등 중죄를 저지른 범인을 가볍게 처벌한다면 나라는 혼란에 빠질 것이라 주장한다. 正論(정론)편에 모든 작위와 상벌 등은 모두 선악에 대한 보수이며 응분의 결과인데 그것이 합당하지 않으면 국가 혼란의 발단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어의 부분이 이어진다. ‘무릇 덕행이 작위에 맞지 않고, 능력이 관직에 맞지 않으며(夫德不稱位 能不稱官/ 부덕불칭위 능불칭관), 포상이 공적에 적당하지 않고, 형벌이 범죄에 합당하지 않으면(賞不當功 罰不當罪/ 상부당공 벌부당죄)’ 이보다 더 큰 불상사는 없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 淸(청)에 대해 대표적 척화신이었던 金尙憲(김상헌, 1570~1652)은 이 말을 넣어 명언을 남겼다. ‘벌이 죄에 합당하지 않은 일치고 잘못 아닌 것이 없습니다(罰不當罪 何事非尤/ 벌부당죄 하사비우)’라며 임금께 바른 말을 올렸다가 귀양 간 언관을 변호했다.

순자의 가르침이 아니라도 일반 사람들은 지은 죄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죽을죄라도 저지르기 전에 무섭지 저지른 후에는 겁이 없어져 배짱인 사람은 대체로 배경이 있다.

이제는 사법 불평등의 대표적 성어가 된 無錢有罪(무전유죄)는 말할 것도 없고 거기서 파생된 有權無罪(유권무죄)도 부당의 대표적인 것으로 본다. 하지만 선량한 국민들은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錢可通神(전가통신)보다 天網恢恢 疎而不失(천망회회 소이불실, 恢는 넓을 회)란 말을 기대한다.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 보이지만 그 무엇도 놓치는 일이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040.html
kolaswqetsrq 11.02 08:24
망언망청妄言妄聽 - 되는대로 말하고 아무렇게나 듣는다.

망언망청(妄言妄聽) - 되는대로 말하고 아무렇게나 듣는다.

망령될 망(女/3) 말씀 언(言/0) 망령될 망(女/3) 들을 청(耳/16)

망할 亡(망)이란 글자는 부러진 칼을 뜻했다고 한다. 전장에서 칼이 부러지면 도망가거나 죽을 수밖에 없어 ‘망하다‘는 의미가 생겼다. 여기서 마음이 도망가면 잊을 忘(망)이 되고 시력이 도망가면 눈멀 盲(맹)이 된다. 그런데 망령될 妄(망)에 여자(女/ 녀)가 들어 평등시대에 불만이 많을 듯하다.

父權(부권)이 강했던 고대 중국에서 여자가 그릇된 생각이나 행동을 한다고 생각한 데서 만들어졌단다. 늙거나 정신이 희미해져 사리에 맞지 않게 말하는 妄靈(망령)은 말이 도망간 ’노둔할 吂(망)‘이 따로 있는데 억울할 만하다. 어떻든 사리에 맞지 않고 제멋대로 주저리주저리 하는 妄言(망언)에 진지한 말이라도 진지하게 듣지 않는 妄聽(망청)이면 격에 맞다.

道家(도가)의 대표 저작인 莊周(장주)의 ‘莊子(장자)’에서 유래한 성어다. 난해한 구절이 많기로 이름난 齊物論(제물론)편에서 한 측면만을 본 진리는 있을 수 없다며 지식과 논쟁을 부정한다. 孔子(공자)의 제자라고도 하는 가공인물 瞿鵲子(구작자)와 長梧子(장오자)의 문답에서 나온다.

공자에게서 들었다며 구작자가 묻는다. 성인은 세상의 일에 종사하지 않고, 이해관계도 초월하며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한 것으로 여겨 세속 밖에서 노닌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허튼소리라 하고 자신은 도를 실행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장오자의 의견이 어떠한지 물었다.

장오자는 道敎(도교)의 시조 黃帝(황제)도 이해하지 못할 일인데 어찌 알겠느냐며 탄환을 보고서 새 구이를 바라는(見彈求炙/ 견탄구자) 만큼 서두르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말한다. ‘내가 생각나는 대로 말해볼 테니(予嘗爲汝妄言之/ 여상위여망언지), 그대도 되는대로 들으시오(汝以妄聽之奚/ 여이망청지해).’ 이어지는 설명은 되는 대로가 아닌 이야기다.

뭇사람은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잘잘못을 가리는데 성인은 우둔하여 만년의 세월을 한순간으로 생각한다며 공자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도 儒家(유가)에 대해 꼬집는데 임금이니 신하니 하는 생각으로 굳어져 있어 꿈을 꾸는 것조차 모를 것이라 말한다.

劉安(유안)의 ‘淮南子(회남자)’엔 입과 귀만 대충 말하고 듣는 것이 아니고 눈도 조심하라고 더 좋은 말이 나온다. ‘눈으로 아무 것이나 본다면 음심이 생기고(目妄視則淫/ 목망시즉음), 귀로 아무 것이나 들으면 미혹에 빠지며(耳妄聽則惑/ 이망청즉혹), 입으로 마구 지껄이면 화를 입는다(口妄言則亂/ 구망언즉난).’ 主術訓(주술훈)에 실려 있다.

말을 할 때나 들을 때는 진의가 전달되도록 진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없는 사실을 억지 주장하여 상대방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은 오래도록 상처가 된다. 개인 간에도 그러한데 특히 정치권에선 조심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938.html
kolaswqetsrq 11.02 08:25
분정항례分庭抗禮 - 손님을 마주 보고 대등하게 예의를 갖춰 대하다.

분정항례(分庭抗禮) - 손님을 마주 보고 대등하게 예의를 갖춰 대하다.

나눌 분(刀/2) 뜰 정(广/7) 겨룰 항(扌/4) 예도 례(示/13)

집으로 손님이 방문했을 때 불청객이 아닌 한 격식을 갖춰 공손히 접대하는 것은 기본이다. 신발을 거꾸로 신고 반갑게 맞이했다는 倒屣迎客(도사영객)이나 식사 중에도 열 번이나 일어났다는 一饋十起(일궤십기, 饋는 먹일 궤) 등의 환대는 자기를 도와 줄 귀한 손님이 왔을 때다. 그렇지 않다고 해서 자신은 높은 자리서 맞으며 손님을 아래에 앉게 한다면 예가 아니다.

손님을 맞으며 대등하게 예의를 지킨다는 성어로 뜰에 마련한 자리를 나눠(分庭) 대등하게 예의를 갖춘다(抗禮)는 것이 있다. 남북으로 나뉜 집안 정원에서 주인은 동쪽, 손님은 서쪽을 이용하는 데서 나왔다고 한다. 分庭伉禮(분정항례, 伉은 짝 항)로도 쓴다.

孔子(공자)의 제자 子路(자로)와 子貢(자공)이 성어와 관련, 대조적으로 나와 흥미롭다. 먼저 무뢰한 출신으로 성격이 강직한 자로가 스승을 하대한 어부에게 분개하는 장면이 ‘莊子(장자)’에 나온다. 공자가 식견이 매우 높은 한 어부를 만나 공손하게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노를 저어 떠나자 자로가 불만에 찬 소리로 여쭈었다.

‘만승의 군주나 천승의 제후라도 스승님을 만날 때에는(萬乘之主 千乘之君 見夫子/ 만승지주 천승지군 견부자), 뜰의 반쪽을 차지하고 대등한 예를 갖췄는데(未嘗不分庭抗禮/ 미상불분정항례)’ 보잘것없는 어부에겐 지나쳤다고 했다. 공자는 자로가 현자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꾸짖었다. 漁夫(어부)편에 있다.

孔門十哲(공문십철) 중 언어의 자공은 그만큼 말재간이 좋은데다 이재에도 밝았다. ‘史記(사기)’의 貨食(화식) 열전과 ‘漢書(한서)’의 貨殖傳(화식전)에 같이 등장할 만큼 공자의 유교가 후세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물심양면으로 자공의 기여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자공은 재력을 바탕으로 사두마차에 비단 선물을 가득 싣고 제후들을 방문했다.

성어의 부분을 보자. ‘그가 이르는 곳마다 군주제후를 불문하고, 뜰 양쪽으로 내려서서 예를 표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所至 國君無不分庭與之抗禮/ 소지 국군무불분정여지항례).’ 공자의 이름이 천하에 알려지게 된 것은 자공의 이러한 재력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본 것이다.

도움을 주는 중요한 손님은 물론, 장사나 공연에 온 고객 등도 귀하게 대접해야 마땅하다. 손님을 환영하는 집은 망하지 않는다거나 손님을 후대하는 사람은 신을 잘 섬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떠난 뒤에 뉘우친다(不接賓客去後悔/ 부접빈객거후회)’고 朱子(주자)는 가르쳤다.

그런데 주인의 대접을 잘 받았으면 손님도 체면을 잘 차려야 한다. 客反爲主(객반위주)라 하여 나그네가 도리어 주인 노릇한다면 꼴불견을 넘어 쫓겨나도 할 말 없다. 조그만 도움을 준다고 이것저것 요구하는 갑질 손님은 대등한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216.html
kolaswqetsrq 11.02 08:26
경당문노耕當問奴 – 밭가는 일은 의당 종에게 묻는다, 모르는 일은 전문가에 따른다.

경당문노(耕當問奴) – 밭가는 일은 의당 종에게 묻는다, 모르는 일은 전문가에 따른다.

밭갈 경(耒/4) 마땅 당(田/8) 물을 문(口/8) 종 노(女/2)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이 잘 하는 분야가 있어 그 일로 살아간다. 보통 사람은 어느 정도 타고난 재주이든, 뒤늦게 각별한 노력으로 습득했든 그것으로 생업을 영위한다. 하지만 모두에 능통할 수는 없어 분야마다 전문가가 있기 마련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고위직이 잘 모르는 분야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孔子(공자)도 지위나 학식이 자기보다 못한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며 不恥下問(불치하문)이란 말을 남겼다. 실제 뽕따는 아낙에게 구슬에 실 꿰는 법을 물었다는 孔子穿珠(공자천주)의 고사도 따른다.

논밭을 경작하는 농사일은 글을 많이 읽어 아는 것이 많을 주인도 모르는 분야다. 이런 일은 의당 머슴에게 물어보아야 한다는 뜻의 이 성어는 南朝(남조) 梁(양)나라의 문인 沈約(심약)이 쓴 ‘宋書(송서)’에서 유래했다.

織當問婢(직당문비)라는 말도 같은 뜻으로 나왔다. 중국 남북조시대는 남쪽에 한족의 宋(송)나라가 북쪽의 五胡十六國(오호십륙국)과 대치한 서기 420~589년 시기를 말한다. 북쪽의 혼란을 수습한 北魏(북위)가 북방의 이민족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키자 송나라의 文帝(문제)는 정벌할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당시 송에는 沈慶之(심경지)라는 책략이 뛰어난 무관이 있었다. 먼저 왕이 출병의사를 물었으나 아직 북위를 이길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문제는 고집을 꺾지 않고 전쟁경험이 없는 문신들을 불러 모아 논의했다. 심경지가 북벌의 실패를 들어 문신들을 꾸짖으며 여전히 반대했다.

‘국가를 다스리는 일은 집안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밭가는 일은 농부에게 물어보고, 베 짜는 일은 하녀에게 물어야 합니다(治國譬如治家 耕當問奴 織當訪婢/ 치국비여치가 경당문노 직당방비).’ 그러면서 임금께 얼굴 허연 선비들과 전쟁을 도모하면 안 된다고 간언했다. 여기서 白面書生(백면서생)이란 성어도 나왔다. 이처럼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군사를 일으켰다가 참패했다.

아랫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은 직위가 높은 사람에겐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 생각하기 쉽다. 부족함을 채워 일을 더욱 잘 처리하기 위한 것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도 다른 사람은 모른다고 벽을 쳐서 접근을 막고 자기들만의 이익을 도모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265.html
kolaswqetsrq 11.02 08:27
상루담제上樓擔梯 - 다락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우다.

상루담제(上樓擔梯) - 다락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우다.

윗 상(一/2) 다락 루(木/11) 멜 담(扌/13) 사다리 제(木/7)

위험한 높은 곳에 사람을 올려놓고(上樓) 사다리를 없애 버린다면(擔梯) 올라간 사람은 속았다고 분통을 터뜨릴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나쁘게 이용하지 않고 지붕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 절박감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게 하는 길잡이도 될 수 있다. 또 반대로 높은 곳에 많은 것을 숨겨 놓고 아래에서 올라오지 못하게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면 위의 사람들은 욕심이 많다고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성어가 上樓擔梯다.

南朝(남조) 宋(송)나라의 문학가 劉義慶(유의경)이 쓴 일화집 ‘世說新語(세설신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東晋(동진)의 8대 왕 簡文帝(간문제) 때의 일이다. 정치가이자 장군인 桓溫(환온)이란 사람이 蜀(촉)을 평정한 뒤로 더욱 세가 막강해지자 왕이 견제하기 위해 학식이 뛰어난 殷浩(은호)에 중책을 맡겼다. 둘은 죽마고우였으나 왕의 의도대로 사사건건 대립하는 정적이 됐다.

은호가 호족을 막기 위해 출병했다가 말에서 떨어져 참패하자 환온이 규탄상소를 올려 귀양가게 되었다. 은호가 왕을 원망하며 말했다. ‘사람을 백 척 다락에 올라가게 해놓고 사다리를 치워버리는구나(上人箸百尺樓上 儋梯將去/ 상인착백척루상 담제장거).’ 箸는 젓가락 저와 붙일 착, 儋은 擔과 같이 멜 담. 우리 속담을 모은 ‘松南雜識(송남잡지)’에는 같은 뜻으로 登樓去梯(등루거제)라 쓰고 있다.

적을 유인하여 사지에 몰아넣은 뒤 주도권을 잡는 上屋抽梯(상옥추제)는 三十六計(삼십육계) 중의 계책이지만 실제 諸葛亮(제갈량)을 다락에 올려놓고 계책을 구하는 劉琦(유기)의 이야기가 ‘三國志(삼국지)’에 나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성어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사어로 만든 ‘세습귀족’에 대해 젊은 층들이 더 실감한다. 개발연대에 손쉽게 부를 일궜거나 권력을 잡은 이들이 그것을 자식들에게만 물려주고 다른 사람이 넘겨 볼까봐 사다리를 걷어찬 것이다. 대졸 실업자가 부지기수인데도 대기업 노동조합은 높은 벽을 쌓고, 세대 간 갈등이 더 심화되기 전에 튼튼한 사다리를 놓아야 함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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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28
잡곡의 건강한 효능 6가지

잡곡의 건강한 효능 6가지

1. 현미

현미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맞는 음식이지만 열이 많은 사람은 과하지 않아야 한다. 현미에는 식이섬유와 생리활성 물질, 비타민E 등이 풍부하다. 때문에 대장활동을 돕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춰주어 혈관질환을 예방하고 항산화작용에 도움이 된다. 이외에도 당뇨, 암, 간질환 예방에도 좋다.

2. 기장

폐와 비장에 좋고 기를 보충한다고 알려져 있다. 식이섬유와 비타민B가 백미보다 풍부하여 암세포를 억제하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단백질, 마그네슘, 칼슘, 탄수화물이 풍부하다.

3. 조

뼈가 신경 쓰이는 분들께 추천한다. 조에는 칼슘이 풍부하여 성장기 아이들이나 골다공증의 예방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소화불량에도 좋고, 수용성 비타민이 있어 성인병 예방과 피로회복에 좋다.

4. 콩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데 효과적인 콩은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유방암을 예방하는 이소플라본이 풍부하여 천연 여성 호르몬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5. 팥

차가운 성질을 가진 팥은 몸이 잘 붓는 체질에게 추천한다. 팥에는 수분을 배출하는 효과가 있음과 동시에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변비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지방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어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6. 수수

수수는 노화를 예방하고 장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수수에는 백미보다 많은 비타민 B2와 마그네슘, 단백질, 칼슘이 있으며 타닌과 페놀성분이 있어 활성산소를 제거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기침과 감기 같은 기관기염에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6_66.html
kolaswqetsrq 11.02 08:29
부추의 효능

부추의 효능

○ 동의보감\에 따르면 "성질이 매우 따뜻하고 김치로 만들어 늘 먹으면 몸에 좋다"고 기록되어 있을정도로 부추 효능은 좋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도와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부추는 우리 몸에 유해한 어혈을 없애고 혈액을 맑게해 줘서 각종 혈관계 질환을 예방하고 완화시켜 준다고 합니다.

○ 음주가 잦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부추즙 효능은 숙취해소 및 피로회복 기능이 있습니다.

○ 부추즙에는 각종 비타민과 철분, 칼슘 등 몸에 필요한 영양분들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알콜로 인해 손상된 간세포 조직을 원상태로 빠르게 회복시켜주고 간기능을 강화시켜주는데 효과적입니다.

○ 풍부한 섬유질을 함유하고 있는 부추즙 효능에는 변비 해소에 도움을 주는 기능도 있습니다.

○ 지속적으로 부추즙을 섭취해주면 장운동을 활발하게 하고 장기능을 강화시켜 주어 배변활동이 원활하게 되는데 도움을 줍니다.

○ 남성들에게 특히 좋은 부추즙 효능이 있습니다. 바로 정력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점입니다. 부추에는 다량의 황화아릴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지속적으로 섭취시 남성들의 발기부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황화아릴 성분은 여성들에게도 좋은 성분입니다. 생리통이나 생리불순, 손발저림 및 냉증 등 다양한 부인병을 예방하고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 부추는 지혈 작용을 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민간과 한방에서 토혈, 각혈, 코피 등의 지혈제로 처방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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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추에는 매운 맛의 천연 피로회복제로 알려져있는 황화알릴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피로를 풀어주고 활력이 높아져 정력도 자연스레 증가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서태후도 양기를 보충하기 위해 부추를 섭취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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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추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성질이 있어 어혈을 풀어주고 혈액순환이 원활하도록 도와줍니다.

○ 어깨가 결린다거나 허리가 아플 때, 어혈로 인하여 입술의 색깔이 자줏빛을 띠고 얼굴에 기미가 낄 때에도 부추를 섭취하면 좋습니다.

○ 부추즙을 만들어 섭취하거나 현미와 함께 죽을 쑤어 꾸준히 섭취하면 효과가 지속이 됩니다.

○ 부추는 항균작용이 있어서 식중독이 잦은 여름철에 특히 권할만한 채소 중 하나입니다.

○ 부추를 꾸준히 섭취하면 몸이 찬 사람에게 따뜻한 기운을 불어 넣어 주고, 중풍에 걸릴 확률이 많이 감소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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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29
피부 재생을 돕는 탁월한 음식

피부 재생을 돕는 탁월한 음식

01. 빨간 파프리카 : 초록색에 비해 비타민 C가 2배 더 많고 베타카로틴의 성분 함량도 높다. 또 붉은색을 띄는 색소인 ‘리코펜’이 함유돼 있는데 리코펜은 신체의 노화와 질병을 일으키는 ‘활성산소’ 생성을 예방해 준다. 피부의 탄력을 유지해 주고 노화를 예방하는데 탁월하다. 또 성장기 어린이들이 성장촉진과 면역력 강화에 효과적이며 성인들은 골다공증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02. 다크 초콜릿 : 카카오가 풍부하게 들어가는 다크 초콜릿은 설탕이 대부분인 초콜릿에 비해 비교적 칼로리가 낮다. 다크 초콜릿은 플라보노이드라는 항산화제가 있어 심장건강에 좋으며 행복 호르몬인 세라토닌 분비를 촉진시켜 안정감과 행복한 느낌을 갖게 해준다.

03. 연어 : 연어가 다크서클에 좋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연어에 들어 있는 오메가3는 세포 재상에 필수적이며 노화가 가장 빨리 찾아오는 눈가 피부를 건강하고 환하게 밝혀준다. 또한 자외선 노출로 인해 두꺼워진 피부를 부드럽고 윤기있게 하고, 피부의 콜라겐 섬유 부족현상을 막아 주름 예방에 효과적이다.

04. 코코넛 오일 : 안젤리나 졸리나 미란다 커 등 해외 스타들은 피부미용과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코코넛 오일을 즐겨 먹는다. 체내 지방을 분해하고 쌓이는 것을 막아주고 쉽게 포만감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먹는 것 외에 피부에 바르는 것도 효과를 높인다고 한다. 목욕 후 코코넛 오일을 피부에 바르면 흡수가 빨라 피부 보습과 고운 피부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05. 녹차 : 녹차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피부 미용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식품이다. 폴리페놀을 함유하고 있어 항산화효과가 높다. 또한 비타민C가 풍부해 피부를 매끄럽고 부드럽게 해주는 효과가 높다. 특히 해독효과가 좋아 꾸준히 차로 마시면 건강은 물론 피부 미용에 효과를 볼 수 있다.

06. 시금치 : 시금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시금치는 피부의 트러블이 생기는 것을 막고 푸석하지 않게 유지해 준다. 또한 세포가 노화되는 것을 억제해 주기 때문에 피부 노화 예방에 탁월한 채소로 잘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나트륨을 제거하고 혈액 순환을 개선해 건강식품으로 꼽힌다.

07. 각종 씨앗 : 각종 씨앗에 많이 들어있는 레시틴성분과 리놀산 등의 성분은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고 피를 맑게 해 피부의 건강에 좋다. 단시일에 성과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각종 씨앗을 즐겨 먹으면 혈관을 맑게 하기 때문에 피부의 탄력과 촉촉함을 유지해 준다. 특히 비타민E 성분이 풍부해 피부의 촉촉함을 오래도록 유지해 주고 마그네슘과 단백질이 풍부한 것도 피부의 건강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이 함유됐다.

08. 샐러리 : 샐러리는 피를 깨끗하게 하고 신경을 안정시키는 작용이 있어 흥분과 불안 증세를 가라앉힌다. 신경이 날카로운 이유로 불면증에 시달릴 때 먹으면 숙면을 취하게 돕는다. 피로 회복에 효과가 높아 피부의 탄력과 윤기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젖산과 팔빈산과 같은 피로 물질을 제거해 정신노동에 지친 현대인에게 유익하다.

09. 파파야 : 파파야에는 비타민C 함유량이 많다. 파파야는 피부의 진피층을 보호해 주름살 등을 예방하는 콜라겐 형성을 돕는다. 파파야에는 피부 노화를 막는 비타민E도 풍부하게 들어 있다.

10. 당근 : 당근은 소염 작용이 뛰어나 피부 모공 속의 병균을 죽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습진 등 피부 질환을 예방하고 완화 시킨다고 한다. 당근에 많이 함유된 비타민A는 피부암을 유발하는 세포 생성을 막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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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30
■ 사관史官과 사초史草 3편

■ 사관(史官)과 사초(史草) 3편

조정에서는 사관이 기록하는 사초의 질과 양 및 직필(直筆)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정을 논의하는 자리와 왕과 신하가 대면하는 모든 곳에 사관이 참여하도록 하고, 승정원 옆의 한 칸을 사관의 거처로 삼게 하였다. 또한 사초를 누설하거나 개작 또는 삭제한 자는 참수형 이하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국왕의 사초·실록 열람 금지, 사초 작성자의 이름 불기재(명종 이후에는 기재) 등의 조치를 행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사관의 직필을 꺼린 국왕이나 대신 등의 탄압이 가해지고, 국왕이 “승지가 사관직을 겸하여 국왕의 언동과 국사를 기록하니 사관은 입시하지 말라.” 등의 탄압으로 가끔 사관의 입실(入室)이 중지되기도 하였다. 또한, 정쟁(政爭)과 연루되어 직필과 공정성이 결여되기도 하였지만, 국왕과 집권관료들의 전횡(專橫: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름)과 비리를 은연중에 견제하여 유교정치가 표방하는 덕치(德治)를 행하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대왕도 史草 앞에서 약한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 일화 한 토막이 전한다. 하루는 아버지 태종의 치적을 사관이 어떻게 평가할 지가 궁금해 태종 때의 사초(史草)를 보자고 했다가 원칙을 고수한 사관으로부터 정중하게 거절당하고 만다. 아마 세종대왕이 폭군이었다면 왕명을 거절한 그 사관을 죽여서라도 사초를 열람했을 수도 있었을 터이다.

조선왕조의 사관은 전임사관(專任史官)과 겸임사관(兼任史官)으로 구성된다. 전임사관은 이른바 한림팔원(翰林八員)이라 불리기도 했던 예문관 관원인 봉교(奉敎) 2명, 대교(待敎) 2명, 검열(檢閱) 4명 등 총 8명이다. 왕이 계시는 곳이면 어디서든 붓을 들고 기록하기에 이들이 작성한 기록을 입시사초(入侍史草)라 부른다. 비록 미관말직이라도 맡은 임무가 워낙 중요하고 임용절차도 까다로워 세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한편 겸임사관은 주요 관청의 관원들로 춘추관의 관원을 겸직한 사관들이다. 겸임사관들은 각각 자신이 속해 있는 관청에서 일어나는 나날의 사건과 업무를 기록하여 춘추관에 보고하였다. 이를 춘추관일기(春秋館日記)라 불렀다. 입시사초와 춘추관일기는 연월일 순서로 정리하여 시정기(時政記)로 만들어 실록 편찬에 활용하였다.

한편 외사(外史)라 하여 각 도의 관찰사나 수령을 별도로 임명해 지방의 일들을 춘추관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중앙뿐 아니라 지방 곳곳에도 사관을 배치하여 실록 편찬의 자료들을 평상시에 기록하고 모아둠으로써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은 그 어느 역사서보다 상세하고 생생한 특징을 갖는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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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31
■ 사관史官과 사초史草 1편

■ 사관(史官)과 사초(史草) 1편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기록한 책이다. 조선시대의 정치, 외교, 경제, 군사, 법률, 통신, 종교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총망라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우수한 역사기록물이고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실록을 편찬할 때 이용하는 자료는 정부 기관의 각종 기록과 개인의 문집들이 있지만, 이 중에서도 특히 사초(史草)는 사관(史官)이 국가의 모든 회의에 참여하여 보고 들은 내용을 빠짐없이 적은 기록이다. 사관(史官) 이외에는 국왕조차도 볼 수 없게 하여 사관의 신분을 보장하고, 기록의 객관성과 진실성을 확보하였다. 그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조선시대의 왕실은 물론 일반 백성들의 생활까지도 세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사관(史官)은 ‘역사 사(史) 벼슬 관(官)’ 으로, 글자 그대로 ‘역사(歷史)를 기록(記錄)하는 관리(官吏)’ 이다. 사관(史官)은 중국에서 황제(黃帝)와 신하의 좌우에 위치하면서 그들의 행동을 기록하는 좌사(左史)와 말言을 기록하는 우사(右史)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왕의 언행과 관료들의 행정 등 시정(時政)을 기록하는 일을 했다. 우리나라도 고구려·백제·신라 때 여러 역사책이 편찬된 것으로 보아 사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정식으로 사관(史館=관아)을 설치하고 사관(史官)이란 관리가 있었는지는 명확한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아 확실하지 않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광종 때에 당(唐)의 사관제도(史館制度)를 받아들여 궁내에 사관(史館)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직접 실무를 맡은 한림원(翰林院)의 수찬관, 직사관이 사관(史館=관아)에서 왕이나 백관들의 언행, 정치 등 모든 기록을 담당하여 이를 사관(史官)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도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예문관과 춘추관의 공봉, 수찬, 직관이 다른 직과 겸하여 국사의 기록을 담당하였는데 이들을 사관(史官) 또는 한림(翰林)이라 하였다. 사관(史官)은 최고 권력자인 국왕의 언행과 행동 뿐 아니라, 관리들에 대한 평가와 주요 사건, 사고 등 당시의 기록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국왕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서 국왕의 언행 및 행동을 기록했다. 이러한 사관의 역할로 인하여 왕과 신하는 은밀히 만나 정사를 의논할 수 없었다.

왕명을 출납하는 승지(承旨)와 함께 궁중에서 숙직하고, 각종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국왕과 신하들이 국사를 논의・처리하는 것을 사실 그대로 기록할 뿐만 아니라, 그 잘잘못과 인물에 대한 비평까지 기록했다. 임금이 신하를 대면(對面)할 때엔 정승\uf0a0판서와 같은 고관이라 할지라도 독대할 수 없었고, 반드시 승지와 사관이 자리를 같이함으로써 사사로운 청탁이나 남을 중상・모략하는 것을 막도록 하였다. 또한 국왕과 대신들의 부적절한 권력남용과 부패를 방지할 수도 있었고, 열린 정치를 할 수 있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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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32
■ 국혼國婚 2편

■ 국혼(國婚) 2편

혼례식에서는 왕실의 화려함과 함께 위엄을 돋보이게 하는 각종 도구들이 활용되었는데, 의장 깃발에는 해·달·산천을 비롯해 사신도에 표현된 동물, 가구선인(駕龜仙人) 등의 그림을 그려넣어 왕실의 위엄을 더했다. 의장물은 시각적인 것과 악기와 같은 청각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시각적인 것은 창·칼·도끼 등과 같은 군사적인 힘을 상징하는 것과, 그늘을 만들어주는 실용성과 신선들이 주로 사용했다는 상징성을 겸비한 부채인 선(扇)·양산(陽橵)·개(蓋) 등이 활용되었다. 악기는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고, 행렬의 앞뒤의 동작을 일치시켜주는 기능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 구령붙이는 것과 같은 기능을 했을 것이다.

왕비는 별궁에서 조선시대 최고 신분의 여성을 상징하는 복식 적의(翟衣)를 입고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왕의 책봉문을 받았다. 책비(冊妃) 이후에는 상궁과 궁녀들이 왕비에게 대궐 안주인에 대한 예를 차려 네 번의 절을 올렸다. 이때부터 왕비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날 왕은 최고의 예복인 면류관(冕旒冠)에 곤복(袞服), 상(裳), 중단(中單), 폐슬(蔽膝), 혁피, 패옥, 말석, 규(圭) 등으로 구성된 구장복(九章服)을 입었다.

왕과 왕비도 최고의 복식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수행하는 행렬의 모습도 화려했다. 의례복은 형태나 색채가 화려하고 독특한 개성이 나타났고, 일부 여성들은 너울과 같은 가리개를 착용했다. 행렬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백마를 비롯해 흑마·갈색마 등 다양한 색깔을 띤 말의 모습도 보인다.

대궐로 들어온 왕비는 그날 저녁에 왕과 함께 술과 음식을 들고 침전에서 첫날밤을 치르는 절차를 거친다. 왕은 대궐의 침전 문까지 나와 왕비를 맞이한 다음 침전의 중앙 계단을 통해 음식상이 차려진 방으로 갔다. 왕과 왕비는 하나의 박을 쪼개어 만든 잔으로 석 잔의 술을 마신 후 왕의 침전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여기까지 진행되면 국왕의 혼례 절차는 사실상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왕비에게는 대비나 왕대비 등 왕실 어른들을 뵙고 인사하고, 조정백관과 내·외명부의 여성들로부터 인사를 받는 절차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왕비가 정해진 후에 왕은 중국 황제에게 왕비 책봉을 요청하였다. 조선의 왕비는 중국 황제가 보내준 고명(誥命)을 받음으로써 국내외적으로 지위가 공인되었으며, 국왕혼례도 완결되었다.

혼례가 끝난 후 왕비의 친정에는 당연히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데, 왕비의 아버지는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지고, 어머니는 부부인(府夫人)으로 봉해지게 된다. 그리고 왕비의 본향은 행정단위를 승격 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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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33
양질호피羊質虎皮 - 속은 양이고 거죽만 호랑이, 실속은 없이 겉만 화려하다.

양질호피(羊質虎皮) - 속은 양이고 거죽만 호랑이, 실속은 없이 겉만 화려하다.

양 양(羊/0) 바탕 질(貝/8) 범 호(虍/2) 가죽 피(皮/0)

겉은 화려하고 속은 보잘 것 없는 경우를 잘 나타내는 우리 속담이 ‘빛 좋은 개살구’다. 비슷한 ‘개 발에 편자’는 옷차림이나 지닌 물건 따위가 제격에 맞지 않는 것을 비유한다. 어느 것이나 본바탕은 빈약한데 겉모양만 꾸미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 부합하는 성어는 양의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다는 羊頭狗肉(양두구육)이 가장 잘 알려졌다.

속 바탕은 양(羊質)이고 껍데기만 호랑이(虎皮) 무늬라는 뜻의 이 말도 위엄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연약한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을 나타낸다. 바로 表裏不同(표리부동)이고 魚質用紋(어질용문), 蛇心佛口(사심불구) 등도 같은 의미다.

비유가 쉽고 적합해서인지 여러 곳에서 인용되어 있는 말이다. 먼저 前漢(전한)의 문장가 揚雄(양웅)이 論語(논어)의 문체를 빌려 쓴 ‘法言(법언)’에 나오는 이야기다. 옛날 성이 孔(공)씨인 어떤 사람이 자를 仲尼(중니)라 쓰면 孔子(공자)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무늬는 맞더라도 바탕은 아니라며 설명한다.

양의 몸뚱이에 호랑이 가죽을 씌어 놓았더니 모두들 무서워했지만 ‘풀을 보면 여전히 좋아하고 이리를 보면 벌벌 떨었다(羊質而虎皮 見草而說 見豺而戰/ 양질이호피 견초이열 견시이전)’고 했다. 豺는 승냥이 시. 본질은 바뀌지 않은 채 겉보기만 호랑이니 양이 승냥이를 만나면 가죽을 덮어쓴 사실을 잊는 법이라는 것이다.

‘後漢書(후한서)’ 劉焉(유언)전에는 ‘양 몸뚱이에 호랑이 가죽을 씌웠어도 이리를 보면 떨었다(羊質虎皮 見豺而恐/ 양질호피 견시이공)’으로 약간 바꿔 사용됐다. 曹丕(조비)의 ‘與吳質書(여오질서)’에 나오는 ‘개나 양의 자질로 호랑이나 이리의 무늬를 뒤집어썼다(以見羊之質 服狐豺之文/ 이견양지질 복호시지문)’란 표현도 모두 같은 이야기에서 활용된 것이다.

가수로 전 계층서 인기를 끌던 연예인이 자신의 표현대로 ‘쫄딱 망했다.’ 그는 노래뿐 아니라 다양한 그림으로 화가로도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그 그림들이 무명화가가 代作(대작)한 것이 밝혀지고 아이디어가 본인 것이니 자신의 독창이라 변명했다가 질타를 받았다.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더라도 작품 구입자들은 겉과 속이 다른 작품을 산 것이라 우롱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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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34
좌고우면左顧右眄 - 왼쪽 오른쪽을 돌아보다, 앞뒤를 재고 망설이다.

좌고우면(左顧右眄) - 왼쪽 오른쪽을 돌아보다, 앞뒤를 재고 망설이다.

왼 좌(工/2) 돌아볼 고(頁/12) 오른 우(口/2) 곁눈질할 면(目/4)

이 쪽도 옳은 것 같고 저 쪽도 옳은 것 같다. 내가 가진 것도 좋지만 상대가 가진 것은 더 좋아 보인다. 한 쪽은 포기해야 더 나은 길을 택할 수 있을 텐데 판단을 망설일 때가 많다. 앞서 소개했던 首鼠兩端(수서양단)의 모양이다.

쥐구멍에서 나온 쥐가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판단이 서지 않는 모습을 그렸다. 왼쪽을 돌아보고(左顧) 오른쪽을 살펴본다(右眄)는 이 성어도 앞뒤를 재고 망설이는 것을 가리킨다. 首尾兩端(수미양단), 右盼左顧(우반좌고, 盼은 눈예쁠 반), 左右顧視(좌우고시), 瞻前顧後(첨전고후) 등 같은 뜻의 말도 많다.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지도자의 입장에서 이런 태도를 취하면 결단력이 없다고 손가락질을 하겠지만 성어가 처음 사용됐을 때는 뜻이 사뭇 달랐다. 왼쪽을 둘러봐도 오른쪽을 살펴봐도 자기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만만한 모습을 형용하는 말이었다.

중국 魏(위)나라의 曹植(조식)이 吳質(오질, 177~230)이란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래됐다. 曹操(조조)의 아들인 조식은 일곱 걸음 걸으면서 지은 칠보시로 뛰어난 시재를 자랑했고, 오질은 자가 季重(계중)으로 재능과 학식이 뛰어나 열후에 봉해진 사람이었다.

조식이 쓴 ‘與吳季重書(여오계중서)’에 술이 거나한 술자리에서 퉁소와 피리가 뒤에서 연주하면 독수리처럼 비상하여 봉황이 탄복하고 호랑이가 응시할 것이라고 오질을 치켜준다. 그러면서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살펴보아도 사람다운 사람이 없다고 할 것이니 어찌 당신의 장한 뜻이 아니겠습니까(左顧右眄 謂若無人 豈非吾子壯志哉/ 좌고우면 위약무인 기비오자장지재)?’하며 극찬한다. 이처럼 주위의 어떤 사람보다 출중하다고 나타내던 말이 이쪽저쪽 돌아보는 눈치 보기로 변했으니 의외다.

앞뒤 재지 않고 함부로 추진하여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는 낫지만, 지나치게 신중하여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는 것도 추진력이 떨어져 답답하다. 국가의 미래를 보고 소신 있게 밀어붙였어야 할 일이 많은데 쥐 눈만 번득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202.html
kolaswqetsrq 11.02 08:35
천인공노天人共怒 - 하늘과 사람이 함께 노하다.

천인공노(天人共怒) - 하늘과 사람이 함께 노하다.

하늘 천(大/1) 사람 인(人/0) 한가지 공(八/4) 성낼 노(心/5)

자신의 기대나 요구가 좌절되었을 때 분노한다. 유아는 생후 3개월 무렵부터 울어 댄다든지 몸을 뒤집는다든지 하여 분노를 표출한다고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요구의 저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 화를 낸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일에 분노하고, 노인들은 어려워만 가는 노후의 불안감에 불만을 터뜨린다.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누구나 분노에 차는 경우가 하늘과 사람(天人)이 함께 화를 낸다(共怒)는 이 성어다.

분노를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지극히 악한 일을 마주 했거나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에 이 표현을 쓴다. 사소한 일에 자주 화를 내는 것은 안 될 일이지만 거악에 대해서는 公憤(공분)해야 마땅하다. 天人共憤(천인공분), 神人共怒(신인공노), 神人共憤(신인공분)도 같은 말이다.

아주 쉬운 뜻으로 된 말이라 예부터 이곳저곳서 사용되었음인지 어디에서부터 유래했는지는 명확치 않다. 재미있게 인용된 부분을 몇 곳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선 ‘楚漢志(초한지)’로 잘 알려진 項羽(항우)와 劉邦(유방)의 흥미진진한 쟁패기는 중국 明(명)나라 때의 鍾惺(종성)이 편찬한 ‘西漢演義(서한연의)’의 번역이라 한다.

楚(초)나라가 최초의 통일국가 秦(진)나라에 의해 멸망한 뒤 거병한 項梁(항량)에 의해 懷王(회왕)이 옹립됐다. 彭城(팽성)으로 천도한 초회왕은 항우와 유방을 불러 회유하며 말했다. ‘진나라 2세 황제가 지극히 무도하여 하늘과 사람이 모두 분노할 정도이니 기필코 토벌해야 하오(秦二世無道極矣 天人共憤 天人共怒/ 진이세무도극의 천인공분 천인공노).’

그러면서 진나라를 공격해 수도를 먼저 점령한 사람에게 천하를 주겠다고 했다. 유방이 먼저 입성했으나 연전연승하던 항우가 불복하는 바람에 물러섰다가 마지막 垓下(해하) 싸움에서 이겨 황제에 오른 것은 알려진 이야기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악인 董卓(동탁)이 죽음을 당한 뒤 수하들에 의해 시신이 태워지고 관을 만들 때 벼락이 떨어져 불이 붙었다. 사람들은 하늘이 노하여 天火(천화)를 내렸고, 사람이 노하여 人火(인화)로 시체를 태웠으니 天人(천인)이 함께 악행을 응징했다고 여겼다.

잇달은 총기난사 사건으로 세계가 분노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동물 학대 성향 이라고 밝혔습니다. 끊이지 않는 이들의 만행에 지구인 전체의 분노도 필요하지만 근절하는 방안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390.html
kolaswqetsrq 11.02 08:36
탄지지간 指之間 - 손가락을 튕길 사이, 아주 짧은 동안

탄지지간( 指之間) - 손가락을 튕길 사이, 아주 짧은 동안

탄알 탄(弓/12) 가리킬 지(扌/6) 갈 지(丿/3) 사이 간(門/4)

세월이 빨리 지나간다는 비유로 쓰이는 말은 많다. 흔히 세월이 流水(유수)같다는 말은 흐르는 물같이 빠르다고 光陰似逝水(광음사서수)로 표현한다. 물이 쉼 없이 흐르지만 그렇게 빠르다는 느낌이 없을 때는 쏜살같다면서 쏜 화살에 비유했다.

바쁘게 생활하는 사람, 행복한 나날을 영위하는 사람에겐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새 후딱 지난 세월에 깜짝 놀라는 경우에 적합한 말이다. 石火光陰(석화광음), 如鳥過目(여조과목), 烏飛兎走(오비토주) 등등 유사한 말 중에서도 莊子(장자)에 나오는 白駒過隙(백구과극)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문틈으로 보이는 흰 망아지가 빨리 지나가는 모습에 인생이나 세월의 덧없음, 무상함을 느끼니 차원이 높다.

손가락을 튕기는(彈指) 사이를 나타내는 이 성어도 아주 짧은 시간, 또는 세월이 아주 빠르다는 것을 표현한다. 탄알 彈(탄)은 쏘다, 튕기다란 뜻도 있다. 의미를 나타내는 활 弓(궁)과 수렵시대 돌 구슬을 가리켰던 홑 單(단)이 합쳐져 彈丸(탄환)이란 뜻도 지녔고 튕기다란 의미로 넓혀지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뜻보다는 佛家(불가)에서 비롯된 말로 唐(당)나라 永嘉玄覺(영가현각)이 禪(선)의 핵심을 운문으로 읊었다는 ‘證道歌(증도가)’의 구절이 당연히 뜻이 깊다.

부분은 이렇다. ‘손가락 튕기는 사이에 팔만 법문 원만히 이루고, 생각이 스치는 짧은 사이에 삼지겁을 없애버리도다(彈指圓成八萬門 刹那滅却三祗劫/ 탄지원성팔만문 찰나멸각삼지겁).’ 인간의 번뇌에 응하는 팔만 법문을 짧은 시간에 행하면 엄청나게 오랜 기간 三祗劫(삼지겁)도 없어져 시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해설에도 아리송하기만 하다. 祗는 공경할지.

불교에서 말하는 짧은 시간 彈指(탄지)가 刹那(찰나)와 함께 아주 작은 수의 단위로도 사용되어 흥미롭다. 割(할) 아래 소수점 이하의 작은 단위로 分厘毛絲(푼리모사)까지는 타율 계산 때 더러 쓰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작은 수로 탄지는 瞬息(순식)의 10분의 1인 10-17승을, 찰나는 탄지의 10분의 1인 10-18승을 나타낸다고 한다.

탄지가 짧은 시간을 말하건, 무사태평하거나 어떤 일에 정신이 팔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던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갈수록 경제사정이 나빠진다는 소식만 들려오고, 어려운 나날을 보내는 민초들을 다독여주는 정치권은 여전히 다투기만 하고, 하루하루가 힘든 사람들은 늘기만 하는 느낌이다. 하반기엔 희망이 있을까.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618.html
kolaswqetsrq 11.02 08:37
수적천석水滴穿石 - 작은 물방울이 돌에 구멍을 뚫는다.

수적천석(水滴穿石) - 작은 물방울이 돌에 구멍을 뚫는다.

물 수(水/0) 물방울 적(氵/11) 뚫을 천(穴/4) 돌 석(石/0)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격언을 한자 훈음 그대로 옮긴 것이 물방울(水滴)이 돌을 뚫는다(穿石)는 이 말이다. 작은 것이 쌓이면 큰 것이 된다는 속담은 양의 동서에 숱하다. 우리나라에 똑 같이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가 대표하고 영어속담에도 ‘The drop hollows the stone’이 있으니 신기할 정도다.

뜻이 쉽고 큰 교훈을 줘서인지 모두들 좋아하는 성어가 되어 있다. 몇 개만 더 들어보면 이 난에서도 소개한 愚公移山(우공이산), 中石沒鏃(중석몰촉) 외에 磨斧作針(마부작침), 積小成大(적소성대) 등이다.

물방울이 쉼 없으면 돌을 뚫는다는 말은 중국 南宋(남송) 때 학자 羅大經(나대경)의 ‘鶴林玉露(학림옥로)’에 실려 전한다. 학문을 하면서 터득한 지식을 기술한 일종의 수필집이다. 독보적인 견해로 피폐한 정치를 질책하기도 하고 시문을 평론하기도 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北宋(북송) 때 崇陽(숭양) 현령으로 張乖崖(장괴애)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루는 관아를 순시하다가 창고에서 황급히 도망치려는 하급관리를 적발했다. 족쳐 보니 상투 속에서 엽전 한 닢이 나왔다. 훔친 것이라는 실토를 받자 형리를 시켜 곤장을 치게 했는데 겨우 한 닢 가지고 그런다고 크게 투덜거렸다.

그러자 화가 난 현령이 大喝一聲(대갈일성) ‘네 이놈! 塵合泰山(진합태산)이란 말도 못 들었느냐? 하루에 일전이면 천일에 천전이고, 먹줄에 튕겨 나무가 끊어지고 물방울에 돌이 뚫린다(一日一錢 千日千錢 繩鋸木斷 水滴穿石/ 일일일전 천일천전 승거목단 수적천석)’라며 처벌했다. 관리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고 일벌백계한 것이다. 繩은 노끈 승, 鋸는 톱 거.

明末(명말)의 洪自誠(홍자성)이 교훈이 되는 對句(대구)를 많이 써 유명한 어록집 ‘菜根譚(채근담)’에도 같은 뜻의 명언이 올려져 있다. 다만 한 글자씩 다르다. ‘새끼줄로 톱질해도 나무가 잘라지며 물방울이 돌을 뚫고, 물이 한곳에 이르러 도랑을 이루며 참외는 익으면 꼭지가 떨어진다(繩鋸材斷 水滴石穿 水到渠成 瓜熟蒂落/ 승거재단 수적석천 수도거성 과숙체락).’ 渠는 개천 거, 蒂는 꼭지 체로 읽는다.

눈앞에 빨리 성과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성급해 할 것인가? 모든 일에 단계가 있고 기본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야 천리 길을 갈 수 있다. 학문을 하는 사람이나 실적에 애타하는 사람들이 새기면 좋을 말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388.html
kolaswqetsrq 11.02 08:38
구약현하口若懸河 - 말을 폭포물이 흐르듯 잘하다.

구약현하(口若懸河) - 말을 폭포물이 흐르듯 잘하다.

입 구(口-0)같을 약(艹-5)달 현(心-16) 물 하(氵-5)

말을 조심하라는 성어를 그동안 이 난에서 많이 소개했다. 말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口禍之門/구화지문)을 비롯해 禍生於口(화생어구)까지 비슷한 의미를 가졌지만 출전을 달리 하는 말들이다. 아무리 침묵은 금이라고 주의를 주고 현명한 사람에게는 한 마디 말로 충분하다고 강조해도, 웅변의 재능을 신의 선물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는 만큼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부러움을 산다. 말을 잘 하여 마치(口若) 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와 같다(懸河)고 찬탄한다. 썩 잘하는 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靑山流水(청산유수)보다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지니 앞선다.

口如懸河(구여현하), 懸河之辯(현하지변) 등으로도 쓰는 이 성어는 西晉(서진)의 학자 郭象(곽상)을 칭찬하는 말에서 유래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고 무슨 일이든지 깊이 생각하여 사리를 깨쳤다. 자라서는 老莊(노장)사상에 심취하여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기를 즐겼다.

조정에서 벼슬을 내려도 학문 연구에 뜻을 두어 사양하다 黃門侍郞(황문시랑)이란 관직을 받고 나아가서도 매사를 이치에 맞게 잘 처리했다. 국정을 논할 때마다 곽상의 말이 논리가 정연하고 말재주도 뛰어난 것을 지켜보던 당대의 명사 王衍(왕연)은 이렇게 칭찬을 했다.

"곽상의 말을 듣고 있으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폭포수가 거침없이 흘러내려 그치지 않는 것과 같다(聽象語 如懸河瀉水 注而不竭/ 청상어 여현하사수 주이불갈)." 唐太宗(당태종)때 房玄齡(방현령) 등이 편찬한 "晉書(진서)" 곽상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세상에는 말 잘하는 사람이 많다. 부럽기도 하지만 반면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성어는 때로는 말만 번지르르하고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308.html
kolaswqetsrq 11.02 08:39
임진마창臨陣磨槍 - 적과 마주해서 창을 갈다.

임진마창(臨陣磨槍) - 적과 마주해서 창을 갈다.

임할 림(臣/11) 베풀 진(阝/8) 갈 마(石/11) 창 창(木/10)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속담은 급한 사람이 그 일을 서둘러 하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물을 찾아 갈증을 해소하기까지 고생했겠지만 목마를 때를 대비하여 미리 우물을 파 놓은 것만 못하다. 臨渴掘井(임갈굴정)이란 고사가 말해주는 교훈이다.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일이 터진 뒤에 부랴부랴 서둘러 봐도 매끄럽게 일이 추진 될 리가 없다. 일상사도 그러한데 나라의 존망이 걸려있는 중대사에선 평시에 병기를 확충하고 병사를 훈련시켜야 한다. 케네디가 한 말이 있다. ‘전쟁의 준비를 하는 것만이 평화의 준비를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통탄할 사실이다.’

목이 말라야 비로소 우물을 판다는 말과 함께 적과 마주 해서야 비로소 병기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晏子春秋(안자춘추)’에 나온다. 春秋時代(춘추시대) 말기 齊(제)나라의 명재상 晏嬰(안영)의 언행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웃 魯(노)나라에서 昭公(소공)이 제나라로 몸을 의탁하러 왔을 때 아첨하는 사람에 둘러싸여 일을 그르쳤다며 후회했다.

그래서 제나라 景公(경공)이 귀국을 도와주면 어떻겠느냐며 안영에 물었다. 은근히 반대하던 안영은 소공의 행위가 물에 빠진 후에 수로를 찾고, 길을 잃은 후에 길을 묻는 것이라며 비유한다. ‘병란을 당해서야 급하게 병기를 만들고, 음식을 먹다가 목이 메어서야 급히 우물을 파는 격입니다(臨難而遽鑄兵 噎而遽掘井/ 임난이거주병 열이거굴정).’ 噎은 목멜 열.

여기엔 臨難鑄兵(임난주병)으로 나타냈는데 曹雪芹(조설근)의 ‘紅樓夢(홍루몽)’에는 ‘적진과 마주해 창을 갈아 봤자 아무 쓸데가 없다(臨陣磨鎗 也不中用/ 임진마창 야부중용)’라고 직접 비유한 것으로 실려 있다.

鎗(창)은 槍(창)과 같다. 또 병이 깊어진 뒤에 약을 쓰는 것은 목이 마르고서야 우물을 파고, 싸울 때가 되어서야 무기를 만드는 것과 같다(渴而穿井 鬬而鑄錐/ 갈이천정 투이주추)며 비슷한 뜻으로 ‘黃帝內經(황제내경)’에 나온다고 한다. 鬬는 만날 투.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615.html
kolaswqetsrq 11.02 08:40
간에 쌓인 ‘독소’ 깨끗하게 없애는 방법

간에 쌓인 ‘독소’ 깨끗하게 없애는 방법

간이 안좋아지면 쉽게 피로를 느끼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간 건강을 위해 평소 술 등을 자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 식이요법 역시 깅장히 중요한데요. 이번 시간에는 간의 해독을 도와주는 음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심황

심황은 카레 등 거의 모든 인도음식에 들어가는 향신료로 발암물질을 제거하는 효소의 생성을 도와 간 해독을 도와줍니다. 이 향신료는 간 뿐 아니라 여러모로 건강에 이로움을 주기 때문에 최근 들어 더 주목 받고 있다고 합니다.

2. 사과

매일 사과를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서양 속담이 있을 정도로 사과는 건강에 좋은 영양을 미칩니다. 사과는 미네랄과 비타민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소화기관을 정화하고 간 기능을 회복시켜 줍니다.

3. 레몬, 라임

라임이나 레몬주스에 풍부한 비타민C는 독소를 흡수해 간 기능을 회복시켜 줍니다.

4. 토마토

글루타치온이 풍부하게 함유된 토마토는 흡연 및 화학물질, 알코올 등으로 인해 망가진 몸을 보호해주고, 중금속이나 약물을 해독 시켜주는 효과가 있어 간을 치유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5. 아스파라거스

아스파라거스는 천연 이뇨제로 숙취를 해소시켜 주며, 알코올의 독소로부터 간을 보호해줍니다.

6. 호두

글루타치온과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호두는 간의 지방대사를 원활히 만들어주고 간장의 혈류를 개선하여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7. 올리브오일

올리브오일은 유해한 콜레스테롤을 제거해줄 뿐 아니라 유익한 콜레스테롤 분비를 촉진해 체내 독소 흡수를 도와줍니다.

8. 마늘

알리신, 셀레늄, 황 성분이 풍부한 마늘은 간 해독에 큰 도움을 줍니다.

TIP 가열시엔 이 성분들이 파괴되기 때문에 생으로 먹기 힘들다면 환이나 캡슐로 복용하셔도 됩니다.

9. 당근

당근에는 간 해독에 도움이 되는 플라보노이드와 글루타치온, 베타카로틴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10. 녹색 잎채소

혈류의 독소를 빨아들이는 엽록소가 풍부한 녹색 잎채소는 담즙 생산 및 흐름을 도와 간을 깨끗하게 만들어줍니다.

11. 통곡물

정제된 곡물 대신 통곡물을 꾸준히 섭취해주면 지방대사와 간기능을 향상시키고 올혈간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12. 십자화과 채소

십자화과 채소인 브로콜리나 양배추, 케일등에는 글루코시놀레이트 성분이 풍부합니다.

이 성분은 간에서 여러 유용한 효소의 생산을 촉진시켜주는 효능이 있으며, 간 뿐 아니라 신체 주요기관의 종양을 억제에도 효과적인 강력한 항암성분입니다.

♥ 건강해 지는날까지 파~~이팅 하세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225.html
kolaswqetsrq 11.02 08:41
따뜻한 우유보다 잠 잘 오게 하는 음료

따뜻한 우유보다 잠 잘 오게 하는 음료

불면증은 우리의 몸와 정신을 모두 힘들게 해 건강을 악화시킨다. 불면증이 심각하다면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다만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면 집에서 쉽게 잠이 오도록 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잠이 잘 오게 하는 음료를 마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자기 전 따뜻한 우유 한 잔이 수면을 도와준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우유뿐 아니라 수면을 도와주는 다른 음료들을 알아보도록 하자.

1. 물

맹물은 하루 중 언제든 마시기 좋은 음료다. 또 신체 대사 유지를 위해 꼭 마셔줘야 하는 음료이기도 하다. 자기 전에 물을 마셔주는 것이 좋은 이유는 밤새 진행되는 수분 부족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잘 때 생각보다 많은 땀을 흘린다. 이에 수면 중 우리 몸은 수분이 부족해져 기본적으로 갈증 상태가 되며 혈액도 끈적해 진다. 이를 막기 위해 자기 전에 어느 정도 수분 보충을 해 놓는 건, 우리 몸을 좋은 컨디션으로 만들어준다. 자기 전 물 한 잔이 질 좋은 수면을 도와줄 수 있다.

2. 캐모마일 차

캐모마일 차는 잠드는 데 도움을 주는 대표적인 허브차다. 캐모마일은 진정효과가 커서 정신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준다. 이 때문에 자기 전에 따뜻한 카모마일 차를 한 잔 마시면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캐모마일 차는 밀크티처럼 마셔도 좋다. 우유와 잘 어울리기 때문에 따뜻하게 데운 우유에 캐모마일을 우려내 먹으면 된다.

3. 체리 주스

 "
특이하게도 체리에는 잠을 유발하는 멜라토닌이 듬뿍 들어있다. 멜라토닌은 숙면을 돕는 천연 호르몬이다. 체리 한 컵(20개)에는 멜라토닌이 약 10mg 정도 함유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멜라토닌 10mg이면 숙면을 도와줄 만한 양이다.
",

자기 전 매일 체리 한 컵을 먹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체리 주스를 한 잔씩 마시는 것도 좋다. 체리 주스는 가볍게 먹기 좋지만 체리가 응축된 양이기 때문에, 멜라토닌 섭취에 충분하다. 다만 체리 주스를 고를 때, 설탕이 적은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055.html
kolaswqetsrq 11.02 08:42
풍을 막아주는 방풍나물 효능

풍을 막아주는 방풍나물 효능

방풍나물은 모래같은 장소에서도 잘 자라서 갯방풍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미나리과로 가지 부분이 굉장히 풍성하고 곧게 자라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오늘은 방풍나물의 효능, 그리고 부작용, 먹는 방법을 설명드려 볼까 합니다.

1. 중풍 예방 효과

방풍나물에 다량 함유된 쿠마린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데 이는 혈액의 응고를 억제시키고 혈액순환이 원활하도록 도와주는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뇌경색이나 중풍예방에 효과가 있으며 또한 정유, 다당뉴, 고미배당 성분이 풍부하여 중풍이나 근육통증 완화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2. 항암 효과와 눈 건강

방풍나물에는 쿠마린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암세포가 혈관 벽이나 혈액 속에 자리잡는 것을 억제시킨다고 합니다. 백혈구를 강화시켜주는 효능이 있어 암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방풍나물에는 베타카로틴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망막세포를 파괴하는 유해산소를 억제하여 노안을 예방하며 시력개선에 도움을 주어 눈 건강에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3. 호흡기 질환 개선 효과

방풍나물에 함유되어 있는 쿠마린이라는 성분은 항암작용 외에도 감기나 폐렴, 비염 등 각종 호흡기 질환을 예방하는데 도움을 많이 준다고 합니다.

코와 기관지의 점막을 강화하고 황사나 미세먼지와 같은 유해한 성분으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해 주기도 하고 또한 헤스페리딘 성분이 호흡기질환 개선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4. 피부진환 개선 효과

방풍나물에는 비타민B1 과 B2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피부와 머리카락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또한 염증을 치료에도 효과가 있어서 방풍나물즙을 습진이나 피부질환이 있는 부위에 발라주면 염증이나 가려움증을 완화시켜주는데 도움을 많이 준다고 합니다.

5. 면연력 항상과 변비예방 효과

방풍나물에 풍부한 베타카로틴 성분은 우리 몸의 면역력을 높여 외부 세균이나 바이러스로부터 각종 질병을 예방을 해준다고 합니다. 또한 방풍나물의 풍부한 식이섬유는 장운동을 원활하게 하여 배변활동을 돕고 변비예방에도 효과를 준다고 합니다.

6. 해독작용

방풍나물은 미나릿과 식물로 해독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방풍나물에 다량 함유되어 있는 쿠마린 성분이 황사 등의 미세먼지와 체내에 쌓인 중금속을 배출하고 해독하는 효과가 있으니 요즘같이 미세먼지가 있는 날에 섭취를 하면 딱 좋을것 같네요.

7. 방풍나물 부작용과 먹는 법

방풍나물은 평소 몸이 냉한 분들이 과다 섭취를 하면 복통이나 설사를 유발할 수가 있으며 독성을 지니고 있어 살짝 데쳐서 5-10분 정도 담가두었다가 독성을 제거하고 드셔야 탈이 나지 않아요. 그리고 방풍나물은 너무 큰 것은 질겨서 맛이 떨어지며, 새순이 연하고 부드러우니 새순으로 드시길 바랍니다.

방풍나물은 무침으로 해서 먹으면 맛이 좋은데 방풍나물을 손질하여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고추장과 된장, 참기름, 깨, 매실청, 식초 약간을 넣고 버무려 주시면 방풍나물 무침이 완성이 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466.html
kolaswqetsrq 11.02 08:43
옥수수의 진짜 효능 8가지

옥수수의 진짜 효능 8가지

1. 고혈압 개선

첫번째로 소개해드릴 옥수수의 효능으로는 고혈압 을 개선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옥수수 수염차를 꾸준하게 섭취하시면 혈압이 안정되어 고혈압을 개선 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평소에 자주 코피가 나시는 분들이 섭취하시면 출혈을 멈추는 효능을 보실 수 있습니다.

2. 붓기 제거

평소에 얼굴이 자주 붓는 분들이라면 옥수수의 효능을 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출산후에 붓기가 잘 빠지지 않는 분들이나 붓기를 빨리 빼고싶은 분들이 섭취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3. 피부 건강에 탁월

옥수수에는 피부건강 에 좋은 단백질, 섬유소, 비타민 무기질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 영양소들의 외부의 감염으로부터 #피부 를 보호해주고, 특히 노화를 방지해주는 비타민E(토코페롤)이 많아 피부의 건조를 방지하고, 피부 면역력을 향상시켜 줍니다.

4. 다이어트 음식

옥수수는 GI지수가 75점으로 저칼로리 음식에 속하는데요. 저칼로리임에도 불구하고 높고 오래 지속되는 포만감을 주기 때문에 다이어트 음식으로 각광 받고 있습니다. 특히 조금 느껴지는 옥수수의 단맛은 식욕을 억제해주는 효능이 있는데요 이러한 옥수수 효능을 잘 활용하시면 좋은 다이어트 음식이 됩니다.

5. 구강건강에 좋다

 "
인사돌 들어보셨나요? 인사돌 은 잇몸 질환을 치료하는 약인데요, 이 인사돌의 주요성분이 바로 옥수수의 베티-시토스테롤이라고 합니다. 이 베티-시토스테롤이라는 성분은 잇몸 질환을 치료하고 충치를 낫게하는 등 구강건강에 좋은 효능을 발휘합니다..^^
",

6. 심신진정효과

옥수수효능 중에는 심신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평소 불안함 느낌이 많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분이시라면 옥수수를 꾸준히 먹어줌으로써 마음을 안정 시킬 수 있겠습니다.

7. 항암효능

옥수수에는 항암에 효능이 탁월한 성분들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옥수수를 꾸준히 먹었을 때 각종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8. 여름병 예방

여름병 아시나요? 식욕이 없어지고 무기렴감과 권태감등이 여름병의 증상이랍니다. 옥수수에는 비타민 B1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데 이 성분이 여름병의 증상을 개선하는데 효과가 탁월하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8_57.html
kolaswqetsrq 11.02 08:44
심장마비 30일 전, 몸이 보내는 7가지 증상

심장마비 30일 전, 몸이 보내는 7가지 증상

심장마비는 어느날 갑작스레 생기는 것 같지만, 사실 30일 전부터 몸에서 위험하다는 경고신호를 보낸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하버드대학 연구에 따르면 심장마비 증상이 예고없이 오는 경우는 10명 중 2명 정도로 그 수가 적답니다. 심장전문의가 알려주는 심장마비 한 달 전 몸이 보내는 7가지 전조증상 알려드릴게요

1. 이유없는 피로

집에서 침대커버를 정리하거나 가볍게 샤워 하는 것만으로 몸이 피곤하면 이는 심장마비 전조증상일 수 있어요. 특히 이런 비정상적인 피로감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흔해요.

2. 복통, 소화불량

소화불량·복통 같은 증상은 평소 누구나 겪죠. 하지만 심장질환으로 인해 나타날 수도 있는데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나타나요. 미국질병관리본부 통계에 따르면 복통환자의 50%가 심장마비를 진단 받아요.

3. 숨이 가쁜 증상, 현기증

심장이 충분한 산소를 보내지 못할 때 숨이 가쁜 증상이 나타나는데 혈관이 막혔다는 신호일 수 있어요.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숨이 찬다면 위험한 징조입니다. 숨가쁨은 6개월 전부터 나타날 수 있어요.

4. 과도한 식은땀

 "
식은땀도 심장마비의 초기 증상일 수 있어요. 특히 여성은 폐경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데요. 심장마비 전조증상 경우는 밤에 더 땀을 많이 흘려요.
",

5. 무기력

 "
기력이 떨어지는 것은 근육 내 산소 부족이 원인일 수 있는데요. 무기력증은 보통 심장마비 증상 중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곤 해요.
",

6. 불면증 수면장애

 "
불면증은 심장마비와 뇌졸중의 위험과 관련이 큰데요. 특히 여성에게 더 흔하게 나타나요. 심장마비를 일으킨 사람은 수개월 전부터 불안감과 불면증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

7. 가슴통증

심장마비를 겪은 대부분은 짖누르는 가슴통증이나 불편함을 경험해요.

일부는 큰 가슴통증이 없이 가슴 근처 부위에 압박감이나 쥐어짜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요. 심장근육이 충분한 산소공급을 받지 못하는 신호에요.

어떠셨나요?

이런 심장질환 건강상식은 지금은 아프지 않더라도 나중에 심장마비 예방에 큰 도움이 되니 꼭 참고하시기 바래요.

건강해 지는날까지 파~~이팅 하세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0-7.html
kolaswqetsrq 11.02 08:45
○ 장수하는 사람들의 생활습관 6가지

○ 장수하는 사람들의 생활습관 6가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몸에 좋은 음식을 찾고 운동을 하기도 한다. 최근 100년 동안 인간의 수명은 30년이나 늘어났다. 이렇게 장수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생활습관의 변화가 가장 크다. 각종 건강정보 사이트 자료를 토대로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하는 생활습관 6가지를 알아봤다.

1. 칼로리 섭취량 제한

하루 섭취 권장량은 2000칼로리를 넘지만 연구에 따르면 1400~2000칼로리 정도로 제한할 때 심장이 보다 건강해진다. 15년 정도 젊은 상태의 심장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대학 의과대학 루이지 폰타나 교수는 “얼마나 먹느냐 못지않게 어떠한 영양분으로 칼로리를 채우는가도 중요하다”며 “탄산음료나 정제 탄수화물처럼 영양가가 없는 음식으로 칼로리를 채워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2. 중년 이후 날씬한 몸매 유지

미국국립노화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복부비만인 중년 여성은 조기사망 위험률이 20% 증가한다. 체질량지수가 정상이어도 뱃살이 있는지의 여부가 관건이다. 중년이 되면 호르몬의 변화로 뱃살이 찌기 쉬운 체질이 된다.

근육밀도를 높이고 신진대사를 활성화하면 뱃살이 줄어들기 때문에 1주일에 2~3회 20분 정도씩 근력운동을 해야 한다. 또 생선이나 견과류를 통해 오메가-3 지방산을 섭취하고 과일과 채소를 통해 항산화성분을 제공 받아 체내 염증 수치를 떨어뜨려야 한다.

3. 차 즐겨 마시기

녹차나 홍차와 같은 차 종류에는 카테킨이라는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이 성분은 혈관계의 건강을 돕고 심장을 보호한다. 매일 녹차를 마시면 심장질환과 뇌졸중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미국 터프츠대학교 영양학과 연구팀에 따르면 심장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루에 1~2잔 정도의 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차에 우유를 더하면 심혈관계를 보호하는 차의 기능이 떨어지므로 물에 우려 마시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4. 블루베리, 포도 등 자주색 음식 자주 먹기

포도, 블루베리, 레드와인처럼 자주색 빛깔이 나는 음식은 폴리페놀 함유량이 높다. 이 성분은 동맥의 건강을 유지하고, 심장질환과 알츠하이머 발병 가능성을 낮춘다. 미국 신시내티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심장동맥의 건강을 지켜주는 자주색 음식은 뇌혈관의 건강을 지키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기억력을 강화하는 작용도 한다.

5. 정기적인 운동

달리기 운동을 꾸준히 하는 중년은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향상돼 장수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스탠포드대학교 의과대학 연구팀이 규칙적으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20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다. 달리기가 면역시스템을 강화해 수명을 연장시킨다.

달리기가 아니더라도 매일 30분씩 걷는 것만으로도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보고가 있으며 집안일처럼 일상 활동량을 늘리는 것 역시 장수의 비결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 하체를 강화하면 넘어져 다칠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조기 사망 위험률이 떨어진다.

6. 긍정적인 생각

70대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의 연구에 따르면 스스로를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장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긍정적인 마음과 도전적인 정신을 유지하면 스트레스 수치가 떨어지고 면역시스템이 강화돼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6_31.html
kolaswqetsrq 11.02 08:46
멋지게 나이드는 법

멋지게 나이드는 법

1. 우리 안에 잠든 힘을 깨워라!

2. 마음의 문을 열어라!

3. 인생을 즐겨라!

4. 스스로의 미래를 만들어라!

5. 인생의 목표를 찾아라!

6. 스스로에게 관대하라!

7. 기쁨의 자취를 남겨라!

8. 열정을 발견하라!

9. 긍정이 최선이다.

10. 마음 깊이 너그러워져라!

11. 아이들을 놓아 주어라!

12. 베풀어라!

13. 받아들이는 태도를 결정하라!

14. 자신만의 길을 걸어라!

15. 매력을 발산하라!

16.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17. 흐름에 몸을 맡겨라!

18. 거리를 두어라!

19. 자기 자신을 주머니 속에 넣어 두어라!

20. 부드럽게 주장하라!

21. 창의성을 펼쳐라!

22. 날씬한 기분을 맛보아라!

23. 몸을 움직여라!

24. 명상하라!

25. 모험 없이는 성장도 없다.

26. 미래의 모습을 그려라!

27. 두뇌를 성장시켜라!

28. 배움은 곧 성장이요,

성장이 곧 배움이다.

29. 보조를 맞추어라!

30. 경청하라!

31. 비판을 선물로 받아들여라!

32. 최선의 소통은 대화이다.

33. 로맨스를 가꾸어라!

34. 진정한 친구는 우리에게 힘을 준다.

35. 혼자가 되는 걸 두려워 마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198.html
kolaswqetsrq 11.02 08:47
미역의 효능

미역의 효능

미끈거리는 미역에 유방암을 예방하는데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비치되어 있는 미역, 흔하지만그 적잖은 효능을 알고 나면, 매끼니마다 오르는 식품이 되지 않을까?

1. 미역의 보관방법

1 일반적으로 미역은 직사광선을 피하고습기가 없는 건냉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으며, 줄기 미역의 경우는

특히 비닐팩에 넣어 냉장실이나냉동실에 보관하면 1년 정도 양호한 상태가 유지된다.

2 미역이나 다시마를 습기 찬 곳에 보관하게 되면곰팡이가 슬게 되는데, 이때는 진한 소금물에 담가서 곰팡이를 깨끗이 씻어낸 뒤에 다시 그늘에 바삭바삭할 때까지 말리면 된다.

2. 미역의 효능

1 강압작용미역 속에 들어있는 히스타민을 비롯한 강압물질들은 혈압을 부작용 없이 뚜렷하게 낮추어주는 강압제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2 항암작용미역에 들어있는 여러 성분들은여러 가지 암세포를 30%이하밖에 성장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항암 효과를 갖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밝혀졌으며, 또 미역은 우리 몸 속에서 들어가서 장의 운동을 원활하게 해주기때문에 직장암을 예방해 주기도 한다.

3 항응혈 작용미역에는 헤파린과 매우 비슷한 항응혈 작용이 있다.

미역 속에 있는 이 물질은 헤파린과 같은방식으로 혈액 중의 지방질을 깨끗이 청소하여, 혈액 중의 눈에 보이는 지방이 빨리 사라지게 하고,유해한 LDL 콜레스테롤이 줄어들게 하여, 유익한 HDL 콜레스테롤을 증가시킨다.

4 해독작용미역에 들어있는 점질물과 다당류는 콜레스테롤이나 공해성분인 중금속과 농약의 피해를 덜어 주는 효과가 있다.

이들은 콜레스테롤의 체내 흡수를 방해하며, 농약 등으로 오염된 식품 중의 중금속을 흡착 배설하는 효과가 매우 크다.

3. 미역의 용도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아이를 출산한산모에게 미역국을 먹이는 풍습이 있다.

1 미역국은 허전한 배에 포만감을 느끼게 하며,산후에 늘어난 자궁과 지혈과 청혈제로서의 역할을 그리고산후에 오기 쉬운 변비와 비만을 예방하고 활발한 신진대사를 하게 하며,수유를 많게 한다.

2 거칠어지기 쉬운 머리칼을 곱게하고탄력있는 피부를 갖게하며 기미가 끼지 않게 하고, 출혈로 인한 철분과, 아이에게 빼앗긴 칼슘을 보충케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386.html
kolaswqetsrq 11.02 08:48
눈건강 에 좋은 음식

눈건강 에 좋은 음식

요즘 다들 스마트폰에 빠져서 살다보니 눈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어요. 눈이 나빠지면 자꾸 얼굴을 찡그리게 되어서 보기에도 좋지않고 눈가 주름도 늘어요. 그래서 눈 건강에 좋은 음식 알아봤어요.

1. 결명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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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건강에 도움이 되는 대표적인 식품중 하나가 바로 결명자이다. 결명자는 눈을 밝게 틔우는 씨앗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예로부터 한약재료로도 널리 쓰여지고 있다.
",

2. 구기자차

고대 진나라 진시황의 불로초라고 불리우며, 청나라 말 서태후의 필수식품이 바로 구기자차이다. 구기자는 신장과 간장을 보호해주며 정력을 복돋아주는 효능도 있다.

3. 감잎차

비타민 A와 비타민C가 풍부하여 안구건조증, 야맹증 등 안과질환개선에도움을 주며, 감기 예방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4. 블루베리

블루베리는 비타민A, 칼슘, 베타카로틴 등이 풍부하여 노화 예방 및 눈의 피로에 좋다.

5. 당근

예로부터 눈에 좋은 채소로 알려져 있으며, 비타민A, 베타카로틴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눈 건강에 좋다.

6. 시금치

비타민C가 풍부한 시금치는 체내 유해산소를 해독하는 항산화물질이 풍부하며 루테인과 안토시아닌 성분으로 인해 눈 건강에 많은 도움을 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162.html
kolaswqetsrq 11.02 08:49
파인애플 먹어야 하는 이유

파인애플 먹어야 하는 이유

대표적인 열대 과일인 파인애플. 새콤달콤한 맛이 좋아 우리 식탁에서 꾸준히 사랑받아 온 과일이다. 하지만 최근 망고나 용과, 패션푸르트 등 이색 과일에게 밀려 그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는 상황. 그러나 파인애플에는 염증을 없애고 손상된 근육을 회복시키며 암세포를 없애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 분해 효소와 비타민 C가 다량으로 함유돼 있어 우리 몸 건강에 좋은 역할을 한다.

 "
1 비타민 C의 보고
",

파일애플 조각 한 컵에는 1일 권장량의 131%에 달하는 비타민 C가 들어 있어 유해산소로부터 우리 몸을 지켜주고 면역체계도 강화시켜 준다. 오렌지 주스나 자몽 주스대신 파인애플 주스를 마셔보자.

2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있다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는 비타민 B1을 함유하고 있어 피로회복 효과가 있다. 또한 섬유질, 브로멜라인(효소), 망간, 구리 등이 풍부하고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없으며 나트륨 수치까지 낮은 과일이 바로 파인애플이다.

3 포만감을 주는 과일

파인애플의 포만감 지수는 5점 중 3.3점이다. 출출할 때 감자칩스나 빵 대신 파인애플을 먹어 보자. 먹기 좋게 손질한 뒤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으면 더욱 편리하다.

4 먹기 편리하다

물론 파인애플을 직접 손질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만큼 다른 과일에 비해 손질 된 형태로 많이 나와 있는 것이 바로 파인애플이다. 껍질만 벗겨 통째로 통에 담겨 있는 것도 있고 먹기 좋은 크기에 파인애플 즙과 함께 들어 있는 제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통조림으로 된 파인애플은 화학 처리를 거치기 때문에 부드러운 식감을 갖지만 영양 성분은 크게 떨어질 수 있다.

5 궁합이 맞는 음식이 많다

파인애플은 돼지고기와 함께 먹으면 더욱 좋다.돼지고기의 단백질과 비타민 B1에 파인애플의 비타민 C가 더해져 영양의 균형을 이룬다. 또한 다른 여러 종류의 채소들과 샐러드로 먹어도 좋다. 이외에도 피크닉 용으로 이쑤시개에 파인애플과 얇게 저민 햄 등을 꽂아서 준비해 보자.

6 다이어트족에 최고

포만감을 쉽게 주고 섬유 소질이 풍부해 다이어트에 좋다. 또 단맛이 있지만 다른 과일에 비해 칼로리가 높지 않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551.html
kolaswqetsrq 11.02 08:50
생활 속 지혜

생활 속 지혜

○ 마룻바닥에 엎지른 기름은?

한 두 번쯤 마룻바닥에 기름을 엎지른 적이 있을 것이다. 당황해서 걸레로 닦아보지만 미끌미끌 하고 잘 닦이지 않는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밀가루를 뿌려주는 것이다. 밀가루가 기름을 잘 흡수하므로 완벽하게 기름기를 제거 할 수 있다.

○ 주전자 안쪽 때 닦기

주전자 안쪽에 때가 끼면 좀처럼 닦기 힘들다. 설사 손이 닿는다 해도 깨끗이 닦아내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이럴 때 식초를 이용하면 그다지 힘 들이지 않고 쉽게 때를 제거 할 수가 있다. 우선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은 뒤 식초 서너 방울을 떨어뜨린다. 그렇게 해서 하룻밤 쯤 가만이 두었다가 이튿날 아침에 담긴 물을 비워내고 다시 깨끗한 물로 헹궈내면 때가 감쪽같이 없어진다.

○ 세탁기 청소하는 법

세탁기에 물을 가득 받고 락스를 부어 돌리다가 멈추고 하루 동안 둔다. 다음날 다시 한 번 돌리다가 물을 빼면 깨끗해 진다. 또는 세탁기에 물을 가득 받고(고수위 까지) 분말 표백제를 뚜껑으로 하나 정도 넣고 일반 빨래 하듯이 세탁기를 돌린다. 헹굼도 2번정도(퍼지 세탁)로 하면 끝.

○ 화장실 변기 시원하게 뚫는 방법

가루세제를 부어놓고 몇 시간 후에 뜨거운 물을 콸콸 부어주면 시원하게 뻥 뚫린다.

○ 은도금 쟁반 닦는 법

가끔 소다나 치약으로 닦아 준다.

○ 먹다 남은 소주 이용법

소주(술)를 이용해서 닦으면 찌든 때가 말끔이 제거된다. 후라이 팬을 약간 만 달군 후 소주를 부어서 닦아도 깨끗해 진다.

○ 가죽소파 닦는 법

가죽소파는 매일 청소 할 때 마른걸레로 닦아 주는 것이 가장 좋다. 클리너 사용이 부담 스럽다면 우유를 걸레에 묻혀 닦은 후 다시 마른 걸레로 물기가 없게 닦아주면 좋다. 우유도 좋지만 먹다 남은 맥주로 닦으면 한결 부드러워 진다.

○ 플라스틱 통 냄새 없애는 법

친정 엄마의 반찬 통은 몇 년씩 써도 새 것 처럼 깨끗하다. 비결은 바로 햇볕! 깨끗이 씻은 프라스틱 통을 햇볕에 한나절 정도 쬐인다. 그러면 냄새나 때 자국 쏵~

○ 벽에 그린 크레용 낙서 지우기

아이들이 벽에 그려놓은 크레용 낙서는 잘 지워지지 않는다. 휘발유로 지우거나 암모니아와 알콜을 반반씩 섞어서 그것을 2배의 물에 타서 헝겊에 묻혀 문지르면 대개 지워지는데 아무리 해도 지워지지 않으면 발이 고운 사포로 문질러 지운다. 손때로 더러워진 스위치는 식빵이나 지우개로 닦으면 깨끗해진다.

○ 스푼 윤 내기

오래된 스푼과 젓가락에 윤이 나게 하려면 소다를 섞은 물에 담가 둔다. 뜨거운 물 1리터에 소다를 3 큰술 타서 섞은 후 하룻밤 담가 두면 번쩍번쩍 윤이 난다.

○ 카펫을 청소할 땐 소금을 사용

카펫 밑면에 습기가 차서 공팡이가 생기기도 하는데 카펫 밑에 신문지를 깔아 두면 곰팡이가 생기는 경우를 간단히 예방 할 수 있다. 또, 진공청소기로 카펫을 청소 할 때 카펫 위에 소금을 뿌려 두었다가 청소하면 먼지가 훨씬 깨끗이 제거되고 카펫 빛깔도 선명해진다.

○ 오래된 빗자루를 새 것처럼

빗자루를 오래 사용하다보면 비가 한쪽으로 쏠려 비질이 잘 되지 않는데, 이럴 때는 물과 소금을 10대1로 섞은 물에 20~30분 정도 빗자루를 담갔다가 충분히 말리면 빗자루가 원상태로 돌아가 빗질을 하기가 용이하다.

○ 찻잔의 물때는 감자 껍질로

찻잔의 물 때를 제거하고 싶을 때는 감자 껍질 반 개분을 넣어서 하룻밤 담가 두면 된다. 물때가 그릇 표면에서 떨어져 나와 깨끗해진다.

○ 보온병 내부 닦기

보온병 내부를 깨끗이 닦으려면 쌀 알 한 줌을 보온병에 넣고 뚜껑을 닫은 후 흔들어 준다. 물로 헹궈 내면 깔끔 하게 씻겨진다.

○ 병 속에 낀 때는

주둥이가 좁은 병이나 플라스틱 물통 속의 때를 없애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때 계란 껍질을 이용하면 손쉽게 때가 없어진다. 계란 껍질을 적당히 부숴 병이나 물통 속에 넣고 흔들어 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681.html
kolaswqetsrq 11.02 08:51
지방을 줄이는 식품

지방을 줄이는 식품

1. 신선한 계란

계란은 훌륭한 단백질원으로, 효과적으로 지방을 태워주는 음식. 지방을 태울뿐만 아니라 근육을 만드는데도 도움이 된다. 또한 적은 칼로리로 여러가지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

2. 하루 한개의 사과

「하루에 한 개의 사과로 의사도 필요없다」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사과는 여러 면에서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된다. 체중감량에 효과적인 천연 플라보노이드를 포함하고 식이 섬유가 식욕도 감퇴시킨다. 지방질을 태우고 효율적으로 혈당도 낮춘다.

3. 브로콜리

지방과 싸우는 당신에게 이상적인 음식. 글루코시노레이트, 엽산, 비타민C가 지방을 잘 연소시켜 발암 물질인 유리기를 제거한다.

4. 보리와 귀리

수용성 섬유를 풍부하게 포함하고 지방 연소를 촉진하는 식품. 가공 식품의 두 배나 많은 칼로리를 소모한다. 빨리 체중을 줄이고 싶다면 이 식품을 항상 식단에 포함시켜야 한다.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혈당도 효과적으로 조정한다.

5. 아몬드

식이 섬유, 선인 지방도 풍부한. 귀중한 단백원. 꾸준히 복용하면 효율적으로 지방을 연소시켜 체중을 줄일 수 있다. 칼슘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뼈의 형성을 촉진하고 식욕도 억제한다. 일 섭취량은 25 ~ 30g (20개정도)가 기준이 알려져 있지만, 체질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분량을 찾는것이 좋을 것이다.

6. 자몽

신진 대사를 자극하여 인슐린 농도를 낮추고 혈당을 조절한다. 자몽에는 약 160mg의 비타민C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하루 1 개를 먹으면 1 일 필요 섭취량을 충분히 취할 수 있다.

7. 저지방 유제품

칼슘과 비타민D가 풍부하고, 지방을 줄이고 근육을 만든다. 저지방 우유, 요구르트, 치즈는 우수한 지방 연소 식품이다. 날마다 이러한 식품을 섭취하면 신진 대사가 개선되어 섭취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두 배의 체중 감소 있다.

8. 지방성 물고기

연어, 참치, 고등어 등의 생선을 자주 먹으면 특히 복부 지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연어는 신진 대사 및 인슐린 감수성을 개선하는 오메가 3 지방산을 많이 포함한다. 이것은 체중을 줄일 뿐만 아니라 더 오래 식욕을 제어 할 수 있다.

9. 샐러드

체중을 줄이고 트레이닝하고 싶다면, 샐러드를 중심으로 섭취해야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식사 때 샐러드를 먼저 먹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칼로리가 억제된다고 한다. 유리기를 제거하고 지방을 연소하고 근육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10. 녹차

카테킨이라는 우수한 천연 물질이 포함되어 있고, 이것이 신진 대사와 지방 연소 비율을 올린다. 매일 5 ~ 6 잔의 녹차를 마시면

80kcal를 소모할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823.html
kolaswqetsrq 11.02 08:51
버려야 할 나쁜 식습관

버려야 할 나쁜 식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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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떤 기준으로 식생활을 할까요? 어떤 사람한테는 맛있는 게 최선이고, 어떤 사람은 조금이라도 저렴한 식재료를 고릅니다. 그리고 건강한 식생활을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사람도 있죠. 문제는, 건강에 대한 염려가 집착 수준으로 치닫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온갖 교리가 파생되죠. 유기농이 아니면 안 돼, 설탕이 들어가면 안 돼, 가공식품 안 돼, 통곡물만 먹어야 돼, 야채만 먹어야 돼, 라는 식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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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그게 뭐가 문제인가 싶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식생활이, 건강한 음식만 먹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넘어가면 병이 되죠. 건강음식 편집증(orthorexia)을 앓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규제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대표적으로 2가지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1번, 자기 자신과 신체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하다. 2.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건강한 식생활을 전도하려 한다.
",

지금부터 건강음식 편집증 환자들의 5계명을 알아 보겠습니다.

1. 식생활은 건강해야만 한다.

이들은 매 끼를 올바르게 - 건강하고 자연스럽게 - 먹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육류는 심장 질환을 유발할 수 있으니까, 혹은 동물 복지나 자연 환경이 중요하기 때문에 먹지 않습니다. 밀가루, 설탕, 글루텐까지 끊는 사람들도 있죠. 아니면 오직 과일만 먹는 채식주의자가 되기도 하죠. 하지만 세상에 절대적으로 올바른 식생활은 없습니다.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문제가 되는 음식이라도, 아예 안 먹으면 다른 식으로 탈이 나죠. 혼자 생각하기에 건강하지 않은 음식인 것 같아서 안 먹다 보면 식생활의 다양성이 깨지고 영양소 결핍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토록 신봉하는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거죠.

2. 설탕은 금기다.

평소 설탕 섭취량에 신경을 쓰고, 필요한 경우 섭취를 제한하는 건 건강한 습관입니다. 하지만 단맛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입니다. 당 섭취를 아예 끊으면, 어느 순간 폭식을 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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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든 식재료는 유기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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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식품 편집증 환자에게 유기농은 식생활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유기농은 재배와 수확 과정에서 약을 쓰지 않아, 더 건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든 식재료가 유기농일 필요는 없습니다. 가령 감자와 당근에는 농약을 쳐도 수확물에 별로 축적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명심해야 할 건 내가 유기농만 먹기로 결심했다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거죠. 이 점을 간과하면, 같이 밥 먹자는 사람들이 뚝 끊길 겁니다.
",

4. 익히지 않은 음식이 조리한 음식보다 건강하다.

채식주의자 중에는 야채과 과일을 가열하면 비타민과 영양소가 파괴된다고 맹신하는 사람들이 많죠. 하지만 열을 가해서 파괴되는 건 비타민 B군과 비타민 C 정도입니다. 당근에 함유된 베타카로틴이나 토마토에 라이코펜처럼 오히려 조리를 통해 체내 흡수율이 좋아지는 영양소도 있고요. 게다가 완전히 날것으로만 먹으려고 하면, 야채와 과일의 선택지가 좁아집니다. 루바브나 그린빈 같은 야채는 생으로 먹을 수 없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생식만 하면 소화기에 부담이 가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5. 배 부를 때까지 먹지 마라.

식습관은 학습을 통해 형성됩니다. 어린 아이들은 식사 시간과 별개로 배가 고플 때 먹고, 배가 부르면 그만 먹습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정해진 식사 시간을 지켜야 하고, 접시에 담긴 건 다 먹어야 하고, 슬플 때는 위로용 초콜릿을 받습니다. 한 그릇 더 먹으려고 하면 잔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죠. 이런 학습을 거쳐, 어느 정도 먹으면 기분 좋게 배가 부른지를 알게 됩니다.

포만감이 들지 않는다면, 먹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뜻이니까 더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건강식품 편집증 환자는 스스로에게 배가 부른 만족감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거식증에 걸릴 위험성이 커지는 거죠.

건강하게 먹는 데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람은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인생의 다른 문제를 팽개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신체뿐 아니라 정신의 건강마저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엄격한 식습관과 운동 스케줄을 지킨 덕분에 불행한 채로 오래 살게 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몸무게가 좀 늘어도, 여전히 내 몸을 사랑하고 편안함을 느껴야 행복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286.html
kolaswqetsrq 11.02 08:52
무병장수 생활

무병장수 생활

1. 快食(쾌식)

1 식사를 잘 햐야 한다.

2 식사 때(조, 중, 석식)를 거르지 않고,

3 맛있다고 과식하지 말고

4 생각없다고 때를 거르지 말고

5 소량이라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

2. 快便(쾌변)

1 정기적으로 배변을 잘 해야 하고

2 便秘(변비)는 좋지 않다.

3 배뇨, 배변을 시원하게 해야 한다

3. 快眠(쾌면)

1 熟眠(숙면)을 해야 하고,

2不眠症(불면증)은 사람을 미치게 하며

3 잠자리에 들면 푹 자고 일어나야 한다.

4. 快步(쾌보)

1 걸음을 경쾌하게 걸을 수 있어야 하고

2 관절이 좋지 않아서, 또는 다리가 아파 경쾌하게 걷지 못하면 큰 불행이다.

3 몸을 똑바로 세우고, 경쾌히 걷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4 가능하면 速步로 심폐기능을 향상시켜야 한다.

5. 快笑(쾌소)

1 농담이나 익살을 떨어서라도 통쾌하게 웃고,

2 친구들과 만나면, 웃음보를 터트려서도 크게 웃을 수 있는 우스개 소리라도 한마디 하세요.

3 웃으면 福이 온다.

4 一笑一少(일소일소)이다.

6. 快愛(쾌애)

1 많이 사랑하십시오.

2 좋아하는 異性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求愛하세요.

3 유쾌한 성생활은 인생을 연장한다.

4 그러나 지나친 정력낭비는 명을 단축하기도 한다.

7. 快事(쾌사)

1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하고,

2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만들고,

3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항상 즐거움을

4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크나 큰 성취감을 준다.

5 하고 싶은 일은 곧 自我實現이다.

8. 快費(쾌비)

1 써야할 때는 아낌없이 쓰십시오

2 壽衣에는 호주머니가 없다. 아낀 돈을 저승 갈때 가져 갈수는 없다.

3 먹고 싶은것 있으면, 사 먹으십시오

4 친구 만나면, 밥 한끼, 술 한잔을 먼저 사십시오

5 주는 것은 곧 얻는 것입니다.

6 老後準備보다 死後準備를 하십시오

7 죽은 후에, 다른 산 사람이 "그 사람, 착한 사람이었는데...." 라는 말을 하도록 適消 適費하십시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498.html
kolaswqetsrq 11.02 08:53
오징어의 효능

오징어의 효능

1. 쇠고기의 16배 우유의 47배나 되는 우수한 타우린과 고단백질이 뇌 세포 형성에 도움을 주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며 우수한 뇌세포를 만든다.

2. 오징어의 타우린은 우리가 흔히 마시는 피로 회복용 드링크에 많이 첨가된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피로회복 효과가 크고 체내의 콜레스테롤 흡수를 저해하고 적극적으로 감소 시키는 역할을 한다.

3.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해 당뇨병을 예방하고 시력회복과 근육의 피로회복에 효력이 있다.

4. 풍부한 EPA 성분은 심장 질환을 예방하고 간장의 해독 기능을 강화시키며, 편두통을 예방해 준다.

5. (당뇨예방) EPS, DHA의 고도의 불포화지방산이 많이들어 있어 뇌기능을 증진시켜 학습 및 기억능력을 향상시키고 치매예방에 효과가 있다.

6. 타우린성분이 100g 당 300 - 800mg으로 다른 어류에 비해 3배 높고, 육류 보다는 30배 - 60배 높다.

7. 오징어에는 인체세포 대사에 필수적인 희귀미네랄원소인 셀레늄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 셀레늄은 인체내에 강력한 항산화, 암, 성인병예방 등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8. 우수한 단백질 풍부, 피를 보충 작용, 여성의 빈혈 무월경, 폐경기에 동반되는 갱년기 장애에 효과가 있다.

9. 약용으로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해지소" 라 불리는 오징어 뼈 인데, 이것을 삶아서 가루낸 것은 지혈 작용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십이지장궤양, 위궤양의 묘약으로 통한다.

10. 멀미 예방 에도 효과, 오징어는 인산의 함량이 많은 산성 식품으로 알카리성인 채소를 곁들여 먹는 것이 좋으며 위산 과다인

사람은 먹지 않는 것이 좋다.

11. 오징어에는 단백질ᆞ칼슘ᆞ인 등이 다량 함유돼 있으며, 소화 역시 잘 된다. 탄수화물이나 지방은 거의 없고, 단백질함량은 생선ᆞ조개 등 다른 해산물과 비슷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260.html
kolaswqetsrq 11.02 08:54
■ 도자기 명가 심수관가沈壽官家

■ 도자기 명가 심수관가(沈壽官家)

일본 규슈섬 남쪽 끝 가고시마현에 위치한 작은 마을 미야마美山는 일본의 대표적 도자기로 꼽히는 ‘사쓰마야키’의 발상지이다. 1598년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끌려온 도공들의 절반이 이곳에 터를 잡고 도자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 조선 도공들에 의해 처음 사쓰마에서 만들어 낸 백자가 ‘히바카리’였다. 일본어로 히(火)는 불이고, 바카리는 뿐이라는 뜻이다. 사쓰마에서 만들어 낸 백자 ‘히바카리’는 조선의 흙과 유약으로 조선 도공이 만들었고, 일본 것은 불만 빌렸다는 뜻이다. 지금도 매일 가마의 장작 타는 냄새가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다. 이 마을 한가운데 갓 모양의 입구 장식과 한국식 정자가 유독 눈에 띄는 공방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사쓰마야키의 본가(本家)로 일컬어지는 심수관요다.

심수관가(沈壽官家)는 조선에서 사쓰마(薩摩)로 끌려간 조선 도공(陶工) 심당길의 후예들이다. 400년 전 심당길이 처음 가마를 만든 같은 자리에서 그 후손들이 여전히 도자기를 빚어오고 있다. 400여 년간 심수관가가 빚어온 ‘사쓰마야키(薩摩燒)’는 일본 도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수많은 도공을 포로로 끌고 갔는데, 왜 그랬을까?

15~16세기 일본 상인 사이에 다도(茶道)가 유행하기 시작해, 유력 다이묘와 승려에게로 퍼져 나갔다. 그래서 질 좋은 찻그릇을 찾는 권력자들이 늘어났으나, 당시 일본의 도자기 제작 기술로는 도기(陶器)는 생산이 가능했지만 자기는 만들지 못했다. 자기는 1300도에 가까운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 도기보다 더 단단하고, 손으로 쳤을 때 맑은 소리가 난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지만 일본은 이런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는 흙도 가마도 없었다. 그래서 높은 온도를 견디며 만들어진 조선의 백색 자기가 명품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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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야키모노센소(燒物戰爭) 즉, 도자기 전쟁이라고 칭할 만큼 수많은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포로로 끌려온 심당길같은 조선 도공 덕분에 일본 도자기는 크게 발달했다. 이들은 백자를 만들 수 있는 흙을 찾아내고 조선식 도자기가마도 도입했다. 이렇게 도자기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일본은 세계 도자기 시장에도 진출하여, 17세기 이후 중국에 버금가는 도자기수출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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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명성을 떨치게 된 일본의 대표 도자기 중 하나가 바로 심수관가의 사쓰마도자기이다. 심수관이라는 이름은 습명(襲名·선대의 이름을 계승)이다. 가업을 빛낸 12대 심수관의 업적을 기려, 11대까지는 각자의 이름을 쓰다가 이후부터 자손들이 그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일본에서 이렇게 선대의 이름을 계승습명:襲名하는 것은 선대의 문화적 업적이 엄청나고,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뜻이다. 장남(長男)이 가업과 함께 그 이름도 습명(襲名)으로 가지게 된 것이다. 얼마 전 14대 심수관이 향년 92세로 사망하고 지금은 그의 아들이 15대 심수관(일본명 오사코가즈테루)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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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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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55
■ 간택 4편

■ 간택 4편

간택에 참가한 처녀들은 같은 조건하에 후보를 고른다는 취지에서 모두 똑같은 복장을 입었다. 초간택 때 복장은 노랑 저고리에 삼회장을 달고 다홍치마를 입었다. 재간택, 삼간택으로 올라갈수록 옷에 치장하는 장식품은 조금씩 늘었다. 삼간택에서 최종적으로 뽑힌 처녀는 비빈(妃嬪)의 대례복을 갖추어 거의 왕비의 위용을 보였다.

최종 간택인 삼간택(三揀擇)에서 뽑힌 예비 왕비 또는 왕세자빈을 ‘비씨(妃氏)’라 불렀으며, 이미 보통 사람의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사가(私家)로 돌아갈 수도 없고, 별궁(別宮)으로 직행하여 6개월 정도 궁중예절과 왕비 수업을 받았다. 궁에서 파견된 고참 상궁들이 교육을 맡았고, 가례의식이 거행되는 순서와 행사를 미리 연습시켰다. 교육을 마치면 정식으로 혼례를 치르고 왕비나 세자빈이 되는 것이다.

국혼을 앞두고 앞으로 육례의 절차를 치르기에는 사가의 규모가 대궐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별궁(別宮)은 가례(嘉禮) 기간 동안 예비 왕비의 집 역할을 하는 궁으로서, 가례의식에 거행되는 순서와 행사를 준비하는 장소로 만들어졌다. 혼인날 왕이나 왕세자가 와서 초례(醮禮)를 치러야 하는데, 사가(私家)에 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에서 왕비를 모셔오는 친영(親迎) 의식을 치름으로써 왕실의 위엄과 권위를 살리고, 사가(私家)에서 국왕을 맞이하는 데 따르는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별궁은 대궐과 사가(私家)의 중간 위치에 놓여 있었다. 별궁은 일명 ‘부인궁(夫人宮)’이라고도 했는데 아직 책봉받지 않았으니 왕비나 빈궁(嬪宮)이라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처자라고도 할 수 없기에 별궁 체류 기간의 명칭은 공적으로 ‘부인’이라 칭했다. 궁중 예법은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 별궁생활은 정신적·육체적 인내를 무척이나 요구했을 듯하다. 삼간택에 최종적으로 선발된 ‘비씨(妃氏)’는 그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혹독한 별궁생활을 통해 왕실생활의 빛나는 미래가 보장되는 화려한 길이 아니라, 고통과 인내가 필요한 험난한 여정임을 미리 실감하게 되었을 것이다.

혼인한 딸 덕으로 친정이 잘 지내게 될 때를 비유해서 ‘딸 덕에 부원군(府院君)’이라는 속담이 있지만, 그 당시 실제로는 딸이 왕비가 되는 것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하여 금혼령이 내려질 즈음이면 사대부가에서는 서둘러 딸들을 혼인을 시키기도 했다. 왜냐하면 정치적인 혼란이나 정쟁이 심할 때는 오히려 화근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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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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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4_52.html
kolaswqetsrq 11.02 08:56
■ 간택 2편

■ 간택 2편

금혼령이 공포되면 해당 연배의 처녀를 둔 전국 사대부 가문에서는 사주단자(四柱單子)와 함께 부, 조, 증조, 외조의 이력을 기록한 신고서를 국가에 올려야 했다. 이 신고서를 처녀단자(處女單子)라고 하였다. 처녀단자는 예조(禮曹)에서 모아 왕에게 올렸다. 왕비 간택은 대체로 왕실의 어른인 대비가 주관하였는데, 대비는 처녀단자를 보고 그 중에서 가문과 사주가 좋은 처녀를 골랐다. 하지만, 이것은 형식이고 왕비감은 미리 정해 놓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왕실에서는 왕비를 간택할 때 세 차례의 심사과정을 거침으로써 최대한 공정성을 기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왕비를 뽑는 중요한 행사를 전국적으로 알려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고 널리 왕비감을 물색하려는 국가의 의지를 알렸다.

왕비 간택 시에는 먼저 상궁으로 하여금 왕비로 예정된 처녀의 집으로 가서 뜻을 정하고 당사자를 살폈다. 단,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내정되어 있었다고 해도 사주가 나쁘면 간택되지 못했다. 처녀단자를 받아들인 후에는 금혼령을 해제하였다. 그리고 가례도감(嘉禮都監)이라는 임시 관청을 설치하여 간택과 혼례를 주관하였다.

조선시대 국왕은 보통 8세 전후 세자에 책봉되면서 혼인을 하게 된다. 남자가 여덟 살이 되면 영구치가 나오고 지식이 늘어나기에 이때를 전후해 세자책봉을 하고, 세자에 책봉된 후에는 동궁(東宮)에 살면서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아예 혼인을 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조선시대 왕비는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하였다가, 세자가 왕위에 즉위한 후 정식 왕비에 책봉되었다.

간택은 초간택(初揀擇) - 재간택(再揀擇) - 삼간택(三揀擇)으로 이루어졌다. 보통 초간택에서 서류심사(처녀단자심사)로 뽑은 30명 안팎의 후보자 중에서 대여섯 명의 처녀들을 뽑고, 재간택에서 세 명, 그리고 삼간택에서 최종적으로 마지막 한 명을 뽑았다. 초간택에서는 약 30~40명의 처자들이 궐내에 들어오면 넓은 마루에 모아놓고, 각기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방석위에 앉힌 뒤 다과를 먹게 하여, 그 용모와 행동거지를 살폈다. 부덕(婦德)과 집안의 가계, 미모,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처녀를 뽑기 위함인데, 이씨(李氏)는 본관을 불문하고 제외되었다. 이는 엄격한 유교 질서에 따라 동성혼을 금했기 때문이다.

재간택에서 뽑힌 3명의 후보자를 두고 이루어지는 마지막 삼간택은 왕과 왕비의 앞에서 치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때 왕과 왕비는 발을 드리운 안쪽에서, 궁녀들은 면전에서 그들을 관찰하였다. 이를 전후하여 정승들과도 논의를 거치게 된다. 이 논의에서 어느 가문의 규수를 왕비나 세자빈으로 정할지가 결정되는데, 비빈(妃嬪)의 간택이 정치상황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왕실혼은 정략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허다하였고, 보통 국혼은 사대부가(士大夫家)가 왕의 측근인 외척이 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왕비를 배출한 가문은 당대의 명문거족이거나, 또는 왕비를 배출함으로써 명문거족으로 발돋움하기도 하였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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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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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780.html
kolaswqetsrq 11.02 08:56
■ 극한직업 조선의 왕비 3편

■ 극한직업 조선의 왕비 3편

1910년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무려 27명의 왕이 있었다. 왕후의 자리에 오른 여성은 41명이나 되었는데, 국모의 자리에 올라 국민의 사랑을 받았지만 개개인의 인생은 대부분 불행했다. 현덕왕후 권씨가 24세, 정현황후는 18세, 효현왕후 김씨와 장순왕후 한씨는 1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60세 이상 수명을 다한 왕후는 정순왕후 송씨가 81세, 신정왕후 조씨가 83세, 순정효황후 윤씨가 73세 등 14명에 불과했다.

왕비가 된 후 정변으로 폐위되는 경우도 많았다. 세조의 집권으로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 귀양을 가는 바람에 폐비가 된 정순왕 후는, 현재의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인근에서 옷감에 물들이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폐위된 지 230여년 만인 숙종 대에 복권되기는 했지만, 20대 이후의 전 생애를 일반인으로 살아갔던 정순왕후의 삶은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의 폐위로 폐비가 된 신씨와 유씨의 삶도 남편의 몰락과 함께 참담함을 거듭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연산군과 폐비 신씨, 광해군과 폐비 유씨는 사후에 남편과 함께 묻히게 된 점이다. 현재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연산군 묘와 경기 남양주의 광해군 묘에는 왕과 왕비의 무덤이 쌍릉 형식으로 조성돼 있다.

왕비는 권력과 부가 보장되는 지위가 아니라, 답답한 구중궁궐에서 왕의 내조에 전념하는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더 많이 요구받았다.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뒤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아미산(峨嵋山)과 궁궐 후원을 산책하거나, 궁궐 안에서 독서를 하는 것 정도가 왕비의 유일한 여가활동이었다. ‘왕의 조력자’로서의 역할 수행과 후계자 생산이라는 막중한 책임은 물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내·외명부의 수장(首長)으로서의 무게가 엄청났으리라. 자유도 없고 형식과 절차에 얽매인 답답한 궁중생활이 결코 녹녹치는 않았으리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이는 조선 왕비의 모습은 화려하다. 우아한 자태와 미모, 여기에 더해 화려한 궁중 복식까지 갖춰 입었으니 모든 여성의 선망의 대상이 될 법도 하다. 하지만, 어쩌면 조선의 왕비는 엄격한 궁중에서 틀에 박힌 일상을 살아가는 극한직업을 가진 존재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일반 서민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작은 행복이 얼마나 소중 한 지를 새삼 깨닫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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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57
■ 극한직업 조선의 왕비 1편

■ 극한직업 조선의 왕비 1편

한 나라의 지존(至尊)이 국왕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 부인인 왕비는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이 보장되는 누구나 부러워할 위치일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일반 서민이나 반가(班家)의 여인들보다 얼마나 더 행복했을까?

왕비는 왕의 내조자인 동시에, 궁궐 여인들로 조직된 내명부(內命婦)와 왕실소속 여성이나 관료들의 아내로 조직된 외명부(外命婦)의 수장(首長)이었다. 왕비가 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진다. 세자빈 또는 종친의 부인으로 간택되었다가 남편이 왕위에 오르면서 같이 격상되는 경우, 처음부터 왕비로 간택된 경우, 후궁이었다가 왕비가 죽고 새로운 왕비가 되는 방법이 있다.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중전이 되고, 아들이 대를 이어받아 대비마마가 되는 것이 가장 정통적이고 정상적인 순서이다. 세자빈으로 간택되는 경우 대개 10대의 나이에 간택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정작 이 코스를 거쳐 조선의 왕비가 된 인물은 6명에 불과하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 연산군의 비 폐비 신씨, 인종의 비 인성왕후 박씨, 현종의 비 명성왕후 김씨, 숙종의 비 인경왕후 김씨, 경종의 비 선의왕후 어씨다. 그리고 현종의 비 명성왕후 김씨는 세자빈에서 왕비로, 그리고 아들 숙종이 왕이 되면서 대비의 위치까지 오른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만큼 세자빈에서 왕비를 거쳐 대비까지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고, 그 삶과 운명이 결코 순탄치 않다는 반증(反證)이 될 것이다.

조선에 27명의 왕이 재위했는데, 이처럼 정통 코스를 거친 왕비가 소수에 불과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자 교체 또는 정변과 반정 등 왕위계승을 둘러싼 정치적 변수도 적지 않았고, 후궁의 득세나 외척의 모반사건 등으로 폐위와 사사(賜死)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적장자가 아닌 차남이나 손자의 즉위, 여기에 더해 후궁 소생의 왕들이 즉위하는 상황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양녕대군의 세자빈과 같이 세자가 교체되는 바람에 대군 부인으로 강등된 사례도 있고, 인수대비로 널리 알려진 성종의 어머니는 남편 의경세자가 요절하는 바람에 세자빈의 지위를 잃었다가 나중에 자신의 둘째 아들이 성종으로 즉위하면서 대비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소현세자의 빈 강씨는 남편의 갑작스런 의문의 죽음으로 세자빈 지위를 박탈당함은 물론 사약까지 받았다. 혜경궁 홍씨 역시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세자빈의 지위를 잃게 되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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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58
■ 왕의 부인은 어떻게 불렀을까 2편

■ 왕의 부인은 어떻게 불렀을까 2편

원 간섭기 이후에는 왕실의 관제와 용어가 상당수 격하되었고, 내명부(內命婦)의 수장(首長)이 원나라 공주로 바뀌고 그 구성원 일부도 원나라가 차지하면서, 그 이전의 내명부 관제가 사실상 무너졌다. 하지만, 원나라가 고려의 관제와 왕실용어들을 격하시키기는 했지만 사실 눈에 띄는 주요부서에 주로 행해진 것이며, 고려의 관제를 모두 속속들이 격하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고려 행정의 위계구조에 황제급과 제후급이 섞여 혼란이 생겨버렸는데, 후궁제도도 마찬가지였다.

이 시기에는 무조건 원나라 공주가 정비(正妃)가 되었고, 원나라 출신이면 고려인 부인들보다 서열이 앞섰다. 반드시 공주 출신이 아니었어도 원나라 출신이면 정비(正妃)로 대우받았다. 국왕의 정비는 원나라의 공주로 정해졌지만, 여전히 국왕은 여러 부인을 정식 부인으로 둘 수 있었다(일부다처제). 이때 왕의 부인들은 ‘〇비(妃)’ 형태로 책봉되었다. 당시 기록에 비(妃)가 붙은 여인들은 모두 국왕의 왕비나 왕비에 가까운 후궁으로 볼 수 있다. 명칭도 더욱 다양해져 의비, 정비, 신비, 혜비, 순비 등 붙일 수 있는 칭호들은 대부분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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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호칭적인 면에서 궁주(宮主)가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원나라공주가 공주의 칭호를 가지고 가는 바람에 공주=궁주라고 여기던 고려의 왕실 칭호에서 원나라 출신이 아닌 이상 공주나 궁주를 쓸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충선왕 때 처음으로 옹주(翁主)라는 칭호가 궁주를 대체하며 후궁들과 왕녀(王女)에게 사용되었고, 옹주는 궁주 또는 공주보다 한 단계 낮은 격으로 사용되면서 천민출신 후궁들이나 왕실 관련 외명부 봉작에서 많이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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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태종이 내명부 체제를 개편하여 정실부인은 1명만 있을 수 있었다. 사회 전반에도 적서차별을 두어 제사를 받들 정실부인 처(妻)는 오로지 1명이고, 그 외에 부인은 모두 첩(측실)으로 제한했다. 태종이 처첩의 구별과 적서차별을 강화한 것은 고려시대 때 일부다처제의 관습으로 아버지 이성계가 고향(함경도)과 개경에 2명의 정실부인을 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후처였으나 경처(景妻)였던 강씨가 왕후가 되었고, 왕권의 라이벌로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인 무안대군과 의안대군까지 생겨버렸다. 그래서 피비린내 나는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거쳐 국왕이 된 태종은 왕실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도 후계구도를 깔끔히 처리하겠다는 의도를 강력히 내보였다. 그리하여 ‘예에는 두 적이 있을 수 없다예무이적(禮無二嫡)’이라는 예법에 따라 왕에게는 한 명의 적처(嫡妻)만이 가능하게 하였다. 처와 첩의 구분이 엄격해지고 따라서 적처인 왕비의 위상이 높아졌다. 조선에서는 후궁은 비록 왕을 낳았어도 대비(大妃)가 될 수 없었다. 고려 때 아들이 왕이 되면, 후궁이라도 태후(太后)가 될 수 있었던 것과 크게 달라진 것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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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8:59
■ 비운의 왕후, 정순왕후 송씨

■ 비운의 왕후, 정순왕후 송씨

한 나라의 국모로 지존의 몸이 되었으나, 결국 자식도 하나 없이 청상과부로 이 세상을 살다가 가신 비운의 왕후 정순왕후 송씨는 세종 22년(1440년)에 아버지 판돈녕부사 송현수(여산 송씨)와 어머니 여흥 민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단종 1년(1453년)에 14세의 나이로 15세의 단종과 혼인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혼의 단꿈을 꾸어야 할 이 시간도 잠시, 1453년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이 문종의 고명대신(유지를 받든 대신)인 황보인과 김종서 등을 죽이고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수양대군은 약 2년간 조카 단종 밑에서 영의정으로 때를 기다리다가 결국 허수아비 왕 단종에게 양위(?)를 받아 1455년에 왕에 올랐다.

단종이 상왕(上王)으로 물러나 앉았다가 세조 3년(1457년)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영월로 유폐(幽閉:사람을 일정한 곳에 가두어 두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함)되자, 더불어 정순왕후 송씨 또한 왕대비가 되었다가 대군부인으로 강등되게 되었다. 단종이 영월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자, 정순왕후 송씨는 슬하에 자녀도 없이 꽃다운 나이 열여섯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송씨는 동대문 밖 숭인문 청룡사 앞 동망봉(東望峯) 기슭에 초막집을 짓고 그녀를 따르던 시녀들과 함께 살았다. 단종의 죽음을 듣고는 소복을 입고 조석으로 산봉우리(동망봉) 거북바위에 올라 단종이 있는 동쪽을 향해 구슬프게 통곡했다고 한다. 그 구슬픈 통곡소리에 주위 아낙네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정순왕후는 시녀들이 동냥해온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세조가 식량을 보냈으나 끝까지 거절하고, 자줏물을 염색하는 일로 연명하며 여생을 살았다고 한다. 참 지조있는 왕후였다. 그 연유로 인해 그 마을 이름이 자줏골이 되었다고 한다. 정순왕후는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 단종을 그리워하며 살다가, 82세에 한 많은 일생을 마치게 되었다. 다행히 177년이 지난 1698년 숙종 24년에 단종이 복위되자 함께 종묘에 모셔지게 되었다.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참고 견뎌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순왕후 송씨도 아마 그 고통을 참고 견디며 그 한 많은 시간들을 견뎌냈을 것이다. 어쩌면 죽음보다도 살아있음이 더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참고 견디며 남편 단종 몫까지 다 살아내며 천수를 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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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00
■ 후궁後宮 3편

■ 후궁(後宮) 3편

조선의 왕 가운데 후궁을 가장 많이 둔 왕은 19명을 둔 태종이다. 다음으로 광해군이 14명, 성종이 13명, 고종이 12명, 연산군과 중종은 11명, 정종은 8명의 후궁을 두었다. 후궁을 두지 않은 왕도 있었으니 현종, 경종, 순종이며, 순조는 한 명을 두었다.

조선시대 즉위한 27명의 임금이 맞이한 부인은 모두 37명이다. 성종, 중종, 숙종은 3명씩이고, 태조, 예종, 선조, 인조, 경종, 영조, 헌종은 2명씩이며, 나머지 17명의 왕은 한 명씩을 두었다. 후궁 중에서 왕비의 지위를 얻은 여성은 6명이다. 왕비의 신분을 최초로 획득한 후궁은 문종의 세자 시절 첩이었던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이다. 이후 두 번째 후궁은 예종의 둘째 부인인 안순왕후 한씨다. 연산군의 어머니의 폐비 윤씨도 후궁 출신이고, 중종의 어머니 정현왕후 윤씨, 중종의 두 번째 왕후인 장경왕후 윤씨도 후궁 출신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양반 출신의 간택후궁이었다. 승은후궁으로 왕비에 오른 경우는 희빈 장씨밖에 없다. 장희빈이 죽임을 당한 이후에는 숙종이 ‘후궁으로는 왕비를 삼지 말라’고 명함에 따라 후궁으로 왕비가 된 여성은 없었다.

세조의 후궁 소용 박씨 덕중은 수양대군 시절 애첩이었다가 세조 즉위 이후 소용에 봉해졌다. 그러나 아들이 죽은 후 환관 송중을 사랑하여 처벌을 받았고, 또 종친인 구성군 준을 연모하여 편지를 보낸 일이 문제가 되어 교형까지 당하였다. 정종의 시비(侍婢) 기매도 영안대군 시절에 아들을 낳았으나 환관 정사징과 간통하여 궐 밖으로 쫓겨났다.

성종의 후궁 귀인 정씨와 귀인 엄씨는 연산군의 생모 윤씨를 참소하여 죽게 했다 하여 연산군이 정씨의 아들 안양군 이항과 봉안군 이봉으로 하여금 때려죽이게 하였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은 연산군은 내수사를 시켜 그들의 시신을 찢어 젓을 담가 산과 들에 흩어버리게 하였다. 영조의 후궁 숙의 문씨는 사도세자를 모략하여 죽게 하는 데 일조했다 하여 정조에 의해 작위를 박탈당하고 궁에서 폐출된 뒤 사약을 받고 죽었다.

후궁들은 자신이 모시던 왕이 죽으면 궁궐을 나와 별궁에 모여 살았다. 세종은 부왕인 태종이 죽은 뒤 그의 후궁들을 의빈궁에 모여 살게 했다. 세종이 죽자 그의 후궁들을 자수궁에 거처하게 하였고, 문종이 죽자 그의 후궁들은 수성궁에 모여 살게 하였다. 이후 후궁들은 주로 자수궁에 거처하였으나, 성종은 세조의 후궁 근빈 박씨(박팽년의 딸)가 거처하는 곳을 창수궁이라 하여 특별히 구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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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01
■ 후궁後宮 1편

■ 후궁(後宮) 1편

후궁(後宮)은 ‘중국 천자(天子)가 거처하는 궁중의 전전(前殿) 뒤에 있는 깊숙한 부분’이라는 뜻으로 내궁(內宮), 내정(內庭), 후정(後庭)이라고도 한다. 후궁은 황제의 정처(正妻)인 황후 외의 여러 부인들을 지칭하는 말이고, 황제의 잠자리 시중을 들기 위해 존재했다. 고려시대에는 왕의 정처(正妻)는 왕후, 첩(婕)들은 부인이라 불렀다. 이들은 모두 품계 상 정1품이며, 원주, 궁주, 옹주 등의 칭호를 받았고, 귀비, 숙비, 덕비, 현비 등의 칭호로 구분되었다. 특히 옹주는 후궁뿐 아니라 왕의 딸이나 며느리를 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왕의 첩을 모두 후궁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후궁이 되는 방법은 대체로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처음부터 중전이나 세자빈처럼 전국에 금혼령을 내리고 처녀들을 간택하여 예를 갖추어 후궁으로 들이는 경우(간택후궁)이다. 또 다른 하나는 궁녀로 입궁했다가 왕의 승은을 입고 봉작을 받아 후궁이 된 경우(승은후궁)이다. 전자는 주로 양반 명문가 출신이었고, 후자는 한미한 집안의 궁녀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간택후궁은 입궁 때부터 종2품 숙의 이상의 품계에 봉작되어 높은 대우를 받았다. 간택과 승은 외에도 권력자들의 진헌, 왕실 여성들의 추천 등 특별전형을 통해서 후궁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왕비는 양반 출신이었지만 후궁은 양반은 물론 중인, 노비, 과부까지 신분이 다양했다. 태종은 과부 2명을 후궁으로 삼았고, 철종의 후궁 12명은 모두 궁녀 출신이었다. 그러나 한두 번 왕의 승은을 입었다고 해서 모두가 후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승은을 입고도 후궁 책봉을 받지 못하고 상궁에 머물거나 더 낮은 품계에 머문 궁녀들도 있었다. 후궁은 왕이 직접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세자나 왕자의 첩으로 있다가 남편이 왕이 되면서 후궁으로 책봉된 경우도 있었다.

조선시대 후궁은 관직 체계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내직(內職)’ 혹은 ‘내관(內官)’ ‘여관(女官)’이라 부르다가 <경국대전> 편찬 이후에는 ‘내명부(內命婦)’라고 하였다. 따라서 후궁은 정1품부터 종4품의 품계가 부여되는 공인이었고, 품계에 따른 지위와 명예, 재산이 주어졌다. 이들의 지위는 왕비에 비해 훨씬 낮았지만 왕의 총애를 독차지하는 경우에는 왕비 부럽지 않았다. 후궁의 지위는 왕의 총애와 왕실에 대한 공헌도, 즉 자식을 많이 낳는 것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후궁 중에는 선조 대의 인빈 김씨, 광해군 대의 상궁 김개시, 숙종 대의 희빈 장씨, 숙빈 최씨같이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틱한 신분상승의 기회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왕세자 첩의 품계는 조금 낮은 종2품 양제부터 종3품 양원, 종4품 승휘, 종5품 소훈 등 4단계로 나뉘어 있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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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02
■ 양반兩班 1편

■ 양반(兩班) 1편

- 그 사람 참 양반이야. 언제나 젊잖고 화도 잘 안내.

- 이 양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양반’ 이라는 단어는, 전자(前者)의 경우 점잖고 인품이 좋은 사람을 존중해서 말할 때 쓰이고, 후자(後者)는 나이든 남자를 가리키는 호칭으로 쓰이는 경우이다. 그럼, 이 ‘양반’ 의 원래 의미는 무엇일까?

원래 양반이라 함은 동반(東班)과 서반(西班)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국왕이 정무(政務)를 볼 때 남쪽을 보고 앉은 국왕을 기준으로 하여, 왼편인 동쪽에는 문관이, 오른편인 서쪽에는 무관이 늘어서게 되어, 이들을 각각 동반과 서반이라 칭하였다. 이렇게 동반과 서반이라 부른 것은 고려 성종 때부터로 보여 지나, 이때는 사회신분으로서의 양반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관직에 올라있는 고위 관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양반관료체제가 정비되면서 남반(南班)은 동·서 양반에 비해 점차 7품 이하의 천직(賤職)으로 밀려났다. 따라서 남반직은 환관이나 승려의 자손, 혈통에 흠이 있는 양민(良民) 등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려와 조선시대의 지배층은 동·서·남의 삼반(三班)이 아닌 동·서 양반(兩班)으로 정립된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그 의미가 넓어져서 문·무반 직을 가진 사람뿐 아니라 그 가족, 가문까지도 양반으로 불리게 되었다. 가부장적(家父長的)인 가족 구성과 공동체적인 친족 관계 때문에 양반 관료의 가족과 친족도 양반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관제상의 문·무반을 뜻하는 본래의 양반 개념은 조선시대의 지배 신분층을 뜻하는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양반은 관직에 오름으로써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를 제공받아, 경제적으로는 지주층이며 정치적으로는 관료층이다. 생산에는 종사하지 않고 현직 또는 예비 관료로 활동하거나 유학자로서의 소양과 자질을 닦는 데 힘썼다. 양반은 보통 유학을 업(業)으로 하고 관직에 나아갈 수 있었으며, 유교적 예(禮)와 의(義)를 중시하였던 만큼 양반은 지배층인 동시에 지식층이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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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03
장수와 수명의 상관관계

장수와 수명의 상관관계

▶ 낙천적인 사고 : 8년.

낙천적인 사람은 면역 체계가 튼튼해 질병에 잘 걸리지 않고, 걸려도 쉽게 낫는다.

연구에 따르면, 낙천적인 사고방식은 심장병에 좋아,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줄어든다고 한다.

▶ 자기 비하 : - 5년.

자기 비하는 삶을 좀먹는다.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건강도 신경을 쓰게 마련이며, 자주 행복감을 느끼며 산다고 한다.

요양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바 건강 상태가 비슷하더라도, 자존심이 높고 우울한 감정을 적게 느끼는 사람이 더 오래 살았다고 한다.

▶ 결 혼 : 7년.

결혼 생활이 원만하면 건강, 행복도, 경제력이 좋고 한 연구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은 사람보다 기혼자가 더 건강하고 수명이 더 길다고 한다.

▶ 이 혼 : - 3년.

이혼한 사람은 원만하게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보다 수명이 짧고 독신과 사별한 사람이 병원을 찾는 빈도가 높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보다 이혼이 건강에 더 좋다고 한다.

▶ 일과 인생의 균형 : 3년.

바쁜 일정과 계속되는 도전 속에서도 승승장구 하며 잘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일에 치여 모든 에너지를 빼앗기고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우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며,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는것을 아는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 스트레스 : - 2년.

스트레스는 죽음의 천을 짜는 실이나 다름이 없고 심하게 다치거나 인간관계로 큰 상처를 입어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수명이 1년씩 줄어들 수 있다.

▶ 유산소 운동 : 2년.

운동은 우리 몸 거의 모든 장기에 비법과도 같은 놀라운 일을 한다. 운동 효과는 주로 몸에 나타나지만 정신에도 놀라운 효과를 보인다.

▶ 너무 심한 운동 : - 2년.

격하고 지나친 운동은 근육이 산소를 충분히 얻을 여유가 없어져 무산소 대사를 하게 됨으로 근육에 젖산이 쌓여 욱신거리고 칼로리가 많이 소비된다.

▶ 장수한 부모 : 10년.

장수가 유전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로서 부모나 조부모님이 장수했다면, 당신 또한 장수할 가능성이 높다.

▶ 외동 아이 : - 5년.

연구에 따르면, 형제가 많은 사람은 적거나 없는 사람보다 더 장수하고 외동아이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수명이 5년쯤 짧다고 한다.

▶ 작은 키 : 5년.

70년대 미국에서 육상 선수와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분석해 보니 키가 작고 몸무게가 작게 나가는 사람이 장수하는 경향을 보였고 동물 실험에서도 같은종의 개체 가운데 키가 작고 덩치가 작은 것이 오래 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깡마른 몸매 : - 1년.

너무 마른 체형도 건강에 좋지 않다. 덴마크 코펜하겐 예방 의학원에 따르면, 적당히 살찐 편이 좋다고 한다.

엉덩이가 너무 작은 여성보다 조금 큰 여성이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밝혀냄

▶ 채 식 : 5년.

지중해 연안 사람들은 장수하는 사람이 많은데 주식이 과일, 채소, 견과류를 많이 먹고 정제된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 같이 채식주의자는 육식주의자보다 요절할 확률이 20프로 낮고 장수한다는 연구 결과들이다.

▶ 패스트 푸드 : - 4년.

패스트푸드에는 방부제, 정제당, 수소화 기름이나 단백질, 트랜스 지방 같은, 영양학자들은 소리를 지를 만큼이나 끔찍한 물질들이 놀랍게도 많이 들어있다.

▶ 명 상 : 3년.

동양인은 오래 전부터 건강과 장수를 위해 명상을 해왔는데 명상은 마음이 차분히 정리되어 근심 걱정과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 버릴 수 있고 집중력이 좋아지며, 다른 이들과도 쉽게 조화를 이루어 원만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 오랫동안 TV 보기 : - 8년.

스탠퍼드 의대 연구진에 따르면, 소파 위에서만 지내는 인생은 이미 끝난 인생이나 다름없다며 운동부족은 흡연이나 고혈압, 고 콜레스테롤 수치만큼이나 수명을 단축하게 되어 심장병, 당뇨, 요통에 걸리기쉽고, 무언가를 할때 넘어지거나 사고를 당할 위험이 커진다.

▶ 물과 관련 득과 실: 10년~ - 10년

- 약수물과 같은 좋은 생수 : 10년

- 미네랄이 없는 정수기 물 : - 7년

- 각종 청량 음료수와 콜라 : - 7~10년

인체와 세포가 50~90%의 물로 구성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 알아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겁니다!!

▶ 체질에 알맞는 섭생 : 15년.

사람마다 타고난 오장육부의 강약에 따라 섭생 관리를 하면 장수를 누릴 수 있다. 예컨데 간이 약한 태양인은 늘 간을 보하는 섭생을 하면 자기 수명을 유지 할 수 있으나 이를 지키지 않고 간을 사하는 단백질과 화학식품 등을 장기간 먹는다면 장수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463.html
kolaswqetsrq 11.02 09:04
알몸수면이 좋은 이유 8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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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수면이 좋은 이유 8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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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체온이 낮으면 쉽게 잠이 든다고 하네요!

그러나 한 가지 조심하여야 할 점은 손발이 찬 분들은 꼭 손발의 체온을 유지하며 주무셔야 해요!!!

2. 수면시 체온이 낮아지면 에너지를 연소 시켜주는 갈색 지방이 활성화되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성인 남성이 4주 동안 실내 온도가 19도로 유지된 공간에서 수면을 취한 결과 갈색 지방이 놀랍게도 2 배로 늘어났다고 해요!!!

3. 통풍을 원활하게 해 주어서 여성 건강에 좋다고 해요

물론 청결은 필수겠지요!!!!

4. 여드름과 탈모 예방에 아주 좋다고 하네요!

높은 온도에서 자게 되면 코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일종이 과다 분비로 인한 여드름, 탈모, 비만을 일으키는 주요인 이라고 하네요ᅮᅮ

5. 부부관계에 아주 좋은 영향을 미쳐서 옥시토신이라는 사랑의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 행복을 느끼고 혈압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고 하네요!!!

6. 낮에 입고 있던 꽉 끼는 복장으로 인해서 눌려있던 신체 곳곳이 자유로워져서 원활한 혈액 순환으로 인해서 숙면과 피로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7. 옷을 벗고 알몸으로 자면 피부 재생 능력이 극대화 된다고 하네요!!!

즉 알몸으로 잘 때는 피부 호흡이 원활해져서 체내 독소도 제거되고 면역력도 높아지는 디톡스 효과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하네요!

8.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밤 11에서 새벽 3시까지 체온이 낮을 경우 잘 분비되어서 숙면 유지 및 노화를 지연 시키는 역할까지 한다고 하네요~~

옷을 벗고 알몸으로 자면 좋은 이유 8가지를 위에서 열거해 드렸는데 건강을 위해서 한 번 시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밑져야 본전입니다~~~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8_31.html
kolaswqetsrq 11.02 09:05
○ 치매가 두려우면 평소 해야 할 일 5가지

○ 치매가 두려우면 평소 해야 할 일 5가지

치매는 정상이던 사람이 다양한 원인에 의해 뇌의 인지 기능이 상해서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여러 증상을 일컫는다.

즉, 치매라는 단어는 질병명이 아니고 증상들의 모음을 말한다.

과거에는 ‘망령’, ‘노망’이라고 노화 현상으로 봤지만, 현대에서는 뇌질환으로 분류되며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원인으로는 알츠하이머병이 55~70%를 차지하고 있고, 뇌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혀서 생기는 뇌혈관 질환, 루이체 치매 같은 퇴행성 질환 등이 있다. 특히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인 알츠하이머병에는 알려진 치료법이 없다. 따라서 최선의 방책은 효과적인 예방법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치매를 예방하는 방법 5가지를 알아본다.

1. 명상

2개월 동안 하루에 12분 정도 명상을 한 결과, 노인들의 혈액 순환이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되면 뇌로 가는 혈액의 흐름이 좋아진다.

한 연구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2개월 동안 정기적으로 명상을 하도록 한 결과, 인지 테스트 훨씬 나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명상은 스트레스를 낮추고 감정과 기분을 조절하는 효능도 있다.

2. 숙면

밤에 잠을 잘 자면 멜라토닌이 적절히 분비돼 아밀로이드반이 생성되는 것을 방지한다. 멜라토닌은 아밀로이드반을 제거하지는 못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하다.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 7시간 이상 숙면을 취해야 한다.

3. 당분 줄이기

과학자들 중에는 알츠하이머병을 ‘제3형 당뇨병’으로 분류하기는 경우도 있다. 인슐린은 뇌 기능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으며 당분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인슐린 저항성을 일으킬 수 있다.

뇌세포에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면 아밀로이드반이 형성되고 알츠하이머병이 발생할 수 있다. 혈당 지수가 낮은 음식을 먹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4. 사회 활동

중년에 사회 활동을 많이 하면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외로움을 느끼기 쉽다. 특히 기억력에 문제가 생기면 더 심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상호 작용을 포함한 인지적 활동이 치매 위험을 감소시킨다”며 “가족이나 친구와의 모임, 취미 활동을 같이 하는 동호인 모임 등에 참여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이야말로 치매를 막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5. 오메가-3 지방산 섭취

생선에 풍부한 오메가-3 지방산은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늦춘다.

연구 결과, 오메가-3 지방산의 세 가지 형태 중 하나인 DHA가 이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등어, 꽁치, 연어, 송어, 정어리 등 등 푸른 생선뿐만 아니라 호두, 달걀 등에도 오메가-3 지방산이 들어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_7.html
kolaswqetsrq 11.02 09:06
진짜 피를 맑게 해주는 식품

진짜 피를 맑게 해주는 식품

우리 몸의 흐르는 피가 제대로 돌지 않으면 혈액순환이 잘 안된다는 뜻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으면 몸에 영양분이나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폐물 배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데요. 오늘은 원활한 혈액순환을 위해 진짜 피를 맑게 해주는 8가지 식품을 알아보겠습니다.

1. 혈액의 길을 뚫어주는 ′′생강′′

생강은 강한 방향 성분이 혈액 순환을 촉진해 찌꺼기들로 막히고 좁아졌던 혈관을 뚫어줍니다. 생강차를 마시면 온몸에서 땀이 나면서 열이 내려가는 것도 혈액의 이런 작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콜레스테롤을 녹이는 ′′꽁치′′

꽁치나 고등어 같은 등푸른 생선에 들어 있는 불포화 지방산은 응고된 콜레스테롤을 녹여주는데요.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추는데 탁월해 심장 질환 예방에 효과적입니다.

3. 혈액의 독소를 빼내는 ′′미역·다시마′′

해조류에 많은 요오드는 신진 대사를 높이고 혈액의 독성을 뽑아 내는 무기질입니다.

4. 혈액의 응고를 막는 ′′당근′′

당근에 들어 있는 비타민 C, 카로틴, 비타민 E가 혈관이나 조직을 산화시키는 활성 산소의 활동을 막아 깨끗하고 탄력 있게 혈관을 유지시켜 줍니다.

5. 고지혈증을 예방하는 ′′두부′′

두부는 식물성 단백질과 리놀레산이 풍부한데요. 리놀레산은 혈액 안에 들어 있는 응어리진 지방을 녹여 고지혈증을 예방하는 영양분입니다. 막힌 혈관을 뚫는 기능이 뛰어나 한의학에서는 뇌졸중에 두부 습포를 했을 정도라고 한다.

6. 혈관과 조직의 산화를 막는 ′′검은깨′′

깨에 포함된 항산화 물질 중 세사미놀과 세사민은 강력한 황산화 작용으로 깨끗한 혈액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7.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녹차 가루′′

녹차는 카테닌 성분이 활성 산소를 제거하고 카페인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어 깨끗한 혈액을 만드는 데 2배로 효과가 좋은 식품입니다.

8. 묵은 피를 걸러내는 ′′부추′′

부추는 궂은 피를 내보내고 새로운 피로 혈관을 채우는 작용을 하는데요. 부추에는 유화아릴이라는 자극 성분이 있어 에너지 대사를 촉진하고 혈액 순환을 활발하게 합니다. 날이 너무 더우면 원활한 혈액 순환이 어려울 수 있으니 피를 맑게 해주는 8가지 식품으로 안전한 여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887.html
kolaswqetsrq 11.02 09:06
간이 피곤하면 보내는 7가지 신호

간이 피곤하면 보내는 7가지 신호

1. 손톱과 발톱의 색이 변한다.

하루 1 번 손톱과 발톱을 살피면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손톱과 발톱이 누런빛을 띠거나 흰 반점이 생겼으면 간 기능에 이상이 있을 수 있으니 의심해봐야 한다.

2. 술 해독이 잘 안된다.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은 위와 소장에서 흡수된 후 간으로 들어간다. 알코올이 간으로 들어오면 몸은 해독 작용을 위해 알코올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간이 안 좋으면 술 해독이 잘 안된다. 또한, 술은 간에 지방이 축적되게 해 지방간을 일으킬 수 있다.

3. 입 냄새가 계속 나고, 소화가 잘 안된다.

간의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가 소화를 돕는 일이다. 따라서 간에 이상이 생기면 소화장애가 생긴다. 더불어 구토, 복부팽만과 더부룩함, 설사 등이 있을 수 있고, 입에서 안좋은 냄새가 날 수 있다.

4. 가족 중에 간질환이 발생했다.

가족 안에서 특정 질병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를 가족력 질병이라 표현한다. 가족력이 있다고 무조건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병에 걸릴 확률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가족력 질환이 있다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건강한 식생활과 함께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5. 구역질을 자주하게 된다.

구역질이 나는 증상 외에도 음식을 먹고 체한 것도 아닌데 속이 더부룩하고, 배가 팽창하며 통증이 느껴진다면 간 건강을 의심해보자.

6. 피부톤이 황색으로 변해 안색이 좋지 않다.

혈액 중에 빌리루빈 양이 증가해 피부가 황색을 띄게 되는 상태인 황달은 대부분 간이 좋지 않은 경우에 나타난다. 또한, 눈의 흰 자위가 피부색보다 노란 빛을 띠거나, 소변의 색깔이 짙어진다면 한번 황달을 의심해 보자.

7. 이유 없이 피로감이 계속된다.

피로감은 간에 이상이 생길 경우 나타나는 주요 증상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만약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로가 계속된다면 병원을 찾도록 하자. 피로는 많은 사람이 흔하게 겪는 증상으로 지나치기 쉽지만, 몸 속에 숨은 큰 병의 증거일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_82.html
kolaswqetsrq 11.02 09:07
○ 중풍 예방법 및 전조증상

○ 중풍 예방법 및 전조증상

▶ 중풍 예방법

첫째: 감자와 고구마를 많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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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와 고구마에는 중풍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포타슘 성분이 들어 있다. 포타슘은 칼슘의 한 종류로 토마토, 곶감, 시금치, 귤,근대 같은 야채나 과일에 많이 들어 있다. 포타슘은 몸 안에 있는 소금이 빨리 배설되게 하여 혈압이 올라 가는 것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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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가벼운 운동이 좋다.

하루에 30분 정도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등산을 하는 등 가벼운 운동을 한다. 그러나 숨이 찰 정도의 심한 운동을 15분 이상 지속하는 것은 좋지않다. 운동을 하면서도 10분 간격으로 휴식을 하고 가능 하면 새벽에는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셋째: 냉온욕을 피한다.

혈액이 지나치게 묽어지면 뇌로 올라가는 혈류가 약해져서 뇌출혈에 걸릴 위험이 오히려 높아진다. 흔히 냉온욕이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혈압이 높거나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 사람한테는 몹시 위험하다.

넷째: 특히 오전에는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중풍은 오후보다는 오전에 발생하기 쉽다. 특히 혈전으로 인해 뇌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뇌경색은 상당수가 오전 8시~10시 사이에 일어난다. 그러므로 오전에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찬 공기가 갑자기 노출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 중풍의 전조증상

1, 손발이 저리거나 힘이 없어진다. 특히 엄지와 검지가 더 저리다.

2, 말이 어눌해지거나 뒷목이 뻣뻣해진다.

3, 얼굴이 자주 붉어지며 열이 위로 솟구쳐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온다.

4, 머리가 무겁고 두통이 자주 생긴다. 특히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머리가 아프다.

5, 어지러우며 속이 메스껍다.

6, 사물이 두 개로 보이거나 눈이 침침 하다.

7, 귀에서 소리가 난다.

8, 눈꺼풀이 자주 떨린다.

9, 얼굴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10, 눈이 충혈되고 눈의 혈관이 터진다.

눈의 혈관과 뇌혈관의 상태가 비슷하므로 특히 눈이 쉽게

충혈되는 사람은 중풍을 조심해야 한다.

중풍은 뚜렷한 전조증상 없이 갑자기 오는 경우도 있으므로 자신의 몸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몸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대처하여 중풍을 예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중풍의 응급처치

1,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안정시켜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 상반신을 높게 해서 심장보다 머리를 높여 주고 뇌압이 올라가지 않게 한다.

3, 옆으로 눕게하여 구토를 하더라도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지 않게 한다.

4, 머리를 뒤로 젖혀 기도가 바로 되게 하여 숨이 막히지 않게 한다.

5, 열이 심할 때에는 알코올이나 찬물을 수건에 적셔서 이마나 앞 가슴 등을 닦아 준다.

6, 열 손가락 끝을 모두 따 주는 것도 좋다.

7, 그런 다음에 천마 생즙을 갈아서 먹이거나 떫은 감즙을 먹이거나 생무를 즙을 내어 먹이거나 하는 등의 응급조치를 한다.

8, 중풍으로 쓰러지면 한시라도 빨리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발병한 지 오래 될수록 치료가 어렵고 회복된다고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716.html
kolaswqetsrq 11.02 09:08
호랑지국 虎狼之國 - 범과 이리 같은 포학한 나라

호랑지국 (虎狼之國) - 범과 이리 같은 포학한 나라

범 호(虍/2) 이리 랑(犭/7) 갈 지(丿/3) 나라 국(囗/8)

百獸(백수)의 왕이라는 범은 호랑이라는 말이 나왔듯 이리와 함께 사납고, 저보다 약한 짐승들을 떨게 하는 존재였다. 우리나라에선 檀君神話(단군신화)나 전래동화에 등장하여 친근감도 주지만 호랑이가 나오는 성어들은 모두 무섭고 강한 의미를 가졌다.

이러한 호랑이와 이리(虎狼)와 같다고 비유된 나라라면 주변국들은 진절머리 나겠다. 바로 중국을 통일하기 전 강대국이었던 秦(진)나라를 두고 이웃 6국은 망할 때까지 괴롭힘을 당해 이렇게 불렀다.

春秋時代(춘추시대) 다음에 이어진 약 200년간의 戰國時代(전국시대)는 진나라와 楚燕齊韓魏趙(초연제한위조)의 6국을 합쳐 七雄(칠웅)으로 압축됐다. 가장 강하고 포악한 진나라와 연합하기도 하고 6국이 힘을 합쳐 대항하기도 하는 등 생존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진과 6국이 횡적으로 동맹을 맺은 것이 張儀(장의)의 連衡(연횡, 衡은 橫과 통용)이고, 진을 제외하고 6국이 힘을 합치자는 것이 蘇秦(소진)의 合從(합종)이다.

초나라 懷王(회왕) 때 진나라가 제를 침략하려 했다. 진의 惠王(혜왕)은 초와 진, 두 나라가 연합할까 걱정돼 장의를 보내 땅을 떼어주겠다고 회유했다. 땅이 욕심난 회왕은 제와 우호관계를 끊고 진에 사신을 보내 땅을 받아오게 했지만 장의는 오리발을 내밀었다.

속은 회왕은 펄펄 뛰었지만 제나라와도 사이가 틀어져 속수무책이었다. 진나라가 昭王(소왕)이 들어서고 초나라에 혼사를 맺자며 회동을 제의했다. 이때 도리에 밝고 문장에도 능한 정치가 屈原(굴원)이 간언했다.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나라여서 믿을 수가 없으니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秦虎狼之國 不可信 不如毋行/ 진호랑지국 불가신 불여무행).’ 하지만 회왕은 굴원의 말을 듣지 않고 진나라로 갔다가 억류되어 그 곳서 죽었다. ‘史記(사기)’의 屈原賈生列傳(굴원가생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蘇秦列傳(소진열전)에도 소진이 초나라에 가서 ‘무릇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사나운 나라로서 천하를 삼키려는 마음을 품고 있으므로 천하의 원수(夫秦虎狼之國也 有呑天下之心 秦天下之仇讐也/ 부진호랑지국야 유탄천하지심 진천하지구수야)’라고 유세하고 있다.

이렇게 주변 약소국을 괴롭힌 진나라를 욕했던 나라가 제 버릇을 남 주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전에 한국이 북핵에 대비한 사드(THAAD)를 성주에 배치하자 중국이 경제보복 운운하며 협박했었다. 남중국해 영유권에 대해 상설중재재판소의 중재에 패소한 뒤에도 안하무인의 횡포를 부렸고, 필리핀이나 베트남 인근의 바다까지 중국의 영해라며 핵잠수함을 배치했었다. 세계 2대 강국(G2)이라는 중국이 덩치 값을 못하고 눈총 살 일만 하니 딱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853.html
kolaswqetsrq 11.02 09:09
능행독책能行督責 - 잘 살펴 꾸짖고 처리하는 능력이 있다.

능행독책(能行督責) - 잘 살펴 꾸짖고 처리하는 능력이 있다.

능할 능(肉/6) 다닐 행(行/0) 감독할 독(目/8) 꾸짖을 책(貝/4)

남의 칭찬을 받고서 기분 나쁠 사람은 없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할 정도라 관심을 가져주고 북돋는데 힘을 쏟지 않을 사람이 없다. 반대의 경우 질책도 마찬가지다. 잘못을 저질렀어도 변명을 일삼는데 일일이 지적하면 누구나 찡그린다. 때와 장소는 물론 주체도 중요하다. 衙中譽倅(아중예쉬, 倅는 버금, 원 쉬)로 한역한 ‘동헌에서 원님 칭찬한다’는 속담이 있다.

겉치레로 입에 발린 칭찬은 아부라는 얘기다. 잘 할 때는 그런가하다가 잘못을 꾸짖으면 불평불만으로 입이 나온다. 이럴 때는 또 橋下叱倅(교하질쉬), ‘다리 밑에서 원을 꾸짖는다’고 안 보는 곳에서 욕한다. 윗사람이 평시에 잘 살피고 독려해야(督責) 능히 조직을 이끌 수 있는(能行) 것은 물론이다.

중국 첫 통일제국 秦(진)나라의 始皇帝(시황제)가 죽고 뒤를 이은 胡亥(호해)는 간신 趙高(조고)의 술책에 의해 황위에 올랐다. 조고의 협박으로 합류하게 되는 승상 李斯(이사)와의 농단에 빠져 호해는 충신을 죽이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 국력을 기울게 했다.

楚(초)나라 출신인 이사는 뛰어난 능력으로 시황제때 고관에 올랐다가 타국 인사들 추방령이 내렸을 때 諫逐客書(간축객서)를 올려 자리를 지키는 등 불안했다. 호해의 실정으로 민심을 잃어 각처에서 군웅이 할거하게 됐고, 이사의 아들이 태수로 나가 있는 지방에서 막지 못하는 바람에 작록을 잃을까 전전긍긍했다. 호해가 이사를 자주 꾸짖자 용서를 비는 글을 올렸다.

여기에 성어가 등장하는데 ‘史記(사기)’ 이사 열전에 내용이 나오고 宋(송)나라 江贄(강지, 贄는 폐백 지)가 쓴 ‘通鑑節要(통감절요)’에 흥미 있게 간추려져 있다. 방대한 資治通鑑(자치통감)의 대요를 뽑아 학습교재로 더 많이 읽힌 책이라 한다. 부분을 보자.

‘무릇 현명한 군주란 반드시 능히 살피고 꾸짖는 정책을 펼 수 있습니다(夫賢主者 必能行督責之術者也/ 부현주자 필능행독책지술자야)’면서 몸을 괴롭히고 마음을 번거롭게 하는 것은 군주가 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독려하고 책임 지우는 것을 위에서 홀로 결단할 수 있으니 권력이 신하에게 있지 않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어리석은 호해는 막강한 황제 권한에 흐뭇해하고, 이사는 자기 살 길을 찾기 위해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부추긴다. 결과는 뻔하다. 권세를 마구 휘둘러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처벌하고 죽은 자의 시신은 거리에 쌓여 백성들의 마음은 부글부글했다.

제 살기 위해 아첨했던 이사는 조고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능력도 없으면서 잔혹한 정치를 펼친 호해는 통일 진 제국을 16년 단명으로 끝냈다. 평시에 잘 살피고 독려하여 부하의 능력을 발휘시켜야 하는 지도자가 엉뚱한 감언만 믿고 권한을 휘두른 결과였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014.html
kolaswqetsrq 11.02 09:10
판축반우版築飯牛 - 성을 쌓고 소를 먹이다, 하찮은 일

판축반우(版築飯牛) - 성을 쌓고 소를 먹이다, 하찮은 일

판목 판(片/4) 쌓을 축(竹/10) 밥 반(食/4) 소 우(牛/0)

노동은 온갖 덕의 원천이고 국부의 바탕이다. 이전부터 학자들이 노동에 대해서 잘 풀이했다. 唐(당)나라 중기의 선승 百丈懷海(백장회해) 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 일일부작 일일불식)’고까지 하며 일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인간생활에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노동에는 땀을 흘려야 하는 일과 머리를 쓰는 일,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일을 해야 하는 감정노동까지 다양하게 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이 모두들 중요한데 편한 일만 찾으려는 사람들이 종종 욕되게 할 뿐이라고 U.S. 그랜트 미 대통령이 말했다.

판자를 양쪽에 대고 그 사이에 흙을 넣어서 단단하게 다진 뒤 성벽이나 토담을 쌓는 일이 版築(판축)이다. 수레를 끌며 소에게 여물을 먹이는 飯牛(반우)와 함께 힘든 일의 보기로 들었다. ‘史記(사기)’의 平津侯主父(평진후주보) 열전에서다. 여기에서 힘들고 하찮은 일을 하다가 조정에 불려가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예를 든다.

목동을 했던 卜式(복식), 장사를 했던 弘羊(홍양), 종의 신분이었던 衛青(위청), 항복한 匈奴(흉노)족 출신의 日磾(일제, 磾는 검은돌 제)를 거론한 뒤 설명한다. ‘이는 또한 옛날에 판으로 담이나 성을 쌓거나 소에게 꼴을 먹이던 무리 중에서 인재를 뽑은 것과 다름없다(斯亦曩時版築飯牛之朋矣/ 사역낭시판축반우지붕의).’ 曩은 접때 낭. ‘漢書(한서)’의 公孫弘(공손홍) 열전에도 같은 내용으로 인용됐다.

여기에서 담을 쌓던 사람은 殷(은)나라 때의 노예 출신인 傅說(부열)을 말한다. 당시의 高宗(고종)이 꿈에서 본 성인이라며 들판에서 발견하여 정승으로 발탁, 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한다. 또 소여물 먹이던 寧戚(영척)은 집안이 가난하여 남의 수레를 끌어주며 살았는데 齊(제)의 桓公(환공)이 비범하다는 소문을 듣고 중책을 맡겼다.

담쌓기와 소 먹이기의 고된 일을 하더라도 능력과 인품을 갖고 있다면 언제든 나라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 성어가 사용됐다. 이렇게 재능이 있으면서도 묻혀있는 인재를 능력 위주로 상하귀천을 가리지 않고 발탁할 수 있는 지도자의 뛰어난 안목을 말하기도 한다. 韓非子(한비자)에 나오는 任人唯賢(임인유현) 즉 인품과 능력만을 믿고 사람을 등용한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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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11
명모호치明眸皓齒 - 맑은 눈동자와 하얀 치아, 미인의 별칭

명모호치(明眸皓齒) - 맑은 눈동자와 하얀 치아, 미인의 별칭

밝을 명(曰/4) 눈동자 모(目/6) 흴 호(白/7) 이 치(齒/0)

아름다움은 얼굴보다 마음에 있다고 마음에 없는 말을 많이 해 왔다. ‘진리는 현명한 마음에 있고, 미는 참된 마음에 있다’거나 ‘아름다운 얼굴이 추천장이라면 아름다운 마음은 신용장이다’라는 격언이 그것이다. 그렇더라도 마음은 볼 수 없으니 보이는 얼굴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그것을 보고 찬탄한다.

숱하게 많은 미인을 가리키는 말 중에서 깨끗한 눈동자(明眸)와 새하얀 치아(皓齒)라는 이 성어도 중국 4대 미인 중 楊貴妃(양귀비)를 가리키는 말에서 나왔다. 이 난에서도 소개한 傾國之色(경국지색)이나 沈魚落雁(침어낙안) 중에서 羞花(수화)에 해당한다.

중국의 전성시대였던 唐(당)나라에서도 6대 玄宗(현종)은 開元天寶(개원천보, 713~753)시대라 하여 재위 중 문화, 경제 및 교역 등 다양한 측면에서 융성을 이끌었다. 그러나 만년에 양귀비를 만난 뒤 넋을 빼앗기고, 정사는 楊國忠(양국충)과 간신 李林甫(이임보)에게 전담시키는 바람에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이렇게 되자 절도사를 맡고 있던 安祿山(안록산)이 대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수도 長安(장안)까지 함락 위기에 이르자 현종은 할 수 없이 피란길에 올랐다. 거기에 굶주림에 지친 친위군들의 반발도 겹쳐 양국충의 목을 베고 양귀비도 스스로 목매게 했다.

이즈음 詩聖(시성)으로 불린 杜甫(두보)도 미관말직으로 근무하다 이 난에 휩쓸려 간신히 목숨은 구한다. 심란한 마음으로 두보는 당시 왕족과 귀족들이 모여 놀던 曲江池(곡강지)를 찾아 옛날의 번화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시를 읊었다. 부분을 인용해보자.

‘맑은 눈동자와 흰 치아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피 묻은 거리귀신 되어 돌아오지도 못하네(明眸皓齒今何在 血汚遊魂歸不得/ 명모호치금하재 혈오유혼귀부득), 맑은 위수는 동쪽으로 흐르고 검각은 깊은데, 그대는 가고 나는 머물러 피차 소식도 없네(清渭東流劍閣深 去住彼此無消息/ 청위동류검각심 거주피차무소식).’ 가고 없는 양귀비의 아리따운 자태를 절절히 노래한 ‘哀江頭(애강두)’란 시다.

국내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구성으로 대회에 꼬리표처럼 붙었던 "여성의 상품화" "미의 고정관념 고착화" 등에서 탈피해 진정성 있고 본연의 아름다움을 갖춘 "여성 리더"를 발굴하는 대회로 바뀌었지만 미는 어디가지 않으니 더욱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꿔 활발한 활동을 보여줬으면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024.html
kolaswqetsrq 11.02 09:12
불의독임不宜獨任 - 명예를 혼자만 차지해선 안 된다.

불의독임(不宜獨任) - 명예를 혼자만 차지해선 안 된다.

아닐 불(一/3) 마땅 의(宀/5) 홀로 독(犭/13) 맡길 임(亻/4)

수양이 잘 돼 덕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공을 앞에 두고 자기가 다 이뤘다고 자만하는 법이다. 우리 속담이 잘 꼬집었다. ‘잘되면 제 복, 못되면 조상 탓’이라며 잘못 되었을 때는 책임을 남에게 전가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후세에 좋은 이름을 남기려고 하는 명예욕이 있다.

훌륭한 일을 했을 때는 향기가 오래 간다고 流芳百世(유방백세)라 했고 반대의 경우에는 악취가 남는 遺臭萬年(유취만년)이 된다. 큰일을 이뤘을 때도 혼자 다 한 것처럼 거들먹거리면 공은 사라지고 오명만 남는다. 가득 차면 손실, 줄이면 이득이 남는다는 滿招損 謙受益(만초손 겸수익)은 만고진리다.

인생과 처세에 관한 명언의 집대성 ‘菜根譚(채근담)’에 이에 관한 가르침이 빠질 수 없다. 해서는 안 되는 일(不宜)이 명예를 독점하는 것(獨任)이란 말이 그것이다. 중국 明(명)나라 때 洪自誠(홍자성)이 ‘항상 나물뿌리와 같은 거친 음식을 달게 여기며 사는 사람은(人常咬得菜根/ 인상교득채근), 어떤 일이라도 성취할 수 있다(則百事可做/ 즉백사가주)’는 명구에서 따왔다는 책이다.

유가의 경전과 시구에서 도교와 불교까지 공통의 哲理(철리)를 前後集(전후집)에 담아 오랫동안 읽혀 왔다. 앞뒤를 자른 성어라 이해하기 모호한데 전체를 보면 음미할수록 좋다.

전집 19절의 내용이다. ‘좋은 이름과 아름다운 절의는 혼자서만 차지하지 말라(完名美節 不宜獨任/ 완명미절 불의독임)’고 먼저 나온다.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눠야 화를 멀리 하고 몸을 보전할 수 있다(分些與人 可以遠害全身/ 분사여인 가이원해전신)’고 이어진다. 些는 적을 사. 미움을 받는 불명예와 악행은 반대다.

‘욕되는 행위나 더럽히는 이름은 남에게 미루지 말고(辱行汚名 不宜全推/ 욕행오명 불의전추), 자신에 끌어와 책임질 수 있어야 빛을 감추고 덕을 쌓을 수 있다(引些歸己 可以韜光養德/ 인사귀기 가이도광양덕).’ 韜는 감출 도. 지금은 세계 곳곳서 완력을 드러내 고개를 절절 흔들게 하지만 얼마 전까지 중국의 대외정책이었던 韜光養晦(도광양회)도 재능을 숨긴다는 뜻이었다.

명예와 공로는 누구나 욕심을 내고, 불명예와 악행은 미움을 받으니 모두들 회피하려 한다.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은 주위의 여러 사람에게서 받은 도움을 까마득히 잊고 자신의 공만 내세운다. 복은 나눌수록 더욱 커지고 자신이 더욱 우뚝해지는데도 그것을 모른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는 까닭도 다른 데 있지 않다. 영원히 다수당이 될 수는 없는데도 한 번 승리하면 계속 될 줄 알고 소수당을 없는 존재로 본다. 덕을 쌓으면 복이 저절로 오는데 욕심이 눈을 어둡게 하여 스스로의 무덤만 팔 뿐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674.html
kolaswqetsrq 11.02 09:13
제인확금齊人攫金 - 제나라 사람이 금을 움켜쥐다, 앞뒤 가리지 않고 욕심만 차리다.

제인확금(齊人攫金) - 제나라 사람이 금을 움켜쥐다, 앞뒤 가리지 않고 욕심만 차리다.

가지런할 제(齊/0) 사람 인(人/0) 움킬 확(扌/20) 쇠 금(金/0)

어떠한 일에 정신을 집중하여 옆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면 어떤 평을 들을까. 후일 그 일이 빛을 발하여 큰 성과를 얻는다면 칭찬 일변도일 것이다. 그런 일은 드문 일이라 더 중요한 것을 잃었다고 욕먹는 일이 많다.

책을 잃느라 먹이던 양을 잃었다면 讀書亡羊(독서망양)이라 본분을 잃은 것이 되고, 사마귀가 매미를 노려 엿보기만 하다 참새의 밥이 된다는 螳螂捕蟬(당랑포선)은 목숨까지 잃는다. 사물에 정신이 팔리면 본 뜻을 잃는다고 玩物喪志(완물상지)라 경계했다. 재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눈앞의 금만 들어오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는 제나라 사람(齊人)의 황금 움켜쥔(攫金)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 대상인이자 정치가인 呂不韋(여불위)는 3000여 빈객의 학식을 모아 펴낸 ‘呂氏春秋(여씨춘추)’로 더 평가를 받는다. 당시의 귀중한 사료로 一字千金(일자천금)이라 자부한 책이다. 미래를 알아야 한다는 先識覽(선식람)의 去宥(거유, 宥는 너그러울 유)편에 욕심에 돈만 보인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齊(제)나라 사람이 장에 나갔다가 금을 파는 상인의 ‘황금을 빼앗아 움켜쥐고 달아났다(見人操金 攫而奪之/ 견인조금 확이탈지)’. 포졸들이 붙잡아 뭇사람들이 보는 데서 금을 훔쳐간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대답이 걸작이다. ‘옆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금만 보입디다(殊不見人 徒見金耳/ 수불견인 도견금이).’

어떤 한 곳에 정신이 팔리면 낮을 저녁으로, 흰색을 검은 색으로 여기게 되니 한곳에 얽매임이 해롭다는 가르침이다. 앞서 ‘列子(열자)’ 說符篇(설부편)에도 간단히 언급된다. ‘금을 갖고 갈 때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만 보였다(取金之時 不見人 徒見金/ 취금지시 불견인 도견금).’ 攫金者不見人(확금자불견인)으로 똑같은 비유는 南宋(남송)의 선승 智愚(지우)의 법어집 ‘虛堂錄(허당록)’에 있다.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한다(逐鹿者不見山/ 축록자불견산)’에 뒤이어 돈을 움켜쥐는 자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경구로 많이 사용된다. 前漢(전한)의 학자 劉安(유안)의 淮南子(회남자)엔 약간 달리 짐승을 쫓는 자는 큰 산을 보지 못한다(逐獸者目不見太山/ 축수자목불견태산)고 했는데 마찬가지 뜻이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 속담은 운수가 나쁘면 되는 일이 없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보다 돈이 개입되면 의리도 우정도 의도적으로 내팽개친다. 겉으로 내세우기는 도덕군자인양 옳은 말만 하다 양파껍질처럼 비리가 하나씩하나씩 드러나는 인사를 자주 본다.

고위 공직자의 청문회 때엔 더 깊이 몸을 낮추지만 지나고 나면 그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욕심이 앞서 체면도 무시하고 오직 불법적인 재물만 쫓다가 패가망신하니 운을 자초한 셈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658.html
kolaswqetsrq 11.02 09:13
두부의 놀라운 효능

두부의 놀라운 효능

1. 심장질환 예방

콩 단백질을 매일 25그램 이상 섭취할 경우 심장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발표도 있습니다. 두부에는 식물성 단백질인 이소플라본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2. 불면증 완화

두부에는 트립토판이 들어있어 불면증 증상 완화에 많은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평소 불면증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불면증 완화 음식 중 하나입니다.

3. 두뇌발달을 도움

두부의 주원료는 콩으로 콩에는 단백질 외에도 필수지방산, 비타민, 기타 무기질 성분이 풍부합니다. 두부의 레시틴 성분은 신경전달 물질로 두뇌발달과 기억력을 향상시켜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4. 근육형성과 골다공증 예방

두부에 풍부한 단백질과 칼슘 성분은 뼈와 근육을 만드는 구성 성분으로 성장기 어린이의 골격 형성과 갱년기 여성의 골다공증과 근력 손실을 예방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5. 갱년기 증상 완화

콩에는 여성호르몬과 같은 효능이 있는 이소플라본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콩 및 두부를 꾸준히 섭취하면 갱년기 증상을 완화시킬수 있습니다.

6. 콜레스테롤 감소

두부에 들어 있는 리놀레산, 레시틴, 이소플라본, 피토스테롤 등의 물질은 체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줍니다.

7. 치매예방

콩에 함유 되어 있는 레시틴은 두뇌에 활력을 줍니다. 치매 환자에게 레시틴을 처방하면 기억력이 20-50% 까지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8. 노화 방지

두부에는 인삼의 주요 성분으로 알려져 있는 사포닌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사포닌은 항암작용을 하며 두부에 함유되어 있는 비타민B군, 비타민E 등은 항산화 물질로 세포의 노화를 가져오는 활성산소의 활동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

9. 다이어트 효과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단백질입니다. 두부는 고단백 식품으로 근육 만들기와 같은 몸매 가꾸기에도 적합하며 다이어트에도 적합한 식품이다.

10. 비타민B 보충

피로회복, 면역력 향상, 무기력증 완화, 식욕감퇴, 신진대사 촉진 등의 효능이 있는 비타민B가 많은 음식 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752.html
kolaswqetsrq 11.02 09:14
어떤 인연으로 살아야 좋을까?

어떤 인연으로 살아야 좋을까?

움켜진 인연보다

나누는 인연으로 살아야 하고

각박한 인연보다

넉넉한 인연으로 살아야 한다

기다리는 인연보다

찾아가는 인연으로 살아야 하고

의심하는 인연보다

믿어주는 인연으로 살아야 한다

눈치주는 인연보다

감싸주는 인연으로 살아야 하고

슬픔주는 인연보다

기쁨주는 인연으로 살아야 한다

시기하는 인연보다

박수치는 인연으로 살아야 하고

비난받는 인연보다

칭찬하는 인연으로 살아야 한다

무시하는 인연보다

존중하는 인연으로 살아야 하고

원망하는 인연보다

감사하는 인연으로 살아야 한다

흩어지는 인연보다

하나되는 인연으로 살아야 하고

변덕스런 인연보다

한결같은 인연으로 살아야 한다

속이는 인연보다

솔직한 인연으로 살아야 하고

부끄러운 인연보다

떳떳한 인연으로 살아야 한다

해가되는 인연보다

복이되는 인연으로 살아야 하고

짐이되는 인연보다

힘이되는 인연으로 살아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871.html
kolaswqetsrq 11.02 09:15
관절염 예방

관절염 예방

1. 정상 체중을 유지한다.

관절도 버틸 수 있는 몸무게의 한계가 있다. 특히 체중이 많이 나가면 무릎에 압력을 줘서 퇴행성관절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체중을 줄일 때 음식만 줄이면 영양이 부족해서 뼈와 관절이 약해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으므로 적절한 운동요법과 식이요법을 통해 꾸준히 정상 체중을 유지한다.

2.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다.

무리한 운동은 관절 건강에 해롭지만 적절한 운동으로 근력을 강화하고 관절이 움직이는 범위를 넓게 해주면 이롭다. 전문 교수는 “걷기, 수영, 자전거 타기 등이 특히 관절에 좋은 운동.”이라고 추천한다. 운동 효과가 좋다고 높은 산을 등산하면 오히려 관절에 무리가 가므로 등산을 하고 싶다면 올레길 같은 평탄한 코스를 걷는다. 전문 교수는 “운동을 하기 전에 스트레칭은 필수.”

3. 바른 자세를 유지한다.

무리한 동작을 반복하거나 삐딱한 자세는 관절을 늙게 만든다. 관절에 높은 압력을 주는 쪼그려 앉는 자세도 가능하면 피한다. 직업상 한 가지 자세를 해야 한다면 스트레칭을 자주 해준다.

4. 카페인 음료를 많이 마시지 않는다.

전문 교수는 “커피, 콜라 등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칼슘 배설을 촉진한다.”고 설명한다. 커피는 하루에 2잔 이상을 마시지 않는다.

5. 음식을 싱겁게 먹는다.

나트륨은 체내에서 칼슘과 균형을 이룬다. 따라서 나트륨의 배설이 많으면 칼슘도 함께 배설되므로 음식을 짜게 먹지 않는다.

6. 항산화 영양소를 자주 섭취한다.

골 손상의 예방과 치료에 도움을 주는 비타민 C, 비타민 E, 베타카로틴, 셀레늄 등이 많은 함유된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먹는다. 골 손실과 칼슘 배설량을 줄여주는 비타민 K가 든 녹황색 채소도 즐겨 먹는다.

7. 칼슘 섭취에 신경 쓴다.

뼈와 관절의 중요한 영양소인 칼슘이 많이 든 우유 및 유제품, 뼈째 먹는 생선, 해조류, 콩 등을 자주 먹는다.

8. 비타민 D 결핍을 막는다.

비타민 D는 칼슘의 흡수를 촉진한다. 비타민 D는 생선 기름, 달걀노른자에 많이 들어있다. 햇볕을 충분히 쬐는 것도 도움이 된다.

9. 습관적인 관절 꺾기는 중단한다.

목이나 손가락 관절을 꺾을 때 나는‘똑’소리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 적당한 관절 꺾기는 뭉친 관절을 풀어줄 수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무리하게 관절을 꺾으면 인대가 다쳐서 관절의 모양이 바뀔 수 있다. 몸이 찌뿌드드할 때는 무리하게 관절을 꺾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운동이나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좋다.

10. 술과 담배를 멀리 한다.

담배는 혈액순환을 방해하고 술은 뼈를 만드는 조골세포를 파괴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358.html
kolaswqetsrq 11.02 09:16
매실차의 효능

매실차의 효능

1. 피로회복에 좋다

매실에는 우리 몸의 피로물질인 젖산을 분해시켜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작용과 살균, 피로회복, 칼슘흡수을 촉진하는 구연산과 사과산이 풍부합니다. 구연산이 몸 속의 피로물질을 씻어 내는 능력은 포도당의 무려 10배라고 합니다. 또 피로물질 젖산이 체내에 쌓이게 되면 어깨결림, 두통, 요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럴 때 매실이 특히 좋습니다.

2. 해독작용이 뛰어나다

매실은 3독을 없앤다는 말이 있습니다. 3독이란 음식물의 독, 피속의 독, 물의 독을 말하는 것입니다. 매실에는 피크린산이라는 성분이 미량 들어 있는데 이것이 독성물질을 분해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식중독, 배탈 등 음식으로 인한 질병을 예방, 치료하는데 효과적입니다. 또한 매실에는 암을 예방 및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는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이 아주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3. 소화불량, 위장장애를 없앤다

매실을 오래 드신 분들은 매실이 위장에 좋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매실의 신맛은 소화기관에 영향을 주어 위장, 십이지장 등에서 소화액을 내보내게 합니다. 또한 매실즙은 위액의 분비를 촉진하고 정상화시키는 작용이 있어 위산과다와 소화불량에 모두 효험을 보입니다.

4. 만성변비에 효능이 있다

매실 속에는 강한 해독작용과 살균효과가 있는 카테킨산이 들어 있습니다. 카테킨산은 장 안에 살고 있는 나쁜 균의 번식을 억제하고 장내의 살균성을 높여 장위 염증과 이상 발효를 막습니다. 동시에 장의 운동을 활발하게 해 장을 건강하게 유지시켜 나갑니다. 장이 건강해지면 변비는 자연히 치료됩니다.

5. 피부미용에 좋다

매실을 꾸준히 먹다보면 피부가 탄력있고 촉촉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매실 속에 들어 있는 각종 성분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각종 유기산과 비타민이 혈액순환을 도와 피부에 좋은 작용을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151.html
kolaswqetsrq 11.02 09:17
커피의 장점과 단점

커피의 장점과 단점

1. 커피와 노화

노화의 원인 중 하나가 활성산소이다. 이것은 사람의 몸에 바이러스 등의 균이 들어오면 공격을 하는 이로운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산화력이 너무 강해 지나치게 많으면 세포막을 산화시키는 해로운 작용도 한다. 즉, 우리 몸에는 적당한 활성산소가 필요하지만 너무 많으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커피에는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작용이 있으므로 커피를 마심으로써 활성산소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고 따라서 노화나 암 예방 효과를 얻을 수 있다.

2. 식사 후 마시는 커피의 효능

커피에는 에너지를 소비시키는 작용이 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약 2분간 조깅을 한 것과 같은 양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렇다고 해서 10잔을 마시면 20분간 조깅을 한 것과 같은 이론은 맞지 않다. 운동을 하면서 커피를 마셔 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면 더욱 좋은데 카페인이 위액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위장의 상태를 조절해 뇌를 자극하여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30분 후에 커피를 마신 뒤 운동을 한다면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 카페인의 작용으로 운동효과는 더욱 커진다.

3. 커피와 건강

1) 커피를 마시면 속이 쓰리다?

빈속에 커피를 마시면 속이 쓰리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커피와 위장질환의 관계에 대한 연구결과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커피가 위장의 운동성과 배출시간을 줄여 기능성 장애를 일으킬 수는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에는 극히 드문 일이고 십이지장궤양이 있는 경우에 그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2) 골다공증과 커피

커피는 소변으로 칼슘을 배출한다. 하지만 그 영향의 정도가 연령에 따라 달라진다. 젊은 사람의 경우 배출된 만큼 다른 장기에서 칼슘 흡수를 증가시켜 보충하는 반면 노년층의 경우는 보충을 해주지 못해 골다공증의 발생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커피와 정신건강 커피는 인지능력이나 기억력 향상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특히 노인의 경우 기억력이나 추리력 등의 수행능력과 인지능력의 향상을 보인다고 하는데 커피 속의 카페인이 중추신경 흥분제로 작용해 피로감을 줄이고 각성 정도를 향상시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613.html
kolaswqetsrq 11.02 09:18
일상생활의 꿀팁

일상생활의 꿀팁

1 ) 꽉 막힌 하수구 뚫기

베이킹 소다 1컵 식초 1컵이면 막힌 하수구를 뚫을 수 있습니다.

2 ) 먹다 남은 피자 촉촉하게 데우기

피자를 먹고 남기는 경우가 있다면 그릇에 물을 받아 전자레인지 안에서 1분 30초~2분 정도 함께 돌려주면 촉촉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3 ) 바나나 싱싱하게 보관하기

날파리가 꼬이거나 금방 익어버리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으로 바나나 양 끝을 자른 후 보관용 케이스나 비닐봉지에 묶어 냉장보관합니다.

4 ) 셔츠에 묻은 볼펜 자국 없애기

셔츠를 입고 일을 하다 보면 볼펜 자국이 묻는 경우가 있는데요. 옷 뒷부분을 키친타월로 받쳐 번짐을 방지한 후 볼펜 자국이 있는 부분을 물파스로 눌러주고 키친타월로 닦아내면 됩니다.

5 ) 젖은 옷 빨리 말리기

지퍼백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계속 순환할 수 있도록 지퍼백 끝을 가위로 잘라준 후 드라이기 열기를 넣어줍니다.

6 ) 휴지심을 이용한 선 정리

다 쓰고 버리는 휴지심에 선을 정리하여 넣어두면 꼬임 없이 선을 보관할 수 있습니다.

7 ) 팔꿈치와 무릎이 검을땐 레몬으로

팔꿈치와 무릎은 까맣게 착색되기 쉬운 곳입니다. 그럴 땐 레몬을 반으로 잘라 즙을 짜내 오목하게 만든 다음 팔꿈치와 무릎을 문지르면 됩니다. 단 3시간 동안은 씻지 않아야 합니다.

8 ) 탄 냄비 복구하기

사과 껍질을 넣어 끓이고 그 껍질로 문지르면 검은 때가 벗겨집니다.

9 ) 변기를 닦을땐 콜라로

콜라에 포함된 성분 덕에 더러워진 변기가 깨끗하게 닦일 수 있습니다.

10 ) 푹 꺼진 베개 복구

30분간 햇볕에서 습기를 말려주면 푹신푹신하게 복구가 가능합니다.

11 ) 매운 채소 눈물 피하는 법

카놀라유나 올리브유를 바르고 자르면 눈이 맵지 않습니다.

12 ) 건전지 잔여량 확인

바닥에서 5cm 정도 띄운 후 떨어트리면 되는데 넘어지지 않고 서 있다면 배터리는 충분한 것이고 넘어진다면 잔여량이 다 한 건전지입니다.

13 ) 주차딱지 제거

주차공간이 적어 이중 주차나 도로가 등 주차라인이 없는 곳에 주차를 하게 되면 주차 딱지가 붙는 경우가 있습니다. 손으로 뜯으면 흔적이 남으니 에프킬라를 뿌리고 닦아내면 끈적임 없이 잘 닦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874.html
kolaswqetsrq 11.02 09:19
간에 독소가 쌓이면 나타나는 증상 6가지

간에 독소가 쌓이면 나타나는 증상 6가지

패스트푸드, 설탕, 의약품, 술 등에 함유된 독성은 간을 거쳐 해독됩니다. 체내 생성된 독소를 배출하는 대단히 중요한 기능을 하죠. ... 이같이, 일상에서 섭취하는 여러가지 성분을 해독하는 기관 간. 이와 더불어,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고 담즙을 분비해 지방의 과잉축적을 막습니다. 이론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간의 크기는 약 1/3정도라고 합니다.

간에 문제가 생겨도 딱히 이렇다 할 증상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통증에 무딘 간세포는 마치 별 일 없다는 듯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죠. 간에 발생하는 문제는 주로 그릇된 생활방식- 잦은 술자리나 비만 등 -에서 비롯됩니다. 다행히 간 질환에 대처할 방법이 여럿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간에 생긴 문제를 알 수 있을까요?

1. 알러지

보통 간은 알러지에 대응할 항체를 생성하지만, 약해져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경우엔 그렇지 못합니다. 따라서, 알러지 항원이 체내에 그대로 남아 히스타민이 분비를 촉진하고, 그 결과 가려움, 부스럼, 재채기 등의 반응이 나타나게 되죠.

2. 입냄새

입냄새를 유발하는 요인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입에서 암모니아 섞인 단내가 풍길 때엔 반드시 의사와 상담하시길 바랍니다. 홍차나 레몬즙과 같은 민간요법으로도 증상이 멈추지 않고 지속될 경우 특히 주의를 요합니다.

3. 알 수 없는 체중 증가

건강히 먹으며 다이어트를 꾸준히 하는데도 체중이 늘어난다면? 간 때문일 수 있습니다. 간 기능이 원활치 못할 경우, 독소가 지방세포에 축적될 수 있으니까요. 지방 분해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지방간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인슐린 저항성이 올라가고 체내 수분량이 증가해 살이 쉽게 찌는 체질로 변하게 됩니다.

4. 여드름

호르몬에 의한 여드름은 주로 테스토스테론의 과다 분비로 인한 경우가 많습니다. 간이 손상될 경우, 호르몬 대사력이 떨어져 여드름의 악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탈모 증상이 함께 나타나기도 합니다.

5. 땀

기능이 손상된 간은 독소 분해를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열이 발생하고 점차 다른 기관의 작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죠. 이때 발생하는 열을 낮추기 위해 땀이 분비됩니다.

6. 가시지 않는 피로

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비교적 초기에 확인 가능한 증상입니다. 간의 해독 기능이 저해돼 독소의 순환이 원활치 않으면 몸은 피로를 느끼고 휴식을 갈구하게 되죠. 이는 밀려드는 피로감으로 나타납니다.

꾸준한 운동, 금주, 식단의 변화는 간의 회복을 도와줍니다. "생활방식은 여러 질환을 초래하는 동시에 개선할 수도 있다"고 독일 하노버 의대 교수 마르쿠스 코른베르그가 힘주어 말합니다. 마늘, 올리브유, 아보카도, 견과류 등 평소 간에 좋은 음식을 가까이하면 좋겠죠. 과한 지방 및 설탕, 육류의 소비를 줄이고 패스트푸드 등만 멀리해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간은 심각한 손상이 진행된 후에도 큰 고통을 느끼지 않기에, 주로 질환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후에야 발견되곤 합니다. 따라서 평소 간 관리에 신경쓰고 건강한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볼 수 있죠. 또한 정기검진을 통해 몸 상태를 꾸준히 살피고, 문제가 감지될 경우 곧바로 의사와 상담하는 것을 권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6_47.html
kolaswqetsrq 11.02 09:19
머릿결 관리 꿀팁 7종

머릿결 관리 꿀팁 7종

헤어스프레이나 고데기 사용이 머릿결을 망치는 주범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압니다. 손상을 최소화하고 윤기 나는 머릿결을 유지하기 위해, 요즘엔 남녀 할 것 없이 모발관리에 공들이는 추세입니다. 이미 시중에 수많은 홈케어 제품이 판매되고 있기도 하죠. 그런데 머리를 잘못 감았다가는 오히려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 알고 계셨나요? 아래에서 저지르기 쉬운 실수 및 예방책을 배워보세요!

1. 젖은 머리 빗기

일단 올바른 빗질을 익혀야 합니다. 머리를 감은 직후에 바로 빗질로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머리카락은 물에 젖으면 잘 늘어나고 끊어지기 쉬운 상태가 되므로, 이때는 되도록 빗질을 삼가야 합니다. 이미 손상이 진행된 모발이라면 특히 더 유의하세요.

팁: 머리 감기 전에 미리 빗질을 하세요. 이렇게 하면 머리카락에 쌓인 먼지 및 이물질을 깨끗이 제거할 수 있어 샴푸 효과가 극대화합니다. 머리를 감은 뒤엔 손가락으로 가볍게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정도가 좋습니다.

2. 매일 감기

기름기 없이 깔끔한 머릿결을 위해 매일 머리 감으시는 분들이 많죠. 두피와 머리카락 상태에 따라 머리 감는 횟수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단, 두피에서 분비되는 유분은 머리카락에 건강한 윤기를 더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적당량의 유분은 머리카락과 두피를 보호하므로 너무 자주 제거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팁: 날마다 샴푸로 머리 감으면 오히려 두피를 자극해 더 많은 유분을 분비하게 됩니다. 필요할 때만, 최소한의 양으로 샴푸 하는 걸 잊지 마세요.

3. 더운물

지친 몸을 뜨끈한 물로 샤워하는 순간만큼 개운한 게 또 없죠. 단, 머리 감을 땐 온도를 좀 더 낮추는 게 좋습니다. 온도가 높을수록 깨끗이 씻기는 게 아니라, 유분을 과도하게 제거해 머리카락이 푸석하고 건조해지는 요인이 됩니다.

팁: 미지근한 온도로 머리 감는 게 좋습니다. 용감한 분이라면 맨 마지막에 찬물로 마무리해보세요. 윤기와 감촉이 달라집니다.

4. 잘못 고른 제품

시중에 판매되는 모발관리 제품이 너무나 많아서, 어떤 샴푸를 골라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패키지 디자인이나 브랜드를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기 쉽지만, 먼저 샴푸 뒷면에 표기된 성분을 확인하세요. 현재 모발 상태에 맞는 샴푸를 고르려면 성분을 고려하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팁: 샴푸를 고를 땐 충분한 시간을 들여 성분을 확인하고 구입하는 게 좋습니다. 새로 산 샴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음번엔 다른 제품을 고르세요. 내게 맞는 샴푸는 써봐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5. 머리카락 전체에 샴푸 사용

마음에 쏙 드는 향의 샴푸를 찾았다면, 하나만 명심하세요. "적게 쓸수록 좋다." 샴푸 거품을 많이 낼수록 좋을 거라 믿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머릿결 손상에 가세할 뿐이죠.

팁: 샴푸를 소량 짜서 두피를 중점적으로 마사지하세요. 머리카락 끝은 굳이 샴푸 할 필요가 없습니다. 샴푸를 헹굴 때 함께 씻기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6. 오래오래 마사지

마사지도 지나치면 독이 됩니다. 샴푸 묻힌 두피를 한참 문지르며 거품을 내면 유분기가 완전히 제거돼 두피가 건조해집니다. 이때 반갑지 않은 비듬이 생길 수 있죠.

팁: 양손으로 거품을 충분히 낸 뒤 두피를 마사지하세요. 먼저 유분이 몰린 측면, 뒤통수 밑을 중점적으로 마사지하고 나머지 두피에 거품을 고루 묻힙니다.

7. 수건으로 털어 말리기

샤워 후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기 제거를 위해 수건으로 힘차게 털어 말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머릿결 손상을 피하려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수건과의 마찰로 인해 젖은 머리에 더 큰 손상을 줄 수 있습니다.

팁: 머리 감은 뒤엔 손으로 가볍게 흐르는 물기를 제거하고 수건으로 머리를 살포시 눌러주세요. 어느 정도 물기가 사라지면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10분간 둡니다. 가장 좋은 건 자연 건조지만, 시간이 없을 땐 부득이하게 드라이기를 써야 할 때가 있죠. 드라이기 사용 전 반드시 열 손상 방지 에센스를 발라 머리카락을 보호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_52.html
kolaswqetsrq 11.02 09:20
■ 청빈의 아이콘 최영崔瑩 2편

■ 청빈의 아이콘 최영(崔瑩) 2편

고려 개국 공신 후손인 최영에게 고려는 자신의 정체성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최영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고려를 지키고 싶었고, 주색잡기에 빠져 군왕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심지어 신돈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우왕의 후견인을 자청하였다. 자신의 사위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폭군이라 해도 우왕은 고려의 군주였기 때문이다.

나라의 땅을 넓혀 위대한 고려를 이룩하려던 노장(老將)은 73세룰 일기로 역사에서 사라져 갔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최영은 죽음을 당하기 직전 사람들에게 “내가 평생에 물욕을 가진 적이 있다면 무덤 위에 풀이 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풀 한포기 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과연 그의 무덤에는 한 포기의 풀도 나지 않고 붉은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무덤을 붉은 무덤赤墳이라 하였다. 그 뒤 600여 년 동안 풀이 나지 않던 무덤은 1976년부터 풀이 무성하게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다.

타고난 용맹과 지략을 앞세워 홍건적과 왜구를 토벌한 최영의 기개와 충심은 수많은 고려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고려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높은 관직까지 올랐음에도 자신의 안위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그의 충심은 오랜 세월이 지난 이후에도 뭇 사람들의 큰 귀감이 되었다.

무인으로서는 외적의 침입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지킨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나 정치인으로서는 적잖은 실책을 남긴 최영. 하지만 최영이 행한 실수들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나라의 녹을 먹는 관료로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자신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한 최영의 청빈한 삶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강직하고 청렴했으며, 적과 대치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맹했던 최영. 요동 정벌의 실패로 몰락했으나 오로지 고려를 위해 무장의 도리를 다한 그는 확실히 고려 최후의 명장이었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성향이 최영을 비운의 인물로 남기긴 했지만, 수많은 국가 위기 상황 속에서도 솔선수범 앞장서서 나라를 지킨 최영. 사사로운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오직 나라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던 청렴한 관료. 최영은 평생 재물과 여색을 멀리한 청백리였다. 우리는 지금 최영과 같은 정치인이 그립다.

후일 조선시대 변계량이 최영의 충정을 기리는 시를 지어 후세 사람에게 귀감이 되도록 했다.

위엄을 떨쳐 나라를 구할 때 백발이 성성하구나.

말을 배우는 거리의 아동도 모두 그의 이름을 알고 있고,

한 조각 붉은 마음 영원히 죽지 않아,

그 이름은 천추만세 태산과 같이 길이 남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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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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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21
■ 궁형宮刑과 사마천 2편

■ 궁형(宮刑)과 사마천 2편

분노한 한 무제는 사마천에게 물었다, "태사령, 너는 어찌 한 마디도 하지 않느냐? 너는 이 일을 어떻게 보느냐?" 황제가 묻자, 사마천은 즉시 무릎을 꿇고 직언을 하기 시작했다. “이릉은 다시 얻기 힘든 국사(國士)로 매우 우수한 인재입니다. 설사 이릉이 투항했다 하더라도, 이전의 공로를 감안하여 그를 처벌해서는 안됩니다” 고 하였다. 또 이어, “이릉은 5천 보병을 이끌고 8만 흉노족과 8일 밤낮을 격전을 벌였습니다. 비록 패배하고 투항했지만 그는 한나라의 위상을 높였으니, 공(功)으로 과실(過失)을 상계(相計)해야 합니다. 그가 이번에 투항한 것은 어쩔 수 없이 택한 \거짓투항\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목숨을 남겨두어 그가 적의 내부에서 공을 세워 죄를 갚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고 아뢰었다.

사마천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분노가 극에 달한 한 무제는 즉시 명을 내렸다. “이릉의 배반행위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사마천은 반적(叛賊)의 편을 들고 있으니 즉시 감옥에 집어넣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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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릉을 변호하면서 한 무제를 달래려 했던 사마천은 감옥에 갇혀 목이 잘릴 날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사마천은 ‘무상(誣上)’ 즉 황제를 모함했다‘ 는 죄명으로 사형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고대 형벌에서는 사형을 받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돈을 내서 속죄(贖罪)하거나 스스로 궁형(宮刑)을 받는 것이었다. 돈이 없고 죽기도 싫으면 궁형을 받고 태감(환관)이 되어 영원히 황제를 위해서 복무하면 되는 것이다. 궁형은 죽지는 않지만 고통이 커서, 죽기보다 더 싫은 형벌로 알려져 있다. 또, 남자가 궁형을 당하면 목소리가 여자처럼 바뀌고 수염이 사라지고 겉모습이 노파로 변한다는 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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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감(환관)이 되면 죽음은 면할 수 있지만, 남자로서 치욕스러운 삶을 감내해야만 했다. 돈으로 사형을 면하려면 50만전을 내야 했으니, 사마천은 그렇게 많은 돈을 낼 수가 없었다. 돈도 없고 아버지의 유언대로 영원히 역사에 남는 불후(不朽)의 역사책‘ 을 완성하기 위하여, 사마천은 스스로 치욕스러운 궁형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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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국사도 아니고 사대부도 아니며, 남자도 아닌 새로 태어난 사마천은 사회 최하층의 신분이 되어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를 보고 정치를 보고 역사를 보게 되었다. 궁형을 받기 전에 사마천은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던 사람이었다. 호의호식하는 인물이 하층민의 삶을 알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궁형을 받고 사대부에서 제명되고 태감이 된 사마천은 더 이상 좁은 시각이 아니라 더 넓은 시각으로 역사를 보게 되었다. 그는 편견을 버리고 폭넓은 식견(識見)으로 『사기』를 매우 독특한 기술(記述)방식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천고(千古)의 명저(名著) 『사기』를 세상에 남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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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죽음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궁형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살다가 자연사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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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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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22
■ 노국공주를 닮은? 반야般若 2편

■ 노국공주를 닮은(?) 반야(般若) 2편

조선 세종 때 정인지(鄭麟趾) 등이 편찬한 『고려사(高麗史)』에는 반야는 신돈의 첩이며, 우왕은 공민왕의 소생이 아니라 신돈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야는 신돈의 여자이고, 따라서 우왕도 신돈의 자식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래서 우왕을 왕씨세가편(王氏世家編)에 넣지 않고 열전 반역편(叛逆編)에 싣고 있다. 훗날 이성계가 우왕과 창왕을 폐위하는 명분으로 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운다는 폐가입진(廢假立眞)을 내세우기는 했다.

반면, 이황(李滉), 송시열(宋時烈) 등은 우(禑)는 신돈의 자식이 아니라 공민왕의 실자(實子)라고 주장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우가 만일 신돈의 자식이라면, 신돈이 반역해서 주살당한 후에 공민왕이 자신의 후사로 삼았을 리가 없다. 우왕을 몰아낸 이성계도 만약 우왕이 가짜라면 그의 아들인 창왕을 세우지 말았어야 했는데 창왕까지 세우고 나서 가짜라고 하니 논리상에 허점이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공민왕은 반야가 분명히 우왕의 어머니이고 친아버지는 자신이 맞다는 사실을 이인임에게 이미 알려 놓았다.

공민왕 사후, 후계 왕을 놓고 왕실과 조정 내에서 알력이 생겼다. 공민왕의 어머니인 명덕태후는 경복흥과 더불어 공민왕의 아들 강녕부원군 우(禑)가 아직 어려서(10세) 정무를 처리할 수 없으므로 종친 중에서 한 명을 골라 옹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이인임은 정무는 모후가 섭정을 하는 것이니 염려할 것이 없고 공민왕의 유지(遺旨)대로 강녕부원군을 옹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세력 사이에 팽팽한 설전이 전개되었으나 결국 이인임의 뜻대로 강녕부원군이 왕에 오르니, 고려 32대 우왕이었다.

우왕의 생모인 반야는 아들이 궁중으로 들어가게 되자 벅찬 꿈을 안고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아들이 등극하게 되면 비록 천한 몸이기는 하지만, 자신은 엄연히 왕의 생모인 것이다. 어떠한 호강도 권세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꿈에 부풀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대는 빗나가고 말았다. 우왕이 왕위를 계승 한 후에도 생모(生母)를 궁중으로 맞아들일 기미는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태후는 사람을 시켜 반야가 왕의 생모라는 것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상황이었다.

반야는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반야는 태후전으로 향했다. 그러나 수문장은 반야를 궁중에 들여보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반야는 소리소리 지르며 날뛰었다. 보고를 받은 태후는 반야를 그대로 두었다간 어떤 변고가 일어날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침내 이인옥(李仁沃) 등을 시켜 발악하는 반야를 자루에 넣어 임진강물에 산채로 던져버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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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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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846.html
kolaswqetsrq 11.02 09:23
■ 몽유도원도는 외출 중? 3편

■ 몽유도원도는 외출 중(?) 3편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나자, 안평대군의 별서(別墅)였던 무계정사(武溪精舍)도 즉시 철거되면서 몽유도원도를 포함한 많은 장서를 경기도 고양현의 대자암(大慈庵)으로 황급히 옮기게 되었다. 대자암(大慈菴)은 세종의 동생인 성녕대군 이종이 13세에 요절하자, 아버지 태종이 그 무덤 옆에 1418년 4월 4일 지은 재암(齋菴)인데, 임진왜란 때 불 타 없어져 그 자리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왜구가 서울에 입성한 후, 남별궁에 주둔한 총대장 평수가(平秀家)가 이 절에 보관하던 장서(藏書)와 금불(金佛)까지 약탈하여 전리품으로 일본에 반출하게 되는데,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이때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몽유도원도’는 지금 일본 덴리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931년, 동경 우에노 미술관의 전람회에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출품되었다. 간송(澗松) 전형필 선생은 당시 3만원에 이 그림을 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당시 3만원이면, 서울에 있는 기와집 30채 값이었다고 하는데, 간송은 일단 계약금을 걸어두고 이 그림을 사려고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에 전형필 선생은 상중(喪中) 이어서, 탈상 때까지 술과 고기를 입에 대지 말고 유산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 때문에 전형필(全鎣弼) 선생은 그만 그림을 놓치고 말았다고 한다. 이 일은 간송에게도 매우 아쉬운 상처로 남게 되어 이후 ‘몽유도원도’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고 한다.

1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 잠시 특별전을 열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몰려들어 한 사람당 30초씩 관람이 허락되었다고 한다. 이후 일본에서는 이 작품을 다시는 전시하지 않겠다고 했다하니, 앞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우리의 문화재인데..............안타까운 현실이다.

긴 외출을 마치고 하루속히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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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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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7.html
kolaswqetsrq 11.02 09:24
■ 몽유도원도는 외출 중? 1편

■ 몽유도원도는 외출 중(?)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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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를 대표하는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조선 초기 최고의 명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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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복사꽃 만발한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박팽년 등과 함께 노니는 꿈을 꾼 다음날,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꿈 이야기를 도화서의 화가인 안견에게 들려주자, 안견이 그 내용을 3일 만에 화폭에 그대로 담아낸 것이 그 유명한 ‘몽유도원도’ 이다. 안평대군은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중국 동진(東晋, 317∼419)의 천재 시인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무릉도원’은 복사꽃이 만발한 동양의 유토피아이상향(理想鄕)로 그려져 있다. 이후 문인들은 복숭아꽃을 별천지 속의 꽃으로 두루 읊게 되었고, 무릉도원은 별천지 또는 이상향의 대명사가 되었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보았다는 무릉도원은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과 거의 흡사한 모습이었던 듯하다. 안평대군도 현실에서 벗어나 복숭아꽃 향기 그윽한 이상향의 세계로 훌쩍 떠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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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이란 꿈속에서 도원을 거닐다.라는 뜻이다. ‘몽유도원도’의 발문(跋文)에는 안평대군이 안견에게 들려준 꿈 이야기가 마치 손에 잡힐 듯 구체적으로 적혀 있고, 그림 속에는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보았다고 한 경치가 그대로 실제 풍경처럼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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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 4월 20일 밤에 자리에 누우니, 정신이 아득하여 깊은 잠에 빠지고 꿈도 꾸었다. 박팽년과 더불어 어느 숲에 당도하자 층층의 산봉우리가 솟아 있고 깊은 골짜기가 아름다우며, 복숭아나무 수십 그루가 서 있었다. 오솔길이 숲 밖에 다다르자 여러 갈래로 갈라졌고, 나와 박팽년은 어디로 갈지 몰라 서성대었다. 그러다 한 노인을 만났는데,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휘어져 골짜기에 들어가면 도원이외다." 라고 일러주었다. 박팽년과 함께 말을 타고 찾아가니, 벼랑이 울뚝불뚝하고 나무숲이 빽빽하며, 골짜기는 돌고 돌아 휘어져 사람을 홀리게 하였다. 그 골짜기를 돌아가니 넓게 트인 마을이 나타났는데 사방의 벽이 바람벽처럼 치솟고,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였으며, 복사꽃 만발한 복숭아나무 숲이 비치어 마치 붉으스름한 노을 같았다. 소나 말은 없고 앞 시내에 오직 조각배 한 척만이 물결을 따라 오락가락하니 마치 신선의 마을과 같았다. (하략)』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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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25
■ 꽃미남에 엄친아, 문종 3편

■ 꽃미남에 엄친아, 문종 3편

문종은 세자시절 세 명의 세자빈을 모두 잃고, 승하할 때까지 홀아비 임금으로 삶을 살았다. 문종은 처복이 지지리도 없었던 것이다.

첫 번째 세자빈의 경우는 못생겼다 해서 문종이 마음을 주지 않았다. 이에 세자빈이 문종의 마음을 얻기 위해 궁녀 신발을 태워 문종에게 먹이는 등의 이상한 행동을 하다가 세자빈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두 번째 세자빈은 인물은 괜찮았지만 문종과 성격이 맞지 않아 사이가 좋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두 번째 세자빈은 궁궐 야사에 초유(初有)의 이름을 올리고 만다. 궁녀와 동성애로 쫓겨난 순빈 봉씨이다.

여기까지는 문종보다 세종의 책임이 크다. 문종의 의지가 아닌 세종의 의지로 세자빈을 뽑았기 때문에 인물은 별로 개의치 않고 뽑은 거 같다. 그래서 세 번째 세자빈은 문종이 총애한 후궁 중에 선택했으나 단종을 낳은 직후에 사망하고 만다. 이처럼 문종은 세 명의 부인과 비극적으로 헤어졌고, 그 이후로는 새 왕비를 얻지 않고 혼자 살았다.

문종은 왕으로 즉위한 후로도 왕비를 새로 뽑지 않았다. 조선에서 재위할 동안 한 번도 왕비를 두지 않은 유일한 왕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종이 즉위한 후 그를 보호하며 수렴청정을 할 왕실의 웃어른이 없어서 왕권이 약화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문종의 부부관계만큼은 9명의 부인에게서 18남 4녀를 둔 또 다른 성(?)군인 아버지 세종을 닮지 못한 듯하다.

단종의 비극을 낳게 된 또 하나의 결정적 원인은, 아우들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들의 정치참여를 막지 않아서 그들의 세력을 키워주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자신의 아우인 수양대군이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문종이 오래 살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세자 시절 오랫동안 대리청정을 하면서 국정에 몰두한 것이 문종의 건강을 해치고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승하하게 되면서 또 한명의 성군(成君) 탄생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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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26
■ 꽃미남에 엄친아, 문종 1편

■ 꽃미남에 엄친아, 문종 1편

세종의 큰아들이자 단종의 아버지, 조선의 5대 왕인 문종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 문종의 재위기간은 2년여 정도로, 그 기간에 후세에 주목받을 만한 역사적인 큰 사건도 없었고 세종 대의 태평성대가 이어지고 있었다. 너무 병약해서 일찍 죽어버리는 바람에 바로 아래 동생인 수양대군의 쿠데타에 의해 비극적 죽음을 당한 나이 어린 단종의 아버지 정도로만 기억한다.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 문종의 이미지는 체구가 작고 말라 병약한 모습이었다. 또 유약한 심성을 가져 아래 동생 수양대군에게 항상 두려움을 느끼며, 수양 앞에서 기분을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주눅 든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실록에 나온 문종의 기록은 이런 문종의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병약한 왕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양대군이 문종의 세자 시절부터 문종의 눈에 들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쓴다. 아마도 세조(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정당화시키고 그 치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문종을 병약한 이미지로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오랫동안 그런 이미지가 남아있다.

문종은 체구가 건장하고 키도 훤칠한, 지금으로 보면 엄청난 꽃미남에 엄친아였던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세자 시절부터 수염이 길고 멋드러졌고, 관우를 닮은 외모 빨로 중국 사신들에게도 큰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또, 외모 뿐 아니라 생각도 깊고 아는 것도 많았지만 겸손하기까지 해서 중국에서 사신들이 오면 젊은 세자와 토론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이런 조선의 젊은 세자에 대한 소문이 중국까지 퍼져 나가서 중국과의 외교와 무역이 활발해지는 등 세자 덕을 톡톡히 본 것으로 실록에 적혀있다.

문종은 조선의 왕 중 몇 안 되는, 적장자로 왕위계승을 한 왕이었다. 최고 성군인 세종조차도 적장자로 태어나지는 못했다. 문종의 외아들인 단종이 어린나이로 왕위에 올라서 문종이 아주 젊은 나이에 단명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문종이 승하할 때의 나이는 39세로 당시 나이로는 적지 않는 나이였다. 조선 왕들의 평균 사망나이로 봐서 문종은 평균 정도이다.

- 2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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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27
천지망아天之亡我 - 하늘이 나를 망하게 했다,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

천지망아(天之亡我) - 하늘이 나를 망하게 했다,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

하늘 천(大/1) 갈 지(丿/3) 망할 망(亠/1) 나 아(戈/3)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만약 현인들에게 과오가 없었다면 어리석은 자들은 온통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현명한 자들도 잘못할 수 있다. 다만 일이 잘못 되었을 때 ‘잘 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며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孔子(공자)님 말씀도 있다. ‘군자는 허물을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허물을 남에게서 구한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 산을 뽑는 장수였지만 군자는 되지 못한 項羽(항우)는 자신이 전투에 진다는 것이 결코 믿어지지 않았다.

처음 중국을 통일한 秦始皇(진시황)의 혹정으로 각지에서 제후들을 중심으로 한 반란이 일어났다. 출신도 명문인데다 용맹스럽기가 천하제일인 항우는 농민의 아들로 불량배와 어울려 다니는 劉邦(유방)과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이들이 5년 가까이 펼치는 楚漢(초한)전쟁은 항우가 연전연승했다. 하지만 자신감이 넘친 항우가 주변의 조언을 무시하다가 垓下(해하)의 전투에서 참패하고 밤을 틈타 겨우 포위망을 뚫었다. 800여 기병으로 도주하던 항우는 늪에 빠져 烏江(오강)에 이르렀을 때는 26명만이 남았다. 최후를 직감한 항우는 이렇게 망하는 것이 하늘 탓이라 했다.

항우는 칠십여 차례의 전투에서 모두 이겨 마침내 천하를 소유했다면서 부르짖는다. ‘지금 이렇게 곤경에 처한 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지, 결코 내가 잘못 싸운 것이 아니다(然今卒困於此 此天之亡我 非戰之罪也/ 연금졸곤어차 차천지망아 비전지죄야).’

항우는 남은 부하들에게 자기가 잘못 싸운 죄가 아닌 것을 보여준다면서 마지막으로 분전하다 중과부적으로 31세의 목숨을 다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최후의 결전은 영웅다웠다. ‘史記(사기)’ 항우본기에 실린 내용이다.

보통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내 탓이오’ 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드문데 특히 남에게만 돌리는 집단이 있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 선량이란 사람들이 그들이다.

말로써 하는 공방이 주업이긴 하지만 상대의 잘못은 針小棒大(침소봉대)하고 자신의 잘못은 아예 없다. 조금이라도 인정하면 바로 패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국정은 한정 없이 표류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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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28
녹사수수鹿死誰手 - 사슴은 누구의 손에 죽는가, 세력이 비슷하여 승부를 가리지 못함

녹사수수(鹿死誰手) - 사슴은 누구의 손에 죽는가, 세력이 비슷하여 승부를 가리지 못함

사슴 록(鹿/0) 죽을 사(歹/2) 누구 수(言/8) 손 수(手/0)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 사슴이 어찌 왕권이나 패권을 상징하게 됐을까. 나뭇가지 모양의 뿔이 대지를 상징하고, 재생되므로 영생을 나타냈는지 모를 일이지만 사슴을 쫓는다는 逐鹿(축록)은 史記(사기)에서 비롯됐다. 중국 첫 통일국가 秦(진)이 망한 후 약체였던 漢高祖(한고조)가 최후의 승리를 이룰 때 측근의 도움이 컸다.

兎死狗烹(토사구팽)된 명장 韓信(한신)의 모사 蒯通(괴통, 蒯는 기름새 괴)은 잡혀 와서도 劉邦(유방) 앞에서 당당했다. 진나라가 사슴을 잃어 천하 호걸들이 모두 쫓았는데(秦失其鹿 天下共逐/ 진실기록 천하공축) 유방을 몰랐기 때문에 한신을 도운 것이 죄가 되느냐고 항변한 것이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고대 周(주)나라의 근거지 중심부를 노린다는 中原逐鹿(중원축록)이 됐고, 뿔을 맞대고 싸우는 角逐(각축)이 치열한 경쟁을 나타내게 됐다. 이것과 약간 달리 사슴이 죽는 것은(鹿死) 누구의 손에 의해서인가(誰手)라는 말은 팽팽하게 실력을 다투는 양측의 승부가 어떻게 날지 알 수 없을 때 사용하는 성어다.

晉(진)나라 이후 4세기 초엽에서 100년이 넘도록 중원지역은 북방 민족 五胡(오호)와 한족이 세운 나라가 흥망을 되풀이한 五胡十六國(오호십륙국)의 혼란 시기였다. 이 중에서 匈奴(흉노)계 羯族(갈족)의 石勒(석륵)이 일으킨 後趙(후조)가 강성했는데 사슴이 누구 손에 죽는가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이기도 하다.

唐太宗(당태종)때 房玄齡(방현령) 등이 편찬한 ‘晉書(진서)’에 내력이 실려 있다. 어느 때 석륵이 주연에서 술기운을 빌려 자신이 역대 어느 왕과 비견될 수 있을지 물었다. 徐光(서광)이란 신하가 폐하의 용기와 지략은 한고조를 능가한다고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았다. 석륵은 유방을 만났다면 그를 섬겼을 것이라며 손을 내젓고 말을 잇는다.

‘짐이 광무를 만난다면 중원에서 한바탕 겨루었을 터이나(朕遇光武 當並驅于中原/ 짐우광무 당병구우중원), 누구 손에 사슴이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을 것이오(未知鹿死誰手/ 미지녹사수수).’ 석륵은 자신이 유방에겐 비할 수 없어도 後漢(후한)을 세운 光武帝(광무제)와는 겨룰 수 있다고 큰소리친 것이다. 이 때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석륵은 반란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큰 뜻을 품었다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면 결과는 보잘 것 없어진다. 선거 때마다 입후보자들은 그 높은 자리에 자신이 적합하다고 자신만만이지만 끝나고 나면 사라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먼저 실력을 닦고 나서 도전해야 사슴의 뿔을 잡을 수 있다.

사슴을 쫓는 말 중 잘 알려진 다른 말도 보자. 사슴을 잡으려면 작은 일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逐鹿者不顧兎(축록자불고토)라 했다. 반대로 사슴은 작은 일이 되어 쫓을 때 산을 보지 못한다는 逐鹿者不見山(축록자불견산)도 있다. 이익에 눈이 어두운 사람을 말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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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29
감어지수鑑於止水 - 흔들림 없는 물에 비춰 거울로 삼다.

감어지수(鑑於止水) - 흔들림 없는 물에 비춰 거울로 삼다.

거울 감(金/14) 어조사 어(方/4) 물 수(水/0)

거울은 사람이나 물체의 겉모습을 비춘다. 흘러가는 물에서는 비춰볼 수 없고 고요히 있어야 자신을 볼 수 있다. 미소년 나르키소스(Narcissos)도 표면이 잔잔한 호수 위로 자기 모습이 드러나자 반했다. 흘러가지 않으니 멈춰있는 물 止水(지수)가 곧 거울이라 맑은 거울 明鏡(명경)과 합쳐지면 잡념과 가식이 없는 마음을 비출 수 있다고 봤다.

같은 거울이라도 쇠붙이로 만든 鑑(감) 또는 鑒(감)은 속까지 비추는 본받을만한 모범이다. 龜鑑(귀감), 寶鑑(보감) 등이 그것이다. 고요히 멈춰있는 물로 자신을 비춰 내면을 돌아보며 본보기로 삼는다는 것은 평온한 마음을 가지면 사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고요히 멈춰있는 물이 들어간 성어 明鏡(명경)과 鑑於(감어) 모두 ‘莊子(장자)’의 內篇(내편) 德充符(덕충부)에 실려 있다. 道(도)가 만물의 근본이라는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의 莊周(장주)는 타고난 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가득차면 저절로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 정지해 있는 물이 고요하듯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현인들은 모두 형벌을 받아 장애인이 된 사람들인데 육체는 온전하지 못해도 덕이 넘쳐 가만히 있어도 제자들이 가르침을 구하려 몰려들었다. 刖刑(월형, 刖은 발꿈치벨 월)을 당해 발이 잘린 魯(노)나라의 王駘(왕태, 駘는 둔마 태) 이야기를 보자.

불구의 몸이 된 왕태는 덕망이 널리 퍼져 그를 배우려는 사람이 孔子(공자)의 제자와 비슷할 정도였다. 당시 현자, 또는 제자라고도 하는 常季(상계)가 공자에게 말없는 가르침이란 것이 있는지 물었다. 공자는 왕태가 성인이라며 사람들이 존경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사람들은 흐르는 물에 제 얼굴을 비춰보지 못하고, 멈춰있는 물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인막감어류수 이감어지수). 오직 멈춰있는 물만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다(唯止能止衆止/ 유지능지중지).’ 고요히 정지되어 있는 물만이 비춰볼 수 있듯 왕태도 가만히 있으면서 사람을 끄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는 설명이다.

다른 장애인 申徒嘉(신도가)는 동문수학한 子産(자산)이 재상이 된 뒤 자신을 업신여기자 거울이 밝으면 티끌이 앉지 않고 어진 사람과 오래 있으면 허물이 없어진다고 충고한 것이 明鏡止水(명경지수)다. 세상에는 대부분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남에게는 조그만 흠이라도 들쑤셔 침소봉대한다.

아귀다툼에 조용한 날이 없다. 항상 자신의 하는 일에 一日三省(일일삼성)하는 성인은 되기 어려우니 최소한 남에게 폐가 되는 짓은 하지 않도록 수시로 돌아봐야겠다. 李箱(이상)의 시구처럼 거울 속만큼 조용한 세상은 참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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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29
난자이사難者二事 -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 두 가지

난자이사(難者二事) -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 두 가지

어려울 난(隹/11) 놈 자(耂/5) 두 이(二/0) 일 사(亅/7)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일까. 사람마다 삶이 다르니 어려움을 느끼는 것도 각각 다를 터이지만 공감이 가는 것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아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하고, 또 프랑스의 작가 생텍쥐페리(Saint-Exupéry)의 ‘어린 왕자’에 나온다고 하는 유명한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모두 어려운 일임은 분명한데 모두에 꼭 들어맞는 것일 수는 없다. 사람이 하기 어려운(難者) 두 가지 일(二事)이라 하면 조선 후기의 문신 柳觀鉉(유관현, 1692~1764)을 떠올리게 된다.

한문학자 정민 교수의 일간지 연재물을 모아 출간한 ‘惜福(석복)’에 실리고서 이 내용이 널리 알려졌다. 유관현은 思悼世子(사도세자)를 侍講院(시강원)에서 교육하는 弼善(필선)을 역임하고, 목민관으로 있을 때는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며 세금을 감면해 선정을 베푸는 등 치적이 많았다.

유관현이 세상을 뜨자 효행이 지극하고 문장이 뛰어난 후학 金樂行(김낙행)이 업적을 기려 제문을 지어 보냈다. 그의 호를 딴 문집 ‘九思堂集(구사당집)’에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 두 가지를 들며 유관현이라 능히 할 수 있었다고 예찬한다. 중간에 나오는 성어의 그 부분은 이렇다.

‘가만히 논하려니, 어려운 것 두 가지(又竊論之 難者二事/ 우절론지 난자이사)’라 하면서 첫 번째를 꼽는다. ‘먼저 가난하다가 뒤에 부자 되면 의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드물다(先貧後富 人鮮好義/ 선빈후부 인선호의)’며 어릴 때 가난하게 컸어도 벼슬에 있을 때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어려운 백성을 구휼했다고 칭송했다.

두 번째는 ‘궁한 선비 뜻 얻으면 평소 모습 지키는 이 드물다(窮士得意 鮮守平素/ 궁사득의 선수평소)’고 들고, 벼슬길에 나가서도 농가에 그대로 살았고 뽕과 삼을 말할 때는 농부 못잖았다며 풍치가 초연하여 경박한 이들이 경계로 삼을 만하다고 했다.

재산이 늘어나거나 지위가 높아졌을 때 지난날의 미천하거나 어렵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처음부터 잘난 듯이 뽐내는 사람이 많아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비아냥거림을 당한다. 이것 말고 인터넷에서 어려운 일이라며 떠도는 유머가 있다.

첫 번째가 내 생각을 남의 머리에 넣는 일, 그리고 남의 돈을 내 호주머니에 넣는 일이라며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집사람이란다. 남을 설득하고 제 생각을 알리는 일과 돈을 버는 일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인데 중년 이상의 남성들에겐 공감할 듯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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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30
걸화걸항乞和乞降 - 강화하기를 빌고 항복하기를 빌다.

걸화걸항(乞和乞降) - 강화하기를 빌고 항복하기를 빌다.

빌 걸(乙/2) 화할 화(口/5) 빌 걸(乙/2) 내릴 강, 항복할 항(阝/6)

적국이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국경을 침범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고 하자. 지도자는 막을 힘도 없으면서 玉碎(옥쇄)를 각오하고 대적해야 할까,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무릎을 꿇는 것이 옳을까. 1636년 丙子胡亂(병자호란) 때의 결과가 좋은 예다.

오랑캐에 항복할 수 없다며 죽어도 싸워야 한다는 斥和派(척화파)와 싸움을 멈추고 적과 협상하여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主和派(주화파)가 팽팽했다. 明(명)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해 淸(청)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나라는 유린되고 백성들은 죽어나가 결국 仁祖(인조)는 三田渡(삼전도)의 굴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이 옳다고 각자 의견이 갈릴 수 있는데 조선 후기의 실학자 李瀷(이익, 瀷은 강이름 익)이 대표적인 저술 ‘星湖僿說(성호사설, 僿은 잘게부술 사)’에 이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人事門(인사문) 편에 강화하기를 빌고(乞和) 항복하기를 빈다(乞降)는 제목의 글이다.

화친을 구걸하고 항복을 구걸한다는 뜻의 나약함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실은 倭亂(왜란)과 胡亂(호란)을 겪어 백성들만 魚肉(어육)이 된 것에 대한 냉엄한 반성이었다. 시작하면서 예를 먼저 든다. 唐(당)나라 시인 曹松(조송)의 명구와 孟子(맹자) 離婁(이루) 상편에 나오는 부분이다.

‘한 장수가 공을 이루자면 만 사람의 뼈가 마른다(一將功成萬骨枯/ 일장공성만골고)’고 한 것과 ‘땅과 성을 뺏기 위해 사람을 죽여 성에 가득하면 이는 큰 죄다(争地争城 殺人盈城 是爲大罪/ 쟁지쟁성 살인영성 시위대죄)’라 한 것은 모두 위정자의 뜻을 이루는데 어떤 희생이 따르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집에 있는 귀중한 보물을 도적이 빼앗으려 할 때 맞서 싸우면 자식이 죽고, 내주면 안전할 때 순순히 내주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 했다. 힘도 없으면서 맞서 싸우다 생명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 되니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석 정도는 목숨과 관계없으니 달라는 대로 주는 것이 옳은가. 처음부터 감히 도적이 달려들지 못하도록 힘을 기르는 것이 제일이고 그렇지 못해 뺏겼다면 수모는 갚아야 한다. 당장 세력이 부족하여 절체절명이 됐을 때 화친을 빌어서 될 수 있다면 화친하고, 항복을 빌어서 될 수 있다면 항복하여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문제는 자신의 능력을 닦지도 않고 상대를 얕잡아 보며 대비를 하지 않을 때 죽어나는 것은 따르는 부하들이라는 점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는 항상 눈을 부릅떠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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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31
피갈회옥被褐懷玉 - 굵은 베옷 속에 구슬을 품다, 겉은 보잘 것 없어도 속이 알차다.

피갈회옥(被褐懷玉) - 굵은 베옷 속에 구슬을 품다, 겉은 보잘 것 없어도 속이 알차다.

입을 피(衤/5) 갈색 갈(衤/9) 품을 회(忄/16) 구슬 옥(玉/0)

속에 든 것은 보잘 것 없어도 잘 꾸미면 돋보인다. ‘의복이 날개’라 옷을 잘 입으면 한 인물 더 잘나 보인다. 하지만 추잡함을 감추려고 의도적으로 겉포장에 힘쓴다면 언젠가는 들통 난다. 내면은 형편없는데 겉모양만 금옥처럼 꾸민 金玉敗絮(금옥패서)가 되고 더 낮춰 錦褓裏犬矢(금보리견시), ‘비단보에 개똥’이라 욕만 먹는다.

양고기 간판에 개고기를 팔면 羊頭狗肉(양두구육)의 사기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검은 가마솥의 속에는 하얀 밥이 소복하여 군침을 돋운다. 온갖 지혜로 가득한 현인이 겉보기에는 어리숙하게 보이는 것이 그것이다.

겉에는 굵은 베옷(被褐)을 입고 있으나 속에는 구슬을 품고 있다(懷玉)는 성어가 이것을 말한다. 꽉 찬 속을 일부러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주위서 알게 된다는 無爲自然(무위자연)의 老子(노자)가 한 말이다. 道(도)는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니 인위적인 것을 배격한다.

갈색의 거친 베옷을 입은 남자 褐夫(갈부)는 너절한 옷의 천한 남자다. 그런 사람의 품속에 소중한 보배 玉(옥)이 들어 있으니 겉보기만으로 대할 수 없다. 노자가 관문을 지날 때 그곳을 지키던 尹喜(윤희)가 부탁하여 남겼다는 ‘道德經(도덕경)’의 70장 知難章(지난장)에 나온다.

노자의 말은 ‘알기도 매우 쉽고 행하기도 쉬운데(甚易知 甚易行/ 심이지 심이행)’ 세상 사람들은 깊이 알려고 하지 않고 겉핥기로 다만 도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것은 성인이 남루한 굵은 베옷을 입고, 가슴에는 보옥을 품은 것(是以聖人 被褐懷玉/ 시이성인 피갈회옥)’처럼 품에 가득 도덕을 안고 있는 사람을 겉보기에 어리석다고 하여 알아보려 하지 않는 것을 탄식한다.

그렇더라도 드러날 때가 있으니 다음 장에서 말한다. ‘알면서도 모른다는 것이 가장 좋고, 모르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知不知上 不知知病/ 지부지상 부지지병)’이란 가르침이다.

속이 찬 사람은 겸손하다. 학문과 지식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실력이 있어도 속이 텅 빈 사람처럼 겸허했던 顔回(안회)를 가리켜 ‘꽉 차 있어도 텅 빈 것처럼 보인다(有若無 實若虛/ 유약무 실약허)’고 曾子(증자)가 표현한 말과 통한다.

자기를 내세워야 남이 알아준다며 큰 지혜도 없이 화려한 겉모습을 꾸미고 떵떵거리는 자리만 찾는 사람이 많은 요즘 시대에 노자의 탄식과 顔子(안자)의 자세가 더욱 절실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797.html
kolaswqetsrq 11.02 09:32
일수사견一水四見 - 한 가지 물을 네 가지로 보다, 사물을 모두 똑 같이 인식할 수 없다.

일수사견(一水四見) - 한 가지 물을 네 가지로 보다, 사물을 모두 똑 같이 인식할 수 없다.

한 일(一/0) 물 수(水/0) 넉 사(口/2) 볼 견(見/0)

한 가지 사안을 두고 생각하는 것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구체적인 물건을 보고도 받아들이는 것이 다른 경우가 많다. 아는 만큼 보이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여긴다는 좋은 비유에 群盲撫象(군맹무상)을 든다.

큰 코끼리를 두고 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들마다 뱀으로, 무로, 평상 등으로 자기가 만진 것을 진짜로 여긴다. 잘 보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주관이나 선입견에 얽매여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한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불교에 같은 사물을 보는 주체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좋은 가르침이 있다. 한 가지의 물(一水)을 가지고 네 가지로 본다(四見)는 성어가 그것이다.

같은 물인데 그 물이 환경에 따라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니 한 가지만 절대적으로 옳다고 고집하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一境四見(일경사견), 一境四面(일경사면), 一境四心(일경사심) 등도 비슷한 말이다.

중국 唐(당)나라의 고승으로 大唐西域記(대당서역기)를 남겨 잘 알려진 玄奘(현장)법사는 法相宗(법상종)의 주요 성전 ‘唯識學(유식학)’도 번역했는데 성어는 여기에 나온다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 각자의 능력인 根機(근기)에 따라 진리를 얻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고 해도 같은 물을 보는 주체에 따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용을 보자.

‘천상의 사람이 보면 보배로운 못으로 보이고(天見是寶嚴池/ 천견시보엄지), 인간이 보면 마시는 물로 보이나(人見是水/ 인견시수), 물고기가 보면 사는 집으로 보이고(魚見是住處/ 어견시주처), 아귀가 보면 피고름으로 보인다(餓鬼見是膿血/ 아귀견시농혈)’고 한 것이다. 이처럼 각기 달리 보이니 인용한 경전에 따라 조금씩 차이난다.

하늘이 볼 때 琉璃(유리), 귀신이 볼 때는 불을 생각한다(鬼見水思火/ 귀견수사화)는 것 등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한 가지 물도 네 가지로 보인다는 것은 한 가지로 분명히 할 수 있는 경지는 있지 않다(一水四見 明境非有/ 일수사견 명경비유)’는 것으로 보기도 한단다.

일체의 모든 것은 각자가 인식하는 마음의 나타남이라는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를 연상하게도 한다. 모든 사물을 모두에게 똑 같이 생각하고 느끼도록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재미있는 말이 또 있다.

佛眼豚目(불안돈목)은 부처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자애롭고, 돼지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추하다는 뜻이다. 자기 위주로 색안경을 끼고 본다면 나 아닌 전부가 잘못이고 불만이다. 모여 살아가는 사회에서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다르니 최대한 공통되는 생각을 도출하고 결과를 인정해야 발전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255.html
kolaswqetsrq 11.02 09:33
○ 쇠퇴하는 기억력 다시 살리는 법

○ 쇠퇴하는 기억력 다시 살리는 법

 "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차츰 기억력이 나빠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기억력이 위축되는 과정을 많이 알아내는 만큼 그 과정을 늦추고 회복시키는 비결도 더 많이 찾아내고 있다.라이브사이언스가 흐릿해진 기억력을 살릴 수 있는 비결 4가지를 소개했다.
",

1. 유산소 운동을 하라.

- 운동은 근육 양만 키우는 것이 아니다.

- 사고력도 개선시킨다.

- 해마라고 불리는 뇌의 기억력 중추는 나이가 들면서 위축된다.

-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정기적으로 걷는 노인들은 실제로 해마가 커졌다.

- 과학자들은 이 같은 현상의 이유로 운동이 뇌에서 성장 요소를 생산하도록 부추기는 부드러운 스트레스를 촉발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 운동을 하면 뇌로 혈액이 다량 흘러들어 가므로 영양분과 산소가 더 많이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 어느 쪽이든 기억력에 관한 한,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2. 기억력에 좋은 음식을 먹어라.

- 과학자들은 70세가 되어도 활기찬 사람과 40세인데도 초췌한 사람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좋은 식사가 결정적이라고 말한다.

- 나이가 들어도 기억력을 유지하려면 블루베리, 사과, 바나나, 녹색 잎채소, 마늘, 당근 등 항산화제가 많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 항산화제는 혈액에 떠다니는 유해산소와 쉽게 결합하여 중화시킨다.

- 유해산소는 나이가 들면서 몸에 축적되는데, 사람이 먼저 없애지 않으면 뇌세포를 파괴하게 된다.

- 뇌에는 가장 중요한 오메가-3 지방산을 포함해 건강한 지방이 쌓여있다.

- 오메가-3 지방산은 생선과 견과류에 많이 있다.

3. 두뇌 게임을 하라.

- 뇌의 건강을 유지하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

- 생각을 열심히 하면 정말로 기억력과 인지 능력이 좋아진다.

- 두뇌 훈련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 뇌 기능 향상 프로그램들은 집중력, 기억력, 기민함, 기분 등을 개선시켜 준다.

- 물론 낱말풀이나 수도쿠 같은 전통적인 게임도 있다.

4. 잠을 충분히 자라.

- 불을 꺼도 뇌는 꺼지지 않는다.

- 잠을 자면서 뇌는 낮 동안의 기억을 되풀이하고, 장기간 저장을 위해 정리를 한다.

- 쥐 실험에서 자는 동안 뇌의 두 영역,즉 해마와 내측 전두피질에서 그날 일어난 사건들을 빠르게 되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 그 과정에서 새로 형성된 기억들을 정리하고 깔끔하게 축적하는 것이다.

- 따라서 밤에 잠을 자지 않으면, 새로운 기억 자료들은 뒤섞이거나 사라져버려 나중에 되살릴 수 없게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688.html
kolaswqetsrq 11.02 09:34
○ 고지혈증을 없애주는 특효 음식 7가지

○ 고지혈증을 없애주는 특효 음식 7가지

✅ 고지혈증이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지방 성분이 혈액 내에 끼면서 혈관 벽에 쌓여 염증을 일으키고 그 결과 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키는 상태를 말합니다. 혈액검사에서 총콜레스테롤이 240mg/dL 이상이거나 중성지방이 200mg/dL 이상이면 고지혈증으로 진단합니다. 고지혈증으로 인해 혈관 내에 지방침전물이 쌓이면 혈관이 막히고 혈관 벽에 염증이 생기거나 두꺼워져서 동맥경화, 협심증, 심근경색 등의 심장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무서운 질환이며 대부분 증상이 없어서 "침묵의 질병"이라 합니다.

1. 고구마

고구마에는 칼륨이 많이 함유되어있어 혈액속의 나트륨이 배출을 도와 혈관건강을 지켜줍니다. 또 섬유질과 비타민 등 여러 영양소가 풍부합니다.

2. 양파

양파에 들어있는 스테로이드 프로필기이류 화합물의 유지휘발액체는 혈액 안의 지질을 낮추고 동맥경화를 막으며 심근경색을 미리 막고 혈압을 낮춰줍니다.

3. 완두콩

비타민C가 풍부하게 들어있어 몸속에 쌓이는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줍니다.

4. 대추

대추에 함유된 사이클릭 AMP성분은 뇌혈관을 확장해주고 혈액순환을 원활히 해주며 근육과 신경기능을 개선시켜주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5. 등 푸른 생선

고등어, 참치, 정어리, 연어, 청어 등의 등 푸른 생선에 많이 함유된 오메가3지방산은 혈액 속의 중성지방과 혈압을 낮추는데 효과적입니다.

6. 가지

고지혈증의 원인인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며, 모세혈관을 강화해주어 고지혈증 치료에 좋습니다.

7. 표고버섯

표고버섯에는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을 저하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표고버섯의 렌티나신 성분은 피가 굳어 엉키는 혈전현상에 대항하는 형혈전 작용이 탁월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_98.html
kolaswqetsrq 11.02 09:35
아스피린의 놀라운 활용법 10가지

아스피린의 놀라운 활용법 10가지

가정용 상비약으로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아스피린\입니다. 아스피린은 진통제, 해열제로 사용하고 혈중 농도를 낮추어 심혈관질환이나 심장마비 예방약으로도 사용이 됩니다. 그런데, 통증 완화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아스피린의 놀라운 생활 속 활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오늘의 포스팅은 "두통에 좋은 아스피린의 놀라운 활용법 10가지"를 소개합니다.

1. 여드름 제거

아스피린에 함유된 살리실산은 항염증으로 여드름에 도움이 됩니다. 2~3개의 아스피린을 갈아서 레몬 주스에 섞습니다. 이 혼합물을 여드름에 바르고 바로 씻지 말고 몇 분 동안 두세요. 햇볕에 노출하기 전에 페이스트를 사용하지 마세요.

2. 벌레 물린 상처 치유

아스피린의 염증 제거 특성은 벌레 물려 가려운 곳에 효과적인데요. 물 한 스푼에 아스피린을 녹이고 용해된 것을 발라주면 가려움과 부기가 진정됩니다. 또 상처가 더 빨리 아물게 도와줍니다.

3. 피부 반점 감소

아스피린은 피부에 좋은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고 항염증제로 염증과 부기를 가라앉혀줍니다. 아스피린은 본인 피부의 염증과 뾰루지에 좋습니다. 사용법은 요구르트 3큰술, 꿀 1 큰술과 7개의 아스피린 약을 섞습니다. 잘 섞은 이것을 깨끗한 얼굴에 바르고 15분 동안 마스크를 합니다.

4. 비듬제거

살리실산 성분은 건조하거나 각질이 일어나는 두피의 수분 균형을 맟추는 데 도움을 줍니다. 아스피린 2알을 으깨어 가루로 만듭니다. 이것을 삼푸와 섞어 두피에 마사지하듯이 머리를 감고 3~5분 후 물로 헹궈주면 됩니다.

5. 각질 제거제

아스피린은 얼굴의 죽은 세포를 제거 할 수있는 훌륭한 각질 제거제입니다. 또한, 과도한 유분을 제거하고 모공의 크기를 줄이는 일을 돕습니다. 사용법은 물을 혼합후 몇 분 동안 둡니다. 자기 피부가 민감한 경우 피부 자극을 피하기 위해 신중하게 적용합니다.

6. 발에 굳은 살 제거

아스피린은 발바닥을 부드럽게하고 손쉽게 죽은 피부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7개의 아스피린을 갈은 후에 레몬주스 반 스푼을 추가하고 따뜻한 물을 섞어 반죽 형태로 만듭니다. 굳은살이 있는 발바닥에 혼합물을 바르고 따뜻한 천으로 감싸줍니다. 10~15분 정도 찜질을 해주면 굳은 살 제거에 효과적입니다.

7. 손상된 머리결 회복

당신의 머리카락에 아스피린 사용이 도움이 됩니다. 건강하고 빛나는 머리결을 위해서 따뜻한 물 한 컵에 아스피린을 용해하고 머리를 감을때 이 물을 사용하세요. 약 15분 동안 그대로 두고 이후에 씻어주시기 바랍니다.

8. 옷의 땀, 얼룩 제거

아스피린은 당신의 옷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해 줄 것입니다. 아스피린의 살리실산 성분은 셔츠나 옷에 생긴 땀 자국을 제거하는데 좋은데요. 이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아스피린을 물에 녹여서 그 물로 세탁을 하거나 아스피린 반죽을 만들어서 부분세탁제처럼 얼룩진 부분을 문질러 주세요.

9. 욕조에 비누 찌꺼기를 제거

비누 찌꺼기가 욕조의 깨끗함을 없애버리지 않으려면 5개의 아스피린을 분쇄한 후 목욕 세정액에 추가합니다. 욕조 전체적으로 뿌리고 30분 동안 그대로 두었다가 천으로 손쉽게 찌든 때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조금도 강력한 제거를 원한다면 아스피린을 으깨어 물과 섞어서 반죽 형태로 만들어서 문질러 주면 더 좋습니다.

10. 꽃의 수명 연장

선물 받거나 구입한 꽃을 꽃병에 오랫동안 지속하려면 물에 아스피린을 분쇄하여 추가하세요. 이 방법은 마지막까지 꽃들이 생기 있게 됩니다. 시들시들한 꽃이 아니게 꽃의 수명을 연장하고 싶을 때 살리실산 성분이 함유된 아스피린을 사용해주세요. 특히 장미에 잘 작용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62.html
kolaswqetsrq 11.02 09:36
익힌 마늘을 먹자

익힌 마늘을 먹자

마늘이 몸에 좋은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반찬으로 요리를 할때나 고기를 구워 먹을 때 등 우리 일상생활에서 마늘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늘은 100가지의 이로움을 준다하여 "일해백리" 식품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특히 마늘을 익혀서 섭취하게 될 경우 생마늘 보다 항암효과가 2배나 높아진다고 합니다. 마늘을 익혀 먹으면 나타나는 11가지 놀라운 효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해독작용

마늘에 들어있는 시스테인과 강력한 해독작용을 하기 때문에 간 기능을 강화시키며 알리인, 리신 치오에텔 멜가프탄 유화수소 성분 등은 체내 쌓인 중금속을 배출시키는 효능이 있습니다.

2 체력증강 및 피로회복

마늘에 들어있는 게르마늄 성분은 비타민 B1과 결합시 비타민 B1의 흡수율을 무제한으로 높이고 체내에 저장 하기 때문에 몸이 피로하거나 체력이 많이 떨어질 때 복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3 강력한 항균작용 및 살균

마늘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알리신 성분은 살균 및 항균작용이 매우 뛰어나 페니실린이나 테라이신 보다 살균력이 강합니다.

4 당뇨 개선

마늘을 꾸준히 복용하면 췌장세포를 활성화하여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에 당뇨를 개선 시키는데 도움을 줍니다.

5 고혈압 개선

칼륨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마늘은 혈중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고혈압 개선에 좋습니다.

6 항암작용

마늘에는 유기성 게르마늄과 셀레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암세포 억제 및 암 예방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7 알레르기 개선

알레르기 반응시 유리되는 효소작용을 억제하여 아토피 피부염이나 각종 알레르기 질환에 뛰어난 효능을 보입니다.

8 정장 및 소화 촉진

마늘 복용시 위액분비를 촉진하고 위 점막을 자극하여 소화를 돕고 대장의 정장작용을 촉진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Tip: 성인의 경우 하루 2~3쪽의 마늘을 섭취하시면 되는데 위가 약하신 분들은 하루 한쪽씩만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9 동맥경화 및 혈액순환 개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어 동맥경화와 같은 혈관 질환을 개선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또한 세포를 활성화시키고 혈액순환 촉진으로 인해 몸을 따뜻하게 해주어 수족냉증에도 좋습니다.

10 신경안정 및 진정효과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불안할 때 마늘을 먹게되면 알리신 성분이 인체의 신경에 작용하여 신경세포의 흥분을 진정시키고 이완작용을 하여 스트레스 해소 및 불면증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11 노화예방

마늘의 알리신 성분이 체내에 흡수되면 혈중 적혈구 작용을 도와 혈구 자체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며 구석구석의 세포까지 혈액과 산소를 공급해주는 효과가 있어 노화를 억제시켜준다고 합니다.

Tip: 마늘의 항암 성분을 보다 높이려면 요리를 할 때 처음 조리부터 넣어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 조리 방법

1. 끓는 물에 삶기

끓는 물에서 삶는 동안 발암물질 생성을 억제 하는 S-알리시스테인 증가! 100°C 이상에서 15분에서 60분 정도 삶으면 마늘의 항암성분을 생마늘로 먹을때보다 더 풍부하게 섭취할 수 있습니다.

밑국물 낼 때 넣은 마늘! 버리지 말고 챙겨드세요!

2. 마늘 기름에 볶기

기름 속에서 가열하면 암 억제 작용이 강한 아릴설파이드류 증가! 다진마늘을 기름에 볶아도 항암성분이 더 풍부해집니다.

기름에 볶으면 알싸한 맛은 날아가고 특유의 마늘향이 음식의 감칠맛을 더해주니 1석 2조 다진마늘을 100°C이하에서 1~2분 정도 볶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759.html
kolaswqetsrq 11.02 09:37
○ 잠잘 때 왼쪽으로 자면 생기는 신체 변화

○ 잠잘 때 왼쪽으로 자면 생기는 신체 변화

 "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듯 충분한 수면은 몸에 활력을 주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렇듯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적정한 수면 시간 만큼이나 올바른 수면 자세가 이뤄져야 한다.
",

올바른 수면 자세에는 오른쪽보다는 왼쪽 방향으로 누워 자는 것이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생의 3분의 1을 잠을 자면서 보내는 가운데, 왼쪽으로 자면 당신의 몸에 생기는 놀라운 신체 변화 7가지를 소개한다.

1. 속쓰림, 더부룩함 등의 증상을 완화한다

왼쪽으로 누우면 위산이 식도로 역류되는 현상을 방지해 속쓰림 완화와 소화 불량 개선에 도움이 된다. 반면 오른쪽으로 자면 식도괄약근이 이완돼 속쓰림을 더 악화시킨다.

2. 코 고는 것을 방지한다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이 발생하는 경우 왼쪽으로 자세를 비틀어 누우면 아래턱이 처지는 것을 방지해 코를 고는 것을 줄일 수 있다.

3. 소화력을 향상시킨다

왼쪽으로 누워 자면 옆구리와 복부를 자극시켜 장 기능이 개선돼 소화력이 증진된다. 내장 기관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시켜 변비 개선에도 탁월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4. 심장 질환을 예방한다

심장은 인체의 가장 중요한 장기이다. 왼쪽으로 누워서 잘 경우 심장을 원활하게 박동시켜 전신에 피를 공급할 수 있다. 이는 혈액 순환에도 좋기 때문에 숙면에도 도움이 된다.

5. 태아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임신부일 경우 왼쪽 방향으로 똑바로 누워 자면 태반에 연결된 탯줄에 혈액순환이 더 원활해져 태아의 건강에 유리하다. 반면 오른쪽으로 누워 자는 경우 태아에게 산소, 영양분 등을 공급할 수 없다.

6. 기억력을 높일 수 있다

순환계의 발달에 도움을 주고 지능 발달과 기억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또 정맥혈의 역류를 방지해 혈액 순환을 향상시킨다.

7. 독소를 배출한다

림프계의 순환을 도와 몸에 쌓인 독소를 배출해주며 혈액 순환을 돕는다. 혈액이 원활이 공급되면 얼굴이 붓고 피부가 푸석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주의사항! 왼쪽으로만 자면 척추가 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다양한 자세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한쪽만을 치중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293.html
kolaswqetsrq 11.02 09:38
죽어가는 몸이 손으로 보내는 건강 적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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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몸이 손으로 보내는 건강 적신호
",

✅ 손바닥으로 보는 건강 신호

신체의 모든 장기는 손바닥에 들어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생활 중 소화가 안되거나 두통이 생기는 등 몸의 변화가 생기면 손바닥을 지압하기도 하고 손을 따기도 합니다. 이처럼 손바닥을 통해 색깔이나 상태를 보면 몸이 보내는 건강 신호를 알 수 있는데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분홍색 손바닥

가장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색깔로 혈액순환이 잘되고 있어 건강한 몸 상태를 보이는 것이 바로 분홍빛을 띠는 손바닥입니다. 하지만 분홍빛에서 더 진한 붉은빛 즉 빨간색으로 보인다면 순환기가 약하며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혈압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엄지손가락 윗부분이 유난히 붉은 경우는 위장에 열이 많은 경우라고 합니다.

2. 하얀색 손바닥

손바닥 색깔이 흰 것은 저혈압과 빈혈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평소 어지러움이나 철분이 부족한 여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색깔로 호흡기질환이나 폐가 약한 경우에도 손바닥이 하얀 빛을 띨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경우 혈액순환도 잘 되지 않아 수족냉증이 올 확률이 높으니 차가운 음료는 피하고 몸을 따듯하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3. 노란색 손바닥

노란색을 띤다는 것은 간에 이상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황달같이 노랗게 피부가 변하거나 손바닥 색깔, 눈 등 노란빛이 심하다면 간의 건강 상태를 의심해 봐야 하는데 일시적으로 노란빛이 도는 것이라면 귤이나 당근 등 카로티노이드계 색소가 있는 음식을 섭취를 통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4. 파란색 손바닥

손바닥이 전체적으로 푸른빛을 띠고 있다면 순환기가 약해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변비나 과식으로 인해 숙변이 쌓여있기도 하고 장이 약해져 있기도 합니다. 이럴 경우 식사량을 줄이고 기름기가 많은 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푸른빛 보다 더 어두운색이라면 신장질환의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5. 흰 얼룩 모양 손바닥

붉은색이나 노란색 손바닥의 색깔을 가지고 있어도 흰 얼룩 모양이 생겨있는 경우라면 다른 질병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얼룩 모양은 일정하지 않은 점무늬 모양이며 지방 간이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매우 높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평소 술을 즐겨마시거나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식습관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6. 땀이 많은 손바닥

덥거나 긴장을 한 것도 아닌데 손바닥에 땀이 많이 나는 증상을 다한증이라고 합니다. 갑상선 활동이 지나치게 활발해지면 손바닥에 열이 많아져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평소 없었던 현상인데 갑자기 다한증이 생겼다면 갑상선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으니 갑상선 이상을 의심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694.html
kolaswqetsrq 11.02 09:39
계란의 효능 5가지

계란의 효능 5가지

1. 두뇌 발달에 좋은 계란의 효능

계란은 기억력, 학습능력과 깊은 관련을 가지는 두뇌 신경전달 물질인 아세틸콜린을 생산하는 작용을 하여 두뇌발달에 좋습니다.

2. 노화 및 당뇨예방에 좋은 계란의 효능

계란에는 비타민E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과산화지방의 생성을 억제하여 노화나 당뇨 예방에 좋습니다.

3. 기억력 증진, 치매예방에 좋은 계란의 효능

계란에 함유되어 있는 레시틴 성분은 기억의 저장과 회생에 필요한 신경신호를 전달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성분으로서 기억력을 증진시키고, 치매를 예방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4. 지방간 예방에 좋은 계란의 효능

계란에는 메치오닌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지방간을 예방하고 항암, 혈압 강하에도 좋습니다.

5. 탈모예방에 좋은 계란의 효능

계란 노른자에 함유되어 있는 비오틴성분은 건선, 탈모증, 지루성피부염, 비듬, 아토피성피부염 등의 치료를 도와주며 단단한 손톱, 건강한 모발의 유지를 도와줍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_83.html
kolaswqetsrq 11.02 09:39
귀를 잡아당기면 장수한다

귀를 잡아당기면 장수한다

 "
예로부터 이름난 장수촌의 장수 비결 가운데 하나가 매일 밤 귀를 비비고 빨갛게 되도록 자극한 뒤 잠자리에 드는 것 이라고 알려질 만큼 귀는 우리 건강에 밀첩한 관계를 지닌다. 귀는 중앙의 세로로 꼬리모양으로 크게 부풀어져 있는 부분을 대이륜이라고 칭하며 이는 척추 부분과 대응한다.
",

귀의 위쪽 부분은 엉덩이와 다리에 해당하며 귓불은 머리부분이 된다. 또한 귓구멍의 입구부분은 내장과 관련이 있는 반사구가 밀집되어 있다. 귀를 잡아 당기는 방향은 귀 윗부분은 위쪽으로 가운데 부분은 양옆으로 잡아 당기며 밑부분은 아래쪽으로 잡아 당기는 것이 기본이다.

귀는 민감한 부위인만큼 가볍게 통증이 느껴지면서 기분이 좋을 정도의 강도가 적당하며 한번에 약 1분정도,3~50회 가량 잡아당기는 것이 좋다. 단 귀에 상처가 있거나 귓병을 앓고 있다면 이를 금해야 한다. 그렇다면 귀를 잡아당기기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질병은 무엇이 있을까?

1. 고혈압

 "
귓바퀴 뒤 움푹 패인 곳을 눌러준다 무리를 했거나 흥분상태로 인하여 혈압이 높아진 경우 귀 잡아당기기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귓바퀴의 위쪽 뒷면을 만져보면 움푹 패인 곳을 강압구 라고 부르는데, 이 부위에 엄지손가락을 대고 귀 표면을 검지로 눌러준다. 이렇게 누른 상태로 귓불의 밑부분까지 쓸어내리며 잡아당겨준다.
",

양쪽 귀를 7~8회 반복하면 된다. 또한 귓불을 당겨주면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고 고혈압환자의 뒷목이 뻣뻣해지는 증상을 부드럽게 해준다. 늘 혈압이 높다면 아침에 일어나 귀 잡아당기기를 해주면 맑은 정신으로 지낼 수 있다.

2. 두통

귓불을 잡아당긴다 간단한 습관성 두통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일 경우 귀 잡아당기기로 해결할 수 있다. 두통은 혈관이 확장되거나 수축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고혈압과 마찬가지로 귓불을 조금 세게 잡아당겨 주면 두통이 사라진다.

3. 눈이 침침할 때

귓불의 한 가운데를 잡아당긴다 눈이 침침해지는 원인은 크게 노화현상과 피로로 인한 것인데, 노화로 인한 눈의 피로는 심하면 백내장으로 진행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귀 잡아당기기를 습관화하면 이를 예방할 수 있다. 또한 장시간 컴퓨터 작업 등으로 인해 피로해진 눈을 회복하는데도 효과적이다. 귓불 한 가운데에 있는 눈의 반사지점을 누르면 이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귓불 가운데를 엄지와 검지로 누른 후 밑으로 잡아당긴다. 약 50회 정도를 반복하면 된다.

4. 소화불량

이륜각 위 오목하게 들어간 지점을 자극한다 대장,소장,십이지장의 반사구는 귓구멍 위 꼬리처럼 생긴 이륜각 바로 위의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이다. 이 지점을 돌아가면서 자극하면 소화불량을 막아주고 장을 튼튼하게 만들어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382.html
kolaswqetsrq 11.02 09:40
미용 및 치료에 두루 쓰이는 설탕 팁 10가지

미용 및 치료에 두루 쓰이는 설탕 팁 10가지

떨어지면 서운한 식료품, 설탕. 음식에 단맛을 내기 위한 용도로만 써오셨다면 여길 주목하세요. 활용도가 뛰어난 설탕의 쓰임새 10가지를 알려드립니다!

1. 상처 치료

한 연구에 따르면, 설탕을 상처 치료에 쓸 수 있습니다. 설탕에 든 성분이 상처를 깨끗이 씻고 찢어진 혈관조직의 재생을 돕는다고 하네요. 의사들에게도 권장할 만하다는 설탕 요법, 연고나 소독약이 없는 비상시를 대비해 알아두면 유용합니다.

2. 얼룩 제거

옷에 묻은 찌든 때를 쉽게 제거하려면, 설탕 2큰술과 물 소량을 섞어 얼룩이 생긴 자리에 바르고 약 30분 둡니다. 이후 세탁기에 넣고 평소대로 돌리면 얼룩이 말끔히 지워집니다. 이 방법은 식물성 얼룩 제거에 특히 효과가 좋을 뿐 아니라, 커피 얼룩 등의 제거에도 쓸 수 있습니다.

3. 얼굴 각질 및 블랙헤드 제거

얼굴 각질 제거에도 설탕을 써보세요. 설탕 1큰술, 쌀가루 1큰술, 우유 1큰술을 잘 섞어 세안한 얼굴에 바르고 5분간 원을 그리며 부드럽게 마사지합니다. 이제 물기가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찬물로 씻어내세요. 이렇게 꾸준히 하면 각질 없이 매끈하고 윤이 나는 피부를 만날 수 있습니다.

4. 입술 각질 제거

얼굴뿐이 아니죠. 입술에 일어나는 각질에도 설탕이 좋습니다. 물 묻힌 손가락에 크리스탈 설탕을 찍어 입술에 대고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마사지하세요. 겨울철 잘 트고 건조한 입술 관리에 제격입니다.

5. 전신 각질 제거

예민한 피부를 때수건으로 박박 밀면 자극이 생겨 따갑고 빨갛게 올라오곤 하죠. 대신 올리브유 3큰술과 설탕 4큰술을 섞은 용액으로 부드럽게 문질러보세요. 이후 미지근한 물로 씻어내면 온천욕 한 듯 피부가 부드러워 집니다.

6. 거칠어진 발 관리

발 각질 제거에도 효과가 뛰어난 설탕. 일단 더운물 족욕으로 발을 부드럽게 만든 뒤, 설탕과 페퍼민트 오일을 섞어 묻히고 마사지하세요. 설탕이 두껍게 쌓인 죽은 각질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오일 성분이 피부를 부드럽게 가꿔줍니다.

7. 과자류 보관

갓 구운 쿠키 등을 신선하게 즐기려면, 각설탕 한두 개를 넣은 밀폐 용기에 넣어 보관하세요. 이 방법은 과자 뿐 아니라 치즈 보관 시에도 탁월합니다. 설탕이 각종 박테리아의 생장 및 번식을 막아 식품의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는 원리입니다.

8. 손 세정제

더러워진 손을 깨끗이 씻는 팁입니다. 설탕과 올리브유 섞은 용액으로 손을 구석구석 문지른 뒤 손을 씻어보세요. 쉽게 지워지지 않는 얼룩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습니다.

9. 벌에 쏘였을 때

벌과 같은 곤충에 쏘이거나 물린 부위에 각설탕을 올려보세요. 설탕에 함유된 성분이 독소가 퍼지는 걸 막고 붓기를 가라앉힙니다.

10. 꽃을 싱싱하게

선물 받은 꽃을 오래오래 싱싱하게 유지하려면, 꽃병 물에 설탕 3큰술과 식초 2큰술을 타세요. 식초가 박테리아의 번식을 막고 설탕이 꽃에 영양을 공급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30.html
kolaswqetsrq 11.02 09:41
행복한아이 만드는 육아법

행복한아이 만드는 육아법

육아에 있어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 그래도 아이에게 해주면 좋은 말들은 있죠. 부모, 자식 간의 유대를 끈끈하게 해줄 뿐 아니라, EQ와 자존감까지 쑥쑥 키워주는 보약 같은 8문장을 아래 영상에서 배워보세요!

1. 다독이며 마음 잡아주기

"괜찮아, 다시 한번 해봐." 재도전은 배움의 일부이며, 그렇기에 실패는 귀중한 경험입니다. 아이가 좌절하지 않게 잘 토닥이고 일으켜 세우세요.

2. 감사하기

감사는 일찍 배울수록 좋습니다. 관계를 원만히, 오래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어주니까요. 아이에게 틈틈이 "~해 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잊지 말고 하세요. 나의 감사를 받은 아이는 얼마 안 가 똑같이 감사하다는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의 수고에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합니다.

3. 자랑스러워 하기

"네가 참 자랑스럽구나." 이 말을 아이에게 자주 들려주세요. 아이의 자존감이 쑥쑥 자라납니다.

4. 특별하다고 말해주기

"넌 정말 특별한 아이야." 이 말을 들은 아이는 아이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느끼게 됩니다.

5. 신뢰 쌓기

"넌 분명히 해낼 수 있어." 당신이 심어준 굳건한 믿음은 이후 아이가 도전에 직면했을 때, 자신을 믿고 굳건히 행동하도록 이끌어줍니다.

6. 가까워지기

"네가 있어 난 너무나 행복해." 이 말은 아이의 가슴 속 깊숙이 들어가 잊히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부모가 있음에 아이는 깊이 안도합니다.

7. 마음 깊이 그리워하기

"네가 너무나 보고 싶었단다." 서로 얼싸안고 이처럼 말할 수 있다면, 잠시 떨어져 있는 건 문제 되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사이 부모가 자신을 애틋하게 그리워했음을 깨닫게 될 테니까요.

8. 사랑하기

시대를 막론하고 변함없이 강력한 한마디, "사랑해." 아무리 자주 이야기해도 지나침이 없는 말입니다. 사랑 넘치는 따스한 삶을 위해, 눈 마주칠 때마다 아이의 귓가에 속삭여주세요.

지금 바로 아이를 품에 안고 한마디 속삭이세요. 당신이 날마다 아이에게 전한 아름다운 말은 아이의 인생 전반에 큰 힘이 되어줄 겁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356.html
kolaswqetsrq 11.02 09:42
유쾌한 대화 법

유쾌한 대화 법

* 따져서 이길 수는 없다.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도 잔소리는 용서가 안된다.

* 유머에 목숨을 걸지 마라.

* 상대는 내가 아니므로 나처럼 되라고 말하지 마라.

* 적당할 때 말을 끊으면 다 잃지는 않는다.

* 사소한 변화에 찬사를 보내면 큰 것을 얻는다.

* 말을 하기쉽게 하지말고 알아듣기 쉽게 하라.

* 내가 이말을 듣는다고 미리 생각해 보고 말하라.

* 흥분한 목소리 보다 낮은 목소리가 위력있다.

* 눈으로 말하면 사랑을 얻는다.

* 무시당하는 말은 바보도 알아 듣는다.

 "
* 말은 입을 떠나면 책임이라는 추가 달린다.
",

* 쓴소리는 단맛으로 포장하라.

* 지적은 간단하게 칭찬은 길게 하라.

* 가르치려고 하면 피하려고 한다.

*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한 비밀을 털어 놓는 것은 무덤을 파는 일이다.

* 정성껏 들으면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 악수는 또 하나의 언어다. 먼저 손을 내밀어라.

-‘지혜로운 인생을 사는 법‘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954.html
kolaswqetsrq 11.02 09:43
성가신 내성 발톱 자가치료법

성가신 내성 발톱 자가치료법

살 속으로 파고 들어 자라는 내성 발톱은 불편할 뿐 아니라 걸을 때마다 엄청난 통증을 유발합니다. 의학 용어로는 감입조라고 하는데, 이를 방치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죠. 내성 발톱은 자연 치유가 불가능하며 해당 부위가 자칫 감염되기라도 하면 바로 수술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적절한 사전 관리가 가장 중요하죠. 먼저, 내성 발톱이 생기는 원인에는 어떤 게 있는지 알아볼까요?

손톱과 발톱 모두 살을 파고 드는 내성이 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부위는 엄지 발톱입니다. 유전적인 요인이 크며, 그 밖에 내성 (손)발톱을 유발하는 요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 발에 안 맞는 신발

너무 꼭 끼거나 잘 맞지 않는 신발은 발톱에 무리를 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발톱의 양쪽 가장자리가 피부 밑으로 파고 들면서 발톱이 자라나는 방향이 바뀌게 됩니다.

✅ 잘못된 발톱 정리

동그스름한 모양으로 다듬는 손톱과 달리, 발톱은 직선 형태로 잘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발톱이 피부 밑으로 눌려서 안쪽으로 자라나게 되죠.

✅ 부상

부상도 내성 발톱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고로 발을 찧어 발톱이 피부 속으로 눌리면 발톱 아래 피부가 발톱을 덮어 감싸게 되고, 발톱이 피부에 달라붙은 채 기형으로 자라게 됩니다.

✅ 당뇨

빈번하게 내성 발톱을 경험하는 당뇨병 환자는 반드시 의사와 상담해야 합니다. 사소한 부상이라도 큰 문제로 번질 수 있으므로 규칙적으로 손, 발톱을 정리하고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죠. 당뇨병을 앓으면 발 감각이 무뎌지는 경우가 있어, 정기 점검을 통해 이상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내성 발톱은 아래와 같은 증상을 수반하며, 당뇨 등으로 발 감각이 무뎌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알아차리기 비교적 쉬운 편입니다. 발톱 밑 부분의 통증, 빨갛게 부어오른 발가락, 감염 시 고름 또는 피가 나옴, 이와 같은 증상을 경험하고 내성 발톱임을 확인했다면, 이제 자가 관리법 몇 가지를 알아보도록 하죠. 단, 이미 내성 발톱이 심각하게 진행된 경우엔 병원에서 치료하셔야 합니다.

<내성 발톱 관리법>

아래의 방법으로 스스로 내성 발톱을 교정 및 관리할 수 있습니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며, 불확실한 경우에는 의사와 먼저 상담하시길 바랍니다.

1. 족욕

족욕은 내성 발톱 관리의 기본 단계입니다. 피부를 매끄럽고 부드럽게 가꿔주는 족욕을 정기적으로 해주면 예방 효과를 볼 수 있죠. 일주일에 2~4번, 매회 20분씩 족욕을 하면 발이 건강해집니다. 미온수나 따끈한 물을 이용하세요. 족욕 시 엡솜염(정제되지 않은 천일염)을 함께 사용하면 피부가 한층 더 부드러워져서 발톱 교정이 수월해집니다. 발이 부드러워졌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관리를 시작하겠습니다.

2. 솜을 이용한 케어

솜을 한 덩이 작게 떼서 엄지와 검지로 얇게 비벼 말아주세요. 돌돌 말린 솜을 발톱 모양을 따라 조심스럽게 밀어 넣습니다. 만약 이 과정에서 통증이 느껴지면 즉시 중단하고 의사와 상담하도록 합니다. 보통의 경우, 솜이 발톱과 피부 사이의 간격을 벌려서 압력이 줄어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솜을 그대로 끼워두고 발톱이 밖으로 자라나도록 시간을 주세요. 다음번 족욕 때 솜을 교체합니다.

3. 통증을 효과적으로 완화하는 방법

발톱 교정 시 통증을 완화하고 치료에 도움을 주는 몇 가지 방법을 알아볼까요?

⓵ 사과 식초

면봉을 사과 식초에 담갔다가 통증이 느껴지는 곳에 문지릅니다. (하루에 수 회 반복) 사과 식초는 피부에 영양을 공급하고 감염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⓶ 유칼립투스 오일

소량의 유칼립투스 오일은 통증을 줄이고 감염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⓷ 레몬 조각

레몬 조각을 얇게 썰어서 통증이 느껴지는 곳에 부드럽게 문지릅니다. 레몬은 특히 이미 감염된 부위에 효과가 있습니다. 이후 반창고로 발가락을 감싸고 하룻밤 두면 레몬에 함유된 산 성분이 염증 치료를 도와줍니다.

일반적으로, 교정 및 관리하는 동안 발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맨발로 걸으면 가장 좋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앞이 뚫린 신발을 신어 발가락이 눌리지 않도록 해주세요. 회복이 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편안한 신발을 신고 발톱을 직선으로 다듬어주세요. 이렇게 꾸준히 관리하면 효과가 나타날 거예요. 단, 문제가 계속되거나 상태가 나빠지면 반드시 의사와 상담하는 걸 잊지 마십시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978.html
kolaswqetsrq 11.02 09:44
행복하게 나이 드는 비법 1

행복하게 나이 드는 비법 1

1. 인생은 단 한 번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리허설이 아닙니다.

2. 항상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삶의 모든 경험에서 배울 점을 찾으세요.

3. 살고 있는 바로 지금, 현재에 집중하세요.

4. 매일 매순간을 마음껏 즐기세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까요.

5. 인생은 순식간에 바뀔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6. 삶의 모든 과정을 사랑하세요. 하나도 겁낼 필요 없어요, 모두 마법과 같거든요.

7. 지금 살고 있는 순간을 즐겨요. 어릴 때부터 매일 즐기며 살아가면, 60세가 되어서도 즐겁게 살 수 있어요.

8. 미래에 일어날 일을 걱정하며 살기에 인생은 너무 짧아요. 오늘만 바라보고 사세요.

9. 밖에 나가서 자연을 마음껏 즐기세요!

10.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취미나 직업을 찾으세요.

11.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 말고, 당신 자신이 되세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지혜로워지기를.

12. 안티에이징보다는 웰컴, 에이징.

13. 나이가 들면서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받아들이려 노력하세요.

14. 항상 스스로에게만큼은 솔직해지세요.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15. 여러 가지 경험을 하세요. 그래도 항상 돌아갈 안식처는 두고 사시길.

 "
16. 버지니아 울프가 옳았습니다. 여자에게는 자기만의 방과 500달러(한화 약 55만 원)가 필요해요.
",

17. 사회가 노화에 관해 뭐라고 이야기하든 신경 쓰지 마세요.

18. 나이 드는 걸 걱정하지 마세요.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이 더 큰 고민거리입니다.

19.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스스로를 숫자에 옭아매지 마세요.

20. 당신이 무서워하든 말든,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늙습니다. 그냥 즐기며 살자고요!

21. 언제나 열정을 갖고 살기를.

22. 쉽게 살되 저축은 꾸준히 하세요. 공부하고, 책도 많이 읽고, 여행도 많이 하시길.

23. 베이직한 옷을 사세요. 유행도 타지 않아 항상 깔끔한 인상을 줄 수 있답니다.

24. 신발에 너무 많은 돈을 쓰지 마세요. 사람들은 당신의 발만 보는 게 아니니.

25.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가지 마세요.

26. 자신에게 솔직해지세요. 당신만의 빛을 마음껏 밝혀요. 지금의 당신의 모습 그대로, 매 순간 활기차고 건강하게 살아요.

27. 그깟 주름,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얼굴에 패이는 선을 삶의 지도라고 생각하세요.

28. 열정을 갖고, 넓은 시선과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세요. 행복하세요.

29. 현재를 살아요. 나이 드는 걸 벌써부터 겁내지 말아요. 당신의 인생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30. 너무 복잡하게 살지 맙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699.html
kolaswqetsrq 11.02 09:45
건강을 해치는 일상 속 습관 9가지

건강을 해치는 일상 속 습관 9가지

인간은 습관의 동물입니다. 성장하면서 새로운 습관이 생기기도, 옛 습관을 버리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당신 뒤를 24시간 쫓아다니며, 어느 습관이 좋은 습관이고 나쁜 습관인지 말해줄 순 없습니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켜야 합니다! 주위에서 흔히 보이는 나쁜 건강 습관 9가지를 소개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몸에 훨씬 해롭답니다!

1. 물 너무 많이 마시기

물 많이 마시면 건강에 좋은 줄로만 아셨죠?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합니다. 사람마다 매일 마셔야 할 물 양이 다릅니다. 그 사람의 나이, 몸무게, 활동량, 거주하는 기후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물의 긍정적인 효과도 다소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체내 소듐 수치가 낮아진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몸이 피로해지고, 집중력도 떨어집니다.

2. 책상에서 먹기

책상에서 밥을 먹으면 키보드에 음식물 찌꺼기나 부스러기가 끼는 것도 있지만, 배가 더부룩하거나 속이 쓰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먹는 데 집중하지 못하고 딴짓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나중에 위산이 역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3. 다리 꼬기

 "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다리를 꼬면 골반과 척추가 틀어져 목 측면과 등에 상당한 압박이 가해집니다. 이 편안한 자세 때문에 나중에 목 결림, 뭉친 어깨, 그리고 요통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

4. 전자레인지 팝콘 먹기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문제냐고요? 아닙니다, 문제는 팝콘에 있습니다. 전자레인지용 팝콘에는 바이아세틸(다이아세틸)이 들어있습니다. 이 화학물질 덕에 팝콘에서 고소한 버터 향이 한층 더 강하게 납니다. 바이아세틸에 열을 가했을 때 나오는 증기를 마시면 폐에 무척 좋지 않습니다. 팝콘을 튀기자마자 바로 드시지 말고 조금 식혔다 드시는 게 더 좋습니다.

5. 도시에서 오픈 슈즈(발 피부가 노출된 신발) 신기

여름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슬리퍼, 샌들 등 발 피부를 노출하는 신발을 자주 신습니다. 하지만 오픈 슈즈를 신으면 물집, 벌레 물림, 작은 상처 등이 날 수 있습니다. 상처에 세균이라도 들어갔다간 봉소염과 같은 심각한 염증이 생기게 됩니다.

6. 옆으로 누워서 혹은 엎드려서 자기

측면으로 자거나 엎드려 자는 건 건강에 해롭습니다. 첫 번째로, 복부 장기로 피가 잘 순환되지 못합니다. 두 번째로, 척추에도 압박이 가해져 등 아래쪽에서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자는 습관도 목 근육을 뻣뻣하게 한답니다.

7. 무지방 우유 마시기

우유에서 지방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많은 비타민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제조 업체들은 대신 밀크 파우더를 첨가합니다. 밀크 파우더에는 몸에 해로운 산화 콜레스테롤이 들어있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 몸에 더 좋지 않습니다.

8. 비둘기에게 먹이 주기

 "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의 모습, 어느 도시에서라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그러나 비둘기에게 자주 먹이를 주었다간, 새사육자폐라는 병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폐에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급성 호흡기 감염의 일종입니다. 먼지와 새 배설물에 자주 노출되면 이 병에 걸리게 됩니다. 밭은기침, 호흡 곤란, 고열 등이 그 대표적인 증상입니다.
",

9. 저품질의 선글라스 착용하기

저렴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선글라스는 자외선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착용자의 동공을 확장시키기 때문에, 눈이 흡수하는 자외선의 양이 더 많아집니다. 처음에는 그 부작용을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몇 년 동안 착용하다 보면 눈 건강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백내장과 같은 질환이 발병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9_30.html
kolaswqetsrq 11.02 09:46
스마트폰 활용 꿀팁

스마트폰 활용 꿀팁

낮이나 밤이나 손에 쥐고 사는 스마트폰이지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사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 별의별 기능을 자랑하는 최신형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카톡만 줄곧 주고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이나, 알아두면 쏠쏠한 기능 및 앱을 갖추고 있다. 아래에서 하나씩 살펴보고 내게 필요한 팁을 낚아채 보자.

1. 스팸 전화 차단

관심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계속 걸려오는 성가시기 짝이 없는 스팸 전화. 이를 차단하려면? 잠시 폰을 비행기 모드로 설정해두자. 이때 전화 기능을 아예 쓸 수 없게 되지만, 포기 않고 걸려오는 전화를 차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2. 발신번호 표시 제한

내 번호를 내보내지 않고 전화 거는 팁. 안드로이드, 아이폰 모두 키패드 *23#를 누른 뒤 걸고자 하는 전화번호를 입력한다. 이렇게 하면 전화 받는 사람의 폰에 내 전화번호가 뜨지 않는다.

3. 동영상 촬영 도중 사진 찍기

아이폰으로 동영상 촬영 시, 사진도 함께 찍을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사진 속 폰 오른쪽 아래에 있는 원을 누르면 사진이 찍힌다. 물론 촬영 중이던 동영상은 이에 영향받지 않는다.

4. 키보드와 마우스

안드로이드폰은 키보드와 마우스 연결을 지원한다. 스마트폰으로 타이핑할 일이 생기면 케이블로 폰에 연결해 쓸 수 있다. 이때 필요한 케이블 한쪽은 스마트폰에 맞는 규격, 다른 한쪽은 USB 케이블에 맞는 규격이어야 한다.

5. 현재 시각을 패스워드로

누군가 나의 잠금화면 패스워드를 알고 있을까 두렵다면, 앱을 통해 현재 시각을 암호로 지정할 수 있다. 이 방법은 당신이 이 앱 사용자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때만 안전하다.

6. 잠금화면 메시지

스마트폰을 분실할 경우, 일단 좋은 분이 주웠기를 두 손 모아 빌자. (착한 사람의 손에 들어간 폰이라면) 되찾을 희망이 있으니, 잠금화면에 내 이메일 주소나 비상 연락처를 남겨보시길.

안드로이드 이용자는 설정 > 보안 > 잠금화면 > 잠금화면 메시지 > 메시지 입력 및 저장 순으로 이 기능을 쓸 수 있다.

7. 음악 가사 보기

아이폰 이용자는 iOS 8 버전부터 가사를 일일이 찾지 않아도 바로 볼 수 있다. 간단히 시리에게 곡명을 물어보면 바로 찾아준다.

이런 기능이 숨어 있었다니. 여태껏 왜 찾아볼 생각을 안 했을까. 지금 당장 폰을 집어 들고 이 기발한 기능들을 활용해보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529.html
kolaswqetsrq 11.02 09:47
■ 정희왕후 윤씨 4편

■ 정희왕후 윤씨 4편

윤씨는 세조와 함께 개인적으로 불교를 받들었지만, 정책적으로는 유교를 숭상한 조선의 국가이념대로 유교적 정치체제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불교의 화장하는 풍습을 없애고 도성 내의 염불소도 폐지했으며, 승려들의 도성 출입을 금지했다. 그리고 6촌 이내에는 결혼을 금지하고 사대부와 평민의 제사에 차이를 두게 하였다.

하지만, 당시 정희왕후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것은 관리자로서의 역할이었고, 이 모든 정책의 시행은 한명회와 신숙주 등이 중심이 되었다. 따라서 이들의 세력은 윤씨가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 점차 확대되어 막대한 정치와 경제적 이익을 독점하고 특권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성장한 세력은 훈구파로 불리우고, 이들의 특권과 전횡을 비판하는 사림파와의 대결이 성종 이후 표면화되면서 연산군 때 사화(士禍)로 이어지게 된다.

7년의 세월이 흘러 성종은 20살의 청년이 되었다. 이제 윤씨의 섭정은 명분이 없어졌다. 어느 날 살인죄를 저지른 한 상인이 끌려왔는데, 이 상인은 예전에 세조를 도와 공을 세운 일이 있었다. 당시 세조는 고마운 마음에 “만약 자네가 앞으로 중죄를 지어 죽게 되었을 때 목숨을 살려주겠네“ 라고 약속했다. 상인은 당시 세조가 써준 문서를 내놓고 선처를 부탁했다. 세조의 어필을 본 윤씨는 살려주기로 했으나, 성종은 살인을 했으면 당연히 사형시키는 것이 법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마침 그즈음 윤씨의 섭정 중단을 요구하는 익명의 글이 저자에 나붙었다.

이 사건으로 결국 윤씨는 섭정을 거두게 된다. 윤씨가 섭정을 그만두겠다는 뜻을 성종에게 전하자, 성종은 더 보살펴 달라고 만류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처신에 불과했다. 하지만, 정작 반대하고 나선 것은 한명회였다. 하지만 어른이 된 임금이 있음에도 계속 섭정을 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다른 대신들이 들고 일어났다. 윤씨는 더 이상 명분이 없음을 알고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고, 성종의 친정(親政)이 시작되었다.

정치일선에서 물러난 윤씨는 가끔 세조와의 추억이 어린 온양의 온궁을 찾아 휴식을 취하곤 했는데, 그로부터 7년 후 66살의 윤씨가 별세한 장소도 바로 온궁이었다. 윤씨는 현재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광릉에 안장되어 있다.

7년 동안의 과단성 있는 윤씨의 섭정은 성종 대에 조선의 여러 문물제도를 완성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정계의 최고 실력자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왕권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윤씨는 역대 왕비 중에서 그래도 행복한 일생을 보낸 여인이었고, 세종의 며느리 가운데 가장 정상적인 며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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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48
■ 정희왕후 윤씨 2편

■ 정희왕후 윤씨 2편

아들과 어머니가 연달아 죽자 윤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세조의 피부병도 좀처럼 낫지 않았다. 궁궐의 뒤숭숭한 분위기를 몰아내기 위해 윤씨는 사정전에서 효도잔치를 열기도 하고, 세자의 묘 근처에 정인사를 짓고 불공을 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 조카를 죽이고 안평대군 등 시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은 내내 윤씨를 괴롭혔다.

윤씨가 세조의 유일한 후궁인 근빈 박씨를 박해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도, 박씨가 사육신 중 한사람인 박팽년의 누이였기 때문이었다. 근빈 박씨는 남동생이 세조에 의해 원혼이 되었으나 끝까지 세조를 섬겼고, 슬하에 덕원군과 창원군을 두었다.

1468년 9월 세조가 피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세자 광(둘째아들)이 19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예종이다. 정희왕후가 예종 때부터 섭정(攝政)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즉위할 당시 예종은 섭정이 필요한 나이가 아닌데다가, 8살 때 세자로 책봉된 후 국왕 수업을 충분히 받았기에 굳이 수렴청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예종은 신하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원만한 인물로 알려졌으나, 재위 1년 3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남으로써 별다른 치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만큼 조선시대의 왕들 중에서 우리에게 존재감이 거의 없다.

예종은 두 명의 아내와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 첫 왕비 장순왕후 한씨는 당대의 실권자 한명회의 딸로 16살이 되던 해에 세자인 예종과 혼인하여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첫아들 인성대군을 낳은 후 곧 세상을 떠났고, 인성대군 역시 어린 나이에 죽고 말았다.

첫 부인 한씨가 죽은 후 두 번째로 맞이한 아내가 안순왕후 한씨다. 한씨는 우의정 한백륜의 딸인데, 처음부터 정비(正妃)로 간택된 것이 아니라 예종이 세자일 때 맞이한 후궁이었다. 새로 왕비가 된 한씨는 예종과의 사이에 제안군과 현숙공주를 두었지만, 예종의 요절(夭折)로 25세의 나이로 청상과부가 되고 말았다.

예종 다음의 왕위는 마땅히 예종의 둘째부인 한씨가 낳은 제안군에게 돌아가야 하지만, 대비 윤씨는 당시 4살인 제안군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리고는 죽은 의경세자(세조의 큰아들)의 맏아들 월산군은 몸이 허약하다는 이유로 제치고, 13살이 된 자산군(잘살군:성종)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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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49
■ 신숙주의 갈라진 운명

■ 신숙주의 갈라진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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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과 신숙주는 나이도 비슷하고 같은 시기에 과거에 급제하여 매우 친한 사이였으나, 둘의 인생 역정은 크게 엇갈리게 된다. 집현전 출신 젊은 학자들의 리더였던 성삼문은 충청도 홍성 출신으로, 오위도총부 총관(정2품) ‘성승’의 아들이고 안평대군(세종의 셋째아들)과 동갑이었다. 신숙주는 전라도 나주 출신으로 대제학을 지낸 신장의 아들로 수양대군(세종의 둘째아들)과 동갑으로 둘 다 세종에게는 아들 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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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집현전에서 함께 일하는 동지로서 훈민정음 창제에도 깊이 간여했다. 단종1년(1453년)10월 수양대군이 주도한 계유정난이 일어났 때, 신숙주는 도승지, 성삼문은 동부승지였다.

계유정난 후 신숙주는 2등 공신에, 성삼문은 3등 공신에 끼여 있었다. 성삼문이 공신에 낀 것은 집현전에서 영향력이 큰 성삼문에 대한 회유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시키려던 계획이 실패한 후, 성삼문은 국문(鞫問)을 받는 대역 죄인이 되었고, 신숙주는 병조판서로서 국문(鞫問)자의 입장이 되었다. 사육신은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지고 효수(梟首)되었으며, 신숙주는 역모를 잘 다스린 공으로 우찬성이 되었다. 죄인들이 처형된 후 남은 가족들 중 여자들은 노비가 되어 공신들의 집에 나뉘어졌다. 신숙주는 죽은 자들의 부인과 딸들을 차지하게 되었다.

사실 신숙주는 뛰어난 언어학자이자 외교관이었으며, 다섯 임금을 모시고 20년이나 재상 노릇을 한 인재였다. 어학에 능해 일본, 중국과의 외교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고, 주요 외교문서들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야했다.

신숙주 하면 연상되는 것이 바로 숙주나물이다.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났을 때 절의를 지키지 않고 변절했다하여 녹두를 콩나물처럼 키워서 만든 녹두나물이 잘 상한다하여 변절자(變節者) 신숙주의 이름을 따서 ‘숙주나물’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단종복위운동’이후 바로 붙여진 것이 아니라, 200여 년이 지난 17세기 병자호란 이후 명에 대한 절의를 지켜야 한다는 풍조가 확산되면서 성삼문을 절의의 상징으로 내세운 반면, 신숙주는 변절의 상징이 된 것이다.

신숙주에 대한 일화가 또 하나 있다. 사육신이 모두 처형되는 날, 신숙주의 부인은 멀쩡하게 살아 돌아오는 신숙주에게 “어찌 살아 돌아왔느냐” 며 창피해서 못 살겠다고 스스로 목을 매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신숙주의 부인은 사육신의 옥사가 있기 이미 5개월 전에 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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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49
■ 사육신死六臣 4편

■ 사육신(死六臣) 4편

세조는 이 사건에 집현전학사 출신이 주동이 되었다 하여 집현전을 없애버렸다.

이들을 사육신(死六臣)으로 명명한 것은 남효온이 지은 〈추강집 秋江集〉에 나오는 육신전(六臣傳)에 의한 것이다.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 등 여섯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과 〈추강집〉의 기록이 ‘김문기’를 두고 다르게 되어있어 육신(六臣)에 대한 논란이 다소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개·성삼문·박팽년 등 17인이 반역을 꾀했으며, 주모자는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김문기 순으로 6인 만이 기록되어 있다. 김문기는 박팽년과 모의할 때 군 동원의 책임을 맡았다고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료에 따라 1982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김문기를 사육신에 포함하기도 한다.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있는 사육신묘에 김문기의 가묘(假墓)가 설치되기도 했지만, 종래의 사육신 구성은 변경되지 않았다.

단종 복위 운동의 주모자가 꼭 사육신이라고 단정할만한 자료는 사실 없다. 다만 추국(推鞫)과정에서 주모자로 생각될만한 사람이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즉, 김질이 고변할 때 성삼문의 말이라면서 모의자로 금성대군·성삼문·이개·하위지·유응부를 말했고, 성삼문이 잡혀와 첫 번 국문 때 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이 같이 모의했다 하고, 이 계획을 알고 있는 자는 유응부와 박쟁 이라고 말하였다. 박팽년의 공초에서는 성삼문·하위지·유성원·이개·김문기·성승·박쟁·유응부·권자신·송석동·윤영손·이휘·박중림 등 13인이 모의한 것으로 자백했다.

사건 5일 만에 그 전모를 밝힌 공식 명단에서 이개·성삼문·박팽년·하위지·유성원·박중림·권자신·김문기·성승·유응부·박쟁·송석동·최득지·최치지·윤영손·박기년·박대년 등 17인이 반역을 도모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순서대로 여러 사람의 이름을 거론했을 뿐, 역시 주모자임이 확실한 성삼문과 박팽년을 제외하고는 사육신이 꼭 누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실패로 끝난 단종 복위사건은 단종에게는 오히려 악재로 작용했다. 단종은 상왕에서 쫒겨나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문종의 비(妃)였던 현덕왕후 권씨는 사후(死後)에 폐비되고 무덤이 파헤쳐지는 수난을 겪었다. 사육신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고 삼대(三代)가 참화를 입었다. 세조는 사육신의 처나 딸들을 공신들의 여종으로 주었다. 성삼문의 아내 차산은 박종우에게 주어졌고, 박팽년의 아내 옥금은 정인지에게 주어졌다.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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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50
■ 사육신死六臣 2편

■ 사육신(死六臣) 2편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쥔 수양대군은 스스로 영의정부사·이조판서·병조판서·내외병마도통사 등을 겸직하면서 정권(政權)과 병권(兵權)을 독차지한다. 수양대군은 권람·한명회·홍달손과 간접적으로 도운 정인지·한확·최항·신숙주·성삼문 등 43명을 정난공신(靖難功臣)으로 봉했다. 이어서 형식상 단종으로부터 선양(禪讓)의 절차를 밟아 왕위에 오름으로써 세조의 시대가 열렸다.

성삼문 등의 집현전 학자들이 정난공신에 봉해진 이유는, 이들이 유교에서 말하는 다수의 유학자가 참여하고 공론을 실현하는 신하중심의 정치운영을 이상으로 여겼으므로 소수 재상을 중심으로 한 정치운영에 불만을 느껴, 수양대군의 정적제거에 동참했던 것이다. 그런데 세조의 집권은 집현전 출신 유학자들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세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의정부서사제도(의정부의 3정승이 논의하여 합의된 것을 국왕에게 올려 결재를 받는 형식)를 폐지하고 6조직계제(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왕과 실무를 담당하는 6조가 바로 연결)를 실시했다. 이는 의정부의 권한 약화와 왕권 강화를 통해 국왕이 중심이 되는 정치운영을 실현하겠다는 뜻이다. 집현전 출신의 관료들은 즉시 반대했다. 이들은 정치운영을 국왕 한명에게 맡길 수 없고, 대다수 관료가 참여하는 신하중심의 정치운영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관철되지 못하고 정국은 세조의 독주로 나아갔다.

이에 세조의 잔인한 왕위 찬탈과 왕권 강화에 불만을 품은 유학자들은 세조를 왕위에서 몰아내고 폐위된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계획을 도모하게 되었다. 단종복위의 명분은 세조의 불의와 왕위찬탈에 대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운영을 둘러싼 신권과 왕권의 대립과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집현전 출신 유학자가 참여한 이 계획은 성삼문·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가 중심이 되어 진행됐다. 이들은 집현전을 모의 장소로 정하고 여러 차례 의논한 결과, 1456년(세조2년) 6월 창덕궁에서 명나라의 사신을 맞이하는 자리를 이용하여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낌새를 눈치 챈 한명회의 주장으로 연회 절차에 변동이 있게 되자 박팽년과 성삼문의 결정으로 거사가 미루어졌다. 이때 불안을 느낀 김질(金礩)이 장인인 정창손에게 알렸고, 정창손은 다시 세조에게 알렸다. 정창손의 고변(告變)을 들은 세조는 분노했다. 세조는 이들을 모두 잡아들였고 거사는 실패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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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51
■ 단종의 원혼 설화

■ 단종의 원혼 설화

단종이 세상을 떠난 이후 영월부사가 부임하는 날에 급사하는 일이 연이어 일어났다. 그래서 영월로 부임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영월은 폐읍이 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한 대담한 사람이 영월부사를 자청하여 부임하였다. 부임 첫 날에 의관을 정제하고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찬바람이 불더니 익선관에 곤룡포를 입은 소년 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신임 부사가 곧 단종임을 직감하고 부복하니, 단종은 "내가 죽을 때 목을 조른 활줄이 아직 남아있어 목이 갑갑해 그것을 풀어달라 하려고 왔는데, 지금까지 영월 부사들은 겁이 많아서 나를 보자마자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신임 영월 부사가 단종의 시신이 어디 있는지를 묻자, 단종은 "엄흥도 호장이 알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단종은 홀연히 사라졌다. 다음 날 부사가 엄흥도 호장을 불러 전날의 이야기를 해주자, 엄흥도는 자신이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역사 기록이나 설화 양쪽 다 엄흥도가 단종을 장사지낸 후 자취를 감췄다고 하므로 이건 말이 맞지 않는데, 설화의 다른 버전 중에는 꿈에서 단종이 영월부사에게 엄흥도를 찾아가라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는 내용도 있다. 단종의 무덤을 파보니 과연 활줄이 목에 얽혀 있어 활줄을 푼 뒤 다시 묻고 정중히 제사 올렸다고 한다. 그 후 영월부사가 급사하는 일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인 듯하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영월의 관리들이 여럿 죽는 일이 벌어졌는데 박충원이라는 사람이 영월 군수로 부임한 뒤 제문을 지어 단종의 넋을 위로했고 그 뒤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선조수정실록 14년2월1일 7번째 기사>

다른 이야기도 있다. 엄흥도와 그의 아들이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매장할 곳을 찾아 헤맸으나, 눈보라가 내리치는 엄동설한이라 땅이 모두 얼어붙어 무덤을 파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 때 어디선가 노루 1마리가 홀연히 나타나 눈밭에 앉아 잠시 쉬고 갔는데, 그 눈 녹은 자리를 파 단종의 시신을 묻었다고 한다. 훗날 복위된 단종의 왕릉을 이장하기 위해 조정에서 지관을 보내어 장릉의 지세를 살펴보니, 엄흥도가 임시방편으로 모셨던 그 자리가 천하의 길지(吉地)라 함으로 이장하지 않고 묘제만 왕릉의 격식에 맞추어 고쳤다고 한다.

단종을 폐위시켰던 세조는 이후 현덕왕후(문종의 비, 단종母)의 유령에 시달렸다고 한다. 꿈속에서 현덕왕후가 세조에게 침을 뱉었는데, 이후 침을 맞은 자리를 시작으로 온 몸에 종기가 생겨 평생 피부병으로 고생을 했다.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는 큰어머니(현덕왕후)의 유령에 시달리다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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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52
■ 파란만장 단종의 짧은 생生 5편

■ 파란만장 단종의 짧은 생(生) 5편

세조실록에는 "노산군이 장인 송현수와 숙부 금성대군의 죽음을 듣자 슬픔을 못 이겨 목을 매고 자살하였고, 후에 예를 갖춰 장사지냈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무덤을 방치해 둔 점, 죽은 후 금성대군과 같이 왕실 족보에서도 삭제당한 것으로 보아 타살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중종 때 이르러서야 단종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무덤을 찾을 수 있었고, 단종이란 묘호를 받고 능으로 단장된 것도 숙종 때의 일이다.

숙종실록과 야사 등에는 사약을 가져온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에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엎드려 울기만 하자 옆에 있던 하인이 대신 목을 졸라 죽였다고 나온다. 이 설(說)은 2가지 버전이 있는데, 하나는 정당한 왕인 자신이 사약을 마실 수는 없어서 자신은 방에 들어가고 활줄을 자신의 목에 감고 밖으로 내어 하인에게 당기라고 했는데 그 뜻을 몰랐던 하인이 당기자 사망했다는 것 한 가지. 다른 하나는 단종이 사약을 마시지 않고 버티자 단종을 살해하면 상을 받으리라 생각한 한 하인이 단종의 목을 졸라버렸다는 것이다.

시신 수습을 두고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중앙관리가 아닌 지방 아전인 호방(戶房) 엄흥도가 강물에 떠도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몰래 묻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나이가 많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모를 위해 준비해둔 관과 수의를 썼다고 한다. 생육신 중 하나였던 조려가 단종의 죽음을 전해 듣고 영월로 달려가 시신을 수습했다는 말도 있다. 이 때 강물이 불어서 영월로 건너가지 못한 조려가 통곡을 하자 호랑이가 나타나서 등에 태워 강을 건넜다는 설화도 존재한다.

당시에는 당연히 단종의 추모가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던지라 후환이 두려웠던 엄흥도는 매장을 마친 뒤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그 길로 영월을 떠나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실제로는 인근 주민들이 엄흥도 일가족이 어디에 사는지 알고 있었으나 아무도 관에 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그는 단종 복위 다음 해에 공조좌랑, 영조 때는 참의와 참판을 거쳐 순조 33년(1833년)에는 공조판서로 추증되었다. 육부 중에서도 공조(工曹)판서로 추증되었던 것은 왕릉의 조영을 담당하는 부서가 공조이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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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고종14년(1877년)에는 충의공이란 시호와 함께 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이란 정승급 벼슬에 추증된다. 엄흥도가 원래 지방의 미관말직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단종의 최후에 그 시신을 수습한 충의를 후세에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 알 만하다. 세조가 살기등등하던 시절이었으니 목숨을 건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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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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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09:53
■ 파란만장 단종의 짧은 생生 3편

■ 파란만장 단종의 짧은 생(生) 3편

단종은 위로 이복형이 두 명 있었으나, 모두 어릴 때 죽었기 때문에 사실상 외아들로 성장하였다.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 현덕왕후가 산후 후유증으로 죽었고, 6살 때는 할머니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나며, 10살 때는 할아버지 세종도 병으로 승하했다. 12살이 되던 해에는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아버지 문종마저 등창의 재발과 악화로 승하하면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즉위한 지 1년 후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결국 15살이 되던 해에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넘겨준다. 그리고 17살이 되던 해에 결국 수양대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단종은 조선왕조의 역대 국왕 중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갖춘 국왕이었다. 적장자(嫡長子)로서 최초로 왕위에 오른 조선의 왕은 아버지 문종이고, 적장손(嫡長孫)으로 태어나 왕위에 오른 사람은 단종 뿐이다. 단종이 태어난 1441년에는 아버지인 문종이 세자였고 할아버지인 세종이 왕이었다. 또한 어머니인 현덕왕후 또한 세자의 정실인 세자빈이었다. 따라서 단종은 태어나자마자 원손-세손-세자-왕 의 순서를 정식으로 밟아 즉위한 조선의 유일한 왕이다. 이후에는 이런 이상적인 적통계승자가 없었고, 왕조 국가를 통틀어도 이런 적통계승은 매우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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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손 시절이 있었던 왕이 몇 명 있기는 하다. 현종의 경우 원손→세손을 거치긴 하지만, 아버지인 효종이 아직 봉림대군일 때 태어났으며, 봉림대군의 형인 소현세자의 아들들이 엄연히 있기에 인조의 적장손은 아니었다. 정조나 헌종의 경우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효명세자가 왕이 되기 전에 죽어 원손 → 세손 → 왕의 수순을 밟았다. 게다가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영조의 정실부인이 아닌 후궁 영빈 이씨의 몸에서 난 서자(庶子)였고, 자신 역시도 사도세자의 장남이 아닌 차남이었다. 물론 정조나 헌종은 정통성에는 문제가 없지만, 서출(庶出)의 자손이라는 아쉬움이 있어서 단종과는 신분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그 수준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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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할아버지 세종은 장자(양녕대군)는 아니지만 어머니가 왕비인 적자였고, 세종의 아버지 태종도 장자는 아니나 역시 적자였다. 그러니 단종은 그야말로 고조할아버지 태조 때부터 첩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고 내려온 완벽한 적손(嫡孫)이다. 그야말로 적자(嫡子)이면서 적손(嫡孫)이고 장자(長子)면서 장손(長孫)으로서 원손→세손→세자→왕 이라는 순도 100% 혈통인 것이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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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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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66.html
kolaswqetsrq 11.02 09:54
■ 파란만장 단종의 짧은 생生 1편

■ 파란만장 단종의 짧은 생(生) 1편

단종은 1453년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친위 대신들을 잃고 권력을 빼앗겼다. 단종은 권력은 잃었지만 왕위만은 수양대군에게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세종의 여섯째 아들인 금성대군을 비롯한 단종의 친인척들을 유배 보내는 등의 압박으로 결국 어린 단종은 더 이상 왕위에서 버틸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1455년 수양대군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이렇게 즉위한 수양대군이 조선7대 임금 세조이다.

세조가 등극하면서 단종은 15세의 나이에 상왕(上王)이 된 것이다. 39세의 임금보다 스물네 살이나 어린 상왕의 존재는 비극의 씨앗일 수밖에 없었다. 왕위에서 물러난 단종은 하루하루 살얼음 같은 나날을 보냈다. 상왕 단종의 나이가 들어갈수록 불안한 것은 세조의 측근들이었다. 단종이 창덕궁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단종의 복위를 꾀하는 권신들이 계속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외지로 내쳐야 한다는 상소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세조는 곧 결단을 내렸다.

“전날, 성삼문 등이 말하기를 상왕도 모의에 참여했음을 밝혔지만 그 죄를 묻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난(亂)을 선동하는 무리들이 그치지 않으니 내 어찌 사사로운 은의로 하늘의 명과 종사의 중함을 돌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상왕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하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 거주하게 하라"

6월 22일, 단종은 영월로 떠나야 했다. 단종이 강원도로 유배된 것은 한명회의 의견을 따른 것이었다. 함경도와 평안도는 군대의 힘을 빌어 음모를 꾸밀 수 있고, 경상도에는 금성대군과 한남군, 전라도에는 화의군과 영풍군이 유배되어 있었던 까닭이었다.

단종은 조정에서 내치자는 공론이 극에 달했던 1457년 1월 말 경에 영월로 귀양가 관풍헌객사(客舍)에 적소(謫所:귀양지)가 정해진다. 그곳에서 봄을 보내고 여름이 되어 금성대군의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서인(庶人)으로 전락하여 청령포로 적소가 바뀌고, 마침내 17살의 어린 나이로 그곳에서 사사(賜死)되었다. 《실록》에는 단종이 자신의 선택으로 자살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야사(野史)에 의하면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들고 왔으나 차마 전하지 못하고 엎드려 있자, 단종은 스스로 목에 줄을 매고 줄을 창밖으로 빼내 당기게 하여 자살하였다고 한다.

단종의 나이 열일곱. 임금의 아들로 태어나 누구보다 영화로운 삶을 살 수도 있었으나,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 짧은 생을 두려움과 외로움에 떨다가 이렇게 쓸쓸히 죽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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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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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914.html
kolaswqetsrq 11.02 09:55
운동 후 먹으면 근육에 좋은 식품 5

운동 후 먹으면 근육에 좋은 식품 5

근력운동을 하면 근육에 미세한 상처가 생기는 탓에 몸 여기저기서 뻐근한 근육통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걱정할 일은 아니다.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근육의 양이 늘어나고, 결국 근력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증을 줄이고 회복 과정도 단축할 방법에는 어떤 게 있을까. 운동한 후 먹으면 도움이 되는 식품을 알아본다.

❶ 바나나

운동하면서 연료로 써버린 탄수화물, 그리고 땀으로 빠져나간 전해질인 칼륨을 보충하는 데는 바나나가 최고다. 게다가 바나나는 들고 다니기 쉽다는 장점도 있다. 바나나는 운동 후 3시간 안에는 먹는 게 좋다.

❷ 시금치

시금치에는 비타민A, B, C를 비롯해 염증 예방을 돕는 영양소가 가득하다. 또한 시금치 한 접시에는 단백질 5g이 들어 있다. 탄수화물 약간을 곁들여 먹는 게 좋다.

전문가들은 "탄수화물을 약간 곁들여 먹는 게 좋다"며 "단백질은 탄수화물과 함께일 때 더욱 잘 흡수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비율은 2대1이 이상적이다.

❸ 블루베리

어떤 과일이든 항산화 성분이 들어 있지만, 블루베리에는 특히 많은 양이 들어 있다. 블루베리는 탄수화물과 시르투인의 훌륭한 공급원이기도 하다. 장수 유전자로 불리는 단백질의 일종인 시르투인은 세포의 사멸, 염증 전달, 신진 대사 등의 기능을 조절하고 회복을 지원한다.

❹ 치아씨드

치아씨드(치아 씨앗)는 완전 단백질, 즉 아홉 개의 필수 아미노산을 가지고 있다. 치아씨드에는 또한 철분, 칼슘, 마그네슘 같은 중요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다. 많은 양도 필요 없다. 단백질이 풍부한 그리스 식 요구르트에 살짝 뿌려 먹는 것으로 충분하다.

❺ 녹차

연구에 따르면, 녹차 추출물을 500mg씩 섭취한 이들은 운동으로 인한 근육 손상이 줄어들었다. 녹차에는 운동으로 인한 산화 손상을 복원하는데 도움이 되는 카테킨 등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_61.html
kolaswqetsrq 11.02 09:56
○ 마늘 껍질을 버리면 안 되는 이유

○ 마늘 껍질을 버리면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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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할 때 편해서 많이들 다진 마늘을 냉동고에 얼려 놓고 먹는데요. 원래 마늘 껍질은 까고 나서 그냥 일반쓰레기로 버리잖아요. 근데 쓰레기로만 생각했던 마늘 껍질이 위암, 유방암, 대장암 등의 암세포가 커지는 것을 막고, 게다가 그 값비싼 상황버섯만큼 암세포 억제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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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몰랐던 마늘 껍질의 놀라운 건강 효능

이미 ‘마늘’은 슈퍼푸드로 불리며 암에 좋은 식품으로 많이 알려졌었죠. 하지만 최근 한 연구팀이 마늘이 아닌, 버려지기 일쑤였던 ‘마늘 껍질’의 암세포 억제 효과에 주목했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70% 에탄올을 이용해, 마늘 껍질에서 추출한 물질의 항암효과를 살펴봤는데요. 그 결과 마늘 껍질 추출물이 폐암ᆞ위암ᆞ유방암ᆞ간암ᆞ대장암 세포 등 다양한 암세포에 대한 억제 효과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유방암ᆞ간암 세포에 대해선 마늘 껍질이 적은 양으로도 상당한 항암 효과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유방암 세포의 경우 억제율이 90%에 달해 제일 강력한 항암효과 보였고요. 이어서 간암은 87%로 역시 높습니다. 다음으로 위암세포는 71%에 억제율을 보였다고 합니다.

2. 적은 양의 마늘 껍질로도 상황버섯 만큼 암세포 억제에 효과적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 적은 농도의 마늘 껍질 추출물의 암세포 억제 효과가 고농도의 상황버섯 추출물만큼이나 뛰어난 효과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상황버섯은 유방암ᆞ폐암에 대해 항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암환자들에게 잘 알려진 약용 버섯이죠. 값도 상당히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상황버섯효능, 건강식품, 건강기능식품, 건강보조식품, 남성건강식품, 갱년기, 김정문알로에, 여성건강식품, 글루코사민, 혈액순환개선제, 흑마늘, 공진단, 후코이단, 석류, 종합비타민추천, 오메가3, 프로바이오틱스, 여에스더유산균, 크리스찬한센, 덴마크유산균, 세노비스슈퍼바이오틱스, 스피루리라, 차가버섯, 꽃송이버섯, 영양제추천, 천연비타민추천, 루시아, 칼로바이. 그동안 그냥 버렸던 마늘껍질이 비싼 상황버섯만큼이나 암에 좋다니 참 귀가 솔깃하는 소식이죠? 근데요, 사실 마늘 껍질이 암에만 좋은 게 아닙니다. 똥배~ 즉 몸속의 내장지방을 없애는 데도 좋다네요.

3. 지방간 위험 2배, 내장지방 없애는 마늘 껍질의 효능

마늘껍질은 암세포를 죽이는데도 좋지만, 내장지방에도 효과적입니다. 마늘 껍질의 효능을 정리해보면요. 마늘 껍질은 마늘 알맹이보다 식이섬유 함량이 4배가량 높아요. 폴리페놀 함량은 알맹이의 7배, 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효과도 1.5배나 뛰어났습니다. 내장지방은 지방간 위험을 2배로 높이는데, 마늘 껍질을 말린 가루는 흔히 배불뚝이라 불리는 뱃살 내장지방을 없애는데도 좋다고 합니다.

4. 마늘 껍질 활용법 2가지

사실 마늘 껍질을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내 버렸던 껍질을 활용하자니 활용법이 생소하죠? 비교적 쉬운 2가지 활용법이 있습니다. 마늘껍질을 잘 벗겨내 냉동실에 보관하다 양파껍질 등 각종 채소의 껍질과 함께 섞어 육수를 내면 조미료 없이도 깊은 맛을 낼 수 있죠. 또 마늘 껍질을 살짝 볶아서 물에 달여 마시거나 빻아서 끓는 물을 부어 마늘차로 마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954.html
kolaswqetsrq 11.02 09:57
○ 와인과 양파

○ 와인과 양파

삼성병원 암센터 담당교수가 보내준 내용입니다. 시간되실 때 읽어 보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건강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냥 시험 한번 해보세요... 그 엄청난 효과에 놀라게 된답니다....

(1) 양파를 4등분, 와인에 자박하게 잠기게 한다.

(2) 2~3일 상온에서 두고 숙성한다.

(3) 양파를 건져내고 와인을 냉장보관 한다.

(4) 소주 잔에 하루에 2~3 번정도 마신다.

와인 한병에 중간 크기의 양파 4~5개 정도가 알맞습니다.

효과

1. 당뇨병의 혈당치와 혈압도 정상화 된다.

2. 얼굴 화끈거림, 갱년기, 수족냉증, 고혈압이 정상

3. 무릎통증 해소

4. 관절완치, 몸무게 10kg 감량.

5. 이명증 개선, 침침한 눈이 밝아짐, 비문증(눈에서 모기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증상)이 해소.

6. 변비, 소변통, 두통, 백발주름살 감소.

7. 성기능 회복 및 증강.

이 같이 거짓말 같은 사실을 일본의 건강 잡지 장쾌(壯快)가 명예를 걸고 수십 페이지의 체험과 사례를 소개했다.

복용 후 갱년기, 생리 다시 시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352.html
kolaswqetsrq 11.02 09:58
귀에서 자꾸 소리가 나는 이유

귀에서 자꾸 소리가 나는 이유

주변은 조용한데 귀에서 난데없이 소리가 날 때가 있다. 이처럼 귀에서 소리가 들리는 현상을 ‘이명’이라고 하는데, 이명이 발생하는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이명은 간헐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을 정도의 이명만 경험한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명이 크게 거슬릴 정도로 빈도가 잦고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이처럼 불편을 끼칠 정도의 이명이 발생하는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

1. 쨍쨍한 이어폰 볼륨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 중 유독 볼륨을 크게 키워 듣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출퇴근 버스나 지하철 안에 있을 때 혹은 야외에서 운동할 때 외부 소음으로 볼륨이 커진다. 이러한 큰 소리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소음에서 기인한 청력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대체로 이러한 청력 손실은 일시적이며 72시간 내에 회복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시적이라 해도 청력에 문제가 발생한 만큼 이명이 올 수 있다. 이명은 난청이 있는 사람들에게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나 드릴 소리처럼 공사 현장에서 나는 소음도 청력 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 만약 이런 소음에 노출되는 공간에 있다면 소음 차단 효과가 좋은 귀마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2. 가득 쌓인 귀지

귀지를 일부러 팔 필요는 없다. 귀지는 외부 이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항균 작용을 하는 성분을 통해 오히려 귀 건강을 지키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귀가 잘 안 들린다거나 이명이 들린다면 귀지가 너무 쌓인 건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다. 집에서 귀지를 제거할 때는 귀이개를 위생적으로 다뤄야 하며 습관적으로 자주 파서는 안 된다. 또한, 가급적이면 이비인후과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귀지를 제거하는 편이 좋다.

3. 중이염이나 축농증

귓속에 염증이 생긴 중이염이나 콧속에 염증이 생기는 축농증이 있어도 이명이 나타날 수 있다. 중이염이나 축농증 등이 이명 발생 원인으로 추정된다면 병원 진료를 통해 항생제 처방을 받아 증상 완화와 이명 증상 개선을 시도해 볼 수 있다.

4. 특정 약물 복용

그런데 항생제가 오히려 이명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항생제, 항염증제, 이뇨제 등 일부 약물의 부작용으로 이명이 나타나기도 한다. 퀴닌 성분의 약들도 이명을 발생시킬 수 있다. 특정 약물을 복용 중인 상태에서 이명이 나타날 땐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약의 종류를 바꿔보도록 한다.

5. 두부 손상

지나가다가 머리를 벽에 박은 이후 이명이 나타난다는 사람들도 있다. 머리에 손상을 입으면 고막 뒷부분에 피가 나고 이것이 이명을 일으킬 수 있다. 보통 6주 정도의 회복 기간을 거쳐 청력이 회복되면서 이명도 사라진다. 넘어져 뇌진탕을 입었을 때도 청력 손실, 어지러움증 등과 함께 이명이 나타날 수 있다.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회복되지만 며칠이 지나도 청력이 회복되지 않고 이명이 계속된다면 병원 검사가 필요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331.html
kolaswqetsrq 11.02 09:59
화장실에서 절대 하면 안되는 습관

화장실에서 절대 하면 안되는 습관

❶ 변기 뚜껑 열고 물 내리기

배변 후 물을 내릴 때 미세한 물방울이 튀면서 그 안에 있던 세균이 온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이는 변기와 가까운 수건이나 칫솔 등의 물건이 세균이 노출되도록 하는 위험한 습관이다. 실제 한 실험에 따르면 뚜껑을 닫지 않고 변기물을 내렸을 때 물이 사람 눈높이에 위치한 곳에 튀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변기 뚜껑을 닫아 놓는 것이 싫다고 해도, 물을 내릴 때만이라도 닫고 내리자.

❷ 배변 시 장시간 스마트폰 보기

화장실에 가서 스마트폰을 가지고 가서 오랜 시간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항문 건강에 치명적인 배변 습관이다. 앉자 마자 변을 보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면 상복부의 압력이 항문에 부담을 주어 혈액순환을 방해한다. 이러한 습관은 치핵 또는 치질을 유발한다. 따라서 화장실은 규칙적으로 이용하되 그 시간은 5분 이하로 하는 것이 좋다.

❸ 화장실 문 손잡이 방치하기

문의 손잡이는 집에서 사람 손이 가장 많이 닿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서 여러 사람의 손에 있던 각종 세균과 이물질 등을 옮기기도 매우 쉽다. 하지만 이런 세균이 득실한 문손잡이를 주기적으로 깨끗이 닦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특히 화장실 문 손잡이는 더욱 청결히 관리할 필요가 있지만 화장실 청소를 할 때도 변기나 레버는 꼼꼼히 하면서 손잡이는 빼먹을 때가 많다. 어쩌면 변기보다 세균이 더 많을지도 모르니 앞으로는 문 손잡이도 꼼꼼히 청소하도록 하자.

❹ 샤워커튼 청소 안 하기

문 손잡이와 마찬가지로 간과하기 쉬운 것이 샤워 커튼이다. 샤워 커튼에는 우리 몸을 씻을 때 씻겨져 나온 유기물이 뒤섞인 비누 거품들이 튀어 남는다. 더욱이 접히기 쉬운 샤워 커튼이 많은데 이는 세균 번식의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따라서 곰팡이가 떠다니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싶지 않다면, 주기적으로 샤워커튼을 청소해주자. 커튼 봉에서 샤워커튼을 분리해 락스 푼 물에 푹 담가둔 뒤, 깨끗해지면 커튼 봉에 걸어 샤워기로 세척하면 된다.

❺ 환기 안 하기

적절한 환기는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고, 필요한 환기량을 확보하게 되어 몸에 이롭다. 화장실은 밀폐되어 공기순환이 어렵고 항상 습기가 차기 쉽다. 겉으로는 깨끗해 보일지 몰라도 세면대, 변기, 욕조 등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곳에 세균과 박테리아가 항상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환기의 중요성은 더욱 중요해진다. 욕실내 습기가 잔류하면 이는 곰팡이의 번식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욕실에서 악취와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환기를 간과하지 말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015.html
kolaswqetsrq 11.02 09:59
몸을 망가뜨리는 5가지 안 좋은 자세

몸을 망가뜨리는 5가지 안 좋은 자세

❶ 엎드려 자는 자세

목뼈, 등뼈, 허리뼈에 스트레스를 줘 수면 자세 중 최악의 자세로 꼽힌다. 굽혀진 허리는 척추에 비정상적인 압력을 가해 목, 허리, 어깨 통증을 유발한다.

❷ 양반다리 자세

무릎이 130도 이상 꺾여 무릎 관절에 체중의 7~8배 되는 힘이 실리게 된다. 서있을 때보다 2배 이상의 힘이 허리에 실려 자세가 구부정해진다. 이는 척추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❸ 허리 숙이는 자세

머리를 감을 때 허리를 숙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허리를 숙이는 자세는 허리 디스크를 초래할 수 있어 위험하다.

❹ 턱 괴는 자세

무심코 턱을 괴는 습관은 두통, 시력 장애, 어지럼증까지 초래할 수 있다. 이 자세를 오랜 시간 유지하면 안면 비대칭이 나타날 수 있으며 목의 통증을 유발한다.

❺ 발목 꼬는 자세

발목을 꼬면 골반이 틀어져 척추도 틀어진다. 무릎이 엉덩이 높이보다 낮은 경우 자세가 불편해 발목을 꼬는 경우가 많다. 이때 발밑에 받침대를 놓아 무릎을 엉덩이 높이보다 높여주면 발목을 꼬는 자세를 방지할 수 있다

건강해 지는날까지 파~~이팅 하세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_56.html
kolaswqetsrq 11.02 10:00
○ 우려낸 ‘녹차물’, 이렇게 활용한다

○ 우려낸 ‘녹차물’, 이렇게 활용한다

녹차가 몸에 좋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녹차에는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 등 항산화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 노화방지에도 좋을 뿐 아니라 콜레스테롤과 혈당을 낮추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녹차에는 비타민C가 레몬의 5~8배 들어 있어 피부미용에도 좋다. 항암 효과에 대한 여러 연구결과도 이어지고 있다.

몸에 좋은 녹차지만 차를 잘 마시지 않는 이들이라면 녹차와 가깝게 지낼수 없다. 방법은 있다.

바로 ‘녹차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녹차물은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으며, 피부미용이나 냄새 제거에도 효과적이다. 녹차물을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몇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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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녹차물로 밥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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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지을 때 녹차물을 사용하면 항산화 성분이 크게 증가한다. 조금만 더 신경써서 녹차물을 미리 우려놓는다면 몸에 좋은 녹차 건강밥이 완성된다.

최근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밥을 지을 때 녹차 분말 3g을 푼 녹차물을 넣으면 항산화 성분이 크게 증가했다. 정제수로 지은 밥(2.1mg/100g)과 비교해 녹차물로 지은 밥의 폴리페놀 함량(85.1mg/100g)은 40배로 많았다. 플라보노이드 함량 역시 정제수로 한 밥에서는 0.13mg/100g에 불과했지만 녹차물에서는 32.9mg/100g로 높게 나타났다. 식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녹차물밥은 녹차를 우려낸 물에 소금으로 간을해 조금 질게 밥을 지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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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죽에 넣기

녹차물은 죽에 넣어도 별미가 된다. 쌀알이 풀어지기 시작할 때 녹차 3큰술 정도를 넣고 끓이면 녹차 특유의 고운 빛깔이 돌고, 향기도 그윽해진다.

3. 세안

녹차물 세안은 미백과 피부 진정, 부기에 효과가 있다. 1.5L짜리 생수에 녹차 티백을 두 개 넣어 충분히 우려낸 뒤 냉장고에 넣어 놓는다. 아침저녁으로 녹차물로 세안하면 피부미용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

4. 악취제거

녹차는 항균효과가 있어 악취제거에 좋다. 녹차물로 족욕을 하면 발 냄새를 완화나는데 도움이 된다. 주방용기의 악취제거나 살균에 사용해도 좋다. 컵에 녹차물을 담고 전자렌지에 1~2분간 가열하면 냄새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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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두피 진정

녹차는 예민한 두피를 진정하는데도 좋은 식품이다. 샴푸 후 마지막 헹굼을 찬 녹차물로 사용하면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322.html
kolaswqetsrq 11.02 10:01
스킨십이 주는 놀라운 건강 효과

스킨십이 주는 놀라운 건강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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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을 잡아, 손 잡아줘요, 라는 가사가 있듯이 연인 사이에서도 가장 설레던 기억이 용기내 처음으로 잡았던 손 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손을잡는 등의 스킨십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볼 수 있는데, 스킨십이 단순 애정표현의 방법 뿐만 아니라 동시에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스킨십을 함으로서 나타는 건강 효과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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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스트레스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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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받으면 코스티솔 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누군가와 손을 잡을 때 코르티솔이 감소해 스트레스 해소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결과로 스트레스가 야기하는 불안과 초조, 만성두통, 불명증 등을 개선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결관의 과도한 수축을 막아 심장과, 심혈관계, 뇌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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❷ 신뢰감 상승

손을 잡는 등의 스킨십은 옥시토신을 증가시키는데 옥시토신은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며 뇌에 많이 분비될 경우에 상대방을 향한 애정과 신뢰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연인과 손을 잡았을 때 안정감을 느끼고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상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연인 외에도 아이에게 칭찬을 해줄 때 스킨십을 함께 하면 안정감과 부모의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❸ 심리적 안정감

갑자기 무언가에 놀랄 때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손을 잡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갑자기 빨라진 심장 박동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반사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킨십을 할 때 스트레스 호르몬이 감소하듯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 또한 있기 때문입니다.

❹ 통증완화

보통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될 때 누군가의 손을 잡게 되는데 이는 안도감과 유대감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통증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출산 직전의 임산부가 곁에 있는 물건을 붙잡거나 남편의 손을 잡는 것도 통증을 없애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011.html
kolaswqetsrq 11.02 10:02
망가진 폐 살리는 기적의 천연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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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폐 살리는 기적의 천연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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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리향

백리향의 항생제 성분은 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줄여주며, 백리향 잎사귀와 에센스 오일은 가슴 속 담을 완화해주는 천연 치료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2. 감초뿌리

감초 뿌리는 진정, 항염, 충혈 완화 효능이 있어 디톡스 효과가 있으며 기도의 막힘을 완화해줍니다.

3. 마늘

마늘의 높은 황 계열 성분은 항산화, 항염효과가 뛰어나 폐 건강을 보호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4. 자몽

자몽에 함유된 활성 성분은 종양 예방에 꼭 필요한 세포의 악성화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어 꾸준히 섭취시 폐 질환 뿐 아니라 여러 암발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5. 당근

당근에는 비타민 A, C, E, K 가 풍부해 상피세포 및 조직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주며, 니코틴과 같이 해로운 성분을 중화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6. 생강뿌리

생강 뿌리의 항염 및 항생 성분은 혈관을 팽창시키고 과도한 점액을 제거해주는 효과가 있어 폐 건강에 도움을 줍니다.

7. 알로에 주스

천연 알로에 주스는 폐를 깨끗하게 만드는 활성 성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강력한 정화효능을 갖고 있습니다. TIP 알로에 주스에 레몬즙이나 꿀을 넣어 드시면 더욱 좋습니다.

8. 오레가노

로즈마리닉산, 카르바크롤 농도가 높은 오레가노를 섭취하거나 아로마테라피로 사용하면 독소 제거에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9. 민트

민트에는 염증을 줄여주는 활성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흡연자의 폐를 정화하는데 효과적입니다.

10. 유칼립투스

유칼립투스는 오랜 기간 간으로 인해 유발된 염증과 발진 진정에 사용되었던 치료제로 흡연자에게 좋은 효과가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029.html
kolaswqetsrq 11.02 10:03
당신 몸에 쌓인 나트륨 제거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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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몸에 쌓인 나트륨 제거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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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음식을 짜게 먹으면 당뇨나 고혈압, 뇌, 심장질환 등에 취약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어도 이미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기는 쉽지 않는데요. 이번시간에는 우리몸에 쌓인 나트륨 배출을 돕는 7가지 식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❶ 브로콜리

브로콜리는 나트륨 배출에 효과적인 식품으로 꾸준히 섭취하면 심장과 동맥의 혈압을 떨어뜨리고 산화 스트레스가 감소되는 효능도 같이 볼 수 있습니다.

❷ 배

배는 고혈압을 유발하는 체내 잔류 나트률을 배출, 혈압을 조절하는 작용이 뛰어난 음식이며, 수용성 식이섬유인 펙틴이 풍부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데 도움을 줍니다.

❸ 검은콩

검은콩에는 혈관 확장을 돕는 칼륨이 100g당 1,240mg으로 다량 함유되어 있어 나트륨 배출 및 혈액 정화, 해독 작용에 좋은 효능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항산화제, 마그네슘, 엽산, 식이섬유가 풍부해 콜레스테롤과 ᄒᄅ당을 낮추는데 좋은 효과가 있습니다.

❹ 양파

칼륨이 풍부한 대표적 음식 양파에는 퀘르사틴 성분이 풍부해 나트륨을 배출하고 혈전과 콜레스테롤을 분해하며 혈관을 깨끗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❺ 바나나

바나나 1개에는 사과의 4배에 달하는 500mg의 칼륨과 식이섬유, 단백질이 풍부해 나트륨 배출에 좋습니다.

❻ 감자

감자의 갈륨 함유량은 밥의 16배로 나트륨 배출을 촉진하고 혈압을 낮춰주는 효능이 있어 혈압과 동맥경화 환자들에게 특히 좋은 효능이 있습니다.

❼ 키위

키위에는 100g 당 200mg의 칼륨이 함유되어 있어 매일 3개씩 섭취할 경우 혈압을 낮추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835.html
kolaswqetsrq 11.02 10:04
○ 장수를 위한 10가지 좋은 습관

○ 장수를 위한 10가지 좋은 습관

진리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멀리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려운 것은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나약함과 습관의 문제일 뿐입니다. 장수의 비결은 바로 습관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묵은 습관을 떨치고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장수와 건강의 비결입니다.

1. 배고플 때만 먹는다.

야생 동물은 배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습니다. 배고프지 않다는 것은 먹은 음식의 소화 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 음식을 먹으면 그 전에 먹은 음식과 새 음식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효가 일어납니다. 그 과정은 독소를 유발시킵니다.

2. 매일 날야채와 과일. 요구르트를 먹는다.

날야채와 과일에는 변비를 막고, 노폐물과 독소를 내보내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섬유질,두뇌에 영양이 되고 호르몬 분비를 원할하게 하는 엽록소, 그리고 생명의 기운, 프라나(氣)가 가득 들어있습니다.

3. 육체적인 일이나 운동을 매일 충분히 한다.

충분할 정도라는 것은 땀을 흘릴 수 있는 정도를 말합니다. 땀을 흠뻑 흘리며 일하면 온몸에 신선한 공기가 가득 차고 내부 기관들이 활성화됩니다.

4. 규칙적으로 단식을 한다.

한 달에 두 번 단식을 해서 몸의 독소를 내보내고 소화 기관을 쉬게 합니다.

5. 몸과 마음. 영혼을 고양시키는 수행을 한다.

꾸준하고 규칙적인 수행으로 몸과 마음, 영혼을 정갈하고 고양된 상태로 유지합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자기 종교의 가르침에 충실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6. 물을 충분히 마신다.

정상적인 신체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3리터 이상의 물을 마셔야 합니다. 조금씩 자주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7. 매일 충분한 양의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는 것은 우주의 기운, 생명 에너지를 받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얕은 호흡이 아니라 허파를 완전히 비우고 가득 채우는 완전호흡을 익히는 것도 필요합니다.

8. 이완과 휴식을 충분히 한다

사람의 활동은 일과 휴식의 일정한 리듬을 필요로 합니다. 단식, 수면 등은 각기 다른 활동이지만 모두 이완과 휴식을 위한 것입니다.

9.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한다.

매일의 봉사는 마음에 있는 이기심을 그때그때 사라지게 합니다. 봉사는 마음에 쌓인 독을 풀어내는 것입니다.

10. 좋은 도반(道伴)들과 만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공부하고 공동의 복지를 위해 토론하고 노력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를 아름답게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95.html
kolaswqetsrq 11.02 10:05
○ 통풍에 좋은 약초

○ 통풍에 좋은 약초

통풍이란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진 질병으로 몸 속에 요산이 쌓여 발병되게 됩니다.

통풍은 그 이름 값을 하는 질병으로 한 번 발병하게 되면 큰 고통을 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풍 진단을 받거나 몸 속 요산 수치에 이상이 생겼을 때는 즉각 관리를 해주셔야 합니다.

통풍을 관리하는데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오늘은 그 중 하나인 통풍에 좋은 약초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약초의 경우 체질에 따라 궁합이 맞을 수도, 안 맞을 수도 있으니 약초를 섭취하시기 전에는 자신의 체질과 잘 맞는지 안 맞는지 잘 알아보고 드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1. 개다래

산에 올라가면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는 개다래는 지역에 따라 말다래, 쥐다래 등으로 불립니다. 개다래는 그 열매를 약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끓는 물에 말린 개다래를 넣어 끓여 먹습니다.

이런 개다래가 통풍에 효과를 보이는 것은 몸에 쌓여 통풍의 원인이 되는 요산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여 통풍을 예방함은 물론 통풍 치료에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2. 옥수수 수염

옥수수 수염 또한 개다래와 마찬가지로 끓는 물에 넣어 끓여 마시면 되는데, 옥수수 수염이 통풍에 좋은 이유는 이뇨 작용을 활발하게 하여 몸 속에 있는 요산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옥수수 수염은 통풍 말고도 좋은 작용을 하는데, 예를 들어 옥수수 수염을 먹게 되면 신장염, 방광염, 전립선염등 이뇨 기관의 질환들이 개선됩니다.

3. 미나리

미나리는 그 독특한 향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채소입니다. 만약 자신의 입 맛에 미나리가 잘 맞다면 통풍을 개선하는데 이보다 괜찮은 것이 없습니다.

미나리의 경우 통풍을 일으키는 퓨린 성분이 거의 들어 있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저퓨린 음식이며 여기다 알카리성이여서 몸 안에 쌓여 있던 요산을 몸 밖으로 배출해 통풍을 개선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4. 견우자

나팔꽃 씨인 견우자 또한 통풍에 좋은 약초입니다.

견우자는 볶은 것과 볶지 않은 것을 섞어 가루를 낸다음 따뜻한 물에 섞어 마시는 방법으로 섭취합니다.

견우자가 통풍에 좋은 이유는 혈액 순환을 도우면서 몸 안에 있는 요산과 독소를 배출시키는데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다만 견우자는 독성을 가지고 있어 신체가 허약하거나 몸이 찬 사람이 드시기에는 부담이 있는 약초입니다.

5. 국화꽃

향과 맛, 건강 모두 동시에 잡고 싶다면 국화꽃을 추천드립니다.

보통 국화꽃은 말린 후 차를 끓여 마시는데 불면증에 효과가 있어 밤에 잠 못드는 분들이 저녁에 드시기에 좋습니다.

이런 국화차가 통풍에 좋은 이유는 몸에 열을 내리는 작용과 몸 속의 염증을 죽여주는 소염 작용, 그리고 몸 안에 쌓인 독소를 해독하고 배출해주는 효과가 있어 통풍 개선에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6. 질경이

질경이라는 약초는 개인적으로 저평가된 약초라 생각합니다.

아마 그 이유는 보도 블럭 사이에서 볼 수 있을만큼 흔하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한데, 질경이는 보도 블럭 사이에서 자라고 살 수 있을만큼 생명력도 강하고 건강에도 좋습니다.

질경이가 통풍에 좋은 약초인 이유는 이뇨 작용을 촉진하여 몸 속에 축적된 요산을 배출시키는데 효과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도 요도염, 진해거담, 해열 작용등 다양한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7. 익모초

익모초는 엄마에게 좋은 약초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통풍을 앓고 계신 여성분들이 드시면 더더욱 좋습니다. 익모초의 경우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배를 따뜻하게 하여 부인병을 예방하고 치료합니다.

거기다 소염작용이 있어 통풍으로 인해 생긴 염증을 치료해주어 통풍을 점차점차 개선시켜 나갑니다. 익모초는 끓는 물에 넣어 약한 불로 달여서 먹습니다.

8. 백선

백선은 자라풀, 수별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식물입니다.

백선은 그 꽃이 예쁘고 얕은 물에서 자라기에 관상용으로 많이 길러지는데 일부 민간에서는 민간요법으로 통풍, 황달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민간요법을 보면 통풍이 생겼을시 백선의 뿌리를 달여 먹습니다.

건강해 지는날까지 파~~이팅 하세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916.html
kolaswqetsrq 11.02 10:06
생강이 여자에게 보약인 이유

생강이 여자에게 보약인 이유

1. 몸을 따뜻하게 해 여성 질환을 예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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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여성 질병은 몸에 냉기가 흐를 때 발생한다. 생강은 부신수질이라는 호르몬을 자극해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하고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순환을 도와 몸을 따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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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이 높아지니 여성 질병은 사라지고 혈액순환이 원활해 피부까지 좋아지니 1석 2조다.

2. 면역력을 강화시켜 잔병치레를 막는다

체온이 1°C 내려가면 면역력은 30% 이상 떨어져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쉽다.

때문에 감기에 걸렸을 때 생강차를 마시게 해 체온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체온을 높이기 위해 생강을 먹는 것은 아니다. 생강에 들어 있는 성분은 우리 몸속의 백혈구 수를 늘리고 혈액의 활동을 촉진하며 면역력을 강화시킨다.

3. 수분 조절로 부기를 제거한다

우리 몸은 60% 이상이 수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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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의 수분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몸 안에 물이 쌓이이면 수독 현상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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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체가 자주 붓고 상체보다 하체에 살이 더 많은 것은 모두 수분 때문이다. 생강은 몸 안의 각종 기관을 자극해 땀을 내고 소변을 잘 보게 해 부기를 빼는 효과가 있다.

4. 가래·기침을 없애는데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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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의 매운맛을 내는 성분은 진저롤과 쇼가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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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성분은 몸의 찬 기운을 밖으로 내보내 감기를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생강은 가래를 없애고 뇌에서 기침을 유발하는 중추신경에 작용해 기침을 멈출 수 있게 돕는다. 단, 이미 감기가 많이 진행된 상황에서 기침으로 인해 편도선이 부었을 경우 따뜻한 성분의 생강은 피하는 것이 좋다.

5. 좋은 열은 올리고 나쁜 열은 낮춘다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음식이긴 하지만 무작정 열을 올리는 음식은 아니다.

생강에는 아스피린의 80% 정도 해열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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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걸렸을 때 열을 발생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어 해열 작용을 하는 것이다. 몸이 차가울 때는 따뜻하게 하고 몸에 열이 많이 날 때는 그 열을 낮추는 자연 온도 조절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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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살균 기능으로 몸속 세균을 내쫓는다

생강은 감기 바이러스나 폐렴을 일으키는 세균류뿐만 아니라 무좀의 원인인 진균에 대한 항균 능력도 뛰어나다.

원형탈모증이 있는 머리나 무좀이 발생하는 발에 생강즙을 바르면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으며, 몸속 회충이나 사상충 같은 기생충에도 효과적이다.

7. 혈중 콜레스테롤을 없앤다

여성들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기 위해 먹는 것 하나하나도 꼼꼼하게 선택한다.

그러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은 음식을 먹는 것도 좋지만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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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의 진저롤은 담즙 분비를 촉진해 피 속의 콜레스테롤을 없애는 효능이 있다. 다이어트를 결심했다면 생강을 빠뜨리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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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노화 방지 효과가 있다

동안은 모든 여성의 로망이다.

수많은 안티에이징 화장품을 바르는 것도 좋지만 양념 중 최고의 안티에이징 제품인 생강을 꾸준히 섭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체에 활성산소가 발생하면서 노화가 오는데, 생강은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 노화를 예방한다.

활성산소가 억제돼 노화 예방은 물론 잔병치레도 적어지니 중년 여성들에게 필수다.

9. 진통제보다 생강이 낫다

머리가 아프거나 약간의 통증을 느낄 때 우리는 진통제를 찾는다.

특히 여성의 경우 매달 겪는 생리통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은 꼭 진통제를 먹게 된다. 하지만 이런 화학약제의 경우 위염이나 위궤양을 일으킬 수 있다.

생강은 아스피린이나 인도메타신 등의 소염·진통제와 거의 비슷한 효과를 내는데, 화학약제와 달리 위벽을 보호한다. 진통제를 먹기 전에 생강을 먹는 것이 몸을 지키는 방법이다.

10. 혈액 응고를 억제한다

나이가 들수록 혈관과 관련된 질병이 자주 발생한다. 때문에 중년 여성의 경우 뇌경색과 심근경색, 고혈압은 반드시 정기적으로 체크해야 한다.

혈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데도 생강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생강이 혈소판의 응집을 억제해 혈전을 막아 뇌경색과 심근경색, 고혈압을 예방 및 개선한다는 것.

11. 생강을 먹으면 2개의 심장 부럽지 않다

건강한 심장의 필수 조건은 일정한 혈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강은 심장을 강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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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근을 자극해 수축력을 높이지만 맥박을 천천히 떨어뜨려서 혈압을 10~15mmHg 정도로 낮춰 일정하게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강심제인 지키타리스와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하니 심장에 이보다 더 좋은 친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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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소화 흡수 능력을 강화한다

소화불량은 여성들의 대표 질환 중 하나다.

1년 3백65일 착용하는 브래지어로 인해 소화불량이 올 수도 있고, 스트레스와 냉증 등 원인은 다양하다.

오랫동안 소화가 잘 안 될 때 생강을 먹으면 도움이 된다. 생강은 위장 내벽의 혈액순환을 도와 위장 활동을 촉진, 소화 흡수력을 높인다.

13. 식중독을 미리 예방할 수 있다

조금만 잘못 먹으면 쉽게 식중독에 걸리고 위궤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생강에는 항궤양 성분이 있어 속앓이를 하는 이들에게 보약과 다름없다.

위궤양의 원인균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비롯해 대장균과 살모넬라균, 황색포도상구균 등의 식중독균을 모두 없애 생강만 있다면 식중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14. 입덧, 생강만 있으면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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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의 가장 큰 골칫덩이는 바로 입덧이다. 시도 때도 없이 매스꺼움이 올라오니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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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의 매운맛 성분인 진저롤은 매스꺼움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어 임신부에게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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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산부인과 학회지에 따르면, 입덧이 심한 30명의 임신부에게 매일 1g의 생강 분말을 먹게 했더니 매스꺼움이 사라졌다고 한다. 속이 안 좋거나 멀미, 입덧을 할 경우 생강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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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여자 그리고 엄마를 건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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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기능을 높이고 싶다면 생강이 특효다.

남자의 경우 정자를 조금 더 빨리 움직이게 하며, 여자의 경우 생리불순을 치료하고 임신 가능성을 높이는 등 특히 여자의 생식 기능에 좋다.

또한 임신 중에 꼭 필요한 영양소인 오메가 3와 칼슘, 엽산, 마그네슘 등이 과일보다 많이 들어 있어 엄마가 되고 싶다면 생강을 꼭 먹어야 한다.

16. 어지러움과 현기증을 예방한다

여성 대다수가 한 번쯤은 빈혈이나 현기증을 겪어본 경험이 있다.이는 귀 속의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어지러움을 느끼는 경우일 확률이 높다.

생강은 귀 속의 혈액순환을 촉진해 현기증과 귀 울림을 예방하므로 어지러움이 느껴질 때마다 생강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

17. 우울증을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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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지만 중년 여성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갱년기 때문이다. 갱년기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생강이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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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에는 기를 열고 우울한 기분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어 한방에서는 반하후박탕에 생강을 넣어 우울증 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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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몸 안을 깨끗하게 정화한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몸 안을 깨끗하게 할 수는 없지만, 꾸준히 몸속 독소를 배출해 정화시키는 것이 건강에 좋다. 하지만 오염된 피, 음식물 독과 체액으로 인한 독소를 배출시키는 것인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럴 때 생강을 이용하면 혈액을 순환시켜 발한, 배뇨, 배변을 촉진, 독소를 몰아내 몸 안을 깨끗하게 정화 시킬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120.html
kolaswqetsrq 11.02 10:07
노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주범

노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주범

•무엇일까?

▶ 노화시키는 가장큰 주범은?

1 게으름

2 오줌물

3 스트레스

4 누적피로

누워서 잠을 잘 때 방광(肪胱)에 오줌물이 쌓이면 노화의 속도는 빠르게 진행된다. 그 오줌물을 빼내는 방법은 단 한가지 새벽에 일어나 소변을 보는 것.

그리고 다시 물 마시는 것.

 "
정답은 오줌물 이나 오줌을 싸기 싫어서 다리 오그리고 자는 새벽의 당신의 모습 게으름 도 한 몫을 한다는 것. 누적이 되면 한 방울의 물도 바위를 뚫어 버린다. 그것이 세월의 힘이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실천하는 것이다. 밤에 잠을 자다가 새벽에 한번 일어나서 소변을 보는일 너무나 중요하다. 아니 중요함 정도를 벗어나 누구나 지켜야 할 철칙이다.
",

얼굴에 기미가 생기지 않게하려면, 심장이 아프지 않게하려면, 방광의 센서가 작동되면 잠에서 빨리 깨어나 소변을 보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삶이며, 병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이다. 방광의 센서가 작동하여 뇌에 신호를 전달하였는데 게으름을 피우게 되면 결국 요산이 온 몸으로 퍼져 일어나 보니 병을 얻어 몸이 나른하고 일어나기 조차 싫은 경우가 있다.

이것이 바로 새벽에 병을 얻느냐 아니면 병을 쫓아내고 건강한 체질로 만드느냐는 본인의 생활의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가 여름에 시원한 수박을 먹고 잠을 자게 되면 고민하게되는 것이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잠을 깨우는 소변보는 일을 상기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박 때문에 잠을 깨서 소변을 보고 다시 잠을 자고 일어나면 평상시 다른 날보다 기분이 상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수박의 기능중 하나가 이뇨작용 에 있는데 이것은 다름이 아닌 바로 요산을 방지 해주는 것이다. 즉 요산이 방광에서 흘러나와 우리 몸 안에 쏟아지는 것을 방지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 한 컵을 자기 전에 마시는 것과 새벽에 소변을 보고 다시 물 한 컵을 먹어 주는 것. 이것이야 말로 우리 몸에 가장 좋은 보약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습관이 없었다면 당장 실천해야 한다. 오늘 저녁부터. 그리고 잠자기전 4시간 전에 반드시 식사를 끝내라는 것도 다시 한 번 잊지 말고 열심히 따라 하길 바란다.

1. 신진대사 작용

피의 흐름은 결국 물의 흐름이고 신진대사 작용을 원활하게 하려면 발끝의 온도가 정상으로 변하여야 한다. 잠을 자다가 새벽에는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새벽녘에는 발끝이 가장 먼저 차가워짐을 알게 된다. 그러나 잠에 취해 있거나, 이불 속에서 게으름을 피우게되면 엄지발가락부터 요산이 쌓이게 된다. 그러나 이 한 컵의 물이 결국 온 몸의 혈관을 타고 들어가 새벽에 영양분 공급을 받지 못해 기력이 떨어진 세포들을 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2. 변비 개선 효과

물의 작용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것이다. 입안에서 대장까지 한 순간에 타고 들어가는 물이야말로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게하는 습관을 만들어 줄 것이다. 장을 비우고 아침에 일을 나서는 것은 뇌에 태양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이다.

3. 수면 작용

물을 마시면 다시 체온이 상승하여 단 30분을 더 자더라도 깊은 수면에 빠지게 된다. 만약 물을 마시지 않고 그냥 자게 되면 깊은 잠이 아니라 불안한 잠을 자 아침에 일어나면 더욱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새벽에 일어나서 소변보고 물 한 컵 마시는것은 보약 이라고 할 수 있다.

4. 청소 작용

물을 한 컵 마시는 것은 밤새 잠을 자면서 코로만 빠지는 노폐물을 입안부터 식도 위장에 이르기까지 가득한 가스를 청소를 해주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도 입에서 냄새가 덜나며 입안이 상쾌하다. 또 새로 유입된 물은 오래된 물을 밀어내고 혈액 속에서 새로운 피로 태어나게 된다. 이 혈액이 온 몸을 돌아 다니면서 청소작용을 하게 된다.

5. 체온 상승

새벽에 소변을 본 후 물을 한 컵 마시면 새벽녘 떨어진 체온이 다시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체온이 자하되어 방광의 센서가 작동하여 눈이 떠지지만 다시 물을 투입하게 되면 체온이 정상적으로 변하여 방광의 센서가 Off 상태로 꺼지게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005.html
kolaswqetsrq 11.02 10:08
무심코 지나치는 암 초기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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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지나치는 암 초기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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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늘어가는 암 발생률에 텔레비전에서는 시도때도 없이 암을 이겨내는 법, 암에 좋은 음식 등의 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많이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쌓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을 위해 의사들이 발표한 사전에 암을 포착할 수 있는 8가지 증상에 대해 소개한다. 만약 해당 징후가 계속된다면 꼭 병원에 가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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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리가 자주 아프다

배꼽 주위부터 시작해 등까지 심한 통증이 오면 췌장암일 가능성이 높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괜찮아지는 까닭에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속히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2. 가슴 부근에 덩어리가 만져 진다

한 쪽 팔을 위로 올린 뒤 다른 쪽 손가락으로 가슴 부근을 눌렀을 때 덩어리가 만져진다면 유방암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가슴에 계속된 통증이 있거나 붉어지면서 열이 난다면 빨리 병원을 가봐야 한다.

3. 소변 볼 때 피가 나온다

소변을 자주 보는데 잘 나오지 않거나 피가 섞여 나온다면 전립선암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암들에 비해 진행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4. 지속적으로 속쓰림을 느낀다

2~3주 이상 소화불량이 계속되고 복부에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위암일 위험성이 높다. 단순히 만성 위염이나 위경련이라고 생각해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기 발견이 중요한 암 중 하나이다.

5. 폐경 후 출혈이 있다

폐경 후에도 출혈이 있다면 자궁암을 의심해야 한다. 꼭 폐경 후가 아니더라도 냉이나 질 출혈이 자주 있으며 그때마다 생리통과 소화불량 증상이 있다면 병원을 가봐야 한다.

6. 대변에 피가 묻어있다

대변이 나올 때 검붉은 피가 나오거나 배변과 상관없이 피가 나온다면 대장암일 가능성이 높다. 치질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치질일 시 선홍색 피가 나오기 때문에 대장암과는 차이가 있다.

7. 목소리가 자주 쉬고 갈라진다

2주 이상 목소리가 쉬어 있고 계속 갈라진다면 후두암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후두암의 경우 목을 많이 사용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8. 밤에 계속 땀을 흘린다

잘 때마다 베개가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다면 림프종일 가능성이 높다. 연령이 낮을수록 치료가 쉽다고 하니 체중의 10% 이상이 갑자기 감소하거나 계속 발열 증상이 있다면 병원을 가봐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819.html
kolaswqetsrq 11.02 10:09
음주 후 절대 해서는 안되는 7가지

음주 후 절대 해서는 안되는 7가지

1. 음주 후 샤워와 사우나는 금물이다

술을 많이 마신 뒤 술을 깨기 위해 사우나에 들어가거나 찬물로 샤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뜨거운 물로 샤워하거나 사우나에 들어가는 것은 알코올로 인해 몸 안에 쌓인 열기를 외부로 발산시키는 것을 방해한다.

자칫 잘못하면 심한 구토를 일으키거나 의식을 잃고 졸도로 연결될 수 있다.

찬물로 샤워하는 것도 술을 깨도록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간(肝)이 포도당을 공급하는 데 방해한다.

게다가 찬물은 혈관을 수축시켜 혈관파열과 감기 등을 유발할 수 있다.

2. 음주 후에 술 깨는 약을 먹지 마라.

술 깨는 약은 잠시 동안 술에 취한 증상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술 취한 상태를 연장시킬 뿐이다.

술 깨는 약 대신에 물을 많이 마시는 게 좋다.

또 운동음료를 마셔 전해질을 보충해주고, 산도(酸度)가 낮은 오렌지 주스를 마셔 비타민C를 보충하고 혈당수준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3. 음주 후에 전기담요 위에서 자지 마라.

술을 많이 마시면 체온조절기능이 떨어져 체열발산이 많아져 썰렁함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보온을 해줘야 하는데, 전기담요를 쓰면 혈압이 높은 사람이나 협심증 등 심장과 뇌혈관 관련 질병이 있는 사람은 혈압이 더 높아져 증세가 악화될 수 있다.

음주 뒤에 추위를 느끼면 담요를 덮거나 따듯한 물을 마셔 온도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4. 음주 후에 운동도 삼가라.

알코올은 이뇨작용을 촉발시켜 음주 뒤에 체내 수분이 많이 빠져 나가 탈수현상을 일으키기 쉽다.

이때 운동을 해서 땀을 흘리면 탈수를 더욱 가중시킬 위험이 있다.

음주 후에 수영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음주 후 수영은 체열 발산을 더욱 증가시켜 어지럼증과 저혈당성 졸도 및 넓적다리 마비 등의 증상을 초래할 수 있다.

5. 음주 후에 해열소염제를 먹지 마라.

알코올은 여러 종류의 약품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독성물지를 생성시킨다.

음주 후에 소염해열제를 먹으면 간에 치료하기 어려운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꼭 해열제를 먹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음주한 다음날 새벽 1시간 전에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인 이부프로펜(Ibuporofen)를

먹는 게 좋다.

6. 음주 후에 커피와 진한 차를 마시지 마라.

차는 심장을 지나치게 흥분시키고 신장(콩팥)에 나쁜 영향을 준다.

탄산음료도 알코올 흡수를 빠르게 하기 때문에 간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급성 위염 등을 유발시킬 수 있다.

7. 음주 후에 곧바로 잠 자 지 마라

술을 마시고 곧바로 잠을 자면 인체의 신진대사가 느려져 알코올이 간에 머무는 시간을 늘림으로써 간에 부담을 많이 준다.

술 마신 뒤에는 찬물로 세수를 하고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한 뒤 자는 게 좋다.

술을 아주 많이 마시고 곧바로 잠에 들면 알코올중독에 빠져 깨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술을 지나치게 과음했을 때는 보호자가 옆에서 2시간 마다 술 취한 사람을 일어나게 해 술이 완전히 깰 때까지 따뜻한 물이나 꿀물을 마시게 하는 게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_93.html
kolaswqetsrq 11.02 10:09
○ 몸에 좋은 기름 3가지.. 종류별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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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에 좋은 기름 3가지.. 종류별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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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은 건강에 안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식물에서 추출한 ‘식물성 기름’은 혈관 속 노폐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해 건강에 좋다. 대표적으로 올리브유, 포도씨유, 카놀라유가 있다. 각 기름의 건강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는 활용법을 알아본다.

▶ 올리브유는 ‘샐러드 드레싱’으로

올리브유에 풍부한 불포화지방산은 동맥경화의 원인인 콜레스테롤을 몸 밖으로 내보낸다. 또한 강력한 항산화물질인 비오페놀도 들어있어 노화 방지에 도움을 준다. 올리브유는 다른 기름보다 발연점(기름을 가열했을 때 표면에서 연기가 발생하는 온도)이 낮아 튀김 요리보다는 샐러드의 드레싱으로 적합하다. 올리브유를 발연점 이상으로 가열하면 벤조피렌이라는 발암물질이 생성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올리브유를 샐러드에 뿌려 과일·채소와 함께 섭취할 경우 지용성 비타민의 영양 흡수율을 높일 수 있어 건강에 좋다.

▶ 포도씨유는 ‘볶음 요리’에

포도씨유는 불포화지방산 중에서도 ‘단일’불포화지방산이 더 많고 산화를 막는 ‘카테킨’이 들어 있어 다른 기름보다 산패가 느리다는 장점이 있다. 산패한 기름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나고 건강에도 좋지 않다. 포도씨유는 느끼한 맛이 덜하고 향이 은은해 볶음요리나 구이요리에 제격이다. 포도씨유를 고를 땐, 기름의 배합률도 확인하면 도움이 된다. 포도씨에서 기름을 추출하려면 상당량의 포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 중에는 콩기름이나 옥수수유를 상당량 혼합한 제품이 있을 수 있어 이런 제품은 피하는 게 좋다.

▶ 카놀라유는 ‘튀김 요리’에

카놀라유는 유채꽃씨를 압착해 뽑아낸 기름으로 다른 기름에 비해 포화지방이 적다. 또한 불포화지방산의 일종인 리놀렌산이 특히 풍부해 혈관 노화·동맥경화 등 각종 질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 당뇨병 환자가 카놀라유를 먹으면 혈당 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카놀라유는 발연점이 약 250도로 높아 튀김 요리나 구이 요리에 사용하면 좋다. 다만, 아무리 열에 안정적이어도 높은 온도에서 지나치게 오래 가열하면 트랜스지방량이 늘어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317.html
kolaswqetsrq 11.02 10:10
심장 건강법 10가지

심장 건강법 10가지

심장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단순 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들이 많이 있는데요. 이 모든 방법을 다 시도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에게 맞는 몇 가지라도 실천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호두를 먹어라

미국 예일대 연구팀에 따르면,하루에 호두 반 컵을 먹으면 혈관 기능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두에는 염증을 퇴치하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2. 맥박수를 측정하라

아침에 일어나서 슬리퍼를 찾기 전에 맥박부터 재보라. 건강한 사람은 맥박수가 분당 70이나 그 이하여야 한다. 맥박수가 일주일이나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점점 높아진다면 진단을 받는 게 좋다.

3. 오염된 공기를 피하라.

미세먼지로 오염된 공기를 마시면 경동맥(목동맥)의 벽이 두꺼워져 심장마비 위험이 커진다. 새벽에 먼지 농도가 가장 심하기 때문에 이때를 피해 운동은 오후에 하는 게 좋다.

4. 악력 훈련을 하라

연구결과, 악력기로 하는 손 운동을 4주 정도만 해도 혈압이 10% 정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운동은 혈관 기능을 향상시키는 전단 응력을 발생시킨다. 양손으로 2분씩 4번 정도 악력 운동을 하는 데 매회1분 정도 휴식을 하면 된다.

5. 달걀을 믿어라

달걀을 먹으면 나쁜콜레스테롤(LDL) 이 증가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연구에 따르면, 달걀 섭취와 심장동맥이 더 맑아지는 것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른자에 들어있는 비타민 E와 B12, 엽산덕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단 달걀은 칼로리가 높으니 하루 4개 이상 먹어서는 안 된다.

6. 심호흡을 하라

잠시 일을 중단하고 오랫동안 심호흡을 해보라. 30초 동안 6번 심호흡을 하는 게 좋다. 이렇게 하면 1분 안에 수축기 혈압을 4mmHg 낮출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심호흡을 꾸준히 하면 혈압이 낮아지는 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7. 트랜스지방을 피하라

미국 콜롬비아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트랜스지방 섭취를 1%만 줄여도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크게 감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8. 칼륨을 좋아하라

매일 칼륨 1000mg을 더 섭취하면 수축기 혈압을 감소시킬 수 있다. 칼륨이 많이 들어있는 식품으로는 바나나와 고구마, 황다랑어 등이 있다.

9. 아침을 반드시 먹어라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에 따르면, 아침식사를 건너뛰는 사람은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27%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침을 안 먹으면 혈당이 오르내리고 혈액 속 중성지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10. 긍정적으로 살아라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밝은 인생관을 가지면 심장병 위험을 반이나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스트레스와 염증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5.html
kolaswqetsrq 11.02 10:11
오이를 꼭 먹어야 하는 14가지 이유

오이를 꼭 먹어야 하는 14가지 이유

오이는 전 세계에서 4번째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야채이며 ‘수퍼 푸드’라 불릴 만큼 건강에 좋답니다.

1. 오이는 체내에 수분을 공급해줍니다.

너무 바빠 물을 충분히 마시지 못 한 경우 차가운 오이를 먹으세요. 오이는 수분이 90%랍니다.

2. 오이는 신체 안팎의 열을 식혀줍니다.

오이를 먹으면 체내의 열을 식혀줍니다. 피부에 오이를 붙이면 따가운 태양빛에 탄 몸의 열을 식혀줍니다.

3. 오이는 독소를 제거해줍니다.

오이의 수분은 체내의 찌꺼기를 쓸어내 줍니다. 규칙적으로 오이를 먹으면, 신장결석을 녹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 오이는 일일 권장 비타민을 공급해줍니다.

오이는 우리 신체가 하루에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비타민을 갖고 있습니다. 면역체계를 활성화시키는 비타민 A, B, C가 있어 몸에 에너지를 주어 활기있게 해줍니다. 시금치, 당근과 함께 먹으면 몸을 더 힘차게 해줍니다. 하루 권장 비타민 C의 약 12%를 함유하고 있으므로 피부에 바르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5. 오이는 피부에 좋은 미네랄을 공급해줍니다.

오이는 칼륨, 마그네슘, 규소를 많이 함유하고 있습니다. 피부스파에서 오이로 피부관리를 해주는 이유지요.

6. 오이는 소화와 체중감소에 도움을 줍니다.

저칼로리에 수분이 많으므로 오이는 체중감소를 바라는 사람에게 딱 맞습니다. 수프와 샐러드를 만들 때 오이를 넣으세요. 오이가 먹기 싫은 분은 저지방 요구르트에 찍어 잡수세요. 오이를 먹으면 턱 운동을 도우며, 섬유질이 소화를 도와줍니다. 따라서 매일 오이를 먹으면 만성 변비를 없애줍니다.

7. 오이는 눈에 활기를 줍니다.

눈 위에 차가운 오이를 얹는 것은 너무 많이 보는 것이지만, 오이가 갖고 있는 항염증 성분 때문에 눈 밑의 늘어진 살과 부기를 빼줍니다.

8. 오이는 항암효과를 가집니다.

오이는 세코이솔라리시레시놀, 라리시레시놀, 피노레시놀 등의 리그난을 함유하고 있어 난소암, 유방암, 전립선암, 자궁암 등에 걸릴 위험을 낮춰줍니다.

9. 오이는 당뇨를 치료해주고, 콜레스테롤과 혈압을 낮춰줍니다.

오이의 즙은 췌장세포에서 당뇨환자에게 좋은 인슐린을 만드는 데 필요한 호르몬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오이의 스테롤 성분은 콜레스테롤치를 낮춰준답니다. 또한, 오이는 섬유질, 칼륨, 마그네슘을 다량 함유하고 있고, 이 성분들은 혈압을 낮춰줍니다. 때문에 오이는 고혈압은 물론 저혈압에도 좋습니다.

10. 오이는 구강에 좋습니다.

오이의 즙은 병든 잇몸을 낫게해주고 시원하게 해줍니다. 오이를 가늘게 잘라 혀로 30초 동안 입천장에 누르고 있으면 오이 안의 화학물질이 입 속의 박테리아를 죽여 입냄새를 없애줍니다.

11. 오이는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부드럽게 해줍니다.

오이 속에 있는 기적의 미네랄 ‘2산화 규소’는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윤기나고 강하게 해줍니다. 오이가 함유하는 유황 및 2산화규소는 모발의 성장을 촉진시킵니다.

12. 오이는 뼈의 건강을 촉진시키고, 관절염과 통풍의 통증을 완화시킵니다.

오이는 2산화규소를 함유하고 있어 뼈의 연결조직을 강화시키므로 뼈의 건강을 촉진시킵니다. 당근주스와 함께 섞으면, 오이는 요산치를 낮춰줌으로써 통풍이나 관절염의 통증으로부터 해방시켜줍니다.

13. 오이는 숙취에 좋습니다.

음주 후 아침에 머리가 아픈 것을 피하려면 잠자기 전에 오이를 몇 조각 먹으세요. 오이는 비타민 B, 당분, 전해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으므로 필수 영양소를 재충전 시켜주고, 숙취와 두통을 완화시켜 줍니다.

14. 오이는 신장을 건강하게 해줍니다.

오이는 체내의 요산치를 낮춰주므로 신장을 건강하게 해줍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4_29.html
kolaswqetsrq 11.02 10:12
홍로점설紅爐點雪 - 벌겋게 단 화로 위의 한 송이 눈, 의혹이 일시에 사라짐

홍로점설(紅爐點雪) - 벌겋게 단 화로 위의 한 송이 눈, 의혹이 일시에 사라짐

붉을 홍(糸/3) 화로 로(火/16) 점 점(黑/5) 눈 설(雨/3)

눈은 포근하다. 번잡하고 사악한 세상을 포근히 감싼다. 황막한 벌판을 하얗게 덮도록, 앙상한 앞산을 고이 덮어주기를 시인은 원한다.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다. 연일 눈이 날리고 쌓여 사방이 막히면 除雪(제설)하는 사람은 죽어난다. 그 위에 서리까지 치면 雪上加霜(설상가상)이다. 그래도 눈은 약하다. 북풍한설도 봄이 되면 눈 녹듯 사라진다.

불로 벌겋게 달아오른 화로(紅爐)에 한 송이의 눈(點雪)을 얹으면 순식간에 녹는다. 시의 한 구절같이 멋진 비유인 만큼 나타내는 뜻도 다양하다. 사욕이나 의혹이 일시에 사라지는 것을 말하거나 도를 깨달아 미몽에서 깨어나는 것에서 큰 힘 앞에 맥을 못 추는 사소한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다양한 의미인 만큼 가장 먼저 사용된 곳이 명확하지 않은 채 여러 곳에서 인용됐다. 먼저 1125년 완성된 禪宗(선종)의 불서 ‘碧岩錄(벽암록)’에서는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는 자유자재의 경지를 나타냈다. ‘망념 망상의 가시 숲을 헤치고 나온 선승은 무슨 짓을 하건 자취를 남기지 않고 움직인다(透荊棘林 衲僧家 如紅爐上一點雪/ 투형극림 납승가 여홍로상일점설).’ 69칙에 나온다.

朱子(주자)와 문인 사이에 행해진 문답의 기록 ‘朱子語類(주자어류)’엔 顔子(안자)의 사욕을 멀리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안자의 극기는 마치 붉은 화로 위에 한 점 눈이 떨어진 것과 같다(顔子克己 如紅爐上一點雪/ 안자극기 여홍로상일점설).’

이처럼 딱딱한 출처 말고 멋진 용례로 우리의 고전에도 자주 나타난다. 西山大師(서산대사)가 승병장을 마치고 70명의 제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입적하면서 臨終偈(임종게)를 남겼다. 죽음은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이라고 말한 대사인 만큼 의미심장하다. 전문을 보자.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불타는 화로 속 한 점 눈일 뿐(千計萬思量 紅爐一點雪/ 천계만사량 홍로일점설), 진흙 소가 물 위를 걸어가니, 대지와 허공이 함께 무너지네(泥牛水上行 大地虛空裂/ 니우수상행 대지허공렬).’ 진흙으로 빚은 소가 泥牛(니우)인데 泥牛入海(니우입해)라 하면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다.

紅爐一點雪(홍로일점설)이라 해도 같은 뜻의 이 성어는 도를 깨달아 앞이 훤히 틔는 상태를 말하는 큰 뜻 외에 거센 불길 앞에서는 한 송이 눈이 미약하여 속수무책인 양면성이 있다. 雪泥鴻爪(설니홍조)라고 같은 눈이 나오는 말이 있다.

눈이나 진흙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이란 의미인데 이것은 녹으면 곧 사라지는 인생의 무상이다. 모든 의혹을 밝혀 앞날이 창창한 대로만 남았어도 그 또한 변하면 어찌될지 모르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 오늘의 힘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하니 말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545.html
kolaswqetsrq 11.02 10:13
일오재오一誤再誤 - 한 번 잘못한 것을 또다시 잘 못한다.

일오재오(一誤再誤) - 한 번 잘못한 것을 또다시 잘 못한다.

한 일(一/0) 그르칠 오(言/7) 두 재(冂/4) 그르칠 오(言/7)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과오와 실패는 전진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격언이 격려해도 일부러 실패할 사람도 없다. 실패를 위로하는 말은 또 있다. ‘한 번 실수는 병가의 상사’라고 勝敗兵家常事(승패병가상사)란 성어에서 온 속담이다.

최후의 결전이 아닌 옛날 잦은 전투에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니 승패에 크게 개의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실패를 딛고 다음에는 꼭 성공하라는 선의의 말이다. 그런데 한 번 잘못한(一誤) 일을 깨닫지 못하고 똑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면(再誤) 본인이나 지켜보는 사람이나 답답할 노릇이다.

선대에서 잘못 행해져 내려오는 사례를 고치지 못하고 되풀이할 땐 더 큰 잘못이다. 왕위를 물려주는 중대한 일에서 잘못된 점을 깨우친 중국 北宋(북송)의 중신 趙普(조보)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宋史(송사)’에 실려 있다.

唐(당)나라가 망하고 五代十國(오대십국)의 70여년 혼란기를 통일한 사람은 송의 太祖(태조)가 되는 趙匡胤(조광윤)이었다. 그는 後周(후주) 世宗(세종)의 신임을 받아 전공을 세우고 절도사가 되는 등 큰 세력을 떨쳤다. 조광윤의 막료로 있었던 조보는 세종의 사후 陳橋兵變(진교병변)을 일으켜 어린 恭帝(공제)에게 선양을 받게 하고 송나라를 개국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천하를 얻어 황제가 된 조광윤은 문치주의에 의한 관료제를 확립했으나 병을 얻어 왕위를 물려주게 되었다. 모후의 부탁대로 동생 光義(광의)가 2대 太宗(태종)이 되어 22년간 재위하면서 太平興國(태평흥국)을 이뤘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태종 아래 廷美(정미)라는 동생은 심보가 나빠 차기 왕위에 오르게 되어 있는데도 황제를 해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낌새를 눈치 챈 태종이 재상 조보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태조께서 이미 잘못하셨는데 폐하께서 어찌 다시 잘못을 저지르시렵니까(太祖已誤 陛下豈容再誤邪/ 태조이오 폐하기용재오사)?’ 조보는 정미가 왕위에 오르면 자기 아들에게 물려줄 것인데 그렇게 되면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며 반대했다.

장자가 아닌 형제로 계승되는 것이 태조의 잘못인데 또 다시 할 수 없다는 간언이다. 태조의 유언으로 동생에 넘기려 했던 태종이 마음을 바꿨고 정미는 유배되었다가 병으로 죽었다. 실패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한 번 잘못은 다음 다시 일어나도록 주위에서 북돋운다.

고치면 더 크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가 하는 것은 무조건 옳다며 뻗대는 사람에겐 충고가 먹히지 않는다. 똑 같은 실패를 저지르고도 잘못은 자기가 아닌 남 탓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내로남불’이란 조어를 널리 알려지게 한 공은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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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15
삼인성호三人成虎 - 세 사람이 짜고 호랑이를 만들다.

삼인성호(三人成虎) - 세 사람이 짜고 호랑이를 만들다.

석 삼(一/2) 사람 인(人/0) 이룰 성(戈/3) 범 호(虍/2)

한 사람이 번잡한 거리에 나타날 수 없는 범이 있다고 하면 믿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 세 사람이 연속으로 말하면 믿게끔 꾸밀 수 있다. 이처럼 三人成虎는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도 자꾸 말하면 곧이듣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流言蜚語(유언비어)를 퍼뜨려 상대방을 중상 모략하는 것을 일컫기도 한다.

劉向(유향)이 전국시대 전략가들의 책략을 모은 ‘戰國策(전국책)’의 魏策(위책)에 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 魏(위)나라 惠王(혜왕) 때의 일이다. 趙(조)나라와의 싸움에 져서 태자를 인질로 보내게 되었는데 수행원으로 중신 龐蔥(방총, 龐은 높은집 방, 蔥은 파 총)이 결정됐다.

조나라의 수도 邯鄲(한단, 邯은 조나라서울 한, 鄲은 한단 단)으로 떠나기 전 방총은 왕을 알현했다. 만약 왕에게 어떤 사람이 달려 와서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겠느냐고 여쭈니 믿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두 사람이 와도 믿지 않겠지만 세 사람이 와서 말하면 믿지 않을 수가 없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방총이 ‘시장 바닥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세 사람의 말에 호랑이가 되는 것(三人之言 則成虎/ 삼인지언 즉성호)입니다.

태자를 수행해 가면 뒷말이 많을 것인데 잘 굽어 살피시기 바랍니다’라며 유언비어를 믿지 말 것을 당부했다. ‘韓非子(한비자)’에는 똑 같은 이야기에 태자를 수행한 방총이 龐恭(방공)으로 되어 있다.

여러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 그럴 듯하게 꾸며 거짓말을 전해도 많은 사람이 사실인 줄 알고 믿는다. ‘一犬吠形 百犬吠聲(일견폐형 백견폐성/ 개 한 마리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모든 개가 따라 짖는다)’이다. 이 말은 後漢(후한) 말기의 사상가 王符(왕부)의 潛夫論(잠부론)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링컨의 명언도 있다. ‘모든 사람을 얼마 동안 속일 수는 있다. 또 몇 사람을 늘 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늘 속일 수는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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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15
사택망처徙宅忘妻 – 집을 옮기며 아내를 잊어버리다.

사택망처(徙宅忘妻) – 집을 옮기며 아내를 잊어버리다.

옮길 사(彳/8) 집 택(宀/3) 잊을 망(心/3) 아내 처(女/5)

지나간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잊어버리는 정도가 심할 때 健忘症(건망증)이라 한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을 잘 잊을 때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또는 ‘정신을 꽁무니에 차고 다닌다’고 놀려 댄다. 이런 정도는 애교로 봐줄만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약 집을 옮길 때(徙宅) 부인을 잊어버리고 간다(忘妻)면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요즘이야 이사를 할 때 부인이 남편을 버리고 갈까봐 먼저 짐차에 올라탄다고 하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성어는 매우 중요한 일을 놓쳐 버리는 일이나 그런 얼빠진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 徙家忘妻(사가망처)라고 해도 같다.

이렇게 부인을 두고 갈 정도로 중요한 것을 빠뜨리는 사람보다도 孔子(공자)는 더 심한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말기 魯(노)나라의 哀公(애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과인은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집을 옮기면서 아내를 잊어버렸다고 들었는데(寡人聞忘之甚者 徙而忘其妻/ 과인문망지심자 사이망기처) 실제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공자는 이런 사람이 실제 있지만 더 심한 사람도 있으니 자기 몸을 잊어버리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고 아리송해하자 옛날 夏(하)나라의 桀(걸)이나 商(상)나라의 紂(주)같은 폭군이 그들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천자의 자리에서 사해를 가지는 부를 갖고 있으면서도 국사는 돌보지 않고 사치와 황음에 빠졌다고 했다. 또 권세에 아부하고 남을 비방하기 좋아하는 간사한 사람들만 곁에 두어 충성스럽고 정직한 신하들은 모두 추방시켰기 때문에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다며 말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몸을 잊은 더 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此謂忘其身之甚矣/ 차위망기신지심의).’ 중국 삼국시대 魏(위)나라 王肅(왕숙)이 편찬했다고 하는 ‘孔子家語(공자가어)’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책은 공자의 언행 및 문인들과의 논의를 수록한 책인데 賢君(현군)편에 실려 있다.

일상에서 사소한 것을 잊어도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면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더 큰 약속을 하고서도 잊거나 일부러 하지 않는 높은 사람들도 많으니 이들의 처사는 국민들이 잊지 말아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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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16
귀이천목貴耳賤目 –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기다. 멀리서 들어온 것만 중시하다.

귀이천목(貴耳賤目) –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기다. 멀리서 들어온 것만 중시하다.

귀할 귀(貝/5) 귀 이(耳/0) 천할 천(貝/8) 눈 목(目/0)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는 흔한 것은 가치를 모르고 지나친다. 그래서 자꾸 눈을 딴 데로 돌린다. ‘남의 손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남이 잡은 일감이 더 헐어 보인다’는 속담대로다. 자기 밥의 콩은 항상 작아 보이고, 제 마누라는 고마움을 모르고 남의 부인은 미인으로 보인다.

자기 집의 닭을 하찮게 여기고, 들의 꿩은 훨씬 가치를 높게 여긴다는 家鷄野雉(가계야치)란 성어와 통한다. 같은 뜻의 귀를 귀하게 여기고(貴耳) 눈을 천하게 여긴다(賤目)는 이 말은 마음의 등불이라는 눈의 가치를 낮춰 본 것이 아니라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말이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먼 곳에 있는 것을 대단하게 여기고, 가까이에 있는 것을 대단찮게 본다. 또 옛것은 귀하게 여기고 새 것은 하찮게 여긴다는 貴古賤今(귀고천금)과 같이 보면 복고주의적 성격이 강한 중국인들의 풍조를 꼬집은 것임을 알 수 있다.중국 漢(한)나라 초기의 유학자 桓譚(환담, 기원전24~기원후56)의 ‘新論(신론)’에 잘 표현한 대목이 나온다.

세상 사람들은 먼 곳의 소문만 중하게 여기고, 가까운 데서 제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천한 것으로 여긴다면서 이어진다. ‘세상 사람들은 옛것을 귀하게 여기고 지금 것을 비천하게 여기며, 귀로 들은 것을 귀하게 여기고 눈으로 본 것을 천한 것으로 여긴다(世咸尊古卑今 貴所聞 賤所見/ 세함존고비금 귀소문 천소견).’

後漢(후한)의 문인 겸 과학자인 張衡(장형, 78~139)은 ‘東京賦(동경부)’에서 더 신랄하게 꾸짖는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후학들이 속뜻은 모르고 겉만 이어받아 전하며, 들은 것만 귀히 여기고 눈으로 본 것은 천하게 여긴다(所謂末學膚受 貴耳而賤目者也/ 소위말학부수 귀이이천목자야).’末學(말학)은 천박한 학문, 膚受(부수) 역시 피부에 받아들인 피상적인 학문이란 뜻. 잘 알지 못하는 이론이나 귀로만 전해들은 지식을 더 신뢰하는 세태를 비판했다.

전해들은 이야기를 무작정 믿고,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을 뒷전으로 미룬다는 것은 무조건 서구 것만 좋다는 세태를 꾸짖는 말이다. 외국 이론을 들이더라도 우리 실정에 맞게 응용하지 않고 도입하다 탈이 난다. 외국의 유행을 무작정 따라가는 것도 분별 있는 태도가 아님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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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17
막천석지幕天席地 - 하늘을 장막으로 땅을 자리로 삼다, 품은 뜻이 웅대하다.

막천석지(幕天席地) - 하늘을 장막으로 땅을 자리로 삼다, 품은 뜻이 웅대하다.

장막 막(巾/11) 하늘 천(大/1) 자리 석(巾/7) 따 지(土/3)

하늘을 지붕 삼는다는 말이 있다. 잘 곳이 없어 한데서 잠을 자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를 가리킨다. 비슷한 내용 같아도 하늘을 장막으로 삼는다(幕天)는 말은 땅을 자리로 삼는다(席地)는 말이 이어져 품은 뜻이 웅대함을 나타낸다.

포부가 하늘을 찌르고 땅을 덮을 만큼 크다니 과장이라 해도 큰 뜻을 품은 사람은 가질 만하다. 이런 큰 뜻을 가졌어도 실현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을 풍자한 것이라 더욱 흥미진진하다. 중국 後漢(후한)과 魏晉(위진)의 혼란기에 竹林七賢(죽림칠현)으로 유명한 劉伶(유령, 伶은 영리할 령)의 글에서 처음 나왔다.

부패한 정치권력에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淸談(청담)을 즐겼던 죽림칠현 중에서도 유령은 특히 술과 관계 깊다. 항상 술을 지니고 하인에 삽을 메고 따르게 하여 ‘자신이 죽으면 곧바로 묻으라(死便埋我/ 사편매아)’고 했을 정도였다. 유령이 술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 ‘酒德頌(주덕송)’이다.

앞부분에 大人先生(대인선생)을 등장시켜 해와 달을 빗장과 창문으로, 광활한 천지를 뜰이나 길거리로 삼았다며 이어진다. ‘길을 가도 지난 자취가 없고, 거처함에 일정한 집이 없어(行無轍跡 居無室廬/ 행무철적 거무실려), 하늘을 천막 삼고 땅을 돗자리 삼아, 마음 가는대로 내맡기노라(幕天席地 縱意所如/ 막천석지 종의소여).’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조롱한 것이라 해도 호방한 이 구절은 후세 시인들에 많이 인용됐고 우리 고전에도 등장한다. 고려 때의 金富軾(김부식)은 ‘늘그막에 생계가 족함을 알아(老來生計皆知足/ 노래생계개지족), 바야흐로 유령의 자리와 장막 넓은 걸 믿노라(方信劉伶席幕寬/ 방신유령석막관)’라고 ‘酒醒有感(주성유감)’에서 노래했다.

표현은 다르지만 조선시대 기행의 승려 震默大師(진묵대사)의 시도 거창하다.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 삼으며 산을 베개 삼네(天衾地席山爲枕/ 천금지석산위침), 달빛은 촛불 되고 구름은 병풍이며 바닷물은 술통이라(月燭雲屛海作樽/ 월촉운병해작준).’

청운의 뜻을 현실 세계에서 이루지 못해 술로 나날을 지새운다면 좋은 세상이 아니다. 이들이 소극적이지만 난세를 풍자하고 바로잡으려는 작품과 일화가 풍부해도 나라를 위한 직접적인 기여만 못하다.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세대들이 점점 삭막해져 가는 현실 앞에 나아갈 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일이 많다고 하니 안타깝다.

미래세대에게 큰 뜻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치인데 현실에서는 자꾸만 짐만 지운다. 이러다간 하늘과 땅을 장막으로 웅대한 꿈을 갖는 것보다 갈 곳 없어 이불과 요로 삼을까 두렵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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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17
목광여거目光如炬 – 눈빛이 횃불같이 빛나다, 몹시 화가 나다, 뜻이 높고 원대하다.

목광여거(目光如炬) – 눈빛이 횃불같이 빛나다, 몹시 화가 나다, 뜻이 높고 원대하다.

눈 목(目/0) 빛 광(儿/4) 같을 여(女/3) 횃불 거(火/5)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 했으니 눈이 맑으면 온 몸이 맑을 것이다. 온화한 마음으로 남을 대할 때는 눈에 잔뜩 친절이 배어난다. 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듯이 해를 끼치는 상대에까지 친절할 수는 없다.

이럴 때는 서양 격언처럼 ‘시선은 칼’이고 우리 속담에 있듯 ‘눈에 쌍심지가 오른다’. 옛날 중국 晉(진)나라의 阮籍(완적)이란 사람은 친한 사람에겐 靑眼(청안)으로, 거만한 사람은 白眼(백안)으로 대했다고 했다. 가까이는 전 대통령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와 장관들이 꼼짝 못했다는 말도 있었다.

눈에 불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눈빛(目光)이 마치 횃불같이 이글거린다면(如炬) 무지하게 화가 많이 났겠다. 실제 성어의 주인공 檀道濟(단도제, ?~436)는 30여 차례나 전장에 나가 큰 공을 세웠음에도 시기하는 무리들에 붙잡혀 죽게 되니 그럴 만도 하다. 南北朝(남북조)시대 宋(송)을 세웠던 武帝(무제)의 북벌에 참여한 장군 단도제는 그 공으로 護軍(護軍)에 봉해졌다.

무제가 임종하면서 그의 아들 文帝(문제)가 즉위하자 더욱 중용됐다. 北魏(북위)가 쳐들어왔을 때 都督(도독)으로 참전하여 결국 남침을 저지했다. 문제는 단도제의 공을 인정하여 그의 아들까지 요직에 앉혔다. 그러고도 일부 신하들이 그를 음해하지 않을지 항상 신경을 곤두세웠다.

몇 년 뒤 문제가 중병을 앓게 되자 걱정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彭城王(팽성왕)으로 있던 劉義康(유의강)이 장수 劉湛(유담)과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거짓으로 북위가 쳐들어온다며 임지에 있던 단도제를 수도 建康(건강)으로 불렀다. 문제의 병세가 조금 호전되자 작별을 고하고 돌아가려는데 유의강 일당이 모반죄로 덮어 씌었다.

단도제는 졸지에 화를 당하게 되자 몹시 화가 나 그 눈빛이 마치 횃불과 같았다(道濟見收 憤怒氣盛 目光如炬/ 도제견수 분노기성 목광여거). 그리고는 관을 팽개치며 말했다. ‘너희들이 만리장성을 무너뜨리려느냐(乃壞汝萬里長城/ 내괴여만리장성)?’ ‘南史(남사)’ 단도제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눈에 불이 번쩍이면 무섭다. 노기를 띠고 바라볼 때는 무섭지만 어떤 일에 완전 몰두할 때도 눈이 번득인다. 眼光(안광)이 紙背(지배)를 徹(철)한다는 勉學(면학)의 태도도 그렇다. 횃불같이 밝은 눈은 몹시 화를 내는 비유에서 식견이 높고 원대함을 가리키는 말로 뜻이 변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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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18
부지교지富之敎之 - 잘 살게 하고 가르쳐야 한다,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우선

부지교지(富之敎之) - 잘 살게 하고 가르쳐야 한다,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우선

부자 부(宀/9) 갈 지(丿/3) 가르칠 교(攵/7) 갈 지(丿/3)

교육은 중요하다. 국가의 기초는 소년을 교육하는 데 있고, 나라의 운명은 청년의 교육에 달려 있다고 철인들은 가르친다. 교육이 국가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교육 없는 국가는 반드시 멸망한다고도 말한다. 이처럼 중요한 교육보다 앞서야 되는 것이 있다.

바로 먹고 살 수 있어야 교육이고 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말을 孔子(공자)가 강조했으니 의외다. 簞食瓢飮(단사표음, 簞은 소쿠리 단)의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학문을 즐긴 제자 顔淵(안연)을 칭찬하고, 淸貧(청빈)하게 살며 분수를 지키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한 공자니 더욱 그렇다.

넘치지는 않아도 기본적인 衣食住(의식주)는 해결돼야 다음을 바란다. 공자는 백성들에게 의식을 풍족하게 한 연후에(富之) 예절을 알도록 가르치는(敎之) 것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先富後敎(선부후교)의 의미다.

이것은 공자가 올바른 정치방법을 말한 것으로 경제적으로 백성들을 안정시킨 후 인륜을 깨우치는 것을 말한다. ‘論語(논어)’의 子路(자로)편에서 공자가 제자 冉有(염유, 冉은 늘어질 염)와의 대화에서 나온다. 孔門十哲(공문십철)에 들어가는 염유는 冉求(염구)의 자이다. 정사에 밝아 후에 季孫氏(계손씨)의 가신이 됐고 재물을 모으고 세금을 올리는 등 스승의 가르침과 엇나가 서운하게 하기도 한 사람이다.

공자가 천하를 周遊(주유)할 때 衛(위)나라로 들어가면서 수레를 몰던 염유와 한 대화 내용이다. 위나라는 번창했던 나라로 많은 사람이 분주히 오갔다. 공자가 ‘참 많구나(庶矣哉/ 서의재)’ 하자 염유가 인구가 많으면 그 다음 할 일이 무엇인지 여쭈니 ‘부유하게 만들어야지(富之/ 부지)’ 한다.

‘이미 부유하면 또 무엇을 더해야 하겠습니까(既富矣 又何加焉/ 기부의 우하가언)’ 하니 바로 답한다. ‘가르쳐야 한다(教之/ 교지).’ 인간의 도리를 알고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교육도 먼저 이들이 잘 살게 한 뒤라야 가능하다는 가르침이다.

초야에 묻혀 유유자적하게 사는 安貧樂道(안빈낙도)의 삶을 최고로 여긴 선인들도 경제를 도외시할 수 없다는 명언을 많이 남겼다. 管子(관자)는 ‘의식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안다(衣食足而知榮辱/ 의식족이지영욕)’고 했고, 맹자는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바른 마음이 없다(無恒産 無恒心/ 무항산 무항심)’고 했다.

이처럼 생을 유지하기 위한 부가 있어야 교육이 되는데 오늘날 貧富(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사교육도 성행하고 학력도 크게 벌어진다고 한다. 나물 먹고 물마시며 살아도 자식 교육에는 돈이 필요하니 빈부격차 완화는 어디서나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918.html
kolaswqetsrq 11.02 10:18
우각괘서牛角掛書 – 쇠뿔에 책을 걸다, 열심히 공부하다.

우각괘서(牛角掛書) – 쇠뿔에 책을 걸다, 열심히 공부하다.

소 우(牛/0) 뿔 각(角/0) 걸 괘(扌/8) 글 서(曰/6)

오늘날 독서 인구가 점차 줄어든다고 걱정들이 많다. 하지만 도서관이나 서점마다 독서하는 사람들로 꽉 차고, 출판사마다 불황이라 해도 계속 책이 나온다. 지하철에서 신문이나 책 읽는 모습은 자취를 감췄어도 여전히 책을 사랑하고 책으로 지혜를 얻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나 독서에 관한 선인들의 좋은 경구는 차고 넘친다.

고사가 따르는 성어도 많은데 반딧불과 눈빛으로 책을 읽었다는 螢窓雪案(형창설안)이나 잠을 쫓기 위해 머리카락을 매달고 넓적다리를 찌르는 懸頭刺股(현두자고), 마당에 널어놓은 보리가 소나기에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다는 高鳳流麥(고봉유맥)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성어에 못지않게 쇠뿔(牛角)에 책을 건다(掛書)는 이 말은 길을 가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李密(이밀, 582~618)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이밀은 隋(수)나라 때의 명문가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포부가 커 천하를 구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처음 음덕으로 煬帝(양제, 煬은 녹일 양)의 하급관리로 있다가 병으로 사직하고 고향에서 독서에 전념했다. 어느 때 평소 존경하던 학자 包愷(포개)가 살고 있는 곳을 알아내고 먼 길을 가면서도 책을 읽을 방법을 찾다가 묘안을 떠올렸다.

먼저 갯버들을 뜯어 안장을 엮은 뒤 소의 등에 얹고, 양 뿔에 읽던 한서 책을 걸고서는 가면서 책을 읽었다(以蒲韉乘牛 掛漢書一帙角上 行且讀/ 이포천승우 괘한서일질각상 행차독). 蒲는 부들 포, 韉은 언치 천.

한 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책을 읽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 때 길을 지나던 재상 楊素(양소)가 보고 기이하게 여겨 무슨 책을 보고 있느냐고 물은 뒤 자신의 아들과 교유하도록 했다. 歐陽修(구양수) 등이 엮은 ‘新唐書(신당서)’의 이밀전에 실려 전한다.

이밀의 후일은 그러나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양소의 아들 밑에 모사로 들어갔다가 계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반란 집단에 가담하게 되었고, 唐(당)나라에 귀순한 뒤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가 결국 36세 되는 해 살해되고 말았다.

시간을 아껴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한 결과가 허무하다. 학문 외의 세상 흐름에 너무 무심하고 자기 길만 옳다고 여긴 결과가 아니었을까. 열심히 공부하는 태도만은 본받을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600.html
kolaswqetsrq 11.02 10:19
문장도리門墻桃李 - 스승의 문하와 가르침을 받은 뛰어난 제자

문장도리(門墻桃李) - 스승의 문하와 가르침을 받은 뛰어난 제자

문 문(門/0) 담 장(土/13) 복숭아 도(木/6) 오얏 리(木/3)

문과 담장(門墻)을 합쳐 스승의 문하를 가리킨다. 복숭아와 오얏(桃李)은 스승이 길러낸 뛰어난 제자를 말한다. 말만 듣고 도저히 연상하기 어려운데 각각의 유래가 따로 있어 뒤에 합쳐진 성어다. 스승이 길러낸 우수한 제자들과 뛰어난 문하의 인재가 곳곳에 있는 것을 뜻하는 桃李滿天下(도리만천하)와 같다.

복숭아와 자두의 옛말인 오얏은 꽃과 열매가 좋아 그 나무 아래로 많은 사람이 모여들기 때문에 후진교육이나 사제지간을 뜻하게 됐다고 한다. 준수한 인사가 줄을 이었다고 桃李成行(도리성행)이나 桃李門前(도리문전), 滿門桃李(만문도리) 등등 쓰임새도 많다.

앞선 차례대로 문과 담장을 보자. 문장은 성어가 유래한 ‘論語(논어)’ 子張(자장) 편에서 宮牆(궁장)으로 사용됐다. 孔子(공자)의 제자 子貢(자공)은 말을 잘 하고 이재에도 밝은 十哲(십철)의 한 사람이다. 이 자공이 魯(노)나라 대부에게서 스승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듣고 ‘담장에 비유하여(譬之宮牆/ 비지궁장)’ 말한다.

자신의 담장은 어깨 높이라 집안의 좋은 것을 볼 수 있으나 ‘스승의 그것은 너무 높아(夫子之牆數仞/ 부자지장수인)’ 그 안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을 뿐이라고 했다. 문을 찾아 들어간 사람이 적으니 그렇게 말들을 해도 심오한 스승의 가르침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였다.

복숭아와 오얏이 뛰어난 인재를 말한 것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데 앞선 ‘說苑(설원)’의 내용부터 보자. 戰國策(전국책)으로 유명한 前漢(전한)의 劉向(유향)이 쓴 교훈적인 설화집이다. 趙簡子(조간자)라는 晉(진)나라 대부가 아랫사람에게 배반당했다며 호소하는 陽虎(양호)에게 말하는 내용이 復恩(복은)편에 나온다.

‘복숭아나 자두를 심는 사람은(夫樹桃李者/ 부수도리자),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가을에는 열매를 얻을 수 있지요(夏得休息 秋得食焉/ 하득휴식 추득식언).’ 찔레를 심으면 얻을 것이 없다며 덕이 있는 이를 길러 재주를 가르쳐야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해악만 돌아온다고 했다.

스승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은 인재가 힘을 합쳐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훌륭한 가르침을 받으러 모여드는 제자들이 학파를 이루고 건전한 토론과 경쟁을 통하여 나라를 이끈다면 더 이상 좋을 것이 없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스승이란 말이 퇴색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스승의 날이 있지만 형식만 남아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부터 없앴으면 좋겠다고 한다. 돈이 있어야 얄팍한 지식이라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고,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예사로 교권을 무시하니 당연한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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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20
귀지 색깔로 알아보는 나의 건강 상태

귀지 색깔로 알아보는 나의 건강 상태

몸이 분비하는 여느 이물질과 마찬가지로, 귀지는 사랑받는 대화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사실 이 끈적거리는 작은 물질은 신체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우리의 건강 상태를 알려준다. 언뜻 보기에 거북할 수도 있지만, 다음번 귀를 청소할 때 귀지를 잘 살펴보자.

귀지가 그저 귓속에 더러운 물질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었다면, 그건 경기도 오산. 사실 귀지는 세균과 먼지가 귀 속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신체가 만들어낸 방어막이다. 노폐물이 오히려 귀를 깨끗하고 건강하게 유지해준달까.

귀지는 긴 사슬 형태의 지방산과 스쿠알렌, 알코올로 구성돼 있다. 아무리 우리 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도, 귀에서 귀지가 뚝뚝 떨어진다면 그것만큼 정 떨어지는 모습도 없다. 귀지가 많이 쌓인 듯한 느낌이 들면, 젖은 천으로 귓속을 닦아내자. 이때, 무턱대고 면봉으로 후비면 고막 손상 등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특히 주의한다. 면봉은 깊이 집어넣지 말고 가장자리를 살짝 청소할 때만 쓴다.

1. 축축하고 끈적한 노란색 귀지

가장 흔한 형태의 귀지. 축축하고 끈적이는 귀지는 귀 속 건조함이나 가려움을 방지한다.

2. 회색 귀지

확실히 흔한 색깔은 아니다. 하지만, 면봉에 회색 귀지가 묻어 나오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자. 이는 귀의 자가청소 도중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온 이물질이다. 단, 귀지가 건조하고 딱딱하며 귓속이 간지럽다면, 습진이 생긴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이 보이면, 병원을 찾아가자.

3. 옅은 노란색 귀지

아이들의 귓속에서 나오는 귀지의 색깔은 대부분 옅은 노란색이다. 아이들은 보통 어른보다 많은 양의 귀지를 가지고 있다. 성장과 동시에 신체가 분비하는 귀지의 양이 점차 줄어든다.

4. 어두운 색깔의 끈적한 귀지

귀지가 보통 때보다 어두운 색깔을 띤다면, 이는 당신의 몸이 평소보다 많은 땀을 흘리고 있다는 증거다. 귀지가 어두울수록, 땀의 분비량이 늘어났다는 뜻으로, 이는 주변에 불쾌한 악취를 풍길 수 있다.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5. 어둡고 두꺼운 귀지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은 이에 반응해 더 많은 귀지를 분비한다. 또한, 땀을 많이 흘려도 귀지의 양은 늘어난다. 이렇게 쌓인 귀지는 귀 도관을 막아 일시적 청각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귀지가 어둡고 두껍다면, 건강을 위해서라도 주기적으로 귀지를 제거해주자. 당신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6. 건조하고 각질같은 하얀색 귀지

지극히 정상으로 건강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귀지를 가진 사람은, 어두운 색깔의 귀지가 나오는 사람보다 보통 체취가 덜한 편이다.

7. 검은색 또는 어두운 갈색 귀지

어두운 갈색 또는 검은색의 귀지는 보기엔 흉할 수 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두운 색깔의 귀지는 지금 당신의 신체가 많은 양의 귀지를 분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면, 귀지가 귓속에 오래 묵혀있었단 뜻일 수도 있다. 귀지에 들어있는 지방산이 점차 산화되며 어둡게 변하는 것이다.

8. 축축하게 흐르는 귀지

가끔 귀지가 귀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괜찮다. 보통 귀가 스스로 귓속을 청소하는 과정의 일부이다. 그러나 귀에서 많은 양의 귀지가 고름이나 피를 동반하며 계속해서 흘러나온다면, 이는 고막 파열이나 중이염 등의 감염을 의미할 수 있다. 이 경우, 즉시 의사를 찾아가자.

9. 피가 섞인 귀지

마치 응고된 피의 형태를 띤 이러한 귀지는 오랫동안 귀에 묵혀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러한 귀지가 나온다면, 고막이 파열되거나 손상됐을 수 있으니 바로 병원을 찾아간다. 이처럼 귀지는 여러 다양한 색깔을 띠고 있다. 다행히 건강엔 별 이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안심하시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992.html
kolaswqetsrq 11.02 10:21
구강청정제에 발가락을 담갔더니... 전문가들조차 놀란 효과

구강청정제에 발가락을 담갔더니... 전문가들조차 놀란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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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 위생에 신경쓰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세면대 위에 구강청정제 하나쯤 두고 쓴다. 입안을 시원하게 헹구는 기능 이외에도, 구강청정제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아래 이어지는 설명을 읽다보면, 과연 구강청정제라는 이름이 적합한가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구강청정제의 대명사급인 리*테린이 1879년 처음 등장했을 땐 주로 소독약으로 쓰였고, 197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구강청정제라는 이름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수많은 용도로 쓰임 받아온 구강청정제, 지금까지도 유효한 다양한 쓰임새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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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체취 제거

데오드란트가 똑 떨어졌다면? 화장솜에 구강청정제를 묻혀 겨드랑이에 문질러보자. 이렇게 하면 더 이상 불쾌한 체취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2. 살균, 소독, 방향을 동시에

구강청정제를 변기에 붓는 것은 언뜻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허나, 변기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동시에 욕실에서 상쾌한 향까지 뿜어져나오니, 실은 대단히 효율적이다. 게다가 박테리아와 곰팡이도 한꺼번에 제거된다.

3. 벌레에 물려 가려울 때

모기나 벌레에 물렸다면 구강청정제를 살짝 발라보자. 가려움이 가라앉고 물린 자리도 소독되니 일석이조.

4. 비듬 예방

놀랍게도, 구강청정제로 비듬을 예방할 수 있다. 샴푸에 소량 섞어서 머리를 마사지한 뒤 꼼꼼하게 헹궈내면 끝.

5. 뾰루지 예방

구강청정제를 활용해서 뾰루지와 블랙헤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화장솜에 묻혀 트러블 난 피부에 살짝 두드려 바르면 흠없는 피부로 돌아온다.

6. 손발톱 무좀 제거

구강청정제는 손발톱 무좀에 탁월한 치료제이기도 하다. 넙적한 그릇에 구강청정제를 붓고 30분간 발을 담그면 무좀균이 제거된다.

7. 칫솔 소독

욕실처럼 습한 장소에 칫솔을 두고 쓰다보면 칫솔모에 세균이 번식하기 쉽다. 구강청정제 한 컵을 따라 칫솔을 거꾸로 꽂은 뒤 하룻밤만 두면... 박테리아, 잘 가!

8. 모니터 및 키보드 청소

모니터에 리*테린을 뿌리는 모습을 팀장이 보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화면에 낀 번들번들한 기름층을 제거하는 데 구강청정제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구강청정제를 극세사 천에 묻혀 문질러주면 새것처럼 깨끗해진다.

9. 쓰레기통 탈취제

구강청정제는 쓰레기통에 던져놔도 쓸모가 있다. 키친타올에 몇 방울 떨어트려 쓰레기통 바닥에 깔아두면 지독한 쓰레기 냄새가 확 줄어든다. 쓰레기통 열 때마다 코를 막지 않아도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531.html
kolaswqetsrq 11.02 10:22
편두통 진정 민간요법, 빨래집게 하나면 해결

편두통 진정 민간요법, 빨래집게 하나면 해결

머리 한쪽이 지끈지끈하고, 속이 울렁거리고, 빛이나 소리를 엄청 민감하게 받아들이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현재 편두통을 앓고 있다. 편두통은 무척 흔한 증상이다. 여성 발병률이 남성 발병률의 무려 2배라고 한다. 대단치 않은 질병처럼 보일지 모르나, 편두통 환자들은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하고 휴식을 취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고통에 시달린다. 중요한 볼일이 있더라도 제때 마감하지 못하니, 스트레스로 병이 낫기는커녕 더 심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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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두통의 원인은 무엇일까?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보통 뇌가 고통을 인지하는 부분에 이상이 생겼을 때 일어난다. 자연 치유가 어렵고 만성으로 발전하기 쉽기 때문에, 한 번 생기면 꼭 의사의 상담을 받는 게 좋다. 편두통이 있다면 꼭 강력한 진통제를 먹어야만 할까? 정답은 아니다. 여러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진통제 복용은 줄이되 고통도 경감시키는 민간 치료법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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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이러한 가정 치료법은 트립탄이나 에르고타민과 같은 약물을 완전히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고통을 줄이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준다. 만성적인 편두통을 앓는 사람이라면, 언제 편두통이 일어나고 매일의 수면 시간과 식사 시간을 기록하는 편이 좋다. 하루 중 고통이 가장 심할 때에 민간 치료법을 시도해보면 된다. 빨래집게 도 두통을 없애는 민간 치료법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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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두통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이 본능적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 누른다. 우리나라의 침술과 같은 이 마사지 방법을 활용하면 실제로 조금이나마 두통이 줄어든다. 두통의 중심지는 양 눈썹 사이의 미간, 눈썹의 시작점, 눈썹의 중앙이다. 우리의 신체에는 두통뿐만 아니라 발작까지도 막아주는 혈이 있다고 한다. 빨래집게는 여기를 누를 때 쓰인다.

1. 손 혈

엄지와 검지 사이의 부분을 빨래집게로 집어주자. 왠지 모르게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만약 너무 세게 집었다 싶으면, 집는 각도를 조금 바꿔보는 게 좋다. 그렇다고 집는 강도가 너무 약해서도 안 된다. 와이어가 적게 들은 최신형 빨래집게보다는 구형 빨래집게가 낫다. 한 손 당 1분에서 3분 정도 빨래집게를 끼우고 있는다. 하루에 3번 정도 반복하면, 편두통을 훨씬 줄일 수 있다.

2. 귓바퀴 혈

두통에 좋은 또다른 혈은 귓볼에 있다. 손과 마찬가지로, 빨래집게의 강도는 너무 세지 않되 충분히 압박이 느껴지는 정도로 해야한다. 1분에서 3분 정도 지나면 몸이 시원해지는 게 느껴질 것이다. 두통도 말끔하게 사라진다. 어떤 사람은 이 마사지로 큰 효과를 보기도 하고, 적은 효과를 보기도 한다. 초심자가 혈을 올바르게 딱 집기란 무척 어렵다. 우연히 빨래집게로 혈을 눌렀다가 완전히 두통이 가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독일의 한 전문가에 따르면 약을 먹지 않고 민간요법을 사용한 사람들이 오히려 고통을 덜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 만약 위 방법을 썼는데도 고통이 지속된다면, 가까운 병원을 꼭 찾아가도록 하자.

만약 다른 때보다 편두통이 심하게 오거나 편두통의 기미가 느껴진다면, 위의 지압법을 시도해보도록 하자. 더 일찍 할수록 더 효과가 좋은 편이다. 편두통이 너무 자주 있거나 심하다면, 병원을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만성 편두통은 생각보다 심각한 질환이니까! 진통제나 다른 약이 꺼려지는 사람이라면 한 번 빨래집게 지압법을 써보는 게 어떨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104.html
kolaswqetsrq 11.02 10:23
나이들면서 지켜야 할 12道

나이들면서 지켜야 할 12道

第1道 - 언도(言道)

나이가 들면 말의 수(數)는 줄이고, 소리는 낮추어야 한다.

第2道 - 행도(行道)

나이 들면 행동(行動)을 느리게 하되, 행실(行實)은 신중(愼重)해야 한다.

第3道 - 금도(禁道)

나이 들면 탐욕(貪慾)을 금(禁)하라. 욕심(慾心)이 크면 사람이 작아 보인다.

第4道 - 식도(食道)

나이가 들면 먹는 것이 중요하다. 가려서 잘 먹어야 한다.

第5道 - 법도(法道)

삶에 규모(規模)를 갖추는 것이 풍요(豊饒)로운 삶보다 진실(眞實)하다.

第6道 - 예도(禮道)

나이든 사람도 젊은이에게 갖추어야 할 예절(禮節)이 있다. 대접(待接)만 받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第7道 - 낙도(樂道)

삶을 즐기는 것은 욕망(慾望)을 채우는 것에 있지 않다. 간결(簡潔)한 삶에 낙(樂)이 있다.

第8道 - 절도(節道)

나이 듦이 아름다움을 잃는 것은 아니다. 절제(節制)하는 삶에 아름다움이 있다.

第9道 - 심도(心道)

인생(人生)의 결실(結實)은 마음가짐에서 나타난다. 마음을 비우면 세상이 넓어 보인다.

第10道 - 인도(忍道)

나이가 들어가면 인내(忍耐)가 필요(必要)하다. 참지 못하면 망령(妄靈)이 된다.

第11道 - 학도(學道)

연륜이 쌓이면 경험(經驗)이 풍부(豊富)하고 터득한 것이 많다. 그러나 배울 것은 더 많다.

第12道 - 기도(棄道)

손에 잡고 있던 것들을 언제 놓아야 하는지 이것이 나이 들며 배워야 할 마지막 (도)道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2_76.html
kolaswqetsrq 11.02 10:24
천천히 늙는비법 10가지

천천히 늙는비법 10가지

평소 습관만 잘들여도 늙지 않는 비법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매일 매일 아래의 방법대로만 해도 나이에 비해 엄청 젊은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01. 칼로리 섭취를 절반으로 줄인다.鶴의 胃는 항시 절반만...

02. 열을 가해 조리한 음식을 가능한 삼가고단순한 재료를 단순하게 조리하여 적당량만 먹는다.

03. 물을 매일 2,000 cc 정도 마신다.

- 사람다운 체형 유지

- 식사 전후 30분, 식후 2시간에 마신다.

- 취침 전. 취침 후에 꼭 마신다.

04. 매일 30분정도 걷는다.

- 다리는 제2의 심장이라고 한다.

- 노화는 다리로부터 온다.

- 시선은 15 도 상단을 보고 걷는다.

- 땅을 보고 걸으면 다리가 벌어진다.

05. 호흡을 깊게 서서히 고요히 한다.

06. 무리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

- 과도한 운동은 수명단축,

- 무리한 유산소 운동은 활성산소(세포毒)가 생겨 세포에 악영향

07. 즐겁게 살며 보람을 갖는다.

-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다.

- 현명한 이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것

-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을 발견하는 것

-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으므로 해서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08. 항상 타인(他人)과 사귄다.

-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므로 타인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다양한 자극이 되어 생명력을 높인다.

09. 적당한 취미 생활을 한다.

- 몸이 둔하여 움직이기 싫지만 등산, 산책 등 가벼운 운동을 생활화하여유연성을 키우고

- 두뇌 활동을 많이 하게되어 치매예방에 도움이되는 독서, PC, 두뇌스포츠인 바둑, 당구 등을 많이 한다.

10. 자신에게 맞는 약제를 구입 복용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51.html
kolaswqetsrq 11.02 10:25
■ 한명회의 시대 1편

■ 한명회의 시대 1편

세조는 완전한 권력을 쥐게 될 때까지 안평대군 등 가까운 혈육과 김종서, 성삼문 등 시대를 대표할 만한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죽였고, 종국(終局)에는 자신의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야 만다. 세조의 이러한 폭주가 가능했던 것은 한명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정난(靖難)을 통해 왕이 된 절대군주가 원활한 통치와 안정적 왕권 확보를 위해 취하는 방식은 이런 저런 핑계를 만들어 공신들을 모조리 죽여 후환을 없애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세조의 할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이 그러했다.

그러나 세조는 한명회 등 공신들을 끝까지 예우하며 함께 정국을 운영하였는데, 이는 한명회와 신숙주 등이 계유정난의 성공에 절대적으로 기여했고, 또 이들의 재주와 처세 그리고 충성심이 워낙 뛰어나 세조 역시 이들을 없앨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한명회의 세력이 워낙 넓고 깊게 퍼진데다가, 한명회의 책사 능력이 장자방(한나라 고조 유방의 책사인 장량의 자가 자방(子房)이어서 장자방이라고 함.) 못지않았으므로, 함부로 제거하려다가는 오히려 세조의 처지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세조 시대는 공신들의 세상이었다. 이러한 공신 중의 공신은 한명회였는데, 세조 이후 연산군에 이르기까지의 왕위 승계 과정을 보면, 이 시대 한명회의 위상을 쉽게 알 수 있다. 세조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큰 아들은 세자(의경세자)의 자리에 오른 후 왕이 되기 전에 병으로 죽었고, 그 슬하에 월산군과 자을산군(잘산군)이라는 아들 둘을 남겼다.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군은 형인 의경세자가 스물에 죽자 세자가 된 후 왕(예종)이 되었으나 13개월 만에 죽었다. (독살설도 있음)

예종이 죽은 후, 예종의 아들(제안대군 4살)이 아닌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이 왕(성종)이 되었다.(큰아들 월산군은 병약해서 제외되었고 결국 요절함)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세조 이후 왕이 된 예종과 성종의 부인이 모두 한명회의 딸이었다는 것이다. 한명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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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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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26
■ 칠삭둥이 한명회 1편

■ 칠삭둥이 한명회 1편

한명회(韓明澮)는 개국(開國) 당시 명나라에 파견되어 ‘조선(朝鮮)’이란 국호를 확정짓고 돌아온 개국공신 한상질의 손자이다. 한명회의 자는 자준(子濬), 본관은 청주, 호는 압구정(狎鷗亭)이다.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출신으로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 어머니는 예문관대제학 이적(李逖)의 딸인 여주 이씨다. 한명회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동생 한명진과 함께 불행한 소년 시절을 보냈다.

다행히 가문의 지원을 받아 강원도 자망산에 은거하고 있던 유학자 유방선의 문하에서 권람, 서거정 등과 함께 공부했다. 한명회와 가장 가까운 친구 권람은 문종 원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집현전 교리가 되었지만 한명회는 낙방을 거듭했다. 이에 주변에서 비웃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고 마차에 술과 책을 싣고 천하를 떠돌면서 비상(飛上)의 그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좀처럼 그가 기다리던 때는 오지 않았다. 아주 늦은 나이 38세 때 간신히 문음(門蔭: 과거를 치르지 않고 관직에 오름)으로 개성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잠저(潛邸) 경덕궁의 문지기격인 경덕궁직(敬德宮直)을 얻었다. 관리로서는 말단인 초라한 출발이었다.

그 해, 문종이 죽고 12세 어린 단종이 보위에 올랐다. 당시 정권은 단종을 보좌하던 김종서와 황보인 등 대신들에게 주어져 있어 신권이 강화되었고, 조정에서 멀어진 왕족들은 크게 불만을 가졌다. 수양대군은 추락하는 왕실 권위에 분개하고 내심 권력의 야욕을 숨기면서 전국에서 책략가와 한량들을 몰래 모았다. 이런 수양대군에게 스스로 접근한 인물 중 한 명이 한명회였다.

한명회를 수양대군에게 추천한 사람은 권람이었다. 수양대군을 만난 첫자리부터 한명회는 노골적으로 수양대군의 야심을 부추기는 이야기를 했다. 수양대군은 여러 모로 한명회를 시험해 보고는, 한명회를 가리켜 “그대야말로 나의 자방(子房)이로다!”라고 하였다. 자방이란 중국 초한시절 때 유방의 책사(冊使) 장량을 말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장자방(張子房)이 되어 최측근 참모로서 왕권 탈취의 모든 단계를 진두지휘했다. 계유정난을 일사천리로 성공시킨 이후, 한명회는 단숨에 종8품 군기녹사(軍器錄事)에서 종4품 사복시소윤(司僕寺少尹)이 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지방 말단 8급 공무원이 갑자기 중앙 요직 4급 서기관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보잘 것 없는 최말단 궁지기였던 한명회의 초고속 출세 행진이 시작되었고, 좋든 나쁘든 역사에 이름을 크게 남기게 된 것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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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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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507.html
kolaswqetsrq 11.02 10:26
■ 수양대군, 왕위에 오르다

■ 수양대군, 왕위에 오르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 다음 날 ‘영의정부사 영경연 서운관사 겸 판이병조사’라는 꽤나 이름도 긴 전무후무한 관직에 제수되어 왕을 대신해 섭정(攝政)을 시작했다. 영의정에 왕 교육전담에 천문책임자에 군사책임자에 인사 책임자까지, 말하자면 이미 신하의 지위를 넘어선 직책이다.

이어서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의 공신책봉을 한 후 공신에 책봉되지 않은 종이나 시녀들에게도 통 큰 선물을 하였는데, 김종서를 철퇴로 내려친 종들에게 상으로 내린 것이 김종서와 황보인 이 살던 집 한 채씩이었다.

총명한 어린 단종은 잠시라도 수양을 믿었던 자신을 탓하며 두려움과 서러움을 삭이면서 “모든 권한은 다 줘도 상관없다. 몇 년 만 이 자리를 지키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왕의 행보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 그로부터 1년, 민심이 수그러지길 기다리던 수양대군은 슬슬 왕이 되기 위한 단계를 밟아가게 된다. 그 첫 번째가 상중(喪中)이어서 안 된다는 단종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로 결혼을 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계유정난 이후의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편었지만, 이미 수양대군이 왕위를 넘본다는 소문이 세간에 자자했다. 단종은 급기야 살아남기 위한 포고문을 발표하게 된다.

『근일에 이르러 숙부께서 나에게 이롭지 못할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난무하나, 이는 간교한 무리의 선동이다. 숙부는 내게 ‘주공’과도 같은 분이다』

‘주공’은 주나라 무왕의 동생으로서, 무왕이 일찍 죽고 그 아들이 즉위하자 숙부로서 강력한 섭정을 편 후 왕이 성장하자 미련 없이 섭정을 그만 두고 신하의 자리로 돌아간 사람이다. 단종이 포고문에서 ‘주공’을 언급한 것은 수양대군이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미 수양대군은 왕의 허락도 없이 왕의 신하들을 죽임으로서 역모의 길에 들어섰고, 다음 순서는 왕이 되는 것이었다.

수양대군은 드디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양보 받을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기 시작했으니, 이는 끊임없이 역모 사건을 조작하여 단종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수양대군의 의도대로 신하들은 입을 모아 금성대군, 혜빈 양씨 등 단종과 가까운 사람들을 죽일 것을 청하니, 어린 단종은 실낱같은 희망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결국 수양대군에게 양위(讓位)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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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27
■ 수양대군과 계유정난 3편

■ 수양대군과 계유정난 3편

실록에 나타난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에 대한 결정적 명분은 안평대군과 김종서 등의 역모였다. 그러나 정말로 이들이 역모를 꾀했을까?

단종실록에서 안평대군과 김종서의 역모 증거로 제시되는 것은, 김종서의 측근 이징옥이 북방의 무기를 한양으로 빼돌렸다는 것인데, 안평대군과 김종서 등이 힘을 합쳤다면 역모사건을 조작한 후 한양의 군대를 동원해서 수양대군을 치고 단종을 압박하면 될 일이지, 칼과 창 같은 무기를 굳이 북방에서 한양으로 옮길 이유는 없었다.

또한 영의정 황보인의 노비 아무개가 황보인 등의 구체적 역모계획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갖바치가 등장하는데, 어떻게 일개 종이 거사계획의 내밀한 부분까지 샅샅이 알게 되었는지는 고사하고 그 아무개 종의 이름조차 실록은 밝히지 못하고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이는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만든 억지 명분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어쨌든, 수양대군은 거사일을 정하고 활쏘기를 명목으로 군사를 모은 후, 가노(家奴)인 임어을운, 양정 등 소수의 무사들만 데리고 직접 김종서의 집으로 갔다. 임어을운이 방심한 김종서를 철퇴로 내리쳐 북방의 대호라고 불리우던 천하의 명장 김종서는 허망하게 꼬꾸라지고 말았다. 김종서만 해치우면 걱정할 것이 없다던 한명회의 장담대로 김종서가 쓰러지자 수양대군의 행보를 막을 그 어떤 방해도 없었다. 수양대군과 한명회는 그동안 규합한 군졸들을 몰고 그날 밤 입궐해 안평대군이 김종서 등과 공모하여 불경한 짓을 도모하였기에 먼저 김종서 부자를 베었다고 하면서 대신들을 모두 대궐로 불러들이게 하였다.

그날 밤 입궐한 대신들은 문 너머의 책임자 한명회의 손짓 여하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었는데, 야사(野史)에는 한명회가 직접 살생부(殺生簿)를 작성한 후 문을 열고 들어오는 대신들을 죽일지 말지를 고개 짓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날로 안평대군과 그의 아들은 강화도로 압송되었다가 얼마 뒤 사사(賜死)되니, 안평대군의 나이 36세였다. 또한 잠시 살아났던 김종서 역시 그 날로 이승을 하직했고, 그 외에 수양대군의 반대편에 섰던 무수한 대신들이 죽었으며, 그들의 16세 이상의 아들은 교형(絞刑)에 처해졌고, 15세 이하의 아들은 관노로 전락했다. 처와 첩, 딸은 노비 신분이 된 뒤 공신들에게 분배되었다.

태종 이방원이 저세상에서 손자 수양대군이 형제를 비롯한 무수한 신하들을 죽이고 왕위를 넘보려 한다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면, 과연 뭐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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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28
■ 수양대군과 계유정난 1편

■ 수양대군과 계유정난 1편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수양대군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아마 그 시대에 살아서 그 일을 직접 보고 경험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위치에 따라 혹은 역사를 보는 시각에 따라 각자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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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건국 초 정도전에 의해 신권이 왕권보다 더 강한 나라로 만들어졌다. 정도전은 조선을 재상중심제 나라 로 만들려고 했다. 왕은 그저 상징적으로만 존재하고 국정은 재상(宰相)을 중심으로 한 조정대신들이 맡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종 이방원은 이를 왕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과 훼손으로 받아들여, 제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을 죽이게 된다. ‘제 2차 왕자의 난’을 거쳐 즉위한 태종은 왕권을 강화시켜 건국 초 흔들렸던 조선을 안정시키고 새로운 나라 조선의 기반을 확실히 닦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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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종은 달랐다. 태종 때 강화시킨 왕권을 신하에게 적당히 나누어 주어 왕권과 신권을 적절히 조화시켰다. 세종은 능력 있고 지혜로운 임금이었기에 신권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잘 이룰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세종 후기 문종이 세자로서 대리청정을 하면서 정국을 주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종 또한 세종과 비슷한 스타일로 신권을 상당히 존중해주었다. 문종이 오래 재위했다면 이 같은 정치형태가 자리 잡으면서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문종이 재위 2년3개월 만에 급사하고, 열두 살의 어린 단종이 왕으로 즉위했다.

문종은 죽어가면서도 두 동생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에게 단종을 부탁하지 않고, 김종서와 황보인 등 중신들에게 단종을 끝까지 보살펴 달라고 당부했다. 문종은 친동생들보다 중신들을 믿고 신권에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수양대군의 입장에서는 무척 서운할 수밖에 없었다. 김종서와 황보인 등 중신들은 야망이 큰 수양대군을 견제하고, 수양대군에 비해 야망이 적고 풍류를 즐기며 문인기질이 다분한 안평대군과 더 가깝게 지내 수양대군을 더 자극하게 되었다.

할아버지 태종(이방원)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수양대군이 이러한 상황을 그냥 보고 넘어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제1차 왕자의 난’과 거의 비슷한 ‘계유정난’이 일어나게 된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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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29
갑상선 기능 이상을 알리는 12가지 신호

갑상선 기능 이상을 알리는 12가지 신호

갑상선은 목 앞쪽에 위치한 나비 모양의 작은 기관으로, 다른 신체기관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몸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갑상선의 기능이 지나치게 활발하면(갑상선 기능항진증) 갑상선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고, 반대로 기능이 저하되면 호르몬이 부족해진다. 갑상선 호르몬은 대부분의 신체 대사에 관여하기 때문에 이처럼 분비되는 양이 적정선을 벗어나거나 못 미치면 종종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1. 지속적인 슬픔 혹은 우울감

갑상선 기능 장애는 극단적인 감정을 유발한다. 갑상선 호르몬 분비가 활발하지 않으면 늘 슬픈 감정에 젖어있거나, 심지어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

2. 변비

갑상선의 기능 장애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의 폐해 중 하나는 소화기능이 약화되면서 변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변비는 갑상선 질병의 대표적인 3가지 증상 중 하나다.

3. 과도한 수면

물론 아침에 일어나는 게 쉬운 사람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없다. 하지만 잠을 푹 자도 몸이 피곤하고, 침대를 벗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면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다. 갑상선이 지나치게 적은 양의 호르몬을 분비할 경우 항상 피로를 느끼면서 하루종일 가수면 상태로 움직이게 된다.

4. 탈모 및 피부 건조

갑상선 기능저하증(Hypo-thyroidism)에 걸리면 신진대사가 느려지면서 땀 분비량이 감소함에 따라 피부가 건조하고 가려워진다. 머리카락과 손톱도 퍼석해지면서 잘 끊어지거나 부서지고, 심한 경우에는 머리가 빠지기도 한다.

5. 갑작스런 체중 증가

체중이 늘어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식단이나 운동 등 생활 습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체중이 불어났다면 갑상선 기능 저하를 의심해봐야 한다. 실제 갑상선 이상을 진단받은 환자들 중에는 달리 명백한 증상 없이, 갑작스럽게 증가한 체중 때문에 검사를 받으러 온 경우가 많다.

6. 성욕 감퇴

갑상선 호르몬 저하는 성욕을 떨어트리며 종종 체중 증가, 원인 모를 통증, 탈모 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7. 근육통 혹은 근육 긴장(muscle tension)

근육통은 오랫동안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거나 몸을 많이 움직일 때 발생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분명한 이유 없이 근육통이 발생한 경우 갑상선 기능 저하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8. 심장이 두근두근, 심계항진(heart palpitations)

사랑에 빠지면 심장이 두근거린다고들 한다. 그러나 썸타는 상대도 없는데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면 걱정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심장이 평소보다 자주 움찔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우리 몸이 보내는 경고일 수 있다.

9. 지적능력 퇴화

집중력과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은 평범한 노화 증상일 수도 있지만, 이러 현상들이 갑자기 혹은 젊은 나이에 나타났다면 갑상선 질환을 의심해봐야 한다. 갑상선 환자들은 종종 치료를 시작한 뒤 두뇌 회전이 빨라진(보통 사람의 두뇌 속도를 회복한 것 뿐이지만) 것에 놀라곤 한다.

10. 고혈압

식단을 조절하거나 규칙적인 운동을 해도 여전히 혈압이 높다면 갑상선 기능을 검사해봐야 한다. 갑상선 기능 저하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 최악의 경우, 심장비대증이나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다.

11. 식욕증가 혹은 갑작스런 입맛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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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음식에서 다른 맛이 느껴지거나 식욕이 갑자기 늘어나면 이는 갑상선 기능 저하 때문일 수도 있다. 반면 갑상선 항진의 경우 식욕이 늘어나 많이 먹지만 체중은 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기적의 미라클인 것 같지만, 사실은 체내 신진대사가 지나치게 활발해져 영양 섭취가 부족하다는 뜻이므로 신속한 치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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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목이나 목구멍 통증

갑상선 기능 이상의 결과로 갑상선 자체에 통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목 안쪽이 계속 아프거나 목소리가 쉬거나 목이 붓는다면 꼭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2_29.html
kolaswqetsrq 11.02 10:30
슬기로운 부부싸움

슬기로운 부부싸움

하나) 반드시 24시간 이내에 생겼던 갈등의 문제만을 가지고 싸워라. 공소시효를 지켜야 한다.

둘) 하나의 주제만을 가지고 싸워라. 동시 상영은 3류 극장에서만 볼수 있다.

셋) 자녀들 앞에서는 절대로 싸우지 마라. 관중은 절대 두지마라.

넷) 싸우되 1m 이내에서 싸우고 장외 경기는 금물이다. 무대를 친정 시댁으로 확대 하는것은 반칙이다.

다섯) 폭력을 휘두르지 말라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여섯) 상호 인격 모독을 하지말고 남과 비교도 하지 말라. 약점을 확인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일곱) 승부에 연연하지 말고 속전속결하라. 부부싸움은 이겼다고 해서 메달을 주지 않는다.

여덟) 싸운 뒤에는 분방하지 말고 빨리 화해 해라.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말라.

아홉) 미봉책으로 대충 끝내지 말라. 임시 휴전은 곤란하다. "두고보자" 는 비겁한 발뺌이다.

열) 제 3자를 개입 시키지 말라. 제 3자와의 동맹관계는 가족 세계대전을 낳는다.

열하나) 고함 지르지 말고 욕설도 하지 말라.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러나 최선의 방법은 부부 싸움을 안하는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650.html
kolaswqetsrq 11.02 10:31
삶에 지친 그대에게

삶에 지친 그대에게

어느 날 문득

곁에 아무도 없다는 허무가 찾아오면

고개 들어 하늘을 봐요.

혼자일 것 같은 파란 하늘도

도란도란 얘기하는 구름과 함께 하잖아요.

지치고 지쳐 주저앉고 싶으면

길가의 들풀을 봐요.

비바람이 몰아쳐도

초록빛 싹을 틔우려고 안감힘을 쓰잖아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포기하고 싶으면

어두운 밤바다 건너

희미하게 반짝이는 등대를 봐요.

다시 시작할 꿈을 주잖아요.

그리움에 눈물 뚝뚝 떨어지면

나지막이 사랑 노래를 불러요.

반짝이던 눈빛 나누던

소중한 추억이 함께 하잖아요.

- 조미하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191.html
kolaswqetsrq 11.02 10:31
■ 내조의 여왕, 소헌왕후 심씨 4편

■ 내조의 여왕, 소헌왕후 심씨 4편

소헌왕후가 병이 나자 세종은 수시로 찾아와 보았고, 신하들에게 여러 차례의 불공을 명하거나, 병에 차도를 보이면 의원과 의녀들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다. 1426년, 세종은 직첩이 복원된 어머니 안씨와 소헌왕후를 배려해, 소헌왕후가 어머니 안씨와 만나 연회를 베풀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소헌왕후는 1446년 이질로 인해 52세의 나이로 차남 수양대군의 사저(私邸)에서 눈을 감았다. 세종은 소헌왕후가 죽자 차기 왕이 부모의 합장릉을 명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이 직접 합장릉을 명하였고, 자신이 죽기 전까지 다른 왕비를 맞이하지 않았다.

1446년 소헌왕후가 사망하자 헌릉에 모셔졌다. 그 후 그 서쪽 대모산(현 서초구 내곡동)에 이실(貳室)의 형태로 조영된 세종대왕의 영능에 옮겨져 합장하게 되었다. 좌측 석실에 소헌왕후를 모시고, 우측 석실은 후에 1450년 세종이 사망하자 합장해 조선 최초의 합장릉이 되었다. 2개의 격실 사이에 48센티미터의 창문(창혈)을 뚫어 왕과 왕비의 혼령이 통하게 해 합장릉의 의도를 더욱 명확하게 했다. 그런데 세종의 능은 조성될 때부터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주장 때문에 논란이 잦았다. 지관(地官)들이 강력하게 능 자리를옮겨야 한다고 권했지만, 세종은 "다른 곳에서 복지를 얻는다고 하지만 선영 곁에 묻히는 것만 하겠는가?" 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일단 세종의 고집대로 능을 조성하긴 했지만, 세조 때 다시 강력한 천장(遷葬:이장)론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서거정이 "천장함은 복을 얻기 위함인데 왕이 되었으면 되었지 다시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라며 반대해 옮기지 못했다. 결국 예종 1년(1469)에 천장(遷葬)했는데 그곳이 풍수지리상 최고의 길지(吉地) 중 하나라고 불린다.

영릉은 이장하면서 예종 때 선포된 『국조오례의』에 따라 병풍석과 석실 제도를 폐지하고, 회격(灰隔:관을 구덩이에 넣고 주변을 회로 메움)으로 하는 조선 전기 능제의 기본을 이루었다.

만약 소헌왕후가 좀 더 오래 살아서 손자 단종의 치세 때 왕실의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로 있었다면, 계유정난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계유정난 자체가, 어린 단종 대신 수렴청정할 왕실 어른이 아무도 없어 정승들이 정치를 주도하면서, 집현전 학사들과 종친들이 불만을 품고 분열된 틈을 노리고 들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정변이었다. 소헌왕후가 살아 있었다면 명분도 없고 단종지지 세력이 분열될 일도 없어, 세력이 가장 약한 축에 들었던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치적 시각이 아닌 가족적 시각에서 보더라도, 어머니가 뻔히 살아있는 상황에서 같은 어머니에게 태어난 친동생들(안평대군, 금성대군)을 죽이고 조카의 왕위를 빼앗고, 끝내 죽이는 등의 패륜을 감히 벌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어머니한테만큼은 효자였던 수양대군이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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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32
■ 내조의 여왕, 소헌왕후 심씨 2편

■ 내조의 여왕, 소헌왕후 심씨 2편

태종은 왕위를 세종에게 선양(禪讓)할 때, 병권은 넘겨주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 상왕으로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였다. 세종이 즉위하자, 소헌왕후 심씨의 아버지 심온은 영의정이 되었다. 그런데 소헌왕후가 시어머니 원경왕후 민씨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아 조심조심 처신했건만 결국 우려했던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심온이 명나라에 사은사(謝恩使)로 출발하기 전에 환송연이 열렸는데,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상왕인 태종이 볼 때는 ‘감히 외척이 권세를 부리며 날뛰는 것’으로 생각하고 심기가 불편했다. 명나라에서 귀환하던 중 아우 심정(沈泟)이 군국대사(軍國大事)를 세종이 아닌 상왕(上王: 태종)이 모두 쥐고 처리한다고 불평한 일로 대역(大逆)의 옥사(獄事)가 일어나고 말았다. 심온은 반역(叛逆)의 수괴(首魁)로 지목되어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국경선을 넘자마자 바로 체포되었고, 수원으로 유폐되어 곧 사약을 받았다. 그리고 뒤이어 심온의 동생 심정도 화를 당하고, 친정어머니는 관노가 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소헌왕후 심씨의 친정집은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이 일로 폐비(廢妃)의 논의가 있었으나, 내조의 공이 크고 왕자를 출산했고 당시에도 4남 임영대군을 임신 중이었기에 폐비가 되지는 않았다. (1426년(세종8년), 어머니 안씨와 가족들은 천안(賤案)에서 제명되고 직첩이 복원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했던가? 소헌왕후도 자식문제로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나중에 문종이 되는 세자 향의 아내들 때문이었다. 세자빈을 두 명이나 쫓아내야만 했다. 첫째 세자빈은 열여덟 살인 상호군 김오문의 딸이었다. 하지만, 열네 살의 세자는 세자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어릴 때 같이 놀던 중전의 시비인 효동과 덕금이와 더 어울렸다. 세자빈 김씨는 질투심이 발동하여, 남편 세자의 사랑을 받겠다고 별 해괴한 짓거리를 다하다가 결국 들통이 나서 퇴출당하고, 친정 부모님과 함께 독약을 먹고 죽었다.

둘째 세자빈은 세자와 동갑인 봉여의 여식이었다. 이때 후사를 위해서 세자의 후궁도 들이게 된다. 그것도 셋이나.......질투심 많은 봉씨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독수공방하는 신세가 되었다. 욕정을 참지 못한 세자빈은 시비(侍婢)와 동성연애를 하고 만다. 조선왕조 최초로........결국 쫒겨난 세자빈 봉씨가 친정으로 돌아오자, 아버지 봉여는 딸을 허리띠로 목 졸라 죽이고 자신도 목을 매 죽었다.

또한, 일생동안 가족에 대한 많은 비극을 겪었던 왕비이다. 그녀가 죽기 전에 자식을 셋이나 떠나보냈던 것이다. 그녀가 30대가 되고 나서 큰딸 정소공주가 세상을 떠났고, 50대가 되었을 때 5남인 광평대군이 요절하고, 이듬해 7남 평원대군마저 세상을 떠남으로서 그 충격에 소헌왕후마저 건강이 악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왕비가 되던 해에 시아버지 태종에 의해 아버지인 심온이 처형당했고, 어머니는 관비로 전락했다가 사위에 의해 복권된 뒤 세상을 떠났다. 또한 자신의 큰며느리인 현덕왕후가 원손을 낳고 하루 만에 요절했다. 이런 불행한 가족사에 소헌왕후 본인도 힘들어해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또한, 태조의 기세에 눌려 친정집의 몰락을 방관한 세종의 태도, 이에 대해 소헌왕후 심씨는 아무런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못내 서운한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그래서 소헌왕후는 유달리 불교에 매달렸다고 한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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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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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33
■ 색色을 탐한 양녕대군 3편

■ 색(色)을 탐한 양녕대군 3편

세자는 태종 몰래 어리와의 밀애를 계속 즐겼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어리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그 존재가 결국 발각되고 말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태종은 노발대발하였다. 태종에게 호된 질책을 받고 어리까지 쫓겨나게 되자 자중을 해도 모자랄 판에 양녕대군은 태종에게 협박에 가까운 항의 서한을 보냈다. ‘왜 왕은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면서 자신은 한명의 어리도 거느리지 못하게 하느냐’고 따졌다. 그날 밤 결국 태종은 대신들을 모아놓고 세자폐위를 발표하게 되었다. 처음엔 양녕대군의 아들을 세자로 올릴까 했었으나 후환이 생길까하여 셋째 아들 충녕대군을 세자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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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캔들로 조정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어리가 사대부의 첩이라는 점이 도덕적인 면에서 큰 문제가 된 것이다. 결국 양녕대군을 도운 김한로를 유배시키고, 주변에서 세자의 비행을 도운 수발인력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폐위를 당한 양녕대군은 유배를 가게 되었는데, 양녕대군은 유배를 가서도 기생을 부르는 등의 망나니짓을 했고, 유배지에서 도망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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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예쁘다는 이유로 강제로 남편을 떠나 궁궐에 숨어 살았던 어리는 유배의 길에 올랐다가 이 상황을 비관하여 결국 스스로 목을 매고 자결을 하고 말았다. 왕실이 엉망이 되고 양녕대군이 세자에서 쫓겨나는 상황에 이르자 어리는 매우 자책하며 괴로워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양녕대군의 여탐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말년에는 자신의 셋째 아들의 애첩을 건드려 결국 셋째 아들이 목을 매어 자결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말년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양녕대군. 왕위마저 져버린 희대의 로맨티스트(?)이자, 조선을 뒤흔든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양녕대군 때문에 주위의 문지기, 내시 등 억울하게 태종의 노여움을 받은 자가 한둘이 아니며, 개중에는 곤장과 유배, 사형을 당한 자들까지 있었다.

이런 풍파를 일으키고도 양녕대군은 계속 골치 아픈 왕족으로 살아갔다. 충녕대군은 세종으로 즉위한 후에도 양녕대군을 형님으로 보살피지만 나중에 양녕대군은 세종대왕의 손자인 단종을 죽이는데 한몫을 하게 된다. 아마 쌓인 응어리가 많았던 모양이다. 야사(野史)에서는 양녕대군이 충녕대군(세종)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일부러 미친 척을 하여 폐세자가 되고 보위를 양보했다고 하거나, 어리와의 사랑을 위해서 왕을 포기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정사(正史)에서 언급하는 양녕대군의 언행을 보면 태종의 미움을 받고 폐세자 되기에 충분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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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34
■ 색色을 탐한 양녕대군 1편

■ 색(色)을 탐한 양녕대군 1편

태종은 장남인 양녕대군을 많이 아꼈다. 조선 건국 이후 장자(長子)계승이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태종 자신도 골육상잔의 비극을 맛보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을 것이다. 더구나 성리학에 근간을 둔 유교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자의 학문적 소양도 매우 중요하였다. 그러기에 태종의 세자에 대한 기대치가 클수록 양녕대군이 받는 스트레스는 더 커졌을 것이다.

양녕대군은 어린 시절 문무를 겸비하고 예능에도 능한 인물이었고, 태종의 정사를 일부 이양 받아 잘 처리했기 때문에 아예 왕의 자질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학문에 충실함은 물론 행동거지도 반듯하여 태종의 깊은 신임을 얻어가는 충녕대군에 비해 양녕대군은 세자교육에 대한 학업 스트레스로 점점 학문을 소홀히 하였고, 군왕(君王)이 되기 위한 세자수업의 압박을 잘 적응하지 못했다. 당시 세자의 하루 공부양은 열 시간도 넘었다고 한다.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양녕대군의 거짓말은 자꾸 늘어가고 태종에게 꾸지람을 듣는 횟수도 늘어났다. 양녕대군은 점점 태종의 눈 밖에 나면서 양녕대군과 충녕대군(세종)의 사이도 멀어지게 되고, 양녕대군은 점점 더 삐뚤어져가기만 했다. 태종에게 심한 질책을 받게 되면 양녕대군은 많은 분량의 반성문을 바쳐서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양녕대군은 품행이 자유분방하고 색을 밝혀 잦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독특한 자유연애주의자였고, 스캔들을 일으키고 다니는 문제아였다. 양녕대군은 마음에 드는 여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마구 불러다 자신의 여자로 만들었다. 심지어 큰아버지의 애첩과 매형의 애첩까지 건드렸다.

양녕대군은 17살 때부터 기생들을 가까이 했다고 한다. 태종 10년(1410년) 중국 사신을 위해 베푼 연회에 불려 나온 기생 봉지련에게 흠뻑 빠졌다. 세자는 어린 내관 2명에게 봉지련의 뒤를 밟게 한 뒤 그 집을 찾아가 몰래 사통하고는 궁중으로 불러들이기까지 했다. 이것이 발각되자 태종은 세자의 명을 받아 봉지련의 뒤를 밟은 어린 내관 2명은 곤장을 치고 봉지련을 가둬버렸다. 세자는 이에 단식투쟁으로 버텼고, 태종은 세자의 건강이 걱정되어 봉지련에게 비단을 하사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1413년(태종13년) 세자의 비선 측근들이 평양 기생 소앵을 동궁(세자궁)으로 불러들였다. 태종은 관련자들을 문책하고 곤장을 쳤고, 심지어 세자의 스승인 변계량 등에게도 “대체 무엇을 가르쳤느냐” 고 문책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세자는 단식투쟁으로 맞섰다. 어머니인 원경왕후 민씨가 달래고 어르면서 당부의 말을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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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35
농조연운籠鳥戀雲 - 새장 안의 새가 구름을 그리워하다, 속박에서 자유를 그리워하다.

농조연운(籠鳥戀雲) - 새장 안의 새가 구름을 그리워하다, 속박에서 자유를 그리워하다.

대바구니 롱(竹/16) 새 조(鳥/0) 그리워할 련(心/19) 구름 운(雨/4)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사람들이 기른 것은 사냥을 위해, 영양을 위해 등등 여러 가지라도 보고 즐기기 위한 애완 목적이 가장 클 것이다. 카나리아나 비둘기를 비롯하여 각종 애완조류 중 鸚鵡(앵무)는 사람 말을 따라하고 귀엽게 행동하니 더욱 인기다. 새를 감상하려면 우리나 새장에 넣어 기른다.

사람이 보고 즐기는데 새까지 즐겁지는 않을 터이니 ‘새장에 갇힌 새’란 말이 나왔다. 새의 처지를 느끼기는 해서 자유를 속박당한 몸을 비유해서 한 말이다. 조그마한 새가 자유를 위해 투쟁하지는 못해도 새장(籠鳥) 속에서 하늘의 구름을 그리워한다(戀雲)는 처지는 동감한다.

성어의 출처가 ‘鶡冠子(갈관자, 鶡은 관이름 갈)‘이고 중국 周代(주대)의 楚(초)나라 사람 갈관자의 저작이라 나온다. 鶡(갈)이라는 새의 깃털로 만든 관을 쓰고 있어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 저자는 老子(노자)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은둔생활을 했단다.

본래의 책은 ’漢書(한서)‘의 藝文志(예문지)에 기록돼 있으나 현존하는 것은 唐(당)나라 때의 陸佃(육전, 佃은 밭갈 전)이란 사람이 해설한 것으로 위서라 한다. 이 때의 책이 19편으로 원래 1편에서 덧붙인 것이 분명하다는데 여기서도 성어는 검색되지 않는다. 저자도 흐릿하고 남은 책도 위서라하니 그보다 새장에 갇힌 새 籠中鳥(농중조)의 처지를 생각하는 게 낫겠다.

옛날 서당에서 초학자들이 익혔다는 五言名句(오언명구) 모음 ‘推句(추구)’부터 먼저 보자. ‘해와 달은 새장 속의 새와 같고(日月籠中鳥/ 일월농중조), 하늘과 땅의 움직임은 부평초와 같도다(乾坤水上萍/ 건곤수상평).’

唐(당)나라 시성 杜甫(두보)의 시에서 따 왔는데 하늘의 해와 달까지 매번 똑같이 뜨고 지는 것이 당시 어수선한 난리 통의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는 劉備(유비)가 曹操(조조)와 함께 있었던 때를 말하며 자신의 신세가 ‘새장 속의 새요,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 같았다(籠中鳥 網中魚/ 농중조 망중어)’고 표현했다.

새나 짐승이 갇혀 있는 새장이나 우리에서 뛰쳐나가려는 본능은 모두 같아 비슷한 성어도 많다. 우리에 갇힌 원숭이를 함께 籠鳥檻猿(농조함원, 檻은 난간 함)이나 수레 양쪽에 길게 대는 끌채에 망아지가 묶이면 籠鳥轅駒(농조원구, 轅은끌채 원)다.

몸이 편안하더라도 자유가 없으면 미물도 답답하다.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속담이 있다. 구속이나 통제에서 벗어나 몸이 자유로운 것을 뜻하는데 제멋대로 행동하여 눈총을 받는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나의 자유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하니 주위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행동해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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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35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 - 먼 곳의 물로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 없다.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 - 먼 곳의 물로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 없다.

멀 원(辶/10) 물 수(水/0) 아닐 불(一/3) 구원할 구(攵/7) 가까울 근(辶/4) 불 화(火/0)

‘네 자신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예수님의 말씀이다. 이웃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셀 수 없이 많다.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는 속담은 ‘좋은 이웃은 멀리 있는 형제보다 낫다’는 영국 격언과 똑 같다.

‘세 잎 주고 집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는 속담은 중국 사서 南史(남사)에서 宋季雅(송계아)라는 사람이 이웃을 보고 시세보다 10배나 되는 집을 샀다는 ‘百萬買宅 千萬買隣(백만매택 천만매린)과 판박이다. 이렇게 좋은 말이 많이 내려와도 각박한 생활을 하는 도시에선 이웃의 얼굴도 모르고 지내는 사이가 흔하다.

먼 곳에 있는 물(遠水)로는 가까운 곳에서 난 불을 끌 수 없다(不救近火)는 이 성어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법치를 주장한 韓非(한비)의 역저 ‘韓非子(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자.

春秋時代(춘추시대) 魯(노)나라는 강국 齊(제)나라와 북쪽과 동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남쪽으로는 越(월)나라의 위협을 받는 등 항상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穆公(목공)은 왕자들을 晉(진)과 楚(초)나라로 보내 구원을 청할 생각을 했다. 이를 보고 犁鉏(이서, 犁는 얼룩소 리, 鉏는 호미 서)라는 신하가 충고했다. ‘

불이 났는데 바닷물을 끌어다 끄고자 한다면 바닷물이 아무리 많아도 불길을 잡지 못합니다. 먼 곳의 물은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는 없는 법입니다(失火而取水於海 海水雖多 火必不滅矣 遠水不救近火也/ 실화이취수어해 해수수다 화필부멸의 원수불구근화야).’

진나라와 초나라가 강하기는 해도 가깝게 있는 제나라의 침공을 받았을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앞선 역사나 민간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엮은 說林(설림) 상편에 실려 있다.

금언과 명구를 모아 놓은 한문 교과서 ‘明心寶鑑(명심보감)’에도 대구를 붙여 더욱 뜻을 명확히 한다. ‘먼 곳에 있는 물은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하고, 먼 곳에 있는 친척은 이웃만 못하다(遠水不救近火 遠親不如近隣/ 원수불구근화 원친불여근린).’ 省心篇(성심편)에 나온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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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36
관해난수觀海難水 -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관해난수(觀海難水) -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볼 관(見/18) 바다 해(氵/7) 어려울 난(隹/11) 물 수(水/0)

물은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스스로 찾기에 최고의 선이라며 上善若水(상선약수)라 했다. 물은 아래로만 흘러 나중에는 바다로 모인다. 百川歸海(백천귀해)라 하여 개천이나 강이나 모든 물이 바다로 돌아가고, 바다 또한 모두 받아들여 이루어졌다고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란 말이 나왔다.

北海(북해)의 신이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본 적이 없는 강의 신에게 깨우치는 말이 井中之蛙(정중지와)다. 자신의 세계에만 빠져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된다는 莊子(장자)의 우화다. 바다와 물을 말한 더 심오한 성어가 있다. 바다를 본 사람(觀海)은 물을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難水)는 ‘孟子(맹자)’의 말이다.

드넓은 물로 가득한 바다를 보고서 물을 말하기 어렵다고 하니 어떤 연유일까. 우물 안에서 좁게 보는 세상이 아니고 너무나 방대한 세상을 겪지 못한 사람에게 이해시키기 어렵다는 의미로 본다. 盡心 上(진심 상) 편에 孔子(공자)의 이야기부터 나온다. 부분은 이렇다.

‘공자께서 동산에 올라가서는 노나라가 작다고 여겼고(登東山而小魯/ 등동산이소로), 태산에 올라가서는 천하가 작다는 것을 느꼈다(登太山而小天下/ 등태산이소천하).’ 太山(태산)은 泰山(태산)과 같다. 아는 것이 많아져 진리를 깨우치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도 달라진다는 것을 비유한다.

그 뒤로 이어진다.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렵고(觀於海者難爲水/ 관어해자난위수), 성인의 문하에서 배운 사람은 어지간한 말로는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 어렵다(遊於聖人之門者難爲言/ 유어성인지문자난위언).’

바다는 높은 경지에 다다른 성인인데 시냇물 같은 수준 낮은 사람이나 초학자에게 넓은 세상을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게 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니 높은 태산에 오르고 드넓은 바다를 본 사람은 사소한 것이라도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고, 하늘이 좁다고 여기는 개구리들만이 다 안다는 듯이 시시콜콜 가르치려 든다.

높은 경지의 수준 높은 사람이 이끌어주지 않으니 일반인들인 초심자들은 답답하다. 친절하게 예를 들어 설명하면 좋으련만 짧은 두레박줄로는 깊은 우물물을 길어 올릴 수가 없다. 뜻이 있는 보통사람은 갈고 닦아 근처라도 가보고 싶다.

그런데 정작 최고의 전문가들은 함부로 단정 지어서 말하지 않는 것도, 조금 아는 사람이 쉽게 나선다. 무식한 사람은 알 필요 없다는 투의 경박한 태도로는 조금 아는 지식도 의심 받는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은 여기서도 겸손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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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37
여조삭비如鳥數飛 - 새와 같이 끊임없이 날다, 부지런히 배우고 연습하다.

여조삭비(如鳥數飛) - 새와 같이 끊임없이 날다, 부지런히 배우고 연습하다.

같을 여(女/3) 새 조(鳥/0) 셈 수, 자주 삭(攵/11) 날 비(飛/0)

백조가 우아하게 물 위에 둥둥 떠 있어도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는 끊임없이 갈퀴질을 한다? 이 그럴듯한 말은 동물학자들에 의해 거짓으로 판명 났어도 섭섭하게 여기며 믿고 싶은 사람이 많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연습해야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교훈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옥그릇은 갈고닦은 장인이 있었다며 玉不琢 不成器(옥불탁 불성기)라 했고, 작은 바늘부터 높은 태산까지 갈고 쌓은 노력에 의해 磨斧作針(마부작침), 塵合泰山(진합태산) 등의 좋은 성어가 많다. 마찬가지로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도 태어날 때부터 그 능력을 가졌을 리는 없다.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다.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수없이 날갯짓을 반복했듯이 새와 같이(如鳥) 부단히 날아갈 노력을 한다(數飛)는 말은 배우기를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儒學(유학)의 四書(사서) 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論語(논어)’는 孔子(공자)와 그 제자들의 문답을 모은 책이란 것은 모두 안다. 이런 것을 알면서 그 무게감 때문에 공부할 엄두를 내지 않은 사람이라도 제일 첫머리에 나오는 말은 안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혀 나가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제일 첫 마디를 따서 지은 전체 20편의 편명 중에서 1편인 學而(학이)편이다. 물론 이 때의 말씀 說(설)은 기쁠 悅(열)과 같다는 것도 안다.

잘 알아도 더 주의해야 하는 것이 時習(시습)이다. 때때로, 시간 나는 대로가 아닌 때에 맞춰 반복해야 한다고 함께 붙여 썼다. 새가 끊임없이 날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성어는 원문이 아닌 朱子(주자)의 해설서 ‘論語輯注(논어집주)’에 익힐 習(습)을 설명하면서 나온다. 부분을 보자.

‘습이란 어린 새가 반복하여 나는 것이라(習 鳥數飛也/ 습 조삭비야), 배움을 꾸준히 하는 것을 새가 날갯짓하듯 하라(學之不已 如鳥數飛也/ 학지불이 여조삭비야).’ 셈 數(수)는 ‘자주’의 뜻으로는 數尿(삭뇨)와 같이 ‘삭‘으로 읽고, 빽빽한 그물 數罟(촉고)라 할 때는 ’촘촘할 촉‘의 독음도 있다.

새가 둥지에서 깨어나 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을 때만 연습한 것이 아니듯, 배움도 때에 맞춰 반복하여 익혀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위인전에 전해 오는 훌륭한 위인들은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한결같은 배움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잘 된 결과만 부러워하고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결실이 따르지 않는다. 배움 바로 뒤에 따르는 유명한 말도 같이 익혀 두자. 역시 많이 들어 본 말이다.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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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38
오무은호이吾無隱乎爾 - 나는 너희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모든 일에 떳떳하다.

오무은호이(吾無隱乎爾) - 나는 너희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모든 일에 떳떳하다.

나 오(口/4) 없을 무(灬/8) 숨을 은(阝/14) 어조사 호(丿/4) 너 이(爻/10)

사람은 누구나 귀중한 존재고 태어날 때부터 한 가지 이상의 재능을 가졌다. 釋迦牟尼(석가모니)가 태어날 때 말했다는 唯我獨尊(유아독존)은 부처님 개인이 홀로 존귀하다는 말씀이 아니라 개개인 모두의 존재가 고귀하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모두가 존귀하고 재능이 있어도 한 분야에 한해서는 다른 사람이 따를 수 없는 특출함이 있을 수 있다.

그 재능은 錐處囊中(추처낭중)이란 말대로 내세우려 하지 않아도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드러나고, 어리숙하게 보이는 것이 더 어렵다고 難得糊塗(난득호도)라 했겠다. 그런데 학문의 스승 孔子(공자)가 숨기는 것이 없다(吾無隱)고 제자들에게(乎爾) 강조한 것은 왜일까.

공자와 그 제자들이 일상의 경험과 사고한 것을 문답을 위주로 남긴 것이 ‘論語(논어)’이다. 모든 방면에 대해 막힘이 없이 설명하고, 자유롭게 넘나들며 문제를 던지고 소통하는 공자는 제자들에게 즉석강의를 주로 한 셈이다.

제자들도 뛰어난데 스승의 가득한 지혜를 이해하는데 답답함을 느꼈는지 述而(술이)편에서 공자가 토로한다. ‘자네들은 내가 숨기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二三子以我爲隱乎/ 이삼자이아위은호)? 나는 그대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네(吾無隱乎爾/ 오무은호이).’ 二三子(이삼자)는 자네들, 여러분과 같은 뜻으로 여러 편에 등장할 만큼 공자가 즐겨 쓴 표현이다.

스승과 제자들이 숨김 여부로 왜 이렇게 됐는지 ‘論語輯注(논어집주)’에 해설이 나온다. 높고 깊은 스승의 지혜에 ‘미치지 못해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 여겼다(不可幾及 故疑其有隱/ 불가기급 고의기유은)’는 것이다.

‘행동을 하거나 멈추고 말을 하거나 입을 다무는(作止語黙/ 작지어묵)’ 모든 것이 가르침인데 그것을 이해 못하는 제자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며 뒤이어 강조한다. ‘나는 행하는 것마다(吾無行而/ 오무행이) 자네들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不與二三子者/ 불여이삼자자), 이것이 바로 나다(是丘也/ 시구야).’ 언덕 丘(구)는 공자의 이름.

공자는 같은 편에 이성적으로 설명 못할 존재나 현상인 怪力亂神(괴력난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고 나온다. 성인의 도는 기이한 것이 아닌 평범한 것을 말하는데 단지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할 뿐이란 것이다. 물론 공자의 제자들은 가르침을 잘 받아 훌륭하게 된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뛰어난 재능은 스스로 드러나고 제자들도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잘 따른다면 그 이상 좋은 사제가 없다. 아무 욕심도, 숨김도 없는 스승, 소신 있고 신념에 가득 찬 능력자는 제자 뿐 아닌 국가에 필요한데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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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39
조조삼소曹操三笑 - 조조가 세 번 웃다, 교만에 빠져 분수를 모르고 날뛰다.

조조삼소(曹操三笑) - 조조가 세 번 웃다, 교만에 빠져 분수를 모르고 날뛰다.

무리 조(曰/7) 잡을 조(扌/13) 석 삼(一/2) 웃음 소(竹/4)

자신만만하게 웃거나 마구 일을 저지르다가 망신을 당하면 ‘조조는 웃다 망한다’고 비웃는다. 우리 속담에도 등장하듯 曹操(조조)는 중국 역사상 최악의 악당이며 경망스런 잔꾀를 부리다 자멸하는 역적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실제 조조는 魏(위)를 세우게 되지만 後漢(후한)을 찬탈하려 한 것이 아니고, 병법을 잘 썼으며 군웅과 黃巾(황건)의 난을 진압한 공도 있다. 그런데도 조조가 이렇게 된 것은 魏蜀吳(위촉오)의 삼국이 關中(관중)의 패권을 다투는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가 널리 읽히면서다. 작가인 元明(원명) 시기의 羅貫中(나관중)이 劉備(유비)를 정통으로 세우기 위한 의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조조가 세 번 웃는다(三笑)는 이 말도 여기서 유래한 만큼 좋은 의미일 수 없다. 자신에 넘쳐 곧 닥칠 재앙을 모르고 분수없이 날뛴다는 비유로 쓴다. 흥미진진한 내용 중 50편에 나오는 赤壁大戰(적벽대전)은 백미라 할 수 있다.

서기 208년의 이 전투에서 조조의 80만 대군이 유비와 孫權(손권)의 소수 연합군에 참패하여 쫓기면서도 상대방의 전략가 諸葛亮(제갈량)과 周瑜(주유)의 꾀가 부족하다며 비웃었다. 갖가지 火攻(화공)을 비롯한 묘사가 실제의 전투보다 많이 각색되어 믿을 수 없다고 해도 후세에 흥미롭게 읽혀 각인된 사실은 어쩔 수 없다. 세 번 웃은 차례대로 보자.

조조가 1000명의 군사만 이끌고 쫓길 때 지세가 험준하고 산림이 빽빽한 烏林(오림) 근처에 다다랐다. 조조가 ‘말 위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호탕하게 웃었다(馬上仰面大笑不止/ 마상앙면대소불지)’. 이런 곳에 군사를 매복하지 않았다고 비웃을 때 趙子龍(조자룡)이 급습했다. 겨우 달아나 葫蘆口(호로구)란 곳의 ‘나무 밑에서 쉬다 크게 웃었다(疏林之下 仰面大笑/ 소림지하 앙면대소)’.

이번엔 張飛(장비)가 나와 혼비백산했다. 겨우 華容道(화용도) 근처로 다시 쫓기다 ‘말 위에서 채찍을 들고 큰 소리로 웃었다(馬上揚鞭大笑/ 마상양편대소).’ 곧 關羽(관우)가 나타나 앞길을 막았다. 조조는 관우의 의리에 호소하여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조조가 쫓겨 달아나면서도 연합군의 전략가의 지모가 모자란다고 비웃는 배포는 남다르다. 물론 허구에 의해 창작된 내용이라 해도 난관 속에서 웃다 망하지 않고 뒷날 아들 曹丕(조비)가 위나라를 개국하는데 기반을 닦은 일은 평가할 만하다.

일상에서는 상대방이 멋진 아이디어를 냈을 때 깊이 분석하지도 않고 효능이 없다며 일축하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흔하다. 더군다나 그것이 자신의 영역을 잠식했을 때는 이미 늦다. 항상 개인이나 조직, 나아가 국가까지 상대를 알아야 백번을 경쟁해도 지지 않는다는 병법은 여기서도 통한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555.html
kolaswqetsrq 11.02 10:40
지족자부知足者富 -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넉넉하다.

지족자부(知足者富) -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넉넉하다.

알 지(矢/3) 발 족(足/0) 아닐 불(一/3) 놈 자(耂/5) 부자 부(宀/9)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켜 만족함을 아는 것이 安分知足(안분지족)이다. 남을 위하여 태어난 성인도 드문 만큼 만족을 아는 사람은 웬만한 수양을 하지 않고선 더 귀하다. 예로부터 만족이 행복의 근원이라고 말한 선현이나 금언이 많은 것도 그만큼 어려워서일 것이다. 깨우치는 내용도 동서양의 철인들이 하나같이 비슷비슷하다.

‘행복은 만족하는 인간에게 속한다’, ‘자기의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 자는, 바라던 것을 얻게 되어도 역시 만족하지 못한다’ 등이 서양이라 하면, 동양에선 유독 道敎(도교)의 창시자인 老子(노자)가 만족에 관한 말을 많이 남겨 압도적이다. 만족을 아는 사람이 바로 부자라는 노자의 이 성어가 같은 의미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말기 상하 두 편 모두 81장의 ‘道德經(도덕경)’을 남긴 노자는 자연법칙에 따르고 인위적인 것을 배격하는 無爲自然(무위자연)을 주창했다. 간단한 운문체로 심오한 의미를 함축한 것이 특징인데 33편 辦德(판덕)장에 마음의 부자 이야기가 나온다. 부분을 먼저 보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넉넉하고, 힘써 행하는 자는 뜻이 있는 사람이다(知足者富 强行者有志/ 지족자부 강행자유지)’. 스스로 도를 지켜 욕망에 끌려가지 않으면 불만이 없고, 뜻을 세워 근면역행하면 마침내 뜻을 이루게 된다는 당연한 얘기다.

이 말의 앞부분부터 좋은 말이 등장한다.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밝은 사람이다(知人者智 自知者明/ 지인자지 자지자명)’. 남을 안다는 것은 약간의 지혜로도 파악할 수 있는데 자신을 능히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혜 이상의 사물을 똑똑히 살필 수 있는 明察力(명찰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란다.

이어지는 것이 유명한 自勝者强(자승자강),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이지만,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더욱 강한 사람이란 성어다. 앞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욕되지 아니한다는 知足不辱(지족불욕)은 44장 立戒(입계)장에 나온다고 소개했다. 46장의 儉欲(검욕)장에는 만족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이 없다고 禍莫大於不知足(화막대어부지족)이라 했다.

이처럼 知足(지족)을 강조한 노자의 가르침은 ‘明心寶鑑(명심보감)’의 安分(안분)편에 다수 실려 이어 받는다. ‘만족함을 알면 즐거울 것이요, 탐하기를 힘쓰면 곧 근심이 된다(知足可樂 務貪則憂/ 지족가락 무탐즉우)’,

‘만족함을 아는 사람은 빈천도 또한 즐거울 것이요, 만족함을 모르는 사람은 부귀해도 역시 근심한다(知足者 貧賤亦樂 不知足者 富貴亦憂/ 지족자 빈천역락 부지족자 부귀역우)’. 욕심이 더 큰 욕심을 낳는 일반 사람에겐 이런 말이 들어오지 않지만 그래도 서양격언을 보탠다. ‘만족이 바로 행복이다(Contentment is happiness).’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446.html
kolaswqetsrq 11.02 10:40
【금창초】

【금창초】

잎의 앞면은 짙은 녹색이고 뒷면은 자줏빛을 띠고 전체에 잔털이 있는 "금창초". "금란초"라고도 함.

유사종으로 내장금창초 : 내장산에 자라며 꽃이 분홍색임.

서양금창초(=아주가) : 금창초와 닮았고 조경용 지피식물로 유럽에서 도입한 종임.

▷ 학명 : Ajuga decumbens

▷ 분류 : 꿀풀과

▷ 분포지역 : 한국, 일본, 중국

▷ 서식장소 : 산기슭, 들, 구릉지

▷ 특징 :

5∼6월(봄)에 꽃이피며, 꽃은 잎겨드랑이에 몇 개씩 달리고 꽃이 피는 줄기는 4∼6개가 5∼15cm로 곧게 자라며 몇 쌍의 잎이 달리고 보라빛을 띤 자줏색이다.

한방에서는 해수·천식·기관지염·인후염·장출혈·코피·객혈·유선염·중이염·종기·타박상 등에 처방한다.

민간요법으로는 생초를 짓찧어 종기·타박상 등의 환부에 붙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225.html
kolaswqetsrq 11.02 10:41
칠절오상七絶五常 - 감나무의 일곱 가지 장점과 다섯 가지 덕성

칠절오상(七絶五常) - 감나무의 일곱 가지 장점과 다섯 가지 덕성

일곱 칠(一/1) 끊을 절(糸/6) 다섯 오(二/2) 떳떳할 상(巾/8)

손을 댄 것이 전혀 티가 나지 않을 때 감쪽같다는 표현을 쓴다. 이 말의 어원이 맛있는 곶감의 쪽을 뺏기지 않으려고 빨리 흔적도 없이 먹어 치운다거나, 감나무에 고욤을 접붙였을 때 나중에 표시가 나지 않은 데서 나왔다거나 분분한데 어쨌든 감과 관계가 있다.

‘감 고장의 인심’이란 속담이 있듯 누가 감을 따 먹어도 좋다고 할 만큼 마을 곳곳에 많이 기르는 과일이기도 하다. 棗栗梨柿(조율이시)라며 제사 때에도 빠지지 않는 생활 속의 과일 감에는 일곱 가지 뛰어난 장점(七絶)이 있고 다섯 가지 덕성(五常)이 있어 더욱 사랑을 받아왔다.

감은 중국서도 귀한 대접을 받아온 듯 일곱 가지 장점을 처음 남긴 사람은 唐(당)나라 때의 박학한 학자 段成式(단성식, ?~863)이라 한다. 그가 남긴 ‘酉陽雜俎(유양잡조)’는 괴이한 사건, 언어와 그리고 풍속 따위를 기술한 잡학서적인데 여기에 그 말이 나온다.

酉陽(유양)은 후난湖南/ 호남성에 위치한 산으로 한 동굴 속에 1000권의 책이 숨겨져 있다는 말이 전해 온다고 한다. 卷(권)18의 식물과 열매에 관한 글에 ‘감나무에는 널리 이르는 말로 칠절이 있다(俗謂柿樹有七絕/ 속위시수유칠절)’고 하면서 하나하나 들고 있다.

감나무는 첫째 나무가 오래 살며(一壽/ 일수), 둘째 많은 그늘이 있어 시원하고(二多陰/ 이다음), 셋째 새가 둥지를 틀지 않으며(三無鳥巢/ 삼무조소), 넷째 벌레가 끼지 않고(四無蟲/ 사무충), 다섯째 서리 맞은 단풍잎이 보기 좋으며(五霜葉可玩/ 오상엽가완), 여섯째 맛있는 열매가 열리고(六嘉實/ 육가실), 일곱째 낙엽이 넓어 훌륭한 거름이 된다(七落葉肥大/ 칠낙엽비대)는 것이다. 여기에 文武忠節孝(문무충절효)의 五常(오상)도 곁들여져 가치를 더한다.

감잎에 글을 쓸 수 있으니 文(문),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촉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武(무), 과일의 겉과 속이 다 같이 붉으니 忠(충), 치아가 불편한 노인도 먹을 수 있으니 孝(효), 나뭇잎이 다 떨어져도 과일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 않으니 節(절)이 그것이다.

감나무는 五色(오색)의 나무이기도 하는데 줄기는 검은색을 띠며, 잎은 푸른색이고, 꽃은 노란색이며, 열매는 붉은색인 데다, 잘 익은 열매를 말려 하얀색의 곶감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란다. 여름엔 그늘을 드리우고 가을에는 서리 맞은 잎이 장관을 이루며 맛있는 과일도 아낌없이 인간에게 주는 감나무에게 무엇을 배울까. 문무는 두고라도 겉과 속이 같고 끝까지 지키며 약자를 공경하는 것은 큰 교훈이 된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436.html
kolaswqetsrq 11.02 10:42
놀라운 감자의 효능

놀라운 감자의 효능

1.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감자속에 포함되어 있는 알칼리 성분은 사과에 비하면 2배나 되고 포도보다도 더 높다고 합니다. 알칼리성 건강식품에 해당되며.. 다이어트에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2. 비타민C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노인들에 있어서는 치매를 예방하는데 그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감자에는 비타민C가 많이 들어 있어 하루 감자 2개 정도면 충분한 섭취가 된다고 합니다.

3. 빈혈을 예방하며 치료에도 효과적이다.

감자속에는 비타민C와 철분이 넉넉하게 들어 있어 장의 흡수를 도와 주고..빈혈을 막아 주는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4. 당뇨예방에 좋다.

감자가 포함하고 있는 탄수화물은 고구마 또는 밥에 비하면 낮으나..소화가 서서히 이루어져 쌀밥을 섭취한 것과 같이 혈당 수치가 급속히 올라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5. 암이나 성인병 예방에 좋다.

칼륨, 식이성섬유가 많이 함유되어 있어 암과 성인병을 예방한다. 식이섬유는 몸 속에 존재하는 나트륨(소화기관 염기)성분을 밖으로 배출시켜 주는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몸 속으로 들어 오는 나트륨도 방지하여준다.

6.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한다.

현대인의 식생활이 백미, 육류 중심의 패턴으로 고급화되어..체질적으로 보면 산성화 되어 가는데 감자를 부분적으로 주식으로 하였을 경우에 그 예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7. 장수의 비결

섭취할 때 감자생즙으로 먹는것이 훨씬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다만... 감자를 매일 꾸준하게 섭취하여 주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 된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074.html
kolaswqetsrq 11.02 10:43
토마토의 효능 10가지

토마토의 효능 10가지

1. 다이어트

토마토에는 영양소가 풍부한 반면, 칼로리와 당분의 함량이 낮다. 또한 수분과 섬유질이 풍부하기 때문에 식단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

2. 건강한 피부

베타카로틴이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데 도움을 주고 라이코펜이 손상된 피부와 주름을 개선시켜 준다.

3. 뼈 건강

토마토에 풍부한 비타민K는 우리 몸에서 칼슘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줘 뼈를 튼튼하게 한다. 라이코펜은 골밀도를 높여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기능을 한다.

4. 항암효과

항암작용으로 인정받고 있는 라이코펜이 암 뿐만아니라, 우리의 몸이 산성화가 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성인질환을 예방 및 치료해주는 효능이 뛰어나다. 또한 항암기능을 하는 비타민A와 C가 풍부하다.

5. 노화예방

이 역시 라이코펜의 효능. 노화를 유발 및 DNA를 손상시키는 활성화 산소를 억제시키고, 동맥의 노화진행을 늦춰준다. 또한 체내에 바이러스 및 세균의 침입을 막아줘 면역력을 강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6. 혈당조절

토마토는 당지수가 낮아 당뇨병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며 특히 혈당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 크롬 성분이 풍부하다.

7. 시력

토마의 비타민A는 시력을 향상시키고 야맹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최근 연구를 통해 황반변성 등 안구 질환의 위험을 줄여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8. 고혈압 개선

활성산소의 작용을 억제시켜서 혈액순환을 개선시키고, 토마토에 풍부한 루틴과 비타민C가 혈압을 낮추는 효능을 가지고 있어 고혈압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

9. 신장기능

풍부한 칼륨은 인체에 쌓여 있는 나트륨을 체외로 배출시켜 주기 때문에 신장기능을 개선하는데 좋다. 또한 신장결석이나 담석의 생성을 방지한다.

10. 만성통증

무릎이나 허리의 만성통증을 줄일 수 있다. 항염증제로 알려진 플라보노이드와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 라이코펜은?

• 밝은 녹색의 카로티노이드 색소이자 파이토케미컬

• 토마토·붉은 당근·수박·파파야·붉은 구아바·붉은 포도 등 붉은 과일·채소에 풍부

• 토마토의 라이코펜 함량은 종류와 숙성 정도에 따라 달라짐(푸른 색 토마토엔 거의 없음)

• 유해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효과(시험관 시험에선 항산화 능력이 비타민 E의 100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44.html
kolaswqetsrq 11.02 10:44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성인은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2시간 반 정도 신체활동을 해야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여기서의 신체활동은 빨리 걷기처럼

중간강도의 운동을 의미한다. 만약 달리기처럼 운동 강도를 높인다면 일주일에 75분 정도의 운동만으로도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 또 가능하다면 일주일에 2번 정도 근력운동을 병행하는 편이 좋다.

이러한 운동 시간을 준수하면 근육밀도가 높아지고 심장질환이 예방되는 등 보다 건강한 삶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이보다 적은 시간의 운동은 무가치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 10분이라도 운동을 한다면 안 하는 것보다는 건강상 이득이 많다. 단 규칙적으로 꾸준한 운동을 할 때 삶의 질이 개선되는 효과가 가장 크다는 것이다.

규칙적인 운동은 치매의 위험도를 40% 낮추고 인지장애의 위험도는 60% 이상 줄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 정기적으로 꾸준히 운동을 하는 젊은 성인들은 매년 평균 2~8퍼센트 정도 골밀도가 증가한다. 미국 언론매체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신체활동이 활발한 사람들은 확연한 건강상의 차이를 보인다.

◆ 수면의 질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6%의 사람들만이 편안한 잠을 자고 있다고 대답했다. 반면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86%가 안정적인 수면을 취하고 있다고 답했다.

◆ 안정 시 심박수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심박수가 빠른 사람일수록 수명이 짧아질 위험이 있다. 적은 양의 심박수는 심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적은 사람들은 휴식을 취할 때 1분에 60~80번의 심박수를 보이는 반면, 정기적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40~60번의 심박수를 보인다.

◆ 최대 산소 섭취량

최대 산소 섭취량은 지구력을 요하는 운동을 할 때 그 수치가 상승한다. 산소 섭취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심폐능력과 혈액 산소운반능력 등이 우수하다는 의미다.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긴 여성은 평균 25ml/kg 미만의 섭취량을 보이며 남성은 30ml/kg 미만의 수치를 보인다. 반면 운동을 하는 여성과 남성은 각각 46~50ml/kg, 48~53ml/kg의 수치를 보인다.

◆ 수명 연장

평균 연령이 40세인 미국 성인남녀의 평균 수명은 78.7세다. 반면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이보다 평균 수명이 4년 길어진다.

◆ 땀 배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앉아 있는 시간이 긴 사람들보다 땀을 배출하는 속도가 빠르다. 운동을 하면 혈액순환이 빨라지고 체온이 상승하는데 이때 정상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몸이 하는 일이 바로 땀 배출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지며, 땀을 배출하는 속도가 빨라 발한을 통한 체온조절이 보다 용이하게 이뤄진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165.html
kolaswqetsrq 11.02 10:45
체리의 효능

체리의 효능

1. 항산화 효과

체리에는 항산화 물질 중 하나인 안토시아닌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데, 이 성분은 노화의 원인이 되는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암을 예방하며 노화방지 효과를 가지고 있어 젊고 탄력있는 피부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매일 체리 10개만 복용해도 안토시아닌 하루 권장량인 12mg을 섭취 할 수 있기때문에 항암효과와 노화방지 효과를 보기 위해 매일 꾸준히 드시는 것도 건강과 미용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2. 불면증 증상 완화

체리에는 멜라토닌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평소 불면증으로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과일로 생체리듬을 조절하고 수면을 유도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3. 당뇨병 예방 및 개선 효과

체리에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췌장에 인슐린을 분비하는 세포를 자극하여 인슐린의 생성량을 50%가량 늘려주고 혈액으로 포도당이 흡수되는것을 억제해 당뇨병 예방 및 완화에 도움이 되는 과일입니다

4. 근육통 증상 완화

영국의 한 대학교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체리주스를 마시면 운동 후 회복이 빠르며, 체내에 쌓여있는 피로물질이 줄어들고 염증이 완화되며 손상된 근육이 빠르게 좋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5. 성인병

체리에는 안토시아닌과 펙틴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나쁜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를 낮추고 혈전 형성을 억제해 심장질환, 뇌졸중, 고혈압을 예방하고, 체내에 있는 노폐물이 증가되는 것을 억제해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854.html
kolaswqetsrq 11.02 10:45
【가침박달】

【가침박달】

희귀식물인 "가침박달"입니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높은 산 정상부근에 귀하게 자랍니다.

▷ 학명 : Exochorda serratifolia

▷ 분류 : 장미과

▷ 분포지역 : 중부이북(경북, 충북, 강원)

▷ 서식장소 : 산기슭과 계곡

▷ 특징 :

열매는 삭과로 길이 15~17mm의 타원형이다. 9월에 익고 씨에 날개가 있다. 관상수로 심는다. 충청북도·경기도·황해도·평안남도·평안북도·함경북도 등지에 분포한다. 잎 뒤에 털이 나는 것을 털가침박달(var. oligantha)이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침박달 Common Pearlbush, 柳櫻 (두산백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405.html
kolaswqetsrq 11.02 10:46
강황믜 7가지 효능

강황믜 7가지 효능

1. 간 건강

커큐민 성분이 풍부한 강황은 간을 보호하여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데요. 특히, 음주로 인해 우리 몸에 흡수된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능이 뛰어나 숙취해소에 도움이 되며, 간세포를 재생시키는 작용을 하여 간이 건강해 진다고 합니다.

2. 소화불량 해소

음식을 먹고 소화가 안된다거나 배에 가스가 찰 때 강황가루가 들어간 카레를 먹으면 좋은데요. 강황에 함유되어 있는 커큐민 성분이 소화력을 높이는 담즙의 생성을 도와줘 소화력을 높여주기 때문에 소화불량 증상을 해소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3. 항암효과

암을 예방하는데 강황가루 효능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강황에 함유되어 있는 커큐민과 투메린이라는 성분이 체내에 암세포가 자라는걸 막아준다고 합니다. 특히, 위암이나 대장암, 전립선암 등에 좋다고 합니다.

4. 치매예방

강황가루가 치매에 좋은 이유도 풍부한 커큐민 성분 덕분인데요. 이 커큐민 성분이 체내에 들어오면 뇌신경 및 뇌세포의 활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치매를 예방해 준다고 합니다. 실제 강황가루가 들어간 카레를 주식으로 먹고 있는 인도에서의 치매환자의 비율이 굉장히 낮다고 합니다.

5. 여성질환 개선

강황은 몸속에 뭉쳐있는 혈인 어혈을 풀어주어 생리통이나 월경불순, 생리가 나오지 않는 무월경 등의 여성질환을 개선하는데 강황가루 효능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체내에 막혀 있던 혈을 뚫어주기 때문에 생리통이 심하다거나 출산모들이 챙겨 먹으면 좋다고 합니다.

6. 소염진통제

인도에서는 예로부터 강황가루를 소염진통제로 이용했을 정도로 몸에 난 염증이나 진통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는데요. 특히, 몸에 상처가 났을때 강황가루를 환부에 뿌려주면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생리통이나 근육통, 두통 등에도 좋다고 합니다.

7. 혈관질환 개선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혈액순환이 활발해 지는건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우리 몸에서 혈액이 흐르고 있는 혈관내에 콜레스테롤이나 지방 등의 침착이 많아지면 혈액순환에 장애가 생기면서 고혈압, 심장병, 동맥경화, 뇌졸중, 심근경색 등의 각종 혈관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데요. 커큐민 성분이 콜레스테롤과 지방을 제거해주고 혈관을 막는 혈전을 억제시켜 각종 혈관질환을 예방 및 개선하는데 강황가루 효능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_47.html
kolaswqetsrq 11.02 10:47
옥수수의 효능 8가지

옥수수의 효능 8가지

1. 고혈압 개선

옥수수 수염차를 꾸준하게 섭취하시면 혈압이 안정되어 고혈압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평소에 자주 코피가 나시는 분들이 섭취하시면 출혈을 멈추는 효능을 보실 수 있습니다.

2. 붓기제거

평소에 얼굴이 자주 붓는 분들이라면 옥수수의 효능을 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출산후에 붓기가 잘 빠지지 않는 분들이나 붓기를 빨리 빼고싶은 분들이 섭취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3. 피부 건강에 탁월

옥수수에는 피부건강 에 좋은 단백질, 섬유소, 비타민 무기질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 영양소들의 외부의 감염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고 특히 노화를 방지해주는 비타민E(토코페롤)이 많아 피부의 건조를 방지하고, 피부면역력을 향상시켜줍니다.

4. 다이어트음식

옥수수는 GI지수가 75점으로 저칼로리 음식에 속하는데요, 저칼로리임에도 불구하고 높고 오래지속되는 포만감을 주기 때문에 다이어트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특히 조금 느껴지는 옥수수의 단맛은 식욕을 억제해주는 효능이 있는데요, 이러한 옥수수효능을 잘 활용하시면 좋은 다이어트 음식이 됩니다.

5. 구강건강에 좋다

옥수수의 베티-시토스테롤이라는 성분은 잇몸질환을 치료하고 충치를 낫게하는 등 구강겅강에 좋은 효능을 발휘합니다.

6. 심신진정효과

옥수수 효능 중에는 심신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평소 불안함 느낌이 많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분이시라면 옥수수를 꾸준히 먹음으로써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7. 항암효능

옥수수에는 항암에 효능이 탁월한 성분들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옥수수를 꾸준히 먹었을때 각종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8. 여름병 예방

여름병 아시나요? 식욕이 없어지고, 무기렴감과 권태감 등이 여름병의 증상이랍니다. 옥수수에는 비타민 B1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데 이 성분이 여름병의 증상을 개선하는데 효과가 탁월하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8_28.html
kolaswqetsrq 11.02 10:48
바나나의 효능 9가지

바나나의 효능 9가지

1. 면역력 강화

바나나에 들어있는 비타민B6은 백혈구를 활성화시킨다. 꾸준히 먹으면 효과를 볼 수 있다.

2. 항산화 작용

바나나는 몸속 활성산소를 제거해주고 항산화작용을 도와주는 비타민A 베타카로틴, 비타민E가 풍부하게 들어있어 노화방지에 효과가 뛰어나다.

3. 피부관리

바나나에는 비타민A, 비타민C, 비타민E가 풍부하게 들어있어 항산화효과 및 피부미백, 피부보습, 피부탄력에 아주 좋다.

4. 불면증 완화

바나나는 수면을 유도하는 세라토닌 성분이 생성되도록 도와주고, 마그네슘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불면증 완화에 좋은 음식이다. 이 밖에 불면증에 좋은 음식으로는 우유, 키위, 양파, 국화차, 상추, 아몬드 등이 있다.

5 변비 해소

바나나에는 좋은 식이섬유가 풍부하게 들어있어 장 운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변비해소, 숙변제거에 도움이 된다.

6. 설사 완화

잘 익은 바나나에는 팩틴이 많이 들어있어 설사를 멈추게 도와주는 효과가 있다.

7. 스태미너 음식

바나나에는 부포테닌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 성분은 약한 환각제로 기분을 들뜨게 하고 자신감을 높여주며 저하된 성욕을 높여주는 스태미너 음식, 발기부전과 정력에 좋은 음식이다.

8. 혈압조절

바나나에는 칼슘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몸 속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효과가 뛰어난 혈압에 좋은 음식이고, 뇌졸중으로 인한 근육경련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9. 머리에 좋은 음식

바나나는 활성산소를 제거해 뇌 기능 향상,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수험생과 건망증이 심하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음식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9_28.html
kolaswqetsrq 11.02 10:48
건강을 위해 버려야 할 식습관 10가지

건강을 위해 버려야 할 식습관 10가지

1. 외식음식 먹기

외식을 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왜냐하면 식당 주방의 위생 상태나 조리에 사용하는 식용유의 품질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주방이 더럽거나 오래된 식용유를 사용하는 곳에서 자주 외식을 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2. 아침 거르기

건강전문가들은 아침을 거르는 것이 건강에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민첩성이 떨어지고 하루 종일 피곤해질 수 있다.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과식할 수 있어 비만도 유발할 수 있다.

3. 과일과 채소에 무신경한 습관

영양을 생각한다면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건강을 위해 과일과 채소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 식생활에서는 자주 먹지 않은 사람이 많다. 당장 "내가 오늘 어떤 과일과 채소를 먹었나?" 라고 되뇌여 보자.

4. 무심코 소금을 치는 습관

국이나 수프가 나오면 무조건 소금부터 치는 사람이 있다. 짜게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나트륨 과다 섭취는 고혈압이 생길 수 있고 세포 속에 있는 수분을 빼앗아 메스꺼움과 복통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위암 등 각종 암의 원인이 된다.

5. 설탕 많이 첨가하기

식단에 설탕이 많이 첨가되면 체중이 증가하고, 혈당 수치에 이상이 생겨 결국 당뇨병에 걸릴 수 있다. 또한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감염 질병에 취약해 질 수 있다.

6. 걷거나 일하면서 먹기

다른 일에 몰두하면서 음식을 먹으면 과식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살을 빼고 싶은 사람이라면 식사 때는 먹는 것에만 집중하자.

7. 빨리 먹기

시간이 돈이라지만 건강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천천히 먹으면 침이 많이 분비되고, 그 침은 음식을 잘게 부숴 소화에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빨리 먹으면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8. 공복에 차나 커피 마시기

차나 커피 같은 음료는 위산 분비를 촉진시켜 위궤양에 걸릴 수 있다. 따라서 식사 후에 차나 커피를 마시는 것이 위 건강에 좋다.

9. 하루에 두 끼만 먹기

적게 자주 먹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이는 소화에도 좋고 신진대사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섣부른 단식이나 식사 거르기가 반복되면 다이어트는커녕 건강을 해칠 수 있다.

10.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 풀기

슬프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약 대신 음식으로 푸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는 아주 부적절한 행동이다. 비만을 유발하고 자주 반복되면 건강에 좋지 않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명상이나 요가, 사무실이나 집밖에 나가 산책을 하는 것이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41.html
kolaswqetsrq 11.02 10:49
■ 세종시대의 그늘 1편

■ 세종시대의 그늘 1편

세종대왕은 1418년 22살에 왕위에 올랐다. 재위 32년 동안 한글창제를 비롯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국정 전반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백성을 두루 살펴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이룬 성군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세종대왕은 충분히 그럴만한 업적과 인품을 갖추고 있지만, 그도 인간이었으므로 흠결도 있었을 터이다.

세종 시대가 우리나라 역사상 태평성대였던 것은 확실하지만, 나름 고충도 많았다. 남으로는 왜구의 침탈과 북방에서는 여진의 침입도 있었다. 가뭄, 홍수 등의 기상재해와 기근도 있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하기도 했다.

세종 즉위 후 4년간 세종은 이름만 왕이었지 세자나 다름없었다. 모든 일은 당시 상왕(上王)인 태종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태종은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도 병권을 장악한 채 세종을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었다. 세종 원년에 있었던 대마도 정벌도 100% 태종에 의해서 기획, 실행되었다. 세종은 태종에 의해서 장인 심온이 대역죄로 몰려 죽임을 당하고 장모는 노비로 전락하는 등 처가가 몰락하는 것을 보고도 왕으로서 아무런 손도 쓰지 못했다.

심지어는 장인 심온이 심한 고문 끝에 죄를 자백하고 죽임을 당하기 직전 바로 전날에도 태종과 함께 술자리 연회를 베풀고 신하들과 함께 춤을 추고 즐겼다는 기록이 실록에 나온다. 이 실록의 기록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성군 세종의 이미지와는 완전 다른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세종은 태종이 상왕으로 있었던 4년간은 완전 허울만 왕으로서 파파보이에 불과했다.

세종이 왕으로 즉위할 때의 나이가 22살이면 충분히 스스로 왕 노릇을 할 수 있는 나이였지만, 세종은 그러하지 못했다. 신하들이 세종에게 주청(奏請)드리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도 ‘상왕에게 여쭙고 나서 결정하겠다’ 는 세종의 말이 실록에 기록된 것만 해도 4년 동안 60번이 넘는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세종대왕의 이미지와는 상반된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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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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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700.html
kolaswqetsrq 11.02 10:50
■ 비밀프로젝트, 한글창제 3편

■ 비밀프로젝트, 한글창제 3편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그 이면을 살펴보면 조금 다른 이유가 숨어있다. 우선 세종은 조선 건국 초 4대(代) 왕으로서 건국의 정당성을 온 백성에게 알려 조선을 빨리 안정화시키고 싶었다. 그때까지도 고려의 잔존세력이 아직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한문으로는 이 일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백성들도 배우기 쉬운 우리 글자를 연구하였는데 그것이 ‘훈민정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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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훈민정음 반포 이후 제일 먼저 용비어천가를 편찬한 것만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진정 백성을 생각했다면 세종 때 백성들을 위해 쓰여진 농사직설이나 향약집성방을 먼저 한글로 편찬해야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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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이유는 세종이 원래는 한글창제가 목적이 아니라 중국 한자의 운율을 중국식으로 발음하기 위한 운율연구가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 일에는 당시 집현전 부제학이었던 최만리가 앞장섰다. 그런데 세종이 운율연구 이상을 넘어 훈민정음을 반포하자 최만리 등 조정대신이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게 된다. 그 상소문 제일 위에 최만리의 이름이 있어 최만리만이 한글에 반대한 어리석은 조정대신으로 지금까지도 오명(汚名)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만리의 상소문 내용은 당시 거의 대부분의 조정대신이나 조선의 정치와 문화를 담당하고 있던 사대부 대다수가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최만리는 세종이 가장 아끼던 집현전 학자였고 조선의 대표적 청백리였다. 세종이 그 상소문을 보고 화가 나 그를 잡아가두기는 하지만 바로 다음 날 풀어주고 집현전으로 다시 돌아와 주길 간청하나 최만리는 석방 즉시 낙향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이처럼 쉽게 만들어져 누구나 환영했을 것 같은 훈민정음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반포이후에도 조선시대 내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5살만 되어도 전부를 깨우칠 수 있는 쉽고, 과학적이고, 철학이 있는 문자 한글!!! 만약 세종이 조선사대부 지배층들의 그 거센 반대에 굴복하여 훈민정음을 반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문자를 쓰고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세종의 위대성에 감복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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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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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46.html
kolaswqetsrq 11.02 10:51
【노랑무늬붓꽃】

【노랑무늬붓꽃】

꽃이 피기 직전의 모습이 꼭 붓과 닮았다고 하여 붓꽃 흰색 꽃잎에 노랑 무늬가 있음.

화투 칠 때 5월 난초가 아니고 붓꽃입니다. 멸종위기식물 2급에 등록된 한국특산식물임.

멸종위기 야생식물 1급에 8종,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에 56종이 있습니다.

▷ 학명 : Iris odaesanensis

▷ 분류 : 붓꽃과

▷ 분포지역 : 한국(오대산, 대관령, 팔공산)

▷ 서식장소 : 산(음습하며 토양의 비옥도가 높은 곳)

▷ 특징 : 오대산, 대관령, 태백산과 경상북도 일원의 산에서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 식물로 다년생 초본이다.

6∼8월에 열매가 익는다. 관상용으로 심어 가꿀 수 있는 좋은 꽃식물이며, 어린순은 식용으로 쓰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989.html
kolaswqetsrq 11.02 10:52
■ 한글창제를 도운 정의공주 2편

■ 한글창제를 도운 정의공주 2편

세종대왕과 왕비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는 아들 8명과 딸 2명이 있었다. 정의공주는 그 중 둘째 딸이었다. 세자 향(문종)의 누이동생이자 수양대군(세조)의 누나였다. 맏딸 정소공주가 13세의 나이로 일찍 죽어서 둘째 딸인 정의공주가 세종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세종이 중국에서 사온 안장을 손수 고치려고 칼로 깎다가 칼끝이 다리에 박히자 공주는 술을 만들고 난 지게미醋粕를 데워 상처에 붙여 부기가 빠져나가게 한 후 자석(指南鐵)을 가지고 부러진 칼끝을 빼어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428년(세종10년) 정의공주(貞懿公主)에 봉해지고, 고려 말 조선 초 명문 출신으로 함흥 부윤을 역임한 안망지(安望之)의 아들 안맹담(安孟聃)과 혼인하여 4남 2녀를 낳았다. 세종은 정의 공주와 안맹담의 집에 수차례 이어(移御:친히 방문)하였을 정도로 이들 부부를 아꼈는데, 여기에는 정의공주의 뛰어난 재주가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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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는 정의공주는 성품이 총명하고 지혜로웠다. 역산(曆算)에 밝아 세종이 사랑하였다는 정도로만 기록돼 있다. 지금으로 치면 천문학과 수학을 아주 잘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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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공주와 남편 안맹담은 불교에 조예가 있었다. 남편 안맹담과 함께 세종 승하 후 소헌왕후와 세종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문수사(文殊寺)를 중창(重創)하였다. 안맹담도 평소 불경을 읽고, 살생을 싫어하여 양잠(養蠶)도 하지 않는 등 공주 부부는 불교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의공주는 1469년(예종1년) 지장신앙의 기본 경전인 『지장보살본원경』을 간행하였는데, 이는 죽은 연창위 안맹담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이었다. 『지장보살본원경』은 보물 제966호로 지정되었다.

동생 안평대군(安平大君)이 계유정난으로 죽음을 당한 것에 반해 정의공주의 남편 안맹담은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워 1등 공신에 봉해진 바 있다. 1477년 사망하여 남편 안맹담을 장사지낸 양주 도봉산 해촌동(海村洞) 묘원에 묻혔다. 1982년 11월 13일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이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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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202.html
kolaswqetsrq 11.02 10:53
■ 애민愛民을 실천한 세종대왕 3편

■ 애민愛民을 실천한 세종대왕 3편

세종은 지금 봐도 놀라운 정책인 국민투표까지 실시했다. 세종은 토지법 제정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관리를 파견하여 약 5개월에 걸친 국민투표로 민심을 파악했다.

세종은 관리등용에도 애민정책을 실시했다. 세종 초기 10년간은 가뭄으로 인한 기근이 아주 극심했다. 당시 과학으로서는 기근에 왕이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일이 기우제를 자주 지내는 일 그것 밖에 없었다. 세종은 기우제만이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천민출신이지만 과학에 뛰어난 장영실을 신하들 반대를 무릅쓰고 등용했다. 장영실은 이런 세종의 뜻에 따라서 자격루와 측우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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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종은 행촌 이암이 원나라로부터 수입한 농상집요라는 책을 참고해서 체계적인 영농법의 연구를 바탕으로 쓴 책인 농사직설을 편찬하여 농업 생산에서 혁신이 일어나게 한다. 농사직설의 간행은 그 당시 농업 생산량을 대폭 증대시켜 백성들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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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천민이라 하더라도 하늘의 백성으로서 다 똑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비록 천민이라 하더라도 인재로 쓰는 인사 정책에서 세종의 인간존중 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세종의 애민정책의 결정판은 훈민정음 창제이다. 한자만을 읽고 쓰던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들은 백성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지식이 깊어지고 힘이 커질 것을 두려워해 백성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세종은 백성의 입장에서 모든 백성이 글을 읽고 쓰는데 어려움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를 하게 되어 백성들도 문자생활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재위 32년 동안 세종이 꿈꿔온 목표는 모든 백성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애민군주의 참모습을 세종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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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42.html
kolaswqetsrq 11.02 10:53
■ 애민愛民을 실천한 세종대왕 2편

■ 애민愛民을 실천한 세종대왕 2편

세종은 여성 건강문제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 여자환자들이 남자의사의 진찰을 꺼려 병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국적으로 의녀제도를 확대하도록 지시했다.

『지역별로 여성 관리를 선발해 제생원(의료기관)에서 가르친 후, 부녀자를 치료하게 하라.』

‘세종실록’ 1423년(세종 5) 12월 4일

세종은 버려진 아이들의 입양을 자유로이 허락하고 아이를 버린 자를 찾아 고발하면 포상하게 했다. 『아이들에게는 겨울철에 먹을 것을 넉넉히 주고, 제생원에서 항상 관찰하게 하라.』

‘세종실록’ 1435년(세종 17) 6월 22일

세종은 장애인들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장애인을 위한 전문 직업까지 창출하여 일시적이 아닌 원천적으로 장애인복지정책을 실행했다. 시각장애인 단체에는 노비와 쌀 등을 적극 지원토록 했다. 세종 본인도 어릴 적부터 오랫동안 너무 많은 독서를 해서 세종 후반기에는 앞을 거의 못 볼 정도의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관현악기를 다루는 시각장애인 중 천인인 자는 재주를 시험하여 채용하라.』 ‘세종실록’ 1434년(세종 16) 11월 24일

세종의 애민의 세심함은 결혼 지원정책에서도 보인다.

『가난하여 시기를 놓쳐 혼인하지 못한 사람은, 친족에게 함께 결혼에 대한 준비를 하게하고 곤궁함이 더욱 심한 자에게는 관청에서 곡식을 주도록 하라.』 ‘세종실록’ 1435년(세종17) 9월 29일

세종의 애민은 범죄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종은 지금으로 말하면 삼심제인 삼복제(三覆制)를 시행하여 비록 사형수라 할지라도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였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는 세 차례에 걸쳐 정확히 조사해 아뢰게 하여라. 이는 사람 목숨을 소중히 여겨, 혹시 잘못된 것이 있을까 염려하는 까닭이다.』 ‘세종실록’ 1421년(세종3) 12월 22일

세종 초기 계속되는 흉년으로 재정이 기울자, 세종이 선택한 특단의 조치는 왕 가족의 재산 축소였다. 수양대군을 포함한 대군들의 토지를 50결씩 줄이고 대군(왕의 적자) 최대 250결, 여러 군(왕의 서자) 최대 180결, 자손들의 과전을 법적으로 제한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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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54
■ 세종대왕의 탄생 2편

■ 세종대왕의 탄생 2편

세종대왕은 1397년(태조 6)에 태종과 원경왕후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도(祹), 자는 원정(元正)이다. 형제로는 위로 14년간 세자의 자리에 있다가 폐위된 양녕대군과 나중에 불가에 귀의한 효령대군이 있으며, 아래로 성령대군이 있었다. 세종은 1418년(태종 18) 6월에 양녕대군을 대신해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두 달 뒤 태종의 선위(禪位)로 스무 살을 갓 넘어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상왕(上王)으로서 태종이 병권을 장악한 채 두 눈 크게 뜨고 살아있었다. 태종은 심지어 세종이 왕으로 있는 기간에 세종의 장인이자 영의정이었던 심온을 태종에 불충했다하여 죽이고 만다. 태종은 자기가 죽고 나서 외척세력이 성장하는 것을 우려해 미리 손을 봐 준 것이다. 그렇다고 꼭 죽일 필요까지 있었는지........

어쨌든 태종의 잔인하기까지 한 노력으로 태종이 죽고 난 뒤 세종은 거리낌 없이 자기 소신대로 정치를 펼쳐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세종대에는 우리 민족역사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와 찬란한 문화가 꽃을 피우던 시대였다. 세종은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해서 부왕인 태종이 건강을 염려해 책 읽기를 금할 정도였다고 한다. 남달리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세종은 자신의 넓고 깊은 학식을 국가 경영에 직접 도입해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세종 시대에 조선은 부국강병을 이루어 안팎으로 안정된 정국 속에서 한글 창제, 예치주의의 실천, 천문학 및 농업의 발달 등 가장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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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을 통하여 많은 새로운 인재가 배양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儀禮)와 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최초로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편찬한 농업 서적인 정초의 농사직설, 우리의 풍토에 맞게 집성한 의서 향약집성방, 조선 최대 과학자 장영실에 의한 측우기, 해시계의 발명, 그리고 천문학 등 과학기술의 발전, 박연에 의한 음악 정리, 법제의 정리, 공법(貢法)의 제정, 대마도정벌, 4군6진으로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하여 민족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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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 중 뒤에 ‘대왕’을 붙여서 부르는 왕들은 여럿이 있다. (영조대왕, 정조대왕)

그러나 이 분들 중에서도 대왕이 고유명사화 된 분은 세종대왕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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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55
근하신년謹賀新年 - 삼가 새해를 축하하다.

근하신년(謹賀新年) - 삼가 새해를 축하하다.

삼갈 근(言/11) 하례할 하(貝/5) 새 신(斤/9) 해 년(干/3)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밝기 전에 인사를 차릴 자리에 보내는 年賀狀(연하장)이나 캘린더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謹賀新年은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는 뜻으로, 새해의 복을 비는 인사말이다. 세시풍속에는 조선시대 歲銜(세함)이라는 풍습이 있어서 새해가 되면 아전이나 교졸들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관원이나 상관의 집에 보내거나 직접 가더라도 표적으로 이를 남겼다고 했다. 또 중류 이상 가정의 부인들은 問安婢(문안비)라고 하는 자기 집의 여종을 시켜서 사돈 등 일가친척들을 찾아뵙도록 했다. 그런데 근대에 엽서가 발행되면서 지인들에게 연하장을 보내다가 요즘에는 핸드폰 문자나 카톡이 대신한다.

이 말에 대한 고사는 없지만 글자대로만 풀이하면 되는 성어다. 謹賀新年에서 먼저 삼갈 謹자의 의미자 菫(근)은 옛날 중국에서 饑饉(기근)이 왔을 때 식량 대신 사용할 정도로 입자가 고운 노란 찰흙을 가리킨다고 한다. 菫자가 붙는 글자는 조심, 정성, 부족이라는 뜻이 따라붙어 다닌다.

勤(부지런할 근), 僅(겨우 근), 饉(주릴 근), 覲(뵐 근) 등인데 槿(무궁화 근)만 예외다. 謹의 앞에 말씀 言이 붙었으니 말이 적다는 뜻이다. 조심스러운 사람을 만날 때 말수가 적어지고 공손하게 된다. 그러므로 謹은 ‘조심하다, 공손하다, 삼가다’라는 뜻을 함께 갖는다. 謹嚴(근엄), 謹愼(근신), 謹弔(근조) 등의 용례가 있다.

賀는 재물을 뜻하는 조개 貝(패)자에 더한다(加)는 글자 얹힌 글자이므로 ‘재물을 더해준다’는 뜻이다. 고대에는 축하하거나 위로할 일이 있을 때 물건을 보태주었다고 하여 ‘축하하다, 위로하다’라는 뜻이 생겼다. 그래서 謹賀는 삼가 축하하다, 新年이 뒤에 있으니 ‘공손히 새해를 축하합니다’란 뜻이 됐다. 간략히 줄여서 賀正(하정)이라고 하기도 한다. “오늘의 고사성어 회원 여러분! 하시는 모든 일에 행운과 행복이 있길 기원드립니다. 謹賀新年!”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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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0:56
【큰구슬붕이】

【큰구슬붕이】

뿌리잎은 줄기잎보다 작고 옆으로 퍼지지 많으며, 꽃받침조각이 뒤로 젖혀지지 않는 것이 특징.

유사종으로 구슬붕이 : 뿌리잎이 방석처럼 퍼지며 달걀형의 마름모꼴임. 꽃받침조각이 뒤로 젖혀지고 잎은 줄기를 감쌈.

▷ 학명 : Gentiana zollingeri

▷ 분류 : 용담과

▷ 분포지역 : 동아시아 지역의 온대 지방

▷ 서식장소 : 산과 들의 숲 속

▷ 특징 :

꽃은 5∼6월(봄)에 보라색에 가까운 자주색으로 피고 줄기와 가지 끝에 몇 개씩 모여 달린다.

꽃받침은 통 모양이고 길이가 5∼7mm이며 끝이 통 부분의 반까지 깊게 갈라진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체를 석용담(石龍膽)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충수염·결핵성림프선염에 소염 효과가 있고, 종기·악창·안구 충혈에 사용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601.html
kolaswqetsrq 11.02 10:57
달걀에 대한 오해와 진실

달걀에 대한 오해와 진실

달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습니다. ‘영양덩어리’라는 칭송과 ‘콜레스테롤덩어리’라는 힐난이 엇갈립니다. 그러면서도, ‘건강에 그리 좋지는 않다’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달걀은 무엇보다 고단백식품입니다. 적당한 달걀섭취는 심혈관 질환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음식물이 혈중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것은 아니랍니다. 그래서 영국은 ‘달걀섭취 상한선’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달걀과 심장병의 인과관계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없습니다. 캐나다의 ‘스콧 하딩’박사는 ‘달걀만 많이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음식도 많이 먹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건강한 성인들은 달걀 섭취를 제한할 필요가 없습니다. 달걀흰자에서 노른자를 분리해버리는 사람이 많은데, 그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노른자의 지방산은 올리브유와 같은 ‘불포화 지방산’이어서 건강에 이롭습니다. 또, 건강한 뼈에 도움이 되는 ‘지용성(脂溶性)비타민D’도 풍부해서, 노른자를 버리는 것은 달걀 영양분의 대부분을 놓쳐버리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865.html
kolaswqetsrq 11.02 10:58
하루에 얼마나 걸어야 좋을까

하루에 얼마나 걸어야 좋을까

걷기는 가성비가 가장 좋은 운동으로 꼽힌다. 걷는 데는 별다른 장비가 필요 없다. 특별한 재능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양팔을 흔들며 가볍게 발을 앞으로 디디면 된다. 그에 비해 장점은 엄청나다. 매일 일정량 이상을 걸으면 비만,심장병,당뇨병은 물론 암에 걸릴 위험도 낮아진다.

그렇다면 얼마나 걷는 게 좋을까? 답을 찾기 위해 미국 하버드 의대 연구진은 평균 나이 72세의 여성 1만 7천명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매일 몇 걸음이나 걷는지 측정하고, 그 정도에 따라 네 그룹으로 분류한 것.

제일 활동적인 그룹은 하루 8,442보를 걸었다. 평균 5,905보를 걷는 그룹이 뒤를 이었다. 세 번째 그룹은 하루 4,363보. 제일 활동량이 적은 그룹은 하루 2,718보를 걸었다. 4년에 걸친 추적 관찰 기간 동안 사망자가 생겼다. 연구진은 움직임과 사망률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하루 7,500보를 걷는 이들은 움직임이 적은 네 번째 그룹, 즉 하루 2,700보 정도를 걷는 이들에 비해 사망할 위험이 약 40%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루 만보는 어떨까? 7,500보를 걷는 것보다 몸에 좋을까? 이번 연구에 따르면 7,500보를 넘는 순간, 그보다 더 걷는다고 해서 이득이 따라 올라가지는 않았다. 얼마나 활기차게 걷는가 역시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느릿느릿 걷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빨리빨리 걷는 사람들에 비해 건강상 이득이 덜하지는 않았던 것.

\하버드 헬스 퍼블리싱\의 안소니 코마로프 박사는 이번 연구에 대해 "대상이 고령 여성들로 한정되어 있지만 기존의 논문들을 토대로 추론하면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 같은 결론을 적용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건강을 생각한다면 하루 7,500보 걷기를 시작하라" 면서 매일 몇 걸음이나 걸었는지 알려주는 스마트 폰 앱을 적극 활용하라고 충고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058.html
kolaswqetsrq 11.02 10:58
탈모에 좋은 음식 & 탈모 예방법

탈모에 좋은 음식 & 탈모 예방법

1. 계란

계란 속에 들어 있는 비오틴 성분이 탈모, 비듬, 지루성 피부염까지 예방합니다. 특히 노른자는 모발이 재생되는 것을 도와서 찰랑찰랑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을 만들어 준다고 하네요.

2. 검은콩

검은콩에는 아르지닌과 아미노산이 풍부한데, 이것이 머리카락의 빠짐을 막고 발모와 성장을 돕습니다. 검은콩은 비타민 B가 우유의 3배 이상 들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 몸의 해독 작용을 해 주기 때문에도 유익하고요. 특히 검은콩 속의 폴리페놀과 단백질은 두피 건강에 최고라고 하니 검은콩밥을 먹는것이 좋습니다.

3. 시금치

두피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지루성 피부염이라는 피부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지루성피부염이랑 두피에 피지가 과도하게 분비되어 빨갛게 변하고 가려우며 여드름처럼 트러블이 생기기도 하는 질환이에요. 그런데 시금치에는 두피의 피지 조절을 도와 주는 성분이 있다고 해요. 바로 비타민 A와 섬유질이에요! 과도한 피지 분비가 조절되면 건강한 두피가 된다고 합니다.

4. 견과류

견과류에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는데 이 불포화지방산은 상온에서도 액체 상태인 기름으로 우리 몸에 있는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낮추어 준다고 해요. 또 견과류에는 엽산, 비타민 B군, 판토텝산 등의 영양소가 많은데 이것이 단백질의 신진대사를 도와 준다고 해요. 머리카락도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는 것 알고 계시죠? 매일매일 꾸준히 오래오래 먹어야 효과가 있답니다!

5. 석류

두피에 과도한 피지가 유발되는 원인 중에는 남성호르몬도 있어요. 그런데 석류에는 여성호르몬이 많이 들어 있거든요. 석류를 먹을 경우 남성호르몬이 억제되어 탈모를 막고 두피 건강도 좋아집니다. 또 아하성분이라는 것이 들어 있는데 피부의 각질을 제거해주어 피부도 뽀송뽀송 예쁘게 만들어 준다고 하네요. 여자라면 탈모 예방과 피부 건강 등 여러가지 효과를 석류로 한 번에 볼 수 있겠네요.

6. 올리브오일

춥고 건조한 겨울철 날씨로 인해 탈모가 더욱 심해진다고 하는데요. 올리브오일을 두피에 바르면 모발을 강화시켜 탈모를 예방해 줄 뿐만 아니라, 거친 모발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탈모증상이 있는 분들은 꾸준히 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7. 다시마

다시마에는 머리카락을 구성해주는 성분들인 요오드와 비타민, 철분, 칼슘, 단백질 등이 풍부해 탈모예방에 좋은 음식이라고 하는데요. 탈모가 걱정되시는 분이라면 다시마를 섭취해 보시길 바랍니다.

<탈모 예방법>

1. 긍정적인 생각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웃을 일이 없는 것이 사실인데요.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체내에 있는 좋은 성분의 기능을 원활하게 해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두피 건강과 모발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2. 지나친 음주,흡연 자제

음주와 흡연은 탈모의 진행을 빠르게 하는 요인 중 하나랍니다. 과도한 음주는 모근의 피지분비를 증가시키고 체내에 있는 항산화 물질을 파괴하는데요. 이 때문에 두피의 노화를 가져오고 탈모를 촉진 하게 된답니다.

3. 과도한 찜질 피하기

온도가 높은 곳에 들어가면 두피의 모공이 확대 되면서 피지 분비가 왕성해지는데요. 탄력이 떨어지면서 모발의 수분이 증발해 두피와 모발이 약해지게 된다고 합니다. 특히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감싼 채 찜질방에 들어가면 두피의 수분이 빠져나가고 머리카락이 손상될 수 있다고 하니 탈모가 걱정스럽다면 이런 행동은 유의해야겠어요!!

4. 머리 말리는 습관

아침에 머리를 감는 습관 보다는 저녁에 머리를 감아 주는 것이 좋은데요. 오전, 오후동안 쌓인 먼지와 더러움은 저녁에 씻어내 주는 것이 모발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가급적 차가운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는 것이 좋구요. 머리카락 뿌리까지 꼼꼼히 말리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676.html
kolaswqetsrq 11.02 10:59
■ 직지심체요절 4편

■ 직지심체요절 4편

정확한 연대와 인쇄 장소, 금속 활자 인쇄본이란 사실을 증명하는 기록이 책에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사람들은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독일 인쇄술을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구텐베르크는 독일 라인 강변에 위치한 도시 마인츠에서 태어나 독일과 프랑스 국경 지역에 있는 스트라스부르라는 도시에서 활동했다. 현재 프랑스 땅인 이곳은 옛날에는 독일 영토였다. 그래서 특히 독일과 프랑스는 《직지심체요절》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란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박병선 박사의 끈질긴 연구와 자료 수집 끝에 2001년 9월, 《직지심체요절》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직지심체요절》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를 이용한 인쇄물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은 이 책을 아주 귀한 책으로 생각하여 단독 금고에 비공개로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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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김영삼대통령과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의궤를 우리나라에 돌려주기로 했는데, 외규장각 의궤는 5년 단위의 갱신이 가능한 임대 방식의 반환에 합의함으로써 타결점을 찾아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이 주도한 ‘직지 반환 반대 시위’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아직 반환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 활자를 만들어 책을 인쇄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한 고려의 금속 활자는 밀랍(양초의 주원료로 평상시에는 고체로 되어 있다가 열을 가하면 쉽게 녹는 물질)에 글자를 새긴 후 주물토로 감싼 후에 열을 가해 밀랍을 녹인다. 그러면 밀랍이 녹아 나가며 주물토에 글자 모양의 공간이 생기고, 이곳에 쇳물을 부어 굳힌 다음 주물토를 떼어 내면 활자가 완성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활자 제조법으로는 다양한 서적을 인쇄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기존 거푸집을 재활용할 수 없어서 책을 만들 때마다 활자 제조를 다시 해야 했다. 설혹 기존에 만들어 놓은 활자를 재사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주 미미한 양에 불과하다. 표의문자인 한자를 모두 한꺼번에 금속 활자로 만들어 놓을 수는 없으므로 고려의 금속 활자 기술이 대중화되지 못한 이유는 이러한 단점 때문이었다.

반면에 서양 금속 활자 중 최초인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는 인쇄술의 대중화가 가능했다. 그 이유는 표음 문자인 알파벳은 한번 활자를 만들어 놓으면 글자 배열만 바꿔서 여러 가지 다른 책도 만들 수 있었다. 여기에 구텐베르크는 처음부터 성경책을 인쇄하여 대중들에게 팔 요량으로 대량 인쇄를 염두에 두고 인쇄기를 제작했던 것이다. 또 실제적으로도 구텐베르크에 의해 인쇄된 성경은 대량으로 팔려 나가며 유럽 사회에 인쇄 혁명을 가져왔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4_9.html
kolaswqetsrq 11.02 10:59
■ 직지심체요절 3편

■ 직지심체요절 3편

활자의 주조술과 조판술이 아직 미숙했던 고려시대에 중앙관청이 아닌 지방의 한 사찰이 전통적인 밀랍주조법으로 주조하여 찍어낸 것이기 때문에 활자의 크기와 글자모양이 다소 고르지 않고, 부족한 글자를 나무활자로 보충하여 찍어냈기 때문에 인쇄상태가 다소 조잡한 상태이다. 원래는 상권과 하권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상권은 분실된 상태이고, 현재 하권만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책이 프랑스로 가게 된 경위는 1886년 한·프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했던 콜랭드 플랑시란 사람이 수집해 프랑스로 귀국할 때 가지고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람은 이 책에 관한 우수성을 가장 먼저 알아 본 사람인지도 모른다. 표지에다 ‘한국에서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금속활자 인쇄물’이라고 써놓았다고 한다. 드플랑시는 우리나라에서 수집해 간 대부분의 고서를 모교인 동양어 학교에 기증하였다.

그 후, 1911년 프랑스 경매에 180프랑(지금 돈 65만원 가량)에 이 책이 나왔을 때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다른 한국 책 80종은 사면서도 이 책은 사지 않았다고 한다. 동양의 조그만 나라에서 구텐베르크보다 앞서서 금속활자를 만들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그 가치를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다 골동품 수집상이었던 앙리 베베르라는 사람에게 넘어 갔고, 1950년 이 사람이 죽을 때의 유언에 따라 파리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중국과 일본 책 속에 파묻혀 있던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고(故) 박병선 박사에 의하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박병선 박사는 1967년부터 1980년까지 파리에 있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박병선 박사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도서의 해’에 전시할 책을 고르기 위하여 서고를 뒤지다가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병선 박사가 발견한 《직지심체요절》 하권은 세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하권이었다. 박병선 박사는 책을 살펴보던 중 마지막 장에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이라는 내용을 발견했고, 1972년 드디어 《직지심체요절》이 ‘파리 책 역사 종합박람회’에 출품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것은 독일 구텐베르크가 제작한 성경책보다 100년 앞선 금속활자본으로 세계 출판역사를 뒤흔드는 사건이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65.html
kolaswqetsrq 11.02 11:00
■ 직지심체요절 1편

■ 직지심체요절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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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삼국시대부터 금관이나 동판에 글자를 새기는 기술이 뛰어났다. 통일신라에서는 나무판에 글자를 새겨 찍어내는 목판 인쇄술이 크게 발달했는데, 이를 잘 증명해 주는 것이 바로 석가탑 보수공사 중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목판은 남아있는 것이 없고, 현재 존재하는 목판 인쇄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두루마리형태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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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술은 목판 인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목판 인쇄는 나무판에 문자나 그림을 새기고 그 표면에 먹물 같은 잉크를 묻혀 그 위에 종이를 놓고 문질러서 찍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목판을 한 번 만들면 여러 장의 인쇄물이나 여러 권의 책을 만들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나무판에 글자 하나하나를 가득 새겨야하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보관도 쉽지 않았다. 또, 한번 사용한 목판은 재활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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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활판인쇄다. 글자 하나하나를 따로 만들어 그 글자 중에 원하는 글자를 골라 판을 만들어 인쇄하는 것이다. 이때 인쇄를 하기 위해 만든 글자를 활자, 활자를 짜 맞춘 인쇄판을 활판이라고 한다. 활판인쇄는 목판인쇄보다 힘과 시간과 비용이 덜 들면서도 빠르게 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진보한 기술이었다. 활자는 11세기 무렵 중국에서 처음 개발됐는데 당시에는 찰흙으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찰흙으로 만든 활자는 쉽게 깨지고 판에서 자주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어 거의 사용되지 못했다. 그 뒤 나무로 만든 활자가 나왔지만, 습기에 쉽게 썩거나 갈라지고 여러 차례 인쇄하면 활자가 쉽게 닳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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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고려에서는 북방 민족의 잦은 침략과 무신의 난 등으로 궁궐이 자주 불탔다. 그래서 잘 타지 않는 활자를 만들 궁리를 하다가 금속으로 활자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금속을 녹여 물건을 만드는 금속 기술은 이미 고대로부터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연장선에서 서양보다 훨씬 앞서 금속활자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금속 활자는 글자를 한 자 한 자 금속을 녹여 거푸집에 부어 만들어 놓고, 이 글자들을 내용에 따라 짜 맞추어 판을 만들었기 때문에 재사용이 가능하다. 인쇄비용이 목판에 비해 적게 들면서도 일하는 시간은 한층 줄어들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도 초기에는 목판인쇄가 이루어지다가 13세기에 이르러서 금속활자가 처음 제작되었는데, 아쉽게도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 활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고려 후기의 문장가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에 ≪상정예문(詳定禮文)≫이란 책을 금속 활자로 찍었다(1234년)는 기록만 전해지고 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191.html
kolaswqetsrq 11.02 11:01
유생개곡有生皆哭 - 살아남은 사람 모두 곡을 하다.

유생개곡(有生皆哭) - 살아남은 사람 모두 곡을 하다.

있을 유(月/2) 날 생(生/0) 다 개(白/4) 울 곡(口/7)

天泣地哀(천읍지애) 하늘도 울고 땅도 운다는 말은 언제 쓰일까? 북한에서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이 말을 사용했다. 하지만 대규모의 천재지변이나 대형사고가 났을 때, 가까운 예로 세월호 참사나 일본 쓰나미 희생자의 영결식에 적합한 말이다. 추적추적 비라도 내리면 더욱 실감난다.

이런 재해에 비할 정도가 아닌 전쟁의 참화는 전 국토가 마비되고 시체가 온 들판에 나뒹구니 더욱 슬피 울 일이다. 살아있는 사람(有生)이 모두 다 곡을 한다(皆哭)는 이 말도 壬辰倭亂(임진왜란)의 참상을 전하는 데서 나왔다.

임진년인 1592년 음력 4월 13일, 양력으로는 5월 23일 왜국의 700여 병선이 부산으로 물밀듯 밀려 왔고 이틀 사이로 1만 8000여 왜병들에 의해 부산진성과 동래성이 함락됐다. 고립무원으로 홀로 맞선 동래 宋象賢(송상현, 1551~1592) 부사 이하 군민들은 끝까지 항전하다 순국했다.

왜란이 끝난 뒤 1608년(선조 41) 동래부사로 부임한 李安訥(이안눌, 1571~1637, 訥은 말더듬거릴 눌)은 어느 날 아침 온 성안이 진동하는 곡소리에 놀랐다. 늙은 아전을 불러 어찌된 연유인지 물어 보았다.

아전은 왜란 때 왜적이 몰려 와 성안으로 피난 온 백성들이 몰살을 당했는데 4월15일 기일만 닥치면 살아남은 백성들이 집집마다 제상을 차리고 곡을 한다고 답했다. 아비가 자식 곡을 하고, 아들이 아비 곡을 하고, 어미가 딸을, 딸이 어미를 곡하는데 이렇게 곡할 사람이 있는 집은 그래도 다행이고 곡할 사람이 없는 집도 수두룩하다고 아뢴다.

시문에도 뛰어나 李太白(이태백)에 비유되기도 했다는 부사가 이 때의 슬픔을 기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東岳集(동악집)’의 萊山錄(내산록)에 실린 장시 ‘四月十五日(사월십오일)’ 해당 부분을 보자. ‘형제나 자매나 따질 것 없이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곡을 하지요(兄弟與姉妹 有生皆哭之/ 형제여자매 유생개곡지), 이맛살 찡그리며 듣다못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네(蹙額聽未終 涕泗忽交頤/ 축액청미종 체사홀교이).’ 蹙은 찡그릴 축, 涕는 눈물 체.

栗谷(율곡)선생의 10만 양병설을 흘려듣고 방비를 소홀히 한 대가는 전 국토의 초토화였다. 일제 강점기는 물론 오늘날도 틈만 보이면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은 한시도 방심해선 안 된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698.html
kolaswqetsrq 11.02 11:03
혁희음생赫曦陰生 - 밝고 뜨거운 햇살 이후 음기가 생기다.

혁희음생(赫曦陰生) - 밝고 뜨거운 햇살 이후 음기가 생기다.

빛날 혁(赤/7) 햇빛 희(日/16) 그늘 음(阝/8) 날 생(生/0)

지구가 태양을 1년에 걸쳐 돌면서 위치에 따라 변화하는 四季(사계)를 세분하여 二十四節氣(이십사절기)를 만들었다. 立春(입춘), 雨水(우수)부터 小寒(소한), 大寒(대한)까지 24개로 나눈 것이 그것이다. 예부터 이에 맞춰 농사를 지었기에 일상에 영향이 컸고 중국에는 노동요로 節氣歌(절기가)까지 전해졌다.

立夏(입하)부터 시작되는 여름을 예로 들면 이런 식이다. ‘여름은 까끄라기 가득하고 여름 더위 이어지네(夏滿芒夏暑相連/ 하만망하서상연).’ 小暑(소서), 大暑(대서)까지 이어진다는 뜻이다. 낮이 가장 길고 밤이 짧은 夏至(하지)는 여름 햇살이 가장 밝고 뜨거운데(赫曦) 이후부터 서서히 서늘한 기운이 생긴다(陰生)는 이 말은 영원한 것이 없다는 의미도 가졌다.

하지를 노래한 시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唐(당)나라 시인 權德與(권덕여, 759~818)의 시구에서 나온 성어다. 그는 4세에 시를 짓고 15세에 산문 수백 편을 짓는 등 어려서부터 문사로 알려졌다. 그 재주를 듣고 12대 황제 德宗(덕종)의 부름을 받아 여러 관직을 거친 뒤 재상까지 지냈을 정도였다.

그가 하지를 맞아 지은 오언절구의 시 ‘夏至日作(하지일작)’은 ‘천체의 운행에는 머무름이 없다오(璿樞無停運/ 선추무정운)’로 시작한다. 구슬 선(璿)은 璇(선)으로도 쓰며 천문관측 기구인 渾天儀(혼천의)를 가리키기도 하고, 북두성의 두 번째 별을 나타내기도 한다. 지도리 추(樞)는 여기서 첫 번째 별인데 합쳐서 북두성을 중심한 천체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어지는 세 번째 구에 성어가 나오는데 차례대로 보자. ‘사계절이 차례를 지켜 번갈아 드네(四序相錯行/ 사서상착행), 이글거리는 햇볕에 말을 하노니(寄言赫曦景/ 기언혁희경), 오늘부터 서늘한 기운 생겨난다네(今日一陰生/ 금일일음생).’

절기의 변화에 중심이 되는 북두성의 위치에 따라 천체 전체가 움직인다고 옛사람들은 봤다. 그래서 사계절이 반복적으로 교대한다는 뜻의 錯行(착행)으로 나타냈다. 더위가 절정인 하지 즈음의 이글거리는 풍경도 이제부터는 차츰 음기가 시작되는 것을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하지 때부터 서늘한 음기를 생각하라는 계절의 변화는 비슷한 말이 많은 중에서 달도 차면 기운다는 月滿則虧(월만즉휴)가 세상 만물이 한 번 번성하면 쇠하기 마련이란 뜻을 잘 나타냈다. 높은 자리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은 세상의 이치와는 달리 자신에게는 오래 갈 줄 생각한다.

온 국민의 열렬한 성원을 받고 들어선 정부가 얼마 안 가 인기가 시드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 것도 자기 세상이라며 오만을 부리다 민심과 멀어지기 때문이다. 物極必反(물극필반),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을 명심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836.html
kolaswqetsrq 11.02 11:04
무언불수無言不讐 - 어느 말에도 응답이 있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

무언불수(無言不讐) - 어느 말에도 응답이 있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

없을 무(灬/8) 말씀 언(言/0) 아닐 불(一/3) 원수 수(言/16)

말이 많거나, 말을 잘못 하거나 말로 인한 재앙은 끊임이 없다. 자기가 내세우는 주장이 옳다고 고집하거나 잘못을 보고도 입을 다물거나 모두 말썽이 되니 그만큼 말이 어렵다. 말을 조심하라는 성현의 가르침이 끝이 없는 것도 그만큼 알고도 지키지 못하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섬뜩하면서도 널리 알려진 성어가 중국 五代(오대)의 장수 재상이었던 馮道(풍도)의 口禍之門(구화지문)이다. 여기에 혀가 몸을 베는 칼이라는 舌斬身刀(설참신도)가 따르니 무시무시하다. 3000년이 넘는 가장 오래된 시집 ‘詩經(시경)’이 말조심에 빠질 수 없다. 말을 하게 되면 응답이 없을 수 없다는 성어가 大雅(대아)에 나오는 無言不讐(무언불수)다.

대아는 周(주) 왕실을 노래한 것이 많고 궁중조회 때 쓴 음악이라는데 春秋時代(춘추시대) 衛(위)의 武公(무공)이 스스로 경계하기 위하여 곁에서 외우게 했다는 抑篇(억편)에 나온다. 전체 12장으로 상당히 긴데 여섯 번째 장에 등장한다. 말에 관한 세 구절만 보자.

‘나오는 대로 말하지 말고, 구차하게 말을 해서는 안 된다(無易由言 無曰苟矣/ 무이유언 무왈구의), 내 혀를 잡아주는 사람 없으니, 내뱉은 말 뒤쫓을 수 없다네(莫捫朕舌 言不可逝矣/ 막문짐설 언불가서의), 말에는 대답이 없을 수 없고, 덕은 반드시 보답이 있다네(無言不讐 無德不報/ 무언불수 무덕불보).’ 捫은 어루만질 문, 朕은 나 짐, 원수 讐(수)에는 대답하다, 갚다의 뜻도 있다.

이 장의 앞부분에 나오는 백옥의 반점이란 뜻의 白圭之玷(백규지점, 玷은 이지러질 점)도 말조심을 시키는 유명한 문구다. ‘흰 구슬의 흠은 오히려 갈면 되지만(白圭之玷 尙可磨也/ 백규지점 상가마야), 말의 흠은 어찌할 수 없느니라(斯言之玷 不可爲也/ 사언지점 불가위야).’ 論語(논어) 先進(선진)편에 관련 일화가 있다.

孔子(공자)의 제자 南容(남용)이 이 구절을 하루에 세 번 암송하는 것을 보고 믿을 만하다며 형의 딸을 시집보내 조카사위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말을 두려워하고 신중히 하는 남용의 인격과 인품을 높이 샀다.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는 禍從口出(화종구출)이나 말을 잘 하는 ‘蘇張(소장)의 혀’ 등 무수한 말이 있지만 ‘明心寶鑑(명심보감)’의 言語(언어) 편에 음미할수록 좋은 말이 많다. 두 가지만 인용한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뜻하기가 솜과 같고,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날카롭기가 가시 같다(利人之言 煖如綿絮 傷人之語 利如荊棘/ 이인지언 난여면서 상인지어 이여형극).’ ‘술은 나를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면 천 잔도 적고, 말은 기회가 맞지 않으면 한 마디도 많다(酒逢知己千鐘少 話不投機一句多/ 주봉지기천종소 화부투기일구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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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05
기명위절其名爲竊 -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의 이름은 도둑

기명위절(其名爲竊) -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의 이름은 도둑

그 기(八/6) 이름 명(口/3) 하 위(爪/8) 훔칠 절(穴/17)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쉽게 남을 평가한다. 속은 알찬 사람인데 겉으로 어리석게 보여 함부로 대하다 된통 당한다. 성인은 빛을 감춘다고 하여 드러내는 법이 없다. 일부러 어리석게 보여도 어딘가 티가 난다며 難得糊塗(난득호도)라 했는데 어리석은 자는 눈치도 못 챈다.

반면 인물이 훤하고 말을 청산유수같이 줄줄 늘어놓을 때 모두들 대단한 사람이라 여긴다. 이런 사람들 중에서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는 개차반도 있는 법이라 ‘빛 좋은 개살구’란 속담이 나왔다. 이름만 번지르르한 虛名無實(허명무실)의 羊頭狗肉(양두구육)인 사람이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고 속으로 엉망인 사람의 이름(其名)은 도둑(爲竊)이라고 꾸짖는 말까지 있다.

중국의 제자백가 중 道家(도가)를 대표하는 莊周(장주)는 ‘莊子(장자)’에서 창시자인 老子(노자)를 자주 등장시킨다. 자연과 인간의 특징을 무위와 유위로 규정하는 天道(천도)편에 성어가 나온다. 노자와 士成綺(사성기)의 대화에서다.

사성기란 정체는 周(주)나라 현인, 노자의 제자, 가상의 인물 등 구구하다. 사성기가 어느 때 노자를 찾아 와 항의한다. 먼 길을 달려왔는데 곳곳에 채소가 흩어져 물건을 아끼지 않고 음식이 쌓여 있는데도 모으니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고 했다. 노자는 무심한 듯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사성기가 잘못 생각했다며 사과하자 노자는 자신을 소나 말이라 불렀어도 그렇게 받아들였을 것이라 말한다. 또 사성기의 풍채는 위압적이고 움직임이 빠르며 사물을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면서 충고할 점을 지적한다.

‘뛰어난 지혜와 재주만 믿고 마음속의 교만을 가장한 것이 드러나는데, 이러한 행위들은 인위적인 것이라 믿을 수 없지(知巧而覩於泰 凡以爲不信/ 지교이도어태 범이위불신), 변경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도둑이라 부르지(邊竟有人焉 其名爲竊/ 변경유인언 기명위절).’ 노자가 자신에게 거들먹대며 잘난체하는 사성기에게 일침을 놓았다.

사성기는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좋아했어도 노자의 가르침은 바로 받아들인다. 잘못 생각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노자에 기러기처럼 앞서서 날지 않고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雁行避影(안행피영)의 스승으로 대한 것이 사성기다. 온갖 지혜가 가득한 사람이라도 하는 행동이 겉과 다를 때는 表裏不同(표리부동)이다.

이보다 훨씬 더 고약한 것이 내가 하는 행동은 항상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욕하는 ‘내로남불’이다. 근년의 정치계에서 너무나 잦아 我是他非(아시타비)의 새 성어나 Naeronambul이란 신조어로 세계에 알려졌다. 도적이라 꾸짖는 것보다 부끄러운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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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06
민심무상民心無常 - 백성의 마음은 일정하지 않고 늘 변한다.

민심무상(民心無常) - 백성의 마음은 일정하지 않고 늘 변한다.

백성 민(氏/1) 마음 심(心/0) 없을 무(灬/8) 떳떳할 상(巾/8)

‘민심은 물과 같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백성들의 마음은 무섭다. 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어버리기도 하듯이 늘 지지를 해주는듯하다 어느 순간 위정자가 방심하면 가차 없이 응징한다. 載舟覆舟(재주복주)의 성어가 말해 주는 바 다. 백성들의 마음(民心)은 일정하지 않고 정치가 하는 바에 따라 착하게도 되고 무섭게 변하기도 하는(無常) 것이다. 민심이 天心(천심)이라는 말도 있다. 天道敎(천도교)의 중심교리이기도 한 人乃天(인내천)은 사람이 곧 하늘이란 뜻이면서 세상 민심이 하늘의 뜻이라는 의미도 동시에 지녔다고 한다.

예부터 중국에선 천하를 얻기 위해선 백성들의 마음을 먼저 얻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성군 堯舜(요순)이 추앙받는 것도, 폭군 桀紂(걸주)를 지탄하는 것도 백성을 어떻게 대했느냐에 따라 갈렸다. 孟子(맹자)가 이에 대해 잘 설명한다.

‘걸왕과 주왕이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며, 그 백성을 잃은 것은 그들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桀紂之失天下也 失其民也 失其民者 失其心也/ 걸주지실천하야 실기민야 실기민자 실기심야).’ 離婁上(이루상) 편에 나온다.

민심은 늘 변한다는 성어는 春秋(춘추) 이전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書經(서경)’에 등장한다. 항상 숭상해야 한다고 尙書(상서)라고도 한다는 책이다. 요순과 夏(하), 殷(은) 다음의 周書(주서) 蔡仲之命(채중지명)편에 실린 내용이다. 채중지는 모반을 꾀했던 부친과는 달리 현명한 사람으로 周公(주공)의 추천을 받고 蔡(채) 땅의 제후로 봉해진 사람이다. 부분을 인용해보자.

‘하늘은 특별히 누구에게만 가까이하는 일 없이 오직 덕 있는 사람이면 그를 돕는다, 백성의 마음은 일정하지 아니하여 오직 혜택을 주는 사람에게 따르게 마련이다(皇天無親 惟德是輔 民心無常 惟惠之懷/ 황천무친 유덕시보 민심무상 유혜지회).’ 泰誓中(태서중)편의 ‘하늘은 우리 백성들의 눈을 통해 보고, 하늘은 우리 백성들의 귀를 통해 듣는다(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 천시자아민시 천청자아민청)’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민심보다는 輿論(여론)이라는 말을 더 쓰게 된 오늘날에도 그 중요성은 변한 것이 없다. 천심인 여론을 무시하면 한 번에 날아가니 오늘에 안주해서는 안 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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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07
낙이망우樂以忘憂 - 일을 즐기느라 모든 근심을 잊다.

낙이망우(樂以忘憂) - 일을 즐기느라 모든 근심을 잊다.

즐길 락(木/11) 써 이(人/3) 잊을 망(心/3) 근심 우(心/11)

어떤 한 가지 일에 열중하면 좋은 결과를 얻는다. 그렇다고 바로 성공을 가져다주지는 않고 실패를 이기며 끈기를 가져야 영광을 차지한다.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은 ‘일을 옳게 하려면 결코 시계를 보지 말라‘고 했다. 1000번이 넘는 실패를 거쳐 전구를 발명한 그가 그래서 실험하다 계란인 줄 알고 시계를 삶았나보다.

사슴을 쫓을 땐 명산의 경치를 볼 여유가 없다고 逐鹿者不見山(축록자불견산)이라 했다. 오직 한마음을 가지고 한길로만 나아가면 專心致志(전심치지)로 뜻을 이룰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視而不見 聽而不聞/ 시이불견 청이불문)‘ 상태가 된다.

유교의 시조이자 仁(인)을 강조한 孔子(공자)는 학문에서도 스스로 배우는 것을 좋아하며 한 가지 일에 열중하면 침식을 잊을 정도였다. 배우는 것이 즐거워(樂以) 모든 근심을 잊을 수 있다(忘憂)는 성어는 공자에게서 비롯됐다. ‘論語(논어)’의 述而(술이)편에 이 말이 나온 전후의 사정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楚(초)나라의 葉公(섭공)이란 사람이 공자의 제자 子路(자로)에게 스승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잎 葉(엽)은 사람 성이나 지명일 때는 ‘섭‘으로 읽고, 섭 지역을 다스리던 대부 沈諸梁(심제량)이 공을 참칭했다고 한다. 겉으로만 용을 좋아했다는 葉公好龍(섭공호룡)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자로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하자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며 스승이 꾸짖는다. ‘그 사람됨이 어떤 일에 열중하면 끼니를 챙겨 밥 먹는 것조차 잊고(其爲人也 發憤忘食/ 기위인야 발분망식), 이를 즐거워하여 근심을 잊고 늙어 가는 것도 모른다(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 낙이망우 부지노지장지).’ 자신의 학문에 대한 태도를 말한 것이어서 겸연쩍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래도 공자가 어떤 일에 열중하면 끼니까지 잊는다는 發憤忘食(발분망식)의 성어와 함께 집중력을 실감하게 하는 일화가 있다. 공자가 齊(제)나라에서 舜(순)임금의 음악인 韶(소)를 듣고선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었다(三月不知肉味/ 삼월부지육미)’고 했다. 좋아하는 음악에 빠져 음률과 내용을 음미하느라 다른 것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떤 일을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낫고 그보다 즐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즐기면서 열중하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자주 사용되는 명언이 있다.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무슨 일이든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일도 하사불성)는 말과 호랑이에 온 정신을 집중해 쏜 화살은 바위까지 뚫었다는 中石沒鏃(중석몰촉)이다. 그런데 정신집중이라도 권장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돈을 움켜쥐기만 하면 다른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攫金者不見人(확금자불견인)이나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과 같이 나쁜 길도 열리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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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08
유재시거唯才是擧 - 오직 재능 있는 인재를 천거하여 뽑다.

유재시거(唯才是擧) - 오직 재능 있는 인재를 천거하여 뽑다.

오직 유(口/8) 재주 재(手/0) 옳을 시(日/5) 들 거(手/14)

크거나 작거나 어떤 조직을 운영할 때 가장 중시해야 할 일이 인재등용이다. 유능하고 리더십이 강한 지도자라도 혼자서는 이루지 못하니 도와줄 인재를 찾는다. 어떤 사람을 구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니 그만큼 중요하다고 人事萬事(인사만사)라 했다.

大公無私(대공무사)하게 인품이 훌륭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찾는 任人唯賢(임인유현)이 바람직하지만 실제는 어렵다. 가까운 사람 임용하는 任人唯親(임인유친)이 많고, 소문만으로 아니면 겉모습만 보는 以言取人(이언취인)이나 以貌取人(이모취인)이 많아 亡事(망사)가 되는 일이 잦다. 오로지 재능 있는 사람(唯才)을 천거하면 등용한다(是擧)는 원칙은 曹操(조조)에게서 나왔다.

중국 晉(진)나라의 陳壽(진수)가 편찬한 정사 ‘三國志(삼국지)’의 魏書(위서)에서 유래했다. 강대국 魏(위)의 실력자 조조가 赤壁(적벽)의 싸움에서 蜀吳(촉오)의 연합군에 패하고 절박한 심정에서 求賢令(구현령)을 발표했다. 조조는 간웅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라를 경영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는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으니 현인을 급히 구해야 할 때라며 재능만 있으면 개인의 배경이나 과거의 전력을 문제 삼지 않고 등용하겠다고 공포했다. 姜太公(강태공)같은 위인이 숨어 있을 수 있고, 管仲(관중)같은 청렴과는 거리가 멀어도 발탁돼 桓公(환공)을 패자로 올렸다며 이어진다.

‘또한 형수를 범하고 금을 받아도 재능을 알아본 무지를 못 만난 자가 어찌 없겠는가(又得無有盜嫂受金而 未遇無知者乎/ 우득무유도수수금이 미우무지자호)? 그대들이 나를 돕고자 한다면 흠결이 있어도 재능만 보고 천거하라(二三子其佐我明揚仄陋 唯才是擧/ 이삼자기좌아명양측루 유재시거).’ 二三子(이삼자)는 그대들, 仄陋(측루)는 흠결이 있는 사람. 劉邦(유방)을 도와 漢(한)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 陳平(진평)은 도덕적으로 흠결이 많은 사람이었다.

項羽(항우)를 섬기다 왔고 형수와 사통했으며 뇌물을 받고 장군을 배치했다. 천거한 魏無知(위무지)란 사람은 유방이 왜 이런 사람을 추천했는지 나무라자 행실이 아니고 능력만 봤다고 했다. 실제 진평은 漢高祖(한고조) 사후 呂后(여후)들의 농단을 막고 한나라를 굳게 지켰다.

실제 조조는 인재를 발탁하여 조정을 장악하고 아들 曹丕(조비)가 위나라를 세우는데 기반을 닦았다. 그런데 그가 예를 든 유방의 진평 중용은 천하가 난리통이라 흠결 투성이도 덮이고 뒷날의 성과가 드러났다고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의 인재 등용은 어지러운 시대도 아니니 정부 등 기관에 깨끗한 사람들로 채워질까. 능력은 고사하고 도덕성을 넘어 범죄자까지 발탁되고 버젓이 청문회를 통과하는 공직자들을 너무나 자주 본다. 정권이 바뀌면 오로지 내편만을 낙하산으로 곳곳에 배치하여 이전의 비난을 무색하게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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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09
살이 찌는 과일과 살이 빠지는 과일

살이 찌는 과일과 살이 빠지는 과일

★살이 찌는 과일★

* 포도 ᅳ 작은 송이 한 개에 140kcal로 과일 중에서도 칼로리가 높다. 특히 거봉은 일반 포도 칼로리의 세 배.

* 멜론 ᅳ 작은 것 한 개가 300kcal, 얇게 썬 한 조각 이 38kcal. 달콤한 과즙에 당분이 많이 함유되어 특히 밤에 먹 는 것은 금물.

* 바나나 ᅳ 당뇨 환자들이 혈당수치를 높이기 위해 애용할 정도로 GI가 높다. 칼로리 역시 한 개에 100kcal.

* 수박 ᅳ ‘설탕 수박’이라는 말이 사실. 그만큼 당도가 높다. 흡수가 빨라서 많이 먹어도 금방 허기때문에 식사 대용으로는 좋지 않다. 큰 것 한 조각은 50kcal.

* 참외 ᅳ 반쪽에 35kcal 정도로, 칼로리는 높지 않지만 GI가 높다. 씨 부분은 먹지 말 것.

* 귤 ᅳ 중간 크기 한 개에 62kcal로 오이 큰 것 세 개에 해당한다. GI도 높아 쉽게 살이 찌는 대표주자.

★살이 빠지는 과일★

* 자몽(그레이프 프루츠) ᅳ 아주 큰 것 한 개에 100kcal. 항산화 비타민이 많이 있어 건강에도 좋다.

* 푸른 사과(아오리) ᅳ 중간 크기 한 개에 120kcal. 특히 푸른 사과는 당도가 낮아 다이어트에 좋다. 아침에 먹는 사과는 위액 분비를 촉진해 소화를 돕고, 밤에 먹으면 위액을 독한 산성으로 만들어 속을 쓰리게 한다.

* 키위 ᅳ 키위 작은 것 30kcal. GI도 낮아서 살찔 걱정 없고, 비타민과 섬유질이 풍부해 변비에도 좋다.

* 감 ᅳ 칼륨이 많이 함유되어 특히 하체 비만에 좋다. 중간 크기 한 개에 100kcal.

* 토마토 ᅳ 토마토 30개가 400kcal밖에 되지 않는다.

* 배 ᅳ 배불리 먹어도 부담 없는 과일. 한 조각에 25kcal로 크기에 비해 칼로리가 적다. 섬유질이 풍부해서 장이 나쁠 때 배즙을 먹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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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10
독소 레벨 체크

독소 레벨 체크

해당 사항에 O표를 해보자.

1. 감기에 잘 걸린다.

2. 요통이 있다.

3. 관절통이 있다.

4. 설사를 자주 한다.

5. 변비에 잘 걸린다.

6. 여드름이나 뾰루지가 많다.

7. 피부가 잘 거칠어진다.

8. 얼굴이나 다리가 잘 붓는다.

9. 냉증이 있다.

10. 식욕이 없다.

11. 만성적인 피로감이 있다.

12. 현기증이 자주 일어난다.

13. 눈이 자주 피곤하다.

14. 어깨가 잘 결린다.

15. 두통이 잦다.

16.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

17.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18. 얼굴에 기미가 늘었다.

19. 몸이 자주 저리다.

20. 체중이 갑자기 늘었다.

21. 기분이 자주 가라앉는다.

22. 집중력이 떨어졌다.

23. 화를 잘 낸다.

24. 늘 초조하다.

25. 주변에 흡연자가 많다.

26. 담배를 피운다.

27. 저녁식사 시간이 항상 늦다.

28. 채소를 싫어한다.

29. 과자를 자주 먹는다.

30. 정화하지 않은 물을 먹는다.

31. 에어컨을 오래 사용한다.

32.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33. 술을 자주 마신다.

34. 외식을 자주한다.

35. 목욕 대신 샤워로 끝낸다.

36. 자외선을 받는 시간이 길다.

37.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38.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39. 식사시간이 불규칙하다.

40. 배변시간이 짧다.

41. 장시간 같은 자세로 일한다.

42. 매일 샴푸로 머리를 감는다.

43. 수분을 별로 섭취하지 않는다.

44. 수면 부족으로 언제나 졸리다.

45. 컴퓨터를 오랜 시간 사용한다.

46. 밥을 빨리 먹거나 많이 먹는다.

47. 어패류를 자주 또는 많이 먹는다.

48. 기름기 많은 음식을 자주 먹는다.

49. 치아를 금속으로 때우거나 씌웠다.

50. 운동 후 좀처럼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진단 결과

O의 개수가 0~5개인사람 - 독소 레벨 1 : 상당히 양호하다. 지금처럼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도 독소가 몸에 쌓이지 않는 생활을 하도록 하자.

O의 개수가 6~15개인사람 - 독소 레벨 2 : 몸속에 독소가 조금씩 쌓여가는 단계다. 겉으로는 건강하게 보이지만 체내 연령은 실제 연령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O의 개수가 16개 이상인 사람 - 독소레벨 3 : 독소가 상당히 많이 쌓여 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생활습관병이 될 수 있으므로 해독주스 하루 1잔으로 독소를 몸 밖으로 내보내는 생활을 시작하자.

독소배출 해독주스 만드는법

1. 양배추, 당근, 브로콜리, 토마토, 사과, 바나나를 준비한다.

2. 양배추, 당근, 브로콜리, 토마토를 적당하게 잘라서 15분 동안 삶아 준다.

3. 10분동안 삶은 채소들을 식히고, 믹서기에 넣는다. (삶을 때 나온 육수까지)

4. 바나나, 사과, 요쿠르트를 넣고 같이 갈아 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122.html
kolaswqetsrq 11.02 11:11
병을 낫게 해주는 차

병을 낫게 해주는 차

1. 항암에 좋은 차 : 감초차,마름차,율무차.옥수수차, 산수유차,영지차,표고차,오갈피차,쑥차

2. 피로회복에 좋은차 : 만삼차,더덕차,박하차,검정콩차,녹차, 매실차,오미자차,인삼차,두충차

3. 기관지염에 좋은차 : 도라지차,모과차,민들레차,비파차, 살구차,감초차,더덕차,잔대차,진달래차, 질경이차,뽕잎차,박하차

4. 간(간장)에 좋은차 : 들국화,구기자,두충,들깨,모과,뽕잎, 산딸기,산수유,새삼,오갈피

5. 진통에 좋은차 : 계피차,들국화차,치자차,칡차,홍화차,으름차, 율무차,두충차,대추차,당귀차

6. 고혈압에 좋은차 : 감잎차,검정콩차,냉이차,당귀차,다시마차, 더덕차,들국화차,삼지구엽차,솔차 쑥차,연차,

7. 콜레스테롤 저하 : 더덕차,해바라기

8. 비염에 좋은차 : 은행차,산수유차,산딸기차

9. 향균작용 : 으름덩쿨차,음양각차,은행차,쑥차, 인동넝쿨차,매실차,치자차,민들레차

10. 가래에 좋은차 : 도라지차,더덕차,진달래차,오미자차, 치자차,감초차,녹차,다시마차 귤피차

11. 관절염,관절통에 좋은차 : 다래차,오갈피차,들국화차,복숭아차,삼지구엽차,결명자차,두충차, 으름덩쿨차,유자차,율무차,대추차,다시마차,모과차,검정콩,계피차박하차, 만병초차,마름차,뽕잎차,삽주차,탱주차,생강차, 해당화차

12. 피부미용에 좋은차 : 감잎차,산딸기차,구기자차, 대추차,둥굴래차,매실차

13. 해독에 좋은차 : 감초차,들국화차,민들레차,냉이차,칡차, 다래차,대추차,더덕차,마름차,검정콩차, 인동차,녹차

14. 해열,칭열에 좋은차 : 질경이차,구기자차,냉이차,대추차,도라지차,둥글래차,감국차

15. 협심증에 좋은차 : 칡차

16. 간염에 좋은차 : 감초,민들레,오미자,인동,질경이,결명자,회화

17. 천식에 좋은차 : 감초차,도라지차,들깨차,살구차,율무차,은행차,호도차

18. 눈병에 좋은차 : 현미,모과,감잎,당귀,두충,보리,복숭아,결명자,솔잎

19. 지혈에 좋은차 : 냉이차,석류차,연차,인동차,칡차,호도차

20. 치질에 좋은차 : 호도차,계피차,쑥차,탱자차,냉이차,호박차,석류차

21. 항문염증에 좋은차 : 동과차,감잎차

22. 탈항에 좋은차 : 감잎차,단너삼차,만삼차,석류차,탱자차

23. 편도섬염에 좋은차 : 더덕차,도라지차,민들레차,인동넝쿨차,홍화차

24. 폐결핵에 좋은차 : 구기자차,더덕차,매실차,모과차,산수유차,호도차

25.폐렴에 좋은차 : 들국화차,인동넝쿨차,살구차,율뮤차,모과차

26. 항알레르기 : 감초차

27. 항염,소염에 좋은차 : 감초차,들국화차,오갈치차,인동넝쿨차, 치자차,박하차,귤피차,옥수수차 으름덩쿨차

28. 황달에 좋은차 : 질경이차,다래차,삽주차,옥수수차,으름덩쿨차, 결명자차,칡차, 하늘타리차,쑥차,치자차,검정콩차

29. 건망증에좋은차 : 삼지구엽차,식창포차,솔잎차,인삼차

30. 결막염에 좋은차 : 결명자차,민들레차,질경이차,으름덩쿨차,치자차

31. 고기먹고 체한데 : 귤피차,살구차,연차,생강차

32. 콜레라에 좋은차 : 도토리차,귤피차,모과차,박하차, 생강차,삽주차, 들국화차

33. 괴혈병에 좋은차 : 감잎차

34. 구내염(입냄새)에좋은차 : 도라지차,들국화차,홍화차,결명자차

35. 구충에 좋은차 : 도토리차,매실차,살구차.식류차, 호박차,회화

36. 구토에 좋은차 : 계피차,다래차,비파차,삽주차, 생강차,칡차, 귤피차

37. 기가 약한 사람 : 보리차,검정콩차,비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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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12
■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5편

■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5편

그로부터 3년 뒤인 1465년(세조11년) 6월11일 이순지가 세상을 떠났다. 조선을 거듭나게 한 과학자에 대한 예의였을까. 대신들은 사방지와 이씨의 관계를 2년 동안 한 마디도 거론하지 않았다. 때문에 두 사람은 정답게 부부 같은 생활을 지속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비와 양반가 여성의 애정행각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었다. 1467년(세조13년) 4월5일 조정에서 다시 사방지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다. 한명회를 비롯한 여러 신료들이 두 사람의 추문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며 세조에게 처벌을 권유했던 것이다.

“전에도 국문하지 않았는데 지금 다시 거론하면 법이 가볍다 하지 않겠는가. 그냥 둘이 살게 내버려 두어라.” 세조가 시큰둥하게 반응하자 신숙주와 심회가 나섰다. “사방지는 일찍이 비구니와 간음해서 환속시킨 바도 있습니다. 그 자를 내버려두면 도성 안에 풍속이 더럽혀질까 두렵습니다.”

그들의 공세에 지친 세조는 입시하고 있던 형조 판서 서거정에게 물었다.

“이 사실을 경도 아는가?”

“물론입니다. 무릇 하늘에 달려 있는 도리를 음양이라 하고 사람에게 달려 있는 도리는 남자와 여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한데 이 사람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니 죽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일찍이 명나라 학자들로부터 ‘해동(海東)의 기재’라는 찬탄을 받은 바 있는 서거정의 단호한 판결에 승복한 세조는 결국 사방지를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사람이 아니니 뭇 노비들과 함께 어울릴 자격조차 없다는 것으로 판단을 내렸다. 이씨의 아버지 이순지가 세상을 떠난 마당에 그들을 지켜줄 보호막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왕은 이씨의 사돈 정인지나 사방지의 주인 안맹담의 집안과는 상관없는, 사방지 개인의 질병으로 간주하고 처리해 버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에 대한 처벌은 한 마디도 논의되지 않았다. 그녀를 치죄하면 다시금 골치 아픈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어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튿날인 4월 6일 사방지는 체포되어 곤장을 맞은 뒤 도성에서 쫓겨나 신창현(新昌縣)의 관노가 되었다.

1473년(성종 4년) 11월 8일 성종이 김유악(이씨의 아들)을 경상도 도사로 임명하려 하자 대사헌 서거정이 가문의 추문을 이유로 반대하기도 했다. 연산군에 이르러서는 아예 부마를 선택함에 있어 김유악의 후손은 제외되었다. 양성인 노비 사방지와 반가의 여인 이씨의 지독한 사랑은 후손들에게도 그 여파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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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13
■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3편

■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3편

이런 막강한 배경을 지닌 여인 이씨는 기이한 양성인 사방지와 여주인과 침모의 관계로 철저히 위장한 채 10여 년 동안 행복한 부부로 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경계심이 흐트러졌는지 세간에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이씨와 사방지의 행각은 결국 포도청에까지 알려졌다. 반가의 미망인이 여종과 다정하게 지낸다는 것은 과거 문종의 아내 휘빈 김씨의 경우처럼 동성애의 혐의가 다분했다.

그때부터 두 사람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던 포교는 이씨 부인이 판중추원사 이순지의 딸인 데다가 하동부원군 정인지의 사돈마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놀라서 사건을 감찰기관인 사헌부에 넘겨버렸다. 오늘날의 감사원에 해당하는 사헌부는 관원의 기강을 감찰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서는 특별히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와 같은 유교적 도덕사회에서 사방지의 정체와 행동이 허용될 턱이 없었다.

사헌부 감찰은 은밀히 사방지의 전력을 탐문한 끝에 그와 간통했던 비구니 중비를 잡아들여 사방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물었다. 중비의 대답은 “그는 분명 남자입니다.”이었다. 수사 초기에는 동성애를 의심했지만 중비의 증언에 따라 이제는 간통 사건이 되었다. 감찰은 즉시 사방지를 잡아들였지만, 겉모습이 완벽한 여인이라 함부로 손을 대지도 못했다. 그래서 여의(女醫) 반덕에게 검의(檢擬)를 하게 했더니, 사방지는 겉모습은 분명 여자이지만 몸은 남자생식기가 달려 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남녀 성별이 불확실한 부마의 노비와 공신의 딸이자 사돈마님이 얽힌 전대미문의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 고심하던 사헌부 장령 신송주는 결국 세조에게 사건의 전말을 보고했다. 1462년(세조8년) 4월27일의 일이었다. 보고를 받은 세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곁에 있던 부마 정현조에게 조사를 명했다. “듣자 하니 괴이한 일이구나. 그 집은 그대와 관계가 있으니 승지들과 함께 사헌부로 가서 직접 살펴보도록 하라.”

부마 정현조는 세조의 큰딸 의숙공주의 남편이었는데, 자칫하면 사돈마님을 욕보이는 일이라 몹시 곤혹스러웠다. 하지만 지엄한 어명이라, 승지들을 대동하고 사헌부로 달려간 정현조는 사방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여인의 모습을 한 그는 겉보기에 대단한 미인이었다. 그러나 이미 남자임이 밝혀진 이상, 사방지의 하의를 벗기고 국부를 확인해 보니 과연 음경과 음낭이 분명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정현조의 보고에 따라 세조는 사건의 내막을 파악했지만 더 이상 이 사건을 확대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사헌부의 수사 담당관인 장령 신송주를 다그쳤다.

“황당한 사람이 여식의 집을 출입하는데 이순지는 가장으로서 금하지 못하였으니 실로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너희들이 간통 현장을 잡은 것도 아닌데 재상가의 일을 경솔하게 의논하고, 또 이런 괴이한 일을 품의하지도 않고 멋대로 조사했으니 참으로 고약하다.” 라고 하며, 신송주를 비롯하여 수사에 동참했던 사헌부 관리들을 파직시켜버렸다. 모른 체 눈감아 주어도 될 일을 수면 위로 드러내 왕실과 재상가의 분란을 조성했다는 일종의 괘씸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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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14
■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1편

■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1편

「조선왕조실록」은 정치사뿐만 아니라 문화와 사회의 변천사를 살피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왕실 뿐 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생활도 알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에는 많은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가 실려 있지만, 당시 사관들이 기록하기에도 난감한 사건들이 많았다. 어우동(於于同)이나 유감동 같은 희대의 스캔들이나 여자들끼리의 동성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세조 때 있었던 선비 김구석(金九錫)의 아내 이씨와 노비 사방지(舍方知)의 간통사건은 요즘 시대에 일어났다 해도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양반 댁 마님과 노비의 간통사건이 발각되면 재판권을 갖고 있는 수령이 두 사람을 법에 따라 처벌하고, 여인은 자녀안(恣女案)에 올리게 된다. 고려 시대부터 시작된 자녀안은 행실이 음란하고 방탕한 사대부 가문의 여자를 기록해 국가에서 그 신분을 낮추거나 자손들의 관직 등용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장부인데, 여기에 등록이 되면 당사자는 물론 가문까지도 사회적으로 매장되기 때문에 가족들에 의한 명예살인도 종종 일어났다.

그런데 이씨와 사방지의 경우는 적용할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사건 관련자들의 신분도 규정하기가 애매해서 임금과 조정 중신들이 골머리를 앓았다. 이씨는 공신의 자손으로 명문 사대부가에 시집 장가보낸 자식이 둘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애정행각을 당당하게 과시한 여걸이었고, 노비인 사방지는 남녀 구별이 모호한 양성인(兩性人)이었기 때문이다.

사방지(舍方知)는 세종의 부마인 안맹담 집안의 사노비(私奴婢)였다. 안맹담은 세종의 둘째딸 정의공주와 혼인하여 장인인 세종의 사랑을 받았지만, 술을 너무 좋아한 탓에 1462년(세조8년) 술병으로 죽었다. 그의 아내 정의공주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총명해서 아버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고, 여러 대군들이 풀지 못한 사투리 문제를 해결하여 큰 상을 받았던 바 있다. 세조는 왕자 시절부터 막내여동생인 그녀와 함께 불경을 언해(諺解:한글로 풀이하다)하는 등 매우 각별한 사이였다.

이처럼 막강한 가문의 사노비로 태어난 사방지는 기이하게도 음양인(陰陽人)이었다. 음양인은 해부학적으로 자웅동체(雌雄同體)로, 태어날 때부터 여자와 남자의 성기를 동시에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통상 ‘남녀추니’ 또는 ‘어지자지’라고 하거나 고상한 표현으로 ‘고녀(睾女)’ 또는 ‘반음양(半陰陽)’이라 부른다. 사방지는 이런 반음양 중에서도 유전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외부생식기는 남성의 형태를 갖춘 특이한 존재였다. 요즘의 트랜스젠더와는 또 다른 부류라고 할 수 있겠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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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14
■ 임금님의 이름

■ 임금님의 이름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부터 왕이나 군(서자), 대군(적자)의 이름은 모두 외자로 써왔고, 그 한 글자를 고를 때도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글자를 고르고 골라서 이름으로 썼다. 그래야만 백성들과 이름이 겹치는 일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글자 이름을 가진 임금들 중 태종 이방원은 고려 때 태어난 사람으로 이름을 지을 때는 왕이 될 사람이 아니었다. 그 외 철종은 왕족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살고 있어 왕이 될 가능성이 애초에 없었고, 고종은 흥선군 이하응의 로비로 왕이 된 경우이기 때문에 탄생 당시 이름을 지을 때 굳이 외자로 지을 까닭이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임금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굳이 두 글자 이름을 가진 사람은 단종이 유일하다. 본명은 이홍위로 이름이 두 글자이다.

조선시대 임금들 중 이름이 두 글자인 사람은 태종과 단종뿐이며, 다른 왕들은 원래부터 외자였거나 왕이 된 후 개명했다. 예를 들자면 태조 이성계는 ‘이단’으로, 정종 이방과는 ‘이경’으로, 철종 이원범은 ‘이변’, 고종 이재황은 ‘이희’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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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은 이름에 흔한 한자인 꽃다울 방(芳)과 멀 원(遠)을 썼음에도 이름을 고치려는 마음이 없었고, 백성들이 자신의 이름을 피휘(避諱:피하다)하는지의 여부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영조의 경우에는 이름이 이금(李昑)으로, 실생활에 엄청나게 쓰일 게 분명한 밝을 금(昑)자가 들어갔기 때문에 자신의 본명을 백성들에게 절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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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은 태어날 때 이름과 족보에 올리는 이름이 다른데, 단종의 경우 태어날 때 이름을 왕이 된 뒤에도 바꾸지 않았을 뿐이다. 즉위 초기에 이름을 바꾸어야 했는데 아마도 상황이 불안정하여 미처 바꾸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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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15
■ 보쌈과 습첩 2편

■ 보쌈과 습첩 2편

이와 반대로 여성이 소극적이나마 주체가 되어 재혼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이를 습첩(拾妾)이라 했다. 습첩이란 남편과 사별을 했거나 소박을 맞고 시댁에 머무를 수 없어서 친정에 가 있어야 했던 여성이 더 이상 친정에도 있을 수 없게 된 경우, 새벽녘에 성황당이나 마을 어귀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자신의 저고리 옷섶을 세모꼴로 찢은 ‘나비’를 내보이며 보쌈해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여자는 그 길을 처음 지나가는 남자를 무조건 따라가야 하고, 남자에게는 그 여자를 무조건 책임질 의무가 있었다. 그 남자의 나이나 신분, 결혼여부도 상관없고 여자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가 누구이든 처음 만나는 남자를 따라가 그와 운명을 같이 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나선 남자가 가정이 있는 경우에는 정실대우는 받지 못하고 첩이 되는 것이다.

가난한 홀애비나 노총각들의 장가가기 위한 수단으로도 이용된 이 습첩은 남자가 일부러 새벽에 성황당 앞에 나가서 서 있는 여자를 데려와서 결혼을 하기도 했다. 간혹 귀향하는 고관대작의 자제나 암행어사, 급히 이동하는 관료를 만나는 행운을 잡아 운명을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남성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조선시대 여인의 삶을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이처럼 과부보쌈이나 과부들의 남성보쌈은 불경이부(不更二夫)라는 유교적 질서가 자리 잡으면서, 남편과 사별하였다고 해도 재혼하지 말고 수절할 것을 강요당한 결과 생겨난 풍습이다. 과부의 재혼을 금지한 제도는 대체로 고려 말에 등장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더욱 강력하게 시행되어,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민간에까지 깊이 뿌리내린 것으로 보인다.

고려 말부터는 자녀안(恣女案)이라 하여 양반의 여자로서 부정한 행위를 하거나 세 번 이상 개가한 여성의 소행을 기록하여 그 자손의 관직등용을 제약하였다. 조선시대 성종 때에는 ≪경국대전≫에 재가하는 부인의 자손은 과거에 응시하지 못한다는 조문을 만들어 과부의 재혼을 공식적으로 금지하였다. 이러한 제도는 1895년 갑오개혁으로 여성의 재혼이 허용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정조관념 및 과부의 수절을 강조한 사회문화적 풍토 속에서 음성적으로 행해졌다는 점에서 부작용도 있었다. 간혹 수절을 결심한 열녀(烈女)가 이러한 일을 당하면 자살을 하거나 상대방을 죽이는 살인의 비극도 일어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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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16
■ 보쌈과 습첩 1편

■ 보쌈과 습첩 1편

조선 초기까지는 재혼이 금지되지 않아서 재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전 남편이 재혼 한 후 가능). 성종 이후에는 재가가 금지되어, 조선시대는 원칙적으로 여성의 재혼은 불가했다. 이런 사회에서 과부와 홀아비문제는 법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음성적인 방법을 열어두었는데 그것이 보쌈과 습첩이다.

불과 100여 년 전까지도 간혹 행해졌던 보쌈은 재혼의 한 방법이었다. 남자들이 과부를 보에 싸서 데려온다 하여 붙여진 ‘보쌈’은 일종의 약탈혼(掠奪婚)으로, 과부보쌈 혹은 과부 업어가기라고 하였다. 말 그대로 과부를 납치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생판 모르는 과부를 납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통 젊어서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나 딸을 추문(醜聞)없이 재가시키는 방법으로, 먼저 적당한 사람을 알아본 뒤 직접 부탁을 하는 경우와 혼자 된 여자 쪽에서 버선을 빨랫줄에 걸어놓아 보쌈의사를 넌지시 알려주는 경우가 있었다.

보쌈을 해가는 쪽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사전에 날짜를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날은 일부러 대문 혹은 방문 고리를 잠그지 않고 알면서도 보쌈을 당해 주는 것이다. 이렇듯 과부 본인이나 과부의 부모들과 은밀한 사전 약속 후에 보쌈해가는 방식도 있었지만, 합의 없이 보쌈하여 약탈해가는 방식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는 은밀히 과부와 정을 통해오다가 혼인을 하기 위하여 보쌈의 형식을 빌어 주변의 이목을 속이면서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후자의 경우와 같이 강제로 보쌈을 할 때는 사전에 과부의 거처를 탐지해두었다가 밤중에 침입하여 보쌈한 뒤 억지로 정을 통하여 배우자로 삼았다. 이럴 때 가끔 가족들과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하였지만 법적인 문제로 비화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반대로 여자 집에서 외간남자를 보에 싸서 잡아다가 강제로 동침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남편을 둘 이상 섬겨야 할 팔자를 타고 난 딸을 위하여 조선시대 양반집에서 행하던 것으로, 양반집에서 비밀리에 외간남자또는 가노(家奴)를 납치해서 처녀와 동침시킨 후 함구령을 내린 채 풀어주거나 죽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처녀를 위한 보쌈은 불경이부(不更二夫)라는 과부 재가금지제도 때문에 생겨난 궁여지책과 같은 것이었다. 보쌈한 총각과 동침하면 그 처녀는 과부가 된 것과 같은 결과가 되어 과부의 액운을 면하게 되었다고 믿었으며, 다른 곳으로 안심하고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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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17
■ 유향소留鄕所와 경재소京在所

■ 유향소(留鄕所)와 경재소(京在所)

조선은 중앙집권체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중앙은 물론 지방 정치에 있어서도 제도적으로 서로 보좌하면서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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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각 도는 부·목·군·현으로 나누었다. 도에는 관찰사, 부에는 부사, 목에는 목사, 군에는 군수, 현에는 현령(현감) 등 수령(守令)을 파견하여 지방을 다스리게 하였다. 이들 수령을 파견할 때는 ‘상피제(相避制)’ 라 하여 자신의 출신지에는 파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물론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지방 세력화되는 것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새로 파견된 수령은 그 지역 사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으므로, 수령을 보좌하기 위해 유향소라는 지방자치 기구가 생겨났다. 이것은 그 지역 양반들의 모임으로 수령을 보좌하는 역할도 하지만,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수령이나 향리(육방)들을 감찰하며 고을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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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조선 초 중앙집권적 체제에 반발하면서 자신들이 주축이 되는 향촌질서를 도모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자율조직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유향소 조직을 통해 향론(鄕論)을 만들고, 자기들의 세력기반을 유지하여 향촌의 자율권을 확보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한편으로, 유향소를 통제하기 위한 경재소(京在所)란 기구도 생겨났다. 요즘으로 치면 ‘경상남도청 서울사무소’ 라고나 할까. 경재소는 중앙과 지방의 일을 원활하게 하고 지방 민원을 왕실에 직접 고하고 지원을 받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경재소로 유향소를 중심으로 한 지방 양반들이 토착 세력화되는 것을 견제하고, 지방 수령이 지나치게 권한을 벗어나는 일을 하면 중앙에 보고하기도 했다.

유향소가 경재소에 의해 그 권한을 통제받고 장악되자, 유향소의 양반들은 자기 보호를 위해서 점차 관권에 타협·순종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수령의 불법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고, 수령과 결탁하여 백성들을 수탈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향소의 임원을 수령이 임명하게 됨으로써 조선 초기에 수령을 견제하던 유향소가 조선 후기에는 단지 수령의 보좌역으로 격하되게 되었다.

성종 대 이후에는 경재소마저 원래 설치 의도와는 달리 유향소와 결탁하여 공권력을 침해하는 등 작폐를 자행하게 된다. 그 후 경재소는 왜란을 거치면서 불법부패로 백해무익함이 거론되다가 선조 36년 정월에 혁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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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18
집안냄새 없애는 천연 재료 냄새 제거법

집안냄새 없애는 천연 재료 냄새 제거법

1. 향초 : 왁스로 구성된 향초가 타면서 탈취 기능을 한다. 냄새를 빨아들이면서, 은은한 향기를 더해 화장실의 꿉꿉한 냄새를 잡는데 그만이다

2. 원두커피 찌꺼기 : 탈취 효과 있는 커피 찌꺼기를 스타킹이나 망사 주머니에 넣어 집안 곳곳에 두면 쉽게 빠지지 않는 냄새도 없앨 수 있다. 악취나는 신발에도 하룻밤 정도 넣어두면 냄새가 빠진다

3. 신문지 : 신문지를 뭉쳐 신발 속에 넣어두면 냄새를 모두 흡수한다

4. 쌀뜨물 :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밀폐용기에 베인 냄새를 깔끔하게 제거해준다. 밀폐용기에 쌀뜨물을 붓고 30~40분 뒀다가 수세미로 문지르면 냄새 및 얼룩도 제거된다. 김치 국물이 묻어 변색된 행주도 쌀뜨물에 담가두자

5. 식초 : 배수구에서 냄새날 때 식초를 얼음과 함께 넣고, 찬물을 틀어두면 효과가 있다. 식초물을 냉동실에 얼리면 냉동실의 퀴퀴한 냄새까지 없애준다. 혹은 음식물 쓰레기통에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려도 냄새가 줄어든다

6. 레몬 or 오렌지 껍질 : 도마나 칼 등 납작한 주방용품에 레몬을 바르고, 한 시간 정도 흡수시킨 후 햇볕에 말리면 냄새와 얼룩이 줄어든다

7. 베이킹소다 : 산과 염기 두 가지 특성을 다 갖고 있어, 많은 냄새를 흡수한다. 싱크대나 욕조, 샤워기 곳곳에 뿌리면, 퀴퀴한 냄새가 제거된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붙박이장에도 베이킹소다를 따로 담아 넣어두면 냄새가 빠진다

8. 숯 : 숯은 부패한 균의 발생을 억제해 냄새를 없애주는 탈취 효과가 있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음식의 악취 냄새를 없애주고, 밥이 탄 솥에 숯을 넣어둬도 냄새가 빠진다

9. 과일 껍질 : 집안 가득 생선 냄새가 빠지지 않을때, 껍질을 넣고 끓이면 과일향이 냄새 정화 및 방향제 역할을 한다. 먹다 남은 과일을 거실에 둬도 향기가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816.html
kolaswqetsrq 11.02 11:18
스트레스 받지 않는 비결

스트레스 받지 않는 비결

스트레스는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받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옳다고 할 게

있나요?

사실은

생각이 서로 다른

것이지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른 게

아니에요.

서로

다를 뿐이에요.

그러니

다름을 인정하면 돼요.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열을 받는 거에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 또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구나’

이렇게

자기를 한 번 돌아보세요.

-법륜 스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043.html
kolaswqetsrq 11.02 11:19
알아두면 좋은 생활의 지혜

알아두면 좋은 생활의 지혜

○ 화분에 식물이 잘 자라지 않을 때

마늘 몇 개를 으깨어 물에 희석해 뿌려 주세요. 화초가 무럭무럭 잘 자라요!

○ 쓰레기봉투 냄새가 심하면 고민이 되시죠?

이럴 땐 물에 적신 신문지를 쓰레기 봉투 위에 얹어 두세요. 신문지가 냄새를 쏙 빨아들인답니다.

○ 달걀을 삶을 때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리면 껍질이 잘 벗겨집니다.

○ 열쇠 구멍이 뻑뻑할 때

연필심을 열쇠에 골고루 묻힌 뒤,열쇠 구멍에 넣고 돌리세요. 여러 번 반복하면 매끄럽게 잘 열립니다.

○ 프라이팬에 음식이 눌어 잘 안 닦일 때

팬을 불에 달구었다가 소금을 뿌리고 신문지로 닦아 보세요. 냄새도 없어지고 프라이팬도 깨끗해집니다.

○ 색깔 있는 옷을 빨 때

식초나 소금을 약간 넣고 세탁 하세요. 원색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식초물에 옷이 완전히 잠기도록 넣고~ 30분 후 정도 지난 다음 세탁기에 돌리세요.

○ 흰 옷을 빨래할 때

가루세제와 함께 주방세제를 조금 넣어 세탁 하세요. 흰옷이 더욱 하얗게 됩니다. 세탁소 사장님이 알려 주신 비결입니다.

○ 유리창에 페인트가 묻는 것을 방지하려면

유리창에 비눗물을 미리 묻히세요. 그러면,페인트가 묻더라도 물걸레로 쉽게 닦입니다.

○ 냉장고 내부의 냄새가 심하면

소주 한 병을 뚜껑을 따 냉장고에 넣어 두세요. 아주 간단한 방법이지만, 그 효과는 놀랄 정도랍니다.

○ 유리나 거울의 기름때는 감자, 냄비의 탄 바닥은 소주, 생선 냄새가 밴 팬은 식초로 닦으면 좋아요.

○ 마늘을 빻아 보관할 때

마늘위에 설탕을 살짝 뿌려두면 마늘 색이 변하지 않아요.

○ 흰 옷을 삶을 때

식초를 몇 방울 넣고 삶으면 더욱 하얗게 됩니다. 살균 작용도 있어 일석이조예요.

○ 방충망에 낀 먼지는

마른 스펀지로 문질러 주면 쉽게 청소할 수 있어요.

○ 와이셔츠의 소매와 깃의 누런 때는

확실하게 지우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누렇게 변한 곳에 치약을 묻히고 햇빛에1시간 정도 둔 후 세탁기에 돌리면 감쪽같이 하얗게 변한답니다.

○ 매직펜을 화이트 보드 잘 안 지워지는 얼룩

모기약을 뿌린 후티슈로 닦아내면 몰라보게 깨끗해져요.

○ 냉장고를 청소할 때

식초를 물에 타서 수건에 묻혀 닦아 보세요. 냄새도 없어지고 소독 효과도 있어요.

○ 안경에 김이 서려 곤란할 때는

렌즈에 비누칠을 한 다음 닦아 주세요. 샴푸 몇 방울떨어뜨려 닦아 줘도 효과가 있어요.

○ 볼펜을 오래 사용하지 않다가 쓰려면

잉크가 잘 안 나올 때는 볼펜의 끝 부분을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곧바로 찬물에 담가 쓰면 잘 나옵니다.

○ 술 마신 다음 날엔

단감을 드세요. 단감의 타닌 성분이 교감신경의 흥분을 억제시켜 주고, 머리를 맑게 해 준다고 합니다.

○ 손에 음식 냄새가 배었다면

식초물에 손을 씻으세요. 혹은 설탕으로 문질러 줘도 냄새가 말끔히 없어집니다.

○ 요리하면서 기름이 튄다면

소금을 한 줌 넣어보세요. 너무 짜질 수 있으니 간 조절을 잘 하시고요.

○ 불면증 때문에 고민이라면

머리맡에 양파를 놓고 주무세요. 양파 특유의 냄새가 신경을 안정시켜 주어 편히 잠들 수 있어요.

○ 피 묻은 옷은

소금물에 담갔다가 세탁하세요. 얼룩이 감쪽같이 없어집니다.

○ 프라이팬의 눌은 때

굵은 소금을 뿌려서 닦아 보세요.

○ 구두를 닦을 때 윤이 잘 안 나면

구두약을 바른 후 가스레인지 불에 닿지 않도록 살짝 쬐어 주세요.

○ 생화를 오래 꽂아 두고 싶다면

꽃병 속에 표백제 한 두 방울 떨어 뜨려 보세요. 살균 효과가 있어서 꽃에 세균이 달라붙지 않아 오랫동안 싱싱하답니다.

○ 초고추장을 만들 때 너무 되직하다 싶으면

물 대신 사과를 갈아넣거나 사이다를 조금 넣으세요.

○ 생선 튀김을 할 때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고 싶다면

생선을 미리 녹차 우린 물에 담갔다가>요리 하세요. 비린내가 싹 가십니다.

○ 보리차를 끓인 후에 식힐 때

재빨리 식혀야 고유의 보리 향이 유지됩니다. 또 소금을 아주 조금 넣어주면 향이 더욱 진해져요.

○ 된장이 오래되어 맛이 없어졌다면

멸치 머리와 고추씨를 바싹 말려 빻아 가루로 만들어 섞어주세요. 맛이 좋아진답니다.

○ 소금을 많이 넣어 음식 맛이 짜졌다면

식초 몇 방울을 떨어 뜨려보세요. 짠맛이 덜해집니다. 반대로 음식 맛이 너무 시다면 소금을 조금 넣어 맛을 중화시킬 수 있어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812.html
kolaswqetsrq 11.02 11:20
무슨 꽃입니까? 천리향 비슷한 향기도 살짝 나네요.

무슨 꽃입니까? 천리향 비슷한 향기도 살짝 나네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526.html
kolaswqetsrq 11.02 11:21
현명한 생활 태도 40훈

현명한 생활 태도 40훈

01. 웃음으로 시작하고 마감하라. 여기가 천국이다.

02. 기쁨으로 수용하라. 기뻐하면 기뻐할 일만 생겨난다.

03. 힘든 것에는 뜻이 있다. 감사함으로 수용하라.

04. 믿음의 열도를 열배로 늘여라. 백배의 수확이 보장된다.

05. 모두를 위하는 사람이 되라. 나를 위하는 지름길이다.

06. 진리가 아니면 따르지 말라. 잘못 들면 평생 후회한다.

07. 인생 드라마는 스스로 연출한다. 연기를 보여 줘라.

08. 건강해야 건강한 운을 만든다. 과욕을 버려라.

09. 잠에서 깨어나라. 그래야 지혜의 눈을 크게 뜰 수 있다.

10.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늘이 좋아하게 하라.

11.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 어리석은 이는 계속 모로 간다.

12. 머리를 써라. 머리는 하늘이 나에게 준 보물창고다.

13. 실패를 뒤집어 보라. 그 속에 성공이 들어있다.

14. 아낌없이 베풀어라. 샘은 퍼낼수록 물이 솟아난다.

15. 자신의 눈을 믿지 말라. 남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라.

16. 최대 기쁨으로 하루를 맞으라. 살아있는 날은 축일이다.

17. 먼저 부모를 공경하라. 자손대대로 번영한다.

18. 나날이 향상하라. 향상하지 않으면 퇴보한다.

19. 남의 말을 좋게 하라. 없던 복도 굴러 온다.

20. 음식만 골라 먹지 말라. 말도 골라서 하라.

21. 복을 많이 지어라. 내가 지은 것만이 내 것이 된다.

22. 복을 달라 안달치 말라. 복을 담을 그릇을 먼저 만들어라.

23. 가슴 펴고 당당하게 살아가라. 병든 닭처럼 비실대지 말라.

24. 어떤 일에도 불평하지 말라. 불평은 불운을 끌고 다닌다.

25. 항상감사하라. 감사할 때 천사의 손길이 나에게 다가온다.

26. 남이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라. 외면하는 사람은 되지 말라.

27. 좋은 취미를 만들어라. 취미로 풍요로운 삶이 만들어진다.

28. 쓰러짐을 부끄러워 말라. 일어서지 않음을 부끄러워하라.

29. 신념에 불타는 친구를 사귀어라. 좋은 친구는 우량주식이다.

30. 부정적인 친구는 만나지 말라. 그는 친구가 아니라 원수다.

31. 아는 길도 물어 가라. 내가 안다고 아는 것이 아니다.

32. 안 풀리는 것은 일단 멈춤 신호다. 멈춘 다음 원인을 찾아라.

33. 남의 잘못은 한 눈을 감아라. 잘함을 볼 땐 두 눈 크게 떠라.

34. 투덜대지 말라. 투덜대봐야 보기만 싫을 뿐이다.

35.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라. 기회는 하늘의 별만큼 많다.

36. 끊임없이 기도하라.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37. 자신을 칭찬하라. 자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38. 가정은 행복을 만드는 성전이다. 성전을 빛나게 하라.

39. 활기찬 노래를 불러라. 활기찬 노래는 성공 행진곡이다.

40. 어깨동무하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라. 희망이 함께 자란다.

-SNS커뮤니티 글 편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40.html
kolaswqetsrq 11.02 11:22
매육매장買肉埋墻 - 사 온 고기를 담 밑에 묻다, 남을 더 생각하다.

매육매장(買肉埋墻) - 사 온 고기를 담 밑에 묻다, 남을 더 생각하다.

살 매(見/5) 고기 육(肉/0) 묻을 매(土/7) 담 장(土/13)

푸줏간에서 사 온 고기(買肉)를 담장 밑에 묻는다(埋墻)면 모두 어리석은 행동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사정을 알고 보면 모두 감사할 일이다. ‘검은 고기 맛 좋다 한다’는 속담이 있다. 고기의 겉모양만 보고 맛이 있는지 독이 들었는지 내용을 속단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이 말대로 사 온 고기를 잘 살펴보고 해로운 것이 들어 있는 것을 알고선 사 왔던 것뿐만 아니라 가게의 고기를 몽땅 사서 담장에 묻었다면 결코 어리석다고 못한다. 더구나 집이 아주 가난하여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理埋毒肉(이매독육)이라고도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선 宣祖(선조) 때에 정승을 지낸 洪瑞鳳(홍서봉, 1572~1645)의 모친이다. 호가 鶴谷(학곡)인 홍서봉은 仁祖反正(인조반정)에 참가한 후로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했고, 丙子胡亂(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崔鳴吉(최명길)과 함께 화의를 주장한 사람이다. 홍서봉이 어릴 때 집이 매우 가난하여 ‘거친 밥과 나물국도 자주 거를 때가 많았다(疏食菜羹 每多空缺/ 소사채갱 매다공결).

먹을 食(식)은 이 때는 ’밥 사’의 뜻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루는 여종을 보내 고기를 사오게 했다. 고기의 빛깔을 살펴보니 독이 들어있는 것 같아 정육점에 얼마나 더 있더냐고 물었다. 몇 덩이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머리 장식을 팔아 돈을 마련했다.

그리고선 ‘여종을 시켜 고기를 모두 사오게 하고선 담장 밑에 묻었다(使婢盡買其肉 而埋于墻下/ 사비진매기육 이매우장하)’. 홍서봉의 이런 행동은 다른 사람들이 그곳서 고기를 사서 먹은 뒤 병이 날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훗날 어머니의 이런 마음씨가 천지신명과 통하여 자손들이 반드시 번창할 것이라고 홍서봉이 말했다. 高麗(고려) 이후의 저명인사를 여러 책에서 골라 그들의 훌륭한 말과 선행을 엮은 ‘海東續小學(해동속소학)’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朴在馨(박재형)의 저작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불량식품을 판 정육점은 당장 고발당하고 상응한 벌을 받을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악덕 상인들이 근절된다. 홍서봉의 어머니는 모든 것이 어려울 때 조그만 고깃점도 어려울 테고 자신도 모르게 실수를 했을지도 모르는 그 주인을 망하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 틀림없다. 자신에게는 손톱 끝만큼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 하고, 없는 일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711.html
kolaswqetsrq 11.02 11:23
첩섭이어呫囁耳語 - 귀에다 입을 대고 소곤거리며 하는 귓속말

첩섭이어(呫囁耳語) - 귀에다 입을 대고 소곤거리며 하는 귓속말

소곤거릴 첩(口/5) 소곤거릴 섭(口/18) 귀 이(耳/0) 말씀 어(言/7)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도록 두 사람만 귀를 가까이 소곤거리는 귓속말은 좋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귀에 대고 조용히 말한다는 것은 남의 장단점을 함부로 떠벌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하면 바로 조선 초기 黃喜(황희) 정승을 떠올린다. 길가다 소 두 마리로 밭을 가는 농부에게 어느 소가 일을 잘 하는지 묻자 다가와 귀엣말로 했다는 附耳細語(부이세어)가 그것이다.

짐승이라도 못한다는 소리 들으면 기분 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황희가 좋다, 나쁘다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아 好好先生(호호선생)이 됐다. 반면 자신은 따돌리고 앞에서 두 사람이 소곤거리며(呫囁) 귀에다 대고 말을 한다면(耳語) 기분 좋을 수가 없다.

하기 쉬운 귓속말이 이처럼 어려운 성어로 나오는 곳은 ‘史記(사기)’에서다. 魏其武安侯(위기무안후) 열전에서 後漢(후한)의 장군 灌夫(관부)가 속삭이는 상대를 보고 호통 칠 때 사용됐다. 관부는 강직하고 아첨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6대 황제 景帝(경제)의 외척인 竇嬰(두영, 竇는 구멍 두)이 吳楚(오초)의 난을 진압할 때 큰 공을 세우고 이후 부자처럼 가까이 지냈다.

경제의 처족으로 이복이라 미천했던 田蚡(전분, 蚡은 두더지 분)은 처음 두영을 섬기다 7대 武帝(무제)가 즉위한 뒤 권력이 집중됐다. 세력을 잃었다고 두영에 함부로 대하는 것을 관부가 좋게 볼 수가 없었는데 드디어 사달이 벌어졌다.

전분이 권세가의 딸을 맞아 연회를 베풀었을 때 두영의 강권으로 관부도 내키지 않았지만 참석했다. 술을 좋아하는 관부가 안하무인의 전분에게 잔을 올렸을 때 주법에 어긋나게 반만 채우라고 말했다. 관부는 화가 나 씩씩거리다 옆 자리의 친척 조카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폭발했다.

‘오늘 어른의 축배를 권하는데도(今日長者爲壽/ 금일장자위수), 그대는 계집애처럼 소곤대고만 있는가(乃效女兒呫囁耳語/ 내효녀아첨섭이어).’ 술자리에 참가한 고관들은 엉망이 된 분위기에 하나둘씩 떠나버렸다. 魏其侯(위기후)는 두영이, 武安侯(무안후)는 전분이 후일 봉해진 이름이다.

소곤거린다고 엉뚱한데 화를 냈던 관부는 그렇지 않아도 전분의 눈 밖에 나 있었는데 잔치를 망치고 성할 수가 없었다. 관부를 구하려 노력한 두영과 함께 전분이 누명을 씌워 처형시켰다. 관부가 분에 못 이겨 일부러 한 일이긴 해도 사람이 많이 있는 곳에서 귓속말을 하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남의 험담은 물론 안 하는 것이 좋고 없는 자리서는 더욱 피할 일이다. 비밀을 지킨다고 약속한 말일수록 더욱 빨리 퍼진다고 주의시킨 말이 많다. 牆有耳(장유이)는 ‘벽에도 귀가 있다’, 晝語鳥聽 夜語鼠聽(주어조청 야어서청)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대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266.html
kolaswqetsrq 11.02 11:23
흥이항이興伊恒伊 - 누가 흥이야 항이야 하랴,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다.

흥이항이(興伊恒伊) - 누가 흥이야 항이야 하랴,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다.

일 흥(臼/9) 저 이(亻/4) 항상 항(⺖/6) 저 이(亻/4)

음률이 비슷한 이 성어를 보면 먼저 興淸亡淸(흥청망청)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듯하나 거리가 멀다. 흥청망청은 황음에 빠진 조선 燕山君(연산군)이 採紅使(채홍사)를 두고 전국에서 뽑아 올린 미인을 가리켜 흥청이라 했고 그로 인해 망했다고 망청이라 했다. 여기에서 앞을 생각하지 않고 멋대로 즐기거나 돈과 물건을 마구 낭비하는 것을 뜻하게 됐다.

興伊(흥이)와 恒伊(항이)는 형제의 이름으로 누가 흥이야, 항이야 할까 라는 말이다. 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는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사돈집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는 曰梨曰柿(왈리왈시)와 상통한다.

흥이 항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형제가 상이한 뜻으로 이 성어가 유래했다고 전한다. 먼저 조선 후기의 학자 趙在三(조재삼)의 ‘松南雜識(송남잡지)’에 실린 내용을 보자. 天文(천문)에서 동식물까지 33개 부문을 기술한 백과사전인 이 책의 方言(방언) 편에 속담을 한역한 부분이 나온다.

肅宗(숙종)대 조선 후기 驪興(여흥) 閔氏(민씨) 가문에 閔百興(민백흥)과 閔百恒(민백항)이란 형제 문신이 있었다. ‘이들이 나란히 강원감사를 지냈는데 모두 선정을 베풀어 형인 흥이 낫다, 동생인 항이 낫다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론이 분분했다(兄弟相繼爲江原監司 有善政 至今稱 興伊恒伊/ 형제상계위강원감사 유선정 지금칭 흥이항이).’

다른 이야기는 중기의 문신이자 모두 영의정을 지낸 金壽興(김수흥), 金壽恒(김수항) 형제가 등장한다. 이들은 높은 자리에서 국사를 처리하면서 독단이 심했는지 세간의 평판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러자 이들 형제가 ‘우리들이 힘써서 잡은 권세를 행하는데 누가 감히 흥이야 항이야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민씨 흥이 항이 형제와 김씨 흥이 항이 형제가 각각 다른 의미로 쓰이게 된 연유다.

자신이 맡은 바를 묵묵히 잘 처리하는 사람은 남이 뭐라 해도 갈 길을 간다. 자신의 임무도 신통찮게 하는 사람이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은 잘한다. ‘사람마다 저 잘난 맛에 산다’는 말대로 설사 잘못 처리한 일이라도 남이 지적하면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남의 흉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먼저 자기 자신을 먼저 살펴볼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375.html
kolaswqetsrq 11.02 11:24
발치역치拔幟易幟 - 적의 깃발을 뽑고 아군의 기로 바꾸다, 전쟁서 승리하다.

발치역치(拔幟易幟) - 적의 깃발을 뽑고 아군의 기로 바꾸다, 전쟁서 승리하다.

뽑을 발(扌/5) 기 치(巾/12) 바꿀 역(日/4) 기 치(巾/12)

나라를 대표하는 우리나라의 太極旗(태극기)와 같이 旗(기)는 글이나 그림 등으로 특정 단체를 상징한다. 귀족이나 왕궁의 의장기로 발달했어도 가장 필요로 한 곳은 옛날 군대의 軍旗(군기)가 아니었을까. 군의 단결을 도모하고 사기를 북돋아 전진과 후퇴를 지시하는 데는 적격이었다.

柳致環(유치환)의 명시 첫 구절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은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생명에 대한 연민을 노래했다지만 전장에서의 명령에 더 적합한 깃발을 연상해도 무방하다. 같은 기를 합쳐 된 旗幟(기치)는 이전 군기를 가리키다 어떤 목적을 위하여 내세우는 태도나 주장을 나타내게 됐다. 어려운 단어 旟旝(여괴, 旟는 새매그린기 여, 旝는 사명기 괴)도 같은 뜻이다.

기를 뽑아(拔幟) 다른 기로 바꾼다(易幟)는 이 성어는 ‘史記(사기)’에 나온다. 본래 군사용어로 적군의 깃발을 뽑고 아군의 기를 꽂아 승리를 거둔다는 뜻이라 한다. 우리 속담 ‘기 들고 북 치기’는 도저히 가망이 없어 항복한다는 비유인데 그와 반대이다.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 밑에서 활약한 대장군 韓信(한신)은 뛰어난 전략으로 項羽(항우)와 垓下(해하)의 결전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뒀다. 한신이 2만의 병력으로 10배인 趙(조)나라를 공격할 때였다. 침공 소식을 들은 조나라 왕과 대장군 陳餘(진여)는 20만 대군을 집결시키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淮陰侯(회음후) 열전에 상세한 내용이 실려 있다.

조나라 명장이자 전략가인 李左車(이좌거)가 진여에 한신 군대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앞뒤에서 협공하는 것이 좋다고 건의했다. 유가 출신으로 선비인 진여는 속임수나 떳떳하지 않은 계책을 쓰는 것에 반대했다. 이를 탐지한 한신은 2000명의 깃발을 주고 기병을 적진이 잘 보이는 곳에 숨어 있도록 했다. 그러면서 한신은 주력군이 도망할 때 조나라 군이 성을 비우고 추격할 것이라며 당부한다.

‘그대들은 날쌔게 조나라 빈 진영으로 들어가(若疾入趙壁/ 약질입조벽) 있던 깃발을 뽑고 한나라의 붉은 깃발을 세워라(拔趙幟 立漢赤幟/ 발조치 입한적치).’ 작전은 대성공을 거둬 진여는 참수하고 이좌거는 사로잡아 한신을 돕게 했다.

병력이 열 배가 되면 포위하고 배가 되면 싸운다는 병법만 믿고 소수의 한신 군대를 진용 갖추도록 한 진여는 宋襄之仁(송양지인)을 연상시킨다. 죽느냐 사느냐 싸움터에서 대의명분만 따지다가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됐는데 진여는 목숨까지 잃었다.

명운이 걸려 있을 때는 속임수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兵不厭詐(병불염사)라 했다. 주고받는 협상에서 속임수는 쓰지 않더라도 양보만 하다가는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린다. 오늘날 보이지 않는 전장이라는 외교에선 앞뒤를 잘 재어 이득을 더 얻도록 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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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25
호우고슬好竽鼓瑟 - 피리를 좋아하는데 거문고를 타다, 구하는 방법이 다르다.

호우고슬(好竽鼓瑟) - 피리를 좋아하는데 거문고를 타다, 구하는 방법이 다르다.

좋을 호(女/3) 피리 우(竹/3) 북 고(鼓/0) 큰거문고 슬(玉/9)

사람들은 모두 남보다 잘 하는 장점이 있고 그 능력이 인정되기를 원한다. 가만히 있어도 사방에 빛이 나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기에 자신의 능력을 떠벌리거나 윗사람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문제는 정도가 지나쳐 알랑거리는 阿諂(아첨)으로 비치면 모두에게서 욕을 먹는다.

자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큰소리쳐도 금력이나 권세 앞에서는 ‘인간은 아첨하는 동물’이라는 말대로 모르는 새 무력해진다. 윗사람도 마찬가지다. 공정을 내세우고서 자기 취향에 맞는 사람을 발탁한다. 피리를 좋아하면(好竽) 다른 사람이 거문고를 잘 연주해도(鼓瑟) 그 능력을 알아줄 수가 없다.

멋진 비유의 성어는 중국 唐(당)나라의 문장가 韓愈(한유, 768~824)의 ‘答陳商書(답진상서)’란 글에서 유래했다. 字(자)를 써서 韓退之(한퇴지)로 잘 알려진 한유는 어려운 환경서도 재능을 발휘하여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 중에서도 첫손에 꼽힌다. 문체개혁과 불교 배격 등 논란을 달고 다녔던 그가 학식이 뛰어난 陳商(진상)이란 가상인물에게 등용이 안 되는 이유를 찾아 조언한다.

피리를 좋아하는 齊(제)나라 임금에게 거문고의 명인이 찾아가서 벼슬을 구해도 이루지 못한 것을 비유로 들었다. 난해한 문장을 쓰는 진상에게 자기만 최고인 글보다는 세상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로 바꾸도록 권유하는 내용이다.

거문고를 연주하면 귀신도 오르내리게 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이 명인에게 피리를 좋아하는 임금에게는 그 가락이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주위에서 깨우친다. 그러면서 이어진다. ‘문장을 지으면서 언제나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게 짓고 있으니(而爲文必使一世人不好/ 이위문필사일세인불호) 거문고를 가지고 제나라 궁문 앞에 서 있던 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겠습니까(得無與操瑟 立齊門者比歟/ 득무여조슬 입제문자비여).’ 문장은 실로 훌륭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니 벼슬을 구하는 데에는 이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저자세로 기는 행위는 개가 꼬리를 흔드는 搖尾乞憐(요미걸련)이나 상관의 수염을 불어주고 변까지 맛본다는 拂鬚嘗糞(불수상분), 고름과 치질을 핥아준다는 吮癰舐痔(연옹지치, 吮은 빨 연, 癰은 종기 옹) 등 지저분한 비유의 말이 많다.

반대로 인물을 구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면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을 욕할 수는 없다. 피리를 잘 부는 사람이 필요한데 거문고를 세상에서 제일 잘 타는 자신을 뽑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소용되는 곳에 적합한 인물이 가야 하는 適材適所(적재적소)가 그래서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052.html
kolaswqetsrq 11.02 11:26
각골난망刻骨難忘 - 남의 은혜가 뼈에 새길 만큼 커서 잊히지 않다.

각골난망(刻骨難忘) - 남의 은혜가 뼈에 새길 만큼 커서 잊히지 않다.

새길 각(刂/6) 뼈 골(骨/0) 어려울 난(隹/11) 잊을 망(心/3)

뼈에 새길(刻骨) 정도로 잊을 수 없다(難忘)는 말은 원한을 잊을 수 없다는 뜻도 되겠지만 은혜를 잊지 못한다고 강조할 때 더 많이 쓴다. 증오나 한을 잊지 못할 때는 骨髓(골수)에 사무치다, ‘뼛골에 사무치다’로 약간 달리 표현한다.

남에게 큰 은혜를 입고도 갚을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지 ‘머리 검은 짐승은 남의 공을 모른다’는 속담이 전한다. 또 ‘큰 은혜는 갚을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작은 원한은 반드시 갚으려 한다‘고 菜根譚(채근담)에도 타이른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고사를 인용하면서 곧잘 깨우치는 성어가 많다.

뼈에 새기면서까지 은혜를 잊지 못한다는 이 말이 가장 강조된 뜻이면서도 처음 유래된 곳은 명확하지 않으나 한국성어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에서 여러 문인의 문집이나 實錄(실록)에 등장하고, 흔히 사극에서 임금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신하들이 입에 달고 다닌 말이라 더욱 그렇다.

같은 뜻으로 중국에서는 刻骨銘心(각골명심)이나 鏤骨銘心(누골명심)이란 표현을 쓴다. 은혜를 갚는 고사와 함께 가장 잘 알려진 것이 結草報恩(결초보은)이고 꾀꼬리가 반지를 물어 은혜를 갚는다는 黃雀銜環(황작함환)이란 재미있는 성어도 있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의 장수 魏顆(위과, 顆는 낟알 과)가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秦(진)의 명장 杜回(두회)를 사로잡은 이면에는 풀을 묶어 쓰러지게 한 보은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과는 부친이 죽었을 때 유언을 무릅쓰고 젊은 새어머니를 개가시켜 새 삶을 살게 해준 덕으로 계모의 아버지가 두회를 초원에서 쓰러지게 했다는 것이다.

後漢(후한)의 楊震(양진), 楊秉(양병) 부자는 부정에 흔들리지 않는 四知三惑(사지삼혹)의 주인공이다. 이들이 청렴으로 길이 빛나는 것은 그의 선조 楊寶(양보)가 어릴 때 올빼미의 공격을 받은 꾀꼬리를 구해 치료한 뒤 날려 보낸 덕분이었다. 西王母(서왕모)가 보낸 반지를 선물 받고 후손은 삼공에 오르게 됐던 것이다.

이처럼 은혜를 베풀면 언젠가는 보답이 된다. 착한 일을 많이 행하면 경사가 따른다고 積善餘慶(적선여경)이란 말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구하면 앙분을 하고 짐승은 구하면 은혜를 한다’는 말이 더 와 닿는지 홀로 사는 가구가 많아지는 만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더 크게 증가한다고 한다. 동물을 사랑하더라도 주변의 더 어려운 이웃도 살피면 더욱 좋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027.html
kolaswqetsrq 11.02 11:27
당주조한噇酒糟漢 - 지게미를 먹고 술 마신 듯 행세하다, 다 깨닫지 못한 얼치기

당주조한(噇酒糟漢) - 지게미를 먹고 술 마신 듯 행세하다, 다 깨닫지 못한 얼치기

먹을 당(口/12) 술 주(酉/3) 지게미 조(米/11) 한수 한(氵/11)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얼치기가 일을 망친다. 진짜를 교묘하게 모방하여 행세를 할 때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냥 넘어간다. ‘가짜가 진짜를 뺨친다’는 속담은 실제 재주를 가진 사람보다 더 잘 포장하여 큰소리친다는 뜻이다.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이 아니니 화려한 겉모습만으로 평가하면 낭패 본다.

불교에서 깨우치는 말로 순수한 진리를 깨우치지 못한 사람을 혼내는 성어가 있다. 술을 마신 듯이 행세하지만(噇酒) 실제는 술지게미만 먹은 놈(糟漢)이란 어려운 글자를 썼다. 禪(선)의 진수이고 선 문학의 선구라고도 평가받는 ‘碧巖錄(벽암록)’에 일화가 실려 있다.

심오하고 진지한 선승들의 話頭(화두) 100개를 담아 선가에서 남달리 귀중한 문헌으로 애송되어 왔다는 벽암록은 중국 宋(송)나라의 선승 圜悟克勤(원오극근, 圜은 두를 환, 둥글 원)이 편찬했다. 이 책 제11칙에 黃檗噇酒糟漢(황벽당주조한)이란 제목으로 황벽선사가 무명승을 꾸짖는 데서 이 말이 등장한다.

檗은 황벽나무 벽. 황벽은 希運(희운) 선사를 가리키는데 법을 이어받은 百丈懷海(백장회해) 선사와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禪傑(선걸)로 꼽힌다고 한다. 특히 그의 문하서 위엄 있게 꾸짖는 喝할로 유명한 臨濟義玄(임제의현)이 배출되어 명성을 더한다.

황벽이 唐(당)나라에 많은 선승이 모두 젠체하지만 실제진정한 선을 지도할 선승은 없다고 비판한다. ‘그대들은 모두가 술지게미만 먹고 진짜 술을 마신 듯이 흉내 내는 녀석들이다(汝等諸人 盡是噇酒糟漢/ 여등제인 진시당주조한).’ 진짜 술이 아닌 지게미만 먹는다고 喫酒糟漢(끽주조한)이라고도 하는 이 말은 당시 속어로 ‘척하는 머저리 같은 놈’이란 뜻이란다.

선수행을 하면서 불법의 대의를 철저하게 체득하지도 못하고 어록을 대충 이해한 주제에 진짜 대단한 선승처럼 행세하는 사이비 선승을 매도했다. 이어서 건들건들 수행하며 언제 불법을 닦을 수 있겠느냐며 당나라에 선사가 없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혼을 냈다.

황벽선사는 전국의 여러 총림에서 대중을 지도하는 선승들이 많다는 스님의 항의에 선은 있는데 선사가 없다고 답한다. 불법을 체득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선사의 가르침과 지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본인이 자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깨우쳤다.

뜻이 있어 자신이 깊이 닦으면 그것이 절로 드러나는 법인데 다 깨달은 듯이 중간에서 행세를 하면 들통이 난다. 성급하게 자신을 과시하기 보다는 내실을 더욱 다질 일이다. 진짜 금인 순금은 도금을 할 필요가 없다고 眞金不鍍(진금부도)라 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768.html
kolaswqetsrq 11.02 11:27
묘항현령猫項懸鈴 -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실행하지 못할 공론

묘항현령(猫項懸鈴) -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실행하지 못할 공론

고양이 묘(犭/9) 항목 항(頁/3) 달 현(心/16) 방울 령(金/5)

고양이는 귀엽고 영리하게 생겼다. 伴侶(반려)동물 중에서도 개 다음으로 인기가 높아 전 세계에서 2억 마리가 사육된다고 한다. 고양이를 죽이거나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민화는 각국에서 전해온다.

고양이가 사람에게 가장 도움을 주는 것은 주변에 쥐를 얼씬하지 못하게 하는 점이다. 다 함께 사람 주변에 살지만 음식을 훔치고 병균을 옮기는 쥐를 쥐죽은 듯 고요하게 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덕을 잊고 살아 ‘고양이 덕과 며느리 덕은 알지 못한다’는 말이 남았다.

무서운 사람 앞에서 설설 기면서 꼼짝 못한다는 비유로 ‘쥐가 고양이를 만난 격’이란 속담을 쓴다. 쥐들은 사람들은 문제없이 눈을 피하며 먹을 것을 조달할 수 있는데 고양이는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오그라든다. 쥐들은 어느 날 모두 모여 대책회의를 했다.

‘곳집을 뚫고 쌀광 속에 들어가 살면 기름지게 살 수 있을 텐데 단지 고양이 때문에 두렵다(穿庾捿廩 生活可潤 但所怕 獨猫而已/ 천유서름 생활가윤 단소파 독묘이이)’며 이래서야 되겠는가 하고 울분을 토했다. 捿는 棲(서)와 같이 깃들일 서, 庾(유)와 廩(름)은 모두 곳집,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다. 怕는 두려워할 파.

한 마리 쥐가 나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하자 모두 좋은 의견이라며 박수를 쳤다. 어른 쥐가 점잖게 말했다. ‘옳은 이야기이나 누가 우리를 위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느냐(是則是矣 然猫項 誰能爲我懸鈴耶/ 시즉시의 연묘항 수능위아현령야)?’ 모든 쥐들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조선 중기 宋世琳(송세림)이 편찬한 한문 소화집 ‘禦眠楯(어면순)’에 실린 이야기다. ‘잠을 쫓는 방패’라는 뜻으로 육담도 많이 있어 古今笑叢(고금소총)을 이루는 책이기도 하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란 속담을 번역하여 旬五志(순오지)와 松南雜識(송남잡지) 등에도 나온다. 猫頭懸鈴(묘두현령)이라고도 한다.

단체원들이 모여 어떤 현안에 대해 의견을 말하라 할 때 갑론을박 묘안을 펼친다. 그러나 막상 책임을 맡아 실행방안을 말해 보라 하면 대부분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이론적으로는 훤히 알아도 실천은 어렵다. 卓上空論(탁상공론)이 된다. 한 조직의 비리 사실을 밝히면 바르게 고쳐질 수 있는데도 따돌림과 돌아올 보복이 두려워 총대를 멜 사람이 좀처럼 나서지 않는다. 혁신에 주춤거리는 것도 방울을 달기가 어려울 뿐더러 불이익을 감당키 어렵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900.html
kolaswqetsrq 11.02 11:28
분거지상무중니奔車之上無仲尼 – 질주하는 수레에는 공자가 없다.

분거지상무중니(奔車之上無仲尼) – 질주하는 수레에는 공자가 없다.

달릴 분(大/6) 수레 거(車/0) 갈 지(丿/3) 윗 상(一/2) 없을 무(灬/8) 버금 중(亻/4) 여승 니(尸/2)

유교의 시조요, 성인으로 추앙받는 孔子(공자)는 이름이 丘(구), 자가 仲尼(중니)다. 마구 달리는 수레 위(奔車之上)에는 공자가 없다(無仲尼)는 말만 떼어놓고 보면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재미있는 문구다. 이어지는 구절엔 伯夷(백이)가 등장한다. 그는 아우 叔齊(숙제)와 함께 周(주)나라의 전설적인 충신이다.

뒤집히는 배 아래에는 백이가 없다(覆舟之下無伯夷/ 복주지하무백이)란 말이다. 마구 달리는 말이나 뒤집히는 배는 위험하다. 그래서 성현은 위험한 곳에 있지 않는다고 본다. 앞도 내다보고 추이도 잘 생각하는 이들이 위험한 곳에 가지도 않고, 상황을 만들지도 않을 것은 당연하다.

급박한 상황 아래서는 아무리 점잖은 사람이라도 평소에 보여주던 인성을 잃어버린다는 각박한 해석도 한다. 바쁠 때에는 학문을 할 수 없고, 위태로울 때는 의리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난에 처하면 생존본능 앞에 도덕군자도 무너진다. 세차게 달리는 수레 위에서는 공자가 없고, 뒤집히는 배 아래서는 백이가 없다고 본다.

走馬看山(주마간산)의 뜻으로 보는 것도 재미있다. 달리는 수레 위에서는 공자도 없다. 아무리 공자와 같이 모든 것에 통달한 인물이라도 달리는 수레 위에서 주변의 사항을 다 알 수 없다. 바쁜 세상 느긋이 갈 줄도 알아야 돌아가는 이치도 알고 인생의 참맛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의 출처는 ‘韓非子(한비자)’의 安危(안위)편이다. 중국 法家(법가)의 확립자 韓非(한비)는 나라를 평안하게 하는 방법과 혼란스럽게 하는 행동을 나열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려면 일정한 기준을 세워야한다고 주장한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천하 사람들이 규범을 따르고 법령에 따라 살아가면 사직은 탄탄하고 나라는 오래도록 평안할 것이라며 이어진다.

‘어지럽게 질주하는 수레에는 공자가 없고, 뒤집히는 배 아래에는 백이가 없다. 그래서 호령은 나라의 배나 수레와 같은 것이다(奔車之上無仲尼 覆舟之下無伯夷 故號令者國之舟車/ 분거지상무중니 복주지하무백이 고호령자국지주거).’ 나라의 법령이 어지러우면 지혜롭고 청렴한 사람이 나오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한비자는 나라의 안정이 법률에 의거해 옳고 그름이 명확해야 하는 데서 온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그래야 현인이 나올 수 있다고 하지만 어떻게 해석하든 앞날의 큰 일이 닥쳤을 때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국민들의 지혜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484.html
kolaswqetsrq 11.02 11:29
무접무향無蝶無香 - 꽃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다, 갖춰야 할 것이 빠져 불완전하다.

무접무향(無蝶無香) - 꽃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다, 갖춰야 할 것이 빠져 불완전하다.

없을 무(灬/8) 나비 접(虫/9) 없을 무(灬/8) 향기 향(香/0)

벌과 나비는 향기를 따라 모인다고 蜂蝶隨香(봉접수향)이라 했다. 남자들이 아름다운 여인 주위로 따르는 것을 비유했다. 우리 속담 ‘꽃이 고와야 나비가 모인다’도 미인 주위로 한량들이 몰리는 것을 의미하지만 남의 완전한 것을 구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는 깨우침도 준다. 나비는 바쁘다.

‘예쁜 것도 찾고 향기로운 것도 찾고, 한가로우면서도 바빠라(尋豔復尋香 似閒還似忙/ 심염부심향 사한환사망)’고 唐(당)나라 시인 鄭谷(정곡)은 노래했다. 그런데 나비가 날지 않는 꽃 그림만을 보고(無蝶) 필히 그 꽃엔 향기가 없을 것(無香)이라고 예언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新羅(신라)의 27대 善德女王(선덕여왕)이다.

선덕은 이름이 德曼(덕만), 혹은 德萬(덕만)이고 眞平王(진평왕)의 맏딸로 나온다. 金大問(김대문)이 지은 花郞世記(화랑세기)에는 차녀인데 사랑을 따른 언니보다 여성도 왕위에 오를 수 있다는 적극성으로 왕좌를 차지했다고 한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했는데 16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며 여러 업적을 남겼다. 그 중에서 지혜가 많아 세 가지 일을 미리 알아냈다는 知機三事(지기삼사) 중에서 향기 없는 꽃을 알아맞힌 이야기는 ‘三國史記(삼국사기)’와 ‘三國遺事(삼국유사)’ 모두에 나온다. 부왕 때 당나라에서 가져온 모란꽃과 꽃씨를 보고 덕만이 말했다는 내용이다.

‘이 꽃은 비록 아름다우나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此花雖絶艶 必是無香校勘氣/ 차화수절염 필시무향교감기).’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니 답한다. ‘꽃을 그렸으나 나비가 없는 까닭에 그것을 알았습니다(畵花而無蝶校勘 故知校勘之/ 화화이무접교감 고지교감지).’ 심어 보니 과연 향기가 없어 미리 아는 식견에 탄복했다. 삼국유사에는 다른 두 가지도 실었다.

겨울인데 개구리가 玉門池(옥문지)에 개구리가 우는 것을 보고 적병이 女根谷(여근곡)에 침입했다는 것을 알아채 섬멸했다. 모두 여성의 생식기를 말해 침입한 적군을 쉽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또 자신이 죽는 연월일을 예언한 것도 정확히 맞췄다.

나비 없는 꽃 그림만으로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아챈 선덕은 총명한 만큼 첫 女王(여왕)으로 불교를 중흥시키고 긴밀한 외교도 펼쳐 三國統一(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비 없는 꽃이 향기가 없다는 데서 이 말은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이 빠져 불완전한 것을 나타내는 말이 됐다.

반면 나비가 외면하는 꽃도 생각해야 한다. 짙은 향기를 가졌던 꽃이라도 영원할 수 없다. ‘꽃이라도 十日紅(십일홍)이 되면 오던 蜂蝶(봉접)도 아니 온다’는 權不十年(권불십년)을 비유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538.html
kolaswqetsrq 11.02 11:30
강랑재진江郞才盡 - 강랑의 재주가 다하다, 뛰어난 재능이 갑자기 무능해지다.

강랑재진(江郞才盡) - 강랑의 재주가 다하다, 뛰어난 재능이 갑자기 무능해지다.

강 강(氵/3) 사내 랑(邑/7) 재주 재(手/0) 다할 진(皿/9)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이다. 모든 방면에 통달하는 재주가 없더라도 어떤 한 가지 방면에는 잘 하는 분야가 있기에 그럴만하다. 속담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하듯이 제 잘난 맛에 산다고 하여 各者以爲大將(각자이위대장)이란 말도 생겼다. 이렇게 한 가지 재주로 우쭐할 때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몫을 해내는 재주꾼도 있다.

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팔을 가진 능력자 三頭六臂(삼두육비)다. 이렇게 하늘이 여러 재주를 가능하게 해 준 천재는 甘井先竭(감정선갈)이라고 빨리 시드니 또한 공평하다고 할까. 이와 비슷하게 뛰어났던 재능이 쇠퇴한다고 강랑(江郞)의 재주가 다했다(才盡)는 성어가 있다.

강랑의 본명은 江淹(강엄, 444~505, 淹은 담글 엄)으로 중국 南北朝(남북조) 시대 梁(양)나라의 문인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이름난 문장가가 되고, 宋(송)과 南齊(남제) 등 세 왕조를 섬기는 동안 光祿大夫(광록대부)란 벼슬자리까지 올랐다.

강엄은 儒彿道(유불도)에 능통했고 전대 시인의 문체를 바탕으로 독특하게 표현하는 擬古詩(의고시)를 잘 지었다는데 어느 때부터 그의 글은 차차 퇴보하여 아무리 애써도 좋은 글이 나오지 않았다. 唐(당)나라 李延壽(이연수)가 南朝(남조) 네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南史(남사)’에 이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따른다.

글재주가 마른 연유로 두 가지가 실려 있다. 강엄이 태수 벼슬을 끝내고 배를 타고 여행하다 강기슭에 있는 禪靈寺(선령사)란 곳에 도착했을 때 깜빡 잠이 들었다. 꿈에 張景陽(장경양)이란 자가 나타나 전에 맡긴 비단을 돌려 달라고 하기에 품에서 꺼내 준 뒤부터 좋은 글을 쓰지 못했다. 더 기이하게 꿈에 晉(진)나라의 유명시인 겸 학자 郭璞(곽박)을 凉亭(양정)이란 곳에서 만난 것이 이어진다.

자기 붓이 오랫동안 그대에게 있었으니 돌려달라고 하기에 찾아줬다. ‘그 이후부터 좋은 시 구절은 나오지 않았고 당시 사람들은 재능이 다했다고 말했다(爾後爲詩絕無美句 時人謂之才盡/ 이후위시절무미구 시인위지재진).’

한 가지를 잘 하는 사람은 다른 방면에도 그만큼 재주를 나타낼 수는 없다. 뿔이 있는 짐승은 날카로운 이빨이 없다고 角者無齒(각자무치)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천재적인 머리를 타고 나와 지능지수가 200이 넘는다는 사람도 재주를 다 발휘할 수 없어 일찍 시든다.

뛰어난 글재주로 일찍부터 많은 인기를 끌다가 재주가 다하여 스스로 절필을 하는 작가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재주로, 또는 한 가지 업적으로 두고두고 써먹는 사람은 주위에서 지겹다고 싫증을 내는데도 느끼지 못하니 탈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945.html
kolaswqetsrq 11.02 11:31
백독불염百讀不厭 - 여러 번 읽어도 싫증나지 않다, 잘 읽히는 좋은 글, 꾸준한 노력을 뜻함

백독불염(百讀不厭) - 여러 번 읽어도 싫증나지 않다, 잘 읽히는 좋은 글, 꾸준한 노력을 뜻함

일백 백(白/1) 읽을 독(言/15) 아닐 불(一/3) 싫어할 염(厂/12)

예로부터 책을 많이 읽으라고 깨우치는 글이 많다. 책을 많이 읽으면 그 속에서 황금의 집이 나온다고 書中自有黃金屋(서중자유황금옥)라 강조해도 실제로 가까이 하기는 쉽지 않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책을 읽어 뜻을 이룬 중국 東晋(동진) 때의 학자 車胤(차윤)과 孫康(손강)은 車螢孫雪(차형손설)의 성어에도 이름이 남았다.

머리카락을 묶고 넓적다리를 송곳으로 찔러 잠을 쫓으며 공부한 懸頭刺股(현두자고)의 자학 독서인도 있다. 魏(위)의 董遇(동우)는 여러 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고 讀書百遍 義自見(독서백편 의자현)이라 했는데 이렇게 되려면 백번을 읽어도(百讀) 싫증나지 않을 만큼(不厭) 글도 좋아야 할 터이다.

이 성어는 蘇軾(소식)의 시 구절에서 나왔다. 소식이라 하면 아호 東坡(동파)와 명작 赤壁賦(적벽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北宋(북송)을 대표하는 제1의 시인이자 문장가였다. 후일 대신까지 오르는 安惇(안돈)이란 사람이 처음 향시에 낙방했을 때 풀이 죽어 술만 마시는 것을 보고 소식이 위로의 시를 써 주었다.

‘옛 책을 싫다 않고 백번이나 읽었으니, 숙독하고 깊이 생각하면 스스로 알게 될 걸세(舊書不厭回讀 熟讀深思子自知/ 구서부염회독 숙독심사자자지).’ 그러면서 벼슬자리에 올랐을 때는 그만 두지 못할까 두려워할 것이니 지금의 은거생활을 고마워하며 독서에 힘쓰라고 당부한다. 시의 제목도 ‘실의에 빠져 낙향하는 안돈을 전송하며(送安惇秀才失解西歸/ 송안돈수재실해서귀)’이다.

실제 백번 읽어 싫증나지 않는다고 한 시가 있다. 唐(당)의 유명시인 王昌齡(왕창령)과 王之渙(왕지환) 등의 작품을 읽고 ‘변새시의 명작으로 백 번을 읽어도 싫증나지 않는다(邊塞名作 百讀不厭/ 변새명작 백독불염)’고 평한 淸(청)의 施補華(시보화)다. 匈奴(흉노)와 대치한 변방을 노래한 시들인데 정서가 슬퍼서 백 번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峴傭說詩(현용설시)’에 표현했다.

왕창령이 지은 ‘出塞(출새)’의 첫 한 구절만 보자. ‘진나라 때 떴던 달 한나라 때 관문을 비추건만, 만 리 먼 길 출정한 사람들 돌아오지 못했네(秦時明月漢時關 萬里長征人未還/ 진시명월한시관 만리장정인미환).’

책을 읽는데 백번 읽어도 싫증나지 않으면 그만큼 좋은 글일 수 있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어떤 목표를 두고 꾸준히 정진했을 수 있다. 이처럼 여러 번 들어도 싫증이 안 나는 百聽不厭(백청불염)의 좋은 소리는 찾아가 듣고, 孔子(공자) 말씀처럼 ‘묵묵히 마음속에 새겨 두고 배우는데 싫증내지 않는다면(默而識之 學而不厭/ 묵이지지 학이불염)’ 학문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바람직하다.

한 가지 남을 속이는 것에 절대로 싫증내지 말라는 말이 예외다. 그러나 이 말은 생사가 걸린 전장에서 적을 속이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兵不厭詐(병불염사)이니 걱정할 일이 아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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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32
유인유여遊刃有餘 - 칼날을 놀리는데 여유가 있다, 기술이나 솜씨가 능수능란하다.

유인유여(遊刃有餘) - 칼날을 놀리는데 여유가 있다, 기술이나 솜씨가 능수능란하다.

놀 유(辶/9) 칼날 인(刀/1) 있을 유(月/2) 남을 여(食/7)

칼을 가지고 추는 춤 劍舞(검무)는 궁중의 잔치 呈才(정재)에도 시연됐다고 한다. 이것이 ‘망나니 칼춤’이 되면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경우다. 옛날 사형을 집행하던 사람이 망나니인데 언동이 막돼먹은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런 망나니가 칼까지 휘두르니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다.

검술이 아닌 짐승 잡을 때의 칼도 각기 용도가 달라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면 牛刀割鷄(우도할계)라며 어리석다고 욕먹는다. 소를 잡을 때 최고의 명인이라 알려진 사람이 庖丁解牛(포정해우, 庖는 부엌 포)의 성어로 남은 포정이다. 그는 칼날을 놀리는 데(遊刃) 여유가 있다(有餘)는 뜻으로 능수능란한 일솜씨를 가진 대명사이기도 하다.

戰國時代(전국시대) 梁(양)나라의 庖丁(포정)이라는 사람은 글자대로 소를 도살하는 직업을 가졌는데 그 해체하는 기술이 예술이었다. ‘莊子(장자)’의 養生主(양생주)에 포정이 文惠君(문혜군) 앞에서 소 잡는 모습을 묘사한다. 손이 닿는 곳 어깨와 발, 무릎으로 누르는 곳은 칼질하는 소리가 음률에 맞게 울려 퍼졌다.

넋을 잃고 구경하던 문혜군이 어떻게 이런 경지에 이르렀는지 물었다. 포정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기술보다 한 단계 앞선 道(도)인데 3년을 닦은 지금은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神氣(신기)로 대한다고 하며 쓰는 칼도 19년이 됐지만 숫돌에 금방 간 듯 날카로운 칼날을 유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는데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彼節者有間 而刀刃者無厚/ 피절자유간 이도인자무후), 두께가 없는 칼날을 그 틈 안으로 집어넣으니(以無厚入有間/ 이무후입유간), 넓고 넓어서 칼날을 마음대로 놀려도 항상 여유가 있는 것입니다(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 회회호기어유인필유여지의).’

눈으로 보지 않고 기로 느끼니 칼날도 상하지 않게 소를 해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포정이 처음 소를 잡을 때 소 아닌 것은 보이지 않다가 이제는 소의 전체 모양이 보이지 않게 된 경지가 됐다는 目無全牛(목무전우) 성어도 함께 유래한다.

포정이 소를 해체할 때 명검을 썼을 리는 없다. 다년간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감각으로, 정신의 작용대로 따랐으니 19년간 같은 칼을 썼을 것이다. 칼은 잘 벨 수 있는 것이 우선이다. 실력은 닦지 않고 명품만 찾다가는 실제 일을 닥쳤을 때 그르치기 십상이다.

겉만 번드르르하다고 속까지 알차고 결과까지 좋기를 바란다면 욕심이다. 명분이 그럴싸하다고 다 좋을 수는 없다. 하는 도중에 부작용이 드러나면 처음 명분을 거둬들이더라도 수정할 줄 알아야 나중에 피해가 적다. 칼만 좋다고 함부로 소를 잡다가 망나니 칼춤이 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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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33
서중사치書中四痴 - 책과 관련된 네 바보, 책을 빌리거나 빌려주거나 찾거나 돌려주는 바보

서중사치(書中四痴) - 책과 관련된 네 바보, 책을 빌리거나 빌려주거나 찾거나 돌려주는 바보

글 서(曰/6) 가운데 중(丨/3) 넉 사(囗/2) 어리석을 치(疒/8)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 이전의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책이 귀했던 옛날에 이렇게 믿었다니 이해되지 않으나 책은 지식을 위한 것이고, 그 지식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면 그만큼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실제 중세 서양의 한 수도원에서 먼지를 덮어쓰고 있던 장서를 몰래 빼내 널리 퍼뜨린 포조 브라촐리니(Poggio Bracciolini, 1380∼1459)란 필경사는 인문학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평가받기도 한단다. 책과 관련한 이야기 중에(書中) 네 가지 바보(四痴)가 있다는 말이 전하는데 책 소유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우선 이 네 바보부터 보자. ‘책을 빌리는 놈 바보, 빌려주는 사람도 바보(借一痴 借二痴/ 차일치 차이치), 자기 책 찾는 사람 바보, 돌려주는 놈 바보(索三痴 還四痴/ 색삼치 환사치)’, 모두 바보 천지다. 빌 借(차)는 ‘빌려주다’의 뜻도 있다. 중국 唐(당)나라 후기 昭宗(소종) 때 宗正少卿(종정소경)을 지낸 李匡文(이광문)의 ‘資暇集(자가집)’에 시속의 얘기라며 처음 썼다고 한다.

조금 앞서 학자 段成式(단성식)은 ‘책을 빌려주는 것도, 돌려주는 것도 똑같은 바보(借書還書 等爲二癡/ 차서환서 등위이치)’라고 ‘酉陽雜俎(유양잡조)’에서 말했다. 北宋(북송)의 呂希哲(여희철)도 같은 뜻의 ‘빌려주고 돌려주는 둘 다 바보(借書而與之 借人書而歸之 二者皆痴也/ 차서이여지 차인서이귀지 이자개치야)’라며 ‘呂氏雜記(여씨잡기)’에 썼다고 한다.

이처럼 바보 소리 들으며 책을 빌리는 사람도, 빌려주는 사람도 늘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독서에 나쁜 영향이 왔겠다. 그런데 실제 이 네 바보 이야기는 정반대로 오해에서 온 표현이라니 이 말을 더 믿어야 하겠다. 南宋(남송) 때의 문인 嚴有翼(엄유익)이 ‘藝苑雌黃(예원자황)’이란 글에서 이런 표현을 썼다고 한다.

‘옛날에는 책을 빌리러 갈 때 술 한 병, 책을 돌려줄 때 술 한 병을 들고 갔다(借書一瓻 還書一瓻/ 차서일치 환서일치).’ 瓻는 술단지 치, 목이 짧고 배가 부른 작은 항아리를 가리켰다. 책이 귀했던 시절에 고맙게도 책을 빌려 보고 돌려주지 않는 것을 도둑의 심보라며 술 한 병이라도 사례하는 것이 예의라는 것이다.

술단지를 뜻하는 어려운 글자 瓻(치)가 누군가의 장난으로 음이 같은 어리석을 痴(치)로 바꾼 것이 더 재미가 있어 후세로 내려온 셈이다. 자가 濟翁(제옹)인 이광문의 글에서는 책이 있어도 빌려주거나 돌려받는 것이 모두 어리석다며 有書借索(유서차색)이라고도 하는데 엄유익이 말한 술 한 병의 借書一瓻(차서일치)란 성어가 물론 더 훈훈하다.

이렇게 되면 책은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다는 書勿借人(서물차인)이란 말이 사라지지 않을까. 아니 그보다 책을 빌리거나 빌려 주거나 책을 옆에 두고 독서를 생활화하는 것이 먼저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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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34
관즉득중寬則得衆 - 마음이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

관즉득중(寬則得衆) - 마음이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

너그러울 관(宀/12) 곧 즉(刂/7) 얻을 득(彳/8) 무리 중(血/6)

남을 사랑하고 어질게 행동하는 仁(인)은 본래 등에 짐을 진 사람을 의미했다고 한다. 孔子(공자)가 처음으로 강조한 인은 孝悌(효제) 즉 혈연적인 사랑을 널리 퍼뜨려 나라까지 평화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후일 孟子(맹자)가 완성시킨 五常(오상)도 인이 중심이 돼 仁義禮智信(인의예지신)으로 되었고 유교에서 가장 중심덕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너그러운 마음씨를 가지면(寬則)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다(得衆)는 이 말도 공자가 인에 대해서 설명할 때 나온다.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물론 많은 사람의 사랑과 애정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4년 리더십의 덕목을 말하는 신년휘호로 이 성어를 선정한 이후 잘 알려졌다.

‘論語(논어)’의 陽貨(양화)편에 등장하는 공자와 제자 子張(자장)의 문답을 보자. 자장은 字(자)이고 이름이 顓孫師(전손사, 顓은 오로지 전)인 陳(진)나라 출신이다. 인에 대해서 여쭙자 공자가 ‘하늘 아래에서 다섯 가지 덕목을 실천할 수 있다면 사람답다(能行五者於天下 爲仁矣/ 능행오자어천하 위인의)’고 한다. 다시 그 내용을 자세히 알려달라고 하여 대답한다. ‘다섯 가지는 공손함, 너그러움, 미더움, 민첩함, 은혜로움이다.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며, 믿음이 있으면 사람들이 신임하게 되고, 민첩하면 기회가 올 때 공적을 세울 수 있고, 은혜로우면 사람들을 부릴 수 있게 된다(恭 寬 信 敏 惠, 恭則不侮 寬則得衆 信則人任焉 敏則有功 惠則足以使人/ 공 관 신 민 혜, 공즉불모 관즉득중 신즉인임언 민즉유공 혜즉족이사인).’ 이 덕목들은 인을 실천할 때 필요한 것인데 공손, 관대, 은혜로움은 특히 사람과의 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남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지녀야 하는 필수 덕목이기도 하다. 우리의 지도자들, 이러한 덕목을 잘 지니고 있을까. 대기업은 많이 가진 자가 더 욕심 부리고, 항상 시끄러운 정치판에서는 거론하기조차 부끄럽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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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34
노안비슬奴顔婢膝 - 종의 비굴한 얼굴과 여종의 무릎걸음, 환심을 사려 알랑거림

노안비슬(奴顔婢膝) - 종의 비굴한 얼굴과 여종의 무릎걸음, 환심을 사려 알랑거림

종 노(女/2) 낯 안(頁/9) 계집종 비(女/8) 무릎 슬(肉/11)

종은 예전에 남의 집에 딸려 천한 일을 하던 사람이다. 奴隸(노예)가 남의 소유물이 되어 물건처럼 매매도 가능했던데 비해 下人(하인)처럼 종은 고용에 의한 것이 다르다. 어려운 생활로 죽지 못해 종이 됐더라도 세습제도가 생겨 대대로 부림 받았으니 큰 차이 없게 됐지만 말이다.

종의 비굴한 얼굴(奴顔)과 계집종의 무릎걸음(婢膝)이란 말은 남에게 환심을 사려고 빌붙어 아첨하는 것을 말한다. 王侯將相(왕후장상)이 처음부터 씨가 있은 것이 아니듯 종도 태어나서부터 종이 아니니 알랑거리는 것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재산도 지위도 더 누리려고 윗사람에게 살살거리고 뇌물을 쓰는 자들은 따로 있다.

중국 東晉(동진)의 葛洪(갈홍)은 유교와 도교의 비술을 결합하려 한 煉丹家(연단가)로 자신의 호를 딴 대표작 ‘抱朴子(포박자)’를 남겼다. 당시 어지러운 전란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부귀를 탐하며 권세가를 찾았고, 정직한 자들에겐 오히려 시세를 모르고 무능하다고 욕했다. 갈홍은 이러한 세태를 명확히 지적하고 사람들의 주의를 촉구하는 글을 交際(교제)편에서 이렇게 썼다.

‘높은 산처럼 우뚝 선 사람은 굼뜨고 부끄러워하며 거칠고 서투르나(以岳峙獨立者 爲澀吝疏拙/ 이악치독립자 위삽린소졸), 종의 표정과 여종의 곁눈질을 가진 자는 세상을 잘 아는 사람이다(以奴顏婢睞者 爲曉解當世/ 이노안비래자 위효해당세).’ 峙는 언덕 치, 澀은 떫을 삽, 睞는 한눈팔 래. 婢睞(비래)는 후일 婢膝(비슬)로 많이 쓰게 됐다.

唐(당)의 시인 陸龜蒙(육구몽)은 ‘江湖散人歌(강호산인가)’에서 이렇게 꼬집는다. ‘남자 종의 비굴한 얼굴과 여종의 무릎 꿇는 태도는 그야말로 거지근성이거늘(奴顏婢膝眞乞丐/ 노안비슬진걸개), 도리어 정직한 사람을 미쳤다고 여긴다(反以正直爲狂癡/ 반이정직위광치).’ 丐는 빌 개. 인격수양의 지침서 ‘菜根譚(채근담)’에서도 점잖게 타이른다.

거친 음식을 마다않는 사람은 옥같이 맑은 사람이 많다면서 이어진다. ‘비단옷을 입고 옥 같은 흰쌀밥을 먹는 사람 중에는, 종처럼 굽신거리는 것을 달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袞衣玉食者 甘婢膝奴顏/ 곤의옥식자 감비슬노안).’ 袞은 곤룡포 곤, 고대에 천자가 입던 옷이다.

‘인간은 아첨하는 동물’이라 했다. 조금의 이익만 있으면 ‘간에 가 붙고 쓸개에 가 붙는다’는 속담대로 왔다 갔다 한다. 이러니 아첨을 나타내는 말이 수두룩하다. 상관의 수염에 묻은 티끌을 불어주는 拂鬚塵(불수진), 상사의 변을 맛보고 고름을 빨아주는 嘗糞吮癰(상분연옹), 말똥 위에서 무릎으로 기는 膝行馬矢(슬행마시)는 냄새의 극치다.

날 때부터 종이 아니라고 일찍 高麗(고려) 말의 萬積(만적)이나 亡伊亡所伊(망이망소이) 등은 난리를 일으켰다. 실패했더라도 신분 해방의 의지는 뚜렷했는데 종이 아첨의 대명사가 됐으니 억울하겠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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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35
청운지사靑雲之士 - 학덕이 높은 어진 선비, 고관으로 출세한 사람

청운지사(靑雲之士) - 학덕이 높은 어진 선비, 고관으로 출세한 사람

푸를 청(靑/0) 구름 운(雨/4) 갈 지(丿/3) 선비 사(士/0)

작은 물방울이나 얼음 결정이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千變萬化(천변만화)란 말대로 모양이 수시로 바뀐다. 그 구름이 빛을 반사하여 形形色色(형형색색)으로 변하며 요지경을 이룬다. 구름 자체의 색깔은 희거나 회색일 듯한데 푸른 구름(靑雲)이란 말이 좋은 뜻으로 일상에 많이 사용된다.

입신출세하려는 큰 뜻을 靑雲之志(청운지지)라 하고, 큰 꿈은 靑雲萬里(청운만리), 지위의 급상승은 靑雲直上(청운직상)이 된다. 마찬가지로 고관대작으로 입신한 사람은 靑雲之士(청운지사)인데 이는 학덕이 높은 사람이나 속세를 떠나 숨어사는 선비를 가리키는 말도 된다.

청운이 이런 뜻을 갖게 된 것은 예부터 중국에서 신선이나 천자가 될 사람이 있는 주변에 푸른 구름 또는 오색구름이 떠 있었다는 데서 나왔다고 한다. 신선이 푸른 구름을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있다. 높은 벼슬자리에 올랐거나 덕을 쌓은 고고한 선비가 청운지사가 되는데 司馬遷(사마천)은 ‘史記(사기)’에서 처음 쓸 때 이것을 전하게 한 사람을 가리켰다.

列傳(열전)의 첫머리 伯夷(백이)에서 이들이 찬란한 이름을 갖게 된 것도 孔子(공자)와 같은 지사가 있었기 때문이라 말했다. 향리에서 덕행을 닦아 이름을 후세에 남기려 해도 ‘뜻이 높은 선비에 기대지 못하면 어찌 후세에 이름을 전할 것인가(非附靑雲之士 惡能施于後世哉/ 비부청운지사 악능시우후세재)’라며 전하는 사람을 중요시했다.

初唐四傑(초당사걸)에 들어가는 王勃(왕발)은 잘 알려진 시 ‘滕王閣(등왕각, 滕은 물솟을 등)’을 쓰면서 대구가 아름다운 騈儷文(변려문, 騈은 쌍말 변)으로 詩序(시서)도 함께 남겼다. 중반 뒷부분에 어려움이 닥쳐도 위축되지 말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며 성어를 썼다.

‘노년이 되면 더욱 굳세져야 할진대, 어찌 백발이 되어 마음을 바꿀 것인가(老當益壯 寧知白首之心/ 노당익장 영지백수지심), 구차할수록 마음을 굳게 다져, 청운의 뜻을 접지 말아야지(窮且益堅 不墮靑雲之志/ 궁차익견 불타청운지지).’

왕발보다 조금 뒤의 시인이자 정치가 張九齡(장구령)도 ‘거울을 비춰 백발을 보다(照鏡見白髮/ 조경견백발)’란 시에서 같은 뜻으로 인용한다. ‘옛날에는 청운의 뜻을 품고 있었지만(宿昔靑雲志/ 숙석청운지), 어느 사이에 백발의 나이 되었구나(蹉陀白髮年/ 차타백발년).’ 蹉는 미끄러질 차, 陀는 비탈질 타.

어려운 시기에 죽을 고생을 하더라도 장래가 밝으면 감수한다. 갈수록 빈부의 격차는 커지고 온갖 수단을 다해도 내 집 마련은 꿈같이 아득하게 되어버린 오늘날 결혼출산 포기세대들의 꿈은 어떻게 실현할까. 푸른 구름을 잡으러 하늘에 가더라도, 아니 더 까마득한 우주까지 가야 한다면 절망할 수밖에 없다.

미래의 꿈마저 앗아버리는 정치, 그러면서도 가붕개로도 잘 살아야 한다며 염장을 지르니 더 좌절한다. 청춘들에게 청운의 꿈을 살려주는 희망의 세상을 위해 합심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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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36
화신풍.花信風 - 꽃이 피는 것을 알리는 바람

화신풍.(花信風) - 꽃이 피는 것을 알리는 바람

꽃 화(艹/4) 믿을 신(亻/7) 바람 풍(風/0)

믿을 信(신)에는 소식, 편지란 뜻이 있다. 그래서 通信(통신)이고 번개같이 소식 전한다고 電信(전신)이다. 얼음이 풀리고 꽃이 피면 봄이 오니 春信(춘신)이 되고, 꽃이 피는 것을 알리면 花信(화신)이다. 겨우내 오그라들었던 심신에 가장 반가운 소식인데 봄철에 피기 시작하는 갖가지 꽃에 따라 꽃잎에 스치는 바람이 모두 다르다고 花信風(화신풍)이라 했다.

양력 1월 6~7일께의 小寒(소한)부터 여름이 되기 전의 4월 20일경 穀雨(곡우) 사이 8개 절기 120일을 닷새 만에 한 번씩 각기 다른 24가지 꽃바람이 분단다. 눈서리를 뚫고 가장 먼저 피는 梅花風(매화풍)에서 멀구슬나무꽃 楝花風(연화풍)까지 二十四番花信風(이십사번화신풍)이다. 기막힌 감수성이 있어야 구분하겠다.

알려진 몇 가지 꽃만 보아도 大寒(대한)은 천리향 난초, 立春(입춘) 개나리 앵두, 雨水(우수)는 유채 살구꽃, 驚蟄(경칩)은 복숭아꽃과 장미, 春分(춘분)은 해당화와 배꽃, 淸明(청명)엔 오동나무와 버드나무 꽃이 소식을 전한다고 한다. 이렇게 세세하게 바람을 나눈 것을 자료마다 출처는 구구하게 나온다.

중국 고대 풍속지 ‘歲時雜記(세시잡기)’나 北宋(북송)의 周煇(주휘, 煇는 빛날 휘)가 편찬한 ‘清波雜志(청파잡지)’에 적혀 있다고 한다. 조선 중기 실학의 대가 李瀷(이익, 瀷은 강이름 익)은 대표적인 저술 ‘星湖僿說(성호사설, 僿은 잘게부술 사)’에서 明(명)나라 문인 謝肇淛(사조제, 肇는 비롯할 조, 淛는 강이름 제)의 五雜爼(오잡조)를 상고한다며 24가지 화신풍을 상세히 소개했다.

겨울에서 봄이 왔다고 좋은 일만 이어지지 않으니 꽃이 전하는 소식을 시샘하는 바람도 있다. 여기에도 好事多魔(호사다마)가 따라 꽃샘바람, 바로 妬花風(투화풍)이다. 꽃샘바람이라 하면 高麗(고려) 때의 명문장가 李奎報(이규보, 1168~1241)의 시가 많이 알려졌다. ‘꽃 필 땐 미친바람도 많으니, 사람들은 꽃샘바람이라 하네(花時多顚風 人噵是妬花/ 화시다전풍 인도시투화)’로 시작하여 끝부분은 이렇다.

‘꽃 피는 것도 좋지만, 꽃 지는 것 또한 슬퍼할 게 뭐랴(花開雖可賞 花落亦何嗟/ 화개수가상 화락역하차), 피고 지는 것 모두가 자연인데, 열매가 있으면 또 꽃이 생기네(開落摠自然 有實必代華/ 개락총자연 유실필대화).’ 噵는 이를 도. 嗟는 탄식할 차.

봄이 오면 모두 희망에 들떠 좋은 시절이 계속되리라 여긴다. 하지만 자칫 방심하다간 ‘꽃샘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대로 더 고생한다. 중국에도 겨울보다 더 고생한다고 ‘봄추위는 뼈가 시리고, 가을 추위는 살갗이 시리다(春凍骨頭秋凍肉/ 춘동골두추동육)’란 말이 전해 온다고 한다. 꽃샘바람에서 이규보가 깨우친 것처럼 봄이 왔다고 들뜨지 말고 꽃이 지는 것 또한 자연이라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모든 일에 대비를 철저히 하여 고난의 세월을 잘 참으면 또 꽃이 핀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185.html
kolaswqetsrq 11.02 11:37
익혀 먹으면 훨씬 몸에 좋은 식품 3가지

익혀 먹으면 훨씬 몸에 좋은 식품 3가지

◆ 땅콩

날것이나 볶아 먹는 것보다 삶아 먹으면 암, 당뇨병 등 질병예방에 더 좋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미국 앨라배마 농업공과대학 워커 박사 연구팀은 땅콩을 삶으면 항산화물질인 ‘파이토케미컬’이 4배 이상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를 농업·식품화학저널에 발표했다. 워커 박사팀은 일반 식료품점에서 판매하는 껍질땅콩과 껍질을 깐 땅콩을 4시간 동안 삶은 후 땅콩 속의 파이토케이컬의 함량을 조사한 결과, 이 성분은 껍질땅콩에 더 많았다. 말리거나 볶은 다른 땅콩의 추출물과 비교해도 삶은 땅콩의 파이토케미컬 함량이 많았다. 워커 박사는 “파이토케미컬에는 암, 심장질환, 기타 만성질병에 좋은 항산화물질이 많다”며 “땅콩을 삶으면 껍질에 있는 항산화물질이 땅콩에 잘 흡수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당근

당근은 베타카로틴이 풍부하다. 베타카로틴은 눈 건강을 비롯해 몸의 성장과 발달, 세포분화 및 증식에도 도움을 주는 성분이다. 이런 베타카로틴의 장점 때문에 당근이 최고의 건강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당근을 생으로 먹으면 흡수율이 낮다는 것이 단점이다. 생식의 경우 흡수율이 약 10%정도에 불과하다. 당근을 익히거나 기름에 조리하면 흡수율은 30~50%로 높아진다. 따라서 건강에 좋은 당근을 효율적으로 섭취하려면 껍질을 벗기지않고 익혀서 먹는 것이 좋다. 베타카로틴은 당근의 과육보다는 껍질 부분에 더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 토마토

토마토를 익혀 먹어야 몸에 좋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토마토에 풍부한 리코펜은 열을 가할 경우 인체에 더 잘 흡수되기 때문이다. 피자나 스파게티 등의 토마토 소스와 같이 토마토를 익혀먹을 것을 권장하는 이유다. 리코펜은 비타민C, 비타민E, 카로틴 등과 함께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고 항암 효과를 발휘하는 강력한 항산화제 역할을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8.html
kolaswqetsrq 11.02 11:38
무병장수 비법

무병장수 비법

●낙천적인 사고

낙천적인 사람은 몸 안의 면역 체계가 튼튼해 질병에 잘 걸리지 않고 또한 걸려도 쉽게 낫는다. 반대로 비관적인 사람은 자기 몸의 변화에 관심이 없어 건강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신앙

종교가 우리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일을 모두 막아 주지는 못하지만 나쁜 일에 대항해 싸우고 이겨나갈 힘을 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애완동물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병원에 가는 횟수와 우울증에 걸리는 일이 적다. 연구에 따르면 애완동물을 쓰다듬거나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심장박동 수가 줄어들며 혈압이 낮아진다고 한다.

●채식

과일과 야채를 하루에 2~5인분만큼 더 먹으면 암 발병률을 상당히 줄일 수 있으며 채식주의자는 고기를 먹는 사람보다 요절할 확률이 20%나 낮다.

●낮잠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약 30분씩 낮잠을 자는 사람을 연구해보았더니 심장마비 등 심장 관련 질환으로 사망하는 확률이 37% 줄어들었다는 보고가 있다.

●요가

요가의 철학에 따르면 사람의 나이를 결정하는 것은 살아온 햇수가 아니라 척추의 유연성이다. 요가를 하면 척추에 유연성이 생기고 피부가 탱탱해지고 몸 안에 쌓인 스트레스가, 사라지며 복부 근육이 강화되고 자세가 좋아져 노화 과정이 늦어진다.

●건강한 성생활

한 연구에 따르면 오르가즘을 느끼는 횟수가 많을수록 사망할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한다. 자주 오르가즘을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망 확률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이런 효과는 특히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에 나타난다.

●건강한 이와 잇몸

미국 치주과학회에서 이와 잇몸 건강을 잘 유지하면 주된 사망 원인을 예방해 장수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우리 입 속은 항상 세균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 세균이 혈액 속으로 들어오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망 좋은 방

수술을 받은 환자가 전망 좋은 방에 입원하면 벽 밖에 보이지 않는 방에 입원한 환자보다 회복이 빠르고 퇴원도 빨라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전망 좋은 방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풀려 삶이 만족스러워지고 앞날에 대한 희망이 샘솟는다.

●건강한 가족

가족 중 한 명이 아프면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에게 상당한 사회·경제적 짐을 지워주게 된다. 만성 질환에 걸려 돈을 벌 수 없게 되면 가족 전체에 위기가 닥친다. 경제적 궁핍 사회적 지위 하락, 열악한 환경, 삶에 대한 만족도 저하 등으로 나머지 가족 역시 수명이 단축된다.

●적포도주

학자들은 적포도주 속에 있는 폴리페놀 성분이 동맥 경화증을 예방하고 혈관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폴리페놀은 항산화 효과를 보이므로 적포도주를 약간 마시는 것이 암 발병률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행복한 결혼 생활

배우자와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신체 혹은 정신적 질병을 앓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었으며 병에 걸리더라도 쉽게 극복해냈다. 암에 걸렸을 때도 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이혼 했거나 혹은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보다 생존율이 높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764.html
kolaswqetsrq 11.02 11:39
행복의 항아리

행복의 항아리

뚜껑이 없습니다.

울타리도 없으며

주인도 없습니다.

부족한 사람은 가지고 가고

넉넉한 사람은 채워 주기에

한번도 비워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대 행복이 넘친다면

살짜기 채워주고 가십시요

당신의 배려에 희망을 얻는

사람이 있을겁니다.

그대의 행복이 부족 하다면 빈 가슴을

담아 가십시요

당신의 웃음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겁니다.

오늘 나에게 조금 남은 것은

삶과 사랑의 희망입니다

나는 아주 조금만 채워두고 갑니다.

오늘 삶과 사랑에 힘겨웠던 것은 한 사람이

내일 아니면 그 훗날에 다시 행복의 항아리를

채워 줄 것입니다.

- 정영순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006.html
kolaswqetsrq 11.02 11:39
사과를 이용한 민간요법

사과를 이용한 민간요법

사과는 남성이 먹으면 건강해지고 여성이 먹으면 아름다워진다. 이것은 사과 안에 풍부한 산(酸)과 사과철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동시에 피부에 윤기를 준다. 그러므로 사과는 정장작용과 식체 제거의 양약이며 피부를 윤택하게 하는 미용식이 아닐 수 없다.

●이질이 멎지 않을 때

설 익은 사과 10개를 물 2되와 섞어 삶아 물이 1되로 줄었을 때 그 물을 되도록 자주 먹으면 된다. 여기에 설탕을 넣어 먹어도 좋다.

●임파선이 부었을 때

사과를 송두리째 으깨어 식간에 식초를 타서 바르면 된다.

●위장허약, 식체, 구토 설사, 또는 변비에

사과를 껍질째 얇게 썰어서 20도의 식염수에 6~7시간 담갔다가 꺼내서 찧어 즙을 낸다. 이것을 매일 수시로 100g씩 마신다. 보통 병이 없는 사람도 반 컵씩 마시면 위장을 조성하고 식체를 제거하며 통변을 한다.

●불면증, 두통

식후마다 사과 1개를 껍질째 오래 먹으면 효력이 있다. 그러나 껍질에는 농약성분이 있을수 있으므로 소금물이나 식초수에 잘 씻어서 먹어야 한다.

●변비

식후마다 찐 사과 1개씩 먹으면 된다. 찌는 방법은 사과를 껍질째 꼭지를 딴 다음 속의 씨 같은 것을 갉아내고 그 속에 설탕이나 꿀을 가득 채운 뒤 조금 전 잘라낸 꼭지로 덮고 이쑤시개로 움직이지 않게 찔러 둔다. 그 후 사과를 그릇에 담아 찜통에 넣고 30~40분동안 찐다. 찜통에 들어갈 만한 양대로 쪄도 좋다. 이것을 1개 다 먹을 수 없으면 반을 먹어도 좋다. 찐 사과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수시로 큰 숟가락으로 한 술씩 끓여 식은 물과 먹어도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843.html
kolaswqetsrq 11.02 11:40
전복의 효능

전복의 효능

1. 스테미너 음식

전복의 대표가 되는 효능 중에 하나로 정력, 스테미너를 증강 시켜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복에 들어있는 아르기닌 성분은 남성의 정액을 이루고 있는 주요 성분으로 발기부전이나 혈관이 안좋은 분들에게도 좋은 효능을 발휘할수 있습니다.

2. 기력보충

환자들에게 좋은 음식중에 하나가 전복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전복에 들어있는 타우린과 아르기닌 성분 때문이라 합니다. 아르기닌은 기력이 떨어진 환자들에게 기력을 보충해 줄 수 있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한의학에서는 전복을 우리몸을 구성하는 물질을 늘려주는 음식으로 설명한다고 합니다.

3. 간기능 강화 및 회복

이 또한 전복에 들어있는 아르기닌 성분 때문이라고 합니다. 간에 피로가 쌓이게 되면 오르티닌 성분이 회복을 도와주는데 이 오르티닌 아미노산이 만들어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아르기닌이라고 합니다.

4. 항암작용

전복에 들어 있는 다당류에는 백혈구가 우리몸을 위해 싸울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켜 주기 때문에 면역력을 향상시켜 몸속에 암세포가 있다면 암세포가 성장하는것을 막아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5. 시력회복

전복의 껍질에 해당되는 효능으로 전복의 껍질은 찬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의학에서는 열로 인하여 충혈된 눈을 가라앉히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어 눈을 편안하게 만든다고 하며 시력회복에도 도움이 될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753.html
kolaswqetsrq 11.02 11:41
실내 독소 제거에 탁월한 화초

실내 독소 제거에 탁월한 화초

1. 알로에 베라

알로에 베라는 잎을 자르면 나오는 맑은 젤 형태의 수액이 일광화상이나 관절염 치료제로 사용된다. 알로에 베라는 이런 치료 효과 외에도 집안의 포름알데히드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 아레카 야자

가시가 없는 야자의 일종인 아레카 야자는 실내에 쌓여 있는 독소를 제거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3. 코끼리 귀 필로덴드론

코끼리 귀를 닮은 화살 모양의 잎에서 유래한 이 화초는 알로에 베라처럼 포름알데히드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4. 종려나무

종려죽이라고도 불리는 종려나무는 실내의 공기 독소를 제거할 뿐만 아니라 특히 집안에 있는 암 유발 인자들을 없애는 효과도 탁월하다.

5. 대나무

대나무는 실내의 벤젠과 트리클로로에틸렌, 포름알데히드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6. 고무나무

새로 화초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좋은 고무나무는 포름알데히드 제거 효과가 있다.

7. 서양 담쟁이 넝쿨

실내에서도 잘 자라는 서양 담쟁이 넝쿨은 벤젠과 포름알데히드를 잘 제거한다.

8. 피닉스 야자

천연 공기 정화기 역할을 한다. 특히 페인트나 솔벤트 등에 들어있는 자일렌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9. 보스턴 고사리

실내의 가구나 건축 자재에 들어있는 포름알데히드를 제거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갖고 있다.

10. 스파티필럼

스파티필럼은 아세톤과 트리클로로에틸렌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단 고양이에게 유해하기 때문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피해야 한다.

11. 거베라

거의 모든 실내 독소를 제거하는 효능을 지니고 있다.

12. 용혈수

집에서 기르기에 좋은 상록교목의 일종이다. 용혈수는 유방암의 원인으로 알려진 자일렌과 트리클로로에틸렌을 제거하는 데 좋다.

13. 팔러 팜

테이블 야자로도 불리는 팔러 팜은 실내 독소와 암 유발 인자를 제거하는 공기 청정기 역할을 한다.

14. 스파이더 플랜트

거미 식물, 덤불난초, 줄모초, 거미죽란 등으로도 불리는 스파이더 플랜트는 일산화탄소를 제거하는 효능이 뛰어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712.html
kolaswqetsrq 11.02 11:41
과일이 보약이 되는 방법

과일이 보약이 되는 방법

1. 장이 약한 사람은 아침에 먹는다.

장이 약하다면 가능하면 저녁보다 아침에 먹는다. 저녁에 먹는다고 몸에 특별히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일에는 구연산 같은 유기산이 많이 들어 있어 장 점막을 자극할 수도 있으므로 조심한다.

2. 당뇨환자는 포도를 주의한다.

피로할 때 포도를 먹으면 금방 기운이 난다. 포도의 단맛을 내는 포도당과 과당 덕분이다. 포도는 당지수가 50으로 높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당뇨병 환자나 비만인 사람은 주의한다. 일반 사람도 포도를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혈당이 급격히 상승하고 장 활동이 활발해져 설사를 할 수 있으므로 조심한다.

3. 장이 안 좋으면 참외를 멀리한다.

참외는 암 세포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참외에 함유된 ‘쿠쿨비타신’ 성분 덕분이다. 그러나 몸에 좋다고 무턱대고 참외를 먹어서는 안 된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참외를 피해야 한다. 찬 과일에 속하는 참외는 장을 자극해서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4. 날로 먹는 게 가장 좋다.

과일을 섭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깨끗이 씻어 껍질째 먹는 것이다. 과일을 갈아서 먹으면 비타민 같은 영양소가 파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키위의 본고장인 뉴질랜드에는 키위를 껍질째 섭취하는 키위 마니아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과일을 갈아서 먹었을 때의 장점도 있다. 체내 흡수율이 높아져 소화가 잘 된다는 점이다. 단, 당뇨병 환자나 비만인 사람이 과일을 갈아서 먹으면 혈당이 빨리 올라갈 수 있으므로 조심한다

5. 포도는 갈아서 먹는다.

포도는 껍질까지 먹거나 껍질째 갈아서 먹는 것이 좋다. 포도에 들어 있는 항독성 물질인 ‘레스베라트롤’을 섭취하기 위함이다. 레스테바트롤은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발전하는 것을 차단하고 이미 암세포로 변한 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성분으로, 포도껍질의 자주색 색소에 많이 들어 있다. 시판 중인 포도주스와 와인 등을 섭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6. 토마토는 익혀서 먹는다.

토마토의 붉은색을 내는 리코펜은 암 유발 물질이 생성되기 전에 몸 밖으로 배출시키고, 노화를 앞당기는 체내 활성 산소를 억제한다. 리코펜은 생으로 먹는 것보다 익혀 먹을 때 함량이 늘어나고, 기름에 조리할 때 우리 몸에 더 잘 흡수된다. 따라서 익혀 먹는 것이 좋다. 단, 비타민C가 파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살짝 익힌다.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서 먹기도 하는데, 토마토의 비타민K가 손실되므로 좋은 방법은 아니다. 토마토는 산이 많이 함유돼 있으므로 위산과다증이 있는 사람은 공복에 먹지 않도록 챙긴다.

7. 다이어트 중이라면 식전에 먹는다.

과일에 많이 들어 있는 비타민C는 철분이나 칼슘을 흡수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목적으로 과일을 섭취하고자 한다면 식사를 마치고 먹는다. 그러나 다이어트 중이거나 비만인 사람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식사하기 전에 먹어야 포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8. 후숙 과일로도 즐긴다.

과일 중에는 후숙과일도 있다. 후숙과일이란 수확한 과일이 먹기에 가장 알맞은 상태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키위가 대표적인 후숙과일이다. 키위의 신맛을 좋아하면 약간 단단한 것을 고르고, 달콤함을 즐기려면 말랑말랑한 것을 고른다. 바나나와 망고도 후숙시켜 먹을 수 있다. 키위, 바나나, 망고를 후숙시킬 때는 냉장고에 넣지 말고 신문지에 싸서 실온에 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496.html
kolaswqetsrq 11.02 11:42
천연소화제

천연소화제

◇매실

매실은 소화를 원활하게 도와주는 열매로 이미 유명하다. 음식점에 가면 후식으로 항상 매실음료를 내어 주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매실 안에 있는 유기산은 소화효소나 소화액 분비를 원활하게 도와주기 때문에 소화가 안 될 때 먹게 되면 소화가 잘 될 뿐 아니라 새콤한 맛 때문에 식욕도 돋궈준다. 매실에는 소화촉진과 함께 항균성분이 있어서 식중독 등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무

소화가 잘 되지 않을때 동치미 등을 마시게 하거나 무즙을 갈아서 먹기도 하는 민간요법이 있다. 무 안에는 소화효소가 많이 들어 있기도하고 무의 성질이 따뜻하기 때문에 소화에 도움을 준다. 특히 밀이나 보리, 메밀 같은 음식을 먹고 나서 속이 더부룩할 때에는 무를 먹으면 좋은데 그 이전에 무를 갈아서 넣거나 무절임을 넣어먹으면 좋다.

◇생강

생강은 주로 감기에 걸렸을 때 차로 끓여서 먹지만 소화에도 좋다. 소화가 잘 되게 하려면 몸이 따뜻해지는 것이 중요한데, 생강 역시 위장의 연동운동을 도와서 소화액의 분비를 자극하고, 꾸준히 먹어주면 몸도 따뜻해져서 활발한 신진대사에 도움이 된다. 단, 생강 껍질은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꼭 껍질을 제거하고 조리하는 것이 좋다.

◇마

‘마’는 오장육부를 튼튼하게 해주는 식품일 뿐만 아니라 원기회복에 탁월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천연 소화제로 자주 쓰였기에 익히지 않고 생으로 갈아먹어도 좋고, 쌀과 함께 죽으로 섭취하면 만성위염을 가진 사람에게도 장기적으로 좋다.

◇사과

‘사과’역시 제때 섭취해 주면 소화를 돕게 되는데요, 배변활동이 적은 밤보다는 아침에 사과를 한 쪽씩 섭취해 줌으로써 식이섬유를 통한 소화촉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양배추

음식점에 가면 샐러드로 많이 나오는 것 중의 하나가 양배추이다. 양배추가 음식점 기본찬으로 나오는 이유는 소화를 돕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양배추에는 비타민과 식이섬유, 칼슘 등 풍부한 영양소를 지녔기 때문에 위 점막을 강화시켜주고, 손상된 위를 재생시켜 준다. 양배추는 날것으로 먹어도 좋지만, 수분이 많기에 즙을 내서 물처럼 마시면 소화 기능을 향상시켜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629.html
kolaswqetsrq 11.02 11:43
젊음과 장수, 두마리 토끼 잡는 법

젊음과 장수, 두마리 토끼 잡는 법

1. 운동과 다이어트로 DNA를 보호하라

나이가 들면 염색체를 양끝에서 보호하는 마개(텔로미어)의 길이도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질병에 취약해진다.

한 예비연구에 따르면 다이어트와 운동같은 건전한 생활습관은 텔로미어의 길이를 늘이는 효소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 매사에 성실하라

80년에 걸쳐 시행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장수 여부를 예측할수 있는 최고의 변수는 성실한 성격이었다.

3. 친구를 사귀라

오스트렐리아의 연구진은 사교성이 있는 노인은 친구가 적은 동년배와 비교했을 때 10년안에 사망할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4. 친구를 현명하게 선택하라

건강한 생활방식을 가진 친구를 찾는게 중요하다.

5. 담배를 끊어라

50년간 실시된 영국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30세에 담배를 끊으면 수명이 10년 연장되며, 40세 때는 9년, 50세 때는 6년,

60세 때는 3년 수명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 낮잠을 자라

규칙적으로 낮잠을 즐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병으로 죽을 확률이 37%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7. 지중해식 다이어트를 하라

지중해식 다이어트는 과일과 채소, 곡물, 올리브유, 그리고 생선을 위주로 한다.

8. 오키나와 사람처럼 먹어라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푸른색과 노란색 채소 위주의 저칼로리 다이어트 식단을 유지함으로써 한때 세계 최장수 지방의 위치를 지켰다.

9. 결혼하라

결혼한 사람은 혼자 사는 사람보다 오래 사는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큰 혜택을 준다.

10. 움직여라

1주일에 2시간 30분 동안 적당한 수준의 운동을 하라. 이렇게 하면 심장병, 뇌졸중, 당뇨, 우울증 등에 걸릴 위험이 줄어들고,

나이가 들어도 정신력을 예민하게 유지할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11. 약간의 술을 마셔라

술을 적당량 마시는 사람은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심장병에 걸릴 가능성이 낮다. 미국심장협회는 하루에 여자는 1잔, 남자는 1-2잔 정도를 적당량으로 추천한다.

12. 신앙을 가져라

65세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12년간 실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매주 한차례이상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면역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3. 용서하라

원한을 털어버리면 불안감이 줄어들고, 혈압이 떨어지며 숨쉬기가 편안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이같은 효과는 커진다.

14. 숙면하라

잠자는 시간이 5시간 이하인 사람은 일찍 사망할 위험이 크다. 잠을 충분히 자야 각종 질병도 예방하고, 병에서도 빠르게 회복된다.

15. 스트레스를 관리하라

요가나 명상, 복식 호흡을 해보자. 하루에 몇분만 이렇게 투자하면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생활이 달라진다.

16. 목표를 가져라

취미생활을 비롯해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활동을 하면 오래 살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911.html
kolaswqetsrq 11.02 11:44
종아리로 알아보는 건강 상태

종아리로 알아보는 건강 상태

종아리를 만졌을 때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현재 스트레스가 아주 많이 쌓여 있거나 몸 어딘가에 분명히 이상이 있는 것이다.

1. 손바닥보다 차갑다.

2. 열이 나듯 뜨겁다.

3. 탄력이 없이 흐물흐물하다.

4. 딱딱하게 굳어 있다.

5. 빵빵 하게 부어 있다.

6. 속에 멍울이 있다.

7. 누르면 아픈 데가 있다.

8. 손으로 눌렀다 떼면 자국이 오래 간다.

그렇다면 반대로 건강한 종아리,즉 앞으로 건강하게 장수할 사람의 종아리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1.차갑거나 열이 없이 적당히 따뜻하다.

2.고무공처럼 탄력 있다,

3.갓 쪄낸 찰떡처럼 부드럽다.

4.피부가 팽팽하다, 속에 멍울이 없다,

5.손으로 눌렀을 때 아픈 데가 없다.

6.손으로 눌렀다 떼면 금방 원상태로 돌아온다.

7.통증이나 피로감이 없다.

종아리는 ‘제2의 심장’이라고 불릴 만큼 매우 중요한 근육기관이다. 우리 몸의 혈액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약 70%가 하체에 모여 있다. 혈액이 아래에 계속해서 쌓이기만 한다면 우리 인간은 당연히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종아리는 혈액이 아래에 쌓이지 않도록 혈액을 심장으로 다시 밀어 올리는 작용을 한다.

이 종아리의 기능이 약해지면 혈류가 막혀 혈전이 생기기 쉽고, 혈관이 노화되면 뇌졸중이나 심장병 같은 무서운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영양도 호르몬도 원활하게 흐르지 않고, 혈액도 몸 구석구석까지 닿지 않아 몸이 차가워진다. 몸이 차가워지면 위장과 심장, 신장이 잘 작동하지 않으므로 면역력도 떨어진다. 면역력이 저하되면 우리 몸 상태는 곳곳이 손상된다.

그래서 감기에 잘 걸리며 지방과 노폐물이 쌓여 몸이 쉽게 붓거나 살이 잘 찌며 피부가 탁해지고 머리카락이 푸석 거리기도 한다. 종아리마사지는 만병을 막아주는 장수 마사지다. 혈류를 원활하게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간단하다. 종아리를 매일 5분씩 정성껏 마사지해주기만 해도 몸이 따뜻해지면서 자율신경이 원활하게 조절되고 면역력도 한층 높아진다. 암 종양 수치와 혈압수치가 내려가고, 살이 빠졌으며, 피부에 윤기가 생기고, 잠투정이 심하던 아기가 마사지 2분만에 쌔근쌔근 잠든 사례도 있다. 종아리 근육 하나가 이렇게 우리 몸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426.html
kolaswqetsrq 11.02 11:45
수분부족을 알리는 신호

수분부족을 알리는 신호

머리가 아플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한 가지, 물은 충분히 드시고 계신가요?

인체 구성의 2/3에 가까운 비율이 수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수분 섭취는 머리뿐 아니라 신체 기능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몸에 물이 부족하면 나타나는 9가지 증상을 알려 드릴게요.

1. 건조한 피부

체내 수분이 부족하면 가장 먼저 피부가 건조해집니다. 게다가 몸 속의 불순물과 독성이 원활하게 배출되지 못해 피부 트러블까지 나타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2. 눈물

수분이 부족해 안구가 건조해지면, 우리 몸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더 많은 눈물을 만들어냅니다. 눈이 건조하면 더 빨리 피로해지고, 붓기도 심해질 수 있습니다.

3. 입이 마르는 증상

침이 나오지 않아 입이 마르면 불편하기도 하지만, 세균이 번성하고 입냄새가 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4. 허기

사람들은 종종 갈증을 허기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물이 부족할 때 뭔가를 먹게 되고, 장기적으로 체중이 늘고 소화가 어려워집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손 닿는 곳에 마실 것을 상비하세요.

5. 두통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으면, 뇌에 혈액과 산소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두통을 겪게 됩니다. 머리가 아플 때는 진통제를 먹기 전에, 물 한 컵을 마셔 보세요.

6. 집중력 저하

수분 부족으로 뇌에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사고력과 집중력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학교 교실에 "물을 많이 마시자"는 표어가 붙어 있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죠.

7. 피로

수분이 부족하면 활력이 떨어지고 쉽게 피곤해집니다. 혈액이 원활하게 순환하지 못해 심장이 더 많은 일을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피로 회복을 위해 꼭 커피를 마실 필요는 없습니다. 물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으니까요.

8. 관절통

수분 섭취는 연골에도 영향을 줍니다. 물이 부족하면 연골이 뻣뻣해지면서 관절 통증이 발생하죠.

9. 소화 불량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으면 음식물을 소화하는 데 문제가 생깁니다. 음식물이 분해된 용액이 더 끈끈해져서 이동이 어렵기 때문이죠. 특히 변비가 있는 사람이라면 수분 섭취량을 늘려야 합니다. 위에 언급한 증상 말고도, 내가 물을 충분히 마시고 있는지 판별할 수 있는 간단한 검사가 있습니다. 손등의 피부를 몇 초간 잡았다 놓았을 때, 즉각 회복되지 않고 잠깐 그대로 유지되면 수분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452.html
kolaswqetsrq 11.02 11:46
■ 고려 최초의 혼혈왕, 충선왕 3편

■ 고려 최초의 혼혈왕, 충선왕 3편

1305년(충렬왕31년) 원나라의 성종(成宗)이 죽자 원나라에서는 황위쟁탈전이 일어났다. 충선왕은 승자가 된 무종(武宗)을 도왔으므로 그 세력에 힘입어 자신을 모함한 세력을 제거할 수 있었다. 1308년 고려 충렬왕이 죽자, 귀국하여 다시 왕위에 올랐다. 복위한 왕은 기강의 확립, 조세의 공평, 인재등용의 개방, 공신 자제의 중용, 농장업의 장려, 동성결혼의 금지, 귀족의 횡포 엄단 등 즉위교서 못지않은 혁신적인 복위교서를 발표하여 다시 한 번 혁신정치를 천명하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원나라 생활에 젖어있던 그는 곧 정치에 싫증을 느꼈다. 제안대군 숙(淑)에게 정치를 대행시키고 원나라로 건너가 한 번도 귀국하지 않고, 전지(傳旨:임금의 명을 전달)로써 국정을 처리하였다. 더 이상 혁신정치는 실행되지 못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각염법(榷鹽法)을 제정하여 그때까지 사원(寺院)과 권문세가(權門勢家)에서 소금을 독점하여 폭리를 취하는 것을 막고 소금의 전매를 단행하여, 한 해에 포(布) 4만 필의 국고수익을 늘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러번 시도했던 관제개혁은 결국 원나라의 간섭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한편, 원나라에 머무는 충선왕 때문에 본국에서 해마다 포10만 필, 쌀4,000곡(斛) 이외에도 많은 물자를 운반함으로써 극심한 폐해가 있었다. 고려의 신하들이 귀국을 빈번히 간청하고 원나라에서도 귀국을 명하였으나,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1313년 둘째 아들 강릉대군 왕도(王燾)에게 전위(傳位)하였다. 같은 해 6월 잠시 귀국하여 아들 충숙왕을 즉위시키고 이듬해 다시 원나라로 가서 연경(燕京:북경)에 계속 머물며 끝내 귀국을 피하였다. 이는 본국에 대한 애착이 없고 원 왕실에서 우대해 주는 등의 이유도 있겠으나, 본성이 담박하고, 불(佛)을 좋아하고 글과 그림을 즐기는 등 정치와 권력에는 애착이 적었던 것이다.

그 뒤 연경(燕京)에 있는 자신의 저택 안에 만권당(萬卷堂)을 세워 많은 서적을 수집하고, 조맹부(趙孟頫) 등 원나라 학자를 불러 고전을 연구하게 하였다. 또한, 고려에서 이제현(李齊賢)등의 학자를 불러 원의 학자들과 교유(交遊)하게 함으로써 문화교류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서도의 대가 조맹부의 글씨와 서법은 이제현으로 인해 고려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1320년(충숙왕7년) 원나라의 인종(仁宗)이 죽자 고려 출신 환관 임빠이엔토쿠스任伯顔禿古思의 모략으로 유배되었다가 1323년 태정제(泰定帝)의 즉위로 3년 만에 풀려났고, 원나라에 다시 돌아간 지 2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능은 덕릉(德陵)이고 개성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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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47
■ 고려 최초의 혼혈왕, 충선왕 1편

■ 고려 최초의 혼혈왕, 충선왕 1편

충선왕은 원 세조 쿠빌라이의 외손(外孫)으로 충렬왕의 셋째 아들이다. 어릴 때 이름은 왕원이고 몽고 이름은 익지례보화(益智禮普化, 젊은 황소라는 뜻)이다. 원래 셋째 아들은 왕위와는 거리가 멀지만, 충선왕의 어머니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가 쿠빌라이의 막내딸이었기에 세자가 될 수 있었다. 제국대장공주는 혈통 상 ‘황금씨족’이라고 불린 칭기즈칸의 직계 후손이기 때문에 파워가 있었다.

왕원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고려사》에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기고 있다. 총명하고 마음씀이 남달랐던 세자는 백성들의 삶이 곤궁함에도 날마다 사냥을 즐기는 부왕(父王)을 울며 말리기도 하였고, 땔나무를 지고 궁으로 들어온 자의 의복이 남루함을 보고 마음 아파하기도 하였다. 왕권을 대행할 때에는 세력가들에게 땅을 빼앗겨 억울함을 호소하는 백성들의 토지를 되돌려주기도 하였다. 원의 세조 쿠빌라이도 외손자의 영특함을에 기뻐하며 늘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1277년(충렬왕3년) 3살 때 세자로 책봉되고, 다음 해 원나라에 가서 몽고식 이름을 받았다. 18살 때 왕원은 왕영·홍문계(洪文系)·조인규(趙仁規) 등의 딸을 비(妃)로 맞아들였다. 특히 왕영의 딸 정비(正妃) 왕씨는 1287년(충렬왕13년)에 공녀로 선발되었는데, 사정을 들은 세자의 요청으로 공녀 차출을 면하게 되었고 자신의 비(妃)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4년 후인 22살 때(충렬왕22년)에 연경(북경)의 황궁에서 원나라 쿠빌라이의 증손녀이자, 진왕(晉王) 감마라(甘麻剌)의 딸인 계국대장공주(國大長公主, 몽골명 寶塔實憐보탑실련)와 혼인했다.

1297년(충렬왕23년) 제국대장공주가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나이 39세였다. 부고를 받은 세자 왕원은 그해 6월 원나라로부터 돌아와 모후의 영전에 분향했다. 제국대장공주가 죽자 충렬왕은 원나라에서 입지가 약해졌고, 대신 새로 원나라 공주를 부인으로 맞아들인 세자 왕원이 고려의 새로운 권력자로 부상했다.

세자 왕원의 편에 붙은 대신들은 하나같이 충렬왕이 총애하던 궁인 무비(無比:백야단)를 모함했다. 세자 왕원은 궁인 무비와 그 측근을 체포하여 ‘무당을 시켜 제국대장공주를 저주하여 죽게 한 사실’을 자백하게 한 후 처형했다. 또한 충렬왕의 심복인 내시 도성기, 최세연, 전숙, 방종저, 중랑장 김근을 죽인 뒤에 부왕의 측근 40여 명을 숙청하고 조정을 장악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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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47
■ 고려왕, 원의 사위가 되다 2편

■ 고려왕, 원의 사위가 되다 2편

원의 부마국으로 전락한 고려는 관제(官制)도 격하시키고, 왕실의 용어도 원에서 쓰는 용어보다 한 단계 격하된 용어로 바꾸었다. 선지(宣旨)는 왕지(王旨)로, 짐(朕)은 고(孤)로, 사(赦)는 유(宥)로, 폐하(陛下)는 전하(殿下)로, 태자(太子)는 세자(世子)로 하였다.

왕위에 오르기 위해 원에서 돌아온 충렬왕은 변발에 호복(胡服)차림을 하고 있었다. 충렬왕이 귀국하자 그를 본 많은 백성이 환호성을 질렀지만, 그가 하고 온 모습에 충격을 받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인 충렬왕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원에서 즐겼던 매사냥을 잊지 못해 즉위 초부터 응방(鷹坊)을 설치하여 사냥을 즐기는 등 향락에 탐닉하는 생활을 하였다.

비록 몽고의 침입이 끝난 뒤였지만, 원나라에 보낼 각종 공물(貢物) 때문에 전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을 생각하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었다. 문제의 응방은 대표적 공물인 매 사육과 사냥을 전담하는 기구로서 개경뿐 아니라 각 도의 역(驛)과 외군(外軍)에도 설치되었다. 응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사냥을 좋아했던 충렬왕은 수시로 사냥을 나갔고, 마음이 내키면 멀리 충청도까지도 사냥 여행을 떠났다. 당시 사냥을 할 때에는 매 외에도 개를 동원하고, 화렵(火獵)이라 해서 밭이나 산에 불을 지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엄청난 사치에 놀란 제국공주가 왕의 잦은 사냥을 나무랄 정도였다. 충렬왕은 정력가이기도 했다. 사냥 뿐만 아니라 여색 또한 밝혀서 사냥을 핑계로 왕후 몰래 궁인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무비라는 궁인을 가장 총애하여 왕이 장단 도라산으로 사냥 나갈 때에는 반드시 무비를 데리고 가서 즐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비를 ‘도라산’이고도 불렀다.

어처구니없는 일로 백성의 원성을 자아내기는 제국대장공주도 마찬가지였다. 왕후는 하찮은 익명서의 무고를 믿고 김방경 등 중신들을 함부로 투옥하는가 하면, 충렬왕의 첫 부인인 나이 많은 정화궁주를 자기 앞에 무릎 꿇게 만드는 오만한 짓도 저질렀다. 게다가 장사 수완도 좋아 일부 시종들의 말을 듣고 전국의 인삼이나 잣 등을 매점매석하고는 원나라 상인들에게 몰래 팔아 거액의 돈을 챙기기도 했다. 하지만 제국공주는 신혼 초를 빼고는 충렬왕의 바람기 때문에 무던히도 마음고생을 한 왕비였다.

그녀가 39세로 요절한 것도 아마 이 때문인 듯하다. 제국공주가 죽자 원나라에서는 혹시 궁중에 있는 임금의 총비들이 저주하여 죽은 것이 아닌가 하여 철저하게 조사했다. 애매한 여자가 한둘 희생당했고, 그녀의 아들 충선왕은 귀국하자마자 애첩 무비를 비롯한 측근들을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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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48
■ 고려왕, 원의 사위가 되다 1편

■ 고려왕, 원의 사위가 되다 1편

충렬왕(忠烈王:1236~1308, 재위 1274~1308)은 원나라 황실과 처음으로 혼인을 맺은 고려의 왕으로 원 세조(쿠빌라이칸)의 사위이다. 충렬왕은 원종의 맏아들이자 정순왕후 김씨 소생으로 1236년에 태어났다. 1267년 태자로 책봉된 이후 원나라에 입조하여 연경(북경)에 머무르다가 원 세조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하였다. 충렬왕과 원 공주와의 혼인은 1271년(원종 12) 부왕인 원종이 추밀원사 김연을 원 세조에게 보내서 정식으로 청혼하였고 그 해 6월 충렬왕은 세조를 알현하고 혼인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6개월 후 충렬왕은 천여 근의 금을 마련하여 원나라로 가서 1년 반쯤 지난 뒤인 1274년(원종 15) 5월에 원 세조의 딸 홀도로게리미실 공주(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하였다.

충렬왕이 살았던 시기는 몽고가 원(元)이라고 국호를 바꾸고 대제국을 건설한 시기였다. 세조 쿠빌라이는 몽고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의 손자이며, 고려 충렬왕의 장인이었다. 쿠빌라이는 칭기즈칸이 물려준 대제국을 잘 다스리고 더 넓힌 인물이다. 원나라에 굴복한 고려는 그들의 명령을 따르는 일개 제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더 나아가 원 황실과 고려 왕실간의 통혼으로 고려는 원의 사위의 나라가 된 것이다. 원래 고려왕들은 후비(后妃)를 왕실이나 귀족가문에서 맞아들였으나, 몽고와의 오랜 항쟁이 끝나고 나서 고려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을 해야 했다. 원이 고려왕을 부마로 삼고자 한 이유는 고려를 감시하기 위한 정략적 이유가 컸다. 이후 고려왕의 묘호(시호)는 조(祖)나 종(宗)이 아닌 원 황실에 충성을 한다는 의미로 충(忠)이라는 돌림자를 사용해야 했다. 원제국의 부마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처음으로 치러진 대륙국가와의 왕실 혼인으로, 고려는 역사의 한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양국의 우호관계를 배경으로 역대 권신들에 억눌려 오던 왕실의 지위는 회복, 강화될 수 있었으나 자주성을 잃은 종속국으로 전락하여 이후 원나라의 많은 간섭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마흔이 다 된 나이로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한 충렬왕은 이미 태자로 책봉된 직후 왕녀인 정화궁주와 혼인하여 장성한 자녀까지 둔 유부남이었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세조 쿠빌라이의 딸인 제국대장공주는 충렬왕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제국대장공주가 고려에 와서 몽고양식의 생활을 하고 사사로이 부리는 사람도 원나라에서 데려옴으로써 고려 왕실에는 몽고의 풍속·언어 등이 퍼지기도 하였다.혼례를 치르고 두 달 뒤 부친인 원종이 승하하자, 충렬왕은 왕위 승계를 위해 고려로 돌아왔다. 어린 나이에 충렬왕에게 시집 온 제국대장공주는 남편과의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는 않았다. 충렬왕에게는 이미 부인이 있었고 그 부인과 좋은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비록 금실이 좋지는 않았지만, 공주는 이듬해에 아들을 낳았고, 그가 충렬왕을 이은 충선왕이다. 고려 왕실 최초의 혼혈 왕이기도 한 충선왕 이후로 고려의 왕들은 원나라에서 일명 뚤루게(禿魯花)인 질자(質子:인질로 보낸 아들)로 성장하게 되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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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48
■ 일본 원정遠征에 동원된 고려

■ 일본 원정(遠征)에 동원된 고려

원의 부마국으로 전락한 고려는 수많은 공녀·공물 뿐 아니라 군대 징발로도 시련을 겪었다.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원정에 동원된 것이다. 원 세조 쿠빌라이는 동북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복속되지 않은 일본마저 정벌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 측에서는 경유지인 고려에 끼칠 피해와 일본의 보복 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려는 확답을 미룬 채 시간을 끌었다. 그러자 쿠빌라이의 열화 같은 책망이 뒤따랐다. 원은 무력 침략을 하려고 고려에 지원군을 요청했다. 그리고 곧 흑산도를 전진기지로 삼아 일본 정벌을 준비했다.

1274년 5월 14일, 몽고는 일본 정벌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고려의 원종이 갑자기 사망하여 출전이 석 달이나 연기되었고, 그 뒤를 이어 충렬왕이 즉위하였다. 충렬왕이 즉위하자 여·몽연합군은 쓰시마섬을 향했다. 쓰시마를 점령한 여몽연합군은 기세를 몰아 이키(壹岐) 섬을 거쳐 하카다(博多:후쿠오카)를 공격했다. 막강한 무기를 바탕으로 일본을 제압한 여·몽연합군의 승리가 눈앞에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닥친 태풍으로 좌군사 김신을 비롯하여 연합군 1만 4천여 명이 물귀신이 되어 버렸다. 일본은 이것을 신풍(神風:카미카재)이라고 불렀다.

1차 원정은 완전 실패였다. 그로부터 6년이 흘러 원은 고려의 합포(옛 마산시)에 정동행성(政東行省)을 설치하고, 충렬왕을 좌승상행중서성사로 정했다. 고려에서도 김방경(金方慶)을 총대장으로 삼아 1만 명을 거느리고 몽고군에 합세했다. 5월에 홍다구·김방경 등이 군함을 타고 합포를 떠나 일본의 규슈로 건너가 연합군과 일본군간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여름이 되자 태풍은 또 다시 여·몽연합군을 덮쳤다. 원나라 15만 명의 병졸과 고려군 1만 명이 거의 다 태풍에 휩쓸려 수장되고, 살아남은 자는 겨우 1만9천 명이었다.

일본 원정의 대참패로 세계 통일을 이루고자 한 세조 쿠빌라이의 야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전쟁 준비 때문에 고려 백성은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몽고가 고려를 침략하기 시작한 1231년부터 고려 백성은 무려 50년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내는 비운의 세월을 겪었다.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원정에 실패한 쿠빌라이는 또 다시 일본 정벌을 계획했으나 국내 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반대 여론에 부딪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원나라는 이후에도 두 번 더 정동행성을 설치하고 정벌준비를 강요하여 그 피해가 극심하였다. 1293년 충렬왕은 공주와 함께 동정(東征)의 불가함을 직접 호소하고자 원나라로 갔는데, 이듬해 원세조가 죽음으로써 동정(東征)은 끝이 났다. 일본 정벌을 위해 일시적으로 설치했던 정동행성은 그대로 두어 고려의 내정을 간섭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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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49
■ 궁인宮人 무비無比

■ 궁인(宮人) 무비(無比)

천인 출신의 후궁 무비(無比:생몰년 미상)는 고려 의종의 후궁이다. 원래는 남경(현재 서울)의 관비(官婢)였는데, 의종의 눈에 들어 총애를 받고 후궁이 되었다. 비교(比較) 대상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하여 이름도 ‘무비(無比)’라고 하니 아마도 뛰어난 미색(美色)으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의종에게는 이미 장경왕후와 장선왕후가 있었다. 장경왕후는 1남 4녀를 낳았고, 장선왕후는 자식이 없었는데, 무비는 무려 3남 9녀를 낳았다. 두 왕후가 언제 죽었는지, 혹은 의종이 폐위될 때까지 살아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비는 의종의 총애를 받으며 왕후 못지않은 조정 내 세력을 가지고 의종이 폐위될 때까지 그 곁을 지키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궁내(宮內)에서 무비와 가장 가까운 인물은 환관 백선연이었다. 남경의 관노(官奴) 출신으로 의종이 남경에 갔을 때 인물됨을 보고 데려와 ‘양자(養子)’라 부르며 총애했다. 무비와 같은 남경 출신에 신분도 같았으니 드넓은 궁에서 둘 사이의 연대감은 아마도 남달랐을 것이다. 이 때문에 둘이 간통을 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관리들은 이들이 추잡한 행동을 하고 미신으로 왕을 유혹해 재물을 낭비한다며 백선연과 무비를 죽이라고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환관에 대한 왕의 총애가 매우 컸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다 부러워하였고, 스스로 거세하는 자가 생겨나기도 했다.

의종실록을 보면, ‘의종 때 무신의 난이 일어난 원인은 불교와 귀신 숭배, 아첨하는 신하와 간사한 환관 및 술사, 그리고 무비이다.’ 라고 적고 있다. 즉 무비가 안에서 정사에 개입하고 감언이설로 왕의 비위를 맞추며 눈과 귀를 막아 충직한 말을 들을 수 없어서 결국 변란이 일어났다고 쓰고 있다. 쫓겨난 왕에 대해 호의적인 기록일 수는 없지만, 그 당시 무비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2명의 왕자와 왕녀를 낳은 무비도 신분적인 한계는 뛰어넘을 수 없었다. 무비의 사위가 분에 넘치는 관직에 임명되자, 사대부들이 모두 분개하고 해당 관리들은 임명장의 서명을 거부하였다. 이렇게 반발이 거셌던 것은 고려가 신분제 사회였고, 아무리 왕의 딸이라 해도 어미가 천하니 딸도 천하고, 그 남편 역시 관직에 제한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무비의 아들들도 왕자로 대우받지 못했다. 그들은 ‘소군(小君)’이라 하여 강제로 중이 되어야 했다. 무비 역시 ‘궁주(宮主)’나 ‘원주(院主)’, ‘비(妃)’ 등 다른 후궁들이 갖는 내명부 관직을 받지 못했다. 고려시대 천인 출신 후궁의 위상과 특징을 잘 보여주는 존재라 할 수 있다.

‘무신의 난’이 일어나자 무비는 개경 근처에 있는 청교역(靑郊驛)으로 도망가서 숨었다. 이를 정중부가 잡아서 죽이려 했는데, 공예태후(의종의 母)가 간청해 죽음을 면하고 왕을 따라 거제도로 갔다. 이후 3년 뒤 의종은 시해되었고, 무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도 없어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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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50
■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러브스토리 1편

■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러브스토리 1편

원나라 지배기의 고려왕들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원의 공주와 결혼을 해야 했다. 고려는 원의 부마국으로 전락하고, 해마다 많은 공물(貢物)을 바쳐야했다. 그러니 고려로 시집 온 원의 공주는 친정인 원나라의 세력을 믿고 남편인 고려왕을 업신여기기 일쑤였고, 원의 입장에서 사사건건 정치를 간섭하기도 하고 훼방 놓기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대체로 왕과 왕비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 하지만 공민왕과 그의 왕비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는 달랐다. 비록 원에 의해 정략적으로 맺어진 부부였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지극했다.

고려 31대 왕인 공민왕은 12세부터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었다. 그리고 원나라 위왕의 딸 보타사리와 혼인을 맺게 되는데, 바로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이다. 여기서 ‘노국(魯國)’은 공자의 고향이기도 한 바로 그 노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옛 중국에서는 시집갈 때 받은 땅의 이름을 따서 공주의 칭호를 정했다. 노국공주와의 정략결혼으로 원나라의 지지를 받은 공민왕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공민왕은 왕위에 오른 후에 적극적인 반원 정책을 펴는 등 원나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던 왕이다. 노국공주는 원나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공민왕의 반원정책을 적극 지원해 주었고, 남편에게 무척이나 헌신적이었다. 공민왕에게 불만을 품은 권문세족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도 보호해 주었고, 말을 못타는 공민왕에게 승마를 가르쳐 준 것도 그녀였다. 특히 김용이라는 신하가 왕을 죽이기 위해 벌인 ‘흥왕사의 변’ 때는 공민왕이 숨은 방 앞을 가로막고 반란군들을 물러가게 하기도 했다. 노국공주가 정치 전면에 나서는 일은 잘 없었지만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공민왕의 든든한 정치적 방패가 되어주었다. 공민왕에게 있어 노국공주는 단순한 아내가 아니라 가장 신뢰할 만한 정치적 동반자였다.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무척 금슬 좋은 부부였지만 안타깝게도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한 나라의 국왕인 만큼 이 문제는 단순히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하들과 공민왕의 어머니 공원왕후는 후궁을 들여 아이를 낳을 것을 제안했고, 노국공주는 하는 수 없이 허락을 했다. 결혼 10년 만에 혜비 이씨를 후궁으로 들였지만, 공민왕은 후궁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노국공주는 드디어 임신을 하게 되었다. 결혼한 지 15년 만의 임신이었으니 얼마나 기뻐했을지 상상이 간다. 공민왕은 부인의 순산을 하늘에 빌기 위해 사형수를 제외한 모든 죄수들을 풀어줬으며, 공주가 아이를 낳는 동안 위독해 졌을 때는 사형수들까지 모두 풀어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국공주는 아이를 낳다가 난산(難産)으로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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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51
■ 몽고풍과 고려양 2편

■ 몽고풍과 고려양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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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도 몽고의 흔적은 남아있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는 설렁탕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몽고 사람들이 양고기를 삶아서 국물을 만들어 먹던 것에서 유래했다. 몽고의 주식인 만두도 고려 시대에 널리 전해졌다. 밀가루를 반죽한 것에 오이, 박, 버섯 등의 속을 넣거나 팥으로 속을 넣어 쪄먹었던 만두를 상화라고 불렀는데, 몽고말 ‘상화’를 한자로 적어 고려인들은 만두를 ‘쌍화’라고 불렀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먹는 만두이다. 당시 고려는 불교국가라 고기를 잘 먹지 않았는데, 몽고의 영향을 받아 고기를 넣은 만두를 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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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친근한 소주와 호떡도 몽고의 영향이라고 하니 놀랍다. 소주는 원래 페르시아에서 발달한 술인데, 이것이 아라비아를 통해 원나라로 들어왔고, 원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 고려에도 소주가 들어와 지금까지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비교적 독한 술인 소주는 북쪽의 추운 지방에서 즐겨 마셨고, 몽고에 의해 고려에도 소주 만드는 법이 전해졌다.

또, 몽고의 머리 모양인 변발(머리를 뒷부분만 남겨 놓고 다 깎은 뒤 남은 뒷머리를 길게 땋아 늘어뜨린 황비홍 스타일)과 옷이 유행했다. 이것은 원나라와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 고려 왕실이 일부러 관리와 백성들에게 권장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공민왕 때부터 반원 정책을 펼치면서 몽고풍이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고려 조정에서는 ‘변발’과 몽고 옷을 입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 퍼진 풍속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지금까지 우리의 문화와 풍습에 녹아있다.

원나라의 영향은 새로운 문물이 고려에 들어오는 기회가 되어, 천문·역법·의학·수학 등 새로운 학문이 전래되었다. 역법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방법으로 백성들에게 절기에 따른 농사의 시기를 정확하게 알려주어 생산량 증대를 가져오기도 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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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52
■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4편

■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4편

기황후는 1353년 열네 살이 된 아들 아유시리다라를 황태자로 책봉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그는 고려 출신 환관 박불화(朴不花)를 군사통솔의 최고책임자인 추밀원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로 만들어 군사권까지 장악했다.

당시 중국의 상황은 몽고의 통치에 저항하는 주원장(朱元璋:명 태조) 같은 한족들의 봉기가 일어나면서 어느덧 원 제국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원제국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기씨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원 황실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으면 대제국 원나라는 중원을 점령했던 많은 북방민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향으로 쫓겨갈 것이 뻔했다. 이런 위기의 시기에 순제라는 무능한 최고경영자를 둔 원나라는 급속히 약화되었다. 1365년 제1황후가 세상을 뜨면서 25년 간 제2황후의 자리에 있던 기씨가 드디어 제1황후가 되자, 그녀는 과감한 체질개선을 다시 시도했으나 이미 원 제국은 회생불능이었다.

원사(元史)는 순제가 ‘정사에 태만하였다’고 적고 있는데 기황후는 이런 무능한 황제를 젊고 유능한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황후는 순제를 양위(讓位)시키고 황태자를 즉위시켜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기황후의 지시를 받은 자정원사 박불화가 양위를 추진하자 순제는 거세게 반발했다. 순제는 무능하고 태만할지언정 황제의 자리를 내놓을 생각은 없었다. 그는 대신 황태자에게 중서령추밀사(中書令樞密使)의 직책과 함께 군사권을 주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러나 약해진 원나라 세력을 밀어내면서 세력을 넓혀가던 주원장은 불과 1년 후 연경북경을 빼앗고, 원은 북쪽 몽골초원으로 쫓겨났다. 순제는 기황후와 황태자를 데리고 북쪽 응창부로 피난했지만, 응창부도 위험해지자 원나라의 초기 수도인 카라코룸으로 천도했고 이 과정에서 순제가 1369년 4월 23일 이질로 사망했다.

그리고 기황후의 아들 아유시리다라가 황제에 올랐지만, 그녀의 인생 역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원은 새로 일어난 명에 밀려 쇠퇴하였고, 그 이후 기황후가 어찌 되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아마도 기황후는 카라코룸에서 아들이 황제의 자리에 즉위하는 것을 보고 황태후가 되어 살다가 죽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동국여지지에 의하면 경기도 연천군에 그녀의 묘가 있었다고도 하고, 실제로 인근에서 고려시대 기와가 출토되었으며 석물 2기도 발견되었다. 이로 미루어보면 기황후가 카라코룸으로 가지 않고 고려로 돌아와 연천에서 여생을 마친 게 아닌가하는 추정도 가능하지만, 그 역시 전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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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53
■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2편

■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2편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연경(燕京:지금의 북경)에 정착한 고려 환관들은 원나라에 와 있는 고려인들과 강력한 유대관계를 갖게 되었다. 연경으로 통하는 길목인 완평현(宛平縣)에는 요즘으로 치면 코리아타운과 같은 고려인의 고려장(高麗莊)이 있었다. 고려장을 통해 고려인들은 원과 고려 사이의 국제무역에 종사했는데, 이 고려장은 당연히 궁중의 고려 출신 환관들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고려 출신 환관들은 자신들이 황제에게 받는 신임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황제를 사로잡을 수 있는 고려 여인을 물색하게 되는데, 이 때 기씨 처녀가 연경에서 고려 출신 환관 고용보(高龍普)의 눈에 뜨인 것이다.

원 황실의 고려 출신 환관들 중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던 고용보는 기씨 처녀 같은 인물이 꼭 필요했다. 기씨는 복숭아같이 예쁜 볼, 버드나무 같은 호리호리한 몸매 등 미모도 매우 뛰어났지만, 양반가 출신으로 교양이 있었으며 어린 소녀답지 않은 담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궁녀로서 황제의 총애를 받는 지름길은 황제의 주변에 있는 것이었다. 고용보는 기씨를 순제의 다과(茶菓)를 시봉(侍奉)하는 궁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원사(元史) 후비열전에 ‘순제를 모시면서 비(妃:기씨)의 천성이 총명해서 갈수록 총애를 받았다’라고 기록된 것처럼 그녀는 곧 순제를 사로잡았다. 궁녀로 시작된 황제와의 만남은 기씨 처녀의 인생을 다른 길로 이끌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은 인생역전을 의미했다. 하지만 기씨 처녀의 이런 기대는 황후 타나시리答納失里의 질투 때문에 시련을 겪게 되었다.

타나시리의 친정은 황실의 일원으로서 황제 못지않은 권력을 갖고 있는 명문거족이었다. 질투에 눈이 먼 타나시리에게 채찍으로 맞아 온몸에 검고 푸른 멍이 들었으며, 인두로 지짐까지 당하였다. 그러나 궁녀의 몸으로 황후와 겨룬다는 것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기씨는 좌절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 원이라는 대제국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어떤 난관도 이겨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기씨는 순제를 구워삶아 황후인 타나시리와 맞섰다. 타나시리의 친정아버지 앤티무르는 순제의 아버지 명종을 재위 8개월 만인 1329년 8월에 암살했으며, 이듬해 순제를 고려 대청도로 유배를 보내기도 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순제에게 황후 타나시리는 부친을 죽인 원수의 딸이었던 것이다. 기씨는 순제가 타나시리의 친정에 불만을 갖고 있어, 황후에게 전혀 애정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기씨에게 눈이 먼 순제는 궁궐에 들어온 지 2년밖에 안 된 그녀를 제2황후로 책봉하려 했다. 태조 칭기즈칸成吉思汗 이래 옹기라트翁吉刺 가문에서 황후를 맞이하는 몽골족의 전통을 무시하고 고려의 공녀 출신을 황후로 책봉하려 한 것이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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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54
■ 천생연분 정종과 정안왕후 김씨

■ 천생연분 정종과 정안왕후 김씨

조선 제2대 왕 정종의 비로, 이성계의 둘째 아들 영안군 이방과가 세자가 되면서 세자빈이 되었고, 후에 덕빈(德嬪)에 책봉되었다가 정종이 즉위하자 덕비(德妃)로 진봉(進封)되었다. 정종은 원래 왕이 될 생각도 욕심도 없었지만, 야망에 가득한 이방원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 일파와 세자 방석이 죽게 되자 얼떨결에 세자가 되었고, 곧이어 태조로부터 양위를 받아 왕이 되었다. 하지만, 이방원의 야심을 잘 알고 있던 터라 바늘방석 같은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이 불안한 바늘방석 같은 왕위를 이방원에게 흔쾌히 넘겨주게 된 것은 정안왕후 김씨의 조언 덕분이었다.

정종과 정안왕후는 왕위나 권력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권력욕이 컸던 동생 태종과도 우애를 유지했고, 태종은 형 부부를 예우해 주었다. 1400년 11월 이방원에게 옥쇄를 넘기고 상왕(上王)이 된 정종은 개성에 있는 백룡산 기슭에 인덕궁을 짓고 20년 가까이를 격구·사냥·연희를 즐기며 유유자적 평안한 생활을 했다.

정종은 재위기간(2년)도 짧았고 제대로 역량을 펼쳐 볼 상황도 아니었으므로 이렇다 할 치세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의 부인 정순왕후는 존재감이 미미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왕비이다. 집안이 좋거나 미인도 아니고 영민한 머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지만, 정종의 아내로 손색없는 현처(賢妻)였다. 정종은 무려 아홉 명의 후궁과 17명의 아들, 8명의 딸들을 두었다. 슬하에 자식이 없던 정안왕후는 본처로서 시기와 질투심을 가질 만도 하지만, 남편을 잘 내조하고 분란 없이 집안을 잘 다스렸다. 정종은 이런 정안왕후의 진심과 사랑을 믿었고, 그녀를 존중하고 말도 잘 들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하는 말에 걸 맞는 내조였다.

정안왕후 김씨가 만약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을 부렸다면 아마도 정종은 물론 자신도 제 명대로 살지 못했을 것이다. 일찍이 세상의 무상함과 무소유의 개념을 터득하고, 욕심을 내려놓았던 정안왕후 김씨의 성품과 현명한 처신 덕분이었다. 정종은 1419년 9월 63세로 그 당시로서는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고, 정안왕후 김씨는 정종보다 7년 앞선 1412년 6월 인덕궁에서 남편과 아홉 후궁들, 그리고 25명의 양자들의 따뜻한 임종을 받으며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능은 황해북도 개풍군 영정리에 위치한 후릉(厚陵)으로, 후에 남편 정종도 이곳에 묻혀 쌍릉으로 조성되었다.

정안왕후는 부드러운 성격에 검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친척들과도 무난하게 지냈는데, 여기에 남편 정종 역시 정직하고 바른 성격의 인물로 어찌 보면 이들 부부는 천생연분(天生緣分)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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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55
■ 우리나라는 고인돌 왕국 2편

■ 우리나라는 고인돌 왕국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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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스톤헨지나 태평양 동쪽 끝 이스터 섬 모아이처럼 큰 돌로 만든 모든 것을 통틀어 거석(巨石)유물이라 한다. 고인돌 또한 큰 돌 유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유물 조사가 잘 되어 있는 유럽의 거석 유물이 5만 5천 기(基) 남짓 되는데, 그 가운데 고인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돌무덤이 많다고 하는 아일랜드에 1500기(基), 러시아 코카서스 지역에 2400기(基)가 있다. 그런데 한반도에는 4만(북한에 1만 5천)기(基)에 달하는 고인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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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군 고창읍 매산 마을에는 고인돌 무덤이 500기(基) 남짓 모여 있다. 강화군 하점면의 고인돌이나 북한에 있는 아주 큰 탁자식 고인돌이 당시 그 지역의 ‘부족장 무덤’이라면 전라남·북도에서 볼 수 있는 고인돌 무덤 군(群)은 ‘마을 공동묘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가운데 전남 지방에만 2만 기가 있다. 물론 아일랜드나 러시아 말고 다른 나라에도 고인돌은 있다. 중국 요령 지방에 316기, 일본 큐슈 지방에 600기, 인도네시아에 600기쯤 있지만 한반도에 견주면 그 수가 아주 적다. 더구나 한반도처럼 작은 면적에 수많은 고인돌이 한곳에 몰려 있는 곳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또 그 숫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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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세계 고고학자들은 우리나라를 고인돌의 나라라고 한다. 이 때문에 세계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는 2000년 12월 2일, 전남 화순, 전북 고창, 인천 강화 지역 고인돌을 세계문화유산 제977호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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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의 기원에 대해서는, 한반도에서 시작되어 세계 여러 나라로 퍼졌다는 자생설, 벼농사를 많이 짓는 동남아시아에서 바닷길을 타고 중국 동북 바닷가 지방과 우리나라로 전파되었다는 남방 기원설, 한반도 북쪽 시베리아 카라수크 돌널무덤이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 고인돌 무덤으로 쓰기 시작했다는 북방 기원설 이렇게 세 의견이 있다. 학자들은 이 가운데서 북방 기원설을 많이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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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55
■ ‘초요갱’을 아십니까?

■ ‘초요갱’을 아십니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선 최고의 기생은 황진이로. 그녀는 조선 기생의 대명사가 되어 었다. 하지만 정작 ‘조선왕조실록’에는 ‘황진이’란 이름이 없다.

그런데 실록에 무려 16번이나 이름이 나오는 기생이 있다. 그녀는 초나라 미인처럼 가는 허리를 가지고 있다하여 이름이 ‘초요갱’이다. 초요갱은 수없는 남자들을 상대했는데, 그 남자들 중 왕자가 세 명 있었다. 그 세 명 모두가 세종의 아들들이었다.

초요갱의 첫 번째 왕자는 세종대왕의 정실왕비인 소헌왕후의 일곱 번째 왕자인 평원대군 이임이었다. 평원대군 이임은 세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초요갱을 궁으로 데리고 와 첩으로 삼았다. 그리고 세종시절 유명한 음악가 박연에게 부탁하여 노래와 춤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임은 열아홉이란 짧은 인생을 살고 요절하고 말았다.

이임을 만나면서 배웠던 춤과 노래 덕분에 궐 안 행사에 드나들던 초요갱에게 두 번째 왕자가 다가오게 된다. 그는 평원대군보다 한 살 위였던 화의군 이영이었다. 화의군은 평원대군처럼 정실소생이 아닌 서자였다. 화의군과 같이 살던 초요갱이 다른 남자와 있는 것을 보고 화의군이 그 남자를 때려 죽인 일이 있었다. 그 때는 수양대군이 왕위를 이어받은 세조 초기였는데, 화의군은 귀양을 가고 초요갱은 죽을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화의군의 동복동생인 계양군 이증이 초요갱은 세종 시대에 박연이 만들어 논 악무(樂舞)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죽음을 면하게 해주었다. 바로 이 계양군이 초요갱의 세 번째 왕자가 된다. 하지만 계양군도 요절하고 만다.

이것은 초요갱의 용모와 매력이 정말 출중했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초요갱은 뛰어난 미모와 매력으로 무려 세종의 세 아들을 홀려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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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56
■ 조선시대에 여자로 산다는 것 2편

■ 조선시대에 여자로 산다는 것 2편

조선시대의 결혼이란, 위로는 조상을 받들고 아래로는 후사를 잇기 위한 거창한 명분하에 이루어진다. 결혼을 하면 여자가 남자 집에 가서 사는 것이므로 특히 여성에게 요구되는 것이 많다. 시댁의 가부장적 질서에 적응해야 함은 물론, 대를 잇는 것이 여자로서 첫 번째 사명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결혼하는 딸에게 시집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생활교육과 함께 성교육이 이루어진다.

생활교육은 주로 말과 행동 및 여러 법도에 대한 교육이다.

걸음을 걸을 때는 발가락 끝에서 뒤꿈치까지의 길이보다 보폭이 커서는 안 되고, 어른 앞에서는 뒷걸음으로 물러 나와야 한다. 제례나 상례 때 곡은 어떻게 시작하고 그치는가,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눈물이 나오는가 등을 이불을 둘러쓰고 앉아 실습시켰다.

성교육은 아들을 낳기 위한 것이다. 남편의 양기를 해치는 음식은 삼가 해야 하고, 아들을 낳을 확률이 높은 날을 계산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다고 조선시대의 여성이 남자보다 낮은 존재로서 단지 아들을 낳는 도구에 불과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아내는 남편보다 낮은 존재이기는 하나 부부간에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부부 각자의 세계가 인정되고 여성에게도 일정한 지위가 주어졌다. 양반층 여성들은 ‘부인봉작제도’라 하여 남편 벼슬에 따라 일정한 사회적 지위가 주어지고, 아들의 공에 따라 받기도 한다.

여성은 가정을 운영하는 중심이었다. 가정 일은 남편이 간섭하지 않고 가정 내에서 부인의 지위는 절대적이어서, 가정 경영과 제사준비 및 자녀교육 등은 모두 아내에 의해 이루어진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집안 최고 어른으로서 집 안 일을 주도적으로 처리했다.

여성에게도 재산권이 있었다. 조선전기에는 제사를 지낼 큰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아들과 딸이 재산을 골고루 나누어 가졌고, 결혼한 딸도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 이처럼 여성에게 재산상의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은 재혼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유교윤리가 보다 확산되고 확고해 짐에 따라, 여성들의 지위는 점점 더 낮아지게 되었다. 여성의 재산상속에 대한 권리가 낮아지고 제사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맏아들의 권리가 커진 것이다.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이전보다 훨씬 적은 양을 상속받게 되고, 남존여비 사상으로 딸들은 아들보다 더 적게 받게 되었다. 특히 시집간 딸은 ‘출가외인’ 이라는 이유로 상속에서 배제되었다. 정절(貞節)에 대한 의무가 강조되면서 남편을 따라 죽든지 해야 겨우 ‘열녀’ 라는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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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57
이방원의 아내 중전 민씨

이방원의 아내 중전 민씨

왕이 된 태종 이방원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향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공신들을 죽이거나 귀양 보내는 등 왕권강화를 위한 박차를 가하였다. 그 중 가장 잔혹했던 사건이 중전 민씨 가문의 대몰락이었다.

태종의 부인 중전 민씨는 18세에 이방원과 결혼하여 시아버지가 왕이 되는 것에 이어, 타고난 여장부 기질로 이방원이 왕이 되는데도 큰 기여를 한 바 있다. 중전 민씨는 민무구, 민무질 두 남동생을 남편의 심복으로 만들고 1,2차 왕자의 난에서는 거사를 성공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는 등 이방원의 후견인이자 참모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중전 민씨는 실패 시 멸문지화를 당할 것을 각오하고 남편의 거사(擧事)에 올인을 하였는데, 이것이 제대로 성공하여 남편은 임금이 되었고 자신은 국모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태종은 왕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여자를 찾았고, 이에 대응하는 중전 민씨의 심한 투기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는 싸늘히 식어갔다. 중전 민씨에게 이는 향후 밀어닥칠 엄청난 불행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중전 민씨의 친동생인 민무구, 민무질이 1차로 남편인 태종에 의해 죽고, 그로부터 6년 후 그 아래 동생들인 민무휼, 민무회 형제도 또 다시 남편인 태종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었다. 민씨가 중전의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종의 입장에서 볼 때, 장인인 민제는 보수파의 핵심인물로서 따르는 이가 많고 처남인 민무구와 민무질은 군사 부분의 실세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자가 외가에서 자란 까닭에 외삼촌인 민씨 형제와 매우 가까웠고, 나중에 원자가 세자를 거쳐 보위를 이을 경우 민씨 일가의 힘은 통제 불능일 것으로 생각했다. 태종은 민씨 가문의 발호와 세자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우려해 민무구, 민무질을 작심하고 죽였고, 6년 후에는 그 동생들이 세자를 충동질해 복수할 것을 우려해 또 다시 마누라 가문의 씨를 말려버린 것이다.

중전 민씨는 이방원의 아내로 왕비가 되는 영광을 누렸기는 했으나, 그 대가는 너무나도 혹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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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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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58
변화무상變化無常 - 늘 변화하여 일정하지 않음

변화무상(變化無常) - 늘 변화하여 일정하지 않음

변할 변(言/16) 될 화(匕/2) 없을 무(灬/8) 떳떳할 상(巾/8)

사람의 일생은 덧없다고 말한다. 사람의 삶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은 늘 바뀌어(變化) 일정하지 않다(無常). 의미하는 바는 깊어도 쉬운 글자로 된 이 성어는 ‘莊子(장자)’에서 처음 나왔다고 하니 의외다. 변화하는 정도가 비할 데 없이 심하다는 變化無雙(변화무쌍)과는 헷갈리지 않게 주의할 일이다. 늘 변화하니 인생백세시대가 왔다고 해도 草露人生(초로인생)이라 하루아침 사라지는 이슬과 같다.

산 자는 죽고 젊은 자는 늙는다. 그래서 人生無常(인생무상)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諸行無常(제행무상)도 있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소멸하며, 이어가기 때문에 한 모습으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의미라 한다.

장자의 雜篇(잡편) 중에서도 마지막 天下(천하)편은 중국 고대의 학술을 몇 개의 범주로 나누고 각각의 특징과 사상가들을 소개한다. 후학들이 편찬했다는 말대로 莊周(장주)도 설명하는 부분에 성어가 나온다.

‘적막하여 형체가 없으며 끊임없이 변화하여 일정한 모습이 없다(芴漠無形 變化無常/ 홀막무형 변화무상), 죽음과 삶은 천지와 나란히 함께 있고, 신명과 함께 변해 간다(死與生與 天地並與 神明往與/ 사여생여 천지병여 신명왕여).’ 芴은 황홀할, 희미할 홀. 芴漠(홀막)이 寂漠(적막)으로 나오는 곳도 있다. 그러면서 장자는 아득히 멀기만 하고 만물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돌아가 의지할 만한 곳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런 학술의 가르침을 듣고 기뻐하며 자기 뜻을 자유분방하게 펼쳤다. 변화무쌍한 이치를 허황되기는 하지만 우화 형식으로 변화무쌍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만물이 변천한다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얻었다고 해서 영원하지 않으니 기뻐할 수 없고, 잃었다고 해서 근심하는 일이 없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통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에 아등바등한다. 하지만 인간의 길흉화복은 돌고 돈다. ‘인간 만사는 새옹지마’라고 했으니 말이다. 짧은 인생을 무상하다며 덧없다고 비관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삶을 탄생시키는 변화의 단계로 보면 활기를 찾을 수 있다. 오늘의 불행을 나에게만 찾아왔다고 불평하며 주저앉으면 다음의 행복이 자리할 틈이 없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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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1:59
노생상담老生常譚 - 늙은 서생의 항상 하는 이야기, 시세에 어두운 케케묵은 이야기

노생상담(老生常譚) - 늙은 서생의 항상 하는 이야기, 시세에 어두운 케케묵은 이야기

늙을 로(老/0) 날 생(生/0) 떳떳할 상(巾/8) 말씀 담(言/12)

옳은 말이라도 여러 번 들으면 좋아할 사람이 없다. 忠言逆耳(충언역이)라고 좋게 되라며 충고해주는 말도 귀담아 듣는 사람이 드물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란 속담은 되풀이되는 말에 질색인 것을 잘 말해준다. 잘 되라고 해 주는 옳은 이야기도 이러한데 늙은 서생(老生)이 늘 하는 이야기(常譚)라면 질색이라 여기는 사람이 더 많을듯하다.

늙은이가 늘 하는 常套的(상투적)인 말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의견이라고 치부해버린다. 무조건 이렇게 밀어놓을 것은 아닌데 우선 이 말의 유래와 관계 깊은 管輅(관로, 輅는 수레 로)란 사람을 보자.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 魏(위)나라의 기이한 재주를 지닌 술사였다.

陳壽(진수)의 ‘三國志(삼국지)’에 독립된 열전이 있고 劉義慶(유의경)이 쓴 일화집 ‘世說新語(세설신어)’의 規箴(규잠)편에 소개돼 있을 정도의 비중이다. 관로는 특이한 용모에 언행도 거친 면이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별자리 살피기를 좋아했고 주역을 통달하여 신동이란 소리를 들었다.

점을 잘 치고 관상술에 능했기 때문에 曹操(조조)를 비롯한 당시의 권력자들이 운세를 물었고 모두 들어맞아 유명인이 되었다. 소문을 들은 何晏(하안)이 찾아와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며 해몽해주도록 요청했다. 하안은 조조의 양아들로 학문도 뛰어났는데 푸른 색 파리 열 마리가 코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꿈을 꾸었다며 三公(삼공)의 지위에 언제 오를 수 있는지 물었다.

관로가 설명한다. 코는 산을 의미하고 산은 움직이지 않는 높은 자리를 말하는데 그만큼 파리들이 주위에 모여들어 주의가 필요하다며 옛날 周公(주공)의 덕과 孔子(공자)의 가르침을 잘 깨우쳐야 그것을 쫓을 수 있다고 했다. 하안과 같이 왔던 무신 鄧颺(등양, 颺은 날릴 양)이 곁에서 듣고 툭 쏘았다.

‘그런 말은 이 노생이 늘 하는 이야기지요(此老生之常譚/ 차로생지상담).’ 관로가 답했다. ‘노생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것도 보이고, 늘 이야기하는 자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보이지요(夫老生者見不生 常譚者見不譚/ 부로생자견불생 상담자견부담).’

하안 일행은 관로가 비법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덕행을 쌓아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을 늘어놓자 귀담아 듣지 않고 가버렸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이들은 왕의 최측근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다 司馬懿(사마의)와의 세력다툼에 몰려 참수형을 당했다.

세상을 먼저 산 사람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또 ‘나 때는 말이야’ 한다고 젊은이들은 고개를 돌린다. 설득을 하지 않고 늘 같은 이야기에 고집을 부리는 태도로 외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린아이 말이라도 귀담아 들으라고 했는데 老馬之智(노마지지)는 받아들일 것이 많을 수 있다. 다만 경험과 지혜를 말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렸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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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00
백홍관일白虹貫日 -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다, 정성에 하늘이 감응하다, 임금의 신상에 위해가 닥치다

백홍관일(白虹貫日) -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다, 정성에 하늘이 감응하다, 임금의 신상에 위해가 닥치다

흰 백(白/0) 무지개 홍(虫/3) 꿸 관(貝/4) 날 일(日/0)

하늘에 장엄한 색색의 무지개가 펼쳐지면 모두들 환호한다. 비가 그친 뒤 태양의 반대쪽에 걸리는 반원형의 무지개는 우리나라에선 선녀가 타고 내려와 목욕하는 미끄럼대가 되고, 그리스(Greece) 신화에선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여신 이리스(Iris) 자신이 된다. 무지개를 나타내는 한자 虹(홍)은 연못의 물을 빨아올리는 벌레로 하늘에 닿으면 용이 된다고 봤다.

빛의 반사에 따라 쌍무지개도 뜨는데 희미한 것이 암무지개이고 둘을 합쳐서 虹霓(홍예, 霓는 암무지개 예)라 하기도 한다. 특이하게 흰 무지개(白虹)가 실제 보였는지 전설에 의한 것인지 종종 등장하여 해를 꿰뚫었다(貫日)는 성어가 남아있다.

이 때의 흰 무지개는 지극한 정성을 뜻해 하늘이 감응했다는 뜻과, 해가 임금을 말해 신상에 해로움이 닥친다는 전조의 의미를 지녔다. 중국 前漢(전한) 시대 문필로 명성이 높았던 鄒陽(추양)이란 사람이 쓴 말로 ‘史記(사기)’ 열전에 나온다.

추양은 齊(제)나라에서 태어나 제후국 梁(양)나라 孝王(효왕)의 문객으로 지내다 羊勝(양승)이란 사람의 참소로 옥에 갇혔다. 잘못도 없이 억울하게 죽게 되자 진실한 사람은 의심을 받지 않는다며 獄中上梁王書(옥중상양왕서)를 썼다. 여기에 戰國時代(전국시대) 때의 협객 荊軻(형가)를 등장시켜 충신과 간신, 의로움을 추구하는 선비를 군주는 알아야 한다고 읍소했다.

성어 부분을 보자. ‘옛날 형가가 연나라 태자 단의 의로움을 사모했는데(昔者荊軻慕 燕丹之義/ 석자형가모 연단지의), 흰 무지개가 해를 뚫는 현상이 있었지만 태자 단은 형가를 의심했습니다(白虹貫日 太子畏之/ 백홍관일 태자외지).’

秦始皇(진시황)의 볼모로 있다 탈출한 燕(연)나라 태자 丹(단)이 복수를 위해 형가에 부탁했을 때 하늘도 감동하여 흰 무지개(형가의 칼)가 하늘의 해(진시황)를 꿰뚫었으나 깊은 신임을 주지 못해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실제 형가는 진시황 암살 일보 앞에서 실패했다. 추양의 간곡한 글은 물론 효왕의 마음을 움직여 옥에서 풀려난 뒤 상객의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간절한 정성은 천지의 자연현상까지 바꾸어도 믿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가르침도 준다. 반면 해를 뜻하는 군주의 입장에서 칼이 꿰뚫으면 신상에 위해가 닥쳐옴을 알고 잘못을 돌아보며 바로잡도록 깨우친다.

해가 아닌 달을 흰 무지개가 관통하듯 걸리는 白虹貫月(백홍관월)은 우리 고전에서 검색되는데 왕비나 후궁에 변고가 생긴다고 인식했다 한다. 또한 병란이 일어날 조짐으로 보기도 했는데 어찌됐든 흰 무지개는 태평한 시기에는 불길한 징조이고, 어지러운 시기에는 세상이 바뀌도록 희망하는 상징으로 여긴 셈이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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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01
공의행즉치公義行則治 - 공적인 의리를 행하면 잘 다스려 진다.

공의행즉치(公義行則治) - 공적인 의리를 행하면 잘 다스려 진다.

공평할 공(八/2) 옳을 의(羊/7) 다닐 행(行/0) 곧 즉(刂/7) 다스릴 치(氵/5)

우리는 모두 정의가 산처럼 굳게 행해지고, 바다처럼 평등하게 대접받기를 원한다. 고대 철인은 인간이 바르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 민주주의는 생겨난다고 했다. 인간은 어떤 면에서 분명히 평등하지 않으나 자존심이나 상호 존경에 있어서는 평등해야 하고, 더군다나 법 앞에서는 평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義(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한다’고 성경에서도 말했다(구약 잠언). 이런 공정을 실천하는 최전선의 사람들이 공직자다. 공평하고 의로운 도의가 행해지면(公義行) 나라는 잘 다스려져(則治) 강대해진다는 이 말은 ‘韓非子(한비자)’에서 나왔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말기 법치주의를 주창했던 정치사상가 韓非(한비)는 飾邪(식사)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飾(식)은 본래 ‘수식하다, 꾸미다’의 의미지만 ‘경계한다’는 뜻으로 사용돼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데 사악한 행위를 멀리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중의 하나로 공사의 구분이 분명하면 군주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신하라도 맡은 일에 충실히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요약해 보자.

군주는 필히 공사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법과 제도를 분명히 해서 사사로운 온정을 없애야 한다. 또 명령은 꼭 실행하도록 해야 하며, 금지한 것은 반드시 그치도록 하는 것이 바로 公義(공의)라 하면서 이어진다.

‘사사로운 의리를 행하면 나라는 어지럽게 되지만, 공적인 의리를 행하면 잘 다스려진다. 그러므로 공과 사는 구분이 있어야 한다(私義行則亂 公義行則治 故公私有分/ 사의행즉란 공의행즉치 고공사유분).’ ‘오직 공평하면 지혜가 생기고, 오직 청렴하면 위엄이 생긴다(惟公則生明 惟廉則生威/ 유공즉생명 유렴즉생위)’는 菜根譚(채근담)의 가르침도 공직자가 공정하고 깨끗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위의 뜻과 통한다.

한국의 부패인식지수와 부패순위는 2000년대를 최고로 이후 계속 하락하거나 정체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니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고 불만만 쌓인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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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02
선부지설蟬不知雪 - 매미는 겨울의 눈을 모른다, 견문이 매우 좁다.

선부지설(蟬不知雪) - 매미는 겨울의 눈을 모른다, 견문이 매우 좁다.

매미 선(虫/12) 아닐 불, 부(一/3) 알 지(矢/3) 눈 설(雨/3)

여름철 도심이나 교외서나 끊이지 않고 울음소리를 내는 매미는 五德(오덕)이 있다고 칭송받는다. 머리가 선비의 갓끈이 떨어진 모습을 연상해 文(문), 이슬만 먹고 곡식은 해치지 않아 淸廉(청렴), 집이 없이 儉(검), 때를 잘 지켜 信(신)이라고 중국 西晉(서진) 때의 문학가 陸雲(육운)이 노래했다.

또 ‘매미의 성품이 자못 고결하다(爾性頗高潔/ 이성파고결)’고 본 조선의 문신 李荇(이행, 荇은 마름풀 행)은 ‘본래 삿된 마음이 없다(此物本無機/ 차물본무기)’고 예찬했다. 모두 그렇지는 않고 매미도 蛙鳴蟬噪(와명선조, 噪는 지저귈 조)라 하여 개구리의 울음소리와 같이 시끄럽다고 쓸데없는 의론과 형편없는 문장에 빗대기도 했다.

요란하다는 것은 약과이고 매미를 견문이 좁고 아는 것이 없다고 형편없이 깎아내린 성어가 겨울철 눈을 모른다는 이 성어다. 매미는 여름 한철 치열하게 살다가 죽으니 겨울철 눈을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前漢(전한) 때 소금과 철의 전매에 관한 여러 논의를 학자 桓寬(환관)이 ‘鹽鐵論(염철론)’에 정리한 글에 나온다. 여기에 ‘말은 잘하지만 변화를 모르면, 말을 잘한다고 말할 수 없다(善言而不知變 未可謂能說也/ 선언이부지변 미가위능설야)’며 한 가지 이치만 알아서는 전체의 균형을 잡을 줄 모르는 것과 같다고 매미 비유를 들었다.

부분은 이렇다. ‘자신이 보지 못했다고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으로(以所不睹不信人/ 이소불도불신인), 마치 매미가 눈이 오는 겨울을 모르는 것과 같다(若蟬之不知雪/ 약선지부지설).’ 보고 들은 것이 없고 학식이 얕으면 상식에만 얽매여 그 이상을 모른다. 매미의 눈과 같이 전혀 모르는 분야는 나설 수도 없는데 조금 알고서 잘난 체 나서는 비유의 성어는 수두룩하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 개구리가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 井底之蛙(정저지와)에서 井蛙之見(정와지견), 井中觀天(정중관천), 井中視星(정중시성), 埳井之蛙(감정지와, 埳은 구덩이 감) 등이다. 작은 못의 송사리 尺澤之鯢(척택지예, 鯢는 도롱뇽 예)나 술독 속의 초파리 甕裏醯鷄(옹리혜계, 醯는 식혜 혜), 울타리에 앉은 메추라기 藩籬之鷃(번리지안, 鷃은 메추리 안)과 같이 어렵고 독특한 비유도 있다. 모두 견식이 좁은 소인을 말한다.

오덕을 지닌 매미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겨울철 눈에 대해 떠벌릴 일은 없겠다. 금빛 매미는 허물을 벗어야 만들어진다는 金蟬脫殼(금선탈각)을 병법에서 말하는 몸을 살짝 빼내 달아난다는 뜻 말고 부족한 점을 닦아 새로 난다는 뜻으로 알면 좋겠다.

경험과 견문이 적어 앞을 내다보는 것이 모자란다면 인정하고 부단히 배우면 된다. 모두 알 수가 없으니 탓할 수도 없다. 문제는 자신이 나가는 길이 무조건 옳다고 고집하는 일이다. 옆에서 잘못된 점을 지적해도 뜻대로 밀고 가면 주위가 피곤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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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03
발본색원拔本塞源 -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다.

발본색원(拔本塞源) -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다.

뽑을 발(扌/5) 근본 본(木/1) 막힐 색(土/10) 근원 원(氵/10)

범죄를 끝까지 추적하여 소탕할 때 악의 뿌리까지 뽑는다(拔本)는 말을 자주 쓴다. 물이 넘쳐 농사를 망칠 때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그 근원을 막아야(塞源) 더 이상 새나오지 않는다. 잡초를 벨 때 뿌리까지 없애라는 斬草除根(참초제근)과 닮았다.

이와 같이 좋지 않은 일의 근본 원인이 되는 요소를 완전히 없애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의지를 보일 때 이 비유를 쓴다. 그런데 春秋時代(춘추시대) 魯(노)나라의 학자 左丘明(좌구명)이 쓴 ‘左氏傳(좌씨전)’과 ‘國語(국어)’에 이 말을 사용할 때는 약간씩 다른 의미였다.

晉(진)나라 獻公(헌공)은 이민족에 승리를 거두고 驪姬(여희, 驪는 검은말 려)라는 미녀를 데려왔다. 절색에다 수단도 간교한 여희에 혹해 왕후를 폐하려는 헌공에게 史蘇(사소)라는 산대 점쟁이가 간했다.

이런 미색은 나라를 망친 妺喜(말희)나 妲己(달기), 褒姒(포사)와 같다며 ‘나무를 벨 때 뿌리까지 베지 않으면 반드시 다시 살아나고(伐木不自其本 必復生/ 벌목부자기본 필복생), 물을 막으면서 그 근원을 막지 않으면 반드시 다시 흐르는 법이며(塞水不自其源 必復流/ 색수부자기원 필복류), 재앙을 없앨 때 그 바탕을 없애지 않으면 반드시 다시 난리가 난다(滅禍不自其基 必復亂/ 멸화부자기기 필복란)’고 말렸다. 그러나 헌공은 듣지 않아 진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국어의 晉語(진어) 1편에 실려 있다.

좌씨전 昭公(소공) 9년조에는 이렇게 나온다. ‘의복에 갓과 면류관이 있는 것은 나무와 물에 뿌리와 근원이 있는 것과 같다. 갓을 찢고 면류관을 부수며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으면(若裂冠毁冕 拔本塞原/ 약열관훼면 발본색원) 오랑캐라도 업신여길 것이다‘. 周(주)나라 景王(경왕)이 국경을 침범한 진나라를 꾸짖으며 한 말이다. 여기선 하늘의 이치를 알고 욕심을 버리라는 것으로 근본을 망치는 행위를 뜻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351.html
kolaswqetsrq 11.02 12:04
온고지신溫故知新 -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다.

온고지신(溫故知新) -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다.

따뜻할 온(氵-10) 연고 고(攵-5) 알 지(矢-3) 새 신(斤-9)

"論語(논어)"를 읽지 않은 사람도 들은풍월로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교단에서 강조하거나 학급에서 급훈으로 자주 등장했던 말이다. 옛것을 익혀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면 가히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가 원래 글이다. 爲政(위정)편에 나온다.

지나간 과거로부터 역사를 배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깨달음을 얻되, 옛것이나 지금 것이나 한 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남을 가르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과거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현재를 잘 알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닥쳐올 미래의 사태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 성어와 같은 문구는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 먼저 孔子(공자)의 손자인 子思(자사)의 저작이며 四書(사서)의 하나인 "中庸(중용)"에 있다. 여기서는 溫故(온고)를 중국 後漢(후한) 말기의 대표적 유학자 鄭玄(정현)이 주석하며 고기를 뜨거운 물속에 넣어 따뜻하게 하듯이 옛것을 가슴 속에 품고 거듭 반복해서 익히는 것이라 했다.

朱子(주자)는 끌어와서 탐구하다는 뜻으로 풀고 있다. 반면 "禮記(예기)"에는 피상적인 학문으로는 남의 스승이 되기에 부족하다며 그런 것을 記問之學(기문지학)이라 했다.

儒家(유가)가 중국의 다양한 사상 속에서도 우선적으로 존중받는 것은 공자의 후예들이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추구한 정신을 이어받아 살렸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인류가 살아오면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나간 일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면서 역사를 중시하고 전통문화를 지켜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로워지는 일에 관해서는 "진실로 날로 새로워지고, 날이면 날마다 새로워지며, 또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는 大學(대학)에서의 표현이상 강조한 것이 없다.

옛것을 낡았다고 무조건 배척할 수 있겠는가.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을 객관화하고 取捨選擇(취사선택)하여 새로운 문화 창조에 힘써야 한다. 눈부실 정도로 세계가 바뀌어 가는데 그 변화에 적응하고 응용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새 사실을 깨달아야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하여 가르침에만 해당되진 않는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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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05
배궁사영杯弓蛇影 – 술잔에 비친 활을 뱀으로 알다.

배궁사영(杯弓蛇影) – 술잔에 비친 활을 뱀으로 알다.

잔 배(木/4) 활 궁(弓/0) 긴뱀 사(虫/5) 그림자 영(彡/12)

남을 무턱대고 믿는 일도 안 될 일이지만 의심부터 앞세우는 것도 못할 일이다. ‘지나친 의심은 과오를 낳는다’거나 ‘지혜 없는 자 의심 끊일 날이 없다’고 불경에서 가르쳤지만 중생들은 따르지 못한다.

‘만일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좋을 것인가?’ 하고 침식을 잊으며 걱정했다는 옛날 중국 杞(기)나라 사람의 걱정은 옛날만의 어리석음이 아니다. 의심의 결정판이 속담에 있다. 물건을 잃게 되면 누구나 다 의심스럽게 여겨진다며 ‘도둑맞으면 어미 품도 들춰 본다’고 까지 했다.

술잔 속에 비친 활 그림자를 뱀으로 잘못 알았다는 이 성어는 쓸데없이 의심을 품고 지나치게 걱정한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魏(위)나라에 뒤이어 건국된 南北朝(남북조) 시대의 晉(진)나라 때 樂廣(악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독학을 했지만 영리하고 신중해서 주위의 신망을 받았다.

뒷날 벼슬길에 천거되어 河南(하남)의 태수로 있을 때 일이다. 그의 친한 친구가 찾아 와 술상을 차리고 대접했다. 하지만 그는 무슨 근심이라도 있는 듯 말수도 적고 술도 얼마 마시지 않고 돌아갔다. 자주 오던 친구는 그 뒤로 웬일인지 발을 딱 끊고 찾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여긴 악광이 찾아가 보니 자기에게 찾아온 이후 병이 들어 앓아 누웠다고 했다.

온갖 약을 써도 차도가 없다는 친구에게 원인을 물어보니 전번 술 마신 잔에서 뱀이 보였다고 했다. 언뜻 생각이 미친 악광은 다시 친구를 초청하여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잔을 보게 했다.

다시 뱀이 어른거리자 뒷벽에 있는 활을 벗겨 낸 뒤에 보라고 하니 없어졌다고 했다. 술잔에 비친 활 그림자를 뱀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물론 친구는 의심이 사라지고 병도 깨끗이 나았다. ‘晉書(진서)’ 악광전에 실린 이야기다.

杯中蛇影(배중사영) 또는 蛇影杯弓(사영배궁)이라 해도 같은 말인데 사람은 달리 비슷한 이야기가 後漢(후한) 應劭(응소, 劭는 아름다울 소)라는 사람이 엮은 風俗通義(풍속통의)에도 전한다. 列子(열자)가 말한 의심하면 이치에 어긋나는 망령된 생각이 난다는 疑心暗鬼(의심암귀)라는 말과도 통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062.html
kolaswqetsrq 11.02 12:06
◇ 고금리·거래절벽에 속수무책.. 서울 아파트값 10년 만에 최대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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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리·거래절벽에 속수무책.. 서울 아파트값 10년 만에 최대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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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값이 주간 기준 10여년 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하면서 20주 연속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13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0월 둘째 주 주간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은 0.22%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주(-0.20%)보다 하락폭이 커지면서 20주 연속 하락세가 이어진 것이다.

서울 강북 14개구 중에는 도봉구(-0.40%)와 노원구(-0.40%)가 가장 큰 하락폭을 보였다. 이어 은평구(-0.29%)는 진관·녹번·응암동 대단지 위주로, 서대문구(-0.28%)는 남가좌동 대단지와 홍은동 구축 위주로 매물 적체 지속되며 하락폭이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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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권에서는 송파구(-0.31%)는 하락거래 발생한 잠실·송파·문정동 대단지 위주로, 강서구(-0.23%)는 내발산·가양동 주요 단지 위주로 하락하는 분위기다. 강동구(-0.22%)는 고덕·명일·암사동 위주로 하락하며 하락폭이 확대됐다. 서초구는 0.05% 하락하며 서울 자치구 중 하락폭이 가장 적었다.

인천(-0.31%→-0.38%)은 하락폭이 더욱 확대됐다. 금리인상 등 부동산 경기 하락 우려로 매수문의가 감소하며 서구(-0.45%)는 가정·마전동 위주로, 연수구(-0.43%)는 송도신도시 위주로, 중구(-0.40%)는 중산·북성동 위주로 하락했다.

경기도(-0.26%→-0.30%) 지역도 하락세가 짙어졌다. 이천시(-0.02%)는 관망세 짙어지며 하락 전환했다. 수원 영통구(-0.79%)는 입주물량 영향 있는 망포·매탄동 위주로, 성남 수정구(-0.70%)는 창곡·태평동 위주로 하락하는 모습이다. 이외에도 성남 중원구(-0.50%)는 금광·상대원동 위주로, 양주시(-0.44%)는 고암·옥정동 위주로, 파주시(-0.44%)는 목동·동패동 위주로 하락하며 하락세가 지속됐다.

아파트 전세 시장에서는 지난주 서울(-0.20%→-0.22%)이 임차인들의 갱신계약·월세·반전세 선호현상으로 전세매물 적체가 지속 중인 가운데, 추가 금리인상의 우려로 신규 전세매물의 가격 하향조정이 꾸준히 진행되며 하락폭이 확대됐다.

한강 이남에서는 송파구(-0.52%)가 잠실·송파동 주요 단지 위주로, 강동구(-0.28%)는 암사·고덕·강일동 위주로, 관악구(-0.23%)는 신림·봉천동 주요 단지 위주로, 양천구(-0.22%)는 신정·목동 대단지 위주로 하락하며 하락세가 더욱 짙어졌다.

한강 이북에서는 종로구(-0.32%)는 숭인·창신동 대단지 위주로, 은평구(-0.31%)는 응암·불광동 대단지 위주로, 서대문구(-0.30%)는 남가좌·북가좌·현저동 중·소규모 단지 위주로, 성북구(-0.30%)는 길음·돈암동 위주로, 중구(-0.28%)는 신당·만리동 위주로 하락하며 하락세가 계속됐다.

수도권 전체는 0.32% 하락했고, 지역별로는 인천과 경기가 각각 -0.37%를 기록하며 가격이 더욱 떨어지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인천의 경우 신규 입주물량 영향으로 매물 적체 지속되는 가운데, 서구(-0.48%)는 신현·가정동 위주로, 중구(-0.43%)는 중산·운남동 위주로, 부평구(-0.38%)는 삼산·산곡동 위주로 하락하며 하락폭 확대됐다.

경기도는 이천시(0.07%)가 직주근접성 양호한 증포동·부발읍 위주로 매수세 증가하며 상승했다. 반면 의정부시(-0.78%)는 낙양·민락동 위주로 매물 적체 영향 지속되며, 수원 영통구(-0.77%)는 망포·신동 소규모 (준)신축 위주로 하락거래가 발생하며 하락했다. 이외에도 파주시(-0.70%)가 동패·목동동 노후 단지 위주로, 하남시(-0.60%)는 망월·신장동에서 하락거래 이어지며 전주 대비 하락폭이 더욱 커졌다.

-아시아경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3.html
kolaswqetsrq 11.02 12:06
하필성문下筆成文 - 붓을 들기만 하면 문장이 이루어진다, 글재주가 뛰어난 사람

하필성문(下筆成文) - 붓을 들기만 하면 문장이 이루어진다, 글재주가 뛰어난 사람

아래 하(一/2) 붓 필(竹/6) 이룰 성(戈/3) 글월 문(文/0)

단번에 막힘없이 시원하게 쓴 글씨를 一筆揮之(일필휘지)라 한다. 대체로 붓을 떼지 않고 쓴 글씨를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시간에 완성한 그림도 포함한다. 감상하는 일반 사람들이야 순간적으로 쓴 글씨나 그려낸 명화를 보며 작가의 타고난 재주라고 탄복한다. 하지만 정작 작가의 갈고 닦은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磨穿鐵硯(마천철연)은 쇠로 된 벼루가 닳아서 구멍이 나고, 如筆堆山(여필퇴산)은 닳아진 몽당붓이 언덕과 같이 쌓였다는 말이다. 秋史體(추사체)의 명필 金正喜(김정희)도 禿盡千毫(독진천호), 천 자루의 붓을 닳게 한 노력의 결과였다.

막힘없는 글씨와 그림에 비해 단숨에 지은 문장에 대한 성어도 있다. 붓을 드리워 쓰기만 하면(下筆) 문장이 이루어진다(成文)는 기막힌 글재주다. 주인공은 중국 ‘三國志(삼국지)’ 魏書(위서)에 나오는 曹操(조조)의 셋째 아들 曹植(조식)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0세가 되면서 시론과 시부 수십만 구절을 통독하고 시와 문장에도 뛰어났다. 어느 때 조조가 조식의 문장을 보고 그 뛰어남에 놀라 남에게 대필시킨 것이 아니냐고 캐물었다. 조식은 무릎을 꿇고 답한다. ‘제가 말을 하면 경론이고, 붓을 드리우면 문장이 됩니다(言出爲論 下筆成章/ 언출위론 하필성장).’ 이런 재주를 가졌는데 누구한테 대신 써 달라고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자신만만했다.

조식의 이런 자부심은 조조가 銅雀臺(동작대)를 지었을 때 면전에서 賦(부)를 지었고, 형 曹丕(조비)의 트집으로 일곱 걸음을 디딜 동안 완성한 七步詩(칠보시)에서 煮豆燃萁(자두연기, 萁는 콩대 기)라는 멋진 비유를 남겨 입증됐다. 조식은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재주를 평가한 데서도 이런 표현을 썼다.

당대의 석학 蔡邕(채옹, 邕은 막힐 옹)이 재능을 인정했던 王粲(왕찬, 粲은 선명할 찬)에 대해 ‘문장은 봄꽃과 같고, 생각은 샘처럼 솟아오른다. 하는 말마다 읊조릴 만하고, 붓을 놀리면 작품이 된다(文若春華 思若湧泉 發言可詠 下筆成篇/ 문약춘화 사약용천 발언가영 하필성편)’고 높이 칭송했다. 下筆成章(하필성장), 下筆成篇(하필성편) 모두 같은 말이다.

후세의 문인들은 더욱 조식의 재주를 높이 평가했다. 南北朝(남북조)시대의 이름난 산수시인 謝靈運(사령운)은 천하의 글재주가 모두 한 섬이라면 조식이 八斗之才(팔두지재), 여덟 말을 차지한다고 했고, 淸(청)나라 시인 王士禎(왕세정)은 조식과 李白(이백), 蘇軾(소식)을 신선의 재능을 지닌 단 세 사람이라 극찬했다. 하지만 조식의 이런 재주가 타고난 재주만으로 된 것은 아니란 것은 모두 안다.

베스트셀러를 뚝딱 내놓는 천재작가들도 단숨에 썼다는 일필휘지라는 말을 멀리 한다고 한다. 좋은 글을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쓰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907.html
kolaswqetsrq 11.02 12:07
농가성진弄假成眞 - 장난삼아 한 일이 실제로 이루어진다.

농가성진(弄假成眞) - 장난삼아 한 일이 실제로 이루어진다.

희롱할 롱(廾/4) 거짓 가(亻/9) 이룰 성(戈/3) 참 진(目/5)

말이나 행동을 조심하라는 선현의 말은 숱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말이 입에서 모든 재앙이 나오는 문이라는 口禍之門(구화지문), 禍生於口(화생어구)이고, 남을 해칠 수 있다고 舌劍脣槍(설검순창)이란 섬뜩한 표현도 있다. 孔子(공자)는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행동하지도 말라고 非禮勿言 非禮勿動(비례물언 비례물동)이라 가르쳤다.

모두 거짓이 아닌 참된 말이라도 조심하라는 뜻인데 사실이 아니거나 장난스럽게 행동하고 말한다면 용서가 될까.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이 있다. 늘 말하던 일이 사실대로 되었을 때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뒤따르니 농담이라도 역시 조심하라는 말이다.

장난삼아 한 일(弄假)이 실제로 이루어진다(成眞)는 성어도 같은 뜻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한 일이 뚜렷한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假弄成眞(가롱성진), 弄過成嗔(농과성진, 嗔은 성낼 진)이라고도 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羅貫中(나관중)의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나온다.

吳(오)나라의 孫權(손권)이 劉備(유비)가 차지하고 있는 荊州(형주) 땅을 차지하기 위해 미인계를 쓴다. 명신 周瑜(주유)가 절세의 미인인 손권의 누이동생을 유비의 배필로 준다고 꾀어 오게 되면 인질로 잡자는 계획이었다. 유비는 諸葛亮(제갈량)의 계책대로 손권의 모친을 먼저 뵙고 허락을 받았다.

영웅을 알아본 모친 뜻에 따라 여동생을 유비에 보내게 된 손권이 후회했다. ‘뜻밖에 우스갯말이 실제로 되었으니 이 일을 어떻게 되돌리겠소(不想弄假成真 此事還復如何/ 불상롱가성진 차사환부여하)?’ 주유와 함께 거짓으로 시작된 제 꾀에 넘어가 군사까지 잃는다. 말의 무게를 실감하는 周公(주공)의 일화도 있다. 주공은 어린 조카 成王(성왕)을 잘 보좌하여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

성왕이 동생에게 오동잎을 주며 왕으로 봉한다고 하자 주공은 천자의 말은 농담으로 해서는 안 된다며 실제 唐王(당왕)으로 봉하게 했다. 우리 高句麗(고구려)의 溫達(온달)장군도 거짓으로 한 말의 덕을 봤다. 平原王(평원왕)의 딸이 어릴 때 자주 울자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고 한 말을 듣고 王不食言(왕불식언)이라며 제 발로 찾아갔던 것이다.

유비나 온달 등의 경우는 장난스럽게 한 말의 덕을 본 경우다. 하지만 별 생각 없이 한 말이라도 듣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이 된다는 ‘웃느라 한 말에 초상난다’는 말이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가벼운 거짓말로 장난을 치는 萬愚節(만우절)에도 남에게 피해를 끼칠 때는 당연히 제재를 받는다.

선거철에 대표자로 뽑아달라고 호소하면서 후보자들이 쏟아내는 각종 공약이 대부분 空約(공약)이 된다. 물론 거짓으로 속인 것은 아니겠지만 뒤돌아서면 못 본 척하고, 실천 의지도 보이지 않아 신뢰를 깎아 먹는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317.html
kolaswqetsrq 11.02 12:07
불효자오不孝者五 – 다섯 가지 불효

불효자오(不孝者五) – 다섯 가지 불효

아닐 불(一/3) 효도 효(子/4) 놈 자(耂/5) 다섯 오(二/2)

인간의 도리라며 예부터 중시하고, 고금의 효자를 기리며 상찬해도 불효는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악독한 위인이라도 부모 앞에서는 말을 잘 따르는 순둥이가 된다. 그래서 남이 볼 때는 어버이를 효성스럽게 잘 섬기지 않아 손가락질 받는 불효자라도 부모는 감싸고 싶어 한다.

또 모두들 욕하는 부모님일지라도 자식이 정성스럽게 섬기면 효일 수 있다. 이처럼 상대적인 불효에 대해 명쾌하게 규정한 글이 있다. 세상에서 하지 않아야 할 다섯 가지 불효를 孟子(맹자)가 설명한다. ‘맹자’ 離婁(이루) 하편에 나온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에 匡章(광장)이란 장군이 있었다. 秦(진)나라가 공격해 왔을 때 양국의 깃발을 섞는 전술로 대승을 거두었고, 燕(연)나라에 내란이 일어난 틈을 타 수도를 함락시키는 등 공이 컸다. 그런데 그는 온 나라 사람들이 불효한 자라고 욕을 듣고 있었다.

광장의 어머니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의 아버지가 살해한 뒤 마구간에 파묻었다. 광장은 여러 번 이장을 요구했으나 부친은 죽을 때까지 끝내 듣지 않았다. 그 후 부모에 죄를 지은 몸으로 처자의 봉양을 받을 수 없다며 처를 내보내고 자식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맹자는 이런 광장과 교유하고 예를 갖춰 대하므로 제자 公都子(공도자)가 어떤 연유인지 물었다. 세상에서 불효라고 말하는 것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世俗所謂不孝者五/ 세속소위불효자오)며 설명한다.

첫째 제 몸을 게을리 놀려 부모 봉양을 하지 않는 것(惰其四支/ 타기사지), 장기나 바둑 같은 노름에 빠지는 것(博奕好飮酒/ 박혁호음주),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식만 편애하는 것(好財貨 私妻子/ 호재화 사처자), 제 욕심만 차려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從耳目之欲 以爲父母戮/ 종이목지욕 이위부모륙), 만용을 일삼아 사납게 싸워 부모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好勇鬪很 以危父母/ 호용투흔 이위부모)이 그것이다. 광장은 한 가지도 해당되지 않으니 불효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很은 말다툼할 흔.

맹자는 舜(순)임금의 부친이 만약 살인을 했더라도 아버지를 업고 도망쳐 조용히 살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렇게 부모를 감싸는 것이 옳다고 말하지만 모두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임금에게도 잘못을 간해야 하는데 잘못을 법에 알리지는 못해도 자수 등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다섯 가지 불효를 않더라도 효도하기는 이처럼 어렵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446.html
kolaswqetsrq 11.02 12:08
목지절야필통두木之折也必通蠹 -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좀 벌레가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목지절야필통두(木之折也必通蠹) -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좀 벌레가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나무 목(木/0) 갈 지(丿/3) 꺾을 절(扌/4) 이끼 야(乙/2) 반드시 필(心/1) 통할 통(辶/7) 좀 두(虫/18)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는 千里之行 始於足下(천리지행 시어족하)라 하여 무슨 일이나 시작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마무리는 더욱 중요하다. 구백구십 아홉 걸음을 갔더라도 한 걸음이 모자라 일을 완성하지 못하면 앞의 노력은 헛수고다.

‘다 된 밥에 재 뿌리기’란 말과 같이 조그만 부주의로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적절한 비유의 성어도 많다.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산을 쌓다가 와르르 무너지는 功虧一簣(공휴일궤, 虧는 이지러질 휴, 簣는 삼태기 궤)가 그렇고, 커다란 둑이 개미구멍에 의해 무너지는 堤潰蟻穴(제궤의혈)이 그렇다.

완성하기 전의 마지막 정성이 중요한 것과 같이 이루고 난 뒤에도 조그만 원인에 와해될 수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단단한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木之折也) 반드시 좀 벌레가 속을 파먹었기 때문(必通蠹)이란 쉬운 비유가 ‘韓非子(한비자)’의 亡徵(망징)편에 나온다.

중국 法家(법가)의 대표 韓非(한비)는 공을 들여 건국한 나라가 사소한 잘못을 방치하다 망하는 징조를 마흔일곱 가지나 예로 든다. 군주와 신하, 경제나 군사, 외교, 사회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놓치기 쉬운 일을 들면서 사소한 조짐을 잘 관찰하고 법에 의해 그것을 막아야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좀 벌레가 파먹었기 때문이고(木之折也必通蠹/ 목지절야필통두),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반드시 틈이 생겼기 때문이다(牆之壞也必通隙/ 장지괴야필통극).’ 그러면서 나무에 벌레가 먹거나 담장에 벌레가 생겼다 하더라도 강풍이나 폭우가 내리지 않으면 유지할 수 있지만 그것을 간파한 나라가 쳐들어오면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

사전에 잘 대비하고 잘못된 점은 고쳐야 튼튼해진다는 이야기다. 前漢(전한)의 劉安(유안)이 저술한 ‘淮南子(회남자)’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담이 무너지는 것은 조그만 틈새에서 비롯되고, 칼이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빠진 날에서이다(牆之壞也於隙 劍之折必有齧/ 장지괴야어극 검지절필유설).’ 齧은 깨물 설. 人間訓(인간훈)에 있다.

한비는 또한 五蠹(오두)편에서 나무나 곡식을 갉아먹는 다섯 가지 좀 벌레는 五賊(오적)과 같이 나라를 갉아먹어 황폐하게 하는 사람들을 지칭했다. 힘에 의하거나 권력 등을 동원하여 서민들의 고혈을 빠는 사람들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좀 벌레들이 없을까.

수시로 드러나는 이런 범죄인들 말고도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세금을, 모자라면 빚으로 흥청망청 쓰는 공직자들은 더하다. 선인들이 힘겹게 쌓아올려 세계 10위권 경제국으로 살게 된 나라다. 小隙沈舟(소극침주)라 했다. 커다란 배가 작은 틈으로 스며드는 물에 의해 가라앉는 일은 없어야 되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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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08
운우지락雲雨之樂 - 남녀의 육체적인 사랑

운우지락(雲雨之樂) - 남녀의 육체적인 사랑

구름 운(雨/4) 비 우(雨/0) 갈 지(丿/3) 즐길 락(木/11)

구름과 비를 가리키는 雲雨(운우)는 비구름이 농사에 도움을 주니 혜택을 입었을 때 비유하는 말도 된다. 여기에서 멀리 나아가 남녀의 육체적인 사랑을 더 많이 뜻하게 된 것은 고사를 모르고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중국 쓰촨四川/ 사천성의 동부 巫山(무산)에 살았던 神女(신녀)가 먼저 나오고 그와 꿈에 만났던 楚(초)나라 왕이 등장한다.

신녀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된다는 朝雲暮雨(조운모우)의 변화를 가졌다고 하여 이 말이 나왔다고 한다. 戰國時代(전국시대) 초나라의 시인 宋玉(송옥)의 ‘高唐賦(고당부)’ 서문이 梁(양)나라 蕭統(소통)이 엮은 시문집 文選(문선)에 실리면서였다.

전설 속 三皇(삼황) 중에 神農(신농)씨의 셋째 딸 瑤姬(요희)가 그 신녀이고, 懷王(회왕)이 그와 사랑을 나눈 초왕이었다. 서문에 실린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보자. 회왕의 아들인 襄王(양왕)이 송옥을 대동하고 오늘의 뚱팅호洞庭湖/ 동정호라는 雲夢(운몽)의 누대에서 놀고 있었다.

송옥은 초나라 충신 屈原(굴원)의 제자로 美如宋玉(미여송옥)이란 비유를 남길 정도의 수려한 궁정시인이었다. 일행이 高唐館(고당관)을 바라보았을 때 그 위에만 구름이 몰려 있고 갑자기 하늘로 솟구치다 또 모양이 바뀌는 등 변화가 끝이 없었다. 왕이 이상하게 여겨 송옥에게 물어보니 그것이 바로 朝雲(조운)이라며 그 사연을 설명했다.

옛날 부왕이 고당에서 노닐다가 피곤하여 낮잠을 자게 되었는데 꿈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자기는 무산에 사는 여인이라며 왕께서 노니신다는 말을 듣고 잠자리를 받들고자 왔다고 했다. 꿈속에서 잘 즐긴 왕에게 여인은 떠나면서 말했다.

‘저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양대 아래에 있을 것입니다(旦爲朝雲 暮爲行雨 朝朝暮暮 陽臺之下/ 단위조운 모위행우 조조모모 양대지하).’ 아침에 깨어난 왕이 무산 쪽으로 보니 아름다운 그름이 걸려 있어 그곳에 사당을 짓고 朝雲廟(조운묘)라 했다는 이야기다. 陽臺(양대)는 해가 잘 드는 누대를 가리키는데 남녀의 은밀한 사랑도 뜻한다.

무산 신녀와의 꿈속의 사랑은 뜻하지 않았는데도 이뤄져 변화하는 비와 구름과 함께 무수한 관련 성어를 남겼다. 巫山夢(무산몽), 巫山雨(무산우), 巫山雲(무산운)에서부터 巫山之夢(무산지몽), 巫山之樂(무산지락), 巫山雲雨(무산운우), 雲雨之夢(운우지몽), 雲雨之情(운우지정), 雲情雨意(운정우의) 등등이다.

우리의 풍자시인 김삿갓金笠/ 김립이 이 운우의 묘사에 빠질 수가 없다. 남녀의 정은 싫지 않고 끝이 없다는 것을 야하지 않고도 절묘하게 나타냈다. ‘爲爲不厭更爲爲 不爲不爲更爲爲(위위불염갱위위 불위불위갱위위).’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849.html
kolaswqetsrq 11.02 12:09
과하지욕胯下之辱 -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다, 큰 뜻을 위해 굴욕을 참다.

과하지욕(胯下之辱) -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다, 큰 뜻을 위해 굴욕을 참다.

사타구니 과(肉/6) 아래 하(一/2) 갈 지(丿/3) 욕될 욕(辰/3)

억울하고 분한 일이나 어려움과 괴로움을 잘 참는 것이 忍耐(인내)다. 참는 자에게는 복이 있고, 참으면 모든 문이 열린다고 동서양의 속담이나 격언들이 예찬하지만 실제 부닥쳤을 때 보통사람들이 이를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당장의 굴욕을 내일을 위해 참고 견뎌낸다는 성어는 숱하다.

장작더미에 자고 쓸개를 맛보는 臥薪嘗膽(와신상담), 옻칠을 하고 숯을 삼키는 漆身呑炭(칠신탄탄), 얼굴에 뱉은 침을 마를 때까지 참는다는 唾面自乾(타면자건) 등이 먼저 떠오른다. 여기에 동네 불량배들의 가랑이 사이(胯下)를 기어가는 치욕을 당한(之辱) 韓信(한신)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한신은 처음 項羽(항우)의 휘하에 있다가 劉邦(유방)의 책사 蕭何(소하)의 추천으로 옮긴 뒤 漢(한)의 천하통일에 지대한 공헌을 올린 장군이다. 그와 관련한 성어도 많다. 배고플 때 밥 한 그릇을 준 아낙네에 一飯千金(일반천금)으로 보답한 것에서 背水之陣(배수지진), 四面楚歌(사면초가)의 작전, 유방과의 대화 중에서 多多益善(다다익선)이나 言聽計用(언청계용)이 있고 나중에 兎死狗烹(토사구팽)당하는 것도 한신이다.

가랑이 밑을 기면서 모욕을 잘 참은 이 성어는 앞서 소개한 受袴下辱(수과하욕, 袴는 바지 고, 사타구니 과)과 같고, 跨下之辱(과하지욕, 跨는 넘을 과), 絝下之辱(고하지욕, 絝는 바지 고) 등 여러 가지로 쓴다.

‘史記(사기)’의 淮陰侯(회음후) 열전에 굴욕을 이긴 한신의 이야기가 상세하게 나온다. 그는 가난한 중에서도 장차 명장이 되기 위해 병법을 공부했으나 출세의 기회는 오지 않아 하급관리의 식객이 됐다. 한번은 푸줏간 패거리 중의 한 사람이 칼을 차고 다니는 한신에게 겁쟁이라며 시비를 걸었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나를 찔러 봐라(信能死 刺我/ 신능사 자아), 죽는 것이 두려우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不能死 出我袴下/ 불능사 출아고하).’ 물끄러미 불량배를 바라보던 한신은 ‘몸을 굽히고 그의 가랑이 밑을 기어갔다(俛出袴下蒲伏/ 면출과하포복).’ 俛은 구부릴, 힘쓸 면, 蒲는 부들 포. 한 때의 모욕을 견딘 한신은 대장군이 됐고 이 불량배를 거둬 수하에 두기까지 했다.

인내는 인내치 못하는 인내를 인내하는 인내가 인내의 참 인내다. 말장난 같아도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참된 인내라는 말로 굴종이나 체념과는 다르다. 참을 忍(인) 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고 했다. 큰 뜻을 품은 한신이 사소한 시비에 휘말려 살인이라도 저질렀다면 미래는 없었을 것이다.

菜根譚(채근담)의 좋은 말을 기억하자. ‘역경과 곤궁은 호걸을 단련하는 한 개의 도가니와 망치이다(橫逆困窮 是煅煉豪傑的 一副鑪錘/ 횡역곤궁 시단련호걸적 일부로추).’ 鑪는 화로 로, 爐(로)와 같다. 錘는 저울추 추, 쇠망치의 뜻도 있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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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10
성혜成蹊 - 지름길이 생기다, 덕이 있으면 흠모하는 사람이 찾는다.

성혜(成蹊) - 지름길이 생기다, 덕이 있으면 흠모하는 사람이 찾는다.

이룰 성(戈/3) 지름길 혜(足/10)

사람들은 모두 지름길을 좋아한다. 老子(노자)가 ‘큰 길이 평탄하고 쉬운데도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한다(大道甚夷 而民好徑/ 대도심이 이민호경)’고 말한 것은 당장의 작은 안일을 경계했다. 같은 목적지를 갈 때 이왕이면 빨리 도착하려 지름길을 찾는다.

지름길을 나타내는 어려운 글자 蹊(혜)는 사람의 다리와 배가 이어지는 홈 부분 샅고랑을 나타내는 鼠蹊部(서혜부)와 ‘샛길이 생긴다(成蹊)’는 뜻의 이 성어 외에는 쓰임이 적다. 물론 이 말은 밑에 저절로 지름길이 생긴다는 下自成蹊(하자성혜)의 준말이고, 또 이 구의 앞에 桃李不言(도리불언)이 와야 완전하게 뜻이 통한다.

이 난에서 앞서 桃李滿天下(도리만천하)나 桃李不言(도리불언)을 소개할 때 나온 그대로 복숭아와 자두는 꽃과 열매가 아주 좋아 가만있어도 찾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이 나무 아래로 지름길이 생기듯이 덕이 높은 사람은 자기선전을 하지 않아도 흠모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의미를 가졌다.

李廣(이광)이란 사람은 중국 前漢(전한)의 6대 景帝(경제, 재위 기원전 157∼141)때 명장으로 활을 잘 쏘아 호랑이라 여긴 바위에 화살을 꽂는 中石沒鏃(중석몰촉)의 이야기가 따른다. 변방의 匈奴(흉노)족을 70여 차례나 물리쳐 飛將軍(비장군)이라 불리며 그가 지키는 곳에는 국경을 넘보지 못할 정도였다.

이광 장군이 100여기만 이끌고 적진을 기습했다가 곧 포위당했을 때 이야기다. 정면 돌파가 불가능하다고 여긴 이광은 부하들에게 내려 안장을 풀라고 명령했다. 대담한 행동에 계략이 있을 것으로 여겨 적군이 주춤할 때 장군은 10여기를 이끌고 질풍처럼 돌진하여 적장을 베었다. 혼비백산 적이 달아날 사이 이광은 한 사람의 병사도 잃지 않고 무사히 개선했다.

‘史記(사기)’의 李將軍(이장군) 열전이나 ‘漢書(한서)’의 李廣蘇建傳(이광소건전) 등에 예부터 내려오는 말이라며 이광을 평했다. ‘복숭아와 오얏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아래 저절로 길이 생긴다(桃李不言 下自成蹊/ 도리불언 하자성혜).’ 孔子(공자)의 ‘몸이 바르면 영을 내리지 않아도 실행된다(其身正 不令而行/ 기신정 불령이행)’는 말을 실천한 셈이라 했다.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큰 성과만 노려 지름길을 찾는다면 오래 가지 못한다. 빨리 가는 길을 찾다가 숲에 갇히고 물에 빠질 수도 있으니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라고 했다. 오늘날은 자기 PR시대라며 기초를 충분히 닦지 않고서 대가연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많은 사람이 찾았다가 일시적인 지름길이라 밑천을 알고선 금방 흩어진다. 조급히 서두르지 말고 실력을 갖춘다면 지름길이 생기고 찾는 사람이 생기는 법이다. 그러니까 찾는 사람도 무작정 빠른 길만 찾지 말고 어떤 지름길인지 살필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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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11
일사천리一瀉千里 - 물이 흘러 천리를 가다, 거침없이 일을 처리하다.

일사천리(一瀉千里) - 물이 흘러 천리를 가다, 거침없이 일을 처리하다.

한 일(一/0) 쏟을 사(氵/15) 일천 천(十/1) 마을 리(里/0)

옛날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로 썼던 1里(리)는 약 0.393km라 하는데 실제 10배를 부풀렸다. 십리길이라면 40km 정도 됐고, 우리나라 전체를 三千里(삼천리) 강산이라 한 것도 서울 중심으로 진주, 의주, 경흥까지 거리가 각 400km 정도인 데서 나왔다고 한다.

물론 천리를 정확한 거리가 아닌 먼 길이란 뜻으로 비유해서 썼다. 시작이 중요하다고 한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부터 牛步千里(우보천리)는 느릿느릿 걷는 소가 결국엔 목표를 달성하니 서두르지 않아야 하고, 惡事千里(악사천리)는 나쁜 일은 천리 밖에 소문이 난다고 말조심을 하라는 교훈이었다.

이런 말보다 더 많이 일상에 사용되는 것이 물이 쏜살같이 흘러(一瀉) 천리까지 간다(千里)는 이 성어다. 강물이 빨리 흘러 먼 바다로 흐른다는 데서 일이 조금도 거침없이 빨리 진행되거나 말이나 글이 조금도 막힘없이 명쾌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막힘없이 줄줄 쓰는 명문이라면 중국 詩仙(시선) 李白(이백)의 九天直下(구천직하)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廬山(여산)의 폭포를 읊으면서 ‘날아 흘러 떨어지니 길이 삼천 척,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하구나(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비류직하삼천척 의시은하락구천)’란 문장에서 땄다. 천리까지 가는 물은 長江(장강)과 黃河(황하)에서 왔다.

성어의 유래는 몇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南宋(남송)의 학자 陳亮(진량)은 ‘與辛幼安殿撰(여신유안전찬)’이란 글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장강과 황하의 물이 한 번 흘러 천리 가는 것에 아무도 괴이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다(長江大河 一瀉千里 不足多怪也/ 장강대하 일사천리 부족다괴야).’

淸(청)나라 관리 黃六鴻(황육홍)이란 사람이 지방관을 위해 쓴 지침서 ‘福惠全書(복혜전서)’에는 ‘엄연한 계곡 사이를 가벼운 배는 삽시간에 일사천리로 내려간다(儼然峽裡輕舟 片刻一瀉而千里/ 엄연협리경주 편각일사이천리)’란 표현이 들어 있다.

강이 쉼 없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듯이 시원하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속을 후련하게 한다. 가슴에 닿는 웅변은 폭포수 같다며 口若懸河(구약현하)나 푸른 산에 흐르는 물처럼 막힘없다며 靑山流水(청산유수)에 비유했다. 시원하게 계획을 말하고 일사불란하게 밀고 나가면 모두에 박수 받는다. 이런 말대로 일이 척척 처리된다면 아무 걱정이 없다.

남을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이런 자세로 말대로 실천했다면 살기 좋은 나라는 벌써 됐을 것이다. 훌륭한 복안이 있더라도 이루지 못하면 천천히 걷는 황소보다 못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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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12
항산항심恒産恒心 - 일정한 생업이 있어야 변함없는 마음이 있다

항산항심(恒産恒心) - 일정한 생업이 있어야 변함없는 마음이 있다

항상 항(忄/6) 낳을 산(生/6) 항상 항(忄/6) 마음 심(心/0)

사람에게 필요한 衣食住(의식주)는 아주 최소한이라도 있어야 생명을 유지한다. 저절로 나는 것이 없어 재물이 있어야 구한다. 재산은 속박이고 많으면 근심만 커진다며 멀리 하는 군자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명리가 싫어 초야에 들어간 은자라도 나물 먹고 물은 마시며, 누더기 옷이나 오두막집은 필요하다.

마음을 닦고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성인이 도움을 주려 해도 맨손이어서는 되지 않는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나타내는 바다. 또 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보통 양민이라도 ‘사흘 굶으면 포도청의 담도 뛰어 넘는다’고 했다. 성인이고 속인이고 다소를 떠나 재산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德治(덕치)를 주장한 유교의 亞聖(아성) 孟子(맹자)가 명쾌한 답을 했다. 일정한 재산이나 생업이 있어야(恒産) 변함없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恒心). 맹자가 각국 유세에서 돌아왔을 때 고향서 가까운 소국 滕(등, 滕은 물솟을 등)나라의 文公(문공)이 초청해 백성을 위한 바른 정치에 대해서 조언을 구했다.

맹자가 말한다. 백성들이 살아가는 도리는 ’일정한 생업이 있으면 변함없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有恒産者有恒心/ 유항산자유항심), 안정적인 생업이 없으면 안정된 마음이 없게 됩니다(無恒産者無恒心/ 무항산자무항심)’고 했다. 나아가 방탕 편벽 사악 사치(放辟邪侈/ 방벽사치) 하게 되니 생업을 갖게 해 먹고 살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 것이다. 滕文公(등문공) 상편에 나온다.

재산이 있고 없고 전혀 반대의 이야기 無恒産 無恒心(무항산 무항심)과 같이 대비하여 나오는 곳이 또 있다. 齊(제)나라의 宣王(선왕)이 맹자에게 인정으로 나아가는 길을 도와달라고 했을 때 답한다. ‘일정한 생업이 없지만 변함없는 마음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선비만 가능합니다(無恒産而有恒心者 唯士爲能/ 무항산이유항심자 유사위능),

백성이라면 일정한 생업이 없을 때 변함없는 마음이 없어집니다(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 약민즉무항산 인무항심).’ 일정하고 떳떳한 마음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은 수양한 선비라야 가능하고, 일반 백성들은 딴 길로 빠지니 그 뒤에 죄를 물어봐야 소용없다는 이야기다. 梁惠王(양혜왕) 상편이다.

일정한 직업, 생업을 영위하여 재산을 모았을 때 욕심이 앞서는 것이 상정이다. 항심을 유지하기는 맹자 말대로 수양한 사람이 아니고는 어렵다. 속담에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는 말대로 보이는 것 없이 거들먹거리는 졸부가 되고, 돈이 돈을 번다고 이익에 눈이 어두워 나쁜 길로 쉽게 빠진다.

지도층 인사들도 잊을만하면 비리가 드러나니 이런 사람들에겐 러시아 톨스토이(Tolstoy)의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재화는 쌓여 있을 땐 썩은 냄새를 피우고, 뿌려졌을 때엔 땅을 기름지게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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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13
군자지교 담여수君子之交 淡如水 -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다.

군자지교 담여수(君子之交 淡如水) -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다.

임금 군(口/4) 아들 자(子/0) 갈 지(丿/3) 사귈 교(亠/4) 맑을 담(氵/8) 같을 여(女/3) 물 수(水/0)

사람과의 사귐을 말하는 交際(교제)는 남녀 간이면 사랑을, 사업상이면 이익을 위한 것이라 그 목적이 뚜렷하다. 친구간의 友情(우정)은 오랜 기간 상대를 위하고 희생을 감수해야 더 빛나는 관계가 되는 성어가 많다. 보통 사람은 아무래도 손익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

孔子(공자)님도 益者三友(익자삼우)라 하여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 견문이 많은 사람과 사귀는 것이 좋다고 했다. 또 남과 사이좋게 지내도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아야 한다는 和而不同(화이부동)과 끼리끼리 모여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群而不黨(군이부당) 등의 좋은 가르침을 남겼다.

모두의 스승인 공자에게 조언하는 사람이 있다. 子桑雽(자상호, 雽는 성씨 호)라 불리는 은둔자다. 물론 가상의 인물인데 寓言(우언)으로 비유하여 통쾌하게 핵심을 찌르는 ‘莊子(장자)‘에 나온다. 자상호에게 공자가 찾아와 魯(노)나라에서 두 번이나 쫓겨났고, 陳蔡(진채) 국경에선 포위당하는 등 여러 재앙이 닥쳐 지인들과는 소원해졌고 제자들은 흩어졌는데 왜 그런지 물었다.

여기서 ’군자의 교제(君子之交)는 물같이 담백하다(淡如水)‘며 설명하는 것이 山木(산목)편에 나온다. 세상일에 대하여 마음을 비우고 자기를 버려야 험난한 사회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교훈적인 예화를 담은 곳이다.

자상호의 설명을 들어보자. ‘대체로 이익을 매개로 맺어진 관계는 어려움이 닥치거나 재앙을 만나면 서로 버립니다(夫以利合者 迫窮禍患害相棄也/ 부이리합자 박궁화환해상기야), 하늘이 맺어준 관계는 어려울 때 서로 보살피지요(以天屬者 迫窮禍患害相收也/ 이천속자 박궁화환해상수야).’

그러면서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싱겁고(君子之交淡若水/ 군자지교담약수),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합니다(小人之交甘若醴/ 소인지교감약례)’고 했다. 醴는 단술 례. 무심한 듯 담백한 교제가 오래 가며, 이익이 개재된 달콤한 사귐은 오래 가지 못하고 끊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장자가 곳곳에 유교를 풍자한 것 중의 하나라도 군자와 소인의 사귐을 구별한 것은 옳다. 이 말은 明心寶鑑(명심보감)에도 인용됐다. 交友(교우)편에 이익만 앞세우지 말고 오래 겪어봐야 한다는 명언이 많은데 두 가지만 더 인용한다.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흘러야 사람 마음을 알 수 있다(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 노요지마력 일구견인심)’, ‘술자리서 형 동생 하는 친구는 많으나, 위급할 때 도움을 줄 친구는 없다(酒食兄弟千個有 急難之朋一個無/ 주식형제천개유 급난지붕일개무).’ 旬五志(순오지)의 속담도 있다. ‘그릇은 새것이 좋고, 사람은 옛 친구가 좋다(器非求新 人惟求舊/ 기비구신 인유구구).’/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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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14
모수자천毛遂自薦 – 모수라는 사람이 자신을 추천하다.

모수자천(毛遂自薦) – 모수라는 사람이 자신을 추천하다.

털 모(毛/0) 드디어 수(辶/9) 스스로 자(自/0) 천거할 천(艹/13)

보통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나서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속이 찬 사람이라도 잘난 체 하면 ‘제 코도 못 씻는 게 남의 부뚜막 걱정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꼭 나온다. 그래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싶더라도 뒤로 빠진 채 남에게 미루는 일이 많아 ‘제가 춤추고 싶어서 동서를 권한다’는 속담이 남았다.

하지만 아주 가끔 ‘제 팔 제가 흔들기’란 속언이 있듯 만류를 무릅쓰고 자기가 앞장서서 일 처리를 나서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이 이룩한 일을 보고는 뒤늦게 평가하는 것이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주인에게 스스로 추천한 사람의 원조는 毛遂(모수)라 이런 성어가 전한다. 그는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趙(조)나라에 살았던 平原君(평원군)의 식객이었다. 각 제후국에서는 지혜와 술수를 갖춘 빈객들을 수천 명씩 거느렸는데 평원군도 戰國四公子(전국사공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다른 세 사람은 유명한 齊(제)나라의 孟嘗君(맹상군), 魏(위)의 信陵君(신릉군), 楚(초)의 春申君(춘신군)이다. 조나라 惠文王(혜문왕)의 동생이었던 평원군은 이름이 勝(승)으로 세 번이나 재상에 오를 만큼 빈객들의 지혜로 능력을 발휘했다.

당시의 강국 秦(진)나라가 조의 도읍 邯鄲(한단, 邯은 조나라서울 한, 鄲은 한단 단)을 포위하자 조왕은 평원군을 시켜 楚(초)나라에 합종하도록 명했다. 평원군은 식객들 중에서 문무에 정통한 20명을 골라 데리고 가려 했다.

19명을 쉽게 고르고서 적당한 1명을 찾지 못해 고심할 때 모수라는 사람이 자청했다. ‘한 사람이 부족하면 원컨대 저를 수행원으로 데려가 주십시오(今少一人 願君卽以遂備員而行矣/ 금소일인 원군즉이수비원이행의)’. 그는 문하에 온지 3년이나 되었어도 별다른 재주를 보이지 못한 터라 평원군은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모수는 송곳이라도 주머니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뛰어날 기회가 없었다며 합류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囊中之錐(낭중지추)라는 고사도 여기서 나왔다. ‘史記(사기)’ 평원군열전에 실려 있다.

후일담은 어떻게 됐을까. 모수는 다른 19명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 초왕과 직접 담판하여 합종을 성사시켰다. 평원군은 귀국한 뒤 상객으로 대접했다. 이처럼 모수는 자신을 천거하여 어려운 일을 스스로 맡아 나선 격이니 제 팔을 잘 흔들었다. 그러나 낄 때나 빠질 때나 일의 전후도 모르고 나서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차츰 의미가 변질되기도 했으니 조심해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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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15
나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나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마음속에서 큰 소리로

세상을 향하여 외쳐보십시오

"나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삶에 큰 기대감을 갖고 살아가면

희망과 기쁨이 날마다 샘솟듯 넘치고

다가오는 모든 문을 하나씩 열어가면

삶에는 리듬감이 넘쳐납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 중에서 단 한 사람도

필요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 희망을 주기 위하여

세상에 사랑을 주기 위하여

세상에 나눔을 주기 위하여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달라지고

새롭게 변 할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까

나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밝아질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자신을 향하여 세상을 향하여

가장 큰 소리로 외쳐보십시오

"나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 용혜원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547.html
kolaswqetsrq 11.02 12:16
예쁜 마음

예쁜 마음

귀에 들린다고 생각에 담지 말고

눈에 보인다고 마음에 담지 마라.

담아서 상처가 되는 것은 흘려버리고

담아서 더러워지는 것은 쳐다보지 마라.

좋은 것만 마음에 가져올 수 없지만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은 지워버려라.

귀에 거슬린다고 귀를 막아버리지 말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눈을 감지 마라.

귀를 열어 놓아야 노래를 부를 수 있고

눈을 뜨고 있어야 예쁜 것들을 마음에 가져올 수 있으리라.

세상에는 슬픈 일보다

기쁜 일이 더 많기에 웃으면서 사는 것이다.

 "
-아름다운 나무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672.html
kolaswqetsrq 11.02 12:16
사람의 관계란

사람의 관계란

사람의 관계란

우연히 만나 관심을 가지면

인연이 되고

공을 들이면 필연이 됩니다

3번 만나면 관심이 생기고

5번 만나면 마음의 문이 열리고

7번 만나야 친밀감이 생깁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으로 만나

착한 사람으로 헤어져

그리운 사람으로 남아야 합니다

사람은 만나봐야 그 사람을 알고

사랑은 나눠봐야 그 사랑의

진실을 알 수 있다

꼭 쥐고 있어야 내 것이 되는

인연은 진짜 내 인연이 아닙니다

잠깐 놓았는데도 내 곁에 머무는

사람이 진짜 내 사람입니다

얼굴이 먼저 떠오르면 보고 싶은 사람

이름이 먼저 떠오르면 잊을 수 없는 사람

눈을 감고 생각나는 사람은 그리운 사람

눈을 뜨고도 생각나는 사람은 아픔을 주는 사람

외로움은 누군가가 채워줄 수 있지만

그리움은 그 사람이 아니면

채울 수가 없다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면

늘 배려해 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면 시간의 흐름속에

잊히지 않는 소중한 인연으로 남을 겁니다

 "
-사람과 사람 사이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701.html
kolaswqetsrq 11.02 12:17
건강한 삶의 20가지 수칙

건강한 삶의 20가지 수칙

1.영양,휴식,운동의 3박자가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어야 건강하다.

2.평소 우리 생활 중 참으로 사소한 일들이 쌓여 습관이 되고 잘못된 생활습관이 몸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병을 만든다.

 "
3.생활 전반에 걸쳐 작은 생활습관을 다듬어나아가는 트라밍을 통해 삶의 균형을 회복하고 건강해질 수 있다.
",

 "
4.트라밍이란 쓸데없는 가지를 치듯이 내 몸을 다듬는 활동을 말한다.
",

5.잘못된 생활습관이 가장 큰 사망원인이다. 사망원인의 50%는 잘못된 생활습관이며 생활환경이 25%,유전전 체질적 요인은 20%도 채 안 된다.

6.40대는 방어체력이 약해지기 시작하여 생활습관이 가장 고약해지는 나이다.

7.면역의 주력부대는 장내세균이 맡는다. 장내 유해균이 증가하면 노화를 촉진한다.

8.교감신경 우위의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면 몸은 정상한계치에 이른다.뱃살은 정상한계치에 이른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다.

9.40대를 위협하는 비만과 대사증후군부터 벗어나자. 잊지마라. 소식다동!

10.토탈 트리밍으로 아름다움,군더더기 없는 몸매,건강을 고루 갖춘 건강체를 만들 수 있다.

11.속이 아름다우면 겉도 아름다워진다. 속부터 아름다워지는 이너뷰티를 가꾸자.

12.생기 있고 밝은 얼굴,날렵하고 탱탱한 몸매는 건강의 바로미터이다. 슬림 작전이 필요하다.

13.허리둘레 5cm 줄이기는 정상한계치에 이른 중년의 몸을 가장 쉽게 변화시킬수 있는 1차 목표다.

14.터닝포인트에 이른 당신,젊은 날처럼 방방 뛰어선 안 된다.순간적인 불꽃 같은 순발력이 아닌 여유로운 지구력이 필요하다.

15. 마음이 움직이면 몸이 움직이고 몸을 움직이면 습관이 된다.마음,즉 뇌를 관리하는 것이 몸을 관리하는 것이다.

15.식습관,운동습관 등은 모두 마음,뇌의 습관이다.뇌의 원리를 통해 쉽고,즐겁게 건강습관을 시작해보자.

16.작은 계획을 점진적으로 실천해서 습관화해야 뇌가 반발하지 않는다.뇌가 반발하면 잘못된 습관의 개선은 요원하다.

17.뇌는 새로운 걸 배우려는 학습본능이 강하며 창조적 자극을 좋아한다.새로운 시도가 있는 창조적 삶을 가꾸되 기쁘게 즐겁게 해야 한다.그래야 지속성이 생기고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18.잠재의식을 활용하면 우리 몸은 좋은 쪽으로 저절로 따라간다.

19.생활에 리듬습관을 들이자. 사람은 자연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자.100세 장수자 중에 야행생활자는 드물다.

 "
20.식습관의 모토는 맛있게,건강하게,푸짐하게 즐기는 것이다.푸짐하게 먹으란 것은 무조건 많이 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만복보다 만족감을 느껴야 한다.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0_26.html
kolaswqetsrq 11.02 12:18
부부가 함께 넘어야할 일곱고개

부부가 함께 넘어야할 일곱고개

첫째 고개는

환상의 고개로 신혼부터 3년 쯤에

갖가지 어려움을 비몽사몽 간에

울고 웃으며 넘는

" 눈물 고개 "

둘째 고개는

타협의 고개로 결혼후 3~7년 동안에

서로에게 드러난 단점들을

타협하는 마음으로 위험한 권태기를 넘는

" 진땀 나는 고개"

셋째 고개는

투쟁의 고개로 결혼후 5~10년을 사는동안

진짜 상대방을 알고 난 다음

피차가 자신과 투쟁하며 상대를 포용하는

현기증 나는

" 비몽 고개 "

넷째 고개는

결단의 고개로 결혼후 10~15년 지나면서

상대방의 장. 단점 을 인정하고

보조를 맞춰가는 돌고도는

" 헛바퀴 고개 "

다섯째 고개는

따로 고개로 결혼후 15~20년 사이에

생기는 병으로

함께 살면서 정신적으로 별거나

이혼한 것처럼

따로따로 자기 삶을 체념하며 넘는

" 아리랑 고개"

여섯째 고개는

통일 고개로 결혼후 20 년이 지나면

과거에 있었던 모든것을 덮고

새로운 헌신과 책임을 가지고

상대방을 위해 남은생을 바치며 사는

" 내리막 고개 "

일곱째 고개는

자유의 고개로 결혼후 30년이 지나면

완숙의 단계로 노력하지 않아도

눈치로 이해하며

행복을 나누는

" 천당 고개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562.html
kolaswqetsrq 11.02 12:19
포도의 효능

포도의 효능

1. 포도당 다량 함유

1) 인슐린 대체 역할

2) 동화능력이 탁월(피로, 활력, 원기 회복)

3) 포도당 연소 활발(단백질 조절 효과)

2. 비타민 A, B1, B2, C, E, P 등 함유

1) 강력한 산화 방지제(비타민 A, C, E)

2) 비타민 B1 - 신경 안정제

3) 비타민 B2 - 면역체계 강화

4) 면역성 강화, 세포 재생, 각종 염증에 탁월한 효능

3. 포도의 과질산과 염류는 체내 산성증을 억제, 개선한다.

1) 유기산, 능금산, 구연산, 주석산 함유

2) 칼륨, 나트륨, 칼슘, 인, 철 같은 염류 함유

(알카리화 작용, 산성 억제, 이뇨제, 강장제 역할)

4. 포도는 효소 작용이 탁월함

1) 소화기능 정상 유지

2) 피부를 아름답게 하고 세포의 생성, 새 조직 형성을 가속화 시킴

5. 포도는 완벽한 평형 상태 유지

1) 잘 섞이지 않는다.

2) 소독과 치유의 역할(건포도, 냉동포도)

3) 류마티스성 질병 주범인 산성증에 탁월한 해독제다.

6. 포도는 정혈작용이 탁월함

1)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정화제다. (완전한 건강은 완전한 혈액순환에서 온다)

2) 정혈작용, 독소 제거

3) 암 - 피가 정화되면 어떠한 병도 근본적으로 치유된다.

7. 치료 효과를 가장 빠르게 진행시킴

1) 포도당이 매우 빠르게 흡수되어 에너지로 전환됨

2) T 임파구 생산 강화(흉선 축소 억제) 젊음을 유지하는 최적의 비결

8. 20여종의 지방산 함유

1) 리놀레산, 리놀렌산, 아라카드산, 올렌산, 파밀트산 등이 들어 있다.

2) 이러한 지방산들은 종양을 녹이고 콜레스테롤을 조절하여

혈관을 부드럽게 하고 혈압 조절, 자율신경계 조절, DNA 합성에 기여함

9. 함암성분 함유

1) 레스메라트롤 화학물질 다량 함유 - 암 억제작용(과학전문지 사이언스 보도)

2) 파이토알렉신 함유 - 스트레스 억제와 항독성 물질을 배출함

3) 항암 작용 - 동물 실험 결과 68~98% 암세포 감소

4) 혈액암(백혈병) 세포생산 중단, 정상세포로 전환함

10. 약 효능을 향상시킴

1) 과다 약물 복용으로 간을 상하게 할 때 피해감소

2) 장내 분비되는 약효 감소, 효소활동 억제 작용

3) 인체에 유입된 독소에 화학변화를 일으켜 중화시킴

11. 심장병을 예방

1) 포도 특유의 식물성 색소(플라보노이드) 성분이 혈전 생성을 억제하여 심장병을 예방함

(혈액을 묽게하여 순환작용을 원활하게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715.html
kolaswqetsrq 11.02 12:20
오늘의 명언

오늘의 명언

바람을 마주보고 맞으면 역풍이지만

뒤돌아서서 맞으면 순풍이 됩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뀝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이 바뀌고

상대가 바뀌기를 원합니다.

- 잭 웰치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863.html
kolaswqetsrq 11.02 12:21
◇ 암과 걷기 와 등산

◇ 암과 걷기 와 등산

사람의 면역세포는 밤에 활동합니다. 인간의 몸은 스스로 손상된 세포를 탈락 시키고 새로운 세포를 생성하여 돌연변이가 생기는 것을 방어합니다. 이 과정은 잠을 자면서 전개되고 이 활동이 가장 활발해지는 시간대가 새벽 1~ 2시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엔 반드시 잠에 들어 있어야 합니다. ‘저녁 11시 이전엔 잠자리에 들 것’을 권합니다. 20년간 종양과 싸우며 말기 암환자 2만명을 진료한 서울대학병원 김 박사는 암을 극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의 하나로 ‘잠’을 꼽았다.

김박사는 보약을 지어 주거나 여타 질병을 치료해주는 일반 한의사와 달리 ‘암’ 하나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21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가 ‘수면과 암’에 대해 말을 이었다.

“수면은 ‘암’에 영향을 미칩니다. 암 중에서도 특히 유방암이 수면과 관계가 깊은데요, 젊은 여성에게 유방암이 생겼다면 십중팔구 늦게 자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일찍 잠들기가 쉽지 않다. 네온사인이 밤새도록 돌아가고, TV 등으로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방법은 낮에 "햇빛"을 많이 쬐는 것입니다. 수면을 주관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뇌의 송과체에서 분비됩니다. 그런데 송과체는 낮에 햇빛을 많이 받아야 활동이 왕성해 집니다.

그리고 멜라토닌은 암세포를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낮에 햇빛을 쬐면서 운동을 하면 항암효과와 숙면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다. 이것은 그 어떤 약이나 주사보다 효과가좋다.”

김 박사는 ‘낮에 햇빛을 받으며 하는 효과적인 운동’으로 걷기"등산"을 꼽았다. “암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선 암세포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암세포는 태아세포다. 아주 빠르게 분열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리고 저산소 세포다. 그래서 산소 공급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도 대사가 이뤄집니다. 그리고 40도가량의 열에 취약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현대 의학은 이런 특성을 이용해 간암에 고주파 (열)치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용부담 없이, 신체에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손쉽게 체온을 상승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게 바로 걷기 와 등산입니다.”

김 박사는 “몸을 튼튼 하게 하는 근본적인 건강법은 신체를 많이 움직여서 체내에 산소를 풍부하게 하는 것” 이다. “병 치료에 산소가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수술이든 항암제든 방사선이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반드시 신체에 산소 공급을 원활하게 해야 합니다. 특히 암세포는 체내에 산소가 부족할 때 생겨납니다. 따라서 암 환자는 항상 풍부한 산소를 공급해 줘야 하는데. 걷는것 과 등산은 이 점에서 탁월한 효과를 준다.

또 걷기 와 등산을 하면 체내 온도가 높아져 온 몸 에서 땀이 흘러 나옵니다. 게다가 평평한 아스팔트 보다 흙을 밟으며 걷는 산행을 통해 정신적 안정을 취할 수 있고. 삼림욕의 효과도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1석 4조인 셈이죠.”

김 박사의 암의 특성에 관한 이야기 ;

 "
“암 세포는 이성단백질’ 이라 불리는 일종의 독성물질을 뿜어냅니다. 그러면 체내의 면역 세포가 이걸 찾아내 공격을 가합니다.
",
이 기능을 강화시켜주면 돌연변이 세포를 제거 하는 신체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이런 역할을 강화해주는 가장 좋은 식품이 \물"입니다. 물은 체내의 나쁜 요소를 씻어내고 정화하는 데 탁월한 역할을 합니다.

성인 남자의 경우 하루 2리터 가량의 물을 마시는 것을 강추! 합니다.”

*건강요점 : 걷기,잠, 햇빛, 등산, 물

*아무리 건강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도 일장춘몽이기에 죽음 앞에 설 때는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268.html
kolaswqetsrq 11.02 12:22
◇누가 버린 꽃을 꽂았을 뿐인데..

◇누가 버린 꽃을 꽂았을 뿐인데..

어느 기업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회사 건물에는 층마다 청소하는 미화원이 따로 있는데, 11층 할머니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항상 싱글벙글 미소를 짓습니다.

11층 화장실에 가면 늘 꽃향기가 가득합니다. 할머니가 꽃을 꽂아두기 때문입니다.

기업 특성상 행사가 많고, 행사 후 버려지는 꽃들이 많은데, 할머니가 그중에 싱싱한 꽃들을 잘 간추려서 화병에 꽂아두는 것입니다.

화장실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꽃향기를 맡고는 아, 이게 무슨 향기지 하며 반가워 합니다.

삭막한 화장실 구석이 마치 갤러리 처럼 변했습니다.

그동안 미화원이 숱하게 바뀌었지만, 하루 하루 바삐 지내는 회사 사람들은 어떤 직원이 바뀌는지 관심 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할머니가 바뀐다고 하니 모두 아쉬워 했습니다.

그러던 중 11층 직원들과 사장이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습니다. 사장이 “건의할 것 있으면 말씀 하세요"라고 하자 직원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 11층 미화원은 바꾸지 말아 주십시오. 옆에 있던 다른 직원도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11층 미화원 할머니 정말 좋습니다.” 라고 많은 직원들은 사장님께 그렇게 건의를 하였고 미화원 할머니는 우수 직원으로 뽑혔습니다.

회의 때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할머니는 “누가 버린 꽃을 가져다 꽂은 것뿐인데... ” 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 그 일을 즐겁게, 감사한 마음으로 하는사람, 그런 사람이 꼭 필요한 사람, 없으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BAND 글 옮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278.html
kolaswqetsrq 11.02 12:23
◇ 피를 해독하는 4가지 방법

◇ 피를 해독하는 4가지 방법

1. 아침저녁으로 들기름 한스푼!

들기름은 오메가3의 비울이 60%로 혈액순환 개선과 두뇌 활동 촉진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혈관 속 독소 제거와 노화 예방에 탁월한데요. 들기름은 열에 약하기 때문에 생으로 드시거나 요리 후 마지막에 살짝 뿌려 향과 맛을 내면 좋습니다.

하지만 들기름의 약점은 산패인데요. 산패되면 오히려 독이 되기 때문에 산패를 막기 위해서는 저온 압착된 들기름을 구입해 8:2(들기름:참기름) 비율로 참기름과 섞거나 빛이 통하지 않는 용기에 넣어 냉장보관하면 됩니다.

※산패: 들기름을 공기속에 오래 방치해 두었을때 산성이 되어 불쾌한 냄새가 나고. 맛이 나빠지거나 빛깔이 변하는 일.

2. 아침에 한잔! 청혈주스 마시기

청혈주스는 지방분해에 효과적인 양파와 생강이 피를 맑게 해주고 채소와 과일은 장 기능을 활성화 시켜주며 갈아서 마시기 때분에 흡수율이 높습니다

● 청혈주스 만드는 법

재료: 당근400그램. 사과200그램. 귤100그램. 양파10그램 생강즙10그램--귤이 없을 경우 오렌지, 딸기, 자몽, 포도, 키위등으로 대체할수 있어요

a 재료를 모두 깨끗하게 씻은후 물기를 뺀다.

b 믹서기나 원액기에 사과, 오렌지, 당근, 양파 순서대로 넣어 간다.

c 먹기 좋게 컵에 담아 준다

-원액기를 사용하면 건더기 없이 원액만을 섭취할 수 있다.

-양파, 생강의 향이 너무 강하게 느껴질 경우 재료를 살짝 데치거나 볶는다.

※청혈주스 Tip!!!

1 위장이 약하거나 열이 많은 경우 양파와 생강의 약성때문에 통증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스를 제조할 때 생강 양파의 양은 절반으로 줄여줍니다.

2 고혈압 약을 먹는 환자의 경우, 귤 대신 넣으라고 작은 포도와 자몽은 피합니다.

3 평소 수분이 부족한 사람이 마시면 피를 맑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4 생강은 따뜻한 성질을 가진 뿌리채소이므로 열이 많은 체질은 껍질째 먹는 것이 좋습니다.

●해독주소와 청혈주스의 차이점

#청혈주스 는 피 해독작요이 놓은 음료로 수용성 비타민기름을 분해하는 생강과 양파를 섭취하기 때문에 배변 활동이 원활해지고 혈관의 기름때를 제거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해독주스 는 체내 흡수율을 높여 식이 섬유 섭취가 가능하고 체내 면역력을 상승시키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3. 하루 20분 이상 햇볕 쬐며 걷기!

햇볕을 쬐면 체온이 상승하고 면역기능이 향상되어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 또 비타민 D가 생성되어 심장병과 뇌경색을 예방해 줍니다. 운동을 통해 근육을 발달시키면 근육 속 미토콘드리아가 독소를 제거해주고 그 기능이 향상됩니다.

또한, 20분 이상 땀이날 정도로 발바닥 경혁을 자극해주면 혈액 순환 개선으로 독소가 배출, 숙면을 돕고 피로를 풀어주기 때문에 좋습니다.

4. 낮은 베개,베개만 바꿔도 피 해독이 된다!

혈액이 해독되는 시간은 바로 수면 시간입니다.

피 해독을 위해선 머리,심장, 발이 같은 높이를 유지해야 하는데 높은 베개는 그렇지 못합니다. 7cm정도로 높으가 낮고 굴곡이 있고 조금 딱딱한 베개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베개를 이용하 머리와 목을 마사지해 주는데요.

자기전 딱딱한 베개에 누워 머리를 상하좌우로 움직여 머리와 목의 혈을 마사지해주면 뇌혈류의 흐름이 원활해져 피로가 감소하고 숙면을 유지하게 해줍니다. 만약 딱딱한 베개가 힘드시다면 베개를 이 운동을 30분 동안하고 잠을 잘 때는 평소 사용하는 베개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물론 평소 사용하는 베개도 낮은 베개를 사용하시는게 더 좋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더 건강하게아픈사람은 병을 고쳐주는 피 해독주스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4_21.html
kolaswqetsrq 11.02 12:24
■ 불교에 호의적이었던 조선 왕

■ 불교에 호의적이었던 조선 왕

조선은 사대부가 세운 나라로 유교가 기본이념인 국가이다.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을 기본으로 하였기 때문에 불교는 내내 억눌려 있었지만, 왕의 성향이나 사정에 따라 기복(起伏)이 있었다. 테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불교에 어느 정도 관대했지만, 태종이 즉위하면서 도첩제(度牒制:승려가 출가했을 때 국가가 허가증을 발급하여 신분을 공인해 주던 제도)를 엄하게 시행하여 많은 승려들을 환속시키고, 사찰의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고, 왕사(王師)·국사(國師) 제도도 폐지했다. 왕릉 근처에 죽은 왕의 명복을 빌고 재(齎)를 올리는 원찰(願刹)을 짓는 것도 금지했다. 그러다가 세종 후기부터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세종은 48세에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을 잃고, 이듬해에 일곱째 아들 평원대군마저 잃었다. 그 이듬해에는 금슬 좋던 소헌왕후와 사별하게 된 대다가 건강마저 악화되자,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불교에 마음을 기울이게 되었다. 경복궁 안에 내불당(內佛堂)을 두었더니 유생들의 반대가 빗발쳤다. 세종은 수랏상을 물리는 철선(撤膳)으로 단식투쟁을 하고 넷째 아들 임영대군 집으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하였지만 유생들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자, 결국 왕위를 내어놓겠다고 협박하여 반대를 무마할 수 있었다.

세조는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김종서, 황보인을 죽이고 노산군(魯山君:단종)을 죽이는 등 손에 많은 피를 묻혔다. 야사(野史)에 의하면, 세조가 상왕(上王: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하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 보내고 난 다음 날 낮잠을 자는데, 형수이자 노산군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씨 귀신이 꿈에 나타나 “네가 내 아들을 죽이려고 하니 내가 네 아들부터 데려가야겠다.” 하면서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런데 깨어나 보니 얼굴에 종기가 나기 시작했다. 화가 난 세조는 곧 현덕왕후를 서인(庶人)으로 폐하고, 능은 파헤쳐 관을 사흘 동안 버려두었다가 물가에다 다시 묻게 하였다. 그런데 실제로 현덕왕후의 저주가 왕세자에게 뻗쳤는지, 세자가 병을 앓게 되자 승려 20여명을 불러들여 경회루 아래에서 재를 올리게 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왕세자는 스무 살의 나이로 요절하고, 세조는 부스럼으로 죽을 때까지 고생을 겪게 되었다.

세조는 자신의 업보를 어떻게 해서든지 씻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의 탑골공원 자리에 원각사를 짓고 불경을 간행하게 하였으며, 자신은 오대산 상원사, 양양 낙산사, 금강산 건봉사 등을 전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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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312.html
kolaswqetsrq 11.02 12:25
■ 태종과 영조의 세자교육법

■ 태종과 영조의 세자교육법

두 임금은 장자(長子)를 세자로 삼았지만, 그 세자들이 문제가 많아 속을 엄청 썩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세자를 대하는 방법은 아주 달랐다. 둘 다 폐세자(廢世子)를 하기는 했지만, 폐세자 후 세자에 대한 대처방법도 달랐고 두 세자의 운명도 달랐다.

태종은 정실 소생으로서 어려서부터 무인기질이 있었고 항상 자신감에 넘쳐있었다. 언제든지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신만만한 스타일이었지만,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형제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는 흠이 있었다.

이에 비해 영조는 천민 무수리 아들로서 출생에 치명적인 약점과 열등감이 있었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노론 덕택에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선왕이자 이복형이었던 경종 독살설의 주모자로 의심을 받았다. 그래서 즉위 초 영조는 소심했고 흠을 잡히지 않기 위해 몸가짐을 올바르게 하면서 신하들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할 상황이었다.

태종의 인생을 살펴보면 과감하고 냉정하며 그리고 철두철미했다. 그리고 왕권도 조선의 전(全) 시대를 통틀어 가장 강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는 조금 약했던 거 같다. 양녕대군이 그렇게 심하게 말썽을 피워도 크게 혼내지 않고 많이 참아주고 지켜 봐주는 편이었다. 태종보다는 유교 성리학에 빠진 신하들이 더 받아들이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폐세자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태종은 자기가 걸었던 골육상쟁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장자인 양녕대군을 끝까지 보호하고 지켜주고 싶어했다. 그러나 양녕대군 스스로가 왕위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 스스로 세자 자리를 물러났다. 태종은 세자에서 물러나 지방으로 내려가는 양녕대군에게 충분한 노비를 주고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도록 조치를 취해주었다. 덕분에 양녕대군은 당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를 누리면서 천수를 다 채우고 죽었다.

영조는 원래부터 학문을 좋아한 호학(好學)군주였지만, 성격이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였고 사람을 한번 미워하면 끝까지 미워하는 편집증적인 병세도 보인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어려서 총명하게 공부에 열중할 때는 너무나도 예뻐했지만, 세자가 커면서 공부보다는 무예나 유흥을 더 즐기자 세자를 미워하는 것이 도를 넘어 벌레 보듯이 대했다. 영조의 편집증적인 지독한 미움과 증오에 시달린 사도세자는 급기야 정신이상증세 까지 보이다가 마침내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굶어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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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591.html
kolaswqetsrq 11.02 12:26
■ 왕자의 난, 기록과 진실

■ 왕자의 난, 기록과 진실

실록은 왕자의 난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정도전 등이 임금의 병을 핑계로 왕자들을 대궐로 불러들인 다음 궁궐노비, 갑사 등을 동원하여 공격하고 자신들도 밖에서 응하기로 계획하였다.(중략)..........이윽고 왕자들이 궁궐 앞에 이르렀는데, 이방원은 궁문 앞에 불이 켜져 있지 않은 것으로 위험한 형세를 짐작하고, 집으로 돌아와 이숙번, 조영무 등 40여 명을 무장시켜 광화문 앞으로 내달았는데, 세자가 이방원 등의 군세에 놀라 전의를 상실하였다.(중략)........... 당시 정도전 등은 남은의 첩 집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방원 등이 찾아가 집에 불을 지르고, 울며 살려주기를 구하는 정도전을 그 자리에서 참하였다. 이방원은 정도전파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신하들을 죽이고, 이성계에게 ‘정도전 등이 반역을 꾀해 왕자와 종친들을 죽이려 하여 부득이 이들을 죽였다’는 보고를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야말로 승자(勝者)의 기록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정도전이라 해도 임금의 허락 없이 어떻게 왕자들을 모조리 죽일 생각을 할 수 있었겠으며, 왕자들을 죽이려고 궁으로 부른 정도전 등이 남은의 첩 집에서 놀고 있었다는 것은 또 무엇이며, 이방원이 40명으로 정도전과 궁궐의 관병을 모두 제압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이방원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은 이방원이 하륜 등 참모와 상의하여 철저한 준비를 했고, 이성계가 병환으로 누워 있는 때에 맞추어(이성계가 누워있지 않고 직접 진압에 나섰다면 이방원의 난은 성공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일으킨 쿠데타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방원은 결국 이날 밤 정도전 등 무수한 이성계의 신하들을 죽였고, 세자를 비롯한 이성계의 전처소생 아들 두 명과 사위까지 모조리 척살(刺殺)하는 등 쿠데타를 확실하게 성공시켰다. 이로써 이성계와 정도전의 모든 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이성계는 이방원의 쿠데타로 하룻밤 사이에 평생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 평생에 걸쳐 이루어 놓은 지위와 명예, 자부심까지 모조리 잃고 말았다. 그것도 아들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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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27
■ 태종과 하륜 3편

■ 태종과 하륜 3편

하륜이 나이 어린 이방원의 참모 역할을 하면서도 쩔쩔맬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방원의 능력에 대한 고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고려 말에 문과 과거시험에 급제하고 ‘왕자의 난’이란 쿠데타를 지휘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방원은 선비와 무장의 자질을 골고루 갖춘 인물이었다. 또 이방원은 상당히 잔혹하고 과격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정몽주를 적시(適時)에 암살함으로써 이성계 세력을 보호하고 조선 건국을 가능하게 했다.

이방원은 기획력과 추진력도 갖춘 인물로, 참모가 없어도 상당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륜이 이방원의 눈치를 살핀 데는 그런 점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륜은 자기보다 어리지만 자기 못지않게 유능한 주군을 모시려면 허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방원이 하륜을 끝까지 비호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이방원은 하륜이 고려를 지키려 했다가 조선으로 얼른 돌아선 의리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았고, 또 그가 온갖 부정부패로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다는 것도 잘 알았다.

하지만, 이방원 자신이 건재한 동안에는 하륜이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하륜을 끝까지 살려주면서 최대한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하륜은 이성계-정도전이 구축한 조선왕조의 기틀을 허물고 이방원과 함께 새롭게 기틀을 세운 인물이다. 새롭게 세운 기틀의 상당부분은 정도전의 구상을 모방한 것도 있지만, 하륜의 기여도도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적지 않은 역할을 했는데도 하륜이 후세의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한 것은 그가 시대적인 소명을 고민하기보다는 일신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보신(保身)형의 참모였기 때문이다. 그의 뛰어난 능력은 그러한 그의 비굴한(?) 처세 때문에 상당 부분 빛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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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27
■ 태종과 하륜 2편

■ 태종과 하륜 2편

하륜은 태종 집권기인 1414년에는 육조 직계제를 신설했다. 의정부 산하의 6개 행정부서의 수장인 판서들이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주상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한 이 제도는 왕권을 한층 더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태종시대에 단행된 네 차례의 정부조직 개편 중에서 세 차례를 하륜이 주도한 사실에서도, 그가 태종의 왕권 강화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가 드러난다.

하륜은 이성계의 참모인 정도전과 정반대로 왕권을 극대화하는 데에 치중했다. 정도전이 재상의 정치적 주도권을 관철시키려 한 것과 달리, 하륜은 이방원의 뜻대로 국왕의 정치적 주도권을 관찰시키는 데 주력했다.

또 하나의 비결은, 그는 자신의 의견이 주군의 의견과 충돌할 경우에는 주군의 생각을 바꾸기보다는 자기의 생각을 바꾸는 스타일이었다. 하륜은 자신의 책략이나 제안이 이방원의 비위에 맞을 때까지 계속해서 수정해서 의견을 내놓았다.

하륜과 이방원의 관계는, 만약 이방원이 열아홉 살 많았다면 자연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하륜이 열아홉 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륜이 이방원을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모셨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국왕이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해도 일반적으로 참모들이 왕의 스승 같은 존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륜의 태도는 얼른 이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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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세습적인 왕들 중에는 무능한 사람들도 있으므로, 훌륭한 재상이 왕을 보좌해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재상이 이끌어가는 대로 왕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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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서거정이 왕명으로 편찬한 문집인 <동문선>에 실린 하륜의 글에 따르면, 하륜은 군주가 위에 있고 재상이 아래에 있는 상태에서 서로가 잘 협조하는 것을 이상적인 군신관계로 인식했다. 군신 간의 협조를 강조하면서도 군주 쪽에 힘을 실어주었던 것이다. 그는 참모는 군주의 의중을 잘 헤아리고 군주의 의지를 실천해야 한다 고 믿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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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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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28
■ 태종과 하륜 1편

■ 태종과 하륜 1편

하륜은 고려 말 개혁파 신진사대부의 일원으로 역사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보수파의 수장인 이인임의 조카사위가 되면서 개혁·보수 양대 세력과 동시에 어울리며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는 고려왕조 하에서도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성계의 왕조 창업에는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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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 조선이 세워지자 하륜은 정치무대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려 멸망 직전에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과 맺어둔 인연이 유리하게 작용한 덕분에, 그는 조선 건국 이듬해 정치무대에 복귀하여 이방원의 참모로 활약하게 된다. 관상학에 조예가 깊은 그는 고려 멸망 직전에 열아홉 살 연하의 이방원에게 코와 이마에서 제왕의 기운이 흐른다 는 점을 확신시켜준 적이 있었다. 이것이 이방원과의 인연을 만드는 발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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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에 복귀한 하륜은 1398년에 이방원과 함께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성계-정도전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다. 그때부터 1416년에 사망할 때까지 하륜은 태종 정권 하에서 영의정을 네 번이나 역임할 정도로 부귀영화와 권력을 양 손에 쥐고 있었다. 숱한 부정부패 스캔들에 휘말리면서도 끝끝내 신변과 명예를 지킨 점으로 볼 때 그가 태종과 얼마나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륜이 이방원의 신임을 얻은 비결은 무엇일까?

하륜은 사전에 주군의 의중을 확인한 뒤에 그에 맞는 국가정책을 수립하는 데 주력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건국 직후까지 도평의사사란 기구가 있었다. 신하들이 모여 국가의 최고정책을 결정하는 이 기구는 왕권을 견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제1차 왕자의 난 직후 정종 때 하륜은 정부조직 개편을 지휘했다. 이때 그는 도평의사사를 의정부로 바꾸면서, 도평의사사가 갖고 있던 군사권을 의정부에 부여하지 않았다. 왕권을 견제하는 최고정책결정 기구의 힘을 약화시킨 이 같은 조치는 곧이어 등장할 태종 정권이 신하들의 간섭을 덜 받으며 강력한 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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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29
■ 이방원 VS 이성계 2편

■ 이방원 VS 이성계 2편

이성계를 가슴 아프게 만든 것은 힘을 잃은 자신의 처지가 아닌, 가족들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일 것이다. 사랑했던 아내 신덕왕후는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병으로 사망하였고, 그녀 사이에서 낳은 2명의 아들들은 모두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했다. 또한 넷째 이방간은 친동생인 이방원과 권력다툼 끝에 겨우 목숨만 건져 유배 보내졌고, 둘째 이방과와 셋째 이방의는 이방원의 눈치를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더군다나 아끼던 사위 이제는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맏딸마저 출가(出家)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태조는 사실상 모든 가족을 잃어버린 셈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이방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조는 점점 이방원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태조는 이방원의 얼굴조차 보기 싫었는지, 자주 외출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때 그는 주로 오대산이나 금강산 등과 같은 유명한 산과 이름난 절을 순행하며 슬픈 마음을 달랬는데, 이를 계기로 불교에 매진했던 것이고, 이후 태조는 옛 기억에 애정이 남아 있었는지, 번번이 개경으로 환도하여 죽은 이방번의 옛 집에서 살겠다고 고집을 피웠다고 한다. 또한 유배 간 이방간을 다시 불러올 것을 명령하기도 하였는데, 이방원에 의해 매번 좌절되자, 이방원에 대한 증오 역시 점점 높아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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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태조의 이러한 행동들은 이방원의 입장에선 상당히 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는 훗날 형인 정종에게 양위를 받아 태종으로 즉위하고, 태조가 태상왕이 되었을 때도 여전했다. 왜냐하면 동생을 죽이고 형을 내쫓고, 아버지를 구박하는 불효자라는 여론이 점차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상당히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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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태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데, 먼저 신료들 앞에서 이에 대해 해명을 함과 동시에 불효자라는 오명을 씻기 위하여 매일 태조에게 문안인사를 드렸고, 성대한 잔치도 열었으며, 본인은 불교를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태조를 위해 불교행사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또한 태조가 외출을 나갔다가 돌아올 때면 직접 마중을 나가기도 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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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30
■ 제 2차 왕자의 난

■ 제 2차 왕자의 난

1차 왕자의 난 당시 태조 이성계는 병석에 있었다. 이성계는 이방원의 쿠데타에 분노했지만 이미 병권을 빼앗겨 어쩔 수 없었다. 이성계는 방석과 방번을 살려준다는 이방원의 약속을 믿고 쿠데타를 용인했다. 그러나 이방원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방석과 방번을 함께 살해했다. 이 때 방석의 나이 17세였다.

제 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일파와 세자 방석을 제거한 이방원은 바로 세자의 자리를 탐하지는 않았다. 이방원은 장자승계의 법칙을 따르기 위해 난을 일으켰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정당화시키려 한다. 그래서 굳이 세자자리를 사양하고 야망이 없고 착하기만 한 둘째 형인 이방과에게 넘겨주었다. 이방원의 이러한 행위에는 자신이 야심이 없다는 것을 신료와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였다. 고려시대에 17살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기도 한 이방원답게 머리를 잘 썼고 기다릴 줄도 알았다. 아비를 치고 아우들을 살해한 주동자로써의 책임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태조이성계는 이방석과 무안군 이방번, 그리고 사위 흥안군 이제의 죽음에 분노하고 충격을 받아 모든 일에 흥미를 잃고 지내다가 왕자의 난 한 달 뒤에 이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주니 그가 곧 정종이다. 태조이성계는 상왕(上王)이 되고, 이방원은 정종이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세제(世弟)가 되어 실권을 잡고 뒤에서 모든 일을 처리한다.

이방원은 자기와 성정이 비슷하며 왕에 대한 야망이 있고 사병도 엇비슷하게 보유하고 있는 넷째 형 이방간과 백성들의 여론이 가장 경계의 대상이었다.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이방원은 어쩔 수 없이 친형 이방간과 전투를 치른다. 그리고 승리한다. 제 2차 왕자의 난이었다. 그리고 2년 후 정종이 바늘방석만 같았던 왕위에서 스스로 내려와 세제 이방원에게 왕위를 전위(傳位)하니, 그가 바로 조선의 3대 왕인 태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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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30
■ 1차 왕자의 난 2편

■ 1차 왕자의 난 2편

이성계에게는 이방우 말고도 7명의 아들이 있었다. 큰아들 이방우의 죽음으로 7명의 아들 모두에게 세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특히 조선건국에 가장 공이 큰 다섯째 이방원은 자신이 세자가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방원에게 있어서 장자(長子)인 이방우는 넘을 수 없는 산이었지만, 이제 그 산이 제거되었으니 당연히 다음 차례는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방우 죽음 이후 세자 책봉 문제가 일어났을 때 배극렴, 조준 등이 이방원의 세자 책봉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때 이방원의 친모 한씨는 이미 죽고 없었고, 계비 강씨가 이성계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계비 강씨 신덕왕후의 의향에 따라 태조 이성계는 무안군 방번을 세자로 세우려고 내정까지 했다. 하지만 정도전, 남은 등 개국 공신들이 방번은 “성격이 광망(狂妄)하고 경솔하다.”고 반대하여 세자 자리를 친동생이자 막내인 방석에게 빼앗겼다.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개국공신들은 왕실 중심의 정부가 아니라 관료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강력한 힘을 보유하면서 삼십대 성인이 훨씬 넘어버린 이방원보다 나이가 가장 어린 방석을 후계자로 선정하려 했다. 신덕왕후 강씨도 자기의 두 아들 중 누가 왕이 되어도 별 상관없는 일이라 순순히 정도전 일파의 말에 따랐다.

그리하여 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방석은 방번의 연년생 아우로 태조의 여덟 째 막내아들이었다. 불과 11세밖에 안 된 나이로 조선의 왕세자로 책봉된 방석은 어머니 강씨의 보살핌과 정도전, 남은 등 개국 공신들의 지원에 힘입어 6년 동안 세자로서의 자질을 익히고 있었다. 그 6년은 이방원에게는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인고(忍苦)의 세월이었다. 이 시기에 정도전은 이방원을 얼마든지 제거 할 수 있었지만 정도전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이방원을 그냥 무시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이 넘치는 그 자신감이 결국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꼴이 되었다.

방석이 세자가 되고 나서 6년이 지나면서 방석 친모인 강씨가 죽고 태조마저 병석에 눕게 되자 세자의 배후 세력은 급속히 약화되었다. 이방원에게 다시 기회가 오고 있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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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31
■ 이방원 2편

■ 이방원 2편

우리나라 역사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 중 한사람으로 태종 이방원을 꼽을 수 있다. 태종보다는 왕이 되기 전의 이름인 이방원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태종 이방원은 과단성과 무자비함 그리고 추진력과 정치력까지 함께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이방원은 25살 때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단숨에 제거함으로써 역성혁명을 완성시켰고, 조선 개국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이방원이 정몽주를 제거하지 않았다면 정몽주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에 의해 이성계와 정도전은 역습을 당해 조선건국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당시 신생국 명도 정몽주를 선호했고, 고려가 계속 유지되길 바라고 있었다. 또 정도전도 귀양가는 중이었고, 이성계는 낙마하여 병석에 누워있었다. 역성혁명 세력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역성혁명 반대파의 거두 정몽주를 단숨에 제거해버리는 과단성있고 무자비한 행동에 의해 상황은 곧 바로 역전되고 조선건국은 이루어 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로 이방원은 이성계와 정도전의 눈에서 벗어난다. 둘 다 이방원을 아주 위험한 인물로 경계하게 된 것이다. 이성계는 정도전이 없었다면 새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고, 이방원의 과단성이 없었다면 조선건국은 이루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도전은 멋진 혁명가나 개혁가일지는 몰라도 무자비하고 냉혹한 권력가는 아니었다. 그게 정도전과 이방원의 승부를 가리는 이유가 되었고 정도전을 죽음으로 이끈 이유이기도 했다.

제1차 왕자의 난 당시 모든 군권과 권력을 손에 쥐고 있던 정도전은 너무도 어이없이 이방원의 기습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방원은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거치고 왕위에 오른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한 왕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을 알면서도 왕실 족보를 정리하고, 외척과 공신 들을 과감히 제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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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32
■ 위대한 기록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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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기록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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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기록한 책이다. 1,707권 1,188 책(약 6,400만자)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이면서 조선시대의 정치, 외교, 경제, 군사, 법률, 통신, 종교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총망라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우수한 역사기록물이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일시에 편찬된 것이 아니라 국왕 사후에 임시로 실록청을 설치하고 전왕대의 실록을 편찬한 것이 대대로 축적되어 이루어진 역사서이다. 실록을 편찬할 때 이용하는 자료는 정부 각 기관의 문서들을 정리한 춘추관시정기(時政記), 전(前)왕이 재위할 때 사관들이 작성한 사초(史草),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의정부등록(議政府謄錄) 일성록(日省錄) 등의 정부 기관의 기록과 개인 문집들이었다.

특히 사초는 사관(史官)이 국가의 모든 회의에 참여하여 보고들은 내용을 적은 것으로, 사관 이외에는 국왕조차도 볼 수 없게 하여 사관의 신분을 보장하고 기록의 객관성과 진실성을 확보하였다. 편찬이 완료된 실록은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에 1부씩 보관하였는데, 조선전기에는 서울에 있던 춘추관과 충주, 성주, 전주사고 등 4대 사고에 보관하였다.

그러나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전주사고본만 남았고, 이를 바탕으로 재출판 하여 춘추관, 태백산, 묘향산, 마니산, 오대산의 5대 사고에 보관하게 된다. 이후에도 보관처는 변동이 있다가 정족산(강화도), 태백산(경북 봉화), 적상산(전북 무주), 오대산(강원 평창)등 네 곳의 사고에 보관하였다. 그 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오대산본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거의 소실되었고, 현재 우리나라에는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이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한 왕조의 역사 기록으로는 가장 긴 시간에 걸쳐서 작성되었고, 가장 풍부하면서도 세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국왕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조선인들의 일상적인 생활상을 자세히 보여 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활자로 인쇄되었고, 보관과 관리에도 만전을 기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여러 번의 큰 전쟁을 거치면서도 보전되어 온 조선왕조실록은 1973년 12월 31일에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10월 1일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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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802.html
kolaswqetsrq 11.02 12:33
■ 정도전이 꿈꾼 이상理想정치

■ 정도전이 꿈꾼 이상(理想)정치

조선건국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 정도전과 이방원이었는데, 건국 후 왜 이방원에 의해 정도전은 잔인하게 살해 되었을까? 정도전이 죽고 난 뒤 사관(史官)은 그를 이렇게 평했다.

『개국할 즈음 가끔 취중에 중얼거리기를 “한 고조가 장량을 쓴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 고조를 썼도다!”라고 했다. 무릇 나라를 세울 적에 그의 꾀를 쓰지 않은 것이 없었다. 큰 업적을 이루어 진실로 으뜸의 공을 세웠다. 그러나 국량이 좁고 시기심이 많았으며, 또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해치고자 했고 묵은 감정을 꼭 갚으려 했다. 매양 임금에게 사람을 죽여 위엄을 세우라고 권했지만 임금은 모두 듣지 않았다.』 《태조실록》 권14, 7년 8월조

앞부분은 정도전의 행적을 나타낸 것이지만, 뒤의 인물평은 다른 역사 기록에 비추어 볼 때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이 분명하다. 태조실록은 정도전을 죽인 이방원이 태종이 되었을 때 쓰여진 것이니 사관이 태종의 비위를 맞추어 썼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관도 인정할 만큼 정도전의 건국 과정에서의 역할은 이성계를 넘어 설 만큼 절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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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이 꿈꾼 나라는 왕조체제를 갖추되 ‘왕’은 상징적 인물로 남아있고, 실질적인 운영은 재상들이 운영하는 재상총재제였다. 정도전은 자신이 지은 조선경국전에 자신의 건국의 이념을 제시하고 정책화하여 재상, 즉 신하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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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의 자질에는 어리석음도 있고 현명함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 같지 않으니, 재상은 국왕의 좋은 점은 순종하고 나쁜 점은 바로 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는 일은 막아서, 임금으로 하여금 대중의 경지에 들게 해야 한다』고 했다.

정도전의 주장은 지금으로 보면 유럽의 입헌군주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조선에는 왕이 재상을 임명하는 시스템이었으므로,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려는 왕 아래서는 정도전이 말하는 재상총재제는 별 의미가 없다. 정도전이 그런 한계를 몰랐을 리 없다. 그래서 정도전은 다루기 쉬운 나이 어린 방석을 세자로 세우고 이성계 사후 전권을 잡고 재상총재제의 기반을 닦으려고 했을 것이다. 정도전의 이상(理想)적인 생각은 기반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대를 너무 앞서 갔다. 그리하여 절대군주권자 이방원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 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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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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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34
■ 정도전의 시대 1편

■ 정도전의 시대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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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의 일곱 번 째 아들인 이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자, 이방원은 엄청난 실망감과 분노에 휩싸였다. 만약 장자상속원칙에 따라 맏형인 이방우가 세자에 책봉되었다면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조선 건국과정에서 수많은 공을 세운 자신이 세자에 책봉되어야 함이 당연한데, 계모인 강씨 소생의 막내아들 이방석이 세자에 책봉되었으니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더구나 당시 세자로 책봉된 이방석의 나이는 겨우 11살이었다. 그러나 이방원은 자신의 분노를 당장 표출하기보다는, 내색하지 않고 철저하게 숨기며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왜냐하면 당시 조선은 정도전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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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는 건국 초기 정도전, 남은, 조준 등 일부의 공신들을 철저히 신임했고, 이 중에서도 정도전에 대한 태조의 신뢰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정도전은 조준과 함께 고려사를 편찬하는가 하면,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알리는 표문을 가지고 직접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정도전은 정치적 능력은 물론이고, 야망도 대단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정도전은 이미 태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태조는 이미 나이가 들었고, 세자 책봉과정에서 이방석을 지지하면서 이방원과 갈등을 빚게 된 상황이라, 만약 태조가 갑자기 병석에 눕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신변이 상당히 위태롭게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도전은 자신의 세력을 뒷받침해줄 또 다른 힘, 즉 군사력이 필요했는데, 원래 무관 출신이 아닌 그의 입장에선 그럴만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또한 당시 무관 출신이 아닌 이상 합법적으로 군사력을 키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반면에 그를 제외한 무관 출신의 공신들이나 이방원과 같은 왕실 종친들은 이미 사병(私兵)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병들은 국가가 아닌 자신의 주인에게만 충성을 바쳤기 때문에, 여차하면 그들의 사병이 정도전의 목을 칠 수 도 있는 상황이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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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35
■ 골육상잔의 서막 2편

■ 골육상잔의 서막 2편

이방원은 아버지 태조를 가장 많이 닮은 인물이기도 했는데, 조선 건국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과단성이나 추진력, 야망은 물론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그의 성향은 오히려 아버지인 태조를 능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개국공신을 포함한 조선의 여러 신하들은 이방원을 꺼려하고 두려워하였으며, 아버지인 태조마저도 이방원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한편, 장남이 세자에 책봉되어야 한다는 원칙대로 한다면 이성계의 장남 이방우가 세자가 되어야 했지만, 이방우는 그 사람됨이 세자가 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방우를 제외한 태조의 아들들 중 가장 임금의 자질과 능력, 그리고 야망을 가지고 있는 이방원이야말로 가장 유력한 세자 후보였다.

이에 태조는 1392년 8월 20일, 공신인 배극렴, 정도전, 조준을 불러들여 세자 책봉에 관한 일을 비밀리에 논의하기 시작했다. 태조의 부름에 달려온 세 공신은 처음에는 나이와 그 공로를 따져 세자를 세울 것을 청했다. 그런데 나이로만 따지면 이방우가 세자가 되어야 하지만 이방우는 술먹기만 좋아하는 인물이라 세자로 책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반대로 공로를 따지면 이방원이 세자가 되어야 하지만 이는 태조가 꺼려하고 있었기에 공신들은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태조는 은근슬쩍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치는데, 그는 현(現) 부인인 강씨 소생의 아들 중에서 세자를 책봉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강씨 소생의 아들인 일곱째 이방번은 세자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인물이었으므로, 남은 것은 막내 이방석 밖에 없었다. 한참동안의 격론이 벌어진 끝에 결국 지친 태조는 타협안을 내게 되는데, 강씨의 소생이자 막내아들인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고 한 것이었다. 이에 태조의 눈치를 보며 장자책봉을 주장하던 공신 배극렴이 적극 찬성하고 나섰다.

태조가 타협안을 제시하고, 배극렴과 정도전까지 동조하고 나서자 이방원의 책봉을 주장하던 조준은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게 되었고, 결국 막내아들 이방석이 1392년 8월 20일, 조선의 첫 번째 세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이방원은 그 누구보다도 크게 실망하고 분노하게 된다. 이로 인해 왕위를 두고 형제끼리 피를 튀기며 싸우는 골육상잔의 서막이 열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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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36
■ 정몽주 2편

■ 정몽주 2편

정몽주는 현실개혁을 도모하되 고려왕조를 유지하면서 고려를 유교국가로 만들어 가려했다. 하지만, 정몽주 쪽에서 보기에 이성계의 세력은 너무 커지고 있었고, 더욱이 정도전, 조준, 남은 등의 신진 세력들은 이성계의 명망을 등에 업고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새 왕조 개창을 추진하려 하였던 것이다. 정몽주는 먼저 손을 쓰기로 했다. 정몽주에게 그런 기회가 왔다. 1392년 세자가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성계는 세자를 마중하러 황주로 가는 길에 해주에서 사냥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부상을 당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정몽주는 천재일우의 기회로 여겨, 정도전을 비롯하여 조준, 남은 등을 탄핵하여 귀양 보내고, 이어서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때 반전이 일어난다. 이방원이 나선 것이다. 이방원은 부상당한 이성계를 개경으로 모시고 와서, 이성계의 동생 이화, 사위 이제 등 휘하 장수들에게 외쳤다.

“이씨가 왕실에 충성하는 것은 온 나라 사람이 다 아는 바이다. 지금 정몽주가 모함을 하여 악명을 덮어씌우니 후세에 누가 이를 알아 분별하리요.” 그러고는 정몽주 제거를 결정하였다.

이성계가 개경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정몽주는 이성계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이성계의 집으로 찾아 갔다. 정몽주를 맞은 이성계는 전과 전혀 다름없이 친절하게 정몽주를 맞이하며 대해 주었다. 이때 이방원이 정몽주의 심중을 떠보려고 ‘하여가’를 읇자, 정몽주는 ‘단심가’로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정몽주가 이성계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간다고 하자, 이방원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조영규 등 장사 대 여섯 사람을 급히 보내 선죽교에서 그를 때려 죽였다.

이때 이성계가 정몽주 제거에 동조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공식 역사서에 이성계는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인 것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며 정몽주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나온다.

정몽주는 역적으로 몰려 목은 저자에 내 걸리고, 남은 정몽주의 세력들도 모두 제거 됐다. 다시 권력의 핵으로 복귀한 정도전은 이성계를 떠 받들고 급진적 개혁을 단행하고, 최고 실세로서 권력을 누리면서 기어코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건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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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37
■ 정몽주 1편

■ 정몽주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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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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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이같이 얽혀 천년만년 누려보세 《하여가》
",
 "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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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단심가》
",

새 왕조 개창에 끝까지 반대하며 버티던 정몽주를 구슬리기 위해 이방원이 정몽주와 마주 앉아 술 한 잔을 나누며 《하여가》를 읊자, 정몽주가 《단심가》를 읊었다고 하는 일화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정몽주는 57세이고 이방원은 25세인데, 30살 넘게 나이 차가 나는 두 사람이 서로 마주 앉아 저런 시조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는 것은 사실여부가 의문이다.

 "
야사에서 보면 정몽주가 이방원 앞에서 단심가를 읊고 죽임을 당할 줄 미리 알고, 선죽교를 지나기 직전 주막에서 쉬다가 다시 말에 오르면서 말을 거꾸로 말을 탔다고 한다. 이런 야사와 함께 이 시조들도 정몽주가 죽은 후에 후세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고려사’ 등 공식 역사서에는 이 시조들이 나오지 않고, 청구영언이라는 시조 모음집이나 정몽주가 죽은 뒤에 나온 포은집에만 나온다.
",

정몽주는 고려를 개혁하여 유교국가로 만들어 가는 데는 정도전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고려를 멸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데는 반대했다. 즉 정몽주는 고려 왕조를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천천히 개혁을 해 나가고자 한 온건파 사대부이고, 정도전은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워야 한다는 혁명파(급진파) 사대부였다.

정도전은 정몽주를 이색 문하에서 같이 동문수학 한 존경하는 친구이자 선배로 깍듯이 대우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서로 존경하고 의지하는 처지였다. 정도전과 이성계는 어떻게 해서든지 정몽주를 설득하여 함께 가고 싶었고, 조선 건국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정몽주 등 온건파 사대부들을 설득하려 하였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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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37
■ 조선의 헌법 경국대전

■ 조선의 헌법 <경국대전>

통치의 완성은 법률의 완성이다. 조선을 다스리는 기본법으로 ‘경국대전’이 만들어졌다. 법전에는 한 나라의 모든 것들이 담겨져 있는데, ‘경국대전’은 보물 제152호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조선의 법률이 담겨져 있다.

‘경국대전’은 조선이 건국된 지 약 100년 후인 성종 때 완성되어 반포되었다. 그렇다고 ‘경국대전’이 100년에 걸쳐 계속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조선의 법전은 정도전이 만든 <조선경국전><경제문감>을 시작으로, 태종 때는 <속육전> 세종 때는<육전등록> 등 임금이 바뀌면서 법전들도 계속 만들어지고 보완되었다. 그러다가 세종의 둘째 아들인 세조가 지금까지 만들어진 여러 법전을 분석하고 연구하여 항구적으로 쓸 수 있는 법전 편찬사업에 착수하였다. 역대 어느 임금보다 법전 편찬사업에 온 힘을 기울인 세조의 노력으로 ‘경국대전’은 그 뼈대를 잡아갔다.

조카인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자신의 정치적 약점 때문에 더욱 더 새로운 법전 편찬사업에 몰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세조는 ‘경국대전’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손자인 성종 때(1470년) 완성되었다. 이로써 조선은 독자적인 법전을 가진 나라가 되었고 ‘경국대전’은 그 후 400년간 조선을 통치하는 기본법으로 자리 잡았다.

‘경국대전’은 오늘날 적용해도 무방할 만큼 합리적인 법 조항들이 들어 있다. 예를 들면 살인사건의 경우 1차 판결은 관찰사가, 2차 판결은 오늘날 법무부 격인 형조, 그리고 마지막 3차는 임금과 대신들이 최종 판결을 하는 오늘날의 3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또한 아무리 중죄인이라도 15세 이하와 70세 이상은 구속을 하지 않았고, 곤장을 칠 때도 1회 30대 이상은 때리지 못하게 했다. 또한 출산휴가와 동시에 남편에게도 15일 휴가를 주어 아내의 출산을 돕게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경국대전’에는 관리들에 대한 처벌 조항이 매우 많다. 관리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조선왕조의 기본 통치이념이 잘 반영된 것이다.

법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가장 잘 반영한다고 한다. ‘경국대전’은 최고 권력자인 임금이 지켜야 할 법부터 힘없는 한 명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법까지 두루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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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38
반근착절盤根錯節 – 구부러진 나무뿌리와 얼크러진 마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

반근착절(盤根錯節) – 구부러진 나무뿌리와 얼크러진 마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

소반 반(皿/10) 뿌리 근(木/6) 어긋날 착(金/8) 마디 절(竹/9)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혀 있는 것이 葛藤(갈등)이다.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다르면 서로 으르렁거린다. 이와 비슷하게 둥그렇게 서린 나무뿌리(盤根)와 얼크러진 마디(錯節)란 뜻의 성어도 있다. 소반 盤(반)에는 굽다, 둥그렇게 감긴 모양 서리다란 뜻도 있다. 줄여서 盤錯(반착) 또는 槃根錯節(반근착절, 槃은 쟁반 반)이라 쓰기도 한다.

갈등이 적대시하거나 충돌할 정도로 악화된 상태라면 이 말은 일이 복잡하게 얽혀 처리가 곤란한 사건이나 그로 인한 고통을 의미한다. 거기에서 세력이 깊이 뿌리박고 있어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중국 後漢(후한, 서기 25~220)의 6대 安帝(안제) 때 虞詡(우후, 詡는 자랑할 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강직한 성품으로 어릴 때부터 학업에 힘썼고 효행도 지극해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를 위해 관직을 사양할 정도였다. 할머니의 사후 주위의 천거로 郎中(낭중)의 벼슬에 나가게 됐다.

앞서 5대 殤帝(상제)는 출생 후 100여 일만에 즉위하였다가 8개월 만에 죽고 안제도 13세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외척인 鄧騭(등즐, 騭은 수말 즐)이 정사를 좌우했다. 그 무렵 이민족이 국경지대에 있는 幷州(병주)와 涼州(양주)를 침입해 오자 국비부족을 이유로 등질이 양주를 포기하려고 했다.

이에 우후가 나서 장군이 나오고, 재상이 나오는 땅을 버리면 안 된다고 주장하여 맞서자 등즐의 미움을 샀다. 얼마 뒤 朝歌(조가)라는 지역에서 민란이 일어나 태수가 살해되는 일이 생겨 등즐이 보복으로 우후를 그곳 군수로 파견했다.

사지로 가는 우후를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이 모였다. 우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태평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구부러진 뿌리와 뒤틀린 옹이마디를 만나지 않고서야 어찌 날카로운 칼날의 진가를 알 수 있겠는가(不遇槃根錯節 何以別利器乎/ 불우반근착절 하이별리기호)?’ 험지에 가서야 진가를 발휘한다는 이야기였다. 과연 우후는 민란을 깨끗이 수습하고 역량을 인정받았다. ‘後漢書(후한서)’ 우후전에 나온다.

세상사에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는 곳이 없겠지만 항상 시끄러운 곳이 정치판이다. 정권을 잡는 것이 존재 이유인 정당이라 이해할 만하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산적한 민생을 두고 싸움만 한다고 여긴다. 협상과 양보는 얽힌 뿌리와 가지를 헤치는데 도움이 되련만 그것이 좀처럼 어렵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611.html
kolaswqetsrq 11.02 12:39
소중유도笑中有刀 - 웃음 속에 칼이 있다, 겉으로 웃으며 속으로 해치다.

소중유도(笑中有刀) - 웃음 속에 칼이 있다, 겉으로 웃으며 속으로 해치다.

웃음 소(竹/4) 가운데 중(丨/3) 있을 유(月/2) 칼 도(刀/0)

말과 행동이 하나로 들어맞는 言行一致(언행일치)를 이상으로 생각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은 연유인지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속담이 생겼겠다. 얼굴은 험상궂게 생겼어도 마음은 천사인 사람들이 속상해 하면서 ‘까마귀가 검기로 마음도 검겠나’고 항의할 일이다.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교훈인데 그럼에도 실천은 어려워 따끔한 말이 많이 생겼다. ‘속 각각 말 각각’에서부터 하는 말에 악의가 들어있는 경우는 ‘속에 뼈 있는 소리’라 했다. 악의 정도가 아니라 해칠 마음이 있을 때는 ‘웃음 속에(笑中) 칼이 있다(有刀)’고 한다. 그대로 번역한 속담성어인 듯해도 유래가 있다.

중국에서 악명을 떨치는 간신이 많은 중에 李義府(이의부)는 唐(당)나라 초기의 대표적인 아첨배였다. 그는 미천한 집안에서 났어도 열심히 학문에 정진했고 문장력도 좋아 과거를 통해 등용됐다. 이의부는 웃으면서 겸손하게 사람을 대하지만 속에 칼을 감췄다는 笑裏藏刀(소리장도)의 음흉함이 있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에겐 가차 없이 보복을 가해 사나운 살쾡이 李猫(이묘)라 불릴 정도였다. 2대 太宗(태종)에 아첨으로 신임을 받고 3대 高宗(고종)이 선왕의 후궁이었던 武則天(무측천)을 왕후로 들일 때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높은 벼슬에 올랐다.

이의부가 절세의 여죄수를 빼돌려 첩으로 삼으려다 발각된 일이 있었다. 두려움에 옥리가 자살했는데 감찰하던 王義方(왕의방)이 주범 이의부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청했으나 신임하던 고종에 의해 오히려 외지로 쫓겨났다. 안하무인이 된 이의부는 더욱 매관매직에 힘써 거금을 긁어모았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의부의 웃음 속엔 칼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故時人言 義府笑中有刀/ 고시인언 의부소중유도).’ ‘舊唐書(구당서)’의 열전에 교묘한 수법을 말한 내용이다. 칼보다 더 큰 검을 숨긴 간신도 있다. 당 玄宗(현종)의 신임으로 날뛴 李林甫(이임보)다. 정적을 제거할 때는 한껏 상대방을 추어세운 다음 뒤통수를 치는 口蜜腹劍(구밀복검)의 창시자였다.

이런 간신배들의 수법을 마음속으로 좋지 않게 생각하면서 보통사람들도 겉으로만 좋은 것처럼 꾸미는 경우가 많다고 오래전부터 믿어왔다. 지위의 높고 낮음은 관계없이 자주 보는 일이다. 보는 앞에서는 굽실거리다 돌아서면 욕을 해대는 面從腹背(면종복배)의 사람들이다. 이보다 더 분통터지게 하는 높은 사람들도 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정의를 위한다는 지도급 저명인사는 알고 보면 시정잡배보다 더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난다.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파는 懸羊頭 賣狗肉(현양두 매구육)이 이들을 말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541.html
kolaswqetsrq 11.02 12:39
문도어맹問道於盲 – 맹인에게 길을 묻다.

문도어맹(問道於盲) – 맹인에게 길을 묻다.

물을 문(口/8) 길 도(辶/9) 어조사 어(方/4) 소경 맹(目/3)

아는 길도 물어 가랬다. 잘 아는 일도 세심하게 주의를 한다. 하물며 자신이 모르는 것은 당연히 물어야 한다. 물음은 배움의 시초이며 하나도 묻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모른다는 격언도 있다. 물어보는 것을 누구에게나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不恥下問(불치하문)이라 했다. 어려운 글을 술술 읽은 주인이라도 농사에 대해서는 모를 수밖에 없어 머슴에게 묻는다.

잘 아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耕當問奴(경당문노)다. 앞을 못 보는 장애인에게 길을 묻는다면 길을 알 수가 없다. 효과가 없거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물어보는 어리석은 태도를 비유하는 말이다.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소문을 캐어보는 借聽於聾(차청어롱)도 같은 뜻이다.

唐(당)나라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韓愈(한유, 768~824)는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의 첫손에 꼽힌다. 유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내치며 친구인 柳宗元(유종원)과 함께 古文(고문) 부흥에 힘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한유는 사회의 여러 폐단에 대해 논문이나 서신을 통해 날카로운 의견을 제시하여 다수의 문인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9대 德宗(덕종)때인 802년 陳商(진상)이란 젊은 문객으로부터 편지와 시 작품을 받고 답장을 쓴 것이 ‘答陳生書(답진생서)’다. 후일 진사에 급제하게 되는 젊은 학자에게 답하면서 한유는 질문에 대답할만한 사람이 못되는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 어리석다고 했다.

대학자인 한유가 한껏 겸손하게 말하는 부분을 보자. ‘이는 이른바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소리를 구하고 눈 먼 사람에게 길을 구하는 것입니다. 비록 청이 간절하며 부지런히 가르침을 받으려 하지만 답을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是所謂借聽於聾 求道於盲 雖其請之勤勤 教之云云 未有見其得者也/ 시소위차청어롱 구도어맹 수기청지근근 교지운운 미유견기득자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학자는 내면의 어질고 의로운 마음을 확충하는 것이 우선이며 출세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고 있다.

오늘날같이 인터넷으로 쉽게 지식을 찾는 시대에도 각 분야의 전문가는 숱하다. 그러니 한 문제를 깊이 알기 위해서는 어디에, 누구에 의견을 구하는 것이 좋은가를 아는 것이 힘이다. 여러 방면에 얼치기로 많이 안다고 믿고 일을 맡기다가 망치는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합당한 전문가를 잘 찾아 의견을 들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824.html
kolaswqetsrq 11.02 12:40
봉공여법奉公如法 - 공적인 일을 법대로 처리하다.

봉공여법(奉公如法) - 공적인 일을 법대로 처리하다.

받들 봉(大/5) 공평할 공(八/2) 같을 여(女/3) 법 법(氵/5)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다. 만인은 법 앞에서 공평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이제는 유명한 성어가 된 지강헌표 有錢無罪 無錢有罪(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계속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그만큼 공정하게 법이 집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法(법)의 옛 글자 灋(법)은 집행이 물 흐르듯(氵 去) 공평해야 하고, 유무죄를 아는 동물 해태 廌(치)가 들어있는 이유가 된다고 법 관련 성어를 말할 때마다 얘기했다. 作法自斃(작법자폐), 法不阿貴(법불아귀) 舞文弄法(무문농법) 등이다. 하지만 권력에 막히고 재력에 막혀 잘 흘러가지 못한 적이 없지 않았기에 유사한 말이 많이 전해졌다.

모든 사람에게 두루 관계되는 공적인 일(奉公)은 법에 의해 처리해야 한다(如法)는 이 말은 ‘史記(사기)’에서 나왔다. 廉頗藺相如(염파인상여, 頗는 자못 파, 藺은 골풀 린) 열전에 실렸다. 戰國時代(전국시대) 趙(조)나라의 두 명신은 刎頸之交(문경지교, 刎은 목자를 문, 頸은 목 경)란 말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성어의 주인공은 趙奢(조사)라는 명장이다. 그가 젊을 때 전답에 대한 조세 업무를 담당하던 하급관리로 있었다. 전국시대 말기 각 제후국에서 빈객을 거느리고 있던 귀족이 있었는데 조나라에선 平原君(평원군)이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자신의 지위를 믿고 평원군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 했다. 강직한 조사는 법에 따라 집사 아홉 명을 붙잡아 처단했다. 크게 화가 난 평원군이 해치려 하자 조사가 설득했다. 나라의 공자인 집에서 세금을 내지 않으면 국법은 무너지고 나라가 쇠약해지면 공자도 부를 누리지 못한다고 했다.

‘공과 같은 고귀한 분이 공적인 일을 법과 같이 받들면, 온 나라가 한 마음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라가 부강해집니다(以君之貴 奉公如法則上下平 上下平則國彊/ 이군지귀 봉공여법즉상하평 상하평즉국강).’ 평원군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조사를 현인이라며 왕에게 천거해 국방을 튼튼히 하는 장수를 맡겼다.

‘법의 날’은 1964년 처음 제정되었을 때는 노동절을 법의 날로 정한 세계추세에 따라 5월1일로 했다가 2003년부터 바뀌었다. 이 날은 근대적 사법제도를 도입하는 계기가 된 재판소구성법이 시행된 날로 국민의 준법정신을 높이고 법의 존엄성을 진작시키는 것이 목적이라 한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법을 집행함에 있어 조금도 사사로움이 개입되지 않는 만인 앞에 공평하다는 것을 체감하도록 하는 것이 앞서야 할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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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41
점수청정點水蜻蜓 - 잠자리가 꼬리로 수면에 대다,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다.

점수청정(點水蜻蜓) - 잠자리가 꼬리로 수면에 대다,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다.

점 점(黑/5) 물 수(水/0) 잠자리 청(虫/8) 잠자리 정(虫/7)

갸름한 몸매에 날개를 펴 비상하는 곤충 잠자리는 어여쁜 여인에 자주 비유된다. 잘 차려입은 여자는 ‘잠자리 나는 듯하다’고 하고 ‘잠자리 날개 같다’고 하면 속이 비칠 만큼 매우 얇고 고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곁눈과 홑눈이 잘 발달하여 6m 앞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한자로 蜻蛉(청령)이나 靑娘子(청낭자), 또는 蜻蜓(청정)이라 하는데 유충이 물에 살기 때문에 물가 주변에 특히 많이 날면서 곤충을 잡아먹는다. 잠자리가 꼬리를 물속에 넣었다가 금방 날아오르는 모습을 蜻蜓點水(청정점수)라 하여 앞서 소개했다. 앞뒤를 바꾸어 쓴 이 성어도 같은 뜻으로 유래도 동일하다.

중국에서 가장 시가 왕성했던 唐(당)나라에서 詩仙(시선) 李白(이백)과 함께 우뚝한 詩聖(시성) 杜甫(두보)는 시운을 잘못 타고나 벼슬자리에 등용되지 못했다. 安史(안사)의 난으로 어지러운 속에서 시름에 겨워 있을 때 長安(장안)의 한 연못을 노래한 시가 ‘曲江(곡강)’이다.

인생 칠십 古稀(고희)라는 말이 나오는 시로 유명한데 두 번째 수에 나온다. ‘몇 푼 안 되는 술빚은 가는 곳마다 있기 마련이지만, 인생살이 칠십년은 예부터 드물었네(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 주채심상항처유 인생칠십고래희).’ 이 3, 4구의 바로 뒤에 수면 위로 분주히 날고 있는 잠자리가 등장한다.

‘꽃 사이로 호랑나비는 깊숙이 날아들고, 수면을 스치는 잠자리 떼 한가롭게 나는구나(穿花蛺蝶深深見 點水蜻蜓款款飛/ 천화협접심심견 점수청정관관비).’ 蛺은 호랑나비 협, 항목 款(관)은 느리다는 뜻이다. 마음으로는 여유가 없었더라도 그림 같은 풍광을 노래한 이 시를 宋(송)의 유학자 程頤(정이)는 혹평한다. 경치의 묘사에 아무런 교훈이 없어 ‘이런 것은 아무 쓸모없는 언어(如此則閒言語/ 여차즉한언어)’라고 한 것이다.

우리 고전에는 그러나 제법 많이 인용된다. ‘물 위에 나는 잠자리 얇은 날개 푸르고.. 궁녀의 허리 같은 버들이 바람을 띠었다(點水蜻蜓綃翼綠.. 宮女腰輕柳帶風/ 점수청정초익록 궁녀요경류대풍)’는 고려 李奎報(이규보)의 시구다. 조선 徐居正(서거정)은 ‘발 걷고 훈훈한 남풍 속에 종일 앉았노라니, 잠자리는 천천히 날고 나비는 깊이 보이네(簾捲南薰坐終日 蜻蜓款款蝶深深/ 염권남훈좌종일 청정관관접심심)’라 노래했다.

이처럼 그림 같은 연못 위의 잠자리 나는 모습이 사람마다 좋게 보이지는 않는 모양이다. ‘잠자리

부접대듯 한다’란 속담이 있듯 붙었다가 금방 떨어지는 것을 비유하여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것을 빗대기도 하니 말이다.

한 가지 일에 꾸준히 몰두해서 성공시키는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 한 가지 일을 벌여놓고 마무리하지 않으면 실패로 간주한다. 옛날과 달리 산업의 중심이 자고나면 휙휙 바뀌는 오늘은 한 우물만 파는 고집이 시대에 뒤떨어질 수도 있으니 상황을 잘 살필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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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42
천발견묘薦拔畎畝 - 농사짓는 사람 중에서 유능한 사람을 추천하다, 묻힌 인재를 찾아 등용하다.

천발견묘(薦拔畎畝) - 농사짓는 사람 중에서 유능한 사람을 추천하다, 묻힌 인재를 찾아 등용하다.

천거할 천(艹/13) 뽑을 발(扌/5) 밭도랑 견(田/4) 이랑 무, 묘(田/5)

어떤 조직이 뻗어 나가려면 수장만 뛰어나서는 안 된다. 조직원이 튼튼히 뒷받침돼야 발전한다. 훌륭한 인재를 발탁하기 위해 숱한 성어가 남은 것도 그만큼 인사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손님이 찾으면 식사 중이라도 열 번이나 일어난 一饋十起(일궤십기)의 禹王(우왕), 吐哺握髮(토포악발)의 周公(주공), 초옥을 세 번이나 찾아가 맞은 三顧草廬(삼고초려)의 劉備(유비) 등은 인재 초빙에 자주 인용된다.

초야에 묻힌 사람의 등용은 성벽을 쌓고 소를 키우다 중책을 맡게 된 傅說(부열)과 寗戚(영척)의 고사 版築飯牛(판축반우)가 있다. 또 밭고랑과 이랑(畎畝) 사이에서 농사짓고 있는 숨은 인재를 발탁하자(薦拔)고 한 좋은 말이 더 있다.

‘견무’라고도 읽는 밭고랑과 이랑 畎畝(견묘)가 농사의 대명사가 된 것은 孟子(맹자)에서 먼저 볼 수 있다. 중국 태고의 舜(순)임금이 堯(요)임금에 발탁될 때를 소개한 告子(고자) 하편에서다. ‘순임금은 밭에서 농사짓다 기용되었고, 부열은 성을 쌓다가 등용되었다(舜發於畎畝之中 傅說擧於版築之閒/ 순발어견묘지중 부열거어판축지한)’고 한 부분이다.

순임금은 악독한 계모에게도 효성을 다했는데 歷山(역산)이란 곳에서 농사짓다 선양받고 왕위에 오른 것을 가리켰다. 순임금은 널리 알려진 후 발탁된 경우지만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 중에서 숨은 인재를 널리 찾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사람은 조선 실학자 李瀷(이익, 1681~1763)이다.

호가 星湖(성호)인 그의 대표적 저술 ‘星湖僿說(성호사설, 僿는 잘게부술 사)’에서 사회개혁에 대한 폭넓은 주장을 한 人事門(인사문)에 실려 있다. 널리 인재를 발탁해야 한다는 薦拔畎畝(천발견묘)편을 따로 두었다.

높은 사람들은 지식이 많아 알 수 있다지만 ‘염소로 밭을 갈고 쌀을 심으면 싹이 난다(駕羊耕菑 種米生苗/ 가양경치 종미생묘)’고 할 정도로 백성들의 고통은 모른다고 질타한다. 그래서 파벌과 지위에 따라 등용하는 것을 깨뜨리고 ‘몸소 농사의 고통을 아는 자 가운데 재능과 덕망 있는 자(躬知稼穡艱難者 得以材徳/ 궁지가색간난자 득이재덕)’를 가려 중책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穡은 거둘 색.

밭이랑 사이서 고생하는 사람 중 실제 인재를 찾으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백성들의 실생활과 고통을 잘 아는 사람이라야 좋은 정책을 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좋다. 여러 방면에서 인재를 찾는데 이론만 아는 것보다 실무에 밝은 사람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데 적임일 것은 물론이다.

한 때 우리 공직자들의 인사원칙으로 현장을 아는 사람 중에서 재능과 덕망 있는 인재를 고른다고 내세운 적이 있다. 그런데 갈수록 원칙은 허물어지고 같은 진영의 사람들만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는 인사는 늘어난다. 성호선생이 통탄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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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43
도은무명道隱無名 - 도는 숨겨져 있어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도은무명(道隱無名) - 도는 숨겨져 있어 이름을 붙일 수 없다.

길 도(辶/9) 숨을 은(阝/14) 없을 무(灬/8) 이름 명(口/3)

道(도)가 사람이 걷는 길만이 아니고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은 다 안다. 도를 닦는다, 도를 깨친다, 도가 트인다는 말도 많이 하는데 깨달음이나 기예의 경지가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정도면 어느 수준 안다고 해도 깊이 있는 연구나 종교에서 말하는 도는 일반 사람의 머리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불교선 인간의 고통을 없애주는 여덟 가지의 길 八正道(팔정도)를 말하고,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朝聞夕死(조문석사)라 했던 孔子(공자)는 하늘의 길을 따르는 것이 도라 했다. 더욱 老子(노자)는 도를 도라고 하지 않으면 이미 영원한 도가 아니라고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라 하니 알쏭달쏭하다.

노자는 여기에 더해 도는 숨겨져 있어(道隱) 이름이 없다(無名)고까지 했다. 고대 중국 周(주)나라의 관문을 지나면서 그곳을 지키던 尹喜(윤희)에게 남겼다는 ‘道德經(도덕경)’에서다. 無爲(무위)의 處世訓(처세훈)이 전체 81장의 대부분인 이 책 41장 同異章(동이장)에서 도는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도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현묘한 존재이기에 뛰어난 사람이라야 그것을 알고 부지런히 실천에 옮긴다고 했다.

그 부분의 표현은 ‘뛰어난 인사는 도를 들으면 힘써 실천한다(上士聞道 勤而行之/ 상사문도 근이행지)’이다. ‘어중간한 사람은 반신반의하고(中士聞道 若存若亡/ 중사문도 약존약망), 정도 낮은 사람은 크게 비웃는다(下士聞道 大笑之/ 하사문도 대소지)’로 이어진다.

그 뒤에 예로부터 전하는 말이라면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르게 심오한 말이 펼쳐진다. 몇 가지만 옮겨본다. ‘밝은 도는 컴컴한 것 같고, 도에 나아가는 것은 물러나는 것 같으며(明道若昧 進道若退/ 명도약매 진도약퇴).. 무한대의 모난 모양은 모퉁이가 없고, 큰 그릇은 이루어지는 것이 늦으며(大方無隅 大器晚成/ 대방무우 대기만성), 큰 소리는 귀로 들을 수 없고, 큰 모습은 형체가 없다(大音希聲 大象無形/ 대음희성 대상무형).’ 그러므로 절대존재인 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며 결론 낸다. ‘도는 숨어 있어 이름이 없어도 오직 만물에 힘을 빌려주고 잘 생성되도록 할 뿐이다(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도은무명 부유도 선대차성).’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大器晩成(대기만성)도 여기서는 큰 그릇에 가득 채워지기까지는 아득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었단다. 뛰어나게 훌륭한 작품은 보통 사람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큰 도는 이름이 없으면서도 모든 것을 받아들여 부족한 사람이 평소에 느끼지 못할 뿐이다.

이렇게 보면 뛰어난 완성미를 보지 못하면서 이렇다, 저렇다 불평을 늘어놓는 보통 사람들은 이런 어려운 도 말고, 본래의 걷는 길,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지켜야 하는데 그것도 어려우니 탈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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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44
여호첨익如虎添翼 - 호랑이에 날개를 더한 격, 더 훌륭해지거나 무서울 것이 없음

여호첨익(如虎添翼) - 호랑이에 날개를 더한 격, 더 훌륭해지거나 무서울 것이 없음

같을 여(女/3) 범 호(虍/2) 더할 첨(氵/8) 날개 익(羽/11)

힘이 세고 사나워 지상을 호령하는 호랑이가 어지간한 동물은 주눅이 들 정도로 날래기도 하다. 이런 범에게 마치(如虎) 날개를 더한다면(添翼) 어떻게 될까. 당할 동물이 없을 만큼 빠르기도 한데 날기라도 한다면 당할 자가 없다. 우리 속담 ‘범에게 날개’가 뜻하는 대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포함한다.

실력이 출중한 사람에게 더한 장점이 더해져 우뚝하다는 의미 외에 흉악한 사람에게 더 힘이 된다면 주위에 피해만 끼치게 된다. 호랑이에게 날개를 다는 것은 좋은 일 위에 또 좋은 일이 더하여지는 錦上添花(금상첨화)일 수도 있고, 잘못 쓴다면 엎어져도 코가 깨지는 雪上加霜(설상가상)이 되는 셈이다.

‘心書(심서)’라고 하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茶山(다산)의 牧民心書(목민심서)를 떠올리지만 諸葛亮(제갈량, 181~234)의 저술도 있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충절의 대명사인 그가 장수의 도리를 논한 것이라는데 將苑(장원)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兵机(병궤)라는 부분에서 병사를 지휘할 권한을 쥔 장수의 기상을 말한 부분을 인용해보자.

‘사나운 호랑이의 팔에 날개를 단 듯이(臂如猛虎加之羽翼/ 비여맹호가지우익) 사해를 맘껏 날아야 한다(而翱翔四海/ 이고상사해).’ 臂는 팔 비, 翱는 날 고, 翔은 날 상. 장수가 권위에 더해 날개까지 달면 용맹스런 위에 병사를 승리하도록 이끌 것임에 틀림없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선 약간 달리 與虎添翼(여호첨익)으로 關羽(관우)를 말할 때 등 몇 차례 등장한다. 관우가 曹操(조조)에 잡혀 있다가 袁紹(원소)에게로 떠날 때 그것은 ‘호랑이에게 날개를 더하는 격(是與虎添翼也/ 시여호첨익야)’이라며 추격하여 없애야 한다고 부하들이 주장했으나 되레 도와준다.

이런 긍정적 의미와는 달리 韓非子(한비자)에는 爲虎傅翼(위호부익)이라 하여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주면 안 된다고 표현했다. 위세를 가진 사람에게 더 이상의 권한이 주어지면 천하를 어지럽히기만 한다고 말한다. ‘우매한 자에게 권세를 주는 것은 범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다(夫乘不肖人於勢 是爲虎傅翼/ 부승부초인어세 시위호부익).’ 難勢(난세) 편에 실린 내용이다.

새해가 밝아온 지 벌써 여러 날이다. 모두들 희망을 품고 이룰 일을 다짐했을 것이다. 作心三日(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을 때다. 호랑이를 상징하는 올해에는 여러 지자체장이나 경제단체의 장들이 다짐하는 각오로 날개를 달자는 이 성어를 많이 채택했다.

산적한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데 적격인 호랑이에 더 빨리 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자는 마음가짐을 내세웠다. 날랜데다 날개까지 단다면 탄탄대로일 텐데 앞의 예대로 장단이 있으니 함부로 다루지 않고 기본을 빠뜨리는 일은 없어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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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45
굴묘편시掘墓鞭屍 -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하다, 통쾌한 복수를 넘어 지나친 행동을 말함

굴묘편시(掘墓鞭屍) -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하다, 통쾌한 복수를 넘어 지나친 행동을 말함

팔 굴(扌/8) 터 기(土/8) 채찍 편(革/9) 주검 시(尸/6)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스페인 영화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이나 이탈리아 동화 ‘엄마 찾아 삼만리’란 작품이 있었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혈육을 찾아 나선 과정을 그려 당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같이 감동을 주는 스토리는 없어도 반대되는 말이 떠오르는데 日暮途遠(일모도원), ‘해는 지고 갈 길은 멀다’라는 뜻이다.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을 펼치고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한 伍子胥(오자서)의 변명이었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의 楚(초)나라 명문 출신 오자서에서 유래한 널리 알려진 성어 중 무덤을 파고(掘墓) 시체에 매질을 했다(鞭屍)는 이 말도 그 중의 하나다.

오자서의 부친은 楚平王(초평왕)의 태자를 가르친 스승으로 간신 費無忌(비무기)의 모함을 받고 형과 함께 죽음을 당한다. 오자서는 복수를 위해 이웃 나라를 떠돌다 吳(오)나라에서 10년이 넘도록 절치부심 끝에 마침내 기회를 잡는다.

오나라의 공자 闔閭(합려, 闔은 문짝 합)를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한 뒤 중책을 맡고 병법의 대가 孫武(손무)와 함께 대대적으로 초나라를 침공하게 됐다. 당시는 不俱戴天(불구대천)의 원수인 평왕과 간신 비무기가 이미 사망한 이후였으나 원한에 사무친 오자서는 평왕을 이은 昭王(소왕)이 도주한 뒤에도 수도 郢(영)을 유린했다. ‘史記(사기)’ 오자서열전에는 이 부분을 간략히 기술했다.

‘오자서는 소왕을 찾는데 실패하자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에 300번이나 매질을 했다(伍子胥求昭王 既不得 乃掘楚平王墓 出其尸 鞭之三百/ 오자서구소왕 기부득 내굴초평왕묘 출기시 편지삼백).’ 여기에 ‘東周列國志(동주열국지)’ 등에는 살을 붙인다. 평왕은 보복을 예견하고 호수 속에 무덤을 만들고 50여 명의 석공을 시켜 가짜 석곽 아래 관을 따로 만들게 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석공을 무덤 속에서 살해했는데 유일하게 살아나온 한 노인이 원귀들의 한을 푼다며 오자서에게 가르쳐줘서 복수를 할 수 있었다. 상세한 묘사는 이렇다. ‘손에 아홉 마디로 된 구리 채찍을 들고 평왕의 시신을 300번이나 후려치니, 살이 문드러지고 뼈가 부러졌다(手持九節銅鞭 鞭之三百 肉爛骨折/ 수지구절동편 편지삼백 육란골절).’

오자서의 친구 申包胥(신포서)가 복수의 수법이 잔인하다고 질책하자 갈 길이 멀어 순서를 거꾸로 하게 됐다고 해명하는 倒行逆施(도행역시)가 더 따르는 이야기다. 오자서의 원한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죽은 원수의 시체를 찾아 매질을 가했을까. 일견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시체까지 욕보인 점에서는 지나치다는 평이 따른다.

아득한 옛날이 아니라도 잘못을 고치면서 더 어그러지게 하는 일은 흔하다. 근래의 사건 하나만 보자. 이전 정권의 미운 놈 몰아내기 블랙리스트를 단죄하면서 그보다 더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서도 뻔뻔한 처사를 보면 시체 매질 그 이상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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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45
■ 함흥차사咸興差使

■ 함흥차사(咸興差使)

우리가 쓰는 말 중 ‘함흥차사’ 는 ‘가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비유할 때 사용한다.

함흥으로 떠나버린 태조 이성계를 모셔오기 위해, 태종이 사신(차사)을 보낼 때마다 태조가 이를 죽여 돌아오지 못했다는 일화에서 생긴 말이다.

태조가 함흥으로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태조 7년 1398년. ‘1차 왕자의 난’ 으로 신덕왕후 강씨 소생인 세자 방석과 방번이 이방원(태종)에 의해 죽임을 당한 데 분개한 테조 이성계는 왕위를 둘째 아들(정종)에게 내주고 상왕(上王)으로 물러났다. 태조는 48세 늦은 나이에 강씨에게서 얻은 막내 방석(세자)을 무척 사랑했는데, 그가 이복형인 이방원에 의해 비참하게 죽자 충격을 받은 것이다.

2년 뒤, ‘2차 왕자의 난’ 이 다시 일어나 방원과 친형인 방간 사이에 살육전이 벌어지고, 방간은 방원에 의해 유배를 가게 되자, 방원을 미워하던 태조의 증오는 더욱 심해졌다. 뒤이어 형인 정종을 내몰고 방원(태종)이 임금으로 즉위하자, 태상왕(太上王)이 된 이성계는 개경을 떠나 고향인 함흥으로 가버렸다. 이는 태조가 이방원의 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방원에게는 커다란 손실이었다. 태종은 태조를 설득해 서울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인물들을 물색해 함흥으로 보냈는데 이들이 바로 함흥차사이다.

이성계는 정말 이들을 모두 죽였을까?

태조의 옛 친구인 성석린이 함흥차사를 자청하고 나서서 두 번이나 함흥에 갔으나 결국 빈손으로 돌아와 태종에게 “태상왕(太上王)께서 빨리 돌아오실지 늦게 돌아오실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라고 보고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성계는 그를 죽이지 않은 것이다.

야사(野史)에는 이성계가 태종이 보낸 차사들을 셀 수 없이 죽였다고 전하지만, 실제 죽은 것으로 전해지는 유일한 인물인 박순도 이성계가 아니라 사실은 반란군인 조사의에 의해 죽었다고 한다. 실록에 의하면 태조에게 보낸 많은 인물들의 이름을 전하는데 그 중 태조에게 죽은 인물은 없다. 더구나 이성계는 함흥에서 돌아와 평양에 머무를 때, “내가 동북면에 있을 때 국왕(태종)이 사람을 보내지 않았고, 맹주에 있을 때도 사람을 보내지 않았으니 감정이 없지 않다.” 고 한 것으로 보아 차사를 보내지 않아 오히려 섭섭해 한 것 같다.

이런 기록으로 보면 ‘함흥차사’는 후세에 지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700.html
kolaswqetsrq 11.02 12:46
■ 본관本貫과 관향貫鄕

■ 본관(本貫)과 관향(貫鄕)

우리는 모두 성씨(姓氏)와 이름을 갖고 있다. 또 성씨 앞에는 경주 김씨, 여주 이씨, 안동 권씨, 밀양 박씨, 동래 정씨 같은 동족(同族) 집단을 표시하는 지역 이름이 붙는다. 이것을 본관(本貫) 또는 관향(貫鄕)이라고 한다. 본관(本貫)은 성씨의 시조(始祖)가 출생한 땅이나 임금에 의해서 봉해진 지역 이름을 따서 지었고, 시조(始祖) 이후의 모든 후손들은 본관이라는 동질성으로 연결되므로 꿴다는 뜻의 관(貫)자를 썼다. 줄여서 본(本), 또는 본향(本鄕)이라고도 한다. 근본이 없다거나, 본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그 조상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다는 뜻이므로 전통 사회에서는 매우 모욕적인 표현이었다.

우리나라는 삼국 시대에 들어와 일부 상층 계급만이 성씨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그 이전에는 대부분 성씨가 없었다. 조선 후기까지도 백정이나 노비는 성씨가 없었다. 본관은 보통 예전에 나라에 큰 공을 세워 임금이 어떤 지역을 식읍(食邑:국가가 땅을 내려주어 조세를 받을 수 있게 해준 지역)으로 내려주어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리면, 그것을 계기로 그 지역 이름을 가지고 본관으로 삼았다. 후대로 오면서 하나의 본관에서 여러 개로 나뉘어 갈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후삼국시대 견훤과 왕건이 안동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왕건의 부하인 경주 김씨 김행(金幸)은 안동 김씨의 시조 김선평, 안동 장씨의 시조 장정필과 함께 군사를 모아 견훤의 수천 대군을 무찔렀다. 왕건은 김행에게 그 공을 치하하고, 변화의 기미를 잘 살펴 권도(權道), 즉 임시변통의 수단을 잘 취하였다하여 그에게 권(權)씨 성을 내려 이름을 권행(權幸)으로 고치게 하였다. 이것이 안동 권씨의 유래이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본관(本貫)은 자신의 뿌리라는 큰 의미를 지닌다. 반면 일본 사람들은 성을 바꾸는 일을 쉽게 생각한다. 자신이 유명해지면 아버지 성을 따르지 않고 별도의 성씨를 만들기도 한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달리 성씨에 집착할까? 가문(家門)과 족보(族譜)를 중시하는 유교 전통 속에서 본관은 집안의 결속력을 다지게 하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씨(氏)와 가(哥)는 모두 성씨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하지만 웃어른이 내게 성을 물으면 \경주 김가\라고 해야 하고, \경주 김씨\라고 하면 안 된다. \가\는 \씨\보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낮추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방에 대해 말할 때는 "그의 성은 박씨이다.“ 라고 하지만, 나를 상대방에게 말할 때는 저는 김가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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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47
■ ‘조祖’ 와 ‘종宗’의 차이 1편

■ ‘조(祖)’ 와 ‘종(宗)’의 차이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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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 하며 줄줄 외웠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터이다. 세종대왕의 정식 명칭은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 이다. 너무 길어서 앞에 두 글자를 따서 세종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왕 본인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자신이 어떻게 불릴 지도 모르는 채 죽었다. 이런 왕호는 종묘에 모실 때 사용되는 호칭으로 묘호(廟號)라고 하는데, 죽은 왕의 재위(在位) 동안의 행적에 대한 평가로 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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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宗廟)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셔 두는 왕실의 사당이다.

종묘에 사용되는 묘호에는 보통 조(祖)와 종(宗)을 붙이게 된다. 조선왕조 500년 27명의 왕 중 연산군과 광해군 두 임금은 반정(反正)에 의해 쫓겨났으므로 왕자에게 붙이는 ‘군’의 호칭에 머물렀는데, 왕으로써 인정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또, 왕의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연산군과 광해군은 실록이 아닌 일기로 표현한다. 반면, 덕종(성종의 생부) · 원종(인조의 생부) · 진종(정조의 양아버지) · 장조(정조의 생부) · 익종(헌종의 생부) 등은 왕위에 오른 적은 없지만 왕의 생부로써 왕의 대우를 받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양반의 경우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태명을 가지고 있고, 어릴 때는 아명, 성인이 된 이후에는 호를 사용하고 다양한 이름을 대신하는 별호가 있었다. 이들의 이름을 직접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임금과 스승이나 부모뿐이었다. 양반이 그럴진대 임금은 더욱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외국에 서신을 보내는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름을 거의 쓰지 않았다. 하지만 왕들도 모두 이름은 있었다. ‘이산’이라는 드라마에서도 봤듯이 정조의 이름은 이산, 세종은 이도이며 연산은 이융이다.

이처럼 왕족들은 이름을 외자로 쓰는 것이 원칙이다. 태종 이방원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왕족으로 태어나지 않았고, 이성계가 왕이 된 후 왕자가 되었으므로 이름이 외자가 아니다. 왕이 생존해 있을 때 보통 신하들이 왕을 지칭할 때에는 금상, 전하, 또는 주상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생존해 있을 때 왕들은 자신의 묘호가 무엇이 될지 ‘조’가 될지 ‘종’이 될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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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48
■ 나이별 호칭 2편

■ 나이별 호칭 2편

* 48세 - 상년(桑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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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桑)의 속자(俗字)는 `十자 세 개 밑에 나무 목(木)을 쓰는데, 이를 파자(破字) 하면 `十`자 4개와 `八`자가 되기 때문이다.
",

* 50세 - 지명(知命)

공자가 50세에 천명(天命;인생의 의미)을 알았다는 뜻으로, 지천명(知天命)을 줄인 말이다.

* 60세 - 이순(耳順)

공자가 60세가 되어 어떤 내용에 대해서도 순화시켜 받아들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 61세 - 환갑(還甲)

회갑(回甲), 환력(還歷)이라고도 하는데, 태어난 해의 간지(干支)로 다시 돌아간다는 뜻이다. 또는 화갑(華甲) 이라고도 하는데, 화(華)자를 파자(破字)하면 십(十)자 여섯 번 과 일(一)자가 되어 61세라는 뜻이 된다.

* 62세 - 진갑(進甲)

우리나라에서 환갑 다음 해의 생일날. 새로운 갑자(甲子)로 나아간다 (진=進)는 뜻이다.

* 64세 - 파과(破瓜)

과(瓜)자를 파자(破字)하면 `八八`이 되는데 여자는 8 8해서 16세를 과년이라 하는데, 남자는 8×8로 64세를 말하고 벼슬에서 물러날 때를 뜻하는 말이다.

* 70세 - 종심(從心)

공자가 70세에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했는데,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의 준말이다. 또는 고희(古稀)라고도 하는데, 두보(杜甫)의 시 `곡강(曲江)`의 구절 -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사람이 태어나 70세가 되기는 예로부터 드물었다)" 에서 유래하였다.

- 3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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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49
■ 새 왕조의 시작

■ 새 왕조의 시작

이성계는 새 왕조의 체제를 정비하면서 동시에 향후 화근이 될 가능성이 있는 왕씨 성을 가진 왕족의 씨를 말리겠다는 듯이 왕씨들을 집단적으로 죽이고, 고려의 진짜 마지막 왕인 공양왕도 교살했다. 야사에는 이 때 왕씨들이 전(全)씨나 옥(玉)씨 등으로 성을 바꾸어 자손을 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성계는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신하들의 거듭된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을 저지른 것처럼 실록에 나와 있지만, 실제로 위화도 회군을 강행하고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무릅쓰고 개국 4년 만에 한양천도를 단행할 정도의 강단이 있는 인물인 점을 고려하면, 실록의 이성계에 대한 기술은 이성계에 대한 미화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태조는 즉위 초에는 국호를 그대로 ‘고려(高麗)’라 칭하고 법제도 모두 고려의 고사(故事)를 따를 것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차츰 새 왕조의 기틀이 잡히자 고려의 체제에서 벗어나려 했다. 명나라에 대해 사대정책을 쓰면서, 명나라의 양해 아래 새 왕조의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확정하고, 1393년(태조 2)부터 새 국호를 썼다.

다음에는 새 수도의 건설이 필요했다. 1393년 9월에 착공해 1396년 9월까지 태묘·사직·궁전 등과 숙정문(肅靖門: 北門)·흥인지문(興仁之門: 東大門)·숭례문(崇禮門:南大門)·돈의문(敦義門:西大門)의 4대문, 광희문(光熙門)·소덕문(昭德門)·창의문(彰義門)·홍화문(弘化門)의 4소문(小門) 등을 지어 왕성의 규모를 갖추었다. 숭유척불정책(崇儒斥佛政策)을 시행해 서울에 성균관, 지방에는 향교를 세워 유학의 진흥을 꾀하는 동시에 불교를 배척하는 정책을 폈다. 이처럼 그는 새 왕조의 기반과 기본정책을 마련했다.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나라의 재정, 병권, 세자교육까지 몽땅 맡기고, 정도전을 비방하는 신하를 귀양까지 보내는 등 정도전의 동조자이면서 적극적 후원자였다. 정도전은 나라 운영에 무한의 능력을 보이면서도 이성계에게 진심어린 충성을 다했다. 무엇보다도 사심, 즉 부정축재를 한 것이 없는 등 이성계에 있어 그는 능력 있고 충직하고 믿음직한 신하 그 자체였다. 정도전은 이성계의 신임을 바탕으로 조선의 기틀을 빠르게 잡아 갔으나, 이로 인해 반대세력의 미움을 사게 되는 것도 필연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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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50
■ 경복궁

■ 경복궁

경복궁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다섯 개의 궁궐 중 첫 번째로 만들어진 곳으로,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으뜸궁)이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후 종묘, 성곽과 사대문, 궁궐 등을 짓기 시작하는데 1394년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인 1395년에 경복궁을 완성했다. ‘큰 복을 누리라’는 뜻을 가진 ‘경복(景福)’이라는 이름은 정도전이 지은 것이다. 조선 초기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경복궁은 궁궐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다가 세종 때에 이르러 정치가 안정되고 비로소 이곳이 조선 왕조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불이 나 무너지게 되는데 조선 말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지휘 아래 새로 지어졌다. 경복궁 중건(重建)을 통해 조선 왕실의 위엄을 높이고자 하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건청궁(乾淸宮)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이곳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가게 되니, 단청의 색이 채 마르기도 전에 또 다시 빈집이 되어 버리는 비운을 겪었다.

일제 때 조선총독부 건물을 경복궁 내에 만듦으로써 조선 왕조의 상징을 훼손하고 조선의 자존심을 무너뜨렸으며, 정문인 광화문 또한 해체해 지금의 건춘문 자리 근처로 옮겨버렸다. 광화문은 이후 1968년 복원되었는데 당시 남아 있던 중앙청 자리를 기준으로 해서 세우다 보니 원래 경복궁 건물들이 이루고 있는 선상에서 벗어나 삐뚤게 놓이게 되었다. 현재는 다시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한 복원 공사를 마치고 광복 65년을 맞은 2010년에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광화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경복궁의 중심인 근정전을 만난다. 2층 월대 위에 장엄하게 서 있는 건물로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이자 공식 행사나 조회 등에 사용한 건물이다. 근정전 월대 난간에는 주작, 백호, 현무, 청룡이 각 방위에 따라 새겨져 건물을 지키고 있다. 근정전 뒤로는 임금의 사무실이라 할 수 있는 사정전과 침실인 강녕전, 왕비가 거처하였던 교태전이 이어진다.

근정전을 바라보고 왼편으로 나가면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던 경회루가 있다. 인공 연못 위로 지어진 2층 누각 건물로,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에서 크기로도 또 아름답기로도 손에 꼽히는 건물이다. 경복궁에서 빠뜨리지 말고 보아야 할 것이 교태전 아미산과 자경전 장생 굴뚝으로, 굴뚝 원래의 기능적인 역할에 더하여 여성이 거주하는 공간답게 미학적인 요소도 함께 고려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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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50
■ 혁명의 첫걸음, 토지개혁 2편

■ 혁명의 첫걸음, 토지개혁 2편

이색을 비롯한 온건파 신진사대부가 있는 한 정도전과 조준이 꿈꾸어온 토지개혁이 불가능했으므로 정도전은 결단을 내렸다. 정몽주를 제외한 권근, 이숭인, 하륜 등 온건파 신진사대부에게 있는 죄, 없는 죄를 다 뒤집어 씌워서 그들을 탄핵했다. 심지어 자신의 스승인 이색까지도 탄핵하고 고문을 시키고 유배를 보냈다. 그러나 정도전은 정몽주만큼은 믿었기 때문에 살려두었는데, 결국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만다.

온건파 신진사대부에게는 정몽주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아주 치사한 방법으로 정치 정적들에게 보복을 한 정도전에게 정몽주는 아주 크게 실망했고, 40년 지기 친구이자 절친 선, 후배 관계였던 두 사람은 완전히 적이 되었다. 정몽주는 정도전에 비하면 온건한 개혁파이던 조준을 설득했다. 정몽주의 설득에 넘어간 조준은 결국 정몽주의 주장대로 과전법(科田法)을 실시하는데 동의한다.

과전법은 공전(公田)과 사전(私田)을 막론하고 매 1결(結)당 10분의 1조(租)인 30두(斗)의 조를 받게 하는 것이었다. 당시 보통 50%에 달했던 수조율을 대폭 경감하고 농민들의 세금 부담을 줄이고자 한 것이다. 이 과전법은 조준이 처음 주장한 ‘계민수전법’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미온적인 정책이었다. 그러나 고려의 백성들은 이 정도의 토지개혁도 감지덕지하여 환영하였다.

정도전은 과전법이라는 토지개혁이 양에 차지는 않았지만, 그 덕에 백성들의 지지 속에 조선 창업이라는 과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고작 조선개국 4년 만에 과전법의 도덕성은 흔들리고, 토지개혁 주창자인 조준과 혁명세력들이 오히려 부패에 앞장서고 있었다.

정도전은 창업의 기반이었던 혁명세력들과도 다투게 되었고, 창업의 또 다른 기반인 왕가의 왕자들과도 타협하지 않고 대립하였다. 그러면서도 정도전은 오히려 개혁의 속도를 더 높이려고 들었으므로, 그의 비극은 이미 시작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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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51
■ 혁명의 첫걸음, 토지개혁 1편

■ 혁명의 첫걸음, 토지개혁 1편

정도전은 이성계를 설득하여 위화도회군으로 쿠데타에 성공한 뒤, 중국 한나라를 세운 한 고조의 군사 전략을 일러 준 장량을 자처했다. 이때부터 조선왕조라는 새 나라를 열고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할 때까지 거의 모든 정책과 조선건국의 기반은 정도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정도전이 가장 관심을 가진 분야는 토지개혁이다. 고려의 기득권층인 권문세가를 무너뜨리고 백성들의 환호를 살 수 있는 최우선 정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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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토지개혁은 아무때나 할 수 없다. 기득권층이 강할 때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고, 혁명적인 상황인 새로운 나라가 건국 될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공민왕 시절 신돈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고 토지개혁을 추구하다 고려 권문세가 기득권층에 의해 비참하게 최후를 마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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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정도전 앞에 조준이 나타난다. 조준은 정도전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유배생활을 경험한 신진사대부였다. 그 역시 유배생활 동안 백성들의 삶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권문세족의 횡포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도 몸소 체험했다. 정도전이 유배생활을 통해 역성혁명을 꿈꿨다면, 조준은 유배생활을 통해 토지개혁의 필요성을 느꼈다. 고려 권문세족을 몰아내고 신진사대부가 힘을 가진 이때가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 조준은 과감한 토지개혁을 건의했다. 그런데 조준이 건의한 토지개혁의 내용이 지나칠 정도로 과격했다. 조준이 제시한 토지제도의 내용은 사전(私田)의 혁파와 토지의 균등 분배였다. 쉽게 말하자면 땅의 사유재산제를 없애고 모든 백성들에게 땅을 주어 가난한 사람이 없게 만드는, 지금으로 따지면 거의 공산주의식 토지개혁이었다. 이런 과격한 토지개혁 안에 당연히 반대가 빗발쳤다.

정몽주, 권근, 이숭인, 하륜 그리고 모든 신진사대부의 스승인 이색까지도 토지개혁에 강력히 반대했다. 정도전, 조준 등 토지개혁파를 급진파 사대부라고 한다면, 이들에 비해 반대파는 온건파 사대부로 불리우게 된다. 이 일로 정도전은 자신의 스승인 이색과도 갈라서게 되었고, 결국 이색, 정몽주를 비롯한 온건파 사대부의 극심한 반대로 조준이 제시한 토지개혁은 좌절된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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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52
■ 정도전의 ‘건국 프로젝트’ 2편

■ 정도전의 ‘건국 프로젝트’ 2편

이성계는 1389년에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추대했다. 이 시점에 이성계의 세력은 이미 상당히 공고해져 있었지만, 무리하게 왕위를 탐내지 않고 공양왕이 스스로 왕위를 내놓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공양왕은 의외로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이성계 정권은 공양왕을 몰아내기로 했다. 하지만 고려 왕실의 웃어른(공민왕 부인)이 공양왕을 폐하고 이성계를 왕으로 세우는 형식을 취했다. 왕조 국가에서는 왕이 유고인 경우에 태후(대비)나 왕후를 비롯한 왕실 여성 어른들이 비상 대권을 행사했는데, 이성계는 이런 관행을 활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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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는 고려 태후의 결단에 의해 고려 왕권을 넘겨받는 형식을 취했으므로, 왕위에 오른 1392년 8월 3일(양력)부터 1393년 3월 26일까지 이성계는 형식상으로는 고려왕이었다. 1393년 3월 27일부터 정식으로 조선왕이 된 것이다. 실제로는 고려왕조를 무너뜨리면서도 형식적으로는 고려왕조를 이어받아 조선을 세우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모인 정도전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정도전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정적인 방법으로 이성계를 고려의 왕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심했다. 이런 고민이 있었기에 최대한 합법적이고 단계적인 건국 프로젝트 가 나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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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정도전이나 이성계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 백주대낮에 수도 개경에서 철퇴로 정몽주를 죽이는 방법으로 반대파를 제거하였다. 이런 야만적인 방식은 고려 지식인들이 이성계 정권에 환멸을 느끼도록 만들었고, 이들 중 일부가 백년 가까이 조선왕조와의 타협을 일체 거부한 데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성계 옆에 정도전이 없었다면 이성계 정권은 매사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이방원의 저돌적인 방식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이성계의 대권이 이미 공고해진 상태에서 이방원이 거사를 벌였기 때문이다.

만약 정도전이라는 특급 참모가 가세하지 않았고, 대권이 공고해지기도 전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건국 문턱에 가보지도 못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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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53
■ 위화도 회군

■ 위화도 회군

위화도회군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는데 있어서 결정적 사건이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지 않고 우왕이나 최영의 뜻대로 요동을 점령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14세기 후반 새롭게 일어난 한족의 나라 명은 원을 북쪽 몽골지역으로 밀어냈으나 요동지방 때문에 골치 아파했다. 요동에는 원의 지방 태수 나하추가 맹위를 떨쳤기 때문이다. 나하추가 명에 투항하면서 요동에 대한 근심은 사라지고 요동지역에 힘의 공백이 생기자, 명은 고려를 원의 뒤를 이은 자기들의 속국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1387년, 명나라는 오만불손한 태도로 공민왕이 원에게서 빼앗은 철령 이북의 함경도 땅이 자기들 땅이니 다시 내 놓으라는 서신을 전해왔다. 명의 오만불손한 태도에 발끈한 우왕과 최영은 요동을 쳐서 차지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당시 고려 내부 상황은 최영이 우왕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다. 반면 최영을 견제 대상으로 여기고 있던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는 요동정벌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 이유는 이긴다고 해도 최영의 입지만 강화시킬 것이며, 만약 진다면 이성계가 그 책임을 뒤집어 쓸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는 위화도회군 이전 두 차례나 우왕과 최영에게 회군을 요청했으나, 우왕과 최영은 이성계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조건 요동 진격을 명했다. 이성계는 4불가론을 내세웠다.

첫째,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거슬려서는 안 된다.

둘째, 여름철에 군사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셋째, 군사를 동원하여 정벌에 나서면 그 틈을 노려 왜구가 쳐들어 올 것이다.

넷째, 장마철이라 활에 먹인 아교가 풀리고 군사들이 전염병에 걸릴 염려가 있다.

드라마에서 보면, 정도전이 이성계를 설득하여 위화도회군을 한 것으로 나온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고려에 충성스러운 무장 출신인 이성계가 단독으로 위화도회군을 결정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해야겠다는 야망이나 포부를 품었을 것 같지는 않고, 그럴만한 세력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정도전의 설득으로 이성계가 돌아섰고 이성계는 같은 급 사령관인 조민수를 설득하여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렸다. 이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는 고려에는 반역을 한 결과이지만, 새 나라를 건국하기 위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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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2:53
■ 이성계의 등장

■ 이성계의 등장

고려 후기인 1250년경, 전라도 전주에서 스무 살 남짓의 이안사라는 사람이 고을 관기를 건드린 죄로 수령으로부터 문초(問招)를 당하게 되었다. 이에 이안사는 식솔들을 거느리고 삼척까지 야반도주를 해 그곳에서 자리를 잡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지난번 살던 곳의 수령이 삼척 수령으로 발령을 받아 오는 바람에 다시 식솔들을 거느리고 멀리 도망을 간 곳이 동북면(현재 함경남도 함흥부근)이었다.

이안사는 대단한 리더십을 가진 자로, 동북면에 정착해 1천여 호(戶)의 수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때 세계를 제패한 몽고군이 이안사에게 투항하여 복속할 것을 요구하자, 이안사는 몽고에 투항하여 원제국의 관리가 되었다. 이안사는 이때부터 더욱 실력을 쌓아 동북면의 실력자로 크게 성장을 하였으니, 이 자가 바로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이다.

이로부터 100여년 후, 영원할 것 같던 원이 쇠약해지고 대륙 전역에 주원장 등이 일으킨 한족의 난이 일어나자, 동북면의 실력자 이안사의 증손이자 이성계의 아버지인 이자춘은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이자춘은 원나라가 머지않아 망할 것을 예견하고 원나라의 관리를 때려치우고 고려 공민왕에게 스스로 복속하여 고려 국적을 회복하였다. 고려 공민왕은 이자춘에게 고려군이 쇠약해지는 몽고군을 칠 때 동북면에서 협조해 줄 것을 명하였으며, 결국 공민왕의 동북면 회복 작전에 이자춘은 큰 공을 세워 동북면의 패권자가 되게 되었다.

공민왕은 원나라를 등에 업고 왕 이상의 권세를 누리던 기철(원나라 기황후의 오빠)과 그 일당을 몰아내고, 이자춘의 도움을 받아 동북면을 회복하는 등 고려의 독립과 개혁을 추진하였지만, 고려로 밀려들어오는 홍건적과 여진족에 왜구의 침입 등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 위기는 이자춘의 아들 이성계의 화려한 정계 진출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원나라에 쫒기던 홍건적이 개경을 함락하자, 고려는 대대적인 개경 수복작전을 펼치는데 이 때 이성계는 홍건적 수장의 목을 베어버리는 등 대활약을 하여 변방의 무명 장수에서 일약 대스타로 발돋음하게 되고, 최영과 함께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명장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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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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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973.html
kolaswqetsrq 11.02 12:54
◇옌틀로운 법칙

◇옌틀로운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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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행복지수 1위 덴마크는 옌틀로운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옌틀로운은 덴마크 작가 악셀 산드모스가 1933년에 쓴 소설에 나오는 법칙으로 소설 속 가상의 마을 옌트를 다스리는 법칙을 말합니다. 덴마크인들은 평등의 모토인 옌틀로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는데 새로운 옌틀로운 법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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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네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지 마라.

둘째, 모든 사람이 똑같이 중요하다고 믿어야 한다.

셋째, 네가 다른 사람보다 영리할지는 몰라도 더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넷째, 모든 사람이 너만큼은 잘 한다고 믿어야 한다.

다섯째,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은 알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여섯째, 모든 사람이 너와 동등하다고 믿어야 한다.

일곱째, 모든 사람이 각자 잘하는 것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여덟째, 다른 사람을 비웃어서는 안된다.

아홉째,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고 믿어야 한다.

열째, 누구한테나 무언가 배울 점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옌틀로운 법칙은 세상 사람 누구라도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마땅히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말합니다.

-Vingle 글 옮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965.html
kolaswqetsrq 11.02 12:55
◇ 식초로 고치는 지병 18가지

◇ 식초로 고치는 지병 18가지

인류가 식초를 섭취 시작한것은 1만년전에 우연히 술이 발효되면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식초는 신맛으로 우리입맛을 돋우는 역할과 건강을 지켜주는 식품으로 인기가 있는데 그럼 식초의 효능과 식초 활용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식초의 역할

식초는 산성이지만 몸속에 들어가면 혈액 속의 무기질을 알칼리성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에 산성 체질을 약알칼리성으로 바꿔 건강을 유지시킨다. 식초에는 초산과 구연산, 사과산 등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도와주는 유기산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식초의 주성분인 초산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부신피질 호르몬을 만들므로 근육에 쌓이는 피로물질인 젖산을 분해하므로 피로 회복을 돕고, 노화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 식초의 효능

식초의 효능1.

산 중화역할을 한다. 식초는 신맛의 대명사로 불리 운다. 식초의 신맛은 체내에 들어가면 알칼리성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체내에 생긴 산을 알맞게 중화시키고 혈액과 체액의 PH(수소이온)안정을 유지한다. 또한 예비 알칼리를 저장하는 저항력이 있는 신체를 유지시켜 주는 필수 아미노산이 포함되어 있다.

식초의 효능2.

소화를 촉진하고 변비를 예방한다. 소화기에 효소를 공급하여 식품의 소화, 흡수율을 높이고 장 기능을 좋게 한다. 즉 장내의 대장균을 비롯한 유해 세균을 죽여 변비를 예방한다. 살균력에 의해 장내 환경이 개선되어 변비나 치질 등에도 높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식초의 효능3.

잉여 영양소를 분해한다. 음식물을 과잉 섭취하게 되면 당분이나 글리코겐은 지방으로 변하여 몸에 축적되며 지방의 축적은 비만의 제 1원인이 된다. 식초성분에는 영양소의 체내 소비를 촉진하는 기능이 있어 과잉 당분이나 클리코겐을 연소시켜 비만에 높은 효과가 있다.

식초의 효능4.

유산을 분해, 피로를 없앤다. 신경을 많이 쓰거나 운동하는 등 활동을 하면 에너지가 소비된다. 에너지가 소비되면서 유산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 발생되는 유산은 소변에 섞여서 배설되지만 그래도 체내에 너무 많이 증가되면 배설되지 못하고 혈관과 신경에 달라붙게 된다. 유산을 분해, 피로를 없앤다.

식초의 효능5.

비만을 방지하고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식초 속에는 결합한 지방 화합물의 합성을 방지하는 항비만, 아미노산도 들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식초가 지닌 비만 방지작용이 바로 혈압을 내리는 효과를 가져온다. 비만과 혈압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살이 찌면 늘어난 지방조직까지 효소나 영양을 보급하기 위해 혈관이 넓어져야 하고 그 결과 혈압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식초는 비만을 방지하고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양쪽의 효과가 있다.

식초의 효능6.

야채의 비타민 C를 보호한다. 비타민 C는 주로 채소나 과일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 비타민 C는 열에 약하고 불안정 하므로 저장법이나 조리법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미량 영양소이다. 그러나 이 비타민 C는 체내에서 생성, 축적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매일 섭취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영양소이다. 파괴되기 쉽고 다루기 까다로운 비타민 C를 가장 잘 보호하고 그 효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식초이다. 즉 초절임으로 야채를 보존하면 비타민 C가 파괴되지 않고 보존된다.

식초의 효능7.

성인병 예방 식초의 신맛이 소금의 섭취량을 줄여주기 때문에 성인병 예방에 효과적이다. 소금을 과다하게 섭취하면 나트륨 성분 때문에 혈압이 높아지고 고지혈증과 같은 질병이 생기기 쉽다. 소금을 적게 넣고 식초로 간을 하면 싱거운 맛이 덜하기 때문에 음식을 짜게 먹는 습관을 점차적으로 고칠 수 있다.

식초의 효능8.

암에 대한 면역을 높인다. 노벨상을 수상한 식초 연구가 크러브스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하루에 100mg의 천연식초를 매일 섭취하고 있으면 남성은 6년, 여성은 8년 평균수명보다 장수가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더욱이 담배를 피우고 몸무게는 초과, 운동이나 식사에 주의를 하지 않더라도 천연식초를 섭취하고 있는 사람은 장수를 한 것이다. 장수를 하기 위해서는 암과 같은 성인병에 걸리지 않아야 하는데 천연 식초 섭취는 암의 예방 접종과 같은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많이 얻고 있다. 면역학적으로 말해서 식초를 많이 섭취하고 있으면 암이 발생되는 비율이 반으로 줄어든다. 특히 간암, 위암, 대장암, 유방암에 효과적이다. 하루에 100mg의 천연식초를 섭취하면 암의 출현을 지연시키는 데에는 충분하다. 보다 안전을 기한다면 칼슘을 영양 보조식품에서 섭취한다.

식초의 효능9.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유기산은 동맥을 보호한다. 야채나 과일과 천연식초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콜레스테롤을 늘려서 나쁜 콜레스테롤을 줄이고 고혈압을 낮추어 혈관벽을 강하게 해 혈액이 진득진득 하지 않게 한다. 평균해서 하루에 식초 한잔(30ml)도 먹지 않는 사람은 최대 혈압에서 11, 최소혈압에서 6mmHg정도 높아진다.

식초의 효능10.

고혈압 예방 매일 아침 식사 후 식초 반 잔 마시면 좋다. 식초는 피를 항상 깨끗한 상태로 유지시켜준다.

식초의 효능11.

백혈구의 면역기능을 높인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같은 외적과 싸우기 위해 우리들의 몸은 림프구로 불리는 백혈구의 군대에 소집령을 내린다. 매일 100mg의 천연식초를 섭취하고 있으면 림프구를 많이 만들 수 있게 된다. 식초는 바이러스에 대한 항생물질과 같은 작용을 한다. 더욱이 식초는 면역이 바르게 기능하는데 필요한 항산화제 글루타티온의 체내 레벨을 끌어올린다.약간 유기산이 결핍하기만 해도 몸의 면역 방어력은 급강하한다. 매일 100mg의 천연식초를 섭취하고 있으면 적혈구의 글루타티온 농도는 50% 증가하며 노인의 백혈구를 생화학적으로 젊게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평균 76세인 노인이 매일 천연식초를 100mg 섭취한 결과 젊었을 때와 똑같은 백혈구수가 되었다는 결과도 있는데, 다른 연구에서는 식초를 30 ~ 50mg 섭취한 것만으로 백혈구가 생화학적으로 젊어진 것이다.

식초의 효능12.

정자의 손상을 치유한다. 유기산의 레벨이 낮은 남성의 정자에는 결함이 생기기 쉽고 선천성 결손증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유기산을 1일 5mg으로 제한한 남성의 경우, 유전자 물질 DNA에 대한 활성산소의 손상이 정자세포에서 2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1일 60에서 250mg으로 올린 결과 한달도 채 되기전에 정자의 DNA손상은 원상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즉 하루에 3 ~ 5잔의 천연식초가 정자의 손상을 치유하는 것이다.

식초의 효능13.

폐 기능을 강화한다. 유기산을 섭취하고 있으면 폐의 기능이 좋아진다. 천연식초를 충분히 섭취하고 있는 사람에게 만성기관지염이나 천식은 적은 것이다. 폐기종이나 혈관에 혈전이 떼지어 몰리거나 들러붙거나 하지 않도록 한다.

식초의 효능14.

괴혈병을 억제한다. 식초는 잇몸의 조직에 대한 활성산소의 파괴적 공격을 피하게 한다. 유기산의 레벨이 낮은 사람에게서는 3.5배정도 빈번하게 잇몸의 출혈이나 치주병을 볼 수 있었다. 유기산은 당연히 비타민 C를 다량 함유하고 있다.

식초의 효능15.

백내장의 발병을 억제한다. 백내장이 되는 사람은 되지 않는 사람의 30% 밖에 유기산의 영양 보조식품을 섭취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의 석기시대의 조상들은 야생의 풀이나 발효된 나무열매를 먹고 하루에 100mg의 유기산을 섭취하고 있었다. 이 사실은 건강한 사람은 적어도 그 정도는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유기산은 망막을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

식초의 효능16.

아토피성 피부염에 효과 천연식초의 유기산은 변의 상태도 좋게 한다. 숙변이 제거되기 때문인데, 이 숙변제거로 장이 깨끗해질 뿐 아니라 피부도 좋아진다. 게다가 하루에 한 잔씩 매일 마시면 알레르기의 한 종류인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에 효과가 있다. 동양의학에서는 피부의 윤택성이 소화 기능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또 아토피성 피부염에 효과가 있는 천연식초는 위장약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는 장내 환경과 피부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며, 아토피성 피부염의 개선에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식초의 효능17.

초란, 초콩을 활용하면 보다 효과적이다. 식초는 비타민C 등의 야채 성분 뿐 만이 아니라 쌀이나 콩 등의 곡류, 콩류 성분, 미역, 다시마 등 해조류의 성분에 대해서도 훌륭한 상승효과를 발휘한다. 초란, 초콩 등이 몸에 좋은 이유도 다 이런 성질 때문이다. 미역무침을 할 때 식초를 듬뿍 뿌려 먹으면 해조류의 성분이 상승 효과를 일으켜 좋은 영양소를 몸에 공급하게 된다.

식초의 효능18.

야채, 과일 농약 제거까지 책임진다. 야채나 과일 겉면에 묻어있는 농약을 식초로 제거하면 어떤 세척제보다 안전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8_73.html
kolaswqetsrq 11.02 12:56
◇ 만나면 독 되는 식품

◇ 만나면 독 되는 식품

1. 장어, 복숭아(설사)

장어를 먹은 다음에 입가심으로 복숭아를 먹으면 설사에 시달릴 수 있다. 장어는 속을 든든하게 해주는 반면 소화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장어에 들어있는 지방 때문이다. 장어에는 21%나 되는 지방이 들어있는데 이는 소장에서 리파아제에 의해 지방산으로 분해되는 과정을 거친다. 분해가 채 끝나기도 전에 복숭아를 먹으면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 복숭아의 상큼한 맛을 내는 유기산이 장에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2. 게, 감(식중독)

게 요리를 먹은 다음에 후식으로 감이나 곶감, 수정과를 먹으면 소화불량을 동반한 식중독에 걸릴 수 있다. 게는 고단백 식품으로 식중독균의 번식이 빠르다. 만약 게의 유해한 성분이 있으면 그 즉시 설사로 배출돼야 하는데, 감을 먹으면 그 속의 탄닌 성분 때문에 변비가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해로운 균이 몸속에 남아 식중독에 걸릴 수 있다.

3. 조개, 옥수수(식중독)

조개도 게처럼 상하거나 세균이 감염되기 쉽다. 산란기에는 스스로 보호하려고 독성물질을 만들기도 한다. 또 옥수수도 소화가 안 되는 음식이다. 조개를 먹은 다음에 옥수수를 먹으면 소화가 더뎌지고 유해균 배출이 원활하지 않아 배탈이나 식중독이 발생할 수 있다.

4. 문어, 고사리(소화불량)

문어와 고사리는 둘 다 위에 부담을 주는 식품이다. 문어는 고단백이지만 소화가 잘 안 되고, 고사리는 섬유질이 많아 위가 약한 사람이 소화하기엔 어렵다. 이 둘을 함께 먹으면 엎친데 덮친격으로 소화불량이 악화될 수 있다.

5. 스테이크, 버터(콜레스테롤 상승)

스테이크용 안심과 등심은 지방이 많아 부드럽고 맛이 좋다. 단, 지방이 많아서 고열량 고 콜레스테롤 음식이다. 이는 버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스테이크를 요리하면서 버터를 함께 사용하면 입에서는 부드럽게 살살 녹겠지만, 혈액이 부드럽게 흐르기는 어렵다.

6. 라면, 콜라(칼슘 결핍)

탄산음료인 콜라는 칼슘 흡수를 방해한다. 이는 라면도 마찬가지다. 라면은 화학적으로 칼슘과 결합을 잘 하는 성질이 있어 칼슘 부족을 일으키기 쉽다. 만약 라면을 먹고 입가심으로 콜라를 마시면 몸 암에 저장된 칼슘까지 모조리 끌어들여 뼈와 치아를 약하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골다공증과 충치를 유발할 수도 있다.

7. 우유, 초콜릿(생활습관병)

우유와 초콜릿은 둘 다 유지방이 풍부한 식품이다. 유지방은 천연 지방이기는 하지만 과잉으로 섭취하면 비만과 고혈압, 고지혈증 등 생활습관병을 유발한다.

8. 고구마, 쇠고기(소화불량)

탄수화물인 고구마와 단백질과 지방으로 이뤄진 쇠고기는 소화에 필요한 위산 농도가 서로 다르다. 그래서 이 둘을 함께 먹으면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소화가 잘 안 돼 배탈이 날 수 있다.

9. 치즈, 땅콩(생활습관병)

치즈와 땅콩을 함께 먹으면 열량이 높고 지방이 많아 생활습관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또한 땅콩에는 많은 양의 인이 들어있는데, 치즈와 함께 먹으면 인산칼슘이 만들어져 칼슘이 손실될수가 있다.

10 수박, 튀김(소화불량)

수박의 91%는 수분이다. 수박을 먹으면 위액이 희석돼 소화가 더뎌질 수 있다. 이때 튀김처럼 소화시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음식을 먹으면 소화불량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943.html
kolaswqetsrq 11.02 12:57
◇ 꽃️新건강법 10가지

◇ (꽃)️新건강법 10가지

한국인은 너무 빡세게 산다.

모든 일을 모닥불처럼 불태우고 너무 빨리 사그라진다.

하지만 이젠 100세 시대다.

100년을 살아내려면 장거리 마라톤을 하듯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한다.

다 지키기는 어렵더라도 몇 가지만 지켜도 훨씬 건강해질 것이다.

모든 하는 일에 여유를 가지고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것이다.

▶ 건강지침서 십계명

1.한 시간만 일찍 자자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한 시간만 앞당겨보자.

한국인들은 너무 늦게 잔다.

아이들은 공부하느라 오락하느라 늦게 자고, 어른들은 일하느라 술 마시느라 늦게 잔다.

그래서 학교와 직장에는 잠이 부족한 사람투성이다.

제발 한 시간만 일찍 자라. 늦게 잔다고 해서 그 시간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히려 한 시간 더 자면 능률이 올라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한 시간만 앞당겨보자.

억지로라도 평소 잠자리에 드는 시간보다 한 시간만 앞당겨 누워보자.

처음에는 잠이 안 오겠지만 습관이 되면 잠이 온다.

그래도 안 되는 사람은 커피를 2주만 끊어보면 의외로 잠이 잘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물 2L를 홀짝홀짝 마시자

물의 중요성은 다시 말하면 잔소리다.

이번에는 물을 잘 마시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

물은 미네랄이 많이 포함될수록 세포 안으로 잘 흡수된다.

생수가 정수기 물보다 좋은 이유다.

물에 레몬 반쪽을 즙을 내어 넣어 먹어보자.

더욱 풍부한 미네랄을 섭취할 수 있다. 물은 찬물보다 상온의 물이 좋다.

가능하면 소주잔처럼 작은 잔으로 홀짝홀짝 마시는 것이 몸에 쉽게 흡수되어 내 것이 된다.

3. 고기는 늘 옳다

한국인은 아직도 고기섭취가 부족하다.

한국인의 72.6%는 단백질 섭취가 결핍되어 있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식물성 단백질은 아무래도 흡수와 효율성이 떨어진다.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젊고 활기차게 살려면 반드시 고기를 먹어야 한다.

단백질은 근육, 피부, 장기, 머리카락,

뇌의 원료가 되기 때문에 단백질이 부족하면 우리 몸의 모든 대사기능이 떨어진다. 또 단백질은 젊음과 정력을 유지시키는 성장호르몬, 성호르몬 생성이 관여한다.

돼지고기 목살 수육이나 소고기 우둔살이 단백질 함량이 높으므로 매일 일정량 먹는 것이 좋다.

4. 밀가루와 설탕 중독에서 벗어나자

평소 장이 안 좋은 사람, 피부가 안 좋고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밀가루와 설탕을 끊어 보자.

술과 담배만큼이나 몸에 안 좋은 것을 꼽으라면 밀가루와 설탕이다. ‘밀가루 중독’, ‘설탕 중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평소 장이 안 좋은가?

피부가 안 좋고 알레르기가 있는가? 밀가루와 설탕을 끊어보면 확실히 좋아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눈 딱 감고 2주만 끊어보자. 맑아진 피부, 날아갈 것 같은 컨디션 때문에 밀가루와 설탕을 멀리할 것이다.

많은 여성의 희망인 날씬한 몸매는 덤으로 따라온다.

5. 이제는 영양제를 챙길 때

음식에서 영양소를 모두 섭취하는 시대는 지났다.

땅의 영양소가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상원 보고서에 의하면 오늘날 인체에 필요한 영양소를 과일이나 채소를 통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음식물의 영양소 고갈로 인해 50년 전에는 하루 필요 철분을 보충하기 위해 사과 2알과 시금치 한단이면 족했는데 지금은 사과 13알, 시금치 19단을 먹어야 한다.

40세가 넘었는데도 영양제를 안 먹고 있는 사람, ‘나는 어떤 영양제를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는 사람은 기본 영양제 삼총사부터 시작해보자.

기본영양제는 종합 비타민 미네랄 영양제, 유산균, 오메가 3다. 이 세 가지 영양제는 중년이 되면 누구나 부족해지므로 매일 먹는 밥처럼 기본적으로 보충해 주는 것이 좋다. 나머지 영양제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고르면 된다.

6. 같은 시간에 30분만 걷자

매일 30분씩 같은 시간에 걷자.

건강을 지키는 데 그리 많은 운동은 필요치 않다. 오히려 무리한 운동으로 몸에 무리가 가는 경우가 더 많다.

하루 30분만 걷자. 빨리 걸을 필요도 없다. 산책하듯이 30분 정도 걷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조건이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걷자.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양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몸이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건강이 좋아지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아침에 걷든, 저녁에 걷든 상관없다.

일정한 시간이 중요하다.

칸트는 어려서부터 허약체질이어서 쉽게 병치레를 했지만, 규칙적인 생활과 건강관리로 80 평생을 건강하게 살았다. 그가 하루도 어김없이 정확한 시각에 산책에 나섰기 때문에 쾨니히스베르크 시민들이 칸트가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7. 하루 두 번 밥 먹듯이 스쿼트와 플랭크

아침에 일어나서 그리고 저녁에 한번, 하루 두 번 밥 먹듯이 스쿼트와 플랭크를 하자.

나는 식탁 앞에다가 매일 아침 운동과 영양제 먹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붙여 두었다.

스쿼트는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을 발달시켜주고, 플랭크는 코어 근육을 발달시킨다.

둘 다 우리 몸의 기둥이 되는 근육들이다. 두 가지 운동만 해도 몸의 균형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이 두 가지 운동을 하는데 5분이면 충분하다.

8. 헌신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새 신발을 사자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을 들어보자.

밑창이 닳아있거나 신발의 모양이 변형돼 있다면 헌신짝처럼 버려라. 그리고 나에게 잘 맞는 신발을 새로 장만하자.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신발이 변형되었다는 것은 이미 발을 보호하는 기능이 없어졌다는 의미이다.

망가진 신발을 신고 다니면 그 충격이 발을 넘어서 무릎으로 전해져 무릎 통증이 생길 수 있다. 40대가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발의 아치가 주저앉는데, 그러면 발볼이 넓어져서 신발이 안 맞게 된다. 이때도 좀 더 넉넉한 신발로 교체해 주는 것이 좋다.

9. 가끔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자

가끔 힘들어지면 나만을 위한 공간에서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자.

요즘처럼 우울증, 공황장애가 많은 시절이 없었다. 사회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복잡해서인 것 같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나만 위해 살자. 그것이 나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남에게도 스트레스를 안 주는 길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이 와 닿는 시절이다.

그리고 가끔 힘들어지면 나만을 위한 공간에서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자.

잠시 나를 돌아보면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긴다. 정신이 건강해야 육체도 건강할 수 있다. 항상 긍정의 힘으로 살아가자.

10. 내 몸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내 몸은 나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싶어서 어떤 형태로든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는 약간 피곤한 정도일 수도 있고, 통증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몸이 이야기하는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아니면 분명히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몸이 하는 이야기를 무시한 대가는 반드시 이자를 쳐서 받게 됨을 명심하자.

가끔은 조용한 곳에서 내 몸이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여보자. 몸이 하는 이야기는 항상 옳다.

"유재욱 재활의학과 의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54.html
kolaswqetsrq 11.02 12:57
◇ 중년의 회춘비법 꿀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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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의 회춘비법 꿀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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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십견과 근육건강에 좋다.

근육이 피로하면 근육에 젖산이 쌓이고 그게 아주 불쾌감이나 통증을 유발하는데 이 근육에 있는 젖산을 좀 밖으로 배출하거나 해소하게 하는데 비타민B1이 필요합니다.

근데, 마늘에 있는 알리신 성분이 이 비타민B1을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꿀은 우리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과당이나 포도당이 굉장히 함축적으로 많이 들어 있는 음식입니다.

그래서 근육도 일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그런 당 성분은 근육에 에너지를 공급해 주고 마늘에 있는 알리신 성분은 근육에 쌓인 피로물질인 젖산을 해소하게 해주면서 근육량이 좋아지고 관절이 안정적으로 유지가 되면 오십견 통증도 좋아질 수 있습니다.

1. 다이어트 하느라 식사량을 줄여 공복감이 큰 사람들에게 공복감을 줄여준다.

2. 기운, 원기가 부족한 사람에게 기운을 만들어 준다.

3. 낮에 잠이 많이 쏟아지는 만성피로에 도움을 준다.

4. 산행, 골프 등 운동을 자주 하는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준다.

5. 술이 약한 사람의 간을 보호해준다.

6. 칼륨 성분이 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낮춰준다.

7. 몸이 찬 사람에게 열을 만들어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8. 혈액을 정화하여 동맥경화, 혈관질환에 도움을 준다

9. 게르마늄이 다량 함유되어 피부염, 알레르기에 좋다.

10. 항암 성분이 암이 크는것을 억제하고 예방한다.

11. 알리신 성분이 위액분비를 촉진 소화를 돕는다.

12. 체내에 불필요한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해준다.

▶ 꿀마늘 만드는 방법

1. 마늘을 까서 물기 없게 준비 하여 찜기에 5~10분 찐다. (핵심은 마늘의 매운 맛이 없어질 만큼만 살짝)

2. 용기에 마늘을 담고 꿀을 조금 잠길만큼 붓는다(이 꿀은 다음 번에 또 쓴다)

3. 1~2주 간 서늘한 곳에서 숙성하면 끝.

*꿀을 바닥에 조금 남기고 따라내어 다음 번에 또 쓴다(당연히 마늘에 흡수된 양 만큼은 보충해 준다)

▶ 꿀마늘 먹는 방법

1. 아침 저녁으로 한 숫갈(6~8알)씩 섭취하며 증량하고 싶으면 점심에 더 먹어도 되고 맛도 좋으니 취향에 따라 복용량을 증감해도 된다.

2. 꿀마늘의 가장 좋은 점은 마늘을 익혔기에 부작용 걱정이 없어 안심이다. 다만 당뇨환자는 과다 섭취하지 않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012.html
kolaswqetsrq 11.02 12:58
◇ 암세포 얼씬도 못하게 하는 4대 항암 음식

◇ 암세포 얼씬도 못하게 하는 4대 항암 음식

1.콩가루의 항암력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수는 무려 60조 개. 이것들의 주성분이 단백질이다. 따라서 단백질을 적게 먹거나 질이 나쁜 것을 먹으면 절대로 건강해질 수 없다. 콩은 양질의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식품 이다. 따라서 세포를 건강하게 하는 데 일조하고, 이는 암의 발생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콩에는 리놀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만병을 예방하는 첨병이 된다. 리놀산 은 동물성 지방으로 생긴 핏속 또는 혈관벽에 달라 붙어 있는 진득진득한 물질인 콜레스테롤을 녹여 몸 밖으로 몰아 내 버리고 혈관을 유연하게 하는 놀라운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콩을 많이 먹으면 동맥경화증이나 고혈압 뿐만 아니라 만병에 효과 가 있다.

2. 마늘의 항암력

자연이 준 최고의 양념 마늘 또한 항암효과가 월등한 식품 중 군계일학 이다. 그 동안의 연구 결과 마늘은 암균의 증식을 강력하게 억제해서 초기 치료 또는 연명에 효과가 뛰어난 것 으로 밝혀졌다. 마늘 속에는 항암작용을 하는 게르마늄과 기타 미지의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3. 깨의 항암력

고소해서 맛이 좋은 깨도 빼 놓을 수 없는 항암제다. 참깨를 100일 먹으면 모든 병이 완치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깨에 풍부한 식물성 지방 성분인 리놀산은 우리 몸의 신경세포를 구성하는 중요한 성분이다. 따라서 이 성분이 부족하면 머리가 나빠지고 신체 각 부에 병이 생긴다. 특히 리놀산은 피와 살을 맑게 하고 혈관을 청소해주는 효과가 있다.

4. 식초의 항암력

새콤한 맛으로 입맛을 사로잡는 식초는 우리 육체를 정화시키는 최고의 식품이다. 우리 몸은 해로운 음식을 먹거나 과식을 하면 몸 속에서 썩어서 독을 만들고 병이 생긴다. 식초는 이러한 나쁜 균을 없애 주는 강력한 살균제다. 따라서 식초는 우리 몸의 피와 살을 깨끗이 하는 정화제 이고, 신진대사를 원활히 하는 촉진제 이며, 자연 치유력을 최고도로 높여 주는 면역 증강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4_25.html
kolaswqetsrq 11.02 13:00
◇ 찬물은 흡연보다 더 나쁘다

◇ 찬물은 흡연보다 더 나쁘다

아침에 일어나 아무 생각 없이 시원하게 냉수를 마시는 사람이 많은데, 냉수는 폐질환의 원인이 된다. 흡연보다 더 폐에 나쁜 것이 바로 냉수이다. 수면 후 속이 빈 상태로 냉수는 위를 세척해준다고 믿었다. 허나 냉수는 속을 세척하기는 했지만 폐에 무리를 주었다. 지속적인 습관이 반복되면 될수록 폐에 물이 차게 되었고 결국 폐질환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또한, 냉수는 체온을 떨어뜨리고 음식을 굳게 하여 소화를 방해하며, 폐에 물이 차게 하여 폐활량을 떨어뜨리고 쉽게 지치게 한다. 특히, 고기를 먹고 난 뒤 마시는 냉수는 소화도 잘되지 않을 뿐더러 체내에 남아 콜레스테롤로 인한 질병의 원인이기도 한다. 냉수를 마시면 마실수록 지구력과 면역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질병은 몸이 냉하게 되면 발병한다. 체온이 떨어지면 면역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냉수만 줄여도 체온이 1° 이상 올라간다. 체온이 1° 이상만 높아져도 면역력은 강화된다. 체온이 오르면 오장육부가 원활하게 소통되어 혈액의 흐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눈을 뜨자마자 냉수 한 컵을 들이키면 위장은 오므라들고 폐는 냉하게 되어 물이 차게 된다. 습관적인 냉수는 하루에 담배 두세 갑을 피우는 골초보다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물은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생명수이다. 요즘은 가정마다 정수기가 있으니 쉽게 음양탕(생숙탕)을 만들 수 있다. 뜨거운 물을 먼저 받고 냉수를 반 정도 받으면 바로 음양탕이 된다. 처음에는 쉽지 않겠지만 지속적으로 습관을 들이면 후에는 냉수를 마시지 않게 된다.

따듯한 미온수를 마시는 습관을 들이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308.html
kolaswqetsrq 11.02 13:00
◇ 섹스는 신이내린 최상의 보약이다

◇ 섹스는 신이내린 최상의 보약이다

정액 성분이 난소암 세포를 죽이는 효과가 뛰어나다는 최근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산부인과 팀의 연구결과가 화제가 되고 있다.

새삼 섹스가 그렇게 건강에 좋다는 말인가 라는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섹스는 대략 10가지의 건강상 혜택을 주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육희(女六喜) 남육보(男六寶)

여인이 갖추어야 할 육희(六喜)

1) 착 (窄) ᅳ 좁고,

2) 온 (溫) ᅳ 따뜻하며,

3) 치 (齒) ᅳ 꽉 물고 잘근잘근 깨물며,

4) 요본 (搖本) ᅳ 엉덩이를 돌려 흔들며,

5) 감창 (甘唱) ᅳ 즐거워 숨막히는 소리를 지르고,

6) 속필 (速畢) ᅳ 빨리 음액(陰液)이 나와야 한다.

✔ 남자가 갗추어야 할 육보(六寶)

1) 昻 (앙) ᅳ 솟아 오르고,

2) 溫 (온) ᅳ 따뜻하며,

3) 頭大 (두대) ᅳ 머리가 커야 되고,

4) 莖長 (경장) ᅳ 줄기도 길어야 되며,

5) 健作 (건작) ᅳ 건강히 작동하여,

6) 遲畢 (지필) ᅳ 더디게 끝내야 한다.

1. 섹스는 그 자체가 좋은 운동

심폐기능을 향상시키며, 체중 감량에도 도움이 된다.

혈관을 팽창하게 만들어 혈액순환을 좋게하는 것은 물론, 신진대사를 촉진해 몸속 노폐물 제거에 큰 도움이 된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며, 몸에 좋은 고밀도 지단백(H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2. 다이어트 효과

한 차례의 오르가슴에 도달할 때까지 소비되는 칼로리량은 200m를 전력 질주했을 때, 소비되는 칼로리량과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한 번 섹스에 보통.200~400Kcal

가 소모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섹스를 상상만 해도 칼로리가 소모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3. 통증 완화

섹스는 몸 구석구석 근육의 긴장을 풀어 휴식상태로 돌아가게 해준다.

이는 마사지 효과와 비슷하다.

섹스는 뇌 속에서 엔돌핀 호르몬 분비를 촉진, 두통 요통 근육통 생리통, 그외 치통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통증을 감소 시키거나 없애 준다고 한다.

실제로 편두통에 걸린 사람의 절반은 섹스행위 중 통증이 훨씬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4. 면역력 강화

성행위 도중에는 면역 글로블린 A의 분비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물질은 감기, 독감 등에 잘 걸리지 않도록 우리 몸을 방어한다.

골반 내로 흡수되는 남성의 정액이 여성의 면역력을 증강 시킨다는 보고도 있다.

5. 순환기 질환 예방

2000년 11월 영국 브리스톨대 샤에이브라힘 박사팀은 10년간 건강한 남성 2,400명을 조사한 결과 1주일에 적어도 3번 이상 섹스할 경우, 심근경색과 뇌졸중 발생률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섹스가 순환기 계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땀을 흘릴 정도로 적어도 20분 이상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섹스가 심장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지만, 부부의 정상적인 성행위 시에는 계단을 걸어 올라갈 때와 같은 압박이 심장에 가해지기 때문에 이로 인해 심장마비가 발생 할 확률은 전체 심장마비의 1%에 불과하다.

6. 미용에도 좋다.

정기적으로 섹스하는 여성은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분비가 활발해져 피부가 좋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스코틀랜드 로열 에든버러병원 연구팀이 3,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 3회 이상 섹스를 하는 사람은 평균 10년(남자 12년 1개월, 여자 9년 7개월) 더 젊게 산다고 평가됐다.

작년 영국 여배우 조앤 콜린스 (70)는 "나는 아직도 40대 처럼 보인다.

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섹스 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7. 노화 방지

성생활은 뇌를 자극해 노화와 치매, 건망증 진행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는 섹스를 통해 분비가 촉진되는 두 호르몬(엔돌핀은 스트레스 완화, 성장호르몬은 체지방 줄이고 근육을강화)

의 작용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남성의 경우 음경의 퇴화를 늦춰 발기부전을 예방하며,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증가시켜 근력을 강화한다.

여성의 경우 에스트로겐 분비의 활성화로 뼈가 단단해져 골다공증을 예방 할 수 있다.

8. 전립선 질환 예방

많은 남성들은 나이가 들면 전립선 질환으로 인해 소변을 보는 데,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성생활을 계속해온 남성은 이런 고통을 피할 수 있고, 전립선암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사정할 경우 고환에서 1억 마리 정도의 정자가 배출되면서 전립선 염증을 완화시킨다는 보고가 있다.

9. 자궁 질환 예방

여자가 정기적으로 섹스를 하면 자궁 질환이 줄어들고 자궁이 건강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폐경 후 성관계를 정기적으로 하지 않으면, 질 내부조직과 근육이 약화돼 세균감염에 취약해진다.

10. 정신건강에 좋다.

아름다운 성관계는 따뜻한 사랑을 주고 받는다는 진한 감정을 갖게 해준다.

결과적으로 자긍심을 높여주며 우울증, 무기력, 의욕 저하 등을 치료하는 데에도 효과가 크다고 한다.

이런 효과들 때문에 ‘섹스는 신이 내린 최상의 보약’ 이라는 말까지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665.html
kolaswqetsrq 11.02 13:01
◇ 손톱으로 알아보는 건강신호

◇ 손톱으로 알아보는 건강신호

1. 흰 반점이 생김

부딪혀 생긴 외상이거나 손톱 바닥의 혈관 변화 등으로 하얗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손톱이 자라면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무좀균 감염일 수도 있으니 피부과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2. 잘 부러지고 갈라짐

보통 노화와 관련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여성에게 많고 나이가 들수록 부러지기 쉽습니다. 매니큐어나 아크릴산, 젤을 너무 많이 발라서 그럴수도 있습니다. 손톱 꾸미기를 몇 주 정도 쉬고 크림을 발라 수분을 공급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3. 색이 노랗게 뜸

손톱 무좀이나 건선 혹은 담배 얼룩이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단순 얼룩이라면 틀니 세척제에 담근 후 씻어내면 되지만 무좀이나 건선이라면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4. 검은색 세로 줄무늬 생김

피부가 검은 사람들 중에 이런 세로 줄무늬가 잘 나타나는데 이는 손톱 바닥에 생긴 양성의 검은 점입니다. 그렇지만 줄무늬가 새로 계속 생긴다면 피부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악성 흑색종인지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5. 촛농이 흘러내린 것 같은 현상

호르몬의 갑작스런 변화나 갑상선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당뇨병이 있을 수도 있으니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6. 가운데가 둥글게 파임

한, 두 방울의 물을 손톱 중앙 부분에 떨어뜨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둥글게 파인것은 몸의 철분이 부족함을 나타냅니다. 혹은 심장병이나 갑상선기능저하 등이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7. 가로로 파임

차 문에 손톱이 끼이는 것 같은 외상으로 생길 수 있지만 당뇨병이나 순환기 질환, 혹은 폐렴, 볼거리 같은 열병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823.html
kolaswqetsrq 11.02 13:02
잠을 청請하다

잠을 청(請)하다

 "
잠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욕구이다. 잠이 보약이다 라는 말도 있다. 잠은 내가 가만히 있어도 스르르 나를 찾아오기도 하지만, 잘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 잠을 청하기도 한다. 잠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찾아와서 곤혹스럽게 하기도 하고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찾아오는 잠, 그리고 회의시간에 스며드는 잠은 정말 괴롭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만큼 견디기 힘든 게 잠이다.
",

하지만, 잠을 자고 싶은데 잠을 못 자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정말 더 힘든 일이다. 불면증은 밤에 아예 잠을 못 이루는 경우도 있고, 새벽에 일찍 깨는 경우도 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이에 따라 다르기도 한다. 우리는 잠을 못 자는 것을 ‘불면증’이라는 병명으로 부른다. 불면증은 다른 병을 부르기도 한다. 우울증을 동반하거나 심장이 두근거리며, 한없는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두뇌활동도 원활하지 않고 일상생활에까지 지장을 받는다.

잠이 안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말에는 잠이 안 올 때 부탁을 하라는 말이 있다. ‘잠을 청하다’라는 말이 바로 그런 의미이다. 잠에게도 부탁이 필요한 것이다. ‘청(請)’은 한자어임에도 우리말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장소에서 사용된다. ‘청이 하나 있다, 청을 들어 달라, 청을 거절하다’ 등에서 독립적으로 쓰이기도 하고, ‘청하다’처럼 ‘하다’와 함께 쓰이기도 한다. ‘청’은 ‘부탁하다’의 의미이다.

잠을 자야 생각이 정리되고, 심장이 제 속도로 가고, 머리가 맑아질 수 있다. 잠에게 부탁을 할 때는 자신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 우선 약속을 줄이고, 술을 줄이고, 생활을 조금 단순하게 할 필요가 있다. 호흡을 가다듬는 연습도 잠을 청하는 좋은 자세이다. 좋은 생각을 하고, 고마운 일을 떠올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잠을 청하는 좋은 자세일 것이다.

‘편히 주무십시오.’ ‘안녕히 주무세요’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라는 말은 우리의 잠이 얼마나 중요하고, 잠을 잘 자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표현하는 인사말인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938.html
kolaswqetsrq 11.02 13:02
◇ 심장에 좋은 슈퍼 푸드

◇ 심장에 좋은 슈퍼 푸드

1. 연어

연어를 비롯해 정어리, 고등어 등 좋은 지방이 풍부한 생선은 심장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꼽힌다. 연구에 따르면 이런 생선들에 들어있는 오메가-3 지방산은 부정맥이나 죽상동맥경화증 위험을 낮추고 중성 지방을 감소시킨다.

미국심장협회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생선을 적어도 1주일에 2번씩 먹으라고 권장한다. 오메가-3 지방산은 식이 보충제로도 섭취할 수 있다.

2. 오트밀

오트밀에는 수용성 섬유질이 풍부한데 이 성분은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미국 몬테피오레 메디컬센터의 영양학자인 로렌 그라프 박사는 "섬유질은 소화 기관에서 스펀지 같은 작용을 하는데 신체로부터 제거된 콜레스테롤을 흡수해 혈류에 흡수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는 "당분이 들어있는 인스턴트 오트밀을 피하고 대신 전통적으로 먹어온 오트밀을 먹으라"고 권장한다. 오트밀 외에 통곡물을 빵과 파스타 등으로 만들어 먹어도 심장에 좋은 효과가 있다.

3. 블루베리

2013년 나온 연구에 따르면 1주일에 3번 이상 블루베리나 딸기를 먹는 사람들은 이보다 적게 먹는 사람들에 비해 심장마비 위험이 32%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베리류에 들어있는 안토시아닌과 같은 플라보노이드가 혈압을 낮추고 혈관을 확장시켜 이런 효과를 낸다.

4. 감귤류

오렌지나 자몽 등 감귤류를 통해 플라보노이드를 많이 섭취하는 여성들은 적게 섭취하는 여성에 비해 허혈성 뇌졸중 위험이 19%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감귤류에는 비타민 C도 많이 들어있어 심장 질환 위험을 낮춘다.

단, 당분이 첨가된 감귤류 주스는 피해야 한다. 또 자몽주스는 일부 콜레스테롤 저하제나 혈압 강하제, 항생제, 항암제 등의 체내 흡수량을 지나치게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5. 콩 식품

두부나 두유 같은 콩 식품은 건강에 좋지 않은 지방이나 콜레스테롤 없이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좋은 먹을거리다. 콩 식품에는 단일 불포화 지방과 섬유질,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특히 정제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의 혈압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 콩 식품은 우유나 다른 단백질 음식과 비교했을 때 나쁜 콜레스테롤(LDL)을 현저하게 낮추는 효과가 있다.

6. 감자

튀겨서 먹지만 않는다면 감자는 심장에 좋은 효과가 있다. 감자에는 칼륨이 풍부한데 이 성분은 혈압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 여기에 섬유질이 풍부해 심장 질환 위험도 감소시킨다.

7. 토마토

감자처럼 칼륨 함량이 높다. 특히 항산화제인 라이코펜이 많이 들어있다. 라이코펜은 나쁜 콜레스테롤을 제거하고 혈관을 확장시켜 심장마비 위험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 또 칼로리와 당분 함량이 낮아 다이어트에도 좋은 식품으로 꼽힌다.

8. 견과류

아몬드, 호두, 피스타치오, 땅콩 등 견과류에는 심장 건강에 좋은 섬유질이 풍부하다. 또 비타민 E도 많은데 이 성분은 나쁜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킨다.

그라프 박사는 "과거에는 견과류에 지방이 많이 들었다는 이유로 기피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여러 연구에 의하면 견과류를 매일 먹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날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9. 녹차

2013년 나온 연구에 따르면 매일 4잔 이상 녹차를 마시는 사람은 어쩌다 한 번씩 녹차를 마시는 사람에 비해 심혈관 질환 발병 위험이 20% 낮았다. 또 녹차를 자주 마시는 사람은 조기 사망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10. 브로콜리, 시금치, 케일

채소에는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한데 이 성분은 항산화제로서 인체의 나쁜 화합물을 없애는 작용을 한다. 섬유질과 비타민, 미네랄도 많이 들어있다. 특히 케일에는 오메가-3 지방산도 들어있다.

11. 석류

석류에는 폴리페놀과 안토시아닌 등 수많은 항산화제가 들어있다. 이런 성분들은 동맥 경화를 막는데 도움이 된다.

연구에 따르면 3개월 동안 매일 석류 주스를 마신 심장 질환 환자들에게서 심장으로 가는 혈류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석류를 먹기가 쉽지 않다면 다른 과일로는 사과가 좋다"고 말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717.html
kolaswqetsrq 11.02 13:03
식초활용법

식초활용법

1. 탄 냄비 세척하기

냄비에 식초와 물을 1:1로 붓는다.

그 다음 15~20분 정도 끓인 후, 물을 버리고 수세미로 문지르면 힘을 주지 않아도 탄 자국이 쉽게 지워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전자레인지 청소하기

전자레인지용 용기에 물과 식초를 5:1로 담는다. 식초물을 담은 용기를 전자레인지에 5분정도 돌린다. 5분 후, 전자레인지 문을 바로 열지 말고 그 상태로 5분정도 둔 후 문을 열어 용기를 꺼내고 깨끗한 행주나 키친타월로 전자레인지 내부를 닦아낸다.

3. 화장실 냄새 제거하기

식초와 물을 섞어 스프레이에 담아 뿌려주면 되는데, 식초물을 이용하면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 때, 사과식초나 흑초 보다는 곡류식초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4. 전자주전자&커피메이커 때 제거하기

물과 식초를 섞어 전자 주전자나 커피 메이커에 부어준 후, 평소에 사용하던 것처럼 끓여주면 된다. 끓인 물을 버린 후 물로 씻어내면 전자주전자나 커피메이커 내부가 훨씬 깨끗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5. 가습기 때 제거하기

식초와 물을 섞어준 후, 식초물로 가습기를 청소한다. 여기에 베이킹소다를 넣어 풀어주면 더 뛰어난 살균효과를 볼 수 있다.

6. 수도꼭지 세척하기

물과 식초를 섞어 수도꼭지에 뿌려 칫솔로 닦아준다. 또는 젖은 천에 싸매서 식초를 적셔 두면 된다. 이렇게 하면 수도꼭지의 물때도 제거되고, 소독이 되면서 쉽게 세척할 수 있다.

7. 창문유리 청소하기

신문지에 물과 식초를 바르고 닦아내면 얼룩 또는 찌든 때를 쉽게 제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살균이 되기 때문에 창문 유리 청소에 큰 도움이 된다.

8. 스티커 자국 제거하기

휴지에 식초를 적셔준다. 적신 휴지를 스티커 자국에 붙여둔 후, 떼어내면 스티커 자국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9. 깨끗하게 세탁하기

탈색이 되는 옷 같은 경우에는 물 1리터에 중성세제 2스푼, 식초 2스푼을 넣어 세탁하면 탈색을 방지할 수 있다. 울니트 같은 경우에는 중성세제에 식초를 넣어 (스웨터 하나당 식초 2티스푼 정도) 세탁하면 수축을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커피, 음료수 등이 묻은 옷은 흡수가 잘 되는 헝겊에 식초를 약간 묻힌다. 식초를 묻힌 헝겊을 얼룩이 있는 부분에 가볍게 두들겨 닦아 낸 뒤 세탁하면 된다.

10. 카페트 얼룩 지우기

식초와 따뜻한 물을 섞어준다. 이 식초물에 수건을 적셔 얼룩진 곳을 닦아준다. 그 다음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하여 마무리하면 된다. 만약 음료 등을 흘린 직후라면 먼저 수건이나 휴지로 수분을 흡수해 준 후, 식초물로 얼룩을 지우는 것이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760.html
kolaswqetsrq 11.02 13:04
천냥빚도 갚는 말의 법칙 18계

천냥빚도 갚는 말의 법칙 18계

1.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듯 말의 파장이 운명을 결정짓는다.

2. 아침에 첫 마디는 중요하다. 밝고 신나는 말로 하루를 열어라.

3. 말은 에너지다. 좋은 에너지를 충전시켜라.

4. 말에는 각인효과가 있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 그대로 된다.

5. 밝은 음색(音色)을 만들어라. 소리 색깔이 변하면 운세도 변한다.

6. 정성을 심어 말하라. 정성스런 말은 소망 성취의 밑바탕이다.

7. 투명스러운 말투는 들어온 복도 깨뜨린다. 발성 연습을 게을리 말라.

8. 불평불만만 쏟으면 안되는 일만 연속된다. 투덜대는 버릇은 악성 바이러스 이다.

9. 열심히 경청하면 마음의 소리까지 들린다. 상대 말에 집중하라.

10. 시비에 끼어들지 말고 자기 길로 가라. 두고두고 후회한다.

11. 말에는 견인력이 있다. 없는 말 퍼뜨리면 재앙이 따른다.

12. 부정적인 언어는 불운을 초래한다. 긍정적인 언어로 복을 지어라.

13. 때로는 침묵하라. 침묵은 최상의 언어이다.

14. 눈으로 말하라. 눈은 입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15.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좋은날 입니다." 를 항상 사용하라.

16. 대화에도 질서가 있다. 끼어들기, 가로채기는 예의가 아니다.

17. 잘못하면 용서를 빌고, 용서를 빌면 용서하라. 그래야 사랑과 평화가 깃든다.

18. 좋은 책은 소리 내서 읽고 또 읽어라. 놀라운 변화가 나타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8_25.html
kolaswqetsrq 11.02 13:05
◇ 장수 하는 비법 38가지

◇ 장수 하는 비법 38가지

밝은 마음으로 살라.

마음이 밝아지면 몸에 병이 발붙이지 못한다.

병을 두려워 말라.

병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죽는다.

불평을 하지 말라.

불평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저승사자이다.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여라.

손발이 건강해지면 온 몸이 건강해진다.

열심히 웃어라. 웃다보면 즐겁고 즐거우면 활력이 넘친다.

열 받지 말라.

열을 잘 받는 사람이 쉽게 간다.

음식을 적게 먹어라.

소식하는 사람이 오래 산다.

일을 즐겁게 하라.

즐겁게 일하면 인생이 천국이 된다.

오래 살려면 담배를 끊어라.

담배처럼 백해무익한 것도 드물다.

헬스클럽에 갈 필요가 없다.

맨손체조가 헬스클럽이다.

마음을 안정 시켜라.

충격처럼 위험한 것도 없다.

호기심을 가져라.

호기심은 젊음을 만든다.

끊임없이 머리를 써라.

머리를 쓰면 치매가 예방된다.

술은 보약이다.

그러나 적당히 먹어라.

신앙을 가져라.

자신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된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어라.

성질 급한 사람이 먼저 간다.

부부 사랑에 힘써라.

사랑의 열도가 높아지면 20년 더 산다.

고민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고민하지 말라.

고민은 생명을 좀 먹는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미움은 자신의 피를 탁하게 하여 없던 병도 끌어들인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밤 늦게까지 자지 않으면 노화가 빨리 온다.

아침에 일어나 생수를 3잔 마셔라.

좋은 물은 인삼 녹용보다 더 좋은 보약이다.

틈이 있으면 흙을 밟아라.

자연처럼 위대한 의사도 없다.

잠을 잘 자라.

잘 자는 사람이 건강하다.

무리를 하지 말라.

무리를 하면 무리가 생긴다.

의사 친구를 사귀어라.

의사는 내 생명을 지켜주는 파수꾼이다.

음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라.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괴로워 말라.

괴로움이 피를 말린다.

수양되는 글을 읽고 또 읽어라.

수양된 만큼 장수한다.

봉사하는 데 앞장 서라.

봉사하는 마음이 축복이다.

매일 밝고 힘찬 노래를 1곡씩 불러라.

살아있는 기가 온 몸에 생겨난다.

맑은 공기를 마셔라.

숨을 잘 쉬어야 장수한다.

고독은 병을 만든다.

좋은 친구를 사귀어라.

화내지 말고 이해하라.

이해하는 사람에게 생명 에너지가 생성된다.

편식하지 말라.

편식은 단명의 원인이다.

그 날 있었던 좋은 일만 기록하라.

넘치는 의욕이 장수를 보증한다.

할 일이 없어도 움직여라.

좋은 차도 오래 세워 놓으면 폐차가 된다.

좋은 취미를 길러라.

즐거움이 살 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준다.

희망을 가져라.

희망대로 이뤄진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8.html
kolaswqetsrq 11.02 13:06
말이 깨끗하면 삶도 깨끗해진다

말이 깨끗하면 삶도 깨끗해진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저마다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마음을 가다듬을 때 누가 다른 사람을 깍아내리는 말에 관심을 두겠는가? 험담은 가장 파괴적인 습관이다.

1. 입을 다물어라.

인간과 동물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의사소통 능력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귀한 선물을, 사랑을 전하고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불의를 바로 잡는데 써 왔는가? 아니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멀어지도록 했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 줄 좋은 말이 없거든 차라리 침묵을 지켜라.

2. 화제를 돌려라.

험담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나쁜 마음을 먹고 말하는 쪽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듣는 쪽이다. 대화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는 스포츠, 날씨, 경제 등 안전하고 흥미로운 화제로 바꾸어라. 험담이 시작될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면 상대방은 험담을 해도 아무 소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의할 것이다.

3. 믿지마라.

법정에서 증인이 해서는 안 될 말을 검사가 교묘하게 유도했을 때, 배심원들은 지금 들은 말을 무시하라는 판사의 요청에도 쉽게 그 말을 지우지 못 한다. 그 말은 이미 배심원들의 뇌리에 또렷하게 새겨졌기 때문이다. 들은 사실을 믿지 않기란 어렵다. 하지만 험담을 들었다면 믿지 말라. 험담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4. 용서하는 방법을 개발하라.

링컨 대통령은 자기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장관들 때문에 좌절과 분노를 느끼면 그 사람들 앞으로 온갖 욕설과 비난을 퍼붓는 편지를 쓰곤 했다. 그리고는 편지를 부치기 직전에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림으로써 자신을 괴롭히는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 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분노와 증오를 극복해라.

5. 충동을 이겨내라.

험담하고 싶은 욕망을 이겨 낼 때마다 자기를 칭찬하고 부정적인 말을 꺼내기 전에 자신을 다잡아라. 물론 험담하지 않는다고 박수를 쳐 줄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당신은 스스로 올바른 일을 한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278.html
kolaswqetsrq 11.02 13:07
◇ 김을 매일 먹으면 나타나는 몸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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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을 매일 먹으면 나타나는 몸의 변화
",

식탁 위에서 가장 손쉽게 바다의 신선함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은 김 몇 장을 꺼내는 것이다. 먹기 간편하고 맛도 좋은 김은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의 보고로 영양학적으로 손색이 없다. 마른김에는 100g 기준 당질 43%, 단백질 36%, 지방 0.7%가 함유돼 있고 칼로리는 163kcal로 낮다. 특히 단백질이 풍부해 마른김 5장(10g)은 달걀 1개와 맞먹는다. 비타민A와 C가 풍부할 뿐 아니라 비타민B1·B2·E, 칼륨과 칼슘, 마그네슘, 인 등의 무기질이 가득하다. 알고 먹으면 놀라운 김 효능 10가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자.

1. 혈압을 떨어뜨린다.

우리 몸은 염분을 많이 섭취하면 염분 중에 들어 있는 나트륨으로 인해 혈관이 수축되는데, 해조류 에 함유된 칼륨이 혈압을 내리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고혈압, 뇌경색, 뇌출혈, 심근경색, 신장기능 저하등 각종 성인병 증세에 효과가 있다.

2. 골다공증을 예방해 준다.

다시마, 미역, 김, 톳 등에는 칼슘 함량이 분유와 맞먹을 정도이다. 칼슘은 뼈와 이의 형성에 필수적인 성분으로 어린이의 성장발육을 돕고 갱년기 이후 여성의 골다공증, 골연화증을 예방해 준다.

3. 갑상선 부종을 막고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한다.

우리 몸에 요오드가 부족하면 갑상선 기능이 약해져서 몸의 저항력이 떨어지고 신진대사가 저하되며 기력이 없어진다. 성장기에 요오드가 부족하면 갑상선이 부어 오르고 지능 발달이 늦어지며 머리털이 빠지고 피부가 거칠어지는 등의 노화현상이 일어난다. 해조류에는 갑상선 호르몬의 구성 성분인 요오드가 풍부해 갑상선을 보호해주므로 갑상선 부종을 방지하고 머리카락 을 아름답게 가꾸어 준다. 산삼나라밴드

4. 변비를 치료한다.

해조류에는 알긴산이라는 식물성 섬유가 함유되어 있어 대변을 부드럽게 해주므로 변비를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이 알긴산은 또 암세포를 약화시켜 주는 물질로서도 주목 받고 있다.

5. 비만을 방지한다.

해조류의 성분을 보면 단백질이 10%,당질이 30~40% 정도이고 그밖에 칼슘, 칼륨, 요오드 등의 무기질이 나머지를 차지 한다. 특이한 점은 당질의 주성분이 식물성 섬유질이어서 칼로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만이 걱정되는 사람은 해조류를 많이 먹는것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산삼나라밴드

6. 혈중 콜레스테롤 감소

김은 콜레스테롤을 배출 시키는데 직접적인 도움을 주어 혈중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준다.

7. 식이섬유 풍부

김은 식이섬유가 풍부해 콜레스테롤과 담즙산의 합성을 막아준다. 즉, 담즙산과 만나지 못한 콜레스테롤이 체내에 흡수 축적되지 못해 그대로 몸밖으로 배출된다. 그리고 식이섬유는 대장에 있는 발암물질을 흡착해서 배설시켜 대장암 예방에도 효과적 입니다. 김 100g에는 식이섬유가 양배추의 16배, 귤의 30배 이상이 들어있다.

8. 치매, 건망증 예방

김에 풍부한 비타민 B1, B2는 뇌신경 작용과 관계가 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는 건망증과 치매를 예방하는데 아주 좋은 역할을 한다.

9. 시력회복

체내에서 비타민 A로 변해 야맹증을 예방하고 시력을 보호하는 베타카로틴의 함량이 당근보다 많다고 한다.

10. 항암효과

김에 많이 함유된 포피란은 김에만 들어있는 생리활성물질이자 식이섬유의 일종이다. 포피란은 장의 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배변이 잘되게 하며 유독성분이 장내에 머무는 시간을 줄여 대장암의 발병률을 낮추며 위점막의 부종과 출혈등의 손상을 막아 위암의 발병률 또한 낮춘다. 푸코이단, 알긴산등과 마찬가지로서 암세포의 자연적인 세포사멸을 유도하며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한다.

▶ 좋은 김의 조건

1 일반적으로 50일 정도 자랐으며 검붉은 색에 윤기가 있고 맛을 보았을 때 담백한 것이 좋습니다.

2 검은 김에 약간의 초록김(청태)가 섞인 김이 일품입니다. 대체적으로 색이 검고 광택이 나며 좋은 향이 많이 나는 것이 중요하며 색이 다소 검지 않더라도 광택이 잘 나는것이 좋습니다.

3 불에 구웠을 때는 녹색빛이 선명하게 나는 것이 좋은 김입니다.

4 김을 물에 넣었을 때 잘 녹는 것이 좋은 김이며 김을 넣었던 물이 맑을수록 더 좋습니다.

▶ 김의 올바른 보관 방법

1 김 보관은 건냉한것이 기본입니다. 습기가 차지 않도록 밀봉하여 냉장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2 실온 보관 시 직사광선을 피하고 서늘하며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보관하세요.

3 냉동실에 밀봉하여 보관시 김의 향과 맛이 오랫동안 보존됩니다.

4 김이 눅눅해졌을 경우에는 전자레인지에 넣고 5~10초 정도 바삭바삭 해질 때 까지 가열해보세요. 맛과 향이 살아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773.html
kolaswqetsrq 11.02 13:07
◇ 미역을 약처럼 먹는 비법

◇ 미역을 약처럼 먹는 비법

푸른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싱싱한 미역은 그야말로 공해시대를 이기는 천연의 약이다. 각종 오염물질의 섭취로 혼탁해진 우리 몸을 깨끗이 청소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만병을 이기는 천연의 약, 미역으로 건강을 지키는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1. 미역은 피를 맑게 하는 주인공

미역을 물에 담가 보면 표면이 온통 진득진득 끈끈이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끈끈이는 일종의 특수한 섬유로서 보통 섬유는 물에 녹지 않는데 미역의 섬유는 물에 녹는다. 물에 녹는다 해도 아주 물에 녹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작은 알갱이로 분해되어 보통 섬유와 같이 소화가 안 된다. 게다가 보통 섬유와는 달리 진득진득한 성질이 있기 때문에 다른 물질에 달라붙거나 빨아들이는 힘이 강하다.

이렇듯 미역 섬유의 알갱이들은 핏속의 불순 물질에 철저히 달라붙어 포위해서 몸 밖으로 시원하게 몰아내 버린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미역에는 피를 덩어리 지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맑게 하는 성분도 듬뿍 함유돼 있다는 것이다. 이때까지 알려진 것만 해도 후고이단, 라미닌, 후고스테롤, 클로로필, 에이고사 판타엔산 등이다.

이와 같이 미역에는 피를 맑게 하는 성분들이 한 종류가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어서 합작하여 철저히 피를 맑게하고 잘 순환시키기 때문에 만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2.미역은 암을 예방한다

영국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섬유식을 많이 먹는 아프리카의 인도인들의 대변의 통과시간이 약 30시간인데 영국인, 미국인 등은 섬유식을 안 하고 가공 정제된 식품을 먹기 때문에 평균 72시간을 이상을 소요하고 대변량도 적다는 것이다. 대변은 체내의 노폐물로서 그 중에는 몸에 해로운 것이 많이 들어 있다. 특히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들어 있다. 그런 것들이 장안에 몰래 머물러 있으면 발암독이 농축되어 암이 유발되는 것이다.

식물 섬유는 콜레스테롤뿐만 아니라 발암물질,기타의 병원 독을 흡착해서 몸 밖으로 몰아내버린다.

3. 미역은 담배의 독을 몰아낸다

담배의 니코틴은 쾌감을 비롯해 심장병, 뇌졸중, 기타 만병을 유발하는 원흉이다. 니코틴 독이 걱정이 된다면 반드시 미역을 먹도록 하자.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담배 연기만 마셔도 몸에 해롭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소 미역 된장국을 상식해서 그 해독을 막도록 하자.

4. 미역은 뼈를 강하게 한다

미역에는 칼슘이 100g당 약 960mg 들어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1일 칼슘의 양은 약 600mg이다. 칼슘은 우리 몸에서 척추를 위시해서 뼈를 만드는 재료다. 따라서 만약 칼슘이 부족하면 건강은 고사하고 인간이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끼니마다 미역을 부지런히 먹도록하자.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뼈에서는 칼슘이 빠져 나와 나중에는 구부정한 노인이 될 수 있으니 그것이 싫다면 더욱 많이 미역을 먹어야 한다.

5. 미역은 노화 막는 불로초다

각종 미네랄, 특히 요오도가 많이 들어 있고 피를 맑게 하기 때문이다. 또 미역에는 물에 녹는 특수 섬유가 들어 있어 피부를 더럽히는 독소를 말끔히 몸 밖으로 몰아내 준다. 변비는 우리 몸에 독을 만들어서 피부를 망쳐버린다. 여드름, 기미, 주근깨는 다 변비의 독이 만든다. 섬유가 풍부한 미역, 콩, 현미, 깨 등을 많이 먹으면 변비에 걸리지 않는다. 또 피부를 아름답게 하려면 비타민 A, B1, B2, C, E 등도 필요한데 뜻밖에도 미역에 이들 영양소가 많다.

미역에는 중요한 영양소인 단백질, 지질, 당질 등이 풍부하고 섬유, 미네랄, 비타민 등도 많이 들어 있다. 특히 미역에는 칼로리가 거의 없으므로 많이 먹어도 살찔 염려가 없다. 다시마 김 등의 해초도 미역과 동등한 영양가가 있으므로 참고하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936.html
kolaswqetsrq 11.02 13:08
이것만 알아도 치과 갈 일 없다

이것만 알아도 치과 갈 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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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귀찮아도 3·3·3 법칙을 실천하자
",

 "
3·3·3 치아관리법 : 하루 세 번, 식후 3분 이내에, 3분 동안 이를 닦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

02. 치약에 물을 묻힌다고요?

습관처럼 칫솔에 물을 묻혀 이를 닦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잘못된 방법이다. 물 묻혀 칫솔질을 하면 거품이 많이 일어나는데, 이 거품이 이를 골고루 효율적으로 닦는 것을 방해한다. 어색하더라도 마른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닦아 보자.

03. 치아에 맞는 맞춤 칫솔을 사용해요

칫솔모는 털 성질에 따라 매우 부드러운 울트라 소프트, 이보다 덜 부드러운 소프트, 평균적인 미디엄으로 분류한다. 자신의 치아 강도에 따라 칫솔모를 골라 쓰는 게 원칙이다. 일반적으로는 소프트를 권장한다. 치아가 많이 파이거나 마모된 사람은 울트라 소프트가 좋다.

04. 칫솔질 방향이 있어요

이 닦을 때는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닦는 방법이 올바르다. 옆으로 세게 문지르면 치경부 마모로 치아와 잇몸 경계 부위가 파인다. 미관상 안 좋을 뿐 아니라 잇몸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치아 바깥쪽과 혀 닿는 안쪽 면도 같은 방법으로 꼼꼼히 닦자.

05. 잇몸(치은)도 닦고 있나요?

‘풍치’라고 불리는 만성치주염은 대표적인 치주 질환이다. 치석, 치태 속 세균이 만들어낸 독소가 잇몸에 염증을 일으킨다. 잇몸이 붓고, 치아 닦을 때 피가 나거나 입 냄새를 동반한다. 잇몸 질환이 진행되면 잇몸뿐 아니라 치조골을 파괴해 치아가 흔들리고

결국 발치해야 하는 상황에 다다른다. 우리나라 성인의 절반 이상이 만성치주염을 앓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부적절한 칫솔질이다. 치석이나 치태가 생기지 않게 하려면 치석, 치태가 잘 침착되는 치아와 잇몸 사이 경계부나 치아와 치아 사이를 반드시 닦자. 잇몸도 빗질하듯 부드럽게 닦아야 한다. 이로써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치은이 치아에 잘 부착되어 있는 ‘부착치은’이 잘 유지된다.

06. 이쑤시개 대신 치실과 치간칫솔을 사용해요

치아 사이에 음식물이 꼈을 때 흔히 이쑤시개로 뺀다. 이쑤시개는 끝이 뾰족하고 단단해 치아 사이 삼각형 모양으로 채우고 있는 잇몸인 ‘치간유두’에 외상을 입히기 쉽다. 습관이 되면 잇몸이 점차 내려가 치아와 치아 사이 공간이 벌어져 더 자주 음식물이 끼게 된다. 그렇다면 내버려둬야 할까?

이땐 치실과 치간칫솔이 정답이다. 치아와 잇몸 사이가 좁은 사람은 치실을, 넓은 사람은 치간 칫솔을 쓰자.

07. 혀는 깨끗한가요?

입 냄새가 고민인 사람이라면 혀를 꼬박꼬박 닦고 있는지 확인하자. 혀와 입천장도 부드럽게 닦아야 한다. 구취가 줄고, 양치 후 한층 상쾌한 느낌이 든다.

08. 칫솔, 얼마 만에 바꾸나요?

너무 낡은 칫솔은 플라크 제거력이 30% 이상 떨어진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있다. 칫솔의 교체 시기는 치아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칫솔모 털끝이 벌어지면 바로 새 칫솔로 바꾼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089.html
kolaswqetsrq 11.02 13:08
■ 왕실 호칭의 이모저모

■ 왕실 호칭의 이모저모

조선시대 왕 중에는 왕위를 물려줄 후사(後嗣)없이 승하한 왕이 몇 명 있다. 이 경우, 직계 대신 방계(傍系)에서 왕을 영입하게 되는데, 이 때 왕이 된 사람을 낳아준 생부(生父)에게 붙여주는 명칭이 ‘대원군’이다.

명종의 뒤를 이은 선조나 반정으로 등극한 인조, 그리고 방계에서 영입한 철종의 생부는 모두 이미 죽었으므로 사후에 대원군으로 추존되었던 반면, 철종이 후사 없이 죽고 즉위한 고종의 아버지 흥선군만은 유일하게 생존 당시 대원군의 칭호를 받아 ‘흥선대원군’ 으로 불리게 된다. 살아있는 왕의 아버지,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어린 고종을 대신하여 약 10여 년간 정국을 주도하게 된다.

왕비의 아버지, 즉 왕의 장인에게 주었던 칭호가 부원군(府院君)인데, 이 명칭은 대체로 그들의 본관(本貫)에 맞추어 부여한다. 예를 들어, 선조의 장인인 박응선의 경우 반성부원군(潘城府院君)이고, 또 다른 장인인 김제남은 연흥부원군으로 각각 그들의 본관 지명(地名)을 딴 것이다.

같은 왕의 자식이라도 왕비 소생의 왕자는 ‘대군(大君)’ 후궁 소생의 왕자는 ‘군(君)’ 으로 불렀다. 왕비는 공식적으로 한명이고 후궁은 여러 명 둘 수 있었으므로, 당연히 ‘대군’보다는 ‘군’ 의 숫자가 훨씬 많다. 왕녀의 경우도 적서차별에 의해 왕비 소생의 딸은 ‘공주’, 후궁의 몸에서 태어난 딸은 ‘옹주’ 라고 불렀다. 공주나 옹주의 남편은 둘 다 ‘위(尉)’ 라는 칭호로 불리지만, 품계 상 공주에게 장가든 부마(왕의 사위)는 처음부터 종1품에 해당하고 옹주의 남편은 종2품에 해당한다.

왕비는 품계를 초월한 존재이지만, 후궁들은 모두 내명부의 품계를 받았다.

정1품 ‘빈(희빈, 공빈, 인빈)’에서부터 종1품 ‘귀인’ · 정2품 ‘소의’ · 종2품 ‘숙의’ · 정3품 ‘소용’ · 종3품 ‘숙용’ · 정4품 ‘소원’ · 종4품 ‘숙원’ 등이 있다. 이는 왕의 총애를 받은 정도, 자녀 생산 여부, 왕자를 낳았는가 여부, 그 왕자가 세자가 되었는가 여부 등에 따라 결정되었다. 우리 귀에 익은 장희빈(張禧嬪)은 후에 경종이 된 왕자를 낳았으므로 ‘희빈’에 해당하는 정1품 품계를 받았다. 사극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조귀인’ ‘정소용’ ‘이숙원’ 하는 것은 후궁들이 받은 품계 앞에 성씨를 붙인 것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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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09
■ 조선 개국의 원동력, 성리학 2편

■ 조선 개국의 원동력, 성리학 2편

성리학이 고려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성리학이 고려 말 추진된 개혁정치의 실천이념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리학의 어떤 측면이 개혁정치를 뒷받침해주는 요인이 되었을까? 성리학은 지배층의 수양(修養)과 수신(修身)을 강조하고 있다. 치자(治者)가 되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닦고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수기(修己)와 수양(修養)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여 하늘과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려는 성리학의 우주론에 바탕하고 있다. 나아가 성리학은 지배층이 올바른 경륜으로 세상을 바로 잡고 백성을 구제해야 한다는 경세제민론(經世濟民論)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리학은 치자(治者)층의 도덕성과 책임감을 강조하는 학문이다.

원 간섭기 이래 여러 차례 단행된 개혁이 실패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개혁의 주체인 국왕의 측근 세력의 부패이다. 치자(治者)층의 도덕성과 책임감을 강조한 성리학 이념은 당시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실패를 거듭했던 그간의 개혁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매우 적합한 이념으로 생각된 것이었다. 고려에서도 주회가 집주한 4서논어(論語)·맹자(孟子)·중용(中庸)·대학(大學)가 과거시험 과목으로 채택되면서 성리학은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성리학이 고려 말 개혁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었을까?

성리학적 개혁론은 두 가지 방향을 제시되었다. 하나는 지배층과 관료집단의 도덕성과 책임의식을 강조하였고, 그러한 자질을 갖춘 관료집단의 양성과 선발에 공정성을 학보하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로 정방(무신정권기에 만들어진 인사행정기관)을 혁파하는 등 올바른 인재 선발을 목표로 삼았다. 다른 하나의 방향은 당시 백성들의 커다란 불만인 권세가의 불법적인 토지약탈을 바로 잡고 새로 충원된 관료집단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전제(田制)를 개혁하여 새로운 토지제도 즉 과전법(科田法)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공민왕 때 성균관을 중영(中營)하였고, 이곳을 중심으로 이색. 정몽주등의 유학자들에 의한 성리학 연구가 본격화 되었으며, 성리학으로 무장한 새로운 관료가 과거를 통해 대거 정계에 진출했다. 이들은 사대부(士大夫)라는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결집되었고, 정도전 · 조준 등의 사대부세력은 성리학 이념에 입각하여 이 두 가지의 이른바 택인재(擇人才), 복과전(復科田)의 개혁 방안을 바탕에 둔 개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388년(우왕 14년) 위화도 회군 이후 이들은 이성계 일파와 전제개혁을 비롯한 전면적인 개혁을 행하면서 고려왕조는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왕조 조선이 개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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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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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25.html
kolaswqetsrq 11.02 13:09
■ 조선 개국의 원동력, 성리학 1편

■ 조선 개국의 원동력, 성리학 1편

고려 말 수용된 성리학은 고려 사회에 대한 본격적인 개혁의 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건국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마 이러한 결과를 예견했더라면 당시 고려 지배층은 성리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성리학은 당시 원나라에서 수용되었는데, 몇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고려의 학자나 문인들이 선진문물의 중심지인 원나라로 유학을 가기도 했다. 당시 원의 수도에는 성리학이 발달했던 남송 출신 성리학자들이 관리나 학자들로 많이 머물고 있었다. 이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성리학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 충선왕은 아들인 충숙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이듬해인 1314년 원나라 수도에 머물면서 학문기관인 만권당을 설치하고, 남송 출신의 뛰어난 성리학자와 고려 유학자들을 불러 들여 학문적 교류를 했다. 이를 통해 고려 지식인들의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었다.

마지막으로, 충선왕은 원의 황제에게 건의하여 1313년부터 원나라에 과거제가 시행되게 되었다. 당시 과거시험의 중요 과목은 성리학을 완성시킨 송나라 주희(남소의 유학자)가 주석을 단 논어(論語) · 맹자(孟子) · 중용(中庸) · 대학(大學) 등 네 가지 책이었다. 흔히 이를 사서집주(四書集註)라고 한다. 《사서집주(四書集註)》는 송 이후 중국인·한국인·일본인에게 가장 많이 읽혀진 고전에 속한다.

따라서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주희의 주석서를 읽어야 하고, 고려의 수많은 지식인들은 출세를 위해 고려 보다 원나라에서 시행하는 과거에 응시를 했고, 이를 통해 성리학은 자연스럽게 고려에 수용되기 시작했다.

- 2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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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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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10
◇ "청와대에 드러누운 한혜진.. 박술녀 "그게 한복인가?"

◇ "청와대에 드러누운 한혜진.. 박술녀 "그게 한복인가?"

최근 청와대에서 촬영한 패션 잡지 보그 코리아의 한복 화보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청와대 본관, 영빈관, 상춘재 등에서 찍은 파격 사진이 ‘국격’을 떨어뜨렸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공간의 특수성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니냐는 견해도 나왔다.

문화재청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은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국내외에 알리는 브랜드 사업”이라며 “협력 매체인 보그는 13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전 세계 27개국에서 발간되는 세계적 패션잡지로 동 잡지에 한복의 새로운 현대적 해석과 열린 청와대와 함께 소개되는 것도 새로운 시도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는 M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과연 서양 드레스에다가 우리나라 꽃신 하나만 신으면 그게 한복인가”라며 “상징적이고 세계 사람들이 바라보고 관심 갖는 그 장소에서 그런 옷을 찍은 것이 좀 아쉽고,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는 말을 정확하게 말씀드리고 싶다”고 일갈했다.

해당 화보에는 일본 아방가르드 대표 디자이너인 류노스케 오카자키의 의상도 포함돼 논란이 가중됐고, 현재 보그 코리아는 문제의 화보를 삭제한 상태다.

지난 5월 청와대가 74년 만에 개방되면서 청와대 활용을 둘러싼 잡음은 계속 불거지고 있다. 가수 비가 넷플릭스 예능 촬영을 위해 시민 1000명을 모아 깜짝 공연을 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고, 이달 초엔 IHQ의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이 청와대 앞뜰에 소파를 설치하고 특정 브랜드와 웹 예능을 촬영해 비난받았다. 이와는 별도로 9월부터는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등 4대 궁궐에서 소규모 웨딩 촬영을 허가 없이 허용하겠다고 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청와대라는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한 상징적 공간을, 과반의 국민적 동의 없이 폐쇄한 것”이라며 “폐쇄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개방이라는 허울로 포장하여 역사적으로 단절시켜 버린 것이다. 이러한 권한은 누구도 부여한 바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역사의식과 인문적 소양 없어"

청와대는 100일 만에 15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으면서 문화재와 시설 훼손, 쓰레기 투기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 문화계 인사는 “반세기 이상 역대 대통령이 사용했던 청와대는 건물은 물론 가구 배치 하나하나 살아 있는 역사이자 미래 유산”이라며 “공간을 향유하는 건 좋지만 너무 정신없이 빨리 진행되고 있다. 어떤 의사 결정을 거쳤는지도 알 수 없다. 보그 화보는 그런 인식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탁 전 비서관은 보그 화보를 두고 “일본이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든 이유는 식민지 백성들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하면서 대한제국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새 권력인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호감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며 “과연 윤석열 정부의 청와대 폐쇄는 어떤 이유냐. 윤석열 정부의 청와대 폐쇄는 절차와 과정 그리고 기대 효과 면에서 모두 실패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역사의식과 인문적 소양이 없는 정치권력이 얼마나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릴지 슬프지만 우리는 지속적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신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419.html
kolaswqetsrq 11.02 13:11
박시제중博施濟衆 -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하다.

박시제중(博施濟衆) -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하다.

넓을 박(十/10) 베풀 시(方/5) 건널 제(氵/14) 무리 중(血/6)

衆生(중생)은 부처나 보살과 구별하여 미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다. 불교를 떠나 모든 살아있는 무리, 또는 많은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중생을 구제한다는 濟衆(제중)은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 濟衆院(제중원)이듯 환자를 돌보는 병의원 이름에 많이 쓰인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이다. 이처럼 널리 도움을 주고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은 종교의 가르침만은 아니다. 널리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서(博施) 뭇사람을 구제한다(濟衆)는 좋은 말이 孔子(공자) 말씀으로 ‘論語(논어)’에 나오기 때문이다. 儒學(유학)을 儒敎(유교)라 하니 역시 종교의 가르침이라 할까.

공자가 가장 강조한 仁(인)은 본래 ‘등에 짐을 진 사람’을 의미했다는데 남을 사랑하고 어질게 행동하는 것으로 모든 이념의 근본이었다. 어떤 사람이 어진 사람인지를 말하는 단적인 표현이 雍也(옹야)편에 나온다. 雍(옹)은 仲弓(중궁)의 본명이다. 공자의 뛰어난 제자 孔門十哲(공문십철) 중에서 덕행으로 顔淵(안연)과 함께 꼽힌 冉雍(염옹, 冉은 늘어질 염)을 말한다.

대체로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자 할 때 남부터 일으켜 주고, 자신이 뜻을 이루고 싶을 때 남을 먼저 이루게 해주는 것(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이라 했다. 남을 이해하는 것이 앞서야 한다는 것인데 이 글의 앞부분에 성어가 나온다.

말솜씨가 좋은 제자 子貢(자공)이 여쭈었다. ‘만약 백성들에게 널리 은덕을 베풀어 많은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如有 博施於民 而能濟衆/ 여유 박시어민 이능제중) 그를 어질다고 일컬을 만합니까(何如 可謂仁乎/ 하여 가위인호)?’ 공자는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단순히 어진 사람을 넘어 성인의 덕치일 것이라 답했다.

그러면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온갖 재난이나 환란에서 구제해 주는 것이 堯舜(요순)정치의 이상이었지만 그러한 성군들도 그렇게 하지 못할까 늘 걱정하고 염려했다고 설명했다. 백성들을 고르게 잘 살도록 하는 것이 요순도 이루지 못할 만큼 어려웠으니 聖代(성대)는 드물 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을 널리 베풀고 잘 살게 하는 것이 인자는 물론 성자도 어려운데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회나 자치단체 등에 출마하여 자신을 뽑아주면 잘 살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정치인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숫자만 믿고 상대방과 협력은 물론 없어져야 할 존재인양 윽박지르면서 자기만 옳다고 하니 시끄러움이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소리 없이 약자들을 돕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남모르게 가난한 이웃들에 기부하는 의인들,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하는 의인들, 바이러스와 싸우는 의료인들 등은 결코 선행을 내세우지 않는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221.html
kolaswqetsrq 11.02 13:12
빈천자교인貧賤者驕人 - 빈천한 사람이 업신여긴다, 잃을 것이 없어 떳떳하다.

빈천자교인(貧賤者驕人) - 빈천한 사람이 업신여긴다, 잃을 것이 없어 떳떳하다.

가난할 빈(貝/4) 천할 천(貝/8) 놈 자(耂/5) 교만할 교(馬/12) 사람 인(人/0)

별 갖춘 것도 없는 사람이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지다면 驕慢(교만)하다고 모두들 멀리 한다. ‘대신댁 송아지 백정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잘 말해준다. 교만은 패망의 시초라고 말한 사람도 있고, 인간이 자기를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견해에서 오는 기쁨이 倨慢(거만)이라고 한 격언도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고 예수님은 가르쳤다. 孔子(공자)님도 ‘교만한 것보다는 차라리 빈천한 것이 낫다’고 述而(술이)편에서 경계했다.

가난하고 천한 사람(貧賤者)이 남을 업신여긴다(驕人)는 이 말은 빈천이 교만보다 낫다고 했지만 의외다. 재산도 권력도 없는 무지렁이가 남을 깔보고 교만하다면 상대할 사람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달리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으니 남에게 굽실거릴 것이 없다고 보면 이해할 만하다. 가진 사람은 잘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욱 남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이 말은 ‘史記(사기)’나 ‘十八史略(십팔사략)’, ‘說苑(설원)’ 등 여러 곳에서 같은 이야기로 나온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魏(위)나라의 文侯(문후)는 이름난 학자 田子方(전자방) 등을 중용하면서 강국으로 이끌었다. 위문후의 아들 擊(격)이 中山君(중산군)으로 봉해져 부임하는 길에 낡은 수레를 타고 가는 전자방을 만났다. 격은 공손히 예를 표했으나 전자방이 그냥 지나치자 달려가 물었다.

‘부귀한 자가 사람에게 교만합니까, 빈천한 자가 교만합니까(富貴者驕人乎 且貧賤者驕人乎/ 부귀자교인호 차빈천자교인호)?’ 전자방은 빈천한 자가 교만하다며 설명한다. ‘군주가 교만하면 사직을 보전할 수 없고, 대부가 교만하면 가문을 보존할 수 없습니다(夫諸侯而驕人則失其國 大夫而驕人則失其家/ 부제후이교인즉실기국 대부이교인즉실기가).’ 사기의 魏世家(위세가)에 실린 부분이다.

권세에 굴하지 않은 전자방은 위문후에 더욱 존경을 받았다. 잃을 것이 없다고 하지만 요즘의 직장인들은 업주나 상사들이 갑질하는 데도 떠날 형편이 못 되면 속으로만 앓는다. 그렇다고 높은 자리에서 교만을 부리는 재벌 3, 4세나 권력자들은 오래 갈까. 사원이나 부하들의 마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파멸만이 기다린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103.html
kolaswqetsrq 11.02 13:12
수심화열水深火熱 - 물은 깊고 불은 더욱 뜨겁다, 백성들의 극심한 고통

수심화열(水深火熱) - 물은 깊고 불은 더욱 뜨겁다, 백성들의 극심한 고통

물 수(水/0) 깊을 심(氵/8) 불 화(火/0) 더울 열(灬/11)

백성들이 몹시 곤궁하여 고통스러운 지경을 塗炭(도탄)에 빠졌다고 말한다. 진흙의 흙탕에 빠지고 숯불로 몸을 지지는 듯한 참상은 고대 중국의 폭군 桀紂(걸주)에 시달리던 백성들을 묘사했다. 물은 깊고(水深) 불길은 더욱 뜨겁다(火熱)는 말은 도탄에 비해 훨씬 고통이 덜할 것 같은데도 역시 백성들의 어려운 처지를 비유한 말이다.

물이 깊어 빠져나오려고 허우적거릴수록 더 가라앉고,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는 불길 속에 갇힌 것 같이 느낀다면 백성들의 고통이 적다고 할 수 없다. 이 성어는 악덕 군주의 학정을 실제 말한 것이 아니고 비유한 것으로 ‘孟子(맹자)’에서 비롯됐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와 燕(연)나라는 이웃한 나라로 모두 七雄(칠웅)에 들만큼 강성했다. 그런데 연나라에 무능한 噲王(쾌왕, 噲는 목구멍 쾌)이 들어섰을 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왕권도 재상에 물려주는 등 나라는 극도로 혼란했다. 제나라 宣王(선왕)이 기회를 잡아 연나라를 침범하고 순식간에 점령했다.

선왕은 무력을 동원하여 이웃 나라를 차지한 것에 대해 맹자에게 어떤지 의견을 물었다. 말 네 마리가 끄는 전차 萬乘(만승)을 부리는 천자가 다른 천자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닌가 하며 은근히 동의를 구했다. 梁惠王(양혜왕) 下篇(하편)에 그 대답이 나온다.

‘점령해서 연나라 사람들이 기뻐한다면 빼앗아 버리십시오(取之而燕民 悅則取之/ 취지이연민 열즉취지).’ 이렇게 말하며 옛날 주왕의 폭정에서 백성을 구한 武王(무왕)이 군대를 일으켰을 때 ‘대그릇에 담긴 밥과 병에 담은 음료를 가지고 왕의 군대를 환영(簞食壺漿 以迎王師/ 단사호장 이영왕사)’했던 예를 든다. 食은 먹을 식, 밥 사, 漿은 즙 장. 맹자는 그 이유를 덧붙인다.

‘물과 불의 재난을 피하려고 했던 것인데(避水火也/ 피수화야), 만약 물이 더욱 깊어지고 불이 더욱 뜨거워진다면(如水益深 如火益熱/ 여수익심 여화익열) 역시 다른 데로 옮겨가 버릴 것입니다(亦運而已矣/ 역운이이의).’ 백성을 괴롭히는 군주는 끌어내릴 수 있어도 다시 되풀이되면 마찬가지가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옛날 세습제로 통치자가 이어지다 무왕이 殷(은)나라를 엎고 周(주)나라를 세운 것을 맹자는 革命(혁명)이라며 인정했다. 백성을 괴롭히는 천자는 放伐(방벌)이 천명에 따른 것이니 정당한 것으로 봤다. 어디까지나 백성들이 잘 살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아 쫓겨난 경우도 많았다.

오늘날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나라의 독재자가 더러 있지만 대부분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다. 문제는 국민을 위한다며 민주적으로 뽑힌 나라도 표만 믿고 전횡을 부리는 경우 임기 동안은 물은 더 깊어지고 불은 더 뜨거워진다는 점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351.html
kolaswqetsrq 11.02 13:13
인지성수人之性壽 - 사람의 본성은 오래 살게 태어난다.

인지성수(人之性壽) - 사람의 본성은 오래 살게 태어난다.

사람 인(人/0) 갈 지(丿/3) 성품 성(心/5) 목숨 수(士/11)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까. 고생스러워, 치욕스러워 죽고 싶은 소수를 제외하면 모두 장수를 원할 것이다. 가장 오래 산 사람은 기네스(Guinness)에 오른 122세의 프랑스 할머니라는데 모두 성에 차지 않아 비공식 이야기를 찾는다. 중국 淸(청)나라 때 태어난 한의사 李慶遠(이경원)은 256년을 살고 1933년 죽었다고 해도 어림없다.

서기전 1세기 前漢(전한)의 東方朔(동방삭)은 西王母(서왕모)의 복숭아 蟠桃(반도, 蟠은 두를 반)를 훔쳐 먹고 三千甲子(삼천갑자)를 살게 됐다니 18만년 중에서 이제 2100년 정도 지났다. 황당함을 벗어나 의학이 점차 발달하여 질병을 이겨내고 비약적으로 오래 살게 됐다는 오늘날도 100년을 넘기기 어렵다.

듣기 좋은 성어가 하나 있다. 태어날 때의 사람의 본성은 오래 살게 되어 있다는 ‘呂氏春秋(여씨춘추)’의 이야기다. 秦(진)의 재상을 지낸 呂不韋(여불위)가 3000여 명이나 되는 빈객들의 지혜를 집대성하여 한 자의 오류도 없다고 一字千金(일자천금)을 자부한 책이다.

첫 부분 孟春紀(맹춘기)의 本生(본생)에 나오는 부분을 보자. ‘무릇 물의 본성은 맑은 것인데, 흙이 이를 흐리게 하므로 그 맑음을 보존하지 못한다(夫水之性清 土者抇之 故不得清/ 부수지성청 토자골지 고부득청). 사람도 본성은 오래 살 수가 있는데, 외부 물질의 유혹이 어지럽게 만들어 장수하지 못한다(人之性壽 物者抇之 故不得壽/ 인지성수 물자골지 고부득수).’ 抇은 어지럽힐 골.

그러면서 설명한다. 재물이나 욕망 등의 외부 물질은 본성을 기르는 수단인데 본성을 어지럽혀 가면서 그것을 추구하니 오래 살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천과 경중을 모르니 실패하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군주도 나라를 거스르고, 신하도 어지럽히며, 자식도 방탕하게 되니(君悖 臣亂 子狂/ 군패 신란 자광)’ 나라는 망하게 된다고 했다.

거창하게 넓혀 생각할 것 없이 오래 살 수 있게 태어난 생명을 유혹에 못 이겨, 쾌락을 찾다가 수명을 단축하게 되듯이 세상사 모두 귀천을 알고 거꾸로 하지 않으면 순리대로 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五福(오복)에서 長壽(장수)는 제일 첫손에 꼽힌다. 그런데 성군 堯(요)임금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장수와 부귀, 자손이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오래 살게 되면 욕될 일도 많다고 壽則多辱(수즉다욕)이라 봤다.

오래 살도록 태어난 수명을 秦始皇(진시황)같이 인위적으로 늘리려 해도 통하지 않고, 일생을 큰 일 이루고 굵게 짧게 산다고 무리를 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더군다나 세상 살기 싫다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줄이려 하는 것은 더욱 못할 일이다. 천명대로 살 수 있는 인생, 무리 않는 順命(순명)이 바른 길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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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14
비례물언 비례물동非禮勿言 非禮勿動 - 예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은 하지 말라.

비례물언 비례물동(非禮勿言 非禮勿動) - 예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은 하지 말라.

아닐 비(非/0) 예도 례(示/13) 말 물(勹/2) 말씀 언(言/0)

아닐 비(非/0) 예도 례(示/13) 말 물(勹/2) 움직일 동(力/9)

예의, 예절, 예법이라 하면 공연히 복잡하고 머리 아프다며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이 많다. 유교에서 예를 중시하여 사회의 질서를 위해 만들어진 방대한 윤리규범이니 다 지키기는 어려울 법하다. 보통 알려진 것만 冠婚喪祭(관혼상제)에 관한 四禮(사례)이지만 더 오래된 五禮(오례), 九禮(구례)까지 있다고 하니 당연하다.

예도 禮(례)의 글자에서 보일 示(시)는 ‘땅귀신 기’, 풍년 豊(풍)은 ‘높은그릇 예’의 음도 있어 인간이 신에게 제사 드릴 때 행하던 의식에서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것 말고 사람이 마땅하게 지켜야 할 도리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예를 중시한 유가에서 孔子(공자)는 ‘論語(논어)’를 통해 이를 강조한다. 예의에 어긋나면 말하지 말고(非禮勿言) 예의에 어긋나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動)고 한 것이다.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신중히 하라는 謹言愼行(근언신행)이다. 이 말이 나온 계기가 顔淵(안연)편에 실려 있다.

공자의 수제자인 안연이 仁(인)에 대해서 여쭙자 자기를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라 말했다. 자신의 사적인 욕구를 버리고 도리에 따른 예를 실천한다는 克己復禮(극기복례)가 여기서 나왔다. 안연이 다시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네 가지 조심할 것이 제시된다. ‘예가 아니면 보지를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 안연은 이 말을 명심하고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北宋(북송) 중기의 유학자 程頤(정이, 1033~1107, 頤는 턱 이)는 여기에서 視聽言動(시청언동) 네 가지의 四箴(사잠)을 지었다.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네 가지는 몸의 작용에 속하는 것인데 내면의 마음을 길러서 외면을 제어할 수 있다고 했다.

번거로운 예를 모르고서 사람답게 사는 사람이 대다수다. 법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 말이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張三李四(장삼이사)다. 그런데도 예와 법을 교묘히 어기고 속이고 빼앗는 사람들이 수시로 나타난다. 예법이 짐승과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라 했는데 이 기준을 지키지 못하면 어찌 되겠는지 반성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868.html
kolaswqetsrq 11.02 13:15
사인여천事人如天 -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겨라.

사인여천(事人如天) -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겨라.

일 사(亅/7) 사람 인(人/0) 같을 여(女/3) 하늘 천(大/1)

사람은 태어날 때 선과 악, 어느 쪽에 가까울까. 예부터 性善(성선), 性惡(성악)으로 대립했지만 오늘날도 주장은 여전하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고 하는가 하면, 이성은 고귀하고 능력은 무한하고 행동은 천사와 같다며 인간은 위대한 걸작이라 하기도 한다. 그래서 파스칼은 신과 동물의 중간적 존재에 사람을 위치시켰다. 철학자들의 결론 없는 주장은 뒤로 하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란 말은 모두 수긍한다. 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인권선언도 모두 옳다.

평등할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섬기기(事人)를 하늘과 같이 하라(如天)는 이 말 이상으로 사람을 중시한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민족종교 天道敎(천도교)의 기본 사상인 이 말은 조선 말엽 水雲(수운) 崔濟愚(최제우) 선생이 東學(동학)을 창시할 때부터 사람을 하늘처럼 모신다는 侍天主(시천주) 가르침에서 나왔다.

여기서 하늘은 사람인 한울님을 가리키고, 사람의 신분이나 성별에 따라 차별하는 바 없이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2대 海月(해월) 崔時亨(최시형), 3대 義菴(의암) 孫秉熙(손병희) 교주로 체계화되면서 사람이 곧 하늘이란 人乃天(인내천)으로 굳어졌다.

해월 선생이 한 유명한 말을 보자. ‘도인의 집에 사람이 오거든 사람이 왔다고 하지 말고 하느님이 강림하셨다고 말하라(道家人來 勿人來言 天主降臨爲言/ 도가인래 물인래언 천주강림위언)’. 이러한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사람을 하늘같이 여기는 삶인데 그 방식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자신의 내면에서 길러나가는 수행을 통해서만이 한울님을 모실 수 있다는 養天主(양천주), 타인을 신분과 성별에 의해 차별하지 않는 待人(대인), 나아가 사람만이 아닌 우주만물이 모두 한울님이 기화되어 이뤄졌다는 接物(접물)이 그것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교리는 모르더라도 사람이 곧 하늘이면 세상 민심이 하늘의 뜻인 것은 누구나 안다. 사람을 하늘처럼 잘 섬겨야 하는 사람은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멋들어진 구호나 공약으로 이 말을 내세워놓고 정작 실천할 자리가 주어지면 제몫 챙기는 사람이 더 많다. 또 남을 미워하면 내 안의 한울님을 상하게 한다고 여겼던 동학은 농민혁명이 비폭력 평화시위의 근원이 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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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15
한류협배汗流浹背 - 땀이 흘러 등이 흥건할 정도로 적시다, 몹시 두렵거나 긴장된 상황에 처하다

한류협배(汗流浹背) - 땀이 흘러 등이 흥건할 정도로 적시다, 몹시 두렵거나 긴장된 상황에 처하다

땀 한(氵/3) 흐를 류(氵/7) 두루미칠 협(氵/7) 등 배(肉/5)

땀은 피부의 건조를 막아주고 체온 조절하는 구실을 넘어 노력의 대명사로 많이 예찬된다. 수확의 기쁨은 그 흘린 땀에 정비례한다거나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땀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Edison)의 명언이 그것이다. 땀도 땀 나름이라 진땀이라 하는 油汗(유한)이나, 식은땀 冷汗(냉한)은 환영받지 못한다.

어려운 일이나 난처한 일을 당했을 때 흐르는 끈끈한 진땀, 몸이 쇠약해졌을 때나 몹시 놀라 오싹해졌을 때 흘리는 식은땀을 일부러 흘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은땀이 흘러(汗流) 등이 흥건할 정도로 적신다(浹背)면 얼마나 긴장되고 무서워했을지 능히 짐작된다.

이 이야기는 ‘史記(사기)’에 황제 앞에서 우물쭈물한 周勃(주발)의 태도를 나타내면서 약간 다른 표현으로 썼다. 주발은 劉邦(유방)이 項羽(항우)를 물리치고 漢(한)나라를 세울 때 전장마다 따라다니며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유방이 죽은 뒤 왕후 呂后(여후)는 아들이 즉위했을 때 공신들을 교묘히 제거하고 여씨 일족들을 제후에 봉하는 등 전횡을 부렸다.

주발은 왕조를 바로 세우기 위해 기회를 보던 중 여후의 사후 잔당들이 난을 일으키자 공신 陳平(진평)과 함께 모조리 잡아 주살했다. 5대 文帝(문제)가 왕위에 올랐을 때 진평은 여후 일족을 몰아낸 공이 더 크다며 주발에 우승상 자리를 양보했다.

문제가 국정을 파악한 어느 때 조회에서 주발에게 물었다. 일 년 동안 전국에서 옥사를 판결하는 숫자가 얼마인지, 재정상의 수입과 지출이 얼마나 되는지 거듭 물어도 우물쭈물했다. 陳丞相(진승상) 세가에 실린 내용이다. ‘주발은 또 모른다고 사죄했는데(勃又謝不知/ 발우사부지), 땀이 나 등을 적셨으며 대답하지 못한 것을 수치스러워했다(汗出霑背 愧不能對/ 한출점배 괴불능대).’

곁에 있던 진평이 구체적인 숫자는 주관하는 관리가 잘 알 수 있다고 거들어 줘 겨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주발은 자신이 진평의 능력에 못 미치는 것을 알고 병을 핑계로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처음 汗出霑背(한출점배)가 汗出沾背(한출첨배)로도 쓰고, 뒤에 汗流浹背(한류협배)가 됐다.

부지런히 땀 흘려 일을 처리하게 되면 나중에 식은땀을 흘릴 일이 적다. 평시에 준비를 착실히 해야 한다는 것은 어디에나 필요한 일이다. 그보다 진평이 국가의 모든 일은 각기 주관하는 전문 관리가 있다며 주발을 변호한 것은 오늘날 더 새겨야 할 말이다.

재상은 천자를 보좌하고 관원들의 직책을 잘 수행하도록 돕는 것이 업무라고 한 그의 말은,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고 다 좌우하려 하는 萬機親覽(만기친람)형의 높은 사람이 명심해야 한다. 어디에나 전문가 집단이 있고 잘 모르는 분야에는 몸을 굽혀 의견을 들어야 발전하는 법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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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16
궁당익견窮當益堅 - 곤궁을 당해서는 더욱 굳세어야 한다.

궁당익견(窮當益堅) - 곤궁을 당해서는 더욱 굳세어야 한다.

다할 궁(穴/10) 마땅 당(田/8) 더할 익(皿/5) 굳을 견(土/8)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순조롭기만 한 것이 아니고 궂은일도 닥치기 마련이다. 풍랑 없이 평온한 생활을 해도 곧잘 싫증이 나는데 막다른 골목에선 괴로워하며 큰 좌절을 겪는 경우가 많다.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참고 잘 이겨내면 나중에 행운이 온다고 선현들은 용기를 북돋운다.

‘불은 쇠를 단련시키고, 역경은 강한 사람을 단련시킨다’거나 ‘곤궁은 근면의 어머니’ 등은 서양격언이다. 우리 속담엔 竹竿頭 過三秋(죽간두 과삼추)로 번역한 ‘대 끝에서도 삼 년이라’ 잘만 견디면 ‘대한 끝에 양춘이 있다’고 믿었다. 역경을 참는 정도가 아니라 곤궁을 당해서(窮當) 더욱 굳건해져야 한다(益堅)는 말이 이 성어다.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중국 後漢(후한) 초기의 명장 馬援(마원)이다. 젊었을 때 新(신)나라를 세운 王莽(왕망)의 신하로 있다가 그의 사후 군웅할거 할 때 光武帝(광무제)를 섬겨 큰 공을 세웠다. 마원은 명문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글을 배우고 무예에도 뛰어난 인재였다.

제일 큰 형 馬況(마황)은 항상 마원에게 大器晩成(대기만성) 한다며 천성과 재능을 살리면 늦게라도 큰 인물이 될 것이라 격려했다. 형의 충고를 명심하며 매진한 결과 큰 공을 세운 장수에게만 수여되는 伏波將軍(복파장군)이 됨으로써 길이 역사에 남았다.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 열전에 성어의 유래가 실려 있다.

마원이 처음 지방관을 보좌하는 督郵(독우)가 되었을 때 압송하던 죄수들의 사정을 듣고서는 모두 풀어주고 북방으로 도주했다. 말을 다루는데 재능이 있어 방목사업을 하게 됐는데 크게 번창하여 재산도 모으고 고을 유지와 교류도 잦았다. 종종 빈객들에 이런 말을 했다.

‘대장부가 뜻을 세웠다면 가난할수록 더욱 굳세어야 하고, 늙어서도 더욱 씩씩해야 합니다(丈夫爲志 窮當益堅 老當益壯/ 장부위지 궁당익견 노당익장).’ 요즘도 자주 사용되는 老益壯(노익장)도 여기서 나왔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지자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 광무제 劉秀(유수)의 밑에서 활약하며 지금의 베트남 북부 交趾(交趾)를 평정하는데 일등공신이었다.

마원과 관련된 성어가 제법 된다. 곤경에 처해서 더욱 굳세어야 한다는 이 성어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젊은이나 큰 실패를 겪은 사람에게 필요한 말이다. 이 성어와 함께 나온 노익장이나 마원이 실천한 대기만성 말고도 마원다운 말이 더 있다.

남자라면 전쟁터에 나가서는 말가죽으로 싼 시체가 되어 돌아와야 한다는 馬革裹屍(마혁과시, 裹는 쌀 과)가 그것이다. 전투에 임할 때 장군은 대부분 이 말을 내세우지만 실제 예순 넘어서 나간 전장에서 병사를 독려하며 작전하다 전사한 마원이 실천한 이외는 드물다. 수시로 뚫리는 휴전선 방책 경계자와 그 상급자는 그 자세를 비교하기도 부끄럽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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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17
만선비아萬善備我 - 온갖 착한 행실이 모두 나에게 준비되어 있다.

만선비아(萬善備我) - 온갖 착한 행실이 모두 나에게 준비되어 있다.

일만 만(艹/9) 착할 선(口/9) 갖출 비(亻/10) 나 아(戈/3)

착한 사람, 악한 사람이 정해져 태어나는 것일까. 자기가 악인이라 믿는 사람은 없다. 흉악범도 어디 나쁜 사람에게 물들었거나 환경 때문이지 천성이 악인은 아니라 한다. 선인들이 남긴 말은 상반되어 내려온다. 대부분이 악이라 생각하는 측은 ‘선인은 두 사람밖에 없다. 하나는 죽은 사람, 또 하나는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라 극언한다.

‘세상에는 선인, 악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때에 따라 선인이 되기도, 악인이 되기도 할 뿐’이라고 반대로 보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해도 좋지만 ‘사람은 모두 선한데 그것은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人無有不善 水無有不下/ 인무유불선 수무유불하)’고 한 孟子(맹자)를 더 믿을 것 같다.

맹자의 선인으로 태어나는 것을 넘어 온갖 선행(萬善)을 모두에게 행할 준비가 나에게 되어 있다(備我)는 말을 남긴 栗谷(율곡)선생은 한 술 더 뜬다. 조선 중기의 李珥(이이, 1536~1584)는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으로 합격하여 사람들에게 九度壯元公(구도장원공)으로 불렸다는 대학자다.

율곡이 왕명으로 청소년의 교육을 쇄신하기 위해 학교와 가정, 사회생활을 정한 규정집 ‘學校模範(학교모범)’에 성어가 들어 있다. 윤리 기강이 날로 무너져가는 것을 한탄하며 세세한 분야까지 준칙을 제시하는데 모두 16개조로 되어 있다. 제일 먼저 배우는 자는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는 立志(입지)편에 나온다.

부분을 보자. ‘배우는 자는 먼저 뜻을 세워 가지고 도로써 자신의 임무를 삼아야 한다(謂學者先須立志 以道自任/ 위학자선수립지 이도자임). 도는 높고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닌데 사람이 스스로 행하지 않는다(道非高遠 人自不行/ 도비고원 인자불행). 만 가지 선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 있으니 달리 구할 필요는 없다(萬善備我 不待他求/ 만선비아 부대타구).’

태어난 바탕이 있으니 머뭇거리지 말고 민생으로 표준을 삼아 온 세상을 위해서 태평을 열어 간다면 훌륭하게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두 번째 몸가짐을 말한 檢身(검신)편에는 몸가짐과 행동을 다잡아야 한다며 걸음걸이부터 얼굴 표정까지 아홉 가지 태도 九容(구용)을 소개해 흥미롭다.

사람이 태어날 때 선하게 태어나고 선행을 할 준비가 잘 갖추어졌다고 옛 어른들이 가르치는데도 세상에는 악인만 우글거리는 것 같다. 사기에 폭행에 살인 등등의 사건이 끊이지 않으니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달리 보면 드러나지 않은 착한 사람들의 선행이 훨씬 많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온 동네에 소문내는 선인들은 없다. 이들은 칭찬을 바라지 않는다. 마음을 바르게 쓰면 신명도 보살핀다는 ‘마음 한번 잘 먹으면 북두칠성이 굽어보신다’란 믿음으로 오늘도 내일도 도울 생각만 하는 이들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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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18
동량지재棟樑之材 - 마룻대와 들보 같은 재목, 중요한 일을 맡을 인재

동량지재(棟樑之材) - 마룻대와 들보 같은 재목, 중요한 일을 맡을 인재

마룻대 동(木/8) 들보 량(木/12) 갈 지(丿/3) 재목 재(木/3)

젊은이를 가리켜 나라의 기둥이라 한다. 지난 세대까지만 해도 맏아들은 집안의 기둥이라 했다. 기둥은 물론 집을 지을 때 주춧돌 위에 세운 나무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나타낸다. 지금은 주추로 변했지만 일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柱礎(주초)다. 기둥과 주춧돌을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柱石(주석)이라 한다. 하지만 이것만 있어서는 집을 이룰 수 없다.

기둥을 이어주는 대들보가 있어야 하고 지붕을 떠받쳐주는 마룻대가 있어야 한다. 요즈음이야 기둥을 모두 철근으로 대체하여 이러한 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모르더라도 기초가 튼튼해야 멋지고 훌륭한 집을 짓게 되는 것은 같다.

등성이를 이루는 지붕이나 산 따위의 꼭대기가 마루인데 서까래를 지탱하며 집의 중앙을 버티게 하니 마룻대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지붕 가운데 부분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 마루인 용마루를 웅장하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기둥과 기둥 사이의 들보가 없으면 상단부가 형체를 유지할 수가 없다. 마룻대와 들보(棟樑) 같은 재목(之材)이라 한 이 말은 한 집안이나 나라를 떠받치는 중요한 일을 맡을만한 인재를 가리킨다. 큰 집을 이루는 大廈棟樑(대하동량), 또는 줄여서 棟梁(동량)이라고도 한다.

이 성어는 ‘吳越春秋(오월춘추)’에서 용례가 보인다. 吳越同舟(오월동주)란 말이 있듯이 중국 남방의 두 나라가 서로 경쟁하며 패권을 차지하기까지 흥망성쇠를 그린 책이다. 前漢(전한)의 趙曄(조엽, 25-56)이 썼다. 越王(월왕) 句踐(구천)을 섬겨 吳王(오왕) 闔閭(합려)에 패한 뒤 臥薪嘗膽(와신상담)을 하게 한 대부 文種(문종)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대부 문종은 나라의 동량이요, 임금의 조아이다(大夫文種者 國之梁棟 君之爪牙/ 대부문종자 국지량동 군지조아).’ 손톱과 어금니를 말하는 爪牙(조아)는 적의 습격을 막고 임금을 호위하는 신하를 비유한다. 句踐入臣外傳(구천입신외전)에 실려 있다. 나무 木(목)이 없는 梁(량)도 역시 들보란 뜻이다.

나라의 동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百年大計(백년대계)인 교육이 우선이다. 우리나라를 단기간 발전시킨 원동력도 교육의 힘이 컸다는 것은 모두 인정한다. 하지만 앞날에 적합한 인재를 잘 기르고 있는가는 모두 머리를 흔든다. 나라의 일꾼을 뽑고서 포부를 발휘하게 해주지 않고 정권 따라 몸을 사리게 해서는 성과를 기대하지 못한다. 동량을 잘 기르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156.html
kolaswqetsrq 11.02 13:18
◇ 美캘리포니아주,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

◇ 美캘리포니아주,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2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대기자원위원회는 이 같은 시행령을 25일 확정할 예정이다.

캘리포니아주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수소차의 신차 판매 비중을 현재 16% 수준에서 2026년에는 35%, 2030년에는 68%로 끌어올린다는 중간 목표도 설정했다. 또 2040년이면 자동차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50%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이번 조치는 신차 판매에만 적용된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2035년 이후에도 내연기관 차를 보유하거나 중고차로 판매하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

뉴섬 주지사는 성명을 통해 "탄소 공해를 근절하기 위해 담대한 조치를 취한다면 기후 위기 문제를 풀 수 있다"고 강조했다.

NYT는 "영국, 캐나다, 중국 등 주요국도 2030~2040년 사이에 내연기관차 판매금지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정부가 확정한 것은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최초"라고 보도했다

미국 최대 자동차시장인 캘리포니아주가 전기차로의 전환에 앞장서면서 미국 내 자동차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NYT는 적어도 12개 주가 캘리포니아의 계획과 동일한 내용의 규제를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자동차 업계는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자동차혁신연합(AAI)은 "계획을 달성하는 것은 상당한 도전이 될 것"이라며 "해당 규정은 인플레이션과 충전 및 연료 인프라, 전기차 배터리에 필요한 원자재 확보 등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035.html
kolaswqetsrq 11.02 13:20
◇ 장수와 수명의 상관관계

◇ 장수와 수명의 상관관계

▶ 낙천적인 사고 : 8년.

낙천적인 사람은 면역 체계가 튼튼해

질병에 잘 걸리지 않고, 걸려도 쉽게 낫는다.

연구에 따르면, 낙천적인 사고방식은 심장병에 좋아,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줄어든다고 한다.

▶ 자기 비하 : - 5년.

자기 비하는 삶을 좀먹는다.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건강도 신경을 쓰게 마련이며, 자주 행복감을 느끼며 산다고 한다.

요양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바 건강 상태가 비슷하더라도, 자존심이 높고 우울한 감정을 적게 느끼는 사람이 더 오래 살았다고 한다.

▶ 결 혼 : 7년.

결혼 생활이 원만하면 건강, 행복도, 경제력이 좋고 한 연구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은 사람보다 기혼자가 더 건강하고 수명이 더 길다고 한다.

▶ 이 혼 : - 3년.

이혼한 사람은 원만하게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보다 수명이 짧고 독신과 사별한 사람이 병원을 찾는 빈도가 높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보다 이혼이 건강에 더 좋다고 한다.

▶ 일과 인생의 균형 : 3년.

바쁜 일정과 계속되는 도전 속에서도 승승장구 하며 잘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일에 치여 모든 에너지를 빼앗기고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우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며,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는것을 아는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 스트레스 : - 2년.

스트레스는 죽음의 천을 짜는 실이나 다름이 없고 심하게 다치거나 인간관계로 큰 상처를 입어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수명이 1년씩 줄어들 수 있다.

▶ 유산소 운동 : 2년.

운동은 우리 몸 거의 모든 장기에 비법과도 같은 놀라운 일을 한다. 운동 효과는 주로 몸에 나타나지만 정신에도 놀라운 효과를 보인다.

▶ 너무 심한 운동 : - 2년.

격하고 지나친 운동은 근육이 산소를 충분히 얻을 여유가 없어져 무산소 대사를 하게 됨으로 근육에 젖산이 쌓여 욱신거리고 칼로리가 많이 소비된다.

▶ 장수한 부모 : 10년.

장수가 유전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로서 부모나 조부모님이 장수했다면, 당신 또한 장수할 가능성이 높다.

▶ 외동 아이 : - 5년.

연구에 따르면, 형제가 많은 사람은 적거나 없는 사람보다 더 장수하고 외동아이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수명이 5년쯤 짧다고 한다.

▶ 작은 키 : 5년.

70년대 미국에서 육상 선수와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분석해 보니 키가 작고 몸무게가 작게 나가는 사람이 장수하는 경향을 보였고 동물 실험에서도 같은종의 개체 가운데 키가 작고 덩치가 작은 것이 오래 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깡마른 몸매 : - 1년.

너무 마른 체형도 건강에 좋지 않다. 덴마크 코펜하겐 예방 의학원에 따르면, 적당히 살찐 편이 좋다고 한다.

엉덩이가 너무 작은 여성보다 조금 큰 여성이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밝혀냄

▶ 채 식 : 5년.

지중해 연안 사람들은 장수하는 사람이 많은데 주식이 과일, 채소, 견과류를 많이 먹고 정제된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 같이 채식주의자는 육식주의자보다 요절할 확률이 20프로 낮고 장수한다는 연구 결과들이다.

▶ 패스트 푸드 : - 4년.

패스트푸드에는 방부제, 정제당, 수소화 기름이나 단백질, 트랜스 지방 같은, 영양학자들은 소리를 지를 만큼이나 끔찍한 물질들이 놀랍게도 많이 들어있다.

▶ 명 상 : 3년.

동양인은 오래 전부터 건강과 장수를 위해 명상을 해왔는데 명상은 마음이 차분히 정리되어 근심 걱정과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 버릴 수 있고 집중력이 좋아지며, 다른 이들과도 쉽게 조화를 이루어 원만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 오랫동안 TV 보기 : - 8년.

스탠퍼드 의대 연구진에 따르면, 소파 위에서만 지내는 인생은 이미 끝난 인생이나 다름없다며 운동부족은 흡연이나 고혈압, 고 콜레스테롤 수치만큼이나 수명을 단축하게 되어 심장병, 당뇨, 요통에 걸리기쉽고, 무언가를 할때 넘어지거나 사고를 당할 위험이 커진다.

▶ 물과 관련 득과 실: 10년~ - 10년

- 약수물과 같은 좋은 생수 : 10년

- 미네랄이 없는 정수기 물 : - 7년

- 각종 청량 음료수와 콜라 : - 7~10년

인체와 세포가 50~90%의 물로 구성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 알아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겁니다!!

▶ 체질에 알맞는 섭생 : 15년.

사람마다 타고난 오장육부의 강약에 따라 섭생 관리를 하면 장수를 누릴 수 있다. 예컨데 간이 약한 태양인은 늘 간을 보하는 섭생을 하면 자기 수명을 유지 할 수 있으나 이를 지키지 않고 간을 사하는 단백질과 화학식품 등을 장기간 먹는다면 장수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286.html
kolaswqetsrq 11.02 13:20
◇ 잠 잘오는 음식

◇ 잠 잘오는 음식

1. 완두콩, 마른 멸치, 말린 새우, 참깨

칼슘이 부족하면 신경과민으로 잠이 잘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슘을 충분히 흡수하게 되면 신경의 흥분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2. 파래, 미역

마그네슘은 칼슘의 흡수를 도와 신경계의 흥분을 억제하고 진정시켜줍니다.

체내 효소의 활동을 도와 수면을 유도합니다.

3. 허브티

캐모마일, 라벤더, 로즈마리같은 허브티는 긴장 완화 효능이 있어 심신안정을 통하여 편안한 잠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4. 양상추, 상추

락투코피크린이라는 성분은 수면호르몬으로 불리는 멜라토닌과 흡사한 작용을 하며 신경계 진정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5. 양파, 마늘, 파, 부추, 염교

이러한 채소 속에 들어있는 디아릴디설파이드라는 성분은 최면과 진정 효과가 있어 섭취하거나 향을 맡았을 때 심신안정을 유도하고 혈액을 맑게 해주어 가뿐한 몸을 만들어주어 잠을 잘 오게 해줍니다.

6. 바나나, 두유, 붉은색 육류, 청국장, 생선

수면물질인 멜라토닌은 콩류, 어류 등에 풍부한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을 재료로 체내에서 만들어집니다.

7. 발아현미, 녹차, 발효식품, 초콜릿

가바(GABA)라는 뇌 활동 억제 계통 신경전달물질입니다.

신경세포의 흥분을 억제해 안정을 시켜줍니다.

불면증이 증가하는 겨울에 회원님들 꿀 잠 주무시길 바랄게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173.html
kolaswqetsrq 11.02 13:21
◇ 건강과 다이어트에 두루 좋은 감자의 효능

◇ 건강과 다이어트에 두루 좋은 감자의 효능

에너지를 충족시키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식품으로 널리 알려진 감자. 저명한 영양학자 시그리드 깁슨은 “감자야말로 농산물 분야에서 최고의 영양 가치를 지닌 식품”이라고 말한다. 이런 감자가 여름철에 좋은 이유는 6~10월이 제철이어서 영양가가 가장 풍부하기 때문이다. 감자에는 비타민C가 들어있는데 하루에 중간 크기 감자 3개 정도만 먹으면 피로를 막아주고 감염과 싸우는 데 필요한 비타민양의 반을 섭취할 수 있다.

껍질째 구운 감자 한 개에는 비타민C 하루 권장량의 3분의 1이 들어있다. 이는 사과보다 2배나 더 많은 양이다. 중간 크기의 감자 한 개는 보통 열량이 55칼로리 밖에 되지 않아 다이어트에도 좋다. 감자에 들어있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성분은 칼륨이다. 칼륨은 나트륨 배출을 도와 혈압 조절에 도움이 된다. 몸속 노폐물의 처리를 돕고, 혈관을 확장해 고혈압, 심장질환 등을 예방한다.

감자에는 섬유질이 많아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는 효능도 있다. 껍질 째 삶은 감자 한 개에 들어있는 섬유질은 바나나 한 개의 5.5배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감자는 영양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다른 채소 섭취량을 늘려주는 식품으로서도 가치가 높다”며 “여름철 감자는 영양가가 높아 특히 좋다”고 말했다.

*감자의 10가지 효능*

1. 칼륨이 풍부 중간 크기의 감자 하나에는 약 897mg의 칼륨이 함유되어 있다. 충분한 칼륨 섭취는 혈압을 올리는 작용을 하는 나트륨을 체외로 배출해주기 때문에 혈압강하 및 혈관건강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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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타민C가 풍부 중간 크기의 감자 하나에는 비타민C가 약 42mg 함유되어 있다. 감자가 땅속의 사과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비타민C 때문이다. 특히 감자의 비타민C는 열에 의한 손실도 적다. 비타민C는 피로회복, 피부미용, 면역력 강화 등에 도움이 되며, 철분흡수 촉진, 항산화 등의 효능이 있는 유익한 비타민이다. 비타민C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가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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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식이섬유가 풍부 중간 크기의 감자 하나에는 약 4.7mg의 식이섬유가 함유되어 있다. 충분한 식이섬유 섭취는 장내환경개선·내장질환 예방, 변비해소, 콜레스테롤 수치 저하, 혈당 조절 등에 도움이 되며, 먹은 양에 비해 큰 포만감을 주기 때문에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4. 항산화 감자에는 비타민C, 폴리페놀 등의 항산화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평소에 꾸준히 섭취하면 활성산소로 인한 각종 질병과 세포의 노화 및 산화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감자의 해당 효능은 적색감자, 보라색감자 등과 같은 유색감자에서 더 강력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5. 암 예방 연구자료와 특허자료는 감자의 껍질이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감자를 깨끗이 씻어 껍찔째 먹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후에 감자껍질 효능만 따로 다룰 예정이다.

6. 위궤양 억제 연구자료에 의하면, 감자의 녹말이 궤양 형성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아침 일찍 공복에 감자 한 개를 갈아 생즙을 낸 뒤 위의 물을 버리고 가라앉은 앙금만 먹으면 위궤양 치료에 도움이 되고, 소화기능도 튼튼해진다.

7,빈혈예방과 치료

빈혈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가장 많은 것이 체내의 철분부족에서 오는 철결핍성 빈혈이로 이는 식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철분을 많이 섭취한다고 해도 장에서 흡수되기 쉬운 형태로 바꿔주지 않으면 대부분이 배설되어 소용없게 되기 때문에 비타민 C와 위산의 작용이 필요한데, 감자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비타민 C는 철과 결합하여 장에서의 흡수를 돕기 때문에 빈혈을 방지하는 효과가 매우 크게하는 감자효능이 있습니다..

8. 당뇨병 예방

감자의 탄수화물은 밥이나 고구마보다 낮고 소화는 서서히 이루어져 쌀밥처럼 혈당치의 급상승이 일어나지 않고, 또한 비타민C가 부족할 때 인슐린 생산이 감소하므로 감자는 당뇨병 환자의 주식으로 가장 이상적입니다.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당뇨병 환자의 치료는 식사 요법이 주가 되는데 즐겁고 맛있는 식사요법을 위해 추천되는 것이 바로 감자로 정해진 에너지에 맞추어 영양 밸런스를 취한 식사를 해야 하는 당뇨의 식이요법으로 좋은 감자효능이 있습니다.

9. 스트레스 해소

감자를 ‘대지의 사과’라고 부를 정도로 우리 몸에 좋은 성분인 비타민 B1, B2, C가 다량 함유되어 있고. 특히 비타민 C는 고혈압이나 암을 예방하고,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와 권태를 없애는 역할을 하는 감자효능이 있습니다. 찌거나 삶는 방식으로 40분 이상 가열해도 대부분 파괴되어 버리는 다른 비타민 C와 달리, 감자의 비타민 C는 쉽게 파괴되지 않는 장점이 있지만 튀기는 경우에는 감자의 대부분의 비타민 C도 파괴됩니다.

10. 피부미용

감자의 비타민C는 콜라겐 조직을 강화하여 피부의 노화를 방지하고 멜라닌 색소의 형성과 침적을 막아 피부의 흑변과 검버섯, 주근깨 등의 발생을 억제하여 맑고 깨끗한 젊은 피부를 유지하게 하여 "감자를 먹으면 예뻐진다"라고 말이 있을 정도로 피부미용에 좋은 감자효능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알려진 감자 효능은 대사증후군 예방, 염증 완화, 편도선이나 기관지염 완화 등이 있으며, 한방에서는 보기(補氣: 기운을 보태주는 효능), 건비(健脾: 비가 허한 것을 보하는 효능), 소염(消炎: 염증을 가라앉히힘) 효능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감자 부작용 및 섭취시 주의사항*

감자의 싹이 돋는 부분은 알카로이드의 1종인 솔라닌이 들어 있다. 이것은 독성이 있으므로 싹이 나거나 빛이 푸르게 변한 감자는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감자에 영양이 풍부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영양이 들어있는 완전식품은 아니기 때문에 감자를 이용한 원푸드 다이어트는 금물이다. 날감자를 너무 많이 먹는 것 또한 위 기능을 좋지 않게 할 수 있다.

*감자 보관법*

감자 보관법은 먼저, 종이 상자에 넣어 햇볕이 들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혹은 구멍 난 바구니에 담아 통풍이 잘되게 하고 검은색 비닐봉투나 신문지를 덮어 햇빛을 차단하면 된다. 감자를 보관할 때 사과 1~2개를 함께 넣으면 효소작용을 해 싹이 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675.html
kolaswqetsrq 11.02 13:22
◇ 대장암을 유발하는 장 속 찌꺼기 없애는 방법

◇ 대장암을 유발하는 장 속 찌꺼기 없애는 방법

우리의 장은 먹은 음식물을 흡수해 영양분으로 만들고 음식물 제 거기를 몸밖으로 배출 시키는 역할을 하며, 몸의 면역체계 유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장을 제2의 뇌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몸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장을 장관리해야 합니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시력이 안 좋을 때 장 건강에 대해서 한 번쯤 관심을 가져봐야 합니다. 장속 찌꺼기를 제거하는 5가지 방법에 대해서 정리해봤습니다.

1. 섬유질 식품 섭취

다량의 물을 흡수하는 섬유소는 대변의 대장과 통과 시간을 단축해주는 효과가 있어 장 속 여러 유해 물질들을 남는 것을 예방해줍니다. 그리고 변비 예방에도 효과적입니다. 섬유질 많은 식품 으로는 고구마, 견과류, 해조류, 현미, 사과 등이 대표적입니다.

2. 기상 직후 물 한잔 마시기

장기는 체내 수분이 부족해질 경우 원활하게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물을 자주 마시면 장이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기상 직후 물 한 잔을 마시면 수분이 공급돼 위와 장에 부드러운 자극을 주며 이로 인해 장이 움직임이 더 활발해지고 장 속 노폐물이 빠져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단 기상 후 양치를 한 후 물을 드셔야 합니다. 자고 난 후 세균이 있는 상태에서 물을마시면 안됩니다.

3. 동물성 단백질 섭취 줄이기

고기를 많이 먹으면 체내 담즙 분비량이 늘어나게 되며 담 즙 분비량이 늘면 대장 내 세포분열을 축적하고 세균 효소 작용이 늘기 때문에 암 발생 위험이 커집니다. 그리고 육류의 경우 채소나 과일보다 소화가 잘 안되기 때문에 장내 오래 머물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음식물이 부패하면서 독성 물질을 생성하게 되어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4. 프로바이오틱스 섭취

사람의 장내에는 100조 개가 넘는 세균이 살고 있는데 이런 장내 세균이 균형을 이루어져야 장 환경이 좋아지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장 안에는 유익균 20%와 유해균 10%, 세균이 70% 차지합니다. 그런데 이 70%의 세균은 일시적으로 유해균이나 유익균으로 바뀔 수가 있는데 유해균이 늘어나면 장 내 환경에 악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평소 프로바이오틱스 섭취를 통해 유익균의 양을 늘려주는 것이 장 건강에 좋습니다.

5. 꾸준한 운동

장 건강을 위해서는 산책이나 조깅 같은 유산소 운동이 꾸준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유산소 운동이 심장과 폐 활동을 활발히 만들어 신진대사를 촉진, 배변을 돕기 때문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024.html
kolaswqetsrq 11.02 13:23
두 여자가 있습니다

두 여자가 있습니다

한 여자는 거의 완벽에 가깝고, 한 여자는 부족함이 참 많았습니다.

이 두 여자가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습니다.

거의 완벽한 아내와 살게된 남자는 복이 터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완벽함 속에 부족함이 몇개 보였습니다.

단점만 보완한다면, 정말 최고의 아내가 될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내가 그거좀 고치라고 했지"

완벽한 여자로 만들기위해 매일 지적하기 시작했고, 여자는 매일 잘못한 점을 지적받아야 했고, 급기야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렸고 인생 살 맛을 잃었습니다.

반면 부족함 많은 여자와 결혼한 남자는 여자를 보니 한두 가지 고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왠만하면 넘어가고 칭찬 했습니다.

"여보 참잘했네. 여보 당신도 생각보다 센스가있네"

늘 칭찬하기 시작했고, 칭찬받은 아내는 자신감이 생기고, 얼굴에 생기가 돌고, 살맛이 났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이 아내는 점점 아름답고 완벽해져 갔습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지금 내 주변을 보십시요.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까?

완벽함이 많은 분들이 있습니까?

화단에 심겨진 꽃도 가꿔주어야 하듯, 부족해도 기다려주고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면서 잘 가꿔주면,

가장 빛나는 보석이 될 것 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996.html
kolaswqetsrq 11.02 13:23
◇ 손 지압 방법

◇ 손 지압 방법

손과 발은 우리 몸의 장기를 모아 놓은 축소판이라고 말할 정도로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매일 3~5분씩 지압점을 꾹꾹 눌러주면 손 지압으로도 온몸의 건강을 시킬 수 있습니다.

✔ 증상별 지압부위

1 머리아플때 2~5분 간격으로 30~50회 눌러준다

2 눈이 충혈되거나 자주 깜빡일 때 2~5분 간격으로 30~50회 눌러준다

3 설사할 때 2~3분 동안 100~400회 밀어주기 (위에서 아래로)

4 식욕이 없을때 1~2분동안 문질러주기

5 변비와 설살 고생할 때 2분간 30회씩 누르기

6 자다가 깨서 울 때 문지르거나 두드리기

7 딸꾹질 날 때 2~5분 동안 30~50회 자극

8 불면증이 있을 때 자기전에 2~3분간 30~50회 누르기

9 자주 깨서 칭얼거릴 때 2~3분 간격으로 30~50회 누르기

10 식욕부진 2~3분 동안 부르럽게 쓸어주기 (위에서 아래로)

11 축농증, 알레르기성 위, 아래로 자주 문질러준다

12 배 아플 때 100~300회 문지르기

13 코가 막힐 때 위,아래로 30회 이상 누르기

▶ 어른에게 지압을 할 때는 전용 지압봉이나 나무젓가락, 펜의 뒷부분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아이는 피부도 약하고 어른과 누르는 세기가 다르기 때문에 엄마 손으로 눌러만 줘도 충분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778.html
kolaswqetsrq 11.02 13:24
◇ 유용한 건강 상식 알아두기

◇ 유용한 건강 상식 알아두기

1. 피곤해서 잠이 잘 안올때

건강한 사람의 피는 대개 약한 알칼리성을 띠고 있다. 하지만, 긴장이나 피로 등으로 몸의 균형의 깨지게 되면 피까지 산성으로 바뀌게 된다. 이때 식초가 효과가 있다. 식초를 한 숟가락 떠서 마시면 제대로 연소되지 않아 생긴 찌꺼기를 태워 피로가 풀리는 효과를 볼 수 있다.

2. 소화가 잘 안될때

과식의 경우엔 파인애플을 먹는 것이 좋다. 파인애플에는 단백질 소화를 돕는 효소가 많이 들어있다. 보통은 감, 귤, 생강주스가 좋다.

3. 목에 가시가 걸리면

식초 물로 몇 번 양치질을 하면 가시가 부드러워져서 내려간다. 그래도 잘 내려가지 않을 경우에는 솜을 뭉쳐서 긴 실에 대달아 삼켰다가 꺼내면 빠져 나온다.

4. 멀미가 나고 구역질이 나면

생강차 한 컵을 마시면 멀미를 예방할 수 있다. 손가락 크기의 신선한 생강을 껍질을 벗긴 후 잘게 썰어 설탕과 함께 잔에 넣은 뒤 끓는 물을 붓고서 5분쯤 우려내서 마신다

5. 감기에 걸렸을때

배를 얇게 썰고 여기에 꿀을 넣어 은근한 물에 끓여서 낸 물을 뜨겁게 마시고 자면 다음 날 기침도 가라앉고 목의 통증도 사라진다.

6. 가래가 심하면

구기자를 1회에 1~2근을 물 5홉으로 달여서 차로 마시면 좋다. 또 무를 강판에 갈아 즙을 낸 다음 물엿과 적당히 섞어 마셔도 된다.

7. 알레르기 비염엔

느릅나무를 씻어서 감초랑 솥에 넣고 물2 느릅나무1로 푹 곤다. 3분의 2정도 줄어들 때 국자로 떠보아서 국물이 걸쭉하면서 미끈미끈한 액체가 될 때까지 곤다. 식혀서 수시로 마시거나, 비염이 심하면 빨대를 코에 대고 들이 마신다. 처음에는 코 속에 상처 때문에 좀 아프더라도 참고 몇 번 하면 좋아진다.

8. 코가 막혔을 때

뜨거운 물수건을 코와 이마 사이에 올려놓고 막힌 쪽이 윟위를 향하도록 누워 있으면 뚫린다. 양파 즙을 물에 타서 마시거나 유자차나 과일차를 뜨겁게 마셔도 좋다. 또 쑥을 가볍게 비벼서 콧구멍에 잠깐만 넣어두면 거짓말같이 뚫린다. 물구나무서기도 한 방법이다.

9. 귓속에 물이 남아 있을 때

화장지를 가느다란 실 모양으로 만들어 물이 들어간 귓속으로 살살 돌리면서 끝까지 집어넣는다. 그러면 물이 순간적으로 휴지로 만든 실 끝에 흡수돼 간단히 해결된다.

10. 피부에 가시가 박혔을 때

깊이 박혀 족집게나 바늘로는 좀처럼 빠지지 않을 경우 고약을 바른다. 고약이 가시를 빨아낼 뿐만 아니라 열과 통증을 없애주므로 좋다. 또 부추를 짓이겨 3~4회 갈아 붙여주면 가시가 뽀족이 솟아오른다.

11. 발 냄새가 심할 때

10원짜리 동전을 신발바닥에 갈면 효과가 있다.

12. 찰괄상을 입었을 때

상처 주위를 깨끗이 닦아내고 그 위에 날달걀 껍데기를 붙인다. 그런 다음 솜으로 감싸고 붕대로 감아준다. 이렇게 하면 다소 깊은 상처라도 곪지 않고 깨끗이 낫는다.

13. 발바닥에 땀이 많이 날 때

발바닥에 물파스를 바른다. 발바닥은 정신성 발한(긴장했을 때 나오는 땀)의 급소다. 물파스가 대뇌에 있는 발한 중추에 작용하여 전신의 발한 작용을 억제시켜 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911.html
kolaswqetsrq 11.02 13:25
◇ 수해 지역서 솔직히 비 왔으면 실언..김성원 "평생 반성·속죄하겠다" 또 사과

◇ 수해 지역서 \솔직히 비 왔으면\ 실언..김성원 "평생 반성·속죄하겠다" 또 사과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12일 수해 복구 작업 도중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한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며 “제가 갖고 있는 유일한 직책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죄송하다. 정말 죄송하다. 저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다. 다시한번 무릎 꿇고 사과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수해로 피해 입은 분들을 위로해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심려를 끼쳤다”며 “저의 경솔한 말로 인해 상처를 받고 또 분노를 느꼈을 국민들께 평생을 반성하고 속죄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어떤 말로도 저의 잘못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다만 수해복구에 나선 국민의힘의 진정성까지 내치지 않아주시기를 국민들께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는 “저는 수해 복구가 완료될 때까지 수해 현장에서 함께 하겠다”며 “또한 이번 일로 당이 저에게 내리는 그 어떠한 처분도 달게 받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저로 인해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드릴 수 있다면 제가 갈 수 있는 일을 사력을 다해 하도록 하겠다”며 “정말 죄송하다. 책임을 통감한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 앞에 사죄드린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회견을 마치고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체 답변하지 않고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그는 ‘탈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동의하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과 교감한 것인가’ ‘어떤 배경에서 그런 발언이 나왔는가’ 등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한편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김 의원이 수해 복구 현장에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데 대해 “윤리위원회 절차를 밟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주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오늘 오전에 본인이 다시 한번 사과하고 어떻게 하겠다는 표시가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서 정말 참담하고 국민과 당원들에게 낯을 들 수 없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주 위원장도 복구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의원이 평소 장난기가 있다”고 했으나 오히려 논란을 자초했다. 이후 다시 기자들에게 “우리가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이 헛되지 않도록 (김 의원을) 불러 조심하라고 엄중 경고를 했다”고 밝혔다.

-세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532.html
kolaswqetsrq 11.02 13:25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가운데, 연예인들도 피해를 호소하며 긴박했던 순간을 공유했다.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가운데, 연예인들도 피해를 호소하며 긴박했던 순간을 공유했다.

현영 등은 폭우로 인해 이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영은 SNS를 통해 "어제부터 폭우로 인해 많은 지역이 피해를 입은 걸로 알아요. 특히 수도권 지방은 뉴스로만 봤는데도 피해가 극심하더라고요. 저도 포천에서 촬영 끝나고 집에 가는 중인데 정말 비가 무섭게 옵니다"며 비가 쏟아져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도로 사진을 올렸다.

멜로망스 김민석 역시 차가 물에 잠긴 채 이동 중인 영상을 올리며 "차가 물에 잠긴다고..?"라고 당황했다. 가수 신인선과 배우 남보라는 꽉 막힌 도로 사진을 올리며 다급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폭우로 인해 고립되는 상황도 발생했다. 유키스 출신 배우 이준영은 폭우로 인해 계단에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겨우 귀가했고, 김숙은 도로가 폭우로 침수된 상황을 담은 영상을 올리며 착잡한 마음을 드러냈다.

가수 미나, 류필립 부부는 차량 침수 피해를 겪었다. 미나는 "남편이 차 가지고 가서 볼 일 보고 나왔는데 잠기기 일보 직전이래요"라며 반쯤 침수된 류필립 차량 영상을 올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네티즌들 걱정이 이어지자 미나는 "다행히 2시간 지키고 있다가 잠깐 비 그쳤을 때 물 살짝 빠질 때 상황 판단 잘해서 별 탈 없이 돌아온 남편 고생했어요"라고 전했다.

개그우먼 김미연은 "남편이 강남역 사거리 차 안에 물이 차오르고 문이 열리지 않고 전화 연결도 안 되고 물이 점점 더 가슴까지 차오르는 극한 상황에 침착하게 대처하여 살아 돌아왔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트레이너 양치승과 격투기 선수 김동현은 물에 잠긴 체육관 내부와 함께 직원들과 복구에 나선 모습을 올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배우 이범수 아내이자 통역가인 이윤진은 집 천장에 물이 새는 모습을 공유해 걱정을 사기도 했다.

생방송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배우 박하선은 폭우로 인한 출근길 교통대란에 DJ를 맡고 있는 SBS 파워FM \박하선의 씨네타운\에 지각했다. 박하선 대신 게스트 박준면이 오프닝을 진행했다. 박하선은 "평소보다 일찍 출발했는데 2시간 넘게 걸렸다. 서초구에 사는데 지하철도가 폐쇄됐다"며 거듭 사과했다.

 "
뉴스 특보가 긴급 편성되면서 일부 프로그램이 결방되기도 했다. MBC는 8월 9일 호적메이트 비밀의 집 PD수첩을, KBS 1TV는 9일, 10일 아침마당을 결방하고 뉴스특보에 집중했다. 이정재는 집중 호우 관련 상황의 우선 보도를 위해 JTBC 뉴스룸 초대석 출연을 취소했다.
",

유병재는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유병재는 호우 피해 이웃을 돕기 위해 재해구호협회에 1천만 원을 기부했다. 유병재는 지난 2020년에도 호우 피해 복구를 위해 1천만 원을 기부한 적 있다.

한편 지난 8일과 9일 사이 이어진 집중호우로 사망 9명, 실종 7명 등 인명 피해와 주택과 상가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뉴스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949.html
kolaswqetsrq 11.02 13:26
위정유목爲政猶沐 - 정치를 하는 것은 머리를 감는 것과 같다, 작은 손실은 감수해야 한다.

위정유목(爲政猶沐) - 정치를 하는 것은 머리를 감는 것과 같다, 작은 손실은 감수해야 한다.

하 위(爪/8) 정사 정(攵/5) 오히려 유(犭/9) 머리감을 목(氵/4)

정치를 하는 것은(爲政) 머리를 감는 것과 같다(猶沐)는 말을 언뜻 들으면 전혀 연관성을 생각하기 힘들다. 억지로 찾는다면 머리는 바람에 의해 빗질이 되고, 흐르는 빗물로 머리감는 櫛風沐雨(즐풍목우)를 끌어올 수 있다. 나라의 일을 맡은 공직자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그린 중국 전설상의 夏(하)나라 시조 禹王(우왕)에서 온 고사다.

정치를 잘 하라는 교훈은 같아도 실제 의미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法家(법가)의 확립자로 법치가 통치의 기본이라 주창했던 韓非(한비)의 ‘韓非子(한비자)’에는 머리를 감을 때 머리카락이 빠지더라도 감아야 하듯이 정치를 하려면 작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으로 썼다.

한비자는 강한 법치가 仁政(인정)보다 훨씬 더 좋은 국가운영 방침이라고 강조하며 六反(육반)편에서 속담을 인용한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머리를 감는 것과 같다, 머리카락이 빠져도 감지 않으면 안 된다(爲政猶沐也 雖有棄髮 必爲之/ 위정유목야 수유기발 필위지),’ 왜 그러한지 그 이유를 덧붙인다.

본래 종기에 침을 맞으면 아픈 법이고, 약은 입에 쓰더라도 먹어야 한다. 그러니 ‘머리털이 빠지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멋있게 머리를 가꾸는 것을 잊는다면(愛棄髮之費 而忘長髮之利/ 애기발지비 이망장발지리), 어느 편이 더 중한지 모르는 사람이다(不知權者也/ 부지권자야)’고 했다. 작은 손실을 감수하지 않으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는 이야기다.

성어의 앞부분에 자기의 이익에 따라 상반되는 입장에 서게 되는 여섯 가지 유형의 예를 든다. 죽음을 두려워하여 도주하면 생명을 아끼는 貴生之士(귀생지사), 성현의 도를 배웠다고 법령을 무시해도 학문이 있다고 文學之士(문학지사), 직업이 없이 풍족한 생활을 하면 有能之士(유능지사)라 한다.

또 아는 척하고 거짓을 일삼아도 辯智之士(변지지사)가 되고, 포악하고 나쁜 짓 하는 사람에게 磏勇之士(염용지사, 磏은 거친숫돌 염), 포악한 도둑을 숨겨 살려주면 의협심 있는 任譽之士(임예지사)라 일컫는다. 반대로 위험을 무릅쓴 사람은 失計之民(실계지민), 법령을 충실히 지키면 樸陋之民(박루지민), 열심히 일하면 무능하다고 寡能之民(과능지민) 등이 되어 되레 비난받는다.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머리를 감지 않을 수 없듯이 목표한 일을 이루려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 한비가 예로 들은 바와 같이 같은 사안이라도 그럴듯하게 포장하거나 좋은 면만 보고서 칭찬하고, 다른 편이라고 무조건 나쁘다고 해서는 전체를 파악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인사를 하는 사람은 여러 의견을 듣고 전후 사정을 잘 판단해야 옳은 인재를 쓸 수 있는 법이다. 또 모든 사회나 조직, 특히 정치에서 힘 있는 한 쪽이 반대쪽의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큰 뜻을 펴고 모두를 위하는 길이 될 수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763.html
kolaswqetsrq 11.02 13:27
불공대천不共戴天 - 함께 하늘을 이지 못함, 부모를 죽인 원수

불공대천(不共戴天) - 함께 하늘을 이지 못함, 부모를 죽인 원수

아닐 불(一/3) 한 가지 공(八/4) 일 대(戈/13) 하늘 천(大/1)

怨讐(원수)는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나 집단이다. 원수를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 유명한 구절들은 많지만 방법은 대조적이다. 기원전 17세기 메소포타미아의 함무라비(Hammurabi)왕 때 제정된 법전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해를 입은 그대로 갚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른 뺨을 치면 다른 뺨도 대주라고 하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당한 그 이상 갚아야 시원하겠지만 성인들은 악을 악으로 갚으면 그 악은 영원히 계속된다고 본 것이다.

우리의 속담도 마찬가지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보복을 하면 보복을 당하고 ‘오랜 원수를 갚으려다가 새 원수가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밤 잔 원수 없고 날 샌 은혜 없다’며 ‘원수는 순(順)으로 풀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중국에는 원수에 대해 살벌하다.

五經(오경)의 하나인 유가의 경전 ‘禮記(예기)’ 曲禮(곡례) 상편에 하늘을 함께 머리에 일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으니 상대를 죽이거나 자신이 죽든가 해야 한다니 말이다.

내용을 보자. ‘아버지의 원수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지 못하며(父之讐 弗與共戴天/ 부지수 불여공대천), 형제의 원수는 죽이려는 병기를 도로 거두지 않으며(兄弟之讐 不反兵/ 형제지수 불반병), 친구의 원수는 나라를 같이 하여 살지 않는다(交遊之讐 不同國/ 교유지수 부동국).’

아버지의 원수와 함께 형제의 원수도 부닥치면 집으로 무기를 가지러 갈 여유가 없으니 항상 휴대해야 한다는 의미다. 친구의 원수는 나라를 함께 하지 않으니 다른 나라로 쫓거나 자기가 떠나거나 한다. 고대 씨족사회에서 혈족이 중시되었을 당시의 규정이지만 오늘날에도 무협지 등에서 이는 예찬되었다.

꼭 사람을 죽인 경우가 아니라도 더불어 같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미우면 이 말을 쓴다. 피해를 끼친 사람에 대응하는데 개개인이 나서면 보복의 악순환이 되니 현대에선 법으로 대신한다. 법이 무결할 수만은 없어 범죄의 피해자는 항상 억울함을 느낀다. 입법 때는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세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그보다 배려하고 양보하고 함께 사는 사회가 더 중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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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28
돈제일주豚蹄一酒 - 돼지 발굽 하나와 한 잔의 술, 주는 것은 적고 바라는 것은 많음

돈제일주(豚蹄一酒) - 돼지 발굽 하나와 한 잔의 술, 주는 것은 적고 바라는 것은 많음

돼지 돈(豕/4) 굽 제(足/9) 한 일(一/0) 술 주(酉/3)

식용으로, 또 굿이나 고사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되어 우리에게 크게 기여하는 돼지를 가축으로 기른 것은 5000년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기여를 했으면서도 돼지는 몹시 미련하거나 탐욕스러운 사람의 대명사다. 뚱뚱한 몸집을 가진 사람은 영락없이 돼지라 놀림을 당한다. 돼지가 실제로는 배가 차면 절제를 알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청결을 찾는다고 하는데 관련 성어도 좋지 않은 면만 강조되어 여러 가지로 억울할 듯하다.

돼지의 발굽(豚蹄)과 술 한 잔(一酒)이란 말도 보잘것없는 것을 비유했다. 豚蹄穰田(돈제양전), 豚蹄盂酒(돈제우주)라고 써도 같다. 작은 성의를 보여 놓고 많은 것을 구하려 할 때를 꼬집었다. ‘보리밥 알로 잉어 낚는다’는 속담이 뜻하는 대로다.

수확을 많이 거두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데 땀도 흘리지 않고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司馬遷(사마천)은 ‘史記(사기)’ 滑稽(골계) 열전에서 뛰어난 기지와 해학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쳤던 인물을 그리고 있다. 돼지 발굽 비유의 주인공 淳于髡(순우곤, 髡은 머리깎을 곤)도 그 중의 하나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 사람인 순우곤은 천한 신분에다 키도 7척이 안 되는 왜소한 몸집을 가졌지만 반어와 풍자에 뛰어났다. 威王(위왕)때 楚(초)나라의 침입을 받자 순우곤에게 금 백 근과 수레 열 대를 주면서 趙(조)나라의 구원병을 청하게 했다.

순우곤은 관의 끈이 끊어지도록 크게 웃으며 자신이 본 농민의 풍년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돼지 발굽 하나와 술 한 잔(操一豚蹄 酒一盂/ 조일돈제 주일우)을 차린 뒤 밭에서 광주리 가득, 들판에서 수레 가득 수확을 기원하더라고 했다. 볼품없이 차려 놓고 바라는 것이 거창했다는 이야기에 위왕이 예물을 크게 늘렸고 구원을 청하는데 성공하여 초나라를 물러나게 했다.

‘검은 돼지든 흰 돼지든 무게만 많이 나가면 된다‘며 문희상 전국회의장이 黑豚白豚(흑돈백돈) 이론을 펼쳐 눈길을 끌어었다. 물론 덩샤오핑鄧小平/ 등소평의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黑猫白猫(흑묘백묘)를 연상시켰다. 나라가 어려워도 경제발전이 우선 려면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과 투자를 해야 한다. 규제 철폐 등 정책의 뒷받침은 물론 노사의 상생이 따르지 않고서는 돼지 발굽 놓고 경제 활성화를 비는 꼴이 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041.html
kolaswqetsrq 11.02 13:28
축장요곡築墻繞曲 - 담을 여러 겹 구불구불하게 둘러쌓다.

축장요곡(築墻繞曲) - 담을 여러 겹 구불구불하게 둘러쌓다.

쌓을 축(竹/10) 담 장(土/13) 두를 요(糸/12) 굽을 곡(曰/2)

담墻 또는 牆은 집이나 어떤 공간을 외부와 격리하기 위한 것인데 비유로 더 많이 쓴다. 담벼락을 마주 대한 것같이 답답한 것이 面墻(면장)이다. 흔히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 할 때는 面長(면장)이 아니고 담장(牆)에서 얼굴 답답함(面)을 면(免)한다는 의미의 면면장(免面牆)에서 왔다. 담을 진다고 하면 사이를 끊거나 어떤 일에 관계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속담 ‘담을 쌓고 벽을 친다’는 의좋던 사이에서 철저하게 등진 원수다. 그런데 담을 쌓으면서(築墻) 바른 정도를 넘어 구불구불하게 두른다면(繞曲) 외부와의 관계를 완전하게 단절한다는 행동을 나타낸다. 鄭蘭貞(정난정)의 오빠 鄭淡(정담)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어떤 목적을 위해 뚜렷이 거부함을 공표하는 행위다.

조선 중기 청초함과 요부의 양면성을 지녀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정난정은 야심이 만만했다. 첩에서 난 몸이라 기생이 된 후 척신 尹元衡(윤원형)에 접근한 뒤 본처를 독살하고 정실 자리를 차지했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윤원형의 누이인 13대 明宗(명종)의 모후 文定王后(문정왕후)와는 불교에 공동관심을 가져 긴밀한 사이가 되는 등 날로 기세등등했다.

1545년 乙巳士禍(을사사화)의 왕권다툼에 깊이 관여하여 윤원형의 小尹(소윤)이 승리하는데 기여했고 이후 권세를 이용하여 많은 부를 쌓았다. 정난정의 친정 오빠 정담은 누이가 기고만장하며 모든 사람들의 원망의 표적이 되는 것을 보고 여동생을 일부러 멀리 했다.

정담은 후일 반드시 재앙이 미칠 것을 알고 정난정과 왕래를 끊었다. 한문학자 정민 교수의 ‘惜福(석복)’에는 公私聞見錄(공사문견록) 등 여러 야사에서 전하는 내용을 정리하여 정담의 일화를 소개한다. 정담은 호가 句齋(구재)라기도 하나 예가 아니면 삼간다는 勿齋(물재)가 더 와 닿는다.

사는 집 안에 다시 담을 쌓아 양의 창자가 꼬불꼬불하게 두른 듯 했으니羊腸繞曲/ 양장요곡 난정이 만나보고 싶어 찾아가도 가마가 지나갈 수가 없어 되돌아갔다. 드러내놓고 거절한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거부를 알 정도였다.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비리를 바로잡자는 신하들에 의해 윤원형과 정난정은 귀양을 갔다.

정난정은 전처 독살사건도 드러나 재산도 몰수당한 뒤 음독했고 윤원형도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정담은 연루가 없었다.’ 야사 大東奇聞(대동기문)의 제목이다. 그는 문장에도 능했고 고금의 일에 통달했다. 누이의 권세와 멀리 해 자신을 낮추고 좀체 드러내는 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어질게 보았다. 담도 담 나름이다. 정담이 몇 겹으로 굽은 담장을 친 것은 답답함을 면한 정도가 아니라 난세와 멀리 하려 한 지혜였던 셈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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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29
필사즉생必死則生 -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게 된다, 결연한 의지로 나가면 난관을 헤칠 수 있다.

필사즉생(必死則生) -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게 된다, 결연한 의지로 나가면 난관을 헤칠 수 있다.

반드시 필(心/1) 죽을 사(歹/2) 법칙 칙, 곧 즉(刂/7) 날 생(生/0)

반드시 죽고자 하면(必死) 오히려 살게 된다(則生). 물론 꼭 죽으라는 소리는 아니고 죽을 각오로 난관을 헤쳐 나가라는 말임은 모두가 안다. 또 이 말과 함께 忠武公(충무공) 李舜臣(이순신) 장군을 떠올릴 만큼 유명한 말이다. 충무공은 宣祖(선조) 때 왜적의 수군을 단신으로 막은 것과 다름없는 23전승의 세계 해전사에 남은 명장이다.

장군은 1597년 울돌목鳴梁(명량) 해전을 앞두고 여러 장수들을 불러 약속하면서 병법을 인용한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 필사즉생 필생즉사).’ 전투에서 겁을 먹으면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하는 말인데 사회에서도 어려운 일을 뚫고 나가라는 격려의 말로 단골이다.

장군의 ‘亂中日記(난중일기)’나 ‘李忠武公全書(이충무공전서)’에 나오는 이 말의 이어지는 부분도 좋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이라도 두렵게 한다(一夫當逕 足懼千夫(일보당경 족구천부, 逕은 길 경)’는 뜻이다. 尙有十二(상유십이)라며 12척의 배로 수백 척의 왜선을 격퇴한 전과에 잘 들어맞는 말이기도 하다.

충무공이 당부할 때 인용한 병서는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의 전략가 吳起(오기)가 쓴 ‘吳子(오자)’이다. 그는 병법이라 하면 떠올리는 孫武(손무)와 비견될 정도의 전략가였다. 또한 부하의 종기를 빨아주는 吮疽之仁(연저지인, 吮은 빨 연)과 출세를 위해서는 부인도 내치는 殺妻求將(살처구장)의 양면성을 가졌다.

모두 6편이 있는 이 책의 治兵(치병)편에는 魏武侯(위무후)와 문답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전쟁터란 항상 시체가 끊임없이 나오는 장소입니다(凡兵戰之場 立屍之地/ 범병전지장 립시지지), 따라서 죽기를 각오하는 자는 반드시 살고, 요행히 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죽게 됩니다(必死則生 幸生則死/ 필사즉생 행생즉사).’

장수의 전쟁에 임하는 결연한 자세도 계속해서 말한다. 훌륭한 장수는 침몰하는 배 안에 있는 것 같고, 불에 타 무너지는 집에 있는 것처럼 결연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에게서 臨戰無退(임전무퇴)의 결의가 번득인다.

生卽死 死卽生(생즉사 사즉생)이란 말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부단한 수행에서 깨닫게 되면 생과 사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이란 경지가 된다는 가르침이다. 이런 데는 다다르지 못하지만 흔히 통용하는 必死卽生(필사즉생)의 뜻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겠다.

곧 卽(즉)을 쓰면 ‘꼭 죽는 것이 사는 것’이 되니 ‘만일 ~라면‘의 뜻이 있는 則(즉)이라야 ’죽고자 하면 산다‘로 된다. 모두 좋은 말이지만 장군의 결연한 구국의 의지는 바로 알 필요가 있다. 勿言我死(물언아사), 나의 죽음을 말하지 말라는 마지막 말까지면 더 좋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031.html
kolaswqetsrq 11.02 13:30
선경후사先景後事 - 경치를 내세운 뒤 일은 뒤로, 한시의 전개 방식

선경후사(先景後事) - 경치를 내세운 뒤 일은 뒤로, 한시의 전개 방식

먼저 선(儿/4) 볕 경(日/8) 뒤 후(彳/6) 일 사(亅/7)

공적인 일을 먼저, 사사로운 일은 뒤로 미룬다는 先公後私(선공후사)와 독음으로 헷갈리지만 뜻은 물론 완전 다르다. 경치를 먼저(先景), 일이나 감정은 뒤로(後事) 한다는 이 말은 漢詩(한시)를 창작할 때 시상을 전개하는 방식이라 한다.

먼저 앞부분에는 자연 또는 사물을 묘사하고 나서 그것을 보고 느낀 시인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뒷부분에 서술하는 방식이다. 고대 중국의 詩經(시경)은 前漢(전한)의 毛亨(모형)이 주석한 것이 전해져 ‘毛詩(모시)’라고도 하는데 서문에 시론이 나온다.

그 시론에 시의 개념을 정리하는 것이 있다. ‘시란 뜻이 가는 것이다. 마음속에 있으면 뜻이라 하고 말로 표현하면 시가 된다(詩者 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 시자 지지소지야 재심위지 발언위시).’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분출하는 것이 시의 출발점이란 말이다. 또 시경에는 형식적 분류와 표현방법으로 六義(육의)가 있다고 하면서 첫째는 風(풍), 둘째는 賦(부), 셋째는 比(비), 넷째는 興(흥), 다섯째는 雅(아), 여섯째가 頌(송)인데 먼저 자연이나 사물을 묘사하는 방식은 넷째의 흥에 해당된다고 했다.

여기에 해당되는 시로 杜甫(두보)의 시 ‘絶句(절구)’가 많이 인용되고 있다. 가장 짧은 네 구절로 이뤄진 시가 절구인데 그것으로 제목을 삼았다. ‘강물이 푸르니 새 더욱 희게 보이고(江碧鳥逾白/ 강벽조유백), 산이 푸르니 꽃은 불타는 듯하구나(山靑花欲然/ 산청화욕연).

봄도 벌써 지나가고 있으니(今春看又過/ 금춘간우과), 어느 해에나 고향에 돌아갈꼬(何日是歸年/ 하일시귀년).’ 逾는 넘을 유, 然은 불탈 燃(연)의 본자. 2개 구는 시인이 바라본 봄의 경관을 색을 대비하여 아름답게 묘사하고 그 뒤로 고향에 갈 수 없는 애절한 마음을 서술했다.

한시가 처음부터 직설적으로 자기의 의도를 제시하지 않고, 독자의 정서를 자극한 뒤 차츰 주제를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문인이 지녀야 할 태도로 본 것이다. 이것이 풍자의 정신이고 훌륭한 문학이라고 이어져 왔다. 같은 뜻의 성어로 先景後敍(선경후서), 先景後情(선경후정)도 있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760.html
kolaswqetsrq 11.02 13:31
색유色喩 - 여색을 경계하다.

색유(色喩) - 여색을 경계하다.

빛 색(色/0) 깨우칠 유(口/9)

色(색)이 물감이나 컬러(color)만 나타낼 리 없고 색정이나 여색을 뜻하여 탈이 난다. 미녀를 天下一色(천하일색)이라 하고 패가망신한다는 酒色雜技(주색잡기) 할 때 모두 여자가 따른다. ‘애욕이 근심을 낳고, 애욕이 두려움을 낳는다’,

‘정욕의 불꽃이 타는 대로 쫓아가는 사람은 자기를 쇠사슬로 결박 짓는 사람’ 등등 여색을 조심하라는 말은 숱하게 내려왔다. 하지만 여성의 아름다움을 쫓는 본능은 버릴 수 없어 알고서도 빠져 들어간 남자들이 많았다. 여색을 멀리하라는 선현들의 많은 경계 중에서도 고려의 문호 李奎報(이규보, 1168~1241)는 다양한 비유와 기이한 근절책을 제시하여 흥미를 끈다.

이규보의 ‘東國李相國集(동국이상국집)’에 들어 있는 ‘색으로 깨우친다(色喩)’는 고전 수필을 보자. 그는 여기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색 가운데서 남자를 가장 미혹하게 하는 것이 여색이라 했다. 그러면서 미인을 나타내는 표현마다 섬뜩한 비유를 한다.

‘눈의 애교 있는 것은 이를 칼날이라 하고, 눈썹의 꼬부라진 것은 이를 도끼라 하며, 두 볼이 볼록한 것은 독약이고, 살이 매끄러운 것은 안 보이는 좀벌레이다(眼之嬌者斯曰刃 眉之曲者謂之斧 頰之豐者毒藥也 肌之滑者隱蠹也/ 안지교자사왈인 미지곡자위지부 협지풍자독약야 기지활자은두야).’ 頰은 뺨 협, 蠹는 좀 두.

여색의 폐해가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밖으로는 더 심해 周(주)나라의 褒姒(포사)나 吳(오)나라의 西施(서시), 唐(당)나라의 楊貴妃(양귀비)는 나라를 기울게 했고, 최고 부자 石崇(석숭)을 망친 것은 綠珠(녹주)의 미색과 요염이었다고 했다.

이런 미인의 얼굴을 가진 여자에게는 추녀의 대명사인 嫫母(모모, 嫫는 추녀 모)와 敦洽(돈흡)의 얼굴을 수천만 개 주조한 뒤 덮어 씌워야 한다고 했다. 물론 음란한 자의 창자는 고결한 廣平(광평)의 것으로 바꾸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규보의 끔찍하고도 허황된 이런 처방은 여색의 폐해에 경종을 울린다. 그럴 만큼 그는 술과 시와 거문고를 벗 삼아 三酷好(삼혹호) 선생으로 불리면서 73세까지 장수했지만 여성관계는 엄격했다 한다. 틈만 나면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으로 보고, 英雄好色(영웅호색)이라며 기고만장하던 사내들은 이규보의 방법으로라도 일신해야 한다. 여성이 원하지 않을 때 성희롱이 되고 성폭행이 되는 요즘에는 영웅이 자랑스러울 수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158.html
kolaswqetsrq 11.02 13:31
천진난만天眞爛漫 - 아무런 꾸밈이 없어 참됨이 넘치다.

천진난만(天眞爛漫) - 아무런 꾸밈이 없어 참됨이 넘치다.

하늘 천(大/1) 참 진(目/5) 빛날 란(火/17) 흩어질 만(氵/11)

하늘은 거짓이 없고 참 그대로(天眞)인 것으로 모두 믿는다. 억울한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때 하늘에 대고 맹세한다고 하니 그렇다. 참 진실이 꽃이 활짝 피듯이 화려하면(爛漫) 더 이상 거짓이 발 디딜 틈이 없다. 천진함이 넘치고 조금도 꾸밈이 없는 모습은 어린이에게서 찾는다.

方定煥(방정환)은 ‘어린이는 본 것, 느낀 것 그대로 노래하는 시인’이라고 예찬한다. 남을 속이고 하나라도 더 욕심을 내어 챙기려는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 천진한 어린이를 보는 것만이라도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이처럼 듣기만 해도 미소가 머금어지는 이 성어에 달리 유래가 되는 이야기가 따르지 않아 좀 아쉽다.

고사가 없더라도 이 말을 사용하여 명문으로 남은 글은 몇 군데서 찾을 수 있다. 중국 唐(당)나라에서 詩聖(시성)으로 불렸던 杜甫(두보)는 재주에 비해 불운한 생을 보내는 詩仙(시선) 李白(이백)을 위로하는 시를 썼다. 형제 중 열두 째란 뜻의 ‘寄李十二白’(기이십이백)’이란 제목이다.

‘재미있게 이야기 나누며 초야의 삶을 그리워했고(劇談憐野逸/ 극담련야일), 술을 좋아하여 천성의 참됨을 볼 수 있었네(嗜酒見天眞/ 기주견천진).’ 우리나라 현대 소설가 이태준은 그의 ‘文章(문장)’이란 글에서 北宋(북송)의 문인 蘇軾(소식)이 ‘천진난만함은 나의 스승(天眞爛漫是吾師/ 천진난만시오사)’이라 말했다고 소개한다.

우리의 고전에는 천진한 도둑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正祖(정조) 때의 문신 成大中(성대중)이 지은 ‘靑城雜記(청성잡기)’에서다. 한 도둑이 부잣집에 들어갔다가 술이 잘 익은 항아리를 보고는 재물은 뒷전이고 마셔댔다. 취한 도둑이 항아리를 옮기려 했으나 무거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옮겨줄 사람을 소리쳐 부르다 들켜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도둑을 나오게 하려고 사람들이 막대기를 휘둘렀다. 도둑이 외쳤다. ‘너희들, 작대기를 함부로 휘젓지 마라. 내 눈 다칠까 무섭다(若杖無輕 恐傷吾眼/ 야장무경 공상오안).’ 이런 도둑을 보고 평한다. ‘시와 예를 배우고서 남을 해치는 자에 비하면 도리어 천진난만하다(較諸詩禮發冢者 天眞爛漫/ 교제시례발총자 천진난만).’

詩(시)의 이백이 천진하고, 書(서)의 소식이 스승으로 여겼던 난만도 세사에 물들기 전의 꾸밈없는 어린이에게서 찾은 것이 아닐까. 키덜트(Kidult)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지 제법 오래다. 어린이를 말하는 키드(Kid)와 어른 어덜트(Adult)의 합성어다. 유년시절에 갖고 놀던 장난감이나 만화, 의복 등에 향수를 느껴 다시 찾고 사 모으는 성인들이다.

각박한 세상에서 살기 힘들어진 요즘의 젊은 어른들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어릴 적의 감정으로 되돌아가려는 현상이란다.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고 모든 일에 순수함을 지닐 수 있는 세상을 열어간다면 바람직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499.html
kolaswqetsrq 11.02 13:32
설선단겸薛宣斷縑 - 설선이 비단을 끊다, 잘잘못을 명확히 하다.

설선단겸(薛宣斷縑) - 설선이 비단을 끊다, 잘잘못을 명확히 하다.

성 설(艹/13) 베풀 선(宀/6) 끊을 단(斤/14) 합사비단 겸(糸/10)

사람이 모여 살다보면 다툼이 생기고 재판까지 가는 訟事(송사)가 생긴다. 誓死不二(서사불이)같이 추상같이 규정대로만 판결하면 억울함이 덜 하겠지만 ‘한편 말만 듣고 송사 못 한다’는 말대로 시비 가리기는 어렵다. 모두 자기만 옳고 재판에 이기기 위해 거짓과 모략까지 동원하니 말이다. 간혹 명판결과 명판관 이야기도 따른다.

孔子(공자)는 제자 子路(자로)를 몇 마디 말로써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라며 片言折獄(편언절옥)이라 했다. 이스라엘의 솔로몬(Solomon)은 한 아이를 두고 두 여자가 서로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송사를 명쾌히 해결해 지혜의 왕이 되었다.

중국에서 어려운 송사를 슬기롭게 해결한 재판 기록집 중에 宋(송)나라 鄭克(정극)이 편찬한 ‘折獄龜鑑(절옥귀감)’이 있다. 고대부터의 주요사건을 망라하고 있다. 절옥은 역적이나 살인범 등의 중범죄를 다스려 처리하던 일을 가리킨다.

薛宣(설선)이란 사람이 비단을 끊었다(斷縑)는 사건도 그 중 하나이다. 五代(오대) 때 和凝(화응) 부자가 엮은 ‘疑獄集(의옥집)’에도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斷縑追聽(단겸추청)이란 제목이다. 비단을 끊어 범인을 잡은 이야기를 보자.

前漢(전한)시대 설선이 태수로 있던 臨淮(임회)란 곳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사람이 비단을 팔기 위해 장으로 가던 중 소낙비를 만났다. 근처 인가가 없어 비단을 펼쳐 비를 피했다. 한 사나이가 흠뻑 젖은 채 같이 피하자고 애걸하여 허락했다. 비가 개어 갈 길을 떠날 때 시비가 벌어졌다. 비를 피하게 해 준 사나이가 비단이 자기 것이라며 우겼다. 할 수 없이 비단 장수는 태수를 찾아갔다.

설선은 ‘아전을 불러 비단을 반으로 자르게 한 뒤 미행하게 해 이야기를 듣게 했다(呼騎吏中斷縑 人各與半 使追聽之/ 호기리중단겸 인각여반 사추청지)’. 비단 장수는 반을 뺏겨 불만을 늘어놓았고 사나이는 싱글벙글했다. 설선은 사나이를 잡아 족쳐 범행을 자백 받았다.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한다’는 속담과 같이 이 사나이는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 어느 편이 명백한 잘못이 있을 때도 이처럼 시비가 커지는데 대부분의 사건은 잘잘못이 아리송하고 뒤엉킨 경우가 많다. 억울한 일이 없도록 가려주는 현명한 판관이 많아야 정의사회가 실현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182.html
kolaswqetsrq 11.02 13:33
서사불이誓死不二 - 맹세와 죽음은 다르지 않다,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다.

서사불이(誓死不二) - 맹세와 죽음은 다르지 않다,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다.

맹세할 서(言/7) 죽을 사(歹/2) 아닐 불(一/3) 두 이(二/0)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이 바로 정직(是謂是 非謂非 曰直/ 시위시 비위비 왈직)’이란 말이 있다. 중국 고전 荀子(순자)에 나오는 말이다. 어린애도 알 수 있는 이 말이 더 어려운 것은 바른 말을 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남을 판단하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은 완전하지 못하면서 남과 비교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모든 것이 부족한 사람이란 말이 있다. 그러니 남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르는 재판은 그 중요성이 무엇보다 더하다. ‘돈에 따라 흑을 백으로 바꾸는 기술‘이란 혹평이 따르더라도 자신이 잘못내린 판결로 목숨까지 끊는 이야기에는 숙연함이 더한다.

한번 서약했으면 죽어도 바뀔 수 없다. 죽어도 결심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 의지가 결연함을 보여준다. ‘史記(사기)’ 循吏(순리)열전에 나오는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 李離(이리)란 사람이 그러했다. 文公(문공)때 형벌에 관한 일을 심리하는 獄官(옥관)이었던 이리는 공정한 일 처리로 이름났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규정에 따라 똑 같이 죄를 따지고 벌을 주었다. 어느 때 이리는 사건 기록을 살피다 부하의 보고만 믿고 자신이 잘못 판결하여 무고한 사람을 처형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사형에 해당되는 죄였다.

이리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포박하여 왕에게 데려가도록 했다. 문공은 이리에게 부하 관리가 잘못했다고 하여 상관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며 그렇다면 왕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이리는 조금도 굽히지 않고 ‘잘못 판결한 죄는 자신의 죄이며, 무고한 사람을 사형시킨 것은 자신도 사형입니다(失刑則刑 失死則死/ 실형즉형 실사즉사)’라 말하며 칼에 엎드려 목숨을 끊고 말았다. 잘못 판결했더라도 죽음으로 규정을 지킨 의지의 이리에게서 서약과 죽음(誓死)이 다르지 않다(不二)는 말이 나왔다.

우리나라서도 이에 못지않은 사람이 있다. 조계종 종정을 역임했던 曉峰(효봉)스님이다. 그가 일제 강점기 때 법관을 하던 중 한 피고인에 사형을 내렸다가 심한 가책과 회의감을 느끼고 엿장수로 유랑 걸식하다 출가했다 한다. 독립된 법관이 정치의 눈치를 본다거나 상급 행정처의 협조 요청에 응한 판결이라며 거센 항의를 받는 일이 얼마 전까지 시끄러웠다. 재판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여 법관이 소신을 굳게 지키는 판결만 있어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464.html
kolaswqetsrq 11.02 13:33
◇ 800원 횡령한 버스기사 해임 "적법", 85만원 접대 받은 검사 면직은 "취소"

◇ 800원 횡령한 버스기사 해임 "적법", 85만원 접대 받은 검사 면직은 "취소"

윤석열정부 첫 대법관 후보자로 오석준(60·사법연수원 19기) 제주지방법원장이 임명 제청되면서 과거 논란이 됐던 그의 판결들이 주목받고 있다.

3일 법원 등에 따르면 2011년 12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 재판장이었던 오 원장은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버스 기사를 해임한 고속버스 회사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요금 6400원 중 6000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 판정을 했지만 이에 불복한 회사는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재판부는 “운전기사들이 받은 수익금을 전액 회사에 납부하리라는 신뢰는 버스회사와 운전기사 간 신뢰의 기본”이라며 “해고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회사의 순수익률은 요금의 약 7인데, 6400원 중 400원은 요금의 6.25이므로 버스회사의 수익 중 대부분”이라며 “노사합의서에 ‘운전원의 수입금 착복이 적발됐을 시 금액의 많고 적음을 불문하고 해임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항소를 취하해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반면 오 원장은 2013년 2월 변호사에게 유흥 접대를 받은 검사가 낸 징계 취소 소송에서는 “처분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면직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해 또다시 논란이 일었다.

B검사는 2009년 불법 성매매 등이 이뤄지는 유흥주점에서 4차례에 걸쳐 술값 등 85만원 상당의 향응을 수수했다는 이유로 2012년 4월 면직 처분을 받았다. B검사에게 향응을 제공한 이는 판사 출신 변호사로 B검사가 수사한 사건 중 총 9건을 수임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향응의 가액이 85만원 정도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직무와 관련해 수수했는지도 불명확하다”며 “B검사가 위법·부당한 행위를 했다는 자료도 없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2심과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확정됐다. 복직한 B검사는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이외에도 오 원장은 2년 전 서울고법 형사6부 재판장으로 주요 국정농단 사건들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바 있다.

그는 2020년 7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및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의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강요죄와 일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가 무죄로 뒤집히면서 파기환송 전 항소심에서 선고한 징역 30년, 벌금 200억원보다 형량이 줄었다. 같은 해 2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파기환송심도 징역 18년과 벌금 200억원을 선고, 2심의 징역 20년과 벌금 200억원에서 다소 감형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최씨의 일부 강요 혐의를 무죄로 봐야 한다며 사건을 돌려보낸 취지에 따른 판결이다.

-세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800-85.html
kolaswqetsrq 11.02 13:34
◇ 심혈관·뇌혈관 저격수 죽상동맥경화 예방법

◇ 심혈관·뇌혈관 저격수 죽상동맥경화 예방법

1. 담배는 반드시 끊고 절주하기

흡연할 때 발생하는 일산화탄소는 동맥 내벽에 손상을 주어 죽상동맥경화의 발병과 연관이 깊다. 담배는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발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산소 운반 능력을 감소시켜 심장근육이나 뇌세포에 산소를 부족하게 만들고, 말초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소판 응집력을 강화해 혈전 발생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술도 혈관을 빨리 병들게 한다. 술은 한두 잔 이하로 마시고, 절제가 어렵다면 아예 마시지 않는다.

2. 음식은 싱겁게~ 채소와 과일을 골고루!

다량의 소금 섭취는 혈압을 상승시키고 부종 등을 유발한다. 식단의 절반을 신선한 채소로 구성하고 단백질 섭취를 위해 기름진 육류보다 기름을 뺀 살코기나 오메가-3가 많이 든 생선을 먹는 게 좋다.

3. 유산소 운동으로 혈관에 활력을!

가능하면 매일 30분 이상 적절한 유산소 운동을 한다. 김병규 교수는 “유산소 운동은 최대한 많은 양의 산소를 공급함으로써 심장, 폐 기능을 향상하고 강한 혈관 조직을 만드는 효과가 있고 체중을 줄이고혈압· 혈당·콜레스테롤 수치를 내리기도 한다.”고 강조한다.

몸이 땀에 젖고 숨이 헐떡일 정도의 강도로 30분 이상 지속하면 좋다.

4. 즐겁게 살기!

스트레스를 줄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한다. 스트레스는 마음뿐 아니라 혈관에도 지우지 못할 고통을 준다.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은 심장혈관과 뇌혈관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건강한 혈관을 유지하려면 스트레스 관리는 필수다.

5. 정기적으로 혈압·혈당·콜레스테롤을 확인하기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고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이 있다면 꾸준히 관리하고 치료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468.html
kolaswqetsrq 11.02 13:34
◇ 호박씨의 효능 7가지

◇ 호박씨의 효능 7가지

1. 염증 감소

호박씨에는 카로티노이드, 비타민E와 같은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다. 2003년 유럽지질과학기술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호박씨에 들어 있는 산화 방지제가 염증을 줄이고 활성산소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집트 카이로 대학에서 진행된 연구(1995)에서도 호박씨 오일을 관절염이 있는 실험쥐에게 투여하자 항염증제를 투여한 실험쥐와 같은 염증 감소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항염증제와는 달리 부작용은 전혀 없었다.

2. 특정 암 발병 위험 감소

호박씨가 풍부한 식단은 위암, 유방암, 폐암, 결장암 위험 감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일 암 연구소에서 진행된 2012년 연구에 따르면 호박씨에 풍부한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리그난 성분의 섭취가 폐경 이후 나타나는 유방암 발병의 위험을 눈에 띄게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그난은 과실의 껍질에 풍부하다.

3. 전립선 건강 개선

호박씨는 전립선 확대로 배뇨에 문제를 일으키는 양성 전립선 비대증 증상 완화에도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전립선암 발병 위험도 낮춘다. 2009년 국내 상명대학교에서 진행된 연구에선 1400명의 양성 전립선 비대증 환자 1400명을 대상으로 1년간 호박씨 오일을 섭취하게 했다. 그 결과 호박씨 섭취가 전립선 비대 증상을 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14년 홋카이도 대학에서 진행된 연구에선 과민성 방광 증상을 가진 45명의 환자에게 6~12주간 호박씨 오일 10g을 투여한 결과 배뇨 장애 개선에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인디애나 대학에서 진행된 연구에선 전립선 암세포의 성장을 늦춘다는 점도 확인했다.

4. 심장 건강

호박씨는 마그네슘, 아연, 불포화지방산의 훌륭한 공급원이다. 이 영양소들이 심장 건강에 도움이 된다. 킹사우드대학에서 진행된 1997년 연구에선 호박씨 오일이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밝혔다. 또한 2011년 서인도제도 대학에서 진행된 연구에선 폐경기 여성 35명을 대상으로 12주간 호박 종자유 보충제를 섭취하게 했다. 그 결과 혈압은 7% 하락했으며,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는 1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선 호박씨는 산화 질소 생성을 늘며 혈관을 확장하는 혈류를 개선하고, 동맥 플라크의 성장 위험을 낮추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5. 혈당 감소

호박씨는 혈당 관리를 해야 하는 당뇨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2006년 중국에서 진행된 연구에선 호박씨나 호박주스를 섭취하면 제2형 당뇨병 환자의 혈당 수치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선 호박씨에 풍부한 리그난 성분이 이 같은 효과를 낸 것으로 봤다.

6. 정자 질 향상

호박씨에는 아연 함량이 높아 남성 불임 예방에 도움이 된다. 호박씨 한 줌(28g)에는 아연이 2mg이나 들어 있다. 2012년 이집트에서 진행된 연구에선 호박씨는 테스토스테론 수치 조절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전반적인 남성 생식기 건강을 향상시킨다는 점을 확인했다.

7. 수면 개선

호박씨에 풍부한 트립토판은 수면 개선에 도움이 되는 천연 아미노산이다. 매일 1g의 트립토판을 섭취하면 수면의 질 개선에 도움이 된다. 물론 충분한 트립토판을 얻기 위해선 무려 7온스(200g)의 호박씨를 먹어야 한다. 하지만 호박씨에는 트립토판은 물론 아연도 풍부하다. 아연은 트립토판을 세로토닌으로 전환하는 데에 도움이 되며 세로토닌은 수면주기를 조절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으로 전환돼 결국 수면 개선에 효과를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호박씨에 풍부한 마그네슘도 숙면을 취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_25.html
kolaswqetsrq 11.02 13:35
위에 좋은 음식 5가지

위에 좋은 음식 5가지

1. 위장이 든든해지는 완전식품 달걀

달걀의 단백질은 필수 아미노산 여덟 가지가 모두 함유되어 있어 건강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하다. 특히 필수 아미노산의 한 종류인 메티오닌의 함유량이 높아 간기능 강화에 효과가 있습니다.

먹는 방법; 삶아 먹는 것이 이상적이다, 달걀껍질에 함유되어 있는 칼슘은 위산과 위액 분비를 조절하고 술 마신 다음날 특히 좋습니다.

2. 위벽이 튼튼해지는 부추

부추는 강장 효과가 뛰어나고 배를 따뜻하게 해주며 위장을 보호하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부추에 들어 있는 황화아릴 성분이 소화효소 분비를 촉진시키고 식욕을 돋워줍니다.

먹는 방법; 즙을 내서 마시거나 죽을 쑤어 먹으면 소화에 더욱 좋다. 단, 알레르기 체질인 사람은 증상이 악화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세요.

3. 위장을 보호하는 검정콩

검정콩에는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B군, 비타민 E, 레시틴, 사포닌 등의 유효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 또한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리놀산이라는 불포화지방산이 위장을 보호합니다.

먹는 방법; 검정콩을 볶아서 차로 우린다. 콩 10알 정도에 물 200ml를 붓고 4~5분간 끓여 마십니다.

4 위장을 편안하게 하는 꿀

꿀은 살균력이 뛰어나서 각종 바이러스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특히 꿀의 단맛 성분인 과당과 포도당, 올리고당은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 변비를 치유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먹는 방법; 피로할 때 마시는 꿀물 한 잔은 숙취를 해소하고 몸속에 독소가 쌓이는 것을 막는다. 이때 따끈한 물에 타는 것이 좋습니다.

5. 위에 통증이 있을 때 귤껍질

귤껍질에는 헤스페리딘이라는 방향 성분이 있는데, 귤의 톡 쏘는 향기를 내는 이 성분이 위의 기능을 강화하고 위액 분비를 촉진하는 역할을 합니다.

먹는 방법; 깨끗이 씻은 귤껍질을 일주일 동안 햇빛에 말린 뒤 귤껍질 10g당 물 400ml를 넣고 약 20분간 푹 우려서 마십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_25.html
kolaswqetsrq 11.02 13:36
◇ 가족 건강에 좋은 민간요법

◇ 가족 건강에 좋은 민간요법

1. 감기 예방하는 "배생강차"

먼저 생강은 깨끗이 씻어서 찜통에 조각조각 넣어 끓이세요. 푹 끓여진 생강물에 깍둑썰기한 배를 넣어 한번 더 끓이는 게 포인트.

팔팔 끓었을 때 흑설탕을 조금 넣어 단맛을 내세요.

배를 넣었기 때문에 설탕은 조금만 넣어도 된답니다.

식혀서 병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감기에 걸렸을 때 꺼내 데워 먹으면 효과가 좋아요.

2. 발가락, 손가락의 "티눈" 없애는 민간요법

먼저 시장에서 대추를 준비.

대추를 깨끗이 씻어서 씨를 빼낸 뒤 티눈이 난 부위에 대추 속이 닿도록 잘 고정시키세요. 그런 다음 테이프나 반창고를 이용해 대추가 손가락에서 떨어지지 않게 잘 감싸주세요.

2∼3일 간격으로 3∼4번 정도 바꿔주면 티눈이 거짓말처럼 없어져요. 대추 속 성분이 티눈을 제거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에요. 아프지도 않고 덧날 염려도 없는 민간요법이랍니다.

3. "관절염"에 효과 좋은 무즙, 콩 마사지

무를 믹서에 갈아 즙을 내세요.

깨끗한 가제 수건을 준비해 무즙을 묻힌 다음 무릎 등의 아프고 결리는 부분에 발라주면 시원해지면서 효과가 있답니다.

관절염에는 콩도 즉효. 검정콩을 볶아서 청주에 담가 보관해두었다가 마시면 좋아요. 삼백초 차도 혈액순환을 도와 류머티즘 관절염에 효과적이에요.

4. 냉장고 속 상비 감기약, "무조청"

병에 무가 잠길 정도로 무채를 듬뿍 썰어 담고 조청과 꿀을 부어 비닐을 덮고 밀봉하세요.

실온에 하루 정도 두었다가 냉장 보관하면 돼요.

며칠 뒤 무가 실같이 가늘게 되면 무를 건져낸 다음 다시 냉장 보관해 두었다가 한 큰술씩 떠 먹거나 뜨거운 물을 부어 차를 타 마시면 감기에 즉효예요. 무를 건져내고 물을 조리면 1년 정도 장기 보관도 가능하답니다.

5. 임산부에게 좋은 식품 "해삼"

임신 중에 해삼을 먹었어요. 생해삼은 그냥 초고추장에 찍어 먹고, 말린 해삼은 가루를 내어 한수저씩 떠먹거나 죽순과 함께 조리해 자주 먹었지요.

그래서인지 임신 중에 흔하다는 변비도 안 생기고 피로도 크게 느끼지 않았어요. 산달이 되어서는 아이도 쑹∼풍 잘 낳았답니다. 해삼은 골수에 영양을 보충해주고, 마음에 안정도 준다고 하니 임산부들이 많이 먹으면 좋아요.

6. "주부습진"에 좋은 토마토·감자·우유

차가운 성질이 있는 토마토는 가려움을 없애는 데 효과적. 즙을 내서 가제에 묻힌 다음 습진 부위에 5∼10분 정도 하루에 3회 정도 문질러 주면 좋아요.감자도 즙을 낸 다음 가제에 묻혀 습진 부위에 발라주세요.

손이 붓고 진물이 나는 상태라면 차가운 우유로 찜질을 해줘도 좋아요. 4시간마다 20분 정도 해주면 효과 만점이랍니다.

7. 대파뿌리로 "목감기" 예방하세요.

대파의 흰 부분만 잘라 통째로 전자레인지에 넣고 뜨겁게 데우세요. 이 파를 마른 수건에 돌돌 감아 목에 둘러주면 돼요.

아이가 감기에 걸렸을 때 이 방법으로 파를 목에 감고 2∼3시간 있었더니 다음날 감쪽같이 감기가 떨어졌답니다. 나중에 수건을 풀어보니 파가 열을 빨아들여 누렇게 시들어 있더군요.

8. 치질에 좋은 "호두차".

호두를 까서 물에 1시간 정도 불린 뒤 이쑤시개로 속 껍질을 제거하세요. 절구 통에 호두를 넣고 마늘 찧듯이 곱게 빻아 가루를 만든 뒤 냉장고에 보관해두었다 꺼내 먹으면 돼요.

뜨거운 물에 호두가루를 넣고 잘 저어 마시면 OK.

10일 정도 꾸준히 마시면 치질에 효과가 좋아요.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경우가 많은데, 꼭 한번 해보세요.

9. 만병 통치약 "검은깨"

검은깨의 효능을 아시나요? 갑자기 속이 쓰리고 아플 때 참기름을 조금 떠먹으면 좋아요. 젖이 모자라는 산모라면 검은깨를 볶아 으깬 다음 식사 전에 차 스푼으로 한번 정도 떠먹으면 효과 만점.

팔다리가 자주 저릴 때는 검은 깨를 볶아 가루를 낸 다음 병에 담고 따뜻한 술을 부어 일주일 정도 지나 식후에 한 잔씩 마셔주면 혈액순환에 좋답니다. 학생들에게는 들깨죽을 해 먹이면 머리가 좋아져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454.html
kolaswqetsrq 11.02 13:37
◇ 얼굴에 나타나는 건강 적신호

◇ 얼굴에 나타나는 건강 적신호

1. 이마

한방에서는 이마는 폐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폐는 인체의 오장 중 가장 위쪽에 있는데 얼굴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마가 제일 위에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이마에 뾰루지가 난 경우에는 폐를 보호해주는 우유가 좋다고 해요. 단 소화가 잘 안되는 사람은 피해야 해요. 또 매실이나 케일주스를 마시는 것도 효과적이랍니다.음식이나 운동으로 땀을 내는 것도 좋다고 해요

2. 볼

얼굴의 볼 부분에는 위장 경락이 흐르는데요. 그래서 소화가 제대로 안되면 경략이 막혀 볼에 뵤루지가 나게 됩니다. 볼에 쬬루지가 난 사람은 과식은 절대 금물. 위의 염증을 다스리는 오렌지 주스나 위를 튼튼하게 보호해주는 꿀차가 좋아요.

3. 입과 턱 주변

신장과 자궁은 몸의 아랫부분에 있는데요. 그러므로 얼굴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입과 턱주변이 바로 신장과 자궁에 관계가 있습니다. 이부분이 검어지거나 뾰루지가 생긴다면 신장이나 자궁의 이상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요. 신장과 자궁에 음기운이 부족해서 생길 수 있으므로 딸기주스나 당근주스를 마시는 것이 좋아요. 또는 물 대신 보리차나 결명자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4. 코

호흡을 할 때 숨을 빨아들이는 힘은 바로 간에서 생기는데요. 이 긴으이 원활하지 않으면 코와 코 주변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요. 간에 부담을 주지 않는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좋답니다. 아침마다 키위주스나 사과주스를 한 잔씩 마시면 간의 피로 회복에 아주 좋아요.

5. 기미와 주근깨

기미와 주근깨는 간과 신장 등의 혈액순환에 이상이 있기 때문인데요. 간과 신장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혈약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불순물이 남아 문제가 생긴다고 해요. 기미는 후천적이고 주근깨는 선천적이라는 것이 다를뿐이죠. 알로에나 레몬 녹차 등이 미백효과에 좋답니다. 특히 알로에는 보습과 향군 효과도 뛰어나 팩을 해주면 좋아요.

6. 누렇게 뜬 얼굴

얼굴이 누렇게 뜬 사람은 소화기관이 약한 경우에요. 소화에 관여하는 담즙이 제대로 내려가지 못하고 피부로 넘쳐나 누렇게 된다고 해요. 모과차를 마시거나 쑥팩을 하면 좋습니다.

7. 거무스레한 얼굴

얼굴이 갈수록 어두운 빛이 돈다면 신장의 이상을 의심해 보아야 해요. 피로쌓이거나 스트레스 잠이 부족할때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감잎차나 산수유파를 마시거나 녹두팩이나 바나나팩을 하면 좋아요.

8. 붉은 얼굴

술마신 사람처럼 얼굴이 붉다면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인데요. 이는 심장의 활동이 지나치게 왕성하거나 몸에 열이 있을 때 나타나게 됩니다. 심장질환에 좋은 녹차를 마시거나 구기자팩을 하면 좋아요.

9. 창백한 얼굴

누구나 부러워하는 하얀 우유빛 피부를 말하는 게 아니랍니다. 윤기와 혈색이 없어 보이고 왠지 푸른빛이 도는 창백한 얼굴이라면 우선 폐에 이상이 있는지 의심해 보아야 해요. 폐에 기운을 주는 뽕잎차를 마시거나 율무팩 살구팩을 하면 효과적이랍니다.

10. 검고 푸르스름한 얼굴

검푸른 색을 띠면 간이 약하다는 신호인데요. 기의 순환이 잘 안되므로 흐르지 못하고 고여있는 혈약인 어혈이 뭉쳐 피부를 검푸르게 만든답니다. 피로회복에 좋은 오가피를 마시거나 사과팩 오이팩 해초팩을 하면 효과적이에요.

11. 다크서클

눈밑이 검은 것은 간이나 위가 좋지 않다는 증거에요. 또 몸안의 기운이 제대로 흐르지 않아 문제가 생길때도 다크서클이 심해진답니다. 이럴대는 위와 간에 도움을 주는 포도나 딸기주스 상추 등을 자주 먹도록 해요. 또 눈가의 혈액순환을 돕기 위해서 눈밑 지압점을 눌러주면 효과적이랍니다.

12. 자주 트는 입술

유난히 입술이 자주 트는 사람이 있는데요. 이는 비장 (위의 왼쪽 뒤에 있는 내장) 과 위장이 건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체내의 필요한 수분이 부족하게 되어 입술이 거칠어지고 트게 된답니다. 이럴때는 참외나 고구마 꿀 흑설탕차 등의 단 음식이 효과적이랍니다. 특히 흑설탕파는 위벽을 튼튼하게 하여 다른 설탕처럼 살이 찌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살이 빠지는 효과도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624.html
kolaswqetsrq 11.02 13:38
고혈압과 건강에 좋은 건강차

고혈압과 건강에 좋은 건강차

1. 국화차

향이 좋아 평소 마시기 좋은 국화차는 심장의 관상독맥을 확장시키고, 혈류량을 증가시키며, 관상독맥경화로 인해 나타나게 되는 고혈압, 협심증, 뇌혈관장애 개선, 동맥경화 개선 등에 도움이 되는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 음식입니다. 가지와 함께 드실경우 동맥경화로 인해 나타나는 고혈압을 더욱 빠르게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2. 녹차

녹차에 들어있는 카테킨은 혈압상승을 억제하고 체내에 쌓여있는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 혈압을 낮추는데 도움이 되는 고혈압에 좋은 차입니다.

3. 여주차

여주는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고혈압, 동맥경화, 뇌졸중 등의 혈관질환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는 채소로 얇게 썰어 건조시킨후 차로 끓여 드셔도 도움이 됩니다.

4. 어성초차

천연 항생재로 플라보노이드 등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고 꾸준히 복용하면 모세혈관 확장 및 성인병 예방 등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고혈압에 좋은 차 입니다.

5. 와송차

와송은 체내에 있는 나쁜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등 피를 깨끗하게 하고 혈류 증진에 도움이 되는 약초 중 하나로 고혈압, 동맥경화 등의 성인병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와송 100그램과 물을 넣고 은은한 불에서 천천히 끓여서 차로 드시면 됩니다.

6. 현미차

시중에서 구하기 쉬운 현미차는 구수하고 먹기 좋은 현미차에는 피토스테롤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체내에 있는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주는 효과가 있어 동맥경화, 고혈압을 낮추는데 도움이 됩니다.

7. 팥물

팥물에는 폴리페놀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체내 활성산소 제거,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고혈압,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8. 당귀차

특유의 냄새를 가지고 있고 성질이 따뜻한 당귀도 고혈압에 좋은 음식 중 하나로 차로 끓여드셔도 도움이 됩니다.

9. 쑥차

몸을 따뜻하게 하는 쑥차는 콜레스테롤을 제거하고 고혈압을 개선 및 나트륨 배출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고혈압에 좋은 차로 즐겨드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10. 도라지차

사포닌, 이눌린 등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항암효과도 뛰어난 도라지차도 나쁜 콜레스테롤 제거 및 고혈압을 낮춰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고혈압에 좋은 차입니다.

11. 뽕잎차

뽕잎차는 혈압을 낮추고,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고혈압에 좋은 차로 즐겨드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571.html
kolaswqetsrq 11.02 13:39
◇ 혈관을 젋게 만들어주는 10가지 식품

◇ 혈관을 젋게 만들어주는 10가지 식품

1. 마늘

마늘은 동맥 정화에 가장 좋은 음식이다. 높은 항산화 성분이 체내의 활성 산소와 싸우면서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추고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는 높여준다. 마늘의 훌륭한 효능은 혈류를 개선하고 고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2. 귀리

특히 귀리는 아침식사로 추천한다. 소화에 좋을 뿐 아니라 하루 종일 쓸 에너지도 공급해준다. 귀리를 섭취하면 콜레스테롤이 동맥벽에 붙지 못하게 된다. 이로 인해 동맥 경화 및 다른 심장 질환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

3. 사과

사과에는 펙틴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UC Davis의 스포츠 영양학과 교수인 Liz Applegate 박사에 따르면, 펙틴이라는 섬유소가 콜레스테롤과 결합되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춘다고 한다. 또한 사과에 있는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심장병 발병 확률을 최대 50%까지 줄여준다고 한다.

4. 생선

지방질이 풍부한 생선은 착한 지방인 오메가-3 지방산의 공급원이다. 이 성분은 우리 몸이 제대로 활동하고 막힌 동맥을 뚫는 데 필요하다. 그중 효과가 좋은 생선은 연어, 고등어, 참치, 송어, 청어, 정어리이다.

5. 강황

강황의 주요 성분 중 하나인 커큐민은 심장 보호에 훌륭한 역할을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커큐민으로 인해 강황이 혈관 폐색과 관련된 동맥 손상을 예방할 수 있다.

6. 시금치

잎 푸른 채소 시금치에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하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시금치는 콜레스테롤 산화나 동맥 경화와 같은 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7. 견과류

견과류 또한 동맥 폐색 예방 및 혈관 정화 자극에 훌륭하다. 견과류의 단일불포화 지방산과 오메가-3 지방산은 동맥 건강에 필수적이다. 특히 추천하고 싶은 종류는 헤이즐넛, 아몬드, 피칸, 땅콩이다.

8. 올리브 오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은 매우 다양한 효능이 있다. 그중에서도 심장병을 예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올리브오일은 단일불포화 지방산으로, 잘 산화되지 않아 콜레스테롤이 동맥벽에 달라붙는 것을 예방한다.

9. 토마토

토마토는 리코펜이라는 성분을 공급하는 매우 중요한 식품이다. 이는 나쁜 콜레스테롤이 동맥벽에 달라붙는 것을 예방하는 항산화 물질이다. 연구에 따르면, 매일 토마토를 먹으면 지방 딱지가 동맥 내에 자라는 위험이 줄어든다고 한다.

10. 석류 주스

석류 주스에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다는 점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블랙베리, 블루베리, 오렌지 주스 등과 같은 모든 주스보다 풍부하다. 항산화제로 인해 석류 주스는 손상된 동맥, 즉, 동맥 경화를 치료하는 데 매우 효과가 좋다고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83.html
kolaswqetsrq 11.02 13:39
노년의 다섯가지 좌절과 여섯가지 즐거움

노년의 다섯가지 좌절과 여섯가지 즐거움

1.낮에는 꾸벅 꾸벅 졸지만 밤에는 잠이 오지않고,

2.곡할 때는 눈물이없고 웃을 때는 눈물이나며,

3.30년 전 일은 기억하면서 눈 앞의 일은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4.고기를 먹으면 뱃속에는 없고 이빨 사이에 다 끼고,

5.흰 얼굴은 검어지는데 검은 머리는 희어지네.

그런데 다산 정약용선생은 반대로 이런것들이 좌절이 아니라 즐거움이라고 했다.

1.머리숱이 없어지니 빗이 필요치 않고

2.이가 없으니 치통이 사라지고

3.눈이 어두우니 공부를 안해 편안하고,

4.귀가 안들려 세상 시비에서 멀어지며,

5.붓 가는대로 글을 쓰니 손 볼 필요가 없으며

6.하수들과 바둑을 두니 여유가 있어 좋다.

다산처럼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노년의 즐거움을 찾아야겠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310.html
kolaswqetsrq 11.02 13:40
새로워지는 법

새로워지는 법

1. 평소에 다니던 길이 아닌 길로 가본다.

2. 현재의 가장 큰 불편이 뭔지 생각해본다.

3. 고민만하던 스포츠센터에 등록해 버린다.

4. 일주일, 혹은 한 달에 세 번 서점가는 날을 정한다.

5. 존경하는 사람의 사진을 머리맡에 둔다.

6. 일주일에 한 개씩 시를 외운다.

7. 생각은 천천히, 행동은 즉각 한다.

8. 어제했던 실수를 한 가지 떠올리고 반복하지 않는다.

9. 할일은 되도록 빨리 끝내고 여유시간을 확보한다.

10. 10년 후의 꿈을 적어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235.html
kolaswqetsrq 11.02 13:41
◇ 만나면 독이 되는 식품들

◇ 만나면 독이 되는 식품들

1. 장어와 복숭아(설사)

장어를 먹은 다음에 입가심으로 복숭아를 먹으면 설사에 시달릴 수 있다. 장어는 속을 든든하게 해주는 반면 소화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장어에 들어있는 지방 때문이다. 장어에는 21%나 되는 지방이 들어있는데 이는 소장에서 리파아제에 의해 지방산으로 분해되는 과정을 거친다. 분해가 채 끝나기도 전에 복숭아를 먹으면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 복숭아의 상큼한 맛을 내는 유기산이 장에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2. 게와 감(식중독)

게 요리를 먹은 다음에 후식으로 감이나 곶감, 수정과를 먹으면 소화불량을 동반한 식중독에 걸릴 수 있다. 게는 고단백 식품으로 식중독균의 번식이 빠르다. 만약 게의 유해한 성분이 있으면 그 즉시 설사로 배출돼야 하는데, 감을 먹으면 그 속의 탄닌 성분 때문에 변비가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해로운 균이 몸속에 남아 식중독에 걸릴 수 있다.

3. 조개와 옥수수(식중독)

조개도 게처럼 상하거나 세균이 감염되기 쉽다. 산란기에는 스스로 보호하려고 독성물질을 만들기도 한다. 또 옥수수도 소화가 안 되는 음식이다. 조개를 먹은 다음에 옥수수를 먹으면 소화가 더뎌지고 유해균 배출이 원활하지 않아 배탈이나 식중독이 발생할 수 있다.

4. 문어와 고사리(소화불량)

문어와 고사리는 둘 다 위에 부담을 주는 식품이다. 문어는 고단백이지만 소화가 잘 안 되고, 고사리는 섬유질이 많아 위가 약한 사람이 소화하기엔 어렵다. 이 둘을 함께 먹으면 엎친데 덮친격으로 소화불량이 악화될 수 있다.

5. 스테이크와 버터(콜레스테롤 상승 )

스테이크용 안심과 등심은 지방이 많아 부드럽고 맛이 좋다. 단, 지방이 많아서 고열량 고 콜레스테롤 음식이다. 이는 버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스테이크를 요리하면서 버터를 함께 사용하면 입에서는 부드럽게 살살 녹겠지만, 혈액이 부드럽게 흐르기는 어렵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400.html
kolaswqetsrq 11.02 13:42
마음하나 바꿈으로써 삶이 달라집니다

마음하나 바꿈으로써 삶이 달라집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양한 성격과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납니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들은 늘

미소를 띠고 재치있는 말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요.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에는 마음이

훤해지고 세상일이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 집니다.

그러나 어둡고 비관적이며 매사에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사람을 만나면

왠지 같이 있기가 싫어 집니다.

우리 마음은 선택권이 있어서 긍정적이

될수도 있고 부정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어느 쪽으로 먹느냐에 따라

삶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나지요.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이

행복해 질수는 없습니다.

모든 문제에 대해 걱정하고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일종에 습관인데

그런 습관은 빨리 버리는것이 좋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의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타인을 만나거나 어떤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고통과 갈등을 겪게 되지요.

크고 작은 어려움이 닥쳤을때 그것을

고통스러운 일로 여기는 습관은

삶을 지치게 만듭니다.

어려움과 마주치면 그 순간을 마음을

다잡는 좋은 기회로 여기는

습관을 길러 보십시요.

세상이 달라 집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습관이 길러지면

마음은 해방과 자유를 느끼게 되지요.

마음하나 바꿈으로써 삶이 달라 지는 것입니다.

-정목스님의 마음밖으로 걸어가라 중에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919.html
kolaswqetsrq 11.02 13:43
■공민왕의 기록

■공민왕의 기록

공민왕은 재임 초 · 중반에는 우리나라 역사상 보기 드문 개혁군주라고 평가되기에 충분한 개혁을 이루어 냈다. 그러나 신돈을 죽이고 난 후 그 재임 말년의 기록은 괴이하기 짝이 없다. 조선 건국 후에 쓰여진 고려사와 동국통감 등 역사서에는 공민왕이 재임 초 · 중반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행동들, 미치광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 행위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
『공민왕이 신돈을 제거한 후 술에 찌들어 살거나, 젊고 예쁜 시녀들을 자기 방안으로 불러들여 용모 단정한 귀족자제들로 만들어진 자제위소속 김흥경, 홍륜 등과 음행을 하게 만들고, 자신은 방문 틈으로 지켜보는 변태적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또 공민왕은 마음이 통하면 홍륜 등을 자기 침실로 불러들여 동성애를 했다. 그리고 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의 후계자를 만들기 위하여 홍륜 등을 시켜 왕비를 강간하게 하고, 그들 사이에 자식이 생기면 자신의 아이로 삼으려 했다. 1374년 9월 공민왕은 내시 최만생으로부터 자신의 익비가 홍륜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공민왕은 익비의 자식을 자기 자식으로 만들고자 최만생에게 왕비와 같이 잔 홍륜과 그의 무리를 죽이라 명했다. 하지만 최만생은 공민왕이 홍륜 등을 죽인 후에 자신도 죽일 것이라고 직감하고 홍륜 무리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고, 그들과 공모하여 공민왕을 먼저 죽일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날 밤 만취한 상태로 잠들어 있던 공민왕을 죽이고 말았다. 공민왕은 즉위 23년만인 45세에 허무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

위의 내용은 고려사에 나온 공민왕 말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고려사는 공민왕 사후 20년이 지나,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 등에 의해 전왕조사(前王朝史)를 정리하려는 『고려국사』 편찬으로부터 시작해 세종 때 여러 번 간행을 반복하다 57년 만인 문종 1년에 『고려사』로 마무리되었다. 고려사 완성 당시 60년 정도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면 그 당시 상황을 잘 알 수 있는 생존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기처럼 쓰인 조선왕조실록과는 달리, 고려사는 조선 건국세력들이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쓰인 역사서인 만큼, 공민왕과 고려 말의 상황에 대해 상당한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817.html
kolaswqetsrq 11.02 13:44
■신돈의 몰락

■신돈의 몰락

고려사에는 신돈이 공민왕의 신임이 옅어지자 궁지에 몰려 반역을 꾀했다고 기록 되어 있다. 공민왕이 능으로 행차하는 길가에 미리 군사를 숨겨 두어 암살하려던 계획을 세웠지만 실패했고, 또 다시 모의를 했지만 고발자에 의해 탄로가 나서 수원에 유배되었다가 이틀 만에 죽음을 맞았다고 전해진다.

신돈을 죽일 때 공민왕은 이렇게 질책했다 한다. 《고려사》

"네가 늘 부녀자를 가까이함은 기운을 기르려는 것이지 감히 사통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지금 들으니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이것이 맹세한 글에 있는 것이냐? 또 성 안에 좋은 집을 일곱 채나 갖고 있는데, 이 역시 맹세한 글에 있는 것이냐?"

신돈의 어린 아들도 죽었고 그의 충실한 부하들도 제거되었다. 신돈은 잡힌 지 나흘 만에, 유배된 지 이틀 만에 죽었다. 공민왕은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다. 공민왕은 그토록 신임하던 신돈을 왜 죽였을까? 단지 기득권 세력의 이간질 때문이었을까? 신돈의 축첩과 치부 그리고 역적질 때문이었을까? 그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첫째로, 신돈의 개혁으로 권력과 경제기반을 상실한 권문세가와 군사권을 쥔 무장 세력의 반발을 들 수 있고, 둘째로는 신진 유학자들의 공민왕 친정(親政) 요구와 국제 정세의 변화(원·명 교체)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공민왕은 새 인물을 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로써 신돈의 개혁은 중단되었고, 공민왕은 다시 보수 세력과 손을 잡았다. 신돈에 의해 쫓겨났던 최영 · 이성계 · 경복흥 등 무장들과 이색 · 백문보 등 유학자들이 불려와 다시 등용되어 고려 말 역사의 주역이 되었다. 하지만 신돈이 추진한 토지정책과 노비정책은 뒷날 조준, 정도전에 의해 전면적인 토지개혁이 단행될 때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신돈이 추진한 과거제(科擧制)는 조선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신돈은 불교의 자비사상과 중생구제의 가르침, 유학의 정치운용 원리와 실천도덕을 접목시켜 현실정치에서 실행한 개혁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 건국의 주체세력은 신돈의 개혁을 폄하시키고 고려 말 혼란상을 부각시켜야 했다. 그리하여 고려말 혁신적 개혁가이고, 그 개혁을 현실적으로 실천한 신돈은 단지 요승(妖僧)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만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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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45
■ 숨은 조력자, 호머 헐버트 4편

■ 숨은 조력자, 호머 헐버트 4편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나라가 비통에 빠졌을 때 헐버트는 《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를 집필한다. 이 책에서 헐버트는 을사늑약의 울분으로 자결한 민영환을 애도하며 그의 애국충정의 정신이 한국인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 말했다.

민영환이 사망당시 입었던 피 묻은 옷을 마루 밑에 넣어두었는데, 거기 밑에서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제자들을 데리고 가서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또 그 책에 들어있는 사진 중엔 일본이 조선 땅을 몰수했을 때, 강력히 반발하던 한국인들을 처형한 장면을 찍은 사진이 있다.

그러한 약탈을 그냥 보고 넘길 수가 없었던 헐버트는 외국인 소유의 땅은 일제가 빼앗지 못할 것을 알고 땅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한국인들이 찾아왔을 때, 1푼에 그 땅을 구입한 것으로 꾸며 명의를 이전해 준 뒤 약탈이 끝나면 같은 값으로 다시 팔겠다는 확약서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헐버트는 은퇴 후 고향 매사추세츠에 머물며 미주 지역 한인 민족운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정부가 들어선 후인 1949년 8월, 이승만의 초청을 받고 42년 만에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그때 나이 87세, 태평양을 건너는 긴 여행을 하기에는 무리였지만, 독립된 한국을 보고 싶은 일념에서 여행을 감행하였다.

마침내 한국에 도착하기는 했으나 여독(旅毒)으로 병을 얻어 서울 위생병원에 입원했다가 회복하지 못하고 8월 5일 별세하였다. 그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그의 소원대로 그의 유해는 마포 강변 양화진 외국인 묘지 언덕에 안장되었다. 비록 외국인이었지만 나라를 팔아먹고 자기 가문과 개인의 안위만 챙기려는 대한제국 대신들에 비하면 우리 민족에게는 너무나 훌륭하고 고마운 사람이며, 진정한 한국 사랑을 보여주었다.

한국에서의 한자 이름은 허흘법(許訖法)이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 훈장 태극장을 받았다. 그는 한국에 나온 미국인 선교사 중에 자신을 선교사로 파송한 본국(미국) 정부나 선교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세력보다 피선교지, 피지배민족 입장에서 고난을 함께 하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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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로서는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몇 안 되는 친한파 선교사 중의 하나였다. 헐버트는 위기에 처한 한국의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모든 것을 걸고 한국을 위해 싸웠다. 호머 헐버트는 헤이그 특사 사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교육과 사회 공헌, 종교 활동, 독립운동에서도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역사 속에서 새롭게 제대로 평가받아야 하며, 다시는 이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잊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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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45
■ 숨은 조력자, 호머 헐버트 3편

■ 숨은 조력자, 호머 헐버트 3편

헐버트는 어려운 한글과 한국말을 조선에 온지 3년 만에 읽기와 쓰기에 심지어 한국어 교과서 《사민필지》를 집필할 정도로 익혔다고 한다. 《사민필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로 된 서양식 교과서이다. 선비와 백성, 모두가 함께 알아야 한다는 뜻의 제목은 신분과 상관없이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헐버트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 책의 내용은 세계지리라고 보면 되는데 특이한 사항은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해서 다른 나라를 비교하는 묘사들이 들어있고, 전 세계를 아프리카대륙, 아메리카대륙 등으로 나누어서 지도도 함께 넣고 있다고 한다. 관립중학교에서 교사로 있던 시절, 헐버트는 영어과목만 담당한 것이 아니라 역사, 정치, 지리, 화학 까지도 가르치며, 인재양성만이 나라를 구하고 지킬 수 있는 길이라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그는 교육만이 조선이 살아날 길이라고 생각하고, 1903년 YMCA 창립에 참여하여 이 단체를 사회 계몽단체로 가도록 방향을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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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을 서재필, 주시경과 함께 만들었다. 당시에는 한글 표기에 띄어쓰기가 없었는데, 한글의 띄어쓰기 도입을 주장하였다. 같은 잡지에 한국인들은 흥이 있는 민족으로 음악을 매우 사랑한다며 아리랑을 서양식 음계로 채보한 최초의 악보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History of KOREA》 라는 우리나라 역사책과 《엄지마법사》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 전래동화를 영어로 쓰는 등 한글 세계화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금속활자, 거북선, 한글 등의 우리 발명품을 세계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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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세계는 제국주의가 널리 퍼졌기 때문에 미개국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을 당연하듯 생각하던 때였다. 호머 헐버트가 이런 노력을 한 것은 절대로 우리 민족이 나라를 빼앗길 민족이 아니며, 일본의 침략은 불법적인 것이었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한국을 현존하는 문자 중 가장 뛰어난 문자라고 주장하고, 1903년 미국에 보낸 보고서에서 한글이 영어보다 우수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주시경과 함께 한글 표기를 정리하며 띄어쓰기와 쉼표, 마침표를 도입한 사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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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시대에 찾아와 대한제국의 짧은 역사를 지켜온 헐버트는 회고록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을 통해 자신이 한국을 알게 됐고 사랑하게 됐고, 그래서 한국인과 함께 싸우게 됐노라고 밝혔다. 헐버트의 저술활동은 국제사회여론을 움직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다나카라는 일본 대신이 ‘경천사 10층 석탑’을 무단으로 일본으로 가져간 것을 고발한 것이었다. 개성까지 찾아가 탑이 도난당한 현장을 확인한 헐버트는 재팬 크로니컬지에 이를 기고했다. 이어 뉴욕타임스에 고발하고 만국평화회의가 진행 중이던 헤이그에서도 유럽의 신문에 폭로했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일본정부는 어쩔 수없이 석탑을 돌려주었고, 경천사10층석탑은 현재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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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46
■ 숨은 조력자, 호머 헐버트 1편

■ 숨은 조력자, 호머 헐버트 1편

헐버트는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좋아했던 인물로 힘없는 대한제국 말기에 일본의 강압과 침략행위를 전 세계를 통해 호소하면서 조선의 독립을 외쳤던 인물이다. 한국을 사랑했던 헐버트는 현재 한강변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혀 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목사의 아들이었다. 가정이 모두 선교를 하던 기독교 가문인데, 가훈은 "인격이 승리보다 중요하다."였다고 한다. 뉴욕 유니언신학교 출신으로 목회자의 길을 가던 그는 1886년 한국 정부의 초청을 받고 들어와 국립 육영공원 교사로 부임했고, 나중에는 관립중학교(현재의 경기고등학교)에서 교편을 들다가 마침내 고종의 최측근이 되었다.

그는 대한제국이 높은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1891년 육영공원이 재정난으로 폐쇄되자 본국으로 들어갔다가 미감리회 선교사 신분으로 1893년에 다시 나와 주로 출판 일을 맡았는데, 특히 The Korean Repository, The Korea Review 같은 영문 잡지를 발행하여 한국의 역사, 종교, 문화를 외국에 알렸다. 그는 고종 황제가 믿는 몇 안 되는 외국인 중 하나였다.

일본에 의해 조선이 약탈되고 1895년 일본의 낭인들이 궁 한복판으로 쳐들어와 조선의 황후를 무참히 살해한 뒤 시체에 석유를 뿌려 궁의 뜰에서 불살라 버리는 을미사변 이후 고종은 그런 일제의 만행에 속수무책이었다. 심지어 맘 편히 먹고 마시고 잠들지도 못했다. 일본인들이 음식에 독을 탈까 침실로 쳐들어올까 불안해했던 것이다. 이 때 서울에 있던 몇몇 서양인들이 직접 조리한 음식을 매일 고종에게 제공하고 불침번을 서기도 했는데, 이 때 불침번을 자처한 이가 바로 헐버트다. 극도로 불안해하는 고종을 궁 밖 미국 공사관이나 선교사 사택으로 옮기려 했다가 미국 측의 항의로 미수에 그치고 말았는데(춘생문사건), 이 일에 헐버트가 깊숙이 간여하였다.

러일전쟁에서 주변의 예상과 달리 일본이 승리한 뒤 노골적으로 대한제국의 주권을 위협하자, 고종은 1882년 미국과 체결했던 조미수호통상조약 중 첫 번 째 조항인, 조선과 미국에게 제3국이 피해를 입힐 경우 서로 도움을 준다는 선위조처의 약속을 기억하고 미국 정부 인사에게 고종황제의 친서를 전할 특사로 헐버트를 떠올렸다. 1905년 10월 안식년 휴가를 얻어 본국으로 떠나는 헐버트에게 미국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친서를 맡겼다.

헐버트는 1905년 미국에 갔지만, 이미 미국정부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해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대한제국)을 각각 차지하기로 합의를 끝낸 상황이어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헐버트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러다 대한제국의 모든 외교권을 일본이 감리, 지휘하고 서울에 일본통감이 주재한다는 보호조약인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헐버트는 한 장의 전보를 받는다. 대한제국 황제 고종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을사조약은 무력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자신은 결코 서명하지 않았다는 고종의 목소리였다. 이후부터 헐버트는 저서와 여러 매체를 통해 루즈벨트 대통령과 미국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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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47
■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항복 3편

■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항복 3편

제1조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 영토와 조선 인민에 대한 통치의 전 권한은 당분간 본관(맥아더)의 권한 하에서 시행된다.

제2조 조선 정부 공공단체 및 기타의 명예직원들과 고용인 또는 공익사업 공중위생을 포함한 전 공공사업기관에 종사하는 유급 혹은 무급 직원과 고용인 및 기타 제반 중요한 사업에 종사하는 자는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정상적인 기능과 의무를 수행하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보존 보호하여야 한다.

제3조 조선 인민은 본관(本官) 및 본관 권한 하에서 발포한 명령에 즉각 복종하고 점령군에 대한 모든 반항행위 또는 공공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를 감행하는 자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다.

제4조 조선 인민의 재산 소유권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본관의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일상의 업무에 종사하라.

제5조 군정 기간에는 영어를 모든 목적에 사용하는 공용어로 한다. 영어 원문과 조선어 또는 일본어 원문 간에 해석 또는 정의가 명확하지 않거나 같지 않을 때에는 영어 원문을 우선으로 한다.

제6조 이후 공포하게 되는 포고, 법령, 규약, 고시, 지시 및 조례는 본관 또는 본관의 권한 하에서 발포될 것이며 인민이 이행하여야 될 사항을 명기할 것이다.(1945년 9월 9일)』

1945년 9월 9일 오전 더글러스 맥아더의 포고령 제1호가 발표되고 이어서 오후 4시 30분 조선 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미국의 존 R 하지 준장과 일본의 제9대 조선 총독이며 총 사령관인 아베 노부유키는 종전협정에 대한 항복문서 조인식을 가졌다. 아베 노부유키가 조선 총독부에서 미국이 제시한 항복문서에 서명하자, 그 시간부터 한국은 미 군정(軍政) 하에 놓이게 되었다(38도선 이북인 북한에서는 1945년 8월 28일 소련군 사령부가 설치되어 통치를 시작하였다).

아베 노부유키는 한국 땅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내가 장담하는데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의 세월은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무기보다 더 무서운 일본의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그로 인해서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면서 노예적인 삶을 오랫동안 살 것이다.』

이 아베 노부유끼의 친손자가 얼마전 총격사건으로 사망한 전 일본 수상 아베 신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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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48
■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항복 1편

■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항복 1편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던 1943년 11월 22일부터 11월 26일까지 피라미드가 바라다 보이는 이집트 카이로의 메나하우스(Mena House)호텔에서 연합국 대표인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과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국방최고위원장,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이 제1차 카이로회담을 가졌다. 11월 23일 저녁 이집트 주재 미국 대사 관저인 커크빌라(Kirk villa)에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장제스 중국 국방최고위원장이 먼저 만나서 카이로 회담 선언의 초안을 만들었고, 11월 25일 미·중·영 3국 대표는 일본을 상대로 하는 전쟁에 협력하고 일본의 영토문제를 합의한 후에 다음과 같이 공식성명을 발표하였다.

1) 미국, 영국, 중국 3국은 일본에 대해 압력을 가한다.

2) 미국, 영국, 중국 3국은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고 응징하지만 영토 확장의 의사는 없다.

3)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얻은 태평양제도를 박탈하고, 만주와 타이완 등은 중국에 반환하고 일본의 무력 점령지역으로부터 일본을 몰아낸다.

4) 한국이 노예상태에 놓여있음을 유의하고 앞으로 한국을 자유독립국가로 할 것을 결의한다.

이렇게 카이로회담에서 연합국 3국은 한반도를 독립국가로 인정하기로 하였으나, 구체적인 방안은 결정하지 않은 상태로 회담을 끝마쳤다. 그 후 1945년 8월 10일부터 미국, 영국, 소련 3국이 독일의 브란덴부르크 주 포츠담에 있는 독일 왕실의 여름 별장인 상수시(Sanssouci)궁전에 다시 모여 회담을 하기로 했는데, 미국이 원자폭탄을 완성하여 8월 6일 일본 본토인 히로시마시와 8월 9일 나가사키시에 투하하게 된다. 그리고 그날 미국은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할 것을 요구하였고, 8월 10일 일본은 내각회의를 열고 무조건 항복할 뜻을 밝혔다.

그러자 포츠담 회담을 하던 연합국은 1945년 8월 11일 한반도에 38선을 설정하고 38도선 이남은 미국이, 38도선 이북은 소련이 일본군을 무장해제 시키고 항복을 받기로 결정하였다. 이 운명의 38선은 미·소 양국이 책상위에 한반도 지도를 펼쳐놓고 반(半)이 되는 지역을 선을 그으면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한 마을이 또는 한 집이 남북으로 나뉘기도 하는 얄궂은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하였다. 매우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그동안의 목숨을 건 독립활동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앞날을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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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48
■ 군함도軍艦島 4편

■ 군함도(軍艦島) 4편

2015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이 신청한 하시마 탄광 등 23개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를 최종 결정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 중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조선소와 다카시마 탄광, 하시마 탄광, 미이케 탄광 및 미이키 항구, 야하타제철소 등 7개 시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끌려간 한국인 약 5만8000명이 가혹한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곳이다. 당시 일본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군함도와 관련된 역사를 왜곡하고 산업혁명의 상징성만을 부각시키면서 홍보해 우리 국민의 거센 공분(公憤)을 샀다. 일본은 하시마 등이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의 증거물이라고 주장하며, 문화유산 등재기간을 1850년~1910년으로 한정해서 강제징용에 대한 별도의 역사적 기술 없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시도했다. 1940년대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제외함으로써 자신들의 어두운 역사를 덮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역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도 전체 역사를 반영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이 조선인 강제노동이 있었음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에 명시하기로 하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국제무대에서 일본정부가 강제노역을 공식적으로 처음 언급한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일본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결정이 나온 지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시설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이 없었다고 밝힌 것이다. 스가 관방장관은 2015년 7월6일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적 사실관계를 따졌을 때 산업유산 시설에 조선인 동원이 “강제징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우리나라와 중국 등에서 강제징용에 대한 실상을 밝히며 반발하자,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23개 근대 산업 시설 가운데 한국인 강제 노동이 있었던 군함도 등 7개 시설에 정보센터를 건립해 강제 노역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최근 일본 정부가 日帝 강점기 한국인 강제 노역으로 악명 높은 \군함도 탄광\의 진실을 왜곡하는 전시관을 일반에 공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전시관에는 "한국인 강제 징용자애 대한 학대가 없었다"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 는 내용이 강조돼 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유네스코에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지정 취소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일본 측은 유네스코의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논란은 계속되고 있고, 강제징용의 실상을 바로 알리는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다.

하시마 탄광에 동원되었던 조선인 노동자 중 일부는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피해를 입고 그 후유증으로 고통받은 사례도 있다. 일본은 아직도 하시마 탄광, 군함도를 근대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하면서, 강제 노역과 수탈, 인권 탄압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숨기고 있는 것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4_24.html
kolaswqetsrq 11.02 13:49
■ 군함도軍艦島 2편

■ 군함도(軍艦島)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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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는 많은 한국인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곳 중 하나이다. 축구장 2개 만한 크기의 섬전체가 탄광이며, 갱도는 해저 1000m(1km)에 이르는 해저탄광이다. 하시마에서 석탄이 발견되고 채광이 시작된 시기는 대략 18세기 말~19세기 초였다. 당시엔 그곳에 살던 어민들이 소규모 석탄을 캐면서 부업으로 일삼은 정도였다. 이곳에 석탄이 묻혀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로 본격적으로 개발된 건 미쓰비시라는 기업이 섬을 소유하면서부터였다. 미쓰비시를 일약 일본의 거대 재벌 기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890년 하시마탄광의 원래 소유자가 미쓰비시에 10만엔을 받고 섬 전체를 양도했고, 이때부터 미쓰비시가 본격적으로 바다 밑에 묻혀 있는 석탄을 캐내기 시작했다. 미쓰비시에 의해 갱도가 속속 완성되면서 엄청난 양의 석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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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는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고, 학교가 세워지는 등 기본적인 거주 환경이 갖추어졌다. 1916년에는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인 7층 아파트가 세워졌고, 그 뒤로도 고층 건물들이 속속 지어졌다. 이러한 근대식 아파트 건설은 일본이 하시마를 산업화와 근대화의 상징 이라고 주장하는 주요한 근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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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에는 약 41만t의 석탄이 출탄되면서 개발의 최정점을 찍었고, 1960년쯤엔 이 작디작은 섬에 4,267명이 살았다고 한다. 이는 당시 도쿄 특별구 인구 밀집도의 9배를 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탄광 시설, 주택, 초중학교, 점포, 병원, 사원, 영화관, 이발소, 미용실, 사교장 등이 있어 섬 안은 완벽한 도시 기능을 구비했다. 특히 미쓰비시는 해저 탄광을 개발하기 위해 모든 최신 기술을 이 섬에 쏟아 부었는데, 당시 도쿄대 우등생들은 모두 하시마로 모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1960년 이후 석유가 등장하면서 하시마 탄광은 점점 쇠퇴하게 되고, 1974년 1월엔 완전히 탄광 문을 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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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석탄이라는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중요한 산업 자원이었지만,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수많은 한국인이 강제징용을 당한 곳이어서 한국인들에게는 지옥섬이나 감옥섬으로 불릴 정도로 악명 높은 곳이다. 하시마 탄광에서 조선인 노동자의 존재가 처음 확인된 것은 1917년이다. 개발사인 미쓰비시는 탄광노동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 각지는 물론 조선인도 모집했다. 1918년 하시마에서 941명이 갱내부에서 광부로 일했고, 이중 70명(7.4%)이 조선인이었다. 1935년 3월26일 하시마 탄광의 갱내 가스 폭발로 20명 이상의 광부가 사망한 큰 사고가 발생했다. 출신지가 공개된 사망자 17명 중 조선인 노동자는 절반이 넘는 9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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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총동원체제를 가동하면서 하시마 탄광의 조선인 노동자의 수도 해마다 늘어, 패전 직전인 1944년에는 800여명으로 추정된다. 당시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은 비인간적 환경에서 고통을 겪었으며, 외부와도 철저히 격리된 채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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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50
■ 의사義士와 열사烈士의 차이 2편

■ 의사(義士)와 열사(烈士)의 차이 2편

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에서는, ‘성패(成敗)에 관계없이 무력으로 행동을 통해서 큰 공적을 세운 위인’을 ‘의사’라 하고, ‘직접 무장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어도 죽음으로 정신적인 저항의 위대성을 보인 위인’을 열사(烈士)라고 구분하였다. 즉,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항거하다가 의롭게 죽은 사람인 점에서는 같으나, 무력적인 행동을 통해서 적에 대한 거사를 결행하여 공을 이룬 사람은 ‘의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저항하다가 의롭게 죽은 사람 혹은 무력 행동 대신 강력한 항의의 뜻으로 자결하거나 물질상의 이해나 권력에 대해서도 굴하지 않고 굳은 의지를 지키다 죽은 사람은 ‘열사’ 라고 구분할 수 있겠다.

이런 의미로 보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무력행동으로 공적을 세운 안중근은 ‘의사’로, 3.1운동 때 만세운동을 벌이다 감옥에 갇히고 끝까지 죽음으로 저항한 유관순은 ‘열사’로 부르는 구분이 명확히 이해가 된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에 앞장서다 목숨을 잃은 전태일이나 이한열의 이름 뒤에도 열사를 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김좌진장군이나 홍범도장군처럼 독립군을 이끈 군인은 의사나 열사로 부르지 않고 그냥 계급으로 부른다.

독립운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김구선생과 같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투쟁하신 분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제 몸을 바쳐 일하려는 뜻을 가진 사람’ 으로 ‘애국지사’ 또는 ‘독립지사’라고 한다. 김구와 안창호 같은 분이며, ‘선생’이라는 호칭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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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의미도 알아보면, 순국선열은 자발적으로 이민족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투쟁을 벌이다 분사(憤死:원통함에 자결)나 전사(戰死), 옥사(獄死), 병사(病死)한 분이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운동 참여자 300만명 중 15만명을 순국선열로 추산하고 있다. 호국영령은 사전적으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명예로운 영혼’이다. 즉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쟁터에서 적과 싸워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분을 말한다. 가끔 국가 행사 때 호국영령과 순국선열께 묵념을 하게 되는데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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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든 열사이든 오늘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우리가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소중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바치신 그 분들의 뜻과 정신을 잘 받들어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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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51
■ 의사義士와 열사烈士의 차이 1편

■ 의사(義士)와 열사(烈士)의 차이 1편

우리나라가 국권을 되찾은 광복절. 우리의 광복은 절대로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안중근의사, 윤봉길의사, 유관순열사 등 많은 분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우리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뿐 아니라 광복 후 민주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한 분들도 많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을 일컬을 때, 어떤 사람은 ‘○○○열사’ 또 어떤 사람은 ‘○○○의사’라고 한다.

의사(義士)와 열사(烈士)는 어떤 뜻이고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사전적 의미로 보면, 열사(烈士)는 ‘나라를 위해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해 싸운 사람’ 의사(義士)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몸 바쳐 일하려는 뜻을 가진 의로운 사람’ 이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이런 풀이만으로는 의사와 열사를 정확히 이해하고 구분하여 부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의사와 열사라는 말은 성리학적 관점에서 ‘의리’를 중요시 하는 조선 시대적 표현에서 시작되었다. 조선시대 여러 사료를 보면 대체로 의리를 생명처럼 여기는 양반들이 의리를 표방하며 의인다운 언행을 보이고, 국가의 위기를 맞아 의거(義擧)를 했을 때 ‘의사’라고 지칭했다. 국가의 위기 때 사(士)가 목숨을 바쳐 이를 막는 것은 당연한 ‘순절(殉節)의 의리’라는 것이다.

반면 ‘열사’의 경우는 대체로 평민(平民)이나 무인(武人)이 국가 위기 상황을 맞아 죽음으로 그 결의를 표현하는 경우에 지칭했다. 의사(義士)는 ‘사(士:양반사족)의 의리’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고, 열사(烈士)는 ‘평민의 일시적인 혈기’를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의사와 열사라는 용어에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가 적용되어 신분에 따라 양반은 의사(義士), 평민은 열사(烈士)라고 불리었다. 실제로 왕조실록이나 개인 문집 같은 여러 사료에는 ‘의사’가 ‘열사’보다 더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지금도 의사(義士)가 열사(烈士)보다 좀 더 중요하고 위대한 일을 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의사와 열사를 민족 영웅으로 추모하고 기념하던 식민지시기와 해방 초기까지도 특정 인물을 의사로만 혹은 열사로만 호칭하던 뚜렷한 기준은 없었다. 신분적으로 구분했던 양자의 구별이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의사나 열사의 기준이 더욱 모호해진 것이다. 광복 즈음에 의사와 열사에 어떤 차이를 두어야 하는지 그 구분을 명확히 할 필요성을 느껴 그 기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지만 뚜렷한 기준은 생기지 않았다. 이후 1970년대 국가보훈처의 전신인 원호처 산하에 있던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지금과 같은 기준을 대략적으로 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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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52
■ 히로히토 일왕의 항복 선언서 1편

■ 히로히토 일왕의 항복 선언서 1편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에 경의를 표하며 1945년 8월15일 히로히토 일왕의 『항복 선언서』를 소개한다. 우리나라의 해방 과정에서 너무나 아쉬운 점은 식민통치 기간 동안 우리 민족은 수없이 많은 사람의 희생을 치러가면서도 끝임없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스스로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일본은 우리나라가 아닌 연합국을 상대로 항복을 선언해 버렸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연합국 각국의 이해관계 앞에 실질적인 독립국으로서 우리나라의 실익은 뒷전이 되고 말았다. 강대국의 힘의 논리 앞에 우리는 또 다시 국토가 분단되는 슬픈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고, 아직도 진행형이다.

1945년 7월 17일 제2차 세계대전 주요 승전국의 대표들로 해리 S. 트루먼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7월 26일 제43대 클레멘트 애틀리가 영국 총리로 당선되고 교체), 요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 미·영·소 정상 3명은 독일 왕실의 휴양지인 브란덴부르크주 포츠담 체칠리엔 호프궁전에 모였다. 승전국 대표들의 관심은 각각 달랐다. 영국은 패전국 독일의 통치 방법과 배상금 문제, 러시아는 동유럽에서 러시아의 역할,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 종결과 그 사후 처리 등으로 3국은 제각기 자기 국가의 이익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7월 26일 협상을 하던 미국의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의 최후통첩을 영국 총리와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7월 26일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임기가 끝나서 영국으로 돌아가고, 새로 총리가 된 클레멘트 리처드 애틀리 영국 총리가 도착했다.

일본에게 최후통첩을 보낼 것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 본토로부터 원자폭탄을 완성했다는 보고를 받고 8월 6일 일본 본토 히로시마시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고, 이어서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시에도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미국은 8월 9일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할 것을 요구하자, 소련은 일본과의 사할린 영토문제를 매듭짓는데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급히 일본에게 선전 포고를 하고는 태평양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일본은 8월 10일 내각회의를 열고 항복을 결정하고는 중요 관서(官署)의 수장들과 침략국 총독부에 이를 통보하고, 항복하기 전에 일본국 국민들의 안전한 귀국을 보장받는 대책을 마련하게 하였다.

그리고 8월 14일 일본은 미국, 영국, 소련, 중국에게 항복할 것을 통보하고, 그 날 몇 번의 수정을 거쳐서 항복 문서를 완성하여 밤 11시 20분부터 NHK방송국 운영진 8명의 도움을 받아서 미치노미야 히로히토(迪宮 裕仁) 쇼와(昭和) 일본 국왕의 임시 거처인 도쿄에 있는 후키아게 정원 내의 문고(文庫) 3층에 녹음시설을 설치하고, SP 레코드판 2장에 히로히토 일왕의 목소리로 항복문서 5분 분량을 녹음했다. 다음 날인 8월 15일 낮 12시 NHK 방송국은 SP판에 녹음한 히로히토의 항복 선언문을 라디오를 통해서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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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52
■공민왕과 신돈 2편

■공민왕과 신돈 2편

신돈의 개혁 중 상당히 의외의 개혁이 있다. 신돈은 승려였지만 의외로 신진 유학 세력을 등장시키고 과거제도를 개선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신돈은 원 침략시기에 불탄 성균관 건물을 복구하고 100명의 유생을 두었다. 성균관을 재건하고 나서 이색을 성균관 총 관리자인 대사성으로, 정몽주를 교육 책임자인 박사로, 이숭인 등을 학관으로 삼았다. 이들은 당시 비교적 온건한 유학자들이었다. 신진 유학자들은 성균관을 이끌면서 새로운 학풍을 일으키고 유생들에게 성리학을 체계 있게 교육시켜 다음 세대를 이끌 지도자로 키웠다.

벼슬아치의 승진에는 순자(循資)의 자격법을 썼다. 벼슬을 받아 오래 근무한 사람에게는 시험을 봐서 먼저 승진할 수 있게 해 주는 제도였다. 이 제도를 도입해 지금까지 어진 사람에게 요직을 맡긴다는 명분으로 권문세가들이 순서를 뛰어넘어 자신들의 동료나 자제들을 끌어 주고 승진시켜 온 관례를 막았다.

1369년에는 과거제를 개정하여 향시(鄕試) · 회시(會試) · 전시(殿試) 세 단계로 설정해 관리 시험을 치르게 했다. 향시를 통과한 응시자들을 대상으로 임금이 직접 참여해 시험 내용을 검토하고 합격자를 뽑았다. 그동안에는 감독으로 나간 시험 담당 관리들이 부정으로 응시자를 합격시키기 일쑤였다. 이렇게 하여 좌주와 문생들이 결탁해 부정으로 합격자를 내는 폐단이 사라졌다. 권문세가와 공신 자제들에게 베풀었던 벼슬길의 특혜도 없앴다. 오직 과거를 통해서만 벼슬길에 오르게 한 것이다. 과거제 개정은 기득권 세력의 팔다리를 자른 획기적인 조치였지만 그런 만큼 반발도 거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건국의 주체세력인 신진 사대부들은 이 개정된 과거제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6년쯤 추진된 공민왕과 신돈의 개혁정치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조정에는 신돈을 추종하는 인물이 꽉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신돈 자신의 행실에 꼬투리가 잡혔다. 신돈은 여자를 너무 좋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비록 고려 말 기록이 상당히 과장되어 있고 그 내용들이 사실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신돈은 틈만 나면 여자와 정을 통했다고 적혀있다. 게다가 신돈이 어느 정도 권력을 축적하자, 사람들이 뇌물을 주면 처음과는 달리 재물을 받아 쌓았다고도 한다. 기득권 세력은 신돈의 이러한 부적절한 행실의 틈을 파고들어 공민왕과 이간질 시켰다. 이에 공민왕은 점점 신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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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53
■ 공민왕의 개혁 2편

■ 공민왕의 개혁 2편

공민왕이 즉위한 당시 고려 주변의 국제 정세를 보면, 중국은 원 · 명 교체의 혼란기였고, 일본은 남북조시대로 둘로 쪼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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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원나라는 한족의 반란인 홍건적의 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1354년 급기야 고려에 지원을 요청했다. 고려는 최영, 이방실, 안우, 김용, 정세운, 유탁 등을 지휘부로 한 병력 2천을 원나라에 파병했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돌아 온 파병장군들은 원의 몰락을 공민왕에게 상세히 보고했다. 같은 해 공민왕은 최영을 보내 압록강 너머 원나라의 8참을 격파하고 파사부 등 3참을 점령하였다. 이 사건은 고려시대 최초의 요동 정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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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9년(공민왕 8년)에는 홍건적 장수 모거경이 4만 명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해 왔다. 모거경은 서경까지 함락시켰으나 안우, 이방실, 최영이 지휘하는 고려군에게 패해 물러갔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 20만 명이 다시 고려를 침공하여 수도 개경까지 함락시켰으나, 곧 고려군의 대대적인 반격을 받고 압록강 너머로 패주하였다. 또한, 1358년(공민왕 7) 최영이 이끄는 고려군은 4백 척 규모의 함대로 오예포에 침략한 왜구를 물리쳤기도 했다.

이렇듯 공민왕 때는 위·아래의 외침으로 백성들은 피폐하고 힘들었지만, 원의 100년 통치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고려 스스로 수많은 외침을 막아낸 자랑스러운 시기이기도 했다. 공민왕 초기에는 대외적으로 원이 한족의 무력 봉기에 부딪쳐 쇠약해져 가고 있었고, 고려 내부에서는 정몽주, 정도전등 신흥사대부들과 최영, 이성계 등의 무인세력이 성장하고 있었다. 공민왕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몽주, 정도전 등 신흥사대부들을 신진관료들로 채용하고 그 세력을 배경으로 밖으로 반원정치를 더욱 강화시켜 나갔다. 내부적으로는 원나라 식 관제와 전제를 없애고 예전 고려 식으로 되돌리는 개혁을 단행했다. 공민왕은 원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해갔다.

공민왕이 이런 개혁정치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있을 때, 공민왕이 목숨처럼 사랑하고 든든한 지지자였던 노국대장공주가 죽고 말았다. 공민왕은 노국공주의 죽음 때문에 정사를 돌보지 않을 만큼 엄청난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공민왕이 개혁에서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민왕은 신돈을 등용하여 우리나라 역사상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내부 개혁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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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54
❤ 공민왕의 개혁 1편

❤ 공민왕의 개혁 1편

공민왕은 우여곡절 끝에 22살의 나이로 즉위했다. 원 간섭기가 아니었다면 공민왕의 즉위는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친형에 이어 친형의 아들 두 명이 왕위를 차지하고 나서 겨우 그 뒤를 이어 다시 왕위를 물려받은 것은 우리 역사상 공민왕이 유일무이하다.

1351년 공민왕이 즉위하면서 고려는 원나라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공민왕 역시 아버지와 형이 원에게 당한 수모를 잊지 않고 있었다. 공민왕은 연경에 머물던 10년 동안 원나라가 내 · 외의 끊임없는 반란으로 국력이 쇠퇴해 가고 있음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나마 남은 원의 국력도 홍건적의 난 이후 거의 힘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왕이 된 공민왕은 본격적인 개혁을 시도한다. 특히 신돈을 등용해 행했던 개혁은 우리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 만큼 혁신적인 것이었다. 만약 신돈의 개혁이 제대로 성공했다면 조선 건국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의 역사는 크게 변했을 것이다. 공민왕은 즉위와 동시에 원나라가 강요한 변발(辮髮)을 풀어 헤치고 강력한 반원정책을 펼쳤다. 공민왕의 반원 정책은 의외로 원나라 공주 출신인 부인 노국대장공주가 전폭 지지해 줌으로써 힘을 실어 주었다.

1356년(공민왕 5년) 공민왕은 당시 원나라의 황후가 된 기황후의 세력을 등에 업고 권세를 부리던 기황후의 친오빠인 기철과 권겸, 노정 등의 친원 세력을 역모죄로 숙청했다. 그 해 원의 연호와 관제 및 정동행성(내정간섭)을 폐지하고, 원나라가 빼앗아가서 백년 넘게 장악하고 있던 쌍성총관부(철령 이북의 땅)에 대한 공격을 유인우에게 명했다.

쌍성총관부에 대한 공격은 공민왕 반원개혁의 상징적 사건이다. 이때 고려인의 후손으로 쌍성총관부에서 대대로 원의 작위를 세습하고 있던 이성계의 부친 이자춘은 원을 배신하고 성문을 열어 유인우에게 성을 바쳤다. 이성계가 스무 살이 되던 해로, 이것을 계기로 이성계는 고려정계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 2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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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54
■ 고구려의 ‘형사취수제兄死取嫂制’ 3편

■ 고구려의 ‘형사취수제(兄死取嫂制)’ 3편

몇 년 후 나라의 제사에 쓸 돼지가 도망쳐서 어느 마을에 이르렀는데, 어느 예쁜 여자의 도움으로 잡게 되었다. 그 사실을 왕에게 알리자, 왕은 그 마을을 방문하여 여자와 관계를 가지고 아들을 낳으면 버리지 않기로 약조한다. (사실 짜여진 각본에 의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우왕후는 질투심에 병사를 보내 그 여자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후녀의 기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오히려 산상왕은 우왕후의 처신을 문제 삼고 정식으로 그 여인을 후궁으로 맞이했다.

그 후 돼지를 잡은 후궁(후녀)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11대 왕 동천왕이 된다. 하지만 우왕후는 당연히 후녀와 왕자를 질투했고, 시녀를 보내 후녀에게 일부러 뜨거운 국을 쏟게 하거나 후녀가 아끼는 말의 갈기를 자르는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해 괴롭혔지만, 결국 후녀을 통해 태어난 왕자는 4년 후 정식으로 태자가 되었다.

산상왕이 죽은 후, 동천왕 8년에 우왕후도 사망했다. 우왕후는 사망하기 전 유언으로 “살아서 한 짓을 돌이켜 보니 면목이 없어 고국천왕릉에는 묻힐 수 없고, 산상왕의 무덤에 장사지내 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우왕후는 유언대로 산상왕과 함께 묻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무녀(巫女)가 말하길, 고국천왕이 아내가 동생과 합장되는 걸 보고 대노하였고, 그가 세상 사람들 보기 부끄러우니 자기 무덤을 가려달라고 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고국천왕의 무덤 주위에 소나무를 일곱 겹으로 심어서 무덤 사이를 가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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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55
■ 고구려의 ‘형사취수제兄死取嫂制’ 2편

■ 고구려의 ‘형사취수제(兄死取嫂制)’ 2편

분노한 왕후 우씨는 둘째 동생인 연우를 찾아갔다. 연우는 왕위 계승서열에서 밀렸기 때문에, 당연히 고국천왕 이후 정국을 논의하자는 우왕후의 제안에 동의했고, 우왕후는 연우에게 곧바로 고국천왕이 승하했음을 알렸다. 그러자 연우는 더욱 예를 갖추어 왕후 우씨를 대접하였고, 연우의 대접에 흡족한 우씨는 연우를 자신의 정치적 동반자로 선택했다.

고국천왕의 사후 대책을 미리 준비한 듯한 우왕후는 어쩌면 고국천왕이 죽을 것을 예감하고 연우와 사전에 어느 정도 교감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고국천왕이 죽기 이전부터 연우와 어느 정도 정치적 · 육체적으로 합의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발기는 그저 명분을 만들기 위해 형식적으로 방문했을 지도 모른다. 우왕후는 자신이 계속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형사취수제’를 이용하여 왕후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왕위계승 1순위인 발기에 비해 서열에서 밀려 정통성이 떨어지는 연우를 차기 국왕으로 만들어 준다면, 우왕후 자신이 권력을 행사하기 좀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왕이 돌아가셨으나 아들이 없으므로 발기가 연장자로서 마땅히 뒤를 이어야 하겠으나, 신첩에게 다른 마음이 있다고 하면서 난폭하고 거만하며 무례하여 당신을 보러 온 것입니다.』 《삼국사기》

후에 우왕후가 연우를 즉위시키자, 분노한 발기가 난을 일으켰는데도 백성들이 호응 해주지 않았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우왕후와 연우가 이미 만반의 준비를 했었음을 보여준다. 우왕후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발기가 유력했던 고구려의 왕위는 연우가 차지하여, 고구려 10대 왕인 산상왕으로 즉위했다. 왕실과 국가 그리고 백성들에게까지 버림받은 발기는 비분강개하여 자살하고 말았다.

산상왕은 왕후 우씨 덕에 왕위를 얻은지라 당연히 우씨를 왕후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문제는 우씨가 고국천왕 뿐 아니라 산상왕과의 사이에서도 아들을 낳지 못한다. 이에 후사를 걱정하던 산상왕은 꿈에 후궁을 통해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우왕후의 눈치를 보느라 후궁은 엄두도 못 냈던 산상왕은 신하들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말했다. 을파소는 기다렸다는 듯이 왕에게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고 조언한다. 아마도 후궁을 들여서 후사를 보려는 산상왕이 꿈을 핑계로 명분을 만든 것이라 생각된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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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56
■ 고구려의 ‘형사취수제兄死取嫂制’ 1편

■ 고구려의 ‘형사취수제(兄死取嫂制)’ 1편

고구려에서는 형이 죽으면 그 아우가 형의 부인 즉 형수(兄嫂)와 결혼을 할 수 있는 관습이 있었다. 지금으로 보면 도덕적인 지탄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원래 취지는 아마도 남겨진 형의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보인다. 고구려 왕실 역사상 이 제도를 십분 활용(?)하여 고국천왕과 산상왕의 왕후로서 대를 이어 권력을 유지한 유일한 사람이 ‘우왕후’ 다. 그래서 우왕후는 고구려 시대 여성 중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 고구려는 ‘형사취수제’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제도였는데, 왕후라는 자리를 놓치기 싫어서 형인 고국천왕의 왕후였다가, 고국천왕이 승하하자 동생인 산상왕과 재혼하여 다시 왕후가 되었던 것이다.

그녀도 고국천왕에게 미안했는지, 죽은 뒤 자신의 능은 고국천왕 곁이 아닌 산상왕 옆에 묻어달라고 했다. 아마도 ‘형사취수제’로 왕후 자리를 지킨 것이 당시에도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서기 160년~165년 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보이는 왕후 우씨는, 고국천왕(180년~197년) 2년 2월에 고국천왕의 왕후가 되었다. 제나부(提那部)의 수장인 우소(于素)의 딸이라고 전해진다. 고국천왕 12년 9월, 왕후의 친척인 ‘어비류와 좌가려’가 권력을 남용하자, 고국천왕이 이들에게 압력을 가했고, 이들은 반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아 왕후 우씨의 가문은 상당히 권력을 탐했던 것으로 보이고, 고국천왕에 의하여 친정 집안이 권력에서 배제되자, 우씨는 마음 속으로 고국천왕에게 원한을 가졌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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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고국천왕은 안류나 을파소 등의 현명한 신하들을 등용하여, 고구려 백성들에 대한 선정을 베풀었고 민심을 얻었다.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진대법’을 실시한 사람이 바로 을파소이다. 197년 5월 고국천왕이 사망하자마자, 왕후 우씨는 왕의 사망 사실을 숨기고 첫째 동생 ‘발기’의 집을 찾아가 고국천왕 이 후의 정국에 대하여 의논하려 하였다. 아마도 자신의 거취와 권력유지가 더 급선무였으리라. 그러나 발기는 차기 왕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역모(逆謀) 될 수 있는 사안이기에 상식적으로 고국천왕 사후 정국에 대해 논의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졌을 것이다. 또한, 왕위계승 서열 1위인 자신이 국왕이 되었을 때 권력욕 많은 형수가 거북스러운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컸던 탓에 야밤에 찾아온 형수와 이야기하길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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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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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56
■ 신돈은 과연 요승妖僧인가 2편

■ 신돈은 과연 요승(妖僧)인가 2편

신돈은 1365년(공민왕 14년)에 진평후에 봉해진 뒤 ‘수정이순논도섭리보세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 영도첨의사사사 판중방감찰사사 취산부원군 제조승록사사 겸판서운관사(守正履順論道燮理保世功臣壁上三韓三重大匡領都僉議使司事判重房監察司事鷲山府院君提調僧錄司事兼判書雲觀事)’라는 역사상 가장 긴 관명을 받았다. 신돈은 정식 관명을 가진 고려의 관리로서, 그가 정권을 잡은 6년 동안 우리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최대의 개혁 정책을 펼쳤다.

신돈이라는 인물은 우리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캐릭터이다. 본관은 영산(靈山). 승명은 편조(遍照). 공민왕이 내린 법호는 청한거사(淸閑居士)이다. ‘신돈(辛旽)’은 집권 후에 정한 속명이다. 신돈의 아버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고, 영산에 무덤이 있었다는 것만이 확인될 뿐이다. 어머니는 옥천사의 노비였다고 전해진다.

신돈은 1358년(공민왕 7년) 공민왕의 측근인 김원명의 소개로 공민왕을 처음 만나게 되어 궁중에 드나들기 시작하였다. 공민왕이 처음 신돈을 만났을 때 그는 글은 몰랐지만 언변이 좋았다. 또한 공민왕을 만날 때에는 겨울이든 여름이든 늘 해진 가사 한 벌만 입어서 눈길을 끌었다. 당시 공민왕은 독실하게 불교를 받들었고, 보우를 국사로 모시고 불교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을 때 였으므로, 총명한 신돈은 왕에게 두터운 신망을 얻었다.

1365년 공민왕이 너무나 사랑하던 왕비 노국대장공주가 애를 낳다가 죽었다. 공민왕은 노국공주의 죽음을 지나치게 애도한 나머지 7일마다 승려들로 하여금 범패를 부르며 상여를 따르게 했다. 행사 때마다 빈전(殯殿, 발인 때까지 왕이나 왕비의 관을 모시는 전각)에서 절문까지 찬란한 깃발이 길을 덮게 했고 비단으로 절 건물을 휘감게 했다.

이때부터 공민왕의 개혁정치는 빛을 잃었다. 고려 조정에서도 지나친 불교 의식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때 공민왕은 하나의 대안을 냈다. 변조遍照, 신돈의 불명, 변은 불교식 발음를 불러 사부로 삼고 정사를 맡긴다는 것이었다. 그동안에도 공민왕은 그를 가끔 불러서 자문을 구해 오고 있었다. 공민왕의 이런 결정에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거센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를 배척하던 인물들이 사라진 뒤에 점차 정치 표면에 나서면서 왕으로부터 ‘청한거사’라는 호를 받고, 왕의 사부(師傅)가 되어 국정을 자문해서 왕이 따르지 않는 일이 없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추종자가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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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57
■고려 공민왕은 어떻게 왕이 됐을까?

■고려 공민왕은 어떻게 왕이 됐을까?

공민왕은 충숙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 당시 고려는 원(몽고)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대이다.고려사에는 공민왕의 형인 충혜왕이 기행을 일삼다가 원에서 온 사신들에게 구타당한 후 원으로 납치 · 귀양 가서 죽임을 당한 비운의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충혜왕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충혜왕의 뒤를 이어 충목왕과 충정왕이 된다. 충목왕은 8살의 나이로 즉위했고, 어린 왕의 뒤에서 충목왕의 어머니(충혜왕의 부인)이자 쿠빌라이 칸의 딸이었던 원나라 덕녕공주가 섭정하면서 정치를 주도했다.

층목왕이 4년 뒤 후사도 없이 어린 나이로 죽자 충혜왕의 서자인 충정왕이 12살의 나이로 즉위한다. 충정왕의 생모는 원의 공주가 아닌 고려인(高麗人) 희비 윤씨였다. 또 다시 어린 왕이 즉위하자, 섭정자리를 놓고 충혜왕의 정비인 덕녕공주와 충정왕의 생모인 희비 윤씨 사이에 세력다툼이 벌어졌다. 덕녕공주는 충혜왕의 첫 번째 부인이라는 명분으로 섭정을 이어가지만, 결국 실권은 희비 윤씨가 가지게 된다.

충목왕에 이어 연달아 어린 왕이 즉위하자, 충목왕 말엽부터 생모 희비 윤씨 세력과 환관의 횡포가 심해졌고, 특히 원의 세력을 등에 업은 기황후의 오빠 기철 일파의 전횡은 매우 심각했다. 그 당시 국제정세는 원나라가 흔들리면서 주원장을 필두로 한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일본은 남북조시대의 혼란기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거의 상실되자 이 틈을 탄 왜구의 출몰이 대단히 심했다.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면서 충정왕의 어머니 희비 윤씨가 국정을 농단하자, 고려 내부에서는 충혜왕의 동생이자 충정왕의 숙부였던 강릉대군 왕기(훗날 공민왕)에게 민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고려의 중신들까지도 ‘지금 왕으로는 안 되겠으니 왕을 강릉대군으로 바꿔달라’ 고 원나라에 요청하기에 이른다. 아마 충정왕의 친모가 원나라 공주 출신이었다면 신하들이 왕을 바꿔달라는 요구는 꿈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나라는 고려의 간절한 요청에 결국 충정왕을 폐위시키고 공민왕을 즉위시킨다. 그리고 충정왕은 바로 강화도로 유배 되고, 이듬해 16세의 나이로 독살 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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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58
■ 고려 충혜왕에 대한 진실 2편

■ 고려 충혜왕에 대한 진실 2편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충혜왕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한 원나라는 원나라 사신 6명을 고려에 보내 충혜왕에게 출영(나와서 맞이함)을 요구했다. 충혜왕은 이를 거부하다가 사신들의 재촉에 마지못해 정동행성(원이 설치한 내정간섭기관)에 나가 출영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신들이 충혜왕에게 달려들어 발길질을 하고 포박해 버렸다. 충혜왕의 호위무장 두 명은 사신들의 칼에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다. 출영을 따라온 고려 신하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고, 충혜왕은 그대로 말에 태워져 원으로 끌려갔다. 원의 황제는 대도(북경)로 끌려온 충혜왕을 ‘왕정’이라는 본래의 이름으로 부르며 유배를 시켜버렸다. 충혜왕은 대도로부터 2만리 떨어진 게양현(지금의 광동성 조주 지방)으로 유배 가다가 죽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고려 백성들은 자신들을 심하게 수탈하고 일생동안 오직 강간·여색·향락 등 수많은 악행을 일삼은 충혜왕의 납치를 환호했다고 나온다. 사실일까? 아무리 나쁜 왕이라고 할지라도 대낮에 원 사신들에게 폭행당하고 납치당한 것에 환호했을까? 물론 당시 원과 고려의 관계를 보면 원의 횡포가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가지만, 한 나라의 군주를 대낮에 폭행하고 마음대로 잡아다가 유배시킬 수 있었을까?

이 사건 뒤에는 원의 후궁으로 선발돼 들어갔다가 원 황제의 정부인이 된 기황후의 개인감정이 있었다는 설(說)도 있다. 충혜왕이 사소한 다툼으로 기황후의 다섯째 오빠인 기윤의 집을 허물어버리자 기황후가 직접 손을 썼다는 것이다.

"좋은 머리와 무예를 엉뚱한 데만 썼다. 그래서 안으로는 부왕(父王)에게 혼나고 위로는 천자(天子)에게 죄를 지었으니 객지에서 사망한 것도 자업자득이었다." 어떤 사관(史官)의 기록이다. 이 기록에서 보듯이 충혜왕이 좋은 머리를 가졌고 무예가 출중했다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충혜왕에 관한 기록이 사실이라면, 충혜왕은 즉위 초기에 새로운 정치를 실시하려 노력했지만, 원나라의 간섭과 친원세력의 횡포에 나라를 다스릴 자신이 없어져 그냥 자포자기로 모든 것을 팽개치고 막장으로 나가지 않았을까?

조선 건국의 정당성 부여라는 목적 아래 만들어진 ‘고려사’에 충혜왕이 나쁘게 기록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역사의 치부가 과장·왜곡되면서 충혜왕은 더 한층 오명(汚名)을 쓰게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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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58
■ 고려 충혜왕에 대한 진실 1편

■ 고려 충혜왕에 대한 진실 1편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왕과 궁궐의 일상뿐만 아니라 국가적 사건들을 소상히 기록으로 남긴 조선에 비해, 고려시대에는 고려왕조실록이 없다. 고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고려사’는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에 의해 그것도 정권차원에서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홍보용으로 쓰여진 역사서라 그 공정성과 객관성에서 의문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 기록 중 공민왕의 친형인 고려 28대 충혜왕(1315~1344)의 기록은 진위여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놀랍다.

아버지의 후궁들과 장인의 후처뿐만 아니라, 신하들과 내시들의 부인들도 수없이 강간하고, 욕정이 솟구치면 길가다가 백성들의 아녀자들을 욕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충혜왕의 아버지 충숙왕의 부인인 경화공주를 팔다리를 묶고 강간하거나, 충숙왕의 또 다른 부인인 수빈 권씨를 강간하여 자살하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또 내전(內殿)에서 후궁들(100명이상)과 아주 더럽고 추잡한 유희를 수시로 열었다고 한다.

이 기록들의 진위여부는 어쩐지 모르겠지만 분명하게 남아는 있다. 기록에도 충혜왕은 즉위 초기에는 사업에 매우 밝아서 실크로드를 통해 온갖 상인들과 고려의 생산품을 거래해서 돈을 벌었고, 화폐제도와 행정조직도 개혁하고 염장도강이라는 소금을 관장하는 관청도 세우고, 심양등지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의 귀환을 요구하는 새로운 정치를 실시했다고도 나온다.

원나라(몽고)는 고려를 부마국으로 만들었다. 고려로 시집온 원의 공주들은 원의 세력을 등에 업고 왕을 뛰어넘는 권력을 행사하거나,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 아들을 대신해 고려를 지배하기도 했다. 고려는 원의 지배를 받으면서 정치적 독립성을 거의 상실했다. 고려 국왕은 원나라의 명령에 따라 하루아침에 교체되기도 했다. 충렬왕과 충선왕, 충숙왕과 충혜왕은 모두 원 황제의 명령에 따라 폐위되었다가 다시 복위하기를 반복했다.

- 2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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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3:59
불원천 불우인不怨天 不尤人 - 하늘을 원망 않고 남을 허물하지 않다.

불원천 불우인(不怨天 不尤人) - 하늘을 원망 않고 남을 허물하지 않다.

아닐 불(一/3) 원망할 원(心/5) 하늘 천(大/1) 아닐 불(一/3) 더욱 우(尢/1) 사람 인(人/0)

완전한 사람이 있을 수 없으니 살아가다 보면 잘못을 저지른다. 이럴 때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전혀 잘못이 없다고 버티는 鐵面皮(철면피)도 흔하다. 반성하는 사람은 드물고 남 탓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속담이나 명구도 후자가 많을 밖에 없다.

소경이 개천 나무라고, 서투른 무당이 장구 나무라는 것이 그것이다.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은 떠넘기기의 대표 격인 말이다. 남 탓하는 정도가 아니라 없는 결점까지 샅샅이 뒤지는 洗垢求瘢(세구구반, 瘢은 흉터 반), 吹毛索疵(취모색자, 疵는 허물 자), 爬羅剔抉(파라척결) 같은 어려운 성어도 많이 있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不怨天)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不尤人)는 이 말은 孔子(공자)가 ‘論語(논어)’ 憲問(헌문)편에서 자신이 그렇다고 한 부분에 실려 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 것(不怨天 不尤人/ 불원천 불우인)’은 일상적인 일들을 배워서 심오한 이치에까지 도달했으니 ‘나를 알아주는 이는 저 하늘이 아닐까(知我者 其天乎/ 지아자 기천호)’라고 생각한다는 데서 나왔다.

‘孟子(맹자)’에도 公孫丑(공손추) 하편에 그대로 인용됐다. 맹자가 齊(제)나라에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다 왕이 받아들이지 않자 떠나려 했다. 제자 充虞(충우)가 스승의 안색이 좋지 않다며 물었다. 이전에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허물하지 않는다(군자불원천 불우인)’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다. 이전의 말과는 다르다는 뜻이었다. 맹자는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리려 한다면 자신밖에 없는데 어찌 그것으로 불유쾌하게 생각 하겠는가라고 대답했다.

이전에는 孔孟(공맹)과 같은 성인들이라야 잘못됐을 때 하늘이나 다른 사람에게 탓을 돌리지 않았겠지만 차이는 있더라도 가르침을 실천할 수는 있다. 주위의 유혹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길만 걷는 보통 사람들이다. 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욕심 없이 산다. 다만 이런 사람이라도 지도층에서 온갖 불법과 부패, 갑질의 행태가 자주 드러나면 자신과는 관계없더라도 원망하지 않을까. 분노가 쌓이면 뒤집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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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00
경국지색傾國之色 -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정도의 미인

경국지색(傾國之色) -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정도의 미인

기울 경(亻-11) 나라 국(囗-8) 갈 지(丿-3) 빛 색(色-0)

임금이 정사는 뒷전인 채 여색에 빠져 나라를 기울게 할(傾國) 정도면 뛰어나게 아름다운 미인을 가리킬 것이다. 임금뿐 아니라 필부들도 미색을 멀리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니 미인을 나타내는 성어도 숱하게 많다. 그 중에서도 이 말이 거창한 만큼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나라를 흔들 정도의 절세미인을 나타내기는 唐(당)나라 白樂天(백낙천)이 "長恨歌(장한가)"에서 楊貴妃(양귀비)를 두고 "漢(한)의 武帝(무제)는 여색을 중히 여겨 뛰어난 미인을 생각하다(漢皇重色思傾國/ 한황중색사경국)"고 노래한 것이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처음 이 성어가 나온 것은 이보다 훨씬 앞서고 뜻하는 바도 달랐다.

劉邦(유방)이 項羽(항우)와 다툴 때 부모처자가 모두 항우에 잡혀 포로가 된 적이 있었다. 말 잘하는 侯公(후공)이라는 선비가 담판 끝에 찾아오자 유방이 칭찬하기를 "그는 천하의 변사이다. 그가 있는 곳에는 변설로 나라를 기울게 한다(此天下辯士 所居傾國/ 차천하변사 소거경국)"고 했다. "史記(사기)" 항우本紀(본기)에 나온다.

이 말이 천하절색이란 뜻으로 사용되기는 백낙천이 언급한 한무제 때의 궁중가수 李延年(이연년)이 노래한 것이 처음이라 한다. 그는 노래 솜씨뿐 아니라 곡조를 만들고 가사를 붙이는 재주도 뛰어났다. 어느 때 연회에서 짧은 곡조를 읊었다.

"북방에 미인 있으니 세상에 다시없을 정도로 빼어났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을 기울게 하고 다시 돌아보면 나라를 기울게 한다네(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북방유가인 절세이독립 일고경인성 재고경인국)." "漢書(한서)" 外戚傳(외척전)에 실렸다. 무제는 이 노래의 주인공 이연년의 여동생을 불러 말년을 같이 했다. 李夫人(이부인)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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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00
석복겸공惜福謙恭 - 복을 아끼고 겸손하며 공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석복겸공(惜福謙恭) - 복을 아끼고 겸손하며 공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아낄 석(心/8) 복 복(示/9) 겸손할 겸(言/10) 공손할 공(⺗/6)

사람은 누구나 삶에서 福(복)을 원한다. 복의 글자는 조상의 신주를 나타낸 示(시)와 음식이나 술이 가득한 항아리 畐(복)이 합쳐져 있다. 조상에게 음식을 바쳐 복을 기원했다는 의미다. 壽福康寧(수복강녕)이란 말과 같이 오래 살고 넉넉한 삶과 건강한 것이 五福(오복) 중에서도 물론 먼저 꼽혔다.

그런데 만족을 모르는 심사는 ‘복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것이 복인지 모른다(身在福中不知福/ 신재복중부지복)’는 말과 같이 만족을 모르고 더 욕심낸다. 복은 나눌수록 커지는 법인데 복을 남이 가져갈까 두려워하면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들어온 복을 흥청망청 낭비한다면 다시 찾아오지 않으니 선인들은 복을 아껴야 한다(惜福)고 했다.

여러 곳에 교훈이 남아 있지만 많이 인용되는 몇 곳만 보자. 먼저 蘇東坡(소동파)의 戒殺詩(계살시)에 나오는 경구다. ‘어떻게 복을 아껴 남길 수가 있을까(何如惜福留餘地/ 하여석복류여지), 맑게 비우는 마음에 즐거움이 있도다(養得淸虛樂在中/ 양득청허락재중).’ 明(명)의 학자 眉公(미공) 陳繼儒(진계유)가 거든다.

‘나는 본시 덕 없는 사람이라 의당 복 아끼는 일을 행해야겠다(吾本薄德人 宜行惜福事/ 오본박덕인 의행석복사).’ 우리의 許筠(허균)도 ‘복을 아끼지 않고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불효 불충한(不惜福不畏天 不孝不忠/ 불석복불외천 불효불충)’한 사람을 경계했다. 문집 ‘惺所覆瓿藁(성소부부고, 瓿는 단지 부)’에서다.

복을 아끼는 것을 넘어 항상 겸손하고 공손하라고 두 손자의 이름을 謙恭(겸공)이라 지은 사람이 있다. 조선 成宗(성종)때의 문신 李克培(이극배)는 항상 자제들에게 이른다. ‘사물이란 성하면 반드시 쇠하는 것이니, 너희들은 혹시라도 자만해서는 안 된다(凡物盛則必衰 若等毋或自滿/ 범물성즉필쇠 약등무혹자만)며, 두 손자를 이름 지어 겸과 공이라 했다(名二孫以謙恭/ 명이손이겸공).’ 그러면서 처세의 길은 이 두 글자에 있다고 덧붙였다는 내용이 仁祖(인조) 때 학자 權鼈(권별, 鼈은 자라 별)이 저술한 ‘海東雜錄(해동잡록)’에 남아 있다.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 복을 찾을 수 있고 누릴 수 있지만 더 많은 복을 원하는 데서 불행이 온다. 남이 보기에 복이 넘치는 사람일수록 명심할 말이 있다. 轉禍爲福(전화위복)에 도통한 塞翁(새옹)의 충고다.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등, 변화는 끝이 없고 그 깊이는 예측할 수가 없다(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복지위화 화지위복 화불가극 심불가측야).’ 또 있다. ‘복은 거듭 오지 않으나 화는 반드시 겹쳐서 닥친다(福不重至 禍必重來/ 복부중지 화필중래).’ 현재의 행복에 취하지 말라는 禍不單行(화부단행)의 교훈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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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02
타초경사打草驚蛇 – 풀숲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다.

타초경사(打草驚蛇) – 풀숲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다.

칠 타(扌/2) 풀 초(艹/6) 놀랄 경(馬/13) 긴뱀 사(虫/5)

풀숲을 건드려서(打草) 뱀을 놀라게 한다(驚蛇)는 뜻의 이 성어는 뜻이 다양하다. 먼저 일 처리가 매끄럽지 못해 남의 경계심만 자아낸다는 의미로 ‘긁어 부스럼 낸다’는 속담과 같다. 가만 두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을 공연히 건드려서 걱정을 일으킨 경우를 의미했다. 뱀을 잡기 위해선 먼저 풀을 두들겨 놀라게 해야 한다는 뜻도 있다.

뱀이 숨어 있을만한 곳의 주변부터 풀을 쳐가며 압박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군대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로 ‘시범 케이스’와 같다. 어느 한 쪽을 징벌해서 목표한 다른 쪽도 경계하도록 하는 것을 비유했다. 오리를 때려 원앙을 놀라게 한다는 打鴨驚鴛鴦(타압경원앙)도 같은 뜻이다.

‘三十六計(삼십육계)’는 孫子兵法(손자병법) 만큼이나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권수와 작자, 편찬 시기 등은 미상이다. 5세기 까지 구전된 내용을 가지고 明末淸初(명말청초)에 한 무명학자가 필사본으로 엮은 것이라 한다.

공격할 때의 전략을 모은 攻戰計(공전계)의 맨 처음 13계에 나오는 것이 뱀을 찾기 위해 풀밭을 두드린다는 이 계책이다. 적이 숨어있을 만한 곳을 미리 살펴 공격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변죽을 울리기만 해서 적의 정체를 드러내게 하는 이점이 있고, 아군의 전력을 일부러 노출시켜 적의 예기를 먼저 꺾는 효과도 있다.

唐(당)나라의 문신 段成式(단성식, 803~863)이 엮은 수필집 ‘酉陽雜俎(유양잡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王魯(왕로)라는 관리가 어느 지역의 수령으로 있을 때 국법을 어기고 온갖 비리로 재물을 긁어모았다. 참다못한 백성들이 연명으로 공소장을 썼다.

왕로의 측근으로 있는 主簿(주부)가 남의 재산을 횡령했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을 본 왕로는 자신도 적지 않게 남의 재물을 수탈했고, 주부의 죄목도 대부분 연관이 있었으므로 속이 뜨끔했다. 이에 왕로는 판결문에 이렇게 적었다. ‘그대는 고작 풀을 쳤을 뿐이지만 나는 벌써 놀란 뱀이 되었다(汝雖打草 吾已驚蛇/ 여수타초 오이경사).’ 자신의 비리가 드러날까 미리 겁을 먹은 것이다.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어리석게 믿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백일하에 밝혀지게 마련이다. 악의 소굴을 치기 위해선 신속하게 주변부터 압박해서 일망타진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일벌백계로 주변을 때려 중심이 기미를 알고 투항해 오면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512.html
kolaswqetsrq 11.02 14:03
파부균분破釜均分 - 가마솥을 깨드려 똑같이 나누다, 어리석은 욕심을 경계하다.

파부균분(破釜均分) - 가마솥을 깨드려 똑같이 나누다, 어리석은 욕심을 경계하다.

깨뜨릴 파(石/5) 가마 부(金/2) 고를 균(土/4) 나눌 분(刀/2)

솥을 깨뜨린다는 破釜(파부)라 할 때 破釜沈舟(파부침주)를 먼저 떠올릴 사람이 대부분이다. 전장에서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혀 죽기 살기로 싸움에 임한다는 項羽(항우)의 고사가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생소하지만 더 교훈이 되는 가마솥 깨기의 성어가 있다.

크고 작은 가마솥 두 개를 똑 같이 나누기 위해(均分) 부순다면 두 개 모두 쓸 수가 없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심사가 아니라면 모두에 손해가 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곳이다. 조선 전기 학자 徐居正(서거정)이 고대로부터의 일화 또는 한담을 엮어 저술한 ‘筆苑雜記(필원잡기)’에 수록돼 전한다.

제1권에 실린 슬기로운 판결 이야기가 한문학자 정민 교수의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에 소개돼 널리 알려졌다. 내용은 이렇다. 咸禹治(함우치, 1408~1479)라는 형조판서, 좌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 전라감사로 있을 때 일이다. 양반집 가문의 형제가 크고 작은 가마솥을 두고 서로 큰 것을 가지려고 관청에 소송을 걸어왔다.

이 말을 들은 감사가 크게 노해 아전에 가마솥을 가져오게 하고 명령했다. ‘마땅히 깨뜨려서 저울로 달아 양측에 나눠주도록 하라(當擊碎均其斤 兩而分之/ 당격쇄균기근 량이분지).’ 깨어진 쇳조각은 작은 가마솥보다 못한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된 형제는 소송을 취하했다.

중국에도 비슷한 판결 이야기가 薛宣斷縑(설선단겸, 縑은 합사비단 겸)이란 성어로 전한다. 前漢(전한)시대 臨淮(임회)란 지역에서 태수를 하고 있던 설선이 잘잘못을 명확히 해결하여 재판 기록서에도 남았다. 한 비단장수가 장으로 가다 소낙비를 만나 비단을 펼쳐 피하고 있을 때 한 사내가 흠뻑 젖은 채 같이 피하자고 했다.

비가 개자 비를 피한 사나이가 비단이 자기 것이라고 우겨 시비가 벌어졌고 할 수없이 태수 설선에 주인을 가려 달라 했다. 설선이 비단을 잘라 나눠주고는 미행을 시킨 뒤 기뻐한 사나이를 족쳐 범행을 자백 받았다. 비단을 뺏긴 주인은 기분이 좋을 리 없어 범인을 가린 것이다. 일시적으로 좋아했던 사내는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가마솥을 깨뜨려 반분하라는 판결에 형제는 정신을 차렸지만 비단 반을 공짜로 챙긴 범인은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잃었다. 구약성서 列王記(열왕기)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제3대 솔로몬(Solomon)왕의 지혜가 칭송되는 이유도 슬기롭게 분쟁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출산한지 사흘이 되는 갓난애를 두고 두 여인이 서로 친 엄마라 주장했다. 아이를 두 동강 내서 반씩 갖도록 하라는 서슬 푸른 판결에 다른 여자 주라는 친모가 판명 났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기기만 하니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솔로몬까지는 아니라도 명판관이 와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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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04
향원익청香遠益淸 - 향기는 멀수록 더 맑다, 깊은 뜻은 거리를 둬야 잘 안다

향원익청(香遠益淸) - 향기는 멀수록 더 맑다, 깊은 뜻은 거리를 둬야 잘 안다

향기 향(香/0) 멀 원(辶/10) 더할 익(皿/5) 맑을 청(氵/8)

꽃을 사랑하고 아껴 명문으로 남긴 시인묵객들은 많다. 전체를 말한 일반적인 꽃 말고 특정한 것으로는 봄의 전령이라 한 梅花(매화)가 앞설 터이다. 四君子(사군자)라는 梅蘭菊竹(매란국죽)서도 가장 앞서고, 중국 宋(송)나라 때의 林逋(임포, 逋는 도망갈 포)는 梅妻(매처)라며 사랑했을 정도였다.

이처럼 많지는 않아도 국화라면 采菊東籬下(채국동리하)의 陶淵明(도연명)처럼, 연꽃을 대표할 사람은 ‘愛蓮說(애련설)’의 周敦頤(주돈이, 頤는 턱 이)를 꼽을 것이다. 향기는 멀수록(香遠) 더욱 맑다는(益淸) 심오한 말이 여기서 나왔다. 모든 사물의 관계는 극대화되는 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은은한 기품은 멀리서 더 느낄 수 있다는 의미다.

朱子(주자)에 조금 앞서 성리학의 기초를 닦았다는 주돈이는 호까지 맑은 濂溪(염계)이고, 周子(주자)로도 불린다. 연꽃을 매우 사랑하여 花之君子(화지군자)로 칭하며 덕을 칭송한 주돈이의 산문은 한문학의 명문으로 후세에 널리 읽혔다.

글의 첫 부분에서 晉(진)의 도연명은 국화를 유독 좋아했고, 唐(당)나라 이래로 모란을 귀하게 여겼다면서 자신이 연꽃을 사랑하게 된 연유를 밝힌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탕에서 자랐어도 그에 물들지 않고(蓮之出淤泥而不染/ 련지출어니이불염), 맑은 물결에 씻겨서도 요염하지 않기 때문이다(濯清漣而不妖/ 탁청련이불요).’ 淤는 진흙 어, 漣은 잔물결 련.

이어 더욱 연꽃을 예찬하면서 향기를 말한다. ‘줄기 속은 비었어도 겉모습은 곧고, 덩굴은 뻗지도 않고 가지를 치지도 않는다(中通外直 不蔓不枝/ 중통외직 불만부지), 향기는 멀수록 더욱 청아하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다(香遠益清 亭亭淨植/ 향원익청 정정정식).’ 그래서 멀리서 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서 함부로 다룰 수 있으니 더욱 사랑하게 된다고 했다.

주돈이는 연꽃을 묘사하면서 명리만 추구하고 주색에 빠진 당시 권세가들을 꼬집고 연꽃의 향기처럼 군자의 덕망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또한 멀리서 보면서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군자의 품격과 위엄도 함께 그렸다.

이렇게 주돈이가 예찬한 연꽃은 다른 이름도 많다. 蓮荷(연하), 蓮花(연화), 荷花(하화), 藕花(우화, 藕는 연뿌리 우)에서 芙蓉(부용), 水丹花(수단화) 등이다. 불교서는 더욱 관련이 깊어 천상계에 핀다고 하는 성스런 연꽃이 天妙華(천묘화)고 曼陀羅華(만다라화)라고도 한다.

迦葉(가섭)만이 알아듣고 활짝 웃은 拈華微笑(염화미소)도 부처님이 연꽃송이를 집어 올렸을 때다. 멀리서 보아야 향기가 깊고 더 예쁜 연꽃이야말로 나만 옳다고 억지주장만 판치는 우리 사회에 겸손을 가르치는 꽃일 수밖에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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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05
남기북두南箕北斗 - 남쪽 키별과 북쪽 국자별, 이름과 달리 실제 쓸 수 없는 것

남기북두(南箕北斗) - 남쪽 키별과 북쪽 국자별, 이름과 달리 실제 쓸 수 없는 것

남녘 남(十/7) 키 기(竹/8) 북녘 북(匕/3) 말 두(斗/0)

널리 알려진 이름에 비해 하는 행동은 못 미쳐 손가락질 받는다면 ‘빛 좋은 개살구’다. 言行一致(언행일치)를 중시한 예부터 겉만 번지르르한 짓을 경계한 까닭에 수많은 성어가 남았다. 쉬우면서 일상에 많이 쓰이는 有名無實(유명무실), 虛名無實(허명무실)에서 유래를 알지 못하면 도통 짐작하기 어려운 성어도 다수다.

우선 兎絲燕麥(토사연맥)은 새삼이나 귀리라는 사료용의 식물이라는데 베를 짤 수 없고 식량도 되지 못하면서 버젓한 이름이 붙었다. 孔子(공자)가 한탄한 더 어려운 觚不觚(고불고)도 있다. 觚(고)는 모가 있는 술잔으로 제사에 쓰던 것인데 모 없는 아무 것이나 써 예법을 더럽히고 이름만 남았다고 했다.

남쪽의 곡식 티끌을 골라내는 키(南箕)나 북쪽의 술 따르는 국자(北斗)란 더 오래된 말도 있다. 이것이 별자리의 이름이라하면 이해가 된다. 동양에서 달의 공전주기 약28일을 赤道帶(적도대)에 맞춰 별자리를 28개의 구역에 따라 나눈 것이 二十八宿(이십팔수, 잘 宿은 별자리 수)다. 그중에서 箕宿(기수)가 남쪽에 있을 때 斗宿(두수)에 위치해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늘에 있는 키와 말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노래가 3000년도 넘은 중국의 시집 ‘詩經(시경)’에 실려 있다. 대소잔치 때에 사용됐다고 하는 小雅(소아)편의 小旻之什(소민지십, 什은 열사람 십) 大東(대동)이란 제목에서다.

성어가 나온 부분만 보자. ‘남쪽의 키 닮은 별은 곡식을 까불어 날릴 수 없고(維南有箕 不可以簸揚/ 유남유기 불가이파양), 북녘 국자 모양의 별은 술을 따를 수가 없네(維北有斗 不可以挹酒漿/ 유북유두 불가이읍주장).’ 簸는 까부를 파, 漿은 즙 장. 여기서 나와 후세의 시에서도 자주 인용됐다.

後漢(후한)의 작자 미상 작품인 古詩十九首(고시십구수) 중 제7수에는 ‘남기별과 북두별은 유명무실한 것(南箕北有斗/ 남기북유두), 견우별은 소 멍에를 지고가지 못한다네(牽牛不負軛/ 견우불부액)’란 부분이 있다. 軛은 멍에 액. 詩仙(시선) 李白(이백)도 고시를 본뜬 擬古十二首(의고십이수)의 6수에서 노래한다. ‘북두성으로 술 따르지 못하고(北斗不酌酒/ 북두브작주), 남기성으로 키질하지 못하네(南箕空簸揚/ 남기공파양).’

겉보기만으로 가장 억울할 까마귀에겐 위로해 줄 속담이 따른다. ‘까마귀가 검기로 속도 검을까’는 첫 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그럼에도 실상은 겉만 번지르르하게 포장한다. 먹으면 늙지 않는다는 不老草(불로초)만큼 이름 좋은 것이 없다.

仙境(선경)에만 나고 秦始皇(진시황)도 구하지 못했으니 이름뿐이다. 전설 속이라 이런 것은 봐줄만한데 정의를 내세우고 속으로 부패를 일삼거나 엉뚱한 곳에 무엇을 세우겠다는 등의 空約(공약)을 일삼는 정치인들은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날 때가 많으니 탈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280.html
kolaswqetsrq 11.02 14:05
수기치인修己治人 - 자신을 닦고 남을 다스린다.

수기치인(修己治人) - 자신을 닦고 남을 다스린다.

닦을 수(亻/8) 몸 기(己/0) 다스릴 치(氵/5) 사람 인(人/0)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고(修己) 그 뒤에 남을 다스린다(治人)는 이 말은 수양을 위해 좋은 뜻을 가졌다. 이 성어는 대뜸 修身齊家(수신제가) 또는 자세히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떠올린다. 먼저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여 집안을 안정시킨 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는 뜻이다. 큰 뜻을 가진 사람들, 꼭 나라를 위해 자기의 꿈을 펼치지 않을 사람도 부단히 인격을 수양하여 사회에 이바지하게 되는 셈이니 나쁠 것이 없다.

이 말이 나오는 ‘大學(대학)’은 四書(사서)에 들어가는 유교의 주요 경전이다. 원래 禮記(예기)에 포함되어 있던 것을 독립시켰다. 孔子(공자)의 가르침을 曾子(증자)와 그 제자들이 기술했다 하고 朱子(주자) 등 후세의 학자들이 깊이 연구했다.

선비들이 갖춰야 할 철학과 덕목을 담고 있어 중시했던 이 책의 첫 머리를 보자. ‘큰 학문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올바로 이끌어 새롭게 함에 있으며, 이런 것들을 지극히 훌륭한 경지에 이르도록 하는 데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

이것을 三綱領(삼강령, 明明德, 親民, 止於至善)이라 부르고 삼강령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 八條目(팔조목)이다. 예기의 편명으로 있었을 때는 없었다가 사서의 하나로 격상될 때 사용됐다고 한다. 팔조목은 格物致知(격물치지), 正心誠意(정심성의), 修身齊家(수신제가), 治國平天下(치국평천하)를 말한다. 사물의 이치를 알아 뜻과 마음이 바르게 되어야만 마음이 닦이고 가정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천하가 평화롭다는 뜻이다.

몸을 닦는다는 말은 쉽고도 어렵다. 대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복잡한 단계를 알 필요는 없다. 단지 부지런히 자신과 남을 생각하고 솔선수범하여 가정을 평온히 한다. 정치 지도자들이 집안의 추문을 온 나라에 드러내 망신을 당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수신은 몰라도 제가가 실패했다. 그래도 얼굴을 들고 나온다면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집집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을 근본으로 삼으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643.html
kolaswqetsrq 11.02 14:06
◇ ‘탈 공시생’ 청년들 6만 8000명...공무원 환상 깨졌다

◇ ‘탈 공시생’ 청년들 6만 8000명...공무원 환상 깨졌다

- 공무원을 준비하는 청년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는 통계 조사 결과가 나왔다.

19일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인구활동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 올해 5월 기준 만 15~29세 청년층의 취업 준비자는 70만 4000명으로 전년대비 15만 4000명이 줄었다.

특히 공무원 준비생의 감소가 두드러진다. 취업 준비자 중 ‘일반직 공무원’ 준비생은 지난해 5월에 비해 6만 8000명이 감소한 21만명으로 집계됐다. 공무원 준비생은 매년 전체 취준생 중에서 30% 이상을 차지해왔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2.5%p 하락해 29.9%로 집계됐다.

또한 교원 임용을 준비했다는 취준생도 0.1%p 하락했다.

반면 일반 기업체 준비생들은 전체 취준생 비중이 1.6%p 올랐다. 기업체 준비생 자체는 전년도 대비 2만 3000명이 줄었지만, 이는 고용 호조가 이어지며 청년 취업자가 증가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기업에서 ‘공채’를 줄이고 상시채용을 늘리는 경향도 이번 취준생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청년들은 첫 일자리에 취업한 후 1년 6개월 만에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 일자리를 그만둔 사유로는 보수, 근로시간 등 ‘근로여건 불만족’이 45.1%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는 건강, 육아, 결혼 등 개인·가족적 이유(15.3%)가 뒤를 이었다.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퇴사했다는 응답도 14.0%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데일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6-8000.html
kolaswqetsrq 11.02 14:07
행복도 심는 것입니다

행복도 심는 것입니다

모든 행복은 행복한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것에서부터 옵니다.

가시적 현실은 비가시적 생각이 자란 열매입니다.

어떤 생각을 심는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선택됩니다.

행복한 생각을 심으면 행복한 인격이 나오고

행복한 인격을 심으면 행복한 인생이 나옵니다.

인생은 작은 선택들이 모여 큰 선택들이 됩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행복은 습관입니다.

불행도 습관입니다.

평소에 행복의 선택을 훈련함으로

나의 행복은 결정됩니다.

불행은 원치 않으면 불행한 생각을 거부해야 합니다.

불행한 생각을 선택해서 행복해 지는 법은 없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향기가 있다>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975.html
kolaswqetsrq 11.02 14:07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한 10가지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한 10가지>

1. 힘차게 일어나라.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다.매년 365번의 출발 기회가 있다. 빠르냐 늦느냐가 자신의 운명을 다르게 연출한다. 시작은 빨라야 한다. 아침에는 희망과 의욕으로 힘차게 일어나라.

2. 당당하게 걸어라.

인생이란 성공을 향한 끊임없는 행진이다. 목표를 향하여 당당하게 걸어라. 당당하게 걷는 사람의 미래는 밝게 비쳐지지만, 비실거리며 걷는 사람의 앞날은 암담하기 마련이다.

3. 오늘 일은 오늘로 끝내라.

성공해야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미루는 습관에서 벗어나라.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오늘 하루뿐이다. 내일은 내일 해가 뜬다해도 그것은 내일의 해다. 미루지 말라.미루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4. 시간을 정해 놓고 책을 읽어라.

길이 없다고 헤매는 사람의 공통점은 책을 읽지 않는데 있다. 지혜가 가득한 책을 소화 시켜라. 하루에 30분씩 독서 시간을 만들어 보라. 학교에서는 점수를 더 받기 위해 공부하지만, 사회에서는 살아 남기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5. 웃는 훈련을 반복하라.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은 그냥 생긴 말이 아니다. 웃다보면 즐거워지고 즐거워지면 일이 술술 풀린다. 사람은 웃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긍정적으로 바뀐다. 웃고 웃자.그러면 웃을 일이 생겨난다.

6. 말하는 법을 배워라.

해야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을 분간하는 방법을 깨우치자. 나의 입에서 나오는 대로 뱉는 것은 공해다. 상대방을 즐겁고 기쁘게 해주는 말 힘이 생기도록 하는말을 연습해보자.

7. 하루 한가지씩 좋은 일을 하라.

살아온 발자취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하루에 크건 작건 좋은 일을 하자. 그것이 자신의 삶을 빛나게 할 뿐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일이다. 좋은 일 하는 사람의 얼굴은 아름답게 빛난다. 마음에 행복이 가득차기 때문이다.

8. 자신을 해방시켜라.

어떤 어려움이라도 마음을 열고 밀고 나가면 해결된다. 어렵다,안 된다,힘든다고 하지말라. 굳게 닫혀진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보자. 마음을 열면 행복이 들어온다. 마음을 밝혀라. 그리고 자신을 해방시켜라.

9. 사랑을 업그레이드 시켜라.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아무나 사랑을 한다. 말이 사랑이지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처음에 뜨거웠던 사랑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츰 퇴색된다. 그래서 자신의 사랑을 뜨거운 용광로처럼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10. 매일 매일 점검하라.

생각하는 민족만이 살아 남는다. 생각 없이 사는 것은 삶이 아니라 생존일 뿐이다.

이제 자신을 점검해 보자. 인생의 흑자와 적자를 보살피지 않으면 내일을 기약 수가 없다.저녁에 그냥 잠자리에 들지 말라. 자신의 하루를 점검한 다음 눈을 감아라. 나날이 향상하고 발전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77.html
kolaswqetsrq 11.02 14:08
인생을 잘 살기 위한 십계명

인생을 잘 살기 위한 십계명

1. 일일이 따지지 마라.

어렵고 힘들면 피차 각박해지기 쉽다.

조금씩 양보하고 여유를 갖자.

2. 이 자리 얘기를 저 자리로 옮기지 말라.

모든 분란은 말이 옮겨지면서 시작된다.

쓸데없는 분란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살자.

3. 삼삼오오 어울려 살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오래 가려면 함께 가라
 "
아프리카 속담이다.
",
힘들 때일수록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4. 사생결단 내지 말라.

아무리 어려워도 당장 죽을 일은 없다.

어려울수록 심호흡 크게 하며 길게 멀리 보자.

내일엔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5. 오기 부리지 말자.

때로는 오기도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긍정의 힘이 아니라 부정의 힘이다.

결국 자신을 고꾸라지게 만들고 세상을 망친다.

6. 육체적 스킨십을 늘리자.

힘들수록 서로를 보듬자는 것이다.

어려울 때 누군가 내미는 손길은

따뜻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힘이 된다.

7. 70%에 만족하자.

사람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

욕심에 포로가 되면 결국 인생을 망친다.

적당한 선에서 그칠 줄 아는 게 진짜 지혜다.

8. 팔팔거리는 심장을 잊지 말자.

나이가 든다고 열정이 식는 것은 결코 아니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미국의전 대통령 지미 카터의 말이다.

나이는 들지언정 열정은 살아 심장을 팔팔 뛰게 하자.

9. 구차하게 변명하지 말자.

맞고 깨지고 터진 곳은 부풀어 오르고 멍들게 마련이다.

그 상처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듯이

실패와 패배도 변명으로 절대 감춰지지 않는다.

졌으면 깨끗하게 졌다고 해야 다시 이길 수 있다.

10. 십 분의 일은 세상에 돌려주자.

각자의 능력과 특기, 기술과 재주에 따라,

금전이든 노력 봉사든 십시일반으로 나누자.

그러면 세상은 그래도 살맛 나지 않겠는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301.html
kolaswqetsrq 11.02 14:08
◇ 변비 있을 땐 잠시 끊는 게 좋은 음식

◇ 변비 있을 땐 잠시 끊는 게 좋은 음식

1. 즉석식품

미국립 소화기질환 연구소에 의하면 1주일 2회 미만을 변비로 보는데요. 편의점 도시락같은 즉석식품은 쉽게 맛을 내기 위해 첨가물과 지방이 많은 편이고 먹고 나면 속이 부데끼는 경우 있죠. 이런 즉석음식을 자주 먹는데 화장실 횟수가 1주일 2회 미만이면 잠시 속이 회복 될 때까지 끊는 게 장건강에 좋답니다.

2. 푸른색 바나나

 "
마트 가보면 요렇게 꼭지만 푸른 거 말고, 완전히 파란 바나나도 있거든요. 푸른 바나나가 약간 사각거리는 식감이 좋긴 한데, 잘익은 노랑 바나나는 변비에 좋지만 반대로 푸른 바나나는 익지 안은 상태라 변비에는 상극이에요.
",

3. 커피

아침에 한잔 정도는 장을 자극해 좋지만요. 많이 마시면 이뇨작용이라고 몸에 수분이 빠져 나가는데 변이 딱딱해져 변비가 심해질 수 있어요. 물을 자주 마시던지 커피를 줄여야 해요.

4. 라면 빵 밀가루 음식

의료정보지 WebMD에 따르면 흰 밀가루에는 섬유질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이걸로 만드는 빵과 라면도 변비에 좋지 않대요. 특히 라면에 같이 먹는 김치도 문제인데요. 짠 라면국물과 짠 김치의 나트륨 폭탄은 변비에 치명타라고 해요.

5. 초콜릿

설탕이 많은 초콜릿은 빵과 바나나 다음으로 변비에 안좋은 음식인데요. 소화를 방해하고 속을 불편하게 할 수 있어요.

6. 치킨, 튀김

입은 즐거울지 몰라도 기름기 많은 치킨, 튀김도 변비에 안 좋아요. 변비 없을땐 1일 1닭도 상관없지만, 변비를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요. 미국립보건원에 따르면 만성변비는 대장암 증상일 수 있답니다. 변비를 달고 사는 분들은 건강을 위해 요런 음식들 잠시 끊어보세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036.html
kolaswqetsrq 11.02 14:09
◇ 발과 당신의 건강

◇ 발과 당신의 건강

1. 발이 차다

혈액 순환이 좋지 않을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이는 흡연과 고혈압, 심장질환과 관계가 있다. 당뇨병으로 인한 신경계 손상이 있을 때도 발이 찰 수가 있다. 이밖에 갑상샘기능저하증이나 빈혈증이 원인일 수도 있으니 의사의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2. 발에 통증이 있다

보통 발이 아프면 신발 탓을 하게 마련이다. 사실 여성 10명 중 8명은 하이힐 등 신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피로골절이나 뼈의 미세한 균열 때문일 수가 있다. 너무 심한 운동이나 장거리 달리기 등도 발에 통증을 일으킨다.

3. 발뒤꿈치가 아프다

발바닥의 근막염이 원인일 수 있다. 뒤꿈치 뼈에 연결돼 있는 인대에 염증이 생기면 근막염이 된다. 아침에 깨서 첫 발을 내디딜 때 가장 심한 통증이 올 수 있다. 관절염, 과도한 운동, 잘 안 맞는 신발 등도 원인이 된다.

4. 발을 질질 끈다

보폭이 커지면서 발을 약간 끄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말초 신경 손상으로 생길 수 있다. 이런 현상의 약 30%는 당뇨병과 관련이 있다. 말초 신경 손상은 감염이나 비타민 결핍 때도 일어날 수 있다.

5. 발이 부었다

오랫동안 비행기를 탔을 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반면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심각한 질병이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혈액순환이나 림프계에 문제가 있거나, 혈전(피떡)이 있는 경우다. 콩팥 장애나 갑상샘 저하증이 있을 때도 발이 붓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6. 발이 화끈화끈 뜨겁다

당뇨병 환자 중 말초 신경에 손상이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비타민B 결핍이나 운동선수들, 만성 콩팥병이나 다리와 발에 혈액순환이 잘 안될 때도 발이 뜨거워질 수 있다.

7. 발에 난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당뇨병이 있다는 적신호다. 당뇨병이 있으면 발의 감각과 혈액 순환과 부상 치유력에 손상을 준다. 따라서 물집 같은 작은 상처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당뇨병 환자는 매일 발을 깨끗이 씻고 말리며 상처가 있는지 잘 살피고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324.html
kolaswqetsrq 11.02 14:10
◇ 소화가 잘 되는 건강 밥상

◇ 소화가 잘 되는 건강 밥상

▶ 소화효소의 균형맞춘 밥상

나이가 들수록 효소 양이 급격하게 줄어드는데, 소화효소의 양도 함께 줄어든다.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소화효소를 많이 사용하면 상대적으로 대사효소를 사용할 수 있는 양이 줄어들면서 면역력이 약해진다.

1. 보리밥

보리와 쌀의 비율은 5:5다.

보리는 12시간 이상 충분히 불려서 밥을 지어야 소화가 잘 된다.

2. 오리탕

오리고기에는 필수지방산이 풍부하다.

필수지방산은 소화액의 구성성분이다. 필수지방산을 섭취하면 소화액의 양을 늘려주기 때문에 소화를 원활하게 도와준다.

3. 생 들기름 숙주 오이무침

들기름 역시 필수지방산이 많이 들어있는 식품이라 소화액 분비를 촉진한다.

숙주나물 역시 소화효소인 아밀라아제가 풍부해 소화를 원활하게 도와준다.

▶ 노폐물이 쌓이지 않는 밥상

노폐물이 쌓이지 않는 밥상의 핵심은 탄수화물은 적게 먹고 필수지방산은 잘 섭취해 혈관 속 노폐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1. 현미밥

현미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 운동을 활발하게 한다.

장 운동이 활발하면 체내 노폐물이 쉽게 배출되기 때문에 노폐물이 쌓이는 것을 막는다.

2. 콩비지 찌개

콩속에 풍부한 불포화지방산은 혈관 속 혈전 생성을 억제하고 혈관의 염증을 막아준다.

콜레스테롤이 혈관에 쌓이지 않게 도와주기 때문에 체내 노폐물 제거에 도움을 준다.

3. 생들기름 가지 무침

가지에 들어있는 안토시아닌 성분은 체내에서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역활을 한다.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들기름과 함께 콜레스테롤의 상승을 막아준다.

▶ 체력을 올리는 밥상

췌장은 포도당을 분해하는 역활을 하기 때문에 탄수화물을 과다하게 섭취하면 기능이 떨어진다.

췌장의 기능이 떨어져 소화액의 분비가 줄면 먹는 음식은 노폐물로 체내에 쌓인다.

1. 항정살 채소 볶음밥

돼지고기는 단백질과 비타민 B1이 풍부해 체력을 보강하고 위액의 분비를 높혀 소화와 영양소 흡수를 돕는다.

채소를 넣는 이유는 채소에 들어있는 효소가 소화를 도와주고 단백질 대사과정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2. 돼지 채소탕

돼지고기와 채소를 함께 넣고 끓인 돼지채소탕도 항정살채소볶음밥과 마찬가지다.

채소와 같이 먹으면 채소의 섬유질로 포만감을 쉽게 느껴 고기 섭취량을 조절할 수 있는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

3. 쑥갓 두부무침

두부 역시 단백질이 풍부해 체력 보강에 좋은 음식이다.

쑥갓에는 단백질과 지방 흡수를 도와주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해 같이 먹으면 좋다.

또 쑥갓의 향이 위장의 소화를 도와주기 때문에 고기와 궁합이 맞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152.html
kolaswqetsrq 11.02 14:11
식사 후에 하면 안되는 7가지

 식사 후에 하면 안되는 7가지

1. 일계(一戒)

식후에 담배를 피우지 말 것.

식사 후에는 위장의 연동 운동이 늘어나고 혈액순환이 빨라진다. 그러므로 인체가 연기를 빨아들이는 능력 또한 늘어나서 담배 연기 속에 들어 있는 유독물질이 더 많이 인체 내에 흡수되어 몸에 해를 끼친다.

2. 이계(二戒)

식사 후에 바로 과일을 먹지 말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식으로 과일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반대로 식사 뒤에 과일을 먹으면 몸에 해를 끼친다.

식사 후에 바로 과일을 먹으면 뱃속이 부풀어 오른다.그리고 과일 속에 포함된 단당류 물질이 위 속에 정체되고 효소로 인해 발효되어뱃속이 부풀어 오르고 부글부글 끓게 된다.과일은 식사 후 2~3시간이 지나서 먹는 것이 가장 좋으며 밥 먹기 한 시간 전에 먹는 것도 괜찮다.

3. 삼계(三戒)

식사 후에 허리띠를 풀지 말 것.

식사 후에 배가 부르기 때문에 허리띠를 풀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좋지 못한 습관이다. 식사 후에 허리띠를 늦추면 복강 내의 압력이 허리띠를 풀자마자 갑자기 떨어지며 소화기관의 활동이 증가되고 인대에 미치는 영향이 커져 위하수와 장폐색이 발생할 수 있다.

4, 사계(四戒)

식사 후에 차를 마시지 말 것.

찻잎에 타닌이 많이 들어 있는데 타닌이 음식물의 단백질과 결합해 소화하기 힘든 응고물을 만든다.

5. 오계(五戒)

식사 후에 많이 걷지 말 것.

식사 후에 복강 내에 들어 있는 소화기 계통으로 피가 몰려 음식물의 소화흡수를 돕는다. 그런데 식사 후에 많이 걸으면 소화기 계통에 있던 피가 사지로 옮겨가기 때문에 음식물의 소화흡수에 지장이 생긴다.

6. 육계(六戒)

식사 후에 목욕하지 말 것.

식사 후에 바로 목욕을 할 경우 소화기 계통에 있는 피가 줄어든다.그러므로 음식물의 소화흡수에 지장을 초래한다.

7. 칠계(七戒)

식사 후에 잠을 자지 말 것.

식사 후에 바로 잠을 자면 음식물이 위장 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소화흡수에 지장을 초래한다. 그리고 위장병이 쉽게 발생하므로 주의를 요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_24.html
kolaswqetsrq 11.02 14:11
좋은 말 효과

좋은 말 효과

사람들은 정보나 지식에

목마르기보다 친절한 말

한마디와 부드러운 미소,

따뜻한 눈빛에 목말라 있습니다.

말은 그 사람 자체입니다.

좋은 말은 그 사람의 좋은마음,

좋은 삶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말로 전해지면 어떤 사람이라도

금방 마음이 밝아지고 가벼워집니다.

좋은 말 한마디는

비단 옷을 입혀 주는 것보다

그 사람을 더 따뜻하게 합니다.

- 정용철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104.html
kolaswqetsrq 11.02 14:12
자기 인생의 주인

자기 인생의 주인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 인생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다른 무엇이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고

남 탓하는 것으로 모자라

전생 타령을 하고 팔자 타령을 합니다.

내 뜻대로 바뀌면 남 탓을 안 할까요?

상황이 바뀌어 얻는 행복은

일시적인 것일 뿐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놓인 상황에는 행과 불행이 없습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행복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불행인 것입니다.

그러니 남 탓을 하고 팔자 타령 하면서 한숨 짓지 마세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행복으로 바꿔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
-법륜 스님의 행복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673.html
kolaswqetsrq 11.02 14:12
"왜 세금으로 코인 빚 갚나" 불만 폭발..금융위도 진화 나섰다

"왜 세금으로 코인 빚 갚나" 불만 폭발..금융위도 진화 나섰다

"왜 내 세금이 앞날 창창한 젊은 세대 빚 갚아주는데 쓰여야 하나요. 그것도 주식, 코인 투자해서 실패한 청년들을 위해서...." -40대 회사원 정 모씨

정부가 \빚투\(빚내서 투자) 등으로 막대한 손실을 본 저신용 청년층을 구제하는 신속채무조정 특례 제도 신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금융권 안팎이 시끌시끌하다. 주식 코인 등에 투자하려고 빚낸 청년들을 정부가 왜 나서서 도와주느냐는 비난이 주를 이룬다. 논란이 거세지자 금융위원회는 "원금을 탕감해주는 것이 아닌 금리 감면 차원"이라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
18일 금융위원회는 예정에 없던 긴급 브리핑을 열었다. 빚을 내 주식, 가상자산 등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청년층 재기를 돕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금융부문 민생안정과제를 두고 도덕적 해이, 역차별 등의 논란이 이어진 데 따른 것이다.
",

 "
지난 14일 윤석열 정부와 금융당국은 저신용 청년을 대상으로 이자를 최대 50% 감면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신속채무조정 특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대상은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 만 34세 이하 청년으로 1년 한도로 운영된다. 원금 상환유예 기간 이자율은 3.25%가 적용되며 별도의 신청비도 받지 않는다.
",

 "
그러나 해당 제도를 두고 자신이 한 투자는 손실까지 스스로 책임진다는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또 해당 제도가 주식, 코인 폭락에 돈을 잃어도 정부가 구제해 줄 수 있다는 인식을 강화시켜 다시 청년들의 빚투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

논란이 사그러들지 않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직접 브리핑에 참석해 "취약층 채무조정은 가상자산 등에 빚투한 실패자를 위한 대책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금리 상승 등 금융환경 변화로 취약계층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이번 대책은 일부 청년층 뿐 아니라 대다수 빚을 성실하게 갚는 일반 국민과 취약층에 대한 종합대책이라는 것이다.

금융위는 도덕적 해이 문제가 없도록 지원대상 및 지원내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대상자에 대해선 신용회복위원회·금융회사가 엄격한 소득·재산 조사를 실시해 지원 여부 및 지원수준을 결정(재산·소득이 충분한 경우 지원불가)하겠다고 전했다.

금융위는 "원금탕감 조치는 어떠한 경우에도 지원되지 않으며, 대출만기를 연장하고 금리를 일부 낮춰주는 차원"이라며 "다른 지원 없이는 원금상환이 어려운 차주에 대해서만 천천히 낮은 금리로 원금을 전액 성실상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라고 밝혔다.

청년층에 대해서만 특별히 채무조정 지원을 하는 이유에 대해선 "청년층은 우리경제의 미래에 있어 역할이 중요한 만큼 금리감면 지원을 일부 확대한 것"이라며 "청년층 내 금융채무불이행자가 확대된다면 취업상 제약까지 더해져 경제활동인구에서 탈락하는 등 사회경제적 비용이 더 커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이번 채무조정이 빚투, 영끌족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시 감면분은 해당 대출을 취급한 금융회사가 부담을 나누어 지게된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 역시 "지원 규모인 125조원이 모두 정부 예산은 아니다"며 "채권 발행으로 조달하는 부분도 있고, 예산 지원 없이 대환으로 지원하는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에 90~95% 이상의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 금융사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금융위는 "금융권은 별다른 정부 조치 없이도 통상 기존 대출의 90% 이상을 일상적으로 만기연장 조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며 "다만 국가적 재난상황을 겪은 점을 고려, 금융회사들이 대출취급의 당사자로서 1차적 책임을 지고 무분별한 대출회수를 하지 않도록 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했다.

-한국경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753.html
kolaswqetsrq 11.02 14:13
◇ 장수의 비결

◇ 장수의 비결

▶ 단명(短命)하는 사람과 장수(長壽)하는 사람 그 차이(差異)는 무엇일까?

미국인 7,000名을 대상(對象)으로,9年間의 추적조사(追跡調査)에서 아주 흥미(興味)로운 결과(結果)가 나왔다.

흡연(吸煙), 음주(飮酒), 일하는 스타일, 사회적 지위, 경제상황(經濟狀況), 인간관계(人間關係) 등에 이르기까지 조사(調査)한 끝에 의외(意外)의 사실이 밝혀졌다. 담배나 술은 수명(壽命)과 무관(無關)하지는 않지만 이색적(異色的)인 결과(結果)가 나왔다. 일하는 스타일, 사회적(社會的) 지위, 경제상황 등 그 어느 것도 결정적(決定的) 요인(要因)은 아니었다고 한다.

※오랜 조사(調査) 끝에 마침내 밝혀낸 장수(長壽)하는 사람들의 단 하나의 공통점(共通點)은 놀랍게도 “친구(親舊)의 수(數)”였다고 한다. 즉, 친구의 수가 적을수록 쉽게 병(病)에 걸리고,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인생(人生)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나누는 친구들이 많고 그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 (時間)이 많을수록 스트레스가 줄며, 더 건강(健康)한 삶을 유지(維持)하였다는 것이다.

▶ 친구란

1. 환경(環境)이 좋든 나쁘든 늘 함께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다.

2. 제반(諸般) 문제(問題)가 생겼을 때 저절로 상담(相談)하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3. 좋은 소식(消息)을 들으면 제일 먼저 알리고 싶은 사람이다.

4. 다른 사람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일도 말해주고 싶은 사람이다.

5.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 의지(依支)하고 싶은 사람이다.

6. 쓰러져 있을 때, 곁에서 무릎 꿇어 일으켜주는 사람이다.

7. 슬플 때, 기대어서 울 수 있는 어깨를 가진 사람이다.

8. 내가 울고 있을 때, 그의 얼굴에도 몇 가닥의 눈물이 보이는 사람이다.

9. 내가 실수(失手)했다 하더라도 조금도 언짢은 표정(表情)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10. 필요(必要)에 따라서 언제나 진실(眞實)된 충고도 해주고 위로(慰勞)도 해주는 사람이다.

11. 나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는 사람이다.

12. 갖고 있는 작은 물건(物件)이라도 즐겁게 나누어 쓸 수 있는 사람이다.

13. 친구란 서로 재거나 비판하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는 사이.. 그저 말만 같이해도 같이 마음이 좋아지는 사이.

▶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 당신이 먼저 연락(連絡)하라.

우테크는 재테크처럼 시간(時間)과 노력(努力)을 들인 만큼 성공(成功) 확률(確率)도 높아진다.우연히 마주친 친구와 ‘언제 한번 만나자’는 말로 돌아설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점심 약속(約束)을 잡아라. 아니면 그 다음날 전화(電話)나 이메일로 먼저 연락(連絡)하자.

둘째 : 기꺼이 봉사(奉仕)하는 직책(職責)을 맡아라.

평생(平生) ‘갑(甲)’으로 살아온 사람일수록 퇴직(退職)하면 더 외롭게 지내는 것을 종종 본다. 항상(恒常) 남들이 만나자고 하는 약속(約束)만 골라서 만났기 때문이다. 날짜와 시간을 조율(調律)하고 장소를 예약(豫約)하고 회비(會費)를 걷는 일은 성가시다. 그러나 귀찮은 일을 묵묵히 해낼 때, 친구는 늘어난다.

셋째 : 젊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 보라.

젊은 친구들과 함께 영화(映畵)도 보고

문자메시지도 교환(交換)하라. 자기(自己) 나이보다 스무살 이상 적은 사람도 언제나 존댓말로 대(對)하고 혼자서만 말하지 마라. 교훈적(敎訓的)인 이야기로 감동시키려 들지 말 것이며 가끔은 피자를 쏠 것.

넷째 : 매력(魅力)을 유지(維持)하라.

항상(恒常) 반짝반짝하게 잘 씻고 가능(可能)하면 깨끗하고 멋진 옷을 입어라. 동성(同性)끼리라도 매력(魅力)을 느껴야 오래 간다. 후줄근한 모습을 보면, 내 인생(人生)도 함께 괴로워진다.

육체적(肉體的) 아름다움만 매력(魅力)이 아니다. 끊임없이 책(冊)도 읽고, 영화(映畵)도 보고, 새로운 음악(音樂)도 들어야 매력(魅力)있는 대화(對話) 상대(相對)가 될 수 있다.

다섯째 : ‘우(友)테크’ 1순위(順位)대상은 배우자(配偶者)다.

가장 많은 시간(時間)을 보내는 집안에 원수가 산다면 그것은 가정이 아니라 지옥(地獄)이다.

배우자를 영원(永遠)한 동반자(同伴者)로 만들기 위해 우선(優先) 배우자의 건강을 살펴야 한다. 혼자 자는 일도 삼갈 일이다.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져도 모르면 큰일이다. 공동(共同)의 관심사를 갖기 위한 하나로 취미를 만드는 것도 중요(重要)하다. 그렇다고 자기 취미(趣味)를 강요해서도 안된다.

함께 하는 취미를 만든답시고 등산(登山)하는데 데리고 가서는 5時間 동안 부인(婦人)에게 한 말이라고는 ‘빨리 와!’ 뿐이 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후로 사이가 더 나빠졌음은 물론(勿論)이다.

여섯째 : 명문(名文) 카페를 찾아 열심히 활동하라.

열심히 출석부(出席簿)에 체크하고 산행(山行), 정기모임, 번개모임, 봉사(奉仕) 등 카페 활동(活動)을 하며 각종 행사(行事)에 참여(參與)해 보라.

그곳에서 당신은 멋진 친구(親舊)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856.html
kolaswqetsrq 11.02 14:14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

장자(莊子)께서 말씀하신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사람의

8가지 과오(過誤)가 있다고 하셨는데,

 "
1. 자기 할 일이 아닌데 덤비는 것은 주착(做錯)이라한다.
",
 "
2. 상대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의견을 말하는 것은 망령(妄靈)이라 한다.
",
 "
3.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말하는 것을 아첨(阿諂)이라 한다.
",
 "
4. 시비를 가리지 않고 마구 말을 하는 것을 푼수(分數)라고 한다.
",
 "
5. 남의 단점을 말하기 좋아하는 것을 참소(讒訴)라 한다.
",
 "
6. 타인의 관계를 갈라놓는 것을 이간(離間)질 이라 한다.
",
 "
7. 나쁜 짓을 칭찬하여 사람을 타락시킴을 간특(奸慝)하다 한다.
",

8.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비위를 맞춰 상대방의 속셈을 뽑아보는 것을
 "
음흉(陰凶)하다 한다.
",

인생을 즐겁게 보내고자 한다면 일정한 계획과 수련이 꼭 필요한데,

첫째는 생계(生計),

둘째는 신계(身計),

셋째는 가계(家計),

넷째는 노계(老計),

다섯째는 사계(死計)가 그것이다.

생계는 내 일생을 어떤 모양으로 만드느냐에 관한 것이고,

신계는 이 몸을 어떻게 처신 하느냐의 계획이며,

가계는 나의 가족관계와 집안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이다.

노계는 어떤 노년을 보낼 것이냐에 관한 것이고,

사계는 어떤 모양으로 죽을 것이냐의 설계를 의미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421.html
kolaswqetsrq 11.02 14:15
◇ "국민연금 10만원 덜 받게 해달라" 황당 민원 쏟아지는 이유

◇ "국민연금 10만원 덜 받게 해달라" 황당 민원 쏟아지는 이유

“연금을 10만원 덜 받게 해주세요.”

최근 국민연금공단의 한 지사에 이런 민원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대부분의 가입자ᆞ수급자가 연금을 1만원이라도 더 받으려고 애쓰는데, 10만원 적게 달라니 연금공단 입장에선 황당한 민원이다. 알고 보니 다른 사연이 있었다. 연금을 10만원 더 받으면 건강보험료를 더 낼까 봐 걱정한 것이다.

정부는 최근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건보 피부양자가 연간 200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리면 지역가입자로 신분이 바뀌게 됐다. 지금은 연간 합산소득 3400만원이 넘어야 지역가입자가 되는데, 오는 11월부터 이 기준이 대폭 강화되는 것이다. 합산소득에는 금융소득(예금 이자, 주식 배당 등), 사업소득, 근로소득, 연금소득, 기타소득 등이 모두 포함된다.

공무원ᆞ사학ᆞ군인ᆞ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을 매달 167만원 이상 타는 은퇴자는 피부양자에서 탈락하고, 월평균15만원가량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이렇게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건보 피부양자는 연 소득 2000만~3400만원인 이들로 전체 피부양자의 약 1.5%(27만3000명)다. 이들은 지역가입자로 바뀌어 월평균 14만9000원씩(4년간 일부 경감) 부담하게 된다.

건보 부과체계 개편은 부담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납부하도록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그간 피부양자로 인정받으면 소득과 재산이 있어도 보험료를 내지 않았다. 지역가입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계속 제기돼왔다. 연 소득이 100만원~120만원 이하인 지역가입자도 연간 20만2015원의 건보료를 부담한다. 소득의 20%가량을 건보료로 내는 셈이다. 우리나라 건보 피부양률은 직장가입자 1명당 피부양자 1명꼴로 독일(0.29명), 일본(0.68명), 대만(0.49명) 등 해외와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이런 제도 변화를 앞두고 연금 소득이 피부양자 기준에 걸쳐있는 이들이 고민에 빠졌다. 특히 연금액을 늘리려 연기연금(연금 받는 시기를 미뤄 최대 7.2% 더 받는 제도), 임의계속가입(만 60세 이후에도 최대 5년간 계속 가입해 연금액을 늘리는 제도) 등을 활용했던 이들의 불안이 크다. 연금공단은 가입자들의 연금 수령액을 늘리기 위해 이런 제도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왔는데 뜻밖의 건강보험 관련 민원으로 난처하게 됐다고 한다.

연금공단 지사의 관계자는 “건강보험 부과체계가 바뀐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 연금을 많이 받는 수급자들이 ‘연금을 적게 받게 해달라’는 식의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라며 “연금제도와 전혀 관계없는 건보 때문에 발생한, 예상하지 못한 민원인 데다 정해진 연금액을 덜 지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건보 피부양자에서 탈락할 만큼 많은 연금을 받는 수급자가 많지는 않다. 국민연금 제도의 역사가 30여년 남짓이라 장기간 연금 보험료를 낸 이들이 얼마 되지 않아서다. 지난 3월 기준 국민연금(노령연금) 수급자는 495만명에 달하지만, 이들의 평균 월 연금액은 57만5418원에 불과하다. 연금 수령액이 월 160만원∼200만원 미만인 고액 연금 수급자는 6만9252명이고, 월 200만원 이상 연금을 받는 수급자는 2994명이다. 가장 많은 연금을 받는 수급자는 월 245만9700원을 받는다.

앞으로 고액 연금 수급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연금공단 본부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연기연금ᆞ임의계속가입 등 연금액을 늘릴 수 있는 제도 가입 상담을 할 때는 건보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75.html
kolaswqetsrq 11.02 14:15
마음이 허전한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마음이 허전한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마음이 허전한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특별히 무엇이 되겠다

기대하는 것이 다 욕심입니다.

마음이 허전하다고

무엇으로 채우려 하는 것은,

망상을 쫓는 것입니다.

개에게 흙덩이를 던지면

개는 흙덩이만 쫓습니다.

하지만 사자는

흙덩이를 던진 사람을 쫓습니다.

사자가 사람을 쫓듯이,

허전한 마음을

탁 꿰뚫어 봐야 합니다.

‘아 내가 뭔가 바라는 마음으로

헤매고 있구나!’

채우려는 생각을 버리세요.

그러면 허전함도 사라집니다.

-법륜 스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011.html
kolaswqetsrq 11.02 14:16
내일을 예약합니다

내일을 예약합니다

내일을 예약합니다.

저기 저 하늘과 같이

눈부시게 파란 내일을 예약합니다.

내일은 생각이 젊어져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정열이 살아나고

내일은 가슴이 건강해져서

진리를 위해 양심의 고동을 울릴 수 있고

내일은 마음을 활짝 열어

미움이 사라지고 더불어 사는 날이길,

내일을 예약합니다.

저기 저 아침해같이

타오르는 붉은 내일을 예약합니다.

내일은 생각이 요동쳐서

좌절했던 자리에서 도전하는 자리로 바뀌고

내일은 가슴이 뜨거워져서

사랑을 위해 진실의 고백을 나눌 수 있고

내일은 마음이 손을 잡고

시기와 질투가 없는 정스러운 날이길,

내일을 예약합니다.

남은 건 어제의 실패와 어려움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흘린 진실한 땀과 소중한 노력으로

내일을 예약합니다.

- 오광수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186.html
kolaswqetsrq 11.02 14:17
살다보면 만나지는 인연중에

살다보면 만나지는 인연중에

살다보면 만나지는 인연 중에

참 닮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비슷하다 싶은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한 번을 보면 다 알아버리는 그 사람의 속마음과

감추려 하는 아픔과 숨기려 하는 절망까지

다 보여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도 전생에 무언가 하나로 엮어진 게

틀림이 없어 보이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깜짝깜짝 놀랍기도 하고 화들짝 반갑기도 하고

어렴풋이 가슴에 메이기도 한 그런 인연이

살다가 보면 만나지나 봅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 보담

속내가 더 닮은 그래서 더 마음이 가고

더 마음이 아린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하기는 두렵고

그리워하기엔 목이 메이고

모른척 지나치기엔 서로에게 할 일이 아닌 것 같고

마냥 지켜보기엔 그가 너무 안스럽고

보듬아 주기엔 서로가 상처 받을것 같고

그런 하나하나에 마음을 둬야 하는 사람

그렇게 닮아버린 사람을

살다가 보면 만나지나 봅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게 인연이지 싶습니다.

- 배은미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308.html
kolaswqetsrq 11.02 14:17
명심보감明心寶鑑

명심보감(明心寶鑑)

1. 남을 무시하지 말라.

2. 의심받을 일은 하지 말라

3. 힘으로 남을 이기려 하지 말라.

4. 아무리 화가 나도 참아야 한다.

5. 남을 해치고자 하면 자신이 먼저 당한다.

6. 나를 칭찬하는 사람을 조심해라.

7.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

8. 원수를 만들지 말라.

9. 너무 까다롭게 따지지 말라.

10. 한쪽 말만 믿어서는 안 된다

11. 남을 욕하는 건 하늘에 침 뱉는 격이다.

12. 함부로 남의 말을 하지 말라.

13. 남의 말을 쉽게 믿지 말라.

14.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15.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걱정이 많다.

16. 스스로 자랑하지 말라.

17. 뿌린 대로 거둔다.

18. 기회를 놓치지 말라..

19. 친구를 가려 사귀면 후회가 없다.

20. 지혜는 경험에서 얻어진다.

21.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 되라.

22. 너그러운 사람에게 복이 온다.

23. 지나친 생각은 정신 건강을 해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620.html
kolaswqetsrq 11.02 14:18
알아두면 유용한 23가지 민간요법

알아두면 유용한 23가지 민간요법

1. 불면증

마늘의 생즙을 내어 머리맡에 놓고 냄새를 맡으면서 잠을 자면 잠이 잘 온다.

2. 딸국질

곶감 1개를 달여서 그 물을 한 컵 정도 먹어도 곧 그친다

3. 변비

생 계란과 조청을 잘 저어서 섞은 다음 하루 2차례만 먹으면 특효가 있다

4. 황달

무로 즙을 내어 한번에 한 컵씩 하루 3차례만 식 후에 오랫동안 복용하면 치유할 수가 있다

5. 요통

소주에 마늘을 이겨서 넣은 것이나 솔잎과 초와 겨자를 갠 것을 가지고 환부에 자주 찜질을 하면 통증이 풀리면서 낫는다

6. 두통

무 생즙을 내어 코 속에 3방울 쯤 넣으면 특효가 있다

7. 어깨결림

토란과 밀가루를 같은 분량으로 고루 잘 섞어 반죽하여 생강 즙과 설탕을 약간 섞어 환부에 하루 한 차례씩 4-5일간만 치료하면 탁월한 효과가 있다

8. 고혈압

박 속을 푹 삶아서 한번에 한 컵씩 2-3회를 복용하되 10여일 복용하면 특효가 있다

9. 현기증

무 생즙을 내어 코 속에 2-3방울 넣는 데 하루 두 차례씩 4-5일간만 계속하면 즉효가 있다.

10. 위염

무로 진한 즙을 내어 아침저녁 식사 30분후에 한 컵씩 계속하여 복용하면 신효가 있다

11. 위궤양

귤껍질을 갈아서 고운 가루를 내어 한번에 적은 숟가락으로 하나씩 하루에 3차례 공복에 냉수로 오랫동안 복용하면 특효가 있다

12. 위암

가지꼭지를 달여서 하루에 3차례씩 공복에 장복하면 신통한 효과가 있다

13. 위경련

마늘생즙을 내어 0.2홉 가량 먹으면 신통하게 낫는 효과가 있다

14. 야뇨증

닭 벼슬을 불에 태워 가루를 만들어 열탕한 물로 하루 세 차례씩 일주일만 장복하면 치료된다

15. 관절염

황토 흙을 곱게 채에 쳐서 가루를 만들어 식초에 이겨서 환부에 하루 한 차례씩 5-6일간만붙이면 직효

16. 뇌일혈

뽕나무 뿌리를 캐어 그것을 그늘에 말려 두었다가 잘게 썰어 3홉의 물을 붙고 2홉이 되도록 달여 하루 3차례 공복에 복용하되 장복하면 치료가 가능하다

17. 신경통

웅담이나 소 쓸개를 반 컵의 소주 속에 넣고 2-3차례만 복용하면 신기한 효과가 있다

18. 심장병

양파와 마늘을 초를 약간 쳐서 생 것으로 자주 복용하면 심장병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19. 신장병

팥을 적당히 삶아내고 이 물을 1홉정도를 하루 3차례씩 계속적으로 복용하면 특효가 있다

20. 간염

자라를 푹 고와서 바드득 짜서 그 국물을 한 컵씩 하루 3차례씩 2-3일간만 복용하면 특효가 있다

21. 요충

쑥을 그늘에 말려 물을 붓고 달여서 수시로 먹으면 특효가 있다

22. 간질

흰 봉선화의 줄기를 잘게 쓸어 물을 붓고 달여서 하루에 두 차례씩 장복하면 탁한 효과를 본다

23. 맹장염

무 생즙을 낸 것과 생강 즙 낸 것을 섞어서 꼭 짠 다음 이 찌꺼기를 맹장의 환부에 하루 2-3차례 갈아 붙이면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3.html
kolaswqetsrq 11.02 14:18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국갤럽 조사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국갤럽 조사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졌다.

여론조사 전문회사인 한국갤럽이 8일 내놓은 7월 1주 차 여론조사 결과(지난 5~7일, 전국 성인 1000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를 보면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37%로 한국갤럽 조사 이후 처음으로 30%대로 하락했다.

부정 평가는 49%로 취임 이후 최고치였다.

 "
부정 평가를 한 응답자를 대상으로 부정 평가 이유를 물은 결과 인사라는 응답이 25%로 가장 높았다. 이어 Δ경제·민생 살피지 않음 12% Δ경험·자질 부족·무능함 8% Δ외교 6% Δ독단적·일방적 6% 등의 순이었는데 Δ김건희 여사 행보도 1%였다.
",
 "
긍정 평가를 한 응답자를 대상으로 긍정 평가 이유를 물은 결과 모름·응답거절이 21%로 가장 높았다. 이어 외교, 전 정권 극복, 소통이 각각 6%였고 결단력·추진력·뚝심이 5% 등이었다.
",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제외 모두 부정평가 앞서

지역별로 긍정 평가 비율이 부정 평가보다 높은 곳은 대구·경북(54%, 34%), 부산·울산·경남(45%, 39%)이었다. 나머지 지역에서는 부정 평가 비율이 긍정 평가를 앞섰다.

광주·전라의 경우 긍정 평가는 14%에 불과했고 부정 평가는 71%에 달했다.

연령 별로는 6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 대에서 부정 평가 비율이 긍정 평가를 앞섰다. 부정 평가 비율은 40대(65%)에서 가장 높았다.

일반적으로 정치권에서는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면 정책 추진이 어려워지고, 20%대까지 떨어지면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불가능해진다고 본다.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지지율 하락세에 대해 "선거 때도 지지율은 별로 유념하지 않았다. (지지율은)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했지만, 지지율 하락으로 인해 국정 동력이 떨어진다면 국정 수행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갤럽의 조사만 놓고 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 달 사이 10%p 이상이 떨어졌다.

지난 6월 1주 차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53%였지만, 매주 하락해 2주 차 53%, 3주 차 49%, 4주 차 47%, 5주 차 43%를 기록했다.

부정 평가는 반비례해 같은 기간 34%, 33%, 38%, 38%, 42%로 상승세를 보였다.

다른 여론조사 회사의 조사 결과도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여론조사 전문회사인 미디어토마토가 이날 내놓은 여론조사(뉴스토마토 의뢰, 지난 5~6일 전국 성인 1056명 대상, 표본오차는 95%신뢰수준에 ±3.0%p)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부정 평가는 59.6%, 긍정 평가는 37.6%로 집계됐다.

6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세대, 대구·경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섰다.

-NEWS1-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0_24.html
kolaswqetsrq 11.02 14:19
한천작우旱天作雨 - 가뭄이 들면 하늘이 비를 내린다,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받다.

한천작우(旱天作雨) - 가뭄이 들면 하늘이 비를 내린다,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받다.

가물 한(曰/3) 하늘 천(大/1) 지을 작(亻/5) 비 우(雨/0)

오래 가물다가 내리는 비는 慈雨(자우)다. ‘가뭄에 단비’다. 하지만 ‘넉 달 가뭄에도 하루만 더 개었으면 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 일에 지장이 있으면 고마워하지 않는다. 사람은 날씨에 대해 항상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개개인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그럴 수 없다.

가뭄을 말하는 旱魃(한발, 魃은 가물 발)로 인해 백성이 굶주리게 되면 왕은 자신의 잘못이라며 주위를 살펴보고 몸을 청결히 하여 祈雨祭(기우제)를 올린다. 이런 정성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얼마 뒤에는 실제 비가 내렸다.

가뭄이 들어 백성이 도탄에 빠지면 하늘이 비를 내린다는 것이 이 성어다. 여기에서 가뭄 때 내리는 단비처럼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받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孔子(공자)를 학문을 이어 亞聖(아성)으로 추앙받는 孟子(맹자)가 한 말에서 비롯됐다. 그의 가르침을 정리한 ‘맹자’의 첫머리 梁惠王(양혜왕)에 나온다.

梁(양)나라는 戰國時代(전국시대) 초기 강국이었던 魏(위)나라가 도읍을 安邑(안읍)에서 大梁(대량)으로 옮긴 후부터 불린 이름이다. 맹자가 양혜왕을 접견하고서 강조한 何必曰利(하필왈리), 五十步百步(오십보백보) 등의 성어가 앞부분에 나온다.

양혜왕의 아들인 襄王(양왕)과 맹자의 대화에서 단비 부분이 들어있다. 천하는 어떻게 해야 안정되며 누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에 맹자가 답한다. ‘왕께서는 벼의 싹에 대해 아시는지요? 7, 8월 사이에 가뭄이 들면 말랐다가 하늘이 뭉게뭉게 먹구름을 만들어 시원하게 비를 뿌리면 다시 싱싱하게 자라납니다(王知夫苗乎 七八月之間 旱則苗槁矣 天油然作雲 沛然下雨 則苗浡然與之矣/ 왕지부묘호 칠팔월지간 한즉묘고의 천유연작운 패연하우 즉묘발연여지의).’ 油然(유연)은 구름이 무성하게 일어나는 모양, 沛는 비쏟아질 패, 일어날 浡(발)은 싹이 부쩍 자란 모습을 형용했다. 자비롭게 백성을 대하면 저절로 모여든다는 설명이다.

교수들이 해마다 연말에 올해의 한자성어를 선정하면 화제가 되었다. 2006년의 성어가 密雲不雨(밀운불우)였는데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한 정국을 비꼬며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새해 旱天作雨(한천작우)를 내세웠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단비를 내리게 하겠다는 의미였다. 큰 혜택을 내리겠다는 의욕은 자기에게만 해당됐고 그 이후의 정권과 함께 국민들은 자부심을 잃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833.html
kolaswqetsrq 11.02 14:20
반벽返璧 - 구슬을 되돌려 보냄, 받은 선물을 돌려 줌

반벽(返璧) - 구슬을 되돌려 보냄, 받은 선물을 돌려 줌

돌이킬 반(辶/4) 구슬 벽(玉/13)

남에게 물건 등을 건네는 것이 선물이다. 뇌물은 사사로운 일에 이용하기 위해 건네는 부정한 돈이나 물건을 말한다. 이처럼 사전에서는 명확히 구별하지만 주고받는 과정은 큰 차이가 없다. 어떤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마음의 정을 나누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다.

선물과 뇌물의 차이를 잘 알 수 있게 소개한 것이 있다.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옮겨서도 받을, 혹은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선물이고, 현재 그 직위에 있기 때문에 수수하는 것이라면 뇌물이다. 영국의 한 기업윤리보고서에서 제시한 것이라 한다.

璧玉(벽옥)을 되돌려 보낸다는 이 성어는 남이 선사한 물건을 받지 않고 되돌려 보내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같은 구슬이라도 璧(벽)은 납작한 것, 玉(옥)은 둥근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受飧反璧(수손반벽, 飧은 저녁밥 손)의 준말이고 返錦(반금)도 같은 말이다.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의 뒷날 24대 文公(문공)이 되는 重耳(중이)의 도피생활 때 이야기에서 이 말이 유래했다. 중이는 19대 獻公(헌공)의 둘째 아들이었다. 헌공이 이민족을 정벌하면서 데려온 미인 驪姬(여희)가 왕비가 된 후 자신의 소생을 태자로 세우려 했다. 간신들과 합심, 여희는 장자를 모살하고 중이와 동생을 이웃 나라로 내쫓았다.

중이는 이후 19년 동안이나 암살을 피해 여러 나라를 떠돌았는데 曹(조)나라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중이의 갈비뼈가 통뼈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조나라의 대부 僖負羈(희부기, 僖는 즐거울 희)의 부인은 남편에게 말했다.

진나라 사람들이 예사롭지 않아 중이는 반드시 본국에서 왕이 될 것이라며 일찌감치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고 권했다. ‘그래서 희부기는 중이에게 소박한 저녁밥을 담아 보내면서 그 속에 구슬을 묻어 두었다. 중이는 음식만 받고 구슬은 되돌려 보냈다(乃饋盤飧寘璧焉 公子受飧反璧/ 내궤반손치벽언 공자수손반벽).’ 饋는 먹일 궤, 寘는 둘 치. 중이는 이 구슬에 다른 뜻이 있어 뇌물이라 본 것이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 僖公(희공) 23년 조에 나온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공직자 뿐 아니고 언론인, 사립교원과 그 배우자까지 광범위하게 해당되고, 규모를 조정하는 법이 시행되었지만 공직사회의 비리를 근절하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398.html
kolaswqetsrq 11.02 14:21
수석침류漱石枕流 -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 삼다, 잘못을 인정 않고 억지 쓰다.

수석침류(漱石枕流) -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 삼다, 잘못을 인정 않고 억지 쓰다.

양치할 수(氵/11) 돌 석(石/0) 베개 침(木/7) 흐를 류(氵/7)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알고도 잘못하는 사람은 적겠지만 모르는 사이에 잘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자기의 큰 잘못은 넘어가고 남의 사소한 잘못만 눈에 띈다. 그래서 孔子(공자)도 잘못을 저지르고 이를 고치지 않는 것이 진짜 과오(過而不改 是謂過矣/ 과이불개 시위과의)라며 인간에게는 허물이 없을 수 없는데 이를 적게 하고 고치는 것이 도에 가까워지는 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성경에서 ‘형제의 눈에 있는 티끌을 보면서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 하는가’라고 깨우쳐도 어리석은 인간은 남의 탓만 한다.

돌로 이를 닦고(漱石) 흐르는 물을 베개 삼을 수(枕流)는 없다. 옛말을 인용하려다 잘못 거꾸로 말했는데 그것을 지적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럴듯하게 꾸며댈 때 이 말을 쓴다. 일의 앞뒤가 맞지 않거나 남에게 지기 싫어서 자기 것만 옳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을 빗대 사용하기도 한다. 牽强附會(견강부회)나 我田引水(아전인수)다.

西晉(서진, 서기265~316) 때의 孫楚(손초)라는 사람은 문학적으로 뛰어났고 임기응변에도 대단히 능했다. 성격이 시원시원했지만 오만하고 남을 우습게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젊었을 당시 사대부 간에는 老莊(노장)의 철리를 중히 여겨 자연 속에 은둔하는 淸談(청담)이 유행했었다. 손초도 속세를 떠나기로 작정하고 친구인 王濟(왕제)를 찾아가 자신의 흉금을 토로했다.

그는 ‘돌을 베개 삼아 잠자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며 심신을 닦으려 한다(枕石漱流/ 침석수류)’고 말한다는 것이 거꾸로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 삼겠다’고 말했다. 친구가 잘못을 지적하자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으려는 것은 옛날 潁川(영천, 潁은 물이름 영)에서 귀를 씻은 許由(허유)처럼 쓸데없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귀를 씻기 위해서라고 억지 부렸다. ‘晉書(진서)’ 손초전과 ‘世說新語(세설신어)’ 排調(배조)편에 전한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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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22
앙천이타仰天而唾 – 하늘보고 침 뱉기

앙천이타(仰天而唾) – 하늘보고 침 뱉기

우러를 앙(亻/4) 하늘 천(大/1) 말이을 이(而/0) 침 타(口/8)

입속의 침샘에서 나오는 침은 없어서는 안 될 소화액이지만 잘못 뱉으면 혼이 난다. 경범으로 처벌될 일 말고도 아주 치사스럽게 생각하여 멸시한다는 뜻이 있어 대판 싸움이 나거나 뒤도 돌아보지 않는 사이가 된다. 남이 얼굴에 침을 뱉었을 때 금방 손으로 닦아내면 상대방의 기분이 상할 수 있으므로 마를 때까지 둔다는 唾面自乾(타면자건)은 인내의 극치를 말해준다.

唐(당)나라 현신 樓師德(누사덕)의 고사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런데 ‘누워서 침 뱉기’나 ‘하늘보고 침 뱉기’라는 말대로 하늘을 향해 침을 뱉는다면 제 얼굴에 떨어질 뿐이다. 남을 해치려고 하다가 도리어 제가 당한다는 비유로 썼다.

우리 속담을 한역한 책은 洪萬宗(홍만종)의 旬五志(순오지)와 趙在三(조재삼)이 쓴 松南雜識(송남잡지), 조선 후기 朴慶家(박경가)의 東言考略(동언고략) 등 제법 있다. 이 성어는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이 엮은 ‘耳談續纂(이담속찬)’에 나온다. 이 책은 明(명)나라 王同軌(왕동궤)라는 사람이 지은 耳談(이담)에 추가하여 한국 속담 241수를 한자 8자로 번역 수록한 것이다. 하늘보고 침 뱉기는 ‘하늘을 쳐다보고 침을 뱉으면 자기 얼굴을 더럽힐 뿐이다(仰天而唾 徒汚其面/ 앙천이타 도오기면)’로 되어 있다.

이 속담성어가 이보다 앞서 불경에서 연유한 것이라 더 흥미롭다. ‘四十二章經(사십이장경)’은 불교의 요지를 42장으로 나누어 기술한 경전이라는데 중국 後漢(후한)때 인도 승려 迦葉摩騰(가섭마등), 竺法蘭(축법란)이 번역하여 전했다 한다. 적절한 비유를 들어 간명하게 풀이한 교훈집으로 8장에 나온다.

‘악한 자가 어진 사람을 해치는 것은, 마치 하늘을 향해 침을 뱉으면 하늘에 닿지 않고 땅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惡人害賢者 猶仰天而唾 唾不至天 還從己墮/ 악인해현자 유앙천이타 타부지천 환종기타).’ 이어지는 말도 의미는 같다. ‘바람을 거슬러 먼지를 날리면 상대에 이르지 않고 제게 되돌아오는 것과 같다(逆風揚塵 塵不至彼 還盆其身/ 역풍양진 진부지피 환분기신).’

상대를 향해 침을 뱉어도 안 될 일이지만 상대를 모르게 한다고 하늘을 향해 뱉더라도 피해는 고스란히 돌아온다. 남의 잘못된 점에 대해 험담을 실컷 늘어놓다가도 입장이 바뀌면 그대로 덮어쓰는 경우도 종종 본다. 상대가 앞에 있거나 없거나 한결같아야 참된 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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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22
연하고질煙霞痼疾 - 안개와 노을을 사랑하는 병, 산수를 사랑하고 즐기는 성벽

연하고질(煙霞痼疾) - 안개와 노을을 사랑하는 병, 산수를 사랑하고 즐기는 성벽

연기 연(火/9) 노을 하(雨/9) 고질 고(疒/8) 병 질(疒/5)

연기 煙(연)은 안개의 뜻도 있어 煙霞(연하)는 안개와 노을을 아울러 이르는 말임과 동시에 고요한 산수의 경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안개와 노을이 오랫동안 앓고 있어 고치기 어려운 痼疾(고질)일 리는 없고 산수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되돌릴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에 항상 따라붙는 泉石膏肓(천석고황)과 함께 중국 唐(당)나라 때의 은사 田游巖(전유암)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강호묵객들이 즐겨 쓰게 됐다. 고황은 심장과 횡격막 부위로 여기까지 병이 미치면 고치지 못한다고 생각한 곳인데 맑은 샘과 수석을 사랑한 것이 불치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표현이다.

은사 전유암은 後晉(후진)때의 劉呴(유구, 呴는 숨내쉴 구)가 편찬한 ‘舊唐書(구당서)’나 宋(송)나라 정치가 歐陽脩(구양수)의 ‘新唐書(신당서)’에 모두 전한다. 당나라 3대 高宗(고종) 초기에 전유암은 걸출한 인재들이 모여드는 太學生(태학생)의 일원이었다가 얼마 안 있어 太白山(태백산)으로 들어갔다. 뒷날 모친과 부인도 세속을 싫어하여 함께 箕山(기산)에서 살게 됐다.

기산은 전설의 은자 許由(허유)가 堯(요) 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潁川(영천)에서 귀를 씻은 뒤 은거한 곳이라 한다. 전유암은 허유의 무덤 옆에 살면서 許由東隣(허유동린)이라 칭하고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어느 때 고종이 嵩山(숭산) 행차 길에 친히 찾았을 때 야인의 복장으로도 전유암은 행동이 근엄했다. 고종이 맞으며 산속의 생활이 편안한지 물으니 답한다. ‘신은 샘과 바위에 대한 병이 이미 고황에 들고, 안개와 노을에 대한 병은 고질병 수준입니다(臣泉石膏肓 煙霞痼疾/ 신천석고황 연하고질).’ 산수에 중독되어 결코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가 됐음을 강조하면서 좋은 시대를 만나 유유히 지내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임금이 불러도 나가지 않고 산수에 묻혀 지내는 것이 後漢(후한)의 嚴光(엄광)을 노래한 ‘삼공 벼슬의 영화로도 이 강산과 바꿀 수 없도다(三公不換此江山/ 삼공불환차강산)’란 구절을 연상시킨다. 南宋(남송)의 시인 戴復古(대복고)의 작품이다.

초야에 묻힌 생활을 찬미하는 煙霞之癖(연하지벽)도 같은 말이고 더 강조한 것으로 달을 잡고 바람을 어깨에 멘다는 握月擔風(악월담풍)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옛 시가에도 등장한다. "이 몸이 한가하여/ 산수 간에 소요하니/ 부귀공명 뜻 없기는/ 연하고질 병이로다"란 작자미상의 滄浪曲(창랑곡)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鄭澈(정철)의 關東別曲(관동별곡) 첫 부분 ‘강호애 병이 깁퍼 죽림의 누엇더니’에서의 江湖(강호) 사랑의 병도 연하고질이다. 자연훼손이 날로 심해지는 요즘 더욱 음미해야 할 좋은 말들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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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23
탐천지공貪天之功 – 하늘의 공을 탐내다, 남의 공을 가로채다.

탐천지공(貪天之功) – 하늘의 공을 탐내다, 남의 공을 가로채다.

탐낼 탐(貝/4) 하늘 천(大/1) 갈 지(丿/3) 공 공(力/3)

어떤 일을 이루었을 때 아무리 작아도 성취한 사람이 있다. 공이 있는 주인공을 제쳐 놓고 모두 자신이 한 일인 양 가로채는 사람이 간혹 있지만 언젠가는 밝혀진다. 조그만 인간사에도 그러한데 하늘의 순리대로 된 일을 자기의 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하늘의 공을 탐낸다는 이 성어는 남의 공을 자기의 공으로 가로챈다는 뜻도 있고, 남의 공적을 도용한다는 의미도 있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고결한 隱士(은사)였던 介子推(개자추)의 고사에서 이야기가 나왔다. 寒食(한식)의 유래가 되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일명 介之推(개지추)라고도 하는 개자추는 모시던 공자를 왕위에 올리는 큰 공을 세웠음에도 전혀 내세우지 않았고, 논공행상에서 빠졌어도 왕을 원망하지 않았다. 공자가 왕이 된 것은 그만한 능력이 있어 하늘이 도왔기 때문이라 믿었다.

‘左氏傳(좌씨전)’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북방의 晉(진)나라 獻公(헌공)이 驪姬(여희)의 꾐에 빠져 태자를 죽이거나 내쫓는 바람에 重耳(중이)는 19년이나 되는 긴 유랑생활을 했다. 여러 신하와 이웃 나라의 도움으로 뒤에 五霸(오패) 중의 한 사람이 되는 文公(문공)이다.

오랜 고생 끝에 62세의 나이로 등극한 문공은 자신에게 충성을 다했던 신하들을 포상하고 중용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망명생활을 하면서 굶주린 문공에게 허벅지살을 베어 바친 개자추가 빠졌다.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이웃 사람들이 왕에게 고하라고 해도, 어머니도 나서 상을 구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개자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늘이 진나라를 없애지 않은 것은 반드시 주재자가 있기 때문인데 바로 문공이 그 사람이라며 말한다. ‘남의 재물을 훔치는 것도 오히려 도둑이라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공로를 탐하여 자신들의 공로로 삼으니 될 일인가(竊人之財 猶謂之盜 況貪天之功以爲己力乎/ 절인지재 유위지도 황탐천지공이위기력호)?’ 僖公(희공, 僖는 즐거울 희) 24년 조에 실려 있다.

문공이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알고 개자추를 불러 들였으나 산에 들어가 어머니와 함께 은신한다며 나오지 않았다. 나오게 하기 위해 불을 질렀지만 꺼진 뒤에 어머니를 업은 채 시체로 발견됐다. 사람들은 개자추를 기념하기 위해 淸明(청명) 하루 전날을 한식으로 삼고 각 가정은 불씨를 없애고 찬 음식을 먹게 됐다.

우리 주위에는 양보를 모르고 자신의 공만 내세우는 사람이 없을까. 개자추처럼 자신의 공을 숨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남의 공을 가로채는 사람은 더욱 멀리해야 하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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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24
수수방관袖手傍觀 - 팔짱을 끼고 옆에서 보다, 그대로 버려두다.

수수방관(袖手傍觀) - 팔짱을 끼고 옆에서 보다, 그대로 버려두다.

소매 수(衣/5) 손 수(手/0) 곁 방(亻/10) 볼 관(見/18)

옆에서 큰 일이 벌어졌는데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 필요도 없는 일이다. 자기에게 관계없는 일인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점잖은 사람이라도 도덕적인 일보다 흥미로운 일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남의 집 불구경 않는 군자 없다’는 속담까지 있는 판이다.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인데도 전혀 그 일에 상관하지 않겠다는 吾不關焉(오불관언)이나 너는 너 할대로 하고 나는 나 할대로 하겠다는 爾爲爾 我爲我(이위이 아위아, 爾는 너 이)와 뜻이 통하는 성어다.

손을 소매 속에 넣고(袖手) 옆에서 보고만 있다(傍觀)는 이 말도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요즘의 옷이야 소매가 좁아 손이 잘 들어가지 않지만 옛날 한복은 주머니가 없고 저고리 품이 풍성했다. 물건을 넣거나 손이 시릴 때는 주머니 역할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팔짱끼듯이 소매 속으로 팔을 넣기도 하는데 점잔을 떠는 행위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남의 급한 일을 도와줄 수가 없다. 간섭하거나 거들지 아니하고 그대로 버려둠을 이르는 말이 됐다.

이 성어는 일상에서 많이 사용되고 우리 고전에서도 비유한 것이 많이 나온다. 그래도 먼저 나타나는 곳은 唐(당)나라의 유명한 문학자이자 사상가 韓愈(한유, 768~824)의 글이라 본다. 문체개혁을 함께 했던 친구 柳宗元(유종원)이 먼저 죽었을 때 지은 ‘祭柳子厚文(제유자후문)’에서다.

한유의 자는 退之(퇴지), 유종원의 자가 子厚(자후)다. 부분을 보자. ‘나무를 잘 베지 못하는 사람은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얼굴에 땀이 범벅이 되는데(不善爲斫 血指汗斫/ 불선위작 혈지한작), 나무를 잘 베는 장인은 오히려 옆에서 쳐다보며 손을 거둬 옷소매 속에 넣고 있다(巧匠旁觀 縮手袖間/ 교장방관 축수수간).’ 유종원의 명문장이 널리 알려지기 전 떠난 것을 애달파하고 있다. 斫은 쪼갤 작, 旁은 곁 방.

복잡한 세상, 남에게 신경 쓸 여유도 없는 오늘날 이웃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많다. 죽은 지 며칠 만에 밝혀지는 고독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 중에도 화재사실을 알리고 목숨을 잃거나 위험천만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내 일같이 적극 돕는 의인이 나타난다. 직접 상관이 없다고 팽개치면 남도 자기를 똑 같이 대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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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25
실언실인失言失人 – 말을 잘 못하고, 할 때 말을 않아 사람을 잃는다.

실언실인(失言失人) – 말을 잘 못하고, 할 때 말을 않아 사람을 잃는다.

잃을 실(大/2) 말씀 언(言/0) 잃을 실(大/2) 사람 인(人/0)

말은 하기도 어렵고 안 하기도 어렵다. 말이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 모든 재앙이 그로부터 나온다고 口禍之門(구화지문)이나 禍生於口(화생어구)란 말이 겁을 준다. ‘침묵은 금’이라며 알고 있는 것이라도 굳이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을 높이 쳤다. 그러니 장부의 한 마디 말이 값지다며 丈夫一言 重千金(장부일언 중천금)이라고 말조심을 시켰다. 그러나 이 말은 말을 해야 할 때는 해야 가치를 발휘한다고도 볼 수 있다. 불의를 보고도 꾹 참는 것은 噤若寒蟬(금약한선)이란 말대로 찬바람 맞은 매미처럼 볼품없는 법이다.

실수로 말을 잘못하는 失言(실언)은 사람들이 평시에 자주 한다. 무심중에 하지 않을 말을 불쑥 하면 실언이고,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실례되는 말을 한 것도 실언이다. 孔子(공자)는 말할 만한데도 하지 않는 것을 포함하여 모두 실언이라며 그렇게 하면 결국 失人(실인), 사람을 잃게 만든다고 가르쳤다.

衛靈公(위령공)편에 있는 내용을 보자. ‘더불어 말을 할 만한데도 그와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을 것이고(可與言而不與之言失人/ 가여언이불여지언실인), 더불어 말하지 않아야 할 때인데도 그와 말을 하면 말을 잃는다(不可與言而與之言失言/ 불가여언이여지언실언),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않고 말을 잃지도 않는다(知者不失人 亦不失言/ 지자불실인 역불실언).’ 말을 할 때하지 않거나, 하지 않아야 할 때 헛소리를 하다간 친구라도 벌어질 수밖에 없다.

‘韓非子(한비자)‘에도 유세의 어려움을 말한 說難(세난)에서 이렇게 말한다. ’간단하게 줄여 말하면 지혜롭지 못하다 하고, 쌀 소금처럼 상세하게 주장을 펴면 말만 많다고 평가한다(徑省其說則 以爲不智而拙之 米鹽博辯則 以爲多而交之/ 경성기설즉 이위부지이졸지 미염박변즉 이위다이교지).‘ 자칫하면 실언이 되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말은 입 밖에 나오면 주워 담을 수 없다. 말이 직업인 사람들이 걸핏하면 설화를 입는다. 그러니 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하고 조심해야 한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고 했으니 꼭 해야 할 때를 잘 가려 최소한의 말만 해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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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26
모우전구冒雨剪韭 - 비를 맞으며 부추를 베다, 정성을 다하여 친구를 대접하다.

모우전구(冒雨剪韭) - 비를 맞으며 부추를 베다, 정성을 다하여 친구를 대접하다.

무릅쓸 모(冂/7) 비 우(雨/0) 가위 전(刀/9) 부추 구(韭/0)

봄부터 가을까지 수확되는 흔한 채소 부추는 표준말보다 사투리가 더 정겹다. 전라도에선 솔이라 하고, 경상도에서 부르는 정구지는 부부의 정을 오래 지속시킨다고 재미로 精久持(정구지)라 한역하기도 한다.

더욱 힘이 좋다고 破壁草(파벽초), 破屋草(파옥초)라 과장하는데 이에 비해 어디서나 잘 자라 귀한 취급은 못 받는다. 그러나 정성을 다하여 친구를 대접한 고사가 있어 우정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는데 바로 비가 오는데도 무릅쓰고(冒雨) 밭에 나가 부추를 베어 왔다(剪韭)는 중국 後漢(후한)의 郭泰(곽태)의 정성에서 비롯됐다. 부추 韭(구)는 땅 위에 무리지어 나 있는 부추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韮(구)로도 쓴다.

곽태는 자를 林宗(임종)이라 하고 높은 학문과 덕으로 주위의 숭앙을 받아 명성이 각지에 울렸다. 나중에 향리에 은거하며 수천에 달하는 제자를 가르쳤다. 외척과 환관의 전횡이 넘치는 세상에서도 언행을 신중히 하고 절조를 지켜 화를 면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한 친구가 밤에 비를 맞으며 찾아오자(林宗有友人 夜冒雨至/ 임종유우인 야모우지). 부추를 베어다가 전을 만들어 친구에게 대접했다(翦韭作炊餠食之/ 전구작취병식지)’고 했다. ‘자를 翦(전)’은 ‘가위 剪(전)’의 본자다. 南北朝(남북조) 때의 宋(송)나라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에 실려 전한다.

흔한 부추를 안주로 내온 것이 진수성찬일리 없다. 갑작스런 친구의 방문에도 부인에게는 술상을 차리게 하고, 자신은 비를 맞으며 밭의 부추를 베어다 대접한 그 정성이 값져 널리 칭송되었다. 곽태의 소박한 대접과 같이 마음에서 우러난 우정은 몇 가지 예를 더 들 수 있다.

광주리와 궤짝에 있던 것을 뒤엎어 안에 들어 있던 음식을 대접한 王羲之(왕희지)의 傾筐倒篋(경광도협, 筐은 광주리 광, 篋은 상자 협), 아들의 친구를 대접하기 위해 머리털을 잘라 술을 사 왔던 陶侃(도간, 侃은 강직할 간)의 어머니 이야기 截髮易酒(절발역주) 등이다. 도간은 陶淵明(도연명)의 증조부다.

우정이 신성하다고 해서 빚을 내어서까지 대접한다고 빛이 나는 것은 아니다. 정성을 다하여 대접하면 薄酒山菜(박주산채)라도 그 어느 것보다 귀하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 전하는 대조적인 笑話(소화)가 있다. 방문한 친구에게 채소 안주뿐인 술상을 내오며 가난 탓을 했다.

대장부는 천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며 친구가 타고 온 말을 잡겠다고 했다. 그러면 집으로 어떻게 가겠느냐고 물으니 뜰에 있는 닭을 빌리면 된다고 했다. 借鷄騎還(차계기환)은 박대한 주인에 대해 꼬집은 말이다. 성찬이 문제가 아니라 정성이 말해준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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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26
커피의 두얼굴-독 되는 커피, 약 되는 커피

커피의 두얼굴-독 되는 커피, 약 되는 커피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은 무엇일까. ‘김치’ 혹은 ‘밥’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커피’가 1위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표한 2013년 조사에 따르면 커피는 1주에 12.2회(1일 2잔정도), 배추김치는 11.9회 먹는다. 우리나라에서 커피 소비량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커피 전문점 숫자만 1만개를 넘어 지금도 한집건너 하나씩 생겨나고 있다. 아침에는 모닝커피, 점심에는 잠 깨려고, 저녁에는 입가심으로 커피 한 잔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커피 많이 마시면 건강에 해로운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면 ‘건강에 좋다’는 기사도, ‘나쁘다’는 기사도 함께 등장한다. 진실은 무엇일까?

< 좋은점>

가장 흥미로운 연구 결과는 커피와 대장암 발병과의 관계다. 2013년 미국 국립암연구소(nci)가 대장암 발병자 49만명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커피를 하루 6잔 이상 마시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대장암 위험이 최대 40%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있다. 2011년 경북대 식품공학부 강남주 교수 연구로, 동물 실험을 통해 페놀릭파이토케미칼의 일종인 클로로겐산이 대장암과 피부 노화 억제 효능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커피는 페놀릭파이토케미칼이 많은 식품이다.

커피가 당뇨병 발생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도 있다. 당뇨병 환자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40대 이상이 많이 걸린다는 ‘제 2형 당뇨병’에 특히 커피가 좋다는 것이다. 2004년 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대 연구진이 1980년부터 8~12년간 12만 5000명을 추적한 연구도 보자. 하루 6잔 이상 커피를 마신 사람이 전혀 마시지 않은 사람들보다 제2형 당뇨병 발생이 무려 50% 이상 감소했다. 커피의 주성분인 카페인 덕분일까? 연구팀은 디카페인 커피를 마신 사람들에서도 유사한 결과를 얻었다. 그런데, 카페인이 들어있는 홍차를 마신 사람들에게서는 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즉, 카페인과 무관하게 커피의 여러 성분이 당뇨병을 줄이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아직 정확한 성분은 밝혀지지 않았다. 커피가 비만 예방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도 많이 띈다. 커피를 마시면 체내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면서 지방을 더 많이 분해하기 때문이다. 2007년 스위스 로잔대 뤼델 교수팀이 2007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카페인 300mg(커피 3잔 정도)를 섭취하면 에너지 소비가 79kcal 증가했다. 이외에도 커피의 폴리페놀 성분이 지방 축적을 억제하는 단백질을 늘린다는 연구, 커피가 중추신경계의 식욕 억제 단백질을 활성화해 체중 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등도 있다.

<부작용>

커피 마시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혈압이 오른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커피가 혈압 상승과 관련이 없다는 반론이 있긴 하지만, 관련이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대표적인 연구 결과는 미국 존스 홉킨스대 연구팀이 소속 의대 남학생 1017명을 조사해 발표한 논문이다. 장기간 커피를 마시면 혈압이 오르고 고혈압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적정량 이하로 마시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연구가 있다.

하버드대 로페즈-가르시아 연구팀은 2008년 연구에서는 하루에 2~3잔 커피를 마시는 여성이 전혀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심장병 사망률이 25% 낮았다고 발표했다. 혈압, 관상동맥 질환이 있다면 하루 400ml 이하로 자제하면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임신부나 수유 중인 여성이 커피를 금해야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카페인이 아이의 신경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며, 혈관을 수축시켜 자궁으로 가는 혈류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일 300ml 이하, 즉 연한 아메리카노 1~2잔 정도는 마셔도 된다는 연구도 있긴 하다. dgac는 2015년 발표에서 임산부의 경우 커피를 하루 2잔 이하로 제한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그렇지만 대체로 전문가들은 임신 중에는 커피를 삼갈 것을 권한다.

숙취를 해소하기 위해, 잠에서 깨기 위해 아침에 진한 커피 한잔을 하곤 한다. 그렇지만, 모닝커피가 카페인 과다 현상을 일으켜 더욱 피로하게 만들 수 있다. 미국 국립군의관의대 스티븐 밀러 연구원의 연구를 보자. 오전 8~9시 사이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이 하루 중 가장 많이 분비되는데, 여기에 카페인이 더해지면 체내에 각성물질이 과다하게 쌓이게 된다. 즉, 모닝커피보다는 코티솔 비가 상대적으로 적은 오후 1시30분~5시 사이에 커피를 마시는 게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권장량>

어떤 것이든 과하면 독이 된다. 커피 역시 적당량을 즐기면서 마시면 득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권고하는 카페인 일일섭취권고량은 성인 400mg이다. 특히 커피를 마실 때 지방을 최소화해서 마시고, dgac의 권고대로 하루 300~400ml(3~4잔) 복용하는 것은 건강에 득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따라서 설탕-크림-커피가 섞인 믹스커피는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좋은 방법은 커피를 종이필터 등에 내려서 마시거나,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하는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364.html
kolaswqetsrq 11.02 14:27
사람의 관계는

사람의 관계는

우연은 1%

노력은 99%입니다.

아무리 좋은 인연도

서로의 노력 없이는

오래갈 수 없고

아무리 나쁜 인연도

서로가 노력하면

좋은 인연이 됩니다.

모든 인연이

좋은 인연이 될 수 있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타인보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고마운 사람이 되어주세요.

진실한 사람이 되어주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주세요.

착한 이별을 하고

그리운 사람으로 남아

오래도록 기억되는 사람이 되세요.

-법정 스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474.html
kolaswqetsrq 11.02 14:27
■ 미모의 후궁 백야단

■ 미모의 후궁 백야단

백야단(白也丹:?~1297)은 태산군(泰山郡:현재 전북 정읍) 사람인 시씨(柴氏)의 딸로서 처음에 궁인(宮人)으로 입궁하였다가 충렬왕의 후궁이 되었다. 무비(無比)라고도 불리는데, 무비란 비교의 대상이 없다는 뜻이니 매우 아름다웠을 것은 짐작이 간다. 예전 의종(毅宗)의 궁인 중에도 무비가 있었는데, 그녀 역시 미모로 왕의 사랑을 받은 바 있다. 백야단을 무비라고 부른 것은 미색(美色)과 왕의 총애가 예전의 무비 못지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성격도 상당히 자유분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색을 무기로 여러 남자들을 꼬드겨 간통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충렬왕은 세자 시절에 종친의 딸인 정화궁주(貞和宮主)와 혼인했고, 1274년(원종 15) 39세 때는 원나라 세조의 딸인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와 혼인하였다. 제국대장공주는 충렬왕과 나이가 20살 이상 차이 났지만 원나라 공주라는 것 때문에 그 위세가 왕을 능가할 정도였다. 게다가 질투도 매우 심해 정화궁주조차 제국대장공주가 죽을 때까지 왕과 동거를 못하고 별궁(別宮)에 기거할 정도였다.

충렬왕은 공주의 질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라산(都羅山·경기도 파주시 소재)으로 사냥을 갈 때면 반드시 백야단(무비)을 데리고 갔고, 한 번 가면 며칠씩 놀며 밀회를 즐겼다. 왕의 총애가 두터워지자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이 그녀 주위에 몰려들었고, 그녀의 세력을 등에 업고 여러 가지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고 영향력을 행사했다. 세자 원(謜)은 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충렬왕 23년(1297년) 음력6월 세자 원(謜)은 어머니인 제국대장공주(충렬왕의 妃)가 사망하자, 상(喪)을 치르기 위해 원에서 고려로 귀국하였다. 제국대장공주의 병사(病死)가 후궁의 투기 때문이라며 이를 조사할 것을 건의하였다. 충렬왕은 상중(喪中)이니 기다릴 것을 명하였으나, 세자 원은 측근에게 명하여 무비(無比)와 그 일당인 환관 최세연, 도성기, 전숙, 방종저, 중랑장 김근(金瑾), 궁인 백야진 등을 체포하고, 무비가 무당을 시켜 제국대장공주를 저주한 일을 문초하였다. 결국 저주에 가담한 무녀와 승려가 자백을 하면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났다.

같은 해 음력 7월, 무비와 최세연, 도성기, 전숙, 방종저, 김근, 백야진은 참수되었고 일당 40여명이 유배되었다. 즉 세자는 어머니의 죽음을 빌미로 충렬왕의 측근 세력을 제거했던 것이다. 백야단의 사례는 후궁들이 중요한 정치세력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세자 원은 무비를 죽인 뒤 충렬왕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진사 최문(崔文)에게 시집갔다가 과부가 된 김양감의 딸(훗날의 숙창원비)을 왕에게 바쳤다. 음력 10월, 세자는 원나라로 돌아갔는데, 충렬왕은 결국 왕위를 세자에게 물려줄 것을 허락하도록 원나라에 요청하였다. 마침내 세자는 이듬해 정월에 귀국하여 즉위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충선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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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28
■ 영조와 사도세자 10편

■ 영조와 사도세자 10편

사도세자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던 중대한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은 분명하고, 상당한 정도의 살인 행각을 저지른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사도세자가 사람을 많이 죽인 사실을 기록한 문헌은 참으로 많다. 한중록에 따르면, 세자가 내관 김한채를 죽여 그의 목을 잘라 들고 궁내를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혜경궁 홍씨가 노론 집안인 친정을 비호하려는 마음에 거짓말을 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이 사건은 실록에서도 드러나 있다. 세자 본인의 입으로도 그 사건을 시인하고 내관 김한채를 위해 휼전을 내리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친정을 비호할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세자였던 남편, 왕이 될 아들의 친부를 살인마(殺人魔)로 거짓으로 기록했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사도세자는 자신의 친자식을 낳은 후궁도 죽였고, 점치는 맹인도 죽였다. 여러 기록에 의해 확인된 것만 보더라도 사도세자가 죽인 사람의 수는 상당한 숫자에 이른다고 한다.

사도세자가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점은 영조가 세자를 폐하며 발표한 ‘폐세자반교문’의 첫머리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또한,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나경언의 고변이 있던 그날 밤 영조가 뜰에 엎드린 세자에게 소리친 그 첫마디 역시 살인에 대한 것이었다. 한중록에 의하면, 세자는 어머니인 선희궁 영빈 이씨의 내인(內人)을 죽인 사실도 나오는데, 어머니를 모시는 내인을 살해한 행위는 효를 강조하는 유교국가에서 용납될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점점 상태가 심각해져 심지어 친여동생 화완옹주에게도 칼을 들이댔고, 그 어머니조차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간신히 죽음에서 벗어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일련의 사건들을 종합해 볼 때 영조가 노론의 책략에 넘어가서 라던가 또는 노론의 압박에 의해 자기의 친자식을 죽이는 결단을 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영조는 이유야 어찌되었든 왕재(王才)를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을 넘어 더 이상 왕족으로도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이코패스(?) 세자를 더 이상 더 두고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영조에게 세자는 크게는 사직(社稷)과 작게는 가문의 수치이자 골치덩어리였고, 이런 세자가 보위를 잇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단순히 ‘폐세자(廢世子)’하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후왕인 정조가 생부를 ‘폐세자’ 상태로 두기도 어려울 것이고, 만약 영조 사후 세손이 왕이 되었을 때 왕의 아비가 살인 행각을 벌일 경우 아들인 왕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이즈음 세손(후일 정조)이 성군의 자질을 보였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한편, 신하들 입장에서도 이러한 세자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왕이 되어도 그렇고 ‘폐세자’가 되어 살아 있어도 그럴 것이다. 다만, 정조의 입장에서 보면, 생부(生父)가 희대의 살인마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무척 참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즈음의 승정원일기는 오려지고 세검정에서 씻겨 사라져버렸다. 오려지고 통째로 찢겨져 나간 곳이 100여 곳이 넘는다고 한다.

사도세자가 죽은 후 영조는 세자를 죽게 한 것을 매우 후회했고, 참회의 뜻으로 아들의 시호(諡號)를 직접 지어주었다. ‘생각할 사(思)’에 ‘마음 아파할 도(悼)’를 써 ‘사도(思悼)’라 지은 것이다. 묘지문도 친히 지었다. 하지만 이 일을 절대 거론하지 말 것을 엄명했다. 또한 아버지 사도세자를 사모하는 세손(훗날 정조)의 모습에 감동하여 영조는 ‘효손(孝孫)’이라 새긴 은인(銀印:은으로 만든 도장)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후 정국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영조의 처분을 지지하는 벽파와 사도세자의 죽음을 동정하는 시파로 당파가 나뉘었다. 사도세자의 죽음 후에도 영조는 14년이나 더 왕위를 지키면서 52년 장기 집권을 이어갔다. 자신을 빼닮은 능력 있는 손자 정조에게 후계 자리를 물려줌으로써 우리 역사 속에서 영·정조 시대라는 찬란한 정치·문화의 중흥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손자의 영광 뒤에는 비운의 아들이자,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있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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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29
■ 영조와 사도세자 8편

■ 영조와 사도세자 8편

아버지 영조는 세자가 왕이 되면 연산군 같은 폭군이 될 것 같은 불안감에 1762년(영조 38년) 5월 13일, 영조는 선원전(璿源殿)에 나아가 절을 올리고 세자를 불러 휘령전(徽寧殿)으로 나선 후, 문을 4-5겹으로 막고 총관 등으로 하여금 궁의 담쪽으로 칼을 뽑아들게 하고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세자는 관을 벗고 맨발로 엎드려 머리를 조아려라. 세자에게 자결을 명하노라!”

세손이 알고 뛰어와 울며 용서를 구했지만, 그 외 입시한 3정승, 승지 등 그 누구도 나서서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자진하라는 영조의 서슬 퍼런 명에 세자는 울며 애원했으나 영조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쩔 도리가 없음을 깨달은 세자가 자결하려 하자 신하들이 이를 막았고, 결국 왕은 뒤주를 내오게 하고 그 속에 세자를 가두었다.

영조는 세자에게 물과 음식조차 주지 못하도록 했다. 세자는 그 뒤주 안에서 더위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갇힌 지 8일째 되던 날 2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 모습을 세자의 아들 세손(世孫)이 지켜보았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아버지가 아들 앞에서 죽어가는 장면이 실제로 연출된 것이다. 다만, 실록에는 뒤주라는 말은 나오지 않고 “안에다 엄중히 가두었다(自內嚴囚).”라고만 되어 있는데, 이런 점에서 뒤주에 8일을 가두어 죽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도 상당히 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의 통론은 세자가 뒤주에서 8일을 보낸 후 죽었다는 것이다.

왜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을까? 왜 그것도 뒤주에 가두어 죽였을까? 사도세자의 죽음을 가장 자세히 해명한 자료는 혜경궁이 쓴 《한중록》이다. 《한중록》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을 다룬 부분은 순조 때 쓴 것이다. 임금의 할머니가 썼기에 다른 사람은 감히 쓸 수 없는 말을 담을 수 있었다. 그래도 사도세자의 사인과 직접 연관된 세자의 죄에 대해서만은 아주 완곡하게 표현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중록》을 사실로 굳게 믿어 사도세자는 미쳐서 죽었다고 말한 혜경궁 홍씨의 기록을 믿게 된 것이다.

하지만, 미쳤다고 해서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을 죽일 수 있을까. 이러한 의혹 끝에 새로운 설이 사인으로 제기되었다. 정조가 쓴 《사도세자의 행장》을 주자료로 삼아 사도세자가 당쟁의 와중에 희생되었다는 그럴 듯한 설(說)이 만들어졌다. 사도세자가 집권층인 노론을 미워하고 소론 편을 들다가 노론의 이간질로 영조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친정이 노론인 혜경궁이 남편을 죽인 데 자기 집안이 앞장선 것을 변명하기 위해서 세자를 미치광이로 몰았다는 것이다. 미쳐서 죽었다는 것보다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그럴 듯한 새 가설이 또 하나의 통설이 되었다. 각자의 위치와 입장에 따라 다른 기록과 해석을 함으로써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명확하게 규명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오랫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사도세자에 대한 내용을 대체로 정설(正說)로 알고 있다.

- 9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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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30
■ 영조와 사도세자 6편

■ 영조와 사도세자 6편

세자는 신하들의 관서행 거론에 “대조(영조)께서 아시도록 하려는 수작이 아니냐.”며 불만과 불안의 기색을 드러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조가 이 일을 알게 된 것은 몇 달이 지난 그 해 9월이었다. 그러나 상황을 파악한 영조는 뜻밖에도 승지들과 관원들을 벌주는 선에서 이 일을 조용히 덮었다. 더 이상 실망할 것도 없고 세자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다는 느낌이다.

조선 왕실의 가장 비참한 사건 중 하나인 임오화변은 1762년(영조 38년) 5월 13일에 일어났다. 이 날 실록의 기록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세자의 천품과 자질이 탁월해 임금이 매우 사랑했는데, 10여 세 뒤부터 점차 학문에 태만하게 되었고, 대리청정한 뒤부터 질병이 생겨 천성(天性)을 잃었다. 정축년(1757년) 무인년(1758) 뒤부터 세자의 병 증세가 더욱 심해져 발작할 때는 궁비(宮婢)와 환시(宦侍)를 죽였고, 죽인 뒤에는 후회하곤 했으며, 임금이 그때마다 엄한 하교로 절실하게 책망하니, 세자는 두려워 질병이 더하게 되었다.』

사도세자의 운명이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치닫게 되는 임오화변의 직접적인 계기는 나경언의 고변(告變)이었다. 1762년 부원군 김한구와 홍계희, 윤급 등 노론 세력은 나경언(羅景彦)이라는 시정잡배를 매수하여 세자를 고변하게 했다. 나경언이란 자는 노론의 주요 인물인 윤급의 집에서 청지기를 지낸 자로 매우 어려운 형편에서 살고 있던 자였다.

노론에 의해 매수된 나경언은 세자를 무고(誣告)하면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것도 모른 채 세자의 비행 10조목을 적은 봉서(封書)를 직접 왕에게 올렸다. 나경언이 고변한 내용은 세자가 주변의 내시들과 결탁하여 역모(逆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사도세자는 정말로 역모(逆謨)를 꾸민 것일까? 일각에서는 이를 사실로 인정하기도 한다. 세자가 영조 37년 3월에 자기 대신 내관을 앉혀놓고 영조 몰래 평양에 다녀온 일이 있는데, 바로 이 평양행이 영조를 몰아내기 위한 쿠데타를 준비하는 움직임이었으며, 이 때문에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추측이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도 힘들었던 세자가 과연 쿠데타를 모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세자가 평양에서 돌아오자 평양 밀행을 문제 삼은 유생들의 상소가 잇따라 올라올 정도로 세자의 움직임이 공공연히 간파당하고 있던 상황이었으므로, 역모(逆謨)를 꾸미기는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어 사도세자가 정말 역모를 꾸몄는지, 아니면 모함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일개 시정잡배가 왕을 직접 만나 봉서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사도세자를 역모로 얽으려고 작정한 홍계희, 이해중, 홍봉한 등 노론 대신들의 흉계가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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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31
■ 영조와 사도세자 4편

■ 영조와 사도세자 4편

대리청정이 시작된 뒤에도 세 번의 양위 파동이 있었다. 대리청정이 시작된 3년 뒤 어느 날 영조는 양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세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극력 만류했다. 그러자 영조는 “내가 시를 읽을 것이로되 네가 눈물을 흘리면 효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전교(傳敎)를 거두겠다.”라고 하였다.

그 시는 시경(詩經)의 한 편인 ‘육아시(蓼莪詩)’인데, 그 내용은 『부모가 자신을 낳고 기르는 데 수고하면서 큰 인물이 될 것을 기대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해 부모에게 죄스럽다.』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세자는 그 시의 끝부분에 이르자 부왕 앞에 엎드려 눈물을 줄줄 흘렸고, 영조는 양위 전교를 거두었다.

이 날 세자는 물러나와 뜰로 내려가다가 기절해 일어나지 못했고, 결국 청심환을 먹고 한참 뒤에야 말을 할 수 있었다. 세자는 부왕을 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부왕이 찾는다하면 불안감이 극도로 올라 정상인으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때 세자의 나이 22세, 이즈음 세자는 부왕을 극도로 싫어하는 정신 질환에 걸린 것으로 보인다.

세자가 대리청정을 하게 되자 남인, 소론, 소북 세력 등은 그를 등에 업고 정권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에 노론 세력과 그들에 동조하던 계비 정순왕후 김씨, 숙의 문씨 등이 세자와 영조 사이를 벌여놓기 위해 이간질을 하였다. 세자에 대한 정순왕후, 숙의 문씨 등의 무고에 따라 영조는 자주 세자를 불러 질책하였으며 이 때문에 세자는 정신적 압박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함부로 궁녀를 죽이거나 왕궁을 몰래 빠져나가는 등 돌발적인 행동들을 하기도 했다.

세자에 대한 질책은 혹독하고 모질었으며, 세자가 관(冠)을 벗고 뜰에 내려가 석고대죄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땅에 머리를 짓찧은 일이 다반사였다. 가장 극적인 것은 영조가 세자의 반성문을 받아보고 세자를 불러 몇 가지를 물어본 본 후 상복을 입고 걸어서 숭화문(崇化門) 밖까지 나와 맨땅에 엎드려 곡을 한 일이었다. 당연히 세자도 상복을 입고 뒤에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신하들이 엎드려 울면서 “전하께서 어찌 이런 거조(擧措:행동)를 하십니까?”고 묻자, 영조는 “무엇을 뉘우치느냐 물었는데, 동궁은 후회한다고만 말하면서 그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남의 이목을 가리는 데 불과하다.”라고 하였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긴장관계는 계속 이어졌다. 사도세자는 영조에 대한 두려움으로 영조를 뵙는 의례마저 빼먹는 일이 잦아졌다. 사도세자에게는 의대병(衣襨病)이 있었다. 의대증은 옷을 입는 것을 두려워하는 증상으로, 오늘날 현대 의학에 정식으로 있는 병명은 아니다.

의대병은 보통 의대(衣襨:왕실 옷) 한 가지를 입으려고 열 벌이나 이삼십 벌을 갖다놓으면 갑자기 옷을 태우는 이상한 병이었다. 한 벌을 순하게 갈아입으면 천만다행이었고, 시중을 드는 이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의대를 입지 못했다. 아마도 "이 옷을 입으면,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세자로 하여금 옷을 입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했던 것 같다.

-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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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32
■ 영조와 사도세자 2편

■ 영조와 사도세자 2편

세자는 8세 때 동갑내기인 홍봉한의 딸과 혼인했다. 이 사람이 바로 《한중록》으로 유명한 혜경궁 홍씨이다. 홍봉한은 딸이 세자빈으로 간택되기 전까지는 두각을 별로 나타내지 못했다가, 딸의 간택을 계기로 도승지(都承旨)에 발탁된 뒤 영의정에까지 오르면서 영조 중·후반 노론의 대표적 대신으로 활동했다. 세자는 혜경궁 홍씨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낳았으나 첫아들은 2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둘째 아들이 조선시대의 대표적 현군(賢君)으로 평가받는 정조가 된다.

뭘 해도 마냥 귀여운 어린 시절은 가고, 세자에게도 본격적인 세자수업이 시작되었다. 대략 10세 정도 되던 때부터 세자를 향한 영조의 각별한 사랑은 식기 시작했다. 나이에 비해 체격도 크고 힘도 셌던 세자는 공부보다 무예를 더 좋아했고, 그나마 공부도 영조가 강조하는 경전(經典)보다는 잡학(雜學) 쪽에 관심이 많았다. 영조는 이런 세자의 모습에 조금씩 실망을 하면서 세자를 질책하는 경우가 많아져 갔다. 학문에 열중하지 않는 세자를 탐탁치않아 하던 영조는 어린 세자에게 엄격한 지침을 하달했다.

“내가 동궁으로 있을 때는 거의 휴식할 겨를이 없었고, 연강을 거른 적이 없었으며, 술도 좋아하지 않았다. 오늘 이후에는 매월 초하루에 쓰기 시작해 그믐까지, 어느 날에 소대하고 어느 날에 차대했으며, 어느 날에 서연하고 어느 날에 공사를 보았으며, 어느 날에는 무슨 책 무슨 편을 읽었고 어느 날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 등을 기록해 내가 볼 수 있도록 준비하라.”

영조는 사도세자를 수시로 데리고 다니면서 국정(國政)을 익히게 했고, 1744년 9월에는 친히 권학문(勸學文)을 지어서 설명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도세자는 학문하는 것을 싫어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교육에 큰 관심을 기울였지만 세자는 부왕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세자는 말이 없고 행동이 날래지 못해서, 성격이 세심하고 민첩했던 영조를 늘 답답하고 화나게 만들었다. 또 커가면서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고 칼싸움이나 말 타기 같은 놀이에만 열중해 학문에 정진하기를 바라는 영조의 기대를 저버리기도 했다. 영조는 자신의 기대와 어긋나는 세자를 따뜻하게 타이르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꾸중하거나 흉을 보는 등 미워하기 시작했다.

영조는 아들 세자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했고 어릴 적부터 아들을 매우 엄하게 다루었고, 사도세자는 그 스트레스 때문에 폭력성을 자주 보였다고 한다. 영조가 나이가 들자 세자에게 대리청정(代理聽政)을 지시했다. 대리청정은 기회이자 위기였다. 국왕을 대신해 정무를 잘 처리할 경우는 능력을 인정받고 입지를 다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신뢰를 잃고 도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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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32
■ 영조와 사도세자 1편

■ 영조와 사도세자 1편

조선시대 왕실에서 벌어졌던 최대의 비극을 말하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이 바로 영조에 의한 사도세자의 죽음일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굶겨 죽인 이 비극적인 사건은 ‘임오화변(壬午禍變)’으로 불린다. 영조는 탕평책과 균역법 같은 정책을 통해 백성들을 위한 서민 군주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비정한 아버지로도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폈던 국왕이 자신의 친아들에게는 왜 그토록 잔인하고 비정했던 것일까?

제 2의 태평성대를 이룬 영조는 개인적으로 불행한 왕이기도 하다. 조선의 국왕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고(82세), 가장 오래 재위한(52년) 영조는 정성왕후, 정순왕후 등 왕비 2명과 후궁 4명을 두었는데, 왕비에게서는 후사를 보지 못했고 후궁에게서만 2남 12녀를 두었다. 영조의 첫 번째 아들(효장세자)는 병으로 10살에 죽고, 40이 되어서야 겨우 둘째 아들을 보았다.

1735년 1월 21일 창경궁 집복헌에서 영빈 이씨에게서 태어난 하나뿐인 아들 이선(李愃), 그가 바로 사도세자(思悼世子)이다. 영조는 41세, 영빈 이씨는 당시로서는 노산(老産)인 39세였다. 영빈 이씨 또한 영조의 모친인 숙빈 최씨와 마찬가지로 천한 나인 출신이었다.

영조는 즉시 둘째 아들을 중전의 양자로 들이고 원자로 삼았으며, 두 살 때 세자에 책봉되었다. 이선은 조선 왕조 사상 최연소 원자이고 최연소 세자가 되었다. 영조가 세자를 죽인 이유가 무엇일까에 관해서는 여러 설(說)이 분분하다. 당쟁의 희생양이라거나 사도세자가 더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미쳐서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거나 하는 등의 내용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사도세자에게 영조는 물론 대신들도 매우 기대가 컸다. 그 종말은 참혹했지만, 처음에 영조와 이선은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아버지와 아들, 임금과 왕자의 관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임금과 왕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세자는 순조롭게 성장했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세자는 매우 총명했고, 영조의 기쁨가 기대는 그만큼 더 커졌다.

세자는 만 2세 때부터 글자를 알았다고 한다. ‘왕’이라는 글자를 보고는 영조를 가리키고 ‘세자’라는 글자에서는 자기를 가리켰다고 한다. 얼마 후에는 ‘천지왕춘(天地王春)’이라는 글자를 쓰자 대신들이 서로 다투어 가지려고 했고, 영조가 기뻐하며 세자가 쓴 것을 입시(入侍)한 대신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이 외에도 어린 시절 세자의 영민함을 나타내는 기록은 많이 있다.

세자가 천자문을 읽다가 ‘사치할 치(侈)’자를 보고는 입고 있던 자줏빛 비단으로 만든 구슬 꾸미개로 장식한 모자를 가리키면서 ‘이것이 사치한 것’이라고 하고는 즉시 벗어버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어린 시절 세자의 영특함은 부왕(父王)과 왕실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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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33
◇ 학교에 매일 같이 지각한다는 선생님 말에 등교하는 아들 뒤따라갔던 엄마가 마주한 상황

◇ 학교에 매일 같이 지각한다는 선생님 말에 등교하는 아들 뒤따라갔던 엄마가 마주한 상황

하루는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은 엄마가 있었습니다. 요즘 이상하게도 아들이 자꾸 학교에 지각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분명이 집에서 일찍 출발하는데 왜 지각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죠. 하지만 아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상황.

보다못한 엄마는 아이가 등교하는 길을 몰래 따라가보기로 했는데요. 사실 학교는 집에서 불과 10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었죠.

아이는 평소처럼 학교를 가고 있는데 잠시후 길가에서 뜻밖의 방해꾼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름아닌 고양이였습니다.

길가에 고양이를 발견한 아이는 후따닥 달려가서는 고양이를 품에 안아주는 것은 물론 손으로 쓰다듬는 등 예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학교 가야 할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순간 고양이를 보자마자 고양이에게 관심이 몰려든 탓에 학교 가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뒤늦게 아이가 항상 학교에 지각하는 이유를 알게 된 엄마. 하지만 그런 아이를 혼낼 수는 없었습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의 마음이 너무도 예뻤기 때문이었죠.

우연히 마주친 고양이를 외면하지 않고 다가가서 예쁘다고 손으로 쓰다듬어주고 어울려 놀아주느라 매일 같이 학교에 늦게 가는 아이의 순수한 모습에 엄마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고 하는데요.

학교 가다 말고 길가에서 마주친 고양이에게 관심을 쏟아붓느라 학교에 지각하는 아이 모습. 만약 여러분이라면 이 모습을 보았을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편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이런 지각은 언제나 환영", "역시 아이는 아이네요", "마음이 너무 예쁘고 순수해", "보는 내내 감동"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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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34
■ 탕평책과 탕평채 3편

■ 탕평책과 탕평채 3편

영조는 백성들이 반란 세력에 합류한 일차적인 원인을 당쟁으로 판단하고 앞으로는 당(黨)과 사(私)를 옹호하는 마음 대신, 모두가 한마음으로 협력해 중흥의 기틀을 삼자고 호소했다. 무신란을 당파를 없애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영조의 정치적 의지가 보이는 장면이다. 무신란 이듬해인 1729년 영조는 기유처분(己酉處分:당파 간 의리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쓰겠다)을 통한 탕평을 반포했다.

영조는 당쟁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 사림(士林) 등 유학자 집단의 정치 관여를 계속 견제했다. 은둔한 산림(山林)의 공론(公論)을 인정하지 않았고, 사림 세력의 본거지인 서원을 대폭 정리했다. 1741년 4월 8일 영조는 하교를 내려 팔도의 서원과 사묘(祠廟) 가운데 사사로이 건립한 것을 모두 없애고 이를 어길 경우 수령과 유생에게 엄한 처벌을 가하도록 했다.

영조가 탕평책을 적극 실천한 것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정책을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영조 시대는 각 분야에서 이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정치적 안정을 추구한 탕평책이 밑바탕이 된 덕분이다.

이렇듯 영조는 탕평책을 강력히 추진했으나, 이는 겉으로는 성과가 있는 듯했을 뿐 속으로는 서로 간의 대립이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양측의 휴전으로 정국이 안정된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날이면 날마다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는 지루한 논쟁만 계속되자 영조도 지쳐서 다시 자신의 원래 기반인 노론으로 기울게 되었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놓은 ‘탕평채’는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의 음식상에 처음 올랐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탕평채는 묵에 다른 나물을 섞어 무친 요리인데, 18세기 조선의 세시 풍속을 기록한 책 《경도잡지》, 19세기 《동국세시기》 등에 탕평채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영조가 신하들과 탕평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탕평채’라는 요리를 내놓았다는 이야기는 1940년 홍선표라는 인물이 쓴 《조선요리학》이라는 책에 처음 나온다. 정말로 탕평채가 탕평책에서 유래했고, 영조가 만들어 신하들에게 권한 음식이었다면 영조 시대의 기록이나 조선시대 어느 문헌에라도 그런 내용이 있을 법 하지만, 아직 이 주장을 뒷받침할 정식 기록은 없다.

탕평채에는 전통 사회에서 동서남북을 상징했던 4가지 색이 모두 들어간다. 녹두로 만든 청포묵(흰색), 쇠고기볶음(붉은색), 김(검은색), 데친 미나리(푸른색)가 주재료이다. 동양에서 서쪽은 흰색(白), 동쪽은 푸른색(靑), 남쪽은 붉은색(赤), 북쪽은 검은색(黑)을 의미한다. 그래서 탕평채 재료의 색깔이 조선시대 붕당정치를 펼쳤던 사색당파를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 역시 근거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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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35
■ 탕평책과 탕평채 2편

■ 탕평책과 탕평채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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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蕩平)은 원래 유교 경전 서경(書經)에서 나온 말이다. 서경은 사서오경(四書五經)의 하나로, 고대 중국 정치에 관한 책이다. 이 책에는 주나라 무왕이 당대의 현자(賢者)인 기자(箕子)를 찾아가 세상을 잘 다스릴 방법을 물었다는 얘기가 실려 있다. 무왕의 질문에 기자는 무편무당 왕도탕탕 무당무편 왕도평평(無偏無黨 王道蕩蕩 無黨無偏 王道平平)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치우침이 없으면 나라의 정치가 큰 바다처럼 잔물결 없이 평온하고 고르다는 뜻이다. 여기서 따온 말이 탕평(蕩平) 혹은 탕탕평평(蕩蕩平平)이다.
",

‘탕평’이란 말은 조선 전기 연산군과 중종 때부터 실록에 나오기 시작해서 당파 싸움이 기승을 부리던 숙종 시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상소문에도 ‘탕평’이란 단어가 자주 쓰였고, 숙종의 아들 영조 대에 이르면 ‘탕평’은 시대의 과제가 되었다. ‘탕평’이란 단어는 영조실록에만 300번 넘게 등장할 정도이다.

영조는 당쟁의 폐단을 강력히 지적한 뒤 “마땅한 인재를 취해 쓸 것이니, 당습에 관계된 자를 내 앞에 천거하면 내치고 귀양을 보내 국도(國都)에 함께 있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의 마음이 이런데도 따르지 않는다면 나의 신하가 아니다.”라고 탕평에 적극 호응할 것을 독려했다.

영조(英祖)는 즉위 초부터 탕평(蕩平)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영조의 탕평책은 1727년 탕평교서를 반포하고, 1742년 성균관에 탕평비를 건립하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오늘날 이 탕평비는 성균관대학교 정문 왼편에 있다. 성균관대학교의 정문자리가 옛날 성균관의 입구였기 때문이다. 영조는 1742년에 미래의 관료 양성소인 성균관 앞에 탕평비(蕩平碑)를 세우고, 당파와 관계없이 관리를 등용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탕평비에는 『주이불비 내군자지공심(周而不比 乃君子之公心) 비이불주 식소인지사의(比而不周 寔小人之私意)』라 하여 『편당을 짓지 않고 두루 화합함은 군자의 공평한 마음이요, 두루 화합하지 아니하고 편당을 하는 것은 소인의 사심이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구분을 탕평(蕩平)과 편당(偏黨)에 두면서 ‘탕평’이 공(公)이자 바른 것임을 선언한 영조의 의지가 엿보인다.

영조 초반 의욕적으로 추진됐던 탕평책은 영조 4년인 1728년 이인좌, 정희량, 박필몽 등 소론과 남인 급진파 등이 일으킨 무신란(戊申亂)으로 위기를 맞았다. 반란의 주도층은 선왕 경종의 억울한 죽음을 천명하였다. 탕평책을 추진했지만 여전히 노론 중심 정국 운영에 불만을 품은 정치 세력과 일부 백성이 동조하면서 반란군 규모는 커졌다.

반군 지도자 이인좌는 한때 청주성을 점령하면서 위세를 떨쳤으나 소론 출신 오명항이 이끄는 정부 토벌군에 의해 진압됐다. 무신란(戊申亂)은 소론과 남인 급진파가 주도해서 일으켰기에 영조는 반란 토벌 후 노론 중심의 정치체제를 끌고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조는 반란의 원인을 ‘조정에서 붕당만을 일삼아 재능 있는 자를 등용하지 않은 데 있다’고 파악하고, 무신란을 탕평책을 더욱 공고히 추진할 계기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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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35
■ 탕평책과 탕평채 1편

■ 탕평책과 탕평채 1편

조선 21대 왕 영조(1694~1776년)는 정조와 더불어 조선 후기 정치, 문화의 중흥을 이룩한 군주이다. 영조는 1694년 아버지 숙종과 무수리 출신인 어머니 숙빈 최씨 사이에서 출생했다. 늘 신분적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영조는 왕세제 시절부터 당쟁의 중심에 있었다.

숙종 후반은 노론과 소론, 남인 간의 치열한 당쟁이 전개됐던 만큼 영조가 왕위에 오르는 과정 역시 순탄하지 못했다. 장희빈 소생의 이복형인 경종이 소론의 지원에 의해 왕위에 오른 후, 영조는 노론의 적극적 후원을 받았지만 왕세제(王世弟)의 위치는 살얼음판과 같았다.

경종이 즉위한 후 신임옥사가 발생하고 노론 4인방이 희생되면서 영조에게도 정치적 위기가 왔다. 한순간 방심하면 차기 후계자에서 ‘역모(逆謀)의 중심’으로 목숨까지 위테로운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경종이 갑자기 서거하면서 영조는 1724년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영조는 즉위 과정에서 당쟁의 참상을 뼈저리게 느꼈고, 왕위에 오른 후 취임 일성(一聲)으로 강조한 것이 바로 탕평(蕩平)이다.

탕평은 국정의 기본 방향을 모든 당파가 고르게 참여하는 정책을 가리킨다. 사실 탕평에 대한 논의는 영조 이전인 숙종대 후반에도 박세채 등에 의해 제기되었다. 당파 간의 대립으로 정국이 어수선해지면서 해결책으로 탕평론이 제시된 것이다. 하지만 숙종이 시도한 탕평책은 명목에만 그쳤고, 노론 중심으로 정국이 운영되면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게다가 숙종은 왕권 강화 차원에서 정국 상황에 따라 한 당파를 대거 내몰고 반대당에 정권을 모두 위임하는 편당적인 조처를 취했다. 그리하여 3번의 환국(換局)이 일어났다. 숙종 말년에는 외척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노론 중심의 독주가 계속되었다. 경종 시절에도 소론 온건파인 조문명 등은 왕세제인 영조를 보좌하면서 탕평의 필요성을 얘기했지만, 경종이 강력한 왕권을 행사할 수 없었기에 탕평책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두 대에 걸쳐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던 탕평책은 영조가 즉위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영조는 즉위하자마자 탕평을 국시(國是)로 내세우고 이를 널리 선언했다. 탕평에 대한 영조의 강한 의지는 1727년(영조 3년) 7월 4일 내린 하교에 잘 나타나 있다.

『아! 모든 신민은 모두 내 가르침을 들으라. 붕당(朋黨)의 폐해가 ‘가례원류(조선 현종 때 유계가 가례에 대한 글을 분류·정리한 책)’가 나온 뒤부터 점점 더해졌다. 아! 마음 아프다.

지난 신축년(1721년)과 임인년(1722년)의 일은 그 가운데 반역할 마음을 품은 자가 있기는 하나 다만 그 사람을 죽여야 할 뿐이지, 어찌해 한편의 사람을 다 죽인 뒤에야 왕법을 펼 수 있겠는가? 옥석을 가리지 않고 경중을 가리지 않아 한쪽 사람들이 점점 불평하게 하는 것은 이 또한 당습(黨習)이다. (중략) 이미 반포하고 알렸어도 전만 못하면 조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죄로 다스릴 것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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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36
치매 예방 생활 수칙

치매 예방 생활 수칙

- 식사는 자기 양의 80% 정도 섭취.

- 지나친 흡연, 음주는 삼가야 함.

- 운동은 규칙적으로 하며, 과격한 운동은 삼가야 함.

- 생의 목표를 세우고 꿈과 미래가 있는 생활 영위.

- 친구들과 자주 접촉, 사교 모임, 종교 생활에 적극 참여.

- 몸 청결, 화장, 옷 매무새는 물론 성 생활에도 관심.

- 유행에도 민감.

-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임.

- 새로운 정보에 항상 접함.

- 긍정적 사고와 적극적인 생활 자세.

- 뇌세포를 자극할 수 있는 취미생활(독서, 바둑, 장기, 컴퓨터).

- 어학훈련은 뇌활동을 활발하게 하여 치매 예방에 효과

바람직한 노년기 영양 섭취

- 아침 먹고 간식 자주 : 소화기능이 떨어져 적게 자주 먹음.

- 하루에 물 6, 7잔 : 탈수 예방과 신진 대사 촉진.

- 열량은 약간 적게 : 배가 부르면 즉시 식사 중단.

- 단백질은 충분히 : 활동과 튼튼한 혈관을 위해 필수적.

-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 노화를 늦추고 혈관을 보호.

- 우유를 즐기고 야외로 : 골다공증 막고 우울증을 완화.

- 약은 꼭 필요한 것만 : 일부 약은 영양소의 섭취, 흡수를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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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36
한국인의 장수비결

한국인의 장수비결

- 무조건 소식하지 말고, 젊었을 때보다 적게 먹어라.

-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 정해진 시간에 일정한 양만 먹어라.

- 튀긴 음식을 피하고 짠 음식을 멀리하라.

- 간염, 당뇨병을 조심하라. 백세인은 간염, 당뇨병이 없다.

- 일하는 사람의 평균 수명은 노는 사람보다 14년 길다.

- 자식에게 의존하지 말라. 문제는 자신이다.

- 바쁜 노인은 치매가 없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대화하라.

- 시계추처럼 살아라. 규칙적인 기상, 식사, 노동, 취침이 건강 비결이다.

- 친구를 많이 사귀어라. 외로움은 장수의 적이다.

- 등산은 장수운동이다.

- 중산간(中山間)지역에 장수 마을이 많다.

암 예방 7대 생활 수칙

- 담배를 피우지 말라.

- 지방과 칼로리를 제한하라.

- 과도한 알코올 섭취를 제한하라.

- 짜고 맵거나 불에 직접 태운 음식을 삼가라.

- 과일과 채소, 곡물을 충분히 섭취하라.

- 적당한 운동을 하되 무리하지 마라.

- 스트레스를 피하고 기쁜 마음으로 생활하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353.html
kolaswqetsrq 11.02 14:37
부부간의 교통법규

부부간의 교통법규

부부간에도 지켜야 할 교통법규가 있다고 합니다.

부부가 지켜야 할 교통 법규 열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

일방통행은 없습니다.

부부간에 일방통행은 없습니다.

언제나 쌍방통행이죠!!

모든 문제는 대화와 협조 속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

차간 거리유지입니다.

앞차와 뒤차가 너무 가까우면 충돌하기 쉽고

너무 멀어지면 다른 차가 끼어듭니다.

따라서 부부사이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경적금지입니다.

자동차의 경적으로 인한 피해가 큰 것처럼 당신의 높은 목소리는

상대방에게 스트레스를 줍니다.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목소리부터 낮춰야 합니다.

넷째.

추월금지입니다.

무리하게 경쟁적으로 추월하면 서로 부딪혀서 대형사고가 납니다.

부부가 상대방을 경쟁상대로 생각하거나 상대방을 무시하면 사고가 납니다.

당신 같은 주제에 하며 업신여기는 말은 금물입니다.

부부는 경쟁상대가 아니라 영원한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차선위반입니다.

차선은 보기 좋으라고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생명선입니다.

부부는 하나라고 하지만 서로의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각자의 차선을 가면서 서로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여섯째.

신호위반입니다.

신호위반을 자주 하는 운전자는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이 큽니다.

배우자의 얼굴이 빨간 신호인지 파란 신호인지 알고 행동해야 현명한 사람입니다.

또한 파란 신호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인내심도 필요합니다.

일곱째.

차량진입금지위반입니다.

차가 들어가서는 안 될 길이 있습니다.

그런 길에 들어갔다가 뜻밖의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개인적인 것을 지나치게 들추어내서는 안 됩니다.

서로가 아끼며 존경하면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덟째.

일단정지 지키기입니다.

일단정지를 무시하고 달리면 사고를 내는 수가 있죠!!

부부가 대화할 때에도 일단정지를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면 곤란합니다.

일단정지를 하여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들어 보나마나 뻔 하지 하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아홉째.

정면충돌을 피하는 것입니다.

내 차선으로 상대방의 차가 달려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내 차선으로 잘 가고 있다며 그대로 달린다면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죠!!

부부간에도 내 주장만 옳다고 우긴다면 정면충돌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상대가 차선을 위반하여 달려온다면 일단 피하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열번 째.

수시로 점검하는 것입니다.

자동차는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점검을 하다 보면 문제를 발견하고 사전에 사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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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38
음양탕陰陽湯의 효능

음양탕(陰陽湯)의 효능

음양탕은 동의보감에도 소개된 건강법으로 간단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쉬우면서도 효과는 매우 뛰어난 방법이다.

▣ 음양탕 만들기

컵에 팔팔 끊는 뜨거운 물을 반이나 삼분의 2/3정도 먼저 넣고, 이후 찬물을 조금 넣어 뜨거운 물과 찬물이 상하 순환 될 때 즉시 복용하는 방법으로 질병예방과 건강회복에 아주 좋은 방법이다.

※주의: 반드시 먼저 뜨거운 물을 붓고 그 위에 찬물을 부은 뒤에 바로 복용한다.

▣ 음양탕의 원리

1. 뜨거운 양 기운의 물과 차가운 음적인 성질의 물이 만나서 상하순환할 때 복용,

2. 몸의 상하의 기운을 원활하게 소통케(水氣는 상승하여 머리를 맑히고 火氣는 내려와서 아랫배를 따뜻하게 함)하는 약수(藥水)의 역할을 한다.

3. 이것만으로도 소감소체(감기와 소화불량 등)효과가 있다.

▣ 체질에 따라 응용하는 방법(酸收辛散: 시큼한 맛은 거둬들이고, 매운맛은 발산)

1. 몸이 마르시다면 유자차 음양탕, 오렌지쥬스 음양탕을 드세요.(태양인,소양인)

2. 몸이 뚱뚱하면서 냉하다면 생강차 음양탕을 복용하세요.(태음인,소음인)

3. 뚱뚱하고 냉한 체질은 뜨거운 물의 비중을 많이 하고 찬물을 적게 한다.

4. 마르고 열이 많은 체질은 찬물의 비중을 많이 한다.

5. 병이 하초에 있으면 공복에 마신다.

6. 병이 상초에 있으면 미지근한 정도로 식후에 마신다.

7. 병이 중간쯤에 있으면 식간에 마신다.

▣ 음양탕의 활용

1. 음양탕은 상비약으로도 아주 유용하다. 갑자기 배탈이 났는데, 약도 없고, 침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응급조치로 음양탕을 복용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2. 암환자의 구토나 갑작스런 기절시 음양탕을 조금씩 복용하면 통증이 가라앉는다.

3. 아침, 일어나자마자 공복에 음양탕을 마시면 밤새 이완되어 있는 몸을 무리 없이 깨울 수 있고, 속이 편해지며, 장을 건강하게 한다.

4. 여름철 차가워지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수시로 마시면 배탈이나 냉방병, 감기 등을 예방할 수 있다.

5. 냉수에 익숙한 우리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 있으나, 건강을 위해서는 제일 좋은 음료수라고 할 수 있다.

6. 뜨거운 양의 기운과 차가운 음의 기운이 적절히 조화되어, 우리 몸안에서 음양의 조화를 도와주는 역할을 함으로 사우나 등 땀을 많이 흘리고 나서 마시면 좋다.

7. 무더운 날씨에는 냉수를 찾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속이 너무 차게되어 탈이 나기 쉬운 몸 상태로 변하게된다.

더운 바깥 기온 때문에 땀을 흘리고, 몸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온도를 낮추려고 하게 된다.

이때 계속 냉수를 마시면 속이 냉하게 되어 배탈을 일으킨다.

더운 여름일수록 따뜻한 물을 마시는 것을 권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956.html
kolaswqetsrq 11.02 14:38
◇ 어린애들도 아니고..이준석 악수 거부에 배현진은 어깨 찰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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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애들도 아니고..이준석 악수 거부에 배현진은 어깨 찰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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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식 석상에서 자주 충돌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배현진 최고위원 간 갈등이 23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두 사람 간 충돌을 두고 이 같은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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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회의를 앞두고 미리 자리에 앉아 있던 배 최고위원이 회의장에 입장하는 이 대표를 향해 악수를 하려 하자 이 대표는 손을 강하게 저으며 악수를 거부했다. 배 최고위원은 이 대표의 손목을 잡았다가 놓고 정미경 최고위원에게 다가가 악수를 건넸다. 이어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배 최고위원은 앉아 있던 이 대표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이 대표는 여전히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해당 장면은 국민의힘 공식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 등을 통해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두 사람은 이후 이어진 비공개회의에서도 언성을 높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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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16일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배 위원이 악수를 청했지만, 이 대표는 배 위원을 쳐다보지 않고 손만 내미는 노 룩 악수로 응하면서 두 사람 간 앙금이 존재함을 드러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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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당선인은 이날 여당 지도부를 향해 "당대표와 최고위원은 견제 관계가 아닌 협력 관계"라며 쓴소리를 했다. 홍 당선인은 페이스북에 "여당이 그런 행동들을 노정하는 것은 대통령이 정치를 모른다고 얕보는 행위로도 비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특히 그는 배 최고위원을 향해 "최고위원은 당대표와 경쟁 관계가 아니다"며 "그런 이견은 비공개회의에서는 가능하지만 공개회의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했다.

한편 최근 두 사람은 당 혁신위원회 운영 방향과 국민의당 몫 최고위원 인선 문제로 비공개회의에서 연일 충돌했다. 특히 지도부 내부 충돌이 언론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도되자, 두 사람은 유출 책임을 놓고 공방전을 벌였다.

-파이낸셜뉴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251.html
kolaswqetsrq 11.02 14:39
■ 조선의 팜므파탈, 어우동 4편

■ 조선의 팜므파탈, 어우동 4편

어느 해 오월 단오에 어우동은 도성 서쪽에서 그네 뛰는 장면을 구경하다가 종실인 수산수(守山守) 이기(李騏)를 만나 통정(通情)하기에 이른다. 그는 조선 제2대왕 정종의 아홉째 아들인 석보군의 서손(庶孫)이었다.

그 외에도 어우동은 귀천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남성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의 든 남자에게는 특별히 자신의 이름을 문신하도록 강요했다. 전의감 생도였던 박강창은 팔뚝에 어우동이라는 글자를 새겨넣었고, 서리 감의동은 등판에다가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새겨 넣기도 했다. 그는 특별히 어우동이 가장 사랑하여 자신의 팔뚝에다가 그의 이름을 새겨넣었다고 한다. 그녀와 관계를 맺은 남자들과 당시 스캔들의 소상한 내용이 《용재총화》, 《성종실록》, 《대동야승》 등에 기록되어 전하고 있다.

그녀의 행적을 우연히 접하게 된 승정원 승지 김계창의 추적과 줄기찬 탄핵이 시작되면서 결국 어우동 사건은 공론화되었다. 어우동은 풍속을 더럽혔다는 죄목으로 붙잡혔다. 당사자 어우동은 물론 그녀의 어머니 정씨도 간통의 전력이 있었다. 세간에 간통이 만연하는 것도 큰 문제였지만 종친이 관여되었다면 이는 왕실의 권위가 크게 손상되는 중대 상황이었다. 성종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즉시 그녀의 체포를 명했다. 그 소식을 듣고 어우동은 급히 도망쳤지만 곧 붙잡혀 의금부에 하옥되었다. 심문과정에서 어우동은 좀처럼 자신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종실 출신이었으므로 국문을 가할 수 없었고, 반역죄를 저지르지 않은 이상 극형에 처할 수도 없었다.

의금부에서는 우선 방산수 이난과 수산수 이기를 잡아들여 여죄를 캤다. 옥중에서 어우동과 대면한 방산수는 과거 세종 대에 음풍(淫風)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유감동의 경우처럼 관련자를 불면 중죄를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어우동을 달랬다. 그의 설득을 듣고 어우동은 그 동안 관계했던 남성들의 이름을 모조리 토설(吐說)해 버렸다.

그녀의 입에서 어유소, 노공필, 김세적, 김칭, 정숙지 등 고관대작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자 관리들은 망연자실했다. 방산수가 여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중신 어유소는 이웃에 살던 어우동과 사당(祠堂)에서 간통하고 옥가락지를 주며 후일을 기약했다는 것이었다. 어유소는 병조와 이조의 판서, 좌찬성 등 최고위직을 지낸 중신이었는데,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신성한 사당에서 음녀와 교합했다 하여 유림(儒林)이 들썩였다.

-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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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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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4_70.html
kolaswqetsrq 11.02 14:40
■ 조선의 팜므파탈, 어우동 3편

■ 조선의 팜므파탈, 어우동 3편

어우동은 쫓겨난 뒤 친정으로 갔지만 아버지 박윤창이 받아주지 않자, 따로 거처를 마련하고 여종과 함께 살았다. 당시의 도덕관념에 따르면 쫓겨난 여성은 자결하든지 죽은 듯이 살면서 남편의 처분을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어우동은 반대로 싱글로서의 자유를 만끽했다. 여종이 의기소침한 어우동을 위로하기 위해 사헌부 아전인 오종년을 데려오자, 봇물이 터진 듯 마음껏 욕정을 해소했다. 얼마 뒤 오종년과 결별하고 수십 명의 선비, 조관, 유생들과 자유롭게 관계를 가졌다. 그와 관계를 맺은 남자들과 그 당시 스캔들의 소상한 내용이 대동야승, 용재총화, 성종실록 등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후 그녀는 정식으로 기녀 수업을 받고 기녀(妓女)가 되었다.

어우동은 여성교육이 제한되었던 당시 반가(班家)의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시문에 뛰어났고 가무음곡(歌舞音曲)에 통달했다. 고귀한 종친의 이혼녀로서 미모에 열정과 지성미까지 갖추었으니 남자를 유혹할 만한 모든 조건이 구비되어 있던 셈이다. 어우동은 자신의 수준에 걸맞는 인물을 물색했다. 그녀의 레이더에 걸려든 사람이 전 남편 태강수와 6촌간인 종실의 방산수(方山守) 이난(李爛)이었다. 이난은 세종의 서자인 계양군의 넷째 서자로 성품이 호탕하고 시를 좋아하는 쾌남아였다. 그는 주변에 흔한 첩실이나 기생과는 전혀 다른 매력의 소유자 어우동에게 금세 매료되었고, 자청하여 팔뚝에 그녀의 이름을 새겨 넣기까지 했다. 두 사람은 시문(詩文)을 나누며 고상한 일탈을 즐겼다. 뒤에 체포되었을 때 끝까지 그녀를 변호하고, 선처를 호소한 인물은 방산수 이난이었다. 하지만 당대의 팜므파탈로 등극한 어우동이 한 남자에 만족할 리 없었다.

자유로운 성생활에 빠져든 어우동은 이름을 현비로 바꾸고, 여종과 함께 반가(班家)의 소실이나 창기(娼妓)인 척하면서 사내 사냥에 나섰다.

권응인의 《송계만록》에는 익명의 부인이 지었다는 〈부여회고시〉가 실려 있다. 저자는 시는 뛰어나지만 행실이 아름답지 못하여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다고 했다. 통설(通說)에는 그녀가 바로 어우동이라고 한다. 1918년 장지연이 편찬한 12권짜리 한시집 《대동시선》에서는 이 시를 어우동의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백마대 텅 빈 지 몇 해나 지났을까.

낙화암 세워져 많은 세월 흘렀구나.

만약 청산이 말할 수 있다면

천고의 흥망을 물어 알 수 있을 텐데.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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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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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39.html
kolaswqetsrq 11.02 14:40
■ 조선의 팜므파탈, 어우동 2편

■ 조선의 팜므파탈, 어우동 2편

어우동은 승문원 지사 박윤창(朴允昌)의 딸로 충청북도 음성군 음죽현 출신이다. 정확한 출생년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1440년 쯤으로 보인다. 용재총화에는 어우동(於于同), 실록에는 어을우동(於乙于同)이라 하였으며, 송계만록(松溪漫錄)과 대동시선, 해동시선, 연려실기술 등에도 어우동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야사에 의하면 어우동에게는 일찍부터 마음에 둔 이웃집 남자가 있었지만, 그 남자의 집안이 한미하여 부모가 반대하였고, 그녀는 눈물의 이별을 했다. 그 뒤 집안에서 정해준 종실인 태강수 이동(泰康守 李仝)과 결혼하여 외명부의 품계인 혜인(惠人)으로 봉작되었다. 이동은 세종의 둘째 형이자 태종의 차남인 효령대군의 다섯째 아들 영천군의 서자였다. 그러나 그 후 어우동의 이름은 왕실 족보에서 삭제되었고, 역시 음행을 저질렀던 친정어머니 정씨 역시 친정과 시댁의 족보에서 삭제되었다. 어우동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 박윤창도 족보에서 삭제되어 자세한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어우동은 태강수와의 사이에서 딸만 한명 얻었을 뿐 아들을 낳지 못하였다. 후사를 잇지 못한다는 이유로 어우동은 시댁의 무시와 냉대를 견뎌야만 했고, 결국 딸과 함께 시댁에서 쫓겨났다. 그녀가 쫓겨난 이유로 남편 태강수가 연경비라는 기생(첩)을 사랑해서 억지로 어우동의 허물을 잡아 쫓아냈다는 설과 어우동이 자기 집에 은그릇을 만들려고 찾아온 은장이와 간통을 해서 남편 태강수가 쫓아냈다는 설이 있다.

『어우동은 집안에 들인 은장이를 유혹하여 수시로 간통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태강수 이동이 분노하여 내쫓았다고 한다. 한데 종실의 사무를 관장하던 종부시(宗簿寺)에서는 사실 태강수가 종친으로서 첩을 사랑하다가 아내의 허물을 들추어 제멋대로 버렸다며 임금에게 고발했다.』 - 《조선왕조실록》 1480년(성종11년) 10월 18일 -

이로 보아 어우동이 은장이와 간통했다는 혐의는 아내를 쫓아내기 위한 무고였을 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태강수 이동은 기생에게 빠져 함부로 부인을 버린 죄로 삭탈관직을 당했다. 성종이 내린 판결에 따르면 이때 어우동의 간통사건은 무죄이고, 기생을 사랑한 남편 이동의 잘못으로 여겨져 이혼은 무효화된 것이다. 부인과 재결합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이동은 거부했다. 하지만 종친이었던 이동은 3개월 뒤 관직을 되찾았고, 어우동은 법적으로는 태강수의 부인이었지만 버림받은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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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21.html
kolaswqetsrq 11.02 14:41
■ 조선의 팜므파탈, 어우동 1편

■ 조선의 팜므파탈, 어우동 1편

남성 중심의 성리학적 도덕관념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에 사대부가의 여자들은 남존여비(男尊女卑),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남녀차별 아래에서, 사회활동도 배제당한 채 숨죽이며 살아야만 했다. 남녀의 만남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고, 부득이 외출해야 할 경우에는 장옷이나 쓰개치마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려야 했으며, 사방이 가로막힌 가마에 올라 죄인처럼 조용히 거동해야 했다.

집안의 선택에 따라 신랑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혼인을 하고, 시집간 뒤에는 아들을 낳지 못하거나 바람난 남편을 향해 눈꼬리만 치켜떠도 칠거지악(七去之惡)의 굴레를 씌워 집안에서 쫓겨났다. 태종 때에는 간통은 물론 세 번째 결혼하는 삼가(三嫁)까지 음란한 행동으로 규정되어 자녀안(姿女案)에 기재하여 자손들이 관직에 오르지 못하게 했다.

그처럼 엄한 성리학적 규범 속에서 여성이라는 것을 무기로 남성사회를 크게 뒤흔들고 충격을 안겨준 여인이 있었다. 바로 오늘날까지 조선 최대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손꼽히는 어우동(於于同)이다. 당시 어우동은 도덕 질서를 교란시킨 음녀(淫女)로 규정되어 처형되었다. 성리학적 정치이념과 유교적 도덕관념이 자리 잡았던 성종 대에 종실(宗室) 출신의 어우동이 벌인 엄청난 엽색행각이 드러나자 조야(朝野:조정과 민간)가 발칵 뒤집혔다. 어우동의 음행은 노비, 중인, 양반, 왕족에 이르기까지 신분을 가리지 않았고, 근친상간이라는 절대금기까지 깨뜨렸다.

조선왕조의 공식 기록인 <성종실록>에는 어우동 사건의 전말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당시에도 이 사건이 엄청난 화제였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의금부에서 아뢰기를, 방산수(方山守) 이난(李瀾)과 수산수(守山守) 이기(李驥)가 어을우동(於乙宇同)이 태강수(泰江守)의 아내였을 때에 간통한 죄는, 장 100대, 도(徒:구속형) 3년에 고신(告身: 관리의 임명장)을 모조리 박탈하는 데에 해당합니다. 하니, 왕이 명하여 은을 대신 바치게 하고, 고신을 거두고서 먼 지방에 보내게 하였다.』 -1480년(성종11년) 7월9일-

이에 따르면 태강수의 아내인 어우동이 방산수, 수산수 등 왕실의 종친들과 간통하여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음을 알 수 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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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1.html
kolaswqetsrq 11.02 14:42
■ 성범죄에 대한 처벌

■ 성범죄에 대한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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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가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요즘보다 더 관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우리 조상들의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단호했다. ‘성폭행’이라는 단어는 최근에 사용하는 단어이므로 조선왕조실록에서 강간을 검색하면 200건(국역기준) 이상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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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명나라의 형법서인 ‘대명률(大明律)의 범간조(犯奸條)’의 적용을 받았다. 강간 미수는 ‘장(杖)100대와 유배3천리’이고, 강간은 교형(絞刑:목을 멤)에 처한다. 근친강간은 참형(斬刑:목을 벰)에 처했다.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행은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졌다. 12세 이하 여아를 성폭행하는 경우는 예외 없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요즘으로 말하면 ‘아동성범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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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살펴보면,

세종8년 11월17일자 실록에는 『평해(현재 경북 울진지역)에 사는 ‘김잉읍화’라는 사람이 8세 여아를 성폭행했다 붙잡혀 형조로부터 교수형에 처할 것을 왕이 건의받아 시행을 허락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앞서 『11세 여아를 성폭행한 사노비 ‘잉읍금’이 역시 교수형을 당했다』는 기록이 태조실록에도 남아 있다. 순종실록에는 『강도강간범(强盜强姦犯) 장봉순 등 6명을 교형(絞刑)에 처하는 데 대한 안건을 상주(上奏)하니, 왕이 재가(裁可)했다.』는 기록도 있다.

중종실록에는 『왕실 종친인 ‘이팽령’이 사노비(私奴婢) 봉원의 딸 순금과 관계했다. 순금이 거역할 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이틀 밤을 함께 했다고 사헌부에 고소했다. 중종은 사건 조사 결과를 듣는 자리에서 "위력으로 간통하였다면 이 또한 강간이다" 며 처벌을 하교(下敎)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 뚜렷한 신분제 사회였기 때문에 지배층이 마음대로 노비 등을 범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조선의 국법은 왕실 자제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간혹,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이 연출되는 것은 잘못된 내용이거나 목숨을 내걸고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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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도 ‘조두순사건’으로 아동성범죄가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고, 그 처벌을 두고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화학적 거세나 물리적 거세 법안도 발의되었고, 일각에서는 사형제 부활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시끌벅적하게 사회가 들끓어 올랐지만 그동안 바뀐 것은 별로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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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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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638.html
kolaswqetsrq 11.02 14:42
삼식, 삼락, 삼금, 삼례, 육불문

삼식, 삼락, 삼금, 삼례, 육불문

1. 三食(삼식) 세 가지를 먹어라.

 - 술을 먹되,

 - 안주와 같이 먹고,

 - 밥까지 먹으라.

2. 三樂(삼락) 세 가지를 즐겨라.

 - 술과 안주 맛을 즐기고,

 - 대화를 즐기며,

 - 분위기를 즐겨라.

3. 三禁(삼금) 세 가지를 금하라.

 - 정치(政治) 이야기를 금(禁)하고,

 - 종교(宗敎) 이야기를 금(禁)하며,

 - 돈 자랑, 자식(子息) 자랑을 금(禁)하라.

4. 三禮(삼례) 세가지 예의는 지켜라

 - 술을 적당히 권하고

 - 말조심하고

 -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며 마셔라

5. 六不問 여섯 가지를 묻지 마라

 - 가족근황/특히 배우자 안부를 속속들이 묻지 말라

 - 경제사정/빚쟁이 살림살이를 속속들이 묻지말라

 - 건강상태/오랜 지병을 속속들이 묻지말라

 - 친소관계/친구들과의 우정을 속속들이 묻지말라

 - 정당관련/여야(與野)와 피아(被我), 동지(同志)와 정적(政敵)을 속속들이 묻지말라

 - 과거오류/옛 허물을 확인하듯 속속들이 되묻지말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441.html
kolaswqetsrq 11.02 14:43
인간관계를 좋게하는 열가지 마음 十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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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를 좋게하는 열가지 마음 (十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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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심 熱心

형식적으로 대하지 말고 열심히 대하라.

2. 진심 眞心

거짓으로 대하지 말고 진심으로 대하라.

3. 관심 觀心

무관심이 아닌 깊은 관심을 가져라.

4. 선심 善心

악한 마음 버리고 선한 마음으로 대하라.

5. 애심 愛心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6. 조심 操心

잘못이나 실수가 없도록 조심히 대하라.

7. 인심 忍心

실수나 잘못은 모른척 눈감아 주면서 대하라.

8. 배심 背心

좋은 것을 먼저 양보하고 배려하며 대하라.

9. 양심 養心

받을 것을 계산하지 말고 양심적으로 대하라.

10. 물심 物心

빈 손이 아닌 가끔 선물을 주면서 대하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614.html
kolaswqetsrq 11.02 14:43
암과 양치질 Cancer and Brushing

암과 양치질 (Cancer and Brushing)

암 원인 중 가장 기본적 이유가 구강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인지하십시오.

구강의 독소가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을 유발하고, 그 독소와 위산의 증가가 폐안으로 들어가 폐암까지, 심장으로 들어가 온몸에 퍼져 몸 전체에 질병과 암을 유발하는 큰 원인이 됩니다.

잠을 자고 일어나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양치질을 해야 합니다.

밤새 입 안에서 번식한 세균이 어마어마 하게 많습니다.

대부분 대충 물로 헹구고 냉수를 마십니다.

많은 세균을 매일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위암 발생률 세계 1위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양치할 때 잘해야 하는 것은 혓바닥에 붙은 것들을 알뜰하게 제거 해야 합니다.

빨갛게 혓바닥의 색이 변할 때까지 칫솔로 계속 문지르고 물로 헹구고를 4~6번 정도 하면 혓바닥 돌기가 생생히 살아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나서 깨끗한 물 350cc 정도 마셔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식도와 위장을 깨끗하게 씻어 내립니다.

이렇게 하면 위암과 모든 암들을 예방하는 지름길입니다.

특히 위장병 환자는 특효가 있습니다.

더욱 몸속 독소인 요산은 잠자고 막 일어나 양치 후 마신 물 한 잔이 배출 시킵니다.

몸에 좋다고 무엇을 먹을 것이 아니라 우선 청소부터 잘 해야 합니다.

꼭! 실천 해 보세요.

위장 기능과 피부 혈색도 좋아지고, 보약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 서울대학교 치대 김태일 교수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cancer-and-brushing.html
kolaswqetsrq 11.02 14:44
보약 같은 먹거리

보약 같은 먹거리

1. 사과는 내 몸에 사과하면서 먹어라!

- 유럽 속담에서 하루에 사과를 한개씩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

- 사과와 친하면 의사와 멀어진다.

2. 배는 내 배의 정화와 해독을 위하여 먹어라!

- 식중독 걸렸을 때는 배를 깍아 먹으면 해독이 된다.

3. 토마토는 토하도록 많이 먹어라!

- 유럽 속담에서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 얼굴이 파랗게 된다.

4. 대추는 보는 대로 뺏어서라도 먹어라!

- 우리 속담에 대추를 보고도 안 먹으면 늙는다.

- 양반은 대추 한 개가 아침 해장이다.

5. 감자는 감사하면서 밥처럼 먹어라!

- 감자는 알카리 식품이다. *비타민C 성분이 풍부 *철분이 풍부

6. 소금은 소근 소근 착실히 천일염으로 먹어라 !

- 적당한 소금은 심장마비 예방 *소금은 피의 방부제이다.

- 소와 금처럼 귀한 것이다. *작은 금이다.

7. 물은 물어보지 말고 천천히 많이 마시도록 하라!

- 우리 몸은 90%가 물 *물이 부족하면 이상이 온다.

8. 끈적끈적한 것(사포닌)은 좋은 것이니 무조건 먹어라!

- 홍삼과 영지버섯, 가시오가피, 인삼, 콩

- 사포닌은 기름을 제거하는 비누이기 때문

9. 색깔이 진하고 입에 쓴 것은 알카리성 식품이니 많이 먹어라!

10. 바다 작은 물고기인 새우, 멸치 등은 똥까지 먹어라!

11. 몸이 아픈 사람은 내가 싫어하였던 음식을 먹어라!

12. 혀에 좋은 것만 먹지 말고, 몸에 좋은 것을 먹어라!

13. 미역, 다시마 매일 먹어라!

- 콜레스테롤 수치와 혈압을 내려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664.html
kolaswqetsrq 11.02 14:44
인생 삶에 3사 3걸 3기

인생 삶에 3사 3걸 3기

● 3사라는 것은

첫째가 인사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인 인사는

내가먼저할 때 기쁨은 배로 증가됩니다.

둘째는 감사입니다.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불평과 불만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는 봉사 입니다.

섬기는 일은 섬김을 받는 일보다

더 자유로우며 기쁨과 행복 사이를 왕래하게 됩니다.

● 3걸이는 것은

첫째는 좀 더 잘할 걸~한 순간만 지나도 후회하게 되는 것 입니다.

둘째는 그럴 걸~

좀 더 나누어줄 걸~

좀 더 사랑할 걸~

미리 찾아갈 걸~

많이 칭찬해 줄 걸~

해야 하는 말을 하지 아니함에서 오는 후회의 말과 마음 입니다.

셋째는 참을 걸~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참지 못해

행하는 숱한 일들에 대한 후회 입니다.

● 노년의 삶에는 3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는 버리기 입니다.

마음의 욕심도 버리고,

물건도 정리해 간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줄이기입니다.

예전만 못한 건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여,

활동을 줄이고,

집도 큰집에서 작은 집으로 줄이고,

소비도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나누기 입니다.

무엇이든지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3-3.html
kolaswqetsrq 11.02 14:45
■ 장수長壽왕, 영조의 즉위 4편

■ 장수(長壽)왕, 영조의 즉위 4편

왕위에 오른 영조는 소론의 영수 김일경, 남인의 목호룡 등 신임옥사를 일으킨 대신들을 숙청한 다음, 1725년 김일경이 노론 4대신을 역적으로 몰아 상소할 때 이에 동조한 이진유 등 6명을 귀양보냈다. 그리고 노론 측의 소론에 대한 잇따른 논핵에 의거해 영의정 이광좌, 우의정 조태억 등 소론 대신들을 내몰고 민진원, 정호 등의 노론 인사들을 등용하였다.

 "
이것이 을사처분이다. 을사처분으로 노론이 정권을 잡게 되자 신임옥사 때 처단된 노론 4대신과 그밖의 관련자들에 대한 신원 문제가 다시 논의되어 4대신이 복관되고 시호를 받았다.
",

하지만 노론측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정호, 민진원 등이 임인옥사에 대한 보복을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조는 즉위 초부터 송인명, 조문명 등의 조언을 받아 각 정파의 인사를 고르게 등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탕평책을 펴고자 했기 때문에 노론 측의 소론에 대한 정치적 보복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래서 정호, 민진원 등의 노론들을 대거 파면시키고 초년에 파직했던 이광좌, 조태억을 기용하여 정승으로 삼고 소론을 불러들여 조정에 합류시켰다.

 "
이 사건이 정미환국이다. 영조는 나라가 바로 서려면 먼저 붕당 간의 치열한 다툼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붕당 간 치열한 경쟁을 없애는 탕평책을 강하게 펼쳤다. 성균관에 탕평비를 세운 것만 보아도 영조의 뜻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

영조는 뚝심과 소신을 가진 인물이었다. 심지가 약한 인물 같았으면, 이인좌의 난 이후 당장에 탕평을 접고 친위세력 위주로 정부를 구성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영조는 흔들리지 않았다. 정치적 상처에도 불구하고 탕평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정적(政敵) 이인좌의 난 이후 영조는 탕평책을 향해 보다 더 강력하게 추진 할 수 있었다.

노론의 도움으로 왕좌를 차지했지만 붕당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정쟁의 폐해를 온몸으로 겪었던 영조는 왕권을 강화하고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붕당의 갈등을 완화, 해소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조는 즉위 초기에는 자신의 후원세력인 노론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관계로 경종 시대에 일어난 옥사에서 피해를 입은 노론들을 등용하고 옥사를 일으킨 소론들을 정계에서 내몰았다. 그러나 곧이어 노론과 소론의 영수를 불러들여 화목을 권하고 호응하지 않는 신하들은 축출하였다.

영조의 노력으로 중앙정계에는 노론, 소론, 남인, 소북 등 사색 당파가 고르게 등용되어 정국을 운영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조의 왕권 자체가 노론의 지지로부터 비롯된 것이었기에 영조로서도 모든 붕당에 공평하게 정국을 운영해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편, 천신만고 끝에 차지한 왕좌였지만 영조에게 형 경종은 평생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

 "
영조에게 있어서 경종 독살설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며 결코 여기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진실은 묻혀져 있었으나, 영조를 반대하는 소론들과 남인, 그리고 수많은 백성들이 영조가 경종을 독살한 후 왕이 되었다고 믿었으며, 독살설을 믿는 자들은 영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경종 독살설을 잠재우기 위해 영조는 재위 17년째인 신유년에 신유대훈(辛酉大訓)을 발표했다.
",

신유대훈이란 경종이 영조를 왕세제로 책봉한 것은 노론들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비와 경종의 하교에 의해 정당하게 임명된 것이라는 발표였다. 더불어 영조(英祖)는 자신이 역적의 괴수로 이름이 등재되어 있던 임인옥안(壬寅獄案:임인옥사 보고서)을 불태우고 이를 종묘에 고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4_23.html
kolaswqetsrq 11.02 14:46
■ 장수長壽왕, 영조의 즉위 3편

■ 장수(長壽)왕, 영조의 즉위 3편

영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당연히 노론이 정권을 잡는다. 소론의 김일경은 귀양을 가고, 김일경의 상소로 죽은 노론 4대신은 복권되었다. 영조는 모친의 출생과 혈통에 대한 심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또한 진위(眞僞)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복형인 경종이 연잉군에게 독살 당했다는 설이 평생을 쫓아다닌다.

경종 독살설로 인해 김일경의 난과 이안좌의 난이 일어났고, 모반사건에 휩싸인 신치운은 영조의 친국(親鞫)에서 "나는 갑진년(경종의 사망한 해)부터 게장을 먹지 않는다."고 말해 영조가 분통을 터뜨렸다는 기록도 있다. 이처럼 영조는 정통성 문제와 결부되어 ‘경종독살설’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는 당쟁의 한가운데서 위태로운 왕좌를 차지했고, 당쟁에 휘말리고 있었다. 적당한 당쟁은 당파 간의 균형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왕권을 강화시키지만, 지나친 당쟁은 그 균형을 깨고 왕권까지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었다.

영조의 어머니가 궁녀 출신이 아닌 근본을 알 수 없는 무수리 신분인데다가 그럼에도 그녀가 노론을 후원세력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데서 영조의 아비가 노론의 세력가 중 하나일 것이라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가뜩이나 어머니의 신분 때문에 출생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영조에게는 참으로 참담한 소문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1728년 소론 중 과격론자였던 이인좌가 정희량 등 일부 소론 세력 및 남인들과 공모하여 밀풍군 탄(소현세자의 증손)을 추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이인좌의 난은 무신년이 일어나 무신난이라고도 하는데 그 규모가 삼남을 아울렀으며, 난에 참가한 사람도 2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인좌의 난은 경기도 장악에 실패했고, 결국 난은 실패로 끝났다. 난이 진압된 후 잡혀온 이인좌는 국문하는 영조 앞에서 그를 결코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영조가 숙종의 자식도 아니라고 주장하다가 이틀 만에 참수되었다.

이인좌의 난은 영조에게 크나큰 상처를 안겼고 이 상처는 평생을 따라다녔다. 영조 입장에서는, 삼남 지방에서 고전했지만 수도권을 지킨 덕분에 정권을 지킬 수 있었다.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이인좌의 반란은 영조에게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주었다. 영조는 형의 지위, 그것도 이복형의 지위를 승계했다. 그 승계의 정당성마저 독살설로 의심을 받았다.

이인좌의 난은 이 같은 영조의 약점을 부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므로 영조한테는 치명상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 사건은 영조에게 글 나쁜 결과라고는 할 수 없다. 소수당 강경파뿐 아니라 많은 일반 백성들이 이인좌에게 동조했지만, 어쨌거나 영조는 반란을 진압했고, 그 덕분에 영조는 반대파의 상당 부분을 정계에서 숙청하고 국정 장악력을 높이는 결과를 거두었다. 이것은 영조가 자신의 국정운영 철학인 탕평책을 자신 있게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인좌가 영조의 탕평정치를 위한 도화선이 되어준 셈이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30.html
kolaswqetsrq 11.02 14:46
■ 장수長壽왕, 영조의 즉위 2편

■ 장수(長壽)왕, 영조의 즉위 2편

영조는 우리에게 비교적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다. 오랜 재위기간 동안 탕평책과 여러 가지 정책 실현으로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고, 그 기반 위에 정조가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집권 초기만 해도 영조의 입지는 매우 불안했다. 그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정계에서뿐 아니라 백성들 사이에서도 있었다.

연잉군은 자신의 지지 기반이던 노론이 신임사화로 대거 축출되고 거기다 신변의 위협마저 느끼게 되자, 대비 인원왕후 김씨(숙종의 두 번째 계비)를 찾아가 왕세제 자리를 내놓는 것도 불사하겠다며 자신의 결백을 호소했다. 김대비는 평소 노론 측 입장에 서서 왕세제 연잉군을 감싸왔던 터여서 왕세제의 간절한 호소를 담은 언교(諺敎:언문으로 쓴 왕비의 교서)를 몇 차례 내려 소론 측의 전횡을 누그러뜨렸다. 그 덕택에 연잉군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아버지 숙종이 죽기 전부터 조선 정계는 경종(당시엔 세자)을 지지하는 세력과 영조(연잉군)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다. 경종을 지지하는 세력은 소수였고, 영조를 지지하는 세력은 숫적으로 우세였다. 경종은 생모 장희빈이 사약을 받아 죽음으로써 죄인의 아들이라는 약점이 있었다. 반면, 영조는 출신이 천한데다가 경종의 갑작스런 죽음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늘 따라다녔다.

영조는 경종이 설사를 하는데도 설사를 유발하는 처방을 내렸다. 《경종실록》의 개정판인 《경종수정실록》의 경종 4년 8월 20일(양력 1724년 10월 6일) 기사에 따르면, 영조는 의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종에게 게장과 생감을 먹였다. 16세기에 명나라 사람 이시진이 쓴 《본초강목》에서는 『게를 감과 함께 먹으면 복통이 나고 설사를 한다.』 되어있다. 이 지식은 18세기 조선 의료계의 상식이었다.

영조의 의문스러운 처방은 또 있었다. 그는 이번에도 어의의 반대를 무시하고 인삼탕을 처방할 것을 지시했다. "인삼은 제가 조금 전에 올린 탕약과 상극입니다. "라며 어의가 반대하는데도, 영조는 인삼이 양기 회복에 좋다며 어의(御醫)의 말을 묵살했다. 결국 영조의 처방대로 경종에게 인삼탕이 내려졌고, 다음 날 새벽 경종은 세상을 떠났다. 그러고 영조는 왕이 됐다. 《

경종실록》이나 《경종수정실록》에 묘사된 정황을 보면, 영조가 이복형의 죽음에 대해 의학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복형을 죽일 목적으로 그렇게 했다기보다는 역으로 보면 살려보겠다는 열정이 너무 지나쳐서 그렇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론은 영조가 이복형을 독살했을 것이라고들 수군댔다. 그래서 새로 등극한 영조의 입지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영조는 세상의 여론을 의식하면서 왕좌에 올랐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36.html
kolaswqetsrq 11.02 14:47
■ 장수長壽왕, 영조의 즉위 1편

■ 장수(長壽)왕, 영조의 즉위 1편

장희빈의 죽음 이후 장희빈이 낳은 세자(경종)의 처리를 두고 서인은 강경파인 노론과 온건파인 소론으로 나뉘었다. 경종은 나이에 비해 건강이 좋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놓칠 리 없던 노론은 주상의 건강이 안 좋으니 차라리 연잉군(숙빈 최씨의 아들)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라며 주청을 올린다.

이 소식을 들은 소론은 경종에게 이는 역모라며 노론 대표들을 이 기회에 모두 숙청시키자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아도 평상시에 노론이 못마땅했던 경종은 슬그머니 소론의 편을 들어주었다. 대리청정(代理聽政)에 앞장섰던 노론 4대신을 탄핵하여 귀양을 보내는 신축옥사(辛丑獄事)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 기세를 몰아 이듬해에는 남인 목호룡을 매수하여 노론 측 일부 인사가 경종의 시해를 도모했다는 고변을 하게 해 임인옥사(任人獄事)를 일으켰다.

임인옥사를 주도한 소론 대신들은 노론 4대신을 포함한 60여명을 처형시키고 관련자 170여 명을 유배시키거나 치죄하여 축출시켰다. 이때 수많은 노론 신하들이 유배를 가거나 죽음을 맞이했다. 임인옥사의 사건 보고서에 왕세제 연잉군도 모역(謀逆)에 가담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었다. 전례로 봐서 모역에 가담한 왕자가 살아남은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연잉군 외에는 왕통을 이을 왕자가 전혀 없었고, 경종이 그를 아끼고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그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 두 사건(신축옥사, 임인옥사)을 합하여 신임사화(辛壬士禍)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사건이 있은 뒤 얼마 후 1724년 8월 경종은 창경궁 환취정에서 37세의 나이로 자식 한 명 두지 못하고 승하했다. 경종의 이런 갑작스런 죽음으로 배다른 동생인 연잉군은 얼떨결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가 제21대 영조이다. 당시 영조는 왕자의 신분으로 결혼을 한 후 궁궐 밖에서 생활하던 때였다.

물론 경종의 상태가 좋지 않아 어느 정도는 예상했겠지만 영조의 등극으로 노론은 하루아침에 집권 여당이 되고 주인 잃은 소론은 찬밥 신세로 전략해 버린다. 노론과 소론의 치열한 당쟁 과정에서 젊은 나이에 경종이 승하한 탓에 경종에 대한 독살 의혹이 제기됐다. 왕세제인 연잉군(영조)이 보낸 간장과 생감을 먹고 경종의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점과 어의(御醫)의 말을 무시한 채 인삼과 부자를 처방한 것 등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경종은 세자 시절부터 지병을 달고 살았다. 아버지 숙종의 시탕(侍湯:부모의 병환에 약을 써서 시중을 드는 것)을 4~5년간 한 것도 몸이 나빠진 원인이었다. 게다가 왕으로 즉위한 이후로도 경종은 항상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편안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경종이 자식을 낳지 못한 것도 건강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경종실록》을 쓴 사관도 불안한 세자 생활이 경종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27.html
kolaswqetsrq 11.02 14:48
■ 영조의 어머니 ‘동이’ 2편

■ 영조의 어머니 ‘동이’ 2편

실록이나 정식 기록에는 나오지 않지만 영조는 왕으로 등극한 뒤 모친과 관련된 용흥사 절에 6명의 상궁들이 거처할 수 있는 육상궁(毓祥宮)을 지어 주었다 한다. 그리고 세금을 면세(免稅)토록 하는 특혜를 주었다고 용흥사 절 내부에서 전해져 오고 있다. 스님들이 육상궁 터라고 말하는 곳도 아직 남아 있다.

숙빈 최씨에 관한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이름이 ‘복순’이었던 것 같다. 최복순은 담양 창평면(현재는 대전면 갑향리) 출신이며, 최씨가 아주 어렸을 적 가족들이 ‘장티푸스‘라는 전염병에 걸려서 마을에서 쫓겨나 창평면에서 아주 가까운 월산면 용흥사 주변 산 속으로 들어와 움막을 짓고 살았다.

장티푸스로 가족들은 모두 죽고 복순이만 홀로 남아 바로 근처 용흥사에서 길러졌다. 용흥사로 들어가는 큰 길은 예전에 남도(南道)에서 한양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지금도 담양읍을 지나 장성 백양사를 거쳐 서울로 가는 지름길이다.

하루는 그 길가에서 최씨가 거지꼴을 하고 서있는 것을 나주목사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동행하던 인현왕후의 친척인 부인(민씨)이 발견했다. 복순이가 행색에 비해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총명하게 보여 절의 허락을 받아 한양까지 데리고 가서 키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인현왕후가 왕비로 간택되어 입궁할 때 최복순을 인현왕후의 시녀로 따라 보냈다고 한다. 최복순은 궁중에 들어가 무수리로 일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인현왕후 소속 나인으로 일했다고도 전해진다.

또 다른 이야기는 나주목사와 민씨부인이 부임하러 가는 길에 용흥사에서 하룻밤 자고 가는데, 민씨부인 딸이 방이 부족해 복순이랑 같이 자게 되었는데 복순이를 아주 맘에 들어해서 절의 허락을 맡고 복순이를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복순이가 용흥사에서 낮잠을 자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갈재(현재는 장성군이지만 용흥사 부근에 있는 당시 남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유명한 재)로 얼른 가보면 고관대작을 만날 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 갈재로 나가보니 나주목사로 부임하는 일행을 만나 나주목사 부인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같이 동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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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58.html
kolaswqetsrq 11.02 14:48
■ 영조의 어머니 ‘동이’ 1편

■ 영조의 어머니 ‘동이’ 1편

1724년 이복형인 경종이 갑자기 죽게 되자 31세의 연잉군, 이금(李昑)이 영조(21대)로 즉위했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는 숙종의 여인 3명(인현왕후, 장희빈, 최숙빈) 중 존재감이 미미한 것 같지만, 숙빈 최씨도 장희빈이나 인현왕후와 더불어 많은 드라마에 등장했다.

 "
드라마에서 숙빈 최씨는 무수리라는 천한 궁녀로 어쩌다 숙종의 성은(聖恩)을 입어 영조를 낳고 잊혀진 여인으로 나온다. 무수리란 원래 몽골말로 궁중에서 일하는 소녀라는 뜻으로, 궁녀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계집종을 지칭하는 말이다. 수년 전 숙빈 최씨를 주인공으로 한 ‘동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숙빈 최씨의 존재가 꽤 널리 알려진 바 있다. 희빈 장씨가 폐위되고 사사(賜死)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숙빈 최씨는 영조가 왕이 되기 전 1718년 (숙종 44년)에 세상을 떠났다.
",

 "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는 왕비나 후궁이 될 수 없는 천민 출신으로 훗날 자기 아들 영조에게 왕으로서 엄청난 신분적 열등감을 물려줄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겨주었다. 드라마에서 붙여진 이름은 동이(同伊)였지만, 이것은 드라마 상의 설정일 뿐 역사적 근거는 전혀 없다.
",

담양군 월산면에 용흥사(龍興寺)라는 절이 있다. 바로 인근에 있는 내장사, 백양사처럼 전국적으로 이름이 날 만큼 유명한 사찰은 아니지만 상당히 큰 사찰이다. 담양군 용흥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로 백제 때 인도승 마라난타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
본래는 용구사(龍龜寺)라 했는데 조선 숙종 때 숙빈 최씨가 어렸을 적 잠시 머물렀던 이 절을 찾아서 기도한 뒤 영조를 낳자, 이후 절 이름을 용흥사로 바꾸었다. 용흥사 바로 뒷산 이름도 몽성산(夢聖山)이라 고쳐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용흥사 주변 수북면 궁산리에는 중전터라는 곳도 있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중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

숙빈최씨에 대한 공식적인 출생기록은 단지 해주최씨 후손이라는 기록밖에 없다.

『빈(嬪:정1품 후궁)의 성은 최씨이고, 그 조상은 해주 사람이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소재한 소령원(최숙빈의 무덤)에 있는 비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위와 같이 최숙빈이 해주 최씨라는 사실뿐이다. 그런데 해주 최씨와 관련된 홈페이지들에 따르면, 이마저도 이견(異見) 존재하고 있다.

이 외의 숙빈 최씨에 대한 출신 기록은 실록이나 정사(正史)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는 다른 후궁들 보다는 많은 편이다. 그 기록들은 대부분 풍문(風聞)이나 설화(說話) 성격이 강하다. 그마저도 그녀가 왕(영조)의 친모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77.html
kolaswqetsrq 11.02 14:49
진금부도眞金不鍍 - 진짜 금은 도금을 하지 않는다, 재주 있는 사람은 꾸미지 않아도 드러난다.

진금부도(眞金不鍍) - 진짜 금은 도금을 하지 않는다, 재주 있는 사람은 꾸미지 않아도 드러난다.

참 진(目/5) 쇠 금(金/0) 아닐 불, 부(一/3) 도금할 도(金/9)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이 아니다’라는 유명 서양격언이 있다. 이솝(Aesop) 우화에서 처음 소개돼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작품에 나온 후 널리 알려진 말이라 한다. 속으로는 보잘 것 없는데도 화려한 겉모습만으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속이 알차게 들어 있을 때는 드러나는 모습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아무리 자신을 숨기려 해도 주위에서 먼저 알아본다. 그것이 바로 주머니 속의 송곳이 삐져나오는 錐處囊中(추처낭중)이요, 벼이삭의 뾰족한 부분이 튀어나오는 脫穎而出(탈영이출)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진짜 금인 순금(眞金)은 금을 입힐 필요가 없다(不鍍)는 말도 멋지다.

이 성어는 중국 唐(당)나라의 문학가 李紳(이신, 772~846)의 시구에서 비롯됐다. 그는 당시 유명시인 白居易(백거이), 元稹(원진, 稹은 빽빽할 진) 등과 친교를 가지면서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新樂府(신악부) 운동의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받는다. 이신 시인이라면 粒粒辛苦(입립신고)란 말을 떠올릴 만큼 널리 알려진 憫農(민농)이 대표작이다.

곡식 낟알마다 농민의 고생이 어려 있다는 뜻으로 알기 쉬운 언어로써 당시 농민착취와 여기에 따른 민초들의 빈곤하고 고통스런 심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인구에 회자됐다. 그의 많지 않은 작품 중에서 ‘答章孝標(답장효표)’란 시에 진금과 도금이 등장한다.

짤막하니 전문을 보자. ‘가짜 금은 도금하여 진짜 금인 체하며 쓰임을 바라지만(假金方用真金鍍/ 가금방용진금도), 진짜 금이라면 이와 같이 금을 입힐 필요가 없다네(若是真金不鍍金/ 약시진금부도금). 십년 장안생활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十載長安得一第/ 십재장안득일제), 아무리 배고파도 고고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네(何須空腹用高心/ 하수공복용고심).’

진정한 재주가 있는 사람은 겉으로 꾸밀 필요가 없고, 가짜로 진짜를 대체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다. 불경에 나온다는 참된 빛은 반짝이지 않는다는 眞光不輝(진광불휘), 참된 물은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眞水無香(진수무향)과 통한다고 할까.

요즘은 자신을 널리 알려야 하는 자기 피아르(PR)시대라 한다. 그렇더라도 피할 것은 피해야 하는데 없는 재주도 있는 척 해서는 언젠가 들통 나고 역효과난다. 덜 익었으면서 과대포장하는 일이 정치권 같은 지도층에서 너무 잦다.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과 반대로 간다. 할 수 없으면서도 한다, 줄 수 없으면서도 준다 등등 큰소리다. 빛이 밝지만 번쩍거리지 않는다고 光而不耀(광이불요)라 했다. 실제 능력 있는 사람은 알음알음으로 드러난다. 재주는 숨기려 해도 어렵다는 難得糊塗(난득호도)라는 말도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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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49
수과하욕受袴下辱 -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며 굴욕을 참다.

수과하욕(受袴下辱) -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며 굴욕을 참다.

받을 수(又/6) 바지 고, 사타구니 과(衣/6) 아래 하(一/2) 욕될 욕(辰/3)

학교 동급생 끼리나 동네 불량배들이 시비를 걸어오며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라고 강요하는 일이 있다. 수가 달려, 또는 힘이 약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때 그 치욕은 평생 갈 것이다. 그런데 힘이 있으면서도 굴욕을 참고 기어나간 사람이 있어 오랫동안 기림을 받는다. 바로 젊을 때의 韓信(한신) 이야기다.

한 때의 굴욕을 참지 못하고 울컥하여 다툼을 벌였다면 몸이 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受袴下辱은 큰 뜻을 품은 사람은 쓸데없이 작은 일로 시비를 벌이지 않는 것을 뜻하는 말이 됐다. 袴와 같이 사타구니를 뜻하는 胯(과)를 써서 胯下之辱(과하지욕)이라고도 한다.

‘史記(사기)’ 淮陰侯(회음후)열전에 한신의 불우했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秦漢(진한) 교체기에 楚(초)의 項羽(항우)를 四面楚歌(사면초가)의 궁지까지 몰아넣었던 장군이고, 劉邦(유방)이 통일한 뒤 兎死狗烹(토사구팽) 당했던 그 한신이다. 평민으로 지낼 때 그는 가난하고 행실도 좋은 편이 아니라서 추천해 주는 사람도 없이 빈둥거렸다.

어느 때 성 밑 淮水(회수) 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한 아낙네가 한신의 굶주린 모습을 보다 못해 며칠간 밥을 주었다. 후에 제후가 되어 여인에 천금으로 은혜를 갚은 것이 一飯之恩(일반지은) 고사다. 이런 모습을 보고 한 무뢰배가 한신에게 키도 크고 칼도 차고 있지만 겁쟁이라며 시비를 걸었다.

‘용기가 있으면 나를 찌르고 그렇지 않으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信能死 刺我 不能死 出我袴下/ 신능사 자아 불능사 출아과하).’ 물끄러미 불량배를 바라보던 한신은 머리를 숙이고 그의 가랑이 밑을 기어갔고 사람들은 모두 겁쟁이라 비웃었다.

대인 한신은 뒤에 자신을 모욕한 이 무뢰배를 불러 中尉(중위)에 임명하며 말했다. 분을 참지 못하고 만일 그 때 죽였으면 이름을 얻을 수 없어 참았기 때문에 오늘이 있게 됐다고.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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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50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 꾸는 봄꿈, 사람의 평생이 짧고 허무하다는 비유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 꾸는 봄꿈, 사람의 평생이 짧고 허무하다는 비유

한 일(一/0) 마당 장(土/9) 봄 춘(日/5) 꿈 몽(夕/11)

사람의 한 평생을 길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를 닦았거나 철리를 연구한 사람이 아니라도 인생은 모두들 허무하다고 한다. ‘인생은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라거나 ‘인생은 행복한 자에게는 너무나 짧고, 불행한 자에게는 너무나 길다’ 등 서양격언도 인생이 약간 달리 표현한 苦海(고해)란 뜻이다.

사람이 한 평생 산다는 것이 허무하다는 것을 꿈에 비유한 성어가 유독 많다. 한 때의 영화가 잠깐 사이의 잠속이었다는 南柯一夢(남가일몽)이나 黃粱一夢(황량일몽), 羅浮之夢(나부지몽), 浮生如夢(부생여몽) 등 끝이 없다. 이런 꿈보다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은 인생의 덧없음이 한바탕(一場) 꾼 봄꿈(春夢)이란 이 성어다.

인생이 덧없고 영화는 오래 가지 않는다고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과 비슷한 의미로 옛날 가사에나 가요에도 많이 등장하여 불린 것에 비해 이 말의 출처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중국 北宋(북송)의 최고의 문인 蘇東坡(소동파)를 가리켜 한 노파가 한 것이라 하니 흥미롭다.

불후의 명작 赤壁賦(적벽부)의 작자로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 들고 온갖 영화를 누린 정치가에게 이런 표현을 했기에 더욱 그렇다. 송나라의 趙令畤(조영치, 畤는 제사터 치)라는 학자가 선배 문인들의 사적을 기술한 책 ‘侯鯖錄(후청록, 鯖은 청어 청)’에 실려 전한다는데 부분을 인용해 보자.

王安石(왕안석)의 新法(신법)에 대립하여 동파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말년에 중국 남단의 하이난海南/ 해남섬 昌化(창화)란 지역으로 유배를 갔을 때 이야기다. 하루는 표주박 하나만 달랑 차고 한가롭게 교외를 거닐고 있었다. 도중에 일흔 넘은 한 노파를 만났다.

초라한 모습의 동파를 보고 노파가 안쓰럽게 여겨 말했다. ‘지난날 한림학사를 지낸 부귀도 그저 한바탕 봄꿈에 지나지 않는구려(內翰昔日富貴 一場春夢/ 내한석일부귀 일장춘몽).’ 內翰(내한)은 임금의 조서를 담당하는 벼슬 한림학사를 칭하는 말이다. 동파는 지극히 당연한 말에 ‘그러합니다(坡然之/ 파연지)‘만 연발했다. 인생의 참모습을 꿰뚫어보는 이 노파를 후세 사람들은 春夢婆(춘몽파)라 불렀다.

‘지금 사람은 옛날에 비쳤던 달을 볼 수 없다(今人不見古時月/ 금인불견고시월).’ 언제나 사라지지 않는 달에 비해 인생의 한 평생은 너무나 짧다고 깨우치는 李白(이백)의 시 구절이다. 길지 않은 인생을 악착같이 살면서 이루게 된 부귀영화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에게는 영원할 줄 안다.

특히 사생결단의 정쟁을 일삼는 정치권에서는 정권을 잡으면 權不十年(권불십년)을 모르고 마구잡이로 윽박지른다.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가야 하는 지도자들이 노파까지 모두가 아는 한바탕 꿈임을 애써 모른 체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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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4:51
곤이불학困而不學 - 곤란한 지경에 처해도 배우지 않다.

곤이불학(困而不學) - 곤란한 지경에 처해도 배우지 않다.

곤할 곤(口/4) 말이을 이(而/0) 아닐 불(一/3) 배울 학(子/13)

아는 것이 힘이고 배우는 것에는 끝이 없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일에 통달하고 박학한 사람이라도 경험하지 않은 일까지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래서 항상 배우는 자세가 돼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세 사람이 길을 가더라도 필히 본받을 스승이 있다고 孔子(공자)는 가르쳤다. 三人行 必有我師(삼인행 필유아사)가 그것이다.

공자는 또한 배움의 태도에 따라 사람을 네 분류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처음 태어날 때부터 천하의 일을 다 아는 사람은 生而知之(생이지지)라 하여 生知(생지)가 가장 상등인데 성인이나 천재가 해당되니 아주 드물 수밖에 없다. ‘論語(논어)’의 季氏(계씨)편에 이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그 다음이 배워서 아는 學知(학지)이고 곤란한 지경에 처하여 배우게 되는 困知(곤지)는 그래도 낫다. 문제는 곤궁함에 닥쳐서도(困而) 배우지 않는(不學) 사람이 가장 어리석다고 下愚(하우)라 했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은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 다음이다(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 생이지지자 상야 학이지지자 차야), 곤란에 부딪혀서야 배우는 사람은 또 그 다음이고, 곤궁한 지경에 있어도 배우지 않는 자는 최하이다(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곤이학지 우기차야 곤이불학 민사위하의).’

그런데 성인과 같은 태어날 때부터 아는 사람은 소수라 제외하고 배워서 알거나 어려운 일에 닥쳐서라야 배웠을지라도 학습을 통해 배웠으니 선후가 달라도 결과는 같다. 공자와 문하의 문답을 포함하여 의례의 해설을 주로 담은 ’禮記(예기)‘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어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어떤 이는 배워서 알게 되며(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혹생이지지 혹학이지지), 어떤 이는 곤경에 처해야 배워서 그것을 알게 되나 아는 것에 이르기는 모두 같다(或困而知之 及其知之 一也/ 혹곤이지지 급기지지 일야).‘ 자발적으로 배우거나 억지로 배우게 되거나 알게 되면 곤경을 헤쳐 나가는 데엔 같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배우는지 모르거나 누구에게 배울지 몰라 그런 수도 있겠지만 주변의 어디에나 묻는 것을 부끄러워 말아야 길이 보인다. 不恥下問(불치하문)이라 밭가는 일은 의당 종에게 묻는 耕當問奴(경당문노)나 공자가 아낙에게 구슬에 실 꿰는 법을 물었다는 孔子穿珠(공자천주)가 그것이다.

어떤 일이 닥치든 알바 아니라는 자포자기가 아니라면 明心寶鑑(명심보감)의 구절을 명심하자. ‘오늘 배우지 아니하고서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물위금일불학이유래일), 올해에 배우지 아니하고서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물위금년불학이유래년).’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636.html
kolaswqetsrq 11.02 14:52
수지오지자웅誰知烏之雌雄 - 까마귀의 암수를 누가 알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다.

수지오지자웅(誰知烏之雌雄) - 까마귀의 암수를 누가 알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다.

누구 수(言/8) 알 지(矢/3) 까마귀 오(灬/6) 갈 지(丿/3) 암컷 자(隹/6) 수컷 웅(隹/4)

검은색은 대체로 어두움과 죽음을 상징하는데 이런 색깔을 온통 뒤집어쓴 새가 까마귀다. 까마귀는 예언을 할 수 있고 늙은 어미에게 反哺之孝(반포지효)하는 효성스런 새이지만 검은 색으로 인해 불길하고 불운을 가져오는 새로 배척받는다.

까마귀의 집단은 리더가 없는 단순한 집합체라는데, 이 때문에 烏合之卒(오합지졸)이라고 얕보인다. 보통 새들은 수컷이 암컷보다 깃털도 화려하고 몸통도 더 큰데 까마귀는 형태도 비슷하며 색깔도 다 같이 검기만 해서 어느 것이 암놈인지 수놈인지 구별 못한다고 화풀이도 당한다.

까마귀의 암컷과 수컷(烏之雌雄)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誰知)라는 이 말은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울 때 비유적으로 쓴다. 줄여서 烏之雌雄(오지자웅)이라 해도 같다. 중국 고대 周(주)나라에서 약 3000년 전부터 전해지던 시를 모은 ‘詩經(시경)’에서 유래했으니 역사도 오래다.

모두 305편의 시가 4개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 잔치 때 사용되던 음악이라는 小雅(소아)편에 실려 있다. 모두 13개장으로 되어 있는 正月(정월)이란 시의 다섯 번째 부분을 보자.

‘산이 비록 낮다고 하지만 산등성이도 있고 구릉도 있네(謂山蓋卑 爲岡爲陵/ 위산개비 위강위릉), 백성들의 뜬소문을 어찌하여 막지 못하나(民之訛言 寧莫之懲/ 민지와언 영막지징), 저 노인장을 불러 꿈을 점치는 사람에게 물어보네(召彼故老 訊之占夢/ 소피고로 신지점몽), 저마다 자기가 성인이라 하니 누가까마귀의 암수를 구별할 수 있으리(具曰予聖 誰之烏之雌雄/ 구왈여성 수지오지자웅).‘ 이 시는 소인배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를 어지럽히자 이를 탄식한 내용이다. 주나라의 포악한 幽王(유왕)을 규탄한 것으로 해석하는 내용이다.

죄를 가릴 때 주장이 팽팽하면 범인을 찾기 어렵다. 단시일에 해결 못하고 미궁에 빠진 범죄라도 세월이 지나면 해결된다. 하지만 가치에 대한 판단이라면 사람마다 다르므로 대립할 수밖에 없다.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경우는 모든 후보가 자신이 적격이라고 주장한다.

유권자가 보기에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 더 헷갈린다. 그래도 이 경우에는 심사숙고하여 암수를 가려야 후회를 않는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851.html
kolaswqetsrq 11.02 14:52
단도직입單刀直入 - 혼자 칼 한 자루로 적진에 들다, 요점이나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다.

단도직입(單刀直入) - 혼자 칼 한 자루로 적진에 들다, 요점이나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다.

홑 단(口/9) 칼 도(刀/0) 곧을 직(目/3) 들 입(入/0)

혼자서 한 필의 말을 타고 적진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면 單騎匹馬(단기필마)고, 창 한 자루가 있으면 單槍匹馬(단창필마)다. 혼자서 칼 한 자루를 들고(單刀) 적진으로 곧장 쳐들어간다(直入)면 더욱 용감한 장수를 연상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으나 실제 일상에 흔히 사용되기는 여러 말을 늘어놓지 아니하고 바로 요점이나 본문제를 중심적으로 말함을 이르는 말이다.

말을 할 때나 문장에서 본론에 들어가면서 빙빙 돌려 말하면 진이 빠지니 핵심을 찔러 간단하게 해주길 원한다. 공연히 말만 많이 하여 입만 아프고 보람이 없는 徒費脣舌(도비순설)보다 開門見山(개문견산)과 같이 문을 열면 바로 산이 보이는 직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성어가 오랫동안 도를 닦는 불교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재미있다. 물론 어리석은 중생에겐 한마디로 깨우쳐주는 것이 필요하겠다. 중국 宋(송)나라의 승려 释道源(석도원)의 ‘景德傳燈錄(경덕전등록)’에 처음 등장한다.

이 책을 쓴 석도원은 생몰연대와 경력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지만 釋迦牟尼(석가모니) 이전의 過去七佛(과거칠불)부터 達磨(달마) 제자까지 인도와 중국의 조사 언행을 기록하여 禪宗(선종)의 귀중한 僧傳(승전)으로 취급받는다고 한다. 모두 30권에 이르는 이 책의 12권 旻德和尙(민덕화상) 조에 실려 있는 내용을 옮겨보자.

廬州澄心院(여주징심원, 廬는 농막 려)의 민덕스님이 興化(흥화)란 곳에 있었을 때 흥화선사가 대중에게 설법한 말이다. ‘만일 작가가 장수로 싸움터로 나서려거든(若是作家戰將/ 약시작가전장), 오직 한 자루의 칼만을 몸에 품고 거침없이 들어가(便請單刀直入/ 편청단도직입), 다시는 이러쿵저러쿵하지 말라(更莫如何若何/ 갱막여하약하).’

여기서 作家(작가)는 기략이 있는 학인이나 남의 스승이 될 만한 師匠(사장)을 말하고, 불도를 닦으려 하는 것을 전장에 비유했다. 목표를 굳게 믿고 용맹하게 정진하거나 군더더기에 거리끼지 말고 곧바로 핵심을 찔러 心眼(심안)을 열어주는 것이라 했다.

불교의 도에 이르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도 바쁜 일상에서는 더욱 핵심을 찌르는 것이 필요하다.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서슴지 않고 정면으로 대번에 요점을 들어 말하는 것은 당사자나 받아들이는 측에서 이해가 빠르다.

군더더기를 늘어놓다 보면 정작 하고 싶었던 요지를 놓쳐버리고, 듣는 사람은 나중에 지쳐 알아들을 수 없다. 조리가 없이 말을 이러쿵저러쿵 橫說竪說(횡설수설)하게 되면 같은 자리에 있어도 나중에 무슨 말인지 몰라 ‘혼사 말하는데 상사 말한다’고 衆口難防(중구난방)이 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704.html
kolaswqetsrq 11.02 14:53
이양역우以羊易牛 - 양으로 소를 바꾸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대신하다.

이양역우(以羊易牛) - 양으로 소를 바꾸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대신하다.

써 이(人/3) 양 양(羊/0) 바꿀 역, 쉬울 이(日/4) 소 우(牛/0)

보통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 드물다. 모든 것을 주고도 아무렇지 않은 호인을 제외하고는 조그만 물건을 교환할 때도 이익이 되는 쪽을 택한다. 投桃報李(투도보리)라 하여 복숭아를 주고 자두를 받는다면 격에 맞다.

모과를 선물했는데 구슬을 받았다면 投瓜得瓊(투과득경)은 받는 사람도 마냥 이득이라 생각하지 않고 속셈이 무엇인지 살필 것이다. 그런데 덩치가 작은 양을(以羊) 소 대신 바꾸었다면(易牛) 장사로 볼 때 큰 이익을 남긴 셈이다. 그런데 실제는 희생이 될 소를 애처롭게 생각하여 양으로 바꾸도록 한 고사에서 작은 것을 큰 것의 대용으로 했을 때 사용하는 성어가 됐다.

‘孟子(맹자)’의 梁惠王(양혜왕) 상편에 실린 내용을 먼저 보자. 齊(제)나라 宣王(선왕)이 맹자를 초청해 가르침을 받을 때 이야기다. 맹자가 신하에게서 들었다면서 왕께서 희생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 애처로워 양으로 바꾸라고 한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새로운 종이 주조되면 희생물을 죽여 피를 바르는 釁鐘(흔종, 釁은 피칠할 흔) 의식을 치르는데 끌려가던 소가 눈물을 흘렸다. 아무 죄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것을 왕이 못 보겠다며 놓아주라 하고, 흔종을 ‘폐지하는 대신 양으로 소를 대체하라(何可廢也 以羊易之/ 하가폐야 이양역지)’고 한 명령이 사실인지 물었다.

선왕이 그렇다고 답하자 맹자는 왕 노릇 하기에 충분하다고 칭찬한다. 일반 백성들은 큰 재물을 아끼기 위해서라 생각하더라도 사지로 끌려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설명한다. ‘그것이 바로 인을 실천하는 방법이니, 소는 직접 보고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是乃仁術也 見牛未見羊也/ 시내인술야 견우미견양야).’

애처로운 소의 모습을 보고 惻隱之心(측은지심)이 일어난 것이니 왕이 어진 마음을 갖고 백성을 아끼는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양은 도살될 때 눈물을 흘리는지 알 수 없어 본 것과 보지 못한 것이 생사를 가른 셈이다.

맹자가 소의 눈물만 측은하게 생각하고 보지 못한 양의 희생을 대수롭지 않게 본 것은 생명은 모두 같다고 주장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겐 불만일 듯하다. 더군다나 군자는 짐승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애처롭게 우는 소리를 듣고서는 그 고기를 먹지 못해 주방을 멀리한다고 한 말은 더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건 보이지 않건, 덩치가 크건 작건 생명을 유지하는데 自給自足(자급자족)은 할 수 없어 弱肉强食(약육강식)은 계속된다. 양을 소로 바꾸어 이득을 보면 흐뭇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227.html
kolaswqetsrq 11.02 14:54
하면목견지何面目見之 –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을 대하겠는가

하면목견지(何面目見之) –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을 대하겠는가

어찌 하(亻/5) 낯 면(面/0) 눈 목(目/0) 볼 견(見/0) 갈 지(丿/3)

얼굴과 눈(面目)은 자신을 남에게 보여주는 첫 번째 신체기관이다. 자기도 남의 됨됨이를 얼굴과 눈으로 평가한다. 사람이나 사물의 겉모습만 본다는 위험이 있으나 우선 보이는 것이 얼굴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염치가 없으면 ‘얼굴이 두껍다’고 하고 죄인의 얼굴에 먹줄로 죄명을 새기는 黥(경)을 가장 무서운 형벌로 여겼다. 그래서 면목은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인 체면과 같이 인격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면목이 들어간 말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무슨 낯이 있어(何面目) 남을 보겠는가(見之)란 이 성어다. 실패하고서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겠는가 하며 項羽(항우)가 남긴 최후의 말에서 나왔다. 無面渡江(무면도강), 無面渡江東(무면도강동)이라고도 한다.

중국 秦始皇(진시황, 기원전 259~210)이 죽은 뒤 혼란의 와중에 빠진 천하는 항우와 劉邦(유방)의 楚漢(초한) 쟁패로 좁혀졌다. 초기엔 ‘힘이 산을 뽑는(力拔山/ 역발산)’ 항우가 기세를 떨쳤으나 5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유방에 몰리게 되었다.

垓下(해하)에서 四面楚歌(사면초가)로 기력을 잃은 항우군이 참패를 당한 뒤 800여 기병을 이끌고 포위망을 뚫었다. 정신없이 쫓기는 중에 한 농민이 길을 잘못 가르쳐줘 수천의 추격군에 몰린 초군은 烏江(오강)에 이르렀을 때는 26명만이 남았다.

오강에서 배를 준비하고 기다리던 亭長(정장)이 항우에게 건너기를 권했다. 강을 건너기만 하면 처음 군사를 일으킨 江東(강동)이니 그곳에서 다시 왕업을 도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항우는 웃으면서 하늘이 자신을 버렸는데 강을 건널 수 없다고 했다. 강동의 자제 8000명과 함께 이 강을 건넜는데 지금 돌아갈 자는 아무도 없다면서 말한다.

‘설령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아준다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볼 수 있겠는가(縱江東父兄憐而王我 我何面目見之/ 종강동부형련이왕아 아하면목견지)?’ 이렇게 말하고는 烏騅馬(오추마)를 정장에게 주고 칼로만 대적하다 옛 부하였던 呂馬東(여마동)을 보자 현상금을 가지라며 목을 찔러 31세의 생을 마감했다. ‘史記(사기)’ 항우본기에 실린 내용이다.

누구나 잘못을 알고 있는데 자신만 모르는 얼굴 두꺼운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는 만큼 실수할 수는 있어도 그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거나 숨긴다면 더 큰 화가 돌아온다. 항우처럼 목숨을 던질 일이 아니l라면 잘못을 인정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옳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998.html
kolaswqetsrq 11.02 14:54
천장지제 궤자의혈千丈之堤 潰自蟻穴 - 천 길 둑이 개미구멍에 무너진다, 작은 일을 주의해야 화를 면한다.

천장지제 궤자의혈(千丈之堤 潰自蟻穴) - 천 길 둑이 개미구멍에 무너진다, 작은 일을 주의해야 화를 면한다.

일천 천(十/1) 어른 장(一/2) 갈 지(丿/3) 둑 제(土/9)

무너질 궤(氵/12) 스스로 자(自/0) 개미 의(虫/13) 굴 혈(穴/0)

적은 힘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을 손쓰지 않았다가 낭패 보는 일이 흔하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으로 깨우치지만 그렇지 못해서다. 작은 흠을 괜찮겠지 하며 방치하다 나중에 큰 화가 닥칠 때의 "개미구멍이 둑을 무너뜨린다"는 말과도 닮았다.

앞서 소개한 바 있는 堤潰蟻穴(제궤의혈)이 번역한 듯 꼭 들어맞는 성어다. 또 이 말은 천 길이나 되는 둑도(千丈之堤) 개미구멍에 의해 무너진다(潰自蟻穴)는 말을 줄인 것이고 "韓非子(한비자)"에는 땅강아지까지 등장하는 재미있는 비유가 있다. 모두 작은 틈도 놓치지 않아야 나중의 큰 희생을 막는다는 가르침이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韓非(한비)는 법을 집행하는 형벌이 엄중해야 나라를 바로 다스릴 수 있다고 주장한 法家(법가)의 대표다. 老子(노자)의 道家(도가) 사상에 심취해 그의 역저 한비자에는 道德經(도덕경)의 가르침을 비유했다는 喩老(유로)편이 따로 있을 정도다.

제63장의 恩始章(은시장)에 나오는 노자의 말을 먼저 인용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天下難事 必作於易/ 천하난사 필작어이),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天下大事 必作於細/ 천하대사 필작어세)." 그래서 어렵고 큰일을 도모하려면 작은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예를 드는 것에 성어가 나온다.

"천 길이나 되는 제방도 땅강아지와 개미구멍 때문에 무너지고(千丈之堤 以螻蟻之穴潰/ 천장지제 이루의지혈궤), 백 척이나 되는 집도 굴뚝 틈새의 불씨로 잿더미가 된다(百尺之室 以突隙之烟焚/ 백척지실 이돌극지연분)." 螻는 땅강아지 루. 魏(위)나라 재상 白圭(백규)가 물을 다스리는 일에서는 禹(우)임금보다 낫다고 자부하는 것도 제방을 순시할 때마다 살펴 작은 구멍을 막았기 때문이라 했고, 집안의 어른들은 불을 굴뚝의 틈새를 흙으로 발랐기 때문에 화재의 염려가 없다는 설명이 어이진다.

劉安(유안)의 淮南子(회남자)엔 비슷한 담장이 나온다. "담이 무너지는 것은 조그만 틈새에서 비롯되고(牆之壞也於隙/ 장지괴야어극), 칼이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빠진 날에서이다(劍之折必有齧/ 검지절필유설)." 齧은 깨물 설.

제방의 틈새를 막아 물난리를 대비한 백규에 대해 孟子(맹자)는 아래로 흐르는 물의 본성을 무시한 것이라며 잘못이라 평한다. 둑을 막아 자국의 농지는 보호했지만 그 물이 딴 나라로 흘러 홍수 피해를 입힌 것은 어진 사람 할 일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다닥다닥 국경이 인접하지 않은 오늘날 우리는 제방이나 보를 허물어 홍수가 나면 바로 이웃이 피해를 본다. 다리의 공사를 허술하게 하여 끊어지고, 조그만 안전책을 지키지 않아 배가 침몰하며 공사장의 인부가 목숨을 잃는다. 세심하게 주의해서 이웃이 피해를 입는 일은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198.html
kolaswqetsrq 11.02 14:55
탐생외사貪生畏死 -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다.

탐생외사(貪生畏死) -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다.

탐낼 탐(貝/4) 날 생(生/0) 두려워할 외(田/4) 죽을 사(歹/2)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生者必滅(생자필멸)이다. 그래서 사람은 태어나자 죽음이 시작된다고 했고, 영리한 자나 바보를 가리지 않으며 부자와 가난뱅이를 차별하지 않고 죽음에 있어서는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공평하게 살다 가지 않으니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천양지차다.

하늘이 용납 못할 죄를 저지르고도 구차한 목숨을 빌거나 불의를 못 참고 바로 잡으려다 죽음을 당하는 義死(의사)도 있다.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떤 죽음을 맞느냐에 따라 泰山鴻毛(태산홍모)의차이가 난다고 했다.

모두들 목숨을 아끼고(貪生) 죽음을 두려워한다(畏死)는 이 성어는 누구나 해당되는 이야기라도 특히 비루하게 살려주기를 빌 때 사용한다. 貪生怕死(탐생파사, 怕는 두려워할 파)라 해도 같다. 역사가 班固(반고)가 쓴 ‘漢書(한서)’ 文三王傳(문삼왕전)의 劉立(유립)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유립은 선조가 前漢(전한)의 5대 文帝(문제)의 차남으로 梁王(양왕)이 된 劉武(유무)라 떵떵거리는 집안이었다. 유무는 친형 景帝(경제)때인 서기전 154년 제후국이 영토삭감에 반발하여 일어난 吳楚七國(오초칠국)의 난 진압에 공이 큰 반면 후일 양왕으로 오른 유립은 망나니였다.

유립이 양왕이 된 때는 한말 12대 成帝(성제) 때였는데 왕실의 뒷배만 믿고 황음무도한데다 백성들을 못살게 굴고 관원들도 멋대로 구타하기 예사였다. 보다 못한 양나라 고관들이 탄원하여 왕명이 내렸는데 처벌도 못했다.

13대 哀帝(애제)가 즉위한 뒤 유립이 더 기고만장해지자 고관을 보내 조사에 나섰다. 병을 핑계했던 유립은 심상찮은 분위기에 두려움을 느끼고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일찍 부모를 잃고 좋지 못한 습관에 물들어 나쁜 짓을 용서하라며 말한다.

‘목숨 붙어있기를 탐하며 죽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거짓으로 병을 가장했습니다(貪生畏死 即詐僵僕陽病/ 탐생외사 즉사강복양병).’ 僵은 넘어질 강. 구차하게 목숨을 빈 덕에 유립도 사면됐으나 新(신)나라가 들어선 후 폐서인되고 자살로 생을 마쳤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유명한 선시 구절을 보자. ‘나는 것은 뜬구름 한 조각이 일어나는 듯하고(生也一片浮雲起/ 생야일편부운기), 죽음은 그 구름이 사라지는 것(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 구름이 실체가 없듯 삶과 죽음도 같다는 말이다.

죽을죄를 짓고도 구차하게 목숨을 비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옳은 일을 위해서는 죽음 보기를 마치 편안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여긴다는 視死如歸(시사여귀)도 있다. 어떤 사람 이름이 오래 남을까. 그렇다고 막막할 때 목숨을 버리는 것은 물론 안 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898.html
kolaswqetsrq 11.02 14:56
절구절국竊鉤竊國 – 갈고리 도둑과 나라 도둑

절구절국(竊鉤竊國) – 갈고리 도둑과 나라 도둑

훔칠 절(穴/17) 갈고리 구(金/5) 훔칠 절(穴/17) 나라 국(囗/8)

竊盜(절도), 剽竊(표절) 등에 사용되는 훔칠 竊(절)은 획수가 많아 속자 窃(절)로 더 많이 쓴다. 끝이 뾰족하고 꼬부라진 물건 갈고리를 훔친 도둑(竊鉤)과 나라를 훔친 도둑(竊國)이라는 말은 무슨 비유일까. 좀도둑은 큰 벌을 받고 큰 도둑은 부귀를 누린다. 시비나 상벌이 공평하지 못하고 지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꼬집은 말은 많다.

높은 벼슬아치가 갖가지 뇌물과 세금으로 재물을 탐한다는 ‘사모 쓴 도둑놈’이나, 그러면서도 밑의 사람들의 부정행위는 엄격히 다스린다는 ‘큰 도적이 좀도적 잡는 시늉 한다’ 등의 속담이 있다. 이것에 훨씬 더하여 나라를 송두리째 들어먹어도 성공하면 제후가 되었으니 공정을 말할 수가 없다.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때의 사상가 莊周(장주)는 ‘莊子(장자)’에서 도덕이나 지식, 문명 등의 부정적 측면을 꼬집는다. 성인이나 지식인은 위정자라는 큰 도둑을 위한 파수꾼에 불과하다고 胠篋(거협, 胠는 겨드랑이 거, 篋은 상자 협)편에서 주장한다.

상자를 열고 궤짝을 뜯는 도둑에 대비하려면 줄로 꽁꽁 묶어야 하는데 큰 도둑이 오면 상자 째로 훔쳐 간다. 그러니 지혜로 상자를 잘 간수한다는 것은 큰 도둑을 위해 물건을 모아주는 것이 된다는 설명이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아무리 성인이 잇달아 나와 세상이 잘 다스려진다 해도 그것은 盜跖(도척)과 같은 큰 도둑만 이롭게 해 줄 뿐이다. 곡식을 계량하는 말과 섬으로 정확히 잰다고 해도 말과 섬을 훔치고, 저울로 계량하려 하면 저울을 훔치며, 인의의 도를 내세워 사람을 가르치면 그 인의마저 도둑질할 것이라며 이어진다.

‘조그만 쇠갈고리를 훔친 사람은 목을 베이지만,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彼竊鉤者誅 竊國者爲諸侯/ 피절구자주 절국자위제후).’ 결국 그 가문에는 인의가 있다고 하니 인의와 성인의 지혜를 한꺼번에 훔친 것이 된다는 것이다.

권세나 돈이 많은 자들이 저지르는 부정이나 부패를 법대로 처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국민의 힘으로 세상이 바뀌었어도 돈의 힘으로, 또는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권력의 연줄로 법의 틈을 헤집어 빠져나가는 일이 숱했기 때문이다. 장자의 작은 도둑, 큰 도둑 이야기는 오늘날도 여전한 셈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893.html
kolaswqetsrq 11.02 14:57
"한국, 7번째 우주강국 됐지만..6등과 격차 매우 크다"

"한국, 7번째 우주강국 됐지만..6등과 격차 매우 크다"

누리호가 우주 기술 독립의 꿈을 이룬 원동력으로 지난 12년간 2조원을 쏟아부은 대규모 투자와 함께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해온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진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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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발사를 총괄 지휘한 이상률 항우연 원장과 나로호 개발을 총괄했던 조광래 전 항우연 원장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미드 스페이스 시대에 본격 진입한 우리나라가 궁극적으로 뉴 스페이스 시대로 도약하기 위해 민간이 더욱 큰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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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은 "민간의 공격적인 투자가 있어야 한다. 한국 발사체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민간 기업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미 개발된 기술은 최대한 민간에 이전할 계획이다. 우주 생태계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조 전 원장 역시 "당장 우리나라에서 미국 스페이스X 같은 기업이 나오기는 어렵다. 우리가 개발한 75t 엔진과 탱크 기술 등을 민간에 이전하고, 항우연은 자문 역할을 하면서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다만 미래 기술에 도전해야 한다. 투자 위험이 큰 개발은 국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줘야 하고 이에 맞춰 항우연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누리호 발사 이후 과제에 대해서는 \성능 향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원장은 "세계 7번째로 우주 강국 반열에 올라섰다는 건 맞는 말이지만, 6등과의 격차가 굉장히 큰 7등"이라며 "발사체 성능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 전 원장은 "발사체 분야에서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기술이 있는 국가는 자신들의 뜻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차세대 발사체에서는 자동차로 비유하면 배기가스를 다시 연료로 사용하는 형태의 엔진을 개발해 탑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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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로켓 개발부터 누리호에 탑재된 위성이 궤도에 안착하기까지 한국형 발사체 사업은 숨 가쁘게 진행됐다. 항우연 설립 이전 천문우주과학연구소 시절부터 우주 개발의 역사를 함께해온 두 사람이 지목하는 변곡점은 언제일까. 전·현직 항우연 원장은 모두 나로호 개발 당시를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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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은 "1·2차 실패의 경험이 오히려 성공에 대한 열망에 불을 붙였다. 한국 사람 특유의 오기도 그때 생겼던 것 같다"고 밝혔다. 조 전 원장은 "나로호를 러시아와 공동 개발한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누리호 성과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이런 시기에 항우연의 기관장으로 있는 것이 너무나 영광"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이어 "두 차례 연기가 있었지만 가야 할 길이라면 마음을 더 다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발사체본부 연구원들도 칼을 갈고 있었다"고 전했다.

-매일경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6.html
kolaswqetsrq 11.02 14:58
■ 임자 만났다

■ 임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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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오늘 임자 만났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임자를 한자로 하면 임자(壬子)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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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과 같은 서기 0000년을 쓰기 전, 우리는 육십갑자로 해를 세었다. 육십갑자란 하늘의 시간인 천간(天干)과 땅을 지키는 동물을 나타내는 지지(地支)를 차례대로 조합하여 갑자년, 을축년, 병인년 이런 식으로 햇수를 세었던 방식이다.

천간은 십간(十干)이라고도 하며,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로 표현된다.

지지는 십이지(十二支)라고도 하며,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가 이에 해당된다. 십이지는 시간의 단위로도 쓰이나 사람의 띠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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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임자(壬子) 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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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壬)은 천간 중 하나로 수(水)에 해당한다. 수(水)는 숫자로 1이다. 물에서 생명이 시작되므로 물을 제일 첫번째로 보는 것이다. 자(子)는 지지(地支) 가운데 제일 첫 번째이자 물이다. 임자는 천간에서도 첫 번째이고, 지지에서도 첫 번째에 해당하는 육십갑자이다. 그러므로 임자 만났다는 말은 최고룰 만났다 제일 강한 상대를 만났다 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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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에서도 위에 있는 임(壬)보다 밑에 있는 子가 더 근원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하루의 시간 중에서 자시(子時)가 가장 근원적인 시간이다. 자시는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의 시간이다. 우리 조상들은 자시를 만물이 시작되는 시간이요, 탄생하는 시간이요, 소생(蘇生)하는 시간으로 생각하였다. 자시는 한밤중을 가리킨다. 음(陰)이 극(極)에 달한 시간이다. 음이 정점에 도달하는 시간에 사람은 반드시 잠을 자야 한다. 그래야 깊은 휴식이 된다.

깊은 휴식이 되어야 소생도 되고 시작도 된다. 자시에 잠을 자지 못하면 소생도 되지 않고 새로운 시작도 할 수 없다. 자시가 되면 불을 끄고 잠을 자야 한다. 임자를 만난다는 것은 어두움을 만나고 잠을 자고 나서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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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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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880.html
kolaswqetsrq 11.02 14:58
■ 국보와 보물 1편

■ 국보와 보물 1편

우리나라의 국보 제1호는 숭례문(남대문)이고, 보물 제1호는 흥인지문(동대문)이었다. 하지만 지정번호가 가치를 평가하는 것으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아 그 지정번호를 없애기로 했다.

우리 민족은 뛰어난 재능과 지혜로움을 바탕으로 눈부신 문화의 꽃을 피워왔다. 조상들이 남긴 유형문화재를 국보와 보물로 나눈 기준은 국보는 작품의 제작기술·연대 등이 각 시대를 대표할 만한 것으로서 보존상태가 양호하면서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높은 데 비해, 보물은 일반적인 지정 기준에 도달하는 문화재를 지정한 것으로 엄격한 구분은 불가능하다.

국보는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가운데 인류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을 문화재청이 지정·등록한다. 2018년 11월 기준 우리나라 국보의 수는 제1호인 숭례문(남대문)부터 국보 제324호인 〈이제 개국공신교서(李濟 開國功臣敎書)〉까지 모두 336점에 달한다. 국보의 번호와 국보의 갯수가 다른 이유는 국보 가운데 <삼국사기>(국보 제322-1호, 국보 제322-2호)처럼 복수의 문화재가 국보로 등록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제1호, 제2호,......같은 국보의 지정번호는 그 가치의 우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정 순서에 따라 부여되는 고유번호이다. 즉, 국보 제1호인 숭례문(남대문)이 가장 귀중한 국보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법령에 의해 국가적인 보물로 지정된 최상급 유물인 국보를 포함한 국가지정문화재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며 국가적 최고의 재산이므로 특수재산으로 취급되어 <문화재보호법>이라는 특별법을 제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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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1955년 우리나라는 일제 때 지정된 보물을 모두 국보라고 명칭을 바꾸었으며,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후 1963년에 다시 북한에 있는 것을 제외시키고 국보를 국보와 보물로 재분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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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지정 대상은 목조 건물 · 석조물 · 서적 · 고문서 · 회화 · 조각 · 공예품 · 고고 자료 · 무기 등이다. 국보는 국가가 소유하는 것도 있고, 개인이나 단체가 소유하는 것도 있다.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는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소유자는 관리 의무를 다하여야 하고, 이동하거나 사고 팔 때는 반드시 문화 체육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보가 되기 위한 요건은 무엇일까?

첫째,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역사저그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이어야 한다.

둘째,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제작 연대가 오래되고, 그 시대의 대표적인 것이어야 한다.

셋째,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제작기술이 특히 우수하여 그 유례가 적은 것이어야 한다.

넷째,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저명한 인물과 관계가 있거나 그가 제작한 것이어야 한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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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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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55.html
kolaswqetsrq 11.02 14:59
■ 고려와 조선의 치안담당은 누가?

■ 고려와 조선의 치안담당은 누가?

고려시대에는 중앙군으로 2군6위가 있었다. 6위 중 ‘금오위’는 개경의 치안 담당을 주 임무로 하여, 우범지대의 정기적인 순검을 맡으며 치안유지를 담당했다. 그 후 ‘순검군’이라는 군대가 도성과 주요 지방에 설치돼 순찰과 치안 유지를 맡았는데, 고려 의종 때인 1167년에는 순검군 중 뛰어난 자를 뽑아 내순검이라고 부르며 궁궐 수비를 맡게 했다. 이들은 자줏빛 옷을 입고 활과 검으로 무장한 채 궁궐 밖에 배치되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까지 순찰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최씨 무신 정권 때는 밤에 도둑을 단속하기 위해 야별초(夜別抄)라는 군대를 설치했다. 야별초가 폐지된 후엔 원의 제도를 따라 충렬왕 때 순마소를 설치했는데, 이 역시 도적을 잡고 난폭한 자를 다스리는 경찰 임무가 목적이었다. 순마소는 이후 순군만호부로 확대·개편되면서 조선 초기까지 이어졌다. 조선 태종 때 순위부로 바뀌었다가 이후 의용순금사를 거쳐 의금부로 개편되었다. 이후 경찰 업무는 수도 경비를 맡은 5위에게 넘겨주고, 의금부는 주로 왕족의 범죄나 반역죄 등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중대 범죄에 대한 특별 재판을 담당했다. 사극을 보면 의금부의 금부도사가 역적을 잡으러 가는 장면이 가끔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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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왕 성종 때 포도청이 생겨나면서 좌포도청과 우포도청으로 지역을 나누어 수도권의 치안을 담당했다. 좌·우 포도청을 맡은 포도대장은 종2품 무관직이었다. 우리 속담 중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있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면 어쩔 수 없이 해서는 안 될 짓까지 하게 되어 포도청에 잡혀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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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조선은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서양 여러 강대국들과 교류하게 되고, 1894년에는 갑오개혁 이후 근대식 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일본식 제도를 따라 좌·우 포도청을 합친 경무청이 새로 만들어 졌고, 오늘날의 경찰청과 같은 조직이 생겨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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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지방 백성들의 치안은 누가 담당했을까?

고려와 조선시대엔 국왕을 대신해 각 고을에 파견된 수령(부사, 목사, 군수, 현령)에게 막강한 권력이 주어졌다. 사극에서 사또 또는 원님이라고 불리우던 사람들로서, 사법권·행정권·군사권을 가지고 지방의 치안을 맡아 독자적으로 처리했다. 중앙에서 파견되는 이 수령을 보좌하기 위해 지방 관리로 육방(六房: 이·호·예·병·형·공)을 두었는데, 이 중에서 군사실무를 맡았던 병방(兵房)과 법률·소송·형벌과 감옥에 관한 실무를 맡았던 형방(刑房)에서 오늘날의 경찰업무를 나누어서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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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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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199.html
kolaswqetsrq 11.02 15:00
■ 환향녀還鄕女 와 호래자식胡來子息

■ 환향녀(還鄕女) 와 호래자식(胡來子息)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지는 않지만 우리가 무심코 사용해 왔던 용어의 어원과 의미를 따지고 보면 역사적으로 아픔을 담고 있는 것들이 있다.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음란한 여자’를 가리키며 욕으로 쓰이는 ‘화냥년’은 원래 ‘환향녀(還鄕女)’에서 유래되었다. 청과의 전쟁에서 패한 인조와 그 신하들은 조선의 백성들이 청나라에 끌려가는 상황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았다. 이후 청나라에 끌려간 여인들은 청나라에서 치욕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언젠간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으로 모진 청나라 생활을 견뎌냈다. 이윽고 청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풀리고 인질로 잡힌 포로들을 돈을 주고 조선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 가능해지자 양반사대부들은 돈을 지불하고 자기의 딸과 아내와 어머니를 귀국 시키게 된다. 이때 이렇게 돌아온 여인네들을 부르는 명칭이 ‘환향녀(還鄕女)’ 즉 ‘고향에 돌아온 여자’ 였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오자 가문을 위해 죽지 않고 뻔뻔하게 살고 있다는 이유로 바람난 부정한 여자의 대명사 ‘환향녀(화냥년)’ 이라고 부르는 말이 되었다. 당시 환향녀를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이혼과 자결을 강요하는 사회현상이 얼마나 심했으면 인조가 고민 끝에 특별한 어명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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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 있는 홍제천에서 몸을 씻으면 모든 과거는 불문에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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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잘못으로 잡혀간 아녀자들이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 왔는데, 그녀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홍제천에서 몸을 씻으면 과거를 묻지 않겠다니..........

하지만, 왕이 지명한 천에서 몸을 씻었다고 당시 사회에서 그 여자들을 받아 들였을까? 그랬다면 ‘화냥년’이란 욕이 지금까지 남아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호래자식(胡來子息)’ 이란 환향녀(還鄕女)들이 낳은,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오랑캐의 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이 점차 ‘배운 데 없이 막되게 자라 교양이나 버릇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인 ‘호로자식(후레자식)’ 으로 변형되어 역시 욕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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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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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980.html
kolaswqetsrq 11.02 15:00
■ ‘흥청망청’의 유래

■ ‘흥청망청’의 유래

1505년 10월 2일 「연산군일기」에는 ‘갑자년 이후의 하교(下敎)가 흥청·운평에 관한 일이 아니면 사람을 벌하고 죽이는 일이라, 인심이 날로 떠났다.’ 는 기록이 있다.

자신의 생모인 폐비 윤씨(성종의 부인)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한 연산군이 무수한 사람들을 죽이면서 벌인 복수극이 바로 ‘갑자사화’이다. 이 일이 있은 뒤 연산군의 광폭한 행동은 더욱 심해져, 사람을 죽이는 일과 마시고 노는 일에 더욱 열을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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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11년(1505년) 6월, 연산군은 전국 팔도에서 미녀와 튼튼한 말을 구하기 위해 지방 관리인 채홍준사(採紅駿使)를 파견했다. 사대부의 첩이나 양인의 아내와 딸, 노비, 창기 중에서 닥치는 대로 여자들을 징발했는데 그 수가 1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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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왕실 기생을 운평·계평·채홍·속홍·부화·흡려 따위의 호칭으로 불렀으며, 그 중에서도 재주가 뛰어나면 운평이라 하고, 재주 뿐 만 아니라 미모도 뛰어나면 흥청이라고 불렀다. 이런 이름들은 연산군이 직접 지었다. 흥청이란 ‘사악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으라’ 는 뜻이며, 운평이란 ‘태평한 운수를 만났다’ 는 뜻이다. 흥청 가운데 왕과 관계를 갖지 못한 자는 ‘지과’라 하고, 관계를 가진 자는 ‘천과’라 하며, 관계를 가졌으되 흡족하지 못한 자는 ‘반천과’ 등으로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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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처음에 연산군의 할아버지인 세조가 세운 원각사(현재 탑골공원)에 수용되었지만, 이들 왕실 기생들을 위해 모두 일곱 군데에 거처할 시설을 지었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왕실 기생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모두 백성들이 부담했으니 불평불만의 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연산군이 서울 근교로 놀러 갈 때 왕을 따르는 흥청의 수가 1천 명씩 되었고, 날마다 계속되는 파티에도 흥청과 운평이 동원되었다. 연산군은 이 수많은 기생들과 궁궐 내에서 함께 놀이를 즐기고 주연을 베풀면서 많은 상을 내리기도 했다. 이러한 까닭에 국고는 텅텅 비게 되고 나라가 망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연산의 이러한 행각으로 원래 ‘사악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으라’는 좋은 뜻을 가졌던 ‘흥청’의 뜻을 변질시켰고, ‘흥청은 나라를 망치는 망청’이라는 뜻으로 오늘날 우리가 쓰는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유래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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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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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267.html
kolaswqetsrq 11.02 15:01
■ 서희가 살아있다면 외교부장관 감

■ 서희가 살아있다면 외교부장관 감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이른바 ‘벼슬도’ 라는 것을 그려놓고, 생존여부에 관계없이 어느 벼슬에 누가 적격인가 이름을 써넣는 놀이를 즐겨했다고 한다. 이때 오늘날 외교부장관에 해당하는 예조판서로 가장 빈번히 이름이 오르는 사람이 서희(徐熙)이다. 거란(요)이 쳐들어왔을 때 적장 소손녕과 외교담판을 통해 전쟁 없이 강동육주(江東六州)를 획득한 사람이다.

과연 말로 영토를 획득하는 것이 가능할까?

거란족은 중국 당 말기의 혼란을 틈타 10세기 초 여러 부족을 통일하면서 거란을 수립하였다. 중국 본토를 넘보는 거란이 먼저 처리해야 할 현안은 후방에 있는 한반도(고려)와 만주(발해)였다. 먼저 발해를 멸망시키고 점차 영토를 확대시켜 드디어 947년에는 나라 이름을 요(遼)로 바꾸고 중국을 포함하는 대제국을 수립하겠다고 선포했다.

요는 중원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고려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든지, 속국으로 만들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했다. 요는 고려를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사신과 낙타 50마리를 보냈다. 하지만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것에 분개해 있던 태조 왕건은, 사신은 섬으로 유배 보내고 낙타는 개성의 만부교 아래 매달아 굶겨 죽였다. 이에 고려와 거란은 적대관계에 놓이게 되고, 고려 성종 12년에 장수 소손녕을 보내 고려를 공격하게 되었다.

고려는 이에 패배하고 봉산군(현재 청천강 이북 지역)을 빼앗기고 말았다. 할 수 없이 고려 성종은 화해를 표명했으나, 소손녕은 거듭 항복만을 요구했다. 이에 고려 조정은 ‘항복하자’는 주장과 ‘서경(평양) 이북의 땅을 떼 주자’는 주장이 팽배하고 성종도 이에 동조하였다. 이를 전면 반대하고 나선 인물이 중군사(中軍使) 서희였다.

그는 요의 침입목적이 고려정복이 아니라 중국(송)을 견제하기 위해 고려와 화의를 맺는 것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외교담판을 벌이기 위해 성종의 국서(國書)를 들고 소손녕을 찾아갔다.

“우리나라는 고구려의 후예로 옛 고구려의 땅은 우리 것이므로 너희가 우리 땅에 들어와 나라를 세운 것이다. 지금 너희 나라와 국교를 통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족이 중간에 있음이므로, 여진족을 내쫓고 우리 옛 땅을 회복하여 길을 통하게 한다면 어찌 국교가 통하지 않겠는가”

서희의 주장을 요나라 성종에게 보고하니 고려가 이미 화의를 요청했으니 철수하라고 회답했고, 나아가 고려가 압록강 유역의 영토를 개척하는 데에도 동의한다는 글을 보내왔다.

다음해 고려 성종 13년 서희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여진족을 몰아내 강동육주(江東六州)에 성을 쌓아 고려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대동강 이남으로 축소된 고려 영토를 압록강 유역까지 넓힌 것이다. 요의 침입은 고려에게 분명 위기였으나 서희는 냉철한 판단력과 담력으로 이 위기를 영토 확장이라는 기회로 전환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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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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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957.html
kolaswqetsrq 11.02 15:02
나도 그래야지

나도 그래야지

누군가를 만날 때 크진 않아도

작은 정성 예쁘게 포장해 만나는

그 누군가에게 기쁘게 주어야지

주는 마음은 가벼운 마음이었을 지라도

받는 마음은 얼마나 큰지 아니까

나도 그래야지

관계의 어려움 속일지라도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보고 노력하고

나쁜 말은 삼키려 노력해야지

쉬운 말이라고 자꾸 내뱉다 보면

허공에 떠다니는 그 말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 아니까

나도 그래야지

상대방의 작은 말에도 호응하고

고개 끄덕이며 즐거워해 주고

살짝 기분 나쁜 말일지라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수용해 줘야지

받아 내는 사람 마음은 조금 안좋을지라도

뱉어 내는 사람 마음은 얼마나 신경 쓰이고

얼마나 힘들지 아니까

나도 그래야지

누군가의 좋은점을 발견하면 먼저 칭찬해 주고

안좋은 점을 보면 살짝 가려주고

항상 좋은점만 먼저 보려 노력해야지

자꾸 그 사람의 안좋은 점을 먼저 본 후

평가하고 판단하다 보면 그 함정에 빠져

스스로 허우적거릴 거라는 걸 더 잘 아니까

나도 그래야지

작지만, 절대 작지 않은 걸로 인하여

만나는 누군가에게 두 배의 행복을 선물해야지

그게 꼭 선물이 아니어도 밝고 환한 웃음으로

반길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 시간도 분명 두배의 행복이겠지

- 김현미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599.html
kolaswqetsrq 11.02 15:03
손·발이 계속 차갑다면 의심해 봐야 하는 질병 6가지

손·발이 계속 차갑다면 의심해 봐야 하는 질병 6가지

사람 중엔 추위를 느끼지 않을 상황인데도 유난히 손발이 차가운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대다수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는 것인데 사실 손발이 차가운 건 우리 몸에 뭔가 이상이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1. 레이노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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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노 증후군은 우리가 흔히 부르는 수족냉증과 비슷한 질병으로 손발 끝이 차가워지면서 색이 하얗거나 파랗게 변하는 증상이다. 심한 경우 근육이 꼬이듯 아픈 통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원인은 분명하게 밝혀진 바가 없지만 따뜻한 장갑을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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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가 면역 질환

손발이 차갑다면 면역체계에 문제가 생긴 것일 수 있다. 특히 자가 면역 질환을 의심해 봐야한다. 이는 자신의 장기조직에 대해 항체가 생산되는 알레르기 질환이다. 한마디로 우리 몸의 면역 세포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류머티즘, 크론병, 아토피, 궤양성 대장염 등이 있다.

3. 갑상선 기능 저하증

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갑성선 내에 호르몬이 잘 생성되지 않아 체내의 갑상선 호르몬 농도가 저하되거나 결핍된 상태가 지속되는 증상이다. 갑상선은 우리 몸의 체온계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시 당연히 손발이 차가워지는 수밖에 없다. 손발이 차가워지면서 체중 증가, 피로, 변비 등의 증상이 함께 수반된다면 병원으로 가 검진을 받아봐야 한다.

4. 혈액 순환 문제

산소와 영양분이 풍부한 혈액이 체내에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면 손발이 차가워지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혈액순환 악화는 동맥 경화나 심부전 같은 심각한 질병을 유발해 심장마비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5. 빈혈

여자들이 흔히 가진 질병 빈혈 역시 손발을 차갑게 하는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빈혈은 혈중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거나 적혈구 수치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정상적인 상태의 혈액이 손발에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빈혈은 주로 철분 결핍으로 발생하는 질병이지만 궤양, 위장 출혈 등으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으니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자들이 흔히 가진 질병 빈혈 역시 손발을 차갑게 하는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빈혈은 혈중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거나 적혈구 수치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정상적인 상태의 혈액이 손발에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빈혈은 주로 철분 결핍으로 발생하는 질병이지만 궤양, 위장 출혈 등으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으니 간과해서는 안 된다.

6. 저혈압

저혈압은 혈액 손실, 내분비 장애, 특정 약물 복용, 그리고 단순한 탈수증의 결과일 수 있다. 혈압이 떨어지면 신체는 내부 장기와 같은 중요한 기관으로 먼저 혈액을 흘려보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손가락엔 혈액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따라서 손발이 차갑게 되는 증상과 함께 메스꺼움, 피로, 현기증 등이 유발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6_23.html
kolaswqetsrq 11.02 15:03
다이어트에 최고인 바나나

다이어트에 최고인 바나나

바나나는 익으면 익을수록 암세포를 파괴시키는 종양괴사인자가 증가된다.

검은 반점이 생긴 후숙이 잘된 바나나는 백혈구의 일종인 대식세포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노란색 바나나에 비해 최대 8배의 항암력과 백혈구를 활성화하여 면역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일본을 비롯한 여러 연구기관의 연구결과에서 밝혀졌다.

■ 검은 반점이 많은 바나나의 효능.

1. 암세포를 파괴시키는 종양 괴사 인자 (Tumor Necrosis Factor)가 다량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암 발생률을 지금부터 낮추고 싶다면 껍질에 검은 반점이 많은 바나나를 꾸준히 섭취하도록 하자.

2. 생리통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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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이 검게 변한 바나나에는 ‘칼슘’성분이 풍부해 여성들의 생리통 완화에 효과적이다. 또한 바나나에는 칼슘, 철분, 비타민 ‘B6’ 성분이 풍부해 여성이 자주 먹으면 생리 증후군을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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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위궤양 치료에 좋다.

위궤양 증상은 특히 맵고 짠 음식을 기피해야 하는데, 이때 잘 익은 바나나는 소화를 도와 위를 편안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4. 속쓰림을 해결한다.

검게 변한 껍질의 바나나는 위 속의 산을 중화하는 천연 제산제 성분이 많아 위를 보호한다. 과음으로 또는 평소 속쓰림이 심하거나 위산 역류 증상이 자주 일어난다면 잘 익은 바나나를 먹도록 하자.

5. 피로회복

바나나의 칼로리는 100g 당 93kcal, 바나나의 칼로리는 먹자마자 즉각 에너지를 급 상승시키는데 사용되므로 운동이나 지친 업무 뒤 바나나를 먹으면 피로 회복에 좋다.

6. 변비 해소

보통 노란색의 바나나가 변비에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껍질에 검은 반점이 생긴 바나나가 변비 해소에 더 좋은 약이다.

껍질이 검게 변한 바나나에는 섬유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그만큼 더 장을 건강하게 만들며 장운동을 촉진시켜 변비해소에 크게 기여한다.

7. 빈혈에 좋다.

잘 익은 검은 반점 바나나는 철분제 역할을 대체할 만큼의 효과가 있다. 검은 반점이 생긴 바나나에는 철분 성분이 풍부한데 이는 우리 몸속 산소 운반을 도와 빈혈 예방, 완화를 돕는다. 칼슘과 철분이 풍부하여 특히 성장기 어린이에게 매우 좋다.

각종 영양 성분이 풍부한 바나나가 고 칼로리라고 생각되기 십상이지만, 실은 바나나 1개는 약 95kcal에 불과, 빵 1개 400kcal, 신라면 505kcal, 햄버거 520kcal, 사과 1개 150kcal 등과 비교해도 칼로리가 낮다. 또 쌀밥 350kcal, 두부된장국 370kcal, 반찬은 150~500kcal 정도이니 다이어트와 건강을 위해서 아침밥 대신 검은 반점 바나나 2개(190kcal) ~ 3개(280kcal)로 대신하는 것을 생각해 보시길...

후숙 과일인 바나나는 수입할 당시에 덜익은 초록색 바나나로 수입해 온다. 수입때 부터 서서히 익어 숙성되어 가는 중에 우리가 구입해 먹는 것이다. 바나나 검은반점이 생기기 시작하면 달콤해지는데 달콤해졌다고 칼로리가 높아진 것은 이니다.

바나나의 성분인 전분이 당으로 변화되어서 달콤해진 것에 불과하다. 실제 칼로리는 단거나 달지 않은 거나 똑 같으니 비만 때문에 달지 않은 것을 먹을 필요는 없다.

에덴 동산에서 뱀이 이브를 유혹할때 숨어있던 곳이 바로 "바나나 나무"의 그림자였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어, ‘낙원의 과실(musa paradisiaca)’이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는 과일이 「바나나」다. 숙성이 잘 되어 생긴 바나나의 검은 반점을 ‘슈가 스팟(Sugar Spot)’이라고 하는데 이는 "설탕 점"이라는 의미다.

검은 반점이 많이 생겼을 때 바나나의 당도는 최고점에 이르는데, 이 ‘슈가 스팟’이 넘 많이 발생하면 부패가 빨리 오기 때문에 슈가스팟이 많아지면 후다닥 얼른 먹어 치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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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는 나무의 열매가 아니다. 바나나는 거대한 나무에 열리는 열매라고 알고 있는데, 바나나는3m에서 크게는10m까지 자라는 파초과의 ‘여러해살이 풀’에서 열린다. 또 바나나 색깔은 노란색뿐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바나나는 노란색뿐 아니라 연한 갈색이나 붉은색, 주홍색 등의 품종도 있다.

껍질이 붉은색인 모라도(Morado) 품종의 바나나는 칼륨 및 탄수화물이 노란색 바나나에 비해 높게 함유되어 있으며 고구마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라까딴(lakata) 품종은 약간 붉은 색을 지닌 바나나인데, 일반 바나나보다 당도가 높고 과육도 붉은 색을 띠며 새콤달콤한 맛이 강하다.

다만 ‘슈가 스팟’이 많이 발생된 후에는 부패가 빨리 오기 때문에 후다닥 얼른 먹어 치워야 한다. 익으면 익을수록 숙성되면 될수록 영양소가 더욱 풍부해지고 우리 몸에 더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검은 반점 바나나 마니 마니 드세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534.html
kolaswqetsrq 11.02 15:04
100세 장수인들이 실천하는 금과옥조

100세 장수인들이 실천하는 금과옥조

1. 술

조사에 의하면 장수 노인 796명 중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은 524명(65.8%), 그리고 예전에는 마셨지만 지금은 끊은 사람이 119명(14.9%)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대상자 중 80%가 넘는 사람이 술을 멀리하고 있는 것. 마신다고 응답한 144명 중에서도 42명은 월 1회 이하로 음주 횟수가 아주 적은 편이다. 금주와 건강 정도가 정비례하고 있는 것.

▶일단 금주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부득이하게 술자리에 참석할 경우 한 번 마시면 3일은 쉬는 습관을 들인다.

2. 담배

담배 피운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은 462명(58.0%), 끊은 사람은 263명(33.0%)으로 현재 장수 노인의 91%는 담배를 절대로 입에 물지 않는다. 이들 중 음주와 흡연을 동시에 하고 있는 사람은 단지 25명(3.1%)에 불과해 대부분의 장수 노인들이 술 담배와 인연을 맺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흡연자라면 이유를 막론하고 무조건 끊는 것이 좋다. 그리고 본인뿐 아니라 남편의 금연에도 신경 써야 한다.

3. 스트레스

본인이 건강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173명(21.7%)이 낙천적인 성격 혹은 원만한 가정 생활 덕분이라고 답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교감하며 살면 그만큼 스트레스가 줄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수인 중 독거 노인이거나 양로원 등 집단 시설에 거주하는 사람은 11.4%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건전한 취미 활동을 하고 가족끼리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갖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스트레스가 생기면 곧바로 해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4. 소식

노인들은 장수의 가장 큰 비결로 소식 등 절제된 식생활(39.3%)을 꼽았다. 이들은 세 끼를 규칙적으로 먹고 절대 폭식하지 않는다. 평소 즐기는 음식은 채소(44.6%)가 가장 많았고 육류(22.5%)와 생선(15.2)의 비율도 높았다. 육류의 경우 구워 먹는 것보다 찌개나 조림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았다.

▶조리하고 남은 음식을 먹어 치우거나 폭식하는 습관을 버린다. 그리고 동물성 지방의 과다 섭취를 피한다.

5. 운동

100세를 넘겼는데도 집안일을 하며 하루에 1시간씩 몸을 움직인다는 사람이 71.4%, 그리고 매일 밖으로 나가서 활동하는 사람도 66%였다. 지난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한 연구팀이 발표한 ‘장수인 실태조사’에서도 적당한 외부 활동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건강할 확률이 높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까운 거리는 걷고 시내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몸을 자주 움직인다. 수영이나 등산 등 신체 활동이 수반되는 취미를 갖는 것도 좋다.

6. 숙면

109명의 노인(13.7%)이 숙면 등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을 지킨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부분 하루 8시간 이상 자면서 건강을 관리하는데, 저녁 8시에 잔다고 대답한 사람도 있었다. 참고로 올해 초 ‘노화와 산업보건’이라는 학술 세미나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숙면을 취하는 사람은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에 비해 사망 확률이 17% 낮다고 한다.

▶평균 7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고 늦어도 밤 12시 이전에는 침대에 눕는다. 늦잠으로 잠을 보충하는 것보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0_23.html
kolaswqetsrq 11.02 15:05
◇ 생강을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이유 16가지

◇ 생강을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이유 16가지

- 면역력을 높인다.

- 열을 내린다.

- 가래를 없애고, 기침을 가라앉힌다.

- 통증을 완화하고 염증을 제거한다.

- 혈액을 맑게 한다.

- 맥박이나 혈압을 완만하게 내린다.

- 위장의 소화흡수 능력을 높이고 위궤양을 예방한다.

- 구역질을 억제한다.

- 항균, 항바이러스, 항기생충 작용을 한다.

- 현기증이나 이명을 예방한다.

- 혈중 콜레스테롤을 내린다.

-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

- 우울증을 예방한다.

- 해독을 촉진해서 체내를 정화한다.

- 강한 항산화 작용으로 암세포의 증식을 저지한다.

 생강을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

1. 날 것 그대로 먹기

생강을 엄지손톱 크기로 얇게 잘라서 매일 아침 쥬스에 넣어 먹거나 야채 쥬스의 재료로 사용하면 조금 더 편하게 생강을 섭취할 수 있습니다.

2. 생강 에센셜 오일 만들기

생강의 효능이 가장 강력하게 보존되는 사용법은, 생강을 에센셜 오일로 만들어서 복용하거나 통증이 있는 부위에 발라주는 것입니다.

3. 생강차로 마시기

생강차는 구토감을 완화하고 속을 편안하게 하는 용도로 흔히 사용되며, 하루 세 잔의 생강차는 염증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꿀이나 레몬을 추가하면 조금 더 맛있게 생강차를 즐길 수 있습니다.

4. 생강 가루로 먹기

생강을 파우더 형태로 만들어서 카레나 호박파이 같은 요리에 사용하는 것은 생강의 매운 맛을 즐기는 좋은 방법입니다. 만일, 생강가루를 캡슐에 담에 보충제로 복용한다면 하루에 1,000mg이 적정 복용량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6_23.html
kolaswqetsrq 11.02 15:05
나이에 상관없이 해야하는 16가지 도전

나이에 상관없이 해야하는 16가지 도전

1. 웃어라.

한국사람은 웃음에 대해 무지하다. 왜 유머에 관련된 글이나 TV프로를 보면 웃으면서 사람을 만나면 저승사자가 되나.

2. 칭찬하라.

처음에는 아부성이나 미친 사람 취급받을 수도 있다. 한국 사회가 개개인에게 칭찬 한마디만 해도 우리나라 국민 소득은 3만불 아니 4만불도 쉽게 될 것이다.

3. 사랑하라.

남부터 사랑하지 말고 본인부터 사랑하라.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가사는 본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본다.

4. 책을 읽어라.

적어도 책에 쓸데없이 돈 들어간다고 생각하지 말라.

5. 자기 계발에 힘써라.

준비하라는 경고다. 운은 준비한 사람에게 오는 특권이다. 그리고 기회이며 희망이다.

6. 주말을 활용하라.

노는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의미 있는 일에 신경을 써라. 본인이 필요로 하는 모임이나, 운동 등을 찾아라.

7. 운동을 하라.

돈 드는 쪽만 생각하지 말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산행을 한다든가 아침에 걷는 것도 운동이다. 유산소 운동을 많이 하라.

8. 가족과 대화를 하라.

바쁘더라도 하루에 30분정도는 꾸준히 대화를 하라.

9.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

성공한 사람들의 95% 이상은 긍정적인 생각과 낙관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10. 꿈을 가져라.

평범한 꿈은 꿈이 아니다. 이상적인 생각이 진정한 꿈이 될 수 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철학도 인생의 삶의 의미를 모른다. 그리고 생각 자체가 부정적으로 된다.

11. 점검을 하라.

점검은 꼭 자신의 목표에 대한 점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도 있고, 운동도 있다.

12. 가족 생일을 챙겨라.

사랑은 작은 것에 감동을 받으면 그것이 사랑이다. 나를 기억한다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13. 좋은 생각만 하라.

어찌 보면 이것이 가장 핵심일수도 있다. 힘들어도 좋은 생각을 하면 반드시 쨍하고 해 뜰 날이 생긴다. 절대 힘들다고 표현하지 말라.

14. 얼굴 관리에 신경을 써라.

화장에 신경을 쓰라는 뜻이 아니다.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 밝은 생각을 한 사람이라면 남들이 볼 때 부러움을 살 것이며, 반대의 생각을 하면 걱정을 할 것이다.

15. 10년 계획을 작성하라.

계획을 작성해서 생활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과의 생각과 대화 수준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생각만큼 크다. 10년 계획이 아니면 5년 계획이라도 생각하라.

16. 미래의 꿈을 꿔라.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계획이 없든가 포기했다라고 볼 수도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6.html
kolaswqetsrq 11.02 15:06
폐건강에 좋은 약재와 복용법

폐건강에 좋은 약재와 복용법

1. 감초

▶ 효능

인후염, 기침, 손쓰림, 위염 완화

▶ 특징

뿌리에 통증을 완화하고, 조직을 보호하는 효능이 있어 인후염, 기침, 속쓰림, 위염을 완화해준다. 감초에 함유되어 있는 사포닌은 단맛을 내고, 항바이러스 효과 및 위궤양 치료에 효과가 있다. 인후염에 걸렸을 때 감초 캔디를 몇일 동안 몇시간마다 복용하면 편도와 목구멍에 보호막이 형성되어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

▶ 복용법

끓은물 2컵에 다진 감초 뿌리 1~2티스푼을 넣고 10분간 끓인뒤, 건더기를 걸러내고 식혀 하루 3~4컵을 길게는 일주일까지 마신다. 단 6개월 이상 장복시 체내 칼륨이 고갈되고, 혈압이 상승할수 있다. 또, 임산부나 수유부에게는 권장하지 않는다.

2. 타임

▶ 효능

기침완화, 감기 및 독감억제

▶ 특징

방향성 허브로 기침을 완화하고, 경련을 가라앉히는 효능이 있다. 기관지 점액 제거에도 효과가 있으며, 향균 및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다. 뜨거운 물 1컵에 신선한 타임 잎과 꽃 또는 말린 타임 잎과 꽃 1~2티스푼을 넣고 우려 하루에 세 번 마신다. 우릴때는 타임의 중요 성분인 휘발성 오일이 증발되지 않도록 뚜껑을 꼭 덮어둔다. 건더기를 걸러낸 뒤에는 꿀로 단맛을 내도 좋다. 꿀은 타임의 가래 제거 작용을 보완해서 목구멍 뒤쪽에 보호막을 형성한다.

3. 유칼립투스

▶ 효능

감기, 기침, 천식완화, 폐기종 치료

▶ 특징

잎에 함유되어 있는 휘발성 오일은 주로 거담제 역할을 하며, 폐에서 점액을 제거하도록 자극한다. 특히 유칼립톨이라고 불리는 시네올은 기도를 넓혀 감염을 억제하고 기침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항바이러스 및 항균 효과가 뛰어나며 염증을 막아주기도 한다.

▶ 복용법

물 1~2컵에 건조 유칼립투스 잎 또는 생잎 약 2분의1 티스푼을 넣고 5분간 기다린다. 기침을 할 경우 하루 세 번 마신다. 단, 에센셜 오일은 외부용으로만 사용하고 절대 내복하지 말 것, 복용시 구토와 호흡곤란, 혈압저하를 일으킬수 있다.

4. 에키네시아

▶ 효능

감기 및 독감 증상 완화, 상처치유

▶ 특징

허브의학에서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허브로, 감기의 중증도 및 발병 기간을 줄여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항체 반응을 증가시켜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인터페론 수치를 높여주고, 백혈구를 자극해서 감염을 더 효과적으로 예방하기도 한다.

▶ 복용법

에키네이사 잎 또는 꽃 1~2티스푼을 끓는 물 1컵을 붓고 우려내거나, 뿌리 1티스푼에 물 1~2컵을 붓고 10분간 끓인다. 감기치료효과를 보려면 증상 초기에 양질의 에키네시아 제제를 적정량 복용하는 것이 좋다.

5. 엘더

▶ 효능

감기 및 독감치료

▶ 특징

엘더베리는 과거에 와인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었으나 최근에는 감기 치료제로 더욱 각광 받고 있다. 항산화제로 알려진 플라보노이드 화합물을 함유하고 있어 소염 작용을 하고 면역 체계 강화에 도움을 준다. 항바이러스 효능이 있어 독감 및 그 밖의 바이러스 복제를 억제한다. 또, 독감 치료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엘더는 아연 및 다른 허브들과 혼합된 캔디형태로 복용할 수 있으며 감기에 걸렸을 때 수시로 복용해도 좋다. 단, 익지 않은 열매를 먹거나 열매 외의 다른 부위로 제조한 제품을 복용하지 않도록 한다.

6. 세이지

▶ 효능

인후염, 감기 및 기침완화, 기억력향상, 폐경기 증상완화, 다한증 치료

▶ 특징

정신을 맑게 해주고 집중력을 강화해주며 건강한 성인 또는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들의 기분과 인지 능력을 향상시킨다. 세이지 허브티는 오래전부터 인후염 치료제로 이용되고 있고, 구강 세정제와 기침 및 감기 완화제로 자주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안면 홍조 완화 기능도 있으며, 위장염이나 가벼운 위장관염에도 좋다.

▶ 복용법

물 1컵에 다진 세이지 1티스푼을 넣고 10분간 우린 뒤 건더기를 걸러내고 마신다. 인후염이 있을 때 마시거나, 구강 세정제로 사용한다. 단 다량 섭취는 권장하지 않으며, 임신기간에는 세이지를 복용하지 않도록 한다.

7. 황기

▶ 효능

면역력 강화, 항균 및 항바이러스, 강장제

▶ 특징

뿌리 추출물은 백혈구 기능을 향상시키고, 항체 수치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도 인터페롤 수치를 증가시켜 감염을 예방하고, 이미 발생한 세균과 바이러스 감염을 치료한다. 특히 감기와 독감에 좋으며 상기도염을 예방해준다. 중국에서는 암환자들의 연역력 회복용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 복용법

일반적으로 물 2~4컵에 말려서 다진 황기 뿌리 3~6테이블스푼을 넣고 10~15분간 끓여 마신다. 단 급성 감염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황기의 복용을 삼가는 것이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417.html
kolaswqetsrq 11.02 15:07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건강차 12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건강차 12

1. 쑥차

쑥은 노화를 방지하는 항산화물질과 비타민이 풍부하며 콜레스테롤을 조절하는 성분이 들어 있다. 특히 손발이 찬 여성들이 마시면 효과적이다.

2. 꿀차

꿀은 따뜻한 성질을 갖고 있어 우리 몸의 냉한 기운을 없애주고 신신진대사까지 원활하게 해 준다. 피로회복과 면역력 강화에도 도움을 주어 추울 때 즐겨먹으면 좋다.

3. 유자차

유자껍질에 함유되어 있는 모넨 성분과 헤스페리딘 성분이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몸을 따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4. 계피차

계피 특유의 단맛과 매운맛은 몸을 따뜻하게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찬 기운을 막아주어 속을 따뜻하게 해 준다. 또한 위장을 자극하여 소화를 촉진하고 타액과 위액분비를 활성화 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5. 도라지차

도라지차는 환절기와 추운 겨울 특히 기관지가 약한 사람들에게 좋다. 도라지차는 감기 예방에 좋을뿐 아니라 면역력을 길러주고 건조한 피부 관리와 피로회복에 도움을 준다

6. 대추차

대추차는 신경쇠약이나 식욕 부진, 무기력에 좋고 술 먹은 사람들에게는 해장을 위해 좋은 차로 해독작용이 강하고 위장에도 좋아 탁해진 피를 보호해 준다.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신경계를 이완시키는 효과가 있어 마음을 진정시켜주며 몸이 냉하거나 수족냉증에도 효과적이다.

7. 오미자차

오마자에는 갈증을 해소하는 효과도 있으며 몸 안에 수분을 채워주는 차로 요즘 같은 겨울철에 건조해지기 쉽고 수분이 많이 필요한 시기에 좋은 차다.

8. 코코아

코코아의 몸을 따뜻하게 하는 효과는 생강과 같은 수준으로 코코아에 함유되어있는 테오브로민이라는 성분은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순환을 개선하는 역할을 하며 체온을 지속시키는 효과가 높아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된다.

9. 생강차

생강은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어 체내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 주고 땀을 흘리게 하는 효능이 있어 몸이 냉하거나 감기에 걸렸을 때 마시면 효과적이다. 손과 발이 찬 수족냉증,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에게 좋으며 기침이나 가래 증상을 완화시키는 효능도 있다.

10. 레몬차

레몬에 함유된 비타민 C가 혈관을 건강하게 해 줍니다. 레몬의 신맛은 위를 자극하여 환절기 식욕이 감퇴하신 분들의 식욕 개선에도 도움이 됩니다. 구연산 성분이 체내 노폐물을 제거해 주고 피곤함을 덜어 줍니다.

11. 당귀차

당귀차는 티백 형식으로 구하기 보다는 약재상이나 마트에서 마른 당귀를 구해 직접 우려먹어야 하며 약용 식물로 잘 알려져 있다. 당귀는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부인병에 좋아 여성분들에게 좋다.

12. 모과차

모과차는 기관지를 보호해 주고 폐를 튼튼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기침을 멎게 하고 가래를 가라앉혀주는 효과가 있다. 기관지 질환 치료에 도움이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2_23.html
kolaswqetsrq 11.02 15:08
살아가면서 기억해야 할 지혜

살아가면서 기억해야 할 지혜

✔ 인간의 3가지 좋은 습관

1.일하는 습관

2.운동하는 습관

3.공부하는 습관

✔ 인간을 감동 시키는 3가지 액체

1.땀

2.눈물

3.피

✔ 3가지 만남의 복

1.부모

2.스승(멘토)

3.배우자

✔ 남에게 주어야 할 3가지

1.필요한 이에게 도움

2.슬퍼하는 이에게 위안

3.가치있는 이에게 올바른 평가

✔ 내가 진정 사랑해야 할 세사람

1.현명한 사람

2.덕있는 사람

3.순수한 사람

✔ 반드시 소유해야 할 3가지

1.건강

2.재산

3.친구(배우자)

✔ 인생의 3가지 후회

1.참을껄

2.즐길껄

3.베풀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023.html
kolaswqetsrq 11.02 15:08
정신어사呈身御史 - 몸을 드러내 어사가 되다, 청탁으로 벼슬하다.

정신어사(呈身御史) - 몸을 드러내 어사가 되다, 청탁으로 벼슬하다.

드릴 정(口/4) 몸 신(身/0) 거느릴 어(彳/8) 사기 사(口/2)

어떤 자리에 사람을 충원해야 할 때는 특수한 기능을 요구하지 않는 한 모두에 공평한 기회를 줘야 한다. 공직자를 선발할 때는 더욱 엄정하게 공채를 시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조상이 높은 관직에 있었거나 국가에 공훈을 세웠을 때 그 자손에게 특별히 벼슬을 내리는 蔭敍(음서, 蔭은 가릴 음)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조에까지 시행됐다.

관직을 세습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科擧(과거)의 한계를 보완한 다양성에서 평가하기도 한다. 어쨌든 공정한 실력에서가 아닌 등용이기에 떳떳할 수는 없는 제도일 수밖에 없다. 鷄犬昇天(계견승천)에서는 집안에서 실력자가 나오면 가까운 식구는 물론 개나 소나 줄을 잡아 출세한다는 것을 비꼬았다.

얼굴을 고관에게 드러내어(呈身) 높은 관직 어사가 된다(御史)는 이 말도 사사로운 관계를 이용하여 벼슬길에 나서는 것을 의미했다. 얼굴을 드러내는 呈面御史(정면어사)라고도 한다. 중국 唐(당)나라의 정사 ‘舊唐書(구당서)’에서 유래했다. 처음 당서를 보충한 新唐書(신당서)가 나와 달리 구당서로 불리지만 사료적 가치는 더 높다고 한다.

당나라 14대 文宗(문종)때 과거에 급제한 韋澳(위오, 澳는 깊을 오)란 사람은 천성이 곧고 욕심이 없어 10년이 지나도록 벼슬을 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형 韋溫(위온)이 친분이 두터운 御史中丞(어사중승)이란 벼슬의 高元裕(고원유)에게 동생을 임용시켜 달라고 청탁했다. 그러고선 위오를 불러 29곳의 자리를 주무르는 형의 친구를 만나보라고 했다.

고원유가 단정한 선비이니 형의 말을 가볍게 듣지 말라는 당부에 위오는 답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높은 사람에게 잘 보여 어사가 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然恐無呈身御史/ 연공무정신어사).’ 그러고선 끝내 고원유를 찾지 않았다. 위오열전에 나온다.

李舜臣(이순신) 장군도 柳成龍(유성룡)이 장군감이라며 吏曹判書(이조판서)로 있던 栗谷(율곡) 선생을 찾아보라고 권했지만 같은 문중이라도 인사권을 가진 자리에 있으니 만나지 않겠다며 끝내 찾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616.html
kolaswqetsrq 11.02 15:09
유서이화柳絮梨花 - 버들개지 같고 배꽃 같은 흰 눈

유서이화(柳絮梨花) - 버들개지 같고 배꽃 같은 흰 눈

버들 류(木/5) 솜 서(糸/6) 배 리(木/7) 꽃 화(艹/4)

능수버들, 수양버들 등 주변에 흔히 보이는 버드나무는 봄이 되면 하늘하늘한 가지에 눈처럼 씨가 날린다. 꽃이 마치 귀여운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것 같아 버들강아지, 버들개지로 불린다. 柳花(유화), 楊花(양화), 柳絮(유서) 등의 한자로 나타내고 눈에 비유한 한시의 소재가 많이 됐다.

세상을 하얗게 덮는 눈을 버들개지의 솜(柳絮) 같다고 먼저 표현한 사람은 4세기 중국 東晋(동진)의 謝道韞(사도온, 韞은 감출 온)을 꼽는다. 사도온이 어릴 때 멋지게 나타낸 이 말로 詠雪之才(영설지재), 詠絮之才(영서지재), 柳絮之才(유서지재) 등이 여성의 뛰어난 글 솜씨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됐다.

사도온은 소녀 때 명망이 높고 강직한 재상이었던 숙부 謝安(사안)의 앞에서 재치 있게 묘사하여 이름이 남았다. ‘晉書(진서)’에도 간단히 전하지만 南朝(남조) 宋(송)나라 문학가 劉義慶(유의경)이 명사들의 언행과 일화를 담은 ‘世說新語(세설신어)’에 상세한 전말이 실려 있다. 부분을 보자.

차가운 눈이 내리는 어느 날 사안이 집안의 자녀들을 모아 놓고 ‘펄펄 내리는 눈이 무엇과 같은가(白雪紛紛何所似/ 백설분분하소사)’ 읊어 보도록 했다. 형 謝奕(사혁)의 아들 謝朗(사랑)은 ‘소금을 공중에 뿌리는 것과 비슷합니다(散鹽空中差可擬/ 산염공중차가의)’라 했고, 딸 도온이 ‘버들개지가 바람에 흩날려 춤춘다는 것이 낫겠습니다(未若柳絮因風起/ 미약유서인풍기)’란 비유로 칭찬을 받았다. 言語篇(언어편)에 있다.

눈을 배꽃에 비유한 것에는 唐(당)나라 岑參(잠삼)의 시가 있다. 서역 소재로 읊은 구절에 ‘홀연 하룻밤 새 봄바람 불어와(忽如一夜春風來/ 홀여일야춘풍래), 천만 그루 나무에 배꽃이 핀 듯하네(千樹萬樹梨花開/ 천수만수리화개)’로 나타냈다. 우리 高麗(고려)의 문호 李齊賢(이제현)의 ‘楊花(양화)’도 그림 같다.

‘꽃잎인가 눈송이런가 어찌 그리 하늘대나(似花非雪最顚狂/ 사화비설최전광), 넓은 하늘 살랑대는 바람에 아득히 나네(空闊風微轉渺茫/ 공활풍미전묘망).’ 눈은 아니지만 배꽃과 버들개지 같이 등장하는 蘇東坡(소동파)의 시구절도 보자. ‘배꽃은 담백하고 버들은 짙푸른데(梨花淡白柳深靑/ 이화담백류심청), 버들개지 날릴 때 배꽃은 성내 가득(柳絮飛時花滿城/ 유서비시화만성).’

같은 사물이나 풍경을 보더라도 기막히게 잘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천재적인 재주가 있거나 예사롭게 보지 않고 어떻게 나타낼까 오랫동안 생각해낸 결과다. 감상하는 사람은 예사롭게 잘 표현 했구나 지나치지만 인구에 회자되는 구절은 그만큼 다르다.

어릴 때부터 문재를 떨친 사도온은 書聖(서성) 王羲之(왕희지)의 아들 王凝之(왕응지)와의 결혼 생활은 일찍 홀로 되는 바람에 평탄하지 못했다. 당시의 시절이 하수상하여 여성의 재주를 펼칠 여건이 되지 못했던 것도 한 원인이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628.html
kolaswqetsrq 11.02 15:09
동온하정冬溫夏凊 -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서늘하게

동온하정(冬溫夏凊) -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서늘하게

겨울 동(冫/3) 따뜻할 온(氵/10) 여름 하(夊/7) 서늘할 정(冫/8)

계절의 변화에 따라 겨울 추울 때는 따뜻하게 보호(冬溫)하고 여름철에는 시원하게 해 드린다(夏凊)는 이 말은 자식이 부모를 잘 섬겨 효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옛날 중국인들이 우리 민족을 가리켜 풍속이 아름답고 예절이 바르다며 東方禮儀之國(동방예의지국)이라 불러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鄕黨尙齒(향당상치)에서 말한 대로 어버이를 공경하는 孝親(효친)뿐 아니라 나이든 어른을 받드는 敬老(경로)는 외국의 부러움을 사 왔다. 그러던 것이 다른 노인은 물론 부모까지 서운하게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 今昔之感(금석지감)을 느끼게 한다. 서늘할 凊(정)의 부수 冫(빙)은 氷(빙)의 본자 冰(빙)에서 보듯 얼음을 뜻한다.

이 성어는 五經(오경)의 하나인 ‘禮記(예기)’에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아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는 昏定晨省(혼정신성)과 짝지어 나타난다. 예기는 의례의 해설서를 넘어 일상의 사소한 영역까지 예의 근본정신을 서술하여 중시됐는데 曲禮(곡례)편에 실려 있다. 부분을 인용해 보자.

‘무릇 사람의 자식이 되어 부모를 섬기는 예는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서늘하게 해 드리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정돈해 드리고 새벽에는 문안인사를 드린다(凡爲人子之禮 冬溫而夏凊 昏定而晨省/ 범위인자지례 동온이하정 혼정이신성).’ 이 구절을 줄여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는 것을 溫凊定省(온정정성)이라고도 하는데 겨울엔 따뜻이(溫) 여름엔 서늘하게(凊) 해 드리고, 밤에는 이부자리를 펴고(定)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省)고 한 글자씩 딴 것이다.

한문을 처음 배울 때의 교과서 千字文(천자문)에도 부모 앞에선‘깊은 곳에 임하듯 하며 얇은 데를 밟듯이 조심하고, 일찍 일어나서 추우면 덥게 더우면 서늘케 해 드리라(臨深履薄 夙興溫凊/ 임심리박 숙흥온정)’고 가르친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3%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거기에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53.3명으로 OECD 평균인 18.4명보다 3.5배 높다고 한다. 그 뿐인가. 부모와 친족을 노린 살인, 폭행, 감금, 협박 등의 패륜범죄는 늘고 있다. 삭막한 사회에 자신의 부모만이라도 소식을 자주 전하면 행복해진다. 효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849.html
kolaswqetsrq 11.02 15:10
황금용진 환소삭黃金用盡 還疎索 - 황금을 다 쓰고 나면 다시 멀어진다.

황금용진 환소삭(黃金用盡 還疎索) - 황금을 다 쓰고 나면 다시 멀어진다.

누를 황(黃/0) 쇠 금(金/0) 쓸 용(用/0) 다할 진(皿/9)

돌아올 환(辶/13) 성길 소(疋/7) 찾을 색, 노 삭(糸/4)

돈이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되지 않는 존재인데도 좋게 표현하지는 않는다.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귀신까지도 부릴 수 있다는 錢可通神(전가통신)이 그렇다. 근래에 성어로 오른 有錢無罪(유전무죄)는 있는 죄도 벌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위력이 있어도 口不言錢(구불언전)이라 하여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도리라 했다.

돈에 얽매이지 말라는 교훈인데 특히 친구 사이에는 금전으로 얽혔을 때 주의하라고 格言聯璧(격언연벽)이 말한다. 권세와 이익으로 맺어진 우정은 어그러지는 경우가 많아 해를 넘기지 못한다고 勢利之交不終年(세리지교부종년)이라 했다.

친구사이만 그런 것이 아니고 세상의 인간관계가 모두 금전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멋진 구절이 있다. 황금을 다 쓰고 나면(黃金用盡) 다시 사이는 소원해진다(還疎索)고 중국 盛唐(성당)의 시인 高適(고적, 707~765)의 시구에서 온 말이다.

岑參(잠삼)과 함께 高岑(고잠)이라 불리며 변경에서의 외로움과 전쟁의 비참함을 읊은 邊塞詩(변새시)로 이름났다. 젊은 시절 때를 만나지 못해 각지를 떠돌다가 옛 趙(조)나라의 수도였던 대도시 邯鄲(한단, 邯은 조나라서울 한, 鄲은 한단 단)에 와서 그 지역의 젊은이들 생태를 노래했다. ‘邯鄲少年行(한단소년행)’이란 제목의 시다.

맨 처음과 성어가 나오는 부분은 이렇다. ‘한단성 남쪽에서 노니는 한량들(邯鄲城南遊俠子/ 한단성남유협자), 한단에서 성장한 일 자랑스러워하네(自矜生長邯鄲裏/ 자긍생장한단리)’, ‘그대 보지 못했는가 요즘 사람들 경박하게 사귀는 행태를(君不見今日交態薄/ 군불견금일교태박), 황금이 바닥나면 다시 소원해 진다네(黃金用盡還疎索/ 황금용진환소색).’ 재산 있는 부모 잘 만나 흥청거리며 놀고 죄를 짓더라도 잘 빠져 나가는 젊은이들. 노랫소리 웃음소리 날마다 떠들썩해도 돈이 떨어지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떨어져 나간다는 것을 깨우쳤다.

돈 떨어지면 사이가 멀어지는 세태를 더 적확히 나타낸 말이 門前雀羅(문전작라)다. 史記(사기)에 등장하는 이 말은 돈이나 권세가 있을 때는 집 앞이 門前成市(문전성시)였다가 떨어지면 대문 앞에 참새 그물을 칠 정도로 한산해진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司馬遷(사마천)은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유함에 곧 사귐의 태도를 안다(一貧一富 乃知交態/ 일빈일부 내지교태)’고 했다. 우리 속담에는 번거로운 이 모든 것을 능가한다. ‘대감 죽은 데는 안 가도 대감 말 죽은 데는 간다.’남의 흉을 보기 전에 자신을 돌아봐야 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034.html
kolaswqetsrq 11.02 15:10
교병필패驕兵必敗 – 교만한 군대는 반드시 패한다.

교병필패(驕兵必敗) – 교만한 군대는 반드시 패한다.

교만할 교(馬/12) 병사 병(八/5) 반드시 필(心/1) 패할 패(攵/7)

스스로 자랑하며 뽐내는 自慢(자만)을 경계하는 말은 많다. 가장 쉽게 비유한 말이 ‘헤엄 잘 치는 놈 물에 빠져 죽고 나무에 잘 오르는 놈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는 속담과 같은 善游者溺 善騎者墮(선유자익 선기자타)이다. 말을 잘 타는 자는 말에서 떨어진다는 淮南子(회남자)의 교훈이다. 老子(노자)도 가르친다.

‘스스로의 공덕을 자랑하면 그 공이 없어지고, 자기의 재능을 자만하는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한다(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 자벌자무공 자긍자부장).’ 이런 개인도 자만이 금물인데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장에서야 말할 필요가 없다. 자신들의 무력만 믿는 군대나 싸움에 이긴 뒤 우쭐대는 군대(驕兵)는 반드시 패한다(必敗).

後漢(후한) 초기 역사가 班固(반고)가 20년에 걸쳐 완성한 ‘漢書(한서)’에 兵驕者滅(병교자멸)의 유래가 실려 있다. 교만한 군대는 반드시 망한다는 말이니 뜻이 같다. 前漢(전한)의 10대 宣帝(선제) 때는 匈奴(흉노)의 침범으로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西域(서역)의 중간 지역에 있던 車師(거사)란 조그만 나라가 흉노와 대치하다 한나라에 항복했다.

기원전 68년 흉노가 다시 거사국으로 쳐들어와 한나라군을 포위하자 선제는 趙充國(조충국) 장군 등과 구원병 출병을 논의했다. 흉노가 쇠약해지는 틈을 타 그들의 요지를 공격하여 다시는 서역을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즉시 구원병을 보내려 했다. 그때 승상인 魏相(위상)이 글을 올려 간했다. 난국을 구하고 포악한 자를 죽이는 싸움을 義兵(의병)이라 하며 이런 싸움을 하게 되면 천하의 임금이 될 수 있다며 이어진다.

‘자기 나라의 큰 힘을 믿고 백성이 많음을 자랑하여 적에게 위세를 보이기 위한 싸움을 교병이라 하는데, 군사가 교만한 전쟁을 하면 멸망당합니다(恃國家之大 矜人庶之衆 欲見威於敵者 謂之驕兵 兵驕者滅/ 시국가지대 긍인서지중 욕견위어적자 위지교병 병교자멸).’ 이 말을 듣고 자신이 교만했음을 깨달은 선제는 파병을 취소시켰다. 위상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경쟁이 있는 사회에서 어디서든 크고 작은 싸움이 있게 마련이다. 실력으로 보나 세력으로 보나 질 수 없는 싸움에서 자만하여 패하고도 그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면 다음에도 이길 수 없는 어리석은 일이다. 정치판에서 이런 일은 종종 본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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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11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 - 물은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 민의를 중시해야 한다.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 - 물은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 민의를 중시해야 한다.

물 수(水/0) 옳을 가(口/2) 실을 재(車/6) 배 주(舟/0)

또 역(亠/4) 옳을 가(口/2) 다시 복(襾/12) 배 주(舟/0)

물이 귀한 것은 모두 안다. 우리 몸의 75%가 물이 차지하고, 지구의 4분의 3이 바다와 하천 등 물로 덮여 있다. 이처럼 중요한 물을 老子(노자)는 일찍이 최고의 선이라고 上善若水(상선약수)라 했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다투는 일이 없고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만 흐르니 당연하다. 이러한 물이 성이 나면 무섭다.

‘물 난 뒤끝은 없어도 불탄 끝은 있다’는 말대로 흐름을 잘못 다스리면 남아나지 못한다. 예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에게 단골로 경계의 말이 되었던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水可載舟) 또한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亦可覆舟)는 것도 부드럽기만 한 물의 무서움을 말한다.

이 말이 워낙 유명하고 여러 곳에 실려 인용되면서 유사하게 水則載舟 水則覆舟(수즉재주 수즉복주), 水能載舟 亦能覆舟(수능재주 역능복주)에서 간단히 줄여 載舟覆舟(재주복주)라고도 한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라며 君舟民水(군주민수), 君舟人水(군주인수)라 해도 같다. 먼저 유가철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荀況(순황)의 ‘荀子(순자)’에 전하는 말부터 보자.

王制(왕제), 哀公(애공)편에 똑같이 나온다. 백성들이 편안해야 군주의 지위도 안정된다면서 말한다.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군자주야 서인자수야),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水則載舟 水則覆舟/ 수즉재주 수즉복주).’

孔子(공자)와 제자들의 일화를 엮은 ‘孔子家語(공자가어)’에는 역시 군주와 백성을 배와 물에 비유하면서 ‘물은 배를 띄우는 것이지만, 또한 엎어버리기도 한다(水所以載舟 亦所以覆舟/ 수소이재주 역소이복주)’라 했다. 이 내용을 인용하여 後漢(후한)의 장군 皇甫規(황보규, 104~174)는 당시 권력을 휘두르던 외척 梁冀(양기)에 ‘對策(대책)’이란 글을 올렸다.

군주는 배고 백성은 물이며 ‘신하는 승객이고 장군 형제는 노를 젓는 사람(群臣乘舟者也 將軍兄弟操楫者也/ 군신승주자야 장군형제조즙자야)’일 뿐이니 양기 장군도 거드름 피운다면 거센 물결에 빠진다고 했다. 하지만 양기는 간언을 듣지 않아 죽음을 자초했다. ‘後漢書(후한서)’에 실려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하로 손꼽히는 唐(당)의 魏徵(위징)이 唐太宗(당태종)에게 ‘貞觀(정관)의 治(치)’로 역사에 남게 직언한 내용도 이 말이라 더 유명해졌다. 본래는 백성들의 뜻에 의해 나라가 흥하기도 하고 몰락하기도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다 어떤 일에 이로운 것이라도 때로는 해로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비유도 된다.

백성을 휘두르던 전제군주가 드문 오늘날엔 선거에 이긴 정당이 권한에 취해 실정을 거듭하면 바로 응징하는 민의의 무서움에 더 많이 인용된다. 유권자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정권이라 여야가 자주 바뀌기 때문이기도 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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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12
학부오거學富五車 - 많은 책을 읽어 학식이 풍부하다.

학부오거(學富五車) - 많은 책을 읽어 학식이 풍부하다.

배울 학(子/13) 부자 부(宀/9) 다섯 오(二/2) 수레 거(車/0)

‘책은 마음의 양식(Books are food for the mind)’이란 서양 격언이 있다. 독서를 많이 하여 어떠한 문제에도 막힘이 없는 사람이 博學多識(박학다식)이고, 모든 것을 기억해내면 博覽強記(박람강기)다. 이렇게 되려면 우선 책을 많이 읽어야 할 텐데 무조건 많이 읽어도 좋지는 않은 모양이다.

현존하는 책의 90%는 시원찮은 것이라 독설을 날리고, 무조건 책이 많다고 교양의 증거가 된다면 도서관이나 서점 관계자를 당활 수 없다고 꼬집은 선인도 있으니 말이다. 책을 많이 소장하면서도 잘 소화해내어 자신의 영양소가 되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학식이 풍부하기가(學富) 다섯 수레에 가득한 책(五車)을 잘 읽은 사람이 제일이다.

이 성어는 道家(도가)를 대표하는 莊周(장주)의 종횡무진 비유법이 시종일관하는 ‘莊子(장자)’에서 유래했다. 雜篇(잡편)의 마지막 天下(천하)에서 戰國時代(전국시대) 당시의 여러 사상가들을 소개하는데 名家(명가)에 속하는 惠施(혜시)에 관해 상대적으로 많이 언급한 것이 특이하다. 그 부분을 보자.

‘혜시는 여러 가지 분야의 학술에 능통했고, 그가 지은 책은 다섯 수레에 쌓을 정도였다(惠施多方 其書五車/ 혜시다방 기서오거).’ 그가 말하는 도는 잡다한 것들로 뒤섞여 사리에 맞지 않는 점이 있어도 따르는 변설가들은 위대한 진리로 생각하며 의론하는 것을 즐겼다. 재미있는 표현 하나를 본다. ‘만물은 모두 같으면서 모두 다르다, 이것을 대동이라 한다(萬物畢同畢異 此之謂大同異/ 만물필동필이 차지위대동이).’

혜시의 저서가 다섯 수레에 가득할 정도로 많다고 했는데 책이 많다고 하는 표현으로 汗牛充棟(한우충동)이 있다. 짐으로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리고, 쌓으면 들보에까지 찬다는 뜻이다. 혜시의 책이 당시엔 죽간이나 목간이라 오늘날의 책과 비교할 수는 없어도 많은 양의 표현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후세에 전하는 것은 없고 그 말만 唐(당)의 詩聖(시성) 杜甫(두보)의 시구에 남았다.

칠언율시 ‘題柏學士茅屋(제백학사모옥)’의 끝 부분에 나온다. 茅는 띠 모. ‘부귀는 반드시 애써 노력하는 데서 어렵게 얻는 것, 남아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은 읽어야 하느니라(富貴必從勤苦得 男兒須讀五車書/ 부귀필종근고득 남아수독오거서).’

책이 서재에 책장에 가득하더라도 읽지 않으면 장식품이다. 책을 열심히 읽은 선인에서 성어가 나온 것도 제법 된다.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뜻으로 안중근 의사의 유묵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周易(주역)을 맨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읽었다는 韋編三絶(위편삼절)은 孔子(공자)에게서 왔다.

실학을 집대성한 우리의 丁若鏞(정약용)은 독서와 저술에 심취하여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뚫렸다는 踝骨三穿(과골삼천, 踝는 복사뼈 과)이란 말을 남겼다. 책은 양보다는 열심히 하는 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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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12
시화연풍時和年豊 - 시절이 평화롭고

시화연풍(時和年豊) - 시절이 평화롭고

때 시(日/6) 화할 화(口/5) 해 년(干/3) 풍년 풍(豆/6)

나라의 기후가 화평(時和)하여 그 해 풍년이 든다(年豊)는 좋은 뜻의 성어다. 매년 立春帖(입춘첩)에 자주 오르는 비바람은 순조롭고 시절이 태평하여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雨風順調 時和歲豊(우풍순조 시화세풍)과 같다. 李明博(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에 2008년의 사자성어로 국민화합과 경제성장을 바라며 내세워 널리 알려졌다.

이전 농경시대에는 날씨가 순조로운 이상의 바라는 바가 없었다. 비바람이 순조로워 농사가 풍년이 되면 백성이 편안하고 나라는 태평성대를 노래한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시집 詩經(시경)에는 제목만 전하는 것이 있는데 前漢(전한) 사람 毛亨(모형)의 毛詩(모시)를 중심으로 唐(당)나라 때 학자들이 주석한 ‘毛詩正義(모시정의)‘에는 나타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이 성어도 小雅(소아)편에 ’만물이 번성하고 백성들이 충효를 잘 지키니 시화연풍에 이른다(萬物盛多 人民忠孝 則致時和年豐/ 만물성다 인민충효 즉치시화연풍)‘라고 등장한다.

이 성어는 일반인에 처음 오르내렸을 때 출전이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한 곳이 있을 정도로 우리 고전에 자주 사용됐다. 그만큼 여러 선인들의 문집에서도 쓰임이 많다. 한 곳의 예를 보자. 1448년 世宗(세종) 30년 조에는 右贊成(우찬성)을 맡고 있던 金宗瑞(김종서)가 가뭄을 당하여 상서한 것에 기록이 보인다.

나라는 태평하지만 가뭄이 재앙이 되어 민간에 괴로움이 많으니 아주 긴요한 일 이외에는 모두 중지하고 ‘시절이 화평하여 풍년이 든 이후에 거행하소서(待其時和歲豊 然後擧之/ 대기시화세풍 연후거지)’하고 올린다.

경제 대통령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이 전 대통령은 눈에 띄는 성장은 보여주지 못하고 측근비리와 부패로 수감되는 치욕을 맛봤다. 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좋은 뜻의 이 성어도 사용하기에 떨떠름하게 여겨지게 됐다.

나라가 평안하고 경제가 풍요로운 태평성대를 바라지 않을 사람은 없다. 시끄러운 대립이 없고 수출이 늘어 國泰民安 家給人足(국태민안 가급인족)이 되는, 실제 말이 문제가 아니라 말에 들어맞는 그러한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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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13
각지불공却之不恭 - 주는 것을 물리치면 공손하지 못하다, 남의선물을 공손하게 받음

각지불공(却之不恭) - 주는 것을 물리치면 공손하지 못하다, 남의선물을 공손하게 받음

물리칠 각(卩/5) 갈 지(丿/3) 아닐 불(一/3) 공손할 공(心/6)

‘선물은 그 사람을 나타낸다.’ 서양격언이다. 하찮은 선물을 보냈더라도 정성이 담겼다면 값지다. 매화 한 가지를 보내는 江南一枝春(강남일지춘), 천리 먼 곳서 보낸 백조의 털 千里鵝毛(천리아모), 사소한 미나리나 햇볕도 선물이 되는 獻芹之意(헌근지의), 獻曝之忱(헌폭지침, 忱은 정성 침) 등은 보낸 정성이 느껴져 미소가 머금어진다.

夏爐冬扇(하로동선) 같이 시기에 맞지 않거나 분에 넘치는 선물이 아니라면 받고도 기분 나쁜 일이 없다. 그래서 주는 것을 거절하여 물리치는 일(却之)은 공손하지 못한(不恭) 것이라고 유가의 亞聖(아성) 孟子(맹자)는 일찍부터 깨우쳤다.

맹자와의 문답을 정리하는데 앞장선 제자 萬章(만장)은 스승이 무도한 제후들과 교제하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그의 이름을 딴 만장 下篇(하편)에서 예의와 폐백을 갖춰 선비를 맞이하는 것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여쭙자 공손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답했다. 만장이 다시 물었다.

‘보내온 예물을 거듭 거절하는 것이 공경스럽지 않다는 말씀은 어째서입니까(卻之卻之爲不恭 何哉/ 각지각지위불공 하재)?’ 卻은 물리칠 각, 却의 본자. 맹자는 존귀한 사람이 보냈는데 ‘그것을 받는 것이 의로운지 의롭지 않은지(其所取之者 義乎 不義乎/ 기소취지자 의호 불의호)’ 따진다면 공손하지 않은 일이 된다고 했다.

만장이 불의하게 거둬들인 의롭지 못한 물건이라 생각하고 거절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자 맹자가 답한다. 법도에 맞게 사귀고 법도에 맞게 접대한다면 孔子(공자)도 예물을 받았을 것이라 했다. 만장은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따지는 성격이라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맹자는 높은 제후들이 예에 맞게 접대하면 벼슬하는 것도 괜찮다고 본 것이다.

법도와 예의를 강조한 선물이라면 주는 사람의 됨됨이와 의도를 명확히 알아야 하는 것이 물론이다. 이렇게 되면 분에 넘치는 선물은 당연히 돌려주는 返璧(반벽)이 가능하고, 한밤 아무도 모른다는 暮夜無知(모야무지)라도 황금을 받지 않는 떳떳함을 보이게 된다.

주고받는 사람의 정성이 깃들고 분수에 맞는 선물이면 그 자체가 즐겁다. 엄청나게 값이 나가고 귀한 것이라면 맹자가 말했더라도 의로운 의도인지 다른 목적이 있는지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높은 사람이 보낸 선물을 거절하는 것은 공손하지 못한 일이라 해서 덥석 받는다면 의도가 좋아도 나중까지 찜찜한 것은 당연하다.

특히 높은 사람이 주는 것도 아니고 선물이 비싸든 싸든 막론하고 공직자는 주의가 필요하다. 직무와 관련된 것은 사소한 것도 김영란법에 저촉될 수가 있으니 이럴 때는 공손하지 않아도 좋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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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13
숙맥불변菽麥不辨 - 콩과 보리를 구별못하다, 어리석고 못난 사람

숙맥불변(菽麥不辨) - 콩과 보리를 구별못하다, 어리석고 못난 사람

콩 숙(艹/8) 보리 맥(麥/0) 아닐 불(一/3) 분별할 변(辛/9)

확실히 아는 것이 없으면서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무식하다고 비웃는다. 흙을 고르는 고무래를 옆에 두고도 같은 모양의 丁(정)자를 모른다고 目不識丁(목불식정)이라 한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과 같다. 고기 어(魚)자와 노나라 로(魯)자를 혼동했다고 魚魯不辨(어로불변)이라 놀리기도 한다.

어중간하게 아는 것은 잘 한 일인가. 장마당에서 굿판을 구경하는데 뒤에서 난쟁이는 볼 수가 없어 앞사람이 전해주는 대로 덩달아 이야기한다. 이런 矮者看戱(왜자간희)도 욕을 먹는다. 차라리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이란 말을 새기면 맘 편하다.

글자를 모른다고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겠지만 주식으로 매일 대하는 콩과 보리(菽麥)를 구분하지 못한다(不辨)면 문제겠다. 밭에다 심을 때는 같지만 자랄 때나 낟알 모양은 전혀 다르므로 이것을 구분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은 무식의 정도가 아니라 사리 분별을 못 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고지식하거나 우둔한 사람을 뜻했다. 줄여서 菽麥(숙맥), 또는 센 말로 쑥맥이라 사용하기도 한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서 처음 등장하니 역사도 오래 됐다.

晉(진)나라의 厲公(여공)은 국력이 강성해지자 교만과 사치를 일삼고 미소년 胥童(서동)만을 총애했다. 대신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欒書(난서, 欒은 단란할 란) 등이 일을 꾸며 서동과 여공을 독살했다. 이후 맞아들인 왕이 悼公(도공)인데 왕위에 오를 때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라며 복종하도록 다짐을 받았다.

대신들은 명을 따르겠다며 답한다. ‘사실 주자에게는 형이 있었지만 지혜가 없어서 콩과 보리도 분간하지 못했으므로 임금으로 세울 수 없었습니다(周子有兄而無慧 不能辨菽麥 故不可立/ 주자유형이무혜 불능변숙맥 고불가립).’ 주자는 도공의 부친이 周(주)나라 망명 때 낳아 그렇게 불렀다. 도공은 왕권을 강화하고 현명하고 바른 정치를 펼쳐 다시 강국을 만들었다.

모든 사람이 다 잘난 세상에서 이처럼 우둔한 사람은 없다. 또 이런 사람은 지도층에 오르지도 못한다. 다만 너무 알아서 자기가 아는 것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더 문제다. 잘 알아도 주위의 의견을 듣고 잘 판단해야 할 일이라도 온갖 자료를 갖다 대면서 합리화시킨다. 이런 유식자보다 경청하는 무식자가 더 나을 수가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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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14
순갱노회蓴羹鱸膾 - 순채국과 농어회, 고향의 맛

순갱노회(蓴羹鱸膾) - 순채국과 농어회, 고향의 맛

순채 순(艹/11) 국 갱(羊/13) 농어 로(魚/16) 회 회(肉/13)

어려운 한자로 이뤄진 성어지만 뜻은 단순히 고향의 맛을 가리킨다. 蓴羹(순갱)은 순채라는 나물로 끓인 국이고 鱸膾(노회)는 농어로 회를 친 음식이다. 순나물이라고도 하는 순채는 수련과의 수초로 논에서 기르기도 하고 약용 외에 어린 순을 식용한다.

바닷물고기 농어는 타원형의 몸통에 검은 점이 많고 자랄수록 맛을 좋다. 지역에 따라 특산품이 많아 고향의 맛을 상징하는 것이 다 다를 텐데 순채국과 농어회가 오른 것은 중국 西晉(서진) 때 張翰(장한)이라는 사람의 고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장한은 吳郡(오군) 출신으로 문장에 뛰어났다. 격식을 싫어하고 예절에 구애받지 않아서 사람들이 그를 江東步兵(강동보병)이라 불렀다. 장한은 진나라 惠帝(혜제)때 司馬冏(사마경, 冏은 빛날 경)이 집정하자 그의 밑에서 벼슬자리를 얻었다.

그 후 나라가 시끄러워지고 세력을 좌우하던 사마경이 실권할 것을 예측하고는 자신에게도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해 떠날 결심을 했다. 洛陽(낙양)에 있을 때 가을바람이 불자 ‘고향 땅의 진미인 연한 나물과 순채로 끓인 국, 농어가 생각났다(思吳中菰菜 蓴羹 鱸魚膾/ 사오중고채 순갱 로어회).’ 菰는 부추 고.

그러면서 장한은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귀중한 일이다. 어찌 벼슬로 수천리 떨어져 살면서 명예나 작위를 노리겠는가(人生貴得適志 何能羈宦數千里以要名爵乎/ 인생귀득적지 하능기환수천리이요명작호)!’ 미련 없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유유자적했다.

한 사람이 한 때의 기분으로 사후에 올 명예는 생각하지 않는 행동이라 하자 장한은 지금의 한 잔 술이 죽은 뒤의 어떤 것보다 귀하다고 했다. 房玄齡(방현령) 등이 편찬한 ‘晉書(진서)’ 열전에 나온다.

장한의 결단은 상급자에 굽실거리는 것이 싫다며 歸去來辭(귀거래사)를 읊은 陶淵明(도연명)을 연상시킨다. 이 성어는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면서 인생은 자신의 뜻에 적합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개인적인 삶이 없어진 현대사회에서 직장이나 직업을 선택할 때 업무와 사생활의 균형을 갖추려는 워라밸(Work-life balance)로 발전한 셈이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小確幸(소확행)도 상통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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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14
서해맹산誓海盟山 - 바다와 산에 맹세하다, 충무공의 비장한 맹세에 산천이 응답하다.

서해맹산(誓海盟山) - 바다와 산에 맹세하다, 충무공의 비장한 맹세에 산천이 응답하다.

맹세할 서(言/7) 바다 해(氵/7) 맹세 맹(皿/8) 메 산(山/0)

굳은 의지로 실천을 다짐할 때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고 흔히 말한다. 성어로 指天爲誓(지천위서)다. 우리의 맹세라 할 때 맹세할 誓(서)는 ‘세’로 굳어져 읽힌다. 전장에 나갈 때 승리를 다짐하며 나무를 꺾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데서 나왔다고 한다.

하늘에 비유하거나 堅如金石(견여금석), 金石盟約(금석맹약)이란 말대로 돌과 쇠와 같이 단단한 것에 비유한 것은 언약이 변하지 않겠다는 것도 있지만 그만큼 지키기 어렵다는 것도 포함한다. 서양 격언에 ‘혀 쪽은 맹세하지만 마음은 맹세하지 않는다’, ‘인간은 죽어서야 맹세하지 않는다’는 것이 있을 정도이니 알 만하다.

쇠와 돌에도, 하늘에 대고 한 맹세는 못 믿더라도 바다에 맹세하고(誓海) 산에 맹세하는(盟山) 것에는 믿어야 한다. 조선 宣祖(선조)때 왜군이 물밀듯이 쳐들어와 반도를 쑥대밭 되기 직전 수군의 진로를 틀어막아 절체절명의 고국을 구한 忠武公(충무공) 李舜臣(이순신) 장군의 우국충정이 절절하기 때문이다.

1592년 4월 왜적이 東萊(동래)를 유린하고 보름 만에 서울을 위협하자 왕은 義州(의주)로 몽진하는 등 일촉즉발이었으니 장군이 나라를 지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국을 구하겠다는 의지가 비장한 장군의 시 ‘陣中吟(진중음)‘은 李忠武公全書(이충무공전서)에 수록되어 있고 의병장 趙慶男(조경남)의 亂中雜錄(난중잡록)에도 같은 구절이 전한다.

五言律詩(오언율시)로 된 전반 4구에서 왕의 피란 행차는 멀어져 나라가 위태로우니 신하와 장수가 공을 세워야 할 때라며 피 끓는 심정을 토한다. 후반 頸聯(경련)에 성어가 나온다. ‘바다에 맹세하니 물고기와 용도 감동하고(誓海魚龍動/ 서해어룡동), 산을 두고 맹세하니 초목도 알아보네(盟山草木知/ 맹산초목지).’ 그러면서 비장하게 맺는다.

‘원수 왜적을 모두 멸할 수 있다면(讐夷如盡滅/ 수이여진멸), 죽음이 닥쳐도 굴하지 않으리라(雖死不爲辭/ 수사불위사).’ 이 결의대로 장군은 1598년 露梁(노량) 해전에서 왜군을 쫓다 적탄을 맞아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勿言我死(물언아사)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하늘에 맹세한다고 하면 너무 거창해서인지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반신반의한다. 바다와 산에 맹세한다는 이 성어는 정치인들이 신년각오나 큰일을 앞두고 곧잘 인용한다.

전번 검찰개혁을 앞두고 이 의지를 피력한 법무장관도 자신의 과오로 흐지부지되는 등 거의가 충무공의 誓言(서언)만 더럽힌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일찍부터 성경에서 남겼나보다. ‘서원하고 지키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서원하지 않는 것이 낫다.’ 誓願(서원)은 신이나 마음속으로 하는 맹세로 舊約(구약)의 傳道書(전도서)에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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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15
승거목단 수적석천繩鋸木斷 水滴石穿 - 노끈으로 톱질하여 나무를 끊고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승거목단 수적석천(繩鋸木斷 水滴石穿) - 노끈으로 톱질하여 나무를 끊고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노끈 승(糸/13) 톱 거(金/8) 나무 목(木/0) 끊을 단(斤/14)

물 수(水/0) 물방울 적(氵/11) 돌 석(石/0) 뚫을 천(穴/4)

하늘에서 내려준 재주로 단번에 우뚝 선다면 모두 우러러볼까.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도 드물뿐더러 바닥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간 노력파들을 세상에선 더 대단하다고 친다. 모든 일은 단계가 있기에 중간을 껑충 뛰어 앞서면 정상적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작은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 큰 결과를 이룬다는 교훈적 성어는 유난히 많다.

잘 알려진 몇 개만 예를 들면 도끼 갈아 바늘 만들기 磨斧作針(마부작침), 어리석은 우공의 산 옮기기 愚公移山(우공이산), 티끌 모아 산 만들기 積土成山(적토성산), 정신 집중하여 화살로 바위 뚫기 中石沒鏃(중석몰촉)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이야기를 보면 노끈으로 톱질하여(繩鋸) 나무를 자르는(木斷) 것이나 물방울(水滴)로 바위를 뚫는다(石穿)고 해도 어리석다고 말하지 못한다. 아니 상상하기 힘든 부단한 노력을 높이 산다. 꾸준히 노력하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이겨 내고 결국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에 尸佼(시교, 佼는 예쁠 교)의 저서 ‘尸子(시자)’에 비슷한 뜻으로 처음 등장한 이래 자주 인용되었다. ‘물은 송곳이 아니고, 노끈은 톱이 아니지만(水非石之鑽 繩非木之鋸/ 수비석지찬 승비목지거)‘ 쉼 없이 문지르면 돌과 나무를 끊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시교는 商鞅(상앙, 鞅은 가슴걸이 앙)의 변법 시행을 도왔던 사람이다.

南宋(남송)의 羅大經(나대경)이 지은 ‘鶴林玉露(학림옥로)’에는 張乖崖(장괴애)라는 현령의 고사가 있다. 창고에서 엽전 한 닢을 훔친 관리에게 곤장을 치게 하며 말했다. ‘하루에 일전이면 천일에 천전이고, 먹줄에 튕겨 나무가 끊어지고 물방울에 돌이 뚫린다(一日一錢 千日千錢 繩鋸木斷 水滴穿石/ 일일일전 천일천전 승거목단 수적천석).’ 일전 훔친 벌이 과하다고 항의한 데 대해 꾸짖은 것이다.

‘새끼줄 톱도 나무를 자르고 물방울도 돌을 뚫는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힘써 구하라(繩鋸木斷 水滴石穿 學道者須加力索/ 승거목단 수적석천 학도자수가역색).’ 明(명)나라 洪自誠(홍자성)의 교훈집 ‘菜根譚(채근담)’ 후집에 나온다.

느릿느릿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는 우화처럼 꾸준한 노력 앞에 저만 믿는 재주는 못 당한다. 여기엔 물론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속담과 같이 조그만 나쁜 짓도 하지 말라는 경계도 있다. 그래도 어려운 일을 헤쳐 나가는데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해 나가야 앞날에 영광이 기다린다는 뜻에 더 많이 사용되는 성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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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15
전세진적傳世珍籍 -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귀중한 책

전세진적(傳世珍籍) -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귀중한 책

전할 전(亻/11) 인간 세(一/4) 보배 진(玉/5) 문서 적(竹/14)

책 冊(책)은 대나무 조각에 글을 새겨 한 줄로 엮어놓은 모양을 딴 글자로 책 또는 문서를 가리켰다. 서기 105년 중국 後漢(후한)의 관리 蔡倫(채윤)이 종이를 만들기 전에는 甲骨文(갑골문) 같은 동물의 뼈나 돌, 비단 등에 글을 남겼다. 서양서도 물론 파피루스(papyrus)같은 섬유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재료가 어떠한 것이든 먼 조상들의 지혜와 체험과 사색의 기록이 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져왔기 때문에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다. 이같이 오래전부터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傳世) 진귀한 책(珍籍)이 있는가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책들 중에는 곧 사라질 책도 많다. 생명이 오랜 보배로운 책이란 이 성어는 달리 출전은 없이 귀중한 책을 모은 전집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책에 관해서 동서 철인들이 남긴 어록들을 보면 신랄하게 깎아내린 반어적 표현이 제법 눈에 띈다. 몇 가지 재미있는 표현을 보자. ‘책은 인간의 저주다.

현존하는 책의 90%는 시원찮은 것이며, 좋은 책은 그 시원찮음을 논파하는 것이다’, ‘적어도 두 번 되풀이해서 읽히지 않는 책은 뛰어나지도 않지만 명저도 아니다’, ‘책 중에는 세상에 책을 한 권 더 증가시키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악서가 있다’ 등등이다. 물론 세상에서 수없이 출판되고 유통되는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도 없으니 유익하고 좋은 책을 가려 읽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古典(고전)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말하는데 옛날부터 내려온 서적을 가리키는 것이 더 앞섰다. 법 典(전)이란 글자는 冊(책)을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廾/ 받들 공) 모양이니 중요한 책, 법이나 경전을 포함한 책을 나타냈다.

‘밤중에 물건을 찾을 때 불보다 좋은 것이 없는 것처럼, 현실에서 길을 찾으려면 고전보다 좋은 것이 없다(索物於夜室者 莫良於火 索道於當世者 莫良於典/ 색물어야실자 막량어화 색도어당세자 막량어전).’ 후한말 학자 王符(왕부)가 남긴 말이다. 고전이라 하면 어딘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져 쉽게 다가가지 못하지만 마르지 않는 샘처럼 변함없는 자양분을 공급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서나 성서가 영원한 고전인 만큼 焚書坑儒(분서갱유)의 오명이 있는 중국서는 최대 규모의 장서 四庫全書(사고전서)를 남김으로써 이전의 고전을 집대성했다. 학문을 중시한 우리나라도 물론 꾸준히 간행해 온 장서를 모은 奎章閣(규장각)의 전통을 자랑한다.

수없이 많은 책 중에서 도움이 되는 고전을 읽어야 하는 명언을 다시 보자. ‘인생은 한 권의 책과 흡사하다. 미련한 자는 훌쩍 넘겨 버리지만 현명한 자는 정성들여 읽는다. 왜냐하면 그는 한 번밖에 그것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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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16
시비지심是非之心 -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줄 아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줄 아는 마음

옳을 시(日/5) 아닐 비(非/0) 갈 지(丿/3) 마음 심(心/0)

옳고 그른 것이 물론 是非(시비)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도 역시 시비다. 옳고 그른 것이 명확히 구별될 것 같은데 일상에서 끝없이 시비가 일어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문제는 주관적이라 시비를 가리기 어렵고, ‘참깨가 기니 짧으니 한다’는 속담대로 차이가 별로 없는 것에도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우긴다.

전후 사정을 따지지 않고 不問曲直(불문곡직) 나서는 사람도 많다. 남의 말에 쌍지팡이 짚고 나서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흑백이 분명한데 검다, 희다 가리지 않아도 속 터진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어려우니 시비가 끊이지 않는 모양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선한 본성을 가졌다고 하는 性善說(성선설)은 孟子(맹자)의 독창적 인성론이다. 사람들은 남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인성을 갖고 태어나는데 惻隱之心(측은지심)부터 시작하는 四端(사단)이 그것이다. 맹자가 제자 公孫丑(공손추)와 문답한 내용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부분을 보자. 공손추 上篇(상편)이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無惻隱之心 非人也/ 무측은지심 비인야),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無羞惡之心 非人也/ 무수오지심 비인야),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無辭讓之心 非人也/ 무사양지심 비인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무시비지심 비인야).’

이 네 가지의 마음이 각각 仁(인) 義(의) 禮(예) 智(지)의 근원을 이루는 단서라고 했다. 이 중에서 ‘시비를 판단하는 마음이 지의 단서(是非之心 智之端也/ 시비지심 지지단야)’라 하고 선악을 옳게 또는 그르게 여길 줄 아는 것이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사람은 시비 속에서 살아간다. 菜根譚(채근담)의 충고를 들어보자. ‘꾀꼬리 소리는 좋아하고 개구리 울음은 싫어한다. 꽃을 보면 가꾸려 하고 잡초를 보면 뽑으려 한다(聽鶯啼則喜 聞蛙鳴則厭 見花則思培之 遇草則欲去之/ 청앵제즉희 문와명즉염 견화즉사배지 우초즉욕거지).’

사람의 심정이 보통 이렇지만 어느 것인들 하늘의 뜻에 따르지 않는 것이 없으니 괜히 건드리지 말고 천지자연 그대로 두라는 뜻이다. 어지간한 것은 지나치고, 적이라도 명확히 옳은 것은 치켜 주며, 같은 편이라도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면 시비가 줄어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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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17
풍불명조風不鳴條 - 바람이 가지가 울리지 않게 불다, 기후가 순조롭고 천하가 태평하다.

풍불명조(風不鳴條) - 바람이 가지가 울리지 않게 불다, 기후가 순조롭고 천하가 태평하다.

바람 풍(風/0) 아닐 불(一/3) 울 명(鳥/3) 가지 조(木/7)

농사를 하늘에 의지해 지을 때는 비와 바람에 큰 영향을 받는다.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많이 쏟아지는 風雨大作(풍우대작)의 해에는 흉년을 피할 수 없다. 비가 때맞춰 알맞게 내리고, 바람이 고르게 부는 雨順風調(우순풍조)의 기후면 농사가 잘 되고 민심도 좋아져 천하가 태평스럽다.

천재지변은 성군이라도 어쩔 수 없어 堯(요)와 湯(탕)임금 때 九年洪水 七年大旱(구년홍수 칠년대한)이 있었다 하고, 왕자의 난으로 정권을 잡은 조선 太宗(태종)이 비를 간절히 기다려 죽은 뒤 내리게 했다는 太宗雨(태종우)의 고사가 있다. 이처럼 절대자도 어쩔 수 없는 비바람을 고르게 원하는 성어가 많아 雨暘時若(우양시약), 和風甘雨(화풍감우) 등의 멋진 표현이 남았다.

여기에 하나 더 바람이 불어도 가지가 울리지 않게 부드럽다는 이 말도 그 중의 하나다. 後漢(후한)의 사상가 王充(왕충)이 ‘論衡(논형)’이란 책에 나온다. 어떤 사실을 논의하여 저울질한다는 뜻대로 당시 지배하던 경학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견해를 밝혀 논란과 함께 후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是應篇(시응편)의 내용은 이렇다.

‘바람은 나뭇가지를 울리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웠고, 비는 흙덩이를 깨뜨리지 않을 정도로 내렸으며(風不鳴條 雨不破塊/ 풍불명조 우불파괴), 닷새에 바람이 한 차례 불고, 열흘에 한 차례 비가 내렸다(五日一風 十日一雨/ 오일일풍 십일일우).’ 태평성대를 말한 것이긴 한데 실제 왕충은 儒者(유자)들이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라며 예를 든 것이라 한다.

前漢(전한) 때 학식이 깊고 문장에 뛰어났던 桓寬(환관)의 ‘鹽鐵論(염철론)’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조정에서 專賣(전매) 등 각종 정책을 토론하는 내용을 엮은 독특한 형식의 책이다. 水旱篇(수한편)에 周(주)나라 초기 기틀을 닦은 周公(주공)이 자신의 품행을 닦으니 천하가 태평하고 큰 흉년이 든 해도 없었다면서 이어진다.

‘당시에는 비가 내려도 흙덩이를 무너뜨리지 않을 만큼 가볍게 내렸고, 바람도 나뭇가지가 울리지 않게 부드럽게 불었다(當此之時 雨不破塊 風不鳴條/ 당차지시 우불파괴 풍불명조).’ 백성을 위하고 순리대로 다스리니 태평성대가 이어졌다는 미담이다.

앞의 책에는 五風十雨(오풍십우)라 했는데 南宋(남송)의 시인 陸游(육유)의 시에는 十風五雨(십풍오우)란 시구가 나온다고 한다. 열흘에 한 번 바람이 불고 닷새에 한 번 비가 온다는 뜻으로, 역시 순조로운 날씨를 이르는 말이라 하니 비바람이 계속되는 날짜가 물론 문제가 아니다.

성인의 정치로도 어쩌지 못하는 기후는 인공으로 비를 내리도록 과학의 힘으로 시도해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 오로지 자연훼손을 막고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등 인류 공통의 노력이 있어야 순조로운 기후를 누릴 수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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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17
낙엽귀근落葉歸根 -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

낙엽귀근(落葉歸根) -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

떨어질 락(艹/9) 잎 엽(艹/9) 아갈 귀(止/14) 뿌리 근(木/6)

나뭇잎 한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알아차린 一葉知秋(일엽지추)의 선인이 아니라도 무성하던 잎이 거의 졌을 요즘은 누구나 겨울이 왔음을 안다. 영하의 날씨가 벌써 찾아왔을 뿐더러 하수상한 시절이 계속되어 몸도 마음도 으스스함을 느낀다.

명승지의 단풍이 모두 떨어졌을 때의 풍경이 더 멋지다고 刻露淸秀(각로청수)란 말이 있지만 거리에 나뒹구는 낙엽도 결코 고독하지 않다. 낙엽은 결코 죽지 않고 새로운 더 큰 생명을 준비하는 과정이라 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연말 즈음이어서인지 떨어진 잎사귀(落葉)는 뿌리로 돌아간다(歸根)는 이 성어가 많이 오르내린다. 낙엽이 썩어야 땅을 기름지게 하여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듯이 만물은 그 생명을 다하면 근본으로 돌아감을 비유한다.

이 말은 宋(송)나라 道原(도원)의 불서 ‘傳燈錄(전등록)’에서 유래하여 불교의 輪迴說(윤회설)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처음엔 그릇되더라도 결국은 올바른 이치대로 되고 만다는 事必歸正(사필귀정)이나 자신에게서 나온 것은 자신에게 돌아간다는 出爾反爾(출이반이)와 상통한다. 禪宗(선종)의 6대 조사인 慧能(혜능)대사가 제자들에게 한 말씀으로 나오는데 부분을 옮겨보자.

대사가 떠나려하자 대중이 슬퍼하며 지금 가시면 언제 오시는지 묻는다. 그러자 육조대사는 답한다. ‘모든 부처님이 열반을 보이시듯이 왔으면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諸佛出現 猶示涅槃 有來必去 理亦常然/ 제불출현 유시열반 유래필거 이역상연)’라면서 ‘나뭇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고, 돌아올 때는 아무 말이 없다(葉落歸根 來時無口/ 엽락귀근 래시무구)’고 했다.

老子(노자)의 道德經(도덕경)에도 비슷한 의미로 나온다. ‘만물이 성장하고 변해갈 때 나는 그들의 돌아감을 본다. 만물은 무성해졌다가 다시 그 뿌리로 되돌아간다(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16장 歸根(귀근)편에 있다. 재주 藝(예)의 약자로 쓰이는 芸(운)의 본뜻은 향풀, 촘촘하다는 의미다.

나무도 뿌리로 돌아감을 아는데 자연의 순리를 잊은 채 오로지 권세와 부를 쫓은 사람들의 몰락은 여기저기서 몰골을 드러낸다. 몇 천 억대의 부를 갖고도 더 욕심을 부리다 나락에 떨어지고, 더 큰 명예와 권세를 탐하던 욕망에 휘둘린 사람들의 업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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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18
고운야학孤雲野鶴 - 외로운 구름과 들의 학, 속세를 떠난 은사

고운야학(孤雲野鶴) - 외로운 구름과 들의 학, 속세를 떠난 은사

외로울 고(子/5) 구름 운(雨/4) 들 야(里/4) 학 학(鳥/10)

번거로운 세상사를 잊고 초야에 묻혀 悠悠自適(유유자적)하는 것은 대부분 선비들의 만년의 희망이었다. 처음부터 은거를 택한 사람도 있고, 修身齊家(수신제가)한 뒤 세상을 이끌려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아 낙향을 택하기도 했다. 이런 전통은 아마도 중국 전설시대의 許由巢父(허유소보)까지 올라갈 듯싶다.

堯(요) 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潁川(영천)에서 귀를 씻고, 소에게도 그 강물을 먹일 수 없다고 했던 은자들이다. 폭군 紂王(주왕)이라도 멸할 수 없다며 반대한 伯夷叔齊(백이숙제)는 首陽隱士(수양은사)가 됐다.

난세를 피해 숨었던 竹林七賢(죽림칠현), 울타리에서 국화를 꺾었던 采菊東籬下(채국동리하)의 陶淵明(도연명), 매화와 학을 벗 삼았던 梅妻鶴子(매처학자)의 林逋(임포, 逋는 도망갈 포) 등도 이름났다.

이런 명사들 말고도 은자를 나타낸 말에는 그림 같은 묘사가 많다. 몇 가지만 보자. 山棲谷飮(산서곡음)은 산속에 살면서 계곡의 물을 마시고, 巖居川觀(암거천관)은 바위굴에 살며 냇물의 흐름을 바라보는 은사이며, 前園後圃(전원후포)는 앞에는 동산이요 뒤로는 가꾸는 밭이 있는 풍경을 즐긴다.

양가죽으로 된 갖옷을 입고 물고기를 낚는 羊裘垂釣(양구수조, 裘는 갖옷 구)의 태공도 있다. 여기에 외로이 떠 있는 구름(孤雲)과 무리에서 벗어나 들에 있는 학(野鶴)이란 뜻의 성어는 속세를 떠나 한가로이 숨어 지내는 선비를 이른다. 明(명)의 洪自誠(홍자성)이 쓴 경구집 ‘菜根譚(채근담)’에 있는 실려 있다.

後集(후집) 106장의 내용이다. ‘산중에 살면 가슴 속이 맑고 시원하니, 대하는 것마다 모두 아름다운 생각이 든다(山居胸次淸洒 觸物皆有佳思/ 산거흉차청쇄 촉물개유가사). 외로운 구름과 들의 학을 보면 속세를 초월한 듯하고(見孤雲野鶴 而起超絶之想/ 견고운야학 이기초절지상), 계곡에 흐르는 샘을 보면 마음의 때를 씻어주는 듯하다(遇石澗流泉 而動澡雪之思/ 우석간류천 이동조설지사).’ 洒는 시원할 쇄, 灑(쇄)와 같다.

澡雪(조설)은 마음의 때를 깨끗하게 한다는 뜻. 唐(당)나라의 전설적인 寒山(한산)의 다른 묘사도 좋다. ‘초야에 사는 오막살이집 아무도 찾는 이 없네(茅棟埜人居 門前車馬疎/ 모동야인거 문전거마소), 깊은 숲속 새들이 모여들고 너른 시내엔 물고기들 노니네(林幽偏聚鳥 谿闊本藏魚/ 임유편취조 계활본장어).’ 埜는 들 야, 野(야)의 古字(고자), 谿는 시내 계, 溪(계)와 같다.

우리의 선조들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학문을 닦고 제자를 양성한 선비들이 많았고, 초가삼간 지어 달과 청풍과 함께 산다며 풍류를 노래했다. 오늘날의 가요도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거나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이라도 지어 여생을 즐기는 것을 희망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소수이고,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 밀려 귀향하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한다. 생활에 쫓기면 외로운 구름이나 하늘을 나는 학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라 안타깝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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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18
일모도원日暮途遠 -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일모도원(日暮途遠) -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날 일(日/0) 저물 모(日/11) 길 도(辶/7) 멀 원(辶/10)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오는데(日暮) 갈 길이 멀다면(途遠) 조바심이 난다. 이 말이 쓰이는 데는 다양하다. 할 일은 많은데 마감은 다가오고 시간이 없어 쩔쩔맨다. 사업 계획은 세워 놓고 독촉 받는 실무자들도 똑 같다.

나이가 들어 살아갈 날이 얼마 없는데 해야 할 일은 많고 이룬 것은 별로 없는 노인이 이런 기분이다. 고사성어의 보고 ‘史記(사기)’에 나온다. 순리를 어기고 거꾸로 행했다는 倒行逆施(도행역시)의 유명한 말과 함께 복수의 화신 伍子胥(오자서) 열전이 출처다.

오자서는 楚(초)나라 平王(평왕) 밑에서 태자의 사부인 부친을 모시고 형과 함께 지냈다. 간신 費無忌(비무기)의 모함을 받고 부친은 옥에 갇히고 태자는 망명했다. 후환이 두려운 비무기는 음모를 꾸며 오자서 형제에게 자진 출두하면 부친을 살려 주겠다고 했다.

자수한 형과 함께 부친은 죽음을 당했고 오자서는 복수를 기약하며 宋(송)나라를 거쳐 吳(오)나라로 피신했다. 세월이 흘러 5년, 평왕이 죽고 더욱 권세를 떨치던 비무기도 내분의 와중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不俱戴天(불구대천)의 두 사람을 노리던 오자서는 오나라 闔閭(합려)가 왕위를 차지하자 그를 도와 초나라 정벌에 나섰다. 수도를 함락시킨 뒤 원수를 찾았으나 이미 죽은 뒤라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뼈를 들춘 뒤 시체에 300대의 매질을 가했다.

이 소식을 들은 옛날 친구 申包胥(신포서)가 편지를 써서 너무 잔인한 복수라고 꾸짖었다. 그러자 오자서는 ‘해는 지고 갈 길은 먼데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吾日暮途遠 故倒行而逆施之/ 오일모도원 고도행이역시지)’라고 변명했다.

오자서의 집념은 사후에도 계속된다. 합려가 죽고 실권을 잡은 그 아들 夫差(부차)가 모함에 빠져 오자서에 자결을 명했다. 오자서는 망하는 모습을 보겠다며 눈알을 도려내 성문에 걸어달라고 당부하고는 자결했고 오나라는 과연 그의 말대로 패망했다. 司馬遷(사마천)은 고초를 이겨 공명을 이룬 대장부라고 의외로 그를 높이 평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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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19
신목여전 천청여뢰神目如電 天聽如雷 - 귀신의 눈은 번개와 같고 하늘이 듣는 것은 우레와 같다.

신목여전 천청여뢰(神目如電 天聽如雷) - 귀신의 눈은 번개와 같고 하늘이 듣는 것은 우레와 같다.

귀신 신(示/5) 눈 목(目/0) 같을 여(女/3) 번개 전(雨/5)

하늘 천(大/1) 들을 청(耳/16) 같을 여(女/3) 우레 뢰(雨/5)

마음을 밝게 해주는 귀중한 말 ‘明心寶鑑(명심보감)’은 글자 그대로 보배롭고 귀중한 거울이다. 고려 忠烈王(충렬왕) 때의 문신 秋適(추적)이 선인들의 금언과 명구를 모은 책이다. 효와 우애, 개인과 국가, 인간과 하늘과 자연 등 인격을 고취하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도리를 담았다.

그래서 예로부터 千字文(천자문), 童蒙先習(동몽선습)과 함께 서당 교육의 기초교과로 널리 사용됐다. 제일 처음의 착한 일을 계속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繼善篇(계선편)부터 19편이 실렸는데 이후 다른 학자들의 증보로 24편인 것이 많다.

제2편인 天命(천명)은 하늘의 뜻에 따라 살 것을 권하고 勸善懲惡(권선징악)의 의미를 새기는 장이다. 모두 7구절의 짤막하지만 알려진 명언을 모았다. 처음 하늘에 순종하는 사람은 살고,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順天者存 逆天者亡/ 순천자존 역천자망)에서 시작하여 오이 심으면 오이가, 콩 심으면 콩 난다(種瓜得瓜 種豆得豆/ 종과득과 종두득두)는 등의 말이 들어 있다.

귀신의 눈은 번개와 같고(神目如電), 하늘이 듣는 것은 우레와 같다(天聽如雷)는 무시무시한 말도 여기서 나왔다. 道家(도가)에서 받드는 신 玄帝(현제)가 내린 훈계라면서 설명한다. ‘인간의 사사로이 하는 말이라도 하늘이 들을 때는 우레와 같이 들리고(人間私語 天聽若雷/ 인간사어 천청약뢰), 어두운 방 안에서 제 마음을 속이는 일이라도 귀신의 눈에는 번개와 같이 밝게 보인다(暗室欺心 神目如電/ 암실기심 신목여전).’

이렇게 남모르게 나쁜 짓을 했을 때 하늘이 알고 신이 안다고 하면 바로 天知地知 子知我知(천지지지 자지아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중국 後漢(후한) 때 청렴한 선비 楊震(양진)의 이야기다.

그가 임지로 떠날 때 어느 지역을 지나게 됐는데 그곳 현령이 숙소로 찾아와 황금 10근을 받아달라고 청한다. 양진이 추천해 준데 대한 보답이라며 밤이라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이에 현령에게 말한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안다’고 한 것이다. 四知(사지)라고도 한다.

요사이는 조그마한 선물도 직무와 관련됐을 때는 금지되는 법이 시행되니 사회가 맑아졌을 것이다. 이전에 수시로 드러났던 공직자와 이해 관계자들의 금품 수수는 몰래 주고받을 때 전혀 들통이 나지 않을 것으로 알았다. 예전 아동들도 배웠던 하늘과 신의 무서움을 예사로 흘려들었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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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19
창운주필唱韻走筆 - 운자를 부르는 대로 빠르게 시를 짓다.

창운주필(唱韻走筆) - 운자를 부르는 대로 빠르게 시를 짓다.

부를 창(口/8) 운 운(音/10) 달릴 주(走/0) 붓 필(竹/6)

필체가 날아가는 듯하다고 하면 빨리 쓰면서도 잘 쓴 글씨를 말한다. 단순히 速筆(속필)이라면 잘 쓰기보다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다. 붓이 달리는 듯하다는 走筆(주필)은 글씨를 흘려서 빨리 쓴다는 뜻도 있지만 시를 빨리 짓는다는 의미를 지녔다.

시작에서 동일한 위치에 규칙적으로 같거나 비슷한 음조의 글자를 사용하는 것이 韻(운)이다. 운자를 부르게 하고(唱韻) 곧바로 시를 짓는다(走筆)는 이 말은 옛날 양반들의 시회에서 유희로 곧잘 행해졌다고 한다. 조선의 방랑시인 김삿갓金笠/ 김립, 1807~1863이 가진 것 없이 팔도를 유람하면서 이 실력으로 잘 대접 받았다니 타고난 재주였다.

이보다 훨씬 앞서 고려 중기의 문신 李奎報(이규보, 1168~1241)를 두고선 주필을 말할 수 없다. 60년간 이어진 崔忠獻(최충헌) 등의 무신정권에 협조했다는 평도 있으나 다양한 방면에 명문을 많이 남긴 詩豪(시호)로도 이름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말과 걸음이 빠르고 시를 잘 짓는다하여 ‘三捷(삼첩)’이란 별명을 얻었고, 성장해서 문단에서는 唐(당)의 李白(이백) 만큼 시를 빨리 잘 쓴다고 ‘走筆 李唐白(주필 이당백)‘으로 불릴 정도였다.

시와 술, 거문고를 즐겨 三酷好(삼혹호) 선생이라 자칭했던 이규보는 문신 陳澕(진화, 澕는 깊을 화)와 함께 ’李正言 陳翰林 雙韻走筆(이정언 진한림 쌍운주필)‘이란 기록까지 남게 됐다. 정언과 한림이란 벼슬 이름을 땄다.

이런 찬사가 정작 본인에겐 못마땅해서 ‘論走筆事略言(논주필사략언)’이란 글에서 깎아내린다. ‘창운주필이란 것은 사람을 시켜서 운자를 부르게 하고는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시를 지어내는 것(夫唱韻走筆者 使人唱其韻而賦之 不容一瞥者也/ 夫唱韻走筆者 사인창기운이부지 부용일별자야)’인데 술자리에서 한 때의 즐거움으로 했던 것이라 했다.

술 취한 중에 지어 알아보지 못하는 글자도 있고, 뜻도 통하지 않아 수준이 떨어진다며 시가의 죄인이라 자책한다. 점차 구경거리로 되어 가소롭기까지 한데 높은 사람들이 이런 재주를 찬미하자 후진 중에서도 잇따라 나왔다며 자신은 취중에 지은 작품을 많이 없앤다고 했다.

이규보는 자신의 재주를 낮췄지만 그의 명문은 많이 남았다. 이 난에 소개했던 성어 蝨犬畏敬(슬견외경)은 해충 이나 개의 목숨도 다 같이 소중하다는 말이다. 햇곡식을 수확하는 농부를 찬미하는 시는 더욱 좋다. ‘한알 한알을 어찌 가볍게 여기겠나,

사람의 생사와 빈부가 달렸다네(一粒一粒安可輕 係人生死與富貧/ 일립일립안가경 계인생사여부빈)’하며 농부를 부처처럼 생각한다는 新穀行(신곡행)이다. 상대방의 말에 즉각 멋지게 잘 대응하는 사람은 부럽다. 이런 능력도 정치판에서 주고받는 막말 공박이 되면 피곤하기만 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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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20
실마치구失馬治廐 - 말 잃고 마구간 고친다, 실패한 뒤에 대비한다.

실마치구(失馬治廐) - 말 잃고 마구간 고친다, 실패한 뒤에 대비한다.

잃을 실(大/2) 말 마(馬/0) 다스릴 치(氵/5) 마구 구(广/11)

‘매사에 불여튼튼‘이란 말이 있다. 건강을 잃기 전에 모든 대비를 해야 하는 것처럼 일상사 차근차근 준비를 하는 이상 안전한 것이 없다. 준비가 너무 빠르다고 ’시집도 가기 전에 포대기 장만한다‘는 말이 있지만 서두르는 것을 경계한 말이지 준비한 것을 나무라는 말은 아니다.

서두르는 사람이 뒤떨어진다는 先掉尾 後知味(선도미 후지미)라는 말도 달리 해석한다. 개가 음식을 먹을 때 꼬리를 흔들고 먹듯이 사전 계획이나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를 도둑맞은 뒤에 허물어진 외양간을 고치느라 수선을 떨어봤자 소가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잘못된 뒤에는 아무리 손을 써도 소용이 없다는 속담이 ‘소 읽고 외양간 고친다’는 亡牛補牢(망우보뢰)다. 물론 亡羊補牢(망양보뢰)도 같은 의미고 ‘旬五志(순오지)’에는 말을 등장시켜 말을 잃고(失馬) 마구간 고친다(治廐)로 나온다.

설명한 부분을 보자. ‘굿 뒷날 장구 친다는 것은 일이 다 끝난 뒤에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을 일컬음이다. 말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은 양을 잃어버린 뒤 우리를 손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神祀後鳴缶 言後於事 失馬治廐 言亡羊補圈之類/ 신사후명부 언후어사 실마치구 언망양보권지류).‘ 缶는 장군, 질장구 부.

사람이 죽고 난 뒤에는 제아무리 명의가 써준 처방이라도 소용없다는 死後藥方文(사후약방문)도 시기를 놓치지 말고 잘 대비하라는 말이다. 같은 뜻을 가진 말 중 몇 개만 더 들면 목 마를 뒤에 우물 파는 渴而穿井(갈이천정), 물에 빠진 뒤 배를 부른다는 及溺呼船(급익호선), 전쟁이 일어난 뒤에야 무기를 만든다는 鬪而鑄兵(투이주병) 등이다.

여기에도 달리 볼 점이 있다. 한 번 실패한 일에 다시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소 잃은 뒤에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는 교훈이다.

모든 일에 사전 대비하여 잘못되는 것을 막는 것이 제일이지만, 늦었다고 깨우치는 시점에서 고치면 더 이상의 피해는 없다. 사회 일상사도 그런데 나라 살림살이, 국가의 방위 등 큰일에는 말할 필요도 없다.

정책을 시행할 때 부작용이 드러나는데 고칠 생각도 않고 밀고 나간다거나, 작은 시행착오를 보고도 과정상의 작은 잘못이라고 고집을 부리면 돌이킬 수 없는 구덩이에 빠질 수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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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20
평원독우平原督郵 - 나쁜 술, 평원 지역의 격현횡격막에 걸리는 술

평원독우(平原督郵) - 나쁜 술, 평원 지역의 격현(횡격막)에 걸리는 술

평평할 평(干/2) 언덕 원(厂/8) 감독할 독(目/8) 우편 우(阝/8)

술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윤활유가 되면서도 각종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주량이 천차만별인 만큼 好不好(호불호)도 극명하게 갈린다. 술은 일시적 자살이라거나 ‘술은 번뇌의 아버지요, 더러운 것의 어미’라 한 근심파가 있는가하면 모든 약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百藥之長(백약지장), 걱정을 없애는 데는 그 이상이 없다며 銷憂者 莫若酒(소우자 막약주)라고 한 찬양파도 숱하다.

중국 六朝(육조)의 陶淵明(도연명)이 읊었던 忘憂物(망우물)도 시름을 잊게 해 준다는 의미다.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더라도 좋은 술이 있는가하면 나쁜 술도 있기 마련이다.

平原(평원) 지역의 태수 보좌관인 督郵(독우)가 나쁜 술을 말한다는데 유래의 유래를 알아야 뜻이 겨우 통할 정도로 어렵다. 南朝(남조) 宋(송)나라의 劉義慶(유의경)이 쓴 ‘世說新語(세설신어)’가 출처인데 내용을 보자. 晉(진)나라 세력가인 桓溫(환온)에겐 술맛을 감별하는데 능한 부하가 있었다. 술이 생길 때마다 감별을 부탁했는데 표현이 독특했다.

‘좋은 술이면 청주의 종사(好者謂靑州從事/ 호자위청주종사), 나쁜 술이면 평원의 독우(惡者謂平原督郵/ 악자위평원독우)’라 했다. 청주지역에 齊郡(제군)이 있고 평원에는 鬲縣(격현, 鬲은 막을 격)이 있는데 각각 배꼽 臍(제)와 橫隔膜(횡격막)을 가리켰다. 좋은 술은 배꼽까지 내려가고 나쁜 술은 횡격막에 걸려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을 이렇게 빙빙 돌려 말했다.

이렇게 어려운 은유의 표현이 우리의 고전에는 의외로 많이 등장한다. 고려 때 술을 가까이했던 문장가 李奎報(이규보)는 白酒詩(백주시)에서 막걸리를 읊는다. ‘체하여 가슴 속이 막히는 듯, 독우가 나쁜 것을 이제 알겠네(滯在胷隔間 始覺督郵鄙/ 체재흉격간 시각독우비).’ 林椿(임춘)의 가전체소설 ‘麴醇傳(국순전, 麴은 누룩 국)’에는 벼슬 이름으로 나온다.

또 조선 시조의 대가 尹善道(윤선도)는 좋은 풍광을 보면 술이 없어도 가슴이 시원하다는 표현에 썼다. ‘좋은 술의 힘을 빌릴 것도 없이, 나그네 가슴 가득한 시름이 씻기네(不待靑州從事力 能鏖客子滿腔愁/ 부대청주종사력 능오객자만강수).’ 鏖는 오살할 오.

술은 그 자체로 술일뿐인데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것은 정도를 넘기는 데서 온다. 술이 술을 부르니 자신이 이기지 못할 정도로 마시게 되고 나중에는 못할 짓이 없는 醉中無天子(취중무천자), ‘술 먹은 개’가 따로 없다.

제 건강만 해치면 어쩔 수 없지만 주변에 해를 끼치고 음주운전으로 생명까지 빼앗는다. 술을 마실 때 항상 명심해야 할 말이 法華經(법화경)에 나온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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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21
동곽리東郭履 - 동곽 선생의 밑창 뚫린 신발, 매우 가난한 생활

동곽리(東郭履) - 동곽 선생의 밑창 뚫린 신발, 매우 가난한 생활

동녘 동(木/4) 들레 곽(阝/8) 밟을 리(尸/12)

가난한 살림살이를 비유할 때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한다. 10cm가 조금 넘는 작은 새 뱁새가 긴 다리의 황새를 쫓아간다는 데서 없으면서 무리한다거나, 가랑이 찢어질 정도로 움직여야 풀칠할 정도로 가난하다는 말이란다.

가난하다는 家徒四壁(가도사벽), 簞食瓢飮(단사표음), 三旬九食(삼순구식) 등의 성어가 유난히 많은 중에, 옷은 다 해어지고 신발은 떨어져 구멍이 났다는 표현이 衣履弊穿(의리폐천), 衣結屨穿(의결구천, 屨는 짚신 구)이다. 여기에 함께 떠오르는 동곽 선생(東郭)의 신발(履)이란 말은 밑창이 다 닳은 신발을 신고 다닐 정도의 가난한 생활을 나타냈다.

司馬遷(사마천)의 대작 ‘史記(사기)’에서도 많이 읽히는 列傳(열전) 중에는 뛰어난 기지와 해학을 자랑한 사람들을 모은 滑稽(골계)편이 있다. 처음엔 세 사람만 전해졌다가 前漢(전한)의 사학자인 褚少孫(저소손)이 찾아 덧붙인 곳에 나온다는 東郭(동곽)은 술법을 연구하는 方士(방사) 출신이었다. 바로 앞부분에 등장하는 東方朔(동방삭)과 혼동하는 자료가 많지만 다른 사람이다.

그가 오랫동안 조정의 공문을 처리하는 부서에 있었으나 가난을 면치 못해 눈밭을 걷는데 신발 닳은 밑창에 눈이 닿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비웃자 태연히 말한다. ‘사람들이 위의 신발을 보지, 아래를 사람의 발처럼 보이게 할 수 있겠소(令人視之 其上履也 其履下處乃似人足者乎/ 영인시지 기상리야 기리하처내사인족자호)?’

이처럼 가난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 동곽은 훗날 황제에게 불려가 都尉(도위) 벼슬을 얻고 봉록이 2000석이 됐다. ‘莊子(장자)‘에도 가난에 관한 마음가짐에 이러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말이 있다. 장자가 성긴 천 조각으로 기운 옷과 해진 신발을 신은 채 魏(위)나라 왕을 만났다.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느냐고 왕이 묻자 장자가 답한다. ’옷이 해지고 신발이 구멍 난 것은 가난한 것이지 망가진 것이 아닙니다(衣弊履穿 貧也 非憊也/ 의폐리천 빈야 비비야).‘ 그러면서 선비로서 도와 덕에 대한 뜻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천할 때를 못 만나는 것이 망가진 것이라 했다. 山木(산목)편에 실려 있다.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 진다고 아우성인데다 앞서 유례없는 전염병이 들이닥칠 때는 속수무책이다. 이전과 같이 일자리가 늘어나지도 않는 상황에서 하층민과 젊은이부터 직격탄을 맞는다. 이들에게는 옛날 사람들이 견딜만하다고 예찬한 가난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리 없고 바로 생사와 직결된다.

세계 10위권의 풍요를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수시로 나타나는 아사자를 없애는 것이 앞서야 한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란 말이 있다고 해도 사회보장제도가 엄연히 있는 만큼 촘촘히 살펴 도울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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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22
목불견첩目不見睫 - 눈으로 눈썹은 보지 못한다, 남의 허물은 잘 보다.

목불견첩(目不見睫) - 눈으로 눈썹은 보지 못한다, 남의 허물은 잘 보다.

눈 목(目/0) 아닐 불(一/3) 볼 견(見/0) 속눈썹 첩(目/8)

여간 수양이 된 사람 아니고는 자신의 허물을 알기 어렵다. 남의 흉은 일부러 찾지 않더라도 저절로 눈에 들어온다. ‘남의 흉 한가지면 제 흉은 열 가지‘인데도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묻혀있는 남의 흠을 찾기까지 한다. 털을 불어 허물을 찾는 吹毛覓疵(취모멱자)다.

’자기 자신의 결점을 반성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남의 결점을 보고 있을 틈이 없다.‘ 탈무드에 있는 말이다. 자신의 결점은 알지 못하고 남의 잘못은 잘 본다는 비유로 눈으로는 자기의 눈썹을 보지 못한다는 이 성어를 쓴다. ’도끼가 제 자루 못 찍는다‘는 속담과 같다.

중국 法家(법가)의 확립자 韓非(한비)가 쓴 ‘韓非子(한비자)’는 秦始皇(진시황)에게 영향을 준 책으로 유명하다. 역사적인 고사들을 老子(노자)의 사상과 비교 설명한 喩老(유로)편에 이 성어가 실려 있다. 春秋時代(춘추시대) 楚(초)나라 莊王(장왕)이 越(월)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 신하인 杜子(두자)가 무슨 연유로 군사를 일으키는지 물었다. 월나라의 정치가 어지럽고 병력이 약화된 이때가 좋은 기회라고 답하자 두자가 간했다.

‘신은 어리석지만 사람의 지혜라는 것이 눈과 같아서, 능히 백 걸음 밖을 내다볼 수는 있으나 가까이 있는 자기 눈썹은 보지 못합니다(臣愚患之智如目也 能見百步之外而 不能自見其睫/ 신우환지지여목야 능견백보지외이 불능자견기첩).’ 그러면서 초나라도 秦(진)과 晉(진)에 패배하여 수백 리의 영토를 잃었고, 莊蹻(장교, 蹻는 발돋움할 교)라는 도적이 날뛰고 있어도 막지 못하고 있는데 나라를 수습하는 것이 더 급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월나라를 정벌하려 하니 이것이야말로 지혜가 눈썹을 보지 못하는 눈과 다를 바가 없다(此智之如目也/ 차지지여목야)고 간곡히 말했다. 장왕은 월나라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포기했다. 그래서 노자는 ‘자기 자신을 잘 보는 것을 밝음(自見之謂明/ 자견지위명)’이라 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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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22
수가차포手加車包 - 기술이 차포를 더한 것과 같다, 술수나 재능이 탁월하다.

수가차포(手加車包) - 기술이 차포를 더한 것과 같다, 술수나 재능이 탁월하다.

손 수(手/0) 더할 가(力/3) 수레 거, 차(車/0) 쌀 포(勹/3)

將棋(장기)는 바둑에 비해 수가 적더라도 예부터 남녀노소가 즐긴 지적 놀이였다. 양측의 대장이 붉은 漢(한)과 푸른 楚(초)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老紅少靑(노홍소청)이라며 초의 項羽(항우)가 한의 劉邦(유방)보다 연하라 선수로 둔다. 양편이 각16개의 짝으로 두는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車(차)와 包(포)다.

풍자시인 김삿갓이 시구를 남겼다. ‘포가 날아 뛰어넘는 곳에 위풍이 장하고(飛包越處軍威壯/ 비포월처군위장), 직진하는 차는 먼저 졸을 무찌른다(直走輕車先犯卒/ 직주경차선범졸).’ 수가 가장 중요한 車包(차포)를 더한 것과 같다면 재능이 훨씬 높다는 말이다.

조선 후기 편자 미상의 한문 笑話集(소화집)인 ‘攪睡雜史(교수잡사)’에 실려 있다. ‘잠을 깨게 하는 잡된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란 글자대로 해학과 음담이 내용의 주를 이룬다. 집대성한 古今笑叢(고금소총)에 물론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장기를 잘 두는 어느 재상의 이야기에서 성어가 비롯됐다.

그는 수법이 뛰어나 적수가 없을 정도인데다 내기가 아니면 두지 않았다. 이 소문을 들은 영남의 한 선비가 찾아 와 대국을 청하며 가진 것이 없어 질 경우엔 타고 온 말과 하인을 드리겠다고 했다. 세 번을 두어 두 번을 진 선비는 약속대로 말과 하인을 대감에 바치고 떠났다.

수십 일 지나 선비가 다시 찾아 과거에 낙방하고 내려가는 길이라며 대국을 청했다. 지면 고향의 논밭 문서를 걸고 자신이 이길 때는 전번 맡긴 것을 돌려주면 된다고 했다. 재상이 허락하고 대국했는데 이번에는 쩔쩔 매며 세 번을 다 패했다. 언제 수가 이렇게 늘었느냐고 물으니 선비가 답한다. ‘애초 저의 수법이 대감과 비교해 차포는 더한 것 같습니다(自初小生比 大監文博手加車包/ 자초소생비 대감문박수가차포).’

서울 머물 때 말을 먹일 데가 없어 일부러 졌다는 말에 대감은 창피를 금할 수 없었다. ‘한국고사성어’(임종대 편저)에는 바둑에 져서 말을 맡긴다는 碁敗寄馬(기패기마)가 나오는데 세조의 아들 德源君(덕원군)이라고 대감이 명시되는 것 외에 내용은 같다.

어느 한 분야를 잘 하게 되면 자기가 천하제일인 줄 안다. ‘저는 잘난 백정으로 알고, 남은 헌 정승으로 안다’는 속담대로 세상에는 날고뛰는 재주꾼이 수두룩한데 실제 변변찮으면서 더 우쭐대고 조금 못한 남을 업신여긴다.

교양이 있고 수양을 쌓은 사람일수록 겸손하고 남 앞에서 자기의 재주를 숨긴다.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어도 실제 속이 찬 사람은 難得糊塗(난득호도)라 하여 어리숙하게 보이기가 더 어렵다고 했다. 겸손을 모르고 제 세상인양 기고만장하는 사람들은 그 세월이 오래 갈 줄 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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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23
익자삼우益者三友 - 사귀어서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세 가지의 벗

익자삼우(益者三友) - 사귀어서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세 가지의 벗

더할 익(皿/5) 놈 자(耂/5) 석 삼(一/2) 벗 우(又/2)

친구를 사귈 때 손익을 따진다면 삭막하다. 서양 격언에서 ‘우정은 기쁨을 배가하고 비애를 나눈다’고 했다. 핏줄이 다른데도 그 이상으로 돕는 우정은 동양에서 효 이상으로 그만큼 중시해 왔다.

管鮑之交(관포지교, 鮑는 절인물고기 포)와 刎頸之交(문경지교, 刎은 목자를 문, 頸은 목 경)를 비롯한 희생 위에서 빛나는 우정이 많다. 하지만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한 성경 말씀(요한복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면으로 주고받는 계산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인지 孔子(공자)님도 사귀면서 도움이 되는(益者) 세 가지의 벗(三友)이 있다고 ‘論語(논어)’ 季氏(계씨)편에서 가르쳤다. 물론 損子三友(손자삼우)라 해서 가까이 해서 손해가 되는 세 가지의 벗도 함께 내세운다. 부분을 보자. ‘유익한 친구가 세 가지요, 사귀면 해로운 친구가 세 가지다(益者三友 損者三友/ 익자삼우 손자삼우).

정직한 사람과 벗하며, 성실한 사람과 벗하며, 견문이 많은 사람과 벗하면 유익할 것이다(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 우직 우량 우다문 익의). 편벽한 사람을 벗하며, 위선적인 사람을 벗하며, 아첨 잘 하는 사람을 벗하면 해롭다(友便辟 友善柔 友便佞 損矣/ 우편벽 우선유 우편녕 손의).’

세상에 대처하는 지혜를 나열한 내용이 많은 계씨편에서는 이외에도 세 가지로 요약한 것이 많이 나온다. 적당한 예악과 칭찬하기, 현명한 친구가 많아지는 것을 좋아하는 유익한 것 세 가지 益者三樂(익자삼요), 교만 방자하고 무절제하게 놀기, 먹고 마시기만 좋아하는 해로운 것 세 가지 損子三樂(손자삼요)가 있다. 또 군자가 경계해야 할 君子三戒(군자삼계), 군자가 두려워하는 세 가지 君子三畏(군자삼외) 등도 함께 나온다.

사귀기전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손해가 될지 따지면서 친구를 나누기는 어렵다. 어떻든 자기가 먼저 진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면 대체로 무난하다.

좋은 사귐은 인간의 행복과 장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밝힌 연구도 있다. 이로움이 있으면 모이고, 이익이 없으면 헤어지는 장사를 위한 사귐은 市道之交(시도지교) 밖에 안 된다. 사람을 판단하려면 사귀는 친구를 보라고 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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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23
야화소부진野火燒不盡 - 들불에도 잡초는 다 타지 않는다, 끈질긴 생명력을 비유

야화소부진(野火燒不盡) - 들불에도 잡초는 다 타지 않는다, 끈질긴 생명력을 비유

들 야(里/4) 불 화(火/0) 사를 소(火/12) 아닐 불, 부(一/3) 다할 진(皿/9)

끈질긴 생명력이라면 먼저 잡초를 떠올린다. 농작물 자라는 곳마다 가꾸지 않아도 먼저 자리 잡는 잡초를 보이는 족족 뽑아도 더 번지기만 한다. 하지만 이 불청객 잡초를 달리 본 문객도 있다. 아름다운 백합이 썩으면 잡초보다 더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거나, 산야의 멋들어진 경치는 이름 모를 만 가지 풀꽃들의 밑받침이 없었다면 흡사 속옷 벗은 여인처럼 짜임새 없었을 것이라 표현한 사람도 있다.

들판의 잡초를 태우기 위해 들불을 놓아도(野火) 다 태울 수 없다(燒不盡)는 이 성어는 唐(당)나라의 대시인 白居易(백거이, 772~846)의 시구에서 왔다. 다함없는 생명력처럼 가시지 않는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냈다.

중국 문학에서 시대에 따라 번성한 부문이 달라도 詩(시)라 하면 唐詩(당시)란 말이 따로 있을 정도로 당나라 때 번성했다. 5언, 7언의 律詩(율시)와 絶句(절구) 같은 近體詩(근체시)가 완성된 이 시기는 全唐詩(전당시)에 2300여 시인, 4만 8900여 수가 수록됐다니 놀랄 만하다.

이중 자인 樂天(낙천)으로 더 잘 알려진 백거이는 李白(이백), 杜甫(두보)보다 약간 후세이지만 韓愈(한유)와 함께 李杜韓白(이두한백)으로 통칭된다. 그의 시는 사회모순을 고발하는 新樂府(신악부) 운동에 참여했어도 쉬우면서 매끄러운 시체로 널리 읽혔고 琵琶行(비파행), 長恨歌(장한가) 등 장편 명작을 많이 남겼다.

성어가 나온 시는 ‘草(초)’라 약칭되는 古原草(고원초)라는 제목으로 옛 언덕 풀밭에서 떠나는 친구를 아쉬워하는 내용이다. 앞부분에 나오는 구절을 보자. ‘언덕 위 우거진 풀잎 이리저리 날려도, 해마다 시들었다 무성해지지(離離原上草 一歲一枯榮/ 일세일고영 이리원상초). 들불을 놓아도 다 타지 않고, 봄바람 불면 다시 돋아난다네(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 야화소부진 춘풍취우생).’ 이 봄에 그대를 보내니 우거진 풀처럼 이별의 정이 가득하다고 이어진다.

이 시에 재미있는 일화가 따른다. 당시 명성이 있던 顧況(고황)을 백거이가 찾아 보여줬더니 이름만으로 쌀값이 비싸 살기 어려울 것(居住不易/ 거주불이)이라 했다가 시를 다 읽고서는 이런 재주로는 살기 쉽겠다(居亦容易/ 거역용이)고 했다는 것이다.

이 시의 뒤따라 붙는 구절대로 春風吹又生(춘풍취우생), 봄철이 되어 바람 불면 다시 돋아나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잡초는 그래도 산야의 풍취를 이루는 면도 있다. 전혀 득이 되지 않는 사회의 잡초는 참으로 처치 곤란이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질서를 예사로 어기고, 남을 속이며, 재산을 가로채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는 범죄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자들은 강력단속으로 줄어들기는 하지만 더욱 고약한 것이 내편만 감싸는 ‘내로남불’은 없어지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기막힌 변명을 창조해 뻔뻔하게 대응하는 것을 보면 옛말 그른 것이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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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24
인열폐식因噎廢食 - 목이 멘다고 식사를 끊다, 조그만 것을 두려워하여 큰일을 그만 두다.

인열폐식(因噎廢食) - 목이 멘다고 식사를 끊다, 조그만 것을 두려워하여 큰일을 그만 두다.

인할 인(囗/3) 목멜 열(口/12) 폐할 폐(广/12) 밥 식(食/0)

흔히 쓰는 트라우마(Trauma)란 말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가 정식 이름이라 한다. 천재지변이나 전쟁, 신체적 폭행 등을 당했을 때 나타나는 정신적 장애를 가리킨다. ‘불에 놀란 놈이 부지깽이만 보아도 놀란다’는 우리 속담처럼 한 번 크게 혼난 뒤에는 모든 일에 지나치게 겁을 내거나 섣불리 나서지 못한다.

성어로도 제법 많은데 활에 상처 입은 새는 굽은 나무만 보아도 놀란다는 傷弓之鳥(상궁지조), 뜨거운 국에 혼이 난 사람은 시원한 냉채도 후후 불어서 마신다는 懲羹吹虀(징갱취제, 羹은 국 갱, 虀는 냉채 제)는 앞서 소개했다. 더운 吳(오)나라 소는 달을 보고도 해인 줄 알고 헐떡인다는 吳牛喘月(오우천월)도 재미있는 비유다.

밥을 먹다가 목이 막혀(因噎) 혼난 적이 있다고 해서 아예 식사를 끊는다(廢食)면 이보다 더하다. 조그만 장애를 걱정하여 중대한 일을 그만둔다는 어리석은 행위를 비유한 말이다. 똑 같은 말로 見噎廢食(견열폐식)이라고도 하고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는 뜻으로는 忙食噎喉(망식열후)로 쓴다.

一字千金(일자천금)으로 유명한 呂不韋(여불위)의 ‘呂氏春秋(여씨춘추)’에 이 비유가 사용됐다. 秦始皇(진시황)의 생부라고 하는 여불위가 학자들을 모아 편찬하여 呂覽(여람)이라고도 하는데 오자 한 글자라도 찾으면 천금을 주기로 했다는 그 책이다.

군대의 존폐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 孟秋紀(맹추기)의 蕩兵(탕병)편 내용을 보자. ‘음식을 먹다가 음식물이 목구멍에 걸려 죽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음식물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夫有以噎死者 欲禁天下之食悖/ 부유이열사자 욕금천하지식패).’ 비유를 한 가지 더 들면서 군대 이야기가 나온다.

배를 타고 가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다고 천하의 배를 금지하는 것이 어리석고, 군대를 동원하여 전쟁을 하다 나라를 잃게 된 사람이 있다고 군대 자체를 없앤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군대는 마치 물과 불을 이용하는 것과 같아 잘 다루면 복을 가져 오고 잘못 다루면 재앙을 가져 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악독한 범죄를 소탕한다고 저지른 사람마다 사형을 시킨다면 히틀러의 인종 말살과 같다. 그래서 경중을 따라 뉘우칠 기회를 주고 사회에 복귀시킨다. 정의에 합당하고 원칙에 맞는 일이라고 예외도 없이 밀어 붙이다가 조그만 일이 어긋나 전체의 불만을 사는 일이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하며 밀어 붙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빈대 잡다 초가삼간 다 태우면 헛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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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24
칠십득문왕七十得文王 - 나이 칠십에 문왕을 얻다, 강태공이 뒤늦게 때를 만나 공적을 이루다

칠십득문왕(七十得文王) - 나이 칠십에 문왕을 얻다, 강태공이 뒤늦게 때를 만나 공적을 이루다

일곱 칠(一/1) 열 십(十/0) 얻을 득(彳/8) 글월 문(文/0) 임금 왕(玉/0)

낚시하는 사람이 姜太公(강태공)이다. 물고기를 많이 낚기 위해 기를 쓰는 사람은 강태공으로 칭하지 않는데 이는 큰 뜻을 품고 때를 기다린 본뜻을 몰라서다. 강태공이라 하지만 다양하게 불린다. 이름이 尙(상)이라 본성을 따라 姜尙(강상), 선조가 제후로 봉해졌던 땅 이름을 따 呂尙(여상), 周(주) 왕실의 조상 太公(태공)이 간절히 바랐던 인물이라 太公望(태공망), 또는 呂望(여망)도 된다.

갖가지 이름만큼 강태공은 殷(은)의 폭군 紂王(주왕)을 몰아내고 武王(무왕)이 주나라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강태공이 나이 칠십(七十)이 되어 문왕을 얻었다(得文王)는 말은 뒤늦게 때를 만났다는 말로 많이 쓰이고, 속셈이 다르다는 뜻도 된다.

강태공이 70세가 될 때까지 渭水(위수)에서 곧은 낚싯대를 드리울 때 무왕의 부친 文王(문왕)이 찾아왔다. 문왕은 악독한 주왕에 쫓겨 갔으나 조부 태공의 뜻에 따라 인재를 모으고 은나라를 멸할 기틀을 세웠다. 문왕을 만나 날개를 단 태공망은 갖가지 지혜로 난관을 이겨 아들 무왕 때 주나라를 세우게 됐다.

무왕이 師尙父(사상보)로 모실 정도이고 齊(제)나라에 봉해져 시조가 되는 영예를 누렸다. 80세까지 곤궁하게 살다가 이후로 팔자가 펴져 잘 산다는 窮八十達八十(궁팔십달팔십)이란 말이 있다. 강태공이 문왕을 만나 지략을 펼친 나이가 팔순이란 곳도 많아 분분한데 唐(당)나라 白居易(백거이)의 시엔 70으로 나온다.

백거이는 ‘渭上偶釣(위상우조)’란 시에서 태공망을 물고기는 낚지 않고 딴 마음이 있었다고 높게 평가하지 않아 이채롭다. 성어가 나오는 중간 부분을 보자. ‘몸은 비록 고기를 향해 앉았으나, 마음은 이상향에 가 있구나(身雖對魚坐 心在無何鄕/ 신수대어좌 심재무하향). 오래전 옛날 백발노인 있어, 또한 위수 북쪽서 낚시 했었네(昔有白頭人 亦釣此渭陽/ 석유백두인 역조차위양).

낚시꾼은 물고기는 낚지 않았고, 나이 칠십에 문왕을 만났다네(釣人不釣魚 七十得文王/ 조인부조어 칠십득문왕).’ 강태공이 고기는 잡지 못하고 출세 길을 낚았다는 곧은 낚싯대를 물 위에 잡고 있었다는 데서 달리 보는 면도 있다.

강태공을 좋지 않게 보는 이야기가 더 있다. 집안일은 뒷전이고 낚시만 하는 남편에 못 견뎌 부인은 떠났다. 출세한 후에 다시 찾아온 부인에게 강태공은 물그릇을 엎은 뒤 담아보라고 했다. 覆水不返盆(복수불반분), 엎어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한다며 야박하게 내쫓았다.

사후 사당을 지어 위로했다고 해도 함께 고생한 부인을 들이지 못한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칠십이든 팔십이든 때를 기다렸던 느긋한 마음, 기회가 되자 큰 업적을 이룬 것은 조급하게 일을 이루려는 사람들에게 큰 교훈이 될 수 있다. 또한 이제 다 살았다고 뒷방 늙은이를 자처하는 노인들에겐 더욱 자극이 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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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25
■ 이인좌의 난 4편

■ 이인좌의 난 4편

이인좌는 반란의 기치를 높이 올린 지 불과 12일 만에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다. 이인좌(34세)의 네 아들 중명(中明)·인명(仁明)·문명(文明)·화명(化明)은 조선왕조실록 영조4년 7월 24일·영조21년 11월 17일 및 승정원일기 영조4년 4월 14일 등에 따르면, 7세~12세인 관계로 함경도에 관노(官奴)로 보내졌다. 이인좌가 20세 쯤에 결혼했다면, 1728년(영조4) 무신년 봉기 당시에 큰아들이 12세가 되었을 터이다.

무신반란의 성패(成敗)를 가른 안성 싸움의 결정적 이유는 비 때문이었다. 안성싸움이 벌어진 시각은 칠흑 같은 밤중이었는데,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서로를 구별하기도 힘들었다. 어둠과 비바람 속에서 반군(叛軍)의 총포(銃砲)가 모조리 젖어버려 아무 쓸모가 없어졌을 때, 관군(官軍)의 조총(鳥銃)에는 비를 막는 장치인 우구(雨具)가 달려 있어 사용에 문제가 없었다.

아마 총 위에 작은 우산 같은 것이 씌워져 있었던 것 같다. 즉 관군은 화기 면에서 반군(叛軍)을 압도했던 것이다. 거기다 관군은 반군의 진격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반면, 반군은 정부군이 다가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던 것이다.

무신란의 패배원인은 결속력 약화, 경중(京中)세력의 취약성, 지도세력 부재와 이중거사계획의 판단착오, 주도층의 오판, 분열탈퇴 등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이인좌의 난이 성공했다면 조선은 어찌 되었을까?

이인좌가 충청도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영남과 호남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반란이 일어났다. 영남에서는 정희량이, 호남에서는 박필현이 동조하여 봉기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처형됨으로써 삼남(三南)의 반란은 평정되었다. 당시 영조가 경종을 독살한 데 대한 의심이 백성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는 사실은 이인좌의 난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이인좌의 난은 비록 실패했으나 1811년 홍경래의 난으로 그 세력이 이어졌다.

6일 천하로 끝난 이인좌의 난은 영남지역을 조선 후기 정치에서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비록 거병지는 청주였지만 남인들의 고장 영남에서 모의자와 동조자가 가장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즉 안동 등 일부 지역의 사대부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거사에 심적으로 동조했던 것이다. 이인좌는 남인 윤휴의 손자사위여서 영남 유림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인좌의 난 이후 영조는 대구의 남문 밖에 평영남비(平嶺南碑)를 세워 영남을 반역의 고향으로 지칭했고, 50여년에 걸쳐서 안동을 제외한 경상우도 사람들에게는 과거에 응시할 수도 없게 했으며, 조식의 문하인들은 벼슬길에 나아갈 생각을 갖지 못했다. 과거 응시가 허용된 뒤에도 필기시험 합격자에게 임금이 낙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 금지는 사실상 130여년 후 대원군의 과거 혁파 때까지 계속되었다.

-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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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26
■ 이인좌의 난 3편

■ 이인좌의 난 3편

불시에 청주성을 장악하고 성내에서 다량의 무기를 확보한 이인좌는 권서봉을 청주 목사, 신천영을 병사로 임명했다. 이어서 주변 고을에 종사관 유급이 작성한 격문을 돌려 병사들을 모집하는 한편 창고를 풀어 백성들에게 관곡을 나누어주었다.

이때 반란군은 군문에 경종을 위한 복수의 깃발을 세우고, 경종의 위패를 설치한 다음 아침저녁으로 곡배함으로써 자신들의 거사가 선왕에 대한 충성심에서 비롯되었음을 과시했다. 그처럼 반란군의 기세가 드높자 인근 청안과 진천, 회인 등지의 수령들이 죄다 도망쳤지만 일부 장교들은 군사들을 이끌고 투항해 왔다.

용기백배한 이인좌는 군사를 둘로 나누어 자신은 안성으로, 부원수 정세윤은 죽산 방면으로 진공하게 했다. 반란군은 청주성에 이어 대구 지역을 휩쓴 다음 한양으로 진군했으나, 안성 싸움에서 도순무사(都巡撫使) 오명항이 이끄는 관군에게 대패하고 주모자들이 체포되면서 반란은 6일 만에 끝나고 말았다.

안성의 일전에서 대승을 거둔 관군은 패주하는 적의 뒤를 쫓아 죽산 방면으로 진격했다. 도중에 험준한 장항령의 지세를 보고 매복을 의심한 오명항은 마보군을 출동시켜 산속에 웅크리고 있던 일단의 반란군을 사살했다. 그때 이인좌는 정세윤과 조우한 뒤 반란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들판 한 가운데 진을 친 다음 소를 잡고 술을 마시게 했다.

치열한 산악전을 염려했던 오명항은 쾌재를 부르며 바람을 등지고 맹공격을 가했다. 연이은 패전에 지친 반란군은 우왕좌왕하다가 곧 흩어졌고, 이만빈과 이우석에게 사로집힌 정세윤은 사지가 잘린 뒤 참수되었다. 며칠 동안 죽산부사 행세를 하던 그의 동생 정계윤 역시 도주하다가 참살당했다.

관군들은 적이 물러나자 그 뒤를 쫓으며 잔적들의 소탕에 나섰다. 한데 그 동안의 고생에 화풀이라도 하려는 듯 조금이라도 의심스런 자가 있으면 닥치는 대로 죽였다. 그 때문에 무고한 백성 1000여 명이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희생당했다. 이에 민심의 이반을 염려한 오명항은 적을 생포하는 사람에게만 전공을 인정하겠다고 군사들을 다그침으로써 불필요한 살육을 막았다. 아울러 종사관 박문수와 조현명에게 생포된 반란군 병사의 죄상을 자세히 조사하게 한 다음 흉악한 사람만 죽이고 나머지는 곤장을 쳐서 방면했다.

건곤일척의 대결에서 패배한 이인좌는 수하들과 함께 산사로 피했다가 농민 신길만과 승려들에 의해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의 뒤를 이어 권서봉, 이지경, 목함경, 박상, 곽장 등 반란군의 주력 장수들이 차례차례 생포되었다. 이인좌가 진문 앞에 끌려오자 종사관과 장수들은 그의 살점을 떼어서 죽이는 연살(臠殺)을 행하려 했다. 하지만 오명항은 그들을 제지한 다음 함거에 실어 한양으로 압송했다.

3월 26일 이인좌가 도성에 다다르자 영조는 인정문 앞에서 그를 친국한 다음 능지처참형에 처했으며, 왕으로 추대 받았던 밀풍군(密豊君)은 반역(反逆)의 괴수(魁首)로 압송되었다가 그들의 제의를 수락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옥에 갇혔다가 왕명에 의해 자결해야 했다. 따지고 보면 그의 죄목은 왕족으로 태어났다는 것이었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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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27
■ 이인좌의 난 2편

■ 이인좌의 난 2편

세가명족의 후예이지만 현실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던 이들은 영조와 노론의 제거를 통해 정치에 진출하고자 했다. 따라서 영조는 숙종의 친아들이 아니며, 경종을 독살했다는 등 영조의 왕위계승부당성을 선전하며 명분을 확보함으로써 밀풍군 탄을 추대하기로 하고, 정변의 기본전략을 외방(外方)에서 먼저 일으키고 경중(京中)에서 이에 내응(內應)하는 외기내응(外起內應)으로 정했다.

무신난(戊申亂)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반란 중 가장 다양한 각계각층이 참여했고, 또 유일하게 전국조직망을 가졌던 반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신난 봉기의 명분(名分)은 경종의 복수와 왕통의 정통성 회복이었다. 경종의 시신을 직접 확인했던 경종 비(妃) 단의왕후(端懿王后)의 동생 심유현(沈維賢)이 봉기에 참여하여, 경종이 영조가 보낸 게장과 감을 먹고 독살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반란의 명분을 더 강화시켰다.

이들은 경종 독살설을 퍼뜨리며 반란 세력을 끌어들이고 민심을 규합했으며, 이로 인해 전국 곳곳에는 독살설과 관련된 흉서나 괘서가 나돌았다. 밀풍군을 왕으로 추대하자는 격문도 붙었다. 반란군은 충청, 호남, 영남, 경기, 평안도 등 전국에 걸쳐 조직됐고, 노비나 화적은 물론 양반들까지 가세했다. 목표는 영조 제거와 노론 타도, 그리고 소론과 남인의 연합 정권 구축이었다.

반란계획이 예상보다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된 영조는 즉시 성문을 폐쇄한 다음 도성 밖의 관군들을 동원해 수도 방비를 강화했다. 영의정 이광좌는 평안 감사 이사성과 금군별장 남태징을 체포함으로써 평안도와 서울의 내응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그로 인해 애초의 계획이 뒤틀리자 이인좌는 이튿날인 3월 15일 급거 거사를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이인좌 휘하의 군사들은 진중(陣中)에 경종의 위패를 모셔놓고 아침·저녁으로 곡(哭)을 했으며, 이로써 반군은 정당성과 명분을 얻으려 하였다. 청주에 살고 있었던 이인좌는 양성의 권서봉, 용인의 박완원, 안성의 정계윤, 괴산의 이상택 등의 반란군과 합세하여 1728년 3월 15일 청주성을 함락하기로 하였다.

이인좌는 정행민·이계윤 등과 함께 장례 행렬로 위장한 군사들을 이끌고 청주성으로 잠입한 다음 야음을 틈타 병영을 공격하여 삽시간에 성을 점령했다. 병영 문은 기생 월례와 비장 양덕부가 내통하여 활짝 열린 상태였다. 충청병사 이봉상은 충무공 이순신의 5대손이었는데 술에 취해 잠을 자다가 기습공격을 받고 군관 홍림과 함께 대나무 숲으로 피신했지만 생포되어 반란군 장수 이배에게 죽음을 당했다. 그의 숙부인 이홍무도 반란군에 사로잡혔다가 순절함으로써 가문의 명예를 지켰다.

이때 청주영장 남연년 역시 반란군 장수 목함경에게 참살당했다. 이봉상은 본래 형조참판에 어영대장을 겸직하고 있었는데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집권한 뒤 충청병사로 좌천되어 현지에 부임했다가 불과 4개월 만에 변을 당한 것이었다. 실록에는 “당시 적이 이봉상을 끌어내 칼로 위협하자 크게 꾸짖기를 ‘충무공 집안에 충의가 전해져 오고 있음을 듣지 못했느냐? 왜 나를 어서 죽이지 않으냐?’하고 크게 세 번 외치니, 드디어 죽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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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27
■ 이인좌의 난 1편

■ 이인좌의 난 1편

16, 17세기 이후 농업생산력과 상공업이 발전하는 가운데 농민층의 분화와 신분제 해체가 진행되었다. 정부는 수취(收取)체계 개편 및 운영개선을 논의·시행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농민들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해 농민들의 부세(負稅) 저항이 심해지고 유민(流民)이 증가했다.

이러한 피지배층의 저항은 지배세력의 물적·인적 지배기반을 동요시켰다. 지배세력 간에는 갈등이 심화되었고, 왕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으로 이어졌다. 1720년 왕세자(경종)를 지지하는 소론과 연잉군(뒤의 영조)을 지지하는 노론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는데, 그해 경종의 즉위로 소론이 집권하게 되었다.

경종이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영조 4년 1728년, 정치적 기반을 잃은 급진 소론파의 이인좌(李麟佐), 이유익, 심유현 등이 일부 남인세력과 연합하여 전국적인 조직을 가진 난을 일으켰다. 현직관료를 비롯하여 문벌 양반이 난(亂)을 주도했고, 집약농업과 유통경제로 돈을 번 중간계층, 그리고 각 지방의 행정 실무자들인 군관, 향임(鄕任)등이 반란군의 실무를 담당했으며, 소상인, 소작인, 노비 같은 기본계층은 일반 군사로 난(亂)에 적극 참여했다. 이를 이인좌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이인좌의 난이라고 하며, 무신년에 일어난 반란이라고 해서 무신란(戊申亂)이라고도 한다.

이인좌의 본관은 전주로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후손이다. 본명은 현좌(玄佐)이다. 그의 출생지나 관직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남인이었던 그는 북벌정책을 주도했던 대학자 윤휴의 손녀사위로서 당파 내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그러나 1694년(숙종 20년) 갑술환국의 여파로 전라감사로 재직하던 할아버지 이운징이 파직되고 큰할아버지 이의징까지 사사되면서 가세가 크게 기울었고 관직에 등용되지 못했다.

숙종(肅宗) 때 극심했던 서인과 남인의 경쟁은 서인의 승리로 끝났지만, 집권세력인 서인은 또다시 소론(少論)과 노론(老論)으로 나뉘어 당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경종의 즉위로 소론은 왕위계승을 둘러싼 노론과의 대립에서 일단 승리한 셈이다. 그러자 노론은 연잉군(영조)을 세제(世弟)로 책봉하고 이어 세제청정(世弟聽政)까지 실현하려다가 축출 당했으며, 잇달은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으로 노론은 철저히 축출되었다. 이때 소론 내에는 노론에 대한 처벌방법을 두고 과격파인 준소(峻少)와 온건파인 완소(緩少)로 분열되었다. 하지만 경종의 급서(急逝) 후 노론이 지지한 연잉군(영조)이 즉위하자, 소론은 정치적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경종의 죽음으로 영조가 즉위하여 김일경(金一鏡) 등이 제거되고 노론정권이 성립하자, 김일경파의 박필현·이유익 등은 비밀조직을 결성하기 시작하여, 궁중에서는 이하·민관효·윤덕유 등이, 지방에서는 정준유·나만치·조덕규·조상·임서호·정세윤·권서린·이호·민원보·민백효·김홍수·이일좌 등이, 그리고 평안병사 이사성과 중군별장 남태징이 가담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59.html
kolaswqetsrq 11.02 15:28
삶이란 바라기와 버리기의 치열한 싸움

삶이란 바라기와 버리기의 치열한 싸움

신발장에 신발이 늘어갑니다.

옷장에 옷이 많아집니다.

부엌에 그릇이 쌓입니다.

사기만 하고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근심이 늘어갑니다

머리에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몸이 자꾸 무거워 집니다.

바라기만 하고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발장에 먼지만 털어 낼 것이 아니라 신지 않는 신발은 버려야 겠습니다.

옷장의 옷도 차곡차곡 쌓아 둘 것이 아니라

자주 입는 옷만 두고 정리해야 겠습니다.

부엌에 그릇도 사용하는 것만 두고 모두 치워야겠습니다.

삶이란 이렇게 바라기와 버리기의 치열한 싸움입니다.

내 마음의 많은 생각들 가운데 내 생활의 많은 일들 가운데

정말 내 삶을 아름답게 하고 의미 있게 하는 것들만 남겨 두고 모두 다 버려야 겠습니다.

버리면 얻게 됩니다

쓰레기도 오물도 헌옷도 버리십시요.

슬픔도 미련도 후회도 버리십시요.

돈도 명예도 욕심도 버리십시요.

버리면 얻게 됩니다.

설사 얻지 못한다 해도

버린 만큼은 시원해집니다.

버린 만큼은 건강해집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977.html
kolaswqetsrq 11.02 15:28
멘탈 부여잡는 7가지 조언

멘탈 부여잡는 7가지 조언

몸의 건강을 위해 매일 운동을 하듯

정신도 강해지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1.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 마세요

-불쌍한 사람이 되는 순간 당신의 인생은 초라해집니다.

2. 타인에게 인생의 주도권을 넘겨주지 마세요

-내 인생을 살게 되면 삶이 즐거워지거든요

3. 당신이 바꿀 수 없는 일에 매달리지 마세요

-잃어버린 물건, 교통체증..... 마음을 놓으면 편해집니다.

4.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세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란 곧 모두에게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죠

5.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아무리 후회해도 과거는 바뀌지 않습니다.

6. 다른 사람의 성공에 배 아파하지 마세요.

-성공을 위해 당신이 싸워야 할 상대는 자기 자신입니다.

7. 단 한 번의 실패로 포기하지 마세요.

-실패 후 다시 일어나면 더 강해질 테니까요!

 "
- 심리 치료사 에이미 모린 -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_12.html
kolaswqetsrq 11.02 15:29
행복하고 싶은가?

 행복하고 싶은가?

1. 운동을 하라.

운동할때 30분을 넘지않도록, 일주일에 세번 정도이상 운동하라.

2. 좋았던 일을 떠올려라.

하루에 좋은 일을 다섯가지 정도 적어가면서 좋았던 일을 떠올려라.

3. 대화를 나눠라.

한 주간에 한 시간 만이라도 진지한 대화를 나눠라.

4. 식물을 가꾸라.

화초를 정성껏 가꾸면서 화초와 대화하라.

5. TV시청 시간을 현재보다 절반으로 줄여라.

6. 미소를 지어라.

내가 늘 만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 잘 웃지 않는 사람에게도 미소 지어라.

7. 하루 한번 이상 문안 전화를 하라.

부모님, 자녀에서부터, 내 안부를 기다리고 있을 자에게, 챤스를 놓치지 말고 안부를 물어라.

8. 하루 한번 쯤은 큰 소리로 웃어라.

빙그레 웃는 것 말고, 비웃는 것 말고,

내 몸이 알아듣고 행복을 느낄만큼 큰 소리로 웃어라.

9. 매일 자기 자신을 칭찬하라.

칭찬할 일을 찾아 참 잘 했다고 자신을 칭찬하라.

10. 매일 그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라.

그 친절이 결국 나에게 행복으로 돌아온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162.html
kolaswqetsrq 11.02 15:29
세상의 아버지가 줘야 할 7가지 선물

세상의 아버지가 줘야 할 7가지 선물

1. 존경심

존경심은 숭고한 마음의 작용으로 사람을 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며 올바른 길을 걷게 만든다.

누구나 인생에서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자신도 다른 사람도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자.

2. 인내심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욕망을 억제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작은 실패에도쉽게 좌절하게 마련이다.

자녀에게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버리고 자신을 인내하는 법을 가르쳐라.

3. 사랑

사랑하는 마음을 진솔하게 전해 주는 것이 자녀 교육의 기본이다.

부모가 따뜻한 사랑을 충분히 주고 부모 자식간의신뢰 관계가 확고하다면, 자녀 교육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4. 의욕

자녀가 스스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분위기를 연출하자.

부모 스스로 즐겁게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녀에게도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켜라.

5. 개성

아이들은 모두 잘 갈고 닦으면 빛을 내는 보석과 같다. 그 아이만의 좋은 개성은 부모만이 잘 살릴 수 있다.

자녀의 개성을 이해하고 그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

6. 배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인생관을 갖도록 조언해주자.

높은 이상은 배움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이해시키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도전하는 것에 신선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라.

7. 꿈

자녀의 눈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라.

자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한다면 칭찬해주자.

그것이 자녀의 꿈과 마음을 키워주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 좋은글에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_89.html
kolaswqetsrq 11.02 15:30
늙지 않는 뇌 만드는 비법 10가지 치매 예방법

늙지 않는 뇌 만드는 비법 10가지 (치매 예방법)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관절이나 폐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인정하면서 정신적인 노화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과학전문 인터넷 언론 라이브 사이언스는 정신의 노화를 막는데 유용한 10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1. 두뇌를 끊임없이 괴롭혀라

크로스워드퍼즐(십자단어풀이)이나 큐브 놀이와 같이 두뇌를 사용하는 것이 뇌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는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교육의 부족이 인지력을 떨어트린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나이 들어 정신 건강이 더 좋다. 핵심은 새로운 어떤 것에 도전하는 것이다. 같은 조각을 반복해서 맞추는 것보다 모르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훨씬 더 유용하다.

2. 두뇌 건강 보충제를 먹지마라

최근 두뇌건강보충제가 복합비타민제와 비슷하게 돈 낭비일 뿐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은행나무나 멜라토닌(수면장애치료약) 등의 뇌 관련 약품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성분이 천연재료라고 하더라도 고혈압, 소화불량, 불임, 우울증 등의 잠재적 부작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건강한 사람에게도 은행잎으로 만든 약은 플라시보효과(위약효과) 외에 두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몇몇 경우에서 플라시보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3. 냉정하라

스트레스는 기억과 관련된 해마나 두뇌의 다른 부위에 다량의 해로운 화학물질이 생기게 함으로써 두뇌에 해를 입힌다. 일부 과학자들은 균형 잡힌 생활이나 요가 등의 이완운동, 사교활동이 스트레스를 줄여 기억력 감퇴를 늦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4. 생선을 먹어라

식단에 생선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인지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오메가3와 같은 필수지방산은 뇌기능에 결정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우울증과 같은 뇌질환을 치료하는데 유용한 것이 입증됐다. 오메가3의 효능에 대한 연구는 복합적인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아마씨와 생선, 초식동물 등의 음식으로부터 추출한 것을 복용하는 것이 좋다.

5. 커피를 즐겨라

카페인을 먹는 습관이 두뇌를 보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규모 종단적 연구에 따르면 하루 두 번에서 네 번 정도 카페인 만족을 얻으면 인지능력 쇠퇴를 피할 수 있고 알츠하이머 병에 걸릴 확률을 30~60프로까지 줄일 수 있다. 이러한 효과가 카페인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커피나 차에 함유된 산화방지제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6. 잠을 자라

잠을 자고 꿈을 꾸는 동안 어떤 기억들은 걸러져 버려지고, 어떤 기억은 정리되어 저장된다. 최근의 한 연구에서 잠을 자지 않으면 시냅스에 단백질이 쌓여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배우는 것이 어렵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욱이 인과관계와는 무관할 수도 있지만 만성적으로 수면이 부족하면 나이가 들어 인지 능력이 저하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7. 몸을 돌보라

일반적으로 2종 당뇨(Type II diabetes)와 비만, 고혈압과 같이 예방이 가능한 질병들은 두뇌에 영향을 미친다. 금연과 포화지방을 피하는 등의 생활습관으로 순환계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은 나이로 인한 뇌의 손상을 줄일 수 있게 해준다.

8. 칼로리에 유념하라

과식은 두뇌를 나태하게 만들어 두뇌에 장기적인 손상을 주는 반면 너무 적은 량의 칼로리를 섭취하면 두뇌의 기능을 손상시킨다.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만성적인 식욕부진을 초래하는 문제도 있지만 주의력 결핍이나 정신착란, 기억력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9. 먹고, 또 먹어라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에너지는 두뇌의 민감한 기관에 문제를 야기한다. 적당한 지방과 단백질, 높은 섬유질의 저 혈당식은 설탕과 분질 녹말 같은 고혈당 음식에 비해 몸에서 훨씬 천천히 분해된다. 내장에서 안정된 속도로 소화되는 것은 뇌에 훨씬 안정된 에너지의 흐름을 제공해 뇌의 기관이 보다 오래 동안 건강하고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만든다.

10. 뭔가를 하라

과학자들은 오랜 기간 두뇌 건강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방법을 꼽으라면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이라고 말한다. 심장과 폐는 런닝머신에서 달리기 운동을 할 때 격렬하게 반응하지만 두뇌는 한발 한발 뛸 때마다 조용한 상태에서 더욱 건강해진다.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는 운동을 하려면 이틀에 한번 적어도 30분 이상의 육체적 활동을 해야 한다.

-‘건강한 아침’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25.html
kolaswqetsrq 11.02 15:31
■ 경종의 여인들, 선의왕후 2편

■ 경종의 여인들, 선의왕후 2편

선의왕후는 시동생인 영조와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영조 즉위 초부터 선의왕후는 남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영조를 위한 예식과 절차를 거부하기 일쑤였고, 영조는 왕대비(선의왕후)에게 올려지는 물품을 매번 삭감(削減)하여 국고나 백성에게 돌렸다. "왕대비(선의왕후)에게 진연(進宴:잔치)을 올리자."는 홍치중의 주청이 있자, 영조가 진노했다고 한다. 뒤이어 종실 전성군 이혼 등 종친부가 일제히 상소하여 진연 올리기를 청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영조는 "나의 성의가 부족한 것 때문에 (선의왕후의) 윤허를 받지 못했다."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책임을 회피하였고, 이후 진연을 올리는 것이 정해지기는 하였지만 수차례 연기되었다. 심지어 영조는 선의왕후의 국상 기간 중에 후궁 귀인 이씨를 내명부 정1품 빈(嬪)으로 삼고 대대적인 잔치를 열어 도성 안팎은 물론 노론 대신들까지 탄식을 쏟아낼 정도였다.

선의왕후를 죽음으로 이끈 병명은 밝혀지진 않았으나, 실록에서 왕후가 죽기 전날의 기록을 보면 죽기 직전까지 몸을 떨며 통곡을 하고 읍성(눈물을 흘리며 우는 소리)을 냈다고 한다. 또한 손으로 뭔가를 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영조가 의관들에게 그러한 증후를 본 적이 있는지 묻자 중관(中官:내시)이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 대답하였다고 한다.

야사(野史)에 의하면, 선의왕후가 사망한 것은 오랜 지병을 앓아서가 아니라 1730년 4월 15일에 발생했던 영조 암살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어조당에 유폐되었고, 분개한 선의왕후가 음식을 거부하여 끝내 아사(餓死)한 것이라고 전한다. 선의왕후가 이인좌 등에게 비밀리에 언문교서를 내렸는데 "왕실의 씨가 바뀌었으니 바로 잡아라."는 하교를 내렸다고 전한다.

사실 여부는 실록에 존재하지 않으나, 이인좌 등이 왕대비의 밀명을 받았다고 주장한 흔적은 영조실록에 수차례 등장한다.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가 사망한 것에 대해도 선의왕후가 독살 하였다는 설과 궁녀를 시켜 독살한 것이란 설이 존재한다.

영조 6년 (1730년) 6월29일 승하하시어 10월19일 경종의 능하(陵下:왕의 아래)에 부장(附葬:왕릉 가까이 묻음) 하였으니 그 해 나이 26세였다. 시호(諡號)는 선의(宣懿)라 하고, 휘호(徽號)를 효인혜목(孝仁惠穆)이라 하였다. 매사에 정숙하고 온유하였으나 경종과의 사이에 소생은 없었다.

능호는 의릉(懿陵)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에 있다. 의릉은 쌍릉이지만 다른 왕릉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쌍릉은 좌·우로 조성하지만 이 무덤은 앞·뒤로 무덤을 조성한 상하이봉릉(上下異封陵)이다. 이처럼 앞·뒤로 만든 것은 풍수지리설에 의한 것으로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영릉에서 처음 나타났다.

왕릉에는 무덤 둘레에 병 풍석을 세우지 않고 대신 무덤 주위에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했는데, 난간석의 기둥에는 십이간지가 방위에 따라 문자로 새겨져 있다. 난간석 밖으로 망주석·장명등·문무석과 말·양·호랑이가 있다. 무덤의 석물 배치와 양식은 명릉과 같이 규모가 작고 간소한 후릉제도를 택하였다. 왕비릉의 석물 배치는 왕릉과 같으나 무덤 뒤에 담을 두르지 않았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76.html
kolaswqetsrq 11.02 15:31
■ 경종의 여인들, 선의왕후 1편

■ 경종의 여인들, 선의왕후 1편

1718년(숙종 44년) 세자 시절 경종의 첫 번 째 세자빈(世子嬪)인 심씨(沈氏:端懿王后)가 죽자, 어씨가 14세의 나이로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31살 왕세자(경종)와 가례(嘉禮)를 올렸고, 1719년 9월에 관례(冠禮:아이가 어른이 되는 의식)를 올렸다. 세자빈 어씨는 영돈녕부사 어유구(魚有龜)의 딸로서, 1705년 12월 14일(음력 10월 29일)에 태어났다.

어유구는 노론 영수 김창집의 제자이며 일가가 모두 노론계이다. 소론계의 배후를 갖던 경종과는 정치 성향이 반대인 집안의 딸을 세자빈으로 삼은 것이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영장 이하번의 딸이다. 큰아버지 어유봉(魚有鳳)은 노론 김창협의 문인인데, 김창협은 김창집과 형제간이고, 이 둘은 어유봉의 처사촌이 된다.

큰아버지 어유봉의 사위가 홍상한(洪象漢)인데, 홍상한은 사도세자의 장인 홍봉한의 큰아버지 홍석보(洪錫輔)의 아들이다. 그녀가 세자빈에 간택될 당시 할아버지 어사형이 생존해 있었다. 어머니 전주이씨는 중종의 서자 영양군 함의 5대손으로, 증조부는 영양군의 양자 흥녕군 수전의 장남 풍해군 잠이고, 할아버지는 능산군 희이다.

1720년 숙종이 사망하고 경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경종의 초비인 단의왕후 심씨의 왕비 추봉(追封)과 그녀의 왕비 책봉을 동시에 주청(奏請)한 것이 청나라에 트집 잡혀 1721년에야 왕비 책봉에 백관의 축하를 받을 수 있었다.

경종 1년, 경종 부부에게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하여 노론 4대신(이이명, 김창집, 이건명, 조태채)과 왕대비(인원왕후)의 강력한 추진으로 연잉군(영조)의 왕세제 책봉이 결정되었을 때 그녀의 나이는 갓 17세에 불과했다. 일설에 따르면 연잉군을 반대하여 종실과 비밀리에 연합하여 소현세자의 직손인 밀풍군 탄, 혹은 밀풍군의 아들인 관석을 입양하려 하였으나 경종의 급서(急逝)로 실패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1724년 경종이 사망하고 영조가 즉위하자 선의왕후는 불과 20세의 나이로 왕대비가 되었다. 영조 2년에 대비전이 있는 창덕궁이 아닌 경종이 세자 시절 거처하던 창경궁 저승전(儲承殿)에서 지냈으며, 선의왕후 어씨는 병약한 남편 경종의 병수발로 아까운 청춘을 다보내다가 1730년 8월 12일(음력 6월 29일) 26세의 꽃다운 나이에 후사도 없이 창경궁 어조당(魚藻堂)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거처하던 저승전은 후에 세자궁으로 개조되어 사도세자의 처소가 되었다. 저승전 건너편에 위치했던 취선당은 세자궁의 소주방으로 개조되었다. 소주방은 주방이다.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가 정신질환을 앓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저 불길한 저승전에서 자라고, 취선당에서 지은 밥을 먹은 탓이라 하기도 하였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69.html
kolaswqetsrq 11.02 15:32
■ 경종의 여인들, 단의왕후 2편

■ 경종의 여인들, 단의왕후 2편

단의왕후가 5세 때이던 어느 여름날, 아버지 심호가 술에 취해 낮잠을 자면서 딸에게 부채를 들고 파리를 쫓게 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저녁때가 되도록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 그래서 심호는 그 딸을 매우 기특하게 여기고 사랑하여 항상 가인(家人)들에게 이를 칭찬했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천성이 간소한 것을 좋아하여 남이 좋은 옷을 입더라도 부러워하지 않았으며, 좋은 것이 생기더라도 반드시 여러 동생들에게 모두 나누어주는 등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고 한다. 세자비가 되어서도 숙종에게 좋은 며느리였으며, 어진 성품과 총명과 덕을 고루 갖추었다. 남편인 세자(경종)에게도 좋은 각시였다. 오죽하면 그녀가 죽었을 때 왕세자인 남편이 스스로 지문을 지었겠는가?

혜릉은 조선 20대 경종의 첫 번째 왕비 단의왕후 심씨의 능이다. 단의왕후는 처음 왕세자빈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 以前의 순회세자묘(순창원)와 소현세자묘(소경원)의 예를 참조하여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경종이 왕위에 오른 후 단의왕후로 추존하고, 능의 이름을 혜릉이라 하였고, 1722년(경종 2년)에 능의 형식에 맞게 무석인(武石人), 난간석(欄干石), 망주석(望柱石) 등 석물(石物)을 추가로 제작하였다.

능침의 석물은 명릉(明陵:숙종과 인현왕후의 능) 이후의 양식을 그대로 따라 작게 조각하였다. 단의왕후 신씨는 세자빈 신분으로 죽은 후에 원(園)에서 능(陵)으로 승격되어 조성된 탓인지 능역 들어가는 입구가 다른 능보다 초라한 느낌이다. 그래서 혜릉(惠陵)은 능호처럼 전체적으로 소박한 느낌이다. 혜릉의 석물 역시 명릉(明陵)의 영향으로 실물과 거의 비슷한 크기로 조성하였다.

단의왕후 심씨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더구나 경종이 왕위에 오르기도 전 세자빈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남기지 못했다. 단의왕후의 혜릉은 경종과 함께 묻히지 못했다는 점에서 쓸쓸함과 함께 아련함이 묻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동구릉 내 장렬왕후 조 씨의 ‘휘릉’과 유사하지만, 인조에게 버림받은 장렬왕후 조씨에 비하면, 단의왕후 심씨는 경종과 숙종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한편 그녀의 친정가문은 경종이 세상을 떠나면서 몰락하게 되는데, 영조가 즉위한 뒤 ‘경종독살설’이 유포되고, 이에 호응해 일어난 ‘이인좌의 난’은 그녀의 친정가문이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경종은 왕세자 시절인 1696년 9세에 단의왕후 심씨와 혼인하고, 단의왕후 사망 후인 1718년 31세의 나이로 선의왕후 어씨와 다시 혼인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도 자녀를 한 명도 갖지 못했다. 그럼에도 1721년 당시 경종의 나이가 34세, 선의왕후가 17세였던 점을 고려하면 연잉군 세자 책봉은 경종 입장에서 매우 무례한 요구였다.

경종은 대신들을 불러 의견을 구했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모인 대신 모두가 노론이었다. 이들이 당연히 세자 책봉을 적극 찬성하자 경종은 어쩔 수 없이 연잉군의 세제(世弟) 책봉을 허락했고, 경종 사후 영조는 왕위에 올랐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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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32
■ 경종의 여인들, 단의왕후 1편

■ 경종의 여인들, 단의왕후 1편

경종의 첫 번째 부인인 단의왕후 심씨는 1686년 7월 11일(음력 5월 21일) 회현동(현 서울 회현동) 우사에서 태어났다. 심씨의 본관은 청송(靑松). 단의왕후 심씨의 가문 청송 심씨는 역대로 가장 많은 왕비를 배출한 집안이었다. 세종의 국구(國舅:왕비의 아버지)인 심온의 12대손이고, 명종의 국구인 심강의 7대손이며, 동서분당의 원인을 제공한 심충겸의 6대손이다. 의금부도사 증영의정 심봉서(沈鳳瑞)의 손녀이며, 사옹원 첨정으로 후일 우의정, 영의정 등으로 추증된 익창부원군(靑恩府院君) 심호(沈浩)의 딸이다.

세자빈으로 책봉될 당시 증조부 심권(沈權:당시 종4품 부응교)이 생존한 상태로 심권은 서인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 1696년에 11살의 나이로 세자빈에 간택되어 경종과 가례를 올렸다.1696년(숙종 22년) 10세의 나이로 세자빈(世子嬪)으로 책봉되었다. 타고난 품성이 뛰어나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덕을 갖추고 있었다. 어리지만 양전(兩殿: 임금의 궁전과 세자궁)과 병약한 세자를 섬기는 데 손색이 없었다.

세자빈으로 간택되었을 때는 경종의 친어머니 장희빈이 중전 자리에서 후궁 자리로 밀려난 상태인데다가, 경종은 성격이 불같은 친어머니보다 성격이 온화한 인현왕후를 더 따르다보니, 세자빈 심씨는 처신하기가 매우 곤란했다. 그래도 경종보다 2살 많은 세자빈은 최대한 조심하며 두 시어머니 모두에게 맞춰주려 애썼다. 그런데 어린 남편과 두 어머니 사이에서 마음고생이 많았다. 그래서 몸을 상해 병약했는지도 모른다.

흔히 병약한 왕세자(경종)를 곁에서 극진히 모시다가 급환을 얻어 사망한 것으로 묘사되지만, 숙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오히려 왕세자는 건강한 편이었고, 병약한 쪽은 세자빈 심씨였다. 숙환(宿患:묵은병)으로 풍질(風疾:중풍 등의 신경질환)을 앓았고, 1701년 9월에는 말이 횡설수설하는 증상이 있어 내의원에서 약을 의논하였다. 앞서 8월에는 몸이 아파 인현왕후의 상사(喪事)에 예를 갖추지 못했다. 가례(嘉禮) 당시에도 극심한 복통을 일으켜 식을 전부 취소해야 한다는 언급이 있었을 만큼 심각한 소동이 있었다.

 "
경종 즉위 2년 전인 1718년 3월 8일(음력 2월 7일)(숙종 44년),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실록의 사망 기사를 보면 사망하던 날 유시(대략 오후 5시 ~ 저녁 7시 사이)에 쓰러졌고, 2경 1점(대략 밤 9시 반 무렵)이 되어 숨을 거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실록에서도 그녀의 죽음에 대해 갑자기 졸(猝)이라는 표현이나, 뜻하지 않은 상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앞서 말했듯이 원래부터 병약한 체질에 앓던 병들로 인해 요절한 것으로 보인다.
",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왕후(王后)에 추봉되었다. 전호(殿號)는 영휘(永徽)라 하였으며, 1726년(영조 2년)에 공효정목(恭孝定穆)이라는 휘호(徽號:왕비가 죽은 뒤 시호와 함께 올리는 존호)가 추상되었다. 시호는 영휘공효정목단의왕후(永徽恭孝定穆端懿王后)이고, 능호는 혜릉(惠陵)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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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33
■ 경종과 영조의 엇갈린 운명 5편

■ 경종과 영조의 엇갈린 운명 5편

세자시절 대리청정 할 때는 정치공격에 의한 인사 조치를 극구 반대하던 경종은 단숨에 이 상소를 받아들인다. 노론들의 ‘연잉군 대리청정’ 요구를 묵묵히 참아오던 경종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이 상소로 인하여 1716년 이래 지속되어 오던 노론의 권력 기반이 무너지고 대신 소론 정권으로 교체되는 환국이 단행되었다.

이 결과 노론 4대신은 파직되어 김창집은 거제부에, 이이명은 남해현에, 조태채는 진도군에, 이건명은 나로도에 각각 안치되었고, 그 밖의 노론 대신들도 삭직(削職), 문외출송(門外出送) 또는 정배(定配:유배)되었다. 그리고 소론파에서 영의정에 조태구, 좌의정에 최규서, 우의정에 최석항 등이 임명되어 소론 정권의 기반을 굳혔다.

 "
정국이 이렇게 노론에서 소론으로 전환을 이루었을 때 서얼 출신 남인 목호룡의 고변사건이 일어났다. 목호룡이 고변한 내용은 노론 측에서 숙종이 죽기 직전에 세자 이윤(李昀)을 3가지 방법, 즉 삼급수로 죽이려 했다는 것이었다. 삼급수란 자객이 칼로 죽이는 대급수, 약으로 살해하는 소급수, 모해하여 폐출시키는 평지수를 의미했다.
",

놀란 경종은 즉시 국청(鞫廳)을 열 것을 명했고, 관련자들이 줄줄이 잡혀왔다. 이 고변서에 연잉군(延㭁君)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어 연잉군은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형인 경종에게 자신이 무관함을 눈물로 호소하여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이렇게 왕족이 역모에 연루되었을 때 살아남는 경우는 극히 드문 데, 경종이 살려 주는 바람에 연잉군은 여든 살 넘는 최장수 임금의 기록을 세웠다.

결국 이 사건으로 유배되었던 노론 4대신은 사사되었고, 연루되어 처형되거나 유배된 사람이 170명을 헤아렸다. 바로 신축옥사(1721년, 경종 1년)와 임인옥사(1722년, 경종 2년)이다. 이를 신임사화(辛壬士禍)라고 한다. 그 후 정국은 소론이 장악하게 된다. 경종이 어느 정도 정권을 장악해서 나름대로 정국을 꾸려가려고 할 때, 경종은 병석에 눕게 되었다.

경종이 병석에 눕자 연잉군은 의가(醫家)에서 상극(相剋)이라고 말하는 게와 생감을 경종에 보낸다. 경종은 그것을 맛있게 먹고 나서 병세가 더 악화되었다. 이에 연잉군은 어의(御醫)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삼(人蔘)과 부자(附子)를 함께 처방하라고 명을 내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종은 결국 숨을 거두었다.

이 사건으로 연잉군에 의한 경종 독살설이 영조 재위기간 내내 영조를 괴롭힌다. 경종 독살설이 사실인지 아닌지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아직 없다. 많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을 뿐이지만, 숙종시대 당쟁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영조가 충분히 의심 받을 만한 정황이 있음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신임옥사가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경종은 재위 4년 만에 갑작스럽게 죽고 만다. 그리고 세제(世弟)였던 연잉군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영조이다. 사실 경종이 4년 재위하는 동안 맘만 먹으면 연잉군을 얼마든지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종은 이복동생 연잉군을 끔찍히 아끼고 보호해 주었다. 경종은 연잉군에 대한 소론들의 수많은 모략과 정치 공세 속에서도 그를 방어해주어 결국 연잉군이 왕(영조)으로 오를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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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33
■ 경종과 영조의 엇갈린 운명 4편

■ 경종과 영조의 엇갈린 운명 4편

당시 경종의 나이가 34세였고, 왕비의 나이는 불과 17세였다. 아직 자녀가 없으나 그래도 즉위한 지 1년밖에 안 된 왕에게 이복동생을 후계자로 삼으라 하니, 경종 입장에서는 매우 난감한 이야기이고, 역모(逆謀)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아들 없는 임금에게 후사 책봉을 하라고 한 이정소의 속셈은 연잉군을 옹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조정은 노론의 세상이었으므로 경종은 아무 대항도 할 수 없었다.

당시 왕실 최고 어른인 인원왕후(숙종의 세 번째 부인)도 연잉군을 지지하고 있던 터라 경종은 매우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노론의 입장에서 왕세제(王世弟) 책봉의 결과는 자신들의 생사(生死)가 달린 문제였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날 저녁 영의정을 비롯한 노론 대신들이 경종에게 세자 책봉을 강요했다.

당시 경종의 나이가 34살이었다. 왕비인 선의왕후 나이는 고작 15살에 불과했다. 노론은 숙종 때 인현왕후가 24살이라는 점을 두어 아직 적장자 생산이 가능하다 하여 경종의 세자 책봉을 반대했던 적이 있었다. 이런 노론의 행동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는 이율배반적인 행동도 서슴치 않음을 보여준다. 당시는 노론의 힘이 왕권보다 쎘으므로, 결국 노론의 강압에 경종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쿠데타와도 같은 세제 책봉에 소론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소론 유봉휘는 다음날 갑작스러운 세제 책봉 소식에 상소문을 올려 노론에게 경종을 협박한 죄를 물으며 공격했다. 하지만 노론의 반격으로 오히려 유봉휘는 귀양을 가고, 이에 힘을 얻은 노론은 경종에게 아예 연잉군의 대리청정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연잉군은 사실 왕위에 야심이 있었던 만큼 노론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경종은 연잉군을 왕세제(王世弟)에 책봉했다. 그러나 노론은 더 아나가 연잉군의 대리청정(代理聽政)을 주장하고 나섰다. 대리청정은 왕이 명령을 내려도 신하들이 일제히 극구 반대해야 되는 일인데, 오히려 신하들이 나서서 이를 주청하니, 완전히 경종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가 쫓아내겠다는 저의가 엿보인다.

 "
왕세제의 대리청정 문제는 소론 등 신하들의 극구 만류와 연잉군의 극구(?) 고사(固辭)로 무산되기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아마도 정치적 쇼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노론과 소론 간의 당쟁은 더욱 격화되었다. 그리고 1721년 12월 경종의 지지를 받은 소론은 과격파인 김일경을 우두머리로 한 7명이 앞장서서 세제대리청정을 요구한 집의 조성복과 청정 명령을 받들어 행하고자 한 노론 4대신 영의정 김창집, 좌의정 이건명, 영중추부사 이이명, 판중추부사 조태채 등을 왕권 교체를 기도한 역모자 라고 공격하는 소를 올렸다. 결정적 근거를 가지고 공격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들의 평소 행동이 불충하고 무례하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

-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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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34
■ 경종과 영조의 엇갈린 운명 3편

■ 경종과 영조의 엇갈린 운명 3편

이이명과 숙종의 독대이후 노론은 연로한 숙종 대신 세자의 대리청정(代理聽政)을 공식적으로 주장한다. 당시 대리청정은 세자에겐 엄청난 시험대(試驗臺)가 되는 것이다. 대리청정(代理聽政) 중 큰 실책이 생기면 바로 세자는 쫓겨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를 연잉군을 세자로 만들기 위한 노론의 음모일 수도 있다고 본다. 정유독대 시 숙종이 이러한 것을 묵인 해주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숙종도 세자에게 대리청정이 독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킨 것을 보면 숙종 또한 노론과 비슷한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추론이 가능하다.

어쨌든 노론의 목표는 숙종 생전에 세자를 폐위시키고 연잉군을 다시 세자로 옹립하는 것이었다. 노론들에게 세자의 대리청정은 꼬투리를 잡아 폐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세자를 지지하고 있던 소론은 당연히 대리청정에 반발했다. 80세 고령인 소론의 영수 윤지완은 궁궐로 달려가 거적을 깔고 대리청정을 거두라고 숙종에게 하소연했다. 하지만 세자의 대리청정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만약 숙종이 오래 살았다면 경종은 소현세자나 사도세자처럼 비운의 세자로 역사에 남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리청정을 맡은 세자 경종은 흠잡을 데 없이 정국을 운영했다. 이미 노론에 포위된 사실을 감지하고 신중하게 행동한 덕분이다. 예상외로 대리청정을 큰 실수 없이 잘 해냈고, 숙종이 생각보다 빨리 죽는 바람에 결국 숙종 사후인 1720년 6월, 경종은 어렵게 왕위에 올랐다.

1690년 3세의 나이로 세자의 자리에 오른 이래 30년 동안 힘겨운 세자 생활을 하면서 ‘최장기 세자’의 기록을 세웠다. 왕위에 오른 경종에게 노론의 위세는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었다.

1721년 경종이 즉위한 지 1년 뒤에 정언이었던 이정소가 왕의 뒤를 이을 후사가 없다며 세자 책봉을 하라고 요구했다. 경종이 후사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진위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희빈 장씨는 사약을 받으면서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고 싶다고 숙종에게 애원하게 되는데, 숙종은 처음에는 이를 거절하다가 결국 인정에 끌려 그녀의 청을 들어주게 된다. 하지만 막상 세자를 그 자리에 데려다 놓았을 때 돌발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장씨는 자신의 아들을 보더니 재빠르게 달려와서는 다짜고짜 그의 하초(下焦)를 움켜쥐고 잡아당겨버렸다. 그 때문에 세자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했고, 이 사건 이후 항상 병약하고 시름시름 앓으며 남성 구실을 하지 못하여 후사를 보지 못해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실 경종은 35살 죽을 때까지 후사가 없었다.

『전하의 춘추(春秋)가 한창이신데도 후사를 두지 못하시니, 삼가 엎드려 생각건대 우리 자성(慈聖)께서는 커다란 슬픔으로 애구(哀疚)하시는 중에도 반드시 근심할 것이며, 하늘에 계신 선왕께서도 반드시 정성스럽게 돌아보며 민망하고 답답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경종수정실록 2권》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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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35
■ 경종과 영조의 엇갈린 운명 2편

■ 경종과 영조의 엇갈린 운명 2편

숙종 대에 있었던 여러 번의 환국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서인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 후 서인들끼리 남인에 대한 처벌을 두고 강경한 입장과 온건한 입장이 나누어졌다. 강경한 입장의 노장층은 노론(老論)으로, 온건한 입장을 편 소장층은 소론(小論)이라 칭하게 되었다.

분파(分派)의 직접적인 시작은 1683년 노장파인 김익훈 등이 남인을 강력히 탄압하자, 소장파인 한태동 등이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부터였다. 소론이 남인의 탄압에 온건한 입장을 취한 것은 만약 남인이 재집권하게 되면 보복이 있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고, 노장층의 노론이 남인들에게 강경한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은 지난 날 일어났던 환국에 대한 뒤끝 있는 복수가 염려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숙종 사후(死後) 조선 조정은 주로 서인 내부의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격하게 일어났고, 노론과 소론의 권력 다툼이 가열되면 될수록 정국은 혼미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러한 정치 상황 속에서 조선 20대 왕 경종이 즉위하였다. 경종은 재위 4년의 왕으로서 보다는 장희빈의 아들이자 영조의 이복(異腹) 형으로 우리에게 더 익숙하게 알려져 있다. 재위기간이 짧기도 했지만, 당쟁에 치어 줏대 없이 이리 저리 휘둘리는 왕의 이미지가 강하고, 그 시절 우리에게 널리 알려질 만한 큰 역사적 사건도 없었다.

하지만 일부 역사 전문가들은 경종을 다른 시각에서 평가하기도 한다. 경종의 무능과 유약한 이미지는 노론의 치열한 공세(攻勢) 속에서 경종 스스로 수신(修身)을 추구하는 한편, 왕으로서 힘을 길러 노론에 대해 대대적 반전을 꾀하기 위한 일종의 위장전술이었다고도 한다. 실제로 경종은 즉위 후 1년간은 노론이 하자는 대로 다 해주지만, 1년 후 부터는 소론의 상소에 따라 노론의 우두머리들을 대거 숙청하는 신임사화(辛壬士禍)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경종은 남인이 내세운 장희빈의 아들이었고, 영조는 반대편의 서인 측 인물인 숙빈 최씨의 아들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두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우애가 두터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두 사람은 공존(共存)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당시 노론은 남인 출신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을 세자로서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숙빈 최씨의 아들인 연잉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 그러던 중 노론인 이이명과 숙종의 독대(獨對)가 있었다.

당시에 왕과 신하의 독대(獨對)는 불법이었다. 왕과의 만남은 반드시 사관(史官)을 대동해야 했다. 사관을 대동하지 않은 독대의 내용은 알려진 것이 없지만, 여러 가지 설들이 추측되고 있다. 우선 경종을 즉위시키고 영조를 세제(世弟)로 정하는 것까지 합의를 봤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경종이 아직 젊은 왕이므로 앞으로 후사(後嗣)를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경종이 후사가 없으리라는 것을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연잉군 세제(世弟)만들기’ 설(說)은 영조의 왕위계승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론이 만들어 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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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35
■ 경종과 영조의 엇갈린 운명 1편

■ 경종과 영조의 엇갈린 운명 1편

경종 이윤(李昀)은 조선 19대 임금 숙종의 첫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 유명한 장희빈 (장옥정)이다. 이윤(李昀)이 태어났을 당시, 숙종의 나이는 27세였다. 14세에 왕위에 오른 숙종의 입장에서는 남인과 서인의 갈등 속에서 확실한 후계자를 세우는 일이 매우 시급했으므로 오랫동안 기다리던 아들이었다. 이 때문에 이윤(李昀)은 태어난 지 겨우 100일 만에 원자(元子)로 책봉되고, 3세에 왕세자(王世子)가 되었다.

이윤(李昀)은 훗날 무수리 최씨(최숙빈)의 아들인 연잉군(延㭁君)이 태어나기 전까지 숙종의 유일한 아들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더구나 경종의 유년시절은 남인들의 세력이 강했기 때문에 정국은 비교적 경종에게 우호적이고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숙종이 환국(換局)을 통해 신하들을 갈아치우며 왕권을 강화했고, 3번째 환국이던 갑술환국(甲戌換局) 이후, 이윤은 자신을 지지해주던 남인 세력을 대거 잃고 말았다. 게다가 중전이었던 어머니가 희빈으로 강등되는 엄청난 사건도 겪었다.

당시 이윤의 나이는 9세로 어느 정도 알 건 다 아는 나이였다. 친모(親母)인 장희빈은 계모(繼母)인 인현왕후를 미워하고 저주했지만, 이윤은 새어머니인 인현왕후를 극진히 모셨고, 인현왕후가 왕비로 복권되면서 이윤은 그녀의 양자(養子)가 되었다. 친모인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죽자 죄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이윤의 세자 자리는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자 이윤은 31년 동안 세자생활을 하고, 마침내 아버지 숙종의 뒤를 이어 조선 제 20대 임금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죄인의 아들인 이윤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숙종에게 이윤 이외에 왕비 소생의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숙종은 왕비를 3명이나 두었지만, 그 사이에서 아들이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보니 후궁 장희빈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장자(長子)의 권한은 무시할 수 없었고, 법적으로는 인현왕후가 어머니로 되어 있어서 왕위계승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식적인 왕위 계승자라 할지라도, 친모가 죄인임이 명백했으므로 왕위에 오르기까지 약 15년간 세자 이윤은 늘 불안한 세자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1701년 어머니 장희빈이 죽고 1720년 왕위에 올랐으니, 힘들고 불안하고 외로운 긴 시간을 세자로 생활 했던 사람이 바로 경종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대놓고 표현할 수 없었던 경종은 왕이 되고 나서도 왕위에 대한 압박을 받았다. 인현왕후의 죽음 이후, 3번째 왕비가 된 인원왕후는 16세로 경종보다 1살 많았고, 그때 숙종의 나이는 42세였다. 숙종과 인원왕후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선조와 광해군 때처럼 왕비 소생의 아들이 후궁 출신의 세자를 충분히 몰아낼 위협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지 인원왕후는 자식을 낳지 못했다. 경종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이복동생인 연잉군(延㭁君)이었다. 6살 터울의 이복동생 연잉군(延㭁君)은 숙종의 늦둥이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권력을 잡고 있던 노론(老論)이 그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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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36
당당하게 꿈꾸라

당당하게 꿈꾸라

항상 꿈을 꾸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도 자신만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짜 자신이 바라는 꿈을 말이죠.

설령 남들이 말하는 길이

훨씬 정돈되고 깔끔하게 보이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은 험난하게 보이더라도,

때로는 기꺼이 모험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은 그저 남을 따라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당당하게 꿈꾸라.

어떤 꿈이든 좋으니 마음껏 상상하라.

거창한 꿈을 꾸라는 게 아니다.

사랑하는 친구나 연인을 만나

매일 차 한잔 나누며 웃는 것도

보람찬 하루 일과를 마치고

편히 잠자리에 눕는 것도

얼마든지 꿈이 될 수 있다.

당신이 어떤 꿈을 꾸든

매일 그 꿈을 이뤄가는 행복을 만끽하기를.

 "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중에서 / 전승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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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36
장수 하는 비법

장수 하는 비법

밝은 마음으로 살라.

마음이 밝아지면 몸에 병이 발붙이지 못한다.

병을 두려워 말라.

병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죽는다.

불평을 하지 말라.

불평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저승사자이다.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여라.

손발이 건강해지면 온 몸이 건강해진다.

열심히 웃어라. 웃다보면 즐겁고 즐거우면 활력이 넘친다.

열 받지 말라.

열을 잘 받는 사람이 쉽게 간다.

음식을 적게 먹어라.

소식하는 사람이 오래 산다.

일을 즐겁게 하라.

즐겁게 일하면 인생이 천국이 된다.

오래 살려면 담배를 끊어라.

담배처럼 백해무익한 것도 드물다.

헬스클럽에 갈 필요가 없다.

맨손체조가 헬스클럽이다.

마음을 안정 시켜라.

충격처럼 위험한 것도 없다.

호기심을 가져라.

호기심은 젊음을 만든다.

끊임없이 머리를 써라.

머리를 쓰면 치매가 예방된다.

술은 보약이다.

그러나 적당히 먹어라.

신앙을 가져라.

자신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된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어라.

성질 급한 사람이 먼저 간다.

부부 사랑에 힘써라.

사랑의 열도가 높아지면 20년 더 산다.

고민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고민하지 말라.

고민은 생명을 좀 먹는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미움은 자신의 피를 탁하게 하여 없던 병도 끌어들인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밤 늦게까지 자지 않으면 노화가 빨리 온다.

아침에 일어나 생수를 3잔 마셔라.

좋은 물은 인삼 녹용보다 더 좋은 보약이다.

틈이 있으면 흙을 밟아라.

자연처럼 위대한 의사도 없다.

잠을 잘 자라.

잘 자는 사람이 건강하다.

무리를 하지 말라.

무리를 하면 무리가 생긴다.

의사 친구를 사귀어라.

의사는 내 생명을 지켜주는 파수꾼이다.

음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라.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괴로워 말라.

괴로움이 피를 말린다.

수양되는 글을 읽고 또 읽어라.

수양된 만큼 장수한다.

봉사하는 데 앞장 서라.

봉사하는 마음이 축복이다.

매일 밝고 힘찬 노래를 1곡씩 불러라.

살아있는 기가 온 몸에 생겨난다.

맑은 공기를 마셔라.

숨을 잘 쉬어야 장수한다.

고독은 병을 만든다.

좋은 친구를 사귀어라.

화내지 말고 이해하라.

이해하는 사람에게 생명 에너지가 생성된다.

편식하지 말라.

편식은 단명의 원인이다.

그 날 있었던 좋은 일만 기록하라.

넘치는 의욕이 장수를 보증한다.

할 일이 없어도 움직여라.

좋은 차도 오래 세워 놓으면 폐차가 된다.

좋은 취미를 길러라.

즐거움이 살 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준다.

희망을 가져라.

희망대로 이뤄진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745.html
kolaswqetsrq 11.02 15:37
■세종의 역병 대책

■세종의 역병 대책

1432년(세종 14년) 4월 ‘조선 판 코로나19’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극심한 역병(疫病)이 돌자, 세종은 “대규모 인력이 동원되는 토목·건설공사를 중단하라”는 명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역병(疫病)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세종은 감찰단을 파견하여 관리들의 전염병 대책에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 낱낱이 파악하게 하였다. 그런데 소격전(도교 주관의 제사 관장 부서)을 살피던 감찰단원의 보고가 올라왔다. “소격전 소속 여종 복덕은 시각장애인인데, 굶어죽게 생겼습니다. 복덕은 아이까지 안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세종은 소격전과 한성부 북부지역(북부령) 책임자 등 관리 2명을 문책하여 형조에서 심문하도록 하고, 복덕에게는 쌀과 콩 각 1석(石)을 하사했다. 세종의 지시는 일회성에서 끝나지 않았다. 세종은 “복덕이 내가 내린 쌀을 다 먹은 뒤에는 또 굶을 것 아니냐”면서 “앞으로 복덕과 같은 백성은 그의 친척에게 맡기거나, 친척도 없다면 해당 관청(소격전)이 끝까지 책임지고 구호해야 한다”는 명을 내렸다.

전염병이라는 재난에 맞선 세종은 그야말로 ‘애민(愛民)군주’임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건국 초이므로 아직 제도가 확립되기 전인데다가 워낙 명철한 성군이었기에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돌봄) 그 자체였다. 1434년(세종 16년) 전국적으로 전염병이 돌자 세종은 처방문까지 일일이 써서 전국에 내려주었다.

『내가 의서에 있는 처방(處方)과 약방(藥方)을 뽑아 적어 내린다. 수령들이 집마다 찾아다니며 알려주고 정성껏 치료해주라.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과인의 뜻을 저버리지 마라.』《세종실록》

세종이 내린 처방문에는 별의별 민간요법(療法)이 다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는 발효시킨 콩씨와 불기운을 받은 아궁이 흙, 그리고 어린아이 소변을 섞어 마시는 처방도 있었다고 한다. 세종은 전염병으로 죽을 처지에 빠진 백성들을 직접 구휼했다. 1434년~35년 사이 전염병으로 죽은 함경도 백성이 3262명에 이른다는 보고를 받고 면포 5000필을 급히 나눠주었다. 조선 판 ‘재난지원금’을 내린 것이다.

1437년(세종 19년)에는 굶주린 백성들이 한성부 내 두 곳에 마련된 진제장(굶주린 자들의 무료급식소)마다 1000여 명씩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들을 배불리 먹이려고 한 두 곳에 집단수용을 했던 것이 화를 불렀다. 해가 바뀌어 봄이 되면서 전염병이 이 급식소에 모인 백성들을 휩쓸었고, 이곳에서 사망자가 속출했다. 세종은 가슴을 치면서 “대체 지금 이곳에서 사망자가 왜 속출했는지 그 사유를 낱낱이 기록하라”는 명을 내렸다. 7년 후인 1444년(세종 26년)에도 전염병이 휩쓸자, 세종은 “7년 전의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하면서 “백성들을 분산 수용하고 질병을 얻은 자는 다른 사람과 섞여 살게 하지 마라”는 지시를 내렸다.

세종은 분산 수용소의 관리를 중앙 및 서울의 5개 관청 공무원들에게 맡겼다.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서 세종은 “백성들을 나눠 관리하도록 하는데, 만약 백성 한사람이라도 죽게 되면 관리책임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죽을 각오로 백성들을 관리하라는 뜻이었다.

예전에는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을 호구신(戶口神)이라 했다. 집집마다 돌면서 일으키는 역병(疫病)이라는 뜻이다. ‘호구거리’는 역병을 몰고 오는 ‘호구’가 탈을 부리지 못하게 하는 굿이다. 코로나19가 한시 빨리 진정되기를 바라는 ‘호구거리’라도 해야 하는 걸까.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081.html
kolaswqetsrq 11.02 15:37
■ 역병疫病을 물리치는 처용 2편

■ 역병(疫病)을 물리치는 처용 2편

그때 용의 아들 중 한 명이 왕을 따라왔는데, 그가 바로 처용(處容)이다. 왕을 따라 신라의 서울인 경주에 온 처용이 나라 일을 정성껏 도와주자 왕은 그에게 아름다운 여인을 짝지어 주고 벼슬도 내려 주었다. 어느 날, 처용이 밤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방 안에 전염병을 퍼뜨리는 역신이 사람 모습으로 변해 자기 아내와 함께 누워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처용은 화를 내거나 소리치지 않고 태연하게 마당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이것이 바로 ‘처용가(處容歌)’이다.

서울(경주) 밝은 달 아래 밤 깊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로다.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아내)이다마는 뺏어간들 어찌하리.

그 노래를 들은 역신이 놀라 제 모습을 드러내고 처용 앞에 꿇어앉아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빌며 도망쳤다. 그 뒤로 ‘처용’의 모습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집에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로 신라 사람들은 역신을 물리치기 위해 ‘처용’의 얼굴을 그려 문에 붙였고, 궁궐에서는 새해를 맞이할 때 처용 탈을 쓰고 처용이 추었다는 춤을 따라 추며 한 해 동안 역신이나 악귀가 들지 않도록 빌었다고 한다. 이를 처용무(處容舞)라고 부르는데, 처용무는 고려와 조선 시대로 이어지면서 궁궐의 한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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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속에서는 처용이 용의 아들로 등장하지만, 학자들은 실제로는 용의 아들이 아니라 그 당시 신라에 들어와 있던 아라비아 상인, 즉 중동 지역 출신의 인물이 아닌가하고 추측하고 있다. 처용이 아랍인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 것은, 처용 탈의 생김새로 볼 때 얼굴색이 팥죽색처럼 붉고,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마치 아랍인과 닮았고, 고려사에 처용이 기이한 몸짓과 괴이한 복색을 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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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천연두나 마마라고 불렀던 두창(痘瘡), 호열자라고 한 콜레라, 마진(痲疹)이라고 불렀던 홍역 등이 대표적인 전염병이었다. 조선 후기인 1798년에 정약용은 홍역 치료에 관한 의학책인 ‘마과회통’이라는 책을 썼고, 1879년에 지석영은 서양에서 개발한 ‘종두법’을 일본인에게서 배워와 두창을 예방하는 데 큰 공을 남겼다. 이렇듯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 세계가 깜짝 놀랄 획기적인 코로나 백신이나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을까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빨리 이 상황이 종식되기를 빌어본다. 역신을 물리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처용탈을 쓰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처용무를 추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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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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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43.html
kolaswqetsrq 11.02 15:38
■ 역병疫病을 물리치는 처용 1편

■ 역병(疫病)을 물리치는 처용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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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일상적인 삶이 마비되는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긴급하게 치료약이나 백신이 보급되기는 했지만 아직 뾰족한 퇴치법은 없고 또 다시 대확산의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은 웬만한 질병에는 백신이나 항생제 같은 치료약이 개발되어 있어 전염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고 있지만, 예방약이나 치료제가 없던 옛날에 사람들은 무서운 재앙인 전염병을 ‘여러 사람에게 돌려가며 옮는 병’이라고 하여 ‘돌림병’이라고 불렀다. 한자 역(疫)자를 써서 ‘역병(疫病)’이라고도 불렀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전염병이 돌면 어떻게 이를 물리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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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은 전염병을 역신(疫神), 즉 역병을 퍼뜨리는 귀신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일반 백성들은 전염병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역신(疫神)을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역신을 쫓아내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썼다. 오곡밥을 지어 먹는다든지, 팥으로 죽을 쑤어 대문간과 마당 구석구석에 뿌린다든지, 소를 잡아 생피를 대문에 칠하면 역신이 물러간다고 생각했다. 역신을 쫓기 위한 굿을 하기도 했고, 바가지를 소리 나게 득득 긁으면 시끄러운 소리가 듣기 싫어 역신이 물러간다는 생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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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하나로 백성들은 처용의 얼굴을 그려서 대문 앞에 붙여놓거나, 궁중에서는 ‘처용’의 탈을 만들어 쓰고 춤을 추며 나쁜 기운이나 전염병을 쫓아내고자 했다. 그 무서운 전염병을 일으키는 역신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던 ‘처용’은 어떤 인물일까? 삼국유사에 전하는 ‘처용’에 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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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49대 임금인 헌강왕이 지금의 울산 지역으로 나들이를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 어느 포구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덮여 주변이 어두워져 길을 잃었다. 갑작스러운 기상변화에 왕이 놀라 신하들에게 무슨 연고인지 물었다. 신하들은 "아마도 동해에 사는 용이 벌인 일 같습니다. 용을 위하여 마음을 풀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에 왕은 용을 위하여 그 근처에 절을 짓도록 명령을 내렸는데, 그러자 곧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동해의 용왕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바다에서 나와 곡을 연주하며 춤을 추었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그곳을 구름이 걷힌 포구라고 하여 개운포(開雲浦)라고 불렀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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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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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3.html
kolaswqetsrq 11.02 15:38
■ 두문동을 아십니까?

■ 두문동을 아십니까?

‘두문불출(杜門不出)’ 이라는 말이 있다. ‘집 안에 틀어박혀 일체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말의 유래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는 과정에 있었던 일화에서 찾을 수 있다.

임신년(1392) 7월 태조 이성계는 공양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겼다. 고려의 신하였던 권문세가들과 고려 왕족 중에서 조선의 태조에게 항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개성에 남아 따라가지 않았다. 새 조정인 조선에 반대하여 벼슬살이를 거부한 고려의 유신들이 은거하였던 마을을 그 지역 사람들은 두문동(杜門洞)이라고 했는데, 두문동은 황해북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의 서쪽 골짜기에 있었다.

『개성지』에 의하면 이성계가 정권을 잡은 후 고려의 백성들을 달래기 위해 과거시험을 열고 고려 유신들을 등용하려 하였으나 고려의 유신인 신규, 조의생, 임선미, 이경, 맹호성, 고천상, 서중보 등 72인은 끝까지 고려에 충성을 다하고 지조를 지키기 위해 이른바 부조현(不朝峴)이라는 고개에서 조복(朝服)을 벗어던지고 관을 벗어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대신 초립을 푹 눌러쓰고 이곳에 들어와 새 왕조에 출사하지 않았다. 서두문동에서는 72인의 선비가, 동두문동에서는 48명의 무인이 자리를 잡고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았다고 한다. 그때 마을 입구에 사립문을 설치하였는데 그 문은 항상 닫혀있었고, 문 옆에 가죽 채찍을 하나 걸어두었다. 과거를 보려는 자는 채찍을 맞고 나가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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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는 두문동에 들어간 사람들을 설득하려 했으나 전혀 반응이 없자, 마을 전체에 불을 질렀다. 만약 그들이 불을 피해 밖으로 뛰쳐나오면 조선의 관리로 벼슬을 주고 함께 새로운 세상을 도모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문동 선비들은 단 한명도 뛰쳐나오지 않고 모조리 불에 타 죽었다고 전해지며, 여기에서 두문불출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현재 마을에는 조의생, 임선미를 비롯한 72명의 고려 유신들의 절개를 찬양한 두문동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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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는 그들을 미워해서 개성 선비에게는 100년 동안 과거를 보지 못하게 명하였다. 결국 살아남은 그들의 후손들은 할 수 없이 평민이 되거나 장사를 생업으로 삼게 되었다. 그것이 후에 유명해진 개성상인으로 발전하였다. 그 뒤 300년 이래로 개성에는 사대부라는 명칭이 없었고, 경성의 사대부들도 개성에 가서 사는 사람이 없었다.

두문동 72현과 정몽주의 선죽교 살해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 후기 영조 때 만들어졌고, 이후 정조 때에 와서야 그 자리에 표절사(表節祠)를 세워 그들의 충절을 기렸다. 하지만, 고려 왕조가 망하면서 두문동에 들어갔다는 72인 중에는 이미 그 전에 죽은 자도 여럿 있었고, 조선 조정에서 벼슬을 한 사람도 여러 명 있는 것으로 보아 두문동 전설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상당부분 각색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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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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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867.html
kolaswqetsrq 11.02 15:39
■ 개판 오분五分 전前

■ 개판 오분(五分) 전(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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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개판 오분 전은 ‘질서 없이 마구 뒤엉켜 엉망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아수라장, 혼돈 등의 의미로 쓰이는 이 단어에서 개판의 ‘개’는 키우는 개(犬)와는 관계가 없다. ‘개’는 開(열리다)의 의미를, 판은 밥반(飯)의 중국식 발음인 것 같다. 글자 그대로의 해석은 밥솥 뚜껑이 열리기 5분 전(前)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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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좋지 않은 상황을 표현할 때 쓰이는 비속어이지만 원래의 뜻은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애환을 담고 있는 말이며, 이 말의 유래가 부산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6. 25 전쟁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낙동강 아래로 피난하여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당시 피난 온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국제시장에 몰려들자,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밥을 지어 배급했다고 한다. 가난했던 시절, 밥 굶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전쟁 통은 오죽했겠는가?

이들을 돕기 위해 무료배식을 하곤 했는데, 그것도 모자라는 경우가 허다했다. 시계를 가진 사람도 없었던 당시, 하염없이 밥을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 밥을 준비하고 다 되어가는 밥솥 뚜껑을 열기 5분 전에 "개판 오분 전(開版五分前)"이라고 외쳐 배급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이제 5분후면 밥을 나눠준다는 종이 울리자, 말 그대로 ‘먹지 못하면 죽는’ 상황.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몰려들어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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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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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153.html
kolaswqetsrq 11.02 15:40
■ 조선시대에도 이혼을 할 수 있었을까 1편

■ 조선시대에도 이혼을 할 수 있었을까 1편

조선시대에는 혼인과 마찬가지로 이혼도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칠거지악(七去之惡)’

이것은 아내에게 일곱 가지에 해당하는 잘못이 있을 때 아내를 쫓아낼 수 있다는 것으로, 시부모를 잘 모시지 못한다거나, 아들을 낳지 못한다거나, 음란하여 낳은 자식에 대한 혈통의 순수성을 보장할 수 없을 때, 질투가 심하여 처첩을 두기 어려울 때, 나쁜 병이 있어 건강한 아들을 낳을 수 없을 때, 말이 많아 대가족제도를 잘 운영할 수 없을 때, 도둑질을 했을 때 등이다.

그런데, 이 ‘칠거(七去)’는 매우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의 불효를 말하는가, 어느 정도의 병이 있을 때를 말 하는가 등 자의적인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며느리를 쫓아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어떤 식으로든 걸고 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둔 것이 ‘삼불거(三不去)’ 였다. ‘삼불거’ 란 아내가 쫓겨나서 갈 곳이 없다거나, 부모의 3년상을 같이 치렀다거나, 가난할 때 시집와서 부를 이루었다거나 할 때는 ‘칠거’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어도 아내를 내쫓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삼불거’ 에도 불구하고 나쁜 병에 걸렸거나 간통을 했거나, 부모에게 불효를 한 경우에는 구제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혼은 거의 허락되지 않았다. 남편이 죽어도 정절을 지키며 재혼이 금지되어 있는 사회에서 이혼녀가 많아지는 것은 사회 문제가 되기 때문에 국가가 최대한 이혼을 억제했기 때문에 아내를 버리는 것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금지되었다.

고종 때는 ‘칠거(七去)’ 중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과 질투가 제외되어 ‘오거(五去)가 되었고, ’삼불거(三不去)‘ 외에 자식이 있으면 무조건 이혼할 수 없게 하여 ’사불거(四不去)가 되었다.

남편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이혼을 하고 싶은 경우, 확실하게 이혼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아내의 간음’이었다. 실제로 아내가 결혼 전에 과거가 있었다고 무고하여 쫓아내기도 하였다. 또 다른 방법은 ‘소박’이라 하여 형식적으로는 부부로 살지만 실제로는 남남처럼 사는 것이다. 그리고 축첩이 가능한 것을 이용해 다른 여자를 첩으로 들이기도 했다.

서민의 경우는 양반보다 이혼이 쉬웠다.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 부부가 서로 사정을 말하고 이혼을 하는 ‘사정파의(事情罷議)’, 칼로 웃옷 자락을 베어 그 조각을 상대방에게 주어 이혼의 증표로 삼은 ‘할급휴서(割給休書)’ 등의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서민의 경우이고, 사대부가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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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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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71.html
kolaswqetsrq 11.02 15:41
■ 장돌뱅이를 아십니까?

■ 장돌뱅이를 아십니까?

조선은 농업을 중시하고 상공업을 천시하는 정책을 폈지만, 생활의 필요에 따라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농민들은 자급자족할 수 없는 수공업제품이나 소금 · 생선 · 건어물 등을 상인을 통해 구입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장시(場市)라고 하는 농촌시장이 발전하고, 각각 정해진 날짜에 열리는 전국의 시골 장시(場市)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돌뱅이들이 등장한다. 장돌뱅이는 ‘각 지방의 장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상인’ 즉 행상(行商)을 일컫는 말이다. 원래 가가호호(家家戶戶) 방문을 하던 행상들도 정기적으로 일정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구매자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편의상 장시를 돌아다니며 장사하게 되었고, 16세기 이후 장시가 확산되면서 그들의 활동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행상은 나라에서 발급하는 통행증인 행장(行狀)을 지니고 조직을 갖추어 활동하였다. 행상은 육로를 이용하는 육상(陸商)과 수로를 이용하는 수상(水商) 즉 선상(船商)이 있다. 선상은 등짐이나 봇짐, 소·말 등을 이용하는 육상보다 더 많은 상품을 신속하게 운송할 수 있는 대규모의 상인이기 때문에 정부는 더 많은 세금을 거두었다.

장시(場市)는 상설시장이 아니고 정기시장으로 지역 특성에 맞게 날짜를 정해 열리게 된다. 생산자에게는 물건을 만들 시간이 필요하고 수요자도 매일 필요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장시의 주된 이용자는 직접생산자였고, 거래되는 주요 상품이 곡물과 직물 및 각종 수공업제품이었다. 교환수단은 소규모 거래에 알맞은 ‘사용할 수 없는 거친 면포’ 나 곡물이었고, 뒤에 가서는 소액 화폐인 동전이 유통되었다.

짚신에 감발 치고 패랭이 쓰고/꽁무니에 짚신 차고 이고 지고/이장 저장 뛰어가서/장돌뱅이 동무들 만나 반기며/ 이 소식 저 소식 묻고 듣고/목소리 높이 고래고래 지르며/지가 오나 눈이 오나 외쳐가며/해질 무렵 손잡고 인사하고 돌아서네/다음 날 저 장에서 다시 보세

이 민요에서 장시를 돌아다니는 장돌뱅이(장돌림)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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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345.html
kolaswqetsrq 11.02 15:41
■ 무서운 병 ‘마마’ 3편

■ 무서운 병 ‘마마’ 3편

특별한 치료약이 없기도 하지만, 약을 써서 내쫓으려는 불경한 짓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며칠에 한 번씩 마마떡을 만들어 마마신에게 올린 뒤 환자에게 먹이면서 그저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또한 마마에 걸린 어린 아이는 마마님이 의탁한 몸이므로 그 집안의 가장 존귀한 분으로 떠 받들어 모셔야 했다.

환자에게는 공손하게 존댓말을 써야 했으며 환자의 말은 지상명령이었다. 이때는 마치 집안에 무서운 어른이 계신 것처럼 떠들썩한 것, 즐거운 것, 화려한 것, 부정한 것 등이 모두 금지되었다. 술과 생선, 고기를 먹지 말고, 청소하지 말고, 머리를 빗지 말고, 새 옷도 입지 말고, 상중에 있는 사람을 만나지도 말고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금기사항들이 있었다.

왕실이라고 민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세종의 동생 성녕대군도 마마를 앓다가 14살에 죽었고,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도 마마로 죽었다. 선조는 불과 한 달 만에 마마로 손자, 아들, 딸을 줄줄이 잃었다. 왕실에 마마환자가 생기면 왕도 술과 고기를 먹지 못하고 반찬도 줄여 김치로 수라를 때워야 했다. 더군다나 중요하지 않은 왕릉행차나 제사는 생략했다. 마마신에 대한 공포는 환자가 죽고 나서도 끝나지 않았다.

두창 환자가 죽은 것은 마마신이 노했기 때문인데, 죽은 사람을 땅에 묻으면 마마신이 더욱 노하여 남은 아이들마저 죽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땅에 묻지도 못하고 들판에 버리거나 나무에 붙들어 매어두거나 임시로 초분(草墳)에 두어 썩은 뒤에 매장하기도 하였다. 어떻든 난리를 치르고 나서 마마가 끝나갈 즈음에는 마마 신을 보내는 배송굿을 벌였다. 확실히 돌아가서 다시 오지 않도록 다짐을 받아두는 것이다. 속담에도 ‘마마손님 배송하듯’ 이란 말이 있는데 귀찮은 손님이 찾아왔을 때 말썽 부리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잘 대접하여 얼른 떠나게 한다는 뜻이다.

지금 중장년층까지만 해도 대개 어깨 쪽에 우두자국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다른 주사와는 달리 우두에만 커다랗게 얽은 자국이 생기는 것은 바늘로 찔러 약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피부를 째서 상처를 내어 우두균을 접촉시키는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뀌자 우두자국이 보기 흉하다 하여 발바닥에 우두를 맞는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발바닥 우두접종은 곧 사라졌다. 1979년에 천연두 바이러스의 멸종이 세계에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바이러스의 공격 앞에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의 일상이 흔들리고 있다. 과거와 달리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현대사회는 일정지역에 국한된 질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전세계로 날아다니고 있고, 계속 변이되면서 현대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 하나뿐인 지구와 그 환경을 소중히 다루고 아끼지 않은 천벌이라고 여길 만큼 지난하고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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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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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81.html
kolaswqetsrq 11.02 15:42
■ 무서운 병 ‘마마’ 2편

■ 무서운 병 ‘마마’ 2편

마마가 무서운 것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기도 하지만, 잘못 앓아 종기의 딱지가 잘못 떨어지면 그 자국으로 얼굴이 보기 흉하게 얽기 때문이다. 마마 종기는 특이하게도 얼굴, 팔다리 등 노출 부위에 주로 나는데, 특히 종기가 시작되는 곳도 얼굴이고 가장 심하게 나는 곳도 얼굴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골프공 표면처럼 움푹움푹 패여 곰보로 살아야 했다.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 중에서도 초상화나 사진을 보면 마마자국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두려운 존재이다.

얼굴에 난 종기딱지가 떨어져 생긴 마마자국은 남자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특히 여인네들에게는 치명적이었으므로, 목숨을 건지는 것 못지않게 천연두를 곱게 치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시되었다. 일반적으로 못 생긴 여자를 ‘박색’이라 하여 국어사전에서는 ‘박색(薄色)’이라고 쓰지만, 본래는 얽었다는 뜻의 박색(縛色)에서 온 말이다.

민가에서는 정월 초하룻날이면 스님들이 탁발을 하는 성문 밖 길거리에 나가서 떡 두 개를 주고 스님의 떡 하나와 바꾸어서 아이들에게 먹였다. 스님의 떡을 얻어먹으면 마마를 곱게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마는 열이 나는 발열(發熱)부터 시작하여 피부에 콩알 같은 돌기가 솟아오르는 출두(出痘), 돌기가 부풀어오르는 기창(起瘡), 고름이 맺히는 관농(貫膿), 검은 딱지가 만들어지는 수엽(收靨)의 과정이 각기 약 사흘씩 계속되어 대략 보름 만에 끝나서 약 3주 후면 딱지가 떨어져 완결되는 특이한 질병이다. 또 중간에 구토, 설사, 경련이 일어나고, 눈에 허옇게 백태가 끼면서 눈이 뒤집히기도 하는 등 무시무시한 증상이 계속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열이었다.

일단 마마에 걸리고 나면 달리 손 쓸 방법이 없었다. 그저 근신하면서 마마님께서 고이 가시도록 공경하며 빌 따름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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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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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22.html
kolaswqetsrq 11.02 15:43
남자 정력에 도움되는 식품

남자 정력에 도움되는 식품

1. 셀러리

셀러리가 성욕이나 정력에 좋다고 한다면 의아해할 것이다. 그러나 이 셀러리 안에는 냄새 없는 호르몬 안드로스테론이 들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남자의 땀으로 분비됐을 경우 여성을 유혹하는 체취가 된다고 한다. 남자들에겐 매우 매혹적인 채소가 아닐 수 없다.

2. 초콜릿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알려진 화학성분인 페닐에틸아민이 듬뿍 들어 있는 초콜릿은 무척이나 섹시한 음식 중 하나다. 또 카페인과 매우 흡사한 테오브로민(알칼로이드의 일종) 성분도 들어 있다. 초콜릿이 사랑의 아이콘 중 하나가 된 것은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면역 체계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3. 굴

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대표적이며 공통적인 정력 식품이다. 카사노바가 매일 저녁마다 한 번에 50개씩 먹었을 정도이니 그 명성(?)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굴에는 정액과 테스토스테론을 만들어주는 아연이 매우 풍부하게 들어 있고 정력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도파민이란 호르몬도 함유돼 있다. 생굴을 먹는 모습을 서양에서는 매우 에로틱하게 여긴다니 단연 섹시 푸드일 수밖에 없다.

4. 아보카도

아즈텍의 원주민들이 아보카도 나무를 ‘아후아카틀’, 즉 고환목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생김새가 비슷한 탓도 있지만 실제로 단백질의 신진대사를 도와 에너지를 내게 하는 엽산의 함유율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남성호르몬 생성을 돕는 영양분인 비타민 B6까지 들어 있어 성욕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5. 아몬드

남성호르몬 생성을 위한 영양분인 지방산이 매우 풍부하게 들어 있는 것이 바로 아몬드다. 또 그 향이 여성의 욕정도 불러일으킨다고 알려져 아몬드 향 양초는 서양에서는 침실 필수품으로 여겨질 정도라고 한다.

6. 달걀

평소에 흔하게 섭취하는 식품이라 의외로 여겨질 것이다. 달걀은 그야말로 다산(多産)과 재생의 상징으로 비타민 B6과 B5가 풍부한데 이 두 가지는 호르몬의 밸런스를 도와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해준다. 달걀뿐 아니라 오리알과 생선알도 같은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됐으니 취향대로 먹어보자.

7. 바나나

포스타슘과 리보플라빈과 같은 비타민 B가 들어 있어 신체의 전반적인 에너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힘을 높여준다고 이해하면 된다. 특히 남성 정력을 증가시키는 브로멜라인 효소가 함유돼 동남아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정력 음식으로 통용된다.

8. 무화과

싱싱한 무화과는 달콤한 맛과 풍부한 과즙뿐 아니라 모양도 아름다워 에로틱한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린다. 특히 정력에 효과가 있는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함유돼 대표적인 스태미나 과일로 손꼽힌다.

9. 마늘

마늘이 꺼려지는 것은 냄새뿐이지 그 효능은 가히 만병통치약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성기에 혈류 공급을 촉진시키는 알리신이 풍부해서 대표적인 자양강장 식품군으로 분류된다. 또 마늘 냄새가 독하다지만 그 향 자체로도 성욕을 증강시킨다는 연구 보고도 있을 정도니 섭취를 늘려보는 것이 좋겠다.

10. 간

면역 체계 기능의 증강을 위한 세포 영양분인 글루타민이 매우 풍부하게 들어 있는 식품이 간(肝)이다. 간을 먹고 나면 잠자고 있던 성욕이 눈을 뜬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모양새는 전혀 섹시하지 않지만 평소에 먹어두면 매우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026.html
kolaswqetsrq 11.02 15:44
100세까지 건강한 삶을 위한 12가지

 100세까지 건강한 삶을 위한 12가지

 "
1. 일십백천만의 이론을 실천하라
",

일 : 하루에 한 가지 이상 좋은 일을 하고

십 : 하루에 열 번 이상 웃고

백 : 하루에 백 자 이상 글을 쓰고

천 : 하루에 천 자 이상 글을 읽고

만 : 하루에 만 보 이상 걷는 것입니다.

2. 마늘을 하루 1~2알 정도 섭취하라

하루 5ml의 마늘을 섭취하면 체내 유해 화학물질을 48%까지 감소시킬 수 있고 암이나 면역체계

이상,관절염 등을 예방할 수 있다.

기억력 감소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적당한 운동을 꾸준히 하라

주 3회 정도 적당한 운동을 하면 뼈가 튼튼해지는 것은 물론 심장질환 발병 위험이 줄어든다.

산책은 적당한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의 빠른 걸음으로 하는 것이 좋다.

4. 정제하지 않은 곡물 섭취하라

정제하지 않은 곡물 음식을 주 4회 정도 섭취하면 암 발생 위험을 40% 줄일 수 있다.

5. 야채와 과일을 많이 섭취하라

뇌졸중, 심장병, 암, 당뇨병 등의 예방에 효과가 있고 여성의 경우 유방암 위험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특히 토마토나 포도, 브로콜리 등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좋다.

6. 패스트푸트 섭취를 줄여라

이런 음식을 많이 먹을 경우 관상동맥 질환이나 뇌졸중, 심장병 발병 위험이 커진다.

7. 생선을 많이 먹어라

생선에 많이 함유된 오메가-3 지방산은 혈전 생성을 방지하고 생선 기름은 면역체계를 강화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생선을 먹어도 심장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

8. 소금은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을 섭취하라

 우리몸의 염도는 0.9%를 유지 하는게 좋은데 이보다 낮은 0.85%농도 이하에서 병균의 침입이 쉬워지므로 고염식을 하되 정제염(나트륨덩어리) 아닌 죽염이나 천일념을 섭취하자.

9. 적당량의 와인을 마셔라

하루 2잔 정도의 와인은 암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맥주보다는 와인을 마시는 편이 낫다.

10. 하루 2잔 정도 커피를 마셔라

하루에 커피를 2잔 정도 마시면 결장암은 25%, 담석은 45%,간경변은 80%, 천식은 15%, 파킨슨병 위험은 50~80%까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임산부는 예외)

11.. 차를 많이 마셔라

심장병 발병 위험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12. 체중을 줄여라

표준체중에서 1kg 초과 때마다 수명은 20주씩 단축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0-12.html
kolaswqetsrq 11.02 15:45
5少 하고 13多 하라

5少 하고 13多 하라

건강을 위해 적게 해야 할 5가지

많이 해야 할 13가지

<5 少>

1. 少食 ( 소식 ) 과식하지마라. 십장생의 동물들은 위의 80%에만 음식을 채웠다.

2. 少言 ( 소언 ) 말을 많이 하지마라. 귀가 2개이며 입은 하나뿐인 이유를 알라.

3. 少怒 ( 소노 ) 화를내지마라.

스트레스가 극심해 나의육체를 병들게 한다.

4. 少慾 ( 소욕 ) 욕심은 만병의 근원이다. 사망의 지름길이다.

5. 少車 ( 소차 ) 가능하면 많이 걷고 차를 적게 탄다. 다리는 제2의 심장이다. 이 심장은 걸을 때에만 운동한다.

<13 多>

1. 多見 ( 다견 ) 많이 보고 새로운 것을 배워라. 세상과 주변은 이해한 만큼 보인다.

2. 多動 ( 다동 ) 많이 움직여 많은 근육을 사용하라. 그래야만 건강이 유지된다.

3. 多浴 ( 다욕 ) 따뜻한 물로 매일 목욕하라. 체온을 상승시켜 면역력을 수배 올려주므로 병이 사멸된다,

4. 多泄 ( 다설 ) 눈물. 콧물.땀. 대ᆞ소변 을 잘 배설하라.

5. 多接 ( 다접 ) 남녀가 서로 생각하고 만져주고, 접촉하면 활력이 생긴다.

6. 多笑 ( 다소 ) 많이 웃어라. 웃음은 건강을 준다. 일소일소 일노일노

7. 多忘 ( 다망 ) 될 수 있는 대로 지나간 과거를 잊어라. 과거는 다시 오지 않는다.

8. 多靜 ( 다정 ) 고요한 마음을 자주 가져라. 그리고 명상을 많이 하자. 평안과 자유를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이 생긴다.

9. 多容 ( 다용 ) 항상 편안한 마음으로 너그러운 마음을 갖자. 세상에 당신이 남길 것이란 사랑뿐이다.

10. 多忍 ( 다인 ) 매사에 많이 참는 습관을 들이고 끝까지 참자. 인내는 사랑의 결실을 안겨준다.

11. 多勇 ( 다용 ) 매사에 용기를 가져라 주저하면 오래 못 살고 얻는 것이 없다.

12. 多愛 ( 다애 ) 사랑을 많이 하자 사랑은 생동력을 주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13. 多步 ( 다보 ) 가능한 많이 걸어라 걷는 것이 건강을 좋게 한다. 걷는 것은 분명한 건강을 좋게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13.html
kolaswqetsrq 11.02 15:45
◇ 날마다 일어나는 기적들

◇ 날마다 일어나는 기적들

코를 꼭 잡고 입을 열지 않은 채

얼마쯤 숨을 쉬지 않을 수 있는지

참아 보십시오.

30초를 넘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숨을 쉬지 않고 참아보면 그제야

비로소 내가 숨쉬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숨을 쉬려고 노력했습니까?

훗날 병원에 입원해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숨을 쉴 때야 비로소 숨쉬는 게

참으로 행복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이미 행복을 놓친 것입니다.

뛰는 맥박을 손가락 끝으로 느껴보십시오.

심장의 박동으로 온몸 구석구석 실핏줄 끝까지 피가 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날마다 무수히 신비롭게

박동하고 있는 심장을 고마워했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기적을 일구고 있습니다.

심장이 멈추지 않고 숨이 끊기지 않는 기적을 매일 매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아침에 눈을뜨면 벌떡 일어나지 말고

20초 정도만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읊조리듯 말하십시오.

첫째, 오늘도 살아있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둘째, 오늘 하루도 즐겁게 웃으며 건강하게 살겠습니다.

셋째, 오늘 하루 남을 기쁘게 하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서너달만 해보면 자신이 놀랍도록 긍정적으로 변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물론 말로만 하면 자신에게 거짓말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말한 대로 실행하십시오.

그러면 잔병치레도 하지 않게 됩니다.

아픈곳에 손을대고 읊조리면

쉽게 낫거나 통증이 약해지기도 합니다.

당신은 1년후에 살아 있을 수 있습니까?

1년후에 우리 모두 살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합니다.

살던대로 대충,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웃고, 재미있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신나게,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자신을 면밀히 살펴보십시오.

내 육신을 학대하지는 않았는가,

마음을 들쑤시지는 않았는가 돌아 보아야 합니다.

몸이 원하는 것 이상의 음식을 먹는 것도 학대이며,

몸이 요구하는 편안함을 거부하는 것도 학대이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는 것도 학대입니다.

 "
 - 김홍신의 인생사용 설명서중에서 -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641.html
kolaswqetsrq 11.02 15:46
어떤 일에서든 진실하라

어떤 일에서든 진실하라

진실한 것이 더 손쉬운 것이다.

어떠한 일이든 거짓에 의해서

해결하는 것 보다는

진실에 의해서 해결하는 편이

항상 보다 직선적이며 보다

신속하게 처리된다.

그리고 남에게 하는 거짓말은

문제를 혼란시키고

해결을 더욱 멀게 할 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나쁜 것은 겉으로는 진실한 채 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다.

그것은 결국

그 인간의 평생을 망치게 할 것이다

- 톨스토이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876.html
kolaswqetsrq 11.02 15:46
인생에 필요한 12명의 친구

인생에 필요한 12명의 친구

01. 믿고 의논할 수 있는 든든한 선배

02. 무엇을 하자해도 믿고 따라오는 후배

03.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냉철한 친구

04. 나의 변신을 유혹하는 날라리 친구

05. 여행갈 수 있는 먼 곳에 사는 친구

06.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애인

07. 어떤 상황에도 내편인 친구

08. 언제라도 불러낼 수 있는 술친구

09. 독립공간을 가진 독신친구

10. 부담 없이 돈을 빌려주는 부자친구

11. 추억을 많이 공유한 오래된 친구

12. 연애감정 안생기는 속 깊은 이성친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2_22.html
kolaswqetsrq 11.02 15:47
당신은 나에게 그런 사람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그런 사람입니다

나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사람

처음 알던 순간부터 관심이 가던 사람

알아갈수록 나도 모르게 깊게 좋아지는 사람

볼 수 없어 너무나도 그리워하게 했던 사람

하루종일 내 머릿속에 꽉 차있는 사람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는 사람

세상에서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

매일매일 생각해도 계속 생각하고 싶은 사람

항상 같이 있고 싶은 사람

넋 나간 사람처럼 웃게 만드는 사람

나를 눈물짓게 하는 사람

이해는 안가도 이해해 주고 싶은 사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당신은 나에게 그런 사람입니다.

볼수록 내 마음이 끌리는 사람

나에게 힘이 되는 사람

따뜻함과 편안함을 가진 사람

언제나 다정한 사람

지친 어깨를 내 품에 안아주고 싶게 만드는 사람

당신은 나에게 참 고맙고 좋은 사람입니다.

- 좋은글 중에서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249.html
kolaswqetsrq 11.02 15:47
◇ 뇌腦가 강해지는 비법

◇ 뇌(腦)가 강해지는 비법

1. 연결시켜 기억하라

정보를 얻고 저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조합이다. 학습능력과 기억력을 좋게 하려면 배우는 것들 사이의 연관성을 만들어주면 된다.

2. 양손을 사용하라

뇌는 서로 비슷하게 생긴 오른쪽 뇌와 왼쪽 뇌로 나눠져 있다.신체로부터 전달되는 대부분의 정보가 오른쪽과 왼쪽으로 서로 교차돼 전달된다. 왼손이나 왼쪽다리에서 온 정보는 오른쪽 뇌로,오른쪽 손에서 온 정보는 반대로 가는 식이다

3. 잠자기 직전에 공부하라

꿈은 아직까지 그 본질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 동물 실험은 꿈이 우리가 전에 경험하거나 배운 것이나 남겨 둔 문제들을 다시 기억하는 과정을 반복하도록 만든다. 잠자기 전, 꿈꾸기 전에 외운 것이 더 잘 기억되는 이유다.

4. 외우지 말고 이해하라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이해하면서 작용하도록 돼 있다. 뇌는 그래서 단순히 암기한 것보다는 이해한 것에 대해 특히 잘 기억한다. 뭔가를 배운다면 이것을 왜 배우고 공부해야 하는지 뇌에게 잘 "설명"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5. 오래 사귈수록 나쁜게 TV다

텔레비전을 오래 시청하면 뇌에 좋지 않다. 앞으로 2~3 시간 동안만이라도 텔레비전을 켜지 말고 생활해보라.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겠지만, 얼마 지나면 전과는 다르게 머리가 맑아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6. 일상적인 것에 반대하라

우리의 뇌는 변화를 즐긴다. 틀에 박힌 것은 싫어한다. 단조롭고 변화가 없다는 것은 뇌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7. 여행하라

여행은 뇌를 재충전하고 깨어있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이국적인 곳을 여행할 수록 풍부한 자극을 경험하게 돼 더욱 좋다.

8. 새로운 것을 먹어라

늘 먹던 음식보다 한번도 먹지 못했던 음식, 예를 들어 인도나 태국음식 등에 도전해보자.

9. 도전하고 배워라

뇌는 도전을 즐긴다.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거나 글을 써보거나 모형 비행기를 조립하는 것 무엇이라도 좋다.

10. 남들 따라 하지 말라

뇌는 도전을 좋아하는 동시에 다른 것을 잘 따라한다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뇌가 배우고 기억하는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같아 지려 하는 뇌의 명령을 거부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235.html
kolaswqetsrq 11.02 15:48
임심조서林深鳥棲 - 숲이 우거져야 새가 깃든다, 덕을 쌓아야 사람이 모인다.

임심조서(林深鳥棲) - 숲이 우거져야 새가 깃든다, 덕을 쌓아야 사람이 모인다.

수풀 림(木/4) 깊을 심(氵/8) 새 조(鳥/0) 깃들일 서(木/8)

자기에게 덕망이 있어야 사람들이 따르게 된다. ‘물이 깊어야 고기가 모인다’는 말이나 ‘숲이 깊어야 도깨비가 나온다’는 속담대로다. 숲이 우거져야(林深) 새가 깃든다(鳥棲)는 이 성어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덕을 쌓으면 저절로 만물이 모이고 일이 순조롭다는 뜻이다.

孔子(공자)가 말한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恭則不侮 寬則得衆/ 공즉불모 관즉득중)’이란 가르침도 사람과의 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다만 물이 너무 맑으면 큰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水淸無大魚(수청무대어)는 지나치게 엄격하면 오히려 멀리 하게 되니 조화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겠다.

唐(당)나라 2대 太宗(태종)이 되는 李世民(이세민)은 隋(수)나라 말기 혼란한 틈을 타 부친 李淵(이연)을 도와 군사를 일으키고 통일을 실현시켰다. 자신의 공이 큼에도 왕위를 둘러싸고 왕자의 난을 일으킨 끝에 형과 동생을 황궁의 북문인 玄武門(현무문)에서 살해한 끝에 즉위했다.

피비린내 나는 쟁탈전으로 올랐지만 태종은 명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백성을 위하며 공정한 정치를 펼쳐 그의 치세는 貞觀之治(정관지치, 626∼649)라 칭송받는다. 태종이 신하들과 주고받은 내용을 6대 玄宗(현종)때 吳兢(오긍)이 정리한 ‘貞觀政要(정관정요)’는 제왕학의 교과서라며 중시했다.

이 책의 仁義(인의)편에 공자의 인과 의를 통치의 기반으로 인식한 태종이 신하들에게 말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숲이 울창하면 새가 깃들고, 수면이 넓으면 물고기가 노닐며, 인의가 두터우면 백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따를 것이오(林深則鳥棲 水廣則魚遊 仁義積則物自歸之/ 임심즉조서 수광즉어유 인의적즉물자귀지).’ 인의의 길은 항상 마음에 담고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며, 덕이 충만하면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이 제자리로 귀의한다고 했다.

정권이 바뀌면 의욕을 갖고 새로운 정책을 실천하려 전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몇몇의 정치 지도자가 원칙만 갖고서 밀어붙인다면 반감을 사게 된다. 반대 측의 의견도 받아들이면서 순리에 따라 집행한다면 국민의 마음을 얻는다. 덕을 쌓으면 일이 순조로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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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48
고희古稀 - 예부터 드문 나이, 70세

고희(古稀) - 예부터 드문 나이, 70세

예 고(口/2) 드물 희(禾/7)

사람이 70세가 되면 고래로 드문 나이라며 고희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90세, 100세의 건강노인도 흔하고, 노인 기준을 75세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지만 평균수명이 길지 않았던 옛날에는 70 인생도 드물었을 것이다. 그래서 태어난 해의 甲(갑)으로 되돌아온다는 60세의 還甲(환갑)만 돼도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나이에 대한 이칭은 숱하다. 일반적으로 孔子(공자)가 論語(논어) 爲政(위정)편에서 언급한 志學(지학, 15세), 而立(이립, 30세), 不惑(불혹, 40세), 知天命(지천명, 50세), 耳順(이순, 60세) 등이 많이 인용된다.

공자는 70이 되어서야 뜻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從心所欲 不踰矩/ 종심소욕 불유구, 踰는 넘을 유, 矩는 법 구)고 하여 70세를 從心(종심)으로 지칭했는데 더 많이 쓰이는 古稀(고희)는 詩聖(시성)으로 불린 唐(당)나라 杜甫(두보)의 시에서 유래했다.

그가 정정불안으로 관직엔 운이 없고 답답한 마음으로 시작에 심취한 것이 詩仙(시선)인 李白(이백)과 함께 李杜(이두)로 불리는 영예로 남게 됐다.

두보가 수도 長安(장안)의 아름다운 연못 曲江(곡강) 가까이서 지내며 남긴 시 중에서 고희란 말이 나온다. 47세 때 쓴 ‘곡강2’란 시의 앞부분이다.

‘朝回日日典春衣 每日江頭盡醉歸 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조회일일전춘의 매일강두진취귀 주채심상항처유 인생칠십고래희/ 조회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을 잡혀, 하릴없이 강가에서 만취하여 돌아오네, 몇 푼 안 되는 술빚은 가는 곳마다 있기 마련이지만, 인생살이 칠십년은 예부터 드물었네).’ 길지 않은 인생 즐거움을 한껏 누리자는 달관한 듯한 두보도 물론 고희는 맞지 못하고 59세 때 생애를 마쳤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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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49
취우부종일驟雨不終日 - 소나기도 종일 내리지 않는다, 영원한 것은 없다.

취우부종일(驟雨不終日) - 소나기도 종일 내리지 않는다, 영원한 것은 없다.

빠를 취(馬/14), 비 우(雨/0) 아닐 불, 부(一/3), 마칠 종(糸/5), 날 일(日/0)

견디기 힘들 정도로 지루한 일이라도 그 끝은 있다. 사람을 들들 볶는 상사나 폭군이라도 좋지 못한 결말이 온다. 자기가 잡은 권세는 오래 계속될 듯 여겨도 ‘열흘 붉은 꽃은 없다’란 속담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같은 뜻의 ‘사람의 좋은 일과 붉은 꽃의 아름다움은 열흘을 넘지 못한다(人無十日好 花無十日紅/ 인무십일호 화무십일홍)’란 말은 아무리 높은 권세라도 오래가지 못한다고 한 權不十年(권불십년)과 함께 널리 쓰인다. 한 가지 더 갑작스런 소나기(驟雨)라도 하루 종일 내리지 않는다(不終日)란 성어도 여기에 들어간다. 빠를 驟(취)는 ‘갑작스럽다, 돌연히’의 뜻이 있고 驟雨(취우)는 소나기 또는 폭우란 뜻이다.

이 말은 앞서 소개했던 대로 ‘회오리는 아침 내내 불지 않는다’는 뜻의 飄風不終朝(표풍부종조, 飄는 나부낀다는 의미 외에 회오리란 뜻으로 飆와 같음)와 이어져 멋진 대구를 이룬다. 잘 알려졌듯이 중국 道家(도가)의 창시자로 꼽히는 老子(노자)의 ‘道德經(도덕경)’에 실려 있다.

도가는 莊子(장자)가 뒤를 이어 발전시키게 되는데 諸子百家(제자백가) 중에서도 儒家(유가)와 더불어 양대 산맥을 이루는 학파다. 無爲自然(무위자연)을 받들고 그의 학문은 스스로를 숨겨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自隱無名(자은무명)을 본령으로 삼아 유가와 대조를 이루는 면이 많다.

노자가 실존인물인지, 생존 연대는 어떤지 등등으로 분분한 중에서도 도덕경은 그의 저작으로 굳어져 고전 중의 고전이 됐다. 상편 37장, 하편 44장으로 5000여 자의 짧은 편에 속하는 이 책은 노자가 머물던 周(주)나라가 쇠망할 것을 미리 알고 떠날 때 국경 函谷關(함곡관)의 관문지기 尹喜(윤희)란 사람에게 남긴 글이라 한다. 23장 虛無章(허무장)에 나오는 부분은 이렇다.

‘도에서 나오는 말은 자연스럽다(希言自然/ 희언자연). 그런 까닭에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부는 일이 없고, 소나기도 온 종일 오는 법이 없다(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표풍부종조 취우부종일).’ 하늘과 땅이 일으키는 비바람도 부자연스러워 오래 못하는데 사람은 더욱 자연에 어그러지는 일은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하루 종일 부는 바람은 없다 했는데 특이하게 끝없이 이어진다고 하는 말이 있다. 바로 ‘불난 끝은 있어도 물 난 끝은 없다’나 ‘가물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라는 속담이다.

불이 나면 타다 남은 물건이라도 있고 가물어도 얼마간 거둘 것이 남지만, 큰 장마가 진 뒤에는 모두 휩쓸려가 건질 것이 없다고 물난리로 인한 재해가 훨씬 무섭다는 비유의 말이다. 근년 들어 장마가 길어지고 폭우가 내리는 경우도 잦아 댐이 무너지는 등의 수해가 크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가 원인이라는데 근본 대책이 시급한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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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50
누망지어漏網之魚 - 그물을 빠져나간 물고기, 법망을 교묘하게 피한 범인

누망지어(漏網之魚) - 그물을 빠져나간 물고기, 법망을 교묘하게 피한 범인

샐 루(氵/11) 그물 망(糸/8) 갈 지(丿/3) 고기 어(魚/0)

양심껏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법이 없어도 산다. 법이 어떤 것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法網(법망)이란 말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물고기를 잡는 그물처럼 제재할 수 있다는 뜻에서 나온 비유다. 이 법망이 촘촘해야 좋을까, 느슨해야 좋을까. 양쪽 모두 일장일단이 있어 단정하기는 어렵다.

소소한 것을 금지하면 백성이 숨을 쉬지 못하고, 뚫린 구멍이 크면 범법자가 활개를 친다. 그물에서 빠져나간(漏網) 물고기(之魚)란 이 성어도 요즘은 법망을 교묘하게 피한 범인을 가리키는데 司馬遷(사마천)이 “史記(사기)”에서 사용했을 때는 큰 고기도 빠져나갈 수 있는 너그러운 법이라야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다고 봤다.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故事成語(고사성어)의 25%가 유래했다는 사기에서 많이 읽히는 곳이 列傳(열전)이다. 130권 중에서 절반이 넘는 70권을 차지하는 열전은 다양한 인물들의 활동을 통해 인간 삶의 문제를 집요하게 추구한 개인 전기다. 酷吏(혹리)열전은 법을 너무나 엄격하게 빈틈없이 집행하여 원성을 들었던 12명의 행적을 그렸다.

다른 열전은 사마천이 평가하는 太史公(태사공)의 글이 마지막에 나오지만 여기서는 앞부분에서 孔子(공자)와 老子(노자)를 인용하며 시작한다. 바로 백성들을 형벌로 다스리면 피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免而無恥(면이무치), 법령이 엄격하면 도둑이 더 늘어난다(法令滋彰 盜賊多有/ 법령자창 도적다유)는 구절이다.

사마천은 통일제국 秦(진)이 법망을 치밀하게 했으나 관리의 혹독한 집행과 그것을 빠져 나가려는 백성의 혼란이 극에 달해 일찍 망했다면서 이어진다. "한나라가 일어나자 모난 것을 깨뜨려 둥글게 하고, 화려한 것을 소박하게 했으며(漢興 破觚而爲圜 斲雕而爲樸/ 한흥 파고이위원 착조이위박), 배를 삼킬만한 큰 고기도 그물을 빠질 수 있을 만큼 너그럽게 했다(網漏於吞舟之魚/ 망루어탄주지어)."

觚는 술잔 고, 4각 또는 8각의 화려한 술잔, 圜은 두를 환 또는 둥글 원, 斲은 깎을 착. 高祖(고조)는 約法三章(약법삼장)으로 대대적 환영을 받았듯이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은 혹독한 법령보다 도덕에 있다는 설명이다.

한나라 이후 2000여 년,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너무나 촘촘한 법령의 그물 속에 살면서 답답함보다 요령껏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더 분통 터진다. 남이 보지 않는다고 법을 어기거나 미치지 않는 곳에서 힘으로 밀어 붙인다. 이보다 더한 것이 법을 잘 알면서 예사로 어기고 끼리끼리 봐주며 농락한다.

“법 밑에 법 모른다”란 속담이 있다. 법을 잘 알고 법을 잘 지켜야 하는 전문기관에서 법을 잘못 다루거나 일부러 엉뚱한 데에 적용하여 빈축을 사는 경우다. 법의 심판을 능숙하게 피해가는 사람들을 “법꾸라지”라고 부르는데 끊임없이 나타나는 이들에 의해 그물 스치는 물고기의 뜻이 바뀌었는지 모른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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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51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 동쪽 집에서 밥 먹고 서쪽 집에서 잠자다.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 동쪽 집에서 밥 먹고 서쪽 집에서 잠자다.

동녘 동(木/4) 집 가(宀/7) 밥 식(食/0) 서녘 서(襾/0) 집 가(宀/7) 잘 숙(宀/8)

동쪽 집에서 밥을 먹고(東家食) 잠을 잘 때에는 서쪽 집(西家宿)으로 간다는 쉬운 글자의 성어는 어엿한 고사가 있고 제법 여러 가지 뜻을 지닌다.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며 지내는 것을 이르기도 하고, 먹을 것과 잘 곳이 없이 의식주가 막막한 생활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곳저곳을 다니니 두 가지 좋은 일을 가지려 욕심내거나, 자기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 지조 없이 이리저리 빌붙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줄여서 東食西宿(동식서숙)이라고도 하고, 아침에는 북쪽의 秦(진)나라에, 저녁에는 남쪽의 楚(초)나라에 간다고 하여 朝秦暮楚(조진모초)라는 말도 쓴다.

중국 宋(송)나라의 李昉(이방, 昉은 밝을 방)이 편찬한 太平御覽(태평어람)이란 책에 인용되어 전한다. 1690종의 책을 인용하여 편찬한 55개 부문의 방대한 백과사서인데 太平總類(태평총류)였던 책이 임금이 모두 읽어 이런 이름을 얻었다는 그 책이다. 내용을 보자.

옛날 齊(제)나라에 혼기가 꽉 찬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다. 마침 두 곳에서 청혼이 들어왔는데 동쪽 집의 총각은 못 생겼으나 부자였고, 서쪽 집 아들은 인물이 훤했지만 집안이 매우 가난했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기가 난감해진 부모가 딸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서쪽 집으로 시집가고 싶으면 왼쪽 소매를 걷고, 동쪽 집의 총각과 혼인하고 싶으면 오른쪽 소매를 걷으라고 했다.

처녀는 망설이지도 않고 양쪽 소매를 다 걷자 부모가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밥은 동쪽 집에서 먹고 잠은 서쪽 집에서 자고 싶어요(願東家食而西家宿/ 원동가식이서가숙)’라고 대답했다. 처녀 입장에선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선 더 재미있는 고사가 있다. 조선시대의 인물들에 얽힌 일화를 모아 姜斅錫(강효석, 斅는 가르칠 효)이 엮은 ‘大東奇聞(대동기문)’의 내용이다. 太祖(태조) 李成桂(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뒤 공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

명기 雪中梅(설중매)도 참석하여 주흥을 돋웠는데 술 취한 어느 정승이 수작을 걸었다. 기생은 동쪽 집과 서쪽 집을 오간다 하니 오늘은 자신에게 수청 들라고 했다. 설중매는 동가식서가숙하는 기생과, 왕씨를 모시다 이씨를 모시는 정승 어른과는 궁합이 잘 맞겠다고 쏘아붙였다. 이 말을 들은 공신들마저 어쩔 줄 몰랐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284.html
kolaswqetsrq 11.02 15:51
대지약우大智若愚 – 큰 지혜는 어리석어 보인다.

대지약우(大智若愚) – 큰 지혜는 어리석어 보인다.

큰 대(大/0) 지혜 지(日/8) 같을 여(女/3) 어리석을 우(心/9)

사람에겐 누구나 쳇병이라는 것이 있다. 거짓으로 꾸며서 그럴 듯하게 보이려는 행위는 뿌리가 깊은 병통이다. 속담 ‘없는 놈이 있는 체 못난 놈이 잘난 체’란 말은 실속 없는 자가 유난히 허세를 부리는 것을 꼬집었다.

똑똑하지 못한 사람은 흔히 모르면서도 아는 체하고 없으면서도 있는 체하며 못난 주제에 잘난 체하는 면이 있다는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쳇병이 있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큰 지혜를 갖고 있으면서도(大智) 어리숙하게 보이는(若愚)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함부로 잔재주를 부리지 않으므로 겉으로는 어리석게 보인다는 성어다. 大智如愚(대지여우)라고도 한다.

이 말은 중국 北宋(북송) 때의 문장가 가족 三蘇(삼소) 중의에서도 제1의 시인이란 칭호를 받는 蘇東坡(소동파, 1037~1101) 작품에서 유래한다. ‘賀歐陽少師致仕啓(하구양소사치사계)’란 시의 내용을 보자. 정치가 겸 문인으로 이름을 떨쳤던 歐陽脩(구양수, 1007~1072)의 은퇴할 때 쓴 글이다.

‘대단히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는 듯하고,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듯하며, 아주 귀한 사람은 높은 자리에 있지 않더라도 영광을 누리고, 아주 어진 사람은 도인을 하지 않더라도 장수한다(大勇若怯 大智如愚 至貴無軒冕而榮 至仁不導引而壽/ 대용약겁 대지여우 지귀무헌면이영 지인부도인이수).’ 軒(헌)은 집의 난간이나 수레의 높은 곳을 말하고 導引(도인)은 도가의 양생법이라 한다.

똑같은 표현은 아니지만 老子(노자)의 ‘道德經(도덕경)‘에는 더욱 많은 비유가 있다. 매우 공교한 솜씨는 서투른 것같이 보인다는 大巧若拙(대교약졸)이 함께 나오는 제45장이다. 가장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은 마치 흠결이 있는 것 같지만(大成若缺/ 대성약결) 그 쓰임은 끝남이 없다.

가장 가득하게 찬 것은 마치 텅 빈 것 같지만(大盈若沖/ 대영약충) 다함이 없다. 가장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서툴러 보이며, 가장 뛰어난 말솜씨는 말더듬는 것같이 보인다(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대직약굴 대교약졸 대변약눌).

모두가 자기 장점을 내세우는 세상에 큰 재주를 떠벌릴 일은 아니지만 일부러 숨길 필요도 없겠다. 사회에 보탬이 된다면 기꺼이 재능을 보태야 한다. 그와 함께 어리석어 보인다고 사람까지 매도하지 말고 숨은 재능을 잘 발굴하여 실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도 작은 집단이나 큰 집단이나 지도자가 갖춰야 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933.html
kolaswqetsrq 11.02 15:52
여쾌등오與噲等伍 - 번쾌와 더불어 나란히 있다니, 한미한 자와 같이 하니 부끄럽다.

여쾌등오(與噲等伍) - 번쾌와 더불어 나란히 있다니, 한미한 자와 같이 하니 부끄럽다.

줄 여(臼/7) 목구멍 쾌(口/13) 무리 등(竹/6) 다섯사람 오(亻/4)

목구멍 噲(쾌)란 어려운 글자는 樊噲(번쾌)를 가리킨다. 번쾌가 등장한 성어 羞與噲伍(수여쾌오)에서 나왔듯이 미천한 자와 한 무리가 된 자신이 부끄럽다고 韓信(한신)이 한탄했던 것과 출전과 뜻이 같다.

중국 漢(한)나라 劉邦(유방)을 도와 건국에 지대한 공을 세운 한신이 어찌 개백정 출신의 번쾌와 더불어(與噲) 어깨를 나란히 하다니(等伍) 하며 한탄한 데서 나왔다. 처음 項羽(항우)의 휘하에 있다가 중용되지 못하자 유방에 온 뒤 중신 蕭何(소하)의 적극지원으로 대장군이 되어 전장에서 무적이었고 齊王(제왕)에 까지 올랐던 한신인 만큼 그렇게 수치를 느낄 만도 하다.

개 잡던 백정이었다고 번쾌를 함부로 보면 안 된다. 유방의 장인이 관상을 잘 봐 딸 呂雉(여치)와 맺게 한 것과 같이 번쾌에는 동생 呂嬃(여수, 嬃는 맞누이 수)를 줬다. 高祖(고조)와 동서이고 후에 呂后(여후)의 제부가 된다.

이런 배경보다 張飛(장비)가 연상되고 산적 두목과 같은 겉모습과 달리 윗사람에 예의가 바르고 아랫사람들도 잘 대우해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유방이 위기에 몰렸을 때마다 용감하게 포위를 뚫어 여러 번 구조했고 또 언변도 남달라 설득력이 있었다. 결정적인 것이 鴻門之宴(홍문지연)에서 항우와 함께 있던 유방을 번쾌가 칼춤을 추며 방어하여 구출한 것이다.

홍문에서 유방을 죽이려는 계략을 알고 칼과 방패를 들고 들어가 막아낸 樊噲龍楯擁(번쾌용순옹)이 그것이고, 관련된 고사가 더 있다. 고위급 회담장에 우락부락한 사나이가 항우 앞에 섰다. 항우가 가상히 여겨 큰 술잔을 내리자 사나이가 ‘한잔 술을 어찌 사양 하겠습니까(卮酒安足辭/ 치주안족사, 卮는 잔 치))‘ 하며 들이켰다.

이 정도이니 전장에서 계급이 무시되고 후에 한신과 번쾌가 동급의 제후로 봉해졌다. 한신이 번쾌의 집을 지날 때 깍듯이 대했으나 집을 나설 때 ’살아 생전 번쾌와 같은 반열이 되다니(生乃與噲等為伍/ 생내여쾌등위오)‘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史記(사기)‘ 淮陰侯(회음후)열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무뢰배의 가랑이 밑을 지날 정도로 胯下之辱(과하지욕)의 치욕도 인내할 줄 알고, 평정했던 제나라의 왕에 오르기까지 승승장구했던 한신은 거기까지였다. 천하를 삼분하라고 한 모사 蒯通(괴통, 蒯는 기름새 괴)의 계책을 의리에 어긋난다며 물리친 결과는 兎死狗烹(토사구팽)이었다.

화려했던 과거는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자신의 출신과 잘 나갈 때의 영광만 생각하고, 상대의 이전 별 볼 일 없었던 이력만으로 발전한 현재를 잊으면 낭패를 당한다. 경쟁자는 하루하루가 달라지니 刮目相對(괄목상대)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293.html
kolaswqetsrq 11.02 15:52
견리사의見利思義 - 이익을 보고 의리를 먼저 생각함

견리사의(見利思義) - 이익을 보고 의리를 먼저 생각함

볼 견, 이할 리, 생각 사, 옳을 의

見危授命(견위수명)을 따로 떼어 소개했을 때 나온 대로 눈앞에 이익을 보고(見利) 먼저 의리에 합당한지를 생각하라(思義)는 이 성어가 앞에 나온다. 공자님 말씀이라 유명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安重根(안중근) 의사다.

북간도와 상하이(上海) 등지에서 斷指會(단지회)라는 비밀 결사조직을 결성하고 항일 독립운동을 펼치던 안중근 의사가 106년 전 오늘(1909년 10월26일)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이등박문)를 사살했다. 순국할 때까지 뤼순(旅順/ 여순) 감옥에서 남긴 遺墨(유묵) 중에 보물 제569-6호로 지정된 것이 바로 이 글이다.

‘論語(논어) 憲問(헌문)편에서 제자 子路(자로)가 완성된 인간에 대해 여쭙자 孔子(공자)가 답한 이야기에서 나온다. 완전한 인격자가 되려면 모두 魯(노)나라의 대부인 臧武仲(장무중)의 지혜, 孟公綽(맹공작, 綽은 너그러울 작)의 무욕, 卞蔣子(변장자)의 용기, 제자 冉求(염구, 冉은 나아갈 염)의 재주를 갖고 예악을 겸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못할 때엔 ’이익 될 일을 보면 의로운가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래된 약속일지라도 평소에 한 그 말들을 잊지 않는다면 완성된 인간(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견리사의 견위수명 구요불망평생지언 역가이위성인의)‘이라고 덧붙였다. 기준을 낮춘 것에 목숨을 바치는 것이 들어 있으니 완성된 인간의 어려움을 알겠다.

見利思義(견리사의)와 비슷한 말에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한다는 顧名思義(고명사의)가 있고 이익 앞에서 의리를 잊어버린다는 見利忘義(견리망의)는 정반대의 뜻이다.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을 도와 천하를 차지하는데 도움을 줬던 酈商(역상, 酈은 땅이름 력)이 유방 사후 呂太后(여태후) 일족을 친분을 이용하여 제거한 것을 두고 후세 사람들이 이익에 어두워 의를 잊은 짓이라 손가락질한 데서 나왔다.

안중근 의사는 마음속에 나라를 생각하고 의리를 생각하는 것이 체화되었기에 목숨까지 바쳐 당일의 거사를 완수할 수 있었다. 이익 앞에서는 모두 작아지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라 하더라도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는 정치권이나 많은 것을 쌓아두고 더 이익을 탐하는 부유층의 행위에 대조되어 너무나 부끄럽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816.html
kolaswqetsrq 11.02 15:53
삼여독서三餘讀書 - 책을 읽기에 좋은 세 가지 여유 있는 시간

삼여독서(三餘讀書) - 책을 읽기에 좋은 세 가지 여유 있는 시간

석 삼(一/2) 남을 여(食/7) 읽을 독(言/15) 글 서(曰/6)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옛 선현들은 책을 읽는 독서의 중요성과 즐거움을 강조하는 좋은 글을 많이 남겼다. 우선 서양의 ‘독서는 완성된 사람을 만들고, 담론은 기지있는 사람을 만들고, 필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베이컨)나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데카르트)가 떠오른다.

동양에선 朱子(주자)의 讀書三到(독서삼도)가 책 읽을 때 온전히 집중하라는 心到(심도) 眼到(안도) 口到(구도)를 가리키고, 讀書三昧(독서삼매)는 세 가지가 아니라 잡념을 떠나서 오직 독서에만 정신을 모은 경지를 말한다. 여기에 더하여 책 읽기에 좋은 세 가지의 여유 있는 시간이란 뜻의 三餘讀書가 있다. 겨울과 밤과 비 올 때를 가리키며 讀書三餘(독서삼여)라고도 한다.

後漢(후한) 말기 董遇(동우)라는 사람이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격이 소박하고 말은 어눌했지만 배우기를 좋아하여 일하는 도중에도 손에서 책을 떼지 않았다. 형과 함께 농사를 짓고 또 행상을 하여 생계를 이어 가면서 경서를 익혀 明帝(명제) 때엔 벼슬자리에 나아갔다.

장관직에 오른 뒤에도 학문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아 ‘老子(노자)’의 주석서를 만들거나 ‘左傳(좌전)’을 분석했다. 동우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자 먼저 책을 백번 반복해서 읽어보면 뜻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강조했다. 바로 讀書百遍義自見(독서백편의자현, 見은 볼 견외 나타날 현)의 고사가 된 교훈이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면 이렇게 가르친다. ‘누구에게나 세 가지 여유가 주어져 있다. 겨울은 한해의 여유이고, 밤은 하루의 여유이며, 비가 올 때는 시간의 여유이다(當以三餘 冬者歲之餘 夜者日之餘 陰雨者時之餘/ 당이삼여 동자세지여 야자일지여 음우자시지여).’ ‘魏略(위략)’과 ‘三國志(삼국지)’ 王肅傳(왕숙전)의 주에 나온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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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54
삼가재상三可宰相 - 세 사람이 다 옳다고 한 정승, 성품이 아주 너그러운 사람

삼가재상(三可宰相) - 세 사람이 다 옳다고 한 정승, 성품이 아주 너그러운 사람

석 삼(一/2) 옳을 가(口/2) 재상 재(宀/7) 서로 상(目/4)

옳고 그른 것이나 좋고 나쁜 것을 단칼에 무 자르듯이 명쾌하게 가를 수는 없다. 사람에 따라 생각이 모두 다르고 기호에 따라 갈라지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꾀꼬리 울음은 듣기 좋고 개구리 우는 소리는 소음이라고 대부분이 여기지만 취향에 따라 반대일 수도 있고, 또 대자연의 큰 눈으로 본다면 모두 생명의 노래라 한 가르침도 있다.

세상사 이런 이치인데 남의 잘못은 사사건건 지적하고 자기의 주장만 옳다고 우긴다면 미움만 산다. 이와는 반대로 나쁜 일은 입 다물고 누구나 좋게 대한다면 到處春風(도처춘풍)이라 하고 거기서 더 나가 줏대가 없이 비위 맞추는 것이 되면 無骨好人(무골호인)이 된다.

세상 모든 일이 다 옳다고 하면 바로 黃喜(황희, 1363~1452) 정승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조선 초기 3대의 왕을 보필한 명재상 황희가 어느 때 조정에서 돌아오니 집안 여종이 서로 다투다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정승이 둘 다 옳다고 판정하고, 부인이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하자 그대도 옳다고 하여 세 사람이 다 옳다(三可)고 했단다.

전해 내려왔다는 여종 이야기 말고 딸과 며느리의 다툼은 朴趾源(박지원)의 ‘燕巖集(연암집)’에 실려 있다. 해충 이蝨/ 슬가 옷에서 생기는지 몸에서 생기는지 다투자 둘 다 옳다고 하고 부인이 핀잔하자 또 옳다고 했다는 이야기다. 옳고 그른 것은 중간에 있다고 한 眞正之見(진정지견)의 예화다.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란 好好先生(호호선생)은 중국에서 많이 쓴다는 말이다. 後漢(후한) 말기 세력 다툼으로 세상이 어지러울 때 司馬徽(사마휘)라는 사람에게서 나왔다 한다. 그는 누구에게나 ‘하오好/ 호’로 대답해 모든 게 좋다는 好好(호호)란 별명이 붙었다.

누가 병이 들었다고 해도 ‘하오’, 누가 상을 당했다고 해도 ‘하오’, 부인에게 지적당하자 역시 ‘하오’ 했다는 三好(삼호)선생이다. 사마휘는 하지만 천하를 보는 눈이 있어 蜀(촉)의 劉備(유비)가 인재를 구할 때 諸葛亮(제갈량)과 龐統(방통) 중 한 사람만 얻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초야에 묻힌 인재 伏龍鳳雛(복룡봉추)를 알아 본 눈이 있었다.

하는 말마다 옳다고 하여 言言是是(언언시시)란 말을 들었던 황희 정승은 몇 차례나 파직되고서도 18년간 국정을 관리한 능력을 보였다. 누구나 옳다고 해서 우유부단했다는 것보다 사람은 누구나 각각의 입장이 다르므로 그것을 인정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世宗(세종)의 성세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똑 같은 일을 하고서도 남은 이 잡듯 뒤지고 자기 잘못을 감싸며 큰소리치는 ‘내로남불’만 보는 오늘날엔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남에겐 봄바람, 자신에겐 엄격하게란 春風秋霜(춘풍추상)을 내세우고서 그것과 꼭 반대로 했다간 北風寒雪(북풍한설)이 기다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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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54
별무장물別無長物 – 필요한 물건 외에 남는 물건이 전혀 없다, 검소한 생활

별무장물(別無長物) – 필요한 물건 외에 남는 물건이 전혀 없다, 검소한 생활

다를 별(刂/5) 없을 무(灬/8) 긴 장(長/0) 물건 물(牛/4)

재물은 얼마가 있으면 만족할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모든 불행은 여기서 나온다. 그래서 깨우치는 동서양의 금언도 많다. 현명한 자가 재물이 많으면 그 뜻을 잃고, 어리석은 자가 재물이 많으면 그 과오를 더한다고 했다.

재화는 오물과 같이 쌓여 있을 때에는 냄새를 피우고, 뿌려졌을 때엔 땅을 기름지게 한다고도 말했다. 이 세상에 올 때 빈손으로 왔듯이 갈 때도 빈손으로 가는 空手來空手去(공수래공수거) 인생이다. 불교 禪宗(선종) 惠能(혜능) 조사의 偈(게)에서 나왔다는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이란 말은 본래 아무 것도 없었으니 그대로 지키는 무소유의 경지를 비유했다.

이런 성어보다는 덜하지만 아주 필수적인, 몸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 외에는 남아도는 물건(長物)이 더 이상 없다(別無)는 이 성어도 몹시 검소하거나 지극히 가난한 생활을 나타냈다. 중국 唐(당)나라 때 太宗(태종)의 지시로 房玄齡(방현령) 등이 편찬한 ‘晉書(진서)’에 유래가 실려 있다. 東晉(동진, 317~419) 시대에 王恭(왕공)이란 사람은 청렴하고 지조가 있어 주위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라며 칭찬하기 바빴다.

어느 때 부친 王蘊(왕온, 蘊은 쌓을 온)의 임지인 會稽(회계)지역으로 따라가 지내게 되었어도 검소한 생활은 변하지 않았다. 하루는 친척이자 막역하게 지내는 王忱(왕침, 忱은 정성 침)이 찾아와 반갑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왕침은 왕공이 앉은 회계지방의 특산 여섯 치나 되는 새 대자리를 보고, 많이 있으면 자기에게 한 장 달라고 했다. 그러자 즉석에서 응낙하고 왕공은 竹席(죽석)을 내주었다.

사실은 왕공도 그 한 장 뿐이어서 그 뒤로는 짚으로 엮은 방석을 깔 수밖에 없었다. 후일 사실을 알게 된 왕침이 자리가 많은 줄 알고 그랬다며 사과한 뒤 그 연유를 물었다. 왕공은 웃으며 ‘나는 평생 남아도는 물건이 없는 사람이라네(吾平生無長物/ 오평생무장물)’라고 대답했다.

모두들 꼭 필요한 물건 외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그 이상 좋을 수 없는 사회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다. 그렇더라도 정당하지 않게 재산을 불려 나갈 때는 지탄받기 마련이다. 특히 부유층이나 국민의 세금을 쓰는 공직자들은 이 말을 명심해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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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55
파증불고破甑不顧 - 깨진 시루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지나간 일은 깨끗이 단념하다.

파증불고(破甑不顧) - 깨진 시루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지나간 일은 깨끗이 단념하다.

깨뜨릴 파(石/5) 시루 증(瓦/12) 아닐 불(一/3) 돌아볼 고(頁/12)

요즘은 가정집에서 시루나 독을 구경하기 힘들다. 시루는 떡을 찌는데 쓰는 둥근 질그릇으로 아래쪽에 물이 잘 빠지도록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독은 장독을 먼저 떠올리듯 간장, 된장이나 술, 김치 등을 보관하는 큰 질그릇이다. 떡 방앗간이나 냉장고가 편리한 요즘은 속담 등 옛말에서나 남았다.

‘시루에 물 퍼붓기’는 구멍 뚫린 시루에 물 붓는 족족 새 버리니 헛일이다. 如甑汲水(여증급수)로 한역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속담과 똑 같다. 아무리 힘이나 밑천을 들여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일을 비유할 때 적당한 비유다. 시루가 들어가는 또 다른 성어 깨진 시루(破甑)는 돌아보지 않는다(不顧)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은 깨끗이 단념하란 뜻이다.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 때의 宋(송)나라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에 실린 孟敏(맹민)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자가 叔達(숙달)인 맹민이 어느 때 시루를 지고 가다 떨어뜨려 깨졌는데 뒤돌아보지도 않고 갈 길을 갔다.

지역의 명사 郭泰(곽태)란 사람이 연유를 물었더니 ’시루가 이미 깨졌는데 돌아본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甑以破矣 視之何益/ 증이파의 시지하익)?‘하고 답한다. 곽태는 맹민의 대범하고 과단성 있는 행동에 학문을 권유해 훗날 명성을 떨치게 됐다.

이 이야기에서 떨어뜨린 시루 墮甑不顧(타증불고)나 맹민의 자를 써 叔達破甑(숙달파증)이라고도 쓴다. 처세 격언서 ’增廣賢文(증광현문)‘에는 ’이미 떨어져 깨진 시루 되돌아본들 어찌 하겠는가(瓦甑旣墮 反顧何爲/ 와증기타 반고하위)‘라고 나온다.

독에 관해서는 반대의 이야기가 있다. 옹기장수가 독을 팔러 장에 가다가 길에서 잠이 들었는데 많이 팔아 큰 부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기분 좋아 기지개켜다 지게를 넘어뜨려 독이 왕창 깨졌다. 실현성이 없는 허황된 계산을 ‘독장수 구구’, 甕算(옹산)이라 한다. ‘독을 보아 쥐를 못 친다’는 말은 投鼠忌器(투서기기)라 하여 해가 되는 것을 없애버려야 하나 자기에게 손해가 올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다.

과감하게 독을 깨뜨린 破甕救兒(파옹구아) 일화는 北宋(북송)의 司馬光(사마광)이 어릴 때부터 비범함을 일러준다. 같이 놀던 꼬마가 물이 가득한 독에 빠졌는데 어른들이 망설이는 사이 돌로 깨뜨려 구했다는 내용이다.

화려한 세월이 영원히 계속되는 줄 아는 사람은 꽃이 지지 않을 것이라며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을 모른 척 한다. ‘죽은 자식의 귀 모양 좋다 하지 말라’란 속담이 잘 말해준다. 이미 잃어버렸거나 다 틀어진 일을 놓고 자랑하거나 아까워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 과거에 연연해서 좋은 일이 다시 올 것만 기대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가슴만 탄다.

‘대나무 숲에 바람이 지나가도 소리는 남지 않고(風過而竹不留聲/ 풍과이죽불류성), 못 위로 기러기가 날아간 뒤 그림자가 남을 리 없다(雁去而潭不留影/ 안거이담불류영).’ 菜根譚(채근담) 어록이다. 이미 끝난 일은 깨끗이 잊는 사람이 새 출발을 잘 할 수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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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55
부화뇌동附和雷同 - 줏대 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 움직이다.

부화뇌동(附和雷同) - 줏대 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 움직이다.

붙을 부(阝/5) 화할 화(口/5) 우레 뢰(雨/5) 한가지 동(口/3)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고집불통이 있는가 하면 자기 주관이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이 있다.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 거름 지고 나선다’는 속담 속의 사람이 그렇다. 동물로 치면 蝙蝠之役(편복지역)이란 말이 있듯이 쥐도 새도 아니면서 편리한 대로 양쪽 편에 모두 낄 수 있는 박쥐를 가리킨다.

또 한 마리의 개가 짖으면 온 동네 개가 짖는 一犬吠形 百犬吠聲(일견폐형 백견폐성)이란 말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주 쓰는 모두 함께 맞춰(附和) 우레 소리를 울린다(雷同)는 이 성어가 가장 알려졌다. 雷同附和(뇌동부화), 附付雷同(부부뇌동), 阿附雷同(아부뇌동)이라 써도 같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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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和(부화)는 주견이 없이 경솔하게 남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고, 雷同(뇌동)은 우레가 울리면 만물이 이에 따라 울리는 것이다.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뒤 사리를 따져 옳고 그름을 생각해 보지도 않고 경솔하게 따르는 것을 비유했다.

뇌동만으로도 이런 뜻을 온전하게 가졌는데 뒤에 부화가 첨가되어 성어가 됐다. 이처럼 일상에 쉽게 쓰는 이 말은 실제 ‘禮記(예기)’에서 나왔으니 유래가 깊다. 몸가짐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설명하는 曲禮(곡례)편의 내용을 보자. ‘너의 용모를 바르게 하고 말씀을 들을 때는 공손히 하라.

다른 사람의 주장을 자기주장인 것처럼 말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자기의 생각 없이 무조건 따라 하지 말라(正爾容 聽必恭 毋勦說 毋雷同/ 정이용 청필공 무초설 무뇌동).’ 勦는 끊을 초, 표절한다는 뜻도 있다.

‘論語(논어)’의 子路(자로)편에 나오는 ‘군자는 화합하되 동조하지 않고, 소인들은 동조하되 화합할 줄 모른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에서 이익을 위하여 상대방의 생각에 줏대 없이 뇌동하는 것이 소인이라 했다. 여기서 同(동)이 뇌동인 셈이다.

어떤 일을 해결할 때 여러 의견을 구하면 목소리 큰 사람의 생각에 동조하기 쉽다. 자기 방식이 옳다고 중뿔나게 고집하는 사람에 치여 마지못해 따라가는 소수도 있다. 자기 의견을 말하지 못하면 옳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때 줏대 없이 따라간 것이 된다. 상급자도 잘 살펴야 하겠지만 동조한 사람의 책임도 크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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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56
다 바람 같은거야

다 바람 같은거야

뭘 그렇게 고민 하는거니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 순간이야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바람이고

오해가 아무리 커도 비바람이야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 일뿐이야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 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 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돌지

다 바람이야

이 세상에 온 것도 바람처럼 온다고

이 육신을 버리는 것도 바람처럼 사라 지는거야

가을바람 불어 곱게 물든 잎을 떨어뜨리 듯

덧없는 바람 불어 모든 사연을 공허하게 하지

어차피 바람 뿐인걸 굳이 무얼 아파하며 번민하니

결국 잡히지 않는 게 삶 인걸 애써 무얼 집착하니

다 바람이야

그러나 바람자체는 늘 신선하지

상큼하고 새큼한 새벽바람 맞으며

바람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바람처럼 살다 가는 게 좋아

- 묵연스님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413.html
kolaswqetsrq 11.02 15:57
◇ ‘암세포’ 씨를 말리는 슈퍼 항암음식

◇ ‘암세포’ 씨를 말리는 슈퍼 항암음식

스웨덴 캐롤린스카 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암은 유전적 요인보다 생활습관 같은 후천적 요인으로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따라서 암 예방을 위해서는 평소 식습관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수 있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암세포 씨를 말리는 무서운 음식 15가지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김치

김치는 재료 자체가 마늘과 생강, 파, 무 등 주로 항암식품이고 발효로 생긴 유산균은 대장암예방에도 효과적이다. 정제염보다는 천일염이나 죽염으로 김치를 담갔을 때, 그리고 저온에서 발효했을 때 상대적으로 효과가 좋다.

2. 마늘

지난 2002년 미국의 ‘타임’지가 선정한 10가지 건강식품에 포함됐고, 미국 국립암연구소에서는 항암 작용 있는 48개 식품 중 첫 번째로 마늘을 선정했다. 마늘은 콜레스테롤 합성 효소를 억제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피를 맑게 한다. 면역 작용을 높이고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마늘에 포함된 알리신은 1, 2차 세계대전 때 항생제로 사용할 정도로 병균의 증식을 억제한다.

3. 고추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캅사이신이 헬리코박터균의 증식을 억제해 결과적으로 위암 예방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최근에는 이 물질의 항산화 작용이나 염증 억제 효과도 발표된 바 있다. 멕시코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매운 고추 섭취량이 많지만, 위암 빈도는 다른 남방 민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4. 된장

된장의 주원료인 콩의 항암 효과에다 발효 과정을 거치며 생긴 유익한 물질들이 더해져 콩보다 좀더 높은 암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된장을 얻기 위해 콩을 발효시키면 아미노산이 많이 함유되고, 아미노산이 된장의 암 예방 효과에 큰 몫을 담당한다.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식물 에스트로겐은 각종 암뿐 아니라 여성의 골다공증이나 폐경기 증후군 예방에도 좋다.

5. 현미콩밥

현미는 백미에 비해 섬유소가 약 12배, 그리고 비타민이 3~4배 정도 많이 들어 있다. 예전에는 현미가 거칠어서 소화가 잘 안 된다고 전해졌지만 오히려 현미 같은 통곡식이 위 점막의 세포를 복구한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또한 콩은 풍부한 에스트로겐을 함유하고 있어 여성의 유방암예방에 효과적이고 검은콩은 항산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6. 우유

우유에 들어있는 칼슘은 위 점막을 보호하고, 나트륨과 칼륨 이온과는 달리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우유는 암 중에서도 특히 위암과 간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

7. 토마토

토마토 같은 녹황색 야채는 리코펜 성분이 많이 들어있어 항암 작용을 도와준다. 특히 소화기 계통의 암과 폐암에 대한 예방 효과가 크다.

8. 율무

본초강목에 의하면 율무는 비장을 튼튼하게 하고, 폐를 보호한다고 기록돼 있는데 최근 율무의 항암 작용이 밝혀졌으며 실제 임상적으로 좋은 결과를 나타내고 있는 새로운 항암 식품이다.

9. 샐러리

샐러리의 단백질을 구성하고 있는 아미노산 중에는 글리신과 메치오닌이 많은데, 이 물질들은 지방간을 예방해주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간암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이다.

10. 녹차

녹차에 들어있는 플리페놀류 성분이 암세포의 자살을 유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바로 녹차의 떫은 맛을 내는 성분이 폴리페놀의 일종인 카테킨 성분인데 이것이 바로 암세포가 증식하는데 필수적인 효소의 활성에 영향을 주지만 정상효소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않아 암 활성을 억제하여 EGCG 성분이 암세포의 단백질에 들러붙어 증식을 억제한다. 특히 혈액암에 효과적이다.

11. 시금치

시금치에는 암을 저지하는 엽산과 엽록소가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다. 그리고 풍부한 비타민 A는 피부와 점막의 활동을 높여서 병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준다. 특히 폐암에 효과적이다.

12. 양송이버섯

양송이에는 단백질 함량이 버섯 중의 최고이며 우유와 비슷한 양의 단백질이 존재하므로 암환자에게 아주 유용한 식품이다. 그리고 암으로 발전하는 단계를 억제하는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다. 이것의 추출물은 간암 예방에 탁월하다.

13. 미역

미역에는 부인병을 예방하는 알긴산이 들어있다. 또한 뉴코코이단이라는 성분은 암세포를 없앤다. 특히 자궁암에 효과적이다.

14. 당근

당근에 있는 카로틴이라는 성분은 암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야채 중에서 비타민 A를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는 식품이기도 하다.특히 식도암에 효과적이다.

15. 검은 콩

일반 콩에 함유된 이소플라본보다 검은콩의 이소플라본의 노화 억제와 항암 능력은 4배 이상 강하다. 특히 유방암의 예방과 치료에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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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58
◇ 나이보다 젊게 사는 법

◇ 나이보다 젊게 사는 법

1. 물을 잘 마셔라.

식사하기 전 30분 전부터 식사하는 도중, 식사 뒤1시간까지는 물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이때 물을 많이 마시면 포도당의 흡수 속도가 빨라져 혈당과 인슐린 농도도 높아지는데, 다른 혈중 영양소는 모두 지방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또한 물을 위산을 희석시켜 소화를 방해한다. 그러나 이 시간대 외에는 하루 6~8컵 가량 물을 충분히 마셔주는 것이 신진 대사와 노폐물 분비를 촉진해 다이어트에도 좋다.

2. 바르게 걸어라.

걷기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정도로 당뇨, 고혈압, 심장병 등 성인병의 80퍼센트를 예방할 수 있다. 또 걸으면 뇌세포가 활성화되면서 스트레스도 사라진다. 체지방은 걱기 시작해서 15분 정도 지나야 분해되기 시작하므로 최소한 30~40분 정도 쉬지 않고 걸어야 효과적이다. 또 걸을 때에는 가볍게 숨이 찰 정도의 속도로 걷는다. 걷고 난 뒤에는 저지방 우유나 요구르트 등 유제품으로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근육의 피로 회복을 돕는다.

3. 소리내어 웃어라.

독일의 한 의학 전문지에 의하면 웃음은 소화액 분비를 촉진시켜 식욕을 생기게 하고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웃는지 진지하게 따져보고 재미난 이야기를 기억해 두었다가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과 나누어 보자. 가까운 사람끼리 나누는 칭찬과 웃음은 어떤 보약보다도 건강에 이롭다.

4. 수면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창조적인 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하루 8시간 정도의 잠을 자야 한다. 깊은 수면에 방해가 되는 커피는 오후 2시 이후엔 마시지 말고 흡연, 음주 등을 멀리한다. 또 취침 전 3~4시간 사이에는 심한 육체 활동을 삼간다. 잠자리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면 빛과 소리가 수면에 나쁜 영황을 준다는 점도 잊지 말자.

5. 사랑하면 신난다.

긴장, 초조, 걱정, 짜증 등 부정적인 감정은 질병을 일으키는 요소 중 하나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좋아할 만한 것을 찾자. 평생 살면서 사랑하는 것 한 가지만 있어도 증오의 감정이 싹틀 수가 없다.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모든 것이 신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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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59
태평연월太平煙月 - 근심 걱정이 없고 안락한 시절

태평연월(太平煙月) - 근심 걱정이 없고 안락한 시절

클 태(大/1) 평평할 평(干/2) 연기 연(火/9) 달 월(月/0)

의식주에 아무런 걱정이 없으면 그 이상 좋은 세상이 없다. 그 옛날 중국 堯(요)임금 때 한 노인이 음식을 머금고 배를 두드리며 含哺鼓腹(함포고복)의 擊壤歌(격양가)를 부른 때다. 天下太平(천하태평)의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나라도 안정돼 太平天下(태평천하)가 된다.

堯舜(요순) 시절이 다시 오지 않아서인지 바라는 욕심이 더 커져서인지 세상이 평화롭고 안락한 때를 나타내는 성어가 아주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익숙한 말을 고른다면 나라가 안정된 데다(太平) 연기에 어린 은은하고 평화로운 달빛(煙月)이란 성어가 바로 떠오른다. 합쳐져 사용된 전고는 불확실해도 우리나라에서 특히 많이 사용됐다.

먼저 고려 말 三隱(삼은)의 한 사람 冶隱(야은) 吉再(길재)의 ‘懷古歌(회고가)’가 손꼽힌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500년이나 흥성하던 고국이 멸망하니 태평한 시절이 꿈같다는 시조다. 조선조 문장가들도 이 말을 써서 멋진 표현을 남겼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우리 고전DB에서 몇 수만 부분 인용해 보자. ‘늙지 않는 세월은 만년을 기약하고(難老光陰期以萬/ 난로광음기이만), 태평 세상 연월은 천년을 넘어가리(太平煙月度於千/ 태평연월도어천)’丁若鏞/ 정약용, ‘한해 동쪽까지 강역을 다 개척하니(拓盡提封瀚海東/ 척진제봉한해동), 태평한 세월이라 수루가 텅 비었네(太平煙月戍樓空/ 태평연월수루공).’李睟光/ 이수광, 睟는 바로볼 수.

단어를 분해하여 보면 太平(태평)은 ‘莊子(장자)’에서 찾을 수 있다. 지혜와 능력 있는 자가 바르게 만물을 다스리고 도리로써 몸을 닦으면 ‘지모는 쓸데가 없어져 자연 상태로 돌아가게 되니(知謀不用 必歸其天/ 지모불용 필귀기천), 이를 태평이라 하고 정치의 최고 경지(此之謂太平 治之至也/ 차지위태평 치지지야)’라고 했다. 外篇(외편) 天道(천도)에 있다. 뜻이 좋아서인지 중국 왕조의 年號(연호)에 단골로 썼고 지역이름도 많다.

煙月(연월)은 唐(당)나라 張九齡(장구령)이 시 ‘贈王司馬(증왕사마)’에 여유 있고 태평함을 상징하는 말로 처음 썼다고 하는데 이 말도 조금 후세에 당에서 이름 떨쳤던 신라 崔致遠(최치원, 857~?)의 묘사가 더 좋다. ‘선가의 시와 술의 흥취에 흠뻑 젖어(占得仙家詩酒興/ 점득선가시주흥), 한가히 연월 읊으며 봉호를 생각하네(閒吟煙月憶蓬壺/ 한음연월억봉호).‘ 蓬壺(봉호)는 바다 속 신선이 산다는 蓬萊山(봉래산).

모두가 걱정 없이 만족하며 살게 되면 길에 떨어진 남의 물건도 줍지 않는 道不拾遺(도불습유)의 세상이 온다. 밤이 되어도 대문을 열어놓는 夜不閉戶(야불폐호)의 세상이 되고, 땅에 줄을 그은 옥이라도 죄수들이 달아나지 않는 劃地爲牢(획지위뢰)의 평화가 온다. 글자로만 보면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하지만 서로의 욕심이 지나쳐 지지고 볶는다. 남을 인정하지 않으면 좋은 세상은 하세월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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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5:59
이군삭거離羣索居 - 무리를 떠나 홀로 쓸쓸하게 지냄.

이군삭거(離羣索居) - 무리를 떠나 홀로 쓸쓸하게 지냄.

떠날 리(隹/11) 무리 군(羊/7) 찾을 색, 노 삭(糸/4) 살 거(尸/5)

‘가장 강한 인간은 혼자 사는 고독한 사람’이라는 서양 격언이 있지만 고독을 즐기는 사람은 드물다. 가장 무서운 고통이 고독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떠한 심한 공포라도 함께 있으면 견딜 수 있다고 했다. 잘 나가다가 끈 떨어져 세력을 잃으면 외로운 신세라는 뜻의 ‘날 샌 올빼미 신세’가 된다.

적군 속에 고립된 성과 서산으로 지는 해라는 의미의 孤城落日(고성낙일)은 세력이 다하고 남의 도움도 바랄 수 없는 매우 외로운 처지를 가리킨다. 함께 있던 무리를 떠나(離羣) 홀로 쓸쓸히 지낸다(索居)는 이 성어도 고독하기는 마찬가지다. 離索(이삭)이라 줄여 말하기도 한다.

이 말은 孔子(공자)의 제자 子夏(자하)와 관계있다. 공자와 고락을 함께 하고 각 분야에서 뛰어난 10명의 제자를 孔門十哲(공문십철)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포함되는 자하는 문학에서 뛰어났다. 西河(서하)라는 지역에서 제자들을 길렀고 魏文侯(위문후)의 스승이기도 했다. 그런데 자하라고 하면 喪明之痛(상명지통)의 성어가 떠오를 만큼 아들을 먼저 보낸 불행도 겪었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너무나 슬픈 나머지 시력을 잃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天崩(천붕), 地崩(지붕)이라 일컫는 부모상보다 평생 가슴에 새겨지는 자식의 죽음이 더 아프고 오래 간다는 말이다.

자하가 아들을 보내고 오랫동안 통곡하여 시력까지 잃었다. 역시 공자의 제자로 효행으로 이름 높은 曾子(증자)가 조문을 왔다. 증자가 벗이 시력을 잃으면 그를 위해 곡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며 서럽게 곡을 했다. 이 말을 듣고 자하는 자신은 죄가 없는데 이런 불행을 안겨 주었다고 하늘을 원망하며 더욱 섧게 울었다.

그러자 증자는 서하의 백성들이 스승을 의심하게 했고, 부모상을 당했을 때보다 더 애통해했고, 자식 잃고 시력을 잃을 정도로 슬퍼하니 죄가 크다고 했다. 그러자 자하가 뉘우쳤다. ‘내가 잘못했네, 내가 벗들을 떠나 너무 오래 혼자 생활했으니 이리 되었네(吾過矣 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 오과의 오리군이삭거 역이구의).’ 유가의 경전 ‘禮記(예기)’ 檀弓(단궁) 상에 나온다.

혼자서도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분명 있다. 이런 사람의 능력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면 더 큰 업적을 낼 수 있다. 하지만 나만 잘 났다고 상대와 협력할 뜻이 전혀 없다면 모두가 손해다. 팽팽히 맞서기만 하는 정치권에서 많이 본다. 더 외로워봐야 알 듯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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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00
다행불의 필자폐多行不義 必自斃 - 나쁜 짓을 많이 하면 스스로 망한다.

다행불의 필자폐(多行不義 必自斃) - 나쁜 짓을 많이 하면 스스로 망한다.

많을 다(夕/3) 다행 행(干/5) 아닐 불(一/3) 옳을 의(羊/7)

반드시 필(心/1) 스스로 자(自/0) 죽을 폐(攵/14)

의롭지 않은 일을 많이 행하면(多行不義) 반드시 스스로 망하게 된다(必自斃)는 말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면서 대구로 생각하며 같이 떠올리는 것이 반대의 뜻인 積善之家 必有餘慶(적선지가 필유여경)이다. 하지만 ‘선을 쌓는 집안은 반드시 집안에 경사가 따른다’는 이 성어는 ‘착하지 못한 일을 행한 집안은 필히 재앙이 찾아온다’는 積不善之家 必有餘殃(적불선지가 필유여앙)이 따라붙고 周易(주역)의 文言傳(문언전)에 나온다.

나쁜 일을 많이 하면 제 스스로 죽는다는 무서운 경구는 전하는 시기는 비슷해도 출전은 다르다. 魯(노)나라 左丘明(좌구명)이 春秋(춘추)를 해석한 ‘左氏傳(좌씨전)’에서 비롯됐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鄭(정)나라 莊公(장공)은 제후국으로 세력을 떨쳤으나 가족문제로 고심이 컸다. 어머니 武姜(무강)이 잠자고 있을 때 자신이 거꾸로 태어나 고생을 시켰다고 寤生(오생)이라 부르며 미움을 받았다. 뿐 아니라 뒤에 난 동생 段(단)을 편애하여 부왕에게 태자를 바꾸도록 여러 차례 호소했어도 실패했다.

장공이 즉위한 뒤 무강은 다시 동생 단에게 요지를 나눠주도록 강권하여 도성 京(경)을 봉토로 할양했다. 모후의 미움이 오래 지속돼도 장공은 청을 잘 받들었다. 京城大叔(경성태숙, 大의 이 때의 훈은 클 태)으로 불린 단과 어머니 무강은 왕위를 빼앗기 위해 모의하고 군사들을 비밀리에 모아 훈련시켰다.

대부 祭仲(제중)이 이 음모를 알아채고 장공에게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간했다. ‘풀도 무성하면 없애버리기 어려운데, 총애하는 왕의 동생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蔓草猶不可除 况君之寵弟乎/ 만초유불가제 황군지총제호)?’ 장공은 그래도 느긋했다.

‘바르지 못한 일을 많이 하게 되면 반드시 스스로 멸망하는 법이니 그대는 잠시 기다리시오(多行不義 必自斃 子姑待之/ 다행불의 필자폐 자고대지).’ 隱公(은공) 원년조의 내용이다. 단이 무강과 내응하여 공격할 시기를 장공은 꿰뚫고 있다가 재빨리 역습하여 멸망시켰다. 불의를 저지르다 이웃나라로 도주한 단은 자결했다.

모후 무강의 유명한 후일담도 있다. 계속 미움 받던 맏아들도 어머니를 외딴 성에 가두며 黃泉(황천)에 가기 전에는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곧 후회한 장공이 물이 흐르는 땅굴을 파 그 속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란 속담이 통하지 않은 어머니, 왕위를 찬탈하려던 동생을 죽게 하고도 장공은 후일 큰 비난을 받지 않았다. 핍박한 것이 아니라 불의를 계속 저지른 결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작은 잘못이라도 계속 저지르면 필히 하늘이 벌준다는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869.html
kolaswqetsrq 11.02 16:00
오미사악五美四惡 - 다섯 가지 미덕과 네 가지 악행.

오미사악(五美四惡) - 다섯 가지 미덕과 네 가지 악행.

다섯 오(二/2) 아름다울 미(羊/3) 넉 사(囗/2) 악할 악(心/8)

사람마다 정치를 지긋지긋하게 생각하지만 그것을 떠나서는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 나라를 다스리고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며 갈등과 이해를 조정하고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려는 작태를 보여 비난받는 것이다.

孔子(공자) 말씀에도 정치 얘기가 많다.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政者正也/ 정자정야)’이라고 季康子(계강자)에게 일갈했고(顔淵/ 안연편), ‘가까이 있는 사람은 기뻐하고 먼 데 사람들은 찾아오도록 하는 것(近者說 遠者來/ 근자열 원자래)’이라고 葉公(섭공)에 조언했다(子路/ 자로 편). 說은 말씀 설, 기뻐할 열, 葉은 잎 엽, 고을이름 섭.

정치를 할 때 다섯 가지 미덕(五美)을 높이고 네 가지 악행(四惡)을 물리치면 잘 할 수 있다고 가르친 이 성어는 ‘論語(논어)’ 堯曰(요왈)편에 나온다. 공자의 제자 子張(자장)이 어떻게 하면 정치에 잘 종사할 수 있느냐고 여쭈어보자 尊五美屛四惡(존오미병사악)이라고 답한다. 屛은 병풍이란 뜻 외에 물리친다는 뜻도 있다.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자장이 구체적인 가르침을 구하자 설명이 따른다. 다섯 가지 높일 것은 ‘은혜를 베풀되 낭비하지 않고, 일을 시키면서도 원망사지 않고, 뜻을 이루려 하면서도 탐욕은 없고, 느긋하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은 것(惠而不費 勞而不怨 欲而不貪 泰而不驕 威而不猛/ 혜이불비 노이불원 욕이불탐 태이불교 위이불맹)’이라 했다.

이어 네 가지 악행은 ‘가르쳐주지도 않고 잘못했다고 죽이는 것은 학대, 주의를 주지도 않고 결과만으로 성공을 보려는 것은 포악, 명령은 태만히 하고 기일만 재촉하는 것은 해치는 것, 사람들에게 고르게 나눠주지 않고 출납을 인색하게 하는 것은 쩨쩨한 벼슬아치(不敎而殺謂之虐 不戒視成謂之暴 慢令致期謂之賊 猶之與人也 出納之吝謂之有司/ 불교이살위지학 불계시성위지포 만령치기위지적 유지여인야 출납지린위지유사)’라고 했다. 단체의 사무를 맡아보는 직무 有司(유사)는 바른 도리를 모르는 옹졸한 벼슬아치를 뜻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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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01
일전불치一錢不値 – 한 푼의 값어치도 없다.

일전불치(一錢不値) – 한 푼의 값어치도 없다.

한 일(一/0) 돈 전(金/8) 아닐 불(一/3) 값 치(亻/8)

옛날 단위로 엽전 한 닢이 한 푼이다. 보잘 것 없거나 터무니없는 일을 이를 때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다’고 말한다. 한 푼(一錢)의 가치도 없다(不値)는 이 말은 아무 데도 쓸모없거나 조금의 값어치도 없을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가치를 따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한 푼 돈을 우습게 여기면 한 푼 돈에 울게 된다’란 속담이 말하는 대로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하찮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 성어도 사람을 대놓고 한 푼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가 결국 목숨까지 내놓게 된다. 値는 直으로도 쓰고, 不値一文(불치일문), 不値一錢(불치일전)도 같은 뜻이다.

後漢(후한)의 장군 灌夫(관부)는 원래 張(장)씨였다가 부친 때 개국 공신 灌嬰(관영)의 가신이 되어 성을 바꿨다. 관부는 사람됨이 강직하고 호기가 있어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는 아첨하지 않고 대놓고 업신여겼다. 반면 지위가 낮은 사람들에겐 자신과 동등하게 대우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관부는 술을 좋아하여 취하면 상관도 없었다. 당시 6대 황제 景帝(경제)의 외척 竇嬰(두영, 竇는 구멍 두)과 친했는데 왕의 처족 田蚡(전분, 蚡은 두더지 분)과 세력다툼에서 밀리고 있었다.

어느 때 승상 전분이 연회를 베푼 날 두영의 강권으로 참석했다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관부가 권하는 술을 전분이 거절하여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그 화살이 친척 灌賢(관현)에게 향했다. 잔을 관현에게 돌렸는데 마침 그는 程不識(정불식)이란 장군과 귓속말을 주고받느라 관부를 보지 못했다.

노발대발한 관부는 ‘평소 정불식이 일전의 가치가 없다고 하더니(生平毀程不識不直一錢/ 생평훼정불식불직일전)’ 오늘 이렇게 어른이 술을 권하는데 귓속말이나 주고받느냐며 호통 쳤다. 잔치는 난장판이 되고 전분에 더욱 미움을 사 결국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史記(사기)’ 魏其武安侯(위기무안후) 열전에 실려 있다.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말에는 무시해도 된다. 술주정이거나 모든 사람이 지탄하는 말에는 가치가 없게 마련이다. 이럴 때는 흘려들을 일이지만 소수자의 절박한 소리는 아무리 작은 목소리라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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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02
경여홍모輕如鴻毛 - 가볍기가 기러기 털과 같다, 아주 하찮은 것

경여홍모(輕如鴻毛) - 가볍기가 기러기 털과 같다, 아주 하찮은 것

가벼울 경(車/7) 같을 여(女/3) 기러기 홍(鳥/6) 터럭 모(毛/0)

중국의 史聖(사성)으로 불리는 司馬遷(사마천, 기원전 145년~80년)은 동양을 넘어 세계 역사서의 걸작 ‘史記(사기)’를 남겼다. 孔子(공자)의 春秋(춘추)와 같이 연대순으로 기록하는 編年體(편년체) 역사서에서 제왕의 연대기 本紀(본기)와 뛰어난 인물의 일대기 列傳(열전)을 중심으로 한 紀傳體(기전체)의 효시로 꼽힌다.

전설 속의 黃帝(황제)부터 3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130권, 52만6000자에 이르는 방대한 양에 압도되기보다 치욕을 이기고 절대 역사서를 완성한 점과 史筆昭世(사필소세), ‘역사가의 붓이 세상을 밝힌다’는 집필정신이 더욱 정사의 모범으로 칭송받는다.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문학적인 가치도 인정받는데 그 위에 일상의 고사성어 약 25%가 여기서 유래한다니 놀라울 정도다.

臥薪嘗膽(와신상담), 兎死狗烹(토사구팽) 등 고사를 설명한 성어가 대부분인데 다른 글에서 내려오는 것도 제법 있다. 기러기의 털(鴻毛)처럼 가볍다(輕如)는 이 말은 하찮은 것을 나타낼 때의 비유다. 앞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는 戴盆望天(대분망천)과 같이 ‘報任少卿書(보임소경서)’란 글에 실려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사마천은 匈奴(흉노)에 항복한 친구 李陵(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宮刑(궁형)의 치욕을 당했다. 그래도 목숨을 부지한 것은 오직 太史(태사)인 가업을 이어 사서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죽은 듯이 보내는 사마천에게 또다시 任安(임안)이란 친구가 도움을 요청했다.

임안은 前漢(전한) 武帝(무제)때 일어난 巫蠱(무고, 蠱는 독벌레 고)의 난에 휩쓸려 억울한 죽음을 눈앞에 둔 처지였다. 하지만 사마천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처지라 그의 자인 少卿(소경)에 보내는 글에서 구구절절 이해를 구했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은 이렇다.

‘사람은 어차피 한번은 죽게 마련인데(人固有一死/ 인고유일사), 어떠한 사람에게는 태산과 같이 무거울 것이요(或重於泰山/ 혹중어태산), 또 어떤 사람에게는 기러기 털처럼 가벼울 것입니다(或輕於鴻毛/ 혹경어홍모).’ 泰山鴻毛(태산홍모)라 하여 무겁고 가벼운 것을 대비하기도 하는데 죽음의 무게를 다루면서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사마천은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생식기를 잘리는 치욕을 당하고서도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하더라도 숱한 소들의 몸에 있는 털 하나가 없어지는 九牛一毛(구우일모)로 여겨질 터이니 구차하게 이은 생명이 태산보다 더 큰 위업을 이뤄 복수한 셈이 됐다.

남을 위한 일이나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이처럼 뚜렷한 목적을 잊지 않는다면 커다란 성과를 남긴다. 또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젊은이들이 고된 삶을 이겨내는데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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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02
줄탁동기啐啄同機 - 안에서 밖에서 동시에 알을 쪼다.

줄탁동기(啐啄同機) - 안에서 밖에서 동시에 알을 쪼다.

지껄일 줄(口-8) 쪼을 탁(口-8) 한가지 동(口-3) 틀 기(木-12)

글자도 어렵고 뜻도 심오한 이 성어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아마도 김종필 전 총리가 신년휘호로 쓴 이후일 것이다. 한학에 밝은 김 전 총리가 정치적 고비마다 심경을 성어로 나타냈는데 이 말은 1997년 대선 정국에서 나왔다. 알에서 깨어 나오기 위해 알 속의 병아리가 부리로 껍질을 쪼는 것을 啐(줄)이라 하고 어미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쪼는 것을 啄(탁)이라 한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화가 안 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한 말과 같이 깨달음에도 때가 있어서 적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친다. 啐(줄)은 맛볼 쵀, 떠들썩할 잘 등의 음도 있다. 줄여서 啐啄(줄탁)이라고도 하고 啐啄同時(줄탁동시), 啐啄之機(줄탁지기)도 같은 뜻이다.

중국 宋(송)나라 때에 편찬된 책으로 역대 선승들의 話頭(화두) 100개를 담아 禪宗(선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碧巖錄(벽암록)”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어려울 만하다. 雪峰(설봉) 스님을 이은 鏡淸(경청) 스님은 항상 후학들을 깨우칠 때 병아리의 啐(줄)과 어미닭의 啄(탁)을 강조했다. “무릇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줄탁동시의 안목을 갖추고 줄탁동시의 작용이 있어야 만이 비로소 승려라 일컬을 수 있다.

이는 마치 어미닭이 쪼려 하면 병아리도 쪼지 않을 수 없고, 병아리가 쪼려고 하면 어미닭도 쪼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다(大凡行脚人 須具啐啄同時眼 有啐啄同時用 方稱衲僧 如母欲啄 而子不得不啐 子欲啐 而母不得不啄/ 대범항각인 수구줄탁동시안 유줄탁동시용 방칭납승 여모욕탁 이자부득부줄 자욕줄 이모부득불탁).” 제16칙 鏡淸啐啄(경청줄탁)에 나온다.

병아리는 수행자이고, 어미닭은 스승으로 비유하여 제자는 안에서 수양을 하고, 스승은 제자를 잘 보살피고 관찰하다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과정과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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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03
오하아몽吳下阿蒙 - 평범하고 교양이 없는 여몽, 노력으로 학식이 풍부하게 된 사람

오하아몽(吳下阿蒙) - 평범하고 교양이 없는 여몽, 노력으로 학식이 풍부하게 된 사람

성 오(口/4) 아래 하(一/2) 언덕 아(阝/5) 어두울 몽(艹/10)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 甲男乙女(갑남을녀)고 張三李四(장삼이사)다. 뛰어나게 잘 하는 분야가 없는 사람이라 해서 업신여기거나 무시했다간 큰코다친다. 아주 훌륭한 재주를 타고난 천재라도 모든 분야에 통달할 수 없고, 그 모자라는 부분을 너끈히 채우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 중에서 꼭 나타난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란 말이 있듯이, 또 ‘오뉴월 하룻볕도 무섭다’는 속담이 말하듯 뒤떨어지는 분야를 작정하고 파고들면 발전하는 속도가 놀랄만하다.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니 刮目相對(괄목상대), 눈을 비비고 쳐다봐야 하는 일이 언제든 일어난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吳(오)나라에 呂蒙(여몽, 178~220)이란 장수가 있었다. 그는 曹操(조조)를 물리친 赤壁大戰(적벽대전)에서 공을 세웠고, 蜀(촉)의 關羽(관우)도 꺾은 대단한 명장이었지만 학식은 보잘 것 없었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 살림이 어려워 공부를 못한 그는 오지역의 촌구석(吳下)에서 자란 몽이란 촌뜨기(阿蒙)라 불렸다.

阿(아)는 애칭이라는데 젊어서부터 여몽을 알고 있던 魯肅(노숙)이 그렇게 불렀다. 노숙은 학식이 높고 뒤에 大都督(대도독)이 되는 고관이었어도 어제의 여몽이 아니란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陳壽(진수)의 ‘三國志(삼국지)’와 주석한 江表傳(강표전)의 내용을 보자.

오왕 孫權(손권)은 여몽이 똑똑한 점을 알고 역사서와 병법서를 읽도록 권했다. 충고에 감동한 여몽은 책을 읽기 시작하자 끊임없이 계속했다. 어느 때 노숙이 여몽의 군영을 지나게 됐는데 대수롭지 않게 대하다 앞으로의 계책을 줄줄이 말하자 깜짝 놀랐다. 노숙이 말했다.

‘이렇게 학식이 뛰어나니 오에 있을 때의 몽하고는 딴판이구먼(學識英博 非復吳下阿蒙/ 학식영박 비복오하아몽).’ 여몽이 답했다. ‘선비는 모름지기 여러 날을 떨어져 있다가 만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하지 않겠소(士別三日 卽更刮目相待/ 사별삼일 즉경괄목상대)?’ 마주 대하는 相待(상대)는 요즘 성어에 相對(상대)로 쓴다.

오지역의 아몽이라 말하면 여몽의 눈부신 변화가 있기 전과 같이 평범하고 교양이 없는 사람을 가리켰다. 어제의 아몽이 아니라면 꾸준한 노력으로 무식을 탈피하고 뛰어난 재주를 갖게 됐음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한 분야에서는 노력 여하에 따라 어느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 오늘을 사는 보통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끈다. 그런 면에서 타고난 복이나 행운으로 누구나 부러워하는 전문가가 되었다 해도 다른 분야는 깜깜할 수가 있으니 기고만장 우쭐해서는 안 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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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03
황견유부黃絹幼婦 - 절묘하다란 뜻의 은어.

황견유부(黃絹幼婦) - 절묘하다란 뜻의 은어.

누를 황(黃/0) 비단 견(糸/7) 어릴 유(幺/2) 며느리 부(女/8)

破字(파자)를 말할 때 丁口竹天(정구죽천)이 풀어 쓴 可笑(가소)를 뜻한다고 한 적이 있다. 실제 웃을 笑(소)자를 나누면 竹夭(죽요)가 되지만 쉽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 이해된다. 이런 간단한 문제가 아닌 정말 어려운 파자가 있다.

누런 비단(黃絹)과 어린 며느리(幼婦)라 도무지 알쏭달쏭한 이 성어가 아마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뜻을 풀어서 그것을 다시 조합하여 글자를 맞추는 파자의 고차방정식이라 할 만하다.

‘世說新語(세설신어)’란 일화집이 있다. 南朝(남조) 宋(송)나라의 문학가 劉義慶(유의경)이 쓴 책인데 깨달음이 빠르다는 뜻의 捷悟(첩오)편에 전한다. 後漢(후한) 때에 曹娥(조아)라는 열네 살 난 소녀가 있었는데 강물에 빠진 아버지의 시신을 찾으려다 끝내 찾지 못하자 자신도 빠져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이 조아의 효성을 기려 비석을 세우고 邯鄲淳(한단순, 邯은 조나라서울 한, 鄲은 한단 단)이란 열세 살 소년에게 비문을 짓게 했다. 글재간이 얼마나 좋았던지 문인 서예가로 유명했던 蔡邕(채옹)이 찾아가 감탄하면서 비석 뒤에 ‘黃絹幼婦 外孫韲臼(황견유부 외손제구, 韲는 양념할 제, 臼는 절구 구)’라고 새겨 놓았다.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그 뜻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 후 曹操(조조)가 비서격인 楊修(양수)와 함께 이 부근을 지나다 조아비의 소문을 듣고 찾아가 뜻을 알겠느냐고 물었다. 양수가 안다고 하자 조조도 30리쯤 지나며 생각을 하여 답을 맞춰보니 이러했다.

‘황견은 색(色)이 있는 실(絲)이니 絶(절)이 되고, 유부는 어린(少) 여자(女)이니 妙(묘)가 된다. 외손은 딸(女)의 아들(子)이니 好(호)가 되고, 虀臼(제구)는 매운 것(辛)을 담아(受) 빻는 절구(臼)이니 辭(사)가 되어, 이를 합치면 絶妙好辭(절묘호사, 절묘하게 훌륭한 글)라는 말입니다.’

양수는 이미 알았고 조조가 30리 걸으며 생각한 것도 대단한데 그래도 有智無智 校三十里(유지무지 교삼십리)란 말이 전하는 것을 보면 지혜가 있는 사람과 지혜가 없는 사람의 차이가 심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파자가 글자 수수께끼라 생각해도 어렵기만 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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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04
치강인의差强人意 - 사람의 마음을 얼마간 든든하게 하다.

치강인의(差强人意) - 사람의 마음을 얼마간 든든하게 하다.

다를 차, 조금 치(工/7) 강할 강(弓/8) 사람 인(人/0) 뜻 의(心/9)

사람이 결코 속지 않으려면 세상의 모든 것을 신뢰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이 있다.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믿고 지내다 보면 사소한 실수나 섭섭함은 이해해야 무난한 사회가 된다. 하지만 무한한 신뢰를 주었던 사람에게 배반을 당하면 상실감은 더 크다. 너무 믿다가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知斧斫足(지부작족)이 여기에 맞는 말이다.

반면 전혀 생각지 않았다가 좋은 물건을 얻거나 행운을 만났을 때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살찐 돼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肥豬拱門(비저공문, 豬는 돼지 저)이다. 돼지나 호박까지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기대외의 만족을 느낄 때 나타내는 말은 사람의 마음(人意)을 약간 든든하게(差强) 해 줬다는 이 성어다. 다를 差(차)는 ‘조금, 들쑥날쑥’의 뜻일 때는 독음이 ‘치’다

아주 좋다고 하기에는 마음에 덜 차더라도 대체적으로 만족한다는 이 말은 중국 後漢(후한)의 장군 吳漢(오한)을 두고 光武帝(광무제)가 평한 데서 나왔다. 외척이었던 王莽(왕망, 莽은 풀 망)이 서기 8년 황제를 독살하고 新(신)나라를 세워 개혁하려다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광무제 劉秀(유수)가 前漢(전한)을 잇는다며 다시 세운 나라가 후한이다.

오한은 집안이 어려워 조그만 향촌의 정장을 맡으면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다 유수에 합류했다. 綠林軍(녹림군)에서 유수가 악전고투하며 농민군을 병합할 때 들어온 오한은 그러나 처음 크게 기대를 받지 못했다.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의 열전에 소개된 내용이다. 오한은 말수가 적고 성격은 강인하여 유수가 출병할 때마다 곁을 지켰다. 전투가 불리하여 다른 장군들이 낙담하고 대책을 세우지 못할 때 오한만은 태연하여 유수를 마음 편하게 했다. 한 번은 오한이 곁에 없는 것을 알고 유수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오게 했다.

오한이 공격에 사용할 무기를 점검하고 있다는 보고를 듣자 유수는 과연 훌륭한 장수라며 감탄했다. ’오한이 나의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군, 위엄이 나라를 필적할 만하다(吳公差彊人意 隱若一敵國矣/ 오공치강인의 은약일적국의).‘ 원문에 나오는 彊(강)은 ’굳세다‘란 뜻으로 强(강)과 같다.

오한은 성품대로 유수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성실히 일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유수가 알고 측근의 대장군으로 기용하게 된다. 믿음은 변함없이 차근차근 쌓아야 오래 간다. 처음부터 잘 보이려고 상사의 앞에서 알랑거리다 돌아서면 험담하고 욕하는 처신은 언젠가는 드러난다.

이 같은 행위는 앞에서 꼬리치다 뒤에서 발뒤꿈치를 문다는 畜狗噬踵(축구서종, 噬는 깨물 서, 踵은 발꿈치 종)의 개와 다를 바 없다. 눈앞의 조그만 이익을 탐하다 일을 그르치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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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04
춘치자명春雉自鳴 - 봄 꿩이 스스로 울다.

춘치자명(春雉自鳴) - 봄 꿩이 스스로 울다.

- 봄 춘(日-5) 꿩 치(隹-5) 스스로 자(自-0) 울 명(鳥-3)

봄철의 꿩(春雉)이 스스로 운다(自鳴)는 이 성어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제 스스로 놀라 속내를 말하거나 행동할 때 쓰인다. “봄 꿩이 제 울음에 죽는다(春山雉以鳴死)”란 속담에서 나왔다. 산란기를 맞은 꿩이 스스로 울어 사냥꾼에게 있는 위치를 알려 죽게 된다는 뜻이다.

개구리가 시끄러운 울음소리 때문에 뱀에게 잡아먹히는 것과 꼭 닮았다. 같은 뜻의 말로 비취새가 아름다운 날개 때문에 죽게 된다는 翠以羽自殘(취이우자잔), 방울은 소리가 나므로 쓰이다가 부서진다는 鐸以聲自毁(탁이성자훼)도 있다.

봄철 산중에서 흔히 보는 꿩은 친근한 만큼 관련 속담도 많다. 스스로 우는 꿩의 여러 뜻 중에서 먼저 말조심하라는 뜻부터 보자. “수풀엣 꿩은 개가 내몰고 오장엣 말은 술이 내몬다”는 말은 수풀에 숨은 꿩은 개가 찾아내서 내몰지만 사람이 마음속에 품은 생각은 술에 취하면 나온다는 뜻이다.

술이 들어가면 마음속에 있는 것을 모두 말해 버리게 되니 나오는 대로 지껄여 자기 무덤을 파거나 제 허물을 자신이 드러낸 경우에 쓴다.

새대가리란 말은 우둔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봄 꿩이 제 바람에 놀란다”거나 “꿩은 머리만 풀에 감춘다”란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 꿩도 역시 어리석은 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藏頭露尾(장두노미)란 말대로 꿩은 쫓기면 꼬리는 내놓은 채 머리만 처박는다. “꿩 구워 먹은 소식”은 咸興差使(함흥차사)와 같이 소식이 전혀 없음을 말하고, 이외에도 “꿩 대신 닭”, “꿩 먹고 알 먹고” 등등 비유는 풍성하다.

어리석게 울어 제 무덤을 파지 말라는 가르침도 주는 일면 뒤집어 생각하면 능동적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뜻도 있다. 남이 시키거나 요구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봄철 꿩이 울듯이 스스로 알아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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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05
고락상평苦樂常平 - 괴로움과 즐거움은 일상에 항상 있다, 한쪽에 치우치면 좋지 않다.

고락상평(苦樂常平) - 괴로움과 즐거움은 일상에 항상 있다, 한쪽에 치우치면 좋지 않다.

쓸 고(艹/5) 즐길 락(木/11) 떳떳할 상(巾/8) 평평할 평(干/2)

인생은 苦海(고해)라고 흔히 말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사람은 살아가면서 괴로움과 근심이 항상 따라붙는다. 아무리 금수저로 태어난 행운아라도 喜怒哀樂(희로애락)은 다 있고 生老病死(생로병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괴로움에는 즐거움이 따르고 즐거움에는 괴로움이 따른다고 苦樂竝行(고락병행)이라 했다. 그래서 고해에 던져진 보통 사람들은 ‘즐거움과 슬픔은 이웃사촌’, ‘고통은 짧고 기쁨은 영원하다’ 등등의 선인들의 말에 위로를 받는다. 菜根譚(채근담)에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맛본 후에 얻은 행복이 오래 간다(一苦一樂相磨練 練極而成福者 其福始久/ 일고일락상마련 연극이성복자 기복시구)’고도 했다.

20년 가까이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연마하여 실학을 집대성한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 1762~1836) 선생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괴로움과 즐거움(苦樂)은 일상에 항상 있는 것(常平)이고 서로 바뀌어 오고가는 것이므로 너무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다산이 전남 康津(강진)의 다산초당에 은거해 있을 때 지역 병영에서 虞侯(우후)로 있던 李重協(이중협)이라는 무관이 가끔 찾아와 분위기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3년여를 그렇게 출입하던 그가 한 번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임기가 끝나 서울로 가게 됐다고 했다. 섭섭한 표정의 그를 위로하느라 다산이 시를 지어주고 서문을 쓴 것이 ‘茶山詩文集(다산시문집)’에 남아 있다.

앞부분에 즐거움과 괴로움은 한 곳에서 나온다고 한 말이 나온다.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오니, 괴로움이란 즐거움의 뿌리다(樂生於苦 苦者樂之根也/ 낙생어고 고자락지근야),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나오니 즐거움이란 괴로움의 씨앗이다(苦生於樂 樂者苦之種也/ 고생어락 낙자고지종야),

괴로움과 즐거움이 서로 낳는 이치는 움직임과 고요함, 음과 양이 서로 그 뿌리가 되는 것과 같다(苦樂相生 如動靜陰陽 互爲其根/ 고락상생 여동정음양 호위기근).’ 그러면서 3년간이나 자주 찾아와 글을 써서 주고받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서글프지만 이후 고향에서 만나면 더욱 기쁠 수 있으니 슬퍼하지 말자고 다독였다.

일상 속에 계속 즐거운 일만 계속되면 좋으련만 그런 행운은 있을 수 없다. 또 좋은 일이 계속되고 고통은 찾아오지 않으리라 기대하지만 그 즐거움이 비극이 될 수 있어 樂極生悲(낙극생비)라 했고, 흥함이 다하면 슬픔이 찾아온다고 興盡悲來(흥진비래)라 했다.

반대로 苦盡甘來(고진감래)라 고생을 참으면 즐거움이 따른다. 현실이 괴롭다고 좌절할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모 살아계시고 형제 탈이 없는 것이 三樂(삼락)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 孟子(맹자)의 가르침을 생각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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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06
어부지용漁父之勇 - 어부의 용기, 오랜 체험에서 얻은 진정한 용기

어부지용(漁父之勇) - 어부의 용기, 오랜 체험에서 얻은 진정한 용기

고기잡을 어(氵/11) 아비 부(父/0) 갈 지(丿/3) 날랠 용(力/7)

고기 잡는 어부가 성어로 등장하는 漁父之利(어부지리)는 누구나 안다. 이해관계로 싸우는데 엉뚱한 사람이 가로챈다. 도요새가 조갯살을 먹으려다 물려 오도 가도 못하는 사이 지나가던 어부가 둘 다 잡아 횡재했다고 비난할 수 없다. 田父之功(전부지공)과 같이 토끼와 사냥개가 쫓고 쫓기다 지쳐 쓰러진 사이 두 마리 다 갖게 된 농부와 같이 운이 좋을 뿐이다.

개는 주인이 있겠지만 조개와 새는 주인이 없고, 또 불로소득을 하려는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부는 풍랑을 헤치고 바다서 물고기를 잡아 값싸게 영양을 보충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이런 어부의 체험에서 얻은 용기(漁父之勇)를 높이 평가한 사람은 孔子(공자)였다.

성어는 ‘莊子(장자)’에서 유래했다. 인위적인 격식을 너무 따진다며 儒家(유가)를 못마땅해 하는 장자가 공자를 긍정적으로 본 秋水(추수)편에 등장한다. 제일 앞부분에 강의 신 河伯(하백)이 바다를 보고는 무한한 시공간에 자신의 미미한 존재를 한탄한다는 望洋興歎(망양흥탄)이 나오는 등 철학이나 문학으로도 명문으로 꼽힌다는 장이다.

공자는 여기서 진정한 용기가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공자가 匡(광)이라는 지역을 지날 때 그곳 宋(송)나라 사람들이 여러 겹 둘러싸고 해치려 했다. 이 지역을 침략해 괴롭혔던 魯(노)나라 季氏(계씨)의 가신 陽虎(양호)와 공자가 너무나 닮아 보복하려 한 것이다.

막아서려는 수행 제자들을 말리면서 공자는 태연히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 어찌 즐거울 수 있는지 묻자 공자는 때에 안 맞는 운명은 순응해야 한다며 설명한다. ‘물 위로 다니면서 교룡을 피하지 않는 것은 어부의 용기이고(水行不避蛟龍者 漁父之勇也/ 수행불피교룡자 어부지용야)’, 육지서 외뿔소나 호랑이를 피하지 않는 것은 사냥꾼의 용기라 했다.

그러면서 ‘큰 재난을 닥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성인의 용기(臨大難而不懼者 聖人之勇也/ 임대난이불구자 성인지용야)’라 덧붙였다. 얼마 뒤에 병사들의 우두머리가 오인했다며 사과하고 물러났다. 臨難不懼(임난불구)도 여기서 나왔다.

우리나라서도 묵객들이 어부를 부러워하는 내용의 시가나 격조 높은 서화를 많이 남겼다. 세월을 낚는 姜太公(강태공)처럼 자연을 관조하고 완상하는 것이 대부분으로 직접 생존수단으로 삼는 어부들의 땀은 잘 보이지 않는다. 공자가 말한 무모한 용기인 暴虎馮河(포호빙하)와 대비되는 것이 어부의 용기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걸어서 강을 건너는 용기보다 어부가 물을 두려워하지 않듯이 오랜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조금 안다고 匹夫之勇(필부지용)을 부리다 본인은 물론 주위도 망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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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06
소훼난파巢毁卵破 – 새집이 부서지면 알도 깨진다.

소훼난파(巢毁卵破) – 새집이 부서지면 알도 깨진다.

새집 소(巛/8) 헐 훼(殳/9) 알 란(卩/5) 깨뜨릴 파(石/5)

보호해 주던 울타리가 없어지면 그 안에서의 생활이 당연히 평안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처마 끝의 새 보금자리가 훼손된다면(巢毁) 그 안에 있던 알도 안전 할 수 없이 깨진다(卵破). 국가나 사회에 불행이 닥치면 그 보호 아래서 생활하던 구성원들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럴 때 모두의 운명으로 감수하거나, 힘을 합쳐 그 난관을 이겨나가는 경우가 있는 반면 자기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各自圖生(각자도생)이 있겠다. 이 경우는 나무가 쓰러지면 그곳서 깃들여 살던 새가 날아간다는 樹倒鳥飛(수도조비), 원숭이도 흩어진다는 樹倒猢猻散(수도호손산)이란 말이 따로 있다.

엎어진 새집 밑에는 온전한 알이 없다는 覆巢無完卵(복소무완란)와 똑 같은 뜻의 이 성어는 중국 後漢(후한) 말기의 학자 孔融(공융, 153~208)과 그 자녀 이야기에서 나왔다. 孔子(공자)의 20세손이자 문필에 능하여 建安七子(건안칠자)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공융은 마지막 14대 獻帝(헌제) 때 北海(북해)에서 벼슬을 하며 학교를 세우고 유학을 가르쳤다.

당시 세력을 떨치고 있던 曹操(조조)가 일찍이 황제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야심을 간파하고 공융이 여러 번 견제하며 멀리했다. 조조도 이런 공융에게 반감을 품고 벼르고 있었다.

뒷날 조조가 劉備(유비)와 孫權(손권)을 정벌하기 위해 50만 대군을 일으키자 공융이 이를 반대하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것을 듣게 된 조조가 화가 나 조정을 비방했다는 죄목으로 그를 체포하여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공융이 잡혀가던 날 9세와 7세 된 자녀가 태연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아직 어려 큰 일이 닥칠 것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빨리 피신하라고 일렀다.

하지만 자녀들은 조금도 겁내지 않고 ‘새 둥지가 뒤집히는 판인데 어찌 알이 깨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安有巢毁而卵不破乎/ 안유소훼이란불파호)’라며 바둑을 계속했다고 한다. 조조는 공융과 함께 자녀도 둘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모두 처형했다. ‘後漢書(후한서)’ 공융전에 실려 전한다.

나라나 작은 집단이나 불행이 닥치지 않도록 모두 합심해야 한다. 공융의 자녀도 이렇게 지켜주던 부친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는데 보호막이 걷혀지면 제 살길을 찾아 흩어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특히 정치이념으로 뭉친 정치권에서 상황이 변하면 제 이익을 찾아 離合集散(이합집산)하는 꼴불견은 최근에도 본 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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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07
■ 숙종의 여인들, 인경왕후 3편

■ 숙종의 여인들, 인경왕후 3편

인경왕후는 날 때부터 울음소리가 약하고 조용했으며, 자라서도 말수가 적고 존귀함이 있었다고 한다. 먹을 것이 있으면 기다렸다 모두가 모인 뒤 나누고, 화려함을 자제하고 품성을 갖춰 사가에서는 인경왕후를 “천제(天帝)의 누이동생 같다.”며 극찬했다. 왕실에 들어와서는 가언(嘉言:좋은 말)과 선행을 즐겨 듣고, 삼궁(三宮)과 사성(四聖)을 모시는 일에 정성을 다했으며, 몸이 아플 때도 혼정신성(昏定晨省:저녁에 부모의 이부자리를 보살펴드리고, 아침에 안부를 묻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 효부였다.

14세에 숙종은 장렬왕후 조대비를 시중들던 장나인(옥정)과 눈이 맞아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러니 인경왕후는 찬밥신세가 된다. 장옥정은 숙종이 왕위에 오르자 노골적으로 접근했고, 숙종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인경왕후는 장렬왕후 조대비를 찾아가, "주상이 장나인의 처소에서 침소를 드는 것은 왕실에 누가 될 수 있사오니 장나인에게 처소를 따로 정해 주시도록 하시옴이 옳을까 아뢰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
그래서 장나인의 처소는 응향각(凝香閣)으로 옮겨져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게 된다. 참 훌륭하고 현명한(?) 중전이시다. 장나인(장옥정)은 이렇게 훌륭한 인경왕후를 헐뜯고 이간질 하다가 장렬왕후 조대비에게 걸려 궁궐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때 장나인은 스물하나, 숙종은 열아홉이었다.
",

숙종은 즉위 한 달 후, 제일 먼저 아버지 현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신하들에게 행장을 짓게 했다. 조선시대에는 어떤 분이 돌아가시면 그 분의 일대기를 행장(行狀)으로 쓰게 되는데 국왕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완성된 행장을 본 숙종은 불같이 화를 낸다. 문제가 된 부분은 당대 정치적 거물인 송시열에 관한 것이었다. 이로써 14살 숙종과 68살 송시열의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당시 송시열은 나이가 이미 68세로, 정계 원로(元老)에다가 숙종의 증조부인 인조, 효종, 현종 3대에 걸쳐 정계·사상계의 중심에 있었던 정치적·학문적 거물이었다.

현종의 행장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서인인 송시열의 예송논쟁 부분이었다. 행장을 맡은 분이 송시열의 제자인 이단하(李端夏)였으므로 당연히 스승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는 쓰지 않았다. 이에 숙종은 이단하에게 집요하게 몇 차례나 강압적으로 밀어 붙여, 송시열이 예송논쟁에서 예(禮)를 잘못 적용했다고 공식적으로 쓰도록 요구하였다.

당시는 신권이 셌고, 아무리 왕명이라고 해도 대유학자로 우러러 받고 있던 송시열을 비난하는 행장을 쓰기가 힘들고 꺼림칙했던 이단하는 행장을 다 쓰고 난 뒤 숙종에게 "송시열의 잘못된 점을 전하께서 요구해서 어쩔 수 없이 썼습니다." 라고 항변했다. 이 말을 들은 숙종은 정색을 하고 이단하를 크게 나무랐다. 2차 예송논쟁에서 정권을 잡고 있던 남인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남인들은 송시열을 파직시키라고 요구했고, 숙종은 기다렸다는 듯이 남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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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07
덕탕호명德蕩乎名 - 덕은 명예를 구하려 하는 데서 허물어진다.

덕탕호명(德蕩乎名) - 덕은 명예를 구하려 하는 데서 허물어진다.

큰 덕(彳/12) 방탕할 탕(艹/12) 어조사 호(丿/4) 이름 명(口/3)

밖으로 드러날수록 빛나는 것이 名譽(명예), 이름이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수록 빛나는 것이 德(덕)이다. 우리 속담에 ‘부처님 공양 말고 배고픈 사람 밥을 먹여라’란 것이 있다. 남에게 내세우지 않고 어진 일을 하여 덕을 쌓으면 복이 저절로 온다고 陰德陽報(음덕양보)라 했다. 보답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덕이 근본이고 재물은 맨 나중이란 德本財末(덕본재말)과도 상통한다.

세상에는 명예를 얻기 위해 거짓 간판을 내세우기까지 하는데 덕은 다만 그 자체를 위해서만 추구될 것을 바란다. 덕과 명예에 대해서 명쾌하게 말한 것이 ‘莊子(장자)’에 나온다. 덕이 허물어지는 것은(德蕩) 명예를 추구하는 데서 온다(乎名)는 이 성어다. 방탕할 蕩(탕)은 ‘흔들다, 허물어뜨리다’의 뜻도 있다.

개인이 혼란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장자는 人間世(인간세)편에서 말하고 있는데 정작 이 성어는 孔子(공자)를 등장시켜서 한다. 어느 때 가장 아끼는 제자 顔回(안회)가 공자를 찾아와 衛(위)나라로 떠나려 한다고 말했다. 걱정이 된 공자가 왜 가려하느냐고 물었다.

안회는 위나라 군주가 독선적이고 자기 잘못을 몰라 백성들이 괴로우니 선생님의 가르침을 펴서 바로잡아 보고 싶다고 대답한다. 공자는 옛날 덕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을 먼저 건사한 다음에 타인을 도와주었는데 안회가 준비 덜 된 상태서 포악한 권력자들의 소행을 바로잡기는 어렵다고 말렸다.

그러면서 공자는 제자에게 덕이 어떻게 혼란해지며 지식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지 조언한다. ‘덕은 명성을 구하려는 데서 파괴되고, 지혜는 서로 다투는데서 생겨난다(德蕩乎名 知出乎爭/ 덕탕호명 지출호쟁). 명예는 서로 헐뜯으니 충돌하게 마련이고, 지식은 다툼의 도구로 쓰인다(名也者相軋也 知也者爭之器也/ 명야자상알야 지야자 쟁지기야).

’ 명예와 지식 모두 흉기라 행동의 지침으로 삼을 바가 못 되는데 어떻게 포악한 사람들에게 인의와 법도가 먹히겠는가 하며 만류한 것이다. 지식이 명성을 얻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서로 옳다고 주장할 때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경쟁사회에서는 서로 지식을 탐구하면서 발전에 기여하는데 이것이 지나쳐 남에 앞서고, 명예를 얻기 위한 도구가 되면 서로 옳다는 독선이 된다. 이렇게 되어 사람이 가진 덕성은 사라지고 갈등사회를 넘어 너 죽고 나 살자는 분쟁사회가 된다.

남을 짓밟는 이런 지식, 여기서 얻은 명성은 장자가 말한 모두 흉기(二者凶器/ 이자흉기) 그대로다. ‘덕이 재주의 주인(德者才之主/ 덕자재지주)’이라고 말한 菜根譚(채근담)의 가르침대로 덕이 앞서면 혼란이 없을 텐데 거꾸로만 가니 세상이 시끄럽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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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08
조궁즉탁鳥窮則啄 - 새가 쫓기면 부리로 쫀다.

조궁즉탁(鳥窮則啄) - 새가 쫓기면 부리로 쫀다.

새 조(鳥/0) 다할 궁(穴/10) 곧 즉(卩/7) 쪼을 탁(口/8)

사방을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는 쥐는 고양이가 나타나면 ‘고양이 앞에 쥐’란 말대로 꼼짝 못한다. 자기에게 겁낸다고 고양이가 막다른 곳까지 쫓는다면 쥐는 최후의 발악을 한다. ‘궁지에 빠진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窮鼠齧猫(궁서설묘, 齧은 깨물 설)의 화를 입는다.

약한 물고기도 몰리면 고래에게 달려든다는 窮魚餌奔鯨(궁어이분경)이나 사로잡힌 새라 할지라도 심하게 괴롭히면 수레를 엎는다는 禽困覆車(금곤복거) 등 같은 뜻의 성어도 많다.

새가 쫓기다가 달아날 곳을 잃고 막다른 곳에 이르면(鳥窮) 도리어 상대방을 부리로 쫀다(則啄)는 이 성어도 미물의 반항이다. 약한 자를 계속해서 괴롭히게 되면 최후의 힘을 다하여 강적을 해친다. 아무리 궁지에 몰린 적이라도 씨를 말릴 듯 끝까지 공격하지 말라는 窮寇勿迫(궁구물박)이란 孫子兵法(손자병법)의 가르침을 따라야 피해가 적다. 性惡說(성악설)을 주창한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 荀況(순황)은 유학을 재정비하여 ‘荀子(순자)’를 저술했다. 哀公(애공)편에 이 성어가 사용됐다. 내용을 보자.

孔子(공자)의 수제자인 顔淵(안연)이 魯(노)나라 定公(정공)을 모실 때였다. 東野畢(동야필)이란 사람이 말을 잘 부리기로 소문났다. 정공이 그에 대해 칭찬하며 안연에게 의견을 물었다. 좀처럼 남을 비방하지 않는 인격자 안연이 시큰둥해 하면서 동야필이 장차 말을 잃을 것이라고 답했다. 정공이 실망하여 기분이 상해 있었는데 며칠 후 과연 동야필이 말을 잃었다.

정공이 안연에게 그리 될 줄 어찌 알았는지 물었다. 안연은 ‘새가 궁지에 몰리면 쪼고, 짐승이 궁지에 몰리면 할퀴며,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거짓을 부리게 됩니다(鳥窮則啄 獸窮則攫 人窮則詐/ 조궁즉탁 수궁즉확 인궁즉사)’라면서 동야필이 험난한 곳을 지날 때도 평지와 똑 같이 말을 다그치니 달아날 줄 알았다고 했다.

조그만 쥐나 짹짹대는 새도 궁지에 몰리면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 잘 달리는 말도 채찍만 휘두르다간 벗어날 궁리만 한다. 목표달성을 위해 강행군을 시키는 단체의 지도자는 어느 정도까지는 몰라도 조직원들이 필시 중간에 주저앉는다. 부하를 궁하게 하면 반드시 자기가 궁하게 되는 법이다. 일을 시키더라도 능력을 감안해서 단계적으로 해야 성공할 수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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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09
종옥種玉 - 구슬을 심다, 미인을 아내로 맞이하다.

종옥(種玉) - 구슬을 심다, 미인을 아내로 맞이하다.

씨 종(禾/5) 구슬 옥(玉/0)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 天生緣分(천생연분)이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인연이 있어야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길에 돌도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길거리에 오고 가는 사람끼리 잠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한다는데 평생을 함께 서로 위하며 살아야 하는 부부의 연이 하늘이 맺어준 인영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라고 무작정 기다려서는 하자세월이다. 더구나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기 위해선 덕을 쌓아야 한다. 착한 일과 악한 일을 하면 그에 따라 좋고 나쁜 결과가 있다는 善有善報 惡有惡報(선유선보 악유악보)나 덕을 쌓으면 필히 경사가 따른다는 積善餘慶(적선여경)의 결과다.

구슬을 심는다(種玉)는 이 성어는 미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는 말이다. 種玉之緣(종옥지연)이라 해도 같다. 의도했든 않았든 남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한 결과였다. 중국 漢(한)나라 때의 楊雍伯(양옹백)이란 사람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東晋(동진) 때의 역사가 干寶(간보)가 지은 ‘搜神記(수신기)’에 실려 전한다. 이 책은 六朝(육조)시대에 유행했던 志怪(지괴)소설의 대표로 불리는데 괴이한 귀신 이야기나 신선들의 설화에 관한 것을 모았다

성어가 유래한 양옹백의 이야기 내용을 보자. 장사가 본업이었던 양옹백은 성품이 독실하고 효성이 지극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無終山(무종산)이란 곳에 장사를 지내고 정착해 살았다. 제법 높았던 그 산에는 물이 없었다. 양옹백은 항상 물을 길어 고갯마루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마실 수 있도록 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한 나그네가 물을 마신 후 돌 한 되를 주면서 말했다. ‘높고 평평한 돌에 심으면 옥이 나올 것인데 이것으로 좋은 아내를 얻게 될 것이오(使至高平好地有石處種之 云玉當生其中 汝後當得好婦/ 사지고평호지유석처종지 운옥당생기중 여후당득호부).’ 정말 돌 위에 옥이 자라나 양옹백은 이것을 들고 대족인 徐氏(서씨) 집안의 현숙한 규수에게 장가들 수 있었다.

지금의 처지가 지극히 옹색하여 먹을 것이 보리 개떡일지라도 다 제 짝이 있다며 ‘천생연분에 보리 개떡’이란 속담이 있다. 물 한 그릇만 떠 놓고 혼례를 치른다는 酌水成禮(작수성례)는 시대가 지났고, 또 모든 것을 갖추고 인연을 찾으면 최상이겠지만 세월은 후딱 지나간다. 청년층을 위한 주택에 육아에 대책을 세워도 백약이 무효인 듯 결혼의 연령이 자꾸 높아지고 있어 걱정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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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10
부승치구 負乘致寇 - 짐을 지고 수레를 타면 도적을 부른다, 분수에 맞지 않으면 재앙을 가져 온다.

부승치구 (負乘致寇) - 짐을 지고 수레를 타면 도적을 부른다, 분수에 맞지 않으면 재앙을 가져 온다.

질 부(貝/2) 탈 승(丿/9) 이를 치(至/4) 도적 구(宀/8)

자기의 능력과 분수를 알아야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다. 재주도 없으면서 주제넘게 이러쿵저러쿵한다면 ‘난쟁이 교자꾼 참여한다’며 손가락질 당한다. 욕을 먹으면서도 이런 사람은 어디나 있는 법이라 비유한 성어가 많다.

피리를 불 줄 모르는 남곽이 합주단에 들어갔다가 쫓겨난 南郭濫竽(남곽남우, 竽는 피리 우), 짧은 두레박줄로 깊은 우물물을 긷는다는 綆短汲深(경단급심, 綆은 두레박줄 경), 채찍이 길어도 말의 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는 鞭長莫及(편장막급) 등이다.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녹만 축내는 재상은 伴食宰相(반식재상)이 된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 과분하게 높은 지위에 있다는 좋은 비유가 ‘周易(주역)’에도 나온다. 모두 64卦(괘)에 각각 음양으로 나눈 爻(효)를 설명한 것이 爻辭(효사)인데 解卦(해괘)의 내용에 있다. ‘짐을 지고 또 수레를 타게 되면 도둑을 부르게 된다(負且乘 致寇至/ 부차승 치구지).’ 어려운 비약이지만 풀이를 들어보면 이해가 간다.

수레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 타는 것인데 소인이 하는 등짐을 지고서 앉아 있으면 남의 것을 빼앗은 것으로 여겨 강도가 달려든다는 이야기다. 등에 짐을 지고 수레에 앉아 있어도 모두 모두 그렇지는 않을 텐데 여전히 아리송하다. 이것을 조선의 실학자 李瀷(이익, 瀷은 물이름 익)이 ‘星湖僿說(성호사설, 僿는 잘게부술 사)’에서 명쾌하게 해설한다.

성현의 경서를 다룬 經史門(경사문)의 負且乘(부차승)이란 제목의 글에는 짐을 지고 앉은 사람이 군자냐, 소인이냐에 대해 말한 것이라며 이렇게 설명한다. 군자도 불우했을 때는 짐을 지는데 고대 중국의 훌륭한 재상 예를 들며 ‘이윤은 친히 밭을 갈았고, 부열은 담 쌓는 품도 팔았다(伊尹躬耕 傅說版築/ 이윤궁경 부열판축)’고 했다.

천한 일을 하다 발탁돼 황제의 스승이 되었어도 마음의 변화가 없었으니 짐을 지거나 말을 타도 도적을 불러들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전일의 버릇을 못 고치고 사리를 탐내는 소인이 있었기에 도적을 불러들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능력에 맞는 사람을 자리에 앉혀 일을 처리하게 되면 모든 것이 잘 풀린다고 人事(인사)가 萬事(만사)라고 했다.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 어쩌다 수레에 올라앉게 되면 버릇을 남 주지 않고 재물을 챙길 생각만 한다. 사람을 잘못 앉혀 도적을 부른 셈이다. 이런 소인은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능력이 안 된다며 사양하는 법이 없다.

작은 조직에선 조그만 피해로 그치지만 나라 전체로는 영향이 크다. 인사권자가 높은 자리에 앉을 사람에 자기편만 챙기다 청문회에서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국력을 훼손시키는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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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10
첨취각설尖嘴刻舌 - 뾰족한 입에 각박한 혀, 날카롭고 야박한 말

첨취각설(尖嘴刻舌) - 뾰족한 입에 각박한 혀, 날카롭고 야박한 말

뾰족할 첨(小/3) 부리 취(口/12) 새길 각(刂/6) 혀 설(舌/0)

부리는 뾰족한 입을 가진 새나 짐승의 주둥이를 이르는데 사람에게도 낮춰 부를 때가 있다. 말로만 잘 지껄이거나 말대꾸를 하면 ‘부리를 깐다‘고 할 경우다. 겉보기만 그럴 경우도 있겠지만 새의 부리처럼 튀어나온 뾰족한 입(尖嘴)을 가진 사람은 경망스럽게 야박한 말을 지껄인다(刻舌)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사람의 관상을 말할 때 긴 목에 뾰족한 입이란 長頸烏喙(장경오훼, 喙는 부리 훼)가 욕심이 많으며 남을 의심하는 마음이 강하다고 하는 것과 같이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다. 얇은 입술로 가볍게 말을 내뱉는 薄脣輕言(박순경언)이나 남을 해치는 말을 잘 한다고 舌劍脣槍(설검순창)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튀어나온 입에 함부로 말한다는 이 성어는 중국에서도 사용한 역사가 길지 않은 듯하다. 淸(청)나라 소설가 李汝珍(이여진, 1763~1830)의 소설에 처음 尖嘴薄舌(첨취박설)로 나타난다고 한다. 사회의 암흑상을 고발하는 내용이라는 ‘鏡花緣(경화연)’이란 소설에서 부분을 옮겨 보자.

‘술을 사 먹으려고 나를 속이고 바둑 두다 시비하는 네가(你既要騙我酒吃 又鬥我圍棋/ 니기요편아주흘 우두아위기), 이렇게 신랄하고 매몰찬 말까지 하다니(偏有這些 尖嘴薄舌的話說/ 편유저사 첨취박설적화설).’ 你는 너 니, 鬥는 싸울 두, 투. 태어날 때 튀어나온 입을 가진 사람이 말까지 콕콕 찌르는 말을 한다고 욕을 먹는다.

뾰족한 입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이런 선입견을 주어서인지 우리 고전에서는 말을 각별히 조심하는 이야기가 많이 따른다. 첫손에 꼽힐 사람이 조선 초기의 명재상 黃喜(황희)다. 모든 사람의 좋은 점만 본다고 하여 好好先生(호호선생), 싸우는 당사자 모두 옳다고 했다는 三可宰相(삼가재상)의 별호가 따라다니니 당연하다. 중기의 정승 尙震(상진)도 못지않다.

한 사람이 누구 한쪽 다리가 짧다고 하자 같은 값이면 한 쪽이 길다고 말하게 했단다. 星湖僿說(성호사설, 僿은 잘게부술 사)에 상진이 시구를 고쳐준 일화가 있다. 吳祥(오상)이란 사람이 ‘희황의 좋은 풍속 지금은 쓸어버린 듯한데, 다만 봄바람 술잔 사이에 있을 뿐(羲皇樂俗今如掃 只在春風盃酒間/ 희황요속금여소 지재춘풍배주간)’이라 쓴 구절을 두 글자씩 고친다.

‘희황의 좋은 풍속 지금도 남았으니, 봄바람에 술잔 사이에서 보아라(羲皇樂俗今猶在 看取春風盃酒間/ 희황요속금유재 간취춘풍배주간).’ 羲皇(희황)은 중국 삼황 중의 伏羲氏(복희씨)를말한다. 부정적인 것이 모두 긍정적으로 바뀐다.

똑 같은 사실도 표현만 살짝 바꾸니 전혀 다른 뜻이 된다. 나쁜 말 모질게 한다는 튀어나온 입도 아닌데 거친 표현일수록 잘 한다고 박수 받는 곳이 있다. 멀쩡하게 잘 생긴 입으로 상대를 박살낼 듯 몰아붙이는 정치판이다. 이렇게 하다가는 점차 수위가 높아져 서로의 상처만 깊어진다. 같은 말이라도 표현을 달리 하면 얼마든지 정승의 말이 될 수 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去言美 來言美/ 거언미 내언미)’는 꼬마도 아는 말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997.html
kolaswqetsrq 11.02 16:11
일곡양주一斛凉州 - 뇌물을 주고 벼슬자리를 사다

일곡양주(一斛凉州) - 뇌물을 주고 벼슬자리를 사다

한 일(一/0) 휘 곡(斗/7) 서늘할 량(冫/8) 고을 주(巛/3)

돈이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 여기에 합당한 말이 귀신도 부린다는 錢可通神(전가통신)이다. 또 있다. 千金不死 百金不刑(천금불사 백금불형)으로 천금을 쓰면 죽을 것을 면하고, 백금을 쓰면 받을 형벌도 면한다는 뜻이다. 중국 武經七書(무경칠서) 중의 尉繚子(울료자, 尉는 벼슬 위, 다리미 울, 繚는 두를 료)에 나오는 말이라는데 우리에겐 더 쉽게 와 닿는 말이 있다.

1988년 탈주범 지강헌의 절규로 유명해진 有錢無罪 無錢有罪(유전무죄 무전유죄)다. 죄를 없게도 하고 죽음도 면할 수 있으니 과연 돈이 전능이다. 이보다는 급이 낮을지 모르지만 벼슬을 팔고 사는 데도 어김없이 돈이 등장했다.

포도주 다섯 말을 주고 벼슬자리를 얻었다는 이 성어는 後漢(후한) 말의 孟佗(맹타, 佗는 다를 타)란 사람에게서 유래했다. 곡식 분량을 재는 휘란 뜻의 斛(곡)은 당시 단위로 5말(斗)을 가리켰고 1섬(石)은 2곡이었다고 한다. 凉州(양주)라는 곳의 지방 감찰관인 刺史(자사)자리를 뇌물로 샀다는 이야기다.

당시는 왕권이 허약한 틈을 타 十常侍(십상시)라 불린 환관들이 조정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맹타는 재산이 많아 십상시 중에서도 우두머리인 張讓(장양)의 종들과 어울리며 자주 선물을 주고 환심을 샀다. 종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물으니 자신에게 절을 한 번 해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어느 날 맹타가 장양을 찾았을 때 집 앞에 그를 찾는 수레가 수백 대나 있었다. 그 때 종이 나와 절을 하고 안내하니 빈객들은 맹타가 대단한 사람인줄 알고 그에게도 진귀한 물건을 건넸다. 맹타는 이것을 그대로 올리니 장양은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양주자사로 삼았다(佗分以遺讓 讓大喜 遂以佗爲凉州刺史/ 타분이유양 양대희 수이타위량주자사). ‘後漢書(후한서)’의 宦者(환자)열전에 전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서도 조선 선조 때의 상궁 金介屎(김개시)가 더덕을 뇌물로 받고 재상으로 추천했다는 沙蔘宰相(사삼재상)이나, 희귀한 채소를 상납하여 판서가 됐다는 雜菜判書(잡채판서)라는 말이 전하는 것을 보아 벼슬의 난맥상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투명해진 오늘날에는 시험이나 경쟁으로 직위가 올라가니 자리를 매매하는 일은 없겠다. 하지만 수시로 불거지는 정실인사나 낙하산 인사를 보면 뇌물이 오고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떳떳할 수 있을까.

선거 캠프에서 자신을 도왔다는 이유로 능력이 되지 않는 인사를 마구 내려 보냈다가 본인도 망하고, 기관도 허덕이는 것을 자주 본다. 주변에까지 피해를 주는 이런 인사는 돈으로 자리를 바꾸는 것과 크게 다름이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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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12
알묘조장揠苗助長 - 싹을 뽑아 올려 성장을 돕다.

알묘조장(揠苗助長) - 싹을 뽑아 올려 성장을 돕다.

뽑을 알(扌/9) 모 묘(艹/5) 도울 조(力/5) 긴 장(長/0)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助長(조장)은 글자 그대로 자라는 것을 도와준다는 의미다. 전혀 부정적인 뜻이 아닐 것으로 생각되는데 실제로는 달리 쓰인다. 소비를 조장한다거나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말과 같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더 심해지도록 부추긴다는 뜻이 강해진 것이다. 옮겨심기 전 벼의 어린 싹인 모를 뽑아 올려(揠苗) 자라는 것을 도왔다(助長)는 말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돕는다는 것이 지나쳐 오히려 망치는 것에서 조급한 마음에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억지로 일을 진행시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두 글자씩 떼어 揠苗(알묘)나 助長(조장), 또는 撥苗助長(발묘조장)이라 써도 같은 의미다.

孟子(맹자)가 거침없이 넓고 큰 기개를 뜻하는 浩然之氣(호연지기)를 설명하면서 宋(송)나라의 농부 우화를 인용한 데서 나왔다. 宋襄之仁(송양지인)이나 守株待兎(수주대토)의 성어가 있는 것을 보면 春秋時代(춘추시대)의 송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어리석었던 모양이다.

여기 나오는 농부도 성격이 급하여 일을 그르친다. 그는 모내기를 한 논에 매일 아침 일찍 나가 거름을 주며 싹이 잘 자리도록 부지런히 돌봤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의 벼는 쑥쑥 잘 자라는 것 같은데 자기 논의 싹은 도무지 성장이 너무 느린 것 같았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어느 날 논에 가서 한 포기 한 포기씩 잡아당겨 주었다. 보기에 확실히 자란 것 같아 집에 가서 자랑삼아 식구들에게 싹을 잡아 당겼더니 잘 컸다고 말했다. 깜짝 놀란 아들이 기겁하여 나가보니 싹이 이미 하얗게 말라 있었다. 맹자가 설명을 덧붙인다.

‘무익하다고 해서 내버리는 자는 곡식을 심고 김매지 않는 자이며, 억지로 자라게 하는 자는 싹을 뽑아 올리는 자이다. 이런 일은 한갓 유익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해로운 것이다(以爲無益而舍之者 不耘苗者也 助之長者 揠苗者也 非徒無益 而又害之/ 이위무익이사지자 불운묘자야 조지장자 알묘자야 비도무익 이우해지)." 公孫丑章句(공손추장구) 상편에 실려 있다.

인격 형성의 토대가 되는 어린 시기에 지나친 사교육의 폐단을 막는 것은 정당하다고 한데 대해 학부형들은 비현실적이라며 반대했었다. 어릴 때 영어를 잘 하게 하기 위해 성대 수술까지 했던 사례도 있다고 하니 분명 지나치다. 조기에 교육을 시키든 3, 4학년이 되어 배우게 하든, 싹을 뽑아 올리지 말고 우리말을 어느 정도 한 뒤 어린이 수준에 맞게 하면 좋으련만..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654.html
kolaswqetsrq 11.02 16:13
자승자박自繩自縛 - 자기의 줄로 자기 몸을 옭아 묶는다.

자승자박(自繩自縛) - 자기의 줄로 자기 몸을 옭아 묶는다.

스스로 자(自/0) 노끈 승(糸/13) 스스로 자(自/0) 얽을 박(糸/10)

영리한 사람이 제 잘못을 덮으려다 걸려들 짓만 한다. 꾀를 내어 남을 속이려다 그 꾀에 도로 제가 피해를 입는 경우는 숱하다. 그만큼 속담과 성어가 많은 것은 어리석음을 깨치기 위해서일 것이다. 자기가 잘못하여 손해를 입는 ‘제가 제 뺨을 친다’거나 자신을 망치는 ‘제가 제 무덤을 판다’는 속담이 가장 많이 쓰인다.

‘하늘을 쳐다보고 침을 뱉으면 자기 얼굴을 더럽힐 뿐이다(仰天而唾 徒汚其面/ 앙천이타 도오기면)’는 비유는 丁若鏞(정약용)의 耳談續纂(이담속찬)에 나오는 속담의 한역이다. 자기가 꼬아 만든 밧줄(自繩)로 자기 몸을 옭아 묶는다(自縛)는 말은 더 쉽게 비유했다.

이 말이 後漢(후한) 역사가 班固(반고)의 ‘漢書(한서)’에 처음 나올 때는 自縛(자박)으로 되어 있고 뜻도 약간 다르다. 항복이나 사죄의 의미로 상의의 어깨를 드러내는 肉袒(육단)과 같이 썼다. 遊俠傳(유협전)에 나오는 原涉(원섭)이란 사람의 이야기다. 어느 때 원섭의 노비가 시장 바닥에서 푸줏간 주인과 말다툼을 하다 살인을 하게 됐다.

茂陵(무릉) 지역의 태수 尹公(윤공)이 그 주인을 잡아 죄를 물으려 했다. 이에 같이 어울리던 협객들이 원섭에게 부덕한 탓으로 종이 법을 어겼다며 제안한다. ‘그에게 웃옷을 벗기고 스스로 옭아 묶어(使肉袒自縛/ 사육단자박), 화살로 귀를 뚫고 끌고 가 사죄하게 하자(箭貫耳 詣廷門謝罪/ 전관이 예정문사죄).’ 태수가 이를 받아들여 원섭의 위엄도 살렸다.

원섭이 자기 집 종의 잘못으로 궁지에 몰리긴 했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관용을 구한 것이 더 강조되었다. 웃옷을 벗은 채 가시나무 회초리를 등에 지고 용서를 구한 肉袒負荊(육단부형)과 가깝다. 여기에 자기가 엮은 노끈이 더해지면서 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자신이 구속되어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으로 변했다.

조선 전기 탁월한 문장가 金時習(김시습)의 시구에 자탄하면서 이 말을 사용한 것이 있다. ‘머리 가에 세월이 새마냥 지나가니(頭邊歲月一鳥過/ 두변세월일조과), 제 몸 제가 얽은 누에나방과 같은 신세(自繩自縛如蠶蛾/ 자승자박여잠아).’ 신세한탄을 넘어 法家(법가)를 대표 商鞅(상앙)이 자기가 만든 법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되는 作法自斃(작법자폐)는 제 눈을 찌른 결과다.

자기가 한 행위는 그대로 결과로 돌아온다. 콩 심은데 콩 나는 種豆得豆(종두득두)는 물론 종교에서 더 심오하게 깨우친다. 자신의 소행으로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불교서 말하는 業(업)인데 여기서 自業自得(자업자득)이 나왔다.

지혜의 왕 솔로몬(Solomon)은 箴言(잠언)에서 꾸짖는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이런 가르침에도 자신은 예외라 생각하는지 이전에 한 말로 책잡히고, 제가 한 행동에 의해 꼼짝달싹 못하는 일이 잦다. 이런 사람일수록 기막힌 변명으로 속을 더 뒤집는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378.html
kolaswqetsrq 11.02 16:13
신종추원愼終追遠 - 부모의 장례를 엄숙히 하고 먼 조상을 추모하다.

신종추원(愼終追遠) - 부모의 장례를 엄숙히 하고 먼 조상을 추모하다.

삼갈 신(心/10) 마칠 종(糸/5) 쫓을 추(辶/6) 멀 원(辶/10)

일생을 부지런히 살아온 사람일수록 생을 마감할 때 이름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 엉뚱한 객사가 아닌 한 저 세상에 갈 때 누구나 조용히 눈을 감고 싶어 한다. 유교에서 말하는 五福(오복)이 있다. 書經(서경)에 나오는 대로 壽(수), 富(부), 康寧(강녕)은 장수, 부귀, 건강을 말한다. 거기에 덕을 좋아하고 행하는 攸好德(유호덕, 攸는 아득할 유)과 함께 考終命(고종명)이 따른다.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눈을 감는 것이다. 생전에 지은 죄가 큰 사람들은 죽은 뒤에도 편히 쉴 곳이 없다. 최근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가 죽은 지 27년이 됐는데도 영웅묘역 안장 등을 두고 국민의 격렬한 반발을 산 것이 좋은 예다.

마지막 자리를 편안하게 한다는 가르침에 따라 동양에서는 부모의 장례를 엄숙히 치르고(愼終), 역대의 선조를 추모하여 제사를 정성들여 지냈다(追遠). ‘論語(논어)’에서 曾子(증자, 기원전 505~436)가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름이 曾參(증삼)인 증자는 학문이 깊어 孔子(공자)의 高弟(고제)로 도를 계승했고, 그의 가르침은 孟子(맹자)에까지 전해져 동양 五聖(오성)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學而(학이)편에 나오는 부분을 보자. ‘초상을 당해서는 장례를 신중하게 치르고, 먼 조상의 제사에도 정성을 다하면 백성들이 모두 두터운 덕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愼終追遠 民德歸厚矣/ 신종추원 민덕귀후의).’ 終(종)은 죽음, 遠(원)은 먼 선조를 말한다. 현재 자신이 지닌 것은 모두 부모를 비롯한 조상의 은덕이므로 이들에 정성을 다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자세라고 가르친다.

증자는 二十四孝(이십사효)의 한 사람에 들 만큼 효성도 지극하여 孝經(효경)을 지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이렇게 강조해도 어울린다. 그는 어렸을 때 계모 밑에서 구박을 받으며 자랐지만 어머니를 섬기는 효성은 지극했다. 부모님 상에 올리는 콩잎을 설익혀 먹지 못하게 했다고 증자는 아내를 내쫓고 평생 혼자 살았다고 할 정도다. 황당하게 여겨져도 烝黎出妻(증려출처, 黎는 검을 려 또는 명아주 려)란 고사로 남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의 마지막 장소로 집에서 눈을 감기를 원하지만 실제 10명중 7명은 병원에서 숨진다고 한다. 얼마 전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해 26만여 명의 사망자 중 71.5%가 의료기관에서 숨졌고 자택은 17.7%인 4만여 명에 불과했다.

말기 중증 환자까지 연명치료를 함으로써 환자 본인의 고통은 물론 가족들의 부담도 크다. 보건복지부는 가정 호스피스 사업을 늘리고 있다고 하니 사람의 마지막 오복인 편안한 최후를 기대해도 될까.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579.html
kolaswqetsrq 11.02 16:14
양호유환養虎遺患 - 범을 길러 후환을 남기다.

양호유환(養虎遺患) - 범을 길러 후환을 남기다.

기를 양(食/6) 범 호(虍/2) 남길 유(辶/12) 근심 환(心/7)

호랑이라는 짐승은 그 이름이 범과 이리(虎狼/ 호랑)에서 나온 것만 보아도 사나움은 타고 났다. 우리나라에선 檀君神話(단군신화)나 해님달님 동화에 등장하는 호랑이가 어리숙하면서도 귀여운 면을 보여 친근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百獸(백수)의 왕이라는 별칭대로 나타나기만 하면 다른 동물은 무서워서 꽁무니를 뺀다.

이런 범을 어릴 때부터 길렀다고 흉포함이 없어질까. ‘범은 그려도 뼈다귀는 못 그린다’는 말대로 속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범을 길러서(養虎) 나중의 화근을 남긴다(遺患)는 이 말은 장래에 해가 되는 것을 모르고 사정을 봐주었다가 화를 자초하는 것을 뜻하게 됐다.

고사성어의 보고 ‘史記(사기)’의 項羽(항우) 본기에서 유래했다. 제왕들의 전기를 담은 본기에 司馬遷(사마천)은 스스로 왕이 된 항우도 같은 반열에 올렸다. 秦始皇(진시황)이 사망하자 각지의 군웅이 할거해 진나라가 멸망하고 楚(초)의 항우와 漢(한)나라 劉邦(유방)의 각축으로 좁혀졌다.

항우가 연전연승으로 기세를 올릴 때 유방은 關中(관중)을 공략하고 彭城(팽성)까지 점령했다. 화가 난 항우가 팽성을 기병으로 급습하자 유방은 부친과 부인을 두고 황급히 철수했다. 이후 일진일퇴로 장기전에 들어가 지친 초군은 식량 부족으로 사기가 떨어졌다.

부친이 항우에 잡혀 있는 유방은 유리한 국면에도 하는 수 없이 화의를 요청하여 鴻溝(홍구)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하기로 했다. 항우는 약속대로 가족을 돌려보낸 뒤 철군했고 유방도 떠나려 했다. 이 때 모사 張良(장량)과 陳平(진평)이 유방을 만류했다.

한나라가 천하의 반을 차지했고 민심도 호의적인데 초군은 지금 식량도 떨어졌으니 하늘이 준 기회라면서 말한다.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이는 호랑이를 길러 화근을 남겨두는 꼴이 되고 맙니다(今釋弗擊 此所謂養虎自遺患也/ 금석불격 차소위양호자유환야).’ 유방은 이들의 계책대로 항우를 추격, 힘을 빼고 垓下(해하)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뒀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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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14
노기복력老驥伏櫪 - 늙은 천리마가 구유에 엎드려있다, 재능을 펴지 못하고 썩히다.

노기복력(老驥伏櫪) - 늙은 천리마가 구유에 엎드려있다, 재능을 펴지 못하고 썩히다.

늙을 로(老/0) 천리마 기(馬/16) 엎드릴 복(亻/4) 말구유 력(木/16)

‘조조는 웃다 망한다’, ‘조조도 제 말하면 온다’, ‘조조의 살이 조조를 쏜다’ 등등 曹操(조조)에 관한 속담이 제법 된다. 모두 자만심이 가득한 간사스런 인물로 잔꾀를 부리다 자멸하는 부정적인 것들이다. 우리나라의 三國時代(삼국시대)보다 더 잘 알 정도로 많이 읽혔을 것이라는 중국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서 난세의 奸雄(간웅)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元明(원명) 시기의 羅貫中(나관중)이 蜀(촉)의 劉備(유비)를 정통으로 세우기 위한 것이라 하지만 조조는 실제 억울할 듯하다. 後漢(후한) 말기 어지러운 때에 태어난 그는 병법에 통달하고 할거한 군웅과 黃巾(황건)의 난 진압에 공을 세웠다. 선조가 환관의 양자였던 점과 후일 스스로 魏王(위왕)으로 칭한 게 빌미가 됐지 싶다.

조조는 다방면에 재주가 뛰어난 중에 시문에도 탁월했다. 八斗之才(팔두지재)라 하여 천하의 글재주 중 팔할을 차지한다는 그의 아들 曹植(조식)이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닌 셈이다. 진중에서도 밤에는 경전을 읽고 시부를 지었을 정도이니 建安文學(건안문학)을 꽃피게 한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조조의 작품은 시 20여 수와 산문 40여 수가 전해지고 있다는데 늙은 천리마(老驥)가 말구유에 엎드려 있다(伏櫪)는 구절이 나오는 ‘龜雖壽(구수수)’의 비유는 뛰어나 많이 인용된다. 말구유는 말먹이를 담아주는 그릇이다. 전반부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신령스런 거북이가 장수한다 해도, 언젠가는 죽는 때가 있고(神龜雖壽 猶有竟時/ 신구수수 유유경시), 날아다니는 뱀이 안개 타고 승천해도, 끝내는 흙이 되고 먼지가 되네(騰蛇乘霧 終爲土灰/ 등사승무 종위토회). 늙은 준마가 구유에 엎드려있어도, 그 뜻은 아득히 먼 곳에 있을 것(老驥伏櫪 志在千里/ 노기복력 지재천리).

뛰어난 인재는 나이든 이후라도, 웅대한 포부는 그치지 않으리(烈士暮年 壯心不已/ 열사모년 장심불이).’ 조조가 당시 고령이라 할 50세가 넘어 지었다는 시의 내용은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가 늙어 마구간에 엎드려 있어도 의지까지는 없어진 것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

의료 환경이 발달하여 인간의 수명은 백세시대라 할 정도로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노인이 오래 살고 출생인구는 갈수록 떨어져 기력 잃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모두 우려할 정도다. 이들을 위한 복지혜택이 후세에 큰 빚으로 남는다고 걱정도 한다. 하지만 생물학적 연령으로 일괄적인 은퇴를 한다면 개인은 물론 국가도 손실일 수 있다.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우리의 수준은 중노년층의 온몸 바친 열정에 힘입은 바가 있으니 지혜를 활용할 방법을 모색하는 길이 서로에 좋다. 늙었다고 뒷방에만 있다면 말구유에 엎드린 천리마와 같이 큰 뜻도 사라진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909.html
kolaswqetsrq 11.02 16:15
경전서후耕前鋤後 - 앞에서 밭을 갈고 뒤에서 김을 매다.

경전서후(耕前鋤後) - 앞에서 밭을 갈고 뒤에서 김을 매다.

밭갈 경(耒/4) 앞 전(刂/7) 호미 서(金/7) 뒤 후(彳/6)

비탈진 밭이지만 남편은 앞에서 쟁기질을 하고 아내는 뒤에서 호미로 김을 맨다. 추수가 끝난 황금빛 들판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처럼 평화로운 모습이 그려진다. 더불어 부부가 힘을 합쳐 오순도순 생활을 영위하는 모습도 정겹다. 이 성어는 부부가 서로 도우며 일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 됐는데 晉(진)나라 때의 유명 시인 陶淵明(도연명)에서 유래했다.

東晋(동진) 말기에 태어나 南朝(남조)의 宋(송)까지 六朝(육조) 최고의 시인인 도연명은 본명인 陶潛(도잠)보다 자로 더 많이 불린다. 그 이름으로 바로 떠오르는 것이 ‘歸去來辭(귀거래사)’다. 도연명은 증조부 陶侃(도간, 侃은 강직할 간)이 고위직을 지낸 집안이었지만 자신은 낮은 벼슬로 청빈한 생활을 했다.

彭澤(팽택)이란 고을의 현령을 하고 있을 때 상급 고을에서 감독관이 내려 왔다. 그럴 때 하급관리는 의관을 갖추고 맞이하는 것이 통례였는데 도연명은 그 앞에서 굽실거리며 융숭하게 맞아 줄 뜻이 전혀 없었다.

‘내 어찌 다섯 말의 쌀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의 어린 아이에게 절을 할 수 있겠는가(我不能爲五斗米 折腰向鄕里小兒/ 아불능위오두미 절요향향리소아)’라고 한탄했다. 그리고는 印綬(인수, 綬는 인끈 수)를 풀어 사직하고 고향으로 가면서 부른 노래가 귀거래사다.

부인도 말리지 않고 남편의 뜻을 따라 가난한 생활을 했다. ‘남편은 앞에서 밭을 갈고 아내는 뒤에서 호미로 김을 맸다(夫耕於前 妻鋤於後云/ 부경어전 처서어후운)’. 李延壽(이연수)가 편찬한 ‘南史(남사)’의 열전 隱逸上(은일상)에 실린 내용이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즐거워야 할 때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면 쉽게 풀릴 일이 그렇지 못해 커지니 안타깝다. 이와는 다른 경우지만 젊은 부부들은 맞벌이를 하고 싶어도 적합한 일자리가 없어 고심한다. 취직한 자리도 출산 후에는 복직하기가 어려우니 아예 출산을 기피하거나 결혼까지 무작정 미룬다. 부부가 힘을 합쳐 살아가는 사회 환경은 이룰 수 없는가.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186.html
kolaswqetsrq 11.02 16:16
■ 숙종과 상평통보

■ 숙종과 상평통보

숙종은 성리학 이념 강화와 실천에도 주력했지만, 실물경제에도 깊은 감각을 지닌 왕이었다. 1678년(숙종 4년) 숙종은 대신과 비변사 여러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화폐 주조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허적, 권대운 등은 변화하는 사회상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화폐 시행을 적극 건의했고, 숙종은 군신의 의견을 재차 구했다. 참석한 신하 대부분이 화폐 유통의 필요성에 공감하자, 숙종은 호조, 상평청, 훈련도감 등 각종 기관에 명해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주조하게 했다.

돈 400문(文)을 은 한 냥의 값으로 정해 시중(市中)에 유통하게 했다. 따라서 400문이 은 한 냥의 가치를 갖게 했으니, 은 한 냥은 동전(상평통보) 4배의 가치를 갖게 되는 셈이었다. 조선시대 화폐 단위인 1문은 1푼이라고도 했으며, 10푼이 1전, 10전이 1냥이 됐다. 10냥은 1관으로 관이 최고(最高)의 화폐 단위였다.

오늘날에는 한국조폐공사에서만 화폐를 만들지만 조선 시대에는 여러 관청에서 화폐를 주조했다. 상평통보는 나무처럼 생긴 주전(鑄錢) 틀에 금속을 녹여 부어서 동전을 만들어 떼어내는 방식을 취했는데, 요즈음도 흔히 쓰이는 ‘엽전(葉錢)’이라는 용어 역시 동전이 주전 틀에 나뭇잎처럼 달려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상평통보가 주조됨으로써 조선사회는 본격적인 화폐 유통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상평통보 도입 초기에 백성들은 조그만 동전으로 과연 쌀이나 옷을 살 수 있을 지를 두려워해 유통에 소극적이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동전을 가져오는 자에게 직접 명목가치에 해당하는 현물을 바꿔주는가 하면, 중앙 관리를 각 지방에 파견해 동전 사용을 독려했다. 또한 정부가 직영하는 시범 주점과 음식점을 설치해 화폐 유통의 편리함을 널리 홍보했으며, 세금을 화폐로 받기도 했다. 한성부, 의금부 등에서는 죄인의 보석금도 현물(現物) 대신에 동전으로 받으면서 화폐 유통을 촉진시켜 나갔다.

숙종 시대에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된 배경에는 국왕의 화폐 유통에 대한 의지와 함께 조선 후기 농업 사회가 서서히 상공업 사회로 전환하는 시대적 상황이 한몫을 했다. 세금과 소작료도 동전으로 대납(代納)할 수 있게 하는 조세 금납제(金納制)의 시행도 화폐 유통을 촉진시켰다. 국가 입장에서도 국가 재정을 위한 재원 확보 정책으로 상업과 수공업의 중요성이 대두됐고, 화폐 유통은 동전의 재료가 되는 광산 개발과 상업 발달을 촉진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346.html
kolaswqetsrq 11.02 16:16
■ 숙종의 역사 바로 세우기

■ 숙종의 역사 바로 세우기

숙종(1661~1720년)은 46년간 재위하면서 역사 바로 세우기에도 중점을 둔 왕이었다. 숙종 시대는 조선사회 지배 이념으로 자리를 잡은 성리학이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는 시기였다. 정치와 사회의 모든 기준점은 성리학 의리와 명분에 의해 결정됐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해결하지 못한 과거사(過去事)가 있었다. 바로 세조에 의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됐던 단종의 왕위를 회복하는 문제였다.

왕의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단종과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死六臣)의 복권(復權)은 언젠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였다. 조선 왕실 입장에서도 단종은 연산군이나 광해군같이 정치적으로 축출된 왕과는 분명히 구분돼야 하는 존재였다. 사육신 또한 의리와 충절이라는 성리학 기준에서 보면 국가에서 적극 표창해야 할 인물이었다.

이런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숙종 이전 왕들은 단종과 사육신의 명예를 회복시키지 못했는데, 이는 이들을 죄인으로 만든 세조의 처분 때문이었다. 단종의 묘호를 회복하고 사육신 충절을 국가적으로 공인하면, 세조의 왕권 자체에 큰 흠결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16세기 이래 재야 사림파 학자를 중심으로 사육신의 충절을 높이 평가하고 이들 정신을 따르려는 경향이 강했지만, 국가가 이를 인정하기엔 시간이 필요했다.

사육신을 국가적으로 포상해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제기됐지만 그 어떤 왕도 사육신을 ‘국가의 충신’으로 공인하는 데는 주저했다. 그런데 230여년이 지난 후, 숙종이 스스로 총대를 멨다. 숙종은 1691년(숙종 17년) 사육신의 관작을 회복하고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하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숙종은 사육신에 대해 ‘당시에는 난신(亂臣)이나 후세에는 충신(忠臣)’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래서 사육신의 복권 조치가 결코 선왕인 세조의 뜻과 어긋나지 않는 것임을 강조했다. 사육신 복권과 함께 1698년(숙종 24년) 11월 6일 노산군에게는 단종이라는 묘호가 내려졌다. 단종이 역사 속에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1457년 세조에 의해 죽음을 당한 후 묘소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했던 단종은 숙종에 의해 ‘단종’이라는 왕위를 회복했다. 무덤 역시 왕릉으로 인정받아 ‘장릉(長陵)’이 됐다.

어린 단종과 생이별 후 쓸쓸하게 말년을 보냈던 단종의 부인 송씨도 이때 ‘정순왕후’로 왕비의 위상을 되찾아 그녀의 무덤 또한 ‘사릉(思陵)’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숙종대인 1691년에 집행된 사육신의 복권과 1694년 단종의 왕위 회복은 성리학의 핵심인 충의(忠義) 이념을 왕실이 주체가 돼 회복시키려는 의지를 실천한 것이었다.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사당 현충사(顯忠祠)를 처음 세운 것도 숙종이었다. 이것은 충(忠)의 이념을 확산시켜 위기가 닥쳤을 때 신하와 백성들의 충절을 이끌어내려는 의도였다. 왕이 성리학 이념 실천을 주도하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전국에 서원과 사당이 세워졌다. 숙종 대를 전후로 전국 166곳에 서원이 설치됐고 이 중 105곳은 국가에서 지원을 받았다.

서원에는 면세와 면역(병역이나 부역 의무를 면함)의 특권이 부여되어 국가 경제를 어지럽히고 당쟁의 온상이 되는 등 그 폐단도 매우 컸다. 이에 숙종은 1714년 이후부터 서원 건립을 금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조선시대 서원과 사우(祠宇:사당)가 가장 전성기를 맞은 것은 숙종 시대였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600.html
kolaswqetsrq 11.02 16:17
■ 숙종과 백두산정계비 2편

■ 숙종과 백두산정계비 2편

1692년 청나라는 사신을 보내 국경선 조사를 요구했으나 조선 측의 강력한 반발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1697년 숙종은 국방에 해박했던 남구만 등에게 대책을 세울 것을 지시했다. 남구만은 두만강 이북이 목조, 익조, 도조, 환조 등 태조 이성계 선조들이 활동하던 지역이었음을 주지시키고 이곳을 확실히 확보하는 방안을 세웠다.

같은 시기 청나라는 지리에 익숙한 서양인을 활용해 백두산 일대 지형을 살피면서 영토 분쟁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 나갔다. 1711년(숙종 37년) 청과 조선 국민 사이에 서로 국경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양국 간 국경선을 확정하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됐다. 1712년 청나라는 예부를 통해 정식 공문을 보내왔다.

“청의 사신 목극등이 황제의 명을 받고 봉성에서부터 장백산까지 우리 변경을 조사하려 했으나 길이 험하기 때문에 육로를 통해 토문강을 조사하려 하니 협조를 원한다.”

양국은 여러 차례 실랑이를 거친 끝에 1712년(숙종 38년) 백두산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워 서로 영역을 정하는데 합의했다. 당시 청나라 전성기를 이끌었던 황제 강희제(康熙帝:1661~1722년)는 안정된 국력을 바탕으로 청 왕조 발상지였던 만주와 백두산 일대를 성지(聖地)로 만들기 위해 여러 차례 관리를 파견했다. 이 지역을 영토로 확정하기 위함이었다. 조선도 함경도 북방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영토 조사를 했고, 마침내 양국이 백두산 마루 분수령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워 서로의 영토 확정을 명문화했다.

“오라총관 목극등이 황제의 뜻을 받들어 변경을 답사해 이곳에 와서 살펴보니 서쪽은 압록강으로 경계로 하며 동쪽은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

양측이 합의한 비문(碑文)의 내용이다. 그러나 정계비에 쓰인 ‘서위압록(西爲鴨綠) 동위토문(東爲土門)’이라는 구절의 해석을 둘러싸고 19세기 후반부터 조선과 청의 영토 분쟁이 다시 일어났다. 바로 ‘백두산정계비 사건’이다. 서쪽을 압록강으로 정한 것에는 양측의 불만이 없었지만, 동쪽 경계로 설정한 토문강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양측은 의견이 달랐다.

청나라는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해석한 반면, 조선은 토문강을 만주 송화강의 지류로 해석한 것이다. 토문강을 송화강 지류로 해석하면 간도를 포함한 만주 일대가 조선 영토가 된다. 실제로도 이곳에 많은 조선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백두산정계비 사건 이후 조선에서는 북방 지역 주민 거주와 경제 활동을 보장하고 행정구역을 신설하는 등 적극적인 북방 정책을 추진했다.

이 같은 노력은 역사적으로 북방 지역뿐 아니라 만주 지역까지도 과거 우리의 세력권이었음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 역사적 배경 아래 19세기 중엽부터 두만강 지역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두만강을 넘어 간도 지역에 이주하고 토지를 개간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19세기 말 간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청과 국경 분쟁이 일어났을 때 조선은 두만강과 토문강은 다른 것이므로 정계비에 쓴 문구대로 압록강과 토문강을 국경으로 정하자고 주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면서 일본이 청과 ‘간도협약’을 맺고 간도를 청에 넘겨주고 말았다. 1931년 9월 만주사변 이후 정계비 또한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우리 선조들의 활동무대였던 간도지역은 영원히 우리 영토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31.html
kolaswqetsrq 11.02 16:17
■ 숙종과 백두산정계비 1편

■ 숙종과 백두산정계비 1편

숙종은 한양 도성(都城)과 북한산성 보수 공사를 적극 추진하면서 국방 강화에도 주력했다. 한양 도성은 태조 때 정도전의 주도로 처음 건설된 이래 세종대에 도성을 수축(집·다리·성 등을 보수함)했다. 이후 200여 년간 대대적인 정비가 이뤄지지 않았던 한양 도성을 다시 보수한 이가 숙종이다.

당시 수축한 돌은 규격화된 것으로 지금도 한양 도성을 답사하면 태조나 세종 시절 쌓은 돌과 숙종 때 쌓은 돌의 차이를 알아볼 수 있다. 북한산성은 숙종 즉위 초부터 축성(築城) 논의가 제기되었다. 이후 숙종은 어영청, 금위영 등 군영에 축성 사업을 맡겼고, 1712년 무렵 완성됐다. 1712년 6월 9일 북한산성에 왕이 임시로 거처하는 행궁(行宮)이 완성되고, 1712년 10월 8일에는 북한산성의 성곽과 창고, 문루, 우물 등도 마무리했다.

숙종의 국방 강화 사업은 해안 지역의 돈대(墩臺:평지보다 높게 두드러진 평평한 땅) 축성으로 이어졌는데, 강화도에 48개의 돈대를 설치했다. 수군 출신 안용복이 울릉도와 우산도(독도)에 출몰하는 왜인을 쫓아내고 일본과 담판 지어 이곳이 우리 영토임을 승인받은 것도 숙종 대인 1696년(숙종 22년)이었다. 안용복 사건을 계기로 숙종은 더욱 적극적인 해군 방위 정책을 수립했다. 국방 강화 사업은 지도 제작으로 이어졌다. 청과 조선의 국경 문제가 쟁점이 될 무렵인 1705년, 이이명은 청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됐다.

청나라 측 대외비로 분류됐던 국경 지도는 명나라 지도 ‘주승필람(籌勝必覽)’과 청나라 지도 ‘산동해방지도(山東海防地圖)’, 청나라 지리지 ‘성경지(盛京志)’ 등이 있었다. ‘주승필람’을 구하는 데 성공한 이이명은 곧 산동해방지도를 입수하는 일에 착수했지만 이 일은 쉽지 않았다. 청나라에서 이 지도를 대외 유출 금지 도서 목록에 올려놨기 때문이었다. 이이명은 잠시 지도를 빌린 후 수행한 화원(畫員)을 시켜 현지에서 급히 이 지도를 베껴 그리도록 했다.

조선에 돌아온 후 이이명은 이 지도와 조선의 ‘서북강해변계도(西北江海邊界圖)’ 등을 참고해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를 제작해 숙종에게 올렸다. ‘요계관방지도’는 숙종에게 바치는 어람용(御覽用)으로 비단에 그려져 병풍으로 제작됐다. 우리나라 북방 지역과 만주, 만리장성 등 군사 요충지가 자세히 그려져 있다.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인식됐던 백두산은 ‘백두(白頭)’라는 단어의 뜻처럼 흰색을 써서 강조했다. 청과 조선의 국경 지역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하는 숙종의 의지가 반영된 이 지도는 숙종이 늘 곁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숙종 대에는 백두산 일대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청과 영토 분쟁이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백두산을 신성시했는데, 청나라도 백두산을 장백산(長白山)이라 부르며 건국의 발상지로 여겼다. 양국 백성이 서로의 국경을 침범하는 사례가 빈번히 일어나자 17세기 후반부터 이 지역은 조선과 청의 주요 외교 현안이 됐다. 1679년 청나라 사신이 백두산을 측량하고 돌아갔는데, 당시 청나라에서 가져온 지도에는 백두산을 비롯한 조선 산천에 대한 내용이 매우 자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조정에서는 조선 측 지도가 유출된 것으로 판단해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고자 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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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18
무지외반증, 방치하면 큰일!

무지외반증, 방치하면 큰일!

무지외반증은 엄지발가락의 끝부분이 두 번째 발가락 쪽으로 과도하게 휘면서 엄지발가락의 뿌리 관절이 바깥쪽으로 튀어나오는 증상이다. 무지외반증은 흔한 증상이고 그 때문에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단순히 발 모양이 변형될 뿐만 아니라 걸음걸이가 흐트러지며 허리와 무릎 등의 다른 관절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무지외반증은 가족력과 평발 등의 선천적 요인으로 생길 수 있지만 앞볼이 좁은 신발을 자주 신거나, 하이힐을 자주 신으면서 후천적으로 생기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특히 최근에는 키 높이 신발과 볼이 좁은 구두를 선호하는 남성이 많아지면서 젊은 층의 남성에게도 무지외반증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미 무지외반증이 찾아왔다면 나도 모르게 엄지발가락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엄지발가락에 힘을 뺀 상태로 걷게 된다. 엄지발가락은 걸을 때 체중을 받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기능이 상실되면서 보행 불균형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다른 발가락에 체중이 과도하게 치우치게 되고, 그 결과 무릎 관절염과 허리디스크 등의 2차 질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무지외반증은 사전에 예방을 해야 하고, 이미 찾아왔다면 서둘러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맨발로 다니는 시간을 늘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발가락에 체중 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키 높이 신발을 자제하는 것이 좋고, 하이힐과 같은 신발 역시 자제하는 것이 좋다. 또한 굽 높이가 낮은 신발이라 해도 앞볼이 여유롭고 발 사이즈에 딱 맞는 신발을 선택해야 신발 모양에 따라 발 모양이 바뀌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이미 무지외반증이 찾아온 경우라면 증상의 정도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진다. 증상이 심하지 않는 초기에는 보조기를 이용해서 발가락 변형이 추가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심한 상태가 되었다면 수술도 고려해야 한다. 수술을 하더라도 생활 습관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생활 습관도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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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19
모기에 물렸을때 가려움 해소법

모기에 물렸을때 가려움 해소법

모기에 물렸을 때 도를 닦는 심정으로 며칠을 버틸 수 있다면, 가려움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가려움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으랴.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물린 부위를 손톱으로 눌러주기도 하고, 찰싹!찰싹! 때리면서 다른 고통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모기에 물린 부위를 자극하는 것은 더 심한 가려움으로 이어지게 되고, 상처로 인한 2차 감염도 생길 수도 있으니 자제하도록 하자.

다음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전용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다. 약국을 찾아가 보면 다양한 제품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구성 성분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가려움을 가라앉히는데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집에 제품을 준비해두지 않았는데 약국이 문을 닫은 늦은 밤에 윙윙대는 모기에게 당했다면, 슬프게도 시도해볼 수 없는 방법이다. 그리고 제품을 써도 가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모기에 물렸을 때 가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침 성분인 포름산 때문이다. 즉, 이 포름산을 없앨 수 있다면 가려움 역시 사라지게 된다. 그럼 포름산은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포름산은 열에 의해서 쉽게 변형되는 특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기에 물린 부위를 따뜻하게 해준다면 가려움은 금방 사라지게 된다.

숟가락을 하나 준비하자. 그리고 따뜻한 물도 준비하자. 사실 따뜻하다는 것보다 뜨겁다는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준비물이 갖춰지면 숟가락을 물에 담궈서 따뜻하게 만들자. 그리고 그 숟가락을 물린 부위에 가져가서 30초 정도 열감을 전달해주면 된다. 숟가락이 너무 뜨거워서 물린 부위에 붙이고 있는 것이 힘들다면, 붙이고 떼는 것을 반복하며 30초 정도를 유지해주면 된다. 화상이 되지 않을 수준에서 충분히 피부에 열감을 전달했다면 2분 정도를 기다리자. 그럼 가려움이 사라졌을 것이다. 만약 사라지지 않는다면 다시 한 번 같은 방법으로 피부에 열감을 전달해주면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993.html
kolaswqetsrq 11.02 16:19
당분이 땡길 때

당분이 땡길 때

설탕이 나쁜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피곤한 오후, 마카롱 하나만 먹었으면 하는 유혹은 뿌리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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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땐 포도나 바나나 같은 과일을 먹으면 좋다. 단맛에 대한 갈증을 채워 주면서 비타민, 미네랄 등 영양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입에 달면서 몸에도 이로운 간식, 또 뭐가 있을까? 미국 웹엠디가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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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크 초콜릿 = 단 게 먹고 싶을 땐 다크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을 것. 다크 초콜릿에는 플라보놀이라는 항산화 물질이 풍부해서 심장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한 두 조각이라면 설탕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 코코아 함량 86%의 다크 초콜릿 15g에는 설탕이 단 2g 들어 있다.

◆ 사과와 땅콩버터 = 사과를 여덟 쪽으로 자른 다음 땅콩버터를 얹을 것. 거기 시나몬 가루를 뿌리면 훌륭한 간식이 된다. 시나몬, 즉 계피는 항산화 성분이 풍부할 뿐더러 설탕을 쓰지 않고도 음식의 단맛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 대추 = 10월이 제철인 대추는 천연 당분의 보고. 비타민 B2를 비롯해 비타민 B6, 식이 섬유, 그리고 칼륨이나 망간 같은 미네랄도 풍부하다. 대추 보고 안 먹으면 늙는다는 옛말이 아주 일리가 없진 않다. 단 당뇨병 환자라면 양 조절에 신경을 써야 한다.

◆ 고구마 = 달콤하고 따끈한 고구마는 찬바람이 부는 날씨에 제격인 간식. 칼로리는 낮고 식이 섬유는 풍부하다. 비타민 A, B6, C와 함께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이 잔뜩 들어 있어서 노화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고구마를 씻을 때는 칼슘 등 미네랄 손실되지 않도록 조심할 것. 거친 수세미 대신 부드러운 스펀지, 또는 손으로 살살 문질러 씻는 게 좋다.

◆ 얼린 콩 = 얼린 완두콩을 삶으면 의외로 달달한 영양 간식이 된다. 얼린 콩 반 컵에는 단백질 4g을 비롯해 비타민 A, C, K가 넉넉히 들어 있다. 섬유질이 많기 때문에 포만감을 주는 것도 장점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726.html
kolaswqetsrq 11.02 16:20
비타민 C가 몸을 바꾼다

비타민 C가 몸을 바꾼다

비타민 C를 섭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과일과 채소만 의식적으로 챙겨먹는다면 권장량을 챙길 수가 있다. 다만 우리 몸은비타민 C를만들거나저장하지않기때문에 꾸준하게 매일섭취해야 한다.

섭취가 어렵지 않은 영양소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비타민C가 부족하기 쉬운 사람들이 있다. 투석을받는신장질환자, 폭음하는사람들, 그리고흡연자들이 그렇다. 흡연자들은 담배를피울때생기는활성산소에의한 손상을 복구하기 위해 비흡연자보다 하루에비타민C 35mg 가량이더필요하다.

만약 우리가 비타민C를충분히 섭취하지 못한다면 우리 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1. 느린상처치유

우리가 상처를 입었을 때 혈액과조직의비타민 C 수치가떨어지게 된다. 우리 몸은피부 상처를치료하는단백질인콜라겐을만들기위해비타민 C를 필요로 하는데, 비타민 C는감염과싸우는백혈구의한종류인호중구가잘작동하도록도와준다.

2. 잇몸출혈, 코피, 멍

비타민 C는혈관을건강하게유지시켜주고혈액응고를돕는다.콜라겐은건강한치아와잇몸에도필수적이다. 연구에 따르면 2주동안자몽을먹은잇몸질환 환자는잇몸에서피가많이나지않았다.

3. 체중증가

낮은비타민 C 수치와많은양의체지방, 특히뱃살사이의연관성이 밀접하다. 비타민 C는 몸이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지방을얼마나잘태우는 지 여부에 영향을미칠수있다.

4. 건조하고주름진피부

비타민 C가풍부한식단을먹는사람들은피부가매끈하고 부드러울 수 있는데, 이는 비타민 C가산화방지제로 활성산소로부터피부를보호하는데도움을줄수있기 때문이다. 활성산소는 지방, 단백질, 그리고심지어 DNA를분해한다.

5. 지치고짜증을 잘 내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비타민 C의수치가낮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피곤하고짜증이 심한것으로 나타났다. 141명의직장인이 비타민 C 섭취 후 2시간이 지나자 활력을 찾았는데, 특히비타민 C수치가처음에더낮을수록 효과가 좋았다. 이후 이효과는 24시간 지속되었다.

6. 약한면역력

비타민 C는면역체계와관련된여러가지일을가지고있기때문에, 부족해지면 병에더잘걸리고회복하는데더힘든시간을보낼수있다. 비타민 C가폐렴이나방광염같은질병을 막아주는데 도움을줄수있다는증거가 발견되었으며, 심지어심장병과몇몇종류의암에걸릴확률을낮출수도있다.

7. 시력손실

만약 나이와관련된황반변성을가지고있다면, 이 증상들은 비타민 C와다른산화방지제·특정미네랄이 부족할 경우 더빨리악화될수있다. 음식에서비타민 C를충분히섭취하는것은백내장을예방하는데도움이될수있다.

8. 괴혈병

괴혈병은 오늘날에는 비교적드물다. 그러나 만약비타민 C를하루에 10mg 이하로 계속 섭취한다면 이 병에 걸릴 수 있다.괴혈병이있는사람들은흔들리는 치아, 갈라진손톱, 관절통증, 부서지기쉬운뼈, 꼬인 체모(corkscrew body hair)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비타민 C 섭취가증가하면, 이런 증상은보통 3개월안에 낫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c.html
kolaswqetsrq 11.02 16:21
커피의 부작용

커피의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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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당뇨병, 심부전 위험을 낮추고 치매를 예방하는 등 다양한 건강 효과를 낸다. 하지만,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아 주의해야 한다. 커피 속 카페인 성분이 주원인이다. 카페인은 몸의 교감신경을 항진시켜 각종 이상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대부분 커피를 과도하게 마셨을 때 발생하지만, 카페인 민감성인 사람은 단 한 잔의 커피 섭취만으로도 몸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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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중단의 필요성을 알리는 카페인 부작용은 다음과 같다.

▲두통

▲불면

▲짜증

▲긴장

▲잦은 배뇨 또는 배뇨 조절 불가능

▲빠른 심장박동

▲근육떨림

7가지 증상 중 하나라도 자주 나타나면 커피를 중단하거나 디카페인 커피로 바꿔야 한다. 특정 약을 복용하는 사람도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게 좋다. 미국 메이요클리닉에 따르면 대표적으로 에페드린, 테오필린, 에키네시아 성분의 약을 복용할 때 커피를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 에페드린은 코감기약에, 테오필린은 기관지협착증약에, 에키네시아는 감기 예방약에 사용되는데, 모두 카페인의 부작용을 증대시킬 수 있다.

일반적인 하루 커피 섭취 권장량은 4잔(카페인 400mg) 이하다. 다만, 임신 중이거나 임신을 시도중인 여성, 모유 수유중인 여성은 매일 카페인 사용량을 200mg 미만으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이는 하루 약 2잔에 해당하는 커피 양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544.html
kolaswqetsrq 11.02 16:21
바나나의 놀라운 효능

바나나의 놀라운 효능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일 중 하나인 바나나의 건강상 효능 5가지가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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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KOFRUM)에 따르면 미국의 식품·건강 전문 웹 미디어인 저것 말고, 이것 먹어!(Eat this, Not that!)는 영양사가 들려주는 바나나가 건강에 미치는 주요 영향이란 제목의 2일자 기사에서 바나나의 장점 5가지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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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양이 풍부하다. 중간 크기의 바나나엔 110kcal의 열량, 30g의 탄수화물, 3g의 식이섬유가 들어있다. 비타민 B6(면역력 강화에 기여하는 비타민) 하루 권장량의 약 25%, 칼륨·비타민 C의 각각 약 10%를 제공한다. 지방·콜레스테롤·나트륨이 없다는 것도 영양상의 장점이다. 식품 품질과 안전지엔 시력 유지·심장병과 특정 유형의 암 위험 감소 등 수많은 이점이 있는 카로티노이드·플라보노이드를 포함해 다양한 생리활성물질이 바나나에 들어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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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다이어트에 이롭다. 바나나에 든 식이섬유는 소화를 느리게 해 배고픔과 식탐을 억제한다. 소화를 돕고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도록 하는 저항성 전분도 들어있다. 바나나의 푸르름이 짙을수록 저항성 전분이 더 많이 함유돼 있다. 저항성 전분이 혈당을 개선하고 포만감을 높이는 호르몬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것은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미국 시카고의 ‘후각과 미각 치료·연구 재단’은 배가 고플 때 바나나 냄새를 맡으면 식욕이 억제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셋째, 혈압을 조절한다. 중간 크기의 바나나엔 칼륨이 422mg 들어있고 나트륨은 없다. 미국 심장협회(AHA)는 바나나와 같이 칼륨이 풍부한 식품을 자주 먹으면 혈압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성인은 하루 4700mg의 칼륨이 필요하므로 중간 크기의 바나나는 일일 요구량의 거의 10%를 제공하는 셈이다.

넷째, 항균과 항바이러스 효능을 갖고 있다. 바나나엔 항균·항바이러스 효과를 가진 특정 단백질이 포함돼 있다. 페룰산(ferulic acid)·루페올(lupeol)·렙틴(leptin) 등 바나나의 일부 생리 활성 물질을 항균 활성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고대 의학에선 바나나가 설사·수두·홍역 등 감염성 질환 치료에 쓰였다.

다섯째, 기분이 좋아지게 한다. 바나나에 풍부한 비타민 B6는 ‘행복 물질’로 통하는 세로토닌 분비를 돕는다. 바나나는 뇌에서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트립토판의 전구체를 제공하는 몇 안 되는 식품 중 하나다. 낮은 혈중 비타민 B6 수치가 우울증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498.html
kolaswqetsrq 11.02 16:22
관절염에 좋은 음식과 안좋은 음식

관절염에 좋은 음식과 안좋은 음식

관절이 아픈 대표적 질환인 관절염을 앓고 있다면 가을·겨울이 무서울 수밖에 없다. 기온이 떨어지면 근육과 혈관이 수축하면서 염증이 발생하기 쉬워져 통증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때 관절염 치료와 함께 식이요법을 병행하면 증상을 더 빨리 완화할 수 있다.

<좋은 음식>

▶생선 기름·올리브 오일

등푸른생선, 올리브 오일, 들기름 등은 염증과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 등푸른생선의 기름에 들어 있는 오메가3 지방산은 사이토카인을 비롯해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들의 반응을 억제해 관절염을 완화한다. 등푸른생선과 올리브 오일을 함께 섭취하면 더욱더 효과적이다. 생선 기름에는 뼈 건강을 높이는 비타민D도 풍부하다.

▶파속 채소

마늘, 양파 등과 같은 파속 채소는 항염증 효과가 있어 관절염에 좋다. 실제로 영국 킹스칼리지런던대 연구팀이 평균 연령 58.9세 여성 쌍둥이 1000쌍을 대상으로 식생활 습관을 조사해 엉덩이·무릎·척추뼈 등의 상태를 검사한 결과, 파속 채소가 관절염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파속 채소에 풍부한 이황화디알릴 성분이 연골 조직 손상 효소들의 생성을 억제했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녹황색 채소

질병관리청과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관절 손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항산화 영양소인 비타민C·비타민E·베타카로틴·셀레늄 등이 풍부한 식품을 먹어야 한다. 녹색 채소에 이 성분들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녹색 채소로는 미나리, 두릅, 쑥, 달래, 돌나물, 취나물 등이 있다. 뼈와 관절의 주요 영양소인 칼슘, 칼슘 흡수를 촉진하는 비타민K·비타민D 등도 챙겨야 하는데, 이는 당근 등 녹황색 채소와 곡류, 과일 등에 함유돼 있다.

<안 좋은 음식>

▶짠 음식

짠 음식은 관절의 주요 영양소인 칼슘 배설을 촉진한다. 짠 음식을 많이 먹으면 신장이 나트륨 배설을 증가시키는데, 나트륨은 배출될 때 칼슘도 함께 배출된다.

▶커피

커피 속 카페인은 체내 칼슘 흡수를 방해하고, 이뇨 작용을 촉진해 소변으로 칼슘이 빠져나가도록 한다. 특히 커피를 하루 2잔 이상 과도하게 마셨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536.html
kolaswqetsrq 11.02 16:22
행복을 부르는 일곱가지 자세

행복을 부르는 일곱가지 자세

1. Happy look (부드러운 미소)

웃는 얼굴을 간직하십시오. 미소는 모두를 고무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2. Happy talk (칭찬하는 대화)

매일 두 번이상 칭찬해 보십시오. 덕담은 좋은 관계를 만드는 밧줄이 됩니다.

3. Happy call (명랑한 언어)

명랑한 언어를 습관화 하십시오. 명랑한 언어는 상대를 기쁘게 해줍니다.

4. Happy work (성실한 직무)

열심과 최선을 다하십시오. 성실한 직무는 당신을 믿게해줍니다.

5. Happy song (즐거운 노래)

조용히 흥겹게 마음으로 노래 하십시오. 마음의 노래는 사랑을 깨닫게 합니다.

6. Happy note (아이디어 기록)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하십시오. 당신을 풍요로운 사람으로 만들것입니다.

7. Happy mind (감사하는 마음)

불평대신 감사를 말 하십시오. 비로소 당신은 행복한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156.html
kolaswqetsrq 11.02 16:23
뇌졸중 예방 생활수칙 10가지

뇌졸중 예방 생활수칙 10가지

1. 담배는 미련 없이 끊어라!

환자 스스로 할 수 있는 뇌졸중 예방 치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금연이다. 일반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에 비해 뇌졸중 발생률이 2~3배나 높다. 1년 금연하면 뇌졸중 발생위험도를 50% 감소시킬 수 있으며, 5년 이내에 그 위험도가 비흡연자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진다.

2. 술은 최대 두 잔까지만 허락하라!

주종과 상관없이 매일 7잔 이상을 마시면 뇌졸중 위험이 3배나 높아진다. 과도하거나 만성적인 음주는 부정맥과 심근수축 이상을 유발할 수 있으며 혈압을 급격히 상승시킬 뿐 아니라 뇌동맥 혈관에 손상을 주기 때문에 혈관이 딱딱해지는 뇌동맥 경화증을 유발하며, 그 결과 뇌출혈이나 뇌경색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3. 과체중을 주의하라!

비만인 경우 혈중 지방과 콜레스테롤 농도가 높아지면서 혈액의 흐름에 방해를 받는다. 우선 혈압이 높아지기 쉽고 당뇨병에 잘 걸리며, 고지혈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뇌졸중에 걸릴 확률도 함께 높아진다. 따라서 비만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2~3배 정도 뇌졸중 위험이 높다. 뇌졸중 예방을 위해서는 정상 체중을 유지해야만 한다.

4. 1주 3회 30분씩 꾸준히, 규칙적으로 운동에 투자하라!

규칙적인 운동은 혈압을 낮추고 비만을 예방해주고, 또한 활발한 신체 활동을 통해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혈관의 탄력성이 증가해 뇌졸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1주일에 3회 이상 규칙적으로, 매회 30분 이상 해주는 것이 중요하며 걷기, 수영, 에어로빅 등 산소를 많이 소모하는 운동이 도움이 된다. 단, 본인의 운동능력에 맞게 하고 절대 무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5. 싱겁고 담백하게 식단을 혁신하라!

소금의 과다섭취는 혈압을 상승시킨다. 혈액 속 나트륨 농도가 높아지면 삼투압 작용에 의해 물을 더 끌어들이면서 혈액 양이 증가, 혈관이 받는 압력도 커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지방이나 콜레스테롤은 혈관 내 찌꺼기로 남아 동맥경화나 고혈압의 원인이 된다. 콜레스테롤이 많이 들어 있는 육류를 피하고 과일이나 채소, 생선을 많이 섭취하면 뇌졸중 발생률이 무려 2/3 가량이나 줄어들 수 있다.

6. 스트레스는 그때그때 풀어라!

인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 내의 시상하부와 뇌하수체를 거쳐 여러 가지 호르몬을 분비한다. 우선 스트레스는 교감신경-부신수질 축을 통하여 카테콜아민이란 교감신경 호르몬을 분비케 함으로써 심장 박동수를 증가시키고 말초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높이며, 계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동맥경화증에 걸릴 위험을 증가시킨다.

7.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 변화를 주시하라!

뇌졸중은 노인들에게 많은 질환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스트레스, 과로, 흡연, 과음에 시달리는 40∼50대 남성 환자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뇌졸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검진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좋다. 특히 50대 이상의 경우 최소 6개월에 한번씩은 혈압과 혈당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콜레스테롤 수치도 수시로 체크, 200 이상이면 혈관에 혈전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식이요법과 운동을 통해 그 이하로 떨어뜨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8. 만성 질환부터 치료하라!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고지혈증, 혈관기형 등 질환들이 뇌졸중의 위험도를 높일 수 있으므로 해당질환의 치료가 곧 최고의 뇌졸중 예방법이다. 고혈압 환자에서는 정상인에 비해서 뇌졸중이 5배 가량 더 많이 발생하며 심장질환자에서는 2배 정도 많다. 특히 심장질환의 경우 뇌혈관질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뇌졸중이 있는 경우는 심장 검사를 철저히 해야 하고, 심장병이 있는 경우는 뇌졸중의 예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당뇨병은 뇌졸중의 중요 위험 인자 중 하나인 고혈압을 직·간접적으로 일으키며, 또한 그 자체로 뇌졸중의 위험인자로 작용한다. 당뇨병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뇌졸중의 빈도가 2배 정도 높다.

9. 응급상황 발생시 3시간 내 병원으로 이송하라!

일단 뇌졸중으로 쓰러진 환자는 3시간 이내에 병원으로 옮겨 혈전용해제 사용과 같은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후유증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흔히 환자의 증세가 저절로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거나 청심환을 먹이는 등 민간요법을 실시하느라 병원에 늦게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환자의 상태가 더 악화되어 치명적인 결과를 유발하게 된다.

10. 한번 발병했던 환자는 재발 방지에 올인하라!

뇌졸중이 이미 한번 발병했던 사람의 경우 5년 내에 4명중 1명이 재발하는데, 특히 발병 후 첫 30일에 가장 위험하다. 이러한 경우 재발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약물치료 등 2차 예방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특히 잘못된 생활습관을 아직 고치지 못한 경우와 고혈압이나 심장질환, 당뇨병, 고지혈증 등 원인질환이 있는 경우에 재발하기 쉬우므로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87.html
kolaswqetsrq 11.02 16:23
염증 치료에 도움이 되는 필수 비타민

염증 치료에 도움이 되는 필수 비타민

1. 비타민A

비타민A는 폐, 피부, 장기, 면역기능의 항염을 위해 가장 중요한 비타민 중 하나입니다. 비타민A는 면역기관에 필수적인 영양소로 제공하여 면역기관이 염증을 대응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항산화제로써 암과 같은 질병의 진행을 막아줍니다. 비타민A가 부족하면 항염기능이 떨어져 여드름, 대장질환, 폐질환 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2. 비타민E

비타민 E는 또 하나의 강력한 항산화 성분을 가진 비타민으로 심장질환 예방과 심장계에 생긴 염증 치료에 특히 도움을 줍니다. 비타민E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어 토코페놀과 토코트리에놀을 혼합하여 사용하는것이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 입니다. 산화로 인한 염증과 심장계의 염증 물질들을 몸밖으로 내보내는 방식으로 염증을 완화시켜 줍니다.

3. 비타민D

건강보조제를 섭취하지 않고 비타민D를 섭취하는 유일한 방법은 햇볕을 쬐는것 입니다. 비타민D는 적절한 신체기능을 위해 필요하며 신체 조직의 염증, 암과 같은 병의 예방에 도움을 줍니다. 비타민D는 근육의 기능을 향상시켜 주며 혈압과 혈당 조절기능은 물론 신부전증의 예방에도 도움을 줍니다. 이런 모든 질병은 염증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예방 및 완화에 도움을 주는 비타민을 가까이 하시길 바랍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337.html
kolaswqetsrq 11.02 16:24
무병장수 노하우

무병장수 노하우

1. 매일 충분히 운동한다.

운동을 안 하는 사람은 없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움직이느냐다.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헬스장 갈 여유가 없어 운동하기 어렵다면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 된다.

2. 음식을 천천히 자주 먹어라.

천천히 먹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비만을 관리한답시고 배고픈 것을 무조건 참으면 오히려 밥 먹을 때 빨리, 많이 먹게 된다. 허기질 때 바나나, 사과나 삶은 고구마를 먹는 것을 추천한다. 만복중추가 자극돼, 당장 허기를 면하니 밥 먹을 때 천천히 적게 먹을 수 있다.

3.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미국 하버드대 베일런트 교수는“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라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47세 정도까지 형성된 인간관계는 이후의 인생을 예견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 형제자매간 우애의 영향력도 크다.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65세까지 충만한 삶을 살았던 사람 중 93%는 어린 시절 형제자매와 친밀한 관계였다고 한다. 반대로 어린 시절 불우한 사람에게도 방법은 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면 충분히 보상받고 얼마든지 건강해질 수 있다.

4.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늦게까지 깨어 있으면 꾸준히 먹기 때문에 비만이 될 확률이 높고 몸에 피곤함이 쌓인다. 잠은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한 것이다. 밤에 잠이 안 온다면 숫자를 세거나 음악을 듣는다. 골치 아픈 책을 읽는 것도 좋다.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날 수 있다. 일찍 일어나면 아침에 쫓기지 않아 하루 컨디션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또 낮잠도 필요하다. 몸이 산뜻해져 자칫 나른해지기 쉬운 오후에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누워서 낮잠을 잘 수 없는 환경이 많다. 이땐 푹신한 쿠션을 깔고 책상에 엎드려 새우잠을 자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5. 평생 뇌를 개발한다.

 대뇌는 모든 신체 기관의 사령부다. 뇌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쓰면 쓸수록 자극받아 똑똑해진다. 뇌 개발을 위해 굳이 어려운 프로그램을 찾아 볼 필요는 없다. 공부하는 뇌는 늙지 않는다. 가장 손쉬운 공부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아하!’하고 깨달은 게 있으면 책에 밑줄을 긋고, 저자한테 할 말이나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실컷 낙서한다. 이런 지적 활동이 중단되면 사람은 급격히 늙는다는 것을 명심한다. 은퇴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늙은이가 된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이런 이유다.

6. 적극적으로 취미활동을 만든다.

취미 활동 그 자체로 몸이 이완되고 즐거우니 이롭지만 이를 더 크게 활용하는 법이 있다. 바로 생산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게 취미라면 어설프더라도 직접 소설을 써본다.

7. 마음껏 감동하라.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 잘 늙지 않는 까닭은? 들에 핀 꽃 한 송이에 감동해 시 한편을 만들고, 이웃이 흥얼거리는 콧노래에 감동해 작곡을 한다. 감동을 잘한다는 것은 그만큼 뇌가 유연하고 탄력이 있다는 뜻이다. 딱딱하게 굳은 머리는 그런 섬세한 감동을 보이지 않는다. 감동하는 과정에서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분비되면 몸이 온통 밝아진다. 늙을 수가 없다.

8. 오랫동안 현역으로 뛰라.

요즘 선진국에선 75세까지 현역으로 뛰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75세까지는 영 올드(Young Old)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 나이, 혹은 그 나이 이상으로 왕성하게 일하는 노인이 많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926.html
kolaswqetsrq 11.02 16:25
혈관 청소 식품

혈관 청소 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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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혈액의 응고를 막는 당근
",

당근에 들어 있는 비타민 C, 카로틴, 비타민 E가 혈관이나 조직을 산화시키는 활성 산소의 활동을 막아 깨끗하고 탄력 있게 혈관을 유지한다. 아침마다 사과 반 개와 당근 한 개를 함께 갈아 주스를 만들어 마시면 맛도 좋고 혈액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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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혈액의 길을 뚫어주는 생강
",

생강은 강한 방향 성분이 혈액 순환을 촉진해 찌꺼기들로 막히고 좁아졌던 혈관을 뚫어준다. 생강차를 마시면 온몸에서 땀이 나면서 열이 내려가는 것도 혈액의 이런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또 생강이나 마늘처럼 향이 강한 야채들은 혈소판의 응집을 막아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등을 예방한다. 즙을 내서 먹으면 효과가 더 빠르다. 생강차를 끓여 마시거나 생강즙을 내서 홍차에 섞어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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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지혈증을 예방하는 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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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는 식물성 단백질과 리놀레산이 풍부하다. 리놀레산은 혈액 안에 들어 있는 응어리진 지방을 녹여 고지혈증을 예방하는 영양분, 막힌 혈관을 뚫는 기능이 뛰어나 한의학에서는 뇌졸중에 두부 습포를 했을 정도라고 한다. 고혈압 환자들은 두부를 날로 차게 해서 먹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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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콜레스테롤을 녹이는 꽁치
",

꽁치나 고등어 같은 등푸른 생선에 들어 있는 불포화 지방산은 응고된 콜레스테롤을 녹이고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추는데 탁월해 심장 질환 예방에 그만이다. 조리할 때 구우면 불포화 지방산이 많이 유실되므로 조림을 해서 먹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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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묵은 피를 걸러내는 부추
",

부추는 궂은 피를 내보내고 새로운 피로 혈관을 채우는 작용을 한다. 부추에는 유화아릴이라는 자극 성분이 있어 에너지 대사를 촉진하고 혈액 순환을 활발하게 한다. 부추는 어떻게 조리하든 소화가 잘 되지만 피를 맑게 하기 위해서는 생채를 만들거나 샐러드에 곁들여 생으로 먹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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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혈액의 독소를 빼내는 미역·다시마
",

해조류에 많은 요오드는 신진 대사를 높이고 혈액의 독성을 뽑아 내는 무기질이다. 각종 인스턴트 식품으로 인해 혈액에 녹아든 독성을 해독 하므로 인스턴스 식품을 많이 먹는 청소년들에게 특히 좋다. 요오드는 참기름과 함께 조리하면 흡수율이 높아진다. 미역국을 끓이기 전 참기름에 달달 볶아 끓이면 맛과 영양이 모두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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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활성 산소를 제거하는 카레 가루
",

카레는 혈액의 지방질을 산화시켜 성인병을 발생시키는 활성 산소를 없애는 데 탁월하다. 카레에 들어 있는 크로프, 터머릭, 코리앤더 등의 성분은 마늘이나 생강처럼 강력한 산화 작용을 하기 때문. 당근이나 감자 같이 혈액을 깨끗하게 하는 다른 야채들을 듬뿍 넣고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먹으면 효과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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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혈관과 조직의 산화를 막는 검은깨
",

깨에 포함된 항산화 물질 중 세사미놀과 세사민은

강력한 황산화 작용으로 깨끗한 혈액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중에서도 블랙 푸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검은깨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은깨는 가루를 내었다가 선식이나 우유에 타 먹으면 고소함이 더해져 맛도 좋고 영양도 훨씬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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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녹차 가루
",

녹차는 카테닌 성분이 활성 산소를 제거하고 카페인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어 깨끗한 혈액을 만드는 데 2배로 효과가 좋은 식품이다. 잎을 우려내는 것도 좋지만 차의 영양을 100% 이용하려면 녹차가루를 사용한다. 가루로 차를 타 마시거나 음식 위에 솔솔 뿌려 먹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420.html
kolaswqetsrq 11.02 16:25
충분한 수분 섭취가 필요한 이유

충분한 수분 섭취가 필요한 이유

신장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에서부터 체중 감량에 이르기까지, 물 마시기는 우리 몸의 모든 세포와 기관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1. 물은 관절에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관절과 척추의 디스크에 있는 연골에는 약 80 %의 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기적인 탈수는 관절의 충격 흡수 능력을 감소시켜 관절통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2. 물은 타액과 점액을 만듭니다.

침은 우리가 음식을 소화하도록 돕고 입과 코와 눈을 촉촉하게 유지시킵니다. 마찰과 손상을 방지합니다.

당분이 포함되지 않은 물을 마시는 것은 입을 깨끗하게 유지할 뿐만 아니라 충치를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3. 물은 몸 전체에 산소를 전달합니다.

피는 90 % 이상의 물이며 혈액은 신체의 다른 부위로 산소를 운반합니다.

4. 물은 피부 건강과 젊음을 유지시킵니다.

탈수는 피부의 건조를 유발하고 이로 인해 피부 질환에 대한 방어력이 줄어들고 탄력이 떨어져 주름을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5. 물은 뇌, 척수의 기능 및 호르몬의 생산에 관여합니다.

탈수는 뇌의 구조와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또한 물은 호르몬과 신경 전달 물질의 생산에 관여 하므로 탈수가 지속

된다면 사고와 추론 등 인지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6. 물은 체온을 조절합니다.

피부의 중간층에 저장되어있는 물은 몸에 열이 날 때 피부 표면에 땀을 배출하여 체온을 조절합니다.

7. 물은 소화 기관의 기능에 영향을 미칩니다.

탈수는 소화 장애, 변비 및 위 내부를 고농도의 산성으로 만들게 되며 이것은 가슴앓이 및 위궤양의 위험을 증가시킵니다.

8. 물은 몸 속 찌꺼기를 배출합니다.

땀과 소변과 대변을 배출하는 과정에서 몸 속 찌꺼기를 배출합니다.

9. 물은 혈압 유지에 도움이 됩니다.

물이 부족하면 혈액의 농도가 높아져 끈적끈적 해 지므로 혈압이 높아 질 수 있습니다.

10. 물은 기도의 기능에 영향을 미칩니다.

탈수가 되면 수분 손실을 최소화 하기 위해 기도의 기능이 억제되며 이것은 천식과 알레르기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11. 물은 미네랄과 영양소를 운반합니다.

이 영양소들은 물에 녹아서 몸의 곳곳으로 도달 할 수 있습니다.

12. 물은 신장 손상을 예방합니다.

신장은 체내의 체액을 조절합니다. 불충분 한 물은 신장 결석 및 기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13. 운동 중 성능을 향상 시킵니다.

운동 중 탈수로 인해 성능이 저하 될 수 있습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더 많은 물을 소비하면 격렬한 활동 중에 성과가 향상 될 수 있다고 제안 했습니다.

14. 물은 체중 감량에 도움을 줍니다.

주스와 음료수 대신 물을 섭취 하면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식사 전에 물을 미리 마시면 포만감을 만들어 과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15. 물은 숙취의 가능성을 줄인다.

회식이나 파티 등 음주를 할 때 얼음과 레몬만을 넣은 달지 않은 소다수를 알코올 음료와 번갈아 마시면 알코올 과다 섭취를 막을 수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987.html
kolaswqetsrq 11.02 16:26
젊어도 조심해야 할 성인병

젊어도 조심해야 할 성인병

나이 든 사람들이 걸린다고 생각되는 노인병을 앓는 젊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조기 진단 기술이 발달한 덕분이기도 하고 부실한 식사와 운동 부족 탓인 점도 있다. 미국 건강정보 사이트 ‘프리벤션닷컴’이 이런 질병 4가지와 예방 대책을 소개했다.

1. 당뇨병

통상 진단 연령은 40~50대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발병할 수 있다. 미국 메드스타 당뇨병연구소의 책임자인 전문의 미셸 매기는 “제2형 당뇨병에 걸리는 젊은이가 많은 것은 부적절한 식사와 계속 앉아 있는 생활방식 탓이 크다”고 말한다. 그는 “당뇨병 환자는 진단 시 대부분 과체중이며 특히 허리둘레가 길면 위험이 높다”며 “혈당을 높이는 섬유질이 적은 음식, 질산염이 많은 음식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2. 뇌졸중

통상 진단 연령은 65세 이상이지만 20~30대에서 조기 발병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뇌졸중 예방을 위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것은 금연이다. 만일 담배를 가끔씩이라도 피운다면 지금 끊어야 한다. 흡연은 뇌졸중 위험을 2배로 높인다. 또 다른 위험 요인은 고혈압, 당뇨, 비만, 고 콜레스테롤 혈증이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뇌졸중 프로그램 책임자인 사잠 후세인은 “이 같은 병은 조기에 치료하고 통제해야 한다”며 “여기에 소금 및 트랜스지방 섭취를 줄이고 일주일에 두 차례 생선을 먹고 운동을 하라”고 말했다.

3. 유방암

통상 진단 연령은 45세 이상이지만 10대에서도 발병할 수 있다. 미국 데이너파버 암연구소의 전문의인 앤 패트리지는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알코올은 하루 와인 한 잔으로 제한해야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만일 분명한 가족력이 있다면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는 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4. 통풍

통상 진단 연령은 50~60대이지만 최근 30대 환자가 늘고 있다. 통풍은 과음을 피하고 체중을 조절하면 예방할 수 있다. 미국 관절염재단의 로버트 해리스는 “젊은이들이 통풍에 걸리는 최대 이유는 과체중과 과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하지만 지나친 다이어트로 인한 급격한 체중 감소는 통풍의 원인인 요산의 증가를 유발한다”고 덧붙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850.html
kolaswqetsrq 11.02 16:27
피로 회복에 좋은 음식

피로 회복에 좋은 음식

1. 아스파라거스

아스파라거스에는 콩나물보다 약 10배나 많은 아스파라긴산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스파라긴산이 피로에 좋다는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죠? 추가적으로 아스파라거스는 피로회복에 좋은 음식, 피곤할 때 좋은 음식이라는 것 외에도 당뇨를 예방하고 혈압을 낮춰줄 수 있으며, 변비예방,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는 평소 즐겨먹는 것이 좋습니다.

2. 부추

부추는 약재라 할 정도로 그 효능과 효과가 뛰어난 봄나물인데.. 특히나 간 기능의 회복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며, 자양강장 효과가 뛰어나기도 합니다. 또, 혈액순환과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 역할도 있으며, 항암효과와 빈혈을 예방해주는 효능도 있습니다.

3. 마늘

마늘을 먹으면 맵고 얼얼한 맛이 나는데 이것이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모세혈관이 튼튼해지고,심장과 위장의 작용을 원활하게 해주는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따라서 몸이 따뜻해지고 냉증이 치유될 순 있지만,너무 무리한 섭취는 위에 자극이 되므로, 구워서 먹는 것이 더 좋습니다.

4. 포도

포도의 안토시아닌은 노화와 질병의 원인이 되는 활성산소를 중화시켜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즉, 안토시아닌은 항산화 물질로 세포가 공격 당하는걸 방어해주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세포를 보호해줄 수 있고 자연스레 피곤함을 덜어내는데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포도가 갖고 있는 효능을 극대화시키려면 포도의 알맹이만 먹는 것 보다는 포토의 껍질과 씨를 함께 먹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5. 토마토

토마토 속안의 빨간 색소가 활성 산소를 없애주기 때문에 노화를 방지하고 암을 예방하는 대표적인 항산화 성분인 칼슘, 인, 철, 나트륨, 칼륨, 아연 등의 미네랄과 비타민 A. B1, B2, B6, C, E, 등 대부분의 비타민이 골고루 섞여 있는 채소입니다. 평소에 즐겨드시는 채소과일이기도 하면, 토마토에 있는 구연산, 비타민, 무기질 성분은 피로회복에 효과적이고, 각종 질병예방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평소에 자주 섭취해 주시면 좋습니다.

6. 딸기

딸기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저하시켜주고, 안토시아닌 성분이 혈관, 눈의 피로회복과 시력을 보호해주며, 황산화 작용으로 생기 있는 피부로 만들어 주는 효과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7. 매실

매실의 유기산은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고, 매실에는 해독작용이 있어서 숙취로 생긴 피로로 없애주며 간 기능을 회복시켜주기 때문에 매실을 꾸준히 드시면 몸이 가벼워지고 피로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271.html
kolaswqetsrq 11.02 16:27
남자의 정력에 좋은 음식

남자의 정력에 좋은 음식

1.자두

사람을 기운차게 합니다. 혈관 벽에 플라크(지방 침전물)가 쌓이는 것을 막아준다. 동맥을 깨끗하게 한다. 혈액 순환이 잘 되기 때문에 발기력이 향상된다.

2.병아리콩

아르기닌으로 불리는 아미노산을 포함하고 있다. 이 산은 산화질소를 공급하고 혈관을 확장시키며, 몸 안에 있는 힘을 발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몬드나 호두, 그리고 연어에도 이런 효능이 있다.

3.올리브유

지중해에서 주로 생산되며 건강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이 다량 함유돼 있다. 성 욕구를 고조시키는 호르몬인 테스토테론을 만들어낸다. 매일 두 스푼 정도만 섭취하면 충분하다.

4.적포도주

매일 2잔의 적포도주를 마시는 여성은 술을 마시지 않는 여성에 비해 윤활작용이 잘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매일 5온스(약 141.8그램) 정도의 적은 양만 마셔야 한다.

5.다크초콜릿

다크초콜릿을 매일 먹는 여성은 안 먹는 여성에 비해 성욕구와 성기능이 훨씬 뛰어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초콜릿 속의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혈액 순환을 좋게 해 성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6.토마토

노화를 방지하는 항산화제를 다량 포함하고 있다. 몸의 세포를 건강하게 유지시킨다. 빨간고추, 마늘, 시금치, 브로콜리, 사탕무, 베리 등도 황산화제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502.html
kolaswqetsrq 11.02 16:28
철분 부족할 때 나타나는 증상

철분 부족할 때 나타나는 증상

1. 무척 피곤하다

어지간히 피곤해도 일이 좀 힘들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기 쉽다. 하지만 철분이 결핍되면 신체 조직에 산소가 훨씬 적게 공급되기 때문에 필요한 에너지를 빼앗기게 된다. 평소보다 두서너 배 더 피로하거나 약해진 느낌이 들거나 초조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면 철분 결핍을 의심해볼 수 있다.

2. 안색이 창백하다.

창백하다는 것이 병약해 보인다는 뜻으로 쓰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혈액이 붉은 것은 색소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이 들어있기 때문인데, 피부가 장밋빛을 띠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철분이 부족하면 헤모글로빈의 생산이 적어져 얼굴 등이 창백해진다. 특히 입술 안쪽이나 잇몸, 아래 눈꺼풀 안쪽이 평소보다 덜 붉다면 철분 결핍 때문일 수 있다.

3. 쉽게 숨이 찬다.

아무리 깊게 심호흡을 해도 몸속 조직에 공급되는 산소량이 낮으면 숨이 찬 느낌이 든다. 계단을 오르거나 운동을 끝냈을 때도 이런 증상이 있을 수 있지만 철분 결핍 때도 생기는 경우가 많다.

4. 심장이 두근거린다.

심장에 과부하가 걸리면 불규칙 박동이나 심잡음, 심장확장 등으로 고통 받을 수 있다. 철분 결핍으로 빈혈증이 생겼을 경우에도 이런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연구에 따르면, 심근증과 철분 결핍이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장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철분 수치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5. 하지불안 증후군이 있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꼼지락거려야 하는가? 미국에서 하지불안 증후군 환자의 약 15%가 철분 결핍이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철분 수치가 낮아질수록 증상이 더 나빠진다.

6. 머리가 아프다.

철분이 부족하면 신체는 다른 부위에 앞서 뇌에 가장 먼저 산소를 공급한다. 하지만 필요한 양보다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뇌동맥이 부풀어 오르고 두통을 일으킬 수 있다.

7. 이유 없이 불안하다.

그다지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지 않은데도 불안감이 자꾸 증가한다면 철분 결핍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산소가 부족하면 신체의 교감신경계를 촉진시키게 돼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철분이 부족하면 심장이 마구 뛰게 되고 편히 쉬어야 할 상황에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한다.

8. 머리카락이 유독 많이 빠진다.

철분 결핍은 빈혈증으로 발전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모발 손실을 유발한다. 빈혈증이 생기면 우리 신체는 가장 급한 곳부터 산소를 보내기 때문에 모발을 보호하는 곳은 산소가 부족하게 게 돼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9. 염증성 장 질환이 있다.

철분을 충분히 섭취하더라도 크론병이나 궤양성 대장염 같은 염증성 장 질환이 있으면 철분과 같은 영양소를 흡수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이렇게 되면 소화관에 손상을 주고 염증을 계속 일으킨다. 이런 질환이 있다면 의사에게 철분 흡수를 증가시키는 방법을 상의할 필요가 있다.

10. 혀의 색깔이 창백하고, 통증이 있다.

혀의 색깔이 창백하고 핏기가 없다면 철분이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 철분이 부족하면 혀의 미오글로빈(근육 헤모글로빈)과 근육 단백질도 줄어든다. 적혈구의 단백질은 신체의 근육뿐만 아니라 혀의 근육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철분이 부족한 사람들은 종종 혀가 까슬거리고 아픈 통증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049.html
kolaswqetsrq 11.02 16:29
당뇨와 췌장에 좋은 돼지감자 효능과 먹는법

당뇨와 췌장에 좋은 돼지감자 효능과 먹는법

돼지감자는 뚱딴지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데 밭 이곳저곳에서 뚱딴지처럼 마구 나온 데서 유래했습니다. 돼지감자의 효능이 알려지기 전에는 사람은 못 먹고 돼지나 먹을 수 있는 감자라고 해서 돼지감자라 부르고 돼지 사료로 쓰였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성분으로는 이눌린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지구에서 돼지감자의 이눌린 함유랑 만큼의 인눌린 함유량을 갖고 있는 식물은 없다고 합니다. 또한 돼지감자의 칼로리는 매우 낮은 편인데, 이는 다당류에 속해있기 때문이며 천연 인슐린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돼지감자의 성분은 이눌린 외에도 단백질, 회분, 당질, 칼슘, 비타민 b, c, 나이아신 성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효능

1. 당뇨에 좋다.

돼지감자의 경우, 칼로리가 매우 적으며 소화가 잘 안되기 때문에 흡수율 또한 낮습니다. 그때문에 돼지감자의 섭취를 많이한다고 해도 혈당이 높아지거나 하지 않아 당뇨에 좋은 것이지요. 또한 돼지감자의 이눌린 성분은 인슐린을 정상치로 유지하는데 유효한 성분이지요. 이때문에 오래전 부터 돼지감자의 사용이 당뇨 환자들에게만은 꾸준히 되었습니다.

2. 변비에 좋다.

돼지감자의 식이섬유 함유율은 매우 높은 편으로 장내의 유산균을 증식시키는 역할까지 하기 때문에 변비에 특효입니다. 특히, 다이어트시 나타나는 변비가 만성이 되는 것을 돼지감자의 섭취를 통해 예방할수 있으며 대사를 촉진시켜주어 장운동을 좋게하는 기능도 돼지감자의 기능에 포함되어있어 좋습니다.

3. 췌장에 좋다.

췌장은 당뇨와도 연관이 있는 기관으로 인슐린을 분비하는 작용을 합니다. 돼지감자의 경우, 이러한 췌장의 기능을 정상화 시켜주는 기능을 하는데, 이때문에 돼지감자의 요리를 많이 먹는 예루살램의 사람들은 췌장의 기능이 매우 뛰어나다고 합니다.

4. 체지방 분해

돼지감자의 이눌린은 체지방을 분해하는 효과도 있는데, 실제로 꾸준한 돼지감자의 섭취는 체내의 중성지방의 농도를 줄여주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돼지감자의 섭취를 통해 다이어트의 효율을 더욱 높일수 있겠지요.

■ 돼지감자 효능 모음

1. 돼지감자 덩이줄기 효능

돼지감자 줄기는 약재로도 쓰일 만큼 건강에 좋습니다. 돼지감자의 덩이줄기에는 녹말, 당분, 이눌린, 루테인, 헬레네엔, 베타인과 같은 성분이 함유돼 있습니다. 이눌린 성분은 천연 인슐린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켜 혈당이 낮아지도록 도와 당뇨 환자들에게 좋습니다. 루테인 역시 당뇨병 환자들에게 좋은 성분입니다. 당뇨병성 망막증을 예방하고 눈 건강에도 좋습니다.

2. 돼지감자 열매부분 효능

돼지감자는 마와 같은 건강식품처럼 칼로리가 낮습니다. 아무데서나 재배돼 가격이 저렴하고 칼로리도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 제격입니다. 돼지감자에는 안토시아닌과 폴리페놀 성분이 풍부해 혈관 노폐물 제거에 도움이 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춥니다.

3. 돼지감자차 효능

돼지감자차는 돼지감자 열매 자체를 먹는 것보다 먹기 간편합니다. 과다 섭취 시 소화가 잘되지 않을 수 있다는 돼지감자의 부작용도 해결합니다. 돼지감자차의 효능 중 하나는 이눌린 성분으로, 혈당 관리에 도움이 됩니다. 돼지감자차의 효능 두 번째는 폴리페놀 성분입니다. 폴리페놀은 항산화 작용을 통해 피부 노화를 방지합니다.

* 먹는법 *

돼지감자의 경우, 100g을 기준으로 얇게 썰어 생으로 먹어도 되고 믹서기에 간 돼지감자의 즙을 먹어도 좋습니다. 또한 돼지감자의 경우, 독이 없기 때문에 많은 양을 먹어도 되며 꾸준히 먹을시 암을 예방하는 기능도 볼수 있어 꾸준한 섭취가 중요한 식품입니다. 돼지감자의 섭취를 꾸준히하면 성장하는 어린이들의 성장도 빠르게 한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824.html
kolaswqetsrq 11.02 16:29
■ 숙종과 환국換局 7편

■ 숙종과 환국(換局) 7편

숙종은 장희빈의 아들인 세자보다 숙빈 최씨의 아들 연잉군(延㭁君)을 더 이뻐했다. 원래 왕자나 공주가 혼인을 하면 궐 밖에 나가 살게 마련인데, 연잉군은 혼인한 후에도 8년이나 숙종의 곁에 데리고 있었다. 연잉군(延㭁君)에 대한 이같은 숙종의 사랑은 연잉군으로 하여금 왕위에 대한 야심을 키우게 했다.

숙종은 50이 넘으면서부터 자주 병에 시달렸다. 특히 안질(眼疾)이 심해 거의 시력을 잃었고 늘 두통에 시달렸다. 그런데다 전국에 자연재해가 들고 역질(疫疾)이 돌아 숱한 사람이 죽었다. 병에 지친 숙종은 이이명(李頥命)을 불러 독대한 후 후사를 부탁하고 세자(장희빈 소생으로 후에 경종)에게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도록 명했다. 그리고는 세자에게 아들이 없으니 뒷날 연잉군(후에 영조)을 왕세제(王世弟)로 삼아 왕위를 계승케 하라고 이이명(李頥命)에게 비밀리에 당부를 했다.

병약한 데다 노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장희빈의 아들인 세자가 왕위를 이었을 때 뒷감당을 못할 것을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숙종은 일단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킨 다음 실정(失政)을 꼬투리 잡아 폐세자시키고, 연잉군(延㭁君)으로 하여금 뒤를 잇게 하면 자신이 평생 추구해 온 강한 왕실도 유지되고, 세자와 연잉군 둘 다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자의 대리청정은 아무 문제가 없어 노론의 극심한 견제에도 불구하고 세자는 무난히 경종으로 즉위할 수 있었다.

1720년 6월 8일 숙종은 경희궁에서 60세의 나이로 승하했다. 숙종 이전까지 60세 넘도록 살았던 왕은 태조(74세), 정종(63세), 광해군(67세)에 불과했다. 하지만 세 왕은 모두 왕위에서 물러난 후 승하했다. 반면 숙종은 왕의 자리에 있으면서 60세를 넘긴 최초의 왕이다. 숙종의 무덤은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자락에 조성된 명릉(明陵)이다.

명릉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무덤이 함께 있는 쌍릉의 형식인데, 두 번째 계비인 인원왕후의 무덤도 명릉 좌측 언덕에 위치해 숙종을 지켜보고 있다. 첫 번째 왕비였던 인경왕후의 익릉 또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여기에 더해 숙종 하면 떠오르는 인물 장희빈의 무덤은 원래 경기도 광주(廣州) 오포읍에 있다가 1970년 명릉 근처로 이장됐다. 이로써 숙종은 죽어서도 자신의 부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숙종을 대개 기존 사극 드라마에서 봐왔던 이미지로, 인현왕후와 장희빈, 숙빈 최씨의 치마폭에 둘러싸여 궁중 음모의 중심에 있었던 왕으로 보는 시각이 크다. 하지만 숙종의 본모습은 적장자라는 정통성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재위하면서 왕권을 본격적으로 행사한 ‘강한 왕’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방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펼치며 왕조의 안정을 구축해 나갔다. 숙종 시기를 거치며 조선은 왜란과 호란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다. 조선의 르네상스이자 정치, 문화 황금기라고 불리는 영·정조 시대가 만들어진 것은 숙종이 기반을 잘 닦아뒀기 때문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_20.html
kolaswqetsrq 11.02 16:30
■ 숙종과 환국換局 6편

■ 숙종과 환국(換局) 6편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서인이 몰락하고 정국은 다시 남인 세상이 되었다. 장희빈이 정식 왕비가 되고, 희빈의 오빠인 장희재 등 장씨 일가가 득세했다. 인현왕후는 폐위되어 안국동 사가(私家)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 무렵 무수리 출신의 한 궁녀가 숙종의 눈에 띄었다. 후에 영조를 낳은 숙빈 최씨이다. 숙빈 최씨는 인현왕후를 시종했던 궁녀 출신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된 이후에도 그녀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키는 모습을 보여 숙종을 감동시켰다. 숙빈 최씨의 등장은 장희빈을 향하고 있던 숙종의 마음을 크게 변화시켰고, 조정에는 또 다시 격변(激變)의 바람이 불었다.

1694년 4월 숙종은 남인 우의정 민암 등이 서인을 제거할 목적으로 고변 사건을 일으키자, 오히려 민암에 대해 군부를 우롱하고 신하들을 도륙(屠戮)하려 했다고 질책하면서 권력에 포진해 있던 남인을 대거 숙청한다. 이것이 갑술환국(甲戌換局)이다. 갑술환국으로 권력은 다시 남인에서 서인으로 교체됐고, 남인의 지지를 받던 장희빈도 폐출(廢黜)됐다. 갑술환국으로 남인은 더 이상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없을 지경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숙종은 조선 후기 당쟁이 가장 격렬했던 시기를 살았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46년간 장기 집권하는 동안 신권에 맞서 싸우면서 왕권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1680년의 경신환국(庚申換局), 1689년의 기사환국(己巳換局), 1694년 갑술환국(甲戌換局) 이렇게 세 번의 환국은 서인과 남인의 당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던 정치적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들이다. 하지만 환국의 진정한 승리자는 왕 숙종이었다. 어느 한 당파의 정치적 독주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왕권을 강화한 숙종의 정치 역량은 영조 대의 정치적 안정을 가져오는 기반을 제공했다.

숙종 대에 여러 작은 사건들은 일어나긴 했으나 대규모 반란이나 역모 사건이 없어 숙종은 대체로 성공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숙종은 광해군대에 시행되기 시작한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했고, 숙종 38년에는 북한산성을 수축하고 강화도에 50개의 돈대(墩臺)를 쌓아 국방을 강화했다. 또, 상평통보(常平通寶)를 널리 퍼뜨려 화폐경제를 정착시켰다는 것도 치적 중 하나이다. 또한, 왕실 관계자들의 복권(復權)에 앞장서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죽은 방번과 방석을 복권시켜 각각 무안대군과 의안대군으로 추증하고 국가 제사를 받도록 했다.

 "
또 이방원에 의해 허수아비 왕 노릇을 잠깐 하고 묘효(廟號)도 없었던 공정대왕(恭靖大王)에게 정종이라는 묘호를 올렸고, 노산군의 묘호를 단종으로 정했다. 또 《노산군일기》를 《단종실록》으로 승격시켜 단종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그에 따라 자연히 사육신(死六臣)도 복권(復權)되어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게 했다. 사상적으로는 성리학의 의리론과 명분론을 철저하게 조선사회 내에 구현했지만 그렇다고 이념만 추구하진 않았다. 상평통보 유통과 같이 실리적인 경제 개혁을 단행해 상업과 유통경제가 균형 있게 발전해갈 수 있는 기틀도 마련했다.
",

- 7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6_57.html
kolaswqetsrq 11.02 16:31
■ 숙종과 환국換局 5편

■ 숙종과 환국(換局) 5편

신진사류들은 자신들의 구심점으로 박세채를 떠받들었고, 박세채는 일약 신진사류들의 영수로 떠오르게 되었는데, 이들을 소론(小論)이라 하고 송시열을 따르는 이들을 노론(老論)이라 불렀다.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가 된 것이다. 선조 때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파당(派黨)이 형성되었다가 동인이 남인(南人)과 북인(北人)으로 분파했다.

남인은 다시 청남과 탁남으로 분파하고,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한 것이다. 공작정치의 달인 김석주는 자신과 송시열에 반대한 박세채를 겨냥해 세찬 공격을 하던 중 51세를 일기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어쩌면 그의 이른 죽음은 그에게 있어서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격변하는 정세에 그의 방자함이 그를 어떤 불행에 빠트렸을지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다시 서인 정권 시대가 열렸지만, 숙종이 왕통을 계승할 아들을 낳지 못하면서 정국은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숙종의 정비(正妃)인 인경왕후가 왕자를 낳지 못하고 사망하자, 숙종은 1681년 15세의 신부 인현왕후(1667~1701년)를 계비(繼妃)로 맞이했다. 그러나 인현왕후에게도 5년이 넘도록 후사(後嗣)가 없었다.

이때 숙종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이 나인內人으로 뽑혀 궁에 들어온 그 유명한 장희빈이다. 장희빈은 그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오촌 숙부 역관 장현과 정권에서 밀려났던 남인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마침내 숙종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1688년 그토록 원했던 왕자(후의 경종)를 낳음으로써 일약 왕비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숙종으로서는 왕이 된 지 14년 만에 보는 첫아들이었다. 기쁨에 넘친 숙종은 새로 태어난 왕자를 원자(元子)로 하고 그 이름을 정할 것을 지시했다.

정국(政局)의 실세였던 서인은 중전인 인현왕후의 나이가 아직 어린 점을 들어 원자 이름을 정하는 것이 신중하지 못한 처사임을 지적하고, 아직 22세밖에 되지 않은 중전(인현왕후)의 왕자 생산을 좀 더 기다려 보자고 요청했다. 더구나 중전은 서인의 실세 민유중의 딸이기도 했다. 그러나 숙종이 워낙 강경하게 나오자 서인의 영수 송시열이 고령의 몸으로 거듭 상소문을 올려 원자(元子) 정호(定號)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나섰지만, 그의 상소는 오히려 숙종을 자극했다. 서인이 정국에 포진해 있는 이상 왕권 강화를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한 숙종은 서인을 물리치고 남인을 재등용했다. 이것을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이라 한다.

조정은 권대운, 목내선, 김덕원 등 남인 차지가 되고 100여명 이상의 서인이 쫓겨났다. 기사환국은 인조 때부터 조선 후기 사상(思想)과 정치의 중심인물로 활약한 송시열의 죽음을 가져왔다. 원자(元子) 정호(定號)를 반대하는 상소를 계속 올리다 제주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죄인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둠)된 송시열은 마침내 왕명을 받아 서울로 오던 중 숙종이 내린 사약을 받고 숨을 거뒀다. 인조 대부터 4대에 걸쳐 신권의 상징이었던 인물 송시열이었지만 숙종을 당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 6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_96.html
kolaswqetsrq 11.02 16:31
■ 숙종과 환국換局 4편

■ 숙종과 환국(換局) 4편

경신환국의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는 유악(帷幄) 사건은 갑작스런 환국(換局:시국이 바뀜)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음모로 보인다. 허적의 잔치는 숙종이 이미 아낌없는 지원을 한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고, 특히 임금의 유악을 말도 없이 가져다 쓰는 일은 매우 신중한 허적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신환국(庚申換局)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김석주가 오래도록 준비한 공작이었고, 김석주의 노련한 공작에 세뇌된 숙종의 전격적인 뒤집기 한판이었다.

경신환국 이후 김익훈, 신여철 등 서인이 요직을 차지했고, 갑인예송 이후 철원으로 유배 가 있던 서인 김수항은 석방됨과 동시에 영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경신환국은 남인 축출의 신호탄에 불과했다. 경신환국이 단행된 일주일 후 공작정치의 명수 김석주는 자신이 파견한 정탐조를 통해 허적의 서자(庶子)인 허견 등이 남인과 가까운 복선군(福善君:인조의 3남인 인평대군의 아들)을 왕으로 삼으려 한다는 고변서(告變書)를 올렸다.

이들은 모두 잡혀와 고문 끝에 허견(許堅)은 능지처참 되었고, 왕으로 추대될 것이라고 말이 나왔던 복선군(福善君)은 교수형을 당했다. 허견의 아버지 허적(許積)은 처음에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하여 죽음을 면하였으나, 뒤에 악자(惡子)를 엄호하였다 하여 죽임을 당하였고, 이에 연루되어 모두 100여 명이 처형되거나 유배되는 바람에 남인(南人)은 철저히 몰락하고 말았다. 숙종의 나이는 당시 겨우 20세에 불과했다.

김석주가 주도한 정치 공작은 결과적으로 남인의 축출과 서인 득세의 권력 교체를 가져와 남인이 떠난 자리를 서인들이 채웠다. 서인은 곧바로 잃어버린 6년의 복구에 나서, 먼저 서인의 영수 송시열을 복권(復權)시켰다. 송시열의 유배생활은 사형수의 하루하루나 다를 것이 없었다. 남인들은 틈만 나면 송시열을 사사(賜死)하려 했고, 결단이 빠른 왕이 언제 명을 내릴지 몰랐기 때문이다. 때문에 남인 정권을 몰아낸 김석주는 구원자나 다름없었고, 이런 이유로 송시열은 이후 여러 방면에서 김석주와 뜻을 같이 했다.

최강 권력자의 꿈을 이룬 김석주는 남인의 복귀 가능성을 우려해 남인을 사실상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우고, 어영대장 김익훈을 파트너로 삼아 남인들을 역모로 엮기 위해 동분서주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김석주와 같은 외척(外戚) 발호(跋扈:함부로 날뜀)와 공작정치에 크게 염증을 느낀 서인 측 신진사류들은 증거도 없이 사건을 만든 김익훈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쳤다.

서인들의 주목을 받으며 다시 등장한 송시열은 김익훈을 싸고 돌며 그 처벌에 반대했다. 다른 때 같으면 송시열의 한마디로 사태가 잠잠해졌겠지만, 송시열이 김석주로 인해 변했다고 생각한 신진사류들이 이번에는 크게 반발했고, 이때 사림에서 송시열 다음으로 존경을 받던 박세채가 소를 올려 신진사류들 편을 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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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32
■ 숙종과 환국換局 3편

■ 숙종과 환국(換局) 3편

강력한 소년군주 숙종의 지원에다가 김석주의 은밀한 공작을 발판 삼아 집권을 하게 된 남인세력은 오래지 않아 둘로 분열되었다. 권력을 잡은 남인은 너무 오래간만의 집권이어서 그랬는지 힘이 강해지고 도가 지나치면 임금의 의심과 버림이 있다는 것을 간과(看過)하고 안일에 젖기 시작했다. 무사안일(無事安逸)이 불러온 대가는 혹독했다. 송시열 등 서인에 대한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측과 비교적 온건한 측으로 갈리게 되었는데, 전자의 사람들을 청남(淸南)이라 불렀고, 후자 측 사람들을 탁남(濁南)이라 불렀다.

소년 숙종은 성장해가면서 권력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동안 서인을 악으로 간주하고 남인에게 힘을 실어 주었으나, 남인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면 결국 임금도 어찌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숙종이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에는 김석주의 처세(處世)와 공작(工作)의 힘이 컸다.

원래 서인 출신인 김석주는 남인 정권 탄생에 기여했지만 허적이 이끄는 남인 정국을 그대로 두고 볼 생각은 애시 당초 전혀 없었다. 김석주는 뛰어난 처신으로 자신은 근왕파(勤王派)라는 것을 숙종에게 강하게 인식시키는 한편 허적 등 남인에 대한 숙종의 경계심을 한껏 자극시켰다. 오랫동안 집권하고 있던 서인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다. 서인들은 윤휴, 허적 등 남인의 전횡을 비판하면서 공작정치에 능했던 김석주를 중심으로 남인 정권 축출에 나섰다.

1680년 마침내 그 기회가 왔다. 1680년(숙종 6년) 2월, 남인의 리더 영의정 허적은 조부(祖父)가 시호(諡號)를 받은 것을 축하해 대신들을 불러 축하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이날은 비가 많이 내렸는데, 숙종은 허적을 위해 왕의 잔치 때 쓰는 유악(帷幄:기름 먹인 장막)과 차일(遮日:햇빛가리는 가림막)을 허적의 집에 갖다 주라는 지시를 하였다. 그러나 허적은 이미 궁중의 유악과 차일을 갖다 쓰고 있는 중이었다. 이를 안 숙종은 "과인의 허락도 없이 임금의 물건을 가져갔단 말이냐. 한명회도 못한 짓을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라며 대노했다.

숙종은 그날로 남인이 맡고 있던 훈련대장(訓鍊大將), 총융사(摠戎使) 등의 병권(兵權)에 관한 요직(要職)을 서인 측 인물로 물갈이 해버렸고, 승지(承旨)와 대간(臺諫:사헌부와 사간원)마저 대거 서인으로 교체했다. 이어서 남인인 좌의정, 우의정, 대사헌이 사직(辭職) 소(訴)를 올리자 즉시 이를 수리해버렸다. 또 새로 제수된 서인 대간들이 남인의 비위(非違)를 들먹이며 파직과 유배를 주청(奏請)하자 숙종은 이를 모두 받아들였다. 이렇게 전격적으로 남인에서 서인으로 정권이 교체된 사건을 ‘경신환국(庚申換局)’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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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33
■ 숙종과 환국換局 2편

■ 숙종과 환국(換局) 2편

이순이 성장하여 10세가 되자, 서인의 주축이던 김장생(金長生)의 손자 참의 김만기의 열 살 난 딸과 혼인을 했다. 그녀가 인경왕후(仁敬王后) 김씨이다. 숙종의 장인인 김만기의 친동생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쓴 김만중(金萬重)이다. 인조반정 후 정권을 장악한 서인들은 왕비와 세자빈은 무조건 서인(西人) 집안에서 나오기를 바랬다. 오래도록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신료(臣僚)들뿐만 아니라 왕과 왕비 그리고 대비까지도 당쟁(黨爭)에 휘말리는 어지러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금수저로 태어난 숙종 이순(李淳)은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아마도 부드러운 성품의 우유부단(優柔不斷)한 아버지를 보면서 아버지처럼 살지 않고 왕권을 강화시키고자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성격도 아주 괴팍해서 어머니 명성왕후조차 숙종의 성질이 감당이 안 된다고 한탄할 정도였다. 숙종은 몸에 열이 많아 한겨울에도 손에 부채를 들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나의 화증(火證)이 뿌린 내린 지 이미 오래고 나이도 쇠해 날로 더욱 깊은 고질이 되어간다. 무릇 사람의 일시적 질환은 고치기 쉽지만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것은 화증이다. 화열이 위로 올라 비록 한 겨울 이라도 손에서 부채를 놓을 수가 없다.』 《숙종실록 30년 12월 11일》

변덕이 죽 끓듯 했던 숙종 치세 동안 당쟁은 극(極)으로 치달아 수많은 중상모략과 고변(告變)이 판을 치고, 그에 따라 노론과 소론 그리고 남인이 번갈아 정권을 잡고 축출과 등용이 되풀이 되는 정치적 격변(激變)을 겪었다. 정권이 바뀌는 환국(換局:시국이 바뀜)이 있을 때마다 몰락하는 파당(派黨)의 인물들은 역적으로 몰려 매번 수십 명씩 처형당했고, 어제의 충신은 오늘의 역적이 되었다.

14세의 소년 임금 숙종은 즉위 후 곧 과거 예송 논쟁에서 송시열이 했던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송시열 등 서인(西人)들을 줄줄이 내쳤다. 숙종이 즉위 후 예송(禮訟:예의 해석을 둘러싸고 벌이는 논쟁)논쟁 최 중심에 서 있었던 송시열의 잘못을 곧바로 지적한 것은 정통성이 있는 왕의 강한 이미지를 대내외에 인식시키기 위한 조처로 파악된다. 이로써 인조반정 이후 50여 년 간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윤휴, 허적 등을 중심으로 한 남인(南人)들이 세력을 얻게 되었다.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이 치열하게 대립하던 숙종대 초반 정국(政局)을 이끌어간 인물은 공작(工作) 정치의 달인 김석주이다. 서인의 대표적 명문가 출신에 현종과 숙종의 가까운 외척(外戚)이기도 한 김석주는 송시열을 스승으로 모신 서인 출신이었으나, 송시열이 대동법을 추진한 김석주의 조부(祖父) 김육과 대립하는 바람에 송시열과 관계가 좋지 않아졌다. 김석주는 한직(閑職)에 머무르다가 현종 말년의 2차 예송 논쟁에서 서인임에도 자신의 스승인 서인의 거두 송시열을 강하게 비판하였고, 결국 숙종이 즉위하면서 남인 정권이 권력을 잡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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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33
■ 숙종과 환국換局 1편

■ 숙종과 환국(換局) 1편

숙종이 조선 19대 왕으로 즉위했을 때 조선은 당쟁(黨爭)이 절정에 오른 시기였고, 그만큼 신하(臣下)의 위상이 높았다. 숙종은 왕으로서 미약했던 단종이나 명종보다 불과 2살 많은 14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그럼에도 숙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사실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숙종 하면 장희빈이나 인현왕후가 먼저 떠오른다. 이 때문에 숙종에게 아마도 성숙한 왕의 이미지가 씌워졌을 수도 있다.

숙종은 어렸지만 즉위 직후부터 서인 정권의 판세를 뒤엎고 남인을 등용했다. 14세의 어린 나이였지만 숙종은 결코 신권에 휘둘리지 않았다. 오히려 정통성을 바탕으로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는 카리스마를 보였다. 어린 나이가 무색할 만큼 탁월한 정치 역량을 발휘한 것이다.

숙종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의 당쟁으로 파생된 환국(換局:정국이 바뀜)이다. 이제까지 환국은 서인과 남인의 당쟁이란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숙종의 강한 카리스마와 대담함을 보면 환국의 실질적인 주역은 숙종이었는지도 모른다. 숙종의 카리스마에는 현종의 적장자라는 정통성에서 오는 자신감도 한몫 했다.

조선시대 27명의 임금 중에서 적장자(嫡長子)가 왕위에 오른 이는 7명(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뿐이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숙종이다. 더군다나 다른 왕들이 대부분 재위기간도 짧고 단명(短命)한 것에 비해 약 46년 동안 재위한 숙종은 정통 코스를 밟아 왕위에 오른 뒤 안정된 입지를 확보하고 많은 업적을 남겼다.

모친 명성왕후(明聖王后:현종비) 또한 청풍 김씨 명문가의 피를 이은 인물이었다. 조선시대 여러 왕비 중에는 세자빈을 지냈으나 왕후에 오르지 못한 경우나 왕후에 올랐으나 왕대비가 되지 못한 경우, 그리고 왕대비는 되었으나 세자빈은 아니었던 경우도 많았다. 그에 비해 명성왕후는 세자빈-왕비-왕대비라는 정통 코스를 밟은 유일한 왕비(王妃)였다.

이처럼 혈통 상(上) 하자도 없고 별다른 경쟁자 없이 왕세자 교육을 받으며 왕권 강화를 준비하고 있던 숙종 눈에 가장 큰 걸림돌은 당쟁(黨爭)이었다. 특히 부친 현종 재위 마지막 해에 일어난 1674년의 예송논쟁은 숙종에게 당쟁의 문제점을 확실히 인식하게 해 주었다. 숙종대의 정치는 유독 당파 간의 대립과 정치 세력의 교체, 정치적 거물의 희생 등이 난무했다. 그런데 그 중심에 당파가 아닌 숙종이 있었다.

1661년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 사이에 태어난 숙종 이순(李淳)은 외아들이었다. 누나 셋 이외에 형제가 없었다. 아버지가 후궁을 들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유는 한 성질 하는 어머니 명성왕후 때문이었다. 숙종 이순은 어렸을 때부터 영민했으나 병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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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34
체내 염증 치료하는 식품

체내 염증 치료하는 식품

1. 케일

전문가들은 “케일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영양소가 밀집한 음식으로 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채소로 위장한 비타민과 미네랄 알약이라고 불릴 정도다. 케일에는 오메가-3 지방산과 오메가 6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케일이 치료 잠재력에 있어 녹색 잎채소계의 슈퍼스타로 불리는 이유다.

2. 참깨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루푸스처럼 면역 체계가 신체 조직을 공격해 생기는 자가 면역 질환과 같은 면역 체계에 대한 과잉 반응이 있을 때는 정상으로 되돌려 놓은 면역 균형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참깨에는 면역 체계를 조절하고 과잉 반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식물성 스테롤이 들어있다. 씨앗에는 칼슘, 철분, 마그네슘, 비타민 b1, b3와 망간, 아연 뿐만 아니라 비타민 b1, b3, e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3. 호박

몸속에서 녹 방지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항산화제인 카로티노이드가 들어있다. 이 성분은 세포와 dna에 손상을 줌으로써 질병의 싹을 만드는 유해산소를 흡수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호박에는 피부와 폐의 염증 상태에 효과적인 베타카로틴이 들어있다.

4. 베리류

베리류에는 폴리페놀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이 성분은 대표적인 항산화제이며 항염증제다. 연구에 따르면, 염증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서구식 식사를 할 때 딸기주스를 마시면 서구식 식단의 나쁜 효과를 상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 표고버섯

신체의 면역반응을 증가시키고 감염을 퇴치하는데 도움이 되는 화합물이 들어있다. 항균성이 있어 암 치료에도 이용되고 있다. 표고버섯에 있는 다당류는 항암 화학요법이나 방사선으로 인해 생기는 면역 손상 현상을 감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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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34
아침에 일어나면 알 수 있는 건강 적신호 증상

아침에 일어나면 알 수 있는 건강 적신호 증상

Case 1.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힘들다.

아침에 유난히 잠자리를 떨치고 일어나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히 아침잠이 많아서라고 가볍게 치부할 수 없다면, 만성피로를 의심해볼 것.

평소에 풀지 못한 피로가 누적되어 면역기능에 이상을 일으키고 이 때문에 몸이 천근 만근 무겁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누적된 피로 때문에 몸의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각종 균이 침입하기 좋은 상태가 되므로, 쌓인 피로는 가능한 한 빨리 수면과 휴식, 적절한 영양공급 및 규칙적인 운동으로 풀어주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자.

Case 2. 뒷목이 뻣뻣하게 당긴다.

잘 자고 일어났음에도 아침에 뒷목이 뻣뻣하고 머리가 띵하다면 베개 높이와 잠을 자는 자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베개를 너무 높게 베면 목 관절에 무리를 주어 목 부분이 뻣뻣하고 당기게 되며, 새우처럼 몸을 쪼그리고 자면 목 부위가 경직돼 뒷목이 뻐근해질 수 있다. 그러나 베개나 수면자세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혈압을 측정해보는 것이 좋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갑자기 혈압이 올라갈 때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Case 3. 이부자리가 축축할 정도로 식은땀이 난다.

성인이 흘리는 하루 평균 땀의 양은 대략 700∼900ml 정도이다. 땀은 몸에서 열을 방출하여 체온을 유지하고 피부가 건조해지는 것을 막는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베개와 이불이 축축할 정도로 식은 땀을 흘렸다면, 대체로 방의 온도가 너무 높거나 악몽을 꾸었을 경우. 혹은 너무 긴장하고 피로했을 때나 살이 쪘을 때에도 땀을 많이 흘린다. 주의해야 할 것은 밤에 미열이 있으면서 식은 땀을 흘리고 체중까지 감소될 경우인데, 이럴 때에는 폐결핵이나 드물지만, 백혈병까지 의심해볼 수 있으므로 병원을 찾아보는 게 좋다.

Case 4. 일어나자마자 물부터 찾는다.

이럴 때에는 방이 너무 건조하거나 덥지는 않았는지, 전날 저녁을 짜게 먹지는 않았는지 먼저 체크해 본다. 만일 이런 일이 없는데도 매일 아침 갈증을 느낀다면 당뇨를 의심할 수 있다. 당뇨병은 혈당을 조절하는 기관인 췌장에서 나오는 인슐린이 제 기능을 못해 생기는 병으로, 목이 마르고 소변을 많이 보게 되며 많이 먹지만, 체중은 감소한다.

Case 5. 눈곱이 많이 낀다.

잠에서 깼을 때 눈가에 유난히 눈곱이 많이 낄 때 가장 흔한 원인은 결막염이다. 낮에는 눈을 자주 깜빡이기 때문에 눈물샘이 자극되어 눈곱이 잘 끼지 않는다. 지만 자는 동안에는 눈물샘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므로 결막염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혹은 눈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안구건조증일 경우에도 눈곱이 낀다. 이밖에도 콘택트렌즈 사용자의 경우 세척이 제대로 되지 않은 렌즈에 의해 눈이 감염되어 눈곱이 끼기도 한다.

Case 6.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온다.

아침에 일어나 처음 뱉는 가래에서 피가 섞여 나온다면 폐결핵을 의심할 수 있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 피로가 쌓였을 때는 수면 중에 흘린 코피가 목으로 넘어가 고여 있다가 아침 가래에 섞여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가래에 지속적으로 피가 섞여 나오는지가 중요하다. 아침마다 피가 섞인 가래를 뱉게 될 때에는 폐암, 폐결핵 등의 폐질환을의심해봐야 한다.

이 밖에도 기관지 확장증, 기관지염 등 기관지 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같은 증상이 있을 수 있으므로 지속적으로 이러한 증상이 계속될 때는 병원을 찾도록 하자.

Case 7. 얼굴과 손, 발이 자주 붓는다.

아침의 부기는 평소 생활습관과 관련이 있다. 짠 음식을 먹은 후에는 일시적으로 몸이 붓기 쉽고, 자기 전에 물을 많이 먹어도같은 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 몸이 붓는 증상은 잠자는 동안 신체의 연한 부분으로 수분이 몰리는 현상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사람들이 걱정하 듯 신장의 이상으로 인한 부종은 실제로는 드물다. 더욱이 다른 증상 없이 몸이 붓는 신장병은 거의 없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갑자기 몸이 붓기 시작했다면 심장, 신장, 간장을 검사하고 순환계 이상도 확인하는 것이 좋다. 검사 결과 이상이 없어도 계속 부기가 지속된다면 되도록 음식을 싱겁게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 간식이나 수분 섭취를 줄인다.

Case 8. 양치할 때 헛구역질이 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양치할 때 칫솔을 너무 깊숙이 넣어 목젖을 자극해 나타나는 증상이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체질적으로 비위가 약해 치약 냄새로 인해 헛구역질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럴 때는 냄새가 강하지 않은 치약으로 바꾸면 된다.

또 헛구역질 외에 다른 증상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데, 만약 평소 피로를 많이 느낀다든지 황달 등의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간이나 콩팥 기능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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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35
간에 쌓인 ‘독소’깨끗하게 없애는 놀라운 방법

간에 쌓인 ‘독소’깨끗하게 없애는 놀라운 방법

간이 안좋아지면 쉽게 피로를 느끼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간 건강을 위해 평소 술 등을 자제하는것도 중요하지만 평소 식이요법이 역시 중요합니다.

1. 심황

심황은 카레 등 거의 모든 인도음식에 들어가는 향신료로 발암물질을 제거하는 효소의 생성을 도와 간 해독을 도와줍니다. 이 향신료는 간 뿐 아니라 여러모로 건강에 이로움을 주기 때문에 최근들어 더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2. 사과

매일 사과를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서양 속담이 있을 정도로 사과는 건강에 좋은 영양을 미칩니다. 사과는 미네랄과 비타민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소화기관을 정화하고 간 기능을 회복시켜줍니다.

3. 레몬, 라임

라임이나 레몬주스에 풍부한 비타민C는 독소를 흡수해 간 기능을 회복시켜줍니다.

4. 토마토

글루타치온이 풍부하게 함유된 토마토는 흡연 및 화학물질, 알코올 등으로 인해 망가진 몸을 보호해주고, 중금속이나 약물을 해독시켜주는 효과가 있어 간을 치유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5. 아스파라거스

아스파라거스는 천연 이뇨제로 숙취를 해소시켜주며, 알코올의 독소로부터 간을 보호해줍니다.

6. 호두

글루타치온과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호두는 간의 지방대사를 원활히 만들어주고 간장의 혈류를 개선시켜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7. 올리브오일

올리브오일은 유해한 콜레스테롤을 제거해줄뿐 아니라 유익한 콜레스테롤 분비를 촉진해 체내 독소 흡수를 도와줍니다.

8. 마늘

알리신, 셀레늄, 황 성분이 풍부한 마늘은 간 해독에 큰 도움을 줍니다.

TIP 가열시엔 이 성분들이 파괴되기 때문에 생으로 먹기 힘들다면 환이나 캡슐로 복용하셔도 됩니다.

9. 당근

당근에는 간 해독에 도움이 되는 플라보노이드와 글루타치온, 베타카로틴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10. 녹색 잎채소

혈류의 독소를 빨아들이는 엽록소가 풍부한 녹색 잎채소는 담즙 생산 및 흐름을 도와 간을 깨끗하게 만들어줍니다.

11. 통곡물

정제된 곡물 대신 통곡물을 꾸준히 섭취해주면 지방대사와 간기능을 향상시키고 올혈간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12. 십자화과 채소

십자화과 채소인 브로콜리나 양배추, 케일등에는 글루코시놀레이트 성분이 풍부합니다. 이 성분은 간에서 여러 유용한 효소의 생산을 촉진시켜주는 효능이 있으며, 간 뿐 아니라 신체 주요기관의 종양을 억제에도 효과적인 강력한 항암성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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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36
우리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식품

우리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식품

1. 사과

사과는 비타민뿐만 아니라 당분이 많아서 몸을 따뜻하게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사과 성분 중 당분과 유기산, 펙틴은 몸 안에 쌓인 피로물질을 제거하는데 펙틴은 장운동을 자극하여 변비를 없애는 데도 효능이 있습니다. 사과는 깨끗이 씻어서 생으로 먹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2. 꿀

꿀에 들어 있는 당분은 단당체로 되어있어 체내흡수가 아주 빠릅니다. 곧바로 체내에서 에너지로 활용되는 열량원이 될뿐만 아니라 피로 회복효과도 뛰어납니다.

냉증있는 사람이나 위장이 약하고 쉽게 피로를 느끼는 사람에게는 꿀만큼 좋은 음식도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꿀은 또한 성질이 따뜻해서 전신의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며 빠르게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3. 인삼

인삼은 몸을 따뜻하게 하며 기력을 보충해 줍니다. 혈관에 쌓인 노폐물을 없애고 항산화 효과가 있어 피로 회복과 성인병 예방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정에서 인삼차을 만들어 섭취하는 것이 좋은데요. 인삼차 만드는 방법은 먼저 인삼을 잘게 토막을 내어 물 2l에 인삼 40g 정도를 넣고 15분 정도 끓인 후에 인삼을 건져낸 후 물 1l 다시 넣고 15분 정도 끓인 다음 찌꺼기를 건져내고 먼저 끓인 물과 같이 혼합하여 5분 정도 끓이면 인삼차가 됩니다.

4. 부추

부추는 차고 시린 무릎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부추는 위장을 튼튼히 하고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만들어 늘 몸이 차갑고 추위를 타거나 속이 냉해서 배탈이 잘 나고 무릎이 차고 시린 사람에게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5. 파

파와 양파는 추위를 잘 타는 사람에게 좋다고 합니다. 파뿌리와 흰 부분의 성질은 따뜻한 반면 파란색 부분은 찬 성질이 있기 때문에 몸이 찬 사람은 주로 뿌리와 흰 부분을 섭취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파뿌리와 흰 부분은 혈액 순환을 좋게 하고 몸을 따뜻이 만들어 주므로 겨울철 추위를 잘 타는 사람이 즐겨 먹으면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혈관을 확장시켜 땀을 내어 감기 예방에도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파뿌리는 깨끗이 씻어서 충분한 양의 물과 함께 1시간정도 달여서 차처럼 음용하시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6. 생강

생강은 뜨겁고 매운 성질이 강해서 몸 안에서 열을 내게 하고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울러 소화기를 따뜻하게 해주기 때문에 위산 분비 촉진, 식욕증진, 위안의 세균 억제효과도 있습니다. 따라서 위장 기능이 허약해서 몸이 냉한 사람에게도 매우 좋은 음식입니다. 생강 껍질은 차가운 성질이 있기 때문에 벗겨주도록 하고 주의할 점은 혈압이 높거나 불면증이 있는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7. 마늘

마늘은 신경 계통을 자극해 혈액순환이 왕성해지도록 도와주므로 마늘을 먹게 되면 몸이 따뜻해집니다. 마늘을 가열해 먹는 것 보다는 꿀에 재워 6개월 정도 저장해 만든 마늘꿀절임을 하루에 1~2쪽씩 계속 먹으면 냉증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8. 연근

연근에 들어 있는 뮤신은 소화를 촉진하고 위벽을 보호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연근을 자르면 단면이 검게 변하는데 이는 타닌과 철분 때문이라고 합니다. 타닌은 수렴과 지혈 작용이 있어 치질, 궤양, 코피를 억제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뿌리채소로는 드물게 비타민 C가 들어 있는데 몸속에서 천천히 흡수되어 다이어트에도 좋은 식품이기도 합니다. 조려 먹거나 부침가루를 입혀 전으로 부쳐 먹어도 되고 얇게 썰어 연근칩을 만들어 먹어도 맛있습니다.

9. 밤

밤은 영양가가 높고 소화가 잘 돼 어린이의 영양 간식 재료로도 그만입니다. 위장과 비장의 기능을 좋게 해 속을 편하게 만들어 기혈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줍니다. 삶아 먹거나 오븐에 구워 먹어도 좋지만 평소 밥을 지을 때 식구 수대로 한두 알 넣어 먹으면 좋습니다. 또는 삶은 밤을 으깨서 플레인 요구르트와 섞어서 바쁜 아침 식사 대용이나 저녁 간식으로 섭취해 주어도 좋습니다.

10. 단호박

단호박은 속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식이성 섬유, 칼슘 등 다양한 영양소와 무기질이 함유되어 있고 카로틴 형태의 비타민 A가 풍부해 감기 예방에도 좋다고 합니다. 단호박은 쪄서 그냥 먹어도 되고 꿀과 함께 잣가루를 뿌려서 먹거나 얇게 슬라이스해 전자레인지에 15초 정도 돌려서 바삭바삭한 과자로 만들면 맛도 좋고 먹기에도 편합니다.

이렇게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녹차, 토마토, 상추, 오이, 감, 바나나, 파인애플, 레몬, 빵, 우유처럼 몸을 차갑게 하거나 열을 내려주는 음식도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810.html
kolaswqetsrq 11.02 16:36
몸속 쓰레기 염증 영원히 없애는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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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 쓰레기 염증 영원히 없애는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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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은 우리 몸속 곳곳을 떠다니는 쓰레기로 만병의 원인이 됩니다. 즉, 몸속 쓰레기는 세균, 바이러스 등 외부의 침입자와 내 몸을 방어하는 항체가 싸운 흔적이라고 할수 있는데요. 이런 염증이 뼈를 공격하면 관절염이 나타나고 장기를 공격하면 암이, 신경계를 공격하면 우울증과 치매가 오게 됩니다. 만성 지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몸속 쓰레기만 잘 치워도 몸의 지병이 한결 좋아진다고 합니다. 염증하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하기 쉽지만 몸속에도 염증이 떠돌아다닙니다.

그렇다면 현재 내 몸의 상태는 어떨까요?

1.체중이 많이 나가고 항상 단 것이 당기고 늘 배가 고프다.

2. 손톱이 잘 부러지는 경우 머릿결이 윤기가 없다.

3. 평소 소화가 잘 안되고 변비가 있다.

4. 수면시간이 길어지고 자고 일어나도 몸이 무겁다.

5. 예전에 비해 집중력이 떨어진다.

6. 기력이 없고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

7. 머리가 아프고 늘 피곤하다는 경우

8. 피부가 건조하다

9. 비염이나 천식등이 있다.

10. 치주염이나 잇몸질환이 있다.

11.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앓고 있다.

※ TIP 위의 문항 중 4개 이상이 일치할 경우 몸에 이상 신호가 생겼다고 볼수 있습니다.

<해결방법>

1. 혈관 속 염증을 잡는 비타민P를 많이 섭취하자. 우리 몸에 비타민P가 부족할 경우 출혈이 많이 생기고 멍이 잘 들 뿐 아니라 자가 면역질환에도 쉽게 걸리고 혈관 염증에도 취약해집니다. 비타민P는 보통 채소나 과일 껍질에 많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염증을 위해서는 채소나 과일의 껍질까지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 사과껍질

사과껍질은 식이섬유가 많고 안토시아닌 성분도 많아 활성산소를 배출해주고 심장병을 예방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펙틴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콜레스트롤 흡수를 막고 중금속을 배출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평소에 사과를 즐겨 먹으면 대사증후군 위험이 20%이상 낮아진다고 합니다.)

▶ 포도껍질

포도껍질은 혈관 독소를 없애주는 효과가 있어 독소와 염증을 완화시키고 암을 예방합니다.이외에도 동맥경화와 심장병을 예방해주며, 혈전의 생성을 억제합니다. (포도주스나 포도주로 섭취하면 편하게 드실수 있습니다.)

▶ 양파껍질

양파껍질의 퀘르세틴 성분은 나쁜 콜레스트롤이 산화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심혈관 질환 예방 및 비만이 있는 경우 좋습니다. 양파 중 보라색 양파가 일반 양파에 비해 플라보노이드가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특히 양파 껍질에 10배 가량의 퀘르세틴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 귤껍질

귤껍질(귤 속의 하얀 껍질)이나 자몽, 오렌지 등에는 헤스피린딘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비타민C와 함께 먹으면 콜라겐 생성에 도움이 됩니다. 껍질째 만든 자몽주스는 혈관 탄력성을 좋게 만들어줘 심장 혈액순환에 좋은 효과가 있습니다.

※ 비타민P가 많은 음식과 더불어 혈관 건강에 좋은 오메가3를 갈아 먹어주면 더욱 좋습니다.

2. 뼈 염증을 잡는 비타민D 먹자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특히 비타민D가 많이 부족한데, 비타민D가 부족하면 염증 억제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유방암과 대장암이 늘어나는 이유 역시 비타민D의 부족으로 나타나므로 평소 음식 섭취 및 햇볕을 쬐는 것이 중요합니다.(하루 최소 10분만 노출해도 됩니다.)

▶연어, 목이버섯

연어에는 비타민D가 많고 오메가3가 풍부하며 EPA가 많아 관절염에 좋습니다. 목이버섯의 경우 마른 것이 생것보다 30배이상 좋은 효과가 있습니다.

3. 면역력을 키울 수 있게 비타민C를 먹자

비타민C는 면역세포를 활성화 시키고 피부를 좋게 만들어 줍니다. 비타민C가 많은 식품으로는 빨간 파프리카, 브로콜리, 키위, 풋고추 등이 있습니다.

▶염증을 없애는 생활습관

1. 지방을 줄이자

염증은 몸에 불이 나는 것과 같은 반응으로 기름이 있으면 불이 크게 타오르듯 몸속에 지방이 많으면 나쁜 염증이 빠르게 늘어납니다. 따라서 꾸준한 운동을 통해 지방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데, 이때 주의할 사항은 나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체중은 근육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체중에 연연하지 말고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는 고과당 함유 가공식, 밀가루음식, 정제된 탄수화물과 트랜스지방산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음식들은 체내 지방을 늘리는 주 원인으로 몸에 안좋은 염증을 만듭니다.)

2.충분한 수분 섭취

물은 세포 내 노폐물과 독소를 소변이나 대변, 땀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만약 몸에 물이 부족하게 되면 이런 노폐물이 축적되 혈액이 탁해지게 되므로 항상 충분한 수분량을 유지해 노폐물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3. 몸을 따뜻하게

면역학 박사인 아보 도우루는 체온이 낮아질 경우 면역력이 떨어져 암과 같은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체온이 낮아질 경우 백혈구가 세균을 분해, 소화하는 능력을 잃게 되는데요. 평소 에어컨 바람을 과하게 쐬거나 아으스크림을 많이 먹는 등의 습관은 몸을 차게 만들어 세포의 면역 활동을 방해합니다. 이외에도 목욕이나 족욕 등을 통해 직접 몸의 온도를 높이는 것도 좋은 효과를 볼수 있는 방법입니다.

4. 소식하기, 안전한 식품 섭취

섭취하는 음식을 통해 체내로 유입되는 독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음식 알러지가 있다면 체질에 맞는 음식을 섭취하고 소식해야 하며 유기농, 무농약 재료를 선택하고 인공 첨가물이 없는 음식을 섭취하세요. 과일이나 채소의 경우 잔류 농약 제거를 위해 흐르는 물에 충분히 씻어주셔야 합니다.

5. 마음다스리기

“병은 마음에서 온다”고 합니다. 많은 질별은 심신의 조화와 균형이 깨졌을 때 나타나게 되기 때문에 취미활동 등을 통해 마음의 독인 스트레스를 풀어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연구 결과에 의하면 마음과 건강 사이의 관계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6. 장 다스리기

물이 고이면 썩듯 몸 속에서 배출 작용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면 병이 오게 됩니다. 정상인의 경우 음식물의 장 내 체류시간은 8~24시간이지만 장 기능에 장애가 있는 경우 음식물이 장안에서 200시간까지 머물게 됩니다. 따라서 장에 이상이 있는 경우라면 평소 식이섬유를 충분히 섭취해 장을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163.html
kolaswqetsrq 11.02 16:37
사과 식초의 효능

사과 식초의 효능

1. 위산역류를 치료한다

사과식초를 매일 1~2스푼씩 섭취하면 위산역류를 치료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이 과잉 생산돼 위산역류가 일어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다. 많은 사람의 경우에 산이 충분치 못해 위산역류가 일어난다.

2. 소화불량증을 막는다

음식을 잘 먹으려면 위장이 건강해야 한다. 식사를 하기 30분 전에 사과식초 1스푼과 꿀 1스푼을 섞어서 따뜻한 물에 타서 먹으면 위장의 소화력을 좋게 한다.

3. 딸꾹질을 멈춘다

딸꾹질을 멈추게 하기 위해 숨을 참거나, 물을 들이키거나 하는 여러 가지 요법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잘 통하지 않는다. 딸꾹질이 멈추지 않는다면 사과식초 1스푼을 먹어보라. 효과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4. 인후염을 완화 시킨다

목이 따끔거리는 등 인후염 증상이 나타나면 사과식초를 한번 먹어보라. 사과식초 4분의 1컵에 따뜻한 물을 부어 한 시간 마다 가글을 하거나 사과식초 1스푼에 꿀을 뜨거운 물에 넣어 마시면 이런 증상을 완화 시킬 수 있다.

5. 가려움증을 퇴치한다

탈지면에 사과식초를 살짝 묻혀 모기가 물어 가려운 곳에 발라보라. 약간 따끔하겠지만 간지러운 증상을 없애 줄 것이다.

6. 피부를 환하게 만든다

건선과 습진부터 피부건조증과 티까지 피부 문제로 근심에 쌓인 사람들에게 사과식초가 추천된다. 사과식초는 염증을 줄이고 각종 피부 문제를 최소화한다. 탈지면에 사과식초를 묻혀 문제가 있는 피부에 발라보라.

7. 혈당수치를 낮춘다

연구에 따르면, 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잠자기 전 2스푼의 사과식초를 섭취한 사람은 아침에 혈당 수치가 4~6%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과식초가 앞으로 당뇨병 치료를 하는 데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8. 콜레스테롤과 고혈압을 낮춘다

쥐 실험 결과, 식초가 콜레스테롤과 고혈압을 낮추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에게도 똑같은 효능이 있는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지만 현재 다양한 연구가 행해지고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899.html
kolaswqetsrq 11.02 16:37
잠들기 전 ‘물 한잔’ 꼭 마셔야 하는 이유

잠들기 전 ‘물 한잔’ 꼭 마셔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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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마시는 물이 건강에 좋은 만큼 잠들기 전 마시는 물도 보약과 같다. 작은 질환 하나에도 큰 도움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물인데, 이러한 물을 우리가 쉬는 동안 섭취하면 몸의 기능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 수분 섭취는 수면 중 갈증이 생기지 않게 하며, 다음 날 몸 상태를 개운하고 가볍게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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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위장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잠들기 전 물을 마시면 위산 분비를 촉진시켜 통증을 유발해 수면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유의하자.

1. 눈 건강 회복.

장시간 모니터, 스마트폰을 주시하는 현대인들에게 눈의 피로는 일상적인 질환이다. 몸에 수분이 충분해야 눈을 보호할 수 있는 눈물 분비가 왕성해지는데, 잠들기 전 물 한 잔으로 눈에 수분을 충전할 수 있다. 취침 전 섭취한 물이 자는 동안 몸과 눈에 수분을 보충해 주는 것이다. 물 한 잔으로 작은 질환 하나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두자.

2. 수면 장애 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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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침 후 20~30분 이상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잠들기 전 물 한 잔이 보약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수면 장애 치료 방법에는 잠들기 전 따뜻한 물 한 잔, 취침 중간에 깨면 다시 따뜻한 물 한 잔 마시는 것을 권한다.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고 싶다면 잠들기 전에 물 한 잔씩 마셔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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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안(童顔) 피부 유지.

잠들기 전 수분 섭취가 피부를 촉촉하고 탄력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은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피부 노화를 늦추는 물 한 잔으로 동안 피부를 만들어보자.

4. 피로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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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우리 몸에 훌륭한 피로해소제로 자는 동안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함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고, 정상적인 수면리듬을 되찾게 한다. 자는 동안 물이 각 세포에 산소를 운반하는 것을 도와 우리 몸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다. 물 한 잔으로 기진맥진한 몸의 피로를 싹~ 날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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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심근 경색, 뇌경색 방지.

잠들기 전 수분 섭취는 심근 경색과 뇌경색을 예방하기로 유명하다.새벽이나 아침에 심근 경색 또는 뇌경색이 잘 발생하는 이유도 자는 동안 많은 양의 수분이 손실돼 혈액이 끈적거리고 탁해졌기 때문이다. 이를 예방하려면 잠자기 전 물 한 잔 섭취하는 것이 도움 된다.

6. 취침 중 다리경련 방지.

잠들기 전 수분 섭취는 취침 중에 발생하는 다리 경련을 방지할 수 있다. 다리 경련은 다리 근육이 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데, 잠들기 전 물 한 잔이 이를 보충해주는 것이다.

7. 장 운동 (변비 해소, 소화불량 해소).

변비에 물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특히, 잠자기 전 수분 섭취는 장 운동을 촉진시켜 아침 배변을 수월하게 만든다. 아랫배 걱정이 된다면 잠자기 전 물 1~2 잔 정도 마시는 습관을 들여보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087.html
kolaswqetsrq 11.02 16:38
귤의 놀라운 효능 9가지

귤의 놀라운 효능 9가지

겨울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과일은 무엇일까? 바로 새콤달콤한 귤이다. 여러분 모두 추운 겨울날, 따뜻한 집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하며 귤을 한가득 까서 먹었던 경험이 한 번씩은 있죠? 배가 불러도 자꾸만 손이 가게 되는 매력적인 과일인 귤은, 맛 뿐 아니라 그 효능까지도 대단하다고 한다.

1. 감기예방 및 면역력 강화

요즘 추운 날씨에 귤을 챙겨 먹으면 감기를 예방하거나 치료하는데 도움이 된다. 귤에 풍부한 비타민C 성분이 몸의 면역력을 강화시킬뿐만아니라, 피부와 점막을 튼튼하게 만들어 겨울철 감기에 귤 효능을 볼 수 있다. 특히, 귤 껍질에는 과육 보다 많은 비타민C가 함유되어 있는데 귤 껍질을 버리지 마시고 말려서 차로 끓여 드셔도 좋다.

2. 혈관질환

우리 몸에서 피가 흐르는 통로가 혈관인데 이러한 혈관내에 콜레스테롤의 침착이 많아지면 그 만큼 혈관이 좁아져서 피의 흐름에 문제가 생겨 동맥경화를 비롯하여 뇌졸중, 협심증,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병 등의 무서운 혈관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귤에 함유된 비타민C가 혈관안에 콜레스테롤의 침착을 막아주는 역할을하고, 비타민P가 혈관을 튼튼하고 탄력적으로 만들어 각종 혈관질환을 예방 및 개선하는데 귤효능을 볼 수 있다.

3. 피부미용

귤에 풍부한 비타민C 성분은 감기 뿐만 아니라, 피부미용에도 좋아 여성분들이 챙겨 먹으면 좋다. 피부를 맑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며, 피부의 노화를 막아주고 미백효과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기미, 주근깨, 잡티제거에도 좋다. 귤을 직접 먹어도 좋습니다만, 여유가 된다면 귤을 갈아서 팩으로 사용해도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4. 체질 개선

장수하는 사람들의 체질을 살펴보면 약 알카리성 체질이 많다고 한다. 이 말은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약 알카리성 체질을 만드는 것이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곡류 중심의 식생활은 이와 반대인 산성체질로 만들어준다고 한다. 이처럼 산성화되는 체질의 개선을 위해 귤을 먹어주면 약 알칼리성으로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5. 변비와 대장암 예방

변비나 대장암을 예방하는데 귤효능을 볼 수 있다. 귤을 먹기위해 껍질을 까면 과육에 하얀심지가 붙어 있는걸 볼 수 있는데 이 하얀심지에 식이섬유와 펙틴 성분이 풍부하다. 심이섬유는 우리 몸에서 장운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변비에 도움이 되며, 펙틴성분은 체내에 있는 중금속이나 독소들을 제거하여 대장암에 도움이 된다.

6. 피로회복 및 식욕촉진

몸이 피로 하다거나 입맛이 없을때 귤을 먹으면 좋은데 그 이유는 귤에 풍부한 구연산 성분이 피로를 풀어주고 식욕을 돋구워 준다고 한다. 귤껍질도 모아뒀다가 차로 끓여드시면 좋다. 요즘 귤이 제철이라 가격도 저렴한 편인데 가족건강을 위해서 챙겨 먹으면 좋을것 같다.

7. 성장 발달 및 두뇌 발달

귤은 성장기 어린이들에게도 매우 좋은 영양 간식이다. 귤은 발육기의 어린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칼슘을 함유하고 있으며, 귤의 상큼한 향기와 새콤 달콤한 맛은 머리를 상쾌하게 만들어 주어 학업 능률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다.

8. 다이어트

요즘 가격도 저렴하고 제철인 귤을 이용해 다이어트에 활용하시는 분들도 많다. 100g 기준으로 칼로리가 39kcal 일 정도로 열량이 낮으면서 포만감이 높아 음식물의 섭취를 줄일 수 있다. 또한, 비타민C가 체지방의 분해를 도와주고, 변비에도 좋아 다이어트나 비만을 예방하는데 귤 효능이 있다.

9. 스트레스 해소

귤은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는 우리 몸에서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는데 귤에 함유된 비타민C 성분과 방향성분인 테르펜 성분이 중추신경을 자극시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9_1.html
kolaswqetsrq 11.02 16:39
■ 헤이그 특사 4편

■ 헤이그 특사 4편

표면적으로 고종의 특사 파견은 큰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일제의 한국 침략을 가속화시킨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세계열강에게 한국이 주권 회복을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일제의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최초로 알렸다는 데 그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들의 활동은 일제의 한국에 대한 침략과 만행을 세계에 폭로하고 국민의 반일감정을 촉발시켰다.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헤이그 밀사 사건을 고종을 퇴위시킬 좋은 기회로 삼았다. 고종이 그동안 겉으로는 일본에 순응하는 척하면서 궁내부를 통해서 각종 광산 채굴권을 이탈리아나 프랑스인에게 넘기는 등 일부 통치권을 계속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토히로부미는 7월 3일 일본 장교단을 거느리고 고종을 찾아가 협박한 후 이완용을 불러 헤이그 밀사는 을사조약의 위반으로 일본이 한국에 선전포고할 권리가 있다고 협박하였다.

이에 이완용 내각은 7월 6일 어전회의를 소집하여 고종에게 일제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협박했다. 고종은 자신은 아무 관계가 없고 그들이 밀서를 위조한 것이라 주장했지만 통할 리가 없었다. 송병준은 고종에게 일본에 건너가 일황에게 사과하든가 대한문에 나가 일본 주차군사령관에게 항복하라고 윽박질렀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이완용, 손병준, 박재순 등 내각대신들은 재차 양위를 요구했으며 심지어 이완용은 칼을 빼어들고 고함을 지르며 협박하자 고종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묵묵히 앉아 있었다고 전한다. 사면초가에 몰린 고종은 황태자에게 대리청정을 명하였으나 일제와 친일 내각은 억지로 양위식으로 둔갑시켜 고종을 몰아내기로 했다.

마침내 일본 군대의 포위 속에 고종과 황태자가 모두 불참한 가운데 이완용, 임선준, 고영희, 이병무, 이재곤, 조중응, 손병준 등 친일파가 주도하여 양위식이 열렸다. 고종은 양위(讓位)의 형식을 빌어 사실상 폐위(廢位) 당했다. 순종이 즉위하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여론이 들끓고 여기저기서 산발적인 시위가 발생했다. 백성들은 통곡했고 친일 내각을 성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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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이 살아나면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한 이완용은 일제와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여 세권(稅權)과 재판권(裁判權)을 넘겼으며, 협약 실행에 관한 각서도 작성하여 군대해산을 명문화했다. 이완용과 군부대신 이병무가 군대해산을 주도하고 해산을 명령하자 대대장 박성환이 항의하며 자결했고, 격분한 병사들이 일본군을 향해 사격했으나 곧 진압되었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일제에 저항할 마지막 수단을 모두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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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4_20.html
kolaswqetsrq 11.02 16:39
■ 헤이그 특사 3편

■ 헤이그 특사 3편

7월 16일 그들의 행적을 매일 보고하고 있던 일본은 이런 전문(電文)을 일본으로 보냈다.

『한국인 이준의 얼굴에 난 종기를 절개한 결과 단독(丹毒:세균성 급성전염병)에 걸려 어제 사망. 오늘 아침에 매장. 자살했다는 소문이 있지만 단독으로 죽었다는 것으로 세상에 알림.』

아직까지 이준 열사의 사인(死因)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면 자살설의 비중도 크다. 일본 측 기록에 나온 사인(死因)인 ‘단독(丹毒)’은 피부에 난 상처가 곪아 염증이 나는 피부병인데, 단독으로 사망할 수 있는 가능성은 환자가 면역성이 떨어진 중환자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준은 중환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일본은 이준이 병사했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당시 서방 언론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부당한 협약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제국에서 온 특사가 자결을 했다고 하면 큰 반향(反響)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되므로 일본은 이준 열사를 단순 병사(病死)로 밀어부친 것이 아닐까?

한편 이위종은 국제협회에서의 연설 직후 잠시 페테르스부르크에 돌아갔으나, 이준의 순국을 알리는 급전을 받고 18일 헤이그에 돌아왔다. 이후 이상설과 이휘종은 이미 계획된 여정인 각국 순방(巡訪) 외교에 나서 한국의 독립과 영세중립화를 역설하며 독립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일본은 궐석(闕席) 재판을 통해 이들에게 각각 사형과 종신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이상설과 이휘종 열사는 우리나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후에 이상설은 "힘을 합쳐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룩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혼백인들 어찌 고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재마저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마라." 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신 뒤 유해가 러시아 연해주 스위푼 강에 뿌려지는 바람에 유해마저 고향인 충북 진천으로 돌아오지 못했다.이준 열사의 유해 역시 훗날에서야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제국주의적 세계질서 속에서 열강간의 평화유지를 목적으로 개최되었던 만국평화회의의 성격상 일제에게 외교권마저 유린당한 한국의 특사 일행이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처음부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종과 밀사들은 일본이 빼앗은 한국의 외교권을 되돌려 받는 것이 평화라고 생각했지만, 강대국들이 생각하는 평화는 자기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약소국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질적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 고종 폐위의 계기가 되어버렸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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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40
■ 헤이그 특사 2편

■ 헤이그 특사 2편

1907년 6월25일 헤이그에 도착한 일행은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음 날 태극기를 게양하면서 대한제국의 특사(特使)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했을 때 만국평화회의는 이미 시작한 지 10일이 지났고, 회의장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일제에 의해 외교권을 박탈당한 대한제국의 외교관들은 정식 초청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준 일행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회의장 밖에서 각국의 대표들을 한 명 한 명 만나며 호소문을 전달했다.

그들의 호소는 국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6월 30일 만국회의 의장인 볼폴트를 만날 수 있었다. 이 후에도 헤이그특사들은 치열하게 회의장 장외(場外) 외교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일본이 가만 둘리 만무했다. 당시 회의 참여국 중 최대 인원을 파견한 일본은 ‘을사조약’을 통해 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있음을 알려 방해공작을 펼쳤다.

강대국의 푸대접을 받던 중에도 이준일행의 장외(場外) 외교(外交)는 회의 기간 중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어, 이위종은 7월 8일 영국 언론인 윌리엄 스티드의 도움으로 각국 기자단이 참석한 기자클럽에 참석하여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 시간 가량 프랑스어로 ‘한국의 호소(A Plea of Korea)’란 연설을 했다.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조선 독립을 위한 국제적 도움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그의 연설은 각국 신문에 기사화되어 한국 실정을 알리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서방 언론들은 대한 제국의 사정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본회의 참석은 좌절되었다. 공식회의에 참석마저 좌절되자 이준은 일본에 의해 폭력적으로 자행된 을사늑약에서 조국을 지키지 못했다는 근심이 분통으로 변하고 기가 막혀 음식을 끊었다. 그로 말미암아 병이 생겨 7월 14일 유숙한 호텔에서 병사했다. 이준은 배를 갈라 자결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겹쳐 타국 땅에서 병사를 한 것이다. 사실 할복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영웅만들기’ 일화는 그의 순국충절의 빛을 퇴색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그런데 왜 배를 갈라 자결했다는 말이 나돌고 그런 이야기가 교과서에까지 나오게 되었을까? 당시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당시 서방 언론에는 그의 자살설이 실렸다. 〈대한매일신보〉는 ‘호외(號外)’에서 외신을 인용해 밀사단의 이준이 분을 못 참아 할복자결하면서 각국 대표 앞에 피를 뿌렸다고 보도했다. 이는 당시 대한매일신보의 집필이었던 양기탁이 신채호·베델과 함께 민족의 공분을 이끌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작성한 허구 기사였다. 〈만국평화회의보〉에서는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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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40
■ 헤이그 특사 1편

■ 헤이그 특사 1편

1905년 일본 제국주의는 서유럽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 한국의 보호국화를 승인받은 뒤 강제로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임)을 체결하여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이에 대해 고종은 헐버트를 통해 "을사조약은 병기(兵器)로 위협하여 늑정(勒定)했기에 전혀 무효하다."는 내용의 급전(急傳)을 미국 정부에 전달했으나, 미국은 반응이 없었다. 또한 고종은 서울의 각국 공사들을 상대로 조약의 부당성을 호소했으나 역시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이후 1907년 1월 16일 고종은 영국인 베델이 경영하는 〈대한매일신보〉에 미국·프랑스·독일·러시아 원수에게 보내는 서한을 발표했으나, 박제순(朴齊純) 친일내각이 21일 이를 위조라고 공표했다. 이에 고종은 같은 해 6월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러일전쟁 이후의 일제의 침략상과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폭로함으로써 열강의 동정과 후원을 얻어 국권을 회복하고자 함이었다. 만국평화회의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의 주창으로 열리는 회의로 40여 개 국의 대표 225명이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주로 중재재판, 육·해전 법규 등을 논의하지만, 사실상은 열강 간의 식민지 쟁탈전에 따른 분규(紛糾)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법 회의였다.

1907년 3월24일 밤, 극비리에 덕수궁(당시 경운궁) 중명전(重明殿)에서 황제를 배알한 이준은 1907년 4월22일 일제의 감시 때문에 부인에게조차 사실을 얘기하지 못하고 몰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다. 러시아에 도착한 이준은 동지 이상설을 만났다. 이상설과 이준은 시베리아 기차에 몸을 싣고, 당시 러시아의 수도인 상트페테르브르크로 향했다. 그곳에서 전 러시아 공사인 이범진을 만나게 된다.

을사늑약 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은 외국에 있는 모든 한국 공사(公使)를 폐쇄해 버렸다. 그러나 러시아 공사(公使) 이범진은 일본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계속 러시아에 남아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이범진은 아들 이휘종을 그들에게 소개시켰다. 이휘종은 공사관인 아버지를 따라 외국에서 생활해 온 덕분에 러시아와 불어, 영어까지 능통했다. 국제적인 시각을 갖춘 젊고 뛰어난 인재였다. 또한 이상설은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될 때 모든 상황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었고, 이준은 법률가로 국제법적 관점에서 을사늑약의 법적인 부당함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헤이그로 떠나기 전 특사 일행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를 만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러시아에서 며칠을 더 보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은 황제를 만나지 못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의 독립을 지지하던 러시아는 러일전쟁에서 패한 이후 더 이상 일본과의 마찰을 원하지 않았고, 그 결과 일본이 원하는 한국을 자동적으로 포기하게 되었다. 밀사(密使)들은 결국 황제를 대면하지 못한 채 고종 황제의 친서(親書)만을 전달하고 바로 네덜란드 헤이그로 떠났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83.html
kolaswqetsrq 11.02 16:41
양아치

양아치

‘양아치’는 거지를 뜻하는 말인데, 지금은 품행이 천박하고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폭력배들은 자신들을 ‘건달’이라고 불러줄 때 제일 흐뭇(?)해 한다. 폭력배들이 ‘깡패’보다 치를 떠는 명칭이 ‘양아치’라고 한다.

양아치는 집집을 전전하며 걸식하는 ‘동냥아치’의 줄임말이다. ‘동냥’은 동령(動鈴)에서 유래된 말로, 문자그대로 방울을 흔든다는 뜻이다.

스님들이 탁발을 나갔을 때 염불과 함께 방울을 흔들어 존재를 알렸는데, 방울을 흔드는 동령이 구걸과 진배없게 인식되고 말았고,

동령이 동냥으로 변하면서 자연스레 동냥아치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576.html
kolaswqetsrq 11.02 16:42
동행

동행

힘을 내요 당신에게 힘이 될께요

혼자 있는 듯 해도 그게 아냐

그대 곁에 항상 내가 있어

용기 내어 걸어가요 우리 함께

길고 어둔 터널을 홀로 지나는 삶 속에

끝을 알 수 없어 외롭고 원망이 일어날 때

내가 아는 모든 것 희미 해지고 어두워

살아 만져지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네

내가 아는 모든 것 옳은 확신이 없어도

그대 가는 그길 바른길 이란 확신 없어도

보지 않아 명확찮고 만지지 않아도

그대 가는 그 길 두려워 포기하지 마요

힘을 내요 당신에게 힘이 될께요

혼자 있는 듯 해도 그게 아냐

그대 곁에 항상 내가 있어

용기 내어 걸어가요 우리 함께

아는 것과 그렇게 산다는 게

달라 힘이 들어도

통과할 길이라면 가야 해요

그 길이 길고 어두워도 함께 가는 날 봐요

멈춰선 그곳에서 주위를 만져보면

멈춰선 그곳에서 누구를 불러보면

그대와 함께하는 손 만질 수 있고

당신을 향한 음성 들을 수 있을 거야

-함부영 ‘동행’-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450.html
kolaswqetsrq 11.02 16:42
갱년기를 물리치는 10가지 음식

갱년기를 물리치는 10가지 음식

1.콩

갱년기 여성의 가장 큰 고민, 전체 갱년기 여성 2/3이 겪고 있는 요실금이다.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소변이 나오는 것은 외출을 힘들게 하고 "내가 왜 이럴까"라는 생각에 우울증까지 유발할 수 있다. 이런 요실금에는 콩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콩의 이소플라본이라는 성분은 여성호르몬의 역활을 대신하는데, 특히 검은 콩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 검은 콩은 요실금을 해소하는 역활을 함과 동시에 골다공증을 예방해주고, 성기능 장애도 회복시키는 기능이 있다.

2.석류

석류에는 여성호르몬이 다량 들어 있을 뿐 아니라 비타민C와 같은 영양소와 또한 많이 들어있어 갱년기에 좋습니다. 특히 석류의 껍질에 들어 있는 타닌성분은 갱년기에 좋다고 알려진 에스트로겐성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석류의 섭취는 갱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여러증상을 개선시켜줄 뿐만 아니라 비타민C와 같은 영양소는 스트레스를 조절해주는 역활을 하기 때문에 갱년기에 나타날 수 있는 우울증의 증상을 개선해주는데 효과이다.

3.크랜베리

갱년기 여성이 잘 걸리는 질병 중 하나는 방광염이다. 방광염은 외부생식기인 질과 항문 주위의 균이 짧은 요도를 통해 방광으로 올라가서 걸리는 것인데, 크랜베리는 세균의 침투를 방지하는 역활을 해서 방광염을 예방해준다.

4.홍화씨

홍화씨에는 다량의 칼슘이 들어있는데, 이는 갱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증상인 골다공증을 예방하느데 효과적이다.

5.칡

칡에는 갱년기에 이로운 에스트로겐 성분이 다량 들어있을 뿐 아니라 폐경을 늦추어 주는 효과 또한 있다. 칡의 성분중의 칼슘의 함유량 또한 많은데 이는 갱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골다공증을 예방하는데 효과적이며 이러한 칡의 꾸준한 섭취를 통해 갱년기의 스트레스성 우울증 등을 예방에 효과적이다.

6.자두

자두의 성분중에는 보론성분이 있는데 이는 갱년기에 이로운 여성호르몬의 분비를 촉진 시키는 역활을 한다. 또한 자두 섭취를 통해 갱년기에 나타나는 우울증의 증상을 예방할 수 있으며, 꾸준히 먹으면 갱년기에 우울증을 완화할 수 있다.

7.야생 참당귀

보혈, 진정 그리고 월경을 고르게 하는 조경(調經) 등의 효능이 있으며 멍든 피를 풀어주기도 한다. 적용질환은 신체허약, 두통, 현기증, 관절통, 복통, 변비, 월경불순, 타박상 등 이다.

8.복분자

갱년기에 좋은 음식으로 알려진 이 과일에는 피토에스트로겐 성분이 들어있는데, 이 성분이 여성호르몬을 생성하는 난포 등을 자극해줘 호르몬 분비를 원활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9. 토종칡 생즙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석류의 625배, 대두의 30배나 많기 때문에 폐경기및 갱년기치료에 효과적이다. (산후조리에도 좋다.)

10.달맞이유 오일

갱년기여성, 갱년기 장애 및 여성성들의 생리통 경감 및 호르몬 조절을 통한 생리불순 개선 월경전조증을 나타내는 여성에게는 필수지방산의 함량이 낮게 나타나는데, 감마리놀렌산에서 유도된 프로스타글란딘은 필수지방산의 레벨을 정상적으로 유지시키며 호르몬의 변화를 안정화시키는 작용을 하여 월경전조증을 완화시켜주며, 유방암, 유방통증에도 도움이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20.html
kolaswqetsrq 11.02 16:43
건강 녹즙 9가지 효능과 레시피

건강 녹즙 9가지 효능과 레시피

1. 감 녹즙

생즙은 고혈압 환자에게 좋으며, 각기에도 유효하다. 술 취독을 풀어 준다. 설사를 멎게하고, 배탈을 낫게해 준다. 변비가 있는 사람은 먹지말 것. 감, 사과, 꿀이나 요구르트를 적당량 섞어 믹서에 갈아 먹는다.

2. 감자 녹즙

팩틴이라는 섬유성분은 변비와 설사를 다스리는 정장작용과 혈액속의 콜레스테롤을 조절하여 동맥경화증의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위궤양, 위산 과다증에도 좋다. 햇볕에 쬔 부분(파랗게 변한 부분), 감자의 눈을 떼어내고 꿀과 요구르트를 섞어 믹서에 갈아서 먹는다. 양배추, 시금치, 당근, 사과 등을 섞으며 더욱 효과가 좋다.

3. 고추 잎 녹즙

감기에는 천연 비타민 C로 무장하는 고추잎 즙을 내어 먹는걸 권한다.

3. 구기자 녹즙

열매에는 강장제로 쓰이는 베타인이 함유되어 있다. 기를 보강시켜 준다. 구기자, 시금치, 당근, 사과, 벌꿀, 요구르트를 적당량 섞어 믹서기에 갈아서 먹는다. 가시에 살짝 스쳐도 생기는 염증에는 장수식품으로 알려진 구기자에는 활성효소를 제거하는 항산화 효과가 큰 구기자 즙을 먹는다.

4. 레몬즙

레몬이 피부 미용에 좋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각종 화장품의 첨가제로 응용되고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연구 결과에 의하면 레몬에는 당분, 칼슘, 철분, 비타민 B1, B2, C, 구연산 등 다양한 성분이 함유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레몬은 피부에 색소가 침착되지 않게 예방하고 제거하는 작용을 발휘한다. 장기간에 걸쳐 납 성분이 들어있는 화장품을 많이 쓴 경우 피부에 색소 침착과 얼룩이 생기기 쉬운데 이때 레몬즙을 응용하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레몬즙 2스픈을 우유 한 컵에 섞어서 마시거나 레몬즙과 계란 흰자위를 섞어서 얼굴에 마사지를 하면 된다.

5. 머루 녹즙

보혈작용이 있고, 폐가 약한 사람, 이뇨 효과가 있고, 갈증과 구역질에도 효과가 있다. 머루 300g, 당근 150g, 요구르트를 적당히 넣고 믹서에 갈아 먹는다.

6. 무즙

무에 함유돼 있는 비타민 C의 함량은 사과의 10배에 이른다. 무에는 또 칼슘과 인, 칼륨, 철분 등 다양한 성분이 함유돼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무는 얼굴색이 검거나 검버섯, 기미 등이 생기고 피부가 거칠어지는 증상을 개선한다. 따라서 평소 무즙을 즐겨 마시고 생무를 자주 먹으면 피부의 기혈 운행을 개선시켜서 피부를 곱고 탄력이 넘치게 한다. 껍질이 푸른 무를 깨끗이 씻은 뒤 그 즙을 짜내어 이를 매일 3 ~ 4컵씩 5주일 정도 계속 마신다. 이렇게 하면 검버섯이 없어지거나 색갈이 엷어진다. 특히 피부가 거칠고 윤기가 없는 경우에 효과가 좋다.

7. 미나리 녹즙

생즙은 고혈압 환자에게 적합하고, 해열, 일사병 등에 유효하다. 미나리, 샐러리, 당근, 꿀, 요구르트를 믹서에 갈아서 먹는다.

8. 복숭아 즙

노인성 변비나 관상동맥경화에 효과적이며, 식욕증진과 피로회복, 혈액순환, 면역기능 강화에 도움이 되어 피부미용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밤에 식은땀을 흘리거나, 담배의 니코틴을 제거하는 효능 또한 월등하다. 생즙은 기침치료에 좋고 장기간 복용하면 얼굴색이 좋아지므로 미용식으로도 권장된다. 씨를 발라낸 후 물과 믹서에다 갈며 꿀과 레몬즙을 석는다. 건데기를 짜내면 주스가 된다.

9. 부추 녹즙

부추는 몸을 보온하는 데, 냉병, 부인병, 기침, 설사 등에 좋다. 부추, 샐러리, 양배추, 사과, 당근, 생강, 요구르트를 적당량 섞어 믹서에 갈아 식전에 1컵씩 마신다. 몸이 차가울 때도 부추 녹즙을 먹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9_20.html
kolaswqetsrq 11.02 16:43
혈관의 굳어지는것을 예방해주는 음식 8가지

혈관의 굳어지는것을 예방해주는 음식 8가지

1. 옥수수

옥수수에는 지방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데요, 그중의 불포화지방산, 특히 리놀레산의 함량이 60%이상이라고 하는데요, 리놀레산은 인체 및 콜레스테롤의 정상적인 대사에 도움을 주고, 콜레스테롤이 혈관중에 쌓이는것을 줄여주어 이로 하여 동맥혈관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작용을 합니다.

2. 사과

사과에는 풍부한 다당, 과산 및 플라보노이드, 칼륨 및 비타민E, C 등의 영양성분들이 함유되어있어 체내에 축적되어있던 지방을 분해해주고, 동맥죽상경화 예방 및 발작을 미뤄주는 좋은 작용을 합니다.

3. 다시마

다시마에는 풍부한 암조다당, 곤포소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요, 이 종류의 물질들이 헤파린 활성을 갖고 있어 혈전을 예방하고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며 지단백, 동맥죽상경화를 억제하는 작용을 합니다.

4. 토마토

토마토는 각종 비타민 함량이 사과, 배보다 2~4배 높고, 또 섬유소인 루틴이 함유되어 있는데요, 이 성분이 인체의 산화기능을 높혀주고 자유기 등 체내의 노폐물들을 제거해주며, 혈관의 탄력을 보호해주고 혈전의 형성을 예방하는 작용을 합니다.

5. 차 잎

차잎에는 폴리페놀이 함유되어있어 인체의 항산화기능을 높혀주고 혈액의 지질을 낮추며, 혈액의 응결을 완화시키고 적혈구의 탄력을 증강시켜주며, 동맥죽상경화를 완화 또는 미루게 해줍니다. 장기적으로 차를 마시게 되면 동맥의 혈관을 부드럽게 해주는 작용을 합니다.

6. 양파

혈관확장작용이 강한 프로스타글란딘A가 함유되어 있어 혈관을 이완시키고 혈액의 점도를 낮춰주며, 혈관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동시에 양파에는 또 일종의 화합물과 아미노산이 함유되어 있어 섬유단백의 용해의 활성을 증강시키고 혈액의 지질을 낮춰주며, 동맥경화를 저항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7. 마늘

마늘은 휘발성 매운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혈관내에 축적되어있는 지방을 제거해주고, 지방의 축적을 낮춰주는 작용을 하기때문에 고지혈증과 동맥경화에 좋은 약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8. 가지

가지에는 비교적 많은 비타민P가 함유되어 있는데요, 모세혈관의 탄력을 증가시켜 주기 때문에 고혈압을 방지하고, 동맥죽상경화에 일정한 작용을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8_94.html
kolaswqetsrq 11.02 16:44
부부간 교통법규

부부간 교통법규

그 부부간에도 지켜야 할 교통법규가 있다고 합니다.

그 부부가 지켜야 할 교통 법규 열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

일방통행은 없습니다. 부부간에 일방통행은 없습니다.

언제나 쌍방통행이죠!!~모든 문제는 대화와 협조 속에 이루어져야 하죠!!~

둘째.

차간 거리유지입니다. 앞차와 뒤차가 너무 가까우면 충돌하기 쉽고

너무 멀어지면 다른 차가 끼어듭니다.

따라서 부부사이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경적금지입니다.

자동차의 경적으로 인한 피해가 큰 것처럼 당신의 높은 목소리는

상대방에게 스트레스를 줍니다.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목소리부터 낮춰야 하죠!!~

넷째.

추월금지입니다. 무리하게 경쟁적으로 추월하는

일 때문에 서로 부딪혀서 대형사고가 납니다.

부부가 상대방을 경쟁상대로 생각하거나 상대방을 무시하면

사고가 나죠!!~ 당신 같은 주제에 하며 업신여기는 말은 금물입니다.

부부는 경쟁상대가 아니라 영원한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차선위반입니다. 차선은 보기 좋으라고 그려놓은 금이 아니죠!!~

차선은 생명선입니다.

부부는 하나라고 하지만 서로의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각자의 차선을 가면서 서로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여섯째.

신호위반입니다. 신호위반을 자주 하는 운전자는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이 크죠!!~

배우자의 얼굴이 빨간 신호인지 파란 신호인지 알고 행동해야 현명한 사람입니다.

또한 파란 신호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인내심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일곱째.

차량진입금지위반입니다.

차가 들어가서는 안 될 길이 있습니다.

그런 길에 들어갔다가 뜻밖의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개인적인 것을 지나치게

들추어내서는 안 됩니다.

서로가 아끼며 존경하면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분간할 줄

알아야 현명한 부부가 되지 않을 런지요!!~

여덟째.

일단정지 지키기입니다.

일단정지를 무시하고 달리면 사고를 내는 수가 있죠!!~

부부가 대화할 때에도 일단정지를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면 곤란합니다.

일단정지를 하여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들어 보나마나 뻔 하지 하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죠!!~

아홉째.

정면충돌을 피하는 것입니다.

내 차선으로 상대방의 차가 달려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내 차선으로 잘 가고 있다며 그대로 달린다면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죠!!~

부부간에 내 주장만 옳다고 우긴다면 정면충돌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상대가 차선을 위반하여 달려온다면 일단 피하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열번 째.

수시로 점검하는 것입니다. 자동차는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점검을 하다보면 전혀 생각지 못한 데서 문제가 나타나는 수가 있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576.html
kolaswqetsrq 11.02 16:45
그렇게 사는 게 좋더라고요

그렇게 사는 게 좋더라고요

그렇게 사는 게 좋더라고요.

서로에게 힘이 되고 용기를 주며

인생을 두루뭉술 사는 게 좋더라고요.

남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고

발버둥 치며 비참해지는 것보다

매일매일 나만의 행복을 발견하며

비할 데 없이 즐겁게 사는 것이 좋더라고요.

욕심은 불만을 낳고 부러움은 초라함을 부르니까

버리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삶보다

적당히 가진 것에 만족하고

웃을 수 있는 것이 좋더라고요.

복잡한 세상, 모든 것을 알 수 없는데도

두세 가지 더 알기 위해 집착하는 것보다

남보다 하나 더 안다고 으스대는 것보다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라도 더 알았음에 고마워하는 것이 좋더라고요.

결국은 그저 함께 걸어가는 것이,

서로를 다독이고 토닥거리며

무심한 듯 덮어주고 둥글게 사는 것이 좋더라고요.

세상 좋아 보이는 삶도

들여다보면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는데,

내 인생만 부족하다고 탓할 필요 없이

서로를 위해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살아가는 거라 생각하는 게 좋더라고요.

좋은 마음은 좋게 돌아오고

나쁜 마음은 나쁘게 돌아오니

넉넉하고 따뜻하게 서로의 곁을 지켜주고

예쁜 마음 나눠주고 나눠가지며

그렇게 사는 게 좋더라고요.

-라이언, 내 곁에 있어줘(전승환) 中-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932.html
kolaswqetsrq 11.02 16:45
건강 클리닉 필수상식 모음

건강 클리닉 필수상식 모음

▶ 우유 마신 뒤의 설사를 두려워 말라.

처음 마실 때 설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계속 마시면 자연히 멎는다. 설사를 해도 영양분은 체내에 그대로 남는다.

▶ 무는 뿌리보다 잎새가 더 좋다.

무 잎은 뿌리보다 영양가가 훨씬 높다. 뿌리는 사람이 먹고 잎은 버리거나 소, 돼지에게 주는것은 알고 보면 바보같은 일이다.

▶ 야채는 익혀 먹어라.

생야채를 먹어야 한다는 건 또하나의 미신이다. 야채의 영양분은 대체로 매우 빈약하다. 푹 익히지 않는 선에서 알맞게 조리해야 한다.

▶ 블랙 커피는 몸에 해롭다.

블랙 커피만 마시면 위장과 심장에 좋지 않고, 동맥경화증에 걸리기 쉽다. 반드시 크림이나 우유를 넣어 마셔야 한다.

▶ 채식만으로 오래 살진 않는다.

서양의 채식 장려는 고기를 먹되 야채분량을 늘리라는 뜻. 야채만이 최선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고기없는 채식은 위험하다.

▶ 맵게 먹어도 머리는 나빠지지 않는다.

너무 맵게 먹을 때 위장장애가 오는건 사실이다. 그러나 머리를 나쁘게 한다는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 슬플 땐 우는 게 위에 좋다.

슬프거나 괴로우면 울어라. 눈물을 흘리면 위 운동이 활발해지고 위액도 많이 나온다. 남자도 체면 가리지 말고 울어라.

▶ 코피가 난다고 머리를 뒤로 젖혀선 안된다.

코피를 쏟을 때 머리를 뒤로 젖히면 피가 기관을 통해 폐로 들어가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머리는 똑바로 하라.

▶ 업어 줘도 다리는 굽지 않는다.

아기를 업어 기르면 다리가 굽고 엄마의 가슴 건강에도 나쁘다는 건 기우다. 오히려 선천성 고관절 탈구 예방과 정신건강에 좋다.

▶ 행주에 돈을 아끼지 말라.

가정주부들이 뜻밖으로 행주에 무신경하다. 조사결과 95%의 행주에서 대변에서나 나오는 대장균이 검출됐다. 늘 삶고 소독하라.

▶ 감기는 추워서 걸리는게 아니다.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다. 아무리 춥거나 옷이 비에 젖더라도 그 때문에 감기에 걸리는 일은 없다.

▶ 단음식을 먹어도 당뇨병은 안생긴다.

설탕을 먹으면 당뇨병 환자가 된다는것은 매우 소박한 논리의 비약이다. 오히려 과식이 비만증을 불러 당뇨병이 되기 쉽다.

▶ 탄음식을 먹는다고 암에 걸리는건 아니다.

육고기와 생선을 구워 먹지않고 지낼 필요가 없다. 암은 유전병이 아니며 탄 음식을 먹는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 꿈을 많이 꾼다고 허약한건아니다.

꿈은 몸이 허해서 꾸는 게 아니다. 침실 환기 등 주변 정리가 안 됐거나 근심거리가 많을 때 생기기 쉽다.

▶ 노인일수록 잠을 적게 자서는 안된다.

나이가 들수록 주간활동에 따른 피로가 심하고 회복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늙으면 잠을 더 많이 자야 한다.

▶ 몸의 때는 벗기지 않는게 좋다.

때는 몸이 물에 충분히 불을 때만 밀거나 아예 벗기지 말라. 타월로 밀어 피부가 벌거지는것은 표피가 망가졌다는 것이다.

▶ 구두는 오후에 사라.

발은 움직일 때 약간 커진다. 따라서 피혁제품인 구두는 활동으로 발이 충분히 커진 오후에 사는 게 좋다. 신발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306.html
kolaswqetsrq 11.02 16:46
신비한 샘물

신비한 샘물

어떤 부인이 정신과 의사를 찾았습니다.

"선생님, 더는 남편과 살지 못하겠어요.

그 사람은 너무 신경질적이고 잔소리가 심해요."

의사는 한참 고민하다가 처방을 내렸습니다.

"우리 병원 옆에 신비한 샘이 있습니다.

샘물을 한 통 길어서 집으로 가져가세요.

남편이 귀가하면 샘물을 한 모금 머금으세요.

그런데 머금기만 해야지 절대 삼키면 안 됩니다.

처방대로 하시면 금방 효과가 있을 겁니다."

부인은 처방대로 샘물을 길어서 돌아갔습니다. 그 날도 밤늦게 귀가한 남편은 평소처럼 짜증과 잔소리를

아내에게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부인도 맞받아쳐 싸웠을 테지만, 그 날은 처방대로 신비한 물을

입에 머금었습니다. 물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입을 꼭 다물었구요.

얼마가 지나자, 남편은 잠잠해졌습니다.

그 날 하루가 무사히 지나간 것이지요.

그 날부터 남편이 잔소리를 시작하면

부인은 어김없이 신비의 샘물을 입에 머금었구요.

그렇게 얼마가 지나자, 남편의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신경질이 줄고 아내를 함부로 대하던 행동도 몰라보게 변했습니다.

신비한 효과에 깜짝 놀란 아내가 의사를 찾아가 감사인사를 전했습니다.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신비한 샘물이 너무 좋더군요.

우리 남편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의사는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분이 변한 것은 물이 아니라 당신의 침묵 덕분입니다."

‘말을 배우려면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려면 60년이 걸린다’

말할 때를 아는 사람은 침묵할 때도 안다고 합니다.

설득하고 싶다면 침묵하세요.

침묵이 웅변보다 강하니까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904.html
kolaswqetsrq 11.02 16:47
뱃속만 따뜻하게 해줘도 100세는 산다

뱃속만 따뜻하게 해줘도 100세는 산다

1. 비만은 몸이 차가워져서 생기는 병

사람의 몸이 차가워지면 대표적으로 몸이 굳어가고 화를 자주 내 머리의 차가운 기운이 몸으로 내려와 누적돼 통증이 생기고

각종 염증과 전염병 그리고 암을 유발 시킨다. 아울러 부종이 생기고 결국 죽게 된다. 몸의 상태는 비만과도 관련이 깊은데,

비만은 몸이 차가워져서 생긴 것이므로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도 일상생활 속에서 몸을 차갑게 하면 다시 비만이 된다. 또한 몸이 따뜻하고 머리가 차가워야 건강하다고 했을 때 차가운 부위는 머리와 얼굴 전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머리카락이 나 있는 부위의 이마는 차가워야 하지만, 나머지 얼굴 부위는 몸과 같이 따뜻해야 건강하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몸이 따뜻한 남성은 정력이 있고 마음이 차분하면 각종 성 질환을 이겨내지만 몸이 차가워진 남성은 기운이 약하여 양기 부족, 조급함, 성질환 등이 찾아온다.

2. 화를 내거나 말이 많아도 몸이 차가워진다.

화를 내면 머리가 뜨거워지고 몸이 차가워진다. 반복해서 자주 화를 내면 머리는 항상 무거워져 정신이 맑지 못하고 몸은 차가워져 순환이 안 되어 각종 질병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또한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해도 문제가 된다. 말이 많다는 것은 오장육부의 기운을 입과 혀를 움직이는데 필요한 신경과 근육 쪽으로 몰리게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상이 누적되면 기운이 약한 사람은 오장육부가 기운이 부족하여 차가워지고 병이 생긴다. 하루 종일 앉아서 머리만 쓰고 다리는 쓰지 않으면 다리의 기운이 약해진다. 기운이 약해지면 역시 오장육부의 기능이 저하되고 머리가 무거워진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장시간 일을 해도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진다.

3. 따뜻한 음식은 몸을 따뜻하게 한다.

따뜻한 음식은 위장에서 분해, 발효(소화)시키기가 좋아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차가운 음식이 위장에 들어오면 위장은 차가운 음식을 위장의 따뜻한 기운으로 데워서 소화를 시켜야 하므로 많은 기운이 소모된다. 처음에는 기운이 있어

몸에 들어온 차가운 음식을 녹일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반복되면 차가운 기운에 지게 되어 움츠러들며 소화 장애가 생기고 반복되면 위장은 기운을 잃게 된다. 또 차가워진 위는 붓거나 통증이 생기고 세균의 침범을 받아 염증과 암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따뜻한 음식은 건강한 사람, 건강하지 못한 사람 가릴 것 없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장수 노인들의 식습관을 살펴보면 야채를 생으로 먹는 것보다 살짝 데쳐서 나물 반찬으로 먹는 경우가 더 많다. 야채를 데치는 과정에서 차고 나쁜 기운이 빠져나가고 따뜻한 에너지가 보충되어 먹기 좋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 몸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

* 따뜻한 물을 마셔라.

* 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마라.

* 바른 말, 고운 말, 존대 말을 써라.

* 다리를 많이 움직여라.

* 땀을 흘려라.

* 일과 운동을 열심히 하라.

* 목욕을 하라.

* 11자 자세로 걸어라.

* 따뜻한 차를 많이 마셔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0_20.html
kolaswqetsrq 11.02 16:48
꿀의 모든 것

꿀의 모든 것

1.꿀에는 각종 비타민 및 다량의 효소가 있기 때문에 높은 온도에서 끓여서는 안 된다.

특히 임산부에게 호박과 함께 꿀을 넣고 달여 먹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데 그건 옳지 않다. 호박은 득이 될지 모르나 벌 꿀은 마치 생수를 끓여 먹는 것과 같이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한다. 호박을 고아 그 물에 꿀을 타 먹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2. 벌 꿀은 냉장고에 보관할 필요가 없다.

벌 꿀 속에서는 박테리아 균도 2 시간 이내에 사멸한다. 벌 꿀은 그 자체가 수분 21% 미만의 방부제이기 때문에 다른 보관 방법이 필요 없다. (자연산 꿀만 해당)

▶ 위장병(胃臟病)

 꿀을 적당량 수시로 먹되 시장기를 느낄 때마다 조금씩 먹는다. 위궤양이 있을 때 위가 조금 쓰릴 수도 있으나 이 때는 물에 타서 마시면 됩니다. 이 때 인삼가루를 섞어 먹으면 정력에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위장병을 낫게 하는데 효과적이다.

▶ 당뇨병(糖尿病)

 통상 단 것이라 하면 다 같은 것 일 것으로 생각되나 설탕이나 과일에 들어 있는 당분과 벌 꿀의 당분은 성분상 완전히 다르다. 설탕은 인체에 들어가면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리되어야 흡수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설탕은 인슐린, 칼슘, 비타민을 소모하나 벌 꿀은 이미 꿀벌들이 위의 작업을 다해 놓은 상태의 완전 식품이다. 다시 말해 인체에 들어갔을 때 소화 분해 과정 없이 바로 흡수가 되어 에너지 원이 되므로 도리어 당뇨 환자의 당질 섭취에 아주 좋은 음식이다.

▶ 이질(痢疾)

복통이 심한 이질에는 진하게 탄 꿀을 한 사발을 단번에 먹는다. 혹은 생강 즙과 꿀을 같은 양으로 배합하고 물에 타서 마신다. 또 피를 쏟는 이질에는 생지황 즙에 꿀을 타서 한 수저씩 먹는다.

▶ 간염(奸炎)

감초 가루를 섞은 꿀은 간염을 비롯한 간장 질환, 위궤양, 복통, 정신 안정에 효과가 크다.

▶ 위염(胃炎)

벌 꿀 50 g에 중간 크기의 무 1 개를 썬 뒤, 이것이 무르도록 오래동안 고아서 세 번에 나누어 먹으면 위염이 가라앉는다.

▶ 야뇨증 (夜尿症)

꿀만 자주 먹이거나 혹은 마 가루를 섞어 먹인다.

▶ 구내염(口內炎)

 열에 의해 입안이 헐고 패일 때 꿀에 섞은 황백 가루를 조금씩 입에 물고 있다가 녹으면 삼키기를 반복한다. 구내 염에는 꿀에 무 잎을 담가뒀다가 물고 있어도 효과가 있다.

▶ 체력(정력) 강화 (體力强化)

- 꿀에 복분자,즉 산 딸기를 재워 익힌 것은 정력 감퇴를 치료하는 약이다. 또 꿀에 인삼 가루를 섞어 놓고 먹으면 체력이 떨어질 때나 정력 감퇴에 좋다. 이것은 전신쇠약, 소화기능 저하, 복부와 손발의 냉증, 집중력 감퇴 등에도 좋다. 빈속에 복용한 다음 찬 물을 마시면 된다.

▶ 몸에 열이 많을 경우

꿀은 성질이 냉하여 열을 맑게 하므로 꿀을 찬물에 타서 복용한다.

▶ 몸이 차가운 경우

 꿀을 따뜻한 미온수에 타서 마신다.

▶ 소화 (消化)

꿀에 삽주 뿌리를 가루 내어 섞어서 복용하면 소화불량, 식욕부진, 의욕저하에 좋다. 삽주 뿌리는 창출과 백출이 있는데 이때는 백출을 쓴다.

▶ 변비 (便秘)

 저녁 취침 전에 꿀 두 숟가락을 먹는다. 30 분이나 1 시간 후 생수를 한 컵 마신다. 검은 깨에 벌 꿀, 우유를 섞은 것을 매일 아침 공복에 타 먹이면 노인들이나 산모들의 변비가 낫는다.

▶ 기침

꿀에 대나무 잎을 태운 가루를 섞어 만성 지속성 기침에 응용한다. 대나무 잎이 열을 내리고 마른 기침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다. 꿀에 오미자 가루를 약간 타서 복용해도 좋다. 또는 꿀과 참기름을 섞은 뒤, 따뜻한 물에 타서 하루 세 차례씩 수 일 동안 먹으면 마른 기침이 잦아진다.

▶ 고혈압 (高血壓)

꿀 속에는 화분과 효소가 그대로 살아 있어 피를 맑게 하고 혈액순환 작용을 하여 혈압을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또는 토종 벌집을 애벌레가 있는 상태 그대로 삶아서 먹거나 가을 추수 시에 볏짚 단에 많은 달팽이를 식초로 끈끈한 것을 씻어낸 뒤 참기름을 발라서 먹으면 좋다.

▶ 스테미너 식

 마늘을 꿀에 재어 먹되 1 회에 3 쪽 이상 먹지 않는다.(시력이 나빠질 수 있음으로) 양파, 달걀, 잣과 꿀을 섞어 먹으면 정력 증강에 효과가 있다. 당근, 샐러리, 사과 쥬스 등에 타서 먹는다. (비율은 1:1:1)

▶ 편도선염 후두염

저녁에 꿀 한 숟가락을 목에 30 초 물고 있다가 삼킨다.

▶ 피로 회복

 꿀에 사과 식초를 약간 넣어 마시면 피로를 풀어주는 약이 된다.

▶ 음주 후(飮酒後)

 술을 마신 다음 숙취에 시달릴 때는 꿀에 칡뿌리 가루를 섞어 먹으면 좋다. 또는 꿀을 한 숟가락 먹거나 미지근한 물에 타서 마시면 숙취 제거나 입에서 나는 술 냄새가 없어진다. 이는 감기에도 효과가 있다. 쓴 칡과 단 맛의 꿀이 어우러져 상쾌한 맛이 난다.

▶ 피부 맛사지

 생수 한 컵에 사과 식초 한 숟가락과 꿀 한 숟가락을 넣어 마신다. 사과 식초에 함유되어 있는 유기산과 벌 꿀 속의 미네랄과 비타민이 만나면 세포의 노폐물을 배설하므로 기미와 잡 티의 멜라닌 색소를 엷게 해주어 피부가 고와진다.

▶ 산모 (産母)

 임신 중일 때 우유 한 컵에 미숫가루 두 숟가락 꿀 두 숟가락을 타서 마시면 증혈 작용과 함께 임신으로 인한 변비가 없어진다.

출산 때 : 난산으로 고생하면 꿀과 참기름 각 한 잔씩을 함께 달여 먹는다.

출산한 후 : 호박에 대추 한 되 정도 넣고 빵 찌듯이찐 다음 짜서 식힌 물 한 컵에 꿀을 두 숟가락 타서 수시로 마신다.또는 율무 30∼40 g 을 주전자에 물 두 그릇 정도 부어서 한 그릇이 되게 달인 후 그 물에 꿀을 타서 하루 세 번 나누어 마신다.

일 주일 정도 먹으면 얼굴의 부기나 팔, 다리의 아픈 증세도 없어지며 피부 또한 아주 고와진다. 산 후 갈증이 심할 때는 꿀물을 타서 마신다.

▶ 어린이 영양식

우유를 먹고 자란 아이는 모유로 자란 아이보다 소화기 계통의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한데 그 원인은 비피더스 균이 적기 때문이다. 비피더스 균이 증식하게 하는 방법은 우유에 꿀을 7% 이상 넣는 것이다. 꿀은 비피더스 균의 번식을 돕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유를 탈 때 꿀을 2 스푼 넣어 먹이면 배탈이 잘 나지 않고 소화 불량에 효과가 있다.

▶ 그 외 건강식(健康食)

-스테인리스가 아닌 사기 주전자에 황률, 대추, 인삼, 계피, 귤을 적당량 넣고 1 l정도 되는 물을 붓고 은근한 불에 반이 되도록 푹 달여 체에 걸러 꿀을 타서 마신다. 이는 환절기 보약에 좋은데 귤피, 생강, 대추, 계피 등은 각각 다른 향기를 가져 적절히 배합하면 좋은 차 맛을 낼 수 있다. 또 이들은 각각 우수한 약효를 지니고 있는데 대추는 혈액순환, 생강은 식욕증진, 귤 차는 위장과 내장기능 활성, 인삼은 보혈 강장제, 계피는 위를 보호하는 건위제 등의 효험이 있다.

 꿀에 도라지 뿌리의 가루를 섞어 인후염, 편도선염 등에 약으로 쓴다. 도라지 뿌리를 곱게 가루 내어 꿀에 재우면 감기약으로 손색이 없다. 요통에는 꿀에 두충 가루를 섞어 끓인후 오동열매 크기의 환을 만들어 공복에 염탕으로 80~100 알을 삼켜 복용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605.html
kolaswqetsrq 11.02 16:49
혈압이 높을 때 좋은 음식 8가지

혈압이 높을 때 좋은 음식 8가지

혈압의 정상수치는 수축기 120, 이완기 80 이하를 말한다.

수축기가 140, 이완기 90일 경우 고혈압이므로 평소에 음식으로 관리를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높은 혈압을 낮춰주는데 도움이 되는 음식을 모아봤다.

1. 등 푸른 생선

등 푸른 생선은 고혈압의 원인인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준다. 또한 뇌의 운동을 도와주기 때문에 치매예방에 효과적이다.

2. 검정 콩

검정 콩은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압을 낮춰 정상 혈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이는 비타민E와 칼륨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또 해독작용이 뛰어나 독소를 빼주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며 노화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

3. 감

감은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나쁜 피를 제거해주고, 혈액순환을 도와 혈관을 튼튼하게 해준다.

4. 사과

사과에 함유돼 있는 팩틴 성분이 콜레스테롤을 배출시키는 혈압 조절 효과를 낸다.

5. 구기자

구기자에는 비타민C가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고혈압과 같은 성인병 예방 및 치료에 좋다

6. 양파

양파는 고혈압에 좋은 대표적인 음식이다. 케르세틴이라는 성분이 혈관벽에 붙어 있는 지방을 분해하고 축적을 막아주며 피를 맑게 해준다.

7. 고구마

고구마에는 칼륨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나트륨 배출 효과가 뛰어나다. 또 혈압을 낮춰주고 변비, 당뇨 예방, 노화 예방에 도움이 된다.

8. 토마토

토마토는 루틴과 비타민C가 풍부해 모세혈관을 강화시키고 혈압도 낮춘다. 또 토마토는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아줘 뇌졸증이나 심근경색 등과 같은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8_20.html
kolaswqetsrq 11.02 16:49
금오옥토金烏玉兎 - 해와 달의 별칭, 까마귀와 토끼가 산다는 전설에서 생긴 말

금오옥토(金烏玉兎) - 해와 달의 별칭, 까마귀와 토끼가 산다는 전설에서 생긴 말

쇠 금(金/0) 까마귀 오(灬/6) 구슬 옥(玉/0) 토끼 토(儿/5)

금빛으로 빛나는 까마귀(金烏)는 태양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태양계의 중심 해는 이칭이 단순히 까마귀와만 관련 있다. 금오 말고도 赤烏(적오), 黑烏(흑오), 踆烏(준오, 踆은 마칠 준) 하는 식이다. 반면 지구의 위성 달은 제법 다양하다.

태양에 대비한 太陰(태음) 외에 두꺼비가 산다고 老蟾(노섬, 蟾은 두꺼비 섬), 소복 입은 미인 素娥(소아), 달 속에 사는 선녀 이름을 따 嫦娥(상아) 혹은 姮娥(항아) 외에 떡방아 찧는 옥토끼로 더욱 친숙한 玉兎(옥토)가 있다. 해와 달을 日月(일월)으로 묶어 부르듯이 별칭으로 金烏玉兎(금오옥토)로 멋지게 통칭해도 어원은 각각 달리 한다.

까마귀의 전설은 중국의 ‘山海經(산해경)’, ‘楚辭(초사)’나 ‘淮南子(회남자)’의 주석서 등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堯(요)임금 때 갑자기 하늘에 해가 열 개나 떠서 강물이 마르고 초목이 타 사람들이 견딜 수가 없었다. 요임금이 하늘에 빌자 천제가 명궁인 羿(예, 羿는 사람이름 예)를 내려 보냈다.

東夷(동이)족의 후예라는 예가 해를 하나씩 쏘자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시뻘건 물체가 떨어졌는데 그것은 발이 세 개 달린 까마귀였다. 三足烏(삼족오)는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도 많이 나오니 활 잘 쏘는 시조 朱蒙(주몽)과 함께 더욱 맥락이 닿는다. 태양 속에 살고 있는 세 발 달린 금빛 까마귀에서 나온 말은 경북 龜尾(구미)시의 金烏山(금오산)에서도 볼 수 있다.

토끼와 두꺼비가 달 속에 산다는 말은 회남자 외에도 王充(왕충)의 ‘論衡(논형)’에 등장한다. ‘해 안에는 삼족오가 있고 달에는 토끼와 두꺼비가 산다(日中有三足烏 月中有兎蟾蜍/ 일중유삼족오 월중유토섬서)’란 말이 說日(설일)편에 있다. 蜍는 두꺼비 서. 이후 해와 달을 함께 부르는 말은 여러 시인이 노래했다.

初唐(초당)의 韓琮(한종)은 ‘春愁(춘수)’에서 ‘해는 멀리 날고 달마저 달려가니, 검은 수염이 오래도록 검을 수는 없구나(金烏長飛玉兎走 靑髥長靑古無有/ 금오장비옥토주 청염장청고무유)’라고 덧없는 세월을 노래했다. 詩豪(시호)로 불린 白居易(백거이)는 ’勸酒(권주)‘에서 ‘천지는 아득하고 장구한데, 달과 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나가니(天地迢迢自長久 白兎赤烏相趁走/ 천지초초자장구 백토적오상진주)’ 술을 마셔야 한다고 했다. 迢는 멀 초, 趁은 쫓을 진.

우리의 풍자시인 김삿갓(金笠/ 김립)은 ‘달을 놀라게 해서 흰빛을 감추게 하고, 해를 재촉하여 붉은 빛을 부르게 한다(頻驚玉兎旋藏白 每喚金烏卽放紅/ 빈경옥토선장백 매환금오즉방홍)’며 새벽을 알리는 닭을 묘사했다.

까마귀가 날고 토끼가 달린다는 烏飛兎走(오비토주)라 하면 세월이 빨리 흐르는 것을 뜻하고 烏兎怱怱(오토총총)으로도 쓴다. 이처럼 멋지게 묘사해도 보통 사람들은 덧없다. 뜻한바 하려던 일은 재빨리 지나는 시간 속에 후회만 남기 십상이니 오늘을 더욱 충실히 해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439.html
kolaswqetsrq 11.02 16:50
작법자폐作法自斃 - 자기가 만든 법에 자신이 해를 입다.

작법자폐(作法自斃) - 자기가 만든 법에 자신이 해를 입다.

지을 작(亻/5) 법 법(氵/5) 스스로 자(自/0) 죽을 폐(攵/4)

도덕이나 관습을 어겼을 때 비난만 받지 벌은 따르지 않는다. 법은 지키지 않으면 물리적 강제를 받는다. 그러니 법은 만인에 공평해야 한다. 법 法자에 있듯이 물과 같이 공평해야 하고 물 흐르듯이 순리로 집행해야 한다.

法의 옛 글자 灋(법)에는 뿔이 하나인 상상의 동물 해태 廌(치)가 들어 있는데 유무죄를 아는 동물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법을 만드는 사람은 오히려 법을 어기는데 능통하다’는 말이 동서에 같이 있는 것을 보면 돈이나 권력 있는 사람이 법을 더 어기는 것을 알 수 있다.

1988년 탈주범 지강헌의 절규로 유명해진 有錢無罪 無錢有罪(유전무죄 무전유죄)다. 지난 임시국회서 통과된 ‘김영란법’과 같이 너무 엉성하게 만들어 문제가 될 소지를 안고 있거나 반면 너무 법을 촘촘히 만들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경우에 쓰는 성어가 作法自斃다. 法家(법가)를 대표하는 商鞅(상앙)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史記(사기)’에 실려 있다.

秦(진)의 孝公(효공)에 의해 발탁된 상앙은 10년간 재상으로 있으면서 나무만 옮겨도 상을 준 移木之信(이목지신)과 같이 믿음의 정치를 펼쳤다. 두 차례의 變法(변법)을 시행하여 井田制(정전제)같은 낡은 제도를 폐지하고 귀족의 세습 특권을 없앴다.

법을 어기면 태자라도 사정없이 보좌한 신하를 처형하고 스승까지 형벌을 가했다. 토지매매 허가제, 도량형 통일 등의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여 국력이 약했던 진을 강성한 나라로 만들었다. 그러나 태자가 즉위하여 惠文王(혜문왕)이 되자 움츠렸던 귀족 대신들이 상앙을 역적모의한다고 고발했다. 체포령이 내리자 할 수 없이 상앙은 도망쳤다.

탈출하려고 숨어 다니다 날이 저물자 국경 부근의 주막으로 들어가 하룻밤 묵어가려 했다. 그러자 주인이 商君(상군)의 법이라며 신분증이 없는 사람은 재울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법을 만든 상앙이 한탄했다. ‘내가 만든 법이 오늘날 되레 나를 해치는구나(爲法之敝 一至此哉/ 위법지폐 일지차재)!’ 敝는 무너질 폐.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565.html
kolaswqetsrq 11.02 16:50
구전문사求田問舍 - 논밭을 구하고 집을 사려 문의하다,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딴 일은 등한하다.

구전문사(求田問舍) - 논밭을 구하고 집을 사려 문의하다,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딴 일은 등한하다.

구할 구(氺/2) 밭 전(田/0) 물을 문(口/8) 집 사(舌/2)

인간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옷과 음식과 집, 衣食住(의식주)는 최소라도 갖춰야 한다. 자급자족하던 이전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어도 인구가 늘어나고 더 편하게 되려는 욕심이 가미되고서는 경쟁이 치열해졌다.

재주가 없는 보통 사람들은 최소한에 만족하거나, 재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물 먹고 물 마시는 생활에 자족하는 성인은 소수였다. 예나 이제나 주변에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더 많은 땅을 구하고(求田) 더 큰 집을 찾으러 다니는(問舍)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쳐 옳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을 늘린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성어는 중국 魏蜀吳(위촉오)의 정사인 ‘三國志(삼국지)’ 魏書(위서)에서 劉備(유비)가 한 말로 나온다. 유비가 세력을 떨치기 전 曹操(조조)에 쫓기다 의지하게 된 곳이 중원의 荊州(형주)에 있던 劉表(유표)의 막하였다. 유표는 각지의 세력이 요동칠 때 우유부단 소리를 들을 정도로 중립을 지키며 침착하게 통치하여 형주를 안정시켰다.

유비가 여기 머물면서 諸葛亮(제갈량)을 얻는 등 도움을 받았다. 어느 때 許汜(허사, 汜는 지류 사)라는 사람과 천하의 인물들에 대해 평가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허사도 呂布(여포)의 밑에 있다가 그의 사후 유표에 의탁하고 있던 차였다.

허사가 조조의 막하에서 계교를 써서 여포를 제거한 陳登(진등)을 평하며 호기를 떨치며 안하무인인 사람이라고 했다. 吳(오)나라의 군사도 물리쳐 명망이 높았던 진등을 혹평하자 유비가 그 연유를 물었다.

허사는 이전 전란을 피해 진등을 찾았는데 ‘자신은 높은 침대에 누워 있고, 손님을 상 아래에 앉게 했다(自上大床臥 使客臥下床/ 자상대상와 사객와하상)‘고 했다. 유비가 허사를 향해 집안을 잊고 나라를 걱정하며 세상을 구해야 할 사람이 ’전답을 기웃거리고 집이나 사려고 다니며 이렇다 할 뜻도 세우지 않으니(而君求田問舍 言無可采/ 이군구전문사 언무가채)‘ 꺼렸을 것이라고 나무랐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차츰 더 좋은 환경과 호사를 원하는 것은 상정이다. 하지만 높은 직위에 있었던 자들이 백성들의 고혈을 짜는 횡포가 많았을 것은 짐작된다. 나라는 망하게 생겼는데 벼슬아치들은 불한당들과 한 통속이 되어 구전문사한다는 말은 역사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빈부의 격차가 현격해진 오늘날은 어떨까. 억압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은 없어졌더라도 고위 공무원들의 재테크는 놀랄만하고, 땅 부자나 고급 아파트는 치솟기만 한다. 서민들을 좀 더 잘 살게 한다면 누가 이들을 나무라겠는가.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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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51
도천지수盜泉之水 – 도둑샘의 물, 처지가 어려워도 부정한 짓은 않다.

도천지수(盜泉之水) – 도둑샘의 물, 처지가 어려워도 부정한 짓은 않다.

도둑 도(皿/7) 샘 천(水/5) 갈 지(丿/3) 물 수(水/0)

사람이나 사물이나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한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고 하듯이 이름이 명예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그러니 이름을 짓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부모가 좋다고 지어준 이름이라도 김치국, 여인숙, 심말연 등 의미가 나쁘거나 수치감을 느끼게 한다면 개명을 해 주는 세상이다. 사물도 마찬가지다. ‘꼴 보고 이름 짓는다’고 분수를 알고 격에 맞아야 많이 부르고 오래 간다. 꽃이라고 이름을 불러줘 아름다운 꽃이 자신에게 다가왔다고 김춘수 시인은 읊었다.

孔子(공자)가 아름답지 않은 이름을 가진 것에는 다가가지도 않았다는 대표적인 것에 도둑의 샘(盜泉)이 있다. 우물의 이름에 도둑이 들어 있으니 아무리 목말라도 마시지 않는다는 뜻의 渴不飮 盜泉水(갈불음 도천수)란 말을 줄인 것이 이 성어다. 제아무리 괴롭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도 부정과 불의에 더럽혀지지 않도록 처신에 조심하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먼저 중국 西晉(서진)의 문인 陸機(육기, 260~303)가 지은 시 ‘猛虎行(맹호행)’을 보자. 秦漢(진한)이후 중국의 대표적인 시문을 모은 ‘文選(문선)’에 실려 있다. ‘아무리 목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고, 아무리 더워도 악목의 그늘에서 쉬지 않노라. 나쁜 나무인들 어찌 그늘이 없겠나마는, 뜻있는 선비에게는 고심이 많구나(渴不飮盜泉水 熱不息惡木陰 惡木豈無枝 志士多古心/ 갈불음도천수 열불식악목음 악목개무지 지사다고심).’

이보다 앞서 前漢(전한)의 劉向(유향)이 편찬한 설화집 ‘說苑(설원)’에는 공자와 효자인 曾子(증자)가 관련고사에 등장한다. ‘증자는 날이 저물어도 승모라는 마을에 들지 않았고, 공자는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을 마시지 않았다(邑名勝母 曾子不入 水名盜泉 孔子不飲/ 읍명승모 증자불입 수명도천 공자불음).’ 모두 그 이름을 추하게 여겼기 때문이라 했다.

사람이 바르게 살아가자면 여러 가지 유혹과 난관이 많기 마련이다. 이름이 올바르지 않은 것에는 아무리 자신의 처지가 곤궁하더라도 도움을 받지 않아야 하는데 곧잘 잊는다. 또 정의를 수호하는 법원과 검찰, 안보를 책임지는 군부 등 이름이 멋지게 잘된 기관에서 명예를 더럽히는 사람도 나타난다. 처음의 자세를 흩뜨리지 않고 일관해야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998.html
kolaswqetsrq 11.02 16:52
백족지충 지사불강百足之蟲 至死不僵 - 지네는 죽음에 이르러도 넘어지지 않는다,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

백족지충 지사불강(百足之蟲 至死不僵) - 지네는 죽음에 이르러도 넘어지지 않는다,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

일백 백(白/1) 발 족(足/0) 갈 지(丿/3) 벌레 충(虫/12)

이를 지(至/0) 죽을 사(歹/2) 아닐 불(一/3) 넘어질 강(亻/13)

징그럽게 기어가며 독을 내뿜는다는 지네나, 고약한 노린내를 풍기는 노래기 등은 공통점이 있다. 몸이 수십 개의 마디로 되어 있고 각각 한 쌍의 다리가 나 있어 다리가 셀 수없이 많다. 지네는 蜈蚣(오공), 노래기는 馬蚿(마현) 등의 어려운 이름이 있지만 다리가 많다고 百足之蟲(백족지충)이라 통칭된다. 이렇게 다리가 많으니 어느 쪽이 넘어진다고 해도 다른 쪽이 받쳐줄 수 있어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네 같은 벌레는 죽음에 이르러도 넘어지지 않는다(至死不僵)는 말은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百足之蟲 死而不僵(백족지충 사이불강)이라고도 한다. 넘어질 僵(강)은 뻣뻣해지다, 바로 서다란 뜻도 있고, 중국 전설의 움직이는 시체 僵屍(강시)의 그 글자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 때 曹操(조조)의 아들 曹丕(조비)가 魏(위)의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병사하고 明帝(명제) 曹睿(조예)가 즉위한 뒤는 司馬(사마)씨를 중용하여 세력이 강성해졌다. 왕조의 존립이 위태로울 지경이 되자 曹冏(조경, 冏은 빛날 경)이란 식견 있는 인물이 상소를 올렸다.

‘전하는 말에 지네는 죽어도 꿈틀거린다고 했는데 이는 지탱해주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故語曰 百足之蟲 至死不僵 扶之者衆也/ 고어왈 백족지충 지사불강 부지자중야).’ 사마씨 일족을 견제해야 한다는 뜻이었으나 흘려들었다가 司馬炎(사마염)의 晉(진)나라에 멸망하고 말았다. 조경의 ‘六代論(육대론)’에 나온다.

孔子(공자)의 언행과 문인들과의 논의를 王肅(왕숙)이 수록한 ‘孔子家語(공자가어)’에는 표현이 달라도 뜻이 같은 말이 나온다. 공자가 晏子(안자)의 말이 옳다고 하면서 비유한다. ‘어진 사람을 의지하면 진실로 막힘이 없고, 부유한 사람을 의지하면 궁색함이 없다(依賢者固不困 依富者固不窮/ 의현자고불곤 의부자고불궁), 노래기가 발이 부러져도 다시 갈 수 있는 것은 도와주는 발이 많기 때문이다(馬蚿斬足而復行 可也 以其輔之者衆/ 마현참족이부행 가야 이기보지자중).’ 六本篇(육본편)에 나온다.

우리 관용어에도 ‘발이 넓다’고 하면 사귀어 아는 사람이 많아 활동하는 범위가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은 의미만 아닌 것이 여러 방면에 능통한 八方美人(팔방미인)은 누구에게나 잘 보이도록 처세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기도 한다.

이같이 발이 넓더라도 끼리끼리의 이익만 도모한다면 그 무리 모두 싸잡아 비난당한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것에 비유하더라도 百足之蟲(백족지충)이 다리 많은 징그러운 벌레에 불과한 것은 패거리의 행패가 많았기 때문일까.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541.html
kolaswqetsrq 11.02 16:52
등화가친燈火可親 - 등불을 가까이할 만하다, 글 읽기 좋음

등화가친(燈火可親) - 등불을 가까이할 만하다, 글 읽기 좋음

 등 등(火/12) 불 화(火/0) 옳을 가(口/2) 친할 친(見/9)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 맞을까? 책이 귀하고 읽을 환경도 좋지 않은 晝耕夜讀(주경야독)의 옛날에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밤이 등불을 가까이 하기에 더없이 좋았을 것이다. 여기에 농경사회에서 수확의 계절인 가을은 마음에 여유가 있어 지식도 쌓아둘 기회로 더 책을 읽었다고 했다. 독서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선현의 말은 많다.

 책 읽을 틈이 없다는 사람에겐 三餘讀書(삼여독서)라 하여 겨울과 밤, 비올 때에 읽으면 된다고 했고, 讀書三到(독서삼도)라 하여 心到(심도) 眼到(안도) 口到(구도) 등 세 가지를 집중하라고 했다. 이런 말보다 등불을 가까이 하라는 말이 더 친근감이 든다.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라고 하면 唐(당)나라에선 두 사람 뿐이고 나머지는 宋(송)나라 사람이다. 당의 문장가 두 사람 중 韓愈(한유)의 시구에서 이 성어가 나온다. 그는 친구 사이인 또 한 사람 柳宗元(유종원)과 함께 종래의 형식적이고 수사적인 騈文(변문, 騈은 쌍말 변)에 반대하고, 소박하되 자유로우며 성인의 도를 담은 古文(고문)을 써야 한다고 주창하여 중국 산문문체의 표준으로 남게 됐다.

 유종원은 소가 땀을 흘리고 집에 가득 책이 찬다는 汗牛充棟(한우충동)이란 말을 사용하여 둘 다 독서 관련 성어를 남긴 것도 특이하다. 한유에게는 아들 昶(창)이 있었다.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符讀書城南(부독서성남)’이란 시를 썼다. 符(부)는 아들의 어릴 때 이름이고 城南(성남)은 별장이 있던 곳이란다.

처음과 뒷부분을 인용해보자. ‘木之就規矩 在梓匠輪輿 人之能爲人 由腹有詩書(목지취규구 재재장륜여 인지능위인 유복유시서/ 나무가 둥글고 모나게 깎임은 가구나 수레 만드는 목수에 달렸고,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은 뱃속에 들어있는 시와 글들에 달려 있단다).’

좋은 말이 이어지지만 끝부분은 ‘時秋積雨霽 新凉入郊墟 燈火稍可親 簡編可卷舒(시추적우제 신량입교허 등화초가친 간편가권서/ 철은 가을이라 장마 가시고 산뜻한 기운 마을 들판에 드니, 등불 점점 가까이 할 만 하고 책을 펼칠 만 하게 되었구나).’ 規矩(규구)는 콤파스와 자, 梓匠輪輿(재장륜여)는 분야별 목수를 말한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에겐 철이 따로 없지만 바쁜 일상에 찌든 현대인에겐 가을이 휴일 나들이하기에 더 좋은 계절이라 책과 더 멀어진다고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049.html
kolaswqetsrq 11.02 16:53
창명소저彰明昭著 - 매우 뚜렷하다, 아주 명백한 사실

창명소저(彰明昭著) - 매우 뚜렷하다, 아주 명백한 사실

드러날 창(彡/11) 밝을 명(日/4) 밝을 소(日/5) 나타날 저(艹/9)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은 明白(명백)하다고 하고 더 강조한 첩어로 明明白白(명명백백)하다고 한다. 이 쉬운 표현보다 더 자주 쓰는 말은 밝기가 마치 불을 보듯 뻔하다는 明若觀火(명약관화)란 성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밝다는 뜻이 겹겹이 들어 있는 밝게 드러나고(彰明) 또 밝게 나타난다(昭著)는 말이 있다.

중국 정사의 모범이라는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에는 약간 달리 彰明較著(창명교저)로 나오는데 가장 많이 읽히는 列傳(열전)에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앞에 등장하는 伯夷(백이) 열전에서 명백하게 옳은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던 사실에 울분을 터뜨린다.

형제성인으로 잘 알려진 伯夷叔齊(백이숙제)는 고대 殷(은)나라 제후국인 孤竹國(고죽국)의 왕자였다. 그들은 부왕의 사후 서로 후계를 사양하다가 모두 나라를 떠났다. 그 무렵 이들 형제는 周(주)나라 武王(무왕)이 폭군 紂王(주왕)을 몰아내는 것은 仁義(인의)에 위배된다며 나라의 곡식을 거부하고 首陽山(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어 죽었다.

옛사람들이 말하길 ‘하늘의 도는 편애함이 없고 항상 선인을 돕는다(天道無親 常與善人/ 천도무친 상여선인)’고 했다. 백이숙제는 참된 선인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죽도록 방치하니 옳은 말인가 사마천이 의문을 던진다.

顔淵(안연)은 孔子(공자)가 배우기를 좋아했다며 70명 중에서도 가장 아끼던 제자였다. 하지만 안연은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여 쌀겨조차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떴다. 30세나 아래인 애제자가 죽자 공자는 통곡을 했을 정도였다.

魯(노)나라의 악명 높은 도둑 盜跖(도척)은 9천여 명의 무리를 모아 천하를 횡행하며 살인과 강도 등 흉포한 짓을 일삼았지만 천수를 누렸다. 이러한 사례는 그 중에서도 가장 명백히 드러난 사례(此其尤大 彰明較著也/ 차기우대 창명교저야)라며 사마천은 다시 울부짖는다. ‘하늘의 도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所謂天道 是邪非邪/ 소위천도 시야비야)?’ 간사할 邪(사)는 ‘그런가 야‘의 음도 있다.

이처럼 사마천이 다른 편보다 훨씬 길게 自書(자서)를 피력한 것은 匈奴(흉노)의 포위 속에서 부득이하게 투항했던 李陵(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武帝(무제)에게 宮刑(궁형)을 당했던 억울함도 있었을 듯하다.

크고 작은 불의한 일들이 오랫동안 감춰지거나 드러나지 않을 수 있으니 분통 터지는 사람이 있겠다. 그렇더라도 老子(노자)의 말대로 기다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 보자. ‘하늘의 그물은 넓디넓게 펼쳐져 성긴 듯 보이지만, 그 무엇도 놓치는 일이 없다(天網恢恢 疎而不失/ 천망회회 소이불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557.html
kolaswqetsrq 11.02 16:54
호구지책糊口之策 - 가난한 살림에서 겨우 먹고 살아가는 방책

호구지책(糊口之策) - 가난한 살림에서 겨우 먹고 살아가는 방책

풀칠할 호(米/9) 입 구(口/0) 갈 지(丿/3) 꾀 책(竹/6)

사람이 먹지 않고서는 살아나갈 수가 없다. 인간 생활의 기본요소인 衣食住(의식주) 하나라도 없으면 기본적으로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없지만 그 중에서도 음식이 먼저다. 먹지 못하면 바로 생명을 잃기 때문이다.

관련된 성어로 가장 유명한 것이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以食爲天(이식위천)이다. 食爲民天(식위민천)이라 해도 같다. 孔子(공자)님은 믿음을 군사나 식량보다 믿음을 더 중시해야 한다고 無信不立(무신불립)이란 말을 남겼지만 이는 개인이 아닌 나라의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필수적인 먹는 음식이 없다면 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렵고 최소 식료를 구하는 것이 참으로 구차하다. 그래서 늘 굶고 살 정도로 살림이 매우 가난한 것을 가리켜 ‘사흘에 한 끼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눈 속담을 쓴다.

풀칠은 물론 종이 등에 풀을 칠하는 것인데 입에 풀칠한다면 최소의 음식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가난한 생활을 말한다. 굶지 않고 겨우 살아가는 것을 ‘입에 풀칠하다’, ‘목구멍에 풀칠하다’ 등으로 표현한다. 입에 풀칠하는 가난한 살림(糊口)을 꾸려 나가는 방책(之策)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高麗(고려) 때의 승려 一然(일연)이 쓴 ‘三國遺事(삼국유사)’ 권3 洛山二大聖(낙산이대성) 편에 처음 용례가 보인다. 주인공이 꿈속에서 파란만장한 생활을 겪은 뒤 현실세계로 돌아 와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幻夢(환몽) 설화다. 新羅(신라) 때의 스님 調信(조신)이 농장 관리인으로 파견됐다가 태수의 딸에게 반했다. 꿈에서 만나 아들 딸 낳고 행복한 생활을 했지만 40년 지나면서 궁핍해졌다.

‘집은 네 벽만 있고 변변치 못한 곡식도 없어, 서로 잡고 끌며 걸식으로 겨우 풀칠했다(家徒四壁 藜藿不給 遂乃落魄扶携 糊其口於四方/ 가도사벽 여곽불급 수내낙백부휴 호기구어사방).’ 藜는 명아주 려, 藿은 콩잎 곽. 물론 꿈에서 깨어난 조신은 속인과의 사랑을 참회하고 믿음 깊은 승려가 되었다.

우리 고전에도 자주 사용됐다. 世宗(세종) 실록에는 흉년든 강원도에 파견된 皇甫仁(황보인)이 ‘환과고독들은 풍년에도 얻어먹고 사는데 금년에는 풀칠할 데가 없어(鰥寡孤獨在豐年寄食他家 今年無可糊口/ 환과고독재풍년기식타가 금년무가호구)’ 구제해야 한다고 왕에 건의했다. 예나 지금이나 늙고 병든 노인들은 고달프다. 노인빈곤지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하위로 미끄러진다. 기초연금 등 국가에서 신경을 쓰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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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54
척탕천고수滌蕩千古愁 – 천고의 시름을 씻다.

척탕천고수(滌蕩千古愁) – 천고의 시름을 씻다.

씻을 척(氵/11) 끓을 탕(氵/9) 일천 천(十/1) 예 고(口/2) 근심 수(心/9)

술을 적극 찬미하는 사람은 약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라며 百藥之長(백약지장)이라 한다. 온갖 시름을 잊게 해 주니 忘憂物(망우물)이기도 한데 삼천갑자 東方朔(동방삭)은 한 술 더 뜬다. ‘근심을 없애는 데엔 술보다 나은 것이 없다(銷憂者 莫若酒/ 소우자 막약주).’ 이런 시름을 술로써 가장 많이 푼 사람은 아마 중국 唐(당)나라 李白(이백, 701~762)일 듯하다.

그는 귀양 온 신선(謫仙人/ 적선인)이라 불리듯이 시국이 뜻과 같지 않다고 울분을 터뜨리며 술 마시고 미친 듯 노래 불렀다. 詩聖(시성) 杜甫(두보)도 그를 두고 읊었다. ‘이백은 술 한 말 마시면 시 백 편을 썼다(李白一斗詩百篇/ 이백일두시백편).’

이백은 술을 마셔도 홀로 마실 때가 많았다. ‘꽃밭에 맛있는 술 한 항아리, 친한 이도 없이 홀로 마시네(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화간일호주 독작무상친), 잔을 들어 밝은 달 맞이하니, 그림자까지 셋이 되는구나(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거배요명월 대영성삼인)’란 ‘月下獨酌(월하독작)’ 시가 잘 말한다. 邀는 맞을 요. 그런데 천고의 걱정거리(千古愁)를 씻는다는 이백의 이 구절은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며 해소한다.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들이 지녀온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시름을 친구와 함께라면 지울 수 있으리라. 밝은 달빛 아래 부어라 마셔라 술과 함께 하룻밤을 새우면 시름에서 해방된다. 마음껏 마시다 취하면 자연 속에서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베개 삼아 누우면 그만이라. 술로써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호방한 시 ‘벗과 함께 묵으며(友人會宿/ 우인회숙)’의 내용이다. 짤막하니 전문을 보자.

‘천고의 시름을 씻어버리며(滌蕩千古愁/ 척탕천고수), 자리에 눌러앉아 백병의 술을 마신다(留連百壺飮/ 유련백호음), 좋은 밤 마땅히 이야기로 지새우리(良宵宜淸談/ 양소의청담), 밝은 달빛에 잠을 이룰 수 없구나(皓月未能寢/ 호월미능침), 술 취하여 텅 빈 산에 누우니(醉來臥空山/ 취래와공산), 하늘과 땅이 곧 이불이요 베개로다(天地卽衾枕/ 천지즉금침).’

이백의 시대로부터 천년이 넘게 지났기에 다시 천고수가 쌓였는지 걱정거리가 더 많아진 듯하다. 모두가 경제가 어려워 걱정한다. 젊은이는 취직 걱정, 빈곤 노년층은 생계 걱정에 나라 안팎도 바람 잘 날 없다. 한 잔의 술로 시름을 잊을 수 있다면 술을 멀리 할 필요도 없을 텐데.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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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55
지과필개知過必改 - 잘못을 알고 반드시 고친다.

지과필개(知過必改) - 잘못을 알고 반드시 고친다.

알 지(矢/3) 지날 과(辶/9) 반드시 필(心/1) 고칠 개(攵/3)

성인이 아니라면 완전무결한 사람이 있을 수 없다. 다소의 차이는 있을망정 허물이 따르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탓은 남에게 돌린다. 제 눈에 있는 들보는 보이지 않고, 작더라도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경이 개천 나무라고, 못 되면 조상 탓을 한다.

소수일지라도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인정 여부에 따라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된다. 자신의 잘못을 알 뿐만 아니라 고치기까지 한다면 앞의 잘못도 따지지 않고 넘어간다.

잘못을 알게 되면(知過) 반드시 고친다(必改)는 이 성어는 ‘論語(논어)’의 子張(자장)편에서 나와 마음을 다스리는 숱한 책에 인용됐다. 孔子(공자)의 제자들 이야기를 모은 이 편에서 子貢(자공)이 한 이야기를 보자.

‘군자의 잘못은 일식이나 월식과 같다. 잘못을 저지르면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보게 되고, 잘못을 고치면 모두 우러러본다(君子之過也 如日月之食焉 過也 人皆見之 更也 人皆仰之/ 군자지과야 여일월지식언 과야 인개견지 경야 인개앙지).’

子夏(자하)가 ‘소인들은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꾸며댄다(小人之過也必文/ 소인지과야필문)’고 말한 것도 같은 편 앞부분에 있다. 공자는 곳곳에 비슷한 가르침을 남겼는데 ‘잘못은 아무 거리낌 없이 고쳐야 한다(過則勿憚改/ 과즉물탄개)’가 學而(학이)편에, ‘잘못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나의 걱정거리(不善不能改 是吾憂也/ 불선불능개 시오우야)’란 말이 述而(술이)편에 있다.

‘明心寶鑑(명심보감)’에는 자장편의 말 뒤에 덧붙여 ‘허물을 알면 반드시 고쳐 능히 잊지 않아야 한다(知過必改 得能莫忘/ 지과필개 득능막망)’고 했고 ‘千字文(천자문)’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또 ‘四字小學(사자소학)’에는 ‘착한 것을 보면 그것을 따르고, 잘못을 알면 반드시 고쳐라(見善從之 知過必改/ 견선종지 지과필개)’로 되어 있다.

남이 조그만 잘못을 했을 때는 크게 부풀려 針小棒大(침소봉대)하고 자신의 잘못은 끝까지 감추다 들통 나면 변명에 급급하다. 상대방을 무너뜨려야 자신이 살아가는 정치판이 아닌 다음에야 이렇게 해서는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상대의 능력을 인정해야 신뢰가 싹튼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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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56
구년지축九年之蓄 - 구년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식량

구년지축(九年之蓄) - 구년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식량

아홉 구(乙/1) 해 년(干/3) 갈 지(丿/3) 모을 축(艹/10)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衣食住(의식주)를 구하기 위해서는 재물이 필요하다. 초야에 묻혀 재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고아한 隱者(은자)도 물만 마시고서는 살 수 없다. 만금을 쌓아 놓고 주위에 떵떵거리며 사는 부자를 욕하면서도 속으로는 부러워하기 마련이다.

돈이 있으면 편리하다. ‘날개 없이 날 수도 있고, 다리 없이 달릴 수도 있다(無翼而飛 無足而走/ 무익이비 무족이주).’ 물신주의를 풍자한 중국 錢神論(전신론)에 나온다. 유교의 사서 大學(대학)에서도 인정한다. ‘부유함은 집안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빛나게 한다(富潤屋 德潤身/ 부윤옥 덕윤신).’

재산이 넉넉하면 개인이나 나라나 여유롭게 지낼 수 있다. 백성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안온한 집에서 살게 하는 것이 나라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렇게 하려면 전체를 움직일 돈, 예산이 든다. 중국의 문물제도와 의례의 근본정신을 담은 ‘禮記(예기)’에 구년 동안(九年) 먹고 살 수 있게 저축(之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유교 오경에 드는 이 책의 王制(왕제)편에서인데 고대 聖王(성왕)들이 천하를 경륜하던 제도를 모은 곳이다. 흉년이나 홍수, 전쟁 등 비상상황을 맞았을 때라도 나라가 계속 유지되려면 최소한 이 정도의 비축이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九年之儲(구년지저)라 해도 같다. 儲는 쌓을 저.

성어 부분의 내용을 보자. ‘나라에 구년의 저축이 없으면 부족이라 하고(國無九年之蓄 曰不足/ 국무구년지축 왈부족), 육년의 저축이 없으면 급이라 부르며(無六年之蓄 曰急/ 무육년지축 왈급), 삼년의 저축도 없으면 나라가 그 나라의 나라가 아니다(無三年之蓄 曰國非其國也/ 무삼년지축왈 국비기국야).’ 그러면서 3년의 경작이 있어야 1년 식량의 저축이 있고, 9년을 경작해야 3년의 식량을 저축할 수 있다고 했다.

3년 동안 먹고 살만한 식량의 비축이 없다면 나라는 경제적인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 와해되기 쉽다고 했다. 결국 튼튼한 재정이 나라를 존속시키는 근본이란 얘기다.

우리나라서도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의 太宗(태종)조에 처음 나오고 다른 문집에서도 많이 인용하고 있다. ‘나라에 삼년의 저축이 없는데(國無三年之蓄/ 국무삼년지축)’ 급하지 않은 토목공사를 일으켜서는 도가 아니라는 간관의 진언이 있자 태종이 받아들인다.

나라의 기틀을 갖춘 이때부터 경제의 중요성을 알았던 셈이다. ‘부잣집이 망해도 삼 년을 간다’는 속담이 있다. 부자였더라도 흥청망청 낭비하면 3년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나라는 부잣집과 달리 계속돼야 한다. 오늘 재산이 국부가 제법 탄탄하다고 마구 퍼주다가 후일 쪽박 찬 나라의 뒤를 따라서는 안 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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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56
질족선등疾足先登 - 빠른 사람이 먼저 오른다.

질족선등(疾足先登) - 빠른 사람이 먼저 오른다.

병 질(疒/5) 발 족(足/0) 먼저 선(儿/4) 오를 등(癶/7)

다른 사람을 앞서야 과실을 챙길 수 있다. 빨리 달리고 높이 뛰어야 다른 사람이 닿기 전에 독차지한다. 마음 약한 남자가 미인을 얻은 예가 없다는 영국 속담도 용기를 북돋우는 얘기다. 모두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선 너무 앞서지 말라고 가르친다.

성미가 급한 사람은 항상 손해를 본다며 ‘성급한 놈 술값 먼저 낸다’고 했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정상에 올랐을 때도 ‘열흘 붉은 꽃은 없다’며 몸조심을 당부한다.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고 느려도 착실한 것을 더 쳤다.

차근차근 앞을 향해 가는 것이 믿음직하긴 해도 그러다가는 남이 이룬 뒤의 부스러기를 오래 차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최초의 고지를 차지하는 영광은 가장 빠른 자에게 있다. 가장 빨리 달리는 사람(疾足)이 높은 곳에 먼저 오를 수 있다(先登)는 성어가 그것을 말해준다.

‘史記(사기)’ 淮陰侯(회음후) 열전에서 유래했다. 회음후는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이 천하를 통일할 때 대장군으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던 韓信(한신)을 말한다. 前漢(전한)이 확립된 후 점차 밀려 漢興三傑(한흥삼걸)이었던 한신이 일개 지역에 처박히자 兎死狗烹(토사구팽)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신이 반란군과 내통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왕비 呂后(여후)가 보낸 병사들에 체포돼 처형될 때 모사 蒯通(괴통, 蒯는 기름새 괴)의 건의를 무시했다고 한탄했다. 고조는 한신에게 모반을 권했다는 괴통을 잡아들여 문초했다. 괴통은 태연히 말한다.

‘진나라가 중원에서 놓친 사슴을 천하 사람들이 쫓았는데 가장 발이 빠른 사람이 세상을 차지했을 뿐입니다(秦失其鹿 天下共逐之 于是高材疾足者先得焉/ 진실기록 천하공축지 우시고재질족자선득언).’ 그러면서 자신은 한신만을 알았지 고조를 몰랐기에 그것은 跖狗吠堯(척구폐요), 흉악한 盜跖(도척)의 개라도 주인만 따르는 것과 같다고 했다.

누구보다 앞서서 일을 처리해야 할 때가 있고, 차례를 지키며 차근차근 해야 할 때가 있다. 화급한 일이 벌어졌는데 처리를 느긋하게 하면 분통터진다. 마찬가지로 고지가 바로 저기라며 빨리 내닫다가 그르치는 경우도 본다. 모두 다 필요한 일이지만 일상사에서부터 나아가 대외관계나 경제정책 등 일에 따라, 경우에 따라 잘 선택하면 실패가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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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57
가슬추연加膝墜淵 - 무릎 위에 올리다가 못에 밀어 넣다, 기분에 따라 사람을 대하다.

가슬추연(加膝墜淵) - 무릎 위에 올리다가 못에 밀어 넣다, 기분에 따라 사람을 대하다.

더할 가(力/3) 무릎 슬(肉/11) 떨어질 추(土/12) 못 연(氵/9)

조금이라도 이익이 있으면 이편에 붙었다 저편에 붙었다 할 때 지조가 없다고 욕한다. 이렇게 손가락질하기는 쉽지만 함부로 욕하기는 어렵다. 속담 ‘간에 가 붙고 쓸개에 가 붙는다’는 속담대로 약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한역하여 附肝附膽(부간부담)이라 한다.

개인 아니라 나라라도 힘이 없으면 朝秦暮楚(조진모초)라 하여 아침에는 강국 秦(진)나라를, 저녁에는 楚(초)나라를 섬길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런데 힘을 가진 강자 쪽에서 이랬다 저랬다 한다면 신망을 잃고 앞날을 망친다. 처음에는 사랑스럽다고 무릎에 올리다가(加膝) 미워지면 못에 밀어 넣는다(墜淵)는 성어가 그것을 말한다.

중국 유교 五經(오경)의 하나인 ’禮記(예기)‘는 의례의 해설을 주로 담고 있다. 檀弓(단궁)편에 상례에 관한 내용 중에 성어가 나온다. 春秋時代(춘추시대) 魯(노)나라 穆公(목공)이 쫓겨난 신하가 옛 왕의 장례에 복을 입는 것에 대해 묻자 孔子(공자)의 손자인 子思(자사)가 답한다.

’사람을 등용할 때는 무릎 위에 올려놓을 듯이 하고(進人若將加諸膝/ 진인약장가제슬), 물리칠 때는 연못에 빠뜨릴 듯이 한다(退人若將墜諸淵/ 퇴인약장추제연).‘ 변덕이 죽 끓듯 한 임금의 미움을 받고 쫓겨난 신하가 변란의 수괴가 되기도 하는데 잊지 않고 찾아 예를 차리는 것은 권장할 일이란 것이다.

예쁠 때는 무릎 위에 올릴 듯하다가, 미울 때는 연못에 밀어 넣듯 내친다는 윗사람의 변덕은 우리 고전에도 다수 등장한다. 朴趾源(박지원)은 도와 줄 때와 거절했을 때 고과가 천지 차이로 나게 주던 감사의 행동을 淵膝(연슬)이라고 燕巖集(연암집)에서 표현했다.

宋時烈(송시열)이 쓴 鄭澈(정철)의 비명에 ‘끊임없는 뭇 참소에 임금의 마음 금방 달라져(群言營營 聖心俄遷/ 군언영영 성심아천), 아침에 신임하다가 저녁에 떨어뜨리네(朝焉加膝 夕已墜淵/ 조언가슬 석이추연)’란 부분이 나온다. 金尙憲(김상헌)이 쓴 成渾(성혼)의 비명에는 ‘무릎 위에 올려놓다 못에 빠뜨림은 예전부터 현인들이 탄식한 바네(加膝墜淵 昔賢所嘆/ 가슬추연 석현소탄)’라고 썼다.

먹다 남은 복숭아를 임금에게 바쳤다는 餘桃啗君(여도담군, 啗은 먹일 담)이란 성어도 비슷하다. 예뻐할 때는 무례도 귀여워했다가 식으면 사소한 것도 죄를 물어 처벌했다는 고사다. 사람의 감정은 수시로 변하고 행동에 따라 愛憎(애증)이 바뀔 수는 있다. 하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상사가 아랫사람을 들이고 내칠 때는 엄격해야 조화롭게 조직이 돌아간다.

근거와 절차를 무시하다간 불만이 팽배하여 그 조직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은 뻔하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총애하는 부하가 비리를 저질러도 내치지 않고 끝까지 감싼다면 원칙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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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57
추풍과이秋風過耳 - 가을바람이 귀를 스쳐 지나가다.

추풍과이(秋風過耳) - 가을바람이 귀를 스쳐 지나가다.

가을 추(禾/4) 바람 풍(風/0) 지날 과(辶/9) 귀 이(耳/0)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을 해도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알아듣지 못한다. 이럴 경우 가장 알려진 말이 唐宋(당송)의 시인 李白(이백)과 蘇軾(소식)의 시구에서 유래한 馬耳東風(마이동풍)이다.

우리 속담 ‘쇠귀에 경 읽기’도 적절한 비유다. 소의 귀에 대고 경을 읽어 봐야 단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할 것은 뻔하다. 가을바람(秋風)이 귀를 스쳐 지나가봐야(過耳) 무엇이 지나갔는지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이 이 성어로 똑 같은 뜻이다.

작금에 일어난 일 중 국회에서 통과시킨, 또는 뭉개버린 법안을 보면 의원들의 뻔뻔한 행위가 바로 秋風過耳를 연상시킨다.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은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 삽입 등 그 동안 누누이 각계서 지적한 독소조항이 그대로다. 도무지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이익 따라 제 갈 길만 간다.

그런데 이 성어를 마이웨이 의원들에 비유한 것이 죄스러울 정도로 처음 사용됐을 때는 왕위까지 양보하는 정말 사심을 버렸을 때를 가리켰다. 漢(한)나라 趙曄(조엽, 曄은 빛날 엽)이 쓴 ‘吳越春秋(오월춘추)’에 나오는 이야기다.

남방의 오와 월 두 인접 국가가 서로 경쟁하며 패권을 차지하기까지 흥망성쇠를 그린 책이다. 오왕 壽夢(수몽)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막내 季札(계찰)이 인품이 훌륭하고 재능도 뛰어났다. 신의를 중시한다는 성어 季札掛劍(계찰괘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왕이 병들었을 때 형제들을 불러 놓고 장자에 계승되는 왕위를 계찰에게 물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형들도 찬성했지만 정작 본인이 완강하게 사양했다. 할 수 없이 장자가 오르고 셋째까지 계승한 뒤 다시 물려주려 하자 계찰이 말했다.

‘부귀영화란 저에게는 가을바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것과 같아서(富貴之于我 如秋風之過耳/ 부귀지우아 여추풍지과이) 아무런 미련이 없습니다.’ 나타내는 뜻이 天壤之差(천양지차)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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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58
천마행공天馬行空 - 천마가 공중을 달리다, 서예의 글씨가 힘차다, 비상한 재주를 가진 사람

천마행공(天馬行空) - 천마가 공중을 달리다, 서예의 글씨가 힘차다, 비상한 재주를 가진 사람

하늘 천(大/1) 말 마(馬/0) 다닐 행(行/0) 빌 공(穴/3)

하늘을 나는 天馬(천마)라 하면 그리스 신화에서 날개 돋친 페가수스(Pegasus)를 떠올릴 사람이 많겠다. 하늘의 별자리 이름으로도 있으니 그럴만하다. 우리나라서는 비록 따르는 전설은 없어도 말안장 양옆의 가죽 말다래에 그려진 天馬圖(천마도)가 발견되어 경주의 天馬冢(천마총)이 익숙하게 다가온다.

이 하늘의 말이 공중에서 빠르게 달린다(行空)는 말은 처음 문장이나 서예의 글씨가 웅장하고 날듯이 힘이 있는 기세를 말했다. 여기에서 뛰어난 기상이 남달리 하늘을 자유자재로 뛰어다니는 듯한 비상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가리키게 됐다.

중국에서는 玉皇上帝(옥황상제)가 하늘에서 타고 다닌다는 전설보다 神馬(신마)와 교배하여 태어났다는 서역지방의 西極天馬(서극천마)를 연상하는 것이 구체성이 있어 더 믿는다. 먼저 천마에 대한 내용은 ‘漢書(한서)‘에 나온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大宛(대원)이란 나라를 언급하는 西域傳(서역전)에 ’좋은 말이 많고 붉은 땀을 흘리므로 천마의 후손이라 불렸다(多善馬 馬汗血 言其先天馬子也/ 다선마 마한혈 언기선천마자야)‘고 했다. 문장이나 서예에 천마가 날아가는 듯 하다는 비유는 淸(청)나라 이후 명필을 평가하는 서첩에 자주 사용됐다고 한다.

조선시대 명필 金正喜(김정희)는 ‘阮堂集(완당집)‘에서 좋은 글씨를 쓸 만할 때는 흥취가 따라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아가고 멈춤이 뜻에 따라 조금도 걸릴 것이 없고, 글의 흥취도 구속됨이 없이 천마가 공중에 날아다니는 것처럼 자유로워야 가능하다(作止隨意 興會無少罣礙 書趣亦如天馬行空/ 작지수의 흥회무소괘애 서취역여천마행공).‘

罣는 걸 괘. 고종 때의 학자이자 정치가 金允植(김윤식)은 燕巖(연암)의 문장을 나타내면서 이 말을 썼다. ’천마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구속을 받지 않았으나 자연스럽게 절도에 맞았다(如天馬行空 不施覊靮 而自然中節/ 여천마행공 불시기적 이자연중절).‘ 靮은 고삐 적.

용과 말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龍馬(용마)도 있다. 뛰어난 駿馬(준마)를 가리킨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말의 힘찬 모습을 훌륭한 문장이나 힘찬 글씨에 비유하는 것도 좋지만 기상이 넘치는 인재를 가리킬 때 더 적격이겠다.

‘장수가 나면 용마가 난다’는 속담처럼 일이 잘 되려면 행운의 기회도 잇따르는 법이다. 아니 千里馬(천리마)가 먼저 나더라도 탈 장수가 없으면 소금수레를 끌 수밖에 없으니 인재가 먼저다. 갈가리 찢긴 사회에 나를 따르라하는 지도자가 나타난다면 옛 영웅들과 같이 명마도 따라올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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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59
■ 나라를 팔아넘긴 매국노들 2편

■ 나라를 팔아넘긴 매국노들 2편

통감 데라우치는 친일단체인 일진회를 내세워 합방청원을 올리고, 이를 이완용이 순종황제에게 승인을 요구하고, 순종황제가 천황에게 합방을 제의하는 식의 절차를 밟고자 했다. 일진회 회장 이용구는 ‘일진회 성명서’를 국민신문에 부록으로 발표했다. 동시에 ‘합방 상주문’, ‘총리 이완용께 올리는 합방 청원서’, ‘통감께 올리는 합방 청원서’ 등도 함께 제출했다.

1910년 2월 2일 일본 총리 가쓰라는 “일진회의 수년에 걸친 친일적 성의를 이해하고, 일진회의 청원을 수리한다.”고 말했다. 8월 16일 데라우치는 이완용을 관저로 불러 병합의 승인을 요구하며 미리 준비해뒀던 각서를 수교(手交:직접 전함)했다.

조약 체결이 다가오자 일제는 이 사실이 알려져 소요가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일본군을 서울로 이동시켰다. 조약 체결일인 8월 22일에는 용산에 주둔한 제 2사단을 동원해 경비를 담당케 했다. 8월 18일 대한제국 정부의 마지막 내각회의에 합병조약안이 올랐다. 내각 대신 가운데 학부대신 이용직만이 조약에 반대하다가 쫓겨났고, 나머지 대신들이 조약 체결에 찬성함으로써 조약안은 통과됐다.

이 마지막 각의에 협조한 대신들은 총리대신 이완용, 시종원경 윤덕영, 궁내부대신 민병석, 탁지부대신 고영희, 내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친위부장관 겸 시종 무관장 이병무, 승녕부 총관 조민희 등 8명이었다. 이들은 한일 병탄 조약 체결 이후 공을 인정받아 일본으로부터 작위(爵位)를 받았다. 이들을 가리켜 ‘경술국적’이라 한다.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은 을사오적, 정미칠적에 이어 경술국적에도 그 이름을 올렸다.

8월 22일 형식적인 어전회의가 열려 이완용이 전권위원(全權委員)으로 임명되어 황제의 위임장을 만들었다. 그러나 순종은 위임장에 옥새를 찍으려 하지 않았다. 황후 윤씨가 옥새를 치마폭에 감추고 내놓지 않자, 시종원경(시종원의 수장) 윤덕영(황후의 외숙부)이 빼앗아 찍었다. 윤덕영은 이 공으로 ‘국적(國賊)’에 이름을 올리고 매국노의 대열에 합류했다.

합병조약이 조인될 때까지 데라우치 통감과 이완용 사이를 오가며 매국 공작을 꾸민 자는 이완용의 비서 이인직이었다. 그리하여 신소설 《혈의 누》, 《귀의 성》, 《은세계》 등을 발표한 이인직도 <친일인명사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완용과 데라우치는 8월 22일 오후 통감관저 2층 데라우치 침실에서 한일합병조약에 서명했다. 조약이 체결된 뒤에도 일제가 발표를 미룬 것은 우리 민족의 저항이 두려워서였다. 조약 체결을 숨긴 채 정치단체의 집회를 철저히 금지하고 원로대신들을 연금한 뒤인 8월 29일에야 순종에게 나라를 넘겨주는 이양(移讓)의 조칙을 내리도록 강요했다.

8개 조로 된 조약 제1조에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겨준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나라를 잃었다. 나라가 망한 뒤 매국의 은사(恩賜:은혜로운 물건)를 받은 반역자들의 삶은 안락했지만, 백성들은 가혹한 식민지배와 수탈의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정작 망국(亡國)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 가운데 그것을 감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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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6:59
■ 나라를 팔아넘긴 매국노들 1편

■ 나라를 팔아넘긴 매국노들 1편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과 일본 간 한일합병조약(韓日合拼條約)이 공포됐다. 이 조약은 이미 8월 22일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인(調印)해 둔 것이었다. 이미 조인된 조약이었지만 일본은 이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일주일 만인 8월 29일, 순종황제의 조칙 형태로 발표했다.

이 조약이 공포됨에 따라 대한제국은 일본에 강제 편입되면서 우리민족은 나라를 잃었다. ‘한일병탄(韓日倂呑:남의 영토를 뺏아 제 것으로 만듬)‘, 이른바 경술국치(庚戌國恥:경술년의 국가적 치욕)’라 기록되는 역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조약의 조인에는 순종황제의 비준(批准:최종 확인 동의) 절차가 빠져 있었고, 순종황제의 서명도 없었다. 그러므로 이 조약은 엄밀히 말해서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무효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무효든 아니든 한일병탄조약은 한국을 일본령(領)으로 규정한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이었다.

한국은 명목상의 독립국이었을 뿐, 사실상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겼고, 1907년 정미7조약(한일신협약)으로 군대가 해산되었으며, 1909년에는 기유각서(己酉覺書)를 통해 이미 경찰권과 사법권을 박탈당한 상태였다.

1909년 4월 가쓰라 다로 일본 총리와 고무라 주타로 외무대신은 이토 히로부미를 방문해 한일합방에 필요한 계획을 만들었다. 가쓰라 일본 총리는 우리나라가 병합의 필요성을 열망하도록 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즉 우리나라가 합방 청원을 하는 형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같은 해 7월 6일 내각회의에서 이 방침을 확정한 뒤 일왕의 재가를 받아놓고 있었다.

이 ‘병합 청원’ 시나리오에 동원된 것은 일본 정·재계 흑막의 실력자이자 친일단체 일진회(一進會)의 고문 스기야마 시게마루와 정미칠적(1907년 한일신협약 조인에 찬성한 내각 대신 7인)으로 불리는 송병준이었다. 송병준은 1907년 이완용 내각이 들어서자 농상공부대신·내부대신을 지내면서 대한제국 국민이 합방(合邦:두나라를 합침)을 간절히 원하다는 여론을 조작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뒤에 다시 일본에 건너가 일제의 정객들을 상대로 ‘합병’을 요구하는 매국 외교를 펴기도 했다.

송병준의 이러한 활동을 눈치 챈 이완용은 통감부 외사국장 고마쓰 미도리와 조선병탄 교섭에 나섰다. 일제는 이 무렵, ‘통감부에서는 이완용 내각을 와해시키고 송병준 내각을 구성하도록 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두 사람의 충성 경쟁을 부추기려는 전술이었다. 이완용은 송병준 내각이 들어서면 자신이 보복당할 수도 있고, 합방의 공(功)을 빼앗기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의 내각이 합방조약을 맺을 수 있음을 자진해서 통감부에 알렸다. 일본어를 할 줄 몰랐던 이완용은 일본에 유학했던 비서 이인직을 교섭에 나서게 했다. 일제는 자신들의 책략이 제대로 맞아 떨어지자, 이용구·송병준 등을 이용해 ‘합방 청원서’ 공작을 시작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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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00
■ 조선시대 기상청

■ 조선시대 기상청

농업을 근간(根幹)으로 하는 조선시대에는 날씨의 예측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세종대왕이 천체관측 기구 등을 만든 이유도 천체 현상을 관찰하여 천재지변이나 강우량 등을 미리 예측하여 농사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변화무쌍한 기상 변화를 분석해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첨단기술이 발달한 오늘날 일지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 기상청은 기상레이더와 기상위성 등 첨단 장비를 이용하고도 때로는 예측이 빗나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한다. 그렇다면, 첨단 장비가 없던 옛날에는 날씨를 어떻게 예측했을까?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기상청처럼 날씨를 예측하는 관청이 있었다. 당시에는 해와 달, 바람과 구름의 상태를 살피거나 동물의 특이한 행동을 보고서 날씨 변화를 예측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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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날씨를 살피고 천문을 관측하는 일관부(日官部)라는 관청을 두었고, 신라에는 천문박사(天文博士)라는 관직을 두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고려 때에는 서운관(書雲觀)이라는 관청이 기상청과 같은 역할을 맡았다. 관리를 뽑아 천문학을 배우게 한 뒤 날씨와 천체 현상을 기록하고 그 변화를 예측하는 일을 했다. 서운관은 조선시대에도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세조 때인 1466년 관상감(觀象監)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관상(觀象)은 천체가 변하는 여러 현상을 관측하다 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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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는 서운관을 관상감으로 바꾸면서 관리 20명을 뽑아 책력(冊曆)을 쓰고, 날씨와 천재지변을 예측하는 일을 맡게 했다. 책력(冊曆)이란 일 년 동안의 월일, 해와 달의 운행, 월식과 일식, 절기, 특별한 기상 변동을 날의 순서에 따라 적은 것이다. 나라의 주요 행사를 치르기에 좋은 날짜와 터를 찾는 것도 관상감의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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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감 관리들은 세종 때 장영실이 만든 측우기(測雨器:실제로 문종이 세자시절에 만들었다고 함)로 비가 내린 양을 기록해 장마철이 언제 시작되고, 비는 얼마나 내릴지도 예측하여 농사에 도움이 되게 하였다.

관상감 관리들이 날씨나 천재지변을 기록하고 예측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만약 날씨나 천체 현상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면 큰 벌이 내려지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왕의 비서라고 할 수 있는 승정원 관리들이 천문의 변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관상감 관리에게 벌을 줄 것을 임금에게 아뢰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조선 10대 왕 연산군은 관상감에서 지진이 났음을 아뢰자, 어리석은 사람들이 천문을 논하는 것은 하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라 하여 관상감을 없애 날씨나 천재지변을 예측하지 못하게 했다. 그 대신 관상감의 이름을 사력서(司曆署)로 바꾸고, 날씨를 기록하는 일만 하도록 했다.

보통 조선의 왕들은 천재지변이 나면 스스로 덕이 부족해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여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히 했다. 그러니 나랏일과 백성에는 관심이 없고 연일 잔치를 벌였던 연산군은 천재지변을 이유로 향락을 멈추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산군이 쫓겨나고 중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사력서는 다시 관상감이라는 원래의 이름과 기능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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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00
■ 은행을 턴 독립군들

■ 은행을 턴 독립군들

1920년 1월 4일 저녁, 한인 무장단체인 ‘철혈광복단’ 단원 6명이 간도 룽징(龍井)에서 일제 조선은행의 무장 호송대를 습격해 일본인 경관 등 2명을 죽이고 돈 궤짝을 빼앗아 달아났다. 만주 일대가 발칵 뒤집어졌다. 돈 궤짝 안에는 5원과 10원짜리 지폐 다발로 15만 원이 들어 있었다.

지금 가치로는 100억 원이 넘는 엄청난 액수였다. 이 돈은 중국 옌지(延吉)와 함경도 회령을 잇는 길회선 철도 부설 자금이었다. 헌병대 추격을 따돌린 단원들은 나흘 밤낮을 달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 정도 돈이면 독립군 5000명을 소총과 기관총으로 무장시킬 수 있는 규모였다. 하지만 체코군이 매물로 내놓은 무기 3만여 정을 사려던 이들은 밀정(密偵)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일본군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탈취한 돈도 대부분 회수되었다. 단원 중 최봉설(1897~1973)은 가까스로 도망쳤지만, 3명은 서대문형무소의 사형대에 오르게 되었다. 이 사건은 3·1운동으로 대표되는 비폭력 독립운동이 1920년 6월 봉오동전투, 10월 청산리전투 등 무장 독립투쟁으로 전환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한일병탄 후 만주 독립단체들이 군자금을 모으는 방법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현지 동포들에게 기금(基金)을 걷거나 국내에 잠입해 친일 부호의 돈을 뜯어내는 방법이었다. 기록을 보면 군자금 임무를 맡은 대원들은 “영수증 발급을 의무화”하며, 모금에 따른 거부감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동포 대부분은 소작농이나 영세 상인이었고, 식민통치에 협력하는 자들은 가진 돈을 순순히 내놓을 리가 없었다. 이렇다 보니 액수 면에서 개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은행이나 현금 차량을 노리는 대담한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국내에서도 ‘대한광복회’가 경북 경주에서 우편마차를 습격한 일이 있었다. 1912년 12월 24일 새벽 광복회의 두 사람이 직접 행동에 나서 일제가 거둔 세금 8700원을 가로챘다. 권영만(1878~1964)은 환자(患者)로 가장해 일본인인 우편마차 주인집에서 숙박한 뒤 병원 치료를 핑계로 마차에 올라탔다. 또 우재룡(1884~1955)은 마차가 지나갈 다리를 부수고 기다렸다가 마차가 잠시 멈춘 사이 돈을 챙겨 달아났다. 이 사건은 일제 강점기 내내 미해결 사건으로 분류된 ‘완전범죄’였다. 대략 4억 정도로 추산되는 이 돈은 만주 독립군의 활동자금으로 쓰였다.

이런 명분있는 ‘모방범죄’들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1920년 11월 국내 한일은행 습격을 모의한 서간도의 ‘보합단’ 단원들이 처형되는 일도 벌어졌다. 또 1929년 4월에는 최양옥(1893~1983)등 ‘대한독립공명단’ 단원들이 경성에 잠입해 일제의 우편물 차량을 공격하기도 했다.

추격전 끝에 결국 붙잡히긴 했지만 ‘대낮 3인조 강도단’ 사건은 호외가 뿌려질 정도로 전국을 들썩이게 했고, 아울러 독립을 향한 우리의 무장 항쟁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잘 정비된 군사 조직도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오직 애국심 하나로 뭉친 독립군들의 목숨을 건 눈물겨운 항쟁이었다. 이런 많은 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우리는 지금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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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01
■ 안중근의 거사擧事

■ 안중근의 거사(擧事)

2월 14일은 발렌타인데이로, 연인들이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알고 있다. 원래 발렌타인데이는 그리스도교의 성인 발렌티노의 축일(祝日)이다. 3세기경 로마의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는 당시 결혼을 통해 병역 소집령을 기피하려는 젊은이들의 행태나 군인들의 군기 문란 등을 이유로 금혼령을 내렸다. 이에 로마 카톨릭교회의 성(聖) 발렌타인이 황제의 결혼 금지령에 반대해 사랑하는 남녀를 교회로 불러 결혼을 성사시켜주었고, 이 사실을 안 황제는 발렌타인을 처형했다.

성 발렌타인이 순교한 날이 바로 서기 269년 2월14일이다. 본격적으로 발렌타인데이에 쵸콜렛을 주는 문화가 시작된 것은 1936년 일본 고베의 한 제과업체의 발렌타인 초콜렛 광고를 시작으로, 1960년 일본 모리나가 제과가 여성들에게 쵸콜렛으로 사랑 고백 캠페인을 벌인 것을 계기로 정착됐다. 일본제과업체의 뛰어난 상술에 의해 지금의 발렌타이데이가 탄생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오래 전 부터 2월 14일을 연인들끼리 초콜렛을 주고받는 로맨틱한 날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 속의 2월 14일은 그렇게 로맨틱한 날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날이다. 1910년 2월 14일은 일제에 의해 안중근의사가 사형을 최종적으로 확정 선고 받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사형집행일은 3월 26일이었다. 안중근은 사형선고를 받고 항소를 포기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안중근 어머니의 편지 때문이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딴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어미는 현세에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안중근은 어머니 말처럼 항소를 포기하고 선고된 뒤 한 달이 조금 넘은 3월 26일 오전 10시, 여순감옥의 형장(刑場)에서 순국하였다. 또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하는 날은 10월 26일이다. 이 날은 1909년 이또히로부미가 중국 하얼빈에서 안중근에게 사살 된 날이다. 우리 현대사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일이기도 하다.

이또히로부미가 중국 하얼빈에 온다는 것은 확실했지만, 거기서 내릴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안중근은 이또의 얼굴도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 안중근은 10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가장 앞에 가는 사람이 이또라고 짐작하고 권총으로 정확하게 3발을 쏘아 맞추었다.

혹시나 그가 쏜 사람이 이또가 아닐까봐 옆의 수행원에게도 3발을 쏘아 정확히 맞추었다. 6발 중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았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놀라운 일이다. 안중근은 엄청난 역사적 사건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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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02
■ 두향杜香의 일편단심 3편

■ 두향(杜香)의 일편단심 3편

퇴계는 두향이를 만나 매화를 알면서 부터 매화에 더욱 깊이 빠지게 됐다. 퇴계는 매화에 관한 시를 평생 118수나 지었고, 매화(梅花) 시 로만 엮은 《매화시첩》이란 책도 냈다. 매화 시 가운데는 상당수가 매화를 그대(君, 公), 형(兄)으로 의인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두향이를 염두에 두고 지은 시가 많다. 그만큼 두향은 퇴계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었다.

퇴계는 이른 봄 추운 달밤에 매화가 피는 모습을 보기 위해 특별한 의자를 고안하기도 했다. 의자 밑에 화로를 놓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화로의 온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불을 덮어 쓰고, 달밤에 얇은 잎을 파르르 떨며 봉우리를 터트리는 매화의 개화(開花)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곤 했다.

매화가 추위를 이기며 꽃을 피우느라고 떠는 모습을 지켜보는 퇴계의 눈에는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아무리 어려워도 정절(貞節)을 팔지 않는 두향이의 모습이 겹쳐보였을 것이다. 퇴계는 두향이 준 매화분에서 가지를 꺾어 머무는 곳마다 옮겨 심었다. 서울 집에도 매화를 옮겨심기도 하고, 매화를 분재(盆栽)해서 방에 놓고 두향이를 보는 듯 바라보기도 했다.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내려올 때는 매화를 상대로, ‘매화야 잘 있거라, 내 다녀오마.’ ‘염려 말고 안녕히 다녀오세요.’ 하는 내용으로 문답시를 짓기도 했다.

60세 때에 도산서원이 준공되었는데, 그때도 두향이 준 매화가 옮겨 심어져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다. 지금도 이 설중매(雪中梅)들은 해마다 이른 봄이면 두향이처럼 청순한 기품과 고고한 정절을 뽐내며 만개하고 있다. 퇴계는 임금이 여러 차례 벼슬을 제수(除授)했지만, 55세 이후엔 안동 토계에 내려와서, 마지못해 잠시 벼슬길에 올라갔다 내려온 것을 제외하고는 학문에 전념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퇴계와 두향은 죽을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했다. 가슴 아픈 일이다. 퇴계는 1570년(70세)에 안동에서 숨을 거둔다. 숨을 거두면서도 퇴계는 아들에게 “매형(梅兄)에게 물을 잘 주어라.”는 유언을 남겼다. 죽으면서도 두향이를 잊지 못한 것이다. 퇴계의 부음(訃音)을 강선대 초막에서 들은 두향은 소복을 입고 안동까지 걸어가서 먼발치에서 장례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곤 걸음걸음 눈물을 흘리며 단양 강선대로 돌아왔다.

두향은 아침 저녁으로 상식(上食)을 떠놓고 안동 쪽을 향해 절을 하고 곡을 했다. 그러면서도 두향은 자기 입에 밥 한 술 떠 넣지 않았다. 곡기를 일절 끊고 자리에 누운 두향은 초막에서 혼자 굶어서 죽었다. 혹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죽거든 강선대 아래 묻어달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두향의 유언대로 강선대 아래에 묻어주었다. 그러나 충주댐이 생기면서 두향의 무덤이 물에 잠기게 되자 후에 강선대가 바라보이는 높은 곳으로 옮겼다. 지금은 배를 타고 건너야 두향의 무덤에 갈 수 있다고 한다.

두향은 죽어서 450여년이 지난 후에 그 절개를 제대로 칭송받고 있다. 단양군에서 매년 5월에 두향제를 올리며 두향을 추념하고 외로운 넋을 달래고 있다. 천원 짜리 지폐에는 퇴계의 초상(肖像)과 함께 도산서원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도산서원 위에 퇴계가 그토록 사랑한 매화 20여 송이가 활짝 피어 있다. 두향이와 퇴계의 사랑이 우리들의 가슴 속에 그윽한 향기를 풍기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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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02
■ 두향杜香의 일편단심 2편

■ 두향(杜香)의 일편단심 2편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퇴계 이황은 무겁게 입을 열어 두향에게 시 한수를 건냈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구나.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로구나』

하며 이별을 슬퍼했다. 이것을 듣고 두향도 퇴계에게 시 한수로 답했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때 어느 듯 술 다하고 임마저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 할까 하노라』

여기서 ‘꽃 지고’의 꽃은 두말할 것 없이 매화를 말한다. 매화가 지고 봄날이 오면 임이 그리운 새가 된 나는 어이 할 꺼나, 하고 두향의 서러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두향은 떠나가는 퇴계에게 방에서 돌보던 매화 두 분(盆)을 드렸다. 백매와 홍매였다. 퇴계는 이 매화 두 분(盆)을 들고 풍기 땅으로 떠났다.

두향은 고개 마루에까지 가서 배웅을 하고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돌아왔다. 두향은 그 후 신관사또에게 기적(妓籍)에서 빼어줄 것을 사정했다. 신관사또는 두향이 퇴계를 사모하는 정이 애절한 것을 알고 기적(妓籍)에서 빼주었다. 두향은 퇴계와 함께 풍류를 즐기던 강선대 밑에 초막을 짓고 수절하고 살았다. 그러면서 일편단심(一片丹心)으로 퇴계만을 생각했다.

퇴계도 두향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법도로는 사또가 임지를 떠나 관기(官妓)였던 두향을 만나러 갈 수도 없었고, 두향을 새로운 임지로 데려올 수도 없었다. 오매불망 두향을 잊지 못한 퇴계는 단양을 떠난 지 4년 만에 인편(人便)에 두향에게 이런 시를 지어 보냈다.

『黃卷中間對聖賢 누런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면서

虛明一室對超然 텅 비고 밝은 방안에서 초연히 앉아 있네

梅窓又見春消息 매화 핀 창가에서 또 봄소식을 보는구나

莫向瑤琴嘆絶絃 거문고를 바라보며 줄이 끊어졌다 한탄하지 마라』

『오래된 책(黃卷)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성현들의 말씀이 있지만 그 말씀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텅 빈 방안에서 네 생각을 하느라고 멍하니 앉아 있구나. 창밖을 내다보니 매화(두향)가 피어 또 봄이 오는데 두향아, 거문고를 맥없이 바라보며 정든 임을 이별했다(絶絃: 든 사람을 이별함)고 너무 슬퍼 말아라.』 생이별한 두향이를 그리워하는 퇴계의 마음이 넘쳐흐른다.

주자의 맥을 이었지만 주자보다 더 언행일치(言行一致)의 도덕군자(道德君子)로 성현(聖賢)의 반열에 오른 퇴계였지만 애틋한 사랑을 잊을 수는 없었다. 퇴계는 이런 마음을 드러내놓고 말 할 수 없어서, 매화시를 써서 은근히 깊은 마음을 두향에게 전한 것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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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03
■ 두향杜香의 일편단심 1편

■ 두향(杜香)의 일편단심 1편

훌륭한 성인군자(聖人君子)도 사랑은 한다. 퇴계 이황에게도 한 기생과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있다. 이황은 48세 때 단양군수를 제수(除授)받아 부임하게 되었다. 당시 경직(京職)에 있던 관리가 지방으로 부임하게 되면, 노복(奴僕) 한 명과 아들 한 명을 데리고 갈 수 있었다.

이른바 단신부임이 원칙이었다. 그 대신으로 그 관청에 속한 관기(官妓)가 밤낮으로 관리의 수발을 들었다. 춘향전에서 남원 변사또가 기생 점고(點考)를 하고, 춘향이에게 수청을 들라 한 것도 이런 법도에서 나온 것이다. 변사또의 전임사또인 이몽룡의 아버지도 부임할 때 이도령과 방자만을 데리고 갔던 것과 같다.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수청을 든 관기는 18세의 두향(杜香)이었다. 두향은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고아가 됐는데, 퇴기(退妓)인 변씨가 데려다가 시문(詩文)과 가야금을 가르쳤다가 후에 기적에 올리게 되었다. 변씨는 매화 분재(盆栽)를 잘했는데, 두향도 이를 따라 배워서 분재에 능했다.

퇴계는 2년 전 둘째 부인 권씨와 사별한데다가 이어서 아들까지 잃어 외로움과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우울할 때 절세미모에다 시문에도 능한 젊은 두향을 본 퇴계는 첫눈에 마음에 들어하며 애지중지하게 됐다. 두향이도 학문과 도덕이 높은 사또를 가까이에서 모시게되어 흠모하고 존경하였다. 이렇게 둘은 첫눈에 서로 좋아하며 마음속으로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퇴계는 시간이 나면 두향과 함께 강변을 거닐기도 하고, 강가에 자리 잡고 앉아 두향이 타는 가야금 소리를 감상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의 정은 더욱 깊어만 갔다. 퇴계는 단양의 경치가 하도 좋아 단양 8경을 만들어보려고 했으나, 한 가지가 모자라 7경 밖에 되지 않아 내심으로 갸웃갸웃하고 있었다.

경치가 빼어난 옥순봉이 단양 땅이 아니라 이웃 청풍 땅이었다. 이것을 눈치 챈 두향은 넌지시 “이웃 고을 원님께 가서 옥순봉을 달라고 해 보시지요.”하고 귀띔 했다. “옳지 그렇구나!” 하고 퇴계는 그 말대로 이웃 청풍의 원님이었던 이지번(李之蕃:토정 이지함의 형)에게 찾아가서 사정을 하니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이렇게 오늘날의 단양팔경이 이뤄진 데는 두향의 공이 적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두향은 관가에 들어오면서 집에서 돌보던 매화 두 분(盆)을 가져와서 퇴계가 기거하는 방에 놓아 두었다. 백매(白梅)와 홍매(紅梅)였다. 이때부터 퇴계는 은은하게 방안에 감도는 매화향기에 취해 매화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와 함께 퇴계와 두향의 사랑도 깊어만 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퇴계가 9개월 만에 단양을 떠나게 된 것이다. 퇴계의 친형님 대헌공(大憲公)이 충청감사로 부임하게 되자, 가까운 친인척이 같은 기관에 근무할 수 없는 상피(相避) 제도 때문에 경상도 풍기군수로 전임(轉任)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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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04
■ 이황의 결혼생활 2편

■ 이황의 결혼생활 2편

퇴계 이황은 조선의 성리학을 정립시킨 위대한 학자다. 권위적이고 엄격할 것 같지만, 이황은 의외로 개방적이고 인격적이며 인간에 대한 사랑이 많았다. 자기 아내를 소중히 대한 것처럼 이황은 부부관계에도 많은 조언을 했다. 부부사이에 불화로 갈등을 겪는 제자에게 이황은 집 밖에서 있었던 온갖 울분과 괴로움을 집안으로 들이지 말고 사립문에서 마음을 정화한 뒤에 집안으로 들어서라고 조언했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본인의 가정사는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퇴계의 결혼관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군자의 도는 부부에게서 시작된다는 믿음이다. 부부생활이야말로 가정을 다스리는 근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부부란 서로 손님 대하듯 공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황의 맏아들은 2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창 젊은 나이의 맏며느리는 자식도 없는 과부가 되었다. 퇴계는 홀로된 며느리가 걱정이 되었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젊은 며느리가 어떻게 긴 세월을 홀로 보낼 것인가.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한밤중이 되면 자다가도 일어나 며느리가 기거하는 후원 별당을 돌면서 며느리를 살펴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집안을 둘러보던 퇴계는 불이 꺼져 있어야 할 며느리 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듣게 되었다.

며느리가 술상을 차려 놓고 짚으로 만든 선비모양의 인형과 마주앉아 있는 것이었다. 인형은 바로 죽은 아들의 모습이었다. 인형 앞에 놓인 잔에 술을 가득 채운 며느리는 말했다. “여보, 한 잔 하세요.” 그리고는 인형을 향해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남편 인형을 만들어 대화를 나누고, 한밤중에 잠을 못 이루고 흐느끼는 며느리. 그날 밤, 퇴계는 깊은 고민을 했다.

며느리를 윤리 도덕의 관습으로 묶어 수절시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며, 인간의 고통을 몰라주는 것이야말로 윤리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드디어 퇴계는 결단을 한다.

다음날 퇴계는 친구이기도 한 사돈을 불러 자신의 며느리를 본가(本家)로 데리고 가라고 강력히 말했다. “자네 딸이 내 며느리로서는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아이지만 어쩔 수 없네. 데리고 가게.” 이 후 퇴계는 사돈과 절연하고 며느리를 보냈다. 몇 년 후 퇴계가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날이 저물어 깨끗한 집을 택해 하룻밤을 보냈다. 그런데 저녁상을 받아보니 반찬 하나하나가 퇴계가 좋아하는 것 뿐이었다. 더욱이 간까지 퇴계의 입맛에 딱 맞았다.

이튿날 아침상도 마찬가지였다. 퇴계가 아침식사를 마치고 막 떠나가려는데 집주인이 버선 두 켤레를 가지고 와서 “한양 갈 때 신으시라.”며 주었는데, 퇴계의 발에 꼭 맞았다. 바로 퇴계의 며느리가 그 집 주인과 결혼해 살고 있었던 것이다. 퇴계 이황은 여자들에게 재혼을 허락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의 법과 윤리를 깨뜨리면서까지 며느리를 개가시켰다.

조선시대 윤리나 가풍보다 사람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이 일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퇴계를 향해 선비의 법도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며, 윤리를 무시한 사람이라고 비판 했다. 그러나 퇴계는 그런 비판에 개의치 않았다. 젊은 며느리의 행복을 지켜주고자 했던 자기의 결정이 옳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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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04
■ 퇴계退溪 이황 2편

■ 퇴계(退溪) 이황 2편

1543년 10월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으로 승진하자 성묘를 핑계 삼아 사가(賜暇)를 청해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유학자의 삶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출사(出仕)를 해서 관리가 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수기(修己)로서 나 자신의 인격을 수양하는 것이다. 수기라는 것은 원래 ‘거울을 닦는다’는 뜻으로 마음의 거울을 닦는 것이다.

마음의 거울에 때가 끼어 있는 게 바로 욕망이다. 당시 유학자들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 하여, ‘수양을 통해 자기의 인격을 완성하고 나아가 세상 사람을 다스린다.’는 것을 바탕에 두고 있었다. ‘수기(修己)’를 바탕으로 ‘치인(治人)’ 하는 것은 출사(出仕)를 해서 관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를 다스리는 임금과 일치하지 않으면 뜻을 펼칠 수가 없다. \\

그래서 출사(出仕)와 은(隱)의 중간에 사림(士林)이 위치했다. 지금 당장 나가서 관리가 되지는 않지만, 자신의 제자를 양성함으로써 다음을 기약한다는 것이다. 이 당시는 퇴계 이황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남명 조식(1501~1572)과 화담 서경덕(1489~1546) 선생들도 은거(隱居) 하면서 유학자의 도를 따랐다.

이황이 45세로 관직에서 한창 뻗어 나갈 무렵인 1545년, 문정왕후와 외척인 윤원형 일파의 소윤 세력이 득세하고 윤임 일파인 대윤을 숙청하면서 ‘을사사화’가 일어나 많은 선비들이 죽고 유배되었다. 이황의 넷째 형 이해(1496~1550)도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목숨을 잃고, 이황 자신도 삭탈관직을 당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을사사화(乙巳士禍) 후 병약함을 구실로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1546년(명종 1년) 고향인 낙동강 상류 토계(兎溪)의 동암(東巖)에서 자연을 벗 삼아 독서에 전념하는 구도(求道)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때에 토계를 퇴계(退溪)라 개칭하고, 자신의 아호(雅號)로 삼았다.

그 뒤에도 여러 번 임관(任官)의 명을 받게 되자 매번 거절하기 어려움에, 부패하고 문란한 중앙의 관계가 아닌 외직을 지망하여 1548년 충청도 단양군수가 되었다. 그러나 곧 형이 충청감사가 되어 오는 것을 피해 봉임(奉任) 전에 자청(自請)해서 경상도 풍기군수로 임지를 옮겼다.

풍기군수 재임 중, 주자(朱子)가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세운 것처럼 고려 말기 주자학의 선구자 안향(安珦)이 공부하던 땅에 전임 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창설한 백운동서원에 편액(扁額)·서적(書籍)·학전(學田)을 하사할 것을 감사를 통해 조정에 청원하여 실현을 보게 되었다. 이것이 조선조 사액서원(賜額書院)의 시초가 된 소수서원(紹修書院)이다.

풍기군수가 된 지 1년 후 퇴임하고, 어지러운 정계를 피해 퇴계의 서쪽에 한서암(寒棲庵)을 지어 다시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하지만, 1552년 또 다시 성균관대사성의 명을 받아 취임하였다. 1556년 홍문관부제학, 1558년 공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여러 차례 고사(固辭)하였다. 1543년 이래로 관직을 사퇴(仕退)하였거나 임관(任官)에 응하지 않은 일이 20여 회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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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05
■ 퇴계退溪 이황 1편

■ 퇴계(退溪) 이황 1편

퇴계 이황(李滉:1501~1570)은 한·중·일 동양 3국에서 공자(孔子)·맹자(孟子)와 같은 성인(聖人)으로 추앙받아 이자(李子)로 받들어지고 있다. 특히 일본은 임진왜란 때 퇴계전서(退溪全書)를 몰래 가져가 복간(復刊)한 뒤에 추종학자들이 이자전서(李子全書)라는 이름으로 다시 간행했다. 일본에서 이 학맥은 계속 이어져 내려와 일본의 교육칙어(敎育勅語)의 근본사상으로 자리 잡을 만큼 유학자로 추앙받고 있다.

이황은 경상도 예안현 온계리(禮安縣 溫溪里: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좌찬성 이식(李埴)의 7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7개월에 아버지 상(喪)을 당했으나, 현부인이었던 생모 박씨의 훈도(薰陶) 아래 총명한 자질을 키워 갔다. 12세에 작은 아버지 이우(李堣)로부터 《논어》를 배웠고, 14세경부터 혼자 독서하기를 좋아해 도잠(陶潛)의 시를 사랑하고 그 사람됨을 흠모하였다. 18세에 지은 《야당(野塘)》이라는 시는 그의 가장 대표적인 글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20세를 전후하여 《주역》 공부에 몰두한 탓에 건강을 해쳐서 그 후로 늘 병에 시달렸다.

이황은 1527년(중종 22년) 향시(鄕試)에서 진사시와 생원시의 초시(初試)에 합격 한 뒤, 어머니의 소원에 따라 과거 응시를 위해 성균관에 들어갔다. 다음해 진사 회시(會試:복시)에 급제하였다. 1533년 재차 성균관에 들어가 김인후(金麟厚)와 교유하고, 이 해에 귀향 도중 김안국(金安國)을 만나 성인군자(聖人君子)에 관한 견문을 넓혔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가 되면서 관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1537년 어머니 상(喪)을 당하자 고향에 돌아가 3년간 복상(服喪)했고, 1539년 홍문관수찬이 되었다가 곧 임금으로부터 사가독서(賜暇讀書:유능한 관리에게 휴가를 주어 공부하게 함)의 은택을 받았다.

조선 초기 관학파 유학자들은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지만, 15~16세기 시간이 흘러가면서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제 9대 성종 시대에 이르게 되면 중앙에 있던 유학자 중에서 대지주(대토지소유자)는 왕과 권력을 다툴 만큼 권력이 비대해 졌다. 그리하여 성종은 지방 출신의 신진유학자들을 대거 등용하는데, 이런 인물들을 등용하면서 왕권을 안정시키고 기존 관료들의 권력을 견제하려는 의도였다.

그로 인해 유학자들은 두 세력으로 나누어졌는데, 기존 관료 세력을 ‘훈구파’라 하고 신진 세력을 ‘사람파’라 한다. 사림세력은 지방에 있는 중소지주들로서 훈구대신들과 경쟁에서 번번히 화(禍)를 입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무오사화를 시작으로 50년에 걸쳐 4번의 사화(무오사화·갑자사화·기묘사화·을사사화)가 일어난다. 사림세력들은 사화가 일어날 때마다 큰 화를 입고 향촌으로 물러나서 수양에 매진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길을 택하게 되었다. 퇴계 역시 중종 말년에 사화(士禍)로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관계(官界)를 떠나 산림에 은거(隱居)할 결의를 굳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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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06
■ 떡국과 만두국

■ 떡국과 만두국

우리는 오랫동안 구정과 신정이라는 이름하에 신년(新年)을 두 번 맞이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는 잘못된 명칭은 없어져야 마땅하다. 아직 우리는 음력으로 새해를 맞이하므로 새해(양력 1월1일)와 설날(음력 1월1일)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의 인사를 두 번 하게 된다. 좋은 말이니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고 여기면 되고, 새해에 다짐했던 결심이 무너질 만하면 다시 설날을 기해서 새해의 다짐을 할 수 있으니 좋은 면도 있지 않을까.

설날을 전후하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는 세시풍속은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지만, 많이 생략되거나 간소화되면서 민속놀이를 비롯하여 갖가지 세시풍속은 퇴색되거나 단절되었다. 시대의 변화는 어찌할 수 없지만, 좋은 세시풍속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옛날에는 설날에 대접하는 음식을 세찬이라고 불렀는데, 이 세찬으로 떡국을 먹었다. 설날에 하얀 떡국을 먹는 이유는 고대 태양숭배 신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새해 첫 날을 엄숙하고 청결하게 맞는다는 뜻이다. 길고 흰 가래떡은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과 한 해를 밝게 보내자는 뜻이 들어 있다.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태양의 둥근 것을 형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설에 떡국을 먹는 풍습의 기원은 명확하지는 않으나 조선 후기 풍속을 설명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고구려 유리왕 이전으로 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설날 떡국을 먹는 것은 흰색 음식으로 새해를 시작함으로써 천지만물의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뜻으로, 정초 차례와 세찬(歲饌)에 없으면 안 될 음식으로 설날 아침에 반드시 먹었으며 손님이 오면 이것을 대접했다’고 적고 있다.

또한 떡국은 색이 희다 해서 ‘백탕(白湯)’,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 해서 ‘병탕(餠湯)’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나이를 물을 때 “병탕 몇 사발 먹었느냐”고 하기도 한다. 고려 후기에 원나라에서 배워 온 매사냥으로 귀족들은 꿩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꿩으로 육수를 내어 떡국이나 만둣국을 만들어 먹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매사냥을 하지 못하는 백성들은 꿩을 구하기 어려웠고, 꿩 대신 구하기 쉬운 닭으로 육수를 냈던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다. 요즘은 꿩이나 닭 대신 쇠고기로 육수를 낸다. 이 역시 쇠고기를 쉽게 구하게 된 이후에 생겨난 변화인 것이다.

세찬(歲饌)으로 어깨를 나란히 견주는 것이 떡국과 만둣국인데, 어느 것이 더 귀하고 옳다 그런 것은 없었다. 다만 남쪽 지방에서는 주로 떡국을 먹었고, 북쪽 지방에서는 만둣국을 즐겨 먹었다. 북쪽 지역은 쌀농사를 짓기가 여의치 않아 가래떡을 만드는 것보다 밀가루로 만두를 만드는 것이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설날에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를 사용한 삼색나물을 꼭 먹었는데, 이는 뿌리채소인 도라지는 ‘과거의 조상’을, 줄기채소인 고사리는 ‘현재의 자신’을, 잎채소인 시금치는 ‘미래의 후손’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색이 붉은 음식은 거의 만들어 먹지 않았는데, 이는 붉은색이 부정적인 뜻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날에 마시는 술은 데우지 않고 찬 술을 마시는데. 《경도잡지》에는 『술을 데우지 않는 것은 봄을 맞이하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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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06
■ 신정新正과 구정舊正

■ 신정(新正)과 구정(舊正)

과거 한때는 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 음력 1월 1일을 구정(舊正)이라고 하며, 어느 집은 신정을 어느 집은 구정을 쇠던 시절이 있었다. 왜 그렇게 설날이 두 가지로 나뉘게 되었을까?

일본은 1982년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1868~1912)에 태양력을 도입한 이후 음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양력설은 1895년(을미년) 고종이 을미개혁 때 태양력을 사용하라는 조칙을 내리면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양력 1월 1일을 설로 삼으려 했지만, 민간에서는 전통을 지키기 위해 음력설을 쇠면서 설이 두가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문화를 송두리째 말살하려는 일제의 의도에 의해 신정(新正)이 강요되었다. 조선총독부가 훈령을 통해서 앞으로 조선인들도 일본인들처럼 양력 1월 1일인 신정(新正) 때 의무적으로 명절을 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음력설에 명절을 보낸다거나 세배를 가게 될 경우 즉시 엄벌에 처하는 등 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공포(公布)를 내리기도 했다. 또 각 지방 떡방앗간 등에도 음력설에 떡을 치거나 돌릴 경우 그 업소에 대해서는 행정처분이나 영업중지 등을 가할 것이라는 훈령도 내렸다. 실제로 일본은 음력설에 세배를 가거나 귀성을 하는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순사들을 통해서 감시 및 단속에 나섰으며, 일부에서는 오징어 먹물이나 검은 물로 된 물총을 발사하여 음력설을 쇠려는 조선인들의 명절 귀성이나 세배 길을 방해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일제의 처벌 및 제재 등에 대한 두려움과 눈치 때문에 조선인들 사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인들처럼 양력설인 신정 때 명절을 보내는 사람과 그래도 1000년 동안 내려온 전통풍습을 지키고 조상에 대한 예법을 지키려고 그대로 음력설을 보내는 사람이 갈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음력설을 없애기 위한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끝내 음력설을 결국엔 없애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광복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에서는 신정을 제도적으로 지원하여 양력 1월 1일부터 3일간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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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에는 신정만 연휴였고, 음력설은 아예 공휴일이 아니었다. 필자도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학교에 갔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음력설은 전두환정권때인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엉뚱한 명칭으로 하루가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신정(양력설)보다는 구정(음력설)을 더 많이 지내고 있었다. 국민들의 뜻을 바꿀 수 없었던 정부는 드디어 198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고쳐 음력설을 공식 인정하고 음력설을 전후한 3일이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이젠 설날이 완전한 민족명절로 다시 자리 잡게 되었다. 신정 연휴는 2일로 축소되었다가 이후 1999년부터는 연휴가 아닌 새해 첫날 하루만 공휴일이 됐다. 음력설은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적인 명절이므로, 애초부터 구정(舊正)이란 용어 자체가 적절하지 않은 것이었다. 끈질기게 민족의 전통을 지켜 설날을 되찾은 우리 선조들, 이것이 바로 전통문화의 힘이자 국민의 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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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07
■ 설날 3편

■ 설날 3편

이때를 즈음하여 “복 사세요! 복 사세요! 새해 첫 복 사세요!” 하면서 복조리나 복 소쿠리를 팔러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을 한 두 개 사서 문이나 벽에 매달아 두는 것이다.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로, 정월 초하루에 새로 사는 조리를 복조리라고 한다. 복이 소쿠리 가득, 조리로 퍼듯이 들어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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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설날 재미난 세시풍속으로는 양괭이 쫓기라는 것이 있다. 양괭이 또는 야광귀(夜光鬼)라는 귀신은 설날 밤, 사람들이 사는 집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가버린다고 한다. 그러면 그해 그 신의 주인에게는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귀신이 무서워 모두 신을 감추거나 뒤집어놓은 다음 잠을 잤다. 그리고 채를 마루 벽에 걸거나 장대에 걸어 뜰에 두었는데, 그러면 양괭이가 와서 수없이 구멍이 나 있는 신기한 물건이 있는 것을 보고 그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을 잊고 있다가 닭이 울고 날이 밝으면 도망간다는 재미난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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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풍속(歲時風俗)은 농사를 중심축에 놓고 행해지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농경의례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세시풍속이 풍년 기원과 예측, 풍년을 감사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후대에 이르러 어업과도 관련을 갖게 된다. 그러나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현대사회에서는 농경의례로서의 성격은 없어지고 있다. 세시풍속은 설 명절 기간에 집중되어 있는데, 정월(1월)이 농한기인데다가 한 해가 시작되는 신성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신성한 기간에는 신과의 만남이 수월해져 인간의 기원 사항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설을 전후하여 세시풍속이 다양한 만큼 민간에서 떠도는 속신(俗信:민간에서 행해지는 미신관습)도 역시 다양하게 나타난다. 설은 사실상 섣달그믐부터 시작된다고 할 만큼 그믐날밤과 초하루는 직결되어 있다. 끝과 시작은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는다.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는 속신이 있기 때문이다. 설음식을 세찬이라고 한다. 세찬의 대표적인 음식인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 얘기들도 한다. 또한 설날이나 상묘일(上卯日, 첫 토끼날)에는 여자들이 아침 일찍 남의 집에 출입하면 그 집에 재수가 없다는 속신이 있다. 줄다리기를 위한 줄을 꼬을 때 여성들이 줄을 건너가면 그 쪽 편 줄이 시합 중 끊어진다는 속신이 있고, 상대방 줄을 넘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도 한다. 또 이긴 편 줄의 짚을 지붕 위에 올려놓으면 관운이 트고 일이 잘 된다는 속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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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07
■ 설날 2편

■ 설날 2편

설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설빔을 차려 입고, 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 세찬(歲饌)과 세주(歲酒)를 마련하여 조상의 신주, 즉 위패(位牌)를 모신 가묘(家廟)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정조(正祖) 다례(茶禮)라고 한다. 조상을 숭배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행위로 새해 첫날 첫 의례를 행하는 것이다. 요즘은 제사가 예전에 비해 확 줄었지만, 옛날 일 년에 제사가 수없이 많았으므로 명절날 아침 조상님께 드리는 간소한 제사를 차례(茶禮)라고 한다. 술 대신 차(茶)를 올리기도 했으므로 차례(茶禮)라고 부르는 것이다.

차례는 제사와 달리 아침에 지내므로 촛불을 켜지 않고, 잔 올리기도 1번만 하고, 축문도 읽지 않는다. 제수를 차릴 때는 보통의 기제사 때와 같으나 떡국과 탕, 과일, 술, 포, 식혜 등을 차린다. 차례가 끝나면 조상신이 드셨던 음식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그 덕을 물려받는다는 의미에서 ‘음복(飮福)’을 한다. 요즘은 집안에 사당을 두어 제사를 모시는 집이 있을 리 없지만, 옛날에는 사당에서 온 집안 남자들이 모여 예를 지내고, 밤을 꼴딱 새우며 여자들은 차례 상을 준비한다. 조상님께 인사를 올리는 차례가 끝나면 어른들께 공경의 마음으로 세배를 올리고, 세배를 받은 어른들은 아랫사람들에게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주신다.

보통 덕담으로는 건강을 빌어 주거나 소원 성취하라는 등 좋은 말을 해준다. 큰집이나 작은집 등 친척을 찾을 때는 세찬으로 준비한 음식을 갖다 주거나 얻어오기도 한다. 이러다 보면 여자들은 세배를 갈 때나 집에 손님이 올 때나 보름날까지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다. 물론 많이 변하기는 했으나 예나 지금이나 명절증후군이 생길 법도 하다. 설이란 용어 자체는 정월 초하룻날, 하루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실제 명절은 대보름까지 이어진다. 세배는 보통 정월 보름까지는 찾아뵙고 해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설날이 되면 마을의 큰 마당에서 사람들이 모여 내기 윷놀이를 놀고 편을 갈라 씨름도 하며 하루를 즐겼다. 이때 남자아이들은 연을 날리거나 제기차기를 하고, 여자아이들은 어른들이 골목이나 큰 나뭇가지에 매달아 준 그네를 뛰며 놀았다. 또 젊은 여자들과 며느리들은 빈 남새밭의 구덩이 흙을 파내어 쌓아 놓고 널뛰기판을 올려서 탕탕 굴리며 널뛰기를 하며 어울려서 뛰고 놀았다. 널을 뛰면 그 해에 발에 좀무좀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밖에 설날 무렵 윷놀이·널뛰기·승경도놀이·돈치기 등을 한다. 윷놀이는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이 집안에서도 하고 밖에서 마을 사람들이 어울려 하는 정초의 가장 보편적인 놀이다. 윷놀이를 통해 그 해 운수를 점쳐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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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08
■ 설날 1편

■ 설날 1편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으로, 설날은 새해 새 달의 첫날이란 뜻이다.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므로 매우 뜻 깊은 최초의 명절로 여겨 왔다.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우리는 ‘설’ ‘설날’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신일(愼日)이라고 하여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가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날에는 바깥에 나가는 것을 삼가하고 집안에서 지내면서 한 해 동안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기를 신에게 비는 것이다. 따라서 이날은 새로운 정신과 몸가짐으로 벽사초복(辟邪招福)사악한 것을 멀리하고 복을 부름을 기원하는 날이다. 설날을 기점으로 묵은 1년이 지나가고 새로운 1년이 시작되므로, 1년의 운수는 그 첫날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차례를 통해 조상에게 인사하고 웃어른에게는 세배를 하는 것으로 새해 첫날을 맞이한다. 사람들은 서로 덕담(德談)을 주고받으며 한해의 운수대통을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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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說)이 있는데, ‘새로 온 날이 낯설다’ 에서 ‘낯설다’의 어근인 ‘설다’에서 온 것이라는 설, 한 해가 새롭게 개시되는 날을 의미하는 ‘선날’이 연음화되어 설날로 바뀌었다고 보는 설, 그리고 자중하고 근신한다는 의미의 옛말인 ‘섦다’에서 왔다고 보는 설들이 있다. 또, 한 해가 지남으로써 점차 늙어가는 처지가 서글퍼진다는 뜻에서 서럽다는 뜻의 섧다는 의미라고 하는 설도 있다. 또 한편에서는 ‘설’이란 용어를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첫 날인 ‘설’을 쇨 때마다 사람들은 한 살 씩 나이를 먹게 되는데, 결국 ‘설’이 사람의 나이를 헤아리는 단위로 정착하여 오늘날 ‘살’로 바뀌게 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사실 이 중 딱히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렸다 라기 보다는 이 의미들이 모두 다 내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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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전날을 까치설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까치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작은설을 뜻하는 아치설 또는 아찬설이 변한 말이라고 한다. (까치도 울음소리를 나타낸 말인 꺅과 작다는 뜻의 아치가 합쳐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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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에 따르면, 설날, 대보름, 한식, 삼짇날, 단오, 한가위, 중양절, 팔관회, 동지를 구대속절(九大俗節)로 지낸다 했고, 조선 시대에도 설날, 한식, 단오, 한가위를 4대 명절로 꼽을 만큼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오래된 전통이었다. 중국 역사서인 《수서》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도 신라인들이 설날 아침에 서로 인사하며, 임금이 신하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고, 이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拜禮)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에 근거하여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설날을 쇠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또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참배하였다고 한다. 이때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 비슷한 것이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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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09
■ 섣달그믐 세시풍속 3편

■ 섣달그믐 세시풍속 3편

섣달은 ‘남의 달’이라 하여 한 해를 조용하게 마무리한다. 섣달그믐은 한 해를 결산하는 마지막 날이므로 밀린 빚이 있으면 이날 안에 갚고, 그러지 못하면 정월대보름 이전에는 빚 독촉을 하지 않는다. 섣달에는 매사를 정리하고 큰 물건을 함부로 사지 않으며, 솥을 사면 거름에 엎어두었다가 그믐날에 부엌 아궁이에 걸면 탈이 없다고 했다.

“섣달그믐이면 나갔던 빗자루도 집 찾아온다.” 또는 “숟가락 하나라도 남의 집에서 설을 지내면 서러워서 운다.” 라는 말이 있다. 가는 해의 마지막 마무리를 잘하고, 빌렸던 남의 물건도 모두 돌려주고 돈도 꾸지 않으며 혼인도 하지 않고, 연장도 빌려주지 않는다. 이날 잠을 자지 않고 집안 청소를 깨끗이 하여 새해 맞을 준비를 하면서 제야(除夜)의 종소리를 듣는 것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경건하게 새해를 맞이하고자 하는 것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섣달 그믐날 개밥 퍼 주듯’이란 재미있는 속담이 있다. 이는 시집을 가지 못하고 해를 넘기게 된 처녀가 홧김에 개밥을 퍽퍽 퍼주는 것처럼 무엇이든 풍족하게 팍팍 나누어 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해의 마지막 밤인 섣달 그믐밤이 되면 집에서는 저녁밥을 남기지 않고 말끔히 먹으며, 바느질하던 것도 끝내어 해를 넘기지 않는다. 경남지방에서는 이날 밤에 맨발로 땅을 밟으면 무좀이 생긴다하여 반드시 버선과 신을 신은 다음 땅을 밟는다고도 하고, 함경도에서는 도깨비가 잘 나오는 터가 센 집에서는 이날 밤에 도깨비가 좋아하는 메밀 범벅을 잘게 만들어 흩어주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전북 지역에서는 섣달에 문종이를 많이 바르며, 정초에 창호지가 찢어지면 정월대보름이 지나서야 바른다고 한다. 또 섣달그믐날 밤에는 ‘비우자리’라 하여 발바닥이 하얗게 되는 증상이 일어난다고 해서 양말을 신고 잤다고 한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섣달그믐날 어둡기 전에 미리 빨랫줄을 거두는데, 그 이유는 조상이 들어오다가 목에 걸린다고 하여 치우는 것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이날 오후에 사년(辭年)이라 하여 어린이들이 어른에게 예를 표하고 폭죽을 터뜨린다. 저녁에는 가족들이 연야반(年夜飯)을 먹고 수세주(守歲酒)를 마신다. 부뚜막에 불을 켜두고 집안 청소를 하며 그림을 문에 새로 걸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 또 도화분(跳火盆)이라 하여 그릇에 짚불을 피워놓고 뛰어넘는데 새로운 해에 액운을 건너게 해달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는 제야의 종을 108번 치는데 일본에서도 종을 108번 울린다. 요즘에는 양력 12월 31일 밤 자정을 기해 서울 보신각(普信閣)에서 33번의 제야의 종을 치는데, 섣달그믐의 수세풍속이 현대에 와서는 음력이 아닌 양력으로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33번은 108번을 줄여서 치는 것으로 불교의 33천(天)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종소리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희망으로 맞이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해갈이 통과의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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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10
■ 섣달그믐 세시풍속 2편

■ 섣달그믐 세시풍속 2편

조선시대에는 섣달그믐에 재앙을 쫓기 위한 연종제(年終祭)로 나례(儺禮:잡귀를 쫓기 위함)의식을 펼쳤는데, 민간에서는 대나무를 태워 요란한 소리를 내는 폭죽이나 대총, 지포인 딱총을 놓기도 하고 궁중에서도 연종포(年終砲)를 터뜨렸다. 이렇게 하면 집안에 숨어 있던 잡귀들이 놀라서 도망가고 무사태평(無事泰平)하다는 것이다. 『동국세시기』에는 궁중 풍속으로 섣달그믐 전날부터 연종포라 하여 대포와 불화살을 쏘고 징과 북을 울렸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청단(靑壇)이라는 나례의식이다. 『열양세시기』에 의하면 섣달그믐날 내의원에서 벽온단이라는 향을 만드는데, 이것은 염병(染病)을 물리치는 데 유용하다 하여 임금은 설날 아침에 그 향 한 심지를 피운다고 한다.

이러한 수세(守歲) 풍습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미로 우리나라에 역법(曆法)이 들어온 이래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섣달그믐밤 밤을 하얗게 새우며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고 새롭게 밝아올 한해를 설계하는 통과의례로, 그 마지막 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가 더 깊다. 이날 밤을 새우기 위해 윷놀이나 화투를 치면서 기도 하고, 주부들은 세찬(歲饌) 준비로 바쁜 가운데 감주나 과줄, 호박엿 따위를 틈틈이 내놓는다. 유만공의 《세시풍요(歲時風謠)》에는 『이날 달걀 같은 만두며 꽃 같은 적을 해놓고 찬품을 많이 대접하니 특별한 정이라 하였다.』 라고 한 것처럼 매년 세모(歲暮) 때는 다양한 찬거리나 음식을 주고받는데 이를 세찬(歲饌)이라 하였다.

섣달그믐은 묵은 설이라 하여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일가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는데, 이를 묵은세배라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저녁 식사 전에 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떡국을 먹는 것이 일반화되었지만, 이날 만두를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했다. 저녁에 만둣국을 올려 차례를 지내며 이를 만두 차례(茶禮), 만두 차사(茶祀), 국 제사(祭事)라고 한다. 한 해 동안 잘 보살펴주신 조상에게 감사드리는 의식으로 해질 무렵 만둣국, 동치미, 포 같은 음식을 차려서 조상에게 올린다. 섣달 그믐날 저녁 식사 후 집안 어른들과 동네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지난 1년간 감사했다는 마음으로 “일 년을 잘 지냈습니다.”라든가, “새해맞이 잘 하십시오.”라고 말하고 묵은세배를 하였다. 이때는 시어른이 계시는 여자들도 묵은세배를 하였다. 묵은세배는 주로 늦은 시간에 하였다. 낮 시간에는 가까운 조상의 산소에 찾아가서 절을 하고 왔다.

일부 가정에서는 복만두(보만두)라 하여 만두 하나 속에 엄지손톱만한 작은 만두를 여러 개 집어넣어 만든다. 차례가 끝난 후 저녁으로 다시 만둣국을 끓일 때 복만두를 넣는데, 이것이 들어간 그릇을 받는 사람이 신년 복을 다 가져간다고들 했다. 소를 키우는 집에서는 만두를 소에게 먼저 먹이고 식구들이 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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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10
■ 섣달그믐 세시풍속 1편

■ 섣달그믐 세시풍속 1편

‘섣달’ 이란 ‘설이 드는 달’이란 뜻으로, 말대로 하자면 1월이 섣달이 되어야 한다. 한 해를 열두 달로 잡은 것은 수천 년 전부터지만, 어느 달을 한 해의 첫 달로 잡았는가 하는 것은 때론 달라졌다. 음력 동짓달인 11월을 첫 달로 잡은 적도 있었지만, 대개는 음력 12월을 한 해의 첫 달로 잡고 음력 12월 1일을 설로 쇠었다. 그래서 음력 12월을 설이 드는 달이라 하여 ‘섣달’이라 한 것이다. 그 뒤 음력 1월 1일에 설을 쇠면서도 그전에 음력 12월을 ‘섣달’이라고 부르던 흔적이 그대로 남게 된 것이었다. 그믐은 ‘그믈다’에서 나온 말로 ‘저물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섣달그믐’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끝 달의 끝 날인 12월 30일을 가리키며, 설날을 맞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세시풍속이 있었다.

세밑, 눈썹 세는날, 제석(除夕), 제야(除夜), 제일(除日), 세제(歲除), 세진(歲盡)이라고도 불리는 섣달그믐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이므로 새벽녘에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 잠을 자지 않고 한 해가 넘어가는 순간을 지킨다는 뜻으로 이를 수세(守歲)라 하였다. 수세는 장등(長燈), 해지킴, 밤새우기라고도 부르는데,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인가에서는 다락, 마루, 방, 부엌에 모두 등잔을 켜놓는다. 흰 사기접시 하나에다 실을 여러 겹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외양간, 변소까지 환하게 켜놓으니 마치 대낮 같다. 그리고 밤새도록 자지 않는데 이것을 수세라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집안 곳곳에 밤새 불을 켜두면 광명이 비쳐서 복이 들어오고 잡귀를 쫓는다고 믿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불 하나씩을 식구불로 정해 점을 치는데, 새해에 고생할 사람의 불은 가물거리거나 기운이 없고, 운이 좋은 사람의 불은 빛이 밝고 좋다고 했다. 또 개를 키우는 집에서는 이날 불을 밝혀두면 새해에 개가 잘 큰다고도 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새벽에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는데, 그 유래는 섣달 중 경신일(庚申日)에는 자지 않고 밤을 지켜야 복을 얻는다는 경신수세(庚申守歲)의 도교 풍속에서 나왔다.

민간에서 전하기로는 이날 잠을 자면 영원히 자는 것과 같은 죽음을 뜻하기 때문에 밤을 샌다고도 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날과 그 전 해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김매순(金邁淳)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어린아이들이 곤하여 졸면 야단을 치면서 “오늘 저녁에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라고 말하며 잠을 못 자게 했다. 그래서 혹시라도 어린 아이들이 참지 못하고 잠을 자면 밀가루를 몰래 눈썹에 칠하고 밤새 나이를 먹어 눈썹이 세었다고 놀리기도 하고, 잠을 자면 굼벵이가 된다고 놀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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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11
■ 주화파 최명길 4편

■ 주화파 최명길 4편

인조는 난국을 수습하라는 뜻으로 최명길을 정승의 반열에 올리고 1637년 영의정을 맡겼다. 그는 인질로 끌려간 척화대신과 포로들의 석방을 교섭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독보라는 승려를 명나라에 보내 그쪽 정세를 살피게 했고, 쫓겨 온 명나라 군대를 도와주었다. 그는 최고의 관직에 있으면서 동분서주하며 전란의 뒷수습을 도맡았다. 이러한 최명길의 이중적인 계책은 청나라가 보낸 첩자에 의해 모두 발각되고 말았다. 청나라는 조선 조정의 동정을 환하게 꿰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최명길은 1642년 청나라의 수도 선양으로 끌려가 김상헌이 갇혀 있는 감옥 옆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2년 동안 모진 고초를 겪은 끝에 김상헌과 함께 풀려났다. 청나라는 그들이 풀려날 때에 청나라 황제가 있는 쪽을 향해 절을 하라고 강요했다. 김상헌은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끝내 절을 안 했지만 최명길은 서슴없이 절을 했다. 그는 형식 따위에는 구애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마음을 믿었다. 그의 이러한 행동철학은 바로 양명학(陽明學)을 수양한 데서 나온 것으로 평가된다.

선양에서 조선으로 돌아온 그는 현직(現職)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2년 동안 저술에 몰두하며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시국이 어느 정도 조용해지자 그가 오랑캐와 손을 잡았고, 명나라를 향한 의리를 저버렸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주화파인 최명길이 비난받는 것과는 달리 김상헌과 같은 척화파는 우러름을 받았다. 김상헌 일파는 이념 논쟁보다는 정치투쟁을 전개했다. 최명길은 외로운 처지였다. 그와 늘 뜻을 같이하던 명문장가 장유는 그를 알아주었지만, 이미 죽고 없었기에 최명길은 더욱 외로운 만년(晩年)을 보냈다. 최명길은 광해군을 몰아내는 대열에 섰지만, 실리와 타협을 추구한 광해군의 외교노선을 충실히 계승한 외교가였다. 그리고 외침에 적절히 대응하는 외교전통을 세웠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전란에 대한 풍부한 내용이 담긴 그의 시문집 《지천집》은 다행히도 온전히 남아 있다.

척화파와 주화파,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감히 한마디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외침(外侵)을 당하면서도 명분만을 중요시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이요, 국력을 기르지 않고 기개만을 떠들어 보아야 나라를 파멸로 이끌 뿐이다. 최명길이 택한 굴욕은 실리 외교 때문이었다. 김상헌과 최명길은 볼모로 잡혀갔던 이국 심양 땅에서 극적으로 화해한다. 두 사람 모두 종묘와 사직을 구할 일념으로 충성을 다했다는 본심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선전후화론(先戰後和論) 즉 먼저 싸운 뒤 나중에 화의를 하자는 김상헌이나, 선화후전론(先和後戰論) 우선 화의를 해 위기를 넘기고 나중에 싸우자는 최명길은 방법은 서로 달랐지만 목표는 같은 셈이었다. 야사(野史)에는 김상헌이 자손들에게 최명길의 집과 의좋게 지낼 것을 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김상헌의 후손들은 노론으로 정권 핵심 세력이 되었고, 최명길의 후손들은 양명학의 계통을 이어 소론으로 권력의 중심에서는 점차 멀어지며 대립했다.

60세가 되던 인조 23년 2월에 세자와 대군과 함께 청에서 귀환한 뒤 청주로 돌아와 진천에 머물렀다. 62세로 세상을 떠난 뒤 대율리 선영에 장사지냈다. 숙종7년(1681) 문충(文忠)이라는 시호가 내렸다. 충북 청원군 북이면 대율리(大栗里), 속칭 댓뱀이라는 마을에는 전주 최씨의 대표적 인물인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의 종택이 있다. 이곳은 본래 최명길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선영에 성묘한 뒤 산 하나 너머의 와룡천변에 초가 한 채를 짓고 여생을 보내고자 했던 유서 깊은 공간이다. 이 종택과 가까운 곳에는 선생의 묘소와 신도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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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11
■ 주화파 최명길 3편

■ 주화파 최명길 3편

양 파의 갑론을박에 고민하던 인조는 강화도에 피난해 있던 왕실 사람들이 청군에 붙들려 다 죽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어버렸다. 결국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에게 항복 문서를 쓰게 했다. 최명길이 임금의 명을 받아 항복 문서를 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김상헌은 득달같이 달려가 노기에 가득 찬 음성으로 버럭 소리를 질러 댔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서 나라가 망하는 판국에 자결하지는 못할망정, 이따위 글을 쓰고 있는 게요? 이런 더러운 글을 쓰려고 공부를 했단 말이오? 어디 후대에 길이 남을 명문장이나 한번 읽어 봅시다.”

김상헌은 최명길이 쓰고 있던 편지를 빼앗아 읽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며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김상헌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최명길은 찢어진 종잇조각이 바람에 날리자 그것을 주우며 말했다.

“대감은 찢으시오, 줍는 일은 내가 하오리다.”

최명길의 이 말에는 대단히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당시 조선을 이끌던 핵심 세력인 사대부들은 대부분이 명분에 얽매여 죽을 때 죽더라도 전쟁을 계속하자는 주의였다. 하지만 최명길의 생각은 달랐다. 전쟁의 지속은 백성들만 도탄에 빠뜨릴 뿐, 실익(實益)이 전혀 없는 무모한 도전이다. 그는 굴욕적일망정 화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또한 성리학자였으니 당연히 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최명길은 김상헌의 분노를 십분 이해했기에 본인이 쓴 편지를 찢어도 노여워하지 않았다. 자기라도 항복 문서를 써서 보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굴욕을 무릅쓰고 편지를 완성해 전쟁을 중단시키고자 하였다. 최명길은 청의 진영을 오가며 화의에 앞장섰다.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온갖 수모를 겪으며 난국(亂國)을 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척화파들은 칼을 들이대고 면전에서 그를 죽이려고 했다. 인조는 척화파(斥和派)를 누르고 주화파(主和派)인 최명길·장유 등을 감쌌다. 이런 분란 속에서 최명길은 눈물을 흘리며 항복문서를 써야 했다.

존명(尊明)의 의리(義理)를 목숨처럼 여기는 자들과 존명(尊明)의 의리(義理)를 잠시 접고 살길을 찾아보자는 자들, 어느 쪽이 나라와 백성을 위한 방책이었을까? 끝까지 목숨을 걸고 본질을 굽히지 않는 것이 ‘대의명분(大義名分)’이라면, 그 본질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방법을 바꾸어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권도(權道)’이다. 최명길의 타협적 노선도 권도였다. 치욕의 항복이 이루어지면서 전쟁이 끝났다. 어렵게 난이 끝나자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그리고 김상헌·홍익한 등 척화파가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 갔다. 포로로 끌려간 백성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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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12
■ 주화파 최명길 2편

■ 주화파 최명길 2편

그가 당론(黨論)을 조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던 중 후금의 문제가 대두하여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는 정권 유지 차원이 아니라 나라가 망하느냐 유지되느냐의 중대한 문제였다. 1620년대 중반에 들어 후금은 우리에게 형제의 맹약을 맺자고 함과 동시에 명나라에 등을 돌려 후금에 협조하라는 외교적 압력을 넣었다. 조정 벼슬아치들 사이에는 후금에 맞서자는 척화론(斥和論)이 들끓었다. 이것은 광해군을 몰아낼 때 내건 명분이기도 했다.

최명길은 과감히 새로운 이론을 내세웠는데, 즉 변통(變通)의 논리였다. 변통이란 새롭게 전개되는 현실에 맞추어 때로는 명분을 굽혀서라도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명나라의 적인 후금과 겉으로는 화약을 맺고 안으로는 군대를 양성하여 앞날을 대비하면서 명에 대한 의리는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광해군이 추구한 실리외교를 조금 절충해서 ‘친명(親明)’의 관계는 유지하면서 ‘화금(和金)’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친명파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고, 끝내는 척화파의 주장대로 후금의 사신을 쫓아 보냈다.

1627년 조선으로 쳐들어온 후금의 군대를 피해 인조는 강화도로 들어갔다. 인조는 힘에 눌려 어쩔 수 없이 최명길 등의 강화 권유를 받아들여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후금의 군대가 물러난 뒤에 모든 비난의 화살이 최명길에게 쏟아졌다. 그의 정치적 위치가 흔들렸지만 인조는 그를 감싸주면서 경기관찰사로 임명하여 전후(戰後)의 일을 처리하게 했다. 일단 조정에서 한 발 물러나 있게 한 것이다.

그 뒤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조선에 “조공을 하라”거나 “청을 황제의 나라로 받들라”고 요구해 왔다. 조정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특히 1636년에 들어 청나라의 요구는 아주 강경했고, 요구를 듣지 않으면 다시 침략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최명길은 병으로 집에 누워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왕에게 ‘만언(萬言)의 상소’를 올렸다. 이것이 유명한 ‘병자봉사(丙子封事)’인데, 여기에서 그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 일단 나라를 구하고 난 뒤에 힘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주장도 조정의 척화론(斥和論)에 막혀 버렸다.

이해 겨울 청의 대군이 밀려들자, 비빈과 종친들은 강화도로 들어갔으나 인조와 조정 대신들은 미처 강화도까지 가지도 못하고 급히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했다. 남한산성에서 버티는 한 달 동안 성 안팎의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산성 안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던 조선 조정은 오랑캐의 막강 파워 앞에 전 국토가 황폐화되자 크게 당황했다. 대책을 강구하던 조정 관리들은 각자의 정치 견해에 따라 주전파=척화파와 주화파 두개로 갈라져 논쟁을 벌였다.

최명길은 별도리가 없으니 청과 화친하자는 주화파(主和派)의 리더였다. 김상헌은 전쟁을 지속해야 한다는 주전파(主戰派=斥和派)의 대표 주자로, 인조반정 이후 대사간·이조참의·도승지·대사헌을 잇달아 지낸 후 병자호란 당시에는 예조판서로 나라의 외교와 교육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최명길의 주화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오랑캐 족속인 청나라에 결코 머리를 조아려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주장이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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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13
■ 주화파 최명길 1편

■ 주화파 최명길 1편

병자호란은 우리나라 2대 전란에 속한다. 임진왜란은 7년 동안 전쟁을 치른데 비해 병자호란은 불과 40여 일이었지만 그 피해는 임진왜란과 맞먹을 정도였다. 더욱이 임진왜란 때에는 항복한 일이 없었지만 병자호란 때에는 군신(君臣)의 맹약을 맺는 치욕적인 항복이 있었다. 호란을 겪으며 이를 수습한 최명길(崔鳴吉:1586~1647)을 우리는 주화파(主和派)라고 부른다.

최명길의 아버지 최기남(崔起南)은 서인에 속한다. 최기남은 때로 정치 일선에 나서기도 했지만 정계의 중심인물은 아니었다. 최기남은 영흥부사라는 한직(閑職)을 맡기도 하는 등 가난하고 지혜가 변변치 못한 벼슬아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탓으로 그의 집안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최명길은 최기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후광은 별로 없었지만 어릴 적부터 서인 노장들을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7세 때 임진왜란을 겪었지만 남달리 총명한 그는 이 난리 중에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전쟁의 비참한 현실을 몸소 느꼈을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났을 때 그는 당대의 석학이자 대정치가인 오성 이항복과 상촌 신흠에게 본격적으로 학문을 익혔다. 그는 20세의 약관으로 초시에 합격한 뒤 연이어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들어섰다.

정계는 복잡하게 돌아갔다. 선조 말년부터 서인들은 정계에서 소외되었고, 광해군 연간에는 대북파가 득세해 서인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때 최명길의 아버지는 대북파의 정책에 맞서다가 끝내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가평 농장에서 은둔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청년 최명길도 ‘폐모론(廢母論)’의 기밀을 누설했다고 하여 조정에서 쫓겨났다. 20대 후반의 최명길은 장유·이시백 같은 벗들과 어울려 산방(山房)이나 절간을 찾아다니며 시문을 짓고 학문을 토론하며 세월을 보냈다. 특히 그는 장유와 함께 당시 이단으로 치던 양명학(陽明學)에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래의 명분을 중시하는 주자학보다 행동적이고 실천적인 양명학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그의 정치철학에 깊은 영향을 주어 그의 정치적 판단에 큰 기준이 되었다.

친구 이시백의 아버지이자 그의 아버지와 친구가 되는 이귀는 광해군을 몰아내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서인들은 새로운 결속을 다지고 정권을 잡기 위해 광해군을 몰아내는 반정을 성공시켜 정권을 잡았다. 소장세력인 최명길도 반정에 협조한 공로로 완성군(完城君)이라는 공신 봉호를 받았다. 그는 반정을 계기로 다시 조정에 나와 인사권을 쥔 이조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단숨에 이조좌랑에서 이조참판까지 올라 세력을 얻었고, 반정 다음 해인 1624년 이괄의 난 때에는 장인인 도원수 장만을 도와 큰 공을 세움으로써 그는 정계의 핵심인물로 떠올랐다. 최명길은 대동법 시행, 양전(量田) 추진, 부세와 군제 개혁, 서자들의 관계 진출 등의 일에 앞장섰고, 크고 작은 정책도 조정에 건의했다. 특히 반정 뒤에도 공(功)을 놓고 서인들이 또다시 분열하여 당쟁이 일어나자, 최명길은 양쪽의 조정에 힘썼다. 그가 이때 주장한 것이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이다. 둘 다 옳은 점이 있고 둘 다 그른 점이 있으므로 이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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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13
아심여칭我心如秤 - 내 마음이 저울과 같다.

아심여칭(我心如秤) - 내 마음이 저울과 같다.

나 아(戈-3) 마음 심(心-0) 같을 여(女-3) 저울 칭(禾-5)

"눈이 저울이라"는 말이 있다. 눈으로 보아 짐작한 것이 저울로 단 것처럼 잘 들어맞았다는 의미다. 이처럼 잘 맞추면 저울이 필요 없겠지만 그렇지 못해 분란이 일어난다. 고대 로마의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치아(Justitia)에서 오늘날 정의(Justice)가 나왔다. 정의의 여신상은 대개 한 손에 저울, 다른 한 손에 칼을 쥐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는데 저울은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아 그만큼 공평하게 다툼을 해결하는 잣대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마음(我心)이 마치 저울과 같다(如秤)는 이 말은 모든 일에 공평무사해서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익을 개입시켜 처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성어가 蜀(촉)나라의 뛰어난 지략가 諸葛亮(제갈량)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더욱 그럴듯하다. 이름보다 字(자)인 孔明(공명)으로, 또 臥龍(와룡)선생으로 잘 알려진 제갈량은 상벌을 공정하게 시행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그가 저울처럼 공명정대하게 법을 시행한 대표적인 사례가 장수 馬謖(마속)을 패전 책임을 물어 참형한 泣斬馬謖(읍참마속)이다.

마속은 절친한 친구 馬良(마량)의 동생이기에 더욱 쓰라렸지만 사사로운 정에 흔들리지 않았다. 조그만 선행이라 하여 상주지 않는 일이 없고, 작은 악행이라 하여 문책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내 마음은 저울과 같아서 사람들에 대하여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도록 처리한다(我心如秤 不能爲人作輕重/ 아심여칭 불능위인작경중)." 이러한 제갈량의 "雜言(잡언)"을 馮堂書鈔(풍당서초)라는 책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또 明(명)나라 때의 "楊升菴集(양승암집)"이란 책에는 제갈량이 말한 것으로 나오는 "내 마음은 저울처럼 공정해서 능히 사람들은 고개 숙이거나 하늘을 우러러보게 할 수 없다(我心如秤 不能爲人作低昻/ 아심여칭 불능위인작저앙)"는 것으로 되어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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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14
춘잠도사 사방진春蠶到死 絲方盡 - 봄누에는 죽어서야 실뽑기를 멈춘다, 연인을 향한 변치 않는 애정

춘잠도사 사방진(春蠶到死 絲方盡) - 봄누에는 죽어서야 실뽑기를 멈춘다, 연인을 향한 변치 않는 애정

봄 춘(日/5) 누에 잠(虫/18) 이를 도(刂/6) 죽을 사(歹/2) 실 사(糸/6) 모 방(方/0) 다할 진(皿/9)

말이나 글을 다듬고 꾸며 보다 아름답게 나타내는 修辭(수사) 중에서도 隱喩(은유)는 ‘내 마음은 호수’ 식으로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적으로 표현해 이해가 어렵다. 직접적으로 주제를 드러내지 않고 암시적으로 나타내어 모호하고 난해한 시를 象徵詩(상징시)나 朦朧詩(몽롱시)라고도 한다.

詩(시)의 시대였던 중국의 唐(당)나라에서도 후기의 李商隱(이상은, 812~858)은 특히 복합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한 시인으로 유명하다. 문구가 아름답고 음조가 멋지더라도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시가 많지만 창작 기교 발전에는 큰 공헌을 했다는 평도 받는다.

삭막한 풍경이나 꼴불견 행위를 꼬집은 殺風景(살풍경)을 처음 나열한 사람이기도 한 이상은의 시 ‘無題(무제)’는 그 중에서도 많이 알려졌다. 봄철의 누에는 죽은 뒤에라야(春蠶到死) 비로소 실뽑기를 멈춘다(絲方盡)는 구절이 나오는 시다.

목숨을 다할 때까지 연인을 향한 굳은 애정은 변치 않는다는 지고의 사랑을 나타냈다. 죽을 때까지 누에가 뽑는 실 絲(사)는 생각 思(사)와 음이 같아 이같이 다른 글자의 뜻도 함께 갖는 말을 雙關語(쌍관어)라 한다는데 은유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 시의 다른 부분도 살펴보자.

봄철 누에 앞 구절은 ‘만날 때도 어렵더니 이별 또한 괴롭구나(相見時難別亦難/ 상견시난별역난), 봄바람이 잦아들자 온갖 꽃이 다 시든다(東風無力百花殘/ 동풍무력백화잔)’는 어쩔 수없이 헤어져야 하는 무력감을 나타냈다. ‘春蠶到死絲方盡(춘잠도사사방진)’에 이어지는 ‘촛불은 재가 되어서야 비로소 눈물이 마르네(蠟炬成灰淚始乾/ 납거성회루시건)’에도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안간힘을 다해 사랑을 지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蠟은 밀 랍, 炬는 횃불 거, 납거는 밀랍으로 만든 양초를 말한다. 이상은의 이런 표현은 애정을 노래하고 있으면서도 대상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드러나지 않는다.

누에가 실뽑기를 그칠 때까지, 양초가 눈물이 마를 때까지 어떤 일을 하겠다는 표현은 굳은 의지를 나타내기에 적합하다. 맡은 일을 끝까지 완수하겠다거나 나라를 위해서 온 몸을 바쳐 수호하겠다면 좋을 텐데 연애시 이외에는 별로 인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 순간의 풋사랑이 아닌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위해서는 이런 다짐이 더욱 필요할 수도 있겠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殉愛(순애)의 이야기는 삭막한 현실이 아닌 고전에만 보이니 말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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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15
구동존이求同存異 - 같은 점은 구하고 차이점은 그대로 두다.

구동존이(求同存異) - 같은 점은 구하고 차이점은 그대로 두다.

구할 구(氺/2) 한가지 동(口/3) 있을 존(子/3) 다를 이(田/6)

한 단체가 일을 처리할 때 의견의 일치를 보아 一絲不亂(일사불란)하게 나가면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독재가 아닌 이상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이 똑 같을 수는 없다. 차츰 의견을 집약하여 최종의 결론을 낼 때 좋은 결과를 얻고 다른 일을 해결할 때 건설적인 의견이 줄을 잇는다. 공통점은 구하고(求同) 차이점은 그대로 둔다(存異)는 이 말은 다른 의견도 강요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중국의 협상전술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중국이 개방하기 전 국력이 약했을 때 韜光養晦(도광양회, 韜는 감출 도) 정책을 폈다. 칼날의 빛을 숨기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데서 나왔다. 함부로 대국에 도발하지 말고 내실을 길러야 한다는 덩샤오핑(鄧小平)의 훈시였다.

그러다 국력이 눈에 띄게 커지자 세계평화를 지지하면서 대국으로 발전하겠다는 和平崛起(화평굴기, 崛은 우뚝솟을 굴)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有所作爲(유소작위)를 넘어 이제는 사드사태에서 한국에 보인대로 안하무인의 大國崛起(대국굴기)까지 달려왔다.

세계의 중심이라 자부하는 중국도 세력이 약했던 1955년에는 이러지 않았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열렸던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에서 부주석이었던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가 처음 차이점을 인정하는 이 성어를 연설로 밝혔다고 하니 말이다.

큰 틀에서 상대방도 나와 같은 생각이니 지엽적인 문제는 뒤로 하고 의견을 같이 하는 분야부터 협력하자는 것이니 적대적인 나라라도 협상에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실리에 밝은 유연한 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성어는 큰 틀에서 보아 상대방과 같은 것은 취하고 다른 것은 작은 관점의 차이라 차츰 해결하자는 중국의 격언 求大同存小異(구대동존소이)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덩치가 커진 중국은 이런 자세에서 벌써 벗어나, 한국을 중국의 일부였다고 하는 시진핑(習近平)은 주변 각국과 충돌을 일삼는다.

이렇게 거침없이 상대를 꾸짖고 핍박하는 咄咄逼人(돌돌핍인, 咄은 꾸짖을 돌, 逼은 핍박할 핍)을 일삼아서는 세계의 지도국이 될 수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250.html
kolaswqetsrq 11.02 17:15
천지불인天地不仁 -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다, 간섭 않고 자연 그대로 두다.

천지불인(天地不仁) -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다, 간섭 않고 자연 그대로 두다.

하늘 천(大/1) 따 지(土/3) 아닐 불(一/3) 어질 인(亻/2)

하늘과 땅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베풀어준다. 하늘은 햇빛을 비춰주고 비를 내리며 땅은 식물의 생장을 도와 식량의 공급을 돕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天神(천신)과 地神(지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낸다. 서양의 유명한 격언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는 말에는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않고 스스로 노력해야 성공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노력을 강조한 것이지 실제로 하늘이 개개인을 돕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늘과 땅(天地)이 어질지 못하다(不仁)는 이 성어는 하나하나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행할 뿐이란 의미다.

중국 道家(도가)의 시조인 老子(노자)의 ‘道德經(도덕경)‘에 등장하는 말이다. 제5장 虛用章(허용장)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하늘과 땅은 어질지 못하여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芻(추)는 가축에 먹이는 마른 풀, 꼴을 말하고 이것으로 만든 개가 芻狗(추구)인데 옛날 중국에서 제사 지낼 때 썼던 것이라 한다.

제사 후에는 밟히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하늘이 어질지 못하고 비정하여 만물을 되는대로 방치한다고 볼 수 있는 면이다. 하지만 無爲自然(무위자연)을 존중한 노자답게 천지가 그 안에 존재하는 만물에게 사랑이나 미움을 전할 리는 없어 무심하게 보인다고 해석하는 편이 더 닿는다.

천지가 자연에 맡겨 인위도 없고 조작도 없이 평등하게 대하니 不仁(불인)이고 그로인해 만물이 질서를 유지하게 된다는 풀이다. 이어지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성인이 어질지 못하여 백성을 추구로 여긴다(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고 한 것은 성인을 권력자로 보아 백성에 군림하는 존재만 아니다.

하늘이 햇빛을 비추거나 비를 내려도 생장을 돕거나 해치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백성을 아끼는 군주라면 세세하게 억압하고 간섭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훌륭한 정치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하늘과 땅은 자연 그대로 움직이고 그 사이의 만물도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그대로 두어 어질다거나 세세하게 간섭하여 그렇지 않다거나 멋대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크고 작은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의 경우 부하들에 공평무사하게 대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개인적인 관심과 사랑을 기울일 수는 없고 오히려 그것을 간섭이라고 싫어하는 사람도 나온다.

큰 틀을 만들고 거기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모른 채 무심하게 대하는 것이 더 효율을 가져올 수 있다. 진정으로 큰 인자함은 어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莊子(장자)의 大仁不仁(대인불인)을 생각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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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16
계전오엽 이추성階前梧葉 已秋聲 - 섬돌 앞 오동나무 잎은 벌써 가을소리

계전오엽 이추성(階前梧葉 已秋聲) - 섬돌 앞 오동나무 잎은 벌써 가을소리

섬돌 계(阝/9) 앞 전(刂/7) 오동나무 오(木/7) 잎 엽(艹/9) 이미 이(己/0) 가을 추(禾/4) 소리 성(耳/11)

무척 무더웠던 여름을 보낸 지 얼마 안 돼 무르익은 가을을 즐길 때쯤 벌써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축대에서 디디는 섬돌 앞의 오동나무 잎에서 벌써 가을소리가 난다는 이 구절은 朱子(주자)의 권학시 ‘偶成(우성)’의 마지막 부분이다. 첫 구가 바로 유명한 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로학난성)이다. 우연히 지었다는 이 시는 가을소리로 앞세웠을 뿐 계절을 말한 것은 아니다.

세월이 빨리 지나기 때문에 젊은이는 금방 늙는데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그때그때를 놓치지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勸學文(권학문)이다. 우리나라서도 지난 날 많은 학생이 암송했을 정도로 좋아했던 시이기도 하다.

중국 南宋(남송)의 대유학자 朱熹(주희)는 처음 불교와 도교에도 흥미를 가졌다가 20대 중반 유학에 복귀하여 주자로 불리며 주자학을 집대성했다. 주자의 이 시는 모두 4개의 구로 되어 간단하다. 하나하나가 독립된 명구로 세월의 덧없음과 젊은이에 시간을 아껴 학문에 힘쓸 것을 권장하고 있다.

전문을 보자. ‘소년은 금방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못가에 돋은 풀들이 봄꿈에서 깨기도 전에, 섬돌 앞 오동나무 잎 벌써 가을소리로구나(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소년이로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 미각지당춘초몽 계전오엽이추성).’ 塘은 못 당.

산문으로 된 주자의 권학문이 더 있다. 더 직설적으로 깨우친다.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이르지 말며, 금년에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세월은 흘러가기만 하고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아, 이미 늙었구나. 이 누구의 탓인가?(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日月逝矣 歲不我延 嗚呼老矣 是誰之愆/ 물위금일불학이유내일 물위금년불학이유내년 일월서의 세불아연 오호노의 시수지건).’ 愆은 허물 건.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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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17
고처불승한高處不勝寒 - 높은 곳에선 추위를 이기지 못한다, 지위가 오르면 시기와 모함이 따른다.

고처불승한(高處不勝寒) - 높은 곳에선 추위를 이기지 못한다, 지위가 오르면 시기와 모함이 따른다.

높을 고(高/0) 곳 처(虍/5) 아닐 불(一/3) 이길 승(力/10) 찰 한(宀/9)

사람들은 높은 곳을 좋아한다.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고, 아는 것이 많고 등등 남보다 앞서기 위해 평생을 경쟁한다. 고지를 오르는 모험가 힐러리(Hillary)경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오른다’고 통달한 말을 남겼지만 아무래도 세인들은 상봉을 정복했을 때 등산의 기쁨을 느낀다. 그런데 오르고 또 올라 더 오를 데가 없는 하늘의 용 亢龍(항룡)은 행복할까.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엔 떨어질 일만 남아 후회하게 된다는 亢龍有悔(항룡유회)란 말로 보아 더욱 조심스러우니 좋지만은 않다. 같은 의미로 널리 알려진 시구가 높은 곳에서는(高處) 추위를 이기지 못할까 두렵다(不勝寒)는 이 성어다.

東坡(동파)란 아호로 더 잘 알려진 蘇軾(소식, 1036~1101)의 작품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 北宋(북송) 최고의 시인이자 문장가인 그는 부친 蘇洵(소순), 아우 蘇轍(소철)과 함께 三蘇(삼소)로 불리며 삼부자가 모두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 들어가는 희귀한 기록도 가졌다. 문학의 모든 장르에 능통했던 동파는 관운은 불운했다.

당시 新法(신법)으로 세력을 떨친 王安石(왕안석)에 반대했다가 지방으로 전전했다. 密州(밀주)란 지역의 지사일 때 중추절을 맞아 재해로 백성의 생활은 피폐하고, 7년이나 떨어져 못 본 동생도 그립고 하여 ‘水調歌頭(수조가두)’를 지었다. 운문의 일종으로 시보다 복잡한 형식인 詞(사)로 노래했다.

처음 이렇게 시작한다. ‘밝은 달 언제부터 있었을까, 술잔 들어 하늘에 묻는다(明月幾時有 把酒問靑天/ 명월기시유 파주문청천).’ 李白(이백)의 술잔 잡고 하늘에 묻는다(把酒問月/ 파주문월)를 연상시키는 도입이다. ‘나는 바람 타고 돌아가고 싶지만, 옥으로 된 화려한 궁전에는 두려워, 높은 곳에서는 더욱 춥겠지(我欲乘風歸去 又恐瓊樓玉宇 高處不勝寒/ 아욕승풍귀거 우공경루옥우 고처불승한).

’ 옛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만 모략 판치는 곳에 돌아가기도 또한 두렵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동생에게 원한다. ‘그저 바라는 것은 우리 오래 살아서, 멀리서도 고운 달을 함께 보자꾸나(但願人長久 千里共嬋娟/ 단원인장구 천리공선연).’ 嬋은 고울 선, 娟은 예쁠 연. 嬋娟(선연)은 미인 또는 아름다운 달을 비유했다.

유능한 인재를 三顧草廬(삼고초려)하여 초빙하고 일을 맡겼으면 주변의 잡음을 잘 물리쳐야 한다. 지위가 높아지면 남들의 시기와 모략이 따르고 본인은 외롭고 두려움을 느낀다. 나무에 올려놓고 흔드는 자가 필히 나타나는 勸上搖木(권상요목)이다. 그러니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는 날아가길 꺼린다.

어진 사람에게 지위를 양보해 준다는 推賢讓能(추현양능)과 같이 끝까지 신임하지 않으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단지 이 삶이 오래 이어지도록 원한다는 但願人長久(단원인장구)는 애틋한 사랑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748.html
kolaswqetsrq 11.02 17:17
독선기신獨善其身 - 홀로 자기 한 몸의 선만을 꾀하다.

독선기신(獨善其身) - 홀로 자기 한 몸의 선만을 꾀하다.

홀로 독(犭/13) 착할 선(口/9) 그 기(八/6) 몸 신(身/0)

사람이 홀로 처지가 딱하고 외롭게 되었을 때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군자는 혼자 있을 때 삼가고, 소인배는 한가할 때 착하지 못한 일을 저지른다(小人閒居爲不善/ 소인한거위불선)고 했다. 大學(대학)에 나오는 글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삼가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두려워해야 군자라고 中庸(중용)에서도 가르친다.

홀로 있을 때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간다는 愼獨(신독)이란 말도 있다. 완전한 인격체라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문 오늘날 일반 사람들은 그저 마음을 닦는 좋은 말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孟子(맹자)는 같은 맥락으로 홀로 어렵게 되었을 때 의를 지켜야 한다는 이 성어를 남겼다. 盡心上(진심상)에 나오는 내용을 간단히 보자. 宋句踐(송구천)이란 사람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남이 자신을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자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어떻게 만족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맹자가 답한다.

덕을 존중하고 의리를 즐겁게 여기면 초연할 수 있다며 선비는 곤궁한 상황에 처해도 의를 잃지 않고, 출세해서도 도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홀로 자신의 몸을 선하게 하고, 영달하게 되면 함께 천하 사람들을 이롭게 했다(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 궁즉독선기신 달즉겸선천하)’고 덧붙인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곤궁할 때 홀로 자신을 수양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녔다. 그런데 살아가는데 좌절과 실패, 일이 잘 안 풀릴 때와 맞닥치면 성인처럼 몸을 닦기가 어려워서인지 이 말의 앞 글자 窮則(궁즉)을 빼고서 완전히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됐다. 남이야 형편이 궁하든 말든 돌보지 않고 자기 한 몸의 편안함만을 꾀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변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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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18
수처작주隨處作主 - 어느 곳이든 주인이 된다.

수처작주(隨處作主) - 어느 곳이든 주인이 된다.

따를 수(阝/13) 곳 처(虍/5) 지을 작(亻/5) 주인 주(主/0)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자기 자신이다. 동물까지도 그렇다. ‘어떤 여우도 자기 꼬리를 자랑한다’는 몽고 속담이 말해준다. 아무리 남을 위하고 도와주는 것을 천직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자기가 있고 난 연후에 가능하다.

우주 가운데 자기보다 더 존귀한 존재는 없다는 唯我獨尊(유아독존)은 석가모니가 처음 태어났을 때 한 말이라 한다. 이런 말을 믿고 세상에서 자기 혼자 잘 났다고 뽐낸다면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부처님은 자기의 육체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天上天下(천상천하)의 모든 생명이 존귀하다는 뜻의 말씀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귀중한 존재라면 어느 곳에 가더라도(隨處) 주인이 되라(作主)고 한 좋은 말도 불교 어록에서 나왔다. 중국 唐(당)나라의 선승 義玄(의현)선사는 禪宗(선종)의 한 파인 臨濟宗(임제종)을 융성시켰다는 평을 듣는다.

스님이 입적한 후 제자 三聖慧然(삼성혜연)이 스승의 언행을 모아 수록한 ‘臨濟錄(임제록)’에 이 성어가 들어 있다. 이어지는 말은 어디를 가든지 주인이 된다면 立處皆眞(입처개진)이라며 서 있는 그곳이 바로 진리의 자리라고 깨우친다. 어디에 가더라도 주체적으로 살고 어디서나 주인 노릇을 할 때 하는 일이 온전한 나의 일이 되고 삶이 될 수 있다고 풀이한다. 隨處爲主(수처위주)라고도 한다.

앞뒤 내용을 더 살펴보자. ‘밖을 향해서 공부하지 말라, 그것은 어리석은 자의 짓일 뿐이다(向外作工夫 總是癡頑漢/ 향외작공부 총시치완한), 그대들이 어디를 가나 주인이 된다면, 서 있는 곳마다 그대로가 모두 참된 것이 된다(爾且隨處作主 立處皆眞/ 이차수처작주 입처개진), 어떤 경계가 다가온다 해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境來回換不得/ 경내회환부득).’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행동하면 그 자리가 행복을 가져 온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보면 주변 환경이 어렵더라도 자신이 만족하여 사는 곳이 제일이라는 당나라 시인 劉禹錫(유우석)은 陋室銘(누실명)의 구절과 통한다. ‘이 집은 누추하더라도 덕이 있어 향기롭다(斯是陋室 唯吾德馨/ 사시누실 유오덕형).’

어느 곳에나 주체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는 주인의식을 갖는다면 그 사람이 속한 단체나 조직은 발전할 것이다. 주인이 된 마음자세는 무엇에 의지하지 않고 행동하며 잘 안 되더라도 핑계를 대지 않아야 빨리 일을 익히고 성공할 수 있다. 지금 있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평만 늘어놓는다면 상황을 벗어나는 시간만 지연될 뿐이다. 주인의식을 가질 곳도 없다고 환경만 탓해서는 있는 곳이 진리가 아니고 행복이 멀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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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19
견리망의見利忘義 - 이익을 보고서 의리를 잊다.

견리망의(見利忘義) - 이익을 보고서 의리를 잊다.

볼 견(見/0) 이할 리(刀/5) 잊을 망(心/3) 옳을 의(羊/7)

무엇을 보고 어떻게 하라는 많은 말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孔子(공자)님 말씀이다.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기를 보면 목숨을 바친다(見利思義 見危授命/ 견리사의 견위수명)’란 論語(논어) 憲問(헌문)편의 글귀는 安重根(안중근) 의사의 유묵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이외에도 착한 것을 보면 목마른 것같이 적극적으로 하라는 見善如渴(견선여갈)과 옳은 일을 보면 용감하게 나서야 한다는 見義勇爲(견의용위)도 있다. 하나같이 좋은 의미의 성어인데 눈앞의 이익을 보고선(見利) 의리를 잊어버린다(忘義)는 고약한 말도 있다.

이 말은 後漢(후한) 초기 역사가 班固(반고)가 20년에 걸쳐 쓴 대작 ‘漢書(한서)’에서 유래했다.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을 도와 큰 공을 세운 酈商(역상, 酈은 땅이름 역)전에서다. 역상이라 하면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기라는 以食爲天(이식위천) 명언을 남긴 酈食其(역이기)의 아우이기도 하다. 項羽(항우)와의 전투에서도 힘을 보탰지만 유방이 통일한 후 일어난 반란을 평정한 공이 인정돼 열후에 봉해졌고 우승상으로 임명됐다.

유방이 죽자 왕후 呂太后(여태후)가 실권을 잡고 여씨 일족을 요직에 등용시키는 등 전횡에 나섰다. 여태후는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하는데 큰 힘이 되었고 통일한 뒤에도 韓信(한신)이나 彭越(팽월) 같은 명신을 제거하여 왕권을 튼튼히 했다는 평도 받는다.

하지만 아들 惠帝(혜제)가 즉위한 뒤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러 조카 呂祿(여록)에게 군사력을 맡겼다. 공신 陳平(진평)과 周勃(주발) 등은 유방의 후손만을 왕으로 책봉하라는 유훈을 지키기 위해 여씨를 없앨 궁리를 했으나 군권을 가진 여록이 문제였다. 여록은 역상의 아들 酈寄(역기)와 절친했다.

진평 등 공신들은 역상에게 아들 역기를 시켜 친구 여록을 사냥을 구실로 유인하게 했다. 이 틈을 타 명신들이 군대를 장악하고 요직에 있던 여씨들을 모두 제거했다. 역상전에는 역기를 ‘친구를 팔아먹었으며 이익에 눈이 어두워 도의를 잊은 행위라 일컫는다(賣友者 謂見利而忘義/ 매우자 위견리이망의)’고 기록했다. 酈寄賣友(역기매우)란 고사도 함께 유래했다.

친구를 유인하여 죽음으로 이르게 한 역기의 행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해도 이후 고조의 차남 劉恒(유항)이 文帝(문제)로 즉위하여 정통성을 찾는 데는 도움이 됐다. 대의를 위해 이익을 취할 때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눈앞의 조그만 이익에 급급한 보통 사람들은 깊이 생각할 말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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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19
춘소일각 치천금春宵一刻 値千金 – 봄밤의 한 순간은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

춘소일각 치천금(春宵一刻 値千金) – 봄밤의 한 순간은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

봄 춘(日/5) 밤 소(宀/7) 한 일(一/0) 새길 각(刂/6) 값 치(亻/8) 일천 천(十/1) 쇠 금(金/0)

봄은 만물이 약동하는 희망의 계절인 만큼 모두를 부풀게 하지만, 소리 없이 왔다가 총총 사라져 안타까움도 준다. 그래서 이 땅에 이르는 봄에는 준비 기간이 없다면서 길고 음침한 겨울, 모두 안일의 꿈에 잠겨 있을 때 어디선가 노고지리의 소리가 들리면 벌써 봄이라 했다(김동인). 남보다 앞선 감각을 지닌 시인들도 느끼지 못할 만큼 봄은 살짝 오는가 보다. 宋(송)나라 戴益(대익)이란 시인은 온종일 봄을 찾아 다녀도 만나지 못하다가 우연히 돌아오는 길 매화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있었다고 探春(탐춘)에서 노래했다.

봄이 왔다고 모두 마음이 들뜰라치면 벌써 따가운 햇볕에 그늘을 찾게 될 만큼 봄은 사라지기 바쁘다. 그것은 긴긴 겨울밤 잠 못 이루던 기억이 얼마 안가 조금 잠을 설쳤다 하면 동녘이 밝아올 정도로 짧아졌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이럴 때를 잘 비유한 구절이 蘇東坡(소동파, 1036~1101)의 봄밤의 한 순간(春宵一刻)은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値千金)는 ‘春夜(춘야)’라는 시다.

이름이 軾(식)인 동파는 宋(송)나라 문장가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자 부친 洵(순), 아우 轍(철)과 함께 三蘇(삼소)로 불린다. 봄날 밤의 한가롭고 아름다운 경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빼어나다고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칠언절구로 된 전문을 보자. ‘봄날 밤의 한 순간은 천금의 값어치가 있으니, 꽃에는 맑은 향기 있고 딸 뜨니 그림자진다, 노랫소리 피리소리 울리던 누대도 고요한데, 그네 타던 정원에 밤은 깊어만 가네(春宵一刻値千金 花有淸香月有陰 歌管樓臺聲細細 鞦韆院落夜沈沈/ 춘소일각치천금 화유청향월유음 가관루대성세세 추천원락야침침).’ 봄밤이 아름다운 만큼 어렵게 얻은 짧은 시간도 천금처럼 아깝고 귀중하게 여겨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의미도 갖게 되었다.

오랜만에 잡은 좋은 기회는 오랫동안 유지하고 즐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기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알차고 보람 있게 시간을 보낼까 하는 것은 설계에 달렸다. 엄벙덤벙 시간만 축내다가는 호시절은 언제 왔느냐싶게 금방 간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496.html
kolaswqetsrq 11.02 17:20
치국팽선治國烹鮮 -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 간섭 않고 지켜보는 것이 최상

치국팽선(治國烹鮮) -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 간섭 않고 지켜보는 것이 최상

다스릴 치(氵/5) 나라 국(囗/8) 삶을 팽(灬/7) 고울 선(魚/6)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어떤가에 따라 백성들은 큰 영향을 받는다. 최상의 정치로 먼저 꼽히는 것이 鼓腹擊壤(고복격양)이다.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 堯(요)임금이 미복으로 시정을 살피러 나갔다. 한 노인이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면서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데 임금이 무슨 소용이랴‘고 노래 불렀다.

다스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필요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간섭을 않으면서 풍요로운 생활을 갖게 해주면 태평성대다. 나라 잘 다스리는 것(治國)을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烹鮮)는 이 성어도 성급히 하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지켜보는 것이 좋은 정치란 의미다.

老子(노자)의 ‘道德經(도덕경)’에 나오는 유명한 비유인데 이전 소개했던 若烹小鮮(약팽소선)의 다른 표현이다. 물론 실린 부분도 60장의 居位章(거위장)으로 똑 같다. 내용을 보자.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지지는 것과 같다(治大國 若烹小鮮/ 치대국 약팽소선), 도를 가지고 천하에 나아가면 귀신도 영험을 부리지 않는다(以道蒞天下 其鬼不神/ 이도리천하 기귀불신).’ 莅는 다다를 리. 조그만 생선을 구울 때 자주 뒤집으면 부서지는 것과 같이 백성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고 큰 길만 이끌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韓非子(한비자)’에는 노자를 풀이한 解老(해로)편에 이 부분을 설명한다. ‘작은 생선을 찌는데 자주 뒤집으면 윤기를 잃게 되고(烹小鮮而數撓之 則賊其澤/ 팽소선이삭요지 즉적기택), 큰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주 법을 바꾸면 백성들이 고통스러워한다(治大國而數變法 則民苦之/ 치대국이삭변법 즉민고지).’ 셈 數(수)는 이 때 자주 삭.

생선은 아니지만 ‘史記(사기)’에도 商(상)나라 건국에 공이 큰 요리사 출신 伊尹(이윤)이 음식으로 정치를 비유한 부분이 있다. ‘솥과 도마를 지고 와서 탕왕에게 맛을 예로 들며 설득하여 왕도에 이르게 했다(負鼎俎 以滋味說湯 致于王道/ 부정조 이자미설탕 치우왕도).’ 이후 湯王(탕왕)이 이윤을 기용해 상나라를 번성시켰다.

다스리는 자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편안하게 사는 것이 좋은 세상인 것과 같이 법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최상이다. 법령이 적을수록, 또 자주 안 바뀔수록 좋다. 옛날 포악한 秦(진)을 이어 漢(한)으로 통일한 劉邦(유방)은 約法三章(약법삼장)으로 살인, 상해, 절도 세 가지만 처벌하여 신망을 받았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될 수는 없어도 최소한의 법, 그 위에 수시로 바뀌지 않는 것이 지켜지면 좋다. 소수의 지지자만 믿고 법을 억지로 만들고 폐지하고 고치고 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445.html
kolaswqetsrq 11.02 17:20
계구우후鷄口牛後 -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

계구우후(鷄口牛後) -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

닭 계(鳥/10) 입 구(口/0) 소 우(牛/0) 뒤 후(彳/6)

사람이 남의 밑에서 굽실거리며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형편으로 남의 집에서 하인 살이 하는 사람도 조금만 형편이 풀리면 언젠가는 독립을 꿈꾼다. 크고 훌륭한 자의 뒤를 쫓아다니는 것보다 차라리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남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것을 잘 나타내는 속담이 있다.

‘닭의 볏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마라’, ‘쇠꼬리보다 닭대가리가 낫다’ 등이다. 언뜻 비교가 안 되지만 닭의 주둥이(鷄口)와 소의 항문을 말하는 뒤(牛後)를 붙인 이 성어도 마찬가지다.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의 뒤는 되지 말라(寧爲鷄口 無爲牛後/ 영위계구 무위우후)’는 말의 뒷부분만 잘라 썼다.

중국 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 기원전 8세기~3세기)에 활약한 諸子百家(제자백가) 중에서 縱橫家(종횡가)가 있다. 책략을 써서 국제 외교상 큰 활약을 하는 유세객을 가리키는데 ‘말 잘하기는 소진장의’란 말이 있듯이 蘇秦(소진)과 張儀(장의)가 대표한다. 스승 鬼谷子(귀곡자) 밑에서 같이 수학했지만 나가는 길은 정반대였다.

점차 세력이 커지는 秦(진)나라에 나머지 여섯 나라 楚燕齊韓魏趙(초연제한위조)가 힘을 합쳐 대항해야 한다는 合縱策(합종책)을 주장한 사람이 소진이었다. 소진은 여섯 나라의 왕들을 세 치 혀로 설득시켜 이 모든 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한나라의 宣惠王(선혜왕)에 유세할 때 소진이 이 속담을 인용했다. 소국이라고 한나라가 진을 섬긴다면 야금야금 땅을 떼어주기를 요구해 나중에는 남아있지 못하게 되고, 이후에는 군사를 동원해 멸망시키고 말 것이라며 말한다. ‘속담에 닭부리가 되더라도 소꼬리는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지금 만일 서쪽을 향해 신하로 진을 섬긴다면 소꼬리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鄙諺曰 寧爲鷄口 無爲牛後 今西面交臂而臣事秦 何異於牛後乎/ 비언왈 녕위계구 무위우후 금서면교비이신사진 하이어우후호).’ 선혜왕의 자존심을 긁어 합종에 합류하도록 했다. ‘史記(사기)’ 소진열전에 나온다.

우두머리가 돼야 한다고 분에 넘치는 욕심을 내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차근차근 실력을 닦아 큰 자리에 들어서지 않고 처음부터 맹목적으로 큰판을 펼쳐선 될 일도 안 된다. 젊은이들의 취업이 아주 어렵다고 하면서 건실한 중소기업까지 외면하는 것은 작은 우두머리라도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377.html
kolaswqetsrq 11.02 17:21
소연약게昭然若揭 - 해와 달처럼 명백하게 바탕이 드러나다.

소연약게(昭然若揭) - 해와 달처럼 명백하게 바탕이 드러나다.

밝을 소(日/5) 그럴 연(灬/8) 같을 약(艹/5) 걸 게(扌/9)

어떤 사실이 증거가 뚜렷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으면 ‘불을 보듯 뻔하다’란 쉬운 말보다 明若觀火(명약관화)란 성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한 꺼풀만 벗겨도 드러날 일을 아니라고 뻗댈 때 들이대면 꼼짝 못한다.

숨겼던 일이 밝게 드러나고 또 밝게 나타난다고 이중으로 강조한 彰明昭著(창명소저)란 말은 앞서 소개한 바 있다. 시간이 지나면 꺼지는 불보다 하늘의 태양이나 달 아래 둔다면 더욱 감출 수 없다. 온 세상 사람이 다 알게 뚜렷하다는 白日下(백일하)란 말대로 그 밝기가 마치(昭然) 해와 달을 걸어둔 것과 같다(若揭)는 성어다. 뒤에 日月(일월)이 생략됐다. 炤然若揭(소연약게)로도 쓴다.

道家(도가)의 중심인물 莊周(장주)는 無爲(무위)의 자연을 중시하여 인위적인 禮敎(예교)를 비틀며 부정했다. 유교의 시조인 孔子(공자)도 예외가 아니어서 ‘莊子(장자)’의 곳곳에 깎아내리는 비유가 나온다. 山木(산목) 편에는 공자가 주유천하할 때 뜻을 못 펴고 陳(진)과 蔡(채)나라 사이에서 굶주리고 있을 때 大公任(태공임, 大자가 태로도 읽힘)이란 대부가 조언한다.

공자에게 지식을 내세워 어리석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몸을 수양하여 남의 약점을 까발리면서 해와 달을 걸어놓은 듯 행동했습니다(修身以明汙 昭昭乎若揭日月而行/ 수신이명오 소소호약게일월이행).’ 汙는 더러울 오. 잘난 체 한데서 재앙이 왔다고 했다.

생명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담은 達生(달생)편에는 魯(노)나라의 현자라는 扁慶子(편경자)가 제자인 孫休(손휴)에게 깨우친다. 손휴 자신은 수양도 했고, 어려운 일에 나서는 용기도 있는데 농사지을 때는 흉년이 들었으며, 임금에게 쓰이지 않고 고향에서 배척만 당하니 억울하다고 했다.

‘그대는 자기의 지혜로서 어리석은 사람을 놀라게 했고, 자기의 행실로 남의 잘못을 밝혔구나(今汝飾知以驚愚 修身以明汚/ 금여식지이경우 수신이명오). 마치 해나 달을 받들고 가듯이 세상에 드러냈으니(昭昭乎若揭日月而行也/ 소소호약게일월이행야).’ 그러면서도 남과 같이 지내니 하늘을 원망할 수가 없다고 꾸짖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여긴다. ‘참깨가 기니 짧으니 한다’는 속담대로 구별이 되지 않는 것도 우기고, 명백한 사실도 자신이 그렇게 여긴다고 하면 그만이다. 이제는 어느 성어보다 더 유행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그대로다.

상대방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벌떼같이 모두 나서서 공격을 퍼붓다가 자기편에서 부정이 드러나면 해와 달같이 명백한 범죄라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감싼다. 이렇게 힘을 가질 때마다 제 유리한대로 흑백을 바꾼다면 정의가 살아 숨 쉴 수가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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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22
간담초월肝膽楚越 - 가까울 수도 있고 멀 수도 있다,

간담초월(肝膽楚越) - 가까울 수도 있고 멀 수도 있다,

간 간(肉/3) 쓸개 담(肉/13) 초나라 초(木/9) 넘을 월(走/5)

간(肝)과 쓸개(膽)는 바로 이웃해 있는 장기다. 옆에 있지만 하는 일은 다르다. 간이 대사를 조절하고 해독작용을 하는 반면 쓸개는 소화를 돕는다. 조금의 이익이라도 있으면 이편에 붙었다 저편에 붙었다 하는 지조 없는 사람을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고 한다. 일은 달라도 가까이 있으니 편리한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켰다.

간담을 초월한다고 하여 넘어서는 超越(초월)을 생각하기 쉽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때 남방에 위치한 楚(초)나라는 七雄(칠웅) 중의 하나인 강국이었다. 越(월)나라도 동남부를 근거로 句踐(구천) 때에는 春秋五覇(춘추오패)의 세력을 떨쳤다. 두 나라는 가까이 있었지만 사이는 좋지 않아 서로 원수처럼 여기는 사이를 비유적으로 일컫는다. 먼저 ‘莊子(장자)’의 德充符(덕충부)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자.

魯(노)나라에 刖刑(월형, 刖은 발꿈치벨 월)을 당해 발이 없는 王駘(왕태, 駘는 둔마 태)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무언으로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몰려들어 孔子(공자)와 비견될 정도였다. 제자 常季(상계)가 연유를 묻자 공자가 답한다.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간과 쓸개도 초와 월나라처럼 등질 수 있지만, 같은 관점으로 보면 만물은 모두 하나다(自其異者視之 肝膽楚越也 自其同者視之 萬物皆一也/ 자기이자시지 간담초월야 자기동자시지 만물개일야).’ 만물을 하나로 보는 사람은 득실을 따지지 않으니 왕태가 자신의 발을 잃은 것은 흙덩이 하나 떨어진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월나라와 북방의 오랑캐로 멀리 떨어진 사이라는 肝膽胡越(간담호월)이라 써도 같은 뜻이다. 前漢(전한)의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저술한 책 ‘淮南子(회남자)’에 같은 뜻으로 설명하면서 표현만 달리 했다.

간과 쓸개, 초와 월나라처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도 입장이 바뀌면 한없이 멀어질 수 있다. 또 서로 적대시했거나 관계가 없던 사람일지라도 형편에 따라서는 가까워질 수 있다. 너무 남을 믿어서도 안 되고 속마음을 다 줄 듯 털어 놓아서도 낭패를 보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다고 좋은 자리에 있을 때 별 볼일 없는 사람을 구박했다가 몇 배로 당하기도 한다. 세상사라는 것은 돌고 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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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22
교취호탈巧取豪奪 - 교묘한 수단으로 취하고 힘으로 빼앗다.

교취호탈(巧取豪奪) - 교묘한 수단으로 취하고 힘으로 빼앗다.

공교할 교(工/2) 가질 취(又/6) 호걸 호(豕/7) 빼앗을 탈(大/11)

‘눈 뜨고 도둑맞는다’란 속담은 알면서도 속거나 손해를 보는 어리석은 사람을 말한다. ‘눈 뜨고 코 베어 갈 세상’은 눈을 번연히 뜨고 있어도 손해를 끼치는 고약한 인심을 가리킨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욕하기 전에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게 하는 사람이나 남의 눈앞에서 자기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재주는 인정할 만하다.

교묘한 수단으로 남의 물건을 취하거나(巧取) 힘으로 눌러 억지로 빼앗는 것(豪奪)은 다른 사람의 귀중품을 가로채는 지탄받을 일인데, 처음 그림의 진품을 모사하여 가로챘다는 재주에서 유래한 점이 흥미롭다. 이 뜻이 확대되어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탐관오리의 포악한 행위를 규탄하는 말로도 쓴다.

중국 北宋(북송) 때의 이름난 서화가 米芾(미불, 1051~1107, 芾은 우거질 불)은 수묵화의 대가였고 서예도 王羲之(왕희지)의 서풍을 이어받았다고 할 정도로 빼어났다. 규범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고 기행을 일삼았던 그는 서화를 좋아하여 다른 사람의 명화를 빌려다가 하루 종일 본떠 그렸다. 그러고는 진본과 위조품을 갖고 주인에게 가서 ‘구분하지 못하는 새 빼돌리는 교묘한 방법으로 빼앗아 얻은 것이 아주 많았다(俾其自擇而莫辨也 巧偸豪奪 故所得爲多/ 비기자택이막변야 교투호탈 고소득위다).’ 송나라 사람들의 일화를 기록한 周煇(주휘)의 ‘淸波雜誌(청파잡지)’에 실린 내용이다. 巧偸豪奪(교투호탈)은 巧取(교취)와 같다.

東晉(동진)시대 왕희지와 서화로 쌍벽을 이루는 顧愷之(고개지, 345~406, 愷는 즐거울 개)에 관련된 일화도 있다. 그는 작품을 궤짝에다 잘 봉하여 당시의 세력가 桓玄(환현)의 집에 맡겼다. 그림에 식견이 있던 환현이 족자 뒤를 뜯고 몰래 가져갔다. 고개지는 뛰어난 그림 속의 사람은 신선으로 변한다고 생각했다.

이 일과 함께 위의 미불과 친교가 있던 시인 蘇東坡(소동파)가 시구를 남겼다. ‘교묘한 수단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은 이전부터 있었으니(巧偸豪奪古來有/ 교투호탈고래유), 누가 치호두인가 한바탕 웃네(一笑誰似痴虎頭/ 일소수사치호두).’ 痴虎頭(치호두)는 藝絶(예절), 才絶(재절), 痴絶(치절)의 三絶(삼절)로 불렸던 고개지의 자가 호두였다.

가짜 그림이라면 우리나라서도 유명한 사건이 있다. 세계적 여류화가 고 千鏡子(천경자, 1924~2015) 화백의 ‘미인도’ 이야기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던 작품이 가짜라고 본인이 주장했고, 감정 끝에 진품이라는 논란은 법원 판정까지 갔으나 여전히 믿지 않는다. 진위는 몰라도 옛날의 미불이 나타나 그렸는지 재주는 기막힌 모양이다.

어느 정도 안목이 있고 기술이 있어야 교묘하게 빼앗는 것이 가능하지만 힘으로 빼앗는 것은 무지막지하다. 이전에는 총칼로 국민을 억압하던 것을 민주화가 된 후에는 다수결이라는 표로 누른다. 어느 것이나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은 같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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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23
■ 간신 김자점 4편

■ 간신 김자점 4편

김자점은 1645년(인조 23년)에는 청나라에서 오랫동안 인질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인조가 세자빈 강씨에게 자신을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우자 앞장서서 그녀의 사사(賜死)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친청파(親淸派)인 김자점이 대표적인 친청파 강빈의 사사(賜死)를 앞장서 주장한 것은 이치에 좀 맞지 않다.

추측컨대 김자점은 친청파였지만 늘 자기가 모시는 인조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입장을 맞춤으로써 권력을 유지하려 했기 때문으로 보여 진다. 이 모습에서 김자점이 간신의 전형적인 모양새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사건으로 최명길이 조정에서 물러나자, 김자점은 좌의정에 임명되고 낙흥부원군에 봉해졌다.

그 후 김자점은 청나라의 역관 정명수, 이형장 등과 결탁하여 친청 세력을 형성하고 청나라의 후원을 얻어 권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나아가 김자점은 현재의 권세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욕심을 부리게 된다. 간신들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이다. 김자점은 손자 김세룡을 인조와 소용 조씨 소생인 효명옹주와 혼인시켜 왕실의 왕위쟁탈전까지 끼어 들었다.

1649년(인조 27년) 인조가 승하하고 봉림대군이었던 효종이 즉위하면서 김자점의 위기가 시작되었다. 김자점은 효종의 북벌정책을 반대하다가 사헌부와 사간원으로부터 탄핵을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1650년(효종 2년) 김자점은 영의정에서 파직당하고 강원도 홍천에 유배당했다.

권력의 중추에서 갑작스레 나락으로 떨어진 김자점은 효종에게 앙심을 품는다. 김자점은 역관 이형장을 통해 조선 조정의 북벌정책을 청나라에 밀고한다. 그 증거로 청나라의 연호 대신 명나라의 연호를 쓴 송시열의 장릉지문(長陵誌文)을 보냈다. 이에 분개한 청나라가 국경에 대군을 배치한 다음 조선에 사신을 보내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하지만 이경석, 이시백, 원두표가 사신을 달래 돌려보냄으로써 조선은 또 한 차례의 호란 위기를 넘겼다.

1651년(효종 2년) 12월 진사 신호와 해원부령 이영이 김자점 일가의 역모를 효종에게 고해바쳤다. 조사 결과 김자점의 아들 김식이 수어청 군사와 수원의 군대를 동원하여 정적(政敵)인 원두표, 김집, 송시열, 송준길 등을 제거하고 효종을 끌어내린 다음, 귀인 조씨의 아들 숭선군을 추대하려다 계획을 바꾸어 김자점 손자 김세룡을 옹립하려 한 음모가 낱낱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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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실이라면 김자점은 반정(反正)정도가 아니라 나라를 새로 세울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에는 김자점의 역모가 너무 허술했다. 김자점 난이라고 까지 불리는 역모는 어쩌면 친청파이자 강력한 정적이었던 김자점을 영원히 제거하기 위한 송시열 등의 친명사대주의자들이 꾸민 음모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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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 과정에서 귀인 조씨가 장렬왕후와 자신의 며느리이기도 한 숭선군부인 신씨를 저주한 사건까지 드러나고 말았다. 의금부로 압송된 김자점은 국문(鞫問)을 당한 뒤 12월 17일 능지처참에 처해졌다. 당시 그의 나이 63세였다. 김자점과 공모한 귀인 조씨는 사약을 받았고, 손부 효명옹주는 섬으로 유배되었다.

아들 김련은 형문을 받던 중 옥사한다. 그의 모친과 처, 첩 등은 모두 노비로 끌려갔다. 경기도 이천군 백족산에 있던 그의 아버지 김함의 묘소와 선산 분묘도 모두 파헤쳐져서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그 후 역적의 가문으로 손가락질 받게 된 김자점 일가는 뿔뿔이 흩어졌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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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24
■ 간신 김자점 3편

■ 간신 김자점 3편

병자호란 이후 김자점은 도원수로서의 전략적 실수를 범한 죄로 유배를 가고 죽을 위기에 몰렸지만, 인조는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삼전도의 치욕으로 권위를 잃은 인조에겐 김자점간은 충복(忠僕)이 필요했던 것이다. 김자점은 아니나 다를까 재빠르게 친청파(親淸派)로 변신해 조정 중신들을 제압했고, 그가 후원하는 소용 조씨도 인조의 안방을 차지하면서 인조의 최측근이 되었다.

소용 조씨의 딸 효명옹주를 자신의 손자며느리로 삼으며 김자점의 권력은 더 강화됐지만, 아울러 백성들의 지탄도 높아져 갔다. 하지만, 김자점은 백성들의 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유배지에서 고초를 겪다가 가까스로 조정에 복귀한 만큼 김자점은 최명길을 비롯한 정적들의 공세가 거세질수록 암중모색(暗中摸索)하면서 재기의 기회를 노렸다.

이후 김자점의 벼슬길이 쭉쭉 열리게 된다. 1642년(인조 20년)에 병조판서, 이듬해에는 판의금부사에 임명되었고, 우의정과 어영청도제조 등을 역임하고 청나라에 진사사(陳謝使) 겸 사은사(謝恩使)로 연경에 다녀왔다. 청나라를 다녀 온 김자점은 청나라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통일한 것이 현실인 이상 조선도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청을 대국으로 섬겨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아주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이 점에서 김자점의 현실적 외교 안목에 대해서는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시국관(時局觀)은 훗날 그를 반역자로 지칭(指稱)하고 오늘날까지도 조선 최대의 간신으로 낙인찍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김자점이 다소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정사(正史)와 야사(野史) 어디에도 김자점에 대해 좋은 점을 기록한 문서가 거의 없다. 유일하게 야사에 김자점이 조선에 온돌을 장려하고 확대 배급했다는 언급이 있다. 그것도 김자점의 온돌배급정책 때문에 산림이 크게 훼손되었다며 김자점을 비난하는 글이었다.

1644년(인조 22년) 김자점과 같은 반정공신으로 좌의정 겸 남한산성 수어사였던 심기원의 모반사건이 터져 조정이 분란에 휩싸였다. 심기원은 인조반정의 1등공신으로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공을 세워 요직에 임명되었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능지처참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청나라에 잡혀가 있던 임경업도 소환되어 고문으로 악형을 받은 끝에 목숨을 잃었다. 이때 김자점은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항간에 그가 역모를 조작했다는 풍문이 자자했다.

소현세자의 죽음(1645), 세자빈 강씨의 사사(1646), 임경업의 주살(1646) 등 의혹 짙은 사건이 이어지자 김자점에 대한 여론도 악화되었다. 특히 김자점에게 명장 임경업의 죽음은 치명적이었다. 당시 민심은 ‘군사력을 키워 청에게 복수하자’던 명장 임경업에게 극히 동정적이었기 때문이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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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24
■ 간신 김자점 2편

■ 간신 김자점 2편

김자점은 선조 때 문벌을 배경으로 과거를 거치지 않고 음서를 통해 병조좌랑이 되었다. 병조좌랑은 정6품으로 군사에 관한 일과 무관 선발의 직무를 담당하는 요직 중 요직이었다. 음서출신이 이런 요직을 맡기는 힘든 일이었는데, 김자점이 맡은 것을 보니 당시 왕이나 조정대신들에게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성미가 모질고 사나웠으며, 완벽주의자로 일처리가 엄하고 급했으므로 부하직원들이 그를 호랑이처럼 두려워했다.』 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보아 무능은 했을지 모르지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도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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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벼슬길에서 승승장구하던 김자점은 광해군 시절 대북파가 주도한 계축옥사 때 동료 서인들과 함께 대북파의 조치에 반발했다가 조정에서 쫓겨났다. 쫒겨난 서인들은 대북파의 탄압이 더 가중되자 ‘폐모살제(廢母殺弟)’와 친금배명 정책을 하는 광해군을 내쳐야한다는 명분으로 반정을 모의하기에 이른다. 이때 김자점은 서인의 핵심 요인이었던 최명길, 심기원과 함께 사돈인 이귀까지 포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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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1623년(광해군 15년) 김자점은 공조 정랑으로 복귀했는데, 항간에는 그와 이귀가 인목대비(영창대군의 母)를 내세우고 역모를 꾸민다는 풍문이 돌았다. 그 무렵 광해군은 역모에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로 정사(政事)를 등한시하고 있었다. 김자점은 자기의 제수씨(이귀의 며느리)를 통해 광해군이 총애하던 김개시에게 접근하게 하고 김개시에게 뇌물공세를 펼침으로써 역모 소문을 잠재웠다.

운명의 3월 13일, 김자점은 수하들을 이끌고 홍제원에 나아가 이괄의 군사와 합류한 다음 세검정에서 평산 부사 이귀, 효성령별장 김류, 최명길 등과 연합하여 궁궐로 진격해 인조반정을 성공시킨다. 인조반정 직후 김자점은 당시 호위대장이 된 신경진의 종사관으로 임명되었다가 곧바로 호조 좌랑을 거쳐 그해 9월에는 승정원 동부승지로 특별 승진하기에 이른다. 아울러 반정을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아 1등 정사공신에 임명되었다.

1624년(인조 2년) 김자점이 승지로 임명되고 나서 얼마 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부원수 이괄이 반란을 일으켰다. 궁지에 몰린 인조가 공주로 도망칠 때 김자점은 인조를 공주까지 호종(護從)했다가 장만과 임경업의 활약으로 이괄의 난이 진압되자 한양으로 되돌아왔다.

한양으로 되돌아와 인조가 세자빈으로 윤의립의 딸을 물망에 올리자 이에 반대를 하다가 실각의 위기에 처했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이 위기를 간신히 넘긴다. 1627년 1월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그는 강화도로 인조를 호송한 공로로 순검사(巡檢使)를 거쳐 임진수어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김자점은 승승장구하여 1630년에는 한성부 판윤에 상의원 제조 겸 구관청 당상에 임명되었다.

1633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계속되는 청의 군사적 위협 속에 도원수(都元帥)에 올라 군부를 책임지고 있던 김자점은 여러 번의 전략적 실수를 한다. 정예병을 큰 길에서 벗어난 산성에 주둔시키는 전략을 택한 결과 병자호란 때 청군은 임경업 장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을 피해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대로로 진격해 한양을 점령했다. 심지어 김자점 본인도 황해도 토산에 정병(正兵)을 주둔해 놓고 교전을 피하고 있었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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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25
■ 간신 김자점 1편

■ 간신 김자점 1편

조선시대 3대 간신(奸臣)을 꼽아보라고 하면 학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김자점은 대체로 빠지지 않고 세 손가락에 꼽힌다. ‘간신’이란 비열하고 배신을 일삼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들은 대체로 머리가 비상하게 잘 돌아가는 사람이기도 하다. 간신은 머리가 좋아 눈치가 아주 빨라야 하고, 임기응변에도 능해 처세술의 달인이 되어야만 한다.

간신들의 특징은 백성이나 국민들은 아예 안중에도 없고 위만 바라보며 아첨하고 결국에는 나라와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고 만다. 특히 나라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 간신(奸臣)이 나타나고, 간신은 국정을 농단하고 혼란으로 몰고 간다. 윗사람들 비위를 이리저리 맞추면서 벼슬길이 탄탄대로로 열리고 부귀영화도 손에 쥐게 된다. 유자광이나 한명회 등과 같은 조선시대 간신의 면면을 봐도 대체로 한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권력 정점에 서서 실권을 손에 넣고 있었다.

김자점에게는 특이하게 여러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 중 김자점(金自點)의 이름과 관련이 있는 탄생설화가 재미있다. 김자점이 태어난 전라도 낙안 고을에는 해마다 15살가량의 숫처녀를 마을에 자리 잡은 당집에 제물로 바치는 제(祭)를 지내고 있었다. 어느 해 낙안 고을에 새로 부임한 사또는 이런 악습을 없애기 위해 당집을 허물어버렸는데 그때 커다란 지네가 매달려 당집 허무는 것을 방해했다.

이 모습을 본 사또는 장검을 빼어 지네를 마디마디 토막 내 죽여버렸는데, 이때 사또의 두 눈 사이에 지네의 붉은 피가 튀어 빨간 얼룩이 졌다. 그리고 나서 어느 날 사또의 부인이 수태를 하게 되어 아이를 낳으니 사내 아이였다. 그런데 태어난 아들의 미간에는 피처럼 붉은 점이 진하게 박혀 있었다. 그 점은 사또가 당집 대들보에 매달려 있던 지네를 토막 내 죽일 때 튄 지네 핏자국의 얼룩 그대로였다.

위치 또한 같았다. 사또는 불길한 징조라 전전긍긍하면서도 아들의 붉은 점은 스스로 생긴 점이라 하여 자점(自點)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자점(自點)은 자라면서 기상이 출중하고 영특한데다 총명하고 늠름하기 이를 데 없었다. 후에 그는 영의정까지 올랐으나 결국 역모를 꾀하다 처형되었다. 그의 집은 역적의 집이라 하여 연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전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김자점의 실제 아버지가 사또를 한 적도 없고, 김자점은 낙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던 것이다. 김자점은 1588년(선조 2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김억령으로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고, 아버지 김함(金瑊)은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 아버지 김함은 고려 시대 명장으로 이름난 김방경의 후손으로, 조선 세조 때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운동을 모의했다가 동지들을 배신하고 거사를 누설했던 집현전 학사 김질의 5대손이기도 하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88.html
kolaswqetsrq 11.02 17:25
■ 효종 7편

■ 효종 7편

효종의 사인은 종기였다. 종기의 독이 계속 오르자 의관이 침을 놨는데 이것이 혈맥을 찔러 버렸다. 북벌을 야심 차게 준비한 왕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나 허망한 죽음이었다. 실록은 효종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상이 침을 맞고 나서 침구멍으로 피가 나오니 상이 이르기를, ‘신가귀(효종의 어의)가 아니었더라면 병이 위태로울 뻔했다’고 했다. 그러나 피가 계속 그치지 않고 솟아 나왔는데 이는 침이 혈락(血絡:피부에 있는 동맥과 정맥, 모세혈관)을 범했기 때문이었다. 제조 이하에게 물러나가라고 명하고 나서 빨리 피를 멈추게 하는 약을 바르게 했는데도 피가 그치지 않으니, 제조와 의관들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상의 증상이 점점 위급한 상황으로 치달으니, 약방에서 청심원(淸心元)과 독삼탕(獨參湯)을 올렸다. 백관들은 놀라서 황급하게 모두 합문(閤門) 밖에 모였는데, 이윽고 상이 삼공과 송시열과 송준길, 약방제조를 부르라고 명했다. 승지·사관과 여러 신하들도 뒤따라 들어갔지만, 상은 이미 승하했다.』 《효종실록:효종 10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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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孝宗)의 갑작스런 죽음은 타살설에 무게를 두게 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효종의 종기를 터트려 죽게 만든 신가귀(申可貴)는 수전증이 심한 의원이었다. 종기를 터트리도록 명을 내린 사람은 효종 자신이었다. 이전에 효종이 말에서 떨어져 낙상으로 볼기에 종기를 앓았는데 신가귀(申可貴)가 침을 놓아 고쳤고, 이를 신뢰한 효종이 이번에도 그에게 침을 놓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수전증이 있었던 신가귀는 혈맥을 범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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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설에는 신가귀(申可貴)가 혈맥을 잘못 범한 것이 아니라 종독(腫毒:종기의 독)이 심하여 이것이 흉부에 까지 퍼졌고, 혈도(血道)가 종기에 집중되었는데, 함부로 침을 놓아 터뜨렸다고도 한다. 또는 효종의 병이 조선 왕실 대대로 유전되던 ‘농가진(膿痂疹)’이라는 악성 피부병이라는 설도 있다. 농가진의 균이 혈액을 타고 들어가 패혈증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결국 효종(孝宗)을 죽게 만든 신가귀는 교형(絞刑)에 처해졌다.

효종이 죽었지만 그의 승하 이후에도 북벌의 사상적 이념은 조선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조선 사대부들은 청나라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멸망한 명나라의 마지막 연호인 숭정(崇禎)을 사용했다. 또한 북벌의 논리는 중화 문화의 중심이 조선에 있다는 ‘소중화사상’, 나아가 ‘조선중화사상’으로 발전했다. 북벌은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주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이념과 명분이 조선 사회를 지배하면서 정치·경제·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당시 청나라는 조선에 선진문물을 전해 줄 뿐만 아니라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조선은 북벌론이라는 명분에 얽매여 이런 창구를 스스로 닫아 버림으로써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가 차단되어버렸다. 이후 북학(北學)사상이 만개하기까지는 꼬박 100여년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북벌을 효시로 내세운 효종은 강력한 왕권을 추구한 군왕이었다. 인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뒤부터는 좋아하던 술도 일체 끊고 심기일전 (心機一轉), 복수설치(復讎雪恥)의 의지를 다져나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효종은 서인과 남인은 물론 재야사림의 지지를 상실해 갔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재야의 영수인 송시열(宋時烈)을 중용하였지만, 왕권과 신권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이렇듯 조선시대 왕위에서 쫓겨나거나 혹은 타살설이 도는 군왕들의 공통점은 왕권과 신권의 충돌이다. 그리고 결과는 대부분 신하의 승리로 끝난다. 과연 조선이 절대적 왕권으로 군림하던 전제왕권 시대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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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26
■ 효종 6편

■ 효종 6편

효종(孝宗)은 송시열과의 정치적 제휴를 통해 사림세력의 반발을 억제하고 이들 세력들을 등용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과연 왕권강화만을 위해 북벌(北伐)을 추진했을까? 왕권강화를 위해서는 반청적(反淸的) 사림세력의 지원이 필요했고, 반청적 사림세력 역시 재기를 위해서는 효종의 지원이 있어야 했으니, 그들의 정치적 의도는 북벌론(北伐論)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인질시절 청나라 전쟁터를 누빈 효종에게 북벌은 청에 대한 실질적인 불안감의 해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였기에 사대부의 지지를 얻지 못한 군왕의 권력은 강력해 질 수가 없다. 그런데 사대부가 목숨과도 같이 숭배하는 주자의 나라 명을 오랑캐인 청나라가 침범했고, 그 오랑캐에 인조는 무릎을 꿇기까지 했다. 또한 계통을 중시하는 주자의 나라에서 큰아들도 아닌 몸으로 조카들을 두고 왕위에 오른 효종으로서는 사대부의 지지를 얻을 묘책을 강구할 필요성이 더더욱 컸다. 이에 효종이 사대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주자를 숭상하고 오랑캐를 멀리하는 것, 즉 북벌(北伐)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청나라는 반드시 멸망해야 하는 오랑캐였지만, 과연 멸망한 청나라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그곳은 요동이었다. 중국을 차지했던 청(淸)이 멸망하여 요동지역으로 돌아온다면, 조선은 다시금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다. 조선은 북벌을 주장함으로써 계속 청(淸)의 동향을 살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효종이 북벌을 꾀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나, 북벌은 효종이 현실적으로 달성하고자 한 목표라기보다는 북벌을 강조함으로써 사림의 지지를 얻겠다는 정치적 계산과 쉽게 침략당하지 않는 단단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합쳐진 시대적 소명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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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孝宗)은 문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윤대무신(輪對武臣)제도를 만들어 조선 개국 이후 최초로 무신을 문신보다 우대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무신 우대는 이후 정조와 대원군 시절 두 번에 걸쳐 더 있게 되는데 이런 철학을 가진 왕들은 다 괜찮은 통치자들이었다. 효종(孝宗)은 개명(開明) 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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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믿은 신하들을 끝까지 믿고 간언을 듣는 현군(賢君)이었으며, 언제나 인재에 목말라했다. 북벌은 둘째 치고 참으로 안타깝게 요절한 쓸 만한 왕이었다. 효종(孝宗)은 겨우 재위 10년을 채우고 죽고 말았는데, 그가 10년만 더 재위했어도 아마 조선은 나태와 무기력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효종은 즉위 명분인 북벌의 실천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재위 10년 만인 1659년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했다. 청나라의 계속적인 군사력 축소 압박과 내수에 치중해야 한다는 송시열 등의 견제, 전쟁의 공포에 휩싸인 사대부와 백성들의 소극적인 입장 등이 맞물리면서 북벌은 현실에서 구체화되지 못한 채 꿈에 그치고 말았다. 효종은 군사력을 키우고 군량미를 모았지만, 청나라를 치려는 뜻으로 신하와 백성을 하나로 모으지는 못했다. 결국 십 년 동안 준비했던 북벌 계획은 효종의 죽음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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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27
■ 효종 5편

■ 효종 5편

당시는 중원을 정복한 청나라의 힘과 기세가 하늘을 찔러 조선이 청나라를 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말이 되지 않던 시기였다. 효종은 격변의 시대에 8년간 이역 땅에서 청나라가 중원을 정복하는 장면을 직접 보는 등 온갖 경험을 했다. 귀국해서는 형과 형수 그리고 조카의 죽음 등 정치의 비정함까지 두루 지켜 본데다, 세자에 책봉된 이후에는 왕위에 오르지 못할 것을 우려해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효종이 즉위하자마자 이미 떠 있는 해라 할 수 있는 청나라를 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정말로 추진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긍이 가지 않는다.

더욱이 북벌의 파트너라는 송시열은 효종의 거듭된 출사(出仕) 요구를 거절하다가 말년에야 올라왔고, 재직기간도 겨우 10개월에 불과하였다. 실록을 보면, 송시열이 그 기간 동안 효종에 대해 수신제가를 강조하는 진언을 한 것이 다소 나타나고 있을 뿐, 북벌에 관한 어떤 계책이나 사대부 사회를 향한 개혁 요구 등 북벌과 관련한 어떤 발언도 나타나 있지 않다. 또한 군역의 폐해가 극에 달해 백성의 원망이 컸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북벌을 위한 군사력 강화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송시열은 효종과 더불어 북벌을 추진하기는커녕 북벌과 전혀 무관하거나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효종의 지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도대체 왜 북벌하면 효종과 송시열이고, 효종과 송시열 하면 북벌이라는 등식이 마련된 것일까? 이 같은 등식이 마련된 결정적 근거는 효종과 송시열의 독대(獨對)이다. 1659년 3월 효종은 승지와 사관을 모두 물리치고 송시열과 단독으로 면담을 했다. 북벌을 어떻게든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실록에서는 독대한 상황만 기록했지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돼 있지 않지만 송시열은 이날 북벌에 대한 긴밀한 논의가 이뤄졌음을 자신의 문집 ‘악대설화(幄對說話)’에서 증언하고 있다.

『오랑캐(청)는 반드시 망하게 될 형편에 처해 있소. 오랑캐를 물리칠 좋은 기회가 언제 닥쳐올지 모르므로 정예화된 포병 10만을 길러 두었다가 기회를 봐서 저들이 예기치 못했을 때 곧장 산해관으로 쳐들어갈 계획이오.』

효종(孝宗)의 바람과 달리 송시열은 북벌론을 실현에 옮길 인물은 아니었다. 결의에 찬 효종의 북벌정책에 맞장구는커녕, 성리학적 본질에 치우쳐 격물(格物)과 치지(治知)를 이야기하며 치국(治國) 이전에 수신(修身)이 먼저라고 했다. 마음 수양과 민생안정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송시열 북벌론의 근거는 명에 대한 사대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군신관계였던 명을 파멸시킨 청(淸)에 대해 복수심은 있어도 현실적으로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복수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북벌론(北伐論)은 목표는 같았지만 목적이 달랐다. 두 사람의 북벌론은 동상이몽 (同床異夢)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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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27
■ 효종 4편

■ 효종 4편

그런데 효종이 북벌을 준비한 지 십 년 동안 군사를 키우고 군량미를 모았지만, 정작 신하와 백성의 뜻이 하나로 모아지지는 않았다. 가뭄으로 흉년이 들면서 살림살이가 더 나빠진 백성들은 불만이 가득했다. 굶주림을 이기지 못한 백성들 중에는 산 속으로 들어가 도적이 되는 이들도 많았다.

게다가 중국을 통일한 청나라의 힘은 점점 강해져 쉽게 청나라를 칠 기회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효종의 강력한 의지와는 달리 송시열이나 송준길과 같이 효종이 기대를 걸었던 인물들은 북벌을 위한 준비 단계로서 내수(內修)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로 인해 북벌은 효종의 고독한 사업이 되고 말았다.

『지금 씻기 어려운 수치심이 있는데도 모든 신하들이 이를 생각하지 않고 매양 나에게 수신(修身)만을 권하고 있으니 이 치욕을 씻지 못하면 수신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효종이 즉위 5년경에 발표한 교서에서 토로한 내용이다. 그만큼 북벌을 뒷받침해주는 정치 세력이 부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전쟁에 지친 백성들이 북벌에 회의적이었던 점도 북벌 정책의 큰 걸림돌이었다. 임진왜란과 두 차례의 호란을 경험하면서 전쟁의 참상과 기근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북벌 준비를 위한 정부의 군비 증강과 재정 부담에 크게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훈련도감군은 모두가 월급을 받는 모병(募兵)으로 막대한 예산이 소요됐고, 그 부담은 백성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이미 멸망한 명나라를 위한 복수는 하루 생활이 급급한 백성들에게는 명분이 약했다. 중국은 이미 명나라 잔존 세력이 거의 사라지고 청나라가 확고하게 중원의 지배자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북벌에 대한 효종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실록이나 효종이 대화를 나눴던 인물들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효종의 북벌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나라 군졸은 갑옷을 입지 않아 갑자기 적을 만나면 화살과 돌을 막기 어렵다. 나무 방패를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하자, 훈련대장 이완(李浣)이 “나무 방패는 갖고 다니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신은 군인들이 각기 하나의 큰 무명 자루를 소지했다가 급박할 때에 흙을 담아 쳐들어오는 형세를 방어한다면 나무 방패보다 못하지 않을 것으로 여깁니다.”라고 했다.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

일찍이 들으니 명나라 장수 장춘(張椿)의 군대가 무명 자루를 소지했다가 넓은 들판에서 오랑캐의 기마병을 만나면 흙을 자루에다 넣어 보루(堡壘: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구축물)를 만들었는데 오랑캐 군사가 감히 핍박하지 못했다고 한다.”고 말했다.』《효종실록: 효종7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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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28
■ 효종 3편

■ 효종 3편

효종은 차근차근 북벌을 준비하며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인물들을 뽑았다. 효종은 즉위 후에 김자점 등 친청파를 제거하고 김상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등 반청 척화파를 등용했다. 특히 대군 시절 그의 스승이었던 송시열을 불러들여 북벌 이념을 널리 전파할 북벌 전도사로서의 사명을 맡겼다.

송시열은 효종이 왕자였을 때 그를 교육했기 때문에 임금과 무척 가까운 사이였으므로 효종의 북벌에 대한 이론적 정신적 지주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믿었던 송시열이지만 북벌정책에 관한 한 효종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후원자가 되지는 못했다. 송시열은 자신이 추종하는 성리학의 대의명분 때문에 북벌의 선두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그 결과 조선은 실리보다는 더욱 낙후되고 경직된 사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효종은 많은 신하들이 청나라를 치는 데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신하들은 임진왜란 이후 계속된 전쟁으로 약해진 조선의 힘으로는 이미 강대해진 청나라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청나라와 싸우느라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보다는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文物)을 받아들여 나라 살림을 일으키는 것이 바른 정치라고 여기는 분위기도 높아졌다. 북벌(北伐)에 반대하는 신하들의 이 같은 생각을 알고 있는 효종은 자신의 뜻을 충실히 따라 줄 장수가 필요했다. 효종의 깊은 신임을 받으며 함께 북벌을 이룰 장수로 발탁된 이는 이완이다.

이완은 관례적으로 공신이나 왕실의 친인척이 임명됐던 야전사령관인 훈련대장에 전격 발탁돼 현종 때까지 무려 16년 동안이나 훈련대장을 역임했다. 효종은 병자호란 때 참전 경험이 있고 평안도, 함경도의 병마절도사를 지내면서 보여준 이완의 능력과 친명반청적인 그의 성향이 북벌 추진에 긴요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완은 이를 충실히 따랐다.

이완은 효종의 북벌 정책을 실천한 거의 유일한 장수였으며, 자신이 죽으면 효종의 무덤 인근에 자신을 묻어줄 것을 유언하는 등 철저한 효종의 사람이었다. 실제로 현재 이완의 무덤은 효종의 무덤이 있는 경기도 여주 영릉(寧陵) 인근에 조성돼 있다. 죽을 때까지 효종과 북벌의 뜻을 함께한 상징물인 셈이다.

효종은 훈련도감과 남한산성의 수비대인 수어청에 대한 군비 증강 사업과, 군량미 확보 등을 통해 북벌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갔다. 인조가 청나라를 치기 위해 만들었던 어영청(御營廳)은 왕이 직접 거느리는 부대로, 효종의 북벌정책의 상징과도 같았으므로 이를 강화시켰다. 남한산성을 근거지로 하는 수어청을 강화하여 한성 외곽의 방비와 강화도 군력을 증강시켜 수도의 안전도 꾀했다.

임금의 호위를 맡은 금군을 기병(騎兵)화하는 동시에, 1655년에는 모든 금군을 내삼청에 통합하고 군사도 600여 명에서 1천여 명으로 증강시켜 왕권을 강화시켰다. 1656년에는 남방 지대 속오군에 정예 인력을 보충시켜 기강을 튼튼히 하였다. 전쟁을 치를 때 필요한 군량미도 여러 곳에 나누어 모아 두도록 했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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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28
■ 효종 2편

■ 효종 2편

봉림대군은 소현세자와 함께 8년여를 심양에 기거했지만, 소현세자와는 달리 친명사대주의에 더 집착하여 반청사상을 한껏 고조시킨 인물이었다. 그의 이 같은 반청감정은 인조를 흡족하게 하는 일이었다. 인조는 봉림대군의 반청감정이 자신의 친명사대사상과 일치한다고 보았다. 봉림대군은 1649년 5월 인조가 죽자 왕위를 이어받았다. 효종은 자신이 왕이 된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삼전도 굴욕을 안겨준 청에 대한 복수를 해야 한다는 것, 바로 복수설치(復讐雪恥:복수해 치욕을 씻음)가 그가 왕이 된 배경이었다. 때문에 효종은 즉위 직후 북벌(北伐)을 표방하고 재위 기간 내내 북벌을 추진했다. 이후 청을 물리쳐야 한다는 ‘북벌(北伐)’은 조선의 국시(國是:국가 정책의 기본 방향)가 되었기 때문에, 북벌은 효종을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키워드가 됐다.

효종은 심양 생활에서 조선인 포로의 비참한 생활을 직접 목격했다. 또 청 황제를 따라 수렵에 나서면서 중국의 사정과 지형도 면밀히 관찰했다. 이런 경험과 부왕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신념은 효종이 북벌을 추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청과 공식적인 평화협정을 맺고 있었고, 조선 내 산성 구축 등 군사적 준비를 하려면 청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물론 군사를 증강해도 안 되고 군사훈련도 금지되어 있었다. 청(淸)은 자주 보내는 사신을 통해 조선을 감시하고 있었고, 많은 청의 첩자들이 조선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때문에 공식적으로 북벌을 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효종(孝宗)은 가끔 능을 참배할 때 몰래 군사훈련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효종의 일대기를 기록한 《효종실록》에 의외로 북벌에 대한 논의가 거의 기록되지 않은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었다.

효종은 종통(宗统:맏아들의 혈통)상의 약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소현세자의 부인 강빈(姜嬪)의 억울한 죽음과 그 집안의 몰락은 항상 효종을 괴롭혔다. 당시 황해감사였던 김홍욱이 강빈의 신원(伸冤)과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의 석방을 탄원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강빈 죽음의 억울함이 밝혀지면 왕위는 조카에게 되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효종은 곧장 김홍욱의 체포 명령을 내렸고, 김홍욱은 국문을 당하다가 맞아 죽었다. 그러자 민심은 요동 쳤다.

효종은 김홍욱 사건을 무마하면서 민심을 수습하는 여러 가지 정책을 시행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로 강조한 것이 또한 북벌(北伐)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북벌(北伐)에 대한 효종의 의지는 확고했고, 북벌(北伐)을 대의(大義)로 내세우면서 여러 가지 개혁을 시도했다. 두 번에 걸친 전쟁으로 기울어진 나라 살림부터 일으켜야 했다. 효종은 대동법을 확대 실시해 백성들이 나라에 내는 세금을 줄여 주었다.

대동법은 각 지역 특산물을 내던 공납을 쌀, 동전, 베 등으로 농사 짓는 땅의 넓이에 따라 내게 한 것인데, 백성들은 세금으로 바치는 공납의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었고, 땅이 없는 사람은 공납을 내지 않아도 되므로 백성들이 크게 환영하였다.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되었다가 효종 때 김육에 의해 충청도와 전라도 일부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효종은 농사짓는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농가집성》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농가집성》은 예전부터 전해지던 농사 관련 책을 하나로 모으고, 새로운 농사법을 소개한 책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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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29
■ 효종 1편

■ 효종 1편

인조의 큰아들 소현세자 일가족이 참화를 당하고, 둘째아들 봉림대군이 1649년 31세의 나이로 조선의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17대 효종이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병자호란 이후 청에 볼모로 잡혀가게 되었는데, 이 두 사람의 볼모생활 차이는 이후 그들의 운명을 결정 짓게 되었다.

소현세자는 청에서 신부 아담 샬과 사귀면서 천주교를 알게 되었고, 서양의 역서 및 과학서적들을 선물로 받으면서 서양의 과학 문명을 접하고 서양의 역법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는 동양과 서양의 역법이 큰 차이가 있음을 깨닫는 한편, 조선의 천문학이 아직 초보 단계에 있음도 알게 되었다.

소현세자와 마찬가지로 봉림대군 역시 청에서 많은 서양 문물들을 접하게 되었지만, 소현세자만큼 깊이 심취하거나 경탄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그는 형 소현세자를 적극 보호하고 청의 내부 사정을 파악하여 본국에 전해주는 역할에 더 전념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청의 대명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명이 멸망하는 과정을 목격하기도 했고, 패전국의 왕자라는 이유로 청나라 관리들로부터 멸시를 받기도 했다. 이 같은 경험들은 봉림대군의 반청사상을 더욱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인조가 소현세자를 미워한 것은 반청감정 때문이었다. 원래 인조의 정치적 기반은 친명사대(親明事大)주의였다.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낸 명분도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사대사상은 병자호란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왕인 자신이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해야 하는 치욕까지 겪게 되었으며, 자식들을 볼모로 보내야 했다. 그 때문에 인조의 반청감정은 그 어떤 실리주의 외교노선으로도 무마시킬 수 없을 만큼 극단적으로 고조되어 있었다. 하지만,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는 청나라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항상 타협점을 모색하고 있었기 때문에 청나라에서는 인조보다도 소현세자를 더 신뢰하였고,

인조는 이 같은 소현세자의 행동을 용서할 수 없게 되었다. 소현세자의 행동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뒤흔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간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자갈등으로 귀국 후 갑작스러운 소현세자의 죽음은 ‘독살설’로 그 의문이 증폭되었다.

인조는 소현세자가 죽은 지 3개월 후에 갑자기 대신들을 불러들여 자신은 병이 깊으니 새로운 세자를 책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신하들은 소현세자의 첫 아들 석철로 하여금 왕위를 잇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으나, 인조는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세손은 마땅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왕실의 관례를 어기고 차남인 봉림대군을 세자로 삼았다. 이후 소현세자의 주변 세력과 세자빈 강씨의 친정 오빠들을 모두 귀양 보내고, 마지막 남은 세자빈마저 후원 별장에 유폐시켰다가 결국 사약을 내려 죽였다. 그리고 소현세자의 두 아들은 제주도로 귀양을 보내 죽게 하고, 마지막 셋째 아들은 귀양지에서 겨우 목숨을 연명하게 했다. 이렇게 소현세자를 비롯해 그의 가족과 주변 세력을 모두 제거해버린 인조의 일련의 행동들은 그가 소현세자를 독살했다고 하는 의문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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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30
노즉색쇠老則色衰 - 늙으면 사람의 빛이 다해 소멸하다.

노즉색쇠(老則色衰) - 늙으면 사람의 빛이 다해 소멸하다.

늙을 로(老/0) 곧 즉(刂/7) 빛 색(色/0) 쇠할 쇠(衣/4)

사람의 삶이 중요한 만큼 죽음도 숭고하다. 최상의 죽음은 예기치 않은 죽음이란 말이 있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천명을 누리지 못한 것이기 쉽다. 가수 이애란이 뒤늦게 히트시킨 가요 "백세인생" 가사에서는 나이가 점차 늘어 150까지 나온다.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 남자 78세, 여자 84세라 해도 평균 건강수명은 67.8세라 했다. 10여년은 앓다가 가는 셈이다.

사람이 늙으면(老則) 얼굴빛도 쇠하고 결국 소멸하고 만다(色衰)는 이 성어는 불교의 法句經(법구경)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한다. 인도의 승려 法救(법구)가 釋迦牟尼(석가모니)의 금언을 간명하게 정리하여 널리 애송되는 경전이란다. 젊어서 마음 닦기를 게을리 하면 늙어서 비참해진다는 시구를 모은 11장의 老耗品(노모품)에 나온다. 그 부분을 간추려 본다.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웃으랴, 목숨은 언제나 불타고 있나니. 그윽하고 어두움에 덮여 있으면서, 등불을 찾을 줄을 모르는구나(何喜何笑 念常熾然 深蔽幽冥 不如求定/ 하희하소 염상치연 심폐유명 불여구정)." 건너 뛰어 이어진다. "몸이 늙으면 얼굴빛도 쇠하고, 몸이 병들면 그 빛도 없어진다. 가죽은 늘어지고 살은 쪼그라들어, 죽음의 모습이 가까이 와 재촉한다(老則色衰 病無光澤 皮緩肌縮 死命近促/ 노즉색쇠 병무광택 피완기축 사명근촉).’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하는 "웰다잉법(Well-Dying)"은 사망 시기만 지연하는 연명 치료의 중단을 요구할 수 있다. 수명의 숫자만 늘어나서 말년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앓다가 간다면 100세라도 장수의 의미가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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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31
고어지사枯魚之肆 - 말라가는 물고기의 어물전, 매우 절박한 처지

고어지사(枯魚之肆) - 말라가는 물고기의 어물전, 매우 절박한 처지

마를 고(木/10) 고기 어(魚/0) 갈 지(丿/3) 방자할 사(聿/7)

곤경에 빠진 사람에게는 당장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중에 쌀가마니를 가져와 형편을 활짝 펴준다 해도 끼니를 굶는 사람에게는 실속이 없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소리만 듣고 목을 축이라는 격이라 더 답답할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막연한 희망보다 작더라도 당장 가질 수 있는 이로움이 훨씬 낫다.

‘나중 꿀 한 식기 먹기보다 당장의 엿 한 가락이 더 달다’는 속담이 이를 잘 나타냈다. 수레바퀴 움푹 팬 곳의 물이 말라가는 속에 있는 붕어라는 涸轍鮒魚(학철부어, 涸은 물마를 학)도 당장 한 바가지의 물이 시급하지 바다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말라가는 물고기(枯魚)의 어물전이라는 이 성어도 수레바퀴 자국 속의 붕어와 똑 같이 ‘莊子(장자)’의 이야기 한 곳서 나왔다. 外物(외물)편이다. 물이 없는 곳의 물고기는 어물전 신세가 될 곤궁한 처지라는 말이다. 방자할 肆(사)는 가게라는 뜻도 있어 酒肆(주사)는 술집, 書肆(서사)는 서점이다.

고약한 술버릇 酒邪(주사)와 헷갈리니 주의할 일이다. 장자는 戰國時代(전국시대) 때 道家(도가)의 중심인물로 寓言(우언)을 통해 유교의 인위적인 禮敎(예교)를 부정하고 無爲自然(무위자연)을 주장했다. 큰 뜻을 가졌으면서도 장자는 항상 가난했다. 그렇지만 궁색하게 벼슬을 찾지도 않았다.

장자가 어느 때 당장 끼니를 때울 식량이 없어서 黃河(황하)를 관장하는 관리인 監河侯(감하후)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도와줄 생각이 없었던 감하후는 세금이 들어오는 2~3일 후면 빌려주겠다고 했다. 배알이 틀린 장자가 말했다. ‘오는 길에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에서 붕어가 한 마리 물을 한 되 달라고 했는데 나중 남쪽 땅의 강줄기를 끌어주겠다고 했다.

붕어는 ’당장 한 말이나 한 되의 물이 필요할 뿐, 당신이 이렇게 말하니 일찌감치 건어물 가게에 가서 나를 찾으시오(吾得斗升之水然活耳 君乃言此 曾不如早索我於枯魚之肆/ 오득두승지수연활이 군내언차 증불여조색아어고어지사)라고 하더군.‘

안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주어서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희망고문이라 한다. 먼 후일 실제로 이루어지더라도 그 때를 기다리지 못하면 마찬가지로 괴롭다. 훗날 모두 잘 살게 만들어 주겠다며 희망을 부풀게 하는 것은 정치에 나서는 사람의 단골이다. 空約(공약)이 되어 이제는 믿지 않는 유권자가 더 많은데도 말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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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31
추처낭중錐處囊中 -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다, 재능 있는 사람은 저절로 드러난다.

추처낭중(錐處囊中) -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다, 재능 있는 사람은 저절로 드러난다.

송곳 추(金/8) 곳 처(虍/5) 주머니 낭(口/19) 가운데 중(丨/3)

겸손은 모든 덕의 근본이다. 아무리 자기 PR시대라 해도 속에 든 것도 별로 없고 재주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 앞장서 잘난 체 하면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교양이 있고 마음을 닦은 사람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재주가 있으면 드러내지 않아도 모두 안다. 이럴 때 잘 들어맞는 속담이 ‘주머니에 들어간 송곳’이다. 물론 나쁜 일도 숨길 수 없다는 의미를 포함하지만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주변에서 먼저 알아본다는 뜻이 앞선다. 이전 소개한 囊中之錐(낭중지추)와 뜻도 출전도 같은 성어가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다는 錐處囊中(추처낭중)이다.

이와 같은 말을 낳게 한 毛遂(모수)라는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추천한다는 毛遂自薦(모수자천)과 바로 연결된다. 실력을 닦아 때를 기다린 것과 거리가 있는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史記(사기)’ 열전에 실린 내용이 재미있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에 수천 명의 빈객들을 거느리고 세력을 과시한 四公子(사공자) 중에 趙(조)나라에 平原君(평원군)이 있었다. 모수는 평원군 식객으로 있으면서도 재주꾼 속에 묻혀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다. 秦(진)나라가 조를 침입해 오자 왕이 평원군에게 楚(초)나라로 가서 구원을 청하게 했다.

평원군이 동행할 빈객 20명을 뽑았으나 19명을 고른 뒤 적당한 사람이 없었는데 모수가 자청했다. 3년이나 있었다는데 초면이라 평원군이 말했다. ‘현자의 처세는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서 숨기려 해도 뚫고 나오기 마련이오(夫賢士之處世也 譬若錐之處囊中 其末立見/ 부현사지처세야 비약추지처낭중 기말입견).’ 모수는 당당했다.

‘제가 일찍 주머니에 있었다면 송곳 끝이 아니라 자루까지 나왔을 것입니다(使遂蚤得處囊中 乃穎脫而出/ 사수조득처낭중 내영탈이출).’ 뾰족한 부분이 튀어나온다는 脫穎而出(탈영이출)이 여기서 나왔다. 다른 사람이 비웃었지만 평원군은 마지못해 동행시켰다.

초나라와 힘을 합치자는 합종의 논의가 지지부진할 때 모수가 초왕에 당당히 나가 언변을 펼쳤다. 성사시킨 후 평원군은 모수의 세치 혀(三寸之舌/ 삼촌지설)가 백만 군사보다 낫다고 감탄했다. 스스로 추천해 달라고 나선 모수보다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불찰을 깨달은 것이다.

이처럼 때를 기다렸다가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는 것은 나무랄 수 없다. 문제는 재주가 없는데도 여러 곳에 허명만 가득한 사람을 발탁하면서 단번에 바닥이 드러날 때이다. 소리만 요란한 사람에 혹해 기용한 사람도 안목 없기는 마찬가지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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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32
관녕할석管寧割席 - 관녕이 자리를 자르다, 친구와 교제를 끊다.

관녕할석(管寧割席) - 관녕이 자리를 자르다, 친구와 교제를 끊다.

대롱 관(竹/8) 편안 녕(宀/11) 벨 할(刂/10) 자리 석(巾/7)

친구와의 사귐을 기리는 성어가 많은 중에 성격이 전혀 다른 사이인데도 우정을 지속한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잘 알려진 竹馬故友(죽마고우)는 단지 어릴 때 같이 놀이를 했을 뿐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친구라는 뜻이었다. 管鮑之交(관포지교)는 管仲(관중)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한 鮑叔牙(포숙아)에 의해 빛이 난 우정이었다.

刎頸之交(문경지교)는 사이가 좋지 않다가 한 친구가 제 잘못을 알고 사죄함으로써 후세의 기림을 받은 경우였다. 친구 사이란 조금의 차이만 있어도 틀어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관계이지만 희생과 양보가 따라야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管寧(관녕, 158~241)이란 사람은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魏(위)나라 출신의 덕망 높은 학자였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어렵게 공부했고,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평상에 꿇어앉아 글을 읽어 무릎에 닿은 상의 바닥이 뚫어졌을 정도였다. 이 관녕이 자리를 잘랐다(割席)는 이야기는 친한 친구와 서로 뜻이 맞지 않아 교제를 끊었다는 데서 나왔다.

관녕이 젊은 시절에 늘 함께 공부하고 같이 놀았던 華欽(화흠)은 사람됨이 완전히 달랐다. 宋(송)나라의 문학가 劉義慶(유의경)이 지은 명사들의 일화집 ‘世說新語(세설신어)’ 德行(덕행)편과 그 내용을 인용한 唐(당)나라 李瀚(이한)의 아동용 교재 ‘蒙求(몽구)’에 실려 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밭에서 김을 매다가 금덩이를 발견했다. 관녕은 흙으로 덮었고 화흠은 만져본 뒤 던졌다. 또 한 번은 자리에 같이 앉아 책을 읽는데 밖에서 고관의 행차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관영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독서를 계속 했지만, 화흠은 책을 덮고 그것을 구경했다. 관영이 자리를 갈라 따로 앉으며 너는 나의 벗이 아니라고 말했다(寧讀書如故 欽廢書而看 寧割席分坐曰 子非吾友也/ 녕독서여고 흠폐서이간 녕할석분좌왈 자비오우야).’

관녕의 곧은 자세만 칭송해야 할까. 화흠은 吳(오)나라와 위나라에서 부름을 받고 고위직 벼슬을 지냈다. 청렴하여 백성들의 신망도 높았다. 인물을 천거하라 했을 때 화흠은 몇 번이나 관녕을 권했지만 끝내 나가지 않았다.

다른 친구 邴原(병원, 邴은 고을이름 병)과 함께 세 사람을 한 마리의 용이라 했고, 화흠은 용머리라 했다. 칼 같은 친구 관녕과 그것을 받아준 화흠의 아량이 빛난 우정이 된 셈이다. 한 때의 사소한 일로 틀어졌으면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야 우정이 오래 간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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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32
소시료료小時了了 - 어릴 때부터 똑똑하다, 후일까지 잘 되지 않을 때 반어의 의미

소시료료(小時了了) - 어릴 때부터 똑똑하다, 후일까지 잘 되지 않을 때 반어의 의미

작을 소(小/0) 때 시(日/6) 마칠 료(亅/1) 마칠 료(亅/1)

선천적으로 남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天才(천재)나 어릴 때부터 재주와 슬기가 특출한 神童(신동)을 모두들 부러워한다. 우리 사회가 발전해 온 것은 이러한 학문의 천재, 예술의 신동에 의해 힘입은 바가 크니 당연하다. 그런데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비아냥거리는 말도 제법 전한다.

‘적어도 일 년 만은 누구나 천재’, ‘열 살에 신동, 열다섯에 재사, 스물이 넘으면 그저 평범한 사람’ 같은 말이 그것이다. 어릴 때부터(小時) 매우 똑똑하다(了了)는 성어도 칭찬에서 부정적으로 기운 말 중의 하나다. 마칠 了(료)는 ‘밝다, 똑똑하다’의 뜻도 있다.

중국 後漢(후한) 말기 孔子(공자)의 20세손인 孔融(공융, 153~208)은 뛰어난 학자로 문필에도 능하여 建安七子(건안칠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응대하는 말에 기지가 번득였다. 그가 열 살 되던 해 아버지를 따라 洛陽(낙양)에 갔을 때 명망 높은 태수 李元禮(이원례)를 방문하게 됐다.

명사가 아니면 만나기 힘든 태수를 찾아가 꼬마가 친척이라 말하고 당당히 만났다. 이원례가 어떤 친척관계인지 물었더니 태수의 선조인 伯陽(백양)과 자신의 선조 仲尼(중니)가 사제관계이니 대대로 교분이 있는 사이라 답했다. 공자(자가 중니)가 젊었을 때 老子(노자, 자가 백양)에 배운 적이 있는 것을 말하자 모두 감탄했다.

宋(송)나라의 劉義慶(유의경)이 쓴 일화집 ‘世說新語(세설신어)’에 전하는 다음 이야기가 더 기지에 넘친다. 공융을 모두 칭찬하는 중에 한 사람이 ‘어려서 똑똑하다고 커서도 반드시 훌륭하게 되지는 않지요(小時了了 大未必佳/ 소시료료 대미필가)’라 했다. 여기에 대뜸 답한다. ‘제 생각에 선생께선 어렸을 때 분명 똑똑했을 것 같습니다(想君小時 必當了了/ 상군소시 필당료료).’ 공융이 자기를 깎아내리는 사람에게 한 방 먹인 것이다. 공융은 후일 탄탄대로를 걷다가 曹操(조조)의 야심을 간파하고 공개적으로 견제한 것에 미움을 받아 죽음을 당했다.

어릴 적 재주가 커서도 이어지지 않는 것은 공융의 자녀에게도 이어진다. 공융이 조조군에 잡혀가던 날 9세와 7세 된 자녀는 새 둥지가 뒤집히면 알이 깨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면서 태연히 바둑을 뒀다고 한다. 巢毁卵破(소훼난파)가 여기서 나왔다. 똑똑하던 신동이 나중까지 크게 되지 않는다고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서도 종종 접한다.

지능지수 210으로 현존 최고의 천재, 대학생보다 수학문제를 더 잘 풀던 꼬마신동이 후일 존재가 없다고 실망한다. 더 자라날 여건이 안됐을 수도 있고, 너무 큰 기대로 중압감을 준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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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33
차호위호借虎威狐 -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 여우, 남의 힘에 의지하여 위세를 부림

차호위호(借虎威狐) -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 여우, 남의 힘에 의지하여 위세를 부림

빌릴 차(亻/8) 범 호(虍/2) 위엄 위(女/6) 여우 호(犭/5)

호랑이는 百獸(백수)의 왕이라 하듯이 사납고 용맹스런 짐승의 대표다. 여우는 교활하고 남을 속이는 것이 특기다. 이런 이미지를 가진 호랑이와 여우를 한꺼번에 나타낸 속담이 있다. 갈수록 더 힘든 일을 당할 때 ‘여우를 피해서 호랑이를 만났다’고 한다.

뛰어난 사람이 없는 곳에서 보잘것없는 사람이 설칠 때에는 ‘호랑이 없는 산골에는 여우가 선생질을 한다’,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고 한다. 이런 말들은 서로 맞부딪치지는 않지만 꾀 많은 여우가 호랑이를 바로 등 뒤에 두고 그 위세로 뭇 짐승에 거들먹거린다는 狐假虎威(호가호위)는 유명하다.

이와 똑 같은 말로 ‘범탈을 쓴 여우’,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 여우란 뜻의 이 성어는 출전도 ‘戰國策(전국책)’으로 동일하다. 중국 前漢(전한)시대 학자 劉向(유향)이 여러 제후국 전략가들의 전략을 모은 책인데 戰國時代(전국시대)라는 이름을 낳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방의 楚(초)나라에 宣王(선왕이 다스리고 있을 때 昭奚恤(소해휼, 奚는 어찌 해, 恤은 불쌍할 휼)이라는 재상이 보좌하고 있었다. 그는 백성들의 신망을 받고 있어 이웃 韓(한), 魏(위), 趙(조) 등 나라들은 한결같이 두려워했다.

그 무렵 위나라 출신의 재담가 江乙(강을)이라는 사람이 호시탐탐 조정의 자리를 노렸으나 소해휼의 틈바구니에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어느 때 기회가 왔다. 선왕이 북쪽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소해휼을 무서워한다고 하는데 무슨 연유인지 물었을 때 아무 신하도 답을 못했다.

강을이 나와 우화를 들려줬다. 여우가 호랑이에 잡혔을 때 천제가 자신을 산중의 왕으로 정했으니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며 못 믿겠으면 뒤를 따르라고 했다. ‘짐승들이 보고 달아나기 바빴는데 호랑이는 자기를 무서워해서 도망치는 줄 모르고 여우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했습니다(獸見之皆走 虎不知獸畏己而走也 以爲畏狐也/ 수견지개주 호부지수외기이주야 이위외호야).’ 강을은 왕의 군사를 두려워하는 것이지 소해휼이 무서워서가 아니라고 깎아내렸다.

작은 단체에서나 국가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있게 마련이다. 정당하게 세력이 바뀌면 승복해야 한다. 하지만 상대방에 온갖 이유를 대면서 공격하다가 자신들이 잡으면 돌변한다. 자신들은 이전에 욕한 수법을 따라 하듯이 되풀이한다. 아니 영원히 권력을 누릴 듯이 위세를 업고 더 거들먹거린다. 그래봤자 자신이 여우인줄 모른다./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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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34
신언불미信言不美 - 믿음이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다.

신언불미(信言不美) - 믿음이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다.

믿을 신(亻/7) 말씀 언(言/0) 아닐 불(一/3) 아름다울 미(羊/3)

언변 좋은 사람이 막힘없이 술술 말을 잘하는 것을 보면 靑山流水(청산유수) 같다고 한다. 쩡쩡 울리게 말이 와 닿으면 폭포수가 떨어지듯 하다며 口若懸河(구약현하)라고 칭찬한다. 이렇게 말을 잘 하다가도 행동이 그에 따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되면 단번에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 ‘말은 앵무새’라며 깎아내린다.

말을 잘 하기도 어렵지만 꾸미지 않고 행동을 같이 하지 않는다면 능변이 어눌한 사람보다 못하다. 孔子(공자)가 말했듯이 말투를 교묘히 꾸며서 듣기 좋게 하는 巧言(교언)과 얼굴색을 보기 좋게 꾸미는 令色(영색)의 사람 중에는 어진 이가 없다. 차라리 말은 어눌해도 실천에 앞장서면 訥言敏行(눌언민행)이라고 높이 쳤다.

道家(도가)의 시조 老子(노자)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겉보기에 번지르르한 말보다 투박하더라도 진실이 담겨 있다면 꾸밀 필요가 없다며 믿음직한 말(信言)은 아름답지가 않다(不美)고 말한다. 노자가 남긴 無爲(무위)의 처세서인 ‘道德經(도덕경)’은 상하편 모두 81편으로 되어 있는데 제일 마지막 장인 顯質章(현질장)에 실려 있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과 이어지는 말도 함께 보자. ‘믿음성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성이 적다(信言不美 美言不信/ 신언불미 미언불신). 선한 사람은 따져 변명하지 않고, 잘 주워대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 아니다(善者不辯 辯者不善/ 선자불변 변자불선).’

노자는 5000여 자에 이르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아름다운 말로 된 내용은 아니나 믿어도 좋다고 술회한 것이라 해석한다. 또 선한 사람은 자신의 주장을 꾸며 변론하지 않는다고 했다. 따르는 말도 좋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많이 알지 못하고, 많이 아는 사람은 참으로 알지 못한다(知者不博 博者不知/ 지자불박 박자부지).’ 이 부분도 노자가 자신의 책이 광범한 지식을 동원한 것이 없이 오직 도만 이야기했을 뿐이라 깊이 아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 된다고 강조했다. 겉핥기로 박식을 뽐내기보다 한 분야라도 깊이 있는 지식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말이 말을 낳아 ‘군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고 했다. 진실은 수식어가 필요 없으니 간단명료하고 미사여구를 동원할 필요가 없다. 말로써 말이 많은 곳이 정치의 세계다. 온갖 부정도 일갈하여 바로 잡을 수 있고 또 말을 잘 하여 허물을 가릴 수도 있다.

그런데 말로 이뤄지는 세계라 해도 국민들께 약속할 때는 화려한 언변으로 지지를 받아놓고 실천할 때는 나몰라하는 공약이 많다. 아름답게 꾸민 말이 일시적으로 먹혀들더라도 생명이 길지 않다. 투박한 말이라도 진실을 담은 말을 국민들은 원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049.html
kolaswqetsrq 11.02 17:34
하족괘치何足掛齒 - 어찌 말할 필요가 있을까, 말할 가치가 없는 사소한 일

하족괘치(何足掛齒) - 어찌 말할 필요가 있을까, 말할 가치가 없는 사소한 일

어찌 하(亻/5) 발 족(足/0) 걸 괘(扌/8) 이 치(齒/0)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순식간에 번지니 말을 조심하라는 서양 격언이다. 바위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듯이 말을 잘 하면 口若懸河(구약현하)라고 칭찬하면서도, 모든 화는 입에서 나온다며 口禍之門(구화지문)을 경계했다.

그런데 말해야 할 때 가만 있고, 가만히 있어야 할 때 말한다면 그것 또한 눈총 받는다. 입이 무겁다는 것이 칭찬일 수 있어도 진실을 두고 침묵을 지킨다면 萬馬齊瘖(만마제음, 瘖은 벙어리 음), 만 마리 말이 벙어리가 된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말을 할 자리가 아닌데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있다. 역시 이럴 때는 침묵이 제일인데 꼭 말해야 한다면 어찌 족히(何足) 말을 할 필요(掛齒)가 있겠는가 하며 물러서는 것도 방법이다. 말을 꺼낼 가치가 없는 사소한 일이라는 뜻도 된다.

이 성어가 처음 유래한 것은 중국 秦(진)나라의 始皇帝(시황제)를 이어 받은 2세 황제 胡亥(호해)의 어전회의에서다. 아무리 어리석고 통일왕국을 망하게 했더라도 막강 권력의 황제 앞이니 바른 말이 나오기 어렵다. 언변과 문학에 뛰어난 박사 叔孫通(숙손통)이라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호해가 왕위에 오르고부터 나라가 어지러워져 각지에서 군웅들이 궐기했다. 농민들을 이끌던 陳勝(진승)이 반란을 일으켜 張楚(장초)를 세웠다. 학정에 시달리던 여러 지역에서 호응하여 조정을 위협할 정도로 세력을 떨쳤다. 다급해진 호해가 박사들과 여러 유생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구동성 반역이라며 토벌해야 한다고 했다.

황제가 크게 노한 얼굴이 되자 숙손통이 나섰다. 나라가 통일되고 법령이 갖춰져 있으니 모반이 아니라며 말한다. ‘이들은 쥐나 개와 같은 좀도둑일 뿐 그것을 입에 담아 거론할 가치도 없습니다(此特群盜鼠竊狗盜耳 何足置之齒牙閒/ 차특군도서절구도이 하족치지치아한).’ 치아 사이에 넣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은 의논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鼠竊狗偸(서절구투)란 성어도 여기에서 나왔다. ‘史記(사기)’ 劉敬叔孫通(유경숙손통)에 실려 있다.

숙손통은 위기를 넘겼지만 황제의 심기만 살피고 바른 간언을 못해 진나라는 망했다. ‘말이란 탁 해 다르고 툭 해 다르다’는 말이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하는데 따라 아주 다르게 들린다. 잘못을 보고도 바로잡지 않고 침묵을 지키면 그 때는 금이 아니다. 조직의 장에 맞서는 것이 어려울 때는 우회를 하더라도 바로잡을 지혜를 발휘해야 발전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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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35
천지지지 자지아지天知地知 子知我知 -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너와 내가 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천지지지 자지아지(天知地知 子知我知) -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너와 내가 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하늘 천(大/1) 알 지(矢/3) 따 지(土/3) 알 지(矢/3) 아들 자(子/0) 알 지(矢/3) 나 아(戈/3) 알 지(矢/3)

아무리 비밀스럽게 주고받은 말이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퍼진다. 떳떳한 말은 널리 알릴 텐데 주변에 모르게 숨긴다면 바르지 못한 일, 뇌물거래나 남을 해치는 모의이기 쉽다. 아무도 듣지 않는 곳이라 해도 말조심해야 한다고 많은 속담에서 주의시킨다.

‘벽에도 귀가 달렸다‘는 牆有耳(장유이)라는 고사와 똑 같고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晝語鳥聽 夜語鼠聽(주어조청 야어서청)이라 한역됐다. 이보다 더 강조한 말이 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天知地知) 그대가 알고 또한 내가 안다(子知我知)고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이 말은 바로 넷이 안다는 四知(사지)의 주인공 楊震(양진)에서 나왔다.

양진은 중국 後漢(후한)의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데다 특히 경전에 밝아 關西孔子(관서공자)로 불렸다. 그보다 더 청렴결백의 대명사로 이름났다. 나이 쉰에 천거되어 지방관을 지낼 때 王密(왕밀)을 천거하여 현령으로 근무하는데 도움을 줬다.

양진이 東萊(동래)지역의 태수로 부임하는 길에 왕밀이 현령으로 있는 곳에서 머물게 됐다.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으려 왕밀이 양진의 숙소를 찾았다. 황금 열 근을 내놓으며 한밤이라 아무도 모르니 받아 주십사 했다. 양진이 꾸짖었다.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아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가(天知神知 子知我知 何謂無知/ 천지신지 자지아지 하위무지)?’

范曄(범엽)이 지은 ‘후한서(後漢書)’에는 양진의 선조와 후손까지 곧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부친 楊寶(양보)는 꾀꼬리를 치료해줘 西王母(서왕모)의 반지를 받은 黃雀銜環(황작함환)의 주인공이다. 양보의 후손들은 고귀한 삼공의 자리에까지 오를 것이라는 사자의 말대로 양진은 震畏四知(진외사지)를 지켜 꼿꼿하게 처신했다.

주위에서 재산을 모아 후손에 남기라는 얘기를 듣고 청백리의 자손이란 말보다 더 좋은 재산이 없다고 했다. 과연 둘째 아들 楊秉(양병)은 술과 색, 재물에 현혹되지 않는 秉去三惑(병거삼혹)의 고사를 남겼다. 손자 楊賜(양사), 증손자 楊彪(양표)도 모두 청렴한 고위직을 지내 선조의 뜻을 이었다.

우리나라도 淸白吏(청백리)로 칭송받는 사람이 216명이나 전한다. 하지만 그 전통이 잘 이어진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규모가 작아졌을지 몰라도 편법이나 불법으로 재산을 불린 공직자는 고위직 청문회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금언과 명구가 많이 나오는 ‘明心寶鑑(명심보감)’의 경구는 아무도 보거나 듣지 않는다고 해도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귀신의 눈은 번개와 같고, 하늘이 듣는 것은 우레와 같다(神目如電 天聽如雷/ 신목여전 천청여뢰).’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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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36
홍주우심紅珠牛心 - 붉은 구슬과 소의 심장, 홍시의 다른 이름

홍주우심(紅珠牛心) - 붉은 구슬과 소의 심장, 홍시의 다른 이름

붉을 홍(糸/3) 구슬 주(玉/6) 소 우(牛/0) 마음 심(心/0)

물렁하게 잘 익은 감 紅柿(홍시)는 부드럽다고 軟柿(연시), 연감이라고도 부른다. 빨갛게 익어 떫은맛이 가고 말랑말랑하니 노인들이 좋아하는 과일이 됐다. 소화 기능을 좋아지게 하고 심장과 폐에 좋다고 하니 더 그렇다. 붉은 구슬(紅珠) 같고 소의 심장(牛心) 같다는 이 성어는 홍시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홍주만 따로 떼어 석류나 수박을 표현하기도 한다.

소의 심장까지 함께 나타내 홍시를 말한 곳은 조선 宣祖(선조) 때의 許浚(허준, 1539~1615)이 쓴 ‘東醫寶鑑(동의보감)’에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기도 한 동양 최고의 의서인 이 책 湯液編(탕액편)에 감에 대해서 설명한다.

감은 일곱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나무가 오래 살고 그늘이 많으며 새가 둥지를 틀지 않고 벌레가 없다. 또 단풍이 좋고 과실이 아름다우며 낙엽도 풍부하다. 그러면서 이어진다. ‘감은 붉은 과실이라 우심홍주라 부른다. 볕에 말리면 백시, 불에 말리면 오시라 한다(柿朱果也 故有牛心紅珠之稱 日乾者名白柿 火乾者名烏柿/ 시주과야 고유우심홍주지칭 일건자명백시 화건자명오시).’

우리의 문장가들이 홍시를 표현한 두 가지만 더 보자. 高麗(고려) 때의 李奎報(이규보)는 ‘맛이 꿀이나 엿 또는 젖과 같아, 우는 아이도 웃길 수 있네(味如飴蜜還如乳 解止兒啼作笑媒/ 미여이밀환여유 해지아제작소매)’라고 했다.

조선 徐居正(서거정)은 ‘맛은 벌꿀 위에 오를 만하고, 향기는 감귤의 중간 쯤이라, 폐의 갈증 사라짐을 문득 깨닫고, 따라서 두풍이 치유됨을 알겠네(味居蜂蜜上 香到盧橘中 頓覺肺消渴 從知頭愈風/ 미거봉밀상 향도로귤중 돈각폐소갈 종지두유풍)’라 예찬했다.

맛을 읊은 것 외에 홍시를 보면 효심을 불러일으키는 듯 부모님을 생각하는 시가가 많다. 유명한 선조때의 朴仁老(박인로)는 ‘반중 조홍 감이 고와도 보이는데/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하노라’라는 시조 早紅柿歌(조홍시가)가 대표적이다. 풍운의 가수 나훈아도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고 절절히 노래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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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36
■ 궁중회화 3편

■ 궁중회화 3편

궁중회화 중 또 중요한 하나는 회화식 지도(地圖)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지도는 현대 서양식 지도, 즉 기호식 지도와 달리 지형이나 지리적인 지식 전달과 함께 그 지역의 인문 지리적인 지식을 포함하는 지도였다. 궁중 화원화가에 의하여 그려진 전통적인 지도는 통치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궁중에서는 지리를 잘 아는 풍수가와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문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파견하여 한 지역을 조사하고 지도로 그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최고의 화원들에 의하여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성을 겸비하는 높은 수준의 지도가 그려졌다.

궁중은 가장 중요한 소장가이며 회화 후원자로서 많은 소장품을 가지고 있었다. 또, 여러 화원 또는 문인화가들에게 그림을 감식(鑑識)하고 제작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왕이 궁중에 소장된 그림을 꺼내놓고 문신들에게 그림에 관한 시문을 짓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또 조선 초 유명한 수장가였던 안평대군은 고려시대 왕실에서 전해져 오던 수장품을 그대로 이어받아 희귀한 중국그림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선조의 <묵죽도>나 정조의 <파초도>에서 확인되듯이 왕들은 스스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고, 때로는 화원들에게 명하여 특정한 주제를 주고 그림으로 표현하게 하기도 하였다. 궁중에서 그려진 이러한 그림들은 민간의 문인이나 직업 화가들의 그림에 비하여 더 교훈적인 주제나 고답(高踏:속세에 초월함)적인 양식을 추구하는 독특한 화풍을 유지하였다. 그림을 나타내는 화(畵)와 회(繪)의 구별은 확실치는 않으나, 화(畵)는 채색보다는 윤곽을 잡는 것을 지칭하는 것 같고, 회(繪)는 채색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도화서는 신라시대의 전채서(典彩署)와 고려시대의 화국(畵局)에서 유래한 것이다. 도화서는 태조 때 설치되어 세조 9년(1463년)까지는 도화원(圖畵院)으로 불리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도화서는 도화(圖畵)를 관장하며 제조(提調) 1인, 별제(別提) 1인을 둔다고 되어 있다. 별제는 화원(畫員)이 진급할 수 있는 최고의 직위였으나, 도화서의 화원들은 신분적으로 천시되었기 때문에 화원에서 진급하여 올라가기보다는 그림을 이해하는 사대부가 임명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화원은 일반적으로 왕실 직속의 어용화가(御用畵家)라 할 수 있는데, 그림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직업화가인 셈이다. 화원(畵員)은 가계(家系)를 이어 가면서 직업화되고 있었다. 화원들이 실제로 맡아서 한 일은 주로 교민화(敎民畵), 장식화(裝飾畵), 세화(歲畵), 경직도(耕織圖), 지도(地圖), 불화(佛畵), 초상화(肖像畵), 지형실경도(地形實景圖), 실경산수사생도(實景山水寫生圖), 모사도(模寫圖), 감상화(鑑賞畵) 등이다. 이 중에 화원들이 주로 하였던 일은 의례, 제례, 의장 등을 그린 의궤화(儀軌畵)였다. 이 밖에 화원들은 병사(兵事), 농업(農業), 의학(醫學), 건축(建築), 지리(地理), 천문(天文) 등 실생활에 관계된 도설(圖說), 삽화(揷畵), 실측도, 단청 등 다양한 일을 맡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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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37
■ 세시풍속歲時風俗

■ 세시풍속(歲時風俗)

연말에 행하는 대표적인 궁중 풍습으로는 섣달그믐인 제석(除夕) 때의 풍습이 있다. 섣달그믐날 낮에 궁중에서는 대궐 안을 청소하고 정돈하여 왕과 왕비, 종친, 궁중 관료, 외국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나례의식을 거행하였다. 나례란 궁중과 한양 각처에 귀신을 잡아먹는 사자들을 보내 축귀(逐鬼)하는 가면놀이였다.

구나(驅儺)·대나(大儺)·나희(儺戱)라고도 한다. 섣달 그믐날의 궁중 나례는 보통 편전의 뜰에서 공연되었고, 이것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한양과 경기도 지역에서 징발된 자들이었다. 나례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나례청(儺禮廳)이 있었으며, 후에는 관상감에서 이를 담당하였다.

나례 후에는 처용놀이 또는 잡희(雜戱)라는 가면놀이를 공연하였다. 처용놀이는 처용의 탈을 쓰고 귀신을 쫓는 놀이였다. 잡희는 일종의 마당극으로 사설과 노래, 연기를 함께 하였으며, 편전의 월대 위에서 공연하였다. 배우들은 시세를 풍자하는 가면과 복장을 하고, 춤과 함께 사설을 늘어놓았다. 사설은 대부분 양반 관료의 비리와 부패를 풍자하는 내용으로, 관람자들은 잡희를 보면서 재미를 느낄 뿐 아니라 백성들의 여론을 알 수 있었다. 섣달그믐의 절정은 대궐 후원에서 시행하는 불꽃놀이였다.

불꽃놀이는 1년간 쌓인 잡귀를 모두 몰아내고 새해에는 만복을 맞이하겠다는 주술적 의미와 여진이나 일본 등의 주변 민족에게 무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불꽃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폭죽을 만들고 이를 쏘아 올리는 포대도 설치해야 했다. 당시로서는 화약과 포대 모두가 첨단 무기에 해당하였으므로 이 날의 불꽃놀이는 병조와 군기시(軍器寺)의 전문가들이 준비하였다.

불꽃놀이가 끝난 후에는 종정도(從政圖), 작성도(作聖圖) 등의 주사위놀이나 격구(擊毬)를 하며 밤을 새웠는데, 왕은 주사위놀이를 하면서 돈을 내걸어 분위기를 돋우기도 하였다. 각 가정에서는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밤중에는 마당에 불을 피우고 폭죽을 터뜨린다. 집안에 있는 잡귀·사귀(邪鬼)를 모조리 몰아내고 정(淨:깨끗)하게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이다.

정월 대보름은 설날, 추석과 더불어 3대 명절로 쳤다. 민간에서는 대보름날에 부럼을 깨고 더위를 팔았고, 보름달이 떠오르면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고 쥐불놀이를 하였다. 궁중에서도 일곱 가지 나물과 5곡 밥 그리고 원소병(元宵餠)이라 일컫는 달떡과 약밥, 부름 및 약과를 먹는다. 이 날 궁궐 후원에서는 승정원이 주관하는 내농작(內農作:궐내에서 행하는 농사놀이) 행사를 하였다.

이 행사는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며 농사의 전 과정을 풀과 볏짚 또는 나무를 이용하여 조각, 형상화해야 하므로 수많은 기술자가 동원되었다. 내농작은 보통 <시경>의 ‘빈풍칠월’(豳風七月) 편을 대본으로 하여 그 내용을 형상화하였다. ‘빈풍칠월’에는 새와 짐승, 밭갈이하는 지아비, 들밥을 나르는 지어미, 누에치는 여자, 베 짜는 할멈 등이 등장한다, 내농작에서는 좌우로 편을 나누어 어느 쪽이 더 정교하게 이들의 모양을 제작했는지 경쟁한 후 이기는 쪽에 왕이 상을 내렸다.

농업에 관련된 또 다른 궐내 풍습으로는 기우제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수년씩 계속되는 가뭄 피해 때문에 비를 기원하는 각종 기우제를 지냈다. 궐내 기우제는 경복궁의 경회루, 또는 창덕궁의 후원 등에서 행하였다. 도롱뇽을 단지에 담아 놓고 아이들로 하여금 나무로 두드리면서 비를 내리면 풀어 주겠다는 합창을 하게 하였다. 이를 ‘석척기우제(蜥蜴祈雨祭)’라 하는데, 도롱뇽을 비바람을 일으키는 용의 일종으로 여기고 있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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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37
■ 송구영신送舊迎新

■ 송구영신(送舊迎新)

시간은 잡을 수도 없고 잡는다고 주저앉지도 않는다. 되돌릴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연말이 되면 가장 많이 쓰이고 떠오르는 단어가 ‘송구영신(送舊迎新)’ ‘송고영신(送故迎新)’ 이다. 글자 그대로 ‘옛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하다’ ‘지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다’ 로 풀이할 수 있다. 옛 선비들은 세밑이 되면 이 네 글자를 써내려가면서, 지난 한 해에 대한 이런저런 반성을 했을 터이고, 다가올 새 시간에 대한 각오와 새 희망을 꿈꾸었으리라.

현재 송고영신 또는 송구영신은 새해를 맞이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엄밀히 기원을 따져보면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송고영신(送故迎新)의 원전(原典)은 한서(漢書)의 왕가전(王嘉傳)에 있다고 한다. 20세에 즉위하여 26세에 죽은 애제(哀帝:기원전 26년-기원전 1년)는 왕위를 이어 받아 6년 동안 통치했지만, 정치는 뒤로 미루고 여색(女色)뿐만 아니라 남색(男色)을 탐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이런 변변치 못한 왕에게도 ‘왕가(王嘉)’라는 올바른 재상이 있었다.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뛰어난 인재를 등용시키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고, 다행히 왕의 신임을 받아 그럭저럭 국정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吏或居官數月而退, 送故迎新, 交錯道路 (리혹거관수월이퇴, 송고영신, 교착도로)』 왕가가 왕에게 쓴 글 일부이다. 여기에 송고영신(送故迎新)이라는 대목이 있는데 해석을 해보면, 『관리가 수개월 있다가 물러나면. 구관일행을 보내고 신관일행을 맞이하는 바람에 서로 뒤섞여 도로가 혼잡했습니다.』

위 글에서 송고영신(送故迎新)은 일종의 관가(官家)의 언어로, 구관(舊官)을 보내고 신관(新官)을 맞이한다는 말로 소위 요즘으로 말하면 이·취임을 의미한다. 온전하게 요즘 의미와 같은 송고영신(送故迎新)이 등장하는 것은 당 말부터 송나라 초까지 이름을 날리던 대학자 서현(徐鉉)에 의해서이다. 왕가의 송고영신(送故迎新)보다 한참 지나서이다.

- 제야(除夜) / 서현(徐鉉) -

寒燈耿耿漏遲遲 한등경경루지지 차가운 등불은 반짝반짝 시간은 느릿느릿

送故迎新了不欺 송고영신료부기 옛것 배웅하고 새해를 맞음에 거짓이 없네.

往事倂隨殘曆日 왕사병수잔력일 지난 일은 남은 날을 따라 물러나겠지만

春風寧識舊容儀 춘풍녕식구용의 봄바람이 찾아오면 옛 모습 알아는 보려나. <후략(後略)>

이 시를 음미해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한해의 마지막을 맞이하면서 가는 세월에 대한 회한이 묻어난다. 해가 바뀌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에 대한 서글픔도 담겨있어 다가올 봄이 찾아와 늙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다. 이 시에서 등장하는 송고영신(送故迎新)은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연말에 딱 부합되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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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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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38
■ 소현세자 8편

■ 소현세자 8편

조선 왕들 중 형제를 죽인 태종이나 아들을 죽인 영조 같은 임금은 있었으나, 아들·며느리·손자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 왕은 인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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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봉림대군)이 즉위하면서 강빈(姜嬪) 옥사(獄死)에 대한 의혹과 억울한 죽음에 대한 신원(伸冤) 여론이 대두되자, 효종은 강빈의 옥사를 재론(再論)하는 자는 역모죄로 다스리겠다는 특별 하교를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인물은 황해도 관찰사로 있던 김홍욱(1602~1654)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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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욱은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7대조로 조선 후기 경주 김씨 가문이 절의(節義)의 집안으로 자리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김홍욱은 강빈의 신원과 소현세자 셋째 아들의 석방을 요청하는 직언(直言)을 올려 조정에 파문을 일으켰다. 격분한 효종은 곤장을 때려 김홍욱을 죽임으로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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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후로도 강빈의 옥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이 제기되었고, 1718년(숙종44년)에 이르러서야 강빈은 마침내 신원되어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로 복위(復位)되었다. 복위된 이름의 뜻을 풀어 보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게 하는 빈(嬪)이라는 의미로, 그녀의 죽음이 억울하고 가여워서 백성들이 슬픈 마음을 품게 되었다는 뜻이다. 민회빈 강씨의 묘소는 현재 광명시에 소재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민회빈묘로 불렸으나 1903년(고종40년) 영회원(永懷園)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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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내외는 이렇게 철저하게 소외되고 음모 속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과연 그들이 청국에서 보낸 행동을 매국행위로 볼 수 있을까? 물론 당시 반청감정이 최고조에 다다른 분위기에서 소현세자의 행보는 다소 섣부른 감도 있었고, 충분히 오해의 소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자의 신분으로 그것이 죽을 정도의 죄는 아니다. 그냥 세자책봉을 폐하는 정도로 충분히 죄를 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청국에게 결정권을 빼앗긴 상태였기 때문에 인조는 마음대로 세자를 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설령 세자를 폐한다고 하여도 소현세자에게 우호적이었던 청국은 그것을 인정할리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인조는 소현세자에게 왕위가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비밀리에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소현세자 내외의 안타까운 죽음, 그리고 숨겨진 음모......그 음모의 정점에는 국왕이었던 인조가 있었기에, 역사는 그의 죽음을 의문사 정도로 밖에는 기록 할 수 없었다.

심양에서 청의 신문물을 보고 돌아와 북학(北學)의 기운을 조선에 심으려 했던 소현세자와 강빈의 죽음, 그리고 봉림대군의 즉위 이것은 조선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만일 선진 문물에 눈을 뜬 소현세자가 왕위에 오르고 실리에 밝은 강빈(姜嬪)이 왕후가 되었더라면 이후 우리나라의 역사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이백년은 더 앞당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인 조의 뒤를 이어 봉림대군이 효종으로 즉위하면서 청을 물리쳐야 한다는 북벌(北伐)이 국시(國是)로 자리 잡게 되었다. 소현세자가 심양의 인질 생활 속에서 습득하고 추구했던 새로운 과학기술과 문명의 수용, 즉 북학(北學)의 꿈은 그의 죽음과 함께 묻혀 버리고 말았다.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갔던 비운(悲運)의 세자였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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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38
■ 소현세자 7편

■ 소현세자 7편

소현세자는 죽은 후 경기도 고양시에 묻혔는데, 무덤 역시 ‘원’(園)으로 부르지 않고 묘로 명명하였다. 인조는 한 번도 소현세자의 무덤을 방문한 적이 없다. 처음에는 ‘소현묘’라고 불리다가 고종 때에 이르러 소경원(昭慶園)으로 격상되었다.

인조의 세자빈에 대한 적개심은 멈출 줄 모르다가 결국 세자빈 강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1646년 1월 3일, 인조의 수라상에 올린 전복구이에서 독이 발견되었다. 인조는 세자빈을 모시는 5명의 빈궁 나인(內人)과 임금의 수라를 만드는 주방 나인 3명을 잡아들여 세자빈 강씨가 시킨 것이 아닌지 사실을 말하라고 모진 고문을 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소용 조씨의 참소(讒訴)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극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결코 거짓 자백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조는 후원의 별당에 세자빈 강씨를 가둔 후 별당 문에 구멍을 뚫어 음식과 물을 넣어 주게 하는 비인간적인 처사를 단행했다.

세자가 된 봉림대군이 그 처사에 대해 강력히 주장하자 비로소 시녀 한명을 들여보내 시중을 들게 했다. 인조가 세자빈과 말을 나누는 사람은 벌을 주겠다고 한 이래로 인조가 머무르는 대전과 빈궁전 사이에 전혀 왕래가 없었으므로 전복구이에 독을 넣은 일은 거의 불가능했는데도 세자빈 강씨에게 누명을 씌워 유폐시켰다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인조는 이 일을 구실 삼아 결국엔 세자빈에게 사약을 내렸다. 《인조실록》은 강빈의 죽음을 기록하면서, 그녀의 강한 기질이 죽음을 자초했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인조의 잔인함은 부모를 모두 잃은 소현세자의 어린 세 아들인 석철(12세), 석린(8세), 석견(4세)을 제주에 유배시키기에 이르렀다. 인조는 소현세자의 소생 중 석철을 데려다가 청에서 키우겠다는 용골대(龍骨大)의 제안에 혹시라도 왕 자리를 손자에게 빼앗길까봐 무척 두려워해, 어린 아이들을 제주로 유배시킨 것이다. 그나마 인조는 어린 나이를 배려하여 세 아이를 모두 제주도 한곳에 살도록 하고 내시 김광택과 나인 옥진 등으로 하여금 이들을 보살피도록 하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제주로 유배 간 지 고작 1년 만인 1648년, 석철은 병 들어 죽고 뒤이어 석린도 세상을 떠났다.

소현세자의 유일한 핏줄인 홀로 남은 석견은 효종(孝宗) 때가 되어서야 유배에서 풀려나 1656년 효종 7년 경안군으로 복위되었다. 또한 강백년을 비롯한 강빈의 무고함을 주장하다가 삭직(削職)당하거나 좌천(左遷) 당한 사람 역시 모두 사면되거나 복권 되었는데, 특히 강백년은 사후 영의정으로 추증되기도 하였다. 효종이 선대왕 대에 마무리 된 것처럼 보였던 소현세자의 두 아들의 사망을 재조사한 것으로 보아 음모세력이 있었음은 분명하였다. 그 음모세력의 주축세력은 역시 김좌점과 귀인 조씨이다. 이들은 효종재위 2년 만에 역모를 일으키려다가 발각되어 결국 모두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8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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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39
■ 소현세자 6편

■ 소현세자 6편

귀국한 지 두 달만인 1645년 4월 26일, 소현세자는 갑자기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소현세자는 죽기 6일 전부터 오한과 고열에 시달렸고, 어의는 학질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숨을 거둔 당일엔 오한에 특효약이라는 소시호탕(小柴胡湯)을 올린 후에도 차도가 없자 인조의 주치이인 이형익은 소현세자의 열을 내리기 위해 세 차례 시침(施鍼)을 행하였다.

침을 맞고 3일 후 소현세자는 사망하고 말았다. 침을 맞을 당시 인조는 침의(鍼醫) 2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어의(御醫)를 세자궁에서 나가 대기토록 했다. 소현세자의 비문에는 『환궁 이후 계속 한증과 열기가 있었는데, 의원이 시술이 잘못되어 죽음에 이르렀다.』고 나와 있다. 과연 소현세자는 이형익의 시침 실수에 의해 3일 만에 사망하였을까? 《인조실록》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실록에도 독살설로 의혹을 살 만한 내용이 기록될 정도로 의문투성이의 죽음이었다.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 일 만에 죽었는데,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鮮血)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幎目)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 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인조 23년 6월 27일》

소현세자의 장례 절차 역시 많은 의문이 들게 한다. 보통 종친이 사망해도 시술을 잘못한 의원이 징계를 받는 것은 당연하였지만, 왕위 계승권자인 소현세자의 시술을 잘못하였다는 이형익은 전혀 징계를 받지 않았다. 더구나 인조는 이형익에 대한 치죄(治罪) 자체를 불허하였으며, 이형익에게 죄를 물어야 된다고 주장한 김광현을 강빈의 조카사위란 이유로 좌천시켜 버렸다. 아무리 미워도 소현세자는 인조의 자식이 아니었던가? 인조는 살아있을 때 보다 이미 세상에 없는 소현세자에게 더욱 가혹하였다.

그의 장례절차는 당연히 세자의 예를 갖춰야 했지만, 일반 사대부와 별 다를 것 없는 절차만을 행하였으며, 그나마도 기일을 대폭 단축하였다. 그리고 세자가 사망함에 따라 그때까지도 청국에 볼모로 잡혀있던 봉림대군은 급히 귀국하게 되었고, 인조는 그가 귀국하자마자 세손을 원손으로 삼아야 한다는 대신들의 반대를 뒤로하고 봉림대군을 세자로 임명하였다. 아무튼 봉림대군은 인조가 사망하는 4년 후 1649년 왕위에 오르게 되니 그분이 조선 17대 임금 효종이다.

소현세자의 장지(葬地)와 장례일이 원손에게 좋지 않다고 불평을 한 세자빈의 오빠 강문명을 비롯한 소현세자의 처남들이 연이어 고문을 당하고 죽음에 이르거나 유배를 가게 되었다. 세자빈 강씨는 인조가 머무르는 대전 옆에 와서 크게 울부짖으며 불만을 터트렸으나, 인조는 세자빈의 아침저녁 문안인사마저 중단시켜버렸다. 그럴수록 세자빈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소용(昭容) 조씨는 세자빈이 연일 인조를 저주 했다는 등의 거짓 제보를 했고, 세자빈의 궁녀는 물론 원손을 보살피는 궁녀까지 끔찍한 고문을 당해야 했다.

-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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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40
무슨 꽃입니까?

무슨 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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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40
■ 소현세자 3편

■ 소현세자 3편

청에 인질로 간 왕자들의 행보에 대해 인조는 매우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소현세자가 조선의 국교인 유학보다 천주교를 가까이 하고 있다는 소식은 인조를 너무나 화나게 만드는 일이었다. 여기에 귀인 조씨와 김자점 등은 소현세자가 청국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다는 등 각종 모략을 일삼았다.

당시 조선 조정은 대부분 친명반청(親明反淸) 세력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소현세자의 활동을 친청(親淸) 행위로 규정하고 비난하였다. 인조 역시 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만큼 이 같은 태도를 취하는 소현세자를 좋아하지 않았고, 급기야는 그가 다음 왕위를 이어받을 인물로서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인조가 총애하던 후궁 귀인 조소용과 세자빈 강씨의 사이가 좋지 않아 인조와 소현세자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소현세자는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 용골대(龍骨大)를 비롯한 청나라 장군과 관리들을 달래기도 하고, 호령도 하면서 인질 생활을 이어나갔다. 병자호란 당시 주전파로 붙잡혀 온 김상헌을 비롯한 3학사를 처형의 위험에서 구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고, 청(淸)에서 도망친 사람들에게 가해진 월형(刖刑:발뒤꿈치 자르기) 등의 상처를 치료해 주어야 했다.

또한 인질 생활에서 풀려나기 위해 내야 하는 엄청난 양의 속환(贖還) 비용과 전쟁에 패배한 대가로 바쳐야 하는 물품이 조선에서 도착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든 마련해서 납부해야 했다. 이때 두 팔 걷어 부치고 나선 사람이 바로 세자빈 강씨였다.

그녀는 조선의 발전된 농업 방법을 만주의 심양관 근처 둔전(屯田)에 적용하여 수확물을 거둘 계획을 세웠다. 농사 지을 노동력을 위해 세자를 설득해 엄청난 속환금이 필요한 조선인 인질들의 몸값을 치루고, 그들을 둔전(屯田) 경작에 투입했다. 그 결과 수 천 석에 이르는 수확물을 얻게 되어 항상 식량이 부족했던 심양관소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멀리 몽골 지역에서 소를 사와서 비싸게 팔기도 하고, 조선의 과일을 판매하는 등 심양관소에 활기가 넘치게 되었다.

게다가 수확한 곡식의 품질이 청나라 것보다 훨씬 뛰어나 자연히 강빈 농장의 곡물은 청나라 왕족들에게 높은 값에 팔려나갔다. 강빈은 사람을 시켜 농사를 짓는 데도 수완이 뛰어났고,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해방시킨 조선인 포로가 수백 명에 달했다. 청과 조선의 본격적인 무역이 시작되자 심양관의 형편이 피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래량이 커졌고, 이 모든 거래를 강빈(姜嬪)이 직접 챙겼다. 거기다가 청의 요구를 조선 조정에 전달하는 공식문서인 장계도 강빈의 손을 거쳤다. 중국 장사꾼들도 조선 물품을 구할 일이 생기면 심양관으로 찾아왔다.

인조 21년 12월 14일에 《심양장계(瀋陽狀啓)》에서 조선 조정에 올린 보고에 의하면 6곳의 둔전에서 밭 9백 39 일반갈이, 씨 뿌린 것 2백 33섬 4말 7되, 생산된 곡식 5천 24섬 2말 9되, 목화 6백 20근을 거둬들였다고 보고되어 있다. 처음 세자 내외가 심양관소에 도착했을 당시의 상황과 완전히 다른 결과였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곳에서 세자빈의 슬기로운 경제대책으로 5천 섬이 넘는 곡식을 생산하게 된 것이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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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41
■ 소현세자 2편

■ 소현세자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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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손인 이회를 낳은 해인 1636년 12월에 청(淸)이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12만 명의 군사를 일으킨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쇼현세자와 세자빈의 인생길은 크게 바뀌게 되었다. 호란이 일어나자 세자빈 강씨는 시동생들인 봉림대군, 임해대군 및 왕실 가족과 함께 낳은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원손을 안고 강화도로 피신을 갔다가 청에 붙들린 몸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인조는 소현세자와 함께 남한산성에 들어갔다가 군량미가 떨어져 45일 만에 청나라 태종에게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하는 치욕을 당한 끝에 청과 굴욕적인 항복 조약을 맺고 말았다.
",

결국 1637년 2월, 청과 맺은 정축화약의 항복 조건에 따라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 둘째아들 봉림대군과 삼공육경(三公六卿:삼정승 육판서)의 자제들, 그리고 주전론을 주장했던 김상헌, 윤집, 오달제, 홍익한과 백성들 20여 만 명이 함께 인질이 되어 청의 수도인 심양(瀋陽)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 등의 심양에서의 생활상은 세자시강원(侍講院) 신하들이 본국으로 보고한 《심양장계》등을 통해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세자 일행이 심양(瀋陽)으로 길을 가던 중 청(淸)은 청의 여성들은 가마를 타지 않고 말을 타니 세자빈 강씨도 말을 타고 심양관까지 올 것을 요구했다. 대부분의 조선 아녀자들이 그렇듯이 세자빈 강씨는 한 번도 말을 타 본적이 없었다.

세자빈 강씨는 대가 센 여인이었다. 모두가 걱정했지만 세자빈 강씨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말에 올라타 조선의 빈궁(嬪宮)으로서의 자존심을 당당히 보여주었다. 그렇게 심양관에 들어서니 아직 완공되지 않은 건물 두 채만 덩그러니 있었다. 척박한 기후로 인해 소현세자는 시시때때로 병이 나서 세자빈은 물론 시종들의 근심이 깊었다.

그러나 소현세자(昭顯世子)는 영민하고 지혜로웠으며, 용기와 기백이 있어 청나라 황제나 고관들의 비위를 그런대로 맞춰가면서 인질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들의 눈 밖에 나면 조선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므로, 청과 조선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한 중간 역할을 해낸 것 같다.

심양에서의 8년간의 생활은 세자와 세자빈의 의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청나라를 과거의 야만국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정치·문화의 강국임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국제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혀간 것이다. 세자와 세자빈은 심양에 머무르면서 단순한 인질이 아닌 외교관의 소임을 도맡아 청과 조선 사이에서 정치적 조정(調整)을 맡았으므로, 청은 조선과의 문제를 소현세자를 통해서 해결하려 했다.

소현세자는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는 한편, 당시 청에 들어와 있던 서양 문물에 심취하여 천주교신부인 아담 샬 등과 친교를 맺으며 그를 통하여 서양의 천문학, 수학 등을 접하게 되었다. 아담샬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와 각종 근대기기들은 온통 신기하고 놀라운 것 들 뿐이었다. 소현세자는 발전되었다고 생각하는 청국조차 서구의 뛰어난 과학과 기술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인식하였다.

그의 머릿속 에는 이 놀라운 문명의 기기를 하루라도 빨리 조선으로 가져가서, 조선을 청국 못지않은 근대 국가로 발전시킬 생각 뿐 이었다. 반면 소현세자와 함께 볼모로 잡혀갔던 동생 봉림대군(鳳林大君)은 서구 문물을 접하면서도 그리 큰 관심을 갖지도 않았고, 야만족이라 멸시하였던 여진족에게 볼모로 잡혀온 처지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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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41
■ 인조의 여인들, 장렬왕후 2편

■ 인조의 여인들, 장렬왕후 2편

인조의 맏아들이었던 소현세자가 급서(急逝)했다. 본래 조선왕실에서는 차기 왕위를 이을 세자가 부재할 경우 세자의 아들인 원손(元孫)에게 왕위가 이어지게 했는데, 인조는 이를 무시한 채 차남인 봉림대군을 세자로 세웠다. 그리고 세자빈 강씨(소현세자의 아내)를 사사(賜死)하고, 소현세자의 세 아들을 제주도로 유배 보내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였다. 이러한 인조의 행동은 훗날 예송(禮訟)논쟁의 씨앗을 심어놓게 된다.

후사도 없이 온갖 박대를 받으며 외롭게 지내는 계모 장렬왕후를 소현세자의 뒤를 이어 세자가 된 봉림대군은 자신보다 다섯 살 아래이지만 진심으로 공경하였다. 문안을 드리지 말라는 부왕 인조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봉림대군은 계속 장렬왕후를 찾아가서 문후를 드리며 정성껏 효도했다. 그때마다 장렬왕후는 몹시 고마워했다.

인조가 세상을 떠나던 날 조소용이 장렬왕후가 인조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게 하자, 봉림대군은 조소용을 쫓아내고 장렬왕후를 모셔 오도록 했다. 1649년(인조27년) 5월 8일 인조는 세상을 떠났다. 장렬왕후는 효종의 효성으로 대비의 권위를 되찾게 되었다.

인조의 총애를 독차지하며 거의 궁중의 안방마님을 차지하던 소용 조씨가 몰락한 것은 장렬왕후가 직접 손을 쓴 건 아니지만, 장렬왕후가 간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소용 조씨가 며느리인 신씨(아들인 숭선군 이징의 아내)를 박대하고 여종 영이를 숭선군의 첩으로 삼자, 신씨는 장렬왕후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이에 장렬왕후가 영이를 문초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소용 조씨가 저지른 모든 짓들을 자복해버린 것이다. 1651년(효종2년) 소용 조씨는 자신이 낳은 숭선군을 임금으로 추대하려는 역모를 꾸미게 되었으나, 결국 사위와 사위의 아버지 김자점 등은 역모혐의로 사사되었고, 숭선군은 귀양을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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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의 극진한 효성 덕분에 장렬대비는 궁궐에서 자신의 권위를 찾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 족보상으로 증손자(인조의 증손자)가 되는 숙종 이순이 조선의 제19대 임금으로 즉위 후, 쓸쓸히 지내던 장렬왕후 조씨는 한 궁녀를 총애하여 자신의 처소로 들였는데, 이 궁녀가 바로 훗날의 희빈 장씨(禧嬪 張氏)이다.
",

장씨는 곧 숙종의 눈에도 띄어 두 사람의 사이는 매우 가까워졌다. 그런데 희빈 장씨는 행동이 매우 방자하고 남인 쪽 사람이었기 때문에, 서인 세력의 중심인 대비 김씨명성왕후:현종 비는 곱게 보지 않았다. 명성왕후 김씨는 현종의 정비이자 숙종의 어머니로 당시 정권을 쥐고 있던 서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성이지만 성격이 담대해서 남편인 현종이 후궁을 두지 못할 정도였다고 하고, 정사(政事)에 관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화려한 배경과 강한 성격을 지녔던 명성왕후는 기어코 시할머니가 아끼는 궁녀 장씨를 가차없이 내쫓아버렸다. 요즘 세상에서도 며느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닌데, 지금보다 훨씬 더 유교적 질서를 강조했던 조선시대였으니 명성왕후가 얼마나 기세등등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훗날 장렬왕후가 궁녀 장씨를 다시 궁중으로 불러들이기는 했지만 그것도 명성왕후가 죽은 뒤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현종의 비 명성왕후(明聖王后)가 죽은 뒤에는 비로소 왕실의 큰 어른(대왕대비)으로서 영향력이 생기기 시작하여 내명부를 통솔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장렬왕후는 말년에는 손자며느리에게도 치인 것으로 보인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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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42
■ 인조의 여인들, 장렬왕후 1편

■ 인조의 여인들, 장렬왕후 1편

장렬왕후 조씨는 한원부원군 조창원의 셋째 딸로, 조부가 누명을 쓰고 몰락한 집안이었다. 인조의 원비(元妃) 인렬왕후 한씨가 난산(難産)으로 세상을 떠나자, 3년 뒤 인조16년(1638년) 15세의 나이로 인조와 가례(嘉禮)를 올려 계비(繼妃)가 되었다. 당시 인조는 44살이니 무려 29살 차이가 난다. 명목상 아들인 소현세자, 봉림대군보다도 더 어렸고, 손자인 현종과도 겨우 16살 차이였다. 하지만 가례를 올린 첫 날을 제외하고 인조는 장렬왕후를 찾지 않았다.

인조와 장렬왕후 조씨 간의 나이 차이가 많고, 인조는 당시 소용 조씨에게 빠져 있었기 때문에 철저히 외면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인조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남기지 못했고, 20세의 나이에 풍병(風病)까지 오는 등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또한 중전이 머물러야 할 전각(殿閣)을 소용 조씨에게 내주고, 1645년 경덕궁으로 옮기는 등 굴욕을 당해야 했다.

인조가 새 중전을 뽑을 때, 아버지 조창원은 딸에게 "무조건 밉보여 왕비 후보에서 떨어져야 한다."고 했으나, 장렬왕후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본인 스스로 왕비가 되고 싶은 마음에 김상궁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때 지혜로운 모습을 보여 결국 왕비로 간택되었다.

1649년 인조가 사망하자 26세에 대비가 되었고, 1651년 효종으로부터 존호를 받아 자의대비라 불렸으며, 1659년 효종이 세상을 뜨자 대왕대비에 올랐다. 장렬왕후는 숙종 14년(1688) 사망했는데, 인조·효종·현종·숙종 대까지 4대에 걸쳐 왕실 어른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시기의 붕당 정치는 장렬왕후의 복상(服喪) 문제를 놓고 예송 논쟁이 치열하게 대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장렬왕후는 국모(國母)가 되기는 했지만 15살 밖에 안 된 어린나이라 내명부를 다스리기는 매우 어려웠다. 인조의 사랑을 그다지 받지 못한 장렬왕후에게 가장 큰 장애는 인조의 무한 총애를 받고 있던 후궁 소용 조씨였다. 소용 조씨는 숭선군을 낳고 반정 공신 김자점의 세력을 등에 업으면서 마치 중전처럼 행세할 정도로 권세가 대단했다.

조 소용은 인조의 총애를 독차지하며 투기와 이간질까지 심했기 때문에, 장렬왕후는 자연히 인조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린 왕비 조씨는 소용 조씨에게 눌려 죽은 듯이 지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장렬왕후 조씨는 아이를 못 낳는 열등감으로 움추려 들었고, 인조가 장렬왕후 조씨의 침소에 들르려고 해도 조소용이 늘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방해했다. 그러나 장렬왕후 조씨는 비록 나이는 어려도 후궁들을 잘 보살펴 주었고, 넓은 아량을 보여 덕망 높은 중전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1647년(인조25년) 5월 조소용의 농간으로 세상을 떠난 소현세자의 아들 3형제가 제주도로 귀양가서 그 중 석철과 석린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인조도 손자들의 죽음이 누구의 농간인지 알면서도 덮어 버리고 말았다. 어린 왕손들의 억울한 죽음을 안타까워한 이는 오직 왕비 조씨였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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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42
백마비마白馬非馬 - 흰 말은 말이 아니다, 교묘한 억지 논리

백마비마(白馬非馬) - 흰 말은 말이 아니다, 교묘한 억지 논리

흰 백(白/0) 말 마(馬/0) 아닐 비(非/0) 말 마(馬/0)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억지로 둘러대어 합리화시키려는 말이 詭辯(궤변)이다. 앞뒤가 맞지 않아 바로 들통이 나면 矛盾(모순)이 된다. 모든 것을 꿰뚫을 수 있는 창과 모두 막을 수 있는 방패를 한꺼번에 팔려다 꽁무니를 뺐다는 모순과 달리 궤변은 그럴듯한 이론을 갖다 댄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sophist)는 ‘지혜로운 사람’을 뜻하는 궤변학파를 가리켰다. 앞세운 거북이와 가장 빠른 아킬레우스(Achilleus)가 경주를 해도 결코 앞지를 수 없다는 역설의 제논(Zenon)이 유명했던 것은 논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흰 색의 말(白馬)은 말이 아니다(非馬)고 한 公孫龍(공손룡)도 그럴 듯하게 설명을 잘 붙여 성어를 남겼다.

공손룡은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趙(조)나라 사람으로 名家(명가)의 대표적 사상가였다. 명가는 수많은 학자들이 자유롭게 학문을 펼쳤던 諸子百家(제자백가) 중에서 이름과 실재를 분석하는 名實合一(명실합일)의 정치사상을 전개했다.

刑名家(형명가)나 辯論家(변론가)로도 불렸던 이들은 공손룡 외에도 鄭(정)나라의 鄧析(등석)이나 莊子(장자)에도 등장하는 宋(송)나라의 惠施(혜시) 등이 알려져 있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는 허황되게 현혹시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론으로 무장됐다. ‘公孫龍子(공손룡자)’에 나오는 백마가 말이 아니라고 펼쳐놓는 이야기를 보자.

‘말이라는 것은 형체를 규정하고, 희다는 것은 색깔을 규정하는 개념이다(馬者 所以命形也 白者 所以命色也/ 마자 소이명형야 백자 소이명색야), 색 규정의 개념은 형체와 다르므로 백마는 말이 아니다(命色者非命形也 故曰 白馬非馬/ 명색자비명형야 고왈 백마비마).’ 백마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 말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이 서로 다르니 백마는 말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백마는 흰말만 가리키지만 말은 모든 말을 다 포함하기 때문이란다. 공손룡의 堅白同異(견백동이)도 재미있다. 눈으로 흰 돌은 알 수 있으나 단단한지는 모르고, 손은 단단한 줄은 알아도 흰 색깔은 알 수 없으므로 세상에 희고 단단한 돌은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들이 늘어놓는 이론은 궤변에다 말장난으로 치부하기 전에 명분과 실재를 엄격히 구분하는 면은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똑 같은 행동을 두고 내가 한 것만 정의라는 억지 주장은 한 쪽만 보는 ‘내로남불’이다. 수년 전 말이 아닌 백마보다 더 기발한 이론이 나와 두고두고 남게 됐다.

검찰의 압수수색 전에 용의자가 컴퓨터를 미리 옮긴 것은 증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 말이다. 여권 인사가 검찰이 장난칠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라 둘러댔으니 이제는 증거인멸이 증거보전이 되는 세상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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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43
십악참회十惡懺悔 - 열 가지 죄악을 뉘우침, 몸과 입 그리고 마음으로 짓는 큰 잘못

십악참회(十惡懺悔) - 열 가지 죄악을 뉘우침, 몸과 입 그리고 마음으로 짓는 큰 잘못

열 십(十/0) 악할 악(心/8) 뉘우칠 참(忄/17) 뉘우칠 회(忄/7)

법률에 위반되어 처벌받는 罪(죄)는 넓게 양심이나 도리에 어긋나도 해당한다.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惡(악)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알게 모르게 행하는 죄는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외부의 잘못으로 드러나는 죄악은 잘 알고 분개하지만 자신이 저지른 것은 모르거나 죄가 아니라고 여기기 쉽다.

또 ‘도둑놈은 한 죄, 잃은 놈은 열 죄’라는 속담대로 죄와 벌이 공평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잃은 사람은 간수 못하고 남을 의심하는 등의 다른 죄도 있단다. 하지만 하늘은 공평하게 죄를 물으니 菜根譚(채근담)의 말을 명심할 일이다. ‘군자가 밝은 곳에서 죄를 얻지 않으려면, 먼저 어두운 곳에서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欲無得罪於昭昭 先無得罪於冥冥/ 욕무득죄어소소 선무득죄어명명).’

인간들의 죄는 한이 없을 것 같은데 불교에서는 열 가지로 압축한 十惡(십악)이 있다. 십악은 조선시대에도 大明律(대명률)과 같이 내란이나 모반, 불효 등 용서받을 수 없는 열 가지 죄로 다스렸다. 불교 전래이후 몸과 입, 또 마음으로 짓게 되는 악한 행위를 十惡業道(십악업도)나 十不善道(십불선도)로 정리하여 교리를 설명하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십악은 여러 곳에 등장하는데 불교도들이 많이 독송하는 경전 중의 하나인 ‘千手經(천수경)’에서의 참회기원이 유명하다. 千手千眼(천수천안)의 한량없는 손과 눈을 가지신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이 넓고 큰 대자비심으로 악업을 구제해 준다는 경전이다.

열 가지 악 중에서 몸으로 짓는 身業(신업)이 세 가지로 가장 먼저 나온다.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인 죄 오늘 참회합니다(殺生重罪今日懺悔/ 살생중죄금일참회)’로 시작하여 남의 물건을 훔친 죄 偸盜(투도), 요사스럽고 음탕한 죄 邪淫(사음)의 죄를 똑 같이 참회한다. 입으로 짓게 되는 죄 口業(구업)은 네 가지나 되는데 일상에서 쉽게 저지를 악을 경계한다.

거짓말로 지은 죄 妄語(망어), 교묘하게 꾸며대는 말 綺語(기어), 한 입으로 두 가지 말로 이간시킨 兩舌(양설), 나쁜 말로 꾸짖는 惡口(악구)가 그것이다. 남은 세 가지는 마음으로 짓는 意業(의업)인데 탐욕으로 지은 貪愛(탐애), 성냄으로 인한 瞋恚(진에, 瞋은 부릅뜰 진, 恚는 성낼 에), 어리석음으로 인한 癡暗(치암)을 참회한다.

사람이 저지르는 죄는 십악만이 아니겠지만 이것이라도 잘 지킨다면 떳떳할 수 있어 十善(십선)이 된다. 불도들이 실천 수행하는 八正道(팔정도)란 것도 正見(정견), 正思惟(정사유), 正語(정어)로 시작하여 십악을 멀리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안다고 하여 실천하는 것도 따른다면 그 이상 좋을 수가 없다. 먼저 법률에 위반되는 죄는 물론 양심에 거리끼는 행위까지 삼가야 올바르다. 나의 잘못도 남에게 덮어씌우는 일이 비일비재한 내로남불식 사회는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이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이간질로 저지른 죄 오늘 참회(兩舌重罪今日懺悔/ 양설중죄금일참회)’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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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44
청정점수蜻蜓點水 - 잠자리가 수면을 건드리다,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다.

청정점수(蜻蜓點水) - 잠자리가 수면을 건드리다,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다.

잠자리 청(虫/8) 잠자리 정(虫/7) 점 점(黑/5) 물 수(水/0)

‘갓난 애기의 새끼손가락보다 짧은 키로, 허공을 주름잡아 가로세로 자질하는’(김관식) 잠자리는 유충이 물에서 살기 때문에 물가로 많이 비행한다. 잘 발달한 겹눈으로 멀리까지 날아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다. 잠자리를 한자로 말할 때 靑娘子(청낭자)나 대시인 유치환의 시집 이름으로 잘 알려진 蜻蛉(청령) 이외에도 성어에 나오는 蜻蜓(청정)이 있다.

잠자리가 수면을 건드린 뒤(點水) 금방 날아오르는 모습을 나타내는 이 말은 우리 속담 ‘잠자리 부접대듯 한다’와 같은 뜻을 지녔다. 붙었다가 금방 떨어지는 것을 비유하여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것을 나타냈다.

처음 유래한 중국 盛唐(성당) 시대 杜甫(두보, 712~770)의 시에선 잠자리가 고요한 호수의 수면 위로 들락날락하는 한가로운 풍경을 그렸다. 詩聖(시성)으로 불리는 두보는 시운을 잘못 타고나 난리에 포로로 잡히기도 하는 등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했다.

그가 당시 서울 長安(장안)에서 미관말직에 있을 때 아름다운 연못을 노래한 ‘曲江(곡강)’이란 시를 썼다. 둘째 수에 인생살이 칠십년은 예부터 드물었다는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의 유명한 구절이 나오는 시인데 성어는 바로 뒤에 따라붙는다. 그 부분을 보자.

‘꽃 사이로 호랑나비는 깊숙이 날아들고(穿花蛺蝶深深見/ 천화협접심심견), 수면을 스치는 잠자리 떼 한가롭게 나는구나(點水蜻蜓款款飛/ 점수청정관관비).’ 蛺은 호랑나비 협, 항목 款(관)은 느리다는 뜻도 있다. 나비나 잠자리가 여유롭게 날아다니고 꽃잎이 사면으로 흩어져도 마음껏 즐기지는 못하는 심정은 첫 수의 시작부터 토로한다.

‘한 조각 꽃잎이 떨어지니 봄날이 가는구나(一片花飛減却春/ 일편화비감각춘), 분분히 바람에 날려도 시름에 잠길 뿐(風飄萬點正愁人/ 풍표만점정수인).’ 길지 않은 인생 옷을 잡혀서라도 외상술을 마시는 신세인 두보에겐 이러한 풍광을 보는 것도 마음속으로는 사치로 느껴졌겠다.

한가로이 꽃과 나비, 잠자리만 읊은 시는 그림이다. ‘나팔꽃은 푸르고 콩 꽃향기 은은한데(牽牛花碧豆花香/ 견우화벽두화향), 새빨간 잠자리 떼 물에 점찍기 바쁘구나(血色蜻蜓點水忙/ 혈색청정점수망).’ 明(명)나라의 瞿佑(구우) 작품이라며 申欽(신흠)의 象村集(상촌집)에 인용한 시 구절이다.

물 위로 들락날락하는 잠자리의 모습은 풍경이 그럴듯해도 일면 경망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여기서 이런 일을 벌였다가 저기서 또 다른 일에 손대는 깊이 없는 행동을 비유하게 됐다. 여러 가지 일을 벌이고도 잘 처리하여 성과를 내면 물론 좋지만 어려우니 탈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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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45
초가벌진楚可伐陳 - 초나라는 진나라를 칠 수 있다, 이면을 살펴 일을 처리하다.

초가벌진(楚可伐陳) - 초나라는 진나라를 칠 수 있다, 이면을 살펴 일을 처리하다.

초나라 초(木/9) 옳을 가(口/2) 칠 벌(亻/4) 베풀 진(阝/8)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는 孔子(공자)가 엮은 역사서의 이름에서 나왔다. 堯舜(요순)의 전설과 夏商(하상)에 이어 세워진 周(주)나라는 기원전 770년 뤄양洛陽/ 낙양으로 천도한 東周(동주) 이후부터 왕보다 제후국이 강화되는 춘추시대가 된다.

초기에는 170여 개국이 있었다는데 주요 10여국으로 좁혀진 후 春秋五覇(춘추오패)라 하여 5개국이 세력을 떨쳤다. 楚(초)나라는 陳(진)나라를 정벌할 수 있다는 이 성어에서 강국인 남쪽의 초나라가 중앙의 소국인 진나라를 능히 칠 수 있어도 속임수가 있는지 숨어있는 이면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춘추시대를 잇는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770년~403년)는 前漢(전한)의 학자 劉向(유향)이 쓴 戰國策(전국책)에서 유래했다. 유향은 고대 선현들의 지혜를 모은 훈계독본 ‘說苑(설원)’도 남겼다. 이 책의 權謀(권모) 편에서 성어가 나온다. 야심만만한 초의 장왕이 진나라를 칠 생각으로 사람을 보내 정탐하도록 했다.

사신이 돌아와 ‘진나라는 공격할 수 없겠습니다(陳不可伐也/ 진불가벌야)’라고 보고했다. 왜 그런지 연유를 물으니 성곽은 높은데다 참호는 깊고, 양식도 많아 나라 안이 평안하기 때문이라고 사신이 아뢰었다. 이 말을 들은 장왕이 보고와 달리 그렇다면 ‘진나라를 정벌할 수 있겠다(陳可伐也/ 진가벌야)’며 단번에 결단을 내렸다.

초나라 장왕은 그 이유를 말한다. 진나라는 작은 나라인데 ‘식량을 많이 쌓아 두었다면 세금이 무거웠을 것이고(蓄積多則賦斂重/ 축적다즉부렴중), 가혹하면 임금을 원망하는 마음이 자자할 것(賦斂重則民怨上矣/ 부렴중즉민원상의)’이라 했다.

또 성곽과 참호가 튼튼하다면 필시 백성들이 동원되어 힘이 고갈됐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는 군대를 일으켜 손쉽게 진나라를 손에 넣었다. 장왕은 진나라를 쳐서 세력을 떨쳤어도 전통의 제후국인 鄭(정), 宋(송)나라와 함께 멸망시키지는 않아 五覇(오패)의 지위를 누리며 23년간 재위했다.

장왕은 자국의 능력보다 지나치게 국력을 낭비한 진나라의 허점을 잘 간파한 눈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작은 나라가 국력을 생각하지 않고 전쟁에 대비하느라 소진하면 민심이 먼저 떠나고 결국 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함부로 이웃나라를 힘으로 누를 수 없는 오늘날에는 속으로 곪는 일이 많다. 들어올 예산은 감안하지 않고 저소득층을 위한다며 흥청망청 퍼주기 인기정책을 펼치다 후세에 빚만 남기고 나라는 쪼그라드는 예를 주변에서 많이 본다. 우리나라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478.html
kolaswqetsrq 11.02 17:45
해어화解語花 - 말을 이해하는 꽃, 미인을 가리키는 말

해어화(解語花) - 말을 이해하는 꽃, 미인을 가리키는 말

풀 해(角/6) 말씀 어(言/7) 꽃 화(艹/4)

꽃이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다. 아주 예민한 식물 미모사(mimosa)라도 잎을 건드리면 닫혀져 늘어질 뿐, 그래서 수줍어 부끄러움을 탄다고 含羞草(함수초)라 한다 해도 말을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말을 이해하는 꽃이란 바로 미인을 가리킨다.

아주 아름다운 꽃으로 비유한다고 해도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은 이 말에 요즘은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더군다나 옛날 권세가들의 노리개가 흔히 되었던 妓生(기생)을 가리키는 말도 되니 미인도 반대할 말이다.

이 성어가 처음 나온 것은 중국 唐(당)나라 6대 玄宗(현종, 재위 712~756) 때이니 1300년도 더 전이다. 왕의 마음을 빼앗아 나라를 기울게 한다는 미인 傾國之色(경국지색)이라면 楊貴妃(양귀비)를 연상하는데 실은 훨씬 앞서 漢武帝(한무제)의 李夫人(이부인)을 가리켰다.

양귀비는 중국의 4대 미인을 나타내는 沈魚落雁(침어낙안)과 閉月羞花(폐월수화) 중 꽃도 부끄러워 한다는 羞花(수화)에 해당돼, 말을 알아듣는 꽃과 이 말과 함께 꽃과는 많이 비교된 셈이다.

양귀비는 원래 현종의 18번째 아들인 壽王(수왕)의 妃(비)였으나 약간 통통했던 미모가 황제의 눈에 띄어 도교사원에 보내졌다가 貴妃(귀비)로 책봉됐다. 빼어난 용모뿐 아니라 가무, 음률에도 능통해 현종의 혼을 쏙 빼 놓았다. 하루는 왕이 비빈과 궁녀들을 데리고 長安(장안)의 太液池(태액지)란 연못에 핀 연꽃을 감상하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연꽃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황제가 양귀비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꽃들과 나의 말을 알아듣는 꽃과 견줄 만한가(爭如我解語花/ 쟁여아해어화)?’ 아무리 연꽃이 아름다워도 양귀비에 빠진 현종의 눈엔 미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五代(오대) 때의 王仁裕(왕인유)가 엮은 ‘開元天寶遺事(개원천보유사)’에 실려 전하는 이야기다.

총애를 듬뿍 받았던 양귀비도 安祿山(안녹산)의 난으로 왕과 함께 쫓기다 성난 백성의 요구로 죽음을 당했다. 미인은 죄가 없겠지만 원인은 제공했기에 말을 알아듣는 꽃에서 나라를 망하게 한 亡國花(망국화)가 됐다.

예부터 三惑(삼혹)이라 하여 돈과 재물, 여색에 흔들리지 말라고 했고 잘못하면 패가망신한다고 깨우쳤다. 蓄妾(축첩)이나 探色(탐색)하는 한량들은 없어졌다고 해도 끊임없이 지도층들의 성희롱이 들춰지니 이런 교훈도 무색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576.html
kolaswqetsrq 11.02 17:46
금낭가구錦囊佳句 - 비단 주머니 속의 아름다운 시구

금낭가구(錦囊佳句) - 비단 주머니 속의 아름다운 시구

비단 금(金/8) 주머니 낭(口/19) 아름다울 가(亻/6) 글귀 구(口/2)

천부의 재능을 지닌 예술가는 작품의 구상이 술술 나올까. 태양이 없을 때 창조하는 역할은 예술가의 몫이라 예찬한 사람이 있고 일필휘지하는 천재도 드물지만 당연히 있다. 하지만 창작의 고통이란 말이 따르니 대부분은 오랜 과정을 거치며 또 보통사람과는 다른 습벽을 지닌 기인도 많다.

비단 주머니(錦囊) 안에 있는 아름다운 시구(佳句)를 말하는 이 성어는 중국 唐(당)나라의 천재 시인 李賀(이하, 791~817)의 버릇에서 나왔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남다른 시재를 보여 7세 때부터 시를 짓기 시작한 그에겐 영감이 떠오르면 얼른 글을 써서 비단 주머니에 넣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이하는 어릴 때 몸이 약해 나귀를 타고 ‘등 뒤에 낡은 비단 주머니를 매단 채(背一古破錦囊/ 배일고파금낭)’ 경치를 보러 다녔다. 그러다 좋은 글귀가 떠오르면 얼른 써서 비단 주머니에 넣었다. 집에 온 뒤에도 시 구절들을 정리하느라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는 아들을 보고 안타까워한 어머니가 이 아이는 ‘마음을 다 토해놓아야(嘔心/ 구심)’ 그칠 것이라 말했다.

창작에 고심하며 심혈을 기울인다는 嘔心瀝血(구심역혈, 瀝은 스밀 력)의 성어는 여기서 유래했다. 이하보다 조금 뒤의 시인 李商隱(이상은)이 쓴 ‘李長吉小傳(이장길소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長吉(장길)은 이하의 자.

당 高祖(고조)의 지손이란 출신에다 당대의 대문호인 韓愈(한유)의 인정을 받은 이하였지만 과거에 응시도 못하고 미관말직을 전전하다 27세에 요절했다. 그렇더라도 특출한 재능과 초자연적 제재를 자주 시로 나타내 鬼才(귀재)란 말을 들었던 이하는 현실을 풍자하는 작품도 남겼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호의호식하며 빈둥거리는 청년들을 향해 ‘평생에 반줄의 글도 읽지 않고(生來不讀半行書/ 생래부독반행서), 다만 황금으로 몸을 귀하게 둘렀구나(只把黃金買身貴/ 지파황금매신귀)’라고 꼬집었다.

일찍 인생을 알아버린 이하는 중국도 좁다. ‘멀리 세상을 바라보니 몇 점의 연기요(遙望齊州九點煙/ 요망제주구점연), 파도치는 바다도 술잔 속에서 출렁이네(一泓海水杯中瀉/ 일홍해수배중사).’ 九點齊州(구점제주)는 중국의 아홉 주를 말한다.

이하의 어릴 때 시작 버릇에서 나온 이 성어에서 절묘한 시구를 비유하게 됐는데 달리 佳句錦囊(가구금낭), 錦囊佳製(금낭가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천재적인 영감을 번득인다고 해도 밤새워 글을 다듬었다는 것을 보면 창작의 고통이 잘 드러난다.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명문이나 멋진 시구들도 모두 창작자의 고민의 산물임을 알고 감상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473.html
kolaswqetsrq 11.02 17:46
효제충신孝悌忠信 - 효도와 우애, 충성과 믿음

효제충신(孝悌忠信) - 효도와 우애, 충성과 믿음

효도 효(子/4) 공손할 제(心/7) 충성 충(心/4) 믿을 신(亻/7)

어버이에 효도하고(孝), 형제끼리 우애 있고(悌), 임금에 대한 충성(忠)과 벗 사이의 믿음(信)이란 좋은 말만 모은 것이 이 성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조들은 이 말을 달고 살았고, 가훈으로 이어져 온 집도 많았다.

오늘날에도 케케묵은 것으로 치부되는 충성만 제외하고 나라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면 여전히 빛을 발할 수 있는 말이다. 가정의 화목에서 친구와의 의리,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위한 것이 포함되었으니 권장할 지침이다. 공손할 悌(제)는 형제간에 차례를 잘 지키는 마음에서 우애가 우러난다는 뜻을 가졌다.

좋은 말이니만큼 여러 곳에서 비슷한 의미로 사용됐다. 먼저 ‘論語(논어)’ 學而(학이)편에 나온다. ‘근본이 확립되면 따라야 할 올바른 도리가 생긴다. 효도와 공경이라는 것은 바로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본립이도생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 아우 弟(제)에는 공경한다는 뜻도 있다.

管仲(관중)은 명재상답게 나라를 다스리는 네 가지 덕목인 예의염치(禮義廉恥, 예절, 옳음, 청렴, 부끄러움)를 四維(사유)라 했고 여기에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덕목인 효제충신(孝悌忠信) 네 가지를 더해 八德(팔덕)이라 했다.

孟子(맹자)에게 한 제자가 군자는 왜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밥을 먹느냐고 물었다. ‘나라에서 군자를 기용하면 나라가 편안하고 부유해지며, 청년들이 그를 따르면 효성스럽고 공경스러우며 믿음성이 있게 된다(其君用之 則安富尊榮 其子弟從之 則孝弟忠信/ 기군용지 즉안부존영 기자제종지 즉효제충신).’ 이런 중요한 일을 하는데 군자가 무위도식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盡心(진심) 上(상)편에 실려 있다.

우리 고전에서도 용례는 무수히 많다. 龍飛御天歌(용비어천가)부터 ‘익조 도조 환조 세 성인께서 서로 이어받아 오면서 효제충신으로 가법을 삼았다(翼祖度祖桓祖 三聖相承 以孝弟忠信爲家法/ 익조도조환조 삼성상승 이효제충신위가법)’로 나오고, 退溪(퇴계) 선생은 ‘효제충신은 인간이 가야 할 도리 중에 가장 중요하다(孝悌忠信 人道之大本/ 효제충신 인도지대본)’고 가르쳤다.

끔찍한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인륜이 무너졌다고 탄식한다. 효도니 우애니 강조하면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고개를 돌리는 중년이나 젊은이들이 많다. 가정에서부터 생활화하여 이런 기본 덕목을 가르치면 삭막한 사회에 온기가 돌지 않을까.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635.html
kolaswqetsrq 11.02 17:47
추삼조사 推三阻四 - 일을 하려는데 장애가 많다, 여러 가지 핑계로 회피하다.

추삼조사 (推三阻四) - 일을 하려는데 장애가 많다, 여러 가지 핑계로 회피하다.

밀 추(扌/8) 석 삼(一/2) 막힐 조(阝/5) 넉 사(囗/2)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할 때 잘 하던 것도 실수할 때가 있다. 항상 있는 일이고 다음에 바로잡으면 될 텐데 남 탓으로 이유를 돌린다. ‘잘 되면 제 복, 못 되면 조상 탓’이란 속담대로 일이 안 될 때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한다. 서양에선 조상보다 더 해와 달과 별에게 떠넘긴다니 동서가 다를 바 없다.

잘못한 일에 대해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핑계는 잘 둘러대는 것도 재주라는 뻔뻔함까지 발전한다. 이리 핑계 저리 핑계 左稱右頉(좌칭우탈)이란 성어는 그것을 말한다. 세 차례나 일을 추진하려는데(推三) 네 차례나 앞을 가로막았다(阻四)는 말도 그에 못지않다.

자신은 일을 잘 처리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방해물이 나타나 일을 그르쳤다고 핑계 대는 이 말은 중국 元代(원대)의 無名氏(무명씨)의 시구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한다. 그 뒤 淸代(청대)의 여러 소설에 자주 인용되어 핑계의 대명사가 됐고 비슷한 말도 많이 만들어졌다.

推三拉四(추삼납사), 推三搪四(추삼당사), 推三推四(추삼추사), 推三托四(추삼탁사) 등이 그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 선생은 세 가지 일을 추진할 때 네 가지 장애가 닥치더라도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으로 적극성을 강조해 다른 면을 보여줬다.

한문학자 정민 교수는 성어집 ‘옛 사람이 건넨 네 글자’에서 다산이 제자인 艸衣(초의)에게 보낸 ‘贈言帖(증언첩)’에 성어가 등장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茶(차)에 대해 조예가 깊어 茶神傳(다신전)이란 책까지 낸 초의는 佛門(불문)의 제자가 다산의 문하에 들락거린다는 말을 많이 들어 움츠러들었다. 이에 다산이 친필을 보내 당장의 쓸모가 없다고 공부를 등한히 하면 자포자기라며 나무란다.

‘독서하기 좋은 것은 비구만 한 것이 없다(讀書之便 莫如比丘/ 독서지편 막여비구), 절대로 이런저런 장애에 휘둘리지 말고 힘을 쏟아 나아가야 한다(切勿推三阻四 着力前進也/ 절물추삼조사 착력전진야).’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그것을 변명하고 이유를 둘러댈 수 있다.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말이 잘 말해 준다. 이어령 선생이 좋은 말을 남겼다. ‘인간에게서 세 가지 악조건을 제거한다면 누구나 아름다울 수 있다. 그 세 가지란 핑계, 모략, 폭력이다.’ 폭력과도 동급일 정도인 핑계는 그러나 너무도 일상에 아무렇게나 불려 다닌다. 어떤 정책이 부작용이 나타나도 핑계를 잘 둘러대어 순간을 모면하면 그뿐이다. 이렇게 해서는 장애 극복은커녕 앞길에 똑 같은 장애만 더 늘어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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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47
개성포공開誠布公 - 정성스런 마음으로 공정하게 도를 펼치다.

개성포공(開誠布公) - 정성스런 마음으로 공정하게 도를 펼치다.

열 개(門/4) 정성 성(言/7) 베 포(巾/2) 공평할 공(八/2)

중국 사람들이 孔子(공자) 다음으로 존경한다는 諸葛亮(제갈량, 181~234)은 羅貫中(나관중)의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서 무적의 전략가로 묘사됐다. 전란을 피해 은거하고 있던 臥龍(와룡)이 劉備(유비)로부터 三顧草廬(삼고초려)의 부름을 받고 나서 동남풍을 呼風喚雨(호풍환우)하여 赤壁大戰(적벽대전)을 대승으로 이끌었다. 또 孟獲(맹획)을 七縱七擒(칠종칠금)했을 뿐 아니라 죽은 뒤에도 적장을 쫓는 死諸葛走生仲達(사제갈주생중달)이란 말이 나왔을 정도니 그럴 만도 하다.

이처럼 神出鬼沒(신출귀몰)의 전략은 소설이 미화했다고 해도 陳壽(진수)의 정사 ‘三國志(삼국지)’에 탁월한 정치가로, 만고의 충신으로 묘사된 것까지 믿지 않을 수는 없다. 제갈량을 진심을 내보이고(開誠) 공평하게 도리를 펼쳤다(布公)고 표현했다. 蜀漢(촉한)을 세운 유비는 제갈량을 들이고부터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다면서 전적인 신임을 보내 水魚之交(수어지교)라 했다.

제갈량도 그에 보답해 식사를 잃을 정도의 食少事煩(식소사번)으로 일했다. 유비는 죽기 전에 아들 劉禪(유선)이 용렬하여 나라를 이끌 수 있을지 걱정됐다. 제갈량을 불러 아들을 돕되 인물이 되지 못할 것 같으면 대신해서 나라를 맡아줄 것을 당부했다.

유비가 죽은 뒤 대를 이은 유선이 유약하여 크고 작은 정무는 제갈량이 전담했다. 군무를 정비하고 법을 엄중히 하여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군령을 어기면 泣斬馬謖(읍참마속)했다. 주위에서 제위에 오를 것을 권하자 아직 대업도 이루지 못했는데 불충한 일이라며 물리친다. 이처럼 전력을 다하던 제갈량도 魏(위)나라의 司馬懿(사마의)와 五丈原(오장원)에서 격전을 벌이던 중 병으로 사망했다.

진수는 蜀書(촉서)에서 그를 평가한다. ‘제갈량은 상국이 되어 백성을 어루만지고 나라의 제도를 정비했으며 관료 제도를 간소화해 시의적절하게 시행했고, 진실로 열린 마음으로 공정한 도리를 펼쳤다(諸葛亮之爲相國也 撫百姓 示儀軌 約官職 從權制 開誠心 布公道/ 제갈량지위상국야 무백성 시의궤 약관직 종권제 개성심 포공도).’

일반 회사에서도 사원은 진실한 마음으로 정도를 걸어야 함은 물론이다. 더욱 엄격히 이런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곳은 공직사회다. 이전에 벌인 일이라도 바른 일이면 눈치 보지 않고 밀고 나갈 수 있어야 정도를 가는 길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532.html
kolaswqetsrq 11.02 17:48
각자위정各自爲政 - 각자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다, 모두 제멋대로 일을 처리하다.

각자위정(各自爲政) - 각자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다, 모두 제멋대로 일을 처리하다.

각각 각(口/3) 스스로 자(自/0) 하 위(爪/8) 정사 정(攵/5)

무슨 일이든 제멋대로인 사람을 獨不將軍(독불장군)이라 한다. 부하들의 공이 쌓여 장군이 되었는데도 제가 잘나 됐다는 사람이다. 한 그루의 나무만으로는 숲이 되지 못하는 獨木不林(독목불림)의 의미를 깨우치지 못했다. 한 사람이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 잘났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배를 물에 띄우는데 여러 사람이 제 주장대로 몰려고 하면 그 배는 산으로 올라간다.

길가에 집짓기라는 作舍道傍(작사도방)과 같다. 여러 사람이 개인마다 제멋대로(各自) 스스로 일을 처리한다(爲政)는 이 말도 다른 사람의 협력이나 전체적인 조화는 안중에 두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일이 잘 될 리 없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때의 소국인 鄭(정)나라, 宋(송)나라는 각각 강국 楚(초)와 晉(진)에 의지하여 나라를 유지했다. 초나라 莊王(장왕)이 진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자국을 따르는 동맹국 정나라로 하여금 송나라를 치게 했다. 송나라 대부 華元(화원)이 군사를 이끌고 大棘(대극)이란 곳에서 정나라 대군을 맞을 준비를 했다.

결전을 앞둔 전날 화원은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양을 잡아 양고기를 병사들에게 먹였다. 하지만 세심한 배려 부족이 가져온 이 일로 송의 군대가 참패하고 화원은 정나라에 사로잡히는 치욕을 당했다. 左丘明(좌구명)의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실린 내용을 보자.

화원이 양고기를 나눠주며 자신의 수레를 모는 羊斟(양짐, 斟은 짐작할 짐)이란 마부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다. 한 부장이 까닭을 묻자 화원이 수레꾼과 전투는 관계가 없다고 대답했다. 다음날 정나라와 싸움이 벌어지자 양군은 일진일퇴 좀처럼 승패가 가려지지 않았다. 수레에서 지휘하던 화원이 적의 병력이 허술한 곳으로 돌리라고 명령했다.

양짐은 정나라 진지로 마차를 몰며 말했다. ‘전날 양고기는 장군의 판단에 의한 것이지만(疇昔之羊 子爲政/ 주석지양 자위정), 오늘의 전차 몰이는 내 생각대로 처리할 것입니다(今日之事 我爲政/ 금일지사 아위정).’ 이랑 疇(주)는 이전이란 뜻도 있다.

자신을 무시한 것에 앙심을 품은 양짐의 행동은 장수가 포로가 되고 나라가 기울어질 정도의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작은 일에 대한 앙갚음으로 분별없는 행동을 하는 이런 사람을 詩經(시경)에서 말하는 ‘옳지 못한 사람(無良者/ 무량자)’이라고 평했다.

부하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은 곳까지 미치지 못한 화원도 우두머리로서는 실격이다. 이처럼 어떤 큰일을 하는데 위나 아래나 조직의 조화를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나간다면 앞날은 뻔하다. 자신만 옳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상대도 않는 독불장군은 필시 망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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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49
상두주무桑土綢繆 – 미리 준비하여 닥쳐올 재앙을 막다.

상두주무(桑土綢繆) – 미리 준비하여 닥쳐올 재앙을 막다.

뽕나무 상(木/6) 흙 토, 뿌리 두(土/0) 빽빽할 주(糸/8) 얽을 무(糸/11)

흙 土(토)의 독음 중에는 뿌리라는 뜻의 ‘두’가 있다. 桑土(상두)는 그래서 뽕나무 뿌리다. 새는 장마가 오기 전에 미리 뽕나무 뿌리를 물어다가 둥지의 새는 곳을 막는다고 한다. 현명한 새는 폭풍우 같은 재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지혜를 지닌 셈이다. 綢繆(주무)는 칭칭 감는다는 뜻으로 미리 빈틈없이 꼼꼼하게 준비한다는 뜻을 가졌다.

높이날 翏(료)가 부수에 따라 쓰인 글자는 독음이 특히 변화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阿膠(아교), 寂廖(적료), 誤謬(오류), 殺戮(살륙) 등 자주 쓰이는 것만 해도 같은 음이 거의 없다. 뽕나무 뿌리를 미리 감는다는 이 성어는 근심과 재앙에 대비하는 有備無患(유비무환)의 뜻이다. 桑土之防(상두지방), 未雨綢繆(미우주무)라고도 한다.

동아시아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이라는 ‘詩經(시경)’에 처음 등장한다. 각 나라, 지역의 노래를 모은 國風(국풍) 마지막 편 豳風(빈풍) 鴟鴞(치효)편에 실려 있다. 나라이름 豳(빈)은 周(주)나라 조상이 살았다는 땅이다. 鴟는 올빼미 치, 鴞는 부엉이 효. 殷(은)나라의 폭군 紂王(주왕)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은 3년 만에 죽고 어린 成王(성왕)이 즉위하게 됐다. 무왕의 아우 周公(주공)이 섭정을 맡아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주공은 다른 동생들 管叔(관숙)과 蔡叔(채숙)이 자신을 모함하고 반란을 일으키자 3년 만에 겨우 평정하고 성왕에게 바친 것이 올빼미에 비유한 이 노래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을 때에 미리, 저 뽕나무 뿌리를 벗겨다가, 창을 엮고 문을 감는다면, 저 아래 사람들이 어찌 감히 나를 업신여기랴(迨天之未陰雨 徹彼桑土 綢繆牖戶 今女下民 或敢侮予/ 태천지미음우 철피상두 주무유호 금여하민 혹감모여).’ 迨는 미칠 태, 牖는 들창 유.

‘孟子(맹자)’에도 이 부분을 인용하여 장마를 대비하여 둥지를 만드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도 우환을 생각하여 미리 예방하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公孫丑章句(공손축장구) 상편에서다.

태평성대가 지속되면 그 이상 좋을 것이 없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못하고 호시탐탐 魔(마)가 노리게 마련이다. 경제와 안보의 어려움을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위기가 한 번에 닥쳐 우왕좌왕한다. 재난에 미리 대비하지 않는 안전의식 결여는 둥지를 보강하는 새보다도 못한 인간임을 증명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196.html
kolaswqetsrq 11.02 17:49
◇ 흡연율이 낮은 여성의 폐암이 증가하는 이유는?

◇ 흡연율이 낮은 여성의 폐암이 증가하는 이유는?

폐암의 국제적 권위자 이진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장(전 국립암센터 원장)에게 폐암의 실태를 물었다.

-폐암 발생이 늘고 사망률이 올라간다는데.

“그렇지 않다. 노인이 느니까 그리 보이지만 노인 비율을 같게 보정하면 발생과 사망이 줄어든다. 사망률은 2002년 29.5명를(인구 10만명당) 정점으로 지난해 18.6명까지 떨어졌다.”

-생존율이 몰라보게 좋아진다는데.

“최근 몇 년 새 좋은 항암제가 많이 나왔다. 2002년 50대 폐암 환자가 이레사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 있다. 이레사는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에 이은 기적의 표적치료제이다.”

-남녀 차이가 있나.

“요즘 나오는 신약은 비흡연자의 암, 즉 여성 폐암에 잘 듣는다. 흡연 남성 폐암에는 상대적으로 효과가 약하다. 그래서 여성 폐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이 44.3%로 남성(27%)보다 높다.”

-흡연율이 낮은 여성 폐암이 증가하는 이유는.

“1950~60년대생 여성은 단칸방에서 아버지·삼촌의 담배 연기에 노출된 세대다. 그 영향이 지금 폐암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요리 연기는 영향이 없나.

“한국 음식은 중국 음식처럼 기름에 볶는 게 적다. 중국은 실내에서 볶는다. 아파트 요리 연기의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담배회사의 물타기 작전일 뿐이다.”

-폐암을 예방하려면.

“금연밖에 없다. 전자담배가 결코 폐암을 덜 유발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도둑놈이 들었다가 설거지해 놓고 갔다고 해서 좋은 도둑이라고 하지 않지 않나.”

-폐암을 조기 발견하려면.

“건강검진 때 저선량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으면 된다. 하지만 암과 무관한 작은 혹 같은 게 나와서 불필요한 걱정에 시달릴 각오를 해야 한다. 과거 결핵의 흔적들이다.”

이 위원장의 마지막 권고이다.

“암은 평생 가지고 사는 만성병입니다. 당뇨병·고혈압은 평생 치료하지만 암은 조기 발견해서 수술하면 끝입니다. 조기 위암을 내시경으로 잘라내면 완치됩니다. 맹장염 수술한 사람을 계속 맹장염 환자로 부르지 않잖아요. 폐암도 면역치료, 표적치료 하면 4~5년 넘게 삽니다. 5년 생존자가 점점 늘어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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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50
◇ 소녀시대와 페이스북

◇ 소녀시대와 페이스북

10년 전 대중문화부에 소속돼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취재하던 때다. 당시 만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걸그룹 소녀시대 이야기를 꺼냈다. 소녀시대는 “오빠 나 좀 봐”라는 가사의 ‘Oh!’라는 노래로 가요계 정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고민을 털어놨다. “소녀시대 멤버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더는 소녀가 아니게 됐다”는 것이다. 앞으론 이런 유의 노래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당시 소녀시대 멤버의 나이 20대 초반이었다.

갑자기 소녀시대를 떠올린 건 최근 실리콘밸리 화제의 중심에 있는 기업 메타(전 페이스북) 때문이다. 최근 페이스북은 메타버스 기업이 되겠다며 사명을 메타로 바꿨다. 가장 큰 이유는 사용자가 고령화되며 페이스북 성장 동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페이스북 주 사용층은 30대 이상이다. 10~20대의 이용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페이스북은 젊은 층의 유입을 늘리려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최근 내부 고발로 드러났듯,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유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도 젊은 사용자 유입을 지속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소녀시대는 이후 ‘귀여운 콘셉트’를 벗어나 ‘걸 크러시’ 등 새로운 시도를 했고, 멤버들은 그룹 활동을 넘어 각자 연기나 뮤지컬 분야로 진출했다. 페이스북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것도 소녀시대의 변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페이스북은 가상현실 세계인 메타버스를 통해 젊은 층의 유입을 노리겠다는 전략을 짜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페이스북, 아니 메타가 이야기하는 메타버스가 현실화하려면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이건 사기다”라는 반응도 있지만 메타의 도전에 박수를 치는 사람이 많다.

메타는 앞으로 메타버스 구축을 위해 수십조 원을 써야 할 것이다. 미래가 그들이 그리는 청사진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메타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노화해 세상에서 사라지느니 위험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대기업에서 조기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꿈꾸며 야심 차게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중년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과장일까.

자연스레 국내 기업들에 시선이 간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기업이 새로운 비전을 말하고 합종연횡하는 실리콘밸리와 달리 국내 산업계는 너무 조용하다. 특히 대기업들은 “각종 규제와 압박으로 옴짝달싹 못한다”고 한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지만 별다른 미래가 보이지 않는, 무기력한 중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미 옆 나라 일본엔 그런 기업이 부지기수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선 머무르면 죽는다. 영원히 젊은 기업은 없다. 규제라는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 기업도 앉아서 노화를 기다리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적극 나서야 한다.

-조선일보 특파원 리포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634.html
kolaswqetsrq 11.02 17:50
◇ 내 아들이 ‘제육볶음’ 만드는 법을 배우려는 까닭은?

◇ 내 아들이 ‘제육볶음’ 만드는 법을 배우려는 까닭은?

-어무이요.

“와.”

-요요 제육볶음 우찌 만듭니꺼?

“우찌 맹글긴. 손으로 맹글제.”

-뭐뭐 옇고 만들었냐고요.

“와, 짭나.”

-짠기 아이고, 좀 배울라꼬.

“누가. 니가?”

-와, 안 됩니꺼?

“혁이 에미가 밥 안 해주드나. 싸웠나.”

-그기 아이고. 내도 주말에 요리 쫌 해볼라꼬요.

“드잡이한 거 맞네.”

-안 싸웠다니께네. 요즘 요리할 줄 모리면 꼰대 소리 듣는다 아입니꺼.

“꼰대 소리 듣고 살라, 고마.”

-대선 후보도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표가 쏟아지는 세상입니더.

“와, 대통령 할라꼬?”

-계란말이를 벽돌만 하게 부치고, 김치찌개를 뚝딱 낋이니께네 여자들이 막 좋다고 안 합니꺼.

“와, 다 늙어 새장가 갈라꼬?”

-아 참, 말기 몬 알아들으시네. 제육볶음 우찌 만드냐는데 와 자꼬 삐딱선을 탑니꺼? 고마, 치우소!

“뭘로 맹글기는. 돼지고기로 맹글제.”

-돼지 중에서도 어데? 삼겹살, 목살, 갈비살, 항정살, 뽈살, 덜미살, 토시살 중에 어데?

“넘들은 기름 붙은 삼겹살로 한다만 내는 목살 또는 앞다리살로 한다.”

-양념은 우찌 하고요.

“우찌 하기는. 갖은 양념 넣어가 맹글지.”

-그 갖은 양념이 뭐냐고요, 글쎄.

“마늘 생강 파 양파 고추 썰어 옇고, 고추장 간장 참기름 매실즙도 쪼매씩 옇고.”

-참 나, 서울 할매들맹키로 일번 이번 해감시로 레시피를 또박또박 일러줘야 따라잡는다 아입니꺼.

“뭔 씨피? 네쓰피?”

-긍게 간장 몇 리터, 고추장 몇 컵, 참기름 몇 스푼....

“내는 무식해서 그런 거 모린다. 음식을 손으로 하지, 기계로 맹그나?”

-긍게 매실즙을 어른 숟갈로 몇 숟갈 넣느냐고요.

“얼라 오짐맹키로 여믄 된다.”

-하~ 몬 산다. 그럼 돼지고길 볶다가 양념, 채소 넣고 쫄이면 끝입니꺼?

“고기에 양념이 잘 배이고로 일바켰다 눕힜다 해감시로 고루고루 볶아야지. 고기는 한입에 먹기 좋고로 반으로 농가고.”

-농가고가 뭡니꺼. 촌시럽구로.

“그럼 쪼갈르든가.”

-마, 됐고요. 요요 된장찌개는 우찌 낋입니꺼.

“우찌 낋이기는. 된장 옇고 낋이지.”

-우찌 낋이야 깊고 구수한 어무이 손맛이 나냐고요.

“일번, 찬물에 메르치와 다시마를 옇고 낋인다. 이번, 육수에 된장을 풀어가 팔팔 끓으면 애호박 양파 감자 대파 두부를 한그쓱 썰어 옇는다. 삼번, 마늘도 쪼매 옇는다. 사번, 맵삭하게 먹을라카모 청양고추를 썰어 옇는다. 오번, 더 칼칼하게 먹을라카모 고춧가루를 허친다.”

-뭣이 이리 간단하노?

“안 끝났다. 육번, 버끔을 살살 걷어낸다.”

-뭘 걷어요? 버끔?

“그래야 쓰고 텁텁한 맛이 날아가제. 우리 글쓰기 선생도 그랬다. 버끔 아니, 군더더기를 싹 걷어내야 글이 맑고 담백해진다꼬. 양념 많고 수식이 화려하면 글이 영 천박해진다꼬.”

-글쓰기 교실은 또 운제 다녔능교?

“자식이 되야가 늙은 에미가 뭣을 하고 사는지도 쫌 딜이다보고 그래라. 이래 봬도 군민 백일장으로 등단한 작가다 내가.”

-진짜요? 우리 혁이가 어무일 닮아가 국어를 백점 맞는갑네예.

“치아라. 뻐스 지나갔다.”

-근데 집사람은 어무이 된장으로 낋이는데도 와 이 맛이 안 납니꺼.

“느그들이 쎄빠지게 공부해가 박사 학위 딸 때, 내는 쎄빠지게 밥하고 반찬 맹글어가 돈 한 푼 못 받는 부엌데기 박사 됐다 아이가.”

-아, 또 와 그랍니꺼. 그나저나 쪼매 있으면 우리 어무이 김장김치 맛보겠네예.

“그래서 올개부터는 공짜배이로 안 줄라꼬. 내도 지적재산권을 쫌 행사해볼라꼬. 와, 꼽나?”

-꼽기는예.

“억울하면 몸으로 때우등가.”

-와서 거들라꼬요?

“음식은 머리가 아니라 요요 손으로 배우는 기다. 입에 닿기 전 손이 먼저 그 맛을 감지해야 하는 법. 양파를 믹서에 가는 기랑 손으로 강판에 가는 기랑 그 맛이 천지차로 갈라지는 거 아나?”

-밥이 곧 하늘! 김칫소 하나에도 혼을 갈아 넣어라, 이 말씀 아인교.

“주디는 똑똑다.”

-누가 압니꺼. 신이 내린 어무이 손맛을 이 아들이 이어받아 인생 2막으로 꽃피울지.

“싸운 거 맞네. 드잡이한 거 맞어. 우짠지 얼굴이 비틀어 짠 오이장아찌 같더라만. 와, 은퇴할 날 닥치니 요리라도 배우라 카드나. 니 밥은 니가 해 먹으라카드나. 내 이 혁이 에미를 기냥!”

-조선일보 김윤덕의 신줌마병법-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13.html
kolaswqetsrq 11.02 17:51
◇ 근대5종과 ‘세인트 보이’

◇ 근대5종과 ‘세인트 보이’

‘국제 근대5종 연맹’(UIPM) 집행위원회가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근대5종의 5개 세부 종목 가운데 승마를 퇴출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과도기인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는 승마가 유지되지만, 근대5종 경기 시간은 우선 하루에서 90분으로 단축된다. 승마를 대신할 종목으로는 사이클 등이 논의되고 있는데, 최종 결정은 조만간 이뤄질 예정이다.

승마 퇴출안에 대해 일부 선수나 지도자, 회원국들이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승마가 빠지면 근대5종의 역사성과 정체성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용 절감과 젊은층 흡수 등 올림픽 마케팅을 중시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압박이 강해 변화가 불가피하다.

국제근대5종연맹 집행위가 100년 넘게 지속한 근대5종 경기에서 승마를 제외하기로 한 이유는 2020년 도쿄올림픽의 충격 때문이다. 당시 수영과 펜싱에서 여자부 선두로 나선 독일의 아니카 슐로이(31)는 승마에서 말 ‘세인트 보이’가 점프하기를 거부하면서 하위권으로 떨어졌고, 화가 난 코치가 말을 주먹으로 치면서 동물 학대라는 비판을 받았다.

다른 문제도 있다.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말과 교감해 장애물을 넘도록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며, 추첨으로 말을 타는 방식 또한 선수의 기량보다는 운에 따라 성적이 정해지는 것이어서 근본적으로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근대5종은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의 각별한 애정 속에 1912년 스톡홀름올림픽 때 도입됐는데, 배후에는 19세기적 사고가 배어 있다. 적진에 포위된 기병 장교가 말을 타고 권총과 칼로 싸우고 수영과 달리기를 통해 복귀한다는 이야기를 스포츠에 담은 것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대회에 공급되는 말이 혹사당하고 있다거나, 국제연맹이 말을 그저 도구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도쿄올림픽을 거치면서 동물복지단체의 승마 제외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올림픽에 차출돼 스트레스를 받았던 세인트 보이는 고향인 일본 시가현의 승마클럽으로 돌아갔다. 세인트 보이는 자신 때문에 근대5종 종목이 개편되는 상황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선수의 입장이 아니라 동물권의 관점에서 근대5종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도 모를 것이다.

-한겨레 유레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_68.html
kolaswqetsrq 11.02 17:51
■ 인조의 여인들, 인렬왕후 한씨 3편

■ 인조의 여인들, 인렬왕후 한씨 3편

인렬왕후가 죽은 1년 후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 장남인 소현세자(昭顯世子:1612-45)와 차남 봉림대군(鳳林大君1619-59) 내외가 청(淸)나라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한씨가 살아 있었을 때는 궁궐 내명부들의 위계질서가 바로 섰지만, 그녀가 죽자 그 위계질서는 깨지고 말았다. 물론 3년 후 계비 장렬왕후 조씨가 들어왔지만 15살의 장렬왕후는 세자보다도 더 어려 권위가 견고하지 못했고, 내명부를 다스릴 만큼의 소양을 갖추지 못했다.

1645년 청에 볼모로 잡혀갔을 때부터 줄곧 병치레를 하던 소현세자가 결국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망하자, 그동안 청나라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던 세자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인조와 소현세자의 어린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 것을 탐탁찮게 여긴 청나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둘째아들인 봉림대군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때 계비(繼妃)인 장렬왕후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수렴청정을 해 줄만큼의 역량이 있는 왕실 어른 인렬왕후가 살아있었다면 판도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기세등등한 후궁들이 급기야 세자빈 강씨까지 모함하기에 이르렀고, 인조는 마침내 아들 일가족을 몰살시키는 비정한 부왕이 되고 말았다. 평생 남편에게 매사 조심할 것을 권하며 내조하던 한씨가 10년만 오래 살았다면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인렬왕후의 능호(陵號)는 장릉(長陵)이다. 인조는 인렬왕후의 장릉(長陵) 곁에 자신의 수릉(壽陵)을 만들어두었으며, 인조 승하 후 효종이 그곳에 아버지를 봉릉하고 장사지내 쌍릉이 되었다. 능 자리를 정하는 과정에서 장릉 터가 좋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인조가 유명(遺命)을 내린 것이었기에 효종은 인렬왕후 옆에 장사지낼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그대로 실현되었다.

세월이 흘러 능침에 여러 번 탈이 나자 숙종 연간에 들어서 풍수가 좋지 못해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숙종에게 천릉할 것을 청원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끝내 장릉의 천릉(遷陵)은 실현되지 못했다.

영조는 등극한 후, 숙종 연간에 장릉을 천릉하려는 논의가 있었음을 처음 듣게 되었다. 이곳에 뱀이 종종 출몰한다고 하면서 장릉을 처음 조성할 당시에도 뱀을 보았으나 총호사 김자점이 숨기고 그대로 봉한 사실과 장릉의 지리가 나빠 뱀이 출몰한다는 속설을 영조에게 고하였다. 이에 영조는 민폐를 최소화하기 위해 옛 능에 세워져 있던 석인상과 망주석 등 재사용할 수 있는 석물은 그대로 새 능으로 옮겨와 인렬왕후 능 조성시인 1636년에 제작된 것을 거의 재사용하였다. 그리하여 원래 파주 운천리(雲川里)에 있던 장릉(長陵)은 현재의 파주 갈현리로 이장되어 합장능이 되었다. 현재 비공개릉으로 자유롭게 출입 할 수 없다. 장릉은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 능제(陵制)로, 조선왕릉 중 가장 넓은 참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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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52
■ 인조의 여인들, 인렬왕후 한씨 2편

■ 인조의 여인들, 인렬왕후 한씨 2편

광해군의 아들 폐세자(廢世子) 지가 유배지를 탈출하려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인조는 인렬왕후 한씨와 이 문제를 상의했다. 한씨는 그를 죽인다면 우리 자손 또한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단호한 말투로 설득했다. 그러나 지는 품속에 황해 감사에게 보내는 편지를 지니고 있어 인조는 어쩔 수 없이 자결토록 했다.

인렬왕후 한씨는 배가 엎어져 있는 그림을 감상하다가 인조에게 인심을 잃으면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조언하는 등, 정통성이 부족한 인조가 또 다른 반정세력에게 쫓겨나지 않도록 애썼다. 광해군이 왕위에서 쭃겨난 것도 이를 무시했기 때문이며, 인조도 광해군과 같은 전철을 밟는다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씨는 살생은 살생을 부른다는 진리를 깊이 깨닫고, 남편 인조가 살생을 저지르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내조에 힘썼다.

그녀의 이러한 노력으로 민심은 인조에게 향했다고 한다. 인조가 후원을 사치스럽게 만들고자 할 때도 지난날을 되새겨주며 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하였다. 야사에 의하면 한씨는 인조가 즉위한 이후 해마다 흉년이 들자 적극 나서서 기민(饑民:곡식을 나누어 줌)운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이에 사가(私家)에서는 왕실에서 기민운동을 벌인다는 소식을 듣고 앞을 다투어 곡식이며 옷가지들을 들고 와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한다. 한씨의 이러한 내조는 인조 등극 이후 인심을 회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인 1636년, 당시로는 적지 않은 43세의 나이로 창경궁 여휘당에서 7번째 아이를 낳았지만 왕자는 곧 죽었고, 인렬왕후는 정신적인 충격이었는지 몸을 회복하지 못하고 출산 7일도 채 되지 않아 산실에서 사망했다. 인조는 왕비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여 의관들을 문초(問招)하고 출산을 도왔던 왕실의 봉보부인인 응옥을 강령으로 유배보냈다.

 "
장남인 소현세자와 강빈의 장남 석철이 이 직후에 태어났는데, 할머니(인렬왕후)의 관이 혼전(魂殿)에 모셔져 있던터라, 아버지인 소현세자는 상주로서 장례진행을 도맡아야했고, 어머니는 할머니 대신 내명부를 총괄해야 했기에 보통 원손(元孫) 탄생 시의 축하행사를 대폭 생략해야 했다. 어짐을 베풀고 의를 따르는 것을 인(仁), 공로가 있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렬(烈)이라 하여 인렬(仁烈)의 시호(諡號)를 받았다.
",

원주시 인동(仁洞)은 그녀의 출생지인데서 유래한 이름이며, 인근 개운동에 ‘인렬왕후 탄생지비(誕生地碑)’가 있다. 이 비석은 6.25전쟁 때 불탄것을 이후에 새로 건립된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 언덕이나 도시 외곽에 보존되어 있는 여타 비석들과 다르게 도심 한복판, 그것도 도로 코앞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원래 인조는 ‘명헌(明憲)’이라는 시호를 내리길 원하였으나, 대사헌이었던 김상헌이 시호를 정하는 일을 담당 관원이 아닌 군주 의향대로 할 수 없다하여 바꾼 것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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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53
■ 호란胡亂 8편

■ 호란(胡亂) 8편

임경업은 명에 투항한 후 평로장군, 총병 등의 직위로 활약하다가 남경이 함락되고 명나라가 청에 의해 멸망하면서 다시 청군에게 체포되었다. 임경업(林慶業)이 청에게 체포된 것을 안 인조는 임경업의 소환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것은 그를 적진에서부터 구해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일어난 한 역모사건에 임경업이 연루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경업은 조선으로 송환되어 친국(親鞫:왕이 친히 심문)을 받으면서 모진 고문을 받았고, 결국 옥중에서 죽고 말았다. 아까운 장수 하나가 또 이렇게 죽었다. 임경업(林慶業)을 청나라를 배척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여겼던 백성들은 그의 죽음을 매우 슬퍼했다. 이 후 임경업의 무용담을 담은 작자 미상의 《임경업전》이 나돌아 널리 읽혔으며, 무속에서는 임경업의 화상(畫像)을 신당(神堂)에 모시고 최영, 남이와 함께 가장 영험이 있는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전쟁을 맞이해서도 인조의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사령관을 잘못 임명한 것이었다. 총사령관 김자점은 친청(親淸)파였고, 청과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청군은 임경업이 지키는 백마산성을 포기하고 직접 한양으로 진격했던 것이다. 임경업은 그 뒤 청나라 태종의 조카인 요퇴(要魋)가 300기의 정예기병을 본국으로 돌아갈 때 이 요퇴군을 맞아 압록강에서 무찌르고 잡혀가던 우리 백성 남녀 120여 명과 말 60여 필을 빼앗는 전과를 올렸다. 병자호란 중 그나마 유일한 승리의 기록일 것이다. 그래서 임경업은 조선민중의 영웅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병자호란으로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다소 수습되었던 국가 기강과 경제 상태가 악화되어 민생은 피폐해지고 백성들은 굶주림으로 원성이 높았다. 병자호란은 가장 짧은 기간 내 조선의 수십만 백성들이 죽고, 또 수십만 백성이 납치 되어 중국 땅으로 끌려간 일반 백성들이 엄청난 피해를 본 우리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었다. 또한 병자호란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맛보게 한 전쟁이기도 했다.

청군이 포로로 끌고 간 조선인이 수만에 이르렀다(수만에서 수십만이라는 기록도 있음). 그런데 이들이 목숨을 걸고 도망쳐 오더라도 조선은 이들을 잡아 다시 보내야만 했고, 따라서 이들이 돌아올 수 있는 길은 속환(贖還), 즉 돈을 주고 사오는 길밖에 없었다. 붙잡혀 간 사람을 데려오는 속환 금액은 갈수록 천정부지로 뛰어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시도를 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부녀자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조선 사대부들은 돌아온 부인의 몸이 더렵혀졌다는 이유로 나라에 이혼을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하거나 자결(自決)을 강요하였다. 인조는 사대부들의 이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실제로는 이런 저런 다른 이유를 달아 어렵게 돌아온 부녀자들은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정에서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은 이 여인들로 하여금 냇물(홍제천)에 몸을 씻으면 그들의 정절이 회복되는 것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었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조처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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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53
■ 호란胡亂 7편

■ 호란(胡亂) 7편

청과 화의를 맺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해졌지만 김상헌, 윤집, 홍익한, 오달제 등은 끝까지 척화론을 주장하면서 항전(抗戰)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수도 없이 죽어 가고 있었다. 민족적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백성들의 목숨은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만 한다.

결국 남한산성 내 식량이 떨어지고 그토록 믿었던 강화도가 함락되어 왕자와 비빈들을 비롯한 200여 명이 포로로 잡혔다. 백성들의 죽음에는 꼼짝 안하던 인조와 대신들은 세자부부가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농성 59일째가 되던 날, 청나라의 신하가 되는 조건을 포함한 11개조를 수락하며 항복했다.

1월 30일, 주화파 최명길(崔鳴吉)은 인조의 명을 받아 항복문서를 청 태종에게 전했다. 왕의 복장 대신에 융복(戎服:군복의 일환) 차림으로 서문을 빠져나온 인조는 참담하고도 비통한 표정으로 수항단(受降檀:항복을 받아들이는 단)이 마련된 삼전도(三田渡·:석촌호수 부근)로 향했다. 그곳에는 청 태종이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었고 곧이어 치욕적인 항복 의식이 행해졌다.

인조는 세자와 대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청나라 군사의 호령에 따라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무릎 꿇고 세 번 절하고 머리를 아홉 번 조아림)’의 치욕적인 항복 의식을 마쳤다. 원래는 중국의 항복 방식인 입에 옥구슬을 물고 망자(亡者)의 차림으로 항복의 예를 치루어야 하지만 청이 많이 봐 준 것(?)이다.

이 삼전도의 치욕 이후 조선은 청의 요구대로 신하의 예(禮)를 행하고 조공을 약속하는 한편, 명과 단교(斷交)하고 청이 명을 정벌할 때 원병을 파병하기로 약조했다. 그리고 조선은 군사력을 늘릴 수 없으며, 군사훈련을 해도 안 되고, 성을 쌓거나 수리할 때는 꼭 사전에 청(淸)에 보고해야 했다. 또한 소현세자, 봉림대군, 삼학사(三學士:윤집·오달제·홍익한)를 비롯한 수많은 대신들이 볼모가 되어 심양으로 끌려갔다.

볼모로 끌려갈 당시 소현세자는 26세, 봉림대군은 19세였다. 주전론(主戰論)을 강력히 주장했던 삼학사는 청으로 끌려간 후 처형당했다. 이렇게 병자호란은 죄 없는 수십만의 백성들이 죽거나 수십만이 청에 잡혀갔고, 우리 역사상 듣도 보지도 못한 치욕을 당하고 끝났다.

청(淸)이 철군한 뒤에 조정에서는 삼전도(三田渡)의 치욕을 씻어야 한다는 반청(反淸)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그러나 명을 치겠다는 청의 파병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던 인조는 쿠데타의 명분인 숭명대의(崇明大義)를 져버리고, 인조 18년인 1640년 상장 임경업(林慶業)과 황해병사 이완(李浣)이 이끄는 조선수군 6천명을 파병했다. 사령관 임경업은 대표적인 반청(反淸) 인사였다.

임경업의 수군은 전진하라고 해도 전진하지 않았고, 명의 수군을 만나도 발포하지 않았다. 가끔 발포하면 엉뚱한 데다 대고 쏘았고, 일부러 배를 부수고 일부 군사를 투항시키는 등의 행위로 청의 분노를 샀다. 청의 요청으로 임경업의 아내는 심양으로 끌려갔다가 자살했으며, 임경업은 청군에게 체포되어 압송되어 가다가 중간에서 탈출해 명(明)에 투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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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54
■ 호란胡亂 6편

■ 호란(胡亂) 6편

영화 ‘남한산성’에도 나오듯이 남한산성은 원래 왕의 피난지가 아니었기에 충분한 식량과 의복 등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남한산성(南漢山城)에는 군사 1만5천명과 관원 300명, 그리고 약 50일치의 군량이 있었다. 1636년 12월 15일 인조 일행은 남한산성에서 청의 13만 대군에게 완전히 포위됐다. 청군은 남한산성을 빙 둘러 사람 키 두 배 쯤 되는 높이의 나무를 쌓아올려 외성을 만들었다.

외성 밖에는 나무 울타리를 쳐놓고 쇠방울을 달아 남한산성은 졸지에 감옥이 되어버렸다. 1637년 1월1일 후속 부대로 도착한 청태종(淸太宗)은 군사를 20만으로 늘려 포위망을 구축하고 장기전에 돌입했다. 조선군 지휘부는 조선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간혹 군사를 내보내 청군을 기습하곤 했으나 대세에는 전혀 영향을 줄 수 없었다.

남한산성이 포위되어 있는 동안 청군들은 경기 지역 전체를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강간했다. 젊은 여자들은 모조리 청군의 군막으로 끌려가 노리개가 되었다. 엄마가 끌려가고 길가에 버려진 아이들은 굶어 죽고 얼어 죽었다. 청군에게 포위된 남한산성은 시일이 지나자 식량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기대하던 전국의 근왕병들도 오지 않았다.

이런 판국에도 대신들은 주화파(主和派)와 주전파(主戰派)로 나뉘어 싸우기에 여념 없었다. 김상헌(金尙憲)과 삼학사(홍익한·윤집·오달재)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청나라와 싸울 것을 주장 했고, 최명길(崔鳴吉)은 화의를 적극 주장했다. 주전파(=척화파)들은 사실 칼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한 문신들이었다. 얼마나 현실감이 떨어지는 주장인가?

남한산성 안에는 1만4000여명이 약 50일을 버틸 수 있는 식량을 비축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후 조선과 청군 사이에는 여러 차례 협상이 오고 갔다. 주화파(主和派)가 항복조건을 가지고 청군 진영을 왕래하는 동안, 경상도 군사 4만이 광주의 쌍고개에 이르러 진지를 구축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후 조선 최대의 병력이 집결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청군에게 포위당한 경상도군 4만은 청군의 공격에 궤멸되었고, 경상우병사 민영이 전사하자 근왕군은 남한산성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당시 조선군 전체 병력은 청군에 비하여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총력을 집결했으면 20만 명은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임금인 인조(仁祖)는 애초부터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도망칠 궁리부터 했고, 게다가 총사령관인 도원수 김자점은 전쟁에 대하여 제대로 된 전략 하나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바람에 조선군은 지리멸렬(支離㓕裂)해져 적을 앞에 두고도 총력을 집결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병사들 중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자들이 속출했다. 남한산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던 근왕병들은 청군에게 차례차례 격파되었다. 조선 조정은 백성들이 죽든지 말든지 남한산성에 갇힌 상태에서도 주전(主戰)파와 주화(主和)파로 갈라져 격심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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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54
■ 호란胡亂 5편

■ 호란(胡亂) 5편

청 태종은 사신들이 들고 간 국서에 조선이 아무런 응답이 없자, 이번에는 직접 자신이 나서기로 했다. 명 정벌에 앞서 배후가 될 수 있는 조선을 장악하기 위해 형제관계에서 더 나아가 군신 관계를 맺을 것을 요구하면서 조선을 더 압박해왔다. 조선의 조정은 두 파로 나뉘었다.

"오랑캐에게 또 다시 무릎을 꿇을 수 없다! 우리의 대의명분을 지켜야 한다." 라는 척화론(斥和論=주전파)과 "오랑캐라고 하나 우리보다 군사력이 강한 걸 무시할 수 없다.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라는 주화론(主和論)이 대립되어 있었다. 의리와 명분, 실리 중에 어떤 걸 선택해야 할까? 조선 조정에서도 대책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김상헌을 중심으로 청과 싸우자는 척화파(斥和派=주전파)와 화의를 맺자는 최명길 등의 주화파(主和派)로 국론(國論)이 갈렸다. 최명길은 윤집, 오달제 등 척화파의 탄핵을 받고 사직했다. 현실주의적인 주화파의 입장보다는 척화론이 대세가 되었다. 감정을 앞세우기에는 현실적으로 힘과 국력이 문제였다.

 "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실리를 선택해야겠지만, 인조가 살던 17세기 조선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유학을 배우고 자란 그들은 의리와 명분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 결국 죽더라도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겠다.라는 생각으로 청(淸)을 배척하는 척화의 입장을 선택했다. 조선의 이러한 태도에 청 태종은 조선을 응징하고자 자신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공격하겠다고 선언했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의 시작이다.
",

청 태종 입장에서 정묘호란이 배후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단지 위협만 주기 위한 전략적 전쟁이었다면, 병자호란은 명백하게 명나라로 편을 정한 조선을 징벌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명과 싸우며 전투를 통해 단련된 기마병을 중심으로 한 막강한 청나라 군사들은 압록강을 건넌지 5일 만인 12월14일 개성에 다다랐고 곧이어 한양으로 진군했다. 너무나 빠른 이 진군은 조선 왕이 강화도로 달아나는 것을 사전에 막고자 하는 전략이었다. 청군의 진군 속도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진격해 온 속도보다 훨씬 더 빨랐다.

조선은 수도를 목표로 돌진한 청의 기마병 중심 공격에 별다른 방어를 하지 못했다. 도원수 김자점은 정방산성에서 남하하는 청군과 맞섰다가 단번에 패배하고 도망가 버렸다. 평양이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인조(仁祖)는 강화도로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이 퍼지자 강화도로 가는 길은 피난 가는 백성들로 인산인해였다.

인조와 조정 대신들은 강화도 피난길에 나섰지만 청군의 선발대는 이미 양화진 방면으로 진출해 강화도로 통하는 길을 차단해 버렸다. 결국 인조는 강화도로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피난길을 돌렸고, 재위 기간 동안 세 번(두 차례 호란과 한 번은 이괄의 난)이나 한양을 버리고 피난하는 불명예 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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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55
■ 호란胡亂 3편

■ 호란(胡亂) 3편

청은 그 사이 명을 치기 위해 전선을 중국 전체로 확장했고, 군비부담이 늘어나자 수차례에 걸쳐 조선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청의 이러한 요구는 지난 정묘호란 때 조선과 후금이 맺은 화의 조약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정묘호란 이후에도 외교노선이 친명배금의 강경 일변도(一邊倒)로 치달았던 인조와 대부분의 서인세력은 이를 전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일부 대신들 사이에서 친청(親淸)정책을 주장하기는 했지만 대세는 아니었다. 청은 더 강성해진 국력을 배경으로 조선에 대한 태도를 한층 더 강화시켜 고려 때 몽고가 조선에게 그랬듯이 형제관계가 아닌 부자관계인 전면적인 사대(事大)를 요구해왔다. 요동을 정벌하고 명 본토로 진격하기 위해서 청으로서는 배후의 불안 요소인 조선을 완전히 제압해 두어야 했던 것이다.

후금이 더욱 팽창된 세력을 배경으로 조선에 군신(君臣) 관계를 요구해 옴으로써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게 되었다. 정묘호란(丁卯胡亂)으로 후금에게 굴욕을 당하고 이 후 사사건건 갈등이 증폭되자, 인조(仁祖)와 조정 대신들은 후금과의 일전(一戰)도 불사(不辭)한다는 움직임을 보였다.

관서지방군에 군량 4개월분을 실어 보내고, 청천강 이북의 산성에 5~6개월분의 군량미를 비축하도록 했다. 또 군사조직을 정비해 김시양을 도원수로, 정충신을 부원수로 삼았으며, 임경업(林慶業)을 북면방어사로 삼고, 남한산성을 최후의 방어성으로 지정해 정비토록 했다.

도원수 김시양과 부원수 정충신이 인조(仁祖)의 강경방침에 반대 의견을 내자, 인조는 둘을 해임해 버리고 그들보다 훨씬 모자란 간신 김자점(金自點)을 도원수로, 윤숙을 부원수로 임명했다. 이렇게 엉성하게 전쟁 준비에 들어간 인조(仁祖)는 국론을 통일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매일 척화파(斥和派)와 주화파(主和派)가 죽을 둥 살 둥 싸움을 벌이고 있었고, 인조(仁祖)는 그 가운데서 어정쩡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이 오직 명나라만을 섬겨야 한다는 대의명분 하나만 붙들고 소모적인 세월을 보내는 동안 후금(後金)의 침공은 눈앞으로 다가왔다.

전쟁 분위기가 무르익자 도원수 김자점(金自點)은 의주, 안주, 평양, 황주, 평산을 주요 방어선으로 삼아 산성을 수축하고 병력을 집중 배치했다. 의주 부윤 임경업(林慶業)은 3,000의 병력을 이끌고 백마산성으로 들어갔고, 평안감사 홍명구와 유림은 평양 주둔군 3,000여명을 이끌고 자모산성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산성들은 큰 길에서 30~40리씩이나 떨어져 있어 적군이 큰 길로 진군해 오면 막을 수가 없었다.

대사간 윤황(尹惶)이 이러한 전략에 적극 반대하면서 인조(仁祖)에게 평양에 직접 나아가 적을 맞아 싸우면 온 나라의 군사와 충신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적극책을 건의했다. 그러나 비겁한 인조는 적이 쳐들어오면 강화도로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으며, 육지에 남은 백성들의 안위 따위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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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7:56
■ 호란胡亂 2편

■ 호란(胡亂) 2편

1627년 1월13일 새벽, 후금군의 선발대가 압록강의 얼음을 타고 국경을 넘는 동안 의주 부윤 이완(李莞:1579~1627)은 제대로 방어도 못한 채 살해 되었고, 의주는 함락되었다. 이완(李莞)은 작은 아버지인 이순신 장군을 도와 노량해전에서 활약했던 이순신(李舜臣)의 조카였다. 후금은 일주일 후 얼음을 타고 청천강을 건너 안주로 내려왔다. 후금의 침략에 조선 조정은 당황했다.

장만을 도원수로 삼고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근왕병(勤王兵)을 모집하면서 황해도 황주와 평산을 1차 방어선으로, 임진강을 최후 방어선으로 삼았다.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는 분조(分朝:임시조정)를 맡아 전주로 내려갔다. 임진왜란 때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평양에는 8000여 명의 병력이 있었으나 후금의 기세에 놀라 대부분 성을 버리고 도망쳐버려 1월 24일 평양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후금의 빠른 진격에 인조는 1월 27일 황급히 강화도로 피난길을 서둘렀다. 기마(騎馬)족인 후금군이 바다를 건너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강화부 관아에 임시정부를 차린 인조는 대신들과 대책 회의를 하면서 전쟁의 추이(推移)를 살폈다. 후금은 당시 명나라 정벌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라 강화도 공략이 쉽지는 않았다. 다행히 후금군은 평상에서 진군(進軍)을 멈추고 강홍립을 강화도로 보내 화의를 요청했다. 서인 세력은 후금에 투항한 강홍립을 ‘강오랑캐’라 칭하며 최대의 모욕을 안겨줬지만, 후금 투항 이후에도 강홍립은 조국을 버리지 않았다. 강홍립은 후금 군대의 일원으로 조선에 들어오기는 했으나 조선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해 화의(和議)를 맺는 데 기여했다.

후금은 화의 조건으로 조선의 만주 영토를 후금에게 줄 것, 명나라 장수 모문룡을 잡아 보낼 것, 명나라 토벌에 3만 군사를 지원할 것, 국경 일대에 시장을 열어 줄 것 등을 내걸었다. 이에 최명길 등이 강화 회담에 나서 명나라에 적대하지 않으면서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겠다는 등의 다섯 가지 사항을 앞세워 약조를 성립시키자 후금은 철군하였다. 이것이 정묘화약 (丁卯和約)이다. 후금은 애초부터 조선사대부들에게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컸으므로 어느 정도 적당한 선에서 물러난 것이다.

1627년 3월 3일 인조는 검은 옷을 입고 강화도 연미정 대청으로 나아가 후금과 형제 관계 서약식을 맺었다. 이렇게 정묘호란은 침략 후 약 50일 만에 종료됐다. 조선은 후금을 오랑캐니 야만인이니 하면서 우습게 여겼다가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수모를 겪게 되어버렸다. 더구나 후금군은 철수하면서도 끝까지 백성들의 목숨을 빼앗고 재물을 약탈하는 만행을 벌였다. 그러나 정묘화약은 조선과 후금 두 나라가 다 만족할 수 없는 것이었다.

조선은 후금과의 형제관계를 굴욕적인 것으로 인식하였고, 더욱이 수시로 강요하는 후금의 과중한 경제적 부담에 반발하여 배금(排金)의 움직임이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후금 역시 중강(中江)의 개시(開市) 등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게 되었지만, 모문룡의 세력을 공멸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배금 움직임이 날로 높아지는 데 불안을 느꼈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3.html
kolaswqetsrq 11.02 17:56
【삼지구협초】

【삼지구협초】

삼지구엽초(三枝九葉草) 한자 풀이를 해보면 3개의 가지에 9장의 잎이 붙은 풀이라는 뜻이지요. 한약명으로는 음양곽(陰羊藿)임.

옛날 중국에 한 양치기가 수백마리의 양을 키우고 있었는데, 그 중 수놈 한마리는 매일 짝짓기를 하고도 멀쩡하여 도대체 저 놈은 무엇을 먹나 관찰하던 중 어느 날 계곡에 가서 열심히 혼자서 먹는 풀이 있었다. 양치기는 바로 저 풀이구나! 그 이후로 강장제로 사용하였다고 함.

▷ 학명 : Epimedium koreanum NAKAI

▷ 분류 : 매자나무과

▷ 분포지역 : 한국

▷ 서식장소 : 산지의 나무 그늘

▷ 특징 :

원가지에서 가지가 3갈래로 갈라지고 다시 3갈래로 갈라져 “삼지구엽”이라 하는데 어릴 때는 잎이 마치 “꿩의다리”와 “승마”같은 종들과 유사하게 닮았기 때문에 혼돈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삼지구엽초의 경우는 잎이 “심장형(하트)”으로 생겼고 끝에 톱니와 같은 결각이 있기 때문에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꽃은 식용, 잎·줄기·뿌리는 약용으로 쓰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380.html
kolaswqetsrq 11.02 17:57
【큰개불알풀】

【큰개불알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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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 바른 곳에서 제일 먼저 피는 꽃이 큰개불알풀이다. 큰개불알풀의 이름은 오오이누노후구리란 일본어를 그대로 직역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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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 후 씨앗이 맺힌 모양이 개불알을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큰 자가 붙었지만 사실은 아주 작다. 씨앗이 맺힌 것도 자세하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
",

▷ 학명 : Veronica persica

▷ 분류 : 현삼과

▷ 분포지역 :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한국남부 지방

▷ 서식장소 : 길가나 빈터의 약간 습한 곳

▷ 특징 :

양지에 흔하디 흔한 큰개불알풀을 뜯어다가 나물로 먹으면 좋다. 특히 아주 작은 보랏빛 꽃을 따서 그늘에 말리면 예쁜 꽃차를 마실 수 있다. 향도 은은하다. 그런데 이 큰개불알풀은 사실 나물로 또는 꽃차로 해먹고 싶지 않다. 너무 작고 예뻐서 먹지 않고 그대로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니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722.html
kolaswqetsrq 11.02 17:58
■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3편

■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3편

전기수는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꽤 있었다고 하지만, 60년대 이후 라디오가 대중화되면서 다양한 들을 거리가 생겨났고, 전기수들은 설자리를 잃어갔다. 70년대 들어와서는 텔레비전까지 보급되자 완전히 소멸하게 되었다. 현재 활동하는 이로는 정규헌 옹뿐이다. 정규헌 옹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9호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문화재로 인정받은 것은 고소설 낭독 등 전통 문화의 계승 발전을 위해서이다. 부친인 정백섭을 따라 어릴 적부터 소설에 가락을 얹어 읽어 주는 활동을 했다 하니 2대째 전기수를 하는 셈이다. 그는 주로 《춘향전》, 《심청전》, 《신유복전》, 《조웅전》, 《장끼전》 등을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월북 작가 한설야(韓雪野:1900~1976)의 《나의 인간 수업, 작가 수업》에는 신소설을 읽고 있는 전기수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거기에는 허줄한 사나이가 가스등을 놓고 앉아 있으며, 그 사나이는 무슨 책을 펴 고래고래 소리 높여 읽고 있었다. 그 사나이 앞 가스등 아래에도 그런 책들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었다. 울긋불긋 악물스러운 빛깔로 그려진 서툰 그림을 그린 표지 위에 ‘신소설’이라고 박혀 있고 그 아래에 소설 제명이 보다 큰 글자로 박혀 있었다.

그 사나이는 이 소설을 팔러 나온 것이며 그리하여 밤마다 목청을 뽑아 가며 신소설을 낭송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나이의 주변에는 허줄하게 차린 사람들이 언제나 뺑 둘러앉아 있었다. 얼른 보아 내 눈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인력거꾼, 행랑어멈 같은 뒷골목 사람들이었다. 거기에는 젊은 여인의 얼굴도 띄엄띄엄 섞여 있었다.』

이 글을 보면 구경꾼들은 대부분 인력거꾼, 행랑어멈 등 어렵게 사는 이들이다. 그래서 전기수의 활동 시간도 그들이 일을 마친 밤이었다. 흥미로운 것이 전기수는 읽어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소개하면서 직접 팔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이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흥미롭고 실감나게 연기하면서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전기수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쉽게 찾기 어렵고, 문헌에 그 이름이 몇 명 보일 뿐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37.html
kolaswqetsrq 11.02 18:00
■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1편

■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1편

조선 후기 한글소설은 필사(筆寫), 낭독(朗讀), 세책(貰冊:빌림)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통되면서 수적으로 증가하고 점차 대중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때맞춰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소설책을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읽어 주고 일정한 보수를 받아 생활하는 직업적인 낭독가가 등장하였는데, 이들을 ‘전기수(傳奇叟)’라 한다. ‘듣는 소설’인 ‘오디오북’의 시대가 이미 조선시대 전기수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한글소설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와 역사이야기, 삼국지나 수호지 같은 중국 고전소설을 읽어주는 경우도 있었다. 전기수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낭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의 역할에 맞춰 억양과 몸짓, 인물의 행동과 표정 등을 생동감 있게 바꿔가며 청중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우리의 국문(國文) 고소설(古小說)이 대개 4·4조의 운율을 형성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기수는 18세기에서 20세기 중반 사이에 주로 활동하였다. 17세기 이후 한글문학이 발전하고 책의 인쇄량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책값은 상당히 비싸서 빌려 읽는 것이 보통이었다. 또한, 원하는 책을 마음껏 빌려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문맹자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전기수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로 각 마을이나 시장판, 양반집을 돌아다니며 책을 읽어주었다.

전기수는 뒷골목 상권을 형성하는 주역들이었다. 그들은 종로 뒷골목이나 청계천 주변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당시 유행하던 소설을 읽어줬다. 조수삼이 지은 《전기수(傳奇叟)》라는 글을 보면 당시 운종가 혹은 청계천 아래 여러 상점 주인이 책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해 손님을 모으는 광경이 묘사돼 있다.

전기수들은 한양 서쪽에서 광화문까지 올라갔다가 다음 초이렛날(매달 초하룻날부터 헤아려 일곱째 되는 날)부터는 동대문 방향으로 내려온다. 그렇게 한양 도심을 오르내리면서 청중을 몰고 다녔다. 그들은 군중의 심리를 잘 파악해 책을 읽다가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부분에 이르면 갑자기 읽는 것을 멈추기도 했다. 그러면 청중들은 다음 대목이 궁금해 앞을 다투어 돈을 던졌다. 이때가 전기수에게 공식적인 수입이 생기는 순간이다.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전기수들이 돈을 버는 절묘한 기술이라 하여 요전법(邀錢法)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이처럼 전기수의 인기가 치솟았고, 인기 있는 여러 명의 전기수가 생겨났다. 이야기 중에는 재미는 물론이고 세상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의미도 있었기에 사람들이 좋아했다. 《삼국지》나 《수호지》 등 긴박감이 감도는 인기 소설을 읽을 때면 많은 독자가 몰렸고, 연암이 지은 《양반전》과 같은 풍자소설도 인기를 끌었다.

심청전을 들려주면 효심에 감복했고, 춘향전을 낭독하면 시련을 이겨낸 절절한 사랑 이야기에 환호했다. 그들만의 낭독 법도 있었다. 읊조리듯 노래하듯 낭독하고, 눈길과 표정은 청중에게 맞추면서 끊어 읽기를 하는 등 화려한 기술로 생생하고 긴장감 넘치게 이야기를 전한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19.html
kolaswqetsrq 11.02 18:00
■ 조선의 우체부, 전인專人

■ 조선의 우체부, 전인(專人)

요즘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이라도 전화나 문자 등 안부를 물을 수 있는 방법이 많지만,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편지가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조선시대에 편지는 주로 인편(人便)으로 전해졌다. 인편을 구하기 마땅치가 않으면 편지를 써두고 기다렸다가 일정과 행선지가 맞는 사람을 찾으면 밀린 편지를 한꺼번에 써서 전하기도 했다. 그래서 품삯을 받고 편지를 배달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은 전문배달꾼이 생겨났다. 요즘으로 말하면 ‘우편배달부’ 이다. 이들은 전인(專人) 전족(專足) 등으로 불렸다.

전인은 주소가 없던 시대에 사는 곳과 이름만 듣고 편지를 전달해야했기 때문에 수취인(受取人)이 사는 곳의 지리를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어야 했다. 물어물어 수취인을 찾아야 하니 길눈도 밝아야 하고, 먼 길을 일정에 맞춰 다닐 수 있는 빠른 발걸음과 체력도 필요했다. 이렇듯 전인은 그 나름대로의 전문성이 필요했다. 노잣돈과 품삯은 일정과 거리에 따라 정해졌다. 먼 거리를 급하게 갈 전인의 품삯은 결코 적지 않았다. 《춘향전》을 보면 춘향이가 방자를 불러 “10냥을 주고 솜옷도 한 벌 해줄 테니 이몽룡에게 편지를 전해 달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방자를 전인으로 쓰겠다는 말이다. 조선후기 서울의 노동자 하루 품삯이 25푼 남짓이었으니, 춘향이는 40일 치 임금과 옷 한 벌을 품삯으로 제시한 셈이다.

하지만, 원하는 지역을 원하는 일정에 갈 수 있는 전인을 딱 맞게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전인을 주선해주는 중개인도 있었는데, 중개인 없이 전인을 직접 구하면 흥정이 쉽지 않았다. 전인이 높은 가격을 부르면 고리(高利)로 빚을 내기도 했다.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비용 일부를 수신자(受信者)에게 착불로 부담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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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인은 궁궐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민가에서 전인이 활약했다면 궁궐 식구들이 궁 밖의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때는 글월비자(婢子) 가 맡아서 전달했다. 비자(婢子)는 궁궐에서 색장나인(色掌內人:궁녀) 밑에서 심부름을 맡아서 하는 여자를 부르는 말인데, ‘글월을 전하는 심부름을 맡아서 하는 비자(婢子)’라는 뜻에서 ‘글월비자’ 라고 불렸다. 여러 곳에 문안편지를 전달하고 그 답장을 받아오는 것이 이들의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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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월비자는 대개 나인내인(內人)으로도 뽑히지 못하는 가난한 천민의 딸들로, 우중충한 검은 빛이 도는 색으로 물들인 무명치마저고리를 입고 허리에 검은 띠를 매어 글월비자임을 표시했다.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서 아들 정조를 두고 『노모 마음을 헤아려 서울 성내 거동이라도 궁을 떠나시면 안부를 묻는 편지가 끊이질 않으시더라.”라고 썼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수시로 보낸 편지도 아마 글월비자가 전달했을 것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254.html
kolaswqetsrq 11.02 18:01
◇ "허리 통증, 산 달리면서 털어냈죠”

◇ "허리 통증, 산 달리면서 털어냈죠”

‘부부의 날’ 발안자인 권재도 경기 수원 카페교회 담임 목사는 학창시절 허약 체질로 고생하다 운동이란 신의 선물을 만나 건강하게 살고 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위장병으로 고생했고 대학 땐 허리 디스크로 고생했다. 늘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웃을 날이 별로 없었다”고 회상했다.

“대학 때가 최악이었다. 상대평가로 성적을 내다 보니 공부를 많이 해야 했다. 사실상 도서관에서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3분을 채 앉아 있기 힘들었다. 돌이켜 보면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서 하루 종일 공부를 하다 보니 척추에 무리가 간 것이다. 여러 병원을 찾아 다녔지만 당시 의술로는 완치가 어렵다고 했다.”

휴학하고 쉬다 군에 입대했다. 군대에서 훈련받고 할 땐 크게 문제가 없었다. 2년 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친 뒤 복학해 공부를 시작하자 다시 허리가 아팠다. 1년 휴학을 더 했다. 종교에 귀의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자 좀 편안해졌다. 그래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While there‘s life, there’s hope)는 명언을 떠올렸다. “그래 죽기야 하겠냐”며 부산대 인근 구월산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처음엔 10분의 1도 못 뛰었다. 그래도 조금씩 더 뛰어올랐다. 보름이 지났을 때 한 번도 쉬지 않고 목표 지점까지 뛰어서 오를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허리 통증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는 “산을 오르며 허벅지와 등의 근육이 강화됐기 때문이었다. 근력의 중요성을 빨리 알았더라면 더 빨리 허리 통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그때부터 운동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는 “운동을 안 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살기 위해 했다”고 했다. 권 목사의 하루는 체조로 시작한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군대에서 배운 도수체조로 몸을 깨운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운동을 한다”고 했다. 집과 교회 근처 산과 공원을 달리고 걷는다. 2∼3km의 짧은 거리이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한창 땐 팔굽혀펴기를 하루 1500개, 스쾃을 500개씩 병행했다. 요즘은 각각 300개, 150개를 한다. 15년 전부터 아내 유성숙 씨(53)도 운동을 시작했다. 부부는 집 근처인 경기 수원시 세류동 버드내노인복지관 스포츠센터에서 함께 운동하고 있다. 권 목사는 달리고 걷고 근육운동을 하고, 유 씨는 수영을 한다. 지금은 코로나19 탓에 복지관 스포츠센터를 운영하지 않아 함께 걷고 산을 타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1992년부터 신학을 공부한 권 목사는 1995년 경남 창원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그해 어린이날 TV를 보다가 “소원이 뭐냐”는 질문을 받은 한 아동시설의 초등학생이 “우리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거요”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고 ‘건강한 가정’의 중요성을 느꼈다.

그는 가정의 달 5월에 둘(2)이 하나(1) 된다는 의미를 담아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했다. 그리고 10년 넘게 국회 등을 쫓아다니며 부부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부 10계명’과 ‘부부싸움 10계명’ ‘부부폭력 제로 운동 선언문’ ‘부부의 전화’ ‘부부 주말캠프’ 등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이벤트로 부부의 날을 알렸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07년부터 부부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경남 산청이 고향인 권 목사는 전남 순천 출신의 아내를 맞아 영호남 교류의 상징 장소인 하동 화개장터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1991년부터 서울에서 ‘영호남 부부 모임’도 결성해 영호남 지역갈등 해소에도 앞장섰다.

-동아일보 양종구의 100세 건강-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051.html
kolaswqetsrq 11.02 18:01
◇ 밥 먹는데 콧물이 줄줄... ‘미각성 비염’ 아시나요

◇ 밥 먹는데 콧물이 줄줄... ‘미각성 비염’ 아시나요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그런데 뜨거운 국수 먹으면, 콧물이 줄줄 흐르는 사람들이 있다. 휴지로 콧물을 연신 닦아내지만, 불편하기 그지없고 음식 맛도 사라진다. 여럿이 식사할 때 그러면, 식탁에 거대한 ‘휴지 산’이 쌓여 민망하다.

이처럼 음식을 먹을 때 콧물이 줄줄 새는 경우를 미각성 비염이라고 한다. 뜨겁거나 매운 음식이 입천장에 닿으면 그곳 신경과 코 신경이 자극되어 콧물을 쏟아내는 질환이다. 나이 들수록 많다. 노화될수록 코점막이 말라 예민해지고, 콧물이 뒤로 넘어가는 후비루 증상이 흔하기 때문이다. 간혹 젊은 사람에게도 생기는데, 청년에게 생긴 노인성 비염이라고도 부른다. 일반 비염과 달리 재채기나 가려움은 없다.

미각성 비염은 신경전달물질 아세틸콜린 작용을 억제하는 항콜린 제제로 치료한다. 코에 뿌리는 스프레이 형태로 나와 있다. 식사 20~30분 전에 뿌리면 식사할 때 콧물이 나오지 않는다. 의사 처방이 필요하다. 처방 없이 구입할 수 있는 비강 분무제는 항히스타민제로, 성분이 달라 효과가 없을 수 있다. 만약 약물로도 콧물 양이 조절되지 않으면, 레이저로 점막을 태우는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후각은 의외로 민감하고 섬세한 감각이다. 와인, 시가, 위스키, 향수 등이 코를 만족시키는 ‘후각 산업’이다. 노년에 입맛을 잃는 것도 둔감해진 코 때문이다. 콧물이 줄줄 새는 것만큼 코 건강을 해치는 것이 건조다. 매일 식염수로 코 세척을 하는 걸 권장한다. 혈액에서 아연이 부족하면 후각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평소에 아연이 많이 든 굴이나 계란, 낫토, 해초 등을 자주 먹어두면 코에 좋다. 나이 들어도 코가 싱싱해야 삶의 질이 좋다. 일단 내 코가 석 자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026.html
kolaswqetsrq 11.02 18:02
◇ 적선과 뇌물

◇ 적선과 뇌물

인간관계는 ‘보시’에서 시작된다. 재물과 먹을 것을 나누는 게 보시다. 육바라밀의 첫째 단추가 바로 보시다. 도를 닦으려면 제일 먼저 보시를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이다.

보시에서 결국 지혜도 나온다. 보시를 하면 여러 사람과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그러다 보면 거기에서 아이디어와 지혜가 나온다. 집단 지성이 발동하는 셈이다. 그래서 사회생활의 시작은 보시다. 베풀 것이 없으면 육보시(肉布施)라도 해야 한다. 청소, 설거지, 밥 해주는 것도 육보시다.

보시를 다시 인수분해하면 적선과 뇌물로 나눠진다. 적선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베풂을 가리킨다.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 차원 높은 보시다.

반대로 뇌물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대가에는 3가지 장치가 있다. 첫째는 낚싯바늘이다. 낚싯바늘이 들어 있는 뇌물을 받으면 가시가 목에 걸린다. 낚싯바늘이 목에 걸린 고통과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수시로 바늘을 잡아당긴다. 바늘을 잡아당길 때마다 끌려가야 하는 비굴함과 서글픔. 정치자금을 많이 받아본 어느 다선 의원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돈은 어떻게 먹어야 됩니까?” “가시를 발라 먹어야지.” “가시를 어떻게 바르죠?” “이 사람아, 그게 노하우야. 가시가 없는 고래 고기를 먹어야지. 고래가 재벌이야.” “고래도 가시가 없지만, 문어도 가시는 없지 않습니까?” “말 잘했네. 문어는 계파 보스가 주는 돈이야.” 요즘은 재벌도 쉽게 돈 안 주고 계파 보스도 사라진 시대가 되었다. 어떻게 자급자족할 것인가. 부동산 개발에서 활로를 뚫어야 하지 않을까.

둘째는 비상(砒霜), 이거 들어간 돈을 먹으면 바로 사망이다. 깨끗하다고 알려진 인물일수록 몇 천만 원 먹고도 바로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 몇 년 전에 4000만원인가를 먹었다고 자살한 정치인이 이 케이스에 해당한다. 비상이 들어 있는지 감별할 수 있는 안목이 바로 내공이다.

셋째가 설사약이다. 이걸 먹으면 설사를 해서 속옷과 바지에 똥이 묻고 냄새가 사방에 진동한다. 설사약이 들어간 돈을 먹은 전 대법관, 검찰총장, 특검, 민정수석이 그 냄새를 사방에 풍기고 있다. 물론 외형은 합법적일 수가 있다. 법률가는 합법을 강조하지만, 국민적 상식은 뇌물로 본다. 합법과 상식이 충돌하면 어떻게 되는가. 상식이 이긴다. 법률은 소수 전문가의 의견이지만 상식은 국민 대다수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상식을 법률로 찍어 누르면 민란이 일어났다.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08.html
kolaswqetsrq 11.02 18:03
◇ 청년 간병 살인과 복지정책

◇ 청년 간병 살인과 복지정책

몇 해 전 스물일곱 살 청년이 아버지를 목졸라 살해해 온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극악한 패륜 범죄인 줄로만 알았는데 안타까운 정황이 드러났다. 아버지가 불치병을 오래 앓았고 집안은 가난했다. 어머니와 형제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지만 청년은 며칠 뒤 “너무 괴로워서 살 수가 없다”며 집을 나갔다. 가족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근처 저수지에서 서성이던 청년을 찾아내 또 다른 비극을 막았다.

오랜 간병에 지쳐 부모나 형제 목숨을 빼앗는 것을 ‘간병 살해’라 한다. 노령 인구가 많은 일본에선 해마다 40~50건씩 발생한다. 안타까운 비극이다. 인면수심의 흉악범이긴커녕 지극한 효자나 효부, 금슬 좋은 부부 사이인데 오랜 간병에 지쳐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환자가 제발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저수지에 뛰어들려 했던 청년처럼 상당수가 범행 후 따라 죽는 ‘간병 자살’을 기도한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굶어 죽게 한 혐의로 재판받은 22세 대학 휴학생 사연이 엊그제 보도됐다. 이 사건도 처음엔 병든 아버지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패륜 범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청년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가출했고, 아버지가 병마에 쓰러지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지극 정성으로 돌봤으며, 병원비 내고 나면 난방은 고사하고 쌀 살 돈도 없어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아들을 놓아주겠다면서 곡기를 끊었다고 한다. 자식 가진 어느 부모 심정이 다르겠는가. 청년은 울면서 아버지가 누워 있는 방에서 나왔다고 한다.

간병 살해 사건 재판정은 대개 눈물바다다. 안타까운 사연에 범인·방청객·판사가 함께 눈시울을 붉힌다. 그래서인지 집행유예 판결을 받는 사례도 많다. 그러나 동정심만으로는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간병 살해는 사회·구조적 비극이다. 범행을 저지른 이 상당수가 병간호에 매달리느라 변변한 수입이 없고, 공공간병 지원을 못 받아 정신이 피폐해진다. 개인 범죄로 치부할 게 아니라 사회적·제도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민기본생활 보장’을 내걸고 출범한 이 정부도 비극이 반복되는 걸 막지 못한다. 22세 청년 사례가 알려지자 총리가 “국가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사과했을 뿐이다. 청년세대 고통을 해결하겠다고 다짐하는 차기 대선 후보들은 다를까. 벼랑 끝에 내몰린 청년들은 용돈 수준에 불과한 돈을 온 국민에게 뿌리면서 복지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극단적 절망에 빠진 청년들부터 구하는 일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조선일보 만물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156.html
kolaswqetsrq 11.02 18:03
아내무형我乃無兄 - 나에게는 형이 없다, 남의 비방에 대응하지 않다.

아내무형(我乃無兄) - 나에게는 형이 없다, 남의 비방에 대응하지 않다.

나 아(戈/3) 이에 내(丿/1) 없을 무(灬/8) 형 형(儿/3)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분명한 잘못에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도둑질을 하다 들켜도 변명을 한다’는 속담이 남았다. 변명을 할수록 그 과실이 커 보이는데도 그렇다. 반대로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남이 덮어씌워 누명을 썼을 때는 어떤 대처가 현명할까. 똑 같이 험담으로, 보복으로 갚는 것보다 더러워서 피한다고 상대를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진실은 태양처럼 마지막까지 빛나고, 하나의 참이 아흔아홉 가지의 거짓을 이기게 되어 있다는 철인의 가르침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누명에 대해 가장 강력한 대응을 한 사람은 ‘나에게는 형이 없다(我乃無兄)’고 한 直不疑(직불의)가 꼽힐 것이다.

‘史記(사기)’의 萬石張叔(만석장숙) 열전에 나오는 직불의는 너무나 꼿꼿한 처신으로 중국 前漢(전한)의 5대 文帝(문제)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하위직으로 있을 때 동료가 휴가 때 황금을 잘못 챙겨 갔는데 직불의 짓이라 의심하자 변명 않고 변상했다. 돌아온 동료가 황금을 가져오자 의심한 주인이 사죄한 후로 직불의는 長者(장자)라며 명성이 더 높아졌다.

아동 교재 蒙求(몽구)에도 실린 不疑誣金(불의무금) 이야기다. 황제가 고관을 맡길 때 한 사람이 직불의는 인물이 좋아 형수와 정을 통한다고 헐뜯었다. 전해들은 직불의는 ‘나에게는 형이 없는데(我乃無兄/ 아내무형), 중얼거리며 끝내 결백을 밝히지 않았다(然終不自明也/ 연종부자명야).’ 이후 직불의는 더욱 신임을 받아 塞侯(새후)로 봉해졌다.

직불의는 거짓으로 헐뜯은 누명에 대해 변명을 하지 않음으로써 진실은 세월이 지나면 자연히 밝혀진다는 것을 실천한 셈이다. 직불의보다 조금 후세인 後漢(후한) 光武帝(광무제) 때 第五倫(제오륜)이란 사람도 입이 무거웠다.

그가 太守(태수)로 재직할 때 백성을 위한 세심한 정치로 신망을 받아 중앙으로 발탁될 때 역시 시기하는 사람들이 장인을 구타하는 패륜아라 했다. 변명 않고 있다가 황제 앞에서 입을 뗐다. ‘신은 세 번 결혼했는데 모두 장인이 없었습니다(臣三娶妻 皆無父/ 신삼취처 개무부).’ ‘後漢書(후한서)’ 등에 실려 있다.

없는 사실을 침소봉대하여 퍼뜨리는데 역사에 남은 이런 사람들만큼 느긋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일일이 대응하고 명예훼손으로 법에 호소하기도 한다. 당연히 날조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지만 문제는 있는 사실도 절대 없었다고 잡아떼는 일이 흔하다는데 있다.

쌍방소송이 갈수록 늘어나고, 고위 공직자들이 거쳐야 하는 청문회 때에는 부인으로 일관해 지켜보는 국민들의 속을 뒤집는 일이 허다하다. 또 있다. 같은 편의 비위는 별것 아니라며 덮고 상대편의 잘못은 미주알고주알 후빈다. 이런 사람은 진실의 힘을 모른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977.html
kolaswqetsrq 11.02 18:04
【줄딸기】

【줄딸기】

덩굴딸기라고도 하며, 산기슭이나 골짜기에서 자란다. 가지는 옆으로 길게 2m 이상 뻗고 털이 없으나 갈고리 같은 가시가 있으며, 작은 가지는 털이 없거나 있으며 붉은빛이 돌고 흰 가루가 덮인다.

5월(봄)에 연분홍색 꽃이 피고 새 가지 끝에 1개씩 달린다. 열매는 집합과이고 둥글며 지름이 1.2cm이고 7∼8월에 붉게 익으며 먹을 수 있다.

▷ 학명 : Rubus oldhamii

▷ 분류 : 장미과

▷ 분포지역 : 북부 고원지를 제외한 전국

▷ 서식장소 : 산과 들 양지

▷ 특징 :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덩굴식물.

꽃은 연한 홍색이나 때로는 백색인 것도 나타나며, 5월에 올해 나온 새 가지 끝에 1개씩 달린다. 꽃줄기는 길이가 3~4cm로서 가시가 있다.

열매는 7~8월경 적색으로 익는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열매는 식용으로 쓰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560.html
kolaswqetsrq 11.02 18:04
탐뢰무예貪賂無藝 - 뇌물을 탐하는 것에 끝을 모른다.

탐뢰무예(貪賂無藝) - 뇌물을 탐하는 것에 끝을 모른다.

탐낼 탐(貝/4) 뇌물 뢰(貝/6) 없을 무(灬/8) 재주 예(艹/15)

욕망은 만족을 모른다. 욕망이 욕망을 부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원하지만 실제 필요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데도 무욕의 수행자 등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이 더 가지려고 눈에 불을 켠다. 대청을 빌려 쓰다가 점점 안방까지 밀고 온다는 借廳借閨(차청차규)나 처음에는 겨를 핥다가 나중에는 쌀까지 먹는다는 舐糠及米(지강급미, 舐는 핥을지), 그리고 한 곳을 얻으니 더 큰 곳을 넘본다는 得隴望蜀(득롱망촉)등의 이를 나타내는 성어도 많다.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도 다를 바 없어 뇌물을 욕심내는 것(貪賂)은 끝을 모른다(無藝)는 말이 잘 나타낸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에 韓起(한기)라는 사람이 부친을 이어 卿(경)의 지위에 있었다. 하지만 그에 어울리는 재산이 없어 다른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는 등 가난을 근심하고 있었다. 叔向(숙향)이란 현인이 찾았을 때 사정을 말하니 대뜸 한기를 축하한다고 했다.

숙향은 齊(제)의 晏嬰(안영), 吳(오)의 季札(계찰), 鄭(정)의 子産(자산)과 겨루는 현인이라 무엇을 뜻하는지 한기가 물었다. 춘추 8국의 역사를 左丘明(좌구명)이 21권에 모았다고 전해지는 ‘國語(국어)’의 晉語(진어) 편에 고사를 들어 숙향이 설명한다. 貪欲無藝(탐욕무예)로 나오지만 뜻은 같다.

숙항의 이야기를 보자. 진나라에 앞서 있었던 대부 欒書(난서)는 봉록도 못 받고 조상들에게 제사지낼 그릇조차 변변히 없었다. 그래도 덕행으로 일을 처리하여 백성들의 신망은 물론 변방의 이민족까지 그에게 의지해 나라를 굳건히 했다.

그의 아들 桓子(환자)에 이르러서는 ’교만과 사치로 얼룩져 재물을 긁어모으는데 끝이 없었고(驕泰奢侈 貪欲無藝/ 교태사치 탐욕무예)‘ 아버지 음덕으로 화를 면했으나 후대에 가서 망했다. 재주 藝(예)는 다하다, 극진하다란 뜻. 지금 경께서는 재산이 없는 대신 난서와 같은 덕이 있으며, 더욱이 탕진할 아들이 없으니 축하를 드렸다고 했다.

모든 물을 받아들이는 바다를 메울 수는 있어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채우지 못한다. 이전과 같이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공부하여 가난을 탈피할 수 있는 길은 점점 멀어져 청년세대는 희망을 잃는다. 그런데도 부모에 물려받거나 운 좋게 부를 차지한 사람들은 용이 안 될 때는 가재나 미꾸라지로 살라고 속을 뒤집으며 갑질을 일삼는다. 굶주리는 사람이 주변에 없도록 가난한 사람들을 아낌없이 몰래 도왔다는 이전의 천석꾼, 만석꾼은 점차 사라지는 세상은 삭막하다./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970.html
kolaswqetsrq 11.02 18:05
도행역시倒行逆施 – 반대로 가고 거꾸로 행하다, 차례나 순서를 바꾸어서 행하다.

도행역시(倒行逆施) – 반대로 가고 거꾸로 행하다, 차례나 순서를 바꾸어서 행하다.

넘어질 도(亻/8) 다닐 행(行/0) 거스릴 역(辶/6) 베풀 시(方/5)

해는 져서 어두운데 갈 길은 아득한 상태란 뜻의 日暮途遠(일모도원)과 함께 따라붙는 유명한 성어다. 거꾸로 가고(倒行) 거꾸로 행한다(逆施)는 이 말은 도리를 따르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처리하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말한다. 이치에 어긋나는 것은 알겠는데 시간이 없어 부득이 행한 행동이라며 복수의 화신 伍子胥(오자서)가 변명하는 말이다. 倒行暴施(도행포시)도 같이 쓴다. ‘史記(사기)’ 오자서 열전에 흥미 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楚(초)나라의 명문 출신 오자서는 유능한 정치인이었으나 吳(오)나라를 도와 조국 초나라를 멸망케 하여 복수를 한다. 그만큼 초나라에 원한이 깊었다. 오자서의 부친 伍奢(오사)는 초나라 平王(평왕)의 태자를 가르치는 태부로 있었다. 그 밑에 있던 간신 費無忌(비무기)가 태자비로 秦(진)나라 공주를 맞으러 갔을 때 평왕에게 미인을 직접 취하라고 건의했다.

태자를 변방에 보내고 왕에게 공주를 차지하게 한 비무기는 신임을 얻었지만 후환이 두려워 모략을 펼치기 시작했다. 충신 오사와 두 아들이 태자와 함께 반란을 꿈꾼다고 모함하여 오사와 큰 아들을 불러 처형했다. 간신히 도주한 오자서는 이웃 나라를 전전하다 오나라의 공자 光(광)을 도와 초나라를 칠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오자서가 천거한 자객에 의해 오왕은 죽음을 당하고 공자 광이 왕위에 오르니 바로 五霸(오패)의 한 사람인 闔閭(합려)였다. 그 사이 비무기도 죽고 평왕도 죽었으나 오자서의 복수심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합려가 즉위한지 9년 만에 초나라를 치고 수도를 초토화시켰다. 오자서는 죽은 평왕의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 채찍으로 300차례나 후려쳐 앙갚음을 했다.

오자서의 친구였던 申包胥(신포서)가 사람을 보내 지나치다고 꾸짖자 대답했다.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기만 한 내 처지라 어쩔 수 없이 사리에 어긋나게 복수를 했다네(吾日暮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 오일모도원 오고도행이역시지).’ 사마천은 고초를 이겨 공명을 이룬 오자서의 행동을 평가했지만 사리에 어긋나는 것은 틀림없다. 무슨 일이든 도가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큰일을 앞둔 사람일수록 명심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81.html
kolaswqetsrq 11.02 18:06
난의포식暖衣飽食 - 따뜻하게 옷 입고 배부르게 밥 먹다, 편안하고 걱정 없는 생활

난의포식(暖衣飽食) - 따뜻하게 옷 입고 배부르게 밥 먹다, 편안하고 걱정 없는 생활

따뜻할 난(日/9) 옷 의(衣/0) 배부를 포(食/5) 밥 식(食/0)

사람이 衣食住(의식주)가 기본이니 비바람을 가릴만하면 먹고 입어야 살아간다. ‘등이 따스우면 배부르다’는 속담대로 옷을 잘 입고, 잘 먹어 배부르면 별로 부러울 것이 없다. 비단 옷에 흰 쌀밥, 錦衣玉食(금의옥식)의 사치만 아니면 같은 처지일 때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원하는 好衣好食(호의호식)은 모두 원한다.

생존에 필수인 食(식)이 해결되면 사회생활을 위해 옷이 필요하다. 옷이 날개이고 옷이 사람을 만든다고 할 정도이니 중요성을 알겠다. 옷을 따뜻이 입고(暖衣) 밥을 배부르게 먹는다는(飽食) 이 말도 백성의 가장 기본을 중시하라는 ‘孟子(맹자)’에서 유래했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의 제후국 滕(등, 滕은 물솟을 등)나라의 文公(문공)이 맹자에게 가르침을 구하며 주고받은 이야기가 滕文公(등문공) 상편에 등장한다. 당시 諸子百家(제자백가) 중에서 농경에 힘써 의식을 충족해야 한다는 農家(농가)의 대표 許行(허행)이란 사람이 문공의 호의로 등나라에 살고 있었다.

허행은 자기가 짠 거친 옷을 입고, 손수 경작한 곡식으로 살아갔는데 그것을 본받으려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 陳相(진상)이라는 사람이 맹자를 찾아와 등나라의 창고에 가득한 곡식과 재물은 백성을 괴롭혀 뺏은 것이니 임금도 직접 농사를 지어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맹자는 진상의 스승 허행이 농기구와 그릇은 직접 만든 것이 아니고 농산물과 物物交換(물물교환)한 것임을 확인한 뒤 이유를 되물었다. 그러자 진상은 농사짓는 일과 기구 만드는 일을 동시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 답했다.

맹자가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더욱 농사와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勞心者治人/ 노심자치인), 몸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다스림을 받는다(勞力者治於人/ 노력자치어인)’고 했다. 그러면서 옛날 禹王(우왕)의 치수와 后稷(후직)의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내려왔기에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飽食煖衣逸居/ 포식난의일거)’고 예를 들었다.

모두가 원하는 등 따습고 배부른 생활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기 맡은 바 생업에 열심히 할 필요가 있다.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어 분야에 따라 잘 하는 사람이 맡는 분업이 필요하다. 맹자는 물론 땀 흘리지 않는 사람의 무위도식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 놀고먹는 것 같이 보여도 우왕이나 후직처럼 다른 사람이 더 잘 살게 힘을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류층이 물려받은 유산으로, 또는 부당한 방식으로 가로채서 재산을 긁어모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땀 흘리지 않는 계층은 손가락질 당할 수밖에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480.html
kolaswqetsrq 11.02 18:06
불명일전不名一錢 - 자기 이름의 돈이 한 푼도 없음, 아주 가난함

불명일전(不名一錢) - 자기 이름의 돈이 한 푼도 없음, 아주 가난함

아닐 불(一/3) 이름 명(口/3) 한 일(一/0) 돈 전(金/8)

가난은 불명예가 아니고 단지 살아가는데 불편을 느낄 뿐이다. 이렇게 옛 사람들이 미사여구로 가난을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강조해도 그 불편을 사서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簞食瓢飮(단사표음)이나 斷薺劃粥(단제획죽, <薺는 냉이 제) 같이 어쩔 수 없이 닥친 가난을 극복하는 사람을 예찬하지만 그 상황에 자신이 직접 부딪치기는 싫다.

더군다나 쉬운 방법으로 흥청망청 풍성하게 돈을 뿌리다가 망하게 되면 세상이 싫다. 동전을 주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억만금의 호사를 누리다 마지막엔 자신의 이름으로 한 푼의 돈도 없이 굶어 죽었다는 鄧通(등통)의 고사는 가난이라도 청빈과는 거리가 멀다.

漢(한)나라 5대 文帝(문제, 기원전 180~157) 때의 사람인 등통은 배를 잘 저었기 때문에 황제가 타는 배의 선장이 됐다. ‘史記(사기)’의 佞倖(영행, 佞은 아첨할 녕) 열전에 상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영행은 아첨하여 군주의 총애를 받는 것을 말한다.

어느 날 문제가 하늘에 오르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노란 모자를 쓴 뱃사람이 나타나 뒤를 받쳐주어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잠에서 깬 문제가 누각에 올라 꿈속의 일을 생각하며 뱃사람들을 바라볼 때 한 사람의 모습이 아주 닮았다. 바로 등통이란 사람이었다. 별다른 능력도 없었고 인재를 추천할 줄도 몰랐지만 등통은 말이나 행동을 조심했고 궁 밖의 사람들과는 사귈 줄도 몰라 문제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문제가 한 번은 관상가를 불러 등통을 보게 하니 굶어죽을 상이라 했다. 왕은 등통에 구리광산과 동전을 주조할 권한을 주어 엄청난 부자가 되게 했다. 한번은 문제가 종기를 앓자 등통이 종기를 빨아 주었다. 태자에게 종기를 빨게 하자 마지못해 응했지만 등통을 미워하게 됐다. 문제가 죽고 태자가 景帝(경제)가 되자 면직된 등통의 비위를 조사했다.

주조한 돈을 나라 밖으로 빼돌린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재산을 몰수했고 등통은 ‘결국 자기 이름으로는 한 푼의 돈도 가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집에 얹혀살다가 죽었다(竟不得名一錢 寄死人家/ 경부득명일전 기사인가)’.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075.html
kolaswqetsrq 11.02 18:07
중취독성衆醉獨醒 – 모두 취해 있는데 홀로 깨어 있다, 혼탁한 세상에서의 깨끗한 삶

중취독성(衆醉獨醒) – 모두 취해 있는데 홀로 깨어 있다, 혼탁한 세상에서의 깨끗한 삶

무리 중(血/6) 취할 취(酉/8) 홀로 독(犭/13) 깰 성(酉/9)

조직생활을 하게 되면 수시로 갖게 되는 술자리에선 사람됨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같이 술을 마셔도 멀쩡한 사람이 있고, 조금 들어가도 횡설수설인 사람이 있다. 醉中眞談(취중진담)이라 하여 기분이 오르면 속에 있는 진심을 드러낸다. 다음날 아침이면 까마득히 생각이 안나 불안해한다.

술에 의한 실수는 너그럽게 봐주는 분위기지만 꼬투리는 늘 따라다니니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모두 취한 가운데서(衆醉) 홀로 취하지 않고 깨어 있다(獨醒)는 이 말은 술을 전혀 못하거나, 두주불사인 사람이겠다. 이런 비유로 세상의 모든 사람이 혼탁하더라도 홀로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인품이 고결하고 청렴한 사람을 칭송하는데 적합하다.

이 성어가 屈原(굴원)에게서 나왔다면 더 그럴듯하게 수긍한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楚(초)나라의 충신이자 비극시인인 그는 학문이 깊었을 뿐만 아니라 일 처리도 능숙하여 懷王(회왕)의 신임을 받았다. 굴원이 三閭大夫(삼려대부)란 벼슬에 있을 때 왕의 명을 받아 중요한 법안의 초안을 잡고 있는데 실력자 중 한 사람인 靳尙(근상, 靳은 가슴걸이 근)이 와서 내용을 보여 달라고 했다. 발표단계가 아니라며 거절하자 앙심을 품은 근상이 비방의 말을 퍼뜨려 결국 왕의 신임을 잃게 됐다.

결국 강대국 秦(진)에 대항하기 위해 齊(제)나라와 동맹하는 合縱策(합종책)을 건의했다가 간신들의 중상모략으로 추방당한다. 실의에 빠져 湘江(상강)의 물가를 어슬렁거리다 남긴 작품이 ‘漁父辭(어부사)’이다. 굴원이 강변에서 시를 읊는데 한 어부가 나타나 그를 알아보고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묻자 대답한다.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맑고 깨끗하며, 모두가 술에 취해 있는데 나만 오로지 깨어 있어(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거세개탁 아독청 중인개취 아독성)’ 이 때문에 쫓겨난 것이라고 했다. 그런 뒤 굴원은 음력 5월5일에 몸에 돌을 묶고는 汨羅水(멱라수, 汨은 물이름 멱)에서 투신하게 된다. ‘史記(사기)’ 열전에도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어지러운 무리에서 홀로 깨어 있기는 힘들다. 남들보다 뛰어나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남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 그대로다. 그렇다고 휩쓸리면 당장 지내기야 편하지만 그 집단은 발전이 없다. 모난 돌을 이해해주고 잘 하도록 떠받들 때 밝은 미래가 기다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780.html
kolaswqetsrq 11.02 18:07
【다화개별꽃】

【다화개별꽃】

다화개별꽃 : 줄기 끝 잎사이에 여러 개의 꽃이 핌

개별꽃 : 줄기 끝 잎 사이에 1개의 꽃이 피고, 꽃자루에 흰털이 있음

큰개별꽃 : 줄기 끝 잎 사이에 1개의 꽃이 피고, 꽃자루에 흰털이 없음

참개별꽃 : 개별꽃과 비슷하나 암술대가 3▷4개로 갈라짐

덩굴개별꽃 : 꽃이 핀 다음에 덩굴로 자람

▷ 학명 : Pseudostellaria heterophylla

▷ 분류 : 석죽과

▷ 분포지역 : 한국·일본·중국

▷ 서식장소 : 산지의 나무 밑

▷ 특징 :

 4~5월(봄)에 흰색 꽃이 피며, 어린 줄기와 잎을 식용하며 한방에서 위장약으로 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401.html
kolaswqetsrq 11.02 18:08
호모부가毫毛斧柯 - 터럭만 할 때 치지 않으면 도끼를 써야 한다, 화근은 처음부터 잘라야 한다.

호모부가(毫毛斧柯) - 터럭만 할 때 치지 않으면 도끼를 써야 한다, 화근은 처음부터 잘라야 한다.

터럭 호(毛/7) 터럭 모(毛/0) 도끼 부(斤/4) 가지 가(木/5)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큰 사고라도 대부분 人災(인재)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미리 조그만 대비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입는다. 이럴 때를 위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나쁜 버릇은 어릴 때 고쳐야 한다는 ‘세 살 버릇 여든 까지 간다’이다. 범죄를 소탕할 때 자주 등장하는 拔本塞源(발본색원)이나 잡초를 벨 때 뿌리까지 없애라는 斬草除根(참초제근)도 화근은 크기 전에 없애야 함을 가르친다.

유실수도 아닌 잡목을 어릴 때 꺾어버리지 않으면 나중에 도끼를 사용해야 될 정도로 자라게 된다. 터럭같이 아주 미미할 때(毫毛) 나무를 처치하지 않아 나중에는 도끼로 가지치기한다(斧柯)는 이 성어도 자라기 번에 화근을 없애라는 뜻으로 썼다.

터럭 毫(호)는 가을철 털갈이 할 때 나온 가는 털 秋毫(추호)의 그 글자인데 매우 가늘거나 작은 것을 비유한다. 중국 周(주)나라부터 秦(진)의 통일에 이르기까지 전략가들의 변론과 책모를 엮은 ‘戰國策(전국책)’에 이 비유가 사용됐다. 이 책은 前漢(전한)의 학자 劉向(유향)의 저작으로, 공자의 春秋(춘추)가 춘추시대란 말을 낳은 것과 같이 전국시대란 말을 처음 비롯되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 魏策(위책)에는 合從連衡(합종연횡, 衡은 저울대 형, 또는 가로 횡)으로 유명한 종횡가 蘇秦(소진)이 魏(위)나라 襄王(양왕)을 찾아가 유세하는 가운데 인용한 말이다. 위나라의 국력이 결코 작지 않은데 당시의 강국 秦(진)과 연합하면 속국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진에 대항하려면 주변 6국이 힘을 합치는 合從策(합종책)을 써야 한다며 위왕을 설득한다. ‘처음 싹을 자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터럭같이 작을 때 치지 않으면 결국 도끼를 써야 합니다(綿綿不絕 縵縵奈何 毫毛不拔 將成斧柯/ 면면부절 만만내하 호모불발 장성부가).’. 縵은 비단, 에워쌀 만. 소진의 변설에 위왕은 합종책을 쓰기로 하고 재상을 맡겼다.

빠른 산업화, 빠른 민주화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유달리 후진국형 사고가 많아 웃음거리가 되곤 한다. 한동안 다리가 무너지고 공사장 붕괴 사고가 잦더니 많은 학생들을 잃게 한 세월호 침몰까지 있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790.html
kolaswqetsrq 11.02 18:09
견탄구자見彈求炙 - 새잡이 탄환을 보고 새 구이를 찾다, 성급하게 일을 처리하다.

견탄구자(見彈求炙) - 새잡이 탄환을 보고 새 구이를 찾다, 성급하게 일을 처리하다.

볼 견(見/0) 탄알 탄(弓/12) 구할 구(氺/2) 구울 자(火/4)

무슨 일을 맡아 척척 처리하면 모두들 시원하게 여긴다. 그러다 조금 지나 결과가 좋지 못하면 대뜸 원망한다. 단계를 차근차근 거쳐야 완성될 일을 중간 과정 한 곳을 빼먹거나 편법으로 슬쩍 마무리한 것을 모르고 빠른 성과만 바라다 큰 코 다친다.

일의 순서도 모르고 성급하게 덤비는 것을 나타내는 말은 ‘우물에 가 숭늉 찾는다’는 속담을 비롯해 수두룩하다. 질서와 차례가 있는 일을 급하다고 건너뛴다면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쓰는 격이라 바느질이 될 턱이 없다. 새를 잡는 탄환을 보고(見彈) 새 구이 고기(求炙)를 찾는 이 성어도 과정을 못 참는 조급증을 보여준다.

앞서 소개한바 있는 見卵求鷄(견란구계)는 계란을 보고 닭이 새벽을 알리기를 바란다는 말인데 똑 같이 ‘莊子(장자)’에 앞뒤로 나란히 등장한다. 장자는 道(도)가 만물의 근본이고 無爲自然(무위자연)을 주장하는 道家(도가)의 대표답게 儒家(유가)가 중시하는 仁(인)과 禮(예)는 삶의 참된 모습이 아니라며 곳곳에서 꼬집는다. 또 諸子百家(제자백가)가 주장하는 견해는 다양성을 무시하고 일면만 고집한다고 부정한다. 內篇(내편) 중에서 제2편의 齊物論(제물론)은 진리와 지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장으로 난해한 말이나 구절이 많은데 성어가 나오는 부분에서도 孔子(공자)를 비아냥거리는 대목이 있다.

공자의 제자라고 하는 瞿鵲子(구작자)가 가공인물 長梧子(장오자)에게 질문한다. 성인은 세속의 일에 종사하지 않고 이로움도 추구하지 않으며 ‘말을 안 해도 말함이 있고 말을 해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다(無謂有謂 有謂無謂/ 무위유위 유위무위)’고 들었는데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장오자가 黃帝(황제)도 모를 일을 공자가 어떻게 알겠느냐며 생각이 앞서갔다고 꾸짖는다. ‘그것은 달걀을 보면서 닭이 새벽 알리기를 바라고, 탄환을 보면서 산비둘기 구이를 달라는 격이네(見卵而求時夜 見彈而求鴞炙/ 견란이구시야 견탄이구효자).’ 鴞는 부엉이 효.

성급하게 성과를 얻고 빨리빨리 해치우는 것을 경계한 말을 더 들어보자. 老子(노자)는 ‘구층 높은 건물도 한줌 흙부터 쌓아야 한다(九層之臺 起於累土/ 구층지대 기어누토)’며 첫 계획부터 차근차근해야 한다고 했다.

孟子(맹자)는 모를 빨리 자라게 한다고 중간에 뽑아 올리는 揠苗助長(알묘조장, 揠은 뽑을 알)은 죽게 할 뿐이며, 이 모든 것은 급하게 일을 하려다 망치는 일이라고 孔子(공자)는 欲速不達(욕속부달)이라 깨우쳤다. 언제까지 결과를 이루어야 한다며 억지 시간표를 만들어 닦달한다고 되는 일이 없다. 모든 일은 때가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314.html
kolaswqetsrq 11.02 18:09
고약금탕固若金湯 - 든든하기가 쇠로 된 성과 끓는 못과 같다, 방어가 아주 튼튼하다.

고약금탕(固若金湯) - 든든하기가 쇠로 된 성과 끓는 못과 같다, 방어가 아주 튼튼하다.

굳을 고(囗/5) 같을 약(艹/5) 쇠 금(金/0) 끓을 탕(氵/9)

국경을 굳건히 지키는 長城(장성)이나 왕이나 영주가 세력을 구축하기 위한 城(성)은 튼튼해야 그 목적을 달성한다. 백병전이나 기마전까지는 돌로 높이 쌓은 성벽이나 주변을 파내어 연못으로 만든 垓字(해자)로 막을 수 있다.

멀리 내쏠 수 있는 大砲(대포)나 공중전이 발달하기 이전까지는 최상의 방어였다. 성벽이 모두 쇠로 만든 金城鐵壁(금성철벽)이나 주변의 해자를 끓는 물로 채웠다면 더군다나 難攻不落(난공불락)이겠다. 이 성어가 이전에 소개한 金城湯池(금성탕지)이고 견고하기가 마치(固若) 쇠로 된 성과 끓는 해자(金湯)와 같다는 이 말도 함께 蒯通(괴통, 蒯는 기름새 괴)에게서 나왔다.

괴통은 계책이 뛰어난 변사였다. 秦始皇(진시황)의 사후 劉邦(유방)을 돕는 韓信(한신)의 모사로서 세력이 비등한 項羽(항우)와 천하를 삼분하도록 부추겼다. 한신이 듣지 않고 몰락한 후 모반 혐의로 유방에 잡혀온 괴통이 盜跖(도척)의 개는 堯(요)임금을 향해서도 몰라서 짖을 수 있다는 桀犬吠堯(걸견폐요)를 내세워 목숨을 건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말재주가 좋은 괴통이 한신을 만나기 훨씬 이전인 秦(진)나라 말기 곳곳에서 왕을 자처하고 군사를 일으켰을 때 세치 혀로써 30여 개 성을 피 흘리지 않고 얻게 해준 이야기에 성어가 나온다. ‘史記(사기)’ 淮陰侯(회음후) 열전이나 ‘漢書(한서)’ 괴통전에 실려 있다.

농민 봉기의 우두머리 陳勝(진승)의 부하인 武臣(무신)이 괴통의 고향인 范陽郡(범양군)으로 밀고 들어왔다. 지역 현령 徐公(서공)을 만난 괴통이 겁을 주며 벗어날 방법이 있다고 했다. 가혹한 진나라 형벌을 집행한 현령은 틀림없이 죽게 될 것이므로 자신을 무신에게 보내면 목숨을 부지하고 대우까지 받을 것이라며 말한다.

항복한 장수를 함부로 대하면 ‘다른 현령들은 방어를 튼튼히 하여 모두 쇠로 만든 성에 끓는 연못의 성이 되니 공격이 불가능할 것(必將嬰城固守 皆爲金城湯池 不可攻也/ 필장영성고수 개위금성탕지 불가공야)’이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무신도 괴통의 건의대로 서공을 살려줬고 주변 30개 성이 전쟁을 면하게 됐다.

적을 막기 위해선 튼튼하게 성벽을 방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계책을 잘 받아들일 줄 아는 지도자가 있어야 철벽이 된다. 괴통이 계책을 올린 사람 중 거절한 한신은 그릇이 모자라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받아들인 무신은 스스로 趙王(조왕)을 칭할 만큼 초기에 잘 나갔다.

부작용이 나타나고 위험이 목전에 닥쳤는데도 원인이 딴 곳에 있다며 제 갈 길만 간다면 해결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위험을 사전에 막는 철벽을 세우되 여의치 않다면 지혜를 구하고 잘 받아들이는 공감이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162.html
kolaswqetsrq 11.02 18:10
【깽깽이풀】

【깽깽이풀】

일년 중 농사일을 시작하는 제일 바쁜 철에 한가로이 꽃을 피워서, 깽깽이(바이올린)를 울리며 놀 때가 아닌데 꽃을 피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깽깽이풀 열매에는 당분의 일종인 얼라이오좀(elaiosome)이라는 것이 붙여 있어 개미가 모두 주워서 자기의 집으로 운반하여 당분을 먹고는 쓰레기처럼 버린다. 그렇게 하여 깽깽이풀은 멀리 종족을 번식을 하지만, 꽃이 이쁘다 보니 모두 키우고 싶은 마음에 가져가지만 죽이고 말지요.

▷ 학명 : Jeffersonia dubia

▷ 분류 : 목련과

▷ 분포지역 : 한국(경기·강원·평북·함남·함북)·중국

▷ 서식장소 : 산중턱 아래의 골짜기

▷ 특징 :

관상용으로 심는다. 한방에서는 9∼10월에 뿌리줄기를 캐서 말린 것을 모황련(毛黃蓮)이라 하여 소화불량·식욕부진·오심(惡心)·장염·설사· 구내염·안질 등에 처방한다.

요즘은 자연 상태에서 보기가 어려워 멸종위기 식물 2급에 등록된 소중한 식물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949.html
kolaswqetsrq 11.02 18:11
■ 이괄, 반란을 일으키다 6편

■ 이괄, 반란을 일으키다 6편

이괄은 이날 밤 왕으로 추대된 이제와 함께 서울의 동남쪽 광희문(속칭 수구문)을 통해서 서울을 빠져 나간다. 이괄을 따르는 자는 40여 명에 불과했다. 이괄과 한명련은 사흘 후 경기도 광주 경안역 근처에서 부하인 이수백, 기익헌 등에게 살해된다. 힘 빠진 대장의 비참한 말로다. 이제(李瑅)도 며칠 후 잡혀 와서 처형된다.

이괄의 반란은 2개월여 만에 진압되어 실패로 끝났다. 이괄은 난은 사실 명분이 약했다. 이괄은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대한 불만, 인사(人事) 불만, 자식의 죽음에 대한 분노 등 개인감정이 더 컸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힘이 강할 때는 주변 사람들을 따르게 하지만, 그 힘이 약해질 때는 배척당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괄의 난 이후 서북지방(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의 방어력은 현저히 약해졌고, 조정은 무인들을 의심하여 집중적으로 사찰(伺察)했다. 무인들에 대한 기찰이 심해지자 무인들은 군사훈련을 기피했고, 그 후유증은 후금의 침입을 받았을 때 그대로 나타났다. 이괄(李适)의 난을 일으켰던 반란군 중 일부가 후금으로 도망쳤는데, 이때 후금으로 도망친 이괄(李适)의 부하 중 한윤은 훗날 정묘호란 때 길잡이 역할을 하는 후금의 충견이 되었다.

 "
이괄이 살아생전 북방 방비를 잘 해두어 이것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정묘호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후금은 물자 보급 및 세력 장악 등이 쉽지 않아 조선 침공이 어려웠을 것이고, 동북아에서 청이 그렇게 확장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괄의 난으로 북방 지역은 방어력이 약화되어 후금의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아무도 막지 못해서 후금의 군대가 국경에서 도성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정묘, 병자호란의 단초를 만드는 계기가 바로 이괄의 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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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괄의 난으로 《광해일기》와 《시정기(時政記)》의 역사를 잃어버렸다. 《시정기(時政記)》는 춘추관에서 기록한 기록물이다. 예문관 검열 김광현은 《광해일기》와 《시정기(時政記)》를 강화도로 옮기는 임무를 맡았다. 이괄의 서울 진입이 예상보다 빨라서 김광현은 수레와 말을 충분히 갖추지 못해서 기록물들을 강화도로 실어 나르지 못하고 분실했던 것이다. 조정에서는 기록물을 찾고자 상금까지 내걸었으나 회수한 것은 4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김광현은 파직(罷職) 당했다.

인조는 이괄의 난 이후 남한산성을 축조(築造)했다. 남한산성을 쌓는 데는 3천 석의 쌀로 일꾼을 사고, 벌을 주어야 할 포수나 군사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심히 한 승려들이 대거 동원되었다. 2년 만에 20리에 달하는 높은 남한산성이 완공되었다. 남한산성에는 임금이 임시로 머무는 행궁도 지었다. 또한 삼혈총 1천 자루, 조총 1천 자루도 특별히 만들어서 보관했다. 그러나 성을 아무리 튼튼히 쌓아도 나라를 지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나라를 지키는 데는 견고한 성과 더불어 훈련된 군사, 무기, 물자에 더해서 임금과 관리, 백성들의 힘이 모아져야 했다. 임진왜란을 겪은 지 삼십년도 안 된 시기에 서인세력은 인조반정이라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또 정권욕에 눈이 멀어 기찰(譏察)정치나 해대면서 제대로 된 군사훈련도 못하게 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고 비극적인 일이다. 서인정권은 자기들만의 자존심과 오도된 성리학으로 인해 재조지은(再造之恩), 숭명(崇明)주의로 똘똘 뭉쳐 후금을 오랑캐라 무시하고 기어코 호란(胡亂)을 자초하여 백성을 도탄 속에 빠지게 했다. 우리나라 최악 불행의 시작이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6_60.html
kolaswqetsrq 11.02 18:11
■ 이괄, 반란을 일으키다 5편

■ 이괄, 반란을 일으키다 5편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지자 반란군의 기세에 놀란 인조는 1624 2월 8일 인조는 작은 가마를 타고 어둠을 타고 창경궁 정문 명정전을 조용히 빠져 나간다. 아주 소수의 인원이 수행하고 있었다. 피난길이다. 인조는 할아버지 선조가 궁궐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른 32년 만에 또 궁궐을 떠나야 했다.

할아버지 선조는 피난길을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인조는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괄의 반란군이 북에서 쳐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조가 피난길에 오른 것은 이괄이 반란을 일으킨 보름 만이었다. 더구나 내통의 위험이 있다는 김류의 주장으로 기자헌 외 37명의 정적(政敵)들을 몰살시키고 도망쳤다. 이후에도 인조는 두 번이나 더 수도를 버리면서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이 수도를 버린 왕으로 기억되게 된다. 인조의 피난으로 등을 돌린 민심은 이괄을 지지하여 한양입성에 성공했다.

이괄은 파죽지세로 2월 9일 서울로 진입했다. 이괄은 반란군으로서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을 점령했다. 난을 일으킨 지 22일만이었다. 이괄은 경복궁 옛 터에 주둔했다. 이괄은 선조의 6번째 후궁 은빈 한 씨의 장남 흥안군(興安君) 이제(李瑅)를 왕으로 추대하고 “도성 안의 사람들은 놀라 동요하지 말라.”고 방을 붙였다.

이제(李瑅)는 왕으로 추대되어 관직을 제수하기도 했다. 이괄의 난은 서울을 점령하고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러나 관군은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관군이 선택한 최후의 결전 장소는 안현(鞍峴)이었다. 안현은 서울의 서대문구 길마재, 즉 무악재이다. 도원수 장만은 계속 패해서 반란군을 성안에까지 들어오게 했고, 왕을 피난길에 오르게 해서 죽음을 면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다른 장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관군의 장수들은 죽을 각오로 싸워서 이겨야 했다.

안주목사 정충신은 “병법에 북쪽 산을 차지한 자가 이긴다. 우리가 무악재를 점거해서 진을 치면 우리는 도성을 내려다보고 싸우고 적은 올려다보면서 싸워야 함으로 우리가 유리하다.”라고 계책을 올렸다. 이괄의 반란군에서 탈출한 중군 남이흥도 적극 찬성했다. 정충신도 남이흥과 같이 이괄의 반란군에서 탈출한 인물이다.

이괄은 관군의 배치 상황을 보고 도원수와 관군의 정예병이 따로 있으니 단번에 도원수를 사로잡으면 군의 사기가 떨어지니 이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괄의 군은 그동안 거침없이 진군해서 싸우지 않아도 관군을 패주시킬 수 있다는 자만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날의 싸움은 관군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 요인은 유리한 지형과 날씨였다.

전투는 묘시(卯時:새벽 5시~7시)에서 자시(子時:오전 9시~11시)까지 벌어졌다. 이괄의 군은 화살과 탄환을 비 오듯 퍼부었으나, 산꼭대기에 있는 관군에 미치지 못하였다. 또한, 싸움이 한창 무르익어 갈 무렵 바람의 방향이 관군에게 유리한 서북풍이 세게 불어 반란군의 얼굴에 모래먼지가 휘몰아쳤다. 반란군의 장군 이양(李壤)이 총에 맞아서 죽고 한명련도 화살에 맞았으며, 이괄의 대장기(大將旗)도 후퇴의 조짐이 보였다. 반란군은 서로 달아나기에 바빴다. 죽은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 6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_69.html
kolaswqetsrq 11.02 18:12
■ 이괄, 반란을 일으키다 4편

■ 이괄, 반란을 일으키다 4편

황주 싸움은 백병전이었다. 처음에는 이괄의 군에서 투항하는 자가 나와서 관군이 우세한 듯으로 보였으나, 곧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괄의 군에서 맹활약을 한 것은 130여 명의 항복한 왜군이었다. 이들이 칼을 들고 돌진하자 관군은 순식간에 흩어져 달아났다. 관군에서도 용감한 자는 있었다. 박영서였다. 그는 무과에 합격해서 평안도 창성부사가 되었으며,

이괄 진압군의 선봉장이 되었다. 관군이 겁을 먹고 진격을 못하자 그는 말을 타고 홀로 용맹하게 이괄의 진중으로 뛰어 들었다. 그는 이괄을 잡을 뻔 했으나 바로 직전 그의 말(馬)이 거꾸러져 도로 이괄에게 잡히고 말았다. 이괄은 그의 용감함을 높이 사서 자신의 진영에 두고자 했다.

박영서는 자신이 잡힌 것은 말 때문이라고 하면서 말을 베고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고 죽을 때까지 반란군의 잘못을 꾸짖었다고 한다. 인조는 그의 용감함을 듣고 탄식하면서 병조판서로 증직(贈職)한다. 후일 영조는 그에게 ‘충장(忠壯)’이라는 시호까지 내려 주었다.

이 날은 관군의 참패였다. 도원수 장만은 패배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다시 재기하겠다고 조정에 보고했다. 관군은 황주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반란군의 서울 진입은 막아야 했다. 다시 저지선을 펼쳤다. 관군의 방어선은 황해도 평산 의 마탄이었다. 마탄은 예성강 상류이다. 관군은 여울목을 지키고 있었다.

도원수 장만은 평산의 군사와 합류해야 했으므로 군사들을 쉼 없이 행군시켰다. 이괄의 군은 낮은 여울목을 건너서 관군을 급습했다. 관군은 우왕좌왕 한꺼번에 무너졌다. 많은 관군이 물에 빠져 죽거나 반란군에게 항복했다. 관군은 쉼 없는 장거리 행군으로 지쳐있었고 식량도 부족해서 굶주린 자가 많았으며, 도망자도 속출하고 있었다. 관군은 이미 사기가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방어사 이중로, 이성부 등 지휘관들도 다수 전사했다.

평산의 패배가 전해진 이 날 밤, 조정은 왕실의 피난을 논의한다. 공주산성이 거론되었다. 공주산성은 앞에 큰 강이 있어서 방어에 유리하고 서울에서 멀지 않은 것이 이유였다. 또한 명나라 장수 모문룡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외교문서를 보내고 의병도 모집하기로 했다. 임진왜란을 겪은 지 30년도 채 안되었으나 나라가 바뀐 것은 없었다. 왕의 피난과 중국(명)에 구원 요청, 의병모집은 임진왜란 때에 관군이 허약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관군의 그 다음 방어선은 임진강이었다. 경기감사 이서가 개성의 청석동을 방어했으나, 여기서도 밤을 틈타 기습한 이괄의 군에 속한 항복한 왜군 수십 명에게 무너졌다. 그 다음 수원부사 이흥립과 파주목사 박효립을 임진강의 위아래를 방어하게 했다. 이흥립은 3천의 군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괄의 반란군에 합류하고 말았다. 이흥립은 인조반정의 1등 공신이다.

국가로부터 상당한 혜택을 받은 1등 공신이 인조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후일 이괄의 진압 후 이흥립은 투옥되어 감옥에서 자살한다. 박효립도 인조반정의 2등 공신이다. 박효립은 훈련받지 않은 민병 수백 명을 데리고 있었으나 이괄의 군을 보자 달아났다. 공신들이 왕에게 등을 돌리고 충성을 다하지 않은 것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관군의 임진강 방어는 방어가 아니었다. 허망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 5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4_33.html
kolaswqetsrq 11.02 18:12
■ 이괄, 반란을 일으키다 3편

■ 이괄, 반란을 일으키다 3편

이괄은 군사 1만 2천명과 항복한 왜인 130 명을 데리고 엄동설한임에도 군사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괄은 “나는 외아들밖에 없다. 아들이 잡혀가서 죽음을 당할 것이니 그 아비가 온전하겠는가. 잡혀서 죽으나 반역하다 죽으나 죽음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머리를 숙이고 죽고 싶지는 않다.”라고 하면서 지휘관들을 불러 모았다.

이괄은 군사를 성안에 포진시키고 임금의 사자들이 뜰에 도착하자 장교를 시켜서 그들을 죽인다.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는 신호탄이다. 인조 2년 1월 24일이었다. 이괄은 진격의 나팔을 울렸다. 그 목적지는 인조가 있는 창경궁이다.

인조는 이괄의 반란 후 즉시 팔도에 군사를 징발하게 하고 이괄을 베는 자는 상당한 보상을 약속했으며, 관서지방의 인심을 달래기 위한 대책으로 영의정 이원익을 도체찰사로 임명해서 파견하기로 했다. 도체찰사는 전쟁 등 비상시에 군정을 맡는 임시의 최고 책임자다. 이원익은 평안도관찰사와 평양감사를 각각 역임해서 그 지역 사정에 밝았다. 이원익은 현지에 가서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반란을 깨우치고 백성들을 달래려고 했으나 그는 당시 77세의 병든 몸이라 현지에 가지는 못했다. 이괄의 반란군을 진압할 책임자는 도원수 장만이었다.

이괄의 반란군은 1만 수천여 명으로 이미 거침없이 인조가 있는 서울로 남하하고 있었다. 장만은 직할 군대가 없었으므로 군사를 모아야 했다. 며칠 동안 수천 명을 모을 수 있었다. 장만이 병사를 모으고 움직일 수 있기까지는 시일이 걸렸음으로 이괄의 반란군을 뒤쫓아 가는 형국이었다. 첫 번째 승리는 의외로 장만에게 돌아갔다. 이괄이 반란을 일으킨 4일 후 장만은 간첩을 활용한 지략을 펼친다.

이괄의 반란군에는 강압에 못 이겨서 난에 참가한 장군들이 있었다. 자신의 뜻에 상관없이 반란군이 된 안주목사 정충신, 중군(中軍) 남이흥 등은 목숨을 걸고 반란군에서 탈출해 장만의 진영으로 왔다. 장만은 숫자가 적은 자신의 군대로 반란군을 이길 방도를 궁리하고 있었다. 이 때 반란군에서 탈출한 남이흥은 반란군에는 탈출하고자 하는 장군들이 더 있다고 장만에게 보고했다. 장만은 그 장군들과 연락을 취해야 했다. 광해군 대에 성진첨사를 지낸 이윤서의 종 효생이 적임자로 선택되었다. 이윤서는 반란군의 장군으로 가담하고 있었다.

장만은 효생에게 적진으로 가서 이윤서에게 자신의 편지를 전하면 큰 상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윤서의 종 효생은 “제가 이 글을 전함으로서 제 주인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제가 어찌 재물을 받겠습니까.”라며 편지를 성공적으로 전했다. 이윤수 등 4명의 장군이 반란군에서 탈출해서 장만의 진영에 귀순하고 그들이 거느린 4천 여 명의 군사는 각자의 갈 길로 갔다.

효생이 비록 미천한 신분의 종이었지만, 4천 여 명의 반란군을 흩어지게 한 것이다. 이괄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지만 아직 그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이괄은 장만의 군사와 가능한 마주치지 않고 열흘 만에 황해도 황주까지 내려왔다. 지금까지는 관군의 저항이 별로 없었다. 황주는 서북쪽 방어를 위한 중요한 관문이었다. 관군의 1차 저지선이 된다. 이괄의 군과 정부군이 이곳에서 군사적으로 맞닥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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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13
■ 이괄, 반란을 일으키다 2편

■ 이괄, 반란을 일으키다 2편

이괄은 늦게 도착한 김류를 병법에 의거해서 죽이고자 했다. 김류는 약속한 시간보다 너무 일찍 온 자를 참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괄과 김류, 두 사람 사이에서 일촉즉발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이 또한 연장자 이귀가 화해시켰다. 이괄은 반정 3개월 전 광해군으로부터 북병사(함경북도 병마절도사)로 제수 되었으나 현지로 부임하지 않았다.

인조는 북쪽 방어의 중요성을 감안해서 반정이후 이괄을 그대로 북병사로 보내고자 했다. 그러나 김류와 이귀가 이를 반대한다. 김류와 이귀는 이괄의 능력과 반정에 참여한 공을 감안해서 서울에 두어야 한다고 건의한다. 김류는 이괄과 다투기는 했으나 그의 능력을 평가한 것이다. 혹은 이괄이 변방에 나가서 세력을 키워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이미 있었는지도 모른다.

반정 후, 이괄은 좌포도대장으로 왕의 경호를 거쳐서 판윤이 된다. 판윤은 정2품으로 한성부의 으뜸벼슬이고 오늘날 서울시장에 해당한다. 김류는 병조참판, 이귀는 이조참판이 되었다. 참판은 종2품이다. 벼슬등급은 이괄이 두 사람보다 한 품 위이지만, 김류와 이귀는 군과 인사의 핵심 역할을 맡은 것이다.

이괄은 임금에게 자신은 공이 없다고 하면서 판윤을 사직한다. 이것은 앞서 이귀가 이괄을 병조판서로 추천했는데 병조판서가 안 된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일지도 모른다. 이괄은 도원수 장만의 추천으로 평안병사 겸 부원수가 된다. 장만은 평양에 사령부를 개설한 총괄적 지휘자였으나 그 병력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장수는 영변에 군사기지의 하나인 진(鎭)을 설치한 이괄이었다.

장만은 도원수이지만 직할 병력은 없었고 이괄은 부원수로서 영변진을 지키는 1만 수천 명을 움직일 수 있었다. 당시 서북 방어는 중요했다. 오랑캐(청나라)의 침입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괄은 외직으로 나가는 것은 불만이었으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이괄은 인조에게 자신에게 맡겨진 중임을 은혜로 갚을 것을 맹세한다. 다만 이괄은 1만 5천의 병력은 부족하다고 하면서 군사를 더 달라고 건의했다. 인조는 이괄의 건의를 받아들여서 전라도 군사를 더 보낸다.

이괄이 왕에게 군사를 더 달라고 한 것은 내심 반란의 심중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괄은 인조반정 이후부터 불만을 갖고 반란군의 핵심이 되는 한명련, 정충신과 자주 모여서 시국을 이야기 했고, 그의 외아들 이전(李栴)은 정돈, 정찬과 함께 산을 유람한다는 핑계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같이 일을 한 사람들과 친분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괄이 일으킨 반란의 결정적인 기폭제는 인사(人事) 불만과 녹훈(錄勳)이었다. 녹훈은 신하의 공을 문서에 기록하는 것이다. 공신은 국가로부터 등수에 따라서 땅과 노비 등의 재산을 받고, 그 자제는 음직(蔭職:음서)의 혜택을 본다. 음직은 조선에서 과거를 거치지 않고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커다란 혜택이었다. 이괄이 임지로 떠난 5개월 후 녹훈이 발표되었다. 녹훈을 주도한 것은 김류와 이귀였다. 김류와 이귀는 인조와 3년 전부터 반정을 모의한 두 축이었고, 전 과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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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14
■ 이괄, 반란을 일으키다 1편

■ 이괄, 반란을 일으키다 1편

인조는 즉위 10개월 만에 커다란 위기를 맞이한다. 1624년 1월에 일어난 ‘이괄의 난’은 인조반정의 명분에 큰 오점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인조는 반정을 같이 한 평안병사 겸 부원수 이괄이 병사 수만 명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다는 고변을 듣고도 처음에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인조는 도원수 장만과 부원수 이괄이 서북 방어를 위해서 현지로 떠날 때 모화관까지 가서 친히 전송을 했고, 어도(御刀)를 내려주며 수레바퀴를 밀어줄 정도로 애정과 신뢰를 보냈기 때문이다.

좌찬성 이귀는 이괄이 반역을 한다는 고변서(告變書)를 근거로 이괄을 잡아서 국문할 것을 청했다. 인조는 “이괄은 충성스러운 사람인데 어찌 반역을 하겠는가?”라고 이귀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음날 사헌부 사간원에서도 이괄을 체포해서 국문할 것을 청했다. 인조는 “이괄은 충성스러운 신하”라고 다시 강조하면서 “이괄이 아니면 부원수의 직임을 맡을 수 없으니 두 번 다시 번거롭게 하지 말라.”라고 여전히 이괄의 충성을 굳게 믿고 있었다.

이괄은 무과로 합격했으나 글을 잘하고 글씨도 잘 써서 명성이 있었다. 인조가 이괄에게 이렇게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을 때, 이괄은 반란의 모든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괄은 왜 반란을 일으켰을까?

인조는 반정을 성공한 이틀 후 반정에 참여한 장수와 병졸들을 모화관으로 초청해서 위로의 잔치를 벌였다. 이 때 자리배치가 이괄의 심기를 건드렸다. 상석(上席)에 해당하는 맨 위쪽은 김류 그 다음은 이귀, 이괄의 순이었다. 이괄은 자신의 자리가 김류 아래에 있는 것에 분노해서 눈으로 흘겨보았다. 자리가 중간이고 가장 연장자 이귀가 좋은 말로 화해를 시켜서 그날은 그냥 넘어갔다. 당시 이귀는 66살 김류는 52살 이괄은 36살이었다. 이귀와 이괄은 30살 김류와 이괄은 16살 차이였다. 사실 김류에 대한 이괄의 불만은 이틀 전 반정 당일에도 있었다.

반정의 날은 광해군 15년 3월 12일이었다. 모든 반정군은 이 날 밤 2경(밤 9시-11시) 홍제원(서울 서대문구)에 모이기로 했다. 홍제원은 중국 사신이 오면 옷을 갈아입는 곳이다. 이괄과 병사 수백 명은 일찍 도착했다. 그런데 반정의 정보가 새서 조정에 고변했다는 것이 반정군 사이에 퍼졌다. 반정은 실패하면 역모가 된다.

역모는 당사자의 죽음만이 아니라 그의 가족과 친족까지 연좌되어 피해를 입는다. 반정을 주도한 대장 김류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반정군 사이에 동요가 일어났다. 무엇인가 구심점이 필요했다. 이귀의 주선으로 이괄은 반정군의 새로운 대장이 된다. 반정 당일 병사들을 지휘할 반정군 대장이 김류에서 이괄로 바뀐 것이다.

이괄은 대장이 되어서 병사들을 편성하고 대오를 갖추니 병사들이 점차 안정되었다. 김류도 반정의 정보가 조정에 알려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류는 자신의 집에 기다리면서 조정에서 자신을 체포하려는 병사들이 오면 그들을 죽이고 홍제원에 가려고 했다. 그래서 시간이 지체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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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14
■인조반정 8편

■인조반정 8편

인조는 반정에 성공해 왕위에 올랐으나 반정의 대의명분이나 정통성이 약했으므로 반정 세력인 서인들 의견에 휘둘리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중종반정 때보다 인조반정 당시 인조가 직접 앞장 서는 등 반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므로 중종에 비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인조는 자기 세력을 완벽히 장악한 수준의 쿠데타는 아니었다. 그러니 강력한 왕권을 세워 신료를 장악하거나 독자적으로 정국을 운영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특히 서인세력은 반정 이후 정국을 주도하고, 남인의 정계 진출을 견제하여 인조의 왕권행사를 제약했다.

인조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불러들인 왕으로 지탄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내치(內治)로는 폭군적 모습을 보인 것은 별로 없다. 실록에 나오는 인조는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을 정도로 조용한 왕이었다. 인조는 나름 신하들에게도 인정과 배려를 베풀 줄 알았고, 백성들의 안타까운 일을 듣게 되면 눈물을 뿌리며 진심으로 걱정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인조 초창기 겉으로 드러난 인간성은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위기가 닥쳤을 때 진정한 인간성이 드러난다. 인조 또한 선조처럼 위기 시 국가 관리를 잘못한 것은 사실이다. 또, 그가 소현세자와 세자빈인 강빈에게 보인 행위는 냉혹한 인간 인조의 일면을 보여준다. 인조가 현재 가장 많은 욕을 먹고 비난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쩌든 서인이 정권을 장악한 인조시대부터 성리학이 급격하게 교조(敎條)화되고 여성의 지위가 내려갔다. 인조와 서인정권은 병자호란으로 기존에 세웠던 집권 명분이 약해지고 삼전도의 굴욕으로 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자 내부에서부터 정권이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다. 이에 기존에 상당히 느슨하게 적용되던 성리학적 종법(從法)질서를 극단적으로 강화해 내부의 불온한 움직임을 미연에 방지하려 했다. 덕분에 수많은 여성들이 열녀(烈女)라는 이름아래 목숨을 잃거나 평생을 외롭게 수절해야 했다.

인조는 재위 26년 동안 큰 전란을 두 번 거치면서 무능함과 비겁함의 극치를 보여주다가 1649년 5월 8일(음력) 이승을 떠났다. ‘인조(仁祖)’라는 묘호는 나라를 구해 종묘사직을 보존했다하여 아들 효종이 붙여준 것이다. 성리학에서 최고의 가치로 두는 덕목(德目)은 사랑하라는 인(仁)과 용서하라는 서(恕)이다.

글자 뜻으로만 보면 성군이자 명군에게나 주어질 법한 묘호이다. 그러므로 ‘인조(仁祖)’라는 명칭은 치적이 훌륭했던 문종(文宗), 성종(成宗), 현종(顯宗) 등의 묘호보다 한 단계 위의 명칭인데, 과연 그 이름에 걸맞는 업적을 남겼는가 하는 것은 의문이다. 인조 이후의 조선 임금들은 마지막 군주인 순종까지 모두 인조의 후손들이다. 다만 인조직계는 헌종, 철종에서 일단 끊겼고, 조선왕조의 사실상 마지막 왕 고종의 경우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후손이다. 능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에 있는 장릉(長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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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15
■ 인조반정 7편

■ 인조반정 7편

인조반정 세력들은 평안도 국경지방의 방어를 책임지고 있던 사람들도 대거 처형했다. 그들이 광해군의 의중을 받들어 대외정책을 일선에서 실천했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명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였다고 하지만, 명 조정은 그러한 인조반정을 오랫동안 승인하지 않았다.

이후 반정세력들은 자기들이 저질렀던 것과 같은 ‘또 다른 거사발생 가능성’에 대하여 지레 겁을 먹고 지방의 군사 움직임을 철저히 억제하여 웬만한 지방의 군 지휘자들은 아예 군사훈련을 포기했으며, 결국에는 국경 방어를 책임지고 있는 군사들까지도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군사적 취약점은 곧바로 훗날의 치욕으로 연결되었다.

인조와 서인정권의 가장 큰 실책은 외교정책의 실패로 안 해도 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불러 들여 많은 백성을 죽게 하고 고통 속에 빠지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조가 뛰어난 왕은 아니었지만 요즘 광해군이 재조명되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상대적으로 인조는 더 나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가 이루었던 성공적인 내치(內治)도 있었다.

인조는 허약한 왕권을 강화함과 동시에 친명정책을 추진하면서 생겨난 전란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1627년 정묘호란이 끝난 후, 군사력 강화책을 활발히 추진했다. 먼저 1623년 호위청(扈衛廳)을 신설하여 반정을 주도한 세력의 사병을 정규 병력으로 변화시켰다. 1624년에는 어영군(御營軍)을 창설했으며, 강화도의 군사력을 정비했다.

이해 6월에는 기존의 경기군(京畿軍)을 정비·강화하여 총융군(摠戎軍)으로 재편했다. 이와 함께 방어의 거점으로 남한산성을 수축하고 수비강화를 위해 수어청(守禦廳)을 신설하고, 어영청과 훈련도감의 인원을 증강함으로써 조선 후기 5군영 체제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같은 군제의 재편과 함께 경제 질서의 재건을 위한 정책도 각 방면에서 실시되었다. 이는 왜란과 호란으로 말미암아 파탄 직전에 놓였던 국가재정·농민경제·농업생산력을 되살리기 위한 일련의 조치였다. 한편 군역 자원과 재정의 확보를 목적으로 호패청(號牌廳)을 설치하고 호패법을 시행하여 거의 완성했으나 정묘호란 때 소실되어 이를 통한 군사력 증강은 실패로 돌아갔다.

1628년에는 네덜란드인 벨테브레가 표류하여 왔는데, 그의 이름을 박연으로 고치고 훈련대장 구인후의 휘하에 넣어 대포 제작법과 사용법을 가르치게 해 조선군의 화력을 증강시키기도 했다. 한편 민생 안정책으로 광해군 당시 경기도에 한정해서 실시하던 대동법을 1623년 강원도까지 확대 실시해 징세의 일원화를 꾀하고 민간의 부담을 줄였으며, 1634년에는 삼남 일대에 양전을 실시하여 농경지의 면적을 정확하게 측정함으로써 세금 수입을 확대시켰다. 또한 농토세 징수 규범인 전세법(田稅法)을 폐지하여 농민의 부담을 줄였다.

청인과의 민간 무역을 공인하여 북관의 회령 및 경원, 압록강변의 중강에 시장을 열었다.(경원개시, 중강개시) 또한, 1633년 김육의 주장에 따라 상평청(常平廳)을 설치하여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주조하고 그 유통을 시험했다. 이는 실패로 끝나기는 했으나 효종 대 이후 화폐 유통의 기초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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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15
■ 인조반정 5편

■ 인조반정 5편

어느 날, 갑자기 능양군에게 커다란 위기가 닥쳐오게 된다. 능양군의 일당인 이귀와 김자점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소문이 결국 광해군의 귀에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능양군과 그의 무리들의 목숨은 이제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졌다. 하지만 이들은 이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이귀는 “날 모함하는 놈들과 대질을 시켜 달라.” 고 말하며 정면 돌파를 꾀했다. 또한 김자점은 당시 광해군의 깊은 신뢰를 받으며 어마어마한 권세를 누리고 있던 상궁 김개시에게 접촉하여 뇌물을 주었다. 김개시의 언변에 넘어간 광해군은 결국 역모에 대한 의심을 거두었고, 이귀를 탄핵하는 대북세력들의 거센 주장들을 무시한 채 그를 비호했다. 이렇게 해서 이귀와 김자점은 간신히 화를 면하는데 성공했고, 이들과 함께 거사를 도모하던 능양군 역시 놀란 가슴을 겨우 쓸어내렸다. 이후 능양군 세력은 몰래 군사들을 모아 훈련을 시키며 정변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들은 1623년 3월 12일을 거사일로 정했으며, 이 과정에서 능양군 세력에 가담했던 장유의 아우 장신의 사위인 이흥립까지 포섭하여 반정세력에 가담시켰다. 이흥립은 당시 광해군의 경호를 책임지고 있던 훈련도감의 수장이었는데, 그의 합류는 반정세력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드디어 거사일인 3월 12일이 되었다. 하지만 거사 당일에 또 한 차례 위기가 닥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이반이라는 자가 이들의 역모계획을 김신국에게 보고했고, 김신국은 이를 다시 영의정 박승종에게 보고하면서 이들의 거사 계획이 탄로났기 때문이다. 역모 사실을 보고 받은 박승종은 추국청(推鞫廳)을 설치하여 수사 준비를 마친 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잡아들일 인물들의 명단을 만든 뒤, 이를 허가 받기위해 곧바로 광해군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이때 광해군은 여러 후궁들과 술판을 벌이느라 잔뜩 취해있었고, 박승종이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술에 취해 정신이 없었다. 이로 인해 박승종의 호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에 박승종은 반정세력에 넘어간 훈련대장 이흥립을 불러다가 다그쳤다. 하지만 이흥립이 계속 시치미를 떼자 박승종은 결국 그를 풀어주고 마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3월 12일 밤 12시경 무렵 최명길, 김자점, 심기원 등이 군사를 이끌고 창의문(彰義門·서울의 북소문)에 이르렀다. 빗장을 부수고 들어간 반정군은 그들을 체포하러 온 금부도사와 선전관을 육조 앞길에서 베었다. 곧바로 창덕궁에 이른 반정군은 돈화문을 도끼로 찍었다. 이미 반정군과 내통하고 있었던 훈련대장 이흥립의 명에 의해 금호문은 쉽게 열렸다.

창덕궁 전각들에 불을 지르며 반정군은 광해군 침소를 급습했다. 반정군은 창덕궁 안 함춘원 나무 풀숲에 불을 지르는 것을 반정 성공의 신호로 삼았다. 만약 불길이 치솟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자결을 요구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한편, 반란 소식을 들은 광해군은 새파랗게 겁에 질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고, 주변의 신하들은 혼비백산하여 도주하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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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조반정 4편

■ 인조반정 4편

이이첨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한번 역모사건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번 타겟은 바로 인목대비였다. 그는 궁노비들에게 과거 선조가 쓰려져 누워 있었을 때, 인목대비가 죽은 의인왕후의 무덤에 무당을 보내 저주를 했다는 자백을 받아내었다. 이를 빌미로 인목대비의 폐출과 그의 아버지인 김제남의 처형을 요구했다. 물론 조작이었지만 결국 김제남과 그의 세 아들에게 모두 사약이 내려졌다. 한편, 할아버지가 죽고 어머니인 인목대비가 공격 받던 상황에서 영창대군 역시 무사할 수는 없었다.

1613년 5월부터 7월까지 영창대군을 처벌하라는 상소만 149회나 올라왔다. 광해군은 이를 거부했지만, 결국 7월 24일 영창대군을 유배 보내라고 지시하게 된다. 이를 보면, 광해군은 분명 영창대군이 자신의 왕위 정통성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1614년 2월 10일 당시 10살이었던 영창대군은 유배지에서 끔찍하게 살해되고 말았다. 그리고 1618년 계모이자 영창대군의 친엄마인 인목대비는 경운궁에 유폐되었고, 조정 내의 서인과 남인들도 모조리 귀양 보냈다. 이렇게 광해군은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통해 친형과 동생을 죽이고, 계모까지 내쫓으면서 스스로 확실한 반정(反正)의 구실을 만들어주게 되었다.

광해군의 이러한 행보는 인조반정을 일으키는 장본인 능양군의 집안에도 피바람를 불러왔다. 능양군에게는 동생 능창군이 있었는데, 능창군은 어렸을 때부터 총기가 있고 무예(武藝)가 남달라 왕의 기운이 있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어느 날, 능창군의 양외삼촌인 신경희가 능창군을 추대하려 한다는 모함을 받으면서 감옥에서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능창군은 광해군에게 불려가 직접 문초를 당하고 온갖 수모를 겪다가 유배지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왕권에 위협이 될 만한 존재를 없애려고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능양군(인조)는 당시 구명운동을 벌였으나 역부족이었고, 능창군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의 아버지 정원군도 결국 화병을 얻어 얼마 안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능양군(인조)이 살아남은 것을 보면 당시 능양군(인조)은 실록에 나온 대로 조용한 성품에 존재감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광해군과 대북정권은 능양군(인조)을 왕 재목감으로도 보지 않았고, 위혀협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조용한 성품이 가슴에 칼을 품으면 더 무서운 법이다. 순식간에 동생과 아버지를 모두 잃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능양군은 이를 계기로 광해군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가슴에 쌓이게 되었고, 때를 기다리며 반역을 결심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숙부 광해군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고 가슴 깊숙이 칼을 갈았다.

능양군(인조)은 당시 비주류였던 서인유생들과 함께 반정을 계획한다. 먼저 신경진, 구굉, 구인후 등과 의기투합하고, 나중에 김류, 이귀와 그의 두 아들인 이시백, 이시방 그리고 최명길, 장유, 심기원과 김자점 등이 여기에 동참했다. 이들은 대부분 광해군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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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17
【목련】

【목련】

연꽃을 닮은 꽃이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많이 보는 것은 백목련입니다. 목련은 제주도 등에서 자생하는 희귀식물입니다.

목련과 백목련의 차이점은 꽃받침입니다. 목련은 사진과 같이 꽃받침이 작은 것이 붙어 있으며 꽃잎보다 훨씬 작은데 비하여, 백목련은 꽃잎과 꽃받침의 크기가 거의 비슷합니다. 또, 꽃잎의 모양도 목련은 긴타원형이나 백목련은 거꾸로 된 달걀모양입니다.

▷ 학명 : Magnolia kobus A. P. DC.

▷ 분류 : 목련과

▷ 분포지역 : 한국(제주)·일본 등지에 분포

▷ 서식장소 : 숲속

▷ 특징 :

우리 주변에 자주색으로 피는 꽃잎의 앞과 뒷면이 모두 자주색인 것은 자목련, 꽃잎의 앞면은 흰색, 뒷면은 자주색인 것은 자주목련입니다.

흔히 자주목련을 자목련으로 잘못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주변에 흔히 보는 자주색의 목련은 자주목련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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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17
■ 인조반정 3편

■ 인조반정 3편

소북파의 유영경은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인 만큼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교서를 받아다가 그것을 발표하지 않고 자신의 집에 몰래 숨겨두는가 하면, 궁녀와 내시들을 매수하거나 협박하여 아예 없던 일로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행보는 소북파 내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편, 유영경이 벌인 일이 널리 소문이 나자, 의병장 출신인 대북파의 정인홍은 유영경을 공격하는 상소를 올렸다. 하지만 선조는 유영경에게 영창대군의 안전을 부탁했던 만큼 그를 내 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크게 분노하여 정인홍은 물론이고 대북파의 수장인 이이첨까지 귀양을 보내버렸다.

얼마 뒤, 죽음을 직감한 선조는 유영경 등 여러 대신들을 불러 놓고 영창대군을 부탁한 뒤, 1608년 2월 1일 눈을 감았다. 선조의 뒤를 이어 광해군이 조선의 15대 임금으로 즉위하게 되는데, 곧 조선 조정에서는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광해군을 지지했던 대북세력들은 그동안 벼르고 있었던 소북파의 유영경을 향해 거센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광해군 또한 그를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지 유영경을 유배 보냈고, 훗날 유영경은 유배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생을 마감하였다.

유영경을 처리한 광해군은 곧바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친형인 임해군이었다. 임해군은 평소 온갖 나쁜 행동은 다 하고 다닌 터라 그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다. 특히 그는 술만 마시면 동생인 광해군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았다면서 이리저리 불평불만을 퍼트리고 다녔다.

광해군의 입장에서는 배다른 형제도 아니고 자신의 친형이 이런 짓거리를 하고 다니니 정말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선조가 사망하던 날, 임해군이 군사를 동원하여 반란을 일으킬 계획까지 궁리했다는 것이다. 이에 광해군은 즉시 임해군을 연금시킨 뒤, 공정하게 조사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임해군은 몰래 담을 넘어 도망치려다가 발각되어 연행되고 말았다. 그래도 광해군은 이러한 망나니 형을 처벌하기 보다는 관용을 베풀어 그를 한양 밖으로 추방해 교동도로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특히 임해군이 유배지로 떠날 때 의원까지 딸려 보내는 등 자신의 친형이라고 나름 신경까지 써주었다.

광해군의 즉위로 조정의 권력은 대북세력에게 집중되었고, 이에 서인들은 영창대군에게 접근하게 시작했다. 공작 정치로는 조선사를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의 인물이었던 대북파의 수장 이이첨은 당시 광해군의 왕권에 가장 위협이 될 만한 요소인 선조의 장남 임해군과 선조의 적장자 영창대군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1609년 4월 29일, 유배 생활 중이던 임해군이 시체로 발견되게 되었다. 이때 공식적인 사인(死因)은 병사(病死)였으나 임해군이 정확히 어떻게 죽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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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18
■ 인조반정 2편

■ 인조반정 2편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남인과 북인이 서로 정권을 잡기위해 대립하고 있었다. 북인 측 인물이었던 이이첨이 큰 활약을 펼치면서 류성룡을 비롯한 남인은 정계에서 실각하였고, 결국 북인 정권이 수립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후계문제를 놓고 북인이 스스로 분열하기 시작하는데, 광해군을 지지하던 계파를 대북이라 하고, 광해군을 반대하던 계파를 소북이라고 불렀다. 대북(大北)과 소북(小北)은 말 그대로 대북이 소북보다 세력이 컸기에 이름 붙여졌다.

소북은 대북에 비해 확실히 열세였지만, 유영경이라는 천재 정치가가 활약하면서 대북파와 세력 균형을 이루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유영경은 선조의 신임을 받아 마음껏 권세를 휘둘렀고, 이런 그를 지켜보던 대북의 이이첨은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기만을 기다리며 광해군의 입지를 다지는데 주력했다.

당시 광해군은 세자였기에 선조 사후에 그가 조선의 다음 임금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의 정통성이었다. 선조의 정식 부인 자식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장남도 아닌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세자책봉 과정은 정식 절차를 제대로 밟은 것이 아니라 임진왜란으로 인한 비상사태에서 일단 세자로 책봉된 일종의 땜빵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게다가 광해군의 정통성에 가장 약점이 되는 것은 바로 명나라가 광해군이 정식부인의 자식이 아닐 뿐더러 둘째 아들이라는 이유로 그를 조선의 왕세자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선조가 작정하고 세자교체를 명한다면 할 수도 있는 가장 큰 명분이 되는 요인이기도 하다. 물론 선조는 계속해서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주청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명나라의 세자책봉은 수차례 미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의인왕후가 사망하고 1602년 선조가 김제남의 딸을 계비로 맞아들이니 이가 바로 인목왕후이다. 그리고 소북세력과 유영경은 그 즉시 김제남과 손을 잡았다. 당시 선조의 나이가 51세였으니 인목왕후가 아들을 출산하여 선조가 적장자를 볼 수 있다면 세자를 갈아치울 좋은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1606년 인목왕후가 아들 영창대군을 출산했기 때문이다. 물론 선조는 당장이라도 영창대군을 세자로 앉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국왕인 그가 그리 앞뒤 분간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당시 선조는 나이 50세를 넘기면서 슬슬 병으로 골골대기 시작했고, 이제 막 태어난 젖먹이를 세자로 앉혀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1607년 10월 9일 선조가 갑자기 쓰러졌다. 선조는 대외적으로 북방 여진족들이 통일 전쟁을 벌이는 등 상황이 뒤숭숭했기 때문에 세자를 함부로 바꿀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결국 삼정승을 불러다가 광해군에게 정식으로 양위할 듯을 밝혔다. 이때 영의정은 광해군 반대세력인 소북파의 유영경이었는데, 유영경은 이 소리를 듣고 놀라 애걸복걸하며 만류했다.

광해군이 즉위하면 자신의 목이 달아날 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조는 이미 마음을 굳혔고, 왕비인 인목왕후도 선조의 뜻에 따라 광해군에게 양위한다는 내용이 담긴 교서를 한글로 지어 내렸다. 그녀 역시 선조 못지않게 자신의 아들 영창대군을 세자로 앉히고 싶었겠지만, 그녀는 현실감각이 있었고 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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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19
■ 인조반정 1편

■ 인조반정 1편

우리 역사에는 조선시대에만 두 차례의 반정(反正)이 있었다. 1506년 중종반정과 1623년의 인조반정이 그것이다. 두 반정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중종반정에서는 중종이 반정 세력에 의해 추대되기만 했다. 반면 인조는 직접 반정 세력을 규합하는가 하면, 반정 당일에는 직접 친병(親兵)을 거느리고 참여했다.

인조가 반정에 적극 참여한 것은 동생 능창군이 역모로 몰려 광해군에게 처형당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개인적인 감정이 반정의 이유로서는 정당성이 부족하므로 그들이 내세운 반정의 표면적 이유는 유교이념에 반(反)하는 광해군의 실정(失政) 즉 폐모살제(廢母殺弟)와 중립외교(中立外交)이다. 《인조실록》과 《연려실기술》에는 인조가 반정에 참여한 상황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상(上:인조)이 의병을 일으켜 왕대비(인목대비)를 받들어 복위시킨 다음 대비의 명으로 경운궁에서 즉위했다. 상이 윤리와 기강이 이미 무너져 종묘와 사직이 망해가는 것을 보고 개연히 난을 제거하고 반정할 뜻을 뒀다. 무인(武人) 이서와 신경진이 먼저 대계(大計)를 세웠으니, 경진과 구굉·구인후는 모두 상의 가까운 친족이었다.』 《인조실록》

이렇게 《인조실록》에서는 인조가 직접 의병을 일으킨 점을 강조했다. 또 신경진, 구굉, 구인후 등 인조의 외가 쪽 인척이 다수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인조는 반정 당일 친히 병력을 이끌고 장단부사 이서의 군사를 맞았다. 《연려실기술》에 기록된 내용도 비슷하다.

『이기축이 선봉장이 됐는데, 군사 모이는 시간이 늦어졌기 때문에 인조가 몸소 앞으로 마중을 가서 연서역(延曙驛:조선시대 서울을 왕래하는 공무여행자에게 말(馬)과 숙식을 제공하던 역)에 이르러 서로 만났다. 기축이 말에서 내려 길 왼편에 엎드려서 장단 군사가 온다고 아뢰니, 인조가 자기의 도포를 벗어서 입혀줬다.』

광해군의 아버지이자 인조의 할아버지인 선조는 정식 부인인 의인왕후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자, 후궁 9명과의 사이에서 13명의 아들을 두었다. 광해군은 선조와 공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고, 훗날 광해군을 폐위시키는 인조반정을 일으킨 능양군은 선조와 인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정원군(원종으로 추대됨)의 장남이다. 즉, 광해군과 능양군은 배다른 삼촌과 조카사이였다. 그런데 공빈 김씨가 광해군을 낳은 지 2년 만에 사망하자, 인빈 김씨가 선조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선조는 인빈 김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4남 신성군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고 싶어 했다. 하지만 1592년 갑자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다급히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한 뒤, 그에게 분조를 맡기고 자신은 서둘러 피난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신성군은 고된 피난살이를 견디지 못하고 1592년 11월 평안도 의주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반면, 세자에 책봉되어 분조를 맡게 된 광해군은 전국을 누비며 뛰어난 활약을 펼치면서 왕세자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혔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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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19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 –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한다.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 –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한다.

쫓을 축(辶/7) 사슴 록(鹿/0) 놈 자(耂/5) 아닐 불(一/3) 볼 견(見/0) 메 산(山/0)

사냥을 하면서 사슴을 쫓는 사람에게는 명산의 경치를 볼 여유가 없다. 이런 간단한 성어에 여러 가지 비유가 숨어 있다. 눈앞의 명예와 욕심에 눈이 멀어 사람된 도리를 저버린다, 이익에 눈이 팔려 자신에게 다가올 위험도 보지 못한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해서 다른 일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등등의 경우에 쓸 수 있다.

돈을 움켜쥐기만 하면 다른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攫金者不見人(확금자불견인)과 함께 대구로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南宋(남송)의 선승 虛堂(허당) 智愚(지우, 1185~1269)의 법어를 기록한 책 ‘虛堂錄(허당록)’에서 비롯됐다.

같은 취지의 비슷한 쓰임으로는 ‘淮南子(회남자)’에서다. 前漢(전한)의 7대 武帝(무제)때 淮南王(회남왕)이자 문학애호가였던 劉安(유안)이 빈객과 方術家(방술가) 수천 명의 도움을 받아서 편찬한 책이다. 說林訓(설림훈)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짐승을 쫓는 사람은 큰 산을 보지 못한다. 밖으로 즐기고 욕심내는 것이 드러나면 밝은 것이 가려지기 때문이다(逐獸者目不見太山 嗜欲在外 則明所蔽矣/ 축수자목불견태산 기욕재외 즉명소폐의).’ 좀 더 가까운 뜻의 큰 사슴이란 말도 이어서 나온다.

‘사슴을 쫓는 사람은 작은 토끼를 돌보지 않고, 천금의 재물을 얻으려는 사람은 푼돈을 다투지 않는다(逐鹿者不顧兎 決千金之貨者 不爭銖兩之價/ 축록자불고토 결천금지화자 부쟁수량지가)’. 역시 큰일을 이루려는 사람은 작은 일에는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한다.

본뜻과는 약간 뜻을 달리 하지만 사슴을 뒤쫓는다는 逐鹿(축록)만을 떼어서 사용하면 제위나 정권 따위를 얻으려고 다투는 일을 가리킨다. 이 말에는 高祖(고조) 劉邦(유방)을 도와 통일에 큰 공을 세운 韓信(한신)의 책사 蒯通(괴통, 蒯는 황모 괴)이 등장한다.

한신이 모반의 혐의를 받고 呂后(여후)의 꾐에 빠져 죽을 때 괴통의 책략을 쓰지 않은 것이 한이라고 했다. 유방이 괴통을 잡아들여 추달하자 秦(진)나라가 잃은 사슴을 모든 사람이 쫓았을 때 자신은 한신을 위했을 뿐 고조는 몰랐다고 했다. 통일제국 진나라가 잃은 것이 사슴이란 정권이었다.

정권을 잡기 위한 중원의 사슴몰이가 한바탕 큰 바람을 일으켰다. 굳이 정권만이 아니라 앞날의 목표를 가지고 일을 추진하는 사람은 눈앞의 욕심만 쫓지 않고 큰 그림의 미래를 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새겨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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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20
북창삼우北窓三友 - 북쪽 창의 세 가지 벗, 거문고와 술과 시

북창삼우(北窓三友) - 북쪽 창의 세 가지 벗, 거문고와 술과 시

북녘 북(匕/3) 창 창(穴/6) 석 삼(一/2) 벗 우(又/2)

글을 쓸 때 가까이 두는 紙筆墨硯(지필묵연)의 네 가지 문방구를 文房四友(문방사우)라 하고, 추위에 잘 견디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 松竹梅(송죽매)를 歲寒三友(세한삼우)라 한다. 孔子(공자)는 추운 겨울에도 꿋꿋이 지조를 지킨다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歲寒松柏(세한송백)이라 기렸고, 秋史(추사) 金正喜(김정희)가 그린 歲寒圖(세한도)는 국보가 되었다.

여기에 북쪽으로 난 창문(北窓)의 세 가지 벗(三友)이 더해진다. 남향집이 많아 북쪽으로 난 창이 하늘 바라보기 좋다고 북창일 수도 있겠지만 唐(당)나라의 白居易(백거이, 772~846)가 ‘北窓三友(북창삼우)’란 시에서 노래한 거문고, 술, 시를 가리킨다.

樂天(낙천)이란 자로 잘 알려진 대시인 백거이는 李白(이백), 杜甫(두보), 韓愈(한유)와 더불어 李杜韓白(이두한백)으로 불릴 정도였고, 아호도 香山居士(향산거사)와 함께 시와 술과 거문고를 三友(삼우)로 한다며 醉吟先生(취음선생)으로 썼다. 세 가지를 벗으로 삼은 것은 각각 스승으로 삼은 세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 설명한다.

시는 東晉(동진)의 전원시인 陶淵明(도연명), 거문고를 가까이하며 三樂(삼락)을 자족한 春秋時代(춘추시대)의 은사 榮啓期(영계기), 술을 좋아하여 酒德頌(주덕송)을 남긴 竹林七賢(죽림칠현) 중의 劉伶(유령)이 그들이다.

세 벗을 노래한 시의 앞부분을 보자. ‘오늘도 북창 아래 앉아서, 해야 할 게 무엇인가 자문하네(今日北窗下 自問何所爲/ 금일북창하 자문하소위), 생각만 해도 즐거운 벗 셋을 얻었으니, 세 벗은 누구인가(欣然得三友 三友者爲誰/ 흔연득삼우 삼우자위수), 거문고를 뜯다가 술 마시고, 술 마시다 문득 시를 읊으니(琴罷輒擧酒 酒口輒吟詩/ 금파첩거주 주구첩음시), 세 벗이 번갈아 서로를 끌어주어, 돌고 돌아 끝이 없구나(三友遞相引 循環無已時/ 삼우체상인 순환무이시).’ 窗은 窓의 본자인데 北窗(북창)이란 말도 도연명의 시구 ‘북창 아래 누워 있다(北窗下臥/ 북창하와)’는 표현에서 따와 한적하고 여유로운 삶을 가리킨 말이라 한다.

옛날의 문인들이라도 거문고를 연주하다가 싫증나면 술을 마시고 또 흥이 나면 문득 시를 짓는 처지라면 누구나 부러워했을 것이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비생산적인 일에 빈둥거린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유유자적하던 옛 사람들은 인생을 즐기며 가야할 길을 잘 알고 그 길을 후세에 남기기도 했다. 물질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없이 항상 쫓기는 현대인들은 그저 부러울 뿐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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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20
군자회덕君子懷德 - 군자는 덕을 생각한다.

군자회덕(君子懷德) - 군자는 덕을 생각한다.

임금 군(口/4) 아들 자(子/0) 품을 회(心/16) 큰 덕(彳/12)

君子(군자)는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이다. 중국 周(주)나라 때부터 학덕이 있는 훌륭한 사람에게 벼슬을 주어 백성을 다스렸기 때문에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했다. 도량이 좁고 간사한 小人(소인)과 구별하여 군자의 몸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말은 論語(논어)를 비롯한 고전에서 수없이 언급돼 어지러울 정도다.

예를 몇 가지만 들어보자. 군자는 태연하고 교만하지 않으며 권력 있는 지위에 있어도 겸손하다는 泰而不驕(태이불교), 소인은 허물을 남에게 미루지만 군자는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反求諸己(반구저기), 군자는 자기 잘못을 깨닫고 즉시 그 잘못을 고치는 태도가 빠르다는 君子豹變(군자표변)이 있다. 또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해에 밝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군자유어의 소인유어리)는 경계의 표현도 있다.

이 구절과 함께 ‘군자는 덕을 생각한다’는 君子懷德(군자회덕)이라는 말도 ‘논어‘ 里人(이인) 편의 소인과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서 나왔다. 뒷부분과 함께 보자. ‘군자는 덕을 마음에 두고 소인은 땅을 생각하며, 군자는 법을 생각하지만 소인은 혜택 받기를 생각한다(君子懷德 小人懷土 君子懷刑 小人懷惠/ 군자회덕 소인회토 군자회형 소인회혜).’ 품을 懷(회)는 感懷(감회), 懷疑(회의) 등에서 보듯 마음속에 둔다는 뜻으로 소인이 땅을 생각한다는 것은 먹을 것을 중시하므로 편히 머물 곳을 우선한다고 해석한다.

또 법을 생각한다는 것은 법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며 소인이 혜택을 생각하는 것은 이익을 탐하는 것이라 했다. 군자는 의리에 밝다고 한 것과 같이 물질보다 더 우위에 두는 것이 있는 반면 소인은 일확천금만 노리는 이익만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땅을 생각한다는 소인은 물론 편히 머물 곳을 위한 곳을 찾는다는 이야기지만 오늘날 땅을 사랑하기 위해 사들인다는 투기와도 그대로 통한다. 욕심이 욕심을 낳듯이 값이 오를 만한 곳을 귀신같이 알아내 빚을 끌어대더라도 땅을 사잰다. 거처할 곳을 넘어 집도 여러 채 사들이기 일쑤다.

이익만 찾는다는 소인은 그래도 보아줄 수 있지만 나라를 다스릴 높은 사람도 청문회 때마다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면 소인과 크게 다를 것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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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21
건안칠자建安七子 - 중국 후한 건안 때 시문에 뛰어났던 칠인의 문학가

건안칠자(建安七子) - 중국 후한 건안 때 시문에 뛰어났던 칠인의 문학가

세울 건(廴/6) 편안 안(宀/3) 일곱 칠(一/1) 아들 자(子/0)

建安(건안)이라 하면 중국 後漢(후한)의 마지막 14대 獻帝(헌제)의 연호다. 이 때의 왕실은 명맥만 유지한 채 魏蜀吳(위촉오)의 三國(삼국)이 할거했던 시기다. 가장 강력한 세력을 떨쳤던 曹操(조조)는 아들 위나라 초대 왕이 되는 曹丕(조비)와 曹植(조식)과 함께 문학에도 재주를 보였다.

후한이 망하는 서기 220년 전후에 조조 삼부자를 중심으로 문인들이 대거 모여들어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 특히 뛰어난 7명의 재사를 가리켜 建安七子(건안칠자), 또는 위 세력의 중심지였던 河北省(하북성)의 도시 鄴(업)의 이름을 따 鄴下七子(업하칠자)라고 불렀다.

이들은 孔融(공융), 陳琳(진림), 王粲(왕찬), 阮瑀(완우), 劉楨(유정), 徐幹(서간), 應瑒(응창, 瑒은 옥잔 창) 등 7인이다. 한나라 때 유행했던 賦(부) 대신 詩(시), 특히 오언시의 발전에 공헌했고, 종래의 유가적 취향을 벗어나 청신한 격조를 불러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 7명이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문학이 뛰어나서이기도 했지만 후원자인 조비가 두 편의 글에서 높이 평가한 덕분이기도 했다.

이들의 문학을 建安體(건안체), 建安風骨(건안풍골)이라고도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南宋(남송) 때의 魏慶之(위경지)란 시인이 쓴 시화집 ‘詩人玉屑(시인옥설)’에 잘 표현돼 있다. 屑은 가루 설. ‘건안체는 한나라 말기의 연호인데 조자건 부자와 업도에서 활동하던 일곱 시인의 시를 말한다(建安體 漢末年號 曹子建父子及鄴中七子之詩/ 건안체 한말연호 조자건부자급업중칠자지시).’ 여기서 子建(자건)은 조식의 자인데 형 조비의 트집으로 煮豆燃萁(자두연기, 萁는 콩대 기)라는 七步詩(칠보시)를 남겼다.

일곱 명 중에서 다른 곳에서도 이름을 남긴 몇 사람을 살펴보자. 공융은 孔子(공자)의 20대 직계 후손으로 재능에 자부심이 크고 강직하여 조조의 면전에서 모욕적인 언사를 예사로 하다 죽음을 당했다. 왕찬은 당대의 석학 蔡邕(채옹)이 재능을 인정했고 부와 산문의 명수였다. 진림은 조조를 비방한 명문으로 조조의 속을 썩이다 뒤늦게 투항했다. 유정은 엄격한 풍격의 오언시로 문명을 높였고, 완우는 竹林七賢(죽림칠현)중의 한 사람인 阮籍(완적)의 부친으로 알려져 있다.

후한 말기 어지러운 때에 문학에 힘을 쏟았고, 또 온갖 술수를 부려 평가를 받지 못하는 조조 부자가 문인들을 후원했다는 것은 의외다. 공포정치를 휘두르며 문학을 탄압하려 해도 사람의 머릿속까지 통제할 수는 물론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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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21
사지四知 - 넷이 알다. 하늘과 신과 나와 그대가 안다.

사지(四知) - 넷이 알다. 하늘과 신과 나와 그대가 안다.

넉 사(囗/2) 알 지(矢/3)

‘귀신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도저히 알 수 없을 때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말과 함께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 실제로 귀신이 모를 리야 없다. 四知란 말은 아무리 감쪽같이 해치우는 두 사람만의 비밀이라도 하늘, 신, 너와 나 벌써 넷이 알고 있으니 어느 때고 반드시 들통이 나게 된다는 뜻이다. 뇌물 수수를 경계할 때 이보다 더 무서운 교훈이 어디 있겠는가.

중국 後漢(후한)의 楊震(양진)이란 학자는 학식 덕망과 함께 청렴결백하여 關西公子(관서공자)로 불렸다. 한 때 王密(왕밀)이란 사람을 추천하여 昌邑(창읍)이란 곳에 현령으로 있게 했는데 양진이 東萊(동래)지역의 태수로 부임하면서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왕밀은 이전의 은혜도 갚을 겸 밤에 숙소로 찾아가 황금 10근을 숨겨 와 바치면서 ‘어두운 밤이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고 말했다. 이에 양진이 좋은 말로 타일렀다. ’그대를 훌륭한 사람으로 봤는데 무슨 짓인가? 아무도 모르다니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당신이 알고 내가 아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가(天知神知 子知我知 何謂無知)?‘ 하며 물리쳤다.

양진은 이후 최고위 대신인 三公(삼공)의 지위에 올랐으나 환관과 황제 유모의 교만과 사치를 간언했다가 모함을 받게 되어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비극적 결말이기에 그의 청렴함이 더 돋보인다. 중국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 때의 宋(송)나라 范曄(범엽)이 편찬한 ‘후한서(後漢書)’의 양진열전에 실려 있다.

청렴한 관료를 기리는 淸白吏(청백리)는 조선시대에 제도적으로 잘 운영되어 孟思誠(맹사성), 黃喜(황희), 李滉(이황) 등 모두 217명이 배출됐다고 한다. 오늘날 정부에서도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뇌물비리는 끊임없이 잇따른다. 공직자의 금품수수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일명 ‘김영란법’이 있지만, 법보다 앞서 공직자들은 四知의 교훈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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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22
군계일학群鷄一鶴 - 닭 무리속의 한 마리 학, 여럿 중에서 뛰어난 사람

군계일학(群鷄一鶴) - 닭 무리속의 한 마리 학, 여럿 중에서 뛰어난 사람

무리 군(羊/7) 닭 계(鳥/10) 한 일(一/0) 학 학(鳥/10)

많은 사람 중에서는 뛰어난 사람도 있다. 수준이 낮은 집단에서 조그마한 재주가 있어도 표가 난다. 이런 경우는 庸中佼佼(용중교교)다. 더 큰 재주를 지녔다면 ‘닭이 천이면 봉이 한 마리 있다’고 하여 봉이 나서지 않아도 저절로 눈에 띈다. 봉이 아니라도 닭의 무리 속에서(群鷄) 부리와 다리가 길어 우뚝한 학이 홀로(一鶴) 서 있을 때는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 가운데 뛰어난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 많이 있는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말이다. 앞서 소개한 鶴立鷄群(학립계군)과 같이 唐(당)나라 房玄齡(방현령) 등이 엮은 ‘晉書(진서)‘의 嵆紹(혜소, 嵇는 산이름 혜)를 가리킨 말에서 왔다.

後漢(후한)이 멸망한 뒤 혼란한 세상을 등지고 초야에 묻혀 悠悠自適(유유자적)하는 사람이 많았다. 명리는 티끌보다 못하게 여기고 술을 즐기며 시로 나날을 보냈는데 대표적인 인물들이 竹林七賢(죽림칠현)이다. 이 중 晉(진)나라의 嵇康(혜강)의 아들이 혜소였다.

혜강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지만 반유교적 사상으로 권력층의 미움을 받던 중 무고를 받은 친구를 변호하다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당시 열 살인 혜소가 장성하자 아버지의 친구이자 역시 칠현 중의 한 사람인 山濤(산도)가 부자간의 죄는 서로 미치지 않는다며 왕에게 적극 추천하여 비서승에 올랐다.

혜소가 처음 수도인 洛陽(낙양)으로 왔을 때 어떤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철현의 한 사람인 王戎(왕융)에게 전한다.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서 궁궐로 가는 모습이 ‘의젓하고 늠름하여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의 학과 같았다(昂昂然如 野鶴之在雞群/ 앙앙연여 야학지재계군)’고 표현했다.

혜소의 부친을 잘 아는 왕융은 아버지가 떠 뛰어났다고 말해 주었다. 이렇게 우뚝한 혜소는 그러나 관직생활이 불행했다. 진나라 말기 司馬(사마)씨의 왕족 8명이 난립하여 八王(팔왕)의 난을 벌였을 때 혜소가 왕을 호위하다 반란군의 화살에 맞아 숨을 거뒀다. 혜소가 흘린 피로 어의가 벌겋게 물들었으나 왕은 충절의 피라며 빨지 못하게 했다. 忠穆(충목)이라 시호를 받은 혜소는 이후 충절의 대명사가 됐다.

그렇고 그런 무리 중에서 우뚝한 존재라면 어떤 재주라도 앞선다고 인정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서로가 잘났다고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면 뛰어난 사람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말하듯 조금이라도 뛰어난 존재는 깎아내리기 바쁘다.

일반 사람의 사회에서 앞서는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은연중 약점을 찾기 마련인데 정치 지도자들은 상대방의 정 때릴 곳을 찾느라 눈이 벌겋다. 경쟁을 하더라도 인정할 것을 인정하지 않고 사생결단으로 흠을 찾아 매장시킨다. 이렇게 해서는 한 마리의 학도 나타나지 못하고 닭만 우글거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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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23
무공인지악攻人之惡 - 남의 잘못을 꾸짖지 않다.

무공인지악(攻人之惡) - 남의 잘못을 꾸짖지 않다.

없을 무(灬/8) 칠 공(攵/3) 사람 인(人/0) 갈 지(丿/3) 악할 악(心/8)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가 責任(책임)이다. 일이 잘 안될 때 ‘잘 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 이라 하듯이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일은 주변에 흔하다. 孔子(공자)님이 일찍이 論語(논어) 衛靈公(위령공)편에서 ‘군자는 자기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잘못을 찾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고 가르쳤지만 실천이 잘 안 된다.

諸는 모두 제, 어조사 저.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경구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좌우명도 자주 인용된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착오(人之惡)를 꾸짖지 않는다(無攻)는 이 성어도 논어에 나온다. 공자의 제자로 이름이 須(수)인 樊遲(번지, 樊은 울 번, 遲는 늦을 지)가 기우제를 지내는 제천단 아래를 산책하다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덕을 숭상하고 마음의 악을 바로잡고 마음속 의혹을 밝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敢問崇德 脩慝 辨惑/ 감문숭덕 수특 변혹)?’ 脩는 길 수, 慝은 사특할 특. 스승은 질문이 훌륭하다고 칭찬하고 자상하게 설명한다.

‘먼저 일하고 보답을 나중에 얻게 되면 덕을 높이는 일이 되고, 자신의 나쁜 점만 따지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따지지 않는 것이 사특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겠는가(先事後得 非崇德與 攻其惡 無攻人之惡 非修慝與/ 선사후득 비숭덕여 공기악 무공인지악 비수특여).’ 자신의 악은 다스리지 않으면서 남의 잘못을 들춰내 꾸짖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하루아침의 분노로 스스로를 잊고 나쁜 짓을 하여 부모에게 영향이 미치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 했다. 顏淵(안연)편에 실려 있다.

秋適(추적)이 금언과 명구를 모아 놓은 책 明心寶鑑(명심보감)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남을 꾸짖는 자는 사귐을 온전하게 할 수 없고,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자는 허물을 고치지 못한다(責人者不全交 自恕者不改過/ 책인자부전교 자서자불개과).’ 恕는 용서할 서. 存心(존심)편에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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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23
【남산제비꽃】

【남산제비꽃】

서울 남산에서 처음으로 발견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옛날에 북쪽의 오랑캐들이 먹을 것이 귀한 봄에 자주 쳐들어 왔는데 이 때 이 꽃이 많이 피어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올 때쯤 이 꽃이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도로 옆에 많이 심어진 팬지는 서양제비꽃, 삼색제비꽃으로 우리의 제비꽃과도 형제지간입니다.

우리 산야에는 제비꽃 종류가 많아 노랑제비꽃, 제비꽃, 왜제비꽃, 흰제비꽃, 졸방제비꽃, 콩제비꽃, 서울제비꽃, 태백제비꽃 등 40여종이상이 자라고 있습니다.

산과 들에 다닐 때 발 밑을 잘 살펴보세요!

▷ 학명 : Viola albida var. chaerophylloidesr

▷ 분류 : 제비꽃과

▷ 분포지역 : 전국 각지

▷ 서식장소 : 산기슭 부식질이 많은 나무숲, 길가 언덕

▷ 특징 :

유사종으로 단풍제비꽃이 있습니다만, 잎이 훨씬 적게 갈라지고 단풍잎을 많이 닮았지요. 제비꽃은 원래 오랑캐꽃이라고 하였지요. 한방과 민간에서 고한 ·간기능 촉진 ·태독 ·감기 등에 약제로 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113.html
kolaswqetsrq 11.02 18:24
춘추필법春秋筆法 - 비판적이고 엄정한 역사 서술법

춘추필법(春秋筆法) - 비판적이고 엄정한 역사 서술법

봄 춘(日/5) 가을 추(禾/4) 붓 필(竹/6) 법 법(氵/5)

봄가을을 아울러 부르는 春秋(춘추)는 물론 어른의 나이를 높여 부른 말이다. 孔子(공자)가 자신의 출생국인 東周(동주)시대 魯(노)나라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편찬한 史書(사서)의 이름이기도 하다.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란 명칭을 낳은 이 책은 공자가 태어나기 근 200년 전인 노나라 隱公(은공) 원년부터 242년의 기록을 정리했다.

유가의 五經(오경)에 드는 ‘춘추’란 이름은 노나라 역사를 맡은 직책이라는데 공자가 여러 자료를 모으면서 대의명분을 밝혀 기술하는 원칙(筆法)을 지켰기에 사필의 준엄한 원칙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

공자의 시대는 춘추시대 말기로 周(주)왕실의 권위를 무시하고 제후국들이 서로 覇者(패자)가 되려 下剋上(하극상)이 잦았다. 이런 혼란상을 보면서 저마다의 직분을 바로잡기 위해 1만 6500여 자의 춘추에 객관적으로 간략하게 표현하되 치우친 비판을 삼갔다. 직분을 바로잡는 正名(정명)과 선악을 엄격히 하는 褒貶(포폄)의 원칙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가려 사용했다.

사람을 죽인 사실도 대상이나 명분에 따라 弑(시)와 殺(살)을 가려 기술하는 식이었다. 공자가 춘추에 대해 자부했다는 말이 ‘史記(사기)’에 나온다. ‘후세에 나를 알아줄 사람이 있다면 춘추 때문일 것이고, 나를 욕할 사람이 있어도 역시 춘추 때문일 것이다(後世知丘者以春秋 而罪丘者亦以春秋/ 후세지구자이춘추 이죄구자역이춘추).’ 丘는 공자의 이름.

春秋三傳(춘추삼전)이란 말이 있다. 춘추의 주석서 중에서 잘 알려진 3종의 책이다. 공자의 춘추가 엄격한 용어 선택에 간략한 내용이라 수많은 학자들이 주석서를 냈는데 左氏傳(좌씨전), 公羊傳(공양전), 穀梁傳(곡량전)이 그것이다. 齊(제)나라의 公羊高(공양고)가 지은 공양전과 魯(노)의 穀梁俶(곡량숙)의 곡량전은 경문의 해석 중심이고, 역시 노나라의 左丘明(좌구명)이 편찬한 좌씨전은 사실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중심으로 했다고 한다. 春秋學(춘추학)이라 할 정도로 이외에도 다양하게 존재했다는데 사학적 가치가 높은 좌씨전이 훨씬 더 많이 연구되어 우세를 점했다.

춘추의 이런 필법을 가장 잘 지켰다고 공자가 평가한 사람이 董狐直筆(동호직필)의 사관 董狐(동호)였다. 晉(진)의 靈公(영공)이 포악하여 시해됐을 때 재상인 趙盾(조돈, 盾은 방패 순, 사람이름 돈)이 막지 않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썼다. 秉筆直書(병필직서)란 말을 남긴 齊(제)나라 太史(태사) 伯(백)등 4형제도 권신 崔杼(최저)의 죄상을 목숨을 걸고 기록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게 공정하게 해야 한다고 不偏不黨(불편부당)을 사시로 내세우는 언론사가 많다. 최근의 사건 사고를 보도하는 언론의 정신이 이러한데 종종 더 공정해야 하는 역사 교과서에서 편파논란이 일어난다. 승자 중심의 역사는 춘추의 필법에 어긋나는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455.html
kolaswqetsrq 11.02 18:24
치사익분治絲益棼 - 실을 풀려다가 더욱 엉키게 하다, 해결 방법이 잘못되어 복잡하게 만들다.

치사익분(治絲益棼) - 실을 풀려다가 더욱 엉키게 하다, 해결 방법이 잘못되어 복잡하게 만들다.

다스릴 치(氵/5) 실 사(糸/6) 더할 익(皿/5) 마룻대 분(木/8)

얽힌 실이나 끈 등이 쉽게 잘 풀리면 술술 풀린다고 한다. 복잡하게 꼬인 난제가 술술 풀리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다. 실이 한 오리도 엉키지 않고 질서가 정연한 모습도 一絲不亂(일사불란)이라 한다. 흔히 이 말을 엉킨 실을 푼다는 뜻으로 잘못 알고 一絲紛亂(일사분란)으로 종종 쓰는데 조심할 일이다. ‘실 엉킨 것은 풀어도 노 엉킨 것은 못 푼다’는 말이 있다.

작은 일은 간단히 해결해도 큰일은 쉽지 않음을 말하는데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 푼다면 못할 것도 없다. 그런데 실을 풀려다가(治絲) 더욱 엉키게 한다면(益棼) 해결은커녕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니 조심할 일이다. 마룻대를 말하는 棼(분)은 어지럽힌다는 뜻도 있다.

이 성어는 左丘明(좌구명)이 쓴 春秋(춘추) 해석서 ‘左氏傳(좌씨전)’의 隱公(은공) 4년 조에 처음 실려 전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衛(위)나라의 州吁(주우, 吁는 탄식할 우)는 莊公(장공)의 후궁에서 태어나 뒤에 왕위에 오른 이복형을 살해하고 스스로 군주가 됐다.

충신 石碏(석작, 碏은 사람이름 작)의 아들인 石厚(석후)의 도움을 얻어 왕좌에 앉았지만 민심이 좋을 리 없었다. 주우는 수습책으로 宋(송)나라에게 陳(진)과 蔡(채)나라와 연합하여 鄭(정)나라를 공격하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魯(노)나라의 은공이 대부 衆仲(중중)에게 이 주우의 방책이 성공할 것인지 물었다.

중중은 덕으로써 민심을 수습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변란으로써 화합시킨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면서 예를 든다. ‘어지러움을 수단으로 쓴다는 것은 마치 엉킨 실을 풀려다가 더욱 엉키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以亂 猶治絲而棼之也/ 이란 유치사이분지야).’ 이어지는 이야기가 무력을 믿으면 백성들을 잃고 측근들도 떠나는 衆叛親離(중반친리)가 되어 실패한다고 했다. 원문대로 治絲而棼(치사이분)으로 해도 같고 治絲愈棼(치사유분)이라고도 한다. 과연 왕을 시해한 주우는 석작이 이웃 나라와 세운 치밀한 계책으로 얼마 못가 죽는다.

불의를 도운 석작의 아들 석후도 용서받지 못했으니 大義滅親(대의멸친)이란 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일을 처리하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도 일부러 되지 않을 방향으로 나가지는 않는다. 대의를 위한다며 야심차게 시작한 일이라도 모두 성과를 거둘 수는 없는 일이다. 되돌아갈 명분이 없다며 더군다나 민심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계속 나간다면 더욱 실을 엉키게 할 뿐 나중에는 되돌아 올 수도 없는 미로에 갇히게 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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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25
절부구조竊符求趙 – 훔친 병부로 조나라를 구하다, 큰일을 위해 사소한 정을 버리다.

절부구조(竊符求趙) – 훔친 병부로 조나라를 구하다, 큰일을 위해 사소한 정을 버리다.

훔칠 절(穴/17) 부호 부(竹/5) 구할 구(氺/2) 나라 조(走/7)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이치에 맞게 따져보고 처리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개인이나 조직의 생사가 걸렸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급하면 임금 망건 사러 가는 돈이라도 쓴다’는 속담이 있다. 나중엔 어찌 되더라도 급할 때는 어떤 돈이든 가리지 않고 써 버린다.

사후에 일이 잘 해결됐을 때 임기응변이 능하다고 되레 칭찬을 들을 수도 있다. 실패했을 때는 비난을 덮어 쓰지만 모든 일이 잘 풀려 성공하면 하나하나 정의를 따지지 않는 법이다. 병부를 훔쳐(竊符) 조나라를 구했다(求趙)는 이 성어는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소한 정이나 의리는 버려도 무방하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兵符(병부)는 發兵符(발병부)의 준말로 군대를 동원하는 패인데 가운데를 쪼개 왕과 지휘 장군이 한 쪽씩 갖는다. 이것을 훔친다면 필시 옳지 않은 일일 텐데 그 전말이 ‘史記(사기)’ 魏公子(위공자) 열전에 기록돼 있다. 위공자는 戰國時代(전국시대) 사공자의 한 사람인 信陵君(신릉군)이다. 신릉군은 安釐王(안희왕, 釐는 다스릴 리, 복 희)의 이복동생으로 사람됨이 어질고 선비를 존중하여 빈객이 3000명이나 모였다. 문지기 일을 하는 70세 된 은사 侯嬴(후영, 嬴는 찰 영)을 삼고초려했고, 힘이 장사인 백정 朱亥(주해)도 모셨다.

이웃 趙(조)나라가 강국 秦(진)나라의 침입을 받자 위나라에 구조를 요청했다. 조나라 平原君(평원군)은 신릉군의 매부였으니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안희왕은 군사 10만을 보내는 중 진나라에서 조나라 돕는 나라는 멸할 것이라는 엄포에 진격을 중단시켰다.

급한 신릉군이 빈객만으로 조나라로 가려는 것을 후영이 ‘굶주린 호랑이한테 고깃덩이를 던져주는 격(肉投餒虎/ 육투뇌호, 餒는 주릴 뇌)’이라며 말렸다. 왕의 총애를 받는 如姬(여희)를 시켜 병부를 훔치게 하고는 역사 주해를 데려가라고 했다. 신릉군은 후영의 계책대로 병부를 훔쳐갔으나 장군이 의심했으므로 주해를 시켜 없애고는 병사를 이끌고 가서 위기에 빠진 조나라를 구했다.

신릉군의 행위는 위나라로 보면 반역이다. 하지만 조나라는 핏줄로 맺어진 이웃이라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구했다. 실제 뒷날 위나라에 진의 침입을 막은 것도 신릉군의 의리에 의해서였으니 조국을 도운 셈이다. 급할 때는 온갖 방법을 쓴다고 해서 옳지 않은 일을 저지른 뒤 핑계를 갖다 대서는 안 되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662.html
kolaswqetsrq 11.02 18:26
청풍명월淸風明月 -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충청도 사람을 일컫는 말

청풍명월(淸風明月) -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충청도 사람을 일컫는 말

맑을 청(氵/8) 바람 풍(風/0) 밝을 명(日/4) 달 월(月/0)

글자 그대로 맑은 바람(淸風)과 밝은 달(明月)은 듣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시원해진다. 순서를 바꿔 明月淸風(명월청풍)이라 해도 마찬가지인데 휘영청 밝은 달 아래 문객들이 한 자리에 모여 술을 주고받으며 시를 읊는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주연이라 해도 가무와 기생까지 곁들인 吟風弄月(음풍농월)과는 달리 품격이 느껴지는 자리다.

이런 분위기에서 연유하여 결백하고 온건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뜻하거나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사를 논하는 자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뜻이 명확한 글자의 조합이라 고사가 따르지는 않더라도 처음 사용된 곳은 唐(당)나라 李白(이백)의 시구라 알려져 있다.

詩仙(시선)으로 알려진 이백이 중국 중부 후베이湖北/ 호북성의 고적이 많은 지역을 노래한 것이 ‘襄陽歌(양양가)‘다. 성어는 뒷부분에 나오는데 酒仙(주선)의 그답게 술병과 술잔이 등장한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한 푼의 돈도 안 들지, 옥산이 무너진 것은 남이 밀어 그런 건 아니리라(淸風朗月不用一錢買 玉山自倒非人推/ 청풍낭월불용일전매 옥산자도비인추), 서주의 술 국자와 장사 새긴 술동이, 이백은 그대들과 생사를 함께 하리(舒州杓力士鐺 李白與爾同死生/ 서주표역사쟁 이백여이동사생).‘ 玉山(옥산)은 竹林七賢(죽림칠현) 嵇康(혜강)이 술 취해 자주 넘어진 곳, 舒州(서주)는 좋은 술그릇을 많이 생산하던 지명이다. 鐺은 솥 쟁.

이백은 이전부터 전하는 사람들이 모두 술과 가까웠다며 자신도 술과 벗하고 뉘우침 없이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이백의 양양가는 개작되어 조선 후기에 널리 불리어진 十二歌詞(십이가사)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보다 우리나라 팔도의 별칭으로 泥田鬪狗(이전투구)를 함경도를 나타내듯이 淸風明月(청풍명월)은 맑은 바람과 큰 달처럼 부드럽고 우아한 사람들이 많다고 忠淸道(충청도)를 가리키기도 한다. 鄭道傳(정도전)이 八道(팔도) 사람의 특징을 나타낸 것으로 경상도는 소나무나 대나무 같은 굳은 절개(松竹大節/ 송죽대절), 전라도는 바람 앞의 하늘거리는 가는 버드나무(風前細柳/ 풍전세류) 등이 유명하다.

청풍명월이 뜻도 좋고 어감이 좋아서인지 충북과 충남지역에서 상표 등록을 두고 싸운 적이 있다. 지역 이름이 있다고 한 충북의 주장은 일반의 뜻이 우세하다는 충남의 주장에 밀렸다. 예로부터 충청도 전체를 나타내는 우아한 도민들의 상징이 싸움의 대상이 되어 안타깝게 여겼던 사람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어느 지역에서도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즐길 수 있었는데 공업의 발달과 미세먼지의 확산으로 곳곳이 숨 막히니 더욱 그렇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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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26
촌철살인寸鐵殺人 - 한 치의 쇠붙이로 사람을 죽이다, 한 마디로 핵심을 찌르다

촌철살인(寸鐵殺人) - 한 치의 쇠붙이로 사람을 죽이다, 한 마디로 핵심을 찌르다

마디 촌(寸/0) 쇠 철(金/13) 죽일 살(殳/7) 사람 인(人/0)

손가락 한 마디 정도(3cm)인 한 치는 작은 단위의 기본이다. 한 치 밖에 안 되는 쇠붙이(寸鐵)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殺人)는 말은 실제로 조그만 무기를 사용한다는 말이 물론 아니다. 한 마디의 말, 간단한 경구로 사람을 감동시키거나 사물의 핵심을 찌를 때 비유로 많이 쓰인다. 정수리에 침을 놓는다는 뜻으로, 따끔한 충고나 교훈을 말하는 頂門一鍼(정문일침)도 같은 말이다. 줄여서 단 한 방으로 무엇을 해결하거나 일거에 처리하는 것을 一針(일침)이라 하는 것도 같은 쓰임새다.

宋(송)나라 때의 선승 宗杲(종고, 1089~1163, 杲는 밝을 고) 선사는 설법에 능해 제자가 2000명도 넘었다고 한다. 화두를 사용하여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看話禪(간화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독특한 이야기를 던져놓고 깊은 사색으로 해탈에 도달해야 하니 한 마디가 촌철이 된다.

종고선사가 선에 대해 말한 대목을 보자. 어떤 사람이 수레에다 가득 무기를 싣고 와서 하나를 꺼내 휘두르고, 또 하나를 꺼내 휘둘러도 사람을 죽이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면서 이어진다. ‘나에게는 단지 한 치밖에 안 되는 쇳조각만 있어도 능히 사람을 죽일 수 있다(我則只有寸鐵 便可殺人/ 아즉지유촌철 편가살인).’ 선의 본바탕을 말하는 선사가 살인이라 비유한 것은 마음속의 잡된 생각을 없애고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을 집중하여 수양한다면 그 결과 나오는 아주 사소한 것 하나가 사물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감동시킬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의 출처는 ‘鶴林玉露(학림옥로)’란 책이다. 朱熹(주희)의 제자였던 南宋(남송)의 학자 羅大經(나대경)이 당대의 歐陽脩(구양수)나 蘇軾(소식) 등과 주고받은 어록과 시화, 평론을 모은 것이다. 天地人(천지인) 3부로 나눠진 이 책 地部(지부)에 실려 있다. 각 분야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고 정리하여 당시의 사회상을 아는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한 마디를 던져 놓고 모든 사람을 감동시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로써 말이 많은 오늘날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국정을 이끄는 수단이 말인 정치권에서는 더욱 말 폭탄이 오가 시끄럽다. 막말이 아닌 이치에 맞는 말로 주고받아 서로 승복하는 사회가 언제 되려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119.html
kolaswqetsrq 11.02 18:27
탐부순재貪夫徇財 - 탐욕스런 자는 재물로 목숨을 잃는다.

탐부순재(貪夫徇財) - 탐욕스런 자는 재물로 목숨을 잃는다.

탐낼 탐(貝/4) 지아비 부(大/1) 부릴 순(彳/6) 재물 재(貝/3)

사람의 욕심에 대해 깨우치는 동서양의 격언은 수도 없다. 그만큼 적으면 적은 대로 그보다 더, 많으면 많은 대로 더 위에 채울 욕심이 끝이 없다. 하지만 재물이 많아질수록 잃는 것 또한 많다. 어디까지나 가득하면 손실을 초래하고, 줄이면 이익을 얻는다는 滿招損 謙受益(만초손 겸수익)은 아득한 옛날부터 변하지 않는 교훈이다. 재물이 많으면 어진 사람은 그 뜻을 잃고, 어리석은 사람은 과오를 키운다고 했다. 욕심은 눈을 어둡게 하고, 스스로의 무덤을 판다는데 재산 늘리다가 잘못 생명까지 잃게 되면 어리석기 짝이 없다.

여기에 탐욕이 많은 자(貪夫)는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徇財)는 이 성어도 한 가지 더한다. 부릴 徇(순)은 ‘돌다, 거느리다’란 뜻 외에 ‘따라죽다’란 의미가 있다. 중국 漢(한)나라 초기 문필가이자 최연소 박사였던 賈誼(가의, 기원전 200~168)의 작품 ‘鵩鳥賦(복조부)’에서 사용된 후 알려졌다.

鵩은 부엉이 복. 賈生(가생)이라고도 불린 가의는 어릴 때부터 시서에 뛰어나 文帝(문제)의 총애를 받았다. 젊은 나이로 예악과 법도 제정에 뛰어난 식견을 발휘하며 황제를 보필하다 중신들의 시기를 받아 長沙(장사) 지역의 태수로 좌천되고 말았다.

가의가 장사에 부임한지 3년이 지났을 무렵 부엉이가 한 마리 날아 들어와 방석에 앉았다. 들새가 방안에 들어오니 주인은 어디로 갈지 부엉이에게 물어보는 형식의 부를 지었다. 만물이 변하고 그 변화는 끝이 없으며 화와 복은 돌고 돌아 운명은 알 수 없다며 읊는 중간 부분에 성어가 나온다.

‘탐욕스런 사람은 재물로 인해서 죽고, 열사는 명예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법(貪夫徇財兮 烈士徇名/ 탐부순재혜 열사순명), 권세를 과시하는 자는 권세 때문에 죽고, 평범한 자는 삶에만 매달리네(夸者死權兮 品庶馮生/ 과자사권혜 품서풍생).’ 夸는 자랑할 誇(과)와 같다. ‘史記(사기)’의 屈原賈生(굴원가생) 열전에 실려 있다.

가의는 통일제국 秦(진)의 쇠망한 원인을 밝힌 過秦論(과진론)과 新書(신서) 10권을 남겼지만 33세라는 짧은 나이에 일생을 마쳤다. 자기가 태부로 있던 태자가 낙마한 뒤 죽자 죄책감에 시달렸다. 가의가 재물에, 벼슬에 연연하지 않아 명성이 후세에 남았다. 만족할 줄 모르는 보통의 생활인들은 오늘도 아등바등 싸운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경쟁도 양심껏 순리에 맞아야 하건만 평생 다 쓰지도 못할 재산을 갖춘 재벌들도 상속 다툼에 눈이 벌겋다. 다 갖춘 뒤 잃을 것은 생명뿐인데 그 전에 베풀 곳은 많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886.html
kolaswqetsrq 11.02 18:27
근근자자勤勤孜孜 - 부지런하고 정성스럽게 힘쓰다.

근근자자(勤勤孜孜) - 부지런하고 정성스럽게 힘쓰다.

부지런할 근(力/11) 부지런할 근(力/11) 부지런할 자(子/4) 부지런할 자(子/4)

부지런함을 예찬한 말은 많다. ‘휴식과 행복은 근면에 의해서만 얻어진다’는 말이나 ‘근면은 행복의 어머니다’고 한 서양 격언이 그것이다. 무슨 일이든 쉬지 않고 부지런해야 순조롭게 일이 풀린다는 우리 속담 ‘부지런한 물방아는 얼 새도 없다’도 마찬가지다. 부지런하다는 글자가 연속으로 이루어진 이 성어는 최상의 부지런함을 뜻한다.

부지런할 勤(근)은 勤勞(근로), 勤勉(근면) 등으로 사용되어 익지만 힘쓴다는 뜻도 있는 부지런할 孜(자)는 이 성어와 함께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한다는 孜孜營營(자자영영) 외에는 쓰임이 드물다. ‘자세하다’라고 할 때 쓰는 仔(자)와는 물론 다르다.

고사가 있는 것은 아니라도 이 성어가 사용된 곳을 굳이 찾는다면 ‘漢書(한서)’의 王莽(왕망, 莽은 풀 망)전에 ‘새벽이나 밤이나 추우나 더우나 부지런히 일했다(晨夜屑屑 寒暑勤勤/ 신야설설 한서근근)’는 표현이 나온다. 尙書(상서)라고도 하는 ‘書經(서경)’에는 禹王(우왕)이 舜(순) 임금에게 ‘저는 날마다 부지런히 일할 것만을 생각할 따름입니다(予思日孜孜/ 여사일자자)’라고 말했다는 부분이 있다.

한꺼번에 붙여 쓴 예가 朝鮮(조선) 肅宗(숙종)때의 역사서 ‘揆園史話(규원사화)’에 벌과 개미를 재미있게 나타냈는데 인용해 보자. ‘사이좋게 윙윙거리며 왔다 갔다 하면서 꽃의 꿀을 따 옮기고, 죽어 버려진 것을 찾아 모으며, 한눈팔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다(雄雄雍雍 來來去去 運花搬密 探腐捨死 勞勞役役 勤勤孜孜/ 웅웅옹옹 래래거거 운화반밀 탐부사사 로로역역 근근자자).’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에는 景宗(경종)이 후사가 없어 이복동생 延礽君(연잉군, 礽은 다행 잉)을 왕세제로 임명하려는데 사양하자 말한다. ‘조심하고 부지런히 하여 백성들의 큰 희망에 부응토록 하라(小心翼翼 勤勤孜孜 以副國人之顒望/ 소심익익 근근자자 이부국인지옹망).’ 顒은 엄숙할 옹. 물론 후에 연잉군은 英祖(영조)가 되어 52년이라는 최장의 기간 왕위에 있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이룩하는데 뺄 수 없는 현대그룹의 창업자 鄭周永(정주영) 회장을 평한 글에도 적합하게 사용됐다. 철학자 安秉煜(안병욱)이 말했다. ‘하늘은 그에게 초인적 에너지와 사업에 천부적 센스를 준 위에 더욱 감동적인 것은 근근자자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사회를 위해, 겨레의 행복을 위해 아낌없이 베푼 것‘이라고 예찬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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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28
◇ 정치가 군에 개입해선 안 된다...‘6일 전쟁’의 교훈

◇ 정치가 군에 개입해선 안 된다...‘6일 전쟁’의 교훈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제공권(制空權) 장악이다. 숫자상으로는 주변 아랍국 전력의 3분의 1에 불과했던 이스라엘 공군은 개전 첫날 상상을 초월하는 기습 공격으로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공군력을 궤멸시켜 버리고, 멀리 이라크 공군까지 제압했다.

이집트 공군에 358대의 전투기와 폭격기가 있었는데 첫날 공격에 274대를 잃었다. 파괴되지 않은 전투기도 운용 가능한 상태가 아니었다. 비행장, 활주로도 파괴돼 제공권을 잃은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하늘에서 아랍국가의 전투기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시나이 사막이란 특수한 지형을 감안했을 때 제공권 상실은 지상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후퇴하던 이집트군은 하늘에서 덤벼드는 무자비한 추격자들로부터 끔찍한 피해를 입는다.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공군의 승리는 군 수뇌부도 기대하지 않던 완벽한 것이었다. 지금의 우리는 결과를 알기 때문에 쉬운 승리처럼 느끼지만 당시 이스라엘 측은 공격 전 불안에 떨었다. 영공을 지킬 방어부대를 남겨 놓지 않고 거의 전 전력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만약 한두 군데라도 기습에 실패했다면 무방비 상태로 상대의 반격을 허용할 상황이었다.

전쟁사에서 보기 힘든 대담한 결단이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전쟁사에 변함없는 철칙은 너무나 일방적인, 대단한 승리에는 반드시 상대의 도움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집트군은 군용기를 격납고에 넣지 않고 방치했다. 이유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적이 습격했을 때 반격 부대를 출격시킬 예비 활주로가 없었다. 적이 공격해 오는데 오인 사격을 걱정해서 발포 금지령을 내렸다.

제일 큰 오류는 공군의 선제공격론을 묵살하고, 국제 여론과 대통령 나세르의 이미지를 위해 먼저 아군이 당한 후에 반격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이었다. 군이 정치에 개입해도 안 되지만 정치가 군사에 개입해도 안 된다. 그것이 6일 전쟁의 첫째 교훈이다.

-동아일보 임용한의 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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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29
【둥근털제비꽃】

【둥근털제비꽃】

제비꽃 종류 중 이른 봄에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대개 둥근털제비꽃입니다. 꽃은 연한 보라색과 자주색이 섞인 색이며 4∼5월(봄)에 핀다.열매는 삭과로 둥글며 길이 6∼8mm이고 잔 털이 있다.

▷ 학명 : Viola collina Besser

▷ 분류 : 제비꽃과

▷ 분포지역 : 한국, 일본, 중국 동북부

▷ 서식장소 : 산지

▷ 특징 :

잎은 하트 모양이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고 꽃자루에는 털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식용이나 관상용으로 쓰이며 한방에서는 감기나 기침, 부인병 등에 쓰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136.html
kolaswqetsrq 11.02 18:30
◇ 성균관의 정육점

◇ 성균관의 정육점

중국은 돼지고기를 좋아한다. 중국 요리의 개성은 ‘동파육’에 잘 나타난다. 그 대신 중국 쇠고기는 맛이 별로 없다. 한국은 쇠고기가 특별하게 맛이 좋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명절 선물로 소갈비 세트를 보낸다.

한국을 대표하는 육류는 한우다. 한국의 쇠고기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니까 ‘축산실록’이라는 책이 있다. 저자인 남인식(63)은 농협에서 축산기획 상무를 지냈는데 의령 남씨 도사공파 17대 종손이다. 수년간에 걸쳐 ‘조선왕조실록’을 다 뒤져서 축산에 관한 기록을 뽑아내어 책을 썼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성균관 유생들의 식량과 고기를 담당하는 노비들인 전복(典僕) 이야기였다. 성균관 전복들에게만 소를 도살해서 시중에 팔 수 있는 전매특허권이 있었던 것이다. 조선왕조는 소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하는 송금(松禁) 정책과 소를 함부로 잡지 못하게 하는 우금(牛禁) 정책을 시행하였다.

소가 없으면 농사짓기 힘들다. 그래서 허가 없이는 소를 도살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하였다. 예외적으로 성균관 전복에게는 소를 도살할 수 있는 특허를 왜 주었던 것일까?

성균관은 국가의 인재를 양성하던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다. 유생 정원은 200명. 1년 동안 이 200명이 먹는 비용이 쌀로 환산하면 960석이 들어갔다. 이 비용을 대는 부서가 양현고(養賢庫)였다. 재원은 1000결(300만평)의 학전(學田)이 있었다. 그러나 이걸로는 부족하였다. 겨우 밥과 국, 나물 정도만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나머지 비용을 성균관 소속의 전복(노비)들이 부담하였다. 성균관 전복의 임무는 양곡, 채소, 생선, 땔감 등을 매달 공급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서울 동소문 근처에서 거주하였다. 이들이 먹고살면서도 성균관에 상납할 수 있는 돈을 만들 수 있도록 소를 도살해서 쇠고기를 시중에 팔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 것이다.

원래 이들은 문묘에 제사 지낼 때 필요한 희생 제물을 공급하는 임무였다. 푸줏간인 도사(屠肆)를 설치·운용하고 있었다. 국가 제사에 쓰고 남은 고기를 민간에 팔아 수입을 챙겼다. 나중에는 성균관 재원 담당 임무까지 맡았다. 그 대신 다른 사람은 가질 수 없는 독점적 특권인 소의 도살권과 정육점(懸房)을 운영하면서 알짜배기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이들이 운영하는 정육점이 서울 시내에 대략 40군데가 있었다고 한다. 쇠고기 외에도 소가죽, 소기름, 소뿔 판매도 짭짤하였다. 이 수입으로 성균관의 유지비를 댔다. 쇠고기는 국가 인재 양성의 장학금이었다.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151.html
kolaswqetsrq 11.02 18:30
◇ ‘경제 재갈법’이 된 탄소중립법

◇ ‘경제 재갈법’이 된 탄소중립법

지난 8월 ‘언론 재갈법’이라는 오명을 쓴 언론중재법의 국회 통과는 저지됐지만, ‘경제 재갈법’이 될 수 있는 탄소중립법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가뿐히 통과했다. 탄소중립법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35% 이상을 감축하는 국가 감축 목표(NDC)를 법제화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한술 더해 40%로 상향 조정한 NDC 계획을 밝혔다. 무리하기 짝이 없는 졸속 목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배출 피크 시점에 관한 의문이다. 정부는 2019년, 202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3.9%, 7.3% 감소한 사실을 근거로 2018년을 배출 피크 시점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2019년 미·중 무역 갈등, 2020년 코로나로 우리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져 에너지 수요가 1.5%, 4% 감소했고, 원자력발전 이용률이 2018년 65.9%로 최저치를 기록한 뒤 2019년 70.6%, 2020년 75.3%로 증가하는 과정에서 배출량이 줄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경제가 회복되어 에너지 수요는 증가하는데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비중과 이용률이 다시 낮아진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얼마든지 다시 증가할 수 있다. 2018년 배출 피크를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만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여전히 증가 추세에 있다면, 2018년 기준 목표 설정은 그야말로 제 발등 찍는 꼴이 될 수 있다.

둘째, 감축 목표 설정에 관한 의문이다. 작년 12월까지 NDC는 2018년 대비 26.3% 감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탄소 중립 비전 선언으로 탄소중립법이 추진(사진)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30% 감축안을 제시했으나 국회는 별다른 논리 없이 35% 이상으로 입법화했고, 이를 받아 탄소중립위원회는 40%로 확정 지었다.

매년 4.2%씩 감축해야 달성할 수 있는 무리하기 짝이 없는 목표다. 이렇게 빠르게 감축하는 국가는 없다. 전문가의 밀도 있는 논의 과정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NDC가 40% 이상 돼야 한다는 대통령의 언급과 일반 시민 500여 명이 참여한 탄소중립시민회의가 눈에 들어올 뿐이다. 입법화에 통상 필요한 비용 추계도 하지 못한 이유를 알 만하다.

셋째, 경제성장과 조화를 이루는 현실적 감축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공상과학적 무책임한 상상의 나열뿐이다. 현재 약 16GW 규모의 태양광을 단 8년 만에 거의 100GW로 증가시켜야 한다. 여전히 실험실 수준의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을 믿고, 한국 경제를 떠받치기 위해 오늘도 시뻘건 쇳물을 토해내고 있는 멀쩡한 고로를 폐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획기적인 신기술 없이는 탄소 중립을 결코 달성할 수 없다. 문제는 신기술 개발에 무척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줄리언 올우드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그동안 개발된 탄소 감축 기술이 전체 감축량의 5%를 차지하기까지 짧게는 30년, 길게는 100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새로운 기술이 2050년까지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미래 희망 기술에 의존한 채 무리하게 설정한 NDC는 경제에 재갈을 물려 경제 후퇴를 자초할 뿐이다. 아무도 경제 후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에 수용될 가능성을 잃은 탄소 중립 계획은 실현 가능성도 낮아진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목표 설정은 행동 변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자존감을 낮추는 부작용만 보이는 ’잘못된 희망 증후군’일 뿐이다. 탄소중립법이 ‘경제 재갈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 기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910.html
kolaswqetsrq 11.02 18:31
◇ 홀로세와 인류세

◇ 홀로세와 인류세

10여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인류세(Anthropocene)라고 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인류세라는 용어는 1980년대에 미국의 생물학자인 유진 스토머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를 유명하게 만들고 그 중요성을 전파한 사람은 네덜란드의 대기화학자인 폴 크루첸이다.

199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크루첸은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지구의 역사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주장하며 인류세라는 용어를 제시했다. 인류세는 지질학 분야에서 아직 정식 지질시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과학계는 물론 광범위한 사회 전반에서 사용되며 급속히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반면 최근에 홀로세(Holocene)가 세 개의 시기로 구분되었다는 사실은 국내 언론에서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비공식용어인 인류세에 대한 관심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의 무관심이다. 홀로세는 그리스어 Holos(whole)와 kainos(new)가 합쳐진 용어로 ‘전체가 새롭다’는 의미이다. 이는 지질시대 중에서 가장 최근인 1만1700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지칭하며, 기후학적으로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후의 간빙기를 의미한다.

2018년 국제지질과학연맹(IUGS)에서는 홀로세를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하는 것을 공식 승인했다. 과거에는 홀로세를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해서 얘기했지만, 이제는 1만1700년에서 8200년 전까지를 그린란디안(Greenlandian), 8200년에서 4200년 전까지를 노스그리피안(Northgrippian), 4200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메갈라얀(Meghalayan)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구분은 기본적으로 기후 변화 기록을 근거로 한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홀로세가 시작된 후 약 8200년 전까지 지속된 따뜻한 시기를 그린란디안, 그 후 약 4200년 전까지 이어진 점진적인 냉각기를 노스그리피안으로 정한 것이다.

홀로세의 마지막 시대인 메갈라얀은 4200년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거대 가뭄(megadrought)을 시작으로 한다. 메갈라얀 초의 거대가뭄은 약 200년 동안 지속된 파괴적인 사건이었고 전 세계의 농업기반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는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인더스강과 양쯔강 지역 등에서는 광범위한 이주가 발생했다.

그란란디안과 노스그리피안은 그린란드의 빙하기록에서 기원한 용어이고, 메갈라얀은 인도 북부 메갈라야 주에 있는 동굴(Mawmluh Cave)의 석순에서 주요 자료가 얻어졌기 때문에 명명된 용어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지질시대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지질시대를 층서학적으로 구분하여 각 시대별 단위와 정의를 설정하는 역할은 IUGS 산하의 국제층서위원회(ICS)에서 담당하고 있다. ICS는 1977년 출범한 이래 ‘황금 못(golden spike)’이라고 하는 모식단면을 지정하고 있다. 황금 못은 쉽게 말하면 지질시대의 경계를 의미하는데, 황금 못을 박는 것은 대단히 엄격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각 시대별 연구위원회(working group)의 연구결과를 심사한 후 투표를 하고, 다시 ICS의 소위원회와 ICS의 투표에서 60%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하며, 최종적으로 IUGS의 인준을 받아야 공식적인 국제적 시간층서 경계로 인정받게 된다.

홀로세를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하는 작업 역시 이와 같이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2010년 제4기 층서 소위원회(SQS)에서 처음 제안된 후 2018년 6월에 IUGS의 인준을 받았으니 무려 8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과거 캄브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 경계의 국제표준을 바꾸는 작업은 1974년에 시작되어 2000년에 인준을 받았고, 인류세는 작업이 시작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인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지질시대를 바꾸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지질시대를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자료와 전문가들의 충분한 의견수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제신문 과학에세이 임현수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331.html
kolaswqetsrq 11.02 18:31
◇ 차이나타운과 짜장면그리고 짱께

◇ 차이나타운과 짜장면그리고 짱께

6개월 전 강원도에 차이나 타운을 세운다는 소식에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 인천과 부산의 차이나타운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슬픈 현대사의 산물이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별로 유쾌하지 않다.

인천·부산의 차이나타운은 구한말 중국의 조계지(租界地)였다. 조계지란,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강대국이 독자적 행정권을 휘두르던 치외법권 지역이다. 그래서 약소국에는 울분의 땅이다. 중국도 상하이, 톈진, 광저우 등을 강대국들에 조계지로 내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소룡 주연의 영화 ‘정무문’은 상하이의 일본 조계지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1883년 제물포항을 개항할 때 인천은 만국 공동의 조계지였다. 그러나 부산은 사정이 달랐다. 고려 때부터 일본인 집단 거주 지역, 즉 왜관(倭館)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일본 전용 조계지였다. 그런데 어떤 화교가 부산 왜관에서 ‘덕흥호’라는 가게를 열었다. 일본의 텃밭을 파고들어가 한번 건드려보는, 중국의 도발이었다. 당연히 외교 마찰이 빚어졌다.

일본은 화교 상점 덕흥호의 영업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그러자 중국은 조선과 맺은 조계지 협정을 근거로 강력하게 항의했다. 힘이 없던 조선은 서툴게 중재하려다 실패하고 중국에 위약금까지 지급했다. 그 뒤 인천·부산·원산 등에 차이나타운을 따로 허용했다.

일본과 중국의 조계지 경쟁에서 경제적 승자는 일본이다. 일본은 조계지마다 은행 지점을 세우고 대출을 통해 금융망을 장악했다. 그때 화교들은 장사해서 번 돈을 손금고에 쓸어 담기만 했을 뿐 대출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들이 들고 다니던 손금고를 ‘짱께(掌櫃·장구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화적 승자는 중국이다. 산둥성 출신의 화교가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개발한 짜장면이 오늘날 한국인의 생활 속에 깊이 박혔다.

드디 1883년 10월 말서울 명동의 청나라 영사관에 부산 왜관에서 일어난 덕흥호 사건이 보고되었다. 차이나타운 구상이 꿈틀거렸다.

-조선일보 차현진의 돈과 세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589.html
kolaswqetsrq 11.02 18:32
■ 비변사備邊司 2편

■ 비변사(備邊司) 2편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비변사를 전쟁 수행의 최고 기구로 활용함에 따라 그 기능이 확대되고 강화되었다. 이때 수령의 임명, 군율의 시행, 논공행상, 청병(請兵), 둔전(屯田), 공물 진상, 시체 매장, 군량 운반, 훈련도감의 설치, 산천 제사, 정절(貞節)의 표창 등의 기능까지도 가지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비변사는 군무(軍務)에 대한 처리뿐만 아니라 지방관 임명 ·조세·사회 복지·조직 제·개편 등 주요 국정(國政) 전반을 관장하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시적으로 그 기능이 약화되기도 하였다. 비변사가 전쟁 수행을 이유로 6조의 권한을 대부분 가져갔는데 이를 원상 복구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광해군의 북인(北人)정권은 전후 복구와 국방력 강화를 위해 비변사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후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정권도 후금과의 전쟁 이후 정권 장악을 위해 새 군영 설치와 더불어 비변사를 전략적으로 강화시켰다.

결국 17세기 이후 의정부 3정승은 물론이고 공조를 제외한 5조판서(判書)와 군문 대장 등이 모두 비변사 당상(堂上)으로 참여함에 따라 최고 정치 기구가 되었고, 기존의 의정부-6조 체제를 무력화시켰다. 비변사의 강화는 18세기 조선의 왕권 강화를 이끈 숙종 - 영조 - 정조로 이어지는 왕들의 역할도 컸다.

이들이 이조(吏曹) 전랑의 낭천권(郎薦權:인사권)을 폐지시키면서 자연스럽게 비변사의 권한이 더욱 강해진 것이다. 물론 국왕의 권력이 정점에 있을 시기에 비변사는 최고 정치 기구이면서도 왕의 명을 수행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국정 운영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왕권이 약화된 이후에는 크게 변질되면서 문제가 되었다.

19세기 세도정치 기간에 비변사는 아무런 견제 없이 큰 권한을 휘두르며 전횡(專橫)을 일삼았다. 외척인 세도 가문이 다른 외척의 형성을 막고 국왕의 권력을 억제하면서 비변사는 자연스럽게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고려의 도평의사사가 권문세족의 권력 핵심 기구로 작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비변사는 세도정치의 핵심 기구가 되어 왕권을 제약하기에 이른다.

비변사는 비빈(妃嬪)의 간택에까지 깊숙이 관여하면서 외척 형성에 영향을 주었고, 비변사 제조(提調:관리)의 천거 및 임명을 주도하면서 자체적인 인사권을 확보하였다. 비변사는 국정 전반을 관장하면서도 내부 인사권을 쥐고 있어 외부의 견제를 받지 않게 된 것이다.

세도정치기에 왕실의 종친(宗親)들조차 세도 가문의 눈치를 보면서 숨을 죽여야 할 정도로 왕권이 약화되었으므로, 지존(至尊)인 국왕에게도 비변사를 억제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이후 고종의 등극과 함께 집권한 흥선대원군은 왕권강화를 위해 비변사를 개혁하게 된다. 대원군이 집권을 시작한 1864년(고종 1년) 기존의 외교·국방·치안 관계 업무만을 비변사가 담당하게 하고 나머지 사무는 모두 의정부로 이관되었다. 1865년(고종 2년)에는 비변사의 남은 기능 중 군무(軍務)는 부활한 삼군부(三軍府)로 넘기고, 나머지 업무는 의정부로 이관하여 결국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85.html
kolaswqetsrq 11.02 18:33
■ 비변사備邊司 1편

■ 비변사(備邊司) 1편

비변사는 원래 전쟁 등 비상시를 대비해 설치한 임시기구로 ‘국경 변방(邊)의 일에 대비(備)하는 기관(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라는 비상시에 의정부를 대신해 국무 수행 기능을 맡게 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 유지되면서 의정부를 제치고 사실상 조선의 최고 국가 의결기관이 되었다.

비변사의 유래는 성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종 때 왜구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의정부 정승 및 원상과 병조(兵曹) 이외에 국경 지방의 요직을 지낸 경험자들을 필요에 따라 참여시켜 국경 방어 계획을 협의하게 되었는데, 이들을 지변사재상(知邊事宰相)이라 하였다. 비변사 참여자는 대체로 경상도·전라도·평안도·함경도의 관찰사와 병사(兵使)·수사(水使)를 지낸 종2품 이상의 관원들이었다.

지변사재상을 설치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승들이 군무(軍務)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비변사가 처음 설치된 성종 때에는 6조 직계제였기 때문에, 의정부에 소속된 정승이 군무에 참여하는 것이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경험 부족으로 재상이 군무에 능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지변사재상이 필요해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병조(兵曹)의 미약한 권위 때문이었다. 병조는 정승을 능가하는 권위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 등 변방에 국가적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병조 단독으로 군사 문제를 대처할 수가 없어 정승 급의 권위가 필요했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군사적 전문성을 구비하면서 정승급의 권위를 가진 지변사재상(知邊事宰相)을 두게 된 것이다.

1510년(중종 5년)에 일어난 삼포왜란(三浦倭亂)을 계기로 1517년(중종 12년) 기존 임시 기구인 축성사(築城司)를 비변사(備邊司)로 고치고, 그동안 부정기적으로 활동해 온 지변사재상(知邊事宰相)이 비변사라는 기구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도 어디까지나 임시기구였기 때문에 독립적인 청사(廳舍)가 없었다.

기존 병조(兵曹)의 하위 부서인 무선사(武選司), 승여사(乘輿司), 무비사(武備司) 3사 외에 임시로 설치된 하나의 사(司)로서 변방에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만 활동하였다. 이후 1555년(명종 10년) 을묘왜변으로 상설 기구로 전환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별도 전용청사를 마련하고 전속 관원이 임명되어 독립 관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비변사가 상설기구화 되면서 병조(兵曹)는 유명무실해지기 시작했다. 군무(軍務) 전반을 담당했던 병조 대신 비변사가 기존 역할인 변방(邊防)의 군무 외에도 전국의 군무를 모두 처리하였기 때문이다. 상설된 비변사가 관청 간 위계질서를 교란하고 군무 기능 중복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비변사 폐지론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1592년(선조 25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이 모든 논란을 잠재워 버렸다.

- 2편에 계속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8.html
kolaswqetsrq 11.02 18:33
■ 종묘제례宗廟祭禮 3편

■ 종묘제례(宗廟祭禮) 3편

시기가 정해져 있는 정시제(定時祭)는 종묘의 사계절 및 납일(臘日) 오대제(五大祭), 영녕전과 사직의 춘추 및 납일의 삼대제, 선원전의 탄신다례, 경기전과 선원전의 청명제 등이다.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그때 그때 지내는 임시제(臨時祭)는 국가에 경사, 즉 왕이 왕비를 맞이하여 왕자를 낳았을 때, 왕세자가 책봉되었거나 세자빈을 맞이할 때, 흉사로서 왕이나 왕비가 승하했을 때,

왕이나 왕비의 신주를 종묘에 부묘(祔廟)할 때,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 등에 행해진다. 고유제(告由祭)는 햇곡식이나 햇과일이 났을 때 간단한 고유(告由:사당이나 신에게 고함)를 한다. 제사에서 향(香)과 축(祝)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데, 향은 신을 모시는 수단이고, 축은 제사의 뜻을 고하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옛날 왕조시대에도 향과 축문은 예조판서가 직접 작성해서 왕께 올리면 왕이 친히 보시고 서명하여 봉압한 뒤 예조판서에게 내리면, 예조에서는 정성껏 받들어 모시었다.

종묘에서 제를 올릴 때 쓰이는 음악을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이라 한다. 연주와 노래(樂章), 춤을 갖추어 행하는 음악이다. 제례악은 일반적으로 신을 영접하고영신(迎神), 신에게 폐백을 올리며전폐(奠幣), 세 번에 걸쳐 헌작초헌(初獻:첫술잔), 아헌(亞獻:두번째 술잔) 종헌(終獻;세번째 마지막)한 후에, 제기를 거둬들이고철변두(撤邊豆), 신을 배웅하는 순서송신(送神)에 따라 연주한다.

종묘 제사를 지낼 때는 정전 댓돌 위아래에 편종·편경·방향·축·어·박·당피리·대금·해금·아쟁·장구·징·태평소·절고·진고 등의 악기를 나열하고 제례의 절차에 따라 연주한다. 연주단에 함께 자리한 성악인가공:歌工이 연주에 맞추어 노래하고, 무원(舞員)들은 팔일무(八佾舞:64명이 8열로 춤을 춤)를 춘다. 종묘제례악은 이렇듯 악(樂)·가(歌)·무(舞)의 종합예술이다.

현재 전승되는 종묘제례악은 조선왕조를 개국한 선왕들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세종이 전래의 향악(鄕樂)과 고취악(鼓吹樂)을 참조하여 작곡한 보태평(保太平)·정대업(定大業)에 기초를 두고 있다. 보태평의 내용은 ‘조종(祖宗)이 나라를 열어 찬란한 문치(文治)가 창성한 내력’과 태조의 4대 선왕과 태조, 태종의 문덕을 기리는 것이며, 정대업 역시 태조의 4대 선왕과 건국 이후 외적과 맞서 공을 세운 왕의 무공(武功)을 호기 넘치는 시어(詩語)로 칭송하고 있다.

춤을 추는 무원(舞員)들은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로 구별되어 있었다. 문무(文舞)를 추는 무인(舞人)들은 왼손에는 구멍이 셋 뚫린 관악기 약(籥)을 들고, 오른 손에는 긴 막대에 꿩 깃털로 장식을 한 적(翟)을 들고 영신과 전폐, 초헌례(첫잔을 올림)에서 보태평지무(保太平之舞)를 춘다.

무무(武舞)를 추는 무인(舞人)들은 맨 앞줄부터 두 줄씩 각각 나무로 만든 칼과 창, 활과 화살을 쥐고 아헌(둘째잔을 올림)과 종헌(마직막잔을 올림)에서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를 추었다. 무무(武舞)에는 무원(舞員) 외에 각(角), 둑(纛), 북, 징, 소라, 대각, 대고, 대징과 청, 황, 흑, 백, 적색의 깃발과 홍색의 대둑(大纛), 청룡, 주작, 황룡, 백호, 현무를 그린 깃발 등의 여러 의물(儀物)을 든 의장대가 함께 도열하여 춤의 움직임에 따라 동작을 같이 하였다.

종묘제례악은 선율 타악기인 편종·편경·방향이 기둥이 되는 선율을 연주하고, 여기에 선율악기인 당피리·대금·해금·아쟁 등의 장식적인 선율이 주선율에 부가되고, 이 위에 더욱 다양한 가락을 구사하는 노래가 어우러진다. 그리하여 그 어떤 음악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도도한 기상과 중후함, 화려함을 맛볼 수 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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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34
■ 종묘제례宗廟祭禮 2편

■ 종묘제례(宗廟祭禮) 2편

종묘제도는 『천자는 7묘로 태조의 묘와 3소(昭) 3목(穆)을 두고, 제후는 5묘로 태조의 묘와 2소 2목을 둔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소목제(昭穆制)는 종묘나 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를 말하는데, 왼편을 소(昭)라 하고 오른편을 목(穆)이라한다. 시조인 태조의 신주를 가운데 모시고 2,4,6세를 왼편인 소에, 3,5,7세를 오른편인 목에 모신다.

종묘는 태조 묘를 중심으로 동서(東西) 소목제도로 하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후에는 서(西)를 상위로 하여 역대 세차(世次)에 따라 일자형의 동당이실(同堂異室)로 하였다.

신주란 죽은 사람의 위패(位牌)이고, 주(主)는 신(神)의 상징이다. 효자가 어버이를 장사지낸 후 마음을 의지할 곳이 없어 나무로 주(主)를 세우고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목주(木主)라 하고, 죽은 사람의 이름을 쓴 것을 사판(祠版)이라고 한다. 신주에는 우주(虞主)와 연주(練主)가 있다. 우주는 궁중에서 우제(虞祭)를 지낼 때에 쓴 것으로 뽕나무로 조성한 신주이다.

연주는 밤나무로 조성한 신주로 혼전에 봉안하였다가 사후 25개월 뒤 담제(禫祭) 후에 합장하여 종묘의 신주가 된다. 신주의 크기는 길이 1척(30.03CM), 너비 5촌(척의 1/10)이며, 위는 둥글고 아래는 모가 나 있다. 신주에는 일정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명이나 청에서 받은 사시(賜諡), 조선의 묘호(廟號), 시호(諡號), 존호(尊號)의 차례로 쓴다.

왕후일 경우에는 휘호(徽號:왕비의 존호)를 쓴다. 묘호는 글자 그대로 사당의 이름인데, 공(功)과 덕(德), 창업과 계승의 기준으로 한 조종(祖宗)을 말한다. 시호는 생전에 행한 업적에 따른 것이다. 존호와 휘호는 왕과 왕비의 덕을 칭송하는 호이다.

 "
종묘제례는 최고의 품격을 갖추고 유교절차에 따라 거행되는 왕실의례이며, 이를 통해 동양의 기본이념인 효를 국가차원에서 실천함으로써 민족공동체의 유대감과 질서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종묘제례는 제사를 지내는 예법과 예절에 있어서 모범이 되는 의식이기 때문에 제례는 매우 엄격하고 장엄하게 진행된다. 종묘제례의 절차는 신을 맞이하는 절차, 신이 즐기도록 하는 절차, 신을 보내드리는 절차로 구성되어 있다.
",

종묘제례의 제사 종류는 왕실제도에 따르면 크게 나누어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의 3종류로 나눌 수 있다. 대사는 종묘의 오대향(五大享), 영령전과 사직의 삼대향(三大享), 종묘와 영녕전의 임시 특별대제부태묘제:祔太廟時이다. 중사는 풍, 운, 뇌, 우, 선농, 선잠, 석전, 역대시조 제사 등이 이에 속한다. 소사는 현재 폐지되었으나 영성, 명산, 대천, 칠사 등을 말한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24.html
kolaswqetsrq 11.02 18:34
■ 종묘제례宗廟祭禮 1편

■ 종묘제례(宗廟祭禮)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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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宗廟祭禮)는 왕실에서 거행되는 장엄한 국가 제사이고, 임금이 친히 받드는 존엄한 길례(吉禮)이다. 유교사회에서는 길례(吉禮)·흉례(凶禮)·군례(軍禮)·빈례(賓禮)·가례(家禮)의 다섯 의례(五禮)가 있는데, 그 중 길례인 제사를 으뜸으로 여겼다. 이는 유교이념에서 효의 실천을 국가의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

유교가 국가의 근본이념이었던 조선시대는 조상에 대한 숭배를 인간의 도리이자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법도로 여겨 제사를 특히 중시하였다. 따라서 종묘(宗廟:왕실사당)와 사직(社稷:토지신과 곡식신 모심)을 세우고 조선건국 및 번영에 힘쓴 왕과 왕실의 조상과 국가 발전에 공헌한 문무 대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종묘(宗廟)는 왕가(王家)의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중국 우(虞)나라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온조왕(B.C 18년) 때 시작되어, 신라, 고구려 순으로 시조를 묘(廟)에 모시고 제사를 지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종묘는 일명 태묘(太廟)라고도 하는데, 이는 태조 묘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의 종묘는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정전에 모시지 않은 분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宗)은 세실(世室:神室)을 의미하고, 대대로 훼손하지 않고 보존한다는 뜻이다.

역대 왕은 승하한 뒤에 상이 끝나면 일단 종묘에 신주를 봉안하였다가 공덕이 있는 제왕은 세실로 지정되어 영원히 정전(正殿)에 남게 되고, 그 외에 제왕은 영녕전(永寧殿)으로 옮겨 안치된다.

현재 정전에는 태조에서 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19실(室)에 49위(位)의 역대 제왕과 그 후비(后妃)의 신주를 봉안하였다. 영녕전에는 추존(推尊) 4위(목왕·익왕·탁왕·환왕)로부터 영왕에 이르기까지 16실에 34위의 선왕과 그 후비(后妃)의 신주가 봉안되어 있다.

원래 태조가 1392년 개경 수창궁에서 즉위한 후, 같은 해 고려의 종묘를 헐고 그 자리에 효사관(孝思觀)을 세워 추존 4위(태조의 조상) 즉, 목왕·익왕·탁왕·환왕의 신주를 모시다가 태조 4년(1395년) 한양에 종묘를 짓게 되자 옮겨 합사(合祀) 안장하였다.

그 후 세종 3년(1421년)에 영녕전 4실을 증축하여 추존 4위를 옮겼다. 그리고 명종 원년에 이르러서는 3실을 증축하였으나 임진란 때에 모두 불타버렸다. 결국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태실 11실을 중건하고, 그 후 영조 2년에 태실 4실, 헌종 2년에 태실 2실, 고종 7년에 태실 2실을 각각 증축하여 현재 19실에 이른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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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35
◇항우와 유방의 차이

◇항우와 유방의 차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도 있다. 여기서 말은 그냥 말이 아니다. 말은 곧 심리고 성향이다. 삶의 태도고, 관계의 맥락이며, 세상을 대하는 자세다. ‘초한지’(중국 책 이름은 ‘초한연의’)의 두 영웅 항우와 유방의 ‘말’을 보면, 그 진의를 알 것만 같다. 항우와 유방은 출신과 기질, 용모 및 처신, 대인 관계에서 상반된 경향을 보이고 있어, 리더십을 운운할 때 자주 비교되는 인물들이다.

항우와 유방은 출신부터 성향까지 모두 달랐다. 항우는 명장 항연과 항량을 조부와 숙부로 둔 초나라의 명문 귀족 출신이었다. 반면 유방은 강소성 패현(沛縣)의 평범한 집안 자손이었다. 한마디로 금수저 항우와 흙수저 유방인 셈이었다.

기원전 221년 춘추전국의 긴 분열을 종식시키고 진나라를 건국한 진시황의 화려한 행차를 본 후의 반응은 두 사람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회계산 제의를 마친 진시황의 성대한 행차를 본 유방은 감격하여 탄식했다. “대단하군! 사내대장부라면 마땅히 저 정도는 돼야지!” 가문도 외모도 능력도 변변치 않았지만, 최고 지존이 되고자 하는 야망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던 유방이었다. 그러나 그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노련하게 진시황을 높이 평가하듯 말했다.

반면 항우의 외침은 거침이 없었다. “언젠가는 저 놈을 끌어내고, 내가 저 자리를 차지하리라!” 망국의 분노와 설욕의 다짐이 서린 외침이었다. 곁에 있던 숙부 항량이 식겁해 항우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욕망, 야망, 감정을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항우다.

그런 성향은 평소의 말버릇에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전쟁에 임박해 항우가 주변을 향해 자주 쓰던 문장은 “어떠냐?(하여·何如)”였다. 즉 자신의 기량이 어떠냐는 과시였던 것이다. 반면 유방은 “어떻게 하지?(여하·如何)”였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의견을 높이는 태도다.

그저 말의 순서만을 바꿨을 뿐인데, 전혀 다른 뉘앙스와 분위기를 전달한다. 그러니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은 곧 ‘내가 우선이냐, 네가 우선이냐’는 뜻이기도 하리라.

-조선일보 일사일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676.html
kolaswqetsrq 11.02 18:36
【얼레지】

【얼레지】

잎에 붉은 갈색의 얼룩무늬가 있어 붙어진 이름입니다. 은 맛이 좋아서 데친 후 나물로 먹어도 좋습니다.

뿌리는 전분이 많아서 옛날 춘궁기 백성들이 캐서 식량 대신으로 먹기도 하였답니다.

▷ 학명 : Erythronium japonicum

▷ 분류 : 백합과

▷ 분포지역 : 제주도, 남부, 중부, 북부지방

▷ 서식장소 : 깊은 산골짜기 숲 속 그늘

▷ 특징 :

가재무릇이라고도 한다.

높은 지대의 비옥한 땅에서 자라지만 산골짜기에서 자라는 것도 있다. 3▷4월(봄)에 자주색에 가가운 분홍색 꽃을 피우며, 열매는 7∼8월에 결실하며 삭과(殼果)로 넓은 타원형 또는 구형이며 3개의 능선이 있다. 잎은 나물로 하고 비늘줄기는 약용으로한다.

꽃말은 ‘질투’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739.html
kolaswqetsrq 11.02 18:36
◇교향곡의 탄생은 시민적 계몽운동의 일환

◇교향곡의 탄생은 시민적 계몽운동의 일환

괴테는 “고전적인 것은 건강하지만, 낭만적인 것은 병적”이라고 말했다. 질서와 조화, 완성의 세계관에 비해 역동과 극단, 혁파의 세계관이 지닐 수 있는 위험성을 표현한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대혼란과 단두대가 숱한 사람들을 먹어 치우던 이 시기가 그에게 회의감을 준 것이었다.

교향곡은 이러한 세계사적 변혁기에 태동하여 전성기를 구가한 장르다. 왜 굳이 오십여 명이나 되는 연주자들이 한 무대 위에 올라가는 새로운 곡이 필요했을까. 하나의 ‘커다란 사회’를 음악으로 그려내기 위해서였다. 소수 특권 귀족층의 ‘작은 사회’(앙상블)가 아니라 다수 시민 사회를 그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교향곡의 탄생은 시민적 계몽이면서 문화적 혁명이었다. 그러나 이 ‘혁명’은 조화의 혁명이었다.

바로 이런 시기에 나타난 이가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이었다. 그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새로운 작곡법은 작은 주제 하나를 다양하게 조합, 발전, 변형시켜 전체 곡을 일관성 있게 작곡하는 방식이었다. 주제 동기 작곡법이라는 이 방식을 하이든은 의무를 다하듯 성실하게 따랐다. 숙련에 창조성이 더해지자 하이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가가 되어 있었다. “연습이 장인을 만든다”는 독일 속담이 어울리는 경우다.

성실함만큼이나 중요한 하이든의 성정은 유머였다. 그의 음악에는 듣는 이를 즐겁게 해 주려는 농담과 위트가 가득하다. 유머는 합리성의 가치를 강조하는 효과를 지닌다. 하이든의 음악은 고리타분한 면이 전혀 없다. 새로움, 재치, 의외성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런던 공연을 위해 1791년 작곡된 교향곡 94번 ‘놀람’은 하이든의 합리성과 유머를 동시에 경험시켜주는 명작이다. 듣는 이의 몰입을 도와주는 서주가 붙은 제1악장은 유쾌하고 쾌활한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제2악장 안단테는 제1주제 이후 갑작스러운 팀파니의 타격으로 유명한 악장이다.

졸고 있는 귀부인을 깜짝 놀라게 하려 했다는 설이 정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변주곡의 자유로움 안에서 듣는 이의 예상을 비켜가며 단 한 번도 뻔하게 흘러가지 않는 유연함이 놀라움을 준다. 친숙한 3악장 미뉴에트는 귀족적인 느낌 대신 역동성으로 새로운 느낌을 준다.

마지막 4악장 피날레는 소나타 형식과 론도 형식이 겹쳐져 있는 듯한 간결한 진행이 인상적이다. 형식적으로 탄탄하면서도 유연성을 잃지 않는 하이든 음악은 이처럼 형식주의의 위험을 넉넉히 피해 시종일관 듣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자신을 드러내기 이전에 듣는 이의 즐거움을 앞세운다. 재주나 효과보다 기본기와 원칙을 그러나 웃으면서 일러준다. 그래서 하이든의 음악은 고전적으로 건강하다. 새로움에 민감하지만 원칙을 지키는 힘이 자꾸 약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칙과 유머를 엮어낼 줄 아는 유연성 혹은 여유가 부족해진 까닭은 아닐까.

-동아일보 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663.html
kolaswqetsrq 11.02 18:37
◇ 한국 종자의 부활

◇ 한국 종자의 부활

엄연히 국내산인 채소·식품 중에서도 외국에 로열티를 내는 사례가 많다. 외국 종자 회사에 돈을 내고 씨앗을 수입하는 것이다. 과거 외환위기 때 국내 주요 종자 회사들이 외국에 매각되면서 토종 종자가 대거 넘어갔던 여파다.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청양고추도 종자의 소유권이 독일 바이엘에 있다. 중앙종묘가 1997년 외환위기 탓에 토종인 이 종자의 소유권을 미국 세미니스에 팔았고, 그 후 소유권이 미국 몬산토 등을 거쳐 바이엘로 넘어갔다. 지난해 기준 국산 종자 자급률은 채소 89.9%, 화훼 45%, 과수 17.5% 수준이다. 사과와 배도 20%가 안 된다. 양파와 양배추는 일본 종자 비중이 80%대 수준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 한국산 종자가 하나둘 부활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등 정부 부처와 종자·유통업체가 2012년부터 국산 종자 개발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골든 시드 프로젝트’가 하나둘씩 결실을 보면서 성공 사례가 나오는 것이다. 국내 종자 회사가 자금을 지원받아 국산 종자를 개발하면 이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상품을 매입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농우바이오가 개발한 K-스타 양파, 조은종묘가 개발한 ‘홈런’ 양배추 등이 대표적이다. 국산 라온 파프리카 매출도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대형 마트들의 해당 품목 매입량 확대가 큰 힘이 되고 있다. 바람직한 상생이다.

종자 주권에 대한 인식은 일본도 늦었다. 껍질째 먹는 씨 없는 청포도인 샤인머스캣이 대표적인 사례다. 원조인 일본이 품종을 개발하고도 2006년 자국에만 등록하는 바람에 한국 농가가 로열티를 내지 않고도 기를 수 있게 돼 지금은 한국이 수출 규모·재배 면적에서 일본을 크게 앞선다. 이런 일에 자극받아 일본은 지난 4월 종묘법을 개정해 일본산 과일 품종의 해외 유출을 금지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가 사 먹는 채소·식품을 보면 이젠 태반이 외국산이다. 단지 신토불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하다간 일반 가정의 식탁조차 차리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토종이던 종자가 외국으로 넘어가 돈을 주고 씨앗을 사오면서도 변변한 국산 종자가 없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종자 산업은 세계적으로 연 5%씩 성장하는 유망산업이다. 한국 종자의 부활은 그래서 반갑다.

-문화일보 오후여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93.html
kolaswqetsrq 11.02 18:37
◇사막의 종교, 이슬람

◇사막의 종교, 이슬람

자연환경이 혹독할수록 종교 신앙심은 강해지는 것 같다. 사막이 그렇다. 이란의 사막에 가본 적이 있다. 바람 소리 외에는 동물 소리도 없고 자동차 소리도 없고 스피커 소리도 없었다. 정적 그 자체였다. 모래 외에는 보이는 것도 없고 얼씬거리는 것도 없는 완벽한 고독이었다.

죽음의 공간이었다. 그 대신 밤하늘의 별은 총총하게 보였다. 도 닦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아무리 에고(ego)가 강한 인간이라도 ‘위대하신 알라여!’ 하고 엎어질 수밖에 없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사회적 인정 욕구에 목마른 인간은 사막에 들어가서 몇 달 생활하면 홀가분해질 것이다.

이슬람이 아직도 그 종교 신앙심을 원리적 형태로 유지하고 있는 배경에는 사막이 있었다. 세속화 물결 앞에서 다른 종교들이 함몰되고 있지만 이슬람은 아직도 종교적 순수성이 남아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그 순수성이 보편적 상식과 충돌하고 있으니 문제이다. 여성 인권이 대표적이다. 망사를 통해서 눈만 보이도록 디자인한 부르카는 여성을 학대하는 이슬람 복장이다. 왜 이렇게 여성의 신체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완벽히 차단하는 극단 패션이 나왔을까. 왜 이렇게 여자를 죄수같이 다루는가? 이슬람 율법을 깊이 모르니까 알 수 없다.

상식 선에서 추론한다면 사막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사막에서 농사는 불가능하다. 농사는 여자들 노동력도 상당히 기여하기 때문에 발언권이 생기게 마련이다. 사막은 장사로 먹고살았다. 남자들은 낙타에다 교역품을 싣고 몇 달씩 사막을 건너 다니는 카라반이 주업이었다.

중동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중계무역으로 먹고살던 문명권이었다. 낙타 몰고 사막으로 나가는 남자 처지에서는 여자들을 장시간 집에다 놓아 두는 셈이다. 낙타 몰고 사막 건너는 공수부대 같은 일에 어떻게 여자들을 데리고 다니겠는가.

몇 달씩 나가 있는 남자들은 집에 남아있는 여자들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 걱정 가운데는 여자들의 성적인 문란을 우려하는 의심도 있었다고 보인다. 특히 여성 신체 노출은 사막에서 시달린 남성의 성욕을 자극한다고 우려했던 것이다.

성적 충동은 대상(隊商)들의 역할마다 공정한 몫을 배당해야 하는 사막 문명권에 엄청난 혼돈을 야기한다. 대상들의 조직이 붕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환경이 바뀌었다. 낙타에 짐 싣고 다니는 시대가 아니니까 부르카 패션도 바뀔 것이다.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794.html
kolaswqetsrq 11.02 18:38
◇ 왜 한일 해저터널은 없을까?

◇ 왜 한일 해저터널은 없을까?

1987년 9월, 일본 홋카이도에 혼슈 북단 아오모리현을 거쳐온 열차가 닿았다. 착공 27년 만인 이듬해 3월 공식 개통된 세이칸(青函) 해저터널(사진)을 통해서였다. 홋카이도가 비로소 바다가 아닌 육로로 본토와 연결된 거였다. 협궤열차로 시작된 2016년 3월 고속열차 신칸센 규격으로 증설됐고, 수요가 증가하면서 근년에는 자동차 전용 제2터널 구상도 이어지고 있다.

세이칸터널 구상은 동북개발사업의 일환으로 2차대전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해로에만 의존하기엔 홋카이도의 경제·군사적 가치가 너무 컸고 태풍 등 기상 재난도 잦았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기뢰가 해협으로 유입되는 일까지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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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1961년 3월 심해탐사정 해저 지질조사를 거쳐 1964년 1월 굴착작업을 시작했다. 총 연장 53.85km. 쓰가루 해협을 최대 240m(수평선 기준) 지하로 관통하는 해저부만 23.3km였다. 스위스 알프스 권역의 고트하르트 바시스 터널의 2016년 개통 전까지 세이칸터널은 세계 최장 터널이었고, 해저부 37.9km의 영불터널(Channel Tunnel, 총연장 50.45km)이 1994년 5월 뚫리기 전까지 최장 해저터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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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칸터널보다 먼저 1917년 한일 해저터널 구상이 나왔다. 1923년 하코다테의 한 시의원이 세이칸터널 구상을 발표한 반면, 한일 해저터널은 훗날 내각 총리대신을 지낸 군인 정치인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 1880~1950)가 처음 제기, 1930년대 말 대동아종관철도(大東亜縦貫鉄道) 계획의 일부로 구체화됐다. 한반도를 거쳐 아시아-유럽까지 닿겠다는 그 계획은 전쟁, 패전으로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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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등 해협의 섬들을 들르며 부산(또는 거제)과 규슈를 잇는 터널은 해저구간만 최소 128km. 양국의 여러 정치인들이 이 구상을 지지하면서도 진전시키지 못한 표면적 이유는 경제성이다. 터널의 역사적 상징성이란 정치적 부담을 감당할 만한 자신만만한 정치인이 없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26.html
kolaswqetsrq 11.02 18:39
■ 보補와 흉배胸背 2편

■ 보(補)와 흉배(胸背) 2편

왕실에서 상상 속의 동물을 많이 사용한 것은 길상(吉祥)의 의미를 표현함과 동시에 왕실의 위엄과 존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용은 제왕의 상징으로 최고 통치자의 부적이고, 왕권과 나라를 수호하는 호국신이다. 가뭄과 홍수를 주재하는 수신(水神)이고, 항해와 조업을 주재하는 해신(海神)이며, 만물조화의 능력을 갖고 있다.

호랑이는 재앙을 몰고 오는 포악한 맹수로 경계의 대상이지만, 인간의 편에서 잡귀를 몰아내며 선악을 심판하는 영물이기도 하다. 용맹하고 위엄이 있으나 잔인하고 탐욕스럽다. 그래서 병을 막아주고 목(木)의 기운을 상징하며, 신령숭배 민간신앙의 주인공이다.

사슴은 아름다운 외형과 온순한 성격으로 신령한 짐승으로 여겨지며, 우애를 상징한다. 사슴은 자리를 옮길 때마다 머리를 들어 낙오자가 없는지 살피는 습속이 있고, 천년을 살며 오백세가 되면 색이 백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십장생의 하나이다. 해치(獬豸)는 해태라고도 하는데, 죄가 있고 없음을 판단할 줄 안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뿔 달린 머리에 갈기가 돋아 있으며, 꼬리 끝에만 긴 털이 돋아 있고 몸에 서기(瑞氣)가 차 있어 천지조화와 정의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여성들의 노리개나 주머니 등의 장식문에 쓰이기도 하고, 조선시대 대사헌의 흉배문양이 되기도 했다.

붕(鵬)은 용과 학 사이에서 생겨났다는 상상의 새이다. 고상하고 품위있는 자태를 지녀 왕비에 비유하였다. 태평성대를 예고하는 상서로운 새로서 궁중 문양으로 사용하고, 귀인의 예복과 장신구에 사용하였다.

학은 양(陽)을 나타내는 새로, 깃털이 눈같이 희어서 진흙 속에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날개 달린 동물의 우두머리로서 선인이 타고 다닌다고 여겨졌다. 청초함과 장수의 상징이다. 대개 구름, 소나무 등 다른 장수문양과 조화를 이루어 쓰였는데, 조선시대 문관의 흉배와 예복이나 제복의 뒤에 늘이는 후수(後綏)에도 3품 이상의 상급관리는 학을 수놓았다.

공작은 깃털이 아름다워 문금(紋禽)이라고 한다. 공작은 구덕(九德)을 갖추어 얼굴이 단정하고 목소리가 맑고 걸음걸이가 질서 있으며, 때를 알아 행동하고 먹고 마시는데 절도가 있다. 또, 분수를 지켜 만족할 줄 알며, 나뉘어 흩어지지 않으며 갔다가 되돌아 올 줄 안다고 하였다. 이를 흉배에 수놓으면 성군을 모시는 충신이 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조선시대 문관 1품의 흉배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구름은 천체형상의 한 부분으로 보와 흉배에 동반되는 문양이다. 모든 상서로운 짐승과 조류는 구름을 동반한다. 이는 구름이 그 크기와 모양, 색 등이 모두 일정한 정형이 없고 천변만화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내재적 기세, 강약과 허실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무한히 유동하는 우주의 환상적 경지를 표현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80.html
kolaswqetsrq 11.02 18:39
■ 보補와 흉배胸背 1편

■ 보(補)와 흉배(胸背) 1편

흉배(胸背)는 조선시대에 왕과 왕실, 문무관(文武官)이 평상시 집무복인 상복(常服)에 사용하는 장식물이다. 무늬가 있는 직물에 품계(品階)에 따라 신분을 상징하는 무늬를 다채롭게 수놓아 상하계급을 뚜렷하게 구별함과 동시에 의복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역할도 했다. 흉배는 문관·무관의 구별과 상·하를 구분하는 것 뿐 아니라 특정 직책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대사헌은 선과 악을 판단하는 상상의 동물인 해치 흉배를 사용했다. 흉배제도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 정치의 기준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 흉배착용에 대한 논의가 거듭되었던 기록을 담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함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속대전(續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등에서 확인된다.

흉배(胸背)는 세종28년(1446년)에 관품 구별을 위해 제정을 논의했으나, 그 재료가 단(緞:비단)과 사라(紗羅:견직물)이므로 검박한 생활과 사치억제를 위해 제정을 그만두었다가, 단종 2년(1454년) 명나라의 문양제도를 따라 문·무관 3품 이상의 일상복에 흉배를 붙이게 되었다. 초기에는 명의 것을 기반으로 제정되었으나 연산군 때 우리 고유의 특성이 반영된 무늬를 다양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왕과 왕비, 왕세자, 왕세손의 평상복인 곤룡포에는 용을 수놓은 흉배를 가슴과 등 그리고 양어깨 4군데에 달았는데, 이를 특별히 보(補)라고 한다. 신하들의 사각형 횽배와 달리 특별히 둥글게 만들어 졌다. 이는 왕실은 만백성의 하늘이기에 하늘을 상징하는 동그란 모양으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왕과 왕비는 발가락이 5개인 원형의 오조룡보(五爪龍補)를, 왕세자와 그 빈은 발가락이 4개인 원형의 사조룡보(四爪龍補)를, 그리고 왕세손은 발가락이 3개인 사각형의 삼조룡보(三爪龍補)를 사용하였다.

백관들이 입는 일상복인 단령포(團領袍)에는 네모진 흉배를 가슴과 등 두 군데에 붙였다. 보와 흉배의 문양은 용·봉·기린·사자·백택·공작·운학·백한·호표·웅비·해치 등이며, 그 상징하는 의미가 깊다.

계급의 표시가 되는 도안은 수정을 거듭하다가 조선 말기 고종 8년(1871년) 제정된 제도에서는 학(鶴)과 호랑이(虎)로 정리되어, 문관 당상관은 쌍학(鶴), 당하관은 단학, 무관 당상관은 쌍호(虎), 무관 당하관은 단호로 정해졌다. 학과 호랑이는 문관(文官)과 무관(武官)을 대표하는 동물로서 학은 구름과 어우러져서 장수와 고아한 선비의 기상을 상징하며, 호랑이는 용맹함과 날렵함으로 절대적인 권위와 힘을 상징한다.

왕족들은 기린(麒麟), 백택(白澤), 봉황(鳳凰) 등을 수놓은 네모 모양의 흉배를 가슴과 등 두 군데에 달았는데, 대군(大君)은 기린, 왕자(王子)와 군(君)은 백택을 사용했다. 흥선대원군의 기린흉배 역시 대군의 예를 따른 것이다(흥선대원군은 고종 32년(1895)년부터 기린흉배를 거북흉배로 바꾸어 사용함).

봉황은 왕비의 평상 예복과 공주, 옹주가 사용하였다. 왕비의 봉황흉배는 봉황 밑에 물결과 바위무늬가 있는데, 공주와 옹주의 봉황흉배는 봉황과 구름만 있는 것으로 그 차이를 두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57.html
kolaswqetsrq 11.02 18:41
■ 내수사 1편

■ 내수사 1편

왕실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의·식·주 나 공식적인 비용은 물론 국가의 공적 기구에서 제공하였다. 하지만, 공적 기구에서 왕실가족에게 배당하는 예산은 부족했고, 공적인 왕실 경비지출은 용도가 제한을 받게 된다. 왕이나 왕족들이 자신의 사회적 관계나 권위 및 품위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개인적인 자금을 공적인 기구를 통해 충당할 수는 없었기에 요즘으로 말하면 비자금이 필요했다.

조선시대 왕의 비자금은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부터 갖고 있던 막대한 토지와 노비에서 비롯되었다. 태조는 왕이 된 후 이를 따로 개인 재산으로 관리하였는데, 조선시대 왕이나 왕실의 재산을 관리한 곳이 내수사(內需司)이다.

최초 만들어졌던 내수별좌(內需別坐)가 1430년(세종 12년) 6월 ‘내수소’라는 관사(官司)로 개편되고, 1466년(세조 12년) 1월 관제 개정 때 내수소가 내수사(內需司)로 확대·개편되었다. 내수사는 《경국대전》에 정5품아문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내시들이 관장하는 기구였다. 내수사는 왕권을 배경으로 전국에 있는 왕의 재산을 관리하고 증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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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왕실 재산을 본궁이라 하였으므로 초창기에는 내수사를 본궁(本宮)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전수(典需:정5품) 1인, 별좌(別坐:정5품·종5품), 부전수(副典需:종6품) 1인, 별제(別提:정6품·종6품), 전회(典會:종7품) 1인, 전곡(典穀:종8품) 1인, 전화(典貨:종9품) 2인 등의 관원을 두되, 별좌와 별제는 합하여 2인을 두었다. 이 관청은 왕실의 사유 재산을 관리하던 곳이기 때문에 전수에서 전화까지 모든 관직은 내관(內官)이 겸하도록 하였고, 체아직(遞兒職:번갈아 직책을 맡음)이었다.
",

내수사는 본래 고려 때부터 내려온 왕실의 재산 및 면세(免稅) 특권을 부여받은 왕실소유의 광대한 내수사전(內需司田)과 외거노비인 내수사 노비 및 염전 등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더욱이 세종대 이후 재산을 더욱 확대하면서 왕실 세력을 배경으로 불법적으로 백성들의 토지와 노비를 침탈하여,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독립적인 재정기구로 성장해 나갔다.

왕실재산이 비대해지고 그에 따라 유발되는 폐해 또한 극심해지자, 성종 이후 ‘군주는 사장(私藏)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유교적 명분론에 입각하여 내수사 혁파 주장이 대두되었으나, 그 때마다 논의에 그쳤을 뿐이었다. 1801년(순조 1년) 한때 내수사의 노비원부를 불태워 내수사 노비를 혁파한 일도 있었으나, 내수사는 폐지되지 않다가 고종 대에 이르러서야 혁파되었다.

내수사는 왕실 재정의 독립적인 공재정화(公財政化)의 필요에 의해 설치되어 법제상 공식 기구로 편제되었지만, 공적 기구로서의 성격을 가지기보다는 왕실 사장(私藏:개인금고)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던 곳이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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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41
■ 왕으로 산다는 것 12편

■ 왕으로 산다는 것 12편

조총이 보급되기 전까지 활은 가장 중요한 전쟁 무기였다. 활쏘기는 조선시대 무사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무술이었으며, 무과의 주요 시험과목이었다. 조선은 태조와 세조가 활을 잘 쏘았던 전통으로 인해 세자의 교육과정에 활쏘기를 넣어 수련하였으며, 왕이 되어서도 궁궐 또는 근교에서 자주 활을 쏘았다. 문(文)을 숭상한 유학자들도 활쏘기를 권장하였는데, 활쏘기와 말타기는 유교의 권장 항목인 육예(六藝)에 속했다.

이는 덕을 기르고 유교적인 사회 질서를 확립하는 데 유용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양반들은 검술, 창술, 봉술, 권법 등은 천시하였지만 궁술은 기본 교양으로 인식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 유교 문화가 확산되면서 왕의 활쏘기는 명분과 예법을 세우기 위한 교육현장으로 이용되었다. 즉 무술보다는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는 예악(禮樂) 쪽으로 중심이 옮겨 간 것이다.

공식적인 왕의 활쏘기는 대사례(大射禮)와 연사례(燕射禮)가 있다. 대사례는 활쏘기를 통해 완력과 덕행을 살펴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고, 연사례는 궁중에서 사사로이 시행하던 활쏘기였다. 대사례는 왕이 신료들과 함께하는 최고의 활쏘기 행사였다. 현재 알려져 있는 왕의 대사례 성적은 양호한 편이다.

중종은 4발을 쏘아 3발을 맞추었고, 영조도 3발을 맞추었으며, 정조는 거의 백발백중이었다. 왕이 4발을 다 쏘고 물러나면 수행한 신하들이 짝을 지어 활쏘기 자리에 올라가 4발의 화살을 쏘았다. 신하가 쏜 화살이 과녁을 맞추면 북을 쳤고, 맞추지 못하면 징을 울렸는데, 활쏘기가 끝나면 왕은 성적에 따라 상이나 벌을 주었다.

왕이 비공식적으로 활을 쏘는 일도 많았다. 대궐 후원이나 정자에 몇몇 신하들을 모아 놓고 가볍게 필요한 시설만 간단히 준비하고 서로의 실력을 겨루었다. 또한 왕은 선왕의 능이나 온천 등을 행차하기 위해 궐 밖을 벗어날 때, 행차 도중 또는 도착지에서 신료들과 함께 활을 쏘았다. 특히 정조는 화성에 자주 행차하였는데, 화성이나 시흥에서 여러 차례 활을 쏘았다.

왕이 살아가는 동안에 훌륭한 업적을 이룩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신료들은 왕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하여 존호(尊號)를 올린다. 왕이 죽으면 그의 일생을 평가하고 공덕을 기리기 위해 시호(諡號)를 짓는다. 우선 중국에서 두 글자의 시호를 받고, 미진한 경우 신료들이 네 글자의 시호를 더 올리는 경우도 많았다.

왕의 삼년상이 끝나고 신주가 종묘에 들어가면 종묘에서 그 신주를 부르는 호칭은 묘호(廟號)이다. 묘호는 신료들이 왕의 일생을 평가하여 공이 많다고 여기면 조(祖)를 붙이고, 덕이 많다고 여기면 종(宗)을 붙여서 두 글자로 지었다. 태조. 성종. 예종. 선조. 고종 등이 모두 묘호이다. 이처럼 왕은 무수한 칭호를 갖는데 이 칭호들은 보통 붙여서 쓴다. 묘호, 중국에서 받은 시호, 존호, 신하들이 올린 시호의 순서로 쓰므로 조선의 왕들은 보통 20~30자의 호칭을 갖고 있다.

세조의 예를 보면, 묘호인 세조(世祖), 명나라에서 받은 시호인 혜장(惠莊), 그 다음에 계유정란으로 대권을 잡은 세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올린 ‘승천체도열문영무(承天體道烈文英武)’라는 존호가 뒤따른다. 그 다음에는 신료들이 올린 시호로 ‘지덕융공성신명예흠숙인효(‘至德隆功聖神明睿欽肅仁孝)’가 붙었다. 그리하여 ‘세조혜장승천체도열문영무지덕융공성신명예흠숙인효(世祖惠莊承天體道烈文英武至德隆功聖神明睿欽肅仁孝)’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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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42
■ 왕으로 산다는 것 11편

■ 왕으로 산다는 것 11편

조선시대 왕에 관련된 언어는 다양하다. 우선 왕이 자신을 지칭하는 언어가 있고, 신료들이 왕을 지칭하는 용어가 있다. 반대로 신료가 왕 앞에서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경우가 있고 왕이 신료들을 지칭하는 경우가 있다. 왕이 신료들을 상대로 자신을 나타내는 말은, 주로 나란 뜻으로 ‘여(余)’라는 말이었다.

왕이 신료를 부를 때는 너라는 뜻의 ‘이(爾)’를 많이 사용했다. 여와 이는 신료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대화할 때 주로 사용하였는데, 다만 대신과 2품 이상의 고위 관료들에게는 ‘경(卿)’이라는 말로 존중해주기도 했다. ‘여’ 이외에 왕이 자칭하는 용어로, ‘과인(寡人)’이나 ‘과궁(寡躬)’은 덕이 부족하다는 뜻이고, ‘과매(寡昧)’는 덕이 부족하고 사리에 어둡다는 뜻이며, ‘불체(不逮)’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왕은 군사훈련, 온천행, 선왕의 무덤 참배, 칙사 영접 등을 위해 수시로 궐 밖으로 행차하게 되는데, 이 왕의 행차에 딸리는 호위 병사들과 수행원, 그리고 의장물의 규모는 행차 목적에 따라 대가(大駕), 법가(法駕), 소가(小駕) 세 가지로 구별되었다. 대가는 왕이 중국의 칙사를 맞이하거나 종묘 사직에 친히 제사드릴 때의 행차로 가장 성대하였다.

대가 행차 때 왕은 면류관과 구장복을 착용하고 대략 1만 명 정도의 인원이 동원되었다. 대가에 비해 규모가 약간 적은 법가는 왕이 선농단, 성균관, 무과 전시 등에 임할 때의 행차였다. 이 때 왕의 복장은 원유관과 강사포였다. 소가는 가장 규모가 작은 행차였다. 주로 능에 참배하거나 평상시의 대궐 밖 행차, 또는 활쏘기를 관람할 때에 이용되었다. 이때 왕의 복장은 군사 훈련과 관련된 융복 차림이 많았다.

왕의 행차에 동원되는 의장물은 노부라고 하는데, 행차의 종류에 따라 대가노부, 법가노부, 소가노부라 하였다. 왕이 행차할 때는 반차도(班次圖)를 그려 수많은 사람들과 의장물의 자리와 순서를 미리 정하였다.

행렬의 맨 앞에는 완전 무장한 수백 명의 군사들이 행진하였다. 갑옷과 무기를 갖추고 위풍당당하게 행진하는 군사들은 왕의 행차를 보호할 뿐 아니라 국왕의 힘을 과시하는 효과를 나타냈다. 행렬의 두 번째는 화려한 깃발과 의장용 창검을 든 의장 행렬이었다. 왕권을 상징하는 옥새와 중국 천자에게서 받은 고명(誥命)을 의장 행렬에 포함시킴으로써 행차의 권위를 더욱 높였다.

행렬의 세 번째는 수십 명이 메는 수레를 탄 왕이 있었다. 왕의 수레 앞뒤에는 커다란 해가리개와 부채, 군악대를 배치하였다. 그 뒤로 종친과 문무백관이 왕을 수행하고, 행렬의 맨 뒤에는 선두와 마찬가지로 군사들이 따랐다.

행렬에서 행진하는 군사 외에 왕의 행차를 보호하기 위해 궁궐부터 목적지까지 곳곳에 매복병을 두었고 연락병들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궁궐과 왕 사이에 수시로 연락을 담당하였다. 왕은 궐 밖에서도 중요한 국정 사안을 직접 지시하고 결과를 보고받았다. 공식 행차를 마치고 환궁하면, 왕은 행차준비로 고생한 관련자들에게 상을 내리는 한편, 행차 도중 직접들은 민원들을 해결하였다. 조선시대 왕의 행차는 나라의 절대 권력자와 현장의 백성들이 직접 만나는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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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42
■ 왕으로 산다는 것 10편

■ 왕으로 산다는 것 10편

조선 초기만 해도 왕들의 여가생활은 몹시 활동적이었다. 태조 이성계나 태종은 틈만 나면 매사냥을 즐겼다. 그러나 왕이 매사냥을 자주 다니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다 하여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매사냥 이외에 왕이 종친들과 즐긴 놀이로 격구(擊毬)가 있다. 온천욕도 빼놓을 수 없는 여가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왕들은 대체로 몸이 약하여 잔병을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부스럼으로 고생한 왕들이 적지 않았는데, 온천욕이 피로를 풀어주고 피부를 회복시키는 데 효험이 있었다. 그러나 왕이 대궐 밖으로 한 번 행차하는 데는 호위병과 수행관료 등을 포함하여 5000명 안팎의 대규모 인원이 동원되어야 한다,

온천행을 자주 즐기는데 너무 거창하고 비용이 많이 들었으므로 현종 때는 서울 부근의 온천수를 대궐로 운반하여 대궐 안에서 온천을 하는 방법도 등장했다.

왕은 보통 10살 전후에 혼례를 치르므로 부부간의 정을 느끼기에는 너무 어리다. 또 왕비는 대체로 정략적인 차원에서 선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애정을 갖기보다는 모범적인 국부와 국모로서 처신해야 한다는 부담이 앞서는 관계가 되기 쉽다. 따라서 왕이 성년이 된 후 연정을 느끼는 대상에는 후궁이 많았다.

왕은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또 아들로서 느끼는 기본적인 인간의 정들이 극도로 억제되고 통제되는 상황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는 국모로 떠받들어지는 왕비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의 왕은 일생을 거치면서 무수한 호칭을 받게 된다. 원칙적으로 왕은 태어날 때 이름을 갖지 않는다. 왕의 적장자로 태어나면 원자가 될 뿐이다. 그러다가 관례를 행하면 자(字)를 받고, 세자에 책봉될 때 이름을 받는다. 관례 때 받는 자(字)는 그 사람이 일생동안 명심해야 할 훈계 또는 축복의 내용을 담은 두 글자로 이루어진다. 예컨대 세종의 자는 원정(元正)이었고, 정조는 형운(亨運)이라 했다.

이름은 세자 책봉 때 받는다. 조선시대에는 이름을 휘(諱)라고 하였는데, 이름은 그 사람 자체를 나타내고 또 그 사람의 운명이 걸린 것으로 보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한 것이다. 따라서 이름 대신 관례 때 받은 자(字), 또는 스승이나 자신이 지은 호(號)를 부르는 것이 예이다. 이런 관습은 왕에게는 더 심하게 적용되었다.

역대 왕의 이름은 함부로 부를 수도 없었으며, 만약 잘못하여 글로 쓰면 큰 벌을 받았으므로 상소문이나 과거시험, 또는 문장을 지을 때 그 글자들을 피해야 했다. 따라서 왕의 이름은 언어생활에서 사용되지 않는 특이한 글자를 쓰거나 아니면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창업이나 반정을 통해 왕이 되거나, 방계로부터 들어와서 왕위를 계승하는 경우 왕이 됨과 동시에 개명하였다.

왕들도 일반 유학자들처럼 자신의 호(號)를 갖는다. 호는 자신이 스스로를 표시하기 위해 붙이거나 스승 또는 친구들이 붙여주는 일종의 별명이다. 정조는 홍재(弘齋)이고, 순조는 순재(純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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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43
■ 왕으로 산다는 것 9편

■ 왕으로 산다는 것 9편

주강(晝講) 이후에는 지방관으로 발령받고 떠나는 신료나 지방에서 중앙으로 승진해 오는 관료들을 만난다. 특히 팔도의 관찰사나 중요지역의 수령들은 왕이 친히 만나 업무를 당부하고 그 지역의 민원을 들어준다.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왕은 야간에 대궐을 호위하는 군사들 및 장교들과 숙직관료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야간 업무를 정해준다.

왕은 해지기 전에 다시 저녁공부인 석강(夕講)에 참석해야 한다. 석강이 끝나면 잠시 휴식을 취한다. 저녁 후에도 낮 동안의 업무가 밀려 있으면 야간집무를 본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대비와 왕대비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공식적인 하루 일과가 끝난다.

왕의 업무일정은 이렇듯 매우 빠듯하다. 이외에도 왕이 참석해야 하는 무수한 공식행사나 국가제례가 있다. 왕이 자기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는 쉽지 않다. 조용히 명상에 잠기거나 독서를 하는 시간은 밤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왕이 챙겨야 하는 업무는 만기(萬機)라고 부르듯이 산처럼 많았다. 병나거나 업무에 싫증을 내서 정사를 돌보지 않으면 결재해야 할 문서가 금새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따라서 훌륭한 왕이 되려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를 뒷받침할 업무능력과 육체적 건강이 요구되었다.

한편 왕이 공식적인 업무에서 벗어날 기회도 있었다. 우선 3정승을 비롯하여 정 1품 이상의 관료가 사망하면 3일간 조정의 업무를 정지했다. 정경 이상의 관료가 죽었을 때는 2일간, 판윤을 지낸 사람의 경우 1일간 조정업무를 쉬었다. 세시풍속 상의 명절에도 휴무하였다.

조선시대 왕의 일상생활은 일 년을 주기로 반복되었다. 농사 짓는 일반 농민들의 생활이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도록 정책적으로 배려하고 격려해야 하는 왕의 일 년 일정에는 농부들의 농사력에 맞추어 농업을 장려하는 행사가 꽤 많이 들어 있다. 정월 초하루에 왕은 새해에도 농업에 힘쓸 것을 당부하는 글을 반포하는데, 이를 권농윤음(勸農綸音)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새해 첫날 왕은 망궐례(望闕禮)를 하였다. 이는 왕이 조정의 신료들을 모아 놓고 북쪽에 있는 중국 천자를 향해 새해인사의 절을 올리는 것이다. 망궐례 이후에는 조상신과 공자에게 인사하기 위해 종묘와 성균관에 행차한다. 그리고 새해인사를 하는 종친들과 신료들을 만난다.

봄의 한가운데인 음력 2월이 되면 농부들은 농사준비로 바빠진다. 이 때 왕은 농민들에게 농사의 시범을 보인다는 의미에서 친경례(親耕禮)를 행한다. 친경은 왕이 직접 밭을 가는 의식인데, 선농단(先農壇)에서 왕이 직접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드린 후에 행해진다. 여름철에는 가뭄과 홍수를 구제하기 위해 국가에서 수많은 제사를 지냈다.

특히 하지가 지나고도 비가 오지 않으면 큰 가뭄으로 간주하여 대대적으로 기우제를 지냈고, 반대로 홍수가 나면 기청제(祈晴祭)를 지낸다. 가을이 되면, 왕도 봄에 친경하고 심은 농산물을 직접 수확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이를 친예제(親刈祭)라고 한다. 또 죽음이 내리는 가을에 맞추어 집행을 미루던 사형수들에게 형집행을 명령한다.

겨울은 농민들이 바쁜 농사일을 쉬는 때이고 모든 생명이 다시 소생할 때를 기다리는 준비의 계절이다. 이때 왕은 도로를 수리하고 성벽을 증축하는 등의 토목공사를 하게 한다. 겨울에 내려야 할 눈이 내리지 않으면 기설제(祈雪祭)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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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44
■ 왕으로 산다는 것 8편

■ 왕으로 산다는 것 8편

왕의 기상 시간은 늦어도 해뜨기 이전이며, 웃어른에 대한 문안인사로 일과를 시작한다. 왕의 하루 일정은 기본적으로 일과 공부의 연속이었다. 아침조회, 국정현안 보고받기, 회의 주재, 신료 접견 등이 공식적인 업무이고, 하루에 세 차례씩 공부를 하였다. 아침 경연 후 아침식사를 하고 조회를 시작한다.

정식조회는 조참(朝參)이라 하며, 매월 5일, 11일, 21일, 25일 대궐의 정전(正殿)에서 백관들이 왕을 알현하는 의식이다. 약식조회는 상참(常參)이라 하며, 중신들과 중요 아문의 당상관, 경연관, 승지, 사관 등이 왕을 알현하는 매일 매일의 의식이다. 조회이후 편전으로 가서 승지들로부터 국정 현안을 보고받는다. 이는 조계(朝啓)라고 하며 사관(史官)이 반드시 동석한다.

승지는 왕의 비서로서, 중앙과 지방에서 올라오는 모든 공문서와 상소문·탄원서 등을 접수해 미리 검토하여 공문서의 처리 방침을 제시하였다. 상소문이나 탄원서의 경우, 비중 있는 인사가 올린 상소문은 왕이 직접 읽고 비답(批答)을 내려주어야 했으므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왕은 공문서에 계자인(啓字印)이라는 도장을 찍어 결재하고, 해당 부서에 내려 보내 시행하도록 하였다.

업무보고를 받고 나면 이어서 윤대관(輪對官)들을 만나야 한다. 윤대관은 각 행정부서에서 왕에게 파견한 관료로서, 이들은 왕을 알현하고 자신들의 부서와 관련된 업무를 보고한다. 윤대관은 하루에 5명 이하로 제한했고, 문신은 6품 이상, 무신은 4품 이상이 담당했다. 또 관료들을 만나 국정을 협의하는 일도 중요하였다.

의정부 대신들을 비롯하여 육조의 당상관, 삼사관료, 그리고 중대 현안에 당면한 부서에서는 수시로 왕에게 면담을 요청하였다. 왕은 이들과 면담하여 국정 현안과 여론의 향배를 듣고 최종 결단을 내렸다. 또 긴급한 사항을 협의하기 위하여 왕이 대신들을 부르는 일도 많았다.

정오 전에 점심을 간단히 하고, 정오에는 바로 주강(晝講)에 참여한다. 왕의 공부는 경연(經筵)이라고 하는데, 경연에는 승지를 비롯하여 홍문관 관원과 의정부 대신들이 참여하였고, 학덕이 뛰어난 학자가 초빙되기도 하였다. 경연은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을 해야 했지만, 보통은 하루에 한 번만 하거나 며칠에 한 번씩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연을 통해 왕은 유교적 식견을 높이고 정치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또 국정 현안에 대해 왕과 신하들 간에 토론을 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

왕을 위한 정식 상차림은 아침과 저녁 수라이다. 두 끼 식사 외에 왕은 새벽에 일어나 죽이나 미음으로 자릿조반을 먹고, 오후에는 국수나 죽으로 간식을 하고, 늦은 밤에는 약식이나 식혜로 밤참을 먹었다. 수라의 기본상은 열두 반찬을 올리는 12첩 반상이며, 수라상을 올릴 때에는 수라상궁 셋이 왕의 시중을 들었다.

왕은 은수저로 수라를 먹었는데, 은은 독이 묻으면 색이 변하기 때문에 음식에 독이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왕이 먹는 모든 음식은 기미(氣味)상궁이 먼저 먹어 보고 안전을 확인한 후 먹게 된다. 왕의 식사가 끝나면 상궁들은 상을 내갔고, 왕이 먹다 남긴 수라는 궁녀들이 함께 나누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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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44
■ 왕으로 산다는 것 7편

■ 왕으로 산다는 것 7편

조선 건국시기부터 친인척의 정치적 참여를 규제하려던 시도는 세종 때에 ‘친친(親親)’이라는 유교 논리에 따라 결정되었다. 친친은 ‘친족을 친하게 한다는 것’으로 그 의리는 4대를 넘으면 없어진다고 보았다.

이 친족의 범위에서 친척이 혹시 직무를 수행하다가 잘못하면 처벌해야 하는데, 이는 의리를 상하는 일이므로 일 자체를 맡겨서는 안된다는 논리였다. 이를 근거로 세종은 왕의 4대 현손(玄孫)까지 모든 정치활동을 금하고, 대신에 이들에게는 종친부의 최고 관작을 수여하였다.

왕의 인척(姻戚)인 사위와 외척은 친척에 비해 그 규제가 약했지만, 왕족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제한을 당하기는 왕의 사위나 장인도 마찬가지였다. 왕의 사위들은 의빈부(儀賓府)의 직위를 받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야 했다. 정치에 개입하거나 정치적 발언을 하면 바로 삼사관료들이 탄핵하였다.

외척은 대비나 왕비 그리고 세자빈의 가문으로 규제보다는 특혜의 측면이 많았다. 외척의 경우 제도적으로 장인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명시적인 규제가 없었고, 8대까지 국가의 관리 대상이었다. 왕의 장인이 되면 영의정과 같은 품계인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를 제수 받았다. 양반들 사이에서 왕의 장인도 정치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국구(國舅:왕의 장인)를 포함한 외척들은 사실상 조선시대 정치권의 실세였다.

왕족은 군역·신분·형사·의례 등 여러 측면에서 특권을 보장받았다. 왕족이 법을 어겼을 때 왕에게서 허락을 받아야 조사에 착수할 수 있었고, 체포 연행 시에도 항쇄(項鎖:목에 거는 쇠사슬)를 채우지 않았다. 조사할 때에는 모반대역(謀反大逆) 이외에는 고문할 수 없었다. 형량도 자신의 범죄에 해당하는 처벌보다 한 등급씩 내려서 형을 받았다.

왕족을 상대로 일반인이 죄를 지으면 3등급을 가중하여 처벌하였다. 그러나 왕족이라도 모반(謀叛:반역)에 연루되면 형사상의 특권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 3대까지 처형되었다. 신분상 특권으로는 천인(賤人)이 되지 않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부모 중 한 사람만 천인이면 그 후손은 무조건 천인이 되는 원칙이 있었으나, 왕의 후손으로 9대 이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면천(免賤)되었다.

왕족은 군역(軍役)도 면제되었다. 특정 왕의 4대 이내 왕족은 종친부의 관직을 받음으로써 군역에서 면제되었다. 또 4대 이후의 왕족도 과거에 합격해 양반 관료가 되면 군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왕족은 특권과 함께 불이익도 있었다. 우선 특정 왕의 현손 이내 자손들은 일체 과거와 양반 관료직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한되었다. 따라서 탁월한 정치적 재질을 가진 사람은 불우한 일생을 살아야 했다. 또 이들은 원칙적으로 거주지역이 한양에 제한되었다.

한양을 벗어나 지방을 횡행하면서 왕족이라는 신분을 악용해 민폐를 끼칠 우려가 있고, 은밀한 곳에서 반란을 도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왕족이 한양을 떠나려면 출발 날짜, 도착지, 돌아 올 날짜 등을 상세히 기록하여 왕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왕의 허락으로 지방에 머물 때도 그 지역의 수령은 1년에 두 차례 동정을 살펴 보고해야 하였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몰래 지방을 다녀오면 중벌을 내리고, 그 지방 수령도 연대 책임을 물어 파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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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45
■ 왕으로 산다는 것 6편

■ 왕으로 산다는 것 6편

고려 때까지는 왕자들이 중앙의 정치·군사조직과 지방의 행정조직의 상층부를 모두 장악하였다. 또 고려 왕실은 왕자와 부마가 모두 동성(同姓)으로 사실상 같은 혈통이었으며 적서의 차이도 없었다. 그러나 조선의 건국 과정을 통해 몸소 골육상잔(骨肉相殘)의 비극을 체험한 태종은 왕권을 안정시키고 혼란을 막는 길은 왕자와 부마들로부터 실권을 빼앗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대신 이들에게 최고의 명예직과 경제적 부를 약속하였다. 이에 태종이 확립한 제도가 남성 위주의 적서(嫡庶)제도였다.

조선시대 왕의 자녀들은 아들과 딸, 그리고 적자와 서자에 따라 국가적 대우가 달랐다. 왕의 정부인인 왕비가 생산한 자녀들이 적자(嫡子)이다. 이들은 아들이면 대군(大君), 딸이면 공주(公主)에 봉해졌다. 왕의 후궁들이 출산한 자녀들은 서자(庶子)로서 군(君)과 옹주(翁主)가 된다. 왕의 아들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종친부의 명예직인 작위를 받고 국가에서 녹봉을 받는다.

대군과 공주와 옹주의 경우에는 적당한 시기가 되면 왕명에 의해 대군, 공주, 옹주에 봉해졌다. 이에 비해 서자인 군(君)들은 보통 7살이 되면 군에 봉해졌다. 세자가 아들을 낳으면 10살에 왕손(王孫)으로 봉작(封爵)했다. 대군·군·공주·옹주 등은 품계가 없었다.

이는 왕의 아들이 명분상 신료보다 상위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왕의 아들과 사위들은 능력에 상관없이 주어진 명예와 경제적 부에 만족하면서 일생을 조용히 지내는 것이 일신(一身)의 안위(安慰)를 지키는 지름길이었다.

이들에 대한 대우에도 차이가 있어, 녹봉의 경우 대군(大君)은 쌀11석에 포21필, 군(君)은 쌀 107석에 포 21필이었다. 과전법에 의한 토지지급도 대군(大君)은 225결, 군(君)은 180결이었다. 복장의 장식도 대군(大君)은 기린흉배, 군(君)은 백택(白澤)흉배를 하였다. 배우자의 경우 왕의 며느리로써 같은 외명부 정1품의 작위를 받았으나,

대군(大君)의 처는 부부인(府夫人) 군(君)의 처는 군부인(郡夫人)에 봉작되었다. 그밖에도 집의 넓이나 호위병의 수 등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왕의 사위들도 간택을 통해 선발하였는데, 왕의 사위가 되면 정치에 간여할 수 없으므로 일부러 너무 훌륭한 인재를 선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왕의 사위들도 공주의 남편은 의빈부의 종1품 위(尉)를 받았고, 옹주의 남편은 종2품의 위(尉)를 받았다. 종1품의 위는 88석의 곡식과 20필의 포를, 종2품의 위는 76석의 곡식과 19필의 포를 받았고 집의 크기에도 차별이 있었다.

조선시대 왕의 친인척은 일정한 범위까지 국가에서 파악하여 예우하거나 규제하여 국가 차원에서 관리되었다. 왕의 친인척 집단 중에서 특별 관리된 범위는, 친척(親戚)인 왕친(王親)과 인척(姻戚)인 외척(外戚)이었다. 이들은 왕의 가까운 친인척으로서 당시 최고의 권력집단이었으며, 왕의 가장 믿음직한 후원 세력이자 잠재적인 경쟁상대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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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46
■ 왕으로 산다는 것 5편

■ 왕으로 산다는 것 5편

세자의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면 의관을 정제하고 왕과 왕비 또는 대비에게 문안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문안인사를 다녀오면 아침식사를 하고 세자시강원의 관료들의 지도로 바로 조강(朝講:아침공부)을 시작한다. 아침공부가 끝나면 점심을 먹고 주강(晝講:낮공부)과 석강(夕講:저녁공부)을 이어서 하였다.

석강이 끝나면 저녁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시 웃어른에게 인사하러 간다. 이것이 공식적인 세자의 일과이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변화 없이 계속 반복된다. 하루 종일 공부를 하거나 그밖에 말타기, 활쏘기, 붓글씨 등 육예(六藝)를 연마하였다.

《주자가례》에 의하면 관례(冠禮:어른이 되는 예식)는 15~20세 사이에 치르도록 되어 있으나, 세자는 이 규정을 무시하고 원자책봉 후에 곧바로 관례를 행했다. 이는 원자로 책봉된다는 사실 자체가 성인으로서의 책무를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관례는 유교식 성인의식인데, 어른의 표시로 관(冠)과 성인복장을 착용하게 하고, 이름과 평생 명심해야 할 훈계 내용을 고려하여 자(字)를 지어준다. 관례를 행하는 장소는 대궐 밖의 나이 많은 종친 주인집이다. 관례가 끝나면 이어서 왕에게 인사하고 종묘에 고했다. 혼례는 대체로 10세 안팎인 세자시기에 치렀다. 혼례를 치른 세자는 정부인인 세자빈 이외에 공식적으로 소실을 둘 수 있었다.

세자는 예비왕일 뿐이다. 따라서 세자로 있을 때에는 철저하게 자신의 주제를 지켜야 한다. 세자가 정치에 간여하거나 인사에 개입하게 되면 바로 삼사 관료들의 탄핵이 뒤따르게 된다. 또한 왕은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세자는 아들이 아니라 정적(政敵)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세자가 정치에 간여할 수 있는 기회는 아예 없다. 그러나 세자가 대리 청정하는 상황이 있기도 한다.

첫째는 왕권에 위협을 느낀 왕이 마지못해 대리청정을 명하는 경우이다. 계속 흉년이 들거나 전쟁이 발발하면 흉흉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세자가 대리청정하거나 왕이 전위(傳位)하겠다는 경우가 있다. 임진왜란 때의 광해군과 영조 때의 사도세자, 순조 때의 효명세자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때 세자의 입장은 몹시 위험하다.

모든 영광은 왕에게 돌아가지만 반대로 조금의 허물이나 실정이 있으면 세자의 책임이 된다. 이와 달리 노년의 왕을 대신하거나 병중의 왕을 돕기 위해 대리청정을 할 때에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세자의 입장에서는 미리 정치를 경험하는 셈이 되고, 왕도 왕권에 부담이 되지 않는 한 굳이 허물을 찾지 않는다. 세종의 경우 말년에 격무(激務)를 덜기 위해 세자(후의 문종)에게 약 5년간 대리청정을 시켰다.

세자는 대리청정 기간 중에 왕을 대신하여 왕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지만 전권(專權)을 휘두르는 것은 아니다. 우선 세자는 자신이 처리해야 할 중요사항을 일일이 왕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야 한다. 또한 신하들도 왕과 세자 사이에서 처신을 조심하여야 한다. 비상사태가 해결되면 대리청정은 취소되고 세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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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으로 산다는 것 4편

■ 왕으로 산다는 것 4편

원자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보양청(保養廳)이 설치되어 공식적으로 원자의 보호와 양육을 담당하였다. 보양관(輔養官)이 책임자이며, 종2품 이상의 고위관료 3명이 임명된다. 원자가 먹을 음식과 입을 옷 그리고 서책의 공급과 관리 등을 관장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원자의 보호와 양육을 담당한 것은 보양청이었지만, 사실상의 양육은 왕비와 유모 그리고 궁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원자가 영아(嬰兒)기를 지나 글을 배울 때쯤인 네 살 정도가 되면 보양청은 강학청(講學廳)으로 바뀌면서 교육을 담당할 관리들이 임명된다. 보통은 2품 이상인 보양관들이 그대로 사부(師父)로 임명되지만, 학덕이 뛰어난 사람이 추가되기도 한다. 원자 강학청의 교육은 《소학(小學)》 《천자문(千字文)》 《격몽요결(擊蒙要訣)》 등을 이용한 유교교육이 중심이 되었다, 수업은 매일 아침, 낮, 저녁 각 세 번을 했으며, 수업시간은 대략 45분가량이었다. 원자에게는 보통 하루에 교재의 본문 한 글자를 교육했다.

조선시대 세자책봉은 후계구도를 확정짓는 의미를 가진다. 세자 책봉례(冊封禮)는 원자를 세자로 책봉한다는 임명서를 수여하는 의식이다. 조정의 백관(百官)들을 모아놓고 책봉례를 거행한 후 바로 종묘(宗廟)에 이 사실을 고하고 팔도에 알린다. 세자 책봉례 장소는 대궐 정전(正殿) 앞이다.

문무백관과 종친들이 자신들의 지위에 따라 늘어서고, 그 앞에서 왕은 세자에게 죽책문(竹冊文)·교명문(敎命文)·세자인(世子印)을 전해준다. 죽책문은 임명장이고, 교명문은 세자에게 당부하는 훈계문이며, 세자인은 세자를 상징하는 도장이다.

원자를 세자로 책봉하는 임명권자는 왕이지만, 사후(事後)에 형식적으로 중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세자는 책봉된 직후 성균관 입학례를 행한다. 성균관에 가서 공자에게 절하고 교수관인 박사(博士)에게 제자의 예를 행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고, 실제로 입학하는 것은 아니다.

세자의 교육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서 담당하고, 호위는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가 담당하였다. 세자의 교육을 위해 당연직으로 영의정이 세자의 사(師)가 되고, 좌의정과 우의정 중에서 한 명이 부(傅)로, 종 1품의 찬성 한 명이 이사(二師)로 임명된다. 그러나 세자를 실제 담당 교육하는 사람들은 보덕(輔德) 이하의 전임관료들이다.

세자시강원의 전임관료는 정3품의 보덕1명, 정4품의 필선(弼善) 1명, 정5품의 문학(文學)1명, 정6품의 사서(司書)1명, 정 7품의 설서(設書) 1명 등 5명이다. 이들은 모두 문과에 합격한 가문 좋고 실력이 뛰어난 참상관들이다.

왕의 후계자로 예정된 세자의 역할은 단순하다. 열심히 공부하고, 아침저녁으로 부모에게 문안 인사하는 것이 전부이다. 만약 이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거나, 또는 자신의 주제를 넘어서면 절대 권력자인 왕과 부딪치게 되고 폐세자(廢世子)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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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47
■ 왕으로 산다는 것 3편

■ 왕으로 산다는 것 3편

조선시대 왕위 계승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는 적장자(嫡長子) 계승의 원칙으로 왕비가 낳은 첫째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상속 원칙이었다. 둘째는 덕이 있는 사람이 왕이 된다는 원칙이다. 적장자에게 왕위를 계승한다는 것은 왕자들 간의 다툼을 방지하고, 후계자를 미리 교육시켜 장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적장자가 무력하거나,

적장자보다 둘째나 셋째 아들이 유능한 경우 정국(政局)은 늘 쿠데타의 가능성으로 불안했다. 또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후궁들만 아들이 있는 경우 이들 사이의 치열한 암투로 정치 불안이 가중되었다.

조선에서 적장자가 왕위에 오른 경우는 27명의 왕 중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등 7명뿐이다. 이 외에 적장자로 세자 책봉은 되었으나 왕위에 즉위하지 못한 경우도 7명이나 있었다. 세조의 큰아들 덕종, 명종의 순회세자, 인조의 소현세자, 순조의 큰아들 문조는 왕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세종의 아들 양녕대군이나 연산군과 광해군의 세자는 폐세자(廢世子)되었다.

반면 적장자가 아니면서 왕이 된 경우는 태조를 제외하고 19명이나 되었다. 이는 덕이 있다는 명분이거나 후궁의 아들인 경우이다. 조선의 개국 시조(始祖)인 태조는 물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과 인조, 셋째아들로 왕위에 오른 세종 그리고 임진왜란 후의 광해군 등이 그들이다.

세조와 효종 그리고 영조도 정치적 격변을 겪고 왕이 될 수 있었다. 이외에도 후궁의 아들로 왕위에 오를 경우 대부분 격렬한 궁중 암투를 겪었다. 특히 대비가 후계자로 지명한 선조나 철종은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왕이 되었기 때문에 당시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왕이 아들을 보는 것은 종사(宗嗣)가 걸린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아들을 얻기 위해 왕과 왕비는 길일을 택해 합방하고, 아들을 가지는데 좋은 음식을 가려 먹는 등 갖가지 노력을 하고, 그 결과 임신하면 왕비는 본격적으로 태교(胎敎)에 들어간다. 왕비의 만삭이 다가오면 예정일 서너 달 전에 산실청(産室廳)이 설치된다. 원자(元子)가 탄생함과 동시에 왕은 소격전(昭格殿)에 명하여 사흘간 아들의 복을 빌게 하였다.

왕이 몸소 소격전을 찾아와 절을 하며 첫 아들의 만복(萬福)을 기원한다. 아기의 탯줄은 어머니와 조상을 이어주는 생명의 통로로 여겨져 소중히 보관되었다. 원자가 탄생하고 사흘이나 7일째가 되면 태를 물로 씻는 의식, 즉 세태(洗胎)를 행한다. 물로 씻은 태는 항아리에 담아두었다가 명당을 골라 안장하는데, 이를 태봉(胎峰)이라 했다.

태와 함께 산실에 깔았던 고운 짚으로 만든 산(産)자리도 소중하게 보관된다. 출산 당일 권초관(捲草官)은 산자리를 붉은 줄로 묶어서 산실문 밖 위쪽에 걸어 놓아 민간의 금줄을 대신했고, 7일째에 권초관이 산자리를 붉은 보자기에 쌓아 함에 넣어 주면 내자시(內資寺:궁내의 식품·직조·연회 등을 맡은 관청)의 관리가 받아다가 권초각(捲草閣)에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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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48
■ 왕으로 산다는 것 2편

■ 왕으로 산다는 것 2편

조선시대 왕이 내리는 여러 가지 행정처분은 왕의 행정권에 속한다. 기존 행정조직의 통폐합, 새로운 기구의 설치, 행정구역 변경, 세금 증감, 관료 증감(增減) 등의 행정조치가 이에 해당된다. 왕이 정사(政事)를 결정할 때는 의정부(議政府) 중신들과 의논하여 결정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에는 비변사회의로 바뀌었다.

비변사에서는 의정부 대신과 6조의 판서 그리고 삼사(三司) 관료들이 합좌(合坐)하여 정사를 논의하고 인사를 결정하였다. 조선시대는 전국에 걸쳐 국가행정조직이 정비되었는데, 최 말단(末端)에 존재하는 각각의 호(戶)로부터 면(面)·군(郡)·도(道) 그리고 중앙정부에 이르기까지 중앙집권적인 행정망이 형성되었다. 각 지역에서 발생하는 각종 민원이나 비상사태는 이 행정망을 통해 왕에게 보고되는 시스템이 갖추어 진 것이다.

군대를 동원하거나 전쟁을 선포하는 등의 권한도 물론 왕에게 있었다. 왕은 군통수권자일 뿐만 아니라 군사 동원, 군역 자원 징발 등을 가진다. 조선은 농업사회였기 때문에 16세에서 60세 사이의 일반 농민들이 군역(軍役)으로 군사력에 편성되었고, 왕은 상황에 따라 이들의 군역을 면제하거나 연기해 줄 수도 있었다. 병조판서나 각도 관찰사. 절도사. 방어사 등 군권을 겸임하는 관료와 조선후기의 어영청. 금위영 등 5군영 장수들도 왕이 임명하거나 파면하였다.

또한, 왕은 국가를 대표하여 다른 나라와의 외교(外交)를 수행했다. 조선시대의 외교는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정책과 일본이나 여진을 상대하는 교린(交隣)정책을 추구했다. 매년 정기적으로 중국에 네 차례 사신을 보내고 예물로서 조공을 바쳤다. 정월 초하루의 정조사(正朝使), 동지축하의 동지사(冬至使), 중국 황제 생일 때 성절사(聖節使), 중국황태자 생일의 (千秋使)가 정기사신이었다.

그밖에 국가의 중요한 일이나 일본 등의 첩보가 있을 때 진주사(進奏使)를 보냈다. 중국에 사신을 보낸 후 왕은 망궐례(望闕禮:‘궐’자가 적힌 나무패에 절함)를 하면서 중국황제에게 절을 올렸다. 중국에서 사신이 올 때도 왕이 직접 교외(校外)에 나가 영접하였다. 그러나 일본과 여진에 대해서는 왕이 직접 접대하지 않았고 최소한의 외교관계만 유지하였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왕은 행정권·입법권·사법권 등 세속적 권력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절대 권력자였다. 그러나 왕이 전횡(專橫)을 일삼는 폭군이 되는 길은 막아야 한다. 우선 조선시대의 왕은 유교이념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유교이념을 파괴한 연산군이나 광해군은 폭군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반정군에 의해 축출을 당한 예(例)가 있다.

당연히 전제적(專制的) 왕의 출현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현실적 요소들이 존재하였고, 양반 관료들도 유교교리를 내세워 왕의 전횡을 제약(制約)했다. 결국 조선시대의 왕은 유교교리에 입각하여 이를 솔선수범해야 하고, 양반 관료들을 통제하면서도 이들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정치적 기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하여 중앙 집권적인 양반관료제가 실현되어 왕의 명령은 잘 짜여진 행정조직을 통하여 지방 구석까지 전달되고 이행되는 것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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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48
■ 왕으로 산다는 것 1편

■ 왕으로 산다는 것 1편

유교정치에서 왕은 우주의 덕을 구체화시킨 신성한 존재이다. 만물을 다스리는 존재가 하늘이듯이 하늘을 대신하여 인간사회를 다스리는 존재가 왕이다. 이러한 왕의 지위는 왕에게 절대적 권력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는 현실적인 무능을 질타받을 수도 있다.

조선시대의 왕은 절대 권력자로 행정권·입법권·사법권 등 모든 세속적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러한 권력을 가진 왕은 백성과 토지의 주인으로서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다는 것도 의미한다. 왕은 국가재정을 좌우하기도 한다. 특정지역에 대한 세금감면이나 긴급지출 등의 왕의 명령은 그대로 이행되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사치나 향락을 위하여 국가재정을 탕진하는 왕이 생겨나기도 했다.

조선시대 왕의 인사권은 양반관료의 임명·파면·승진·전보 등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통해 왕은 양반 관료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5품 이하의 사(士)는 대간(臺諫)의 임명동의인 서경(署經)을 거쳐 인사담당관 이조와 병조에서 왕명을 받아 교첩(敎牒)을 주어 발령하였고, 4품 이상인 대부(大夫)는 왕명으로 직접 교지(敎旨)를 내려 임명하였다. 대신들은 전임 대신들의 추천으로 임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선시대 왕은 최고 입법자이기도 했다. 왕의 명령을 수교(受敎)라고 하는데, 수교는 조선시대 성문법(成文法)의 기초가 되었다. 즉 왕의 명령을 모아서 수교집록(受敎輯錄)을 만들고, 이것을 분류하여 정리하면 바로 법전(法典)이 되는 것이다. 조선 최고의 법전(法典)인 《경국대전》도 왕의 명령인 수교와 각 행정부서의 등록(謄錄)을 이전. 호전. 예전. 병전. 형전. 공전의 여섯 부분으로 분류하여 정리한 것이다.

《경국대전》 이후 《속대전(續大典)》 《대전통편(大典通編)》 《대전회통(大典會通)》 등도 왕의 수교를 분류하여 《경국대전》에 첨부한 것이었다. 그런데 경국대전은 그 내용이 대부분 국가 행정기구와 그 운용에 관련되는 행정법이라고 할 수 있고, 형법에 관해서는 《대명률(大明律)》이 있다. 다만 대명률이나 경국대전에도 없는 범죄에 대해서는 왕이 이에 대한 판결과 처벌을 내린다. 이런 판례(判例)가 쌓이면 한 권의 법전이 될 수 있는데, 조선후기의 《사송유취(詞訟類聚)》나 《결송유취(決訟類聚)》가 이에 해당한다.

조선시대 민형사상의 판결권은 최종적으로 왕에게 있다. 왕은 유교국가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거나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죄인을 직접 심문하고 처벌하였으며, 사형수와 같은 중범죄인들의 최종판결 뿐 아니라 민형사상의 민원도 해결하였다.

지방 수령이나 관찰사가 내린 판결에 불만을 품은 백성들이 상소(上訴)나 격쟁(擊錚:억울한 사람들이 왕의 행차 길에 꽹과리를 쳐서 호소하던 일)을 통해 왕이 직접 판결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라에 큰 가뭄과 홍수가 들거나 경사가 있을 때는 죄인들을 사면해 주기도 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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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49
■ 왕비의 친잠례親蠶禮

■ 왕비의 친잠례(親蠶禮)

왕비는 유교 국가의 여성 대표로서, 밖으로는 사회 전체의 음덕(陰德)을 진흥시키고 안으로는 궐내 내명부를 통솔하였다. 왕비가 행하는 대표적인 의식 중 여성 노동의 상징인 뽕따기와 길쌈하기를 장려하는 행사가 있다. 이 중 잠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왕비가 친히 행하는 의식을 친잠례라고 한다.

조선 전기에는 잠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전국에 잠실을 두었는데, 한양에도 동잠실과 서잠실을 두어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쳤다. 궁궐 안의 넓은 후원에도 뽕나무를 많이 심었다. 경복궁과 창덕궁의 후원에 설치한 잠실을 내잠실(內蠶室)이라고 하였는데, 왕비는주로 이곳에서 친잠례를 하였다. 친잠례를 하기 전에 누에의 신인 선잠(先蠶)에게 제사를 올렸다. 선잠을 모신 곳이 선잠단(先蠶壇)인데, 조선 초기에 동소문(혜화문) 밖에 있다가 후에 선농단(先農壇) 있는 곳으로 옮겼다.

선잠단 제사는 다른 사람을 보내 대신 행하거나 왕비가 친잠하는 장소에 별도로 선잠단을 쌓고 직접 제사를 지냈다. 왕비가 뽕을 딸 장소에는 채상단(採桑壇)이라는 단을 쌓았다. 채상단을 쌓은 후 잔디를 심고 주변에 휘장을 쳐서 다른 곳과 구별하였으며, 왕비와 수행 여성들이 머무를 천막을 쳤다.

왕비와 수행 여성들이 뽕을 따고 누에를 치기 위해서는 광주리, 갈고리, 시렁, 잠박(蠶箔), 누에 등이 필요했다. 왕비가 딴 뽕을 담기 위한 도구인 광주리는 대나무를 쪼개어 엮어 만들었고, 지팡이 모양의 갈고리는 기다란 뽕나무를 당기기 위한 도구이다. 시렁은 잠판을 놓기 위한 구조물이고, 잠박은 누에를 키우는 깔자리로 대나무로 만들었다.

시렁 위에 잠판을 놓고 그 위에 다시 잠박을 놓은 후 누에를 놓아기르는데, 때에 맞춰 뽕잎을 따서 누에에게 주었다. 친잠례 때 왕비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왕세자빈을 비롯하여 내외명부의 여성들이었다. 내명부는 1품 이상, 외명부는 당상관 이상의 부인들이 선발되었다.

친잠할 장소에 도착한 왕비는 우선 선잠단에 제사를 올린 후 채상단 옆의 천막으로 이동하여 일상복인 황색 국의(鞠衣)로 갈아입었다. 왕비는 채상단의 남쪽 계단을 이용해 단으로 올라가 다섯 가지의 뽕나무 잎을 딴 후 광주리에 넣었다. 이후에는 수행 여성들이 채상단 주의에서 뽕잎을 따기 시작하는데 1품 이상은 일곱 가지, 그 이하는 아홉 가지를 땄다. 왕비는 이 모습을 채상단의 남쪽에서 관람하였다.

왕비와 수행 여성들이 딴 뽕잎을 누에가 있는 곳으로 가져가는데, 이때는 왕비 대신 왕세자빈이 수행 여성들을 거느리고 갔다. 누에를 지키고 있던 잠모(蠶母)는 이 뽕잎을 잘게 썰어서 누에에게 뿌려 주었다. 누에가 뽕잎을 다 먹으면 왕세자빈이 다시 수행여성들을 거느리고 왕비에게 돌아왔다. 직접적인 친잠 행사는 여기까지이고, 이후에는 왕세자빈 이하 모든 여성들의 수고를 위로하기 위한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를 위해 왕비와 수행 여성들은 다시 평상복을 예복으로 갈아입었다. 예복을 차려 입은 왕비가 채상단에 오르면 수행 여성들은 왕비에게 네 번 절을 올렸고, 연회가 끝나면 왕비는 다시 의장물을 갖추어 내전으로 환궁하였다. 궁중에서는 왕이 왕비를 위해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그리고 대소 신료들은 친잠을 위해 고생한 왕비에게 글을 올려 축하와 감사를 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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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50
◇ 누가 ‘공공기관 개혁’을 공약할 건가

◇ 누가 ‘공공기관 개혁’을 공약할 건가

‘정풍(整風)’은 ‘흐트러진 사회 기풍을 바로잡음’이라는 뜻의 명사다. 올해 정기국회 국정감사를 보면서 이 단어가 자주 머리에 맴돌았다. 여기저기서 쏟아진 공공기관 실태 고발은 이제 가까스로 선진국 문턱에 이른 이 나라의 어느 한 부분이 벌써 심각하게 곪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정풍이란 단어가 맴돈 건 그래서다.

LH 임직원 투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공공기관 문제는 이미 국감 이전에 국가 차원의 시스템 고장으로 부각됐다. LH는 국민 주거 환경 개선이라는 설립 목적에 따라 공공방식으로 택지를 개발해 양질의 주택을 값싸게 공급하는 게 주업무 중의 하나다. 전국 각지의 택지개발 대외비 정보가 취급되는 만큼, 직원들에겐 철저한 보안과 내부정보의 사적(私的) 이용 금지가 당연한 제1 업무강령이다.

하지만 LH 임직원들은 보안은커녕 마치 동호회활동이라도 하듯 끼리끼리 개발정보를 공유하며 아예 투자펀드와 부동산개발회사까지 만들어 불법 투기를 일삼았다. 공직자가 부동산시장을 망가뜨린 주범으로 타락한 것이다.

가관인 건 국감에서 드러난 공공기관 해이가 결코 LH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공공기관은 수익보다 공익 추구가 우선이지만, 손실이 누적되면 결국 혈세가 투입되므로 최소한의 수지 개념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석유공사는 완전자본잠식 상태에서도 적자가 급증해 8,300억 원에 산 페루 석유회사를 28억 원에 적자매각 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임직원들의 고액 ‘연봉잔치’는 계속돼 왔다. 5년간 사장과 임원 등 억대 연봉자가 지속 증가하고, 직원 평균연봉이 9,000만 원을 넘어섰을 정도다.

물론 공공기관도 유능한 인재가 필요하므로 높은 연봉을 줄 수 있다. 다만 급여를 올리려면, 조직을 효율화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공기업 직원 평균연봉이 8,000만 원을 넘어섰는데도 생산성 향상은 아예 외면한 채 무턱대고 공공기관 고용만 늘렸다. 그 결과 2016년 67조8,000억 원이던 공공기관 지원금이 99조4,000억 원으로 무려 32조 원이나 늘리는 ‘재정 해이’가 자행됐다.

경영의 기본이 흔들리는 건 이미 기강 해이가 시스템 전반에 번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 방증은 이번 국감에서도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임직원들의 성비위, 수의계약, 자녀학자금 부정 수령 등 전방위로 되풀이 지적됐다.

문제는 공공기관 해이가 입만 열면 공정과 정의를 앞세웠던 현 정부에서 수그러들기는커녕 되레 더 만연하게 된 원인이다.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는 얼마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인기 없는 정책들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련스럽게 했던 대통령”이라고 촌평했는데,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그런 우직함이 있었다.

공무원연금개혁을 비롯한 우직한 개혁조치 중 하나가 공공기관 개혁이었다. 고질적 방만경영을 없애는데 초점을 두고 경영평가시스템을 일신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는 공공기관 노조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집권 즉시 공공기관 개혁조치를 단숨에 폐기했다. 효율과 생산성보다 ‘사회적 가치 실현’을 내세웠고, 일자리 늘려 고용실적 올리면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줬다.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연금개혁이나 노동개혁 등 ‘다수로부터 욕먹을 개혁’은 거의 뒤로 미뤘다. 그 결과 공공기관은 이제 누구도 시비를 걸기 어려운 신흥기득권의 성역이 된 것이다.

이번 정부가 못 한다면 다음 정부는 나서야 한다. 양극화 해법을 못 내는 대선후보는 ‘사회의 적’이다. 마찬가지로 공공기관과 공공개혁을 외면하는 대선주자는 ‘국가의 적’이다. 누가 외면하고, 누가 공약할지 지켜볼 것이다.

-한국일보 장인철 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237.html
kolaswqetsrq 11.02 18:51
◇ 탈레반의 스포츠 정치, 크리켓으로 시작하나

◇ 탈레반의 스포츠 정치, 크리켓으로 시작하나

아프가니스탄 인기 스포츠인 남자 크리켓이 탈레반 집권 이후 첫 국제대회를 치른다. 아랍에미리트 등에서 열리는 ‘2021 크리켓 T20(트웬티 트웬티) 월드컵’이 무대다. 국제크리켓평의회(ICC) 랭킹 8위인 아프가니스탄은 예선을 거치지 않고 본선(총 12개 팀)에 직행했고, 25일 예선 B조 1위 통과 팀과 첫 대결을 펼친다.

19세기 영국에 의해 전파된 크리켓이 아프가니스탄에 뿌리내린 것은 1990년대다. 파키스탄의 난민 캠프에서 크리켓을 접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귀국하면서 널리 퍼졌고, 2001년에는 대표팀이 구성됐다.

이후 급성장한 아프가니스탄 크리켓은 2010년 처음으로 T20 월드컵에 나갔고, 이번 대회까지 총 5번 월드컵 무대에 선다. 2017년에는 국제크리켓평의회 106개 회원국 중 12개 나라에 국한된 정회원이 됐다. 정회원은 한번 경기에 3시간 정도 걸리는 T20, 하루가 걸리는 ‘원데이 인터내셔널’(ODI), 4~5일 걸리는 ‘테스트 매치’를 소화할 수 있는 나라다.

탈레반은 1996~2001년 첫 통치 때 스포츠 활동을 억압했다. 이슬람 율법에 바탕을 둔 사회 질서를 강요한 그들은 여자들의 스포츠 활동을 금지했고, 남자 스포츠에서도 상당한 통제를 가했다. 경기장을 처형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지난 8월 재등장한 탈레반은 달라졌다. 새롭게 임명된 아프간 스포츠 최고 책임자는 외신에서 크리켓을 포함한 400개 종목의 스포츠를 허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프가니스탄크리켓협회는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표팀 훈련 상황을 트위터로 알리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크리켓대표팀을 이끄는 남아공 출신의 랜스 클루즈너 감독은 “탈레반이 협력적이고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엄청난 변화”라고 말했다. 클루즈너 감독은 조만간 아랍에미리트 현지에 훈련 캠프를 차려 선수들을 직접 지도할 예정이다.

문제는 여성 스포츠다. 탈레반은 여자 크리켓대표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여자팀이 해체되면 남자팀을 친선경기에 부르지 않겠다는 압박이 국제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회원 자격도 박탈된다. 탈레반의 스포츠 정치가 크리켓을 통해 시험대에 섰다.

-한겨레 유레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466.html
kolaswqetsrq 11.02 18:51
◇ 오빠. 치맥 먹방 대박, 영어가 됐다...옥스퍼드 사전에 우리말 26개

◇ 오빠. 치맥 먹방 대박, 영어가 됐다...옥스퍼드 사전에 우리말 26개

영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전인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OED)이 최신판에서 한꺼번에 한국어 단어를 26개나 표제어로 추가했다. 그만큼 한국 문화 저변이 최근 급속도로 세계에 확산한 결과다. OED를 발간하는 옥스퍼드대 출판부-옥스퍼드 랭기지(Oxford Languages)는 이런 소식을 최근 공표했는데 심지어 한글로 작성한 보도자료는 이를 “정말 ‘대박(daebak)!’이다”라고 평가했다.

옥스퍼드랭기지는 이날 사전 최신판에 26개 신규 등재를 포함해 35개 이상의 새로운, 혹은 수정된 한국어 단어가 올라간다고 발표했다. 아예 한국어 표제어를 ‘K-단어’로 분류한 옥스퍼드랭기지는 이 보도자료에서 OED에 수록된 가장 오래된 한국어인 ‘Korean’의 등재 역사부터 짚었다.

“원래는 ‘Corean’으로 표기되었던 것이 K의 Korea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였는데 같은 시기에 Korean은 ‘한국어’를 의미하는 명사로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Korean’은 1933년 처음으로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었고 이번 판에서 완전 개정이 이루어졌다.

영어 단어 Korea와 Korean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왕국의 이름인 한국어 단어 ‘고려(Goryeo 혹은 Koryŏ)’에서 왔다. 고려는 1392년 ‘조선’으로 1897년 ‘한’으로 바뀌었지만 영어를 포함한 다른 언어에서는 ‘고려’를 기반으로 한 형태가 지속해서 사용되었다.”

OED는 이어 한류가 확산하면서 Korean이 K로 축약돼 다른 명사들과 결합해서 한국이나 한국의 대중문화와 관련된 명사를 형성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단어인 K-pop이 1999년 빌보드 잡지에 처음 등장했으며 OED에는 2016년 등재됐다고 짚었다.

이어 “K-pop과 K-drama(로맨틱 장르인 ‘사랑의 불시착 Crash Landing on You’이나 역사 좀비 스릴러 장르인 ‘킹덤 Kingdom’과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의 팬들은 제목이 무엇이든 K-drama는 어떠한 장르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의 성공은 지금 너무나 널리 퍼져 있어서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이름으로 옥스퍼드 사전에 막 등재됐다”며 한류를 뜻하는 ‘hallyu’와 ‘Korean wave’가 OED에 정식 등재됐음을 밝혔다.

아울러 OED는 한국의 전통 의상인 ‘hanbok’과 한국의 무술인 ‘Tang Soo Do’도 표제어로 새로 올라갔다고 밝혔다. 한국의 문자 이름인 ‘Hangul’, 한국 전통 음악과 시의 이름인 ‘sijo’, 널리 퍼진 한국 무술인 ‘taekwondo’는 이번에 개정이 이루어진 표제어라고 OED측은 설명했다.

다양한 한글 호칭도 OED에 새로 등재됐다. OED측은 “‘noona’는 남성이 손위 여성 동기간이나 나이 많은 여성 친구를, ‘oppa’는 여성이 손위 남성 동기간이나 나이 많은 남성 친구 혹은 남자 친구를, ‘unni’는 여성이 손위 여성 동기간이나 나이 많은 여성 친구를 부르거나 지칭할 때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오빠’ 등이 세계적인 관심을 얻어 OED에 등재된 것에는 K-pop, K-drama 열풍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OED측은 “‘oppa’와 ‘unni’는 한국 밖에서 사용될 때 주목할 만한 변화를 겪어왔다”며 “K-pop이나 K-drama 팬들은 ‘unni’를 자신의 성별과 무관하게 그들이 좋아하는 한국 여성 배우나 가수를 부를 때 사용한다.

반면에 동남아시아에서 ‘oppa’는 매력적인 한국 남성, 특히 유명한 배우가 가수를 부를 때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요 용례로 이민호, 박서준, 이종석, 지창욱 등 한류스타가 ‘ultimate oppas’로 명명된 2021년 초 트위터 글을 인용했다.

이밖에도 OED측은 ‘PC bang’, ‘skinship’ 등을 사전에 추가했다. 스킨십에 대해선 “보통 대부분 부모와 자식, 연인 사이나 친구 사이의 신체적인 접촉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애정을 표현하거나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해 주는 방법으로 간주된다”며 “K-drama 팬들이 좋은 스킨십 장면이 있는 시리즈를 추천하거나 K-pop 팬들이 좋아하는 그룹의 멤버 사이의 최신 스킨십 디스플레이를 쏟아내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나날이 외국에서 인기가 늘고 있는 한국 음식 역시 대거 OED에 추가됐다. 김치와 함께, banchan(반찬), samkyeopsal(삼겹살), galbi(갈비), kimbap(김밥) 등이 새로 등재됐다. 치맥에 대해선 “chikin의 chi-와 maekju의 maek-이 결합한 이 단어의 사용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프라이드치킨과 맥주의 조합은 2014년 K-drama ‘별에서 온 그대’로 인해 한국 밖에서 유명해지게 되었다.

한국 배우 전지현이 연기한 주인공이 지속해서 치맥을 갈구하고 또 먹으면서 한국 프라이드치킨의 대유행이 중국과 그 이외의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분석했을 정도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40만 개 넘는 단어를 수록한 세계 최대, 최고 권위의 사전이다. 1857년 편찬이 시작된 뒤 1928년 초판 완성까지 71년이 걸렸다. 이 작업에 동원된 언어학자만 1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6.html
kolaswqetsrq 11.02 18:52
◇ 공무원 초과 근무수당, 이제 변해야 한다

◇ 공무원 초과 근무수당, 이제 변해야 한다

최근 전국공무원노조 간부들 여럿이 회사를 찾아왔다. 기사와 관련한 항의방문이었다. 언론사에는 종종 있는 일이건만, 유독 씁쓸한 여운이 남았다.

사연은 이랬다. <한겨레>는 9월23일치 1·4·5면에 서울시내 25개 구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얻은 올해 상반기 구청별 초과근무수당과 관내출장여비 지급 실태를 분석 보도했다. ‘송파 공무원들 ‘수상한 출장’ 사라지지 않았다’, ‘카드만 찍어도 야근 인증...송파 주민센터 월 79시간 초과도’, ‘하루평균 2시간반...관리감독 허술 틈타 ‘묻지마 수당’ 쌓기’ 같은 기사들이었다.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태는 놀라웠다. 서울시 전체 구청 공무원들의 월평균 초과근무시간은 35시간이었다. 한달(평일) 21~23일 근무할 경우, 하루 평균 1시간 반꼴인 셈이다. 공무원들 초과근무는 하루 1시간은 공제하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야근시간은 2시간 반이란 얘기다.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송파구청은 그 정도가 가장 심했다. 1인당 월평균 초과근무시간이 53.8시간으로 은평구(24.9시간)와 도봉구(26.3시간)의 두배 수준이었고, 월평균 출장여비 수령액도 26만원으로 구로구(8만원)의 세배가 넘었다. 코로나19로 하루 4시간, 한달 57시간이라는 제한이 없어지자, 주민센터 직원들까지 한달 7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를 신고했다. 기본공제 1시간을 더하면, 매일 자정 다 돼 퇴근했다는 얘기였다.

기사가 나간 뒤 반향은 뜨거웠다. 정부 차원에서 대책이 논의됐고, 포털 등에는 수천개씩 댓글이 달렸다. 원색적인 비난도 있었지만 “사회복무하면서 봤는데 관례처럼 월에 받을 수 있는 최대 출장수당을 전 직원한테 채워줬음. 업무상 실제로 출장 나가는 사람도 몇 있긴 했지만 대부분이 사무실에 앉아 행정업무 보는데도 출장을 내고 과장이 자연스럽게 결재해줬었음”(ninano****), “지인이라 말은 안 했지만...

퇴근해서 밥 먹고 쉬다가 카드 찍으러 가는 사람 본 적 있음. 수당이 꽤나 쏠쏠하다고 자랑까지 했는데”(jsyw****), “내 친구는 10년 전에 초과근무수당 받겠다며 차도 샀다. 퇴근했다가 저녁 9~10시쯤 다시 구청으로 출근하더라”(nanc****) 같은 고발성 댓글이 유독 많았다.

같은 시각, 공무원노조 송파구지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도 불이 났다. 보도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초과근무 인증에 카드를 허용하지 않고 중간인증을 도입하는 등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인터뷰한 총무과장을 두고 “후배는 개뿔 1도 생각 안 하지”, “누릴 거 다 누린 ××” 같은 인신공격성 비난도 넘쳐났다. 야근 중간인증은 절대 안 된다, 지문인증은 인권침해라는 글도 여럿이었다.

항의방문 온 공무원노조도 “기사가 공익성과 균형성을 상실”했으며 “공무원노조와 소통 없이 일방적인 기사가 나”왔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공익성과 균형성이야 시각이 다를 수 있겠으나, 취재 과정에서 통화한 송파구지부장은 ‘지부 의견이나 입장은 없다’며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물론, 공무원들 항변도 일리는 있다. 초과근무 1시간이 기본공제되고, 상한(하루 4시간, 한달 57시간)도 정해져 있다. 액수도 주간 시급의 1.5배를 받는 일반 직장인과 달리 8887원(9급)~1만4215원(5급)에 불과하다. 하지만 규정이 불합리하면 개정에 힘을 쏟아야지, 허위로 야근·출장을 신고하는 게 답일 수는 없다. 또 부당수령이 일상화된 상황에서는 제도 개선 요구가 힘을 얻기도 어렵다.

당시 기사를 내보낼 때도,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가장 우려되는 건, 실제 많은 야근과 출장으로 고생하는 공무원들이다. 노고에 격려는커녕 부정한 집단의 일원으로 매도됐다며 힘 빠지고 억울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께는 진심 죄송하다. 하지만 이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라도 거저 수당을 받아가는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

다행히 그런 싹은 내부에서도 자라나고 있는 듯하다. 보도가 나간 날 공무원노조 송파구지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댓글 가운데 하나다.

“이제 변해야 한다. 돈이 다는 아니다.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자.”(아이디 ‘공무원’)

-한겨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640.html
kolaswqetsrq 11.02 18:53
◇ 전운 감도는 대만해협

◇ 전운 감도는 대만해협

중국이 미사일로 대만을 위협했던 1990년대 중반 제3차 대만해협 위기 때 미국을 향한 가장 높은 수위의 발언은 핵공격 엄포였다. 당시 인민해방군 슝광카이 부총참모장은 “만약 미국이 대만에 개입하면 중국은 핵미사일로 로스앤젤레스를 파괴할 것”이라며 “미국은 타이베이보다 로스앤젤레스를 걱정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비슷한 발언을 2005년 인민해방군 국방대학 주청후 방무학원장도 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총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스태브리디스 전 미 해군 대장이 공저로 낸 소설 ‘2034 미중 전쟁’에서 이런 이야기를 다룬다. 전장은 대만해협이 아니고 남중국해다. 중국이 미 구축함을 격침시키고 사이버 공격으로 미국의 전력을 상당 정도 무력화한다.

결국 미국이 함대지 미사일로 광둥성 장장을 핵 공격하고 이에 맞서 중국은 샌디에이고, 갈베스톤 등 미국 서부 도시에 핵 미사일을 쏜다. 다시 반격에 나선 미국의 상하이 핵 공격으로 3,000만 명이 희생된 뒤 인도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전쟁이 수습된다는 내용이다.

책을 낸 뒤 스태브리디스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미중 전쟁을)2050년쯤으로 상정했지만 분석을 해가는 동안 13년 뒤의 일로 기간이 짧아졌다. 그런데도 군 관계자나 정책 담당자들은 \좋은 소설이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며 \더 빨리 현실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더라"는 것이다.

대만 주변 정세가 악화하고 있다. 중국은 국경절인 지난 1일부터 나흘째 매일 대만 방공식별구역 안으로 전투기 등 수십 대를 띄워 위협하고 있다. 일부 관영지는 “중국은 대만과 미국의 협력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전쟁은 실제”라고 했다. 이에 대해 대만 외교부장은 “중국이 전쟁을 일으키면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사 항전 의지를 말한다.

마침 그 시각 필리핀해에서는 미국 영국 일본 등 6개국 항모전단이 군사훈련 중이었다. 초유의 본격적인 핵 전쟁을 상정한 스태브리디스의 픽션에서 관련국 모두가 영감을 얻기를 바란다.

-한국일보 지평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526.html
kolaswqetsrq 11.02 18:54
삼천갑자 동방삭三千甲子 東方朔 - 18만년을 산 동방삭, 장수하는 사람의 비유

삼천갑자 동방삭(三千甲子 東方朔) - 18만년을 산 동방삭, 장수하는 사람의 비유

석 삼(一/2) 일천 천(十/1) 갑옷 갑(田/0) 동녘 동(木/4) 모 방(方/0) 초하루 삭(月/6)

우리 옛 설화 ‘삼년고개‘는 지역 곳곳서 전래되고 교과서에도 실린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장에 갔다가 고개 넘어 귀가하던 중 잘못 넘어졌다. 그 고개는 넘어지면 삼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제 삼년밖에 못 산다고 식구들 모두 걱정이 태산인데 옆집 총각이 와서 ’한번 더 구르면 삼년 더 살겠네요’ 한다. 옳다구나 여긴 할아버지는 고개에 가서 구르고 또 굴러 오랫동안 살았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어떤 설화에는 할아버지가 구를 때 공중에서 ‘동방삭도 여기서 천 번을 굴렀다’하는 말이 들렸다고 한다. 장수의 상징 東方朔(동방삭)까지 가미되어 삼년고개가 장수고개가 된 셈이다.

동방삭은 중국 前漢(전한)때의 실존 인물이다. 그의 장수의 수식어가 된 三千甲子(삼천갑자)는 1갑자가 60년이니 18만년이다. 서기전 154년 출생으로 이제 220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설화 속의 이야기지만 서방의 玉山(옥산)에 사는 西王母(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몰래 삼켰기 때문에 불사의 몸이 되었고, 삼천갑자의 수명대로라면 아직 유아기인 셈이다.

실제로는 서기전 93년에 사망했는데 班固(반고)가 20년에 걸쳐 완성한 ‘漢書(한서)’의 동방삭전에는 변론에 뛰어났고 해학과 임기응변에 능하여 武帝(무제)의 총애를 받은 것으로 나온다.

무제가 널리 인재를 구한다고 공표하자 기지 넘치는 동방삭이 장문의 소를 올렸다. 자신은 일찍 글을 배워 44만자를 알고 키는 9척이 넘는데다 ‘용맹하기는 맹분과 같고 민첩하기는 경기와 같고, 청렴하기는 포숙에 비유되고 신임을 지키기는 미생과 같으니(勇若孟賁 捷若慶忌 廉若鮑叔 信若尾生/ 용약맹분 첩약경기 염약포숙 신약미생)’ 자신이 대신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떠벌려 관심을 받았다.

비교한 사람은 모두 春秋時代(춘추시대)에 그 방면의 위인이었다. 여러 재주를 지닌 동방삭은 발탁이 된 뒤 단순한 익살꾼을 넘어 황제의 사치에 대해 간언하고 부국강병책을 건의도 하는 등 활약했다.

동방삭은 그러나 황제가 재주꾼으로만 여겨 고위직에는 오르지 못했다. 불만이 있더라도 잘못된 일에 재미있게 비유하여 건의를 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삼년고개 설화도 삼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을 역으로 해석하여 계속 넘어지게 한 이웃집 총각의 총기가 신선하다.

개인사나 더 큰 나라의 일도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비관적인 전망만 해서는 제자리걸음 아니면 후퇴가 기다린다. 긍정적인 면을 찾아 앞날을 내다보는 파격도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8.html
kolaswqetsrq 11.02 18:55
상옥추제上屋抽梯 - 지붕 위에 올려 사다리를 치우다, 적을 유인하여 사지에 빠뜨리다.

상옥추제(上屋抽梯) - 지붕 위에 올려 사다리를 치우다, 적을 유인하여 사지에 빠뜨리다.

윗 상(一/2) 집 옥(尸/6) 뽑을 추(扌/5) 사다리 제(木/7)

나무에 열려 있는 과일을 따 달라고 꾀어 올려준 뒤 흔들어댄다. 조건을 걸어 꾄 뒤 위험한 곳이나 불행한 처지로 떨어뜨리는 고약한 사람이다. 이런 뜻의 성어가 勸上搖木(권상요목)이고 乘木搖之(승목요지)다. 우선 달콤한 조건으로 유인하여 차버리는 사기꾼 수법은 높은 다락에 사람을 올려놓고서 사다리를 치워버리는 上樓擔梯(상루담제)다.

위에 갇힌 사람은 오도 가도 못하고 죽을 맛이다. 단 이 말은 자기만 올라가 온갖 이익을 독차지하기 위해 딴 사람을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치워버린다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지붕 위에 올라가게 한 뒤(上屋) 사다리를 치워버린다(抽梯)는 말은 옛날 중국의 용병술을 모아놓은 병서 "三十六計(삼십육계)"의 하나다. 전법의 하나라고 하니 그럴듯한데 적을 유인하여 사지에 빠뜨리거나 상대방을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하여 주도권을 잡는 방법이다.

맞붙어 싸울 때의 계략인 倂戰計(병전계) 중에서 제28계인 이것은 빈틈을 보여 적을 유인한 뒤 후속부대와 차단하여 포위 섬멸한다. 강한 상대에게 주로 이 법을 쓰는데 달콤한 미끼와 주도면밀한 계획이 없으면 성공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春秋戰國(춘추전국) 시대의 전략가 孫武(손무)가 엮은 걸출한 병법서 ‘孫子兵法(손자병법)’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지형에 따른 아홉 가지의 공격과 방어를 설명한 九地(구지)편에서다. ‘장수가 병사들과 함께 결전을 벌이고자 한다면, 마치 높은 곳에 올라가 사다리를 치워버리는 것처럼 한다(帥與之期 如登高而去其梯/ 수여지기 여등고이거기제).‘ 三國志(삼국지)에서 劉表(유표)의 아들 劉琦(유기)가 자신의 나아갈 길을 가르쳐 달라고 諸葛亮(제갈량)을 높은 누각에 초청하여 결국 방책을 받았다. 이것은 다락에 가둬 비책을 압박하려 역이용한 경우였다.

적을 물리치기 위한 병법으로는 비겁해도 모든 수단이 합당하다. 자신부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단 이것을 약자에 강요하고 먹을 것이 많은 높은 곳엔 선택된 자들만 있어야 한다면 손가락질 받는다.

오늘날에는 가뜩이나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렵다고 기가 죽어 있는데 이미 승천한 사람이 행복한 붕어와 개구리로 살 필요도 있다고 하여 거센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이런 몰지각한 지도층 말고 지붕에 올라가 오도 가도 못할 상황에 부닥쳤을 때 절박감으로 대안을 찾게 된다면 역경에 대처하는 경쟁력을 기를 수도 있다는 역발상도 가져봄직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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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55
진선진미盡善盡美 - 선을 다하고 아름다움을 다함.

진선진미(盡善盡美) - 선을 다하고 아름다움을 다함.

다할 진(皿/9) 착할 선(口/9) 다할 진(皿/9) 아름다울 미(羊/3)

늘씬한 미인을 선발할 때 보통 眞善美(진선미)의 순서로 등위를 매긴다. 진은 인식능력인 知性(지성), 선은 실천능력인 意志(의지), 미는 심미능력인 感性(감성)을 나타낸다고 하지만 이런 것의 순위는 정할 수가 없이 모두 아름다움으로 뽑을 것이다. 여기 나오는 진선은 참된 眞(진)과는 거리가 멀고,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盡善), 더할 나위없는 아름다움(盡美)을 가리킨다. 모든 것에 대해 완전무결을 나타내 盡善完美(진선완미)라고도 한다.

孔子(공자)는 예와 이치만 따지는 근엄한 학자일 뿐만이 아니라 음악에도 정통했다. 詩經(시경)을 정리하며 통달했고 잘 부르는 사람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으며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비평도 곧잘 했다. 무엇보다 멋진 음악을 듣고 어찌나 감동했던지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잃을 정도(三月不知肉味/ 삼월부지육미)였다고 하니 알만하다.

공자가 35세 되던 해에 魯(노)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나 齊(제)나라로 일시 피신했는데 그곳에서 舜(순)임금 때의 음악이었던 韶(소)를 들은 뒤였다. 述而(술이)편에 실려 있는 감탄이다. ‘음악의 아름다움이 이처럼 지극함을 내 일찍이 생각하지 못했다(不圖爲樂之至於斯也/ 부도위악지지어사야).’

공자가 순임금의 소와 周(주)나라 武王(무왕)의 음악인 武(무)를 듣고 비교한 말에서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이란 말이 나온다. 八佾(팔일, 佾은 줄춤 일)편에 있다. ‘소에 대해 말하기를 정말로 아름답고 진실로 착하구나 했고, 무에 대해서는 미의 극치를 이루었지만 진실로 착하지는 않다(謂韶 盡美矣 又盡善也 謂武 盡美矣 未盡善也/ 위소 진미의 우진선야 위무 진미의 미진선야).’

미는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이고 선은 아름다움을 만들어주는 근본을 말한다. 堯(요)에 선양받은 순임금과 紂王(주왕)을 몰아낸 무왕을 음악에까지 연상시킨 평가였다.

미를 이루는 근본이 선이란 생각은 음악에까지 녹아 있으니 사람에게는 말할 나위 없겠다. 천성이 착한 사람은 절로 인품이 빛이 나고, 소비자를 먼저 생각한 기업이 만든 제품은 누구에게나 환영받는다. 노동력을 착취해서 제품을 값싸게 만들었더라도 사실을 알고서는 모두들 외면하게 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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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56
당랑포선螳螂捕蟬 - 사마귀가 매미를 잡다, 눈앞의 위험을 모르다.

당랑포선(螳螂捕蟬) - 사마귀가 매미를 잡다, 눈앞의 위험을 모르다.

버마재비 당(虫/11) 사마귀 랑(虫/10) 잡을 포(扌/7) 매미 선(虫/12)

여름의 더위가 매서워서인지 도심에서도 매미가 애끊어질 듯 울어댄다. 교외의 밤은 개구리와 함께 시끄럽게 울어 蟬噪蛙鳴(선조와명, 噪는 지저귈 조)이겠지만 매미는 온갖 탁하고 더러운 곳에서 허물을 벗고 나와 목숨을 다할 때까지 노래를 부르다 간다. 그래서 西晉(서진) 때의 문학가 陸雲(육운)은 매미를 가리켜 文淸廉儉信(문청염검신)의 五德(오덕)이 있다고 노래했다.

매미가 나오는 성어 중에 재미있는 것 중 하나가 당랑포선이다. 사마귀가 매미를 덮치려고 엿보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뒤에 참새가 자신을 엿보고 있음을 몰랐다는 얘기다. 눈앞의 이익에만 팔려 뒤에 닥칠 위험을 깨닫지 못할 때 쓰는 말이다. 螳螂은 모두 사마귀를 뜻하는데 이 미물이 들어가는 성어에는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螳螂拒轍(당랑거철), 螳螂之斧(당랑지부) 등 심오한 것이 많다.

같은 말이 나오는 곳은 여럿이다. 어느 날 莊子(장자)가 사냥을 나갔을 때 까치가 날아와 밤나무에 앉았다. 화살을 겨누었는데 자세히 보니 까치는 풀잎에 앉은 사마귀를 잡으려 하고 있었고, 사마귀는 나무에서 울고 있는 매미를 노리고 있었다. 장자는 모두 이익 앞에 자신의 본모습을 잃는 것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 그곳을 빠져나왔다. 外篇(외편)의 山木(산목)에 실려 있다.

춘추시대 吳(오)나라 壽夢(수몽)왕은 국력이 강해지자 楚(초)나라를 공격하려 했다. 유리할 것이 없어 주변서 모두 제지하려했지만 듣지 않아 한 시종이 꾀를 냈다. 활과 화살을 들고 궁전의 정원을 사흘째 돌아다니다 왕과 만나게 되었다. 무엇을 하느냐고 묻자 답한다. ‘정원 나무 위에 매미가 있었는데 노래 부르느라 뒤에서 노리는 사마귀를 보지 못했고 또 사마귀는 참새가 잡아먹으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참새는 또 아래의 화살이 보일 턱이 없어 모두 이들은 자기 이득을 얻는 데만 정신이 팔려 위험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왕은 크게 깨닫고 초나라를 공격하려던 생각을 포기했다. 前漢(전한) 때 劉向(유향)이 지은 ‘說苑(설원)’의 正諫(정간)편에 나온다.

매미가 겨울의 눈은 알지 못하는 蟬不知雪(선부지설)의 좁은 견문밖에 없지만 이들의 어리석음을 잘 새겨 치밀한 계획으로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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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57
봉법수직 奉法守職- 법을 받들고 직책을 잘 수행하다.

봉법수직 (奉法守職)- 법을 받들고 직책을 잘 수행하다.

받들 봉(大/5) 법 법(氵/5) 지킬 수(宀/3) 직분 직(耳/12)

중국 正史(정사)의 최고봉으로 치는 司馬遷(사마천, 기원전 145년~86년)의 ‘史記(사기)’는 많이 인용되는 故事(고사)의 보고로 문학적인 가치도 높다. 제왕과 제후의 연대기인 本紀(본기)와 世家(세가)보다도 더욱 많이 읽힌 것이 70편에 이르는 개인의 활약상 列傳(열전)일 것이다.

첫 등장의 伯夷(백이)처럼 개인의 행적을 내세웠는데 循吏(순리), 儒林(유림)처럼 여럿을 묶어 열전을 만든 것도 있다. 뛰어난 기지와 해학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쳤던 인물을 滑稽(골계)열전에 모은 것도 그 하나다. 법을 받들고(奉法) 직책을 잘 지켜(守職) 수행해야 바른 세상이 된다는 성어는 優孟(우맹)을 언급한 곳에 나온다.

우맹은 春秋時代(춘추시대) 楚(초)나라 莊王(장왕)때에 풍자에 능했던 배우였다. 키가 8척에다 뛰어난 말솜씨로 웃으면서 풍자하고 간언했다. 장왕이 아끼는 말이 죽자 대부의 예로 장례를 치르라는 명을 내렸을 때 더 후하게 군왕의 예로 장사지내야 한다고 하여 잘못을 바로 잡았다.

장왕을 패왕으로 이끈 현명한 책사이자 대부인 孫叔敖(손숙오)는 우맹이 어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잘 대해 주었다. 손숙오는 병으로 죽을 때 아들을 불러 가난을 면치 못할 터이니 그때는 우맹을 찾으라고 유언했다. 과년 몇 년 뒤 대부의 아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어 땔나무를 해서 팔아야 할 정도였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가 이른 대로 우맹을 찾았다.

우맹은 손숙오의 의관을 하고 몸짓과 말투를 흉내 내어 모두들 대부가 살아 돌아왔다고 여길 정도였다. 얼마 후 장왕의 연회 때 우맹이 축수를 하자 깜짝 놀라며 재상을 맡기려 했다. 사흘이 지나고 부인과 의논한 우맹은 청렴한 대부 손숙오의 아들은 송곳조차 세울 땅(立錐之地/ 입추지지)이 없다고 했다고 하면서 노래한다.

‘청렴한 관리가 되려고, 법을 받들어 맡은 직분을 지키며(念爲廉吏 奉法守職/ 염위염리 봉법수직)’ 죽을 때까지 나쁜 일을 하지 않아도 처자식이 가난한데 그러한 관리는 할 것이 못된다고 대답했다. 장왕은 크게 깨닫고 손숙오의 아들을 불러 봉읍을 하사하고 후대까지 제사를 모시게 했다.

우맹이 손숙오의 의관을 하고 왕을 깨우친 고사는 優孟衣冠(우맹의관)이란 성어로 전한다. 아무리 우맹이 그럴듯하게 차렸어도 손숙오가 될 수는 없어 似而非(사이비)한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가짜가 진짜를 몰아내고 더 판을 치는 세상에 그것을 풍자하여 바로 잡는다면 이런 사이비는 바람직하다.

나중에 부작용이 생겨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정책이 종종 있어도 처음부터 나쁜 의도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두고 보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밀고 나가다 걷잡을 수 없을 지경까지 간다. 법을 바로 지키려면 우맹의 꼬집는 지혜도, 받아들이는 아량도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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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58
군이부당群而不黨 - 여러 사람과 어울려도 패당 가르지는 않다.

군이부당(群而不黨) - 여러 사람과 어울려도 패당 가르지는 않다.

무리 군(羊/7) 말이을 이(而/0) 아닐 불, 부(一/3) 무리 당(黑/8)

사람은 독불장군으로 살 수 없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어울려 살아야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남의 도움도 안 받는데 하며 꼿꼿이 지내기만 하면 배척당한다. 그런데 함께 살더라도 무리를 지어 패당을 만들면 분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지만(群而) 사사로운 개인의 정으로 누구에게 편들거나 빌붙지 아니한다는 것(不黨)이 이 성어다. 孔子(공자)님 말씀이다.

끼리끼리 모여 사적인 이익을 취하거나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가르침은 ‘論語(논어)’의 곳곳에 나오는데 그만큼 군자의 몸가짐을 강조했다. 패당을 가르지 말라는 성어가 실린 衛靈公(위령공)편의 부분을 보자.

‘군자는 자긍심을 지니지만 다투지는 않고, 여럿이 어울리지만 편당을 가르지는 않는다(君子矜而不爭 群而不黨/ 군자긍이부쟁 군이부당).’ 긍지를 가지는 자긍심은 자기 몸을 닦아 사리에 어긋나게 하지 않으므로 다툴 필요가 없다. 여러 사람과 조화롭게 지내지만 치우치는 것이 없으므로 편당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비슷하면서 가장 유명한 말이 子路(자로)편에 나오는 和而不同(화이부동)이다. ‘군자는 조화롭게 사람들과 화합하지만 무턱대고 동화하지 않고, 소인은 동화되지만 화합하지는 못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爲政(위정)편에는 周而不比(주이불비)가 나온다.

‘군자는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서도 무리를 짓지 않고, 소인은 무리를 지어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군자주이불비 소인비이부주).’ 군이부당이나 화이부동, 주이불비 등 맥락은 한가지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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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8:58
불감기우不堪其憂 -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다, 가난한 생활로 걱정하다.

불감기우(不堪其憂) -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다, 가난한 생활로 걱정하다.

아닐 불(一/3) 견딜 감(土/9) 그 기(八/6) 근심 우(心/11)

가난이 수치스럽지는 않아도 생활하기에는 불편하다. 빈곤에 관한 수많은 성어 중에서 의식주를 나타낸 하나씩만 들어보자. 해진 옷을 깁고 신발은 구멍 난 衣結屨穿(의결구천, 屨는 짚신 구), 아침에는 냉이를 저녁에는 소금을 먹는 朝虀暮鹽(조제모염, 虀는 냉이 제), 쑥으로 만든 문에 깨진 항아리의 창문을 단 집 蓬戶甕牖(봉호옹유, 牖는 들창 유) 등이다.

하나같이 과장이 있겠지만 우리나라도 이러한 상태를 몇 세대 전엔 겪었다. 사람에게 가난은 너무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이라 점잖게 말해도 당하는 자의 속만 긁을 따름이다.

그런데 가난을 아주 초연하게 받아들인 사람이 있다. 빈한하면 누구나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걱정을 이겨내지 못할 텐데(不堪其憂/ 불감기우) 예외가 孔子(공자)의 수제자 顔回(안회)였다. 顔淵(안연)이라 자로도 많이 불린 그는 가난한 생활을 이겨내고 학문을 즐겨 도를 실천하면서 道家(도가)에서도 높이 평가받아 顔子(안자)로 칭송되었다.

공자가 안회의 빈궁한 생활을 훌륭하게 이겨내는 모습이 ‘論語(논어)’ 雍也(옹야) 편에 나타나 있다. 대나무 그릇에 담은 밥과 표주박에 든 물이라는 뜻의 청빈하고 소박한 생활을 나타내는 簞食瓢飮(단사표음)이 유래한 곳이다. 簞은 소쿠리 단, 먹을 食(식)이 이 때는 밥 사. 顔貧一瓢(안빈일표)란 말로도 남았다.

공자가 칭찬하는 부분을 보자.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동네에 살게 되면(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일단사 일표음 재누항), 보통 사람들은 그 근심을 이겨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이 변치 않는구나(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인불감기우 회야불개기악)!’ 안회에 대한 공자의 찬사는 가난을 이겨내는 자세에 있다는 것을 述而(술이)편에서도 설명한다.

팔을 구부려 베개로 삼는 曲肱而枕之(곡굉이침지)의 가난한 생활을 하더라도 ‘의롭지 못하게 얻은 부귀는 나에게는 뜬구름만 같다(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고 나타낸 것이 그것이다.

가난을 아무리 미화하려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은 못 죽어 산다는 사람이 많다.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며 生口不網(생구불망)이라고 앞 세대에선 그럭저럭 살아왔는데 세계 10위권의 발전을 이룬 오늘날에도 격차가 더 커져 빈곤층은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1인가구의 노인 세대에는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중에서 상위권을 내려놓지 못한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로 나몰라 하지는 않겠지만 좀 더 세심한 제도로 노년과 모자가구 등 빈곤층을 도와 최소한 의식주엔 걱정을 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591.html
kolaswqetsrq 11.02 18:59
단이감행 귀신피지斷而敢行 鬼神避之 - 뜻한 바를 과감하게 실행하면 귀신도 길을 비켜준다.

단이감행 귀신피지(斷而敢行 鬼神避之) - 뜻한 바를 과감하게 실행하면 귀신도 길을 비켜준다.

끊을 단(斤/14) 말이을 이(而/0) 감히 감(攵/8) 다닐 행(行/0) 귀신 귀(鬼/0) 귀신 신(示/5) 피할 피(辶/13) 갈 지(丿/3)

한 가지 일에 꾸준히 노력을 기울이면 못 이룰 일이 없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고, 愚公(우공)이 대를 이으면 산까지 옮긴다고 磨斧作針(마부작침)이나 愚公移山(우공이산) 등 숱한 성어가 내려온다. 쉬우면서도 가슴에 와 닿는 말로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무슨 일이든 못 이룰 일이 없다(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일도 하사불성)’라는 명구가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뜻한 바를 용감하게 밀고 나가면(斷而敢行), 귀신까지도 피하여 달아남으로써(鬼神避之) 일을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좋은 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중국 간신의 대명사 趙高(조고)가 음모를 밀고나갈 때 쓴 말이라 꺼림칙한데 이제는 좋은 뜻으로 받아쓴다.

중국 秦始皇(진시황)이 처음 통일의 대업을 이룩하게 된 이면에는 李斯(이사)를 승상으로 임명한 것에 있다. 楚(초)나라 법가 사상가인 이사는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완비하는데 큰 업적을 남겼다.

泰山不辭土壤(태산불사토양)이라며 타국의 인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사였다. 하지만 그에게 오욕의 이름이 더 크게 남은 것은 문화말살 정책인 焚書坑儒(분서갱유)를 주도했고, 진시황의 사후에 제위를 장남 아닌 胡亥(호해)를 옹립하려 한 환관 조고의 음모에 못 이긴 척하며 가담한 행위였다.

‘史記(사기)’ 이사 열전에 조고가 말한 성어의 내용이 나온다. 진시황이 순행 중 맏아들 扶蘇(부소)에 보내는 편지를 맡기고 세상을 떠나자 수행하던 조고가 사실을 숨기고 어리석은 호해를 구슬렸다. 처음에는 호해가 형을 내치고 아버지의 명을 받들지 않으면 천하가 복종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조고는 작은 일에 구애되어 큰일을 잊으면 후일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며 잇는다. ‘과감히 결단을 내려 행동하면 귀신도 이를 무서워 달아나고 뒤에 반드시 성공합니다(斷而敢行 鬼神避之 後有成功/ 단이감행 귀신피지 후유성공).’ 호해를 설득한 뒤 이사에게도 승상 자리에 물러나면 영화가 사라진다며 강요하여 승낙을 받았다.

호해가 2세 황제가 된 뒤 조고는 指鹿爲馬(지록위마)의 간계로 전권을 장악하고 이사도 요참형에 처했다. 이후 조고도 물론 제위에 오르려다 3세 子嬰(자영)에게 삼족을 멸하는 벌을 받았다.

목적을 위해 꾸준히 앞으로 나가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은 좋다. 불의의 온갖 음모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성취를 이뤘지만 조고와 같이 얼마 안 가서 나락의 길을 걸을 수 있다. 귀신도 무서워 할 정도로 단호하게 일을 처리하는 태도만 본받을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170.html
kolaswqetsrq 11.02 19:00
■ 행주대첩 4편

■ 행주대첩 4편

독왕산성은 물이 귀한 곳이었는데, 왜군은 이 사실을 알고 독왕산성에 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한 달간 성을 포위하면서 지구전을 펼쳤다. 야사에 의하면 당시 권율은 독왕산성에 물이 귀한 것을 감추기 위해 쌀로 말을 씻는 시늉을 하게 했다.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본 왜장(倭將) 우키타는 성내(城內)에 물이 풍부하여 말을 씻기는 것으로 알고 의기소침하여 포위를 풀고 한성으로 후퇴하였으며, 이때 권율은 일본군의 퇴각로를 알아내 정예 기병 1천명을 먼저 매복시켜 퇴각하는 일본군을 공격했다.

 "
권율의 병사들은 나머지 왜군도 추격하여 3천명 이상의 전사자를 만들었다. 이 소식을 들은 선조는 권율에게 어검(御劍)을 하사하여 군률(軍律)을 세울 수 있게 권위를 부여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조는 권율의 병법(兵法)을 높이 치하하면서 독왕산성 정상에 세마대(洗馬臺:말을 씻긴 곳)를 짓게 하여 오늘에 이른다. 지금의 수도권 전철 1호선 역 중 하나인 ‘세마(洗馬)역’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세마(洗馬)라는 말 자체가 말을 씻는다는 뜻으로 독왕산성은 세마역 근처에 있다.
",

권율이 수원을 지키는 동안, 개전 이래 평양까지 일사천리로 진군했던 일본군은 명나라의 참전으로 평양에서 개성으로, 또 개성에서 한양으로 퇴각을 거듭하는 형편이었다. 그 뒤 명나라에서 지원군 선발대가 도착하자 권율은 이들과 합세하여 한양도성 탈환을 준비했다. 독산성(禿山城)에서 일본군을 격파한 권율은 일본군 눈을 피해 수원 독왕산성으로부터 한성부 근처 서쪽 가까이로 병력을 옮기기로 한다. 그는 먼저 조방장 조경(趙儆)을 보내 한성부 서쪽 주변에 물과 식량, 교통이 원활하면서도 매복이 가능한 곳을 물색하도록 했고, 조경은 행주를 후보지로 지목했다.

권율은 곧 병력을 비밀리에 행주로 이동시킨다. 조경에게 명하여 행주산성에 2일간에 걸쳐 목책(木柵)을 완성하게 하고, 바로 이동령을 내려 독왕산성으로부터 군사를 건너가게 했다. 이동행렬이 왜군에게 포착되지 않게 하려고 독왕산성에 목책과 소수의 군사를 남겨, 많은 군사가 아직 계속 남아 있는 것처럼 위장시킨 뒤 군사를 신속하게 행주산성으로 이동시켰다. 그 중 3천여 명의 정예부대를 권율이 이끌고 마지막에 행주산성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적들이 포착하게 함으로서 왜군은 행주산성의 병력을 과소평가하게 되었다.

왜군은 이치전투와 독왕산성에서 치욕적인 대패를 설욕하고 후방의 위험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행주산성을 공격하기로 결의하였다. 1593년 2월 12일 아침 왜군은 총대장 우키타 히데이에의 지휘 하에 3만여 명의 병력을 7개 대로 나누어 행주산성으로 진군하였다. 행주산성의 뒤쪽은 강벽(江壁)에 막혀 달아날 길도 없는 상황이어서 조선 군사들은 사력을 다해 왜군의 공격을 막았다.

조선 군사들은 왜군이 성 쪽으로 접근하길 기다렸다가, 화차(火車)와 수차석포(水車石砲),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총통 등을 일제히 발사해 왜군의 성내 진입을 차단했다. 특히 왜군은 산 아래 쪽에서 올려다보고 총탄을 쏘아야 했기 때문에 고전(苦戰)했지만, 조선 군사들은 위에서 아래쪽으로 활을 집중적으로 퍼부어 왜군의 기세를 꺾을 수 있었다.

- 5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4_2.html
kolaswqetsrq 11.02 19:00
■ 행주대첩 3편

■ 행주대첩 3편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조는 권율이 능력 있다는 신하들의 간언을 듣고 다시 기용해 전라도 광주 목사에 임명하였다. 조령(鳥嶺)을 넘어 충주가 함락되고, 국내 사정이 시시각각으로 위태로워져서 전라도 순찰사 이광과 방어사 곽영이 4만여 명의 군사를 모집할 때, 권율도 광주목사(光州牧使)로서 군병을 모집하였다. 방어사 곽영(郭嶸)의 휘하에 들어가 중위장(中衛將)이 되어 함께 북진해 6월 5일 용인에서 벌어진 첫 전투에 참가했다. 병사들이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오합지졸이라 이 첫 전투의 결과는 참패였다.

용인전투 당시 도순찰사 이광이 수원과 용인으로 들어가 이곳에 진을 친 소규모의 일본군들을 기습공격하려 하자, 권율은 용인은 은신할 곳이 없는 평지인데다가 당시 훈련 상태나 병력의 수로 봐서 조선군이 절대적 열세라는 이유로 극력 반대하면서 차선책을 내세웠으나, 이광이 그의 제안을 듣지 않고 공격령을 내려 2000명도 안 되는 일본군에게 대패하고 말았다.

선봉장 이시지(李詩之), 백광언(白光彦) 등을 비롯한 여러 장수들이 전사하고 군사가 전멸되었다. 이때도 권율 혼자만이 휘하의 군사를 상당수 유지할 수 있었다. 권율은 남은 군사들을 추스려서 광주로 퇴각하여 1천여 명의 의용군을 추가로 모집하면서 뒷일을 도모하였다.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가 이끄는 왜군이 금산에서 전주로 들어오려 하자, 이들이 올라올 길목을 막기 위해 동복현감(同福縣監) 황진(黃進)과 함께 전주 이치(梨峙:배고개)에 진을 쳤다. 이치전투는 1천여 명의 조선군이 왜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이끄는 2천여 명의 대군과 맞서 싸워 대승리를 거둔 전투로 일본의 전라도 진격작전을 좌절시켰다.

왜군은 이 후 다시는 전라도를 넘보지 못하게 되었으며, 권율은 이 공으로 전라감사로 승진하였다. 권율은 때마침 명나라에서 지원군이 추가로 5만 명 정도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과 합세해 한양을 탈환할 목적으로 1592년(선조 25년) 12월 1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북진 길에 올랐다.

앞서 용인전투에서 참패한 것을 기억하며 바로 북상하는 것을 피하고, 경기도에 도착한 뒤 수원 독산(禿山:오산시)의 독왕산성(禿旺山城:독성산성)에 들어가 잠시 병사들을 휴식시키며 대기하고 있었다. 조선군 병력 1만 여명이 수원 근처에 와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왜병의 총사령관 우키타(宇喜多秀家)는 후방과의 연락과 군량미 등의 통로가 단절될 것을 우려하여 일본군을 오산 등 여러 곳에 병력을 분산시켜 진을 치게 하고, 서로 오가게 하면서 독왕산성의 아군을 성 밖으로 유인하려 했다.

그러나 권율은 성책을 튼튼히 해 일본군의 상륙을 막고, 병력을 나눠 지구전(持久戰)과 유격전을 하며 신속하게 일본군의 진군을 막았다. 이러한 수성(守成)작전은 권율이 1593년(선조 26년) 2월 행주산성으로 가기 전까지 계속되었는데, 이 작전으로 권율은 일본군을 한양에 묶어두면서 적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효과를 얻어냈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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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01
■ 행주대첩 2편

■ 행주대첩 2편

권율은 이처럼 가문도 좋고 영특한 인물이었지만, 40세가 되도록 관직에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본부인인 조광원의 딸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딸 1명을 낳고 일찍 사망하였는데, 그 딸이 후일 이항복과 결혼하여 그는 이항복의 장인이기도 하다.

친구들이 권율에게 왜 과거를 보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는가를 묻자, 권율은 "옛날 태공망은 나이 80에 현달(顯達:인품과 덕망으로 이름이 세상에 드러남)하여 천하를 경영하여 백성을 구제했는데 아직 내 나이가 태공망의 반밖에 안 되는데다 능력까지 미치지 못하는데 어찌 출세가 늦을 걸 걱정하겠는가?" 며 반박했다고 한다. 벼슬에 연연하지 않는 풍모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다른 선비들처럼 방에 틀어박혀 글공부만 하지 않고, 지인들과 어울려 전국을 여행하거나 지리를 연구하는 등 한량(閑良)처럼 지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지자 깨달은 바가 있어서 아버지의 상을 치르고 금강산에 들어가 과거 공부를 시작했다. 뒤늦게 46살이 되던 1582년(선조 15년)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응시하여 병과로 급제를 하고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었다. 여기에는 사위인 이항복이 1580년(선조 13년)에 과거에 급제한 영향이 컸다.

이항복은 가족관계에서는 사위이지만 과거 시험으로 따지면 권율보다 2년 선배가 된다. 가족들이 이항복과 비교하며 사위는 벌써 관직에 나가서 활약하고 있는데, 장인어른이라는 사람이 집에서 놀고먹고 있는 게 말이 되냐는 타박으로 인해 권율은 과거시험에 응시할 것을 결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균관전적, 사헌부감찰, 예조좌랑, 호조정랑 등을 역임하고, 1587년(선조 20년) 전라도 도사로 나갔다. 1588년(선조 21년) 다시 예조정랑이 되었고, 그해 9월 호조정랑을 역임한 뒤 함경도 경성부판관(鏡城府判官)으로 부임하였다. 1590년(선조 23년) 8월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는데 1591년 초 다시 호조정랑에 임명되었다가, 류성룡과 윤두수의 추천을 받아 의주 목사로 전격 발탁되었다.

의주목사 재직 중 당상관으로 승진했지만 1592년(선조 25년) 해직되었다. 늦게 관직에 나온데다가 문관 출신이다 보니 부하들 중에는 권율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1592년 봄 북경에 간 역관(譯官)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려 요동 지역을 어수선하게 했다는 말이 나와서 국문(鞫問)하는 일이 있었는데, 권율도 이 사건의 불똥을 맞아 파직된 것이다.

그의 나이 56살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한양이 함락되고, 4월 30일 선조를 비롯한 왕실이 도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피난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고니시 유키나카의 군대가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자 상소를 올려 경상도와 전라도 양쪽에 큰 진지를 구성해둘 것을 왕에게 건의했지만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았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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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02
■ 행주대첩 1편

■ 행주대첩 1편

200년의 평화 끝에 만난 임진왜란이라는 초유(初有)의 국난에 조선은 맥없이 무너졌다. 일본이 부산진을 공격하고 북상한 지 한 달여 만에 한양을 점령했고, 선조와 조정은 개성과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도망친 상태였다. 전란 초기 조선 육군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해전에서 이순신의 승전보가 전해지면서 조선 육군도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기 시작했고, 그 정점에 권율(權慄)의 행주대첩(幸州大捷)이 있었다. 한산도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이라 불리는 행주대첩으로 일방적으로 밀리던 조선 육군은 반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권율은 임진왜란 초 광주목사(光州牧使)로 있으면서 1592년(선조 25년) 7월 배티이치:梨峙싸움에서 대승한 공으로 전라도 관찰사(觀察使) 겸 순찰사(巡察使)가 되었고, 군사를 모으며 왜적을 물리칠 기회를 기다렸다. 권율에게 첫 승리를 안겨 준 배티이치:梨峙싸움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의 정예부대가 전라도를 침범하기 위해 금산으로 진군하면서 시작되었다.

권율은 적병들이 전주를 노린다는 소식을 듣고 동복현감(同福縣監) 황진과 함께 이치로 군사를 이끌고 가 맞서 싸웠다. 이때 권율이 최전선에서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고 전진(戰陣)을 격려하니 모두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마침내 승리를 거둘 수 있었고, 이로써 호남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었다. 이항복의 《백사집(白沙集)》에 의하면, 권율은 이치싸움을 행주대첩보다 더 어려운 싸움이었다고 회상했다고 한다.

권율은 1537년(중종 32년) 경기도 강화도호부(현재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연리)에서 명문가 자제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이다. 6대조가 여말선초의 유학자이며 조선의 개국공신인 권근이고, 아버지는 명종 때 우의정을 지내고 선조 초에 영의정을 지낸 권철(權轍)이다. 광흥창수를 지낸 권항, 호조좌랑 권개, 중추부동지사 권순 등이 그의 친형들이다. 뒤에 한성부로 이사하여 생활했는데, 현재의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독립문역 3번 출구와 사직터널 주변 일대에 그의 집이 있었다.

그의 집안은 상당히 유복한 가정이었으나 그는 어려서 놀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어느 정도 성장해서도 화려한 옷이나 유흥에 관심도 없었고 사치스러운 습성도 없었다. 어릴 적 여러 일화들을 들어보면 왠지 대인군자(大人君子)의 풍모가 느껴지기도 한다. 6세 때 어머니가 하얀 비단옷을 새로 지어주며 입으라고 하자 입기 싫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의복은 몸만 가리면 그만이지 뭐 하러 남의 시선을 생각합니까?"라고 대답했는데, 아버지 권철은 이 얘기를 듣고 이 아이가 비범(非凡)한 인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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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02
◇ 전주 덕진연못과 서예의 맥

◇ 전주 덕진연못과 서예의 맥

더위에 나는 전주의 덕진 연못 연꽃을 보러 가곤 한다. 연꽃은 눈으로 보는 꽃이라기보다는 코로 그 향을 맡는 데에 초점이 있다. 특이하게도 연꽃은 코를 위한 꽃이다. 더위에 연향을 맡으면 끈적끈적한 짜증이 사라진다. 더위에 먹는 보약향(補藥香)이라고나 할까.

전주 사람들의 추억이 어린 덕진 연못 입구에는 ‘蓮池門(연지문)’이라는 현판 글씨가 눈에 띈다. 강암 송성용의 글씨이다. 강암이 남긴 현판 글씨 중에서 나는 이 글씨를 좋아한다. 입구에서 들어가면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의 비석도 서 있다.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전주 토박이들은 ‘불교는 원효에서 시작하여 경허(鏡虛)로 끝났고, 유학은 설총에서 간재로 끝났다’고 말한다.

경허와 간재 모두 전주 사람이다. 구한말, 왜정 초에 간재 제자가 3000명이나 되었다. 전라도에서 광주가 그림이라면 전주는 서예이고 묵향이었다. 강암을 비롯하여 손바닥으로 붓을 잡고 글씨를 썼던 악필(握筆)의 창시자 석전 황욱, 그리고 현재 한글 서예의 고수 여태명이 있다.

실학자 이재 황윤석의 후손이었던 석전 집안은 좌익을 많이 해서 빛을 못 봤다. 강암의 아버지 유재 송기면은 꼿꼿한 유학자였고, 두 선생으로부터 배웠다. 성리학은 전주의 간재, 필법과 실학은 김제의 석정 이정직(1841-1910)이었다. 이정직은 칸트와 베이컨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한 인물이다. 성리학과 칸트를 비교한 ‘칸트철학연구평론’이란 저작을 남겼다. 그리고 서예가였다. 석정의 글씨는 벽하 조주승(1854-1903)과 계보를 같이한다.

조주승 윗대로는 물 흐르는 듯한 서체의 수류체(水流體)를 정립한 창암 이삼만(1770-1847)이 있다.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 가기 전에는 창암을 촌사람으로 우습게 봤지만 유배 끝나고 오면서는 창암 묘소에 들러 존경의 염을 담은 비석까지 써주고 갔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창암 이삼만 위에는 김제 출신 송재 송일중(1632-1717)이 있다. 송일중 글씨가 중국에까지 알려져 청나라 강희제는 ‘철마등공(鐵馬騰空)’이라고 평하였고, 글씨를 잘 썼던 숙종은 ‘송백능한(松柏凌寒)’이라고 칭찬하였다. 구한말 매천 황현은 조주승이 죽자 만사에다가 송재, 창암, 벽하 3인을 염두에 두고 ‘우리나라 서예계에 호남이 있어서 적막하지 않다(論定千秋東筆園 未應寂寞我湖南)’고 술회하였다. 전북지사 사무실에 지필묵을 갖춰놓은 송하진 도지사는 송성용의 막내아들이다. 전국 지자체장 중에서 방명록에 쓰는 글씨는 제일 잘 쓰는 것 같다.

-조선일보 조용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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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03
◇ 한국만 ‘탄소 중립=탈원전’

◇ 한국만 ‘탄소 중립=탈원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5월 발표한 ‘2050년 넷 제로(탄소 중립) 로드맵’에서, 전 세계 에너지 공급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율이 2020년 5%에서 2050년 11%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저탄소 에너지원인 원자력은 전력뿐 아니라 수송·난방·산업용으로도 쓰일 수 있어 앞으로 그 활용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IEA는 “원자력은 탄소 중립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며 “원자력 발전량이 꾸준히 늘어 2030년엔 40% 늘고 2050년엔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이 급격히 늘더라도 원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50년에도 8%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0~2050년 선진국에서는 원전 비율이 18%에서 10%로 주는 반면,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서는 5%에서 7%로 증가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2%포인트 감소한 8%가 될 것으로 봤다.

미국 캘리포니아 태양광이나 영국 북해 해상 풍력 등 한국보다 재생에너지 발전 여건이 훨씬 좋은 선진국들도 원전 비율을 축소하더라도 10%는 유지할 것이란 얘기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일정치 않은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보완하고,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려면 원전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IEA는 선진국은 주로 기존 원전 수명을 연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IEA는 “수명 연장은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저탄소 전력원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이미 원전 6기의 수명을 80년까지 연장했고, 추가로 4기에 대해서도 80년까지 수명 연장을 검토 중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전 세계 탈원전 붐을 일으켰던 일본도 탄소 중립을 위해 60년 이상 가동을 검토 중이다. IEA는 또 “원자력 기술은 최근 안전성 측면에서 크게 향상됐다”며 “SMR과 첨단 원자로 설계가 실증 단계에 접어들었다”고도 했다.

전 세계에서는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원전이 필수라는 인식하에 첨단 원전 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유독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29%였던 원전 발전 비율을 2050년 6~7%까지 축소하는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했다. 30년 만에 20%포인트 이상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는 IEA 로드맵에서 선진국의 원전 비율 축소(8%포인트)보다 훨씬 과격하고 급진적이다. 현실성도 결여됐다.

세계적으로 기술력과 경제성, 안전성을 인정받은 원전 기술을 내팽개치고, 아직까지 기술 개발이 미미해 가까운 미래 상용화가 어려운 수소·암모니아 등 ‘신(新)전원’을 13~21%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탄소 중립 시나리오가 아니라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탈원전 이행안’이라고 하는 게 낫다.

-조선일보 데스크에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88.html
kolaswqetsrq 11.02 19:04
◇ ‘공동부유’ 바람 부르는 시진핑

◇ ‘공동부유’ 바람 부르는 시진핑

중국 시장 곳곳에서 곡(哭)소리가 난다. 중국 당국의 거친 규제 때문이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중국의 거대 IT 기업들은 “자진해서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윽박지름을 당하고 있다. 부동산과 사교육 시장 등도 중국 공산당의 ‘홍색 규제’로 초토화 위기를 맞자 글로벌 투자자들은 ‘중공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차이나 엑소더스’의 길에 오르는 모양새다. 개별 기업이 혼나는 수준이 아니라 산업 자체가 소멸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중국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최근 왜 이런 일이 발생하나. 지도자의 국정 운영 철학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계산을 읽어야 한다. 중국은 사회 발전 단계를 세 가지로 나눈다. 온포(溫飽)사회→소강(小康)사회→대동(大同)사회다. 등 따습고 배불리 먹는 온포사회는 2000년께 도달했고, 여기에 어느 정도의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는 소강사회를 중국 전역에 걸쳐 이루는 ‘전면적인 소강사회’는 중공 창당 100주년에 즈음한 지난해 달성했다.

다음은 도둑도 없이 모두가 잘사는대동사회인데 이는 유토피아에 가깝다. 1인당 GDP 몇만 달러 정도로 계산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그렇다면 소강사회 달성 이후 중국은 어디로 가야 하나. 여기서 시진핑이 내세우는 게 ‘공동부유(共同富裕)’ 추구다. 일찍이 덩샤오핑(鄧小平)은 “사회주의의 본질은 생산력을 해방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착취와 양극화를 없애 공동부유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공동부유를 이루기 위해 덩샤오핑은 경제건설에 중심을 두는 개혁개방 정책을 추구했고 결과는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나타났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빈부격차가 커진 것이다. 그러자 후진타오(胡錦濤) 집권 시기 논쟁이 벌어지며 당내 분열이 발생했다. 당시 광둥(廣東)성 당서기로 현재 권력 4위인 왕양(汪洋) 정협 주석은 “파이를 더 키우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보시라이(薄熙來) 당시 충칭(重慶)시 당서기가 반대하고 나섰다. “파이를 나누기 전 파이부터 키우자고 말하는 건 틀렸다”고 했다.

그는 “파이를 나누는 게 불공평하면 아무도 파이 만들기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파이를 고르게 분배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공동부유’의 기치를 내걸었다. 이후 보시라이가 숙청되면서 파이 논쟁도 가라앉았다. 한데 이제 다시 시진핑이 ‘공동부유’를 소강사회 이후 중국이 추진해야 할 목표로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시진핑이 말하는 공동부유는 물론 보시라이와는 결이 다르다. 부자를 없애 가난을 구제하자는 게 아니며 동등한 부유나 똑같은 속도로 부자가 되자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파이를 키우는 기초 아래 파이를 고르게 나누자는 게 ‘시진핑표(標) 공동부유’다.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저장(浙江)성은 지난달 20일 ‘공동부유 저장 시범지구’ 건설 방안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저장성이 어떤 곳인가. 시진핑이 중국의 최고 지도자로 발돋움하기 전 당 서기 신분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진 곳이다. 시진핑의 저장 통치를 다룬 ‘저장 경험’은 현재 중국을 다스리는 치국책략(治國策略)의 모태이기도 하다. 저장성의 도농(都農) 수입은 1.96:1의 비율로 중국에서 가장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런 저장성에서의 공동부유 실험이 성공할 경우 이를 중국 전역에 확산시키겠다는 게 시진핑의 구상이며 그는 여기에 자신의 정치적 생명 상당 부분을 걸고 있다. 공동부유를 이루는 건 사회주의의 본질을 실현하는 것으로 이게 성공할 경우 이를 갖고 사회주의제도가 자본주의제도보다 더 우월하다, 더 낫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체제 싸움에서 큰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시진핑 자신은 그런 위대한 업적을 이룬 지도자로 중국 국내적으론 장기집권의 토대를 더욱 단단히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상당 기간 ‘공동부유’ 구호가 중국을 휩쓸 것이다. 여기에 위협이나 걸림돌이 되는 기업, 또는 산업은 모두 중공의 무차별 타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중국에서의 사업은 언제나 그렇지만 중국에서 부는 바람을 타야 성공한다. 역풍을 맞아선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시진핑은 내년 가을 집권 3기를 위해 ‘공동부유’라는 바람을 부르고 있다. 그 풍향(風向)을 보며 배를 띄우거나 노를 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 중국읽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31.html
kolaswqetsrq 11.02 19:04
◇ 팩스 고집 日 공무원들 막을 수 없을까

◇ 팩스 고집 日 공무원들 막을 수 없을까

일본 정부가 행정 디지털화를 위해 야심 차게 내세운 ‘부처 내 팩스 폐지’ 방침이 한 달 반 만에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정부 부처 내에서 400건이 넘는 반론이 제기되는 등 반발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요미우리신문은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하며 “일본 정가의 뿌리 깊은 ‘팩스 문화’가 드러났다”고 전했다.

부처 내 팩스 폐지론은 지난 6월 고노 다로 행정·규제개혁상이 공식 제안했다. 지난해 9월 취임한 고노 개혁상은 ‘행정 디지털화’를 목표로 내걸고 정부 내 도장 문화 폐지를 추진해왔다. 일본의 관공서에서 도장이 필요한 공문서는 약 1만 건이었는데, “업무상 날인(捺印)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 이유를 알려달라”며 강하게 밀어붙여 어느 정도 효과를 냈다. 그러자 두 번째 과제로 팩스를 겨냥하고 나선 것이다.

고노 개혁상이 문제를 제기할 만큼 일본에는 여전히 팩스를 애용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지난해 인구 2000만명이 넘는 도쿄도가 팩스 2대를 이용해 코로나 신규 확진자를 집계하다가 과부하로 확진자 통계가 엉망이 된 게 단적인 예다. 중앙 부처 공무원들의 재택근무를 방해하는 주범 역시 도장 외에도 팩스가 지목됐다. 이 때문에 고노 개혁상은 각 부처 공무원들에게 “타성에 젖어 팩스를 계속 이용하기보단 이메일을 사용하자”며 ‘이메일 소통’ 원칙을 제안했다.

고노 개혁상이 팩스 이용을 무조건 금지한 것도 아니다. 각 현업 부처의 의견을 수렴해 자연 재해 등의 비상 시기, 국민·사업자의 (서류) 접수, 보안 확보가 필요한 경우 등 5개 예외 조건도 인정해줬다. 이 외의 업무는 원칙적으로 팩스 대신 이메일을 쓰자는 것이다.

하지만 고노 개혁상의 발표 이후 한 달 반 만에 각 부처에선 400건 넘는 반론이 제출됐다. 반론 중에는 ‘이메일은 사이버 공격으로 인한 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해킹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메일보다 팩스를 사용하는 게 낫다는 황당한 이유다. ‘지방 파견 기관의 경우 통신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 많다’는 것도 팩스가 필요한 이유로 거론됐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이 여전히 팩스를 선호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정부 부처에 팩스로 질의하거나 자료를 요청하는 국회의원에게 공무원이 이메일로 하겠다고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고노 개혁상은 최근 중의원과 참의원 운영위원회에 팩스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협력을 요청했지만 아직은 효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429.html
kolaswqetsrq 11.02 19:05
◇ 독일의 누드비치, 혼탕 사우나 가보니 나체주의 문화가 이해가 돼

◇ 독일의 누드비치, 혼탕 사우나 가보니 나체주의 문화가 이해가 돼

여기서 살아보니 알겠다. 베를린 사람들이 왜 이렇게 해를 찾아다니는지, 왜 해만 나면 공원이고 호수고 나와서 벌러덩 누워 있는지. 화창해야 할 5월까지 히트텍을 입고 사니 따뜻한 햇살이 더 간절하다. 내가 그동안 서울에서 얼마나 날씨 복을 누리고 살았나 감사할 정도다. 기온이 30도가 넘는 요즘은 너도나도 호수로 간다.

큰 쇼핑몰과 호텔을 제외하면 (믿지 못하겠지만) 에어컨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카페와 음식점은 물론 지하철에도, 집에도 에어컨이 없다. 바싹 달궈진 거리를 피하는 방법은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뿐이다. 베를린 호숫가에 가면 해수욕장을 방불케 하는 ‘호수욕’이 펼쳐지는 이유다.

특이한 점이라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누워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는 나체의 사람들이 모이는 누드비치나 캠핑장이 유독 많은데,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나체로 선탠을 하고, 책을 읽고, 비치발리볼을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독일의 나체주의 문화, 에프카카(FKK)다. FKK는 ‘Frei-Korper-Kultur’의 약자로 직역하면 ‘자유로운 몸의 문화’란 뜻이다.

옷을 입지 않은 자연 상태에서 자유를 누리겠다는 문화 운동이다. 시작은 1900년대 초까지 올라간다. 나치 정권 시대에 금지되었다가 동서독으로 분단된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에서는 다시 국가적으로 장려되었다. 지금도 누드비치는 구 동독지역에 더 많이 남아 있다. 베를리너들이 많이 간다는 호수, 크루메랑케를 갈 때도 누드비치를 보았다. 하지만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갔다. 나체로 누워 있는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 엄두가 안 났다. 누드비치에서 놀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그랬던 내가 독일의 나체 문화를 경험한 것은 베를린의 사우나에서였다. 발리의 스파 휴양지를 통째로 옮겨다 놓은 것 같은 ‘바발리’ 사우나에서 외국 남녀들의 나체를 마주했다. 말로만 듣던 혼탕 사우나에서 내 눈동자는 처음에 눈 둘 데를 찾지 못해 허공을 헤맸다. 신기한 건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몸을 흘깃거리거나 신경 쓰지 않는 것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모두가 천하태평일 수 있을까 싶게 느긋했다. 100년이 넘는 독일의 FKK문화와 자연주의에서 이어져온 경험과 개방적 사고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열 개가 넘는 사우나실을 알몸으로 들락거리고, 샤워도 그냥 밖에서 남녀가 같이 줄 서서 하고, 야외 수영장에서도 알몸으로 수영했다. 다 벗고 있다는 부끄러움도 잠시, 모두가 알몸인 그곳에서 뭔가 원초적 자유로움을 느꼈다. 늘어진 배와 제각각으로 생긴 허벅지, 팔다리, 가슴, 성기까지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냥 인간적이었다. 잡지에서 보던 모델 같은 몸매는 그곳에 없었다. 저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느낌. 몸뚱어리만 있는 우린 그저 다 같은 인간이라는 것. 그런 생각이 드니 긴장했던 마음도, 괜히 혼자 신경 쓰이던 남의 눈길도 줄어들었다. 베를린의 여름에 겪어본 최고의 일탈이자 경험이었다. 독일 누드비치와 혼탕 사우나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나는 기회가 된다면 한번 경험해보라고 권한다. 그게 원초적 본능에 기인한 것이든, 단순한 호기심이든, 새로운 모험심이든 상관없다. 모든 것에 열려 있는 베를린의 한 조각을 만나는 최고의 경험이 되리라 믿는다.

-경향신문 베를린 다이어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14.html
kolaswqetsrq 11.02 19:06
◇ 수녀들의 일기장서 밝혀낸 치매 예방법

◇ 수녀들의 일기장서 밝혀낸 치매 예방법

일란성 쌍둥이는 인류 건강에 큰 기여를 했다. 어떤 사안이 건강과 질병에 무슨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볼 때, 딱 좋은 연구 대상이 일란성 쌍둥이다. 유전적으로 거의 100% 일치하는 두 사람을 놓고, 한쪽에는 특정 요인을 가미하고 한쪽에는 안 하면 그 효과를 정확히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의 수정란에서 분할된 일란성 쌍둥이는 복제된 상태와 다름없다.

해서, 의학계에서는 트윈(twin) 연구라는 분야가 별도로 있다. 일란성 쌍둥이가 태어나서 기구한 운명으로 따로 떨어져 살았다면, 후천적 환경 요인을 비교 연구 하는 데 최고다. 유전적 요인이 같은 상태에서 생활환경이나 직업, 습관에 따라 질병 발생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쌍둥이 다음으로 비교 연구에 적합한 대상은 수녀가 꼽힌다. 그들은 약물 남용이나 음주·흡연 없이 평생 비슷한 생활 방식으로 살아온 균일 집단이다. 평생 신실하고 절제된 삶을 살았기에, 그들을 통해 각자가 보인 고유 행태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대표적 수녀 연구가 미국 미네소타대 데이비드 스노던 박사의 치매 분석이다. 1986년 스노던 박사는 국립노화연구소 자금을 받아 노트르담 수녀 학교 출신 678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언어 능력이 노년의 인지 기능 및 치매 발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프로젝트였다. 당시 연구에 참가하는 수녀는 모두 75세 이상으로, 사망 후 뇌를 연구용으로 기증하기로 서약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기억력, 언어 능력 등 다양한 인지 기능 검사를 받았다. 연구팀은 수녀원 기록 보관소를 뒤져 이들이 살아오면서 남긴 문서를 조사했다. 각자 개인적으로 쓴 일기도 살펴봤다. 영혼이 하늘로 떠난 수녀들의 뇌는 조직 병리 검사가 이뤄졌다.

연구 결과, 수녀들이 쓴 글에서 단어 수가 풍부하고 어휘력이 좋을수록 치매에 적게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대부터 쓰기 시작한 수필과 일기를 살펴봤을 때, 어휘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된 수녀의 약 80%는 나중에 치매에 걸렸다. 글이 풍성한 수녀들은 10%만이 치매가 발생했다. 이런 결과는 사후에 이뤄진 뇌 조직 검사에서도 병리학적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운동을 열심히 할수록, 적정 체중일수록, 학사 학위가 있을수록, 남아 있는 치아가 많을수록 치매에 걸리는 비율이 낮았다.

연구팀은 비관적이고 암울한 내용보다 젊어서부터 희망이나 낙관 등 긍정적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어휘력이 높은 사람이 장수하고 치매도 적게 걸린다고 결론 맺었다. 수녀 연구를 통해 어떻게 하면 끝까지 잘 살 수 있을지 알게 되어, 희망이 보인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921.html
kolaswqetsrq 11.02 19:06
◇ 일본 위스키와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

◇ 일본 위스키와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이 엉뚱한 일로 궁지에 몰렸다. 장관 때 일본 아베 정부가 미 국무부에 선물로 보낸 고급 위스키가 감쪽같이 사라져 조사받는다고 한다. 미 관료는 받은 선물이 390달러를 넘으면 정부에 그만큼 자기 돈을 내고 소유하든가, 아니면 국고로 넘겨야 한다. 문제의 위스키는 5800달러짜리다. 660만원이 넘는다. 위스키 이름은 기록엔 없다고 한다.

▶선물을 준 시기는 2019년 6월 오사카 G20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이다. 당시 미국에선 일본 위스키 붐이 일었다. 50년짜리 일본 희귀 위스키가 미 경매에서 100만달러에 낙찰된 때가 그즈음이다. 뉴욕 술집에선 ‘야마자키(山崎) 25년’ 더블샷(60ml)을 500달러에 팔았다. 지금 총리인 스가 당시 관방장관도 NSC의 포틴저 선임보좌관에게 일본 위스키를 선물했다고 한다. 폼페이오보다 2574달러 비싼 8374달러짜리였다.

▶일본 위스키 역사는 100년이 되지 않는다. 다케쓰루 마사타카란 청년이 스코틀랜드 증류소에서 제조법을 익혀 처음 만들었다. 유명한 산토리와 닛카 위스키 모두 그가 시작한 것이다. 1962년 영국 외무장관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년필과 노트로 일본이 영국 위스키 비밀을 모두 훔쳐 갔다”고 칭찬한 것도 그를 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세계시장에선 일본 위스키를 거들떠도 안 봤다.

▶20년 전만 해도 ‘일본 위스키는 다 망한다’고 했다. 일본 소비자가 독한 술을 멀리해 매출이 20년 이상 내리막이었다. 할 수 없이 조금만 만들었다. 그런데 대박이 터졌다. 2000년대 중반부터 세계 위스키 품평회를 석권하자 분위기가 변했다. 2015년 본고장 스카치 위스키를 누르고 영국 ‘위스키 바이블’ 1위에 올랐을 땐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천재적”이란 평을 받았다. 스코틀랜드 싱글 몰트 위스키 족보에 스코틀랜드 아닌 지역 위스키로는 일본 위스키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자 중국 호사가들이 달려들었다. 만들어 놓은 수량은 적은데 수요가 폭발하자 일본 위스키 값은 터무니없이 올랐다.

일본 주류회사 산토리의 최고급 싱글 몰트 위스키 브랜드 야마자키 시리즈. 25년은 1999년 창업 100주년을 맞아 특별 한정판으로 내놓은 것이다. 한해 1200병만 출시한다. 출시 가격은 12만엔이지만 수급 불균형으로 시장에선 150만엔대에 거래되고 있다.

일본 주류회사 산토리의 최고급 싱글 몰트 위스키 브랜드 야마자키 시리즈. 25년은 1999년 창업 100주년을 맞아 특별 한정판으로 내놓은 것이다. 한해 1200병만 출시한다. 출시 가격은 12만엔이지만 수급 불균형으로 시장에선 150만엔대에 거래되고 있다.

▶폼페이오가 받았다는 위스키는 세계 호사가들이 좋아한다는 산토리의 ‘야마자키 25년’일 가능성이 있다. 야마자키가 G20이 열린 오사카 지역의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 데다 당시 시장 가격이 그와 비슷했다. 지금은 1000만원이 넘는다. 빈 병만 100만원 가까이에 팔린다고 한다. 그 위스키가 누구 목구멍으로 넘어갔는지도 궁금하지만, 남의 것을 베껴서 그보다 더 좋은 최고를 만드는 일본인들의 기술 집념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조선일보 만물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01.html
kolaswqetsrq 11.02 19:07
◇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커플

◇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커플

고등학교 다닐때는 영어 참고서 ‘성문종합영어’를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대학 졸업 후에는 사주명리학 교과서인 이석영의 ‘사주첩경(四柱捷徑)’을 품고 다녔다. 지나고 보니까 영어보다는 사주가 내 삶에 더 도움이 되었다. 학교 시험에는 영어가 도움이 되었지만 인생살이 시험 길에 들어서서 갈팡질팡할 때는 사주가 나침판이 되어 주었다. 왜 나는 영어보다 유달리 미신을 좋아하였을까. 60세가 되어 생각해보니 이것도 팔자이다.

‘사주첩경’에 나오는 사주 풀이 가운데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백두노랑(白頭老郞)을 만나는 여자 팔자이다. 백두노랑은 ‘머리가 허연 늙은 남편’을 만난다는 의미다. 노랑(老郞)의 기준은 20세 이상의 나이 차이다. 운명적으로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상대를 만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태어난 날인 일간(日干)의 글자가 임(壬)이나 계(癸)인 여자가 백두노랑을 만날 확률이 높다고 본다. 왜 그런가? 융통성 때문이다. 임이나 계는 오행 중에서 물에 해당한다. 물은 유연하다. 통념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어떤 그릇이든지 거기에 따르면 수용이 된다.

20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더라도 섹스, 머니, 토킹이 맞으면 사귀거나 결혼한다. 섹스는 하단전의 궁합이고, 머니는 중단전의 궁합, 토킹은 상단전의 궁합에 해당한다. 젊어서는 하단전 궁합이 중요하고 중년에는 중단전, 노년에는 상단전의 궁합이 작동한다. 여기서 한 가지 궁합만 맞아도 산다. 더구나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하지 않던가.

나이 들어도 체력 관리가 되고, 돈도 있고, 인생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노인이 많다. 탤런트 김용건이 75세인데도 불구하고 39세 연하의 젊은 여인과 사귀고 임신까지 하였다는 뉴스를 보면서 혹시 그 상대 여성 A씨의 팔자가 임·계 일주가 아닌가 싶다. 만나 볼 수가 없어서 확인을 못 할 뿐이다.

‘파워 오브 러브(power of love)’를 부른 캐나다의 가수 셀린 디옹의 남편도 26세 연상의 백두노랑이었다. 남편은 무명의 셀린 디옹을 발굴하여 성공시킨 매니저이기도 하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셀린 디옹의 팔자도 임·계 일주가 아닌가 하고 추측해 왔다.

이 대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이다. 부인이 24세 연상이다. 백두노부(白頭老婦)의 케이스다. 아마도 상단전 궁합이 맞아서 사는 게 아닐까. 그동안까지는 노랑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여자가 20세 이상 연상인 노부도 가끔 생길 것 같다.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58.html
kolaswqetsrq 11.02 19:08
◇ 2030 원룸족들 “침대는 빼주세요”

◇ 2030 원룸족들 “침대는 빼주세요”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다가구주택 앞에 멀쩡한 침대와 매트리스가 버려져 있었다. 새로 들어온 원룸 세입자가 “침대를 치워달라”고 하자, 집주인 박모씨가 동네 주민센터에 폐기물 처리비 1만원을 내고 버린 것이다.

임대업을 하는 박씨는 “요즘 세입자들은 거의 침대 없는 방을 찾는데, 처음엔 창고에 치워놨다가 곰팡이도 피고 해서 요샌 그냥 버린다”며 “방 39개 중 지금 침대가 남은 방이 10개도 안 된다”고 했다. 서울대 인근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김모씨는 “요새 원룸 구하러 오는 대학생 10명 중 8명은 ‘침대 없는 방’을 달라고 한다”며 “신축 오피스텔은 일부러 침대를 넣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대학생·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원룸촌에서 ‘침대’가 사라지고 있다. 2030세대 세입자들 중 ‘침대 없는 방’을 찾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바닥에 자고 싶어서가 아니다. 세 들어 사는 원룸이라도 ‘내 공간의 가구는 내가 고르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다.

대학생 조모씨는 지난 5월 원룸을 알아보면서 일부러 ‘침대 없는 방’을 골라 보러 다녔다. 조씨는 “어느 원룸에나 있는 평범한 침대를 쓰기 싫어, 낮고 헤드가 없는 디자인의 침대를 인터넷에서 50만원 주고 샀다”며 “남이 쓰던 중고 침대의 찝찝함도 없고 방도 넓어 보여 좋다”고 했다.

직장인 김찬유씨도 “전에는 돈을 아끼려 일부러 가구가 구비돼 있는 원룸을 찾아다녔지만, 이번에는 깨끗한 내 가구로 꾸미고 싶어 침대 없는 방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집 사기 어려운 시대가 되면서, 비록 잠시 머무르는 원룸이라도 내 집처럼 꾸미고 싶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집을 넓어 보이게 하는 낮고 헤드가 없는 침대를 두거나, 사다리로 올라가는 2층 침대를 사서 아래 공간은 소파·책상을 두는 방법 등이 인기다.

침대 청소 업체를 운영하는 박웅규 대표는 “예전에 침대는 한번 사서 계속 쓰는 ‘가구’였다면 요즘 젊은이들에겐 하나의 ‘패션’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030_16.html
kolaswqetsrq 11.02 19:08
◇ 바이든 “전기차가 미래”

◇ 바이든 “전기차가 미래”

1896년 9월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내러갠셋파크 경마장 출발선에 전기차 2대, 가솔린차 5대가 나란히 섰다. 총성과 함께 차들은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결승선에 먼저 도착한 차는 리커(Riker) 전기차 회사의 삼륜차였다. 무거운 납축전지와 모터로 움직이는 전기차가 초기 가솔린 엔진 자동차를 앞섰던 것이다. 125년 전 이 경주는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꺾은 가장 오래된 레이스로 기록됐다.

▷이달 5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제너럴모터스,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3대 자동차사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전기차다. 되돌릴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 2030년부터 미국에서 팔리는 신차의 절반을 친환경차로 채우도록 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20세기 초입에 반짝 인기를 끌다가 1908년 선보인 포드 ‘T모델’ 등 싸고 성능 좋은 가솔린차에 밀려 사라졌던 전기차가 확실한 대세로 떠올랐다.

▷지구 전역에서 나타나는 이상기후가 내연기관차 시대의 종언을 재촉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1990년보다 55% 줄이는 계획을 6월 말 발표하면서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메르세데스벤츠는 2030년까지 모든 차종을 전기차로 바꾸기로 했고, 폭스바겐그룹과 BMW도 2030년까지 신차 중 전기차를 절반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연일 이런 소식을 듣다 보니 차를 바꾸거나, 처음 장만하는 사람이라면 전기차, 가솔린·디젤차, 하이브리드차 등을 놓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내연기관차를 샀다가 머잖아 바꿔야 하거나, 시대에 뒤처진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이다. 하지만 국내 전기차 구매자 중 40, 50대 고소득층이 많은 걸 보면 아직 청년 등에게 전기차 가격은 다소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최소 15∼20년 정도는 내연기관차와 전기차가 공존할 것으로 예상되고, 전기차 가격을 좌우하는 배터리 가격도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돼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주요국에 친환경차만 수출하는 시점을 2040년으로 잡아둔 현대차·기아는 다소 급해졌다. 올해 1∼7월 현대차·기아가 미국에서 판 친환경차가 작년 동기의 약 3배로 늘어나는 등 흐름은 좋다. 연내에 현대차의 전용 전기차 모델 ‘아이오닉5’, 내년엔 기아 ‘EV6’가 수출되기 시작하면 상승세는 더 가팔라질 것이다. 그보다는 전기차가 불러올 산업구조 변화가 문제다. 엔진차에 비해 전기차는 부품 수, 생산 인력이 30% 이상 줄고 자율주행 기능 등에 대한 투자는 훨씬 많이 필요하다. 내연기관차 시대의 향수에 빠져 있다간 닥쳐오는 전기차 시대의 파도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

-동아일보 횡설수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978.html
kolaswqetsrq 11.02 19:09
■ 진주대첩 8편

■ 진주대첩 8편

진주대첩에서 우리가 승전한 이유는 기적이 아니라 준비된 결과였다. 진주대첩은 3천8백의 병력으로 3만 일본군이라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전력을 딛고, 일주일 주야에 걸쳐 죽기 살기로 싸워 이긴 기적의 승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만약 충무공 김시민장군이 그곳에 없었다면 ‘진주대첩’이란 역사에 남을 대승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진주대첩은 충무공 김시민장군이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한 전투이다. 1591년 판관으로 진주에 부임해 온 그는 행정에 있어서 공명정대(公明正大)했고, 덕의(德義)를 베풀어 위엄을 세우니 예하 장졸과 관속들은 두려워하고, 백성들은 감복(感服)하였다. 이것은 관민(官民)이 하나가 되어 전투에 임하면서 김시민장군을 전적으로 믿고 따를 수 있었던 이유이다.

평소 김시민장군이 민심을 잘 다스렸고 신뢰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백성들이 지휘관인 김시민장군을 신뢰하지 못했다면, 거의 10배 가까운 적들에게 포위되어 맹공격을 받는 힘든 전투 상황과 적들의 집요한 심리전에서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장수(將帥)로서, 목민관(牧民官)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그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진주성은 본디 난공불락의 요새가 아니라 여러 가지 약점도 있었다. 성의 규모는 큰데 비해서 수적으로 턱없이 모자란 병력과 훈련이 덜된 군사들, 그리고 미흡한 전쟁 준비까지 진주성은 위기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쟁 발발 후 목사 이경을 호송해서 지리산으로 피신했다가 목사 이경이 병사한 후에 복귀해서 진주 목사 대행으로 임명된 그의 전쟁 준비는 짧은 기간에 비해 상당히 효과적으로 수행되었다.

먼저, 진주성의 약점은 무장으로서 누구보다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성을 부수고 새로 지을 시간은 없지만, 주어진 시간과 상황 속에서 진주성의 약점을 보강하고자 노력했다. 참호를 파서 성의 방어력을 보완했고, 군량을 비축하고 무기들을 수리하거나 새로 제작했다. 특히 염초 510근과 총통 170여 자루를 제조해 둔 것은 진주대첩 때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충무공 김시민장군은 훈련원과 군기시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었고, 또 북방의 6진 지역에서 실전(實戰) 경험을 갖추고 있었다. 그때 위력을 발휘했던 승자총통 등 무기의 쓰임새와 사용법, 위력을 잘 알고 있는 무관(武官)이었다. 그리고 성을 지킬 수성군(守城軍)을 새로 모집해서 천여 명의 병력을 3천 이상으로 증강했고, 이들을 맹훈련을 시켜 군사다운 면모를 갖추었다. 병력의 수가 많으면 좋겠지만, 중요한 것은 훈련이 잘되어 있는 능력 있는 정예(精銳) 군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군사는 강한 훈련과 실전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충무공 김시민장군은 맹훈련으로 조련된 군사들을 데리고 거창, 사천, 고성, 진해 등지에서 일본군을 공격하고, 경상우도 진주 주위의 일본군을 토벌하면서 진주의 방비를 굳건히 했다. 이 과정에서 군사들은 실전경험을 갖추고 잇따른 승리로 자신감과 사기가 높아졌으며, 그들의 지휘관 김시민장군의 능력을 신뢰하고, 그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게 된 것이다.

김시민장군은 전쟁이 끝난 후 선무공신(宣武功臣) 18명 중 2등 공신에 책록되었고, 영의정에 봉해졌다. 상락부원군의 작호와 충무(忠武)라는 시호를 받았다. 충무공 김시민장군이 쓰러진 후 그를 대신해 지휘해서 승리를 이끌었던 곤양군수 이광악 장군은 이후에도 전쟁 기간 동안 여러 전투를 전전하며 활약을 이어갔고, 그 공을 인정받아 선무공신 3등에 책록되었으며, 광평군이란 작호와 충장(忠壯)이란 시호를 받았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8_16.html
kolaswqetsrq 11.02 19:10
■ 진주대첩 7편

■ 진주대첩 7편

10월 9일 저녁 일본군은 횃불을 들고 서로 왕래하며 진주성 내의 이목을 끌었다. 막사에 불을 지르고 짐을 싸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란 듯이 보인 것이다. 일종의 기만책이었다. 마침, 왜군 진영을 탈출해 온 사람이 있어 붙잡아 적의 동태(動態)를 물으니, 왜군이 새벽에 온 힘을 다해 공격할 것이라 했다. 아주 중요한 정보였다.

퇴각하는 척 하던 왜군은 곧 불을 끄고 빠른 속도로 되돌아와서 10월 10일 새벽 총 공격을 가했다. 진주성의 민간인들은 돌을 던지고 끓는 물을 쏟아 붓는 등 사력을 다했고, 6일간의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김시민장군은 공세가 가장 거센 동쪽을 한눈에 보고 지휘할 수 있는 동문 북격대에서, 판관 성수경 장군은 동문 옹성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버텨냈다.

그 틈에 갑자기 적의 한 무리가 구북문(舊北門)에 접근하여 당황한 군민이 무너져 흩어졌으나, 다행히 북쪽을 지키던 최덕량장군과 군관 이눌 등이 앞장서서 죽기로 싸워 버티는 사이 군민들이 다시 결집해서 죽기로 싸워 적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성 내에는 적에게 던질 돌과 기왓장이 다 떨어지고, 우물물이 다 마를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일본군이 주춤하며 전투는 마무리되는 듯 했으나 또 다시 큰 위기가 닥쳤다. 진주성의 지휘관인 목사 김시민장군이 전투 막바지에 시체더미에 숨어 있던 일본군의 저격으로 왼편 이마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고 말았다. 이 날 부상을 입은 김시민(金時敏)은 두 달 뒤 숨을 거두었다. 다시 몰려 들어오는 일본군을 쓰러진 김시민장군을 대신해서 곤양군수 이광악장군이 분투(奮鬪)하여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활솜씨에 일가견(一家見)이 있던 명궁(名弓)인 이광악장군은 적군 앞에 서서 돌진해 오던 일본군 장수를 활로 쏘아 죽이면서 기세를 꺾었다. 일본군은 결국 진주성을 넘지 못하고 물러났다. 일본군에게 총 7년의 전쟁을 통틀어 가장 큰 패배이고, 치욕적인 패배였다. 진주성을 지키던 조선군은 3천 8백, 그리고 외곽에서 적을 견제하며 진주성을 지원한 의병 3~4천 정도가 참전했는데, 전사자는 약 8백여 명에서 최대 천명 가까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뼈아픈 손실은 진주대첩이란 대역사를 만들어낸 영웅, 진주 목사 김시민장군을 잃었다는 것이다. 일본 측 기록에서 일본군의 피해는 병사 1만 명 장교 이상은 3백명으로 3만 군대 중 1만을 잃었다.

본국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진주성에서의 패전 소식을 접하고는 불같이 노해서 펄펄 뛰었다고 한다. 그리고 진주성에 대한 보복전과 진주 목사의 목을 가져오라고 수차례 지시하는데, 이는 다음 해 1593년 6월의 2차 진주성 전투로 이어지는 이유가 되었다. 일본에서 진주성은 모쿠소성이라고 알려졌는데, 이는 ‘목사(牧使)가 있는 곳’이란 뜻의 목소성(牧所城)의 일본식 발음에서 나온 말이다.

 "
왜군은 2차 진주성 공격 때까지 김시민(金時敏)의 죽음을 몰랐다. 당시 후임 목사는 서해원이었는데,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된 뒤 일본군은 목사(牧使) 서해원을 찾아내 그의 목을 베어 조선의 맹장(猛將) 목사라는 이름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냈다. 아마도 김시민장군으로 착각하고 보복을 했다고 생각했으리라.
",

- 8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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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10
■ 진주대첩 6편

■ 진주대첩 6편

왜군이 진주성을 공격한 지 이틀째 되던 날 밤, 의령을 지키던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가 200명의 의병을 보내왔다. 이를 필두로 최강, 정길용, 최경회 등이 이끄는 의병들도 속속 도착하여 진주성 외곽에 포진했다. 호남에서 온 의병도 상당수였는데, 진주성을 지켜내는 것은 왜군의 호남 진격을 막는데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원군(援軍)들은 적들과 교전할 만한 병력은 아니었기에, 그들은 후방에 머물면서 적의 소규모 부대를 공격하는 게릴라전을 펼쳤다. 밤이 되면 성 주변에 나타나 횃불을 켜고 호각(號角)을 불면서 대규모의 부대가 있는 것처럼 하여 적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일종의 심리전(心理戰)인 것이다.

압도적인 적에 둘러싸여 성을 지키는 수성전(守成戰)은 외롭고 힘든 싸움이다. 이 외로운 싸움에 큰 힘이 되는 것은 바로 원군(援軍)이다. 원군의 존재는 그 병력과는 상관없이 그 이상의 위력이 있다. 원군의 존재는 성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고립된 것이 아니고 돕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전의(戰意)를 높이고, 마음의 안정을 주는 효과를 가진다.

반면에 일본군은 군사를 둘로 쪼개어 진주성과 원군이 협공(挾攻)하는 것을 막아야 하니 온전히 모든 힘을 진주성 공격에 쏟을 수는 없게 된다. 자연히 진주성의 군민은 적의 전력분산이라는 효과로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원군(援軍)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적은 압박감을 느끼게 되고, 초조함으로 평정심을 잃은 상태에서 전술과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진주성에 접근하기조차 어려워진 왜군은 전투 4일째부터 새로운 장비를 동원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대나무를 기다랗게 엮은 죽편(竹片)은 화살을 막기 위한 집단 방패였다. 성벽 높이로 흙을 쌓아 토산(土山)을 만들고, 성안을 향해 사격하기 위해 토산 위에 망루를 설치하였다. 사격용 장비로 성벽 높이만큼 만든 산대(山臺:무대처럼 만든 높은 발판)는 바퀴가 있어 기동성이 뛰어났다. 그러나 당시 성안에는 왜군의 장비에 대응할 만한 무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형 화포인 현자총통(玄字銃筒)이었다. 화약을 이용해서 철환이나 대형 화살을 발사하는 것인데 그 위력이 엄청났다. 한번 발사에 화살은 800m, 철환은 1km 이상을 날아간다고 한다. 선조 때 이장손(李長孫)이 발명한 폭탄의 일종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도 있었는데, 우리의 독창적인 시한폭탄 같은 무기이다.

도화선이 감긴 나무를 비격진천뢰에 넣고 불을 붙이면 화약이 폭발, 내부에 있던 철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적에게 치명타를 입히게 된다. 이처럼 진주성 안에는 각종 무기가 준비 되어 있었고, 비록 수는 적었지만 그 위력이 대단했고, 조선군은 이들 무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원군들까지 도착하여 일본군을 앞뒤에서 흔들어대니 개전(開戰) 이후 단일 전투에서 최대 규모의 병력과 전력을 기울인 일본군은 절대적인 전력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고전(苦戰)을 면치 못했다. 진주대첩의 막바지 전투는 왜군의 총공세가 펼쳐졌고, 필사적인 조선군의 저항이 부딪히며 불꽃 튀는 전투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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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11
■ 진주대첩 5편

■ 진주대첩 5편

왜군의 주 무기는 신식 무기인 조총(鳥銃)이었다. 조총의 사거리(射距離)는 100~200m 내외이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조총 보유율은 전투원의 약 30%로 진주성 전투에서 사용된 조총의 수는 약 4,500정 정도였다. 신식무기로 무장한 왜군에 비해 조선군의 주 무기는 창과 활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김시민(金時敏)은 『사전에 염초 510근과 총통 170자루를 제작했다.』 고 되어 있다. 염초(焰硝)는 화약의 원료를 말하고, 총통은 승자총통(勝字銃筒)이었다. 총통(銃筒)이란 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해 각종 화살이나 탄환을 발사하는 병기로 종류가 다양하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에게도 개인용 화기(火器)가 있었던 셈이다.

승자총통(勝字銃筒)의 발사 원리는 조총과 비슷하지만 수동식 점화(點火)라는 게 다르다. 심지에 불을 붙이면 탄환이 발사된다. 승자총통(勝字銃筒)의 위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기록에 따르면 한 번 발사에 화약 37g을 사용하며, 15개의 철환을 발사할 수 있고 조준거리는 600m 정도로 조총보다 3배 멀리 날아간다고 한다.

또한, 장전(裝塡)과 휴대가 간편하고 총신을 길게 해서 유효 사거리와 명중률을 높인 것으로, 속도는 현대식 소총과 맞먹고 파괴력은 3cm 두께의 송판을 뚫을 정도의 놀라운 힘을 지녔다고 한다. 하지만 수동식 점화여서 발사 간격이 길고 조준 사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도 있었다.

왜군은 조총으로 무장되어 있었고, 조선군은 승자총통을 포함한 대형화기가 있었다. 수적인 면에서나 성능 면에서 왜군의 조총이 조선군의 화기보다 우세했지만, 막상 조총을 앞세우고 공격해 온 왜군은 사거리(射距離)가 우수한 승자총통(勝字銃筒)과 활 때문에 성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진주성의 난공불락(難攻不落)에는 무기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조정은 각지에 왜군의 침입에 대비해 성을 쌓도록 지시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백성들의 원성이 심하여 중도에 그만두기도 했지만, 진주성은 경상감사가 직접 성을 쌓고 참호를 파도록 독려해 외성(外城) 바깥에 거대한 연못을 파고 해자(垓子:성밖을 둘러 판 못)까지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성은 해자가 없다. 판다고 해도 물을 채우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진주성은 성을 쌓고 참호를 파서 물을 채웠기 때문에 공격을 막아내는데 유용하였다.

또 적이 공격해오면 가만히 있다가 적의 공세가 약해지면 그 틈을 타서 맹공을 퍼붓는 전술도 있었다. 이 때문에 왜군은 막대한 양의 탄환을 허비하며 당황했고, 적은 숫자로 많은 왜군을 물리친 진주대첩의 중요한 성공 요인 중 하나이다. 전투 첫날, 김시민은 군세(軍勢)가 웅장하게 보이도록 성안의 남녀노소에게 모두 남장을 시켜 성곽에 배치시켰다. 당시 조선의 도성과 남한산성의 수비 영역은 1척당 1명이었다. 당시 진주성의 둘레는 약 1만 척이었으므로 진주성을 수비하려면 적어도 1만 명의 병력이 필요 했는데, 3800여명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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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12
■ 진주대첩 4편

■ 진주대첩 4편

처음 왜군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이른 시간은 약 30일이다. 김해에서 9월 24일 출발한 그들이 진주성 외곽에 진출해 자리 잡은 것은 10월 5일로 10일 정도 걸렸다. 전쟁 초의 진군 속도라면 이틀이면 충분했을건데, 10일 정도 걸렸다는 것은 창원성, 함안, 부다현 등에서 조선군의 저항이 생각 이상으로 끈질기고 강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쯤, 경상우병사 류숭인장군, 사천현감 정득열, 가배량권관 주대청 등이 이끄는 수백의 군사가 진주성 동문에 와서 입성(入城)하여 같이 싸우기를 청했다. 진주 목사 김시민장군은 "적병이 이미 어울렸으므로 성문을 엄하게 경계하고 있는데, 만약 조금이라도 열고 닫으면 창졸(倉卒:급작그러움)의 염려가 있을 것이니, 주장(主將)은 밖에서 응원함이 옳습니다." 라고 하면서 입성을 거부했다. 결국 입성하지 못한 이들은 외곽에 머물면서 일본군과 격전(激戰) 끝에 모두 장렬하게 전사했다.

진주 목사 김시민장군의 이 결정에 대해 논란은 있다. 먼저 상관인 경상우병사 류숭인장군에 대한 항명(抗命)이라는 지적과 함께 위기에 처한 아군을 외면해서 다 죽게 만들었으므로 아주 비정하다는 평가도 있다. 반면, 곽재우 의병장의 견해를 빌리자면, “비정하긴 해도 이기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고 보는 쪽도 있다. 진주성은 진주 목사 김시민장군이 이끌며 전술과 전략을 준비해 왔는데, 상관(上官)이 들어오면 서로 명령(命令)이 갈리며 지휘부가 분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진주 목사 김시민 장군은 이때 그의 행동이 논란거리가 되고, 후에 이것 때문에 책임을 추궁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해봤을까? 결과가 좋다면 그의 해명이 먹힐 수도 있겠지만, 만약 지기라도 한다면 그를 향한 비난과 책임 추궁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시민장군은 이를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단력 있는 그의 성격이 빚어 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김시민 장군이 상관인 경상우병사 류숭인장군의 병력을 외면한 것에 대해 전투 중이나 후에도 그가 질책을 받았다거나, 군령(軍令)을 받았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성 내에는 엄연히 경상도 전체의 군마를 지휘하는 경상우도 초유사이면서 관찰사인 학봉 김성일선생도 함께 있었으니, 관찰사 학봉 김성일선생의 묵인 또는 승인이 있었거나 아니면 김시민장군의 판단을 전적으로 지지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학봉 김성일선생도 상관이지만, 전쟁에 대해서는 무관(武官)인 목사 김시민장군을 전적으로 신임하고 맡긴 것으로 보인다.

진주 목사 김시민장군의 지휘 하에 진주성은 일본군의 파상공격을 막아내며 굳건히 버텨내고 있었다. 경상우도 각지의 의병들 그리고 전라도 의병부대까지 속속 도착하며, 서서히 조선군에 승리의 기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군은 당황하고 초조해졌다. 진주성을 공략하다가 생각 이상으로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진전은 없고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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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12
■ 진주대첩 3편

■ 진주대첩 3편

일본이 진주를 주목한 이유는 또 있다. 일본군이 전라도로 가는 길목을 막고 끈질기게 저항하는 경상우도 의병들의 중심지가 진주이고, 또 거창과 김천 그리고 사천과 고성 및 진해 등 경상도 지역에서 일본군이 당한 잇따른 패전에 출현한 조선 육군들이 바로 진주성 병력이니 경상도를 온전히 장악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주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군은 진주성을 공략하고자 호소카와 타다오키, 하세가와 히데카츠 등이 이끄는 3만 대군으로 김해성을 출발했다.

이 3만이란 병력은 개전(開戰) 이후 이 시점까지 단일 전투를 위해 동원한 최대의 병력이었다. 그 만큼 일본군이 진주성 공략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고, 반드시 진주성을 점령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진주성에는 경상도의 전쟁준비와 전투를 지휘하는 책임자인 경상도 초유사(招諭使:전쟁이 일어났을 때 백성들을 다스리는 임시직) 관찰사 학봉 김성일선생이 있었고, 진주의 군민을 지휘하는 책임자는 진주 목사(牧使) 김시민장군이 있었다.

전투의 실질적 지휘관인 진주 목사 김시민장군은 1591년 진주판관으로 부임해 왔는데, 당시 조정에서 일본의 낌새가 심상치 않자 능력 있는 무관(武官)들을 차출해서 남쪽 전방(前方)으로 차송(借送:빌려서 보냄)한 케이스였다. 판관(判官:종5품)은 목사를 보좌하며, 군정(軍政)과 민정(民政)의 실무를 담당하고 지휘하는 목(牧)의 2인자에 해당하는 벼슬이다. 그런데 1592년 4월, 전쟁이 일어나고 진주 목사(牧使) 이경이 지리산으로 피신할 때, 그를 따라 갔다가 목사 이경이 병사하자, 때마침 경상도 초유사로 내려온 학봉 김성일선생이 진주로 와서 김시민을 복귀시켜 진주목사 대리를 맡겼다.

김시민장군은 성을 새로 고쳐 수축하고, 모자란 병력을 모집하고 훈련시켰으며, 전쟁에 대비해서 군량과 물자를 비축하고 무기를 제조하였다. 한편으로, 수시로 진주성의 군사를 이끌고 경상우도의 의병들과 연합하여 진주 주변 지역, 거창, 사천, 고성, 진해 등의 일본군을 토벌하며 연승하면서 공을 세웠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김시민은 7월에 정식으로 목사(牧使)에 임명되었다.

1592년 9월 말, 일본군은 김해성에 집결해서 진주를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왜군은 1592년 10월 5일 진주성 동북방의 비봉산과 선학산을 가르는 말티고개에 나타났다. 다음 날 진주성을 정찰하며, 진주성을 포위하고 본격적인 공성(攻城) 준비를 했다. 당시 왜군은 대략 3만 명이었고, 진주성 안에는 일시적으로 규합한 병사 3,800명 뿐 이었다. 이 전투에서 왜군과 조선군의 비율은 8대1이었고, 게다가 왜군은 전쟁으로 단련된 정규병인데 비해 진주성 안에는 죽음을 각오한 군민이 지키고 있었다. 모든 면에서 열세인 조선군이 어떻게 이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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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13
■ 진주대첩 2편

■ 진주대첩 2편

왜군은 처음에 조선군이 전혀 전쟁에 대한 대비도 되어있지 않고, 임금은 피난가고 장수부터 병졸들까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가기에 급급한 것을 보고, 전쟁이 금방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제대로 된 저항 없이 파죽지세로 한양에 도착했고, 평양과 함경도까지 치고 들어갔으니 말이다. 조선의 수도를 점령하고 임금만 사로잡으면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임금이 왕성을 버리고 도주하여 그 뒤를 따라 추격하면서 전쟁은 길어지게 되었고, 생각지도 못한 의병(義兵)이라는 존재가 변수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에는 의병이란 개념도 없었고, 도대체 백성들이 이렇게까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싸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군들도 경험이 생기고 요령이 생기면서 서서히 정신을 차려가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에서 의병들이 출몰하면서 육지의 보급로도 불안했다. 식량은 엄청난 양이 필요한데 보급은 시원찮고, 조선이 청야(淸野:식량을 모조리 없애버림)전술을 펼쳐서 그나마 있는 것도 치워 놓은 상황이라 현지조달도 어려워 배고픔은 도를 더해가고 싸울 힘도 없었다. 만만하게 봤던 조선의 저항은 날로 더해지고 피로도 더해졌다. 여기에 명군까지 개입하니 왜군의 사기는 눈에 띄게 떨어졌다.

처음 전쟁을 시작할 때가 늦봄∼초여름이었던 것이 한여름과 가을을 지나며 늦가을에 접어 들었다. 찬바람이 일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진 날씨로 산악지대나 북쪽에서부터 찬 이슬까지 내리니 겨울을 대비해야 했다. 문제는 한반도의 겨울은 일본에서 그들이 겪은 겨울보다 훨씬 춥고 가혹하다는 것이다. 일본군 수뇌부는 길어지는 전쟁에 날로 초조해져 갔다. 다가오는 겨울도 대비해야 하고, 돌아가고 싶어도 조선이 순순히 보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일본군은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에 놓였다. 이 상황에서 일본군은 돌파구가 필요했다. 겨울을 나며 버틸 수 있는 곡식과 물자가 풍부하고 그나마 따뜻한 곳. 지금까지 전쟁의 참화에서 온전한 지역. 그래서 일본군의 눈이 다시 향하게 된 곳이 바로 전라도였다.

일본군은 이미 전라도 침공을 여러 번 시도했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병력 손실을 입었고, 본진으로 삼은 금산(錦山)도 의병과 관군의 잇따른 공격을 받고 전투를 치르는 과정에서 승리는 했으나 피해가 상당했고, 계속된 전투로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 이순신장군의 활약으로 바닷길이 막힌 상황에서 전라도로 향하는 길은 두개가 남았는데, 하나는 함양 안의와 장수 사이의 험한 고갯길인 육십령이고, 또 하나는 큰 길을 따라 진주를 넘는 것이었다. 일본군은 이 둘 중에서 그래도 더 평탄하고 큰 길인 진주를 노리게 되었다. 일본이 진주를 노리게 된 이유는 또 있다. 진주는 경상도의 전통적인 큰 고을이면서, 경상우도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중간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이면서 지리산과 남해를 통해 물산이 모이는 중심지이고, 큰 강을 끼고 넓은 평야와 구릉이 이어지는 곳이다. 진주를 넘으면 하동이 금방이고,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 남원에 이어 전주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주에서 하동, 섬진강을 건너면 순천과 여수가 지척인데, 여수는 조선 수군의 중심지가 된 전라좌수영이 있으니 전략적으로도 충분히 노려볼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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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14
■ 진주대첩 1편

■ 진주대첩 1편

매년 10월이면 진주성과 그 앞 남강을 화려한 불빛으로 물들이는 ‘진주남강유등축제’가 열린다. 또 10월 10일 ‘진주시민의 날’의 기원도 1592년 10월 10일 대승을 이룬 ‘진주대첩’에서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 중 일어났던 많은 전투 중 이순신장군의 한산도대첩, 권율장군의 행주대첩, 김시민장군의 진주대첩을 3대 대첩(大捷)이라 칭한다. 그 만큼 큰 승리를 이끌어내어 왜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전투들이다. 그 중에서도 진주대첩은 첫손에 꼽힐만한 전투이면서도 그 역사적 의미에 비해 조명을 덜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군의 큰 승리로 끝난 진주대첩은 왜군에게는 최대의 치욕(恥辱)적인 전투였다.

왜군은 왜 진주성 함락에 총력을 기울였을까? 진주대첩 이전의 전쟁 상황을 보면 왜군은 1592년 4월 14일 부산에 상륙, 부산진을 점령한 이후 곧바로 북상하면서 4월28일 한성 진입의 방어선인 탄금대(彈琴臺)를 뚫고 5월 3일 한성에 입성했고, 6월15일에는 평양성을 점령하며 파죽지세로 승승장구(乘勝長驅)했다. 그런데 6월에 명나라가 원군을 파병했고,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나 왜군은 점차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 후 전쟁은 장기전에 돌입했다.

특히 이순신장군의 활약과 남부지방의 의병활동으로 왜군은 후방의 보급선이 끊길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경상우도 의병의 본거지가 바로 진주(晉州)였다. 왜군은 진주성을 함락해서 교두보(橋頭堡)로 삼고, 곡창지대인 호남을 침략하여 군량미를 확보, 장기전에 대비하고자 했다. 그래서 왜군은 경상좌도에 주둔했던 병력과 한성에 주둔했던 병력 중 일부를 보강한 3만 대군으로 진주성을 공격했다.

반면, 조선은 전쟁이 장기전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진주성을 지킴으로써 우리의 전쟁 수행능력을 받쳐줄 후방기지가 되는 전라도를 지킬 수 있었고, 경상우도가 안전해졌을 뿐 아니라 조선 수군의 주력 전라좌수영도 보호하여 조선 수군의 후방이 든든해졌다. 그 결과 조선의 전쟁 수행능력은 높아졌고, 일본의 전쟁 수행능력과 의지가 결정적으로 꺾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조선에 상륙한 이후 일본군은 연승을 거듭하며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진주성에서 대패를 함으로써 조선군의 사기를 높였고, 이젠 일본이 아니라 조선군으로 전쟁의 흐름이 바뀌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일본군이 곡창지대인 호남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아낸 진주성 싸움에는 맡은 바 직분을 다한 목사 김시민(金時敏)이 있었고, 그와 함께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된 민초(民草)들이 있었다. 진주성에서의 완전한 참패로 일본군은 전세가 불리해져 퇴각해야 했기 때문에 일본군에게 1차 진주성 싸움은 치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강화회담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0만 대군으로 진주성을 다시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왜군은 성안에 있는 관민(官民) 6만 명을 전멸(全滅)시켰다. 이때 우리가 알고 있는 기생 논개(論介)가 적장을 끌어안고 죽었다고 한다. 8개월 전에 일어난 1차전(진주대첩)에 대한 보복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 명도 남기지 말고 도륙(屠戮)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진주성에서의 패배가 얼마나 일본군에게 치욕적인 것이었는지를 말해준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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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14
■ 왜군에게 파헤쳐진 왕릉 4편

■ 왜군에게 파헤쳐진 왕릉 4편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첫 번째 주장이나 현실을 중시하는 두 번째 주장이나 모두 일리가 있었다. 두 주장은 타협 없이 팽팽하게 맞서며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자 선조는 이런 논리를 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자기 부모의 무덤을 도굴 당했다면, 수천 명의 도적 모두는 응당 그 아들이 직접 베어 살을 저며야 할 자들이다. 그러나 그 수천 명을 다 잡을 수 없게 됐고 다행히 한두 명을 잡았다면 아들 된 자는 실성해 미친 듯 뛰면서 부모의 묘에 가서 통곡하고 손수 죽여서 원수를 갚겠는가, 아니면 가만히 서서 냉소하면서 ‘이는 묘를 도굴한 괴수가 아니라 수종(隨從)한 적일 뿐이니 이들에 대해 노할 것이 없다’고 하겠는가? 만약 그렇게 하고서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의한 일이요 불효한 일이 아닐 수 없다.』《선조실록 39년 11월16일》

선조는 일본이 압송한 도굴범이 비록 진범이 아니라고 해도 일본인이라는 사실 자체로 도굴범이나 진배없으므로 처형하여 복수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던 것이다. 아울러 선조는 “한번 화친을 잃게 되면 사납게 무기를 들고 쳐들어와 우리 백성들이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을까 걱정되는 것은 물론 크게는 종묘사직의 안위에 관계되고 작게는 수십 년 동안 병란(兵亂)이 계속될 것이니 그 사이의 일을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라며 현실론을 제기했다.

치열한 논쟁 끝에 1606년(선조 39년) 12월 선조는 도굴범 두 명을 공개적으로 사형시켰다. 비록 진짜 도굴범은 아니지만 일본인이기에 도굴범으로 간주돼 처형됐고, 이것으로 복수가 마무리된 것으로 여겨졌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이는 진짜 복수가 아니라 가짜 복수였다.

어쨌든 복수를 마무리한 선조는 1607년(선조 40년) 1월 ‘회답겸쇄환사’라는 이름으로 정식 사절단을 일본에 파견했다. ‘회답겸쇄환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국서에 회답하는 동시에 ‘조선의 포로를 국내로 송환하기 위해 파견하는 사절’이란 뜻이었다. 이 같은 사절단의 명칭으로 선조는 자신이 일본으로부터 최소한의 사죄와 배상을 받고 난 후 국교를 재개했다는 사실을 천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회답겸쇄환사 파견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조일(朝日) 양국 간에 평화가 성립되어 19세기 말까지 지속됐고, 9000여 명의 포로가 송환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측면에서는 비판받아야 할 부분도 많다. 우선 분명한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지 못했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었다. 비록 9000명의 포로가 송환되기는 했지만 이를 20만의 전체 포로에 비춰보면 5%도 못 되는 숫자이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사죄와 배상만으로 화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그 이후에 선조는 와신상담하며 치욕을 씻도록 더 노력해야 했다. 오히려 선조는 기울어가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외교 그리고 세자 광해군과의 권력투쟁에 몰두하다 세상을 떠났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다. 일제 36년간의 식민지배 역시 광복 이후 지금껏 청산되지 못한 역사로 남아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일본은 외면하고 있다.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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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15
■ 왜군에게 파헤쳐진 왕릉 3편

■ 왜군에게 파헤쳐진 왕릉 3편

현장을 조사한 결과 선릉과 정릉의 광 안에는 흙색과 백색 그리고 뼈마디와 피부조각이 뒤섞인 재가 있었다. 선조는 선릉과 정릉의 시신이 모두 불탔다는 결론을 내리고 남아 있는 유골로 국장을 다시 치르게 했다. 유골을 두 개의 종이 봉지로 수습했는데, 큰 봉지에는 뼈마디와 피부조각 등을 수습했고, 작은 봉지에는 타고 남은 재 등을 수습했다. 선조는 1593년 가을 불탄 유골을 가지고 성종과 중종의 국장을 다시 치렀다.

이러한 반인륜적인 도굴과 방화를 저지른 일본이 임진왜란 후 사죄와 배상도 없이 전쟁 운운하며 화친을 요구하자 국론은 둘로 갈렸다. 선조와 조정 중신들은 현실에 입각해 화친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반면, 젊은 관료들은 선왕의 복수를 주장하며 화친을 반대했다. 화친에 반대하는 쪽은 “임진왜란으로 우리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고 심지어 선왕의 무덤까지 도굴되는 치욕을 당했으니 일본은 우리의 영원한 원수다.

와신상담해 이 치욕을 씻지는 못하더라도 관문을 닫아 걸고 일본과는 절대로 화친할 수 없다는 의리를 보여야 하는데 지금 화친하고자 하니 복수의 의리에 크게 어긋날까 염려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젊은 관원들의 대의명분이 아무리 훌륭하고 당당해도 전쟁 재발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 같은 현실과 명분 사이에서 선조는 최소한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기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국서와 도굴범 압송을 요구했던 것이다. 길고 긴 논쟁 끝에 1606년(선조 39년) 8월 선조는 화친(和親)의 전제조건 두 가지를 요구하는 사신을 대마도에 파견하였다. 일본에서는 바로 다음 달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국서와 도굴범 2명을 보내왔다.

그런데 문제는 도굴범 2명의 진범 여부였다. 진범이 아니라면 억울한 사람을 죽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일본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었다. 선조는 도굴범이 진범인지 아닌지를 엄중하게 조사하게 했다. 당시 조선 사람들 사이에는 대마도 출신의 평조윤이 도굴의 주범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평조윤이 이미 죽었다 하면서, 그 대신 평조윤과 함께 도굴에 참여했다는 대마도 사람 두 명을 체포해 압송했던 것이다. 하지만 평조윤의 조카로 알려진 한 사람을 조사한 결과 그는 “조선 땅은 이번이 처음으로 능침(陵寢)을 범한 일에 대해서는 전연 모르는 일이고, 평조윤이라고 하는 자도 모릅니다. 저에게는 부모형제도 없고 4∼5촌 이내의 친척도 없습니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한 사람 역시 한양에는 간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들이 도굴범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선조는 그들이 진범일 경우 죽인 후 종묘사직에 고하는 것으로 복수를 대신하려고 했지만, 조사 결과 두 명은 진범이 아닐 가능성이 훨씬 컸으므로 조정 신료들의 의견은 둘로 갈렸다. 첫째는 가짜 도굴범 두 명을 석방하고 화친 요구를 거절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가짜 도굴범을 보낸 것은 조선에 대한 기만행위이자 모욕행위이므로 단호히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도굴범이 비록 가짜라고 해도 대안이 없으니 그들을 죽이는 것으로 복수를 대신하고 화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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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15
■ 왜군에게 파헤쳐진 왕릉 1편

■ 왜군에게 파헤쳐진 왕릉 1편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다. 국토는 황폐화되고 많은 문화재가 불타 없어진 것은 물론, 많은 포로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당시 확인된 조선의 인구 약 500만 명 중 3분의 2에 육박하는 30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대략 20만 명 정도가 포로로 끌려갔다. 그런데 일본은 임진왜란이 끝나자마자 사죄와 배상도 없이 화친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침략하겠다는 협박을 내세우며 국교 재개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전쟁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화친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국왕 선조(宣祖)로서는 달리 대안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일본으로부터 최소한의 사죄와 배상이라도 받아내고자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의 만행과 협박이 무한 반복될 것이라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선조는 두 가지를 요구했다. 화친을 요청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전쟁에 대한 사죄 국서(國書)를 먼저 보낼 것과 함께 선릉(성종)과 정릉(중종)의 도굴범을 체포해 압송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기 휘하의 병사 중 단 한 명도 조선 침략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모든 전쟁 책임을 이미 죽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떠넘겼다. 따라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런 사실을 공식적인 국서에 명시하고 화친을 요청한다면, 이는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전쟁 책임은 있으나 이미 죽었으므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쟁에 대한 사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즉, 선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쟁 책임을 시인한 것은 곧 전쟁에 대한 사죄나 마찬가지라고 해석할 수 있고, 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전쟁 책임이 있기는 하지만 이미 죽었으므로 자신은 사죄할 일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선조는 이 정도의 타협으로 일본의 전쟁 책임과 사죄 문제를 매듭지으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선조 입장에서 선릉과 정릉의 도굴범 문제는 국서처럼 쉽게 타협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선릉은 성종의 능이었고 정릉은 중종의 능이었다. 그 선릉과 정릉이 임진왜란 중 도굴당해 관이 파헤쳐지고 불태워지기까지 했고, 시체는 행방이 묘연했다. 유교 가치관에서 볼 때 선왕들의 무덤과 시체를 훼손한 것은 살인보다 더한 만행이었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선조는 일본의 화친 요청에 먼저 도굴범부터 체포해 압송하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선릉과 정릉은 1592년(선조 25년) 9월쯤 도굴됐다. 당시 한양은 일본군이 점령한 상황이었고, 선조는 의주에 파천(播遷)해 있었다. 그래서 조선군은 도굴 사실을 몰랐고 선조도 몰랐다. 도굴 사실이 조선군 사이에 알려진 시점은 1593년(선조 26년) 4월이었다. 1593년 2월 12일 행주대첩 이후 조선의 관군과 의병은 수도를 탈환하기 위해 한양 주변에 집결했다.

의병장 김천일 역시 수도 탈환 작전에 참전하기 위해 관악산에 주둔하던 중 선릉과 정릉이 도굴됐다는 소문을 들었다. 김천일은 상부에 급보(急報)하는 한편 특공대를 조직해 현장을 조사하게 했다. 그때 선조는 평안도 영유에 머물고 있다가 급보를 받고 도굴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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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16
백면서생白面書生 – 글만 읽어 세상일에는 경험이 없는 사람

백면서생(白面書生) – 글만 읽어 세상일에는 경험이 없는 사람

흰 백(白/0) 낯 면(面/0) 글 서(曰/6) 날 생(生/0)

들에 나가 땀 흘려 일을 해 본 적이 없어 얼굴이 하얗다(白面). 그러면서 집 안에서 글만 읽어(書生) 모르는 것이 없다. 하지만 세상일에는 경험이 전혀 없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모든 일에 잔소리나 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선비를 가리킨다. 이럴 때 먼저 떠오르는 ‘남산골 딸깍발이’란 말이 있다.

옛날 서울 남산 밑에 모여 살던 몰락한 선비들이 가난하여 맑은 날에도 나막신을 신고 다닌 데서 유래했다. 비록 딸깍거리며 가난하게 살아도 고집스럽게 줏대를 지키며 세상 이치는 꿰고 있는데서 허풍선이 서생과는 차이가 난다.

이 말은 처음 말을 타고 전장에 나가 싸우는 검붉은 얼굴의 무관에 비해 집에서 책만 읽어 창백한 문관을 대비한 데서 나왔다. 서기 420~589년 시기는 중국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이다. 이때는 남북으로 분열되어 한족의 宋(송)나라가 남쪽을, 五胡十六國(오호십륙국)의 혼란을 수습한 北魏(북위)가 북쪽을 차지하여 대치했다. 송나라에 沈慶之(심경지)라는 책략이 뛰어난 무관이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무예를 연마하여 뛰어난 기량으로 수없이 반란을 진압하는 공로를 세운 장군이었다.

북위에서 군사를 일으켜 한 지역을 공격해오자 송의 文帝(문제)는 반격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문신들과 더불어 방법을 논의했다. 그때 심경지가 북벌 실패의 전례를 들어 출병을 반대했다. 국가를 다스리는 일은 집안일에 비유할 수 있다며 말한다. ‘밭가는 일을 알려면 종들에게 물어보고, 베 짜는 일은 하녀에게 물어보아야 하는 법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적국을 치려고 하면서 어찌 얼굴이 허연 샌님들과 일을 도모하십니까(田事可問奴 織事可問婢 今陛下將欲攻敵國 與白面書生謀之/ 전사가문노 직사가문비 금폐하장욕공적국 여백면서생모지)?’ 문제는 그러나 심경지의 간언을 듣지 않고 출병시켰다가 대패했다. 沈約(심약)이 편찬한 ‘宋書(송서)’ 심경지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론과 실제를 다 갖춘 인재가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귀할 수밖에 없다. 이론에 정통한 학자들이 실천하는 정책에 나섰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자기 이론만 고집 말고 현장에선 어떤 다른 흐름이 있는지 잘 받아들여야 서생소리를 듣지 않고 실패도 막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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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17
추풍소낙엽秋風掃落葉 - 가을바람에 낙엽이 휩쓸리다, 낡은 세력을 일소하다.

추풍소낙엽(秋風掃落葉) - 가을바람에 낙엽이 휩쓸리다, 낡은 세력을 일소하다.

가을 추(禾/4) 바람 풍(風/0) 쓸 소(扌/8) 떨어질 락(艹/9) 잎 엽(艹/9)

식물의 잎이 날씨 등 환경의 적응으로 양분을 보내고 말라서 떨어진다. 낙엽을 보고 생명을 다한 처량한 신세를 느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비상한 감각을 지닌 철인들은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를 보고 한 해가 저무는 것을 알고(見一葉落而 知歲之將暮/ 견일엽낙이 지세지장모), 낙엽은 결코 죽지 않고 새로운 생을 준비하는 목소리라 느낀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스산한 가을바람(秋風)에 휩쓸려 날아가는 나뭇잎(掃落葉)을 보면 형세가 다한 초라한 모습이고 전성기를 호령하다 시들어 떨어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 말은 바람의 입장에서 강력한 힘으로 낡은 세력을 일소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가을철 바람은 아니라도 ‘三國志(삼국지)’에서 쏜살같은 바람(迅風/ 신풍)이 낙엽을 쓸어버린다(振秋葉/ 진추엽)는 말이 군사의 기세를 비유한 것으로 나온다. 東漢(동한) 말기 4대째 정승벼슬을 한 명문 집안의 袁紹(원소)는 초기에 큰 세력을 떨쳤으나 曹操(조조)에 패하고 셋째 아들 袁尙(원상)이 권력을 승계한다.

이에 불만을 품은 장남 袁譚(원담)이 원상과 일전을 벌였다가 밀리게 되자 조조와 강화하게 된다. 부친의 원수인 조조와는 내키지 않았으나 먼저 강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모사 郭圖(곽도)의 건의에 의해 특사로 辛毗(신비)를 보냈다.

조조를 찾아간 신비는 원담과의 강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원상을 공격하는 전투에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조조는 원상의 병력이 막강한데 그를 이길 수 있겠는지 묻자 신비가 말한다. 승상의 막강한 위세로 ’피곤에 찌든 원상을 공격하는 것은 마치 질풍이 낙엽을 쓸어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擊疲弊之寇 無異迅風之振秋葉矣/ 격피폐지구 무이신풍지진추엽의)’고 했다.

신비의 비유에 조조는 크게 웃으며 원담과 강화하기로 했다. 후일 원상은 조조군에 쫓겨 도주했다가 죽고 원담도 계획이 틀어진 뒤 격전 중에 사망했다. 결국 조조 바람에 원소 일가가 모두 날아간 셈이다.

무서운 기세로 바람이 세차게 불면 남아나는 낙엽이 없다. 그렇다고 모두 죽을 수는 없다. 바위 뒤쪽에 납작 엎드리거나 물에 떨어졌다가 찰싹 땅에 붙으면 피할 수가 있다.

지진이나 산불 등 재해가 닥쳤을 때 재빨리 규범 따라 대피하고, 특히 근년의 세상을 공포에 휩싸이게 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소극적이나마 효과를 보았다. 아무리 맹렬한 기세로 덮치는 재난이라도 지나갈 때가 있으니 현명하게 잘 참고 견뎌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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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18
인면수심人面獸心 - 사람의 얼굴에 마음은 짐승

인면수심(人面獸心) - 사람의 얼굴에 마음은 짐승

사람 인(人-0) 낯 면(面-0) 짐승 수(犬-15) 마음 심(心-0)

사람이 몹쓸 짓을 저질렀을 때 비유하여 짐승 같다, 짐승보다 못하다, 짐승보다 더 하다고 수시로 짐승에 갖다 붙인다. 그러나 실제 동물들은 억울하다. 사람보다 더 부모를 위할 줄 알고, 새끼들을 귀여워하고, 사랑하고 은혜를 안다.

대충의 성어를 떠올려 봐도 反哺之孝(반포지효)의 까마귀, 老牛舐犢(노우지독)의 소, 鴛鴦之契(원앙지계)의 원앙, 黃雀銜環(황작함환)의 꾀꼬리 등을 사람에게 본받으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의 얼굴(人面)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짐승과 같다(獸心)는 이 말은 잘못 갖다 붙인 것일지라도 사람들이 멋대로 쓴다. 도리를 지키지 못하고 배은망덕하고, 또 음탕하거나 흉악한 짓을 한 사람에게 손가락질하면서 욕한다.

성어가 처음 사용된 곳은 "漢書(한서)"다. 班固(반고)가 20년에 걸쳐 완성하여 史記(사기)와 비견되는 책이다. 열전 속의 匈奴傳(흉노전)에 처음 묘사했을 때는 흉악하기보다는 오랑캐들을 일반적으로 지칭한 것으로 나온다.

흉노는 기원전 3세기 말부터 기원후 1세기 말까지 몽골고원과 만리장성 일대를 중심으로 거주했던 유목 기마민족이다. 周(주)나라 때부터 괴롭혔던 종족의 후예라거나 유럽의 훈족과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이들이 자주 침공하여 漢(한)나라는 절세미인 王昭君(왕소군)을 흉노 족장에게 보내 화친을 도모하기도 한 것은 알려진 이야기다. 흉노를 가리킨 부분을 인용하면 이렇다.

"오랑캐들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며, 사람의 얼굴을 하였어도 마음은 짐승과 같다(夷狄之人 被髮左衽 人面獸心/ 이적지인 피발좌임 인면수심)." 狄은 오랑캐 적, 衽은 옷깃 임. 옷깃을 한족과 반대쪽으로 여미는 풍습을 가리켜 미개하다 하고, 자신들을 많이 괴롭혀 흉악하다 한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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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19
수여쾌오羞與噲伍 - 번쾌와 한 무리가 되어 부끄럽다, 하급과 같이 취급돼 수치스럽게 여기다.

수여쾌오(羞與噲伍) - 번쾌와 한 무리가 되어 부끄럽다, 하급과 같이 취급돼 수치스럽게 여기다.

부끄러울 수(羊/5) 줄 여(臼/7) 목구멍 쾌(口/13) 다섯사람 오(亻/4)

성어에 나오는 목구멍 噲(쾌)라는 글자는 어려운 만큼 사용되는 곳도 드물다. 얼굴이 붓고 초췌하다는 腫噲(종쾌)란 말 외에 사람 이름으로 2명이 나오는 정도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燕(연)나라 噲王(쾌왕)은 신하에 왕위를 물려주고 나라를 쇠하게 만든 무능의 대명사인 반면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을 도왔던 樊噲(번쾌)는 미천한 신분에도 혁혁한 공으로 재상에까지 오른다.

이 번쾌와 한 무리가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말의 주인공은 韓信(한신)이다. 力拔山(역발산)의 기세등등한 項羽(항우)를 꺾고 유방에게 천하를 차지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대장군이니 수치스럽게 여길 만하다.

한신은 원래 항우의 휘하에 있었다. 자신도 집안이 한미했고 胯下之辱(과하지욕)이라며 무뢰배의 가랑이 밑을 지나간 불명예가 따라 재능에 비해 중용되지 못했다. 함께 있었던 鐘離昧(종리매)란 장군은 유방과의 전투에서 가슴을 활로 쏘는 등 괴롭히면서 끝까지 항우군에 남았으나 한신은 유방의 막하로 들어갔다.

한신의 능력을 알아본 유방의 중신 蕭何(소하)의 적극 지원으로 승승장구하여 대장군에 오르고 漢(한)의 천하통일에 크게 기여했다. 번쾌는 처음부터 유방의 측근에서 활약했고, 항우와의 鴻門之宴(홍문지연)에선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까지 구했다.

유방이 황제가 된 뒤 한신은 군사를 빼앗기고 楚王(초왕)으로 있었는데, 항우 사후 자신에게 의탁하러 온 종리매의 목을 바치면서까지 충성을 바쳤지만 다시 淮陰侯(회음후)로 강등되고 말았다. 狡兎狗烹(교토구팽)을 한탄하며 칩거하고 있을 때 번쾌의 집 근처를 지날 일이 있었다.

번쾌는 누추한 곳을 찾아줘 영광이라며 깍듯이 집으로 맞았다. 잠시 머물다 ‘한신이 문을 나설 때 웃으면서 말하길, 내가 결국 번쾌 등과 같은 지위가 되고 말다니(信出門笑曰 生乃與噲等爲伍/ 신출문소왈 생내여쾌등위오)’하고 한탄했다. ‘史記(사기)’의 회음후 열전에 실려 있다.

한신은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유방에게 황제의 지위에 오르게 했어도 앞날을 보는 눈은 밝지 못했다. 천하를 삼분하라고 조언한 모사 蒯通(괴통, 蒯는 기름새 괴)의 건의를 무시했고, 자신에 의탁하러 온 종리매를 배신하면서 결국엔 자신의 목숨까지 잃는다.

여기에 항우에 무시당하고도 백정 출신의 번쾌 등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며 부끄러워한다. 과거 잘 나갈 때의 영광에만 사로잡혀 다른 사람의 성공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함께 큰일을 도모하지 못한다. 출신과 업적을 따진다면 일을 그르치고 퇴보하게 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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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20
경거숙로輕車熟路 - 가벼운 수레로 낯익은 길로 가다, 숙련된 일을 쉽게 하다.

경거숙로(輕車熟路) - 가벼운 수레로 낯익은 길로 가다, 숙련된 일을 쉽게 하다.

가벼울 경(車/7) 수레 거(車/0) 익을 숙(火/11) 길 로(足/6)

‘누운 소 타기’란 속담이 있다. ‘땅 짚고 헤엄치기’나 손바닥 뒤집기 易如反掌(이여반장)과 같이 누구든 오래 익히지 않고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말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분야를 익히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연구해야 숙련자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孔子(공자)가 전문가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폭넓게 공부해도 한 분야에서 명성을 이룬 것은 없도다(博學而無所成名/ 박학이무소성명)’고 자신에게 達巷(달항) 마을 사람들이 말해도 말몰이꾼을 할까라며 웃었다고 했다. 묻는 것을 부끄러워 말라고 한 不恥下問(불치하문)이나, 아낙에게 구슬에 실 꿰는 법을 물었다는 孔子穿珠(공자천주) 고사가 따르는 공자답다.

가벼운 수레를 타고(輕車) 낯익은 길로 달린다(熟路)는 말은 어떠한 일에 숙련되어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駕輕就熟(가경취숙)이라고도 한다. 옛날의 이동수단이었고 전장에서도 아주 유용했던 것이 말이니 名馬(명마)도 많았고, 잘 다루는 장수의 영웅담도 숱하다.

이런 중에서 唐(당)나라의 명문장가이자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韓愈(한유, 768~824)는 ‘送石處士序(송석처사서)’란 글에서 王良造父(왕량조보)를 등장시킨다. 문장의 한 종류인 序(서)는 사물의 경위를 순서 있게 서술하는 것이라 한다. 石洪(석홍)이란 사람이 지방 장관의 참모로 떠날 때 인품과 능력을 논하면서 말을 잘 모는 왕량과 조보가 선두를 다투는 듯하다고 묘사했다.

우선 造父(조보)는 周(주)나라 穆王(목왕)을 섬겨 八駿馬(팔준마)로 西王母(서왕모)를 만나게 했다는 전설이 따르고, 王良(왕량)은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의 대부 趙簡子(조간자)를 위해 駟馬(사마, 駟는 사마 사)를 잘 몰았다고 한다. 한유가 석홍을 칭찬한 부분을 보자. 그와 도리를 이야기하고 일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黃河(황하)가 동쪽으로 흐르는 것과 같다며 이어진다.

‘네 마리 말이 끄는 가벼운 수레를 전설의 왕량과 조보가 잘 아는 길을 몰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가는 것과도 같다(若駟馬駕輕車就熟路 而王良造父爲之先後/ 약사마가경거취숙로 이왕량조보위지선후).’ 지혜와 판단력이 뛰어났다는 최대의 찬사다. 하지만 이런 석홍도 불운이 따랐는지 한유의 글 이외엔 후일담이 전하지 않는다.

어려운 일도 먼저 도전한 사람들이 실패를 거듭한 끝에 쉬운 방법을 찾았기에 후세인들은 편안하게 길을 간다. 불가능한 것이라 여겨졌던 많은 것이 이런 선구자들에 의해 세상이 발전한 것이다. 편안한 길만 찾는 사람들은 왕량과 조보같이 능통하지 못하면서도 알려진 이런 방법까지 귀찮다며 편법을 찾는다.

또한 앞사람들이 만들어 놓았다고 무작정 따르다간 실패할 수 있으니 세심하게 주의하라며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란 말을 남겼다. 능숙한 사람도 주의를 기울이는데 보통사람이야 매사 불여튼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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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20
타면자건唾面自乾 – 남이 얼굴에 침을 뱉으면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타면자건(唾面自乾) – 남이 얼굴에 침을 뱉으면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침 타(口/8) 낯 면(面/0) 스스로 자(自/0) 마를 건(乙/10)

입 속의 침은 소화에 꼭 필요한 액체이지만 이것을 잘못 뱉었다간 큰 사달이 난다. 좋게 대하는 사람에게 나쁘게 대할 수 없다는 뜻의 ‘웃는 낯에 침 뱉으랴’란 속담이 있다. 반면 특정 사람을 향해 침을 뱉었다간 아주 치사스럽게 생각하거나 더럽게 여기어 멸시한다는 뜻이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도전의 의미로 받아들여 대판 싸움이 난다. 그런데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었더라도(唾面) 그것이 저절로 마를 때까지(自乾) 기다린다는 이 성어는 보통 사람은 실행하지 못할 일이다. 처세를 잘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남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수모를 잘 참아야 한다고 한 교훈이다.

중국 역사에서 유일한 여성 황제인 則天武后(측천무후)는 唐(당)나라 2대 太宗(태종)의 후궁으로 들어왔다가 3대 高宗(고종)의 황후가 된 사람이다. 고종이 죽은 뒤 왕위에 오른 두 아들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周(주)나라를 세워 15년 동안 권력을 휘둘렀다.

무후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자비한 탄압책을 썼어도 유능한 관리들을 요소에 잘 등용하여 정치는 그런대로 안정됐다는 평을 받는다. 측천무후의 신하 가운데 樓師德(누사덕, 630~699)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팔척장신에 큰 입을 가졌고 변방 요충지에서 장상으로 30여년을 근무하면서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면서도 성품이 인자하여 어떤 무례한 일을 당해도 겸손한 태도로 얼굴에 불쾌한 빛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느 때 아우가 외직으로 나가게 되자 불렀다. 우리 형제가 다 같이 출세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아 영광이 이미 극에 이르렀으니 사람들의 시샘이 따를 것인데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하니 동생이 대답했다.

‘누가 만약 제 얼굴에 침을 뱉는다면 저는 손으로 닦겠습니다(自今雖有人唾某面 某拭之而已/ 자금수유인타모면 모식지이이).’ 그러자 누사덕은 그렇게 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거스를 수 있다며 덧붙인다. ‘그 또한 좋지는 않다. 저절로 마를 때까지 두는 게 좋을 것이다(適逆其意 止使自乾耳/ 적역기의 지사자건이).’ 어디까지 인내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十八史略(십팔사략)’과 ‘新唐書(신당서)’에 실려 있다.

남을 해치려 하다가 자기가 해를 입게 되는 ‘누워서 침 뱉기’는 어리석은 일이지만 남이 뱉은 침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야말로 인내심이 무섭다. 조금도 양보 않고 경쟁만 일삼는 사회에서 이런 인내를 발휘하는 사람을 아부한다고 손가락질해도 나중에는 수모를 이겨낸 보람을 찾을 때가 있을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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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21
고양주도高陽酒徒 -고양 지방의 술꾼.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

고양주도(高陽酒徒) -고양 지방의 술꾼.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

높을 고(高-0) 볕 양(阝-9) 술 주(酉-3) 무리 도(彳-7)

술은 극단적으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는 존재다. 술은 마시지 않아도 아무 말도 않는데 이렇게 말이 많으니 억울하다. 삼천갑자 東方朔(동방삭)은 "근심을 없애는 데엔 술보다 나은 것이 없다(銷憂者 莫若酒/ 소우자 막약주)"라는 말을 남긴 반면 러셀은 "음주는 일시적인 자살이다. 음주가 갖다 주는 행복은 단순히 소극적인 것, 불행의 일시적인 중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악을 경계했다.

모두들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지나치게 마셔 문제가 되는 것은 탈이다. 주위는 아랑곳없이 기고만장하는 술꾼은 술 권하는 사회라 해도 지탄받으니 조심할 일이다.

高陽(고양) 땅의 술꾼이라는 말의 주인공은 酈食其(역이기, 酈은 땅이름 역, 食은 밥 식, 사람이름 이)다. 秦(진)나라가 쇠퇴하고 項羽(항우)와 劉邦(유방)의 楚漢(초한) 대결로 압축됐을 때 유방의 휘하로 들어가 공을 세우며 以食爲天(이식위천) 성어를 남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중국 陳留縣(진류현)의 고양에서 태어나 평소 독서를 즐겼지만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의식주를 해결할 직업이 없어 하는 수 없이 그는 고을 성문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술을 즐기고 성격이 괴팍하여 사람들이 "미친 선생"으로 불렀다. 어느 때 역이기가 유방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하고 친구의 도움으로 만나러 갔다.

유방이 선비를 싫어한다는 귀띔을 받아 짐작한 대로 군문 앞에서 부하에게 뵙기를 원한다고 전하자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선비를 만날 시간이 없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역이기는 호통을 쳤다.

"빨리 들어가서 나는 고양의 술꾼이지 선비가 아니라고 전하시오(吾高陽酒徒 非儒人也/ 오고양주도 비유인야)."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두 여인에게 발을 씻기며 뒤돌아보지도 않는 유방에게 선비의 중요성을 일깨워 역이기는 모사로 일하게 되었다. "史記(사기)" 酈生陸賈(역생육가) 열전에 실린 이야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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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22
■ 포로가 된 임해군과 순화군 4편

■ 포로가 된 임해군과 순화군 4편

1593년 2월 20일, 명나라 사신 풍중영은 안변에서 가토와 만나 강화(講和)회담을 가졌다. 가토는 “내가 명나라 사신과 회담하는데 조선 사람들을 참여시킬 수 없습니다.”라며 통역을 위해 배석했던 조선 사람들을 모두 내보냈다. 그리고 풍중영과 단둘이 하루 종일 회담했는데, 그 자리에 참여한 조선 사람이 없어서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다. 아마도 가토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협상안 즉 두 왕자를 돌려보내는 대신 대동강 이남지역 또는 한강 이남지역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가토는 화친의 전제조건으로 영토할양을 약속받으려 했고, 반면 풍중영은 먼저 왕자들부터 송환하라고 주장했다. 가토는 본토(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회답이 있어야 하므로 마음대로 풀어줄 수 없다는 말로 거절했고, 선조가 영토할양에 관해 어떤 서한도 보내지 않았음을 확인한 가토는 회담을 결렬시켰다.

그 대신 한양에서 강화회담을 재개키로 했다. 당시 임해군과 순화군은 협상이 결렬되면 일본으로 끌려갈까 봐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임해군과 순화군은 가토에게 끌려 한양으로 왔고 같은 집에 머물렀다. 그때 한양에는 먹을 것이 거의 없었다. 일본군은 물론 왕자들 역시 먹을 것이 없어 굶다시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명과 일본 사이에 강화회담이 재개됐다. 가토는 이전과 같은 요구를 했고, 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화 회담이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명과 일본 사이에는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즉 일본은 한양에서 자진 철수해 남해안 지역으로 물러가고, 그 대가로 명은 일본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묵인이었다. 1593년 4월 19일, 일본군은 한양에서 자진 철수해 남해안 지역으로 물러갔고, 이후 명군은 일본군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때 임해군과 순화군은 부산으로 끌려갔다. 공식화되지 않았을 뿐 명나라는 일본의 남해안 지역 점유를 묵인했고, 일본은 명나라 군대의 조선 주둔을 묵인하는 상황이었다. 이것은 영토할양을 통한 화친이라는 가토의 협상안이 관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묵인의 증표로 1593년 7월 임해군과 순화군은 명군에게 넘겨졌다. 포로로 잡힌 지 1년 만이었다.

선조의 입장에서 왕자들의 송환은 마냥 기쁜 일만은 아니었다. 조선을 조선으로 보전하기를 원한다면 선조는 영토할양을 인정하거나 묵인하는 그 어떤 상황도 용납할 수 없음을 천명해야 했다. 그러자면 영토할양 묵인의 증표로 송환된 두 왕자를 단호하게 거부하거나 처단해야 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의지가 빈말이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선조는 두 왕자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처단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두 왕자를 수행했던 신료들만 가혹하게 처벌했다.

선조는 자신과 왕자들은 전쟁에 대한 책임을 조금도 지지 않은 것이다. 이런 선조가 명나라 장수들에게 왜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 달라고 요구했을 때 얼마나 호소력이 있었을까? 실제로 명나라는 선조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이나 일본군을 공격하지 않았다. 자칫 왜군의 남해안 점유가 더 오래 지속될 수도 있었다.

이런 위험한 상황은 정유재란(1597년 선조 30년)에서 조선이 승리함으로써 끝날 수 있었다. 이렇듯 임진왜란 중 일본군의 남해안 점유가 몇 년간이나 지속된 이유는 근본적으로 조선의 국력이 약해서이고, 거기에 더해 선조의 무능함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볼 수밖에 없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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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22
■ 포로가 된 임해군과 순화군 3편

■ 포로가 된 임해군과 순화군 3편

가토가 회령에 들어왔을 때 왕자를 비롯한 대신들은 밧줄로 꽁꽁 묶여 있었다. 가토는 “이 사람들은 너희 국왕의 친아들과 조정 대신들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곤욕을 주는가?”라며 결박을 풀게 했다. 이후 가토는 6진 지역을 모두 접수하고 9월 초에 안변으로 철군했다. 포로가 된 임해군과 순화군 역시 안변으로 끌려갔다. 그때 가토는 돗자리로 싼 가마를 만들어 왕자들을 옮겼다. 밤이 되면 방문을 새끼로 얽어 묶고, 수많은 보초병을 세우고 밤새 불을 밝혔다.

7월이 되어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7월 8일 한산도대첩에 이어 7월 17일에는 명나라 장수 조승훈이 이끄는 3500명의 명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했다. 비록 이 공격은 실패했지만 조만간 명나라 군대 10만명이 출병(出兵)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조선군의 사기는 높아진 반면 왜군의 사기는 떨어졌다.

가토를 비롯한 대부분의 왜장은 명나라와의 장기전에 대비해 대책을 세우고자 했다. 가토는 조선 땅을 분할함으로써 일단 조선과 화친했다가 장기적으로 명을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가토는 임해군과 순화군을 이용하려고 했다. 즉 두 왕자를 돌려보내는 대신 대동강 이남지역 또는 한강 이남지역을 받아내려는 계산이었다.

대동강과 한강 사이를 절충지대로 하고, 대동강 이북은 조선이 한강 이남은 일본이 점유한다면 명나라가 합의할 가능성이 높았다. 당시 명은 요청에 의해 참전하기는 했지만 확전을 원하지는 않았고, 다만 일본군이 명나라로 침입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일본군이 한강 이남에 머물겠다고 하면 명나라는 굳이 반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설령 조선이 반대한다 해도 명나라가 밀어붙이면 협상은 관철될 수 있었고, 게다가 왕자들까지 풀어주겠다고 하면 협상 타결의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가토는 포로로 잡은 이홍업에게 자신의 협상안을 주어 선조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여기에 더해 왕자들의 편지는 물론 수행 대신들의 편지도 함께 보냈다. 가토의 협상안과 왕자들의 편지가 선조에게 전해진 때는 10월 19일이었다. 당연히 조정 중신들은 가토의 협상안을 결사반대했다. 선조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선조는 협상안을 가져온 이홍업을 사형시킴으로써 거부의사를 분명하게 밝히는 한편, 명나라에도 강력한 반대 의지를 알렸다.

조선군과 왜군의 대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1592년 12월 26일에 4만3000여 병력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어 들어왔다. 이를 계기로 전세(戰勢)가 바뀌었다. 1593년 1월 8일 조명연합군은 평양을 탈환했다. 이여송은 그 여세를 몰아 개성까지 탈환했고, 1월 24일에는 서울 근교의 벽제역까지 밀고 내려왔다. 그러나 왜적을 얕보던 이여송은 벽제역에서 유인술에 말려들어 대패했다. 놀란 이여송은 평양까지 후퇴하고 더 이상 진격하려 하지 않았고, 그 대신 일본과 협상을 통해 전쟁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명나라는 임해군과 순화군 석방에 총력을 기울였다. 두 왕자를 송환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왜군과 협상하자고 하면 선조가 결사반대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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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23
■ 포로가 된 임해군과 순화군 2편

■ 포로가 된 임해군과 순화군 2편

근왕병을 모집하기 위해 함경도와 강원도에 왕자를 파견한 이유는 파천 길에 오른 선조의 1차 목적지인 개성이나 평양이 있는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왕자들이 앞장서 근왕병을 모집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함경도와 강원도는 태조 이성계가 태어나 활약하던 곳으로 조선 왕실의 고향과도 같은 곳일 뿐만 아니라, 조선의 최정예 병력으로 손꼽히는 6진의 기마대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4월 30일 새벽, 임해군은 창덕궁을 떠나 함경도로 향했다. 조금 앞서서 순화군도 강원도로 갔다. 5월 3일 강원도 금화에 도착한 임해군은 그곳에서 왜적이 이미 춘천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금화와 춘천은 하루 일정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임해군은 즉시 북으로 길을 재촉해 5일에는 철령을 넘어 함경도의 안변에 도착했고, 이어 9일에는 원산 주변에 있는 덕원에 도착했다.

임해군은 그곳으로 함경도 감사와 군사령관들을 소집했다. 이에 호응해 북청에 주둔하던 남병사 이혼이 4000명에 가까운 병력을 이끌고 왔다. 이 병력이 당시 조선 관군 중에서는 최정예 병력이었다. 임해군은 그중에서 200명을 선발해 선조에게 보내고 나머지는 전쟁터로 가게 했다.

이 외에도 임해군은 함경도 주민들의 항전 의지를 북돋우기 위해 말을 무상으로 지급하고, 세금을 대폭 감면해 주었다. 임해군의 근왕병 모집 활동은 몇몇 부작용(강제적 물자 수탈이나 불법적 노동력 징발)을 야기하긴 했지만 현실적인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5월 27일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평양의 선조는 물론 덕원의 임해군 역시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선조는 명나라에 망명할 각오를 하고 의주로 갔고, 임해군은 마천령을 넘어 함경북도의 경성으로 퇴각했다. 그 당시 순화군은 임해군과 함께 있었다. 임진강을 건넌 왜적은 황해도 평산에 이르러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로 각각 길을 나눠 북진했다.

함경도로 쳐들어간 왜장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였다. 당시 우리 관군은 왜적의 침입로를 철령으로 예상하고 강원도 회양에 주둔하고 있었으므로, 가토 기요마사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함경도로 쳐들어갈 수 있었다. 가토는 주력 부대를 거느리고 함흥으로 진출한 뒤 북청, 단천을 지나 계속 북진하면서 왕자들을 추격했다.

6월 11일 선조가 평양을 떠나 의주로 향하자, 함경도에는 국왕이 나라를 버리고 명나라에 망명하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임해군과 순화군은 경성에서 회령으로 퇴각했다가 7월 23일 회령 사람들에게 포로로 잡혔다. 임해군과 순화군의 회령 도피 소식이 전해지자 회령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두 왕자와 여러 대신을 잡아 적에게 항복한 것이다. 함경도 사람들은 선조에 이어 왕자들 역시 명나라로 망명하려 한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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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24
■ 포로가 된 임해군과 순화군 1편

■ 포로가 된 임해군과 순화군 1편

임진왜란 발발(勃發) 직후, 선조나 한양 사람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명장으로 소문난 신립장군과 이일장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 상황이 급변했다. 1592년(선조 25년) 4월 21일 선조는 “오늘날의 적은 신병(神兵)과 같아서 감당해낼 자가 없으니 신은 오직 죽을 따름입니다.”라는 이일장군의 보고서를 받았다.

선조는 만약의 경우 파천(播遷:임금이 다른 곳으로 피난)하기 위해 은밀히 미투리 등 피난 물품을 준비하고, 언제라도 쓸 수 있게 말을 대령하게 했다. 그리고 궁궐 밖에 살던 자녀와 사위, 며느리들을 불러들였다. 선조의 자녀들이 입궁하자 파천 소문이 퍼져나갔고, 백성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4월 27일 상주 전투에서 이일장군이 패배했다는 소식이 한양에 알려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도성(都城) 밖으로 나가는 피난 행렬이 줄을 이었다. 조정 신료와 종친들은 파천 소문에 분개하며 결사 항전을 부르짖었다. 결국 선조는 “종묘와 사직이 이곳에 있는데 내가 어디로 간단 말인가?”라며 파천하지 않겠다고 공언(公言)했다.

그러나 파천 소문 자체가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었고, 대신들은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자를 세울 것을 요청했다. 그래서 4월 28일 급하게 장남인 임해군을 제치고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됐다. 4월 29일 저녁, 방어선으로 구축되었던 충주에서 신립장군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양은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 날, 한밤중에 파천이 결정되면서 선조는 두 가지 조치를 취했다. 첫째는 종묘와 사직의 신주를 모셔와 파천 행렬에 동참시키는 것이었고, 둘째는 왕자들을 파견해 근왕병(勤王兵)을 모집하는 것이었는데, 둘 다 파천반대론을 누르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선조의 아들 7명 중 2명은 미성년이었으므로 세자 광해군을 제외하면 4명의 왕자들을 모두 파견해 근왕병을 모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조는 그 중 임해군과 순화군 두 명만 각각 함경도와 강원도로 가게 했다.

선조와 떨어져 근왕병을 모집하게 된 임해군은 21세로 이미 성년인데 비해 순화군은 13세에 불과했다. 반면 선조를 수행하게 된 신성군과 정원군은 각각 15세, 13세였다. 세자 광해군은 18세였다. 13세의 순화군이 15세의 신성군을 제치고 근왕병 모집에 나서게 된 이유는 선조의 편애 때문이었다.

선조는 후궁 중에서 숙의 김씨를 가장 총애했다. 당연히 아들들 중에서 숙의 김씨 소생인 신성군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실 선조가 임진왜란 때까지 세자 책봉을 미룬 가장 큰 이유는 신성군 때문이었다. 선조는 신성군을 세자로 삼고 싶어 했지만, 왕비의 아들도 아니고 후궁 소생 중 첫째도 아니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선조는 조금 더 때를 기다렸다가 신성군을 세자로 삼으려 했으나 뜻밖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부득이 광해군을 세자로 삼았던 것이다. 선조는 신성군으로 하여금 자신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만약의 경우 세자 광해군을 대신하게 할 생각이었다. 신성군의 친동생인 정원군 역시 숙의 김씨 소생이었기에 선조를 수행하게 됐다. 이런 점에서 근왕병을 모집하게 된 임해군이나 순화군은 상대적으로 선조의 관심 밖에 있던 왕자였다고 할 수 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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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24
■ 꽃담 3편

■ 꽃담 3편

경복궁에 들어서서 안쪽으로 쭉 걸어 들어가면, 예쁜 꽃담의 보호를 받는 자경전에 다다른다. 자경전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자미당(紫薇堂) 터에 고종의 어머니인 조대비(신정익왕후)를 위해 지었으나, 불에 타버려 고종 25년(1888)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경전 십장생 굴뚝은 자경전 뒷담의 한 면을 돌출시켜 만들었는데, 네모 형태로 가운데는 동식물 무늬인 십장생(해, 산, 물, 돌, 구름, 솔, 학, 불로초, 거북, 사슴-십장생물)을 새겨 넣었다. 십장생 무늬는 가장 한국적인 무늬로 알려졌는데, 이것은 조대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여 제작한 것이다.

조선 태종은 경복궁 서쪽에 큰 연못을 파고 경회루를 세우고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 교태전(왕비 침전) 뒤뜰에 인공동산을 세웠는데 이를 아미산(峨眉山)이라 하였다. 아미산의 굴뚝은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온돌방 밑을 통과하여 연기가 나가는 굴뚝으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고종 2년(1865) 경복궁을 고쳐 세울 때 만든 것이다.

십장생, 사군자와 장수, 부귀를 상징하는 무늬, 화마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이 표현되어 있다. 굴뚝의 위쪽 부분은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하였고 그 위로 연기가 빠지는 작은 창을 설치하였다. 굴뚝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각종 문양 형태와 그 구성이 매우 아름다워 궁궐 후원 장식 조형물로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창덕궁은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하나로 태종 5년(1405년)에 세워졌다. 당시 종묘·사직과 더불어 정궁(正宮)인 경복궁이 있었으므로, 이 궁은 하나의 별궁(別宮)으로 만들었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창경궁과 함께 불에 타 버린 뒤 제일 먼저 다시 지어졌고, 그 뒤로 조선왕조의 가장 중심이 되는 정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창덕궁 후원에 자리하고 있는 낙선재는 1847년 후궁 김씨의 처소로 지어졌으며, 본래 이름은 낙선담이다. 낙선재는 여러 황족들이 마지막을 보낸 곳으로 유명한데,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마지막 공주 덕혜옹주, 두 나라를 조국으로 섬겨야 했던 이방자여사 등 비운의 주인공들이 한 많은 삶을 이곳에서 마쳤다.

낙선(樂善)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국상을 당한 왕비와 후궁들이 상중에 거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다. 그런 이유로 낙선재는 궁궐의 건축물답지 않게 매우 소박한 느낌이지만, 주위를 둘러싼 담만큼은 매우 화려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낙선재의 담은 꽃무늬 장식의 화초담이다. 낙선재의 ‘화초담’은 화려함에 화려함을 더하고, 그 화려함에 길(吉)한 마음을 그대로 펼쳐내고 있다.

낙선재에서 석복헌으로 통하는 뒤뜰 샛담에는 단아한 모양의 포도나무가 새겨져 있다. 예나 지금이나 포도나무는 다산, 다남을 상징하는 까닭에 뒤꼍 여인들이 다니는 자리에 이런 무늬를 그려놓은 것이다. 이 또한 우리 선조들의 은근하고 함축성 있는 해학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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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25
■ 꽃담 2편

■ 꽃담 2편

현존하는 담(檣)을 살펴보면 그 의장(意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옛 건축물의 담장을 보면 담 위에 문양처럼 도안한 글자를 새겨 넣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주로 수복부귀(壽福富貴)나 강녕(康寧) 같은 상서로운 의미를 담은 문자를 새겨 넣었다.

대궐의 담장이나 맞배지붕의 측면 벽 같은 곳에 이런 문자를 새겨, 임금의 무병장수(無病長壽)와 나라의 복을 빌었던 것이다. 서민의 담장에서도 기와 깨진 조각이나 여러 형상의 돌로 치장했으며, 궁궐이나 상류층의 고급스러운 조각이나 무늬돌로 장식하였다.

이렇게 담장, 담벼락, 합각, 굴뚝에 무늬로 장식한 것을 통틀어 꽃담이라고 하며, 담장을 쌓으면서 깨진 기왓장이나 돌을 박아 넣어 장식한 것부터 꽃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문헌에는 회면벽(繪面壁), 회벽화장(繪壁華墻), 화문장(華紋墻, 花紋墻), 영롱장(玲瓏墻)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꽃담축조 기법은 이미 삼국시대에 사용하였고, 고려를 이은 조선에 계승되었다. 조선이 검소한 것을 숭상하는 풍조로 흐르면서 화려한 꽃담은 그 기세가 꺾였지만,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새 수도로의 천도와 그에 따른 한양성의 건설 등으로 장중한 꽃담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경제 침체로 요업(窯業)도 침체되어 무늬를 넣은 벽돌을 구워 아름답게 치장하지는 못했지만,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소박한 재료로 꽃담을 조성하곤 했다. 조선 시대의 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에서 아름다운 꽃담의 자태를 볼 수 있다.

담의 무늬로 대표적인 것은 길상문자(吉祥文字)인 수복(壽福), 강령(康寧), 부귀(富貴), 다남(多男), 만수(萬壽), 쌍희(囍) 등 인간의 기본적인 기원이나 소망들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때 무늬는 대개 벽돌로 구성하거나 때로는 석회줄눈으로 띠를 두른 후 그 뒤에 청색이나 적색으로 칠을 하게 된다.

상서로운 동물로 생각하는 사슴이나 길조(吉鳥)로 생각하는 학 같은 조류들을 무늬로 하여 장식한 구조물도 있다. 국화, 매화, 난초와 같은 꽃이나 대나무, 소나무, 석류나무 등을 무늬로 삼는 경우는 화초담(花草檣)이라 부르게 되는데, 식물만이 아니고 동물무늬를 섞어서 구성하여도 화초담(花草檣)이라 부른다. 화초담에 나타나는 식물은 동물무늬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기원을 담고 있다.

매화는 여인의 정절에 비견되기도 하며, 포도 무늬나 류문은 다산(多産)을 의미한다. 또, 바람에 날리는 대나무는 선비의 굳은 절개를 나타낸다.

꽃담은 주로 여성들이 기거하는 공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민간에서는 화장벽돌을 이용해 꽃담을 만드는 것은 찾아 볼 수 없고, 기와편을 이용해 소박한 문양을 연출하는 정도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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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26
■ 꽃담 1편

■ 꽃담 1편

농경 사회로 접어들면서 인간이 한 곳에 정착하게 되었고, 농사를 지어 곡물을 비축하면서 짐승이나 외적으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구조물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생긴 것이 바로 방어적 성격의 담(墻)이다. 담은 집의 둘레나 일정한 공간을 둘러막기 위하여 흙 · 벽돌 따위로 쌓아올린 시설물이다.

울 · 울타리 또는 담장이라고도 한다. 비교적 간단한 구조로 된 것을 울타리라 하고 튼튼하게 된 것을 담 또는 담장이라 한다. 담은 공간을 둘러막는 기능과 동시에 외부로부터의 침입자를 방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시각적인 차단의 기능도 포함하고 있다. 우리 한옥에서 마당과 함께 담은 단순한 차단의 기능을 넘어 건축의 일부이면서 주변 자연 환경과 잘 어우러져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담(墻)은 그 건축주(主)의 사회적 신분을 반영하고 있으며, 사회적 신분의 고하(高下) 따라 그 모양과 재료는 물론 구조도 달라진다. 일반 사람들은 울타리 · 돌담과 같은 자연적인 모습의 담을 쌓고 살았다. 그리고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집이나 궁궐에서는 벽돌담, 또는 담벼락에 꽃이나 그 밖에 여러 가지 장식 무늬를 만든 꽃담과 같은 튼튼하고 아름다운 담을 쌓았다.

담(墻)의 높이 역시 신분에 따라 달리 구성된다. 서민 주택에서 담(墻)은 안과 밖을 구분하는 단순한 경계물로서의 성격이 강한 반면, 중상류주택의 담(墻)은 대지의 경계는 물론 외부에 대하여 극히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전통한옥의 담(墻)은 외부와의 경계뿐만 아니라 집 전체를 크고 작은 공간으로 분화시켜, 공간마다 특유한 목적과 정서를 이루게 했다.

이것은 사찰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 마당에 이르게 되기까지 담(墻)과 문에 의해 크고 작은 공간의 변화를 만든다. 그러나 분화된 공간과 변화하는 공간을 담(墻)은 동일한 재료의 반복과 구조를 통하여 각 공간들의 통일감도 가져다준다.

담의 종류는 재료에 따라 나무판자로 만든 것, 대나무를 늘어세운 것, 콘크리트로 만든 것, 그리고 돌이나 벽돌 · 블록 · 흙벽돌 등을 쌓아 만든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실내외에서 늘 눈에 띄는 벽이나 담장을 화려하게 무늬로 벽돌을 쌓거나 일부에 화초문을 미장으로 새김질하여 바른 것을 꽃담이라고 한다.

식물과 같은 생명체를 문양으로 담았기 때문에 화초담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문양이 조성된 담장이라는 의미로 화문담이라고도 한다. 꽃담은 아래에서부터 기단, 몸체,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은 담장의 기저부를 이루는 토대로 화강석을 반듯하게 다듬어 놓은 장대석을 쌓는다.

몸체에는 주로 전돌이 사용되는데, 전돌은 담장의 높이를 형성하는 골격이면서 꽃담의 문양을 표현하는 장식재로도 사용된다. 꽃담의 상부는 한옥과 마찬가지로 기와로 마감하거나, 벽돌을 두툼한 두겁벽돌로 얹어서 지붕을 형성한다. 꽃담의 지붕은 담장 몸체에 우수(雨水)가 침입하는 것을 방지하며, 담장 안쪽 한옥과의 일체감 있는 통일성을 형성한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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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26
◇ 선동렬, 선발 전날 정삼흠과 소주 10병, 양주 5병 먹고 완봉

◇ 선동렬, 선발 전날 정삼흠과 소주 10병, 양주 5병 먹고 완봉

선동열은 해태 타이거즈 시절 ‘말술’로 유명했다. 고려대 동기 정삼흠(MBC 청룡)과의 선발 맞대결 전날 술 대결 일화는 지금도 전설로 내려온다. 1987년 9월 1일, 다음날 광주 경기 양팀 선발이었던 선동열과 정삼흠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대작을 했다. 경기 결과는 선동열의 5-0 완봉승. 정삼흠은 5실점 하고 7회 강판됐다.

선 감독이 들려주는 당시 상황. “광주 호텔의 사우나에서 만났는데 저는 정삼흠이 다음날 선발인 줄 몰랐어요. 저녁 같이 먹자고 해서 광주 근교 식당에서 둘이서 소주 10병 정도 마셨죠. 저는 들어가려고 하는데 한잔 더 먹자고 해서 카페 가서 양주를 다섯 병 마셨어요. 다음날 낮 경기여서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았죠. 지금이라면 절대 그렇게 못 마십니다. 허허허.”

‘농구 대통령’ 허재와의 술 대결도 유명하다. 농구대잔치 시절 광주에 경기를 온 허재가 선동열과 술 대결 도중 견디다 못해 도망갔다는 설이 있고, 선동열이 지인을 동원해 인해전술을 썼다는 설도 있다. 선 감독의 증언이다. “허재가 도망가지는 않았고요. 아마 술은 허 감독이 더 셀 걸요. 그날 저녁에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형 소주나 한잔 하자’고 해서 밤새 마셨죠. 다음날 낮 경기에서 허재가 펄펄 날더라고요. 혼자서 60점 가까이 넣어서 신기록을 세웠다고 들었어요.”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5.html
kolaswqetsrq 11.02 19:27
◇ 라이언 일병과 천안암 전사자 아들

◇ 라이언 일병과 천안암 전사자 아들

미군으로 2차 대전에 참전한 라이언 4형제 중 3형제가 전사했다. 미군 수뇌부는 절망한 어머니에게 마지막 남은 아들이라도 돌려보내려 한다. 라이언 일병을 찾는 임무에 선발된 병사들은 의아해한다. “왜 1명을 구하러 8명이 갑니까.” 지휘관 대위가 답한다.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다. 영화에서 라이언 일병을 데려오기 위해 결국 대위를 포함해 6명이 전사한다. 6·25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 한 중대가 10배 많은 중공군에게 5일간 포위 공격을 당했다. 미군이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대대 병력을 파견하며 발표했다. “중대를 구하려다 대대가 전멸할 수 있다. 그러나 중대의 희생을 지켜보는 것은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야구장엔 ‘돌아오지 못한 장병을 위한 좌석’이 있다. 아무리 만원이어도 그 자리는 비워 둔다. 한 ROTC 학생이 부동자세로 그 자리 앞을 지키고 있는데 비가 내렸다. 그러자 관중이 다가가 학생 머리 위로 우산을 펼쳐들었다. 미국에서 이런 장면은 흔히 있다.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든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에선 아직도 전사한 군인과 유족을 조롱하는 이들이 있다. 북한과 싸웠다는 자체가 싫은 사람들, 그래서 지금 정권을 곤란하게 만든 것에 화가 난 사람들이다. 한 전사자 아내는 이민을 떠났다. 마음의 상처를 달래고 돌아오기까지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이달 초 제2연평해전 기념일엔 전몰 용사의 이름을 틀리게 적는 일도 있었다. 현충일 추념식 초청 대상에 천안함 유족 등을 뺐다가 뒤늦게 포함한 적도 있다. 이러고도 나라가 온전한 게 신기할 정도다.

천안함 폭침으로 전사한 정종율 상사의 아내가 암 투병 끝에 21일 별세했다. 전셋집에 살며 남편 없이 키운 외동아들은 이제 고1이다. 세상에 홀로 남겨질 아들 걱정에 엄마는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감지 못했을 것 같다. 남편을 나라에 바치고 자신마저 어린 자식을 남기고 먼저 가야 하는 그 비통했을 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진다.

 "
정 상사 부부의 이 아들은 천안함 5주기 때 “반드시 자랑스러운 군인이 되겠다”는 편지를 썼던 그 소년이다. 최원일 전 천안함장이 정 상사 아내 별세 소식을 전하자 소년에게 위로와 응원 글이 쇄도하고 있다. “눈물을 참을 수 없다” “용기를 잃지 마라” “나라 위한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소년이 역경을 딛고 성장해 군인의 꿈을 이루길 바란다. 이제 이 아들은 ‘나라의 자식이다.
",

-조선일보 만물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518.html
kolaswqetsrq 11.02 19:27
◇ 중국 침투 경계, ‘한국판 해밀턴’ 나올 수 있나

◇ 중국 침투 경계, ‘한국판 해밀턴’ 나올 수 있나

올해 68세의 호주 학자 클라이브 해밀턴은 원래 중국 전문가는 아니다. 호주 찰스 스터트 대학의 공공윤리 교수로 오랜 세월 기후 변화와 경제 발전, 지속 가능한 성장 등의 문제를 연구했다. ‘한국의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아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런 그가 중국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베이징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2008년이다. 당시 성화가 캔버라를 지날 때 티베트 독립을 외치는 시위대가 등장했다. 서방 국가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한데 곧 충격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수만 명의 중국인 유학생들이 시위대를 폭행한 것이다. 어떻게 호주의 수도 한복판에서 호주 사람이 중국 학생에게 매를 맞을 수 있나.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2016년 호주의 한 유력 정치인이 중국 자금과 연루된 스캔들로 낙마했다. 해밀턴은 이런 일련의 사건을 호주 민주주의와 중국의 충돌이라는 시각에서 봤다. 그리고 이때부터 호주 사회 곳곳에 파고드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나섰다. 그 결과물이 2018년 나온 『Silent Invasion』으로 국내엔 올해 『중국의 조용한 침공』으로 번역돼 출판됐다. 호주의 정계와 학계, 언론계, 재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침투하는 중국의 파워를 실감 나게 적시했다. 중국의 거센 반발로 호주에서 책을 낼 출판사를 찾기조차 쉽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의 입김이 이미 호주 출판사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던 것이다.

중국에 대한 해밀턴의 시각을 100% 수용할 순 없겠지만, 그가 드는 호주의 여러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호주 정가의 ‘중국 클럽’이 아닐까 싶다. 호주는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중국에 대해 왜 과거 무방비로 당했나. 해밀턴은 두 사람의 전직 총리를 거론한다. 1983년부터 91년까지 총리를 역임한 밥 호크, 그리고 호크의 뒤를 이어 96년까지 총리 자리를 지킨 폴 키팅 두 사람이다. 호크와 키팅 시절 부상한 호주의 정치 조언자 그룹은 호주의 미래가 아시아에 달렸다고 주장했고, 2000년대 들어 이 논리는 “중국이 호주의 운명이다”라고 바뀌었다.

호크와 키팅은 중국의 의도는 늘 평화적이며 중국이 경제 대국이 되는 건 지난 2500년 동안 중국이 차지했던 자리에 복귀하는 것일 뿐이라며 호주를 안심시켰다. 이들은 특히 퇴임 후 중국의 ‘충직한 친구’가 됐는데 호크는 중국 기업의 계약 체결을 돕는 일에 집중해 10년간 5000만 달러의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반면 키팅은 중국 지도자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자신이 중국을 가장 잘 안다고 주장하며 영향력 확대에 주력했다. 중공 지도층이 외국인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고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는데 키팅이 그런 케이스란 이야기다. 호크와 키팅의 경우는 많은 한국 정치인이 낙선 등으로 한가해지면 중국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와 ‘중국의 친구’로 변신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 떠올리게 한다.

중국이 호주 학계를 길들이는 방법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해밀턴에 따르면 중국은 호주 학자들이 알아서 자기 검열을 하도록 했다. 두 가지 방법을 통해서다. 하나는 중국에 비우호적인 학자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것이다. 블랙으로 분류된 학자에겐 중국 비자 발급이 불허된다. 수십 년을 투자해 중국 지식을 쌓은 전문가에게 중국방문 금지란 학자이기를 포기하라는 사망 선고에 다름 아니다. 다른 한 방법은 호주 대학과 각종 협력사업이나 재정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중국의 돈이 들어오는 걸 마다할 대학은 없다. 그 결과 호주 대학들이 “중국이나 중국 역사를 독립적으로 일관되게 분석하는 일을 포기했다”는 게 해밀턴의 주장이다.

호주가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지가 궁금해지는데 그는 한국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치 않는다. “이미 한국 재계엔 베이징의 만족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 강력한 이익집단이 자리 잡고 있다. 베이징은 또 한국의 학계와 정계, 문화계, 언론계 지도층 전반에 베이징 옹호자를 확보했다. 중공의 목표는 한국 기관들의 독립성을 훼손함으로써 지역 패권을 노리는 베이징에 저항할 한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의 정치 지도층은 지레 겁을 먹고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이란 나약한 태도를 유지한다” “한국 정부가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의 독립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위험한 도박을 하는 셈”이란 듣기 거북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호주가 과거 중국에 나약한 모습을 보이다 최근 강경한 자세로 바뀐 데는 그의 저서가 한몫했다고 한다. 그리고 해밀턴은 세계 언론과 싱크탱크가 중국에 관한 의견을 구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인사 중의 하나가 됐다. 그 많은 호주의 중국 전문가가 감히(?) 하지 못하던 일을 그가 해낸 셈이다. 중국 출입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학자의 용감함이 이뤄낸 결과인가. 자연히 그다음 관심은 우리 학계에 쏠린다. ‘한국판 해밀턴’이 나올 수 있나?

-중앙일보 중국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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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28
■ 패션의 완성 가체加髢 3편

■ 패션의 완성 가체(加髢) 3편

19세기 들어 양반 계급의 여성들은 족두리를 쓰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가체의 대용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기생들은 계속해서 가체를 사용하였다. 여러 가지 장식을 포함한 가체의 무게는 보통 3~4kg정도이다. 사극에 출현하는 여배우들이 가체의 무게에 따른 고통을 토로하기도 한다.

가체가 비싼 건 일단 가장 중요한 재료인 머리카락부터도 특정 지역 남자들이 몇 년 간 잘 관리하며 길렀다가 팔았는데 그래야만 품질이 좋은 가체 재료가 되었다고 한다. 가체는 진짜로 급한 일이 아닌 한 여자들이 목숨만큼 귀한 자기 머리를 잘라 파는 일은 드물었고, 대부분 남자들이 머리를 잘라 팔았다고 한다.

공급도 적지만 송진, 연지, 소금, 참기름 등 다양한 성분 분말로 만든 용액에 수거한 머리칼을 담가 곧게 펴고 탈색했다. 당연히 이것도 며칠이 걸린다. 곱슬머리와 직모, 갈색과 검은색 등 모질과 색이 제각각이었기에 따로따로 검정색으로 탈색해야 했다.

가체는 ‘가체장’이라고 불리우는 장인들이 만드는데, 워낙 비싸고 재료비부터도 비싸기에 비싼 가체를 만들자면 30년 이상 경력를 인정받은 고수 장인들의 전문 지식과 기술이 필요했다. 66세 영조와 15세 정순왕후의 혼례를 기록한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에 따르면, 가체를 만드는 가체장은 당주홍, 홍합사, 황밀, 송진, 주사, 마사, 홍향사, 소금, 참기름 등 다양한 성분의 분말로 만든 용액에 수거한 머리칼을 담가 곧게 펴고 탈색하여 머리카락을 손질했다.

조선 남성은 상투를 맵시 있게 틀려고 정기적으로 정수리를 깎았다. 이를 ‘베코친다’ 고 불렀다. 남성은 ‘베코를 쳐’ 맵시를 더했고, 여성은 그 머리카락으로 가체를 얹어 아름다움을 더했다. 가체를 만드는 데는 죄인이나 승려의 머리카락도 썼다. 가체는 단순히 빗으로 빗고 길게 잇대며 땋는 게 아니었다.

이른바 검은 구름처럼 풍성하면서 윤기 흐르는 가체를 만들려면 다양한 용액을 다루는 기술과 함께 유행에 맞춰 땋는 기술도 필요했다. 먼저 빗으로 가지런히 빗어 머리 타래를 만들었다. 이어 ‘말이 쓰러지는 듯’ 기운 모양새로 땋아 촛농으로 고정했다. 이렇게 기본 모양새를 잡은 뒤 광택을 내면 검은 구름처럼 풍성하면서도 윤기 흐르는 가체가 완성됐다.

가체는 체괄전(가발전문매장) 에서 팔거나 여쾌(뚜쟁이) 수모(手母:미용사)가 방문 판매했다. 가체는 고가에 거래됐다. 재료가 귀했고 수준 높은 제작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크기 경쟁까지 더해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갈수록 높고 풍성한 가체가 유행하자 커진 크기만큼 가격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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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29
■ 패션의 완성 가체加髢 2편

■ 패션의 완성 가체(加髢) 2편

고려시대에도 가체의 풍습은 있었다.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으나, 고려 말기에는 원나라의 영향도 받아 더욱 크게 성행하였다.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가체는 부녀자의 장식품으로 절대적인 조건이 되었다. 《성종실록》에는 사람들이 고계(高髻:높은 상투)를 좋아하여 사방의 높이가 한 자가 된다고 하였는데, 이는 다리를 더하여 머리를 높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리를 이용하는 방법 또한 여러 가지이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땋으면서 손가락 굵기의 다리를 반복적으로 넣어 길이와 부피를 연장하는 방법이 있으며, 이런 모습은 신윤복의 그림 <계변가화溪邊佳話>에 잘 나타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아예 땋거나 쪽진 모양으로 만든 가체를 자신의 머리카락 위에 얹거나 덧붙여 고정하는 것이다. 이런 가체는 끝부분을 20~30쯤 남기고 자주색이나 검은색의 가느다란 댕기를 넣어 함께 땋은 뒤에 모양을 정리한다.

다리에 댕기를 넣어 땋으면 짧은 머리카락이 가장자리로 튀어나와 흩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끝부분에 머리카락이 뭉툭하게 남지 않아 본래의 머리채에 붙여 마무리하기가 쉽다. 1788년(정조 12년) 가체신금절목이 시행된 이후에는 머리카락 대신 나무로 만든 떠구지나 머리카락과 옷감을 엮어 만든 다리가 사용되기도 했다.

조선 중기부터 가체의 사치가 심해 영조 32년(1756년) 1월에는 『사대부 집안의 가체 제도가 날로 사치가 심해져 부인이 한번 가체를 하려면 많은 돈을 허비하게 되었다.(朝鮮王朝實錄 英祖 32年 1月)』는 기록이 있다. 그리하여 영조 때는 가체를 금하고 족두리로 대용하게 하는 가체금지령을 내려 이를 바로잡고자 하였으나 예장할 때 꾸미는 머리 모양에 계속 가체가 사용되는 등 금체령의 완전 실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조 12년(1788년)에는 『처음에는 두발(頭髮)을 모으던 것이 무거운 머리꾸밈으로 이루어져, 다투어 서로 크게 만들어서 물가가 올라가고, 사치스러운 자는 그 가산이 기울어지며 가난하고 궁색한 자는 인륜을 폐함에까지 이르렀으니 그 폐단이 극도에 달한 것이다.(朝鮮王朝實錄 正祖 12年 4月 辛卯)』 하여 《가체신금절목(加申禁節目)》을 제정하게 하였다.

정조는 왕명으로 가체 사용을 금지하면서 머리를 꾸미고 싶으면 가체 대신 족두리를 쓰라고 했다, 사대부의 처첩과 여염의 부녀는 가체는 물론 본머리에 다리를 보태는 것도 금지하고, 천한 신분의 여인은 머리를 얹는 것은 허용하되 다리를 드리거나 더 얹는 것을 금하는 내용의 금지령을 내렸으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가 순조 때에 이르러 비로소 대례식 한정으로 착용하게 된다.

왕실 여인들은 생일 연회와 대례식 이외의 일상이나 소례 때는 첩지를 두르고, 그 첩지 위에 화관이나 칠보족두리를 썼으며, 궁녀들은 민족두리를 썼다. 양반가 여인들 역시 얹는 가체 대신 이어붙이는 가체로 쪽을 지고, 비녀와 뒷꽂이로 머리를 화려하게 장식하여 이를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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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29
■ 패션의 완성 가체加髢 1편

■ 패션의 완성 가체(加髢) 1편

조선시대 패션은 화려했다. 남성은 수정을 잇댄 갓끈과 옥으로 만든 관자, 귀걸이로 꾸몄다. 여성은 풍성한 가체(加체) 와 현란한 비녀, 노리개로 치장했다. 길고 화려한 갓끈, 높고 풍성한 가체는 요샛말로 ‘패션아이템’이었다. 조선 시대 부녀자들이 성장(盛裝)할 때, 머리 위에 머리숱을 많아 보이게 하려고 덧붙여 올리는 딴 머리가 ‘가체(加髢)’이다. 흔히 ‘다래’ 또는 ‘다레’라고 하나 표준어는 ‘다리’이다.

한자로는 체라 하고, 월자(月子)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여성 패션의 완성은 ‘가체’였을 정도로 중요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형편이 되면 반드시 장만해뒀다가 예의를 갖춰야 하는 자리에는 머리에 얹고 나갔다. 가체는 머리 모양에 따라 다리를 머리에 붙이거나 위에 얹어 사용하였다. 종류로는 조짐머리, 얹은머리, 새앙머리, 어여머리, 대수, 큰머리, 첩지머리, 족머리 등이 있다.

가체는 양반층만이 아니라 일반 서민층 부녀자에게도 크게 유행했으며, 좋은 다래로 땋은 머리를 틀어서 얹은 가체를 행사나 명절에 한번 씩 사용하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여겼다.

조선후기 들어서 가체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가체의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아서 가격대가 엄청난 사치품이 되었고, 최고 비싼 가체는 800냥에 달한 것도 있었는데, 이는 당시 기와집을 두 채에서 수채 정도는 구입 가능하고, 노비를 수십 명씩 구할수 있는 금액이었다. 현대로 치면 최소 수십억 원에 달하는 사치품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부녀자의 가체를 통해 그 집안의 경제 사정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의 여성들은 더 크고 무거운 가발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였다. 성종 때는 그 길이가 무려 1척(30.3cm)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머리 사치를 위하여 가산 탕진은 물론, 그 가체의 무게 때문에 시집오는 처녀가 혼례 중에 혼절하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심지어 나이 어린 신부의 방에 시아버지가 들어오자 신부가 갑자기 일어나다 머리 무게에 눌려 목뼈가 부러진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가체를 마련하지 못한 집에서는 혼례를 치르고도 시부모 보는 예를 행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국가 주요 행사시에 왕의 가족들이 착용할 가체제작에 필요한 머리카락을 각종 공출을 통해 강제 수집하는 등 백성의 불만을 초래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가체의 풍습은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존재하였는데,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태평어람(太平御覽) 신라조》에 신라부인에는 미발(美髮)이 많고 길이가 길다고 하였으며, 《당서(唐書) 신라조》에도 아름다운 두발(頭髮)을 머리에 두르고 주채(珠綵)로 장식하였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머리 모양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는 오래 전부터 다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성덕왕조》에 ‘미체(美髢)’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다리이며, 신라의 명물로 외국에 수출도 하였다. 또한 《당서 신라조》에 남자가 머리를 깎아 팔았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가난한 자가 머리를 깎아 다리로 판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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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30
■ 망나니 3편

■ 망나니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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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을 집행할 때 살인의 충격과 고통을 줄이기 위해 술을 먹고 취한 채로 하다 조준이 빗나가거나 힘이 덜 실려 여러번 칼을 휘둘러 사형수에게 참혹한 고통을 주면서 집행되는 경우도 꽤 잦았다고 한다. 관에서도 이런 사정을 아는지 사형 당일이 되면 특별히 술과 고기를 푸짐히 내려 먹였다고 하며 이것을 한밥 먹인다.라고 표현한다. 조선시대의 망나니를 그린 그림을 보면 단칼에 베는 대가로 죄인 가족들에게 받은 돼지를 안고 돌아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권력자에게 심하게 미움 받은 자가 참수형 당할 때는, 일부러 참수 경험이 적은 망나니에게 사형을 시킨 일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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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라는 단어는 옛 문헌에는 보이지 않고,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막난이’ 또는 ‘망난이’로 나타난다. ‘막난이’는 일단 ‘막난’과 ‘이’로 분석할 수 있다. ‘막나-’의 ‘막’은 본래 ‘마구’, ‘함부로’라는 의미의 부사였다. 그런데 지금은 일부 동사 앞에 붙어 ‘주저 없이’, ‘함부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쓰인다. 그리고 ‘막나-’의 ‘나-’는 본래 ‘出, 生’의 뜻이다. 따라서 ‘막나-’의 관형사형 ‘막난’은 ‘함부로 된’, ‘막된’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막난이’의 ‘이’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존명사이다. ‘이’가 의존명사이므로 ‘막난이’는 본래 ‘막난 이’라는 구(句) 형식이었을 것이다. ‘어린이’가 ‘어린 이’, ‘늙은이’가 ‘늙은 이’ 로 구성된 것과 같은 구조이다. ‘막난 이’라는 구(句)가 한 단어로 굳어진 것이 ‘막난이’이다. ‘막난이’의 ‘막난’이 ‘함부로 된’, ‘막된’을 뜻하고, ‘이’가 ‘사람’을 가리키므로 ‘막난이’는 ‘함부로 된 사람’, ‘막된 사람’의 의미이다. 아울러 ‘막난이’에서 변형된 ‘망난이’ 또는 ‘망나니’도 그와 같은 의미를 띤다. 이 말이 점차 일반인에게 확대 적용되면서 ‘언행이 좋지 않은 사람’ 또는 ‘하는 짓이나 성질이 못된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망나니짓’을 하는 사람 중에서도 그 정도가 심한 사람을 ‘개망나니’라고 해서 그 행위를 강조해서 부른다. 그리고 특별히 ‘술’을 먹고 ‘망나니짓’을 하는 사람을 ‘술망나니’라고 한다.

비슷한 의미로 ‘개차반’이라는 말도 언행이 거칠고 막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차반’은 맛있게 잘 차린 음식이다. 그러니까 개차반은 ‘개가 먹는 차반’이라는 뜻으로 똥을 가리키는 말이다. 직설적으로 똥이라고 하지 않고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개차반’이다. 물론 요즘 같은 반려견 시대에는 맞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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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31
■ 망나니 1편

■ 망나니 1편

TV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역사극(歷史劇)을 보면, 사형수의 목을 내리치기 전에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뿜어내면서 긴 칼을 휘두르며 한바탕 칼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그 눈에서는 한껏 살기가 번득이고, 고개를 떨군 사형수의 혼을 빼놓는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형수의 목을 단칼에 내리치는 사형집행인이 ‘망나니’이다. 이를 ‘살수(殺手)’라는 조금은 점잖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사형은 목을 매는 교수형(絞刑)과 함께 목을 베는 참수형(斬刑)도 있었다. 그나마 신체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 교수형에 비해 참수형이 훨씬 더 무거운 형벌이었다. 물론, 사형 집행 방식은 이 외에도 능지처사(陵遲處死), 군문효시(軍門梟示), 오살(五殺), 육시(戮屍) 등 듣기에도 섬뜩한 여러 방법이 있다. 당시 참수형을 집행하는 장소로는 지금의 노량진 건너편 노들강변의 새남터, 삼각지로터리에서 공덕동로터리 쪽으로 가면 나오는 당고개, 서소문 밖 네거리, 무교동 일대였다. 사형수라 하더라도 사형 집행은 대개 추분부터 춘분 사이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죄가 매우 중한 사형수는 ‘부대시(不待時)’라 하여 때를 기다리지 않고 판결 즉시 처형했다.

감옥에서부터 사형장까지 소달구지 적재 칸에 죄수의 양팔과 머리카락을 매단 채 압송해 온다. 죄수가 형장에 도착하면 사형집행인, 즉 망나니는 죄수의 옷을 벗기고 죄인의 두 손을 뒤로 묶은 뒤 그의 턱 밑에 나무토막을 받쳐 놓고 길다란 자루가 달린 무시무시한 칼로 목을 자른다. 때로는 상투에 줄을 매어 목을 베었는데, 이는 잘린 목을 나무에 매달아 효시(梟示)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참수를 맡은 망나니는 대개 술에 취한 채(아무래도 맨 정신으로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칼을 머리 위로 쳐들고 정신없이 춤을 추다가 흥분 상태에서 그 여세로 칼을 내리쳐 목을 벤다. 사형수의 가족이 사형 집행 당일 망나니에게 뇌물을 주지 않을 경우에 망나니는 사형수를 단칼에 죽이지 않고 일부러 여러 차례 칼을 내리쳐 죄수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반드시 그랬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고, 술에 취해 있으니 단칼에 조준해서 내려치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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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망나니’가 되었을까? 망나니는 도부수(刀斧手) ‘회자수(劊子手)’라고도 불렸는데, 사람들의 목을 단 칼에 베어야 하는 조선시대의 망나니는 원래 사형수들이었다고 한다. 사형수가 사형수의 목을 벤다고 하니 다소 의아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18세기에 만들어진 《신보수교집록(新補受敎輯錄)》이라는 법전의 형전(刑典) 추단(推斷) 조문 중에는 행형쇄장(行刑鎖匠), 즉 참형 집행을 맡은 망나니는 사형수 중에서 자원하는 자가 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숙종 임금의 수교(受敎:임금이 내리는 명령)가 실려 있다. 이보다 100여 년 뒤인 고종 초기의 법률서 《육전조례(六典條例)》에도 지금의 서울구치소에 해당하는 관청인 전옥서(典獄署) 소속 행형쇄장(行刑鎖匠) 1명을 사형수 중 원하는 자를 국왕께 아뢰어 결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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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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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32
◇ MBC ‘실수’ 또 ‘실수’

◇ MBC ‘실수’ 또 ‘실수’

MBC가 도쿄 올림픽 개회식 생중계에서 참가국을 소개한 부적절한 사진과 자막이 국제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아프가니스탄 선수단이 입장하자 아편 원료인 양귀비 사진을 내보내며 이 나라가 세계 최대 마약 생산국임을 상기시켰다. 1인당 GDP 514달러로 최빈국이고, 코로나 백신 접종률도 0.6%에 불과하다고 적시했다. 나라 소개가 아니라 망신 주기다. 체르노빌 원전(우크라이나), 주민 폭동과 대통령 암살(아이티), 드라큘라(루마니아) 사진도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외신들은 정색을 했다. CNN은 ‘공격적인 고정관념’ ‘여러 나라를 묘사하는 데 크게 실패’ 등의 표현으로 MBC를 성토했다. CNN 인터넷판에는 톱기사로까지 올랐다. 뉴욕타임스 도쿄 올림픽 코너에는 두 번째 기사로 MBC 개회식 중계 파동이 다뤄졌다. 한 호주 방송도 MBC가 “한국 시청자들에게서 나라 망신이란 비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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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평창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이상화 선수가 은메달을 차지하자 한 MBC 간부가 소셜미디어에 “태극기를 들고 울먹이는 그녀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면서 “이상화 선수 고맙다. 덕분에 행복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상화 올림픽 3연패 무산 따위의 기사 제목에 참 짜증 난다. 언론들이 아직도 국민 수준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그 간부가 개회식 방송 보도에 대해 엊그제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고 사과한 MBC 사장이다. 그는 “철저하게 책임을 묻고 책임을 지겠다”며 재발 방지도 약속했다. 공영방송으로 당연한 일 처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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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는 개회식 당일 부적절한 사진 사용을 한 차례 사과했다. 그런데 겨우 이틀 만에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25일 축구 예선전에서 우리와 맞붙은 루마니아 선수가 자책골을 넣었다. MBC는 중간 광고 때 ‘고마워요 마린 자책골’이라며 선수 이름까지 자막으로 내보냈다. 중계를 지켜보면서 마음속으로 비슷한 생각을 한 국민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영방송 자막으로까지 내보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3연패 무산’ 정도의 제목도 수준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감수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물론 실수였을 것이다. 요즘 인터넷 공간에서 통하는 경박한 감각으로 시청률을 높여보겠다는 제작진의 판단 착오였을 것이다. 그러나 개회식에 대해 사과하고 이어진 올림픽 보도에서, 다른 국가를 자극하는 비슷한 실수가 벌어진 것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나온다. 공영방송의 내부 데스크 기능이 망가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조선일보 만물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mbc.html
kolaswqetsrq 11.02 19:32
◇ 원자력 공포의 허구성과 언론 보도 행태

◇ 원자력 공포의 허구성과 언론 보도 행태

심리학자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의 베스트셀러 ‘생각에 관한 생각’은 인간 인식이 얼마나 오류투성이인지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통계 수치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며 논리적 사고를 하기엔 너무 게으르다는 것이다. 당뇨병으로 죽을 확률이 사고로 죽을 확률의 4배쯤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고사(死) 확률을 당뇨병의 300배쯤 되는 것으로 인식한다. 카너먼은 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오류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영국의 환경 저널리스트 조지 몬비오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지 열흘밖에 안 된 시점에 ‘후쿠시마가 나를 원자력 옹호자로 만들었다’는 칼럼을 썼다. 그는 글 첫 대목에서 ‘후쿠시마 사고를 보고 원자력에 중립적이었던 내 생각이 지지로 바뀌었다. 이유를 들으면 놀랄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게 큰 사고가 터졌는데 방사선 희생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이유였다. 전 세계가 공포에 빠진 상황에서 상황을 이렇게 꿰뚫어본 것이 놀라웠다.

유엔 산하 방사능영향과학위원회(UNSCEAR)는 2년여 조사 끝에 2013년 후쿠시마 사고 보고서를 냈다. 결론은 ‘심각한 방사선 건강 피해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CT 사진 한 장 찍으면 평균 7mSV 방사선에 폭로되는데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평생 살아봐야 10mSV 약간 넘게 추가 피폭(被爆)될 뿐이라는 것이었다. 사고 수습 인부 2만5000명의 피폭량 역시 평균 12mSV였다. 의외의 조사 결과였으나 언론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EU 자문기구인 합동연구센터(JRC)라는 기구에서 각종 발전(發電) 방식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지난 3월 냈다. 3세대 원전의 경우 사망 발생 위험이 태양광의 2.7%, 육상 풍력의 0.4%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은 태양광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사실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유엔 산하 기후과학기구(IPCC)는 이미 2013년 보고서에서 원전의 온실가스 배출은 태양광의 26%밖에 안 된다고 계산했다.

사람들의 리스크 인식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은 광우병 사태 때 겪을 만큼 겪었다. 과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숫자인데 일반 대중은 숫자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언론 책임도 작지 않다. 언론은 어떤 리스크에 대해 별것 아니라고 보도했다가 나중에 심각한 위험으로 드러날 경우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가능성에 굉장히 예민하다. 그래서 애초부터 위험을 아주 과장하는 쪽으로 보도하기 십상이다. 원자력 보도가 대표적일 것이다.

-조선일보 만물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711.html
kolaswqetsrq 11.02 19:33
◇ 한국 양국이 강한 이유는?

◇ 한국 양국이 강한 이유는?

26일 열린 대만과의 도쿄 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 결승. 한국 오진혁이 3세트 3번 사수로 나서자 먼저 쏜 김우진이 뒤에서 “7, 6, 5, 4...”라고 불러줬다. 오진혁은 자신 있게 시위를 당겨 10점을 명중했다. 3명이 60초 안에 각 한 발씩 쏘는 단체전에서 마지막 사수는 남은 시간을 모르면 심리적으로 불안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선수들끼리 남은 시간을 알려주게 한 것.

남자 단체전 우승으로 한국은 도쿄 올림픽에 걸린 총 5개의 양궁 금메달 중 벌써 3개를 획득했다. 앞서 한국이 여자 단체전에서 사상 첫 9연패를 하자 AP통신은 ‘이름이 바뀔 수 있겠지만, 한국 여자 양궁의 지배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타전했다. 여자 양궁의 9연패는 미국과 케냐가 각각 남자 수영 400m 혼계영과 육상 장거리 장애물 경기에서 보유한 특정 종목 최다 우승 기록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록이다. 남자도 대회 2연패에 이은 6번째 정상이다.

한국 양궁의 비결은 남녀 모두 선발 과정의 공정한 경쟁과 준비 과정의 철저한 디테일이다. 한국에서는 ‘대표로 선발만 되면 금메달’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철저하게 실력을 검증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3차례의 평가전으로 남녀 각 8명을 뽑고, 선수촌에서 함께 합숙훈련하며 다시 2차례의 평가전으로 각 3명을 최종 선발했다. 과거 기존 대표 선수는 1, 2차전을 면제해 줬지만 이번엔 그런 특혜도 없앴다. 이렇게 살아남은 선수들은 치밀한 실전 훈련을 했다.

선수들은 5월부터 충북 진천선수촌에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하고 똑같이 만든 훈련장에서 활을 쐈다. 심지어 점수를 보여주는 전광판의 밝기까지 똑같았다. 밝기 차이가 선수들 시각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전 경기 때도 선수들끼리 격려하며 돕는 세세한 루틴이 있다. 혼성경기에서 김제덕이 먼저 쏜 뒤 바로 안산을 향해 “지금 바람 없으니 자신 있게 쏘면 돼요”라고 정보를 줬다. 초 알리기도 그 연장선이다. 한국만의 현장 전술이다.

남녀가 함께 훈련하는 환경도 양궁 발전에 도움이 됐다. 대표팀 중 유일하게 양궁만 남녀가 함께 훈련한다. 일부 종목은 남녀 합동 훈련을 터부시하기까지 하지만 양궁은 체력부터 기록 훈련까지 똑같이 한다. 여자 선수들은 한 수준 높은 남자 대표 선수들과 거칠게 경쟁하면서 실력은 물론이고 자신감까지 업그레이드됐다. 남자 선수들은 한국 여성의 섬세함과 적극성을 배웠다. 명품과 짝퉁의 차이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가 한국의 지도자를 스카우트해서 벤치마킹을 하고 있지만, 한국 양궁의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동아일보 횡설수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39.html
kolaswqetsrq 11.02 19:34
◇ 400억 번 개미의 신···그는 카이스트 교수직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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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억 번 개미의 신···그는 카이스트 교수직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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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부캐릭터)의 시대라고 하지만, 본업과 완전히 차별화 되기는 쉽지 않다. 최근 부업, 겸업에 그치던 부캐가 종종 본업인 ‘본캐’가 되는 사람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김봉수 전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는 시대를 앞선 캐릭터다. 2019년 본캐인 교수를 사실상 버렸다. 부캐였던 주식 투자자를 본캐로 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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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본격적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그는 여러 종목에서 10배 넘는 수익을 냈다. 말그대로 ‘슈퍼개미’가 됐고 2010년대 중반 400억원을 운용하기에 이르렀다.

‘경제적 자유’를 얻은 그는 최근에는 페이스북으로 개미 투자자들과 소통하며 전업 투자자로 산다. SNS에서 “합리적인 추론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극단론자”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교수에서 투자자로 변신한 그를 지난 8일 대전시 자택 근처에서 만났다. 증시 거래 정규시간(오후 3시 30분)이 끝난 직후였다.

Q : 퇴직하니 어떤가.

A : 생각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한 달 내내 그것만 몰입할 수 있어 좋다. 교수를 좀 더 빨리 그만뒀어야 했나. 최근에는 미·중 패권 전쟁과 코로나19 이후의 미래 예측에 집중했다. 2017년 휴직, 2019년 퇴직했으니 5년쯤 된 거다.

Q : 노벨상을 꿈꾸다 자녀 교육비 때문에 주식을 시작했다던데.

A : 우리 시대에는 사회가 노벨상을 강요한 면이 있다. 사회는 의대보다 과학자를 추천했는데 이공계를 택한 이들은 지금 많이 후회한다. 또 교수 일이 힘들어 딸들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20년 간 주말 없이 자정까지 일하며 석·박사 학생들을 졸업 시켰다. 그렇게 살다 48세에 경제적 이유로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Q : 과거 기사 보니 500억원을 운용한다고 나오는데 지금은 어떤가.

A : 순 자산은 아니고 그 정도 운용했다. 2018년부터 트럼프가 중국을 공격해 가치 투자자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나도 손실이 컸지만 수익률보다 내 예측대로 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작년 3월 이후 세상과 시장이 예측대로 흘렀다. 이전에는 계좌가 줄면 몸무게가 줄었는데 요즘 아주 잘 회복하고 계좌도 극복했다.

Q : 경제적 자유를 얻은 삶은 어떤가.

A :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게 제일 좋다. 한 달에 200만원 정도 쓴다. 생각이 업인 사람은 돈 얼마 안 쓴다. 클래식 바이올린 협주곡들과 몽블랑 만년필을 좋아한다. 퇴직하고 좋은 건 소설을 맘껏 읽는 것.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소설가 김정환 전집을 퇴직하고 나서 읽었다. 올해 주식이 많이 올라 음악 들을 여유가 생겨 최근에는 36년 만에 오디오를 바꿨다.

Q : 투자 철학이나 종목선택법은.

A : 바둑을 둘 때 판세가 진행되면 우열이 가려진다. 박빙인 게임도 있고 대마가 죽어 한쪽이 망한 게임도 있다. 투자는 압도적인 승패에 베팅하는 거다. 그런 게 보이는 산업, 종목이 있다. 미래를 예측하고, 경영자를 잘 살핀다. 돈 잘 버는 천재들이 있다. 재무제표만으로는 알 수 없고 스티브 잡스 같은 남다른 점들이 보이는 이들.

Q :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A : 실은 주식은 유전자가 중요하다. 우사인 볼트가 잘 달리는 건 유전자 덕이다. ‘운7기3’이 아니라 ‘운9기1’이다.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건 10%인데 그거라도 최대한 노력해봐야 한다. 투자는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기다리는 게 정말 어렵다. 일종의 단거리 경주인 단타 투자는 잘 못한다.

Q : 메신저 알림말이 "Good time to invest"인데 지수가 이미 많이 오른 거 아닌가.

A : 돈이 코로나 이전보다 두 배 이상 풀렸다. 아직 해 뜨기 직전이라고 본다. 작년 3월에 V자형 반등을 예측했다. 코로나 이후 시대에는 이전처럼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돌아가는데 물동량이 늘어나는 해운, 또 조선을 좋게 봤다. 다만 해운은 레버리지로 움직여 조선주가 낫다고 본다. 사람들은 2~3개월을 보지만 나는 장기적으로 본다. 잘 기다리는 사람이 챙겨간다.

Q : 오른 종목은 언제 파나.

A : 가치주에 사서 테마주일 때, 남들이 흥분하고 파티할 때 판다. 내가 생각하는 적정 가치보다 3배쯤 올랐을 때다. 위기와 폭등은 연결됐다. 이때 엄청난 돈이 오간다. 의연하게 기다리는 쿨한 이들에게 큰 보상이 온다. 상한가 맞아 흥분할 때 냉철하게 파는 사람이 쿨한 사람이다. 훈련으로 흥분 정도를 약화시킬 순 있는데 아주 힘들다.

Q : 공부 잘하는 사람이 투자도 잘하나.

A : 주식 잘하는 건 영어 수학 잘하는 법과 비슷한데 보상의 차원이 다르다. 서울대, 카이스트 나왔다고 다 잘하는 건 아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주식에서 유연성이 부족하더라. 머리는 기껏해야 30% 차이다. 집중력이 중요하다. 부족한 만큼 더 공부하면 된다. 공부법은 이미 세상에 많이 나왔다. 나는 트럼프한테 계좌가 박살 나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 좋은 책에 나온 말들이 다 맞더라.

Q : 최근 주식 관련 유튜브 채널도 많은데 참고하나.

A : 안 본다. 유튜브는 지식의 홍수에서 색인, 속독, 분류가 어렵다. 또 좋은 정보는 그런 곳엔 없다. 주식 유튜브는 영업과 마케팅, 예능이다. 다만 책은 읽기 어렵지만, 유튜브는 그냥 보면 되니까 초심자들에게는 유익할 수 있다고 본다.

Q : 암호화폐 투자는 하나. ‘빚투’는 어떻게 보나.

A : 암호화폐는 과거 튤립 같은 사기고, 유사종교나 다름없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원래 부채로 투자하는 게 필연적이지만, 부채는 위험하다. 안전하게만 살면 너무 지루하니까 해볼 수는 있다. 다만 그 위험은 모두 당신 몫이다.

Q : 인생 목표가 있다면.

A : 지루하지 않게 살고 싶다. 다만 지루하면 창의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한다. 코로나 이전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다. 코로나가 끝나면 누구나 여행을 가고 싶어한다. 보복적 소비도 마찬가지다. 앞서 말한 조선업을 좋게 보는 이유도 이거다. 또 환경 이슈도 있으니까. 종목은 얘기하지 않는다.

그는 "돈을 더 쓸 곳은 없지만, 돈은 계속 벌고 싶다"고 했다. 교수 시절 성과를 얘기할 때보다 시장과 세상을 예측할 때 그는 더 진지했다. 때론 소년처럼 신난 것 처럼 보였다. "주식 투자는 자신에게 필연이고 전쟁"이라는 그는 매일 즐겁고 비장한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400.html
kolaswqetsrq 11.02 19:34
◇ 비둘기 때문에 와인맛이 변한다고요

◇ 비둘기 때문에 와인맛이 변한다고요

1914년 9월 1일, 신시내티동물원에서 ‘마르타(Martha)’라는 이름의 비둘기가 죽었다. 공식적으로 미국에 남아있던 마지막 전령 비둘기(passenger pigeon)였다. 1800년대 미국에서는 수억 마리의 비둘기가 통신용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후 기차가 우편 수송을 대신하고, 텔레그램이 발명되면서 이 수요가 없어졌다. 현재는 취미나 경주용, 또는 통신 시설이 빈약한 일부 후진국에서 재난 사태 등을 대비해 기르고 있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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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서툴던 초기 유학 시절, 미국인 여학생에게 ‘도브(dove)’와 ‘피전(pigeon)’의 차이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우리말로는 둘 다 비둘기인데 왜 다르게 부르는지가 궁금했다.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는 표정을 보이던 그 학생은 나에게 “‘도브는 올림픽 개막식 때 날아가는 새고, ‘피전’은 뉴욕의 길바닥에서 보이는 새”라고 설명해 주었다. (300여 종의 비둘기 중에서 ‘도브’는 흰색의, 약간 크기가 작은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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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비둘기지만 도심에 걸어 다니는 녀석들은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하는 느낌이다<사진>. ‘유해 동물’로 규정되어 있는 도시 비둘기는 어느 새보다도 비위생적이고, 쥐보다 많은 진드기와 병균을 지니고 있다. 비둘기의 배설물이 도시의 건축물을 부식시킨다는 사실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한데 뉴욕 주(州)에만도 백만 마리 정도가 서식하고 있는 비둘기의 배설물 때문에 십여 년 전부터 토양의 질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미 동부의 흰 오크나무가 점점 사라지고 붉은 오크나무로 대체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을이면 노란색이 주를 이루던 단풍 색도 점점 붉은색으로 변해가고 있는 추세다.

실질적인 영향은 더 크다. 북미의 주요 수출 자재인 오크나무의 성격이 달라지면서 아메리칸 오크통을 이용하여 숙성시키는 스코틀랜드 위스키나 스페인, 남미의 와인 맛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주류 생산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애주가들이 벌써 이 섬세한 맛의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구 전체의 환경 문제가 심각한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즈음, 비둘기에 대한 대책도 필요해지고 있다. 내일 개막하는 도쿄 올림픽, 관중이 없는 경기장에 ‘도브’가 날아갈 예정인지 모르겠다.

-조선일보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330.html
kolaswqetsrq 11.02 19:35
◇ 요기 베라의 요기 북

◇ 요기 베라의 요기 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 감독을 지낸 요기 베라(1925~2015)는 이렇게 말했다. 1973년 메츠는 시카고 컵스에 9.5게임 차로 뒤져 지구 최하위를 달리고 있었다. 감독을 맡은 그에게 한 기자는 “시즌이 끝난 것인가”라고 물었고 요기는 이에 답했다. 뉴욕 메츠는 그해 시카고 컵스를 제치고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그의 말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회자했다.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은 공식 연설에서 이를 인용했다. 팝스타 레니 크라비츠는 1991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곡을 발표했고 빌보드 차트 2위에 올랐다.

뉴욕 양키스의 포수 출신인 요기 베라는 명언 제조기로 불렸다. 그가 남긴 말들이 야구라는 스포츠를 넘어서 인생을 아울렀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는 홈페이지에 요기 베라의 명언을 따로 모아놓기도 했다. 『요기 북(The Yogi Book)』은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서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그의 촌철살인은 요기즘(Yogism)이라 불리며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요기즘은 국경을 넘나든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그의 말은 자주 인용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5월 특별연설을 통해 “(방역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며 “마지막까지 더욱 경계하며 방역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코로나 4차 대유행기에 접어든 지금 문 대통령의 지난 말은 독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게 됐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을 돌아보면 코로나는 먼나라 얘기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말 청와대 5부 요인 오찬에서 “세계 각국이 한국의 방역 및 경제 역량,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의 우리 위상을 대단히 높이 평가하고 더 긴밀하게 협력하길 원했다”며 방역 성과를 자화자찬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소비 진작용 2차 추가경정예산을 밀어붙이는 중이다. 델타 변이 유입에도 거리 두기 완화를 고집했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또 어떤가.

책장에서 『요기 북』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할 때가 찾아왔다. 요기 베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방망이를 휘두를 수 없다(You can’t think and hit at the same time)”고 했다. 방역과 소비 진작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앙일보 분수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321.html
kolaswqetsrq 11.02 19:36
◇ 영화를 통한 세계 여행-LA·파리 거쳐, 나폴리 찍고...영화 여행의 종착지는 도쿄?

◇ 영화를 통한 세계 여행-LA·파리 거쳐, 나폴리 찍고...영화 여행의 종착지는 도쿄?

궁극의 여행 영화들이 있다. 로마에 가고 싶으면 〈로마의 휴일〉을 본다. 파리에 가고 싶으면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본다. 도쿄에 가고 싶으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보는 게 좋다. 〈투스카니의 태양〉 같은 영화는 이제 투스카니(토스카나) 여행을 위한 바이블이 됐다. 그러나 본 영화를 계속해서 다시 보는 것도 지치는 일이다. 이 리스트도 이제는 업데이트할 때가 왔다. 여행 애호가와 영화 애호가를 동시에 만족하게 할 영화 몇 편을 소개한다.

-미국 인디애나주 콜럼버스, 〈콜럼버스〉(Columbus, 2017)

엑스(X)세대에게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가 있다면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콜럼버스〉가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계 미국 감독 코코나다가 연출하고 한국계 배우 존 조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인구 4만의 작은 도시 콜럼버스를 무대로 한다. 건축 애호가들에게만 잘 알려진 도시 콜럼버스는 건축가 에로 사리넨, 데보라 버크 등이 설계한 모더니즘 건축물로 가득한 희한한 장소다. 이 모던한 건물들 사이에서 주인공들은 우연히 만나 서로의 외로운 영혼을 잠시 이해한다. 정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인디애나주의 작은 도시로 당장 떠나고 싶어질 것이다.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 〈어 워크 인 더 우즈(사진 위)〉(A Walk In The Woods, 2015)

지금 단 한 명의 여행작가 책만 읽어야 한다면 가장 권하고 싶은 작가는 역시 빌 브라이슨이다. 그의 장기는 여행지에 대해 끝없이 불평하기다. 그에게 불평은 애정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마주할 때조차도 빌 브라이슨은 불평을 늘어놓는데, 그게 미치도록 웃긴다면 당신은 이 작가의 문체에 중독된 것이다. 최고 걸작인 〈나를 부르는 숲〉은 로버트 레드포드와 닉 놀티 주연으로 영화화됐다. 빌 브라이슨 역할에 레드포드라니 좀 과하지 않나 싶지만 두 노인의 정신 나간 애팔래치아 트레일 도전기를 보고 있으면 주말에 북한산 하이킹이라도 해보고 싶어질 것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500일의 썸머〉(500 Days of Summer, 2009)

싫어하거나 좋아하거나. 〈500일의 썸머〉는 성별에 따라 좋고 나쁨이 대단히 갈리는 로맨틱 코미디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게 여행 영화라고? 그럴 리가? 맞다. 〈500일의 썸머〉는 주인공들만큼이나 배경이 중요한 영화다. 사실 LA라는 도시는 끔찍하게 넓고 삭막한 외양 때문에 범죄 영화의 배경으로 주로 활용됐다. 〈500일의 썸머〉는 오랫동안 오해 받아온 LA라는 도시의 다운타운을 21세기적 로맨틱 코미디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장소로 다시 그려낸다. 나성(LA의 한문 표기)을 새롭게 발견할 때가 온 것이다. 지금 극장에서 재개봉 중이다.

-프랑스 종단, 〈파리로 가는 길〉(Paris Can Wait, 2016)

다이안 레인은 ‘사랑과 인생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는 중년 여성’ 역할에 최적화된 배우다. 〈투스카니의 태양〉이 모든 것을 빼앗긴 뒤 이탈리아에서 행복을 찾는 여성의 우화라면 〈파리로 가는 길〉은 프랑스에서 중년의 발칙한 사랑을 잠시 느끼는 여성의 여행담이다. 남편의 직장 동료인 프랑스 남자와 자동차를 타고 파리로 향하던 주인공은 계속 삼천포로 빠지는 여행길에서 먹고 마시고 갈등한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부인 엘리노어 코폴라의 첫 상업 영화. 조금 허허실실하지만 프랑스 음식에 환호하는 영화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북부 잉글랜드 ‘레이크 디스트릭트’, 〈트립 투 잉글랜드〉(The Trip, 2010)

21세기를 대표하는 여행 영화 시리즈를 꼽으라면 영국의 거장 마이클 윈터바텀이 연출한 ‘트립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다. 시작은 북부 잉글랜드를 여행하는 〈트립 투 잉글랜드〉다. 이후 시리즈는 〈트립 투 이탈리아〉(2014), 〈트립 투 스페인〉(2017)과 〈트립 투 그리스〉(2020)로 이어졌다. 컨셉은 간단하다. 영국 배우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신문 〈옵서버〉의 제안을 받고 최고의 레스토랑을 찾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여행의 즐거움과 식도락의 쾌락에 두 중년 배우의 자조적인 유머가 더해지니 영화적 만찬이 따로 없다. 물론 시리즈 중 최고는 역시 이 첫 번째 영화다.

-이탈리아 나폴리·카프리·폼페이, 〈이탈리아 여행〉(Journey to Italy, 1954)

영화광을 위한 선택. 이탈리아 거장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스웨덴 출신 미국 배우 잉그리드 버그먼의 로맨스(혹은 불륜)은 당대 최고의 스캔들 중 하나였다. 두 사람은 세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함께 몇 편의 작은 영화들을 만들었는데, 하나같이 믿을 수 없는 모더니즘 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그중 가장 훌륭한 〈이탈리아 여행〉은 관계가 바스락거릴 정도로 건조해진 부부의 여정을 담아낸다. 전후 이탈리아 남부의 조금은 폐허 같은 아름다움 속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의 발길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감각이 황홀해지는 걸작이다.

-벨기에 브뤼헤, 〈킬러들의 도시〉(In Bruges, 2008)

대주교를 암살하고 영국에서 도망친 두 킬러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영화는 깨알 같은 장르적 재미가 박혀 있는 숨은 걸작 블랙 코미디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당신은 주인공인 콜린 패럴보다 브뤼헤라는 도시의 아름다움에 살짝 눈이 멀지도 모른다. ‘유럽 북부의 베니스’라 불리는 이 도시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덜 알려진 관광지 중 하나다. 〈킬러들의 도시〉는 지명을 앞세운 영어 제목에서 짐작이 가듯이 브뤼헤라는 도시를 아예 숨은 주인공 중 하나처럼 다룬다. 파리와 로마와 베니스를 무대로 한 영화들에 질렸다면 탁월한 선택이다.

-일본 히로시마현 오노미치, 〈동경 이야기(사진 아래)〉(Tokyo Story, 1953)

당신은 ‘이 영화가 왜 여기서 나와?’라고 지금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영국 영화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가 선정한 영화 역사상 최고 걸작 3위를 차지하고 있는 〈동경 이야기〉는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동경으로 상경한 노부부의 쓸쓸한 모습을 통해 변해가는 가족의 의미를 그린다. 1950년대 동경의 모습도 근사하지만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건 노부부가 사는 항구 도시 오노미치의 풍경이다. 일본의 지중해라 불리는 세토내해의 좁은 해로를 품고 있는 이 작은 도시는 당신이 계획하고 있을 ‘일본 소도시 여행’의 정점이 될 것이다.

-한겨레 ESC-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la.html
kolaswqetsrq 11.02 19:36
◇ 우주 관광 경쟁

◇ 우주 관광 경쟁

1957년 10월 옛 소련이 쏜 인류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는 미·소 간 우주 경쟁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옛 소련은 1961년 4월12일 유리 가가린을 우주로 보내면서 미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1969년 7월20일 인류 첫 달 착륙과 인류 첫 우주인 탄생 20주년에 맞춘 유인 우주왕복선 발사 성공으로 자존심을 회복했다.

하지만 민간인 우주관광은 다시 러시아가 먼저 시작했다. 첫 자비 우주여행객은 미국 사업가 데니스 티토였다. 그는 2001년 4월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약 8일간 머물다 귀환했다. 비용은 2000만달러였다. 이후 2009년 9월까지 민간인 6명이 더 소유스에 몸을 실었다. 러시아가 ISS 우주관광 프로그램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이에 자극받았을까. 2011년 우주왕복선 계획까지 접었던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19년 6월 ISS를 민간에 개방하는 우주관광을 선언한다.

하지만 NASA가 손을 놓은 사이 우주로 눈을 돌린 이들이 있었다.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리처드 브랜슨 같은 억만장자들이었다. 이들은 2000년 블루 오리진, 2002년 스페이스X, 2004년 버진 갤럭틱이라는 우주 탐사기업을 차례로 세웠다. 어릴 때부터 키운 우주에 대한 동경이 원동력인 것은 같았지만, 그 지향점은 달랐다. 베이조스와 브랜슨은 무중력 상태 체험에 주안점을 뒀다. 머스크는 보다 원대해서 우주 궤도비행과 화성 이주까지 꿈꾸고 있다.

‘누가 첫 민간 우주여행 시대를 여는 주인공이 될 것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이들 간 경쟁의 승자는 브랜슨(사진)이었다. 브랜슨은 지난 11일 버진 갤럭틱이 만든 우주비행선을 타고 지상 약 89km까지 갔다가 귀환했다. 출발은 가장 늦었지만 ‘괴짜 억만장자’답게 열정으로 역전승을 일궜다.

하지만 이들의 우주 경쟁은 곧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 베이조스는 오는 20일, 머스크의 스페이스X도 오는 9월 첫 우주관광에 나선다. 우주관광은 아직 부자들의 놀음이다. 여행 경비 25만달러는 보통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우주를 향한 꿈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거부들 간의 경쟁이 우주를 향한 인류의 끝없는 도전과 도약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경향신문 여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01.html
kolaswqetsrq 11.02 19:37
◇ ‘탱크’ 최경주와 1m 쇠자

◇ ‘탱크’ 최경주와 1m 쇠자

최경주가 요즘 애지중지하는 도구가 있다. 1m짜리 쇠자다. 지난해 미국 댈러스 인근에서 열린 최경주 주최 주니어 골프대회에 출전한 10대 한국 선수가 퍼팅 연습에 사용했던 것이다. 퍼팅을 최대 약점으로 꼽는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국은 철물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데 미국은 찾기 힘들어요. 나중에 밥 사줄 테니 달라고 했죠.”

최경주는 매끄러운 자 위에 공을 올려두고 퍼팅 스트로크를 반복했다. “집이든 호텔방이든, 아침이든 저녁이든 틈만 나면 했다. 처음엔 공이 자를 벗어나기 일쑤였는데 끝까지 똑바로 굴러가게 되더라. 퍼팅에 자신감이 붙었다. 골프에선 1m 퍼팅이나 300m 드라이버나 똑같이 한 타 아닌가.” 9일 1년 만에 귀국한 최경주가 전화 통화에서 전한 사연이다.

50대에 접어든 최경주는 이번 시즌에도 PGA투어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만 50세가 넘어 챔피언스 투어 출전 자격도 얻었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의 골퍼들이 나서는 PGA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를 시험하고 있다. 그가 PGA투어를 지키고 있는 건 통산 상금 50위 이내(33위)에 진입했기 때문. PGA투어 통산 8승을 거둔 그는 상금 총액이 약 366억 원에 이른다.

장수 비결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혁신과 뜨거운 열정이 꼽힌다. 퍼팅만 해도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지름이 40mm에 이르는 홍두깨 그립을 퍼터에 장착하기도 했다. 하키스틱 같은 희한한 퍼터를 사용한 적도 있다. 퍼팅 고민에 자식뻘 선수에게서 건네받은 쇠자와 씨름하고 있지 않은가.

최경주는 30대 후반부터 10년 넘게 식이요법과 근력 강화 등 철저한 자기관리를 실천하고 있다.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더 강하게 운동해야 한다. 복근 단련과 회전력을 높이는 데 신경 쓰고 있다. 티오프 2시간 반 전부터 스트레칭과 기본운동에 들어간다. 최종 라운드에도 언더파를 칠 정도로 몸이 좋아졌다.”

몇 년 전부터 최경주는 주니어 골프 장학생을 선발해 해외에서 3주가량 함께 동계훈련 캠프를 갖는다. 어린 선수들과 어울리면서 새롭게 깨닫는 것도 많다고 한다.

최경주가 처음 PGA투어에 진출한 2000년에 한국 선수는 그가 유일했다. 혼밥이 일상이었고 낯선 아시아 선수에 대한 차별에 외로움도 컸다. 그의 개척에 힘입어 PGA투어에서는 10명 가까운 한국 선수가 뛰고 있다. 최경주는 따뜻한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이경훈이 80번 도전 끝에 PGA투어 첫 승을 거뒀을 때 2시간 가까이 기다려 축하하며 꼭 껴안아 줬다. 이번 귀국도 10일 개막하는 SK텔레콤오픈에서 후배들을 격려할 목적도 있었다. 그는 최근 메이저 대회 최고령 우승을 한 필 미컬슨을 보면서도 느낀 게 많다고 했다. “위대해 보였다. 나도 한다고 했는데 안이했고, 게을렀다.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최경주 같은 중년이 되면 ‘꼰대’나 퇴물 취급을 받기 쉬운 세상이다. 하지만 늘 새로움을 추구하며 뭔가를 익히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 애쓴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게다. 101세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한 법이니 나이가 들어도 놀지 말고 공부해야 한다”는 조언을 자주 한다. “나는 느리고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이지만 절대 뒤로는 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삶의 숫자가 아닌 숫자 속 삶이다.” 링컨 대통령의 명언이다. 끊임없이 배우며 나아가는 ‘탱크’ 최경주의 별명을 두 분이 퍽 마음에 들어 할 것 같다.

-동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m.html
kolaswqetsrq 11.02 19:38
◇ "냄새때문에 경기 못 치를 지경"..도쿄올림픽 악취와의 전쟁

◇ "냄새때문에 경기 못 치를 지경"..도쿄올림픽 \악취와의 전쟁\

철인 3종 경기(트라이애슬론) 등이 치뤄지는 도쿄만에서 악취가 가시지 않아 도쿄올림픽 대회를 앞두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모래를 쏟아 붓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2년 전 초과 검출된 대장균까지 줄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4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도쿄만의 악취가 문제된 것은 2년 전부터다. 2019년 8월 이곳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던 장애인 트라이애슬론 수영 경기가 취소됐다. 국제트라이애슬론연맹(ISU)에서 정한 것보다 두 배 많은 대장균이 검출되면서다.

당시 아사이신문은 물에서 화장실 냄새가 났다고 보도했다. 같은해 오다이바 마린파크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시범경기에서 일부 미국 선수들은 기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수개월에 걸쳐 정화작업을 벌였다. 도쿄만에 2만2200입방미터(CBM·m3)의 모래를 쏟아부었고 특수제작한 스크린도 설치했다. 하지만 악취가 계속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과학자들은 세균이 스크린 아래로 흘러들어갈 수 있어 대장균 유입을 크게 줄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도쿄만 악취의 원인은 도심에서 흘러든 하수다. 도쿄에는 빗물과 하수를 위한 별도 배수시설이 없다. 3000만명에 이르는 도쿄 시민들이 쓰는 하수는 정화를 거쳐 도쿄만으로 배출된다. 하지만 비가 많이 와 수량이 늘면 일부 하수가 제대로 정화 처리 되지 않은 채 도쿄만으로 흘러들어갈 위험이 있다.

931년 만들어진 정화 처리 시설이 아직까지 유지되는 것도 악취를 키우는 원인이다. 도쿄 인구가 급격히 늘었지만 정화 처리 능력은 늘지 않아서다. 도쿄에 새 하수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10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도쿄올림픽의 트라이애슬론과 마라톤 수영 경기는 오는 26일부터 치러진다. 이들 종목에 참여하는 선수들에게 도심의 수질은 큰 위험 요인이 됐다. 수질 악화로 선수들이 고생하는 곳은 도쿄 뿐 아니다.

30년 넘게 트라이애슬론에 참여한 타로 시라로는 "도쿄만이 깨끗하지 않지만 이보다 심한 곳도 많다"며 "도심에서 개최되는 트라이애슬론이 늘고 있는데 깨끗한 곳은 많지 않다"고 했다.

- 한국경제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63.html
kolaswqetsrq 11.02 19:38
◇ 황산벌과 전라도 사투리

◇ 황산벌과 전라도 사투리

영화 ‘황산벌’을 보러 갔을 때다. 백미는 사투리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그런데 웬걸. 김유신은 영남, 계백은 호남 사투리를 걸쭉하게 구사했다.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다.

문제는 계백. 왜? 백제는 서울-공주-부여로 천도했을 뿐 수도가 금강 이남에 있었던 적은 없다. 황산벌 전투 때도 수도는 부여였다. 그러니까 ‘황산벌’의 계백과 백제 사람들은 충청도 사투리로 말하든지, 백번 양보해도 서울말을 써야 했다. 영화를 본 뒤 친구에게 열변을 토했더니 첫 반응은 “아, 부여가 충청도야?”였고, “재밌으면 됐지, 충청도 출신이라고 오버한다”는 핀잔이 돌아왔다.

대학에서 서울 친구들을 만나보니 지방은 그저 ‘시골’일뿐이었고, 부정확한 인식을 접하면서 당혹감을 느낀 적도 적잖았다. ‘황산벌’을 만든 서울 출신 이준익 감독도 은연중 ‘백제 수도는 전라도’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대중문화에서 지방은 서울의 인식을 기준으로 다뤄지기 일쑤다. 정작 해당 지역에선 ‘낯선 곳’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KBS 월화드라마 ‘오월의 청춘’의 시도는 반갑게 느껴진다.

1980년 5월 광주가 배경인 이 작품은 출연진 모두 호남 사투리로 말한다. 첫 화를 본 뒤 광주 지인에게 물어보니 “과장된 사투리가 안 들려서 좋다”고 했다. 덕분에 드라마 속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당시 광주 분위기는 이렇지 않았을까’라고 상상하곤 한다. 주연 배우들이 서울말을 썼던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경험이다. 이런 작품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중앙일보 역지사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561.html
kolaswqetsrq 11.02 19:39
천녀이혼倩女離魂 - 천녀의 혼이 육체를 떠나다, 이뤄지지 못하는 사랑에 고민하다.

천녀이혼(倩女離魂) - 천녀의 혼이 육체를 떠나다, 이뤄지지 못하는 사랑에 고민하다.

예쁠 천(亻/8) 계집 녀(女/0) 떠날 리(隹/11) 넋 혼(鬼/4)

정신이 나가 어리둥절한 상태를 넋이 나간다고 한다. 넋은 바로잡는 얼과 함께 靈魂(영혼)과 같은 말인데 사람의 몸 안에서 육체와 정신을 다스린다고 믿었다. 넋이라도 동양에서는 魂魄(혼백)이라 하여 혼은 정신을, 백은 육체를 지배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魂飛魄散(혼비백산)이란 말과 같이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날아가지만 백은 지상에 흩어져 귀신으로 떠돈다.

志怪(지괴)소설은 억울한 죽음으로 된 귀신과 요괴 등을 다룬 것으로 중국 南北朝(남북조) 시대에 유행했다. 倩女(천녀)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연인과 사랑을 이루지 못하자 육체와 혼이 떨어져 있다가(離魂) 몇 년 후에 다시 합쳐졌다는 이야기도 여기에 속한다.

천녀는 唐(당)나라 代宗(대종)때 사람 陳玄祐(진현우)의 "離魂記(이혼기)"에 처음 등장한 이후 인물의 이름이 약간씩 바뀌면서 여러 시문에서 인용돼 유명해졌다. 줄거리를 간단히 보자. 옛날 張鎰(장일)이란 사람에게 천녀라는 미모가 뛰어난 딸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먼 친척의 아들 王宙(왕주)가 총명해서 나중에 부부가 되게 해 준다고 약속했다.

혼기가 되자 장일은 마음이 변하여 천녀를 높은 벼슬아치에게 시집보내려 했다. 상심하여 천녀는 드러누웠고 절망한 왕주는 고향을 떠나려고 강을 건넜다. 어두운 강기슭에서 왕주는 뒤따라온 천녀를 만나 부부가 됐고 5년을 행복하게 살며 벼슬도 하게 됐다.

두 사람은 고향이 그리워져 장일을 찾아 용서를 구했는데 그때까지 천녀는 뒷방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고 했다. 배 안에서 기다리던 천녀를 데리고 오니 그 때에야 두 사람이 합쳐져 한 사람이 됐고 이후 행복하게 살았다. 이 애틋한 이야기가 宋(송)나라 無門慧開(무문혜개)의 설법서인 ‘無門關(무문관)‘에도 실려 유명한 화두가 됐다. 여기에는 淸女(청녀)로 나와 선사가 제자들에게 묻는다.

"청녀가 혼이 떠났는데, 두 사람 중 어느 쪽이 진짜 청녀인가(淸女離魂 那箇是眞底/ 청녀이혼 나개시진저)?" 선사들은 이것을 우리의 본성은 진짜인가 거짓인가, 혹은 선심과 惡心(악심) 중 어느 것이 마음의 본체인가를 묻는 것이라고 한다.

倩女(천녀)든 淸女(청녀)든 결국은 해피엔딩이지만 혼이 육체와 떨어져 있었던 만큼 여성이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나 이루어지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는 성어가 됐다. 비련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한 소재가 되어 元(원)나라의 鄭光祖(정광조)는 내용을 발전시킨 잡극으로 탄생시켰고, 1987년 홍콩에선 줄거리를 빌려와 張國榮(장국영), 王祖賢(왕조현) 주연의 倩女幽魂(천녀유혼)이란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주위에서 아무리 혼백까지 갈라놓으려 해도 사랑이 간절하면 꺾을 수 없다. 그런데 멀쩡한 사람이 혼백이 아니라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을 뻔히 하는 것을 보면 진실함을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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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39
탈영이출脫穎而出 -뾰족한 부분이 뚫고 나오

탈영이출(脫穎而出) -뾰족한 부분이 뚫고 나오

벗을 탈(肉-7) 이삭 영(禾-11) 말이을 이(而-0) 날 출(凵-3)

상대방의 생각을 알아낼 수 있는 讀心術(독심술)은 다년간 도를 닦은 초능력자나 할 수 있지 일반 사람들은 엄두를 못 낸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 터이다. 하지만 아무리 숨기고 싶어도 저절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재주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송곳이 튀어나오듯 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스스로 두각을 나타낸다. 많이 쓰는 囊中之錐(낭중지추)란 성어가 여기에서 왔다.

성어의 이삭 穎(영)은 이삭의 뾰족한 끝 부분이나 물건의 자루, 빼어남을 뜻한다. 이 말도 유래가 똑같이 "史記(사기)"의 平原君虞卿列傳(평원군우경열전)이다. 평원군은 趙(조)나라의 귀족으로 이름은 趙勝(조승)이다.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에 각 제후국에서 수천 명의 빈객을 거느리고 세력을 키웠던 戰國四君(전국사군)의 한 사람이다. 다른 세 사람은 齊(제)의 孟嘗君(맹상군), 魏(위)의 信陵君(신릉군), 楚(초)의 春申君(춘신군)을 말한다.

조나라가 秦(진)의 공격을 받자 왕이 초나라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평원군을 파견하게 되었다. 평원군은 자신의 식객 중에서 문무를 겸비한 20명을 뽑아 함께 가기로 했는데 19명을 뽑은 뒤 더 이상 고를 사람이 없었다. 이 때 毛遂(모수)라는 사람이 자신을 데려가기를 원했다. 바로 毛遂自薦(모수자천)이다.

평원군은 재주가 있었다면 주머니 속 송곳과 같이 벌써 알았을 터인데 하며 거절했다. 그러자 모수는 "만약 저를 좀 더 일찍 주머니 속에 넣었더라면 송곳의 끝만 드러난 게 아니라 자루까지 뚫고 나왔을 것입니다(使遂蚤得處囊中 乃穎脫而出 非特其末見而已/ 사수조득처낭중 내영탈이출 비특기말견이이)." 蚤는 벼룩 조, 일찍이란 뜻도 있다. 뒤에 합류한 모수는 19명의 몫을 능가할 정도로 활약을 펼쳐 초나라를 설득하고 합종을 성공시켰다. 평원군은 모수를 이후 상객으로 대우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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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40
불구언소不苟言笑 - 남을 헐뜯거나 비웃지 않는다.

불구언소(不苟言笑) - 남을 헐뜯거나 비웃지 않는다.

아닐 불(一/3) 진실로 구(艹/5) 말씀 언(言/0) 웃음 소(竹/4)

중국 儒家(유가)의 경전이라면 보통 四書五經(사서오경)을 일컫는다. 사서는 상식으로도 論語(논어), 孟子(맹자), 大學(대학), 中庸(중용)으로 줄줄이 댈 수 있게 익숙한데 오경은 그렇지 않다. 처음 삼경이라 하여 詩經(시경), 書經(서경), 易經(역경)이던 것이 禮記(예기)와 春秋(춘추)를 넣어 오경이 됐지만 아무래도 사서에 비해 일반에 덜 친숙하다.

이는 더 역사가 오랜 오경보다 성리학에서 孔子(공자)의 언행록과 직접 관련성이 있는 사서를 더 중시한데서 왔다고 본다. 민요와 법제를 다루고 길흉을 점친 삼경에서 뒤늦게 역사서인 춘추와 예의 이론을 다룬 예기를 포함시켰다고 홀대를 한 것은 아니다.

이중 예기는 의례의 해설뿐 아니라 정치, 음악, 학문 등 일상의 영역까지 언급한다. 다방면에 걸쳐 예의 근본정신에 대해 기술하고 도덕적인 면을 강조하여 실제 경서의 첫손에 꼽히기도 한다. 그래서 荀子(순자)는 자신의 책 勸學(권학)편에서 ‘학문은 시경 서경 등 경을 암송하는 데서 시작하고, 예기를 읽는 데서 끝낸다(始乎誦經 終乎讀禮/ 시호송경 종호독례)’고 할 정도였다.

공자가 편찬에 참여했다고 하고, 성리학의 朱熹(주희)가 예기에서 대학 중용을 독립시켜 사서에 포함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경솔하게 남을 헐뜯거나 비웃지 않는다는 뜻의 이 성어는 五禮(오례)를 다룬 이 책의 첫 부분 曲禮(곡례)편에 나온다.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는 것이 예의 근본이고 나라를 위한 출세보다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앞서야 한다고 곳곳에서 강조한다. 부모가 말씀하기 전에 알아듣고 보여주기 전에 깨달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자녀로서 해야 할 일이라며 이어진다.

‘높은 곳에 오르지 않으며 깊은 곳에 가지 않고(不登高 不臨深/ 부등고 불임심), 섣불리 남을 헐뜯지 않고 남을 비웃지 않는다(不茍訾 不茍笑/ 불구자 불구소).’ 위험한 곳에 가지 않는 것이 부모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길이고, 남을 험담하는 것은 어버이를 욕되게 하는 것이 되므로 삼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訾는 헐뜯을 자. 不苟笑語(불구소어), 不苟訾笑(불구자소)로 줄여 써도 같다.

곡례편에 효자가 행하는 유명한 말이 더 있다. 추울 때는 따뜻하게 보호하고 여름철에는 시원하게 해 드린다는 冬溫夏凊(동온하정, 凊은 서늘할 정), 아침저녁 잠자리와 안부를 살피는 昏定晨省(혼정신성), 그리고 나갈 때 아뢰고 들어와서 뵙는다는 出必告 反必面(출필곡 반필면) 등이다.

이러한 것은 요즘 부모도 성가실 일이고, 자녀도 바쁜 현대의 독립된 생활에서 모두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말로써 말이 많은 세상에서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남을 헐뜯어 시비를 자초하는 일은 자신뿐 아니라 부모도 욕되게 하니 꼭 실천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70.html
kolaswqetsrq 11.02 19:40
천장지구天長地久 - 하늘과 땅은 영원하다, 영구히 변함없는 남녀 간의 사랑

천장지구(天長地久) - 하늘과 땅은 영원하다, 영구히 변함없는 남녀 간의 사랑

하늘 천(大/1) 긴 장(長/0) 따 지(土/3) 오랠 구(丿/2)

하늘과 땅이 끝이 있을까. 하늘만큼 길고(天長) 땅만큼 오래(地久)라는 하늘과 땅이 처음 존재했던 때로부터의 시간만큼 길고 오래되었다는 무한의 뜻이다. 이 말이 귀에 익은 사람들은 홍콩의 느와르 명작영화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1990년 劉德華(유덕화), 吳倩蓮(오천련, 倩은 예쁠 천)의 애틋한 사랑은 속편까지 나왔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영화의 원제 天若有情(천약유정)도 唐(당)나라 시인 李賀(이하)의 시구에서 따왔다지만 우리나라서의 번역명은 더 잘 알려진 데서 나왔다. 老子(노자)의 ‘道德經(도덕경)’에 실려 있고 역시 ‘長恨歌(장한가)’로 유명한 白居易(백거이)의 사랑 표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도덕경의 제7장 韜光(도광)장을 먼저 보자. ‘하늘과 땅은 영원무궁하다. 하늘과 땅이 능히 이런 것은 스스로를 위해서 살지 않기 때문에 장생할 수 있는 것이다(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천장지구 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부자생 고능장생).’ 노자가 태고 때부터 영원한 존재인 하늘과 땅이 서로 경쟁하지 않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말한 것은 이어지는 성인을 비유하기 위해서였다.

성인은 자신을 위한 것을 뒤로 돌림으로써 남보다 앞에 나설 수 있고, 자신보다 남을 위함으로써 자신이 존재하게 된다. 성인뿐 아니라 천도의 무위자연을 본받아 사심 없이 대하면 누구나 훌륭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당연한 이치를 돌려 말한 노자에 비해 樂天(낙천)이란 자로 더 잘 알려진 백거이는 글자대로 하늘과 땅만큼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노래했다. 그의 장한가는 전체 4장에 120구, 840자나 되는 장편으로 唐(당)나라 6대 황제 玄宗(현종)과 미인의 대명사 楊貴妃(양귀비)의 비련을 그렸다.

마지막 장에 성어가 나오는데 화목한 부부나 남녀관계를 말하는 比翼連理(비익연리) 구절부터 보자. ‘하늘에선 날개 붙은 비익조가 되고, 땅에선 가지 붙은 연리지 되길 원하네(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재천원작비익조 재지원위연리지). 장구한 천지도 다할 때가 있건만, 이 한은 면면히 끊일 날 없으리라(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 천장지구유시진 차한면면무절기).’

하늘과 땅처럼 영원하도록 자기를 뒤로 하고 남을 앞세우는 훌륭한 사람이 본받을 일이다. 남을 위해 일을 하겠다는 지도층이 명심할 말이고 일반 사람들은 영원한 남녀의 사랑에 더 솔깃하다. 사랑하는 짝이 나타나면 누구나 자신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며 상대에 진심을 알아 달라고 애탄다.

사랑이 성공한 뒤에는 초기에 열렬한 만큼 쉬 식는 사람도 많다. 더 문제인 것은 적령기의 청춘들이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아예 사랑을 포기한다는 사실이다. 비익연리가 되고 하늘처럼 땅처럼 영원한 사랑이 많아져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064.html
kolaswqetsrq 11.02 19:41
폐형폐성吠形吠聲 – 개 한 마리가 형체를 보고 짖으면 다른 개들이 소리만 듣고 짖는다.

폐형폐성(吠形吠聲) – 개 한 마리가 형체를 보고 짖으면 다른 개들이 소리만 듣고 짖는다.

짖을 폐(口/4) 모양 형(彡/4) 짖을 폐(口/4) 소리 성(耳/11)

사람에겐 남을 본뜨거나 본받는 模倣(모방) 본능이 있어 인류문화가 발전해왔다. 인간은 모방의 천재이고 참된 모방은 가장 완전한 창조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이나 처지는 고려하지 않고 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따라 하기만 한다면 화를 자초한다.

줏대 없는 행동을 비꼬는 말은 많다. 우리 속담에 ‘거문고 인 놈이 춤을 추니 칼 쓴 자도 춤을 춘다’고 한 琵琶者舞 枷者亦舞(비파자무 가자역무)란 말과 비슷한 것이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 거름 지고 나선다’, ‘숭어가 뛰니 망둥어도 뛴다’ 등등이다. 모두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자가 남의 행동을 주견 없이 무턱대고 따라하려 할 때 비유하는 말이다.

한자 성어도 못지않다. 가장 잘 알려진 附和雷同(부화뇌동) 말고도 주관도 없이 남이 하는 대로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應聲蟲(응성충)이란 말과 함께 한 마을에서 형체를 보고 짖는 개(吠形)의 소리만 듣고 나머지 개도 따라 짖는다(吠聲)는 이 말이다. 원래의 一犬吠形 百犬吠聲(일견폐형 백견폐성)이란 말을 줄여서 사용했다.

後漢(후한) 사람 王符(왕부, 85~163)가 쓴 ‘潛夫論(잠부론)’에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덩달아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람들을 빗대 이 속언을 인용했다. 그는 출세지향의 당시 세태에 염증을 느껴 숨어사는 남자(潛夫)로 자처하며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賢難(현난)편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어진 사람을 얻기 어려운 것이 현난인데 그 원인을 설명한다.

현자를 구하기 어려운 것은 ‘선을 수행하면 질시를 받고, 어짊을 행하면 시기를 받아 반드시 환난을 입기 때문(循善則見妬 行賢則見嫉/ 순선즉견투 행현즉견질)‘이며 속언의 ’개 한 마리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모든 개가 따라 짖는다(一犬吠形 百犬吠聲/ 일견폐형 백견폐성)‘는 것은 한 사람이 헛된 말을 전하면 많은 사람이 이를 사실인 줄 알고 전하기 때문이라 했다.

조용한 산골 마을에 낯선 인기척을 들은 개가 짖는 것은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다. 처음 일을 헤쳐 나가는 사람에게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따르거나 또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반대부터 하는 자가 있다. 이런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가 혼탁해지고 발전이 더딜 것임은 분명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499.html
kolaswqetsrq 11.02 19:42
서족이기성명書足以記姓名 – 글은 이름만 적을 수 있으면 족하다.

서족이기성명(書足以記姓名) – 글은 이름만 적을 수 있으면 족하다.

글 서(曰/6) 발 족(足/0) 써 이(人/3) 기록할 기(言/3) 성 성(女/5) 이름 명(口/3)

사람의 배움은 끝이 없다.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을 그만 두지 말라고 선인들은 가르친다. 옥은 닦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모두 학자가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단지 ‘알아야 면장을 하지’란 속담대로 어떤 일을 하려면 당연히 그 방면의 실력을 닦아야 한다.

사람의 능력은 천차만별인데 자신이 해나갈 일에는 능통해야 한다는 말이다. ‘글은 기성명이면 족하다’란 속담은 제 성과 이름만 쓸 줄 알면 된다는 이야기로, 글공부는 모두 깊이 할 필요는 없고 앞으로의 실생활에 필요한 공부에 매진하라는 뜻이다. 결코 배움을 경시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천보다는 학식이나 이론만 앞세우는 태도를 비꼬는 말로 쓰이거나 반대로 文治(문치)의 중요성을 망각하는 통치자의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로도 사용됐다.

이름 석 자만 쓸 줄 알면 된다는 말은 공부에 찌든 학생들이 좋아할 이야기다. 하지만 이 말은 중국 楚漢(초한)의 쟁패전에서 통일 직전까지 갔던 項羽(항우, 기원전 232~202)가 더 많은 사람과 대적할 수 있는 병법을 배우겠다며 한 표현이다.

戰國七雄(전국칠웅)의 하나였던 楚(초)나라의 명문 출신 항우는 무인의 핏줄을 이어받아 용맹을 떨친 사람이었다. 힘은 산을 뽑을 만큼 매우 세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큼 웅대하다는 力拔山氣蓋世(역발산기개세)에 들어맞을 정도였다.

항우는 어렸을 때부터 글을 배웠지만 자신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별로 공부에 뜻이 없었다. 숙부인 項梁(항량)이 이를 보다 못해 그를 불러 꾸짖었다. 아무리 출중한 힘을 가졌다고 해도 학문을 게을리 하면 정작 필요할 때 써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에 항우는 대답한다. ‘글은 이름만 쓸 수 있으면 족하고, 칼은 한 사람만을 대적하는 것이니 배울만한 것이 못됩니다.

저는 많은 사람과 대적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겠습니다(書足以記姓名而已 劍一人敵 不足學 學萬人敵/ 서족이기성명이이 검일인적 부족학 학만인적).’ 그 말을 듣고 숙부 항량은 병법을 가르쳤다. 항우는 그러나 병법을 통달할 정도까지 배우지 못하고 기고만장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못 미치는 劉邦(유방)에 패했다. ‘史記(사기)’ 항우본기에 실린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사교육비가 늘어나고 미성년 자녀 양육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는 머리가 되든 말든 취미가 있건 말건 너도나도 공부를 시킨다는 이야기다. 자신 있는 분야를 잘 찾아 일찍부터 진로를 정해주는 교육제도가 더욱 절실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611.html
kolaswqetsrq 11.02 19:43
차래지식嗟來之食 - 무례하게 주는 음식, 진심이 없이 모욕적으로 주는 금품

차래지식(嗟來之食) - 무례하게 주는 음식, 진심이 없이 모욕적으로 주는 금품

탄식할 차(口/10) 올 래(人/6) 갈 지(丿/3) 밥 식(食/0)

모든 생물체는 먹어야 목숨을 유지한다. 衣食住(의식주)라 했지만 食(식)이 앞선다. 몹시 궁하면 보이는 것이 없다고 ‘사흘 굶으면 포도청의 담도 뛰어 넘는다’는 말이 나왔다. 배가 불러야 체면을 차릴 수 있으니 ‘수염이 대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다’란 속담은 그 다음에 이어졌다. 좀 나은 표현으로 음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성실한 것은 없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을 안다고 했다.

옛날 못 살았을 때 먹을 것이 없어 구걸해야 할 경우 주인이 ‘동냥은 안 주고 쪽박만 깬다‘고 하면 사정하는 쪽의 심정은 어떨까. 하찮은 짐승일지라도 먹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다는데 최소한의 자존심은 사라지고 반감만 남는다.

쪽박은 깨지 않더라도 얻어먹는 사람을 업신여겨 무례하게 음식을 주면 크게 나을 것도 없다. 탄식한다는 嗟(차)는 야! 이봐! 라고 하는 감탄사라고 하며 무례한 태도로 불러 먹으라고 한 음식을 나타냈다. 모자라는 것이 없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베풀면 감지덕지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받는 사람은 고마울 리 없다.

진심이 없이 모욕적으로 주는 구호금품을 뜻하기도 하는 이 말이 유가의 경전 ‘禮記(예기)’에서 비롯됐으니 역사가 깊다. 고대 문물과 예의에 관한 방대한 기록인 이 책의 檀弓(단궁)편에 남에게 호의를 베풀 때도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에 기근이 들어 굶주리는 사람이 많았다. 黔敖(검오)라는 부자가 이를 불쌍히 여겨 길가에 음식을 차려 놓고 나눠주고 있었다. 한 굶주린 사람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얼굴을 소매로 가린 채 신발을 질질 끌고 왔다. 검오가 ‘이봐! 이리 와서 먹어(嗟 來食/ 차 래식)’라고 말했다.

사나이는 ‘내가 이런 모욕적인 음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이 꼴이 되었소(子唯不食嗟來之食 以至於斯也/ 자유불식차래지식 이지어사야)’라며 사과를 하려 해도 받지 않고 가다 쓰러져 죽었다. 明(명)나라 馮夢龍(풍몽룡)의 ‘東周列國志(동주열국지)’에도 魏(위)의 공신 樂羊(낙양)을 다그치는 부인의 가르침으로 인용한다. ‘지사는 도천의 물을 마시지 않고, 염치를 아는 사람은 남이 함부로 던져주는 음식을 먹지 않는 법입니다(志士不飲盜泉之水 廉者不受嗟來之食/ 지사불음도천지수 염자불수차래지식).’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한 경주 최부자의 12대를 이은 선행이나, 흉년이 들었을 때 굶주린 사람들에게 누구나 쌀독을 열어 가져가도록 했다는 구례 운조루 쌀독은 가진 자의 마음씀씀이가 남달랐다.

옛날에 비해 풍족해진 오늘도 빈부의 격차는 더 커져 종종 아사자가 나타난다. 하층민을 구제하는 제도가 촘촘하다고 하지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례한 한 끼보다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다. 자주 기부를 하여 주위의 칭송을 받는 사람들도 남이 모르는 선행이 더 값지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285.html
kolaswqetsrq 11.02 19:44
진화타겁趁火打劫 - 불난 곳을 휘저어 겁주고 치다.

진화타겁(趁火打劫) - 불난 곳을 휘저어 겁주고 치다.

쫓을 진(走/5) 불 화(火/0) 칠 타(扌/2) 위협할 겁(力/5)

애호박에 말뚝 박기, 똥 누는 놈 주저앉히기, 다 된 혼인 바람 넣기,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 몇 가지만 보고도 40~50가지나 된다는 놀부심술인줄 안다. 남이 싫어하는 것이나 잘못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심술이다. 이런 짓을 일삼는 놀부 같은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손가락질 받고 따돌림 당한다.

심술은 복을 내쫓는다고 心術去福(심술거복)이라 했다. 마음을 옳게 쓰지 못하고서 복을 바랄 수는 없다. 그런데 놀부의 이런 고약한 망나니짓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골탕을 먹이는 수준에 그친다고 해서 악인까지는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남에게 해를 끼쳐 구렁에 몰아넣고 제 이익만 차리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놀부의 심술은 애교 수준일 수도 있다. 불난 집에 가서 부채질하는 것은 물론 나쁜 일이지만 그 틈을 타서 닥치는 대로 물건을 훔친다면 더욱 나쁜 범죄행위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회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더라도 합법적이어야 한다. 이런 당연한 원칙이 통하지 않는 곳이 있다. 아니 오히려 권장되는 곳이 죽느냐 사느냐 싸우는 전쟁판이다. 불난 곳을 찾아 휘젓고(趁火) 그 틈을 타 겁주고 치라(打劫)는 뜻으로 옛날의 용병술을 모은 "三十六計(삼십육계)"중의 勝戰計(승전계)에 나와 있다

잘 혼동하는 孫子兵法(손자병법)에도 兵不厭詐(병불염사)라 하여 전쟁에서는 적을 속이는 꾀를 꺼리지 않아야 한다고 했는데 여기선 특히 속임수를 강조했다. 적이 방심한 피로한 틈을 타 기습하기, 남의 힘을 빌려 적을 치기,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치는 聲東擊西(성동격서) 등이 모두 승전계다. 제5계인 이 계책의 설명을 보자.

‘적이 내우에 시달리면 그 땅을 뺏고(敵害在內 則劫其地/ 적해재내 즉겁기지), 적이 외환에 시달리면 그 백성을 빼앗고(敵害在外 則劫其民/ 적해재외 즉겁기민), 내우와 외환에 겹쳐 있으면 그 나라를 빼앗는다(內外交害 則劫其國/ 내외교해 즉겁기국).’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계책이지만 상대가 죽어야 살 수 있다면 피할 수도 없다. 오늘의 국제사회에서는 한 나라의 혼란한 틈을 타 자국의 이익만 취한다면 영원히 우호국이 되지 못한다. 생사가 걸린 문제가 아닌데도 속임수로 경쟁자를 완전히 망하게 해놓고 자기의 이익만 취한다면 한 때는 성공에 취한다 해도 언젠가는 전모가 드러나 벌을 받고 재기불능이 된다.

조그만 문제로 대립하여 상대방을 일망타진했던 당쟁의 폐해는 오늘날도 겪는다. 건설적인 대화는 간 곳이 없고 모략으로라도 상대를 꺾어야 자기가 산다는 살벌함만 남아 민주주의는 자꾸만 퇴화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55.html
kolaswqetsrq 11.02 19:45
조갑천장爪甲穿掌 - 손톱이 손바닥을 뚫다, 굳게 결심을 실천하다.

조갑천장(爪甲穿掌) - 손톱이 손바닥을 뚫다, 굳게 결심을 실천하다.

손톱 조(爪/0) 갑옷 갑(田/0) 뚫을 천(穴/4) 손바닥 장(手/8)

마음먹은 대로 해나가리라 굳은 결심을 하고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되는 게 보통 사람이다. ‘난봉자식이 마음잡아야 사흘이다’란 속담은 개인이 약속을 못 지키지만 ‘조정 공론 사흘 못 간다’는 말은 나라라고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세상없어도 꼭 지키리라 하는 거창한 결심은 韓信(한신)의 背水之陣(배수지진)이나 項羽(항우)의 破釜沈舟(파부침주) 등이 잘 말해 준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살아서 돌아가기를 기약하지 않아야 살 길이 생긴다는 가르침이다.

개인이라고 作心三日(작심삼일)로 단단한 마음가짐이 사흘을 넘기지 못할 일은 없다. 학문을 이룰 때까지 왼 손을 펼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가 성공한 뒤에 펴 보니 손톱(爪甲)이 길어져 손바닥을 뚫었다(穿掌)는 성어가 있으니 말이다. 이 말은 조선시대 민간에서 수집한 이야기를 윤색한 稗官(패관)문학의 결정판 ‘大東奇聞(대동기문)’에서 유래했다. 이 책은 개국 초부터 약 250년 동안의 야사와 설화, 일기, 수필 등이 광범하게 채록되어 귀중한 자료가 되어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이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친 梁淵(양연, 1485~1542)이 자기가 뜻했던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는 일화에서 나왔다. 그는 조선 초기 초기 대제학을 지낸 유명한 학자 梁誠之(양성지)의 손자이기도 하다. 양연은 젊은 시절 蔭職(음직)으로 관직에 나갔으나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다가 마흔의 나이에 문과에 급제했다.

그가 마음을 다잡고 절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왼 손을 쥔 채 문장을 이루지 못하면 펴지 않으리라 맹세했다(握左手 不爲文章 誓不開手/ 악좌수 불위문장 서불개수)’. 일 년 남짓 지나 ‘과거에 급제한 날 그제야 손을 펼쳐 보니 손톱이 손바닥을 뚫었다(後登科日 始欲開手則 爪甲穿掌/ 후등과일 시욕개수즉 조갑천장)’고 했다.

처음에 다짐했던 결심이 갈수록 희미해져 가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너무 거창한 목표를 세웠거나 주변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으로 변명에 불과하다. 큰일을 이룬 사람은 시작하기 전에 면밀히 분석하고 계획을 세워 손바닥까지는 뚫지 않더라도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다./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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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45
등용문登龍門 - 용문에 오르다, 뜻을 펴서 크게 출세하는 문

등용문(登龍門) - 용문에 오르다, 뜻을 펴서 크게 출세하는 문

오를 등(癶/7) 용 룡(龍/0) 문 문(門/0)

龍(용)은 동서양 모두 상상의 동물이다. 서양에서의 용(dragon)은 호수나 하천 등의 커다란 뱀이나 악어를 가리키는 데서 나온 말로 악과 異敎(이교)를 상징해 퇴치의 대상이었다. 반면 동양의 용은 형태는 큰 뱀이라도 날개 없이 날 수 있고 큰 눈과 긴 수염을 가지고 불이나 독을 내뿜는 신령스런 동물이었다.

기린, 봉황, 거북과 함께 四靈(사령) 중에서도 으뜸으로 왕을 상징할 만큼 높임을 받았다. 이런 대접을 받으니 쉽게 용이 될 수는 없다. 강과 바다의 큰 물고기들이 통과하기 어려운 폭포를 뛰어넘어야 용이 될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龍門(용문)이다.

중국의 黃河(황하) 상류의 협곡 사이에 위치한 폭포를 일명 용문이라 했는데 흐름이 매우 빨라 고기들이 오를 수가 없었다. ‘강과 바다의 큰 물고기들이 용문 아래로 수없이 모여들지만 오르지 못했고 만약 오른다면 바로 용이 되었다(江海大魚 薄集龍門下數千 不得上 上則爲龍/ 강해대어 박집용문하수천 부득상 상즉위용).’ 정의파 관료 李膺(이응, 110~169)을 소개한 ’後漢書(후한서)‘의 열전에서 용문을 주해한 내용이다.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 때의 宋(송)나라 范曄(범엽)이 쓴 이 책에는 後漢(후한) 말 桓帝(환제) 때 발호하던 환관에 의연히 맞선 이응의 활약이 실려 있다.

이응은 청렴 강직한 관리로 여러 차례 외적도 물리치는 등 문무에 능해 주위의 신망이 높았다. 환제가 외척의 세력을 물리칠 때 환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중시하여 기강이 말이 아니었다. 이응은 지방을 전전하다 경찰청장 격인 司隸校尉(사예교위)를 맡았을 때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죄를 지은 고관도 가차 없이 벌했다.

그러자 탐관오리들은 벌벌 떨었고, ‘천하의 본보기는 이원례(天下模楷李元禮/ 천하모해이원례)’라며 청년 관리들은 그를 높였다. 元禮(원례)는 이응의 자. 또 ‘그를 만나 인정을 받은 선비들은 용문에 올랐다고 했다(士有被其容接者 名爲登龍門/ 사유피기용접자 명위등용문)’고 할 정도였다.

임금을 상징하던 용이 좋긴 좋아 보잘 것 없던 사람이 출세하면 ‘미꾸라지 용 됐다’고 했다. 미천한 집안이나 변변하지 못한 부모에게서 훌륭한 인물이 날 때 ‘개천에서 용 난다’고 비유한다. 그런데 용문에 오르기는 별 따기가 되어 간다. 계급 차와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고착화되기 때문이다.

龍門點額(용문점액), 曝鰓龍門(폭새용문, 鰓는 아가미 새)이란 말이 있다. 용문을 오르다 실패하여 이마에 상처를 입는다는 뜻이다. 지난날에는 그래도 학력과 고시로 용감히 도전하여 용문에 올랐으나 지금은 온통 상처 입는 젊은이들이 좌절할 뿐이다. 희망을 줄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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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46
주마등走馬燈 - 달리는 말이 나오는 등, 사물이 덧없이 빨리 흘러감

주마등(走馬燈) - 달리는 말이 나오는 등, 사물이 덧없이 빨리 흘러감

달릴 주(走/0) 말 마(馬/0) 등 등(火/12)

불을 켜서 어둠을 밝히거나 신호를 보내는 기구가 燈(등)이다. 요즘이야 전기가 보급돼 등을 구경하기도 어렵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는 燈下不明(등하불명)이나 독서를 하기 좋은 계절에 등을 더 가까이 한다는 燈火可親(등화가친) 등의 성어로 남아 있다. 등불과 전깃불의 차이를 이어령 선생은 이렇게 표현했다. 등불을 ‘방의 어둠만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까지 밝혀 준다’고 하며 그 근거로 등불은 시를 낳았고 전깃불은 단지 전기세만을 남겼다고 했다.

달리는 말(走馬)이 나오는 등은 안팎 두 겹으로 된 틀의 안쪽에 말과 같은 갖가지 그림을 붙여 놓고 그 틀을 돌려 안에 켜 놓은 등불 때문에 종이나 천을 바른 바깥에 비치게 만든 등이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이 주마등은 말이 달려가듯 사물이 덧없이 빨리 지나가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됐다. 그래서 실물은 보기 힘들어도 세월이 주마등처럼 훌쩍 흘러 지나갔다고 자주 표현한다.

중국인은 등 달기를 즐기는 민족으로 戰國時代(전국시대)부터 정월 대보름날에 각양각색의 등을 거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등 위에 둥근 원반을 올려놓고 원반의 가장자리를 따라 말이 달리는 그림을 여러 장 붙인다. 활동사진의 필름처럼 연속 동작이 되게 하고선 밑에서 등불을 밝히면 따뜻해진 공기로 인하여 원반이 돌게 되고 연속된 말의 그림이 질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계절에 따른 사물이나 행사, 풍속 등을 기록한 책을 가리키는 歲時記(세시기)는 우리나라서도 東國歲時記(동국세시기), 洌陽歲時記(열양세시기) 등 숱하다. 중국에선 이미 7세기 초에 荊楚歲時記(형초세시기)가 나왔고, 淸(청)나라 시기 북경 지역의 세시풍속을 월별로 정리한 ‘燕京歲時記(연경세시기)’가 있다. 富察敦崇(부찰돈숭, 1855∼1922)이란 사람이 정리한 이 책에 주마등의 풍습이 실려 전한다.

‘주마등은 종이를 잘라 바퀴를 만들고 촛불로 바람을 보내면 수레가 돌고 말이 모여 계속 둥글게 돈다. 촛불이 꺼지면 도는 것을 그친다(走馬燈者 剪紙爲輪 以燭噓之 則車馳馬驟 團團不休 燭滅則頓止矣/ 주마등자 전지위륜 이촉허지 즉거치마취 단단불휴 촉멸즉돈지의).’

흘러간 세월을 아쉬워하며 지난 추억을 옛 친구들끼리 모여 주마등처럼 떠올리는 일은 잦다. 유수같이 흐른 지난 세월을 문득 느끼고는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간다. 그러니 지난 화려한 시절을 그리기만 하지 말고 남은 시간을 잘 보내는 지혜를 발휘해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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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46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 - 아는 것을 안다고 하다.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 - 아는 것을 안다고 하다.

알 지(矢/3), 갈 지(丿/3), 하 위(爪/8), 알 지(矢/3), 갈 지(丿/3)

처마 끝의 제비가 지저귀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던 선비가 論語(논어)에 나오는 글과 같이 운다고 글 읽기를 좋아하는 새로 일컬었다는 우스개가 있다. 연속되는 음이 많은 知之爲知之(지지위지지)에 또 비슷하게 不知爲不知(부지위부지)가 이어지니 그럴 만도 하다. 뜻도 좋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도 문제지만 모르면서 아는 척하면 보아주기 어렵다. 문맹이 많았던 시기에 제비가 孔子(공자)를 읽으니 더욱 귀여움 받는 새가 된 셈이다.

덕으로 정치를 한다는 뜻의 爲政以德(위정이덕)에서 나온 爲政(위정)편에 실려 있다. 공자가 여러 제자와 함께 문답으로 가르치고 있는 논어 두 번째 편이다. 가장 나이 많지만 젊은 시절 거리에서 주먹을 자랑하여 배움이 늦었던 仲由(중유)에게 가르침에 대해 말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중유는 자인 子路(자로)로 더 알려져 있고 직선적인 무골의 의리로 공자의 주유천하 때 끝까지 수행한 사람이다.

조금 아는 것이 뒤떨어지더라도 솔직하게 모르는 것을 인정하면 그것이 앞서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소크라테스가 남과 다른 것은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 한 것과 통한다.

老子(노자)도 ‘道德經(도덕경)’ 제71장 知病章(지병장)에서 비슷하게 깨우친다. ‘자기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知不知上 不知知病/ 지부지상 부지지병),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에 병이 되지 않는다(夫唯病病 是以不病/ 부유병병 시이불병).’ 그러면서 성인에게 병이 없는 것은 병을 병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세상만사 돌아가는 이치를 모두 알 수는 없다. 분야가 많은 만큼 전문가도 곳곳에 있다. 서뿔리 아는 체를 했다가 곧잘 망신사기 십상이다. 모르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 손아랫사람이나 지위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孔子穿珠(공자천주), 不恥下問(불치하문), 역시 공자말씀이다. / 제공 : 안병화 (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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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47
◇ 북극항로의 ‘피폭’

◇ 북극항로의 ‘피폭’

1990년 미·소 간 냉전 종식이 가져온 선물이 있다. 북극항로(polar route)의 개척이다. 냉전 시절 서울에서 미국 동부로 가는 가장 빠른 항로는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경유하는 우회 항로였다. 옛 소련이 자국 영공 통과를 금지해서다. 1998년 7월7일 뉴욕발 여객기가 북극 극지방과 러시아 상공을 거쳐 홍콩에 착륙한 이후 본격적인 북극항로 시대가 열렸다.

북극항로는 항공사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비행시간 단축과 유류비 절감 효과를 톡톡히 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공 승무원에겐 공포스러운 길이다. 우주방사선 피폭 탓이다. 우주방사선은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지는 높은 에너지를 가진 각종 입자와 방사선을 말한다. 피폭선량은 고도가 높을수록, 노출시간이 길수록 증가한다. 10km 이상 상공에서 장시간 비행하는 승무원은 피폭될 확률이 높다. 특히 북극은 지구에서 우주방사선이 가장 강하다. 적도보다도 2~5배가량 높다. 지구 자기장이 방사선을 극쪽으로 빨아당기기 때문이다.

1년에 인간이 자연계로부터 받는 피폭선량은 평균 2.4mSv(밀리시버트)다. Sv는 방사선의 인체 위험도를 고려한 유효선량 단위다. 한국에서 미 동부로 비행하면 0.1mSv 정도 피폭된다. 어쩌다 여행하는 일반인들에겐 큰 문제가 아니지만 항공 승무원은 얘기가 다르다. 이들의 피폭선량은 원전 종사자보다도 최대 10배 높다. 일반인보다 유방암, 급성골수백혈병, 전립선암 등에 걸릴 확률도 높다. 현재 항공 승무원의 피폭 방사선량 안전기준은 ‘연간 50mSv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5년간 100mSv 이하’다.

북극항로를 자주 다니다 백혈병으로 숨진 대한항공 여성 승무원 A씨가 신청한 산재가 지난달 17일 받아들여졌다. 항공 승무원의 우주방사선 피폭이 산재로 인정된 첫 사례다. A씨의 피폭선량이 현 규정보다 낮은데도 당국이 산재로 인정한 것은 획기적이다. 2명의 승무원이 같은 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24일부터 정부는 항공 승무원의 안전기준을 서구와 같은 연간 6mSv로 강화한다. 임신한 여성 승무원은 2mSv에서 1mSv로 낮아진다. 만시지탄이지만, 항공 승무원의 안전을 우선하는 전기로 삼길 바란다.

-경향신문 여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62.html
kolaswqetsrq 11.02 19:48
◇ 조폭 통치 국가-콜롬비아 마약왕 에스코바르와 베네수엘라 차베스

◇ 조폭 통치 국가-콜롬비아 마약왕 에스코바르와 베네수엘라 차베스

콜롬비아 마약왕 에스코바르는 1980~90년대 미국 마약 시장의 코카인 공급을 독점했다. 세계 부자 7위에 오를 정도로 떼돈을 벌었다. 미국이 그를 잡아가려 노력했지만, 국가 채무 140억달러를 대신 갚아주는 조건으로 의회를 움직여 미국의 범죄인 송환 압력을 피해갔다. 학교, 병원을 지어 기증하고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며 환심을 사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정부를 마음대로 주무른 그의 스토리는 나르코스(마약상), 시카리오(암살자) 같은 드라마 소재가 됐다. 콜롬비아 국민 중엔 대통령 후보를 3명이나 암살한 그를 의적(義賊)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생이 도탄에 빠지면 의적과 해방구가 등장한다. 중국 수호지의 양산박, 홍길동의 율도국, 영국 로빈 후드의 셔우드 숲 같은 곳들이다. 하지만 이런 유토피아는 소설에서나 가능하다. 국민 재산과 생명을 지켜주는 대가로 세금을 걷는 국가와 해방구는 병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마피아 같은 범죄 조직은 뇌물을 매개로 정부와 공생하려 하지 통치권을 넘보진 않는다.

2014년 중동에서 등장한 이슬람국가(IS)는 특이한 사례다. 시리아가 내전으로 나라 구실을 못 하는 틈을 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가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자원 입대 용병들로 군대를 만들고, 정부 조직을 갖추고 화폐까지 발행했다. 시리아 외 이라크 영토 상당 부분을 차지할 만큼 세력을 키웠지만 서방 연합군의 공격에 궤멸됐다.

마약왕의 모델과 IS의 모델을 합친 것 같은 새로운 유형의 국가가 베네수엘라에 등장했다. 좌파 포퓰리즘 22년 만에 경제가 완전히 망하면서 국민 10%가 해외로 탈출하고 남은 사람은 음식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정부가 공무원, 경찰 월급도 주지 못하게 되자 범죄 조직이 정부를 대체하고 있다. 1만8000개를 웃도는 범죄 조직이 지역 치안과 식량 공급, 주민 문화 생활까지 책임지며 ‘자치 정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은 “정부보다 낫다”고 한다지만, 뒤로는 마약 거래, 밀수 같은 범죄로 검은돈을 챙기고 있을 게 뻔하다.

1950년대 국민소득 세계 4위였던 나라의 몰락을 이끈 사람이 차베스 전 대통령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반미, 반시장 노선으로 한때 한국 좌파 사이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노무현 시절 KBS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차베스의 도전’이란 특집 방송으로 차베스를 미화했다. 그 황당한 방송이 전파를 탈 때 KBS 사장이 문재인 정권 방송심의위원장으로 한때 거론됐다.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만물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43.html
kolaswqetsrq 11.02 19:48
■ 곽주부부의 편지 1편

■ 곽주부부의 편지 1편

1989년 4월 경상북도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석문산성에 있는 진주 하씨(晉州河:180~1652(?))묘를 이장하던 중 무덤 속에서 한글 필사(筆寫:베껴씀) 편지가 발견되었다. 주인공인 진주 하씨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유명한 곽재우(郭再祐)의 사촌 조카인 곽주(郭澍:1569~1617)의 둘째 부인이다. 정확한 생몰 연대를 알 수 없으나 1652년 언간이 확인됨에 따라 17세기 중기에 생존하였던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친정은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 일대로 곽주가 살았던 현풍 곽씨 집성촌 솔례 마을에서 가까운 곳이다. 곽주는 첫째 부인과 사별한 후 진주 하씨 부인과 결혼하였다. 첫 번째 부인이었던 광주 이씨와의 사이에 큰아들 곽이창이 있었다. 진주 하씨와의 재혼 후에 큰아들인 곽이창과 진주 하씨 사이에 갈등이 심해지자, 진주 하씨가 분가(分家)하여 곽주는 소례에서, 하씨는 논공에서 각각 떨어져 살았다. 그래서다른 곳에서 왕래하는 생활을 하면서 편지를 통해 많은 사연들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슬하에 4남 5녀를 두었는데, 그 중 첫째 아들을 빼고는 모두 하씨 소생이다.

함께 출토된 유물에는 부녀자가 나들이할 때 머리에 써서 몸을 가리던 장옷을 비롯하여 지금의 두루마기와 비슷한 창의(氅衣), 저고리 등 의복류와 이불, 베개, 돗자리 등 침구류, 머리 빗는 도구를 담아 두던 빗첩 등 81점이 있다. 묘에서 출토된 유물은 17세기 초 복식(服飾)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편지글은 현전(現傳)하는 편지들 중 가장 내용이 풍부하고, 흥미로운 사연이 많은 자료이다. 특히 17세기 초에는 당코깃(한복의 상의 부분에서, 여밈 끝이 버선코처럼 뾰족한 모양의 깃으로 조선 중기 이후에 유행) 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로운 유행에도 불구하고 17세기 중엽까지도 목판깃(넓적하고 맵시가 없게 단 옷깃) 여자저고리가 착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또한 부녀자의 주변 생활을 한글로 쓴 170여 점의 서간문들은 당시 언어와 경상도 지역의 생활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993년 중요민속자료 제229호로 지정된 진주하씨 묘 출토 유물은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출토된 간찰(簡札:편지)은 주로 남편인 곽주가 부인인 하씨에게 보낸 것이 대부분이다. 단순히 안부를 묻는 것에서 손님맞이, 음식 장만, 제사 준비, 자녀 양육 등 다양한 생활 주제를 가지고 부부간에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편지로 주고받은 것으로 보인다.

17세기의 조선시대는 각 종 자연재해와 대기근으로 평화로운 날이 없을 정도로 위기의 시대였다. 대기근으로 인한 흉작과 이로 인한 전염병이 사회 전반에 가했을 충격은 곽주의 편지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편지에는 곽주를 비롯하여 자녀들의 병치레에 대해 걱정하는 구절을 자주 볼 수 있다. 편지에서는 꿀에 소주를 타거나 석웅황, 생강 등으로 병을 치료하는 등 음식을 이용한 다양한 치료법이 등장한다. 이 출토 편지와 유물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일상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다. 17세기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생한 일상과 편지에 담긴 인간적인 진솔함을 느낄 수 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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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49
■ 400년을 뛰어넘은 사부곡思夫曲 5편

■ 400년을 뛰어넘은 사부곡(思夫曲) 5편

원이엄마의 한글 편지는 조선시대 국어의 특징을 반영하는 자료로서 음운, 표기, 어휘, 통사적 변화를 살펴보는 데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 문자 생활의 양상과 변화를 살펴보는 자료로서도 유용하다. 즉, 국어의 변화와 연속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인 셈이다. 그리고 ‘일상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공식적인 ‘역사’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개인의 삶, 일상생활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자료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안동시 정상동의 고성이씨 정자인 ‘귀래정(歸來亭)’은 원이엄마와 남편 이응태의 사랑과 영원한 약속 등 애절한 사연이 깃든 사랑의 현장이다. 이응태는 귀래정(歸來亭)을 세운 이굉(李浤)의 고손자였다. 귀래정은 연인과 부부들의 순례 장소로 단연 으뜸이 되고 있다. 무덤과 편지가 발굴된 안동시는 정하동 귀래정 인근에 총사업비 14억8천여만 원을 들여 2,118m2 부지에 원이엄마 테마공원을 조성했다. 2005년 4월, 무덤이 발굴된 곳에서 약 400미터 떨어진 곳(안동 법원 앞)에 원이 엄마 동상과 편지글을 새긴 비석을 건립했다. 귀래정 주변에 능소화를 심어 이들 부부의 사랑을 기리는 한편, 답사객들에게 애잔한 분위기를 선사하고 진정한 부부사랑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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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안동에서는 2005년 11월에 열린 안동국악제에서는 중국 옌볜대 박위철 교수가 중모리의 구슬픈 곡조로 작곡한 국악가요를 전미경 안동국악단장이 국악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불렀다. 2009년 3월에는 원이 엄마 한글편지와 출토물을 다룬 연구논문이 국제 고고학 잡지 <앤티쿼티>표지논문으로 실리기도 했다. 2006년 9월에는 안동대학교 정숙희 교수 무용단이 원이 엄마의 편지를 무용작품으로 만든 450년 만의 외출을 발표했고, 창작오페라로도 만들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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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엄마의 편지와 미투리는 현재 안동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국내외 언론매체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져 진한 감동을 안겼다. 안동대학교 박물관은 450년만의 외출이라는 주제로 1998년 9월 25일에서 1999년 2월 말까지 특별 전시회를 열었으며, 이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한국인과 일본인 관광객이 편지의 사본을 구입했다. 미투리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졌는데, 조선판 ‘사랑과 영혼’ 의 주인공 안동 원이 엄마의 애달픈 사연이 23개 언어로 28개국에서 동시 발행되는 《내셔널지오그래픽》(2007년 11월호)에 ‘사랑의 머리카락(Locks of Love)’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지구인들의 심금을 울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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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태의 무덤과 같은 능선에 있던 이응태의 할머니 ‘일선 문씨’ 무덤에서도 미라와 함께 많은 옷가지 등 부장품이 쏟아졌다. 학자들에 의하면, 할머니와 손자의 무덤에서 모두 완벽한 상태의 미라와 생생한 부장품들이 발굴된 것은 희귀한 사례라고 한다. 특히 할머니의 관은 일반 장비론 깰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굳은 회벽 안에 들어 있었다. 할머니 무덤에선 수의 등 옷가지 60여점과 실타래, 조롱박 노리개, 향주머니 등이 나왔다. 안동대 박물관 삼층엔 이응태와 할머니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마주보고 전시돼 있다. 전시실 옆 영상관에선 이응태 무덤 발굴 과정과 한글편지 내용 등을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이응태부부의 사랑 이야기가 주는 감동은 이들이 남긴 유물을 하나하나 찬찬히 들여다볼 때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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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50
■ 400년을 뛰어넘은 사부곡思夫曲 3편

■ 400년을 뛰어넘은 사부곡(思夫曲) 3편

남편을 향한 원이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시신의 머리맡에서 발견된 ‘미투리’이다. 미투리는 길이 23cm, 볼 9cm이며 뒤꿈치 부분은 한지로 감겨있었다. 미투리는 보통 삼으로 만들기에 황토색을 띠는데 이응태의 묘에서 발견된 미투리에는 검은색이 섞여 있다. 검은색 실 같은 것으로 만든 미투리. 과연 검은색 실의 정체는 무엇일까?

2002년, 한 국내 방송사에서 검은색 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한 연구소에 실험을 의뢰했다. 그 결과, 검은색 실은 머리카락, 수백여 년 전 사람의 머리카락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머리카락은 원이엄마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미투리를 싸고 있던 한지에 ‘내 머리 배혀’, ‘이 신 신어 보지’라는 글자가 흐릿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에서 남편의 병이 낫기를 바라는 아내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남편은 그 신을 신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 부부의 사랑은 현대의 부부들과는 다르다. 현대인 중 누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머리카락 베어 미투리를 삼아주겠는가? 이것은 조선시대의 문화를 염두에 두더라도 매우 특수한 경우였다. 《효경(孝經)》의 첫 장에,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떤 경우든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조선시대에 자신의 효나 열을 위해 신체를 훼손하는 것이 빈번하게 장려되기도 했다.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의 효 사례들 가운데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斷指)\와 허벅지 살을 베는 \할고(割股)\를 자주 볼 수 있다. 며느리가 병든 시어머니를 위해 다리 살을 베고, 아들이 아버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손가락을 자른다.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삼는 것이 지극한 정성의 표현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런 분위기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누군가를 위해 한 올 한 올 신을 삼는 행위 자체는 이미 정성을 담은 행위다. 게다가 자신의 신체 일부를 손상시키면서 만든 신이니 그 정성이야 더할 나위가 없다. 신은 여러 가지를 상징한다. 발을 땅에 붙이고 걷게 하는 것이기에 현실감을 상징하기도 한다. 신을 잃어버리는 꿈은 현실적 판단력을 기르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신은 인간 정체성의 지표이기도 하다. 테세우스가 아버지를 찾아갈 때 가죽신을 신고 가는데 이를 통해 그가 왕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우리나라에서 짚신은 길을 가는 사람의 여정을 대신하기도 한다. 원이 엄마는 남편이 낫기를 기원하면서 이 미투리를 삼았다. 병상에 꼼짝 않고 누워 있는 남편에게 신은 바깥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건강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신을 끝내 신어보지 못하고 죽는다. 머리카락으로 삼은 신과 그것을 신지 못한 채 맞은 죽음은 원이 엄마의 지극한 정성, 그럼에도 좌절된 소망을 보여준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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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50
■ 400년을 뛰어넘은 사부곡思夫曲 2편

■ 400년을 뛰어넘은 사부곡(思夫曲) 2편

『원이 아버지에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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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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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아~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병술년(1586)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현대어 각색편)

『자내 샹해 날다려 닐오대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쟈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 긔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난고.”(당신 늘 나에게 이르되, 둘이서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자식은 누구한테 기대어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후략)』(원본편)

이 원본을 보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존재한다. <원이엄마 편지>에는 ‘자내’라는 단어가 총 14번 등장한다. 원이엄마가 남편을 부르는 호칭으로 ‘자내’를 사용한 것이다. 16세기 조선시대, 남편과 아내의 사이가 서로를 ‘자내’라고 부를 정도로 평등했던 것일까? 아니면 원이엄마가 틀을 깨고 쓴 것일까? 사실 ‘자내’라는 단어는 현재 아랫사람에게 쓰는 호칭(자네)으로 바뀌었지만, 임진왜란 전까지는 상대를 높이거나 적어도 동등하게 대우해 부르는 호칭이었다. 이 편지를 통해 과거의 ‘자내’와 현대의 ‘자네’는 다르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전까지는 상대를 높이거나 최소한 동등하게 대우해 부르는 호칭이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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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51
■ 400년을 뛰어넘은 사부곡思夫曲 1편

■ 400년을 뛰어넘은 사부곡(思夫曲)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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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안동시 정상동의 택지조성 과정 중에 무연고 분묘(墳墓)가 발견되었다. 주인 없는 무덤이었기에 발굴 대상으로 선정되었으나, 발굴을 위해 무덤의 외관 뚜껑을 연 순간 ‘철성이씨(고성 이씨의 옛 이름)라 적힌 명정(銘旌:다홍바탕에 흰글씨로 죽은 사람의 품계와 관직 성씨를 적은 천)이 나왔다. 무덤의 주인을 찾기 위한 작업이 시작됐고, 고성 이씨 ’이응태‘의 분묘로 밝혀졌다. 곧이어 고성 이씨 문중에 알려졌고, 문중 입회하에 발굴이 시작되었다. 이응태의 시신은 미라 상태였다. 머리카락, 수염까지 썩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을 정도로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시신의 주변에서 총 18통의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시간이 흘러 대부분의 편지는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그 중 <원이엄마 편지>는 예외였다. 무덤 속 시신의 가슴 위에 올려 진 한글로 쓰인 이 편지는 이응태의 시신처럼 잘 보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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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6년 6월 1일, 편지의 주인공인 이응태는 명종 11년에 태어난 안동에서 손꼽히는 무반 가문의 자제였다. 발굴 당시 그의 키는 180센티에 무척 건장한 체격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 전인 1586년 서른한 살의 젊은 나이로 어린 아들과 임신 한 아내를 두고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어린 자식과 임신한 몸으로 남은 아내의 심정은 어땠을까. 남편의 장례를 앞두고 아내는 붓을 들어 남편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 슬픔을 한지 위에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갔을 것이다. 가로 58.5cm, 세로 34cm의 종이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절실한 심정으로 빈 곳 없이 가득 찼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종이가 부족하자 아내는 종이를 돌려 모서리, 여백에 다시 글을 써 내려간다. 이 편지 속에는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내의 슬픔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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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엄마 편지>는 40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썩지 않고 거의 완벽히 보존되었고, 남편을 향한 아내의 사랑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무덤 속에 들어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빛을 보게 된 이 편지는, 가볍고 얕은 사랑이 일상화한 지금 우리 시대에 잔잔하면서도 큰 울림으로 다가와 가슴을 친다. 서른 한 살의 나이에 안타깝게 떠난 남편의 뒤를 자신도 따르고 싶다는 내용의 원이엄마 편지는 세인들에게 400여년의 사랑이라는 눈물겨운 감동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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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선 아들 원이가 입던 옷(저고리)과 원이 엄마의 치마도 나왔다. 형(이몽태)이 동생에게 쓴 한시 『울면서 아우를 보낸다.』와 형이 쓰던 부채에 적은 ‘만시(輓時)’도 있었고, 이응태가 부친과 주고받은 편지도 여러 통 발견됐다. 발굴된 의복은 40여벌에 이른다. 부친과 나눈 편지엔 전염병 관련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무덤의 주인은 당시 전염병을 앓다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친과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건 이응태가 처가살이를 하고 있었다는 걸 뜻한다. 당시(임진왜란 전)엔 결혼하면 시댁살이와 함께 처가에 가서 사는 것도 일반적이었다. 남녀가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는 걸 뜻한다. 임란 전엔 재산 분할도 아들딸 차별이 없었다. 이런 인식은 편지에도 드러나 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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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52
■ 왜 백일百日 잔치를 했나?

■ 왜 백일(百日) 잔치를 했나?

임신(姙娠)을 나타내는 한자에는 포(包)와 잉(孕)이 있다. 포(包)는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글자이다. 감싼다는 뜻의 포(勹) 안에 아직 사람의 형체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아기巳가 들어 있다. 임신 초기의 모습이다. 잉(孕)은 태아의 모습이 완전히 갖추어진 형태이다. 아기子가 태(胎) 아래쪽으로 내려와 있으니 배가 꽤 부른 상태를 나타낸다.

잉태(孕胎)·회잉(懷孕) 같은 말들은 모두 임신과 같은 의미로 자주 쓰던 표현이다. 요즘은 유아사망율이 낮아 백일잔치를 크게 하지 않는 추세이지만, 과거에는 유아사망율이 높은 탓에 태어난 지 백일이 되는 날을 축하하고 기념하여 이웃에 떡을 돌리고 잔치를 벌였다. 생명의 탄생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벅찬 감동을 준다. 탄생 자체가 커다란 승리요, 기적이다. 아기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열 달을 채워 태반이 돌아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참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동양에서는 태아가 어머니의 태 속에 자리 잡는 순간부터 생명이 시작된 것으로 생각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삼칠일(21일) 동안 금줄을 치고 이웃은 물론 가족들도 출입을 삼갔다. 혹 상가(喪家)와 같이 부정(不淨)한 곳을 다녀온 사람은 절대로 아기가 있는 방에 출입할 수 없었다. 산모도 닭고기나 개고기,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삼칠일이 지나면 이것을 축하해서, 새벽에 삼신상(三神床)을 올리고, 수수경단을 만들어 일가친척과 손님을 청해서 대접하였다. 아기가 태어난 지 백일(百日)이 되면 백일상(百日床)을 차렸다. 아기가 아무 병 없이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백(百)은 꽉 찬 숫자이므로 아기가 이 날까지 탈 없이 자란 것을 축복하고, 한 인간으로 성장을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인식하는 의미였다.

백일상은 삼신상(三神床)이라고도 한다. 삼신할머니에게 장수를 빈다는 뜻이다. 백일에는 여러 가지 떡을 했다. 백일떡에는 백설기·수수팥떡·인절미·송편을 하였다. 여기에도 다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백설기는 정결(淨潔)과 흰머리가 될 때까지 장수(長壽)하라는 의미, 수수팥떡은 부정(不淨)한 기운을 막는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인절미는 찹쌀로 만들어 차지고 단단하라는 의미가 있다. 송편은 속을 넣은 것과 넣지 않은 것 두 가지를 만들었는데, 속을 넣은 것은 속이 꽉꽉 찬 사람이 되라는 의미이고, 속을 넣지 않은 것은 속이 넓은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백일떡은 100명에게 나누어 주어야만 백 살까지 산다고 믿어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서양에서는 태어난 지 1년이 지나야 한 살로 치는데, 우리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친다. 그 까닭은 어머니의 뱃속에 있던 열 달을 계산하였기 때문이다. 뱃속의 아이를 어떤 존재로 바라보느냐가 나이를 셈하는 방법에서 드러나는 셈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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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19:52
◈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 운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주방 풍수인테리어 기법 2

주방 풍수인테리어 기법으로 식탁의 소재로는 일반적으로 나무(원목), 대리석, 유리, 플라스 틱, 등이 있으나 풍수인테리어로 운을 상승시키는 재료는 원목이 좋으며, 유리나 기타 제품일 때는 밝은 색의 식탁보나 런천을 까는 것이 좋다.

식탁의 형태로는 사각이나 타원형이 좋으며, 식탁을 놓는 위치로는 가능하면 동쪽이나 창가, 앞이 트인 곳에 두고, 좌석 배치는 연장자가 서쪽이나 북쪽에 앉고, 자녀 및 나이가 적은 사람은 동쪽에 앉도록 한다.

풍수인테리어 기법으로 좌석 배치가 적절치 못하면, 가족 구성원들의 위계질서가 무너져 사소한 일로 가정에 불화가 일어날 수 도 있다.

또한, 주방 구조 및 크기에 따라 식탁을 벽에 붙여두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운을 막는 역할을 한다.

식탁의 의자는 팔걸이가 있는 의자는 연장자로, 젊은 사람이나 자녀들은 팔걸이가 없는 것으로 하여도 무방하다.

식탁의 색상은 밝은 계통이나 나무색, 베이지, 그린 등이 무난하다.

♣ IFSA 국제풍수협회 선정 2018 대한민국 최고 풍수인테리어 전문가 / 문의 : 010-2432-5522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66.html
kolaswqetsrq 11.02 19:53
■ 허준과 동의보감 10편

■ 허준과 동의보감 10편

《동의보감》은 다른 의서들과 달리 책의 독자가 훨씬 더 다양하고 넓다. 의학 지식이 풍부한 의원뿐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백성이 쉽게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백성들은 병이 들고 아파도 의원을 찾아갈 수 없었다. 큰 병에 걸린 사람도 돈이 없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백성들은 더욱 가난해졌고, 전염병으로 곳곳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허준은 이렇게 가난하고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의술을 펼쳤다. 《동의보감》은 백성들 스스로가 내 몸의 병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치료할 수 있게 해주었다. 허준이 훌륭한 의원으로서 더욱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것은 단지 궁궐 안의 의사로서 왕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한 치료법을 널리 알리고자 노력했던 이런 점 때문이 아닐까?

노년을 권세 없는 평범한 내의(內醫:내의원 의원)로 지내다 귀양에서 돌아온 지 6년 후인 1615년(광해 7년)에 일흔일곱의 나이로 조용히 삶을 마쳤다. 그의 사후(死後) 조정에서는 그의 공을 인정하여 신하들의 반대로 보류되었던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추증했다.

허준은 임진왜란 때의 공신이었으므로 조정에서는 초상화가 작성되었다. 그러나 실전(失傳:잃어버려 알 수 없음.)되어 전하지 않는다. 허준의 실제 초상화로 추정되던 작품 또는 허준의 초상화로 전하던 작품이 1980년 초 양천 허씨 대종회에 입수되었다. 그러나 당시 미술인협회의 임원인 한의사 모 씨가 초상화에 허준이라 쓰여 있지 않으므로 가짜라고 하였다. 이 초상화는 뒤에 행방이 사라졌고, 사진이 전하고 있다.

그려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00년대 이전 누군가 허준을 상상하여 그린 상상 초상화가 전했으나 이 역시 사라지고 전하지 않는다. 현재의 허준의 표준초상화는 철종의 어진 복원에 참여한 최광수화백이 그린 상상화이다. 허준의 외모를 묘사한 것은 선조의 서녀 정안옹주의 남편인 분서 박미(汾西 朴瀰)의 분서집에 남아있는데, 허준의 외모에 대해 남긴 평으로는 허준은 비택(肥澤)하여 불교승려 모습과 흡사했고, 늘 입을 열면 옅은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허준에게는 외아들 허겸(許謙)이 있었다. 허겸은 문과에 급제하여 부사를 거쳐 이후 파릉군(巴陵君)에 봉작받았다. 이후 19대 숙종 때에는 그의 증손자 허진(許瑱)이 파춘군(巴春君)의 작호를 받았으며, 허진의 아들이자 허준의 고손자인 허육(許堉)은 양흥군(陽興君)의 작호를 받았다. 이렇게 누대에 걸쳐 후손들이 조정의 관직을 역임했으며, 선대가 살던 경기도 장단군 우근리(현재 경기도 파주시)에 대대로 거주했다. 이후 조선 후기에 허준의 10대손 허도(許堵: 1827~1884)가 황해도 해주로 이주했으며, 13대 종손 허형욱(許亨旭:1924년생)이 1945년까지 그 곳에서 살았다. 이후 그의 직계 종손은 현재까지 북한에서 살고 있으며, 현재 남한의 양천 허씨 중 허준의 후손을 자칭하는 사람들은 사실 허준의 진짜 후손이 아니라는 사실을 양천허씨 종친회에서 직접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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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과 동의보감 9편

■ 허준과 동의보감 9편

《동의보감》은 국내 및 국제적인 기여를 인정받아,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되었고, 2009년 7월 31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인과 같이 나누게 되었다. 이는 한국의 7번째 세계기록유산이었으며, 의학서적으로는 처음으로 등재된 것이다. 의료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발간된 의학 서적은 매우 많다. 그럼에도 《동의보감》이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의학적 내용뿐 아니라 세계 최초로 발간된 일반인을 위한 의학 서적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질투와 역경을 딛고 방대한 저술을 완수한 허준의 집념 덕분에 우리는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동의보감은 17세기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하여 지금까지 의학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학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 남아있는 동의보감 초간본(목활자본)은 전본(傳本)이 드물어 희소성이 있으며, 한국의학사와 임난 이후 도서출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20세기 후반 이후 한국에서 허준은 소설과 드라마로 재조명되어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2005년 3월에는 허준박물관이 개관되어 허준과 《동의보감》을 알리는 교육과 전시행사가 있었다. 또한 서울 강서구를 중심으로 매년 ‘허준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18세기 중엽에 나온 《약파만록》이라는 책에는 허준이 코끼리를 고쳐주어 명성이 자자해졌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이야기에 살이 붙어, 아픈 호랑이를 고쳐주고 금침을 얻은 허준이 그 금침으로 중국 천자의 병을 고쳐준 뒤 천자의 병을 고치지 못한 죄로 옥에 갇힌 중국 의원들을 풀어주자, 그 의원들이 자신들이 아는 것을 모두 책에 적어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동의보감》이라는 설화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사실 이런 신화의 옷을 다 벗기더라도 허준은 사상의학(四象醫學:체질에 따라 약은 씀)을 창안한 이제마가 역대 동아시아 의학사에서 장중경, 주굉에 이어 세 번째 인물로 선정할 정도로 뛰어난 의학자이다. 의관 허준의 출세는 조선의 역사에서 거의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파격의 연속이었다. 이는 그의 의술 솜씨와 우직한 충성이 빚어낸 성취였다. 이와 함께 이를 질시한 양반계급의 불만도 작지 않았다. ‘양반에게 굽실거리지 않으며, 임금의 은총을 믿고 교만스럽다.’는 세평(世評)도 존재한다.

어쨌든 허준은 탁월한 의학지식과 이론을 바탕으로 그때까지 발전해 왔던 의학을 과학이론적인 면과 실용적인 면에서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의학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무엇보다도 민족의학·민중의학을 지향함으로써 근대민족의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허준은 한국의학사, 동아시아 의학사, 세계의학사에 크게 기여했으며, 조선 의학사의 독보적인 존재로 동의(東醫), 즉 한국의학의 전통을 세웠다. 특히, 《동의보감》은 당대 최고의 고급 의학으로서 조선 의학의 통일을 가능케 했고, 언해본 의서는 의학 대중화의 촉진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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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과 동의보감 8편

■ 허준과 동의보감 8편

《동의보감》은 허준의 대표적 저작(著作)일 뿐만 아니라, 필생(畢生:일평생)의 저작으로 중국·일본을 비롯한 동양은 물론 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친 위대한 의서(醫書)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증적 학구 자세와 명민한 관찰력 그리고 고전에 대한 해박한 학식을 토대로 풍부한 임상경험을 살려, 보다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의술의 구체화를 이룩하였다. 《동의보감》은 출간이후 중국과 일본에서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핵심을 잘 잡아내어 적절한 표준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 책은 중국에서 대략 30여 차례 출간되었고, 일본에서도 두 차례 출간되었다. 허준의 면밀한 성홍열 관찰 보고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최초이고, 세계적으로도 최초의 그룹에 속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로써 허준은 세계질병사 연구의 선구자 중 일인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동의보감》은 다양한 질병의 치료방법을 담아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일반백성들도 질병의 이름을 먼저 알고, 질병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이론을 읽어 보고, 병을 판단할 수 있었다. 손목의 맥을 짚어 보고, 약 짓는 법을 차례로 찾아 읽으면 스스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비싼 재료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약을 처방한다는 점이 또한 인기 요소이다. 《동의보감》은 한 종류의 약물만으로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 주변의 산과 들에 널려 있는 야생 약초를 이용하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가난한 백성들도 값싸고 간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한 마음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병의 발생 원인까지 상세하게 밝혔기 때문에 학술서로도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도 수백 수천에 달하는 기존의 수많은 의학 이론과 서적을 한데 모아 논리적으로 집대성함으로써 한의학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동의보감》의 주요 특징은 세 가지이다. 첫째, 병났을 때의 치료보다 병을 예방하거나 건강을 추구하는 양생(養生)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이 책은 중국에서 별개의 전통으로 내려오던 의학과 양생의 전통을 하나로 합쳐낸 것이다. 병의 치료와 예방, 건강도모를 같은 수준에서 헤아릴 수 있게 한 것이다.

둘째, 기존 중국과 조선의학의 핵심을 잘 정리하였다. 허준은 중국의 한나라에서 명나라에 이르는 200여 종의 문헌과 《의방유취》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의림촬요(醫林撮要)》와 같은 수 종(種)의 조선의서를 참고한 내용을 자신의 학식과 경륜에 결합하여 《동의보감》 안에 녹여내었고, 다양한 학설과 처방을 병의 증상·진단·예후·예방법 등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셋째, 뛰어난 편집 방식이다. 목차 2권은 오늘날 백과사전의 색인 구실을 할 정도로 상세하며, 본문의 관련 내용끼리는 상호 참조를 가능하게 하였다. 참고한 자료의 인용처를 일일이 밝힘으로써 원(原) 저작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인용 대목이 갈리는 곳은 ‘O’를 쳐서 구별하고, 제목과 본문 내용을 큰 활자와 작은 활자를 써서 쉽게 구별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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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과 동의보감 6편

■ 허준과 동의보감 6편

둘째, 일상생활에 요긴한 한글 번역 의서로, 《언해태산집요(諺解胎産集要)》 《언해구급방(諺解救急方)》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 등이 그것이다.

두창(痘瘡:천연두)에 관한 책이 임진왜란 때 모두 유실되어 두창 치료에 관한 참고서가 없었다. 그러자 두창의 원인과 치료법을 몰라 자연히 미신행위로 인한 치료법이 퍼져 백성들의 고통이 심했다. 나라에서는 두창에 관한 책의 편찬을 허준에게 위임했다. 허준은 자신의 오랜 기간의 치료경험과 여러 서적을 참고하여 1년 만에 《두창집요(痘瘡集要)》를 완성했다. 이 책의 상권(上卷)에는 두창의 원인·예방·증상이 서술되어 있고, 하권(下卷) 뒷부분에는 임신부의 두창과 반진(斑疹)에 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은 출간 후 두창 치료의 참고서로 널리 이용되었는데, 당시 사회상황의 한계로 비과학적·비위생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는 평가이다. 이 책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백성들이 사용하기 쉽게 만든 책이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이다.

《언해태산집요(諺解胎産集要)》 역시 1608년에 허준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부인과(婦人科)에 속하는 태산(胎産)과 태아보호에 관한 의서로, 아이의 해산에 대한 의학적 지식, 구급 상황에 대한 발 빠른 대처, 소아전염병인 천연두에 대한 의학적 대응을 실었다. 1책으로 되어 있고 각 항목마다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 이 책은 총 81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기술이 일목요연하고 산과에 관해서는 빠짐없이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다. 《언해구급방(諺解救急方)》은 조선시대 세종의 명을 받아서 편찬한 구급방을 허준이 선조의 명을 받아 우리말로 옮겨 1607년 내의원에서 간행한 책으로 상하(上下) 2책으로 되어 있다. 최근에 연대 미상(未詳)인 《언해납약증치방(諺解臘藥症治方)》이 허준의 저작으로 추정된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이 책은 가정상비약인 납약(臘藥)을 올바로 쓰는 지침을 담고 있다.

셋째, 전염병 전문의서로, 《신찬벽온방(新纂辟溫方)》 《벽역신방(辟疫神方)》의 편찬이 있다. 《신찬벽온방》은 열성 질환인 온역(瘟疫:오늘날의 급성전염병)에 대한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벽역신방》은 1613년 국내에서 첫 유행했던 성홍열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세계질병사의 관점에서 볼 때 크게 주목을 끈다. 허준은 성홍열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이 미지(未知)의 병이 홍역을 비롯한 유사한 질환과 구별되는 병임을 밝혀냈다.

넷째, 학습용 의학교재로 허준 최초의 저작인 《찬도방론맥결집성(纂圖方論脈訣集成)》이라는 진찰서 4권이다. 이 책은 당시 전의감(典醫監)의 과거시험 교재로 쓰이고 있던 동일한 책의 오류를 바로잡은 것이다. 환자를 진맥하는 기본을 알기 쉽게 쓴 책으로, 중국의 고양생(高陽生)이 쓴 《찬도맥결(纂圖脉訣)》이라는 책을 허준이 고쳐 쓴 것이다. 원서(原書)는 1권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허준이 고쳐 쓰면서 문장을 짧고 쉽게 바꾸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4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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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과 동의보감 5편

■ 허준과 동의보감 5편

왕명을 받은 허준은 정작·양예수·김응탁·이명원·정예남 등 당대의 인재들과 함께 편찬 작업에 들어갔다. 5인의 공동 작업으로 책의 요점(要點)을 잡아가는 시점에, 정유재란이 일어나 의관들이 뿔뿔이 흩어져 작업은 자연히 중지되었다. 이에 선조는 허준을 다시 불러 허준 혼자라도 책임지고 새로운 의서를 만들라고 명하면서 궁궐에서 소유하고 있던 내장방서 500권을 내어주며 참고하도록 했다. 이후 허준이 단독으로 책임을 맡아 책을 완성시켰다. 이처럼 《동의보감》의 편찬사업은 처음부터 국가의 지대한 관심에 따라 대규모로 기획되었던 것이다.

1596년(선조 29년)에 시작된 이 작업은 공직생활로 짬을 내지 못해 지지부진하다가 선조 사후 그 책임을 지고 가게 된 귀양지에서 집필에 몰두할 수 있었다. 1609년 말 귀양에서 풀려난 허준은 서울로 돌아와 이듬해인 1610년(광해군 2년)년 8월 마침내 완성된 『동의보감』을 광해군에 바쳤다. 허준이 전심전력하여 책을 완성하자, 왕은 곧 내의원에 명하여 인출(印出), 널리 반포하게 하였다. 그 결과 1613년(광해군 5년)에 들어 출판의 결실을 맺어 널리 보급되었고, 한국의학의 신기원을 이룩하게 되었다. 광해군은 이 책을 완성한 공로를 기려 빗발치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임금의 장인에게나 주는 봉호인 양평부원군을 내렸다. 문관들이 깔보는 일개 의원을 영의정의 반열에 들게 해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게 한 것이다. 이 책은 조선에서 출판된 뒤 중국과 일본에서도 출판되어 의원들의 필독서(必讀書)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19세기 끝 무렵 이제마의 사상의학(四象醫學)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 풍토와 체질에 맞는 유일한 처방전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고, 의학공부에 빼놓을 수 없는 교과서가 되었다. 1613년 훈련도감에서 목활자로 인쇄된 초판본 완질 25책은 남아 있지 않고, 훗날 전주와 대구에서 목판본으로 출판된 것이 전승되고 있다.

광해군은 허준이 선왕의 유업을 완수했다고 하여 그에게 좋은 말 1필을 상으로 내렸다. 책 제목의 ‘동의(東醫)’란 중국 남쪽과 북쪽의 의학전통에 비견되는 동쪽의 의학 전통 즉, 조선의 의학 전통을 뜻한다. ‘보감(寶鑑)’이란 “보배스러운 거울”이란 뜻으로 ‘귀감(龜鑑)’이란 뜻을 지닌다. 허준은 조선의 의학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과 조선 의학의 표준을 세웠다는 뜻으로 《동의보감》이라 이름 지었다.

정(精) · 기(氣) · 신(神)을 중심으로 하는 도가의 양생(養生: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함)학적 신체관과, 구체적인 질병의 증상과 치료법을 위주로 한 의학적 전통을 높은 수준에서 하나로 통합했다는 평을 받는 이 책은 이후 조선 의학사의 독보적인 존재로, 오늘날까지도 한의학도에게 널리 읽히는 명저(名著)이다. 총 25권 25책으로 당시 국내 의서인 《의방유취(醫方類聚)》《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의림촬요(醫林撮要)》를 비롯하여 중국 의서 86종을 참고하여 편찬한 것이다. 그 내용은 내경(內景)·외형(外形)·잡병(雜病)·탕액(湯液)·침구(鍼灸) 등 5편으로 구성된 백과전서(百科全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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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과 동의보감 4편

■ 허준과 동의보감 4편

허준이 오늘날까지 의성(醫聖)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의 의학적 저술 때문일 것이다. 종이를 구하기도 힘들고 인쇄시설도 미비했던 시기였으므로, 임금의 지시가 아니면 책을 만들기 어려웠다. 오늘날 남아 있는 모든 허준의 저술은 왕명(王命)에 의한 것이었다.

허준의 가장 대표적인 저서라면, 1596년 선조의 명을 받아 편찬을 시작하여 추진하고 있던 《동의보감》의 완성이다. 유배 시절 허준은 연구에 전념할 시간을 얻게 되었고, 유배지에서 단시간에 책의 절반 이상을 집필해냈다. 허준은 양생(養生:몸과 마음으로 병을 치료) 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중국 의학이론과 처방의 난맥상을 바로잡고, 향약(鄕藥) 사용의 이점을 최대화하며, 최소한의 약의 분량으로 최대한의 의학적 효과를 얻으려는 데 힘썼다.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조선 사회 회복의 일환으로 획기적인 의술 제공이라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허준이 활약하기 이전 우리나라는 중국의 어려운 의학이론에 의존하고 있었다. 중국과는 자연환경, 자라는 동식물, 음식, 질병 등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의학이 발전해야만 했으나, 당시 만연한 사대주의 사상은 독자적인 의학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했다. 이런 환경에서 허준은 중국의 의서를 참고할 때도 우리 현실에 맞는 부분만 채택했다. 허준은 우리 땅에서 나는 향약(鄕藥:시골에서 나는 약재)을 중시하고, 향약을 쉽게 쓸 수 있도록 《동의보감》에서 자세하게 서술하려고 애썼다. 18~19세기에 나온 우리나라의 대표적 의서인 주명신의 《의문보감(醫門寶鑑)》, 강명길의 《제중신편(濟衆新編)》, 황도연의 《의종손익(醫宗損益)》 등은 《동의보감》을 약술(略述)해놓은 것이다. 이렇듯 허준은 민족의학의 토대를 만들고 그 전통을 세웠다.

그가 저술한 책으로는 8종이 있으며, 크게 네 부류로 대별된다.

첫째, 허준의 책 중 가장 주목할 책은 종합 임상(臨床)의서《동의보감》이다. 선조는 그 무렵 명대의 신의학이 적지 않게 조선에 수입되어, 조선 전기의 의학전통과 섞이는 바람에 이를 정비할 필요를 느꼈고, 또한 전란을 겪으며 기근과 역병이 발생해 제대로 된 의서가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의서의 편찬을 명하면서 선조는 그 책의 성격을 분명히 제시했다.

『첫째, 사람의 질병이 조섭(調攝:조리)을 잘 못해 생기므로 수양을 우선으로 하고 약물치료를 다음으로 할 것. 둘째, 처방이 너무 많고 번잡하므로 요점을 추리는 데 힘쓸 것. 셋째, 국산 약 이름을 적어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할 것』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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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과 동의보감 2편

■ 허준과 동의보감 2편

내의원에 들어가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선조 때 유학자인 유희춘(柳希春)의 문집이 유일하다. 허준의 총명과 열성은 이미 20대에 그를 전국적으로 유명한 의사가 되게 했다. 1569년 6월 그의 나이 24세 되던 해 부제학(副提學) 유희춘(柳希春)의 부인을 치료하기 위해 서울로 초치(招致:초빙)되었고, 이듬해에는 유희춘의 병도 치료하게 되어 장안에서 그 명성이 높아졌다. 유희춘은 이조판서 홍담(洪曇)에게 허준을 소개하였고, 1569년 이조판서 홍담(洪曇)과 유희춘의 천거로 내의원에 들어가 궁중 의사, 곧 의관으로서 출사했으며, 한성부 장안에서 고관대작들에게 이름이 알려지면서 명성을 높였다.

허준 관련 전설과 민간전승, 그리고 이를 소재로 하여 쓰여진 각종 소설과 드라마에서는 그가 1574년 의과에 급제하였다고 묘사하고 있으나, 실제로 의과 급제자 기록인 방목(榜目)에는 허준의 이름이 없다. 그래서 진위여부는 알 수가 없다. 내의원에 들어간 다음해부터 어의(御醫)로 선임되어 1575년 어의 안광익(安光翼)과 함께 선조를 진료하기 시작했으며, 점차 임금으로부터 신망을 얻게 되어 1578년 종4품 내의원첨정이 되었다. 당시 의과의 초시와 복시를 1등으로 합격해서 얻을 수 있는 관직이 종8품이었다고 하니 허준이 얼마나 파격적인 승진을 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어의로서 안면신경마비인 구안와사에 걸려 입이 돌아간 공빈 김씨의 남동생을 진료하여 완쾌시켰고, 1590년에는 인빈 김씨 소생의 왕자 신성군을 살린 공으로 당상관(정3품 통정대부 이상을 말함)으로 승진했다. 그러자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삼사와 의금부는 벼슬을 거둘 것을 상소했다. 왕자를 치료한 것은 의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비록 공이 있다 해도 의관에게 당상관의 가자(加資:조선 시대에 관원들의 임기가 찼거나 근무 성적이 좋은 경우 품계를 올려 주던 일)를 내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조는 듣지 않았다. 또 위중한 병으로 생사가 위험했던 왕세자 광해군을 치료하는 데에도 성공해 선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관직으로 볼 때, 허준의 장년 이후의 삶은 세 시기로 나뉜다.

첫째, 내의원 관직을 얻은 1571년부터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까지이다. 이 21년 동안 허준은 내의(內醫)로서 크게 이름을 얻기는 했지만, 최고의 지위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1587년 10월에는 태의(太醫) 양예수(楊禮壽) 등과 함께 선조를 진료하여 건강이 좋아지자 호피(虎皮)를 상으로 받았다. 그리고 1590년에는 왕자 광해군의 두창(痘瘡:천연두)을 치료하여 이듬해 당상관(정3품 통정대부 이상)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자 사헌부 사간원에서 일제히 나서서 "왕자를 치료한 것은 의관으로서 의당 해야 할 일이고, 비록 공이 있다 해도 의관(醫官)에게 당상관의 품계를 내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므로 취소해 주십시오."라고 왕에게 여러 번 간청했으나, 선조는 신하들의 거듭된 요구를 물리쳤다. 이 품계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이 규정한 서자 출신이 받을 수 있는 최고 관직의 한계를 깰 정도의 큰 상이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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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과 동의보감 1편

■ 허준과 동의보감 1편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진 허준(許浚:1539-1615)은 신묘한 의술로 박애(博愛)를 실천한 ‘의성(醫聖)’이었고,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신화적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 역사 기록에서 그의 일생을 추적하기에는 내용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가 허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대부분은 소설과 드라마를 통한 것이 많다. 허준이 왜 의학을 선택했고, 어떤 과정을 밟으며 공부했는지에 대한 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왔던 유의태라는 스승도 허구의 인물이고, 허준이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해 놀랄 만한 깨달음을 얻는 드라마틱한 사건도 작가의 상상력일 뿐이다. 소설을 비롯하여 민간전승에서는 그가 경상도 산음현의 전설적 의사인 유의태(柳義泰)라는 인물에게서 의술을 배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유의태가 숙종 치세기의 한의사라는 설이 있지만 실존(實存) 여부 확인도 불가능하다. 만약 유의태가 숙종 치세기의 한의사라 한다하더라도 광해군대에 살았던 허준의 스승이 될 수는 없다. 또, 그와 비슷한 동명이인(同名異人)인 한의사 유이태(劉以泰, 또는 劉爾泰)가 있기는 하나, 그도 정조 치세기의 한의사로서 허준의 스승이 될 수는 없다. 유의태 또는 유이태라는 이름의 의원은 허준보다 100년 이상 늦은 시기에 활동했으므로 허준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자는 청원(淸源), 호는 구암(龜巖)으로 경상도우수사(慶尙道右水使)를 지낸 허곤(許琨)이 할아버지이며, 아버지는 무관으로 용천부사를 역임한 허론이다. 허준의 생모였던 영광 김씨는 첩이기는 했으나 천출은 아니고, 양반 가문의 서녀(庶女)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법 권세 있는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큰 어려움 없이 자란 허준은 “총민하고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경전과 역사에 두루 밝았다.”고 전해진다. 훌륭한 가문의 배경 덕에 허준은 어려서부터 경전·역사·의학에 관한 소양을 충실히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허준의 이복 형 허옥(許沃)은 임금의 신변보호와 궁궐수비를 책임지는 내금위에 있었고, 동생 허징(許澄)은 서자(庶子)이면서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교검, 교리 등 내직을 지냈고, 선조 때 영의정이었던 노수신(盧守愼)의 사위가 되었다.

허준은 어릴 때 경상도 산청으로 이사하여 이곳에서 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록 서자였지만 차별받지 않고 명문가 출신답게 좋은 교육을 받았다. 허준이 다른 형제들과 달리 어떤 계기로 의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신분제 사회에서 서자(庶子)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당시 중인이나 서얼들의 업(業)으로 되어 있던 의학(醫學)의 길을 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허준은 1574년(선조 7년) 그의 나이 29세 때 상당히 늦은 나이에 궁중 의사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의과를 치르지 않고 천거 받았다는 설도 있음).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34.html
kolaswqetsrq 11.02 19:58
◇ 민사고 출신 민사고 교사 황소희, 폐교 움직임에 격정 토로

◇ 민사고 출신 민사고 교사 황소희, 폐교 움직임에 격정 토로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엘리트 교육 필요... 민사고 같은 학교 또 만드는 건 어려워”

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가 개교 25년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한복을 입고 영어를 쓰는 것으로 유명한 학교다. 현 정부가 2025년부터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와 외국어고등학교(외고) 등을 모두 일반 고등학교로 전환키로 하면서 폐교 가능성이 불거졌다. 민사고는 강원도 횡성에 있다. 일반고로 전환되면 강원도 학생만 선발해야 한다. 전국에서 영재를 모집해 지도자로 양성하겠다는 학교의 목표와 그 존재 의미가 훼손된다.

민사고는 공교육과 완전히 차별화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한다. 교사는 모두 석·박사 학위 소지자로, 교사 1명당 학생 수는 5~7명에 불과하다. 수업의 밀도는 물론, 수준도 높은 대신 학비가 기숙사비 포함 연간 2800만원 내외로 비싸다. 일각에서 ‘특권 교육’ ‘귀족 학교’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평등한 교육’을 위해 민사고는 사라져야 맞는 걸까. 지난달 24일 민사고 교사 황소희 선생님을 만나 이 질문을 던졌다. 그는 민사고를 학생과 교사 입장에서 모두 경험해본 유일한 사람이다. 2007년 민사고를 졸업하고, 2015년 모교로 돌아와 지금까지 사회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제대로 된 엘리트 교육 필요하다”

언론과 만남을 수차례 고사했던 그는 이날 A4 용지 7장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가져왔다. 황 선생님은 민사고를 ‘엘리트 교육’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의식한 듯 “오히려 우리나라에선 제대로 된 엘리트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의(代議) 민주주의에선 다른 이들을 대신해 나라의 대소사를 결정하고, 책임을 질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런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이른바 엘리트다. 하지만 이들을 기르는 교육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엘리트의 사회적 책임)’를 실천하는 지도자는 줄어들고, 특권만 누리려는 ‘특권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황 선생님의 생각이다. 그는 “사회에 제대로 된 지도자가 없으니까, 마치 엘리트가 나쁜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라며 “(이를 바꾸려면) 제대로 된 엘리트 교육기관들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민사고 설립자 최명재 전 파스퇴르유업 회장은 세계적인 지도자 양성 학교를 만들고자 했다. 영국 이튼칼리지를 모델로 삼아, 1000억원 넘는 사재를 쏟아부었다. 파스퇴르유업이 1998년 부도가 나면서 재정 지원이 끊기기 전까지는 전교생이 무상 교육을 받았다. 최 전 회장은 강연 때마다 “창조적인 천재 한 사람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고 했다.

-“좋은 교육 늘려야지 왜 없애나”

‘출세하기 위한 공부를 하지 말고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자. 출세를 위한 진로를 택하지 말고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택하자. 이것이 나의 진정한 행복이고 내일의 밝은 조국이다.’ 민사고의 교훈(校訓)이다. 황 선생님은 “요즘처럼 의무보다 권리를 챙기려는 시대에 조국이니, 민족 같은 얘기를 꺼내면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그나마 이런 문화와 전통이 계승되는 민사고니까 가능한 가르침”이라고 했다.

황 선생님은 실제로 그런 교육을 받았을까. 그는 경기도 부천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민사고 시절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하루 종일 토론하던 것”이라고 했다. ‘왜 대학을 가야 하느냐’ ‘고시는 꼭 비판받아야 마땅한가’ 같은 주제로 온종일 열을 올렸다. 자연스레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그는 “내가 학교에서 배운 행복은 스스로 옳고, 가치 있다고 믿는 일을 해나가는 것”이라며 “올바른 가치관을 알려주는 교육에 관심이 커졌다”고 했다. “좋은 교육을 하는 학교가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없애려고 하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이런 학교를 한번 없애고 나면, 다시 만드는 건 너무 어렵지 않을까요.”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46.html
kolaswqetsrq 11.02 19:59
◇ 온라인 흔드는 5060 ‘부머쇼퍼’

◇ 온라인 흔드는 5060 ‘부머쇼퍼’

서울 마포구에 사는 주부 장모 씨는 코로나19가 터진 후 오프라인 쇼핑을 줄였다. 그 대신 야채와 과일은 생협의 주간배송, 일반 장보기는 쓰레기 배출량이 적은 업체의 당일배송 서비스를 이용한다. 명절에는 부모님께 모바일 쇼핑 앱에서 홍삼과 화장품 선물세트를 골라 보내드렸다. 장 씨 같은 5060 베이비붐 세대가 ‘부머쇼퍼’로 불리며 온라인 시장의 큰손으로 주목받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한국인 6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온라인 쇼핑 이용률은 69.8%로 전년도보다 5.8%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50대(60.2%)와 60대(31.4%)의 이용률 증가폭이 16.1%포인트와 10.6%포인트로 두드러졌다.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부머쇼퍼가 지난해 온라인에서 결제한 금액도 전년보다 29.6% 늘어났다. 같은 기간 2030세대의 온라인 지출액 증가율(15.4%)의 배가 되는 규모다.

▷부머쇼퍼는 전후 출산율이 급등할 때 태어나 인구비중(28%)이 높고, 고도성장기에 청장년기를 보내 자산을 가장 많이 축적한 세대다. 기대수명 연장으로 스스로를 3040세대로 여긴다. 그래서 자식이 쓰는 제품을 따라서 쓰는 ‘대올림’ 소비를 한다. 부머쇼퍼는 아날로그 세대지만 컴퓨터로 직장생활을 하고, PC통신으로 연애하며, 삐삐 시티폰 폴더폰 스마트폰을 두루 섭렵한 덕에 디지털 기술에도 익숙하다. 두둑한 지갑과 디지털 마인드가 코로나를 만나 홈쇼핑 고객에 머물던 부머쇼퍼를 온라인 시장의 주력부대로 밀어올린 것이다.

▷부머쇼퍼는 서른이 넘도록 독립하지 못하는 ‘캥거루족’ 자식을 품고 살고, 따로 사는 노부모를 ‘원격 부양’하는 낀세대다. 3년 전 조사이기는 하지만 5060 10가구 중 7가구가 성인 자녀와 함께 살고, 5가구 중 2가구 이상이 노부모에게 월평균 36만 원의 경제적 지원을 한다. 손주가 있는 5060의 절반은 황혼육아를 한 적이 있다(미래에셋 은퇴라이프트렌드 조사보고서). 다 큰 자식과 노부모를 동시에 건사하느라 씀씀이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함께 사는 자녀가 온라인 최신 트렌드를 알려주는 ‘멘토’ 역할을 한 것도 부머쇼퍼의 이커머스 진입을 도왔다고 한다.

▷유통업계에선 부머쇼퍼가 저출산 저성장 기조의 장기화로 침체된 소비시장에 활력을 주리라 기대한다. 2030을 겨냥하던 업체들이 건강식품과 명품으로 품목을 늘리고, 모바일 앱의 글자를 키우고, 시니어 모델 대회를 개최하는 이유다. 나이 들어서도 대접받는 게 싫을 건 없겠지만 언제까지 부머들이 주역이 돼야 하나. 소비시장에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동아일보 횡설수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060_15.html
kolaswqetsrq 11.02 19:59
◇ 간질이 뇌전병으로 바뀌었듯이 치매도 이름을 바꿨으면....

◇ 간질이 뇌전병으로 바뀌었듯이 치매도 이름을 바꿨으면....

대한정신분열병학회는 2007년 환자 가족 동호회로부터 건의서를 전달받았다. ‘정신분열(精神分裂)’, 즉 정신이 갈라지고 찢어진 병이라는 이름이 편견과 혐오를 조장한다며 병명을 바꿔달라는 주문이었다. 학회는 병명 개정에 뜻을 함께하는 단체들과 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한 끝에 2010년 ‘조현(調絃)병’으로 바꿔 부르기로 결정했고, 이듬해 명칭 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학회 이름도 ‘대한조현병학회’가 됐다.

조현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는 뜻이다. 마음이 엉켜 정신기능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의 은유적 병명이다. 개명 과정에서 “너무 어렵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그렇기 때문에 낙인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반론이 우세했다. 같은 이유로 간질은 뇌전증, 나병은 한센병으로 오래전부터 바꿔 부르고 있다. 환자의 인권을 위한 병명 개정은 치료 효과를 높이기도 한다. 일본에선 2002년 정신분열병을 통합실조증(統合失調症)으로 바꾼 뒤 병명을 당당히 밝히고 치료받는 환자들이 늘었다고 한다.

주로 20대에 증상이 나타나는 조현병과 달리 치매(癡呆)는 노년에 시작되는 뇌질환이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어리석은 미치광이’라는 뜻의 ‘치매’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비율이 43.8%였다. 대체 용어로는 ‘인지저하증’이 일순위로 꼽혔고 이어 ‘기억장애증’ ‘인지장애증’ ‘인지증후군’ ‘인지증’ 순이었다. 일본에선 2004년부터 인지증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병명이 바뀌면 교과서 질병분류표 관련법도 모두 바꿔야 하므로 개명엔 시간이 걸린다. 환자의 인권과 함께 병명의 활용도도 감안해야 한다. 복지부는 2014년에도 같은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용어 변경(21.5%)보다는 유지(27.7%)를 지지하는 비율이 높다. 널리 알려진 용어를 바꾸면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45%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의견이다.

65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치매 환자는 75만 명으로 10명 중 1명꼴. 3년 후엔 1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치매란 단어를 쓸 일이 많아질 테니 ‘삶의 위엄을 내려놓아야 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면 개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만하다. 얼마 전 치매를 일으키는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 치료제 ‘아두카누맙’이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앞서 FDA의 승인을 받은 4종과 달리 병의 근본적 원인인 인지능력 감소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1년 약값은 5만6000달러(약 6300만 원). 싸고 효과 좋은 치료제가 치매를 바꿔 부르기 전에라도 얼른 나왔으면 좋겠다.

-동아일보 횡설수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103.html
kolaswqetsrq 11.02 20:00
◇ 재벌의 ‘밥장사’에 분노한 MZ세대

◇ 재벌의 ‘밥장사’에 분노한 MZ세대

‘2030 청년’을 상징하는 엠제트(MZ)세대가 재벌의 ‘밥장사’에 공정의 잣대를 들이댔다.

현대차그룹에 재직하는 엠제트세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한 청원인은 25일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삼성 급식사업 일감몰아주기 제재와 관련해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현대차그룹이 왜 현대백화점그룹의 현대그린푸드에서만 급식을 공급받아야 하는지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공정위는 삼성전자 등이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 일가 회사인 삼성웰스토리에 사내급식 일감을 100% 몰아주는 등 부당지원한 것에 과징금 2천여억원을 부과했다.

엠제트세대 청원인이 재벌의 ‘밥장사’에 분노하는 직접적 이유는 ‘형편없는 식사 품질’이다. 청원인은 “(현대그린푸드의) 식단가 구성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부실하다”면서 “임직원들이 현대‘구린’푸드라고 부를 정도”라고 폭로해 충격을 줬다.

청원인은 또 현대차의 급식 부실이 친족기업인 현대그린푸드의 독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차와 현대백화점은 ‘사촌 그룹’이다. 청원인은 “오너 일가의 사리사욕 때문에 서로 부당지원하는 것”이라며 “부품업체 선정에서는 눈에 불을 켜고 공정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왜 오너 일가 사이의 내부거래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막느냐”고 꼬집었다.

재벌은 급식사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임직원의 복리후생을 강조한다. 이 말이 진실이라면, 직원 급식은 이익 창출과는 거리가 멀어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웰스토리는 8년간 삼성전자 등 4개사와 거래에서 25%를 넘는 직접이익률(매출에서 식재료비·인건비 등을 뺀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을 기록했다. 또 2015~2019년 5년간 총수 일가가 지분 32%를 보유한 삼성물산에 당기순이익의 77%인 2758억원을 배당했다. 엠제트세대에게는 재산이 수조원에 달하는 재벌 총수가 ‘벼룩의 간을 빼먹은’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엠제트세대 청원인은 급식 문제가 “(삼성·현대차 뿐 아니라) 다른 재벌에서도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한다. 국내 단체급식 시장은 5조원 정도인데, 7개 재벌이 80%를 차지한다. 계열사나 친족기업이 100% 수의계약을 통해 일감을 몰아주기 때문이다. 나머지 20%를 놓고 4~5천개 중견·중소기업이 피 말리는 생존경쟁을 한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4월 삼성·현대차 등 8개 그룹과 ‘급식 일감 대외개방 선포식’을 가졌지만, 지난 석달간 삼성이 구내식당 세곳을 개방하는데 그치는 등 실적은 미미하다. 그나마 중소 급식업체는 아예 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자격 제한을 해서, 재벌 급식업체들끼리 ‘돌려먹기’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기성세대가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해온 재벌의 밥장사에 엠제트세대가 분노하고 있다. 엠제트세대가 제시하는 공정의 잣대가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이번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는 총수 일가 부당지원, 중소기업 사업 기회 차단 등 폐해가 크다. 더욱이 1인당 단가가 4천~5천원에 불과한 밥장사를 재벌이 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구글·애플이 밥장사를 하지 않는 것은 직원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한겨레 유레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mz_15.html
kolaswqetsrq 11.02 20:01
◇ 조선의 586, 士林의 뿌리의 내로남불

◇ 조선의 586, 士林의 뿌리의 내로남불

말이 사림(士林)이지 조선 시대 사림의 주류(主流)인 서인-노론-벽파는 철저한 주희 신봉자들이었다. 동인-남인-소론은 그나마 덜 교조적인 사림들이라 할 수 있다. 주희는 사상가라기보다는 주석가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일관되게 신권(臣權) 강화를 주창한 인물이다.

최근 나온 유성운의 책 ‘사림, 조선의 586’(이다미디어)은 단편적으로 제기되던 “586의 행태가 조선의 사림과 비슷하다”는 흥미로운 입론(立論)에 대해 처음으로 체계적 분석과 비판을 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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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제목을 보면 ‘사림의 위선, 586의 내로남불’ ‘군자와 소인, 사림의 당동벌이(黨同伐異)’ 사림의 반청(反淸)과 586의 반일 등이다.
",

주희 추종자들은 임금을 임금으로 여기지 않았다. 마치 오늘날 좌파들이 나라보다는 ‘시민사회’ 운운하며 뒤로는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행태와 비슷하다.

우리는 학교에서 실상과 맞지도 않는 ‘훈구 대 사림’의 이분법을 만들어 사림을 맹목적으로 미화해 왔다. 이 책이 이런 기존의 기울어진 인식을 바로잡는 시금석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나라의 공(公)보다는 선비 계층의 사(私)를 추구했던 주희의 이 같은 발상의 뿌리는 자사(子思)와 맹자(孟子)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공자의 사상 중에서 왕권강화론에 섰던 현실주의자 순자(荀子)는 이미 자사와 맹자의 사상에 대해 이렇게 비판한 바 있다.

“매우 편벽되고 어긋나 규범이 없으며 그윽이 숨겨져 있어 설명되지 않으며 닫히고 맺혀져 있어 해설할 수가 없다. 그래도 그의 말을 꾸며가지고 말하기를 이것이야말로 참된 군자의 말이라고 한다. 자사가 이것을 주창했고 맹자가 이를 따랐다.”

사림의 속마음은 무군(無君), 임금을 없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관직은 가지려 했다. 586들은 대한민국을 없다고 여기며 성장했다. 그러면서도 관직과 돈은 어떻게든 챙긴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행태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뿌리가 깊어도 너무 깊다.

-조선일보 이한우의 간신열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86_15.html
kolaswqetsrq 11.02 20:01
◇ 빈과일보 폐관...홍콩의 ‘분서갱유’

◇ 빈과일보 폐관...홍콩의 ‘분서갱유’

권력을 비판해온 신문사 편집국에 경찰 수백명이 들이닥친다. 편집국장과 논설위원, 기자들이 줄줄이 잡혀가 감옥에 갇히고, 자금이 억류되고, 독자들의 성원에도 결국 신문은 폐간된다.... 독재 시대를 경험한 한국인들에게 낯설지 않은 일이, 2021년 6월24일 홍콩에서 벌어졌다. 중국 당국에 비판적이었던 일간지 <핑궈(빈과)일보>(애플데일리)가 탄압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날 마지막 호를 발행하자, 시민들이 이 신문을 사려고 빗속에서 긴 줄을 선 모습은 국가보안법 1년을 맞은 홍콩의 현실을 상징한다.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를 창업해 사업가로 성공한 지미 라이가 1989년 창간한 <핑궈일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초창기에는 판매 부수를 올리려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가십 보도, 유명인 사생활 파헤치기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엔 중국공산당 지도부와 홍콩 정부의 문제를 파헤친 탐사보도와 홍콩 범민주 진영의 목소리를 적극 전하는 논조로 주목받았다.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에 시민들의 참여를 촉구하면서, 미국이 중국을 제재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광고 탄압 등을 우려해 다른 신문들이 비판적 논조를 누그러뜨리는 동안 홀로 꿋꿋이 버티는 <핑궈일보>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높아졌다.

보안법이 발효된 다음날인 2020년 7월1일 아침 홍콩 주요 신문 1면에는 이를 축하하는 정부 광고가 실렸지만, <핑궈일보>만 보안법 비판 기사를 실었다. 다음달 홍콩 경찰은 <핑궈일보>를 압수수색하고, 지미 라이를 체포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재산을 압류했다. 그리고 지난 17일 또다시 편집국이 수색을 당하고 신문사 재산이 압류되고, 편집국장과 주필 등이 체포되자, 신문사는 결국 폐간을 선택했다.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페이지도 사라졌고, 26년 동안 쌓아온 언론의 흔적은 완전히 지워졌다.

<핑궈일보>의 죽음은 언론의 다양성과 자유로 유명하던, 우리가 알던 홍콩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홍콩 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으로 처벌하는데, 어떤 기사가 이 혐의에 해당되는지는 당국이 결정한다. 기자들은 계속 자기검열을 하거나 비판적 기사 쓰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에는 공영방송 RTHK에서 정부에 비판적 보도를 한 피디가 취재 절차와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제작진이 쫓겨나고 있다.

오는 7월1일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 중인 중국공산당은 왜 지금 <핑궈일보>에 대한 ‘분서갱유’를 단행했을까. 홍콩 언론과 홍콩인들, 나아가 중국 대륙의 사람들에게 ‘공산당에 대한 도전이나 비판적인 목소리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며 절대 충성을 요구하는 경고다. 보안법을 통해 홍콩을 완전히 장악했으며, 대륙과 다른 일국양제의 공간이었던 홍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중화민족 부흥’의 성과로 내세우는 측면도 있다. 시진핑 지도부는 중국이 서구 열강으로부터 받았던 치욕의 세월을 끝내고 중국공산당이 외세를 혼내주는 시대가 왔음을 보여주려 한다. 진시황이 비판적 학자들을 죽이고 책을 불태운 분서갱유로 비판을 억누를 수는 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핑궈일보가 폐간하던 날 홍콩 인터넷에서 널리 퍼진 글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사과(핑궈일보의 핑궈는 사과)를 죽여버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이 씨앗이 우리 마음에 이미 뿌리를 내렸고 우리가 사과 나무들을 키워낼 것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다.”

-한겨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495.html
kolaswqetsrq 11.02 20:02
◇ 한국과 미국의 실업급여 중독

◇ 한국과 미국의 실업급여 중독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지난주 미국 물류창고에서 일할 7만5000명 채용 계획을 밝히면서 평균 17달러(약 1만9300원)의 시급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현재 7.25달러인 연방 최저임금을 2025년까지 갑절인 15달러로 올리겠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고려할 때 낮지 않은 급여다. 코로나19 백신의 빠른 접종과 경기회복으로 일감이 많아지는데 일하려는 사람이 적다 보니 높은 임금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구인난의 원인으로 실업수당이 지목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3월 통과시킨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구제법안’은 실직한 이들에게 기존 실업수당과 별도로 매주 300달러를 9월 초까지 얹어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평균 387달러의 실업수당을 받던 미국 실업자의 주당 수입은 687달러로 높아졌다. 연봉으로 치면 3만5700달러이고 소득세도 내지 않는 실속 있는 소득이다.

최저임금을 받고 평균적인 근로시간을 일한 미국인이 벌 수 있는 연봉은 1만3000달러다. 일하지 않아도 그보다 2배가 훌쩍 넘는 수입이 생기다 보니 감염 위험이 남아 있는 일터에 복귀하려는 실업자가 많지 않다. 학교가 정상화되지 않아 자녀를 돌봐야 하는 여성들도 재취업을 늦추고 실업수당을 받는 게 이득이다. “실업수당이 구직 활동을 막는다는 증거가 없다”며 버티던 바이든 대통령도 결국 지난주에 “실업자는 적합한 일자리를 제안받으면 수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혜택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실업급여 하루 하한액은 6만120원, 월 181만 원으로 최저임금을 받고 하루 8시간, 주 5일 일할 때 받는 182만 원과 불과 1만 원 차이다. 정부가 2019년부터 실업급여 혜택을 대폭 늘린 영향이다. 단기간 일한 뒤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권고사직’시켜 달라고 사업주에게 요구하는 종업원들도 있다고 한다. 5년간 3번 이상 실업수당을 받은 사람이 9만4000여 명이나 된다. 고용보험기금 고갈 위험이 커지자 고용노동부는 수급 횟수가 많아지면 지급액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직장을 잃고 생계의 위협을 받는 이들을 정부가 지원하는 건 당연하지만 과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실업급여 중독’ 현상을 앞서 경험한 독일 프랑스 덴마크 등 선진국들은 정부기관의 취업 제안을 계속 거절하는 실업자에 대해 실업수당 지급 기간을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일터 복귀를 유도한다. 한국도 코로나19 이후 세금을 퍼부어 만든 일자리, 실업 대책의 부작용을 서둘러 점검할 때다.

-동아일보 횡설수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216.html
kolaswqetsrq 11.02 20:02
◇ 김세연의 830세대와 25세 청와대 비서관

◇ 김세연의 830세대와 25세 청와대 비서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 새 청년비서관에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내정했다. 올해 25세인 박 청년비서관은 문재인 정부 최연소 청와대 비서관이다. 사진은 지난 2020년 9월 9일 더불어민주당 박성민 최고위원이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 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 새 청년비서관에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내정했다. 올해 25세인 박 청년비서관은 문재인 정부 최연소 청와대 비서관이다. 사진은 지난 2020년 9월 9일 더불어민주당 박성민 최고위원이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 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18~20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세연(49)은 2019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해체’를 촉구하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서는 830세대로의 급격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830세대란 1980년대 출생·30대·(20)00년대 대학 입학 세대를 가리킨다. 김세연이 830세대를 언급할 때마다 기성세대 대다수의 반응은 ‘뜬금없다’는 쪽이었다. “40대라면 몰라도 30대까지 내려가야 한다고?”

다이내믹 코리아는 김세연의 주장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1985년생 정당 대표(이준석)의 당선이 그것이다. 이준석 바람은 이준석 개인의 지향이 품은 위험성과 별개로, 한국 정치의 모습을 바꿔놓고 있다. 청와대에도 마침내 1996년생 비서관이 등장했다. 청년비서관으로 기용된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다.

4·7 재·보궐 선거 이후 박성민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모든 질문에 솔직하고 분명하게 답했다. 서울시장 보선의 참패 원인을 두고 “귀 막고 눈 감고 우리(민주당)만의 성을 쌓아갔기 때문”이라고 자성했다. 20대 여성의 15.1%가 소수정당·무소속 후보에 투표했다는 출구조사 결과에 대해선 “민주당이 젠더 이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의 마음을 잃었음을 증명한다. 우리가 세운 원칙을 우리가 깨버린 결과”라고 말했다. 청년이 정치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선 “현재의 문제에 천착하는 정치와, 앞으로 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하는 정치는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성민이 임명된 후 온라인 공간에서 일부 부정적 여론이 감지된다. 취업준비생 경험이 없다는 것 등이 이유다. 하지만 박성민은 직업 정치인이다. 민주당 청년대변인, 청년 태스크포스(TF) 단장, 더혁신위원회 위원, 최고위원, 청년미래연석회의 공동의장 등을 거쳤다. ‘파격 발탁’에 가려 폄훼될 만한 경력은 아니다.

중요한 건 청와대가 박성민의 잠재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이다. ‘20대’ ‘대학생’ 등 수식어는 빼고 ‘청년정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참모’로 대우해야 옳다. 청년정책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더 많은 젊은이들이 기회를 얻고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 바란다.

-경향신문 여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830-25.html
kolaswqetsrq 11.02 20:03
이문회우以文會友 - 글로써 벗을 모으다.

이문회우(以文會友) - 글로써 벗을 모으다.

써 이(人/3) 글월 문(文/0) 모일 회(曰/9) 벗 우(又/2)

글로써 또는 문학이나 학문을 통하여(以文) 벗을 모으고(會友) 함께 즐긴다는 멋진 말은 孔子(공자) 말씀에서 나왔다. 실제로는 공자의 제자 曾子(증자)가 말했다며 ‘論語(논어)’ 顔淵(안연)편의 제일 마지막에 실려 있는 구절이다. ‘글로써 좋은 벗을 모은다(以文會友/ 이문회우)’에는 글을 통하여 뜻이 맞는 또래(友/ 우)가 모인 자체를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좋은 벗을 만나 자신의 어진 덕성을 기른다(以友輔仁/ 이우보인)’로 이어지는 문구도 좋다.

이와 달리 논어를 공부하지 않았다 해도 제일 첫머리 學而(학이)편에 나오는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겠는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란 구절은 대부분 잘 안다. 같이 수학한 벗(朋/ 붕)이 오랜만에 찾아와 학문의 깊이를 보여주면 즐겁다는 뜻이다.

여기서 벗이나 친구, 짝을 뜻하는 한자 友(우)와 朋(붕)이 달리 나왔다. 이외 伴(반), 侶(려), 匹(필) 등도 있다. 단짝으로 늘 같이 지내는 벗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짝을 나타내는 伴侶(반려)는 부부관계, 匹夫(필부)는 보통사람을 가리킬 때 많이 쓴다. 벗을 대표하는 朋友(붕우)의 두 글자를 구별하는 데는 구구한 해석이 따른다.

오른손을 나타내는 또 又(우)가 겹친 㕛(우)가 본자라 하는 友(우)는 형제나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낸 벗을, 조개 貝(패)의 변형된 글자가 나란히 된 朋(붕)은 어떤 목적 하에 모인 동료란 뜻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會友(회우)는 나이도 비슷하고 뜻이 맞는 또래를, 有朋(유붕)은 동문이나 목적을 같이 한 친구로 보았다.

朱子(주자)는 이 구절에 대해 학문을 익혀서 ‘벗을 모으면 도가 더욱 밝아지고(則道益明/ 즉도익명)’, 벗의 선을 본받아 나의 인을 도우면 ‘덕이 날로 진보할 것(則德日進/ 즉덕일진)’이라 해석한다. 조선시대 어린이 교육용 교재였던 ‘啓蒙篇(계몽편)’의 해설엔 이렇게 깨우친다.

‘벗에는 유익한 벗이 있고 또한 손해되는 벗도 있으니(友有益友 亦有損友/ 우유익우 역유손우), 벗 취하기를 바르게 하지 않을 수 없다(取友 不可不端也/ 취우 불가부단야).’ 벗 사이에 도움 되는 것을 찾고, 손익을 가리라는 이야기는 삭막한데 진정한 마음으로 교류를 이어가면 득이 돌아온다고 보면 좋겠다.

어떠한 벗이든 삼강오륜의 朋友有信(붕우유신)이나 세속오계의 交友以信(교우이신)에서 보듯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믿음을 앞세우는 붕우라 해도 朋黨(붕당)과 友黨(우당)을 보면 뜻이 확연히 갈린다. 이념과 이해에 따라 뭉친 것이 붕당이라 하면 당은 달라도 정책 등 공통점이 있으면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당이다. 그래서 붕당으로 나눠진 정당은 항상 지지고 볶는 모양이다.

이런 관계 말고 보통 삶을 유지하는 다양한 사람들은 붕우를 구별하지 않고 두루 잘 지내는 것이 필요하다. 글이니 학문이니 하는 것으로 벗을 모은다고 했지만 자기와 뜻이 맞는 사람들과 품위 있는 교류를 이어간다면 그것이 바로 덕이 아닐 수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763.html
kolaswqetsrq 11.02 20:04
하옥瑕玉 - 티가 있는 구슬, 완벽한 가운데 있는 한 가지 흠

하옥(瑕玉) - 티가 있는 구슬, 완벽한 가운데 있는 한 가지 흠

허물 하(玉/9) 구슬 옥(玉/0)

연한 녹색의 아름다운 보석인 玉(옥) 중에서 흠 없는 것이 있을까. 卞和(변화)란 사람이 발뒤꿈치를 잘리는 형을 받으면서도 가치를 지켰던 和氏之璧(화씨지벽)이나 그것을 강대국에 뺏기기 일보 직전에 藺相如(인상여, 藺은 골풀 린)가 되찾은 完璧(완벽)은 같은 옥이다.

완전무결한 이 옥 외에는 흠집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결점은 있다고 ‘옥에도 티가 있다’란 속담이 남았다. 옥은 쪼지 않으면 그릇을 만들 수 없다는 玉不琢 不成器(옥불탁 불성기)란 명언도 있다.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거나 좋은 것에 있는 사소한 흠은 ‘옥에 티’라 했다. 瑕疵(하자)라고 해도 똑 같다. 허물이 있는 구슬(瑕玉)이란 말은 아무리 값진 보배라고 해도 작은 허물이 있으면 제 값어치를 못한다는 뜻이다. 완벽한 가운데 아깝게도 한 가지 작은 흠이 있는 것을 비유하기도 하고, 잘 되어가는 일에 공연한 짓을 하여 사태를 악화시킬 때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말이 처음 사용된 곳은 ‘淮南子(회남자)’란 책에서다.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의 손자인 문학애호가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빈객들과 함께 다양한 주제로 저술한 책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옥에 티는 반드시 나쁜 의미만이 아니다. 說林訓(설림훈) 편에 실려 있는 내용을 보자.

‘쥐구멍을 함부로 뜯어고치려 한다면 마을의 문을 모두 부수게 되고, 작은 여드름을 짜다가 잘못 뾰루지가 나거나 등창이 된다. 그것은 흠이 있는 진주와 티가 있는 구슬을 그대로 놓아두면 온전할 것을 없앤다고 하다가 이지러뜨리는 것과 같다(治鼠穴而壞里閭 潰小皰而發痤疽 若珠之有纇 玉之有瑕 置之則全 去之則虧/ 치서혈이괴리려 궤소포이발좌저 약주지유뢰 옥지유하 치지즉전 거지즉휴)’ 潰는 무너질 궤, 皰는 여드름 포, 痤는 부스럼 좌, 疽는 종기 저, 纇는 실마디, 흠 뢰. 그냥 두어도 가치를 지니는 옥에 티를 지우려 하다가 모두를 잃게 된다는 뜻으로 썼다.

진정한 가치의 순수한 것은 구하기 어렵다. 계획에서부터 결과까지 일을 완전무결하게 해 내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떤 일에도 흠집은 있게 마련이고 또 그것은 상대방의 눈에 잘 띈다. 일부러 실수하려 한 흠이 아니라면 같이 해결해 나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남이 못되도록 결점을 침소봉대한다면 발전이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971.html
kolaswqetsrq 11.02 20:05
장두노미藏頭露尾 - 머리만 숨기고 꼬리는 드러나다, 얕은 수로 속이려는 행위

장두노미(藏頭露尾) - 머리만 숨기고 꼬리는 드러나다, 얕은 수로 속이려는 행위

감출 장(艹/14) 머리 두(頁/7) 이슬 로(雨/13) 꼬리 미(尸/4)

잘못을 저질렀을 때 몸체는 감춘다고 감추었는데 꼬리는 드러난 채 발각된다면 심히 어리석다. 속담에서는 얕은 수로 남을 속이려 하는 어리석은 짓을 ‘눈 가리고 아웅’한다고 한다. 진실을 감추고 어설픈 짓거리로 은폐하려다 만천하에 드러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경계하는 교훈은 많다.

신통력을 가진 원숭이 孫悟空(손오공)이 筋斗雲(근두운)을 타고 도주하려 종일 날아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든가, 불리한 상황을 임기응변으로 감추려다 드러나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등이다. 남들이 알까 감추면서 들통이 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함께 연상된다.

산란기를 맞은 꿩이 숲속에서 스스로 울어 사냥꾼에 위치를 알려주게 되는 春雉自鳴(춘치자명)의 어리석음은 타조에게도 있다. 덩치가 큰 駝鳥(타조)가 위험에 처하게 되면 눈을 감고 머리를 수풀이나 모래 속으로 처박는데(藏頭) 당연히 꼬리는 드러난다(露尾). 실제 타조의 이런 행위는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땅으로 전해져오는 소리를 듣고 주변 상황을 살피며 정보 수집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이 말이 진실을 숨기려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는 장본인만 모르고 세상이 다 안다는 의미로 이해되는 것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같다. 타조는 억울할 듯도 한데 당면한 현실의 문제 또는 위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정책을 Ostrich Policy(타조정책)이라 한단다.

꼬리가 드러난다는 성어가 처음 사용된 곳은 중국 元(원)나라의 散曲(산곡) 작가 張可久(장가구)의 작품이다. 산곡은 원에서 시작하여 명나라 때에 유행한 가곡이다. ‘點絳唇 翻歸去來辭(점강진 번귀거래사)’라는 작품에서 부분을 인용해보자.

‘일찌감치 관직에서 물러나 앉아, 홍진 같은 세속의 시비를 멀리 하고, 머리만 감추고 꼬리를 드러내는 일을 덜어보려네(早休官棄職 遠紅塵是非 省藏頭露尾/ 조휴관기직 원홍진시비 생장두노미).’

본의에 어긋나는 벼슬자리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지내고 싶다는 바람이다. 약간 후기의 희곡 작가 王曄(왕엽)의 桃花女(도화녀)나 淸(청)나라 曹雪芹(조설근)의 紅樓夢(홍루몽)에도 쓰임이 있다.

머리만 감추는 꿩 藏頭雉(장두치)와 같이 어리석은 행동은 露尾藏頭(노두장미), 藏頭隱尾(장두은미), 藏形匿影(장형닉영) 등으로 같은 뜻의 성어가 여러 가지다. 이 말이 교수신문에 의해 한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선정되어 널리 알려진 것이 오래됐지만(2010년) 꼬집는 묘미는 가시지 않는다.

잘못된 정책이나 지도층의 비리를 감추려 아무리 애를 써도 꼬리는 드러나 있다. 불의와 부정으로 이루어진 일은 세월이 지나도 반드시 응징되는 것은 事必歸正(사필귀정)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65.html
kolaswqetsrq 11.02 20:05
동가지구東家之丘 - 동쪽 집에 사는 구라는 사람, 공자를 알지 못해 사람 보는 눈이 없음

동가지구(東家之丘) - 동쪽 집에 사는 구라는 사람, 공자를 알지 못해 사람 보는 눈이 없음

동녘 동(木/4) 집 가(宀/7) 갈 지(丿/3) 언덕 구(一/4)

늘 접하는 물건은 귀한 줄을 잘 모른다. 들에 있는 꿩이나 고니 보다 자기 집에 있는 닭이 더 가치 있는데도 천시하여 家鷄野雉(가계야치)나 貴鵠賤鷄(귀곡천계)란 성어를 낳았다. 마찬가지로 가까이 있는 사람의 재주는 잘 판단하지 못한다. 실제 큰 능력이 있는데도 사회에 널리 알려진 다음에야 아는 격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다.

燈下不明(등하불명)과 같이 目不見睫(목불견첩)이란 말도 있다. 눈과 가까이 붙어 있는데도 눈썹을 보지 못하는 경우다. 중국 최고의 스승이자 사상가 孔子(공자)는 옆집 사람에게 대수롭지 않게 동쪽에 있는 집(東家)의 구라는 사람(之丘)으로 불렸다.

공자는 60세가 넘은 아버지와 20대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뒤 魯(노)나라의 수도 曲阜(곡부) 근처의 尼丘山(니구산)에서 자랐다. 그래서 자가 仲尼(중니), 이름이 丘(구)가 되었다고 한다. 가난을 이겨내며 젊어서부터 志學而立(지학이립)하여 큰 교육자가 되고, 사방에서 가르침을 구하는 제자들이 모여들어 3000명이 넘었다.

六藝(육예)에 능통한 제자가 七十二賢(칠십이현)에, 고락을 함께 한 제자만 10명이나 되어 孔門十哲(공문십철)이라 불렸다. 이렇듯 대단한 공자라도 젊어서 가까이 살던 이웃 사람조차 그의 명성을 알지 못했다. 공자집의 서쪽에 살던 사람은 공자를 가리킬 때마다 ‘우리 집 동쪽에 살고 있는 구씨(俺東家之丘/ 엄동가지구)’라 불렀다며 ‘孔子家語(공자가어)’에 전한다고 했다.

여기서 유래하여 실제 등장하는 곳은 後漢(후한)의 학자 邴原(병원, 邴은 고을이름 병)의 이야기에서다. 병원이 젊은 시절 학문이 높은 스승을 만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때 한 사람이 병원의 집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유명한 鄭玄(정현)선생이 계신데 왜 멀리서 찾으려 하느냐고 꾸짖었다.

후한 말기 제자를 많이 기른 정현은 자가 康成(강성)인 대유학자였다. ‘그런 사람을 두고 신발을 끌고 멀리 떠나려 하다니 정현을 동쪽 집 구로 여기는 것 아닌가(君乃舍之 躡屣千里 所謂以鄭爲東家丘者也/ 군내사지 섭사천리 소위이정위동가구자야).’ 躡은 밟을 섭, 屣는 짚신 사. ‘三國志(삼국지)’ 魏書(위서)의 주에서 비롯됐다.

자신이 잘 알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의 재주는 별 것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가까운 무당보다 먼 데 무당이 영하다’고 믿는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화려한 업적을 쌓은 사람은 그것만큼 훌륭하여 온갖 조건을 내세우며 영입하려 한다. 하지만 가까운 데서도 조금 더 노력을 기울이면 인재는 곳곳에 있다. 열 길 물속은 알고 사람 속은 모른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재주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 먼저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991.html
kolaswqetsrq 11.02 20:06
휘한여우揮汗如雨 - 땀이 흘러 비 오는 듯하다, 사람이 많아 북적이다.

휘한여우(揮汗如雨) - 땀이 흘러 비 오는 듯하다, 사람이 많아 북적이다.

휘두를 휘(扌/9) 땀 한(氵/3) 같을 여(女/3) 비 우(雨/0)

땀이 줄줄 흘러(揮汗) 닦아내다 보면 마치 비가 오는 듯하다(如雨)는 이 말은 힘든 일을 하여 고되다는 뜻보다 사람이 북적인다는 의미다. 길을 가다 부딪치는 게 사람일 정도로 북적이면 날씨 더울 때는 땀이 휘날리겠다. 차가 많이 왕래하면 수레의 바퀴통이 서로 부딪치고, 사람들의 어깨가 자주 스친다고 한 轂擊肩摩(곡격견마, 轂은 바퀴통 곡)와 같은 뜻이다. 이 두 성어가 출전은 다르지만 齊(제)나라의 수도 臨淄(임치, 淄는 강이름 치)를 묘사한 것은 닮았다.

제나라의 명재상이라면 桓公(환공)을 春秋五覇(춘추오패)로 이끈 管仲(관중)을 꼽는데 이보다 100년 정도 뒤의 晏嬰(안영)도 못지않다. 키는 자그마했지만 3대의 왕을 직언으로 보필하여 晏子(안자)로 불리며 모두의 신망을 받은 거인이었다. 가정생활도 엄격하여 밥상에 고기반찬을 올리지 않았고 부인에겐 비단 옷을 입히지 않았다.

안영에 따르는 고사로 南橘北枳(남귤북지)가 있다. 강남에서 자라던 귤을 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고 환경의 중요성을 이를 때 자주 인용된다. 안영이 사신으로 楚(초)나라에 갔을 때 초왕이 제나라 출신 도둑을 끌고 와 그 나라엔 모두 이런 사람만 있느냐고 비꼴 때 재치 있게 받아낸 이야기다.

이와 함께 지략이 뛰어난 안영을 모욕주기 위해 수를 썼지만 번번이 당하는 데서 제나라 임치의 번화함을 묘사한 것이 있다. 키가 작아 볼품없는 안영이 사신으로 온 것을 두고 초왕이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답한다.

‘제의 수도 임치엔 7500가구나 사는데 지나는 사람들이 옷소매를 펼치면 태양이 가려져 그늘이 생기고, 땀을 닦아내면 마치 비가 오는 것과 같습니다(齊之臨淄三百閭 張袂成陰 揮汗成雨/ 제지임치삼백려 장몌성음 휘한성우).’ 마을 閭(려)는 25戶(호)를 묶은 단위, 300려는 7500호가 된다. 袂는 소매 몌. 바로 이어 나오는 말이 어깨가 서로 닿고 발뒤꿈치가 서로 연이어진다는 比肩繼踵(비견계종)이다. 이런 나라인데 사람이 없다니 하고 또 일침을 가했다. ‘晏子春秋(안자춘추)’에 나온다.

나라를 위하여 애쓰는 관료나 정치인들이 불철주야 땀 흘린다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걸핏하면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기 부서에 이득이 되면 행동이 재빨라 국민들의 신임을 잃었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363.html
kolaswqetsrq 11.02 20:07
만리장성萬里長城 - 중국 북쪽 변경의 성, 넘지 못할 장벽, 남녀 간의 정분

만리장성(萬里長城) - 중국 북쪽 변경의 성, 넘지 못할 장벽, 남녀 간의 정분

일만 만(艹/9) 마을 리(里/0) 긴 장(長/0) 재 성(土/7)

아주 긴 사물의 대명사 萬里長城(만리장성)은 달나라에서도 보인다는 중국 북쪽 지역의 성을 먼저 떠올린다. 秦始皇(진시황)때 변경을 방위하기 위해 완성했다는 이 성이 2700km에 달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여기에서 나와 우리 일상에서 여러 의미로 다양하게 응용된다. 서로 넘나들지 못하게 막는 긴 장벽이나 또는 창창한 앞날을 비유적으로 이르고, ‘하룻밤을 자도 만리성을 쌓는다’는 속담은 남녀가 잠깐 사귀더라도 깊은 정을 쌓을 수 있다는 뜻으로 잘 알려져 있다.

情人(정인) 끼리의 사랑에까지 쓰이게 됐더라도 유래는 물론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에서 비롯됐다. 秦(진)나라 때 변경을 경비하는 총사령관이었던 蒙恬(몽염, 恬은 편안할 념)이 시황제의 명으로 30만 병력으로 성을 쌓았다. 길이를 표현한 부분을 보자.

‘장성을 쌓으면서 지형과 산세의 기복에 따라 요새를 만들었는데 임조에서 요동까지 1만여 리가 됐다(築長城 因地形 用制險塞 起臨洮 至遼東 延袤萬餘里/ 축장성 인지형 용제험새 기림조 지요동 연무만여리).’ 臨洮는 현 간쑤성甘肅省/ 감숙성의 지역명, 袤는 길이 무.

간신 趙高(조고)의 음모에 의해 죽게 되는 몽염은 장성의 수축에 진시황의 명만 받들어 백성들을 죽도록 내몰았다고 사마천에게도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하룻밤의 만리성 이야기는 우리 속담을 한역한 丁若鏞(정약용)의 ‘耳談續纂(이담속찬)’에서 一夜之宿 長城或築(일야지숙 장성혹축)이라 표현하며 잠시라도 마땅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雖暫時之須 不宜無備/ 수잠시지수 불의무비)고 풀이했다.

조선 후기 학자 趙在三(조재삼)의 ‘松南雜識(송남잡지)’에는 ‘一夜萬里城(일야만리성)’이라 하여 왜구들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왔을 때 하루를 머물더라도 성을 쌓았다는 데서 왔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야기보다 젊은 색시가 국경의 장성 공사에 끌려간 남편을 빼내기 위해 머슴과 하룻밤을 같이 했다는 구전설화가 더 흥미를 끈다.

장성이 서로간의 넘나들 수 없는 장벽의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하룻밤에 쌓는 만리성은 아무리 일시적인 일이라도 성을 쌓아 적에 대비하듯이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받아들이면 좋다. 국제사회에서 빈번히 일어나듯 어제의 우방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고 오늘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사회에서의 대인관계에서도 조그만 이해관계에서 틀어지는 우의를 자주 본다. 오래 계속되지 않을 관계로 여겨져 함부로 대했다간 언제 화가 닥칠지 모르니 평시에 튼튼히 하라는 것이 만리성의 가르침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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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07
가슬석자 歌瑟析子 - 가수와 가인을 자식들에 나누다, 은퇴한 뒤 유유자적하다.

가슬석자 (歌瑟析子) - 가수와 가인을 자식들에 나누다, 은퇴한 뒤 유유자적하다.

노래 가(欠/10) 큰거문고 슬(玉/9) 쪼갤 석(木/4) 아들 자(子/0)

하던 일에서 타의로 손을 떼게 된다면 삶의 목적을 잃게 된다. 정년퇴직이란 누군가가 제멋대로 생각해낸 규정이란 말이 있다. 인간이 일할 능력이 어느 때부터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각 개인에 따라 다른 시기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반면 어느 정도 부와 명예를 이루고도 후진을 위해 용퇴하지 않는 것도 곱게 보아줄 일이 아니다.

후세의 기림을 받는 훌륭한 선비들은 낙향하여 悠悠自適(유유자적)한 생활을 한 사람이 많다. 老子(노자)는 ‘道德經(도덕경)’에서 ‘공을 이루고 나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이치(功遂身退 天之道也/ 공수신퇴 천지도야)’라고 했다.

노래하는 가수와 거문고타는 가인(歌瑟)을 자식들에게 나누어준다(析子)는 이 성어는 중국 前漢(전한) 초기의 학자 陸賈(육가)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육가는 시서를 좋아하고 변설에 능한 학자로서 高祖(고조) 劉邦(유방)의 빈객으로 천하평정에 큰 공을 세웠다. 말재주가 좋은 만큼 수시로 제후들에게 사자로 나갔는데 南越(남월)지역의 尉佗(위타, 佗는 다를 타)라는 사람을 잘 타일러 한나라에 복속시킨 공으로 천금을 선물 받았다. 고조의 신임도 얻어 탄탄대로를 달렸다.

유방이 죽고 왕후 呂太后(여태후)가 정권을 좌우하자 육가는 공신들과 힘을 합쳐 간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육가는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 두고 낙향했다. 그에게는 아들이 다섯 명 있었다. 육가가 남월에 사신으로 갔을 때 받은 천금의 보물을 팔아 아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자신은 편안히 지내려 했다.

그는 말 네 마리가 끄는 편안한 수레를 타고 가무와 악기에 능한 시종 열 명을 데리고 다녔다(陸生常安車駟馬 從歌舞鼓琴瑟侍者十人/ 육생상안거사마종가무고금슬시자십인). 駟는 사마 사. 그러면서 아들들에게 열흘 정도씩 돌아가며 머물도록 할 테니 자신이 죽는 집에서 말과 수레, 시종을 갖도록 하라고 말했다.

‘史記(사기)’ 酈生陸賈(역생육가) 열전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酈은 땅이름 력.

가장 잘 나가는 시기에 물러나 편안히 보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은퇴자들은 꿈도 못 꾼다. 국가발전을 위해 노력하고도 노후가 캄캄한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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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08
견선여갈見善如渴 - 착한 것을 보면 목마를 것같이 하라

견선여갈(見善如渴) - 착한 것을 보면 목마를 것같이 하라

볼 견, 착할 선, 같을 여, 목마를 갈

무엇을 보고(見) 어떻게 하라는 성어는 부지기수다. 유명한 것이 안중근 의사의 유묵 見利思義(견리사)와 見危授命(견위수명), 최영 장군의 좌우명 見金如石(견금여석) 등 모두 좋은 말이다. 서리 내린 것을 보고 얼음 얼 것을 아는 見霜知冰(견상여빙)은 사소한 것을 보고 변화를 감지한다는 見微知著(견미지저), 見小曰明(견소왈명)과 뜻이 통한다.

여기 좋은 의미의 성어 하나 더 추가하면 선한 일을 앞에 두고선(見善) 목마른 것같이 하라(如渴)는 이 말을 들 수 있다. 좋은 일을 적극 권장하는 말이다.

금언과 명구를 모아 놓은 책 ‘明心寶鑑(명심보감)’에 실려 전하는 말이다. 家有十盜(가유십도)에서 나왔던 대로 고려 충렬왕 때 예문관제학을 지낸 문신 秋適(추적)이 아동들의 학습을 위해 중국 고전에 나온 선현들의 말을 모두 19편으로 나눠 수록했다.

마음을 밝게 하는 보물과 같은 거울이라는 뜻으로 한문 초학자가 千字文(천자문)을 배운 다음 童蒙先習(동몽선습)과 함께 기초과정의 교재로 사용했다. 이 말은 제일 먼저 나오는 繼善篇(계선편)에 실려 있는데 여기엔 착한 자에게는 복이 오고 악한 자에게는 화가 미친다는 의미의 금언들이 등장한다. 부분을 보자.

중국 고대 周(주)나라의 명신 姜太公(강태공)이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태공이 말하길 착한 일을 보거든 목마를 때 물을 본 듯이 주저하지 말고 행하며, 악한 이야기를 들으면 귀머거리처럼 행동하라. 또한 착한 일은 탐내야 하며 악한 일은 즐기지 말라(太公曰 見善如渴 聞惡如聾 又曰 善事須貪 惡事莫樂/ 태공왈 견선여갈 문악여롱 우왈 선사수탐 악사막락)’.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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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09
양갱수미 중구난조羊羹雖美 衆口難調 - 양고기 국이 맛이 좋아도 모두의 입맛은 못 맞춘다.

양갱수미 중구난조(羊羹雖美 衆口難調) - 양고기 국이 맛이 좋아도 모두의 입맛은 못 맞춘다.

양 양(羊/0) 국 갱(羊/13) 비록 수(隹/9) 아름다울 미(羊/3) 무리 중(血/6) 입 구(口/0) 어려울 난(隹/11) 고를 조(言/8)

羊羹(양갱)이란 맛 좋은 과자는 팥 앙금에 설탕과 밀가루, 엿 등을 틀로 쪄서 굳힌 것이다. 그런데 왜 더 군침 돌게 양고기를 넣은 국이라 했을까. 중국에서 기원전부터 존재했던 양갱은 양의 피와 고기로 만들었고, 일본에 전해졌을 때 양고기를 넣은 국물로 만들어 요칸ようかん이란 이름이 붙었단다.

양갱도 좋고 양고기로 끓인 국도 맛이 좋을 텐데 입맛은 제각각이라 모두에 다 맞출 수는 없다. 양갱 맛이 아무리 좋아도(羊羹雖美) 여러 사람의 입맛을 골고루 다 맞추기는 어렵다(衆口難調)는 말은 저마다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을 지녔다. 억지로 다른 말이 나오는 입을 막았다간 탈이 난다.

이 성어가 널리 알려져 익숙하게 된 것은 이전 한자 교재였던 ‘明心寶鑑(명심보감)’에 실린 명구였기 때문이다. 고려의 秋適(추적)이 이전부터 전하던 금언과 명구를 모은 책인데 마음의 성찰과 방법에 대한 글들을 소개한 省心篇(성심편)에 나온다. ‘한 자의 구슬이 보배가 아니요, 오직 촌음을 다투어라(尺璧非寶 寸陰是競/ 척벽비보 촌음시경)’란 유명한 구절 뒤에 따른다.

이보다 앞서 이 말이 등장하는 곳은 중국 宋(송)나라 때 발간된 불교서적 ‘五燈會元(오등회원)’이라 한다. 傳燈錄(전등록), 廣燈錄(광등록) 이하 다섯 가지 선종 사서를 慧明(혜명) 등이 하나로 엮은 禪宗(선종)의 통사로 알려져 있다.

글이 실린 부분을 보자. 한 스님이 대사에게 가르침을 구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골고루 적셔 주는데, 어찌하여 여러 나무들은 가지런하게 자라지 않습니까(一雨所潤 爲什麼萬木不同/ 일우소윤 위십마만목부동)?’ 什은 열사람 십, 麼는 작을 마. 그러자 대사가 비유를 들어 답한다.

‘양고기 국이 아무리 맛이 있다고 해도 먹는 사람의 입맛에 다 맞추기는 어렵다(羊羹雖美 衆口難調/ 양갱수미 중구난조).’ 사람이 얼굴 모양이 각기 다르듯 성격과 호불호도 같을 수가 없다. 같은 말을 들어도 듣는 귀가 다르듯 이해하는 것이 다르고, 같은 물건을 다른 모양으로 본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 각자의 의견이 모두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윗사람이 아주 멋진 의견을 내어 부하 99명이 좋다고 한다. 단 한 명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반대를 할 때 무조건 묵살을 할 것인가. 아흔아홉 사람도 각기 정도가 다를 것인데 윽박지른 것일 수도 있고, 소수 의견이 옳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의견을 모아 일을 처리하는 것이 무난하다.

억지로 하면 牽强附會(견강부회)라 하고, 되지 않는 고집만 부리면 漱石枕流(수석침류, 漱는 양치할 수)라며 배척당한다. 결론이 나면 과감히 밀고 나갈 리더십이 필요하지만 내 의견만 항상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하면 분란만 일어난다. 정당에서나 노사관계서나 마찬가지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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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09
견토구폐犬兎俱斃 - 개와 토끼가 함께 죽다, 손해만 입고 제삼자가 이득을 보다.

견토구폐(犬兎俱斃) - 개와 토끼가 함께 죽다, 손해만 입고 제삼자가 이득을 보다.

개 견(犬/0) 토끼 토(儿/5) 함께 구(亻/8) 죽을 폐(攵/14)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 일을 쉽게 해낼 때 ‘땅 짚고 헤엄치기’라거나 ‘손 안 대고 코 풀기’란 속담을 자주 쓴다. 반대로 힘은 힘대로 쓰고도 손해만 입었을 때는 ‘게도 구럭도 다 잃었다’란 말이 있다. 게를 잡으러 갔다가 새끼로 만든 바구니 구럭까지 잃었으니 도로아미타불이다.

개와 토끼(犬兎)가 쫓고 쫓기다 함께 죽는다(俱斃)는 이 말은 유명한 비유인 만큼 같은 출전에서 비롯한 성어가 많다. 犬兎之爭(견토지쟁)이나 농부만 득보는 田父之功(전부지공), 양측 모두 손해만 입는 兩敗俱傷(양패구상) 등이 그것이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란 말을 낳았다는 ‘戰國策(전국책)’은 前漢(전한) 시대 학자 劉向(유향)이 당시 지략을 떨친 전략가들의 일화를 모은 책이다. 史記(사기)에 버금갈 정도로 고사가 풍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齊(제)나라에 淳于髡(순우곤, 髡은 머리깎을 곤)이란 대부가 있었다. 천한 신분에다 몸집도 왜소해 볼품이 없었지만 익살과 기지가 넘치는 변설로 제후를 섬겼다. 齊策(제책)에 실린 내용을 보자.

제나라의 宣王(선왕)이 강국 秦(진)과 대치하는 와중에 군대를 일으켜 魏(위)나라를 치려고 하자 순우곤이 나서 비유를 들어 간언했다. ‘한자로는 천하에 발 빠른 사녕개요, 동곽준은 약삭빠르기로 제일가는 토끼입니다(韓子盧者 天下之疾犬也 東郭逡者 海內之狡兎也/ 한자로자 천하지질견야 동곽준자 해내지교토야).

한자로가 동곽준을 쫓게 되어 산기슭을 세 번이나 돌고 산꼭대기를 다섯 번이나 오르내리느라 지쳐서 토끼가 먼저 쓰러지고 사냥개도 뒤따라 기진하여 두 마리 모두 죽었습니다(韓子盧逐東郭逡 環山者三 騰山者五 兎極于前 犬廢于後 犬兎俱罷/ 한자로축동곽준 환산자삼 등산자오 토극우전 견폐우후 견토구파).’ 이 두 마리를 지나가던 농부가 힘 안 들이고 주워갔다고 말해도 선왕이 알아듣지 못했다. 순우곤이 이어 지금 위나라와 전쟁을 벌이면 국력이 약해져 진나라만 농부와 같이 이득을 안겨 준다고 하자 왕이 깨닫고 정벌계획을 취소했다.

의견이 팽팽히 맞설 때 상대방의 이견은 수용할 수 없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시대엔 당쟁으로 뻔히 보이는 위험도 반대당이 의견을 낸 것이라면 죽기 살기로 거부하여 국난을 당한 경우가 잦았다. 오늘날엔 다를까.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국가의 원대한 계획도 상대방이 선점했다면 반대부터 한다. 주변에는 힘센 농부들이 득시글대는데도 아랑곳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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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10
관저복통官猪腹痛 - 관가 돼지 배 앓는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다, 혼자 끙끙 앓다.

관저복통(官猪腹痛) - 관가 돼지 배 앓는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다, 혼자 끙끙 앓다.

벼슬 관(宀/5) 돼지 저(犭/9) 배 복(肉/9) 아플 통(疒/7)

‘군자는 허물을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허물을 남에게서 구한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란 말이 있다. 論語(논어) 衛靈公(위령공)편에 있는 孔子(공자)님 말씀이다. 일이 잘못 되었을 때 원인을 밝혀 책임을 지면 좋으련만 대부분 ‘잘 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며 도무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서양 속담 ‘모두의 책임은 아무의 책임도 아니다’도 의미가 비슷하다. 책임을 명확히 나눠 지우지 않고 분산되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다.

어떤 일에 관계된 사람이 많으면 내가 아니라도 누가 하겠지 하며 서로 믿고 미루다가 결국 그르치게 된다. 적합한 속담이 ‘주인 많은 나그네 밥 굶는다’이다. 저 사람이 설마 해 주겠지 하고 내 미락 네 미락하다 보면 아무도 밥을 해 주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뜻이 통하는 속담으로 ‘관가 돼지(官猪) 배 앓는다(腹痛)’란 것이 있다.

관청에서 기르는 돼지는 먹을 것이 풍부하고 하인도 많아 신경 쓸 일이 적다. 배가 아파서 꿀꿀대도 다른 하인이 돌보겠지 미루는 통에 돼지만 죽어난다. 여기에서 자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무시하거나 또는 근심이 있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이 혼자 끙끙 앓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

속담을 번역한 성어라 첫 출전은 아니라도 제법 인용된 곳이 눈에 띈다. ‘承政院日記(승정원일기)’의 仁祖(인조) 편에는 관가에 납입되는 方物(방물) 갑옷이 제 물건이 아니라고 누구도 기름칠을 하지 않아 유사시에 쓰려면 성한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이 속담을 썼다.

조선 후기의 문신 趙曮(조엄, 1719~1777, 曮은 해다닐 엄)이 통신정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기록한 ‘海槎日記(해사일기, 槎는 뗏목 사)’에도 양국 간에 주고받았던 예물의 품목과 수량을 기록한 禮單(예단)에서 앞의 기록이 부실하다고 한탄한다. ‘이는 실로 전후에 온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는 마치 관청 돼지 배앓이를 보듯 하여 뒤에 올 사람을 깨우쳐 주지 않는 것이다(實由於前後之人 歸後視如官猪腹痛/ 실유어전후지인 귀후시여관저복통).’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서 예산을 흥청망청 쓴다. 내 돈이 아니라 나랏돈이니 주인이 없고,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다. 뒤에 감사가 나와 세심히 따져 본다고 해도 원님 떠난 뒤 나팔이다. 국책사업이나 한번 책정되면 손을 못 댄다는 복지사업에도 손이 모자라 새는 일이 부지기수다. 모두의 책임이 아니라 나의 책임이라는 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44.html
kolaswqetsrq 11.02 20:11
대분망천戴盆望天 - 물동이를 이고서 하늘을 바라보지 못한다,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하기 어렵다.

대분망천(戴盆望天) - 물동이를 이고서 하늘을 바라보지 못한다,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하기 어렵다.

일 대(戈/13) 동이 분(皿/4) 바랄 망(月/7) 하늘 천(大/1)

한 사람이 두 가지 일을 할 때 一人二役(일인이역), 또는 一身兩役(일신양역)이란 말을 쓴다. 게임이나 음악 연주에서의 멀티 플레이어(multiplayer)같이 능력이 있는 사람은 한꺼번에 두 가지 일보다 더 많은 일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할 수 없는 것이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戴盆) 하늘을 바라보는(望天) 일이다.

머리에 물동이를 얹고서 하늘을 바라볼 수는 없고 억지로 보려다가는 물이 와르르 쏟아진다. 두 가지를 잘한다는 사람도 한 가지가 더 뛰어날 것이며 욕심내어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이루려 하다간 되레 망칠 수가 있다.

불후의 紀傳體(기전체) 역사서 史記(사기)를 남긴 司馬遷(사마천)은 중과부적으로 흉노에 사로잡힌 친구 李陵(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생식기를 잘리는 宮刑(궁형)을 당했다. 치욕스런 나날을 죽은 듯이 보내는 그에게 이번에는 任安(임안)이란 친구에게서 도움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자가 少卿(소경)인 친구는 前漢(전한) 武帝(무제)때 일어난 巫蠱(무고, 蠱는 독벌레 고)의 난에 휩쓸려 억울하게 처형될 위기에 처했다. 딱한 처지에 있는 사마천도 답을 미루면 한이 될 것 같아 쓴 것이 ‘報任少卿書(보임소경서)’다. 자신이 청을 들어줄 입장이 아니란 것을 구구절절 설명한 부분에 성어가 나온다.

사마천은 구차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은 선친의 유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며 말한다. ‘나는 물동이를 이고 어떻게 하늘을 볼까 하는 속담을 옳게 여겨 손님과의 왕래도 끊고 집안일도 잊어 버렸습니다(僕以爲戴盆何以望天 故絶賓客之知 亡室家之業/ 복이위대분하이망천 고절빈객지지 망실가지업).’ 임안은 마음에 위로는 됐겠지만 그 얼마 뒤 허리가 잘리는 腰斬刑(요참형)을 당했다.

같은 말은 아니라도 비슷한 뜻의 재미있는 비유가 있다. ‘오른손으로 원을 그리고 왼손으로 사각형을 그리면 모두 이룰 수 없다(左手畵圓 右手畵方 不能兩成/ 좌수화원 우수화방 불능양성)’는 말은 韓非子(한비자) 功名(공명)편에 있다.

說苑(설원) 談叢(담총)편에는 ‘왼쪽이 길면 오른쪽은 짧을 수밖에 없고, 밤에 누워 뒤척이기 좋아하는 자는 아침 일찍 일어날 수가 없다(長於左者 必短於右 喜夜臥者 不能蚤起/ 장어좌자 필단어우 희야와자 불능조기)’는 말이 나온다. 벼룩 蚤(조)에는 일찍 早(조)의 뜻도 있다.

다방면에 두루 재능을 떨치는 八方美人(팔방미인)은 필시 어느 부분에선 수준 이하의 성적을 받는다.

양손에 떡이 있다고 한꺼번에 먹다간 체한다. 두 가지 일이 닥쳤을 때 우물쭈물 선후를 가리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도 없으면서 한꺼번에 하려다간 모두 실패한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부터 확실하게 처리해야 뒤탈이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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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11
국생麴生 - 술의 다른 이름

국생(麴生) - 술의 다른 이름

누룩 국(麥/8) 날 생(生/0)

술에는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 제아무리 斗酒不辭(두주불사)하는 사람이라도 나중에는 취한다. 양을 적당히 조절할 줄만 알면 심신에 도움을 줘 百藥之長(백약지장)이라고 떠받든다. 애주가들이 주로 내세우는 말이지만 옛날 중국 前漢(전한) 때의 東方朔(동방삭)부터 근심을 없애는 데는 술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했으니 역사도 오래다.

歸去來辭(귀거래사)의 시인 陶淵明(도연명)도 온갖 시름을 잊게 해 준다고 忘憂物(망우물)이라 표현했다. 그렇더라도 음주는 일시적인 자살이라고 표현한 사람도 있고 보면 어디까지나 지나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술을 달리 麴生(국생)이라고도 부른다. 술은 누룩으로 만들기 때문에 학자나 학생을 뜻하는 生(생)을 붙여 높였다. 쌀이나 밀, 콩 등을 갈아 띄운 것에 누룩곰팡이를 번식시켜 막걸리와 청주 등의 발효주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존재이니 높일 만하다. 어려운 말로 麴子(국자), 銀麴(은국), 麴蘖(국얼, 蘖은 싹 얼)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唐(당)나라 문인 鄭棨(정계, 棨는 창 계)가 쓴 일화집 ‘開天傳信記(개천전신기)’에 처음 등장한다. 葉法善(섭법선)이란 사람이 손님들을 초청하여 대접하려는데 불청객이 나타나 거만하게 상석에 앉았다. 주인이 내쫓으니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져 병으로 변했다. 자리에 있던 사람이 놀라 병을 들여다보니 술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모두 함께 마시고는 취하여 병을 어루만지며 말한다. ‘국생의 풍미는 잊을 수 없소(麴生風味 不可忘也/ 국생풍미 불가망야).’

이런 황당한 이야기 말고 고려 때의 사물을 의인화한 假傳體(가전체) 소설에 훌륭한 작품이 있다. 중기와 후기에 걸쳐 활약했던 仁宗(인종) 때의 林椿(임춘)은 ‘麴醇傳(국순전)’을 남겼고, 高宗(고종) 때의 명문장가 李奎報(이규보, 1168~1241)는 ‘麴先生傳(국선생전)’을 썼다. 이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지명은 모두 술과 관련된 한자를 골랐다. 임춘의 작품에서 국순은 집안도 좋고 도량이 커 모든 사람의 기운을 더해주는 재주를 가졌으나 재물을 밝히는 병통이 있어 임금의 총애를 잃고 몰락했다.

이규보의 국선생은 총명하고 뜻이 커서 임금의 총애를 받고 도적들이 발호할 때 토벌하는 공도 세웠다. 술을 풍자한 두 작품은 임춘의 국순이 부정적으로 본 반면 이규보의 국선생은 긍정적으로 나타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술이 약이 된다고 찬미하든 해롭다고 멀리하든 어디까지나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넘치지 않는 것이 좋다. 술로 인한 사고나 범죄는 정도가 지나친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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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12
■ 토정비결과 이지함 4편

■ 토정비결과 이지함 4편

《어우야담》의 다음 기록은 이지함의 캐릭터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묵한 길에 흙을 쌓아 가운데 높이가 백 척이나 되는 흙집을 짓고 이름을 토정이라 하였다. 밤에는 집 아래서 자고 낮에는 지붕 위에 올라가 거처하였다. 또 솥을 지고 다니기가 싫어 쇠로 관(鐵冠)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밥을 지어 먹고 씻어서 관으로 쓰고 다녔다. 팔도를 두루 유람하면서도 탈것을 빌리는 일이 없었다. 스스로 천한 사람의 일을 몸소 겪어 보지 않은 것이 없었노라고 여겼는데, 심지어 남에게 매 맞기를 자청해 시험해 보려 하였다.』

이지함이 민간에 친숙한 인물이었다는 점은 야사류의 책에 그에 관한 기록이 풍부한 데서도 증명된다. 《대동기문》에는 이지함이 스스로 상업행위에 종사한 일과 거지 아이에게 옷을 벗어 준 일화 등이 소개되어 있으며, 《동패락송》에는 이지함이 괴상한 행동을 하다가 노인의 놀림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계집종의 유혹을 물리친 일화, 간질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했다는 이야기, 음률(音律)을 아는 이인(異人)과 장도령을 만난 이야기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일화는 모두 이지함이 민간에서 격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 자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 응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지함은 스스로에게는 철저히 엄격했으나, 일반 사람을 접하는 데는 매우 온화하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기질 또한 민중들을 쉽게 만나는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토정비결》과 함께 그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널리 회자하는 것은 어려운 시대에 고통 받는 백성들의 삶 속으로 직접 뛰어 들어가 그들의 고통을 직접 듣고, 어려움을 해결한 그의 행적이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토정비결》이 왜 많은 학자들이나 기인(奇人) 중에서 하필 이지함의 이름을 빌렸는지 그 이유가 설명된다. 이지함은 때로는 사람들의 신수와 관상을 봐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했다. 점술(占術)이나 관상비기(觀象秘記)에 능했던 그가 백성들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모습이 후대에도 각인되면서, 《토정비결》을 쓴 사람이 이지함이라고 차용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지명도가 높은 사람의 이름을 내세우면 훨씬 관심이 커지는 것은 동서고금의 공통된 진리다. 16세기 그가 살던 시대는 물론이고 이후의 시대까지도 백성들에게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하던 이지함의 이름을 빌림으로써, 현재까지도 새해 우리들의 삶 속에 빠지지 않는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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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13
■ 토정비결과 이지함 3편

■ 토정비결과 이지함 3편

이지함은 매우 개방적인 사람이었다. 신분이 미천한 사람이라도 능력이 있으면 문인으로 받아들였으며,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격의 없이 사람들과 어울렸다. 이지함은 전국을 유랑하며 현지 주민들에게 장사하는 법과 생산기술을 가르쳤으며, 자급자족 능력을 기를 것을 강조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접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쳤다. 자급자족의 기반을 마련해주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 걸인청(乞人廳)을 설치했다.

이지함은 탁월한 장사꾼이었다. 그는 수완이 좋아 장사를 할 때마다 매번 많은 이윤을 남겼다. 그러나 이지함(李之菡)은 자기 자신을 위해 돈을 번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장사를 해서 번 돈을 곡식으로 바꾸어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 무인도에 들어가 박을 심어 수만 개를 수확해 바가지를 만들어 곡물 수천 석과 교환하여 빈민을 구제하기도 했다. 이렇듯 백성들과 함께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모습이 후대에도 길이 기억되면서 이지함은 《토정비결》의 주인공으로 남았고, 현재까지 그 이름이 회자(膾炙)하고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토정비결》에 투영된 이지함의 사상과 주장은 그의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렸고, 백성의 편에 서서 살았던 한 지식인으로 후대에까지 널리 기억하게 하고 있다.

이지함(李之菡)은 사화(士禍)의 소용돌이 속에 출사(出仕)를 단념했으나, 잠깐 동안 경기도 포천 현감을 하면서 남긴 기록이 있다.

『포천현의 형편은 어미가 없는 고아(孤兒) 비렁뱅이처럼 오장(五臟)이 병들어서 온 몸이 초췌하고 고혈(膏血)이 다하였으며, 피부가 말랐으나 죽게 되는 것은 아침 아니면 저녁입니다.』

한양에서 가까운 경기도의 형편이 이러 하였으니 다른 곳은 얘기할 것도 없었다. 이러한 백성들의 비참한 삶을 직접 접한 이지함(李之菡)은 조정에 땅이며 바다를 따질 것 없이 개발하여 국부(國富)를 늘리고, 백성들을 자급하게 하는 것만이 깊어진 병통을 치유하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조정의 썩어빠진 관료들은 그의 주장을 콧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토정유고》를 비롯하여 《연려실기술》이나 《어우야담》 등의 기록에 나오는 이지함에 관한 일화들은 백성들의 편에 섰던 이지함의 치밀한 계획과 적극적인 실천 모습이 나타나 있다. 명문가 출신의 선비가 백성의 이익을 위해 말업(末業)으로 치부되던 수공업·상업·수산업에 직접 종사했던 것은 참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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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13
■ 토정비결과 이지함 2편

■ 토정비결과 이지함 2편

《토정비결》은 주역(周易)의 이치를 응용하여 한 해의 운수를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이다. 그러나 《토정비결》은 주역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주역과는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주역의 기본 괘는 64개인데, 《토정비결》에는 48개의 괘만이 사용되고 있다. 괘를 짓는 방법도 달라서 이른바 사주 가운데 시(時)를 뺀 연(年), 월(月), 일(日)을 사용할 뿐이다. 조선시대 민간에는 시계가 없어 시간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편의를 도모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토정비결》은 주역을 이용하면서도 조선적인 특성과 백성들에 대한 편의를 십분 고려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점괘의 총수도 주역과는 다르게 됐다. 주역에는 총 424개의 괘가 있으나 《토정비결》은 총144개의 괘뿐이다. 훨씬 간편하다고 할 수 있다. 《토정비결》은 열두 달의 운수를 시구(詩句)로 적어 놓았다. 총6480구로 구성되었으며, ‘동쪽에서 목성을 가진 귀인이 와서 도와주리라’ ‘관재수가 있으니 혀끝을 조심하라’는 식이다. 간단명료한 글귀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점괘다. 항목마다 길흉이 적절한 비율로 배합돼 있어 낙관도 아니고 실망도 아닌 내용이 많다. 결과적으로 《토정비결》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며,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다. 그런 점에서 《토정비결》은 운수를 판별하는 데 중점이 있다기보다 일반 민중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저술된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이처럼 이지함은 이색을 배출한 한산 이씨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권위를 내세우거나 위선을 떨지 않았다. 행색도 나막신을 신고 머리에 솥을 뒤집어쓰고 돌아다녔다. 한눈에 딱 보면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 정상적인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과거를 포기하고, 생애의 대부분을 처사의 삶을 살면서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이러한 유랑생활을 통하여 생활고에 시달리는 많은 백성을 접하였다. 그의 사회경제사상의 핵심이 민생문제 해결에 있었던 것도 이러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
이지함(李之菡)은 학문에만 조예가 깊은 것이 아니라 천문, 지리, 의학, 산수, 소리에 능했다. 뿐만 아니라 관상, 신방(神方), 비결(祕訣) 등 모르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박학다식한 인물이었다. 이지함(李之菡)은 농촌 경제에만 국한되지 말고 상업, 수공업, 유통경제의 활성화를 통해 전반적인 국가의 부를 창출하고 그 혜택이 백성들의 생활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실학사상을 주장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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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14
■ 토정비결과 이지함 1편

■ 토정비결과 이지함 1편

언제부터인가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土亭秘訣)’을 보는 것이 대표적인 풍습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아주 오래된 전통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조선시대 새해 풍습을 기록한 문헌에는 이런 사실이 등장하지 않는다. ‘토정’이라는 호의 주인공이 조선시대 학자 이지함(李之菡:1517~1578년)임을 아는 사람은 이 책을 당연히 그의 작품으로 믿고 있다. 《토정비결(土亭祕訣)》은 이지함(李之菡)이 의학(醫學)과 복서(卜筮:갈흉을 점침)에 능하다는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찾아와 1년의 신수를 보아 달라는 요구로 지은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여러 연구에 의하면 《토정비결》은 이지함의 이름을 빌려서 저술된 책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여 진다.

《토정비결》이 이지함의 이름을 후대에서 빌려 썼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는 숙종 때 그의 현손 이정익(李楨翊)이 이지함의 유고를 모은 문집인 《토정유고》를 간행할 때 《토정비결》을 포함하지 않은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토정비결》이 이지함이 세상을 떠난 16세기가 아닌 300여년 지난 19세기 후반에 널리 퍼진 점도 가탁설(假託說:이름을 빌려 썼다는 설)을 뒷받침해준다.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조선 후기 풍속 전반이 기록돼 있는데, 새해 신수를 보는 점으로 오행점(五行占)이 언급됐다.

정조 때 유득공이 서울의 세시풍속을 적은 《경도잡지(京都雜志)》에도 새해 풍속 부분에 ‘윷을 던져 새해의 길흉을 점친다’는 기록이 있지만 《토정비결》에 대한 언급은 없다. 《토정비결》이 조선시대에 유행했다면 위에서 언급한 책에 당연히 기록됐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토정비결》은 16세기를 살았던 이지함이 지은 게 아니라 후대의 누군가가 이지함의 명성을 빌려 쓴 책으로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토정비결》에는 이지함의 사상과 유사한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토정비결》의 저자(著者)로 알려진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은 조선시대 실학의 선구자였으며, 기인(奇人)으로 알려져 있다. 이지함의 자는 형백 호는 토정,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이지함은 고려 말의 성리학자 이곡과 이색을 배출한 명문가의 후손으로, 이색은 이지함의 7대조가 된다. 이곡과 이색은 고려 말과 조선 초에 걸쳐 문명(文名)을 떨쳤으며, 이색의 아들 종선은 관직이 좌찬성에 이르렀다. 이후 이지함의 가문의 영예는 조금 퇴색하는데, 조부 장윤과 부친은 각각 현감과 현령 직에 머물렀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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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15
■ 여류시인 이옥봉 5편

■ 여류시인 이옥봉 5편

조원의 고손자인 조정만(趙正萬)이 남긴 《이옥봉행적》에 그녀에 대한 행적이 일부 남아 있으며 《명시종(明詩綜)》 《열조시집(列朝詩集)》 《명원시귀(名媛詩歸)》등에 그녀의 작품이 전하고 있다.

《閨情(규정)》

『有約郞何晩(유약랑하만) 약속을 해 놓고 임은 어찌 이리 늦나

庭梅欲謝時(정매욕사시) 뜰에 매화는 다 지려고 하는데

忽聞枝上鵲(홀문지상작) 갑자기 가지 위에서 까치소리 들리니

虛畵鏡中眉(허화경중미) 헛되이 거울 보며 눈썹 그리네』

이 시에는 온다고 한 때가 지나도 오지 않는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에 의지하여 오늘은 혹시 임이 올까 헛된 기대 속에 화장을 하는 여인의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시이다.

《閨恨(규한)》

『平生離恨成身病(평생이한성신병) 평생 이별의 한이 몸의 병 되어

酒不能療藥不治(주불능료약불치) 술도 달래지 못하고 약으로 고칠 수도 없네

衾裏泣如氷下水(금리읍여빙하수) 얼음 밑 흐르는 물처럼 이불 속에서 눈물 흘리니

日夜長流人不知(일야장류인부지) 밤낮을 울어도 사람들은 모르리』

평생 이별의 한이 깊어 이제는 몸에 병이 되었다. 이별로 인한 병은 술이나 약으로는 달랠 수 없다. 그 병은 오직 임만이 고칠 수 있는 것인데, 임은 볼 수 없으니 밤낮으로 이불 속에서 울 수밖에 없다. 이별의 슬픔이 한으로 이어져 끝내 병을 얻은 애처로움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옥봉의 시에는 임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시가 많다. 소실이라는 신분 자체가 임을 기다리고 그리워해야 하는 처지인데다가 친정으로 쫓겨난 처지여서 임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남존여비 사회구조에서 동시대 어느 누구보다도 사랑과 이별을 아프게 노래한 여류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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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16
■ 여류시인 이옥봉 4편

■ 여류시인 이옥봉 4편

이옥봉은 서녀였지만 왕족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생활을 했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시를 짓기도 한 멋진 여인이었다. 그러나 사랑이 깨지자 그녀의 삶도 같이 침몰해버렸다. 이는 섬세한 시인의 영혼이 감당할 수 없는 시련에 부딪쳐 일어난 비극일 것이다. 옥봉은 중국 명나라에까지 시명이 알려진 여류시인으로서, 그녀의 시는 맑고 씩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중국과 조선에서 펴낸 《시선집(詩選集)》에는 허난설헌의 시와 나란히 실려 있다.

삼척 ‘죽서루’는 조선 시대의 누각이다. 문화재 지정 보물 제213호이며 건립 시기는 1403년으로 정면 7칸, 측면 2칸의 겹처마가 팔작지붕 건물이며 삼척시의 서쪽에 흐르는 오십천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다. 17개의 원형 기둥 위에 세워진 죽서루는 자연 암반 위에 자연 친화적으로 지어져 있었다. 삼척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오십천의 하천 경관 중에서 가장 절경을 이루는 장소로 알려진 곳이며, 이옥봉과 인연이 있는 곳이다. 낭군인 조원이 삼척부사(1583년-1586년)로 부임할 때 부실(副室:첩)로 따라와 ‘죽서루’란 시를 남긴다.

『江涵鷗夢濶(강함구몽활) 강에 잠긴 갈매기 꿈은 넓고도 넓고

天入雁愁長(천입안수장) 하늘을 나는 기러기의 시름은 길기도 길어라』

이 시를 읽고 조선 중기 문신이며, 영의정을 지낸 신흠(1566-1628)은 그의 시비평집인 《청창연담》에서 “고금의 시인 중에 누구도 이에 비견될 시구를 지은 적이 없다.”라고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천고의 절창(絶唱)이라 거침없이 표현했다.

이옥봉은 그다지 많은 작풍을 남기지는 못했으나 현존하는 이옥봉의 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몽혼(夢魂)’이다. 《자술(自述)》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린다. 사랑하는 부군 조원을 생각하여 단장(斷腸)의 아픔으로 쓴 이 시는 유작(遺作) 32편 가운데 백미(白眉)라고 평가된다.

『近來安否問如何 요즈음 안부를 여쭈노니 어떠하신지요

月到紗窓妾恨多 달빛이 창가에 비치니 신첩의 슬픔이 많답니다.

若使夢魂行有跡 만일 꿈 속에서 넋의 발자취가 남는다면

門前石路半成沙 문전 돌길이 모래길로 바뀌었을 겁니다.』

임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자신에게 누군가 근래의 안부를 묻자 그는 한이 많아 결코 편하게 지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임에 대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겹겹이 맺힌 한을 풀기 위해 꿈속에서 문 앞의 돌길이 모래가 되도록 수없이 임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헛된 행동을 반복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안타까운 여심이 전해지는 작품이다.

-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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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16
■ 여류시인 이옥봉 3편

■ 여류시인 이옥봉 3편

이 ‘탄원서 사건’을 알게 된 조원은 옥봉을 불러 크게 꾸짖고, 아녀자가 허락도 없이 함부로 약속을 깨고 글을 썼다하여 친정으로 쫓아내 버렸다.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 버림받고 쓰고 싶은 시도 마음껏 쓰지 못하게 된 그녀에게 삶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임란 직전 남편으로부터 내쳐진 이후로는 종적마저 묘연해진다. 언제 어떻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실학자 지봉 이수광(芝峰 李睟光:1563~1628)이 지은 지봉유설(芝峯類說)에 흥미로운 기록이 전한다.

『조원의 아들인 승지 조희일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원로대신으로부터 시집 한 권을 받는다. 놀랍게도 이옥봉 시집이었다. 옥봉은 부친 조원의 첩으로 대신이 들려준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40여년 전 바닷가에 괴이한 주검이 떠돌아 사람을 시켜 건져 올리도록 했다. 주검은 종이로 수백 겹 말려 있었고, 안쪽 종이엔 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시가 빼어나 책으로 엮었다. 말미엔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라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기록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불확실하다는 견해이다. 하지만, 이수광은 전주 이씨 집안으로 옥봉과 동 시대의 인물이며, 당시 옥봉의 문재(文才)는 시중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중국을 다녀온 조원의 아들을 통해 이 비극적인 사연을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삶의 희망을 잃은 옥봉은 창호지에 빽빽하게 쓴 시 두루마리를 온몸에 칭칭 동아줄로 감은 채 바다에 몸을 던졌고, 그 시신이 조류에 밀려 중국의 해안가에서 발견된다. 그때 중국의 원로대신들이 옥봉의 시를 보고 감탄한 나머지 그 시들을 모아 한 권의 시집으로 만들었고, 그 시집이 중국에 갔던 조선의 사신들에게 전해져 조선에 들어왔다. 그리고 숙종 30년에 간행된 시문집 《가림세고(嘉林世稿)》 부록에 《옥봉집》으로 그 작품이 실려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해서 사라질 뻔 했던 이옥봉의 시 32편이 조선에 다시 전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시 중에는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싸웠던 신립에게 보낸 시도 있다. 신립이 함경도에서 여진에게 승리한 뒤에 보낸 것이라 알려져 있다.

『장군의 호령은 번개 바람처럼 급한데

수많은 수급 내걸리니 그 기세 웅장해라.

북소리 울려 퍼지는 곳에 쇠피리 소리도 나니

달은 푸른 바다에 잠기고 어룡이 춤추네.』

이런 시를 쓴 때문인지, 허균은 이옥봉의 시를 가리켜 맑고 장엄하여 아녀자의 연약한 분위기가 없다고 평했고, 홍만종도 이옥봉이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라고 칭송한 바 있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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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20.html
kolaswqetsrq 11.02 20:17
■ 여류시인 이옥봉 2편

■ 여류시인 이옥봉 2편

운강 조원은 남명(南冥) 조식(趙植)의 문인으로 1564년 진사시에 장원급제하여 1575년 정언이 되었으며, 이조좌랑, 삼척부사를 거쳐 1593년 승지에 이르렀다. 조원(趙瑗)의 첩으로 들어간 옥봉은 한양으로 올라왔고, 이후 다른 소실들과 서신으로 예술적 교류를 나누거나 장안에 내노라하는 문객들과도 교류를 하였다. 옥봉은 운강 조원이 괴산군수, 삼척부사 등 외직에 나갈 때 동행했으며, 운강은 옥봉의 글재주를 인정하여 그의 친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도 글을 짓게 하였다. 옥봉은 당대 문인들에게도 시적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조원의 친구 윤국형(尹國馨) 또한 지사(智士)의 기개가 엿보이는 그녀의 시에 감탄하였다고 전해진다.

옥봉 또한 자신의 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妙譽皆童稚(묘예개동치) 묘한 재주 어릴 적부터 자랑스러워

東方母子名(동방모자명) 동방에 우리 모자 이름 날렸네

驚風君筆落(경풍군필락) 네가 붓을 대면 바람이 놀라고

泣鬼我詩成(읍귀아시성) 내가 시를 지으면 귀신이 운다네』

이 시는 옥봉이 운강의 정실부인에게서 난 아들에게 보낸 시로, 아들과 자신의 문재(文才)에 대한 자긍심을 표출하고 있다. 운강에게는 희정(希正), 희철(希哲), 희일(希逸), 희진(希進) 네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 시가 누구에게 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들 모두 글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는 먼저 아들이 쓴 글씨의 위력을 칭찬한 뒤, 뒤이어 자신의 글 솜씨 역시 뛰어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10여년 후, 이웃집 여인이 남편인 산지기가 억울하게 소도둑으로 누명을 쓰고 붙잡혀 가자, 절필 약속을 깨고 파주 목사에게 시 한 수를 지어 탄원서를 보냈다.

洗面盆爲鏡(세면분위경) 세숫대야로 거울을 삼고

梳頭水作油(소두수작유) 물을 기름 삼아 머리를 빗네

妾身非織女(첩신비직녀) 첩의 몸이 직녀가 아닌데

郞豈是牽牛(랑기시견우) 임이 어찌 견우이리오

이 시는 칠석날 설화의 주인공인 견우와 직녀에 빗대, 아내가 직녀가 아니듯 남편도 견우가 아닌데 어찌 소를 끌고 갔겠느냐는 재치 있는 내용이었다. 시를 받아 든 형조의 당상관은 뛰어난 글 솜씨에 감탄해 사내를 풀어주었다고 한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49.html
kolaswqetsrq 11.02 20:17
■ 여류시인 이옥봉 1편

■ 여류시인 이옥봉 1편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이라면 황진이, 허난설헌, 신사임당을 말한다. 그 중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은 한시(漢詩)를 썼고, 황진이는 시조(時調)를 지었다. 그런데 이옥봉이라는 시인을 조선 3대 여류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는 사람도 있다. 이는 이옥봉이 한시를 썼기 때문에 시조를 지은 황진이 대신 허난설헌, 신사임당, 이옥봉 세 사람을 조선 3대 여류시인으로 꼽는 것이다. 물론 시조도 운문이기 때문에 시와 같은 장르에 포함시키기는 하지만, 한시와 시조는 형식 자체가 엄연히 다르다. 따라서 이옥봉을 조선 3대 여류시인으로 지칭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조선 시대 여류시인은 한결같이 주옥같은 시와 명문장을 남겼지만, 신분이나 여성이라는 차별적인 상황으로 내밀한 사적 생애의 자취는 많이 가려져 있다. 이중 이옥봉은 특히나 불행하고 비극적인 생을 살다 간 여성으로 평가받으면서도, 우리에게 가장 낯선 인물일 만큼 생년(生年)과 졸년(卒年)이 불분명하고 생애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가혹한 가부장제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그녀의 천부적 재능은 저주받은 축복이자 삶을 옥죄는 형벌이었던 셈이다.

서녀(庶女)로 태어나 스스로 소실(小室:첩)의 삶을 택했던 옥봉은 결국 자신이 쓴 한 편의 시로 인해 사랑하는 남편에게서조차 버림받은 채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미천한 출신 성분으로 인해 우리들에게 다소 생소한 인물이지만, 그녀가 지은 한시를 읽어보면 비범(非凡)한 시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옥봉의 시는 조선보다는 오히려 중국과 일본에서 더 알려지게 되었다.

이옥봉의 아버지는 이봉으로 양녕대군의 고손자(高孫子)였다. 이봉은 유성룡, 정철, 이항복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문장가였고,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으로 조헌 등과 함께 싸운 인물이다. 이옥봉은 이봉의 서녀로 본래 이름은 숙원, 또는 원이었다. 옥봉은 그녀가 직접 붙인 호(號)이다. 이봉은 영특한 딸을 애지중지하며 길렀다. 점차 자라면서 장안의 명사들과 어울리며 뛰어난 시를 읊어 유명 인사가 되었다.

옥봉은 자신이 서녀의 신분이었기에 정식 중매를 넣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뛰어난 문장력을 가진 이옥봉은 배필로도 뛰어난 문장가를 맞이하고 싶었다. 학식과 인품이 곧은 명문가 자제이자 진사 시험에 장원급제한 ‘조원’이란 인물을 사모해 스스로 소실이 되기를 청했다. 이에 부친 이봉은 친히 조원을 찾아가 딸을 소실로 받아줄 것을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조원의 장인인 판서대감 이준민(李俊民)을 찾아가 담판하고 비로소 받아들여졌다. 조원은 첩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앞으로는 함부로 시를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했다. 아내가 시를 짓는 것은 남편 체면을 깎아내린다는 이유였다. 전형적인 남존여비 사상의 극치였다. 옥봉은 사랑을 위해 절필(絶筆)을 약속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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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18
■ 허난설헌 6편

■ 허난설헌 6편

그녀가 죽자 남동생 허균은 그를 그리워하며 추모하는 시 한수를 남겼다.

『옥(玉)이 깨지고 별이 떨어지니 그대의 한 평생 불행하였다.

하늘이 줄 때에는 재색을 넘치게 하였으면서도

어찌 그토록 가혹하게 벌주고, 속히 빼앗아 가는가?

거문고는 멀리 든 채 켜지도 못하고

좋은 음식 있어도 맛보지 못하였네.

난설헌의 침실은 고독만이 넘치고

난초도 싹이 났건만 서리 맞아 꺾였네.

하늘로 돌아가 편히 쉬기를

뜬 세상 한순간 왔던 것이 슬프기만 하다.

홀연히 왔다가 바람처럼 떠나가니

한 세월 오랫동안 머물지 못했구나.』

그녀의 남편 김성립은 허난설헌 사후 남양 홍씨와 재혼하였지만, 곧이어 터진 임진왜란에서 의병으로 싸우다 전사하였다. 후일 그의 남편 김성립이 가선대부 이조참판에 추증되면서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된다. 고부 갈등과 남편과의 불화로 당대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사대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재평가되어 그녀를 규방의 유일한 시인이자 뛰어난 천재로 인정하기 시작했으며, 영조, 정조 이후에 중인과 평민 등도 문학과 시조 작시 등의 활동에 참여하면서 작품성과 천재성에 대한 평가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허난설헌의 존재가 독특한 것은 그녀가 사대부가의 여인이었으며, 그녀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 당시 강조되던 현모양처로서의 부덕을 갖추었다거나 성공한 자식을 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올곧게 그녀가 창작한 시의 탁월함 때문이었다는 데 있다. 허난설헌은 왜곡된 형태이긴 하나 제한적으로 사회활동이 자유로워 문재를 뽐내는 것이 가능하던 황진이 같은 기생도 아니었고, 화가로서 탁월한 재능이 있었지만 율곡 이이같은 훌륭한 자식을 길러낸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신사임당처럼 부덕을 상징하는 여인도 아니었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시로서 그 이름을 남겼고, 훗날 중국과 일본으로 건너가 많은 지식인 문인들에게 격찬을 받으며 오랫동안 애송되었다.

‘허난설헌묘’는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지월리 산 29-5에 있다. 현재의 위치에서 약 500m 우측에 있었으나 1985년 현 위치로 이전되었다. 문인석을 제외한 묘비·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상석·망주석·둘레석은 근래에 만들어졌다. 묘비의 비문은 이숭녕이 지은 것이며, 묘의 우측에는 1985년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에서 세운 시비(詩碑)가 서있다. 시비에는 허난설헌의 곡자시(哭子詩)가 새겨져 있으며 시의 대상인 두 자녀의 무덤이 난설헌묘 좌측 전면에 나란히 있다. 1986년 5월 7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9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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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19
■ 허난설헌 5편

■ 허난설헌 5편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수많은 시를 썼으나, 죽기 직전 방 안에 가득했던 자신의 작품들을 모두 소각시켰다. 남아서 전하는 것은 친정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을 허균이 수습한 213수의 시뿐이다. 누이가 죽은 이듬해인 1590년 허균은 친정에 남아 있던 누이의 시와 평소 자신이 외우고 있던 시를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허균(許筠)은 누이 허난설헌의 시집을 발간할 생각으로 이 원고를 당시 문호(文豪)였던 류성룡에게 보여 주었고, 류성룡은 그녀의 시를 크게 평가 하고 소중히 간직하여 반드시 후세에 전하도록 허균에게 조언 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명이 조선에 원병을 파병했을 때, 그 군대와 같이 온 사신이 오명제였고, 사신 오명제를 맞이한 인물이 바로 허균(許筠)이었다. 조선의 시와 문장을 수집하고 있던 오명제에게 허균은 다른 조선 문인들의 시와 함께 허난설헌의 시 200여 편을 건네주었다. 명나라로 돌아간 오명제는 1600년 이 시들을 모아 《조선시선》을 출판했고, 중국의 문인들은 허난설헌의 시를 보고 감탄하였고, 중국의 여류시인들은 앞다투어 그녀의 시를 애송했다. 명나라의 시인 주지번은 《난설헌집》을 간행했다. 이 시집은 명에서 큰 호응을 얻은 뒤 조선으로 역수입되어 읽히기 시작되어, 국내에서도 그녀의 시는 시화(詩話)나 시평을 통해 널리 소개되었다. 어떤 시화에서는 격조 면에서 허봉이나 허균의 시가 모두 그녀의 시에 미치지 못한다고 극찬을 했다. 18세기 초 일본에서도 1711년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郎)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어 당대의 세계적인 여성 시인으로써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립더니..

가을바람 잎새에 한번 스치고 가자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그녀의 시는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시작(詩作)으로 달래어 원망과 한탄을 주로 노래했지만, 풍부한 시어와 언어 구사력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섬세한 필치와 독특한 감상을 노래하는 한 천재적인 여인이 봉건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해 재주를 마음껏 뽐내지 못한 것은 우리나라 한시문학사의 큰 불행이다. 만약, 그녀가 좀 더 자유분방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면 아마 훨씬 아름다운 시를 더 많이 남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흔한 충효(忠孝)나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주제를 뛰어넘어 인간의 내면세계를 노래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시가 지닌 가치는 높다. 다만, 중국에서 발간된 그녀의 시들 속에 중국의 당시를 참고한 듯 한 부분이 일부 발견되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허난설헌의 작품인가 하는 논란이 있기도 하였다. 그녀의 시집이 동생 허균에 의해 간행된 만큼 편집에 있어서 일부는 허균의 생각이 반영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선중기 여성에게 가장 혹독했던 시기에 주옥같은 시를 남기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그녀의 뛰어남은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다.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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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20
■ 허난설헌 4편

■ 허난설헌 4편

그녀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삶의 희망을 잃었다. 딸과 아들의 무덤을 자신이 사는 광릉 땅 양지바른 언덕에 나란히 만들고 나서 낮은 봉분에 잔디를 심고 어루만졌다. 훗날 그녀는 자신이 죽으면 두 아이의 무덤 뒷자리에 묘를 쓰라고 했다. 그리하여 세 무덤은 광주 지월리의 달을 보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그녀의 불행은 꼬리를 이었다. 남편의 방탕은 조금도 쉴 줄을 몰랐고, 행복과 기쁨이 넘치던 친정집에도 풍파가 연달아 이어졌다. 그녀의 아버지는 상주에서 객사(客死)했고, 이어 오라버니 허봉은 이이의 잘못을 들어 탄핵했다가 갑산으로 귀양 가게 되었다. 허봉은 2년 뒤 풀려나 백운산, 금강산 등지로 방랑생활을 하며 술로 세월을 보내다 병이 들어 서울로 돌아오다가 금화 생창역에서 아버지처럼 객사하고 말았다. 이런 친정의 슬픔은 그녀를 더욱 외롭게 했고, 자신의 시재를 알아주었던 인물이 하나씩 사라지는 데 더욱 가슴이 메어졌다.

불행은 계속되어 곧 임신 중이던 뱃속의 아이까지 사산(死産)하였고, 남편 김성립은 계속 밖으로 겉 돌았다. 또한 어머니 김씨 역시 객사하였고, 동생 허균도 귀양 가고 말았다. 그녀는 삶의 의욕을 잃었고, 더욱 감상(感傷)과 한(恨)에 빠졌다. 그래서 그녀의 시 213수 가운데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신선시가 128수나 된다. 그러다가 ‘삼한(三恨)’, 곧 ‘세 가지 한탄’을 노래했다고 한다. 첫째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요, 둘째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요, 셋째는 남편과 금슬이 좋지 못한 것이라 한다. 첫째는 바로 그녀가 시재(詩才)를 널리 뽐낼 수 없는 좁은 풍토를 안타까워한 것이고, 둘째는 남성으로 태어나 마음껏 삶을 노래하지 못한 것을 뜻한다. 셋째는 그녀의 남편이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더욱 방탕에 빠져들고 있었음을 말한다. 허난설헌은 이 모든 불행을 견디며 오직 시를 짓는 일로 위안을 삼았다. 그녀의 시에는 집안에 갇혀 살아야 하는 여인들의 마음과 속세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담겼다.

그녀는 어머니의 초상을 당해 친정에 가 있을 때 꿈을 꾸었다. 그녀는 꿈속에서 신선이 사는 곳에 올라 노닐면서 온갖 구경을 다 하다가 한 줄기 붉은 꽃이 구름을 따라 날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꿈에서 깨자 곧 《붉은 부용꽃 서른아홉 송이가 차가운 달에 떨어졌네》 라는 유언과 비슷한 시를 지어 읊었다. 자신의 죽음을 두고 읊조린 것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고, 많은 한과 원망을 가슴 가득히 안고 스물일곱의 나이에 죽고 말았다.(강물에 투신했다는 설과 자택에서 앓다가 죽었다는 설도 있음.) 한 여성 천재가 한 많은 삶을 마감한 것이다.

『碧海浸瑤海 /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 /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芙蓉三九朶 /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紅墮月霜寒 /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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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20
■ 허난설헌 3편

■ 허난설헌 3편

강원도 강릉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그녀는 자유로운 집안 분위기 덕에 어린 시절 다른 여성들과는 다르게 교육도 받았고,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오빠의 도움으로 문학수업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녀도 남존여비의 사회에서 태어났기에 나이가 차자 어쩔 수 없이 한 남성에게 시집을 가서 남편을 받들며 시집살이를 해야 했다. 그녀는 부모가 정해주는 대로 15세에 안동 김씨 집안의 남편을 맞이했다. 그런데 남편 김성립은 과거 공부를 했지만 별로 진전도 없었고 더욱이 아내와 시를 주고받을 수준도 안 되어 대화도 나누지 않았고 서로 사랑하지도 않았다. 아내에 대한 열등감이 쌓여 걸핏하면 기생방에서 밤을 새우기가 일쑤였고, 술에 곤드레가 되어 새벽에 돌아오곤 했다. 그녀의 시 재주와 글재주가 뛰어나자 남편 김성립은 그녀를 피하였고, 시어머니의 구박에 시달렸다. 그 뒤 남편은 급제한 뒤 관직에 나갔으나, 별 볼일 없는 종9품 홍문관 저작에 머물렀고, 가정의 즐거움보다 노류장화(路柳墻花)의 풍류를 즐겼다.

이에 그녀는 달을 보며 신세를 한탄하거나 이불을 둘러쓰고 가슴을 태우거나 혼자 시를 읊으며 한을 노래했다. 그 가운데 유명한 시로 《규원(閨怨)》이 있다. ‘규방의 원망’이라는 뜻이다.

비단 띠 깁 저고리 적신 눈물 자국

여린 방초 임 그리운 한 이외다.

거문고 뜯어 한 가락 풀고 나니

배꽃도 비 맞아 문에 떨어집니다.

달빛 비친 다락에 가을 깊은데 울안은 비고

서리 쌓인 갈밭에 기러기 내려앉네.

거문고 한 곡조 임 보이지 않고

연꽃만 들못 위에 떨어지네.

지아비의 버림을 받고 규방에서 눈물로 지새우는 나날, 버려져 있는 자신의 처지를 시로 풀었던 것이다. 그런 나날 속에서도 슬하에 딸과 아들을 두었다. 남편에 대한 애정을 자식들에게 옮겨 정성을 쏟았고 어린 남매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인생의 재미를 느꼈다. 그런데 그녀는 어느 때보다 더 큰 불행을 맞이했다. 두 자식이 채 봉오리를 맺기도 전에 연이어 죽은 것이다. 그녀는 슬픈 마음을 시에 담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쓴 시가 《곡자(哭子)》이다.

『지난해엔 귀여운 딸을 잃었더니

이번 해엔 사랑하는 아들마저 잃었네.

가슴 메어지도다. 광릉의 흙이여

작은 무덤을 나란히 마주 세웠네.

응당 언니 아우의 혼들이 알아

밤마다 서로 손잡고 놀아라.』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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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21
■ 허난설헌 2편

■ 허난설헌 2편

그렇다면 이달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양반의 혈통을 받았으나 어머니가 기생 출신 첩이어서 서자로 살았다. 이로 인해 그는 낮은 벼슬을 얻었다가 내팽개치고 방랑생활로 나날을 보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술을 마시고 시를 토해냈다. 이렇게 하여 그의 시명(詩名)은 당대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런 이달에게서 명문 자녀인 이들 남매가 시를 배웠던 것이다.

열 살이 좀 넘어 이달에게 시를 배운 뒤 그녀의 재능은 장안에 소문이 났다. 아름다운 용모와 재치, 그리고 뛰어난 시재(詩才)는 그런 명성을 얻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여신동으로 일컬어졌고, 서울 양가의 딸들은 그녀와 한번 만나보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그녀는 여덟 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이라는 장편 시를 지었다. 이 글은 저 하늘의 신선이 산다는 백옥루에 대해 상상을 동원해 지은 것이다. 이 글이 언젠가부터 서울 장안에 나돌아 그녀의 시재는 더욱 인정받았다. 나중에 정조도 이를 읽고 감탄했다고 한다.

풍부한 정감은 그때그때 곧바로 시로 표현되었다. 그녀가 이렇게 시를 쏟아내면, 그녀보다 여섯 살 아래인 허균은 이를 애송했고, 뒷날 이 시들을 고스란히 옮겨 적어 후세에 전했다. 그녀의 시는 남동생 허균(許筠)덕택에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아버지 허엽말고도 그녀의 재능이 빛을 발하도록 도와준 사람은 오빠인 허봉이었다. 허봉은 일찍 과거에 합격해서 중국을 오가면서 유명한 시인들의 서책을 구해다 주었다. 허난설헌은 시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조선사회의 유교적 관념을 벗어나 시대의 속박에 저항하고자 했다.

조선시대는 철저한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였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한 사회에서 부덕(婦德)이 높은 현모양처(賢母良妻)를 여성의 모범으로 꼽기도 했고, 바느질 잘하고 베 잘 짜는 여인을 훌륭한 여인상으로 꼽기도 했다. 그나마 조선 전기 여성은 고려 시대와 비슷한 지위와 권리를 누릴 수 있어서 남녀차별이 심하지 않았고, 재능을 펼치기가 쉬웠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에는 성리학적 질서가 자리 잡으면서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지고, 그 능력을 펼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재능 있는 여성들에게는 더욱 가혹했던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조선시대 여류문학가 하면 아마도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는 신사임당의 이름이 더 익숙하다. 물론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고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더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태어난 시기가 달라 그 운명이 엇갈린 듯 하다. 신사임당이 살았던 조선 전기에는 여자가 결혼을 해도 시집으로 가지 않고 친정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친정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연히 마음도 편하고 시어른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재주를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재산도 남녀 차별 없이 물려받았고, 부모님 제사도 돌아가면서 지냈다. 반면, 조선 중기 이후에 태어난 허난설헌은 그렇지 못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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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21
■ 허난설헌 1편

■ 허난설헌 1편

허난설헌은 조선이 낳은 최고의 여성 시인이자 예술가였다. 그녀는 시대를 잘못 만나 재능을 마음껏 피워보지 못한 채 불행한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 허균의 누이인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시는 조선이 아니라 중국에서 먼저 인기를 끌었다. 중국에서 가장 큰 중국 국가 도서관에 소장된 《조선시선》이라는 서책에 허난설헌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선》은 명나라 때 만들어진 시집으로서 신라의 최치원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뛰어넘는 재능을 가졌던 인물들의 시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시이다. 또한, 중국의 최고 명문 대학인 베이징대학의 조선어학과에서는 한국사가 정규과목인데, 한 학기의 강의주제가 ‘허난설헌의 시’일 정도로 중국 학생들은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시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중국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허난설헌에 대해 그리 관심이 높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 마음이다. 아마도 남성중심의 유교사회의 높은 남존여비의 벽이 여성들의 재주가 내놓고 높이 평가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1563년 강릉에서 태어난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어려서부터 신동소리를 듣고 자랐다. 널리 불리는 ‘난설헌’은 그녀의 호이고 본명은 초희(楚姬), 다른 이름은 허옥혜(許玉惠)이고, 자는 경번(景樊)이었다. 여자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조선시대의 관례에 따라 그는 허난설헌, 허난설재, 난설헌 허씨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당시 여성이 이름 · 호 · 자를 고루 갖춘 경우가 드물었는데 그녀의 경우는 달랐다. 바로 여성으로서 대우를 그만큼 받았다는 뜻이다. 가족 모두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던 허씨 집안의 가장(家長) 허엽은 글을 가르치면서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허난설헌은 뛰어난 학자였던 아버지 허엽으로부터 글을 배우면서 본디 가지고 있던 천재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는 위로 오빠 허성(許筬), 허봉(許)을 두었다. 두 오빠도 중요한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상당한 명망을 얻고 있었고, 동생 허균도 어릴 적부터 뛰어난 문사의 기질을 보여 촉망을 받았다. 그리하여 이 허씨 집안을 모두 부러워했고 3허(三許)니 4허(四許)니 일컬으며 형제 시인으로 손꼽았다. 선조 때의 유명한 의관인 어의 허준이 그의 먼 친족으로 11촌 아저씨뻘이었다.

이런 명문가였기에 당시 많은 시인들이 이들 집안과 활발한 교류를 했다. 그 중에서도 당시 3당(三唐) 시인으로 일컬어지던 미천한 출신인 최경창, 백광훈, 이달 등과 유난히 친분이 두터웠다. 허성, 허봉 등은 이들 불우한 시인들을 남달리 알아주고 재정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허성, 허봉과 터울이 지는 허난설헌과 허균은 어릴 적부터 이달에게 시를 배웠다. 지금 남산 밑 마른내길(乾川洞)에 살았던 이 어린 남매는 이달에게서 매일 시 수업을 받으며 천재성을 발휘했다.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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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22
◇ 제 손톱, 사장님 기분대로 하세요... 네일아트도 ‘오마카세’

◇ 제 손톱, 사장님 기분대로 하세요... 네일아트도 ‘오마카세’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네일숍에는 ‘오마카세 네일’이란 메뉴가 벽에 걸려 있었다. 10만원을 내면 사장이 알아서 손톱을 손질해주고 각양각색의 디자인으로 꾸며주는 ‘사장 마음대로’ 메뉴다. 2~3주에 한 번씩 오마카세 메뉴를 이용한다는 직장인 성모(28)씨는 “손톱을 자주 관리하는 편인데, 매번 수많은 디자인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되다 보니 점점 알아서 해주는 걸 찾게 된다”고 했다.

초밥집 등 일식당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오마카세’가 점차 확산하고 있다. 일본어 오마카세(お任せ)는 ‘맡기다’란 뜻으로, 보통 요리사가 알아서 음식을 내준다는 의미로 쓰인다. 최근엔 한우의 다양한 부위를 조금씩 구워 내주는 ‘한우 오마카세’, 다양한 소스와 면(麵)을 조합해서 내는 ‘파스타 오마카세’, 원산지가 다른 서너 종류의 원두커피와 아이스크림·케이크 등을 내주는 ‘커피 오마카세’ 등으로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중식집은 메뉴가 정해진 기존 ‘코스요리’와 달리, 날마다 다른 코스 메뉴를 내놓는 ‘중식 오마카세’를 운영 중이다. 한우·디저트 오마카세 가게에 종종 들른다는 직장인 신모(26)씨는 “단품보다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다양한 음식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게 오마카세의 매력”이라며 “좋아하는 종류의 음식이지만 각 메뉴에 대해선 세세히 몰라 전문가에게 맡기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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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카세의 인기는 음식도 넘어섰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꽃집은 최근 ‘꽃 오마카세’란 메뉴를 만들었다. 사장이 그 계절에 피면서, 그날 가장 신선한 꽃 위주로 손님과 특정 상황에 어울릴 만한 꽃다발을 디자인해주는 것이다. 서울 관악구의 한 미용실은 ‘헤어 오마카세’란 메뉴를 운영 중이다. 모발·두피 상태, 얼굴형, 피부색 등 손님 개개인의 특징을 파악해 가장 어울릴 법한 커트·염색·펌 등을 해주는 맞춤형 서비스다. 이 미용실 민광기 실장은 “‘알아서 대충 잘라달라는 주문과는 달리 ‘스타일링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단골손님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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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중의 문화적 취향은 다양해지는데, 각 분야는 갈수록 고급·전문화되다 보니 비전문가인 개인이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로 인해 전문가에게 믿고 맡기는 현상이 확산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484.html
kolaswqetsrq 11.02 20:23
◇ 교황청의 코레아누스한국인’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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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청의 코레아누스(한국인)’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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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가톨릭교회를 통솔하는 교황청의 문헌에 조선이 등장한 것은 1660년이었다. 중국에 관심이 컸던 교황 알렉산더 7세는 난징대목구(南京代牧區)를 설치하면서 조선을 그 관할에 포함시켰다. 120여년이 지난 1784년 이승훈이 중국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첫 천주교 신자가 됐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 없이 평신도에 의해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고, 모진 박해와 순교 속에 성장한 한국 천주교 230여 성상(星霜)은 언제 봐도 경이롭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년을 맞은 올해 ‘코레아누스(Coreanus·라틴어로 한국인)’ 최초의 교황청 장관이 등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유흥식 라자로 대주교(70)를 임명한 것이다. 파격을 거듭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사 가운데서도 파격으로 꼽힌다. 유 대주교가 취임할 성직자성은 전 세계 50만명에 달하는 사제와 부제의 직무·생활에 관한 업무를 관장한다. 가톨릭교회 운영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만큼 이탈리아 추기경들이 독식해온 자리에 유 대주교를 임명했으니 교황의 ‘빅픽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교황의 북한 방문이다. 대북지원 사업을 맡아 4차례 방북한 바 있는 유 대주교가 교황청과 한국, 북한을 잇는 가교 역할을 맡을 것이란 얘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10월18일 교황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 의사를 전해듣고는 이탈리아어로 “소노 디스포니빌레(Sono disponibile)”라고 했다. 오지 파견을 명받은 선교사가 이를 신의 뜻으로 받아들일 때 쓰는 말로, 천주교에서는 ‘기꺼운 승낙’으로 풀이한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으로 주춤해졌지만, 교황은 의지가 여전하다.

여건도 우호적이다. 미국에선 가톨릭 신자이자 교황과도 돈독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문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가톨릭’과 ‘교황’을 거론했다고 한다. 오는 10월 로마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면 방북이 가시화할 수도 있다. 금기를 거침없이 뛰어넘어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길이 마침내 한반도 북녘에 닿게 될지 기대가 크다.

-경향신문 여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41.html
kolaswqetsrq 11.02 20:24
◇ 발레의 여왕 박세은

◇ 발레의 여왕 박세은

발레 ‘백조의 호수’ 무용수들의 무대 뒤 삶을 다룬 영화 ‘블랙스완’은 아름답고도 소름 돋는 작품이다. 백조가 되어 춤추는 발레리나로 나오는 배우 내털리 포트먼은 아름다우면서도 근육질인 발레 무용수 몸을 표현하기 위해 마른 몸을 쥐어짜 9kg을 감량했다. 영화 속 포트먼은 몸이 망가지는 고통과 싸우면서도 백조 깃털이 피부에서 솟는 착각을 느낄 정도로 춤과 혼연일체가 된다. 이 연기로 아카데미 주연상도 거머쥐었다.

1년간 발레 연기자로 살았던 포트먼은 “1주일만 더 아몬드를 먹으라고 했으면 미쳐버렸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은 그 고단한 세계를 상처투성이 발가락 사진으로 보여준 적이 있다.

포트먼은 이 영화에서 프랑스인 발레리노 뱅자맹 밀피에로부터 발레를 배우다가 사랑에 빠져 그와 결혼했다. 밀피에는 이후 파리오페라발레단(POB) 예술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곳에서 한국인 발레리나 박세은과 한솥밥을 먹었다. POB는 러시아의 마린스키와 볼쇼이, 영국로열발레단,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와 함께 세계 5대 발레단으로 꼽힌다.

세계 주요 발레단 수석 자리를 언제부턴가 한국 젊은 무용수들이 꿰차고 있다. 서희와 김기민이 각각 ABT와 마린스키 수석 무용수다. 보스턴발레단의 채지영,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최영규, 워싱턴발레단의 이은원 등 내로라하는 발레단 수석과 주역을 한국 발레리노와 발레리나가 맡았다. 이들은 20대 후반~30대 초반으로,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을 지낸 강수진을 보며 자란 ‘강수진 키즈’들이자 K발레의 황금세대로 불린다.

황금세대의 대표주자였던 박세은이 엊그제 POB 수석무용수인 에투알(‘별’이란 뜻)이 됐다. 2011년 준단원으로 들어가 10년간 자신과 싸워가며 도약을 거듭한 끝에 정상에 올랐다. 에투알은 POB 무용수 150여 명 중 남녀 합해 16명에 불과하다. 한국인은 물론이고 아시아인 중에서도 처음 있는 쾌거다. 발레리노 못지않은 파워로 도약하는 그녀의 명품 점프는 눈물과 땀의 결정체다. 2018년 무용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도 받았다.

강수진이 어린 시절 발레 유학을 떠난 것과 달리 박세은·김기민 등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우리 시스템으로 육성된 토종이다. 2010년 세계 4대 발레 콩쿠르인 바르나발레콩쿠르에 출전한 박세은 김기민 등 한국인 4명이 남녀 금메달 4개를 싹쓸이했을 때부터 세계가 한국 발레의 웅비를 예견하고 주목했다. K팝에 이어 발레까지 최정상에 오른 우리 젊은이들의 활약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조선일보 만물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059.html
kolaswqetsrq 11.02 20:24
◇ 헤이그 vs 캐머런 vs 이준석...30대 당수의 성공작과 실패작

◇ 헤이그 vs 캐머런 vs 이준석...30대 당수의 성공작과 실패작

마거릿 대처 총리 시대 이후 거의 몰락하다시피 했던 영국 보수당이 2010년 정권을 다시 잡는 과정에서 2명의 30대 당수를 배출했다. 1997년 36세라는 파격적 나이에 당수로 선출된 윌리엄 헤이그는 좌충우돌 끝에 쓴맛을 봤지만 2005년 39세로 당권을 잡은 데이비드 캐머런은 보수당 재건에 성공했다. 36세의 이준석 당 대표 탄생으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는 국민의힘 입장에선 헤이그가 30대 당수의 어두운 그늘이라면 캐머런은 긍정적 미래다.

헤이그는 1997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충격적 참패를 당해 18년 만에 노동당에 정권을 내준 후 당수에 올랐다. 1783년 이래 보수당 사상 가장 젊은 당수였다. 하지만 그는 결과적으로 당의 쇄신을 이끌지 못했고 신구 결속에도 실패했다. 2001년 총선에서도 보수당이 참패하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30대 당수는 쓰라린 실패작이었다.

당시 보수당의 파격적 실험은 40대 초의 토니 블레어가 노동당을 혁신한 데서 자극받은 측면이 컸다. 헤이그는 영국 정치권을 휩쓴 세대교체 바람을 타고 당권을 잡았으나 잦은 말 실수와 유치한 선전,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 리더십은 실추됐다. 당시 한 여론조사에선 헤이그가 표를 얻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한다는 응답이 70%에 달했다. 세대교체가 내실 없이 그저 연령 교체만 의미한다면 변화가 아니라 혼란만 줄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보수당의 진정한 혁신은 또 다른 30대 당수 캐머런에 의해 이뤄졌다. 캐머런은 시장을 중시하는 보수당의 전통 위에 약자를 배려하는 진보적 색채를 가미했다. 그의 ‘온정적 보수주의’는 중도층으로 당의 기반을 넓히는 성과를 낳았다. 보수당은 2010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13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고, 캐머런은 43세의 나이로 총리에 올랐다. 이준석 대표의 행로에도 두 가지 길이 놓여 있는 듯하다. 선을 넘는 튀는 발언으로 좌충우돌하는 이미지만 준다면 헤이그의 전철을 밟겠지만, 쇄신과 유연성으로 당의 기반을 넓힌다면 캐머런의 길 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지평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vs-vs-30.html
kolaswqetsrq 11.02 20:25
■ 시대의 이단아 허균 3편

■ 시대의 이단아 허균 3편

 허균이 과거에 급제한 것은 선조 27년(1594)으로, 이후 여러 관직에 임명되어 최종적으로 좌참찬까지 역임했다. 하지만 그의 관직 생활은 굴곡이 매우 심했다. 황해도 도사직에 있을 때 상소 때문에 관직에서 쫓겨났는데, 이유가 매우 황당했다. 서울의 기생을 데리고 가서 함께 살았다는 이유였다. 또한 성리학을 고집하는 일반 사대부와 달리 불교를 신봉하고 일탈 행동을 자주 해서 관직에서 여섯 번이나 쫓겨나고, 무려 세 차례나 귀양을 가야 했다.

그는 30대 부터 벼슬길에 올랐으나 기행으로 자주 삭탈관직을 당했고, 40대 중반부터는 이이첨과 더불어 광해군 시절 대북 정권의 핵심인물로 잘 나가다가, 50세에 반역혐의로 능지처참을 당함으로써 천재의 비극적인 삶을 마감했다. 이러한 삶의 행로로 보았을 때, 허균은 명석한 두뇌를 지닌 천재였으나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부딪치는 시대의 이단아였다. 유배지에서 쓴 글 중에 『당신들은 당신들의 법대로 사시오. 나는 내 멋대로 살겠소.』라는 대목에서도 그가 얼마나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서 전환점이 되는 일대 사건이 광해군 5년인 1613년에 발생한 ‘칠서지옥(七庶之獄:계축옥사)’이다. 당대에 한가락 한다는 집안의 서자 일곱 명이 신분차별에 항의하여 난을 일으키려다 실패하고 말았는데, 이 난에 허균이 말려들었다.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이들과 친하게 지냈기에, 일곱 서자들 뒤에 허균이 있다는 소문이 시중에 떠돌았다. 이로 인해 허균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는데, 다행히도 별 탈 없이 넘어갔다. 당대 최고의 실세 이이첨이 허균의 바람막이가 되어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고속 출세의 배경이 되어주어, 허균이 형조 판서를 거쳐 좌참찬으로 승진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허균은 이이첨의 사주를 받아 이이첨, 정인홍보다도 더 인목대비 폐모론(廢母論)에 앞장섰는데, 이 때문에 많은 사대부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북인 내에서도 폐모에 반대하는 소북의 영수이자 영의정인 기자헌(奇自獻)과 사이가 좋지 않아 수시로 마찰을 빚었다. 그런데 폐모에 반대한 기자헌이 귀양에 처해지고 길주로 유배되자, 기자헌의 아들 기준격은 허균이 배후조종한 것으로 의심, 부친을 구하기 위해 비밀상소를 올리고 “허균이 역모를 꾸몄다”고 주장하면서 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617년 기준격 등은 계속 상소를 올려 허균이 역모를 꾸민다고 공격했다.

그 와중에 허균은 이이첨과 관계가 멀어지게 된다. 광해군이 세자빈을 간택하려 할 때 허균도 자신의 딸을 세자빈으로 만들려 했으나, 이이첨의 외손녀가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하지만 이이첨의 외손녀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허균의 딸이 세자의 후궁으로 내정되어 입궐하였다. 허균의 딸이 아이를 낳게 되면 허균에게로 권력이 이동할 것을 우려한 이이첨은 허균에 대한 경계를 한층 강화시켰고, 그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광해군 10년(1618년) 허균은 반역을 했다는 이유로 능지처참에 처해졌다. 광해군이 직접 나서서 심문했는데, 허균은 끝까지 역모를 부정하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전격 처형되고 말았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41.html
kolaswqetsrq 11.02 20:26
■ 시대의 이단아 허균 2편

■ 시대의 이단아 허균 2편

여기에서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이제껏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작가는 허균’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것은 확실하지 않다. 현재 전해지는 한글소설 홍길동전에는 작자(作者)가 적혀있지 않다. 연산군시대의 실존 인물이던 홍길동의 이야기는 여러 버전으로 전해져 오고 있었고, 허균도 그 이야기를 차용해서 그의 사상과 소신을 주인공에 투영하여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마도 허균이 애초에 남긴 작품은 한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 학자들의 견해이다.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 주장한 최초의 연구자는 일제강점기 경성제대 조선문학 담당 교수였던 다카하시 도루(高橋亨:1878~1967)이다. 다카하시는 1927년 조선 중기문인 이식(1584~1647)의 《택당집》에 실린 ‘허균은 또 홍길동전을 지어 수호전에 비겼다(筠又作洪吉同傳以擬水滸)’는 구절을 들어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다카하시의 경성제대 제자들을 중심으로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라는 주장이 정설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 《택당집》에서도 허균의 《홍길동전》이 한글이라는 언급은 없다. 만약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더라도 그것은 한문이었을 가능성이 짙다는 것이다.

허균(許筠)의 글재주는 비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그의 괴이한 행실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부모상을 입고도 기생과 놀아나고 참선과 예불에는 빠지지 아니한다. 그는 천지간의 괴물이다.』 라는 평을 들었다. 성리학의 고루함을 배격하는 자유분방한 기질을 가진 천재의 행동을 당시의 잣대로 평가하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허균은 항시 "나는 세상과 화합하지 못한다."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허균(許筠)은 신지식으로 무장한 당대 최고의 국제적 인사이자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허균은 중국 방문을 통하여 선진 학문과 서학(西學)을 배웠다. 그는 2번의 중국 방문 동안 자그마치 은을 1만 5,000냥이나 들여 4,000권에 이르는 방대한 서적을 구입해 들여왔는데, 모두 이단 서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 중에 유교경전 비슷한 것은 한 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책 중에는 천주교 책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17세기에 4,000권의 장서를 가지고 있었으면 당시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장서가(藏書家:책을 많이 가지고 있음)에 들었을 것이다. 자유분방한 천재가 이런 개방적인 사상을 접했으니 그에게 성리학이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케케묵은 헛소리였다. 이러한 신사상을 접한 혁명가 허균(許筠)은 서자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허균(許筠)은 그의 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서 『천하에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다.』라고 기록했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을 경우 끝내는 혁명이 올 것임을 군주와 집권 세력에게 경고하고 있다. 사실 지금으로 봐서야 백 번 옳은 말이지만 당시에는 역모(逆謨)로 열 번도 더 죽임을 당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는 또 조선의 신분제를 신랄히 비판하여 그 차별이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지적하였으며, 신분에 구애되지 않고 능력에 따라 인재가 등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55.html
kolaswqetsrq 11.02 20:26
■ 시대의 이단아 허균 1편

■ 시대의 이단아 허균 1편

허균(許筠)의 집안은 당대 최고의 명문 집안이었다. 동인의 영수인 아버지 초당 허엽(許曄)은 뛰어난 문장가이자 학자였고, 서경덕의 수제자로 정치가로서의 명망(名望)이 높았다. 어머니는 예조판서 김광철의 딸로 허엽의 후처였다. 허성, 허봉, 허난설헌 등 그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문예에 뛰어난 인물들이다. 큰형 허성은 이조 판서와 병조 판서를 지낸 대정치가였고, 특히 누나 허난설헌은 한국을 대표하는 천재 여류시인으로 이름을 날렸으니 집안이 모두 학자요 천재였던 것이다. 이런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허균은 어렸을 때부터 문장을 잘 지어, 광해군 일기에 『글 쓰는 재주가 매우 뛰어나 수천 마디 말을 붓만 들면 쭉쭉 써 내려갔다.』고 적혀 있다.

허균(許筠)은 14세 때부터 형 허봉의 가까운 친구인 이달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이달(李達)은 박학다식한 인물이었으나, 출신이 서얼(庶孼)이었기 때문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사회에 발붙일 데가 없었다. 이러한 스승에게 학문을 배우면서 허균은 자연히 서얼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허균(許筠)은 이미 10대에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20대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피난길에 아내와 자식을 잃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허균은 우리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박학다식(博學多識)했던 사람이다. 그는 책 수천 권을 읽고 내용을 기억했으며, 중국 사절단 앞에서 시 수백 편을 통째로 외워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 국가 도서관에 《조선시선》이란 책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은 허균이 구술(口述)해 준 우리나라 한시들을 중국 사신이 받아 적은 것을 모아 편찬한 것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의 시 332편이 실려 있다. 이것만으로도 허균이 얼마나 명석한 두뇌를 가진 천재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생각 또한 무척 자유분방하고 혁신적이어서 그는 수많은 서출(庶出)과 기생(妓生), 무사(武士), 심지어는 노비(奴婢)까지도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친구로 사귀었다. 당대의 고승인 사명당과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로 깊은 교류를 하고 있었고, 기생 이매창과도 남녀관계가 아닌 우정을 나누며 가까이 지냈다.

평소 “귀천에 따른 차별이 없어야 하며, 우리나라처럼 작은 나라, 더군다나 양편에 적을 둔 나라에서 서얼이라거나 재혼(再婚)녀의 자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재능 있는 자를 등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라 발전에 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라며,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백성을 무서워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을 품고 살았기에, 그의 평소 소신이 담긴 소설 《홍길동전》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당대 사대부들과 이렇듯 다른 생각, 다른 삶을 꿈꾸었기에 그는 시대와의 불화 속에 처참히 죽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23.html
kolaswqetsrq 11.02 20:27
■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 7편

■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 7편

파주시 임진강변에 있는 ‘화석정(花石亭)’은 원래 고려 말의 유학자인 길재(吉再)가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는데, 사후 그를 추모하여 서원이 세워졌다. 그 후 폐허가 되었다가 율곡 이이의 5대조인 강평공 이명신(康平公 李明晨)이 세종 25년(1443년)에 정자를 세우고 1478년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중수(重修)하였다.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명명하였으며, 이이 때에 이르러 다시 중수된 유서 깊은 곳이다. 정자 주변에는 느티나무가 울창하고 그 아래 임진강에는 밤낮으로 배들이 오락가락 하였으며, 밤에는 고기 잡는 등불이 호화찬란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임진강을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고 느티나무 몇 그루만이 그 시절을 증명해주고 있어 쓸쓸하다.

율곡 선생은 평소 정자에 제자들과 함께 기둥과 서까래 등에 들기름을 반질반질하게 먹여 두었다고 하는데, 훗날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당시(4월 29일 밤) 이항복이 화석정을 불에 태워 임진강변을 밝히자, 선조가 무사히 강을 건넜다고 한다. 율곡선생은 국사의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여생을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면서 시와 학문을 논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 타 없어져 80여 년간 터만 남아있는 것을 현종(顯宗) 14년(1673년)에 율곡선생의 증손이 다시 세웠으나 한국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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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화석정은 1966년 파주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다. 건물의 정면 중앙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으며, 내부 뒷면에는 율곡선생이 8세 때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팔세부시(八歲賦詩)’가 걸려있다. 임진강이 휘돌아 흐르는 언덕에 세워진 화석정의 전망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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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세부시(八歲賦詩)>

林亭秋己晩(임정추기만) 숲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으니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시인의 생각은 끝없이 이어지누나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먼 곳 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 받아 불타네

山吐孤輪月(산토고륜월) 산은 외로운 둥근 달을 토해내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강은 만 리 바람을 머금는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고?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새소리,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_15.html
kolaswqetsrq 11.02 20:28
■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 6편

■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 6편

이이는 이러한 반대에도 무릅쓰고 “만일 두 사람이 조정에 있으면 말썽이 그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외직을 보내어서 뿌리를 끊어야 합니다.”하며 이전부터의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였다. 이날 논의는 대체로 외직으로 보내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이었으나, 결국 이이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외직으로 보낼 것이 결정되었다. 얼마 후 선조는 특명으로 김효원은 경흥부사에, 심의겸은 개성유수에 제수하였다. 이런 조치는 병까지 앓고 있는 김효원에게 매우 불리한 제수였다. 처음에는 양자 간을 조정하려는 이이의 제안이 결국에는 양자의 대립을 더욱 격화시키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이이로서도 대단히 곤욕스러웠다. 사림을 조정하고 정국을 안정시키려고 제안했던 것이 오히려 편파적인 인사가 되면서 불만을 가져오고 오히려 조정을 더 어수선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하여 이에 대한 책임을 느낀 이이는 다시 선조에게 건의하여 김효원은 삼척부사에, 심의겸은 전주부윤에 고쳐서 제수하였다.

이러한 이이의 중재책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이에게, “천하에 둘 다 옳고 둘 다 그른 것이 없소. 공의 이번 처사가 시비를 알지 못하고 둘 다 온전히 하려고만 하니 인심이 불만스럽게 여기오.” 하며 질책하였다. 그럴 때마다 이이는 답했다.

“두 사람의 일은 국가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 사이의 알력으로 조정이 불안하기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둘 다 그르다. 비록 둘 다 그르다고는 하지만 모두가 같은 선비이니 다만 화해하고 융합시키면 될 것이다.”

그 유명한 율곡 이이의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이다. 그렇게 이이는 양측에서 공격을 받았다. 선배 사림들은 이이가 김효원을 물리치지 않는다고, 후배 사림들은 이이가 김효원을 쓰지 않는다고 비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차로 율곡 이이는 서인 측으로 기울게 되면서 서인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는 1583년 당쟁을 조장한다는 동인의 탄핵으로 사직했다가 같은 해 다시 판돈녕부사와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정월 49세를 일기로 죽었다.

서인에 속했던 이이(李珥)는 편당을 들지 않고 화해에 힘을 기울였으나, 그의 성격 자체가 원만치 못하여 남을 포용하기 어려웠으므로 별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이(李珥)는 학자이자 청렴한 정치가로서의 삶을 살았고, 그의 후학들인 김장생, 조헌, 이귀, 황신 등은 조선후기 정치 사상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1584년 서울대사동(大寺洞)에서 영면하여 파주 자운산 선영에 안장되었다. 파주의 자운서원(紫雲書院), 강릉의 송담서원(松潭書院), 풍덕의 구암서원(龜巖書院), 황주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 등 20여개 서원에 배향(配享:신주를 모심)되었다.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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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28
■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 5편

■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 5편

이이는 경제를 담당하는 관청의 창설을 제의하면서, 기성 관료가 아니라 행정에 밝고 국사를 염려하는 윤리성과 합리성을 겸비한 최고의 지성이 동원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의리(義理)와 실리(實利), 이념과 현실의 통합적 구상은 조선 후기 실학으로 전개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도 조선 중기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전개에서 이이가 끼친 영향은 매우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랜 구습이나 폐습(弊習)은 일시에 시정될 수 없었고, 유림의 활동은 크게 일어나지 못했다. 더구나 1575년부터는 동서(東西)의 분당(分黨)으로 사림이 분열되고, 정쟁(政爭)이 심각해졌다. 연산군 이래의 폐법은 고쳐지지 않은 채 국가의 기강은 무너지고 민생의 곤궁은 극도에 달하였으며, 군사적으로도 무력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곧 닥칠 전란(戰亂)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歸結)인지도 모른다.

이이는 원래 붕당(朋黨)을 국가정치를 문란하게 하는 요소로서가 아니라 소인이 무리를 이루듯, 뜻을 같이 하는 군자들끼리 집단을 이루는 불가피한 정치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심의겸(沈義謙)·김효원(金孝元) 사이의 시비(是非)로 인하여 분당(分黨) 조짐을 보이던 1575년 이후 그 해소에 진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붕당론(朋黨論)을 수정하게 된다. 지금껏 잘못 알려진 것 중 하나가 율곡 이이가 처음부터 서인으로 활동하였다고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론적인 것이고, 분당(分黨) 초기 율곡은 분당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했던 인물이었다. 이이는 심의겸과 김효원의 대립이 심해질 즈음 당시 우의정 노수신을 찾아가 제안하였다.

“심의겸과 김효원 두 사람 모두 학문하는 선비이니 흑백을 가리고 사악함과 바름을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또 틈이 벌어졌지만 정말 서로 해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말세의 풍속이 시끄럽고 말이 많아 떠도는 말로 이간질을 하여 조정이 조용하지 못하니 두 사람을 모두 외직으로 내보내어서 떠도는 의논을 진정시켜야 할 것입니다.”

정쟁의 당사자인 심의겸과 김효원을 외직으로 보내 시끄러운 정쟁을 막아보려는 것이었다. 이 제안을 들은 노수신은 그 제안이 틀리지는 않았다고 판단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얼마 후 선조를 면대하는 자리에서, 이이의 의견에 따라 두 사람을 외직에 내보내자고 건의하였다. 당시까지 두 사람의 대립을 잘 몰랐던 선조는, “두 사람이 서로 무엇을 다투고 있는가?” 하고 하문하자, 노수신은 “서로 지난날의 허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고 답변하였다. 노수신의 답변을 들은 선조는 이이가 건의한 원안대로 두 사람을 외직에 내보내도록 명하였다. 그러자 홍문관 정자 김수는 “이제는 전하께서도 이미 그런 사실을 아셨고, 두 사람의 재주가 쓸 만하니, 반드시 외직으로 보내지 않아도 저절로 풀리고 화합하게 될 것입니다.” 하여 반대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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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29
■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 4편

■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 4편

이이는 《만언봉사(萬言封事)》에서 “시의(時宜)라는 것은 때에 따라 적절한 법을 만들어 백성을 구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이는 진리란 현실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고, 그것을 떠나서 별도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황은 이(理)와 기(氣)를 분리해서 이원론(二元論)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이이는 이(理)와 기(氣)를 하나로 보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학문적 특징을 보여준다. 이황은 혼탁한 정치현실을 떠나 학문을 닦아 도(道)를 전해주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은 데 비해 이이는 현실의 개선 그 자체에서 진리성을 찾았다. 그래서 이황이 줄곧 벼슬자리를 고사(苦辭)하고 재야(在野)에서 제자양성과 학문증진에 힘쓴 반면, 이이는 줄곧 중앙 정부에서 관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이는 『조선의 역사에 있어서도 태조가 창업했고, 세종이 수성(守成)해 《경제육전(經濟六典)》을 비로소 제정하였다. 세조가 그 일을 계승해 《경국대전》을 제정했으니, 이것은 모두 때에 따라 제도를 개혁한(因時而制宜)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시대의 변천에 따른 법의 개정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이는 항상 위에서부터 바르게 하여 기강을 바로잡고 실효를 거두며, 상황에 맞도록 폐법(弊法)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사화로 입은 선비들의 원을 풀어주고, 잘못을 저지른 관리들의 위훈(僞勳)을 삭탈함으로써 정의를 밝히며, 붕당의 폐를 씻어서 화합할 것 등 구체적 사항을 논의하였다. 이러한 것을 통해 국기(國基)를 튼튼히 하고 국맥(國脈)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이는 국정을 도모함에 있어서도 개인이나 일부 지도층으로부터 하향(下向)식으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언로(言路)를 개방해 국민 모두가 말할 수 있게 하고, 위정자(爲政者)는 아래로부터의 중지(衆智)를 모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이에게 민중의 소리를 듣는 것은 국가 흥망에 관계된 중대한 일로 여겨졌다. 공론(公論)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국민의 정당한 의견이 곧 국시(國是)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언로의 개방성과 여론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그리하여 백성들에게 성리학적 보편적 윤리를 전파하기 위해 전국에 향약(鄕約:향촌의 자치규약)을 보급했다.

이 향약의 사회적 기능은 지방 사족(士族)의 주도로 농민들이 토지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고, 향촌사회의 신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유교적 윤리 및 가치관 등을 향촌민에게 주입시켜 사족 중심의 향촌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이의 개혁사상은 16세기 사회발전의 진전에 따라 동요하는 사회체제와 신분질서를 다시 주자학적 세계관으로 안정시키고자 한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점진적으로 각종 제도를 개혁하고 향촌질서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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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30
■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 3편

■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 3편

1545년 을사사화가 발생해 수많은 사림들이 죽고 유배되었다. 사림은 출사(出仕)를 포기하고 지방에 머물며 학문을 닦을 수밖에 없었다. 1565년(명종 20년) 문정대비(文定大妃)의 죽음과 20년간 정사를 전횡하던 권신 윤원형(尹元衡)의 실각으로 나라 안의 정세가 바뀌었다. 을사사화 이후 죄를 입은 사람들이 풀려나고, 사림은 다시 정계로 복귀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사림들의 신원(伸冤:원통한 일을 품)이 이루어지는 등 정국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면서 사림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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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는 1564년 29세 때부터 호조좌랑을 시작으로 벼슬길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예조좌랑·이조좌랑 등을 역임하고, 1568년(선조 1년) 천추사(千秋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국방대책인 시무 6조를 선조에게 올렸고, 경연에서 십만양병설 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십만양병설 을 주장했다고 하는 것은 《선조실록》에는 기록이 없고, 김장생의 문집에만 실려 있는 내용이므로 그 진위여부가 모호하다. 아무튼 선조가 율곡(栗谷)이 건의한 시무6조를 제대로 수용했더라면 임진왜란의 참혹한 전화(戰火)는 피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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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1565년부터 1592년(선조 26년)까지의 약 30년간은 국정을 쇄신해 민생과 국력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이는 16세기 후반의 조선사회를 ‘중쇠기(中衰期)’로 판단해 일대 개혁이 요구되는 시대라 보았다. 오랫동안 도학(道學)이 행해지지 않아 폐단이 쌓여 있으므로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폐단이란 공물납부와 진상의 폐해, 군역의 불균등, 관리들의 부정 등을 말한다. 이에 그는 공물납부를 공평하게 하고 진상(進上)을 경감할 것을 주장했으며, 나아가 잡다한 일체의 공물을 폐기하고 전답의 면적에 따라 쌀을 징수하는 수결수미법(隨結收米法)을 전국에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호조의 관리로 하여금 역(役)을 피한 숫자를 조사·색출하여 이들을 군적에 편입시키는 한편, 변방의 장수들이 군졸들을 수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들의 생활을 그 지방의 창고곡식으로 보장해주는 방안과 군졸들이 휴식할 수 있도록 병역교대제를 실시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파산상태에 빠져 있는 국가재정을 바로잡기 위해서 수입을 헤아려 지출할 것과 관료기구를 간소화하고 낭비를 근절하여 국가재산의 손실을 방지할 것을 제안했다. 이이는 이러한 개혁은 상황이 뒷받침되어야 실현될 수 있으며, 그 실현여부는 군주의 개혁 의지(意志)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현명한 신하가 있는가 없는가에 달렸다고 여겼다. 이러한 이유로 이이는 ‘성학(聖學)의 이름으로 군주를 교도하여 그 기질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일종의 군주개조론인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저술하여 선조에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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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30
■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 2편

■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 2편

이이는 1557년 22세에 성주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과 혼인하였다. 23세가 되던 1558년 봄 예안(禮安)의 도산(陶山)으로 58세였던 이황을 찾아가 배움을 청하고 이틀을 함께 지냈다. 이 만남은 조선의 성리학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온 나라에서 존경하는 58세의 이황선생과 젊은 학자 이이의 만남을 요즈음 기술로 녹화를 했다면 무슨 음식을 먹었고,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두 선생의 만남을 지켜본 이황의 제자 중에 40세가 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황이 이이를 어찌나 극진히 대했는지 제자들은 나이도 한참이나 어린데 싶어서 탐탁찮게 생각하였다.

이이가 떠나기 전에 시(詩)를 한수 짓고 떠난다. 나이 많은 이황의 제자가 그 시를 읽어보니 보통 시가 아니었다. 제자가 스승에게 “선생님, 사람은 시원찮아 보이던데 시는 훌륭하고 좋으네요.” 하니 퇴계가 하는 말이 “시가 사람보다 못하지.” 라고 하였다. 이황은 이이의 인품을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35세의 나이 차이가 있어도 이이가 가지고 있는 학문과 사상을 존중해 주었다. 함께 시를 주고받으며 학문적 토론을 벌이면서 이이의 재능에 깊이 감명 받은 이황은 뒷날 제자 조목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이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뒤에 태어난 사람이 두렵다”고 한 공자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고 하였다. 이황(李滉)은 젊은 율곡(栗谷)의 재능을 인정했고, 율곡은 노학자의 학식과 경륜을 존경하여 이후에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성리학에 대한 토론을 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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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는 남다른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다른 뛰어난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스승이 없었다. 그의 학문체계는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낸 독창적인 것으로,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서너 살 무렵부터 말과 글을 배워 1548년(명종 3년) 13세 때 진사 초시(初試)에 합격하였다. 과거시험에 응시하고 소과 대과에 붙어 벼슬에 나아가기 까지 남들은 한번 붙기도 어려운 과거 시험을 아홉 번에 걸쳐 그것도 수석으로만 합격하였다. 그래서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듣게 되었다. 과거공부는 문학, 역사, 철학에 대한 소양을 기르는 것으로 기본적으로는 사대부의 교양학습이나 학문탐구라고 할 수 있지만, 합격을 위해서는 응시하는 시험 종류에 맞추어 그에 따른 효과적인 공부법을 강구해야 했다. 또한 그 시기의 중요한 사회적 관심이 무엇인지에 따라 과거 시험의 출제 경향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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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8년 23세 때 치른 별시(別試:국가의 경사를 기념할 때 시행하는 慶科의 종류)에 자연의 변화를 기(氣)의 변화로 설명하면서 임금의 수양을 강조한 ‘천도책(天道策)’은 이이의 사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천문기상의 순행(巡行)과 이변(異變) 등에 대해 논한 이 답안이 화제가 되어 장원급제를 할 수 있었다. 당시 문제를 출제한 시험관들은 자신들이 여러 날 고민해서 만든 문제에 대해 젊은 이이가 아주 짧은 시간에 훌륭하게 답을 써 낸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하며, 답안 내용이 너무도 뛰어나서 중국에 까지 알려졌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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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31
■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 1편

■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 1편

16세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의 걸출한 학자들이 많이 등장했다.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율곡 이이(李珥), 성리학의 태두 퇴계 이황(李滉), 실천적 성리학자 남명 조식(曺植), 실학의 선구자 토정 이지함(李之菡) 등이 있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로서 쌍벽을 이룬 이황과 이이는 학문뿐만 아니라 훗날 두 사람의 학문을 이어받은 제자들이 영남학파(嶺南學派)와 기호학파(畿湖學派)라는 조선의 대표적 학자 집단을 이루었다는 점에서도 한국철학사에 차지하는 무게는 아주 크다. 율곡 이이의 학풍은 일상 속의 도리(道理) 즉 실천을 중요시 하는 것인데, 한마디로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선생을 합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이는 중종31년 강원도 강릉에 있는 외가(外家)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법을 담당하는 사헌부 감찰 벼슬을 지내는 이원수였고, 이이만큼이나 유명한 그의 어머니는 오늘날 한국 어머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신사임당이다. 경포대 근처에 있는 신사임당의 친정집 즉 이이의 외가는 검은 대나무가 자란다고 해서 오죽헌(烏竹軒)이라 불렀는데, 지금도 그 곳에 가면 검은 대나무를 볼 수 있다. 동해 바다에 사는 용이 아기를 안고 집으로 들어와 사임당의 품에 안겨 주는 꿈을 꾸고서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이이가 태어났던 방에는 몽룡실(夢龍室)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용’이라는 뜻으로 현룡(見龍)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팔기 위한 물건을 만들거나 장사를 할 수 없었다. 선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공부뿐이었으므로, 가난한 선비는 집안을 돌보기가 어려워서 처가 신세를 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이도 아버지가 처가의 신세를 지는 덕에 외가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고, 자신 역시 훗날 처가인 경기도 파주 밤골 마을에서 여러 해를 살았다. 처가 동네인 밤골 마을은 이름처럼 밤나무가 많았으며, 이이의 호인 율곡(栗谷)도 바로 그 밤골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율곡 이이가 훗날 훌륭한 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 사임당의 교육에서 온 영향이 컸다. 사임당의 인품과 예술적 재능을 잘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는 아주 많다. 당시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유가경전에 밝고, 글뿐만 아니라 글씨와 그림까지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던 사임당은 이이가 16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삶의 회의와 상실감을 크게 느낀 이이는 파주 두문리 자운산에 장례하고 3년간 시묘(侍墓)하였다. 시묘생활이 끝나자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고, 1555년 20세 때 하산해 고향으로 돌아와 줄곧 오죽헌에 머물면서 다시 유학에 전념하였다. 그래서 다른 성리학자들과 달리 이이의 사상(思想)에는 불교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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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32
■ 간신 이이첨 6편

■ 간신 이이첨 6편

이이첨은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 남다른 촉으로 빠르게 살아남는 길을 찾고, 그 안에서 자신이 권력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실행에 옮기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였다. 그저 그런 관리 중 한 명이었다가 "온 나라 사람들은 이첨이 있는 것만 알고 임금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고 실록에 기록될 만큼 요즘으로 따지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가 결국 죽임을 당했던 이이첨에 대한 당대의 기록도 매우 냉정하다. 이이첨의 주도하에 대북이 작성한 <선조실록>의 내용은 인조반정 이후 서인들이 <선조수정실록>을 간행하였다. 현대에 이르러 서인 집권 이후 이이첨이 지나치게 하향평가된 것을 보정하기 위해 재평가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이유는 정치싸움의 행동대장으로 영입된 싸움꾼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이첨 등은 원수진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그들이 참형을 당하자 도성 사람들이 그의 시체를 난도질하여 시체가 온전한 데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인조반정으로 인해 붙잡혀 아들들과 함께 참형을 당해 집안이 망했기 때문에 이이첨의 초상화는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인조반정이 연산군 때와 다른 점은 당시 권력을 휘두른 주동자 일부가 죽은 것에 그치지 않고, 실권당이었던 대북파 전체가 씨가 마르다시피 숙청당했다는 것이다. 서인의 이와 같은 피의 숙청으로 인해 북인은 물론이고 조식과 남명학파의 계보마저 사실상 끊겨버렸다.

하지만, 당대의 권력자였으며 반대 세력에게 철저하게 끌어내려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탐욕적이라는 평가는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 즉, 재평가 이후에도 권력밀착형 간신이라는 혹평을 받기는 하지만 물리적으로는 꽤 청렴했다는 평가이다. 사택을 짓는데 선조 목릉의 나무를 쓰고 개간지를 일부 사유화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으나, 이 정도는 당대 웬만큼 실권이 있던 인물이면 흔히들 하던 일이었고, 특히 한명회, 김안로, 윤원형처럼 대놓고 부를 축척하던 인물에 비하면 시비거리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택(家宅:살고 있는 집)에는 사방에 책만 둘러져 있을 뿐 어떤 사치도 보이지 않았다고 하며, 심지어 평소에는 조촐하게 베옷만 입고 지냈다고 한다. 요즘에도 자주 스캔들이 터지는 여색 문제조차 전혀 시비거리가 되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그의 당시 권세를 생각할 때 놀라울 만큼 청렴한 셈이다. 이것은 이이첨의 유일한 권력배경이었던 정인홍이 조식의 강건한 기풍을 계승해 꼬장꼬장하다는 평을 들었던 만큼 그의 후광을 받고 북인에 영입된 이이첨의 특수한 입장을 고려해 볼 때, 어쩌면 당연한 처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야사에서도 다른 권력자들과 다르게 사리사욕은 적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욕(物欲)과는 별개로 권력욕(權力慾)의 화신(化身)이었던 것이다. 든든한 배경이 될 만한 학맥도 없이 자수성가한 만큼 명예욕, 권력욕이 상당했던 권신이자 간신으로서 악명(惡名)이 높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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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32
■ 간신 이이첨 5편

■ 간신 이이첨 5편

그 무렵 광해군은 상궁 김개시를 무척 총애하고 있었다. 그녀는 예전에 동궁의 시녀였는데, 광해군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고 상궁이 되었다. 이이첨은 광해군이 세자빈을 간택할 때 박승종의 손녀를 선발하게 했다. 그런데 박승종이 왕의 신임을 받으면서 유희분과 결탁하여 이이첨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에 분개한 이이첨은 김개시의 아버지와 교분을 맺음으로써 김개시와 소통하는 관계가 되었다. 그 후 이이첨은 함부로 드러내기 곤란한 내용은 언문으로 써서 김상궁에게 보여준 다음, 김개시가 은밀히 광해군을 설득하게 했다. 이이첨과 김개시가 한통속이 되어 권력을 농단하기에 이르렀다.

이이첨과 정인홍으로 대표되는 대북파는 정권유지를 위해 꾸준히 패착(敗着:바둑에서 나쁜 수)을 이어갔다.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킴으로써 정적들에게 ‘폐모살제(廢母殺弟)’라는 쿠데타의 명분을 제공했다. 또 이황과 이언적의 문묘 종사를 반대함으로써 조선의 언론을 리드하던 사림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1623년 이귀, 김자점, 김류, 이괄 등의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권좌에서 쫓겨났다. 당시 이이첨은 반정 소식을 듣자마자 식솔들을 이끌고 남쪽 성벽을 넘어 이천의 시골집으로 도망쳤다가 관병에게 붙잡혔다. 당시 넷째아들 이대엽의 아내가 거사를 일으킨 신경유의 누이였으므로, 그는 며느리를 성내에 들여보내 구원을 청하게 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64세의 이이첨의 목이 맨 처음 잘렸고, 아들 이원엽·이홍엽·이익엽 등이 뒤를 이었다. 넷째아들 이대엽은 옥중에서 죽었다. 그리하여 10대에 이르는 동안 빠짐없이 대과에 급제했던 조선의 명가(名家) 하나가 사라지고 말았다. 광해군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정권을 농단하던 이이첨은 그 후 서인 정권이 이어진 구한말까지 조선의 대표적인 간신이자 악인으로 치부되었고, 그의 저서와 문집은 유실되거나 소각되었다. 하지만 1908년 스승 정인홍이 복권되고, 이후 폭군으로 매도되었던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그에 대한 평가도 조금씩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이첨은 아직도 광해군을 다루는 각종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폭압적인 신료이자 간신배의 전형(全形)으로 등장하고 있다. 1908년에 정인홍을 비롯해 여러 대신들이 신원되었으나 그때도 그는 끝내 신원되지 못했다. 실제로 그는 행동대장 격이었으나, 말년의 폭주 때문에 모든 악정(惡政)의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대북의 영수로서 강한 권력을 휘둘러 서인 집권 이후 조선말까지 부정적으로 평가받았던 이이첨은 왕명조차도 항명(抗命)할 정도로 권력을 독식해 휘둘렀다는 것이 비판의 주된 이유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명나라에 대한 태도에서 보이듯 타 당파와 노선을 맞춘 적도 많고 개인적으로는 청렴했으며, 한명회 등 다른 시기의 독불장군형 권신(權臣)에 비해 의외로 주변 눈치도 많이 보던 인물이다. 이는 그가 제대로 된 학자가 아니라 정인홍의 권위를 빌려서 주로 정치적 싸움을 대리했던 행동대장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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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33
■ 간신 이이첨 4편

■ 간신 이이첨 4편

정인홍을 비호하던 광해군은 성균관 유생들을 모조리 내쫓았고, 이듬해는 김직재의 무옥(誣獄)을 통해 소북파 인사 100여 명을 처단해 버렸다. 이로써 대북파는 남인과 결별하고 소북파를 축출함으로써 정사를 주도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 영창대군이 살아있는 한 언제든지 광해군의 권좌가 흔들릴 수밖에 없음을 통감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이첨은 1613년(광해군 5년)에 정인홍과 함께 본격적인 정권 굳히기에 나섰다. 대북파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칠서의 옥’을 빌미로 계축옥사(癸丑獄事)를 일으켜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을 죽이고 영창대군을 강화도에 연금한 다음 강화군수 정항을 시켜 살해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로써 광해군의 권좌는 물론 대북파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세간의 악평은 피할 수 없었다.

이이첨은 1618년에는 판의금부사, 예조판서, 약방제조, 1619년 대제학을 거쳐 1620년 다시 예조판서가 되었다. 예조판서와 대제학을 겸하면서 과거를 주관하게 되자, 많은 후진들을 조정에 받아들여 큰 세력을 형성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썼던 당대의 풍운아 허균도 이이첨의 휘하에 있었다. 당시 이이첨은 조정에서 거론하기 어려운 사안이 있으면, 스스로 초안(草案)을 만들어 추종자들에게 나누어주어 상소를 올리게 한 다음, 광해군에게 초야(草野)의 공론(公論)이라고 아뢰었다.

정권을 장악한 대북파는 임진왜란의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했다. 1608년부터 선혜청을 두어 경기도에 대동법을 실시했으며, 양전 사업을 통해 농지를 확충했고, 전란 중에 불타버린 경복궁과 창덕궁, 인경궁을 중건했다. 북방에서 강성해진 여진족이 1616년 후금을 건국하자 대포를 주조하고 수비를 강화하는 등 안보에도 만전을 기했다. 이이첨은 광해군이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양면외교를 펼칠 때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면이다. 하지만 광해군은 당시 원군(援軍)을 이끌던 강홍립에게 섣불리 후금군과 싸우지 말라고 지시했다. 당시 내치(內治)는 대북파가 리드했지만, 외교 부문에 있어서만큼은 광해군이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실리를 중시하던 광해군은 전란 이래 중단되었던 일본과의 외교 관계도 재개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 《용비어천가》, 《국조보감》 등을 편찬하고 적상산성에 사고를 설치했다. 당대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허균의 《홍길동전》, 허준의 《동의보감》 같은 명저(名著)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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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신 이이첨 3편

■ 간신 이이첨 3편

아침까지 아무렇지도 않았던 선조가 집무를 보다가 광해군이 올린 음식을 먹고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기 때문에 광해군을 옹립한 이이첨이 김상궁(김개시)과 함께 선조를 해쳤다는 소문이 항간에 퍼진 것이다. 원배령을 받았던 이이첨이 유배를 떠나지 않고 이틀 동안 머뭇거리다 풀려난 것도 이런 소문을 뒷받침해 주었다. 선조는 어의(御醫) 허준(許浚)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돌연 승하하였다. 당시 유영경은 후사를 광해군에게 맡긴다는 선조의 교서를 숨기고 인목대비에게 영창대군으로 보위를 이은 다음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영창대군의 나이가 워낙 어린데다가 부왕(父王)의 유지(遺志)를 존중한 인목대비의 명으로 광해군이 보위에 오를 수 있었다. 대북파를 이끌던 정인홍과 함께 이이첨은 적극적으로 광해군을 지지하여 광해군 즉위 후 정권의 1인자로 국사(國事)를 좌지우지하며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광해군은 1609년(광해군 1년) 2월 25일 내린 비망기(備忘記)에서 당파에 관계없이 인재를 천거하고, 현자(賢者)를 등용하여 나라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자고 강조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당시 광해군은 남인 이원익을 정승으로 임명하여 초당파적인 정국을 운영하려 했지만 자신의 즉위에 공을 세운 대북파의 저지로 인해 곧 뜻을 접고 만다. 광해군의 즉위를 방해한 유영경을 비롯한 소북파를 역도로 몰아 모두 처형했다. 뒤이어 수시로 왕위에 집착을 보이던 임해군을 강화도에 위리안치한 다음 살해하기까지 했다. 광해군의 복심(腹心)을 미리 읽고 행동하는 심복이 된 것이다. 그는 권력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았지만 항상 조정의 논의를 주도했으므로 벼슬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이 저택 앞에 줄을 섰고, 조정에서도 그에게 아첨하는 무리들이 많았다.

1609년(광해군 1년) 7월 경상도 유생 이전 등이 ‘오현(五賢)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제창했다. 문왕 공자를 모시는 성균관 문묘에 조선 유림의 대표적인 선비로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 등 다섯 사람을 배향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문묘종사 논의가 구체화되면서 조정에서 불화가 일어났다. 당시 북인들은 남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이언적과 이황이 포함된 반면 자신들의 스승인 서경덕과 조식이 누락되었다며 반발했다. 1611년(광해군 3년) 정인홍이 상소를 올려 이언적과 이황의 그릇된 처신을 비판했다. 명종 즉위년에 벌어진 ‘양재역 벽서 사건’과 이듬해의 ‘정미옥사’로 사림이 떼죽음을 당할 때 두 사람이 조정에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자 성균관 유생들은 유생명부인 《청금록(靑衿錄)》에서 정인홍의 이름을 삭제해 버렸다. 정인홍은 대북파의 영수로 임진왜란 때 화의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유성룡을 탄핵했고, 후계파동이 일어났을 때 광해군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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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34
■ 간신 이이첨 2편

■ 간신 이이첨 2편

1593년 3월, 이이첨이 세조의 영정을 들고 행재소(行在所)를 찾아오자, 선조는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마중을 나왔다. 당시 조선의 역대 국왕의 영정이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집경전 참봉 홍여율이 태조의 영정을 보전했고, 광릉 참봉 이이첨이 세조의 영정을 지켜냈던 것이다. 그때까지 이극돈(무오사화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되어 사림파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됨)의 후예라 하여 사대부들로 부터 외면당하던 이이첨은 이렇게 선조의 신임을 받아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선조 15년에 소과에 급제하고, 전란이 소강상태에 빠져있던 1594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함으로써 벼슬을 제수(除授:추천이 아닌 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림) 받고, 사가독서(賜暇讀書:유망한 문신에게 휴가를 주어 공부하게 함)의 혜택을 받았다. 가문의 흠결은 이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1597년(선조 30년) 6월 22일의 실록에는 그의 효행에 대한 경기 관찰사 홍이상의 보고 내용이 실려 있다. 전 평강 현감 이이첨이 임오년과 계미년 사이에 아버지와 계조모가 잇달아 세상을 뜨자, 여막(廬幕)에 거처하면서 지나치게 슬퍼한 나머지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였으며, 상제(喪祭)의 의례를 한결같이 《가례(家禮)》에 의거했고 상복을 벗은 후에도 삭망(朔望)에 성묘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극한 효행을 인정받아 고향에 정문(旌門:충신 열녀 등의 문 앞에 세워진 붉은 문)이 세워지기도 했다.

전쟁이 사실상 종식된 1598년(선조 30년)에 이이첨은 또 하나의 기회를 잡는다. 당시 정6품 병조 좌랑이었던 그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곳) 사서로 임명된 것이다. 이때부터 임진왜란 때의 맹활약으로 일찌감치 차기 왕권을 예약해 놓은 광해군과의 깊은 인연이 맺어졌다. 이이첨은 세자 광해군에게 충성하면서 내일의 군주를 지켜내기에 최선을 다했다. 그 와중에도 일관된 선조의 총애를 바탕으로 사간원 정언을 거쳐 1599년에는 이조 정랑에 이르렀고, 1608년에는 중시(重試)에 장원급제하기도 했다.

선조는 만년(晩年)에 인목왕후 김씨로부터 딸 정명공주에 이어 적자(嫡子)인 영창대군을 얻었다. 그로 인해 후계에 대한 선조의 의중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영의정 유영경이 영창대군을 지지하면서 세자 광해군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 북인 일파는 당시 내부에서 일어난 후계자 문제 때문에 대북파와 소북파로 분열되었다. 이이첨은 대북파를 이끌던 스승 정인홍과 함께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파의 영수 유영경을 탄핵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광해군을 지지했다. 이에 분개한 선조가 이이첨에게 원배(遠配:면곳으로 귀양보냄)령을 내렸지만, 선조가 갑자기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이이첨은 예조판서에 올랐다. 당시 선조의 죽음을 두고 독살되었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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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35
■ 간신 이이첨 1편

■ 간신 이이첨 1편

이이첨은 무오사화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극돈의 5대손이다. 이극돈은 당시 훈구파의 거물로서 전례(典例)에 밝고 문장이 뛰어났으며, 행정을 꿰뚫고 있었으므로 부임하는 곳마다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본관이 광주인 이극돈의 가문은 위로 3대, 아래로 5대까지 문과 급제자를 낸 조선의 명가(名家)였다. 그의 형제 네 명이 모두 정승과 판서를 지냈고, 조카와 사촌형제들도 참판과 참의를 지냈다.

이극돈은 1498년(연산군1년) 《성종실록》 편찬을 위한 실록청이 개설되었을 때 당상관으로 임명되었는데, 김일손이 수집한 사초(史草) 속에 있는 김종직의 〈조의제문〉 내용을 유자광에게 흘렸다. 유자광은 곧 연산군에게 김종직이 대역죄를 저질렀다고 보고했다.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일을 항우에게 죽음을 당한 초나라의 의제에 비견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연산군은 이미 사망한 김종직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그의 제자인 김일손, 권오복, 권경유 등 수많은 사림 인사들을 죽이거나 귀양 보냈다.

이 참혹한 무오사화의 서슬에 실록청의 수장이었던 이극돈은 어세겸, 유순, 윤효손 등의 사관들과 함께 문제의 사초를 보고하지 않은 죄로 파면되었다. 결과를 따지고 보면 그 역시 피해자였지만 유자광에게 사화의 단초(緞綃)를 발설했다는 죄 때문에 두고두고 사림의 원망을 받아야 했다.

이극돈은 사화(士禍)의 불꽃이 사그라진 뒤 복권되어 광원군에 봉해졌고, 병조판서에 제수되었지만 얼마 후 사직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연산군은 광주 이씨 가문을 경계하였고, 임사홍이 폐비 윤씨 사건을 거론함으로써 일어난 갑자사화 때는 거의 멸문지경으로 몰아넣었다. 이극돈의 조카 이세좌가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들고 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몰아낸 반정공신들은 이극돈을 무오사화의 원흉으로 규정했다. 그 탓에 이이첨은 어린 시절부터 이극돈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늘 사림들의 외면과 홀대를 받아야만 했다. 그의 가정은 꽤 어려웠고 그의 아내는 배고픔에 실성해 벽지의 풀을 먹었다는 설도 있다. 오랫동안 음지(陰地)에서 학문에 몰두하며 기회를 엿보던 그는 남명 조식의 제자였던 정인홍의 문하(門下)에 들어갔고, 1582년(선조 15년) 소과에 급제하여 종9품 광릉(廣陵: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능) 참봉(參奉:능을 돌보는 벼슬)에 임명되었다.

임진왜란은 이이첨에게 몰락해가는 가문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다. 오랫동안 보잘것없는 광릉 참봉으로 대과 응시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그는,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도망치지 않고, 현지에서 의병(義兵)을 일으켜 왜적과 맞서 싸우게 된다. 왜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하자, 봉선사의 주지 삼행은 봉안(奉安)하고 있던 세조의 영정(影幀)을 봉선전에 묻어두었다.

얼마 후 절에 침입한 왜군이 그것을 발견하고 찢어버리려 하자, 삼행이 애걸하여 되찾은 다음 은밀한 곳에 감추어 두었다. 그 후 서울에 주둔하던 왜군이 날마다 광릉 근처에 출몰하여 민가(民家)를 약탈하고 숲에 불을 지르는 등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세조의 영정이 훼손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인근에 있던 광릉 참봉 이이첨은 이 소식을 듣고 군막을 떠나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걸어서 봉선사에 도착했다. 이이첨은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절에 잠입하여 애타게 자신을 기다리던 삼행으로부터 세조의 영정을 받아들고 곧바로 적진을 뚫고 돌아왔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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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36
◇ 청년들에게 ‘공정한 운동장’을 주려면 5060님들, "깔끔하게 퇴장합시다"

◇ 청년들에게 ‘공정한 운동장’을 주려면 5060님들, "깔끔하게 퇴장합시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정치인 자격 시험’을 거론했다. “2030 청년 직장인 중엔 엑셀 못 쓰는 사람이 없다. 우리 당 선출직 공직자라면 그 정도 능력은 갖춰야 한다”고 하면서. 그 말을 듣고 뜨끔했다. ‘엑셀을 마지막으로 써본 지가 언제던가? 10년 전?’ 한 달 전쯤 휴대폰을 삼성 갤럭시폰에서 애플 아이폰으로 바꾸면서 애를 먹었다. 데이터를 옮기고, 앱을 새로 까는데 호환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IT기술에 밝은 후배의 손을 빌렸다. 내가 몇 시간 끙끙 앓던 문제를 후배는 순식간에 해결했다. 필자의 연봉은 후배의 2배를 훨씬 웃돈다. 회사가 엑셀과 스마트폰 다루는 능력을 보고 연봉을 책정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런 분야 업무 생산성은 후배의 10%도 안 될 성 싶다.

하지만 어느 분야 어떤 직장을 막론하고 필자 같은 586 꼰대 세대가 조직 내 기득권자로 자리 잡고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를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에서 30년 이상 근속 근로자 임금은 1년 미만 근속자의 4.4배에 달한다. 노조가 센 유럽 평균치(1.6배)는 물론이고 호봉제 원조 국가인 일본(2.4)보다도 훨씬 높다. 반면 우리나라 50대 근로자의 생산성은 2030 직장인의 60%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현재의 세대 간 임금 격차는 ‘공정’과 거리가 멀다.

정치 지형에서 세대 간 권력 격차는 더 심각하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 5060세대는 과다(過多) 대표 되고 있는 반면 2030세대는 심하게 과소(過少) 대표 되고 있다. 2030세대의 유권자 비중은 34%에 이르는데, 2030세대 국회의원은 13명(4.4%)밖에 안 된다. 반면 50대의 유권자 비중은 28%인데, 의원 비중은 59%에 이른다. 60대를 포함한 5060 의원 비중은 무려 83%에 달한다.

5060세대로 가득 찬 국회는 세상 변화를 못 따라간다. 청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선 고용 유연성을 높이고 호봉제를 없애는 임금 체계 개혁을 해야 하는데 국회는 거꾸로 간다. 해고자에게도 노조원 자격을 부여하는 법을 만들고, 기득권 집단의 반발이 무서워 차량 공유, 공유 숙박, 원격의료 같은 4차 산업혁명 관련 서비스를 금지시킨다.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의 절반은 규제 탓에 한국에선 사업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586세대는 능력 대비 과도한 보상을 누렸다. 아버지 세대가 만들어준 산업화 토양 덕분에 취업도 쉽게 하고, 내 집 마련도 어렵지 않게 했다. 1980년대 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달성한 공로가 있지만, 보상은 이미 다 받았다. 이제 단군 이래 최고 역량을 지녔다는 2030세대에 자리와 기회를 양보해야 한다. 586세대의 남은 과제는 청년들이 운동장에서 맘껏 뛰어놀게 장애물을 치워주는 것이다.

각자 몸담은 직장에서 호봉제부터 수술하자. ‘정년 연장’과 ‘직무급 도입’을 맞바꾸는 단체 협약은 어떤가. 정치권에선 청년층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해 파격적인 해법을 찾아보자. 서울에서 주로 걷는 종합부동산세 세수를 전국의 청년 주택 건설에 사용하는 방안은 어떨까.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꿔 20대 남성의 기회 불평등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방안을 검토해보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도입해 청년 의원을 대폭 늘리자. ‘마이너스 소득세’든 ‘안심소득’이든 소득 안전망을 강화하면서 고용·해고 유연성을 높이는 노사정 빅딜을 시도해보자. 국민연금, 건강보험도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개선해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어주자. 586세대가 이 정도 숙제는 해놓고 가야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조선일보 경제포커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060.html
kolaswqetsrq 11.02 20:36
◇ 법무연수원의 변천사

◇ 법무연수원의 변천사

법무연수원의 모태는 1951년 설립된 형무관학교다. 형무소와 형무관이라는 일제 시대 이래의 용어가 1960년대 들어 교도소와 교도관으로 바뀌면서 이 기관의 이름도 교도관학교로 변경됐다.

법무연수원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건 1972년이다. 교도관학교를 흡수 통합하면서 설립된 법무연수원은 그때부터 검사 등 법무부 공직자 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그곳에 연구위원이라는 직위가 생긴 건 1986년의 일이다. 전형적인 위인설관이었다. 당시 권력은 몇 년 뒤 ‘6공 황태자’로 불리게 될 박철언 검사를 검사장으로 승진시키고는 마땅한 자리가 없자 검사장급 보직으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직을 신설했다.

이후 이 자리는 검사장 또는 검사장 승진을 눈앞에 둔 검찰 고위 간부들이 소일 삼아 잠시 거쳐 가는 명예직이 됐다. 성격이 달라진 건 2000년대 초반 법무부가 비리에 연루된 한 고검장을 이 자리로 보내면서부터다. 이후 연구위원직은 승진에서 누락됐거나 감찰 또는 수사를 받는 이들이 퇴임 직전에 가는 자리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법무·검찰 내 정치 갈등 격화의 와중에 연구위원직은 또 한 번 퇴색했다. 대표적인 보복 인사의 수단으로 악용되면서다.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 이른바 ‘우병우 사단’으로 불렸던 검사장 4인이 한꺼번에 연구위원으로 발령 났던 게 최신 사례다. 정권 관련 수사를 지휘하다가 이 자리로 쫓겨났던 한동훈 검사장 역시 산 증인이다. 이번 고위 간부 인사에서도 정권에 밉보였던 간부들의 연구위원 발령은 어김없이 재연됐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여봐란듯이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했다. 온갖 간난신고 끝에 기어이 정상의 턱밑까지 도달하면서 정권 재창출 시 또 한 번 검찰총장직을 노려볼 수 있게 됐다.

‘피고인 중앙지검장’이라는 치욕을 달게 넘겼던 그가 ‘피고인 검찰총장’이라고 해서 마다할 것 같지는 않다. 만에 하나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존경하는’ 국회의원과 지자체장들의 선례에 따라 확정판결 때까지 버티면 그만일 터. 물론 장밋빛 구상이 현실화할지는 미지수겠지만 말이다.

시국이 잊었던 옛 노래를 소환했다. “세상은 삐까번쩍 거꾸로 돈다네. 제자리 찾아간다네.”(김호철, ‘포장마차’)

-중앙일보 분수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99.html
kolaswqetsrq 11.02 20:37
◇ “제발 조용히 살고 싶다”... 내레이션조차 없는 ‘멍TV’ 10분EBS 가만히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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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조용히 살고 싶다”... 내레이션조차 없는 ‘멍TV’ 10분(EBS 가만히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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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긴 12시 30분. TV를 켜자 화면에 빙글빙글 회전하는 화로가 보인다. 그 위로 고등어 두 마리가 놓인다. 푸른빛의 고등어가 노릇노릇 익어간다. 아나운서도, 내레이션도 없다. 사람 목소리는 배제하고 가스불 소리나 화로가 돌아가는 소리 등 현장 소음만 들린다. 10분간 고등어 굽는 모습만 보여주다 프로그램은 끝난다.

공중파 EBS가 지난해 9월부터 매주 월~목요일 밤에 방영하는 프로그램 ‘가만히 10분, 멍TV’다. 장어 굽기·닭튀김 등 요리부터 초승달·대나무숲·연못 속 물고기 같은 자연, 63빌딩·광안대교·서울역·광화문 등 도시 풍경까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을 아무런 설명이나 장면 전환 없이 있는 그대로 쭉 보여준다. 추덕담 총괄 프로듀서(CP)는 “현실에 지친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영상을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제작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형식의 시도에 방영 초기 “방송 사고가 났다”는 항의까지 받았지만, 이제는 “이 방송 없이는 잠에 들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제법 충성 시청자들이 생겼다고 한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온갖 정치·사회 뉴스는 시종일관 현대인의 귀를 때리고 눈을 어지럽힌다. 이미 코로나 시대 이전에도 한강변과 서울시청광장에서 ‘멍 때리기 대회’가 있었다.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은 지난달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룸에서 음악을 듣는 ‘바다 멍’ 예약 상품을 출시했는데 첫 주 만에 마감됐다. 오프라인에서 열리던 쉼표 행사는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사람들은 정보의 쓰나미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잠시 쉬고 싶다’는 욕망도 콘텐츠를 소비하며 해소한다.

유튜브에선 일상적인 소음이 담긴 ASMR 영상이 이런 오아시스 역할을 하고 있다. ‘멍 때리기’ ‘꿀잠’ ‘스트레스 해소’란 꼬리표(해시태그)를 단 영상들은 수백만의 조회 수를 기록한다. 별생각 없이 흘려들을 수 있으면서 귀에 자극을 주지 않는 소리가 특징이다. 자연 풍광을 보여주거나 달팽이(사진 위), 음식을 먹는 ‘먹방’을 넘어 머리 감기, 도장 파기(사진 아래), 빗질하기, 귀 파주기, 마사지, 목욕하기, 화장품 바르기, 장난감 가지고 놀기 등 영상 종류도 다양해졌다. 영상 재생 시간은 보통 10분을 넘지 않는다. 긴 호흡보다는 짧은 콘텐츠를 선호하는 젊은 층의 시청 습관을 고려한 결과다.

이런 흐름을 따라 유명 가수들도 읊조리는 듯한 창법과 차분한 멜로디를 내세운 음악을 발표하고 있다. ASMR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에서 선보이기도 했던 아이유는 최근 발매한 앨범에 화려하고 자극적인 음악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발라드곡을 여럿 실었다.

음악평론가 김작가씨는 “음원 차트에는 아이돌과 힙합 음악을 제외하고 이른바 ‘고막 애인’으로 불리는 듣기 편한 음악들이 순위에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팝의 여왕이던 테일러 스위프트는 지난해부터 인디 음악 감수성을 갖춘 포크·컨트리 앨범을 잇달아 발표해 음악적인 성공을 이어나가며 변신에 성공했고, 빌리 아일리시는 몽환적이면서 음울하고 나른한 음악으로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자)의 아이콘이 됐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tv-10ebs-10.html
kolaswqetsrq 11.02 20:38
◇ 치매 치료제-뇌 손상 자체 늦추는 약은 처음

◇ 치매 치료제-뇌 손상 자체 늦추는 약은 처음

박완서 작가는 26년 동안 시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1남 4녀를 둔 작가는 “시어머니는 아들딸 가리지 않고 우리 집에 새로 태어난 생명을 기쁘고 극진하게 모신, 천사의 마음을 타고난 분”이라고 했다. 이 시어머니가 말년 3~4년 ‘노망이 드셔서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작가는 “지금으로 치면 치매”라고 했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살다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결국 화해하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 ‘해산바가지’다.

박완서 작가가 들었으면 크게 반길 뉴스가 나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미 제약사 바이오젠이 일본의 에자이와 함께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승인한 것이다. 알츠하이머 치료 신약이 FDA 승인을 받은 것은 2003년 이래 18년 만이다. 기존 허가 받은 알츠하이머 약은 기억력 감소 등 증상을 완화하는 데 그쳤기 때문에 뇌 손상 자체를 늦추는 약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이 치매다. 현재 국내 치매 환자 수는 84만명으로, 연평균 16% 증가하고 있다. 65세 이상에서는 10명 중 1명 이상이 치매를 앓고 있다. 이처럼 환자는 늘어나는데 치매 치료제는 특히 개발이 어려운 난공불락 영역으로 꼽혀왔다. 인간의 뇌는 우주에 비견될 만큼 복잡하다. 우리가 뇌에 대해 아는 것도 부족하다. 바이오젠 신약은 뇌에서 ‘베타-아밀로이드’라는 해로운 단백질 덩어리 제거를 돕는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라이릴리는 지난 30년간 30억달러(약 3조원)를 투자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화이자도 2018년 개발을 포기하고 대규모 감원을 했다. 알츠하이머 치료제의 임상 실패율은 99.6%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바이오젠도 천신만고 끝에 승인을 받았다. 이 회사는 2019년 임상시험에서 개선 효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개발 중단을 발표했다. 그런데 자료를 다시 분석한 결과, 고용량을 투여한 환자의 사고 능력 저하가 대조군보다 22% 덜했다며 FDA에 신약 승인을 신청했다. FDA의 외부 전문가 자문위는 작년 11월 “설득력 있는 증거가 없다”며 불허를 권고했지만 FDA가 후속 연구를 조건으로 승인한 것이다.

바이오젠 외에도 카사바사이언스, 알렉터, 로슈 등 해외 제약사와 젬백스 등 국내 제약사들도 치매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과학자들은 임상 시험 실패에서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초기 임상에서 인지 기능 회복 가능성을 보여주는 후보 물질도 있다. 실패에서 배우며 도전을 계속하면 치매라는 성도 함락하는 날이 올 것이다.

-조선일보 만물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435.html
kolaswqetsrq 11.02 20:38
작벽상관作壁上觀 - 성벽에서 싸우지 않고 구경만 하다, 승패만 보고 도와주지 않다.

작벽상관(作壁上觀) - 성벽에서 싸우지 않고 구경만 하다, 승패만 보고 도와주지 않다.

지을 작(亻/5) 벽 벽(土/13) 윗 상(一/2)

힘이라 하면 項羽(항우)가 대명사다. 그리스의 헤라클레스(Heracles)는 신화 속 인물이라 겨룰 수도 없고, 산을 뽑을 만한 힘에 기개는 세상을 덮는다는力拔山氣蓋世/ 역발산기개세 항우의 힘을 당할 사람은 없겠다. 중국을 처음 통일한 秦始皇(진시황)이 죽고 각지서 군사들이 일어났을 때 楚(초)의 명문가 출신 항우는 스물네 살의 나이에 숙부 項梁(항량)과 함께 병을 일으켜 싸움터마다 연전연승했다. 그러다 漢(한)의 劉邦(유방)의 지모에 밀려 황제 자리를 뺏기고 31세의 나이에 자결하는 파란만장한 삶은 楚漢(초한)전쟁을 다룬 책마다 흥미 있게 펼쳐진다.

벽을 만들고(作壁) 위에서 바라보기만 한다(上觀)는 말은 초나라 항우군이 대승을 거둔 鉅鹿(거록) 전투에서 나왔다. 싸움을 도와주러 온 제후군이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고 구경만 하니 팔짱을 끼고 바라보는 袖手傍觀(수수방관)이나 坐觀成敗(좌관성패)와 다를 바 없다.

趙(조)나라의 거록성에 秦(진)의 주력군이 공격하자 항우와 제후군이 연합하여 방어했다. 항우군의 대장 宋義(송의)가 강을 사이에 두고 40여일 질질 끌자 속이 탄 항우가 그의 머리를 베고 군권을 잡았다. 강을 건넌 뒤 배를 가라앉히고 솥을 깨뜨리는 破釜沈舟(파부침주)의 기세로 거록성에 육박하여 일당백의 활약을 펼친 항우는 대승을 거두었다.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에는 이 부분을 이렇게 묘사한다. 거록을 구하러 온 제후군이 10여 진영이 넘었으나 감히 군대를 내보내지 못했다. ‘초나라가 진의 군대를 공격할 때 제후군의 장수들은 모두 성벽의 보루에서 관전만 하고 있었다(及楚擊秦 諸將皆從壁上觀/ 급초격진 제장개종벽상관).’ 용맹스러운 초군의 함성이 하늘을 진동시켜 모두 두려워했고 이 전투 이후 항우는 제후들의 상장군이 되었다.

실제 왕이 되지도 못했고 楚覇王(초패왕)으로 자칭했을 뿐인 항우를 사마천은 제왕들의 전기인 本紀(본기)에 올려 대우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항우가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한 사실을 인정했다. ‘항우 장사’라는 말이 고집의 대명사도 된다. 뭇 제후를 밑에 두게 된 항우는 주위의 의견도 듣지 않고 기고만장 날뛰다 민심을 잃고 四面楚歌(사면초가)로 쫓기면서 약체였던 유방에 밀렸다. 천하의 장사이고 전투에 능한 명장이라도 제멋대로이면 따돌림을 당한다.

10여 제후국을 거느리고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몰락한 것은 자초한 일이다. 지도자가 건설적인 의견을 무시하고 오로지 자기 갈 길만 간다면 아래 조직원들은 입을 닫게 되고 그 단체는 빤한 결말이 기다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36.html
kolaswqetsrq 11.02 20:39
도방고리道傍苦李 - 길가에 있는 쓴 자두 열매, 남에게 버림받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

도방고리(道傍苦李) - 길가에 있는 쓴 자두 열매, 남에게 버림받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

길 도(辶/9) 곁 방(亻/10) 쓸 고(艹/5) 오얏 리(木/3)

金(김)씨 다음으로 많은 大姓(대성) 李(이)씨의 훈음인 오얏은 털 없이 매끈한 과일 자두의 옛말이다. 자주색 복숭아 紫桃(자도)에서 변한 말로 시큼한데다 달콤하여 옛 성어에 많이 등장할 만큼 대접을 받았다. 오얏나무 아래선 갓을 고쳐 매지 않아야 한다는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 재주나 풍모가 뛰어난 문하생이 많은 것은 桃李滿天下(도리만천하) 등으로 모두 아끼거나 귀한 과일이었다.

이렇게 누구나 좋아하는 오얏이라도 여기저기 지천으로 널려 있으면 눈길을 끌지 못한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가(道傍)의 오얏나무 열매가 쓰다(苦李)는 말은 모두 거들떠보지 않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는 것을 비유한다.

중국 竹林七賢(죽림칠현) 중의 한 사람인 王戎(왕융, 234~305)의 일화에서 유래한 성어다. 왕융은 西晉(서진)의 정치가로 어려서부터 영특했고 풍채가 비범했지만 노장사상을 선호하며 유유자적, 세속정치에는 큰 뜻을 두지 않았다. 그가 어릴 때 일이다. 아이들과 놀던 중 길가 오얏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어 모두 따려고 달려가는데 왕융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 사람이 물어보니 답한다. ‘길가에 오얏이 저렇게 많은데도 따지 않는 것은 틀림없이 쓰기 때문입니다(樹在道邊而多子 此必苦李/ 수재도변이다자 차필고리).’ 오얏을 따서 먹어보니 과연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썼다. 房玄齡(방현령)의 ‘晉書(진서)‘ 왕융전과 劉義慶(유의경)이 쓴 ‘世說新語(세설신어)’ 雅量(아량)편에 실려 있다.

시구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晩唐(만당)시대의 시인으로 율시에 뛰어난 許渾(허혼)은 이렇게 읊는다. ‘길가의 쓴 오얏은 오히려 열매를 늘어뜨렸고, 성 밖의 감당나무는 그늘을 펼쳤구나(道傍苦李猶垂實 城外甘棠已布陰/ 도방고리유수실 성외감당이포음).’ 우리나라 고전에도 고려 후기 문신 李尊庇(이존비)에서 인용한 것이 ‘東文選(동문선)’에 나온다. ‘좋건 궂건 물건은 다 쓸 데가 있는 법, 쓴 오얏 열매 많음을 누가 탓하리(物無美惡終歸用 苦李誰嫌着子多/ 물무미악종귀용 고리수혐착자다).’ 흔한 물건이라도 쓰일 데가 있다는 이야기로 왕융 일화와는 뜻하는 바가 다르다.

이렇게 너무 많아 지천이라도 쓰일 곳이 없어 버림받는다는 처음의 뜻에서 차츰 그렇게 된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뜻으로 의미를 넓혔다. 하지만 우리 속담 ‘개살구도 맛들일 탓이다’란 것이 뜻하는 대로 정을 붙이면 처음에 나빠 보이는 것도 점차 좋아지게 마련이다.

흔해 빠진 쇠오줌과 말똥 牛溲馬勃(우수마발)이 약재의 이름이라고도 하니, 발길에 채는 물건일지언정 쓰임새가 있을 수 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덩달아 팽개칠 일이 아닌 것은 좋고 나쁨이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주관에 달려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384.html
kolaswqetsrq 11.02 20:40
장광설長廣舌 - 길고도 조리 있게 잘 하는 말솜씨, 쓸데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

장광설(長廣舌) - 길고도 조리 있게 잘 하는 말솜씨, 쓸데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

긴 장(長/0) 넓을 광(广/12) 혀 설(舌/0)

말을 잘 하면 모두들 부러워한다. 이에 관해 속담도 많고, 성어도 많이 전한다. ‘말만 잘하면 천 냥 빚도 가린다’고 값어치로 따지는가 하면 듣기만 해도 즐겁다고 한다. 말을 잘 하면 靑山流水(청산유수)와 같다고 하고, 나아가 폭포서 떨어지는 듯 시원하다고 口若懸河(구약현하)라 한 것이 그것이다.

또 ‘말 잘 하기는 소진 장의로군’이라며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때 合從連衡(합종연횡)으로 설득하여 각국을 흔들었던 蘇秦(소진)과 張儀(장의)에 비유한다. 반면 말을 꼭 해야 할 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찬바람 맞은 매미 같다며 噤若寒蟬(금약한선, 噤은 입다물 금)이라 핀잔 받고 나중에 왜 참았지 후회한다. 말을 잘 하기도, 때를 잘 가리기도 어렵다.

말을 힘차게 또 길게 잘하는 솜씨, 또는 쓸데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을 흔히 長廣舌(장광설)이라 한다. 말솜씨인데 말씀 說(설)이 아니고 혀 舌(설)이 사용돼 어리둥절하지만 연유가 있다. 혀가 길고 넓다고 한 것은 부처님의 모습이 일반 사람들과 다른 용모상의 특징 三十二相(삼십이상)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불교 경전에 따라 廣長舌(광장설), 大舌相(대설상)이라고도 하는 부처님 혀의 특징은 넓고 길어 내밀면 이마 부분까지 닿을 정도라 했다. 겉으로 드러난 32가지 相(상)은 부처님과 인도 신화 속의 正法(정법)으로 온 세계를 통솔한다는 轉輪聖王(전륜성왕)도 갖고 있지만 부처에겐 보이지 않는 八十種好(팔십종호)가 따로 있단다.

이처럼 거룩한 부처님의 장광설은 넓고 긴 혀로 부드럽게 중생에게 지혜를 널리 알리는 가르침을 말했다. 혀가 코에 닿는 긴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고 했으니 이마까지 늘일 수 있는 부처야말로 진실하고 알찬 말만 했을 것은 당연하다.

길고 넓은 혀는 뛰어난 지혜와 웅변의 상징이다. 宋(송)나라 시인인 蘇東坡(소동파)가 깨달음을 얻고 照覺禪師(조각선사)에게 준 시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시냇물 소리는 부처의 설법이요, 산 빛은 어찌 청정한 부처의 몸이 아니리(溪聲便是廣長舌 山色豈非清淨身/ 계성편시광장설 산색기비청정신)."

좋은 뜻의 이 말이 언젠가부터 끝도 없이 지루하게 늘어놓는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굳어졌다. 우리의 사전에도 1960년대 이후에 이 뜻이 추가됐다고 하니 멀지도 않다. 바쁜 현대인이 남의 말을 귀담아들을 여유가 없어져 옳은 말이라도 귀찮게 여겼을 법하다.

부처님의 옳은 말이라도 계속되면 귀를 닫는데 범인들이야 말할 것이 없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고 하고, 言甘家 醬不甘(언감가 장불감)이라며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고 했다. 하물며 서로가 자기만 옳고 처지가 바뀌면 어김없이 ‘내로남불’이 판치니 어떻게 들을 이야기가 많겠는가.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025.html
kolaswqetsrq 11.02 20:40
심격천산心隔千山 - 마음 사이의 천개의 산, 소통이 안 됨

심격천산(心隔千山) - 마음 사이의 천개의 산, 소통이 안 됨

마음 심(心/0) 사이뜰 격(阝/10) 일천 천(十/1) 메 산(山/0)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모든 갈등은 사라질까. 아니 자신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마음도 읽을 수 있으므로 오히려 더 혼돈스러울지 모른다. 사람의 마음이란 변하기 쉬우니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이란 말이 나왔겠다.

사람의 속마음을 알기란 매우 힘들다는 비유는 많다. ‘낯은 알아도 마음은 모른다’는 말이나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란 속담이 단적으로 표현했다. 이렇게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인데 천 개의 산(千山)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면(心隔) 상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해도 진실성이 없다면 영원히 소통이 안 된다는 뜻의 성어다.

이 말은 ‘明心寶鑑(명심보감)’에 실려 있다.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 秋適(추적)이 전해오는 명언과 명구를 모은 책이다. 마음을 밝게 하는 보물과 같은 거울이라 뜻하는 대로 옛날부터 서당에서 한문 초학자가 배우던 기초교재였다. 착한 자에게는 복이 오고 악한 자에게는 화가 오니 선행을 해야 한다는 繼善篇(계선편)을 필두로 모두 19편이 실려 있다.

전체 분량의 3분의 1이나 차지하는 책의 핵심 省心篇(성심편)에는 마음의 성찰과 그 방법에 대하여 다양한 글들이 소개된다. 몇 구절만 인용해 보자. ‘얼굴을 맞대고 서로 이야기는 하지만, 마음은 천 개의 산으로 떨어져 있는 것과 같다(對面共話 心隔千山/ 대면공화 심격천산)’에서 이 성어가 왔다. 또 ‘범을 그리되 겉모양은 그릴 수 있으나 뼈는 그리기 어렵고, 사람을 알되 얼굴은 알지만 그 마음을 알 수는 없다(畵虎畵皮難畵骨 知人知面不知心/ 화호화피난화골 지인지면부지심)’거나 ‘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바닥을 볼 수 있으나,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알지 못한다(海枯終見底 人死不知心/ 해고종견저 인사부지심)’ 등으로 명언이 이어진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63.html
kolaswqetsrq 11.02 20:41
덕기천성德器天成 - 덕망 있는 큰 인물은 하늘이 내린다.

덕기천성(德器天成) - 덕망 있는 큰 인물은 하늘이 내린다.

큰 덕(彳/12) 그릇 기(口/13) 하늘 천(大/1) 이룰 성(戈/3)

그릇 器(기) 글자를 보면 입 口(구)가 4개, 그 안에 개 犬(견)이 들어있다. 글자의 해석은 개고기를 공평하게 나눈 모습이라거나 또는 개가 귀한 그릇을 지키는 형태라 하는 등 구구하다. 귀한 음식을 담는 기구를 통틀어 그릇이라 하던 것이 어떤 일을 해 나갈 만한 능력이나 도량을 가진 인물을 비유하게 됐다.

기둥이나 들보로 쓸 만한 재목인 棟梁之材(동량지재)는 집안이나 나라를 떠받치는 중대한 일을 맡을 만한 인재, 棟梁之器(동량지기)라 하는 식이다.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大器晩成(대기만성)이나 큰 인물에 소소한 일을 맡기는 어리석음을 大器小用(대기소용)이라 빗대는 것도 같다.

큰일을 할 사람은 하늘이 낸다는 大器天成(대기천성)이란 말이 있다. 이같이 어질고 덕스러운 도량과 재능을 가진 인물(德器)도 하늘이 주는 것(天成)이란 성어는 인품이 훌륭한 사람을 극찬할 때 쓴다. 하늘이 낸다고 해도 이러한 사람은 부단히 자신을 수양하여 사표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자신이 올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저절로 시행되고, 자신이 올바르지 않으면 명령을 내려도 시행되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 기신정 불령이행 기신부정 수령부종)’고 한 論語(논어) 子路(자로)편의 말이 큰 임무를 맡은 사람의 자세를 말해준다.

하늘이 내린 덕스러운 성인이란 이 성어는 뚜렷한 유래 없이 현존 인물을 나타내기보다 고인을 기린 祭文(제문)에 많이 보인다. 한국고전DB에 등장하는 예문 중에서 멋지게 표현된 몇 가지만 보자. ‘큰 재능 반드시 쓰이게 마련이고 지극한 보배는 아로새기지 않는 법, 덕기는 하늘이 이루었고 문장은 절로 넉넉하였네(大才必用 至寶不雕 德器天成 文章自饒/ 대재필용 지보부조 덕기천성 문장자요).’

조선 중기의 학자 權好文(권호문)의 ‘松巖集(송암집)’에 나온다. 趙任道(조임도)의 ‘澗松集(간송집)’에는 ‘백설 명월 같은 밝은 마음과 소나무 측백나무 같은 지조를 지니셨고, 덕스런 기국은 타고난 것으로 뭇사람 중에서 뛰어났네(雪月之襟 松柏之操 德器天成 拔萃超群/ 설월지금 송백지조 덕기천성 발췌초군)’란 묘사가 있다.

한 개의 그릇은 그것에 맞는 소용이 있다. 그런데 덕이 있는 사람은 한 곳에 매이지 않고 두루 온갖 방면에 통해야 한다는 君子不器(군자불기)란 말이 있다. 위인전에 나타나는 모든 일에 솔선하는 훌륭한 지도자는 요즘 갈수록 대하기 힘들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 욕심을 앞세우는 소인배들이 설치기 때문이다. 아니면 일반 사람들의 기대가 너무 높아져서 그럴까.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561.html
kolaswqetsrq 11.02 20:42
초요과시招搖過市 – 허풍을 떨며 자랑하고 다니다.

초요과시(招搖過市) – 허풍을 떨며 자랑하고 다니다.

부를 초(扌/5) 흔들 요(扌/10) 지날 과(辶/9) 저자 시(巾/2)

안에 든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 잘 아는 체 떠벌리는 사람에 합당한 속담이 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속이 빈 깡통이 소리만 요란하다’ 등이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잘 알아도 겸손해야 할 텐데 도무지 그러지 못하니 따돌림 당한다. 또 믿는 구석이 있거나 알량한 권력을 쥐었다면 아무 곳에서나 거들먹거린다.

옛 중국 齊(제)나라 명재상 晏嬰(안영)을 모시던 마부가 눈에 보이는 것 없이 의기양양했다는 晏子之御(안자지어)란 성어도 있다. 여기에 남들의 주의를 끌려고 허풍을 떨며(招搖) 시장바닥을 지나간다(過市)는 이 말도 같은 뜻이다. 허장성세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때 魯(노)나라의 孔子(공자)는 자신의 학문을 전파하고 정치에 접목하기 위해 제자들을 거느리고 여러 나라를 떠돌았다. 13년 동안이나 周遊列國(주유열국) 했지만 가는 곳마다 냉대를 받아 별 실속이 없었다.

심지어 鄭(정)나라에선 길을 잃어 초라한 모습에 喪家之狗(상가지구) 취급도 받고, 陳(진)과 蔡(채)나라의 대부들이 국경을 막는 바람에 제자와 함께 굶주렸던 陳蔡之厄(진채지액)도 당했다. 공자가 제일 처음 방문한 나라가 衛(위)였다.

당시의 靈公(영공)은 어리석어 임금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宋(송)나라에서 시집온 부인 南子(남자)가 총애를 믿고 국정을 좌우하여 국정이 어지러웠다. 공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남자가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전해 왔다. 몇 번 사양하다가 할 수 없이 만나러 갔을 때 휘장을 사이에 두고도 남자의 허리에 찬 구슬장식이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공자를 유혹하려는 남자의 행위에 같이 갔던 제자 子路(자로)는 분노했지만 공자가 말렸다.

위나라에 머문 지 한 달이 지나 영공이 남자와 함께 수레를 타고 궁문을 나섰을 때다. 공자가 뒤의 수레를 타고 가면서 보니 영공과 남자는 화려한 장식에 거드름을 피우며 시장바닥을 지나갔다(使孔子爲次乘 招搖過市之/ 사공자위차승 초요과시지). 공자는 위나라의 정치수준에 실망하여 曹(조)나라로 향했다. ‘史記(사기)’ 공자세가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완장 찬 사람이 기고만장하는 예는 주변에서 흔히 보지만, 대통령을 돕던 캠프의 인사들이 여론을 무시하고 자기들끼리만 세를 과시한다면 앞날이 밝을 수가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55.html
kolaswqetsrq 11.02 20:43
【백서향】

【백서향】

상서로운 향기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서향(瑞香)

꼭 잠에 취해서 느끼는 향기와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일반인들은 그 향기가 천리까지 간다고 하여 천리향

만리까지 간다고 하여 만리향 정확한 이름은 금목서

백리까지 간다고 하여 백리향

▷ 학명 : Daphne kiusiana

▷ 분포지역 : 한국(군산군도·제주·거제도)·일본

▷ 서식장소 : 바닷가의 산기슭

▷ 특징 :

서향 중 흰색 꽃이 피는 백서향은 제주도에 자라는 한국특산식물로 희귀식물입니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일대의 백서향 및 변산일엽 군락지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2015년 제주시 발표에 따르면 선흘리 산6번지 일대에서 조사된 백서향은 88개 구역에서 총 145개체가 조사되었다고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61.html
kolaswqetsrq 11.02 20:43
호사다마好事多魔 -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많다.

호사다마(好事多魔) -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많다.

좋을 호(女/3) 일 사(亅/7) 많을 다(夕/3) 마귀 마(鬼/11)

좋은 일이 있을 때 계속 이어지면 좋겠지만 조물주의 심술인지 희망대로는 안 된다. 지난 번 재앙은 꼭 겹쳐 온다는 禍不單行(화불단행)에서 나왔던 대로 福無雙至(복무쌍지)라고 복은 짝지어 오지 않는 법이다. 일이 좀 펼쳐지려 하면 마귀가 끼어 방해되는 일이 많이 생긴다. 마음먹은 대로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충이 뒤따르니 잘 이겨내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

이 성어는 문어라기보다 구어로 많이 사용됐다고 하는데 중국 淸(청)나라 때 曹雪芹(조설근, 芹은 미나리 근)이 지은 장편소설 ‘紅樓夢(홍루몽)’에 쓰인 예가 대표적이다. 거기엔 ‘홍진 세상에 즐거운 일이 있어도 영원히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 美中不足 好事多魔(미중부족 호사다마/ 옥에도 티가 있고 좋은 일에는 탈도 많다)라는 여덟 글자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순식간에 즐거움이 다하고 슬픈 일이 생기는 법이다’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好事多魔를 중국에서는 好事多磨로 쓰는데 실제 ‘홍루몽’ 이전의 전적에서 나타난다고 했다. 元末(원말)에서 明初(명초)의 희곡작가 高明(고명)의 희곡 ‘琵琶記(비파기)’에는 ‘좋은 일에 어려움 많고 풍파가 일어날 것을 누가 알겠는가(誰知好事多磨起風波/ 수지호사다마기풍파)’로 나온다.

金(금)나라 董解元(동해원)의 ‘西廂記諸宮調(서상기제궁조, 廂은 행랑 상)’에는 ‘참으로 이른바 좋은 시기는 얻기 어렵고 좋은 일을 이루려면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眞所謂佳期難得 好事多磨/ 진소위가기난득 호사다마)’라고 표현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24.html
kolaswqetsrq 11.02 20:44
대도폐언 유인의大道廢焉 有仁義 - 큰 도가 무너지자 인의가 생겨났다.

대도폐언 유인의(大道廢焉 有仁義) - 큰 도가 무너지자 인의가 생겨났다.

큰 대(大/0) 길 도(辶/9) 폐할 폐(广/12) 어찌 언(灬/7)

있을 유(月/2) 어질 인(亻/2) 옳을 의(羊/7)

마음씨가 착하고 슬기로우며 덕이 높은 것이 仁(인)이다. 바른 도리로 옳게 나아가는 것이 義(의)다. 이 어질고 옳은 것을 합친 仁義(인의)는 유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도덕의 핵심이었다. 중국 春秋戰國(춘추전국) 시대에 걸쳤던 周(주) 왕조의 봉건질서가 무너지면서 어질고 옳은 정치의 실천이 필요해지자 孔子(공자)는 인을 강조했고, 그를 이은 孟子(맹자)는 의를 주창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남을 좋아할 수도 있고, 남을 미워할 수 있다(唯仁者能好人 能惡人/ 유인자능호인 능오인)’는 論語(논어)와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이고,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 의(惻隱之心仁也 羞惡之心義也/ 측은지심인야 수오지심의야)’라고 한 孟子(맹자)에서 차이를 말한다.

최상의 덕인 인을 앞세운 仁政(인정)을 강조한 공자, 옳고 그름을 마땅히 구분하여 인을 펼쳐야 한다는 맹자 등 어떠한 것이라도 백성에게 최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의를 못마땅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큰 도가 무너지니까 인과 의가 있게 되었다(大道廢 有仁義/ 대도폐 유인의)’고 본 ‘道德經(도덕경)’에서다.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無爲自然(무위자연)을 이상으로 본 老子(노자)는 원래의 큰 도가 사라진 후에 어질다느니 옳다느니 하는 인위적 분별이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자연의 모습으로 사물을 보지 못하고 인간은 항상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며 변화시키려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18장 俗薄章(속박장)에서 이어지는 내용도 보자. ‘슬기로운 지혜가 생겨나자 큰 거짓도 나타났다(智慧出 有大僞/ 지혜출 유대위), 가족 사이에 화목이 깨진 다음에 효도니 자애니 하는 말이 나왔고,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충신이라는 존재가 나타났다(六親不和 有孝慈 國家昏亂 有忠臣/ 육친불화 유효자 국가혼란 유충신).’ 무위자연의 도가 사라진 뒤 인의라는 것이 나타난 것과 같이 지혜라는 것이 있은 뒤에 거짓이란 개념도 생겨났다.

자연 그대로의 큰 도가 있다면 불화니 효도니 하는 구분이 있을 수 없고, 도가 사라진 뒤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충성된 신하와 불충한 신하가 구분되었다는 것도 같은 연유다.

이렇게 보면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성품 仁義禮智(인의예지)를 강조한 유교는 원래의 참된 것을 찾으려하기 보다 겉모습을 미화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큰 도의로 돌아가는 것이 먼저냐, 그것이 마모되고 더럽혀진 인간에게 도덕으로 찾게 해 주는 것이 먼저냐 하는 것은 닭과 달걀의 순서를 따지는 것만큼 무의미할 수 있다.

지나치게 형식과 원칙에 얽매여 사회적 가치기준을 강조하다 보면 본질을 잊고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항상 나만 옳다는 사리에 맞지 않는 언행이 난무하는 것도 이런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55.html
kolaswqetsrq 11.02 20:45
수구여병守口如甁 - 입을 병마개 막듯이 꼭 막다, 입 조심하여 비밀을 지키다.

수구여병(守口如甁) - 입을 병마개 막듯이 꼭 막다, 입 조심하여 비밀을 지키다.

지킬 수(宀/3) 입 구(口/0) 같을 여(女/3) 병 병(瓦/8)

물이나 술 등 액체를 담는 병은 당연히 목이 좁다. 안의 내용물을 잘 보관하기 위해 병의 목이 좁은 곳을 또 마개로 막듯이 한다고 하는 것은 입을 조심하여 비밀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한다는 비유다. 예부터 선현들은 입이 열렸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많이 남겼다.

함부로 막말을 말라고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말라’거나 말을 잘못하면 재앙이 따른다고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속담이 잘 말해 준다.

먼저 이 말이 나오는 ‘明心寶鑑(명심보감)’부터 보자.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 秋適(추적)이 금언과 명구를 모아 놓은 한자 교재다. 항상 자신의 본심을 잃지 말라는 뜻의 存心(존심)편에 있다. 朱文公(주문공)이 한 말이라며 ‘입을 지키는 것은 병과 같이 하고, 탐욕스런 뜻을 막기를 성을 지키는 것처럼 하라(守口如甁 防意如城/ 수구여병 방의여성)’고 소개했다. ‘뜻 意(의)’ 글자는 사사로운 마음, 사욕을 말한다.

주문공은 朱子(주자)로 불리는 宋(송)나라 학자 朱熹(주희, 1130~1200)의 시호다. 그가 張栻(장식, 1133~1180)이란 사람의 主一箴(주일잠)이란 글을 보고 만들었다는 敬(경)에 관한 글 ‘敬齋箴(경재잠)’에 실려 전한다.

조선 李滉(이황, 1501~1570, 滉은 깊을 황)선생의 聖學十圖(성학십도) 제9도에 포함시켜 잘 알려졌다. 몸가짐, 마음가짐에 있어 조심해야 할 여러 가지 좋은 말 중에 앞부분 몇 곳을 보자. ‘그 의관을 바르게 하고, 그 시선을 존엄하게 하며,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거처하고, 상제를 대하는 듯 경건한 자세를 가져라(正其衣冠 尊其瞻視 潛心以居 對越上帝/ 정기의관 존기첨시 잠심이거 대월상제)’, ‘입 다물기를 마개 닫힌 병처럼 하고, 사욕 막기를 성곽처럼 하며, 성실하고 일관된 자세로 혹시라도 가벼이 하지 말라(守口如甁 防意如城 洞洞屬屬 罔敢或輕/ 수구여병 방의여성 동동속속 망감혹경)’.

온갖 다툼의 근원은 욕심에서 나오는 말이 발단이다. 속담 외에 말조심하라는 성어도 많아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란 뜻의 口禍之門(구화지문)이 대표하고,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화는 입에서 나간다며 病從口入 禍從口出(병종구입 화종구출)이란 말도 있다. 해야 할 말은 닫아서는 안 되지만 상대를 생각 않고 자기주장만 펼칠 때 싸움은 끝이 없는 법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63.html
kolaswqetsrq 11.02 20:45
◇ 서울선 달고나, 부산에선 쪽자, 마산에선 오리떼기..

◇ 서울선 달고나, 부산에선 쪽자, 마산에선 오리떼기..

얼마 전 김성윤 음식전문 기자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큰아들 동주를 학교에서 데리고 집에 돌아온 아내가 마트에서 산 소다와 싸구려 국자를 들고 있었다. “학교 앞에서 오리떼기 장사가 있는데 동주가 해보고 싶다고 해서 사왔어.” 오리떼기라니! 평생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아내는 경남 마산에서 나고 자랐다. 오리떼기가 뭐냐고 물었다. 아내의 설명을 들으니 ‘달고나’였다. 마산 옆 부산에서 태어난 권승준·남정미 기자에게 오리떼기를 아느냐고 물었다. 오리떼기는 모르겠고, 부산에선 ‘쪽자’라고 한단다. 왜 달고나가 오리떼기이고 쪽자란 말인가.

이 궁금증을 해결해 준 것이 <말모이,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이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을 맞아 사라져가는 우리말들을 모아 엮은 사전인데, 서울 남자와 마산 여자가 사는 우리 집에서 이 책이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오리떼기는 불 위에 국자를 올리고 거기에 설탕과 소다를 넣어 만든 과자란 뜻으로, 같은 경남이라도 진해에선 골떡, 부산에선 쪽자, 통영에선 뽑기라고 부른단다. 왜 오리떼기인고 하니, 뾰족한 도구로 침을 묻혀 가며 문양을 떼어내는 게 오리(五里)를 걸어갈 만큼이나 시간이 걸려서란다. 쪽자는 국자란 뜻이다. 전남, 경남에서 두루 쓰이는데 광양에선 쪽다리라고도 부른다. 사전에는 아내가 즐겨 쓰는 ‘천지삐까리’도 나왔다. 결혼해서 처음 들어본 이 해괴한 단어의 뜻은 ‘추수 때 볏가리가 사방으로 쌓인 모습처럼 무언가 매우 많은 상태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요즘 이 사전은 동주 차지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홉 살 녀석이 이 사전을 뒤적거리며 키득키득 웃고 있다. 일반 국어사전도 좋아했는데 말모이 사전이 더 재미있단다. 그건 순전히 엄마가 쓰는 ‘이상한’ 말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 두 아들 앞에서 아내의 억양과 사투리를 흉내 내며 골려먹던 나도 깊이 반성하며 함께 읽는 중이다....

김성윤 부자(父子)의 말모이 예찬에 사전을 편찬한 일원으로서 얼마나 뿌듯하던지요. 지난 2월 출간된 말모이 사전(시공사)이 곧 2쇄를 찍는다고 합니다. 글 쓰는 분들이 앞다퉈 구입한다고 하네요. 글쓰기의 기본은 다채롭게 구사할 수 있는 어휘! 감칠맛 나는 단어 하나로 빛나는 문장을 건져 올릴 수 있으니까요. 2쇄부터는 이어령 김훈 신달자 정경화 등 명사들의 ‘내가 사랑한 우리말’ 부록이 빠지니 초판(1쇄) 특별 한정판을 구하려면 서두르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모이 만세!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82.html
kolaswqetsrq 11.02 20:46
◇ 도조 히데키와 ‘삼간사우’

◇ 도조 히데키와 ‘삼간사우’

1944년 2월, 총리 겸 육군대신 도조 히데키는 불리한 전황(戰況) 타개를 이유로 참모총장을 겸직한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군 수뇌부의 무능과 현실 감각 결여에 대한 불만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었다. 도조가 행정권, 군정권에 이어 군령권까지 손에 쥐자 육군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고조되고, ‘삼간사우(三奸四愚)’라는 소문이 나돈다. 삼간사우란 세 명의 간신과 네 명의 어리석은 인물이라는 의미로, 도조가 중용하고 의지하던 측근들을 말한다.

그중의 한 명으로 지목되는 사토 겐료(佐藤賢了)는 육군성 최요직인 군무국장을 맡아 도조의 권력 유지와 정책 결정에 핵심 역할을 한 최측근이다. 그는 자기 신념이 강한 독선적인 인물이었다. 군무과장 시절 국회 ‘국가총동원법안 위원회’에서 법안 설명을 하던 도중 자신에게 야유하는 의원에게 “닥쳐”라고 일갈하여 물의를 빚은 사건은 그의 인물됨을 보여준다. 반대파에 대한 감시와 동갈(恫喝)을 일삼으며 의회민주주의를 마비시킨 도조의 ‘헌병 정치’를 지근 거리에서 보좌한 인물이 그였다.

초급 장교 시절 미국에서 유학한 사토는 주변에서 미국 전문가로 통했다. 문제는 그의 미국 인식이 부정확을 넘어 부정직했다는 것이다. 강경 대미(對美) 개전파였던 그는 전세가 역전되던 1943년 시점에도 국회에 출석하여 ‘미군 장교들은 전략 전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유치한 수준’이라고 태연하게 발언하는 등 자신의 오판을 숨기고 세간의 인식을 오도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었다. 저명 사학자인 하타 이쿠히코(秦郁彦)는 사토를 두고 “이 엉터리 미국통은 미국에 무지한 사람보다도 (나라에) 더 큰 해악이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리더에게는 충성스러운 측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문가가 필요한 자리에는 충성심이 아니라 전문성이 용인(用人)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자기 주변을 돌아보고 삼간사우를 경계하는 것이 리더의 덕목일 것이다.

-조선일보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921.html
kolaswqetsrq 11.02 20:47
◇ 협찬 의상에 커피 쏟으면?

◇ 협찬 의상에 커피 쏟으면?

얼마 전 한 연예인의 시계가 화제가 됐다. 관찰 예능에 한 배우가 명품 시계를 차고 나왔는데 값이 수억원이라는 것이다. 청약 저축으로 집을 장만할 만큼 서민 이미지였던 그가 그런 비싼 시계를 차다니. “이젠 돈 좀 벌었나?”하고 관심을 모았던 것이다. 그 배우가 “내 시계가 아니다”라고 해명하면서 소동은 일단락됐지만 수억원짜리 시계도 차볼 수 있는 ‘연예인 협찬’은 또다른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연예인들이 대중 앞에 선보이는 화려한 옷이나 액세서리 대부분이 ‘협찬’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드라마가 촬영에 들어가면 보통 20~40부작이 넘는데 모든 의상을 개인이 해결하기엔 무리가 있다. 게다가 요즘엔 연예인의 일상이 그대로 생중계돼 ‘공항 패션’ ‘출퇴근 패션’ ‘드라마 리딩(대본 읽기) 패션’에까지 자연스럽게 협찬이 등장한다. 연예인은 옷 걱정 덜어서 좋고, 협찬사는 적은 비용으로 광고 효과를 볼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공생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협찬받은 의상이나 액세서리가 망가지면 어떻게 될까? 답은 ‘그때그때 달라요’이다. 옷을 입고 벗을 때 화장이 묻는 건 애교에 속한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해서 세탁비 정도를 보상하는 선에서 끝난다.

그러나 커피를 쏟거나 찢어져서 원상 복구가 어려울 땐 변상하거나 일부 비용을 내고 옷을 구매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유명 연예인은 조금 혜택이 있다고 한다. 다른 광고나 행사에 망가진 브랜드의 제품을 다시 한 번 노출시켜서 변상을 대신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연예인은 이마저도 힘드니 협찬 제품이 망가질까 연예인도 스타일리스트도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공짜로 옷이나 액세서리를 협찬받지만 태도는 연예인마다 천차만별이다. 일부는 너무나 당연하게 협찬 제품을 누리지만 대부분은 취급도 조심스럽게 하고 일명 ‘착장(着裝) 사진’도 성실하게 찍어 협찬사를 만족시킨다. 거기에 “옷이 참 예뻐요”라는 말 한마디로 “다음에도 저 연예인은 꼭 협찬해야겠다”는 다짐도 이끌어낸다. 실로 ‘말 한마디에 천 냥을 버는’ 협찬의 세계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18.html
kolaswqetsrq 11.02 20:48
◇ 튤립 광풍과 암호화폐

◇ 튤립 광풍과 암호화폐

영화 ‘튤립 피버’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을 다룬 작품이다. 스페인에서 독립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유럽의 금융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자본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투자상품에 혈안이 되어 있던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오스만 제국에서 들어온 튤립이었다. 희귀한 튤립이 부의 척도로 간주되면서 1636년부터 가격이 급등했다. 이 무렵 흑사병이 네덜란드에서 기승을 부리며 인구가 감소했는데 이러한 불확실성도 튤립 광풍을 부추겼다. 튤립 알뿌리 하나는 2500길더까지 올랐는데, 이는 당시 소 200마리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고 한다.

1633~1637년 네덜란드에서 튤립 거래액은 약 4000만 길더로 추산되는데, 이것은 암스테르담 은행의 예치금보다 10배 이상 많은 액수였다. 또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무역회사인 동인도회사가 만들어질 때 투자된 650만 길더보다도 3배가량 많았다.

결말은 잘 알려져 있다. 1636년 절정에 달했던 튤립 가격은 1637년 2월부터 갑자기 폭락하기 시작했고, 불과 4개월 만에 최고점에서 90% 이상 빠져 역사상 최악의 폭락으로 기록됐다. 결국 네덜란드 정부는 1636년 11월 이전의 계약을 모두 무효로 하는 대책 아닌 대책을 내놓았다.

다만 튤립 광풍이 완전히 허망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후에도 희귀 튤립은 여전히 고가에 거래됐고, 튤립 산업의 발달은 네덜란드 경제에도 기여했다. 튤립 광풍에 비교되는 암호 화폐의 폭등과 폭락은 어떤 결말로 이어질까. 또, 세계 자본주의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 궁금해진다.

-중앙일보 역지사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387.html
kolaswqetsrq 11.02 20:49
◇ 일과 사람에 지쳤을 때 봐두면 좋은 영화...

◇ 일과 사람에 지쳤을 때 봐두면 좋은 영화...

일과 사람에 지칠 때마다 영화 ‘그래비티’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본다. 중력을 벗어난 샌드라 불럭에게 조지 클루니가 묻는다. “우주에 오니까 제일 좋은 게 뭐야?” “고요함이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자유롭게 유영하던 주인공은 지구에서 영원히 멀어질 위기에 처하자 필사적인 노력으로 다시 지구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중력의 무게 속에서 한 걸음씩 걷는다. 이 두 장면을 보면 이상하게 다시 일하고 싶어진다. 내가 몸담은 세계의 중력 속으로 다시 걸어가고 싶은 용기가 생겨난다.

소설가 김훈의 글을 읽고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라면을 자주 먹는 이유는 라면이 정서의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라면을 처음 먹었던 그 최초의 정서로 돌아가서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린다고. ‘그래비티’의 첫 장면을 보는 일은 나에게 일종의 산책과도 같다. 정신없이 살아오다가 어느 순간 잃어버린 마음속으로 걸어가는 ‘정서 산책’. 집에서 시간을 보낼 일이 많아지면서, 나는 예전보다 더 자주 정서 산책을 나간다. 넷플릭스와 왓챠의 회원이 되면서 산책은 더 수월해졌다. 시공간을 순식간에 넘나드는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버튼을 이리저리 누르며 정서의 이곳저곳으로 순간이동한다.

글이 안 써져서 힘들면 박찬옥 감독의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서 문성근과 박해일의 술집 장면을 산책한다. “편집장님도 글 잘 쓰실 것 같은데 왜 작가가 안 되셨어요.” “난 글렀어. 작가는 원한이 있어야 돼. 자기 상처. 근데 난 너무 순탄하게 자랐어.” (그래, 순탄하지 말자.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오히려 고마워하자.)

새로 시도하는 작품이 불안하면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 만년 꼴찌팀 이야기 ‘머니볼’의 마지막 장면을 산책한다. “제러미는 아시다시피 2루로 뛰는 걸 겁내죠. 강속구를 멋지게 받아친 후에도 악몽처럼 1루에 머물러요. 모두가 그를 비웃을 거라 생각했죠. 잠시 후 제러미는 알게 돼요. 사실은 그가 홈런을 쳤다는 걸.” “어떻게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그래, 공은 이미 날아갔어. 남은 일은 달리는 것뿐이야.)

미처 하지 못한 말 때문에 집에서 끙끙 앓는 날에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의 주인공이 바람에 날아가는 편지를 묵묵히 바라보다가 말없이 우는 장면을 산책한다. (그래, 이미 날아간 말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겠어.) 언제 올지 모르는 생의 마지막이 두려우면 이영애·유지태 주연의 ‘봄날은 간다’에서 고운 한복에 양산을 쓴 채, 삶의 마지막 길을 유유히 걸어가던 할머니의 뒷모습을 산책한다. (그래, 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생의 마지막 산책인 거야.) 멋지게 나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시네마천국’에서 어른이 된 토토에게 존중의 태도를 취하던 옛 극장주의 모습을 산책한다. “왜 저를 어려워하세요? 제 사장님이셨잖아요.” “성취를 이룬 사람에게는 경의를 표해야 하니까요.” (그래, 사랑하는 이들의 성취를 마구마구 칭찬해주자.)

내가 몸담은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바뀌지만, 영화 속 그 장면은 언제나 그 시간과 공간에 머물러있다. 내 몸이 끝없이 어딘가로 이동하고, 내 정신이 한없이 무언가로 복잡해질 때마다, 언제든 1분간의 산책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최근에는 ‘OTT 산책 클럽’이라는 모임을 떠올려봤다. 영화를 보는 모임이 아닌, 영화를 산책하는 모임. 영화를 끝까지 보고, 그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공유하고(저는 ‘그래비티’의 8:28~8:37을 통해 중력과 고요함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그 장면을 통해 떠오르는 자신의 정서를 이야기하는 모임.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도, 서로의 몸이 한 공간에 모이는 것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시기에, 만날 수 없으면 화상 앱을 통해서라도, 이 화상 앱에 모이기도 힘들면 단톡방을 통해서라도, 서로의 정서를 단 1분이라도 산책할 수 있다면, 우리의 몸이 떨어져도 우리의 마음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숨이 붙어있는 한 싸워야 해. 그러니 숨 쉬어. 계속 숨 쉬어.” –영화 ‘레버넌트’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27.html
kolaswqetsrq 11.02 20:49
■ 정철과 강아의 사랑 3편

■ 정철과 강아의 사랑 3편

강아는 단순한 생활의 반려자나 잠자리 시중을 드는 기녀가 아니었다. 정철에게 강아는 그 이상의 존재였고, 예술적 호흡을 가능하게 만드는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강아는 항상 정철의 곁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며 기쁨을 주었다. 정철은 강아와 시를 나누고 그녀의 문학에 대한 조예와 아름다움에 반했다. 이들이 적소에서 나눈 사랑에는 단순한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만이 아닌 예술인의 깊고 깊은 교분이 존재했다. 정철은 유배지에서 부인에게 서신을 보낼 때 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적어 보냈다. 부인의 서신 속에서도 남편에 대한 투기나 불평보다는 남편의 적소 생활을 위로해 주는 강아에 대한 고마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불우한 자기 남편의 생활 속에서 위로해주는 여자라면 조금도 나무랄 것이 없다는 부인의 글을 받고 정철은 고마워했다. 강아도 역시나 정철 부인의 너그러운 마음을 고마워하며, 정철을 더욱 알뜰하게 보살폈다. 정철과 강아의 사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정철을 한양으로 불렀다. 정철은 유배지 생활을 청산하는 기쁨과 함께 그동안 같이 한 강아와의 아쉬운 이별 때문에 마음이 복잡했다. 정철을 떠나보내면서 강아는 그녀의 아쉬운 마음을 이렇게 읊었다.

오늘밤도 이별을 하는 사람이 하 많겠지요.

슬프다! 밝은 달빛만 물 위에 지네.

애닯다! 이밤을 그대는 어디에서 자오.

나그네 창가에는 외로운 기러기 울음뿐이네.

정철 부인 안씨는 남편에게 강아와 한양으로 함께 오기를 권했지만 강아는 거절 했으며, 혼자서 강계에 살며 외로운 세월을 보냈다. 선조의 특명으로 전라도 충청도의 도제찰사로 임명된 정철을 찾아 강아는 다시 홀홀단신 적진을 뚫고 남하하다가 적병에게 붙잡혔다. 자신의 몸을 조국에 바치기로 결심한 강아는 적장(敵將) 소서행장(小西行長)을 유혹해 아군에게 첩보를 제공하여 결국에는 전세를 역전시켜 평양 탈환의 숨은 공을 세웠다. 그 이후 강아는 이제는 정철을 다시 모실 수 없는 몸이 되었음을 슬퍼하며 ‘소심보살’ 이란 이름으로 입산수도(入山修道)했다. 선조 26년 12월 18일 정철이 강화도에서 생을 마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강아는 이 세상에 정철이 없다는 가혹한 슬픔으로 몸부림치다가 정철의 묘소(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를 찾아 시묘(侍墓)생활을 했다.

남은 생애를 송강의 모함을 풀고 신원을 복위시키려 온 힘을 쏟았던 강아는 결국 그 곁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나중에 정철의 묘는 충북 진천으로 이장되었으나, 강아의 묘는 그대로 정철의 처음 묘가 있던 송강마을에 남아있다. 오늘날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송강마을에는 송강 정철을 기리는 송강문학관과 더불어 강아의 무덤이 있어 정철과 강아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무덤 앞에 있는 묘비 전면에는 ‘의기강아묘(義妓江娥墓)’라는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뒷면에는 정철과 강아의 사랑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그의 묘는 정철 후손들이 오백년을 이어 오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강아와 정철의 세월을 초월한 사랑은 후세들에게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 하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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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50
■정철과 강아의 사랑 2편

■정철과 강아의 사랑 2편

가녀린 몸으로 삼천리(三千里) 길을 걸어서 강계로 달려온 강아는, 위리안치되어 하늘 한자락 보이지 않게 가시나무로 둘러싸인 초라한 초막에서 홀로앉아 책을 읽는 정철의 초췌한 모습에 진주 같은 눈물만 뚝뚝 흘렸다. 자기 앞에 엎드려 울고 있는 어여쁜 여인을 본 정철은 당황해 하면서 그녀에게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전의 강아는 십 여세의 어린 소녀였으므로, 성장한 강아의 모습을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 이후 정철의 유배생활은 조금도 괴롭거나 우울하지 않았으며, 정철의 마음이 울적할 때면 강아는 항상 정철의 곁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며 기쁨을 주었다. 강아는 단순한 생활의 반려자나 잠자리 시중을 드는 기녀가 아니었다. 정철에게 강아는 그 이상의 존재였고, 예술적 호흡을 가능하게 만드는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울음을 그친 강아가 정철에게 조용히 입을 열고 말하였다. “저를 어찌 몰라보시는지요? 10 여 년 전에 나으리께서 머리를 얹어 주시었던 진옥이옵니다.” 강아는 정철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는 것과 귀양소식을 듣고서 그를 보살피고자 부랴부랴 달려왔음을 고하였다. 희미한 호롱불을 사이에 두고서 강아를 마주한 정철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한 그녀에게서 여인의 향기를 느꼈다. 술이 거나해진 정철이 무거운 정적을 깨고 강아에게 말했다.

"진옥아! 내가 먼저 한 수 읊을 터이니, 너는 화답(和答)하거라. 지체해서는 안 되느니라. 옥이 옥이라하여 번옥(燔玉:돌가루를 구워 만든 옥)으로만 여기었더니, 이제 보아하니 진옥(眞玉:진짜 옥)임이 분명하다. 나에게 살 송곳이 있으니 한번 뚫어볼까 하노라."

탁월한 시인이던 정철은 강아에게 노골적인 음사(淫事)를 시의 형태를 빌어서 읊었다. ‘번옥(燔玉)’은 어리게만 여겼던 강아를 은유한 것이고, ‘진옥(眞玉)’은 이제는 어엿한 여인의 향기를 풍기는 성숙한 강아를 은유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남녀 간의 육체적 합일(合一)을 바라는 그의 마음이 배어있는 시이다. 강아는 지체없이 화답하였다.

"철이 철이라 하여 석철(石鐵)이라 여겼더니 이제 보아하니 정철(正鐵:진짜 철)이 분명하고, 마침 나에게는 골풀무가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이 대담한 강아의 시는 당대의 대 문장가인 정철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강아는 정철을 쇠로 비유하며, 자신을 여자로 받아주지 않았던 정철을 석철(石鐵)에 비유하였고, 이제 믿음직한 남성으로 자신을 여인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정철을 정철(正鐵)이라 은유하였다. 그리고 철을 녹일 수 있는 골풀무가 자신에게 있으니 이제 녹여 줄 수 있다며 응수한 것이다. 골풀무란 불을 피울 때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인데, 강아는 이것을 남자를 녹여내는 여자의 성기로 은유했으니, 이만하면 강아도 명기(名妓)요 훌륭한 시인이었던 것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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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51
■ 정철과 강아의 사랑 1편

■ 정철과 강아의 사랑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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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두보에 버금가는 조선조 당대 시인이며 대문학가인 송강 정철은 관기 강아와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사랑을 나눴다. 강아는 원래 이름이 진옥이고 기명(妓名)은 자미(紫微)였지만, 정철의 호인 송강(松江)의 ‘강(江)’ 자(字)를 따 강아(江娥)라고 불렸다. 강아는 시조문학에 있어 송강첩(松江妾)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시조 문헌 중에 누구의 첩이라고 기록된 것은 오직 강아 뿐이다. 대개는 기녀가 속한 지명을 따라 남원명기, 평안기생 등 기명을 적었으나, 강아는 기녀였음에도 불구하고 송강첩으로 기록돼 있다. 이러한 기록은 물론 송강의 명성과 지위 때문에 얻어진 것이리라 생각되는데, 이를 보아도 송강 정철과 강아의 사연이 당시 사람들 기억 속에 남다른 의미로 남아 있었음이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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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와 송강의 만남은 송강 정철이 전라도 관찰사로 가면서 인연을 맺게 된다. 정철은 당시 불과 십여 세 남짓의 어린 소녀, 강아에게 머리를 얹어 주고 하룻밤을 같이 할 수도 있었으나, 청렴결백했던 정철은 어린 강아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고, 다만 명예로운 첫 서방의 이름을 빌려주었다. 정철의 인간다움에 반한 강아는 어린 마음에도 그가 큰 사람으로 느껴졌다. 정철 또한 어리지만 영리한 강아를 마음으로 사랑하며 한가할 때면 옆에 앉혀 놓고 틈틈이 자신이 지은 사미인곡을 외어 주고, 가사(歌辭:조선 초 시조와 산문의 중간형태)를 가르쳐주고 서로가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었다. 즉 정철과 강아는 육체적인 애로스 사랑보다 정신적인 플라토닉 사랑을 한 셈이다. 그러나 정철이 도승지(都承旨)로 승진하여 한양으로 발령이 나서 떠나게 되었다. 열 달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동안 정철을 깊이 사랑하게 된 강아는 떠나는 정철을 붙잡을 수도 쫓아갈 수도 없는 자신의 신분과 처지에 낙담한 채로 체념의 눈물을 흘릴 뿐이었고, 그런 강아의 마음을 잘 아는 정철은 작별의 시를 지어 주면서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봄빛 가득한 동산에 백일홍 곱게 피어

그 예쁜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

망루에 올라서서, 장안을 바라보지 말아라.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이 모두 너의 고움을 사랑하네.

이 시 속에는 강아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남겨져 상처 입은 여인에게 당부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좋은 낭군을 만나 시집가서 잘 살고, 자기는 생각하지 말라는 배려가 녹아있다. 철부지 어린 나이에 머리를 얹은 이후에 단 한 순간도 정철을 잊지 못했던 강아는 관기노릇을 하며 다시 정철을 만나겠다는 열망으로 십년 고절(孤節:홀로 지키는 절개)의 세월을 버텨냈다. 기생의 처지로서 다른 남자들의 유혹을 거부하며 수절한다는 것은 그렇게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어느 날 정철이 북녘땅 끝 강계로 귀양을 갔다는 소식을 들은 강아는 이제서야 그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혼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정철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서둘러 행랑을 꾸려 길을 나섰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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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51
■ 송강松江 정철 8편

■ 송강(松江) 정철 8편

1592년(선조 25년) 7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귀양 간 사람들도 풀어주어 활용하자는 결정에 의해 선조의 부름을 받아 복직한 정철은 왕을 의주(義州)까지 호종(扈從:수레를 따르며 호위함)하였다. 그러나 정철은 이 국난의 위기 상황에서도 술에 취에 긴급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등 업무에 태만했고, 그 일로 남인과 북인들의 비난도 받았다. 그러다가 그 해 5월 평양·개성·서울을 회복한 후 조선에 5만 군사를 보낸 명나라 대한 사은사(謝恩使)로 임명되어 연경(燕京)에 다녀왔는데, 이 자리에서 일본군이 철수했다는 가짜 정보를 올린 일이 문제가 되어 사직했다. 그 후 강화도 송정촌(松亭村)에 머물던 중 1593년 12월 병으로 사망하여 58세의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묘는 처음에는 부모와 장남이 묻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송강마을에 있었지만, 1665년에 우암(尤庵) 송시열의 권유로 충북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환희산 기슭으로 이장되었다. 그의 묘소는 1996년 1월 5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되었고, 그의 묘소 근처에 있는 사당인 송강사(松江祠)는 충북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철은 한마디로 매우 아집이 강하고 속이 좁아 주변 사람들이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괴팍한 성격이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권력지향주의자라는 비판과 조선 최고의 시인이라는 추앙을 받으며 평생 조정과 유배지를 오갔던 정철, 이렇게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그에게도 온건한 관계를 유지했던 대인배가 있었는데, 하나는 율곡 이이이고 또 하나는 서애 류성룡이다. 특히 류성룡은 당파가 남인이었는데도 정철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니, 류성룡이야말로 진정한 대인배인 것 같다. 그 외에 노선이 일치하여 친밀했던 인물로는 같이 서인을 이끌고 정철과 마찬가지로 과격하게 정적들을 제거해 욕을 먹은 성혼도 있다. 한때 정철의 부관이자 의병장으로 유명한 조헌은 성질 더럽기로 악명 높은 정철이 자신의 상관으로 부임하자 사퇴를 청원했으나, 정철은 "그럼 잠깐만이라도 같이 일해보고 그래도 싫으면 가라."며 조헌의 스승인 이이를 통해 극구 말린다. 이후 둘은 나름대로 원만한 관계가 되는데, 이는 조헌 또한 기축옥사 당시 앞장서서 정여립 측근들과 동인 상당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과격파였기 때문이다.

《선조실록》에는 정철의 처신을 정치적 권력욕으로 규정하여 비난하고 있고, 《선조수정실록》은 정철의 행동을 결벽증에 가까운 곧은 인사로 묘사하면서 평가가 갈리고 있다. 선조는 정철에 대해서 총애할 때는 한 마리 매와 같은 사람이라고 칭찬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한 뭉치 독기로 사람을 해쳤다고 평가했다. 선조 역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무능한 군주(君主)임에 틀림없다.

- 9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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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52
■ 송강松江 정철 7편

■ 송강(松江) 정철 7편

정여립 모반사건을 주도적으로 처리하면서 서인의 영수로서 철저하게 동인 세력을 추방한 정철은 이듬해 2월 좌의정이 되었으며, 동시에 인성부원군(寅城府院君)에 봉작되었고, 난을 바로잡은 공으로 2등 평난공신(推忠奮義恊策平難功臣)에 녹훈되었다.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정철은 동인 중에 평소에 과격한 자들을 모두 죽이거나 귀양을 보냈다. 이 때문에 조정이 텅 비게 되었다.”고 하였다.

1591년 권력의 중심에 다시 오른 정철은 세자 책봉 문제에서 결정적인 판단 미스를 하고 만다. 선조의 의중을 모르고 서둘러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을 해야 마땅하다는 읍소를 올린 것이다. 이를 정철의 ‘건저의사건(建儲議事件)’이라고 한다. 선조의 정비 의인왕후 박씨는 자녀를 낳지 못했다. 선조는 총애하는 후궁 인빈 김씨에게서 낳은 아들인 신성군을 세자로 마음에 두고 있었다. 신료들의 입장에서도 빨리 후사를 명확히 해 두지 않으면 불상사가 일어날 소지가 있었기에, 동인의 대표인 이산해와 서인의 대표인 정철이 나서기로 했는데, 정철과 원한이 있었던 동인 측의 이산해가 도중에 슬쩍 빠지는 바람에 정철만 혼자 나서서 광해군을 후계자로 책봉하자고 주장하는 모양새가 되어 정치 생명에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다. 정여립 모반 사건 당시 큰 피해를 입었던 동인이 정철을 탄핵하기 위해 취한 술책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선조는 이 절호의 찬스를 적극 활용하여 광해군에 대한 세자책봉 논의 자체를 막는 한편, 정여립 모반사건 이후 지나치게 입지가 커진 서인을 손보기 위해 정철을 밟아 버리기로 결심을 굳혔다. 실록에 의하면, 조회에서 정철을 가리켜 "간철(간사한 정철), 흉철(흉악한 정철), 독철(독한 정철)" 이라고 대놓고 깠을 정도였다고 한다. 왕의 노여움을 사게 된 정철은 파직되어 명천으로 유배되었다. 그 뒤 3일 만에 명천에서 다시 경상남도 진주로 배소가 옮겨졌다가, 이어 3일 만에 다시 평안북도 강계(江界)로 다시 이배되었다. 강계로 배소가 옮겨진 뒤 동인들의 거듭된 탄핵으로 위리안치에 처해졌다. 이 기간 중 정철은 대부분 독서와 사색으로 시간을 보냈다.

후일 기축옥사의 고변자들이었던 양천회 형제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정철이 ‘건저사건’으로 몰락한 이후에 잡혀 와서 정철의 사주를 받아 고변하게 되었다고 자복(自服)하고는 곤장을 맞다 죽었는데, 정작 정철에겐 죄가 더해지지 않았다. 이는 결국 정여립 모반사건의 참혹한 옥사의 배후에는 선조가 있었고, 정철은 그냥 희생양에 불과했다는 반증이 된다. 지나치게 세력이 커진 동인을 정철을 내세워서 제거한 다음, 그 죄는 모두 정철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다. 당시 동인은 정철의 처리를 놓고 강경파(이산해)이자 광해군의 지지 기반인 북인, 온건파(류성룡)인 남인으로 갈라지는 한 계기가 되었다. 북인의 인맥은 조식의 근거지였던 지리산 일대(호남 영남 서부)였고, 남인의 인맥은 그보다 동쪽인 경상도 일대였다. 정철이 주도한 기축옥사가 호남동인 인사들의 씨를 말렸을 만큼 크게 피해를 보았고, 심하게 당한 북인이 정철을 더 괘씸하게 여겼음은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 8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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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53
■ 송강松江 정철 6편

■ 송강(松江) 정철 6편

1585년 8월에 이르러 동인들로부터 조정 내부에 파당을 만들어 나라 일을 그르치려는 무리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그들의 공박과 사간원 및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마침내 정철은 그와 가까이 지내던 주변 인물들과 함께 벼슬에서 물러났다. 1586년(선조 19년) 10월에 조헌이 이이, 성혼, 박순과 함께 정철을 변호하는 상소를 올렸지만 거절당했다. 1587년 3월 묵재 이귀가 상소하여 그를 복권시키고자 애썼지만 동인의 격한 반대로 모두 실패한다. 1588년(선조 21년) 조헌이 다시 상소문을 올려 정철을 변호했지만 왕이 듣지 않아 무산되었다. 벼슬에서 물러난 정철은 처음에 고양을 중심으로 한 근기지방에서 생활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으나, 동인들의 비난이 계속되자 결국 고향 담양에 돌아가 1589년 10월 초까지 약 4년여 동안 은거하며 작품 생활에 들어가,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었다. 이 가사 작품에서 그는 임금에 대한 그리움과 아름다운 산천에 대한 경이로움, 은둔생활에 대한 동경을 뛰어난 감각으로 노래함으로써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그었다.

1589년(선조 22년) 정여립의 옥사가 발생한다. 선조는 좌의정 이산해, 우의정 정언신 등에게 위관(委官)이 되어 죄인들을 심문하게 했다. 그러나 서인의 모사가인 송익필의 권유로 입궐한 정철이 차자(箚子:간단한 상소문)를 올리게 되었다. 이 상소문에서 정철은 정언신이 정여립의 일가이니 재판관으로는 적당하지 않으므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선조는 정언신 대신 정철을 우의정으로 제수하고 죄인을 심문하게 하였다. 정철은 동인들의 죄상을 잔인하게 추궁했다. 위관이었던 정언신도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정여립과 연루되었음이 드러나 체포되었다. 정언신의 아들 율이 상소를 올려 무죄임을 주장하고 성혼도 정철에게 편지를 보내 대신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여 죄가 감해져, 정언신에게는 유배형이 내려졌다.

사건의 수사와 국문을 맡은 정철은 처음 생각과는 달리 옥사(獄事)가 지나치게 확대되자, 이를 막아보려 했지만, 배후에는 선조의 의도적인 사건조작이 있었기에 소용없었다. 이후 3년간의 과정에서 정여립의 친구, 일가족과 자주 교류한 사람, 일족과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들까지 색출하여 처벌함으로써 1천여 명의 동인계 인사들이 처형되고 옥사하였는데, 이를 기축옥사(己丑獄事)라 한다. 정철이 이 모든 일에 주도적으로 나섰지만 결국 최종 지휘자는 선조였다. 정여립의 난이 과연 정말로 모반 사건이었는지, 조작된 정치적 사건인지 아직도 논란이 있으나, 거기에 연루되어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면모를 볼 때 조작된 사건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후일 선조가 정철을 버린 과정을 볼 때, 서인 강경파 정철을 희생양으로 삼고 조정의 절대 다수였던 동인 세력을 축소하기 위해 선조가 술수를 부린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그러나 기축옥사의 공초(供招:진술서)가 임진왜란을 거치며 불 타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더 자세한 연구가 어렵다는 점이 매우 아쉬움으로 남는다.

- 7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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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53
■ 송강松江 정철 5편

■ 송강(松江) 정철 5편

1570년(선조 3년) 4월 35세 때 부친상을 당하여 사직하고 3년 상을 마쳤다. 모든 의례와 절차를 스승과 벗들에게 물어 예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게 함으로써 주위의 큰 칭송을 받기도 했다. 1572년 7월 복직하였으나, 1573년 4월 38세 때 다시 모친상을 당하여 경기도 고양군 신원(新院)으로 낙향하여 다시 3년상을 치렀다.

1575년(선조 8년) 5월 모친의 시묘살이를 끝내고 복직하여 직제학, 성균관사성, 사간원사간 등을 역임했다. 그 무렵 조정에서는 이조 정랑 임명 문제로 심의겸과 김효원이 다투면서 동서 분당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그때 정철은 심의겸 편에 서면서 서인이 되었는데, 분열을 중재하려던 율곡 이이에게 불만을 품고 벼슬을 내던지고 담양으로 돌아갔다. 선조로부터 몇 차례 벼슬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1580년(선조 13년) 1월 강원도 관찰사에 제수된 정철은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두루 여행하며 《관동별곡》을 썼고,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해 〈훈민가〉 16수를 지어 가사문학에 큰 자취를 남긴다. 현지에 부임한 뒤에는 해묵은 폐단을 혁파하고 방치되어 있던 단종의 묘를 수축했으며 지방관을 독려하기 위해 〈고을의 관리들을 깨우쳐 인도하는 글〉을 짓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쓴 《관동별곡》은 금강산을 비롯한 관동팔경을 두루 유람하면서 산수(山水)를 노래하는 내용에 고사(故事)·풍속까지 삽입한 것으로, 몇 개월간 유랑하면서 심각한 직무유기를 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강원도에서는 정철을 부정적으로 보는 설화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어 정말 관찰사 업무를 잘 수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신빙성이 낮다. 실제로 백성들을 가혹하게 다루었고, 일처리가 공평하지 못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백성들이 정철(鄭澈)에게 얼마나 원한을 가지고 있었으면, 이름을 잘 모르는 물고기가 잡히면, "이놈, 정철아!" 하고 욕을 퍼부은 다음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는 소문도 돌았다.

1년 뒤 그가 전라 감사로 부임하자 그의 나쁜 평판 때문에 전라도사(全羅都事)였던 조헌이 병을 핑계로 사직을 청했다. 정철이 만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율곡과 성혼에게 중재를 청하여 조헌을 간신히 주저앉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조헌 역시 정철과 마찬가지로 성정이 과격한 인물이라 마음이 통했던지 곧 둘은 친해졌다. 이때 정철은 도내의 세액과 부역의 실상을 조사하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일면도 보였다.

이후 승정원 도승지를 거쳐 1583년(선조 16년) 2월에 예조 참판이 되었고, 다시 함경도관찰사로 나갔을 때는 그곳의 시폐(時幣)를 상소로 올려 부정을 시정하기도 했다. 그해 3월에 다시 내직으로 돌아와 자헌대부 예조판서에 특진되었다. 평소 술을 즐겨 위신을 잃는 일이 많고 승진이 너무 빠르다는 사헌부와 사간원의 거듭된 비판과 동인계 사간원 언관들의 집중공격을 받았지만, 선조 임금의 적극적인 비호를 받았다.

- 6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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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54
■ 송강松江 정철 1편

■ 송강(松江) 정철 1편

광주 무등산 자락에는 조선 중엽 권력 다툼의 와중에 물러난 선비들이 세운 소쇄원, 송강정, 식영정, 면앙정 등 수많은 정자와 원림(園林)이 남아있다. 특히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의 식영정(息影亭)은 기대승, 송순, 김덕령, 송익필, 김성원, 고경명 등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 묵객(墨客: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나 의병장들이 스쳐 지나간 장소이다. 오늘날 윤선도, 박인로와 함께 조선의 3대 시인으로 손꼽히는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을 지은 곳이기도 하다. 정철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질곡 많은 인생사를 겪으며 수많은 시조와 가사를 남겼다. 그가 남긴 《사미인곡》·《속미인곡》·《관동별곡》·《성산별곡》 및 시조 100여 수는 국문시가의 질적·양적 발달에 크게 기여했고, 문집으로 《송강집》 7책과 《송강가사》 1책을 남겨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정철은 탁월한 비유법과 파격적인 언어 구사, 호탕하고도 원숙한 시풍으로 우리말의 묘미를 잘 살린 작품들로 우리나라 시조와 가사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4편의 가사는 우리나라 가사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김만중은 《사미인곡》·《속미인곡》·《관동별곡》을 두고 "우리나라의 참된 글은 이 세 편뿐이다."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정철은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신흠은 그에 대해 “정철은 평소 지닌 품격이 소탈하고 대범하며, 타고난 성품이 맑고 밝다. 집에 있을 때에는 효제(孝悌)하고 조정에 벼슬할 때에는 결백하였으니, 마땅히 옛사람에게서나 찾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동인(東人)의 한 분파인 북인 측에서 주도하여 편찬한 《선조실록》에는 『정철은 성품이 편협하고 말이 망령되고 행동이 경망하고 농담과 해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원망을 자초(自招)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즘은 거의 문인으로 언급되지만, 선조 중기 당시에는 조선 정치사에 가장 잔혹한 피바람을 불러왔던 기축옥사(己丑獄事)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정적(政敵)들에게 자비없는 잔혹하고 비열한 정치인으로 유명했다. 물론 기축옥사는 무엇보다도 선조의 의도가 크게 작용했지만, 실제로 앞장서서 이를 진행한 것이 정철이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에도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더구나 《관동별곡》이나 실록에 기록된 심각한 직무유기와 무능력 때문에, 잔혹함과는 별개로 관료로서의 평가도 그다지 좋지 못하다. 만약, 관료가 아니라 서경덕이나 김삿갓처럼 일반 선비였다면 후대에 예술가로 칭송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사 작품 4개 《사미인곡》·《속미인곡》·《관동별곡》·《성산별곡》은 현존(現存) 중인 당대의 흔치 않은 언문(諺文) 고전 문학 작품이다. 이 네 작품은 문학성과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현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여전히 실리고 있고, 수능문제로도 자주 출제되고 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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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55
【히어리】

【히어리】

멸종위기식물 2급에 속하는 한국특산식물로 귀중한 나무임.

꽃의 색깔이 "하얗다"는 뜻의 "하야리" 또는 허여리"에서 변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함.

잎자루와 잎 뒷면에 털이 없고, 향기가 나지 않음.

▷ 학명 : Corylopsis coreana Uyeki

▷ 분류 : 조록나무과

▷ 분포지역 : 지리산

▷ 서식장소 : 산기슭

▷ 특징 :

중부지방에서 자라는 낙엽 관목이다. 생육환경은 비탈진 곳의 물 빠짐이 좋은 곳에서 자란다. 키는 2~4m 정도이고, 잎은 심장형으로 길이가 5~10cm이며,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뾰족한 톱니가 있고 꽃이 핀 후 잎이 나온다.

꽃은 노란색이고 꽃잎이 5장 달리고 아래로 향해 달린다. 열매는 9월경 둥글게 달리고 안에는 검은색 종자가 들어 있다. 주로 관상용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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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0:55
◇ 아직도 "야, 다문화"라고 부르는 교사가 있다고요

◇ 아직도 "야, 다문화"라고 부르는 교사가 있다고요

행복은 다양한 순간에 여러 표정으로 찾아온다. 그래서 지역마다 다른 언어가 자생해 발전했다. 호주 원주민 핀투피족은 엄마의 품처럼 안아주기라는 뜻의 ‘칸이닌파’란 말을 쓴다. 파키스탄의 파슈툰족이 쓰는 ‘멜마스티아’는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기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인종과 종교 등을 따지지 않고 호의와 경의를 보이는 태도라고 한다. 최근 10회를 맞은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상’ 시상식에 참석한 ‘아름답게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 따뜻한 말들을 읊조리게 됐다.

▷다문화가족 부문 우수상을 받은 중국 출신 이미화 씨는 틈나는 대로 복지관 이용자들과 이웃들에게 무료로 파마와 염색을 해 준다. 자신이 한국에서 미용사가 되기까지 받았던 도움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돌려주고 싶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년 전 담화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주자는 빈손으로 오지 않습니다. 보물 같은 그들의 문화만이 아니라 용기와 능력과 에너지와 열망을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그들을 받아들인 국가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국내 거주 외국인은 약 222만 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4.3%다. 한국은 3, 4년 후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정한 ‘다문화 다인종 국가’ 기준(인구 중 외국인이 5%)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외국인 중에는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15만 명의 청소년이 있다. 이들을 엄마의 품처럼 안아 사랑으로 키우는 게 곧 글로벌 미래 세대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다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포용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다문화 세대는 좋은 법규와 제도, 성장과 통합 프로그램 못지않게 한국인들의 인간적 친밀함을 원한다.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는 저서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한국인이 다 되었네요”라는 말이 이주민들에게 모욕감을 준다고 썼다. 그 말에는 아무리 한국에 오래 살아도 당신을 온전한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전제가 깔렸다는 것이다. 차별당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는데 스스로는 차별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많은 게 현실이다.

▷다문화라는 말은 다양한 문화의 공존과 존중을 강조하는 사상인 다문화주의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좋은 말도 배려심이 부족한 사람이 누군가를 차별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하면 흉기가 되기도 한다. 교사로부터 “야, 다문화”라고 불려 상처를 받는다는 어느 중학생의 고백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 안에 차별주의자가 사는 건 아닌지 자주 들여다보는 차별 감수성을 키워야 다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횡설수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524.html
kolaswqetsrq 11.02 20:56
◇ 한국프로야구, 주니어들의 시대 도래하나

◇ 한국프로야구, 주니어들의 시대 도래하나

‘페타주’는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샌디에이고)의 줄임말이다. 박찬호로부터 ‘한 이닝 만루홈런 두 방’(한만두)을 때린 페르난도 타티스(당시 세인트루이스)의 아들이다.

‘한만두 21주년 기념일’이었던 지난달 24일 LA 다저스전에서 클레이턴 커쇼로부터 홈런 2방을 때렸다. 타티스 주니어는 경기 뒤 “아버지와 통화했는데, 정말 기뻐하셨다. ‘우리에게 아주 큰 축복’이라고 하시더라”라고 말했다. 페타주의 홈런 2개에는 ‘한솔두’(한 경기 솔로홈런 두 방)라는 별명이 붙었다.

류현진 동료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토론토) 역시 ‘블게주’라 불린다. ‘괴수’라 불렸던 블라디미르 게레로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스트라이크존 근처의 공이면 다 때려냈던 ‘배드볼 히터’였지만 블게주는 한 단계 더 진화했다. 발사각을 높여 홈런 타구를 늘렸다. 올 시즌 15kg을 감량한 블게주는 11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 공동 4위, OPS 1.049로 마이크 트라우트(에인절스·1.086)에 이은 메이저리그 전체 2위다.

메이저리그만 ‘주니어의 시대’가 온 게 아니다. KBO리그도 주니어의 시대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는 2017년 데뷔하자마자 신인왕에 올랐고, 곧장 리그 최고 타자 중 한 명이 됐다. 올 시즌 초반 주춤하는 듯했지만 이내 제 페이스를 찾았다. 5월 13경기에서 타율 0.500을 몰아치더니 타율 0.350으로 리그 5위, 50안타는 리그 공동 3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리그 최고 투수로 올라선 삼성 원태인도 ‘주니어’다. 아버지 원민구씨는 제일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대구 협성경복중 감독을 지냈다. 아버지는 원태인이 등판할 때마다 팔공산 갓바위에 올라 기도를 했다. 원태인은 6승1패(1위), 평균자책 1.00(1위), 탈삼진 47개(4위)로 트리플 크라운이 가능한 페이스다.

두산 포수 박세혁은 박철우 두산 코치의 아들이다. 박세혁이 부상으로 빠진 사이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포수 장승현 역시 ‘주니어’다. 아버지 장광호는 태평양-현대를 거쳤고 LG와 SK의 배터리 코치를 지냈다. KBO리그 내 많은 ‘주니어’ 중에서도 ‘포수 부자’는 무척 드물다. 장승현은 최근 10경기 타율이 0.320이다.

LG 김대유 역시 아버지의 포지션과 똑같다. 1980년대 ‘황금의 왼팔’이라 불렸던 초고교 유망주 출신의 롯데 투수 김종석이 아버지다. 김대유는 넥센-SK-KT를 거치는 동안 꾸준한 노력 끝에 올 시즌 LG 핵심 불펜이 됐다. 10홀드로 리그 2위다. LG가 2차 1라운드에 지명한 내야수 이영빈의 아버지도 한화에서 뛴 이민호 대전 중구 리틀야구단 감독이다.

키움 외야 한 자리를 자신의 것으로 다지고 있는 송우현은 ‘송골주’다. 송골매라 불렸던 송진우 현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감독의 아들이다. 최근 4경기 타율 0.471도 눈에 띄지만 외야수로 5개나 기록한 보살(리그 1위)은 더 대단한 기록이다. 아버지의 ‘강견’을 외야에서 뽐내는 중이다.

주니어들의 활약은 그저 ‘유전자’ 때문만은 아니다. 책 에 따르면 드라이브라인 대표 카일 보디는 메이저리그 2세들의 활약에 대해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효과적으로 던지고 움직이는 동작을 아이가 보고 은연중 따라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KBO리그에 ‘주니어의 시대’가 온 것은 그만큼 리그의 역사가 오래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추억을 가진 팬들이 주니어의 활약을 응원할 만큼 역사가 쌓였다. 20년 뒤 ‘양신주’가 ‘종범주’와 함께 뛸 수 있을까.

-경향신문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392.html
kolaswqetsrq 11.02 20:57
◇ 족장 김병만이 살아남는 법

◇ 족장 김병만이 살아남는 법

396명. 지난 2011년 첫 방송부터 현재까지 ‘정글의 법칙’에 다녀간 유명인·연예인의 수다. 하지만 이들이 전부 이 바닥에서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방송이라는 적자생존(適者生存) 정글에 적응한 자는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사라졌다. 그 10년간 한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곁에서 오래 지켜본 족장 김병만이다.

그는 정글을 지배하는 육지의 맹수라기보단 홀로 바다를 떠다니는 거북과 닮았다(그가 쓴 책 제목이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이다). 스튜디오라는 육지에서는 느렸지만 서바이벌쇼라는 바다에서는 누구보다 빨랐다. 100마리 중 단 몇 마리만 포식자들로부터 살아남아 성체가 되는 고단한 거북의 삶을 연예대상 2회 수상으로 증명해냈다. 대체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 멸종위기종 푸른바다거북 같기도 하고, 스카이다이빙 추락 사고에도 벌떡 일어나는 걸 보면 100년 넘게 사는 장수거북 같기도 하다.

옆에서 지켜본 그는 항상 제작진의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주는 MC였다. ‘정글의 법칙’ 시작 후 프로그램에 필요한 스카이다이빙, 스쿠버다이빙, 프리다이빙 등 각종 자격증을 땄다.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배우며 리더십과 이름값만으로는 불충분한 족장의 가치를 시간과 노력으로 채웠다. 그는 어느새 제작진의 충분조건이 되었고, 그 결과물은 시청자에게 필요충분조건으로 전달되어 높은 시청률로 이어졌다.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당신은 좋은 의사입니까 최고의 의사입니까?” 극 중 유연석의 질문에 한석규가 답한다. “필요한 의사. 나는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 환자에게 필요한 의사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2018년 예능 최초로 남극에 다녀왔을 당시 모든 팀원들과 돌아가며 롤링페이퍼를 썼는데, 김병만은 내게 이런 글을 남겼다. “필요한 형이 될게.”

얼마 전 연예인 중 최초로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도 땄다. 바다거북이 하늘까지 정복한 셈이다. 개그콘서트 ‘생활의 달인’에서 늘 “16년간 ○○을 해온 달인 김병만”이라고 했다. 올해 데뷔 20년 차를 맞은 그는 그토록 얘기하던 16년을 이미 넘어섰고, 4년을 더 버텼다. 생존 달인의 장수는 현재 진행형이다.

-조선일보 김진호PD의 방송이야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82.html
kolaswqetsrq 11.02 20:57
◇ 삼성바이오로직스, 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 생산기지되는 한국

◇ 삼성바이오로직스, 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 생산기지되는 한국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2010년 3월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수장으로 복귀하며 던진 화두다. 얼마 뒤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지하층에 만들어진 실험실에 임직원 12명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해 5월 발표된 삼성그룹 ‘5대 신(新)수종 사업’에 바이오·제약이 포함됐고 이듬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출범했다.

▷당시 삼성그룹 안팎에선 “100년 이상 앞선 세계적 제약회사들을 따라잡긴 어렵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래서 택한 1단계 전략이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이었다. CMO는 반도체로 치면 미국의 팹리스(설계전문업체) 의뢰를 받아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해주는 대만의 TSMC와 같은 비즈니스다. 반도체처럼 공정관리가 생명인 대형 장치산업이어서 삼성의 기량이 충분히 통할 것이란 이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현재 삼성바이오는 36만4000L의 생산능력을 갖춘 세계 1위 CMO다.

▷삼성바이오와 미국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 계약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바이오 측은 “확정된 바 없어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공시를 냈지만 이전 비슷한 소문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정했던 것과 온도 차이가 크다. 이 때문에 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대통령이 백신동맹을 논의한 직후 계약 내용이 공개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mRNA(메신저 리보핵산)를 이용한 모더나의 첨단 백신은 화이자 백신과 함께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된다. 모더나로서도 삼성바이오와 손잡으면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어 유리한 게임이다. 다만 한국에 당장 모더나 백신이 공급되긴 어렵다. 모더나에서 원료를 받아 후반 작업만 한다면 시점이 앞당겨지겠지만 생산설비를 새로 까는 데에만 최소 6개월이 걸린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이미 미국 노바백스 기술을 이전받아 경북 안동 공장에서 6월부터 백신을 생산하기로 했다. 삼성바이오의 계약까지 성사되면 한국이 동아시아의 ‘백신 생산 허브’로 도약할 기회가 된다. 코로나19는 팬데믹이 일단락된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계속 발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만큼 백신 생산 능력을 갖추는 건 국가경쟁력에까지 영향을 미칠 중요한 문제다.

▷선진국에 앞서 한국이 백신을 개발했다면 좋았겠지만 기초역량과 투자 규모의 차이를 고려할 때 금세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바이오산업의 불모지였던 한국이 백신 생산 위탁기지로 주목받는 것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 경제의 최대 장점인 빠르고 정확한 대량생산 능력이 한국인을 포함한 세계인의 생명을 코로나19로부터 구하길 기대한다.

-동아일보 횡설수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sk.html
kolaswqetsrq 11.02 20:58
◇ 부럽기만 한 이스라엘 아이언 돔

◇ 부럽기만 한 이스라엘 아이언 돔

지난 2019년 5월 이스라엘을 방문했다가 실전(實戰) 상황을 경험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이 이틀 동안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 로켓탄 700여 발을 발사했다. 이스라엘은 요격 미사일 ‘아이언 돔(Iron Dome)’으로 인구 밀집 지역에 떨어질 확률이 높았던 로켓탄 173발을 요격해 공중에서 폭발시켰다.

아이언 돔은 2000년대 들어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하마스’의 로켓 공격 등으로부터 이스라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미·이스라엘 공동으로 개발됐다. 처음에 미국은 요격 거리가 너무 짧기 때문에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며 공동 개발에 부정적이었고 이스라엘 내에서조차 “로켓탄 요격보다 공격 원점 제거 타격이 더 효과적”이라며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2004년 미사일 방어 체계 옹호론자인 대니얼 골드 준장이 이스라엘 국방안보연구개발국 책임자로 취임한 뒤 정치권 등에 대한 설득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어 개발에 착수했다.

엊그제 이스라엘 국방부가 팔레스타인 로켓들을 아이언 돔이 요격하는 장면을 SNS에 공개한 영상이 화제다. 20여초간의 짧은 영상에서 아이언 돔은 약 20발의 팔레스타인 로켓들을 불꽃놀이 폭죽을 터뜨리듯 잇따라 요격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90%의 명중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아이언 돔은 많은 실전 경험을 통해 동시 요격 능력이 크게 향상됐고, 최대 사거리도 70km에서 100km 이상으로 늘어났다. 처음엔 로켓·포탄만 막을 수 있었지만 이젠 탄도미사일 요격도 가능하게 진화했다.

지난 2010년 11월 연평도를 방사포(다연장로켓)로 포격했던 북한은 팔레스타인보다 크고 강력한 로켓들을 훨씬 많이 보유하고 있다. 북한은 유사시 최대 340문에 달하는 170mm 자주포 및 240mm 방사포로 1시간에 최대 1만6000여발의 포탄(로켓탄)을 수도권에 퍼부을 수 있는 것으로 군은 보고 있다. 우리 군도 연평도 도발 직후 아이언 돔의 도입을 검토한 적이 있지만 한반도 상황에는 적절치 않다며 ‘한국형 아이언 돔’ 개발을 결정했다.

 "
북한은 지난해 이후 600mm 초대형 방사포를 잇따라 시험 발사하는 등 방사포 전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형 아이언 돔 개발은 오히려 계속 지연돼 빨라야 2029년쯤에야 도입될 수 있다고 한다. 그때까지는 ‘설마’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이스라엘보다 얼마나 안전한 나라여서 이렇게 태만한가. 우리 군 수뇌부는 북한의 위협에 대해 어떤 절박감과 위기의식을 갖고 있나. ‘설마는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

-조선일보 만물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20.html
kolaswqetsrq 11.02 20:59
◇ 결혼식장서 외친 "상간녀야!"...통쾌한 복수했지만 처벌은

◇ 결혼식장서 외친 "상간녀야!"...통쾌한 복수했지만 처벌은

전 남편의 상간녀 결혼식에 방문해 불륜 사실을 모두 폭로했다는 한 여성의 사연이 누리꾼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A씨는 지난해 이혼했습니다. 전 남편과 상간녀 B씨가 외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단순히 바람만 피운 게 아니라 온라인으로 만난 이들과 집단 성교까지 시도했습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근 A씨는 B씨가 자신의 전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기에 앞서 혼전 임신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A씨는 복수를 결심합니다. B씨의 과거 불륜 사실을 결혼식장에서 모두 폭로해버리기로 한 겁니다. A씨는 결혼식 당일 이 결심을 실행에 옮깁니다. 예식장을 찾아가 B씨 예비신랑의 부모님에게 B씨의 과거 불륜 사실을 모두 털어놓습니다. 이후 신부대기실을 찾아가 B씨를 향해 "어디 뻔뻔하게 상간녀 주제에 속이고 결혼을 하냐. 아이가 친자인지 검사해봐라"라며 호통을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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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B씨는 경찰을 불러달라고 호소했고 신고를 받은 경찰이 식장에 들이닥치면서 결혼식은 금세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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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며느리는 불륜녀"...명예훼손일까

A씨 입장에선 남의 가정을 파탄낸 뒤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는 B씨의 모습에 화가 날 만합니다. 누리꾼들도 결혼식장을 찾아간 A씨에게 공감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A씨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법적 책임을 지게 될까 걱정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결혼식에서 신부의 과거를 폭로한 A씨의 행동은 명예훼손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을 말했더라도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하는 말을 했다면 명예훼손죄가 인정됩니다. 이른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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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사례에서의 법적 쟁점은 공연성입니다. 통상 불특정 다수에게 퍼질 가능성, 즉 전파 가능성이 있어여만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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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A씨가 B씨의 시부모에게만 불륜 사실을 알렸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A씨는 신부대기실을 찾아가 B씨를 향해 상간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B씨의 다른 가족들이나 하객들이 그녀의 과거를 행적을 충분히 알게 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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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인의 아들 결혼식장에 찾아가 돈을 갚으라고 요구한 70대 여성이 처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여성은 지인이 빌려간 3000만원을 갚지 않자 ○○○ 돈 주라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지인 아들의 결혼식장에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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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우리 사회에서 자녀의 결혼식이 가족 및 친지에게 가지는 의미를 고려할 때, \돈 갚으라\는 문구는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구체적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며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손해배상 통해 위자료 받아내야

그렇다면 A씨가 이 상황을 합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간통죄 폐지 이후 불륜을 형사처벌하는 건 불가능해졌습니다. 민사 소송을 통해 위자료를 받아내는 게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입니다. A씨처럼 이미 이혼을 마친 상태라도 전 남편과 상간녀 B씨에게 위자료를 청구하는 건 가능합니다. 위자료 금액은 부정행위의 정도나 기간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대상에게 위자료를 청구하는 이른바 상간녀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외도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입니다. 남편이 불륜녀와 주고받았던 통화 기록이나 문자메시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이 불륜의 증거로 많이 제시됩니다.

상간녀 소송을 제기할 때는 불륜 사실을 언제 알게 됐는지도 중요합니다. 민법은 부정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 간 또는 부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안에 위자료 청구를 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민법 제766조)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지 3년이 경과했다면 위자료 청구도 불가능합니다.

-머니투데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116.html
kolaswqetsrq 11.02 21:00
조호이산調虎離山 - 호랑이를 꾀어 산을 떠나게 하다, 강한 적은 약화시킨 뒤 공격한다

조호이산(調虎離山) - 호랑이를 꾀어 산을 떠나게 하다, 강한 적은 약화시킨 뒤 공격한다

고를 조(言/8) 범 호(虍/2) 떠날 리(隹/11) 메 산(山/0)

으르렁거리는 백수의 왕 호랑이도 산 속에서 내려오면 힘을 잃고 약한 인간에게 사로잡힌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졌어도 그것을 펼칠 여건이 되지 않으면 ‘날개 없는 봉황’이 되고 ‘임자 없는 용마’가 되는 법이다. 날랜데다 힘으로 대적할 수 없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천하장사라도 맨손으로 잡기보다 계략을 쓰는 것이 좋다. 호랑이를 꾀어(調虎) 자기가 힘을 쓸 수 있는 산을 떠나게 하는(離山) 것이다. 중국의 고대 병법인 "三十六計(삼십육계)" 중에서 15번째 계책이다. 공격 때 전략인 攻戰計(공전계)의 세 번째로 범을 산에서 유인해내어 사로잡는다는 방법이다

병법이라 하면 孫子(손자)나 孫臏(손빈)을 먼저 떠올리지만 작자나 연대는 미상이라도 서른여섯 가지의 계책 중 도망하는 게 최고라는 走爲上(주위상)이 줄행랑이고 삼십육계의 하나라는 것은 대체적으로 알 정도로 친숙하다. 敗戰計(패전계) 중의 하나로 美人計(미인계)와 苦肉計(고육계)도 여기에 들어간다.

지려고 하는 싸움은 없으니 전투를 벌였으면 이겨야 한다. 그런데 상대가 호랑이와 같은 강적이라 계략을 써서 공격해야 한다. 이 계책에 대한 설명은 ‘자연조건이 적에게 불리해지는 때를 기다려 아군에 유리하도록 유인하는 것이다(待天以困之 用人以誘之 往蹇來連/ 대천이곤지 용인이유지 왕건내련)’고 했다. 바로 호랑이를 산에서 내려오도록 하는 방법이다. 蹇은 절뚝거릴 건.

호랑이를 유인하여 산에서 내려오게 한 뒤 사로잡는 병법은 잘 알려져서인지 곳곳에서 응용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衛(위)나라의 충신 石碏(석작, 碏은 사람이름 작)은 아들 石厚(석후)가 왕의 시해사건에 가담하여 고위직에 오르자 꾀를 썼다.

새 왕과 아들을 이웃 왕에게서 신임을 받아야 한다며 새 왕과 함께 보내 처치하도록 했다. 三國時代(삼국시대) 東吳(동오)의 孫策(손책)이 어린 나이에도 천혜의 요지 廬江(여강, 廬는 농막집 여)을 차지하게 된 것은 그곳 태수 劉勛(유훈, 勛은 공 훈)을 뇌물로 꾀어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밀림 속의 호랑이는 모두 두려워한다. 들판으로 꾀어내면 약한 인간들도 사로잡을 수 있다. 큰 힘을 가진 호랑이는 산이나 숲이 힘의 원천이다. 管仲(관중)의 가르침을 모은 管子(관자)에 蛟龍得水(교룡득수)란 말이 나오는데 교훈을 준다.

무시무시한 교룡도 물이 있어야 신성하고, 호랑이와 표범도 깊은 골짜기 안에서 힘을 쓸 수 있으니 군주도 백성의 신망을 얻어야 잘 다스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무엇을 의미할까. 큰 권력을 가진 세력가일지라도 힘을 받쳐줄 국민들의 지지가 없으면 하루아침에 허수아비가 된다는 것을 명심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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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00
기파편작耆婆扁鵲 - 인도와 중국의 명의, 명의의 대명사

기파편작(耆婆扁鵲) - 인도와 중국의 명의, 명의의 대명사

늙을 기(老/4) 할미 파(女/8) 작을 편(戶/5) 까치 작(鳥/8)

병을 잘 고쳐 이름난 名醫(명의)는 동서고금에 숱하다. 기원전 5세기께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의도를 확립해 ‘의사의 아버지’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선 지역마다 불치병을 고친 명의전설이 내려오고, 조선 중기 御醫(어의)를 지낸 許浚(허준, 1539~1615)은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했다는 東醫寶鑑(동의보감)을 남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됐다. 경상도 거창 출신의 조선 숙종 때 어의 劉爾泰(유이태, 1652~1715)도 예방치료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역사상 대표적 명의를 일컫는 성어로 함께 등장하는 耆婆(기파)와 扁鵲(편작)은 각각 인도와 중국 사람이다. 기파라고 하면 신라 때의 花郞(화랑)이었던 耆婆郞(기파랑)을 연상하겠지만 실제는 인도의 醫聖(의성)이다. 기원전 5세기 釋迦牟尼(석가모니)와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 산스크리트어 Jīvaka를 음역하여 기파로 불리고 時婆(시파)、時縛迦(시박가)、尸縛迦(시박가)라고도 한다.

비천한 출신이었지만 태어날 때 바늘통과 약주머니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한다. 왕자에 거두어져 양육됐고 서인도로 유학하여 7년간 공부했다. 기파는 석존의 풍질을 비롯한 제자들의 많은 병을 고쳐 長壽(장수)의 신으로 불리기도 했다.

명의의 대명사로 華陀(화타)와 함께 중국 고전마다 등장하는 편작은 春秋時代(춘추시대) 사람으로 이름은 秦越人(진월인)이다. 長桑君(장상군)에게 의학을 배웠는데 虢(괵)나라 태자의 죽어가는 병을 고쳐 이름을 드날리게 되었다고 한다. 起死回生(기사회생)이란 성어가 나온 연유다. 편작의 전설적인 활약상은 기원전 약 7세기부터 3세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여 후세에 다른 명의들의 기록까지 흡수하여 집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史記(사기)’의 편작 倉公(창공)열전에는 제아무리 명의라도 고칠 수 없는 여섯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째가 환자가 교만하고 자신의 병을 제가 안다고 하면 고칠 수 없다는 驕恣不論(교자불론)이다. 몸을 함부로 여기면서 재물만 중시하는 輕身重財(경신중재)가 두 번째다. 이어서 생활섭생을 지키지 않고, 오장의 기운이 빠져 있고, 약기운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쇠약했거나 무당의 말만 믿으면 고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의술은 의료제도와 함께 세계적으로 앞선다고 한다. 판문점을 넘어오는 북한 병사가 온몸에 총탄을 맞아 생긴 끔찍한 상처도 이국종 외상전문 박사의 치료로 낫게 하여 세계인의 칭송을 받았다. 나라에서도 제도적 뒷받침을 꾸준히 하여 의료만큼은 계속 앞서가야 하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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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01
학이불염學而不厭 - 배우면서 싫증을 내지 않다, 학문을 꾸준히 하다.

학이불염(學而不厭) - 배우면서 싫증을 내지 않다, 학문을 꾸준히 하다.

배울 학(子/13) 말이을 이(而/0) 아닐 불(一/3) 싫어할 염(厂/12)

배우거나 공부한다는 뜻의 學(학)이란 글자는 아이들이 양손에 책을 들고 가르침을 본받아 깨우치는 모습에서 나왔다고 한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글을 배워서 자신의 앞길을 닦아야 한다며 예로부터 학문에 관한 좋은 말이 많이 내려온다.

‘학문은 번영의 장식이고 가난의 도피처이며 노년의 양식’이란 서양의 격언에서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人不學 不知道/ 인불학 부지도)’라 한 禮記(예기), ‘책 가운데 황금의 집이 나온다(書中自有黃金屋/ 서중자유황금옥)’는 古文眞寶(고문진보)까지 부지기수다. 이처럼 유익한 공부라도 늙어 죽을 때까지 다 못한다고 했으니 보통 사람들이 꾸준히 하기엔 주눅 든다.

孔子(공자)는 태어날 때부터 깨달아 아는 生而知之(생이지지)의 성인이 아니라면 꾸준히 배워서 알아야 한다고 學而知之(학이지지)를 강조했다. 공부를 하면서(學而) 싫증을 내지 않는다(不厭)면 더 이상 좋을 수 없겠지만 공자같이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가능하겠다. 이 말은 ‘論語(논어)’ 述而(술이)편에 등장하는데 그 구절의 앞뒤를 보자.

‘묵묵히 기억하며 배우되 싫증내지 않고, 남을 깨우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일(默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묵이지지 학이불염 회인불권)이라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何有於我哉/ 하유어아재)?’ 알 식(識)은 기억할 지, 誨는 가르칠 회.

외우고 배우고 가르치는 세 가지 모두 부족하다고 겸양의 뜻으로 풀이하기도 하는데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수많은 제자를 기른 공자 이상 가는 사람이 있었을 리 없다. ‘孟子(맹자)’의 公孫丑(공손추) 상편에서 공자의 이 말을 인용한 뒤 제자 子貢(자공)이 스승을 우러를 때 언급하며 다시 나온다.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움이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어짊입니다(學不厭智也 教不倦仁也/ 학불염지야 교불권인야).‘ 老子(노자)의 제자라는 文子(문자)도 이런 말을 남겼다. ’배우면서 싫증내지 않는 것이 제 몸을 닦는 바탕이다(學而不厭 所以治身也/ 학이불염 소이치신야).‘

우리나라가 가난에서 탈피할 수 있었던 것은 배우고 자식을 가르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빈부의 격차가 커져 아무리 노력해도 계급의 위아래로 유리벽이 있어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아우성이다. 자격증을 수두룩하게 가지고도 취업에 쩔쩔 매는 청년층을 보면 공부가 무슨 소용이랴 싶기도 하다.

하지만 느리게라도 내일이 올 테니 朱子(주자)의 말을 한 번 더 되새기자. ‘오늘 배우지 아니하고서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에 배우지 아니하고서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물위금일불학이유래일 물위금년불학이유래년).’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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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02
백구과극白駒過隙 - 흰 망아지가 빨리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본다.

백구과극(白駒過隙) - 흰 망아지가 빨리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본다.

흰 백(白/0) 망아지 구(馬/5) 지날 과(辶/9) 틈 극(阝/10)

흔히 세월이 살같이 빨리 지나간다고 한다. 평소 살아갈 때는 느끼지 못하다가 뒤돌아보면 어느새 이렇게 지났는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한창 바쁘게 생활하는 젊은 층은 느끼지 못하지만 지긋한 나이의 어르신들은 지나간 세월 뭐 했던가 하고 탄식도 한다.

이와 같이 白駒過隙은 세월을 가리키는 흰 망아지(白駒)가 빨리 지나가는 모습을 문틈으로 보며(過隙) 사람의 일생을 잠시라고 느끼는 것이다. 인생이나 세월이 덧없이 짧아 무상함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서 틈을 나타내는 隙은 일부에선 郤(극)으로도 썼는데 姓(성)의 일종이지만 틈이라는 뜻도 갖기 때문이다.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때의 책 종횡무진한 상상과 표현으로 우주본체를 寓言寓話(우언우화)로 설명하는 ‘莊子(장자)’에 이 성어가 나온다. 표현이 재미있고 철학적인데 부분을 인용하면 이렇다. 사람이 천지 사이에서 사는 것은 흰 망아지가 달려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과 같이 순간일 뿐이다(若白駒之過郤).

모든 사물들은 물이 솟아나듯 문득 생겨났다가 물이 흘러가듯 아득하게 사라져 간다. 죽음이란 화살이 살통을 빠져 나가고 칼이 칼집을 빠져 나가는 것처럼 혼백이 육신에서 빠져 나가고 몸도 이에 따라 무로 돌아가는 것을 말함이니 이야말로 위대한 복귀가 아닌가!‘ 外篇(외편) 知北遊(지북유)에 전한다.

司馬遷(사마천, 기원전 145년~80년)의 ‘史記(사기)’에는 劉邦(유방)의 악독한 왕비 呂太后(여태후)가 한 말로 다음과 같이 실렸다. ‘인생의 한 세상은 마치 흰 말이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순식간이다(人生一世間 如白駒過隙). 어찌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이 이와 같아서 되겠는가?’ 留侯(유후)가 된 張良(장량)을 회유하는 말이다.

가는 세월 잡지 못하고 오는 세월 막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흘러가는 인생을 막을 수는 없으므로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도록 하는 가르침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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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02
재작풍부再作馮婦 - 다시 나서는 풍부, 그만 두겠다고 한 일을 다시하다.

재작풍부(再作馮婦) - 다시 나서는 풍부, 그만 두겠다고 한 일을 다시하다.

두 재(冂/4) 지을 작(亻/5) 성 풍(馬/2) 며느리 부(女/8)

성씨의 하나인 馮(풍)은 우리나라에선 희성이지만 중국선 제법 많다. 口禍之門(구화지문)의 舌詩(설시)를 남긴 馮道(풍도)나 東周列國志(동주열국지)를 쓴 馮夢龍(풍몽룡)이 유명하다. 馮婦(풍부)도 사람 이름이다. 하지만 여자가 아니고 晉(진)나라의 장수로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았다는 사람이다.

다시 일을 시작한(再作) 풍부(馮婦)라는 성어는 무슨 말인지 뜬금없어도 고사를 알면 뜻이 떠오른다. 용감한 풍부가 여러 사람을 해치는 호랑이를 때려잡아 명성을 떨치다 위험한 일을 그만 두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요청으로 다시 호랑이 잡이에 나섰다. 중지한 일을 다시 한다고 ‘孟子(맹자)’에서는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

盡心(진심) 하편에 나오는 春秋時代(춘추시대) 사람 풍부의 이야기를 보자. ‘진나라에 풍부라는 사람은 맨손으로 범을 잘 때려잡았는데 나중에 착한 선비가 되었다(晉人有馮婦者 善搏虎 卒爲善士/ 진인유풍부자 선박호 졸위선사).‘ 어느 날 그가 들에 나갔을 때 여러 사람들이 범을 쫓고 있었는데 산모퉁이를 등진 채 노려보는 맹수를 아무도 가까이 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들에 나온 풍부를 보고 달려가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풍부가 팔을 휘두르면서 수레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열광했지만 선비들은 그를 비웃었다(馮婦攘臂下車 衆皆悅之 其爲士者笑之/ 풍부양비하거 중개열지 기위사자소지).‘

여러 사람을 위해 나선 풍부를 맹자는 좋지 않은 일에 비유하는데 등장시켰다. 맹자는 齊(제)나라에서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왕을 설득한 적이 있었다. 나라에 큰 기근이 들었을 때 비축한 양곡을 풀도록 건의했는데 제나라 왕이 마지못해 한 번 시행한 뒤 그만 뒀다.

맹자는 이런 왕에게 실망하고 등용되기를 포기했다. 다시 기근이 들자 맹자가 왕에게 또 곡식을 풀도록 건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제자가 전하자 맹자가 말했다. ‘또 그렇게 한다면 풍부 같은 사람이 된다(是爲馮婦也/ 시위풍부야).’

맹자는 여러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살생을 않겠다고 공언했다가 번복한 풍부에 빗대 다시 제나라 왕을 위해 일을 한다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 했다. 여러 사람을 위한 일이라도 때를 맞춰 알맞게 도를 행해야 한다는 자신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옳은 일이라도 말을 거두고 식언한다면 잘한 일이라 칭찬받지 못한다. 식언을 거듭하는 지도자를 흔히 보는 우리 국민들은 풍부를 오히려 응원하게 된다. 여러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朝變夕改(조변석개)하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검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73.html
kolaswqetsrq 11.02 21:03
회자정리會者定離 -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

회자정리(會者定離) -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

모일 회(曰/9) 놈 자(耂/5) 정할 정(宀/5) 떠날 리(隹/11)-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

일생을 살면서 사람은 무수히 만남과 이별을 겪는다. 만날 때마다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삶을 지속할 수가 없기에 안심시키는 말이 많이 내려온다. 산 사람은 필히 사라지고 만나는 사람은 필히 이별한다고 生者必滅 會者定離(생자필멸 회자정리)라 했다. 거기에다 이별 후에 다시 만난다고 희망을 주기도 한다.

‘설온 님 보내옵나니 가시는 듯 돌아오소서’(고려가요 ‘가시리’)라고 희망하거나 유명한 독립운동가 시인 韓龍雲(한용운)의 절창대로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님의 침묵’)고 노래한다. 심지어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고 去者必反(거자필반)이란 말도 남겼다.

하지만 실제 떠난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통 사람도 안다.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이별의 아쉬움, 인생의 무상함을 나타내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다만 익숙해져 있을 뿐이다. 이 말은 釋迦牟尼(석가모니)가 涅槃(열반)에 드실 때 제자에게 한 말씀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靈鷲山(영축산)을 출발하여 입멸하기까지 교화와 설법, 가르침으로 일관했던 석존의 만년의 모습을 가장 생생하고 자세하게 전하는 ‘大般涅槃經(대반열반경)’에 실렸다. 최후의 순간 슬퍼하는 제자 阿難(아난)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다. ‘아난이여, 슬퍼하지 말라. 인연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빠짐없이 덧없음(無常)으로 귀착되니, 사랑하는 자나 좋아하는 자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평소에 말하지 않았더냐?

비록 내가 한 劫(겁, 무한히 긴 시간) 동안이나 머문다 하더라도 결국은 없어지리니, 인연으로 된 모든 것들의 본 바탕이 그런 것이니라.’ 가르친 法(법)과 律(율)을 후세의 스승이 되게 하라는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기억하는 총명한 제자 아난이 구술했기 때문에 경전마다 如是我聞(여시아문)으로 시작된다고 했다. / 제공 : 안병화(검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72.html
kolaswqetsrq 11.02 21:04
다언삭궁多言數窮 -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

다언삭궁(多言數窮) -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

많을 다(夕/3) 말씀 언(言/0) 셈 수, 자주 삭(攵/11) 다할 궁(穴/10)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말이다. 전하기만 하면 좋은데 이것이 넘치거나 잘못 알려져 관계를 갈라놓기도 하고 원수를 만들기도 한다. 모든 화의 근원은 말을 하는 입에서 나온다는 馮道(풍도)은 口禍之門(구화지문)은 말조심을 하라고 할 때 맨 처음 등장한 정도로 유명하다.

말은 조심할 뿐만 아니라 적게 해야 한다는 경계의 말도 많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이것저것 늘어놓다 보면 무엇을 전하려 했는지 잊을 경우가 있다. ‘군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우리 속담이 콕 집었다.

말이 많으면(多言) 자주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數窮)는 이 말도 자기가 한 여러 말이 결국 자기를 옭아매는 올가미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셈 數(수)는 數尿(삭뇨)‘라 할 때의 자주 삭‘, 빽빽한 그물 數罟(촉고)라 할 때는 ’촘촘할 촉‘도 된다.

상대방을 설득할 때 말을 적게 하거나 침묵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으니 말이 많다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성어는 ’道德經(도덕경)‘에서 老子(노자)가 한 말이다. 道家(도가)의 창시자 노자는 希言自然(희언자연)이라 하여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강조하며 여러 장에 걸쳐 말이 많은 것을 멀리 하라고 했다.

제5장 虛用章(허용장)에 실려 있는 부분의 내용을 보자. 천지만물의 변화는 누구의 개입이나 간섭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이어진다. ‘지도자도 자신의 의도를 확실히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저 백성들을 풀강아지 정도로 생각하며 간섭하지 말라(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芻狗(추구)는 건초로 만든 개의 모형인데 제사에 쓰고 나면 밟히는 천한 존재다.

그러면서 ‘말이 너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 그저 말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多言數窮 不如守中/ 다언삭궁 불여수중)’고 결론짓는다. 성인을 지도자로 보고 백성들에게 간섭 없이 내버려 두는 것이 잘 다스리는 것이란 뜻이다.

일반인들도 말이 많은 것을 조심해야 한다. 말을 주고받으면서 일을 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말로 남을 설득하거나 속뜻을 명확히 전달하기는 어려운 만큼 특히 필요한 말만 해야 한다. 그런데도 막말과 욕설이 섞여야 화제가 된다고 생각하는지 말로써 말이 많은 것은 갈수록 더하다. 시끄러운 말이 오가지 않고 할 말만 해서 국정을 이끌 수는 없을까.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03.html
kolaswqetsrq 11.02 21:05
논공행상論功行賞 - 공의 유무를 논의하여 알맞은 상을 주다.

논공행상(論功行賞) - 공의 유무를 논의하여 알맞은 상을 주다.

논할 론(言/8) 공 공(力/3) 다닐 행(行/0) 상줄 상(貝/8)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큰 성취를 이뤘다. 지도자가 잘 이끌어 일을 잘 풀리게 했더라도 혼자 힘으로는 될 수가 없다. 각기 다른 재주를 가진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성공하기까지는 서로 힘을 합쳐 잘 나가는데 문제는 끝난 뒤의 마무리다.

모두들 자기의 공이 제일 크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라 응분의 보상이 없으면 분란이 생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공적의 크고 작음을 논의(論功)하여 그에 맞는 상을 주는 일(行賞)이다. 이것이 공정하지 않으면 큰일을 이루고도 얼마 안 있어 조직이 흔들린다.

渭水(위수)에서 낚시를 하다 文王(문왕)에게 발탁된 姜太公(강태공)은 武王(무왕)을 도와 周(주)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을 인정하여 무왕은 齊(제)나라의 제후로 봉했고 강태공은 시조가 되는 상을 받았다. 가장 오래고 공정한 행상이라 볼 수 있다.

중국 法家(법가)를 확립했다는 평을 받는 韓非(한비)는 ‘韓非子(한비자)’ 八說(팔설) 편에서 강조한다. 군주가 사람을 쓸 때는 ‘능력과 공적에 따라서 상을 주고, 능력을 가늠하여 일을 맡겨야 한다(計功而行賞 程能而授事/ 계공이행상정능이수사)’고 했다. 여기서는 군주가 따져 벼슬을 내리는 것이 논의와 멀지만 공을 앞세우는 것은 같다.

劉邦(유방)이 項羽(항우)를 물리치고 왕에 올랐을 때 전장에서 고락을 같이 한 韓信(한신)이나 張良(장량)보다 蕭何(소하)를 높이 쳤다. ‘군신들이 공을 다투며 해를 넘길 때 고조가 결단한 것이다(論功行封 群臣爭功 歲餘功不決 高祖以蕭何功最盛/ 논공행봉 군신쟁공 세여공불결 고조이소하공최성)’. 군량 보급을 빈틈없이 하고 후방을 안정시켰을 뿐 아니라 제도를 완비했기 때문이다. ‘史記(사기)’의 蕭相國世家(소상국세가)에 실려 있다

왕자가 부왕을 도와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장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밀려나자 玄武門(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집권한 唐(당)나라 太宗(태종)이나 조선 초기 王子(왕자)의 난으로 왕위에 오른 太宗(태종)도 행상에 대한 불만이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45.html
kolaswqetsrq 11.02 21:05
동족방뇨凍足放尿 - 언 발에 오줌 누기, 일시적인 효과뿐 결과는 더 나쁘게 됨

동족방뇨(凍足放尿) - 언 발에 오줌 누기, 일시적인 효과뿐 결과는 더 나쁘게 됨

얼 동(冫/8) 발 족(足/0) 놓을 방(攵/4) 오줌 뇨(尸/4)

어떤 일을 처리하다 난관에 부딪치거나 잘못이 발견됐을 때 근본적인 처방을 미루고 땜질을 한다. 당장에 편한 것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이것이 바로 彌縫策(미봉책)이다. 일시적인 효력이 나타나 임기응변의 재주로 우쭐하더라도 다음에 같은 잘못으로 더 악화돼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것을 잘 나타낸 속담이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추위로 꽁꽁 언 발(凍足)에 오줌으로 녹여(放尿) 잠시 따스한 효과는 보았더라도 그 물기까지 더 얼어붙는다. 우리 속담을 한역한 ‘旬五志(순오지)’에 나오는데 趙在三(조재삼)의 ‘松南雜識(송남잡지)’에는 凍足放溺(동족방뇨, 溺은 빠질 닉, 오줌 뇨)로 되어 있다.

유학 오경의 禮記(예기)에 나오는 姑息之計(고식지계)는 아녀자나 어린아이가 꾸미는 것과 같이 구차하고 편안한 것만을 찾는 소인배의 행동이라 했다. 어떤 상황을 돌파하는데 지혜와 재치가 필요하지만 안목이 좁아 판단을 그르치면 해결하기가 더 어렵게 된다.

범을 보고 창구멍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질겁하여 ‘호랑이 보고 창구멍 막기’라는 속담은 급한 나머지 서두르는 어리석은 행동을 나타냈다. ‘우물 옆에서 목말라 죽는다’는 말과 같이 어떤 일에 당하여 도무지 융통성이 없고 처신할 줄 모르는 답답함을 가리킨다.

어려운 일을 당했으면 지레 포기하는 束手無策(속수무책)보다 난관을 뚫을 묘책을 써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임시변통이 필요하다. 여기에 연상되는 것이 逢場作戱(봉장작희)라는 불가의 禪語(선어)다. 옛날 광대나 예인들은 길을 가다가 적당한 장소를 만나면 어디서든 공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구경꾼들이 적거나, 장소가 썩 내키지 않더라도 구애를 받지 않고 상황에 닥치면 놀이를 벌이는 것이다. 대본을 가지고 연희하기보다 즉흥적인 대처를 높이 평가하는 말이기는 해도 그 방법이 다음에도 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마찬가지다.

어떤 대책을 썼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효과를 봤다고 계속 이어지지는 않는다. ‘노루 때린 막대기 세 번이나 국 끓여 먹는다’는 말이 있다. 조금이라도 이용 가치가 있을까 하여 보잘것없는 것을 두고두고 되풀이하여 이용함을 비유한다. 지난날의 구태의연한 방법들을 상황이 변했는데도 무조건 적용한다면 어리석기 짝이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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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06
면이무치免而無恥 - 법을 어기고도 형을 피하면 부끄러움이 없다.

면이무치(免而無恥) - 법을 어기고도 형을 피하면 부끄러움이 없다.

면할 면(儿/5) 말이을 이(而/0) 없을 무(灬/8) 부끄러울 치(心/6)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면 부끄럽다. 태초의 아담과 이브 때는 부끄러움을 몰랐다지만 모여 살게 된 이후부터는 인간의 본성으로 모든 도덕의 원천이 됐다. 마크 트웨인이 비튼다. ‘인간만이 얼굴이 붉어지는 동물이고,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 동물이다.’ 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다짐한 시인(윤동주)과 같이 대체로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려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간혹 그렇지 않은 인간이 있어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른다. 낯가죽이 두꺼운 鐵面皮(철면피)나 厚顔無恥(후안무치), 厚黑(후흑)이라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이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남에게 부끄러운 것은 당연하다. 이 부끄러움을 처음부터 못 느끼는 철면피들 말고도 낯을 들고 떳떳한 경우가 있다. 진심으로 자기 잘못을 부끄러이 여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거나 최소한의 형벌을 면하게 되면(免而) 부끄러움이 없다(無恥)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孔子(공자)가 이런 사람들이 나오게 되는 연유를 ‘論語(논어)’ 爲政(위정)편에서 설명하는 데서 이 성어가 나왔다.

‘백성들을 정치로 인도하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그것을 피하고자 할 뿐이요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道는 ‘이끌다’, 齊는 ‘질서정연하게 하다’란 뜻으로 푼다. 법만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사회질서는 유지되지만 백성들은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든다고 했다.

이러한 것을 고치는 처방도 내놓는다. 이어지는 말이다. ‘백성들을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질서를 유지하게 한다면, 잘못을 수치로 알고 바르게 될 것이다(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 格은 ‘바르다’로 해석했다. 가혹한 형벌로 다스리는 법치에 대해 덕치와 禮敎(예교)를 내세우는 유가의 기본이념을 잘 드러냈다.

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니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큰소리치는 예를 자주 본다.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들이 지도층에 있으니 국민이 부끄럽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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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07
중류격즙中流擊楫 - 강 가운데서 노를 두들기다, 실지를 회복하려 사기를 북돋우다.

중류격즙(中流擊楫) - 강 가운데서 노를 두들기다, 실지를 회복하려 사기를 북돋우다.

가운데 중(丨/3) 흐를 류(氵/7) 칠 격(手/13) 노 즙(木/9)

나라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서는 장병들의 士氣(사기)가 높아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늘을 찌를 듯한 士氣衝天(사기충천)의 군대가 있으면 아무리 강국이라도 넘보지 못한다. 훌륭한 장수는 부하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상처까지 보듬는다는 吮疽之仁(연저지인, 吮은 빨 연, 疽는 종기 저)의 인자함과, 함께 창을 베고 갑옷을 입은 채 잠을 자는 枕戈寢甲(침과침갑)의 자세를 가졌다면 무적이겠다.

여기에 이런 기개를 더하면 말할 것도 없다. ‘예부터 영원한 삶은 없는 법(人生自古誰無死/ 인생자고수무사), 나라 위한 단심 역사에 비추고 싶구나(留取丹心照汗靑/ 유취단심조한청).’ 중국 宋(송)나라 충신 文天祥(문천상)의 시 구절이다.

적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병사를 배로 인솔하고 강을 건넌다. 장수가 강 가운데서(中流) 노를 뱃전에 두들기면서(擊楫) 사기를 북돋운다. 東晉(동진)의 장수 祖逖(조적, 逖은 멀 적)의 이야기에서 나온 이 성어는 치욕을 갚고 실지를 회복하겠다는 기개를 나타낸다.

渡江楫(도강즙)이라 해도 뜻이 같은데 가슴에 품은 웅지를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이 나오게 된 4세기 전후는 司馬炎(사마염)이 세운 晉(진)나라가 16년간의 내란인 八王(팔왕)의 난 끝에 이민족에 쫓겨 揚子江(양자강) 이남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피 끓는 젊은이 조적 등은 외적의 침입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참상을 보고 실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당시의 元帝(원제, 재위 317~322)에게 북진을 주장했다. 큰 의욕이 없었던 왕의 명을 받자 조적은 군사를 모집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무기를 조달했다.

장강을 건너 북쪽으로 향하던 중 조적은 ‘뱃전에 노를 치면서 맹세했다(中流擊楫而誓曰/ 중류격즙이서왈)’. 중원을 편정하고 적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자 부하들도 용기백배했다. 이후 조적이 이끄는 병사들은 黃河(황하) 이남의 땅을 수복하는데 성공했다. 唐(당)의 房玄齡(방현령) 등이 지은 ‘晉書(진서)’에 실린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적의 침략에 굳건히 대항하고 쪼그라든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 애쓴 장군들이 많았다. 隋(수)와 唐(당)의 대군을 물리친 고구려의 乙支文德(을지문덕)이나 楊萬春(양만춘)에서 왜군의 야욕을 꺾은 조선의 李舜臣(이순신) 장군 등이다. 徐熙(서희)와 崔潤德(최윤덕) 장군 등은 잃어버린 땅을 되찾았다.

이런 빛나는 장군들의 전통은 오늘도 잘 지켜지고 있을까. 단호하게 대하지 못하고 중국과 일본에게 바다에서 밀리거나 同族相殘(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북한에게 양보만 하다간 아무리 노를 두들겨도 호응을 얻지 못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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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07
척포두속尺布斗粟 - 한 자의 베와 한 말의 조, 나누지 않는 형제의 다툼

척포두속(尺布斗粟) - 한 자의 베와 한 말의 조, 나누지 않는 형제의 다툼

자 척(尸/1) 베 포(巾/2) 말 두(斗/0) 조 속(米/6)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란 형제는 우애도 배우고 경쟁도 하는 사이다. 길을 가다 금덩이를 주운 형제가 욕심에 우애를 버릴까봐 강에 던졌다는 兄弟投金(형제투금) 이야기도 있고, 인류 최초의 살인자도 동생을 죽인 형 카인이었다. 외부서 싸움을 걸면 형제가 힘을 합쳐 막아내지만, 재산이 비슷할 때만 우애가 가능하다거나 형제라도 돈에서는 남이라는 서양 격언은 알력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어도 많아 이 난에서도 煮豆燃萁(자두연기, 萁는 콩대 기)나 同室操戈(동실조과) 등을 소개했다.

이보다는 약간 생소하지만 한 자의 베(尺布)와 한 말의 조(斗粟)란 뜻의 이 말도 형제간의 불화를 나타낸다. 거꾸로 斗粟尺布(두속척포)라 해도 같다. 얼마 안 되는 옷감과 곡식이라도 모아서 의식에 보태는 것이 형제인데 그러지 못한 漢(한)나라의 5대 文帝(문제)를 조롱하는 고사에서 나왔다.

‘史記(사기)’와 ‘漢書(한서)’의 淮南衡山(회남형산) 열전에 비슷한 내용으로 실려 전한다. 간단하게 내용을 보자.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은 나라를 세운 후 각 지역을 순시하다 趙王(조왕)이 바친 미녀의 시중을 받고 아들을 얻는다. 하지만 정무에 쫓겨 까마득하게 잊었다가 여인은 아들을 유방에 보내고 자살한다.

劉長(유장)이라 이름을 지어준 아이는 총명하고 자랄수록 유방을 닮아가 사랑을 독차지했고 일찍 淮南王(회남왕)으로 봉했다. 고조가 죽고 呂后(여후)가 전단하던 왕조를 평정한 뒤 왕위에 옹립된 劉恒(유항)이 문제다. 그즈음 유장은 회남에서 이복 형이 황제가 되자 기고만장해서 마음대로 행동했다. 황제를 알현하러 와서도 군신의 예를 무시하기 일쑤였고 사냥을 나갈 때도 수레에 억지로 같이 탔다.

문제는 여러 차례 주의를 주었지만 회남왕은 고쳐지지 않았고 급기야 반란을 꾀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이를 알아차리고 유장을 체포해 蜀(촉)으로 귀양 보냈다. 그곳에서 유장이 굶어죽자 문제는 박정하게 한 것을 후회했다. 민간에서는 왕이 천하를 차지하고도 동생에게 무정했다는 노래가 퍼지기 시작했다.

‘한 자의 조각 천이라도 이어서 꿰매면 입을 수 있고, 한 말의 조라도 나누어 먹으면 굶어 죽지 않는데, 형제가 서로 용납하지 않는구나(一尺布 尚可縫 一斗粟 尚可舂 兄弟二人不能相容/ 일척포 상가봉 일두속 상가용 형제이인불능상용).’ 舂은 찧을 용.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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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08
삼년지애三年之艾 - 삼년간 숙성한 쑥,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 준비해야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

삼년지애(三年之艾) - 삼년간 숙성한 쑥,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 준비해야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

석 삼(一/2) 해 년(干/3) 갈 지(丿/3) 쑥 애(艹/2)

세 해 동안(三年) 자란 쑥(之艾)을 산야에서 찾을 수 있을까. 쑥은 일년생 풀이라 오래 된 쑥을 구하려면 캐 와서 기간 동안 말려야 한다. 당장 필요하다고 아무리 돌아다녀도 숙성된 쑥은 구할 수 없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준비 단계부터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로 ‘孟子(맹자)’에 실린 이야기다.

맹자가 하려는 이 말은 어느 효자 이야기에서 왔다.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병든 홀어머니를 치유하려면 3년 묵은 쑥을 다려 드리면 된다는 말을 듣고 7년 동안 헤맸으나 허탕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말았는데 만약 처음 쑥을 캔 뒤 3년간 말렸으면 될 일을 헛고생만 했다.

離婁上(이루상)에는 이렇게 나온다. ‘오늘날 천하를 얻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마치 칠년 묵은 병을 고치기 위해 삼년 묵은 쑥을 구하는 경우와 같다(今之欲王者 猶七年之病 求三年之艾也/ 금지욕왕자 유칠년지병 구삼년지애야).’ 夏(하)와 商(상)의 마지막 폭군 桀(걸)과 紂(주)가 천하를 잃은 것은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고 백성을 잃은 것은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며 설명한다.

백성을 얻으려면 그 마음을 얻고 그러기 위해서는 원하는 것을 해 주고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백성이 어진 군주에게 돌아감은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은데 桀紂(걸주)는 오히려 백성을 湯王(탕왕)과 武王(무왕)에 몰아준 꼴이란 것이다. 큰일을 도모하려면 긴 안목을 가지고 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국고전에도 이 말이 종종 인용됐다. 고려의 문호 李穡(이색, 1328~1396)은 ‘牧隱詩藁(목은시고)’에서 과거 공부는 놓은 지 오래이면서 합격하기 어렵다고 걱정하는 젊은이에게 충고한다. ‘병중에 약쑥 구하기 너무 급하고, 목마른 뒤에 샘 파기 어렵고말고(病中求艾急 渴後掘泉難/ 병중구애급 갈후굴천난).’ 또 근심과 병이 잇따른 지 일곱 해라면서 읊는다. ‘종신토록 약쑥 못 구할 줄 알기에, 맹자를 읽으면서 호연지기 강구한다오(端知不蓄終身艾 爲讀鄒書講浩然/ 단지불축종신애 위독추서강호연).’ 鄒書(추서)는 맹자의 별칭.

한말의 우국지사 黃玹(황현, 1855~1910)도 ‘梅泉集(매천집)’에서 읊는다. ‘내 몸 위한 계책은 삼년 묵은 약쑥도 없는데, 나라 다스림에 어찌 오무의 뽕을 논할까(謀身尙乏三年艾 經國寧論五畝桑/ 모신상핍삼년애 경국영론오무상).’ 畝는 이랑 무, 오무상은 오무의 집 둘레에 뽕나무를 심어 미래를 대비하는 계책이다.

선거 때가 되면 나라를 위해 자신이 이러이러한 일을 하겠다고 거창한 공약을 발표한다. 떨어진 후보자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당선된 지도자도 언제 그러한 말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일쑤다. 이런 사람에게 큰일을 이루려는 의지가 있는지, 심지어 계획이나 있었는지 의심을 사는 경우도 많다.

여와 야의 당을 떠나 머리를 맞대고 차근차근 실천해야 나라의 발전을 위한 삼년 묵은 쑥이 될 수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43.html
kolaswqetsrq 11.02 21:09
【미선나무】

【미선나무】

미선나무의 이름은 아름다운 부채라는 뜻의 미선(美扇) 또는 부채의 일종인 미선(尾扇)에서 유래한다.

열매의 모양이 둥근 부채를 닮아 미선나무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국 특산식물이다.따라서 자생지를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 하였음

▷ 학명 : Abeliophyllum distichum

▷ 분류 : 물푸레나무과

▷ 분포지역 : 한국 충북 괴산, 전북 부안

▷ 서식장소 : 볕이 잘 드는 산기슭

▷ 특징 : 미선나무의 종류는 흰색 꽃이 피는 것이 기본종이다. 분홍색 꽃이 피는 것을 분홍미선(for. lilacinum), 상아색 꽃이 피는 것을 상아미선(for. eburneum), 꽃받침이 연한 녹색인 것을 푸른미선(for. viridicalycinum), 열매 끝이 패지 않고 둥글게 피는 것을 둥근미선(var. rotundicarpum)이라고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279.html
kolaswqetsrq 11.02 21:09
현애살수懸崖撒手 - 절벽에서 잡고 있는 손을 놓다, 작은 것에 매달리지 않고 나아가다.

현애살수(懸崖撒手) - 절벽에서 잡고 있는 손을 놓다, 작은 것에 매달리지 않고 나아가다.

달 현(心/16) 언덕 애(山/8) 뿌릴 살(扌/12) 손 수(手/0)

높은 낭떠러지에 매달렸을 때(懸崖)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撒手). 손을 떼면 죽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마지막 순간을 포기하기란 가능하지 않다. 불교에서 말하는 심오한 원리로 생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소한 것에 매달리지 말라는 뜻이란다. 어떤 사람이 절벽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때 나뭇가지를 잡았다. 두 손을 놓으라는 하늘의 말에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놓지만 그렇지 않으면 힘이 빠질 때까지 매달린다. 실제 절벽은 그리 높지 않아 손을 놓으면 살 수 있어도 그렇다. 손에 움켜쥔 나뭇가지에 연연하게 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집착에서 헤어날 길이 없어진다는 가르침이다.

불경의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중국 宋(송)나라 선사 冶父道川(야부도천)의 ‘偈頌(게송)‘이다. 속명이 狄三(적삼)인 그는 궁수였다가 道謙(도겸)로부터 道(도)가 시냇물(川/ 천)처럼 불어나도록 내려준 법명대로 정진했다. 金剛經(금강경) 해설을 시로 표현하는 것이 뛰어나 많이 알려졌다. 성어가 나오는 앞부분을 보자.

’나뭇가지 붙잡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라(得樹攀枝未足奇/ 득수반지미족기),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대장부로다(懸崖撒手丈夫兒/ 현애살수장부아).‘ 攀은 더위잡을 반. 역대 선승들의 화두100개를 담은 禪宗(선종)의 ‘碧岩錄(벽암록)’에는 선문답이 어긋날 때 ‘마땅히 낭떠러지에서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直手懸崖撒手 自肯承當/ 직수현애살수 자긍승당)’고 깨우친다.

이 말은 또한 白凡(백범) 金九(김구) 선생이 항상 실천하려 했던 명구로 알려져 있다. 백범은 20세 무렵 安重根(안중근)의사의 부친 집에서 스승 高能善(고능선)을 만났을 때 결단력이 부족함을 일깨우려 가르쳐준 이 글귀를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했다.

나무에 오를 때 가지를 잡고 오르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으나 낭떠러지에 매달렸을 때 손을 놓는 것이 대장부라며 결단할 때는 과감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懸崖撒手(현애살수)의 장면을 잊지 않기 위해 백범은 낭떠러지에 매달린 원숭이를 그린 그림을 벽에 붙여놓았다고 하고, 尹奉吉(윤봉길) 의사의 거사 직전에도 당부했던 말이라 한다.

百尺竿頭進一步(백척간두진일보)란 말을 많이 쓴다. 백 자나 된 장대의 끝에선 더 나아갈 곳이 없음에도 더 노력한다는 말이다.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이 가지고도 더 욕심을 부리는 일은 없을지 뒤돌아봐야 한다는 뜻으로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지금에 만족하고 때로는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할 때도 생긴다. 집착하기만 하고 더 위로 오르려고만 하다가는 가진 것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 고위직에 오르려는 사람이 인사 청문회 때 온갖 잡음이 쏟아져도 눈도 꿈쩍 않고 불명예스런 자리에 앉는다. 공을 이루고 물러나는 功成身退(공성신퇴)는 그만큼 어렵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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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10
저양촉번羝羊觸藩 -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다, 함부로 달려들다 쩔쩔매다.

저양촉번(羝羊觸藩) -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다, 함부로 달려들다 쩔쩔매다.

숫양 저(羊/5) 양 양(羊/0) 닿을 촉(角/13) 울타리 번(艹/15)

달리는 호랑이의 등에 엉겁결에 올라타게 됐다고 하자. 뛰어 내려도 돌밭에 깨지거나 언덕에 구르고, 끝까지 가도 호랑이밥이 될 처지다. 정신만 똑똑히 차리면 산다고 전하지만 그 전에 얼이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판단을 못하다 右往左往(우왕좌왕), 나중에는 옴짝달싹 못하는 進退維谷(진퇴유곡)에 갇히게 되는 것이 騎虎難下(기호난하)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강대국 齊(제)와 楚(초) 사이에 끼여 눈치만 보는 滕(등, 滕은 물솟을 등)나라의 처지를 말한 事齊事楚(사제사초)와 같다.

이처럼 자기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경우와는 달리 자만심으로 밀고 나가다 낭패를 볼 경우는 더 고약하다. 왔던 길을 잘 찾고 평소 온순한 성격의 숫양(羝羊)이라도 힘이 뻗치면 마구 내달려 울타리에 뿔이 걸린다(觸藩). 무모하고 저돌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마침내 덫에 걸려 도리어 일을 더 망치게 되는 경우를 비유하는 성어로 ‘易經(역경)’에서 유래했다. 만물을 陰陽(음양)으로 나눠 六十四卦(육십사괘)로 설명하는 이 경전의 大壯卦(대장괘)의 설명을 종합해 보자. 大(대)는 陽(양)을 의미하며 壯(장)은 왕성하다는 뜻이란다.

우선 34괘인 이 대장괘는 우레를 상징하는 진괘(震卦,☳)와 하늘 건괘(乾卦,≡)가 거듭된 괘로 나타낸다. 하늘 위에서 우레가 치는 형국으로 양의 세력이 막강함을 나타낸다고 했다. 강한 양의 세력은 교만에 빠지기 쉽고, 성급하여 일을 그르칠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소인과 군자의 태도가 달라진다.

‘소인은 강성하면 세력을 함부로 휘두르고, 군자는 태연히 자신을 바로잡는다(小人用壯 君子用罔 貞厲/ 소인용장 군자용망 정려).’ 그래서 ‘숫양이 무작정 돌진하다가 울타리를 받아 뿔이 걸려 괴로운(羝羊觸藩 羸其角/ 저양촉번 리기각)’ 일이 생기게 된다. 羸는 괴로워할 리, 그리 되면 ‘물러나지도 나아가지도 못한다(不能退 不能遂/ 불능퇴 불능수)’.

사람이 자기의 능력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감에 넘쳐 달려들었다가 일을 망치는 경우가 잦다. 국가의 정책도 인기만 믿고 부작용을 점검 않은 채 밀어 붙이다가 進退兩難(진퇴양난)에 빠지면 국민 모두의 불행이다. ‘菜根譚(채근담)’에서도 깨우친다.

세상사 한 걸음 물러서 생각하지 않는다면 ‘부나비가 촛불로 날아들고,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는(飛蛾投燭 羝羊觸藩/ 비아투촉 저양촉번)’ 것과 같아 편안할 수 없다고 했다. 蛾는 누에나방 아. 매사에 먼저 깊이 생각하고 나설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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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11
절부지의竊鈇之疑 - 도끼를 훔쳐갔다고 의심하다, 공연한 의심

절부지의(竊鈇之疑) - 도끼를 훔쳐갔다고 의심하다, 공연한 의심

훔칠 절(穴/17) 도끼 부(金/4) 갈 지(丿/3) 의심할 의(疋/9)

사람을 믿지 못해서 나오는 의심은 갈수록 커진다. 서양의 철학자는 ‘진리를 검토하기 위해서 모든 사물을 의심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보통사람들엔 의심이 의심을 낳는 법이다. 疑心生暗鬼(의심생암귀)가 바로 말한다. 이것을 경계하여 옛 선인들은 여러 가지 교훈을 남겼다.

친한 친구와 술자리를 가졌는데 술잔에 비친 뱀 그림자를 보고 자기를 해치려는 것이라 의심하여 큰 병이 났다는 杯弓蛇影(배궁사영)이나 하늘이 무너질까 의심하여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杞人之憂(기인지우)는 어리석음의 대명사다. 그래서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이라며 자두나무 아래서 갓끈을 바로잡으면 도둑으로 몰릴 수 있으니 아예 남에게 의심받을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 사람의 행동이 의심쩍으면 하는 짓마다 더 의심이 커져 나중에는 확신하게 된다. 약간 뭣하지만 적합한 속담이 있다. ‘삼밭에 한 번 똥 싼 개는 늘 싼 줄 안다‘고 한 번 잘못을 저지르면 눈에 띌 때마다 의심을 받게 된다. 이 개는 한 번 잘못이 있기라도 한데 잘못이 없고도 의심을 받으면 억울하다.

이웃 사람이 도끼를 훔쳐갔다(竊鈇)고 의심한다(之疑)는 말은 공연히 남의 행동이 미심쩍어 확신하다간 나중에 크게 실수한다는 이야기다. 중국 秦(진)나라 呂不韋(여불위)가 제자백가 지식을 집대성한 책이라 자부하는 ’呂氏春秋(여씨춘추)‘에서 이런 예를 든다. 마음에 얽매여 있는 혹을 없애야 한다는 去尤(거우)편에서다.

한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렸는데 이웃집 아들을 범인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걸음걸이가 도끼를 훔친 것으로 보였고 안색도 수상했으며 말도 그렇게 들렸다(視其行步竊鈇也 顏色竊鈇也 言語竊鈇也/ 시기행보절부야 안색절부야 언어절부야). 며칠 뒤 골짜기를 이리저리 뒤져 도끼를 찾았다. 다음날 다시 옆집의 아들을 보니 동작과 태도 모두 도끼를 훔친 범인과 같이 보이지 않았다.

이웃집 아들이 변한 것이 전혀 없는데 자신이 생각하는바 편견에 얽매이는 것이 없어졌을 뿐이었다. 좋아하든가 싫어하든가 어떤 생각에 사로잡히면 일이 반드시 어그러지게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같은 이야기가 ‘列子(열자)’ 說符(설부)편에도 나온다.

의심이 의심을 낳는 중생들에게 부처님은 지혜 없는 자가 의심 끊을 날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만이 옳고 남의 의견은 마음에 들지 않아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사람들과는 더불어 살 수가 없다. 자신이 잘못된 점이 있는지 남의 충고를 받아 들여야 발전이 있다. 그렇다고 남이 하는 이야기를 무조건 ‘옳소!’하고 자기 의견을 수정한다면 그것도 옳지 않다.

菜根譚(채근담)에 이에 관한 좋은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의심한다고 하여 자신의 견해를 굽히지 말고, 자신의 생각대로만 하여 남의 말을 물리치지도 말라(毋因群疑而阻獨見 毋任己意而廢人言/ 무인군의이조독견 무임기의이폐인언).’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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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12
정좌관심靜坐觀心 - 고요히 앉아 마음을 들여다보다.

정좌관심(靜坐觀心) - 고요히 앉아 마음을 들여다보다.

고요할 정(靑/8) 앉을 좌(土/4) 볼 관(見/18) 마음 심(心/0)

몸을 바르게 하여 조용히 앉은 채(靜坐) 마음의 본바탕을 살펴본다(觀心)는 말은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눕지 않고 몇날며칠을 용맹 정진하는 선승들의 長坐不臥(장좌불와)나 오래 전 대작 드라마 ‘太祖 王建(태조 왕건)’에서 弓裔(궁예)의 관심법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瑜伽(유가)라고도 하는 심신단련법 요가(yoga)가 고대 인도에서 시작됐다고 하여 불교만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자신을 되돌아보는 수양과 명상을 중시하여 선인들은 갖가지 좋은 말을 많이 남겼다.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악을 물리치고 선을 북돋는 修身(수신)을 무엇보다 우선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처음 ‘大學(대학)’에 나오듯이 먼저 마음의 수양도 언급한다. ‘머무름의 경지를 안 다음에야 자리를 잡고(知止而後有定/ 지지이후유정), 자리를 잡은 뒤에야 마음이 고요할 수 있으며(定而後能靜/ 정이후능정), 마음이 가라앉은 뒤에야 안정될 수 있고(靜而後能安/ 정이후능안), 안정된 뒤에야 깊이 생각할 수 있으며(安而後能慮/ 안이후능려), 사색한 뒤에야 능히 얻을 수 있다(慮而後能得/ 려이후능득).’ 그러면서 마음이 그렇지 못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視而不見 聽而不聞/ 시이불견 청이불문)’고도 했다.

비슷한 의미로 老子(노자)의 道德經(도덕경)에는 ‘만물이 근원으로 돌아가면 고요함을 찾는다(歸根曰靜/ 귀근왈정)’고 했고, 宋(송)의 程頤(정이, 頤는 턱 이)는 ‘마음이 고요해진 후에 만물을 보면 자연히 모두 봄의 생기를 가지게 된다(靜後見萬物 自然皆有春意/ 정후견만물 자연개유춘의)’고 近思錄(근사록)에서 말했다.

淸(청)의 蘭生(난생) 金纓(금영)이 엮은 격언집 格言聯璧(격언연벽)에는 더 와 닿는 명구가 있다. ‘고요히 앉은 연후에 평시의 성급함을 알 수 있다(靜坐然後 知平日之氣浮/ 정좌연후 지평일지기부)’,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고, 마음을 가라앉혀야 평시 말의 경솔함을 알 수 있다(守默然後 知平日之言躁/ 수묵연후 지평일지언조).’

우리나라는 사회의 어떤 분야든 급박하게 돌아가 생기가 넘친다. 외국인들은 ‘빨리빨리‘가 우리 국민성으로 여길 정도다. 가난에서 벗어나 경제부국으로 만들고 민주화도 이뤘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우리 개개인의 행복도는 모두 낮게 여긴다.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기만 옳고 남은 꺾어야만 하는 존재로 여긴다.

사회를 이끌어갈 정치를 비롯한 지도층은 더욱 시끄럽다. 고요함을 찾아야만 소란스런 속세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하고 타인을 생각할 수 있다. 깨끗한 세계가 아니라도 고요히 앉아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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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13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선비 사(士/0) 하 위(爪/8) 알 지(矢/3) 몸 기(己/0) 놈 자(耂/5) 죽을 사(歹/2)

모든 좋은 덕목을 가진 이상적인 사람이 선비였다. 학식이 있고 말보다 실천이 앞서고, 예절이 바르며 재물을 탐내지 않고 거기에다 고결한 인품을 지녔으니 말이다. 孔子(공자)가 강조하는 君子(군자)와 같고 우리나라의 양반이나 서양의 젠틀맨(gentleman)이 부분 해당하겠다.

그런 반면 白面書生(백면서생)이나 ‘남산골 딸깍발이’란 말이 일러주는 대로 글만 읽어 세상 물정을 모르고, 가난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선비 중에서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이 성어 이상으로 의리를 지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며 때로는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의리의 사나이는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의 禮讓(예양)이다. 당시 진나라엔 가신들의 세력다툼이 치열했다. 예양은 처음엔 빛을 못 보다가 智伯(지백)의 휘하에 들어가서부터 총애를 받았다. 제일 강성하던 지백은 趙襄子(조양자)가 다른 세력을 연합하여 싸움을 걸어옴에 따라 패배하고 말았다. 전멸한 병사와 함께 지백은 일가까지 모두 처참하게 죽음을 당했고 예양은 산속으로 도주했다. 자신을 알아준 주군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으리라 다짐했다.

‘사내대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용모를 꾸민다(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사위지기자사 여위열기자용)’란 말이 있으니 조양자를 없애야 지백의 은혜를 갚고 자신의 영혼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 했다. 예양은 이름을 바꾸고 죄인들 틈에 끼여 조양자의 궁중에서 변소의 벽을 바르는 일을 하게 됐다.

비수를 품고 습격했다가 발각됐고, 풀려난 뒤에도 다리 밑에서 기회를 노렸으나 또 실패했다. 의기를 높이 산 조양자도 용서할 수 없다고 하자 의복을 달라고 해서 칼로 찢고 자신도 찔렀다. ‘史記(사기)’의 刺客(자객) 열전과 ‘戰國策(전국책)’ 趙策(조책) 등 여러 곳에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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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14
야서지혼野鼠之婚 - 두더지의 혼인, 자신의 처지를 헤아림

야서지혼(野鼠之婚) - 두더지의 혼인, 자신의 처지를 헤아림

들 야(里/4) 쥐 서(鼠/0) 갈 지(丿/3) 혼인할 혼(女/8)

‘짚신도 제짝이 있다’는 속담은 보잘것없는 사람도 자기의 짝은 있다는 말이다. 두더지(野鼠)의 짝은 어떤 것이기에 이런 말이 나왔을까. 두더지가 자기 분수도 모르고 새끼의 짝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청을 넣어보다 결국은 같은 종족인 두더지가 제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엉뚱한 허영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과 세상에는 절대적인 것은 없고 모두가 상대적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우리 속담을 한역한 부록으로 유명한 洪萬宗(홍만종)의 문학평론집 ‘旬五志(순오지)’에 소개돼 있다.

어느 때 한 두더지가 자식을 위해 좋은 혼처를 구하려고 했다. 자신은 항상 땅속에서만 생활하여 못마땅해 했는데 자식에게는 넓은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게 해주고 싶었다. 하늘의 태양이 가장 훌륭하다고 여겨 하늘에 청혼하니 ‘내 비록 세상을 품고는 있지만 해와 달이 아니면 덕을 드러낼 수가 없네’ 하며 거절했다.

두더지는 이번에 해와 달을 찾아 혼처로 구했지만 ‘나는 구름이 가리면 세상을 비출 수 없다’며 손사래치고, 다시 구름을 찾아가 청혼을 하니 ‘내 비록 해와 달의 빛을 가릴 수는 있지만 바람이 한번 불면 흩어질 뿐이네’ 하고 돌아섰다. 할 수 없이 바람을 찾아가 구혼하니 ‘내가 구름을 흩어지게는 하지만 저 밭 가운데의 돌부처는 끄떡도 할 수 없으니 저보다 못하네’ 하여 돌부처를 찾아가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비록 거센 바람도 무섭지 않지만 오직 두더지가 내 발밑을 뚫고 들어오면 바로 넘어지고 말지(我雖不畏風 惟野鼠 穿我足底 則傾倒/ 아수불외풍 유야서 천아족저 즉경도). 그래서 두더지가 나보다 낫다네.’

부지런히 새끼의 좋은 짝을 구하러 다니던 두더지는 이 말을 듣고 기고만장하여 ‘천하에 높은 것이 나만한 게 없구먼’ 하며 동족 두더지와 혼인을 시켰다. 잘 어울리는 배우자는 자신이 안다. ‘결혼은 자기와 동등한 자와 할 일이다.

자기보다 뛰어난 상대는 반려가 아니고 주인을 구하는 것’이란 서양 격언이 있다. 그러니 지체 높은 집과 하는 仰婚(앙혼)이 처음에는 보란 듯이 내세우다가도 실제 생활은 불행에 이르는 일이 많다. 결혼 시즌에 대사를 앞둔 청춘남녀들이 한 번 더 생각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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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14
상선약수上善若水 -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상선약수(上善若水) -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윗 상(一/2) 착할 선(口/9) 같을 약(艹/5) 물 수(水/0)

모두들 물을 물같이 보지만 물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라고 일찍부터 老子(노자)는 ‘道德經(도덕경)’에서 깨우쳤다. 지극히 선한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며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 물을 이 세상에서 선의 표본으로 삼았다. 도덕경의 8장 易性章(역성장)에 나오는 이 말은 한 편의 시처럼 잘 요약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해당 부분을 인용해 보면.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상선약수 수선리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해주고 넉넉하게 해 주지만 다투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물기에 가장 도에 가깝다’란 뜻이다.

노자는 세상을 물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먼저 남과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는 不爭(부쟁)과 남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임하는 謙遜(겸손)을 가르친다. 이것은 소극적인 방식이 아니다. 물과 같이 만물을 길러주고 키워주지만 자신의 공을 남과 다투려 하지 않는 것이고 낮은 곳에 임하기에 강이 되고 바다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이어서 물의 정신을 일곱 가지로 예찬한다. 낮은 땅에 즐겨 임하고(居善地), 연못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心善淵), 아낌없이 누구에게나 은혜를 베푼다(與善仁). 말은 훌륭하고 믿음이 있으며(言善信), 깨끗하게 다스려지게 하고(正善治), 일을 맡으면 잘 융화하여 처리하고(事善能), 움직임은 옳다고 여길 때를 고른다(動善時)는 것이다. 바로 水之七善(수지칠선)이다.

물처럼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공을 세워서 자랑하려 하고 남을 깎아내려 그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 非一非再(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다툼이 끊임없다.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이 가장 오래 가는 높은 곳일 수도 있는데 깨닫지 못한다. 물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물 절약 분위기를 확산시키려는 것이 목적이지만 上善若水의 정신도 함께 생각했으면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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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15
명실상부名實相符 - 이름과 실상이 서로 꼭 맞음, 겉과 속이 맞아 떨어짐

명실상부(名實相符) - 이름과 실상이 서로 꼭 맞음, 겉과 속이 맞아 떨어짐

이름 명(口/3) 열매 실(宀/11) 서로 상(目/4) 부호 부(竹/5)

사람 뿐 아니라 모든 동식물, 사물에게는 이름이 있다. 다른 것과 구분하기 위해 이름은 필요하다. 꽃도 이름 없이 자연에 그대로 있었으면 아무도 몰랐지만 꽃이라는 이름을 불러주자 자신에 다가와 꽃이 되었다고 시인은 노래했다(김춘수의 ‘꽃’). 존재의 이유인 이름은 명예도 된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遺臭萬年(유취만년)이라 악명으로 기록되면 후세에 영원히 먹칠한다고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조심했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는 속담도 같은 의미다.

孔子(공자)는 특히 바른 이름을 중시했다. 목이 말라도 이름이 도둑의 샘인 우물물은 마시지 않았다는 渴不飮 盜泉水(갈불음 도천수)란 말이 잘 나타낸다. 공자에게 정치를 맡게 되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름을 바로잡는(正名/ 정명) 일을 우선하겠다고 했다. 齊(제)나라 景公(경공)이 이상적인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도 서슴없이 답했다. ‘論語(논어)’ 顔淵(안연)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되는 것입니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 군군 신신 부부 자자).’ 모든 이름은 그에 합당한 실이 갖추어져 있을 때에만 비로소 그 이름이 진정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宋(송)나라의 朱熹(주희)가 선대 학자들의 해석과 자신의 주석을 모아 엮은 ‘論語集註(논어집주)’에는 程子(정자)의 말이라면서 이에 대해 더 명확하게 설명한다. ‘이름이나 실제는 서로 어울려야 한다. 한 가지 일에 있어 이것을 소홀히 하면 나머지도 모두 구차하게 된다(名實相須 一事苟 則其餘皆苟矣/ 명실상수 일사구 즉기여개구의).’

그런데 실생활에선 이름이 실제와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름만 그럴듯하고 속은 맹탕이다. 처음엔 맞았더라도 지나면서 有名無實(유명무실)이 된 것도 있다. 가래떡이나 칼국수에 가래와 칼이 들어갈 리 없다. 팽이버섯은 팽이와 관련 없고 철가방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다. 大寒(대한)이 小寒(소한)에 와 얼어 죽는다고 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45.html
kolaswqetsrq 11.02 21:16
◇ 반도체 관련, 대만 TSMC vs 한국 삼성전자

◇ 반도체 관련, 대만 TSMC vs 한국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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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창업주 모리스 창은 ‘대만 반도체 아버지로 불린다. 미국 반도체 기업에서 부사장으로 일하다 조국의 부름을 받고 귀국, 1987년에 TSMC를 창업했다. 그는 사업 모델을 미국 IT 기업이 주문하는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공장으로 설정했다. 미국이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 분업망을 개편하려는 흐름에 올라타기 위한 것이었다. “고객과는 절대 경쟁하지 않는다”는 그의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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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세계 최초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TSMC에 주문했다. 양쪽 다 대박이 났다. ‘윈-윈 모델’로 점수를 얻은 TSMC는 퀄컴, AT&T, 엔비디아 등 미국 IT 공룡 기업들을 단골로 확보했다. 세계 주문형 반도체 시장의 60%를 장악, 시가총액 세계 11위 기업이 됐다. 반도체 덕에 대만 경제도 순항 중이다. 지난해 29년 만에 성장률이 중국을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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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대만의 지정학적 가치를 한껏 올려놓았다. 중국 반도체 굴기를 막고 미국 중심 반도체 동맹을 구축하려는 미국 입장에서 대만은 핵심 파트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전략회의’에 TSMC를 초대했고, TSMC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6곳 짓겠다고 화답했다. 대만 정부도 홍콩 사태 이후 미국의 반중 민주주의 연대에 적극 공조하고 있다. 1979년 대만과 단교했던 미국은 대만의 국제 기구 가입을 지지한다는 ‘G7 선언문 채택으로 보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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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중국 시진핑 주석과 대만 마잉주 총통은 싱가포르에서 66년 만의 양국 정상회담을 가졌다. “어떤 세력도 우리를 갈라 놓을 수 없다”면서 ‘세기의 악수’를 나눴다. 하지만 요즘 대만해협엔 전운이 감돈다. 중국 전투기가 연일 대만 항공식별구역을 침범하고, 중국 항공모함이 위력 시위를 벌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신호 머리기사에서 “대만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대표는 중국발 대만 리스크에 대해 “우리에게 플랜B는 없다. 모든 게 TSMC의 어깨 위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대만 반도체가 없으면 중국 경제도 망가진다. 대만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 전략자산으로 간주하고 물심양면 지원한다. 최근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자 대만 정부는 벼 농사까지 중단시킨 채 반도체 공장에 물을 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어떤가. 미국 대통령이 “저걸 미국에 지었어야 하는데”라고 입맛을 다셨던 반도체 공장에 송전선 연결하는 것조차 도와주지 않았다.

-조선일보 만물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tsmc-vs.html
kolaswqetsrq 11.02 21:17
◇ 일하는 여성에게 인기 있는 “꽃무늬 원피스에 벨트, ‘전투복’ 완성”

◇ 일하는 여성에게 인기 있는 “꽃무늬 원피스에 벨트, ‘전투복’ 완성”

‘일하는 엄마들이 입기 편하면서도 세련돼 보이는 옷은 없을까?’

지난 2003년 어느 날 프랑스 여성 바바라 보카라와 샤론 키에프는 커피 한 잔을 나누다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 아니랄까 봐, 두 사람은 마치 서로의 마음을 읽은 듯 “우리 옷 만들자” 외쳤다.

패션지 홍보 전문가였던 바바라와 변호사였던 샤론은 당시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이른바 ‘경단녀(경력단절여성)’였다. 둘 다 패션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살면서 느낀 점을 ‘자신들의 옷’에 담고자 했다. 파리의 한 버려진 빈 가게에서 시작해 지금은 전 세계 400여 개 매장을 갖춘 패션 기업으로 성장했다. 2030 여성들이 사랑하는 프랑스 패션 브랜드 바쉬(BA&SH)는 그렇게 탄생했다. 둘의 이름 앞 글자를 딴 브랜드.

“둘 다 일찍 결혼해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니 다시 일하고 싶었어요. 무엇이든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이었지만 ‘패션’이 공동의 관심이었죠. 특히 일할 때 여성의 옷은 왜 불편한가, 격식 있어 보이는 옷은 왜 비싸야만 하는가 같은 주제를 주로 다뤘어요. 우리는 잃을 게 없었고, 얻을 일만 있었죠.”

바쉬의 창업자 겸 디자이너 바바라와 샤론은 최근 이메일 인터뷰에서 “고객을 생각할 때 ‘나 같으면 입겠는가’를 제1 원칙으로 삼았다”면서 “일할 때 어떤 옷을 입고 싶은지, 셔츠는 어떤 식으로 똑 떨어지길 원하는지, 결혼식 갈 때 어떤 의상이 필요한지 그런 질문을 수도 없이 했다”고 말했다. 올 초부터 국내 패션 브랜드 LF를 통해 공식 판매·유통되는 바쉬가 내건 문구는 ‘이상적인 옷장’. 따갑지도 않고 가려움도 없으면서 움직이기 편하고 미치도록 비싼 가격이 아닌 콘셉트. 꽃무늬나 화려한 도형무늬(패턴) 등 휴양지에 온 듯한 스타일을 선보이면서도 벨트나 재킷을 이용해 긴장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환경을 고려해 재생 원단이나 지속가능 가죽 같은 것을 55% 이상 사용한다. 높은 성장세에 세계적인 패션 그룹인 LVMH가 계열 펀드를 통해 지분 투자를 했다

처음엔 ‘워킹맘’을 타킷으로 했지만 최근 들어선 해외 톱 모델들이 자주 입고 다니면서 화제가 됐다. 국내에서도 탤런트 최여진 등이 최근 드라마에서 입어 인기를 끌었다. 입고, 일하기 편한 옷이 기본지만 옷을 통해 마음까지도 밝게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세계적으로 인기 높은 K팝 걸그룹 등 한류 스타들은 저희에게도 트렌드 풍향계가 됩니다. 최근 들어 꽃무늬 원피스를 자주 입고 나오는 걸 볼 수 있었어요. 코로나 사태로 답답했던 속내를 아름다운 의상으로 꽃피우며, 극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선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99.html
kolaswqetsrq 11.02 21:17
◇ 덕유산서 100년 묵은 산삼, 심봤다!

◇ 덕유산서 100년 묵은 산삼, 심봤다!

경남 함양군 덕유산 자락에서 100년 넘은 산삼(山蔘)이 발견됐다. 최초 감정가로 9000만원이 책정됐다.

한국전통심마니협회는 함양에서 약초를 채집하는 이모씨가 의뢰한 산삼을 감정한 결과, 수령 100년 이상 된 천종산삼(天種山蔘)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난 7일 함양 덕유산 자락 해발 700m 지점에서 이 삼을 발견했다. 감정 결과 무게 68g, 뿌리 길이는 63cm에 이른다.

산삼 감정은 삼의 진위 여부를 파악한 뒤, 뿌리 길이와 뇌두 상태, 무게와 향, 식감, 당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수령을 추정한다. 정형범 협회장은 “삼의 발견 장소가 부엽토(풀과 나무 등의 낙엽 같은 것이 썩어서 이루어진 흙)층 영양분이 적은 암반 사이 척박한 환경이었다는 점, 삼 뇌두 형태와 크기, 짙은 황색에 매우 진한 향이 나는 점, 무게 등을 종합해 수령 1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심마니들은 산삼을 구분할 때 천종·지종·인종으로 분류한다. 천종은 50년 이상 자연적으로 자란 산삼이며, 지종(地種)은 보통 30~50년 자란 산삼이다. 인종(人種)은 사람에 의해 씨가 뿌려져 산에서 자란 삼이다.

지금까지 한국전통심마니협회가 감정한 산삼 중 가장 비쌌던 것은 2018년 전남 화순군 모후산에서 발견된 130년 추정 천종산삼 4뿌리로 당시 3억5000만원에 달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0_14.html
kolaswqetsrq 11.02 21:18
외교행낭은 죄가 없다

외교행낭은 죄가 없다

외교행낭이 불가촉 특전을 누리게 된 60년 전이다. 1961년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이런 특전이 명문화됐다. 세관검사도 받지 않고 X-레이 검사대상에서도 제외됐다. 말 그대로 프리패스였다.

외교행낭은 겉모습부터 다르다. 다른 화물과 구분하기 ‘diplomatic pouch’란 영문이 찍혀 있다. 규격 제한은 없다. 서류봉투부터 이민 가방까지 형태도 다양하다. 한국의 경우 가장 작은 것은 가로 70cm, 세로 80cm 정도다. 드물지만 가로·세로가 2m에 달하는 것도 있다. 주로 본부와 재외공관 사이에서 서류나 외교관 생활용품을 옮기는 목적으로 활용하고 민간 여객기 등이 나른다.

외교행낭의 특전은 최근 깨지는 추세다. X-레이는 아니지만 금속탐지기는 거친다. 빈발하는 국제 테러로 외교행낭을 검사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특전을 악용한 사례가 많아서다. 2017년 김정남 독살에 사용한 신경작용제 VX도 외교행낭으로 반입됐을 것이라고 국가정보원은 추측했다. 2015년 방글라데시 주재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은 금괴 170개를 외교행낭에 넣어 반출하려다 체포됐다. 금괴는 약과다. 수류탄과 편지폭탄을 외교행낭으로 밀반입하려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외교행낭이 납치 용품으로 악용된 적도 있다. 나이지리아는 1984년 영국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에서 망명한 알하지디코 전 운수장관을 납치해 외교행낭에 담아 본국으로 납치하려다 적발됐다.

외교행낭은 제대로 활용하면 요긴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08년 국제우주정거장(ISS) 화장실 수리에 외교행낭을 활용했다. 러시아가 설치한 우주인 공용화장실이 펌프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 남자 우주인 3명은 임시 처리 방법으로 화장실 문제를 해결했으나 소변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곤란을 겪었다. NASA는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 발사를 앞두고 러시아에서 0.5m 길이의 특수펌프를 들여왔다. 촉박한 일정 탓에 각종 장비는 외교행낭에 넣어 특별기편으로 운송했다.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부인의 영국 도자기 밀수 의혹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야당은 “외교행낭을 악용한 사례”라고 비판한다. 박 후보자는 “외교행낭을 이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해양수산부는 “외교행낭 반입 물품의 영리 행위는 처벌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외교행낭은 죄가 없다.

-중앙일보 분수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80.html
kolaswqetsrq 11.02 21:19
【노루귀】

【노루귀】

새로 돋아나는 잎의 뒷면이 기다란 흰털로 덮여 있어 그 모습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 하여 "노루귀"

▷ 학명 : Hepatica asiatica

▷ 분류 : 미나리아재비과

▷ 분포지역 : 한국(전지역)·중국·헤이룽강 등지

▷ 서식장소 : 산과 들판의 양지바른 곳

▷ 특징 : 이른봄에서 4월까지 흰색 또는 연한 붉은색 꽃이 피는데 잎보다 먼저 긴 꽃대 위에 1개씩 붙는다.

봄에 어린 잎을 나물로 먹으며 관상용으로 심는다. 민간에서는 8∼9월에 포기째 채취하여 두통과 장 질환에 약으로 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29.html
kolaswqetsrq 11.02 21:20
■ 열혈 재상, 김육 8편

■ 열혈 재상, 김육 8편

김육은 스스로의 생활에 대하여 엄격하고 철저하였으며, 우의정이 된 71살까지 한성에 집 한 칸 없이 살 정도로 청렴결백하였다. 김육은 황희나 류성룡, 이원익이나 채제공 등과 더불어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명재상으로 손꼽힌다. 그는 절대 굴하지 않는 강한 추진력으로 유명했다. 대동법 시행에 있어 그는 반대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일관된 정책을 수행해 나아갔으며, 화폐 유통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굽힘 없는 강한 추진력과 고집이야말로 김육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으나, 종종 \한 가지를 고집하는 병통\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를 깊이 신임한 효종도 가끔 "죽을 때까지 못 고칠 병"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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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년 말 그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효종은 특별히 어의와 유명 의사를 보내 그를 진료하게 하였으나, 잠곡은 그해 9월 한성부 회현방 자택에서 별세한다. 향년 79세. 마지막 순간까지 김육은 호남 대동법을 걱정했으며, 효종에게는 대동법의 실무를 맡게 될 신임 호남 감사 서필원을 격려해달라고 청했다. 그의 부음 소식을 접한 효종은 탄식하며 말하기를 어떻게 하면 국사를 담당하여 김육과 같이 확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효종은 5일간 조회를 보지 않았고 무척 슬퍼했다고 한다. 그는 생전에 대동법이 호남지방에 확대 시행되는걸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의 열정은 헛되지 않았다. 이후 그의 유지를 이은 전라감사 서필원(徐必遠)의 노력으로 대동법은 그의 사후 전라도 각지로 확산되었다. 어느새 대동법의 시행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들이 크게 불어나 있었고, 송시열조차도 대동법의 효력에 동의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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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의 시행에 덕을 본 충청도 백성들은 충청도에 통문(通文“통지문)을 돌리고, 부의(賻儀)하려고 했던 돈으로 비석을 세웠는데, 그것이 현재 평택에 있는 대동법 시행 기념비이다. 이는 이경석이 쓴 김육의 신도비(神道碑) 문에서도 나타난다. 그만큼 그는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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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는 정책적 반대파들이 사(私)적인 원수지간이 되지 않게끔 신중하게 처신했다. 김집이나 김상헌 등 대동법과 관련하여 그와 충돌했던 인사들은 김육과 개인적으로는 술도 같이 마시던 친한 친구의 형(김집)이거나, 아버지의 비문도 써주고 스승으로 여기던 존경스러운 이웃동네 선배(김상헌)였다. 또한 김육이 강하게 정치적으로 견제했던 원두표는 당시 권세가 매우 강력한 인조반정 공신이었다. 이런 반대파들과 정책 측면에서의 대립을 넘어 정치적 정적(政敵)이 되거나 개인적인 적이 되어버린다면, 김육이 추진하던 각종 정책뿐 아니라 그 개인의 신상까지도 위기에 처할 수 있었다. 때문에 김육은 항상 이들과의 관계에 신경을 썼다. 김집과의 관계는 김집이 대범하게 처신하여 원활하게 유지되었으며, 김상헌과의 관계도 크게 나빠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원두표를 여러 차례 정치적으로 공격하여 그가 대동법과 관련된 사무에 있지 못하게 막았지만, 그와 동시에 원두표의 할아버지인 원호(元豪)를 추증하는 사당을 세워줄 것을 건의하는 등 원두표를 배려해 주기도 했다. 즉 김육은 정치적 반대파들을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반대파로만 대했을 뿐, 그들과 개인적인 원수는 되지 않게끔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신중한 처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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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8_75.html
kolaswqetsrq 11.02 21:20
■ 열혈 재상, 김육 7편

■ 열혈 재상, 김육 7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 서적의 인쇄를 맡고 있던 교서관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고 말았다. 그 사이 주조해 놓았던 금속 활자가 다 없어지고 인력도 부족했다. 전란 후에 경제적인 궁핍으로 인해 금속활자를 새로 주조하지 못하고 전란 전에 나온 책들을 본떠서 목활자를 어설프게 만들어 임시로 병영인 훈련도감에서 서적을 인쇄하고 있었다. 김육은 인조와 효종에게 금속활자 제조에 대해서도 건의했다. 이후 구리로 금속활자를 제조하여 전란 후 중단되고 있던 서적 간행을 활발히 전개되었다.

효종 2년인 1651년에 실록청 총재관이 된 김육은 금속활자를 재주조하여 《인조실록》 50책의 간행과 《선조수정실록》 8책의 간행에 성공한다. 이후로 서적 간행에 힘써 개량된 목활자로 새로운 서적을 인쇄하는데 성공했고, 어쩔 수 없이 훈련도감 시설을 빌려 쓰던 것에서 벗어나 정식 주무 관청인 교서관의 기능도 되살려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밖에도 ≪황명기략(皇明紀略)≫, ≪종덕신편(種德新編)≫, ≪송도지(松都誌)≫ 등을 저술, 간행하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저술들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직접 활자를 제작하고 인쇄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그의 활자 인쇄술 주조 사업은 아들 김좌명과 김우명이 이어받았고, 그의 자손들이 하나의 가업(家業)으로 계승하며 이어졌다. 이는 주자(鑄字)와 인쇄 사업, 책 간행의 확산에 기여한 바가 크다. 김우명의 일부 후손은 강원도 춘성에 정착하여 소설가 김유정의 선조가 된다.

많은 논란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대동법은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로 확대되었다. 김육은 더 나아가서 호남지방에까지 대동법 시행을 주창하였으나, 대신들은 상소를 올려 김육을 탄핵했다. 대동법을 시행하면 나라를 망칠 것으로 몰고 갔다. 이 상소로 인해 김육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지만, 김육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밀어붙인다. 김육은 결국 사직하려 했지만 효종은 그를 붙잡았다. 어느덧, 김육의 고집스런 대동법 주창에 동조하는 이들이 늘어갔다. 많은 대신들이 호남, 영남 지방에 대동법을 시행할 것을 건의하며 김육의 주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김육은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호남 대동법에도 온 신경을 기울였다. 죽기 직전인 효종 8년(1657년) 11월 초까지 대동법에 대한 호남 각 읍의 여론 조사 결과를 취합해 직접 효종에게 보고했다. 또한 호남 대동법의 주요 쟁점인 진상 물품을 어떤 형식으로 거둘 것인가에 대해서도 자신의 주장인 경각사(중앙 관청 모두를 일컬음)가 일괄 징수하는 것으로 관철시켰다. 즉, 지방 관청 말고 중앙 관청이 직접 파견해 거둔다는 방식이다. 그러나 김육은 병세가 악화되어 영의정직을 사직하고 다시 영돈령부사로 물러났다. 그는 죽기 직전 왕에게 올린 글에서조차 효종에게 선정을 펼치고 민생을 구제할 것을 청하며, 호남의 대동법 시행을 강조하였다.

효종이 대신들에게 "대동법을 시행하면 대호(大戶)가 원망하고, 시행하지 않으면 소민(小民)이 원망하니 그 원망은 어느 쪽이 큰가?"하고 물었다. 신하들이 "소민들의 원망이 더 큽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국왕 효종은 \그 대소를 참작하여 시행하는 것이 옳다.\라며 드디어 대동법 확대 시행령을 내린다.

- 8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_14.html
kolaswqetsrq 11.02 21:21
■ 열혈 재상, 김육 6편

■ 열혈 재상, 김육 6편

대동법은 당대에 획기적인 세제 개혁이었다. 백성들의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비정상적인 세제로 인해 도망치는 백성들이 줄어들게 되어 세금을 걷는 어려움도 줄어들 것이고, 재정을 튼튼히 할 수 있어 식량도 원활하게 비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대동법을 충청도에 확대 실시하자는 김육의 주장은 전국에 파란을 일으켰다. 조정 여론이 찬반양론으로 나뉘었다. 조정 내에서 김육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은 소수였다. 좌의정 조익(趙翼)과 연양군 이시백 형제 정도가 찬성했고, 이조판서 김집, 호조판서 이기조, 사헌부집의 송시열 등 대부분의 관료들은 이에 격렬히 반대하였다. 김육을 공격하는 데 선두에 선 인물은 이조판서 김집이었다. 이 논쟁은 서인을 분당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다. 대동법 시행에 찬성한 김육을 중심으로 소수당인 한당과 이를 반대하는 김집, 송시열을 중심으로 다수당인 산당으로 분당되었던 것이다. 대동법 시행에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다시피 했던 김육은 이 때문에 반대파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송시열 등은 산당 세력을 움직여 대동법을 비판하는 상소를 계속 올리게 했다. 그러나 김육은 물러서지 않았다. 김육은 1649년 11월 다시 왕에게 농촌 생활의 안정 뿐 만 아니라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하기 위해 대동법을 확대 실시할 것을 거듭 주청했다.

1650년(효종1년) 중국 사행(使行)길에 중국인들의 화폐 사용을 목격하고 귀국 후 조선 조정에 동전 유통을 건의하여 왕의 허락을 받는 한편, 아랫사람을 시켜 조선의 특산물인 인삼과 비단을 마련하여 중국 동전 15만문(十五萬文)을 구입하여 평안도에 유통 시켰다. 이후에도 청나라의 동전을 구입하여 조선에 유통시켜, 물물교환 대신 화폐를 유통케 하여 정확한 액수에 거래하고, 물물교환으로 발생하는 마찰을 최소화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는 평안도, 울산 등 일부 지역에서만 부분적인 성공을 거뒀다. 현재 5만원권이 유통보다 저장 목적이 크듯, 당시 화폐를 아무리 뿌려도 유통이 잘 안됐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훗날 친손자인 김석주, 허적 등은 상평통보를 유통시키는데 성공했다. 1651년(효종 2년) 그의 적극적인 건의로 십전통보가 주조되었는데, 개성 지방의 민간인 상인을 영입하여 직접 만들어 보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훼손여부, 강도 등을 친히 시험하고 수시로 주조과정을 감독, 관리하였다. 김육은 평소 상공업을 천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상공업이야 말로 국력을 부강케 할 근간이라 하였다. 그러나 김육은 당시 사대부들로부터 장사로 천한 이익을 취하는 자들과 얄팍한 기술로 잘난 척을 하는 소인(小人)들을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았고, 상인이나 기술자들에게 얼마나 뇌물을 받았느냐는 등의 인신공격에도 시달려야 했다.

대동법의 실시를 둘러싸고 확연히 갈라지는 이해관계 때문에 반대하는 수령, 관료, 지역 유지들 등의 반발을 잠재워야 했고, 반발을 부추기는 장사꾼들의 계략에도 대응해야 했다. 김집이 이조판서에 제수되자 송시열, 송준길 등 자신의 제자들을 출사시켰는데 이들은 김육을 공격하는 돌격대 역할을 하였다.

- 7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6_41.html
kolaswqetsrq 11.02 21:22
■ 열혈 재상, 김육 5편

■ 열혈 재상, 김육 5편

1649년(효종 1년) 효종이 즉위하자, 그는 전후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지적하고, 전후 복구와 민심 수습, 대동법 시행을 적극 건의하였다. 그해 5월 효종 즉위 초에 특별히 발탁되어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동년 9월 특진하여 의정부 우의정이 되었다. 그는 나이가 많은 것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였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재차 사임을 요청하면서 또 다시 대동법(大同法:조선시대에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납세제도) 확대 실시를 간하였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에 대하여 줄기차게 주장을 거듭한 열혈재상이었다. 결국 우의정에 제수된 김육은 간곡한 상소를 올렸다.

『신으로 하여금 나와서 회의하게 하더라도 말할 바는 이에(대동법 시행) 불과하니, 혹 쓰이게 되면 백성들의 다행이요, 만일 채택된 것이 없다면 다만 한 노망한 사람이 일을 잘못 헤아린 것이니, 그런 재상을 어디다 쓰겠습니까?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성사시키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하였으니, 신이 믿는 바는 오직 전하뿐입니다." 《효종실록》

이 말은 대동법을 실시하려면 자신을 쓰고 그렇지 않으면 ‘노망한 재상’으로 치부해 쓰지 말라는 말이었다. 효종이 대동법의 시행을 약속함에 따라 우의정에 취임하였으나, 조정 일각에서는 왕을 압박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김육의 반대 세력들은 이 글의 형식과 내용이 방자하다며 공격의 재료로 삼았지만 그 속마음은 대동법을 반대하는 데 있었다. 김육은 효종에게 대동법의 내용을 설명하고 이 법의 시행 여부는 오직 왕의 결단에 달려 있으니 만일 시행하지 못하겠으면 자신을 벌해달라는 강경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한편 그가 명리(名利)를 취하는 사람으로 일부 대동미 업자들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등의 각종 유언비어들이 돌면서 그를 괴롭혔다. 소문이 계속되자 효종은 한때 그를 의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김육은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해 옳다고 생각한 바를 끝까지 관철시키려 했을 뿐이다. 만약, 그가 현실을 무시한 탁상 행정을 밀어붙였다면 그의 강한 추진력은 그냥 옹고집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의 강한 추진력은 많은 실무 경험이 뒷받침되었기에 그 빛을 발할 수 있었다.

김육은 조정에 나섰을 때부터 주요 실무직, 특히 호패와 재정, 외교 분야와 관련된 관직을 두루 섭렵했고, 이 덕에 현장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김육은 실현 가능성이 높은 정책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파악하여 추진할 수 있었다. 물론 실무에 있어서는 김육도 인정하는 전문 관료들이 많이 있었고, 김육의 역할은 직접 실무를 담당하기보다는 구체적 실천에 있어서 이들과 의논하고 이들에게 맡기면서 정치적 보호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대동법의 성공 원인이 오로지 김육의 일관된 고집만이 아니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전문 관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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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22
■ 열혈 재상, 김육 4편

■ 열혈 재상, 김육 4편

병조 좌랑을 거쳐 당시 조선 관료의 꽃인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을 거친 김육은 내직에 있으면 외직을 반드시 돌아야 하는 제도 때문에 다시 음성 현감으로 부임하였다. 그가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 송덕비가 세워질 정도였다.

정묘호란 직후 다시 국토가 황폐해지자 그는 양서의 사정을 논하는 《논양서사의소:論兩西事宜疏》를 올렸다. 전쟁의 참화와 인명 피해, 흉년, 재물 손실, 각종 잡역의 부담 때문에 백성들이 전국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특히 그 피해가 심한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 백성을 살리기 위해 세금 감면과 지원 등의 대안을 제시하였다. 또, 그는 전쟁 직후인 당시의 과제는 백성을 어린애 어루만지듯 안정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구체적으로 전쟁에 지고 도망한 군졸을 용서해 주고, 그들을 성 쌓는 데로 동원하여 기력을 고갈시키지 말 것이며, 살기가 어려워 고향을 떠나는 백성을 억지로 붙잡지 말 것을 주장하였다.

그 뒤로도 전후 복구와 구휼을 청하는 상소와 후금의 침략에 대비해 병력을 양성하고 변방의 성곽을 세우고, 기존의 성곽을 개보수해야 된다는 상소를 올렸다. 그는 원망을 품은 백성을 안정시켜 민심을 얻은 다음 농사짓는 것과 군사 일을 분리하고(兵農分離), 비어 있는 땅에다 둔전(屯田)을 설치하는 등 장차 오랑캐가 다시 침략할 것을 준비해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문묘에 종사하느냐 여부를 놓고 찬성하는 서인 유생 및 학자들과 반대하는 남인 유생과 학자들이 올린 상소들에 묻혀서 물타기 또는 공리공담으로 취급되어 인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김육은 대동법을 실시해야 할 가장 큰 이유로 농촌 경제의 붕괴, 곧 농민 생활의 파탄을 들었다. 따라서 과중한 세금 과세를 지양하고 과세 과정의 부정을 없앨 수 있는 근본 대책으로 대동법 시행을 주장한 것이다. 김육은 중간에 방납업자들이 떼어가는 것, 관료들이 착복하는 것의 예를 들어 진상품 방납을 없애고 일원화된 세금 조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거듭된 전란으로 민생은 피폐해졌는데 방납업자들이 토호나 관료들과 짜고 무거운 세금을 요구하고, 착복한다며 이를 시정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어 그는 면세(免稅) 내지는 감세(減稅)를 주장했다. 이후 그는 공납의 폐단을 없애는데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걸기도 했다.

1646년 청나라에 사은부사(謝恩副使)로 북경에 갔을 때 베이징에 당도한 서양인 과학자들과 만나 교류하면서 시헌력(時憲曆) 사용법을 배워왔다. 시헌력은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한 양력 달력이었는데, 그는 이를 확인하고자 직접 해의 변화를 관측한 자료를 입수하기도 했다. 귀국 후 시헌력의 사용을 적극 건의하면서 직접 달의 변화와 해와 날의 길이를 통해 기후를 예측하고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을 주장했으며, 기후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여 농업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시헌력의 사용을 적극 건의하였고, 효종 때 1653년부터 드디어 시헌력을 시행하게 되어 농업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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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23
■ 열혈 재상, 김육 3편

■ 열혈 재상, 김육 3편

성균관을 팽개치고 가평 잠곡으로 낙향한 김육은 직접 밭을 갈고 물길을 만드는 등 농부로서의 삶을 살았다. 낙향 후 2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집 1칸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산에서 직접 나무를 해다가 숯을 굽고 한양에 내다 팔아 생활했는데, 가평에서 무거운 지게를 지고 한양까지 가려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새벽에 파루가 치고 도성 문이 열리면 제일 먼저 김육이 왔다고 할 정도로 부지런했다고 한다. 김육은 양반이자 성균관 유생으로서의 특권 의식도 없이 농민의 생활을 철저히 한 셈이다. 그렇게 30대를 보낸 김육이 몸소 체험한 힘든 노동과 전세, 공납, 군역을 모두 부담하는 백성으로서의 고단한 삶이 그에게 대동법을 실현시키게 했고, 현실 감각이 뒷받침이 된 정무 능력을 갖춘 관료가 되는 밑거름이 되어 전 생애를 국가 경제와 농촌 경제의 안정, 그리고 농민 생활의 향상에 바쳤다. 김육의 잠곡 생활은 10년 만에 끝이 났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면서 광해군의 북인 정권이 몰락하고 서인들의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광해군이 재위하는 15년 동안 많은 관료들이 숙청됐고, 이항복, 이덕형 같은 서인, 남인의 유력인사들도 사망하거나 긴 유배로 건강을 해친 상태였으므로 반정세력들은 인재가 필요했다. 젊은 관료들을 새로 기용하는 것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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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로서 분별력까지 갖춘 김육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반정 직후, 광해군 때 귀양 간 관료나 지조와 절개가 가상한 사람(낙향자)들을 6품직에 우선 서용하고, 자리가 나는 대로 품을 올려주는 천거 인사가 있었던 것이다. 이때 약 20여 명이 천거됐는데, 김육도 이 때 의금부도사(종5품)가 되었다.
",

인조 2년(1624년) 음력 1월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몽진하는 인조를 호종(護從)했고, 그 공으로 아직 반란 도중인데도 충청도 음성 현감에 임명됐다. 김육은 부임 2개월 만에 업무에 관한 상소를 올렸다. 공납 부담이 고을의 크기에 따라 공정하지 못하므로 행정구역을 조정하여 불균형을 완화하자는 내용이었다. 백성의 피폐하고 곤궁한 상황을 직접 조사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고, 백성들의 재난과 피폐한 가계 등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부역과 조세를 감면해줄 것을 제의했다. 그는 토지의 많고 적음을 참작하지 않은 과중한 세금 부과와 부과 과정의 부정을 세세히 나열하면서 제도개혁을 주장하였다. 공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다했지만, 공납 문제는 고을 현감 정도로는 해결할 수 없는 꿈이었다. 대과에 급제하지 않고는 더 이상의 힘을 가진 관료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마침 그해(1624년) 겨울 이괄의 난이 진압됨을 축하하는 증광시(增廣試:나라에 경가가 있을 때 시행되는 시험)가 열렸다. 김육은 업무 때문에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장원으로 급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김육이 제출한 답안지는 책상머리에만 앉아있던 서생들로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내용이라 채점관이 크게 감동했다. 이렇게 갑과 장원한 덕에 고위 관료로서의 앞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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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24
■ 열혈 재상, 김육 2편

■ 열혈 재상, 김육 2편

모친상을 마친 1603년 사마시(司馬試)에 응시해 합격하고, 1604년 2차 회시(會試:복시)에도 합격해 생원(生員)이 됐다. 성균관에서 공부할 자격이 주어진 그는 27세에 윤진사의 딸 파평 윤씨와 결혼했는데, 당시로서는 상당히 늦은 편이었다. 파평 윤씨와의 사이에서 김좌명, 김우명을 뒀는데, 장남 김좌명은 선조의 딸인 정숙 옹주의 딸에게 장가를 갔다. 그의 아들이 우의정 김석주로 할아버지 김육의 대동법을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는데 이바지했다. 차남 김우명이 은진 송씨와 결혼해 낳은 딸은 후에 현종의 비(妃) 명성왕후가 되었고, 김우명의 5대손이 정조의 정비인 효의왕후이고, 동백꽃, 봄봄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유정은 김육의 10대손이다.

그는 당색으로는 서인이었지만 학통으로는 이황의 학통을 일부 계승하였다. 동인이었던 첫 스승 조호익이 퇴계 이황의 문인이었고, 다른 스승들인 윤근수와 윤두수도 비록 당색으로는 서인이었지만 그들 역시 퇴계 이황의 문인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학문적으로 성리학적 정통파와 중상주의 실학자 북학파 사이를 잇는 중간 고리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그의 학풍이 그에게 대동법 시행과 같은 민생안정정책에 평생을 걸도록 했던 것 같다.

1605년(선조38년) 진사시에 급제하고, 이후 성균관에 입학하여 성균관 유생으로 공부하였다. 성균관 유생의 신분으로 1610년 3번이나 상소를 올려 이른바 오현(五賢: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을 문묘에 모시는 오현종사(五賢從祀)를 주장했다. 선조 때부터 사림은 오현종사를 추진하는데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을 문묘에 배향하자는 운동이었다. 이는 1610년(광해군 2년) 7월에 실현을 본다.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문묘에 배향할 때 누구를 넣고 누구를 빼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문묘에 종사된다는 것은 곧 그 인물의 학문과 도통(道統)이 국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받음을 의미하므로, 이는 단지 학문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의 학파가 곧 정치적 집단의 모태가 되는 상황이었으므로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문제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붕당간의 갈등이 심화되던 시기에 자파(自派) 인물의 문묘 종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 역시 자주 표출되었다.

1610년(광해군 2년) 정인홍(鄭仁弘) 등이 이황(李滉)을 극렬하게 비난하는 상소를 올리자 그는 선현을 헐뜯는다며 이에 격분하여, 정인홍의 이름을 유생들의 명부인 청금록(靑襟錄)에서 삭제하는 것에 앞장서서 가담했다가 성균관에서 퇴교당했다. 이 사건으로 김육은 과거 응시 자격이 박탈되는 정거(停擧) 처분을 받았는데, 이 사건은 그 이듬해 광해군이 양보해서 오현이 문묘에 종사되고 그의 과거 응시 자격 박탈 조치가 취소되었다. 다른 퇴교학생들은 모두 성균관에 복귀했으나 그는 경기도 가평으로 내려가 끝내 복귀를 거부했다. 이후 관직을 단념하고 경기도 가평군 잠곡리(潛谷里) 고향으로 낙향, 농사를 지으며 학업에 열중하였다. 이후 그는 10여 년 동안 농촌에 파묻혀 농민들의 곤궁한 생활상을 직접 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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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24
■ 열혈 재상, 김육 1편

■ 열혈 재상, 김육 1편

김육(金堉, 1580~1658)은 민생이 도탄에 빠진 난세(亂世)에 민생 안정을 위한 많은 정책을 주장하여 실현시킨 대표적 인물이다. 어린 나이에 임진왜란을 겪고, 장년(長年)에는 왕이 뒤바뀌는 인조반정을 목격했으며, 늙은 나이에는 병자호란을 맞이했다. 이런 역사의 격동기(激動期) 속에서 벼슬아치로서의 역할을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해낸 인물이다. 그는 이 어려운 시기에 민중의 비참한 생활을 접하고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김육이 평생을 바친 현실 개혁은 조선이 처해있던 당시 위기 상황을 뼈저리게 간파했기 때문이다. 왜란과 호란은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했고, 정부는 국가 재정을 비롯한 전후 복구 문제가 급박한 실정이었다. 전란 후 재정복구책이 절실한 상황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인물이 바로 김육이었다. 당시의 위정자(爲政者)들은 파탄 난 국가 재정만을 생각했지만, 김육은 그보다 백성들을 구제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김육은 조선시대에 몇 안 되는 경제 전문가이자 과학 기술자였다. 그의 정치철학의 근본은 오로지 위민(爲民) 정신에 있었고, 이를 위해서 줄기차게 특권층 철폐를 주장하였으며, 부의 편중(偏重)이 백성을 고통스럽게 할 뿐 아니라 나라도 위태롭게 한다고 생각했다.

김육(金堉:1580년 8월 23일~1658년 10월 1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 실학자, 사상가, 작가, 정치가, 철학자이다. 효종과 현종 연간에 대동법의 확대 시행을 주장하고 실현시켰다. 아울러 화폐경제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화폐(동전) 보급에도 힘썼다.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 회정당(晦靜堂),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그는 조광조의 동지로서 기묘사화 때 희생된 우당 김식(友堂金湜)의 4대손이었다. 그의 본가는 경기도 가평군 잠곡이었으므로, 호를 처음에 회정당이라고 했다가, 뒤에 어려서 나고 자란 마을이름을 따서 잠곡(潛谷)이라 하였다.

김육의 가족은 평구(현재 경기도 가평군 부근)를 떠나 강원도, 평안도, 황해도, 충청도, 경기도 등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았다. 이 와중에 아버지가 1594년 4월 향년 31세로 사망하여 김육은 15세에 소년 가장이 됐다. 전쟁의 발발과 갑작스런 부친의 죽음, 연이은 흉년으로 김육은 모친을 모시고 청주에 살던 이모부 남익수의 집으로 가서 의탁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연안 지봉촌이라는 곳으로 이주했지만, 전란이 끝난 직후인 1600년 1월에 어머니를 잃었다. 당시 21세 청년이었던 김육은 평구(현재 남양주 삼패동)에 부친과 모친의 묘를 합장하였는데, 인부를 부를 돈이 없어 본인이 직접 흙과 잔디를 날라 묘역을 만들었다고 한다. 부모를 모두 잃은 뒤에는 서울에 사는 고모댁에 얹혀 살았는데, 삼년상 동안 새벽마다 묘소까지 걸어가서 곡을 하고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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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25
【거지덩굴】

【거지덩굴】

어찌 보면 담쟁이덩굴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작은 잎이 잎자루 긑에 5개가 모여있으며, 사진과 같은 꽃이 핍니다.

식물의 이름이 아름답지 못한 거지덩굴이라 정감이 가지 않지만 쉽게 접할 수 있는 식물입니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처음에 이름을 붙일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 같습니다.

▷ 학명 : Cayatia japonica

▷ 분류 : 포도과

▷ 분포지역 : 한국(제주)·일본·타이완·중국·인도

▷ 서식장소 : 산이나 들

▷ 특징 :

7∼8월(여름)에 황록색 꽃이 산방상(揀房狀) 취산꽃차례로 피고, 꽃잎과 수술이 각각 4개이고 1개의 암술이 있다.

편평한 꽃잎은 홍색 또는 등황색이며 꽃대는 막대 모양으로 곧게 선다. 열매는 장과(漿果)로 둥글고 검게 익는다.

뿌리는 오렴묘라고 하며, 한약재로 쓰이는데 진통제 및 이뇨제로 쓰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60.html
kolaswqetsrq 11.02 21:26
【끈끈이대나물】

【끈끈이대나물】

줄기의 마디 사이에 끈끈이가 있어 하루살이와 같은 작은 곤충이 붙지요.

곤충의 사체인 단백질을 흡수하는 식충식물입니다.

▷ 학명 : Silene armeria

▷ 분류 : 석죽과

▷ 원산지 : 유럽

▷ 서식장소 : 강가 또는 바닷가

▷ 특징 :

꽃은 6∼8월(여름)에 붉은(분홍) 색 또는 드물게 흰색으로 피고 취산꽃차례(聚 -:줄기 끝에 달린 꽃 밑에서 1쌍의 꽃자루가 나와 각각 그 끝에 꽃이 1송이씩 달리고 그 꽃 밑에서 다시 각각 1쌍씩 작은 꽃자루가 나와 그 끝에 다시 꽃이 1송이씩 달리는 꽃차례)를 이루며 줄기 끝 부분에서 갈라진 가지 끝에 빽빽이 달린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57.html
kolaswqetsrq 11.02 21:26
■ 비선실세 김개시 6편

■ 비선실세 김개시 6편

그녀의 권세가 얼마가 높았던지 궁녀들은 뇌물을 바쳐야만 왕과 잠자리를 할 수 있었고, 광해군조차도 그녀가 지목하는 궁녀하고만 합방을 해야 했다고 한다. 이처럼 왕보다 더한 권력을 손에 쥐고 있던 김개시는 친척 딸의 남편인 ‘정몽필’을 양자로 삼아, 그에게 고관 뇌물 챙기기와 백성 수탈하기를 맡기며 본격적인 국정 농단과 매관매직 등 악덕 정치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이에 보다 못한 윤선도·이회 등 충신들은 광해군에게 상소를 올리며 그녀를 비난하였지만, 김개시를 철썩 같이 믿고 있던 광해군은 오히려 충신들을 유배 보내어 그들의 바른 소리를 차단하였다. 그녀는 광해군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친구요. 동지였던 것이다. 광해의 지위는 늘 불안하여 김개시 같은 지략가의 도움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세자 시절부터 궁녀 김개시는 광해군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어느 관료보다 충성심이 강했고, 총명한 두뇌로 판단력이 뛰어났으며 업무처리 능력도 훌륭했기 때문이다. 또한, 오랫동안 광해군을 보필해 왔기 때문에 그의 기분을 잘 맞췄다. 광해군은 그런 김개시가 자신의 눈과 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김개시는 광해군의 총애와 신임을 등에 업고 ‘제조상궁(提調尙宮)’으로서 당대 최고의 권력자 이이첨과 함께 정치판을 좌지우지하는 실세로 성장한다.

실록에서 김개시는, 이이첨과 더불어 광해군시대 최대 악인으로 묘사된 부분이 있다. 《광해군일기》 중 5년 8월11일자에 보면, 이이첨과 김상궁을 비교 평가한 구절이 있다. 그 둘의 비슷한 점 세 가지를 들고 있는데, 이이첨은 영상의 자리에 오르지 않고 김상궁은 후궁의 자리에 욕심을 두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실익은 마음대로 챙긴다는 점을 들고 있다.

첫째, 역적을 토벌해야 한다며 과격한 역적 토벌론을 일삼는 것.

둘째, 벼슬 욕심을 줄이되 실권을 최대한 갖는 것.

셋째, 악역은 다른 이에게 맡기고 그 일에 대한 공은 자신이 차지하는 것.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선조의 독살에 간여했기 때문에 광해군의 약점을 틀어쥐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광해군은 김개시에게 절대적인 신임과 사랑을 보냄으로써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게 만들었고, 광해군의 제조상궁으로서 당대의 실력자 이이첨과 함께 당시의 정치판을 좌지우지한 실세였다. 왕의 신임을 배경으로 권력을 틀어쥔 김개시는 오직 광해군만을 위해 충성했고, 광해군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궁중에서 온갖 악역을 떠맡았다. 김개시는 광해군에게 위협이 되는 인목대비와 영창대군을 없애려고 했다. 광해군이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 악역을 떠맡았다. 김개시의 끈질긴 공작에 의해 인목대비는 기어이 서궁에 유폐되고 말았으며, 그 이후에도 죽음 직전까지 몰리는 수난을 당했다.

-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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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27
■ 비선실세 김개시 1편

■ 비선실세 김개시 1편

조선 시대 궁녀들 중에서 명성을 떨친 예는 평범한 궁녀로 입궁하여 왕의 총애를 받고 후궁이나 왕비의 자리에 올랐거나 후대 왕을 출산한 경우이다. 숙종의 궁녀로 들어가서 경종을 낳고 왕비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쫓겨난 장희빈, 숙종의 무수리로 들어갔다가 훗날의 영조를 출산한 최숙빈, 고종의 궁녀로 들어가서 영친왕을 출산하고 황귀비(皇貴妃)까지 오른 엄비 등이 있다.

장희빈, 최숙빈, 엄비 등은 궁녀 출신이라고 해도 후대 왕을 출산했지만, 이에 비해 궁녀로서 왕의 총애만 받고 후대 왕을 낳지 못했던 장녹수(張綠壽)와 김개시(金介屎)는 온갖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특히 장녹수와 김개시는 연산군과 광해군이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났기에 그 비난이 더더욱 심했고, 남겨진 기록에도 모두 요부(妖婦)로 남겨져 있다. 역설적으로 갖은 비난을 받다 보니 장녹수와 김개시는 오히려 조선 시대 궁녀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김개시는 장녹수처럼 노래나 춤이 아니라 뛰어난 판단력과 두뇌로 광해군의 신임을 얻었다. 게다가 장녹수는 입궁 후 곧바로 후궁이 되었지만 김개시는 어렸을 때 입궁하여 상궁까지 올랐을 뿐 정식 후궁이 되지는 못했다.

광해의 오른팔 궁녀 ‘비선실세’로 주목받았던 개똥이라 불리던 상궁 김개시는 누구인가?
 "
옛날에는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단명하지 않고 오래 살라는 의미로 이름을 아무렇게나 지어서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김개시(金介屎)는 ‘개똥’이라는 아명을 한자로 바꾼 이름이다. ‘똥 시(屎)’ 자를 해자(解字)하면, 쌀米이 시체尸가 되었으니 똥인 것이다. 인분(人糞)의 ‘똥 분(糞)’ 자도 마찬가지다. 쌀米이 변했으니異 똥이 된 것이다. 한자의 재미있는 묘미다. 김개시는 ‘개똥이’라 불리다가 궁에 들어오면서 한자이름 ‘개시’로 불리게 되고, 선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가희’란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광해군일기》의 기록에는 ‘김가희’보다 ‘김개시’란 이름으로 더 많이 등장한다. 왕의 여인이 될 수 있는 첫 번 째 조건은 보통 왕을 유혹할 수 있는 뛰어난 미모와 예술적 재능이 필요하다. 그러나 김개시는 이런 조건과는 거리가 멀었다.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에 의하면 김개시는 천예(賤隸)의 딸 즉 천한 노예의 딸이었다고 한다. 궁녀로 입궁한 후에도 주로 공노비인 내수사 출신의 궁녀들과 어울렸다. 게다가 나이가 차서도 용모가 피지 않았다고 한 실록의 기록으로 보아 미인은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

조선시대 궁에 입궐한 궁녀들의 최고의 목표는 왕의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는 것이다. 김개시는 본인이 원하면 얼마든지 후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김개시는 후궁의 자리를 욕심내지 않았다. 후궁의 신분보다는 궁녀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 자신이 맡은 임무를 수행하기에 더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왕의 강력한 신임을 얻은 김개시는 상궁에 불과했지만, 어떤 권세가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권력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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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28
■ 왕위다툼을 벌인 왕건의 아들들

■ 왕위다툼을 벌인 왕건의 아들들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나라를 안정시킨다는 이유로 권력이 있는 지방 호족의 딸과 결혼을 하여 인척관계를 맺는 혼인 정책을 펼쳤다. 이 때문에 무려 25명의 배다른 형제를 둔 왕건의 아들들은 왕 자리를 놓고 치열한 암투를 벌이면서 왕건 사후(死後) 한동안 왕권이 불안정할 수 밖에 없었다.

왕건이 죽고 난 뒤 943년 왕건의 둘째 부인 장화왕후 오씨의 아들 왕무가 2대 왕 혜종이 되었지만, 오씨는 다른 후궁들에 비해 세력 기반이 약해 혜종의 정치적 입지는 매우 불안했다. 왕건도 살아생전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왕무를 태자로 삼으면서 측근들에게 "태자를 잘 지켜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혜종의 이복동생이자 왕건의 셋째 부인인 신명 순성왕후 유씨의 아들 왕요·왕소 형제는 혜종이 왕이 된 이후에도 호시탐탐 왕의 자리를 노렸다. 어머니 유씨가 충주의 힘 있는 호족이자 장군인 유긍달의 딸이었기에 왕요와 왕소를 왕으로 만들려는 세력은 점점 더 야심을 품게 되었다.

이에 혜종의 측근들은 "왕요 형제가 왕위를 넘보고 있으니 이들을 애초에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혜종은 이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맏딸을 왕소에게 시집 보내 그들을 달래려 했다. 하지만 왕요 형제의 위협은 계속되었고, 이에 시달리던 혜종은 왕이 된 지 2년 4개월 만에 병으로 죽고 말았다. 혜종의 죽음에 대해 여러 학자들은 혜종이 왕요 형제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고려사\에는 혜종이 병으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병 이름이 분명하지 않은 데다 혜종이 살해 위협을 걱정하며 늘 군사를 시켜 자신을 호위하게 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타살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혜종이 죽은 뒤 왕요는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3대 왕 정종이 되었지만, 4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동생 왕소가 4대 왕 광종이 되었다. 광종은 과거제도와 노비안검법(노비해방)을 도입해 외척과 지방 호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시키면서 고려 왕실을 안정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광종은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수많은 신하를 숙청하고 혜종과 정종의 외아들을 살해하는 무시무시한 공포정치를 펼치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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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28
■ 광해군의 실리외교 1편

■ 광해군의 실리외교 1편

서인이 광해군을 쫓아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이다. 광해군은 정치 개혁 측면에선 분명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무리한 정치 보복으로 비판을 면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 감각만큼은 조선 역사상 가장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왕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이후 동아시아는 매우 정세가 불안정했다. 만주에서 여진족이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워 주변 국가를 위협했는데, 특히 명나라 입장에서 후금의 탄생은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다. 탄생지가 명나라의 변방(邊方)인 만주 땅인데다가, 후금의 성장은 명나라에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중원의 지배자 명나라가 만력황제의 방탕, 조선 파병으로 인한 국력손실 등으로 쇠락해가고 있던 즈음, 명의 지배를 받고 있던 여진족의 누르하치가 급격히 힘을 키워가고 있었다. 누르하치는 8기제 등 강력한 전술 전략을 바탕으로 인근 부족을 통일하고, 1616년 대금(후금)을 건국한 후 1618년에는 명나라에 선전포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명나라는 조선에 파병을 요청해 왔는데, 당시 조선 사대부들의 생각은 천자의 나라, 아버지의 나라에서 도움을 요청할 땐 죽어도 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후 복구 사업에 전력을 다하고 있던 광해군에게 명나라의 이 제안은 참으로 난감하기만 했다. 당시 조선에게 시급한 문제는 명나라와 의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임진왜란의 후폭풍을 앓고 있던 국내 정세를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신하 대다수가 명나라는 조선이 받들어 모시는 ‘부모의 나라’이자, 임진왜란 때 도와준 은혜가 있으니, 명의 요청을 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광해군의 생각은 달랐다. 임진왜란 때 왕세자로서 분조(分朝)를 이끌고 전투에 참여했던 광해군은 명나라의 약해진 국력과 더불어 신흥 강국으로 성장하는 후금의 힘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광해군은 누르하치의 기세가 오히려 명나라를 압도한다고 보고 명나라의 요구에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명나라는 당시 국내에 반란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내부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였고, 후금은 새롭게 일어나는 신흥(新興) 강국(强國)이었다. 광해군은 이런 상태에서 명나라의 편을 들며 후금을 맞상대했다가는 조선에게 매우 큰 피해가 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우방국인 명의 파병 요청을 거부할 명분은 없었다. 명은 임진왜란 때 위기에 빠진 조선을 위해 대대적인 병력을 파병해준 ‘은혜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조정의 거의 모든 신료들은 파병에 응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광해군이 신하들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자 비변사의 신하들은 태업(怠業)을 하였고, 영의정 박승종은 아예 병(病)을 이유로 집에 틀어박히는 등 광해군의 외교정책을 정면으로 거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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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29
■ 광해 9편

■ 광해 9편

반정으로 폐위된 왕이라는 ‘원죄’ 때문에 조선시대의 여러 기록 등에 남아있는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광해군은 조선의 다른 왕들과 달리 연산군과 함께 ‘조(祖)’와 ‘종(宗)’으로 칭해지는 묘호(廟號:임금의 시호)마저 부여받지 못한 채 ‘군(君)’이라는 왕자 시절의 호칭으로 남아 있다. 그의 묘도 ‘릉’이라고 칭해지는 다른 왕들의 무덤과는 달리 ‘광해군묘’로 지칭된다. 연산군이야 검증된 폭군이므로 그리 억울할 것도 없겠지만, 광해군의 경우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존재하는 왕이므로 연산군과 같은 위치의 폭군으로 취급되는 점은 분명 억울할 수 있다. 이런 인식 때문에 최근에는 광해군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광해군이 왕통 강화를 위해 무리수를 둔 점은 분명하지만, 내정 개혁이나 외교 부분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구습을 타파하고 피폐된 국토를 재건하기 위해 내정을 충실히 했으며, 국방력을 강화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에 적응하려 했던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의 개혁과 혁신을 위해 치도(治道)의 이론을 제공한 인물은 정인홍이었다. 정인홍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를 물러가게 하고, 우리의 군사로 우리의 강토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패한 관리들을 매섭게 처단했으며, 후금과의 관계에서도 중립적이고 실리적인 태도를 건의했다.

광해군은 정인홍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혁신정치를 폈지만, 이런 과정에서 왕권에 도전하는 세력을 제거하는 데에 덕치(德治)를 벗어나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간신인 이이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 일을 그르친 경우도 있었다. 반정(反正)이후 서인 주도의 모든 기록들은 온갖 잔일을 들추어 광해군을 헐뜯었고, 심지어 인목대비는 “선조를 독살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광해군을 받들던 대북파가 몰락하여 그를 옹호할 세력이 없었다는 점도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과도 비슷한 상황에서 광해군이 보여준 유연하고 능동적인 실리외교는 당시 조선에서 반드시 필요했던 탁월한 외교 정책이었고, 전후 복구 사업은 오랜 전란 후유증으로 살기 힘들었던 조선 백성들에게 유효적절한 민생안정정책이었다. 만약 광해군이 계속 집권했더라면 후금과의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우리나라는 안정적인 발전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백성의 삶도 더 편안하지 않았을까? 과연 광해군은 짐승의 탈을 쓴 패륜아에 불과한 것일까? 국제 정세를 냉철하게 파악하여 현실적으로 적절히 대처하려 했던 명군주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국가나 백성들의 안위보다는 당쟁(黨爭)만을 일삼던 그 시대가 만든 비운의 왕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 여러 가지 뼈아픈 아쉬움이 남는다.

광해군부부의 무덤은 남양주시 진건면 송릉리 낮은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다. 왕릉답지 않게 규모가 초라하기 짝이 없고, 비석에는 총탄 자국도 군데군데 있어서 보는 이들을 서글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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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30
■ 광해 8편

■ 광해 8편

광해군은 유배기간 중 몇 번에 걸쳐 죽을 고비를 넘긴다. 광해군으로 인해 아들을 잃고 서궁에 유폐된 바 있던 인목대비는 그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고, 인조 세력 역시 왕권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몇 번이나 그를 죽이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반정 이후 다시 영의정에 제수된 남인 이원익의 반대와 내심 광해군을 따르던 관리들에 의해 살해 기도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는 광해군의 재등극이 염려스러워 그를 배에 실어 태안으로 이배(移配:귀양지를 옮김)시켰다가 난이 평정되자 다시 강화도로 데려왔다. 1636년에는 청나라가 쳐들어와 광해군의 원수를 갚겠다고 공언하자 조정에서는 또다시 그를 교동에 안치시켰으며, 이 때 서인 계열의 신경진 등이 경기수사에게 그를 죽이라는 암시를 내리지만 경기수사는 이 말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보호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듬해 조선이 완전히 청에 굴복한 뒤 그의 복위에 위협을 느낀 인조는 그를 제주도로 보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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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은 제주 땅에서도 초연한 자세로 자신의 삶을 이어갔다. 자신을 데리고 다니는 별장이 상방(上房)을 차지하고 자기는 아랫방에 거처하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묵묵히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심부름하는 나인이 영감이라고 호칭하며 멸시해도 전혀 이에 대해 분개하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굴욕을 참고 지냈다. 이렇듯 초연하고 관조적인 그의 태도가 생명을 오래도록 지탱시켰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는 긴 세월 동안 언젠가 다시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1641년 귀양생활 18년 수개월 만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나이 6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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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손(傍孫:방계혈족) 이해성의 말에 의하면, 그는 “내가 죽으면 어머니 무덤 발치에 묻어 달라” 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양주 적성동에 있는 그의 어머니 공빈 김씨 무덤 아래 묻혔다. 조정에서 베풀어 준 마지막 은총인 셈이다.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간 광해. 15년 세자 생활의 아픈 경험으로부터 조금만 자유로웠다면 훌륭한 임금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결국 스스로를 극복하지 못하고 폭군의 오명을 쓰고 폐위에까지 이르렀으니, 비운의 왕이라고 할 수 있다. 광해군은 인간적인 약점도 많이 지니고 있었다. 어릴 적에 어머니를 잃고 세자자리에 올랐으나 선조의 질투와 변덕으로 기댈 언덕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많은 왕자들(선조는 영창대군 외에도 13왕자를 두었음) 틈에 끼어 왕위가 늘 불안했다.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늘 외롭고 불안한 그의 처지는 정서불안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음모 술수가 판을 치는 궁중을 현명하고 유연하게 다스리지 못한 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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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30
■광해 6편

■광해 6편

광해군과 대북정권이 출범했지만 광해군은 즉위 직후 바로 정통성 시비에 휘말린다. 광해군은 즉위한 다음 날 이호민을 명나라에 파견해 선조의 죽음과 광해군의 즉위 사실을 알렸다. 명나라에서는 장자인 임해군이 있는데도 차자인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이유를 캐물었다. 광해군은 즉위 후 보름 만에 임해군이 역모를 꾀한다는 명목으로 강화도에 유배 보낼 정도로 정치적인 견제를 하고 있던 차에 명나라까지 왕통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정치적으로 큰 부담을 느꼈다. 결국 광해군은 1609년 4월 강화도 교동도에 유배돼 있던 임해군을 처형했다. 그의 죽음에 대해 광해군이 사약을 내려 스스로 죽게 하였다는 설과 이이첨이 사람을 보내 임해군을 살해했다는 설이 있다. 결과적으로 임해군은 동생 광해군이 왕위를 지키려는 과정에서 희생된 것임에는 분명하다.

임해군보다 광해군을 힘들게 한 인물은 동생 영창대군이었다. 영창대군의 최대 후원자였던 유영경은 선조 사후 한 달이 못 돼 처형됐고, 광해군 초반 각종 역모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소북 세력은 대거 정계에서 축출당했지만 살아 있는 적통의 존재는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이런 상황에서 1613년 4월 25일 조령(鳥嶺:문경새재)에서 은상(銀商:은 장사꾼) 살해사건이 일어났다. 살해의 주범은 서인(西人)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박순의 서자 박응서를 비롯해 서양갑, 심우영, 박치인, 박치의, 이경준, 허홍인 등 7명의 서얼들로 밝혀졌다. 이들은 여주, 춘천 등지에 모여 ‘강변칠우(江邊七友)’로 자청하면서 무기와 양식을 준비했다. 서얼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자금 확보를 목적으로 은상을 살해한 것이었다. 그런데 심문 도중 대북파 이이첨의 사주를 받은 박응서가 놀라운 진술을 했다.

“자금을 확보해 김제남(영창대군의 외조부)을 중심으로, 왕(광해군)과 세자(광해군의 아들)를 죽이고 영창대군을 추대하려 했다.”

이 발언의 파장은 확산됐고 정국은 초긴장 상태에 접어들었다. 결국 김제남이 처형되고 영창대군은 서인(庶人)으로 강등되되어 강화도로 유배됐다. 1614년 봄 역시 이이첨의 사주를 받은 강화부사 정항(鄭沆)은 영창대군을 작은 골방에 가두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증살(蒸殺:뜨거운 증기로 쪄서 죽임)시켰다. 영창대군은 불과 8세의 어린 나이로 정치적 희생양이 된 것이다. 영창대군의 죽음에 가장 충격을 받은 인물은 생모 인목대비였다. 졸지에 아버지와 아들을 잃은 인목대비에게 광해는 아들이 아니라 원수였다. 결국 광해는 어머니 인목대비를 1615년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옮겨가게 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으며, 3년 후 ‘서궁(西宮)’으로 명칭을 격하시켰다. 선조가 그렇게 예뻐하던 정명공주도 평민으로 강등 시켜 이 불쌍한 모녀는 가택연금 수준의 감시를 받으며 지내게 됐다. 광해군은 교서를 반포해 흉측한 글을 유포시킨 인목대비의 죄상을 알리고 이에 연루된 나인들을 처형하는 조치를 취했다. 인목대비에 대한 광해군의 감정이 이러했으니, 서궁에서의 비참한 생활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현재 덕수궁 안에 ‘석어당(昔御堂)’ 이라는 건물이 이 두 모녀가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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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31
■ 광해 5편

■ 광해 5편

선조(宣祖)의 죽음에 대해 북인(北人)이 기록한 《선조실록》에는 선조가 병으로 죽었으며, 마지막 임종을 왕비 인목대비가 지켰다고 했다. 그런데 서인측의 기록인 《광해군일기》에는 선조(宣祖)가 승하하는 당일 미시(未時)에 광해군이 찹쌀떡을 올렸는데 선조가 먹고 갑자기 기(氣)가 막히는 병이 발생하여 위급한 상태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긍익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 《남계집》을 인용해 ‘선조 독살설’을 간접적으로 전하는데, 그에 따르면 입시(入侍)했던 선비 의원 성협이 『임금의 몸이 이상하게 검푸르니 바깥소문이 헛말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옳은 기록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거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일컬어지듯이 이 역시 당쟁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재위 장장 41년으로 초유의 임진왜란을 겪었고, 4색 당파의 분화(分化)와 당쟁을 지켜 본 선조. 권력유지에는 큰 수완을 보였으나 특별히 내세울 만한 업적 하나 없이 그렇게 살다 갔다. 숱한 장애를 딛고 33세의 나이에 마침내 보위에 오른 광해군. 일찍이 왕재(王才)를 인정받았으나 16년의 세자 생활은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살얼음판을 걷는 하루 하루였다. 창업자인 태조에 견줄 만큼 나라 곳곳을 누볐고, 문종에 견줄 만큼 실무 경험이 풍부한 새 임금 광해를 백성과 신료들은 진심으로 반겼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 정인홍, 이이첨, 이경전 등이 중심이 된 대북파가 정권을 잡았다. 대북 정권은 정적 제거의 칼을 빼들었다. 제일 먼저 제거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히 유영경을 비롯한 영창대군 지지 세력이었다. 유영경은 자신이 먼저 알아서 사직하려고 했으나, 광해군은 선왕(先王)이 신임하던 재상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대북의 사주를 받은 대간의 탄핵이 연일 계속되었다. 이들은 광해군이 임진왜란 때 분조를 이끈 공이 있음에도 선무공신(宣武功臣)으로 책정되는 것을 방해한 것, 세손의 원손 책봉과 혼인을 지연시킨 것, 선조가 병이 위중해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는 것을 방해한 것 등을 이유로 유영경을 공격했다. 광해군은 결국 유영경을 삭탈관작(削奪官爵)하고 유배 보낸 후 죽였다. 유영경을 시작으로 소북의 여러 인사들이 죽거나 귀양을 갔다.

광해군 정권 초기에는 남인인 이원익(李元翼)이 영의정에, 서인인 이항복(李恒福)이 좌의정에 임명되는 등 조정에는 대북 외의 세력이 남아 있었다. 전후 복구를 위해서는 당파를 초월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에 모두가 뜻을 같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정권의 실세는 대북에게 돌아갔다.

-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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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32
■ 광해 4편

■ 광해 4편

이즈음 정권을 잡은 북인은 정인홍이 이끄는 대북, 유영경이 이끄는 소북으로 분열되었는데, 이 중 소북의 리더 영의정 유영경은 왕의 의중을 잘 읽고 그 뜻에 부합하는 능력이 출중하였다. 유영경은 선조의 뜻이 광해가 아니라 영창대군에게 있음을 알고, 세자를 바꿀 명분을 찾고 있었다. 당연히 명분은 ‘적자승계’이다. 선조가 영창대군이 좀 더 자랄 때 까지만 산다면 틀림없이 세자는 바뀔 것이라 생각하고 영창대군에게 자신의 운명을 걸었다. 선조는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유영경을 더욱 총애했고, 덕분에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유영경의 무리가 조정을 장악하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후궁들과 상궁 나인들마저 광해군을 임시 세자로 여기고 무시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궁중의 안주인인 인목왕후라도 중심을 잡고 후궁 등을 단속하여야 할 것인데, 그러기는커녕 영창대군에게 세자 의상과 비슷한 옷을 입히기까지 하는 등 광해군의 마음을 몹시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광해군은 이러한 외로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사면초가(四面楚歌)의 불안한 상태를 전쟁이후 무려 10년이나 견디어 냈으니, 그 속에 품은 한이 얼마나 컸을까.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

선조 40년 10월, 선조는 갑자기 쓰러져 자리에 누웠다. 죽음을 예감한 선조는 여러 생각을 했으나 차마 두 살에 불과한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으므로, 결국 비망기(備忘記:임금의 명을 승지에게 내려 전함)를 내려 장성한 광해군에게 전위(傳位) 또는 섭정을 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갑자기 선조가 몸져 누워 이 같은 뜻을 밝히자 급해진 것은 영창대군에 올인한 소북파의 유영경과 어머니 인목왕후였다. 인목왕후는 현실을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고 선조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으나, 유영경은 여러 이유를 들어 선조의 뜻에 반대를 하였다. 반면에 정인홍을 비롯한 대북파는 유영경이 세자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불충(不忠)을 저질렀다며 유영경을 강하게 공격하였다.

이렇게 대북파와 소북파들이 목숨을 건 대립을 하고 있던 이때, 다소 기력을 회복한 선조는 소북파 유영경의 손을 들어 주고 대북파의 영수 정인홍을 귀양 보내버렸다. 이로써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파의 패배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선조(宣祖)는 재위 41년을 맞으면서 병세가 악화되어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1608년 2월 향년 57세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결국 선조(宣祖)가 죽자 세자인 광해군(光海君)이 즉위했다.

-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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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32
■ 광해 3편

■ 광해 3편

이러한 어이없는 상황 속에서도 광해군은 일본군의 철수로 한양이 수복되자 명나라의 요청으로 설치된 군무사(軍務司)의 업무를 주관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일대를 순회하며 군대를 모으고 군량을 조달했다. 때문에 조야(朝野)에서는 광해군이 차기 대권의 주인공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왜란 통에 어쩔 수 없이 광해를 세자로 책봉한 선조는 1594년(선조 27년) 윤근수를 명나라에 파견해 명나라에 세자책봉 승인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광해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던 명나라 조정이 선조에게 맏아들 임해군이 있다는 이유로 막상 광해의 세자책봉을 반대하면서 광해군에게 세자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다섯 차례나 종용했다. 그것은 명나라 황실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던 후계 다툼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황제 신종은 정귀비에게서 얻은 주상순을 염두에 두고, 장자(長子) 주상락의 황태자 책봉을 미루고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명나라 신료들은 만일 조선의 광해군를 세자로 승인해주면 신종이 주상락 대신 주상순을 황태자로 책봉하려 할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이다. 선조는 명나라의 상황과 입장을 파악하고는 세자 책봉 승인을 위한 노력을 하지않고, 나아가 광해를 사실상 세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덧붙여 광해의 앞날에 또 하나의 넘어야 할 산이 나타났으니, 이는 선조의 새 장가였다. 선조는 첫째부인 의인왕후가 죽자 새 중전을 맞이했는데, 이 때 선조의 나이 51세, 새 중전 인목왕후의 나이 17세, 세자인 광해의 나이는 26세였다. 인목왕후가 적장자를 낳게 된다면 당연히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울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인목대비가 학수고대하던 첫 아이를 출산 하는 날, 선조와 광해군 양쪽의 희비가 엇갈렸다. 정명공주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선조는 52세에 정실부인에게서 얻은 늦둥이 딸이 마냥 귀엽기만 했다. 조선시대 왕의 자식들은 6~7세가 되기 전까지는 호칭도 없이 그냥 아기씨라고 불렀다. 최소한 6~7세가 되어야 재산도 주고 왕자, 공주로 불리게 되는데 선조는 너무 기쁜 나머지 정명공주가 2살이 되자 4백만 평의 농지에서 나오는 세금을 공주 앞으로 책정해 주었다. 이 재산이 천석정도 된다고 하니 요즘으로 치면 미성년자 주식부자나 다름없다. 3년이 더 지나 선조는 인목대비와의 사이에서 드디어 왕자를 보게 되었다. 정명공주의 친동생 영창대군이 태어난 것이다. 광해군의 고민은 깊어갔다. 명나라는 세자 인정을 거부하고 선조는 자신을 미워하는데, 설상가상 새어머니인 인목왕후는 선조의 유일한 적자인 영창대군을 낳은 것이다. 이때부터 선조(宣祖)의 마음은 광해군에게서 떠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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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33
■ 광해 2편

■ 광해 2편

1592년 7월, 광해군은 이천에서 의병장 김천일에게 왜적과의 항전을 독려하는 격문을 보냈고, 전 이조 참의 이정암에게 황해도의 연안성을 사수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이정암은 500여 명의 의병으로 5,000명이 넘는 일본군을 격퇴하는 개가(凱歌)를 올렸다. 광해군은 또 명과 일본군의 화의 교섭으로 전쟁이 주춤해진 1593년 10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명군 지휘부의 요청에 따라 남행길에 올라 무군사(撫軍司)라는 조직을 이끌며 충청도와 전라도를 순행하고 민심을 살폈다. 18세에 불과한 광해가 평양성 탈환 때 까지 사실상의 조정인 분조를 이끌며 훌륭히 임금의 역할을 해낸 것이다.

선조가 의주에서 요동만 바라보며 여차하면 국경을 넘을 태세를 취하고 있을 즈음, 광해군의 활약 소식을 들은 젊은 신하들은 노골적으로 "군국의 기무를 모두 세자 저하께 맡겨 처리하심이 옳은 줄 아옵니다" 라는 상소를 올리기에 이르렀다. 설상가상, 명나라도 선조의 무능함에 광해군에게 왕위를 넘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압력을 넣고 있었다. 광해군이 눈치 있게 업무를 대강 수행했더라면 되었을 텐데, 너무나 열심히 임무를 수행한 덕분에(?) 선조(宣祖)의 눈 밖에 나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선조(宣祖)는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면서 왕으로서의 권위를 찾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투정부리듯 양위(讓位)를 선언해 버렸다. 전쟁의 와중에, 그것도 공식적인 것만 자그마치 19회씩이나! 선조는 사실 양위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조정 대신들은 양위선언을 철회하도록 수도 없이 상소를 올리고, 모두들 왕 앞에 나아가 양위(讓位) 취소 선언이 있을 때까지 엎드려 통곡하는 한심한 상황을 연출해야만 했다. 물론 천하의 불효자가 되지 않기 위해 세자인 광해도 며칠씩 끼니까지 굶어가며 차가운 뜰 앞에 꿇어 앉아 명을 거두어 달라며 엎드려 읍소(泣訴)해야만 했다. 국력을 총동원하여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중차대한 이 시점에 이 무슨 국력낭비의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란 말인가!

선조(宣祖)는 이 바보 같은 짓을 되풀이하면서 신하들의 충성심을 시험하고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방편으로 삼았다. 선조는 이 방법을 통해 흔들리는 권력을 움켜잡았지만, 떨어진 위신까지 회복할 수는 없었다. 선조는 도망 다니며 제 한 몸 건사하기 바빴던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볼 때마다 어린 나이에 위풍당당하게 나라의 구심점 역할을 한 광해군과 구국의 영웅인 이순신장군에게 열등감을 또 다시 느껴야만 했을 것이다. 선조의 이러한 질투와 열등감은 미움으로 변해갔고, 이는 결국 광해군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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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34
■ 광해 1편

■ 광해 1편

조선의 제15대 국왕 광해군의 이름은 혼(琿), 선조의 둘째 아들이다. 선조에게는 14명의 아들을 있었지만 막상 정비인 의인왕후 박씨에게서는 아들을 얻지 못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공빈 김씨 소생으로 맏아들 임해군과 둘째 광해군을, 인빈 김씨 소생으로 셋째 아들 의안군과 넷째 신성군을 두고 있었다. 공빈 김씨는 아들 둘이 서너 살일 때 세상을 떴고, 왕실에는 달리 적자(嫡子)가 없었다. 어머니 공빈 김씨는 광해군을 낳고 2년 후인 1577년에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임해군과 광해군은 자식이 없던 의인왕후의 손에서 자랐다. 모정의 부재 속에서도 형인 임해군과 달리 광해군은 소년 시절부터 영민하고 도량이 넓어 일찍이 왕재(王才)로 인정을 받았다. 언젠가 선조가 왕자들을 불러 여러 가지 물건을 늘어놓고 마음대로 고르게 하자 왕자들은 앞다투어 보물을 골랐지만, 학문에 심취해 있던 광해군은 붓과 먹을 집어 들어 선조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 방계(傍系) 혈통으로 보위에 오른 탓에 늘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선조는 적통의 후계자를 갈망했지만 나이 마흔이 넘도록 적통의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다. 의인왕후와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고, 장자인 임해군이 마땅히 왕위에 올라야 했지만, 그는 무식하고 난폭한 면이 있었다. 선조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후계문제를 놓고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다른 후궁에게서 난 많은 왕자들이 각기 왕위를 넘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인빈 김씨는 자신의 소생인 어린 신성군을 세자로 책봉시키려는 공작을 끊임없이 벌이고 있었다. 조정과 민간의 인심은 영민한 광해군에게 쏠리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세 살 때에 죽은 처지여서 스스로 처신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들이 세자책봉을 거론하자 선조의 마음은 더욱 다급해졌다. 그런데 서인의 리더였던 정철이 세자로 광해군을 언급하자 인빈 김씨 소생인 넷째아들인 신성군을 마음에 두고 있던 선조는 분노하며 그를 유배형에 처해 버렸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성을 버리고 도망친 선조는 부랴부랴 급하게 평양에서 대신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다. 광해군은 세자로서 분조(分朝, 임시로 세자에게 임금의 일을 대행하게 하는 제도)를 맡아 난중에 동분서주하며 그 소임을 다했고, 조정과 민간의 명망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광해군의 왕위계승권은 요지부동할 것 같았고 그 자신 또한 현군(賢君)의 자질을 키워 나갔다. 세자인 광해군이 솔선하여 각지를 돌며 의병을 모집하고 전투를 독려했으며, 군량과 마초를 수집하는 등 활발한 후방 지원 활동을 벌였다. 그러자, 흩어졌던 민심이 다시 모이고 도망쳤던 사대부와 조정 중신들이 모여 들었고, 그때부터 광해군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광해군의 활약으로 전란 초기 일본군에게 일방적으로 유린되었던 조선군이 본격적으로 항전 태세를 갖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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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34
◇ 젊은 층의 反中 정서

◇ 젊은 층의 反中 정서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에게서 청년들 사이에 번지는 반중(反中) 감정을 전해 들었다. 수업 중에도 큰소리로 말하는 중국 학생들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다. 강의 들으며 구운 김을 뜯어 먹는 모습도 봤다고 한다. 새내기들은 선배가 전수한 ‘중국 학생들이 듣는 강좌 리스트’를 꿀팁이라며 공유한다. 피하려는 것이다. 학교 근처에 원룸을 구할 때도 중국인이 있으면 발길을 돌린다고 한다.

586세대가 대학 다니던 1980년대 캠퍼스엔 외국인이 드물었다. 반미·반일 정서가 대학가를 지배했지만 역사 인식에서 비롯됐을 뿐, 살면서 피해를 본 일은 없다. 그래선지 미국, 일본을 욕하다가도 두 나라 관광객을 보면 친절을 베풀었다. 반면 요즘 20대 청년들 사이에 번지는 반중 정서는 일상의 접촉을 통해 쌓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019년 기준 한국에 유학 중인 외국인 대학생·대학원생은 약 14만2000명이다. 이 중 중국인이 전체의 절반인 약 7만여명이다. 중국 유학생 1000명이 넘는 서울 소재 대학이 17곳이다. 중국인이 재학생 10명에 한 명꼴인 대학도 있다. 젊은이들의 일상 자체가 중국인과 부대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미세 먼지와 황사가 겹쳤다. 서해의 무법자인 중국 불법 어선 문제도 있다. 방탄소년단 등 한류 스타들을 괄시하고, 고구려만이 아니라 한복과 김치까지 자기들 것이라 우기며, 남자가 알몸으로 배추를 절이는 무개념 행태 등이 젊은 층의 반중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조선 태종과 왕자들이 악령과 맞서 싸우는 내용의 한 TV 드라마가 최근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충녕대군이 바티칸에서 온 가톨릭 사제에게 중국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에서 사달이 났다. “배경이 조선인데 왜 중국 음식을 쓰느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마귀를 쫓는 판타지 드라마일 뿐인데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방영 중단 요구가 빗발쳤다. 이 현상은 젊은 층의 반중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MZ세대로 불리는 한국 청년들은 집단보다 개인의 권리를 소중히 여기며, 인권·공정의 가치에 민감하다. 이런 청년들이 공산당 독재 체제에 세뇌된 중국 청년들과 일상 공간에서 얽히니 사사건건 부딪친다. 홍콩 민주화 시위 때 국내 대학 대자보 훼손 문제로 충돌한 게 대표적이다. 그래도 혐오로 증폭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민족 감정은 숙취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숙취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지만 술을 계속 마시면 악화한다. 이웃으로 지내는 것이 숙명이라면 공존의 지혜를 찾는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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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35
◇ 관용차와 국민의 관용

◇ 관용차와 국민의 관용

관용차는 말 그대로 정부나 공공기관 같은 관(官)에서 운용하는 차량이다. 용도에 따라 승용·승합·화물·특수 차량 등으로 나뉜다. 승용차는 다시 특정인만 타는 전용 차량과 직원들이 함께 이용하는 업무 차량으로 나뉜다. 공용차량 관리 규정(제4조 제2항)은 차관급 이상 공무원의 경우 전용 차량을 두도록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자동차등록현황에 따르면 승용 관용차는 2015년 2만7004대에서 2020년 3만3619대로 5년 새 크게 늘었다. 승합이나 화물·특수차까지 합친 관용차 전체 숫자는 같은 기간 7만7557대에서 9만3957대로 증가했다. 증가율로 따지면 승용차가 24.5%로, 전체 증가율(21.1%)을 웃돈다.

회의와 현장 방문이 잦고 격무에 시달리는 공직자에게 이 정도 편의를 제공하는 것을 혈세 낭비라 반대할 국민은 없다. 그러나 진짜 관용차를 업무에 제대로 쓰고 있는지, 그래서 늘어난 관용차 숫자만큼 업무효율도 증가했는지는 의심쩍기만 하다. 잊을 만하면 관용차를 둘러싼 논란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2015년 군 지휘관급 간부에게 배정된 관용차 사용 실태를 전수 조사한 결과, 군 고위 관료 10여명이 골프를 치러 갈 때나 휴가 기간에도 관용차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에는 원주시의회 한 의원이 의정활동에 사용하라고 제공되는 관용차를 타고, 자신의 축사를 둘러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 불거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이성윤 중앙지검장 ‘황제조사’ 논란은 더 기가 찬다. 피의자 신분인 이 지검장에게 김진욱 공수처장은 자신의 1호 관용차를 제공, 은밀하게 청사로 들어오도록 했다. 보안상의 이유라고 해명했지만, 수사를 위한 것인지 이 지검장의 편의를 위한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공수처에서 부르면 차를 보내달라고 하자’는 우스개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말은 공직사회에 융통성 없이 무사안일만 추구하는 문화가 있다는 점을 꼬집는 것이다. 업무에 창조성과 상상력을 발휘해달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관용차를 골프 치고 장 보러 다니는 데 쓰거나, 피의자를 뒷골목에서 숨겨 태우는 데 활용하는 해괴한 상상력을 발휘해선 곤란하다. 그건 국민의 관용(寬容)을 넘는 일이다.

-중앙일보 분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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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36
마전성경磨磚成鏡 -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다, 형식보다 실천을 중시하라는 의미

마전성경(磨磚成鏡) -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다, 형식보다 실천을 중시하라는 의미

갈 마(石/11) 벽돌 전(石/11) 이룰 성(戈/3) 거울 경(金/11)

아무리 어려운 일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난관을 뚫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면 되지 않을 일이 없다. 노력을 기울이면 성공이 눈앞에 온다는 교훈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한다. 관련 속담, 격언이나 성어도 부지기수로 많다. 90세 되는 노인이 마을 앞뒤에 있는 큰 산을 삽으로 파서 옮긴다는 愚公移山(우공이산)이나 자유분방한 시선 李白(이백)이 젊은 시절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磨斧爲針(마부위침) 이야기를 한 할머니에게서 듣고 대오각성 했다는 이야기는 특히 유명하다.

그런데 벽돌을 갈아(磨磚) 거울을 만든다고(成鏡) 하는 이 말은 더 쉬울 듯한데 나타내는 뜻이 전혀 달라 의외다. 禪宗(선종)의 통사인 불교서적 ‘五燈會元(오등회원)’에 실린 이야기를 먼저 보자.

唐(당)나라의 선승 南嶽懷讓(남악회양, 677~744)이 좌선을 하고 있는 사문 馬祖道一(마조도일, 709~788)에게 무엇 때문에 열심인지 물었다. 도일이 부처가 되기 위해서라고 하자 회양은 벽돌을 집어와 바위 위에 대고 갈기 시작했다. 무엇 하려 벽돌을 가느냐고 여쭈니 거울을 만든다고 했다. 벽돌이 어떻게 거울이 되느냐고 하자 좌선하여 부처가 어찌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소가 수레를 끌고 가다 멈춘다면 수레를 때려야 하는지 소를 때려야 하는지 비유하며 깨우쳤다. 몸은 수레와 같고 마음은 소와 같은데 일정한 형상이 아닌 부처가 되기 위해 좌선에만 집착한다면 이치를 통달하지 못한다는 가르침이었다. 형식보다는 실천을 중시하여 중생 곁으로 가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보람도 없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蒸沙成飯(증사성반),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 하는 것에 비유한 말도 있다. 唐代(당대)의 기승으로만 알려져 있고 생존 연대가 구구한 寒山(한산)의 시집에 문구가 나온다.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 하고, 목이 마르자 비로소 샘을 파네(蒸砂擬作飯 臨渴始掘井/ 증사의작반 임갈시굴정),, 아무리 애써 기왓장을 갈아도, 어찌 거울을 만들 수 있겠는가(用力磨碌磚 那堪將作鏡/ 용력마록전 나감장작경)?’ 碌은 푸른 돌 록. 안으로 헤아려 생각하고 부질없이 밖으로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고 가르친다.

신라의 元曉大師(원효대사)가 지은 불교입문서 發心修行章(발심수행장)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지혜있는 사람은 쌀을 쪄서 밥을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모래로 밥을 만드는 것과 같다(有智人所行 蒸米作飯 無智人所行 蒸沙作飯/ 유지인소행 증미작반 무지인소행 증사작반).’ 준비 없이 일에 부닥친 뒤에야 허둥지둥 대책을 세워봐야 성사되기 어렵다.

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뒷전인 채 겉보기만 화려하게 꾸며 일을 하려 해도 잘 될 리가 없다. 그러다가 배가 산으로 가는데 자꾸 변명만 늘어놓는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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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36
다난흥방多難興邦 -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난 뒤 나라가 흥하

다난흥방(多難興邦) -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난 뒤 나라가 흥하

많을 다(夕/3) 어려울 난(隹/11) 일 흥(臼/9) 나라 방(阝/4)

개인이나 나라나 평안한 나날만 계속되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지 않아 好事多魔(호사다마)나 禍不單行(화불단행)이란 말이 많이 나왔다. 일면 興盡悲來 苦盡甘來(흥진비래 고진감래)라 하여 나쁘고 어려운 일 다음에는 좋은 세상이 온다고 위안을 주는 교훈도 있다.

어려운 일을 많이 겪으면(多難) 오히려 내부를 결속시켜 나라가 더욱 일어난다는(興邦) 이 성어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나라 위기 때마다 뜻있는 사람들이 인용하여 용기를 고취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 魏(위)나라에서 세력을 떨치던 司馬氏(사마씨)가 왕위를 물려받아 세운 晉(진)나라는 결국 통일을 이뤘다. 하지만 건국 초기 황족 8명의 피비린내 나는 세력 다툼 팔왕지난(八王之亂)이 16년이나 끌어 나라는 혼란의 극에 달했다. 이 틈을 타 북방의 匈奴(흉노), 鮮卑(선비) 등 다섯 민족이 남진한 五胡亂華(오호난화)까지 일어나 2대의 왕이 연속 살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광대한 영토가 유린되는 이런 난리를 보고도 좌승상 司馬睿(사마예, 睿는 슬기 예)는 강남에서 관망만 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祖逖(조적, 逖은 멀 적), 劉琨(유곤, 琨은 옥돌 곤)과 같은 장수들은 북벌을 단행하는 한편, 180여 명의 이름으로 勸進表(권진표)를 올리고 제위 계승을 권했다.

그 내용 중 ‘많은 재난이나 어려움은 우리나라를 공고히 하게하며, 깊은 근심은 황제로 하여금 더욱 현명하게 해줍니다(或多難以固邦國 或殷憂以啓聖明/ 혹다난이고방국 혹은우이계성명)’에서 이 성어가 나왔다. 사마예가 계승한 나라가 東晋(동진)인데 그는 현명하게 대처를 못하고 북벌은커녕 두 장군을 의심해 죽게 만들었다. ‘晉書(진서)’ 元帝(원제)편에 실려 있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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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37
불로장생不老長生 - 늙지 아니하고 오래 살다.

불로장생(不老長生) - 늙지 아니하고 오래 살다.

아닐 불(一/3) 늙을 로(老/0) 긴 장(長/0) 날 생(生/0)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바라는 것은 재산보다도 명예보다도 건강일 것이다. 아프지 않고 오래 살고(長生) 그것도 늙지 않은 채(不老) 살아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그래서 예로부터 영원히 죽지 않거나 오래 산다고 믿어왔던 열 가지 十長生圖(십장생도)를 옆에 두고 기원하거나 仙藥(선약)과 不死藥(불사약)을 구하려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노력을 기울였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聖書(성서)에서 므두셀라(Methuselah)는 969세, 노아(Noah)는 950세를 살았다고 하고, 중국 黃帝(황제)의 자손이라 하는 彭祖(팽조)라는 도인은 자취를 감출 때 770세였지만 그 때까지 피부가 동안이었다 한다. 훨씬 능가하는 사람이 있다. 前漢(전한)시대 해학이 넘치는 문인 東方朔(동방삭)은 신들의 어머니 西王母(서왕모)의 복숭아 蟠桃(반도, 蟠은 두를 반)를 훔쳐 먹고는 三千甲子(삼천갑자)를 살게 됐다. 1갑자가 60년이니 무려 18만년, 어딘가에 아직 생존하는 셈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 말고 절대 권한이 있던 황제는 오래 살기 위한 불로초와 선약을 구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역시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秦始皇(진시황)이다. ‘史記(사기)’ 진시황 본기에는 齊(제)나라 方士(방사)인 徐市(서불)이 저 멀리 바다 건너 三神山(삼신산)에 신선이 산다고 했다. 市은 치마 불, 徐福(서복)이라고도 한다.

진시황이 동남동녀 수천 명을 데리고 가서 모셔오라고 보냈다(是遣徐市發童男女數千人 入海求僊人/ 시견서불발동남녀수천인 입해구선인). 僊은 신선 선. 서불은 부산, 남해를 거쳐 제주도에 도착하여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西歸浦(서귀포)에는 축제로 기념하고 일본에도 곳곳 유적이 있는데, 뒤의 기록은 남지 않아 진위는 분분하다.

장수의 욕심을 부렸던 진시황은 그러나 49세의 나이로 순행 중 죽었다. 漢高祖(한고조)부터 200여 명의 중국 황제 중 80세를 넘긴 사람은 5명에 불과하다고 한 조사도 있다. 조선 왕조는 더해 환갑을 넘긴 왕이 5명뿐이었다고 한다. 유교에서 말하는 五福(오복) 중에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考終命(고종명)이라 한다. 억지를 부리지 말고 편안히 살다 제 명에 죽는 것 이상은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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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38
호유기미狐濡其尾 - 여우 꼬리가 물에 젖다, 시작은 쉬우나 마무리가 허술하다.

호유기미(狐濡其尾) - 여우 꼬리가 물에 젖다, 시작은 쉬우나 마무리가 허술하다.

여우 호(犭/5) 젖을 유(氵/14) 그 기(八/6) 꼬리 미(尸/4)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거들먹거리는 狐假虎威(호가호위)에서 보듯 여우는 교활의 대명사다. 교활한 사람을 비유하는 대명사이기도 한데 九尾狐(구미호)는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여우로 살살거리는 여성을 지칭했다. 꼬리에 관한 성어는 龍頭蛇尾(용두사미)나 狗尾續貂(구미속초)처럼 보잘것없는 마무리를 뜻한다. 다른 동물의 속담도 보자. ‘개 꼬리 삼년 묵어도 황모 되지 않는다(三年狗尾 不爲黃毛/ 삼년구미 불위황모)’, ‘노루 꼬리가 길면 얼마나 길까(獐尾曰長 幾許其長/ 장미왈장 기허기장).’ 그런데 몸매가 날씬한 여우는 주둥이가 길고 뾰족한데 비해 꼬리는 굵고 길어 그럴 듯해 보인다.

꾀주머니 여우라도 꼬리는 거추장스럽다. 여우의 꼬리가 물에 젖는다는 이 성어는 크고 탐스러운 모양으로 거창하게 일을 벌였다가 낭패를 당하는 것을 말한다. 여우는 머리가 가볍고 꼬리가 무겁기 때문에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꼬리를 얹고 건너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건너는 도중에 힘에 부쳐 꼬리가 젖게 되면 몸 전체가 가라앉게 된다. 모양 좋게 일을 떠벌여 시작하기는 쉬워도 끝까지 마무리를 잘 하기는 어렵다. 재주가 별로 없으면서 감당하지 못할 일을 맡아 끙끙거리다가 중도 포기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 ‘史記(사기)’의 春申君(춘신군) 열전에서 인용하는 말이 나온다.

戰國四公子(전국사공자)의 한 사람인 楚(초)나라의 춘신군은 본명이 黃歇(황헐)로 유일하게 왕족 출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박학하고 담력이 있으며 변설에도 능해 초왕은 그를 중용했고 주변국에 위력을 떨치는 秦(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초나라를 침공할 계획을 알아챈 춘신군은 진왕에게 글을 올렸다. 위력을 믿고 주변국을 차지하려는 마음을 억제한다면 仁王(인왕)이 되고 그렇지 않다면 후환이 두렵다며 이어진다.

‘시경에 시작하는 자는 적지 않으나 끝이 좋은 자는 드물다고 했고(詩曰 靡不有初 鮮克有終/ 시왈 미불유초 선극유종), 주역에는 여우가 물을 건너려면 그 꼬리를 적신다(易曰 狐涉水 濡其尾/ 역왈 호섭수 유기미)고 했습니다.’ 靡는 쓰러질 미.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맺음은 어렵다는 비유였다. 옳다고 여긴 진왕은 출병을 중지시켰다.

여우가 물에 들어가기는 쉬워도 빠져나올 때는 큰 꼬리에 물이 많이 묻어 힘이 든다. 큰일을 시작하려면 자신의 능력을 먼저 알고, 주변에 미치는 영향까지 세밀히 분석한 다음 착수해야 실패하지 않는다. 인기만 믿고 그럴 듯한 명분으로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나중에는 오도 가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앞에 나온 용의 무서운 머리가 뱀의 가느다란 꼬리로 변한다는 것이나, 태산이 울리더니 쥐 한 마리 나온다는 泰山鳴動鼠一匹(태산명동서일필)이나 모두 시작을 잘못하여 생겨난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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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39
봉두구면蓬頭垢面 - 흐트러진 머리칼에 때 낀 얼굴, 빈곤한 모습, 외모에 무관심

봉두구면(蓬頭垢面) - 흐트러진 머리칼에 때 낀 얼굴, 빈곤한 모습, 외모에 무관심

쑥 봉(艹/11) 머리 두(頁/7) 때 구(口/6) 낯 면(面/0)

쑥대머리라 하면 판소리 春香歌(춘향가)에 나오는 獄中歌(옥중가)를 먼저 떠올린다. 춘향이 옥중에서 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며 ‘쑥대머리에 鬼神形容(귀신형용)’이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귀신의 모양이라 했듯이 머리털이 헙수룩하게 마구 흐트러진 머리가 쑥대머리다. 蓬頭亂髮(봉두난발)이라 흔히 말한다.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부녀자에 해를 끼치는 처녀귀신의 모습과 닮았다. 머리털을 풀어헤쳐 쑥 모양(蓬頭)인 데다 얼굴에 때가 덕지덕지 끼여 있으면(垢面) 더욱 으스스한 모습이다. 용모가 단정하지 못하고 생활이 빈곤한 모습을 나타내거나 외모에 무관심한 태도를 말한다.

중국 華北(화북) 지역에 세운 北朝(북조) 최초의 北魏(북위, 386∼534)에 封軌(봉궤)라는 유학자겸 관료가 있었다. 그는 학문을 좋아해 五經(오경)과 春秋三傳(춘추삼전)에 능했다. 사람이 정직하고 원세에 아부할 줄 몰랐을 뿐 아니라 훤칠한 키에 인물도 수려했다. 거기에 평소에도 신경을 써서 몸단장을 하는 편이었다. 한 선비가 와서 학문을 하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용모에 대해 신경을 쓰는지 물었다. 봉궤가 웃으며 말했다. 군자란 의관을 단정히 해야 하는 법인데 ‘어째서 흐트러진 머리에 때가 낀 얼굴을 해야만 어질다고 하는가(何必蓬頭垢面 然後爲賢/ 하필봉두구면 연후위현)?’하고 답하니 대꾸도 못했다. ‘魏書(위서)’에 전하는 이야기다.

혼란의 南北朝(남북조) 시대 나라를 옮겨 다니며 파란의 생활을 영위했던 顔之推(안지추, 531∼591)라는 문필가는 자손을 위한 교훈서 ‘顔氏家訓(안씨가훈)’을 남겼다. 가족과 대인관계를 비롯하여 풍속, 학문 등 다양한 내용을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기술한 중요자료가 되는 책이다. 風操(풍조) 편에도 이 성어가 사용됐다.

관직에 있는 부친이 잘못하여 탄핵을 받으면 아들은 ‘짚신에 거친 옷을 입고 쑥대머리에 더러운 얼굴로 거리를 헤매며(草屩粗衣 蓬頭垢面 周章道路/ 초교조의 봉두구면 주장도로)’ 억울함을 호소한다고 했다. 屩는 짚신 교.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위화감을 줄 정도로 차림을 가꾸지 않아도 문제이지만 겉모습에 너무 신경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털털한 모습에도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만의 연구에 빠진 사람은 외모는 뒷전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겉모습보다 속마음이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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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39
백아절현伯牙絶絃 -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다,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하다.

백아절현(伯牙絶絃) -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다,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하다.

맏 백(亻/5) 어금니 아(牙/0) 끊을 절(糸/6) 줄 현(糸/5)

우정을 기리는 명언은 동서에 걸쳐 숱하다. 어려서부터의 우정을 대표하는 竹馬故友(죽마고우)나 管鮑之交(관포지교),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肝膽相照(간담상조)나 刎頸之交(문경지교)는 실제 과장된 면이 있고 이해관계 앞에서는 아슬아슬하다. 이에 반해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은 친구의 능력을 알아주고 끊임없이 발전하게 하는 伯牙(백아)와 鍾子期(종자기) 사이를 뛰어넘을 것이 없을 정도다.

고관의 자리에 있었던 백아는 나무꾼 종자기와 의형제를 맺기까지 했다. 백아는 자신이 연주하는 거문고 가락을 이해해 주는 知音(지음)의 종자기가 세상에서 더없이 고마웠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더 이상 의미 없다며 손을 놓았다. 伯牙(백아)가 악기의 줄을 끊어버리기까지(絶絃) 했던 것이다.

‘列子(열자)’를 비롯한 여러 고전에서 언급된 만큼 많이 알려지고 인용되었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서 높은 벼슬을 하던 兪伯牙(유백아)는 거문고의 명수였다. 어느 때 백아는 연주하는 뜻을 기막히게 이해하는 종자기라는 나무꾼을 만났다. 그가 높은 산과 큰 강의 분위기를 시도하면 종자기는 태산이 우뚝하고 황하가 넘실댄다고 탄성을 연발한다. 高山流水(고산유수)는 여기서 비롯됐다.

그러나 불행히도 종자기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백아는 거문고의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이 부분을 ‘呂氏春秋(여씨춘추)’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죽을 때까지 연주하지 않았다(伯牙破琴絕絃 終身不復鼓琴/ 백아파금절현 종신불부고금).’ 孝行覽(효행람)편에 있다.

조선 中宗(중종)때 개혁정치를 펼치다 己卯士禍(기묘사화)로 목숨을 잃은 趙光祖(조광조, 1482~1519)는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는 ‘詠琴(영금)’이란 시를 남겼다. 내용을 살펴보자. ‘옥 거문고로 천년의 곡조를 타지만, 속된 사람들 멍하니 귓전으로만 듣고 마네(瑤琴一彈千年調 聾俗紛紛但聽音/ 요금일탄천년조 농속분분단청음), 슬프다 종자기는 죽은 지 이미 오래, 세상에 뉘 있어 백아의 마음 알아주리(怊悵鐘期沒已久 世間誰知伯牙心/ 초창종기몰이구 세간수지백아심).’ 怊는 슬퍼할 초, 悵은 원망할 창.

성경 말씀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한복음)고 했는데 그러한 고귀한 우정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 간을 내어줄 듯 친밀하게 굴다가도 이해관계가 걸리면 언제 보았느냐는 듯 등을 돌리고 심지어 원수가 된다.

극심한 경쟁시대라 어릴 때부터 모두들 학원으로 다닌다고 동네에서 같이 놀아줄 친구가 없다고 한다. 중고등학교로 올라가서는 친구가 잘 되면 자기에게 손해가 온다고 기를 쓰고 깎아내리기 일쑤다. 이렇게 삭막한 환경에서 자란다면 그 누가 친구에게 이웃에게 양보하겠는가.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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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40
백천귀해百川歸海 - 모든 하천은 바다로 돌아간다.

백천귀해(百川歸海) - 모든 하천은 바다로 돌아간다.

일백 백(白/1) 내 천(巛/0) 돌아갈 귀(止/14) 바다 해(氵/7)

조그만 냇물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 바다가 될 수 있는 것은 모든 강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모든 강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든 강보다 낮은 쪽에 위치하여 차별을 하지 않고 강물을 받는다. 같은 의미의 李斯(이사)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秦(진)나라에 모여든 각국 인재를 축출하려 하자 諫逐客書(간축객서)로 부당함을 절절이 상소한다. 태산이 작은 흙도 사양 않고 받아들여 이뤄졌다는 泰山不辭土壤(태산불사토양)의 대구로, 강과 바다는 개울물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이루어졌다는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가 그것이다.

모든 하천(百川)은 바다로 돌아간다(歸海)는 이 성어도 물론 같은 뜻을 가졌다. 여기서의 百(백)은 숫자 100을 의미한다기보다 ‘많다’, ‘모든’의 뜻을 갖는다. 百川入海(백천입해), 海納百川(해납백천)라 해도 뜻이 같고, 처음에 가는 길은 서로 다르지만 나중에 도달하는 곳은 같다는 殊途同歸(수도동귀)도 의미가 통한다. 강물이 수도 없이 꺾여 흐르더라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는 萬折必東(만절필동)이란 말을 대사가 사용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원래의 뜻은 그렇더라도 충신의 절개를 비유했고 특히 조선시대 중국황제를 위한 충절을 가리켰기에 같이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百川(백천)의 성어는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저술한 ‘淮南子(회남자)’에 처음 사용됐다. 이 책은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의 손자인 유안이 전국의 빈객과 방술가의 지혜를 빌려 제자백가를 아우른 방대한 백과사전이다. 氾論訓(범론훈)에 나오는 부분을 보자.

예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이더라도 시의에 맞지 않으면 따르기가 어려우므로, 성인은 법을 때에 따라 변화시키고 풍속이나 법도도 적당함을 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어진다. ‘모든 개울은 근원을 달리 했으나 바다로 모이게 되고, 모든 사람은 직업이 다르지만 한결같이 잘 하도록 힘쓴다(百川異源 而皆歸於海 百家殊業 而皆務於治/ 백천이원 이개귀어해 백가수업 이개무어치).’ 모든 일에 원칙만 찾고 순리로 받아들일 융통성이 없다면 일을 원만하게 이룰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한 조직을 이끌려면 지도자가 어떠해야 인재가 모이는 바다가 되는지 이 성어는 알려준다. 개성이 각각 다른, 재주가 모두 천차만별인 조직원들을 이끌려면 포용이 우선이다. 가장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처신하면 모두들 재주를 발휘하며 내일같이 정성을 다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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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41
조고각하照顧脚下 - 자신의 다리 밑을 살펴보라, 남 탓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라.

조고각하(照顧脚下) - 자신의 다리 밑을 살펴보라, 남 탓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라.

비칠 조(灬/9) 돌아볼 고(頁/12) 다리 각(肉/7) 아래 하(一/2)

하늘의 별을 연구한다며 위만 보고 걷다가 개울에 빠졌다. 원대한 꿈을 꾸는데 웬 개울이 가로놓여 방해를 한다고 꾸짖을 일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모르고 남 탓을 한다. 그래서 자기 결함은 생각지 않고 애꿎은 사람이나 조건만 탓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이 유난히 많다. 비하하는 말이나 낮춤말이 썼지만 ‘소경이 개천 나무란다’,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등이고 ‘가마 밑이 노구솥 밑을 검다 한다’는 한역어 釜底笑鼎底(부저소정저)에서 소개한 바 있다.

수신을 잘 한 선비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어도 보통 사람들과 달리 고칠 줄 안다. 그래서 孔子(공자)는 허물을 남 탓하지 않고 자신에게서 찾는다고 反求諸己(반구저기)라 했고, 잘못을 알면 반드시 고친다고 知過必改(지과필개)라 했다. 더하여 曾子(증자)는 매일 세 번을 반성한다고 三省吾身(삼성오신)이란 말을 남겼다.

불교에서도 쉬운 비유로 큰 깨달음을 주는 좋은 말이 있다. 항상 자신을 비추어 반성하되(照顧) 자기 발밑부터(脚下) 먼저 하라는 이 성어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의 과거 언행을 돌이켜보고 가까운 데를 더 조심하고 신경 써야 한다는 뜻이다. 신발을 가지런히 놓으라는 가르침도 있다. 脚下照顧(각하조고)도 같다.

중국 宋(송)나라 때 발간된 禪宗(선종)의 통사 ‘五燈會元(오등회원)’의 三佛夜話(삼불야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선승 普濟(보제)가 慧明(혜명) 등 여러 제자에 명하여 편찬되어 禪(선)의 대의를 밝힌 입문서로 여겨진다는 책이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선승 五祖法演(오조법연)이 자신을 잇는 제자 三佛(삼불)과 함께 밤길을 걷다가 세찬 바람에 등불이 꺼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승이 묻자 佛眼淸遠(불안청원)과 佛鑑慧懃(불감혜근)은 심오한 답을 한 반면 佛果克勤(불과극근)은 ‘발밑을 살펴보십시오(看脚下/ 간각하)’라고 말했다. 스승은 자신을 이을 사람은 克勤(극근)이라 했다. 살피는 看(간)이 照顧(조고)로 바뀌어 사용된다.

이 대답을 한 圓梧克勤(원오극근)은 碧巖錄(벽암록)에 가르침이 남아 있다. 수행과정에서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전혀 없는 경지에서는 자신과 가까운 곳부터 해결해야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험한 말로 싸우고 욕심이 이글거리는 사회에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과오를 찾는 것은 천주교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펼쳤던 ‘내 탓이오’ 운동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남의 잘못을 신랄히 지적하다가 자신의 똑 같은 잘못이 드러나도 발뺌하는 ‘내로남불’이 더 기승을 부리는 사회에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03.html
kolaswqetsrq 11.02 21:42
두소지인斗筲之人 - 도량이 좁거나 보잘것없는 사람

두소지인(斗筲之人) - 도량이 좁거나 보잘것없는 사람

말 두(斗/0) 대그릇 소(竹/7) 갈 지(丿/3) 사람 인(人/0)

일을 처리할 때 조금도 굽히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처리하는 사람을 배짱이 두둑하다고 한다. 한자어로 排布(배포)가 있다고 말할 때와 같다. 반면 규모가 작고 도량이 옹졸한 사람을 가리켜 ‘좁쌀영감’이라 손가락질한다. 이런 사람에겐 간이 콩알만 해서 ‘사발에 든 고기나 잡겠다’고 놀림감이 된다.

같은 뜻으로 도량이 좁거나 식견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쌀을 되는 말이나 밥을 담는 그릇(斗筲)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之人)에 비유하기도 한다. 똑 같은 뜻으로 斗筲小人(두소소인), 斗宵之器(두소지기), 斗宵之材(두소지재)라고도 한다.

이 성어는 ‘論語(논어)’의 子路(자로)편에 나온다. 孔子(공자)의 제자로 말재간이 좋고 이재에도 밝았던 子貢(자공)이 어떤 사람을 선비라고 하는지 여쭙는데 대한 답에서 언급했다. 공자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行己有恥/ 행기유치) 사신으로 갔을 때 군주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不辱君命/ 불욕군명) 선비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효자로 칭송받고 마을 사람들이 공손하다고 말하면 다음의 선비이고, 말이 믿음직하고 행동에 과단성이 있으면(言必信 行必果/ 언필신 행필과) 융통성이 없더라도 그 다음 수준은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그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이 압권이다. ‘요즘 정치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今之從政者何如/ 금지종정자하여)?’ 공자는 탄식하며 말했다. ‘한 말 되가웃짜리 사람들을 어떻게 따져볼 가치가 있겠느냐(斗筲之人 何足算也/ 두소지인 하족산야)?’ 쌀의 부피를 재는 한 되는 1升(승)이 되고 열 되가 한 말, 斗(두)가 된다. 대그릇을 나타내는 筲(소)는 한 말과 두 되가 들어가는 그릇이라 한다. 도량이 작은 사람을 말한 斗筲(두소)는 원래 나라에서 받는 봉록이 적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기도 했다. 쌀 한 말이 적은 분량은 아니지만 정치를 하려는 사람은 배포도 두둑해야 함을 말했다.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에 나라를 다스렸던 사람들이 이런 평을 받았는데 2000년도 더 지난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은 얼마나 변했을까? 국민들에게서 가장 신뢰도가 낮고 미움을 가장 많이 받는 직업으로 항상 첫손가락에 꼽히니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겠다.

우리의 의원들이 불체포 특권이나 면책특권 등을 비롯한 500여 가지가 넘는다는 특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말뿐이고, 제일 큰 의무인 법안 처리는 내 미락 네 미락하여 분통만 터지게 한다. 선거 때만이라도 정신을 차려 이런 사람들을 잘 가려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96.html
kolaswqetsrq 11.02 21:42
가유십도家有十盜 - 집안을 가난하게 하는 열 가지 도둑

가유십도(家有十盜) - 집안을 가난하게 하는 열 가지 도둑

집 가, 있을 유, 열 십, 도둑 도

물질에 초탈한 선인이 아니라면 가난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고르지 않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빈부의 격차를 어떻게 잘 줄일까 모두들 머리를 싸매지만 만인의 보편복지가 쉬울 리 없다. 옛날 殷(은)나라 폭군 紂王(주왕)을 멸하고 周(주)나라를 세운 武王(무왕)도 자나 깨나 백성들을 잘 살게 하는 것을 생각했으나 가난한 사람은 여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신을 도운 개국공신 姜太公(강태공)을 불러 사람이 세상을 사는데 어찌하여 귀천과 빈부가 고르지 않은지 물었다. 여기서 태공이 답한 가난한 집에는 다 연유가 있다며 10가지를 열거한 것이 家有十盜다.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 秋適(추적)이 금언과 명구를 모아 놓은 책 ‘明心寶鑑(명심보감)’에 실려 있다. 처음 한자를 배우는 어린이가 千字文(천자문)을 뗀 후 童蒙先習(동몽선습)과 함께 기초과정의 교재로 사용했던 책이다.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말씀을 제시하면서 시작하는 繼善篇(계선편)부터 19편이 실려 있는데 이 성어는 立敎篇(입교편)에 나온다. 삼강오륜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처신하고 노력할 것과 충성과 효도를 강조하는 장이다.

태공이 무왕의 물음에 ‘부귀는 성인의 덕과 같아서 천명에 달려 있는데 부자는 쓰는데 절제가 있고 아닌 자는 집안에 열 가지 도둑이 있기 때문(富貴如聖人之德 皆有天命 富者用之有節 不富者 家有十盜/ 부귀여성인지덕 개유천명 부자용지유절 불부자 가유십도)’이라고 답한다. 그러면 열 도둑은 무엇을 말하는지 다시 물으니 차례로 설명한다.

익은 곡식을 거둬들이지 않고(時熟不收/ 시숙불수), 쌓는 일을 마치지 않고(收積不了/ 수적불료), 일 없이 등불을 켜고 잠자는 것(無事燃燈寢睡/ 무사연등침수), 게을러서 밭 갈지 않고(傭懶不耕/ 용라불경. 懶는 게으를 라), 공력을 베풀지 않으며(不施功力/ 불시공력), 교활하고 해로운 일만 하는 것(專行巧害/ 전행교해), 딸을 너무 많이 기르는 것(養女太多/ 양녀태다), 대낮에 잠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며(晝眠懶起/ 주면라기), 술을 탐하고 색욕을 즐기며(貪酒嗜慾/ 탐주기욕), 남을 심하게 시기하는 것(强行嫉妬/ 강행질투) 등 열 가지다. 딸 많이 기르는 것이 왜 들어가는지 모를 일이지만 부지런히 일하고 이웃과 화합하면 가난을 탈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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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43
폐추천금弊帚千金 - 몽당 빗자루를 천금같이 생각하다, 분수도 모르고 잘난 체하다.

폐추천금(弊帚千金) - 몽당 빗자루를 천금같이 생각하다, 분수도 모르고 잘난 체하다.

해질 폐(廾/12) 비 추(巾/5) 일천 천(十/1) 쇠 금(金/0)

소용되는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것은 필요하다. 남이 별스럽게 여기지 않는데도 제가 가진 물건은 제일 귀하다. 또 자기가 가진 재주는 남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는 식의 능력밖에 없는데도 남보다 앞선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제일이라는 자부심은 필요해도 정도가 지나치면 탈이다.

자기 집에서 쓰던 빗자루(弊帚)는 다 닳아 너덜너덜해도 千金(천금)같이 여긴다. 아끼는 것은 좋지만 효과가 있을 리 없다. 이처럼 자신의 지위나 능력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분수도 없이 잘난 체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이 성어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를 호령한 曹操(조조)의 사후 그의 아들 曹丕(조비)가 魏(위)나라 초대 왕이 된다. 七步詩(칠보시)로 유명한 아우 曹植(조식)에 못지않게 조비도 시부에 능하여 중국 최초의 문학 평론서라는 ‘典論(전론)‘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의 원본은 전하지 않고 그 중의 한 편이 ’文選(문선)‘에 실려 전한다. 南朝(남조) 梁(양)나라의 태자였던 蕭通(소통)이 秦漢(진한) 이후의 대표적인 문장가 130여 명의 시문을 모은 책이다. 여기에 남은 조비의 글에서 내려오는 말이라며 이 성어가 인용됐다. 부분을 보자.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는 데에는 뛰어나다. 단지 문장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종류의 글을 다 잘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단점을 업신여긴다고 하면서 비유한다.

‘속언에 자기 집안에 있는 몽당 빗자루는 천금처럼 여긴다고 했듯이 이것은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는 데서 생긴 폐해이다(里語曰 家有弊帚 享之千金 斯不自見之患也/ 이어왈 가유폐추 향지천금 사부자현지환야).’ 자기의 능력만 뛰어나고 남의 재주는 보잘 것 없다고 깔보는 것은 文人相輕(문인상경)이라 하여 특히 문인들이 더하다고 이 문장의 앞부분에서 지적한다.

나의 것을 아끼고 제일이라 여기는 것을 누가 뭐라 할 수는 없다. 남에게 앞서야 살아날 수 있다고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렸으니 그런 면도 있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 남의 것은 하찮고 아무 짝에도 쓸데없다고 생각하면 문제다.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할 사회에서 남을 인정하지 않으면 독불장군이 된다. 상대가 잘 하는 것은 잘 한다고 칭찬할 수 있어야 밝은 사회를 이끈다. 사생결단으로 맞서기만 하는 정치권에서 더욱 필요한 자세인데 몰라서 하지 않는 게 아니니 더욱 문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64.html
kolaswqetsrq 11.02 21:44
내우외환內憂外患 - 나라 안팎의 걱정근심

내우외환(內憂外患) - 나라 안팎의 걱정근심

안 내(入/2) 근심 우(心/11) 바깥 외(夕/2) 근심 환(心/7)

안에서 근심걱정(內憂)이 있는 차에 밖에서도 걱정거리(外患)가 찾아든다. 하나 해결하면 다시 걱정이 닥치니 죽을 지경, 진퇴양난이다. 불행은 언제나 홀로 오지 않고 꼭 겹쳐 온다는 禍不單行(화불단행)과 닮았다. 같은 근심이라도 憂(우)는 머리(頁/ 혈)가 위에서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는 뜻으로 마음의 걱정, 患(환)은 괴로움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串(관)이란 꼬챙이 모양을 합쳐 아픔이 따르는 걱정이란 의미로 구분한다. 어느 것이나 아픔이니 집안이나 나라 안팎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뜻한다. 일상에 많이 쓰이고 뜻도 쉬운 이 성어에 조어가 아닌 고사가 따르니 흥미롭다.

먼저 ‘管子(관자)’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자.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의 桓公(환공)이 음식을 들지도 않으면서 외전에서만 지내고 있었다. 궁녀들을 관장하는 女官(여관)이 이제 임금이 거둥할 때가 됐으니 모시라고 일렀다. 환공이 여관을 불러 화를 내며 거둥할 때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다. 내관은 걱정거리가 있을 때 외전에서 주무시고 음식도 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다른 내우가 없으니 필시 다른 외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君外舍而不鼎饋 非有內憂 必有外患/ 군외사이불정궤 비유내우 필유외환)’고 했다. 내우는 아니니 곧 일어날 것이라 여겼다는 여관의 지혜에 환공은 기특히 여겼다. 饋는 먹일 궤.

춘추시대 중엽 晉(진)나라가 이웃 약소국가를 정벌하던 중 막강한 楚(초)나라의 침공을 받았다. 초와도 일전을 벌이자는 말에 대부 范文子(범문자)가 반대했다. 공격을 당하면 퇴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러다가 나라가 위태해질 수가 있다며 말한다.

‘오직 성인만이 밖으로의 근심도 안으로의 걱정도 없게 할 수 있겠지만(唯聖人能外內無患/ 유성인능외내무환), 우리의 경우 밖의 재난이 없으면 내부 근심이 있기 마련이다(自非聖人 外寧必有內憂/ 자비성인 외녕필유내우).’ 그러니 내부의 문제부터 정리하자는 의견이었다. 춘추 8국의 역사를 左丘明(좌구명)이 정리한 ‘國語(국어)’에 나오는 내용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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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45
인빈지단人貧智短 - 사람이 구차해지면 지혜가 옅어진다.

인빈지단(人貧智短) - 사람이 구차해지면 지혜가 옅어진다.

사람 인(人/0) 가난할 빈(貝/4) 지혜 지(日/8) 짧을 단(矢/7)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어서인지 가난을 인정하고 반어적으로 말한 경구가 제법 된다. ‘너무 적게 가진 것이 가난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이 가난하다’, ‘가난은 수치가 아니라 단지 불편한 것’, ‘아무도 가난을 훔치려 하지 않을 테니까 그 사람이 부자‘ 등등이다. 孟子(맹자)는 ’빈천한 상황에서도 의지에 변함이 없다면(貧賤不能移/ 빈천불능이)‘ 그런 사람이 대장부라고 했다. 하지만 以食爲天(이식위천), 밥이 하늘인 보통 사람들이야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인데 대장부고, 도덕이고 모두 사치일 뿐이다.

중국 堯(요)임금 때 태평성대를 노래한 鼓腹擊壤(고복격양)은 백성들이 굶주리면 나올 수 없다. 한 노인이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면서 덕을 찬양한 것은 요임금이 농민들의 의식주 걱정을 하지 않게 했기 때문이다. 가난에 대해서 가장 직설적인 말이 있다. 사람이 가난하면(人貧) 지혜가 얕아진다(智短)고 했다. 먹고 살기 바쁘다면 다른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사람이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면 생활을 하는데 불편할 뿐 아니라 어떤 일에 닥쳐도 헤쳐 나갈 용기를 잃고 매사에 나약하게 된다. 禪宗(선종)의 통사로 알려진 ‘五燈會元(오등회원)’에서 유래한 말이다.

宋(송)나라 때 普濟(보제)의 명으로 제자 慧明(혜명) 등이 傳燈錄(전등록), 廣燈錄(광등록) 이하 다섯 가지의 燈史(등사)를 모았다는 이 책은 禪(선)의 대의를 밝힌 입문서로 평가된다. 한 수행승이 五祖法演(오조법연) 선사에게 조사님의 가르침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은지 여쭈었다. 선사가 말했다. ‘사람이 구차해지면 지혜가 짧아지고, 말이 여위면 털이 길어 보이는 법이다(人貧智短 馬瘦毛長/ 인빈지단 마수모장).’ 자신을 변화시키는 수행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어떠한 면에서든 단점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明心寶鑑(명심보감)’ 에서는 이 말을 확장한다. ‘사람이 가난하면 지혜가 얕아지고, 복에 이르면 마음이 슬기로워진다(人貧智短 福至心靈/ 인빈지단 복지심령).’ 省心篇(성심편) 상편에 있다.

빈부에 대해 이런 말도 이어진다. ‘가난하게 살면 장터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고, 넉넉하게 살면 깊은 산골에 살아도 친구가 찾아온다(貧居鬧市無相識 富住深山有遠親/ 빈거료시무상식 부주심산유원친).’ 鬧는 시끄러울 료. 管子(관자)가 말한 ‘의식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衣食足則知榮辱/ 의식족즉지영욕)’는 뜻을 몰라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요즘 젊은이들이 발등에 떨어진 문제인 의식주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가정을 꾸리고 나라를 위할 수 있을 텐데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한다. 청년층이 기력을 잃고서야 어찌 앞날의 희망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559.html
kolaswqetsrq 11.02 21:45
전호후랑前虎後狼 -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이리, 재앙이 끝없이 닥치다.

전호후랑(前虎後狼) -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이리, 재앙이 끝없이 닥치다.

앞 전(刂/7) 범 호(虍/2) 뒤 후(彳/6) 이리 랑(犭/7)

한 가지 화를 피하려다 더 큰 화를 당할 때 비유적으로 ‘여우 피해서 호랑이를 만났다’거나 ‘귀신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다’라는 속담을 쓴다. 사나운 늑대, 이리를 만나 전력으로 도망치는데 앞에는 더 무서운 호랑이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진퇴양난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호랑이를 막으려고 전력을 다해 앞문을 막고 있는데(前虎)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오면(後狼) 살아날 길이 없다. 나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일컫는 표현이다. 구덩이를 피하려다 우물에 빠지는 避坎落井(피감낙정)이나 노루를 피하다 호랑이를 만난다는 避麞逢虎(피장봉호, 麞은 노루 장)도 마찬가지다.

後漢(후한) 초기 환관의 폐해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던 때의 이야기다. 3대 章帝(장제)가 죽은 뒤 열 살의 어린 나이로 和帝(화제)가 제위에 올랐다. 임금이 어린 나이에 등극하면 외척이나 환관이 득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화제가 꼭 그런 경우로 이름만 황제였다. 장제의 황후인 竇太后(두태후)와 오빠 竇玄(두현)이 정권을 잡아 좌지우지하게 된 뒤로는 허수아비와 다름없는 화제를 제거하고 직접 왕위에 오르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이 사실을 측근을 통해 알게 된 화제는 환관 鄭衆(정중)을 시켜 두씨 일족을 체포하도록 했고 그 직전 두현은 자살했다. 큰 우환을 없앴다고 왕권이 강화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환관 정중이 권력을 쥐고 정사에 관여하기 시작해 여기서 싹튼 폐해가 후한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

元(원)나라 문인 趙雪航(조설항)이란 사람이 지은 ‘評史(평사)’에 이 당시를 묘사한 표현이 나온다. ‘두씨가 제거되었지만 환관의 권세가 이로부터 성하게 되었다. 속담에 말하기를 앞문의 호랑이를 막으니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온다고 했다(竇氏雖除 而寺人之權從茲盛矣 諺曰 前門拒虎 後門進狼/ 두씨수제 이시인지권종자성의 언왈 전문거호 후문진랑).’ 절 寺(사)는 관청, 환관, 내시를 나타낼 때는 ‘시’로 읽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71.html
kolaswqetsrq 11.02 21:46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 오륜의 하나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 오륜의 하나

벗 붕(月/4) 벗 우(又/2) 있을 유(月/2) 믿을 신(亻/7)

朋(붕)이나 友(우) 모두 벗을 말한다. 중국에서 老朋友(노붕우, 라오펑유)는 오랜 친구를 뜻한다. 우리나라를 이렇게 불러놓고는 중국이 사드 등으로 온갖 졸렬한 짓거리를 하고 겉으로는 태연한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말이다. 모두 벗을 뜻해도 朋友(붕우)는 차이가 있다. 論語(논어) 첫 머리에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는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의 朋(붕)은 한 스승 아래서 공부한 동문을 뜻한다고 한다. 이에 반해 友(우)는 뜻이 같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다. 朋情(붕정)이란 말은 없고 友情(우정)이 있듯이 아무래도 동문보다는 故友(고우)가 더 가까운 벗이다.

어떤 벗이든 벗 사이에(朋友)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有信)는 이 성어는 三綱五倫(삼강오륜)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인륜의 기준으로 삼아 온 이것은 孔孟(공맹)의 학설에 기초하여 前漢(전한)의 유학자 董仲舒(동중서)가 논한 三綱五常說(삼강오상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삼강은 임금과 신하, 부자,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인 君爲臣綱(군위신강), 父爲子綱(부위자강), 夫爲婦綱(부위부강)이다. 붕우유신은 父子有親(부자유친), 君臣有義(군신유의), 夫婦有別(부부유별), 長幼有序(장유유서)의 뒤에 오는 오륜에 들어간다. 신라 圓光(원광) 법사의 五戒(오계) 중 交友以信(교우이신)과 통하는 말이다.

조선 世宗(세종)대왕 때 三綱行實圖(삼강행실도)를 편찬한 뒤 이에 관한 여러 종류의 책이 발간되었다. 中宗(중종)때 학자 朴世茂(박세무)가 펴낸 ‘童蒙先習(동몽선습)’은 학동들이 배우는 초급교재로 오륜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붕우편에서 논어를 인용하여 정직하고(友直/ 우직), 성실하며(友諒/ 우량), 견문이 많은 (友多聞/ 우다문) 친구를 사귀면 유익할 것이라 했다. 또 ‘벗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고(不信乎朋友 不獲乎上矣/ 불신호붕우 불획호상의)’, ‘어버이에게 순종하지 못한다면 벗들에게서도 믿음을 얻지 못한다(不順乎親 不信乎朋友矣/ 불순호친 불신호붕우의)’.

朱子(주자)가 교열했다는 小學(소학)이 너무 어려워 우리나라에서 쉽게 풀어 쓴 ‘四字小學(사자소학)’에도 ‘사람이 귀한 이유는 오륜과 삼강 때문(人所以貴 以其倫綱/ 인소이귀 이기윤강)’이라고 했다.

오늘날 군신관계는 없어졌고 오륜을 따지면 케케묵었다고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성이 곧은 사람은 알게 모르게 지키게 된다. 너무나 살벌한 범죄가 잦은 사회에서는 이런 바른 사람이 잘 살 수 있게 교육이 이뤄지면 좋겠다..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024.html
kolaswqetsrq 11.02 21:47
불야성不夜城 - 밤에도 대낮같이 밝은 곳

불야성(不夜城) - 밤에도 대낮같이 밝은 곳

아닐 불(一/3) 밤 야(夕/5) 재 성(土/7)

글자대로 하면 낮만 계속돼 밤이 오지 않는 성이란 뜻이다. 밤에도 등불이 휘황찬란하게 켜져 있어 낮처럼 밝은 곳은 장관이다. 북극이나 남극에 가까운 지방에서 한여름에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白夜(백야)를 연상시킨다. 번쩍이는 불빛에 항상 사람들로 붐벼 번잡한 밤거리 풍경을 비유하거나 경기가 아주 좋아 흥청대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그런데 不夜(불야)는 밤이 없어서가 아니고 특이하게 지명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중국 北宋(북송)의 지리학자 樂史(악사, 930~1007)가 편찬했다는 현존 가장 오래된 지리지 ‘太平寰宇記(태평환우기)’에 처음 등장한다. 寰은 임금고을 환. 현재의 山東省(산동성) 煙台(연태) 부근이었다는 東萊郡(동래군)의 17개 현 중에서 不夜縣(불야현)이 있었다고 한다. 부분의 표현을 보자.

‘불야성은 춘추시대 내자가 설치한 읍으로 동쪽에서 해가 떴으므로 불야로 이름 지었다(不夜城卽春秋時萊子所置邑 以日出於東 故以不夜爲名/ 불야성즉춘추시래자소치읍 이일출어동 고이불야위명).’ 다른 곳에서도 등장하지만 실제로 밤에 해가 떴다기보다 가장 일찍 일출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해석한다.

지명의 유래는 그렇다고 하고 오늘날 쓰임새와 비슷하게 사용한 시가 있다. 唐(당)나라 때 여러 관직을 지냈던 문학가 蘇頲(소정, 670~727)의 ‘廣達樓下夜侍酺宴應製詩(광달루하야시포연응제시)’ 중 한 구절이다. 頲은 곧을 정, 酺는 연회 포. ‘누대의 빼어난 풍경이 실로 봄 동산이라, 등불은 연이어져 불야성과 같구나(樓臺絶勝宜春苑 燈火還同不夜城/ 누대절승의춘원 등화환동부야성).’ 휘황찬란한 등불이 밤을 밝힌 것이 번화한 도심의 거리를 가리키게 됐다.

우리 시문에서도 많이 보이는데 조선 중기 문신 金尙憲(김상헌, 1570~1652)의 ‘淸陰集(청음집)’에 실린 한 구절만 보자. ‘명월궁의 궁궐 안은 불야성을 이뤘는데, 계수나무 가지 잡고 장생술을 배우누나(明月宮中不夜城 攀援桂樹學長生/ 명월궁중불야성 반원계수학장생).’ 攀은 더위잡을 반.

밤에도 불이 환한 거리는 보기만 해도 풍성하다. 코로나19로 어렵다며, 모두들 웅크리고 있어 곳곳에서 비명이 들린다. 흥청망청 낭비도 좋지 않지만 불 꺼지지 않는 거리는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47.html
kolaswqetsrq 11.02 21:48
좌중유강남객座中有江南客 - 자리에 강남 손님이 있다, 말을 삼가야 할 인물이 있다.

좌중유강남객(座中有江南客) - 자리에 강남 손님이 있다, 말을 삼가야 할 인물이 있다.

자리 좌(广/7) 가운데 중(丨/3) 있을 유(月/2) 강 강(氵/3) 남녘 남(十/7) 손 객(宀/6)

강의 남쪽지방을 일컫는 江南(강남)은 지역마다 다수 있다. 강남이라 하면 서울 漢江(한강)의 남쪽으로 많은 사람이 알아듣는다. 개발된 지 50년 조금 넘었어도 대표적인 부촌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隨友江南(수우강남)이나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고 할 때의 강남은 물론 우리나라가 아니다.

중국에서 長江(장강)이라 불리는 양쯔강揚子江/ 양자강의 남쪽을 가리킨다. 이중삼중의 은유가 있어 복잡하지만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가운데(座中有) 강남에서 온 손님이 있다(江南客)는 말은 기피하거나 경계해야 할 인물이 있으므로 말을 조심하라는 것을 비유한 성어다.

우선 唐(당)나라 말기 鄭谷(정곡, 849~911)이란 시인의 시구부터 보자. 정곡은 7세 때부터 시를 잘 지었다고 하며 全唐诗(전당시)에 300곡이 넘는 시가 수록돼 있다는 대시인으로 꼽힌다. 그가 지은 ‘席上貽歌者(석상이가자)’란 시의 뒷부분이다.

‘좌중에 또한 강남의 나그네 있으니, 봄바람 향해서 자고새를 노래하지 마세요(座中亦江南客 莫向春風唱鷓鴣/ 좌중역강남객 막향춘풍창자고).’ 鷓鴣(자고)는 꿩과의 메추라기와 비슷한 자고새를 말하는데 당시 유행했던 노래 자고곡을 가리켰다고 한다. ‘자고새는 날 때 남쪽으로만 날지 북쪽을 향하지 않는다(鷓鴣飛但南 不向北/ 자고비단남 불향북)’는 특성을 지녔다고 여러 책에서 설명한다.

또한 자고새의 우는 소리가 ‘가면 안 돼, 형‘이란 뜻의 行不得也哥哥(행부득야가가)라고 들려 슬프고 구성진 가락으로 여겼다. 그래서 자고를 노래한 가사마다 헤어질 때 험난한 인생살이나 이별의 슬픔을 표현했다고 한다.

만약 사람의 가슴 속을 후벼 파는 애절한 이 노래를 부르면 자고새의 울음소리의 의미를 알고 있는 강남의 손님은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게 된다. 분위기 깨는 자고새의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한 것에서 자리를 같이 한 사람 중에 기피하거나 경계해야 할 인물이 있다는 뜻으로 사용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을 제자 迦葉(가섭, 葉은 잎 엽, 고을이름 섭)만이 알아듣고 拈華示衆(염화시중, 拈은 집을 념)의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 특수한 전문가들의 모임 말고 일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강남의 손님만 알아듣는 고차원의 이야기를 한다고 흥미를 돋울 수는 없다.

그렇다고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도사 앞에서 요령 흔든다’고 핀잔만 받는다. 어디까지나 청중의 성향이나 수준을 잘 알고 이야기를 끌어가야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말로써 인기를 끄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05.html
kolaswqetsrq 11.02 21:48
상저옥배象著玉杯 -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 하찮은 낭비가 사치로 이어짐

상저옥배(象著玉杯) -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 하찮은 낭비가 사치로 이어짐

코끼리 상(豕/5) 나타날 저(艹/9) 구슬 옥(玉/0) 잔 배(木/4)

‘산호 기둥에 호박 주추다’란 말이 있다. 귀한 珊瑚(산호)로 기둥을 세우고 보석 琥珀(호박)으로 주춧돌을 세웠으니 호화의 극치다. 아름다운 비단 옷에 흰 쌀밥, 요즘은 크게 사치는 아닌데도 錦衣玉食(금의옥식)도 호화생활을 뜻했다.

唐(당)의 杜牧(두목)이 阿房宮(아방궁)의 秦始皇(진시황) 생활을 묘사한 것이 있다. ‘귀중한 정이 가마솥 같고, 금은 흙덩이에 진주는 조약돌 취급(鼎鐺玉石 金塊珠礫/ 정쟁옥석 금괴주력)’했으니 굴러다니는 것이 보석이었다. 鐺은 솥 쟁, 礫은 조약돌 력.

상아로 만든 젓가락(象著)과 옥으로 만든 술잔(玉杯)도 옛날에는 사치품이었다. 이것을 태연히 만들게 하고 사용한 사람이 중국 商(상)나라 紂王(주왕, 紂는 주임금 주)이라면 그럴 듯하다. 앞서 夏(하)나라 桀王(걸왕)과 함께 桀紂(걸주)로 불리는 폭군의 대명사다. 妲己(달기, 妲은 여자이름 달)라는 요녀에 빠져 酒池肉林(주지육림)에서 질탕하게 향락을 즐겼고, 간하는 충신들에겐 숯불로 달군 구리기둥을 건너가게 한 炮烙之刑(포락지형, 炮는 통째로구울 포)으로 죽였으니 악명으로 걸왕을 능가했다.

주왕이 상아로 젓가락을 만들게 하자 箕子(기자)가 걱정했다. 기자는 주왕의 숙부인데 학정에 남아나는 사람이 없는 중에 나라의 운명을 생각했다. ‘상아 젓가락을 쓰게 되면 토기를 버리고 무소뿔이나 옥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할 것이다(象箸必不加於土鉶 必將犀玉之杯/ 상저필불가어토형 필장서옥지배).’ 鉶은 국그릇 형. 다음은 거기에 맞게 진귀한 음식을 담으려 하고, 그 다음은 먹을 때의 복장, 그 다음은 호화스런 궁전을 생각할 것이다.

점차로 사치가 도를 넘을 것이기 때문에 상아 젓가락이 단초가 되어 국가의 재정을 고갈시키고 멸망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 뒤 주왕의 사치와 포학이 지나쳐 나라는 망했다. ‘韓非子(한비자)’의 喩老(유로)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 조금 잘 살게 되면 지난 세월의 고생은 잊고 싶다. 그렇다고 물 쓰듯이 낭비에 집착하면 오래지 않아 옛날로 돌아간다. 상아 젓가락 하나를 보고 사치의 지름길임을 알아채는 지혜는 없더라도 작은 것의 의미는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93.html
kolaswqetsrq 11.02 21:49
매륜남비埋輪攬轡 - 수레를 묻고 고삐를 당기다, 옳은 일을 위해 결연히 나서다.

매륜남비(埋輪攬轡) - 수레를 묻고 고삐를 당기다, 옳은 일을 위해 결연히 나서다.

묻을 매(土/7) 바퀴 륜(車/8) 잡을 람(扌/21) 고삐 비(口/19)

고삐는 소나 말을 잘 부리기 위해 매단 줄이다. 농사를 짓거나 멀리 이동할 때 인간에 큰 도움을 주는 가축에게 가혹한 처사지만 코의 양쪽을 뚫은 코뚜레나 입에 물린 재갈 등을 끈으로 이어 방향이나 속도를 조절했다. 요즘은 대부분 농기계에 의지하게 되어 고삐는 보기 어렵게 됐어도 일상에서 비유적인 발은 많이 남았다.

긴장을 누그러뜨리거나 조일 때 고삐를 늦춘다, 조인다로 표현한다. 고삐 풀린 망아지는 거칠거나 얽매이지 않은 망나니를 나타낸다. 나쁜 일을 아무리 남모르게 한다고 해도 계속하면 들키고 만다는 속담 ‘고삐가 길면 밟힌다’는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하다.

고삐를 뜻하는 한자 轡(비)가 어려운 편이라 사용된 성어도 적다. 앞의 속담을 한역한 轡長必踐(비장필천)과 함께 고삐를 잡는다는 攬轡(남비)가 그 중에 든다. 말을 타려면 고삐를 잡아야 하고, 이것은 관리에 임용되어 임지로 떠나는 것을 나타냈다. 중국 後漢(후한) 후기의 范滂(범방, 137~169, 滂은 비퍼부을 방)에서 유래한

攬轡澄淸(남비징청)은 관리가 되어 천하의 폐해를 바로잡으려는 큰 뜻을 말한다.

청렴하고 꼿꼿했던 선비 범방은 도적떼가 우글거리는 지역에 순찰 명을 받자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고는 격정에 차 천하를 평정할 뜻을 밝혔다(登車攬轡 慨然有澄淸天下之志/ 등거남비 개연유징청천하지지)’고 ‘後漢書(후한서)’에 전한다.

수레바퀴를 묻는다(埋輪)는 말은 굳은 의지를 표현했다. 역시 후한 때 張綱(장강, 108~143)이란 관원의 고사에서 나왔다. 順帝(순제)의 왕후가 여동생인 점을 이용하여 횡포를 부린 梁冀(양기)는 나중에 왕까지 폐하고 옹립하는 등 무소불위의 세를 과시했다.

지방서도 관리들의 비리가 들끓자 순제가 8명의 사자에게 규찰의 명을 내렸다. 이중 가장 직위가 낮았던 장강은 승냥이와 늑대가 조정에서 날뛰는데 어디서 여우를 벌하겠는가 하며 ‘홀로 낙양 수도에 수레를 묻고(獨埋其車輪於洛陽都亭/ 독매기거륜어락양도정)’ 양기를 탄핵했다. 장강의 이런 목숨을 내건 거사에 조정은 발칵 뒤집혔고 후일 양기는 권세를 빼앗겨 자살한다.

수레바퀴를 묻고 말의 고삐를 잡는다는 후한 때의 두 관원의 이야기에서 온 이 성어는 나라를 위한 결연한 의지를 말해준다. 임지로 가면서 지역의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범방과, 명을 어기면서 더 큰 부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분연히 일어선 장강은 어찌 보면 처음 행동이 상반된다.

대부분의 공직자가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중에서도 일부에서 비리가 잇따르는 것은 이들과 같은 뚜렷한 공직관의 부족에서 온다. 빈둥빈둥 세월만을 축내거나 부당함을 알면서도 상부 지시라며 이행하는 것이 바로 적폐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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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50
골경지신骨鯁之臣 - 직언하는 강직한 신하

골경지신(骨鯁之臣) - 직언하는 강직한 신하

뼈 골(骨/0) 생선뼈 경(魚/7) 갈 지(丿/3) 신하 신(臣/0)

욕심이 없이 맑고 깨끗한 것이 淸廉(청렴)이다. 이것은 공직자의 기본 임무이며 모든 덕의 근원이라고 茶山(다산)은 牧民心書(목민심서)에서 강조했다. 마음이 꼿꼿하고 곧음이 剛直(강직)이다. 청렴한 사람에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주장하며 양보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까지 지니면 錦上添花(금상첨화)겠다. 강직한 사람이라도 자칫 잘못 생각하면 쌓은 명예는 곤두박질친다. ‘사람이 욕심이 생기게 되면 강직이 사라진다(人有慾則無剛/ 인유욕즉무강)’고 朱子(주자)는 近思錄(근사록)에서 경계했다.

임금이나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바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강직한 신하를 생선가시에 비유한 성어는 ‘史記(사기)’에서 유래했다. 직언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마치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정도니 얼마나 아픈 소리일까.

생선뼈 鯁(경)은 쉽사리 굴하거나 양보하거나 하지 않을 만큼 강한 것을 말하는 强鯁(강경)에 쓰인다. 刺客(자객)열전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해 보자. 春秋時代(춘추시대) 吳(오)나라의 闔閭(합려)가 왕이 되기 전 공자 光(광)이었을 때 이야기다.

그는 부왕이 자기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아 숙부들이 차례로 왕이 된 것에 불만이 많았다. 막내 숙부 季札(계찰)이 왕위를 사양하자 둘째 숙부 아들이 왕위를 이어 僚王(요왕)이 되었다. 공자 광은 伍子胥(오자서)가 소개한 자객 專諸(전제)를 후대하며 때를 엿보던 중 요왕이 楚(초)나라를 치러 간 사이 살해하자고 했다. 전제가 말했다.

‘지금 오나라는 밖으로 초나라에 고통을 당하고 있고, 안으로는 조정이 텅 비어 믿을 만한 신하가 없습니다(方今吳外困於楚 而內空無骨鯁之臣/ 방금오외곤어초 이내공무골경지신).’ 왕을 없앨 기회라는 말에 거사를 일으켜 성공하고 공자 광은 왕위에 올랐다.

여기서 인용된 곳이 많다. ‘漢書(한서)’ 杜周傳(두주전)에는 ‘조정에 강직한 신하가 없다(朝無骨鯁之臣/ 조무골경지신)’고 했고 韓愈(한유)의 ‘爭臣論(쟁신론)’에는 ‘사방의 사람들과 후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조정에 직언하는 골경지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使四方後代 知朝廷有直言骨鯁之臣/ 사사방후대 지조정유직언골경지신)’고 표현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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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50
만사형통萬事亨通 -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다.

만사형통(萬事亨通) -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다.

일만 만(艹/9) 일 사(亅/7) 형통할 형(亠/5) 통할 통(辶/7)

모든 일이 뜻대로 생각대로 잘 되어 가는 것이 亨通(형통)이다. 亨(형)은 제사라는 뜻도 있어 조상신을 잘 모시면 일이 잘 풀린다는 뜻이 나왔다고 한다. 여기에 온갖 일, 여러 가지 일 萬事(만사)가 붙어 강조하며 바라는 대로 두루두루 잘 되어가는 것을 뜻했다.

일이 자기 뜻과 같이 萬事如意(만사여의)하다고 萬事太平(만사태평)으로 萬事無心(만사무심)하면 자칫 萬事瓦解(만사와해)되어 萬事休矣(만사휴의)로 헛수고가 된다. 인간의 길흉화복은 돌고 돈다는 의미의 ‘인간 만사는 새옹지마’라는 속담과 같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도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실패하기 쉬우니 조심하라는 뜻도 담겼다.

‘그가 손대는 일마다 만사형통이다‘, ’새해에는 하시는 일마다 만사형통하시길‘. 이런 식으로 평소에 자주 써 익은 말이 정작 유래를 보면 쉽지 않다. 유교 三經(삼경)의 하나이자 占卜(점복)의 원전이라 하는 ’易經(역경)‘에 나온다. 하늘은 양, 땅은 음, 해는 양, 달은 음 등 천지만물은 음과 양으로 되어 있는데 그 위치나 생태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관찰하여 八卦(팔괘)와 六十四卦(육십사괘)를 만들었다고 한다. 亨(형)은 64괘중 첫 번째 乾卦(건괘)에 나오는 四德(사덕) 중 하나이다.

복잡하지만 조금 더 옮겨보면 하늘이 갖추고 있는 네 가지 덕이 사덕으로 바로 元亨利貞(원형이정)이다. 元(원)은 만물이 시작되는 때로 봄에 속하며 仁(인)으로 이루어지고, 亨(형)은 만물이 성장하는 때로 여름에 속하며 禮(예)로서 실천하는 것이라 했다. 利(이)는 만물이 완수되는 때로 義(의)로 행해지고, 貞(정)은 만물이 완성되어 智(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건괘는 왕성하고 정력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건은 굳세다(健)는 뜻으로 자연으로 보면 하늘이 움직이는 것이고, 사람으로 보면 운이 뻗어가는 것이며, 사업으로 보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점이다. 형통하다는 말은 여기서 나와 어떤 일을 하든지 뜻대로 이루어져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것을 뜻하게 됐다.

이전 정권 때 모든 일은 대통령의 형을 통해야 이루어진다며 원뜻을 비틀어 ‘萬事兄通(만사형통)’이란 말이 유행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순리대로 돌아간다. 권력에 취해 인위적으로 억지를 부리니 사달이 난다. 비아냥거리는 성어가 재미는 있지만 씁쓸한 세태를 나타내기도 해 바람직하지는 않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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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51
원후취월猿猴取月 - 원숭이가 달을 잡다, 분수를 모르고 행동하다 화를 입다.

원후취월(猿猴取月) - 원숭이가 달을 잡다, 분수를 모르고 행동하다 화를 입다.

원숭이 원(犭/10) 원숭이 후(犭/9) 가질 취(又/6) 달 월(月/0)

포유류 중에서 인간 다음으로 지능이 발달했다고 하는 원숭이는 그만큼 영리하다. 뿐만 아니라 새끼가 끌려가는 것을 뒤따르다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끊어졌다는 母猿斷腸(모원단장)의 애틋함도 있다. 하지만 원숭이는 얄팍한 자기의 머리만 믿은 나머지 곧잘 속아 넘어간다. 똑같은 결과인데도 좋아라하는 朝三暮四(조삼모사)가 대표적이다.

원숭이(猿猴)가 물에 뜬 달을 잡으려한다(取月)는 이 성어도 재주만 믿고 분수에 맞지 않게 행동하다 화를 당하는 것을 뜻한다. 원숭이를 나타낸 글자는 사이가 나쁜 犬猿(견원)에서 보듯 猿(원)이 일반적이고 猴(후)는 작은 원숭이라 한다. 이외에도 猱狖(노유), 沐猴(목후), 獼猴(미후), 猢猻(호손) 등도 모두 원숭이를 가리킨다.

심오한 비유의 이 말은 불교의 경전 ‘摩訶僧祈律(마하승기율)’에서 유래했다. 비구와 비구니의 계율을 정했다는 이 경전은 5세기 초 東晉(동진)에서 華嚴經(화엄경)을 번역한 인도 승려 佛陀跋陀羅(불타발타라)와 파미르 고원을 넘어 인도로 간 중국 최초의 승려 法顯(법현)이 공동 번역한 것이라고 자료는 설명한다.

부처님이 여러 비구니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옛날 伽尸(가시)라는 나라에 이름이 波羅奈(파라나)라는 성이 있었는데 성 안 한적한 곳에 원숭이 무리 오백 마리가 살았다. 한 수행자가 숲 속을 지나가고 있을 때 큰 나무 아래의 큰 우물에 달이 비치고 있었다.

원숭이 우두머리가 무리에게 달이 우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데 세상이 어두워지기 전에 꺼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들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 의논했으나 묘책이 떠오르지 않아 물었다. 대장이 꺼내는 방법을 안다며 일러준다.

‘내가 나뭇가지를 잡고 너는 내 꼬리를 잡아(我捉樹枝 汝捉我尾/ 아착수지 여착아미), 계속 잇고 이어서 늘어뜨리면 꺼낼 수 있다(展轉相連 乃可出之/ 전전상련 내가출지).’ 어떻게 됐을까. 좋은 생각이라며 원숭이들은 서로의 꼬리를 잡고 길게 늘어뜨렸지만 물에 이르기도 전에 무게에 못 이겨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원숭이들은 모두 물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一切獼猴墮井水中/ 일체미후타정수중).’

아무리 능숙하게 잘 하는 사람이라도 실수할 때가 있다. ‘나무 잘 타는 잔나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이 말해주는 바다. 모두들 우수하다고 자부하는 집단에서도 어리석은 계책을 내는 수가 있으니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뛰어난 머리를 믿은 나머지 결과의 잘못은 좀처럼 인정하지 않고 변명만 한다.

다른 의견을 듣지 않는다면 ‘아무리 똑똑한 원숭이라도 우리 속에 가둬 두면 돼지와 같아진다(置猿於柙中 則與豚同/ 치원어합중 즉여돈동)’는 韓非子(한비자)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柙은 우리 합.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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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52
배중사영杯中蛇影 - 술잔 위에 비친 뱀의 그림자. 지나친 근심

배중사영(杯中蛇影) - 술잔 위에 비친 뱀의 그림자. 지나친 근심

잔 배(木/4) 가운데 중(丨/3) 긴뱀 사(虫/5) 그림자 영(彡/12)

편안한 친구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데 술잔 속(杯中)에 뱀의 그림자(蛇影)가 어른거린다. 이 친구가 술에 무엇을 탔을까 의심하니 술맛이 싹 달아난다. 믿을 만한 친구인데 그럴 리가 없다며 억지로 마셨지만 속이 영 안 좋다. 이와 같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의심을 품고 지나치게 근심을 하거나 자기 스스로 걱정을 사서 하는 경우에 이 성어를 쓴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여 늘 안절부절 지낸 杞(기)나라 사람 杞人憂天(기인우천)과 꼭 같은 말이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 이후 세워진 晉(진)나라에 樂廣(악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독학을 했어도 영리하고 신중해서 주위의 칭찬이 자자했다. 장성한 뒤 벼슬자리에 천거되어 河南(하남) 지역의 태수로 있을 때의 일이다.

친한 벗을 불러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자주 들르던 친구가 그 이후 연락이 두절되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악광이 편지로 연유를 물었더니 답신이 왔다. 지난 번 술을 마실 때 권한 술잔에 조그만 뱀 한 마리가 보였다고 했다. 억지로 마셨더니 이후 병이 나 지금까지 누워 있다는 것이다.

술은 관가의 자기 방이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친구의 뒤편 벽에 뱀이 그려진 활이 걸려 있었다. 악광이 다시 친구를 불러 그 자리에서 술을 따르며 또 뱀이 보이느냐고 물었다. 전과 똑 같이 보인다고 대답하자 악광이 뒷벽을 가리키며 박장대소했다.

‘그건 저 활에 그려져 있는 뱀의 그림자(杯中蛇影)일세.’ 친구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그리고선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했다. ‘晉書(진서)’ 악광전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後漢(후한) 말 학자 應劭(응소, 劭는 아름다울 소)가 쓴 ‘風俗通義(풍속통의)’에는 등장인물이 應郴(응침, 郴은 고을이름 침)과 杜宣(두선)으로 다를 뿐 내용은 같이 나온다.

거짓은 더 큰 거짓이 필요하고 의심은 의심을 낳는다. 국가나 정당이나 이해집단을 막론하고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의 안을 너무 이것저것 따지며 의심을 한다면 한이 없다. 선의로 받아들일 것은 받고 줄 것은 줘야 앞으로의 거래가 원활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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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52
무망재거毋忘在莒 - 거나라 때의 고난을 잊지 말라, 항상 어려웠을 때를 기억하라.

무망재거(毋忘在莒) - 거나라 때의 고난을 잊지 말라, 항상 어려웠을 때를 기억하라.

말 무(毋/0) 잊을 망(心/3) 있을 재(土/3) 모시풀 거(艹/13)

젊은 시절의 고생은 성인이 된 이후 성공 여부에 큰 영향을 끼친다. ‘초년고생은 은을 주어도 안 바꾼다’는 말이 있다. 사서 고생을 할리야 없겠지만 어쩔 수 없어 한 고생이라도 성공한 뒤 돌아보면 큰 도움이 됐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초년고생은 만년 복’이라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조그만 제후국이 있었던 莒(거)땅에서 어려운 생활을 했던 때를 잊지 말라(毋忘)고 한 이 성어도 같은 의미다. 고생 끝에 낙이 왔다고 그 시절을 잊으면 다시 화가 닥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비유다. 이전에 나왔던 勿忘在莒(물망재거)와 같은 말인데 두 군데서 유래를 찾는다.

春秋五霸(춘추오패)가 되기 전의 齊(제)나라 공자 小白(소백)은 왕권다툼을 피해 鮑叔牙(포숙아, 鮑는 절인물고기 포)와 함께 周(주)나라 제후국인 莒(거)나라에 있었다. 管仲(관중)이 섬겼던 공자 糾(규)보다 한 발 빨리 왕위에 올라 桓公(환공)이 된 소백은 능력 위주로 현신을 모아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다.

관중은 환공을 해치려 했음에도 管鮑之交(관포지교)로 알려진 포숙아의 추천으로 기용됐고, 마부 출신의 甯戚(영척, 甯은 차라리 영)도 중용됐다. 환공이 어느 때 술자리를 갖고 포숙아에게 축하의 말을 청했다. ‘왕께서는 거 땅에서 나올 때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使公毋忘出奔在於莒也/ 사공무망출분재어거야).’ 고생했을 때를 기억하라는 조언은 ‘呂氏春秋(여씨춘추)’의 直諫(직간)편에 실려 있다.

세월이 흐른 뒤 戰國時代(전국시대) 제나라 湣王(민왕, 緡은 돈꿰미 민)때 북쪽의 강국 燕(연)나라의 침입을 받았다. 원한이 있었던 연나라는 명장 樂毅(악의)를 영입하여 제나라 곳곳을 유린하며 연전연승했다. 겨우 남은 2개의 성 중에서 莒城(거성)에 피신했던 민왕이 피살되는 등 풍전등화였을 때 백성들이 받든 장군 田單(전단)이 유언비어를 퍼뜨려 악의를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이어 소 1000 마리의 꼬리에 기름 적신 갈대를 매달고 불을 붙인 채 적진을 휘저은 火牛計(화우계)로 완전히 연나라 군대를 내쫓았다. 은신하던 왕자를 찾아내 ‘거 땅에서 찾아내 襄王(양왕)으로 맞아들이고(迎襄王於莒/ 영양왕어거)’ 사직을 지켰다. 망하기 직전의 제나라를 거성이 지킨 셈이다. ‘史記(사기)’ 전단 열전에 나온다.

중국에 인접한 臺灣(대만) 영토 진먼다오金門島/ 금문도에는 중공군의 야습과 집중 포격을 막아낸 곳곳에 이 성어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대만은 대륙의 온갖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어려움을 잘 이겨냈기 때문에 오늘의 번영을 이어가고 있다.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고생했을 때는 까맣게 잊고 흥청망청하다 전 국민이 어려움에 빠진 남미의 여러 나라와는 대조적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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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53
선견지명先見之明 -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아는 지혜

선견지명(先見之明) -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아는 지혜

먼저 선(儿/4) 볼 견(見/0) 갈 지(丿/3) 밝을 명(日/4)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있다면 행복할까. 모두들 그에 대비하느라 현재의 삶을 소홀히 하기 쉬워 큰 복은 아닐 듯싶다.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알아버리면 항상 끝없는 기쁨과 공포가 뒤섞여 한 순간도 평화스러울 때가 없어진다는 서양 격언이 있다.그래서 지혜가 깊은 전지전능한 신도 미래의 일을 모르도록 캄캄한 밤으로 덮었다고 했다. 앞날을 알지 못하므로 설사 오늘 모든 것을 잃더라도 아직 미래가 남아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 역시 모르는 것이 낫겠다.

운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물이 앞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알 수 있다면 일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내다보고(先見) 그에 대한 지혜(之明)를 발휘하는 것은 큰 능력이다. 이 성어는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曹操(조조)의 휘하 모사로 유명한 楊修(양수)의 일화에서 비롯된다.

양수는 폭넓은 지식과 깊이 있는 독서로 항상 조조의 의중을 읽어내는 데에 탁월했다. 그에 관한 성어로 닭의 갈비라는 뜻의 鷄肋(계륵)이 유명한데 그다지 큰 소용은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점령지의 철수란 조조의 뜻을 알아챘다.

이런 양수의 재기에 조조는 크게 평가하면서도 깊은 신임은 주지 않았다. 양수가 원래 官渡(관도) 전투에서 조조에 패한 袁紹(원소)의 생질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여러 번 의중을 미리 알아챈 양수를 조조는 후환이 두려워 죽여 버렸다. 양수의 부친 楊彪(양표)는 아들을 잃고 비통해하다 조조가 야윈 이유를 묻자 대답했다.

‘저는 부끄럽게도 김일제와 같이 앞을 내다보지 못해 어미소가 송아지를 핥아주는 마음뿐입니다(愧無日磾先見之明 猶懷老牛舐犢之愛/ 괴무일제선견지명 유회로우지독지애).’

金日磾(김일제, 磾는 )는 武帝(무제)때 匈奴(흉노) 출신으로 자신의 아들이 황제에 무례하다며 죽였다. 그와 같이 못해 아들을 죽게 했다는 것이다.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미래의 일을 지각할 수 있는 예지력은 큰 능력이다. 보통 삶들의 상상을 넘어서는 너무 앞서 나간 능력은 질시와 방해를 받을 수 있다. 양수의 앞을 내다본 재주도 결국 화를 입었다. 그 능력을 조화롭게 펼칠 수 있도록 주위를 설득하는 것도 큰 재주이다. 독불장군은 없는 법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62.html
kolaswqetsrq 11.02 21:54
담화일현曇花一現 - 우담바라 꽃이 한 번 피다, 매우 드물고 신령스런 일

담화일현(曇花一現) - 우담바라 꽃이 한 번 피다, 매우 드물고 신령스런 일

흐릴 담(日/12) 꽃 화(艹/4) 한 일(一/0) 나타날 현(玉/7)

우담바라라는 꽃이 있다. 불교도들은 모두 믿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실재한다고 믿고 싶은 꽃이다. 여러 불경에 단편적으로 등장하여 설명이 조금씩 다르다. 먼저 다양한 표기가 특징이다. 산스크리트어 우둠바라(udumbara)의 음역으로 優曇婆羅(우담바라)가 많이 쓰이고 優曇波羅(우담파라), 優曇跋羅(우담발라), 優曇鉢華(우담발화), 優曇跋羅華(우담발라화), 줄여서 優曇華(우담화) 등으로도 사용된다.

뜻으로 풀이하여 祥瑞雲異(상서운이)하다고 靈瑞(영서), 瑞應(서응), 靈瑞花(영서화), 空起花(공기화)라고도 표기한다. 상상 속에 있다고 하는 이 꽃과 달리 실제로 있는 우담화 역시 인도가 원산지고 열매는 코끼리의 사료라는 높이 3m 정도의 뽕나무과 낙엽교목이다.

우담바라 꽃의 설명도 다양하여 신비감을 높인다. 3000년에 한 번씩 피어나는 꽃으로 인도 신화 속의 지혜의 왕 轉輪聖王(전륜성왕)이 세상을 다스리게 되면 감복해서 함께 등장한다고 했다. 과거칠불 중의 다섯 번째인 俱那含牟尼佛(구나함모니불)이 꽃이 핀 나무 아래서 성불했다고 전한다. 또 隱花(은화)식물인 이 꽃이 피면 상서로운 일이 생길 징조라고 한 곳도 있다.

어떻든 드물고 신령스러운 것을 나타낼 때 이 꽃에 비유하고 久遠(구원)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담바라 꽃(曇花)이 딱 한 번 나타났다(一現)고 한 성어는 여기서 나왔다.

꽃이 한 번 피기까지 3000년의 세월이 흐르고 피었다가도 금방 지는 이 꽃은 아름다운 사물이나 경치는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순간적이라 보기 어렵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말을 듣는 것 또한 때가 있는 것이라고 빗대 하는 말이 됐다. 불경 가운데 가장 존귀하다고 여긴다는 ‘妙法蓮華經(묘법연화경)’에서는 부처님의 묘법을 칭했다.

설명을 옮겨 보자. ‘신기한 묘법은 모든 부처님께서 때가 이르러서야 말씀하시니, 마치 우담바라가 때가 되면 딱 한 번 피는 것과 같으니라(妙法 諸佛如來 時乃說之 如優曇鉢花 時一現耳/ 묘법 제불여래 시내설지 여우담발화 시일현이).’ 그렇게 귀한 말씀이니 믿어야 허망하지 않다는 뜻이다.

특정한 대나무나 영력이 강한 곳에서 피어난다는 신령스런 우담바라가 실제 나타났다고 종종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 경기도 의왕시 淸溪寺(청계사), 경주 祇林寺(기림사), 사천 多率寺(다솔사) 등지다.

이 꽃을 유니콘이나 용처럼 불교 세계관의 환상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겐 작은 물방울과 같은 풀잠자리의 알일 뿐이다. 하지만 고해와 같은 생활을 이어가는 중생들에겐 삼천년의 기적이 아니라 삼년 만에라도 조금 나은 일이 닥쳐오기를 기다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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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55
삼읍일사三揖一辭 - 세 번 읍하고 한 번 사양하다.

삼읍일사(三揖一辭) - 세 번 읍하고 한 번 사양하다.

석 삼(一/2) 읍할 읍(扌/9) 한 일(一/0) 말씀 사(辛/12)

사람이 어떤 자리에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를 잘 알아 처신한다면 모두의 우러름을 받는다. 조금이라도 나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거나 후진에게 물려줄 때가 지났는데도 버티고 있다면 손가락질을 받는다.

이럴 때 적합한 시가 시인 이형기 선생의 ‘落花(낙화)’다. 부분을 인용해 보면.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揖(읍)한다는 것은 두 손을 맞잡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공손히 구부리는 예의 하나이다. 군자가 벼슬길에 나설 때 세 번 읍했으니(三揖) 세 번 사양하여 신중하게 나아가고, 물러날 때는 한 번 사양하고(一辭) 지체 없이 떠난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고대 유가의 五經(오경) 중의 하나인 ‘禮記(예기)’의 表記(표기)편에 실려 전한다.

예기는 孔子(공자)와 그 제자들부터 漢(한) 시대까지 여러 사람을 거쳐 예의 이론과 실제를 논하는 내용을 엮은 책인데 특히 四書(사서) 중의 大學(대학)과 中庸(중용)이 이 가운데 한 편으로 실렸다가 독립된 것으로 유명하다. 공자의 말씀을 옮겨보자. ‘임금을 섬기는데 나아가서 벼슬하는 것은 어렵고 벼슬에서 사퇴하기는 쉬운 것은 곧 지위에 순서가 있어서다.

나아가기를 쉽게 하고 물러나기를 어렵게 하면 어지러워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3번 읍하고서 나아가며, 한번 사양하고서 물러남으로써 어지러움을 멀리하는 것이다(君子三揖而進 一辭而退 以遠亂也/ 군자삼읍이진 일사이퇴 이원란야).’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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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55
설니홍조雪泥鴻爪 - 눈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 눈이 녹으면 없어지는 인생의 무상

설니홍조(雪泥鴻爪) - 눈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 눈이 녹으면 없어지는 인생의 무상

눈 설(雨/3) 진흙 니(氵/5) 기러기 홍(鳥/6) 손톱 조(爪/0)

인생이 길다고 한 말은 어디에서나 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인생은 행복한 자에게는 너무나 짧고, 불행한 자에게는 너무나 길다’고 한 영국 격언만 제외하고 말이다. 생활이 지겹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형편이 나아진 이후로는 길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짧은 인생을 덧없다고 여기고, 욕심껏 이룬 부귀와 영화도 부질없다고 깨우치는 성어는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南柯一夢(남가일몽)과 같이 꿈 이야기만 해도 羅浮之夢(나부지몽), 盧生之夢(노생지몽), 役夫之夢(역부지몽), 一場春夢(일장춘몽), 黃粱之夢(황량지몽)이 있다.

꿈 이야기 말고 대조적인 비유로 나타낸 성어도 제법 된다. 인생이 풀끝에 맺힌 이슬처럼 덧없고 허무하다는 속담 ‘풀끝의 이슬’과 똑 같은 것이 人生如朝露(인생여조로)이다. 바람에 깜박이는 등불과 같다는 人生如風燈(인생여풍등)도 같은 뜻이다. 여기에 눈이나 진흙 위(雪泥)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鴻爪)이란 멋진 표현도 인생의 자취가 눈이 녹으면 사라지는 무상을 나타냈다.

중국 北宋(북송)의 문호 蘇軾(소식, 1036~1101)의 시에서 나왔다. 東坡(동파)란 호로 더 잘 알려진 소식은 부친 蘇洵(소순)과 아우 蘇轍(소철)과 함께 三蘇(삼소)로 불렸다. 서정적인 것이 많은 唐詩(당시)에 비해 철학적인 요소가 짙은 시가 많다는 평을 듣는다.

소식이 동생 소철에게 보낸 시 ‘和子由澠池懷舊(화자유면지회구)’에 성어 구절이 들어 있다. 子由(자유)는 소철의 자, 澠池(면지)는 河南省(하남성)에 있는 지명이라 한다. 澠은 고을이름 면. 앞 부분만 보자. ‘인생은 여기저기 떠도는 것 무엇과 같을까, 기러기가 눈 내린 진흙 벌을 밟아놓은 것 같으니(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踏雪泥/ 인생도처지하사 응사비홍답설니), 우연히 진흙 위에 발자국은 남겼지만, 기러기는 동서 어디로 날았는지 어떻게 알랴(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 니상우연류지조 홍비나부계동서).’ 기러기 발자국은 흔적도 없고, 그것을 남긴 기러기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참으로 무상하다.

사람도 기러기와 다를 바 없다. 부와 명예를 위해 아등바등하고 그것을 이뤘다고 해도 오래 가지 않는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모든 근심을 안고 나라의 문제점을 고치려 의욕을 보이지만 세력이 바뀌면 뒤집어진다. 자신은 영원할 줄 알고 먼 장래의 일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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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56
상경여빈相敬如賓 - 서로 공경하고 손님 대하듯 하다.

상경여빈(相敬如賓) - 서로 공경하고 손님 대하듯 하다.

서로 상(目/4) 공경 경(攵/9) 같을 여(女/3) 손 빈(貝/7)

남을 나와 같이 받들고 위한다면 다툴 일이 없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속담 ‘웃는 낯에 침 뱉으랴’는 누구한테나 겸손한 태도로 대하면 돌아오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 예부터 몸과 마음을 닦고 가정을 잘 이끌어야 다른 큰일도 처리할 수 있다고 修身齊家(수신제가)를 중요시했다. 인간사회에서 가장 작은 단위, 가정에서의 부부 사이라도 존경이 없으면 참다운 사랑은 성립하지 않는다. 부부가 항상 서로 공경하고(相敬) 마치 귀한 손님 대하듯이(如賓) 한다면 다른 사람도 존중할 수 있다.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 다스린다면 모두에게 칭송받는다.

이 성어는 여러 곳에서 사용됐어도 左丘明(좌구명)의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내용이 상세하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의 대부인 胥臣(서신)이 부부가 서로 존경하는 한 사람을 적극 추천한 것에서 유래했다. 臼季(구계)라고도 불린 서신이 어느 때 사신이 되어 冀(기) 지역을 지나다 들판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기결이란 농부가 밭에서 김을 매고 그 아내가 점심상을 받쳐왔는데 서로 공경하는 태도가 마치 손님을 대하는 것과 같았다(見冀缺耨 其妻饁之 敬相待如賓/ 견기결누 기처엽지 경상대여빈).’ 耨는 김맬 누, 饁은 들밥 엽. 이 모습을 보고 서신이 文公(문공)에 적극 추천하여 기용됐고, 일명 郤缺(극결)인 농부는 침략한 나라의 왕을 사로잡는 등 뒤에 큰 공을 세웠다.

後漢(후한) 말기의 은사 龐德公(방덕공)은 謀士(모사)로 이름난 諸葛亮(제갈량)의 스승이자 龐統(방통)의 숙부이다. 그는 약초를 캐며 초야에 묻혀 살아 ‘평생 성 안으로 가 본 적이 없고, 부부가 서로 귀한 손님 대하듯(未嘗入城府 夫妻相敬如賓/ 미상입성부 부처상경여빈)’ 했기에 오랫동안 주위의 존경을 받았다.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의 逸民(일민)열전에 실려 있다.

가까운 부부가 서로 귀히 여기고 대한다면 큰일도 능히 맡아 치르고 길이 우러름도 받는다. 이는 孔子(공자)의 말 ‘문을 나서서는 귀한 손님을 맞는 듯이(出門如見大賓/ 출문여견대빈)’ 하고,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으면(己所不欲 勿施於人/ 기소불욕 물시어인)’ 원망하는 이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와 상통한다.

‘明心寶鑑(명심보감)’에 太公望(태공망)이 했다는 좋은 말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이 아내를 두려워하고, 어진 여자는 남편을 공경한다(癡人畏婦 賢女敬夫/ 치인외부 현녀경부).’ 큰일을 꿈꾸지 않더라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서로가 위하면 된다. 그런데도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속담이 옛말이 될 정도로 실제 금 가는 일이 잦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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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57
거립지교車笠之交 - 신분의 귀천을 뛰어넘은 우정

거립지교(車笠之交) - 신분의 귀천을 뛰어넘은 우정

수레 거(車/0) 삿갓 립(竹/5) 갈 지(丿/3) 사귈 교(亠/4)

친구 사이의 아름다운 우정을 기리는 고사는 쌔고쌨다. 혈연이 아니면서 혈연 이상으로 서로 돕고, 친구의 위험을 자기가 안는 미담이 많아 이 난에서도 다수 소개했다. 이번엔 약간 생소하여 평시엔 잘 사용하지 않는 우정에 관한 성어도 한 번 모아 보자. 먼저 淸(청)나라 金纓(금영)이 편찬한 격언집 格言聯璧(격언연벽)의 구절엔 이런 것이 있다. ‘노름과 오락으로 사귄 친구는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술과 음식으로 사귄 친구는 한 달을 넘기지 못한다.

세력과 이익으로 사귄 친구는 한 해를 넘기지 못하며, 오직 정의로 사귄 친구만이 영원히 이어진다(博奕之交不終日 飮食之交不終月 勢利之交不終年 道義之交可終身/ 박혁지교부종일 음식지교부종월 세리지교부종년 도의지교가종신).’ 연벽이란 쌍벽과 같은 뜻으로 격언을 쌍벽처럼 묶어놓은 책이란 뜻이다.

孔子(공자)님은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 견문이 많은 사람과 사귀라고 益者三友(익자삼우)를 내세웠다. 明(명)나라 蘇竣(소준)은 雞鳴偶記(계명우기)란 책에서 친구를 네 종류로 나누었다.

첫째는 畏友(외우)로 서로 잘못을 바로 잡아주고 도를 위해 노력하는 친구 사이, 둘째 密友(밀우)는 좋은 일이 있을 때나 서로 돕고 생사를 같이 하는 사이, 셋째 昵友(닐우)는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놀 때만 잘 어울리는 사이, 마지막으로 賊友(적우)는 이익을 보면 서로 싸우고 근심거리가 있으면 미루는 사이를 말했다. 昵은 친할 닐. 이익을 두고 서로 싸우는 사이를 친구로 포함시킨 것이 의외다.

신분이나 생활수준이 차이나는 것을 뛰어넘은 친구는 더 아름답다. 伯牙絶絃(백아절현)은 고관과 나무꾼, 水魚之交(수어지교)는 군신관계였다. 한 사람은 수레를 타고, 다른 사람은 패랭이를 쓰고(車笠) 다닐 정도로 차이가 나는 두 친구의 사귐(之交)을 말하는 이 성어도 신분의 귀천을 뛰어넘는다.

宋(송)나라 太宗(태종)의 명으로 李昉(이방, 昉은 밝을 방)이 엮은 ‘太平御覽(태평어람)’에 인용되어 전한다. 越(월)나라 풍속에 우정을 맺을 때의 예를 소개하고 그 때 축원하는 말에 나온다. ‘그대는 수레를 타고, 나는 삿갓을 쓰고 다른 날 만나면 수레에서 내려 서로 읍하세(卿雖乘車我戴笠 後日相逢下車揖/ 경수승거아대립 후일상봉하차읍).’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64.html
kolaswqetsrq 11.02 21:57
◇재벌 회장 팔자는 도대체 뭘까...

◇재벌 회장 팔자는 도대체 뭘까...

한국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팔자가 재벌 팔자이다. 재벌의 오너가 되던지, 재벌가의 가족이 되는 팔자는 만인이 선망한다. 돈이 많기 때문이다. 인간은 돈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전인 조선시대에도 인간 욕망의 순서는 돈이 제일 먼저였다. 재색명리(財色名利)가 그것이다. 색(色)보다도 돈이 앞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러나 돈이 많으면 팔자가 세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싶은 돈을 유달리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수많은 화근을 초래한다. 모두가 달려들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곡괭이를 들고 달려들고, 누구는 부비트랩을, 또는 독극물을 투약하려고 한다. 때로는 색풍(色風)이 몰아치기도 한다. 팔풍(八風) 중에서 색풍도 대단히 강하다.

 "
재벌을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 바라는 게 있다. 그냥 만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대부분 부탁 사항이 있다. ‘여기 좀 보태주세요. 거기 좀 지원해 주세요. 이것 좀 신경 써 주세요.’ 그래서 재벌 회장은 사람을 만날 때 끊임없이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저 사람은 또 어떤 요구를 할까. 어떤 트릭과 함정을 파서 나를 상대하는 것일까?’ 모든 인간을 만날 때마다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 통이 크고 대가 셌던 정주영 회장도 항상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가 돈 달라고 하니까 말이다. 만약 돈을 안 주면 그 사람은 뒤돌아서서 욕을 하게 되어 있다. ‘그 인간 정말 짠돌이다.’
",

돈을 유지하고 관리하다 보면 반드시 배신을 겪는다. 아주 믿었던 주변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몇 번 당하면 인간에 대한 깊은 환멸을 경험한다. 밤에 잠이 오지 않으므로 수면제는 상비약이다. 인간에 대한 깊은 환멸은 장기 중에서 폐에 충격을 준다. 재벌 오너가 폐암에 잘 걸리지 않던가. 꼭 폐암이 아니더라도 근래에 LG 구본무도 70대 초반에 갔고, 한진의 조양호도 70에 갔고, 삼성의 이건희도 70대 초반에 식물인간이 되었다. 보통 사람도 요즘 어지간하면 80세는 넘기는데, 이들 오너들은 평균수명 미달이다. 몸에 좋다는 것은 다 구해서 먹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 간 것은 그만큼 보통 사람보다 훨씬 시달리며 살았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재벌을 운영하려면 오장육부가 강철로 되어있어야 한다. 창업주는 강철도 있지만 3세쯤 가면 멘털이 양철도 안 된다. 재다신약(財多身弱)이 재벌 회장을 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시달리며 사는 ‘심난한’ 팔자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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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1:58
◇봄, 채능본능 발동해 응급실 가지 맙시다

◇봄, 채능본능 발동해 응급실 가지 맙시다

봄꽃이 한껏 꽃망울을 터뜨린 동네 뒷산에 등산객 한 무리가 나타났다. 데크가 깔린 등산로는 운동화 한 켤레면 충분하다. 그걸 몰랐던 게다. 그들은 해외 원정에 나선 듯 중등산화를 신고, 스틱까지 들었다. 등에 진 배낭은 왜 그렇게나 큰지. 등산로 입구의 만개한 벚꽃을 마주한 무리는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다. 무리 중 하나가 소리쳤다. “여기 홑잎나물이 있네.” 무리는 우르르 달려들어, 갓 올라온 화살나무 여린 잎을 뜯었다.

무리가 훑고 간 화살나무는 순식간에 연둣빛에서 잿빛으로 바뀌었다. 뜯은 걸 다 합쳐봐야, 데쳐서 무치면 한 접시도 안 될 텐데. 그 적은 걸 각자 가져갔으니 결국 버릴 거다. 옛말에 “부지런한 며느리는 홑잎나물을 세 번 딴다”고 했으니, 화살나무에는 다시 새잎이 돋을 거다.

20만 년 전 등장한 인류(호모 사피엔스)는 수렵과 채집을 호구지책으로 삼았다. 농경과 목축을 시작한 건 1만 년 전 일이다. 그리고 산업혁명은 18세기 들어서야 일어난 일이다. 요컨대 인류는 19만년간 수렵채집사회에서, 9800년간 농경사회에서, 200년간 산업사회에서 살았던 거다. 몸과 뇌리에 19만년간 새긴 것이 쉽게 사라질 수가 없다.

바닷가를 지나다가도 조개나 소라를 보면 일단 줍고 본다. 혹시 더 있나 주변도 살핀다. 산길을 걷다가 밤이나 산딸기를 보면 우선 챙기고 본다. 인류에게 채집은 본능이다. 그러니 홑잎나물을 발견하자마자 아드레날린이 솟구친 등산객 무리를 비난할 일도 아니다. (채집 금지 경고문이 적힌 곳에서라면 물론 얘기가 다르지만.)

가을이면 “공원에서 밤처럼 생긴 열매를 주워다가 삶아 먹고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는 뉴스가 가끔 들린다. 밤과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다른 그것, 마로니에(칠엽수) 열매다. 독성이 있다.

봄에도 비슷한 뉴스가 들려오곤 한다. 독초를 산나물로 오인해 먹었다가 탈이 난 경우다. 여로(오른쪽)를 원추리(왼쪽)로, 박새를 명이나물(산마늘)로, 동의나물을 곰취로, 삿갓나물을 우산나물로 오인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후자가 식용이고, 전자는 모두 비슷하게 생긴 독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25건의 봄나물 안전사고로 86명이 치료받았고 3명이 사망했다. “구별이 쉽지 않으므로 채취하지 않는 것이 식중독 예방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게 식약처 조언이다. 본능이 때로는 위험할 수 있다.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87.html
kolaswqetsrq 11.02 21:58
◇코로나 사태 이후 두 번째 봄, 꽃밭은 그만 엎자

◇코로나 사태 이후 두 번째 봄, 꽃밭은 그만 엎자

꽃이 피었다. 그렇다고 봄이 온 건 아니었다. 농부가 꽃밭을 갈아엎었고, 공무원이 꽃밭에서 주민을 쫓아냈다. 모두가 집에 틀어박혀 꽃이 지기만 기다렸다. 그렇게 2020년의 봄이 지나갔다.

다시 꽃이 피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두 번째 봄이 시작되었다. 올해도 축제는 열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달라지지 않은 건 아니다.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작년 이맘때 농부들이 유채꽃밭을 엎었던 현장이다. 축구장 10개가 들어간다는 이 초원에 하루 최대 1만 명이 몰린다고 꽃밭을 없앴었다. 올해는 드라이브 스루 형식으로 꽃밭을 개방하고, 온라인 중계도 한다.

국내 최대 봄꽃 축제 진해군항제가 열리는 경남 창원시. 작년에는 축제 취소로도 안심이 안 돼 시청 공무원이 조를 짜 경계 근무를 섰다. 올해도 군항제는 열리지 않는다. 대신 작년처럼 출입을 막지는 않는다. 발열 검사와 거리두기를 강화한다.

주민 우려와 반발을 전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애먼 꽃밭을 갈아엎는 것보단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꽃 피는 자연이 불안하다면, 지구에서 안전한 곳은 없다. 작년 거의 모든 공공 휴양시설이 문을 닫았을 때 국립공원은 개방 원칙을 고수했다. 국립공원마저 폐쇄되면 국민이 갈 곳은 없다고 국립공원공단은 판단했다.

폐쇄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건, 지난 1년의 경험이 증명한다. 방역수칙을 얼마나 엄격히 준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의미 있는 사례가 있다. 제주올레 걷기축제. 원래는 사흘간 열리던 축제를 작년에 23일간 열었다. 하루에 한 코스씩 수천 명이 함께 걷던 방식을 23개 코스에서 15명이 한 코스씩 23일간 걷는 방식으로 바꿨다. 기대 이상의 성과에 힘입어 제주올레는 아예 ‘한 달 걷기’ 여행상품을 기획했다. 올가을 걷기축제도 작년처럼 진행할 계획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특급 호텔과 고급 리조트가 때아닌 호황을 누린 배경엔 예약제와 회원제가 있다. 제한된 소수의 인원만 이용한다는 조건은 코로나 시대 방역지침의 다른 말이었다. 예약 시스템을 축제에 적용한 사례가 서울 여의도 벚꽃축제다. 4월 5일부터 11일까지 열리는 올해 여의도 봄꽃축제는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3500여 명만 입장이 가능하다. 하루 정원은 총 504명이다.

관광 당국에 제안한다. 생각을 달리하자. 축제 없을 생각은 그만하고 축제 방식을 바꾸자. 세상이 변했으니 노는 법도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 코로나 사태는 외려 단체 여행과 싸구려 관광으로 점철된 국내 관광 생태계를 개혁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참에 뜯어고 치자.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48.html
kolaswqetsrq 11.02 21:59
■ 시험장은 난장판 5편

■ 시험장은 난장판 5편

초정 박제가(1750~1805) 역시 ‘과거난장판’이 된 세태를 적나라하게 기록했다. 『마당이 뒤죽박죽 되고...심한 경우에는 망치로 막대기로 상대를 때리고 찌르고 싸우며...문에서 횡액을 당하고...심지어는 남을 죽이거나 압사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북학의》

조직적인 입시비리 때문에 이미 치른 과거 자체가 취소된 경우도 있었다. 1699년(숙종 25년)의 기묘과옥과 1712년(숙종 38년)의 임진과옥이다. 기묘과옥은 1699년 실시된 과거에서 34명이 합격했지만 과거 자체를 취소한 사건이다. 즉 과거 시험의 실무를 담당하는 이들 중에 등록관과 봉미관 등이 있었다. 등록관은 과거 때 필적 부정을 막으려고 응시자의 답안을 베껴 채점관에게 넘기는 실무관이고, 봉미관은 응시자들의 답안지 서명란에 봉인을 붙이거나 떼는 일을 담당한 관원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청탁을 받고 다른 응시자의 봉투를 붙였거나, 답안을 베껴 제출할 때 고쳐 써주거나 해서 부정 합격시킨 사례가 줄줄이 나왔다. 결국 관련자 수십 명이 유배되고, 시험자체가 무효 처리됐다.

13년 뒤에 일어난 임진과옥은 시험관이 친구의 아들과 지인에게 문제를 3건이나 알려주는가 하면, 시험기간이 지난 뒤 답지를 제출하도록 해서 부정 합격시킨 것이 적발됐다. 특히 시험관이 시험 전에 응시생의 집을 두루 찾아다녔던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전원의 합격이 취소되고 관련자 중 3명은 끝내 처형당했다.

이와 같은 폐단을 막기 위한 조치가 여러 차례 마련됐다. 이 같은 부정행위를 막으려고 영조는 수권관(收券官:시험지를 거두는 관리)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답안지를 내지 못하게 하기도 했고, 정조는 시험문제가 발표된 뒤 3시간 이후에 답안지를 제출케도 했다. 한편 처벌의 규정을 더욱 강화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부정행위는 쉽게 사라지지가 않았다. 이런 부정행위는 대체로 첫째 대가를 받고 행해지는 경우, 둘째 권세가에 빌붙어 한 자리를 노리려는 경우, 셋째 인정에 못 이겨 동조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첫째의 경우는 모든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둘째의 경우는 문벌정치가 극성을 부렸던 19세기 이후에 주로 자행되었고, 셋째의 경우는 아주 드물게 나타났다.

1894년에 단행한 갑오개혁에서 성균관을 근대식 교육기관으로 개편하며 과거제는 폐지되었다. 근대적인 관리등용법을 제정하여 종래의 신분구별도 없어지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개화운동의 일환으로 1886년 최초의 근대학교인 육영공원(育英公園)을 설립하여 신식교육을 실시하고, 1895년 ‘교육입국조서(敎育立國詔書)’를 발표하여 소학교·중학교·사범학교·외국어학교·의학교 등을 세워 관립학교 제도를 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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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00
■ 시험장은 난장판 4편

■ 시험장은 난장판 4편

응시생과 시관(試官)이 짜고 부정으로 합격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시관이 시험문제를 미리 일러주어 집에서 답안지를 작성해 제출하는 방법, 응시생이 답안지에 점을 찍는 따위 암표(暗票)를 하여 누구의 답안지인지 알게 해서 시관이 합격시켜주는 방법, 종사원에게서 자호를 알아내 시관에게 알려주는 방법 등등이 동원되었다. 또 시관의 보조역할을 맡은 등록관을 매수해 답안지를 베낄 때 잘못 놓여진 글자나 엉터리 문맥을 바로잡아 고치게 하는 방법도 있었다. 이를 역서(易書)라 한다. 또 종사자를 매수해 다른 합격자의 이름을 답안지에 바꿔 붙이게 했다. 이를 절과(竊科)라 했다. 다른 합격자를 떨어뜨리고 자신이 합격하는 가장 악질적 방법이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응시자가 기하급수로 늘면서 과거장은 더욱 난장판으로 변해갔다. 특히 정기시험(식년시) 외에 부정기로 치르는 특별시험의 경우 과열양상이 두드러졌다.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에 기록된 1800년 3월21~22일의 왕세자(순조)의 책봉을 축하하기 위한 특별과거. 이틀간 치른 이 시험에 문과에만 무려 21만 명이 응시했다. 이틀간 답안지를 제출한 응시생만 해도 7만1498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최종 합격증을 받은 응시생은 단 12명에 불과했다. 경쟁률이 자그만치 1만8000 대 1이었던 것이다. 이때의 한심한 시험장 모습을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경세유표》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문장에 능숙한 자를 거벽(巨擘), 글씨에 능한 자를 사수(寫手), 자리와 우산 같은 기구를 나르는 자를 수종(隨從), 수종 중 천한 자를 노유(奴儒), 노유 중 선봉이 된 자를 선접(先接)이라 이른다.』

과거시험을 보는 유생 1명에 최소 5명이 붙어 역할분담을 하여 도와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6인 1조의 ‘입시비리단’이다. 각자는 어떤 역할을 맡았을까. 우선 과거장에 먼저 들어가야 유리했다. 지금처럼 수험번호에 따라 지정좌석에 앉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조건 먼저 들어가서 현제판(懸題板·과거 때 시험문제를 거는 널판지)에 게시되는 문제를 잘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차지해야 했다. 수만 명이나 되는 응시자를 두고 반나절 사이에 합격자 방을 내걸어야 했으므로, 지친 시험관은 붓을 잡기에도 신물이 나서 눈을 감은 채 답안지를 읽지도 않고 내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일찍 내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때 필요한 자들이 바로 ‘선접’과 ‘수종’그리고 ‘노유’였다. 이들은 과거시험장인 창경궁(춘당대) 밖에서 등불을 밝히며 밤새워 기다렸다가 새벽에 궐문이 열리면 좋은 자리 확보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였다. 우산대와 말뚝, 막대기 등을 휘두르며 달려가 우산일산(日傘)을 펴고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이들이 머리에 검은 유건(儒巾:유생들이 쓰는 관모)을 써서 수험생으로 위장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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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01
■ 시험장은 난장판 3편

■ 시험장은 난장판 3편

1686년(숙종 12년) 4월3일 숙종이 명륜당에서 과거시험을 본다는 소식을 들은 전국의 선비들이 먼저 들어오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다가 8명이나 압사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숙종실록》은 『죽은 자들뿐 아니라 위독한 사람들도 많아서 성균관 주변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부잣집 자식은 입에 아직 비린내가 나고 아직 고무래 丁(정)자도 몰라도 거벽의 글과 사수의 글씨를 빌려 시권(답안지)를 제출한다.』 《경세유표》

이 같은 다산의 말처럼 돈이 있고, 행세깨나 하는 집안의 자제는 고무래 丁자도 모르는 일자무식이라도 ‘거벽’과 ‘사수’, ‘수종’ ‘노유’ ‘선접’ 같은 ‘부정시험단’의 도움으로 합격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시험이 왜 이렇게 난장판이 됐을까. 따지고 보면 조선은 ‘시험의 나라’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보통 5살 때 과거공부를 시작한다면 무려 30년 이상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서 시험을 치러야 겨우 대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국가시험만 4차례 거쳐야 했다. 과거시험은 원칙적으로 3년마다 실시됐다. 수험생들은 한번 떨어지면 최소 3년을 기다려야 했으니 합격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다. 우선 예비시험인 소과의 경우 초시(1400명 선발)를 거쳐 복시를 통과한 200명이 생원(100명)·진사(100명)가 됐다. 생원·진사가 돼야 본시험인 대과(문과)를 치를 수 있었다. 대과 역시 1차 시험격인 초시에서 240명을 선발했고, 다시 이 240명이 2차 시험인 복시에 응시할 수 있었다. 이렇게 4차례의 시험에서 뽑힌 33명의 과거급제자가 꿈에 그리던 문관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행정고시 최종합격자이다. 3년에 한번 씩 불과 33명을 뽑는 행정고시였던 셈이다. 그랬으니 합격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기상천외한 사건이 1705년(숙종 31년) 2월18일 터졌다. 성균관 인근 동네에 살고 있던 여인이 나물을 캐다가 땅속에 묻힌 노끈을 발견하고는 잡아당겨 보았다. 그랬더니 이 노끈은 명륜당 뒤 산 쪽에서 성균관 담장 밑을 통과해서 과거시험장 안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누군가 대나무 통을 묻고 그 속에 노끈을 연결한 것이다. 그 날짜 《숙종실록》은 『이것은 과거장에 들어간 유생이 노끈을 이용해서 외부인이 작성한 답안을 받았다는 것이다.』라고 단정했다.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는데, 이와 같은 노끈이 여러 개 발견된 사실만 추가 확인했고, 범인색출에는 끝내 실패했다. 이것은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컨닝페이퍼를 콧속이나 붓대에 숨기기도 했고, 시험관에게 뇌물을 주거나, 남의 답 베끼기, 대리시험 보기 등등 수법도 다양하고 치밀했다고 한다. 종이로 만든 속옷에 글을 써서 입거나 아주 작은 책을 만들어 옷 속에 숨겨 들어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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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01
■ 시험장은 난장판 2편

■ 시험장은 난장판 2편

과거에 합격한 조선 선비들의 평균 나이는 마흔이었는데, 당시 평균 수명이 마흔이 안 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만큼 과거 시험이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과거급제가 이렇듯 어렵다보니 부정행위도 아주 심하게 일어난 것이다. 온갖 부정행위가 공공연하게 성행함으로써 과거시험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과거의 폐단을 시정하라는 건의도 많았으나, 한번 흐려지기 시작한 제도의 결함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이와 병행하여 뇌물과 정실(情實:사사로운 정에 이끌림), 문벌의 고하, 당파의 소속에 따라 급제와 낙제가 결정되니, 과거제도는 극도로 문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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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시험의 부정행위가 심각해지면서 시험장은 난장판이 되기에 이르렀다. 단속이 느슨한 틈을 타서 양반 자제들은 많은 수종(隨從)을 데리고 들어갔다. 수종들은 책을 가진 자, 시험지를 베껴주는 자, 외부와 연락해 시험답안지를 바꿔치기 하는 자들이었다. 예를 들면 정조 24년에 치른 과거는 10만 명 정도가 들어갔는데 답안지는 3만 명만 냈다고 한다. 그 까닭은 응시생인 양반집 자제들이 과거장에 조수 여러 명을 데리고 들어가는데, 글을 짓는 거벽(巨擘:학식이 뛰어난 사람), 글씨를 써주는 사수(寫手)가 따라 들어갔다. 과거를 보는 사람은 손도 까딱 안 하고 대리시험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좋은 자리를 먼저 잡고 답안지를 다 쓰면 폭력을 써가면서까지 답안지를 대신 내주는 선접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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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먼저 내려고 폭력까지 쓰는 데는 까닭이 있었다. 수만 장의 답안지를 며칠 안에 다 보기 어려우니 실제로는 답안지 앞부분만 보거나, 앞에 낸 수백 장만 채점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과거를 통해 훌륭한 인재를 뽑는다는 본래 취지가 퇴색되고, 일부이기는 했지만 소수 힘 있는 가문의 벼슬 독점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차술(借述) 대술(代述)하는 방법도 있었다. 시험장에 대여섯 명을 데리고 들어가 각기 답안지를 작성하고 그들 속에 제일 잘 쓴 답안지를 골라서 내는 것이다. 이것이 차술(借述)이다. 또 시험장 밖에 글 잘하는 선비를 대기시켜 놓고 종사원을 매수해서 시험 제목을 일러주면 대리 답안을 작성한다. 이 대리답안지를 다시 종사원이 응시생에게 전달하여 제출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술(代述)이다. 심지어 응시생이 시험장 안에서 일단 절차를 밟고 난 뒤 시험장을 빠져 나와 집이나 서당에 앉아 답안지를 작성한 뒤 다시 들어와 제출하는 방법도 있었다. 이 방법은 여러 종사자들을 매수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특별히 권세 있는 집의 자식들이 써먹던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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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02
■ 시험장은 난장판 1편

■ 시험장은 난장판 1편

조선시대 과거는 시험으로 인재를 뽑았다는 점에서 아주 선진적인 제도였다. 과거시험은 종류도 많았으며 여러 단계를 거치게 했다. 하지만, 과거시험의 부정행위도 늘 말썽이 됐다. 그래서 본디 과거제의 부정행위를 방지하려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과거 시험장을 1소(所) 2소(所)로 나누어 시험을 치르게 했다. 부자나 형제 또는 가까운 친척이 한 곳에서 시험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조치였다. 형제가 같은 시기에 시험을 볼 경우 각기 다른 장소에서 보게 한 것이다. 또 시관도 가까운 친척이 응시할 경우에는 이를 피하게 했다. 이를 상피제(相避制)라 했다. 시험장의 입구에는 문지기인 수협관(搜挾官)을 세워두었다. 응시생들은 시험장 안에 종이, 붓, 먹, 벼루 이외에는 어떤 물건도 갖고 들어가지 못했다. 만일 책 따위를 숨기고 들어가다가 들키는 경우는 몇 년씩 응시자격을 박탈하는 조치를 내렸던 것이다. 수협관은 응시생들의 몸수색을 철저히 했다.

또 시험장에는 응시생과 종사자들 이 외 어느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양반 자제들은 평소 나들이할 때 시중을 드는 수종(隨從)을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과거시험장에서는 수종의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만일 잡인이 시험장에 들어간 사실이 발각되면 누구든 즉시 체포해서 수군(水軍)으로 보내게 했다.

응시생의 입장이 끝나면 여섯 자 간격을 두고 앉힌다. 답을 쓸 동안 군데군데 감독관이 배치되어 부정행위를 감시한다. 《경국대전》 같은 책을 들여와 베끼는지, 모르는 글자를 찾으려 옥편을 들추는지, 남의 답안지를 엿보는지, 미리 답안지를 작성해 슬쩍 끼워 넣는지, 외부에서 답안지를 들여와 바꿔치기를 하는지, 두 사람이 답안지를 작성하고서 한 사람의 것만 내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규정을 어기거나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두 번의 응시자격(6년)을 박탈했다. 모의해서 남의 글을 낸 사실이 발각되면 곤장 100대를 치고 징역 3년의 처벌을 내리거나 유배를 보내기도 했다.

응시생에게는 시험지에 이름을 쓰고 종이를 붙여 가리게 했다. 수권관(收券官)은 시험지를 받아 살펴보고 등록관에게 넘겨준다. 등록관은 시험지의 맨 끝에 수험번호인 자호(字號:천자문의 순서대로 써서 매긴 순번)를 쓰고 도장을 찍어 가운데를 자른다. 이름 부분이 잘려나간 시험지를 등록관이 다시 베껴서 시관에게 올린다. 시관이 시험지를 채점할 적에 누구의 답안인지 모르게 한 것이다. 이런 갖가지 방지 장치와 엄한 처벌규정을 두었는데도 부정행위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으며 그 방법도 갈수록 교묘해졌다. 초기에는 비교적 부정행위가 적었으나, 후기로 갈수록 정치적 혼란과 관기 문란을 틈타 부정행위가 만연하게 되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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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03
■ 교육과 과거제도 7편

■ 교육과 과거제도 7편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 꼭 가져가야 했던 물건은 시험 답안을 작성할 시지(試紙)였다. 오늘날은 시험장에서 답안지를 나누어주는 것과 달리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는 응시자인 유생들이 직접 답안지를 장만해서 가져가야 했다. 유생들은 이왕이면 고급스럽고 큰 종이를 준비하려 했기에 조정에서는 종이의 지질과 규격을 정하고 이를 벗어나면 시험에 응시할 수 없도록 했다. 규격은 시험마다 달랐다. 시지를 장만하면 먼저 오른쪽에 응시하는 유생과 사조(四祖,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나 부친의 인적 사항을 기재했다. 이때 응시자들은 합격의 기원을 담아 먼저 급제한 사람들에게 이를 대신 써주기를 청했다고 하는데, 글씨를 써주는 이를 ‘복수(福手:복손)’이라 불렀다고 한다.

응시자들은 정성스럽게 마련한 시지를 들고 잔뜩 긴장한 채 과거시험장에 들어갔다. 시험 문제가 내걸리면 재빨리 답안의 내용을 구상하지만 주어진 제목에 맞춰 좋은 내용을 구성하는 것도, 좋은 글귀를 생각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많은 유생은 제출 시간이 끝날 때까지도 답안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답안을 제출한 유생들은 무사히 시험을 치렀다는 안도감과 합격에 대한 기대 및 불안 속에서 과거시험장을 빠져나갔다.

시험이 끝나면 채점을 하는 시관(試官)들이 바빠졌다. 시관들은 먼저 제출된 답안을 열 장씩 묶어 축을 만들고, 천자문으로 순서를 매겼다. 그리고 같은 축 내에서 다시 순서를 매겼다. 답안 정리가 끝나면 시관들이 채점을 시작한다. 문제마다 상상(上上)에서 하하(下下), 차상(次上), 차중(次中), 차하(次下), 갱(更), 외(外) 등으로 성적을 매겼다. 식년시·증광시·별시 문과는 채점을 더 엄격히 하기 위해 사본을 작성해서 채점했는데, 사본에는 성적을 기재하고 원본에는 ‘일지일(一之一)’과 같은 형식으로 등수를 기재했다. 과거의 등수는 1등 몇 명, 2등 몇 명, 3등 몇 명으로 나뉘며, 같은 등수 안에서 다시 등위를 매겼다. ‘일지일’은 1등 가운데 첫 번째라는 뜻으로 곧 장원이라는 의미다.

최종 단계의 시험인 문과 전시나 생원·진사시 회시 때는 합격 답안에 각각 붉은색과 노란색의 종이를 붙여 시험 종류와 등수를 기재하고 국왕의 재가를 받았다. 첨지(籤紙)에는 ‘무오식년문과병과제십육인망(戊午式年文科丙科第十六人望)’과 같은 글귀를 적었다. 무오년의 식년시 문과에서 병과 제16등 합격자 후보라는 뜻이다. 맨 뒤에 ‘망(望)’이라고 쓴 것은 국왕에게 후보로 추천한다는 의미였다. 채점이 끝나고 합격자가 결정되면 방(榜)을 내어 이를 발표했다. 이와 함께 합격자에게는 답안지를 돌려주었다. 낙방한 답안지는 시관이나 각 관서에 나누어주어 재활용하도록 했다.

문무과와 생원·진사시 합격자에게는 국왕의 도장을 찍어 주었으나, 잡과 합격자에게는 예조인(禮曹印)을 찍어 주었다. 이는 문무과, 생원·진사시보다 잡과가 경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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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03
■ 교육과 과거제도 6편

■ 교육과 과거제도 6편

3년에 33명만 과거에 합격한다는 것은 대단히 좁은 문이다. 평생을 걸고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해야만 했다. 매년 보는 시험도 아니고 합격자 수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양반가문에서는 양반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과거에 응시해야 했다. 그래서 결국 특별시험에서 기회를 더 얻어야만 했다. 심지어 정약용도 후손들에게 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때 그때 행해지는 특별시험에 신속히 응하기 위해서였다.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들은 사조단자(四祖單子)를 제출해야 하는데, 사조단자는 친가와 처가의 증조부, 조부, 부친, 외조부의 명단과 이력을 말한다. 양인과 서얼을 가려낼 수 있는 사조단자를 통해서 양반들은 과거시험에서 우의를 확보했다.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 유생들은 길을 떠나기 위하여 행장을 꾸린다. 과거시험장까지 먼 길을 가고, 또 장기간 외지에서 체류해야 했던 만큼 짐도 많을 수밖에 없다. 영조때 황윤석(黃胤錫)이 상경할 때 가지고 간 물건을 보면 옷이나 세면용품, 의약품처럼 오늘날에도 가져갈 법한 물품들이 있는데, 그 종류는 훨씬 더 많았다. 그중에는 이불과 베개, 자리도 있다. 상대적으로 서비스업이 덜 발달한 시절에 집을 나설 때는 더 많은 물품을 지고 가야만 했다. 그래서 양반들의 여행길에는 늘 짐을 질 노비가 동행했다. 과거를 보러 갈 여비를 마련할 수 없는 집안에서는 과거를 포기해야하는 일도 생겼다.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 빠뜨리면 안 되는 물건이 붓, 벼루, 먹과 같은 문방구다. 그러나 여행에 가져가는 물품인 만큼 지나치게 크거나 무거우면 곤란했다. 여행 중에 가져가는 벼루를 ‘행연(行硯)’, 붓을 ‘금낭필(錦囊筆)’이라고 한다다. ‘행연’은 여행용 벼루라는 뜻으로 보통의 벼루에 비해 크기가 작기 때문에 ‘소연(小硯)’이라고도 했다. 보통의 벼루가 작게는 10센티미터, 크게는 20센티미터인 것에 비하여, 행연은 대개 10센티미터 이하였다. 또 보통의 벼루에는 화려한 문양을 새겨 넣었지만, 행연은 아무런 장식 없이 단순한 형태로 무게와 크기를 줄였다. 여행 중에 사용해야 하는 만큼 실용적인 목적에서 작고 단순한 형태의 벼루를 선호한 것이다.

‘금낭필’은 금낭(錦囊), 곧 비단 주머니에 넣는 붓을 의미한다. 여행 중이라도 붓은 용도에 따라 여러 자루가 필요했다. 여러 자루의 붓을 요령 있게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필낭(筆囊)으로, 여러 자루의 붓을 넣고 말아서 끈으로 묶도록 되어 있었다. 오늘날의 필통인 셈이다. 현전하는 유물을 보면 휴대용 문방구함도 있다. 나무로 짜인 상자 안에 붓, 벼루, 먹, 연적 등을 넣는 자리가 만들어져 있고, 종이를 넣을 수 있는 작은 서랍도 있다. 이런 물건은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던 행연이나 필낭에 비하면 훨씬 더 고급스러운 것으로 아무래도 좀 더 부유한 층에서 사용했을 듯하다.

-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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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04
■ 교육과 과거제도 5편

■ 교육과 과거제도 5편

고려는 귀족의 신분적 특권(음서, 공음전 등)을 보다 중시하는 귀족제 사회이고, 조선은 과거와 관직을 중심으로 능력(음서의 범위 축소, 합리적인 인사 행정)을 보다 중시하는 관료제 사회이다. 그러므로 관직에 진출하여 관료로 출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였다. 따라서 과거제도는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므로 매우 중시되었다. 과거라는 시험제도는 그야말로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제도이므로, 조선은 개인의 학문적 능력이 중시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사회는 합리적 인사 행정으로 권력의 집중과 부정을 방지할 목적으로 출신 지역이나 친·인척이 있는 곳을 피하여 관리를 임명하는 상피제를 마련하였고, 인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5품 이하 관리 임명 대상을 심사하는 서경제를 두기도 하였다. 관리들은 임기제로 운영되었는데, 고관들이 하급 관리들의 근무 성적을 평가하여 승진과 좌천의 자료로 삼아 업무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려고 노력하였다.

물론 특별 채용도 있었는데, 나이가 너무 들었거나 재주가 다소 부족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급 관리를 선발하는 취재(取才)와 기존의 관리를 대상으로 덕망 있고 학식이 풍부한 사람을 선발하는 천거(薦擧), 그리고 고려보다 대상을 대폭 축소하여 2품 이상의 관리의 자제는 시험을 치지 않고 관리가 될 수 있는 음서가 있었다. 조선의 음서는 고려와 달리 고관으로의 승진이 어려워졌다. 추천에 의하여 인재를 등용하던 현량과는 중종 때 조광조에 의해 실시되었는데, 주로 사림이 등용되는데 이용되었다.

장원 급제한 사람에게는 왕이 합격증과 어사화를 내려주었는데, 이것은 곧 가문의 영광이었다. 장원 급제자는 ‘3일 유가(遊街)’라 하여 3일 동안 풍악을 울리며 축하 행진을 벌였다. 과거 급제자의 유가(遊街) 행렬은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볼거리 중 하나였다. 악사와 재주부리는 광대를 앞세우고 급제자는 앵삼(鶯衫) 차림에 어사화가 꽂힌 복두(幞頭)를 쓰고 말에 올라 사흘 동안 마을을 돌았다. 유가행렬이 있을 때는 동네 여자들까지 담 너머로 목을 내밀고 급제자의 모습을 구경할 만큼, 당시의 사람들은 즐거운 구경거리로 생각했다.

과거급제에 대한 기대는 한 가정의 꿈이자 대대손손 이어지는 온 집안의 꿈이기도 했다. 십대 중반이 지나면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과거 시험을 준비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집을 떠나 동년배들과 절에 올라가 경서와 문장을 집중적으로 연마하였다. 때로는 고을이나 동네에서 과거 준비를 위한 집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곧 결혼을 하고 집안일도 돌봐야 했기 때문에 조용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는 없었다. 시험 준비에 보다 집중하는 기간은 20~30대의 일이었고, 나이가 들면서 일상에서 담당해야 하는 역할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시험 준비에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사오십대에 이른 유생들은 특별히 시험 준비를 하기 보다는 이삼십년 동안 쌓아 온 독서와 경륜을 바탕으로 그 때 그 때의 시험에 응시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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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과 과거제도 4편

■ 교육과 과거제도 4편

조선시대 과거 합격자의 평균 연령을 보면 생원·진사시는 34.5세, 문과는 36.4세로 모두 서른다섯 전후였다. 조선시대에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는 일찍 자식을 본 사람이라면 자식 결혼을 준비하고 있을 즈음이다. 게다가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합격자의 연령도 높아져 18세기 후반 문과급제자의 평균 연령은 39.0세나 되었다. 자식을 결혼시키고 손자를 품에 안을 수도 있는 나이였다. 그나마 30대 합격은 준수한 편이었다. 조선시대 문과급제자의 합격 연령을 보면 40대 이상의 급제자가 전체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했으며, 극히 드물게는 70대와 80대 급제자도 있었다. 최고령 합격자는 1861년(철종 12년)의 김재봉(金在琫)과 1888년(고종 25년)의 박화규(朴和圭)로 모두 90세였다. 두 사람은 구십의 노인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급제를 하사받았다. 놀라운 것은 이 나이까지도 과거급제의 꿈을 안고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노년의 아버지와 중년의 아들이 함께 과거를 치르는 일은 오히려 흔한 풍경이었다.

과거에 합격한 이는 전체 응시자의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청년 시절부터 연례행사처럼 과거시험장에 출입했으나 끝내 합격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그들에게 과거는 평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았다. 이제는 아들과 손자가 그를 대신하여 과거시험장을 드나들었다. 그 꿈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할지라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은 자신의 자질과 실력이 이에 못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자신뿐 아니라 조상과 후손들을 생각하며 과거급제를 위해 노력하는 일은 숙명처럼 주어진 일생의 과업이었다. 그리고 이 과업은 자자손손 대물림되었다. 과거 응시는 남성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지만 과거급제는 온 집안의 꿈이었다. 더욱이 수십 년에 걸쳐 남편과 자식의 과거 응시를 지켜보는 여성에게는 과거 응시가 자신의 일상이며, 과거급제가 자신의 꿈이기도 했다.

남편은 신혼 초부터 과거를 준비하느라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 또 시험 때마다 짧으면 열흘, 길게는 달포가 걸리는 여행길에 올랐다. 이런 일은 거의 매년 반복되었다. 남편과 자식을 과거시험장으로 보낸 여성은 매일 새벽 정한수를 떠놓고 합격과 무사 귀환을 빌었을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괴나리봇짐을 메고 한양으로 향하는 선비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과거시험을 보는 것이 자기 개인과 가문에 영광을 주는 지름길이라 생각해서 당시에는 과거를 보러 가는 것을 ‘영광을 보러 간다.’라는 뜻으로 ‘관광(觀光)’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멀고도 험한 길을 떠나는 과거 길을 뜻하는 ‘관광’이 오늘날에는 여행을 한다는 의미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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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과 과거제도 3편

■ 교육과 과거제도 3편

과거는 3년마다 보이는 정기시험과 필요에 따라 보이는 부정기시험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성균관의 명륜당 앞뜰에서 보이는 알성시(謁聖試)와 창덕궁 춘당대(春塘臺)에서 보이는 전시(殿試)가 대표적이었다.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다. 성균관은 교육기능과 함께 공자와 그 제자들을 받드는 기능을 했다. 성균관 유생들은 전원이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면서 교육을 받았다. 성균관 안에 명륜당을 지어 강학(講學)하는 장소로 삼았다. 임금들은 자주 성균관을 찾아 문묘에 술잔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치렀다. 임금은 이런 기회를 이용해 과거시험을 보았다. 이를 성인 공자 앞에서 시험을 치른다 하여 알성시라고 불렀다. 알성시는 문과·무과 응시생만을 대상으로 했다.

이 시험은 한 번으로 합격자를 뽑았고 한 과목만 보았으므로 시험 본 날 합격자를 발표했다. 또 고시 시간도 초 한 자루가 다 탈 때까지 답안지를 내게 한다하여 촉각시(燭刻試)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 탓으로 간단하게 채점할 수 있는 문제를 냈다. 조선 후기에는 알성시가 운이 많이 작용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응시생들이 그야말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적게는 몇 천 명, 많게는 2만여 명이 몰려왔다. 그야말로 장터나 다름없었다.

창경궁 안에는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넓은 연못이 있는데, 이곳을 춘당대(春塘臺)라 부른다. 춘당대 주변에는 너른 공간이 있고, 임금과 비빈(妃嬪)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조선 전기부터 춘당대시의 이름으로 과거시험을 보았다. 또 왕궁의 뜰에서 보인다 하여 정시(庭試)라고도 했다. 춘당대시는 정기시험이 아니라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보이는 특별 시험이었다. 그리고 문과의 경우, 여러 단계를 두지 않고 한 번의 시험으로 끝냈다. 무과의 경우, 복시(두 번째 시험)만을 보았다. 문과는 합격자를 5명 정도, 무과는 합격자를 몇 십 명 단위로 뽑았다. 합격자는 당일 발표했다. 그 횟수도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20회 정도였다. 임금이 직접 시험을 보는 경우가 많았으며, 고관들이 시관을 맡았다. 그러므로 질서도 잡혔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래서 실력 있는 응시자들이 많이 몰려들었으며 다른 과거 합격자들보다 자부심을 가졌다.

과거에 합격하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조선 500년 역사에서 문과에 급제하는 영예를 누린 사람은 1만4600여 명으로 연평균 30여 명에 그쳤다. 좀 더 많은 사람을 뽑은 생원·진사시 합격자도 4만7000여 명에 그쳐 한 해 평균 채 100명이 되지 않는다. 생원·진사는 아주 흔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전국에서 매년 100등 안에 드는 정도의 실력을 갖추어야만 그 영예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관료의 길이 보장되는 문과가 엄청나게 어려운 시험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특별히 이이(李珥)처럼 ‘구도장원(九度壯元)’이라고 하여 아홉 번 장원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이이도 스물아홉 살에 문과 장원으로 급제할 때까지 연이어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이이에게도 과거급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어떤 학자는 과거를 ‘고난의 가시밭길’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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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과 과거제도 2편

■ 교육과 과거제도 2편

과거 시험은 크게 문관을 뽑는 문과(33명), 무관을 뽑는 무과(28명), 기술관을 뽑는 잡과로 나뉘어 있었는데, 고급 관료가 되어 출세하기 위해서는 문과를 보아야 했다. 시험 시기는 3년마다 실시하는 정기시험인 식년시와 부정기 시험인 별시, 증광시·알성시가 있었다. 조선시대는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에 대한 특별한 규정은 없다. 따라서 법제상 천민이 아니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이 과거에 응시하는 것은 법제적으로나 가능할 뿐,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했다. 그리고 모반죄와 강상죄와 같은 중죄인의 자손 및 범죄를 저질러 영구히 서용되지 못하는 자, 재가했거나 실행(失行)한 부녀자의 자손, 서얼 등은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했다.

문과 시험은 소과(小科)와 대과(大科) 2단계로 진행되었다. 먼저 소과는 유교 경전의 이해도를 알아보는 생원과와 시와 산문 등 문장력을 시험하는 진사과로 나뉘었다. 소과는 각각 자기 고향에서 한 번(초시), 초시 합격자들을 한양으로 불러서 보는 공개 시험(복시)까지 2번의 시험을 통해 합격자를 가렸다. 소과 시험에 최종 합격한 사람은 합격증을 받고, 본인이 희망할 경우 성균관에 입학해서 대과를 준비할 수 있었다. 우리가 김생원, 최진사, 박초시 등의 호칭을 쓰는 것은 생원과에 합격하면 김생원, 진사과에 합격하면 최진사, 그 중에서도 초시에만 합격한 사람을 박초시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과는 모두 3번의 시험을 치르는데, 초시와 복시를 거쳐 최종 합격자 33명을 선발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시험인 전시(殿試)는 임금님 앞에서 합격자 33명의 순위를 매기는 시험으로, 임금님이 최종 합격자를 결정했다. 바로 여기에서 1등을 하는 것을 장원급제(壯元及第) 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 평생을 걸었지만 그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만큼 과거에 합격하는 것은 남들에게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무과는 문과와 마찬가지로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 시험을 치렀고, 초시에서는 서울과 각 도의 병영에서 200명을, 복시에서는 서울의 병조에서 행하되 28명을 선발하였는데, 이들을 선달(先達)이라 하였다. 시험과목은 궁술(弓術)·기창(騎槍)·격구(擊毬) 등의 무술과 병서(兵書)·유교경전에 대한 강경시험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므로 문·무를 동시에 시험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무과도 최종시험이 끝난 후 성적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데, 갑과 3명, 을과 5명, 병과 20명으로 되었다. 그리고 합격자에게는 문무과 모두 합격증서인 홍패(紅牌)를 주었다.

잡과에는 역과(譯科)·의과(醫科)·음양과(陰陽科)·율과(律科) 등의 4종류가 있었다. 역과는 조선의 대외정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통역관을 양성할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역과에는 한어(漢語)·몽고어(蒙古語)·여진어(女眞語)·왜어(倭語) 등의 4과가 있었다. 의과는 의무관을 선발하는 것이고, 음양과는 천문·풍수지리를 담당하는 자를 뽑는 시험이었다. 율과는 법률전문가를 뽑는 것이었다. 잡과에는 초시와 복시만 있고 전시는 없었다. 양반의 서자나 중인들이 주로 응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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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과 과거제도 1편

■ 교육과 과거제도 1편

조선시대 양반에게 과거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었고, 누구나 과거급제를 꿈꾸었다. 조선 시대에는 3대에 걸쳐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면 결국 가문이 몰락하기 때문에 꼭 과거 시험에 합격해야만 했다. 과거급제는 개인이 입신양명하는 길이자 부모와 조상들에게 효도하는 길이요, 후손들에게는 양반으로서의 신분을 물려줄 수 있는 길이었다. 한 집안의 자손이자 가장으로서, 또 후손들의 조상으로서 과거 응시는 한 집안의 자손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의무였다. 남자아이들의 교육은 유교 경전과 역사에 대한 이해, 한문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 능력은 사족(士族)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인 동시에 과거 시험에서 요구하는 능력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7~8세가 되면 각 고을에 있는 서당에 다녔다. 지금의 사립 초등학교라 할 수 있지만 수업료는 없었다. 서당에는 지금의 선생님과 같은 훈장이 있었는데, 마을에서 공부를 많이 한 선비나 직업적으로 돌아다니며 지식을 전파하는 선비들이 훈장이 되었다고 한다. 서당에서는 우선 천자문(千字文)부터 배우기 시작하는데, 한권의 책을 끝내면 ‘책걸이’라는 간소한 잔치를 했다고 한다. 천자문이 끝나면 동몽선습(童蒙先習), 명심보감(明心寶鑑), 사서삼경(四書三經) 등을 배웠고, 이 과정을 마치면 대개 15~16세에 서당을 졸업할 수 있었다. 서당을 졸업하면 중등교육기관으로 진학을 하게 되는데, 지방 학생은 향교(鄕校)로, 서울 학생은 사부학당(四部學堂)으로 진학했다.

향교는 나라에서 지방에 설립한 중등학교로, 수령과 관찰사가 향교에서의 교육 활동을 평가했다. 수령은 학생들의 하루 일과와 성적을 매월 말에 관찰사에게 보고하고, 관찰사는 시험을 쳐서 학생을 평가함과 동시에 선생님들의 근무능력도 평가했다. 향교의 입학 자격은 양반의 자제 또는 향리의 자제들로 16세 이상이 되면 들어갈 수 있었다. 원칙적으로 평민들의 입학을 제한하는 법은 없었으나, 16세 이상이 되면 국가가 부과하는 각종 세금과 역을 부담해야 하는 평민들은 현실적으로 입학이 불가능했다. 16세기 이후 지방에서는 사립 중·고등학교인 서원이 많이 생겼다. 유명한 유학자들의 명성을 듣고 모여든 서원에서 과거 합격자가 더 많아지자 서원이 향교의 기능을 대신하면서 공교육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성균관은 조선 시대 최고의 교육 기관이자 나라의 큰 의례를 치르는 장소로, 조선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국립대학이라 할 수 있다. 성균관의 입학 정원은 소과 복시에 합격한 200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장학생이 되어 학비와 숙식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성균관 학생들은 평소 기숙사에 머물렀는데, 학교 규칙에 따라 매월 8일과 23일에 집으로 돌아가 옷을 세탁할 수 있는 휴일 정도만 있었다. 따로 방학은 없었지만 사정에 맞게 휴식을 취할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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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08
■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4편

■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4편

그러나 일각에서는 선화공주가 왕후는 아니라 하더라도 무왕과 결혼한 것은 사실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무왕은 사랑했던 선화공주를 데려와 부인으로 맞이했지만 선화공주는 무왕이 즉위하기 전에 죽었고, 당시 귀족들의 세력에 위축되어 있던 무왕은 강성한 백제 재건을 위해 당대 최고 가문의 딸과 정략결혼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래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미륵사 창건설화 기록은 선화공주를 왕후(왕비)가 아닌 부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익산에는 180m거리를 사이에 두고 대왕릉과 소왕릉이 있다. ‘쌍릉’으로 불리는 이 두 무덤은 익산시 석왕동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쌍릉’의 주인을 두고 논란은 있지만, 백제의 고고학적 자료가 많이 나와 약 1400여 년 전의 백제 역사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쌍릉’은 1917년 당시 조선총독부가 고적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일본인 야쓰이 세이치 등이 중심이 돼 약식 발굴을 했다. 당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목관의 일부, 목을 장식한 금속 장식물들, 치아, 토기 등은 국립전주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원형 봉토 형식의 무덤으로 대왕릉이 지름 30m, 높이 5m규모이고, 소왕릉은 조금 작은 지름 24m, 높이 3.5m다. 대왕릉은 무왕이, 소왕릉에는 왕비인 선화공주가 묻혀 있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의 실체, 나아가 대왕릉과 소왕릉에 묻힌 주인공이 과연 무왕과 왕비인 선화공주이냐를 둘러싸고 수십 년 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대왕릉의 주인공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국립전주박물관이 일제강점기 때의 유물들을 분석한 결과 대왕릉 목관 내부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는 치아 4점이 20~40세 여성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여자의 치아와 신라계토기가 나온 곳으로 보아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무왕의 능은 부여 쪽에 있을 것으로 보아왔으나, 몇 년 전 정식 발굴 결과 노년층의 남자로 보이는 낙상흔적이 있는 엉덩이뼈 등이 발굴되어 현재 대왕릉은 무왕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5년에는 중앙박물관이 유물 보존처리 과정에서 금동장식물이 소왕릉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그런데 장식물 연구 결과 소왕릉이 대왕릉보다 먼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소왕릉의 주인공이 무왕보다 1년 늦게 사망한 왕비인 사택적덕의 딸이 아니라, 무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 죽은 선화공주일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소왕릉은 지난 2019년 4월 정식발굴을 시작하였다. 과연 소왕릉은 누구의 묘일까?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는 어디까지가 실화일까?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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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3편

■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3편

《삼국유사》에 실린 이 이야기에 대한 사실 여부를 따지기 보다는 숨겨진 의미를 읽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민중의 처지를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인심을 얻을 수 있고, 그 공감을 바탕으로 민중이 바라는 정치를 해줄 수 있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선화 공주와 혼인해 진평왕의 사위가 됨으로써 신라와 더는 충돌하거나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라는 백제 사람의 바람이 담겨 있기도 하다.

무왕은 사실 힘없는 왕족이었다. 성왕이 신라를 공격하다 죽고 난 이후 왕권은 약해지고 귀족들의 권력이 더욱 강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위덕왕의 뒤를 이은 법왕이 즉위 1년 만에 후손없이 죽자 무왕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무왕은 귀족 세력을 누르고 왕의 힘을 키우기에 힘썼다. 선화 공주와 결혼하여 신라와도 다시 가깝게 지내고, 수나라를 끌어들여 고구려를 공격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수나라는 무리하게 고구려를 공격하다 나라의 힘을 잃어 망하고, 신라는 등을 돌려 적이 되면서 백제는 또 다시 어지러운 상황에 빠지게 되어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무왕은 백제를 다시 한번 일으키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선화공주의 요청으로 짓게 되었다고 하는 미륵사는 삼탑 삼금당으로, 중앙에는 목탑을 두고 동서로 석탑을 세운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지만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다. 중앙의 목탑과 서탑은 없어지고 허물어져 버렸고, 동탑만이 일제에 의해 콘크리트로 보강된 채 남아 있었다. 1998년 해체 복원 결정 이후, 185톤이나 되는 콘크리트 덩어리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떼어내고 해체 복원하는데 13년의 시간과 140억 원의 자금이 들어가는 엄청난 일이었다.

학계의 논쟁이 가장 뜨거워졌던 것은 2009년 미륵사지 석탑 해체 과정에서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이다. 2009년 1월 서탑 해체 시 주기둥 안에서 금제 사리호와 금제 사리봉안기가 발견되었다. 또한 사리호 안에는 사리병이 있었는데 이를 발견하고 꺼내는 데에만 2년이 걸렸다고 한다. 사리병 안에는 진신사리가 보관 되어 있었다. 사리봉안기는 가로 15.5cm, 세로 10.5cm의 크기의 판에 앞뒤로 붉게 칠한 193문자로 미륵사의 창건 내력을 적고 있다. ‘무왕의 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창건하고 기해년에 사리를 봉안함으로써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내용과 함께 ‘백제 왕후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사택은 백제 8대 성의 하나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선화공주가 무왕의 왕후였으며, 미륵사지도 선화공주를 위해 무왕이 지은 것이라는 내용을 완전히 뒤집는 내용이어서 논란이 일었다. 이 내용대로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당대 최고의 관직 좌평인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국경을 초월한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가 결국 허구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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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2편

■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2편

백제는 신라처럼 성씨를 이유로 결혼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기 6세기 후반 경에 태어난 서동은 백제 위덕왕의 아들로 알려져 있고, 위덕왕의 아버지인 성왕을 죽인 자가 바로 신라 진평왕의 아버지인 진흥왕이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 놈의 손녀를 데려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래에 서동의 아내가 될 사람은 선대의 원수인 진흥왕의 손녀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시 백제와 신라의 왕이나 신하들은 대개 두 나라간의 살육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자손이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서동은 성장하면서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한 선화공주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신라의 동경(지금의 경주)을 찾아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는 머리 깎고 어느 대사의 제자가 되었다. 당시 신라는 불교를 숭상했다. 왕이나 왕족이 궁중에 승려를 초청하여 불공을 올리거나 설법을 듣곤 하던 때였다. 서동은 설법이 열리는 기회를 이용하여 오래도록 그리던 선화공주를 만나게 되었는데,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아도 첫눈에 반할만큼 아름다웠다. 그녀에게 푹 빠진 서동은 선화공주를 아내로 삼겠다고 결심하고 궁리를 했다. 하지만 국적도 다르고, 신분도 다른데다 수중에 가진 것도 없으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하지만 서동은 포기하지 않고, 한 가지 꾀를 냈다. 서동은 서라벌의 마을 아이들에게 자신이 가져온 마를 나눠주며, 자기가 지은 동요를 가르쳐주고 따라 부르게 했다. 『선화 공주님은 남 몰래 짝을 만나 서동을 몰래 밤에 안고 간다.』

이 동요는 순식간에 서라벌 곳곳으로 퍼졌고, 마침내 진평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몹시 노한 진평왕은 선화공주를 멀리 귀양 보내고 말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귀양길에 나선 선화공주가 유배지로 향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한 사내가 나타나 공주님을 모시고 가겠다면서 말고삐를 잡았다. 선화공주는 그가 노래의 주인공인 서동일 것이란 생각은 꿈에도 모른 채 동행하기로 했다. 선화공주는 서동과 함께 먼 길을 떠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 새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둘은 마침내 사랑을 이루고 장래를 약속했다. 그제서야 서동은 자신이 한 행동을 밝혔고, 선화공주는 정말로 노래의 내용이 맞았다면서 기뻐했다. 그리하여 서동은 선화공주를 데리고 백제로 돌아왔다.

공주는 가난한 서동의 살림을 보고는 어머니가 몰래 싸준 황금을 서동 앞에 내놓았다. 그제서야 황금의 가치를 알게 된 서동은, 자기가 마를 캐는 산에 널려있는 황금을 캐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은 황금은 어느새 산처럼 쌓이게 됐고, 두 사람은 이것을 선화공주의 아버지인 진평왕에게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너무나 무겁고 많은 황금을 몰래 보내기는 어려운 일인지라 두 사람은 신통력 있다고 소문난 지명법사를 찾아갔다. 공주는 황금과 함께 부모님에게 쓴 편지를 법사에게 맡겼고, 법사는 이것을 신통력을 이용해 신라 궁궐로 보냈다. 이것을 받은 진평왕은 몹시 놀랐으며, 서동의 지혜와 도량에 매우 감탄하여 두 사람의 혼인을 인정하였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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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10
■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1편

■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1편

삼국시대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러브 스토리’는 역사적 사실일까. 아니면 가공된 설화일까. 한국 고대사에 있어서 유명한 이 이야기는 숱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명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다. 무왕과 선화공주가 묻혀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전북 익산의 ‘쌍릉’(사적 87호)에서 인골이 담긴 나무상자 등이 확인되면서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는 실화였을 것이라는 의견이 관심을 끌고 있다. 쌍릉이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는 내용은 《고려사 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 등 조선시대에 편찬된 문헌들에도 일부 기록되어 있다.

그동안 미륵사지 발굴조사나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보수 과정 등에서도 선화공주와 무왕의 관계를 밝혀줄 유구(遺構), 유물(遺物)들이 확인된 바가 있다. 그러나 그 유물이나 유구의 해석을 놓고도 학자들의 견해는 다시 엇갈려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왕과 선화공주 이야기는 고려시대에 편찬된 일연이 지은 역사서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부여의 남쪽 어느 마을에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집 앞에는 커다란 연못(궁남지)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그 연못에서 커다란 용이 나왔다. 용은 여인이 자는 방에 들어와 입에 물고 있던 커다란 여의주(如意珠)를 뱉어 놓았다. 여인은 갑자기 용이 나타나자 매우 놀랐지만 침착함을 잃지 않고 떨어지는 여의주를 치마로 받아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로부터 열 달 후, 여인은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이름은 장이다. 이것은 당시 위덕왕이 과부로 홀로 지내고 있던 여인과 정을 통해 아이를 낳은 이야기를 설화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정실소생의 적자가 아니고 어머니는 미천한 과부 출신이므로, 이는 무왕의 최대 약점인 동시에 또한 극복 요소였다.

어려서부터 용감하고 똑똑했던 이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마를 팔아서 생활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아이를 ‘마를 파는 아이’라는 의미로 마동(서동:薯童)이라고 불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동요(薯童謠)’의 주인공으로,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삼국시대 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이루어 냈다. 서동과 선화공주는 장애요소를 극복하고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을 마침내 이루어내어 삼국에서 가장 유명한 커플이 된 것이다.

신라 진평왕에게는 아들은 없고 딸만 있었다. “신라의 왕이 된 것이 나의 자랑이 아니라 선화의 아비가 된 것이 나의 자랑이노라.”라고 말할 정도로 둘째 딸인 선화공주를 특히 이뻐하였다고 한다. 당시 신라에서는 대대로 박·석·김 3성이 상호 결혼했다. 다른 성씨의 딸을 3성의 집에 들일 수는 있어도, 3성의 딸을 다른 성씨에게 시집보낼 수는 없었다. 신라 소지왕이 백제 동성왕에게 딸을 주었다는 예가 있다고 하지만, 실은 친딸이나 친누이가 아니라 6부 귀족의 딸이거나 누이였다. 그러므로 진평왕의 입장에서는 자기 딸인 김선화의 미래 남편은 박씨가 아니면 석씨이거나 동성인 김씨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선화공주는 신라인도 아닌 백제 부여씨인 서동의 아내가 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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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10
■ 백제 성왕 3편

■ 백제 성왕 3편

554년 성왕은 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태자 창(昌)의 강경한 주장을 받아들여 신라를 침공하기 위한 군사를 일으켰다. 이 신라 정벌군에는 가야와 일본의 원군도 합세하였다. 백제의 이와 같은 군사 동원으로 양국 간의 대결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전투의 절정은 관산성 전투였다. 성왕의 최후는 비극적이었다. 일본서기에 보면 음력 12월 아들인 창(昌)이 신라를 쳐들어가 구타모라(久陀牟羅)에 요새를 쌓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전장에서 침식도 잊고 지내던 아들을 안쓰럽게 여긴 성왕(聖王)은 이를 위로하러 관산성으로 향했다. 관산성은 지금의 충청북도 옥천에 있었으며, 지금 옥천군 군서면 월전리 9-3번지 부근은 성왕사절지(聖王死節地), 즉 성왕이 최후를 맞이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성왕이 온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한 신라군은 주요 도로를 차단하고 성왕에 대한 기습을 감행했고, 불과 50명밖에 데리고 있지 않았던 성왕은 매복하고 있던 신라의 고도(苦都)가 이끄는 군사에 사로잡혀 죽음을 당하였고, 이 전투에서 백제군은 성왕을 비롯하여 3만에 가까운 군사를 잃을 정도로 대패(大敗)를 당했다. 성왕의 목은 신라 왕궁 북청의 계단 밑에 묻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밟히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고, 나머지 몸은 백제로 반환되었다. 이로써 그동안 강력하게 추진되어온 왕권강화와 이를 통한 백제의 중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와 더불어 1세기 이상 신라와의 사이에 맺어졌던 나제동맹 관계는 이 싸움 이후부터 완전히 결렬되었다. 이리하여 두 나라는 최후까지 적대적으로 대결하는 불구대천의 원수 관계가 되었다. 백제는 신라 타도를 기치로 내걸며,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적이었던 고구려와 새롭게 손을 맞잡고 공동으로 신라에 대항하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됐다.

패전의 결과로 국내 정세도 심대한 영향을 받아 동성왕 이후 성왕 대까지 어렵게나마 확립되어 가던 왕권 중심의 정치 체제가 다시 귀족 중심의 정치 운영 체제로 전환되었다. 귀족들이 다 뜯어말린 전쟁임에도 성왕 본인과 태자가 강행했다가 왕은 전사하고 무려 3만에 이르는 전사자가 발생하였으며, 어마어마한 피해가 누적되었으니 왕권의 추락은 불가피한 결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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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11
■ 백제 성왕 2편

■ 백제 성왕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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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 천도 후 국호를 일시적으로 남부여(南扶餘)라 개칭하여 부여의 정통 후손으로서의 전통을 강조하였다. 알다시피 백제는 고구려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세력이 세웠고, 또 고구려는 부여에서 내려온 세력이 세운 나라였기 때문이다. 백제 나름 새로운 분위기와 문화의 창조를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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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은 백제의 힘을 더 키우기 위해 남쪽에서 세력을 넓히던 가야 땅의 일부를 차지하며 계속해서 가야를 압박했다. 성왕은 사비에서 나라를 새롭게 꾸미려고 노력했다. 우선 중앙에 22개의 관청을 만들어서 각 부서가 맡은 일을 책임지고 처리하도록 했다. 수도는 5부, 지방은 5방으로 나누어서 왕의 명령이 지방에까지 잘 전달되도록 체계적인 행정 체계를 만들었다. 이는 모두 왕권을 강화시키고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중앙 관제와 지방의 통치 조직을 정비함으로써 성왕은 정치 운영에 있어서 귀족 회의체의 정치적 발언권을 약화시켜 왕권 중심의 정치 운영 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다. 또한, 백제는 중국 특히 남조와 교류하면서 문화 수용에 힘썼는데, 침류왕 때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불교를 온 백성들이 믿도록 적극적으로 후원했을 뿐 아니라, 발전된 백제의 불교문화를 일본에 전해줌으로써 대일관계에서도 특별한 족적을 남겼다.

왕권이 확립되고 불교문화를 꽃피우며 중흥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 성왕은 고구려에게 빼앗긴 한강을 되찾을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성왕은 국제 관계에도 힘을 기울여 전대부터 유지되어온 신라와의 동맹 관계를 꾸준히 이어나감으로써 고구려의 남진 압력에 대항하였다. 그리고 중국 남조의 양(梁) 및 왜(倭)와의 외교 관계를 지속하는 한편, 무역과 이에 따르는 문화 교류 역시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백제의 국제적 위상을 더욱 높였다. 그래서 동맹을 맺은 신라와 함께 이전에 고구려 장수왕에게 뺏겼던 한강 유역을 되찾게 되었다. 하지만 성왕의 기쁨도 잠시, 한강 유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신라의 진흥왕은 성왕을 배신하고 한강을 독차지했다.

본시 고구려를 확실히 눌러서 백제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하는 것은 신라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고, 신라는 강력해진 백제를 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백제가 삼국의 패권을 장악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백제 성왕은 신라의 진흥왕을 주시하면서 경계했어야 했다. 그런데 성왕은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 스스로를 백제를 30년간 통치해온 경험 많고 노련한 성공적인 임금으로 자신감이 넘쳤던 것 같다. 당시 신라 진흥왕은 이제 나이 약관도 안 된 애송이이며, 실제 국정을 맡은 지도 얼마 안 된 설익은 임금으로 치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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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12
■ 백제 성왕 1편

■ 백제 성왕 1편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로 위축되어 있던 백제의 중흥(中興)과 고구려에게 빼앗긴 한강유역을 회복하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 백제의 왕은 제26대 성왕(聖王:재위523~554)이다. 《삼국사기》보다 《일본서기》에 더 많은 기록이 나오는 왕이기도 하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로 한강 유역을 빼앗긴 백제의 왕으로 가야를 백제의 영향력에 넣고 고구려에게 복수하려는 집념의 소유자로 묘사하고, 천도지리에 통달하여 그 이름이 사방에 퍼졌다고 찬양하고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도 『지식이 영매(英邁)하고 결단력이 있어 나라 사람이 모두 성왕(聖王)으로 칭하였다. 지혜와 식견이 뛰어났고 일을 처리함에 결단성이 있다.』라고 성왕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하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성왕의 인물 됨됨이가 비범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비운의 임금이다.

성왕(聖王)의 이름은 명농(明穠)으로, 무령왕(武寧王)의 아들이다. 30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백제 후기의 역사를 장식한 왕이다. 동성왕과 무령왕이 웅진으로 도읍을 옮겨 정치적 불안정을 수습하면서 추진해온 왕권 강화 정책을 계승하였고, 재위 16년(538년)에 사비(泗沘)로의 천도를 단행하였다. 기존 수도였던 웅진성(熊津城)은 계획된 수도 선정이 아니라 고구려의 남침으로 위례성을 빼앗기자, 내쫓기는 형태로 문주왕이 급히 천도한 것으로, 전시수도이며 임시수도의 성격이 컸다. 위성 지도로 공주 공산성 주변을 보면 주변 산세와 강줄기가 침략을 방비하기에는 도움이 되지만, 터가 좁아서 오래도록 쓸 나라의 중심지로는 아쉬움이 있었다.

반면 사비성(泗沘城)은 금강의 중류, 백마강이 휘감아 흐르고 넓은 평야가 펼쳐진 곳이다. 백마강을 통해 서해로 통하고, 나라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온갖 물산이 모이는 풍요로운 곳. 사비는 농사지을 땅이 넓은데다가 바다를 통해 다른 나라들과 교류하기에도 좋았다. 이미 동성왕 때부터 주목하고 준비해온 일을 이어받아 무령왕을 거쳐 드디어 성왕은 오랜 시간을 두고 부지가 넓고 웅진성과도 멀지 않은 사비로의 천도 계획을 진행했다. 철저하게 계획된 선진적인 계획도시, 세계로 열린 국제도시인 사비성이 모습을 드러냈고, 백제의 사비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사방으로 넓게 뻗은 도로, 네모반듯하게 바둑판처럼 계획된 도시계획, 왕궁과 관청, 공방, 사원, 능묘, 민가가 채워지고, 왕궁 배후엔 부소산성과 왕도 둘레를 두른 나성(羅城)이 완성되었다. 백마강으로 이어진 나루엔 하루에도 몇 십, 몇 백 척의 배가 백제 전국과 중국, 일본 등으로 왕래했다. 그 규모는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엄청난 대도시였다고 한다. 백제가 멸망하면서 잿더미가 되었으나, 부소산성 앞 관북리 유적으로 보면 백제의 왕궁과 부속 건물터, 도로 등이 출토되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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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12
◇ 여수 새조개 삼합

◇ 여수 새조개 삼합

전남 여수 넙너리에 닿은 배가 조가비가 노란 조개들을 내린다. 가막만에서 막 건져온 새조개들이다. 가막만은 여수 반도 끝에 있는 내만이다. 신월항 넙너리와 가깝다. 그곳은 물 좋은 새조개를 구할 수도 있고, 맛볼 수 있는 식당도 있다. 새조개는 겨울에 시작해 2월에 맛이 최고에 이른다. 여수 가막만은 일제강점기에도 새조개로 유명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 일본으로 수출했다. 지금 여수는 새조개 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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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이 깊지 않은 10m 내외의 펄이 발달한 곳이 새조개가 자라기 좋은 곳이다. 새조개는 배로 조개그물(형망)을 끌어서 잡는다. 달콤하고 부드러워 일찍부터 초밥 재료로 이용한 명품 조개다. ‘자산어보에는 ‘조가비가 참새 빛깔이며 무늬도 참새 털과 비슷해 참새가 변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조가비를 열고 이동하기 위해 내놓은 발이 꼭 새의 부리를 닮아 ‘갈매기 조개나 ‘오리 조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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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조개는 값이 비싸 어장에 유생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면 주민들은 불침번을 서며 어장을 지켰다. 어민들은 삼 년에 한 번만 제대로 새조개가 어장에 오면 그간 진 빚을 모두 갚는다 해서 ‘로또 조개’라고 한다. 비쌀 때 조개 하나에 7000~8000원이나 되기도 한다. 바다에서 새조개를 긁어 올리면 바지선에서 온전한 것, 조가비가 깨진 것, 크고 작은 것 등을 나눈다. 온종일 흔들리는 바지선에 쪼그리고 앉아서 선별한다. 각각 가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새조개는 꼬막과 달리 껍데기도 얇고 오래 보관하기도 힘들다. 싱싱할 때 회로 먹을 수 있지만, 주로 데침, 무침과 구이로 많이 먹는다. 특히 여수에서는 삼합 구이<사진>가 유명하다. 새조개 삼합은 키조개 관자와 돼지고기 혹은 소고기를 더한다. 여기에 겨울철 대표 채소 시금치를 올린다. 주인을 잘 만나면 굴이나 낙지 등을 얻을 수 있다. 몸값이 비싸니 새조개만으로 배를 채우려면 호주머니가 가벼워진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새조개가 나오는 철에 맛이 좋은 키조개와 육고기다. 주인공이 그렇듯 새조개는 가장 늦게 올려서 구워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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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13
◇ ‘낭만식객’ 노회찬 이야기 담은 음식천국 노회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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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식객’ 노회찬 이야기 담은 음식천국 노회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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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회찬 전 의원은 진보정치의 대중화에 기여한 걸출한 정치가였다. 구수한 표정에 다소 생경하게 느낄 수 있는 진보정치를 쉽게 설명하는 그의 입담은 압권이었다. 노 전 의원은 또한 미식가였다. 소박한 맛집을 찾아 골목을 누비는 낭만 식객이었다. 평소 “살기 위해 먹느냐,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느냐. 나는 먹기 위해 산다”고 농담을 즐겨 했다.

노 전 의원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총선 때 ‘판갈이론’을 펴면서였다. 그의 “50년 동안 같은 판에다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판이 시커메진다. 판을 갈 때가 왔다”는 식객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촌철살인의 비유였다. 실제 삼겹살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회식할 때면 직접 고기를 굽고 잘랐다. 보좌진이 고기를 잘못 구우면 “내가 할게”라며 바로 집게를 집어들었다. 삼겹살 위에 마늘, 된장을 올린 뒤 구운 신김치에 싸서 먹는 방식을 특히 즐겼다. 반면 상추와 삼겹살의 조합은 좋아하지 않았다.

노 전 의원은 깊고 담백한 맛의 평양냉면도 사랑했다. 을밀대, 을지면옥, 우래옥, 의정부 평양면옥 등 평양냉면 맛집 중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한다. 특히 마포의 을밀대는 그가 1990년대 초 창간한 매일노동뉴스 발행인으로 일할 때부터 드나들었다. 노 전 의원은 기본 조리법에서 벗어난 요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노 전 의원의 최장수 보좌관이었던 박규님 노회찬재단 운영실장은 “한번은 돼지고기가 들어간 된장찌개를 드시는데 얼굴 표정이 바뀌더라. 다시는 그 집에 안 가셨다”고 했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도 사뭇 진지했다. 처음 가는 식당은 꼭 관련 정보를 검색한 뒤에야 방문했다. 저녁 약속이 있을 때면 점심 무렵부터 속을 비웠다. 맛있게 먹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도 맛을 포기하지 않았다. 비공개 모임 장소도 맛집으로 정했다. 수타자장면으로 유명한 마포의 ‘현래장’이 단골이었다.

식객 노회찬의 이야기를 담은 <음식천국 노회찬>이 출간됐다. 고인의 옛 동지와 벗들이 그가 즐겨 갔던 식당과 주점에 모여 그가 꿈꿨던 비전을 더듬으며 나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을 쓴 이인우 한겨레 기자는 “왜 우리는 잃고 나서야 알게되는 것일까”라고 적었다. 문득, 지금 정의당의 모습이 노 전 의원이 꿈꿨던 것과 얼마나 비슷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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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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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14
소리장도笑裏藏刀 - 웃음 속에 칼을 감추다, 겉과 속이 다르다.

소리장도(笑裏藏刀) - 웃음 속에 칼을 감추다, 겉과 속이 다르다.

웃음 소(竹/4) 속 리(衣/7) 감출 장(艹/14) 칼 도(刀/0)

여기서 이 말하고, 저기서 다른 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따돌린다. 속에는 딴 생각이 가득해도 면전에서 듣기 좋은 말만 꾸며대서는 오래 가지 못한다. 面從腹背(면종복배)다. 말로는 온갖 칭찬을 늘어놓고 속에 해칠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야말로 경계할 사람이다.

부드러운 솜 안에 날카로운 바늘을 감춘 綿裏藏針(면리장침)이다. 달콤하게 듣기 좋은 말만 하면서 속으로는 칼을 숨긴 口蜜腹劍(구밀복검)도 마찬가지다. 중국 唐(당)나라 6대 玄宗(현종)이 楊貴妃(양귀비)에 빠졌을 때 자신을 위협하는 충신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없앤 간신 李林甫(이임보)의 수법에서 나왔다.

속에 칼을 감춘 간신이 등장하는 성어가 더 있다. 이임보보다 앞선 2대 太宗(태종) 때의 李義府(이의부, 614~666)다. 그는 글을 잘 짓고 업무 능력도 뛰어나 임금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3대 高宗(고종)이 즉위한 뒤 태종의 후궁이었던 則天武后(측천무후)를 황후로 삼는데 적극 찬성하여 벼슬이 더 높아졌다. 이의부는 겉으로는 온화하게 웃으면서(笑裏) 태도가 겸손했지만 속으로는 해칠 칼을 숨기는(藏刀) 재주가 있었다. 이런 가면성을 아는 사람은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이의부가 어느 때 사형수가 갇힌 옥을 둘러보다가 淳于(순우)라는 절색의 여인이 눈에 띄었다. 그는 온갖 감언이설로 옥리를 꾄 뒤 여자를 빼돌려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 소문이 돌고 이의부는 모른 체하며 되레 옥리에 죄를 뒤집어씌워 자살에 이르게 했다.

이의부가 손끝 하나 다치지 않자 어사 王義方(왕의방)이란 사람이 어전에서 처벌을 주장했다. 하지만 왕의 신임을 믿고 계략을 꾸며 왕의방을 변방으로 쫓아버렸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일을 두고 ‘이의부의 웃음 속에는 칼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故時人言 義府笑中有刀/ 고시인언 의부소중유도). 중국 唐(당)나라의 정사 ‘舊唐書(구당서)’에 실려 있다.

중국의 고대 병법인 ‘三十六計(삼십육계)’중에 제10계도 똑 같이 笑裏藏刀(소리장도)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하여 안심시킨 뒤에 허를 찔러 공격하는 계책이다. 적과 대치할 때는 무슨 수를 쓰든 승리해야 하지만 사회에서 이를 사용한다면 신의를 완전히 저버리는 비인간적인 전략이 된다. 어디까지나 신뢰를 바탕으로 일을 도모해야지 겉과 속이 달랐다가는 실패만 기다린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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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14
폭새용문曝鰓龍門 - 용문에서 아가미가 말라붙다, 어려운 환경에 처하다.

폭새용문(曝鰓龍門) - 용문에서 아가미가 말라붙다, 어려운 환경에 처하다.

쪼일 폭(日/15) 아가미 새(魚/9) 용 룡(龍/0) 문 문(門/0)

신령스런 동물 四靈(사령) 중에서도 으뜸인 龍(용)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龍門(용문)이란 지명은 실재한다. 물론 전설을 입힌 지명이라도 중국 문명의 발상지인 황허黃河/ 황하 상류의 협곡 사이에 있다. 폭포의 물살이 어찌나 빠르던지 하류의 잉어들이 오르려고 무수히 도전하지만 대부분 휩쓸려 내동댕이쳐진다.

간혹 운 좋은 잉어가 天神(천신)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오르기만 하면 때맞춰 치는 우레에 꼬리를 태우고 용이 된다. 잉어가 용문을 올라 용이 된 것을 登龍門(등용문)이라 한다는 것은 소개한 바 있다. 용이 되려면 天佑神助(천우신조)가 있어야 하니 용 되기가 별 따기만큼 어렵다.

이렇게 용이 되기가 어려운 만큼 좁은 관문을 통과하여 立身(입신) 출세하거나 높은 자리에 올라 큰 뜻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에 비유했다. 중국에서 進士試(진사시)나 우리나라서도 科擧(과거) 같은 어려운 시험의 통과를 말하게 된 계기가 있다. 後漢(후한) 말 혼란한 시기에 날뛰던 환관을 가차 없이 처벌하여 주위의 신망을 받은 李膺(이응, 110~169)이란 선비가 있었다.

경찰청장 격의 자리에서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바로잡았으니 이응을 ‘천하의 본보기’라 부를 정도였다. 太學(태학)의 젊은 관료들은 그를 경모하여 한 번이라도 만나 인정받는 것을 용문에 오르는 영광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바다에서 큰 강에서 몰려든 잉어들이 모두들 용문에 올라 영광스런 자리에 오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 물살에 휩쓸리면 바위에 이마가 깨져 멍이 든다. 바로 龍門點額(용문점액)인데 큰 시험에 낙방한 것을 가리킨다. 같은 뜻으로 여러 불경에 등장하는 것이 잉어가 모래밭으로 튕겨 아가미가 말라(曝鰓) 용문에서 죽었다는 이 성어다.

목숨을 건 보살행을 거친 뒤라야 華嚴(화엄)의 경지에 오르는데 그렇지 못하면 ‘용문의 아래에서 물고기 아가미와 비늘이 말라가는(曝鰓鱗於龍門之下/ 폭새린어용문지하)’ 것과 같다고 했다. 唐(당)나라 清涼澄觀(청량징관)법사의 ‘華嚴經隨疏演義鈔(화엄경수소연의초)’에 나온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이겨내고 출세한 것을 ‘개천에서 용 난다’고 비유했다. 언론사나 잡지사에서 시행하는 新春文藝(신춘문예)의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으면 문단이란 영예의 용문에 오른다. 이와 함께 선망 받는 인기 직업의 관문을 넘는 것은 용문 오르기보다 어렵다. 司試(사시)가 없어졌다 해서 고위 공무원의 문호가 넓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젊은이들이 갈 만한 직업의 문이 나날이 줄어드는 만큼 하위직 공무원 시험에도 응시자들이 구름과 같이 몰린다. 용 되기는 포기하더라도 이마에 상처 입는 사람들을 줄일 묘안을 고민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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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15
취문성뢰聚蚊成雷 - 모기소리가 모이면 우레가 된다, 사실을 왜곡하여 남을 욕하다.

취문성뢰(聚蚊成雷) - 모기소리가 모이면 우레가 된다, 사실을 왜곡하여 남을 욕하다.

모을 취(耳/8) 모기 문(虫/4) 이룰 성(戈/3) 우레 뢰(雨/5)

어릴 때부터 듣는 속담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는 무슨 일이나 그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작은 물건도 많이 모으면 나중 크게 이룰 수 있다는 성어는 많고 또 긍정적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 된다는 塵積爲山(진적위산), 塵合泰山(진합태산) 말고도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거나(水滴石穿/ 수적석천) 연못을 이루기도 한다(水積成淵/ 수적성연)고 했다.

잘 알려진 愚公移山(우공이산)이나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磨斧爲針(마부위침회)도 있다. 반면 무섭거나 부정적인 것도 있다. 깃털이 쌓여 배를 가라앉히는 積羽沈舟(적우침주)와 같이 모기소리가 많이 모이면(聚蚊) 우레가 된다(成雷)는 이 성어는 소인배가 사실을 왜곡하여 열심히 남을 욕함을 이르는 말이다.

史記(사기)에 버금가는 後漢(후한) 초기 역사가 班固(반고)의 대작 ‘漢書(한서)’에서 이 성어가 유래했다. 前漢(전한)의 6대 景帝(경제)의 아들들이 봉해진 임지에서 올라오자 왕이 주연을 베풀었다. 그 때 中山王(중산왕) 勝(승)이 음악소리를 듣고서는 눈물을 흘리기에 황제가 의아해서 연유를 물었다.

중산왕은 자기를 참소하는 말에 답답해하며 해명한다. ‘뭇 사람의 입김에 산이 떠내려가고, 모기소리가 모여 우레가 된다고 합니다. 패거리를 지으면 범을 사로잡고, 사나이 열 명이 합심하면 쇠공이를 휘게 할 수 있습니다(衆喣漂山 聚蚊成雷 朋黨執虎 十夫橈椎/ 중후표산 취문성뢰 붕당집호 십부요추).’ 喣는 불 후, 漂는 떠다닐 표, 橈는 꺾어질 요, 椎는 쇠몽치 추.

여러 사람의 험담에 文王(문왕)이 구금된 바 있고 孔子(공자)도 陳蔡(진채)에서 곤욕을 치렀다며 다시 강조한다. ‘뭇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이고, 헐뜯는 말이 쌓이면 뼈도 삭으며, 가벼운 것이라도 수레 축대를 무너뜨리고, 새의 깃털이 무거운 몸을 날게 할 수 있습니다(衆口鑠金 積毀銷骨 叢輕折軸 羽翮飛肉/ 중구삭금 적훼소골 총경절축 우핵비육).’ 鑠은 녹일 삭, 銷는 쇠녹일 소, 翮은 깃촉 핵. 임금의 아들과 후손을 기록한 景十三王傳(경십삼왕전)에 실려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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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16
지란지교芝蘭之交 - 지초와 난초의 교제, 벗 사이의 맑고도 높은 사귐

지란지교(芝蘭之交) - 지초와 난초의 교제, 벗 사이의 맑고도 높은 사귐

지초 지(艹/4) 난초 란(艹/16) 갈 지(丿/3) 사귈 교(亠/4)

친구 사이의 友情(우정)을 예찬한 말은 東西古今(동서고금)을 통해 부지기수다. ‘인생에서 우정이 없으면 태양을 없애는 것과 같다’거나 ‘우정은 기쁨을 배가하고 슬픔을 반감한다’가 대표적이다. 반면 우정의 대부분은 보이기 위한 것이라든가 어떤 목적을 위해서 시작된 우정은 그것이 이루어지면 끝난다고 꼬집은 말도 있다. 이해관계가 개입된 우정은 진정한 것이 아니란 교훈이다.

우정을 나타내는 성어도 많고 소개도 많이 했다. 약용과 염료로도 사용하고 향기가 좋은 식물 芝草(지초)와 蘭草(난초) 같은 우정이라면 남에게도 느껴질 만큼 맑고도 고귀한 사귐을 말한다. 孔子(공자)가 예를 든 우정인데 ‘明心寶鑑(명심보감)’ 교우편에 인용돼 잘 알려져 있다.

공자와 제자들이 주고받은 논의를 魏(위)나라 王肅(왕숙)이 편찬한 ‘孔子家語(공자가어)’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는 그 친구를 봐야 한다면서 공자가 주위 환경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六本篇(육본편)에서다.

내용을 보자. ‘선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향기로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 안에 들어간 것과 같다(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여선인거 여입지란지실), 오래 되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니 이는 곧 그 향기와 동화됐기 때문이다(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 구이부문기향 즉여지화의).’ 그러면서 악한 사람과 있으면 상한 생선의 악취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동화되니 군자는 반드시 자기가 거처하고 사귀는데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前漢(전한)의 劉向(유향)이 이전의 지혜와 고사를 모아 편찬한 ‘說苑(설원)’에도 공자의 언급을 앞부분부터 인용한다. ‘자식에 대해 잘 모른다면 사귀는 친구를 보고, 임금에 대해 모른다면 그가 부리는 신하를 보라(不知其子 視其所友 不知其君 視其所使/ 부지기자 시기소우 부지기군 시기소사).’ 雜言(잡언)편에 나오는 이 구절은 아들을 잘 아는 사람은 아버지일지라도 친구는 다른 부분도 알고 있다는 이야기겠다.

명심보감에 家語(가어)에 나온다며 더 좋은 말이 이어진다.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과 동행하면 마치 안개 속을 가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은 젖지 않더라도 때때로 윤택함이 있다(與好學人同行 如霧中行 雖不濕衣 時時有潤/ 여호학인동행 여무중행 수부습의 시시유윤).’

어릴 때 竹馬(죽마)를 같이 타고 놀던 옛 친구도 자신의 이익이 있을 때만 찾았는데 오늘날은 더 삭막하다. 동료는 자기보다 능력이 있을 때 앞길을 막는 존재로 알고, 학우는 성적이 좋으면 자기의 경쟁 상대에서 거꾸러뜨려야 하는 존재다. 사회생활을 하며 발이 넓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항상 명심하면 좋을 말이 역시 명심보감에 있다.

‘서로 술이나 음식을 함께 할 때에는 형이니 동생이니 하는 친구는 많으나, 급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에 도와줄 친구는 하나도 없다(酒食兄弟千個有 急難之朋一個無/ 주식형제천개유 급난지붕일개무).’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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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17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 몸 전체 머리털, 살갗은 부모로부터 받았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 몸 전체 머리털, 살갗은 부모로부터 받았다.

몸 신(身/0) 몸 체(骨/13) 터럭 발(髟/5) 살갗 부(肉/11)

받을 수(又/6) 갈 지(丿/3) 아비 부(父/0) 어미 모(毋/1)

우리의 몸은 물론 터럭 하나, 피부까지(身體髮膚)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受之父母)는 유명한 구절이다. 옛날 학동들은 孝(효)의 첫걸음이라며 줄줄 외웠다던 ‘孝經(효경)’에 실려 있다. 효경은 五經(오경)에는 들어가지 않더라도 漢(한)나라 이후 七經(칠경)의 하나로 숭상되어 온 책이다.

가정에서 지켜야 할 효도를 중심으로 宗中(종중) 규약이나 천자, 제후 등 윗사람에게 지켜야 할 덕목을 실었다. 효도는 인간의 도리라며 예부터 중시한 유교에 영향을 끼쳤고 조선에서는 宣祖(선조)때 孝經諺解(효경언해)까지 발간하며 널리 알렸다.

효경의 저자는 曾子(증자, 기원전 506~436)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름이 曾參(증삼)으로 孔子(공자)의 제자이다. 東洋五聖(동양오성)에 들어갈 정도로 공자의 도를 계승했고 유교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 자신이 이름난 효자로 중국 二十四孝(이십사효)에도 이름을 올렸는데 효경은 공자에게서 전해 받은 효도의 내용을 훗날 제자들이 정리하여 완성했다고 한다. 제일 첫머리의 開宗明義(개종명의) 장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공자가 어느 때 제자 증자에게 선왕이 지극한 덕으로 천하의 백성들을 따르게 하였는데 어떻게 했는지 물었다. 증자는 불민해서 알 수 없다고 공손히 말했다. 공자는 효란 덕의 근본이며 가르침이 비롯되는 곳이라며 말을 잇는다.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모두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고(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毀傷 孝之始也/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몸을 세워 도를 행하고 후세에 이름을 날림으로써 부모의 은공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의 끝이다(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입신행도 양명어후세 이현부모 효지종야).’

증삼과 효경이 들어가는 재미있는 성어도 있다. 曾參殺人(증삼살인)은 거짓말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참말이 된다는 三人成虎(삼인성호)와 같고, 孔子門前 賣孝經(공자문전 매효경)은 자신의 실력은 헤아리지 않고 엉뚱하게 덤빈다는 의미의 班門弄斧(반문농부)와 같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것을 곧이곧대로 수혈이나 장기 기증까지 하지 말라는 말은 물론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더 중요한 몸 전체를 대수롭지 않게 버리는 자살이 많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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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17
보원이덕報怨以德 - 원한을 덕으로 갚다.

보원이덕(報怨以德) - 원한을 덕으로 갚다.

갚을 보(土/9) 원망할 원(心/5) 써 이(人/3) 큰 덕(彳/11)

사람은 태어나 생활을 하면서 은혜를 입고 산다. 부모와 스승의 은혜는 특히 크다. 세상에는 온갖 인종의 사람도 많아 남의 도움을 받고서도 그 은혜를 잊거나 도리어 해를 끼치기도 한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恩反爲仇(은반위구)다. 그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남의 공을 모른다’라는 속담이 생겼다.

반면 남에게 해를 입었을 때는 조그만 것이라도 잊지 않고 언젠가는 갚으려 한다. 하지만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다시 원한을 사게 되어 끝없이 되풀이된다. 선인들은 순리로 이것을 풀어야 후환이 없다고 가르치며 ‘원수는 順(순)으로 풀라’고 했고,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까지 했다.

여기에 더한 것이 원수를 갚을 때(報怨) 원한으로 하지 않고 덕을 베푼다(以德)는 이 성어다. 원수를 갚는 것이 끝없이 순환된다고 해서 원한을 은덕으로 갚는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겐 쉽지 않은 일인데 無爲(무위)의 老子(노자) 답게 ‘道德經(도덕경)’에서 깨우친다. 63장의 恩始章(은시장)에 나오는 말이다.

‘하는 것이 없음을 실천하고, 일이 없음을 일삼으며, 맛이 없음을 맛보고, 작은 것을 크게 여기며 많은 것은 적게 여기니,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위무위 사무사 미무미 대소다소 보원이덕).’ 말을 돌려 어렵지만 자연에 순응하는 무위의 도를 지키면 천하의 어려운 일도 작은 것에서 시작되니 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부모를 죽인 원수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고 不共戴天之讐(불공대천지수)라 했다. 禮記(예기)에 나온 대로 孔子(공자)도 형제와 친구의 원수는 갚되 바른 도로 갚아야 한다는 뜻으로 가르쳤다. 어떤 사람이 ‘은덕으로써 원한을 갚으면 어떻겠습니까(以德報怨 何如/ 이덕보원 하여)?’라고 물었을 때 말한 답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은혜를 갚겠는가? 원한은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마음으로 갚고, 은혜로써 은혜를 갚아야 한다(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하이보덕 이직보원 이덕보덕).’ 이 구절은 ‘論語(논어)’ 憲問(헌문)편에 실려 있다.

까마귀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反哺之孝(반포지효)나 주인이 위험에 빠지자 길러준 개가 구했다는 獒樹(오수, 獒는 큰개 오)의 전설은 유명하다. ‘사람은 구하면 앙분을 하고 짐승은 구하면 은혜를 한다’는 속담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보통 사람들보다 지도급 인사들이 더하다.

정의를 위한다며 무리를 지어 싸우다, 조그만 이익이 생기면 어제의 동료들을 헐뜯는다. 조선의 黨爭(당쟁)이 그랬고 오늘의 정치인들도 이념 따라 원수같이 싸운다. 덕으로 갚기가 어렵다고 해도 원수로 갚는 以怨報怨(이원보원)으로는 편할 날이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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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18
교언여황巧言如簧 - 교묘하게 꾸며 듣기 좋은 말

교언여황(巧言如簧) - 교묘하게 꾸며 듣기 좋은 말

공교할 교(工/2) 말씀 언(言/0) 같을 여(女/3) 생황 황(竹/12)

말은 적어도 탈이고 많아도 탈이다. 침묵은 금이고 웅변이라며 말이 없는 것을 예찬한다. 그러나 미련한 자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는 줄 안다고 비꼼을 당하니 좋은 것도 아니다. 속으로 육두 벼슬을 하고 있어도 말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니 필요할 때는 해야 한다. 이것이 지나쳐 할 말 안할 말 늘어놓을 때는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소리 들으니 어렵긴 어렵다.

때와 장소를 가려 핵심을 찌르며 말을 잘 하는 사람을 옛날 중국의 변설가 이름을 따 蘇秦(소진) 張儀(장의)라며 부러워한다. 웅변을 잘 하는 사람은 말이 폭포수에서 떨어지는 것 같다며 口若懸河(구약현하)라고 칭찬한다.

아무리 듣기 좋은 말이라도 내용이 없거나 윗사람에게 귀에 쏙 들어갈 말만 한다면 누구나 욕을 한다. 그래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귀에 거슬리는 옳은 소리하는 부하는 멀리 하고 살살거리는 자를 가까이한다. 까마득한 중국의 시 모음집 ‘詩經(시경)’에서 부터 교묘하게 꾸민 말(巧言)은 관악기 笙簧(생황) 소리와 같이(如簧) 듣기 좋다는 말이 나온다. 궁중 제사나 잔치 때 사용되던 음악이라는 小雅(소아)편의 節南山之什(절남산지십, 什은 열사람 십) 10편중에서 巧言(교언)에 들어 있다. 참언으로 쫓겨난 벼슬아치가 소인들에 휘둘리는 임금을 풍자하고 자신의 처지를 읊은 내용으로 왕은 폭군 幽王(유왕)이란 해석이다.

모두 여섯 장 가운데 다섯 번째 장의 뒷부분만 보자. ‘허황한 큰 소리를 되는대로 지껄이고, 생황소리 같은 교묘한 말은 낯 두꺼운 사람이 마구 지껄이지(蛇蛇碩言 出自口矣 巧言如簧 顔之厚矣/ 이이석언 출자구의 교언여황 안지후의).’ 뱀 蛇(사)는 자랑할 訑(이)와 같다. 말 잘 꾸미는 자가 낯도 두껍다고 顔厚(안후)란 말과 같이 나오는 것이 흥미롭다. 巧舌如簧(교설여황)이라 해도 같다.

孔子(공자)도 듣기 좋게 꾸민 말에 대해 말을 남겼다. ‘論語(논어)’ 學而(학이)편의 3장에 나오는 ‘듣기 좋게만 말하고 얼굴 표정을 잘 꾸미는 사람에게는 어진 사람이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 교언영색 선의인)’가 그것이다. 말이건 표정이건 잘 꾸미면 아첨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실속 없는 사람이 더 떠든다고 ‘속이 빈 깡통이 소리만 요란하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말도 잘 하고 내용도 알차게 잘 하는 사람들이 남을 위해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있다. 크고 작은 각종 선거 때 후보자들의 말만 들으면 더 이상 할 일이 없고, 벌써 살기 좋은 나라가 됐을 법하다. 하지만 돌아서면 나몰라 이고, 내용이 좋은 만큼 실천이 되는 일이 적다. 公約(공약)을 찬찬히 뜯어보고 空約(공약)이 된 말이 무엇인지 책임을 물어야 허황된 말이 나오지 않는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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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19
건상유족褰裳濡足 - 바지를 걷어 올리고 발을 적시다, 노력이 있어야 일을 이룬다.

건상유족(褰裳濡足) - 바지를 걷어 올리고 발을 적시다, 노력이 있어야 일을 이룬다.

걷어올릴 건(衣/10) 치마 상(衣/8) 젖을 유(氵/14) 발 족(足/0)

일을 이루려면 저절로 되는 것이 없다. 아무리 사소해도 차근차근 준비해야 나중에 성취를 맛본다. 지천으로 넘쳐도 노력이 들지 않으면 헛일이라는 깨우침의 말은 많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속담은 竈上鹽 執入後鹹(조상염 집입후함, 竈는 부엌 조, 鹹은 짤 함)으로 번역되어 손쉬운 일이라도 힘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옥이 아무리 많아도 갈고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다는 玉不琢 不成器(옥불탁 불성기)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과 같이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아랫도리옷을 걷지 않고(蹇裳) 발을 적실 수 없다(濡足)는 성어가 더 있다. 걷어올릴 褰(건)이 절 蹇(건)으로 된 곳도 있으나 옷 衣(의)가 들어가야 옳겠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楚(초)나라 불운의 정치가 屈原(굴원)의 작품이 많이 실린 ‘楚辭(초사)’부터 시작하여 곳곳에 성어가 사용되고 있다. 九章(구장)편의 思美人(사미인) 부분에 연꽃을 꺾어 와 사랑하는 여인의 환심을 사고 싶은데 발을 적시기 싫다고 토로한다. ‘연꽃으로 중매를 삼고 싶지만(因芙蓉而爲媒兮/ 인부용이위매혜), 옷을 걷어 올리고 발 적시기 꺼려지네(憚褰裳而濡足/ 탄건상이유족).’ 조그만 고생도 하지 않고 미인을 얻을 수는 물론 없다. 굴원은 모함으로 쫓겨난 심정을 허리를 구부리며 권세가에 빌붙기 싫다고 나타낸 셈이다.

後漢(후한) 초기 崔駰(최인)은 박학하고 경전에 정통하여 문장을 잘 지었다. 范曄(범엽)의 ‘後漢書(후한서)’엔 그의 이런 말이 있다. ‘일이 생기면 바지를 걷어 발을 적시고, 관이 걸려 있어도 돌아보지 않는다(與其有事 則褰裳濡足 冠掛不顧/ 여기유사 즉건상유족 관괘불고)’며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서도 건지지 않는다면 어진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점잖게 뒷짐만 지고서는 다급한 사람을 구할 수 없고 옷을 버릴 수고를 감수해야 된다는 이야기다.

호랑이 새끼를 잡기 위해서는 물론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모험을 해야 한다. 이런 큰 성취가 아니라도 노력이 조금은 들어가야 작은 일이 이뤄진다. 물고기가 떼를 지어 노닐어도 그물을 먼저 짜지 않고서는 잡지 못하고 입맛만 다신다. 이루는 방법은 훤하게 꿰뚫고 있으면서 자신은 손가락 까딱하지 않고 남에게만 시킨다면 아무도 협조하지 않는다. 또 있다. 멋진 일을 시작하고서 잘못된 점이 드러나면 다시 할 수도 있어야 한다. 큰맘 먹고 발에 물을 적셨다고 엉뚱한 길로 계속 나간다면 깊은 물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불행이 닥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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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19
십벌지목十伐之木 - 열 번 찍어 베는 나무, 꾸준히 노력하면 성취한다.

십벌지목(十伐之木) - 열 번 찍어 베는 나무, 꾸준히 노력하면 성취한다.

열 십(十/0) 칠 벌(亻/4) 갈 지(丿/3) 나무 목(木/0)

중도에서 일을 작파하지 말고 꾸준히 계속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속담과 성어가 많다. ‘열 번 갈아서 안 드는 도끼가 없다’란 속담은 磨斧作鍼(마부작침)과 통한다. 백절불굴의 강인한 정신과 기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열 번 쓰러지면 열 번 일어난다’는 속담도 있다. 깃털이 쌓여 배를 가라앉힌다는 積羽沈舟(적우침주), 물방울이 계속 떨어져 바위를 뚫는 水滴石穿(수적석천) 외 같은 성어는 수두룩하다. 이 모든 속담보다 더 자주 사용돼 귀에 익은 말이 ‘열 번 찍어 아니 넘어가는 나무 없다’를 옮긴 이 성어일 것이다. 정확히 풀어 十斫木無不顚(십작목무부전)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기어이 이룬다는 뜻으로 보통 쓴다. 여기서 뜻이 넓혀져 아무리 뜻이 굳은 사람이라도 여러 번 권하거나 꾀고 달래면 결국은 마음이 변한다는 뜻도 된다. 정신을 집중하면 어떤 일도 이룰 수 있는 강인함이 앞의 뜻이라면 후자는 아무리 굳은 의지라도 흔들릴 수 있다는 지조의 나약함을 가리킨다. 속담성어라 언제부터 번역돼 어디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같은 뜻을 연상하는 두 가지 이야기를 옮겨보자.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魏(위)나라가 趙(조)에 져서 태자와 함께 龐恭(방공)이란 사람이 인질로 가게 됐다. 방공은 왕에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겠느냐고 하니 믿지 않는다고 했다. 두 사람이 말해도 믿지 않겠다고 말한 왕은 세 사람이 나타났다면 믿겠다고 했다. 방공이 말했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을 것은 분명한데도 세 사람이 말하자 나타난 것으로 됐습니다(夫市之無虎也明矣 然而三人言而成虎/ 부시지무호야명의 연이삼인언이성호).’ 자신에 대해 근거 없는 말이 떠돌아도 믿지 말라고 한 뜻이지만 왕은 그 뜻을 지키지 못했다. ‘韓非子(한비자)’에 나오는 三人成虎(삼인성호)의 유래다. ‘戰國策(전국책)’에도 같은 이야기가 있다.

孝經(효경)을 지었다는 효자 曾參(증삼)이 살인을 했다고 한 사람이 그 어머니에게 알렸다. 동명이인이 저지른 일을 잘못 전한 것이다. 태연하던 어머니도 두 번째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고 전하고, 이어 또 다른 사람이 아들 범행을 알리자 흔들렸다. 이렇게 되니 아들을 믿던 어머니도 두려움에 혼비백산 도망하고 말았다. 曾參殺人(증삼살인)의 유래다. 역시 ‘전국책’에 실려 있다.

미인을 얻기 위해서는 용기가 앞서야 한다며 열 번 찍어야 한다고 호사가들은 말한다. 이런 노력은 가상한 일이지만 무턱대고 찍어서는 나무만 상한다. 도끼날을 잘 갈고 자루도 튼튼히 하는 등 만반의 준비가 앞서야 한다. 신의를 주지 않고 자신에 유리한 말만 퍼뜨린다면 세 사람이 와서 법이 나타났다고 해도, 나무를 열 번 찍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어디에서나 믿음이 앞서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70.html
kolaswqetsrq 11.02 22:20
금선탈각金蟬脫殼 - 금빛 매미는 허물을 벗어야 만들어진다.

금선탈각(金蟬脫殼) - 금빛 매미는 허물을 벗어야 만들어진다.

쇠 금(金/0) 매미 선(虫/12) 벗을 탈(肉/7) 껍질 각(殳/8)

매미에 대한 성어를 이야기해 보자. 매미가 성충으로 살아있는 기간은 일주일에서 길어봐야 한 달이라 한다. 그래서 莊子(장자)는 여름에 나와 가을에 죽는 매미는 일 년의 길이를 알 리 없다고, 일부밖에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사람을 꼬집었다. 당연히 겨울의 눈을 모르니 蟬不知雪(선부지설)이라며 좁은 견문을 나타냈다. 하지만 짧은 지상의 매미가 되기 위해 6년에서 17년이라는 기간을 지하에서 애벌레로 지낸다는 사실은 그 기나긴 인내와 인고의 생활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애벌레가 성충이 되어 금빛 날개를 가진 화려한 모습으로 탈바꿈하는데서 과거를 잊고 새 출발하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금빛 매미(金蟬)는 자신의 껍질을 과감하게 벗어던짐(脫殼)으로써 만들어진다는 이 성어는 식견의 좁음이나 과감한 변화 등을 뜻하는 것과는 달리 ‘三十六計(삼십육계)’에서 나왔다. 이 책을 병법서의 고전 孫子兵法(손자병법)과 혼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정확한 권수와 작자, 편찬 시기 등은 알 수 없는 별개의 책이다. 대개 5세기까지의 故事(고사)를 17세기 明末(명말)에서 淸初(청초)에 수집하여 ‘三十六計秘本兵法(삼십육계비본병법)’으로 묶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고 속임수에 강조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혼란 상태에서의 전략인 混戰計(혼전계)의 제21계로 나오는 이 말은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감쪽같이 몸을 빼 도망하는 것을 뜻했다. 은밀히 퇴각할 때 사용하는 전법으로 진지의 원형을 보존하고 군대가 여전히 주둔하고 있는 것처럼 하면 적이 감히 공격하지 못한다. 그런 후에 주력부대를 은밀히 이동시켜 탈출하는 위장전술이다. 劉邦(유방)이 項羽(항우)에게 滎陽(형양, 滎은 실개천 형)에서 포위되었을 때 紀信(기신)이란 장수를 유방으로 변장시키고 탈출한 것이나 南宋(남송)이 金(금)에 침략 당했을 때 명장 畢再遇(필재우)가 연일 북소리를 울리면서 퇴각한 것을 좋은 예로 들고 있다.

본뜻에서도 말하듯 곤경에 처했을 때 벗어나려는 속임수는 살아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왕년의 강대함만 믿고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58.html
kolaswqetsrq 11.02 22:21
지자막여부知子莫如父 - 아들의 됨됨이는 아버지만큼 알 수가 없다.

지자막여부(知子莫如父) - 아들의 됨됨이는 아버지만큼 알 수가 없다.

알 지(矢/3) 아들 자(子/0) 없을 막(艹/7) 같을 여(女/3) 아비 부(父/0)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이 있다. 한 사람의 아버지가 백 사람 선생보다 낫다는 말도 있다. 여러 면에서 자식은 아버지를 보고 자라고 닮을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자식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어 孔子(공자)는 그럴 때는 아들이 사귀는 친구를 보라(不知其子 視其所友/ 부지기자 시기소우)고 했다. 이것은 사소한 취미나 자라서의 애정관계 등 부모가 놓칠 수 있는 분야의 일이겠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우러러 닮기를 바라는 아들이 많은 만큼 아무래도 자식의 됨됨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知子)은 그 아버지 이상일 수는 없다(莫如父)는 것이 이 성어다.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상으로 꼽는 管仲(관중)은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의 桓公(환공)을 가장 먼저 五覇(오패)의 자리에 올렸다. 管鮑之交(관포지교)로 알려진 鮑叔牙(포숙아, 鮑는 절인물고기 포)의 절대적 지원에 의해 환공에게 발탁되어 부국강병책으로 기반을 다졌던 것이 주효했다. 관중이 늙고 병이 들어 은퇴했을 때 환공이 찾아 와 문병하면서 앞으로 국사를 누구한테 맡기면 좋을지 자문했다. 이 부분서 성어가 나오는데 ‘韓非子(한비자)’의 十過(십과)편에 실려 있다.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면서 범하지 말아야 할 열 가지 허물을 이야기한 중에서 여덟 번째의 내용을 보자.

관중은 자신이 늙어 묻지 않는 것이 옳다며 사양하다 말한다. ‘신하를 잘 아는 데는 왕보다 나은 사람이 없으며, 자식에 대해 잘 아는 것은 그 아비만한 이가 없다고 하오니(知臣莫若君 知子莫若父/ 지신막약군 지자막약부)’ 환공의 의견을 먼저 물었다. 가장 잘 아는 포숙아를 내세우자 지나치게 곧아서 안 된다고 하고 신의가 두터운 隰朋(습붕)을 천거했다. 관중이 세상을 뜬 후 환공은 마음을 바꿔 내시 豎刁(수조, 刁는 조두 조)를 재상에 임명했다. 수조는 간신들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환공은 비참하게 유폐되어 굶어 죽고 말았다.

관중이 자신을 추천한 포숙아까지 제외하며 추천한 인물을 환공이 물리친 결과는 비참했다. 인물을 잘 안 사람은 관중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전체적으로 알 듯, 그리고 친구가 나머지 부분을 알 듯 됨됨이나 능력은 곳곳에서 알 수가 있다. 오늘의 복잡한 사회에서 일꾼을 찾으려면 여러 곳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나라의 큰일을 맡길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할 텐데 청문회 때마다 추문이 덕지덕지 묻은 사람을 일부러 고르듯 내세운다. 자기 편 사람만 자리에 앉히려하니 허물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82.html
kolaswqetsrq 11.02 22:22
불입호혈 부득호자不入虎穴 不得虎子 - 호랑이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없다.

불입호혈 부득호자(不入虎穴 不得虎子) - 호랑이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없다.

아닐 불(一/3) 들 입(入/0) 범 호(虍/2) 구멍 혈(穴/0)

아닐 불, 부(一/3) 얻을 득(彳/8) 범 호(虍/2) 아들 자(子/0)

큰일을 이루려면 작은 노력을 들여서 이루기 어렵다. 홍시가 떨어지는 감나무 아래 누워서 입만 벌린다고 입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枾樹下 開口臥(시수하 개구와)로 번역한 헛고생을 막기 위해서 ‘감나무 밑에 누워도 삿갓 미사리를 대어라’고 속담에서 충고했다. 작은 노력이라도 품을 들여야 오는 것이 있는데 큰 성취를 맛보려면 모험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합당한 비유가 ‘호랑이 굴에 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는다’는 비유이고 번역한 듯이 똑 같은 말이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서는(不入虎穴) 호랑이 새끼를 못 잡는다(不得虎子)는 이 성어다. 뒷부분 한 글자만 바꿔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찌 호랑이 새끼를 잡겠는가(焉得虎子)로도 많이 쓴다.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의 班超(반초)전에서 처음 유래했다. 반초(33~102)는 後漢(후한)의 명문 출신으로 史記(사기)에 버금가는 사서 漢書(한서)를 쓴 班固(반고)의 동생이다. 또 편찬을 처음 시작한 班彪(반표)가 부친이고 마무리한 班昭(반소)는 누이동생이다. 교양이 풍부하고 변설에 능했던 반초는 집안의 이런 전통과는 달리 하급관리를 하다 무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2대 明帝(명제) 때 변경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匈奴(흉노) 토벌의 별장으로 참여하여 30여 년간 서역에 머물며 50여 나라를 한나라에 복속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반초가 오늘날 서역 신장위구르新疆維吾爾/ 신강유오이 지역에 있던 鄯善(선선, 鄯은 나라이름 선)에 사신으로 갔을 때 처음에는 상국의 귀빈으로 후대 받았다. 며칠 후 흉노의 사신이 온 뒤부터 적대감으로 변했다. 1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 흉노족 이간질로 죽거나 포로로 잡혀갈 위기를 맞았다. 36명의 수행원 밖에 없는 반초는 일행에게 밤을 틈타 기습을 해야만 살 수 있다며 말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없소(不入虎穴 不得虎子/ 불입호혈 부득호자).‘ 흉노의 숙소를 급습하여 화공으로 전멸시킨 반초군은 선선의 왕을 회유하여 굴복시켰다.

적진을 기습하여 대성공을 거둔 전투로는 가까이 프랑스의 노르망디(Normandie) 상륙작전이나 한국전쟁 때 맥아더(MacArthur)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이 있다. 각기 독일 나치군과 남침한 북한군의 목줄을 끊어 전쟁을 종식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전투였다.

이보다 더한 일제 침략기 우리의 安重根(안중근)의사나 尹奉吉(윤봉길)의사는 적의 심장부에서 총탄을 쏘아 호랑이 새끼가 아닌 어미를 제거한 쾌거였다. 모두 위기를 역으로 이용하여 성공을 거둔 셈이다. 눈앞의 어려움에 쉽게 좌절하는 나약한 사람들은 이런 사례는 잘 알면서도 포기하는 일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75.html
kolaswqetsrq 11.02 22:22
안고수비眼高手卑 - 눈은 높지만 재주는 미치지 못한다.

안고수비(眼高手卑) - 눈은 높지만 재주는 미치지 못한다.

눈 안(目/6) 높을 고(高/0) 손 수(手/0) 낮을 비(十/6)

눈은 높은 곳(眼高)에 있고 손은 아래쪽(手卑)에 있다. 이 당연한 말이 물론 위치한 곳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는 수준과 뜻은 크고 높으나 손으로 이룰 수 있는 재주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 먼저다. 또 ‘실없는 부처 손’이란 속담이 말하듯 아무 쓸모가 없는 경우나 그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평할 때 기막히게 약점을 잘 잡아내면서도 실제 창작을 하라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비꼬아 눈만 높다고 말한다. 안고수저(眼高手低)라 해도 같다. 눈썰미가 있고 손이 재빨라 재주가 있는 眼明手快(안명수쾌)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처럼 쉬운 말로 자주 쓰이는 성어가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이전부터 쓰이던 말을 번역한 것으로 짐작되지만 고전에 사용된 예도 적다.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李德壽(이덕수, 1673~1744)라는 문신이 있다. 주자학을 반대하고 실사구시의 학문을 이끌었던 朴世堂(박세당)의 문인으로 문장과 글씨에 능했다. 이덕수는 ‘罷釣錄(파조록)’이란 책에서 글을 쓸 때는 대상을 정밀하게 파악하여 집중해서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초학자들이 글을 지을 때는 경솔하게 기이함에 뜻을 붙여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충고한다. ‘근래 들어 젊은이들의 글은 절름대고 막히고 졸렬하고 껄끄러워 한 가지 볼 만한 점이 없다. 이는 모두 눈은 높은데 손이 낮다는 안고수비 네 글자에 연좌된 탓이다(近世年少輩文字 蹇滯拙澁 無一可觀 皆坐於眼高手卑四字也/ 근세년소배문자 건체졸삽 무일가관 개좌어안고수비사자야).’ 蹇은 절 건. ‘매일 읽는 우리 옛글’이란 책에 인용되어 있다.

능력은 안 되면서 높은 목표를 설정할 때 먼저 실력부터 닦으라고 핀잔하며 먼저 이 말을 쓴다. 대안도 없이 상대 당의 정책을 깎아내리는 정치권에선 더욱 흔하다. 하지만 보는 눈이 있어야 그 수준에 맞게 부지런히 재주를 익히게 되니 눈 높은 것을 탓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눈 재주이건 손재주이건 실력을 닦는 것이 먼저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00.html
kolaswqetsrq 11.02 22:23
구밀복검口蜜腹劍 - 입에는 꿀 바른 듯 배 속에는 칼이 있다.

구밀복검(口蜜腹劍) - 입에는 꿀 바른 듯 배 속에는 칼이 있다.

 입 구(口/0) 꿀 밀(虫/8) 배 복(肉/9) 칼 검(刂/13)

입술에 꿀 바른 듯 달콤하게 말을 하는 사람은 일단 경계 대상이다. 말로는 친한듯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칼날을 품고 있듯이 해칠 생각이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웃고 뺨친다’나 ‘등치고 간 내먹다’ 같은 똑 같은 뜻의 속담도 있다. 북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처형할 때 나열한 죄상 중 겉으로는 복종하는 척하면서 속으론 딴마음을 품는다는 뜻의 陽奉陰違(양봉음위)도 유사성어 중의 하나로 유명해졌다.

 口蜜腹劍은 중국 간신 중에서도 이름 높은 唐(당)나라 때의 李林甫(이임보)에게서 비롯된 말이다. 당 玄宗(현종)은 초기에 민생을 안정시키고 국방을 든든히 하여 ‘開元之治(개원지치)‘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만년 楊貴妃(양귀비)와 사랑에 빠진 뒤부터는 권신 이임보에게 국정을 일임해 버렸다. 음험하고 아부에 능했던 이임보는 조정의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며 자기의 자리를 위협하는 충신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없애거나 그렇지 않으면 멀리 지방으로 내쫓았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들은 연유도 몰랐다.

이임보가 정적을 제거할 때는 한껏 상대방을 추어세운 다음 뒤통수를 치는 음험한 수법을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十八史略(십팔사략)‘이나 ’自治通鑑(자치통감)‘ 등의 관련 조에는 이렇게 이임보를 평가한다. ’현명한 사람을 미워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질투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배척하고 억누르는 성격이 음험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고 말했다(妬賢嫉能 排抑勝己 性陰險 人以爲口有蜜腹有劍/ 투현질능 배억승기 성음험 인이위구유밀복유검).‘ 19년 동안 전횡한 이임보가 죽은 뒤 재상이 된 楊國忠(양국충)이 그 죄상을 밝히자 현종은 그때서야 생전의 관직을 박탈하고 剖棺斬屍(부관참시)의 극형에 처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32.html
kolaswqetsrq 11.02 22:24
진정지견眞正之見 - 참되고 바르게 보다, 옳은 그른 것은 중간에 있다.

진정지견(眞正之見) - 참되고 바르게 보다, 옳은 그른 것은 중간에 있다.

참 진(目/5) 바를 정(止/1) 갈 지(丿/3) 볼 견(見/0)

세상사 옳고 그른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다. 바르다고 하는 일과 옳지 않은 것이 각각 그 주장하는 차이가 지극히 작을 때 흔히 쓴다. 이럴 때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조선 초기의 명신 黃喜(황희, 1363~1452) 정승이다. 집안 여종 둘이서 서로 옳다고 싸우는 것을 중재하는데 둘 다 옳다고 판단 내렸다. 그런 일이 어디 있느냐고 부인이 핀잔하자 그대 또한 옳다고 해서 三可宰相(삼가재상)이란 별호가 붙었다. 모두가 좋다고 하여 好好先生(호호선생)이라고도 했다는 황희는 다른 의견을 가진 쪽의 의견도 충분히 배려할 줄 아는 자세를 지녔기에 명재상으로 길이 남았다.

참되고 바르게(眞正) 생각하는 의견은 어떤 것일까. 바른 길이 칼로 무 베듯 명쾌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제 간단하지 않다. 진실로 옳고 그르다고 하는 것은 참되고 바르게 보아 어딘가 그 사이에 있다는 의미인데 여기에도 황희 정승이 등장한다. 조선 실학자 朴趾源(박지원)의 ‘燕巖集(연암집)’ 별집 蜋丸集序(낭환집서, 蜋은 사마귀 랑, 螂과 같음)에 나온다는데 내용을 요약해 보자. 정승이 공무를 마치고 왔을 때 딸과 며느리가 해충 이蝨/ 슬가 어디서 생기는지를 두고 언쟁이 붙었다. 딸은 옷에서 생긴다고 하고 며느리는 살에서 생긴다고 했는데 정승이 둘 다 옳다고 했다.

부인이 화를 내며 다 옳다면 어떻게 송사를 하겠느냐 하니까 황희는 설명한다. 이라는 벌레는 살이 아니면 생기지 않고, 또 옷이 아니면 붙어 있지 못해 ‘옷과 살의 중간에서 이가 생기는 것(不離不襯衣膚之間/ 불리불친의부지간)’이므로 둘 다 옳다는 것이다. 襯은 속옷 친. 白湖(백호) 林悌(임제)의 일화가 이어진다. 백호가 말을 탈 때 종이 가죽신과 짚신을 각각 신었다며 취했다고 말했다. 백호가 꾸짖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을 탄 한 쪽의 신발만 볼 것인데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론 낸다. ‘참되고 올바른 식견은 진실로 옳다고 여기는 것과 그르다고 여기는 것의 중간에 있다(眞正之見 固在於是非之中/ 진정지견 고재어시비지중).’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는 데서 세상의 모든 시비는 일어난다. 상대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니 끊임없이 시끄럽다. 영국에 ‘정의도 금력이 끄는 쪽으로 기우는 일이 가끔 있다’라는 격언이 있다고 하니 정의도 항상 옳은 것은 아닌 셈이다. 서로 옳다는 당사자라면 상대방이 주장하는 점도 살펴보고, 해결되지 않아 판관이 개입한다면 중간에 있는 그 무엇을 찾는 현명함을 발휘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63.html
kolaswqetsrq 11.02 22:24
◇ 베트남, 한국어를 제1외국어 채택... 인도는 중국어 대신 제2외국어로

◇ 베트남, 한국어를 제1외국어 채택... 인도는 중국어 대신 제2외국어로

#1. 지난해 10월 9일(현지 시각), 에콰도르 명문 국립대 센트랄대에 한국어 문화원 ‘세종학당’이 들어섰다. 우리나라 ‘한글날’에 일부러 맞춰 개원식을 열었다. 에콰도르에 세종학당이 세워진 건 2018년에 이어 두 번째. 개원식에 앞서 진행된 수강 신청은 15분 만에 마감됐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수업만 진행하겠다고 공지했지만 수강생이 몰렸다.

#2. 주(駐)벨기에 한국문화원은 지난 4일 유튜브에 K팝 걸그룹 ‘블랙스완’이 등장하는 ‘한국 여행 동영상’을 공개했다. 블랙스완은 벨기에인 멤버가 포함된 우리나라 4인조 걸그룹. 이들이 경주, 광주, 수원 등 명소를 여행하며 한국 문화와 다양한 먹거리 등을 소개하는 동영상이다. 열흘 만에 조회 수가 1만1000회를 넘었다. 벨기에 한국문화원은 “수많은 한류 팬들이 한국 여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서 랜선 여행 콘텐츠를 만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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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한류(韓流) 팬이 1억명을 돌파한 가운데, ‘한국어 배우기 열풍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39국 1699교 초·중·고교생 약 16만명이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웠고, 올해 에콰도르, 벨기에, 요르단 현지 중·고교 12곳에 ‘한국어반’이 개설된다. 1999년 미국 학교에 첫 한국어반이 만들어진 지 22년 만의 성과다. 교육부는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한국어교육 지원 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올해 전 세계 43국 1800개 학교, 내년 45국 2000교에 한국어반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지원 예산은 지난해 126억원에서 236억원, 파견 교사는 6국 70명에서 10여 나라 132명으로 2배가량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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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올 2월 한국어를 ‘제1 외국어’로 채택했다. 초3부터 배울 수 있는데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과 같은 위상이다. 인도는 지난해 제2 외국어로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에 이어 한국어를 추가했다. 중국어는 빠지고 한국어가 들어갔다. 교육부는 “유튜브 같은 온라인으로만 한국어를 배우던 나라에서 ‘한국어반’을 만들고 싶다는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연합뉴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2.html
kolaswqetsrq 11.02 22:25
◇ 금수저반려견과 반려동물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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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수저반려견과 반려동물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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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천국에 개가 없다면 나는 가고 싶지 않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윌 로저스의 말이다. 반려견이 없는 생활은 천국일지라도 행복하지 않다는 고백이다. 외로움을 달래고 의지할 대상을 찾는다면 반려동물이 딱이다. 미국 코미디언 조시 빌링스는 “개는 자신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이 세상의 유일한 생명체일 것이다”라고 했다. 이런 반려동물에게 유산을 남기는 주인들이 늘고 있다.

몰티즈 종 암컷 반려견 ‘트러블’은 2007년 미국 호텔업계의 거물 리오나 헴슬리에게서 1200만달러의 유산을 받았다. 유언장 작성 당시 헴슬리의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며 유족이 소송을 제기해 200만달러로 유산이 삭감됐지만 트러블이 쓰기엔 풍족했다. 트러블은 헴슬리 호텔 지배인의 보호를 받으며 호화로운 여생을 보냈다. 매년 10만달러를 썼는데 미용 8000달러, 사료 1200달러, 경호 비용 등이었다. 매일 은식기나 도자기 접시에 담긴 헴슬리 호텔 주방장의 닭고기와 야채 요리를 먹고 다이아몬드가 박힌 개목걸이를 착용했다니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았을 터이다.

가장 많은 유산을 받은 반려견은 저먼 셰퍼드 종의 군터 3세다. 1992년 독일의 카롤레타 리벤슈타인 백작부인으로부터 1억4500만달러를 상속받았다. 군터 3세는 대리인을 통해 마돈나가 살던 마이애미 저택을 74억원에 구입해 부러움을 샀다. 럭셔리한 삶을 살던 군터 3세는 2000년에 죽었는데 유산을 받은 아들 군터 4세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동물로 등극했다. ‘금수저’ 반려견이 따로 없다.

미국 사업가 빌 도리스도 최근 보더 콜리 종 암컷 반려견 ‘루루’에게 거액의 유산을 남겼다. 미혼으로 루루와 단둘이 살다가 84세로 세상을 떠난 그는 지인에게 “루루를 맡아서 키워 달라”며 500만달러를 맡겼다. ‘루루가 원하는 모든 것을 채워주고 반드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유기되거나 학대받는 반려동물이 속출하는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연 10만 마리 이상이 주인에게서 버림받는다.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반려동물 신세가 천양지차다. 인간 사회나 반려동물 세계나 삶의 질 양극화는 지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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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설왕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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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28.html
kolaswqetsrq 11.02 22:26
◇ 코로나발 ‘니트족’ 폭증

◇ 코로나발 ‘니트족’ 폭증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방 가족의 아들, 딸은 대입 실패 N수생으로 나온다. 하지만 공부도, 일도 않고 백수로 살다 명문대생으로 신분을 위장해 부잣집 과외 선생 자리를 꿰찼다가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사회학에선 이처럼 학교에 다니지도, 취업도 하지 않는 청년 백수를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으로 분류한다. 코로나 사태가 니트족 숫자를 급격히 불리고 있다.

한 경제연구소가 우리나라 30세 미만 니트족 수가 작년 한 해 동안 24% 늘어 43만6000명에 이른다는 통계를 내놨다. 고용 통계에 잡히는 30대 백수까지 포함하면 ‘그냥 쉬고 있다’는 청년이 74만명에 이른다. 1년 새 31% 급증했다. 이 중엔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취업 경력이 전무한 ‘취업 무경험자’가 32만명이나 포함돼 있다.

나라마다 사정이 비슷하다 보니 니트족을 의미하는 신조어가 많다. 미국에선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않고 부모에 기생하는 청년을 ‘낀 세대’라는 의미로 트윅스터(twixter)라고 부르고, 이탈리아에선 엄마가 해주는 밥에 집착한다는 뜻으로 맘모네(mommone), 독일에선 줄창 집에 눌러 앉아 있다는 의미로 네스트호커(nesthocker)라고 부른다. 코로나 사태는 세계적으로 니트족 급증을 유발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로 세계 청년 6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고령화 선진국 일본이 니트족의 미래를 보여준다. 일본에선 45~54세 연령대 중 부모에 빌붙어 사는 ‘패러사이트 싱글(parasite single)’이 158만명(2016년 기준)에 이른다고 한다. 이 문제를 연구한 대학교수는 “20년 장기 불황이 시작된 1990년대 초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에게 기생했던 독신자 중 3분의 1 이상이 그대로 50세가 됐다”고 말한다.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 115만명 중 40대 이상이 절반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니트족 상당수가 일본처럼 중년 캥거루족이 되면 사회는 어떻게 될까. 선진국은 복지 사기가 크게 늘어난다는 점을 보여준다. 황금종려상 수상 일본 영화 ‘어느 가족’처럼 가족도 아닌 캥거루족 5명이 연금생활자 할머니 한 명에게 빌붙어 사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 프랑스에선 연금 수령자가 죽어도 가족들이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계속 연금을 타먹는 사례를 막기 위해 매년 병원이 발급하는 생존증명서를 제출하는 걸 의무화했다. 니트족 급증이 세계 공통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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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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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62.html
kolaswqetsrq 11.02 22:27
◇ 아시아人 증오 범죄 언제까지...

◇ 아시아人 증오 범죄 언제까지...

유대인 혐오의 역사는 그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질병이 혐오의 구실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한센병이 유전되고 유대인을 이 병에 ‘오염된 민족’이라 여겼다. BC 3세기 이집트 역사가 마네토는 유대인들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한 게 아니라 한센병 때문에 추방당했다고 주장했다. 중세 흑사병이 창궐해 유럽 인구 3분의 1이 죽어나갈 때도 유대인 혐오가 기승을 부렸다. 유대인은 그때나 지금이나 율법에 따라 손을 자주 씻는다. 덕분에 감염을 피한 건데, ‘유대인이 병을 퍼뜨린 증거’라며 학살극이 벌어졌다.

인종 혐오가 무지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부턴 과학 지식이 차별 근거로 동원됐다. 생물 분류학의 기초를 다진 식물학자 린네는 인간 지능이 유럽·아메리카·아시아·아프리카인 순으로 감소한다고 했다. 동시대 영국 의사 존 앳킨스는 흑인이 원숭이와 교접해 자손을 낳을 수 있으며, 그렇게 태어난 후손은 말과 당나귀 사이에서 나온 노새처럼 생식 능력이 없다고 했다.

이민자 나라인 미국의 소수 인종과 이민자 차별도 뿌리 깊다. 아시아인에게는 병을 옮기는 불결한 사람들이란 이미지가 씌워졌다. 187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서 천연두가 유행했을 때도 아시아계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중국인을 중국 음식에 빗대는가 하면 한·중·일 3국 출신을 ‘찢어진 눈’(chink)이라 비하한다.

미국 애틀랜타에서 엊그제 총기 범죄로 한인 4명 포함 아시아계 6명이 희생됐다. 현지 경찰은 용의자가 섹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매매 업소에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했다. 한인 교포와 아시아계 사회는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인종혐오 범죄가 분명한데도 미국 주류 사회가 성매매를 은근히 탓하며 피해자에게 모멸감까지 안긴다는 항변이다. 아시아계 의원들도 “인종적 동기의 폭력은 정확히 그렇게 불러야 한다”, “성적 중독으로 다시 이름 붙여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한 작년 3월 이후 아시아계를 노린 범죄가 3800건에 이른다. 전체 증오 범죄는 줄어드는 추세인데 유독 아시아계에 대해서만 149% 폭증했다. 이번 총격 사건 이후 한인들은 두려워 외출도 못 한다. 미 동부에 유학 중인 한인 여고생이 현지 분위기를 전해왔다. “길을 걷는데 지나가는 차 창문이 열리고 욕설이 쏟아져나온다. 이러다가 차 안에서 총이 나올까 두렵다.” 증오의 먹이가 된 세상은 지옥이다. 역사에 숱하게 반복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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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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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19.html
kolaswqetsrq 11.02 22:27
◇ 1호 한미 장교 부부 탄생... “우리 만남, 최고의 행운”

◇ 1호 한미 장교 부부 탄생... “우리 만남, 최고의 행운”

세계 최초 다국적 혼성 부대로 지난 2015년 출범한 ‘한미연합사단’에 지난달 경사가 났다. 이 부대 소속 한국 육군 하늘(31·육사71기) 대위와 미 육군 마일스 가브리엘슨(30·웨스트포인트 2013년 졸업) 대위가 백년가약을 맺은 것이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선례를 찾던 두 사람은 “우리가 ‘1호 한미 현역 장교 부부’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지난달 20일 부산 범일성당에서 식을 올린 직후 성사된 미 국무·국방장관의 동시 방한(17~19일)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신혼 초를 보낸 두 사람은 본지와 이메일로 만나 “우리 만남은 개인적 선택이었지만, 한미 동맹과 연합사단이 아니었으면 이런 행운은 오지 않았을 것이기에 항상 감사하게 여기며 살겠다”고 했다.

각각 자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한 두 사람은 지난해 한미연합사단 내 토의 자료 작성 실무자로 만나 안면을 텄다. 두 사람 집안 어른들은 스피드와 판단력이 중요한 일에 종사했다. 신랑 가브리엘슨 대위는 아버지(마취과 전문의 조지 가브리엘슨 박사)와 할아버지(2차 대전 군의관)가 모두 의사였다. 신부 하늘 대위의 아버지는 1984년 LA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하형주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다. 가풍 때문이었을까. 두 사람의 연애·결혼 과정은 군더더기 없이 스피디하게 전개됐다.

가브리엘슨 대위로부터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고 첫 데이트를 하던 날 하늘 대위는 “나는 너랑 연애만 할 수 없다. 나랑 연애하려면 결혼까지 해야 한다”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가브리엘슨 대위가 바로 “그러면 결혼하자”고 답했다. “나는 앞으로 사회생활도 계속 해야 하고 내조도 못할 수 있고, 오히려 네가 내 전투화 닦고 외조해야 할 수도 있는데 괜찮냐”고 반문했지만 “그래도 좋다”는 대답만 연신 돌아왔다. 프러포즈인 듯 프러포즈 아닌 당시를 회상하며 가브리엘슨 대위는 “성급한 결정처럼 보일지 몰라도 포착한 기회를 적시에 잡는 것은 군인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초스피드로 양가 허락 받고 결혼 준비하면서 가브리엘슨 대위는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던 장인의 ‘과거’를 알게 됐다. “처음 뵈었을 때 바짝 긴장했는데 자상하게 잘 대해주셨어요. 남자로서 멋있다는 생각이 드는 분입니다. 주변에 장인어른 경기 유튜브 동영상 보여주고 자랑하면 다들 걱정해요. ‘너 진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요.” 사관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것 말고도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자랐고, 가족과 결혼에 대한 책임감 등 서로 공유하는 가치가 같았다고 두 사람은 말했다.

두 사람은 신혼여행 대신 양가 가족과 함께 경남 일대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미 동부 코네티컷에서 날아와 2주 격리 기간까지 거쳤던 시부모·시동생이 식만 올리고 바로 떠나는 게 마음에 걸렸던 신부 아이디어로 성사된 여행이었다. 두 가족은 신부 집안인 진양 하씨 시조이자 고려 무신인 하공진을 기리는 사당 ‘경절사’를 견학했고, 신부 조부모 묘소도 찾았다. 여행 코스를 직접 짠 하형주 교수는 “새롭게 무인 집안을 이룬 두 사람에게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집안 조상들의 기를 받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직장 동료지만 향후 인사 발령에 따라 멀리,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연애 초반부터 기본 계획과 우발적 상황, 대응 계획까지 세워뒀어요. 앞으로 어떤 임지에 가게 될지는 저희 소관이 아니기에 이런 불확실함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가브리엘슨) “그때그때 맞춰 선택을 할 텐데, 좋은 선택을 최고로 만드는 것은 그 순간이 아니라 선택한 뒤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그리 나쁠 것 같지 않습니다.”(하늘) 앞으로 태어날 2세의 국적 문제에 대해 두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를 나눴을까. 신부가 똑 부러지게 말했다. “저희가 결정할 부분이 아니라 환경과 배움에 따라 본인이 결정하게 될 겁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역사책을 많이 읽게 할 겁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65.html
kolaswqetsrq 11.02 22:29
◇ 베토벤의 연금술과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

◇ 베토벤의 연금술과 현악사중주 15번 3악장

고통은 인간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름다운 예술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5번은 고통이 어떻게 예술로 승화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베토벤이 이 곡을 완성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1825년이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몹시 고통스러워할 때였다. 오래전부터 청력이 떨어지던 귀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는 음악을 귀의 도움 없이 눈과 손만으로 해야 했다.

그런데 현악사중주 15번을 작곡하던 중 그를 괴롭히던 복통이 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그는 극심한 통증에 오랫동안 몸져누워 있어야 했다. 정말이지 이제는 죽는 것이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통이 사라졌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나자 감사한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는 그 감정의 파고를 타고 3악장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는 악장 앞에 “병에서 나은 환자가 신께 드리는 감사의 노래”라고 적어 넣었다. 음악에 스토리를 입힌 것이다. 이후로 그 악장을 누가 해석하고 누가 연주하든 그 헌사, 그 스토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터였다.

그러나 그것이 구속이라면 아름다운 구속이었다. 감사한 마음에 비례해 분량도 많아졌다. 다섯 개의 악장으로 이뤄진 40여 분의 곡에서 3악장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게 됐다. 귀가 들리지 않는 그는 신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소리를 넘어선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현악사중주 15번은 음악이라기보다 음악의 몸을 잠시 빌린 일종의 기도였다.

이보다 더 깊고 조화롭고 경건하고 위로가 되는 음악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3악장은 그렇게 고통을 통해 태어났다. ‘황무지’의 시인 T S 엘리엇의 말처럼, 베토벤이 말년에 작곡한 현악사중주는 “엄청난 고통 이후에 찾아온 화해와 위안의 열매”였다. 엘리엇이 ‘네 개의 사중주’라는 위대한 시를 후대에 남긴 것도 고통을 예술로 만든 베토벤의 연금술을 학습하고 사유한 결과였다.

-동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5-3.html
kolaswqetsrq 11.02 22:29
◇ 남자도 아침 첫 소변은 변기에 앉아서 보세요

◇ 남자도 아침 첫 소변은 변기에 앉아서 보세요

아침 첫 소변을 앉아서 보는 것이 좋다. 남자 얘기다. 단순히 위생 문제가 아니다. 건강에 도움이 된다. 우리 몸은 수면 중에는 소변이 나오지 않도록 배뇨를 담당하는 괄약근과 전립선 근육이 긴장한 상태로 있다. 잠에서 깬 직후에도 이 근육들은 긴장 상태라 아침 첫 소변이 잘 안 나온다.

서주태비뇨의학과 서 원장은 "잠이 안 깬 상태에서 일어서서 힘을 주면 소변이 더 안 나온다"며 "변기에 앉아 근육이 이완된 상태에서 소변을 볼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또한 잠이 안 깬 상태에서 소변을 보려고 서서 힘을 주다 보면 혈압이 오를 수 있다.

소변을 보다가 쓰러지는 \배뇨실신증\ 위험도 있다. 서주태 원장은 "배뇨실신증은 전날 과음을 했거나, 고혈압·당뇨병·심장병 등을 앓는 사람에게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고 말했다. 배뇨에 의해 감각신경이 과도하게 자극되면서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거나 일시적으로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어 실신에 이를 수 있다.

특히 과음을 하면 혈관이 확장되고 혈압이 떨어지기 때문에 실신 위험이 더 커진다. 노인은 낙상으로 골절에 이를 수 있다. 서 원장은 "기본적으로 아침에는 변기에 앉은 자세로 배뇨하는 것이 좋으며, 전날 음주를 했거나 노인의 경우에 더욱 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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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소소한 건강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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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72.html
kolaswqetsrq 11.02 22:30
◇ 번개 맞고 안 죽은 사나이

◇ 번개 맞고 안 죽은 사나이

천둥 번개를 북유럽에서는 신으로 모신다. ‘토르’ 신이다. 토르 신의 상징은 망치이다. 토르의 망치는 뭐든지 걸리면 다 때려 부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해적질로 먹고살았던 바이킹의 상징으로는 아주 적합한 무기이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천도(薦度)할 때 쓰는 용구인 금강저(金剛杵)가 있다. 이 금강저는 원래 고대 인도에서 전쟁할 때 사용하던 무기였다. 전쟁 무기가 종교 사원에서 악령을 쫓는 제구(祭具)로 변화된 것이다.

망치 들고 다니면서 해적질하던 바이킹의 후예가 오늘날 스웨덴 아닌가. 그런데 스웨덴에서 그 많은 히트곡을 노래하였던 그룹 ‘아바’가 나왔고, 매년 노벨상을 받지 못해서 안달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깔려 있다. 이것도 토르 신의 영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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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토르는 ‘어벤져스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판타지 영화에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경남 창녕의 남지에 가면 알프스 마터호른에 등산 갔다가 번개를 맞았지만 죽지 않고 살아난 인물이 살고 있다. 산악인 송용철(64)이다. 나는 번개 맞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가을에 창녕에 있는 그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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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맞았나?” “1987년 마터호른 4478m 정상 능선에서 번개를 맞았다. 암봉으로 된 정상 부근에서는 수시로 번개가 친다. 푸른 불빛이 길게 떨어지는 게 눈앞에서 보인다. 평지보다 번개가 길게 친다. 번쩍 하고 번개가 길게 이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주변으로 번개가 치면 피켈(등산 장도리)이 ‘웅-웅’ 하는 느낌이 든다. 전파가 흐르는 것 같다. 고산지대 벼락이 평지 벼락보다 더 무섭다.”

그는 번개를 맞고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 같이 간 동료들이 밧줄로 그를 끌어올려서 살아났다고 한다. 아마도 번개를 몸에 정통으로 맞은 게 아니고 등산화 앞쪽의 50~60cm 지점쯤에 번개가 떨어지면서 순간적인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알프스에서 꼽는 3대 바위 암벽 봉우리가 마터호른(사진), 아이거 북벽, 그랑데 조라스이다. 마터호른은 동양 풍수에서 보면 거대한 문필봉이다. 이 마터호른 문필봉이 보이는 평지 동네에서는 문장가나 학자, 예술가가 배출될 가능성이 크다. 바위 속에 철분이나 금속 성분이 함유되어 있으니 번개가 많이 칠 수밖에 없다.

“번개 맞고 나서 몸에 변화는 없나?” “꿈을 꾸면 꿈이 정확해졌다.” 번개가 의식을 정화시킨 셈이다. 토르의 망치를 맞고도 죽지 않았던 그는 현재 먹고살기 위해 남지철교 국밥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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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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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49.html
kolaswqetsrq 11.02 22:31
◇ 하얀 석유, 리튬이 뜬다

◇ 하얀 석유, 리튬이 뜬다

위성에서 본 남미 안데스 산맥에는 흰 점들이 찍혀 있다. 주로 칠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가 맞닿은 곳이다. 만년설이 아니다. 빙하기를 거치며 안데스의 눈 녹은 물들이 증발을 거듭해 소금만 남은 소금 평원(salt pan)이다. 해발 4000m, 홍학과 야마(llama)의 땅. 이곳에 ‘하얀 석유’가 있다. 소금 속 리튬이다. 배터리 소재인 리튬은 전기차 시대를 맞아 하얀 석유로 불린다. 값이 폭등하면서 포스코가 확보한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鹽湖)의 총 외형가치는 35조 원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포스코 측은 매장된 리튬으로 2차전지용 탄산리튬을 생산한다고 가정하고, 현 국제 시세를 적용하면 약 35조 원의 누적 매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막대한 생산 비용을 감안하면 실제 염호의 가치는 훨씬 낮을 것이다. 그래도 2018년 염호 채굴권을 약 3000억 원에 인수했으니 큰 이익을 기대할 만하다. 염호 확보 프로젝트명은 ‘살 데 오로(Sal de Oro)’. 스페인어로 황금 소금이란 뜻이다. 인수 때 예상한 매장량은 220만 t이었는데 지난해 최신 기법으로 측정한 결과 6배로 늘어났다.

하얀 석유로 각광받는 리튬은 배터리 소재 외에도 쓰임새가 많다. 산업용으로는 도자기나 유리를 만들 때 촉매로 사용한다. 수소폭탄을 만들 때도 리튬이 필요하다. 리튬은 조울증 치료제로 사용하며, 치매 치료약의 원료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리튬 농도가 높은 호수나 지하수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자살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리튬은 독성이 있어서 의사의 처방 없이 리튬 계열 약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포스코는 2009년부터 리튬 등 에너지 소재 분야에 주목했다. 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은 곧 개발됐지만 염호 확보는 쉽지 않았다. 칠레 등 3개국이 국경을 맞댄 ‘리튬 트라이앵글’을 헤집고 다녔지만 실패를 반복했다. 세계 리튬 매장량의 70%가 몰린 이곳에서 여러 나라가 자원 전쟁을 벌였다. 중국 기업들은 정부를 등에 업고 거액의 베팅을 했고, 칠레 등은 핵심 자원 지키기에 나섰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포스코는 실패한 해외 자원 개발로 몰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리튬 생산은 2023년부터 약 50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아직 공장을 짓는 단계라 성과를 예측하긴 어렵다. 다만 미래 산업의 핵심 자원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중단으로 일본을 압박했듯이 자원은 국가의 힘이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으로선 아직 갈 길이 멀다. 긴 안목에서 인내심을 갖고 해외에서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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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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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74.html
kolaswqetsrq 11.02 22:32
◇ LH직원의 용버들 사랑, 그들은 나무 신공이었다

◇ LH직원의 용버들 사랑, 그들은 나무 신공이었다

구효서의 단편 ‘소금가마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에 버드나무의 한 종류인 용버들이 나온다. 두부를 만들어 자식들을 먹여 살린 어머니를 회상하는 내용인데 어머니는 둘째 아이가 대추나무에서 떨어져 숨이 멎자 아이를 업고 읍내로 내달렸다. 그러나 장마로 내가 잠겨 있었다. 어머니는 손잡이에 핏물이 배도록 톱질해 용버들을 넘어뜨렸다. 어머니가 용버들을 이용해 내를 건너 읍내로 내달릴 때 횡경막을 자극받은 아이는 소생했다.

용버들은 가지와 잎이 구불거리는 것이 특징이다. 말하자면 파마한 버들이다. 소설에서 강인한 모성애를 보여주는 용버들이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LH 직원 K씨는 다른 직원과 함께 최근 신도시 후보지로 발표한 광명·시흥의 땅 42억원어치를 매입했다. 그는 멀쩡한 밭에 용버들을 잔뜩 심었다. 제대로 키우려면 3.3m2에 한 주가 적당하다는데 1m2에 25주가량의 묘목을 심었다. 보상 전문가는 “다 큰 나무는 밀식해도 정상 수준으로 쳐서 보상하지만 묘목은 숫자대로 보상이 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LH에서 오랫동안 토지보상 업무를 한 간부여서 어떻게 하면 보상금을 더 타내는지 잘 알았을 것이다.

다른 LH 직원들은 지난해 2월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한 필지 땅을 매입해 1200m2 내외의 4필지로 분할했다. 그리고 신도시 발표 한 달여 전인 지난 1월 어린 서양측백나무 2000여 그루를 심었다. 나무는 보통 3~4월에 심는데 굳이 한겨울에 심었다. 신도시 발표일을 알고 서둘러 심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밀 항공촬영 등을 통해 기준 시점을 넘긴 나무와 건물을 가려내기 때문이다. 나무를 심으면 농사를 지어야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고 규정한 농지법 위반을 피하고, 놀리는 땅보다 보상비도 더 많이 타낼 수 있다.

반대로 땅값을 높이기 위해 멀쩡한 나무들을 고사시키는 경우도 많다. 3년 전 한 업자는 제주도 임야를 매입한 후 멀쩡한 소나무 600여 그루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제초제를 주입했다. 나무는 서서히 말라죽었다. 나무가 다 죽자 업자는 30억원의 시세차익을 내고 땅을 되팔았다. 땅에 나무가 많으면 산림훼손 우려 때문에 개발 허가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나무 보상받기 신공(神功)이 전국적으로 비일비재하다. 이런 식으로 새어나간 국민 세금이 대체 어느 정도 규모일까.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이런 데 쓰는 머리를 세금을 아끼거나 국민 편익을 높이는 데 썼더라면 하고 생각해본다. 부질없는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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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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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lh.html
kolaswqetsrq 11.02 22:32
◇ ‘위장 미혼’하는 신혼들... “혼인신고 안하는 게 청약 유리”

◇ ‘위장 미혼’하는 신혼들... “혼인신고 안하는 게 청약 유리”

경기도 화성 동탄에 사는 직장인 최모(30)씨는 작년 12월 결혼식을 올렸지만 아직 법적으로는 ‘미혼’이다. 혼인신고를 계속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남편과 상의했는데 혼인신고의 장점은 없고 단점만 많더라”며 “부모님도 ‘딱히 필요하지 않으면 살아보고 하라’고 하셔서 애 낳으면 그때 신고할 계획”이라고 했다. 혼인신고를 해봤자 ‘신혼부부 주택 특별공급’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도 최씨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맞벌이인 최씨 부부의 연간 합산 소득은 1억2000만원으로, 신혼부부의 주택청약 우선공급 기준인 도시 근로자 평균소득의 120%(8100만원)를 훌쩍 넘는다. 최씨는 “혼인신고를 안 하면 나와 남편이 각자의 통장으로 청약을 넣을 수 있어 분양 기회가 2배”라고 했다.

신혼부부가 혼인 사실을 국가에 신고하는 엄숙한 절차인 ‘혼인신고’조차 최근엔 하나의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했다. 신혼부부에 대한 부동산 지원은 적고, 제약은 오히려 많다 보니 유불리를 꼼꼼히 따져 ‘위장 미혼(未婚)’을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며 신혼부부의 힘만으로는 전셋집 마련조차 어려워진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혼인신고 역대 최저...IMF 때보다도 혼인신고 감소세 가팔라

9일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혼인신고 잠정 집계 건수는 21만3513건으로, 통계가 집계된 1981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10.7% 폭락해, 역대 가장 감소 폭이 컸던 1997년 IMF 당시(10.6%)를 넘어섰다. 기존의 결혼 감소세에 더해, 결혼을 하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현상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다음 달 결혼 예정인 공무원 임모(28)씨는 설레는 마음에 작년 12월 혼인신고를 일찍 했다가 오히려 예비 신부의 구박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운 좋게 주택청약에 당첨됐는데 2023년 10월 입주 전까지 전셋집 자금 마련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임씨는 “청약에 당첨된 것만으로도 1주택자로 간주하는 데다, 부부 합산 소득도 1억원이 넘다 보니 아무리 싼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서울보증보험에서 받는 3.08%가 최선이더라”며 “만약 혼인신고를 안 했으면 무주택자인 아내가 2% 정도의 이율로 시중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혼인신고한 부부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사실상 독신보다 더 비싸게 전세 살게 만든 것 아니냐”며 “혼인신고한 장점이라곤 배우자 수당으로 월급에 4만원씩 더 나오는 것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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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 높은 ‘신혼부부 특공, 각자 통장으로 청약 땐 ‘기회 2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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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를 미루고 ‘위장 미혼’으로 사는 젊은 부부들은 “지금 부동산 시장에선 혼인신고를 하면 도저히 집을 살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제공하는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벽이 높고, 혼인신고를 하면 법적으로 ‘한 몸’이 되다 보니 각각 미혼 신분으로 청약을 넣을 때보다 기회가 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혼인신고를 하면 연말정산에서 배우자 공제를 받는 등 이점도 있지만, 부동산으로 얻는 이득만은 못하다는 게 젊은 부부들의 얘기다.

젊은 부부들에게 혼인신고 시점은 이제 ‘결혼’이 아니라, ‘부동산 사고팔기 유리할 때’가 됐다. 3년 전 결혼해 서울에 살고있는 임모(34)씨 부부도 아직 신고를 하지 않았다. 임씨 부부는 결혼 전 각각 재테크 수완을 발휘해 집을 한 채씩 샀다. 혼인신고를 하면 ‘1가구 2주택자’가 된다. 임씨는 “2017년 8·2 부동산 정책으로 다주택자에겐 양도세가 중과되는데, 신혼부부 양도세 면제는 혼인신고 후 5년까지”라며 “부동산 시장을 좀 지켜보다 집 팔기 좋은 시점에 신고하려고 한다”고 했다.

직장인 김모(29)씨 커플은 혼인신고 없이, 작년 10월 5억원을 주고 산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17평짜리 아파트에 함께 살고 있다. 김씨는 결혼해서 재산을 합하는 대신 여자친구에게 현금을 빌려주고 차용증을 받는 형태로 공동 재산을 꾸렸다. 김씨는 “정부가 신혼부부 특별공급 혜택을 주는 것은 혼인신고 후 7년까지”라며 “일단 더 나은 집으로 이사 갈 돈을 모아둔 다음에 신고할 생각”이라고 했다.

-”부동산 때문에 자식을 낳고도 미혼모로 남는 일 벌어져”

젊은이들이 모인 인터넷 결혼 준비 카페, 맘카페 등에는 ‘혼인신고의 유불리’와 ‘최적의 시점’을 묻는 글이 많다. “혼인신고 다들 언제쯤 하셨나요?” “청약 때문에 혼인신고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와 같은 글이다. 댓글에는 “요새 결혼 후 2년 정도는 안 하는 것 같다” “저도 안 했는데 10년 이상 안 할 예정”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등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혼인신고를 하지 말라고 부추기는 소위 ‘부동산 재테크 전문가’도 많다. 지난달 28일 한 부동산 블로그에는 ‘1주택자 신혼부부 최고의 재테크는 혼인신고 늦게 하기’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지난 6일 한 유튜브 채널에도 ‘주택 여러 채를 가지면 세금이 많으니 자식을 낳고도 미혼모로 남는 사람들까지 생겨난다’는 내용의 영상이 올라왔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 당사자들이 원해서 혼인신고를 안 하는 것이 아닌 만큼 이렇게까지 해야 겨우 주택을 소유할 수 있는 세태가 문제”라며 “정부가 혼인신고 안 하는 결혼 생활의 실태를 파악하고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경청해 그에 맞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30.html
kolaswqetsrq 11.02 22:33
독조한강설獨釣寒江雪 - 눈 내리는 차가운 강에서 홀로 낚시질, 산수화 같은 풍경

독조한강설(獨釣寒江雪) - 눈 내리는 차가운 강에서 홀로 낚시질, 산수화 같은 풍경

홀로 독(犭/13) 낚을 조(金/3) 찰 한(宀/9) 강 강(氵/3) 눈 설(雨/3)

자연을 묘사하여 마치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빼어난 시가 있다. 산수를 유람하며 자연 속의 아름다운 정경을 노래하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시인의 심경을 山水自然詩(산수자연시) 들이다. 중국 東晉(동진)의 전원시인 陶淵明(도연명) 때에 싹이 트고 唐(당)나라에서 꽃을 피운 자연시파는 王維(왕유)나 孟浩然(맹호연) 등에서 절정을 이뤘다.

무려 4만 8900 수의 全唐詩(전당시)를 남긴 시의 시대 당에선 물론 산수전원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고 다양한 주제가 있지만 그림을 그리는 듯한 자연시에서 더욱 이끄는 맛이 있다. 자연시의 전통을 잇는 王孟韋柳(왕맹위류)란 말도 있는데 뒤 세대의 韋應物(위응물)과 柳宗元(유종원, 773~819)을 포함한 것이다.

차고 시린 눈이 산이고 들이고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다. 눈 덮인 추운 강가에서 홀로 낚시를 하는 노인이 있다. 이 장면을 그린 잘 알려진 시가 유종원의 ‘江雪(강설)’이다. ’온 산엔 새들도 자취 끊겨 고요하고, 모든 길엔 사람의 행적도 사라졌네(千山鳥飛絶 萬徑人蹤滅/ 천산조비절 만경인종멸), 외로운 조각배에 도롱이 삿갓 쓴 늙은이, 눈 내리는 차가운 강에서 낚시질하는구나(孤舟簑笠翁 獨釣寒江雪/ 고주사립옹 독조한강설).‘ 千山(천산)은 물론 굽이진 산이고 逕은 지름길 경, 徑(경)과 같다. 蹤은 발자취 종, 簑는 도롱이 사, 짚이나 띠 따위로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옛날 농부의 비옷을 말한다.

오언절구의 제일 처음 구절 千山鳥飛絶(천산조비절)을 소개하면서 나왔듯 이렇게 이미지가 바로 뜨는 멋진 산수화의 작가 유종원은 韓愈(한유)와 함께 古文(고문)운동을 일으켜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 함께 들어가며 韓柳(한류)로 불린다. 하지만 혁신정치 집단에 참여했다가 지방으로 좌천되어 오랫동안 변경생활을 하며 울분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욕망과 번뇌에 가득 찬 속세를 초월하여 대자연에 은거한 낚시꾼 늙은이는 외로운 배와 도롱이와 삿갓을 씌워 유종원 자신을 나타낸다. 차가운 눈을 맞으면서 무심히 강에 낚싯대를 드리운 늙은이의 모습에서 중앙에서 밀려난 정치적 실의와 고독감을 이겨내려는 정신력도 나타내고 있다.

번잡한 사회에서 은퇴하여 초야에 묻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꿈꿀만한 내용이다. 이런 풍광을 그리면서 도저히 재주가 못 미친다고 자탄하는 조선 중기의 명신 申欽(신흠)의 멋진 시도 함께 보자. ‘골 메우고 산을 덮어 눈 닿는 덴 모두 같아, 온 세계는 구슬이요 집들은 수정궁궐(塡壑埋山極目同 瓊瑤世界水晶宮/ 전학매산극목동 경요세계수정궁), 인간 세상 화가들이 무수히 많겠지만, 음양의 조화만은 그리기가 어렵다네(人間畵史知無數 難寫陰陽變化功/ 인간화사지무수 난사음양변화공).’ 백설이 덮인 천지는 감상만으로 족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89.html
kolaswqetsrq 11.02 22:34
앙급지어殃及池魚 - 연못 속 물고기에 재앙이 미치다, 억울하게 피해를 보다.

앙급지어(殃及池魚) - 연못 속 물고기에 재앙이 미치다, 억울하게 피해를 보다.

재앙 앙(歹/5) 미칠 급(又/2) 못 지(氵/3) 고기 어(魚/0)

고약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본의 아니게 그 화가 자신에게도 미친다.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속담대로다.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에 엉뚱하게 피해를 입을 경우가 있다. 강한 자들끼리의 싸움에 구경도 하지 않은 자가 피해를 입으면 더 억울하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뜻과 같이 鯨戰鰕死(경전하사)가 그것이다.

연못에 평화로이 사는 물고기들이 사람들에 의해 죽게 생겼다. 성문에 불이 나서 그것을 끄기 위해, 혹은 보석을 찾기 위해 물을 퍼내거나 하면 화가 미쳐(殃及) 상관없는 연못의 물고기(池魚)가 죽게 된다는 이 성어도 같은 뜻이다. 억울하게 터무니없는 재앙을 당할 때 비유한다.

내용이 완벽하다면서 한 자라도 고칠 수 있는 사람에게 천금을 준다는 一字千金(일자천금)이라 하면 바로 ‘呂氏春秋(여씨춘추)’를 떠올린다. 秦始皇(진시황)의 생부로 알려져 있는 呂不韋(여불위)가 3000명이나 되는 빈객들의 제자백가 지식을 집대성한 책이라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 책의 孝行覽(효행람) 必己(필기)편에 물고기의 재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宋(송)나라의 대부였던 桓魋(환퇴, 魋는 몽치머리 퇴)라는 사람이 진귀한 구슬을 얻게 됐다. 송왕이 탐을 냈지만 주지 않았다. 환퇴가 죄를 지어 구슬을 갖고 도망치자 사람을 시켜 소재를 묻게 했다. ‘환퇴가 연못에 던져 버렸다는 말을 듣자, 왕은 물을 모조리 퍼내게 했으나 구슬은 찾지 못했고 물고기만 떼죽음을 당했다(曰投之池中 於是竭池而求之 無得 魚死焉/ 왈투지지중 어시갈지이구지 무득 어사언).’

宋(송)나라 太宗(태종)의 명으로 李昉(이방, 昉은 밝을 방) 등의 학자가 엮은 설화집 ‘太平廣記(태평광기)’에는 약간 다른 설명이다. ‘성문에 불이 붙었는데 그 재앙이 연못의 물고기에 미쳤다(城門失火 禍及池魚/ 성문실화 화급지어).’ 성문에 불이 나 근처 연못의 물을 몽땅 퍼내 물고기가 죽었다고 하는 해석과, 그 불로 인해 근처에 살던 池中魚(지중어)라는 사람이 타 죽었다는 풀이도 있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가까이 하지 않으면 화도 입지 않겠지만 사람이 혼자 살 수 없으니 탈이다. 국민을 위한다며 내세우는 정치권의 각종 법률과 시책은 나중에 보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십상이다. 나중 잘못이 드러나도 하자세월이니 국민들에게 화가 고스란히 돌아온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17.html
kolaswqetsrq 11.02 22:34
일부중휴一傅衆咻 - 한 스승이 가르치는데 여러 사람이 떠들다, 학습 환경이 좋지 않고 간섭이 많다.

일부중휴(一傅衆咻) - 한 스승이 가르치는데 여러 사람이 떠들다, 학습 환경이 좋지 않고 간섭이 많다.

한 일(一/0) 스승 부(亻/10) 무리 중(血/6) 떠들 휴(口/6)

사람에게 지식과 기술을 넘어 인격을 닦게 하는 교육은 그 환경이 중요하다고 숱한 말로 강조해왔다. 자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어머니의 가르침 賢母之敎(현모지교)는 孟母(맹모)의 三遷之敎(삼천지교), 斷機之敎(단기지교)가 대표한다. 검은 먹을 가까이 하면 近墨者黑(근묵자흑)으로 악에 물든다.

귤이 탱자가 되는 橘化爲枳(귤화위지)도 순식간이다. 蓬生麻中(봉생마중)으로 좋은 환경에 있으면 쑥도 쑥쑥 자란다. 이처럼 주변 환경에 따라 희고 검게 물드는 만큼 가르치는 사람에 의한 영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교육자의 열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교육을 잘 받게 하는 분위기 조성이 빠질 수 없다. 한 사람의 스승이 가르치는데(一傅) 옆에서 뭇사람들이 떠들면서(衆咻) 방해를 한다면 교육이 잘 될 수가 없다. 아무리 가르치더라도 성과가 없다는 뜻의 이 말은 ‘孟子(맹자)’에서 나왔다.

戰國時代(전국시대) 초기 宋(송)나라 임금은 仁政(인정)을 펼친다며 주변국에서 현자를 초빙하여 조언을 청했다. 맹자도 송나라를 방문하여 겪어보고 곧 실망했다. 대부 戴不勝(대불승)에게 송왕이 정치를 잘 하기를 원하는지 물어보고 그 방법을 일러준다. 滕文公(등문공, 滕은 물솟을 등) 하편에 있다.

먼저 맹자가 대불승에게 질문한다. 만약 楚(초)나라 대부가 그 아들에게 齊(제)나라 말을 배우고 싶은데 초나라 스승이 낫겠는지 제나라 사람이 낫겠는지 묻는다. 물론 제나라 스승을 청하겠다고 답하자 이어진다. ‘제나라 스승을 청해 가르침을 받더라도 주변의 사람이 모두 초나라 말로 지껄이면(一齊人傅之 衆楚人咻之/ 일제인부지 중초인휴지)’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제나라에 아이를 보내서 배우게 한다면 저절로 배울 것이라며 둘러싼 주변 사람이 문제라고 했다. 아무리 왕이 정치를 잘 하려 해도 현명한 신하가 한둘뿐이고 나머지가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백지와 같은 초학자의 머리에는 가르치는 대로 길이 그려진다. 이전에는 능력도 안 되면서 ‘나는 바담 풍(風)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하는 사람도 있었다지만 요즘은 교육계에 우수한 사람이 모여들어 열성적으로 가르친다. 가르치는데 차별이 없고 자질에 맞춰 교육을 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런데 입시 위주의 교육은 수시로 정책이 바뀌고 또 우수 학생을 가르치는데도 길을 막는다. 자질이 높고 열의가 높은데도 여기저기서 간섭만 하는 등 학습 환경이 좋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될 수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96.html
kolaswqetsrq 11.02 22:35
약육강식弱肉强食 - 약한 자는 강자에게 먹힌다.

약육강식(弱肉强食) - 약한 자는 강자에게 먹힌다.

약할 약(弓/7) 고기 육(肉/0) 강할 강(弓/9) 밥 식(食/0)

약한 자의 고기(弱肉)는 강한 자의 먹이(强食)다. 약자가 강자에게 먹힌다는 살벌한 말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희생시켜서 번영하거나, 강자에 의해 약자가 끝내는 멸망함을 이른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셌던 공룡이 살아남고 미물들은 멸종되었어야 하는데 이치가 꼭 그렇지는 않다.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잘 적응한 생물이 생명을 유지했다. 진화론의 다윈(Charles Darwin)이 아닌 스펜서(Herbert Spencer)가 명명했다고 하는 適者生存(적자생존)이다. 약자가 자기를 지켜 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진화시켜 개체를 보존하는 것이다. 작은 나라나 민족의 興亡盛衰(흥망성쇠)도 마찬가지다.

약자와 강자의 아주 쉬운 글자로 된 이 성어는 ‘莊子(장자)’에서 같은 글자는 아니지만 비슷한 의미로 먼저 등장한다. 천하의 도적 盜跖(도척, 跖은 발바닥 척)이 설득하러 온 孔子(공자)에게 호통 치는 대목에서다. 黃帝(황제) 이후 堯舜(요순) 때는 많은 신하를 기용하여 평화로웠지만 그 이후가 문제라면서 말한다.

‘탕왕은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내쫓았고 무왕은 주를 죽였다. 이때부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다수자가 소수자를 괴롭혔다(湯放其主 武王殺紂 自是之後 以強陵弱 以衆暴寡/ 탕방기주 무왕살주 자시지후 이강릉약 이중포과).’ 湯王(탕왕)과 武王(무왕)이 폭군 桀紂(걸주)를 내쫓은 것도 잘못이라고 억지 부린다. 暴은 사나울 폭, 모질 포.

唐(당)나라 때의 문장가 韓愈(한유, 768~824)의 시문집 ‘韓昌黎集(한창려집)’에는 글자대로 나온다. 친구 柳宗元(유종원)의 요청으로 유명한 스님 文暢(문창)에게 쓴 글이라 한다. 새들이 모이를 쪼다가 사방을 둘러보고 짐승들이 숨어 있다가 가끔씩 나오는 것은 자기를 해칠까 두렵기 때문이라면서 이어진다. ‘그런데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약한 자의 고기를 강한 자가 먹고 있는 것이다(猶且不脫焉 弱之肉 強之食/ 유차불탈언 약지육 강지식).’ 불교를 배척하는 한유는 승려가 유교를 흠모하면서도 불법에 얽매여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강한 자들이 살아남는다고 해서 약자들은 그냥 죽을 수만은 없다. 天敵(천적)이란 것이 있고 ‘약질이 살인낸다’는 속담도 있다. 약자가 엄청나게 큰일을 이룰 수도 있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더욱 권력이 있다고, 재력이 넘친다고 횡포를 부리다간 언젠가는 뒤집어진다. 약자를 위해 조화롭게 잘 적응하는 것이 오래 생존하는 길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16.html
kolaswqetsrq 11.02 22:36
할지구화割地求和 - 땅을 떼어주고 평화를 구하다,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다.

할지구화(割地求和) - 땅을 떼어주고 평화를 구하다,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다.

벨 할(刂/10) 따 지(土/3) 구할 구(氺/2) 화할 화(口/5)

팽팽한 두 세력이 대립했을 때 대화를 통하여 협상하거나 힘이 밀릴 때는 양보한다.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땐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또는 더 잃지 않기 위해 다툼을 벌이게 된다. 오늘날 국제관계서도 보이지 않게 신경전을 펼치는데 옛날 제후국끼리 으르렁거렸던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처음 140여 개나 됐다고 하는 제후국이 이합집산으로 20여국으로 줄고, 그 중 힘을 떨쳤던 7개국이 秦楚燕齊韓魏趙(진초연제한위조)의 七雄(칠웅)이다. 이들끼리도 국력은 차이가 나 전투는 끊이지 않았고, 약소국은 땅을 떼어주고(割地) 평화를 구한(求和) 치욕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史記(사기)’에 처음 나오는 이 말은 趙(조)나라와 秦(진)나라의 다툼에서였다. 平原君(평원군)열전에 실려 있다. 신하를 자처하는 割地稱臣(할지칭신)도 부끄러움을 감수하는 것은 같다.

조나라는 春秋時代(춘추시대) 강력한 晉(진)나라에서 삼분됐을 때 남이 넘보지 못할 정도의 세력을 떨쳤다. 하지만 惠文王(혜문왕) 이후 진나라가 수시로 침공하여 힘이 약해졌고 급기야 수도 邯鄲(한단, 邯은 조나라서울 한, 鄲은 한단 단)까지 포위되자 6개현을 떼어주고 화친을 맺으려 했다.

진의 군대가 물러난 후 유세객 虞卿(우경)의 떼어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왕이 질질 끌자 진에서 사신 樓緩(누원)을 보내 독촉했다. 두 나라가 전쟁을 하면 이웃이 기뻐할 텐데 ‘빨리 땅을 떼어주고 화친하여 진나라를 달래는 것이 낫습니다(故不如亟割地爲和 以疑天下而慰秦之心/ 고불여극할지위화 이의천하이위진지심)’고 했다. 이후 작은 魏(위)나라와 합종하여 버티다 멸망하고 말았다.

춘추시대부터 그린 馮夢龍(풍몽룡, 1574~1646)의 ‘東周列國志(동주열국지)‘에는 晉(진) 惠公(혜공)이 큰소리친다. ’우리는 당당한 천승지국인데 땅을 떼어주고 강화를 청하고서야(以堂堂千乘之國 而割地求和/ 이당당천승지국 이할지구화) 어찌 임금노릇을 하겠는가?‘ 왕위에 오르도록 도움을 준 秦(진) 穆公(목공)에 배은망덕한 혜공은 그러나 사로잡히는 치욕을 당했다. 淸(청)나라와 영국이 1840년 아편 밀수를 두고 벌인 阿片戰爭(아편전쟁)에서 청국이 패배하고 난징南京/ 남경조약으로 홍콩을 할양한 것도 근대의 치욕이었다.

이권을 두고 다투는 조직이나 개인이나 모든 경우에 대비하여 지략을 짠다. 국가와 국가 사이라면 더욱 땅을 떼어주고 평화를 구걸하는 곤욕을 치르기 전에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요즘은 나라 간의 무역도 전쟁이니 주고받는데 손해가 가지 않도록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상대가 무리하게 도발을 하는데도 자꾸 뒤로 물러서 양보를 하면 점점 얕보고 더 이상의 요구를 한다. 그러다간 어느새 쪽박을 차게 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78.html
kolaswqetsrq 11.02 22:37
영설지재詠雪之才 - 여자의 뛰어난 글재주

영설지재(詠雪之才) - 여자의 뛰어난 글재주

읊을 영(言/5) 눈 설(雨/3) 갈 지(丿/3) 재주 재(手/0)

눈이 내리면 무딘 사람이라도 감성에 젖는다. 시인이야 말할 것도 없이 시상이 줄줄 떠오를 것이다. 몇 구절만 인용해 보자.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金東鳴 踏雪賦/ 김동명 답설부)’, ‘젊음의 개가와도 같고, 사랑의 축가와도 같다(田惠麟/ 전혜린)‘, ’그대는 내리면서, 만나는 사물마다 악보를 그려놓고, 나는 그 악보에 맞춰, 회한의 노래 부르고(이재무).‘ 첫눈에 대해 노래하는 표현은 고금이 따로 없다. 눈을 읊는(詠雪) 뛰어난 재주(之才)를 뜻하는 이 말은 어린 여아가 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에 비유하여 유명해진 뒤 글재주가 뛰어난 여자를 가리키게 됐다.

어릴 때부터 지혜롭고 날카로운 표현력을 지닌 주인공은 중국 東晋(동진)의 謝道韞(사도온, 韞은 감출 온)이다. 그는 해서, 행서와 초서의 서체를 완성했다고 書聖(서성)으로 불리는 王羲之(왕희지)의 아들 王凝之(왕응지)의 부인이고, 또한 명망이 높고 강직한 재상 謝安(사안)의 질녀로 유명하다.

사안은 前秦(전진)의 苻堅(부견) 대군을 격파하고, 당시의 세력가 桓溫(환온)이 제위까지 탐하자 그 음모를 막았다. 이 사안이 어느 날 가족들을 불러 문장에 대해서 토론을 할 때 눈이 펄펄 내렸다. ‘흰 눈이 분분하니 무엇과 같은가(白雪紛紛何所似/ 백설분분하소사)?’

사안의 형 謝奕(사혁)의 자제들이 대답했다. 조카 謝朗(사랑)은 ‘소금을 공중에 흩뿌리는 것과 비슷합니다(散鹽空中差可擬/ 산염공중차가의)’라고 말했다. 질녀 사도온이 말하기를 ‘그것보다는 버드나무가지가 바람에 불려 춤을 추며 나는 듯합니다(未若柳絮因風起/ 미약유서인풍기)’라고 했다. 絮는 솜 서. 사안이 그 자리에서 금방 멋진 비유를 하는 사도온을 크게 칭찬했다.

‘晉書(진서)’ 열전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여성의 뛰어난 문재를 詠絮之才(영서지재), 柳絮之才(유서지재), 輕瓊冷絮(경경냉서) 등으로 부르게 됐다.

재주를 모두 가진 여인을 질투하기 때문인가. 이런 문재를 가진 사도온은 그러나 평탄하지 못했다. 남편 왕응지가 반란군을 막다 살해되고 자신은 적에게 끌려갔다. 적장과 담판하여 당당히 맞서는 그녀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서도 재주가 넘치는 여성 문사들은 불우한 인생을 살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45.html
kolaswqetsrq 11.02 22:37
아사리판阿闍梨判 - 질서 없이 어지러운 상태

아사리판(阿闍梨判) - 질서 없이 어지러운 상태

언덕 아(阝/5) 사리 사(門/9) 배 리(木/7) 판단할 판(刂/5)

질서가 없고 제 주장만 난무하는 어지러운 상태를 가리키는 말은 많다. 먼저 속된 표현으로 개판을 가장 많이 쓴다. 상태,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것을 이른다.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몰골사납게 싸우는 泥田鬪狗(이전투구)는 처음 강인한 함경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옛날 과거를 보는 마당에서 선비들이 질서 없이 들끓어 뒤죽박죽이 된 亂場(난장)에서 온 난장판도 있다. 이렇게 드러난 말뜻도 알 수 있고 유래도 뚜렷한 말과 달리 아사리판은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은 말이면서도 일상에서 흔히 쓰인다.

어원이라며 주장하는 몇 가지 중에서 우리말에서 왔다는 것을 먼저 보자. 빼앗거나 가로채다는 ‘앗다’의 줄기 ‘앗-‘에서 매김꼴씨긑 ‘을’이 붙고 그 아래 사람을 나타내는 ‘이’가 붙어 ‘앗을이’가 변해서 됐다는데 빼앗을 사람과 빼앗길 사람이 한데 어울려 무법천지가 된 것을 비유했단다. 일본말 아사리(あさり, 浅蜊/ 천리)라는 조개에서 어원을 찾는 것은 담긴 그릇이 흔들릴 때 ‘사그락 사그락’ 소리가 난다는 데서 나왔다는 것이다. 蜊는 참조개 리.

이런 주장보다 더 솔깃해지는 것이 불교에서 왔다는 이야기다. 수행을 중시하는 小乘佛敎(소승불교) 종단에서 교육을 담당할 만큼 덕이 높은 스승, 또는 도가 높은 승려를 말하는 阿闍梨(아사리)에서 유래했다고 밝힌다. 아사리를 한역할 때 阿牀利(아상리), 혹은 阿遮利夜(아차리야)라고도 한단다. 사리 闍(사)는 ‘담 도’로도 읽힌다.

불교에서 나온 말 중에서 원 뜻과는 많이 변한 말이 상당히 많다. 학승과 사무를 맡은 승려 理判事判(이판사판)이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을 말하거나 싸우기를 좋아하는 악신의 이름인 阿修羅(아수라)가 난장판인 아수라장이 된 것 등이다.

덕이 높은 스승 아사리가 많으면 다양하고 깊은 의견들이 개진되고 토론하는 시간도 길어질 것이다. 이 모습이 소란스럽고 무질서해 보인 데서 질서 없이 어지러운 현장을 말하게 된 것으로 변했다고 보는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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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38
남산현표南山玄豹 - 남산의 검은 표범, 빛나는 시기를 위해 실력을 닦다.

남산현표(南山玄豹) - 남산의 검은 표범, 빛나는 시기를 위해 실력을 닦다.

남녘 남(十/7) 메 산(山/0) 검을 현(玄/0) 표범 표(豸/3)

호랑이보다 조금 작은 표범은 민첩한데다 사납지만 온 몸의 검고 둥근 무늬로 성어에서 이미지가 좋다. 표범은 죽어서도 가죽을 남긴다는 豹死留皮(표사유피)에, 무늬가 가을에 더 아름다워진다는 豹變(표변)이 있다. 갑작스레 행동을 바꿔 나쁜 의미가 많게 되었어도 처음 君子豹變(군자표변)은 허물을 재빨리 고쳐 바른 길로 간다는 의미였다.

성의 앞쪽 南山(남산)에 사는 검은 표범(玄豹)은 더하다. 검은 무늬를 더욱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해 먹는 것도 잊고 햇빛을 피해 은거한다는 이야기다. 학문을 위해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는 학자들이 즐겨 사용한 말이기도 하다.

은일거사들이 본받으려 했던 이 말은 처음 정숙한 부인이 인용한 데서 나왔다. 중국 前漢(전한) 시대 왕족 출신의 학자 劉向(유향)이 현명한 여인에서 악녀까지 104명의 이야기를 모아 귀감을 삼게 한 ‘列女傳(열녀전)’에서다. 2권 賢明傳(현명전)에 실려 있는 陶荅子妻(도답자처)가 주인공이다.

荅은 좀콩 답, 答과 통한다. 陶(도)지역의 대부 답자는 별로 한 일도 없이 3년 만에 재산이 세 배나 불어났다. 5년 만에 고향에 돌아올 때 어마어마한 행차로 모두 소를 잡고 환영했지만 그 부인은 아이를 안고 울었다. 시어머니가 화가 나서 연유를 물었다. 부인은 답한다.

‘남산의 검은 표범은 안개가 끼고 비 오는 날이 이레나 계속되어도 먹이 구하러 내려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무슨 까닭이겠습니까(南山有玄豹 霧雨七日而不下食者 何也/ 남산유현표 무칠일이불하식자 하야)?’ 좋은 무늬를 유지하고 몸을 숨겨 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인데 하는 노력도 없이 부유한 것은 재앙의 시작일 뿐이라 한 것이다. 노여움을 사 부인이 쫓겨난 지 1년도 안 돼 과연 답자는 도둑으로 몰려 죽음을 당했다. 부인은 어린 아이를 데리고 돌아와 시어머니를 잘 봉양했다.

부인의 표범 이야기는 豹隱(표은) 또는 南山霧豹(남산무표)라고도 하여 은거선비들에 더 잘 맞았다. 조선 肅宗(숙종)때의 학자 尹拯(윤증, 拯은 건질 증)의 시에도 나온다. ‘열심히 공부하려면 조용해야 하는 법(多少工夫靜裏宜/ 다소공부정리의), 남산의 안개 속 표범 보면 알 수 있네(南山霧豹可能知/ 남산무표가능지).’

사람의 능력이 단번에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는 없다. 차근차근 실력을 축적하여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우러름을 받는 자리에 오른다. 표범처럼 고충도 감내하지 않고 양지만 바라다가는 실패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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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39
괄골요독刮骨療毒 - 뼈를 긁어 독을 치료하다, 비장한 각오로 문제를 해결하다.

괄골요독(刮骨療毒) - 뼈를 긁어 독을 치료하다, 비장한 각오로 문제를 해결하다.

긁을 괄(刂/6) 뼈 골(骨/0) 병고칠 료(疒/12) 독 독(毋/5)

흔히 잘못을 저지른 단체의 지도자들이 뼈를 깎는 각오로 일하겠다고 곧잘 듣는다. 이런 비장한 각오를 수도 없이 들어와 깎을 뼈도 없을 것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나쁜 부분이나 요소들을 깨끗이 없애는 것이 剔抉(척결)이다. 剔은 뼈바를 척, 抉은 도려낼 결이니 여기에 들어맞는 말이다.

정치권에서 새로운 각오로 임한다며 肉斬骨斷(육참골단)이란 말을 많이 썼는데, 일본 사무라이의 성어라는 이 말도 살을 내주고 뼈를 끊는다는 무시무시한 뜻이 담겼다. 어느 것을 쓰더라도 남다른 각오로 임하겠다는 결의가 느껴진다.

살을 가르고 뼈를 깎아(刮骨) 독을 치료한다(療毒)는 이 말도 비장하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의 영웅 關羽(관우)가 팔에 독화살을 맞고 점점 악화될 때 태연히 의원에게 치료한 데서 나왔다. 관우가 曹操(조조)군을 공격하다 매복한 궁수에 독화살을 맞아 오른팔이 금세 부어올랐다.

부하 장수들이 사방으로 의원을 구할 때 홀연히 명의 華佗(화타)가 나타난다. 상처를 살펴보던 화타가 조용한 곳에 기둥을 박고 고리로 팔을 단단히 묶은 다음 ’뾰족한 칼로 살을 째고 뼈를 드러내 뼛속에 스며든 화살독을 긁어내고(尖刀割開皮肉 直至於骨 刮去骨上箭毒/ 첨도할개피육 직지어골 괄거골상전독)‘ 약을 바른 뒤 꿰매야 무사할 것이라 했다.

이 말을 들은 관우는 번거롭게 할 필요 없이 바로 수술해 달라고 청한다. 화타에게 주안상을 대접하고 관우는 태연히 장수 馬良(마량)과 바둑을 두며 치료를 받는다. 부하에게 떨어지는 피를 그릇에 받게 하고, 뼈를 긁어대는 소리가 나자 모두 외면하는데도 관우는 평소와 다름없이 꼿꼿한 자세로 술을 마시며 바둑을 뒀다. 수술을 마친 화타는 관우의 비범한 용기에 감탄했다.

陳壽(진수)의 정사 ‘三國志(삼국지)’에는 이 부분을 刮骨去毒(괄골거독)이라 표현하며 의원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데 화타의 사후에 일어난 일을 연의에서 재미있게 꾸몄다고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06.html
kolaswqetsrq 11.02 22:39
인재시교因材施敎 - 자질에 맞춰 가르침을 베풀다, 능력과 상황에 따라 교육하다.

인재시교(因材施敎) - 자질에 맞춰 가르침을 베풀다, 능력과 상황에 따라 교육하다.

인할 인(囗/3) 재목 재(木/3) 베풀 시(方/5) 가르칠 교(攵/7)

사람마다 능력이 제각각이고 잘 하는 분야가 다르다. 장차 하고 싶은 일도 모두 다르다. 이런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률적으로 가르친다면 효과가 있을 수 없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적성을 알아내어 그에 알맞은 방향을 정해주고 그에 맞춰 능력을 길러주는 일이다. 학자들은 어떤 교육법이 좋을지 꾸준히 연구하지만 적성이 천차만별이라 뚜렷한 길이 있을 수 없다. 장점이 쉽게 드러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 교육이다.

중국인의 영원한 스승 孔子(공자)가 훌륭한 제자를 많이 길러낸 것에는 그의 교육법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제자를 일률적으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타고난 자질에 따라 달리, 상황에 따라 맞춤교육을 했다는 내용이 ‘論語(논어)’ 先進(선진)편에 실려 있다.

공자와 함께 생사의 기로에서 고락을 함께 한 10명의 孔門十哲(공문십철)이라 해도 덕행과 언어, 정사와 문학에 뛰어난 제자를 엄격히 구분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過猶不及/ 과유불급)’는 말도 子張(자장)의 극단적인 성격과 子夏(자하)의 소극적인 성향을 파악하여 중용을 가르친 데서 나왔다.

이어지는 문답을 보자. 제자 子路(자로)가 ‘옳은 것을 들으면 곧장 실행해야 합니까(聞斯行諸/ 문사행저)?’하고 물었을 때 부형이 계시는데 어찌 바로 실천하느냐고 말했다. 冉有(염유)가 같은 질문을 했을 때 공자는 ‘들으면 곧 실행해야지(聞斯行之/ 문사행지)’라 답했다.

한 제자가 정반대의 답을 하는 스승에게 연유를 여쭈었다. 염유는 뒤로 물러나는 성품이기 때문에 과감해질 필요가 있고, 자로는 남을 이기려하기 때문에 물러날 줄 알게 한 것이라고 공자는 설명했다. 성격을 파악하여 행동하도록 가르친 것이다.

자질에 맞춰(因材) 가르침을 베푼다(施敎)는 말은 이처럼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아도 내용으로 이뤄진 典故(전고)가 논어인 성어다. 오늘날 교육은 소질과 적성을 파악하려는 공자식의 노력은 드물고 경쟁을 부추겨 결과로 나오는 점수로 좋은 학교로 진학하고 일류회사에 취업한다. 그리하여 어릴 때부터 천재교육이니 선행학습이니 하여 적성은 무시하고 몰아붙인다.

머리가 뛰어나거나 앞서가는 자질을 북돋는 수월교육도 한사코 평등주의에 파묻힌다. 한 분야의 미래인재는 드물 수밖에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47.html
kolaswqetsrq 11.02 22:40
교외별전敎外別傳 -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으로 전하는 진리

교외별전(敎外別傳) -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으로 전하는 진리

가르칠 교(攵/7) 바깥 외(夕/2) 다를 별(刂/5) 전할 전(亻/11)

배움과 깨달음을 얻는 데는 三知(삼지)라 하여 세 단계를 든다. 태어날 때부터 알고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生而知之(생이지지)다. 성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은 배워서 깨달음을 아는 學而知之(학이지지)를 하고, 막다른 곳에 이르러 어쩔 수없이 배워야 하는 困而知之(곤이지지)라도 해야 한다. 孔子(공자)는 곤경에 처해서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困而不學(곤이불학)이라 하여 하급으로 쳤다. 날 때부터 알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움을 멀리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와 통하는 이야기로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마음으로 알아듣는다는 말이 많다. 불교도들에게 친숙한 不立文字(불립문자)나 以心傳心(이심전심) 등이다. 말이나 글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된다는 뜻이다.

불자의 집에서 흔히 접하는 直指人心(직지인심) 見性成佛(견성성불)도 사람의 마음을 직관하여 본래의 성품을 깨닫고 釋迦(석가)의 비법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부처님이 연꽃송이를 집어 올렸을 때 迦葉(가섭, 葉은 잎 엽 또는 고을이름 섭)만이 알아듣고 활짝 웃은 拈華微笑(염화미소)가 흥미를 끈다. 직접적인 가르침 외(敎外)의 방법으로 깨달음을 이어받는(別傳) 이 성어도 여기서 나왔다.

이 재미있는 고사는 의외로 초기 불교관련 서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11세기 宋(송)나라 이후 등장한다고 한다. 達磨(달마)대사에게서 전해진 불교 禪宗(선종)은 어떤 경전의 문구에도 의지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수가 전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로만 전해지던 가섭의 미소가 송의 悟明(오명)이 1183년 편찬한 ‘聯燈會要(연등회요)’ 이후부터 자주 사용되었다고 전한다.

세존은 가섭에게 지혜의 눈과 깨달음의 불심, 불변의 진리와 깨치는 마음을 ‘언어와 경전에 따르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과 함께 전한다(不立文字 教外別傳 付囑摩訶迦葉/ 불립문자 교외별전 부촉마가가엽)’고 했다.

오묘한 불교의 진리를 배우지 못한 일반 사람들이 알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경전을 경시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자 없이 마음으로 구도를 통해서 전한다고 해서 올바른 진리가 오롯이 전해질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반 사회에서도 가르침을 받지 않고서 깨우칠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을 수는 없다. 그러하지 못하니 일상에서 부딪치는 여러 문제들을 푸는 해법들이 내려온다. 실패한 것에서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록한 매뉴얼이다. 큰소리치다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 이전의 가르침이 더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47.html
kolaswqetsrq 11.02 22:41
언청계용言聽計用 - 모든 말을 듣고 계책을 받아들이다.

언청계용(言聽計用) - 모든 말을 듣고 계책을 받아들이다.

말씀 언(言/0) 들을 청(耳/16) 셀 계(言/2) 쓸 용(用/0)

모든 인간관계에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신뢰는 강제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 孔子(공자)도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라 했다. 개인 뿐 아니라 조직의 상하관계에서 신뢰가 있으면 능력이 배가된다. 위에서 아래로 믿을 뿐만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올린 계획도 믿고 처리한다면 의욕이 충만할 것이다. 어떤 일을 처리할 때 한 사람이 내놓은 의견을 받아들이고(言聽) 그대로 실행한다(計用)는 이 성어가 이러한 경우를 가리킨다. 言聽計從(언청계종)이라 해도 같다.

이 말은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에서 韓信(한신)이 한 말로 淮陰侯(회음후) 열전에 나온다. 그는 처음 천하통일한 秦(진)나라가 쇠약해졌을 때 項羽(항우)에 맞선 劉邦(유방)을 도와 漢(한)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한신은 어렸을 때 매우 가난하여 빨래하는 아낙에게서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漂母飯信/ 표모반신), 그 은혜를 갚은(一飯之恩/ 일반지은) 고사가 따른다. 항상 칼을 차고 다니다 불량배 가랑이 밑을 기어간 跨下之辱(과하지욕)도 한신의 인내심에서 비롯됐다.

이런 한신이 처음에는 항우의 밑에 말단으로 있었다. 유방의 책사 蕭何(소하)가 한신의 능력을 알아보고 유방에게 천거해 대장군이 되었다. 이후 유방의 부하를 이끌고 연승을 거두자 그 능력에 감탄한 항우가 사람을 보내 독립하라고 회유했다. 한신은 漢王(한왕)이 자신에게 대장군 직위를 주고 수만 병력을 통솔하도록 해 주었다면서 거절한다. 그러면서 유방의 은혜를 나열한다.

‘자기의 옷을 벗어 나에게 입히고, 자신의 음식을 대접했으며 나의 건의를 듣고 나의 계책을 써 주기까지 했소(解衣衣我 推食食我 言聽計用/ 해의의아 추식식아 언청계용).’ 여기서 은혜를 베풀고 사람을 중용한다는 解衣推食(해의추식)이 나왔다.

이렇게 의리를 지킨 한신도 나중에는 兎死狗烹(토사구팽) 당하고 만다. 유방에게 배신당한 것이다. 통일을 이루고 황제에 오른 뒤 배신하는 것도 믿음이 부족해서다. 사람을 한 번 믿으면 열린 마음으로 끝까지 흔들리지 않아야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아랫사람이 지도자를 선택할 때도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면 그 조직이 업적을 낼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86.html
kolaswqetsrq 11.02 22:41
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 -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 -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임금 왕(玉/0) 제후 후(亻/7) 장수 장(寸/8) 서로 상(目/4) 편안 녕(宀/11) 있을 유(月/2) 씨 종(禾/9) 어조사 호(丿/4)

‘씨도둑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아비와 자식은 용모나 성질이 비슷하여 속일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선조가 떵떵거리는 집안이라도 대대로 후손들이 높은 자리에 오를 수는 없다. 능력까지 물려받을 수는 없어 ‘씨가 따로 있나’라는 속담을 낳았다. 똑 같은 말로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王侯將相)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寧有種乎)라는 명구가 있다. 능력은 뛰어나고 포부도 큰데 주위의 여건이 따라주지 못해 뜻을 펴지 못하면서 울분을 토하는 표현이다. 王侯將相 何有種(왕후장상 하유종)으로 쓰기도 한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품팔이꾼으로 지내던 陳勝(진승)과 빈농 출신의 吳廣(오광)이었으니 더욱 와 닿는 표현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秦(진)나라도 始皇帝(시황제)가 죽고 胡亥(호해)가 즉위한 뒤로는 간신 趙高(조고)가 권력을 좌우해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

빈민들을 국경으로 징집할 때 통솔하던 진승과 오광은 도중 大澤鄕(대택향)이란 곳에 이르렀을 때 큰 비를 만나 길이 끊기고 도저히 나아갈 수가 없었다. 정해진 기한 내에 가지 못하면 목이 달아나고 도망치더라도 잡힐 것이 뻔했다. 900여 명을 이끌던 두 사람은 죽는 게 마찬가지라면 차라리 난을 일으켜 나라를 세우다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무리들을 소집했다.

진승이 앞으로 나서 나라의 명을 어기게 되어 꼼짝없이 모두 죽게 됐는데 앉아서 당할 수 없다며 일장 연설을 했다. ‘목숨을 건다면 이름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따로 있다더냐(死即擧大名耳 王侯将相寧有種乎/ 사즉거대명이 왕후장상영유종호)!’ 이렇게 해서 반란의 기치를 높이 들자 주위에서 크게 호응했고 지나는 지역마다 연전연승했다.

이들은 국호를 張楚(장초)로 명명하고 세력을 떨치다 진나라 장수 章邯(장한)의 조직적인 반격에 몰락하고 말았다. 반란군 우두머리 진승이 제국을 망하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司馬遷(사마천)은 ‘史記(사기)’에서 陳涉(진섭)세가에 기록했다. 涉(섭)은 진승의 자, 世家(세가)는 제후나 왕의 기록이다.

진승은 잘 알려진 또 다른 명언을 남겼다. 바로 ‘참새나 제비가 어찌 고니의 뜻을 알리요(燕雀安知 鴻鵠之志)’란 말이다. 평범한 사람이 영웅의 큰 뜻을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진승도 세력을 잡았을 때 가까운 사람을 내쳐 마부에게 죽음을 당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오늘날 더 답답해할 사람들이 온갖 자격증을 갖춘 젊은이들일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은 갈수록 줄어들고 빈부의 차는 더 커진다. 재력가와 권력층이 자신들만의 더 탄탄한 성을 구축한다면 큰 뜻을 펴 볼 도리가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09.html
kolaswqetsrq 11.02 22:42
여위열기자용女爲悅己者容 - 여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치장한다.

여위열기자용(女爲悅己者容) - 여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치장한다.

계집 녀(女/0) 하 위(爪/8) 기쁠 열(心/7) 몸 기(己/0) 놈 자(耂/5) 얼굴 용(宀/7)

기쁠 悅(열)은 ‘순종하다’, ‘사랑하다’란 뜻이 있다. 얼굴 容(용)은 ‘용량’, ‘받아들이다’, ‘치장하다’, ‘맵시내다’란 뜻도 있다. ‘여인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한다‘란 뜻의 이 성어는 남녀 성 평등이 강조되는 요즘 세상에 무슨 엉뚱한 말인가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이 구절의 앞에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란 뜻의 士爲知己者死(사위지기자사)와 함께이면 달라진다.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고, 진심을 알고서 항상 감싸주는 사람에게 나쁜 감정을 가질 수는 없다. 더군다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라 한 사람도 있다.

刺客(자객)은 사람을 찔러 죽이는 전문적인 킬러를 말한다. 司馬遷(사마천)은 ‘史記(사기)’에 5명의 자객들을 등장시켜 박진감 있게 그린다. 자객열전에서 살인자인 이들을 협객으로 높인 것은 개인적인 은원이 아닌 자신의 가치를 인정한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렸기 때문이다.

晉(진)나라 사람인 豫讓(예양)은 유력 씨족이었던 智伯(지백)에게 발탁되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지백은 별 볼일 없던 그의 사람됨을 높이 평가하고 신임했다. 하지만 세력다툼에서 趙襄子(조양자)에게 패배하고 지백은 두개골이 요강으로 사용되는 수모를 입었다. 예양은 산속으로 도망치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꾸민다고 했다. 목숨을 바쳐 지백의 원수를 갚아야만 내 영혼이 그에게 부끄럽지 않으리라(士爲知己者死 女爲說己者容 以報智伯 則吾魂魄不愧矣/ 사위지기자사 여위설기자용 이보지백 즉오혼백불괴의).’ 예양은 변장을 하고 몇 번이나 조양자를 습격했으나 실패했다.

의리 있는 선비라며 풀어주자 몸에 옻칠을 하고 문둥병을 가장하여 또 암살을 기도했지만 또 실패하자 조양자의 옷을 달라고 하여 옷을 찌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漆身呑炭(칠신탄탄)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인재를 등용할 때 무엇인가를 바라지 않고 진심으로 그의 능력만을 산다면 배신당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오랫동안 상관의 덕으로 권력을 휘둘렀더라도 성심이 느껴지지 않을 경우 자신이 불리할 때면 등을 돌린다. 하급자의 배신을 욕하기 전에 상급자가 성심껏 자신을 대해 주었는지 알아 볼 일이다. 모든 일에는 신뢰가 가장 앞서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52.html
kolaswqetsrq 11.02 22:43
편언절옥片言折獄 - 한마디 말로 송사의 시비를 가리다.

편언절옥(片言折獄) - 한마디 말로 송사의 시비를 가리다.

조각 편(片/0) 말씀 언(言/0) 꺾을 절(扌/4) 옥 옥(犬/11)

재판은 어렵다. 서로 옳다고 대립하는 양자의 주장이 모두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도 같고 저런 것도 같고 해서 한 쪽을 편들 수 없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속담이 나왔겠다. 더하여 자기의 잘못을 발뺌하고 악의로 남을 덮어씌운다면 잘잘못을 가리기가 더 어려워진다. 이럴 때 ‘송사는 졌어도 판결은 잘 하더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솔로몬 왕의 현명한 판단이 절실하다.

한 마디 말(片言)만 듣고서 송사의 대립된 의견을 명쾌히 풀어준다(折獄)는 이 성어는 간혹 명판관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보통 사람은 실행하기 어려운 난제를 이끄는 자가 앞장서 한두 마디 말로써 시원하게 해결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片言可決(편언가결), 片言決獄(편언결옥)이라 써도 같은 뜻이다.

孔子(공자)의 제자 子路(자로)는 魯(노)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仲由(중유)이고 季路(계로)로도 불렸다. 성격이 강직하고 용맹했기에 스승으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자로가 성격이 거친 무뢰배 출신이었지만 공자의 훈계로 입문한 뒤 충성스럽고 신용이 있는 인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공자가 자로를 가리켜 몇 마디 말로써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라 평한 것이 ‘論語(논어)’ 顔淵(안연)편에 실려 있다. 부분을 보자. ‘한 두 마디 말로 송사를 판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유일 것이다. 자로는 승낙한 것을 묵혀두는 일이 없다(片言可以折獄者 其由也與 子路無宿諾/ 편언가이절옥자 기유야여 자로무숙낙).’

자로처럼 소송 당사자중 양 쪽의 한두 마디 말로 해결을 내릴 수 있으면 명판관이다. 하지만 예부터 형을 집행하려면 여러 고관들의 의견을 듣고 뭇 신하와 뭇 백성에게까지 묻는다고 했으니 잘못 판결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茶山(다산)은 ‘牧民心書(목민심서)’에서 ‘몇 마디 말로써 송사의 시비를 가려 마치 귀신처럼 판결을 내리는 자는 별다른 천재이니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흉내 낼 바 못 된다(片言折獄 剖決如神者 別有天才 非凡人之所傚也/ 편언절옥 부결여신자 별유천재 비범인지소효야)’고 충고한다. 刑典(형전) 聽訟(청송)조에 나온다. 剖는 쪼갤 부, 傚는 본받을 효.

공자가 자로처럼 잘 판결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앞서야 할 것은 송사가 없게 하는 일이라 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법정에서 거짓진술을 하는 위증이나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상대를 옭아 넣는 誣告(무고) 범죄가 계속 늘어난다고 한다. 이처럼 거짓범죄가 늘어나면 사회정의는 까마득하다. 한두 마디로 거짓 송사를 일소하는 방법은 없을까.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67.html
kolaswqetsrq 11.02 22:44
◇ 오금이 저리다... 오금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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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금이 저리다... 오금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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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비견, 슬하, 오금, 부아, 초미, 구설수, 미주알을 위에서 아래 순서대로 나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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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한 의과대학 시험에 나온 문제입니다. 순서는 둘째 치고 각 단어가 무슨 뜻인지 이해되시나요? 눈치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위 단어들은 신체를 나타내는 말인데요. 애가 타다 오금이 저리다처럼 관용 표현으로 쓰이죠. 이처럼 우리말에는 신체에 비유한 관용 표현이 많은데도 뜻을 잘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요. 어떤 표현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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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애타는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처럼 쓰는 \애가 탄다\는 창자·쓸개가 탄다는 의미인데요. 속이 매우 타들어가 안타깝고 초조함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한국 제품 수준이 선진국과 비견할 만큼 높아졌다"에서 \비견\(比肩)은 실력이 비슷하다는 뜻으로 \견\은 어깨를 말하죠. 따라서 \비견하다\는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의미입니다.

애가 둘이라는 표현을 "슬하에 두 자녀를 두었다"고 하는데요. 슬하(膝下)는 \무릎 아래\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부모의 보호를 받는 테두리\를 의미합니다.

긴장되고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오금이 저리다"는 말 많이 하시죠? 오금을 사타구니나 허벅지로 잘못 알고 계신 분들도 많은데요. 오금은 무릎의 구부러지는 오목한 안쪽 부분으로 "오금이 저리다"는 저지른 잘못이 들통나거나 그 때문에 나쁜 결과가 있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는 것을 일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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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신체를 나타내는 말로는 △허파를 뜻하는 부아(부아가 나다- 노엽거나 분한 마음이 생기다) △눈썹에 불이 붙는다는 뜻의 초미(초미의 관심사- 현재 가장 뜨거운 관심을 불러모으는 일) △창자의 끝 부분을 가리키는 미주알(미주알고주알- 아주 사소한 일까지 속속들이) △입과 혀를 말하는 구설(구설수- 남과 시비하거나 남에게서 헐뜯는 말을 듣게 될 운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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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평소 자주 쓰는 관용 표현이 어떤 낱말로 이뤄졌는지 뜻을 안다면 이해하기 훨씬 더 쉽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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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제입니다. 마음놓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심복이라고 하는데요. 심복은 신체 중 어디를 말할까요.(힌트를 드리면 심복의 한자는 心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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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파

2. 눈썹

3. 심장·배

4. 무릎

정답은 3번 심장·배입니다.

-머니투데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55.html
kolaswqetsrq 11.02 22:44
◇ 미얀마 시위와 밀크티 동맹

◇ 미얀마 시위와 밀크티 동맹

19세기 영국과 청나라 간 아편전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차(茶)였다. 당시 영국에서는 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청으로부터 차를 사들일 결제대금 은이 절대 부족했다. 그래서 영국이 고안한 것이 인도를 끼워넣은 ‘삼각무역’이었다. 대중국 무역 독점권을 가진 동인도회사가 영국의 모직물을 인도에 수출하면, 인도는 중국에 아편을 수출하고, 그 대가로 영국이 차를 가져오는 식이다. ‘차의 정치경제학’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차가 다시 국제정치의 중심에 섰다. 태국과 중국 간 소셜미디어(SNS) 전쟁이 계기였다. 태국의 한 유명인이 트위터에 홍콩을 국가로 묘사한 이미지를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중국 누리꾼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한 처사라며 강력 반발했다. 급기야 두 나라 간 갈등에 홍콩과 대만 누리꾼들이 태국 편에 가세하면서 반중국 운동으로 번졌다. 이를 계기로 태국과 홍콩, 대만 등 세 나라 누리꾼들이 결성한 것이 ‘밀크티 동맹’이다. 차를 즐겨 마시는 중국과 달리 세 나라가 밀크티를 마신다는 공통점에 착안해 만든 이름이다. 밀크티 동맹은 지난해 인도와 중국 간 국경분쟁으로 인도 누리꾼까지 가세하면서 세력을 확장했다.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2월 마지막 날, 미얀마에서 군경의 총격으로 시위대 최소 18명이 숨졌다. 쿠데타 발발 한 달 만의 최악의 유혈사태다. 그러자 홍콩과 태국 방콕, 대만 타이베이에서 청년들이 미얀마 시민 지지 거리시위를 벌였다. SNS상에서만 연대의 뜻을 표출하던 밀크티 동맹이 오프라인으로 활동무대를 넓힌 것이다. 반군부 시위에 나선 미얀마 시민들은 국제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절감하던 터였다. 특히 쿠데타 세력을 강력 비난한 서방국가들과 달리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중국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시민의 안위는 도외시한 채 미얀마의 전략적 가치만 따지고 있다는 것이다.

밀크티 동맹이 미얀마 사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외롭게 투쟁하는 미얀마 시민에게 최대 지원군인 것은 틀림없다. 밀크티 동맹이 만약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켜내고, 나아가 반중 연대라는 한계까지 넘어선다면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 운동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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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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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53.html
kolaswqetsrq 11.02 22:45
◇ 미얀마의 세 손가락 경례

◇ 미얀마의 세 손가락 경례

미국 작가 수잔 콜린스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헝거게임:판엠의 불꽃’은 독재 정권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다룬 2012년 영화다. 미래 가상국가 판엠은 12개 구역에서 2명씩 추첨해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고 이를 24시간 생중계하면서 주민들을 통제한다. 동생이 뽑히자 자원자로 나선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을 향해 주민들은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세 손가락 경례(Three-finger salute)를 한다. 주인공이 게임 중 동료가 숨진 뒤 주민들을 향해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면서 혁명은 시작된다. 전 세계 스카우트 회원끼리 우정과 예의를 표하는 스카우트 삼지례에서 원형을 찾기도 한다.

영화의 장면이 현실이 된 건 2014년 5월이다. 태국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시위대는 저항의 표시로 세 손가락 경례를 택했다. 태국 시위대는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를 표방했다. 세 손가락 경례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도 등장했다. 지난달부터는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세 손가락 경례를 저항의 상징으로 쓰고 있다.

초 모 툰 유엔 주재 미얀마 대사가 유엔총회에서 미얀마 군부를 향해 쿠데타를 즉각 종식하고 무고한 시민에 대한 억압도 당장 멈출 것을 촉구했다. 그는 “국가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줘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도 필요한 조치를 해달라"며 세 손가락 경례를 했다. 군사 정권의 서슬에도 굴하지 않은 외교관의 울림은 컸다. 일격을 당한 군정은 곧바로 그를 해임했지만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맞서 싸울 것"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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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일요일을 보낸 미얀마에서 희생자가 크게 늘고 있다. 군부는 시민들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며 유혈 진압을 서슴지 않고 있다. 미얀마의 세 손가락 경례는 비폭력 민주주의 운동이란 점에서 가깝게는 촛불 시위, 멀게는 3·1운동과도 연결점이 있다. 군부 쿠데타에 대한 저항이란 점에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미얀마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도 울려 퍼진다고 한다. 엄혹한 시절, 국제 사회의 관심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됐다. 이젠 우리가 미얀마에 힘이 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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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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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26.html
kolaswqetsrq 11.02 22:46
◇ 각 나라의 지폐에 실린 얼굴을 살펴보니

◇ 각 나라의 지폐에 실린 얼굴을 살펴보니

지폐는 한 나라의 영웅 전시장이다.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을 주기적으로 바꿔 온 영국이 대표적 사례다. 도안으로 쓰인 인물 면면에서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위용을 느낄 수 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파운드화를 장식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국력이 뻗어나가던 시기에 각 분야에서 활약했던 선각자들을 엔화 도안으로 즐겨 쓴다. 19세기 후반 “서양 문물을 배우자”며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2년간 구미 10여국을 누볐던 이와쿠라 도모미를 비롯해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외친 후쿠자와 유키치 등이 번갈아 등장했다. 여성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를 5000엔권 인물로 택한 것은 근대화 시기에 이미 여성 문인들이 활약하던 문화 선진국이란 이미지를 국내외에 선전하기 위해서였다. 2024년엔 일본 경제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새로 선보일 예정이다.

미국 달러화의 주인공은 단연 대통령들이다. 현재 통용되는 지폐 7종 중 5종이 역대 대통령이다. 20달러 지폐 인물인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오바마 정부와 트럼프 정부에서 퇴출과 회생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 엊그제 바이든 정부에 의해 최종 퇴출로 결론났다. 유색인종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는 바이든 정부가 인종차별주의자로 악명 높았던 잭슨 대신 19세기 흑인 여성 인권 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을 쓰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터브먼은 그 암흑 시절 여성의 몸으로 흑인 노예 수백명을 탈출시킨 사람이다.

지폐 도안에 한 나라가 이룩한 업적과 지향하는 가치만 담기는 것은 아니다.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도 된다. 영국은 지폐 뒷면에 어떤 인물이 오든 앞면은 국가원수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다. 미국 연방법은 1달러에 새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초상을 바꿀 수 없도록 못 박고 있다.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으로 수천만 명을 굶겨죽이고 살해했는데도 모든 위안화 지폐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

우리 지폐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운 초대 대통령도, 민족을 가난의 질곡에서 구출한 중흥 대통령도 없다. 마라토너 손기정도 없고, 안중근도 없다. 조선시대 인물들뿐이다. 지폐 인물이 정치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쨌든 우리 지폐에선 한민족이 이룩한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의 70년 역사는 볼 수 없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40.html
kolaswqetsrq 11.02 22:46
■ 무령왕릉 6편

■ 무령왕릉 6편

무령왕릉은 발굴 직후 한동안 폐쇄됐다가 유물을 모두 수습한 뒤 빈 고분은 송산리 고분군 5, 6호와 함께 일반 관광객에게 1976년 2월부터 공개되었다. 당시 무덤 입구를 거쳐 무덤방까지 관람객들이 들어가서 무덤방 입구에 설치된 유리창 너머로 안쪽을 구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때 문제가, 무령왕릉의 봉분은 이미 허물어져 있어 얼마나 컸는지 원형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재단장과 공개 과정에서 마치 신라 왕릉처럼 봉분을 거대하게 쌓아버렸다. 혹시나 백제 왕릉이 신라 왕릉만큼 웅장해야 한다는 근거없는 경쟁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무덤방 위에 지나치게 거대하게 봉분을 쌓고, 무게중심도 무덤방 중심 부분에서 서북쪽으로 기울어진 곳으로 쌓다보니 봉분 무게 때문에 왕릉 무덤방이 찌그러지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1989년에는 무덤방 벽면과 그 앞에 관람객 차단 유리벽에 물기가 맺히고 곰팡이가 피는 현상이 관찰됐다. 이어 1997년에도 왕릉이 기울고 물이 샌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때문인지, 1998년 5~12월에 공주시의 의뢰를 받아 무령왕릉을 포함한 송산리 고분군의 보수 상태를 점검했는데, 이 때 무령왕릉은 내부에 금이 가고 봉분 내부로 물이 스며들고 있다고 진단받아 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결국 발굴 26년째인 1997년 7월 15일 무령왕릉을 포함한 송산리 고분군 5, 6호분의 석실들은 관람목적의 개방이 전면 금지되었다. 당시에는 1년간 한시적 폐쇄였지만 이후 지금까지도 다시 일반 관광객에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그 대신 송산리 고분군 모형전시관을 2003년 만들어 관광객들이 대신 내부 구조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국립공주박물관에 무령왕의 유물을 전시해 놓은 ‘무령왕릉실’을 ‘웅진백제실’로 개편하면서 무령왕과 왕비의 실제 목관을 2017년에 46년 만에 최초로 공개했다.

무령왕릉을 두고 건축이나 문화사와 고고학적인 면에서도 많은 이들이 최고의 걸작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무령왕릉의 최고의 가치는 세계로 열린 개방성 그리고 많은 문화를 하나로 묶어서 품어내는 포용성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문화, 새로운 우리의 것을 만들어 낸 독창성이라고 하겠다. 무령왕릉 속에 한, 중, 일 세 나라의 문화와 문물이 모두 녹아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무령왕릉에는 우리의 토착신앙, 불교, 도교 문화도 함께 녹아들어 있어 정신문화를 한데 아우르는 결정체라 할 수 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6_12.html
kolaswqetsrq 11.02 22:47
■무령왕릉 5편

■무령왕릉 5편

2009년 12월 8일 무령왕릉에서 출토되었던 뼛조각 4개가 무려 38년 만에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되었다. 발굴현장이 워낙 엉망이었던지라 바닥에 있는 유물들을 빗자루로 봉투에 쓸어 담아 가져가다 보니 뒤늦게 발견된 것이다. 무령왕릉 발굴이 얼마나 비전문적이었는지 다시 한 번 보여준 사례이다. 발굴 유물의 이송과 보존 과정에서도 발굴조사단과 지역 주민과의 마찰이 일어났다. 1970년대 당시 공주박물관의 시설이 미흡해서 서울로 이송하여 보존하려고 했는데, 공주 주민들이 소식을 듣고는 공주의 유물을 영구히 서울에 가져가 돌아오지 못할 것을 우려해 몰려와서 단 한 점도 서울로 가져가게 할 수 없다고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로 옮겨갔던 무령왕릉의 유물은 그 뒤 새로운 국립공주박물관이 건립되면서 대부분 공주로 다시 돌아왔다.

총체적으로 경험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발굴단도, 기자도, 주민들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성숙한 지식을 얻을 기회가 없었고, 결국 당대 사람들의 인식이 미숙한 탓에 역사에 남을 실수를 한 것이다. 하지만, 50년 전 한국 고고학(考古學)의 수준이 오늘날과는 크게 달랐다는 사실도 감안해서 이해해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국내의 모든 유적 발굴은 대부분 일본인 학자들이 독점해 주도하였으며, 더러 서양인이 하기도 하였다. 한국인들은 단순 일꾼이나 낮은 위치에서 보조 역할만 맡았다. 광복과 함께 일본인 고고학자들이 한꺼번에 떠나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후회스러운 발굴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무령왕릉의 실패는 후대 한국 고고학계의 반면교사가 되어 그 뒤 경주 고분을 발굴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이 되었다, 무령왕릉 발굴과 같은 일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이후 우리 고고학의 큰 성장을 이룬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현재는 고고학적 유물의 발굴에는 꼭 현장 지휘부의 설치와 경비가 중시된다. 천마총 발굴 때에는 전체 브리핑 외에는 기자들의 보도를 최대한 통제하고, 발굴단원들이 기자들의 취재에 일부러 응하지 않거나 발굴현장에 철조망을 치는 등 현장을 거의 봉쇄한 상태로 발굴을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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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48
■ 무령왕릉 4편

■ 무령왕릉 4편

지석에 따르면 무령왕은 사마라는 이름을 썼다. 동성왕의 아들로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일본 지역을 다스리던 사마왕이었다. 아버지가 죽자 귀국하여 왕위에 올라 귀족 세력을 제압하고 백제 부흥을 위해 애썼다. 이는 백제의 지배력이 일본에까지 미쳤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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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전(前) 일왕 아키히토(明仁)가 던진 한마디가 일본 사회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아키히토 일왕은 “나 자신도 간무(桓武)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낍니다.” 라고 했다. 말하자면, 일왕의 가계(家系)가 한국에서 왔다는 고백이 되는 것으로 일본 사회에 크나큰 파장을 던졌다. 2004년 8월에는 그런 이유로 아키히토 전(前) 일왕의 당숙인 아사카노미야가 방한(訪韓)해서 무령왕릉을 참배하고 일본에서 가져온 제사물품을 기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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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무열왕릉은 이런 역사적·학술적 가치와 대비되는 어처구니없는 졸속 발굴 때문에 ‘사상 최악의 발굴’로도 알려져 있다. 무령왕릉의 발굴은 당시 ‘하룻밤 삽질로 이루어진 도굴 수준의 발굴’이라고 비판받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1년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발굴의 총책임자이자 현장책임자였던 작고(作故)한 고고미술사학자 김원룡 선생은 발굴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발굴대원들은...철야작업을 해서라도 발굴을 속히 끝내기로 합의했다. 철조망을 돌려치고, 충분한 장비를 갖추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눌러앉았어야 할 일이었다. 몇 달이 걸렸어도 그 나무뿌리들을 가위로 하나하나 잘라서 장신구들을 들어냈어야 했다. 고고학 발굴의 ABC가 미처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예기치 않던 상태의 흥분 속에서 내 머리가 돌아 버린 것이다.”

도굴이 한 번도 되지 않은 귀중한 왕릉의 발굴이었지만, 보통은 몇 년은 걸릴 법한 발굴 조사를 17시간, 겨우 하룻밤 만에 해치워버린 것이다. 비록 유물은 다 챙겼지만, 유물만큼이나 중요한 유물의 배치를 비롯한 현장 사진과 기록이 너무나도 부실했다. 남아있는 자료는 급하게 끝낸 부실한 실측자료와 약간의 사진, 그리고 사진 기자들의 학술적인 가치가 결여된 사진뿐이었다. 희대의 발굴을 취재하던 기자들 역시 유물이 발견되자, 어떻게든 내부로 들어가 사진을 찍으려고 일부는 책임자를 폭행하고 유물을 파손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현장이 이렇듯 전혀 통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자들은 유물이 도난 될 수도 있다는 조급한 마음에 기록도 없이 유물을 자루에 쓸어 담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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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49
■ 무령왕릉 3편

■ 무령왕릉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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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발굴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지석(誌石)이다. 지석이란 죽은 사람의 인적 사항이나 무덤의 소재를 기록하여 묻은 판석(板石)이나 도판(陶板)을 말한다. 이 석판을 통해 백제 제25대 무령왕(재위 501~523)과 왕비가 합장(合葬)된 무덤임이 밝혀졌다. 왕릉은 왕이 죽기 11년 전부터 만들기 시작했고, 왕과 왕비를 2년 3개월 동안 가매장한 후에 정식 왕릉으로 옮기는 백제의 매장 풍습, 땅과 지하의 신들에게서 토지를 사서 무덤을 쓰는 개념 등을 알 수 있었다. 지석 앞면에는 ‘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寧東大將軍 百濟斯麻王)’이라는 무덤 주인공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고, 뒷면에는 『무령왕은 523년 5월에 사망했고, 525년 8월에 왕릉에 모셨으며, 왕비는 526년 11월에 사망했고, 529년 2월에 안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왕과 왕비가 세상을 떠난 지 28개월 만에 무덤에 안치된 것이다. 28개월 동안은 능 부근에서 임시로 장사지냈으며, 이것은 삼국에서 모두 유행하던 장례 형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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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은 입구가 있는 돌로 된 방 형태여서 다른 무덤에 비해서 도굴되기 쉬운 무덤 구조였다. 그런데도 발견될 당시에 그 내용물이 하나도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큰 화제가 됐었다. 무덤의 입구에는 왕과 왕비의 이름이 새겨진 지석 2매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오수전 한 꾸러미가 얹혀 있었다. 오수전을 올려놓은 이유는 여행갈 때 여비를 가지고 가는 것처럼 죽은 왕과 왕비가 저승에 갈 때 노잣돈으로 사용하라고 올려놓은 돈이다. 이 돈은 중국 양나라의 돈으로, 이를 통해 백제와 양나라 사이에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석 뒤에는 무덤을 지키는 상징적인 동물인 진묘수가 남쪽을 향해 서 있다. 입구를 지나 무덤의 방안으로 들어서면 관을 올려놓을 수 있는 대 위에 왕과 왕비의 시신을 넣은 나무관이 나란히 두 개 놓여 있다.

세월이 오래되어 썩고 부스러진 나무관 밑에서는 왕과 왕비가 사용했던 장신구와 부장 유물이 출토됐다. 금관 장식, 금귀고리, 금동 신발, 금팔찌 등과 같은 장신구는 물론 왕의 허리에서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용과 봉황이 새겨진 환두대도가 출토됐다. 또 왕과 왕비가 편하게 머리와 발을 괼 수 있도록 두침과 족좌가 목관 안에 놓여 있었고, 그밖에 청동 거울 3면과 동탁 은잔 등도 출토되었다. 두침은 왕비 주검의 머리 부분을 받쳐 놓았던 받침대이고, 족좌는 나무로 만든 발받침 장신구이다. 왕의 다리를 받치는 족좌와 왕비의 머리를 받치는 목침의 경우 왕의 것은 검은 옻칠과 금으로 장식했고, 왕비의 것은 붉은 단청과 금칠을 했다.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의 배치로 무덤의 입구에서 무덤방을 바라볼 때 왕은 오른쪽이고 왕비는 왼쪽이며, 무덤의 입구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나무 관 조각들에서 일본산 금송(金松)과 삼나무가 쓰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당시 백제와 일본의 밀접한 관계를 짐작하게 해주는 유물이며, 일본에서 목재를 수입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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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49
■ 무령왕릉 2편

■ 무령왕릉 2편

《삼국사기》에는 무령왕의 키가 8척이나 되고 인자하며 너그러워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신흥 귀족 세력으로 큰 힘을 가지고 있던 백가의 반란을 진압하고 왕권을 튼튼히 했으며, 지방에 왕족이나 충성스러운 신하를 관리로 파견하여 다스리는 담로 제도를 실시해 전국을 안정시켰다. 또한 무령왕은 수리 시설을 정비하여 농사 활동을 돕고, 국방을 튼튼히 하는 한편 일본이나 양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다지기도 했다. 그리고 고구려와 말갈과의 전쟁을 준비는 등 북방정책을 추진했다. 당시 백제는 고구려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긴 뒤 매우 큰 혼란에 빠져 있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하는 등 백성들의 삶도 피폐해져 있었다. 그래서 무령왕은 고구려의 남하에 맞서 국방 체제를 정비하는 한편,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려 노력하였다.

그의 재위 기간에는 흉년이 자주 들었는데,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만으로도 502년(무령왕 2년), 506년(무령왕 6년), 521년(무령왕 21년)에 홍수와 가뭄, 전염병, 메뚜기 떼의 창궐 등으로 백성들이 크게 굶주렸다고 나타나 있다. 무령왕은 창고를 열어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한편, 510년(무령왕 10년)에는 왕명으로 하천의 제방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도회지로 몰려든 유민들을 농촌으로 보내 농사를 짓게 하였다. 백성들의 유랑(流浪)은 세수(稅收)의 감소 뿐 만 아니라 인력 동원 등 여러 면에서 국력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에 무령왕은 적극적인 민생구제정책으로 농민층의 안정을 추진하여, 국가재원의 확보로 이어지는 경제정책을 펼쳐나갔다. 이러한 대민정책은 한강 유역의 상실 이후 축소된 경제기반을 확대하고 농업생산의 증대를 도모하여 정권의 물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백성들의 안정을 통해 강력한 국가를 재건하고자 한 것이다.

도굴이 어려운 구조인 신라 왕릉과 달리, 백제 왕릉은 출입구가 따로 존재하고 돌무지로 덮혀 있지도 않은 굴식 돌방 또는 벽돌무덤 양식이었으므로, 백제가 멸망한 이후 거의 도굴(盜掘)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무령왕릉처럼 도굴을 피해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는 건 한국판 투탕카멘급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무령왕릉은 무덤이 통째로 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도굴과 일제강점기의 약탈에도 온전하게 발굴되어서 전국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무령왕이 지금과 같이 유명해진 이유이다.

무령왕릉은 송산리 고분군 중 5호분과 6호분의 침수를 방지하기 위해 배수로 작업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어 무려 1400년 만에 그 베일을 벗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무령왕릉은 중국 육조(六朝)의 전실분(塼室墳) 형식을 띤 연화문(연꽃무늬) 벽돌로 아치를 쌓은 아치형 벽돌무덤이다. 백제 고분으로서 전축분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은 당시 중국 남조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이 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108종 2,906점의 장신구와 유물로, 지금까지 발견된 어떠한 발굴보다도 원형을 잘 간직한 백제 시대의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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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50
■ 무령왕릉 1편

■ 무령왕릉 1편

백제의 고분은 시대에 따라 크게 서울 석촌동·구의동 일대의 초기 돌무지무덤과 웅진(공주) 천도(遷都)이후의 송산리 고분군, 그리고 사비(부여)시대의 능산리 고분군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무덤을 칭할 때 보통 왕이나 왕비의 무덤은 능이라 하고(태릉, 정릉 등) 일반인의 무덤은 ‘~묘’라고 한다. 주인을 특정(特定)할 수 없는 옛날 무덤을 통상 글자그대로 고분(古墳)이라 칭하는데(일정지역에 여러 기의 고분이 모여 있을 때 고분군), 발굴은 했지만 왕에 준하는 사람 무덤 같긴 한데 주인공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장군총처럼 ~~총이라고 한다. 1971년 7월 무령왕릉이 발견되기 전까지 삼국시대의 고분 중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신라 무열왕릉도 있긴 하지만 실제 위치가 특정되거나 발굴이 이뤄진 건 아니기 때문에 고고학·역사학계가 인정하는 삼국시대의 ‘능’은 무령왕릉 뿐 이다.

일제강점기의 국내 유적은 일본인들이 전부 발굴과 연구를 독차지했는데, 대부분 조선총독부 박물관 차원에서 담당하였다. 반면에 공주 일대 무덤을 발굴한 가루베 지온은 공주고등학교 교사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로,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박물관 측 일본인 조사자들과 유적, 유물의 발굴 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했었다. 박물관 또는 박물관 소속의 일본인 고고학자들의 발굴은 어쨌거나 박물관으로 유물이 옮겨져 전시되었던 반면, 가루베 지온은 발굴된 유물을 일본으로 빼돌렸다. 이러한 일제의 발굴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백제 특유의 낮은 봉분으로 인해 고분임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에 그 이유가 있다.

무령왕릉은 백제 무덤 중 유일하게 주인이 확인된 왕릉이면서 도굴되지 않고 고스란히 발굴된 유적이었으므로, 축조연대·내부구조·부장유물을 온전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덕분에 백제의 국가상, 사회생활, 중국 남조 양나라와의 문화교류, 장사(葬事) 예법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상호 간의 문화교류, 각국 문화의 특수성과 공통점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령왕릉마저 도굴되었다면 우리는 백제의 예술 수준이나 국제관계 등을 영원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무령왕릉의 발견으로 그 동안 연구 자료의 빈약으로 미궁같았던 백제 문화의 참모습을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도 문화재 측면에서도 그 가치가 뛰어나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고고학사(考古學史)에 있어서도 가장 획기적인 사건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올해는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그래서 문화재청과 공주시는 올해를 ‘무령왕의 해’ 로 정하고,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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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13.html
kolaswqetsrq 11.02 22:51
◇ 지긋지긋한 편두통의 원인.. 이것 부족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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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긋지긋한 편두통의 원인.. 이것 부족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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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의 왕이라고 불리는 편두통은 흔히 발생하지만 심각한 통증을 초래하곤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9년 집계된 편두통 환자는 56만7057명이지만, 단순 두통(97만118명)으로 오인하거나 혼자 참다가 병원을 방문하지 않는 사람도 많아 실제 환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편두통은 일상생활을 크게 방해할 뿐 아니라, 각종 질병 위험까지 높일 수 있어 더욱 문제다. 최근 운동 부족이 편두통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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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에 2번 이상 진통제 찾는다면 치료받아야

편두통을 예방하고 싶거나, 평소 편두통으로 고생하는 사람이라면 규칙적으로 운동해보길 권한다. 만약 두통이 심해 운동하기 어렵다면 요가와 같은 정적인 운동을 추천한다. 요가는 편두통 치료에 약물 복용만큼이나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도의 한 의학연구소는 편두통이 있는 성인 114명에게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실천하도록 했다. 이중 절반은 요가를 병행했고, 나머지는 생활습관만 실천했다. 실험 결과, 요가를 병행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두통 감소 비율이 4배나 높았다. 요가를 병행하면 약물을 중단할 가능성도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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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편두통을 방치하면 드물게 심혈관질환이나 치매 등 질병 위험을 높일 수도 있다. 특히 편두통이 나타나기 전 시야 흐려짐이나 팔·다리 저림 등 전조증상을 동반하는 조짐 편두통의 경우, 심혈관질환 발병률이 약 2.29배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두통이 반복된다면 단순히 여기지 말고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특히 두통이 있을 때 진통제를 과용하면 오히려 편두통을 악화시킬 수 있어 주의한다. 대한두통학회에서는 한 달에 8번 이상, 1주일에 2번 이상 진통제를 먹는다면 예방 치료를 받기를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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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미 교수는 "편두통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며 "규칙적인 운동뿐 아니라 수면과 식사 시간도 일정하게 지키며 생활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최근엔 밤늦게 안 좋은 자세로 스마트폰을 장시간 사용하는 것도 편두통 악화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 사용은 수면 패턴을 망가트릴 수 있어 최대한 줄이는 게 좋다. 자세도 중요하다. 구부정한 자세를 오래 유지해 목 부위 근육이 굳으면 편두통이나 긴장성 두통으로 이어지기 쉽다.

-헬스조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16.html
kolaswqetsrq 11.02 22:51
◇ 치매 위험 21% 낮추는 음식은?

◇ 치매 위험 21% 낮추는 음식은?

콩과 같은 식물성 단백질을 많이 섭취한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치매로 인한 사망 위험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아이오와대학 연구팀은 폐경 여성 약 10만명의 건강 데이터를 분석해 식물성 단백질 섭취가 치매나 심장병 등의 질환 발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연구팀은 1993~1998년에 작성된 식단 설문지를 바탕으로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한 정도에 따라 그룹을 나눴고 그룹별 건강 상태를 20년 동안 추적했다.

그 결과, 식물성 단백질을 가장 많이 섭취한 그룹은 거의 또는 전혀 섭취하지 않은 그룹보다 치매 관련 사망 위험이 21% 더 낮았고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은 12% 더 낮았다. 다만 연구팀은 식물성 단백질 식품이어도 지방이나 설탕이 많이 함유돼있으면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연구팀은 가공육 같은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면 치매로 인한 사망 위험이 20% 높아지고 붉은 육류를 많이 먹으면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12% 높아진다고 밝혔다.

연구를 진행한 미국 아이오와대학 연구팀 웨이 바오 조교수는 “이번 연구가 향후 공중 보건이 식물성 단백질을 고려한 식단 지침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헬스조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1.html
kolaswqetsrq 11.02 22:52
◇ 북에선 교수, 남에선 일용직... 엘리트 탈북민을 ‘걸림돌’ 취급, 서글픈 탈북민들

◇ 북에선 교수, 남에선 일용직... 엘리트 탈북민을 ‘걸림돌’ 취급, 서글픈 탈북민들

북한에서 고위직·전문직을 지낸 탈북민들이 정부의 무관심 속에 자리를 못 잡고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 정부는 엘리트 탈북민이 북한에서의 경력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맞춤형 관리를 했다. 하지만 현 정부는 북한을 지나치게 의식해 엘리트 탈북민들을 사실상 방치한다는 지적이다. 탈북민 사회에선 “정부가 탈북자들을 ‘먼저 온 통일’이 아니라 ‘남북 관계 걸림돌’ 취급을 한다”는 말이 나온다.

현 정부 출범 후 귀순한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대리대사, 류현우 쿠웨이트 주재 대리대사 등 고위급 외교관들은 이렇다 할 직업이 없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류씨와 같이 정보 활용 가치가 있는 고위급·핵심 탈북 인사들을 국정원 내부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전략연) 등에 근무를 주선해 지속적으로 관리해왔다. 이들의 경험을 충분히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류씨의 경우 한국에선 별다른 역할 없이 대학원을 다닌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정보 당국이나 정부 쪽에서 별다른 요청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었다”고 했다.

2019년 탈북해 경기도에 정착한 김영국(가명)씨는 한 물류센터에서 상품 포장과 입·출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는 북한 도(道)검찰소 검사 출신이다. 북에서도 검사는 선망받는 엘리트 직업이다. 학력, 집안, 군 경력이 모두 뒷받침돼야 한다. 그는 검찰에서 국토 환경, 부동산 분야를 담당했다. 친척 문제로 불이익을 당해 탈북했다는 김씨는 한국에서도 경력을 살려 일하기를 기대했지만 지난해 5월 하나원을 나온 뒤 아직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닥치는 대로 구직 활동을 했지만 50대 탈북민을 쓰겠다는 회사는 없었다. 지금의 아르바이트 자리도 지인 소개로 겨우 얻었다. 일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특혜 같은 걸 바라진 않았다. 다만 한국에서도 어디선가는 북한 법률과 관련한 내 전문성을 필요로 할 줄 알았다”며 “지금은 앞날에 대한 막막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잠도 안 온다”고 했다.

과거 정부는 고위급 탈북민을 국정원의 싱크탱크 격인 전략연에 채용해 이들의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서 전략연은 탈북민 출신을 채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함께 귀순한 김덕홍 전 당중앙위 자료연구실 부실장은 지난 연말 전략연 고문 자리에서 해촉됐고 자문비 명목으로 받던 생계비마저 끊겼다. 김씨는 지인들에게 “먹고살 길도 막막하고, 신변의 위험도 느낀다”고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2018년 김정은 비자금을 관리하던 노동당 39호실 지사장 출신 탈북민이 생활고를 못 견디고 2년도 안 돼 해외로 떠났다”고 했다.

북한에서 대학 교원(교수)으로 재직하다 2017년 4월 탈북한 최하동(사진)씨는 낮에는 막노동을 하고 밤에는 공장에서 부품 조립을 한다. 북에서 라디오로 한국 방송을 들었다는 그는 “남조선에 가서 통일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탈북했는데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고 했다. 그는 “북에서처럼 대우받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먹고사는 자체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는 건강이 상해 요즘엔 일주일에 한두 번 공사장에 나간다. 그마저도 일감이 없어 허탕을 치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부턴 ‘이제는 말하련다’라는 제목의 유튜브 방송도 시작했다. 북한 실상을 알리고 북한 주민들을 계몽하겠다는 취지지만 최씨는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고위급 탈북민이 어떻게 정착하느냐는 개인의 행복·안전 차원을 넘어 김정은 정권의 폭정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자리 잡는 엘리트 탈북민들을 보며 북한 주민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희망을 갖게 되고, 결국 통일을 앞당기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과거 독일에서도 냉전 시절 서독으로 탈출해 사회 각 분야에서 성공한 동독 출신들이 통일에 큰 역할을 했다. 고위급 탈북민 B씨는 “지금처럼 엘리트 탈북민들이 한국에서 고생한다는 소식만 들린다면 북한 정권이 ‘조국을 배신한 자들의 비참한 말로’라고 선전하지 않겠냐”고 했다.

정부는 엘리트 탈북민 홀대 지적에 관련 예산을 줄이지 않았고 처우도 변함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정부가 탈북민을 보는 시각은 확연히 달라졌다. 작년 북한이 탈북민 단체의 전단 살포를 비난하자 통일부는 탈북민 단체 2곳에 대해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하고 탈북·인권단체들에 대해 사무검사를 진행했다.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인권침해이자 정치적 탄압”이라고 발끈했다. 정부·여당은 ‘김여정 하명법’이란 야당의 비난 속에 ‘대북전단 금지법’도 강행처리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27.html
kolaswqetsrq 11.02 22:53
◇ 싱글맘 김미애 의원의 ‘꼬마 비서’

◇ 싱글맘 김미애 의원의 ‘꼬마 비서’

“우리 딸은 나하고 껴안고 자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작년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과 저녁 자리에서 만났을 때였다. 알려졌듯 김 의원은 조카 둘에 입양 딸을 키우는 싱글맘. 지역구인 부산에 두고 주말에만 보는 초3 딸 걱정이 컸다. 국회의원도 평범한 워킹맘이었다. 정치인은 내 삶과 동떨어진 사람이라는 편견이 조금 사라졌다.

2년 차를 맞은 싱글맘 초선 의원은 장거리 육아에 적응했을까. 오래간만에 연락했더니 좌충우돌 육아기를 쏟아냈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꼬마 비서님, 감사해요~’라는 문자가 왔더란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안 그래도 딸을 자주 못 보는데 코로나 때문에 등교도 안 하고 있으니 영 맘이 안 좋아 국회에 데리고 와 원격 수업을 듣게 했단다. 엄마가 국회에 출석한 사이, 녀석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국회의원 김미애 꼬마 비서 ○○○’ 하고 자기 이름 넣은 명함을 그려 의원실로 찾아온 손님에게 뿌린 것이었다. 엄마 개인용 전화번호까지 턱 하니 박아! 국회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일’과 ‘돌봄’ 병행이 이뤄지는 의원실을 또 본 적이 있다. 얼마 전 인터뷰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종종 주말에 동생을 데리고 국회로 출근한다고 했다. 동생은 24시간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한 중증발달장애인이다. 18년간 장애인보호시설에 있었는데 시설의 열악함을 알게 된 장 의원이 몇 해 전 데려와 둘이서 산다. 주말엔 돌봐 줄 사람 구하기가 도저히 힘들어 의원실로 데리고 와 곁에 둔다고 했다.

아이와 등원한 싱글맘 의원, 장애인 동생과 휴일 근무하는 의원. 일과 가정이 완벽히 분리된 듯한 공간인 국회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다. 돌봄을 해결하지 못해 일터로 가족을 데리고 온 경우라 정치인의 카메라 앞 보여주기식 쇼와도 다르다.

‘국회가 유치원이냐, 놀이터냐’는 시선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의원 배지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돌봄 사각지대가 우리 사회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의원도 이런데 생업에 쫓기는 이들이 겪는 돌봄 공백은 오죽할까 싶다.

국회의원이라는 화려한 계급장을 떼고 보면 둘은 입양아 둔 싱글맘, 장애인 가족이다. 소수자 목소리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속 정당의 정치 지향은 정반대지만, 정치를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엔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당사자만이 느끼는 절박함, 진심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 넘치는 우리 정치에서 결여된 부분 아닌가.

주변에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두 사람을 응원하는 이들이 꽤 있다. 불임으로 입양을 고민하다가 ‘정인이 사건’ 이후 용기가 안 난다는 40대 지인은 김 의원이 입양 발언을 할 때마다 유심히 본다고 했다. 친문 성향인 그는 국민의힘 의원 얘기에 귀 기울일 줄은 몰랐단다. 장애인 딸을 둔 보수 60대 지인은 장 의원 지지자가 됐다. “장애인 가족 마음은 안 겪어 보면 모른다. 나하고 상관없는 얘기하는 정치인보다 우리 딸 삶 바꿔주는 정치인이 낫다”고 했다.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정치는 결국 ‘내 얘기’라고 느끼게 하는 정치 아닐까.

갈수록 다양한 방식의 삶이 생겨나고 새로운 사회 문제가 곳곳에 생겨나는데, 정치만 보수·진보라는 커다란 두 덫에 걸려 벗어나질 못한다. 두 정치인은 말한다. 좌우 낡은 두 틀로는 자신들의 정치를 설명할 수 없다고. 며칠 전 장 의원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떠오르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기준은 다양성·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에 희망을 줬느냐였다. 큰 그림 짜는 정치만큼이나 일상의 세세한 틈을 보듬는 정치가 중요한 세상이 왔다는 신호다. 삶에서 우러난 정책을 말하며 진영을 흔드는 ‘생활 밀착형’ 정치인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57.html
kolaswqetsrq 11.02 22:53
◇ 신진 재벌의 기부

◇ 신진 재벌의 기부

기부의 선구자 빌 게이츠 부부와 워런 버핏이 2010년 만든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는 억만장자들의 자선클럽이다. 자산은 10억달러(1조1000억원)가 넘어야 가입할 수 있고, 가입자는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해야 한다. 기부는 살아 있는 동안에 해도 되고 사후에 할 수도 있다. 그동안 24개국에서 모두 218명이 이 클럽에 가입했다. 지난해 3월 기준 포브스 선정 세계 억만장자(2095명) 비율로 보면 약 10%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가입자는 최근 세계 최고 부자로 올라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래리 엘리슨 오러클 회장 등이다. 세계 2위 부자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가입하지 않고 있다. 돈이 많다고 누구나 가입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부와 명예의 전당’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클럽 가입자에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동아시아 국가 출신이 유독 적다는 점이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이자 억만장자가 두 번째로 많은 중국(대만과 홍콩 포함)만 가입자가 있을 뿐 일본, 싱가포르, 한국은 한 명도 없다.

포브스 선정 억만장자에 한국인 28명, 일본과 싱가포르 각 26명이 오른 것에 비하면 빈약하다. 보편화되지 못한 기부문화 탓으로 보인다.

이 ‘더기빙플레지’에 드디어 한국인 가입자가 탄생했다. 국내 배달 앱 1위 ‘배달의민족’ 창업자인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45) 부부(사진)가 재산의 절반인 5000억원을 내기로 했다. 열흘 전에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55)이 재산의 절반(5조원)을 내놓겠다고 했다.

close이들의 기부는 여러모로 종전과 다르다. 기부 규모도 크지만 기부 동기가 더 신선하다. 김봉진은 “부를 나눌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고 했다. 김범수는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 이상 결심을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물려받은 부를 내놓은 기존 재벌들과 달리 당대에 자수성가로 일군 성공의 결실을 아낌없이 던졌다. 그것도 한창 일할 나이에. IT 창업성공 신화를 넘어 새로운 기부문화까지 일궈낸 두 사람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런 기부는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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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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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83.html
kolaswqetsrq 11.02 22:54
◇ 중년 남자와 빵

◇ 중년 남자와 빵

밥이냐, 빵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중년 남자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게 되는 실존적 위기는 밥 문제이다. 혼자서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김치도 장만하고 찌개도 끓일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느냐가 큰 문제이다. 이 능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자유로운 영혼은 없다. 종속과 눈치 보기를 감수해야 한다.

필자도 전남 장성 축령산 자락의 황토집인 휴휴산방에서 새소리 듣고 편백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코로 맡으면서 사흘까지는 즐겁게 지낸다. 그러다가 사흘 넘어가면 아파트에서 준비해온 밥과 반찬이 떨어진다. 이때부터는 배가 고프면서 자유가 사라진다. 빵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장성 읍내 마트에 가면 60~70대 남자들이 무엇을 사가는지 유심히 관찰해 본다. 빵⋅막걸리⋅우유가 그것이다. 나이 든 홀아비의 3대 먹거리이다. 혼자 사는 나이 든 남자는 빵을 사갈 수밖에 없구나! 전기밥솥도 필요 없고 설거지도 필요 없고 반찬도 필요 없고 5~6일을 두고도 먹을 수 있는 게 빵이다. 어쩔 수 없이 빵을 공부해야겠다.

2019년 한국인 1인당 쌀 소비는 59kg, 밀 소비는 33kg이다. 쌀의 나라에서 밀 소비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육천년 빵의 역사’(하인리히 E. 야콥)를 읽어보니까 빵의 재료인 밀은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나왔다. 기원전 4000년 밀을 가지고 발효를 시켜서 빵으로 만든 것은 이집트이다. 양귀비씨, 참깨, 장뇌를 첨가하여 빵을 만들었다. 이집트 노동자는 하루에 빵 3개 맥주 2병을 파라오로부터 배급받았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빵을 주지 않는 것은 가장 추악한 범죄였다. 람세스 왕의 고분벽화를 보면 제빵소에서 밀가루를 반죽하고 화덕에 굽고 이를 머리에 이고 나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로마 시대로 넘어가면 빵의 표준화가 이루어진다. 빈민 1인당 하루 2개씩 빵을 배급하였고, 제빵소 앞에는 실업자 30만명이 빵을 지급받으려고 모였다고 한다.

로마는 제국을 빵으로 통치하였다. 빵으로 세계를 정복한 셈이다. 고대 예루살렘에는 제빵사의 거리가 있었고,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은 ‘빵의 집’이란 뜻이라고 한다. 중년 남자가 속이 편한 빵을 찾다 보니까 광주에 사는 이영환 이라는 빵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빵 도사이다. 빵의 재료에서부터 어떻게 발효를 하는지, 어떤 오븐이 좋은지, 그리고 담백한 맛의 빵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수시로 물어본다. 풍수도참과 주역, 집안 족보를 연구하던 사람이 빵 문제로 들어가니까 다시 신입생이 되었다. 인생은 참 배울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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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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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95.html
kolaswqetsrq 11.02 22:55
◇ 마스크시대... 사람들은 눈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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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크시대... 사람들은 눈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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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근처의 한 메이크업숍은 최근 눈 화장만 하는 1만원짜리 ‘아이(eye) 메이크업’ 상품을 신설했다. 이 업체의 신시아 원장은 “마스크 끼고 면접에 들어가는 취업 준비생을 겨냥한 것”이라며 “평소엔 1주일에 10명쯤 이 상품을 찾는데, 공채 시즌이 되니 20여명씩 찾아왔다”고 했다.

광주광역시 동구의 다른 메이크업숍도 작년 말 눈썹을 다듬고 눈 화장을 해주는 세트 상품을 3만원에 내놨다. 얼굴 전체를 화장하는 ‘풀 메이크업’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 가게 원장은 “한 달 새 40여명의 고객이 찾아왔다”며 “한 고객은 눈 화장만 받고 면접에 갔는데 ‘마스크를 잠깐 내려보라’고 해서 당황했다고 하더라”고 했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 된 코로나 시대, ‘눈’에 공들이는 이들이 늘고있다. 마스크 썼을 때 상대에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부위라서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좋은 눈 인상을 주려 노력한다. 대학생 양병아씨는 지난달 5만원을 주고 눈썹 문신을 했다. 양씨는 “마스크를 늘상 끼고 다니는데 코 위라도 관리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없던 눈썹이 생기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 했다.

유튜브에도 ‘마스크 썼을 때 눈매를 강조하는 메이크업’ ‘인상 좋아 보이는 콧등 위 마스크 위치’ 등 갖가지 조언이 올라오고 있다. 화장품 가게에서도 눈 화장품이 부쩍 잘 팔린다. 뷰티 전문점 올리브영은 작년 하반기(7~12월) 마스카라와 아이브로 매출이 상반기 대비 각각 12%, 10% 늘었다고 했다.

눈웃음, 눈빛을 중시하는 곳도 늘고 있다. 웨딩 촬영업체 대표 최모씨는 “요즘은 하객 촬영 때도 모두 마스크를 쓰기 때문에 과거엔 ‘웃으세요’라고 했지만, 요새는 ‘눈으로라도 웃으세요’라고 말한다”며 “눈이 웃고 있지 않으면 사진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회사 면접장도 마찬가지다. 국내 한 IT 기업 인사팀 직원 김모(28)씨는 “원래 눈은 마스크를 안 썼을 때도 인상에 큰 영향을 주는데, 마스크 때문에 눈만 볼 수 있으니 아무래도 평가에서 더 중요해진 측면이 있다”며 “최근 인턴을 뽑을 때도 ‘저 친구는 안광(眼光)이 어마무시하네’란 얘기를 팀원들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75.html
kolaswqetsrq 11.02 22:56
◇ 불굴의 화성 도전

◇ 불굴의 화성 도전

미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탐사 로버(이동형 탐사로봇)인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가 18일(현지시간) 화성 표면에 착륙했다. 무엇보다 인간의 화성 거주 가능성을 본격 탐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화성은 중력이 지구의 40%이고 이산화탄소가 대기의 95%에 달하지만, 계절이 존재하고 자전주기(24시간39분)가 지구와 비슷하다.

‘인내’라는 뜻의 퍼서비어런스는 지난해 7월30일 지구를 떠나 6개월 반 동안 무려 4억7000만km를 비행했다. 마지막 고비인 ‘공포의 7분’도 넘기고 착륙에 성공했다. 화성엔 공기가 거의 없어 착륙 과정에서 제때 감속하지 않으면 충돌 위험이 크다. 이 때문에 ‘공포의 7분’을 넘어 화성 착륙에 성공한 탐사선은 50%에 불과하다고 한다. 탐사팀을 이끄는 스와티 모한 박사가 “착륙을 확인했다”고 소리지른 18일 오후 3시55분쯤(한국시간 19일 오전 5시55분) NASA 본부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무게 1026kg, 길이 3m, 높이 2.2m인 승합차 크기의 퍼서비어런스에는 카메라 19대, 각종 센서와 첨단 장비가 실렸다. 특히 무게 1.8kg에 날개 길이 1.2m, 높이 50cm의 무인기 ‘인제뉴어티’가 처음 장착됐다. 소형 헬기 형태의 인제뉴어티 비행이 성공하면 탐사 범위가 크게 확대될 수 있다. 퍼서비어런스엔 인간의 화성 정착을 염두에 둔 장비들이 탑재됐다. 대표적인 것이 화성 대기의 95%를 차지하는 이산화탄소에서 산소를 뽑아내는 장비다. 실험에 성공하면 산소를 현지 조달할 수 있게 돼 화성 개척에 큰 진전이 이뤄질 수 있다. 퍼서비어런스가 화성 토양 시료를 채취해 원통에 넣어두면 미국과 유럽이 개발한 탐사선이 따로 회수해 2031년 지구로 가져올 계획이다. 과학자들은 화성의 흙에서 생명체 흔적을 찾기를 바란다.

2015년 개봉된 영화 <마션>에서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화성에서 감자를 키우며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버텼다. 언젠가 화성에서 생산된 감자를 먹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더 중요한 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도전정신이다. <코스모스> 저자인 칼 세이건은 “지금도 우주 어딘가에는 무언가 대단한 것이 우리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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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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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15.html
kolaswqetsrq 11.02 22:56
◇ 차등의결권과 뉴욕 가는 쿠팡

◇ 차등의결권과 뉴욕 가는 쿠팡

“그건 미친 짓이야(That‘s insane).” 지난해 쿠팡에 합류한 전준희 부사장이 미국 동료들에게 들었던 얘기다. 여기서 미친 짓은 하루 만에 배송하는 한국 전자상거래 시스템이다. 요즘은 당일 배송까지 된다. ‘한국적’ 속도를 앞세운 쿠팡이 미국 뉴욕증시 상장을 추진 중이다. 쿠팡은 쿠폰이 팡팡 쏟아진다는 뜻이다. 이름부터 사업 모델까지 한국 느낌인 쿠팡이 뉴욕으로 가는 것은 자금 조달을 위해서다. 하지만 한국에서 금지된 차등의결권 획득도 뉴욕행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벤처업계는 보고 있다.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신고한 내용을 보면 쿠팡은 두 종류의 주식이 있다. 1주당 1표의 의결권을 가진 클래스A 주식과 1주당 29표의 의결권을 가진 클래스B 주식이다. 클래스B 주식은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만 소유한다. 차등의결권을 가진 김 의장은 2%의 지분만 가져도 58%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제도는 미국과 유럽에서 도입하고 있는데 아시아에서도 확산되는 추세다. 한국은 1주당 1표의 의결권만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을 주는 이유는 경영권 안정을 위해서다. 특히 벤처기업은 대규모 투자 유치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경영진의 지분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걱정 하지 말고 경영과 혁신에 전념하라고 주는 게 차등의결권이다. 구글 페이스북 등 급성장한 혁신기업들이 창업자나 최고경영자에게 차등의결권을 주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미국 나스닥에서 차등의결권을 가진 곳이 일반기업에 비해 매출은 2.9배, 영업이익은 4.5배 많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복수의결권이라는 이름으로 차등의결권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통해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1주당 최대 10표의 복수의결권을 허용할 방침이다. 정부는 벤처기업의 성장 사다리로서 복수의결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부 시민단체들은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면 경영진이 무능해도 제어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쿠팡의 미국행은 조금 아쉽다. 한국이 키운 거대 기업이 해외증시를 선택하는 데 규제 성격의 제도도 한몫했다는 분석 때문이다. 자본시장에는 국경이 없다. 좋은 시장에는 유망 기업들이 몰려들어 자본 유치와 투자가 이뤄진다. 홍콩과 싱가포르가 2018년 차등의결권을 허용한 것은 증시에 우량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한국 증시가 제2의 쿠팡을 유치하려면 차등의결권뿐만 아니라 기업 관련 제도 전반을 열린 자세로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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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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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37.html
kolaswqetsrq 11.02 22:57
■ 조선수군 대표전함 ‘판옥선板屋船’ 7편

■ 조선수군 대표전함 ‘판옥선(板屋船)’ 7편

승조원의 수는 아타케부네(노꾼 90명, 전투원 200명)가 판옥선(노꾼 110명, 전투원 50명)보다 많았다. 일본의 수군 병졸은 조총·활은 물론 칼과 창을 지닌 보병이므로 많은 전투원이 필요했다. 반면 조선 수군의 병졸은 화포를 운용하는 포병에 가까웠다. 일본 수군이 판옥선에 접근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난관이 있었다. 통상 판옥선의 선체 높이는 세키부네보다 높았다. 일본 수군이 백병전을 하려면 사다리를 타고 배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조선 수군은 높은 갑판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적을 공격할 수 있었다. 당대 일본의 주력 함선이었던 세키부네(関船)나 코바야부네(小早船)는 판옥선보다 크기가 작고, 높이도 상당히 낮아서 도선(渡船)하려면 성을 공격하듯이 판옥선의 병사들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쏘는 화살, 포 등을 피하고 버티며 승선해야 했다. 설사 승선에 성공하더라도 이미 등반을 통해 체력이 소진된 채로 무장한 조선 군졸들과 싸워야 했으므로 승산이 없었다.

이순신은 조선 수군·군선의 강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므로, 이를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전술을 계획하고 구현해 냈던 것이다. 판옥선 같은 평저선(平底船)은 느리지만 안정감이 있어 파도에 강하고 선회력이 좋았다. 무려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이 가능했다. 반면 일본군의 주 전함들은 첨저선으로 회전하기 위한 반경이 커서 한참을 돌아야만 회전이 가능했다. 그래서 울돌목 같은 파도나 물살이 강한 곳에서, 왜군은 무리한 선회를 하려다가 침몰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물살이 빠른 곳을 주로 활용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런 평저선의 선회력을 이용하면, 한쪽에서는 함포발사를 할 수 있고, 다른 쪽에서는 장전을 하는 식으로 해서 상대방보다 훨씬 포를 빠르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이 선보인 학익진과 같은 진형을 구축하는 것도 360도 제자리 회전이 가능한 판옥선이 아니라면 매우 어려운 전술이었다.

해전에서는 사실상 전함의 선회력이 전투력에서 가장 큰 비중을 담당한다. 왜냐하면 당시의 전함은 좌우 측면에 함포를 달고 있기에 함포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함이 측면에 위치해야한다. 즉, 아무리 함포를 많이 달고있는 전함이라해도 적군이 측면이 아닌 앞이나 뒤에 위치한다면 함포 공격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침몰하는 수도 있다.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이 가능하여 곧바로 함포 공격을 할 수 있는 판옥선과 회전하기 위해 많은 공간이 필요한 왜선들과의 전투는 절대적으로 조선이 유리한 싸움이었다. 또한 평저선은 첨저선에 비해 배 위에서 대포를 쏠 때 반동 흡수에 유리하여 명중률이 높았다. 반면 왜군의 전함들은 첨저선이라 흔들림이 심해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이처럼 판옥선의 전투력은 군사나 화포의 숫자보다는 바로 평저선이라는 구조 자체에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백전백승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명량대첩에서 판옥선 12척으로 (게다가 전투 초반에는 대장선 혼자서) 적선 133척과 싸워 대승을 거둔 전설적인 승리가 가능한 이유도 이러한 전함 간 구조적 차이에 있다.

단, 판옥선의 단점은 이동 속도가 느린 것이었다. 이순신장군은 판옥선의 단점을 보완해 거북선을 만들어 돌격선으로 삼았다. 속도가 빠른 거북선을 먼저 돌진시켜 적의 대열을 흩뜨린 다음, 판옥선에서 화포 공격을 퍼부어 장대한 승리를 끌어냈던 것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_13.html
kolaswqetsrq 11.02 22:58
■ 조선수군 대표전함 ‘판옥선板屋船’ 6편

■ 조선수군 대표전함 ‘판옥선(板屋船)’ 6편

평저(平底)형의 판옥선은 물에 닿는 면적이 넓어 속도는 느리지만 안정적이었다. 한반도 서해·남해처럼 수심이 낮고 조수차가 큰 바다에서 항해가 용이하다. 전투 중 필요하면 제자리에서 360° 급선회도 가능했다. 조선 수군의 강점인 화포를 쓰기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화포 발사에 따른 반동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는 것도 평저선의 장점이었다. 반면 세키부네는 바닥이 뾰족한 첨저선(尖底船)이었다. 선체 바닥이 V자 형태로 좁다 보니 물의 저항을 덜 받아 속력이 빨랐다. 수심이 깊은 바다에서 운용하거나 해협을 건너기에 유리했다. 다만 회전 반경이 커 방향 전환이 어려웠다. 조수 차가 크고 파도가 세게 치는 바다에서는 판옥선보다 기동하는 것이 불리했다.

두 나라 배의 돛도 달랐다. 조선과 일본의 군선은 기본적으로 노와 돛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바람을 이용한 장거리 항해를 할 때는 돛을 이용했다. 전투에 돌입해 섬세한 기동이 필요하면 격군이 노를 저어 움직였다. 돛 하나로 움직이는 외돛배인 일본 군선은 순풍만 이용할 수 있었다. 반면 판옥선은 쌍돛대를 달아 역풍이 불어도 갈지(之)자 모양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판옥선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며 섬·암초가 많은 조선 해역에 최적화된 배였으므로 우리 해역에서는 절대 질 수 없는 무적함이었던 것이다.

판옥선의 전투력을 극대화한 ‘화룡점정(畵龍點睛)’은 화포(火砲)였다. 조선은 고려 말의 화포 제작·운용 기술을 계승해 발전시켰다. 크고 튼튼한 선체가 장점인 판옥선은 포 발사에 따른 충격을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조선 수군은 판옥선에 천자총통(天字銃筒)·지자총통(地字銃筒) 등 다양한 화포 약 24문을 탑재했다. 전투원은 개인 화기인 승자총통(勝字銃筒)과 활로 무장했다. 반면 일본 수군의 세키부네는 크기가 너무 작아 선상에 화포를 거의 탑재할 수 없었다. 아타케부네에 장착한 화포를 시험 발사하자 선체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파손된 일도 있었다. 결국 화포 3문 정도를 설치하는 것이 한계였다.

양국 수군의 무기체계가 다르므로 전술에도 그 차이가 그대로 반영됐다. 일본은 적함에 빠르게 접근해 조총을 쏘거나, 갈고리 달린 밧줄을 상대방 배에 걸고 올라타 백병전(白兵戰)을 치렀다. 일명 ‘등선육박전술(登船肉薄戰術)’이다. 조선 수군은 굳이 적함에 접근할 필요가 없었다. 일본군 조총 사거리(100m)보다 멀리 떨어져 포를 발사할 수 있었고, 추격을 피해 도망가는 척하다가 갑자기 90° 회전해 현측(舷側·배의 좌우 측면)의 포를 발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 수심이 얕은 곳으로 유인해 일본 군선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일본 군선은 함상(艦上) 백병전을 시도하기 위해 접근하다 화포 세례에 침몰하거나 좌초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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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58
■ 조선수군 대표전함 ‘판옥선板屋船’ 5편

■ 조선수군 대표전함 ‘판옥선(板屋船)’ 5편

판옥선의 주재료는 단단하고 두꺼운 소나무 판재였으므로 강도와 내구성이 높다. 소나무로 만든 판옥선은 속도는 느렸지만 대형 화포를 다량 적재해 발사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했다. 목재를 결합하는 방법도 차이가 있었다. 일본은 여러 장의 얇은 판재를 겹치는 데 쇠못을 이용했지만, 조선은 나무못으로 두툼한 소나무 판재를 이어 붙여 배를 만들었다. 조선 특유의 군선 건조 방식이 잠시 달라진 적도 있었다. 1430년(세종 12년) 조정은 나무못을 사용하던 기존 선박 건조 방식을 바꿀지 검토했다. 일부 신료가 일본 배는 여러 장의 판재를 쇠못으로 결합해 튼튼하면서도 가볍지만, 조선의 군선은 단일 판재와 나무못을 사용하면 내구성이 낮아진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종 때 얇은 판재 여러 장을 쇠못과 나무못으로 결속해 만든 군선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군선의 속도는 빨라졌지만 내구력은 낮아졌다. 이런 문제점을 간파해 전통적 군선 건조 방식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 인물이 바로 신숙주였다.

1473년(성종 4년) 신숙주는 “왜선을 관찰하니 판자가 얇고 쇠못을 많이 썼다. 왕래하는데 경쾌하고 편하지만 배가 요동치면 못 구멍이 차츰 넓어져 물이 새기 때문에 배가 쉽게 썩는다”며 일본식 군선의 약점을 지적했다. 신숙주는 1443년(세종 25년) 서장관으로서 일본을 직접 방문해 현지 사회상을 관찰해 《해동제국기》를 저술했다. 그는 “일본에서 갑자기 해적의 기습을 받았으나 (타고 있던 조선식 배의) 돛을 달고 항해해 곧 따돌렸다”며 조선식 배의 기동력도 손색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나무못을 이용한 군선 건조 방식으로 복귀했다. 판옥선 건조의 기본 틀이기도 하다. 판옥선은 나무의 접합 부위에 ᄀ자와 ᄂ자 모양의 홈을 판 후 나무못으로 잇는 전통방식을 사용했다. 이음새 부분은 외부 충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견고하게 결합됐다. 나무못은 바닷물을 머금으면 부피가 팽창해 이음새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선박의 손상 없이 해체해 수리하기도 쉬웠다. 반면 쇠못을 사용한 일본의 군선은 못과 나무가 완전히 결합하지 못하여 선체에 미세한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음새의 쇠못이 녹슬어 배의 전반적인 내구성이 떨어지게 되어있다.

양국 군선은 배의 바닥 구조도 달랐다. 판옥선은 배 밑바닥이 평평한 평저선(平底船)이었다. 조선 시대의 모든 배들이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인 것은, 연안 항해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평저선은 비록 대양에서는 풍랑에 취약하지만, 선회력이 매우 뛰어나다. 선회력이 좋다는 것은 배의 방향 전환에 필요한 회전 반경이 짧다는 것으로, 암초가 많아서 좁고 물살이 거친 남서해안을 다니기에 유리했다. 또한, 내구력에 모든 설계를 집중하였기 때문에 비슷한 규모의 다른 국가의 함선과 비교했을 때, 구조적으로 판옥선이 훨씬 튼튼한 경우가 많다. 전시 교전능력과 튼튼함을 제외하면, 사실 항해성능은 매우 떨어졌고, 오로지 수비 목적의 전투용 배로 만들어졌다. 쓰임새를 연안에서의 화포를 이용한 해전에만 한정해서, 항해 목적보다는 전투를 위한 모든 기술을 배끼리의 충돌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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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2:59
■ 조선수군 대표전함 ‘판옥선板屋船’ 4편

■ 조선수군 대표전함 ‘판옥선(板屋船)’ 4편

왜란이 발발한 직후 조선이 보유한 판옥선은 숫자적으로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다. 전라 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이 처음으로 출동한 옥포해전(玉浦海戰)에 동원된 것이 겨우 28척(그 중 4척은 경상우도의 것)이었고, 2차 출동인 당포해전(唐浦海戰) 때에 전라좌도 23척, 전라우도 25척, 경상우도 3척을 합한 51척, 부산해전 때에 전라 좌우도의 판옥선을 합하여 74척에 불과했다. 1593년(선조 26년) 8월 삼도의 판옥선이 100여 척에 이르고 각기 작은 배를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가장 척수가 많이 확보된 때에도 180여 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여러 해전에서 압승을 거두고 바다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판옥선이 매우 뛰어난 전투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판옥선의 장점은 아주 튼튼하고 크기가 크다는 것인데, 약 125명 이상의 군사를 수용할 수 있는 그 크기는 종전에 기껏 80명을 정원으로 한 대맹선이나 일본 군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때 판옥선의 크기는 저판(底板:밑넓이) 길이 50~55척, 탑승인원 130명 정도로 파격적으로 컸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크기가 점점 커져 정조 때는 저판 길이 90척, 일반 판옥선이 저판 길이 70척 정도였고 탑승인원도 160명 내외로 늘었다.

그 이후 판옥선은 전선(戰船)으로 개명되었다. 임진왜란의 3대 대첩은 한산도대첩·행주대첩·진주성대첩이다. 해전으로 범위를 국한하면 이순신장군이 이끈 한산도대첩·명량대첩·노량대첩이다. 이순신과 조선 수군을 빼놓고 임진왜란을 논할 수 없다. 조선 수군의 연전연승이 이순신의 뛰어난 지휘 덕분이기도 하지만, 군선과 군수지원 시스템이 조선 수군을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육상의 전투도 무기체계·전투 장비가 중요하지만 해전은 더더욱 그렇다. 해군에게 군선은 무기인 동시에 병력이 주둔하는 부대 그 자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일본 수군이 운용한 군선과 전술의 차이를 비교해 보면 왜 이순신이 이길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당시 일본 수군의 주력함은 세키부네(関船)였다. 세키부네는 아타케부네(安宅船)와 고바야부네(小早船) 사이의 중형 전함으로 약 70명이 승선했다. 아타케부네는 ‘집이 달린 배’라는 뜻의 대형 군선이었다. 일본에서 ‘해상의 성’이라 불릴 만큼 거대한 위용을 자랑했다. 일본 전국시대 봉건 영주들이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만든 배였다. 실제 전투보다 장수들의 기함으로 쓰였다. 일본 군선과 조선 군선은 구조적으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우선 선체를 만드는 목재가 달랐다. 일본 전함들은 가벼운 대신 강도가 떨어지는 녹나무, 삼나무를 사용한데다 선체의 구조 자체가 얇아서 내구성이 약했다. 소나무에 비해 덜 단단한 데다 판재가 얇아 배를 제작하기 쉽고, 배가 가벼워져 기동력이 향상된다. 반면 무거운 화포를 다량 실을 수 없고, 조선의 단단한 판옥선과 충돌하면 선체가 쉽게 깨졌다. 일본 수군의 주력 전선 세키부네와 기함으로 쓰인 아타케부네 모두 판옥선에 들이받히면 속수무책이었다. 판옥선은 참나무, 소나무 등 단단한 나무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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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00
■ 조선수군 대표전함 ‘판옥선板屋船’ 2편

■ 조선수군 대표전함 ‘판옥선(板屋船)’ 2편

제승방략 체제에 따라 수군의 경우도 유사시 중앙에서 달려온 지휘관이 지휘를 맡아야 했다. 수군은 작전 지역의 해로(海路)에 능통해야 한다. 각 군선을 운용하는 노하우도 하루아침에 터득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수군은 제승방략하에서도 개별 함대·군선 지휘관의 재량권이 많이 주어지고 있었다. 그 덕에 수군은 임진왜란 개전 직후의 혼란 속에서도 효과적으로 적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은 건국 초기에 대선(大船)·중대선(中大船)·중선(中船)·쾌선(快船)·맹선(孟船)·별선(別船) 등 총 13종의 군선을 829척 보유했다. 숫자는 많았지만 명확한 규격에 따라 건조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투력의 한계가 뚜렷했다. 이에 1461년(세조 7년) 신숙주는 기존 군선을 개량해 전투와 조운(漕運)을 겸하자고 주장했다. 그 결과 1465년 개발된 것이 병조선(兵漕船)이다. 이름 그대로 군사작전(兵)과 조운(漕運)에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배다. 유사시 전시체제로 재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 획기적 방법이었다. 평소 선체 윗면의 상장(上粧·선체 최상층의 갑판)을 철거해 조운선으로 활용하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상장을 설치해 군용(軍用)으로 썼다.

1485년(성종16년) 《경국대전》에서 병조선(兵漕船)은 맹선(猛船)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맹선의 ‘맹(猛)’은 재빠르다는 뜻이다. 여전히 조세 운송과 전투 겸용으로 쓰이고, 크기에 따라 대·중·소맹선으로 구분했다. 대맹선은 군사 80명이 탑승할 수 있었고, 조운선으로 사용할 때 곡물 약 800석(石·144kg) 정도를 운반할 수 있었다. 맹선은 전투보다는 조운에 더 많이 쓰였으므로, 몸집이 둔하고 기동력도 부족해서 일찍부터 군용으로는 별 쓸모가 없다는 논란이 있었다. 적선보다 느리고 둔했던 것이다. 중종과 명종대의 삼포왜란(三浦倭亂)·사량왜변(蛇梁倭變)·을묘왜변 등을 거치면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전투 임무 수행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남으로써 새로운 전투함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명종 이후 왜구도 중국에서 화포를 일부 도입하여 대형 군선을 만들고, 선상에 방패를 설치해 중국과 조선 정규군과의 싸움에 대비했다. 왜선의 규모 커지고 화포가 강화되어 조선의 맹선으로는 이들을 격퇴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맹선이 아닌 새로운 전투함이 개발돼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1555년(명종10년) 조선은 덩치가 크고 화력을 대폭 보강한 전투 전용 선박을 개발했다. 바로 판옥선이다. 점점 대형화되는 왜구의 군선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판옥선은 임진왜란 중 조선 수군의 대표전함으로 대활약을 한 널빤지로 지붕을 덮은 전선(戰船)이다. 오늘날 우리는 임진왜란 중 조선 수군의 상징이라 하면 거북선을 떠올리지만, 사실 거북선은 가장 많이 보유했을 때도 7척 내외에 불과했다. 반면 판옥선은 임진왜란 발발 2년차에 그 수가 200여 척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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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01
■ 2명의 이순신 3편

■ 2명의 이순신 3편

충무공 이순신의 보고를 받은 선조는 무의공 이순신을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제수, 특진시켰고, 1594년(선조 27년) 충청도수사(忠淸道水使)로 임명했다. 충청수사 재직 중 군율을 매우 엄히 적용했는데, 왕명을 받고 파견된 왕명특사(王命特使)는 무의공 이순신이 군율을 너무 엄격하게 한다며 형벌과중(刑罰過重)으로 보고하였고, 보령(保寧) 토호 김태국(金泰國)이 사노(私奴) 한손(漢孫)을 시켜서 낸 고변(告變)도 조정에 보고되자, 구금(拘禁)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다. 1595년(선조 28년)에 다시 풀려나 고령진첨사(高嶺鎭僉使)로 강등되어 임명되었다.

그 후 무의공 이순신은 1594년에는 충청 수사로, 1597년에는 명량해전이 끝난 직후 경상 우수사에 임명되었다. 1598년 충무공 이순신이 전사한 노량해전에도 중위장으로 참전해 충무공과는 임진왜란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명나라 제독 진린에 의해 충무공 이순신의 뒤를 이을 통제사로 천거를 받기도 했다. 1599년(선조 32년) 1월에 수사직을 물러나서 포도대장 겸 도총사 총관에 임명되었으며, 1600년(선조 33년)에 충청수사 · 수원부사 · 경상부사를 역임하였다. 1601년 황해도병마절도사가 되었으나 재물을 탐한 죄로 다시 파직되었다가, 1602년(선조 34년) 창원부사로 부임했다. 1604년 첨지부사가 되었고,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1604년부터 전라방어사·수원부사·함경도병사(咸鏡道兵使)·전라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고, 이후 포도대장, 훈련대장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 등을 지냈다.

1611년(광해군 3년) 9월 2일에 59세로 별세하여 현재 경기도 시흥군 서면 일직리(현 광명시 일직동)에 장사(葬事)되었다. 인조 때 의정부좌찬성에 추증(追贈)되었고, 1679년(숙종 6년)에 무의(武毅)라는 시호를 제수 받았다. 무의공 이순신의 묘는 1987년 9월 10일 광명시의 향토문화유산 제4호로 지정되었다.

충무공 이순신은 언제나 최선을 다했던 무의공 이순신을 신뢰했고, 국난극복을 위해 함께 목숨을 걸었다. 무의공 이순신은 충무공 이순신과 임진왜란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며 눈부신 활약을 했다. 충무공이 있는 곳에 무의공이 있었고, 무의공이 있는 곳에 충무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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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01
■ 2명의 이순신 2편

■ 2명의 이순신 2편

1589년(선조 22년)에 함경도 혜산진첨사(惠山鎭僉使)에 임명되어 여진족의 침략을 막으러 나갔으나 부임 도중 병이 나서 적군의 침입을 제대로 막지 못하여 상사로부터 문책을 받았으나, 선조가 특별히 은전을 베풀어 징계를 면했다. 그러나 상사와의 불화가 계속되자 결국 선조는 그를 파직하여 귀양보냈다. 2년 후, 일본의 침입 움직임이 있자 재등용되어 1591년(선조 24년)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관할인 방답진첨사(防踏鎭僉使)로 부임하게 되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전선(戰船) 제작에도 참여하여 자문하였고, 관내의 성지(城池)를 정비하고 기계(機械)와 축성 제작에도 전력을 다함으로써 망루(望樓)와 군기영기(軍旗令旗)들이 일제히 정비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그는 충무공의 막하 중위장(中衛將)으로 첫 해전인 옥포·합포해전 때부터 출전해 대활약을 했다. 첫 전투일인 1592년 음력 5월 7일, 옥포해전을 막 끝낸 뒤에 합포로 도망친 5척의 일본군 전선(戰船) 대선(大船) 1척을 무의공 이순신이 파괴했다. 5월 8일 적진포에서도 일본군 대선 1척을 파괴했다. 이순신이 2차 출전했던 1592년 5월 29일에는 하동 선창에 있는 일본군 전선을 불태워 없앴다. 6월 6일에는 무의공 이순신이 충무공 이순신에게, “산에 올라간 일본군이 반드시 당항포에 남겨둔 배를 타고 새벽에 몰래 나올 것이니, 그들을 바다에서 공격하자”고 제안했다. 충무공 이순신은 무의공의 전략에 따랐고, 무의공은 배를 타고 도망치던 일본군을 공격해 파괴했다. 1592년 9월 1일 부산해전에서도 무의공 이순신은 선봉장으로 참전해 일본군 대선을 파괴했다.

그런 공로에도 불구하고, 다른 장수들과 달리 무의공 이순신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무의공 이순신의 공로가 묻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충무공 이순신은 조정에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올렸다.

『많은 장수들 중에서도 순천 부사 권준, 광양 현감 어영담, 흥양 현감 배흥립, 녹도 만호 정운, 그리고 방답 첨사 이순신(李純信) 등은 특별히 신뢰할 수 있어 함께 죽기를 약속하고 모든 일을 같이 의논하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권준과 다른 장수들은 모두 당상관((堂上, 정3품 절충장군 이상)으로 승진했는데, 이순신(李純信)만이 은혜를 입지 못했습니다. 이순신(李純信)은 호남 영남 개전 이래 10회에 걸쳐 1회는 중군(中軍)을, 9회는 선봉을 맡아서 오직 적의 기세를 꺾는 데 전념하느라고 적의 수급(首級)을 모아 공적을 자랑할 겨를이 없기에 특별히 앞세워 상계(上啓)했건만 논공(論功)이 홀로 순신(純信)에게 미치지 못하여 유전지공(有戰之功) 무전지상(無戰之賞)이라는 군심(軍心)의 원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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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02
■ 2명의 이순신 1편

■ 2명의 이순신 1편

난중일기 속에 이런 대목이 있다. 『1592년 1월 10일. 비가 내내 내렸다. 방답(防踏)의 신임 첨사(僉使) 이순신이 들어왔다.』 방답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관할하던 전라좌수영의 5관(官:순천·광양·보성·흥양·낙안)·5포(浦:방답·사도·발포·녹도·여도) 가운데 5포의 한 곳으로, 새로 부임한 방답의 신임 첨사 이순신이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는 내용이다. 첨사는 고위직인 종3품으로 정식명칭은 첨절제사다. 육군에는 병마첨절제사, 수군에는 수군첨절제사가 있는데, 정3품이었던 수사 바로 밑의 계급이었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인데, 방답 첨사도 이순신이라니.........

전라좌수사도 이순신이고, 그 전라좌수사 이순신을 찾아온 방답의 신임 첨사의 이름도 이순신이었다. 이 두 사람은 이름은 같지만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발음은 같지만 한문 이름은 다르다. 즉 전라좌수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이고, 방답의 신임 첨사는 무의공 이순신(李純信)이다. 무의공 이순신은 훗날 원균이 이순신을 비판할 때 “너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다”라고 했는데, 그 다섯 아들이라고 평가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다섯 아들은 바로 이순신과 동고동락했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처럼 긴밀했던 사람들로서, 순천 부사 권준, 녹도 만호 정운, 흥양 현감 배흥립, 광양 군수 어영담, 그리고 방답 첨사 무의공 이순신이 그들이다.

무의공 이순신은 이순신보다는 9살 아래인 1554년생이다. 태종의 맏아들인 양녕대군의 후손이다. 즉 조선 왕실의 후예이다. 자(字)는 입부(立夫)이고, 시호는 무의(武毅)다. 그래서 무의공이라고 한다. 장군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문학에 힘썼으며 지혜가 뛰어났다. 장성하면서 준엄하고 단정한 인품으로 지조가 굳었다고 한다. 어려서는 이황의 제자인 김성일(金誠一)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32살의 충무공 이순신이 1576년 정기시험인 식년시에서 급제했는데, 무의공은 그 이듬해인 1577년에 23살의 나이에 특별시험인 무과 별시에서 급제했다. 활쏘기 대회에서 장원한 상으로 북방 방위에 차출되는 것을 면제받았다. 빠른 출세에 시기한 무리들에 의해 모함을 받아 1580년(선조 13년)에 탄핵을 받고 선전관(宣傳官)에서 파직되었으나, 그 해 겨울 다시 복관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82년 4월에는 강진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강진의 지역 호족(豪族)들과 마찰을 빚어 1585년(선조 18년)에 또 파직 당하였다. 그 뒤 특별 별명(別命)을 받아 선전관에 복직되어 어전(御殿)을 호위하다 옛 스승인 김성일(金誠一)의 천거로 1586년(선조 19년) 함경도 온성부 판관이 되었다. 1588년(선조 21년)에는 의주판관(義州判官)으로 발탁되어 명나라 사신 수행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때 사절단이 뇌물을 요구하는 것을 모르는 체하자, 명나라 사절단이 본국에 귀국하여 이 문제를 트집잡았고, 이로 인해 탄핵당하여 파직됐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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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1.html
kolaswqetsrq 11.02 23:03
◇ 대기업 성과급 공정성 논란-성과 보상 vs 손실 보상

◇ 대기업 성과급 공정성 논란-성과 보상 vs 손실 보상

기업의 연말 성과급 지급 기준은 다양하다. 국내 기업 인사담당자 대상 설문조사(잡코리아)를 보면, 개인별 또는 사업부문별 실적에 따른 차등 지급이 각각 32.4%, 30.2%로 가장 많다. 호봉·직급 등 연공서열에 따른 차등 지급(20.8%)도 여전히 적지 않다. 그냥 전체 회사 실적 기준으로 일괄 지급을 하는 곳은 15.6%다.

어느 것이 효과적일까. 성과급의 목적은 보상을 통해 목표 달성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개인, 사업(부서), 전체 조직 중에 어디에 얼만큼 방점을 찍느냐의 문제다. 집단 성과급, 즉 정률 혹은 정액으로 일괄 지급하는 건 구식이다. 동기부여가 약하고 무임승차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러면 완전한 개인 성과급은 어떨까. 동기부여는 확실하겠지만, 지나친 내부 경쟁, 무리한 영업, 공동체 의식 약화 등이 단점이다.

성과급 지급 방식은 대부분 다단계다. 일단 목표 이익 초과분에 연동해 전체에 지급할 평균 성과급률을 정하고, 목표 달성률에 따라 사업부문과 개인에게 추가 인센티브를 주는 식이다. 특정 개인이나 사업부로 쏠림을 막기 위해 상한선을 두는 곳도 많다. 명확한 기준과 방식을 공개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노사 협의에 따르거나 경영진 고유 판단으로 지급하는 게 관행이다.

국내 대기업 성과급이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단지 더 많이 달라는 게 아니고, 투명성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내부 문제제기다. 노조를 통해서가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론화하고 집단행동을 한다. 이른바 ‘MZ 세대’(엠제트 세대, 1980년 이후 출생 세대)가 불합리한 기업 관행에 적극 대응하는 ‘구성원 행동주의’라는 해석이 나온다.

기업 성과는 구성원의 노력만으로 결정되진 않는다. 우리처럼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에선 유가, 경기, 환율, 정책 등 외부 경영환경이 주요 변수일 때가 더 많다. 예컨대 매출 1조원보다 환율 10원이 이익률에 끼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 지난해 국내 대기업의 실적 호조는 ‘성공적 방역’이란 경영환경이 긍정적 변수로 작용했다. 여기엔 기본권·재산권 제한을 감수한 다른 경제주체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 언감생심 성과급보다 이들의 희생을 공정하게 다루는 게 더 절박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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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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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vs.html
kolaswqetsrq 11.02 23:04
◇ 학폭, “나는 10년 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 학폭, “나는 10년 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10년 전 지방 대도시에서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해 학생 유서에 물고문과 구타, 금품 갈취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 몇 시간 전 엘리베이터에 쪼그려 앉아 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CCTV에 녹화됐다. 그걸 본 전국의 학부모들 가슴이 무너졌다. 몇 해 전 또 다른 도시에선 여중생 4명이 또래 여학생을 집단 구타한 사건이 터졌다. 얼마나 가혹하게 때렸는지 맞은 학생이 피눈물을 쏟았다. 10대 아이들의 일탈로 볼 수 없는 범죄행위였다.

2019년 교육부가 전국 초등4~고3 학생 372만명에게 학폭 경험을 물었다. 무려 6만명이 고통을 토로했다. 폭력 수위가 어른 뺨친다. 말로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것은 기본이고, 폭행과 금품 갈취처럼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례도 1000건당 1~2건에 이른다. 학교가 아니라 야수가 우글대는 정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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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피해가 아무리 극심해도 시간이 지나면 세상에서 잊힌다. 그러나 피해자도 잊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가해자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로 대중의 박수를 받게 되면 피해자는 불공평함과 억울함을 느끼고 심리적 2차 가해를 입을 수 있다. 과거엔 이를 토로할 수단이 없었지만 소셜 미디어가 ‘게임 체인저가 됐다. 몸의 상처는 나아도 심리적 타격은 아물지 않는다. 학폭 폭로의 시효가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10년 전, 20년 전 일이 어제 일처럼 퍼져나간다. 가해자가 유명 아이돌이나 걸그룹, 스타 운동선수라면 더욱 치명적이다. 학생 때 또래를 괴롭히려면 평생 두 발 뻗고 못 잘 것을 각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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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배구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에 이어 남자 배구에서도 송명근·심경섭 선수가 잇따라 학폭 시비에 휘말렸다. 대략 10년 전 사건들이지만 죗값을 치르라는 여론이 비등하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수만 명이 몰려가 해당 선수들의 영구 제명을 요구하고 있다. 운동 꿈나무, 연예인 지망생이라면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야 할 것이다.

청소년기 폭력은 어른이 되어 겪는 것보다 더 깊고 오랜 상처를 남긴다. 어린 탓에 적절한 대응을 못 해 피해를 키운다. 학폭을 반드시 근절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가해 아이들만 탓해선 재발을 막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기 전두엽엔 충동 조절 세포를 연결해 주는 백질이 부족하다. 이로 인해 타인은 물론 훗날 자신까지 망가뜨리는 ‘중2병’을 앓는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사고 치지 않고 이 시기를 잘 넘기게 하려면 학교 당국과 사회가 힘을 합쳐 학폭의 심각성과 10년 뒤 닥칠 후과를 가르치라고 조언한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11.html
kolaswqetsrq 11.02 23:04
◇ 국내 상륙 음성 전용 SNS 클럽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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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상륙 음성 전용 SNS 클럽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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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신세계가 있나.’ 지난 주말 무렵부터 체험기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국내에 본격 상륙한 음성 전용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Clubhouse)’ 얘기다. 한 지인은 클럽하우스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떠올린다. ‘예전 아마추어 무선통신이 이런 분위기 아니었을까. 아직은 누가 인사를 하면 화들짝 놀라서 나가기 버튼을 누르게 된다.’

클럽하우스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인 폴 데이비슨과 구글 출신 로한 세스가 지난해 3월 개발한 음성 앱이다. 그런데 1일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게임스톱 주가와 관련해 이 앱에 참여해 토론하면서 인기가 치솟았다. 아직은 아이폰 운영체계에서만 가능하다 보니 중고 아이폰 거래가 늘어났을 정도다. 이 앱에서 금기 이슈 토론이 활발해지자 중국 당국은 이 앱의 접속을 막기까지 했다.

클럽하우스에 들어가려면 일단 기존 가입자로부터 받은 모바일 초대장 또는 지인의 수락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엔 직접 방을 만들어 청취자 중 일부를 발표자로 선정해 대화를 이끌거나 또는 다른 방에 청취자로 참여해 손 모양 버튼을 눌러 발언권을 받을 수 있다. 해외 유명 인사들이 만든 방에도 영어 등 외국어로 참여할 수 있다. 스타트업 분야 종사자가 초기에 몰려 관련 내용의 대화방이 많다가 최근엔 취미, 성대모사 방도 생겼다. 카카오톡 대화방의 음성판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 방 저 방에서 음성 대화가 진행되니 마치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광장) 같다. 클럽하우스의 세계에는 말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자유, 듣다가 조용히 떠날 수 있는 자유가 다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비싼 콘퍼런스에 가서 듣던 고급 정보를 침대에 누워 공짜로 편하게 듣고 격의 없이 질문할 수 있다. 클럽하우스 앱 대표 이미지는 활발한 활동을 하는 사용자 얼굴 사진으로 주기적으로 바뀐다. 요즘 세대가 원하는 참여, 연결, 평등, 성장, 레트로 감성이 다 들어 있다.

그중 최고는 코로나로 인해 대화에 목말랐던 세계인들을 목소리로 연결시킨 점이다. 사용자들은 “사람의 목소리 질감이 이토록 매력적인지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클럽하우스에서는 지식과 경험을 말로 잘 풀어내는 실력자가 힘을 갖는다. 고유한 콘텐츠가 있고 영어까지 잘하면 글로벌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양날의 검이다. 고수를 가려내지만 선동가의 육성에 여론몰이 장으로 변할 위험이 있다. 트위터는 ‘조리돌림’(다수에게 공개해 수치심을 주는 처벌), 텔레그램은 N번방 사건의 불명예를 낳았다. ‘클럽하우스 민주주의’의 향배는 사용자가 얼마나 스스로 정보 감별 능력을 키우는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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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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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하는 SNS, 클럽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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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내내 자정이 넘도록 사이버 공간을 쏘다녔다. ‘이런 신세계가 있나’ 싶었다. 하필이면 연휴 직전에 지인의 ‘초대장’을 받고 가입했고, 다음 날 일정에 쫓기는 부담도 없어서 속속 열렸다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방들을 들락날락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주제나 사람을 만나면 그 방이 닫힐 때까지 머물렀다. 그 방들은 대화가 끝나면 모두 사라져 내용도, 기록도 남지 않았다. 미국 스타트업 ‘알파 익스플로레이션’이 지난해 4월 출시했고, 최근 국내서도 연일 화제를 몰고 다니는 오디오(음성) 기반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클럽하우스(Clubhouse)’ 이야기다.

시사·경제·예술·취미·예능 등 다루는 주제도 다양하다. ‘클럽하우스 커뮤니티’ 같은 실용적인 방이 있는가 하면, ‘카카오 김범수 의장님의 5조 원이 있다면... 우리는 한국의 교육이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처럼 사회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방도 눈에 띄었다. 미국 뉴욕증시 상장 소식이 알려진 쿠팡 투자 토크 방엔 수백 명이 모였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청춘을 응원하는 방’에선 방송인 김제동 씨를 만났고, ‘질문과 해결’이 뭐지 싶어서 들어간 방에선 가수 적재가 모더레이터여서 끝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클럽하우스가 가진 매력인 즉흥성과 희소성, 현장성이 확 다가왔다.

물론 클럽하우스에 가입하려면 ‘아이폰’ 사용자여야 하고, 먼저 가입한 회원이 보내 주는 ‘초대장’이 있어야 하며, ‘영어’ 사용 방이 많아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폐쇄성이 클럽하우스 마케팅의 또 다른 핵심 포인트가 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클럽하우스를 이용하지 못하면 어딘가 모르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소외감을 느끼게 해 어떻게든 그 안으로 들어오게끔 하는 전략,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마케팅 말이다. 오죽하면 당근마켓이나 번개장터 같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클럽하우스 초대장이 버젓이 현금 거래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또 하나의 새로운 플랫폼이 생겨난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운용 원칙은 ‘쌍방향 소통’이지만, 남들이 하는 말을 그저 듣기만 한다면 ‘팟캐스트’나 ‘유튜브’와 다를 바 없어서다. 그런데도 ‘말로 하는 SNS’가 묘하게 매력적이다. 코로나19가 불러온 비대면 사회환경이 우리 사회를 급격하게 변화시킨 것처럼 오디오 콘텐츠의 미래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확장된 소통이 새로운 공론장으로 커 나갈 수 있을지, 스쳐 가는 SNS 바람이 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부산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sns.html
kolaswqetsrq 11.02 23:05
◇ 한국은 예측 어려운 판내부 지진환경...‘활성단층’ 찾아야 대비도 가능

◇ 한국은 예측 어려운 판내부 지진환경...‘활성단층’ 찾아야 대비도 가능

지진은 판구조 운동에 의해 지각 내부에 축적된 응력이 단층운동으로 해소되면서 발생하는 땅 흔들림 현상이다. 지진은 매년 태풍, 홍수 등 다른 자연재해와 비슷한 빈도로 발생하지만 지진과 동반되는 또 다른 공포의 대명사인 쓰나미(지진해일)까지 포함하면 인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자연재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가져온 자연재해는 1556년 중국 산시(陝西) 대지진(사진)이다. 규모 8.0으로 추정되는 당시 지진으로 약 83만명이 사망했다. 인구밀도가 높고 내진설계와 같은 대비가 미비한 낙후지역에 지진이 발생하면 그 충격과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지진은 지판의 경계부에서 발생하는 ‘판경계 지진’과 대륙 내부의 ‘판내부 지진’으로 구분되며, 그 피해도 뚜렷하게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지진의 대부분은 판경계부에 집중된다.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자리 잡고 있는 일본, 미국 서부, 뉴질랜드 등에서 지진이 빈번한 이유다.

판경계 지진은 공간적으로 판경계부를 따라 좁고 길게 분포한 단층대에서 일어난다. 빈도가 잦고 단층운동의 재발 주기가 짧아 지진 대비를 위한 발생 위치와 시점을 비교적 높은 확률로 추정할 수 있다. 반면 판내부 지진은 지각 내부에 복잡하게 분포하는 단층 재활동으로 일어난다. 결국 미래 지진의 발생 위치와 시점을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

지난 120년 지진 역사에서 1000명 이상 인명피해를 가져온 지진은 130회 정도다. 발생 횟수와 규모에서는 판경계 지진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오히려 사망자 수는 판내부 지진(약 140만명)이 판경계 지진(약 80만명)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판경계 지진 인명피해 절반 이상이 쓰나미로 발생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판내부 지진이 판경계 지진에 비해 4배 정도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한국은 판내부 지진 환경에 속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지표와 지하에 존재하는 모든 단층들이 잠재적 지진원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도 이제 규모 6.0 이상의 중대형 지진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진재해의 안전·안심지대라는 문구는 옛말이 됐다. 그렇다면 미래에 닥쳐올 지진재해에 효과적으로 대비·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우선돼야 할까.

바로 단층 조사에 답이 있다. 특히 제4기(250만년 이전부터 현재까지)에 지진을 일으킨 이력이 있는 ‘활성단층(Active Fault)’ 조사를 서둘러야 한다. 한국은 2016년 9월12일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을 계기로 2017년부터 전 국토를 대상으로 활성단층 조사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한반도 동남권 지역을 시작으로 4단계에 걸쳐 20년간 전국에 분포하는 활성단층을 조사해 지진 대비를 위한 효과적인 정보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활성단층 조사는 제4기 지질시대에 지진을 일으킨 단층에 의한 지표 파열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표 파열은 규모 6.0 이상 중대형 지진에 의해 일어나기에 활성단층이 존재한다는 것은 해당 지역에 비슷한 규모의 지진 발생 확률이 높다는 증거다.

활성단층 조사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반면, 연구 결과에서 결정적 증거 또한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지진에 대한 선제적 대비와 대응을 통해 지진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민의 안전에 기여하겠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오늘도 연구자들은 활성단층을 찾기 위해 현장을 누비고 있다.

-경향신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79.html
kolaswqetsrq 11.02 23:06
온공자허溫恭自虛 - 가르침을 공손히 겸허하게 받다, 스승에 대한 제자의 태도

온공자허(溫恭自虛) - 가르침을 공손히 겸허하게 받다, 스승에 대한 제자의 태도

따뜻할 온(氵/10) 공손할 공(心/6) 스스로 자(自/0) 빌 허(虍/6)

‘아버지로부터는 생명을 받았으나 스승으로부터는 생명을 보람 있게 하기를 배웠다.’ 스승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한 서양의 격언이다. 제자를 보기엔 스승만한 눈이 없다고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데에는 스승을 덮을 사람이 없다.

그러니 君師父一體(군사부일체), 스승의 은혜가 임금이나 부친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은혜를 고마워했고, 어렵기도 해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雁行避影(안행피영)이란 말이 나왔다. 스승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는 말이 많은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이 ‘管子(관자)’에 나오는 온순과 겸허의 이 성어다.

중국 최고의 재상으로 꼽히는 管仲(관중)은 鮑叔牙(포숙아)와의 우정 管鮑之交(관포지교)로 유명한 바로 그 사람이다.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에서 부국강병에 힘썼고 자신을 발탁한 桓公(환공)을 中原(중원)의 覇者(패자)로 만들었다. 관중의 가르침을 후대의 사람들이 썼다는 책 관자에는 法家(법가)의 사상을 위주로 여러 학파의 잡다한 지식을 포함하고 있다. 그 중 弟子職(제자직) 편에 학생들이 지켜야 하는 법도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배움의 태도뿐 아닌 식사, 청소, 잠자리 돌보기 등 참으로 상세한 내용이다.

첫 부분에 이 성어의 가르침이 나온다. ‘선생님이 가르침을 베풀 때 제자는 이를 본받아서, 온화하고 공손한 태도로 겸허하게 배워 이를 극진히 해야 한다(先生施教 弟子是則 溫恭自虛 所受是極/ 선생시교 제자시즉 온공자허 소수시극).’ 이 뒤에 따르는 말도 너무나 원칙적인 옳은 이야기라 소개해보자.

‘선한 것을 보면 이를 따르고, 옳은 것을 들으면 실천한다(見善從之 聞義則服/ 견선종지 문의즉복). 온화하고 유순하며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와는 우애롭게 하여, 제 능력을 믿고 교만하게 되어선 안 된다(溫柔孝悌 毋驕恃力/ 온유효제 무교시력).’

제자의 능력을 잘 파악하고 더욱 북돋아 자신을 능가하면 靑出於藍(청출어람)이라 하여 스승이 더욱 가르친 보람을 느낀다. 훌륭한 스승이 대부분인 중에 가르치는 교사가 많아지다 보니 제자와 추문이 일어나는 등 일탈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이런 사람이 아주 소수인데도 학부모와 심지어 제자까지 함부로 대해 폭력을 휘두르는 일까지 종종 일어난다. 오죽했으면 은혜를 기리고 존중해야 하는 스승의 날까지 없애야 한다고 하는 청원이 나올까. 교권이 무너지면 나라의 앞날이 어둡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30.html
kolaswqetsrq 11.02 23:07
가서만금家書萬金 – 집의 편지는 만금의 값어치가 있다.

가서만금(家書萬金) – 집의 편지는 만금의 값어치가 있다.

집 가(宀/7) 글 서(曰/6) 일만 만(艹/9) 쇠 금(金/0)

안부, 용무를 전하는 편지를 나타내는 말은 의외로 많다. 書信(서신), 書簡(서간), 書札(서찰) 등 간혹 사용하는 것 외 簡牘(간독), 書尺(서척), 聲問(성문), 鯉素(이소), 尺翰(척한) 등 생소한 것도 많다. 아주 먼 곳에서 온 편지는 漢(한)나라 蘇武(소무)에게서 유래한 雁書(안서)라고 한다.

이러한 편지를 받았을 때는 희망, 읽고 난 뒤엔 실망이라며 큰 기대를 말라고 한 사람도 있지만 아무래도 반가운 마음이 앞서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집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편지를 직접 뜯었을 때(家書手自啓緘縢/ 가서수자계함등) 그 얼마나 흔쾌할까라며 茶山(다산)은 不亦快哉行(불역쾌재행)에서 노래했다.

기쁘고 즐거움을 넘어 집에서 부쳐 온 편지(家書)는 천만금보다 더 귀하고 반갑다(萬金)고 한 사람은 杜甫(두보, 712~770)다. 그는 詩聖(시성)으로 불리며 시를 숭상하던 唐(당)나라에서 詩仙(시선) 李白(이백)과 함께 李杜(이두)로 통칭될 정도로 우뚝했다.

하지만 당시 玄宗(현종)이 간신들에게 정사를 맡겨 극도로 혼란했을 때 安祿山(안록산)의 난이 일어나 미관말직에 있었던 두보도 포로가 되는 등 고생했다. 그가 홀로 長安(장안)에 있으면서 피란 간 처자를 생각하며, 난리로 폐허가 된 땅과 백성의 아픔을 보고 노래한 것이 유명한 ‘春望(춘망)’이란 시다. 앞 구절부터 유명한 시의 전문을 보자.

‘나라는 깨졌어도 산하는 남아, 성 안에 봄이 오자 초목은 우거지누나(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국파산하재 성춘초목심). 시절이 아파 꽃에도 눈물 뿌리고, 이별이 서러워 새 소리에도 놀란다(感時花濺淚 恨別鳥驚心 /감시화천루 한별조경심). 봉화가 석 달이나 연이어지니, 집안 편지는 만금의 값이 되네(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 봉화연삼월 가서저만금). 흰 머리 긁을수록 더욱 짧아져, 쓸어 묶으려도 비녀질도 안 되네(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백두소갱단 혼욕불승잠).’ 濺은 흩뿌릴 천, 簪은 비녀 잠. 생사를 모를 때 가족의 편지는 헤아릴 수 없는 가치이겠지만 여기서는 그보다 사람들은 생고생을 하는 중에도 자연의 이치는 어김없이 찾아 온 봄을 쓸쓸히 노래한다.

집에서 부쳐 온 편지가 반가운 것은 군대에서 이상 없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전화나 문자로 소식을 주고받게 된 오늘에서도 손편지는 가치를 잃지 않을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가 그리운 사람들은 그리운 사람들에게 손편지를 쓰는 게 유행이라 하고 그렇게 되면 만금의 가치를 아는 사람도 많아질 터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72.html
kolaswqetsrq 11.02 23:07
자허오유子虛烏有 -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사실, 가공의 인물

자허오유(子虛烏有) -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사실, 가공의 인물

아들 자(子/0) 빌 허(虍/) 까마귀 오(灬/6) 있을 유(月/2)

子虛(자허)는 ‘헛것’이란 의미로, 烏有(오유)는 ‘어찌 그런 일이 있겠는가’란 뜻으로 모두 있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말이나 존재를 말한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사람을 烏有先生(오유선생)이라 했는데 어느 것이나 가상의 꾸며낸 존재다.

이러한 풍자적 인물을 창조한 사람은 중국 前漢(전한)시대의 문인으로 뛰어난 辭賦(사부)의 작가 司馬相如(사마상여, 기원전 179~117)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비유보다 직접 서술하는 중국 고전문인 사부는 屈原(굴원)에서 시작하여 六朝(육조)까지 성행했다는데 특히 천자의 덕을 찬양한 相如(상여)의 작품이 유명하다.

사마상여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刎頸之交(문경지교)로 알려진 趙(조)나라 재상 藺相如(인상여, 藺은 골풀 린)의 인품을 흠모해서 따 왔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여 글재간이 비상했다. 그의 문명이 널리 알려지기 전 지은 ‘子虛賦(자허부)’는 사냥을 묘사한 내용이었다.

사냥을 즐겨하는 漢武帝(한무제)가 글을 읽고 이런 재주를 가진 대작가와 동시대의 사람이 아닌 것을 애석해했다. 사냥개를 관리하는 신하가 왕에게 같은 고을의 사람이라 일러주자 급히 초대하게 하여 사마상여를 만나게 됐다. 글을 칭찬하는 왕에게 더 훌륭한 작품을 올리겠다고 하여 나온 것이 ‘上林賦(상림부)’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자허와 오유선생, 그리고 한 사람 더 亡是公(망시공, 또는 무시공)이다. 자허가 楚(초)의 사신으로 齊(제)에 가서 왕의 사냥을 자랑하자 오유가 비난하는 내용이다. ‘상여는 헛것이란 자허로 초나라를 칭찬하고(相如以子虛 虛言也 爲楚稱/ 상여이자허 허언야 위초칭), 어찌 있겠는가란 오유로 비난하자(烏有先生者 烏有此事也 爲齊難/ 오유선생자 오유차사야 위제난) 이런 사람 없다란 망시공이 천자의 도리를 밝히게 했다(亡是公者 無是人也 明天子之義/ 망시공자 무시인야 명천자지의).’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 사마상여열전의 내용이다.

허구로 창조해 낸 인물이 왕과 신하의 성대한 수렵 행사를 은근히 꼬집은 내용이다. 하지만 끝부분에 사치와 방탕을 반대하고 절제와 검소함을 내세웠기 때문에 불같은 성격의 무제도 흡족해했다고 한다. 이같이 가공의 세 사람 모두 없는 사람, 虛無(허무)라는 뜻을 내포하여 동의어로 쓰게 됐다.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개척자로 꼽는 玄鎭健(현진건)의 호 憑虛(빙허)도 허구인물의 의미란다. 그러고 보니 理想鄕(이상향)을 말하는 유토피아(Utopia)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란 뜻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76.html
kolaswqetsrq 11.02 23:08
위고금다位高金多 - 지위가 높고 재물이 많다, 크게 성공해 귀인이 되다.

위고금다(位高金多) - 지위가 높고 재물이 많다, 크게 성공해 귀인이 되다.

자리 위(亻/5) 높을 고(高/0) 쇠 금(金/0) 많을 다(夕/3)

매우 말솜씨가 좋은 사람을 가리키는 우리 속담에 ‘말 잘 하기는 소진, 장의로군’이라는 것이 있다. 합쳐서 ‘蘇張(소장)의 혀’라고도 한다. 잘 알려졌듯이 蘇秦(소진)과 張儀(장의)는 말로써 중국 秦(진)나라와 六國(육국)을 잡고 흔들었던 縱橫家(종횡가)의 대표였다.

두 사람은 楚(초)나라의 鬼谷(귀곡) 지방에 은둔했던 鬼谷子(귀곡자)의 제자였다. 그는 강력한 진에 대항하여 천하의 패권을 다투던 戰國時代(전국시대)에 권모술수의 외교책을 앞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두 제자는 상반된 방책으로 이들 나라에서 꿈을 펼쳤다.

소진은 강국에 맞서려면 작은 나라가 연합해야 한다는 合縱策(합종책)으로, 장의는 진나라와 각각 동맹을 해야 살 수 있다며 連衡策(연횡책, 衡은 저울대 형, 가로 횡)을 갖고 각국을 순회하며 세치의 혀로 왕들을 설득했다. 이들은 고생 끝에 소진이 여섯 나라의 재상으로, 장의는 진나라에서 재상이 되었다.

이 중 지위가 높고(位高) 재물도 많다(金多)는 이 성어는 먼저 출세한 소진에게서 나왔다. 그는 처음 실속 없이 여러 해 동안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형제와 형수가 비웃으며 농사나 지으라고 했다. ‘史記(사기)’의 소진 열전에 실린 내용을 보자.

소진은 분발하여 상대를 설득하는 법을 통달한 뒤 설득에 나섰다. 소국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한다는 합종이 楚燕齊韓魏趙(초연제한위조)의 왕들에 먹혀 들어가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됐다. 소진은 합종 맹약의 우두머리가 됐고 제후들마다 사신을 보내 모시려 했다.

이동 때는 선물을 실은 수레가 끝이 안 보일 정도이고 호위하는 병사도 많아 왕의 행차로 착각할 정도였다. 도중에 고향을 지나가면서 집에 들렀다. 식구들은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소진이 ‘어찌 전에는 오만하더니 이렇게 공손한가요(何前倨而後恭也/ 하전거이후공야)?’ 하고 물으니 형수가 답했다. 倨는 거만할 거. ‘작은 시아우님의 지위가 높고 재물도 많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見季子位高金多也/ 견계자위고김다야).’

부귀해지면 친척까지도 우러러보고 비천해지면 업신여기는 것을 보고 소진은 탄식했다. 일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에게 줄을 대기 위해 모두 기를 쓴다. 그러다 세력을 잃으면 언제 보았느냐며 즉시 돌아선다. 이런 세태를 탓하지 말고 부귀할 때 덕을 베푼다면 그나마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소진은 천금을 풀어 일족과 친지들에게 나눠주며 위로했다. 나중에 참혹하게 죽음을 당했어도 소진의 합종책은 15년이나 위력을 발휘해 진나라를 견제하는데 성공한 바탕이 됐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20.html
kolaswqetsrq 11.02 23:09
용양호보龍驤虎步 - 용처럼 날뛰고 범처럼 걷다, 용맹스런 영웅의 모습

용양호보(龍驤虎步) - 용처럼 날뛰고 범처럼 걷다, 용맹스런 영웅의 모습

용 룡(龍/0) 말날뛸 양(馬/17) 범 호(虍/2) 걸음 보(止/3)

상상의 동물로 신성시되는 용은 무적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불이나 독을 내뿜으니 당할 자가 없다. 호랑이는 또 百獸(백수)의 왕이니 만만찮다. 이 들의 싸움은 한 쪽이 실체가 없으니 이뤄질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둘을 싸움 붙여 龍虎相搏(용호상박)이라면 라이벌끼리의 혈투가 된다. 둘을 대비시켜 된 말을 더 들어 보자. 맞붙어 싸우는 龍拏虎擲(용나호척)이나 대단한 기세를 말하는 龍盤虎踞(용반호거), 엄숙한 용모 龍顔虎眉(용안호미) 등이 있다.

용처럼 날뛰고(龍驤) 범처럼 걷는다(虎步)는 이 비유를 듣기만 해도 위풍이 당당하다. 龍行虎步(용행호보)라 해도 같은 말이고,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는 龍驤虎視(용양호시)도 기개가 높고 위엄에 찬 영웅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성어는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 때의 宋(송)나라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에 나온다. 후한은 4대 和帝(화제) 이후 외척과 환관들이 권력 다툼으로 조용할 때가 없었다. 선비 집단인 黨人(당인)들도 휩쓸려 黨錮(당고)의 禍(화) 이후 나라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백정 출신이었던 何進(하진)은 누이가 12대 靈帝(영제)의 귀인이 되고 태후에 오르자 권세가 점점 커져 黃巾賊(황건적)의 난 때는 대장군이 되었다. 하진은 환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董卓(동탁)을 비롯한 각지의 장수들을 동원할 계획을 세웠다. 하진의 밑에서 주부로 있던 陳琳(진림)이라는 사람이 나섰다.

‘장군께서는 황제의 권위와 병권을 가지고 있고, 또 용마가 날뛰고 호랑이처럼 위엄이 있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데(今將軍皇威 握兵要 龍驤虎步 高下在心/ 금장군황위 악병요 용양호보 고하재심)’ 동탁 등을 부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진림의 걱정대로 정보를 빼낸 환관들이 선제공격을 하여 하진은 피살되고 말았다. 하진 열전에 실려 있다.

작전도 잘못 짰고 수하의 건의도 묵살한 하진에게 용처럼 날뛰는 위엄은 너무 과한 형용이겠다. 우리 역사상 역대 명장들은 이러한 풍모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65.html
kolaswqetsrq 11.02 23:10
기로망양岐路亡羊 - 갈림길에서 양을 잃다, 정확한 방향을 몰라 우왕좌왕하다.

기로망양(岐路亡羊) - 갈림길에서 양을 잃다, 정확한 방향을 몰라 우왕좌왕하다.

갈림길 기(山/4) 길 로(足/6) 망할 망(亠/1) 양 양(羊/0)

모든 길은 서로 통한다. 서양에선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는 격언이 있다. 실제 로마에는 군사목적으로 사통팔달의 길이 일찍부터 있었다고 해도 같은 목표에 이르는 데는 많은 다른 길이 있다는 의미로 썼다. ‘길을 두고 뫼로 갈까’란 우리 속담이 있다.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구태여 어렵게 하거나 편한 곳을 두고도 불편한 곳으로 가는 것을 비유한다. 가는 길이 여러 곳으로 통하지만 어리석거나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고선 일부러 둘러 가는 어려운 길을 택할 필요는 없다. 여러 갈래난 갈림길(岐路)에서 양을 잃는다(亡羊)는 말은 정확한 방향을 몰라 오락가락하는 것을 뜻한다.

중국 道家(도가)의 전설적인 사상가 列禦寇(열어구)의 ‘列子(열자)’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衛(위)나라에 楊朱(양주)라는 학자가 살았는데 어느 때 이웃집에서 양을 잃었다며 양을 쫓으러 하인을 청하러 왔다. 양주가 법석을 떠는 이웃에 물었다. ‘한 마리 양이 달아났을 뿐인데 쫓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소(亡一羊 何追者之衆/ 망일양 하추자지중)?’ 이웃 양 주인이 대답했다. ‘갈림길이 많기 때문이오(多岐路/ 다기로).’ 허탕을 치고 돌아온 그에게 다시 물었더니 이렇게 답한다. ‘갈림길에 또 갈림길이 있어서였소(岐路之中 又有岐焉/ 기로지중 우유기언).’

이후 양자가 걱정스런 안색으로 말도 하지 않자 제자들이 남의 사소한 가축을 잃은 것에 왜 신경 쓰는지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후일 心都子(심도자)란 제자에게 전한 말은 이렇다. ‘큰길은 갈림길이 많아 양을 잃게 되며, 학문하는 사람은 방법이 많아 삶을 잃게 된다(大道以多岐亡羊 學者以多方喪生/ 대도이다기망양 학자이다방상생).’ 학문하는 사람들이 지엽말단적인 것에만 매달려 근본적인 목표를 잃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란 것을 풍자한 내용이다. 說符(설부)편에 실려 있다.

태초에 길이 있었기에 인간은 그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선인이 개척해 놓은 지름길을 안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목적지에 이른다. 길은 가까운 데 있는데 먼 곳을 두르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있다.

가장 이상적인 대책이라고 철석같이 믿은 것이라도 이용을 잘못해 부작용이 난다. 이럴 땐 재빨리 되돌아서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자기의 길이 옳다고 꾸역꾸역 먼 길을 간다면 모두에게 피해만 준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27.html
kolaswqetsrq 11.02 23:10
오곡불분五穀不分 - 오곡을 분간 못하다, 아주 어리석다.

오곡불분(五穀不分) - 오곡을 분간 못하다, 아주 어리석다.

다섯 오(二/2) 곡식 곡(禾/10) 아닐 불(一/3) 나눌 분(刀/2)

五穀(오곡)은 온갖 곡식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쌀, 보리, 콩, 조, 기장을 가리킨다. 주식으로 많이 사용하는 중요한 곡식이기 때문이다. 이 다섯 가지 곡식을 모른다면 무식한 사람이 될까. 옛날 농경시대라면 몰라도 오늘날에는 오곡이 무엇인지, 그것을 구별 안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부문에서 생산에 종사하고 연구에 매진하여 전문가가 된 사람이 많다. 어떤 분야에 조금 안다고 다른 사람을 얕보고 우쭐거리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유식과 무식을 떠나 다섯 가지 곡식(五穀)을 구분하지 못한다(不分)는 말은 ‘論語(논어)’에서 孔子(공자)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한 隱者(은자)의 이야기가 출처다. 殷(은)나라 마지막 왕 紂王(주왕)의 학정을 피해 떠났던 배다른 형 微子(미자)편에 나온다. 공자의 제자 子路(자로)가 일행을 놓쳐 뒤에 쳐졌다가 지팡이로 삼태기를 메고 가는 노인을 만났다. 자로가 선생님을 보지 못했는지 묻자 노인이 답한다.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여 일하지 않고, 오곡도 분간하지 못하는데 누가 선생이란 말인가(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사체불근 오곡불분 숙위부자)?’ 자로가 핀잔을 받고도 두 손을 맞잡고 김 맬 동안 기다리자 노인은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닭을 잡고 잘 대접했다.

다음 날 자로가 스승에 아뢰니 그가 바로 은자라며 다시 만나보라고 했지만 갔을 땐 이미 떠나고 없었다. 노인이 손발도 놀리지 않고 오곡도 모른 사람이라고 낮춰 말해도 자로가 공손함을 잃지 않자 사람됨을 알았고 공자도 은자를 알아봤던 것이다.

농사에서 무식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은 이외에도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菽麥不辨(숙맥불변)이나 고무래를 두고도 丁(정) 자를 알지 못한다는 目不識丁(목불식정)이 있다. 不學無識(불학무식)이란 말도 있다. 배운 것이 없어 무식하다고 욕할 때 쓴다. 하지만 배운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볼 때는 유식이 무식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73.html
kolaswqetsrq 11.02 23:11
문과식비文過飾非 - 허물도 꾸미고 잘못도 변명하다.

문과식비(文過飾非) - 허물도 꾸미고 잘못도 변명하다.

글월 문(文/0) 지날 과(辶/9) 꾸밀 식(食/5) 아닐 비(非/0)

자기가 잘못을 저지르고도 대체로 사람들은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일이 안될 때 그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태도를 비꼬는 말은 숱하다. ‘잘 되면 제 복, 못되면 조상 탓’, ‘쟁기질 못하는 놈이 소 탓한다’, ‘글 잘 쓰는 사람은 필묵을 탓하지 않는다’ 등등이다. 孔子(공자)님도 점잖게 타이른다.

‘군자는 자기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잘못을 찾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 諸는 모두 제, 어조사 저. 이렇게 경계하라는 말이 많아도 지키기는 어려운지 허물도 꾸미고(文過) 잘못도 꾸미는(飾非) 것은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뉘우침도 없이 숨길 뿐만 아니라 도리어 남 탓을 하고 잘난 체만 한다. 文(문)은 물론 꾸민다는 뜻이다.

이 말이 먼저 나온 곳은 ‘論語(논어)’의 子張(자장)편이다. 공자의 제자 子夏(자하)가 말했다. ‘소인은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그럴듯하게 꾸며대려 한다(小人之過也必文/ 소인지과야필문).’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잘못이 아닌 듯이 꾸밈으로써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소인이란 뜻이다. 朱子(주자)의 ‘論語集註(논어집주)’에는 이렇게 설명한다. ‘문은 꾸미는 것이다. 소인은 허물을 고치는데 꺼리고, 스스로 속이는 데엔 꺼리지 않으므로, 반드시 꾸며서 그 허물을 거듭한다(文飾之也 小人憚於改過 而不憚於自欺 故必文以重其過/ 문식지야 소인탄어개과 이불탄어자기 고필문이중기과).’

‘孟子(맹자)’엔 옛날 周公(주공)도 잘못이 있었다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옛날의 군자는 잘못이 있으면 고쳤는데, 오늘날의 군자는 허물이 있어도 그대로 밀고 나간다(古之君子 過則改之 今之君子 過則順之/ 고지군자 과즉개지 금지군자 과즉순지)’고 하며 덧붙인다. 옛 군자는 그 과오가 마치 일식이나 월식과 같아서 인민들이 모두 볼 수 있었고 그것을 고쳤을 때 모두 우러렀는데 오늘날 군자는 다만 과오를 따를 뿐 아니라 변명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公孫丑(공손추) 하편에 실려 있다.

잘못은 성인도 저지를 수 있다. 다만 변명과 거짓말로 둘러 대는가 아닌가에서 차이가 난다. 업무가 마비된듯한 이 위기상황에 책임이 있다는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33.html
kolaswqetsrq 11.02 23:12
일거수 일투족一擧手 一投足 -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

일거수 일투족(一擧手 一投足) -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

한 일(一/0) 들 거(手/14) 손 수(手/0) 한 일(一/0) 던질 투(扌/4) 발 족(足/0)

손을 한 번 들고(一擧手) 발을 한 번 내딛는(一投足) 일은 무척 쉽다. 손발이 불편한 장애인에겐 어려운 일이지만 갓난아이도 할 수 있는 이 동작이 쉬운 일의 비유가 된 것은 중국 唐(당)나라의 韓愈(한유, 768~824)에서 비롯됐다. 문장에서 빼어난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도 25세에 과거시험 1차에 합격한 뒤 2차 吏部(이부) 시험에서는 몇 번을 응시하여 번번이 낙방한 모양이었다.

이 당시의 과거에서는 시험관에게 응시자들이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시문을 지어 제출하는 것이 관례였다는데 한유도 실력을 발휘했다.

제목이 ‘과거에 응시하면서 담당자에게 주는 편지(應科目時與人書/ 응과목시여인서)’인 이 글에서 한유는 시험관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급제의 영광을 베풀어 달라고 구구절절 부탁을 하고 있다. 천지 바닷가나 큰 강가에 사는 큰 괴물이 물을 얻으면 비바람을 몰아치게 하고 하늘은 오르내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지만, 물을 만나지 못하면 평범한 작은 물고기에 불과할 뿐이라며 이어간다. 그것을 힘 있는 사람이 안타깝게 여겨 옮겨주는 것은 ‘손 한 번 움직이고 다리 한 번 움직이는 노고에 불과하지만(蓋一擧手一投足之勞也/ 개일거수일투족지로야)’ 이 동물에겐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본론에 들어가면서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지금 힘 있는 사람이 앞에 있어 외쳐 보는데 ‘어찌 손 한 번 움직이고 다리 한 번 움직이는 노고를 잊어버리고(而忘一擧手一投足勞/ 이망일거수일투족로)’ 맑은 물에 옮겨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읍소한다. 한유 자신은 비바람을 몰아치는 큰 인물과 같은데 물을 만나지 못해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으니 발탁해 달라는 이야기다. 담당자에게는 자신을 급제시키는 일이 손발 한 번 까딱하는 정도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니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한 것이다.

당시 과거시험의 자기 소개서인 셈인데 훌륭한 문장으로 급제시키는 것이니 오늘날의 청탁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뽑는 일이 손발 한 번 움직이는 정도로 쉬운 일은 아닐 것임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갓난애도 할 수 있다는 쉬운 이 말이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일컫는 말이 됐고, 특히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지켜보니 더욱 어려운 일이 됐다. 말 한 마디가 중요한 의미로 해석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도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12.html
kolaswqetsrq 11.02 23:12
휘질기의諱疾忌醫 - 병을 숨기고 의사를 꺼리다, 충고에도 결점을 고치지 않다.

휘질기의(諱疾忌醫) - 병을 숨기고 의사를 꺼리다, 충고에도 결점을 고치지 않다.

숨길 휘(言/9) 병 질(疒/5) 꺼릴 기(心/3) 의원 의(酉/11)

모든 일은 작은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큰 일이 터지면 허둥지둥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데서 이루어지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로부터 이루어진다(天下之難事必作於易 天下之大事必作於細/ 천하지난사필작어이 천하지대사필작어세).’ 韓非子(한비자)의 말이다. 자기 몸의 병도 마찬가지다.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이라지만 숨기지 않고 병자랑은 할수록 좋다는 말도 있다.

병의 증세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하면 좋은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병을 숨기고(諱疾) 고쳐줄 의원을 꺼린다면(忌醫) 나을 수가 없다. 잘못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고 고치지 않음을 비유하는 성어다. 護疾忌醫(호질기의)도 같은 말이다.

北宋(북송)때의 성리학자 周敦頤(주돈이, 頤는 턱 이, 1017~1073)의 ‘周子通書(주자통서)’에 이 표현이 먼저 등장한다.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잡아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병을 숨기면서 의원에게 보이지 않아 몸을 망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今人有過 不喜人規 如護疾而忌醫 寧滅其身而無悟也/ 금인유과 불희인규 여호질이기의 영멸기신이무오야).’ 주돈이는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며 전설적인 扁鵲(편작)의 이야기에서 따와 예를 들었다. ‘史記(사기)’ 편작 倉公(창공) 열전에 자세히 나온다.

죽어가는 사람을 일으켰다는 起死回生(기사회생)에서 소개한 대로 편작은 인도의 장수의 신 耆婆(기파)나 조선의 許浚(허준)과 같이 중국을 대표하는 명의다. 虢(괵, 虢은 나라 이름, 범발톱자국 괵)나라의 태자를 살려 소문이 자자한 편작을 齊(제)나라의 桓侯(환후)가 초청했다. 편작은 처음 보고 환후가 병이 있음을 알아챘다.

지금 치료가 필요하다고 해도 환후가 의원들은 병이 없는 사람에게 재주를 자랑한다면서 거절했다. 두 번째, 세 번째 갔을 때는 더 위중해졌지만 역시 치료를 거부했고 마침내 환후는 죽고 말았다. 똑 같은 이야기가 ‘한비자’ 喩老(유로)편에 나오는데 환후 대신 蔡(채)나라 환공으로 되어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57.html
kolaswqetsrq 11.02 23:13
일취천일一醉千日 - 한 번 취하면 천일 가는 술, 아주 좋은 술을 이르는 말

일취천일(一醉千日) - 한 번 취하면 천일 가는 술, 아주 좋은 술을 이르는 말

한 일(一/0) 취할 취(酉/8) 일천 천(十/1) 날 일(日/0)

술이 건강을 해친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술은 약 중에서도 으뜸인 百藥之長(백약지장)이라 예찬하는 사람도 많다. 사람의 체질에 따라 알코올을 분해하는 능력이 모두 다르므로 음주의 양도 천차만병일 수밖에 없다. 보리밭을 지나기만 해도 취한다는 過麥田大醉(과맥전대취)의 맹탕이 있는가하면 고래가 물을 마시듯이 주량이 한정 없는 鯨飮(경음)도 있다. 酒道有段(주도유단)이란 글을 남긴 靑鹿派(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18계급의 급수와 단수로 나눴다. 전혀 안 먹는 사람 不酒(부주)가 9급, 겁내는 畏酒(외주) 8급에서 유유자적하는 樂酒(낙주) 단계가 7단이다. 그 위는 이미 마실 수 없는 觀酒(관주)이고, 최고 단수인 9단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廢酒(폐주)로 술이 사람을 잡은 경우다.

정도껏 마시면 온갖 시름을 잊게 해 주는 忘憂物(망우물)이 된다고 한 사람은 歸去來辭(귀거래사)의 시인 중국 六朝(육조)의 陶淵明(도연명)이다. 주량에 따라 나누는 방법 말고 가장 좋은 술은 어떤 것일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넥타르(Nectar)는 죽음을 물리친다는 神酒(신주)를 말하는데 오늘날 과일을 으깨어 만든 진한 주스를 가리키니 술의 단계는 아니다. 한 번 취하면(一醉) 1000일(千日)을 기분 좋게 누워있다는 술이 최고의 술이란다. 술 마시고 뻗어 장례까지 치르게 한 술이 가장 좋다고 하는데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西晉(서진)의 張華(장화)가 지은 기담집 ‘博物志(박물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옛날 劉玄石(유현석)이란 사람이 中山(중산)의 술집에서 술을 샀다. 주막에서는 한 번 마시면 1000일 동안 취한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을 깜빡했다. 취한 채 집에 돌아온 유현석은 인사불성 꼼짝할 수 없었다. 가족들은 그가 죽었다고 여기고 장례를 치렀다. 주막에서는 천일이 다가오는 것이 생각나 깰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집에 찾아가 이야기했다. 집안사람들이 관을 열어 보니 유현석은 부스스 술이 깨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그 뒤 세간에서는 ‘현석이 술을 마셔 한 번 취하면 천일 간다(玄石飮酒 一醉千日/ 현석음주 일취천일)’는 말이 생겼다. 唐(당)나라 李瀚(이한)의 아동용 교재 ‘蒙求(몽구)’에도 玄石沈湎(현석침면, 湎은 빠질 면)으로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인이 없다고 한다. 자신이 이기지 못할 정도로 술이 취하면 천하에 두려워하거나 어려운 것이 없으므로 醉中無天子(취중무천자)가 된 듯 기고만장이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영락없이 ‘술 먹은 개’다. 자신은 술에 취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경우가 너무 많다. 酒暴(주폭)이 되어 행패를 부리다 경찰에서도 난동을 부리고, 가장 심한 경우가 음주운전으로 남의 생명을 빼앗기도 한다. ‘윤창호법’으로 처벌이 강화됐다고 안심하기 전에 아예 근절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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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14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 책을 백번 읽으면 그 뜻은 저절로 알게 된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 책을 백번 읽으면 그 뜻은 저절로 알게 된다.

읽을 독(言/15) 글 서(曰/6) 일백 백(白/1) 두루 편(辶/9)

옳을 의(羊/7) 스스로 자(自/0) 볼 견, 뵈올 현(見/0)

좋은 책을 읽으면 옛 현인과도 벗이 될 수 있다고 한 말이 孟子(맹자)의 讀書尙友(독서상우)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한 데카르트의 말과 똑 같다. 독서의 유익함에 대한 성어는 부지기수고 이 난에서도 다수 소개했다. 책을 많이 갖고 있는 것, 밤낮으로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열심히 읽는 태도, 독서의 이득에 대한 깨우침 등등이다. 책을 펴기만 하면 졸린다고 머리카락을 매달고 넓적다리를 찔러가며 읽었다는 懸頭刺股(현두자고) 못지않게 수도 없이 반복하면 뜻을 알 수 있다는 이 성어도 유명하다.

글을 여러 번 계속해서 읽으면(讀書百遍)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義自見)는 이 성어는 학문을 열심히 닦게 되면 그 뜻을 스스로 깨우쳐 알게 된다는 뜻이다. 後漢(후한) 말기 魏(위)나라에 董遇(동우)라는 학자가 있었다. 겨울과 밤과 비 올 때를 가리키며 책 읽기에 좋은 세 가지의 여유 있는 시간이란 뜻의 三餘讀書(삼여독서) 고사의 주인공이다. 빈한한 집에서 태어났어도 배우기를 좋아하여 조용히 농사지으면서 책을 읽었다. 뜻을 알 수 없는 책도 읽고 또 읽어 결국 문리를 터득했고 문장도 탁월했다.

소문이 나자 벼슬자리에 나아가 獻帝(헌제)의 글공부 상대가 되었고 위 明帝(명제) 때에는 侍中(시중) 자리까지 올랐다. 고위직에 오른 뒤에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 老子(노자)와 左傳(좌전)의 주석서를 만들어 문명을 떨쳤다. 동우의 명성이 높아지자 많은 사람이 그에게 글을 배우겠다고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선뜻 가르치려 하지 않고 그들에게 당부한다. ‘마땅히 먼저 백 번을 읽어야 한다.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必當先讀百遍 言讀書百遍而意自見/ 필당선독백편 언독서백편이의자현).’ 이 이야기는 ‘三國志(삼국지)’ 魏書(위서) 王肅傳注(왕숙전주)에 실려 있다.

朱子(주자)도 ‘訓學齋規(훈학재규)’에서 ‘책은 다만 읽는 것이 귀한 것이다. 많이 읽으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書只貴讀 讀多自然曉/ 서지귀독 독다자연효)’라 하면서 동우의 이 말을 인용하고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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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15
장경오훼長頸烏喙 - 긴 목에 뾰족한 입, 사람의 관상을 표현한 말

장경오훼(長頸烏喙) - 긴 목에 뾰족한 입, 사람의 관상을 표현한 말

긴 장(長/0) 목 경(頁/7) 까마귀 오(灬/6) 부리 훼(口/9)

단지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면 나중에 큰 코 다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첫인상이 나쁘면 호감이 가기 어려우니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만약 목이 길고(長頸) 입이 새의 부리처럼 뾰족 튀어나왔다면(烏喙) 어떤 인상을 줄까. 사슴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라고 읊은 시가 있었는데 자신의 운명을 생각해서라 했다. 아무래도 사람의 목이 기린같이 너무 길면 비호감이기 쉽다. 까마귀 부리처럼 길게 튀어나온 입도 경망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 말은 사람의 관상을 표현할 때 쓴다고 하며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越王(월왕) 句踐(구천)의 모습을 나타낼 때 썼다.

구천은 처음 이웃 吳王(오왕) 闔閭(합려)를 죽여 두각을 나타냈다. 이 때문에 臥薪嘗膽(와신상담)의 흥미진진한 고사가 따른다. 합려의 아들 夫差(부차)는 원수를 갚기 위해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며 칼을 갈았고 곧 구천과 전쟁을 벌여 대승했다. 會稽山(회계산)으로 쫓겨 간 구천은 책사 范蠡(범려, 蠡는 좀먹을 려)의 건의로 대부 文種(문종)을 부차에 파견하여 항복을 애원했다. 미인 西施(서시)까지 보낸 뇌물작전이 통해 목숨을 부지한 구천은 처지가 바뀌어 쓸개를 핥으며 노예생활을 10년이나 이어가야 했다. ‘史記(사기)’ 越世家(월세가) 등에 박진감 있게 묘사된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부차가 齊(제)나라를 정벌하러 나라를 비운 사이 구천이 정예병을 이끌고 오에 쳐들어가 마침내 복수에 성공했다. 20년을 보좌하여 구천을 마지막 覇者(패자)로 오르게 한 범려는 자기 일이 끝났다며 작별을 고했다. 구천의 사람됨을 꿰뚫어 보았던 범려는 제나라에 간 뒤 문종에게 편지를 썼다. ‘월왕의 얼굴은 목이 길고 입은 까마귀 주둥이를 닮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는 법이오(越王爲人長頸鳥喙 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월왕위인장경조훼 가여공환난 불가여공락).’ 그러면서 문종에게도 빨리 떠나라고 조언했다.

얼굴 생김새가 성격과 운명까지 좌우한다고 믿어지지 않지만 범려가 본 구천은 틀림이 없었다. 문종은 이후 병을 핑계로 두문불출했으나 모함을 받은 구천은 살려두지 않았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겨 죽는다(狡兎死 走狗烹/ 교토사 주구팽)는 것을 알았던 범려는 이후 陶朱公(도주공)이란 큰 부호로 여생을 보냈다. 오늘날 기형의 얼굴은 예사로 성형하여 모습을 바꾼다. 얼굴은 자연의 작품이고 나이가 든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수양을 해서 덕이 자연스레 배어나오게 해야 한다는 말이지 싶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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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15
원려근우遠慮近憂 - 멀리 생각해야 가까운 근심이 없다.

원려근우(遠慮近憂) - 멀리 생각해야 가까운 근심이 없다.

멀 원(辶/10) 생각할 려(心/11) 가까울 근(辶/4) 근심 우(心/11)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거나 관계도 없는 남의 일에 끼어들며 오지랖을 떤다. 근심걱정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는 없지만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며 땅이 꺼질까 근심하는 杞憂(기우)처럼 쓸데없는 걱정을 할 땐 한심할 뿐이다. 큰 뜻을 펼치려는 사람도 ‘사는 해는 백년을 채우지 못하면서/ 항상 천년의 근심을 품는다(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 생년불만백 상회천세우)’는 말처럼 일반 사람은 그 걱정을 이해 못한다. 이런 ‘걱정도 팔자’인 사람을 제외한 보통 사람이라도 살아가는데 근심이 없을 수가 없다.

孔子(공자)님 말씀에 이런 것이 있다. ‘사람이 멀리 내다보며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게 된다(人無遠慮 必有近憂/ 인무원려 필유근우).’ 수신과 처세에 관해 좋은 말이 많이 실린 ‘論語(논어)’ 衛靈公(위령공) 편에서다. 목전의 안일에만 취해서 앞으로의 일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으면 바로 큰 우환이 닥친다고 경고한다. 장래의 일만 생각하고 목전의 작은 일을 소홀히 해선 물론 그것도 안 된다. 앞으로의 일을 중시한다고 주변의 일을 무시했다간 장래의 일을 숙고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慮(려)와 憂(우)는 같은 걱정근심이지만 중복을 피해 사용됐다.

北宋(북송)의 蘇軾(소식)은 사람이 앞으로 나갈 때 발 디디는 곳 이외의 땅은 필요 없지만 버릴 수도 없듯 천리 밖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지금 앉은 자리에서 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조선 후기 학자 李瀷(이익, 瀷은 강이름 익)도 대표적인 저술 ‘星湖僿說(성호사설, 僿은 잘게부술 사)’에서 인사에 있어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라 일을 맡으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백년대계를 갖춰야 하고, ‘일은 추호도 소홀히 다룰 수 없으니 소홀한 곳에 반드시 폐단이 따른다(事無一毫可以放過者 放過處必有患/ 사무일호가이방과자 방과처필유환)’고 했다. 11권 人事門(인사문)의 내용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비하고, 지금 주변의 작은 일을 점검한다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걱정을 모두 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하지만 목적에 맞는 일에 대비하는 것이지 쓸데없는 일에 정력을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다. 폭풍우를 대비해 둥지를 나무뿌리로 감는 새의 지혜 未雨綢繆(미우주무, 繆는 얽을 무)가 바로 有備無患(유비무환)이다. 특히 주변의 강대국과 북한의 핵 위협에 대비한 국방안보에는 아무리 대비해도 쓸데없는 걱정이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38.html
kolaswqetsrq 11.02 23:16
노마식도老馬識途 - 늙은 말이 길을 알다, 경험 많은 사람의 지혜

노마식도(老馬識途) - 늙은 말이 길을 알다, 경험 많은 사람의 지혜

늙을 로(老/0) 말 마(馬/0) 알 식(言/12) 길 도(辶/7)

知識(지식)은 노력에 의해 얻을 수 있으나 智慧(지혜)는 쉽게 습득할 수 없다.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바르게 행할 수 있는 능력인 지혜는 남에게 전할 수도 없어 지식을 능가한다. ‘사람이 오래면 지혜요 물건이 오래면 귀신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물건은 오래 될수록 쓸데없게 되어도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경험을 많이 쌓게 되어 지혜로울 수 있다. 늙은 것을 우세하는 老醜(노추)는 제외하고 영국서도 ‘Older and Wiser’라는 격언, 나이를 먹을수록 현명해진다니 그런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늙은 말(老馬)이 길을 안다(識途)는 성어도 뒷전의 퇴물이 큰 지혜를 발휘한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앞서 나온 老馬之智(노마지지)와 마찬가지로 중국 齊(제)나라의 桓公(환공)과 재상 管仲(관중)의 원정 이야기에서 예로 든 ‘韓非子(한비자)’ 說林上(설림상)에 실려 있다. 春秋五覇(춘추오패)의 맹주였던 환공은 관중과 함께 허베이河北/ 하북 북쪽에 위치했던 燕(연)나라를 도와주러 갔다가 길을 잃어 늙은 말의 지혜로 곤경을 벗어났었다. 참전하게 된 전후는 ‘東周列國志(동주열국지)’에 상세한데 간단히 보자. 연나라를 침범했던 山戎(산융)족의 국왕 密盧(밀로)는 제나라에 쫓겨 答理呵(답리가)가 다스리는 험준한 나라 孤竹國(고죽국)에 의지했다. 환공의 제나라 군대는 봄부터 공격을 시작했으나 지형을 잘 이용한 고죽국의 장군 黃花(황화)의 전략에 고전하다 겨울이 되어서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천리나 떨어진 곳으로 원정 가서 고생하다 막상 끝내고 돌아가려니 갈 길을 알 수가 없었다. 제나라 군사들은 승리에만 급급하여 지형지물의 관찰에 소홀했던 것이다. 국상 관중이 노획한 고죽국의 말이 생각났다. ‘늙은 말의 지혜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말을 풀어놓고 그 뒤를 따르게 하여 길을 찾았다(老馬之智可用也 乃放老馬而隨之 遂得道/ 노마지지가용야 내방로마이수지 수득도).’ 이보다 앞서 대부 隰朋(습붕)은 식수가 떨어졌을 때 남쪽의 개미집 땅 속을 파게하여 갈증을 해소했다. 늙은 말과 노대신의 지혜를 활용할 수 있어서 무사히 귀환했다.

현명한 재상도 알지 못하는 일을 미물인 늙은 말과 개미에게 지혜를 빌린 셈이다. 노령사회가 되면서 노인들이 많아지자 젊은이들은 자기들의 앞날을 가로막는 방해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기수문화가 철저한 사회에선 하급자가 중책을 맡게 되었을 때 상급자가 줄줄이 사퇴하여 경험을 사장시킨다. 원로들의 의견을 들으면서도 바른 길은 외면하고 제 갈 길만 간다. 한비자가 한탄했듯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앞선 사람의 지혜를 본받을 줄 모른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03.html
kolaswqetsrq 11.02 23:17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근심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근심이다.

알 식(言/12) 글자 자(子/3) 근심 우(心/11) 근심 환(心/7)

‘아는 것이 병‘이란 속담대로 지식이 해가 될까? 이것은 정확하지 못하거나 분명하지 않은 지식은 오히려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 실제로 몰라도 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래서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격언을 남겼다. 모르는 편이 나을 때가 간혹 있겠지만 도리를 알고 있는 까닭으로 도리어 불리하게 되었을 때 한탄하는 것이 識字憂患이다.

이 성어는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北宋(북송)의 대표적 시인 東坡(동파) 蘇軾(소식)이 ‘石蒼舒醉墨堂(석창서취묵당)’이란 시의 첫 구절에 바로 시작한다. ‘인생은 글자를 알면서 우환이 시작되니, 성명이나 대강 적을 수 있으면 그만둠이 좋도다(人生識字憂患始 姓名麤記可以休/ 인생식자우환시 성명추기가이휴).’ 麤는 거칠 추.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설명하는 내용은 이렇다. 劉備(유비)가 諸葛亮(제갈량)을 三顧草廬(삼고초려)로 맞이하기 전에 있었던 軍師(군사)가 徐庶(서서)였다. 그는 曹操(조조)가 탐을 내는 인물이었는데 휘하에 끌어들이려고 계략을 썼다.

그가 효자라는 사실을 알고 어머니 衛(위)부인이 위독하다는 가짜편지를 보냈다. 영문을 모른 위부인은 아들이 돌아오자 자기 필체를 위조한 계락인 것을 알고 통탄했다. 나중에 서서가 조조 진영으로 간 것을 알고 효심과 거짓편지 때문이라며 ‘여자가 글씨를 안다는 것이 걱정을 낳게 하는 근본 원인(女子識字愚患/ 여자식자우환)’이라 했다. 위부인의 말을 인용해 후세 사람들은 여자가 글을 배우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지만 실제는 원본에 없는 내용이 번역소설에 재미로 삽입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보다 울분에 차지만 더 멋진 사용처가 있다. 조선 말기 우국지사 梅泉(매천) 黃玹(황현) 선생은 1910년 한일강제병합 소식을 듣고 ‘絶命詩(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했다. 3수에 나오는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추등엄권회천고 난작인간식자인/ 가을 등불 아래서 책 덮고 회고해 보니, 인간 세상 식자 노릇 참으로 어렵구나)’란 절절한 구절을 남겼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10.html
kolaswqetsrq 11.02 23:18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 -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다, 위에서 솔선수범하다.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 -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다, 위에서 솔선수범하다.

임금 군(口/4) 아들 자(子/0) 갈 지(丿/3) 큰 덕(彳/12) 바람 풍(風/0)

君子(군자)라 하면 요즘 사람들은 융통성 없이 격식만 따지는 케케묵은 사람을 많이 연상한다. 하지만 전통 사회에서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아 유교사회의 이상적 인간상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이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 높은 지위의 고관을 말하기도 했다. 유교의 대표 경전인 論語(논어)와 孟子(맹자)에는 군자가 어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수없이 나오고 성어로도 끝없이 사용되고 있다. 군자의 덕(君子之德)은 바람(風)과 같다는 이 말도 그 중의 하나다. 바람이 불면 풀이 그 방향으로 눕듯이 윗사람의 행동은 아랫사람의 표본이 되니 주의해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논어’에서 仁(인)과 禮(예)에 대해 좋은 말이 많이 나오는 顔淵(안연)편에 이 말이 등장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말기 魯(노)나라의 대부였던 季康子(계강자)가 정치에 대해서 孔子(공자)에게 물었다. 만약 무도한 자들은 죽여서라도 도가 있는 사람들을 앞세운다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했다. 말하자면 자신이 힘으로 권세를 잡았듯이 一罰百戒(일벌백계)나 殺一儆百(살일경백, 儆은 경계할 경)이라도 하여 본보기로 삼도록 하면 어떨까 물은 것이다.

인을 중시한 공자가 찬성할리 없다. 정치를 하는데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써서는 안 되고 만약 대부께서 선하고자 노력한다면 백성들이 따라서 착해질 것이라면서 이어 말한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습니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군자지덕풍 소인지덕초). 풀 위로 바람이 지나가면 풀은 바람에 쓸려 반드시 눕게 마련이지요(草上之風 必偃)/ 초상지풍 필언).’ 偃은 쓰러질 언. 여기서 군자의 바람은 힘을 동반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또 民草(민초)로 불리는 백성들도 쉽게 꺾이지 않는 생명력이 있다. 온화한 바람이 불면 백성들은 그에 감동하여 반드시 따르기 마련이라는 설명이다.

위에서 바른 행동을 하지 않고 윽박지른다고 해서 무조건 따르는 아랫사람은 없다. 남을 다스리고 지도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자신이 率先垂範(솔선수범)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자신은 예외라도 된 듯 탈법과 불법을 예사로 저지른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지도층에서 모든 갈등의 근원이 되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38.html
kolaswqetsrq 11.02 23:18
회총시위懷寵尸位 - 총애만 믿고 헛되이 자리를 차지하다.

회총시위(懷寵尸位) - 총애만 믿고 헛되이 자리를 차지하다.

품을 회(心/16) 사랑할 총(宀/16) 주검 시(尸/0) 자리 위(亻/5)

윗자리에 상사가 의젓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부하직원들은 복종한다. 그것이 자리에서 오는 위압감에서일 수도 있고 경험과 실력에서 나오는 존경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래도 대부분 부하들은 속을 꿰뚫어 보는 경우가 많다. 더 높은 사람의 배경으로 위세를 부리는 상사는 겉으로는 위하는 체해도 속으로는 경멸한다.

윗사람의 신임만 믿고(懷寵) 헛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尸位)는 이 성어는 물러가야 할 때를 알고서 물러가지 않고 직위에 죽치고 있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전번 尸位素餐(시위소찬)에 나온 대로 시위는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의 신위 대신 앉혀 접신되게 했던 아이 尸童(시동)이 앉은 자리를 가리킨다. 제상의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시동과 같이 하는 일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녹을 받아먹는 공직자를 비꼴 때 썼다. 거기에 임금의 총애까지 받았으니 백성이 볼 때 세금도둑이 아닐 수 없다.

曾子(증자)가 스승 孔子(공자)에게서 받아 효도에 관한 내용을 엮은 ‘孝經(효경)’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기만 하면 효도를 다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여쭙자 공자가 답한다. 어른이나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간절히 말하는 신하가 있으면 임금도 천하를 잃지 않고, 아버지에게 이런 자식이 있다면 의롭지 않은 일에 빠지지 않는다면서 ‘의롭지 못한 일을 당했을 때는 간쟁해야 하니 아버지의 명령만 따른다고 어찌 효도라 할 수 있겠는가(當不義則爭之 從父之令 又焉得爲孝乎/ 당불의즉쟁지 종부지령 우언득위효호)?’라고 했다.

諫諍(간쟁, 諍은 간할 쟁)에 나오는데 이것을 공자의 후손 孔安國(공안국)이 풀이하여 간쟁하지 않는 신하는 ‘懷寵尸位 國之姦人/ 회총시위 국지간인’이라 평했다. 총애만 믿고 물러갈 때를 놓친 사람으로 秦(진)나라 통일에 기여한 李斯(이사)가 많이 꼽힌다. 그는 간신 趙高(조고)와 함께 2세 황제 胡亥(호해)를 옹립하고 2인자의 지위를 누렸으나 결국 모함에 빠져 허리가 잘리는 腰斬(요참) 형을 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58.html
kolaswqetsrq 11.02 23:19
유교무류有敎無類 -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

유교무류(有敎無類) -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

있을 유(月/2) 가르칠 교(攵/7) 없을 무(灬/8) 무리 류(頁/10)

이 말을 한자 없이 언뜻 들으면 儒敎(유교)에 잘못이 없다거나 유교가 가장 뛰어나다는 뜻으로 알기 쉽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가르치는 데(有敎)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無類)는 孔子(공자)님 말씀이다. 공자는 최고의 스승으로 꼽히는 만큼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仁(인)을 실천하기 위한 교육에 빈부나 귀천, 노소를 불문하고 가르침에 차등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예의만 차리면 가르쳤던 束脩之禮(속수지례, 脩는 말린고기 수)란 말이 전한다. 가난해도 열 조각의 말린 고기만 있으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論語(논어)’에는 곳곳에 공자의 교육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가르침이 있을 뿐 대상에 빈부귀천의 차이는 없다(子曰 有敎無類/ 자왈 유교무류)’는 구절은 衛靈公(위령공)편에 실려 있다. 이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해석이 있는 중 南北朝(남북조) 梁(양)나라의 경학자 皇侃(황간, 侃은 강직할 간)의 주를 많이 따른다. 사람에게 귀천이 따르지만 재주에 따라 가르쳐야 한다며 ‘가르치면 선하게 되니, 차별은 없는 것(敎之則善 本無類也/ 교지즉선 본무류야)’이라 봤다. 宋(송)나라의 유학자 朱熹(주희)는 사람의 본성이 다 선하니 구분 없이 가르친다면 본래의 선을 회복한다고 해석한다.

공자가 가르침에 차등을 두지 않았다는 예는 여러 제자를 보고 알 수 있다. 수제자 顔回(안회)는 簞食瓢飮(단사표음, 食은 먹을 식, 밥 사)이란 말이 전하듯 끼니를 걱정할 정도였으나 子貢(자공)과 冉有(염유)는 부유한데다가 재산도 많이 모았다. 현명한 안회에 비해 우직한 子羔(자고)도 있었고, 덕행을 칭찬한 仲弓(중궁)이 있었는가 하면 子路(자로) 같은 불량배 출신도 껴안았다. 나이가 많고 적음은 더 문제가 안 되는 듯 안회의 아버지 顔路(안로)도 제자가 된 적이 있다. 태어난 魯(노)나라뿐 아니라 각국을 주유하다 보니 여러 나라 출신이 다양하게 제자로 들어왔다.

사람이 날 때부터 능력에 차별이 없을 리 없지만 공자는 스승이 제자의 개성을 파악하여 옳게 지도한다면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신분과 계급의 차이가 엄격했을 시기였을 텐데 공자의 이런 가르침은 오늘날 더욱 돋보인다.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부유층은 사교육으로 어릴 때부터 앞서 나간다. 개천에서 용 나온다는 이야기는 司試(사시)가 폐지된 뒤로는 지역까지도 높이 성이 쳐져 옛이야기가 됐다. 차별이 없는 교육은 옛 책 속에만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48.html
kolaswqetsrq 11.02 23:20
일구지학一丘之貉 - 한 언덕에 사는 오소리, 구별하기 어려운 같은 종류

일구지학(一丘之貉) - 한 언덕에 사는 오소리, 구별하기 어려운 같은 종류

한 일(一/0) 언덕 구(一/4) 갈 지(丿/3) 담비 학, 오랑캐 맥(豸/6)

실력이 어금버금하여 우열을 가리기 힘들 때 難兄難弟(난형난제)나 大同小異(대동소이)란 말을 쓴다. 속담 ‘도토리 키 재기’가 나타내듯이 두 비교되는 사람이나 사물이 낫고 못함이 적은 경우를 나타낸다. 반면 ‘그 나물에 그 밥’이나 속된 표현으로 ‘그 놈이 그 놈’이라 하면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대립하는 양자의 수준이 나쁜 쪽으로 비슷할 때 쓴다. 당사자와는 떨어져 있는 입장에서 볼 때 별 차이도 없는 것들이 싸운다는 냉소적인 뜻이 담겼다. 양비론의 예시이기도 한데 五十步百步(오십보백보)와 상통한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족제빗과의 포유동물 오소리는 생긴 것도 호감을 못줘 한 곳에 모여 살면 어느 놈이 어느 놈인지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할 수 없다. 한 언덕(一丘)에서 사는 오소리(之貉)라는 성어도 서로 다를 바 없는 똑 같은 부류나 한통속인 나쁜 무리를 비유한다. 오소리 貉(학)은 담비라는 뜻도 있고, 오랑캐를 말할 때는 ‘맥‘으로 읽는다. 班固(반고)의 역사서 ’漢書(한서)‘에 실려 전한다.

楊惲(양운, 惲은 도타울 운)전의 내용을 간추려보자. 漢(한)나라 양운은 집안도 떵떵거릴만하고 어려서부터 외조부인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를 공부했기 때문에 학식도 남달라 젊은 나이에 요직에 발탁됐다. 청렴결백했지만 일찍 명성을 누려 미움도 많이 샀다. 당시 宣帝(선제)가 총애하던 長樂(장락)이란 사람과 특히 사이가 나빴다.

한번은 장락이 고소를 당하자 이를 양운의 소행이라 생각하고 왕에게 글을 올렸다. 이전 양운이 흉노의 우두머리가 살해된 것은 자신이 무도했기 때문이라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둔한 임금은 한 곳에 모여 있는 오소리와 같다(古與今如一丘之貉/ 고여금여일구지학)‘고 표현한 부분을 들어 지금 왕을 비방했다고 한 것이다. 선제는 이에 넘어가 화를 내며 양운을 삭탈관직하고 말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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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21
규구준승規矩準繩 - 목수가 쓰는 그림쇠와 자, 수준기, 먹줄.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법도

규구준승(規矩準繩) - 목수가 쓰는 그림쇠와 자, 수준기, 먹줄.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법도

법 규(見/4) 법 구(矢/5) 준할 준(氵/10) 노끈 승(糸/13)

나무로 집이나 가구를 만드는 木手(목수)를 죽은 나무에 두 번째의 목숨을 주는 사람이라 극찬하는 말이 있다. 요즘은 부분 나무판으로 짜 맞추는 DIY(do-it-yourself) 가구도 나왔지만 보통 사람이 따르지 못하는 손재주를 찬탄한 말이겠다. 魯(노)나라에서 궁중 목공일을 하는 慶(경)이라는 사람은 악기 틀을 어찌나 잘 만들었는지 보는 사람마다 귀신의 솜씨라며 놀라워했다고 莊子(장자)에서 이야기한다. 경은 딴 재주보다 7일간 재계한 뒤 숲에서 마음속에 그린 틀에 하나가 되는 나무를 골라 만들 뿐이라 했다. 이런 귀신같은 솜씨를 가졌더라도 맨손으로 작품을 낼 수는 없다.

목수가 작업을 할 때 꼭 필요한 것이 크고 작게 원을 그리는 컴퍼스인 걸음쇠와 ‘ᄀ’자 모양의 곱자(曲尺/ 곡척)다. 이 둘을 합쳐 規矩(규구)라 한다. 중국 전설의 창조신 伏羲(복희)와 女媧(여와)가 가진 것이 이것이라 한다. 여기에 면이 평평한지 눈금자로 알아보는 수준기와 먹을 묻혀 곧게 줄을 치는 먹줄도 빠질 수 없는데 이 둘은 합쳐 準繩(준승)이다. 이 네 가지 필수 연장은 목수뿐만이 아니라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도 표준은 지킬 수 있는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꼭 지켜야 할 법도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이 말을 강조하여 쓴 곳은 ‘孟子(맹자)’에서다. 離婁(이루) 상편 첫 부분부터 나온다. ‘이루의 밝은 시력과 공수자의 뛰어난 재주가 있어도 규구를 쓰지 않으면 네모와 원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離婁之明 公輸子之巧 不以規矩 不能成方圓/ 이루지명 공수자지교 불이규구 불능성방원).’ 이루는 黃帝(황제) 때의 전설적인 인물로 백보 밖에서 가는 털 秋毫(추호)를 구분했고, 공수자는 이름이 般(반), 魯(노)나라에서 손재주가 뛰어난 기술자라 했다. 또한 성인은 밝은 눈으로 잘 살피고 ‘규구와 준승을 계속 사용하여(繼之以規矩準繩/ 계지이규구준승)’ 그 쓰임이 끝이 없었다고 덧붙인다.

성군인 堯舜(요순)은 자의적으로 정치를 행하지 않고 이전의 도를 잘 지켜 인정을 베풀었고 천하를 잘 다스릴 수 있었다. 전해 내려오는 훌륭한 전통이나 법도가 있어도 처박아두고 지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재량이 있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도 항상 자신이 행하는 일이 법도에 맞는 일인지, 아랫사람의 불만을 사는 일이 아닌지 잘 살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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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21
태산불사토양泰山不辭土壤 -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는다.

태산불사토양(泰山不辭土壤) -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는다.

클 태(水/5) 메 산(山/0) 아닐 불(一/3) 말씀 사(辛/12) 흙 토(土/0) 흙덩이 양(土/17)

중국의 泰山(태산)은 山東省(산동성)에 있는 높이 1,532m 밖에 안 되지만 五岳(오악) 중에서도 으뜸이며 예로부터 역대 황제들이 하늘의 뜻을 받는 封禪儀式(봉선의식)을 치러 중국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겼던 산이다. 그래서 泰山鳴動 鼠一匹(태산명동 서일필), 泰山北斗(태산북두), 泰山梁木(태산양목) 등 태산이 들어가는 성어도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교훈적인 말이 태산처럼 큰 산도 작은 흙덩어리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그 높이를 이룰 수 있었다는 이 성어다. 사소한 의견이나 의견 다른 사람도 수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도량이 큰 인물이 될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司馬遷(사마천, 기원전 145년~80년)의 불멸의 ‘史記(사기)’ 李斯列傳(이사열전)에 씌어 있다. 李斯는 指鹿爲馬(지록위마)에 나온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楚(초)나라 사람이었는데 荀子(순자)에게서 통치술을 배워 秦(진)으로 가서 始皇帝(시황제)의 신임을 얻었다. 그즈음 韓(한)나라에서 온 사람이 음모를 꾸미다 발각돼 왕족과 대신들은 타국에서 온 사람들을 추방하자고 들고 일어났다. 축출의 대상에 든 이사가 유명한 ‘諫逐客書(간축객서)’를 올렸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 깊음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태산불양토양 고능성기대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 황제는 추방령을 거두었고 이사는 통일 정국을 안정시키는데 공헌했지만 환관 趙高(조고)와 공모하는 잘못된 판단으로 자신도 장터에서 처형되고 말았다. 不辭와 不讓은 같은 뜻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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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22
제하분주濟河焚舟 – 강을 건넌 뒤 배를 불사르다.

제하분주(濟河焚舟) – 강을 건넌 뒤 배를 불사르다.

건널 제(氵/14) 물 하(氵/5) 불사를 분(火/8) 배 주(舟/0)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 한 곳을 뚫지 않으면 몰살한다. 죽을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럴 때 비장한 결심을 나타내는 성어는 여럿이다. 강을 등지고 적과 결전하는 韓信(한신)의 背水之陣(배수지진),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히는 項羽(항우)의 破釜沈舟(파부침주)가 가장 잘 알려졌다. 이외에도 背城借一(배성차일)이나 捨量沈船(사량침선)도 있다. 강을 건넌 다음에 다리를 부숴버린다는 過河折橋(과하절교)는 전혀 뜻이 다르니 주의해야 한다. 다리를 잘 건너고는 그 고마움을 잊고 부순 목재를 훔쳐가니 더 이상의 이기주의가 없다.

황하를 건넌 뒤(濟河) 배를 불사른다는(焚舟) 이 성어도 전장에서 살아 돌아가기를 기약하지 않는 굳은 의지를 나타낸다. 앞의 유사한 성어보다 훨씬 먼저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등장했다. 文公(문공) 3년 조에 秦穆公(진목공)이 晉(진)나라 정벌에 나선 기사에 나온다. ‘진백이 진나라를 쳤다. 황하를 건너자 타고 간 배를 불에 태우고 진나라 땅 王官(왕관)과 郊(교)를 빼앗았다. 그러나 진나라 군대는 성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지키기만 했다(秦伯伐晉 濟河焚舟 取王官及郊 晉人不出/ 진백벌진 제하분주 취왕관급교 진인불출).

간단한 이 이야기를 ‘東周列國志(동주열국지)’에는 살을 붙인다. 진나라에 잇따라 패배한 秦(진)의 장군 孟明(맹명)은 문책하지 않는 목공을 위해 또 복수를 위해 군사를 조련했다. 길일을 잡아 군대를 일으킨 진군이 ‘황하를 건너자 맹명은 타고 온 배를 모두 불사르게 했다(既渡黃河 孟明出令 使盡焚其舟/ 기도황하 맹명출령 사진분기주)’. 필사의 각오로 나선 맹명의 군대에 진나라는 성을 굳게 지키기만 했다. 할 수 없이 이전 전투에서 패했을 때 전사한 유골을 수습해 귀국했다. 백성들은 목공이 소복을 입고 친히 지낸 위령제에 모두들 감동했다.

壬辰倭亂(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킨 鄭經世(정경세, 1563~1633)는 금주를 위해 이 말을 사용해 흥미롭다. 누룩이나 술잔을 집안에 두지 않기를 ‘솥단지를 깨고 막사를 불태우며, 강을 건넌 뒤 배를 불태우는(如破釜甑燒廬舍 濟河焚舟底勇決/ 여파부증소려사 제하분주저용결)’ 것과 같이 한다고 했다. 술을 끊는데도 이와 같이 선언을 하는데 인생을 살아가면서 큰일에 부딪칠 때는 비장한 각오를 않을 수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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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23
낭중지추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 재주는 저절로 드러난다.

낭중지추(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 재주는 저절로 드러난다.

주머니 낭(口/19) 가운데 중(丨/3) 갈 지(丿/3) 송곳 추(金/8)

송곳은 자루에 있어도 뾰족한 부분이 밖으로 삐져나와 위치를 알린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아무리 자신의 재주를 숨기려 해도 주변에서 먼저 알아본다는 성어로 脫穎而出(탈영이출, 穎은 이삭 영)이 있다. 선하거나 악한 일은 숨겨지지 않고 자연히 드러난다는 뜻으로 ‘주머니에 들어간 송곳이라‘, ’자루 속의 송곳‘ 등의 속담을 자주 쓴다. 이것을 한역한 듯이 똑 같은 이 성어가 앞의 脫穎而出과 함께 ’史記(사기)‘에 이야기가 나와 역사가 오래 됐다. 줄여서 錐囊(추낭)이라고도 하고 錐處囊中(추처낭중)으로 써도 같다.

戰國時代(전국시대) 趙(조)나라에 毛遂(모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의 귀족들은 수천 명의 식객을 거느리고 왕 못지않게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모수는 조나라에서 사공자에 들어가는 平原君(평원군) 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는데 3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다. 秦(진)나라가 조나라의 서울 邯鄲(한단)을 공격해오자 조나라왕은 동생인 평원군에게 楚(초)나라로 가서 구원을 청하도록 했다. 평원군은 식객 가운데 문무를 겸비한 20명을 골라 함께 가기로 했는데 19명까지 고른 뒤에는 더 이상 적당한 사람이 없었다. 이 때 모수가 자신이 가겠다고 나섰다. 毛遂自薦(모수자천)이 여기서 나왔다.

평원군은 모수가 3년이나 있었다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라 반대했다. ‘현명한 사람이 세상에 처해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끝이 튀어나온다고 했소(夫賢士之處世也 譬若錐之處囊中 其末立見/ 부현사지처세야 비약추지처낭중 기말입견).’ 모수는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일찍 주머니에 넣어주기만 했더라면 송곳 끝이 아니라 자루까지 나왔을 것이라 주장했다. 평원군은 마지못해 모수를 일행에 합류시켰다. 초왕과 협상이 지지부진할 때 모수가 비수를 들고 당당한 언변을 펼쳐 마침내 합종을 성사시켰다. 평원군은 후일 백만의 군대보다 모수의 혀가 강했다며 상객으로 삼았다. 平原君虞卿列傳(평원군우경열전)에 실려 있다.

모수처럼 재주도 있는 사람이 스스로 어려운 일을 맡는다면 윗사람의 일은 술술 풀린다. 제가 잘 났다고 스스로 나서는 사람이 일을 맡았을 때 망치는 경우는 숱하다. 재주가 있으면서도 드러내지 않고 사양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므로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생겼겠다. 편을 고르지 않고 三顧草廬(삼고초려)하는 정신이 물론 앞서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41.html
kolaswqetsrq 11.02 23:24
욕개미창欲蓋彌彰 - 덮으려 하다가 더욱 드러나다.

욕개미창(欲蓋彌彰) - 덮으려 하다가 더욱 드러나다.

하고자할 욕(欠/7) 덮을 개(艹/10) 미륵 미(弓/14) 드러날 창(彡/11)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서 하늘이 다 가려질 수 없다. 잘못을 알려지지 않게 덮으려고(欲蓋) 한 일이 도리어 더 드러나게 되는(彌彰) 것을 가리킬 때 이 말을 쓴다. 봄철 산란기 때 꿩이 숲속에 몰래 알을 낳으려다 스스로 울어 사냥꾼에 잡히는 어리석음이나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어 뱀의 먹이가 되는 것과 같다. 欲蓋彌章(욕개미장)으로도 쓴다. 미륵 彌(미)는 더욱이란 뜻이 있다. 하나의 잎사귀가 눈을 가린다는 一葉蔽目(일엽폐목)이란 말과 비슷할 것 같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빠져 전체적인 것을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차이가 있다.

孔子(공자)가 엮은 사서 春秋(춘추)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만을 전달하지 않고 명분에 따라 준엄하게 기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어떤 사실에 대해 평론하거나 힐책하거나 찬양하는 데에도 원칙에 의해 간결한 문체로 기록하여 春秋筆法(춘추필법)이란 말까지 생겼다.

魯(노)나라 昭公(소공) 때의 일이다. 周(주)나라의 대부 黑肱(흑굉, 肱은 팔뚝 굉)이란 사람이 항복해오자 다스리던 영지 濫(남)도 노나라 땅이 되었다. 공자는 ‘겨울, 흑굉이 남 지역을 갖고 들어옴’이라고 간단히 기록했다. 춘추의 원칙에서 본다면 신분이 높지 않은 흑굉은 굳이 밝힐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한 까닭을 左丘明(좌구명)이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서 해석한다.

‘흑굉은 낮은 자이지만 땅을 갖고 적국에 항복했기 때문에 영토의 변경을 가져왔다. 이름을 기록한 것은 불의한 일을 없어지지 않게 하려는 의미다. 군자는 행동에 예의와 의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름나기를 바라지만 얻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악명을 감추려 해도 안 되는 법이다(或求名而不得 或欲蓋而名章/ 혹구명이부득 혹욕개이명장).’.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75.html
kolaswqetsrq 11.02 23:24
난상가란卵上加卵 - 알 위에 알을 포개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

난상가란(卵上加卵) - 알 위에 알을 포개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

알 란(卩/5) 윗 상(一/2) 더할 가(力/3) 알 란(卩/5)

계란은 지금은 어디든 굴러다니는 흔한 식품이다. 양계가 기업화되어 양산된다. 30~40년 전만 해도 귀한 손님이나 집안 어른 상에만 올라 꼬마들의 군침을 돋웠다. 조그만 몸피에 단백질 등 영양 덩어리라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계란을 이야기한 속담 중 ‘달걀에도 뼈가 있다’가 있다. 모처럼 맞은 좋은 기회에도 재수 없어 일을 그르치는 것으로 鷄卵有骨(계란유골)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는 以卵擊石(이란격석)으로 번역되어 도저히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는 것을 이른다. 알을 쌓아놓은 것처럼 위험하면 累卵之危(누란지위)가 된다.

달걀 위(卵上)에 달걀을 더하여 포개놓는다(加卵)는 말은 위험하다는 말이 아니고 아예 될 수 없는 일을 뜻한다. 타원의 둥그런 계란을 세로로 세우기도 힘든데 그 위에 얹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 불가능한 일을 간절한 기도로 이루어낸 이야기에서 지극한 정성을 나타내는 말이 됐다. 조선 후기의 작자 미상 한문 笑話集(소화집) ‘醒睡稗說(성수패설)’에 실려 전한다. 稗는 피 패. 패설은 민간에 떠도는 기이한 이야기를 모은 것인데 음담도 몇 편 들어있어 古今笑叢(고금소총)에 인용되기도 한 책이다.

이름 높던 한 벼슬아치가 임금에 죄를 지어 먼 곳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의 부인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물었다. 그는 알 위에다 알을 포갤 수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살아서 돌아오기 어렵다고 대답했다. 부인은 달걀 두 개를 소반 위에 얹고서 밤낮을 쉬지 않고 포개지도록 축수했다. 하지만 애초 불가능한 일이 이뤄지지는 않아 부인은 애통한 소리만 낼 뿐이었다. 어느 날 임금이 微行(미행)을 나갔다가 축원을 듣고 사람을 시켜 곡절을 알아보게 했다. 부인의 지성을 측은히 여긴 임금은 죄인을 석방하도록 했다. 그를 불러 풀려난 이유를 아느냐 하니 성은이 망극할 따름이라 했다. 임금이 말했다. ‘그렇지 않고 알 위에 알을 포갰기 때문이오(不然卵上加卵故也/ 불연난상가란고야).’

부인의 간절한 기도로도 알을 포개지는 못했다. 그래도 결과는 임금을 움직여 남편을 풀려나게 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하게 된다는 至誠感天(지성감천)이 여기 해당된 셈이다.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들의 앞에는 모든 것이 아득한 장벽뿐이라 포기만 기다린다. 이런 절망 앞에선 아무리 알을 포개려 해도 힘들겠지만 하늘 아래인데 뫼만 높다고만 하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는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18.html
kolaswqetsrq 11.02 23:25
능언앵무能言鸚鵡 - 앵무새도 능히 말을 한다, 말만 앞세우고 실속이 없다.

능언앵무(能言鸚鵡) - 앵무새도 능히 말을 한다, 말만 앞세우고 실속이 없다.

능할 능(肉/6) 말씀 언(言/0) 앵무새 앵(鳥/17) 앵무새 무(鳥/7)

사람들의 말이나 소리를 흉내 내서 귀여움을 받는 새 鸚鵡(앵무)는 이칭도 많다. 작은 앵무새를 흔히 말하는 잉꼬는 鸚哥(앵가)의 일본식 발음에서 왔다. 중국 唐(당)나라 玄宗(현종)과 楊貴妃(양귀비)의 사랑을 듬뿍 받은 雪衣娘(설의랑)은 하얀 앵무새를 가리켰다. 八哥(팔가)라 하여 스님의 염불도 따라 할 줄 안다고 한 새는 앵무새라 하기도 하고 달리 말 흉내 내는 九官鳥(구관조)를 가리킨다고도 한다. 어쨌든 영리한 놈은 100단어 가량 외우기도 한다니 사랑을 독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앵무새는 말 잘하여도 날아다니는 새다’란 속담은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천이 따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능히 말을 할 수 있는(能言) 앵무새(鸚鵡)라는 말은 재주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말만 앞세우고 행실이나 학식은 따르지 못하는 사람을 비꼰다. 孔子(공자)가 강조한 訥言敏行(눌언민행), 말을 느리고 잘못 하더라도 실천을 앞세우라고 한 것과도 대비된다. 유교 경전 ‘禮記(예기)’는 五經(오경)의 하나인데 大學(대학)과 中庸(중용)이 四書(사서)로 독립하기 전엔 여기에 포함됐다. 예의 이론과 실제를 담아 경서의 첫손에 꼽히는 이 책은 모두 49편이 전하는 중 제일 첫 편이 曲禮(곡례) 상편이다. 성어가 나오는 이 편 앞부분에도 좋은 말이 있으니 짚고 가면 좋겠다.

‘도덕과 인의는 예가 아니면 완성되지 않으며, 교훈으로 풍속을 바로잡는 것도 예를 따르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道德仁義 非禮不成 教訓正俗 非禮不備/ 도덕인의 비례불성 교훈정속 비례불비).’ 다음 절에 앵무가 등장한다. ‘앵무새는 능히 말을 할 줄 알지만 하늘을 나는 새일 뿐이며(鸚鵡能言 不離飛鳥/ 앵무능언 불리비조), 성성이란 원숭이도 말을 할 수 있지만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猩猩能言 不離禽獸/ 성성능언 불리금수).’ 그러니 사람으로서 예절을 지키지 못하면 금수의 마음과 같다는 가르침이다.

웅변가의 청산유수 같은 말은 口若懸河(구약현하)라 하여 들을 때는 넋을 놓고 빠져든다. 특히 지도자를 뽑는 연설회에선 말 잘 하는 후보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킨 지도자 모세도 말에는 자신이 없었다고 하고, 역사상 뛰어난 웅변가 중에서도 말더듬이가 많았다고 한다. 말을 잘 하는 것보다 청중과 공감하고 본질을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을 앞세워 지도자가 된 사람들, 실천도 못할 空約(공약)을 내세워 사후에는 나몰라하는 사람들은 앵무와 같은 셈이다. 아니 귀여움과는 거리가 머니 앵무보다 못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35.html
kolaswqetsrq 11.02 23:26
동공이곡同工異曲 - 같은 악공이라도 곡조를 달리 한다, 겉만 다를 뿐 내용이 같다.

동공이곡(同工異曲) - 같은 악공이라도 곡조를 달리 한다, 겉만 다를 뿐 내용이 같다.

한가지 동(口/3) 장인 공(工/0) 다를 이(田/6) 굽을 곡(曰/2)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는 중국 唐(당)과 宋(송)나라 때의 뛰어난 문장가를 말하는데 당에서는 韓愈(한유, 768~824)와 柳宗元(유종원) 두 사람밖에 없다. 친구 사이인 둘은 고문운동을 제창하고 형식만을 추구하는 騈文(변문, 騈은 쌍말 변)을 반대하여 후학들에 기려졌다. 이 중 한유는 어려운 집안에서 독학하여 하급관리에 나섰지만 곧은 성품으로 벼슬자리에서 쫓기고 귀양을 가는 등 파란만장한 중에서도 명문을 남겼다. 그의 호를 딴 문집 昌黎先生集(창려선생집)에 실린 ‘進學解(진학해)’에 재주나 솜씨는 같아도(同工) 표현된 내용이나 맛은 다르다(異曲)는 이 성어가 나온다.

이 글에서 한유는 자기수양과 학문 탐구에 전념하는 것이 학자의 길이라 강조하고 그러면서도 재주와 덕이 뛰어난 인재가 빛을 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여기엔 재미있는 성어도 많아 이 난에서 자주 등장했다. 쇠오줌과 말똥이라도 필요한 때를 대비하여 갖추는 것이 좋다는 牛溲馬勃(우수마발), 머리가 벗겨지고 이가 빠진 노인의 모습 頭童齒豁(두동치활), 남의 비밀이나 결점을 파헤치는 爬羅剔抉(파라척결, 爬는 긁을 파, 剔은 뼈바를 척, 抉은 도려낼 결) 등이다. 같은 악공이라도 곡조를 달리 한다는 이 말은 대화체의 글에서 제자들이 한유의 문장을 높이 평가하는데서 나왔다.

여기에서 한유의 글은 春秋(춘추)와 詩經(시경) 등의 근엄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본받았다고 하면서 이어진다. ‘이후의 장자와 이소,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양웅과 사마상여와는 정교한 기량은 같아도 그 정취는 다릅니다(下逮莊騷 太史所錄 子雲相如 同工異曲).’ 離騷(이소)는 屈原(굴원)의 작품, 태사는 司馬遷(사마천)의 역사기록을 맡은 벼슬, 子雲(자운)은 前漢(전한) 말의 문인 揚雄(양웅)의 자, 相如(상여)는 역시 전한의 司馬相如(사마상여)를 말한다. 이들 문장가들과 비견하면서 색다른 광채를 발하는 스승의 글을 높이면서도 나라의 부름도 못 받고 고생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라며 불만을 늘어놓는다.

한 곡을 연주자에 따라 지휘자에 따라 다른 정감을 나타내는 것은 당연하다. 동등한 기량을 가진 사람이라도 정취가 다르다는 것은 처리하는 방법은 같아도 그 결과까지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을 비유할 때 이 말을 썼다. 한유는 자신의 불우한 처지가 孔孟(공맹)같은 성현도 불우했는데 미관말직이라도 과분하다고 겸손해 했다. 이렇게 다양한 결과로 조화를 이루면 좋겠는데 오늘날의 쓰임새는 표현은 달라도 내용은 똑 같을 때, 또는 겉만 다를 뿐 변한 것이 없을 때 사용한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게 꾸미고 완전히 다른 모습인 채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않아야 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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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27
◇ 상어와 악어의 장수 비결

◇ 상어와 악어의 장수 비결

요즘 전 세계 아이들이 푹 빠져 있는 노래가 ‘아기 상어’다. 이 노래만 나오면 손뼉을 치며 따라 부른다. 아이들이 크면 진짜 상어도 좋아할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섬뜩한 이빨이 가득한 거대한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드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커다란 입을 가진 악어도 마찬가지다. 다들 질색한다. 아무리 봐도 호감을 끌 만한 구석이 없다.

이상한 건 이들이 서식하는 지역의 사람들이다. 평생 만날 일이 없을 우리는 질색하는데 의외로 추앙의 대상으로 삼은 곳이 많다. 우리가 호랑이를 영물로 대하듯 대단한 능력을 경외하는 까닭이다.

어떻게 이런 능력을 가졌을까? 삶의 내력이 간단치 않다. 무엇보다 ‘족보’가 길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온 20만 년으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인데 악어는 2억 년, 상어는 4억 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정도면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을 몇 번이나 겪었다는 건데,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상어 중 가장 거대한 백상아리는 다 크면 몸무게가 3t에서 5t쯤 나간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 ‘죠스’에 출연시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바로 그 주인공인데, 사실 백상아리를 비롯한 상어들은 생각만큼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워낙 험악해 보이는 데다 스필버그와 다른 영화인들이 전생에 무슨 악연이라도 있는 듯 과장되게 묘사해서 그럴 뿐이다.

하지만 스필버그가 제대로 짚은 게 있다. 덩치가 산(山)만 해서 둔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보다 200배나 더 소리를 잘 듣고, 몸 옆으로 뻗은 측선으로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진동까지 느낀다. 후각은 더 뛰어나 여의도만 한 넓이에 떨어진 피 한 방울을 감지할 정도다. 주변 상황 파악에 아주 탁월하다. 행동력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악어 역시 뒤지지 않는다. 녀석은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저주파로 상황을 감지해 잔물결 하나 일지 않게끔 길이 5m, 무게 500kg의 커다란 덩치를 스텔스처럼 움직인다. 그렇게 사정거리에 들어온 먹이를 초속 9m로, 그러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잡아챈다.

더 놀라운 건 이들의 형태다. 아득히 먼 시대에 살았던 조상들과 거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대멸종 같은 환경은 생명체들에게 엄청난 변화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는데 별 변화가 없었다는 건 바꿀 필요가 많지 않은, 한마디로 시작을 잘했다는 뜻이다. 시작을 잘했으니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개선하고 수선하는 시행착오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고 덕분에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어 변화의 파고를 잘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좋은 시작이 장수의 바탕이 됐다는 얘기다.

하긴 무엇이 그렇지 않겠는가. 시작이 좋아야 마무리도 좋다.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린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밝았다. 기분 좋은 시작이 필요할 때다.

-동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57.html
kolaswqetsrq 11.02 23:27
◇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딸들 옹알이, 이제 폰으로 볼 수 있어요

◇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딸들 옹알이, 이제 폰으로 볼 수 있어요

서울 중랑구에 사는 장경순(63)씨는 이달 초 장롱에서 30년 묵은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했다. 1989년 자신의 결혼식 때 촬영한 영상 테이프였다. 반가운 마음에 틀어보고 싶었지만 집에 VCR(비디오테이프 재생기)이 없었다. 수소문 끝에 장씨는 지난 9일 한 영상업체를 찾아 이를 디지털 영상으로 변환했고 최근 아내, 세 자녀와 나란히 앉아 영상을 봤다. 스물다섯인 막내딸은 부모님의 결혼식 영상을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도 올렸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김윤경(47)씨도 작년 12월 구청 산하 문화원을 통해 비디오테이프 8개를 디지털 영상으로 변환했다. 김씨는 “두 딸의 어린 시절 모습을 담은 영상을 함께 보면 사춘기 때문에 말수가 줄어든 고2, 중3인 딸과 대화를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신청했다”고 했다. 영상에는 옹알이하는 첫째가 갓 태어난 둘째를 돌보는 모습, 딸이 아빠에게 뽀뽀하는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김씨는 “영상을 함께 보고 나서 대화가 더 많아졌다”고 했다.

집 안 곳곳에 ‘유물(遺物)’처럼 보관해 온 비디오테이프를 디지털 영상으로 변환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과거의 추억이 담긴 테이프를 찾아내더라도 VCR이 사실상 사라져 이를 재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이런 수요를 파악한 지자체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 확산 이전 서울시 지자체 중 디지털 영상 변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강서구 한 곳이었다. 최근엔 동대문·성동·송파·양천구 등 5곳으로 늘었다. 구청이나 산하 문화원에서 5000원 안팎의 비용을 받고 변환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 동작구·성북구도 올 상반기 중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반응이 뜨겁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양천구 관계자는 “작년 9월 처음 서비스를 시작할 때는 377건의 변환 요청이 들어왔는데, 12월에는 929건으로 거의 3배가 됐다”고 했다. 작년 11월 서비스를 시작한 성동구는 ‘한 달에 10명쯤 오겠거니’ 했다가 300명이 몰리자, 부랴부랴 변환 장비를 기존 3대에서 5대로 늘렸다.

서울 송파구의 영상 변환 업체 스마트메모리즈 관계자는 “작년 12월 한 달에 들어온 의뢰 접수만 2700여 건으로 1년 전보다 1000건 가까이 늘었다”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과거 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편안함과 안락함을 다시금 느끼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라며 “제약이 많은 현실 대신 과거의 영상을 일종의 도피처로 삼는 것 같다”고 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65.html
kolaswqetsrq 11.02 23:28
◇ 반갑다, 싸이월드

◇ 반갑다, 싸이월드

“정보화 시대가 되면 한국 사람이 세계를 주름잡을 것이다.” 김영삼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내고 부산 동래구 등에서 3선 국회의원을 거친 강경식 전 부총리가 자주 하던 말이다. 여기엔 나름 근거가 있다. 과거에는 더하기를 알아야 곱셈을 이해하는 계단식 학습이었지만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별 관계없는 프로그램을 여기저기 오가며 배우는 널뛰기가 가능해졌다. 불분명하고 애매모호함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일종의 퍼지(fuzzy) 방식이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치밀하고 정교하고 조직적인 일본이나 독일식 문화가 통했지만 디지털 시대가 오면 유행에 민감하면서도 대충대충 속도전에 능한 한국 사람들이 훨씬 더 빨리 적응할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시작은 ‘아이러브스쿨’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SNS였기 때문이다. 온라인 동창회 개념은 인맥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기호와 맞아 떨어지며 인기가 폭발했다. 1999년 서비스 개시 1년도 안돼 가입자 500만 명을 찍었다. 그러나 콘텐츠의 진보와 확장이 없었던데다 온라인 모임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자 친구찾기 놀이는 시들해졌다.

한국의 저커버그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과 함께 회상되는 회사가 ‘싸이월드’다. 1999년 탄생한 싸이월드는 가상공간을 꾸미는 미니홈피부터 가상화폐 도토리까지 파격과 신선함 그 자체였다. 한때 누적 가입자가 3200만 명에 달했던 국민 사이트다. 페이스북의 원조격을 5년이나 먼저 내놓았지만 모바일 시대의 변화 흐름을 읽지 못하고 해외시장에 눈뜨지 못해 슬슬 도태됐고, 사이트에 저장된 100억 장 이상의 사진과 동영상은 디지털 수몰 위기까지 갔다. 다행히 완전히 사라질 줄 알았던 싸이월드가 회생 기미를 보이고 있다.

싸이월드Z라는 신설 법인이 운영권을 양수해 다음달 중으로 기존 서비스를 정상화한다는 소식이다. 싸이월드 모바일은 물론, 도토리도 새롭게 부활한다고 한다.

1980, 90년대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 속에는 약간은 국수주의적인 자기 합리화와 억지가 있었다. 그러나 유튜브를 타고 퍼진 BTS와 블랙핑크의 음악이 세계 음원시장을 휩쓸고 한류 드라마가 넷플릭스를 점령하는 지금은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세계의 표준이 되어가는 세상이다. 그런 한국인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선보였던 싸이월드가 돌아온다는 건 ‘추억의 소환’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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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도청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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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54.html
kolaswqetsrq 11.02 23:29
◇ 미얀마 쿠데타와 세 손가락 경례

◇ 미얀마 쿠데타와 세 손가락 경례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의 시민들 사이에서 ‘세 손가락 경례’가 번지고 있다. 하늘을 향해 펼치는 검지·중지·약지는 선거, 민주주의, 자유를 뜻한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세 손가락 경례엔 저항의 뜻이 담겼고, 세 손가락 사진이나 그림이 ‘미얀마는 민주주의를 원한다’ ‘시민불복종 운동’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퍼지고 있다.

세 손가락 경례는 지난해 태국 민주화 시위 때도 쓰였다. 시민들은 군부가 제정한 헌법 개정, 의회 해산과 총리 퇴진, 왕실 개혁 등을 요구하며 세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한 시위 참가자가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경찰의 물폭탄에 맞서는 사진이 전 세계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태국에서는 2014년 군부 쿠데타 때 세 손가락 경례가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태국 민주진영의 상징처럼 각인됐다.

세 손가락 경례는 영화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2012년)에서 차용된 것이다. 가상국가 ‘판엠’의 독재정부 캐피털은 반란 지역인 12개 구역에서 12~18세 청소년들을 뽑아,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도록 하는 헝거 게임을 매년 치르게 한다. 16세 소녀 캣니스 에버딘이 여동생을 대신해 헝거 게임에 나서자, 주민들은 지지 뜻으로 세 손가락을 펼쳐보인다. 캣니스는 완결편인 4탄에서 혁명군의 중심이 돼 독재정부를 무너뜨린다.

세 손가락 경례처럼 세상에는 다양한 저항운동 방식이 이어지고 있다. 미얀마에선 냄비와 깡통을 두드리며 “민주주의”를 외치는 ‘발코니 시위’가 벌어지고, 태국에선 경찰의 물대포 사용을 풍자하는 노란색 오리보트가 등장했다.

낙태 합법화를 요구하는 아르헨티나 시위는 녹색 머플러와 옷이 물결을 이뤘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때 시민들은 행정장관 직선제 등 5대 요구사항을 뜻하는 다섯 손가락을 편 채 행진했으며, 일부는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해 저항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거리로 나섰다.

복잡한 인간사, 시위 없는 세상은 없다. 그나마 이러한 창의적 시위는 물리적 충돌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소리 없는 저항이지만, 어떤 구호나 함성보다 파급효과가 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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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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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59.html
kolaswqetsrq 11.02 23:30
■ 엿장수 독립운동가 정남국 2편

■ 엿장수 독립운동가 정남국 2편

1926년 일제는 소안면민들이 스스로 힘을 모아 만든 사립소안학교를 강제로 폐교시켜 공립학교로 개편하려고 하였다. 7월 13일 그는 공립학교 개편에 반대하는 면민대회에서 사회를 맡아 진행하였다. 그리고 전남도청을 방문하여 항의하였으나, 성과는 없었다. 선생은 그 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27년 5월 10일 일본 오사카에서 ‘완도향우회’와 ‘동경향우회’가 힘을 합해 재 일본노동총동맹을 조직하고 집행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사립소안학교를 강제 폐쇄하는 총독부에 대항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실정반대실행위원회’를 조직하고 규탄대회를 개최하였다. 1927년 6월 재일조선노동총동맹위원장으로 추대 받고 오사카 항구에서 4개 단체 회원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합동대회를 열었다. 축사를 하는 도중 일본 경찰이 들이닥쳐 대회는 무산되고, 선생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다시 옥고를 치렀다.

다시 국내로 돌아왔다. 당시 전라도는 총독부에서 일본이 만든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일본인에게 국유지(國有地)를 불하(拂下)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은 이번에는 농민운동을 하기로 작심한다.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일본인들이 총독부로부터 불하받은 땅은 원래 현지에서 농민들이 경작하고 있던 농토였다. 당연히 현지 농민들은 자기가 벌어먹고 사는 땅이었기 때문에 자기 땅으로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땅으로 등기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유지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농민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농토를 잃고 소작인이 되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게다가 일본인들은 소작료를 터무니없이 높게 받았다. 그 대표적인 지역이 완도를 비롯한 신안의 섬 지역과 영광, 무안, 해남등지였다.

이때부터 시작된 전라도의 소작쟁의(小作爭議)는 결국 항일운동으로 이어졌다. 선생은 소안도에서 토지반환소송에 승소했던 경험을 살려 다른 지역의 농민들을 선동하였다. 대표적인 소작 쟁의로는 1923년의 암태도 소작쟁의가 있고 다음으로 하의3도를 시작으로 영광, 해남등지에서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이 농민운동에 불을 붙여준 사람이 바로 정남국선생이다. 청산도 출신 김흥곤은 광주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신안으로 내려가 소작쟁의를 취재하여 전국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해방 이후 선생은 1951년 5월 31일 실시한 국회의원선거에서 제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항일운동으로 체포되어 수많은 고문과 감옥살이로 병들고 허약해진 선생은 4년 임기가 끝나고 바로 여수병원에 입원하여 치료하던 중 1955년 6월 19일 타계하였다. 1990년 8월 15일 건국훈장애국장(제83호)이 추서되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0.html
kolaswqetsrq 11.02 23:30
■ 엿장수 독립운동가 정남국 1편

■ 엿장수 독립운동가 정남국 1편

정남국(鄭南局:1897-1955)선생은 한평생 항일운동을 하다가 수감과 석방을 반복했는데, 생애 58년간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수감된 것이 무려 93회, 기간은 약 10년으로 감옥살이 횟수는 항일민족운동자 중 최고의 기록일 것이다. 선생은 일본어를 잘했기에 재판과정에서 변호사 없이 본인을 변론하여 감형을 받았기에 그나마 10년이지, 그러지 못했다면 20년도 넘었을 것이라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남국은 1897년 완도군 소안면 비자리의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은 15세가 넘도록 가정이 빈곤하여 완도읍으로 유학할 수가 없어 바다에서 해조류를 채취하며 가정을 꾸려나갔다. 선생은 또래들이 완도읍에 유학하여 사립보통학교에 다니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완도 유학을 갈망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부친에게은 어려운 형편이지만 선생을 완도사립보통학교에 입학시켰다. 입학은 하였으나 어려운 형편에 월사금(학비)을 감당할 수가 없어 이듬해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해조류 수집상에서 일하면서 일본어를 습득하였다. 여기에서 4~5년간 모은 돈을 통틀어 일본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2학기에 중퇴하고 고향인 소안도로 다시 돌아왔다.

1914년 소안도에 ‘배달청년회’가 결성되자 부회장을 맡게 되었고‘ 그때부터 항일투쟁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1919년 3.1만세운동 때는 완도에서 만세운동을 하고, 전남노동연맹 상임위원으로 활약하면서 항일운동의 대표적인 사람인 송내호의 권유로 상해임시정부 지원군자금 모금원이 되었다. 당시에 일경의 감시를 피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감시를 피하고자 엿장수로 변장하여 전남 일원을 돌아다니면서 동지를 규합하고 동지들 간 비밀연락책이 되었다.

스스로 ‘일황 사형선고장’을 만들어 엿판 아래 숨겨 다니면서 동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엿장수는 일경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엿장수독립운동가’로 알려지면서 다시 ‘소쿠리장수’로 변장하여 전남 일대를 누볐다. 당시 전라도 동지들 간에는 ‘엿장수 정서방’ 또는 ‘소쿠리장수 정도령’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어렵게 모은 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한양에서 출발 신의주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일본헌병대 검문이 삼엄하고 자신은 전과가 있기에 동지에게 자금 보따리를 맡기고 검문이 끝나면 만나자고 약속하고, 만약 내가 체포되더라도 이 자금은 임시정부에 꼭 전달해야 한다고 부탁했다. 예상대로 선생은 검문에서 다른 전과 때문에 체포되어 신의주 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받아 복역하였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20.html
kolaswqetsrq 11.02 23:31
■ 안사람의병대 대장 윤희순 6편

■ 안사람의병대 대장 윤희순 6편

이듬해 6월 13일 유돈상이 처갓집에 머물러 있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됐다. 무순감옥에서 한 달간 고문에 시달리던 그는 7월 19일 숨을 거뒀다. 감옥 밖으로 내던져진 시신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칼에 찔린 자국 천지였다고 한다. 아들의 시신 앞에서 윤희순은 부르짖었다.

“차라리 내가 죽고 말면 오죽 좋겠습니까. 우리는 만리타국에서 누굴 의지하고 살며 연직이와 연익이 이 어린 것을 누구에게 맡기오리까.” 며느리도 울부짖었다. “어머니, 만날 나가서 독립운동 하려고 하시더니 이 꼴을 보려고 그러셨습니까. 좋은 세상은 더욱 멀어지고 갈수록 험악하니 독립운동이 사람만 죽인 꼴이니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절망에 몸부림치던 며느리는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떴다. 아들 유돈상과 며느리의 연이은 죽음에 말을 잃은 윤희순은 곡기를 끊었다. 아들이 숨진 지 열하루 째 되던 날 침묵 속에서 붓을 떨며 집필하던 <일성록>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파란 많은 생애를 마감했다. 윤희순의 나이 일흔 다섯이었다. <일성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 있다.

“매사를 시대에 따라 옳은 도리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살아가기 바란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말인 것 같다.

윤희순은 여성의 연대를 꾀하고 투쟁 노래를 통해 독립의 의지를 다지는 삶을 살다 갔다. 그녀에게는 열혈 투혼을 가진 가족이 있었고, 가문 전체가 독립부대가 되어 싸웠다. 윤희순은 외세와 타협 없는 투쟁을 몸소 실천한 ‘춘천의 잔다르크’였다.

나라없이 살 수 없네 나라 살려 살아보세

임금없이 살 수 없네 임금 살려 살아보세

조상없이 살 수 없네 조상 살려 살아보세

살 수 없다 한탄 말고 나라 찾아 살아보세

전진하여 왜놈 잡자 만세 만세 왜놈 잡기 의병 만세

- 윤희순의 <의병군가> -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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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32
■ 안사람의병대 대장 윤희순 5편

■ 안사람의병대 대장 윤희순 5편

윤희순은 조선에서 날아드는 편지를 읽을 줄 아는 동포가 드물다는 점을 안타까이 여겨 1912년 만주 환인현에 ‘노학당(老學堂)’을 설립했다. 아마도 이곳에 학교를 세워 항일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듯하다. 윤희순이 교장인 이 학교에는 독립투사들이 세운 동창학교 선생들이 와서 국어·산수·역사를 가르쳤다. 50여 명의 항일운동가를 배출했으나 3년 뒤 일제에 의해 폐교되고, 노학당 자리에는 옥수수밭이 들어섰다. 노학당 시절 윤희순은 정신적 지주를 잃었다. 1913년 12월 시아버지 유홍석이 7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15년 윤희순은 탄광촌인 무순시 포가둔으로 이사를 갔다. 여기에서 그녀는 중국인들에게 항일투쟁을 연대하자고 꾸준히 설득했다. 그녀의 제안으로 실제로 항일운동에 가담한 중국인이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1915년에는 남편 유제원과 재종 시숙이자 집안의 버팀목인 유인석 의병장이 잇따라 타계했다. 이런 죽음 속에서도 55세의 윤희순은 더욱 강해졌다.

1920년 만주에서 김좌진·홍범도 장군에게 대패한 일본군이 간도의 조선인을 무차별 살상하는 간도참변이 일어났다. 이때 윤희순은 위축된 독립운동을 되살리기 위해 그녀의 아들들과 함께 한·중 애국지사 180명을 찾아다니면서 규합 활동을 벌인 끝에 ‘조선독립단’을 결성했다. 조선독립단 단장은 윤희순, 유돈상, 음성국(유돈상의 장인)이었다. 조선독립단에는 이들의 가족, 친척이 모두 참여했다. 이른바 ‘윤희순 가족부대’로,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사격연습을 하며 게릴라 활동을 펼치는 항일투쟁 패밀리였다.

큰아들 유돈상, 둘째 아들 유교상, 조카 유휘상, 며느리 원주 한씨가 주전 멤버였다. 교상은 어린 시절 문서를 전하려고 말을 타고 달리다 떨어져 다리를 절었지만, 그에 아랑곳 않고 전투에 참가했다. 돈상의 아들은 굴렁쇠를 굴리고 다니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독립운동 연락책 노릇을 했다고 한다. 또 돈상은 ‘조선독립단 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1932년 ‘조선독립단’에 중요한 기회가 찾아왔다. 양세봉이 이끄는 조선혁명군과 연합작전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9월 15일 무순을 지나는 일본군 철도 운수선을 습격하는 일이었다. 윤희순은 말이 먹을 풀과 군인 식사를 제공하는 일 그리고 부상자를 치료하는 일을 맡았다. 이때 윤희순의 나이 72세였다. 하지만, 무순 함락작전은 실패로 끝났고, 이튿날 일제는 3000명이 넘는 조선인과 중국인을 대량 학살했다. 윤희순은 눈물을 머금고 봉성현 석성으로 주소를 옮겼다.

석성에서 윤희순은 둘째 손자(유돈상의 둘째 아들)를 보았다. 기쁨도 잠시. 1934년 첩첩산중에 일본군이 들이닥쳐 마을에 불을 질렀다. 남자들은 대부분 외출하고 여자들밖에 없는 마을이었다.

-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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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32
■ 안사람의병대 대장 윤희순 4편

■ 안사람의병대 대장 윤희순 4편

그러나 국력의 열세는 의분(義憤)만으로 만회할 수는 없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를 당한 뒤 의병 노장(老將) 유홍석은 치욕과 절망감으로 벽장에 있던 칼을 꺼냈다. 그리고 아들들과 며느리를 불렀다. “내 이제껏 나라를 구하려고 몸부림을 쳤으나 국운이 기울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땅의 의기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니, 너희는 나의 이 마음을 거울삼아 강토를 되찾는 데 열정을 기울이거라. 나의 자결이 너희에게 슬픔이 되지 않고, 뜻을 바로 세우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한참 침묵이 흘렀다. 가만히 듣던 며느리 윤희순이 말한다.

“아버님의 뜻은 참으로 귀하고 뭇사람이 경배할 것이옵니다. 하지만 살아서 싸워도 힘이 모자라는 판국이고, 죽음을 보여준다 하여도 적들이나 이 땅의 사람들에게 무슨 놀라움이 되겠습니까. 차라리 굳세게 살아 내서 목숨을 걸고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 더 마땅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버님, 칼을 거두시고 저희와 함께 뒷일을 도모하소서.”

며느리의 말을 들은 뒤 그는 천천히 일어나서 마당으로 걸어갔다. 정미의병 때 다리를 심하게 다쳐 절뚝거리는 그는 마을 아래로 펼쳐진 길을 한참 내려다보며 눈물을 삼켰다. 며느리의 말이 구구절절 옳지 않은가. 이 날 이후 유홍석과 유제원 부자는 만주로 떠났다. 윤희순은 나중에 합류하기로 했다.

1911년 발산리 시골집의 좁다란 마당에서 한 소년이 고통에 몸을 뒤틀고 있었다. 윤희순이 어렵사리 얻은 늦둥이 맏아들 유돈상이었다. 회초리로 17세 소년을 매질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제 경찰이었다. 유홍석이 의병 활동을 주도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의 집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경찰들이 시아버지의 행방을 캐물어도 윤희순이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옆에 있던 소년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17세 소년의 입에서 비명이 터지고 찢어지는 옷에 피가 배어들었다. “이제 유홍석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라. 네 아이를 죽이겠다.” 그러자 윤희순이 나직이 말했다. “죽일 테면 죽여라. 아이도 죽이고 나도 죽여라. 너 같으면 네 아비를 팔아 네 자식의 목숨을 살리겠느냐.” 여인의 당찬 태도에 경찰들도 움찔하여 쓰러진 소년을 내려놓고 물러갔다. 이후 윤희순의 친인척들은 모두 짐을 싸서 중국 요령성으로 향했다. 의병장 유인석과 유홍석을 중심으로 친척, 처가 45가구가 만주로 집단이주를 한 것이다.

그들이 정착한 곳은 요령성 흥경현 평정산 ‘고려구’였다. 이곳은 ‘고려구’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주변에 조선인이 많았다. 주민들은 조선에서 하는 방식대로 황무지를 개간하고 강물을 끌어들여 벼농사를 지었다. 밀, 콩, 옥수수 농사를 주로 하던 한족은 조선인에게 새로운 농법을 배우기도 했다.

-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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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33
■ 안사람의병대 대장 윤희순 3편

■ 안사람의병대 대장 윤희순 3편

윤희순의 시댁에는 의병 활동가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시아버지는 집에 머무는 날이 드물었다. 규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갑갑하고 좀이 쑤셨던 며느리 윤희순은 어느 날 남장(男裝)을 하고는 시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아버님, 저도 조선 사람이니 의병이 되고자 합니다.” 유교 윤리에 투철했던 유홍석은 펄쩍 뛰었다.

“얘야,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규중 여인으로 어찌 나를 따르겠다는 것이냐. 전쟁터는 여자들이 갈 곳이 못 된다. 내가 지금 나가면 생사를 알 수 없으니 너는 남아서 조상을 잘 받들고 자손을 잘 길러서 애국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나라가 없으면 어찌 애국이 있겠습니까?”

“허어, 혈육을 팽개치고 어찌 미래가 있겠느냐?”

시아버지의 추상같은 말에 윤희순은 마음속으로 끓어오르는 의기(義氣)를 접어야만 했다.

윤희순의 집안은 절간처럼 고요했다. 시어머니는 결혼 전에 이미 돌아가셨고, 시아버지와 남편은 일 년에 열 달은 나가 있는지라 여자 혼자서 살림을 꾸려가는 상황이었다. 오래 함께한 하인 내외가 간간이 돌봐주기는 했으나 생계조차 어려웠다. 그녀는 숯을 구워 팔며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시아버지가 출타한 어느 날 마을에 의병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몹시 굶주린지라 마을 사람들에게 밥을 해 달라고 청했다. 당시엔 의병을 돕는 일도 중죄(重罪)였기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윤희순은 제사를 받들기 위해 숨겨놓은 쌀 세 됫박을 털어서 밥을 지었다. 전장(戰場)의 시아버지를 봉양하는 마음으로 상을 차려 그들에게 올렸다.

윤희순은 마을 여인들에게 안사람들도 의병을 해야 한다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노래를 지어 부르며 의병대를 조직하자고 말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집안 남자들이 의병을 한다고 모두 나가 버리니 며느리가 드디어 미쳤어.” 그렇게들 수군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동네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안사람 의병가>는 그렇게 하나 둘씩 따라 부르기 시작해서 인근 동네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행가’가 되었다. 10년간의 노력 끝에 마을에서 ‘안사람의병대’가 조직되었다. 1907년 정미의병이 일어나던 무렵이었다. ‘숨은 의병’으로서 놋쇠를 모으고, 부족한 유황을 대신해 소변을 달여 화약을 제조하여 의병이 쓸 탄약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이 만든 무기로 이 지역 의병들은 상당한 전력을 갖추고 일제에 타격을 입혔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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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34
■ 안사람의병대 대장 윤희순 2편

■ 안사람의병대 대장 윤희순 2편

윤희순은 조선말의 대학자였던 화서(華西) 이항로(1792~1868)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은 윤익상과 평해 황씨 사이에서 맏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집안은 1506년 중종반정의 정국공신이었던 윤희평을 자랑으로 삼는 가문이다. 윤희평은 뛰어난 무인(武人)으로 1510년 삼포왜란을 평정한 공으로 병조참의에 이르렀다.

아마도 윤희순은 조상의 이런 장수(將帥) 기질과 DNA를 물려받은 듯하다. 윤희순 주위의 인물들은 1866년 병인양요 때 주전론(主戰論)을 펼쳤고, 대원군에 맞섰던 강직한 지식인 이항로의 위정척사론을 따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항로의 가르침이 그녀의 삶에도 깊이 스며들었다. 윤희순이 시집간 해는 그녀가 16세이던 1876년. 해안측량을 구실로 조선의 해안을 넘나 들던 일본 군함 운요호를 강화도의 초지진(草芝鎭) 조선 수비병이 발포하자, 일본은 이를 빌미로 개항을 요구했다. 강화도에서 굴욕적인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 이른바 ‘강화도조약’이 맺어지고, 우리나라는 강제 개항을 했다. 강화도조약은 우리나라의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이었다.

춘천시 남면 발산리에서 산자락을 개간해 농사를 지으며 살던 고흥 유씨 집에 한양에서 새색시를 태운 꽃가마가 도착했다. 그런데 잔칫집에 큰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저녁이 되자 동네 아낙들이 새댁 구경을 한다고 관솔불을 켜서 들고 왔는데, 초가 처마 끝에 불이 붙어 화재가 난 것이다. 불길이 거센 가운데 시아버지 유홍석은 신방에 있던 신부 윤희순을 번쩍 들어 안고는 집 바깥에 있는 보리밭으로 옮겨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새색시답게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족두리와 저고리를 벗어던지고 불을 끄러 달려갔다고 한다.

남편 유제원은 결혼 후에도 여전히 학문에 몰두하고 있었기에 집을 줄곧 비웠다. 어린 신부는 첫날밤의 화재로 불 냄새가 나는 집에서 그녀는 늘 독수공방이었다. 거기다가 나라는 강제로 개항하여 외세(外勢) 앞에 풍전등화(風前燈火) 처지였다. 오랫동안 아이도 없었다. 외로운 가운데 무심한 세월이 흘러, 그녀가 첫 아이를 낳은 것은 결혼한 지 20년이 지난 뒤(1894)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전국의 유생들은 역적을 토벌해야 한다는 상소(討逆疎)를 냈고,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한 의병을 일으켰다. 윤희순의 시아버지 유홍석은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교전하다가 패배하고 춘천으로 돌아왔다. 그는 고향에서 의병을 규합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부대는 춘천부사로 부임하던 조인승을 붙잡아 죽이는 전과(戰果)를 올리기도 했다. 조인승은 갑신정변 이후 김옥균의 처형을 청한 인물이며, 일제의 조선개혁안에 동의한 부역자(附逆者)였는데, 당시 단발령에 따라 머리를 빡빡 깎고 춘천으로 들어오다가 의병들에게 걸려 죽임을 당한 것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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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35
■ 안사람의병대 대장 윤희순 1편

■ 안사람의병대 대장 윤희순 1편

윤희순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병대장이다. 16살의 윤희순이 시집 온 강원도 춘천 유씨 집안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유난히 깊은,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헌신한 집안이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시아버지 유홍석은 ‘춘천의병대’를 만들었고, 윤희순은 의병들에게 음식과 옷을 제공했다. 그러나 나라의 상황은 점점 나빠져만 갔다.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가 고종 황제를 강제로 폐위시키고, 군대를 해산시켰다. 보다 못한 윤희순은 마을 여성들을 모아 ‘여성 의병대’를 만들었는데, 이름 하여 ‘안사람의병대’. ‘안사람 의병대’ 대원들은 병사의 식사를 준비해 날라주고 옷가지를 세탁하고, 부상자나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맡았지만 군사 훈련에도 열심이었다. 창을 가지고 덤불 사이에 숨어 있다가 일본군이 지나가는 것을 가상해서 찌르기 연습도 했다. 탄약제조소를 운영하며 의병들에게 탄약을 공급하기도 했다.

『아무리 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쳐지면 왜놈 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사랑 모를소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있나

우리도 의병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 금수에게 붙잡히면 왜놈 시정 받들소냐

우리 의병 도와주세 우리나라 성공하면 우리나라 만세로다 우리 안사람 만만세로다』

이 노래는 윤희순이 지은 <안사람 의병가>다. 윤희순은 8편의 의병가를 직접 작사해서 유포했고, 관군·조선인 밀고자· 일본군을 향한 몇 편의 경고문도 지었다.

『왜놈대장 보거라. 만약에 너희 놈들이 우리 임금, 우리 안사람네를 괴롭히면 우리 조선 안사람도 의병을 할 것이다. 우리 조선 안사람이 경고한다...남의 나라 국모를 시해하고, 네놈들이 살아갈 줄 아느냐. 빨리 사과하고 돌아가. 우리나라 사람 화가 나면 황소나 호랑이 같아서 네놈들을 잡아서 처단하고 말 것이다.』 - 조선 선비의 아내 윤희순 -

『금수들아 받아 보거라. 금수보다 못한 인간들아! 너희 부모 살을 베어 남을 주고도 너희 부모는 살 수 있나. 왜놈의 앞잡이 놈들, 참으로 불쌍하고 애달프다.』 - 조선 안사람 윤희순 -

19세기의 조선 여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거침없는 말투가 쏟아져 나온다. 글의 마지막에는 꼭 자신의 이름 ‘윤희순’을 적어 넣었다. 두려움이 없고 뚜렷한 자아와 치열한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조선의 여인이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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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35
◇ 1998 김대중-오부치 선언-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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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 김대중-오부치 선언-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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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드러낸 대일본관의 변화는 놀라웠다.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2019년 8월 임시 국무회의)이라며 휘두르던 채찍이 불과 1년 반 만에 “과거사는 과거사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은 그것대로 해야 한다”는 올리브 가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올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의지는 두드러진다. 미국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영향도 있고, 무엇보다 도쿄 올림픽을 남·북·미 대화 재개의 계기로 삼으려는 계산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종일관 밀기만 하다 갑자기 당기려 하니, 일본은 오히려 당황하는 분위기다. 오죽하면 한 일본 인사는 “갑자기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죠?”라고 되물었을 정도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위안부 합의는 정부의 공식 합의였음을 인정한다”며 이를 토대로 해결책을 찾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하지만 이를 보며 2014년 아베 정권의 고노담화 검증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 일본은 위안부 동원에 군이 관여했다고 처음으로 인정한 1993년 고노담화 발표 과정을 검증했고, 진정한 사과가 아닌 한·일 간 정치적 주고받기의 산물인 것처럼 폄훼했다. 그래놓고선 “그래도 고노담화를 계승한다”고 결론내렸다. 당시 한국 외교부 당국자들의 반응은 이랬다. “계승은 한다니까 다행이긴 한데 거 참....”

문재인 정부도 출범 직후 위안부 합의를 검증했다. “하자가 중대하다”며 있는 대로 흠집을 냈는데, 결론은 “재협상은 안 한다”였다. 그러면서도 일본이 낸 10억엔의 지급을 중단해 합의를 사실상 무력화했다. 일본이 이제 와 문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지 못한대도 이해는 간다는 뜻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양국은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면서도 성공의 경험을 만들어낸 역사가 있다는 점이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그것이다. 당시 오부치 총리가 식민 지배를 사죄한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김대중 대통령도 이를 받아들이며 일본의 전후 평화 복원 노력을 평가했다는 것이다. 일본과 새판짜기를 시도하며 유념할 것은 이처럼 양국 지도자들의 결단에 녹아 있는 상호 존중이다. 정부가 이를 되새기지 않으면 아무리 의욕을 보여도 ‘나 홀로 밀당’만 하다 끝날 수도 있다.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998.html
kolaswqetsrq 11.02 23:36
◇ 겨우살이, 추운 계절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

◇ 겨우살이, 추운 계절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

겨울 산에서만 보이는 나무가 있다. 이름하여 ‘겨우살이’다. 우연히 겨우살이를 발견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다른 계절에는 안 보이던 녀석이어서 반갑기도 하고, 그만큼 깊은 산 속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다.

이름과 달리 겨우살이는 겨울에만 사는 나무가 아니다. 1년 열두 달 산다. 다만 겨울에만 보인다. 왜 그럴까. 이 녀석 잘못은 아니다. 겨우살이는 원래 살던 데서 원래 살던 대로 살았을 뿐이다. 문제는 세상이다. 이 녀석이 뿌리를 내린 세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겨우살이는 기생식물이다. 참나무 같은 다른 나무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겨우살이 열매를 먹은 새의 똥을 매개로 다른 나무에서 싹을 틔운다. 광합성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양분 대부분은 숙주가 되는 나무에서 얻는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날, 그러니까 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는 계절이 돌아오면 나뭇잎에 가려 안 보이던 겨우살이가 나타난다. 사람 눈에 비로소 띄는 것이다. 추운 계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다는 걸 안다고 했던가. 그 유사 사례가 겨우살이다. 그러니까 겨우살이는, 철저히 인간의 시선이 투영된 이름이다.

참나무 입장에선 제 양분 빼먹는 얄미운 녀석이겠으나, 인간 입장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귀한 존재다. 하여 유럽에선 행운의 상징처럼 인식됐다. 고대 유럽 제사장이 겨우살이를 제물로 썼다고 하고, 요즘도 북유럽에선 성탄절 날 겨우살이를 문에 걸어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겨우살이는 약으로 쓰인다. 물론 인간 입장에서다. 겨우살이의 숙주가 되는 나무는 생장 속도가 느리고 수명도 짧다.

어느 날 세상이 변했다. 인간이 살던 방식은 그대로인데, 인간이 비벼대고 사는 세상이 변했다. 어쩌다 인간도 맨몸을 드러내게 되었다. 무의미한 연명의 나날이 이어지는 요즘, 인류가 긴 세월 지향했던 가치는 유보되거나 부정되고 있다. 그래, 이제는 인정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존은 본래 비루한 것이라고. 겨우살이에 새똥이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겨우살이는 세상이 달라져도 달라지는 게 없다. 인간은 아니다. 달라진 세상에 맞춰 인간도 달라져야 한다. 세상 빨아먹고 사는 건, 겨우살이나 인간이나 똑같지만.

사진설명 : 한라산 해발 1300m 지점에서 촬영한 겨우살이. 제주도 겨우살이는 열매가 빨갛다.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68.html
kolaswqetsrq 11.02 23:37
◇ 삼성의 미국 투자 30조원?

◇ 삼성의 미국 투자 30조원?

‘경제 구세주’는 무엇일까. 기업이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기업이 투자한 곳에는 젖과 꿀이 흐른다. 일자리와 소득이 만들어지고 거둘 세금도 절로 샘솟는다. 그뿐 아니다. 사회간접자본(SOC)과 교육시설도 덩달아 발전한다.

25년 전, 영국 북부의 조용한 도시 윈야드.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평생 한번 보기 힘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그곳에 갔기 때문이다. 왜 갔을까. 삼성전자 복합단지 준공을 축하하기 위해. 전자레인지·TV·팩시밀리를 만드는 공장이 무에 그리 대단할까.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바로 기업의 투자가 구세주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땅을 거저 주고, 세금을 깎아주는 것은 구세주를 맞는 예였을까.

미국의 주요 언론이 삼성의 미국 투자 소식을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삼성전자가 170억달러를 투자해 텍사스·애리조나·뉴욕주에 반도체 생산라인을 건설한다.” 블룸버그통신, “삼성전자가 100억달러 이상을 투입해 텍사스 오스틴공장에 파운드리 라인을 증설한다.” 두 투자액을 합치면 270억달러. 약 30조원이다.

왜 투자하는 걸까. 빤한 답을 하자면 두 가지 이유에서다. 그곳에는 큰 시장이 있고, 4차 산업혁명이 불타오르기 때문이다. 반문을 할지 모른다. “반도체 운송비가 얼마나 비싸기에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미국에 따로 공장을 짓느냐”고. 무거운 세금에 준조세까지 중과하는 나라. 경제자유구역에 생산법인을 설립하려면 100개 넘는 관공서 도장을 받아야 하고, 규제 3법에 징벌 3법까지 만든 나라. 발 한번 헛디디면 큰 죄를 짓지 않아도 기업인은 감방에 간다. 미국에 투자하겠는가, 한국에 투자하겠는가.

삼성전자의 국내·해외 매출 비중은 약 2대 8. 언제까지 이익을 한국본부로 모으고, 세금을 한국정부에만 낼까. 다른 기업은 또 어떨까. 2016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뉴욕에서 연 IT서밋. 미국 IT 거물 14명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초청했다. 왜 하필 이 부회장을 초청했을까. “미국기업이 되어 주기를 원했던 것”이라고도 한다.

삼성의 미국 투자 30조원. 새로운 시대 개막을 알리는 신호가 아닐까.(사족, 내가 이재용이라도 미국에 투자한다)

-세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0.html
kolaswqetsrq 11.02 23:38
■ 수원 제암리 학살 사건 2편

■ 수원 제암리 학살 사건 2편

1919년 4월 15일(화요일) 오후, 일본군 보병 중위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가 이끄는 보병 11명과 순사 2명이 수원군 향남면(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 도착하여, 강연이 있다고 속여 마을 주민 약 30명을 제암리교회에 모이게 하였다. 일본군은 돌연 출입문과 창문을 굳게 잠그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총칼로 마구 학살한 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교회당에 불을 질렀는데 불길이 5시간쯤 타올랐다. 그때 한 부인이 어린 아기를 창밖으로 내던지며 아기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였으나, 일본군은 그 아이마저 찔러 죽였다. 또 일본군은 불속에서 뛰쳐나오거나 길에 나왔다가 달아나는 사람에 대해 발포하거나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교회당 안에서 22명, 밖에서 6명 등 모두 28명이 살해되었고, 일본군이 지른 불로 민가(民家) 31호가 불타버렸다. 그뿐 아니라 일본군은 근처에 있는 고주리로 가서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을 학살하여 40여 명의 주민들이 일본군에게 잔인하게 목숨을 잃었다. 연이어 이웃 마을에 며칠간 계속 사격, 방화, 구타를 자행하였으니, 사상자가 1000여 명에 달하였다.

제암리교회 학살사건이 일어난 후 신자나 일반인들은 일제의 감시 때문에 사건현장에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희생자들의 시신은 사건을 전해들은 캐나다 의료선교사 스코필드박사가 이틀 뒤 불탄 교회에서 유골을 수습하여 인근 공동묘지 입구에 묻을 때까지 방치되어 있었다. 참변을 전해들은 미국 선교사이며 교육자인 언더우드(Underwood, H. H., 元漢慶)와 미국 영사관 직원 일행이 4월 16일 서울을 출발하여 그곳에 도착하였을 때, 생존자들은 먹을 것, 입을 것도 없이 겁에 질린 채 언덕에 모여 있었고, 살해된 시체와 불탄 집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언더우드는 현장에 모여 있는 생존자 일부를 만나 사건의 자세한 내용을 듣고 참상을 확인하였다. 한편 4월 17일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이며 선교사인 영국인 스코필드(Schofield, F. W.)가 현장으로 달려가, 생생한 참상을 사진에 담고, 목격자의 증언을 수록한 「수원에서의 잔악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미국으로 보냈다.

또 영국영사 로이드 등도 학살 현장에 가서 사건 진상을 조사하였다. 또한 침묵을 지켜오던 일본 내의 영자 신문 『재팬 애드버타이저(Japan Advertiser)』 와 『재팬 크로니클(Japan Chronicle)』등도 목격자의 증언까지 곁들이며, 사건을 상세히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또 일본기독교동맹은 뒤늦게나마 대표를 보내 참상을 조사하게 하였으며, 만행의 일단을 신문과 잡지에 실어 일본인의 반성을 촉구하였다.

한편 제암리 학살사건의 현장 지휘책임자인 보병 제79연대소속 아리타 중위에 대한 처벌은 직무 집행상 온당한 행위였다는 이유로 덮어두려고 하였으나, 세계 여론의 지탄을 받게 되자 7월 17일자로 군법회의에 붙여졌다. 그러나 아리타 중위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82년 9월 29일에는 정부와 경기도가 함께 합동 장례식을 치르고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제암리교회는 현재 사적 제299호로 지정되어 보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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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38
■ 수원 제암리 학살 사건 1편

■ 수원 제암리 학살 사건 1편

수원 제암리교회 학살사건은 만세운동에 대한 일제의 보복 행위로 일어난 가장 대표적인 참변이다. 만세시위운동에 대한 일제의 대책은 비인도적인 대량살육과 만행, 그리고 대규모 검거였다. 만세운동의 주동자로서 검거된 인사에 대해서도 참혹한 고문을 가한 뒤에 그들의 식민지 통치 법규에 따라 처형하였다. 우리나라의 만세운동 상황과 일제의 무력탄압은 국제적으로 여론화되어 열강들은 일제의 야만적 행위를 비난, 공격하였다.

3월 31일 제암리에서 가까운 발안(發安)장터에서는 장날을 기해서 약 1,000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태극기를 세워 놓고 독립 연설회를 개최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장거리를 행진하였다. 흥분한 시위 군중이 일본인 가옥이나 학교 등을 방화, 파손하였다. 이튿날인 4월 1일 밤, 주변 산봉우리 80여 곳에서 봉화를 올리고 만세운동을 널리 확대시키려했다. 그래서 그곳에 살고 있던 일본인 부녀자와 어린이는 조금 떨어져 있는 삼계리(三溪里)로 피신하여 숨어지내기도 했다. 이처럼 3월 말을 전후로 만세시위운동이 맹렬히 일어나자, 몇 개의 일본군 검거반이 파견되면서 3·1운동에 대한 보복 행위가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4월 2일 제1차 검거 작전을 시작하였다. 경기도 경무부에서는 하세베 이와오(長谷部巖) 대장이하 헌병과 보병, 순사로 이루어진 검거반을 보냈으며 6일까지 이어졌다. 시위의 진원지 역할을 한 마을을 습격 방화하고 시위 주모자를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항거하여 4월 3일 수촌리 구장 백낙렬 천도교 전교사, 수촌 제암리 감리교회 김교철 전도사, 석포리 구장 차병한, 주곡리 차희식 등이 주축이 되어 우정면, 장안면 주민 2천여명이 모여 각 면사무소를 부수고 화수리 주재소로 몰려가 주재소를 불태우는 한편 순사 가와바타를 처단하였다. 마침내 4월 5일 새벽 3시 반경에 검거반이 수촌리를 급습하여, 종교 시설은 물론 민가에 불을 질러 마을 전체 42호 가운데 38호가 소실되었다(수촌리 학살 사건).

4월 9일부터 16일까지 검거반은 제2차 검거 작전을 벌였다. 4월 13일 육군 ‘보병 79연대’ 소속 중위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가 지휘하는 보병 11명이 발안에 도착하였다. 토벌 작전이 끝난 발안 지역의 치안 유지가 그들의 임무였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시위 주모자들은 2차에 걸친 검거 작전으로 대부분 체포된 반면, 발안 시위를 주도했던 제암리 주모자들은 체포되지 않아 불안 요소로 남아 있음을 안 아리타는 제암리를 토벌할 계획을 세운다. 제암리는 주로 안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며, 일찍부터 천도교의 교세로 민족정신이 고양되었고, 제암리감리교회에서는 문맹퇴치 및 신문화 운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대한제국 시위대 해산군인 홍원식이 낙향하여 사람들을 모아 교육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여 ‘구국동지회’를 만들었던 민중의 의식화가 상당히 이루어졌던 동네였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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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39
■ 여성독립운동가 4편

■ 여성독립운동가 4편

"남(南)에는 유관순, 북(北)에는 동풍신"이라며 두 열사를 찬양하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1919년 3월 14일 오전 11시, 함경북도 명천군 하기면 화대동에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의 소식을 전해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느새 5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며 화대 장터에 모였다가 헌병들이 모여 있는 부대인 화대헌병분견소 앞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자, 일본 헌병들이 나와 사람들을 향해 마구 총을 쏘아댔다. 헌병분견소 앞에 모인 사람들 중 5명이 총에 맞아 목숨을 잃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박승룡, 김성련 등 몇몇 인물들은 이튿날 일본 헌병들의 만행에 항의하는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뜻을 모아 1919년 3월 15일, 이들이 이끄는 군중 5000여 명이 화대 장터에 모여 만세 운동을 벌였다. 이들 중에는 병으로 오래 자리에 누워 있던 동민수라는 인물도 있었다. 그는 일제의 만행에 동포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죽음을 각오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만세 운동 중 일본 기마 헌병과 경찰의 무차별 사격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동민수의 둘째 딸 동풍신은 현장으로 달려와 아버지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동풍신은 이내 마음을 다잡고 뿌리치고 일어나 앞장서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동풍신의 의연함에 크게 감동한 군중은 힘을 모아 만세 운동을 펼쳐나갔다.

그러나 동풍신은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함흥형무소에 수감됐다. 그 후 함흥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동풍신은 "내가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른 것은 만세를 부르다 총에 맞아 숨진 아버지를 대신해서이다"라고 당당히 주장했다고 한다. 동풍신은 함흥지방법원에서 2년 6개월 형을 받은 뒤 경성법원에서 2심을 받기 위해 서대문형무소로 옮겨져 일제의 고문을 받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1921년 열일곱 살 꽃다운 나이로 순국했다.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당당하게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상황 등이 유관순 열사와 무척 닮아있어 ‘제2의 유관순’이라 불리웠다.

이들 외에도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남자들 못지않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일제에 맞서서 다양한 방법으로 항일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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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40
■ 여성독립운동가 3편

■ 여성독립운동가 3편

또 한분, 잊어서는 안될 분은 바로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여사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분노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사형선고를 받은 아들에게 어머니는 “당당히 죽으라.”고 한다. 그리고 새하얀 수의를 손수 지어 보냈다. 가히 독립운동가의 어머니답다. 조마리아여사는 안중근처럼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뒷바라지했다. 독립운동가들은 조마리아의 집에서 먹고 자고 간호를 받기도 했다. 조마리아여사는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여사와 한 집에 살며 독립운동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일제는 조선이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도록 돈을 빌려 주었는데, 때문에 조선이 일제에 갚아야 할 돈은 1906년까지 무려 1,300만 원에 달했다. 요즘 가치로 환산하면 3,900억 원 정도이다. 사람들은 함께 돈을 모아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자는 국채보상운동을 펼쳤는데, 조마리아는 이때 은가락지 2쌍, 은노리개 2개, 은장도 1개 등 적지 않은 패물을 내놓았다. 국채보상운동 말고도 조마리아가 독립을 위해 자금을 모았던 기록은 많이 남아 있다.

\남도의 유관순\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윤형숙 열사도 3·1운동 당시 만세 운동에 앞장섰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난 윤형숙 열사는 열여덟 살에 광주 지역 최초의 여성 중등교육기관인 수피아여학교에 진학했다. 윤 열사는 리더십이 강해 반장을 도맡으며 학교에서 민족의식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다 2학년 때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다. 국내 곳곳에서 항일운동의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자, 광주에서도 3월 10일 만세 운동이 일어나, 광주·전남 지방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윤형숙 열사는 학생들을 비롯해 군중 1000여 명을 이끌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는데, 일본군은 기마 헌병을 투입해 총칼을 휘두르며 만세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이때 윤형숙 열사가 태극기를 든 한쪽 팔이 잘리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윤 열사는 반대편 손으로 다시 태극기를 집어 들고 만세를 불렀고, 결국 일본 헌병에게 체포당했다. 함께 시위에 나선 수피아여학교 교사와 학생 20여 명도 잡혀갔다.

그 후 윤형숙 열사는 만세 운동의 주동자로 감옥에 있는 동안 갖은 고문으로 오른쪽 눈이 실명되는 고통도 겪어야 했다. 감옥에서 나온 뒤에는 고향 여수의 기독교학교에서 일하는 등 학생 교육에 힘쓰다 광복을 맞이하게 됐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윤 열사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해 9월 기독교 전도사라는 이유로 북한 인민군에게 붙잡혀 총살을 당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윤형숙 열사의 삶은 사후(死後) 54년 만에 다시 재조명되어 알려지면서 2004년 정부는 윤형숙 열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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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40
■ 여성독립운동가 2편

■ 여성독립운동가 2편

1930년 중국 상해. 25살의 한 아가씨가 도착했다. 그녀의 이름은 이화림. 14살에 3·1운동을 했고, 22살에 학생운동을 했던 이화림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상해로 왔다. 그리고 김구가 만든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여기에서 윤봉길을 만나게 된다. 이화림은 윤봉길의 암살 계획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윤봉길과 함께 일왕 히로히토의 생일 행사가 열리는 홍코우공원을 여러 번 답사했고, 사건 당일에도 암살 현장에서 윤봉길을 끝까지 지켜봤다고 한다. 또 이화림은 1938년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용대에서 부녀대 부대장을 맡았다. 조선의용대는 독립운동을 했던 무장부대인데, 1942년 조선의용대가 일본군에 맞서 전투를 벌였을 때, 이화림은 전투에 참여하며 선전활동과 남성대원들의 식사 준비까지 도맡아했다. 거칠고 숨 막히는 전투와 암살 현장에서 나라를 구하려는 일념으로 청춘을 바친 여인이다.

영화 ‘암살’의 실제 모델이기도한 남자현은 1919년 3·1운동 당시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을 목격하고 무장 항쟁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남자현은 중국으로 가 ‘서로군정서’라는 독립군 단체에 가입하여, 그곳에서 독립군 뒷바라지를 하면서 아들을 무관학교로 보내 독립군으로 키운다. 그러던 1926년 어느 날, 조선 총독을 두 번이나 지낸 사이토 마코토가 순종 황제의 장례식에 참가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남자현은 사이토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한국으로 왔다. 그러나 남자현보다 먼저 사이토의 목숨을 노린 송학선이 사이토가 탄 자동차에 뛰어올라 칼을 휘둘렀는데, 아쉽게도 그가 찌른 건 사이토가 아니었다. 이 사건으로 경호가 강해지자 남자현 일행은 다음 기회를 노렸다.

그로부터 7년 뒤, 남자현은 일본 관동군 사령관이자 일본 전권대사 무토 노부요시 육군대장이 중국 장춘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남자현의 나이 61세. 남자현은 “나는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는 나이가 되었다.”며 암살을 결심했다. 하지만, 남자현은 권총과 폭탄을 몸에 숨기고 노부요시에게 가던 중 경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조선인 스파이가 경찰에게 정보를 흘린 것이다. 경찰에게 붙잡혔을 당시 남자현은 의병 활동을 하다 전사한 남편의 피 묻은 옷을 껴입고 있었다고 한다. 남자현은 일본영사관 감옥으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고, 감옥에서 풀려나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결국 숨을 거두었다. 남자현은 우리나라의 독립투쟁사에서 30년 동안 무장 투쟁을 벌인 유일한 여성이라고 한다. 몸과 마음을 바쳐 나라를 사랑했던 남자현의 숭고한 정신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1919년 3월 1일, 조선총독부 병원. 3·1운동에 참가했던 조선인들이 일본 경찰의 총과 칼에 맞아 병원으로 실려 왔다. 조선인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큰 충격에 빠진 간호사가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박자혜. 그때까지만 해도 독립운동에 관심이 없었던 박자혜는 그날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박자혜는 조선총독부 병원에서 일하는 조선인 간호사들과 함께 간호사의 독립운동단체인 ‘간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독립운동과 관련된 인쇄물을 만들고, 조선인 의사들과 힘을 합해 일본인은 진료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제에 저항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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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41
■ 여성독립운동가 1편

■ 여성독립운동가 1편

여성 독립운동가 하면 우리는 거의 유관순 열사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독립운동에 젊음을 바친 여성 독립 운동가들은 수도 없이 많다. 영화 ‘암살’의 흥행 이후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숨은 독립운동가들은 많이 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남성 독립운동가들보다 두세 배 분량의 일들을 감당해 내야만 했다. 독립을 위해 나섰지만 그들은 여전히 엄마, 아내, 며느리이자 주부였다. 자녀를 양육하고 시부모를 봉양하며 가사노동과 농사일을 독립운동과 병행했다. 독립운동을 하는 남편을 둔 여성들은 남편을 대신해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며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보다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밝혀내 자랑스러운 그들의 활약상을 우리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몇 해 전 광복 제73주년을 맞이하여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면서 여성 독립운동가 202명을 새로 찾아냈다고 한다. 이들 중 26명이 1차로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우당 이회영선생의 아내 이은숙여사,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의사를 숨겨줬다가 고문을 당한 김아기여사, 독립운동가 이규풍·이규갑 형제의 어머니 박안라여사, 만세 시위를 벌여 투옥됐던 배화여학교·수피아여학교·기전여학교 학생들,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여성들이 포함되었다.

현재 국가보훈처에서 훈장과 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1만 4,329명인데, 이 가운데 여성은 전체의 1.9%인 272명에 불과하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임시정부의 살림을 도맡고, 독립군의 군복을 만들고, 군수품을 운반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일을 주로 해서 기록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의 독립운동에는 남녀 구분이 없었는데, 실로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일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우리나라에 서양의 근대식 학교가 세워지고, 그때부터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여성들이 체계적인 학교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교육을 받으며 의식에 눈을 뜬 여성들은 ‘일본에 대항해 나라를 구하겠다’는 신념에 사로잡혔다. 그들 중에는 남성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도 있고, 남성 독립운동가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독립군 군복과 화약을 만들고, 도피자를 숨겨 주거나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독립운동가에게 식사를 준비해 주고,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들은 공식적인 문서에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실제로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의 대우를 받는 여성이 드물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여성들이 했던 활동들도 독립운동이 잘 진행되게 하는 데에 꼭 필요했다는 것이다. 훈장 하나 받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 한 분 한 분께 마음으로나마 훈장을 달아 드리고 싶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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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42
■ 서대문 형무소 3편

■ 서대문 형무소 3편

대부분의 감옥은 옥문을 닫아놓았지만 몇 개는 열어놓아서, 3평 남짓한 옥내를 구경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유관순열사가 갇혀있던 지하 감옥은 유리로 막아놓았기 때문에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조로 내부를 관찰할 수 있다. 대부분의 감옥은 3평에서 5평 정도로 운신의 폭이 있지만, 지하 감옥은 독방이라 그런지 한 평 남짓으로 매우 좁다. 갇혀있던 독립 운동가들의 옥고를 짐작하게 할 수 있을 만한 구조이다.

여성 미결수(재판이 끝나지 않아 법적 판결을 받지 않은 상태로 갇힌 피의자 또는 형사 피고인)를 가뒀던 구치감이 1916년 즈음 지어졌다가 1979년에 철거되었던 것을 2011년에 복원했으며, 여성 독립항일운동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여성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 갇혀 얼마나 참혹한 고문을 당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서대문 형무소에는 사형을 집행했던 장소도 남아있다. 지상 1층과 지하 1층의 일본식 목조건물로 1916년 즈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형장은 5m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고 있어 서대문형무소 안에서도 보이지 않게 차단되어 있다. 1층 안에는 교수형을 집행하기 위해 여닫히는 마루판과 교수형에 쓰는 줄, 가림막 뒤쪽에 마루판을 밑으로 내리는 장치가 있다. 마루판이 열리면서 그 위에 있던 사형수가 교수형을 당하게 되는 구조이다. 마루판 아래의 지하실은 시신을 수습했던 공간이다. 사형 집행 후 시신을 바깥의 공동묘지로 내보내기 위해 밖으로 연결한 통로인 수구문이 있다. 붕괴되었던 것을 1992년에 독립공원을 만들 때 발굴하여 40m를 복원하였는데, 원래 길이는 약 200m라고 전해진다. 일제는 시신에 구타나 고문의 흔적이 많은 경우나 사형 사실이 알려져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길 우려가 되는 경우, 그리고 시신을 받아갈 유족이 없는 경우에 이 문을 통해 시신을 바깥으로 내보냈다고 한다.

일제에 의한 강제점령 시기는 민족의 자존심이 훼손당하고, 민족 스스로의 발전이 중단되는 고통의 역사였다. 그러나 우리에겐 역사적 현실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민족 독립을 향한 투쟁의 역사가 있으며, 그로 인해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바로 그러한 역사의 계승을 위한 배움터로 마련되었다.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은 물론, 온 국민들이 순국선열들의 뜻을 기리고, 지난날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한 애국애족의 뜻을 배우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었으면 한다.

독립, 민주, 역사, 문화 관련 시민단체들이 2014년 2월 23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교육장에서 서대문형무소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시민모임 발족식 및 심포지엄을 개최하였고, 같은 해 11월 1일에는 서대문구청에서 서대문형무소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기 위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듬해인 2015년에는 한국인 강제징용의 아픔이 담겨 있는 일본의 군함도가 과거 식민지 탄압을 은폐하고, 근대 일본의 발전만 부각하면서 한국 외교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각종 로비로 인해 결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우리도 일본의 과거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아우슈비츠처럼 서대문형무소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48.html
kolaswqetsrq 11.02 23:42
■ 서대문 형무소 2편

■ 서대문 형무소 2편

일제는 표면적으로는 재소자에 대해 정해진 작업, 정량의 식료품 배급, 교육과 운동에 대한 교정 규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형무소에 투옥된 독립운동가에게는 형기(刑期)가 확정되기 전부터 온갖 취조와 고문이 자행되었다. 또한 옥사 내에는 겨울철에 난방이 되지 않아 동상을 입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며, 동사(凍死)하는 일도 빈번했다. 여름철에는 각종 전염병으로 병사자가 속출하는 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처우는 가혹하였다.

서대문 감옥이 서대문 형무소로 이름이 바뀐 것은 1923년이다. 이로부터 오늘날 일반인에게 익히 알려진 ‘서대문형무소’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현재 1930년에 작성된 「서대문형무소 배치도」가 남아 있다. 광복 이후 미군정 치하에서도 구치소, 교도소로 이용되다가, 1948년 8월 대한민국이 주권을 가지게 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형무소로 쓰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름이 1945년 11월 21일 서울형무소로 바뀌었고, 이 시기에는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대거 수용되었다. 김원봉, 김성숙도 수감된 적이 있으며, 여운형도 수감된 적이 있었다.

1950년대에는 수감자의 70퍼센트가 좌익인사들이었고, 정치·사회문제로 관련하여 간첩 및 사상범이 많이 투옥되었다. 근대화 과정에서는 특히 운동권학생과 재야인사 등이 투옥되어 민주화운동의 성지(聖地)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일제 강점기 때의 독립 운동뿐만 아니라 광복 이후 정치적 격변과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의 여러 주요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이 투옥되거나 사형집행이 이루어진 역사적 장소가 되었다.

해방 후 1946년에는 경성형무소로, 다시 1950년에는 서울형무소로 개칭되었다. 1961년 개정된 행형법(行刑法)에 따라 서울교도소가 되었으며, 1967년 7월 7일에는 서울구치소로 개칭되었다. 1987년 3월부터 서울특별시는 민족의 수난과 독립운동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곳 전체를 사적으로 지정,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조성했다. 같은 해 11월 15일 구치소의 시설과 인원이 의왕시로 이전한 이후, 모두 15개 동 가운데 5개 동과 중앙사, 나병사 등을 보존했다. 김구, 강우규, 유관순 등의 인물이 투옥되었던 제10·11·12사의 감옥 건물과 사형장이 1988년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고, 1988년부터 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해서 1992년 8월 15일 서대문독립공원으로 개원했다. 1998년에는 체계적인 전시와 홍보를 위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개관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구성은 출입문 바로 앞으로 보이는 전시관, 바로 뒤로 중앙사, 그리고 그를 이어서 제9~12 옥사와 공작사, 한센 병사, 추모비, 사형장, 시구문, 격벽장, 여옥사(유관순 지하감옥), 취사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관 지하 고문실에는 밀랍인형으로 고문을 받는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재현하여 당시 일본이 자행하던 고문의 잔혹함을 보여주는데, 여성 독립지사를 고문하는 장면에서는 처절한 고통의 비명까지 들린다. 한 사람이 서 있을 공간만 있어 2~3일 동안 갇혀있으면 전신마비가 온다는 고문실인 벽관도 재현해 놓았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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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43
■ 서대문 형무소 1편

■ 서대문 형무소 1편

1905년, 일제는 대한제국과 을사늑약을 강제로 맺어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았다. 그 후 일제는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한국인들은 의병 전쟁과 애국 계몽 운동을 벌이며 대항했다. 1906년 경무 고문이었던 마루야마 시게토시〔丸山重俊〕가 한국 내 감옥의 수용능력 부족을 지적하면서 의병 등 반일세력을 탄압·수용할 목적으로 새로운 신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경성 감옥(현재 서대문 독립공원이자 옛날 서대문형무소)이다. 건물은 본래 아연판을 붙인 판자로 두른 허술한 형태였다. 건립비용은 약 5만원이었고, 규모는 청사 및 부속건물 80평, 감방 및 부속건물 480평이었다. 일본인 건축가 시텐노 가즈마(四天王要馬)의 설계에 의해 한국 최초의 근대식 감옥이 준공된 것이다. 수용능력은 500명 정도였는데, 이후 증·개축을 반복하여 1938년의 수용인원은 2,763명이었다.

이 감옥은 본래 1907년 8월에 완성되었으나, 군대 해산 이후 해산 군인의 의병 가담과 순종황제 등극 이후 시국의 불안정 등으로 인해 바로 개소되지 못했다가 1908년(순종 2년) 10월에야 비로소 개소하게 되었다. 감옥이 설립된 이후 초기에는 허위(許蔿, 1854∼1908), 이강년(李康秊, 1858∼1908), 이인영(李麟榮, 1867∼1909) 등 후기 의병 주도자들이 많이 투옥되었다. 허위 등은 모두 경성감옥에서 사형으로 순국하였다. 일제는 1908년 경성감옥 이외에도 공주, 함흥, 평양, 해주, 대구, 진주, 광주 등 전국 7개 주요 지역에 감옥(監獄)을 세웠다.

1910년, 일제는 한·일 병탄조약을 강제로 맺어 대한제국의 주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삼았다. 일제는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한국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지만, 독립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경성 감옥으로는 그 숫자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일제는 서울 마포에 새로운 감옥을 지어 그곳을 ‘경성 감옥’ 이라 칭하고, 원래 서대문에 있던 경성 감옥은 서대문 감옥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11년 105인 사건으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고, 김좌진장군은 1911년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2년 6개월 형을 받아 수감되었다. 이곳은 전국의 10년 이상이나 무기형(無期刑)을 언도 받은 기결수가 수감되어 있었던 점이 특색이었고, 여느 감옥과는 달리 18세 미만의 소녀수(少女囚)를 모두 수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관순 열사도 이곳에 구금된 후 옥사하였다.

1919년에는 3·1운동으로 인해 수감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민족대표 33인을 비롯하여 당시 시위관련자 1,600여 명을 포함해 3,000여 명이 수용되었다. 독립선언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이곳에 투옥되었다. 이밖에도 일제강점기에 양한묵·강우규·안창호·여운형 등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수감되면서 항일독립운동사의 수난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 되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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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44
◇ 코로나시대 재택근무, ‘얼굴마담’은 긴장한다!

◇ 코로나시대 재택근무, ‘얼굴마담’은 긴장한다!

하지만 세상을 꼭 실력이나 능력만으로 사는 건 아니어서 이런 게 별로 없는 사람도 리더 자리에 오른다. 좋은 리더는 앞서 말한 영화감독처럼 디렉션을 해야 하고 디렉션을 하려면 치열한 고민 끝에 찾아낸 비전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 후배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지만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다 사는 법이 있기 마련이라 이들은 ‘얼굴마담’이 되어 국면을 돌파한다. 자리를 채워주며 다정하게 웃는 얼굴을 내보이는 거다. 그러나 이런 리더를 존경할 수는 없다. 필요할 때 그에 상응하는 존경심을 잠깐 보일 뿐이다. 그러니 영향력을 갖기 어렵다. 리더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여러 관점이 있지만 핵심 중의 하나는 영향력이다. 자기 생각이 없는 리더, 얼굴마담이 영향력을 갖기는 어렵다.

코로나로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도 거의 일 년이 되어 간다. 처음에는 만나지 않고도 일이 될까 염려가 많았지만 그런대로 일은 돌아갔고 경험이 쌓이니 재택근무에 대한 여러 평이 나온다. 출퇴근에 드는 시간이 없어 효율적이다, 윗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적다, 일과 여가의 경계가 모호해져 오히려 일하는 시간이 늘었다 등.

직원들의 반응이 다양한 가운데 경영자들이 주목하는 점이 한 가지 있다. 생산자와 아닌 사람, 일에 기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명확하게 드러나더라는 점이다. 특히 직급과 기여도가 비례하지 않는 경우를.

비대면 회의를 하면 잡담을 늘어놓기는 어렵다. 곧장 업무로 들어간다. ‘언컨택트’의 저자 김용섭 소장이 말하듯 화상회의 화면 속에선 직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10분의 1, 20분의 1로 균등하다. 직급이 초래하는 차이는 줄고 업무 외적인 것들은 설 자리가 없다. 일 중심이 되고 능력과 실력이 핵심이 된다.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이유다. 일찍이 워런 버핏이 그랬다. 바닷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헤엄쳤는지 알게 된다고.

가치를 생산하지 않고 적당히 묻어갔던 사람들은 긴장한다. 회사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코로나가 진정되면 비대면 업무 방식도 끝이 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천기가 누설된 이상 원복은 어려울 것이다. 얼굴마담의 설 자리도 점점 좁아질 것이다. 만나야 얼굴마담의 역할을 할 텐데 비대면으로도 일이 되고 더구나 효율적이라는 평이 따르니 말이다. 자기 머리로 살지 않는 얼굴마담들에겐 앞으로 쭉 추운 계절이 될 것 같다. 그동안이 호시절이었다.

-동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84.html
kolaswqetsrq 11.02 23:44
◇ 공업용 미싱

◇ 공업용 미싱

올림픽 ‘호돌이’만큼 1988년을 잊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드라마 ‘인간시장’이다. 그해 한 방송사에서 한 이 드라마를 보려고 월요일 저녁마다 밥상을 물리고 온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았다. 불의에 맞서는 주인공 ‘장총찬’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드라마의 원작자는 김홍신(74)씨다. 동명의 원작 소설이 나온 것이 1981년. 서슬 퍼렇던 계엄 하에서 주인공 이름을 ‘권총찬’으로 붙였다가 검열에 걸려 장 씨로 성을 바꿔냈다. 책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대한민국 최초 밀리언셀러란 수식어가 붙었다. 소설을 쓰며 시민운동을 하던 그의 가슴팍에 국회의원 금배지가 달린 것도 이 영향이 컸다.

그에게 ‘공업용 미싱’이란 ‘연관 검색어’가 생긴 건 단 하나의 사건 때문이다. 지난 1998년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던 그는 “김대중 대통령이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한 만큼 입을 꿰맨다는 염라대왕이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야 할 것”이라고 독설을 날렸다. 발언은 일파만파. 당시 김 대통령은 정작 “며칠동안 입이 자꾸 이상했다”며 농으로 받았지만 분위기는 험악하게 굴러갔다.

경남 사천의 한 철물점 주인이 “김 의원에게 주겠다”며 공업용 미싱을 차에 싣고 상경했다. 설상가상 검찰에서 구속 이야기까지 나오자 김 의원의 친구인 가수 조영남 씨마저 등판했다. 그는 당시 이런 사과문을 대신 썼다.

“다행히 불구속 처리로 끝나는 분위기라 하니 한숨이 놓였습니다. 친구가 감옥에 들어가있으면 그래도 한 번쯤은 면회를 가줘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귀찮은 일입니까. 그래도 저는 제 친구가 자랑스럽습니다. 의정활동 하나는 폼 나게 잘했거든요.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만일 다음 번에도 그따위 어설픈 소리를 해댈 때는 제가 그땐 미싱이 아닌 뜨개질바늘로(더 아파야 하니까) 녀석의 입을 꿰매놓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치권에서 일종의 금기어였던 ‘공업용 미싱’이 부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자회견 다음 날인 지난 19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현직 대통령은 시간이 지나면 전직 대통령이 된다. 전직 대통령이 되면 본인이 사면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자, 발끈한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이 이튿날 “공업용 미싱을 선물로 보낸다”고 되받으면서다. 기왕 터진 설전에 참전한다. 단언컨대, 미싱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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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분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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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용 미싱’은 정치권에서 논란을 빚은 대표적인 막말이다. 김홍신 전 한나라당 의원은 지방선거가 임박한 1998년 5월 “김대중 대통령은 사기치는 데 일가견이 있다. 염라대왕에게 끌려가면 바늘로 뜰 시간이 없어 공업용 미싱을 입에 드륵드륵 박아야 할 것”이라고 독설을 날렸다. 당시 발언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고 법원도 “정치적 비판의 한계를 넘어섰다”며 모욕죄로 벌금형을 선고했다.

공존·상생이 아니라 적의·증오가 지배하는 한국 정치에서 인신공격성 막말은 정치인에게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지지층을 위무하고 결집하는 데 이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상대 진영이 배출한 대통령을 직격할 때는 유난히 자극적인 표현이 동원된다. 노무현정부 때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노 대통령을 “등신”으로 비유했다. ‘환생경제’라는 연극에서는 노 대통령을 “노가리” “육실헐놈” 등 인격모독성 언어를 동원해 비난했다. 이명박정부 때 민주당 의원은 이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했다. 박근혜정부 때는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박 대통령을 겨냥해 ‘귀태(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 운운해 파문을 일으켰다.

다시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공업용 미싱이 20여년 만에 또 정치권에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에 부정적 입장을 내놓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 대통령을 겨냥해 “전직이 되면 본인이 사면 대상이 될지 모른다”고 했다. 문 대통령도 퇴임 후 감옥에 갈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에 발끈한 김경협 민주당 의원이 “공업용 미싱을 선물로 보낸다”고 치받았다. 그러자 주 원내대표는 “미싱을 보내면 잘 쓰겠다”고 비아냥거렸다. 정치보복을 시사하고, 저급한 말을 끄집어낸 두 의원 모두 한심하긴 매한가지다.

모름지기 정치는 언어다. 정치인의 말은 자신의 인격뿐 아니라 정치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다. 정치 언어가 이렇게 추하고 경박해서는 선진 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정치는 정치자금 투명화·권력 분산 등에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오히려 퇴행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막말이 횡행하는 정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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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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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33.html
kolaswqetsrq 11.02 23:45
◇ 1류 국민, 3류 행정

◇ 1류 국민, 3류 행정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세계 언론은 재해 개요나 피해 규모 못지 않게 참사에 대처하는 일본 국민의 자세에 주목했다. 극한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국민성에 놀란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그들의 참을성과 질서 의식은 고귀했다”고 감탄했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인류 정신의 진화를 보여줬다”고까지 격찬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그런 선망어린 시선은 상당 부분 거둬졌다. 매일 7000명 안팎으로 쏟아지는 확진자로 당국은 허둥지둥이다. 일본 정부는 뒤늦게 주요 도시에 긴급사태를 선포하고 영업시간 제한과 외출자제 지침을 내렸지만,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흥청댄다. 인류의 진화라던 그 일본이 맞나 싶다.

100년전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그리 고상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친구였던 친일 언론인 조지 케난은 조선인을 “나태하고 불결한 민족”으로 묘사했다. 이토 히로부미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조지 레드 예일대 교수도 담뱃대를 빨면서 침을 뱉는 농민을 한심하게 보면서 “대낮에 드러눕기 일쑤인 사람들”이라고 혹평했다. 국민의 자발적인 협조와 의료진의 감동적인 헌신 덕분에 코로나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있고 K방역에 대한 찬사가 나라 안팎에서 이어지는 요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일 법하다.

하지만 이런 상찬이 최근엔 다소 빛이 바래는 느낌이다. 현장과 괴리된 일부 탁상행정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적용되는 부산과 수도권의 목욕시설 방역지침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일반 대중탕은 영업이 가능하지만 아파트 내 커뮤니티 목욕탕은 금지 대상이다. 수영장 샤워장은 괜찮고 헬스장은 안된다. 운동으로 흘린 땀을 씻지 못하는 것이다.

변호사시험이나 교원임용시험은 코로나 확진자도 칠 수 있으나 일부 국가 자격시험은 응시가 불가능한 점 역시 형평성 논란거리다. 지난 주까지만 해도 음식과 음료를 함께 파는 카페에서 몇시간씩 앉아 마스크를 벗고 식사를 할 수는 있지만 커피는 못 마시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원칙없이 풀었다 죄었다 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우리나라 정치인은 4류, 관료행정은 3류, 기업은 2류 수준이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한 말이다. 코로나 위기 속 그때나 지금이나 무능한 정치와 행정을 국민은 믿기 힘들만큼 높은 공동체 의식으로 견뎌내고 있다. 이 회장은 당시 1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이제 보니 국민이 1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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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도청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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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3.html
kolaswqetsrq 11.02 23:46
■ 삼일절과 파고다공원

■ 삼일절과 파고다공원

삼일운동이 일어나고 100년이 지났다. 1910년 일제에게 강제로 주권을 빼앗긴 뒤, 우리 선조들은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나라 안팎에서 크고 작은 투쟁들을 벌여왔다. 1918년 만주에서는 독립 운동가 39명이 대표가 되어 독립 선언을 했고, 1919년 2월 8일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에서는 한국 유학생들이 조국의 독립을 외치며 2·8독립선언을 했다. 해외에서 들려오는 독립 선언 소식은 국내에서 활동하던 독립지사들에게도 큰 힘이 되었다.

든든한 용기를 얻은 민족 지도자들은 고종의 장례식을 이틀 앞둔 1919년 3월 1일 대대적인 만세 운동을 계획했다. 우선 최남선·손병희·이승훈·한용운 등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작성했고, 서울의 파고다공원(현재 탑골공원)에서 독립 선언식을 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몇몇 민족 대표들은 여러 이유를 대며 오지 않았고, 남은 대표들은 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다가는 자칫 흥분한 군중이 일본 헌병과 충돌하여 다칠 수 있다고 염려했다. 이들은 독립 선언 낭독의 장소를 파고다공원에서 인사동의 음식점인 태화관으로 바꾸었다.

그때 파고다공원에는 수많은 학생과 시민이 모여 민족 대표들이 독립 선언을 낭독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민족 대표들이 오지 않아 사람들이 머뭇거릴 때, 어떤 사람이 탑골공원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독립선언서를 인쇄소에서 지방으로 나르는 역할을 맡았던 정재용 선생이었다. 후일 정재용 선생은 "공약삼장까지 낭독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했다. 함성과 함께 발로 땅을 구르는 소리가 지축을 울리는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일제에 억압받아온 우리 민족이 외치는 \대한독립 만세\ 소리가 탑골공원에 울려 퍼지고, 태극기가 물결 쳤다. 이렇게 시작된 3·1 만세 운동은 서울 도심 곳곳으로, 전국 방방곡곡으로 번져 두 달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만세 운동을 통해 일본의 식민통치에 맞서 독립하겠다는 뜻을 세계에 널리 알린 것이다.

파고다공원은 원래 고려 시대에 흥복사라는 절이 있던 곳이었다. 1464년,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었던 세조가 원각사로 이름을 바꾸고 다시 크게 지었고, 연산군 때 이곳에 음악을 관장하는 관청인 장악원을 두기도 했다. 1514년 중종 때 원각사 건물이 헐리면서 비석과 10층 석탑만 남게 되었다. 그 후 1897년 고종의 명으로 영국인 브라운이 이곳을 서양식 공원인 파고다공원으로 조성하였고, 1992년에 탑골이라는 이곳의 옛 지명을 따서 탑골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어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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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47
■ 3·1운동의 상징, 유관순 2편

■ 3·1운동의 상징, 유관순 2편

옥사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시신의 인도를 요구하지만 일제는 고문 사실이 드러날까봐 인도를 거부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이화 학당의 프라이 교장은 국제 여론에 호소하며 시신 인도를 요구한 끝에 그 시신을 넘겨받았다. 그렇게 돌아온 시신은 아주 끔찍했다. 손톱과 발톱은 모두 다 뽑혀져 있었고, 코와 귀가 잘려 나가고 머리카락이 가죽째 뽑혀져 있었다고 한다. 두 팔과 두다리와 머리와 몸통이 따로따로 잘려져 여섯 토막으로 나눠져 있었다고 하니 그 끔찍함에 소름이 돋는다.

10월 12일 시신을 넘겨받아 이틀 뒤 서울 정동교회에서 장례식이 거행되고, 시신은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하지만 무덤에서도 편히 잠들지 못했다. 도시계획에 의한 일제의 공사로 이태원 공동묘지의 유골을 미아리로 이장하면서 유골이 없어지게 되는데, 이후 열사의 유골은 찾지 못하고 말았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열사의 유언이다.

삼일운동은 일본의 가혹한 무단 통치 아래서도 꺾이지 않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국내외에 떨쳤다. 또한 세계 여러 나라에게 우리나라 국권 회복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조직적인 독립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중국의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 민주 정부가 수립되어 독립 운동의 중추 기관으로 활약하게 하였다.

한편 국내에서는 일본으로 하여금 식민 통치 방법을 무단 통치에서 문화 정치로 바꾸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삼일절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국가 기념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3·1운동이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인 의의 때문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밝히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일제의 철통같은 무단통치를 뚫고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이고 열정적으로 전개된 3·1운동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분명한 거부였다. 비록 3·1운동을 통해 일제 식민 통치를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3·1운동은 비로소 한국 민족을 문화적, 역사적 민족 개념에 기반한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한국 민족 개개인에게 뿌리내리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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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47
■ 3·1운동의 상징, 유관순 1편

■ 3·1운동의 상징, 유관순 1편

유관순열사는 1902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류중권(柳重權)의 3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났고, 공주 영명학당에서 수학(受學)하다 1916년 미국인 여성 감리교회 선교사 사애리시(史愛理施) 부인의 권유로 서울의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편입학했다. 당시 이화학당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였고, 집이 멀었던 유관순열사도 기숙사에 살며 공부하게 되었다. 유관순 열사는 뜨개질을 좋아하고 장난기 많던 소녀였다고 한다. 서대문형무소 기록에 따르면 5자 6치, 요즘 단위로 환산하면 169.7cm다. 당시 여학생 평균키는 150cm였으니 상당히 큰 체격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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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열사가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에 진급한 1919년, 3.1 운동이 시작되었다. 교장 룰루 프라이는 학생들의 안전을 염려하여 참가를 말렸지만, 김복순, 국현숙, 서명학, 김희자와 함께 결사대를 조직하고, 학당의 담을 뛰어넘어 3.1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이 여파로 1919년 3월 10일에 전 학교에 휴교령이 떨어지자 함께 이화학당을 다니던 사촌 언니인 류예도와 함께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와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그것이 3.1 운동 중 천안 아우내 만세운동(1919년 양력 4월 1일, 음력 3월 1일)이다. 유관순 열사 부모도 일본군이 휘두른 칼에 학살됐고, 유관순 열사는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한 친일파 조선인 정춘영에 의해 체포되어 서대문 형문소로 끌려갔다.
",

공주재판소 법정에서 "나는 조선 사람이다. 너희들은 우리 땅에 와서 우리 동포들을 수없이 죽이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였으니 죄를 지은 자들은 바로 너희들이다. 우리가 너희들에게 형벌을 줄 권리는 있어도 너희가 우리를 재판할 그 어떤 권리도 명분도 없다"고 말했다. 일본인 검사가 "너희들 조선인이 무슨 독립이냐"고 하자, 유관순 열사는 검사에게 의자를 던졌다고 한다. 감옥에서도 여러 번 대한독립만세를 불렀고, 그때마다 심한 고문을 당하고 매를 맞았다. 징역 3년형을 받았으나 법정모독죄가 추가되어 7년형으로 늘어나고, 교도소 안에서도 시위계획을 세우다가 발각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일제의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1920년 9월 28일 결국 옥사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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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48
■ 김마리아와 2·8 독립선언서

■ 김마리아와 2·8 독립선언서

1919년 2월 17일, 기모노를 입은 두 여성이 일본 도쿄에서 시모노세키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두 사람은 시모노세키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건너갔는데, 이들의 허리를 감싸는 오비(帶·띠) 속에는 몰래 숨겨 놓은 것이 있었다. 만약 발각된다면 당장 감옥으로 끌려갈 문서, 바로 2·8 독립선언서였다. 이들은 일본인으로 위장한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1892~1944)와 차경신(1892~1978)이었다. 김마리아는 도쿄 메지로여자학원, 차경신은 요코하마여자신학교에 다니던 유학생이었다. 9일 전인 1919년 2월 8일, 도쿄 유학생들의 주도로 일어난 2·8 독립운동의 실상을 국내에 전달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윌슨 대통령이 천명한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된 일본유학생들은 적국 수도 한복판인 도쿄에서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들의 선언문은 『우리는 자기 생존의 권리를 위해 모든 자유행동을 취하여 최후의 1인까지 자유를 위해 더운 피를 뿌리자』며 강한 독립 의지를 천명했다. 당시 도쿄의 조선인 남자 유학생은 700~800명이었는데 여자 유학생은 50명 정도였다. 2·8 독립선언의 서명자로 나선 유학생 대표 11명 중에서 여학생은 없었다. 하지만 여학생 역시 남학생 못지않은 애국심과 독립 의지를 굳게 지니고 있었다.
",

2·8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조선 여학생들은, 운동을 주도한 남학생들이 모두 체포된 뒤 이 일을 국내에 알려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다른 유학생들과 함께 경찰에 끌려갔다가 풀려난 김마리아가 이 일을 맡았다. 황해도 출신인 김마리아는 서울 정신여학교 재학 시절 머물던 삼촌 김필순의 집에서 김규식·안창호·이동휘 같은 애국지사들이 드나드는 걸 보고 조국애를 키워나갔다. 도쿄 유학 시절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김마리아는 2·8 독립선언서를 얇은 미농지에 열 장 넘게 베끼며 치밀하게 국내 잠입 준비를 했다. 그리고 믿을 만한 동지로 정신여학교 후배인 차경신과 동행하기로 했다. 김마리아는 서울과 대구, 광주, 황해도로 분주히 움직이며 2·8 독립선언의 실상을 알리고 3·1운동 준비 작업을 벌였다. 김마리아가 일본 유학 전 교사로 근무했던 광주의 수피아여학교에도 독립선언서를 전달했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3·1운동이 일어나고, 며칠 뒤 서울에서 체포된 김마리아는 심한 고문을 당해 평생 뼛속에 고름이 차는 병을 얻었다.

김마리아는 이후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결성해 독립운동 전선에 나섰고, 투옥과 상하이 망명, 미국 유학, 신사참배 거부 등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안타깝게도 광복 한 해 전인 1944년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3·1운동은 민족운동 전선에서 남녀의 차이를 처음으로 극복한 사건이었고, 이후 유관순을 비롯하여 많은 여성 운동가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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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49
■ 신라의 아이돌 화랑花郞 5편

■ 신라의 아이돌 화랑(花郞) 5편

화랑도의 무사도가 화랑집단은 물론이고 일반평민층에까지 널리 퍼져 보편화됨으로서 화랑도는 군사적인 면에서만 국가에 이바지한 것이 아니었다. 화랑도조직은 매우 의협심이 강한 집단으로서 약한 자를 돕는데 서슴지 않았고, 때로는 사회질서의 안녕을 위해 마을의 야경을 맡기도 하였다. 한편, 화랑도가 크게 활동하던 시기는 신라 고유의 신분제도인 골품제도가 확립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가던 때였다. 화랑도는 이러한 신분계층사회에서 발생하기 쉬운 알력이나 갈등을 조절, 완화하는 데도 부분적으로 기여하였다. 화랑도가 진골귀족 및 하급귀족, 일반평민 출신 등 여러 신분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을 강조하는 공통된 목적을 가진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삼국통일을 달성하고 나자 신라의 제1차 목표인 군사적 목표는 일단 완료되었다. 이에 전사단으로서의 화랑도의 존재 의의는 점차 줄어들었다. 화랑도는 문무왕 대에 이르러 가장 왕성하였으나, 통일 후 국가가 안정되고 태평세월이 계속됨에 따라 화랑도 정신은 점차 쇠퇴하였다. 하지만 성덕왕 때 김대문은 화랑도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화랑세기》를 펴냈다. 이 책에는 200여 명에 이르는 역대 화랑들의 활약이 담겨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고려시대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 김대문이 화랑들의 이야기를 썼고, 어진 재상과 충성스러운 신하가 화랑에서 나왔다는 기록만 전할 뿐이다.

더욱이, 9세기에 들어와 왕권이 쇠약해진 반면 상대적으로 진골귀족의 세력이 크게 강화되면서, 화랑도는 귀족들의 사병적인 성격을 띠는 집단으로 변질되어갔다. 그러다가 신라말기 국가권력의 쇠퇴와 더불어 화랑도는 국가의 권력기구를 지지, 옹호한다는 본래의 성격과는 거리가 먼 청소년단체로 변하였다. 이처럼 점차 변질되어가던 화랑도는 신라의 멸망과 함께 존재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화랑도의 유풍(遺風)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고려시대 궁중의 연중행사였던 팔관회(八關會)의 의식에 양가(良家)의 자제를 뽑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한 것 등은 그 한 관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화랑도의 유풍(遺風)마저 사라지게 되고, 오로지 노래나 춤을 즐긴다는 가무조합적 기능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하여 화랑을 남자무당(巫夫)·창우(倡優)·유녀(遊女)·무동(舞童) 따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고, 마침내 화랑도의 본질적인 성격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화랑도 정신은 한민족 고유의 전통과 이념의 발로로서 고려, 조선을 통하여 계승되어 국가 유사시에는 독립애국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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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49
■ 신라의 아이돌 화랑花郞 4편

■ 신라의 아이돌 화랑(花郞) 4편

이처럼 화랑도는 성원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결합되어 공동목표를 위해 일정한 기간 동안 수련하는 단체였던 만큼 성원간의 인적 결합관계는 매우 단단하였다. 그들 사이의 우정은 단순한 우정관계가 아니었다. 사다함의 경우, 동료인 무관랑(武官郎)과 사우(死友)를 약속했고, 무관랑이 병으로 죽자 통곡한 나머지 그 자신도 병사할 정도의 관계였다. 이 점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남자들만의 조직인 화랑도 성원 사이에 일종의 동성애가 행해진 것은 아닐까 추측하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어떻든 화랑도 성원간의 우정관계나 단체의식이 매우 강했던 것은 틀림없다.

화랑도는 독특한 무사도(武士道)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 수록된 화랑들의 전기를 보면, 당시에 화랑뿐 아니라 낭도나 일반 병졸에 이르기까지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무엇보다도 전사(戰死)를 명예로 여기는 무사도 정신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무사도는 특히 화랑출신의 장군들이 모범을 보였다.

660년(태종무열왕 7년) 백제를 치기 위한 원정군의 주요한 장수는 김유신을 비롯해 그의 아우인 흠순(欽純, 또는 欽春)과 품일(品日) 등이었다. 황산(黃山)벌판의 싸움에서 품일과 김흠순은 신라군의 사기를 드높이기 위해 각기 아들인 화랑 관창(官昌)과 반굴(盤屈)을 전사하게 한 것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화이다. 한편, 김유신은 672년(문무왕 12년)에 그의 아들 원술(元述)이 석문전투(石門戰鬪:황해도 서흥)에서 당나라군과 싸워 패하고 돌아오자, 왕명을 욕되게 하고 가훈(家訓)을 저버렸다는 이유로 그를 죽일 것을 왕에게 탄원한 적도 있다. 비록 원술은 왕의 비호로 목숨을 구했으나 감히 아버지를 볼 수 없었으며, 아버지가 죽은 뒤에 어머니를 만나려 했으나 끝내 어머니의 허락을 얻지 못하였다.

화랑도의 수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노래와 춤이었다. 본래 노래가 정신교육에, 특히 청소년의 의기를 북돋우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점에서 화랑도는 다른 민족의 청소년집단이나 전사조직과 마찬가지로 가무(歌舞)조합으로서의 일면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화랑도는 삼국항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한 진흥왕 때 제정되어 삼국통일을 이룩할 때까지 한 세기 동안에 활기를 띠었다. 화랑도는 이 시기에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역사가 김대문(金大問)의 ≪화랑세기(花郎世紀)≫에 『현명한 재상과 충성스런 신하가 여기서 솟아나오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이로 말미암아 생겨났다.』고 한 것은 이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특히, 고구려와 백제를 상대로 1백년의 오랜 기간에 걸쳐 전쟁상태에 돌입해 있던 신라의 국가적 위기에 화랑도는 전사단으로서 크게 이바지하였다.

-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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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50
■ 신라의 아이돌 화랑花郞 3편

■ 신라의 아이돌 화랑(花郞) 3편

한편, 낭도(郞徒)들의 신분이나 자격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수도인 경주에 사는 6부민(六部民)출신의 자제들이 주축을 이루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전에는 이들을 진골귀족 이하 6두품·5두품·4두품에 이르는 상류계층 출신의 청소년만으로 좁혀서 생각하였으나, 그들 가운데 일반 병졸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만큼 3두품 이하 2두품·1두품에 이르는 평민들의 자제들도 낭도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옳은 것 같다.

화랑도는 이처럼 진골귀족에서부터 일반평민에 이르기까지 여러 신분에 속하는, 수도 경주 거주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발적으로 맺어지고 있는 점이 하나의 특징이다. 다시 말해서 화랑도는 골품제도와 같이 혈연주의에 입각해 만들어진 단체가 아니라, 혈연주의를 초월해 자신들의 의사에 의해 결성된 일종의 결사체라 할 수 있다. 화랑도는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단체생활을 했다. 신라에서는 통상 3년을 하나의 서약·수련·의무 기간으로 정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화랑인 김유신(金庾信)의 수련기간이 3년으로 나타나 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화랑에 대한 기록을 종합해보면, 화랑은 대개 15세부터 18세까지의 청소년으로 되어 있다. 화랑집단의 구성원들은 이 기간 동안 경주 부근의 남산을 비롯해 금강산·지리산 또는 최근에 알려진 경상남도 울산군 두동면 천전리 계곡과 같은 명승지를 찾아다니면서 자긍심을 기르는 한편 무예와 도의(道義)를 연마하였다. 특히, 화랑은 김유신의 경우에서 보듯 혼자서 깊은 산 속의 동굴을 찾아가 단식기도하면서 여러 가지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기도 하였다.

화랑도가 연마한 도의는 유·불·선 3교의 정신을 받들고 오계(五戒)와 3덕(三德)을 신조로 하며, 애국애족을 표방하였다. 5계란 임금에게 충성하고(事君以忠:사군이충), 부모에게 효도하며(事親以孝:사친이효), 친구에게는 신의를 가지고(交友以信:교우이신), 싸움터에서는 후퇴할 줄 모르며(臨戰無退이전무퇴), 살생은 가려서 한다는 것(殺生有擇:살생유택)이고, 3덕이란 겸허, 검소, 순후(淳厚)를 뜻한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귀중하게 여기던 덕목은 충(忠)과 신(信)이었다. 이것은 화랑도가 제정된 6세기 중엽으로부터 삼국통일을 이루는 7세기 중엽까지의 1세기 동안이 신라 역사상 드물게 보는 국난(國難)기였기 때문이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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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51
■ 신라의 아이돌 화랑花郞 2편

■ 신라의 아이돌 화랑(花郞) 2편

6세기 전반기에 신라는 주변의 조그만 나라나 가야·고구려와 같은 큰 나라를 상대로 활발한 정복전쟁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이에 많은 병사를 필요로 했고, 이 때 새로운 군사제도가 만들어졌다. 화랑도가 국가에 의해 정식으로 제정된 것도 진흥왕 때(540∼576)의 일이다. 확실한 제정연대는 알 수 없으나, 562년의 대가야 정벌에 사다함(斯多含)이 화랑의 자격으로 종군하고 있는 만큼 제정연대는 이보다 빠른 시기인 것이 확실하다.

초대 화랑은 설원랑(薛原郎)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신라 조정이 화랑도 제정을 서두른 것은 핵심이 되는 군대를 보충할 병력이 당장 필요했고, 장기적으로는 화랑도를 통해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화랑도는 이처럼 궁극적으로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교육기관의 임무를 띠고 출발한 제도였으나, 법률로서 제정된 정식 국가기관은 아니었다. 종전에 있던 촌락공동체적인 청소년조직의 전통과 중국 율령(律令)의 도입을 통해서 만들어진 관청조직의 원리를 결합시켜 만든 일종의 반관반민(半官半民) 성격을 띠는 청소년 조직체였다.

이와 같은 조직은 고구려에도 있었다. 경당(扃堂)이 바로 그것인데, 이것은 화랑도와 마찬가지로 청소년조직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여기서 미혼 청년들이 학문과 도의를 닦고 무술을 연마하였다. 신문왕 때에 정규 국가적 교육기관인 국학(國學)이 완비된 뒤에도 화랑도가 교육적 기능을 지니는 민간 조직으로서 여전히 존속한 것은 이 때문이다.

화랑도는 한 시대에 하나의 집단만이 존재한 것은 아니다. 화랑도운동이 크게 일어났던 진평왕 때에는 많을 때는 7개 이상의 화랑집단이 동시에 존재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조정에서는 이들 여러 개의 집단을 통솔할 중심기관 또는 중심인물이 필요했던 듯 한데 화주(花主)가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추측되고 있다. 화랑도는 각기 화랑(花郞) 한 명과 승려 약간 명, 그리고 화랑을 따르는 다수의 낭도(郎徒)로 구성되어 있다. 낭도의 수는 일정하지 않으나, 많을 때는 1천명이 되기도 하였다. 화랑은 각 집단의 중심인물로서 용모가 단정하고 믿음직하며, 무예가 뛰어나고 통솔력 있는 진골귀족 가운데서 낭도의 추대를 받아 뽑혔다. 아마도 요즘 아이돌같은 재주와 용모를 가진 엔터테이너였을 것이다

768년(혜공왕 4년) 신라에 사신으로 온 당나라 고음(顧愔)의 견문기인 ≪신라국기(新羅國記)≫에 『귀인 자제 가운데 어여쁜 자를 뽑아 분(粉)을 바르고 곱게 단장해 이름을 화랑이라 했으니 나라사람들이 모두 높이 섬긴다.』고 한 것은 바로 이 사실을 입증해 준다. 신라시대를 통틀어 화랑은 모두 2백여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화랑도 내의 승려들은 월명사(月明師)의 경우에서 보듯 노래 가사를 짓거나 화랑집단이 어떤 의식을 집행할 때 도와주는 등 주로 지적·정신적인 면에서 화랑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었던 만큼 학문적 교양이 풍부한 사람이 뽑혔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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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51
■ 신라의 아이돌 화랑花郞 1편

■ 신라의 아이돌 화랑(花郞) 1편

‘화랑(花郞)’이라는 말은 ‘꽃처럼 아름다운 남성’이라는 뜻인데, 혹은 화판(花判)·선랑(仙郎)·국선(國仙)·풍월주(風月主)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로 조직된 ‘화랑도(花郞徒)’는 단체정신이 매우 강한 청소년 집단으로 교육적·군사적·사교 단체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화랑도’의 기능은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신라의 삼국통일 뿐만 아니라, 신라 골품제(骨品制) 사회에서의 여러 계층 간의 긴장과 갈등을 조절, 완화하는 데도 이바지하였다.

원시공동체사회에서는 촌락과 같은 지역공동체의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내부에 청소년조직과 같은 소규모 공동체가 발생해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직은 유목사회보다는 농경을 위주로 하는 농업사회에서 특히 발전하게 되는데, ‘화랑도’ 역시 신라가 고대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추어가는 과정에서 그 조직과 형태를 완성해 나갔다.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에는 이미 부족국가 단계인 삼한시대에 마을의 청소년들이 그들 고유의 집회소를 가지고 있었으며, 견디기 어려운 훈련을 통해 수련을 하고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신라는 4세기 중엽을 경계로 하여 급속히 국가체제를 정비해갔다. 따라서, 촌락 중심의 청소년조직은 그 성장·발전에 커다란 지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더욱이 중앙집권체제의 정비와 더불어 신라사회에 점차 친족을 중심으로 한 사회조직이 생성, 강화되면서 더 위축되어 갔을 것이다. 왕권이 강화되고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시행된 군현제(郡縣制)로 말미암아 점차 촌락공동체의 독자적인 청소년 조직은 중앙정부에 의해 흡수되기 시작해 이전의 청소년조직은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정부에 의해 새롭게 조직된 것이 흔히 화랑도의 전신(前身)이라 불리는 원화(源花, 原花)제도였다. 이것은 정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어여쁜 여성 두 명을 ‘원화(源花)’로 뽑아 단장(團長)을 삼고, 이를 중심으로 한 두 조직의 단체생활을 통해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려고 한 제도였다.

처음 원화로 뽑힌 남모(南毛)와 준정(俊貞)은 무리를 3백여 명이나 모았으나, 두 여성 사이에 서로 미모를 다투며 시기하는 일이 생겨, 마침내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으로 유인해 억지로 술을 권해 취하게 한 뒤 끌어다 강물에 던져 죽여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결국 준정은 이 일로 인해 죽임을 당했고, 조직은 해산되고 말았다. 이처럼 원화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으니 신라정부로서는 어쨌든 인재를 양성, 확보할 다른 제도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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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52
■ 원균과 칠천량해전 9편

■ 원균과 칠천량해전 9편

당시 조선 수군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압도적인 패배도 패배지만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한 조선 수군 대다수가 갓 뽑은 오합지졸 신병들이 아닌, 임진왜란 개전부터 약 6년간 왜군들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고 승리한 역전의 베테랑들이었다. 병사들뿐만 아니라 군관들을 비롯한 지휘관들 역시 6년간 이순신 밑에서 맹활약을 펼친 실력파 부장들이 많았는데, 이 해전에서 그들 대다수가 전사하거나 도망쳤던 것이다.

한마디로 한산도 대첩을 비롯해 6년간 해전을 승리로 이끌어온 주역들이 이 해전 한 번에 죄다 증발된 것이다. 해군에서 숙련된 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감안하면, 이는 큰 타격이며 사기가 떨어짐은 너무나 당연했다.

일본은 이후 남원과 전주를 공격하기 위해 일본 육군과 수군을 투입시키는데 이동하면서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약탈과 학살이 벌어졌다. 이때 수많은 조선인들이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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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량에서의 패전 소식을 접한 조정에서는 충격을 받았다. 이후의 수습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 중에 선조가 했던 말은 칠천량 패전은 원균 잘못이 아니라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다 라는 것이다. 만약 패전의 책임이 원균에게 있다면 잘 싸우던 이순신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원균을 앉힌 선조 또한 책임이 있는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왕의 위신이 깎인다. 그러니 원균에게 잘못이 없고 패전은 단지 운이었다고 말함으로써 자기에게 책임이 없다고 은근슬쩍 변명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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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처음 패전 소식을 듣고 한산을 지키면서 호랑이가 버티는 듯한 형세를 지키며 우주방어 했어야 하는데 괜히 출동해서 졌으니, 이건 사람이 아니라 하늘 때문이다. 라는 내용으로 말했다. 그런데 괜히 출동하여 적의 함정에 들어가지 말고 한산을 지켜야 한다고 했던 것이 바로 이순신의 주장이었다. 이런 주장을 한 이순신이 빨리 출동 안 한다고 탄핵하고 결국 백의종군에 처하고, 그 자리에 원균을 꽂아 넣은 책임자는 선조 자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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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엄청난 사태를 초래한 당사자 원균은 책임을 지는 일도 없었고, 엉뚱하게 1등공신이 되었다. 종1품 좌찬성에 추증, 원릉군(原陵君)이란 작호, 선무공신 1등 책록. 이것이 칠천량 해전에서 패하고 전사한 그에게 주어진 포상이었다. 당시에도 여러 신료들이 포상이 지나치다고 하였다. 특히 선무공신 전체 18명, 1등은 3명으로 충무공 이순신과 충장공 권율 장군은 인정되나 원균이 1등인 것은 지나치다, 이치에 맞지 않다고 여러 번 간언했으나 그렇게 된 것은 바로 선조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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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53
■ 원균과 칠천량해전 8편

■ 원균과 칠천량해전 8편

수군 장수에게 필수적인 소양은 무엇보다 바다를 알고, 배를 알아야 한다. 7월 14일 통제영에서 함대를 출진시키기 전에 그는 먼저 견내량에서 부터 부산에 이르는 물길에서 작전기간 파도의 높이를 포함한 기상은 어떠한지, 그 날 조류는 순조류(順潮流)인지 역조류(逆潮流)인지 등을 제대로 따져 보지도 않았다. 판옥선의 구조상 파도가 험한 외해(外海), 큰 바다에는 적합지 않음도 고려해야 했다.

거제를 벗어나 괭이바다를 통과해서 부산에 이르는 물길은 판옥선에게 크게 불리한 여건임을 알고 감안해야 하는 것이다. 판옥선은 바람을 받는 돛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격군(格軍)이 노를 저어서 인력으로 움직이는 전함이다. 크기도 크고 무거운 대형전함인데, 노를 저어 가려면 격군의 체력 소모도 그만큼 많을 것이다. 격군은 교대 병력까지 확보해야 하고, 2교대, 3교대로 교대할지라도 사람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는 바, 필히 충분한 휴식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박지 확보가 대단히 중요해진다. 순조류를 타는 날을 기다리지 않고 역조류를 거스르며 진군시켰고, 함선을 급히 몰아서 그 배를 움직일 격군을 쉬지 못하게 하여 피로도를 극에 달하게 만들어 탈진시켜 버렸다. 격군이 탈진하면 판옥선을 움직일 수 없고, 이는 전투불능상태에 빠지는 길이다. 수군 총사령관이, 그것도 앞서 경상우수사를 했다면서, 이런 정도 상식도 없이 전함을 무작정 몰아대고 격군을 다그치기만 했으니 수군 장수로서 기본 소양도 없고 자질 부족이라는 확실한 증거다.

사령관이 곤장을 맞았다고 자기 분에 못 이겨서, 천시(天時), 지리(地理)를 고려하여 유,불리도 따져보지 않고 출전한 것 자체가 장수로서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증거이고, 싸우러 가는 장수가 함대의 진군로, 퇴각로 그리고 정박지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준비하고 검토하지 않았던 것도 문제다.

정유재란은 1597년 1월에 시작됐고, 이 전쟁의 첫 회전(會戰)인 칠천량 해전은 동년 7월에 있었다. 그렇지만, 이 패배를 기점으로 정유재란의 전선(戰線)이 하삼도 전역으로 본격적으로 확대되었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실패했던 수륙병진작전의 가능성이 열리면서 왜군이 한양을 다시 노릴 수 있게끔 됐다. 한마디로 정유재란 초반의 전세를 결정지은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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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이순신이 막아내어 유지할 수 있었던 남해의 제해권이 일본군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이는 전라도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음을 의미했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는 일본의 침략을 받지 않아 인적·물적으로 조선의 보급고로 매우 중요했다. 일본 입장에선 임진년 당시 한양 이북으로 진격하는 데 가장 큰 방해요소인 해상 보급 문제가 원균 덕분에 해결된 셈이다. 이후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악전고투 끝에 최악의 사태를 막기는 했지만, 하마터면 평야지대 호남이 뚫리고 적이 서해안을 통해 해상으로 보급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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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53
■ 원균과 칠천량해전 7편

■ 원균과 칠천량해전 7편

선조와 조정대신들 다음으로 책임 유무를 따질 사람은 도원수 권율 장군이다. 임진년에서부터 계사년 사이, 호남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수원 독산성 전투 등 경기 남부 수복, 행주대첩으로 서울 수복에 기여한 공이 있으니 육군 지휘관으로 상당히 유능한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다들 장군이라고 하니까 권율 장군이 무관이라고 여기기 쉬우나, 원래 출신이 문관이고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 당시 선조와 조정 대신들의 정치 분위기에 민감했고, 그들을 거스를 인물도 아니었다.

더욱이 행주대첩 이후로 오래도록 제대로 활약하고 공을 세운 게 없는 상항으로 압박을 느꼈던 것도 감안해야 할 듯하다. 조정의 명을 받아 도원수로서 작전명령, 지침을 전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다. 전체 군 지휘관으로서 역할 중 하나일 테니까. 그래서 통제사 원균을 처벌하고 전투를 명한 것도 일정부분 이해하지만, 반드시 옳았다고도 할 수 없다.

도원수 권율 장군은 주로 육군을 관할하지만 어쨌든 삼도수군통제사도 그의 아래 서열이고 육군과 수군을 포함한 모든 조선군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의 지위에 있었는데, 통제사 원균과의 대립 장면을 보면, 그는 육군 지휘관의 입장에서 보고 말할 뿐, 수군의 입장을 듣고 조율하는 모습이 아니다. 적어도 도원수라면 육군과 수군 모두의 사령관이 되어야 할 것 아닌가? 또 전군의 지휘관으로서 임금과 조정의 명이 부당하다면, 군의 입장에서 한마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는 그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조선 수군의 진군문제로 통제사 이순신이 파직되고 새 통제사 원균도 불가하다 하면, 심사숙고해서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통수권자일 것이다. 특히 바다를 잘 모르는 육군지휘관이면 수군지휘관의 의견을 존중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노력은 없이 그냥 임금과 조정의 명령 전달자로서의 역할만 하려 했으니 과연 도원수(都元帥)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가 도원수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곤장을 때려서까지 무리하게 출전시켜 칠천량 해전의 비극을 미리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칠천량해전은 한국사 전쟁사 중에서도 최고 수위라 할 만한 황당한 패배이고, 세계사를 봐도 이 정도로 황당한 졸전은 손에 꼽힐만할 것이다. 판옥선의 성능이 일본의 세키부네보다 훨씬 우수하였고 거북선 역시 많은 양이 있었으며, 탑재화기도 천지현황 총통 등으로 일본보다 훨씬 화력이 강했다. 더군다나 병력 수도 밀리지 않았고, 질도 다수 전투에서 승리한 베테랑급 전력이었지만 현실은 대참패. 칠천량해전은 전형적인 사람에 의한 참사이고, 올바른 인사와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는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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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54
■ 원균과 칠천량해전 6편

■ 원균과 칠천량해전 6편

통제사 원균의 실책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휘하에서 성장해온, 여러 장수들을 배척하였다는 점이다. 장수가 부하의 말에 귀를 닫고 군영의 일보다 다른 곳에 정신이 가 있고, 부하를 배척하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장수와 병사 사이가 벌어지고 서로를 알지 못하게 되며, 군영의 사기가 떨어지고, 군기가 해이해진다.

충무공 이순신이 있을 때의 상승 무적 조선 수군의 모습을 신임 통제사 원균은 빠른 속도로 바꿔가고 있었다. 정사준, 배흥립 같은 장수들이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장군을 찾아가 한산도 통제영의 상황을 전하며 크게 우려했다는 《난중일기》의 기록에서 통제영의 장병들이 느꼈을 불안과 우려를 알 수 있다.

이로써 삼도 수군은 일시에 무너지고 적군은 남해 일원의 제해권을 장악해 서해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우키타(宇喜多秀家)·고니시(小西行長)·모리(毛利秀元) 등은 쉽게 남원 및 진주 등지로 침범하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7월 21일 원균과 함께 탈출하다가 원균은 죽고 겨우 살아 나온 김식에게서 패전 보고를 듣고 크게 놀라 백의종군(白衣從軍)하고 있던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해 수군을 수습하게 하였다.

칠천량 해전의 패배 책임이 전적으로 원릉군 원균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어쨌든 전장의 지휘를 맡은 사람은 원균이니 그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하지만, 원균 외에도 도망간 장수들, 무모한 전투를 몰아댄 선조와 조정 대신들 그리고 도원수 권율 장군의 책임도 있다. 선조와 조정 대신들은 수군이 계속 이겨왔다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적을 경시하고 있었다.

우리 수군의 모습만 보이면 적은 스스로 물러나고, 수군이 나아가면 무조건 이기고 적을 깨뜨리고 성을 빼앗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순신장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병법도 모르고, 현지 사정도 어두운 분들이 군권과 군령에 간섭하여 지휘체계를 뒤흔들었고, 현지 지휘관의 의견을 제대로 검토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시하고 모함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강요했다.

통제사 이순신장군이 조정의 지원도 제대로 못 받고, 자급자족으로 근근히 버티면서 수군 전력 강화를 위해 애썼다. 선조와 조정대신들은 후방에서 그들이 가장 중점적으로 해주어야 할 병참지원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서 수군의 활약을 너무 당연시하고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선조와 조정 대신들이 한 일은 현지 지휘관의 의견을 무시하고, 무조건 싸우라고 강요한 것이다.

애초에 이순신장군을 통제사에서 파직한 것부터가 잘못된 인사이고, 후임 통제사에 장수로서 기본도 안 된 원균을 내세운 것도 잘못된 인사이다. 선조의 정치적 입장과 관련하여 무조건적으로 싸고 도는 상황 때문에 원균의 역량과 사람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선조와 조정 대신들. 이들의 무능과 무책임은 원균보다 결코 책임이 가볍지 않다.

-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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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55
■ 원균과 칠천량해전 5편

■ 원균과 칠천량해전 5편

7월 15일, 저녁 또 다시 쉬지도 못하고 죽기 살기로 도주해서 겨우 도착한 곳이 거제 북방. 거제 장목과 칠천도 사이의 좁고 긴 물목인 칠천량이었다. 조선 수군의 무덤으로 운명의 장소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하루 종일 쉬지도 못하고 쫓겨만 다니고 눈앞에서 동료들이 표류되어 죽어가는데 또 도주해야 했으니, 기력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사기는 떨어지고 모두 탈진해서 그대로 쓰러져 버렸고, 깊은 잠에 빠져든 그 시각, 이미 조선 수군을 가두는 일본군의 포위망이 완성되고 있었다.

좁은 물목 양쪽 끝을 일본군 전함들이 봉쇄하고, 칠천도와 거제도 장목에 일본군이 이미 상륙해서 점령했다. 수륙 양면으로 물샐틈없이 포위해서 모두 잠든 새벽에 기습, 협공한다는 일본군의 전략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7월 16일 새벽에 시작된 일본군의 공격은 무자비했다. 임진년부터 이순신장군에게 계속 패하며 당했던 수모를 이번 기회에 씻으려는 듯 일본군의 각오는 대단했다.

기습당한 조선 수군은 무기력하게 격파 당했다. 명령과 지휘체계가 마비된 상태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전라우수사 이억기장군과 충청수사 최호가 전사했고, 조방장 백기 배흥립은 중상을 입고 실종되었다. 조방장 김완은 함대의 후미를 맡아 싸우다 실종되었다가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다. 결국 함대는 각 수영(水營)별로 퇴각하기로 했다. 이미 지도자를 잃은 부대들은 우왕좌왕 오합지졸이었다.

경상우수사 배설은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12척의 함대를 빼내어 탈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12척의 배는 명량해전에서 귀중한 조선함대로 쓰이게 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배설이 도망을 간 것이 아니라 ‘작전상 후퇴’ 라고나 할까, 마지막 함대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후퇴했다고도 한다.

가리포 첨사 이응표는 직속상관인 전라우수사 이억기장군이 위기에 처했는데도 구원하지 않고 탈출했다 하여 살아서 복귀했지만 그 죄가 중하므로 파직되었고, 통제사 원균의 아우인 종사관 원전은 형과는 다르게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통제사 원균은 도주하여 중위장인 순천부사 우치적과 함께 고성 춘원포에 상륙했지만 쫓아온 일본군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결국 7월 16일, 이 하루의 전투로 조선 수군은 삼도수군통제사 원균,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등이 모두 전사했고, 그 외 상당한 수의 장졸이 전사하고 도주하였으며 경상우수사 배설이 빼돌린 전함 12척 외의 모든 함선을 잃었다. 조선 수군의 전멸. 참담한 패전이었다. 칠천량해전으로 조선 수군은 제해권(制海權)을 상실했다.

칠천량 해전은 당일의 전투행위 자체도 졸렬하고 무능한 것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이런 대패를 일으킨 것은 출정부터 칠천량에 정박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있다고 봐야 한다. 전쟁에 진 장수를 모두 비겁하고 무능하다고 평가절하하지는 않는다. 만반의 대비와 노력을 하고 혼신의 힘으로 대적해도 역부족이었다고 하면, 영웅까지는 아니더라도 비난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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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55
■ 원균과 칠천량해전 4편

■ 원균과 칠천량해전 4편

권율은 원균이 적을 두려워하여 출정을 지체하였다 하여 전령(傳令)을 보내어 곤양(昆陽)으로 불렀다. 11일에 권율이 곤양에 도착하자 원균도 명령을 받고 도착했다. 권율이 곤장을 치면서 말하기를, "국가에서 너에게 높은 벼슬을 준 것이 어찌 한갓 편안히 부귀를 누리라 한 것이냐? 임금의 은혜를 저버렸으니 너의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이다."라 호통치고 돌려보냈다. 통제사가 도원수에게 소환되어 가서 부하들 앞에서 곤장까지 맞는 수모를 당한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원균은 곤장을 맞은 뒤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홧김에 출전하고 싶은 생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밤 한산도의 전 함대를 거느리고 부산으로 향하였다. 7월 11일 곤양에서 곤장 맞고 한산도에 도착하는데 하루 잡고, 그리고 군사와 함대를 모두 집결시켜 출발하는데 최소 1~2일 잡는다면, 출전 일시는 14일이 유력하다.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경상우수사 배설 등의 지휘관과 조선 함대 169척, 귀선(龜船) 3척, 병력 1만 이상을 이끌고 출전한 후 부산포 근처 다대포에 정박했다.

판옥선은 격군(格軍:노젓는 병사)이 노를 저어 큰 전함을 움직이는데, 바람과 조류도 따져보지 않고 무작정 출전해서 역조류를 헤치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그것도 하루 만에 그 거리를 갔다면, 한마디로 이건 통제사 원균이 함대를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로 엄청나게 몰아댔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휘관으로서는 엄청난 바보 같은 행동이다. 쉬지 못하고 체력이 바닥난 격군들로 판옥선은 전투 불능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만약에 통제사 원균이 제대로 된 장수라면, 수군 장수로서 바다를 알고 배를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실수이다. 아니 실수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1만이 넘는 대군과 1백척이 넘는 대 함대, 그리고 나라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장수의 무능과 무지는 죄악이다.

통제사 원균의 가장 큰 잘못은 자신의 역량 이상의 분수에 넘치는 자리를 탐했던 것이고, 칠천량해전은 그 대가를 치른 것이다. 자신의 무능 때문에 그 수많은 사람을 허무하게 죽게 만들고, 나라를 망하게 할 뻔 했다.

부산 앞바다에서 일본 대 선단을 만나 소규모 전투를 벌이다가 탈진한 조선 수군함대는 도주해서 겨우 부산과 거제 중간 지금의 가덕도에 도착했다. 병력 4백 명이 식수를 구하는 한편, 잠시 숨을 돌리려 했더니 일본군이 먼저 와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복에 걸린 것이다. 통제사 원균은 가덕도에 상륙한 병력을 그냥 두고 그대로 도주해 버렸다. 가덕도에 상륙한 병력들은 모두 일본군에게 몰살당하고 말았다.

-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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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56
■ 원균과 칠천량해전 3편

■ 원균과 칠천량해전 3편

이 기문포 해전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전(敗戰)이다. 그리고 심각한 외교 문제까지 야기 시킬 뻔 했다. 또 약속을 어기고 신의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으니 나라의 위신이 실추되었고, 조선의 지휘관들 사이에 서로 업무 협조가 원활하지 않다는 약점을 일본군이 훤히 알게 하였다. 선조를 기망(欺罔:기만)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기망조정(欺罔朝廷). 이순신장군이 파직되고 백의종군된 이유였다. 통제사 원균의 실책은 실로 무겁고, 중대한 사안이다. 그런데 왜 원균은 처벌도 없이 유야무야된 것일까? 같은 사안에 대해 조정 대신들은 왜 이순신장군은 그렇게 탄핵해 놓고, 원균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었을까? 열심히 나라를 지킨 이순신에 대한 질투에서 야기된 그릇된 탄핵과 인사에 대한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기 싫어서인 것은 아닐까?

이후 원균은 선조의 기대와는 달리 이순신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걸었다. 작전은 고사하고 이순신이 만든 조선 수군의 작전회의실 운주당(運籌堂)에서 기생을 불러다 같이 놀며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일본군은 조선 수군을 부산 근해로 유인해 섬멸하려고 일본의 이중첩자인 요시라(要時羅)를 시켜 유혹했다. 이에 도원수 권율(權慄)은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과 상의해 원균에게 출전명령을 내렸다.

이순신의 후임으로 임명된 원균도 통제사가 되기 전의 자기주장과는 달리 사태의 불리함을 깨닫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출전하지 않는다. 특히 육군의 엄호 없이는 출전할 수 없다며 3월 29일 장계를 통해 30만 대군으로 안골포, 가덕도 등지의 적을 몰아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장계를 올린다. 조선 육군의 병력 규모를 몰랐거나, 부산포 공격이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해서 출정을 피하려 한 듯하다.

통제사 원균은 또다시 조정의 재촉을 받고 어쩔 수 없이 6월 18일 한산도 통제영을 출발, 거제 장문포를 거친 다음 안골포와 가덕도를 공격했는데, 적선 2척을 빼앗았을 뿐, 큰 성과없이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평산만호 김축이 부상을 입고, 보성군수 안홍국이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 전선(戰船)의 피해는 없었지만, 주요 지휘관에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상당한 손실이었다.

원균은 이 출전으로 왜선 10척을 부수고 판옥선 32척을 잃는, 이순신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패전을 한 뒤 한산도로 돌아왔다. 이전까지 원균은 전투 지휘관으로서 능력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이 전투에서 원균이 사실상 처음 보여준 지휘 능력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그렇게 성과 없이 엄청난 손실만 입고 철수해 돌아온 통제사 원균에게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조도 이제는 계속된 작전 실패와 패전에 크게 실망하면서 원균에게 최후 통첩성 경고를 했다. 그리고 도원수 권율 장군의 소환명령을 받았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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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57
■ 원균과 칠천량해전 2편

■ 원균과 칠천량해전 2편

임진왜란 중 명나라와의 화의가 결렬되자, 일본은 1597년 1월 다시 조선을 침범했다. 일본은 지난번 조선 침범이 실패한 것은 바다를 제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군을 이겨야 한다는 각오 아래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이순신(李舜臣)이 무고로 하옥되고 대신 원균이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있었다.

1597년 3월 9일, 거제도 기문포(器問浦)에 왜선 3척이 정박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원균은 군사들을 이끌고 나갔다. 이때만 해도 휴전상태가 유지중이어서 경상우병사 김응서와 일본군 사이에 거제의 일부 섬 지역에서 나무를 베는 사람은 공격하지 말기로 협의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원균이 공격했던 자들은 바로 그 나무를 베러 온 병력들이었던 것이다. 이 일본군들이 놀라서 숨으니, 원균은 항왜(降倭:투항 일본인)를 보내 술과 먹을 것을 주고 안심시킨 뒤 돌려보낸 후, 그 뒤를 따라가 공격을 했다. 일본군들이 살려줘서 고맙다고 고개를 조아리며 돌아가는 것을 뒤에서 기습한 것이다.

아무리 전공(戰功)이 탐이 나더라도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때 오히려 일본군에게 반격을 받아 임진왜란 최초로 해상에서 판옥선 1척을 탈취 당하고 말았다. 판옥선 안에 실린 화포와 화약, 기타 무기까지 모두 빼앗길 판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우리 수군은 탈취 당한 판옥선을 집중 공격해서 태워 버렸다. 우리 손으로 귀중한 판옥선 한 척을 없애버린 것이다. 적선 3척을 빼앗고 적 47명을 참수했지만, 우리는 판옥선 1척을 잃고, 그 판옥선의 지휘관 고성현감 조응도를 포함해서 판옥선 내의 병력 1백 이상을 잃었다. 일본군보다 아군의 피해가 더 크다는 소리다. 이 기문포해전은 과연 승전(勝戰)인가? 패전(敗戰)인가? 원균은 이 해전에 대해 왜구의 목을 쳐 몰아냈다고 장계를 써 올렸으니 선조는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삼도수군통제사에 원균을 임명한 선조가 자신의 안목에 흡족해 있을 때, 곧바로 다른 내용의 후속 보고가 잇따라 올라오면서 이 일의 진상이 밝혀졌다. 경상도 관찰사의 장계에 고성현감 조응도가 3월 8일 판옥선에 병력 140명으로 출천했다가 패전하고 전사하였으니, 새 현감을 보내달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연이어 도원수 권율 장군의 상세 보고가 올라오고 당연히 일본 측은 휴전(休戰) 기간임을 내세워 항의했고, 조선 조정은 당황했다. 결국 원균에게 줄 포상은 없던 일이 되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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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57
■ 원균과 칠천량해전 1편

■ 원균과 칠천량해전 1편

원균은 임진왜란·정유재란을 통틀어 조선 수군이 유일하게 대패(大敗)한 칠천량해전을 이끌다 전사(戰死)했다. 그것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치다가 전사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이순신장군이 민족의 영웅으로 각광 받는 것과는 달리, 원균은 임진왜란 중 대표적인 비겁하고 무능한 장수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대패의 참극(慘劇) 그 모든 과정이 원균만의 잘못이었을까? 당시 왕인 선조와 조정 신료들, 그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순신을 파직하고 원균에게 우리 수군을 맡긴 것이 바로 그들이고, 원균의 인사가 잘못되었음을 기문포해전에서 이미 간파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고, 무작정 바다로 그를 내몰았던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고, 그 속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그러나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던가.

무신 집안에서 태어난 원균(1540~1597년)은 어려서부터 무예에 뛰어나고 용맹했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조산만호(造山萬戶)로 있을 때, 변방의 오랑캐를 무찌른 공으로 조정으로부터 신망을 얻어 부령부사로 특진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종성으로 옮겨 병사 이일(李鎰)을 따라 시전부락(時錢部落)을 격파하는 데도 공을 세워 경상 우수군절도사(右水軍節度使)로 임명되었고, 3개월 뒤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임진왜란은 양국 간의 전쟁 준비 격차로 인해 전쟁 발발 초부터 우리의 일방적인 패주(敗走)의 연속이었다. 관군을 이끌던 명관(名官)들은 앞 다투어 도주하고, 백성들은 모두 산간으로 피난해 성읍(城邑)이 모두 텅 빈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 수군 제일의 요충인 경상좌수영의 수사 박홍(朴泓) 이하 모든 장병이 도주해 싸워보지도 못한 채 완전 궤멸되었고, 원균이 이끄는 경상우수영 관할의 장병들도 거의 흩어져 휘하에는 약간의 장병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원균은 흩어진 군사를 수습해 고군분투하면서 몇 차례에 걸친 원병 요청 끝에 마침내 전라좌수영의 이순신장군의 원병이 도착하자 합세해 옥포(玉浦)·당포(唐浦) 등지에서 연전연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포상 과정에서 이순신과의 공로 다툼이 심해 불화가 발생하였다. 급기야 1593년 8월 이순신이 신설된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에 임명되어 지휘권을 장악하자 원균은 이에 크게 반발했고, 이듬해 12월 충청병사로 전출되었다가 얼마 뒤에는 전라좌병사로 전속되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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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2 23:58
◇ 언제까지 소비자가 입증책임을 해야 하나

◇ 언제까지 소비자가 입증책임을 해야 하나

‘운전자가 당황한 나머지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페달을 밟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동차 급발진 사고에 대한 거의 굳어진 공식이다. 자동차는 부품 약 3만개의 복잡한 제품이다. 가느다란 전선 가닥 하나가 끊어지거나 합선이 돼도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솔직히 제조사조차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하물며 이를 소비자에게 입증하라는 건 무리다.

최근 이런 점을 반영한 전향적인 판결들이 조금씩 보인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해 11월 BMW 급발진 사건 항소심에서 제조사가 유가족들에게 4000만원씩 배상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재판부는 과속 범칙금 전력이 없는 60대 운전자가 시속 200km 넘게 질주한 정황을 그 증거로 인정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급발진이 아니란 근거를 BMW가 제시하라’고 재판부가 요구했다는 점이다. 입증책임이 논란이 되는 또 다른 분야가 의료사고다. 심각한 의료사고에서조차 입증책임을 피해자에게 요구하는 바람에 의료기관이 면책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의사가 잘못 시술했다는 사실을 환자 측이 입증하기가 좀 어려운가.

지난 12일 가습기살균제 사건으로 기소된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 임원들이 1심 법원에서 무죄를 받으면서 입증책임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소비자 측이 입증하지 못했다는 판결이 지나치게 소비자에게 가혹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반대로 ‘살균제로 피해가 발생한 게 아니다’라는 증거를 제조사가 제시하도록 해야 사회정의에 부합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9월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줄여주는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냈다. 제정안에 따르면 피해자는 밝힐 수 있는 데까지만 개략적인 피해를 주장하면 된다. 반면 제조사는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하고, 정당한 이유가 없으면 피해자 주장을 진실로 인정할 수 있게 했다. 날로 복잡해지는 정보기술(IT) 기기나 전문적 의약품·의료기, 화학제품 등이 늘어나는 현대사회에서 소비자의 방어권은 강화되는 쪽으로 가는 게 맞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처럼 피해자가 광범위할 경우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아픈 내 몸이 증거”라는 피해자의 절규만으로 입증책임이 완성되는 세상이 속히 오면 좋겠다.

-경향신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18.html
kolaswqetsrq 11.02 23:59
◇ “집콕 지친다” 5인 미만 취미수업 하늘의 별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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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콕 지친다” 5인 미만 취미수업 하늘의 별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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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그림... 일일 강습에 커플들 몰려

서울 도봉구에서 캔들(양초) 공방을 운영하는 장윤지씨는 이달 들어 하루도 쉬지 못했다. 지난달 초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적용된 이후 손님이 4배나 늘었기 때문이다. 장씨는 1인당 5만원을 받고 향초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

장씨는 “원래 사흘에 한 번 정도 문의가 왔었는데 요즘에는 하루에 3~4건씩 온다”며 “일주일에 10명 남짓했던 손님도 40여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주 고객층은 ‘소셜미디어와 포털 검색을 보고 왔다’는 젊은 커플들이다. 장씨는 “손님 10명 중 8명은 밖에서 만날 곳이 없어 찾아오게 됐다고 하더라”고 했다.

코로나 여파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서너 명 안팎의 ‘소규모 모임’이 빠르게 늘고 있다. 데이트 공간 역할을 톡톡히 했던 카페들이 일제히 매장 영업을 중단해 마땅히 갈 곳이 사라졌고 ‘5인 이상 집합 금지’로 단체 만남까지 제한된 탓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책·음식 만들기와 같은 취미 수업부터 헬스·필라테스 개인 강습 등 다양한 모임들이 빠르게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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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윤모씨는 지난달 여자 친구와 함께 ‘북바인딩(책 제본)’ 수업을 예약하려다 결국 실패했다. 한 달치 예약이 모두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윤씨는 “‘집콕 데이트에 지친 커플들이 이런 ‘원데이 클래스(일일 수업)’에 많이 몰리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의 푸드 스타일링수업 ‘스튜디오 페이지’ 운영자 김지현씨는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수업을 개설하면 예약 마감에 한 달쯤 걸렸는데 최근엔 이틀이면 끝난다”며 “수강생들에게 물어보니 ‘코로나를 계기로 돌아보니 지금 하는 일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인다거나,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서 신청한다’고들 하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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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수강생을 연결해주는 앱 ‘숨고’에 따르면, 작년 2분기(4~6월) 58만건이었던 그림·요리 배우기 같은 취미 수업 개설 건수는 3·4분기에 각각 80만, 89만건으로 늘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 장기화로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인 데다 모임 등 사회적 활동도 줄었다”며 “미술·공예와 같은 취미 수업을 통해 심리적 안정과 함께 성취감을 얻을 수 있어 인기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_11.html
kolaswqetsrq 11.03 00:00
◇ 정장에 발목양말 신으면 안 되나요?

◇ 정장에 발목양말 신으면 안 되나요?

▶ 남자 양말 길이 선택법

직장인 김모씨는 최근 정장 바지에 발목이 드러나는 양말을 신었다가 직장 상사에게 “예의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김씨는 “평상시 TPO(시간·장소·상황)에 맞게 옷을 입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당황했다”며 “양말 길이도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줄 몰랐다”고 했다.

과거엔 남자 양말의 종류가 단조로웠다. 최근엔 남자 양말도 긴 양말부터 발목, 페이크 삭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남자의 양말, 어떤 장소에서 어떤 길이가 적당할까.

패션 칼럼니스트 이헌씨는 “남자가 구두를 신을 때는 어떤 구두인지에 관계없이 살이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게 신사 패션의 불문율”이라고 했다. 이씨는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약간의 변칙이 생겨서 아예 양말 없이 구두를 신는 스타일링도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했다.

구두에 양말을 신을 때는 앉았을 때도 살이 보이지 않도록 목이 긴 양말을 고르는 게 좋다. 색깔은 구두나 양복바지와 맞추거나 그보다 조금 진한 색을 추천한다. 양말을 안 신기로 한 경우에도 비장의 무기는 있다. 발에 땀이 많다면 발바닥만 감싸고 구두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덧신 모양의 ‘페이크 삭스’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반바지를 입을 때는 발목 정도까지 오는 양말이 보기에 안정적이다. 이씨는 “반바지를 입었는데 짧은 양말을 신으면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이라며 “나 같은 사람은 지하철을 타고 가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안절부절못한다”고 했다.

두툼한 스포츠 양말은 푹신한 착용감과 땀 흡수를 잘하도록 설계돼 있다. 운동이나 야외 활동을 위해 양보하자. 운동할 때 열이 많이 나는 사람의 경우 이때 발목 양말을 신으면 좋다. 샌들이나 슬리퍼에는 양말을 안 신는 게 보기에 자연스럽다.

이씨는 “최근 연예인 봉태규씨가 치마를 입고 나왔듯 자신이 패션으로 잘 소화하기만 한다면 뭐든지 불가능은 없다”면서도 “일반인의 경우 오랜 규칙을 거스르면서도 촌스럽거나 어색해 보이지 않으려면 상당한 ‘멋 내공’이 필요하기에 규칙을 지키는 편이 안전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15.html
kolaswqetsrq 11.03 00:00
◇ 트럼프의 뒷모습

◇ 트럼프의 뒷모습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름다운 퇴장’을 거론할 때 자주 인용되는 시인 이형기의 시 ‘낙화’ 첫 구절이다. 이 시구는 적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집권 4년은 물론 대선 후 ‘79일간 권력이양기’에 그가 보여준 모습은 아름다움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당선자에게 축하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추악함의 정점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 불참이다. 트럼프는 20일 오전(현지시간) 열릴 취임식 참석 대신 대통령 전용 헬기 마린원을 타고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셀프 환송’을 연다고 한다. 그 후에는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플로리다주 거주지 마러라고로 떠난다. 현직 대통령의 취임식 불참은 역대 44명 대통령 가운데 2대 존 애덤스, 6대 존 퀸시 애덤스, 8대 마틴 밴 뷰런, 17대 앤드루 존슨, 28대 우드로 윌슨 5명밖에 없던 일이다. 취임식 패싱은 트럼프의 마지막 ‘몽니’다. 화합과 통합의 상징인 취임식에 불참함으로써 갈라진 미국에 기름을 부으려는 의도다.

“당신의 성공이 곧 우리나라의 성공이다. 나는 당신을 열렬히 응원한다. 행운을 빈다.” 재선에 실패한 41대 조지 HW 부시가 떠나기 전 후임자인 빌 클린턴에게 남긴 손편지 내용이다. 손편지 쓰기는 부시 전임자인 로널드 레이건이 시작한 아름다운 관행이다. 트럼프도 버락 오바마로부터 손편지를 받았지만 바이든에겐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오바마의 손편지는 “우리의 선조들이 피 흘려 싸워 지킨 법의 지배와 권력 분립, 평등권과 인권 등과 같은 민주적 제도와 전통의 수호자가 되도록 해준다”는 대목 때문에 트럼프의 실패를 예고한 것으로 관심을 끌기도 했다. 트럼프는 취임 후 오바마 손편지를 자랑했지만 그의 충고를 새겨듣지는 않았다.

트럼프는 역대 가장 실패한 대통령상을 남겼다. 대선 불복, 의회의사당 점령 선동, 하원 탄핵 2차례 가결은 초유의 기록이다. 잘못된 지도자의 선택이 가져온 대가는 컸다. 하지만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뿌린 분열의 씨앗 때문이다. 트럼프는 떠나지만 ‘트럼프 유령’은 여전히 전 세계를 배회할 것이다.

-경향신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42.html
kolaswqetsrq 11.03 00:01
◇ 한국 절들은 왜 산에 있을까?

◇ 한국 절들은 왜 산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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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유네스코는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을 인류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그런데 등재 명칭 9글자에 산사와 산지 승원이라는 산과 관련된 표현이 두 번이나 등장한다. 한국사찰의 특징을 산사로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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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진짜 그럴까? 과연 국교가 불교였던 신라나 고려의 왕들은 고승을 찾아 산사로 갔을까? 그러다가 여차해서 정변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붓다 당시 인도에 산사는 없었다. 오늘날도 밥을 해 먹는 건, 여간 많은 시간과 관련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1인 가구는 되도록 밖에서 음식을 해결하며, 먹는 횟수 자체를 줄인다. 붓다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해서 승려는 하루에 1끼만 먹고, 신도들의 보시를 통해 먹는 것을 해결하도록 제도화한다. 이는 출가한 승려가 시간의 낭비 없이 수행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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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에게 음식을 공급받기 위해 사찰은 마을과 멀어서는 안 된다. 때문에 율장의 방사건도(房舍犍度)에는 사찰의 위치를 마을과 멀거나 가깝지 않은 곳으로 규정하고 있다. 가까우면 소란스럽고, 멀면 음식 공급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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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불교에서도 최고의 사찰은 모두 도시에 있었다.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인 황룡사는 진흥왕이 새롭게 왕궁을 건설하던 과정에서 황룡이 나타나자 사찰로 바꾼 곳이다. 왕궁지가 산에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고려 시대에도 수도를 대표하는 사찰인 흥왕사(興王寺)나 영통사(靈通寺) 등은 모두 개경 안에 있었다. 그래야 국왕과 고승의 교류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산사란 대체 무엇일까? 불교 시대에는 절이 너무나 많다 보니, 도시 사찰이 포화되어 산에까지 절이 들어서게 된다. 또 명상을 중시하는 선종에서는 도시보다 산에서 자급자족하는 방식을 택하곤 했다. 마치 중세 유럽의 가톨릭 수도원이나, 우리나라의 기도원 같은 곳을 생각하면 되겠다.

이런 포화상태에서 조선이 들어서자, 불교는 하루아침에 전 왕조의 이데올로기로 낙인찍히며 탄압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때 집중포화를 당한 곳은 단연 도심 사찰이다. 즉 유럽으로 말하면, 도시 성당은 파괴되고 산속의 수도원만 남은 셈이라고나 할까!

그럼 왜 산사는 살아남은 것일까? 여기에는 일차적으로 산사라는 특성상 파괴하러 가기도 어렵고, 또 굳이 없앨 필요도 없는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선 정부 입장에서도 필연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다 보니 물류 유통이나 역참 운영에 있어, 산 안에 중간 거점이 필요하다. 또 전쟁이 발발할 때, 산사는 진지와 같은 방어기지의 역할로 전용될 수 있다. 이것이 산사가 남게 되는 실질적인 이유이다.

불교 시대의 주류였던 도시 사찰이 사라지고 산사만 남자, 오늘날 불교는 산사가 정석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건물로 우리는 흔히 부석사 무량수전과 수덕사 대웅전을 꼽고는 한다. 그러나 고려를 대표하는 최고 건축물은 당연히 수도인 개경에 있지 않았을까? 개경에서 볼 때, 부석사와 수덕사의 위치는 변방의 시골에 불과하다. 즉 진짜 대단했던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 때문에 대단하게 인식된 것이라는 말이다. 때문에 한국 불교의 전통이 산사로 규정되는 것은, 고즈넉한 동시에 역사적인 비극을 내포한다고 하겠다.

중세까지 종교시설은 도시의 가장 한복판에 위치했다. 이는 유럽의 성당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사찰은 도시의 흔적마저도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이는 건축에서, 나무를 재료로 하는 짜맞춤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목조는 화재의 취약성도 크지만, 건물의 개변 역시 용이하다. 즉 화재로 인한 소실과 용도변경이 쉬웠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산사는 오늘날의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동시에 비주류의 미감인 셈이다. 마치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이 소실되자, 이궁인 창덕궁이 258년간 정궁의 역할을 수행한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 때문에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이점 또한 산사와 매우 유사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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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현 스님(중앙승가대 교수)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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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11.html
kolaswqetsrq 11.03 00:02
◇ 요즘 명함엔 과장님·부장님 없어요, 기업들 직급파괴

◇ 요즘 명함엔 과장님·부장님 없어요, 기업들 직급파괴

최근 SK이노베이션 직원들과 처음 인사하는 다른 회사 사람들은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신입부터 부장까지 명함의 직급란에 모두 ‘PM’이라 적혀 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부터 기존 사원부터 부장까지 비(非)임원 네 직급을 ‘PM(Profession Manager)’으로 통일했다.

앞서 2019년엔 상무~부사장 임원 직급은 부사장으로 단일화했다. 회사에 PM-부사장-사장 세 직급만 남게 된 것이다. “명함만 받아선 누가 선임인지, 회사에서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에 ‘직급 파괴’ 바람이 거세다. 예전엔 ‘ΟΟΟ님’ ‘ΟΟΟ 프로’처럼 호칭을 바꾸는 게 유행이었는데, 최근엔 ‘사원·대리·과장··· 상무·전무’로 이어지는 전통적 직급 체계를 없애고 있다. 한화그룹은 계열사별로 기존 직급을 단순화하는 방식의 새로운 인사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새로 붙이는 이름도 제각각이다. GS칼텍스는 지난해 과장~부장을 ‘책임’이라는 단일 직급으로 했다. 현대차는 1년여 전 사원~대리를 합쳐 ‘매니저’라 부르고 있다. 포스코는 올해부터 임원 내 상무·전무 등의 직급을 완전히 폐지하고, 맡은 보직에 따라 ΟΟΟ 본부장 등으로 하기로 했다.

‘직급 파괴’는 연공서열 문화를 없애고, 인력 배치를 좀 더 유연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대기업 인사(HR) 담당 임원은 “예전엔 과장급 아래에 차장급을 배치하는 게 껄끄러웠지만 이젠 자연스러워졌다”며 “직급이 아닌 성과에 따른 보상도 정착되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08.html
kolaswqetsrq 11.03 00:02
■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4편

■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4편

여러 야사를 보면 정충신 장군의 인간성도 알 수 있다. 어린 날 거둬주었던 권율을 아버지처럼 여겼으며, 학문으로 인도해준 이항복이 유배지에서 중풍에 걸렸을 때는 유배지에서 함께 생활하며 돌봐줄 정도였다. 또한 이괄의 난에서 공을 세우고도 당쟁을 일삼는 대신들 때문에 그를 챙겨준 ‘장만’ 장군을 끝까지 보필하며 따라다니기도 했다. 은혜를 기억하고 스스로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덕장(德璋)이라는 칭호까지 들을 정도로 인심을 얻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재주가 뛰어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에 관한 많은 설화가 전해진다. ‘계서야담’에는 출생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청구야담’과 ‘해동야서’에는 이괄의 난 때의 활약상이, ‘동야휘집’에는 모든 설화가연대순으로 편집되어 전해지고 있다. 문집에 《만운집》, 저서에 이항복이 귀양갈 때 정충신이 수행하며 당시의 상황을 일기로 기록한《백사북천일록》, 《금남집》 등이 있다.

또 한편, 성품이 청렴하여 비리(非理)라는 것을 몰랐기에 가난을 벗어나질 않았다. 심지어 충무공 정충신장군이 유배를 떠났을 때는 가족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그는 부를 축척하고 권력에 아부하는 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전쟁에서는 지장(智將)으로 적진에서는 외교관으로 관리로서는 청렴함을 다했다. 정충신의 충언(忠言)대로 중립외교를 유지하고 북방의 군사를 신경 썼더라면 병자호란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운 좋게 신분상승을 이룬 인물이 아니고 노력과 성실을 바탕으로 한 유능함과 영특함으로 신분이 상승될 수 있다는 좋은 모범 사례가 되었다.

정충신의 아버지 묘는 광주에 있으나, 그는 서산 땅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그의 아들들에게 유택(幽宅:무덤)을 서산으로 해줄 것을 친히 당부했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서산은 태어난 곳보다 부모가 묻힌 곳보다 더 귀한 끌림이 있는 곳이었던 것 같다. 장군의 묘는 마힐산의 국사봉 중턱에 부인과 함께 나란히 안장되어 있다.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는 평생을 몸과 마음을 다 하여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충성심으로 가득한 인물이었다. 그의 넋이 대요리 산기슭에서 아직도 이 나라를 걱정하며 있는 듯하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4_11.html
kolaswqetsrq 11.03 00:03
■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3편

■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3편

정충신이 노비출신이었기에 대신들 중에는 그를 업신여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워낙 총명하여 중국어와 일본어도 능숙하여 명나라와 왜를 오가며 국제 정세를 판단하는 능력도 뛰어난 외교통이었다. 총애하던 권율의 사위가 되고 이항복과는 동서지간이 되었다. 권율의 세 사위는 신립, 이항복, 정충신이다. 권율장군의 인물 보는 안목은 참으로 뛰어난 것 같다.

청의 침략에 방비해야 한다는 정충신의 충고는 무시되고 다시 지방관직으로 밀려났다. 광해군 때는 그나마 후금(청)과의 관계에서 실리외교를 하자는 북인들이 집권하고 있었기에 충무공 정충신 장군의 중립외교관은 비판받지 않았지만, 인조반정으로 들어선 서인정권에서는 탄압이 이어진 것이다. 평안도병마절도사 겸 영변대도호부사가 되었지만, 병을 얻어 관직에서 물러나 요양을 떠났다. 결국 후금의 침략으로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났다. 그는 늙은 나이에도 부원수로 임명되어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전쟁은 끝났지만 중앙관리들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정충신을 귀향 보내곤 했다. 청과 외교를 끊는 것은 전쟁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는 것이 이유이다.

청나라와의 소통 필요성을 주장하며 화의를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당진에 유배되었고, 다시 장연으로 옮겨졌다. 유배에서 풀려난 이듬해 포도대장에 까지 올라 천민으로서는 최고의 성공을 이루어냈다. 뒤이어 경상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다시 지방으로 보내졌으나, 1636년 3월 그가 우려한 대로 조선의 조정에서는 청나라(후금)를 배척하는 주전론(主戰論)이 득세하여 청과 단교(斷交)하는 사신을 보냈고, 후일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란을 겪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여러 번의 역모사건에 억울하게 휘말릴 때마다 인조가 보호해 주긴 했으나, 충무공 정충신 장군의 외교술과 정보탐색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더 이상 없었다. 정충신의 병이 심해지자 왕이 친히 의관(醫官)에게 명하여 치료에 만전을 기하게 하였으나 효험을 보지 못하고, 1636년 5월 사망하였다. 선조는 내시로 하여금 호상(護喪:장례를 주관)하게 하고 어복(御服)을 내려 수의(禭衣)로 하게 했으며, 관청에서 주도하여 장례를 후하게 치르도록 명하였다.

1685년(숙종 11년) 충무공(忠武公) 시호를 받았다. 충남 당진군 정미면에 거주하던 5세손 정세오(鄭世奧)가 사당을 지었다가 1897년 9세손 정세칠(鄭世七)이 현 위치인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로 옮겨지었다. 1969년에 진충사(振忠祠)로 개칭하여 지금까지 배향(配享:신주를 모심)하고 있다. 이곳에는 중요민속자료 36호로 지정된 유품 5점을 비롯해 그의 유품들을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으며, 해마다 양력 4월 25일 유림들과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진충사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06호로 지정받았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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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04
■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2편

■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2편

정충신이 나중에 임금의 총애까지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전쟁에 공을 세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평소에 자신에게도 기회가 오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자기 개발에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부모와 세상을 원망하고 한탄하지만, 정충신과 같이 언제나 노력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는 자에게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않고 반드시 잡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정충신의 사례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귀감이 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1608년 조산보만호에 임명되어 무관으로 활동했고, 1614년(광해군 6년)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2등(衛聖原從功臣二等)에 책록되었다. 1618년에는 인목대비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다가 북청으로 유배를 가는 스승인 이항복과 함께 북청으로 동행하였다. 1619년 명나라의 요청으로 도원수 강홍립이 출병하였으나 후금에 대패하는 일이 일어나자 여진족의 정황에 밝았던 그가 다시 등용되었다. 워낙 외교술까지 좋았기 때문에 무신이면서도 북방민족과의 외교까지 맡아 일했다.

1621년(광해군 13년) 만포첨사로 국경을 수비했으며, 이 때 왕명을 받고 여진족 진에 들어가 여러 추장을 만나기도 하면서 외교가로서의 면모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후금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후금의 침략에 대비하면서 한편으로 조선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였다. 이후 안주목사 겸 방어사가 되었을 때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났으나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다.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났다.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괄은 12000명의 대병력으로 밀고 내려와서 한양까지 점령해 버렸다. 원래 이괄과 남이홍 정충신은 친한 사이였지만 임무에 강직한 정충신과 남이흥은 한양까지 이괄을 추격했다.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전부대장(前部大將)으로 활약하며 겨우 2천명의 병사로 이괄을 계략에 빠트린 후 황주와 서울 안현에서 싸워 이겨서 진무공신(振武功臣) 1등으로 ‘금남군(錦南君)’에 봉하여졌다. 광주광역시의 옛 전남도청 앞에서 유동 4거리 가는 길인 ‘금남로’는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반란군에게 한양까지 빼앗겼던 인조는 되돌아와서 이들을 치하했다.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앞장선 공으로 충청남도 서산 일대의 토지를 사패지(賜牌地:나라에서 하사받은 땅)로 받게 되었는데, 그의 후손이 서산에 뿌리를 내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11.html
kolaswqetsrq 11.03 00:04
■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1편

■ 노비에서 포도대장까지 1편

‘충무공’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부분 이순신장군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충무공’이라는 시호(諡號:사후 추증)를 받은 사람은 이순신 외에 권율, 김시민, 남이장군 그리고 정충신 등이 있다. 충무공 정충신장군은 한마디로 노비에서 포도대장에 까지 오르는 인생역전을 이룬 인물로, 강직하고 청렴하며 인간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정충신(鄭忠信:1576년~1636년)의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晚雲), 본관은 금성 정씨(錦城)이다. 고려의 명장 정지(鄭地)의 후손인 아버지 정윤은 광주 향청(鄕廳)의 좌수(座首)였는데, 어느 날 밤, 무등산 청룡과 북악의 백호가 품에 안기는 꿈을 꾸고 집안의 식비(食婢)와 동침하여 낳은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 영천 이씨가 노비 신분이라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노비가 되는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때문에 노비 신분이 되었다. 충신(忠信)이라는 이름은 그의 9대 할아버지인 경렬공 정지(鄭地)장군과 같은 훌륭한 충신(忠臣)이 되라는 뜻에서 그를 아끼던 이항복이 지어준 이름이라 한다. 정충신은 17세 때 임진왜란 중 광주목사 권율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권율이 의주로 피신해 있는 선조에게 올릴 장계를 전달할 사람을 모집했으나 왜군이 득실거리는 전장을 뚫고 위험한 임무에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17세의 어린 정충신이 자청(自請)해 나서고는 왜군으로 점령당한 지역을 단신으로 뚫고 선조가 머물고 있던 행재소(行在所)에 무사히 도착하여 임무를 완수하였다. 선조는 그 공으로 정충신을 노비에서 면천시켜주었다. 이 후에도 나이는 어렸지만 민첩하고 영리하여 권율의 신임을 받으며, 적지(敵地)를 정찰하는 연락책으로 활동하였다.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이 총명한 그를 아들같이 사랑하며 사서(四書)를 가르쳤는데, 행재소에서 실시하는 무과에 응시하여 병과로 합격하여 무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신분이 상승되고 단번에 출세를 한 사람은 교만해지고 초심을 잃는 경우가 많은데, 정충신은 항상 겸손했고, 키는 작지만 씩씩했고 덕장(德璋)이라는 칭송을 들었으며, 민간에 많은 전설을 남겼다. 천문·지리·복서·의술 등 다방면에 해박하고, 청렴하기로도 이름이 높았다.

- 2편에 계속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11.html
kolaswqetsrq 11.03 00:05
◇ 다문화 시대의 ‘개인 맞춤형’ 군대

◇ 다문화 시대의 ‘개인 맞춤형’ 군대

미군은 일찍부터 장병들에게 특정 종교를 위한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할랄(무슬림)·코셔(유대교인) 인증 전투식량(MRE)까지 갖추고 있다. 한국군에도 미군처럼 무슬림 식단이 도입된다고 한다. 국방부는 올해부터 무슬림(이슬람교도) 병사에게도 종교를 고려한 맞춤형 음식을 제공할 방침이라고 한다.

무슬림 병사가 맞춤형 식단을 선택할 경우 자연스럽게 자신의 종교가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군에 복무 중인 병사 가운데 자신이 무슬림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사례는 1건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군 내에도 다문화가정 출신 입영자를 중심으로 무슬림 병사가 상당수 있으나 이를 밝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차별을 의식한 게 아닌가 싶다. 국방부는 다문화가정 출신 장병 현황을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 부대관리 훈령’ 제122조에도 “다문화 장병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으로서 별도의 관리 대상이 아니며 다른 장병과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다문화가정 자녀 동반입대병 제도를 2019년 말 폐지한 것도 신청자가 다문화가정 출신임을 밝혀야 한다는 점에서 차별 요소가 있다고 병무청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한국군도 다문화 물결에 예외일 수 없다. 국가수호에 있어서 ‘민족’이라는 협소한 개념이 ‘국민’이라는 공통의식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다문화 시대를 반영해 장병 임관(입영) 선서문에서 충성 대상은 ‘민족’이 아닌 ‘국민’이다. 군 내에는 이미 병사뿐만이 아니라 다문화가정 출신 군 간부도 상당수가 근무하고 있다.

국방부가 밝히고 있는 ‘다문화 장병’의 범주는 외국인 귀화자, 북한이탈주민 가정 출신 장병, 국외 영주권자 입영 장병, 결혼이민자 등이다. 1991년생까지는 인종, 피부색으로 외관상 명백한 혼혈인은 5급 제2국민역으로 군복무가 면제됐다.

그러다 한국 국적이면 모두가 병역의무를 지도록 2010년 병역법이 개정된 이후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군 입대가 속속 늘기 시작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다문화가정 출신 징병검사 대상이 3000여명 수준이었고, 2028년에는 다문화가정 출신 현역병 수가 1만2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 가정 출신도 다문화 장병 범주에 포함돼 있다. 대한민국 병역법을 보면 탈북 주민 가족이 한국에 정착한 후 태어난 자녀는 군 입대 대상이다. 탈북 청소년은 병역의무가 면제되지만, 본인이 원할 경우 군 입대가 가능하다. 앞으로는 탈북 청소년이라 하더라도 입영 연령이 되면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해당자가 한 해 200명 안팎이지만 갈수록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출산율 저하로 다문화가정 출신 병사들은 귀중한 병력 자원이다. 대신 군은 다문화가정 출신이 이슬람교를 포함한 소수종교를 믿는 경우에도 종교활동 등의 여건을 보장해줘야 한다. 요새는 다문화가정이 아니더라도 종교를 다양하게 선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미군에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는 물론 유대교와 이슬람교, 힌두교 군종도 있다. 국내 개신교계에서 이단으로 분류하고 있는 모르몬교 군종도 포함된다. 한국군에는 군종장교를 둘 수 있는 종교가 개신교와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 4개뿐이다. 한국군에서는 신자나 신도가 일정 비율 이하면 군종장교를 둘 수 없지만, 외국군의 경우에는 종교나 종파 비율을 크게 따지지 않는 편이다.

과거에는 다문화가정 출신 장병에게 차별화된 관심과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이 때문에 군의 다문화 장병에 대한 관리의 핵심도 이들을 차별대우하지 않겠다는 데 모아졌다. 그러나 이제는 이들의 전투력 향상을 위한 여건 조성을 위해 ‘맞춤형’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것이 굳이 다문화 장병들만 대상은 아닐 것이다.

-경향신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41.html
kolaswqetsrq 11.03 00:06
◇ 남인순, 의원 뱃지가 당신의 트로피가 아니다

◇ 남인순, 의원 뱃지가 당신의 트로피가 아니다

우리를 즉각 자유케 하는 건 진리보다 권력이다. 그래서 약자들은 약자의 대표를 국회로 보낸다. 노동자는 노동자를, 흑인은 흑인을, 여성은 여성을. 남인순의 ‘더불어민주당 3선 국회의원 배지’는 여성의 정치 참여를 지지한 모두의 것이다. 여성 운동 오래 한 대가로 받은 개인 공로상이 아니다. 과거 여성들의 분투, 미래 여성들의 열망이 법제도로써 쟁취한 것이다.

남 의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끈끈한 동지였다. 지난해 박 전 시장이 비서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것을 시장 젠더특보 임모씨에게 유출한 사람으로 검찰은 남 의원을 지목했다. 그는 피소 사실을 몰랐으므로 유출할 수 없었다고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부인했다. “박 시장 관련 불미스러운 얘기가 도는데 무슨 일인가”라고 물었을뿐이니 죄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 질문으로 남 의원은 이미 무고하지 않다. 1분에서 2분. 피소 사실이든, 돌아다닌 소문이든, 남 의원이 여성단체에서 전해 듣고 임씨에게 전화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남 의원은 고민하지 않았다. 자신의 말이 임씨를 거쳐 박 전 시장 귀에 들어가면 피해자가 얼마나 위험해질 것인가에 무신경했다.

궁금하면 불쑥 질문할 수 있는 건 대단한 권력이다. 남 의원이 함부로 건 전화 한 통은 피해자를 해쳤다. 성추행 사건은 은밀히 해결될 가능성을 잃었고, 피해자는 일상을 잃었다. 가해자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은 영원히 사과받을 수 없음, 끝내 단죄할 길 없음으로 귀결됐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 고발은 일생을 거는 일이다. 그걸 “불미스러운 얘기”라고 공연히 부름으로써 남 의원은 자신의 걱정이 여전히 누구를 향해 있는가를, 스스로를 누구와 동일시하는가를 들키고 말았다. 다급할 때 튀어나오는 게 본심이라던가. 약속한 많은 것을 남 의원은 배반했다.

“남인순이 그랬을 리 없다”고 아무도 그를 두둔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여성들의 연대가 틈을 보이자 어김없이 어른거리는 것은 차별과 혐오다. “너희가 고작 그 수준이지.” “너희 따위가 감히 정치를.”

가장 수구적인 세력이 가장 노골적으로 남 의원을 조롱한다. 그를 제물 삼아 여성 운동을 신나게 후려갈긴다. 남인순이 상징하는 ‘가치’를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묵인하고 피해자를 헐뜯은 성폭력 공범들은 어느새 안전해졌다. 민주당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무공천 약속을 뒤집은 사실도 지워졌다.

이 모든 퇴행과 참혹에 남 의원은 거리를 둔 채 침묵하고 있다. 11일 의정활동보고서를 내고 “새해에도 살림정치, 민생정치를 펼치겠다”고 SNS에 쓴 걸 보면, 탄탄하다는 지역구부터 챙기자고 작심한 것 같다. 끔찍하게 무책임하다. 다시 말하건대, 남 의원의 정치적 성취는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다. 성취가 훼손당하게 내버려 둘 자유가 없다.

한때의 지지자들이, 무엇보다 피해자가 남 의원을 용서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여태 제대로 사과하지 않음으로써 두 번 배반했다. 차마 그의 이름을 박박 지우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중의 고통에 빠뜨렸다. 정말로 괴물이 되고 싶지 않다면, 남 의원은 나와서 사죄부터 하라. 이마에 피가 흐를 때까지 고개를 숙이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모든 것을 부디 바로잡으시라.

-한국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50.html
kolaswqetsrq 11.03 00:08
봉생마중蓬生麻中 - 삼밭의 쑥은 바르게 자란다.

봉생마중(蓬生麻中) - 삼밭의 쑥은 바르게 자란다.

쑥 봉(艹/11) 날 생(生/0) 삼 마(麻/0) 가운데 중(丨/3)

친구를 사귈 때나 이웃의 중요성을 말 할 때 환경을 강조한 말은 많다. 요즘의 이웃이야 아파트 생활이 많아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게 되었지만 공자의 가르침부터 보자. 마을의 풍속이 질서를 지키며 화목하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며(里仁爲美/ 리인위미) 이러한 마을을 잘 골라서 거처하지 않는다면 지혜롭지 못하다고 했다. 중국 宋季雅(송계아)라는 사람이 집값의 열배나 주고 이웃을 산 百萬買宅 千萬買隣(백만매택 천만매린)과 똑 같다. 앞서 소개한 近墨者黑(근묵자흑)은 사귀는 친구에 의해 바른 길로도, 나쁜 길로도 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삼밭 가운데(麻中) 자라는 쑥(蓬生)이라는 이 성어는 따라붙는 대구 不扶自直(불부자직)과 같이 쓰면 뜻이 명확해진다. 죽죽 곧은 삼밭에 있으면 원래 구불구불 자라는 쑥이 붙들어주지 않아도 곧게 된다는 의미로 역시 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뜻한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로 性惡說(성악설)을 주창한 荀子(순자)의 저작 ‘순자’에 처음 실렸다.

첫 부분 勸學(권학) 편의 내용을 요약해보자. 남쪽 지방에 사는 蒙鳩(몽구)라는 새가 깃털로 둥지를 만들어 갈대 잎에 매달아 두었는데 바람에 가지가 부러져 알이 깨지고 말았다. 또 서쪽 지방에 자라는 射干(사간)이란 나무는 길이가 겨우 네 치밖에 되지 않지만 산꼭대기에 있다 보니 산 아래 백 길의 연못을 내려다본다.

몽구 새는 둥지가 튼튼해도 매어놓은 갈대가 흔들리기 때문에 알을 깨뜨렸고, 사간 나무는 줄기가 짧아도 서 있는 자리가 높기 때문에 멀리 볼 수 있다. 이런 예를 들고 말한다. ‘쑥이 삼밭에서 자라게 되면 떠받쳐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며, 흰 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모두 검게 된다(蓬生麻中 不扶而直 白沙在涅 與之俱黑/ 봉생마중 불부이직 백사재열 여지구흑)’. 涅은 개흙, 열반 열.

朱子(주자)의 小學(소학)과 기타 경전 중에서 알기 쉬운 내용들을 추린 아동용 四字小學(사자소학)에서는 朋友(붕우)편에 약간 다른 표현으로 나온다. ‘쑥이 삼 가운데서 자라나면 붙들어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지고, 흰 모래가 진흙에 있으면 물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더러워진다(蓬生麻中 不扶自直 白沙在泥 不染自汚/ 봉생마중 불부자직 백사재니 불염자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89.html
kolaswqetsrq 11.03 00:09
외유내강外柔內剛 – 겉으로 부드러우나 속으로 꿋꿋하고 굳셈

외유내강(外柔內剛) – 겉으로 부드러우나 속으로 꿋꿋하고 굳셈

바깥 외(夕/2) 부드러울 유(木/5) 안 내(入/2) 굳셀 강(刂/8)

사람의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일상의 습관에서 더 많이 만들어진다. 좋은 습관으로 성격을 다스린다면 운명까지 바꿀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사람의 성격을 말할 때 많이 쓰는 표현이 있다. 겉보기에 부드럽고 마음도 어질어 도통 악의를 보이지 않는 사람을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다고 한다.

속마음은 의외로 강단이 있어 고집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성격을, 겉으로는 부드럽고 순하게 보이나(外柔) 속은 굳고 굳세다(內剛)란 표현을 쓴다. 이 성어를 앞뒤로 바꿔가며 반대의 뜻은 外剛內柔(외강내유)라 하고 外剛內剛(외강내강)이나 外柔內柔(외유내유) 등 갖가지 성격을 나타낼 수 있다.

唐(당)나라 盧坦(노탄, 748~817)이란 사람은 자가 保衡(보형)이고 河南(하남) 洛陽(낙양) 출신의 강직한 관리였다. 황제가 병으로 사망한 절도사 후임으로 姚南仲(요남중)이라는 사람을 임명하자 군대 감독관인 薛盈珍(설영진)을 비롯하여 많은 대신들이 반대했다. 글만 읽어 세상을 모르는 서생이라 그 자리에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때 노탄이 나서서 강력히 비호했다.

‘요남중은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강한 외유증강의 인물이다(姚大夫外柔中剛/ 요대부외유중강).’ 歐陽修(구양수) 등이 편찬한 ‘新唐書(신당서)’ 노탄전에 실린 내용이다. 이에 앞서 東晉(동진)의 시중을 지낸 甘卓(감탁, ?~322)이란 사람을 표현하면서 外柔內剛(외유내강)이라 나타냈다고 ‘晉書(진서)’에 나온다.

‘道德經(도덕경)’에서 老子(노자)는 일반적으로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겨낸다고 일관되게 강조한다. 몸도 부드러워야 건강하지만, 마음이 유연해야 정신도 몸도 건강해 진다며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겨 낸다(柔弱勝剛强/ 유약승강강)’고 했다. 36장 微明(미명)에서다.

76장 戒强(계강)과 78장 任信(임신)에도 이어진다.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연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堅強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견강자사지도 유약자생지도).’ ‘이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굳고 강한 것을 치는 데 물보다 나은 것은 없다(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強者莫之能勝/ 천하막유약어수 이공견강자막지능승).’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겨낸다고 해서 아무런 준비가 없어도 막아낼 수가 있을까. 속으로는 실력을 갖추고 부드럽게 대해야 함부로 덤비지 못한다. 강자가 약자를 대할 때도 힘으로 누르기 보다는 부드러움으로 감싸야 진정으로 승복한다. 이럴 때라야 진정 柔能制剛(유능제강)이 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51.html
kolaswqetsrq 11.03 00:09
자한사보子罕辭寶 - 자한이 보물을 사양하다, 물질을 탐하지 않는 깨끗한 마음가짐

자한사보(子罕辭寶) - 자한이 보물을 사양하다, 물질을 탐하지 않는 깨끗한 마음가짐

아들 자(子/0) 드물 한(网/3) 말씀 사(辛/12) 보배 보(宀/17)

사람은 누구나 보물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귀한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희귀한 광물 다이아몬드나 루비, 사파이어 등과 같은 보석일 수도 있고, 으리으리하게 꾸며놓은 집이나 풍요를 가져다주는 땅일 수도 있다. 이런 비싼 것이 없는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웃음을 머금게 하는 귀여운 자식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말썽만 부리는 아들딸보다는 ‘무자식이 상팔자’라며 걱정 없는 것이 보물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보물을 가까이에서 찾지 않고 다른 곳에서 눈을 부릅뜬 채 찾고 있다. 위인들은 현재의 시간이 더 없는 보물이라 하고 나의 두 팔이 보물이라 하기도 한다. 시간을 아껴 부지런히 일을 하라는 뜻이다.

이런 여러 가지 보물 중에 子罕(자한)이라는 사람은 보물을 사양하는 것(辭寶)이 보물이라고 하여 보물 중에 최고라는 칭찬을 받는다. 論語(논어)에 자한편이 있어 제자로 잘못 알기 쉬우나 여기선 ‘공자가 드물게 말했다’는 뜻이고, 보물을 사양한 사람은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宋(송)나라의 현인 樂喜(낙희)를 말한다.

그는 현명하고 재주가 많아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는데 토지와 민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벼슬 司城(사성)을 맡았기 때문에 司城子罕(사성자한)이라고 불렸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 襄公篇(양공편)에 유래가 실렸고 ‘韓非子(한비자)’의 喩老(유로)편이나 唐(당) 李澣(이한)의 ‘蒙求(몽구)’에도 전한다.

내용을 보자. 송나라 사람이 귀중한 보옥을 얻어 사성의 벼슬을 하는 자한을 찾아 드리려 했다. 자한이 받지 않자 그는 옥 전문가가 보물이라고 했다며 꼭 받기를 원했다. ‘나는 옥을 탐하지 않는 것을 보물로 여기고 그대는 옥을 보물로 여기네(我以不貪爲寶 爾以玉爲寶/ 아이불탐위보 이이옥위보)’ 자한이 이렇게 말하며 이어간다.

 ‘만약 이 옥을 나에게 준다면 모두 자신의 보물을 잃게 되니 각각 자신의 보물을 갖는 것보다 못할 것이네(若以與我 皆喪寶也 不若人有其寶/ 약이여아 개상보야 불약인유기보).’ 이렇게 자한은 자신의 마음가짐을 지켜서 좋고 송나라 사람은 보물을 그대로 가져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자한을 말한 ‘菜根譚(채근담)’에서도 ‘옛사람이 탐하지 않은 것을 보배로 삼았는데 이것이 일세를 초월하는 방법(古人以不貪爲寶 所以度越一世/ 고인이불탐위보 소이도월일세)’이라 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지만 한 번 이익을 탐하면 깨끗한 마음이 물들어 더러워진다.

일반인보다 국민의 세금을 쓰는 공직자들의 자세는 더욱 곁눈을 팔지 않아야 하는데 잊을만하면 오직사건이 드러난다. 예전에 비해 액수도 낮고 건수도 훨씬 줄어 ‘김영란법’의 효과라 해도 선진국들에 비해 아직 멀었다는 평가다. 부패와 거리 두는 마음이 보물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52.html
kolaswqetsrq 11.03 00:10
방약무인傍若無人 -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다.

방약무인(傍若無人) -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다.

곁 방(亻/10) 같을 약(艹/5) 없을 무(灬/8) 사람 인(人/0)

마치 옆에(傍若) 사람이 아무도 없다(無人)고 여기며 거리낌 없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자신은 속이 후련할지 몰라도 주변서 모두 손가락질할 것이다. 돈을 좀 벌었거나 지위가 높아진 사람이 그러한 경우가 많다. 또한 술자리에서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자기주장만 펼치는 사람도 종종 볼 수 있다.

이 모두 傍若無人의 행동이다. 자기 눈 아래에 사람이 없는 듯이 날뛰는 眼下無人(안하무인)도 똑 같은 뜻이다. 지난번 국민들의 분통을 터뜨렸던 대한항공 부사장의 행위나 모녀가 백화점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주차요원들을 무릎 꿇린 일 등 사회 곳곳에 도사린 갑질의 사례가 여기에 꼭 들어맞는 성어다.

傍若無人은 이처럼 오만불손하여 미움을 사는 행동이지만 처음 이 말이 사용될 때는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성격이 활달하여 남의 이목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눈살 찌푸릴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중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에서 많이 읽히는 列傳(열전) 중에 다섯 명의 자객을 다룬 刺客列傳(자객열전)은 흥미진진하다.

마지막에 나오는 荊軻(형가, 荊은 가시 형, 軻는 수레 가) 이야기 속에 傍若無人의 성어가 나온다. 衛(위)나라 사람인 형가는 술과 글을 좋아하고 검술에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못 알아본 왕에 등용되지 못하자 주유하며 현인과 협객을 두루 사귀었다.

燕(연)나라로 건너갔을 때 田光(전광)이란 처사가 그를 비범한 사람으로 알아보고 후원했다. 또한 그곳서 筑(축/ 대나무로 만든 비파 비슷한 악기)의 명수 高漸離(고점리)란 사람과 의기투합하여 날마다 장마당에 나가 술을 마시며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즐기면서 함께 울기도 하여 마치 옆에 사람이 없는 듯이 행동했다(高漸離擊筑 荊軻和而歌於市中 相樂也 已而相泣 旁若無人者). 旁과 傍은 똑같이 곁 방.

음주에 高聲放歌(고성방가) 했지만 큰 피해를 주지 않아 뜻을 펼치지 못한 인재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상인들이 좋게 봐준 모양이다. 형가는 뒤에 秦始皇(진시황)을 암살하러 떠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29.html
kolaswqetsrq 11.03 00:11
전심치지專心致志 - 온 정신을 한 군데로 집중하다.

전심치지(專心致志) - 온 정신을 한 군데로 집중하다.

오로지 전(寸/8) 마음 심(心/0) 이를 치(至/4) 뜻 지(心/3)

목표한 일을 두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좋은 뜻의 말인 만큼 선인들이 남긴 예화와 명언도 넘친다. 무쇠도 갈면 바늘이 되고,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한자로도 잘 쓰는 磨斧作鍼(마부작침)이고 轉石不生苔(전석불생태)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水滴穿石(수적천석)도 잘 인용된다.

호랑이로 알고 정신을 집중하여 활을 쏘았더니 바위에 박혔다는 中石沒鏃(중석몰촉)은 중국 前漢(전한) 장수 李廣(이광)의 일화다. 무엇보다 친숙한 명구 ‘정신을 집중하여 한결같이 노력하면 어떤 일이라도 이룰 수 있다(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일도 하사불성)’는 朱子(주자)의 어록에서 나왔다.

‘孟子(맹자)’에도 빠질 수 없다. 오로지 마음을 한 곳에 두고(專心) 끊임없이 노력하면 목표한 뜻에 이를 수 있다(致志)는 말이다. 맹자와 같은 시대 학자로 이름은 알려지지 않은 告子(고자)와 性善說(성선설)을 두고 논쟁을 펼치는 告子上(고자상)에 실려 있다. 맹자는 왕이 총명하지 못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하면서 전설상 바둑에서 무패를 자랑한 고수 奕秋(혁추, 奕은 클 혁, 또는 바둑 혁)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魯(노)나라 출신의 명인에 추가 이름이라 하기도 하고, 秋(추)지방의 사람이라 이런 이름으로 불린다고도 하는 바둑 고수의 대명사다.

이런 명성을 듣고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모여 들었어도 혁추는 두 사람만 받았다. 그런데 두 제자는 학습 태도가 달랐다. ‘한 사람은 전심으로 집중하여 혁추의 말만 듣고(其一人專心致志 惟奕秋之爲聽/ 기일인전심치지 유혁추지위청)’, 한 사람은 말을 들어도 마음속에는 백조가 날아오면 활을 쏠 것을 생각했다.

이렇게 하면 지혜가 같더라도 정신을 쏟지 않은 뒤의 제자는 뜻을 이룰 수가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사냥을 생각한 이 제자는 마음이 엉뚱한 데 있어 일이 몸에 배지 않는다는 鴻鵠將至(홍곡장지)란 성어로 남았다. 왕이 꾸준히 현인을 곁에 두지 않으면 간신이 득실거리고 정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머리만 믿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뜻을 이루기 어렵다. 작은 걸음이라도 쉬지 않고 걸으면 천리를 간다. 오르고 또 오르면 태산도 발 아래 놓일 때가 있다. 꾀가 많은 사람은 용렬한 사람의 노예라는 巧者拙之奴(교자졸지노)란 말이 있다. 머리가 둔해도 끝까지 끊임없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제 재주만 믿는 사람보다 큰일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천재도 노력하는 둔재에게는 못 미치는 법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33.html
kolaswqetsrq 11.03 00:11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 자두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치지 말라, 의심 사는 행동을 하지 말라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 자두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치지 말라, 의심 사는 행동을 하지 말라

오얏 리(木/3) 아래 하(一/2) 아닐 불, 부(一/3) 가지런할 정(攵/12) 갓 관(冖/7)

껍질 표면에 털이 없이 발갛고 매끈한 자두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자두의 옛 이름이 오얏인데 누구나 탐스러워 하는 이 과수밭을 지날 때면 조심해야 한다. 귀한 과일을 서리하는 일이 잦아 주인도 신경을 곤두세우기 때문이다. 오얏나무 밑(李下)을 지나갈 때 손을 들어 쓰고 있던 관을 고쳐 쓰지 말라(不整冠)고 하는 것은 공연히 남에게 의심을 사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이 말의 앞에 있는 오이 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말라는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라는 말과 짝으로 사용된다. 앞부분 두 글자씩만 떼어 瓜田李下(과전이하)라는 말도 쓰는데 앞서 소개한 바 있다.

유교 문화권 최초로 여성을 정면으로 다뤘다는 ‘列女傳(열녀전)’은 前漢(전한) 시대의 학자 劉向(유향)의 저작이다. 경전이나 역사에 전해져오던 賢母(현모) 烈女(열녀) 惡妻(악처) 등 여러 인물을 재구성한 전기집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虞姬(우희)가 한 말로 나온다. 項羽(항우)가 사랑했던 虞美人(우미인)도 우희라 하지만 물론 다른 사람이다.

이름이 娟之(연지)인 우희는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 威王(위왕)의 후궁이었다. 왕이 즉위한지 9년이 지나도록 국정이 어수선했다. 간신인 周破胡(주파호)가 국정을 손아귀에 넣고 충신을 따돌렸기 때문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우희가 위왕에게 주파호는 속이 검은 사람이라 물리치고 덕망 있는 北郭先生(북곽선생)을 기용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것을 안 주파호는 거꾸로 우희와 북곽이 사통하는 사이라고 모함하며 9층 누각에 감금했다. 매수된 담당 관원이 날조한 보고서가 앞뒤가 맞지 않자 왕이 직접 우희를 불러 심문했다. 우희는 진심으로 왕을 위해 힘썼지만 불찰이 있다면 ‘오이 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않고, 오얏나무 아래를 지나갈 때 관을 바로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지키지 않은 것(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이라고 애소했다. 그러면서 주파호의 죄목을 아뢰자 그제야 잘못을 깨달은 위왕은 간신을 烹殺(팽살)하고 내정을 바로잡았다.

자신이 떳떳하다고 해도 남이 오해를 하여 의심을 사는 경우는 흔하다. 잘못 보일 행동을 조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먼저다. 다음으로는 억울하지만 극구 변명하기 보다는 이치에 맞게 차근차근 해명해야 한다. 더 큰 의심을 사서 돌아서고 나면 되돌리기 어렵다. 갓끈을 조심하는 것이 생활화되면 좋겠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76.html
kolaswqetsrq 11.03 00:12
괴여만리장성壞汝萬里長城 - 너의 만리장성을 허물려고 하느냐, 어리석게 보호막을 없애다.

괴여만리장성(壞汝萬里長城) - 너의 만리장성을 허물려고 하느냐, 어리석게 보호막을 없애다.

무너질 괴(土/16) 너 여(氵/3) 일만 만(艹/9) 마을 리(里/0) 긴 장(長/0) 재 성(土/7)

萬里長城(만리장성)이라 하면 중국의 상징처럼 먼저 떠올려지는 기나긴 성이다. 실제 길이는 2700km에, 지형의 높낮이를 반영한 길이로도 6352km라 하니 만리엔 턱없이 모자란다. 하지만 달에서도 보인다는 인류최대의 토목공사임은 모두 인정하여 일찍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일상에서도 여러 곳에 비유로 사용되는데 서로 넘나들지 못하는 장벽이나 창창한 앞날을 가리킨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성을 쌓는다’는 우리 속담은 남녀의 은밀한 만남이나 잠간 사귀더라도 깊은 정을 맺을 수 있음을 말했다. 一夜萬里城(일야만리성)이나 一夜之宿 長城或築(일야지숙 장성혹축)으로 한역된다.

‘너의 만리장성을 허물려고 하느냐(壞汝萬里長城)’란 뜻의 이 성어는 순간적 욕심에 든든한 방패막이를 제거하는 어리석은 짓을 나타낸다. 自毁長城(자훼장성)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의 원주인은 宋(송)나라의 장군 檀道濟(단도제, ?~436)다. 혼란스런 南北朝(남북조, 420~589) 시대의 송나라는 北魏(북위)가 호시탐탐 노렸으나 백전노장 단도제가 굳건히 지키고 있어 침략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명성엔 시기하는 무리가 따르는 법이라 간신들이 단도제를 제거하고 권력을 마음대로 좌우하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 唐(당)의 李延壽(이연수)가 쓴 ‘南史(남사)’의 내용이다.

단도제를 총애하던 3대 文帝(문제)가 병석에 누운 틈을 타 왕족 劉義康(유의강), 劉湛(유담) 등이 어명이란 구실로 그를 수도 建康(건강)으로 불러들여 투옥했다. 뒤늦게 속은 것을 안 단도제는 불같이 화를 냈는데 눈빛이 횃불이 타는 것처럼 이글거렸다.

目光如炬(목광여거, 炬는 횃불 거)란 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그리고 두건을 벗어 땅에 내팽개치고선 너희들이 스스로 만리장성을 허물려고 하는 짓인가 하며 고함을 질렀다(乃脫幘投地 曰 乃壞汝萬里長城/ 내탈책투지 왈 내괴여만리장성).‘ 幘은 머리쓰개 책. 단도제가 분사하고 가족까지 몰살당하자 기다렸다는 듯 북위가 밀고 내려왔다. 권신들이 안전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위험을 자초한 것이다.

편안하게 안전한 생활을 누리는 사람들은 누군가 그것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나라든 알게 모르게 안전을 위해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가 잘 났다는 어리석은 사람은 누가 진정으로 자신을 생각해 주는지 알지 못한다. 위험이 눈앞에 닥쳐야 그것을 막아준 만리장성이 누구였는지 알게 되지만 때는 늦었을 경우가 많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56.html
kolaswqetsrq 11.03 00:13
과유불급過猶不及 -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과유불급(過猶不及) -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지날 과(辶/9) 오히려 유(犬/9) 아닐 불(一/3) 미칠 급(又/2)

무슨 일이거나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어른들이 집안 자녀들을 훈계하는 말씀 중에 꼭 들어 있다. 孔子(공자)님 말씀이라며 두고두고 가르쳤다. 그런데 일을 처리하거나 수행할 때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이 모자란 것과 같다는 말인데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반 회사에서의 실적을 두고 보면 목표를 넘겼을 때 표창할 텐데 모자란 것과 같다니. 물론 이 말은 물질적 성과만 가지고 성패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것도 모자라는 것도 경계한 中庸(중용)의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공자의 제자 중에 고생도 함께 하고 각 분야에 뛰어난 10명을 孔門十哲(공문십철)이라 한다. 이들을 덕행, 언어, 정사, 문학의 四科(사과)로 나누어 평가를 한 내용이 "선진편(先進篇)"에 나온다. 바로 "德行 顔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 言語 宰我 子貢, 政事 冉有 季路, 文學 子游 子夏(덕행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 언어 재아 자공, 정사 염유 계로, 문학 자유 자하)"이다. 騫은 이지러질 건, 冉은 늘어질 염.

過猶不及에 거론되는 자하와 십철에는 빠져있는 子張(자장)을 비교해 자공이 묻는 것에 대해 공자가 답한다.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 師也過 商也不及(사야과 상야불급)"고 말하면서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過猶不及)"고 설명한다. 師는 자장, 商은 자하의 이름이다. 공자는 자장의 극단적인 경향과 자하의 소극적인 면을 의식하고 그들에게 중용의 깨우침을 주기 위해 평가한 것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39.html
kolaswqetsrq 11.03 00:13
작정산밀斫正刪密 – 똑바로 베고 빽빽하면 솎아내다.

작정산밀(斫正刪密) – 똑바로 베고 빽빽하면 솎아내다.

쪼갤 작(斤/5) 바를 정(止/1) 깎을 산(刂/5) 빽빽할 밀(宀/8)

쪼개다, 베다, 자르다는 뜻의 斫(작)은 長斫(장작)이라는 쓰임 외에 ‘아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성어 知斧斫足(지부작족)의 그 글자다. 깎다, 삭제하다는 뜻인 刪(산)은 필요 없는 글자를 지우는 刪削(산삭), 편지에서 인사는 생략한다는 뜻의 刪蔓(산만)에 쓰는 글자다. 깎고 자른다고 하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를 먼저 연상할 수 있다. 나그네를 집에 초대해 침대 길이에 맞춰 사람을 늘이거나 늘려 죽였다는 강도다. 하지만 바르게 베고(斫正) 빽빽한 것을 덜어내는 것(刪密)은 매화의 가지치기를 말했다.

淸(청)나라의 학자 겸 시인 龔自珍(공자진, 1792~1841, 龔은 공손할 공)의 유명한 산문 ‘病梅館記(병매관기)’의 구절에서 유래했다. 공자진은 외조부인 고증학자 段玉裁(단옥재)로부터 배워 당시 정치의 혼란상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시문을 많이 남겼다. 불의에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만 마리의 말이 일제히 벙어리가 된다고 萬馬齊瘖(만마제음, 瘖은 벙어리 음)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공자진은 이 산문에서 문인화가들이 건강한 것 보다는 기울어지고 구부러진 병든 모습의 매화를 더 귀하게 여기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앞부분에서 매화는 굽은 것을 아름다움으로 삼기 때문에 곧으면 맵시가 없다고 하고, 비스듬히 기운 것을 볼만하다 하고, 성긴 것을 곱다고 하니 빽빽하면 모양이 없다고 하며 이어진다. 이러한 취미를 알아챈 업자들이 매화를 가만 둘리 없다. ‘바른 둥치를 잘라 옆가지를 배양하고, 촘촘한 것을 솎아내어 어린 가지를 죽이고, 곧은 것을 쳐 내서 생기를 억제하여, 비싼 값을 받게 했다(斫其正 養其旁條 刪其密 殀其稚枝 鋤其直 遏其生氣 以求重價/ 작기정 양기방조 산기밀 요기치지 서기직 알기생기 이구중가).’ 殀는 일찍죽을 요, 鋤는 호미 서, 遏은 막을 알.

공자진은 그래서 매화가 모두 병이 들었다면서 압제에서 해방시킨다고 병매관을 지어 돌봤다. 그는 매화만을 위해서였을까. 그랬다면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 더 잘 자라게 한다는 분재 애호가들에게 반발을 살 일이다. 그는 일정한 틀 속에서 인재를 구속하는 과거제를 비판하고 나아가 전제주의를 반대하며 인격의 해방을 갈망했다고 평가받는다. 제도를 바꾼다면서 함부로 없애고 붙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09.html
kolaswqetsrq 11.03 00:14
언서혼鼹鼠婚 – 두더지의 혼사, 분수에 넘치는 짝을 구함

언서혼(鼹鼠婚) – 두더지의 혼사, 분수에 넘치는 짝을 구함

두더지 언(鼠/9) 쥐 서(鼠/0) 혼인할 혼(女/8)

땅 속에 굴을 파서 생활하는 두더지를 나타내는 한자는 鼹(언)외에 鰋(언), 蝘(언) 등 모두 어렵다. 田鼠(전서)나 野鼠(야서)라고도 표현한다. 두더지의 혼인 이란 뜻의 이 말은 아 난에 소개한 적이 있는 野鼠之婚(야서지혼)과 똑 같은 말이다. 두더지가 처음에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분수에 넘치는 짝을 구하다가 결국에는 같은 족속에게로 돌아간다. 짚신이 유리 구두와 짝이 될 수 없듯 자기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는 엉뚱한 희망을 갖는 것을 꼬집었다.

의인화된 동물이 주요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설화가 動物譚(동물담)이다. 우리나라에선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동굴에서 경쟁하는 三國遺事(삼국유사)의 檀君神話(단군신화)부터 기원한다고 했다. 그리스의 이솝(Aesop) 우화에 많이 등장하는 동물 이야기가 조선 인조 때 洪萬宗(홍만종)의 문학 평론집 ‘旬五志(순오지)’에도 같이 실려 있는 것이 박쥐의 오락가락과 두더지 혼사다. 짐승과 새 사이에서 자기 이익만을 위해 박쥐가 이리 붙고 저리 붙는 줏대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 蝙蝠之役(편복지역, 蝙은 박쥐 편, 蝠은 박쥐 복)이란 말로 실려 있다.

두더지 한 마리가 새끼를 칠 때가 되어 짝을 구하러 나섰다. 가장 높은 데 살고 있는 하늘에게 먼저 청혼을 했다. 그러자 하늘은 자신이 온 세상을 총괄하고 있기는 하지만 해와 달이 아니면 덕을 드러낼 수 없다고 했다. 그길로 해와 달에게 혼인해 줄 것을 청하니 자기를 가리는 구름보다 못하다고 했다.

이번에는 구름이 바람 한 번 불면 흩어진다고 반대하고, 다시 바람에게 가서 혼인을 청하니 밭 가운데 있는 돌부처는 넘어뜨릴 수가 없다며 또 거절당했다. 돌부처에 찾아가니 이렇게 말했다. "내가 비록 거센 바람도 무섭지 않지만 오직 두더지가 내 발밑을 뚫고 들어오면 바로 넘어지고 말지(我雖不畏風 惟野鼠 穿我足底 則傾倒/ 아수불외풍 유야서 천아족저 즉경도).‘

부지런히 좋다고 생각하는 곳을 찾아가 청혼해도 결국은 두더지가 가장 좋은 배필이라는 소리를 듣고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높다고 기고만장했다. 재산이나 지위가 턱없이 차이나는 집안과 결혼을 했다고 처음에 으스대다가 나중에는 불행으로 결말이 나는 것을 종종 본다. “자기보다 뛰어난 상대는 반려가 아니고 주인을 구하는 것”이란 격언이 실감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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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15
전거후공前倨後恭 - 전에는 거만하다 뒤에는 공손하다, 처지에 따라 태도가 바뀌다.

전거후공(前倨後恭) - 전에는 거만하다 뒤에는 공손하다, 처지에 따라 태도가 바뀌다.

앞 전(刂/7) 거만할 거(亻/8) 뒤 후(彳/6) 공손할 손(心/6)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나 평소 말하는 대로 행동하면 知行合一(지행합일)이고 言行一致(언행일치)가 된다. 겉과 속이 같아야 도리를 다한 사람이라 우러름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속물이 더 많았기에 이에 관한 말이 압도적이다.

겉으로 꿀 바른 소리를 하고선 돌아서서 남을 해친다고 口蜜腹劍(구밀복검)이나 綿裏藏針(면리장침), 笑裏藏刀(소리장도) 등이 있다. 뱀의 마음에 부처의 입 蛇心佛口(사심불구)도 같다. 이보다는 덜해도 뒤에서는 돌아서는 面從腹背(면종복배)나 羊頭狗肉(양두구육)도 表裏不同(표리부동)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전에는 거만하게 우쭐거리다가(前倨) 나중에는 공손하다(後恭)는 이 말은 상대의 입지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백팔십도 바뀌는 것을 말한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의 蘇秦(소진)은 張儀(장의)와 함께 말 잘 하는 사람의 대명사였다. 소진은 당시의 강국 秦(진)에 맞서려면 작은 나라가 연합해야 한다는 合縱策(합종책)을 주장하여 楚燕齊韓魏趙(초연제한위조)의 6국에서 재상이 되었다. 이런 소진도 출세하기 전에는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처음 실패한 뒤 집에 돌아왔을 때 식구들은 냉대하기만 했고 형수는 밥상을 차려주는 것을 거부했다.

분발한 소진은 집에 틀어박힌 채 책과 씨름하여 독심술을 통달했다. 이후 육국의 왕을 찾아 세 치 혀로 유세한 결과 모두에게 뜻이 받아져 여섯 나라의 재상이 됐다. 한 나라를 방문하는 길에 고향을 지나게 됐는데 일행이 임금에 비길 만큼 성대했다. 집에 들어오자 식구들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소진이 웃으면서 형수에게 ‘전에는 그렇게 야박하더니 어찌 이렇게 공손한가요(何前倨而後恭也/ 하전거이후공야)?’라고 말했다. 형수는 넙죽 엎드리며 사과했다. 지위가 높아지고 재물이 많아졌기 때문이라 대답한 데서 位高金多(위고금다)란 성어도 나왔다. ‘史記(사기)’ 蘇秦(소진)열전에 실려 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돈과 지위가 보잘 것 없으면 같은 식구에게도 업신여김을 당하는데 사회서의 인간관계는 훨씬 더하다. 권세가 많은 세력가의 집이나 부자가 된 집에 줄을 대기 위해 門前成市(문전성시)를 이룬다. 그 사람이 별 볼 일없이 되면 문밖에 참새 그물을 칠 정도로 인적이 끊기는 門前雀羅(문전작라) 상태가 된다. 자주 찾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사람의 처지가 어떠하든 대하는 태도는 다름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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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15
의즉전의疑則傳疑 - 의심나는 부분은 그대로 전한다.

의즉전의(疑則傳疑) - 의심나는 부분은 그대로 전한다.

의심할 의(疋/9) 법칙 칙, 곧 즉(刂/7) 전할 전(亻/11) 의심할 의(疋/9)

의심스러운 것(疑則)은 의심스러운 그대로 전한다(傳疑)는 이 말은 사서의 서술 원칙으로 지켜져 왔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 과거의 권위에 의존하거나 또는 독단으로 하다가는 후세에 뒤집힐 수 있으니 판단을 미루는 방법이다. 司馬遷(사마천)이 동양 최고의 역사서로 꼽히는 ‘史記(사기)’를 쓸 때 지켰던 원칙이기도 하다. 많이 알려졌듯이 사기는 사마천의 피땀의 기록이다.

중국 前漢(전한)의 武帝(무제)때 역사가로 기원전 145년께 나서 59세에 이르는 생애를 이 책과 따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친 司馬談(사마담)이 천문 역법과 도서를 담당하는 太史令(태사령)으로 있을 때 미완의 사서를 완성하라는 유언을 지키려 혼신을 다했다.

사마천은 이후 郎中(낭중)이 되어 황제를 수행하면서 자료를 모았고, 태사령으로 근무할 때 황실 도서관에서 자료에 파묻혔다. 40대 때인 기원전 99년 최대의 시련이 닥쳤다. 당시 흉노에 항복한 李陵(이릉) 장군의 가족까지 처벌받자 부당하다고 변호한 사마천은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생식기를 잘리는 宮刑(궁형)을 당했다.

치욕을 딛고 옥중에서도 저술을 이어간 그는 마침내 13년여에 걸친 사서를 완성했다. 처음 ‘太史公書(태사공서)’로 탄생한 이 책은 제왕의 연대기인 本紀(본기)부터 뛰어난 인물들의 列傳(열전)까지 130편에 52만 6000여 자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였다.

魏晋(위진)시대부터 사기로 칭해진 이 책은 독특한 역사체계 紀傳體(기전체)로 이후 모든 정사의 표준이 됐다. 이 책의 특색은 그것만이 아니다. 각 편마다 太史公曰(태사공왈)이라며 예리한 사안으로 독특한 비판을 가해 중국 역사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였다. 거기에 앞부분에 말한 의심스런 부분을 그대로 전해 판단을 유보한 원칙이다. 三代世表(삼대세표)의 서문에 연월이 없어진 부분이 많다며 이어진다. ‘의심스러운 것은 의심이 나는 대로 전하였으니 그것이 신중할 것이다(疑則傳疑 蓋其愼也/ 의즉전의 개기신야).’

사마천의 사기는 오늘날 사용되는 고사성어의 25%가 여기서 유래했다고 할 정도로 두고두고 읽혔다. 기원전 91년께 초고가 완성됐다고 하니 2000년이 넘게 이어오면서 최고의 사서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니는 것은 문장이 유려한데다 의심스런 부분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은데도 있을 것이다. 한 분야의 권위자가 자기만 아는 원칙을 고집하다 뒤에 부작용이 드러나는데도 굽히지 않는 것을 종종 본다. 역사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사기에서 배워야 할 점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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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16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봄 춘(日/5) 올 래(人/6) 아닐 불(一/3) 닮을 사(亻/5) 봄 춘(日/5)

절기로는 봄이 왔어도(春來) 날씨가 계속 추워 봄 같지가 않을 때(不似春) 흔히 쓰는 성어다. 봄이 왔지만 날씨보다 마음이 아직 더 추워 봄을 느끼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내기도 하는 쓰임이 많은 말이다. 이 성어의 유래를 보면 더욱 안타까운 감정이 느껴지는데 중국 4대 미인인 王昭君(왕소군)이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4대 미인은 西施(서시), 초선(貂蟬), 楊貴妃(양귀비)와 함께 왕소군을 든다.

前漢(전한)의 元帝(원제)때 전국서 모집한 후궁들 중에 절세의 미인 왕소군도 끼어 있었다. 왕은 당시 걸핏하면 쳐내려오는 匈奴(흉노) 족을 달래기 위해 반반한 궁녀를 單于(선우, 족장을 높여 이를 땐 단이 아닌 선으로 읽음)에 시집보내기로 하고 궁중화가에게 후보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대부분의 후궁들은 황제의 총애를 받기 위해 화공 毛延壽(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치며 제 얼굴을 예쁘게 그려달라고 청탁하기 바빴다. 그러나 자신의 미모에 자신이 있었던 왕소군은 화공을 찾지 않아 가장 못나게 그려졌다. 황제는 가장 추한 후궁을 뽑아 오랑캐 땅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나중에 왕소군이 떠나는 날 실물을 보게 된 원제는 뒤늦게 절색임을 알아보고 화가 나 화공을 참형하고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漢(한)나라를 떠난 왕소군의 사연은 ‘漢書(한서)’와 ‘後漢書(후한서)’ 등의 사서에는 간략하게 언급되었어도 ‘西京雜記(서경잡기)’ 등 많은 문학양식을 통해 이야기가 보태져 재창조됐고 후대의 李白(이백) 盧照隣(노조린) 등 시인들에게도 좋은 소재가 되어 많은 동정의 시를 남겼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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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17
근주자적近朱者赤 - 붉은 색을 가까이하면 붉어진다, 주위 환경에 쉽게 물이 든다.

근주자적(近朱者赤) - 붉은 색을 가까이하면 붉어진다, 주위 환경에 쉽게 물이 든다.

가까울 근(辶/4) 붉을 주(木/2) 놈 자(耂/5) 붉을 적(赤/0)

환경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분에 심어 놓으면 못된 풀도 화초라 한다’는 속담은 못난 사람도 그럴듯한 지위만 얻으면 잘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환경은 힘이 세다. 강남에서 잘 자라던 귤이 강북으로 옮겨져 환경이 바뀌면 보잘것없는 탱자가 된다. 南橘北枳(남귤북지)다. 유교의 亞聖(아성)인 孟子(맹자)도 어머니의 교육환경을 바꾼 孟母三遷(맹모삼천)이 없었으면 평범하게 자랐을 것이다.

이처럼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는 무수한 가르침 중에서 일상에 더 가깝게 인용되는 말이 있다. 검은 먹을 가까이 하면 자신도 검어진다는 近墨者黑(근묵자흑)으로 이는 앞서 소개한 바 있다.

붉은 색을 가까이 하면(近朱) 자신도 붉어진다(者赤)는 말이 이 성어와 함께 항상 붙어 다닌다. 그래서 합쳐 近朱近墨(근주근묵)이라고도 하는데 사실은 이 말이 먼저 등장한다. 붉을 朱(주)는 진한 붉은 색의 수은으로 된 광물 朱沙(주사)를 말하는데 印朱(인주)의 원료다. 이 두 쌍둥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이 중국 西晉(서진) 때의 학자이자 문인이었던 傅玄(부현, 217~278)이란 사람의 ‘太子少傅箴(태자소부잠)’이란 책이다. 그곳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대체로 쇠와 나무는 일정한 모양이 없어 틀에 따라 둥글게도 될 수 있고 각이 지게도 된다면서 설명한다. ‘붉은 색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붉은 물이 들고, 먹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검은 물이 든다(近朱者赤 近墨者黑/ 근주자적 근묵자흑).’ 그러면서 소리가 고르면 음향도 맑게 울리고 형상이 단정하면 그림자도 곧다(聲和則響淸 形正則影直/ 성화즉향청 형정즉영직)고 했다. 약간 달리 사용된 말도 있다. ‘먹을 가까이하면 반드시 검어지고, 주사를 가까이하면 반드시 붉어진다(近朱必赤 近墨必緇(근주필적 근묵필치)’고 했는데 緇는 ‘검을 치’로 같은 뜻이다.

이 말만큼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는 말이 삼밭 가운데 자라는 쑥 蓬生麻中(봉생마중)이란 성어도 있다. 不扶自直(불부자직)이 뒤따르는데 죽죽 곧은 삼밭에 구불구불 자라는 쑥이 있다면 붙들어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게 된다는 의미다. 환경이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큰소리치는 사람도 있지만 말썽만 부리는 이웃과 함께 산다면 삶이 지옥이다. 자녀가 불량학생과 어울리지 말라고 항상 당부하는 부모의 심정도 나쁜 길로 물들지 않도록 하려는 뜻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87.html
kolaswqetsrq 11.03 00:18
일일삼추一日三秋 - 하루가 삼 년 같다, 몹시 애태우며 기다림

일일삼추(一日三秋) - 하루가 삼 년 같다, 몹시 애태우며 기다림

한 일(一/0) 날 일(日/0) 석 삼(一/2) 가을 추(禾/4)

시간은 대체로 귀하고 그래서 빨리 지나간다는 옛말이 많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화살처럼 날아가 일생도 문틈으로 지나가는 흰 망아지와 같다는 白駒過隙(백구과극)이란 말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용없는 百年河淸(백년하청)은 제외하고, 무엇을 기대하거나 보고 싶은 연인을 기다릴 때는 반대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百難之中 待人難(백난지중 대인난)이란 말이 있으니 말이다. 하루를 보내는 것(一日)이 세 해의 가을(三秋)을 지내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 이 어려움을 실감나게 드러냈다. 一日如三秋(일일여삼추)나 더 짧은 15분 정도의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라고도 한다.

春秋時代(춘추시대)의 민요를 모은 ‘詩經(시경)’에 이 말이 처음 등장한다. 나라 일로 멀리 타국에 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의 마음을 노래한 ‘王風(왕풍)’ 采葛(채갈)편에서다. 풍채 采(채)는 캔다는 採(채)의 뜻도 있다. 임을 기다리는 것은 하루가 마치 三秋(삼추)와 같이 세월이 더디 간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다. 삼추는 孟秋(맹추, 음력 7월), 仲秋(중추, 8월) 季秋(계추, 9월)의 석 달을 말한다고 하고, 가을이 세 번이므로 9개월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곡식은 1년에 가을에 한 번 익으므로 삼추는 3년이라고 해석한다. 어쨌든 기다리는 세월은 길게만 느껴지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전문은 짤막하다. ‘칡 캐러가세, 하루를 못 보면 석 달이나 된 듯(彼采葛兮 一日不見 如三月兮/ 피채갈혜 일일불견 여삼월혜), 쑥 캐러가세, 하루를 못 보면 아홉 달이나 된 듯(彼采蕭兮 一日不見 如三秋兮/ 피채소혜 일일불견 여삼추혜), 약쑥 캐러가세, 하루를 못 보면 삼년이나 된 듯(彼采艾兮 一日不見 如三歲兮/ 피채애혜 일일불견 여삼세혜).’ 兮는 어조사 혜, 蕭는 맑은대쑥 소, 艾는 약쑥 애.

처음 남녀 간에 헤어져 있을 때 썼던 표현이 오늘날에는 사람이나 사물이 도착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심정을 나타내는 말로 확대됐다. 사람을 기다릴 때 시간은 상대적이다. 약속한 사람이 오지 않을 때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 가고, 약속했던 상대는 시간을 지키려고 해도 다른 일로 해서 빨리 지나가게 마련이다. 애태우는 사람을 위해 계획을 잘 세워 시간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25.html
kolaswqetsrq 11.03 00:18
음식남녀飮食男女 - 음식과 남녀관계, 식욕과 성욕

음식남녀(飮食男女) - 음식과 남녀관계, 식욕과 성욕

마실 음(食/4) 밥 식(食/0) 사내 남(田/2) 계집 녀(女/0)

마시고 먹는 飮食(음식)과 남자와 여자 男女(남녀)를 합친 이 말은 성어로 보다 제법 오래됐어도 영화로 더 친숙할 듯하다. 대만 출신의 감독 리안(李安/ 이안)이 미국 할리우드로 건너가 연출한 영화는 제명도 그대로 번역한 ‘Eat Drink Man Woman’이었다. 1995년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던 이 영화는 중국 전통 요리사 출신의 아버지와 장성한 세 딸과의 결혼관, 가족관 등 세대 간의 갈등을 다뤄 화제를 모았다. 같은 이름의 드라마가 나오고, 유명 맛집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친숙한 이름의 이 성어가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는 말이라 하니 의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五慾(오욕)은 재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의 다섯 가지다. 이 중 재물과 명예에 대한 욕심은 다른 것이 이뤄진 연후에 따르는데 비해 수면과 함께 마시고 먹는 식욕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것이고, 남녀 간의 본능인 색욕은 종족 보존을 위한 근원적인 욕망이다. 식욕을 말하는 음식과 색욕의 근원인 남녀를 합친 이 성어가 인간의 본성을 뜻한 것은 아주 오래된 ‘禮記(예기)’에서 비롯됐다.

五經(오경)의 하나인 예기는 예의 근본정신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다뤄 大學(대학)과 中庸(중용)이 四書(사서)로 독립되기 전에는 여기에 포함됐다. 모두 49편 중 제도와 관례의 변화를 언급한 禮運(예운)편에 孔子(공자)가 한 말로 나온다. 인간에겐 喜怒愛懼愛惡欲(희로애구애오욕)의 七情(칠정)이 있다면서 이어진다.

‘음식과 남녀의 관계에는 사람이면 누구나 크게 탐하고, 죽음과 고난은 누구나 크게 싫어한다(飲食男女 人之大欲存焉 死亡貧苦 人之大惡存焉/ 음식남녀 인지대욕존언 사망빈고 인지대오존언).’ 孟子(맹자)에도 ‘식욕과 색욕이 인간의 본성이다(食色性也/ 식색성야)‘란 말이 실려 있다.

인간의 본성이라고 모두 본능이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면 난장판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힘이 있다고 재물이 많다고 욕심대로 살아가려다 끊임없는 싸움이 일어난다. 짐승과 다른 것이 인간은 절제를 안다는 것이다. 절제를 잘 하는 자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본을 무시하고 욕심이 더 큰 욕심을 불러 결말이 비참해지는 것을 수시로 본다. 모든 방면에 본보기가 돼야 할 지도층에서 추문이 잊을만하면 잇따르니 더 문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29.html
kolaswqetsrq 11.03 00:19
금미지취金迷紙醉 - 금종이에 미혹되다, 지극히 사치스러운 생활

금미지취(金迷紙醉) - 금종이에 미혹되다, 지극히 사치스러운 생활

쇠 금(金/0) 미혹할 미(辶/6) 종이 지(糸/4) 취할 취(酉/8)

사람이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되면 만족하라며 절제와 검소를 강조한 말이 많다. 하지만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라 호화 사치를 표현하는 성어도 수두룩하다. 비단 옷과 흰 쌀밥도 사치였던 錦衣玉食(금의옥식)은 옛날 어려웠을 때라 해도, 금을 흙덩이로 진주를 자갈같이 여긴 金塊珠礫(금괴주력)의 秦始皇(진시황)이나 숯 대신 밀랍으로 땔감을 대신한 以蠟代薪(이랍대신)의 晉(진)나라 거부 石崇(석숭)에 이르면 사치의 극이다. 이들의 호화생활은 과장에 의한 사치도 있었겠지만 방 안의 기물들을 모두 금종이로 바른 孟斧(맹부)는 실생활이었다.

唐(당)나라 말엽의 명의였던 맹부는 악성 종기인 毒瘡(독창)의 치료에 특히 뛰어났다. 널리 소문이 나자 궁중에도 불려가 당시 19대 황제 昭宗(소종, 재위 888~903)의 진료도 맡게 됐다. 차츰 황궁에서 진료하며 지내는 시간과 횟수가 많아지자 궁내의 장식이나 기물의 배치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나름의 안목을 기르게 됐다. 北宋(북송)에서 대신을 지냈던 陶谷(도곡, 903~970)이 천문과 지리, 초목 등 각종 사물에 대한 유래를 수록한 ‘淸異錄(청이록)’을 남겼는데 여기에 금종이에 취해 정신이 혼미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훗날 맹부는 왕실을 나와 四川(사천)으로 옮겨 생활하게 되었다. 그는 궁중에서 생활했던 환경을 생각하며 자신의 거처도 똑같이 꾸미고 싶었다. 사방 벽에 황금 칠을 하고 기물마다 금종이로 포장했다. 창문을 통하여 햇빛이 비칠 때면 방안은 온통 금빛으로 가득하여 눈을 뜰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를 찾아왔다가 돌아가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 방에서 잠시 쉬었는데 그만 금종이에 정신을 빼앗겨 취해 버렸네(此室暫憩 令人金迷紙醉/ 차실잠게 영인금미지취).’ 순서를 바꿔 紙醉金迷(지취금미)로도 쓴다.

호화의 극을 다하면 쇠락이 오는 법이다. 진시황과 석숭은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힘을 갖게 된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Midas)왕도 나중에는 눈앞의 음식을 보면서 굶주렸다. 사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항상 모자라 쩔쩔 매는 생활을 하지만, 절약하여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여유 있게 살아간다.

菜根譚(채근담)의 가르침 ‘奢者富而不足 何如儉者 貧而有餘(사자부이부족 하여검자 빈이유여)’는 흥청망청 낭비하는 사람들이 명심할 말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95.html
kolaswqetsrq 11.03 00:20
이유극강以柔克剛 - 부드러운 것으로 굳센 것을 이기다.

이유극강(以柔克剛) - 부드러운 것으로 굳센 것을 이기다.

써 이(人/3) 부드러울 유(木/5) 이길 극(儿/5) 굳셀 강(刂/8)

물은 부드럽다. 물은 항상 낮은 곳에 임한다. 하지만 물은 다스리지 못하면 배를 뒤집고 홍수로 휩쓸기도 한다. 물을 부드러움의 상징으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라고 깨우친 사람은 老子(노자)다. 지극히 선한 것은 물과 같다고 한 上善若水(상선약수)가 그것이다. 노자는 병석의 스승 常摐(상창, 摐은 칠 창)에게서 혀는 부드러워 남아있고 치아는 단단해서 빠져 없어진다는 齒亡舌存(치망설존)의 교훈을 이어 받았다. ‘道德經(도덕경)’ 곳곳에서 부드러운 것이 약하지 않고 결국은 강한 것을 이겨낸다고 강조했다.

노자가 남긴 무위의 處世訓(처세훈)인 이 책 8장 易性章(역성장)에서 물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물기에 가장 도에 가깝다고 했다. 36장 微明章(미명장)에서 부드러운 것으로 강한 것을 이겨낸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柔弱勝剛强/ 유약승강강). 물고기가 깊은 곳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나라를 다스리는 심오한 도리를 함부로 내보여서는 안 된다(魚不可脫於淵 國之利器不可以示人/ 어불가탈어연 국지리기불가이시인).’ 이것을 권도로 해석하는 일면, 나라를 다스리는 道(도)로 풀기도 한다.

78장 任信章(임신장)의 내용은 더 명확하다. ‘천하에 유약하기로는 물보다 더한 것이 없다(天下莫柔弱於水/ 천하막유약어수). 그러나 굳고 강한 것을 꺾는 데는 물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而攻堅强者莫之能勝/ 이공견강자막지능승). 아무 것도 물의 본성을 대체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以無以易之/ 이무이역지).’ 그러면서 다시 강조한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억센 것을 이긴다(弱之勝强 柔之勝剛/ 약지승강 유지승강).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실천하는 사람이 없다(天下莫不知 莫能行/ 천하막부지 막능행).’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듯이 약자가 강자를 이긴다. 억지로 힘으로 복속시키면 겉으로 순종하지만 나중에는 뒤집어진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 사람은 도를 떠나 살 수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도를 지키지 않고는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은 독재가 뒤집힌 각국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작은 조직을 이끌든 큰 나라를 다스리든 물의 부드러움이 강하고 굳셈을 이겨낸다는 점을 깨달아야겠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87.html
kolaswqetsrq 11.03 00:21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 - 덕은 외롭지 않아 반드시 이웃이 있다.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 - 덕은 외롭지 않아 반드시 이웃이 있다.

큰 덕(彳/12) 아닐 불(一/3) 외로울 고(子/5) 반드시 필(心/1) 있을 유(月/2) 이웃 린(阝/12)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여러 구절에 나오고 ‘좋은 이웃은 큰 축복이고 나쁜 이웃은 큰 불행’이란 서양 격언도 있다. 이웃 사람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이웃사촌’은 우리의 금언이다.

백만금으로 집을 사고 천만금을 더 얹어 이웃을 산다는 百萬買宅 千萬買隣(백만매택 천만매린)은 비유를 통해 이웃의 가치를 잘 표현했다. 그러나 德不孤 必有隣은 천만금을 들이지 않고도 좋은 이웃을 얻을 수가 있으니 가장 좋은 방법이겠다.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은 남의 질시를 받아 한때 고립될 수는 있어도 결국 정성이 통해 동참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는 뜻을 지녔다.

이처럼 짧지만 많은 뜻을 포함해 유명한 이 성어는 ‘論語(논어)’의 里人(이인)편에 실렸다. 제일 첫머리에 나오는 ‘里人爲美 擇不處仁 焉得知(이인위미 택불처인 언득지/ 마음이 어진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것이 좋다. 그러한 곳을 골라 살지 못한다면 어찌 지혜롭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에서 이름을 따온 이 편엔 인덕에 관한 내용이 수록돼 있다.

마을까지 어진 사람이 사는 곳을 고르는데 덕을 지닌 사람은 다른 사람을 모이게 하여 평온하고 화목한 덕의 길로 인도해주면서 그 길을 함께 나아가므로 외롭지 않은 것이다.

孔子(공자)의 이 말은 周易(주역)에 나오는 논리를 더 심화시킨 것이라 한다. 文言(문언)에 나오는 ‘군자는 공경으로써 마음을 바르게 하고 의로움으로써 외모를 반듯하게 한다. 공경과 의로움이 섰으니 덕은 외롭지 않다(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 군자경이직내 의이방외 경의립이덕불고)’란 구절이다. 주역이 개인적인 덕성 함양에 초점을 맞춘데 비해 공자는 더 사회적으로 효용의 범위를 넓혔다. 여기에 지칭하는 이웃은 물론 꼭 이웃 사람이 아닌 따르는 사람임은 말할 것도 없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49.html
kolaswqetsrq 11.03 00:21
일각천금一刻千金 – 짧은 시간이라도 천금과 같이 귀중하다.

일각천금(一刻千金) – 짧은 시간이라도 천금과 같이 귀중하다.

한 일(一/0) 새길 각(刂/6) 일천 천(十/1) 쇠 금(金/0)

시간이 귀하다고 서양 격언은 바로 돈이라고 했지만 더 짧은 시간(一刻)인데도 천금과 같다(千金)고 강조한 것이 이 성어다. 1각은 15분 동안을 가리키는 단위고, 천금의 숫자는 물론 많거나 귀중한 것을 나타낸다. 이렇게 값나가는 시간이 흐르는 물과 같이 빨리 지난다고 光陰似逝水(광음사서수)라고 표현한다. 더 빠르게는 문틈으로 보이는 망아지가 스치듯이 세월이 지난다는 白駒過隙(백구과극)이 있다.

시간이 귀중하니 아껴야 한다는 이름난 구절은 많다. 일각이 천금이라고 표현한 이 말은 宋(송)나라의 명문장가 蘇軾(소식, 1036~1101)의 시 ‘春夜(춘야)’에서 비롯됐다. 호가 東坡(동파)인 소식은 시서화에 모두 뛰어났고, 아버지 蘇洵(소순), 동생 蘇轍(소철)과 더불어 三蘇(삼소)라 불리며 모두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 들어간다.

칠언절구 전문을 보자. ‘봄날 밤의 한 시각은 천금에 값하나니, 꽃에는 맑은 향 달 뜨니 구름에 진다(春宵一刻値千金 花有淸香月有陰/ 춘소일각치천금 화유청향월유음). 노래하고 피리 불던 누대도 소리는 잦아들고, 그네 뛰던 안뜰은 밤만 깊어 가누나(歌管樓臺聲寂寂 鞦韆園落夜沈沈/ 가관누대성적적 추천원락야침침).’

宵는 밤 소, 鞦韆(추천)은 그네. 시간이 값나간다고 해도 유유자적 느긋하게 느껴지는 것은 봄밤의 한 시각이 그만큼 아름답고 값지니 가치를 알고 즐기자는 뜻이 있다.

젊은 시절에 더욱 노력하여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교훈은 따로 있다. 朱子(주자)의 권학시 ‘偶成(우성)’이다. ‘소년은 금방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소년이로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 전원시인 陶淵明(도연명)은 ‘雜詩(잡시)’에서 더 절박하게 강조한다. ‘젊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아니하고, 하루의 새벽은 두 번 다시 오기 어렵다(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성년부중래 일일난재신). 때가 이르면 마땅히 힘쓸 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리(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 급시당면려 세월부대인).’

이처럼 귀한 시간을 흥청망청 보내지는 않았을까. 시간의 낭비에 의해 그렇지 않아도 짧은 인생이 더 짧아진다는 교훈도 있듯이 어떻게 보내야 알차고 보람될지 곰곰 생각할 일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51.html
kolaswqetsrq 11.03 00:22
낭패위간狼狽爲奸 - 흉악한 무리들이 나쁜 일을 꾸미다.

낭패위간(狼狽爲奸) - 흉악한 무리들이 나쁜 일을 꾸미다.

이리 랑(犭/7) 이리 패(犭/7) 하 위(爪/8) 간사할 간(女/3)

狼狽(낭패)라는 말이 들어가 순조로운 것을 나타내는 경우가 드물다. 기대했던 일이 틀어질 경우는 낭패스럽다고 한다. 계획한 일이 실패로 돌아갔을 땐 낭패를 당했다고 한다. 狼(낭)과 狽(패) 모두 이리라는 사나운 동물을 나타내는 글자인데 실제 모양은 많은 차이가 있는 전설상의 존재라 했다. 즉 낭은 앞발은 길고 뒷발은 아주 짧아 혼자서는 서지 못하고, 패는 앞다리가 짧아 혼자 걷지 못한다.

낭은 또 꾀가 부족하나 용맹하고, 패는 꾀가 있는 대신 겁이 많다고 한다. 그러니 이 둘은 항상 붙어 다녀야 사냥도 하고 맹수를 만나면 피할 수 있어 마음이 틀어지면 둘 다 무사하지 못하다.

어느 때 낭과 패가 함께 양을 훔치러 갔다. 높고 튼튼한 울타리가 막아서 넘어갈 수도 없고 자기들 힘으로는 부수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꾀가 많은 패가 묘수를 냈다. 뒷다리가 긴 패가 앞다리 짧은 낭을 자신의 목에 올라가게 한 뒤 울타리를 넘게 했다. 긴 앞발로 우리를 넘어간 낭은 양을 훔쳐 나와 패와 함께 끌고 가는데 성공했다. 唐(당)나라 때의 학자 段成式(단성식)의 수필집 ‘酉陽雜俎(유양잡조)‘에서는 이 이야기를 들어 ’세상에서는 일을 어그러뜨리는 사람을 낭패라고 칭한다(世言事乖者稱狼狽/ 세언사괴자칭랑패)‘고 했다.

낭과 패(狼狽)가 서로 도와 양을 훔치는 나쁜 일을 도모(爲奸)하는 것과 같다고 하여 이 말이 만들어졌다. 꼭 나쁜 일만 아니고 進退兩難(진퇴양난)의 경우에 처했을 때도 사용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곤란한 상태에 빠진 경우 狼狽不堪(낭패불감)이라 한다고 앞서 소개했다. 이 성어는 중국 西晉(서진)의 학자 李密(이밀)의 명문 陳情表(진정표)에서 벼슬을 내린 황제에게 명을 받들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면서 사용됐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길러주신 할머니를 떠날 수 없다고 호소한 것이다.

낭패 외에 狡猾(교활)이라는 말도 전설상의 동물에서 나왔다. 교는 간사하고 애태우는 개와 비슷하고 활은 돼지털로 덮인 사람 모양의 간악한 짐승이란다. 남을 속이고 술수가 능한 교활은 마음가짐의 문제이니 멀리 할 수가 있다. 하지만 낭패는 나쁜 일을 도모하지 않았는데도 주위의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닥치는 수가 있다. 사소한 문제에서 일어난 나라 사이의 전쟁이나 그것까지는 아니라도 인접국 간에 완전히 틀어지는 경우다.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미리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88.html
kolaswqetsrq 11.03 00:23
◇ 74세 윤여정, 자타공인 예능 블루칩

◇ 74세 윤여정, 자타공인 예능 블루칩

“아무튼 우려먹는 거는 1등이야, 정말 대한민국에서.”

tvN 신규 예능 ‘윤스테이’ 제목을 들은 이서진의 말이다. ‘꽃보다 할배’(2013)를 시작으로 ‘삼시세끼’(2014)를 거쳐 ‘윤식당’(2017)에 이르기까지 나영석 PD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그이기에 거침없이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제작진은 지난해 봄부터 준비한 ‘윤식당 3’ 해외 촬영이 코로나 19 장기화로 어려워지자, 전남 구례 고택에서의 한식 체험으로 눈을 돌렸다. 앞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알베르게를 운영한 ‘스페인하숙’(2019)의 경험을 살린 숙박업 도전이다.

8일 방송된 첫 회 시청률은 8.2%(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 ‘윤식당 2’(2018) 첫 회 시청률 14.1%에 못 미치지만 ‘스페인하숙’(7.6%)이나 지난해 올린 숏폼 예능 ‘금요일 금요일 밤에’(2.9%), 홈캉스 리얼리티 ‘여름방학’(5.0%)보다 더 높다.

새로 단장한 ‘윤스테이’의 성공 관건은 과연 국내에서 한식과 한옥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끌어낼 수 있는가였다. ‘윤식당’은 해외에서 한식당을 열어 외국인의 시선을 담아낼 수 있었지만 ‘윤스테이’는 자칫 잘못하면 ‘삼시세끼’나 ‘이식당’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림이 펼쳐질 수도 있는 탓이다.

‘윤식당’ 1, 2 조연출을 거쳐 ‘윤스테이’ 공동연출을 맡게 된 김세희 PD는 “프로그램을 둘러싼 고민이 많던 와중에, 학업이나 업무상 이유로 한국에 들어왔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한국문화를 제대로 체험해보지 못한 외국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좀 더 좋은 시기에 왔다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을 그들에게 한국의 미와 운치를 제대로 알려주고자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 체류 기간 1년 미만의 외국인으로 대상을 한정한 것은 ‘묘수’가 됐다. 300년이 넘은 전남 구례 고택 쌍산재는 한국 시청자들의 눈에도 인도네시아 길리트라왕안 해변가나 스페인 가라치코 마을보다 더 이국적인 풍광으로 비춰졌고, 수제떡갈비나 궁중떡볶이 같은 코스 요리도 큰 호기심을 자아냈다.

출연진 역할에 변화를 준 것도 주효했다. 특히 주방에서 요리를 전담한 대표 윤여정이 바깥으로 나와 직접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이야기가 한층 풍성해졌다. 윤여정은 유창한 영어 실력과 센스 있는 입담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면서 ‘오프라 윤프리’ ‘윤선생 영어교실’ 등 별명이 생겼을 정도.

캐나다 교포 출신인 최우식도 인턴으로 합류해 픽업맨부터 벨보이까지 다양한 역할로 손님들과 접점을 넓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여름방학’과 달리 ‘윤스테이’는 노동의 현장이기 때문에 가장 임무가 많은 막내 최우식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며 “‘나영석의 자기복제’라는 비판도 있지만 익숙함 속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는 것은 확실히 강점”이라고 밝혔다.

현재 ‘윤스테이’ 출연진은 K드라마·영화 열풍을 이끄는 주역이기도 하다. 최우식은 지난해 작품상 등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으로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윤여정은 재미교포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로 꼽히는 상황. 이 영화에서 낯선 미국 이민자 가정의 외할머니 역할을 맡은 윤여정은 얼핏 무례해 보이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모든 것을 퍼주는 한국식 정서를 실감나게 표현했다는 평이다. 보스턴비평가협회 등 미국 여러 시상식에서 벌써 연기상 트로피를 11개나 챙겼다.

정유미는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으로 새로운 히어로물을 선보였고, 박서준은 JTBC ‘이태원 클라쓰’로 지난해 일본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드라마 2위에 오르는 등 선전하고 있다.

올해로 데뷔 55주년을 맞은 74세의 윤여정이 또다시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도전을 마다치 않는 성격이 지금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만들었다”고 평했다. 70~80년대 결혼과 이민으로 오랫동안 연기를 쉰 탓에 복귀 이후 “작품이나 역할의 크기에 상관없이 달려들면서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영화계에서 윤여정은 ‘화녀’(1971) 등 초기작뿐만 아니라 ‘바람난 가족’(2003) ‘하녀’(2010) ‘죽여주는 여자’(2016) 등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대표작을 갈아치우고 있다.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4.html
kolaswqetsrq 11.03 00:23
스트레스 날려 버리기

스트레스 날려 버리기

1. 사랑

사랑을 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을 억제하는 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지고 도파민 분비도 늘어난다. 도파민은 사람이 즐겁고 유쾌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데, 사랑에 빠지면 분비량이 늘어난다. 사랑의 건강효과는 사랑한다는 말로도 나타난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김재엽 교수팀이 노인 남성을 대상으로 7주간 배우자에게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표현을 매일 하게 했더니 매일 이 말을 반복한 그룹은 혈액 내 산화 스트레스 지수가 50% 감소했고, 항산화 능력 지수는 30% 증가했다. 이 외에 우울증이 개선되고 심장 박동이 안정됐다.

2. 스킨십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옥시토신이 분비되는데, 옥시토신은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에 모두 좋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특히 키스나 포옹을 하면 옥시토신이 많이 분비돼 연인의 애정을 높여 주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키스를 하면 스트레스를 자극하는 글루코 코르티코이드의 생성을 억제해 스트레스를 줄여 주며, 뇌를 자극해 엔도르핀이 나오게 해 아픈 통증을 줄여 준다. 엔도르핀은 모르핀보다 200배 강한 천연 진통제다. 키스를 하면 교감신경이 침샘을 자극해 침 분비가 늘어난다. 침에는 항균물질이 있어 면역기능을 높인다. 키스할 때 뇌에선 코르티솔의 분비를 막아 준다. 키스를 즐기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평균 5년 정도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3. 웃음

"15초 동안 크게 웃기만 해도 엔도르핀과 면역세포가 활성돼 수명이 이틀 연장된다"는 미국 인디애나주 메모리얼 병원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있다. 18년 동안 웃음을 연구한 리버트 박사는 웃는 사람의 혈액을 분석한 결과, 바이러스나 암세포를 공격하는 NK세포가 활성화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웃음이 보약"이라는 말이 사실인 셈이다. 웃음은 혈류량을 증가시켜 산소 공급을 늘려 준다. 웃을 땐 진통제 역할을 하는 엔도르핀, 엔케팔린, 옥시토신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특히 한바탕 크게 웃고 나면 온몸 근육에서 수축과 이완이 자연스럽게 일어나 체내 대사율이 증가하며, 관절 범위의 유연성이 10% 증가한다.

4. 명상과 심호흡

명상은 뇌에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뇌파(알파파)를 활성화한다. 조용하고 쾌적한 장소에 앉아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배로 천천히 깊게 숨을 쉬는 복식호흡을 5분 동안 하면 긴장을 푸는 데 효과적이다. 명상할 때는 한 가지 단어를 생각하거나, 해변 같은 평화로운 광경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부드러운 음악은 평온한 마음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심호흡과 함께 점진적으로 근육을 이완하면 효과가 배가된다. 심호흡을 하면 팽창된 허파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 위해 부교감 신경계가 작동되면서 몸이 이완되고 답답함이 진정된다. 긴장 상황일 때 3~5분간 천천히 심호흡하는 것만으로 맥박과 호흡이 감소하고 긴장이 풀어져 심신이 편안해진다.

5. 일광욕·산림욕

일광욕은 정신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하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의 분비를 늘려 준다.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겨울에 우울증이 많은 것은 세로토닌 부족과 관계가 있다. 하루 30분 이상 햇볕을 쬔다. 산림욕을 하는 것도 행복에 도움이 되는데, 산림이나 폭포 주변 공기에 많이 포함돼 있는 음이온은 부교감 신경을 일깨워 기분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76.html
kolaswqetsrq 11.03 00:24
◇배추 따서 쌈 싸먹고...신비주의는 가라, 유튜브 데뷔한 재계 총수들

◇배추 따서 쌈 싸먹고...신비주의는 가라, 유튜브 데뷔한 재계 총수들

“올해 채널 구독자가 50만이 된다면 와이제이(YJ)의 밸런스 게임 도전해보겠습니다! 질문을 댓글 달아주세요.”

여느 유튜버의 흔한 구독자 달성 공약같다. ‘밸런스 게임’은 짧은 시간 안에 선택하기 어려운 둘중 하나를 골라 대답하는 요즘 인기 있는 게임. ‘엄마와 아빠 중에 누가 좋냐’같은 거다. 요즘엔 ‘100억 받고 50살까지 살기, 그냥 100살까지 살기’같은 질문을 여러개 던지는 식이다. 이런 흔한 공약이 화제가 된 건, 여기서 ‘와이제이’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 공약은 지난 11일 이마트 공식 유튜브 ‘이마트 라이브(live)’에 정 부회장이 등장한 두번째 영상에 게재됐다.

이번 영상은 앞서 지난해 12월17일 정 부회장이 이마트가 거래하는 해남 땅끝마을 배추 산지에서 배추를 수확하고 직접 배추쌈 등을 요리한 첫번째 영상이 3주 만에 120만뷰를 찍으면서, 그 뒷 얘기를 담았다.

이 영상에서 정 부회장은 배추 2행시(배고파, 추워)를 하는 ‘아재 개그’를 선보이고, 촬영 스태프들을 위해 전통시장에서 호떡을 사서 하나씩 나눠주는 모습 등이 담겼다. 12일 오후 기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조회수는 12만을 넘겼다. 이마트 유튜브는 정 부회장이 등장한 영상을 ‘YJ로그’라는 별도의 탭에 넣어, 향후 추가로 영상이 올라올 수 있다는 점을 예고했다.

최근 재계 총수들의 ‘유튜브행’이 화제다. 베일에 싸인 신비주의 리더보다도, ‘소통하는 리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는 반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흔히 최고경영자의 포괄적인 홍보·이미지 전략을 가리키는 ‘피아이(PI, President Identity) 방향’이 기존 ‘리스크 관리’ 중심에서 ‘적극적인 소통’으로 무게가 옮겨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튜브는 정제된 언론보도 등으로 딱딱한 이미지의 재벌 총수를 인간적이고 소탈한 면모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최적화된 매체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건 정 부회장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50만명이 넘는 대표적인 기업인 인플루언서인 정 부회장은 지난달부터 유튜브로도 영토를 넓혔다.

지난해 12월초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유튜브에 나와 자신이 가장 즐겨 마시는 스타벅스 음료(자몽 허니 블랙 티, 제주 말차라떼, 나이트로 콜드브루)를 언급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실제로 나이트로 콜드 브루는 12월 한달간 전달보다 3배가량 더 팔렸다. 이마트 배추밭 영상도 전년 대비 20% 매출이 증가하는 등 톡톡한 홍보 효과를 냈다.

배추쌈 레시피 아이디어도 정 부회장이 직접 내는 등 영상 제작에 마케팅 부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특히 이번 영상에선 자사 홍보를 넘어, 대형마트 대표가 직접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는 장면까지 포함돼 상생 이미지에 ‘플러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마트 관계자는 “이마트의 강점인 신선식품을 알리는 동시에 보수적인 유통업계 이미지를 젊은층에게 친근하게 바꾸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도 다양한 형태로 유튜브에 나서고 있다. 에스케이는 최 회장이 지난해 12월22일 30년 근속한 그룹 직원들을 초청해 육개장을 만들어 대접한 영상을 유튜브로 공개했다. 베레모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최 회장은 “좀 짜다”는 직원의 반응에 “좀 짜요? 엔초비만 넣었는데...”라며 멋쩍은 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어 “(리더로서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70~80% 문제가 풀리더라”며 소통 방식에 대한 조언을 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2019년 직원들과 소모임으로 대화하는 ‘행복토크’를 100회 진행한 뒤, 지난해에도 이어가려 했지만 코로나19로 대면이 어려워지자 차선으로 동영상을 선택했다. 에스케이 관계자는 “특히 사내방송에 나온 자연스러운 회장님의 모습에 젊은 직원들의 반응이 좋았고, 외부로도 공개하자는 얘기가 있었다”며 “외부에 노출되는 것도 회장님이 전혀 꺼리시지 않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엔 함영준 오뚜기 회장이 장녀와 함께 유튜브에 등장하기도 했다. 함 회장의 딸은 뮤지컬 배우 함연지씨로, 본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영상에서 함연지씨는 “요즘 아빠가 집콕 생활 중 쇼핑에 빠졌다”며 함께 쇼핑한 아이템을 소개했다.

크리스마스 의상을 함 회장이 즉석에서 옷을 갈아입고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오뚜기 홍보팀 관계자는 “회장님이 영상에 나오시더라도 저희도 나중에 알게 된다”며 “(함연지씨의) 이미지도 좋고 워낙 유튜브를 잘 하셔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기업 총수들의 이런 유튜브 행보에 전문가들은 ‘득과 실’을 모두 지적한다.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홍보 컨설팅을 진행한 김기훈 코콤포터노벨리 대표는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는 점에 대해선 나쁠 게 없지만, 영상이 의도하지 않게 구설수에 휘말리면 이미지가 한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를 외부 관점에서 바라보면 “법정 이슈와 같은 부정적인 과거 등을 가리고 본인의 이미지를 새로 입힌다고 볼 수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노영우 피알원 소장은 “최근 피아이의 추세는 최고경영자가 본인의 이미지 파워로 회사 마케팅에 기여하는 것인데, 더 나아가 전문성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메시지까지 담을 수 있다면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94.html
kolaswqetsrq 11.03 00:25
◇ 파탄 난 스웨덴 집단면역

◇ 파탄 난 스웨덴 집단면역

1923년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팀은 생쥐를 이용해 장염균 실험을 하다 감염 비율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집단에서 질병 확산이 멈추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 현상을 ‘집단면역(herd immunity)’이라고 불렀다. 과학자들은 신종 코로나의 경우 항체를 갖는 주민 비율이 60% 이상이면 집단면역을 형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스웨덴은 코로나 초기부터 아이들은 등교하고 직장인은 출근하는 일상을 유지했다. 국경 통제를 하지 않았고 마스크 착용마저 강제하지 않았다. 스웨덴 공공보건청장은 “봉쇄 조치가 전염병을 막는 데 효과가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맞벌이가 대다수여서 학교가 문을 닫으면 의료진의 4분의 1이 일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했다. 사실상 집단면역을 추구한 것이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이기에 뭔가 계산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스웨덴의 코로나 확진자는 10일 현재 48만9471명, 사망자는 9433명이다. 인구가 우리나라의 5분의 1 정도인데, 확진자 수는 우리의 7배, 사망자 수는 8배가 넘는다. 이웃 노르웨이와 비교해도 확진자는 9배, 사망자는 20배에 이른다. 지난 11월엔 칼 필립 왕자 부부가 양성 판정을 받고 자가 격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칼 구스타브 16세 국왕은 크리스마스 메시지에서 “우리는 실패했다. 세상을 떠난 이가 너무 많아 처참한 심정”이라고 했다. 스테판 뢰벤 총리의 지지율은 급락해 정권마저 휘청거린다.

자연 감염에 의한 집단면역은 코로나 초기에 영국 등도 검토해본 방안이다. 그러나 한꺼번에 환자가 쏟아지면 의료 시설이 감당하지 못해 희생이 너무 크다는 결론을 내리고 포기했다. 사망률을 2%만 잡아도 스웨덴 인구(1000만 명)의 60%에 면역이 생기려면 12만 명의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해 코로나로 큰 타격을 입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 베르가모시는 검사 결과 주민들의 항체 형성 비율이 57%였다. 그 수치에 이르기까지 인구 11만 명 중 무려 1만6000여 명이 숨졌다.

스웨덴은 뒤늦게 지난달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고, 중등학교에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했다. 북유럽 복지국가의 모델을 만든 스웨덴이 어떻게 이런 위험한 실험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과학을 믿지 않는 지도자를 만나면 국민들이 막대한 희생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을 스웨덴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86.html
kolaswqetsrq 11.03 00:26
◇ 코로나 시대, "시댁과 비대면...부부싸움 줄었어요”

◇ 코로나 시대, "시댁과 비대면...부부싸움 줄었어요”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남편이 승용차로 데리러 와요. 코로나 걸리면 어쩌느냐면서. 얼핏 들으면 애처가 같죠? 더 들어보라니까요. 행여 제가 걸렸다간 자기 회사 동료까지 민폐 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대요. 내 걱정인지 자기 걱정인지.” 자랑인가 핀잔인가. 맞벌이 직장인 A(여·51)씨가 웃으며 말했다. 코로나 시대의 부부 사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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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이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의뢰해 20~60대 남녀 5111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코로나 이후 1년간 ‘가족 갈등이 줄었다’가 30.46%로 ‘늘었다(17.02%)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불가항력의 바이러스 외침(外侵) 속, 툭 하면 짜증 내뱉던 가족이 표면적으론 휴전에 들어간 모양새다. 세대가 낮을수록 마찰이 적어졌다는 비율이 높았다. 20대에선 ‘갈등이 줄었다’가 45.50%. ‘늘었다(12.20%)보다 4배 가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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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줄어든 이유를 주관식으로 물은 결과, 가장 많이 나온 답은 ‘가족과의 거리 두기 덕분’이었다. 취업·결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20~30대에서 두드러졌다. 부모님과 떨어져 서울에 사는 20대 응답자(여·28)는 “부모님과 만나면 취업 걱정을 많이 하셔서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코로나 감염을 이유로 자주 안 보게 되니 오히려 관계가 좋아졌다”고 했다.

주부에겐 ‘비대면 시댁’이 호재였다. 경기도에 사는 50대 주부(57)는 “코로나를 핑계로 시댁에 안 갈 수 있어 좋다. 주 갈등 원인이 없어지니 남편과 싸울 일도 줄었다”고 했다. “저녁 약속이 줄어 부부 싸움을 덜 한다”(남·51) “소비가 줄어 잔소리를 안 들어도 된다”(남·62)는 남편도 적잖았다. “모두 힘든 상황이라 웬만하면 이해하고 넘어가려 한다” “집밥 먹으면서 대화가 늘어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답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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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재택근무가 잦아지면서 살림 분담·육아 참여도에 따라 관계가 좋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한다. “‘집콕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집안일을 많이 하게 돼 마찰이 줄었다”(남·69)는 답이 있는가 하면, “재택근무 하는 남편이 육아를 안 도와줘 말싸움이 늘었다”(여·35)는 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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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별로는 40대와 50대에서 ‘갈등이 늘었다’는 답이 각각 20.20%, 19.00%로 1, 2위를 차지했다. 사춘기 자녀를 둔 연령층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한 주부 응답자(45)는 “집에 있는 것만도 갑갑한데 반항하는 사춘기 아이와 있으려니 스트레스가 두 배”라고 했다. ‘TV 채널 싸움’ ‘안 치워서’ ‘잘 안 씻어서’ 등도 사소한 갈등 원인으로 꼽혔다.

-아무튼 주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05.html
kolaswqetsrq 11.03 00:26
◇ 한국인의 밥상 10년 진행 최불암 “남은 막걸리 버려 뺨맞은 뒤, 뭐든 안 남기고 먹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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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밥상 10년 진행 최불암 “남은 막걸리 버려 뺨맞은 뒤, 뭐든 안 남기고 먹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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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거제도의 겨울 대구를 알리고 10년이 지났다.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이다. 노배우 최불암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지역의 향토 음식을 맛보는 이 방송은 명실상부 한국의 대표 교양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느릿하면서도 정겨운 그의 목소리로 풀어내는 요리와 지역에 얽힌 이야기가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시간. KBS에 따르면 방송 기간 국내와 해외까지 이동 거리는 35만여km, 1400여 곳의 8000여 가지 음식을 선보이는 동안 프로그램을 거쳐 간 제작진은 100명이 넘는다. 여든을 바라보는 망팔(望八·71세)에 방송을 맡은 그는 이제 90세를 바라보는 망구(望九·81세)가 됐다.

그는 “이 나이까지 방송 일을 하며 복에 겨운 밥상을 받으러 다닌다. 전국의 우리 어머니들이 나 때문에 굽은 허리, 무릎 관절 아픈 것도 참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며 “10년 동안 받은 그 사랑을 어떻게 다 갚나. 방법을 아직도 못 찾고 있다”고 했다.

7일부터 4주에 걸쳐 방영되는 10주년 기념방송을 앞두고 5일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인의 밥상’을 정의하면.

“우리나라 밥상은 참 남다른 것 같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보면 밥상 대부분이 어려운 시절에 가족을 먹이기 위해 어머니가 궁핍한 식재료를 갖고 지혜를 짜내 만든 것이더라. 나의 어머니는 김치에 꼭 생선을 넣어서 담그셨다. 조기도 넣고, 낙지도 넣고 밴댕이도 넣고 제철에 나오는 싼 생선을 넣었다. 그게 익으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맛이 난다. 김치가 익으면 생선을 골라 내 밥 위에 얹어 주시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한창 성장기였던 아들한테 고기를 먹일 돈은 없으니 그걸로 단백질을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최불암의 밥상’에는 무엇이 있나.

“무짠지, 오이지를 좋아한다. 일곱 살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갓집에서 자랄 때 많이 먹었다. 무짠지가 밑천이 안 드는 반찬이다. 무를 소금에 절이기만 하면 된다. 가난한 살림살이 때문이었는지 외할머니가 무짠지를 그렇게 먹였다. 지금도 밥상에 무짠지가 있어야 한다. 입안을 시원하게 하고 밥맛을 나게 한다.”

-10년 방송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과 음식은.

“기억에 남는 건 음식보다는 사람들이다. 언젠가 남원에서 추어탕을 촬영하던 때였던 것 같다. 맛을 보면서 ‘산초(山椒)’가 좋아서 추어탕도 맛있는 것 같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촬영을 마쳤는데 어르신이 동네 느티나무 아래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가 내 손을 잡고는 ‘줄 게 없다’며 그 산초를 신문지에 정성스럽게 싸서 주더라. 그런 분들이 있어서 1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꼭 다루고 싶은 음식은 무엇인가.

“북한 음식을 현지에서 못 다룬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송해 선생은 ‘전국노래자랑’이 평양 갔었다는 걸 가장 큰 자랑으로 삼는다. 우리도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 만약 북한에 갈 수 있다면 황해도 해주를 꼭 가보고 싶다. 거기가 아버지 고향이다.”

그의 어머니(이명숙 여사)는 서울 명동에서 ‘은성’이라는 주점을 운영했다. 시인 김수영, 변영로, 박인환 등 단골손님인 당대 문인들의 사랑방으로 유명했다. 일찍부터 최씨가 문화에 눈을 뜬 계기이기도 했다.

-어머니 가게에 오간 문인들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나.

“문인들이 ‘은성’에 오면 그렇게 김치만 달라고 그랬다. 돈이 없어 안주를 시킬 수가 없으니까. 어머니가 11월에 김치를 담그셨는데, 큰 항아리 두 개에 담그시면 12월을 못 넘겼다. 그래서 나는 어디 가서 김치 더 달라는 말을 못한다. 어머니가 김치 떨어질까 봐 하도 노심초사하시던 걸 봐서다. 또, 단골 중에 술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변영로 시인이 있었다. 내가 대학에 합격한 날 그분이 축하한다고 막걸리를 한 잔 주셨다. 그런데 술을 마시고 잔을 돌려드리려다 술지게미가 남았길래 잔을 털었더니 대뜸 뺨을 때리며 호통을 치시는 거다. 귀한 쌀로 만든 술을 버렸다고. 그때부터 술이든 음식이든 남기지 않고 먹으려는 습관이 생겼다.”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10.html
kolaswqetsrq 11.03 00:27
◇ 보쌈에 소맥 화상 한식투어...코로나에 살아남은 여행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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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쌈에 소맥 화상 한식투어...코로나에 살아남은 여행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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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가 해를 넘겼다. 근근히 버텼던 여행업계도 이젠 한계에 다다른 듯 보인다. 겨울에 들면서 배달업체로, 보험회사로 출근한다는 여행사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반면에 시련에 굴하지 않고 새 꿈을 벼리는 여행사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전공과 주특기를 살려 새로운 여행 콘텐트를 만드는 사람들. 달라진 세상, 달라진 여행을 시작한 세 명의 코로나 극복기를 소개한다.

-일본 소면 문화를 여행하다

‘엔타비’는 일본 전문 여행사다. 서울·부산은 물론이고, 일본 오사카·후쿠오카·삿포로에도 지사를 뒀던 탄탄한 여행사다. 지난 1년 사이 31명(한국인 24명, 일본인 9명)이었던 직원이 4명으로 줄었다. 그래도 간판은 내리지 않았다. 김윤중(42) 대표가 지난 16년간 1년의 절반 가까이 일본에 머물면서 쌓았던 인맥과 콘텐트를 총동원해 새 활로를 찾아냈다. 일본 소면 문화다.

김 대표는 일본 나가사키현 미나미시마바라에서 생산하는 전통 소면을 수입한다. 미나미시마바라는 소면의 고장이다. 인구 5만 명 도시에 소면 공장 300여 개가 있다. 이 마을에선 350년째 손으로 늘여 면을 뽑아 소면을 만든다. 김 대표가 이 소면과 인연을 맺은 건, 제주올레가 일본에 낸 올레길 ‘규슈올레’ 덕분이다. 2015년 미나미시마바라에 규슈올레 코스가 들어섰고, 그때부터 엔타비는 미나미시마바라 여행상품을 운용했다.

“작년 8월 본격적으로 소면 사업을 시작했어요. 아는 사람은 아는 명품이어서 입소문이 금방 났어요. 이치류, 옥동식, 효계, 부산 젠스시 등 쟁쟁한 맛집 예닐곱 곳이 우리 소면으로 메뉴를 개발했어요.”

소면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김 대표는 사업을 확장했다. 11월 아고다시(날치 조미료), 12월 아리타 도자기를 수입했다. 소면과 천연 조미료, 그리고 식기, 이로써 김 대표의 일본 전통 소면 밥상이 차려졌다. 8월 50만원이었던 매출이 12월 1500만원을 넘었다.

“지금은 이렇게라도 여행업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은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거니까요. 다시 여행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이미 50여 개 상품을 기획해 놨습니다.”

-화상회의에서 재현하는 한국의 맛

‘오미요리연구소’ 김민선 대표(36)는 요리사다. 코로나 사태 전에는 방한 외국인 대상으로 푸드 투어와 요리 강습을 진행했다. 2019년에는 한 달에만 외국인 약 500명이 김 대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대학원에서 ‘전통식생활문화’를 전공하고 각종 음식 자격증을 딴 경력을 바탕으로 2015년 음식관광 회사 오미요리연구소를 창업했다. 연구소는 한국관광공사와 서울관광재단으로부터 관광벤처기업으로 선정됐고, 2019년 한식진흥원 최우수 음식관광기업으로 꼽혔다.

김 대표도 코로나 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해 3월 이후 외국인 입국이 사실상 금지되면서 연구소 손님도 뚝 끊겼다.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다. 김 대표는 에어비앤비의 ‘온라인 체험’ 프로그램을 주목했다. 5월부터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실시간 요리 강습(사진 위)을 진행했다.

요리 영상은 큰 인기를 끌었다. 전 세계에서 강습 프로그램에 들어왔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와 멕시코에서도 참여했다. 온라인 강습 주 3회 기준으로 한 달에 외국인 200~300명이 방문했다. 요리 강습을 가족 모임, 회사 워크숍으로 활용하는 참가자도 많았다. 메뉴는 비빔밥·잡채·보쌈부터 ‘소맥’까지 폭넓게 다룬다. 반응도 좋다. 김 대표의 프로그램 점수는 5점 만점에 4.97점. 에어비앤비의 여느 요리 강습에 뒤지지 않는다. 열 번 넘게 들어온 단골도 여럿 생겼다.

김 대표는 요리만 가르치지 않는다. 서울 동대문 약령시장, 인천 차이나타운 등지에서 촬영한 푸드 투어 영상도 보여준다. 김 대표는 “전 세계 참가자들이 ‘한국을 여행한 것 같다’ ‘나중에 반드시 한국을 찾겠다’고 말할 때 보람을 느낀다”며 “이렇게라도 한국의 매력을 알려야 여행이 재개되면 한국의 관광산업도 빠르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캠핑카 여행을 주도하다

코로나 사태가 이어진 2020년. 한국에서도 캠핑 열풍이 불었다. 외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캠핑 문화, 특히 차박 문화는 독특하다. 굳이 비좁은 승용차에서 잠을 자고, 해수욕장이나 유원지 공짜 주차장을 찾아가 캠핑을 한다. 차박이 유난히 인기인 이유 중엔 지나치게 비싼 국내 캠핑카 가격도 있다. 캠핑카 대여 사업에 여행사 ‘비욘드코리아’가 뛰어든 이유다.

비욘드코리아는 중남미·미국·아프리카 전문 여행사다. 하나투어와 남미 항공사 ‘라탐’ ‘아비앙카’ 한국 총판을 거친 김봉수(51) 대표가 2009년 창업했다. 김 대표는 2016년 미국 캠핑카 회사 ‘크루즈 아메리카’ 한국 예약 업무를 맡으면서 캠핑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온 가족이 주방·침대·화장실을 갖춘 캠핑카를 빌려 느긋하게 여행하는 문화가 언젠가는 한국에도 정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올해 코로나 사태가 발발했고, 김 대표 예상대로 캠핑 문화가 확산했다. 2월 말 중남미 단체 여행팀을 끝으로 완전히 일이 끊기자 김 대표는 국내 캠핑카(사진 아래) 대여 사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스타렉스 캠핑카 두 대를 마련해 7월부터 인터넷에서 예약을 받았다. 캠핑 시즌인 7~11월 예약이 꽉 차는 걸 보며, 캠핑카 대여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해외여행이 재개돼도 캠핑카 사업은 계속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캠핑카 공유, 콘도 개념의 회원제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비욘드코리아 직원은 올해 10명에서 5명으로 줄었다. 여전히 캠핑카만으로는 수익이 부족하다. 온라인몰 ‘봉상회’를 만들어 터키 건강식품 같은 해외 특산물 판매도 시작했다.

김 대표는 “요즘에야 여행업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반성하고 있다”며 “직원들과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41.html
kolaswqetsrq 11.03 00:28
■ 항왜降倭:투항왜병 6편

■ 항왜(降倭:투항왜병) 6편

여여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선조실록》 1597년(선조 30년) 9월8일 기록을 보면 ‘사백구’라는 항복한 왜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공적이 대단했다. 항왜에 지극히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경상우병사 김응서가 선조 임금에게 사백구의 포상을 건의하면서 올린 상소문이다.

『금년(1597년) 3월 가토 기요마사 휘하에서 사백구라는 왜인이 투항했는데, 지성으로 왜병을 토벌하는 것을 보니 지극히 가상합니다. 상급을 내려야 합니다.』

김응서는 항복한 왜인 사백구에게 줄 상급이 없어 일단 김해부사 백사림에게 보냈다. 마침 일본군이 경상도 함양의 황석산성을 공격했다. 이때 김해부사 백사림도 출전했는데, 사백구 또한 전장에 나섰다. 사백구의 활약은 남달랐다. 조총으로 왜병을 4명이나 쏘아 죽였다. 하지만 황석산성은 함락되었고, 살이 쪄서 거동이 불편했던 백사림은 꼼짝없이 포로가 될 운명이었다. 이때 사백구가 왜병 흉내를 내어 백사림 가족을 성 밖으로 탈출시켰다. 사백구는 백사림을 산속에 숨겨놓고는 왜병이 점령한 산성으로 숨어들어갔다. 백사림은 사백구가 자신의 위치를 왜적에게 알려 공을 세우려는 줄 알고 두려움에 떨며, 사백구가 배신할 까 두려워 몸을 잠시 피해있었다. 그러나 사백구는 성안으로 들어가 왜병들에게 “먹을 것 좀 달라”고 해서 쌀 한말과 간장, 무우, 옷가지 등을 구해왔다.

사백구는 백사림이 보이지 않자 발을 구르고 ‘어디 갔느냐’고 불러댔다. 백사림이 겨우 몸을 드러내자 사백구는 백사림의 허리를 끌어안고 “대체 어디 갔다가 왔느냐”고 반가워했다. 백사림 가족은 사백구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사백구는 부사 백사림에게 옷을 입혀주고 밥을 먹이면서 눈물을 흘렸다. 백사림이 밥을 다 먹은 뒤에야 사백구는 수저를 들었다.

사백구와 백사림의 일화를 전하던 김응서의 한탄이 심금을 울린다.

『조선의 유식한 무리도 처자식을 구제하지 못하는데, 무식한 오랑캐 무리의 지성이 사백구와 같으니 사람으로써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사백구에게 상급을 내려 위로하소서. 그리고 사백구에게 성씨를 하사하여 조선 사람으로 영원히 살도록 하소서.』《선조실록》

여여문과 사백구 외에도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에서 한몫 단단히 한 준사(俊沙)라는 항왜도 유명하다. 이순신 장군이 단 13척이 배로 일본 수군을 격파할 때 장군의 배에는 안골포에서 투항한 항왜 준사가 타고 있었다. 준사는 바다에 빠진 왜군들을 내려다보면서 “저 무늬 있는 붉은 비단옷을 입은 자가 적장 마다시(馬多時)라고 지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이순신 장군이 마다시의 목을 내다걸어 왜적의 사기를 꺾었고,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6_92.html
kolaswqetsrq 11.03 00:28
■ 항왜降倭:투항왜병 5편

■ 항왜(降倭:투항왜병) 5편

여여문의 말대로 『쳐들어올 때는 반드시 소수의 군사로 유인하여 적이 매복한 곳에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잇따라 일어나 공격한다.』는 왜군의 전법은 칠천량 해전에서 입증되었다. 이때 조선군은 일본군의 전법에 말려 단 12척의 전선만 남긴 채 사실상 전멸했던 것이다.

여여문은 전쟁터로 달려가 한목숨 바칠 각오가 있음을 피력하기도 했다.

『제가 현장으로 내려가서 산성을 다시 쌓는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아니면 저를 요해처로 보내 주십시요. 죽음으로 보답하겠습니다.』《선조실록》1597년 1월4일

여여문은 “후한 이익을 좋아하는 일본인을 유인하기는 쉽다”면서 “일본군을 꾀어 적장을 모살하도록 계획을 세우면 아마도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계책을 올렸다. 과감하게도 ‘적을 이용한 적장 모살 작전’을 아뢴 것이다. 여여문은 이때 조선을 ‘우리(我) 조선’이라고 표현했다. 여여문은 뼛속까지 조선인이 됐음을 알 수 있다.

‘항왜’ 여여문이 ‘우리 조선’ 운운하면서 계책을 논하고, 조선군의 약점을 설파했을 때, 선조 임금의 반응은 어땠을까. “부끄럽다”는 반성이었다. 선조는 “그가 말한 대로 시행하라. 여여문의 말을 들으니 우리나라 일이 부끄럽기도 하다.”라고 했다.

이 뿐이 아니었다. 정유재란 때인 1598년(선조 31년) 5월17일 여여문은 적진에 정탐꾼으로 밀파되어 왜군의 정세를 상세히 보고하는 임무를 맡는다. 여여문은 머리를 깎고 왜인의 옷을 갈아입고 적진에 잠입했다. 여여문은 울산, 즉 성황당·도산·태화강 등 3곳의 적병숫자를 파악해서 손수 형세도를 그린 뒤 빠져나왔다. 여여문의 형세도를 본 명나라군 양호 총사령관은 크게 기뻐하면서 은 10냥을 내려주었다. 물론 여여문의 형세도대로 작전을 짰다. 명나라군의 마귀 제독이 군사를 일으키자 여여문을 다시 적진에 침투시켰다. 여여문은 전투가 벌어지자 왜군 4명의 수급을 베어 가지고 나왔다. 그러나 명나라 마귀 제독은 여여문을 죽이고는 그가 가지고 있던 왜적의 수급마저 다 빼앗아 그의 공을 가로채 버렸다.

《선조실록》에는 1598년(선조 31년) 3월 27일 여여문의 죽음을 알리면서 『여여문이 베어낸 왜적의 4수급을 마귀가 빼앗는 것을 똑똑히 본 사람들이 많다. 여여문 말고도 소운대(小云大)라는 항왜 역시 아군을 위해 공을 세웠고, 왜적을 여러 명 유인했다.』고 기록했다. 여여문이 죽은 지 두 달이 지난 1598년(선조 31년) 5월 17일 우의정 이덕형은 항왜 여여문의 공적을 일거한 뒤 반드시 상급을 내려야 한다고는 주청을 올린다. “여여문은 임진란 이후로 종군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처자식도 모두 적의 손에 죽었습니다. 가상한 일입니다. 여여문을 논상함으로써 격려하는 뜻을 보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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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29
■ 항왜降倭:투항왜병 4편

■ 항왜(降倭:투항왜병) 4편

그렇다면 선조의 말처럼 ‘제 몸 돌보지 않고 싸운 항왜들’ 가운데 첫손으로 꼽히는 인물은 실록(선조실록)에도 등장하는 바로 여여문(呂汝文)일 것이다. 사실 여여문이 어떤 경로로 항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1595년(선조 28년) 6월19일 《선조실록》을 보면 매우 의미심장한 기사가 보인다.

『과인이 항왜(降倭:항복한 왜인) 여여문을 각별히 후대하라고 전날에 전교하였는데 실행하는지 모르겠다. 요사이 듣건대, 이 자가 병이 났다가 차도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보통 왜인이 아니다. 대우를 후하게 하지 않아선 안 된다.』

훈련도감은 선조의 특명에 따라 “여여문은 집중치료를 통해 회복됐지만 주상의 하교대로 특별히 더 후대하겠다”고 보고했다. 그저 왜적 가운데 항복한 자일뿐인데, 선조임금이 나서서 “후대하라”는 특명을 내린 것도 모자라 “그 자의 병에 차도가 있는지 알아보라”고까지 했을까. 훈련도감은 왜 고분고분 선조의 명을 받들어 여여문의 건강상태까지 다시 체크했을까. 여여문이 조선에 매우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슨 역할이었을까.

《선조실록》에 여여문의 임무가 구체적으로 나온다. 즉 훈련도감이 이른바 아동대(兒童隊)를 선발하여 검술을 익히게 하고 사수를 양성하게 하는데, 그 책임자를 여여문에게 맡겼다.

『(여여문이 훈련시킨) 아동대 인원들을 어제 모아놓고 시험을 치렀는데, 50여명 중 합격자가 19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음식을 상급으로 주었습니다. 여여문에게 아동대를 전적으로 맡겨....』 《선조실록》

이뿐이 아니었다. 조선은 여여문으로부터 일본군의 진법과 전술을 전수받았다. 이것은 조선군과 명나라군이 일본군과 맞서 싸울 때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여여문이 일러준 왜군의 전법은 매우 상세했다.

『왜군은 깃대를 진 군사는 양쪽으로 에워싸고 나아가 좌우의 복병과 함께 적의 후미를 포위합니다. 싸우면서 흩어질 때 많은 복병을 좌우에 배치하고, 조총과 창검으로 각각 하나의 부대를 삼아 숲속에 흩어져 매복하기를 마치 새와 짐승이 은복하듯 합니다.』 《선조실록》1596년 2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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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30
■항왜降倭:투항왜병 3편

■항왜(降倭:투항왜병) 3편

포악한 왜장의 휘하 장졸들일수록 귀순·투항자가 많았다. 즉 1597년(선조 30년) 조선은 항복한 왜인 세이소(世伊所)와 마다사지(馬多時之)를 다시 적진에 보내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의 휘하 군관을 5명이나 귀순시켰다. 왜장 가운데는 특히 가토 기요마사가 포악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선조실록》을 보면 그 평가가 맞는 듯하다.

『사역이 너무 과중하고 장수의 명령이 너무도 혹독하여 그 노고를 견디지 못하고 몸을 빼어 도망쳐 왔습니다. 우리(5명) 외에도 귀순하려는 자가 많습니다. 계속 유인하면 청정(가토 기요마사)의 형세는 자연히 고단해질 것입니다. 요즘 청정(가토 기요마사)이 사졸들의 마음을 크게 잃어 일본으로 귀국하려는 군졸이 하루에 100명에 이릅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1596년 7월 이순신 진영에 왜인이 5명 항복했는데, 투항이유가 ‘장수가 너무 포악했고, 그 역도 과중했기 때문(將倭性惡 役且煩重)”이라 했다.』

항복한 왜인들을 후대한 조선 조정의 ‘항왜 정책’도 왜인들의 항복을 가속화시켰다. 조선 조정은 투항하는 왜적에게 첨지(정3품 무관), 동지(삼군부의 종2품) 등의 고위관직을 내렸다. 처음엔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왜병들이란 교활하여 믿을 수 없는 자들이며, 그들을 먹일 식량 또한 여의치 않다”는 의견들도 많았다. 그러나 경상우병사 김응서 등은 매우 긍정적으로 항왜를 바라보았고, 무엇보다 선조 임금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선조는 1595년(선조 28년) 승정원에 “왜병의 항복을 적극 유치하라”면서 “그들에게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줘라”는 명을 내린다.

『항왜를 유인하는 일은 손해될 게 없다. 다방면으로 환대하고 상을 주어 투항을 유도하라. 그 중에 검술을 할 줄 알거나 병기를 잘 만들거나 하는 자를 꾀어내면 파격적인 상을 내려야 한다고 비변사에 일러라.』

심지어 선조는 항왜 유치를 반대한 신료들에게 『자네들은 투항한 왜병들을 의심하고 그들을 대접해준다고 불평해왔다. 원래 과인이 항왜들을 많이 유치하려 했지만 자네들 때문에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가. 지금 항왜들 만이 충성을 제대로 바치고 있다. 먼저 성 위로 올라가 죽을힘을 다해 적병을 죽이고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싸운다. 이들에게는 모두 당상관(정3품 이상)의 직책을 내리고, 은(銀)을 상급으로 하사하라.』《선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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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30
■ 항왜降倭:투항왜병 2편

■ 항왜(降倭:투항왜병) 2편

선조는 비변사에 “항복한 왜군들은 모두 죽여야 한다고 명나라 파병군에게 전하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비변사는 이를 제지했다.

『전하의 말씀은 맞습니다. 저 왜적들은 만세의 후라도 반드시 복수해야 할 원수이고, 저들의 살점을 베어 먹고 가죽을 벗겨 깔고 자도 시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중국 장수들은 ‘조선은 어찌 그리 속이 좁으냐’고 힐난하고 있습니다.』《선조실록》

당시 중국군은 ‘오랑캐가 아침에 쳐들어와서 저녁에 항복하기만 하면 다 받아준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군에게 아무리 말을 해봐야 속 좁다는 소리만 들을 것이 뻔하니 전하께서는 참으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조선 조정은 임진왜란 초기에는 전쟁을 일으킨 왜적에게 품은 적개심을 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전세가 장기전으로 접어들고 상황이 달라졌다. 전쟁 발발 2년 4개월이 지난 1594년 8월 선조가 내린 명령을 보면 생각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선이 전투에서 이기지도, 용기백배하여 방어하지도 못하면서 항복·귀순하는 왜인들을 거절하고 있다. 이는 옳지 않은 처사다. 항복한 왜인이 수백 명에 이른다고 한다. 왜군의 군졸을 이렇게 앉아서 얻었는데, 지나치게 의심할 필요가 있는가.』

처음에 항복한 왜병을 요동으로 보냈던 조선 조정은 차츰 경상·함경·강원·충청·황해의 바닷가와 외딴 섬으로 보냈다. 또 시간이 흐르자 제주나 진도 등지의 수군 및 각 진에 나눠 이주시켰다. 점점 ‘항왜’의 관리가 골치 아파지기 시작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1594년(선조 27년) 6월 비변사가 아뢰었다. 『투항한 왜적을 경상도 내륙지방 한 고을 당 7~8인 혹은 15~16인씩 두었는데 골치 아파합니다. 매우 후하게 대접해서 하루 세 끼를 먹여주는데도 왜노는 만족할 줄 모릅니다. 끊임없이 요구하고, 뜻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칼을 들이대고, 저들끼리 싸워 서로 죽인답니다. 이들이 진심으로 투항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선조실록》

그렇다면 왜인들은 왜 조선조정에 투항했을까.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지면서 장기주둔이 계속되자, 왜군은 보급로 차단으로 군량미 부족에 시달렸다. 1595년(선조 28년) 4월19일 비변사가 항복한 왜인인 조사랑(助四郞)과 노고여문(老古汝文) 등 11명에게 술과 안주를 먹이자 ‘항복한 이유’를 술술 털어놓았다.

『우리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등의 휘하에서 예속된 장졸들입니다. 여러 장수들의 진영을 오가며 감당해야 하는 수자리(전방수비)를 괴로워하던 차에 조선이 후히 대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후략).』《선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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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32
■ 임진왜란은 ‘노예전쟁’

■ 임진왜란은 ‘노예전쟁’

임진왜란은 우리 민족에게 큰 상처를 남긴 처참하기 짝이 없는 전쟁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 침략 야욕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어느 의미에선 가장 전투력이 왕성한 국가와 가장 준비되지 않은 국가 사이의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은 150여년에 이르는 전국시대를 거치며 어떤 군대보다 전투력이 높은 상태였다. 특히 1543년 ‘조총’이라 불리는 장총을 서양으로부터 전래 받은 이후, 대대적으로 생산하고 실전에 배치한 상태였다.

이런 무력을 갖춘 군대 15만8천명이 1592년 조선을 침략한 것이다. 당시 부산성을 지키고 있던 조선군의 병력은 600명이었다. 7년 동안 계속된 이 전쟁에서 일본군은 조선인 18만5738명, 명나라인 2만9014명 등 모두 21만4752명의 수급(首級:적군의 머리)을 베었다고 집계된다. 일본은 이런 잔인한 만행을 저지르는 한편, 5만~10만명에 이르는 조선인을 무더기로 끌고 갔다. 이에 따라 임진왜란을 ‘노예전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당시 도공들이 얼마나 많이 잡혀갔는지 조선에선 거의 30여 년 동안 찻잔도 제대로 생산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에 끌려간 도공들은 큐슈의 사쓰마 등지에서 세계적인 도자기를 생산해 유럽에 대거 수출하는 등 일본 도자기 산업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래서 ‘도자기전쟁’ ‘문화전쟁’이라고도 한다. 일본에 끌려간 사람 가운데 일부는 노예로 또 다시 포르투갈 등 유럽으로 팔려가기도 했다.

전쟁 뒤 조선은 일본군의 살육과 전염병, 질병 등으로 인구가 격감해 경지 면적이 170만결에서 54만결로 크게 축소됐다. 3분의 1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의 존립마저 불투명할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한양의 경우 임진왜란 170년 전인 1428년(세종 10년) 11만명에 이르던 인구가 전쟁 뒤 3만8천명으로 줄어들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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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32
■ 황희와 한명회의 비교

■ 황희와 한명회의 비교

파주에서 서쪽으로 시오리 임진강가에 반구정(伴鷗亭)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는데, 세종대의 명상이며 청백리의 귀감인 방촌 황희(尨村 黃喜) 정승의 정자이다. 18년간의 영의정 직을 사임하고, 90세의 천수를 다할 때까지 이름 그대로 갈매기를 벗하며 노년을 보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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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에는 압구정이라는 곳이 있다. 압구정은 세조의 모신(謀臣)이던 한명회(韓明澮)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인 압구정이 있던 곳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반구정의 반(伴)과 압구정의 압(狎)은 글자는 다르지만 둘 다 벗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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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정자는 다 같이 노재상이 은퇴하여 한가로이 갈매기를 벗하며 여생을 보내던 정자인데, 남아있는 지금의 모습은 아주 다르다. 반구정은 지금도 갈매기를 벗하며 철새들을 맞이하고 있음에 비하여, 압구정은 이미 그 자취마저 없어지고, 아파트 옆 작은 표석(標石)으로 그 터임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각 정자의 주인인 황희 정승과 한명회의 일생만큼이나 대조를 보이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는 영의정의 자리에 올랐던 재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은 언제나 명상(名相)·현상(賢相)으로 칭송되는가 하면, 또 한 사람은 권신(權臣)·모신(謀臣)으로 역사에 오명(汚名)을 남기고 있다.

세종의 위대한 업적 뒤에는 언제나 황희정승의 보필이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눈에 뜨이지 않는 자리에 있었고, 심지어 물러나 임진강가에서 어부들과 어울릴 때에는 그가 당대의 재상이었음을 아무도 몰랐을 정도였다고 한다. 반면, 한명회는 그의 두 딸을 왕비로 들이고 네 차례나 1등공신이 되었으며, 그의 뒤에는 언제나 쿠데타와 모살(謀殺)과 옥사(獄事)가 함께 하고 있었다. 한명회는 뒤에 신원(伸冤)되기는 하였지만, 부관참시(剖棺斬屍:죽은 뒤 큰 죄가 드러난 사람에게 내리는 극형)의 화를 입은 권력자였고, 스스로 실력자 곁에서 앞질러 헤아리고 일을 도모한 모신(謀臣)이었다. 황희정승은 두문동에 은거하기도 하고 유배되기도 하지만, 언제나 자신의 원칙에 따라 진퇴(進退)를 결정했다.

황희의 성품을 잘 나타내는 많은 일화들이 남아있다. 황희정승의 집안 노비 두 사람이 서로 다투다가 그를 찾아와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일러바치자, 사내종에게도 ‘네 말이 옳다’ 계집종에게도 ‘네 말이 옳다’ 하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를 지켜보던 부인이 그의 무정견(無定見)을 나무라자 ‘부인 말도 옳다’고 했다는 일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이면서, 황희의 성품을 잘 나타내주는 일화이다. 황희 정승이 겸허하고 관대한 일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것에 비하여 한명회는 그와 정반대인 모사꾼과 간신배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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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33
◇ ‘신데렐라 편의점’... 밤이 되면 알바가 사라진다

◇ ‘신데렐라 편의점’... 밤이 되면 알바가 사라진다

편의점 ‘이마트24′ 서울 성수백영점은 매일 밤 11시가 되면 무인(無人) 점포로 바뀐다. 손님들은 입구에서 신용카드를 긁어 신분을 증명한 뒤 입장한다. 물건을 들고 와 셀프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고 카드로 결제한 뒤 나가면 된다. 직원은 다음 날 오전 6시에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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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에 무인으로 운영되는 ‘하이브리드 편의점이 최근 1년 새 배(倍) 이상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저임금 인상에 코로나로 야간 유동 인구가 줄고, 언택트(비접촉) 선호 심리가 확산한 게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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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계열 하이브리드 편의점은 작년 초 250여 곳에서 올해 550여 곳으로 늘었다. 현재 GS25와 CU가 각각 약 200개 점포를, 이마트24 113개, 세븐일레븐이 43개 점포를 야간에 무인으로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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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기업부도 ‘스마트슈퍼라는 이름의 하이브리드 모델 확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운영 컨설팅을 제공하고 시설 개선 비용도 저금리로 빌려준다. 중기부 관계자는 “일반 소매점이 야간 장사가 가능한 ‘스마트슈퍼’로 변신한 뒤 일 평균 매출이 32.6% 증가했다”면서 “올해부터 매년 스마트슈퍼를 800개씩 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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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무인 편의점을 전문으로 하는 프랜차이즈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작년 4월 창업한 ‘꽁꽁냠냠’이 전국에 무인 가맹점 125곳을 열었고, ‘신구멍가게24’ ‘마켓무’ 등도 각각 90곳과 36곳을 열었다. 신구멍가게24 관계자는 “코로나 이전 1년간 가맹점이 5개뿐이었는데, 작년에만 85개를 새로 열었다”고 말했다. 대기업 편의점 관계자는 “편의점주 입장에서 야간 8시간을 무인으로 돌리면 월 인건비를 250만원 가까이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82.html
kolaswqetsrq 11.03 00:33
◇ 현빈-손예진, 골프로 정 쌓고 세 번 열애설 끝 ‘사랑의 안착’

◇ 현빈-손예진, 골프로 정 쌓고 세 번 열애설 끝 ‘사랑의 안착’

배우 손예진(38)과 현빈(38)이 연인 사이임을 인정했다. 2021년 새해 첫날 터진 열애 소식이자 한류 특급 커플이 탄생한 것이다. 둘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이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왔다고 양측 소속사가 밝혔다.

손예진은 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렇게 됐습니다”라며 쑥스러운 듯 소감을 밝혔다. 손예진은 “처음으로 일이 아닌 내 개인적인 이야기로 여러분 앞에 서려니 왜 이토록 부끄러운지 모르겠다”면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드리고 예쁘게 잘 가꿔가 보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현빈 소속사 VAST엔터테인먼트 역시 “현빈⋅손예진 두 배우는 작품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되었고 드라마 종영 이후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연인으로 발전하게 됐다. 두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동갑내기인 둘은 취미인 골프를 즐기며 사랑을 키워왔다. 동종 업계로 서로를 잘 이해하는 점도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현빈과 손예진은 지난 2018년 개봉한 영화 ‘협상’으로 호흡을 맞췄다. 친구처럼 잘 어울리는 모습에 미국 동반 여행설 등 세 차례 열애설이 나기도 했다. 당시 소속사는 “친분은 있지만 시간이 맞아 만나게 된 것”이라며 열애설을 부인했다.

둘을 잇는 연결고리는 지난해 2월 종영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재벌가 상속녀 윤세리와 북한 장교 리정혁의 러브 스토리에 ‘진짜 커플이 되면 좋겠다’는 팬들의 응원이 상당했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국내에서 21.7%의 높은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한 드라마는 일본에서 넷플릭스 1위를 하며 일본의 ‘한류 붐’을 재점화했다. 특히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국에 스트리밍되면서 일본뿐만 아니라 대만⋅필리핀⋅태국 등에서 넷플릭스 톱 10에 드는 등 국제적 인기를 누렸다.

이번 열애 소식 역시 해외 매체들이 빠르게 타전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끈 드라마 주인공 현빈과 손예진이 열애를 인정했다”고 전했다. 마이니치와 산케이신문 등도 주요 뉴스로 다뤘다. 일본 야후 재팬은 둘의 열애를 톱기사로 올렸다. 필리핀⋅싱가포르⋅인도네시아 매체들도 둘의 열애 소식을 빠르게 보도했다.

세련되면서도 다정한 눈빛으로 인기를 끈 현빈은 2003년 KBS 드라마 ‘보디가드’로 데뷔했다. 2005년 최고 시청률 50.2%를 달성한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스타성을 입증했고,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선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이태리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같은 대사들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2001년 MBC 드라마 ‘맛있는 청혼’으로 데뷔한 손예진은 ‘청순’의 대명사로 불리며 영화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으로 톱 여배우로 성장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81.html
kolaswqetsrq 11.03 00:34
■ 영창대군 3편

■ 영창대군 3편

영창대군을 죽인 광해군에게는 걸림돌인 인목대비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인목대비를 처리하는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얼마 후 광해군 8년(1616년) 1월 경운궁에 광해군을 비방하는 익명서가 날아들어 왔다. 기자헌이 대비와 협력하여 유희분과 박승종을 몰아낸 다음 큰일을 도모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광해군은 조신들을 모아 놓고는 그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였다. 성균관 유생들의 폐비 상소가 제출되었으며, 이이첨과 허균(許筠)은 김개(金介) 등을 시켜 무뢰배와 거지들을 모아서 유생의 복색을 입혀 놓고, 궐문 밖에 엎드려서 대비는 역적이니 어서 폐서인하여 추방함이 옳다고 아뢰게 하는 연극을 꾸몄다.

조정에서도 한효순이 백관을 거느리고 들어가 폐모(廢母)를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이이첨은 모든 것을 자신이 조종하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다가 유생들의 상소와 한효순의 정청(廷請:세자나 삼정승이 모든 벼슬아치를 거느리고 궁정에 이르러 큰일을 임금께 아뢰어 하교를 기다림)을 빙자하고 이위경(李偉卿)을 시켜 폐모 상소를 지어 올리게 하였다. 그리고 문무 백관들에게 찬성 서명하기를 강요하였다. 일부는 회피하고 서명을 하지 않았고, 특히 원임대신 이원익과 기자헌(奇自獻)은 강경히 반대하였다.

또한 이항복은 신병으로 요양하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참지 못하여 강경한 어조의 반대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이들 반대세력들은 계속된 대간들의 탄핵을 받아, 마침내 이원익은 관직을 삭탈당한 뒤 남해로 귀양갔다가 수원으로 옮겨졌다. 기자헌과 이항복은 처음 정평과 용강으로 유배되었다가, 죄가 중하다하여 다시 삭주와 창성으로 가게 되었다. 그 뒤 다시 기자헌은 종성으로, 이항복은 북청으로 옮겨졌다.

철령 높은 재를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孤臣) 원루(怨淚)를 비삼아 실어다가

임 계신 구중 궁궐에 뿌려 준들 어떠리.

이 노래는 그때 오성 이항복이 북청으로 귀양가면서 지은 것이다. 이항복과 기자헌을 귀양 보낸 다음, 이이첨 등은 정청에 참여하지 않은 정창연(鄭昌衍) 등을 ‘십사(十邪)’라 하여 내몰아 정배시키고 의창군 등 20여 명도 그렇게 함으로써 반대파들을 모두 제거한 셈이다. 그리고 늙고 병들어 참여하지 못한 재상들은 모두 벼슬을 깎아버리고, 끝내 저희들 뜻대로 인목대비를 폐서인하여 경운궁으로 내몰았다. 이것을 가리켜 ‘계축사화(癸丑士禍)’ 또는 ‘계축옥사’ 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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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35
■ 영창대군 2편

■ 영창대군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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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집권당 대북파가 장악한 삼사와 승정원 등에서는 영창대군의 처벌을 계속 상소하였다. 그러나 남인 및 일부 소북, 서인은 처벌을 반대하였고, 이항복(李恒福)·이덕형(李德馨)·곽재우(郭再祐) 등은 배가 다른 이복형제이지만 계통상 모자, 형제지간의 의가 있다며 영창대군 처형을 반대하였다. 하지만, 대북세력의 다수는 토역(討逆)의 논리를 내세워 죽일 것을 주장했다. 결국 이항복 등이 유배를 당하고, 대북파는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광해군의 세력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1614년 이이첨 일파가 강화부사(江華府使) 정항(鄭沆)을 시켜 악의적으로 영창대군의 방에 불을 때게 하였고 음식도 끊었다. 영창대군은 뜨거운 바닥 위에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밤낮없이 창살을 부여잡고 울부짖다가 기운이 다해 죽었고, 이이첨과 정항은 영창대군이 병으로 죽었다고 보고했다. 이때 영창대군의 나이는 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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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에 의하면, 정항이 영창대군을 굶겨서 죽게 하였다거나 정항이 온돌을 뜨겁게 달구어 영창대군을 증살(蒸殺)했다고 되어 있으나, 《인조실록》에는 광해군의 밀명을 받은 별장(別將) 이정표(李廷彪)가 음식물에 잿물을 넣어 영창대군을 죽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확실한 죽음의 경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 후 1623년 인조반정 후 관작(官爵)은 복구되었고, 이복 형 경창군의 넷째 아들 창성군을 사후양자로 지명하여 가계를 이어갔다.

시신은 1614년(광해군 6년) 경기도 광주군 남한산성 아래(현 성남시 태평3동 근처)로 운구되어 매장하였다가, 광주군의 성남시 개발지역에 포함되어 1971년 8월 경기도 안성군 일죽면 고은리(현 안성시 일죽면 고은리 산24-5)에 이장되었다. 이장 과정에서 묘지명(墓誌銘) 등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매몰돼 있다가, 1993년 성남시 태평3동 4911 골목길에서 도시가스 시설 배관공사 도중 다섯 조각으로 파손된 채 발견되었다. ‘영창대군묘’는 1983년 9월 19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75호로 지정되었다. 전주이씨 안성군 종친회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봉분 앞에 상석과 춘로석이 있고, 장대석으로 단을 쌓아 아래와 구분하였다. 아래 전방에는 동자석이 좌우에 있고 동자석 앞에는 망주석과 문석인이 좌우에 세워져 있다. 석물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묘비는 대리석이다. 묘비에는 ‘영창대군증시소민공지묘(永昌大君贈諡昭愍公之墓)’라는 명문이 있다. 이수와 비신은 동체이며 쌍룡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묘단에는 직사각형 모양에 연화무늬가 새겨져 있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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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36
■ 영창대군 1편

■ 영창대군 1편

영창대군의 이름은 이의, 제14대 선조의 열네 째 아들이다. 선조의 첫 번째 부인인 의인왕후가 후사를 보지 못하고 죽은 뒤 맞이한 두 번 째 부인 인목왕후의 아들이다. 선조는 6명의 후궁을 두어 임해군과 광해군을 비롯하여 여러 왕자와 옹주를 두고 있었으나, 정비(正妃) 소생의 적장자는 영창대군이 유일하다. 그것도 55세의 나이에 얻은 늦둥이다보니 선조의 특별한 총애를 받은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국가비상사태에 대비하여 권정례(權停例: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거행하는 의식)로 공빈 김씨(恭嬪金氏)의 둘째 아들인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그러나 그 뒤 정비 소생인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선조는 세자를 바꾸고 싶어했다. 방계승통에다가 서출이라는 점을 의식하던 선조는 이미 세자로 책봉한 광해군을 싫어하여 유영경 및 몇몇 신하들과 영창대군의 세자책봉을 몰래 의논하였다. 당시 실권을 잡고 있던 유영경(柳永慶)을 위시한 소북파(小北派)가 이 뜻을 지지하여 영창대군을 왕세자로 추대하려 하였으나, 선조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이 일은 광해군 집권 후에 유영경 등이 처형당하는 원인이 되었다.

선조는 자신이 죽은 뒤의 사태에 대비하여 특별히 한준겸 등 7명에게 영창대군의 뒤를 부탁하였다. 이를 유교칠신(遺敎七臣)이라 부른다.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직 나이 어린 영창대군을 남겨두고 가는 선조의 마음이 어떠하였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 대목이다. 이를 간파한 이이첨, 정인홍 등 대북파들은 세자를 바꿔서는 안된다고 계속 주장하다가 사실무근한 소문을 퍼뜨린다는 죄목으로 귀양가게 되었다. 귀양 출발을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선조가 갑자기 승하(1608년)하게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즉위한 광해군은 이들을 다시 등용하였다. 하지만, 광해군과 이이첨(李爾瞻) 등 대북파들에게 있어서 아직 영창대군은 그 존재 자체가 위험 요소였다.

그러던 중 1613년(광해군 5년) 소양강을 무대로 시주(詩酒)를 즐기던 서양갑(徐羊甲)·박응서(朴應犀) 등 7명의 서출(庶出)들이 역모를 꾸몄다는 이른바 ‘7서의 옥’이 일어났다. 이이첨 등은 이 기회를 이용하였다. 그들이 영창대군의 외조부 김제남과 함께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는 역모를 도모했다는 자백을 받아내고, 광해군은 이이첨ᆞ정인홍 등의 농간으로 형 임해군(臨海君)을 죽이고 인목왕후를 서궁(西宮)에 잡아 가두었다. 인목왕후의 아버지 김제남(金悌男)을 반역죄로 몰아 서소문(西小門) 밖에서 사형에 처하고, 영창대군을 서인으로 강등시켜 강화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하였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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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36
■ 이몽학의 난 4편

■ 이몽학의 난 4편

명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점차 조선에 유리해지자 의병을 독려하던 선조의 태도가 급변한 것이다. 선조는 의병을 관군으로 흡수시키라는 명을 내리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것이었고, 결국에는 의병들이 군량미만 축내고 있다며 강제 귀농 조치를 명했다. 사실상의 의병 해체 작업을 실시한 것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선 의병들에게 돌아온 것은 바로 군량미나 축내는 쓸모없는 사람 취급뿐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자신들의 과오(過誤)가 드러나고, 전공(戰功)이 의병들에게 돌아갈 것을 두려워하였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체면이 말이 아닌 것이다. 참으로 치졸하고 한심한 군주에 그 신하들이다.

의병으로 나섰던 백성들은 이에 크게 분노했지만, 자기들이 의병으로 나선 것은 어차피 선조나 조정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나라와 자신들의 고향과 가족들을 위해 싸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만을 누른 채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선조와 조선의 관료들은 의병들에게 상을 주기는커녕 일본과 잠시 휴전하는 동안에도 전쟁에 지친 백성들을 다시 수탈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이 때 일어난 것이 ‘이몽학의 난’이었고, 이 난을 계기로 선조는 의병장들을 반역자로 처리하는 좋은 구실로 삼았던 것이다.

이몽학의 난으로 인하여 선조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으며 정치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이 때문에 의병장들을 의심하기 시작하였고 이순신 등 공훈이 많은 관군 장수들 역시 의심하며 경계하였다. 이 덕에 본의 아니게 원균이 선조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였는데 선조가 이순신을 견제하기 위해 원균을 우대한 것이다. 사실 이몽학의 난 이전까지만 해도 선조는 상대적으로 이순신의 후원자에 가까웠다. 애초에 북방에서 이일의 장계를 받고도 백의종군으로 처벌을 낮췄고, 평소대로라면 수군절도사로 진급할 수 없는 낮은 계급이었던 이순신을 고집을 피워 전라좌수사로 임명한 게 선조였다.

선조는 전쟁이 끝난 후 이순신 같은 명장들이 민심을 얻고 의병장들 또한 전공을 차지하는 것을 두고 볼 만큼 현명한 명군(名君)이 아니었던 것이다. 선조는 그들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 간 선조를 위협하는 세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조는 의병장 중 단 한 명도 공신으로 칭하지 않았고, 의병들을 해체하거나 김덕령처럼 역모를 뒤집어 씌워 죽이기까지 했다. 오죽하면 이순신장군의 최후에 대해서도 그러한 결과를 예견하고 마지막 전투가 될 노량해전에서 전사를 가장하여 자살을 한 것이라는 가설과 추측도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정묘호란이나 병자호란 때는 의병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이몽학의 난은 실패로 끝나기는 하였지만, 임진왜란을 통해 극심한 사회적 모순과 민심의 이반 현상이 상당했음을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천안 지역에서 이몽학의 반란군에 얼마나 호응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충청도에서 반란군이 승승장구한 것은 이 지역의 민심이 어떠하였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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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37
■ 이몽학의 난 3편

■ 이몽학의 난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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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학의 본관은 전주로 본래 왕실의 서얼 출신으로 서울에서 살았으나, 성품이 불량하고 행실이 좋지 않아서 아버지에게 쫓겨나 충청도와 전라도 등지를 전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현의 부하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반란 계획을 꾸민 다음, 의병을 모은다는 명목으로 ‘동갑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장정들을 모집하였다. 1596년 충청도 홍산에서 이몽학의 난으로 불리는 반란을 일으켜 한때는 홍산·청양·대흥 등을 차례로 함락시켜 홍주(지금의 홍성)까지 돌입했으나, 반란군 중에서 관군에 붙은 자가 많아져서 전세가 점점 불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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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함락이 어렵다는 것을 안 이몽학은 11일 새벽에 무리를 이끌고 덕산(德山)을 향해 달아나게 되는데, 반란군 중에 도망자가 속출하였다. 이때를 이용해 관군은 반란군 진영에 무사를 보내어 혼란시키면서 이몽학의 목을 베는 자는 반란에 가담하였다 하더라도 큰 상을 내리겠다고 회유하였다. 그러자 반란군 중에서 앞다투어 이몽학의 목을 먼저 베려는 자가 속출하였고, 결국 반란군 김경창 등에 의해 이몽학은 참수되었다. 이때 한현은 반군 수천 명을 이끌고 홍주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홍가신의 진군으로 패주하다 사로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

서울로 압송되어 처형된 사람은 33명이며, 외방에서 처형된 사람이 100여 명이나 되었다. 연좌율(緣坐律)을 적용하게 되면 그 수가 너무 많아짐에 따라 특별한 경우에만 적용해 희생자를 가급적 줄였다. 이리하여 반란 주모자의 처리는 일단락되었으나, 반란자들의 입에서 나온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최담령(崔聃齡)·홍계남(洪季男)·곽재우(郭再祐)·고언백(高彦伯) 등이 붙잡혀 와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 중에서 김덕령과 최담령은 혹독한 심문 끝에 억울하게 장살(杖殺)당하거나 옥사하였다. 김덕령은 뒤에 신원되었으나 반란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은 난의 처리가 끝난 뒤에도 더욱 늘어났다. 난을 토평(討平)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은 1604년 청난공신(淸難功臣)으로 책록되었다.

그렇다면 이몽학은 왜 전쟁의 와중에 국가에 저항하는 난을 일으킨 것일까?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백성들이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왜 국가를 향해 칼 끝을 겨누었을까? 그것은 전쟁 중 상황에서 일본군이 아닌 조선의 의병들에게 먼저 칼날을 겨눈 것은 선조와 조선 조정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 선조가 의병들에게 한 일들을 보면 정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선조는 의병활동을 이렇게 평가절하 했다.

“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명나라 군대의 힘이었다. 조선의 장수나 의병들은 명 장수 뒤를 쫒아 뒷처리나 했을 뿐이다. 오로지 임진왜란이란 국난극복을 한 것은 명나라 덕분이었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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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38
■ 이몽학의 난 2편

■ 이몽학의 난 2편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들은 모두 양반 출신들이었다. 구한말 의병으로 신돌석이라는 평민 의병장도 있기는 했지만, 임진왜란 당시 일반 백성이 의병장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올바른 의식을 가진 양반들이 의병장으로 나섰고,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일반 백성들은 의병으로 나서서 목숨 바쳐 왜군과 싸웠다.

의병들의 활약과 명나라의 참전으로 전쟁은 소강상태에 빠졌다. 전쟁으로 전국의 농촌은 황폐화되고, 은결(실제로 경작하고 있으면서 국가 토지대장에서 빠진 토지. 즉 세금을 안내는 토지)은 증가되고, 국가재정은 악화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관리들의 부정행위는 더욱 악랄해졌다. 조선의 지배계층이나 토착관리들은 전쟁의 와중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일본과 잠시 휴전하는 동안에도 전쟁에 지친 백성들을 다시 수탈하기 시작했다. 또 일본의 재침략에 대비한 산성 축조 등으로 농민들의 삶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 있었다. 전쟁 초기에 큰 활약을 했던 각지의 의병들은 전쟁이 장기화되고 유능한 의병장들이 관인이 되거나 전사함에 따라, 의병으로서의 기능은 약화되어 있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후 계속되는 흉년으로 민중들의 생활은 비참하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명(明)·일(日) 사이에 강화(講和)를 둘러싸고 찬반양론의 논쟁이 치열하였다. 일본의 재침을 방비하기 위해 각처의 산성을 수축하는 등 민중의 부담이 가중되자, 민중의 원성과 고통은 확대되어가고 있었다. 장기간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의 삶은 비참해지고 조정에 불만을 품은 사람도 늘어났다. ‘이몽학의 난’ 역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일어났다.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키자 순식간에 많은 사람이 이에 호응한 것도 이 같은 현실을 벗어나고자 했던 민중의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다.

이몽학의 반란 과정에서 사실상 도화선 역할을 했던 인물은 한현이었다. 그는 임진왜란 발발 이후 의병장으로 활약하여 그 공으로 1594년(선조 27) 겸사복(兼司僕)이 되었다. 그 뒤 이시발(李時發)의 휘하에서 충청도 지방의 속오군을 훈련시켰는데, 이때 반란을 획책하여 그 부하로 있던 이몽학을 사주하여 거병하도록 했던 것이다. 한현이나 이몽학은 각각의 직책과 활동 속에서 당시 전쟁으로 인해 각종 부담에 시달리고 있던 백성들의 고통과 그에 따른 불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거사에 착수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였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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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38
■ 이몽학의 난 1편

■ 이몽학의 난 1편

역사상 어느 인물의 공과(功過:공로와 과실)를 논할 때, 아무리 뛰어난 영웅이라 할지라도 전혀 결점이 없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개인사적이든 정치적이든 다소의 실수나 실책은 있기 마련이지만, 그가 남긴 공적이 그것을 덮을 만큼 크다면 우리에게 역사상 위인으로 이름을 남길 수가 있을 것이다. 선조에 대한 평가도 다소 복합적이기는 하나, 우리에게는 비겁하고 무능한 임금이라는 이미지가 크다.

선조는 왕위계승과는 거리가 먼 위치에 있던 인물이었으나 1567년 명종이 후사 없이 죽자, 조선 최초로 방계 혈통으로 왕위에 즉위하였다. 선조는 이 점이 항상 열등감으로 작용했다. 실록에 나오는 선조에 관한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다.

『선조는 즉위 초 오로지 학문에 정진하여 매일 강연(講筵)에 나가 경사(經史)를 토론하였다. 이전까지 조정의 주 세력이었던 훈구세력(勳舊勢力)을 물리치고 사림(士林)들을 대거 등용하였다. 명유(名儒) 이황(李滉)과 이이(李珥) 등을 극진한 예우로 대하여 침체된 정국에 활기를 불러일으키고자 힘을 다하기도 하였고, 두 대비마마 모시기를 친어머니 섬기듯 효성이 지극하였다. 성품 또한 검소하여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색(色)이나 오락에 괘념하지 않았고, 서화에도 뛰어났다. 음식과 의복도 절제하여 비빈이나 궁인들까지도 감히 사치하지 못하였다. 항상 절약하고 농민들의 노고를 생각해 한 톨의 낟알을 땅에 떨어뜨리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

이 내용으로 보면 선조는 천성이 검소하고 효심이 깊으며,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 또한 소홀치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인물의 진가(眞價)는 위기 때 발휘되는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데, 선조는 이러한 점에서 정반대의 평가를 받는다. 평상시에는 군주로서 봐줄만한 리더쉽을 갖고 있었지만, 위기 시에는 최악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역사적으로는 큰 불행이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선조가 했던 행동은 백성들을 크게 실망시켰고, 그 중에서도 의병에 대한 대우와 처리는 최악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땅에 상륙한 일본은 지리멸렬한 관군의 큰 저항없이 파죽지세로 수도 한양까지 밀고 올라갔다. 하지만, 상상치도 못했던 복병(伏兵)을 만나 전황(戰況)이 크게 바뀌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당시 의병장들로는 김덕령, 곽재우, 고경명, 조헌, 영규대사, 서산대사, 사명당, 정문부 등이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이들은 역사에 이름이라도 남는 의병장이 되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이름 없는 의병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왜군과 싸우다가 죽어갔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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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39
■ 선조의 여인들 - 인목왕후 7편

■ 선조의 여인들 - 인목왕후 7편

서인 주도의 반정이 성공한 이후, 광해군과 인목대비의 인생은 역전되었다. 경운궁에 감금되어 한 많은 세월을 보내야 했던 인목대비 앞에 광해군은 죄인 신분이 되었다. 반정 이후 왕 자리에서 쫓겨난 광해군은 가족과 함께 쓸쓸히 강화도로 귀양 갔다가 훗날 바람 많은 제주에 이배(移配:귀양지를 다른 곳으로 옮김)되어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인목대비는 다시 왕실 최고 어른으로 복귀했다. 인조는 인목대비를 핍박한 것을 패륜의 상징으로 부각시키며 광해군 정권의 부도덕성을 강조했다. 인조는 즉위 후 인목대비에 대해 존호(尊號)를 높여주고, 잔치를 자주 베풀면서 광해군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켜 나갔다.

인목대비는 이후 전국의 명산대찰을 돌아다니며 부처님께 아들과 아버지의 명복을 빌었다. 안성의 칠장사를 김제남과 영창대군의 원찰로 삼았으며, 금강산의 여러 사찰에 아들과 아버지의 위패를 모셔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정명공주가 혼인하여 출궁한 뒤 인목대비는 계속 창덕궁에 머물렀다. 1624년(인조 2년)에 일어난 이괄의 난으로 창덕궁이 불타자 광해군이 지은 인경궁으로 옮겨 살았다. 1631년부터 잦은 설사와 복통, 고열로 잠 못 이루던 인목대비는 1632년 4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인목대비는 글씨를 잘 써서 많은 한글과 한문 친필이 남아있다. 『열성어필 숙종대왕편(列聖御筆肅宗大王篇)』에서는 인목왕후의 서예 풍격에 대해 "더욱 건강(健强)하고 천기(天機)가 비동(飛動)하며, 서운(瑞雲)이 휘상(輝祥)하다. 종이는 오래 되고 먹은 새로우나 여전히 향기가 머무른다."라고 하였다. 왕후의 서예가로는 인목왕후가 최초이며, 기존의 여류서예가보다도 격(格)과 질(質)이 높은 글씨를 썼고, 그리하여 신사임당(申師任堂)과 더불어 서예에서 쌍벽을 이루는 존재였다는 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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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목대비(仁穆大妃)로 불리나, 인목(仁穆)은 죽은 뒤에 받은 시호(諡號)이다. 선조 때 소성(昭聖)이라는 존호를, 광해군 때 정의(貞懿)라는 존호를 받아 통칭 소성대비(昭聖大妃)라 불렸다. 인조가 반정으로 즉위한 뒤 대왕대비가 되어 명렬(明烈)이라는 존호가 더해졌고, 죽은 뒤 광숙장정(光淑莊定)이라는 휘호와 인목이라는 시호가 올려졌다. 고종 때에 정숙(正肅)이라는 존호가 추가로 더해짐으로써, 정식 시호는 소성정의명렬광숙장정정숙인목왕후(昭聖貞懿明烈光淑莊定正肅仁穆王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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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40
■ 선조의 여인들 - 인목왕후 6편

■ 선조의 여인들 - 인목왕후 6편

반정(反正)에 성공한 이튿날 아침 능양군은 경운궁으로 가서 11년 동안 유폐되어 있던 인목대비에게 반정을 공식적으로 승인받고자 했다. 하지만, 인목대비는 갑자기 병사들이 몰려오자 무슨 일인지 몰라 문을 걸어 잠그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핍박받아온 그녀로서는 최후를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광해군일기》에 따르면 이귀가 군사를 시켜 담장을 넘어 문을 열게 한 다음 경운궁 안으로 들어가 바깥뜰에서 울면서 고했다. 인목대비가 내시를 시켜 까닭을 묻자, 이귀는 자신들이 반정을 일으킨 사유를 고하면서 창덕궁으로 행차하기를 청했다. 하지만 그녀가 행차를 꺼리자 능양군이 친히 경운궁으로 나아가 인목대비를 뵙고 행차하기를 재촉했다. 능양군은 경운궁에 이르자 말에서 내린 뒤 서청문을 통해 궁 안에 들어가 재배하고 통곡했다.

“혼란 중에 일이 많고 겨를이 없어 지금에야 왔사오니 황공할 따름입니다.”

인목대비는 그제야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절차에 따라 능양군에게 어보(御寶:옥쇄)를 전달한 뒤, 광해군에게 당한 원한을 갚아주기를 간절히 청했다. 반정의 주역들은 광해군 측의 반격을 염려하여 현장에서 곧바로 즉위식을 치르고자 했다. 그러자 인목대비는 경운궁 별당인 즉조당에서 예식을 치르게 했다. 이튿날 인목대비는 즉위 교서를 내려 반정의 정당성을 공표했는데, 앞부분에 광해군에 대한 분노가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내 비록 부덕하나 천자의 고명을 받아 선왕의 배우자가 된 사람으로 일국의 국모가 된 지 여러 해가 되었으니, 선묘(宣廟: 선조)의 아들이 된 자가 나를 어미로 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광해는 참소하는 간신의 말을 믿고 스스로 시기하여 나의 부모를 형살하고, 나의 종족을 어육으로 만들고, 품안의 어린 자식을 빼앗아 죽이고, 나를 유폐하여 곤욕을 주는 등 인륜의 도리라곤 다시없었다. 이는 대개 선왕에게 품은 감정을 펴는 것이라 미망인에게야 그 무엇인들 하지 못하랴.』

인목대비는 당시 광해군의 죄를 38가지나 열거했다. 그 첫째로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죽이고 계모인 자신을 서궁에 유폐한 ‘폐모살제(廢母殺弟)’를 들었다. 이것은 성리학의 이념을 신념화한 서인들에게 주요한 반정의 명분이 되었다. 이어서 광해군대에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지 못하고 중립외교를 한 것과 무리한 토목 공사로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린 것 등을 광해군의 악행으로 열거하였다.

-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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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40
■ 선조의 여인들 - 인목왕후 5편

■ 선조의 여인들 - 인목왕후 5편

인목왕후는 당시 왕실 최고의 어른이고 법통으로도 군주인 광해군의 어머니였지만, 그때부터는 실질적으로는 원수와 다름없는 관계가 되었다. 광해군은 1615년(광해군 7년) 4월 자신의 거처를 재건된 창덕궁으로 옮기고 인목대비를 경운궁에 유폐(幽閉:깊숙히 가둠)시켰다. 경운궁은 태조의 계비 강씨의 무덤인 정릉(貞陵)이 있던 곳으로, 당시에는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사가(私家)였다. 선조가 임진왜란이 끝난 뒤 궁궐에 불타 거처할 곳이 없었으므로 행궁으로 삼은 장소였다. 정릉동행궁(貞陵洞行宮)이라고 불린 이곳에서 선조가 승하했고 광해군이 즉위했다. 그 해 창덕궁이 재건되면서 광해군이 이 곳을 떠나게 되자 경운궁(慶運宮)이라는 궁호(宮號)가 붙게 되었다.

1618년(광해군 10년) 인목대비는 폐서인(廢庶人)되어 경운궁에 유폐되었고, 좌의정 한효순, 공조판서 이상의, 예조판서 이이첨 등 17인이 〈폐비절목〉을 만들어 대비의 특권과 예우를 박탈했다. 하지만 명나라에서 폐서인의 고명(誥命)이 내려오지 않아 인조반정 때까지 인목대비는 대비의 신분을 그나마 유지할 수 있었다. 1622년 12월, 이이첨은 강원감사 백대형을 시켜 이위경 등과 함께 굿을 빙자해 경운궁에 들어가 인목대비를 시해하려 했으나 박승종 등이 가로막고 나서는 바람에 실패했다.

인목대비는 경운궁에서 맏딸 정명공주와 함께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다. 인목대비의 비참한 생활상은 어느 궁녀가 쓴 《계축일기》에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궁에는 지저분하고 더러운 물건을 버릴 만한 빈터가 없어 그것이 쌓여 악취가 가득했으며, 구더기가 방 안과 밥 지어 먹는 솥 위에까지 기어다니고, 물로 씻어내도 없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생필품도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바가지가 없어 소쿠리로 쌀을 일어야 했다. 솜옷이 없어 7,8년 동안 추위에 시달리다가 목화씨를 심어 재배하여 간신히 솜옷을 마련할 수 있었다. 경운궁의 궁녀들이 궐내에 텃밭을 일궈 나물을 재배하여 반찬으로 삼을 정도로 궁핍한 생활이었다. 그렇게 10여 년 가량 경운궁에서 힘든 나날을 살고 있었던 인목대비에게 한줄기 빛이 비춰졌다. 1623년에 광해군을 몰아내고 서인 정권이 들어서는 인조반정이 일어난 것이다.

1623년 3월 13일, 이귀, 심기원, 김자점, 김류, 최명길 등 서인들이 능양군을 앞세워 반정을 일으켰다. 거사의 명분은 폐모살제(廢母殺弟, 어머니를 폐하고 동생을 죽임)였다. 군사를 이끌고 홍제원에 집결한 그들은 창의문을 돌파하고 파죽지세로 도성 안에 들어왔다. 그들은 훈련대장 이흥립의 내통(內通)으로 활짝 열린 돈화문을 통과하여 손쉽게 창덕궁을 점령함으로써 반정에 성공했다.

-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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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41
■ 선조의 여인들 - 인목왕후 4편

■ 선조의 여인들 - 인목왕후 4편

당시 문경새재에서 도적들이 상인을 죽이고 은자(銀子:은돈) 수백 냥을 탈취한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 일당은 영의정을 지낸 박순의 서자 박응서, 심전의 서자 심우영, 전 목사 서익의 서자 서양갑, 평난공신 박충갑의 서자 박치의, 박유량의 서자 박치인, 전 북병사 이제신의 서자 이경준, 서얼 허홍인 등 권세 가문의 서자(庶子) 일곱 명이었다. 그들은 허균, 이사호, 김장생의 이복동생 김경손 등과 교유하며 죽림칠현, 강변칠우로 자처했던 서자(庶子)들이었다.

그들은 광해군이 등극하자 서얼 차별을 없애달라는 상소를 올렸지만 거부당하자, 이에 반감을 품고 경기도 여주 남한강변에 ‘윤리가 필요 없는 집’이라는 뜻의 무륜당(無倫堂)을 지은 뒤, 그곳을 근거지로 전국을 오가며 화적질을 일삼고, 문경새재에서 강도짓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데 피살된 상인의 노비 하나가 살아남아 그들의 뒤를 밟아 근거지를 알아낸 뒤 포도청에 고발함으로써 일망타진되었다.

사건을 접한 대북파의 거두 이이첨은 김개, 김창후, 한희길, 정항 등과 모의해 서얼 출신 화적패들이 자금을 모아 영창대군을 추대하려 했다는 거짓자백을 받아낸다. 그것은 일곱 명의 서자(칠서:七庶) 중에 한 사람인 박응서가 광해군에게 비밀상소를 올리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박응서는 상소문에서 자신들이 1608년 명나라 사신을 죽여 사회혼란을 야기하려 했고, 군자금을 비축하여 무사를 모은 뒤 일을 벌이려 했으며, 거사에 성공하면 영창대군을 옹립한 다음 인목대비의 수렴청정을 실행하려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대북파는 박응서의 자백을 근거로 하여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이 역모의 수괴(首魁)이고, 인목대비까지 모의에 가담했다는 거짓 자백도 받아냈다. 그 결과 선조로부터 인목대비와 영창대군의 안위를 부탁받은 신흠, 박동량 등 일곱 대신, 이정구, 김상용, 황신 등 서인 수십 명이 하옥되었다. 나아가 이이첨은 유생 이위경에게 영창대군과 인목대비의 처단을 종용하는 상소를 올리게 했고, 장령 정조와 윤인 등이 폐모론(廢母論:인목왕후를 폐함)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이첨의 사주를 받은 삼사(三司:사헌부,사간원,홍문관)에서도 연일 영창대군을 벌하라고 광해군을 압박했다.

결국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은 1614년 6월 1일 서소문 밖에서 사사(賜死)되었고, 영창대군은 서인으로 강등되어 강화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그와 함께 영창대군을 비호했던 영의정 이덕형, 좌의정 이항복 등도 조정에서 쫓겨났다. 그러자 이덕형은 시국을 개탄하며 식음을 전폐한 끝에 10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봄 영창대군은 강화도의 작은 골방에서 죽음을 당했다. 강화 부사 정항이 그를 밀실에 가두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질식사시켰던 것이다. 당시 대군의 나이는 불과 9세였다. 이 계축옥사를 통해 대북파는 서인과 남인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정권을 독점하게 되었다.

-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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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42
■ 선조의 여인들 - 인목왕후 2편

■ 선조의 여인들 - 인목왕후 2편

조선시대 왕비는 입궁하면 대략 1천 결 정도의 왕실토지에 대한 수세권(收稅權)을 얻는데, 이는 매년 1천 가마 이상의 수입을 의미한다. 그녀의 재산은 친정인 명례동에 마련한 서제소(書題所)의 차지(次知) 오윤남이 관리했다. 1603년(선조 36년) 정명공주가 태어나면서 배정된 850결, 영창대군이 태어나면서 배정된 노비 450명, 전답 300여 결까지 명례본궁에서 관리했으며, 선조에 의해 영창대군이 제안대군의 후계자로 정해지면서 그가 축적했던 수천 결의 땅과 수백여 명의 노비까지 송두리째 떠안음으로써 인목왕후의 친정아버지인 김제남은 큰 재력을 쥐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위정자들이 권력을 유지하려면 많은 정치자금이 소요되고,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정경유착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정권을 탈취하는 데도 그만한 재력이 필요할 것이다. 바로 그 민감한 점을 간과함으로써 인목왕후나 그 아버지 김제남은 재앙을 자초한 면이 있다. 인목왕후는 본가의 세력으로 보나 개인의 성품으로 보나 특출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위험한 시기에 지나치게 재산을 불림으로써 광해군과 정권을 이끌고 있던 대북파들의 눈총을 받았다. 그 때문에 김제남에게 위험을 경고한 사람도 있었지만, 김제남은 광해군의 불안감을 감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재산을 불림으로써 화를 자초하게 된 셈이다.

영창대군의 탄생으로 가장 난감해 진 사람은 바로 광해군이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발발 직후 국가 비상사태에서 세자 자리에 올랐다. 그는 어머니가 후궁이었기에 태생적으로 왕위 계승에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유교 윤리가 지배하고 있던 조선 사회에서 집안의 대는 반드시 본부인이 낳은 아들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존재했는데, 적장자가 탄생해 버렸으니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비록 전쟁 중 분조(分朝)를 잘 이끈 공이 있고, 오랜 기간 세자 자리에 있었다고는 하나, 광해군의 처지가 불안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유영경 등 소북파(小北派)는 당시 세자인 광해군이 서자(庶子)이며 둘째 아들이라 하여 영창대군을 옹립하고자 하였고, 대북파(大北派)는 광해군을 지지하였다. 그 때부터 조정 신료들은 영창대군을 후사로 삼자고 주장하는 소북파와 세자인 광해군을 추종하는 대북파로 갈라져 당쟁이 확대되면서 치열하게 싸웠다. 하지만 그 무렵 갑작스레 악화된 선조의 건강이 대세를 갈라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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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42
■ 선조의 여인들 - 인목왕후 3편

■ 선조의 여인들 - 인목왕후 3편

1607년 10월부터 병석에 누운 선조는 만일에 대비하여 광해군에게 전위하겠다는 비망기(備忘記)를 내렸다. 어린 영창대군으로는 전란(戰亂)으로 피폐해진 조선의 재기를 도모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에 당황한 영의정 유영경과 소북 대신들은 광해군이나 대북파들에게는 그 내용을 비밀에 부쳤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광해군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이듬해인 1608년 1월, 죽음을 예감한 선조는 중신들을 모아놓고 광해군에게 선위(禪位)교서를 내렸다. 그런데 또 다시 유영경이 이를 감추었다가 대북파의 영수 정인홍에게 발각되었다.

그리하여 유영경의 죄상을 취조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선조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다급해진 유영경은 영창대군으로 후사를 삼고 수렴청정을 하라고 인목왕후를 부추겼다. 그러나 선조의 유명(遺命)을 중시한 인목대비는 언문교지를 내려 광해군으로 하여금 보위를 잇게 했다. 그리하여 광해군은 16년 동안의 위태로웠던 세자 자리에서 벗어나 드디어 왕위에 오를 수 있었고, 광해군을 지지하던 대북파가 정권을 손에 넣었다.

광해군은 즉위하자마자 무너진 국가기반을 재건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면서 왕권 회복에 박차를 가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자신의 책봉에 반대하고 세손의 원손책봉과 혼인을 지연시켰으며, 선조의 전위(傳位)를 방해한 유영경을 처단하고 소북파 인사들을 대거 축출했다. 영창대군의 후원자였던 유영경이 죽음으로써 인목대비와 영창대군의 입지는 크게 불안해졌다. 또 광해군의 왕위계승에 불만을 품은 임해군을 강화도로 귀양 보냈고, 마침내 이이첨의 사주를 받은 강화 현감 이직이 수문장 이정표에게 명하여 임해군을 죽이자, 영창대군을 지지하던 소북파들의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1612년(광해군 4년)에는 ‘김직재의 옥사’가 일어났다. 당시 조정에서 쫓겨난 서인과 소북파는 영창대군이나 능창군을 옹립하기 위하여 은밀하게 명나라에 사람을 보내 세자책봉과정을 재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대북파는 그 정보를 반대파 말살의 계기로 삼고 역모를 조작하여 김직재, 김백함 부자를 비롯하여 100여 명의 소북파 인사들을 대거 숙청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613년(광해군 5년) 드디어 인목대비에게도 가혹한 시련이 다가왔다. 이른바 ‘칠서(七庶)의 옥(獄)’으로부터 비화된 ‘계축옥사(癸丑獄事)’의 서막이 올랐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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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43
■ 선조의 여인들 - 인목왕후 1편

■ 선조의 여인들 - 인목왕후 1편

선조가 집권하던 16세기 말. 조선의 조정은 서로 뜻이 같은 관리들끼리 뭉치며 당이 만들어졌는데, 이 당들을 ‘벗들이 뭉친 조직’이라 하여 ‘붕당(朋黨)’이라 했다. 처음에는 동인과 서인, 이후 동인은 북인과 남인,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누어져 흔히 ‘사색당파(四色黨派)’라 한다. 조선 시대에 왕비는 국왕의 정실부인으로서 중궁(中宮)의 지위에 있던 여인이다. 임금과 함께 ‘전하(殿下)’로 불리며 국모(國母)로서 자리매김하던 존재로, 처신 여하에 따라 정국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도 했다. 특히 붕당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드라마틱한 인물로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 김씨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냈다. 그녀의 생애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궁녀가 쓴 《계축일기》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오늘날까지도 광해군 시대를 담은 수많은 소설이나 드라마에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인목왕후는 선조의 정비(正妃)인 의인왕후가 죽고 맞이한 선조의 계비(繼妃)이다. 사극(史劇) 속 비련의 주인공으로 인목대비라는 호칭으로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 조선 전기에는 왕후가 승하하면 3년 뒤에 후궁을 왕비로 승진시키는 형식을 택했지만, 선조는 중종이 문정왕후를 외부에서 간택한 전례에 따라 전국에 금혼령을 내리고, 14세 이상의 딸을 가진 모든 양반가에 처녀단자를 올리게 했다. 그렇게 해서 간택된 김제남의 딸이 바로 인목왕후이다. 선조의 나이 51세, 인목왕후는 19세였다.

인목왕후 김씨는 1584년(선조 17년) 연흥부원군 김제남과 광산부부인 광주 노씨의 차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아버지 김제남은 서인이었지만, 당파와는 거리가 먼 인물로 가문도 중종 때 권신 김안로가 몰락하면서 힘을 잃은 지 오래였다. 인목왕후가 왕비에 책봉되자 제일 당황한 인물은 세자 광해군이었다. 자신보다 9살이나 어린 새어머니가 거북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만약 적장자(嫡長子) 아들이라도 낳는 날에는 후궁 소생인 자신의 입지가 불안해 지기 때문이다.

인목왕후는 1603년(선조 36년)에 정명공주를 낳고, 3년 뒤 1606년(선조 39년)에는 적장자(嫡長子) 영창대군을 낳았다. 고대하고 고대했던 적장자의 탄생이었던 것이다. 선조 입장에서 늘그막에 얻은 막내아들은 하늘의 축복 그 자체였을 것이다. 전부인은 아이를 낳지 못한 채 죽었고, 후궁들이 낳은 아들들만 있었는데, 새장가를 든 젊은 부인에게서 55세의 늦은 나이로 적장자를 얻었으니 선조는 몹시 기뻤다. 하지만, 광해군으로서는 매우 불편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장차 혹시라도 왕위계승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날 불씨가 생겼기 때문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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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43
◇ 그림 값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 그림 값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먼저, 현재 여러분이 주변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그림 값은 적절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그림 값은 어떻게 정해질까요? 대략 이런 구도이지 싶습니다.

먼저, 화가의 입장입니다. 생애 첫 전시를 할 때 제일 먼저 난관에 부딪히는 게 있는데, 바로 ‘그림 값을 어떻게 정할까’일 겁니다. 스스로 자기 그림에 가치를 부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먼저 전시한 친구 그림 값에 연동도 하고, 하나뿐인 작품이란 자신감으로 얼토당토않게 비싸게 부르기도 하고, 예술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며 값을 정하지 않기도 하죠.

어쨌거나 그 첫 전시를 정신없이 치르고 나면 어렴풋하게나마 감이 잡힙니다. 반성을 많이 하게 되는데, 자신의 의지와 현실은 상당한 격차가 있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전시를 거듭할수록 들쭉날쭉하던 그림 값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즈음이 돼서야 화랑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데, 특정 화랑과 연결까지 되면 비로소 미술시장에 들어서게 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화랑의 입장을 짐작해 보겠습니다. 매년 수많은 화가가 전시를 하지만 어느 정도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주로 관망합니다. 섣부른 판단으로 일찍 화가와 손잡으면 기회비용이 높아지고, 너무 늦으면 다른 화랑이 ‘찜’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단어인 ‘적당한’ 시기에 특정 화가와 연을 맺습니다. 그리고 전시를 계획하게 되는데, 화가로서는 여태 전시와는 다른 수익 배분이라는 생소한 환경을 만나게 됩니다.

언뜻 화랑은 폼 나는 문화사업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문화를 거래하는 수익사업입니다. 그래서 팔리면 좋고 안 팔리면 그만인 이전의 그림 값과는 다른, 현실성 있는 그림 값을 의논하게 되는데 대부분 화랑의 뜻이 반영됩니다. 소위 그 분야의 프로들이니까요. 그림을 척 보면 딱 맞는 구매자들이 연상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진짜 그림 값이 매겨지게 됩니다.

구매자의 입장에도 서 보겠습니다. ‘사는 게 그림 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최종 결정은 구매자가 한다는 뜻이지요. 그림 값이 천정부지로 쭉쭉 오르면 참 좋겠으나 그건 그림이 전부인 화가나 수익을 내야 하는 화랑의 바람이고, 구매자는 그림 값에 대해 가장 객관적이고 냉철한 쪽이지요. 새 집에 필요해서든지, 투자로 구매하든지 간에 화랑의 조언은 듣겠지만, 저 정도 그림에 이 정도는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생각될 때 비로소 지갑을 열게 되거든요. 그래서 그 전시가 흡족하게 잘 끝나면 그림 값이 무사히(?) 통과된 것이나 마찬가지고, 화랑은 그 작가와 다음 전시를 웃으면서 같이 준비할 수 있지요.

이렇게 그림 값은 화가의 그림과 화랑의 판단력, 구매자의 수긍이라는 세 가지가 잘 조화가 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대부분 그림 값은 신뢰할 수 있다고 한 말이 어느 정도 이해되는지요? ‘부르는 게 그림 값’이라는 소위 성층권의 대가들에게는 상관없는 얘기일 것 같으나 그들 역시, 이런 과정을 다 거치며 체급을 올린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림 값은 ‘사는 게 값’과 ‘부르는 게 값’ 사이의 영원한 줄다리기 혹은 숙제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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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칸딘스키의 블루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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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80.html
kolaswqetsrq 11.03 00:44
◇ 2021년 소의 해, 전국의 소 있는 마을을 살펴보니

◇ 2021년 소의 해, 전국의 소 있는 마을을 살펴보니

강원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2리 오대산 자락에 ‘소도둑놈 마을’이 있다. 그 옛날 산적들이 마을로 내려와 소를 훔쳐 잡아먹는 일이 잦아 소도둑놈골로 불린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랭지 채소와 당귀 재배로 먹고살던 이 외딴 마을은 2006년 수해를 겪은 뒤 활로를 찾다 옛 이름을 공식 명칭으로 되살렸고, 2013년 산촌 생태체험 마을로 선정되며 전국에 이름을 널리 알렸다. 20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에 한 해 3000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리기도 했다. 역사 속에 숨어 있던, 소에 얽힌 지명 이야기가 행운을 부른 것 같다.

경남 거창군 가북면 ‘우혜 마을’ 이름에도 소가 들어간다. 한자말 우혜(牛惠)는 소의 은혜를 뜻한다. 어느 날 호랑이가 나타나서 농부가 일하느라 논두렁에 눕혀놓은 어린아이를 해치려 했는데, 소가 맞서 싸운 덕에 아이를 구했다는 얘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사람을 지키고,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소의 은혜를 기리는 마음을 마을 이름에 담았다. 강원 강릉 주문진 바닷가에는 길게 누운 소 모양의 ‘소돌 마을’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마을 제사 때 소고기를 쓰지 않고 닭고기를 올린다 한다. 풍수에서 소 형상의 마을은 풍요와 자손의 번창을 이뤄준다고 하니 소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전국 각지에 한글 ‘소’나 한자 소 ‘우’(牛)자가 들어간 지명이 무척 많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전국의 소 관련 지명이 731개로 십이간지 중 용(1261개), 말(744개)에 이어 세번째로 많다는 조사결과를 27일 발표했다. 소가 누운 형상의 와우산(臥牛山)은 서울·부산 외에 전국 곳곳에 있다. 제주의 우도(牛島)는 소 이름 들어간 섬의 대표다. 서울의 우면산(牛眠山), 우이동(牛耳洞)도 친숙하다. 쇠소깍·소똥령·소티재·쇠물뿌리 같은 우리말 지명도 정겹다.

2021년은 신축년(辛丑年), 소의 해다. 한자 축(丑)이 소를 뜻한다. 소는 은근과 끈기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힘과 고집은 세지만 온순하고 듬직하며 의로운 존재로 여겨졌다. 2021년 소의 해에는 ‘집콕’에서 벗어나 우직하고 강건한 소의 이름이 들어간 우리 땅을 마음껏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코로나19 감염병에 시달린 2020년 쥐의 해를 어서 떠나보내고 싶다.

-경향신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021.html
kolaswqetsrq 11.03 00:45
◇ 부적절한 고인 마케팅, 안중근 명예 훼손

◇ 부적절한 고인 마케팅, 안중근 명예 훼손

관직에 오르자마자 왕의 신임을 얻어 개혁 정치의 선봉장이 된 인물이 있다. 노비법을 고쳐 노비가 양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능력 있는 서얼이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잘못 선정된 반정공신들의 위훈 삭탈을 추진했다. 조선 중종 때 개혁을 진두지휘한 조광조 얘기다. 어느 시대건 개혁은 기득권 세력의 불만을 키우기 마련이다. 그는 훈구파가 기획한 기묘사화에 엮여 38세의 젊은 나이에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

지난 3월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이 “(검찰개혁을 추진한) 조국을 보면 조광조 선생이 떠오른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한양조씨 대종회는 “조광조 선조님과 우리 문중을 모독한 황희석은 사죄하라”며 강력 반발했다. 뇌물수수 등 11개 죄명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장관을 조광조에 비유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올 만도 하다.

정치인이 이미지 개선이나 후광 효과를 노리고 역사적 위인을 동원하는 일은 흔하다. 이른바 고인 마케팅 정치다. 부적절한 고인 마케팅은 위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아 문제가 된다.

지난 9월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복무 특혜 의혹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원내대변인이 “추 장관 아들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한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네티즌 사이에선 “안 의사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특혜성 병가를 갔느냐, 휴가에서 미복귀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그제 서울중앙지법 결심 공판에 ‘위국헌신군인본분’이라는 글과 안 의사 손 모양이 새겨진 흰색 마스크를 쓰고 출석해 눈총을 받았다. 검찰은 이날 조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경력 확인서를 발급해준 혐의로 기소된 최 대표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최 대표가 이런 마스크를 쓴 속내를 알 길은 없다. 국민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관련 기사엔 “안중근 의사의 이름에 먹칠하지 맙시다.” “일제차 렉서스 몰면서 안중근 마스크 쓴다고?” 등의 비판 댓글이 달렸다. 안 의사가 살아 있다면 역정을 냈을 것이다. “내가 왜 거기서 나와.”

-세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44.html
kolaswqetsrq 11.03 00:45
◇ 부통령 아내 위해 임원직 버렸다, 美 세컨드 젠틀맨은 사랑꾼, 그래서 미국이 반했다

◇ 부통령 아내 위해 임원직 버렸다, 美 세컨드 젠틀맨은 사랑꾼, 그래서 미국이 반했다

“내가 최초이긴 하지만 마지막은 아닐 겁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수락 연설에서 남긴 이 명언은 그의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에도 해당된다. 다음 달 20일(현지시간) 부인 해리스가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부통령이 되면 남편 엠호프는 미국 최초의 ‘세컨드 젠틀맨(the Second Gentleman)’으로 기록된다.

해리스 부통령과 56세 동갑내기인 엠호프는 스스로를 ‘Mr. 카멀라 해리스’라고 소개하기를 즐긴다. 트위터 자기소개란엔 “카멀라 해리스의 남편이라 자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써놨다. 그를 향해 “현대적인 남편”(CNN) “페미니스트가 꿈꾸는 이상형”(가디언)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첫 여성 부통령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남편으로도 향하고 있다.

그의 ‘사랑꾼’ 면모는 비밀이 아니다. 2019년 해리스가 민주당 후보 경선에 한창일 때 한 토론회에 참석한 자리에선 몸을 날려 부인을 지켰다. 한 남성이 갑자기 무대에 난입해 해리스를 공격하려 하자 연단으로 바로 뛰어들어와 제압한 것.

엠호프는 직후 “내가 카멀라를 위해 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트윗을 올렸다.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 역시 엠호프를 애칭 ‘두기(Dougie)’라고 부르며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연설에서도 “두기가 가장 잘생겨 보일 때가 언제게요? (양파 썰 때 눈 맵지 말라고 쓰는) 어니언 고글을 착용했을 때랍니다”라는 게 단골 멘트였다. 수영할 때 착용하는 수경처럼 생긴 어니언 고글을 써도 잘생겼다는 자랑이자, 양파를 자주 썰며 요리도 잘 한다는 자랑까지 섞여 있다.

검사 출신인 해리스처럼 엠호프도 법조인이다.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전문인 대형 로펌 DLA파이퍼의 임원인 파트너 변호사로 활약했다. 미국 대형 로펌 특성상 정부 로비를 빼놓을 수 없기에 부인의 공식 취임 이전에 사퇴할 예정이다. 30년 넘게 캘리포니아를 거점으로 일했으나 부인의 워싱턴DC 입성을 위해 자신의 경력은 ‘잠시 멈춤’을 택했다.

엠호프는 대신 워싱턴DC 소재 조지타운대 법대에서 교편을 잡는다. 조지타운대는 지난 10일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및 지적 재산권 분야에서 어려운 소송을 해결해오며 두각을 드러낸 엠호프 변호사를 교수진으로 맡게 되어 기쁘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엠호프 역시 “차세대 변호사 양성에 기여하고 싶은 꿈이 이뤄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엠호프는 해리스를 2013년 지인이 주선한 소개팅에서 만났고, 1년도 안 돼 프러포즈했다. 엠호프는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이혼남이었고 해리스는 초혼이다. 해리스는 결혼 뒤에도 자신의 성(姓)을 고수했다.

해리스는 2019년 엘르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나도 이혼한 가정에서 자랐기에 아이들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며 “더그의 두 자녀에게 조심스레 다가갔고 조금씩 친해졌다”고 적었다. 해리스의 트위터 자기소개란엔 ‘마말라(Momala)’, 즉 엄마(mom)과 자신의 이름을 합성한 단어가 적혀있다. 해리스는 당시 엘르 매거진에 엠호프의 전 부인 커스틴과도 원만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커스틴은 멋진 엄마”라며 “우리가 함께 아이들 수영 경기에서 너무 큰 소리로 응원을 해서 애들이 ‘엄마들 창피해’라고 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엠호프와 해리스는 곧 백악관의 새 역사를 쓴다. 엠호프는 최근 몇 주 동안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과 퍼스트레이디가 될 질 바이든 등에 대한 적극적 옹호 목소리를 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11일 질 바이든에 대해 박사 자격이 있는지 비판하는 요지의 칼럼을 싣자, 바로 트윗으로 반박했다. “바이든 박사는 노력과 끈기로 학위를 취득했다”며 “만약 그가 남자였다면 이런 칼럼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미국 매체들은 “엠호프가 어린 시절을 보낸 브루클린의 낡은 아파트 현장” “엠호프에 대해 당신이 알아야 할 몇 가지” 등 사소한 것까지 보도하고 있다. 그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그중에서도 지난달 워싱턴포스트가 실은 칼럼은 독자의 큰 호응을 받았다. 여성 칼럼니스트인 알리사 로젠버그는 “엠호프가 어떤 역할을 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하다”며 “미국이 드디어 자신보다 아내의 커리어를 우선하는 첫 남성을 세컨드 젠틀맨으로 맞이하게 됐다”고 적었다.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88.html
kolaswqetsrq 11.03 00:46
◇ 코로나 생이별 국제 커플들 “특별비자 달라”-하늘길 막히자 외교부·靑에 호소

◇ 코로나 생이별 국제 커플들 “특별비자 달라”-하늘길 막히자 외교부·靑에 호소

“결혼한 사람만 사랑입니까?”

이달 초 외교부 홈페이지에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국제 커플을 제발 도와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일본인 여자 친구를 9개월째 보지 못하는 A씨 사연이었다. 그는 “매일 밤 울먹이며 전화하는 것도 지치고 힘들다”며 “군대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도대체 언제 만날 수 있을까”라고 했다.

코로나로 대부분 국가가 외국인 입국 제한 정책을 펴고 있는 가운데, 1년 가까이 생이별을 겪는 이른바 ‘국제 커플’들의 호소가 외교부에 밀려들고 있다. 영사·재외국민 담당 부서에는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버티고 있는데 너무 힘들다” “남친(남자 친구) 한 번 보고 죽는 게 소원”이라는 애절한 사연이 한 달에 수십 건씩 쏟아진다고 한다.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연인과 만날 수 있도록 특별 비자를 만들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현재 결혼하지 않은 미혼 커플은 출입국에 제약이 많다. ‘관광 비자’ 같은 단기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코로나로 대부분 국가가 비자 발급을 사실상 중단했기 때문. 그나마 법적으로 부부라면 인도적 이유 등을 들어 비자를 내주기도 하지만 연인들은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자 국제 커플들이 자신들을 위한 ‘특별 비자’ 마련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프랑스 남자 친구와 3년째 원거리 연애 중인 B씨는 “코로나가 겨울에는 사그라들겠지 하다 벌써 9개월째 발만 구르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에 왔다 갔다 하려면 자가 격리 기간만 각국에서 2주씩 총 한 달이나 되기 때문에 직장에서 이를 허락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고, 프랑스 남자친구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한국에 오려 했지만 비자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B씨는 “사랑하는 사람과 수개월째 생이별하는 게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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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연인들이 국경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특별 비자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거리 연애 비자’ 발급을 요구하는 국제 청원 사이트도 등장했다. 성화에 못 이겨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는 자국 거주자와 장거리 연인임을 ‘입증하면 비(非)EU 출신 연인들의 입국이 가능하도록 했다. 은행 계좌나 공동임대차계약서, 사진과 소셜미디어(SNS) 게시글 등을 심사해 비자를 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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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34.html
kolaswqetsrq 11.03 00:47
■ 선조의 여인들 - 의인왕후 2편

■ 선조의 여인들 - 의인왕후 2편

인빈 김씨는 선조의 세 번 째 후궁으로 선조가 매우 총애하고 있었다. 인빈 김씨는 자식 욕심도 대단하여 왕자를 4명이나 생산하였고, 그런 만큼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만들려고 하는 야심 또한 만만치 않았다. 물론 선조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른 사람은 광해군이지만, 결론적으로 나중에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가 된 인물이 바로 그녀의 아들인 정원군이 낳은 손자 능양군이다. 아들을 왕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손자를 왕으로 만든 셈이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도망을 가게 되는데, 본부인인 의인왕후 박씨가 아닌 공빈 김씨를 데리고 의주로 피난을 갔다. 의인왕후는 평양에서 먼저 함흥으로 가서 선조를 맞이하려고 했으나 평양의 군민(軍民)들에게 길이 가로막히는 일을 겪기도 하였다. 그 뒤 선조에 앞서 평양을 떠난 의인왕후는 평안도 강계로 피난을 갔으며, 한양이 수복되어 선조가 환도한 뒤에도 선조와 떨어져 황해도 해주(海州)에 머물렀다. 선조는 사간원이 잇따라 의인왕후의 환도(還都)를 간언해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의인왕후는 1595년(선조 28년) 겨울이 되어서야 한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선조는 인빈 김씨만 데리고 피난을 가고, 의인왕후는 선조와 떨어져 광해군과 함께 황해도 수안(遂安)으로 피난을 갔다. 그리고 일본군이 철수한 뒤에도 환도를 하지 못하다가 1599년(선조 32년) 음력 윤4월이 되어서야 한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연이은 전쟁과 피난으로 병세가 깊어져 이듬해인 1600년(선조 33년) 음력 6월 27일에 죽었다.

선조는 "(왕비는) 투기하는 마음, 의도적인 행동, 수식하는 말 같은 것은 마음에 두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권하여도 하지 않았으니 대개 그 천성이 이와 같았다. 인자하고 관후하며 유순하고 성실한 것이 모두 사실로 저 푸른 하늘에 맹세코 감히 한 글자도 과찬하지 않는다." 고 말하며 덕망 높은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칭송하였다.

의인왕후는 죽은 뒤에 유릉(裕陵)에 매장되었다. 오늘날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 의인왕후의 묘역은 1630년(인조 8년)에 건원릉(健元陵) 서쪽에 조성되었던 선조의 무덤인 목릉(穆陵)이 그곳 곁으로 이전되면서 목릉으로 합해져 불리게 되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10.html
kolaswqetsrq 11.03 00:48
■ 선조의 여인들 – 의인왕후 1편

■ 선조의 여인들 – 의인왕후 1편

선조는 중종과 창빈 안씨 소생의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이다. 하성군 시절 그는 사리가 밝고 똑똑해서 명종에게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그리하여 위의 두 형을 제끼고 후사가 없던 명종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수 있었다. 두 차례의 큰 전쟁을 치렀고 당쟁이 심화된 어려운 시기의 왕으로서 선조는 그다지 현명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모습을 보여 무능한 왕의 이미지가 강하다.

선조는 왕비 2명에 후궁 6명, 자녀는 25명(왕자 14명과 공주 11명)을 둔 다복(?)한 임금이었다. 선조의 조강지처 의인왕후 박씨는 명종 10년(1555년) 4월에 나주 박씨 박응순과 전주 이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명종의 국상 중이기도 하여 혼인이 늦어졌는데, 대비인 인순왕후는 선조가 중전을 맞이하기 전에 후궁을 들이면 후사에 복잡한 왕위계승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에 여자를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조는 이미 대비의 눈을 피해 소주방(燒廚房:음식 만드는 주방) 나인을 가까이 하고 있었다. 후에 임해군과 광해군를 낳은 김상궁이 바로 그녀이다.

선조 즉위 2년째인 1569년 15세의 의인왕후 박씨는 3살 연상인 18살의 선조와 결혼했다. 의인왕후 박씨는 성품이 부드럽고 검소했으며, 욕심도 적고 미인이었다. 하지만, 집안 좋고 맘씨도 착한데다가 이쁘기까지 했지만, 그녀는 안타깝게도 아기를 낳지 못하는 몸이었다. 그리하여 인순대비는 어쩔 수없이 선조가 후궁을 들이는 것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궁이 임해군과 광해군을 낳은 공빈 김씨이고, 그녀는 선조 10년에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왕비로서 가장 중요한 소임이라고 할 수 있는 후사를 보지 못한 의인왕후는 왕비임에도 불구하고 왕실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자식의 생산을 기원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사찰을 설치하였고, 여러 사찰에 자주 재물을 베풀기도 했다.

의인왕후 박씨는 착한 마음씨만큼 후궁들이 낳은 자식들을 잘 보살펴 주었다. 하지만 의인왕후 박씨가 후사를 못 이으니, 이 기회를 노려 자기 자식을 세자로 앉히려고 하는 후궁들의 각축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게 된다. 공빈 김씨의 큰아들 임해군은 성격이 광폭하고, 둘째 광해는 성품이 온화하여 왕과 왕비는 광해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또 다른 후궁 인빈 김씨가 왕자 네 명과 옹주 다섯 명을 낳게 되자 사태는 좀 더 복잡해지고 말았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html
kolaswqetsrq 11.03 00:48
■ 어영부영

■ 어영부영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허무하게 시간이 흘러 하루가 다 갔던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아무 생각이나 계획 없이 되는대로 행동할 때 ‘어영부영’이라는 말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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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이란 조선 후기 5군영(조선 초기에는 5위) 중 하나인 어영청‘ 이라는 매우 기강이 엄격한 정예 부대에서 유래한 말이다. 1623년 반정(反正)으로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는 자신의 친위대 역할을 위해 어영군을 만들었다. 건장한 자 260명을 모집하여 화포술(火砲術)을 가르치고 이를 어영군(御營軍)이라 한 것이 그 시초이다. 서인 세력의 무력 기반을 강화하고 국왕을 경호하여 새로운 반정을 막겠다는 것이 창설의 주 목적 이었다. 이들은 주로 포격 훈련을 했다. 당시 포는 조총이나 활, 칼 등을 능가하는 최신 병기였고, 혹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반란이 있을 경우 초장에 강력한 화포와 조총으로 적의 사기를 꺾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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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4년 인조반정 후 논공행상(論功行賞)에서 2등 공신으로 밀려 평안도 군사령관에 임명된 이괄이 이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급기야 한양을 점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는 어영군의 경호를 받으며 충남 공주의 공산성까지 피난을 갔다. 그 곳 공주에서 솜씨가 뛰어난 민간인 포수를 뽑아 정예부대를 편성하여 어영군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이후 인조는 자신의 친위부대로 어영군을 키워서 그 군사를 5천 명까지 증원하고, 명칭도 어영청으로 승격시켰다. 국왕의 친위부대인 어영청의 주력군대는 총이나 포 로 무장한 사수와 포수 정예병들이었고, 근접전을 위해서 살수병(화살부대)도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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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2년(효종 3년) 효종의 북벌(北伐)계획에 따라 어영청은 보다 더 정비되고 강화되어 이완(李浣)을 어영대장으로 삼아 북벌계획의 본영(本營)역할을 하였다. 효종 재위기인 1652년에 어영청의 병력은 무려 정예군 2만1천 명으로 대폭 확대되었다. 어영청은 이제까지 국왕호위 혹은 친위대라는 방어적 전략에서 북벌을 위한 공격적 군대 로 전환하고, 특수훈련을 받는 직업군인 으로 편성했다. 어영청의 전투력은 1654년, 1658년 두 차례 나선정벌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나선정벌은 청나라 요청을 받은 조선 조총부대가 러시아군과 중국에서 벌인 전투다. 함경도에서 모집된 조총부대는 무기 성능이 뛰어나고 용맹하기로 소문난 러시아군에 대승을 거둔다. 하지만, 북벌계획은 준비만 하다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끝내 무산되었고, 목표가 사라진 어영청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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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 오면서 어영군의 군기(軍紀)는 문란해지고 병기(兵器)마저 너무 낡아 도저히 군대라고 할 수 없을 지경의 형편없는 오합지졸(烏合之卒) 군대가 되고 말았다. 양반 자제로 구성된 지휘부는 주색잡기로 소일하였고, 훈련이나 고된 부역은 종들이 대신토록 하였다. 이를 본 사람들이 어영청은 군대도 아니라는 뜻으로 어영비영(御營非營)이라고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어영비영이 발음의 편리를 따르다 보니 어영부영으로 바뀌게 되었다. 1881년(고종 18년) 4월, 일본인 교관의 훈련 하에 새로 조직한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만들어지면서, 신식군대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고 봉급조차 받지 못하던 구식군대는 1882년 6월 봉기하여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났다. 결국, 3년 후 갑오개혁 때(1894년) 어영청은 폐지되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79.html
kolaswqetsrq 11.03 00:49
◇ 비목어와 착한 임금님 문재인

◇ 비목어와 착한 임금님 문재인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시인 류시화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比目)을 소환해 사랑을 노래했다. 비목은 중국 당나라 시인 노조린(盧照隣)이 쓴 『장안고의(長安古意)』에 등장하는 전설의 물고기다. 노조린은 “비목과 원앙은 정말 부러워할 만하다(比目鴛鴦眞可羨)”며 사랑을 읊었다.

외눈박이는 아니지만, 눈이 나란히 붙은 비목어(比目魚)는 현실에 존재한다. 이 무렵 겨울철 횟감으로 인기인 광어(廣魚) 혹은 넙치가 대표적이다. 봄이 제철인 도다리도 비목어로 분류된다. 낚시꾼은 헛갈리는 두 물고기를 ‘좌광우도’로 구분한다. 광어는 왼쪽으로 눈이 쏠리는데, 도다리는 그 반대다.

비목어가 눈이 쏠린 상태로 태어나는 건 아니다. 알에서 막 깨어난 치어 상태의 비목어는 눈 쏠림 현상이 없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넙치는 수정란 시기나 부화 후 20일까지 다른 물고기와 겉모습이 다르지 않다.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눈을 두고 있다. 몸의 형태가 바뀌는 변태 과정이 관찰되는 건 부화 후 20~25일 사이다. 이때부터 몸이 점점 납작해지고 오른쪽 눈이 서서히 왼쪽으로 이동한다.

부화 후 30~40일 무렵에는 눈이 완전히 한쪽으로 돌아간다. 물속에서 헤엄치며 플랑크톤을 잡아먹는 유영생활에서 해저 밑바닥에 엎드려 살아가는 저서생활로 바뀌면서 눈이 나란히 모인다. 모래나 펄 바닥에 몸을 숨기고 양쪽 눈을 모래 밖으로 노출해 먹이를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문학 속 비목어는 사랑을 상징하지만, 현실에선 정반대다. 단방향인 비목어의 시선은 큰 약점이다. 세상은 네 편과 내 편 딱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비목어의 시선에 매혹되는 건 단순명쾌함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을 향한 시선은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값 폭등을 포함해 각종 사회 갈등이 반복되고 있지만 대통령은 바닥에 엎드려 지지율만 살피고 있다. “우리 대통령은 착한 임금님(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이란 비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사는 펄 바닥 어디에 묻어버린 걸까.

-중앙일보-

◇ 비목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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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떨어지려고 하지 않고 늘 함께 다니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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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연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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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목동행(比目同行)은 횟감으로 잘 알려진 넙치의 눈에서 유래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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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동물,심지어 같은 물고기 중에서도 넙치나 가자미처럼 눈이 한 쪽에 나란히 몰려 있는 것은 없다.

좌우 대칭으로 붙어있는 눈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탓인지 옆으로 납작한 몸에 두개의 눈이 머리 한 쪽으로 붙어있는 넙치와 가자미의 생김새는 참으로 희한한 모습이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이런 넙치를 엉뚱하게도 신비한 영물로 생각했다.

국가문화의 관심이 내륙에 집중돼 바다 생물을 관찰할 기회가 별로 없는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눈이 한쪽으로 몰려 있는 넙치와 가자미가 마치 눈이 하나밖에 없는 물고기로 널리 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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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중국 전설에는 동쪽 바다에 사는 비목어(比目魚)는 눈이 한 쪽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두 마리가 좌우로 달라붙어야 비로소 제대로 헤엄을 칠 수 있다며 상상의 물고기 비목어(比目魚)를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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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온 말이 비목동행(比目同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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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목어(比目魚) 두 마리가 서로 떨어지지 않고 늘 같이 붙어다닌다는 의미다.

덕분에 둘이 합쳐야 비로소 완전한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비목어(比目魚)는 연인들의 사랑을 이야기할 때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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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류시화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고 했고 어느 노래에서는 홀로 있을 수 없기에 슬프지만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어 아름답다며 비목어를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노래하는 소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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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밑바닥에서 사는 넙치는 또 납작한 모양새 때문에 몹시 두들겨 맞았을 때 넙치가 되도록 맞았다는 말로 쓰인다. 또 생긴 모양이 신통하지 못해도 제 구실은 똑똑히 한다는 뜻으로 넙치는 눈이 작아도 먹을 것은 잘 본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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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91.html
kolaswqetsrq 11.03 00:50
◇ 586의 싸가지 정치

◇ 586의 싸가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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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는 ‘싹수’라는 단어의 사투리다. 싹수는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라는 뜻이었던 반면 싸가지는 어떤 사람이 타인에 대한 예의나 배려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쓴다. 1980년대 KBS 기자는 라디오 ‘재미있는 말 코너에서 ‘싸가지’와 ‘쪽팔리다’라는 단어를 소개하려다 담당 PD에게 ‘방송에서 쓸 수 없는 부적절한 단어라는 지적을 듣고 포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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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속된 표현이었던 싸가지가 노무현 정부 때 정치권에 본격 등장했다. 탄핵 역풍을 타고 국회에 대거 입성한 ‘탄돌이’ 초선 의원들이 막말을 쏟아내면서 ‘싸가지 없는 진보에 대한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당시 유시민 의원은 동료 여당 의원에게 “어떻게 옳은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게 하는 재주를 배웠을까” 하는 탄식을 들었다. 정대철 여당 상임고문은 젊은 의원들이 “싸가지 없고 천박하다”고 걱정했고, 유인태 정무수석은 후배들 이름을 거론하며 “쟤는 왜 저렇게 싸가지가 없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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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치가 문재인 시대로 넘어온 이후에도 싸가지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때 안희정 캠프 관계자가 “싸가지 있는 친노는 모두 안희정 후보 쪽에 와 있다”고 해서 문재인 후보 진영을 들끓게 만들었다. 문 대통령 자신도 자서전에서 “우리의 이념, 정책, 주장 때문이 아니라 그걸 표현하는 태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거리를 둔다”면서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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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엊그제 ‘싸가지 없는 정치’라는 책을 냈다. 이 정권의 내로남불과 일방주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그 이유로 집권 세력의 싸가지 없음을 꼽았다. 강 교수는 머리말에서 “이 정권의 싸가지 없음은 단지 예의범절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오만으로 이어진다”고도 했다. 오만하기 때문에 “진보를 완장처럼 이용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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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교수는 책에서 말을 싸가지 없게 하는 이들로 586 정치인들을 꼽았다. 그 사례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2016년 총선 때 ‘싸가지 없는 막말의 대명사로 지목받으며 컷 오프 당했던 전 의원은 요즘도 심심치 않게 튀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4월 총선서 새로 입성한 젊은 정치인 중에서도 싸가지 발언으로 주목받은 단골들이 생겨났다. 싸가지 회복은 친노, 친문 정치권이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가 돼버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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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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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86.html
kolaswqetsrq 11.03 00:50
◇ 8살 어린이 유튜버.... 한해 300억 벌었다

◇ 8살 어린이 유튜버.... 한해 300억 벌었다

어린이 채널이라고 할지라도 직장인 평균 연봉을 훌쩍 넘는 돈을 벌어들인다면 어린이는 근로자, 채널은 사업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난해 전 세계의 ‘최고 수입 유튜버’는 당시 미국의 여덟 살짜리 어린이 유튜버 라이언 카지였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의 추정에 따르면 그의 한 해 수입은 2600만달러(약 303억원). 3위는 러시아의 다섯 살 소녀 아나스타샤 라드진스카야로 1800만달러를 벌었다. 2018년의 1등도 2200만달러의 수입을 올린 라이언이었다.

중소기업 매출과 맞먹는 액수다. 국내 최다 구독자를 보유한 어린이 채널 보람 튜브의 유튜버 보람이는 지난해 서울 청담동의 95억원짜리 빌딩을 샀다.

당시 미국 유튜브 분석 사이트인 소셜 블레이드는 ‘보람튜브 토이리뷰’의 예상 월수입은 최소 5만2900달러, 최대 84만7100달러라고 추정했다. ‘보람튜브 브이로그’의 예상 월수입은 21만9900~350만달러였다. 둘을 합치면 월수입이 최소 3억원에서 최대 50억원인 셈이다.

어린이 채널의 수입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어린이 시청자들은 광고를 영상의 일부라고 생각해 광고를 건너뛰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 번 본 영상이라도 재밌으면 반복해서 보는 시청 습관도 갖고 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만든 유튜브 콘텐츠로 얻은 수익은 어떻게 배분해야 할까. 유튜버 기획사인 MCN 한 관계자는 “수십만이나 100만 넘는 구독자를 가진 키즈 채널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최소 월 1000만원은 넘을 것이다. 거기에서 MCN의 몫과 제작비를 떼고 나머지는 부모가 알아서 하는 게 현실이다”고 했다.

 권단 변호사는 “법적으론 어린이 유튜버의 수입으로 인정해야 하고 부모가 기여한 바가 있다면 배분하는 게 맞는다. 만약 부모가 아이의 수입을 탕진한다면 아이가 나중에 소송을 걸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8-300.html
kolaswqetsrq 11.03 00:51
◇ 우리 대통령은 착한 임금님

◇ 우리 대통령은 착한 임금님

4년 전 촛불을 들었을 때를 돌아보자. 오늘 무엇이 바뀌었나? 대통령과 장관들, 국회의원들의 면면 말고? 이젠 재벌개혁이란 말조차 나오지 않게 되었고, 교육개혁은 이미 포기한 듯 관심 바깥의 일이 된 지 오래다. 부동산 문제는 악화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프레카리아트’가 되는 일방통행의 길만 있을 뿐이다.

학교나 공직에서 은퇴한 분들한테서 종종 듣는 말이 있다. “그 자리에 있었을 때 더 충실히 보냈어야 했다. 그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 자리인지 물러난 뒤에야 알았다.” 교직이나 일반 공직이 그렇다면, 대통령의 자리는 엄중하고 또 엄중하다는 말로도 모자랄 것이다. 대통령은 국가수반이면서 최고 정치지도자로서 기자회견이나 국정브리핑을 통해 각 분야의 정책 방향, 그 실행과 검증 과정을 밝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면서 국민을 이끌고 가야 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닮았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 )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취임사를 듣고 수많은 사람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예감하며 감동했다. 하지만 신기루였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가 경호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금세 ‘없던 일’이 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국민과 열심히 소통하겠다는 약속이 가뭇없이 사라졌는데, 이에 대해서는 설명이든 해명이든 듣지 못했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의 직접 브리핑과 기자간담회를 합친 횟수는 김대중 150회, 노무현 150회, 이명박 20회, 박근혜 5회, 문재인 6회다. 위정자로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하는 자리는 불편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자리는 불편하지 않다. 임금님은 불편한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고 불편한 자리에 가지 않아도 되지만,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팽목항에 가야 했던 것도 임금님이 아니라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불편한 질문, 불편한 자리를 피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은 대통령보다 임금님에 가깝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으로 백성한테서 ‘상소문’을 받는다는 점도 그렇다. 임금님인데, 착한 임금님이다. 여느 임금님과 다른 것은 군림 기간이 5년으로 정해져 있어서 이제 1년 반도 채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엄중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지금까지처럼 편하게 보내는 임금님이 아니라 불편하게 보내는 대통령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감히 말하건대, ‘성공한 대통령’의 길이 거기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불편한 자리, 불편한 질문을 피하면서 임금님처럼 처신하는 방식은 비슷한 구도를 갖는다. 먼저 대통령으로 선의의 약속이 행해진다. 약속하는 자리는 불편하지 않다.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불편함이 따르는데 그때부터 질문도 피하고 자리도 피하는 임금님이 된다. 대통령으로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면서 진상규명을 약속하고, 김용균씨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고 김용균법을 약속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지지부진하고 ‘김용균이 적용되지 않는 김용균법’이 제정된다. 그때부터 질문도 받지 않고 불편한 자리도 찾지 않는 임금님이 되는 식이다.

1년 전이면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국민과의 대화’에서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자신감을 피력했을 때는 대통령이지만, 오늘 전혀 다른 결과 앞에서는 질문을 받지 않는 임금님이 된다.

당 대표 시절 지자체장의 잘못으로 선거를 다시 하게 될 때엔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또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지만, 서울특별시장·부산광역시장의 미투 문제와 부닥치면 임금님이 되어 침묵한다. 집권 민주당이 제1야당과 똑같이 위성정당 방식으로 비례대표제를 왜곡하면서 민주주의에 흠집을 냈을 때에도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국민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사회 현안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침묵으로 일관한다. 과문의 탓인지 낙태 합법화에 대한 문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듣지 못했다. 지금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 후보 시절 지지자들의 “나중에!” 연호 속에 피해갔는데 성소수자에 관해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었는지 듣지 못했다.

동성결혼권을 처음 합법화한 나라는 2001년의 네덜란드였는데, 미국에서 2015년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라 동성결혼권이 인정된 후 독일도 2017년에 동성결혼권을 합법화했다. 프랑스에서 사회당 출신 대통령이 법안을 주도했다면, 독일에서는 보수적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주도했다. 특히 메르켈 총리는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라는 독일 헌법 조문을 들어 반대표를 던졌는데, 법안 상정에는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국정 최고지도자들의 모습이 그랬다. 국민 사이에 의견이 분열되어 있는 사회 현안도 피하는 대신 자신의 뜻을 피력하고 토론, 설득하고 추진, 돌파한다. 우리는 동성결혼권은커녕 생활동반자법도 없는 형편인데, ‘시대의 기후’를 앞서 읽고 자신 있게 소신을 밝히는 정치지도자는 언제나 볼 수 있을까?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국가최고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불온한 시선을 갖고 있어서겠지만, 상이나 훈장 중에는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을 위한 경우도 많다. 전태일 열사에게 훈장을 주는 자리라면, 적어도 그 이름을 딴 ‘전태일3법’에 관심을 표명하고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게 대통령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자신의 소관 사항이 아니라고 여길 만큼 임금님이 되어 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도 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 기소불욕물시어인)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말이다. 불편함이 싫은 임금님은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임금님이 두어번 진노하셨을 뿐이니, 참모들도 장관들도 불편하지 않다. 참모, 장관이 불편하지 않으니 관료들도 불편하지 않고 국회의원들도 불편하지 않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에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공방, 국회에서 벌어지는 저급한 공방들은 인민의 삶이 조금도 바뀌지 않는 세상을 가려주는 스펙터클이다.

4년 전 촛불을 들었을 때를 돌아보자. 오늘 무엇이 바뀌었나? 대통령과 장관들, 국회의원들의 면면 말고? 이젠 재벌개혁이란 말조차 나오지 않게 되었고, 교육개혁은 이미 포기한 듯 관심 바깥의 일이 된 지 오래다. 부동산 문제는 악화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란 뜻의 이탈리아 조어)가 되는 일방통행의 길만 있을 뿐이다. 그 위에 코비드19가 덮쳤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글이 신민들의 심기를 무척 불편하게 하리라는 것을. 집중포화를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착한 임금님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여 대통령의 자리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면 그것으로 이 서생은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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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홍세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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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22.html
kolaswqetsrq 11.03 00:51
◇ 국회의장의 처신과 입법부의 권위

◇ 국회의장의 처신과 입법부의 권위

1990년대 후반 들어 국회의장의 당적 이탈은 가장 시급한 정치개혁 과제 중 하나로 떠오른다. 민주주의 신장을 위해서는 국회의장이 여당의 통제 아래 국회를 운영해 온 관례를 깨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다. 과거처럼 의장이 국회 운영 과정에서 편파 사회, 법안 날치기 통과 등을 일삼으면 의회정치 발전은 요원하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국회의장의 당적 이탈은 삼권분립 확립과 여야 대화정치 복원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마침내 2002년 2월 국회법 개정으로 국회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게 됐다. 당시 이만섭 의장이 최초의 무소속 국회의장이 됐다. 국회의장의 당적 이탈은 재임 중에는 정파적 입장을 떠나 중립적으로 국회를 운영해 달라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국회법 개정 이후에도 여러 국회의장이 ‘결정적 순간’에는 친정의 손을 들어줘 논란이 되곤 했다. 여당 역시 의장이 자신들 편을 들어주길 바라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13일부터 이틀 연속 의장석에서 내려와 국정원법 개정안과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에 대한 야당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강제 종결하는 투표에 참여했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국회 표결에 의해 필리버스터가 끝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박 의장이 여당에 한 표를 보탠 것이다. 국민의힘은 “의장의 존재 자체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국회의장도 국회의원이므로 본회의 의결 절차에 참여해 표결할 수는 있다. 19, 20대 국회만 따져봐도 4명의 전임 국회의장은 모두 본회의에서 개별 국회의원 자격으로 법안은 물론 의사진행 관련 표결에 참여했다.

그러나 여야 입장이 첨예하게 맞선 필리버스터 봉쇄 투표까지 국회의장이 참여해 중립성 논란을 자초한 것은 입법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박 의장은 지역구인 대전의 아파트를 아들에게 증여해 놓고는 “처분했다”고 주장해 빈축을 샀다. 조국 전 법무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 준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법사위로 옮기는 것도 승인해 구설에 올랐다. 국회의장이 처신을 잘못하면 입법부의 권위도 함께 떨어진다.

-세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35.html
kolaswqetsrq 11.03 00:52
◇ 의사와 검사

◇ 의사와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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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짓눌린 한 해를 마감하며 문득 지난 여름 의사 집단휴진 때 씁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공공의료 확충에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한답시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페이스북에 의사 파업을 반대하시는 분들만 풀어 보라며 몇 개의 문제를 띄웠다. 그 중 하나가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둘 중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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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으로 고르도록 예시된 문장은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다. \전교 1등 의사\를 답으로 생각하고 낸 이 문제는 의사 집단이 얼마나 시민의 시각과 동떨어진 우월의식에 사로잡혔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코로나 3차 유행으로 병상과 의료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전공의 투입 소문까지 돌자 사실 확인도 없이 전공의협의회에서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는 성명까지 내며 발끈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도 별로 체질이 바뀐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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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 의식에 찌든 집단은 의사만도 아니다. 검찰이 펀드사기 사건인 라임 사태로 재판 중인 김봉현의 술접대를 받은 검사 3명 가운데 1명만 기소하고 나머지는 불기소해 구설에 올랐다. 전관 변호사가 주선한 술자리에 검사 참석 자체가 뇌물죄를 의심할 상황인데 이는 거론하지 않고 김영란법만 적용한 것도 모자라 희한한 술값 계산식까지 들고 나왔다. 여전한 내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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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누가 봐도 잠재적 이해 충돌이 뻔한 술자리에 검사들은 왜 얼굴을 내미는 걸까. 검사들은 "검찰권을 자신이 사법시험을 쳐서 따낸 권력이지 국민에게서 온 권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판해 온 검사 출신 이연주 변호사는 "내가 이걸 얻어 먹으면 다음에 부담스러운 청탁이 들어오지 않을까라는 걱정, 경계를 검사들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접할 기회를 줬으니 네가 고마워해야 한다"는 마인드라는 것이다. 모든 검사가 이렇진 않겠지만 그런 문화라면 검찰 개혁은 아직 멀었다.

-한국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49.html
kolaswqetsrq 11.03 00:53
◇ 하동군에 봉이 김선달 등장...“지리산 청정공기 캔에 담아 판매”

◇ 하동군에 봉이 김선달 등장...“지리산 청정공기 캔에 담아 판매”

‘당신의 숨결이 힐링될 때....’

최근 지리산 청정 공기를 담아 시판에 들어간 공기캔인 ‘지리에어(JIRIAIR)’가 내세우는 구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미세먼지 등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에게 맑은 공기로 신선함을 채워주겠다는 포부다.

경남 하동군 녹차연구소(소장 오흥석)와 합작투자사인 (주)하동바이탈러티에어(대표 황병욱)는 17일 “해발 800m의 지리산 자락인 하동군 의신계곡에서 청정 공기 100%를 캔에 담은 ‘지리에어’를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아 출시했다”고 밝혔다. 용량은 3L이며 판매 가격은 9900원이다. 튜브를 가볍게 코에 대고 분사 핀을 눌러 흡입하는 방식. 2초 단위로 60회 정도 분사할 수 있다.

윤상기 하동군수는 “2016년부터 추진한 ‘탄소 없는 마을 공기캔 상품화’ 사업이 1차 결실을 맺었다. 녹차와 섬진강, 지리산 등을 통해 청정 지역으로 유명한 우리 지역이 휴대용 공기 생산으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게 됐다”고 반겼다. 하동바이탈러티에어는 얼마 전 하동지역 수능시험 수험생에게 공기캔을 선물했다. 또 NC다이노스 프로야구단과 KGC인삼공사 프로배구단에도 지리에어를 공급한다.

지리에어는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고 하동지역 로컬푸드 전문점과 농산물판매장에서도 판다. 판매 가격이 다소 비싸지만 설비 자동화를 마무리하는 내년부터는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공기캔 사용법을 간편하게 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지리에어 3L는 중량이 130g이어서 흔들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고 가볍다. 이 때문에 일부 사용자들은 빈 캔으로 오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 대표는 “맑은 공기가 우리의 기억력과 주의력을 높여준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지리산 천년을 담은 청정 공기를 이용한 신제품 개발과 홍보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21.html
kolaswqetsrq 11.03 00:53
농와지경弄瓦之慶 - 딸을 낳은 기쁨

농와지경(弄瓦之慶) - 딸을 낳은 기쁨

희롱할 롱(廾/4) 기와 와(瓦/0) 갈 지(丿/3) 경사 경(心/11)

어린애의 몸은 신의 몸과 같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이다. 모두 서양의 명언이다. 갓난애의 천진한 얼굴, 생긋 웃는 모습을 보면 어른들은 시름을 잊는다. 그래서 ‘집안에 애들이 없는 것은 지구에 태양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한 영국 격언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인류의 미래를 이어가는 어린이의 탄생은 옛날이라고 중요성이 적었을 리 없다. 중국에서 약 3000년 전부터 전해지던 시를 모은 ‘詩經(시경)’에서 갓난애를 낳아 오손도손 살아가는 대가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 305편의 시가 실린 이 책의 小雅(소아)편 ‘斯干(사간)’이란 제목의 시에서다.

시냇물이란 뜻의 이 시에 남아와 여아를 낳았을 때의 기쁨이라면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사내아이를 낳았을 때 아무래도 더 큰 기대를 가졌을 남아선호가 드러난다. 실꾸리를 가지고 노는(弄瓦) 축하할 일(之慶)이란 표현으로 계집아이를 축하해주는 표현을 보자. 瓦(와)는 물론 비가 새지 않도록 지붕에 덮는 기와인데 실을 감는 실감개, 실꾸리 역시 진흙을 구워서 만들었다고 같은 뜻을 지니게 됐다. ‘딸을 낳아서는 방바닥에 재우며(乃生女子 載寢之地/ 내생녀자 재침지지), 포대기를 싸서 놓고 실패 장난감을 쥐어주네(載衣之裼 載弄之瓦/ 재의지석 재롱지와).’ 裼은 포대기 석.

이어서 잘하든 못하든 술을 잘 데우고 밥 짓기를 잘 익혀 부모 근심 덜어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앞부분 아들 축하는 다르다. ‘아들을 낳아서는 침상에서 재우며(乃生男子 載寢之床/ 내생남자 재침지상), 고까옷을 해 입히고 구슬 쥐어 놀게 하네(載衣之裳 載弄之璋/ 재의지상 재롱지장).’ 재우는 곳, 입히는 옷은 물론 갖고 노는 장난감까지 다르게 온 식구들이 달리 대우했다. 더욱 이 뒤에 따르는 붉은 슬갑 朱芾(주불, 芾은 슬갑 불)을 입고 집안을 일으킬 일꾼이 될 것이라 기원한다. 슬갑은 바지 위에다 무릎까지 내려오게 껴입는 가죽옷으로 제후 등 귀인의 옷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차이가 났던 남아, 여아는 세월이 지나면서 세태가 많이 바뀌었다. 젊은이들이 어려운 앞날을 생각하여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경향이 늘고, 아이를 낳더라도 단 한 명 여자 아이를 더 선호하게 됐다. 여아든 남아든 아예 낳지를 않아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출산율 최하위란 사실이 더 걱정스럽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78.html
kolaswqetsrq 11.03 00:54
임기응변臨機應變 - 그때그때의 사태에 맞게 일을 처리하다.

임기응변(臨機應變) - 그때그때의 사태에 맞게 일을 처리하다.

임할 림(臣/11) 틀 기(木/12) 응할 응(心/13) 변할 변(言/16)

기회가 왔을 때 잘 활용할 수 있어야 성공한다.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지만 그것을 잘 활용하는 자는 소수이다. 그래서 한 번 간 때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時不再來(시부재래)라며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勿失好機(물실호기)라 했다. 그런데 죽느냐 사느냐 대치중인 전장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길은 적의 작전에 맞게 수시로 대응책을 바꿀 수밖에 없다.

적의 사정을 보아주다가 참패한 宋襄之仁(송양지인)보다 속임수 계책을 쓰더라도 이겨야 하는 전쟁에서 기회를 보아가며(臨機) 거기에 맞춰 수시로 대처(應變)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병법의 일종에서 나왔을 이 말이 처음에는 똑 같은 뜻으로 隨機應變(수기응변)이나 줄여서 應變(응변) 등으로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재미있는 몇 곳의 예를 보자. 중국 西晉(서진)의 학자 孫楚(손초)는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세속을 벗어나 은거하려는 뜻을 품고 친구에게 돌로 양치질을 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겠다(漱石枕流/ 수석침류)고 잘못 말했다. 친구가 지적하자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겠다고 한 것은 옛날 은자 許由(허유)처럼 더러워진 귀를 씻기 위함이고, 돌로 양치질은 치아를 튼튼히 하기 위함이라 했다.

억지의 대명사가 된 이 말을 남기고도 ‘晉書(진서)’에는 손초를 잘 평가했다. ‘조정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방책이 뛰어났고 임기응변이 뛰어났다(廟勝之算 應變無窮/ 묘승지산 응변무궁).’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서 吳(오)나라의 孫權(손권)은 명신 周瑜(주유, 瑜는 아름다운옥 유)를 잃고 상심해 있을 때 魯肅(노숙)이 새 인재로 龐統(방통)을 추천했다. 손권이 鳳雛(봉추)라 알려진 방통을 만나 보니 얼굴이 검은 추남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평생 무엇을 위주로 공부했느냐고 묻자 방통이 답한다.

 ‘저는 어떤 한 가지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 바뀝니다(不必拘執 隨機應變/ 불필구집 수기응변).’ 또 주유와 비교해서 학문이 어떠냐고 물으니 완전 다르다고 해서 손권이 등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일 방통은 劉備(유비)에 발탁돼 공을 세우게 된다. 손권이 응변의 인재를 놓친 셈이다.

그때그때 처한 상태에 따라 즉각 그 자리에서 대처한다는 것은 기회를 활용하는 능력이다. 기회는 두 번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으니 우리 속담 ‘떡 본 김에 굿한다’고 해도 약삭빠르다고 손가락질만 할 수 없다. 적과 대치하는 것과 같은 絕體絕命(절체절명)의 위급한 상황이 아니고선 변화가 무쌍한 오늘날 형편에 따라 수단을 강구해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잦아 대부분 용인된다. 정도를 걷는다고 머뭇거리다가는 ‘사또 떠난 뒤에 나팔 분다’는 말대로 아무런 효과가 없는 법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41.html
kolaswqetsrq 11.03 00:55
간경하사干卿何事 - 그대와 무슨 상관인가, 남 일에 웬 참견인가

간경하사(干卿何事) - 그대와 무슨 상관인가, 남 일에 웬 참견인가

방패 간(干/0) 벼슬 경(卩/10) 어찌 하(亻/5) 일 사(亅/7)

孔子(공자)님 말씀에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주제넘게 그 일에 손대지 않는다(不在其位 不謀其政/ 부재기위 불모기정)’는 것이 있다. 論語(논어)의 泰伯(태백), 憲問(헌문)편 뿐만 아니라 明心寶鑑(명심보감) 安分篇(안분편)에도 같이 나온다. 다른 사람의 일에 간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주 자신의 오지랖 넓은 것을 과시한다. 이럴 때 쓰는 속담이 ‘남 떡 먹는데 팥고물 떨어지는 걱정한다’고 남의 일에 쓸데없이 나서는 것을 비웃었다.

그대 卿(경)과 어떤 일이(何事) 관계가 있는가라는 이 성어도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꼬집는 말이다. 처음에는 비웃기보다 아름다운 시구를 두고 작가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고 웃으며 지적한 것에서 유래했다. 방패 干(간)은 干與(간여)에서 보듯이 ‘연루되다, 관련되다, 관계하다’란 뜻도 있다.

干卿甚事(간경심사), 干卿底事(간경저사), 底事干卿(저사간경)이라 쓰기도 한다. 중국 五代十國(오대십국)의 하나인 南唐(남당)의 사서 ‘南唐書(남당서)’에 수록된 내용을 보자. 이 나라에는 황제부터 이름난 시인들이 많았다. 2대 왕 李璟(이경), 3대 왕 李煜(이욱)과 재상 馮延巳(풍연사, 904~960) 등이 실력을 뽐냈다.

이경의 작품 중에 먼 변방의 싸움터에서 고생하는 남편을 그리는 여인의 심정을 읊은 구절이 유명하다. ‘보슬비에 꿈을 깨니 닭 울음소리 변방에 아득하고, 작은 누대에 울리는 옥피리 소리 차가워라(細雨夢回鷄塞遠 小樓吹徹玉笙寒 /세우몽회계색원 소루취철옥생한)’란 표현은 宋(송)나라 王安石(왕안석)이 최고의 문구라고 칭찬했다 한다. 풍연사의 작품에도 임 생각에 애끊는 여인을 읊은 구절이 있다. ‘바람 언뜻 불어와 연못에 잔잔한 물결 일으킨다(風乍起 吹皺一池春水/ 풍사기 취추일지춘수).’ 乍는 잠깐 사, 皺는 주름질 추.

이경 왕이 작품을 보고 봄바람 잔물결과 그대는 무슨 상관인가라고 놀리니 풍연사도 왕께선 누대의 옥피리를 노래하지 않았느냐고 받아 넘겼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61.html
kolaswqetsrq 11.03 00:55
임현국길任賢國吉 - 어진 사람을 등용하면 나라가 길해진다.

임현국길(任賢國吉) - 어진 사람을 등용하면 나라가 길해진다.

맡길 임(亻/4) 어질 현(貝/8) 나라 국(囗/8) 길할 길(口/3)

훌륭한 지도자일수록 인재를 잘 발탁하고 적소에 일을 맡겼다. 人事(인사)가 중요하다고 萬事(만사)라 말은 쉽게 하지만 잘못되어 亡事(망사)가 되면 국민이 피해를 입는다. 알고도 이러한 실패가 잦은 것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현인인 孔子(공자)마저 제자를 잘못 보았다고 자책한대로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한 以貌取人(이모취인)이나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가까운 사람을 뽑는 任人唯親(임인유친), 권력자의 주변에 있다고 능력과 관계없이 우선 발탁한다는 近水樓臺(근수누대) 등등 경계의 말은 숱하다.

자신의 친소와 관계없이 인격과 능력을 갖춘 인재를 등용하는 立賢無方(입현무방)은 고대 성군들이 힘을 기울인 정책이었다. 이렇게 어진 사람을 임용(任賢)하면 나라가 길하고(國吉) 흥했다는 말은 고대 선현들의 행적이나 일화와 우화 등을 수록한 교훈집 劉向(유향)의 ‘說苑(설원)’에 나온다. 유향은 戰國策(전국책), 新書(신서), 列女傳(열녀전) 등 숱한 유명 저작을 남긴 중국 前漢(전한) 시대 왕족 출신의 학자다. 尊賢(존현)편에 실린 부분을 보자. ‘국가는 어진 이를 임용하면 길하고 불초한 자를 들어 쓰면 흉하게 마련이다(國家之任賢而吉 任不肖而凶/ 국가지임현이길 임불초이흉).’

여러 예를 든 중에 齊(제)나라 桓公(환공)이 管仲(관중)을 발탁하고 사후의 몰락을 강조한 것이 흥미롭다. 잘 알려졌듯 관중은 태자 시절 환공을 암살하려 한 반대편의 원수였다. 하지만 환공은 관중의 능력을 인정하여 재상에 임명한 뒤 이후 승승장구, 覇者(패자)가 되고 천하를 바로잡았다. 관중이 죽으면서 추천한 사람을 물리치고 간신 豎刁(수조, 豎는 더벅머리 수, 刁는 조두 조)와 易牙(역아)를 중용하더니 환공은 사후에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한 때의 잘못 판단으로 명예 잃고 나라까지 기울게 한 본보기였다.

친척이나 원수나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인재를 추천하여 親仇不避(친구불피)란 말을 남긴 晉(진)나라 대부 祁黃羊(기황양)은 大公無私(대공무사)의 표본이다. 인품만 보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 맡긴다는 任人唯賢(임인유현)이란 말도 같다. 任賢勿貳(임현물이)라고 맡기고 난 뒤 의심하지 말고 끝까지 밀어주라는 말도 명심할 일이다. 그렇다고 등용하고 난 뒤 잘못이 드러나고 모두들 욕하는데도 그냥 직무를 맡긴다면 그것 또한 나라를 길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23.html
kolaswqetsrq 11.03 00:56
취생몽사醉生夢死 – 술에 취해 살다 꿈속에 죽다, 하는 일 없이 지내다.

취생몽사(醉生夢死) – 술에 취해 살다 꿈속에 죽다, 하는 일 없이 지내다.

취할 취(酉/8) 날 생(生/0) 꿈 몽(夕/11) 죽을 사(歹/2)

정신없이 술에 취해 행동을 멋대로 하는 사람을 욕하여 ‘술 먹은 개’라 한다. 천하에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는 것이 없으므로 醉中無天子(취중무천자)라고 점잖게 따돌린다. 행패도 부리지 못할 정도로 고주망태가 된 사람은 醉如泥(취여니)다. 반면 술을 알맞게 마시면 온갖 시름을 잊게 해 준다고 忘憂物(망우물), 어떤 약보다 좋다고 百藥之長(백약지장)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술에 취한 듯 살다가(醉生) 꿈을 꾸듯이 죽는다(夢死)는 이 성어는 어떤 상태를 이를까.

이 말은 宋代(송대)의 유학자 朱熹(주희)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程顥(정호, 顥는 클 호, 1032~1085)의 말이라며 ‘小學(소학)’에서 인용한 것이 처음이라 한다. 정호는 동생 程頤(정이)와 함께 二程子(이정자)로 불리며 程朱學(정주학)을 창시했다. 어록에는 당시 간사하고 요망한 말들이 넘쳐 백성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천하를 어지럽게 하니 ‘아무리 고명한 재주를 가졌어도 그 말에 얽매여 취생몽사의 지경으로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雖高才明智 膠於見聞 醉生夢死 不自覺也/ 수고재명지 교어견문 취생몽사 부자각야)’고 한탄했다.

송대에 처음 사용됐다고 해도 술 취한 채 살다 죽어간 사람은 앞선 시대에 많다. 酒池肉林(주지육림)의 향락으로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나라를 망친 殷(은)나라 紂王(주왕)이 대표한다. 하지만 미화된 죽음도 있다. 비록 汨羅水(멱라수, 汨은 물이름 멱)에 빠져 죽었더라도 모든 사람이 취한 중에 혼자 깨어 있었다는 衆醉獨醒(중취독성)의 屈原(굴원)이 있다. 무엇보다 술에 취한 채 호수 속에 있는 달을 잡기 위해 물 속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李白(이백)은 유배에서 풀려 仙界(선계)에 갔다고 해도 별호 醉聖(취성)이 더 어울린다.

조선 중기 문신 張維(장유, 1587~1638)는 ‘谿谷集(계곡집)’에서 은거의 만족함을 노래하며 이 말을 사용했다. ‘집 밖에 나갈 필요 없이 우주가 이 속에 있는 것을, 취생몽사 면하면서 일월을 마냥 보내노라(不出戶庭觀宇宙 免敎醉夢送居諸/ 불출호정관우주 면교취몽송거제)’

세상일에 초연하며 거리낌 없이 사는 삶을 예찬한 예가 부럽긴 하다. 그래도 술 좋아한다고 한평생을 아무 하는 일 없이 흐리멍덩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하니 좋은 뜻은 아니다. 술에 어지간히 취해 한 실수는 관대하게 봐 주는 사회지만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 酒暴(주폭)이라 손가락질 받으니 유의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59.html
kolaswqetsrq 11.03 00:56
동감공고同甘共苦 - 달고 쓴 것을 함께 하다.

동감공고(同甘共苦) - 달고 쓴 것을 함께 하다.

한가지 동(口/3) 달 감(甘/0) 한가지 공(八/4) 쓸 고(艹/5)

남의 곤란한 처지는 직접 그 일을 당해 본 사람이 잘 알 수 있다는 뜻의 속담에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는 것이 있다. 그런데 같은 어려움에 처해도 외면하는 일이 많은 세상에 형편이 훨씬 나은 자리에서 남의 아픔을 共感(공감)한다면 훌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사가 갈리는 급박한 상태의 전장에서는 부하의 어려움을 알고 같이 고생하는 장수가 특히 존경받는다. 한 통의 막걸리를 전 장병과 함께 마시기 위해 강물에 쏟았다는 簞醪投川(단료투천, 醪는 막걸리 료)의 장수나, 부상당한 부하의 상처 고름까지 빨아준 吮疽之仁(연저지인, 吮은 빨 연, 疽는 종기 저)의 吳起(오기) 장군이 그렇다.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하는 同苦同樂(동고동락)과 마찬가지로 단 것을 맛볼 때(同甘)나 쓴 것을 당할 때나 함께(共苦) 한다면 그 군대는 사기충천할 수 있다. 비슷하게 나오는 곳이 많은 중에 중국 前漢(전한)의 왕족 출신 劉安(유안)이 여러 빈객과 함께 편찬한 ‘淮南子(회남자)’를 보자. 백과사전격인 이 책의 兵略訓(병략훈)에 나오는 구절이다. ‘장수는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며 배고픔과 추위도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병사들이 죽을 힘을 다해 싸운다(將必與卒同甘苦 俟饑寒 故其死可得而盡也/ 장필여졸동감고 사기한 고기사가득이진야).’ 俟는 기다릴 사.

원수를 갚으려 고초를 견디는 臥薪嘗膽(와신상담) 이야기에는 越王(월왕) 句踐(구천)이 會稽(회계)에서 吳王(오왕) 夫差(부차)에게 당한 치욕을 갚기 위해 민심을 먼저 얻으려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다. ‘어떤 맛있고 연한 음식이 나누어 먹기에 부족하면 감히 혼자 먹지 못했고, 한 병의 술이라도 강물에 섞어서 백성들과 함께 나누었다(有甘肥不足分 弗敢食 有酒流之江 與民同之/ 유감비불족분 불감식 유주류지강 여민동지).’ 이렇게 해서 구천은 원수를갚는데 성공한다. 秦(진)나라 재상 呂不韋(여불위)가 학자들을 모아 만든 ‘呂氏春秋(여씨춘추)’의 季秋紀(계추기) 順民(순민)편에 나온다.

위기에 빠진 자나 불우한 처지의 사람을 남몰래 돕는 미담이 간혹 있는 일이라도 미소를 짓게 한다. 반면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책임을 떠넘기거나 안하무인의 형태는 더 자주 본다. 높은 자리의 직장 상사는 알게 모르게 부하를 괴롭혀 방지 법안까지 나오는 세상이다. 윗자리에서 아래 사람의 괴로움을 같이 느끼고 껴안아 주지 않는다면 그 조직의 발전을 바랄 수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71.html
kolaswqetsrq 11.03 00:57
착슬독서著膝讀書 – 무릎을 바닥에 붙이고 책을 읽다.

착슬독서(著膝讀書) – 무릎을 바닥에 붙이고 책을 읽다.

나타날 저, 붙을 착(艹/9) 무릎 슬(肉/11) 읽을 독(言/15) 글 서(曰/6)

책을 많이 읽고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선현의 가르침은 차고 넘친다. 가을철에 독서주간이 있고 함께 따르는 螢雪之功(형설지공)은 고생을 이기고 공부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벽을 뚫어 훔친 빛으로 공부하여 성공했다는 鑿壁偸光(착벽투광)도 있다. 좋은 책을 읽으면 옛 현인과도 벗이 된다는 讀書尙友(독서상우)의 孟子(맹자)나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억척스레 공부한 태도를 나타내는 것도 머리칼을 매달고 넓적다리를 찌르며 잠을 쫓아 공부한 懸頭刺股(현두자고)나 소를 타고 가면서도 쇠뿔에 걸어놓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牛角掛書(우각괘서)도 있다.

무릎을 방바닥에 딱 붙이고(著膝) 책을 읽으라(讀書)는 이 말도 읽는 태도에 관한 성어다. 나타날 著(저)는 붙는다는 뜻으로는 ‘착’으로 읽는다. 조선 英祖(영조)때 安東(안동) 지역에서 학술을 강론하여 많은 제자를 길러냈던 학자 李象靖(이상정, 1710 ~ 1781)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말이다. 호가 大山(대산)인 이상정은 아들에게 몸가짐을 가볍게 하지 말고 엉덩이를 묵직하게 가라앉혀 독서하라고 가르쳤다. 정민 교수의 저작 ‘조심’에서 소개해 알려진 이 말은 大山集(대산집)의 ‘答兒(답아)‘에 실려 있다.

아들에 공부를 당부하는 내용을 보자. ’반드시 마음을 누르고 뜻을 안정시킨 뒤에 무릎을 붙이고 독서를 해야 한다(須抑心定志 著膝讀書/ 수억심정지 착슬독서).‘ 그러면서 이어서 말한다. ’그저 시간만 보내면 책을 읽더라도 안 읽은 것과 마찬가지다(只悠悠度日 雖讀如不讀也/ 지유유도일 수독여부독야). 반드시 진도를 적게 잡고 많이 읽어 밤이면 외워야지 대충 읽고만 넘어가서는 안 된다(須少課而多讀 夜則成誦 不可泛泛讀過/ 수소과이다독 야즉성송 불가범범독과).‘

조선 중기 문신 趙宗敬(조종경, 1495~1535)의 ‘獨庵遺稿(독암유고)’에는 더욱 다잡는 구절이 있다. ‘긴 세월 무릎 붙여 책상 절로 구멍 나게(著膝長年榻自穿/ 착슬장년탑자천)’ 공부해야 막힘없이 될 수 있다고 했다. 榻은 긴걸상 탑.

책을 읽어 부지런히 공부하면 높은 벼슬에 올라 많은 녹을 받을 수 있다고 書中自有千鍾粟(서중자유천종속)이라 했다. 오늘날 바로 녹이 나오지 않을지라도 분명 독서는 마음에 정신적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없다. 게임에, 모바일에 독서시간을 많이 뺏기는 사람들이 다시 생각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84.html
kolaswqetsrq 11.03 00:58
도증주인盜憎主人 - 도둑이 주인을 미워하다, 간사한 사람이 바른 사람을 싫어하다.

도증주인(盜憎主人) - 도둑이 주인을 미워하다, 간사한 사람이 바른 사람을 싫어하다.

도둑 도(皿/7) 미울 증(心/12) 주인 주(丶/4) 사람 인(人/0)

남의 물건을 슬쩍 하는 도둑을 두둔하는 사람은 없다. 도둑을 梁上君子(양상군자)라 칭한 중국 後漢(후한)의 학자 陳寔(진식)은 칭찬보다 교화하기 위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이 자신은 떳떳하게 富(부)의 균등화에 힘쓰는 사람이라 고개 쳐든다. 孔子(공자)에 호통 쳤던 흉악한 두목 盜跖(도척, 跖은 발바닥 척)은 聖勇義知仁(성용의지인) 다섯 가지 도를 지닌 것이 도적이라 했다. 이러니 도둑이 미워하는 것(盜憎)은 당연히 재물을 얻지 못하게 하는 주인(主人)이다. 자기의 앞날에 걸리적거리는 자는 바른 사람이라도 미워하는 존재가 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는 文公(문공)때 전성기를 누리다 세력이 많이 약화됐다. 厲公(여공)에 이르러선 군사력을 거머쥔 三郤(삼극, 郤은 틈 극)이 권력을 휘둘렀다. 이들은 郤錡(극기), 郤犨(극주, 犨는 흰소 주), 郤至(극지)의 삼형제로 조정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항상 伯宗(백종) 등 바른 말을 하는 충신들을 이간하기 바빴다. 백종은 선대부터 큰 공을 세운 대부였는데 사람됨이 강직하여 왕에 삼극의 권력을 억누르라고 간언했다. 하지만 주색에 빠진 여공이 듣지 않았고, 오히려 백종은 작은 허물을 뒤집어씌운 삼극의 모략에 의해 끔찍한 죽음을 당했다.

左丘明(좌구명)이 쓴 ‘左氏傳(좌씨전)’에는 백종이 조정에 들어갈 때마다 그의 처가 주의시킨 말에 성어가 나온다. ‘도적은 집 주인을 미워하고, 백성은 윗사람을 싫어하는 법입니다. 당신은 바른 말을 하기를 좋아하니 반드시 화를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盜憎主人 民惡其上 子好直言 必及於難/ 도증주인 민오기상 자호직언 필급어난).’ 부인의 이 말은 바른 말을 하여 화를 부른다는 直言賈禍(직언고화)의 유래도 된다. 백종은 부인의 당부에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됐지만 이전의 왕을 잘 보필한 말로 다른 성어도 남겼다. 鞭長莫及(편장막급), 채찍이 길어도 닿지 않으면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잘못을 저지른 자가 도리어 기세를 올리고 큰 소리를 친다고 ‘도둑이 매를 든다’고 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을 꾸미는데 부당하다고 나서는 반대파는 온갖 핑계를 덮어 씌워 제거한다. 작은 도둑은 잡혀도 큰 도둑은 풀려난다는 말대로 성공할 수도 있다. 간악한 사람이 바른 사람을 밀어내고 획책한대로 일을 처리한다고 해도 명심할 일이 있다. ‘하늘의 그물은 엉성해 보이지만, 결코 빠져나가지는 못한다(天網恢恢 疎而不漏/ 천망회회 소이불루),’ 道德經(도덕경)의 말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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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0:59
월진승선越津乘船 - 나루를 건너서 배를 타다, 순서를 건너뛰어서는 일을 실패한다.

월진승선(越津乘船) - 나루를 건너서 배를 타다, 순서를 건너뛰어서는 일을 실패한다.

넘을 월(走/5) 나루 진(氵/6) 탈 승(丿/9) 배 선(舟/5)

세상 모든 일에는 무엇이나 다 일정한 순서가 있는 법이다. 일을 아무리 급하게 끝내야 할 일이라도 순서를 빼 먹거나 무시한다면 마무리할 수가 없다.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속담 중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 쓰지는 못한다’가 잘 알려져 있다.

한자로는 雖有忙心 線不繫鍼(수유망심 선불계침)으로 번역했다. 질서를 무시하고 성급하게 결과를 찾을 때는 ‘우물에 가 숭늉 찾는다’고 핀잔을 듣는다. 일을 급하게 하려고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한다고 孔子(공자)는 欲速不達(욕속부달)이라 경계했다. 모를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뽑아 올린다면 오히려 벼를 죽게 한다는 揠苗助長(알묘조장, 揠은 뽑을 알)은 孟子(맹자)의 교훈이다.

‘나루 건너(越津) 배 타기(乘船)’라는 우리 속담이 더 있다. 나루는 강이나 내, 또는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곳이다. 배를 타기도 전에 나루 건너 날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건너고 나서는 배를 탈 필요는 더욱 없다. 무슨 일에나 순서가 있는데 건너뛰어서는 할 수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조선 인조 때의 학자 洪萬宗(홍만종)이 우리 속담을 한역한 ‘旬五志(순오지)’에 ‘나루를 건넌 다음에야 배를 탄다는 것은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취한다는 말(越津乘船 言捨近取遠/ 월진승선 언사근취원)’이라고 설명했다. 뒤의 풀이에 나오는 捨近取遠(사근취원)이라는 성어는 일의 순서나 차례를 바꾸어서 할 때 함께 쓴다.

丁若鏞(정약용)이 엮은 ‘耳談續纂(이담속찬, 纂은 모을 찬)’의 이 속담 해석도 비슷하다. ‘내를 건넌 후에는 배를 탈 수 없다는 것은 모든 일에 순서가 있으니 이를 뛰어넘을 수 없다(未有涉川而後乘船 言事有次序 不可踰奧/ 미유섭천이후승선 언사유차서 불가유오)’는 의미라고 했다. 가까운 데 있는 것을 무조건 버리라는 의미와는 약간 다른 捨近圖遠(사근도원)이란 말도 있다. 이것은 孫子兵法(손자병법)에서 장군이 마땅히 가져야 할 도리로 계획을 새롭게 하여 알지 못하게 하고, 가는 길을 우회하여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원대한 깊은 뜻을 실현하는 일이 아니고서는 순서대로 진행해야 실패할 염려가 없다. 뛰어난 천재들에겐 越班(월반)이 가능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듯이 차근차근 가는 것이 믿음직스럽다. ‘망건 쓰고 세수한다(先網巾 後洗水/ 선망건 후세수)’는 말처럼 순서를 건너뛰어서는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법이다. 나라의 정책도 앞서 최저임금제 등과 같이 좋은 목표를 실천한다며 무조건 밀어 붙이다 보면 목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혼란만 가져왔던 것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67.html
kolaswqetsrq 11.03 01:00
하갈동구夏葛冬裘 – 여름의 베옷과 겨울의 가죽옷, 격에 잘 어울리는 일이나 행동

하갈동구(夏葛冬裘) – 여름의 베옷과 겨울의 가죽옷, 격에 잘 어울리는 일이나 행동

여름 하(夊/7) 칡 갈(艹/9) 겨울 동(冫/3) 갖옷 구(衣/7)

만약 여름에 화로를 갖다 주거나 겨울에 부채를 선물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값진 물품이라 해도 고마워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정성이 담긴 선물이라 하더라도 시기에 맞지 않거나 격에 어울리지 않으면 주고도 욕을 먹기 마련이다. 바로 夏爐冬扇(하로동선)이 말하는 것으로 쓸모없는 물건이 된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는데 둥글부채를 준다는 秋風團扇(추풍단선)도 마찬가지다. 반면 여름철에 부채를, 겨울철에 다음 해의 책력을 선물한다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받는 사람을 흡족하게 여기도록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마찬가지로 여름에 서늘한 베옷(夏葛)이나 겨울철에 따뜻한 가죽옷(冬裘)을 말하는 이 성어도 철에 맞고 격에도 잘 어울리는 일이나 행동을 뜻한다.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에서도 우뚝한 唐(당)나라의 문장가 韓愈(한유, 68~824)는 친구 사이인 柳宗元(유종원)과 함께 古文(고문) 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문운동은 도교와 불교를 배척하고 유가 성인의 도를 담은 글을 사용해야 하나다는 것으로 산문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고문운동의 정수를 담았다는 글이 한유의 ‘原道(원도)’인데 여기에 이 성어가 등장한다.

부분을 보자. 널리 사랑하는 것을 인이라 하고 이치에 맞는 것을 의라 하며 따라야만 하는 것을 도라 한다면서 이어진다. ‘황제와 왕은 그 호칭은 다르지만 그들이 성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帝之與王 其號名殊 其所以爲聖一也/ 제지여왕 기호명수 기소이위성일야). 여름엔 칡베 옷을 입고 겨울엔 털가죽 옷을 입으며 목마르면 물마시고 배고프면 먹는 것이 그 일은 다르다 해도 지혜로움은 똑 같다(夏葛而冬裘 渴飮而飢食 其事雖殊 其所以爲智一也/ 하갈이동구 갈음이기식 기사수수 기소이위지일야).’ 이 글은 道(도)가 도교나 불교의 도에 의하여 어지럽혀져 있으므로 인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도의의 본원을 논한 것이라 해석한다.

아무리 귀중품을 선물로 준다고 해도 격에 맞지 않거나 사용할 데가 없는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왕이나 백성이나 베옷과 가죽옷은 필요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음식은 필요하다. 때에 맞춰 합당한 곳을 찾아 국민들의 가려움을 긁어주는 것은 위정자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49.html
kolaswqetsrq 11.03 01:01
임현물이任賢勿貳 - 어진 이에게 일을 맡겼으면 두 마음을 먹지 말라.

임현물이(任賢勿貳) - 어진 이에게 일을 맡겼으면 두 마음을 먹지 말라.

맡길 임(亻/4) 어질 현(貝/8) 말 물(勹/2) 두 이(貝/5)

기업이나 나라나 일을 해 나갈 때는 지도자가 적합한 사람을 찾아 적합한 곳에서 일하게 하는 適材適所(적재적소)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다음으로 훌륭한 인재를 찾아 일을 맡겼으면(任賢) 다른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勿貳)는 성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임자에게 주위에서 어떤 소리가 나오든 그를 신임해서 끝까지 밀어주라는 뜻도 담겨 있다. 貳는 二(이)의 갖은 자로 두 마음, 의심하다는 의미다.

尙書(상서)라고도 하는 書經(서경) 대우모(大禹謨) 편에 나오는 益(익)의 말에 처음 보인다. ‘조심이 없을 때 경계하여 법도를 잃지 마시고 안일함에 빠져 놀지 마시고 즐겁다 해서 지나치면 안됩니다. 어진 사람을 임명했으면 두 마음을 갖지 마시고 사악한 사람을 내치되 의심하지 마십시오(儆戒無虞 罔失法度 罔游于逸 罔淫于樂 任賢勿貳 去邪勿疑).’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강력한 覇者(패자)인 齊桓公(제환공)이 힘을 완전히 기르지 못했을 때 하루는 신임하는 管仲(관중)에게 걱정거리를 털어놓았다. “내가 사냥을 좋아하고 여자와 술도 놓지 못하는데 이렇게 해서 패자가 될 수 있겠소?” 관중은 그런 것은 하등의 문제가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대업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오?” 그 말에도 관중은 즉각 답했다. “어진 사람을 쓰지 않으면 패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어진 줄을 알면서도 그를 쓰지 않는다면 霸業(패업)을 이루지 못합니다. 또 임무를 맡기지 않거나 맡긴 후에 다시 소인들로 하여금 입을 대게 하면 패자가 되는 길에 해롭습니다(不用賢害覇 知賢而不用害覇 用而不任害覇 任而復以小人參之害覇).” 자기를 죽이려 했던 관중을 발탁하고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있는 환공이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다. 더욱 강력한 힘을 주고 간섭도 없이 나라를 통치해 변방국이 가장 강력한 패자가 될 수 있었다.

‘사람이 의심스럽거든 쓰지를 말고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疑人莫用 用人勿疑)’ 明心寶鑑(명심보감)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04.html
kolaswqetsrq 11.03 01:02
구십춘광九十春光 - 봄의 석 달, 화창한 봄 날씨, 노인의 마음이 젊음을 이르는 말

구십춘광(九十春光) - 봄의 석 달, 화창한 봄 날씨, 노인의 마음이 젊음을 이르는 말

아홉 구(乙/1) 열 십(十/0) 봄 춘(日/5) 빛 광(儿/4)

요즈음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봄과 가을은 점점 짧아져 언제 온듯하면 바로 여름이나 겨울 날씨로 이어지곤 한다. 그렇다고 해도 말까지는 바꾸지 못해 일 년 열두 달을 四季(사계)로 나누면 석 달씩이 된다. 이렇게 보면 봄은 3, 4, 5월인 孟春(맹춘), 仲春(중춘), 季春(계춘)의 석 달이다.

날수로 구십 일이 되어(九十) 이 동안의 봄철의 볕. 또는 봄철의 경치(春光)를 화창한 봄 날씨를 나타낸다. 九春(구춘)이라 해도 같다. 여기서 뜻이 확장되어 노인의 마음이 의욕이나 기력은 청년처럼 젊음을 나타내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쇠잔해지는 것을 서러워하는 뜻이 깊다.

이 성어가 처음 사용된 곳은 중국 唐(당)나라 시인 陳陶(진도, 812~888)의 시 ‘봄이 가네(春歸去/ 춘귀거)’를 꼽는다. 처음 두 행을 보자. 덧없이 흐르는 세월을 한탄한다. ‘구십춘광은 이제 어디 있느뇨, 옛 사람 지금 사람 모두 머물지 못하네(九十春光在何處 古人今人留不住/ 구십춘광재하처 고인금인류부주).’ 이후 淸(청)나라의 吳錫麒(오석기, 1746~1814) 시인의 ‘봄을 보내며(送春/ 송춘)’란 시는 자주 인용되는데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인생의 무상함이 더 또렷하다.

전문을 보자. ‘낙화 떨어지고 솜 날리며 안개 물 속에 가득한데, 구십 일 봄빛은 베틀 북처럼 지나는구나(落花飛絮滿煙波 九十春光去如梭 / 낙화비서만연파 구십춘광거여사), 그 자취 해마다 어디서 찾을지, 해마다 흰 머리만 늘어나는구나(蹤跡年年何處覓 一回白髮一回多/ 종적연년하처멱 일회백발일회다).’ 絮는 솜 서, 梭는 베틀북 사, 蹤은 발자취 종.

우리나라의 가사나 가요에도 자주 등장한다. 황해도 지방의 민요 ‘사설난봉가’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만산홍록 요염한데 벌 나비는 춤을 추고, 황금 같은 꾀꼬리는 구십춘광 자아내고, 버들 새로 왕래하며 벗을 불러 노래할 제, 만단 시름 다 버리고 삼춘흥을 풀어 볼거나.’ 1940년대에 활약했던 가수 옥잠화(본명 김복남)가 부른 제목이 ‘九十春光(구십춘광)’이란 노래도 전한다. ‘도화강변 배를 띄워 흘러를 갈 때, 끝없이 들리는 갈대피리 그 소리, 듣고 나면 열아홉의 웃음 품은 아가씨, 가슴에 꽃이 핀다 구비 구비 구십리.’

한 송이 꽃이 피었다고 호들갑떨지 말고 ‘온갖 꽃이 만발해야 봄이 왔다(百花齊放春滿園/ 백화제방춘만원)’며 느긋이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봄꿈을 깨기도 전에 잎을 떨어뜨리는 가을이 온다. 세월을 느긋하게 즐기면 뜻을 이루기 전에 후딱 지나가는 법이니 시간을 아껴 쓸 줄도 알아야 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66.html
kolaswqetsrq 11.03 01:02
기구지업箕裘之業 - 선대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업

기구지업(箕裘之業) - 선대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업

키 기(竹/8) 갖옷 구(衣/7) 갈 지(丿/3) 업 업(木/9)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기간 종사하는 일이 직업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이 오랫동안 전해 왔다.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에 맞고, 또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으면 귀하고 천함이 없이 보람을 찾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덴마크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14년간 접시를 닦았던 사람을 공동 소유자로 영입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좋은 보기다. 일본에는 몇 대째 내려오는 음식점이 수두룩하다고 하고, 세계 명품을 제작하는 서구의 집안도 장인정신의 자부심으로 무장돼 있다. 할아버지 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업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전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도 바람직하다.

성어에 나오는 가업을 계승한다고 해서 떵떵거리는 재벌이 아니다. 이들의 선대는 요즘엔 보기에도 힘든 직업을 가졌다. 곡식 등에 섞여있는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키(箕)를 만드는 직업과 짐승의 털가죽을 안에 댄 갖옷(裘)을 만드는 기술자다. 중국 유가의 五經(오경) 중에 포함되는 ‘禮記(예기)’에 실려 있다. 예기는 예의 이론과 실제를 논하는 내용으로 曲禮(곡례), 檀弓(단궁) 등 49편이 전하고, 大學(대학)과 中庸(중용)도 처음 이곳에 포함됐다.

學記(학기) 편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솜씨 좋은 대장장이의 아들은 가죽옷 만드는 일을 배우고, 활을 만드는 사람의 아들은 키 만드는 일을 배운다(良冶之子必學爲裘 良弓之子必學爲箕/ 양야지자필학위구 양궁지자필학위기).’ 실제 대장장이의 아들이나 활을 만드는 사람의 아들이 바로 그 아버지의 일을 배운 것은 아니다.

대장장이는 쇠를 녹여 그릇을 만드니 그것으로 그 아들은 짐승의 털가죽을 깁는 것을 배우고, 뿔을 휘어 활을 만드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버들가지를 휘어 키 만드는 일을 배운다. 비슷한 일이어서 어려서부터 보고 배워 따라 하기가 쉽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배우기 쉬운 일부터 하다 보면 나중에는 훌륭한 대장장이나 활장이가 되어 가업을 잇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선 士農工商(사농공상)의 구별이 뚜렷했고 그것이 이어져 ’사(師士事)‘자가 붙는 직업을 갖기 위해 경쟁해 왔다. 오늘날에는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일은커녕 당장 취업하려 해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허둥댄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취업 걱정이 줄겠지만 조상대대로 이어오던 가업을 계승하려는 젊은이가 늘어난다면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을 터이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08.html
kolaswqetsrq 11.03 01:03
인간삼락人間三樂 - 인간이 누리는 세 가지 즐거움

 인간삼락(人間三樂) - 인간이 누리는 세 가지 즐거움

사람 인(人/0) 사이 간(門/4) 석 삼(一/2) 즐길 락(木/11)

사람은 저마다의 재주가 있고, 목적하는 바가 달라서 각기 느끼는 행복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인간의 즐거움을 세 가지로 나타내보라 할 때 내세우는 것이 다르다. 욕심이 덕지덕지 엉겨 붙은 대부분의 인간은 부귀와 명예를 갖고서도 만족을 못한다. 그런데 다른 행복, 다른 즐거움을 드는 선현들이 말하는 행복은 의외로 단순하다.

먼저 모든 유학자의 영원한 스승 孔子(공자)의 三樂(삼락)을 보자. 배우고 때에 맞게 익힘(學而時習/ 학이시습),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는 일(有朋自遠方來/ 유붕자원방래),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음(人不知而不慍/ 인부지이불온)을 꼽았다. 論語(논어) 첫머리 學而(학이)편에서다. 공자 다음의 亞聖(아성)인 孟子(맹자)는 부모 살아 계시고 형제가 탈이 없는 것(父母俱存 兄弟無故/ 부모구존 형제무고), 하늘 우러러 부끄럼이 없고 굽어 봐 사람에 부끄러울 일이 없는 것(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영재들을 가르치는 것(得天下英才而教育/ 득천하영재이교육)을 들었다. 모두 남이 주는 것보다 자기가 닦는 데서 오는 것이다. 怍은 부끄러워할 작.

우리의 茶山(다산)선생은 젊은 시절 ‘수종사에서 노닐던 기록(游水鐘寺記 /유수종사기)‘에서 세 가지 즐거움을 나타냈다. ’어렸을 때 뛰놀던 곳에 어른이 되어 오는 것(幼年之所游歷 壯而至/ 유년지소유력 장이지), 곤궁했을 때 지냈던 곳을 출세한 뒤 오는 것(窮約之所經過 得意而至/ 궁약지소경과 득의이지), 홀로 외롭게 찾던 곳을 마음 맞는 벗들과 오는 것(孤行獨往之地 携嘉賓挈好友而至/ 고행독왕지지 휴가빈설호우이지)‘이다. 挈은 거느릴 설. 仁祖(인조)때 학자 申欽(신흠)의 삼락은 이렇다. ’문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閉門閱會心書/ 폐문열회심서), 문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는 것(開門迎會心客/ 개문영회심객), 문을 나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出門尋會心境/ 출문심회심경).‘

선인들은 주변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찾고, 조그만 성취에도 자족할 수 있는 것을 가장 크게 쳤다.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기만 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 자기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서양 격언처럼 자기의 분수를 알고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 철학자 安秉煜(안병욱)의 말도 기억하자. ‘행복과 불행은 같은 지붕 밑에 살고 있으며, 번영의 바로 옆방에 파멸이 살고 있고, 성공의 옆방에 실패가 살고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08.html
kolaswqetsrq 11.03 01:04
비지중물非池中物 - 연못의 동물이 아니다, 비범한 인물이나 장차 대성할 사람

비지중물(非池中物) - 연못의 동물이 아니다, 비범한 인물이나 장차 대성할 사람

아닐 비(非/0) 못 지(氵/3) 가운데 중(丨/3) 물건 물(牛/4)

그 사람은 보통이 아니라고 말할 때 수준이 평균 이하일 때는 없다. 많은 재주를 지닌 사람이 군중 속에 묻혀 있어도 저절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있어도 없는 듯하고, 가득 차도 텅 빈 듯한 것을 말하는 有若無 實若虛(유약무 실약허)는 고수의 경지에 든 사람이다. ‘주머니에 들어간 송곳’은 뾰족한 끝이 튀어 나오므로 錐處囊中(추처낭중)이고 결국엔 脫穎而出(탈영이출)이 된다. 지금은 연못에 잠겨 있더라도 때를 만나면 하늘로 오르는 용은 결코 못 속의 동물(池中物)에 그칠 수 없다. 비범한 인물이나 앞으로 대성할 사람은 보통사람과 섞여 있어도 기회만 오면 반드시 공을 이루는 인물을 지칭하는 말이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를 기록한 陳壽(진수)의 정사 ‘三國志(삼국지)’에서 劉備(유비)의 됨됨이를 나타내면서 이 성어가 자주 사용됐다. 蜀(촉)을 이끌던 유비는 關羽(관우)를 죽게 한 吳(오)나라에 복수할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曹操(조조)가 魏(위)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오나라 孫權(손권)과 화친할 수밖에 없었다. 오의 명신 周瑜(주유)는 손권의 누이동생과 유비를 결혼시킨다고 유인하여 암살할 계획을 세우며 말했다. ‘지금 유비를 놓아 보내면 때를 못 만난 교룡이 비구름을 얻는 형국이나 마찬가지로 결코 연못 속 작은 동물이라 할 수 없습니다(今若縱之 恐蛟龍得雲雨 終非池中物也/ 금약종지 공교룡득운우 종비지중물야).’ 하지만 손권 모친의 반대로 유비의 살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는 曹植(조식)을 가리키면서도 사용됐다. 조조의 아들 曹丕(조비)는 재주가 많은 동생 조식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까 항상 경계했다. 煮豆燃萁(자두연기, 萁는 콩대 기)의 七步詩(칠보시)를 짓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조비에게 오나라 출신의 華歆(화흠)이란 신하가 진언한다. ‘조식은 재주가 풍부하여 못 속의 동물이 아니니 일찍 제거하지 않으면 후환이 있습니다(子建懷才抱智 終非池中物 若不早除 必爲後患/ 자건회재포지 종비지중물 약불조제 필위후환).’ 신망 높은 화흠도 권력의 냉혹함은 어쩔 수 없었던가 보다. 華欽(화흠)이라 나오는 곳도 있다. 子建(자건)은 조식의 자.

평범한 사람들 속에는 비범한 재주를 가진 영재가 끼어있다. 때를 못 만나면 그냥 시들어버릴 인재다. 이러한 보물을 찾아내어 갈고 닦아야 앞날을 이끌어 나갈 수 있다. 각지의 재주꾼들이 모여들어 실력을 겨루던 일류학교들은 평준화 시책 이후 사라졌다. 소수의 영재들을 발탁하여 교육하는 특수학교들도 여러 가지 제약으로 점차 위축되고 있다. 세상에 묻혀 있으면 아무도 영웅을 알아볼 수 없다. 이들을 찾아내어 뒷받침하고 재주를 펼칠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미래의 일꾼들이 자란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56.html
kolaswqetsrq 11.03 01:04
중구삭금衆口鑠金 - 뭇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

중구삭금(衆口鑠金) - 뭇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

무리 중(皿/6) 입 구(口/0) 녹일 삭(金/15) 쇠 금(金/0)

말에 관한 경구는 많고 많지만 약간씩 의미는 달리 한다. 이 난에 소개했지만 말을 잘못하면 재앙을 가져온다고 조심하라는 데서(口禍之門/ 구화지문, 禍生於口/ 화생어구) 잘못된 소문은 삽시간에 퍼진다며 입을 다물어야 한다(駟馬難追/ 사마난추, 駟不及舌/ 사불급설, 言飛千里/ 언비천리)고 주의를 시킨다. 충고해 주는 말은 귀에 그슬리지만(忠言逆耳/ 충언역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진다(兼聽則明/ 겸청즉명)는 교훈도 있다. 여기에 더하여 뭇사람의 입(衆口)은 쇠도 녹인다(鑠金)고 한 더 무서운 성어도 나왔다. 여론의 힘은 그만큼 무섭다는 말이다. 녹일 鑠(삭)은 정정하다는 뜻도 있어 矍鑠(확삭)이라 하면 팔팔한 노인을 뜻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魯(노)나라의 학자 左丘明(좌구명)은 左傳(좌전)의 저자로 알려졌는데 당시 8개국의 역사를 나라별로 엮은 ‘國語(국어)’도 저술했다. 周(주)나라 편인 周語(주어)에서 이 성어가 유래한다. 24대왕 景王(경왕)은 화폐개혁을 단행하여 새 동전을 주조하고 남은 돈으로 거대한 종을 만들려고 했다. 큰 손해를 입은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대부 單穆公(단목공)과 악관 州鳩(주구)는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고 재물을 낭비할 뿐 아니라 조화로운 소리도 내지 못할 것이라며 만류했다. 그러나 경왕은 간언을 듣지 않고 종을 만들었고 아첨하기 좋아하는 악공들이 소리가 잘 어울린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에 경왕은 반대한 주구를 불러 종소리가 매우 듣기 좋다고 하는데 왜 반대했느냐고 따졌다. 그는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은 실패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며 답한다. ‘옛사람들의 말에 많은 사람들의 뜻은 견고한 성을 이루고, 많은 사람들의 말은 쇠도 녹인다고 했습니다(故諺曰 衆心成城 衆口鑠金/ 고언왈 중심성성 중구삭금).’ 주구의 말대로 이듬해에 경왕이 죽고 나자 아무도 종소리가 듣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고 종은 망가졌다. 여러 사람이 일치단결하면 성처럼 견고해질 수 있다는 비유로 衆心成城(중심성성)이란 성어도 같이 나왔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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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1:05
사어지천射魚指天 - 물고기를 잡으려 하늘을 향한다, 당치 않는 일을 하려하다.

사어지천(射魚指天) - 물고기를 잡으려 하늘을 향한다, 당치 않는 일을 하려하다.

쏠 사(寸/7) 고기 어(魚/0) 가리킬 지(扌/6) 하늘 천(大/1)

‘산에서 물고기 잡기’란 속담은 孟子(맹자)가 말한 緣木求魚(연목구어)를 번역한 듯이 같은 말이다. 불가능한 일을 굳이 하려는 사람에게 어리석음을 깨우쳐준다. 허무맹랑한 욕심을 앞세워 일을 저지르고 빈털터리가 된 사람에 들어맞는 말이기도 하다. 예나 이제나 욕심을 버릴 수 없는 인간이라 이것에 비유한 말도 많다. ‘바다에 가서 토끼 찾기’, ‘솔밭에 가서 고기 낚기’ 등의 속담뿐 아니라 거북의 등에서 털을 긁는다는 龜背括毛(귀배괄모)나 얼음을 두들겨 불을 구하는 敲氷求火(고빙구화) 같은 말도 무리하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물고기를 잡기 위해(射魚) 하늘을 가리킨다(指天)는 성어가 더해진다. 예전에는 창이나 화살로 물고기를 잡았다는데 그렇다고 해도 하늘로 향해 쏘아서는 잡힐 리가 없다. 呂覽(여람)이라고도 불리는 ‘呂氏春秋(여씨춘추)’에 어림없는 일의 비유로 사용됐다. 잘 알려졌듯이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秦(진)나라의 승상인 呂不韋(여불위)가 諸子百家(제자백가)의 학자 3000명에 의뢰하여 편찬한 책이다. 완성된 책을 저자에 걸어놓고 一字千金(일자천금), 한 글자라도 고칠 수 있으면 천금을 주겠다고 했던 완벽을 자랑했다. 임금과 신하의 직분을 정한다는 審分覽(심분람)의 知度(지도) 편을 보자.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는 어떠한 사람을 기용했는가에 따라 흥하고 망했다면서 예를 든다. 폭군으로 알려진 夏桀商紂(하걸상주)는 각각 간신인 干辛(간신)과 惡來(악래)에게 권한을 줬고, 宋(송)과 齊(제)나라에선 唐鞅(당앙)과 蘇秦(소진)을 기용하여 멸망의 길로 갔다면서 이어진다.

적임자가 아닌데도 공적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비유하자면 하지 날에 밤의 길이가 낮의 길이보다 더 길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고(譬之若 夏至之日而欲夜之長也/ 비지약 하지지일이욕야지장야), 물고기에 활을 쏠 때 하늘을 겨냥하고서 화살이 물고기에 명중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射魚指天而欲發之當也/ 사어지천이욕발지당야)’고 했다.

前漢(전한)의 학자 劉向(유향)은 교훈집 ‘說苑(설원)’에 더 상세한 예를 들면서 舜禹(순우)같은 현군이라도 인재를 고르기가 어렵다고 했다. 성군 밑에 현신이 나기 마련이지만 이러한 인재를 맞이하기 위해선 三顧草廬(삼고초려)를 하고, 식사와 세수도 중단하면서까지 손님을 맞는 吐哺握髮(토포악발)의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이런 노력도 없이 학맥과 인맥에서 사람을 고르고 코드에 맞는 인물만 기용하다간 중요한 인사가 亡事(망사)가 되고 만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29.html
kolaswqetsrq 11.03 01:06
안행피영雁行避影 - 기러기처럼 날고 그림자를 피하다.

안행피영(雁行避影) - 기러기처럼 날고 그림자를 피하다.

기러기 안(隹/4) 다닐 행(行/0) 피할 피(辶/13) 그림자 영(彡/12)

사람은 태어나 부모 다음으로 스승의 가르침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스승의 은혜가 임금이나 부친과 같다는 君師父一體(군사부일체)란 말이 생겼다. ‘자식을 보기엔 아비만 한 눈이 없고 제자를 보기엔 스승만 한 눈이 없다’고 한 말은 자식에 대해서는 부모가 가장 잘 알고 가르침에 대해서는 스승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주 업무가 되어 퇴색했지만 스승이 어려워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이 말의 원전이랄 수 있는 성어가 기러기처럼 앞서지 않고 스승의 그림자를 피한다는 雁行避影이다. 이동할 때 경험이 많은 기러기가 선두로 나서 V자 모양으로 높이 날아가는 것은 서열과 질서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얘기지만 줄을 지어 함께 날아다니므로 다정한 형제 같다고 하여 남의 형제를 높여서 안항(雁行, 이 경우 行은 항렬 항)이라고 한다.

‘莊子(장자)’의 外篇(외편) 天道(천도)에 있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서 나왔다. 周(주)나라 때 士成綺(사성기)라는 사람이 老子(노자)를 찾아와 말했다. ‘당신이 성인이라는 말을 듣고 먼 길을 사양하지 않고 달려와 백일 동안 지켜봤는데 성인이 아닙니다.

나물을 쥐구멍에 버렸다고 누이동생을 내쫓으니 인이 아니고 날것이나 익힌 것이나 음식을 쌓아두니 말이요?’ 노자는 아무 대답이 없다가 다음 날 다시 찾아 온 사성기에게 말했다. ‘남이 그랬을 뿐 나는 성인이 아니오. 그대가 소라고 했으면 소, 말이라 불렀다면 말이라 했을 것이오. 그 이름을 받지 않으려 한다면 화를 두 번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오.’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 사성기는 기러기처럼 옆으로 걷고 노자의 그림자를 밟을까 두려워하며 피했다.

세상에 스승은 많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 될 만한 사람이 있다고 했으니(三人行 必有我師/ 삼인행 필유아사). 스승은 많으나 존경할 만한 스승은 적다고 한다. 경쟁에 찌든 학생들만 양산하니. 百年大計(백년대계)라는 교육을 담당하는 주체가 스승이다. 그림자를 피하는 정도는 아니라도 스승을 존경하는 사회가 돼야 희망이 있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57.html
kolaswqetsrq 11.03 01:06
대류불연大謬不然 - 처음 의도와 달리 일이 크게 잘못되다.

대류불연(大謬不然) - 처음 의도와 달리 일이 크게 잘못되다.

큰 대(大/0) 그르칠 류(言/11) 아닐 불(一/3) 그럴 연(灬/8)

紀傳體(기전체) 사서의 효시 史記(사기)를 남긴 司馬遷(사마천)은 중국 최고의 역사가를 넘어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불행 속에서 대작을 집필하여 불굴의 의지가 더 빛났다. 48세 때인 서기전 99년 생식기를 잘리는 宮刑(궁형)을 받고서도 수치를 이겨내고 대작을 완성했다. 前漢(전한)의 국력을 떨친 7대 武帝(무제)에게 장군 李陵(이릉)이 匈奴(흉노)에 항복한 것을 변호하다 미움을 받아 치욕을 당한 것이다.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투항을 벌주면 나라를 위해 싸울 장수가 없을 것이라고 바른 말을 하다 눈 밖에 났다. 좋은 일을 하려다 원래 의도와 크게 어긋나(大謬) 다르게 일이 이루어졌다(不然)는 이 성어는 사마천이 친구 任安(임안)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왔다.

임안이 황궁을 지키는 군관으로 있을 때인 서기전 91년 巫蠱(무고, 蠱는 독벌레 고)의 난에 휩쓸렸다. 무제가 병으로 눕게 된 것이 무당의 주법 때문이라며 많은 사람을 옥사시킬 때 황태자인 戾太子(여태자)가 반란을 일으켰고, 임안이 동원령을 거부했다가 모함을 받았다. 억울하게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사마천에게 억울한 옥살이를 호소하며 선처해주도록 손길을 내밀었다. 치욕스런 형벌에서 벗어나 中書令(중서령)이란 관직에 있었던 사마천은 환관으로 사대부들의 멸시를 받는 처지라 선뜻 답장을 못했다. 그러다 친구가 처형되면 한이 될 것 같아 쓴 것이 ‘報任少卿書(보임소경서)’다. 少卿(소경)은 임안의 자이다.

부분을 보자. 자신은 부친의 덕으로 사관인 太史(태사)가 되어 궁을 드나들게 되었는데 물동이를 이고 하늘을 볼 수 없어(戴盆望天/ 대분망천) 손님과 사귐도 끊고 집안일도 잃어 버렸다면서 이어진다. ‘밤낮으로 부족하나마 재주를 다하고 한마음으로 맡은 일에 힘써 주군을 즐겁게 하려 했지만(日夜思竭其不肖之才力 務一心營職/ 일야사갈기불초지재력 무일심영직), 일이 크게 잘못 되어 그렇지 못했습니다(以求親媚於主上 而事乃有大謬不然者夫/ 이구친미어주상 이사내유대류불연자부).’ 媚는 아첨할 미. 사마천이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는 심정을 피력하며 좋은 의미의 일도 때로는 화를 가져 온다고 했다. 임안은 그 얼마 뒤 허리가 잘리는 腰斬刑(요참형)을 당했다.

사마천과 같이 좋은 세상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일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절망스럽다. 건설적인 의견을 냈는데도 윗사람이 안목이 좁아 내쳤을 수도 있고 반대파들에 휘둘려 좌절됐을 수도 있다. 어떤 것이 조직을 위해 옳은 것인지 구성원 전체가 잘 살펴야 한다. 그런가 하면 대체적으로 반대 의견이 많은데도 자기 갈 방향으로 따라 오라며 밀어붙이는 경우도 있다. 어떠한 정책으로 실적이 뒷걸음질 치는데 고집스럽게 나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84.html
kolaswqetsrq 11.03 01:07
효반취반皛飯毳飯 – 세 가지 흰 음식과 아무 것도 없는 상, 변변찮은 음식

효반취반(皛飯毳飯) – 세 가지 흰 음식과 아무 것도 없는 상, 변변찮은 음식

나타날 효(白/10) 밥 반(食/4) 솜털 취(毛/8) 밥 반(食/4)

한자에 三疊字(삼첩자)란 것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획수가 많은 글자를 3개 겹쳐 만든 글자다. 가로로 세로로 겹친 글자도 있지만 대체로 삼각형 모양으로 쌓은 것이 많다. 물건 品(품), 맑을 晶(정), 수풀 森(삼), 간사할 姦(간), 벌레 蟲(충), 우뚝솟을 矗(촉) 등 상용하는 글자도 제법 되고 모두 끌어 모으면 100개는 능히 넘어선다. 재미있는 것은 개나 소, 말, 사슴, 용을 겹친 삼첩자도 다 있고 용은 사첩자인 용이나는모양.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흰 白(백)과 털 毛(모)의 삼첩자가 들어간 성어가 있다. 皛飯(효반)의 皛는 나타날 ‘효‘인데 세 가지 흰 음식을 나타내고, 毳飯(취반)의 毳는 솜털과는 관계없이 세 가지의 음식도 없다는 뜻이다. 毛(모)는 털이나 모피를 뜻하지만 가늘다, 없다란 의미도 있다. 여기에는 明(명)나라 張鼎思(장정사, 1543~1603)의 ’琅琊代醉編(낭야대취편)‘ 등 여러 곳에서 전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따른다. 중국 北宋(북송) 때의 대시인 호가 東坡(동파)인 蘇軾(소식, 1037~1101)과 자가 貢父(공보)인 劉攽(유반, 1023~1089, 攽은 나눌 반)이 주고받은 위트 넘치는 일화가 잘 알려졌다.

어느 때 소동파가 유공보에게 효반을 대접하겠다며 초청했다. 효반이 무엇인지 몰랐던 유공보는 잔뜩 기대를 갖고 동파의 집으로 갔더니 쌀밥 한 그릇, 무 한 접시, 소금 한 줌뿐이었다. 실망한 공보에게 동파가 놀리면서 세 가지가 모두 흰색이니 효반이라 말한다. 이번에는 공보가 취반을 대접한다며 동파를 불러 아무 음식도 주지 않았다. 밥도 무도 소금도 없으니 취반이라며 앙갚음했다.

소동파와 유공보가 효반과 취반을 서로 바꿔 나오는 곳도 있고, 다른 사람이 등장하기도 한다. 宋(송)나라 謝維新(사유신)이 쓴 ’古今合璧事類備要(고금합벽사류비요)’에는 郭震(곽진)과 任介(임개)라는 명랑 콤비가 기지를 겨룬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대로 배가 고프면 무엇이든 맛이 있다. 정성이 가득하면 반찬이 없어도 성찬이고, 마음 맞는 사람끼리는 소박한 자리에 앉아도 배부르다. 손님을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할 때는 무엇보다 정성이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85.html
kolaswqetsrq 11.03 01:08
입신양명立身揚名 -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떨치다.

입신양명(立身揚名) -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떨치다.

설 립(立/0) 몸 신(身/0) 날릴 양(扌/9) 이름 명(名/0)

出世(출세)는 누구나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출세다. 그러나 출세는 어렵다. 불교에서 말하는 속세를 버리고 성자의 수행에 들어가거나, 부처님이 衆生(중생)을 제도하려고 나타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보통 말하는 출세는 세상에서 떳떳한 자리를 차지하고(立身) 이름을 날리는(揚名) 것을 말하는데 이것도 쉬울 리가 없다.

모든 사람이 이것을 원하고, 이것을 위하여 피나는 경쟁을 한다. 이것을 잘 말해주는 시조가 있다. ‘장부로 생겨나서 입신양명 못할지면/ 차라리 떨치고 일없이 늙으리라/ 이 밖의 녹록한 영위에 거리낄 줄 있으랴.’ 조선 肅宗(숙종) 때의 가객 金裕器(김유기)의 작품이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고 이름을 떨치는 출세가 효도라는 것이 유교 경전 ‘孝經(효경)’에 나온다. 孝(효)가 德(덕)의 근본이라며 孔子(공자)가 제자인 曾子(증자)에게 전한 효도의 내용을 후학들이 편찬했다는 책이다. 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부터 讀書三品科(독서삼품과)를 설치했을 때 시험과목으로 들어갔다고 하고, 유교를 중시한 조선에선 孝經諺解(효경언해)가 간행되어 널리 가르쳤을 정도다. 이 책의 끝 跋文(발문)에 西厓(서애)선생이 요약한다. ‘백 가지 행실이 효도가 아니면 서지 못하고, 만 가지 선행이 효도가 아니면 행해지지 못한다(百行非孝不立 萬善非孝不行/ 백행비효불립 만선비효불행).’

효도의 시작과 끝이 무엇인가 말하는 이 책의 유명한 구절은 많이 인용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내용을 옮겨보자. ‘사람의 사지와 머리카락,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 감히 이것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니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몸을 일으켜 도를 행하고 이름을 후세에 드날려서, 부모를 빛나게 하는 것이 효도의 마지막이니라(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입신행도 양명어후세 이현부모 효지종야).’ 그러면서 효도는 부모를 섬기는 데서 시작하여 임금을 섬기고 제 몸을 세우는 것으로 완성된다고 했다.

이름을 떨치는 것이 효도의 큰 부분이지만 자기는 물론 부모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름을 알리는 출세를 하고서도 자칫 잘못하면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변변찮거나 하찮은 사람이 신분이 바뀌어 거들먹거리면 ‘미꾸라지 용 됐다’거나 ‘뱀이 용 되어 큰소리한다’고 모두들 손가락질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여기서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는 修身齊家(수신제가)가 우선이다. 자신의 비행은 감추고 남에게는 매섭게 꾸짖는 ‘내로남불’로는 이름이 남아도 汚名(오명)이고 그 냄새는 만년까지 간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65.html
kolaswqetsrq 11.03 01:09
애인희시愛人喜施 - 사람들을 사랑하고 베풀기를 좋아하다.

애인희시(愛人喜施) - 사람들을 사랑하고 베풀기를 좋아하다.

사랑 애(心/9) 사람 인(人/0) 기쁠 희(口/9) 베풀 시(方/5)

좋은 글자만 모아 만든 듯한 이 성어는 성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의 행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劉邦(유방)의 사람 됨됨이를 묘사하는 첫머리에 나온다. ‘楚漢志(초한지)’ 등으로 잘 알려졌듯이 漢(한)나라의 초대 황제인 유방은 원래 太祖(태조)였는데 司馬遷(사마천)이 ‘史記(사기)’에서 高祖(고조)로 기술한 뒤부터 통칭이 되었다.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고 베풂을 어떻게 했는지 세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아도 高祖本紀(고조본기)에 대뜸 이렇게 기술한다.

유방은 코가 높고 얼굴은 용을 닮았으며 수염이 멋지고 왼쪽 넓적다리에는 72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仁而愛人 喜施 意豁如也 常有大度 不事家人生產作業(인이애인 희시 의활여야 상유대도 불사가인생산작업/ 사람됨이 어질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베풀기를 좋아했으며 성격이 활달했다. 늘 큰 뜻을 품고 일반 사람들의 생산 작업에는 종사하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豁은 넓을 활. 말하자면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큰 뜻을 품었다고 하지만 가업을 돌보지 않고 遊俠(유협)의 무리와 어울려 다녔으니 골칫덩이였던 셈이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신장이 팔 척이 넘고 힘은 산을 뽑을 수 있으며 楚(초)나라 명문 집안 출신인 項羽(항우)와의 쟁패전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뒀을까? 천하를 통일한 후 부하들과의 연회에서 유방이 한 말에 사람을 사랑한 일단을 피력했다. 즉 계책을 세우는 일에는 張良(장량)만 못하고, 장병들에게 안정적인 식량을 공급하는 일에는 蕭何(소하)만 못하고,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일은 韓信(한신)만 못하지만 이 세 명의 걸물을 썼기에 천하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항우는 范增(범증) 한 사람도 못 품고 내쳤다. 司馬光(사마광)의 ‘資治通鑑(자치통감)’에 나온다.

원전은 어데서 나왔건 뜻 만으로의 愛人喜施는 종교마다 내세우는 인간을 존중하고 만인이 평등하다는 박애와 상통한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66.html
kolaswqetsrq 11.03 01:09
송고영신送故迎新 - 낡은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함

송고영신(送故迎新) - 낡은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함

보낼 송(辶/6) 연고 고(攵/5) 맞을 영(辶/4) 새 신(斤/9)

2020년 한 해가 저문다. 느끼기에 따라 세월이 더디 가는 사람도, 살보다 더 빨리 지나간다고 아우성인 사람도 있겠다. 매년 연말이면 국내외 큼직한 뉴스를 정리하며 多事多難(다사다난)이란 단골표현을 사용하는데 올해는 코로나19 이야기로 얼룩졌다. 그러니 하루 빨리 지난 것을 보내고(送故) 미래의 희망을 그리며 새 것을 맞이하는(迎新) 이 말이 이 즈음에 딱 맞는 말이다. 원래의 뜻은 구관을 보내고 신관을 맞이한다는 뜻에서 새해맞이로 의미가 넓어졌다. 送舊迎新(송구영신), 送往迎來(송왕영래)라 써도 똑 같은 뜻이다.

後漢(후한)시대 班固(반고)의 ‘漢書(한서)’에 이 성어가 먼저 사용됐다. 王嘉(왕가)란 사람은 자가 公仲(공중)으로 어릴 때부터 성격이 강직하고 할 말은 과감하게 하여 주위의 신망을 받았다. 西漢(서한)의 13대 왕 哀帝(애제)에 의해 재상으로 발탁됐다. 왕가는 바른 의견을 제시하며 인재도 잘 골라 추천했기 때문에 왕도 크게 신임했다.

그가 올린 상소문 중에 구임자를 보내고 신임자를 맞는다는 뜻으로 쓴 예가 처음 나온다. ‘이전부터 관직은 대대로 맡았는데 倉(창)씨나 庫(고)씨처럼 창고 일을 맡아보던 집안에서의 성씨가 됐습니다. 관리가 수개월만 직책에 있다가 물러나도 보내고 맞이하느라 서로 뒤섞여 도로가 혼잡했습니다(吏或居官數月而退 送故迎新 交錯道路/ 이혹거관수월이퇴 송고영신 교착도로).’ 왕가전에 실려 있다.

애제는 董賢(동현)이란 미소년을 사랑하여 동성애를 뜻하는 斷袖之嬖(단수지폐)의 유래가 된 바로 그 왕이다. 동현을 가까이 두고 정사를 팽개쳐 여론이 좋지 않자 왕가는 이 꼴을 보다 못해 ‘천 사람이 손가락질을 하면 병이 없어도 죽는다(千人所指 無病而死/ 천인소지 무병이사)’고 하며 깨우쳤다. 그러다 도리어 왕의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히고 20일 동안 굶어 아사했다.

南唐北宋(남당북송) 초기의 관리이자 문학가인 徐鉉(서현)의 ‘除夜(제야)’란 시에 등장하는 구절을 보자. ‘찬 겨울 밤 등불은 깜빡이고 시간은 더디 가건만, 옛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는 일은 속임이 없구나(寒燈耿耿漏遲遲 送故迎新了不欺/ 한등경경루지지 송고영신료불기).’

가는 해 오는 해 마찬가지이지만 올해의 고초는 잊고 희망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려는 사람이 많다. 모두 복 된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01.html
kolaswqetsrq 11.03 01:10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

정할 정(米/8) 귀신 신(示/5) 한 일(一/0) 이를 도(刂/6)

어찌 하(亻/5) 일 사(亅/7) 아닐 불(一/3) 이룰 성(戈/3)

육체나 물질에 대립되는 精神(정신)은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이라 풀이한다. 이렇게 말하면 대뜸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A sound mind in a sound body)‘란 유명한 서양 격언을 떠올린다. 체력단련이나 보디빌딩에 힘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고대 로마 시인인 유베날리스(Juvenalis)의 풍자시에 등장한다는 이 말은 그러나 검투사들의 신체단련 열풍이 번지는 것에 못마땅하여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까지 깃들면 바람직할 것‘이란 의미로 썼다고 한다.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보다 속도 알차게 채우라는 충고로 보면 좋겠다.

이 정신을 동양에선 修養(수양)에 의미를 더 두어 갖가지 좋은 말을 남겼다. 사나운 호랑이에 맞서 정신을 집중하여 화살을 쏘았더니 바위에 박혔다는 中石沒鏃(중석몰촉)이나 한 가지 일에 오로지 마음을 바치면 못 이룰 일이 없다는 孟子(맹자)의 專心致志(전심치지)도 같은 교훈이다. 이보다 더 잘 알려진 말로 새해 결심을 다짐할 때나 좌우명으로 애용하는 것이 ‘한 가지 일에 온 정력을 집중하면(精神一到) 무슨 일이든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何事不成)’는 이 성어다. 중국 宋(송)나라의 유학자로 朱子學(주자학)을 집대성한 朱熹(주희, 1130~1200)의 말이다.

‘朱子語類(주자어류)’는 주희와 문인 사이에 행하여진 문답의 기록을 사후에 주자학자 黎靖德(여정덕)이 집대성한 책이다. 전체 140권인 이 책의 제8권에 이 말이 등장한다. 그 부분을 보자. ‘양기가 발하는 곳이면 쇠와 돌도 뚫을 수 있다(陽氣發處 金石亦透/ 양기발처 금석역투),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어떤 일도 이루지 못하겠는가(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일도 하사불성).’ 태양처럼 뜨겁고 밝은 기운이 양기인데 생명의 원천이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나듯 굽히지 않는 의지로 일을 하게 되면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한민족은 불굴의 의지를 지녔다고 자랑한다. 조그만 국토에서 이웃 대국이 虎視眈眈(호시탐탐) 노려도 굴하지 않고, 植民(식민)지배를 당하고서도 반만년 역사를 지키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룩했으니 외국서 더 놀란다. 앞의 어려운 말보다 쉽게 와 닿는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란 우리 속담이 있다. 이것을 또 어렵게 한역하여 不怕被虎呁 只要不慌神(불파피호균 지요불황신, 怕는 두려워할 파, 呁은 토할 균)이라고도 했지만 위험 앞에서도 태연한 視險若夷(시험약이) 정신이 있었기에 수시로 닥치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50.html
kolaswqetsrq 11.03 01:10
◇ 북한의 드레스덴化

◇ 북한의 드레스덴化

독일 동쪽 끝 드레스덴은 분단 시절 동독인들 사이에서 ‘무지의 지역’으로 불렸다. 서독 TV 전파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주민들의 서독 방송 시청을 감시하는 동독 관리들도 집에선 서독 TV를 즐겼다. 그러다가 드레스덴으로 발령 나면 낙담했다. 그 시절 동독 주민들은 서독 TV 전파를 잡기 위해 옥외 안테나 방향을 서쪽으로 조정했다. 동독 당국은 어떻게든 이를 단속하려 했지만 주민들의 열망을 막기 힘들었다.

동·서독이 통일되던 1990년 이전에도 동독 사람들은 서독 매체를 통해 서방의 뉴스와 대중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1987년 6월 7일 서베를린 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린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 공연이다. 동독 청년들이 장벽 너머 울려 퍼지는 노래를 듣기 위해 몰려들자 동독 경찰은 군용 트럭의 엔진을 공회전시켜 훼방 놓았다. 보위의 노래를 이미 꿰고 있던 동독 청년들은 떼창으로 엔진 소음에 맞섰다. 이튿날 공연 현장에서 동독 경찰이 청년 수백명을 연행하자 동독 주재 서독 특파원들이 본사로 뉴스를 타전했다. 동독 정부는 가짜 뉴스라고 부인했지만 주민들이 서독 방송을 통해 자초지종을 파악한 뒤였다.

이런 독일 역사는 대북 전단 금지법이 서독에도 있었다면 불가능했다. 이 법이 엊그제 우리 국회를 통과했다. 대북 전단뿐 아니라 북한에 유입되는 거의 모든 정보를 원천 차단하는 내용이다. 광고 선전물과 인쇄물, USB 같은 보조 기억 장치까지 금지 대상이다. 국제사회는 이 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일제히 비판했다. 한국 정부를 이상한 정권으로 보는 시각도 늘고 있다.

야당 태영호 의원은 이 법이 “김정은⋅김여정에게 충성하고 북한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70년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이 손잡고 북한 주민의 눈과 귀, 오감을 이중 삼중으로 차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 전역을 세상과 차단된 드레스덴화(化)하고 주민 생존조차 위협하는 법이란 얘기다. 서독이 동독 정부 눈치 보며 이런 법을 만들었다면 동·서독 청년들은 통일을 열망하며 보위의 노래를 함께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드레스덴도 여전히 무지의 지역으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태 의원은 북한 장마당에서 한국 드라마를 고르면서 취향 차이로 부부 싸움을 했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에 익숙한 북한 젊은이들은 ‘자기’ ‘오빠’ 같은 표현을 쓴다. ‘ᄏᄏ’ 같은 문자메시지도 보낸다. 이런 교류가 쌓여야 통일이 앞당겨진다. 물론 북한 왕조와 한국 운동권은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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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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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23.html
kolaswqetsrq 11.03 01:11
◇ 신조어 양산하는 부동산 벼락거지

◇ 신조어 양산하는 부동산 벼락거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자본주의의 정신적 토대를 닦은 역작이다. 베버는 카를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비판하고 정신적 관점에서 역사를 설명했다. 베버의 저작은 인간의 이윤추구에 종교적·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신의 섭리까지는 모르겠으나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꿈을 꾸는 것은 한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다. 정직하게 일하고 저축하면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이 무너질 때 사회는 불안해진다. 세계 자본주의 맏형인 미국도 최근 불평등이 심해지고 ‘아메리칸 드림’이 무너졌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 역시 실물경기는 안 좋은데 부동산이며 주식이며 자산시장만 폭등세를 연출하고 있다. 일해서 수입을 얻기보다 ‘돈이 돈을 낳는’ 시대가 온 듯하다.

요즘 많은 사람들의 근로의욕을 가장 꺾어놓는 것은 부동산 가격 폭등이다. “그때 집을 사자는 내 말을 들었어야 했다”며 부부싸움이 잦아졌다는 것도 너무 흔한 말이 됐다. 최근 한 방송 오락프로그램에 나온 배우는 “몇 년 전 전세로 살 때 매매가 6억 원이었던 서대문구 아파트가 지금 13억 원으로 뛰었다”며 자신의 사정을 소상히 털어놔 화제가 됐다. 그때 집을 안 사고 월세로 가는 바람에 지금까지 저축도 못하고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말에 벼락부자라는 말은 있었지만 이젠 벼락거지라는 말도 추가될 모양이다. 벼락부자는 알다시피 한순간에 부자가 된 사람을 말한다. 벼락거지는 이에 빗대 집값 폭등과 전세난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월세 난민으로 전락한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수입과 재산이 비슷했던 주변 사람들이 3, 4년 전 집을 샀느냐 안 샀느냐에 따라 자산 규모 차이가 수억 원씩 벌어졌으니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에도 부동산 가격이 오른 적은 있지만 짧은 기간에 부동산 관련 신조어가 요즘처럼 많이 생겨난 때도 없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 패닉 바잉(공황 상태에서 구매), 양포세(양도세 포기한 세무사), 부동산 블루(부동산 우울증), 부동산 카스트(부동산 계급)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젊은 세대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극심한 취업난으로 사회에 첫발도 내딛지 못하는 청년들이 부지기수다. 간신히 일자리를 얻어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도 이생집망(이번 생에 집 사기는 망했다)이다. 청년들에게 성실하게 돈을 모아 내 집 한 칸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동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39.html
kolaswqetsrq 11.03 01:12
◇ 탄소세...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

◇ 탄소세...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

석유에는 이런저런 세금이 많이 붙는다. 휘발유에는 관세, 교통에너지환경세, 주행세, 교육세, 부가가치세가 포함돼 최종 소비자 가격의 3분의 2가 세금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격인데 필수 에너지원인 석유는 세금 걷기가 용이해 정부가 교육세 같은 목적세를 신설할 때 석유를 자주 활용해 왔다.

앞으로는 주유를 하면서 탄소세도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탄소세는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에 포함된 탄소량에 따라 부과하는 세금이다.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필요한 재원을 탄소세 부과로 충당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2015년 한국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195개국이 서명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합의된 탄소중립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소한으로 줄이되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양은 산림 조성 등으로 흡수해 실질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지만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제조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는 큰 부담이다. 기업들은 지금도 탄소배출권 거래제로 인한 부담을 호소하고 있는데 정부가 철강, 석유화학 등 탄소 배출량이 많은 산업에 추가 부담금 부과를 시사해 기업의 환경 관련 비용이 더 늘어나게 됐다.

수출 기업들은 해외에서 ‘탄소국경세’도 내야 할 것 같다. EU가 탄소국경세 도입을 예고한 상태이고 미국도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탄소국경세 신설을 대선 공약으로 발표한 바 있다. 탄소국경세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에서 수입되는 물품에 부과하는 무역 관세다.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이 도태되는 효과가 기대되지만 탄소 저감 정책에서 앞서가는 선진국은 이익을 보고 탄소집약도가 높은 개발도상국은 손해를 보는 불균등 발전이 심화될 수 있고, 새로운 무역장벽이 될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탄소 감축을 위해 에너지 구조를 화석연료에서 태양광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하면서도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87%나 되는 에너지 분야 탄소중립 전략에서 원자력발전을 배제했다. 치명적 방사능 누출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는 원전 비중을 줄이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에너지 효율이 뛰어나고 온실가스 배출도 없는 원전 없이는 탄소 감축이 불가능하다. 미국 영국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하나같이 원전 활용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방편으로 삼는 것도 이런 현실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원전을 환경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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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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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07.html
kolaswqetsrq 11.03 01:12
◇ "요즘 트로트가 뜨는 이유는 마음이 공허하기 때문일겁니다"

◇ "요즘 트로트가 뜨는 이유는 마음이 공허하기 때문일겁니다"

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13일 하루 1000명을 돌파했습니다. 바이러스는 정부가 방역과 경제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는 틈새를 집요하게 파고 듭니다. 이제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댄스모임·장구동아리·목욕탕·요양병원·PC방 가릴 것 없이 확진자가 쏟아집니다. 감염경로가 불투명한 ‘스텔스 환자’는 불안을 더 키웁니다.

골목상권에선 “하루 1만 원도 못 벌었다”는 한숨이 메아리 치는데 공동체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정치는 국민의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은 지난 7일 마스크를 벗은 채 지인 5명과 와인을 마시는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논란이 되자 13일 사과했습니다. “모임을 자제해달라”는 방역당국의 호소가 높으신 분의 귀에는 들리지 않나 봅니다. 소상공인들은 “3차 재난지원금을 하루라도 빨리 지급하라”고 애원하는데 정치권은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1년 넘게 지루한 다툼만 합니다. 그새 집값은 폭등하고 실업률은 고공행진입니다.

요즘 트로트가 유행하는 원인 중 하나는 마음이 공허하기 때문일겁니다. 옛날 트로트에는 유난히 엘레지(elegy)라는 제목이 많습니다. ‘용두산 엘레지’ ‘해운대 엘레지’ ‘황혼의 엘레지’ ‘부산항 엘레지’.... 엘레지는 비가(悲歌) 또는 애가(哀歌)로 불립니다. 대중가요 평론가 이동순은 “대중가요의 슬픔은 비극적 현실을 딛고 넘어서서 속히 극복하도록 추동하는 힘이 있다”고 정의합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 효과입니다. 펜데믹에 하루 버티기도 힘든 우리네 삶도 엘리지 몇 곡 부르면 나아질 수 있을까요?

덧말. “하고 싶은 것 다한다”는 세력과 반대만 하는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민생은 실종됩니다.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경구가 있습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마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대가 오랫동안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심연 역시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들여다 본다.” 니체의 경고입니다.

-국제신문 뉴스 세줄 요약 \뭐라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14.html
kolaswqetsrq 11.03 01:13
◇ 원수와 은혜가 돌고 도는 세상

◇ 원수와 은혜가 돌고 도는 세상

20대 시절에 도가의 경전에 나오는 ‘은생어해(恩生於害) 해생어은(害生於恩)’이라는 대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원수로부터 은혜가 나오고 은혜로부터 원수가 나온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삼십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요즘 신문을 보니까 비로소 이 말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경전 한 구절 이해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여기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여지는 단계이다.

진중권과 윤석열은 경전의 깊은 의미를 터득하게 만들어준 나의 선생님이다. 보수 논객 조갑제가 90년대 후반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박정희 전기를 쓴 적이 있다. 이때 진중권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비평서를 써서 되받아 쳤다. 박정희와 보수 진영에 침을 뱉었던 진중권이 요즘에는 태극기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진중권이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는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보수 진영 사람들이다.

정권을 비판하면 어디 가서 강연하기도 어렵다. 기업들은 정권 눈치를 보기 때문에 반정부 인사는 강연자로 부르지 않는다. 신문 연재 원고료야 얼마나 되겠는가. 강연료가 문제다. 평소에 알고 지냈던 진보 진영 어떤 교수는 진중권을 향해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저주를 퍼부어 댔다. 윤석열도 그렇다. 박근혜 시절 국정원 댓글 수사를 할 때는 진보의 찬사를 받았다. 이번 정권 초기에 적폐 청산한다고 칼에 피를 묻힐 때는 보수 인사들로부터 ‘인간 백정’이라는 욕을 먹었다. 윤석열의 칼을 맞고 보수 인사들의 목이 날아갈 때는 진보로부터 ‘우리 윤 총장’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윤석열은 어떻게 되었는가. 진보에게는 천하의 악당이 되었다. 은생어해가 되고 해생어은이 되는 상황을 매일 신문 지면에서 목격하고 있다. 이건 뭣인가? 삶이 코미디라는 말인가? 아니면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분별(分別)에서 내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살았다는 말인가. 은혜와 원수만이 아니라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더러움과 깨끗함, 위와 아래, 안과 밖, 어두움과 밝음의 관계도 이런 게 아닐까.

더 나아간다면 생과 사도 이런 관계일 수도 있겠다. 생에서 사가 나오고, 사에서 생이 나온다는 관계 말이다. 그렇다면 너무 한쪽만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한쪽만 죽어라 하고 붙잡고 있을 때 고통과 번뇌가 온다. 조중동에서 매일 어록을 받아 적고 있는 진중권은 1500원짜리 김밥 한 줄과 편의점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인생이다. 기한발도심(飢寒發道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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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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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43.html
kolaswqetsrq 11.03 01:14
◇ 내년 부족한 필수의료 인력 어떻게 메우나

◇ 내년 부족한 필수의료 인력 어떻게 메우나

“대국민 사과도 하고 정부와 국회에 찾아가 부탁까지 했는데도 해결이 안 돼. 앞으로 벌어질 혼란을 누가 책임지려고....”

얼마 전 만난 국내 한 대학병원 원장의 하소연이다. 의사 2700명이 부족한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어서다. 그의 걱정대로 의대생들의 의사 국가시험 미응시로 인한 의료진 공백의 여파는 당장 내년 초부터 시작돼 5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의사면허 없는 의대 졸업생 모두를 환자 진료 업무에 조기에 투입한 이탈리아와 대조적이다. 이탈리아는 의사 면허시험을 아예 면제해주고 이전보다 8, 9개월 일찍 진료 업무를 시작해 코로나19에 대응하고 있다.

의료계 파업이 끝난 지 2개월이 넘었다. 의대생들이 당시 목소리를 높였다고 정부와 정치권에서 이렇게까지 철저히 외면하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의대생들은 희생양이나 다름없다. 선배들과 같이 거리로 나가 함께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런데 선배들은 사라지고, 정치권은 유독 의대생에게만 사과를 요구하는 모양새다.

한때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이제 현직에 있는 선배 의사들도 입을 다물고 있다. 내년에 공공의료, 지역의료 등에서 벌어질 의료 공백 상황에 대해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하는 것일까? 위로는 대통령부터 국무총리와 장관 등이 거론될 것이다. 국민 보건의 문제를 정치적 사안으로 돌려 해결책 마련을 외면한 국회의원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결국 상황이 진전되지 않는다면 내년에 이들이 없어도 모든 병원의 업무가 잘 돌아갈 수 있을까? 환자들에겐 아무런 피해가 없을까? 벌써 현장에선 2700명 부족으로 인한 부작용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 병원은 보통 내과 지원 경쟁률이 평균 3 대 1이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한 수치라며 걱정하고 있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과에 해당되는 전문의 지원이 전무한 데다 내년엔 더욱 심각해진다는 이야기다. 비보험 위주로 진료하는 분야와 피부과 성형외과 영상의학과 쪽으로 더욱 몰릴 기세다.

지방 병원에선 아예 인턴 뽑는 것을 포기할 정도다. 지원자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여파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바로 보건의료 취약 지역으로 가는 500여 명의 공중보건 의사의 수급도 문제다. 특히 2026년에 배출될 전문의 수 부족으로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수도 부족하게 돼 군의료, 지방의료원, 의료취약지 의료기관에서 의료서비스 제공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병원 내 필수과 전공의 사이에선 ‘이 기회에 그만두겠다’는 말이 종종 나온다고 한다. 내년에 후배 의사가 들어오지 않으면 일이 두 배로 늘어나서다. 반대로 다시 전공의를 시작하면 인기 진료과에 경쟁 없이 갈 수 있다는 셈법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코로나19 3차 유행 속에서 의사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다. 올해 3월 대구에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했을 때도 의사가 부족해 환자를 전북대병원 등으로 옮겼다. 그런 가운데 무려 2700명의 의사가 부족해지는 상황이 예정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비롯해 관련 정치인들이 상황의 심각성에 공감해야 한다. 그리고 2700명을 구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탈리아처럼 하지 못해도 서브 인턴제를 마련해 병원에서 의사 일을 하도록 하거나 면허가 없더라도 진료할 수 있는 진료의사제를 만들어 의사가 부족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해야 된다. 전례도 있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도 국시 일정을 1월에서 2월로 한 달가량 미루고 추가로 응시 기회를 제공했다.

지금도 비수도권에는 의사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다. 코로나19 상황도 내년까지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의료대란이 눈앞에 닥쳤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며 걱정이 앞선다.

-동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65.html
kolaswqetsrq 11.03 01:14
◇ 코로나19 백신 이제 나오나

◇ 코로나19 백신 이제 나오나

영국이 이르면 내일부터 전 국민 상대로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영국 50개 병원에 1차 도착한 미국 화이자 백신 40만명 분량이 80세 이상 노인과 의료진부터 우선 접종된다고 한다. 코로나 백신 첫 접종국이다. 영국 정부는 “코로나 전투의 역사적 순간”이라며 들뜬 분위기다. 미국은 올 크리스마스 전에, 유럽연합·일본 등도 다음 달부터 국가 접종이 계획돼 있다. 숨가쁘게 치닫던 각국의 백신 개발 경쟁이 이제는 ‘접종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세계 각국이 개발 중인 코로나 백신 후보는 214개나 된다. 이 가운데 백신 효과가 검증된 제품은 95% 안팎 예방 효과를 보인 화이자, 모더나 백신 둘뿐이다. 그러나 최종 단계인 3상 시험에 진입한 제품도 11개나 돼 백신 개발이 속속 이뤄질 전망이다. 다른 감염병 백신 개발에는 통상 10년은 걸렸다. 코로나 백신은 이를 1년으로 단축시켰다. 인류 과학기술의 극적인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백신 접종이 코로나 시대의 종말로 바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수만 명 대상 임상 시험을 통과한 백신이라도 수십억 인구에게 맞히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2009년 신종플루 때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백신을 맞고선 갑자기 긴 잠에 빠져들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소아 기면증’ 환자가 각국에서 속출했다. 중국은 신종플루 백신을 자체 개발했지만 “중국인조차 안 믿는다”는 말이 나왔다. 이번 코로나 백신도 영국을 비롯한 대규모 예방접종에서 부작용이 경미하거나 없다고 판명 나야 코로나 종말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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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의 목적은 집단면역 형성이다. 전 국민의 60~70%가 백신 접종으로 면역력을 갖추면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다. 미국은 백신 접종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경우 내년 5월쯤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국, 독일, 일본 등도 차례로 집단면역 국가 명단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백신 접종국’ 대 ‘미접종국’으로 갈려 입국 제한 등 차별적 조치를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 ‘백신 디바이드(격차)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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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선구매를 서둘렀던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백신 확보 경쟁에서 한참 뒤져 있다. 어떤 백신을 얼마나 구매할지조차 여태 정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일러야 내년 하반기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부는 그동안 “효과, 부작용을 모르는데 미리 돈을 주고 사는 것은 리스크가 있다”고 했다. 국민 목숨보다 돈 아끼는 게 먼저냐는 비판이 일자 그제야 “적극 구매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러다 정말 백신 접종 후진국이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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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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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9_9.html
kolaswqetsrq 11.03 01:15
◇ 돌아온 정미조의 개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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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온 정미조의 개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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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푸른 심연에서 막 건져 올린 듯한 목소리가, 녹음실의 긴장된 공기를 가르고 날아올랐다. 녹음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입에서 조용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긴 세월 봉인됐던 목소리가 비로소 해제되는 순간이었다. 삶의 회한을 어쩌면 저토록 담담하게 노래할 수 있을까. 가수의 몸을 거쳐 나온 음표마다 연민의 물기가 가득했다. 5년 전 정미조의 복귀 음반을 녹음할 때의 일이다. 먼 세월 저편의 목소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건너와 내 앞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 나는 어떤 성공도 부럽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음반 제작자였다. 이 오롯한 충만함을 위해서라면, 지난 시절 나의 분투도 견딜 만한 것이었으리라.

정미조는 가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있던 1979년, 돌연 가요계 은퇴를 선언하고 파리로 떠났다. 원래 전공이었던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나이 서른이었다. 그 젊은 나이에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스스로 내려와, 새롭고 낯선 곳을 향해 바람처럼 떠나갔다. 세상은 잠시 술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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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TBC TV 쇼쇼쇼는 그의 고별쇼를 위해 프로그램을 통째 내줬다. 그때 나는 그 프로그램을 지켜보던 지방의 중학생이었다. 그 고별쇼에서 주인공이 하염없이 흘리던 눈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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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정미조의 팬이었다. 동네 단골 LP바에 가면 늘 개여울을 신청했다. 아름다운 소월의 시에 기품 넘치는 정미조의 목소리가 입혀진 이 곡은, 내게 노래의 어떤 이상(理想)이었다. 개여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노래의 주인공을 상상 속으로 불러들였다. 혹시라도 이 목소리를 빌려서 음반을 만든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인생을 오래 걸어온 사람만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고 희미한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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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선생이 내 앞에 나타났다. 음반 제작 인연이 있던 최백호의 소개로 만났다. 다시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먼 길을 돌아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려는 순간이었다. 이 극적인 컴백을 어떤 서사와 음악으로 맞이해야 할 것인가?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컴백 앨범 37년을 세상에 선보였다. 평단의 호평이 이어졌고, 특히 아무런 친분도 없던 젊은 후배 여가수들의 열렬한 지지가 있었다. 우아한 어른이 주는 어떤 음악적 영감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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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전설적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나 아르헨티나 여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처럼, 한국에도 멋진 어른의 음악이 있다는 것을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음악에 어떤 진실이 있다면, 그 진실은 시간의 가장 뒤쪽에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을 충분히 견디고 걸어온 사람에겐 시간의 온축(蘊蓄)이 있다. 그 온축의 향기를 세대를 넘어 모두의 가슴에 전하고 싶었다. 몸과 마음의 열기에 취하는 젊은 음악과는 다른 것일 터다. 근본적인 것은 늘 새롭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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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 또 한 장의 정미조 앨범을 발표했다. 가요계 복귀 후 세 번째 작품이다. 12곡의 노래 중 10곡의 가사를 내(작사자 이주엽, JNH뮤직대표)가 썼다. 긴 오디세이 끝에 다시 음악의 항구로 돌아온 정미조의 이야기 제3장을 쓰며, 삶의 짧고 덧없음을 생각했다. 그 덧없음을 견디기 위해 사람은 노래한다. 아득한 시간 속으로 정미조의 새 노래들을 흘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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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삶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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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24.html
kolaswqetsrq 11.03 01:15
◇ 항공산업 빅딜, 한진해운 전철 밟지 말아야

◇ 항공산업 빅딜, 한진해운 전철 밟지 말아야

해운 운임이 급등하며 국내 수출기업들이 선박 부족과 해상운임 급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3년 전 한진해운 처리의 패착이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

2017년 기준 세계 7위, 국내 1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은 당시 정부의 금융논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현대해상과의 빅딜을 포기한 채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한번 무너지면 복구가 불가능한 네트워크산업 특성에 대한 몰이해가 사태를 이 지경으로 내몰았다.

반면에 외국 정부는 자국 해운기업을 살리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지원했다. 정부의 집중 지원을 받은 글로벌 해운사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며 경쟁력을 강화했고, 2016년 59% 수준이었던 글로벌 상위 7개 선사들의 시장 점유율은 2018년 77.8%까지 급증하며 과점체제가 고착화됐다.

홀로 살아남은 HMM(구 현대상선)은 한진해운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다. 2016년 12%였던 국적선사의 미주항로 점유율은 한진해운 파산 직후인 2017년 3월에는 3.8%로 내려앉았다. 한때 글로벌 5위까지 올랐던 한국 해운의 위상은 10위권 밖으로 추락했다.

고정비 비중이 높고 대외변수에 취약한 항공산업은 테러ᆞ감염병ᆞ경기 침체 등 위기상황에서 대형 M&A를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 미국, 유럽 등 세계 주요 항공시장의 역사를 살펴보면 시장 재편 과정을 거치면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 대형 항공사들이 생존과 성장을 거듭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항공산업은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고, 세계 각국 정부는 자국 항공사 지원에 엄청난 규모의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우리나라 항공시장은 코로나19 이전부터 공급 과잉에 따른 과열경쟁에 시달려 왔다. 단위 인구 및 면적당 기준으로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보다도 항공사가 많은 상황이다. 차제에 양대 국적항공사의 합병 및 대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에서 이보다 효과적인 경쟁력 제고 방안은 아직 발견된 바 없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항공산업 빅딜과 관련하여 과거 한진해운·현대상선 구조조정 사례와 같이 통합에 실패할 경우 항공업에 투입해야 하는 비용이 대폭 늘어나고 정상화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항공산업은 해운산업과 마찬가지로 핵심 자산인 네트워크가 붕괴되면 복원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국내 항공산업의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미국, 유럽 항공업계처럼 통합을 바탕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2016년 당시 한진해운 회생에 4,000억원이면 되었을 것을 8조원이 넘는 재정을 쏟아붓고도 한국 해운업 재건은 난망하다. 국가 기간산업에 두 번의 실책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도 그대로 따라가지 않도록 복거지계(覆車之戒)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25.html
kolaswqetsrq 11.03 01:16
◇ 허락받지 못한 일본 공주의 사랑, 3년 만의 결실

◇ 허락받지 못한 일본 공주의 사랑, 3년 만의 결실

3년 전 동갑내기 대학 동기와 결혼을 발표해 놓고 왕실 안팎의 반대에 부딪혔던 일본 마코(眞子·29) 공주가 아버지인 후미히토(文仁·54) 왕세제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았다.

30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후미히토 왕세제는 55번째 생일 기념 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부모로서 본인들의 심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며 “결혼을 허용한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그는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친동생으로 왕위 계승 1순위다. 후미히토는 “결코 많은 사람이 납득하고 기뻐하는 상황은 아니다. 결혼할 단계가 되면 제대로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이는 약혼자 고무로 게이(小室圭)의 어머니 고무로 가요(小室佳代)의 금전 문제 등 논란이 여전해서다. 2017년 9월 마코가 결혼을 발표했을 때 이 결혼에 따른 경제효과가 1000억 엔에 이를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등 여론은 축복 일색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사별한 가요가 교제 남성에게서 빌린 400만엔을 갚으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며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당시 일왕 아키히토(明仁·87)의 맏손녀를 이런 가문과 결혼시켜선 안 된다는 말도 나왔다.

설상가상 고무로의 아버지가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고, 가요가 신흥 종교 신자란 보도까지 나오며 여론은 더 나빠졌다. 2018년 11월 예정된 결혼은 2020년으로 연기됐고, 고무로는 그해 8월 미국 로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그 이후에도 마코의 마음이 변치 않자 왕세제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13일 마코는 “우리는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나 의지한다. 결혼은 우리 마음을 소중하게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후미히토 왕세제가 만족하지 못 하는 듯하다. 마코가 전례 없는 방식으로 왕실을 떠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궁내청 직원 출신 저널리스트 야마시타 신지)는 전망처럼 결혼이 실제 성사될지에 회의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9.html
kolaswqetsrq 11.03 01:17
◇ 日 온천 ‘공짜’로 내놔도 살 사람이 없는 이유

◇ 日 온천 ‘공짜’로 내놔도 살 사람이 없는 이유

‘온천 시설 후쿠주소(福壽莊)를 공짜로 팝니다.’

최근 일본 인터넷을 검색하다 이 같은 내용을 봤다. 이와테현 와가군에 위치한 후쿠주소는 남탕과 여탕, 휴게실, 매점, 로비,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욕탕이 깨끗하다’ ‘유황 냄새가 엄청나다’ 등 방문객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정말 공짜일지 반신반의하며 매물로 내놓은 니시와가마치(기초지자체)에 확인 전화를 해봤다. “매매가 0엔 맞습니다. 다만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5년 동안 온천 시설로 유지해야 하고, 법인이어야 합니다.” 동네 주민들의 존속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조건을 붙였다고 했다. 법인을 원하는 것도 개인이 운영하다가 조기에 그만두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니시와가마치가 극단적 제안을 한 이유는 관리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300엔 이용료(65세 이상 주민 180엔)로는 운영비, 인건비, 시설 교체비 등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특히 주된 이용객은 마을 주민인데, 주민 수가 2005년 약 7400명에서 현재 약 5400명으로 줄었다. 갈수록 수입이 줄어들 게 뻔했다.

더 깊게는 일본 온천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88, 1989년 ‘고향 살리기 사업’이란 이름으로 각종 지자체 사업에 1억 엔씩을 교부하는 정책을 펼쳤다. 교부금을 타기 위해 지자체가 가장 많이 시도한 게 온천 건설이었다.

온천법에 따르면 △25도 이상의 뜨거운 물이 솟아나거나 △19가지 온천 성분 중 1개라도 기준을 충족시키면 온천 시설로 분류된다. 땅을 100m 파면 지하 온도는 2, 3도씩 올라가기 때문에 1000m 정도 파기만 하면 대부분 온천 시설을 만들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일본 전역에서 온천 시설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초저가’를 무기로 내세운 기업형 온천도 나왔다. 전국 체인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뷔페를 운용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온천 시설은 2006년 약 2만3000개에 이를 정도로 꾸준히 늘었다(일본온천종합연구소 자료).

하지만 특색 없는 온천은 이용객을 붙잡을 수 없었다. 온천 이용객은 1992년 1억4325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그 이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자연 속에 여유롭게 온천욕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은 물건 찍어내듯 공산품화돼 있는 온천 시설을 외면했다. 경영자 입장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온천 시설을 만들기는 쉬운데 유지 관리가 힘들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1년 내내 일해야 해 사람 구하기가 힘들었고, 시설을 이어받을 후계자도 잘 없었다. 그러자 ‘온천의 나라’ 일본에서 온천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홋카이도 이와나이군의 라이덴온천 지역은 지난해 9월 마지막 남은 온천 시설이 폐관하면서 온천마을 자체가 소멸해버리기도 했다.

다시 공짜 온천 후쿠주소 이야기다. 니시와가마치에 ‘인수하겠다는 법인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10월 31일이 마감이었는데 개인이 몇 명 연락 왔지만, 법인은 아무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공짜라고 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에 늦어 천덕꾸러기 신세가 돼 버리는 것은 비단 일본 온천 시설에만 국한된 게 아닐 것이다.

-동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846.html
kolaswqetsrq 11.03 01:18
■ 홍의장군 곽재우 7편

■ 홍의장군 곽재우 7편

광해군은 즉위하자마자 그를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 임명하고 상경을 재촉했다. 그때 곽재우의 삶은 청빈함을 넘어 곤궁한 지경에 이르렀던 것 같다. 교지를 갖고 찾아갔던 금군(禁軍)은 “인적이 아주 끊어진 영산의 산골에 두어 칸의 초가를 짓고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생계가 아주 초라했고, 병들어 누워서 나오지도 못했다”고 보고했다. 곽재우의 아들은 아버지가 상경하려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타고 갈 말과 종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단벌옷도 다 해져 날씨가 추우면 길을 떠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국왕은 즉시 의복을 지급하라고 하명했다(1608년(광해군 원년) 9월 14일).

1610년(광해군 2년) 곽재우는 오위도총부 도총관(정2품)ᆞ한성부 좌윤(종2품)으로 임명되어 잠깐 상경했지만, 역관(譯官)과 원접사(遠接使)가 왕명을 무시했다고 비판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시 낙향했다. 그 뒤 별세할 때까지 곽재우는 계속 망우정에 머물렀다. 빈곤한 경제사정은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타협하지 않는 곽재우의 직선적인 성품은 별세하기 전에 한 번 더 표출되었다. 그때 조정의 가장 큰 논란이었던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사사하는 문제와 관련해 곽재우는 그를 옹호하는 상소를 올린 것이었다(1613년:광해군 5년). 이 때문에 그는 대북(大北)의 탄핵을 받아 사사될 뻔했지만, 장령 배대유(裵大維)의 변호로 목숨은 구했다.

낙향한 곽재우는 현풍 비슬산에 살면서 영산의 창암진(滄巖津)에 망우정(忘憂亭)을 짓고 도인처럼 살다가 1617년(광해 9년)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1617년 3월 병이 깊어지자 그는 “생사에는 천명이 있는 것”이라면서 치료를 중단했고, 4월 10일 망우정에서 별세했다. 그의 나이 65세였다. 그 뒤 지금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신당리에 안장되었고, 그를 모신 사우(祠宇)에는 ‘예연서원(禮淵書院)’이라는 현판이 내려졌으며, 1709년(숙종 35)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로 추증되었다. 훗날 충익(忠翼)이란 시호를 받았다. 전쟁에서 스스로 떨쳐 일어나 적을 물리쳤으나 살아생전에 공을 마다한 곽재우에게는 그것도 다 헛된 이름이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활약이 컸다. 관군들이 개전 후 한 달이 안 되어 한양을 내 주는 등 일본군에게 맥없이 당할 때 곽재우와 같은 사람들이 가족과 고향, 더 나아가 나라를 지키겠다는 충정 하나로 일어난 것이다. 패해서 도망치기 바쁜 관군을 대신해 지방의 사림들을 중심으로 의병의 뜻을 모으고, 각 지역의 농민과 양민, 노비들을 모아 거병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빈곤한 삶 속에 쓸쓸히 삶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그 시대의 모순에 답답함을 느낌과 동시에 안타깝고 착잡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html
kolaswqetsrq 11.03 01:18
◇ 부부는 닮는다? 과연 맞을까

◇ 부부는 닮는다? 과연 맞을까

흔히들 부부는 닮는다고 한다. 실제 주변을 돌아보면 사진만 보고도 부부라는 것을 맞힐 수 있을 정도로 외모가 닮은 한두 커플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 가설을 증명하는 연구들도 있다. 1987년 미국 미시간대 연구진은 결혼 25년이 지난 부부 12쌍의 얼굴 변화를 사진으로 비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부의 외모 유사성이 커진다는 게 결론이다. 부부가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표정을 흉내내게 되면서 얼굴 모습이 바뀐다는 가설로 설명했다. 행복하다고 답변한 부부일수록 얼굴 유사성이 더 컸다고 했다. 2006년 영국 리버풀대 연구진도 부부는 살수록 닮아가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최근 조금 다른 분석이 나왔다. 미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최근 부부가 닮는다는 건 근거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517쌍의 부부 사진을 수집해 신혼 때와 20~69년 후를 비교했다. 판정단 153명은 물론 인공지능까지 동원했다. 그 결과 부부의 얼굴은 살면서 서로 닮아가기는커녕 오히려 약간 더 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대신 비교 대상자를 실제 배우자 및 무작위로 선정한 다른 5명과 비교한 결과 부부의 얼굴이 상대적으로 더 닮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부부는 살면서 닮아지는 게 아니라 원래 닮은 사람끼리 만난다는 것이다. 가끔 청첩장을 받아보면 ‘이 커플 참 닮았네’ 하는 생각이 드는 데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부부는 살면서 닮는다는 주장이나 원래 닮아 있었다는 주장은 모두 통계적 분석을 통한 가설일 뿐이다. 중요한 건 두 가설의 공통분모인 부부는 닮은 구석이 많다는 점이다.

오래된 부부를 보면 닮은 건 얼굴만이 아니다. 비슷하게 생각하고, 가치관을 공유하고, 희로애락을 함께하다 보면 풍기는 인상도 닮아가기 마련이다. 식습관과 생활습관이 비슷하다 보니 앓는 질병도 닮는다. 한평생 함께 생활한 노부부는 신체능력 저하 같은 노쇠가 함께 찾아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몇십년을 함께하면서 서로 닮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부부는 닮아야 잘 산다는 옛말도 외모의 유사성보다는 서로를 인정하고 닮아가려는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 이해하는 게 맞다.

-경향신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10.html
kolaswqetsrq 11.03 01:19
◇ 대한항공 골육상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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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 골육상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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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육상쟁(骨肉相爭)은 뼈(骨)와 살(肉)이 서로 다툰다는 뜻이다. 보통 가족 간의 싸움을 일컫는다. 혈족이면 으레 우애롭고 화목할 것이라는 통념을 배반하는 비정한 말이지만, 사실 부와 권력의 세계에서는 그런 통념이 부질없이 느껴질 정도로 골육상쟁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 없다. 그 중에서도 중국 후한 시대 위왕 조조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아들 간의 싸움은 이 사자성어의 기원으로 꼽힌다.

조조에 이어 등극한 장남 조비는 늘 자리가 불안했다. 무엇보다 반대세력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형제들이 문제였다. 결국 선친이 가장 아꼈던 동생 조식을 제거키로 마음 먹고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 한 수를 짓지 못하면 대법(大法)으로 다스리겠다”며 조식을 겁박한다. 그러자 조식이 눈물을 흘리며 읊은 시가 “콩을 삶기 위하여 콩대를 태우나니, 콩이 가마 속에서 소리 없이 우노라(煮豆燃豆萁, 豆在釜中泣)”며 골육상쟁을 한탄한 ‘칠보지시(七步之詩)’다.

우리나라에서도 왕가의 골육상쟁은 고구려의 망국을 부른 연개소문 아들 3형제의 분쟁부터 조선왕조 초기 태종의 왕권 장악과정에서 빚어진 ‘왕자의 난’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되풀이됐다. 다만 근대 이후엔 왕조가 소멸하면서 궁중 골육상쟁은 사라졌으나, 막대한 부를 쌓은 재벌가의 골육상쟁이 세대교체 때마다 불거져 삼성가와 현대가 같은 재계 굴지의 가문조차도 추문을 비껴 가지 못했다.

한때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을 거느리며 국내 최대 운송재벌로 도약한 한진그룹 역시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 사후 골 육간 경영권 다툼에 바람 잘 날 없었다. 창업주 타계 후엔 조양호 회장 등 2세 4형제 간 다툼이 치열했고, 조양호 회장 타계 후엔 갑질과 밀수 같은 추문 속에서 집안의 장남인 조원태(사진)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이 맞서 극한적인 경영권 암투를 벌이고 있다. 급기야 조 전 부사장 측은 최근 대한항공으로서는 절호의 회생기회가 될 수도 있는, 아시아나 인수를 위한 정부 지원에 반대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집안싸움에 국가 항공산업 회생 구도까지 난항에 빠지는 것 아닌가 싶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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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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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80.html
kolaswqetsrq 11.03 01:20
옥석구분玉石俱焚 – 옥과 돌이 함께 타다.

옥석구분(玉石俱焚) – 옥과 돌이 함께 타다.

구슬 옥(玉/0) 돌 석(石/0) 함께 구(亻/8) 불사를 분(火/8)

귀한 구슬과 흔한 돌을 한꺼번에 옥석으로 비유하여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이른다. 좋은 일 가운데는 궂은일도 있을 수 있고, 이름난 것이라도 항상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할 때 ‘경주 돌이면 다 옥석인가’란 속담을 사용한다. 구슬인지 돌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옥석도 구별하지 못한다고 놀린다. 옥이나 돌(玉石)이 모두 함께 불에 탄다(俱焚)는 이 성어를 발음만 보고 잘못 이해하기 쉬운데 잘 구별해야 한다.

중국 유가의 5대 경전에 들어가는 ‘書經(서경)’에 이 성어가 등장한다. 숭상해야 한다고 尙書(상서)라고도 하는 이 책은 중국 고대 堯舜(요순)과 夏殷周(하은주) 시대에 걸친 기록을 孔子(공자)가 엮었다고 전해진다. 하나라의 4대 仲康王(중강왕) 때에 羲和(희화)라는 천왕의 관리가 있었다. 그는 행동이 바르지 못하고 자기 직책을 수행하지 못해 관내의 백성들이 따르지 않았다. 중강왕은 자신도 형이며 전왕인 太康王(태강왕)이 무도하여 다른 제후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되자 형을 폐하고 왕위에 올랐지만 덕이 있어 백성들의 신망을 받고 있었다. 중강왕이 胤侯(윤후)라는 사람에게 명하여 휘화를 치게 했다.

윤후가 출정하면서 전쟁을 하는 취지를 밝힌 것이 胤征(윤정)인데 夏書(하서)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곤강에 화재가 나면 옥과 돌이 함께 타 버린다. 천왕의 관리가 덕을 잃었으니 그 신하들도 함께 피해를 볼 것이다. 이에 그 수괴를 쳐서 멸망시키되 부득이 협조한 자는 엄중하게 죄를 묻지 않아도 된다(火炎崑岡 玉石俱焚 天吏逸德 烈于猛火 殲厥渠魁 脅從罔治/ 화염곤강 옥석구분 천리일덕 열우맹화 섬궐거괴 협종망치).’ 하늘의 뜻을 받들어야 할 제후 휘화가 덕이 없이 무도하게 다스리면 그 화가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속수무책으로 미치게 되니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자연재해일 때는 무차별적으로 화를 당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고르게 대비하지 못하고 윗사람이 제멋대로 하여 덕을 잃으면 억울한 사람이 많이 생긴다. 돌과 같이 있었던 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말처럼 뜻밖의 화를 입은 셈이니 사람을 잘 가려 가까이해야 할 것이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46.html
kolaswqetsrq 11.03 01:20
득과차과得過且過 - 그럭저럭 되어가는 대로 살다, 한가하게 세월을 보내다.

득과차과(得過且過) - 그럭저럭 되어가는 대로 살다, 한가하게 세월을 보내다.

얻을 득(彳/8) 지날 과(辶/9) 또 차(一/4) 지날 과(辶/9)

일이나 행동을 적당히 하는 모양을 대충, 또는 대충대충이라 하는데 원래 大總(대총)에서 나왔다고 한다. 대강으로라도 전체를 모으고 거느린다는 뜻이 얼렁뚱땅 해치운다는 편의주의로 변했다. 자신의 능력에 넘치는 일은 아예 손대지 말아야 하는데 대충 했다가는 더 그르치게 된다. 그런데 아예 도전하지도 못할 처지라면 바람이 불고 물결이 치는 대로 그저 따라가기만 할 수밖에 없는 風打浪打(풍타낭타)가 된다.

굳은 의지와 기력이 없이 그럭저럭 되어가는 대로 사는 것을 뜻하는 것이 이대로 보내고(得過) 저대로 보내자(且過)라는 성어다. 별로 하는 일 없이 한가하게 세월을 보내는 것을 이르기도 한다.

이 말의 출전은 중국 元(원)나라말 明(명)나라 초의 학자 陶宗儀(도종의)가 지은 ‘輟耕錄(철경록)’이란 책이다. 당시의 법령과 병란에 관해 쓴 책이라는데 전설에 관한 언급 중에 나온다. 산시성山西省/ 산서성 북동부에 있는 불교의 성산 五臺山(오대산)에 寒號鳥(한호조)라고 하는 다리가 넷이고 날개는 있지만 날지 못하는 새가 살았다. 여름에는 봉황보다 낫다는 울음을 울다가 겨울에는 털이 빠진 초라한 모습으로 ‘이 때의 울음소리는 그럭저럭 지내면서 되는대로 살아가자(遂自鳴曰 得過且過)’로 들렸다. 겨울이 오면 고생할 줄 모르고 여름 한철 우쭐대다 몰락하는 행태를 비유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李圭景(이규경, 1788~1856)의 ‘五洲衍文長箋散稿(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조선 후기 실학을 일으키는데 큰 공을 세운 李德懋(이덕무)의 손자답게 이규경의 이 책은 천문, 지리에서 조류와 어류까지 광범위하게 다룬 백과사전이다. 經史編(경사편) 禮記(예기)에 있는 氣候月令辨證說(기후월령변증설) 부분이다. 五靈山(오령산)에 발이 네 개인 닭과 같은 동물이 사는데 여름에는 깃털이 오색이라 ‘봉황도 나만 못해(鳳凰不如我/ 봉황불여아)’라며 울다가 동지가 되면 털이 빠져 ‘그럭저럭 지내자(得過且過/ 득과차과)’라 울며 괴로워한다고 했다.

이 새가 실제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교훈은 분명하다. 평소의 평온한 시절이 계속 이어질 줄 알고 위험 신호가 있어도 괜찮겠지 하다 사고가 나면 호들갑을 떤다. 어려움이 닥쳐도 얼렁뚱땅 수습을 하고선 또 잊는다. 풍자시의 천재 金笠(김립)이 꼬집은 대로다.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대로, 바람 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차죽피죽화거죽 풍타지죽랑타죽)’ 살아간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미래가 없다. 어려움이 닥쳐 희망이 없는 젊은이들에겐 더욱 이런 습성을 물려줘선 안 된다. 바람이 불면 가장 먼저 엎드리는 것이 풀이지만 지나가면 또 가장 먼저 일어나 원상을 회복시킨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23.html
kolaswqetsrq 11.03 01:21
귤화위지橘化爲枳 – 강남의 귤이 강북에선 탱자가 된다, 환경에 따라 바뀐다.

귤화위지(橘化爲枳) – 강남의 귤이 강북에선 탱자가 된다, 환경에 따라 바뀐다.

귤 귤(木/12) 될 화(匕/2) 하 위(爪/8) 탱자 지(木/5)

孟子(맹자)의 어머니가 처음 공동묘지에서 장터 근처로, 서당 옆으로 이사를 한 것은 어린 맹자가 주변에서 본 것을 자꾸 흉내 내기 때문이었다. 아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찾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한 三遷之敎(삼천지교)는 사람에게 끼치는 환경의 중요성을 말할 때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성어다.

환경이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환경을 만든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주변의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다. 먹을 가까이 하면 자신도 검어진다는 近墨者黑(근묵자흑)이나 죽죽 곧은 삼밭에 있으면 원래 구불구불 자라는 쑥이 붙들어주지 않아도 곧게 된다는 蓬生麻中(봉생마중)은 나쁜 환경과 좋은 환경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강남에서 자라던 귤을 강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이 말도 주위 환경에 따라 결과가 바뀐다는 의미다. 江南種橘 江北爲枳(강남종귤 강북위지)를 줄여 南橘北枳(남귤북지)라고도 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의 晏嬰(안영)은 관중과 함께 가장 뛰어난 명재상으로 꼽혀 晏子(안자)라고도 불린다.

근검절약을 실천하고 세 임금을 모시며 어떤 상황에서도 충간을 서슴지 않아 단신이었지만 거인으로 모두에게 우러름을 받았다. 어느 해 안영이 楚(초)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안영이 지모가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은 靈王(영왕)이 시험하기 위해 첫 만남에서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라고 비꼬았다. 작은 키를 놀리는 것을 알고 안영은 보잘것없는 나라에 사신을 보낼 때는 작은 사람을 보낸다고 받았다.

연회 자리에서 한 관리가 도둑을 끌고 와 제나라 사람이라 하자 영왕은 그 나라에는 모두 도둑질을 하는지 물었다. 안영이 대답한다. ‘귤이 회남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에서 자라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과실의 맛은 다릅니다(聞之 橘生淮南則爲橘 生於淮北爲枳 葉徒相似 其實味不同/ 문지 귤생회남즉위귤 생어회북위지 엽도상사 기실미부동).’ 제나라에선 바른 사람도 초나라로 오면 도둑질을 하게 된다는 일침이었다. ‘晏子春秋(안자춘추)’에 실린 이야기다.

오늘날의 孟母(맹모)는 자식을 위해서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해주고 싶어도 높은 부동산 값으로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학군을 위한 환경을 찾아서이지만 이런 맹모는 칭송을 받기보다 지탄을 받는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45.html
kolaswqetsrq 11.03 01:21
전도유랑前度劉郞 - 지난번의 유랑, 세월이 지나 옛 고장에 다시 찾아옴

전도유랑(前度劉郞) - 지난번의 유랑, 세월이 지나 옛 고장에 다시 찾아옴

앞 전(刂/7) 법도 도(广/6) 묘금도 류(刂/13) 사내 랑(阝/7)

언뜻 이 성어를 들으면 앞으로 잘 될 희망이 있다는 前途有望(전도유망)을 연상하기 쉽다. 지난번(前度)의 유랑(劉郞)이라 해도 뜻은 막막하다. 유랑이란 사람이 다시 왔다, 오랜 시일이 지나서 옛 고장에 돌아왔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유랑이란 이름이 가리키는 사람은 대체로 둘이 등장하는데 중국 後漢(후한) 2대 明帝(명제) 때의 劉晨(유신)과 中唐(중당) 때의 유명시인 劉禹錫(유우석)이다.

 "
먼저 유신은 친구와 함께 약초를 캐러간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두 미인을 만나 부부로 살았다. 반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변하고 낯선 사람들도 자신들의 7대손이었단다. 다시 산으로 들어가 보니 미인들은 찾을 수 없고 그들이 선녀들이었다는 전설에서 나왔다. 劉義慶(유의경)이 쓴 幽明錄(유명록)에 실려 있다.
",

유우석은 조정의 미움을 받아 10년이나 지방으로 떠돌다 長安(장안)의 도관인 玄都觀(현도관)을 찾았다. 복숭아꽃으로 이름난 이 곳을 보고 시를 지었다. ‘현도관에 심은 천 그루 복숭아나무는, 모두 유랑이 떠난 뒤에 심은 것이로구나(玄都觀裏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 현도관리도천수 진시유랑거후재).’ 이 시가 고관대작을 풍자한 것이라는 혐의를 받은 유우석은 다시 지방으로 좌천됐다가 10여년이 지나 올라왔다. 현도관의 복숭아나무는 없어져 감회가 없을 수 없었다. ‘복숭아 심던 도사는 어디로 갔는가, 지난 번의 유랑이 지금 다시 왔는데(種桃道士歸何處 前度劉郞今又來/ 종도도사귀하처 전도유랑금우래).’

이런 유래가 이채로웠던지 우리의 고전에도 다수 인용된 것을 볼 수 있다. 고려 말기의 문신 韓脩(한수, 1333~1384, 脩는 길 수)는 天壽寺(천수사)라는 절에서 연꽃을 구경하며 읊는다. ‘꽃이 피며 꽃이 지고 몇 번이나 새로웠나, 전에 왔던 유랑이 지금은 노인 됐네(花開花落幾回新 前度劉郞今老人/ 화개화락기회신 전도유랑금로인).‘ 조선 중기의 학자 崔岦(최립, 1539~1612, 岦은 산우뚝할 립)은 ’簡易集(간이집)‘에서 노래한다. ’선인은 옛날에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돌아왔고, 유랑도 한번 떠났다가 십 년 만에야 돌아왔네(仙人昔有去家千 前度劉郞亦十年/ 선인석유거가천 전도유랑역십년).‘

한 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 추억을 되새기며 예전에 왔던 곳을 다시 찾는 것을 비유하는 이 말을 달리 再度劉郞(재도유랑)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옛 시조에서 읊었듯이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고’, 가요에 등장하는 ‘고향에 찾아 와도 그리던 고향이 아닐‘ 경우가 대다수다. 뽕나무밭이 아파트촌으로 워낙 빨리 변하는 세태에다 삭막해진 사람들의 성정 탓도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 아닐까.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91.html
kolaswqetsrq 11.03 01:22
단두장군斷頭將軍 - 죽음도 두려워 않는 용감한 장수

단두장군(斷頭將軍) - 죽음도 두려워 않는 용감한 장수

끊을 단(斤/14) 머리 두(頁/7) 장수 장(寸/8) 군사 군(車/2)

목을 자른다는 섬찟한 단어 斷頭(단두)라 하면 대뜸 사형도구 斷頭臺(단두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때인 1789년 의사 출신의 국민의회 의원 기요탱(Guillotin)의 제안으로 만들어져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등 많은 사람을 처형했기에 공포정치의 상징이 됐다. 1814년 자연사한 기요탱 자신도 이것으로 목이 달아났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발명 초기엔 죄수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발명품이라 했다. 그런데 머리가 떨어진 장군이라면 적진에서 종횡무진 적군을 쓰러뜨리는 용맹스런 장군으로 알기 쉽다. 용감한 장군임은 틀림없어도 이 말은 죽음에 굴복하지 않고 군사를 지휘 통솔하는 장수를 가리켰다.

중국 後漢(후한) 말기 魏蜀吳(위촉오)가 정립한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 때 이야기다. 劉備(유비)는 孫權(손권)과 연합하여 赤壁大戰(적벽대전)에서 曹操(조조)를 대파하고 荊州(형주)지역을 확보했다. 험난한 형주에서 물산이 풍부한 西川(서천)지역으로 진격하기 위해 유비는 의형제 張飛(장비)와 함께 나섰다.

거칠 것 없이 나가던 장비의 대군은 노장 嚴顔(엄안)이 지키던 江州(강주)에 이르렀을 때 막혔다. 엄안이 싸움에 응하지 않고 성문을 굳게 지키며 장비군이 군량이 떨어져 물러나기를 기다리는 작전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몇 차례 싸움 끝에 계략을 써서 성을 점령하고 엄안을 겨우 생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안은 장비 앞에 끌려 와서도 꿇어앉으려 하지 않았다. ‘三國志(삼국지)’ 蜀書(촉서)나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 등에서 이 부분을 묘사하면서 성어가 나온다. 장비가 엄안을 향해 대장이 이 지경에 이르고도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느냐며 꾸짖었다. 엄안이 낯빛도 흐리지 않고 태연히 대답한다. ‘우리 고을에는 머리 잘릴 장수는 있을지언정 항복하는 장군은 없다(我州但有斷頭將軍 無有降將軍也/ 아주단유단두장군 무유항장군야).’ 머리를 자르라고 길길이 뛰던 장비도 엄안의 굳센 기상에 노여움을 풀고 단상에서 내려와 사죄한 뒤 예의로 그를 맞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옛날 우리의 死六臣(사육신)이나 영웅담에서 등장한다. 외적의 침입을 당하고서 百折不屈(백절불굴)의 정신을 보여줬던 조상들의 용기는 기리면서도 오늘날 현대인은 윗사람의 잘못을 보고서 침묵하는 것이 대다수다. 특히 바른 말, 쓴 소리 잘 한다고 큰소리치던 사람이 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위험 앞에서 불의를 보고도 물러서지 않는 기개를 가져야 뜻을 이루고 발전을 가져온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47.html
kolaswqetsrq 11.03 01:23
고식지계姑息之計 – 우선 편한 것만 찾는 꾀, 임시변통으로 일을 처리하다.

고식지계(姑息之計) – 우선 편한 것만 찾는 꾀, 임시변통으로 일을 처리하다.

시어미 고(女/5) 쉴 식(心/6) 갈 지(丿/3) 셀 계(言/2)

일을 처리할 때는 뒷마무리까지 철저히 해야 한다. 그러나 일이 까다롭거나 남이 보지 않는다고 대충대충 넘기려는 경우가 많다. 한 때의 편안함을 얻기 위해 임시로 둘러맞추거나 이리저리 돌리다가 효과를 볼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는 큰 탈이 나기 쉽다. 속담을 한역한 凍足放尿(동족방뇨)했다간 언 발이 더욱 동상까지 걸리고, 下石上臺(하석상대) 했다간 주춧돌이 빠져 집이 무너질 판이다. 점잖은 말로 彌縫(미봉)이나 因循姑息(인순고식), 目前之計(목전지계)를 사용해도 뜻은 그대로다.

시어미 姑(고)는 여자를 통칭하기도 하고, 숨쉴 息(식)은 어린 자녀를 가리키기도 한다. ‘尸子(시자)’라는 책에 ‘은나라 주왕은 노련한 사람의 말은 버리고 아녀자나 어린애들의 말만 썼다(紂棄老之言 而用故息之語/ 주기노지언 이용고식지어)’라는 구절에서 나왔다고 한다. 부녀자와 어린 아이가 꾸미는 계책이라 하여 일시적인 방법으로 편안한 것을 찾는 말이 됐다. 엄하게 원칙을 따져 해결하려는 부녀자가 없을 리 없는데도 정으로 감싸는 면이 많아 이런 말이 나왔겠다.

먼저 五經(오경)의 하나인 유가의 경전 ‘禮記(예기)’에 曾子(증자)가 병으로 자리에 누웠을 때 자녀에게 가르치는 말로 등장한다. ‘군자는 사람을 사랑하기를 덕으로 하고, 소인은 사람을 사랑할 때는 임시변통으로 한다(君子之愛人也以德 細人之愛人也以姑息/ 군자지애인야이덕 세인지애인야이고식).’ 여기에서 일시적인 계책으로 姑息(고식)이 유래했다. 군자의 사랑은 덕으로 하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가 있고, 소인의 사랑은 눈앞의 이익을 보고 하기 때문에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檀弓上(단궁상)에 실려 있다.

後漢(후한) 揚雄(양웅)의 ‘揚子法言(양자법언)’에도 같은 뜻의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눈앞의 이익밖에 모르는 계책은 덕을 해친다. 군자는 언동을 삼가고 즐김을 조심하며 때가 오면 서둘러야 한다(姑息敗德 君子謹於言 慎於好 亟於時/ 고식패덕 군자근어언 신어호 극어시).’

얕은 수로 남을 속이려는 ‘눈 가리고 아웅’의 방법으로는 일이 잘 되기도 어려울뿐더러 들통이 나기 쉽다. 가는 길이 멀어도 차근차근 정도를 밟아 나가야 튼튼히 마무리할 수 있다. 어떤 자리에 올랐을 때 실적에 급한 나머지 무리하게 보여주기 식 업무를 처리하려다 일도 안 되고 신망도 잃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22.html
kolaswqetsrq 11.03 01:23
당돌서시唐突西施 - 다부진 미인 서시, 함부로 비교하지 말라는 겸손의 말

당돌서시(唐突西施) - 다부진 미인 서시, 함부로 비교하지 말라는 겸손의 말

당나라 당(口/7) 갑자기 돌(穴/4) 서녘 서(襾/0) 베풀 시(方/5)

중국의 四大美人(사대미인) 중에서도 가장 첫 손에 꼽히는 사람이 西施(서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말기 나무꾼의 딸로 태어난 서시는 절색으로 소문나자 越(월)나라 왕 句踐(구천)에 간택돼 총애를 받았다. 구천이 吳(오)나라 夫差(부차)에게 당한 치욕을 씻기 위해 미인계로 보낸 뒤 국사를 팽개치게 하고 복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모로 알려진 만큼 서시와 관련된 재미있는 성어도 많다. 서시가 가슴앓이를 하여 아프다고 가슴에 손을 대고 눈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것을 보고 東施(동시)에 살고 있던 추녀가 흉내를 냈다.

사람들이 어떻게 봤을까. 못난 얼굴이 더욱 추해 보였을 뿐이다. 함부로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西施捧心(서시봉심), 西施矉目(서시빈목), 西施效顰(서시효빈), 東施效顰(동시효빈) 등으로 쓰고 줄여서 效嚬(효빈)이다. 어려운 글자 矉, 顰, 嚬 모두 ‘찡그릴 빈’으로 통용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꺼리거나 어려워함이 없이 다부진(唐突) 서시라는 이 성어는 훌륭한 것과 함부로 비교하지 말라는 뜻으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말이다. 唐太宗(당태종)때 房玄齡(방현령) 등이 편찬한 ‘晉書(진서)’의 周顗(주의, 顗는 즐길 의)전에서 유래했다. 宋(송)나라 劉義慶(유의경)의 ‘世說新語(세설신어)’에도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東晉(동진)의 주의(269~322)라는 사람은 매사에 겸손을 미덕으로 삼아 젊어서부터 명성이 있었다. 하루는 庾亮(유량)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말했다. ‘사람들이 모두들 당신을 낙광에 비유합디다(諸人咸以君方樂廣/ 제인함이군방악광).’ 악광으로도 읽는 樂廣(낙광)은 사람들을 논할 때 항상 장점부터 말하여 죽어서까지 추앙을 받는 진나라의 현인이었다. 이런 인물과 자신을 견준다는 말에 주의는 펄쩍 뛰었다. ‘어찌 추녀 무염을 그리고서 당돌하게 천하절색 서시와 비교한단 말인가(何乃刻畫無鹽 唐突西施也/ 하내각화무염 당돌서시야)?’

無鹽(무염)은 齊(제)나라의 고을 이름인데 그곳에 살던 鐘離春(종리춘)이란 사람이 박색이었던 모양이다. 지혜가 뛰어나 宣王(선왕)의 왕후로 오른 여인이었지만 인물은 어쩔 수 없었던지 刻畵無鹽(각화무염)이란 말로 남았다. 아무리 애써도 소용없는 일,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미모가 뛰어난 서시가 부차의 노리개가 된 것을 부러워할 수 없듯이 西施有所醜(서시유소추)라 하여 결점은 따르게 마련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각자 잘 하는 장점은 있다. 서시와 비교하는 것도 사양하는 겸손이 있으면 더욱 좋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87.html
kolaswqetsrq 11.03 01:24
구화지문口禍之門 - 입은 재앙의 문

구화지문(口禍之門) - 입은 재앙의 문

입 구(口/0) 재앙 화(示/9) 갈 지(丿/3) 문 문(門/0)

‘혀 아래 도끼 들었다’고 한다. 말을 잘못하면 재앙을 받게 되니 말조심을 하라는 말이다. ‘입이 개차반이다’라는 속담도 있다. 입이 똥개가 먹은 차반과 같이 너절하다는 뜻이다. 아무 말이나 가리지 않고 되는대로 상스럽게 마구 하는 경우를 비유했다. 이와 같이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口禍之門)이라며 재앙이 입에서부터 나오고 입으로 먼저 들어간다 하여 예로부터 경계하는 말이 많았다. 조심해야 하는 줄은 알지만 아차 하는 순간 튀어 나오기에 설화도 끊이지 않는다.

口禍之門이라 하면 바로 떠올릴 만큼 馮道(풍도)의 ‘舌詩(설시)’가 있다. 풍도는 唐(당)나라 말기에 태어나 혼란한 시기 73세까지 장수를 누린 인물이었다. 당 이후 宋(송)나라가 세워질 때까지 五代(오대) 시대가 이어졌다. 다섯 나라 중 後唐(후당)에서 입신하고 뛰어난 처세술로 이어진 왕조의 재상을 지냈다. 항상 행동과 언사를 조심하며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문학적 재능이 출중했지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거나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고 전한다.

그가 남긴 ‘설시’처럼 ‘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 폐구심장설 안신처처뢰/ 입은 재앙의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을 편히 할 수 있네)’를 좌우명으로 했을 것이다. 별달리 남긴 다른 시도 없이 이 시도 淸代(청대)에 편찬된 당시전집인 ‘全唐書(전당서)’에 실려 있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54.html
kolaswqetsrq 11.03 01:25
인원상국人怨傷國 - 백성이 원망을 하면 나라가 상한다.

인원상국(人怨傷國) - 백성이 원망을 하면 나라가 상한다.

사람 인(人/0) 원망할 원(心/5) 다칠 상(亻/11) 나라 국(囗/8)

억울한 일을 당하여 응어리진 마음은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에서 원한보다 더욱 빨리 인간을 소멸시키는 것은 없다며 덕으로 갚으라는 以德報怨(이덕보원)이란 말이 있어도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따를 리 없다. 오죽했으면 원한이 뼛속까지 사무친다고 怨入骨髓(원입골수)란 말이 나왔을까. 여인의 원한이 사무치면 하늘도 노하는지 오월인데도 서리가 내렸다는 一婦含怨 五月飛霜(일부함원 오월비상)이란 말도 옛 이야기에 자주 나왔다. 그러니 백성의 원한을 사면(人怨) 나라가 온전하지 못하여 망한다(傷國)는 이 성어는 어쩌면 당연하다.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게 한 최고의 공신 張良(장량)은 그 계책의 원천이 黃石公(황석공)에게서 나왔다. 韓(한)나라의 명문 출신인 장량은 고국을 멸망시킨 秦始皇(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숨어 살았다. 어느 때 장량이 황석공이란 기인을 흙다리 위에서 만났다. 노인이 무례하게 몇 번이나 다리 아래로 신발을 떨어뜨린 뒤 신기라고 했다. 장량이 명령을 잘 따랐더니 귀한 책을 건네주었다. 이 책이 바로 太公兵法(태공병법)과 黃石公素書(황석공소서)이다.

장량은 이 책을 늘 지니고 익혀 묘리를 깨닫고 한고조가 위급할 때마다 계책을 일러 큰 공을 세웠다. 제6장 安禮(안례)편에 나오는 내용을 일부 보자. 구슬을 버리고 돌을 취하는 자는 눈 먼 자이고, 양의 몸에 호랑이 가죽을 쓴 자는 욕을 당한다며 이어진다. ‘기둥이 약하면 집이 무너지고, 보좌하는 신하가 약하면 나라가 기울어진다.

발이 차가우면 심장을 상하고, 백성들이 원망하면 나라가 상하게 된다(柱弱者屋壞 輔弱者國傾 足寒傷心 人怨傷國/ 주약자옥괴 보약자국경 족한상심 인원상국).’ 모두가 기반이 튼튼해야 큰일을 이룰 수 있다고 쉬운 예로 비유했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78.html
kolaswqetsrq 11.03 01:25
환과고독鰥寡孤獨 - 외로운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사람

환과고독(鰥寡孤獨) - 외로운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사람

홀아비 환(魚/10) 적을 과(宀/11) 외로울 고(子/5) 홀로 독(犭/13)

외롭고 쓸쓸함을 말하는 孤獨(고독)을 쉽게 말하는데 실제 뜻은 외로울 孤(고)는 부모 없는 어린 아이, 홀로 獨(독)은 자식 없는 늙은이를 말한다. 또 적을 寡(과)는 홀어미란 의미가 있고 홀아비를 뜻하는 鰥(환)과 합쳐 쓴 이 성어는 의지할 데 없는 처지의 사람을 함께 이르는 말이 됐다. 사람은 혼자 이 세상에 나서 돌아갈 때도 홀로라고 하지만 어떠한 심한 공포든 함께 있으면 견딜 수 있어도 외로움은 죽음과 같다고 했다. 외로운 처지를 말하는 우리 속담도 ‘날 샌 올빼미’, ‘끈 떨어진 뒤웅박’, ‘짝 잃은 기러기’ 등등 많이 있다.

외로이 홀로 됐을 때 돌봐 주는 가까운 가족이 없는 것만큼 더 큰 불행은 없다. 외로운 처지의 사람을 이렇게 분류한 사람은 孟子(맹자)다. 齊宣王(제선왕)이 왕도정치가 어떤 것인지 맹자에 의견을 묻자 대답한다.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지 않고, 죄인을 처벌할 때는 그 처자까지 연좌해 죄를 묻지 않았다고 하면서 이어 말한다.

‘늙고 아내 없는 이를 홀아비라 하고, 늙고 지아비가 없는 이를 과부라 하고, 늙었지만 부양해줄 자식이 없는 이를 외로운 사람, 어린데 보살펴줄 부모가 없는 이를 고아라 합니다. 이들 네 부류의 사람들은 천하에서 가장 곤궁하여 호소할 데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옛날 周文王(주문왕)이 이들을 제일 우선 돌보았기 때문에 인정을 베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梁惠王下(양혜왕하)편에 나온다. 여기에서 네 부류의 곤궁한 사람을 줄여 四窮(사궁)이라고도 하고, 자랑할 矜(긍)은 홀아비 환으로도 읽혀 矜寡孤獨(환과고독)으로도 쓴다.

우리나라 국민 중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는 사람이 2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라고 얼마 한다. 거기에다 2035년이 되면 우리나라 세집 당 한집 꼴로 1인 가구가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60대 이상의 노인 세대는 기초연금 제도 시행에도 가장 늦은 은퇴, 긴 노동시간, 최하위 수준 임금 등으로 빈곤에 허덕이는 가구가 많다. 확대되는 곤궁한 사람들을 위한 대책도 서둘러야겠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83.html
kolaswqetsrq 11.03 01:26
부운부귀浮雲富貴 - 뜬구름같이 덧없는 부귀

부운부귀(浮雲富貴) - 뜬구름같이 덧없는 부귀

뜰 부(氵/7) 구름 운(雨/4) 부자 부(宀/9) 귀할 귀(貝/5)

덧없는 세상사를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에 빗대 자주 말한다. 구름이 하늘을 덮어 캄캄하게 하다가도 변화가 무쌍하여 햇볕을 쨍쨍 내보낸다. 인생 자체를 구름에 비유했으니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은 더욱 있다가도 없어지는 허망한 존재라 여길 만하다. 돈과 명예를 위해 누구나 노력을 한다. 그러나 옳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부귀는 뜬구름같이 사라지는 것이 순식간일 텐데도 모두들 긁어모으지 못해 안달이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절개를 버리지 않고 평안한 마음으로 자기의 분수를 지키는 것이 安貧樂道(안빈낙도)이다. 도를 터득한 사람은 재산이 있거나 없어도 즐거워했고, 지위의 높고 낮음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이런 경지를 가장 잘 나타낸 것이 曲肱之樂(곡굉지락, 肱은 팔뚝 굉)인데 論語(논어)의 述而(술이)편에 실려 있다. 여기에 뜬구름(浮雲)의 비유도 함께 나온다. 孔子(공자)의 말씀을 들어보자.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개 삼고 누웠어도 즐거움은 또한 그 가운데 있다.

의롭지 않으면서 부유함과 고귀함을 누린다면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은 것이다(飯疏食飲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락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여기서 食은 밥 사. 마음이 편하면 가난도 즐거운데 옳지 못한 방법으로 차지하려는 부귀를 경계했다.

비유가 적합해서인지 우리의 선인들도 곧잘 사용했다. 李穡(이색, 穡은 거둘 색)의 부친인 고려 때 학자 李穀(이곡)은 ‘稼亭集(가정집)’에서 ‘옛 친구들 몇 년 사이에 반절은 세상을 버렸나니, 뜬구름 같은 부귀야 정녕 어떻다고 해야 하리(故舊年來半凋喪 浮雲富貴定何如/ 고구년래반조상 부운부귀정하여)’라고 노래했다. 西山大師(서산대사)의 선시 중에는 ‘뜬구름 같은 부귀에 뜻을 두지 않거늘, 달팽이 뿔 같은 공명에 어찌 마음을 더럽히랴(浮雲富貴非留意 蝸角功名豈染情/ 부운부귀비유의 와각공명기염정)’이란 구절도 자주 인용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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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1:27
개권유익開卷有益 - 책은 펼치기만 해도 이롭다.

개권유익(開卷有益) - 책은 펼치기만 해도 이롭다.

열 개(門/4) 책 권(㔾/6) 있을 유(月/2) 더할 익(皿/5)

책이나 독서에 관한 성어는 많다. 유형별로 몇 가지만 보자. 책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五車之書(오거지서), 擁書萬卷(옹서만권), 汗牛充棟(한우충동)이 있고, 열성적인 독서는 讀書三到(독서삼도), 懸頭刺股(현두자고) 螢窓雪案(형창설안)을 소개했다. 唐(당)나라 李密(이밀)은 소뿔에 책을 걸어(牛角掛書/ 우각괘서) 타고 가면서 읽었고, 後漢(후한)의 高鳳(고봉)은 널어놓은 보리가 소나기에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高鳳流麥/ 고봉유맥) 봤다. 조선 후기 실학자 李德懋(이덕무, 懋는 힘쓸 무)도 이에 못지않아 스스로 책만 보는 바보라며 看書癡(간서치)를 자처했다.

책이 많은 것을 가져다주지만 독서의 이로움을 직접적으로 말한 것이 펼치기만(開卷) 해도 이익이 있다(有益)는 이 성어다. 開卷有得(개권유득)이라 해도 같다. 太平御覽(태평어람)이란 책이 있다. 宋(송)나라 太宗(태종)의 명으로 李昉(이방, 昉은 밝을 방)이 1690종의 책을 인용하여 편찬한 55개 부문의 방대한 백과사서다. 처음엔 연호를 따 太平總類(태평총류)라 했다가 왕이 1000권이 넘는 책을 1년에 걸쳐 하루 3권씩 독파하여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정무에 바쁜 태종이 침식을 잊고 독서에 열중하자 신하들이 건강을 걱정하여 천천히 휴식하면서 읽으라고 간했다. 왕이 답했다. ‘책은 펼치기만 해도 유익하다오. 나는 수고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답니다(開卷有益 朕不以爲勞也/ 개권유익 짐불이위로야).’ 이 이야기는 송나라 王闢之(왕벽지)란 사람이 高宗(고종) 이전의 잡다한 일화들을 모아 엮은 ‘繩水燕談錄(승수연담록)’에 실려 전한다.

독서의 이로움을 말하는 데는 古文眞寶(고문진보)의 제일 첫 머리 勸學文(권학문)이 한 술 더 뜬다. 宋(송)나라 眞宗(진종)은 ‘글 속에 천 종의 녹이 있고, 책 가운데 황금의 집이 나온다(書中自有千鍾粟 書中自有黃金屋/ 서중자유천종속 서중자유황금옥)’고까지 했다. 鍾(종)은 여섯 섬 네 말을 가리키는 녹봉 단위, 粟은 조 속.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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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1:27
명약관화明若觀火 – 불을 보듯 뻔하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명약관화(明若觀火) – 불을 보듯 뻔하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밝을 명(曰/4) 같을 약(艹/5) 볼 관(見/18) 불 화(火/0)

‘불을 보듯 뻔하다’란 말을 자주 쓴다. 어떤 사건이나 사실이 너무도 뚜렷한 일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똑 같은 뜻의 성어가 그 밝기가 마치(明若) 불을 보듯 뻔하다(觀火)고 한 이 말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을 강조할 경우에는 明明白白(명명백백)이란 말도 자주 쓰는데 물론 같은 뜻이다. 뻔히 들통 날 일을 잡아떼거나 너무나 뚜렷한 증거가 있는데도 오리발 내는 뻔뻔한 사람에게 잘 들어맞는 일이다. 줄여서 若觀火(약관화)라고 하기도 하고 洞若觀火(동약관화)라고 써도 마찬가지 뜻이다.

이처럼 귀에 익은 자주 사용하는 말이라도 기원은 아주 오래 됐다. 중국 고대의 堯舜(요순)과 殷周(하은주)시대의 기록 ‘書經(서경)’에 처음 나온다. 항상 숭상해야 한다고 尙書(상서)라고도 하는 책인데 三經(삼경)이라 할 때도, 五經(오경)이라 할 때도 꼭 들어갈 정도로 중요시했다. 서경 3편인 商書(상서)의 盤庚(반경) 상편에는 ‘나는 불을 보는 것처럼 잘 알고 있다(予若觀花/ 여약관화)’라고 표현한 것을 宋(송)나라 蔡沈(채심)이 쓴 주석인 ‘集傳(집전)’부터 바꿔 썼다고 한다.

般庚(반경)으로도 쓰는 반경은 폭군 紂王(주왕)을 쫓아내고 商(상)나라를 세운 湯王(탕왕)의 9대손이다. 19대로 왕위에 오른 반경은 당시 국력이 쇠퇴해져 분쟁이 잦았고 자연재해까지 발생하여 백성들의 불안이 가중되었다. 여기에다 귀족들은 사치를 일삼았고 제후들이 입조하지도 않는 혼란상이 계속됐다. 반경은 통치기반을 굳건히 하기 위해 도읍을 殷(은)지방으로 옮기려 하였으나 대신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반경은 지금 하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하늘이 명을 끊을지 모르는데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설득한다. ‘나는 불을 보듯 훤히 알고 있으나 졸렬하게 일을 처리하여 그대들을 안일하게 했소(予若觀火 予亦拙謀 作乃逸/ 여약관화 여역졸모 작내일).’ 결국 반경은 설득에 성공하여 수도를 옮겼는데 이 이후 殷(은)나라로 국호를 바꿔 부르게 됐다.

수도를 바꾸고부터 신뢰를 바탕으로 국정을 안정시킨 반경은 이후 200여 년 동안 번성을 이루었다. 한 때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을 둘러댄다면 언젠가 들통 나고 신뢰는 깨어지고 만다. 개인 간의 관계도 믿음으로 이뤄지는데 나라의 정책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옳은 일을 밀고 나가는데 성공을 뒷받침할 신뢰가 바탕에 없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35.html
kolaswqetsrq 11.03 01:28
◇ "랍스터 타십니다” 대한항공 최고 ‘고객님’은 바닷가재

◇ "랍스터 타십니다” 대한항공 최고 ‘고객님’은 바닷가재

- 보스턴發 인천행 노선 화물량 83%가 랍스터

일명 ‘랍스터 노선’으로 불리는 인천~보스턴 노선이 대한항공 실적 개선에 한몫하고 있다. 한국에서 랍스터 수요가 늘어난 덕분이다. 지난해 4월 직항이 생긴 이 노선은 지난 3월 코로나로 운항을 중단했다가, 지난 9월부터 주 3회 일정으로 재운항하고 있다.

23일 한국항공협회가 운영하는 에어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인천발 보스턴행 항공편은 26편이었는데 탑승객은 730명이었다. 편당 28명이 탑승한 것이다. 이 노선에 투입되는 보잉787-900 항공기 좌석은 269석으로 평균 탑승률은 약 11%에 그쳤다. 보스턴발 인천행 탑승률도 9%로 사실상 텅 빈 채 운항했다.

그러나 화물 운송을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달 인천에서 보스턴까지 실어나른 화물량은 324t으로 편당 12.46t이었다. 전년 같은 달(편당 12.09t)보다 늘었다. 품목은 주로 의약품과 온라인 구매 상품 등이었다.

보스턴발 인천행 화물도 크게 증가했다. 지난달 이 노선 화물량은 431t(편당 16.6t)이었는데, 전년 동월 293t(편당 6.67t) 보다 47% 증가했다. 특히 431t 중 랍스터가 361t으로 83%를 차지했다. 이 랍스터 물량은 전년 동월 대비 76% 늘어난 것이다. 랍스터의 본고장인 미 북동부 메인주(州)와 캐나다 동부 연안에서 잡히는 랍스터는 연중 수입이 가능하다. 2012년 한·미 FTA 발효 이후 관세 혜택으로 국내 수입량이 늘고 있다.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롯데마트에서 랍스터 판매는 작년 동기 대비 2.2배 증가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랍스터는 코로나 탓에 북미 지역에서 소비가 줄면서 가격이 하락했다”며 “그 영향으로 국내 소비가 늘었다”고 말했다. 인천에 도착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는 랍스터 물량도 적지 않다.

코로나 위기에도 대한항공은 화물 운송 호황으로 지난 2분기와 3분기 각각 1485억원, 76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화물 운임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홍콩~북미 노선 운임은 kg당 5.66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60% 이상 올랐다”며 “당분간 화물이 대한항공의 실적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94.html
kolaswqetsrq 11.03 01:29
◇ 부동산 칼럼 둘

◇ 부동산 칼럼 둘

1. 끝모를 ‘부동산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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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방 전세’를 포함한 빈 껍데기 전세 대책을 발표하면서 국토부 장관은 또 저금리 탓, 인구 구조 탓을 들고 나와 국민 가슴에 염장을 질렀다. 국토부 1차관은 “임대차 3법은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가는 우리가 한번은 겪어야 될 성장통”이라고 했다. 정부·여당이 무리하게 밀어붙인 임대차법 때문에 전·월세 시장은 뒷돈이 오가는 암시장 난리통이 됐다. 그래 놓고 ‘성장통이라니, ‘궤변 올림픽’이 있다면 금메달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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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실언은 차고 넘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많은 것이 부동산 실정(失政)을 덮으려는 궤변이다. 문 정부 초기 ‘강남 집값과의 전쟁’을 밀어붙일 때 청와대 정책실장은 “내가 거기 살아봐서 아는데,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는 말로 스트레스 지수를 높여주었다. 집값 상승이 역대 정권 최악으로 치닫는데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 하고, 국토부 장관은 3년간 서울 집값 상승률이 “14%”라고 우겨 온 국민을 황당하게 했다.

부작용 우려가 컸던 임대차법을 날림 처리하면서 민주당 법사위원장은 “국민이 집의 노예에서 벗어난 날”이라고 했다.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세 난민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큰소리 친 것과 달리 전세대란이 빚어지자 이번엔 전세 자체를 나쁜 제도로 몰아갔다. “전세제도가 왜 우리나라만 있어서 서민들이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 “전세는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운명을 지닌 제도”라고 몰아붙였다.

문 정부의 국정 패턴이 다 비슷했다. 소득 주도 성장 같은 새 정책을 실행할 때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고 큰소리치다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통계 수치를 입맛에 맞게 마사지해가며 “효과가 있다”고 우긴다. 더 우기기 힘든 상황이 되면 보수 정부 탓, 통상 환경 탓이며 야당 탓, 언론 탓으로 돌린다. 이마저도 통하지 않으면 ‘성장통’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논리까지 들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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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 정치 원조인 히틀러는 “국민은 이성보다 감성에 휘둘리기 때문에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더 잘 속는다”고 했다. 문 정부도 ‘큰 거짓말 전략을 쓰는 듯하다. 뻔한 거짓말인데도 하도 당당하고 뻔뻔하게 반복하니까 듣는 국민이 헷갈릴 지경이다. 그러나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전세 대책 발효 후 인터넷 부동산 카페 등에선 조롱과 풍자가 넘친다. “조식과 룸서비스도 제공해라.” “호거(호텔 사는 거지) 만들 참이냐.” “다음 대책엔 캠핑카, 가정용 텐트까지 나온다.”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음) 매수에 맞선 영끌 대책?=대책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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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워런 버핏의 집값

워런 버핏의 집값투자의 신 워런 버핏의 별명은 ‘오마하의 현인’이다. 그는 미 중부 네브래스카 오마하에 살고 있다. 주식 투자자 중에는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사진을 찍어 인증하는 사람도 많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기간에는 더 많은 사람이 오마하로 몰린다. 60년 넘게 살고 있는 그의 집은 2018년 보도에 의하면 약 65만달러, 한화로 7억2000만원 정도다. 하지만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명인 버핏이 만약 자신의 집을 팔아 서울로 이사한다면 그는 25평 아파트를 사는 것도 힘들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뜨겁다. 서울을 벗어나 김포, 부산, 창원 등 가격 폭등세가 전국적이다. 사는 곳이 계급이 되었으니 이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디 사냐고 묻는 것도 실례다. 오래전 트위터에 떠돌던 이야기가 있다. “담뱃값 모으면 집을 사겠다”는 선배의 충고에 감명받아 금연 후 그 돈을 모으기 시작한 P씨가 결국 강남에 아파트를 샀는데 그의 나이 1428세 때의 일이라는 얘기다. 지금이라면 P씨는 2000살을 넘겨야 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아들에게 말한다. “너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No Plan.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인생이... 또 애초부터 아무 계획이 없으니까 뭐가 터져도 다 상관이 없는 거야.” 영화에서 그는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다 순식간에 사라진 ‘대만 카스텔라’ 사업을 하다가 망한 인물로 그려졌다. 그의 사업은 계획과 다르게 예상치 못한 TV 고발 프로그램으로 한순간 날아간다. 그렇게 그는 반지하의 세계로 내려간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우울하지만 부동산 때문에 우울한 사람도 많다. 특히 아끼고 저축하며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워온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다.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몇 억씩 올라버린 가격은 누군가의 꿈을 빼앗는 것이다. 그것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그들이 다시 꿈을 꾸고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사람에게서 꿈조차 빼앗는 것은 또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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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소설가 백영옥의 말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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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14.html
kolaswqetsrq 11.03 01:29
◇ 밭에 농약 치다가도 찍는다...서른살 동갑 ‘부부 농튜버’

◇ 밭에 농약 치다가도 찍는다...서른살 동갑 ‘부부 농튜버’

충남 청양군 운곡면에 사는 서른살 동갑내기 박우주·유지현씨 부부는 귀농인이다. 서울에서 학원을 운영하다 2018년 초 운곡면에 자리를 잡고 고추·구기자 농사를 짓고 있다. 귀농 3년 차를 맞았지만 아직은 ‘초보 농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1년 전부터 새로운 일거리가 생겼다. 자신들의 일상을 담아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일이다. 박씨 부부는 지난해 5월부터 밀짚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은 채 농사짓는 모습을 유튜브에 올린다. 채널 이름은 ‘청양농부 참동TV’다.

박씨 부부는 유튜브 채널 개설 1년 만에 93개의 동영상을 올렸으로 현재 130여개에 달한다. 구독자는 2만7000명을 넘었고, 누적 조회도 400만 명을 넘었을 정도로 인기다. 가장 큰 비결은 농사를 지으며 생기는 일들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데 있다. 텃밭 농사를 짓는 이들이나 귀농을 꿈꾸는 도시민들에게 유익한 정보라고 한다.

부부는 고추나 구기자 등 농작물 재배방법부터 농기계 작동 및 시골에서 빈집 구하기 요령, 시골집 난방비와 초고소득 귀농 작목 공개, 청양군 귀농·귀촌 정책 공유 등 다양한 내용을 올린다. 구독자들은 댓글로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수 같은 내용”이라고 평가한다.

참동TV를 통해 이뤄지는 농산물 판매와 광고료 수입 등도 박씨 부부에게 또 다른 재미다. 박씨 부부는 청양군농업기술센터의 귀농인 대상 ‘우수 영농 아이디어’ 지원을 받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유지현씨가 제안한 ‘청양이 잘 나가야 우리도 잘 나간다-유튜브 영상 제작 홍보 마케팅’ 전략이 올해 지원대상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아내 유씨는 “밭에 거름을 주다가도 농약을 치다가도 수시로 영상을 촬영한다”며 “농촌생활을 영상 일기처럼 거의 매일 올리다 보니 어느새 농튜버(농업 유튜버)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귀농 초기 모든 게 막연하고 답답했던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은 농업에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며 “좋은 영상을 공유하면서 영향력을 높이고 그것을 기반으로 농산물 판매와 청양군 홍보에도 기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형적인 농업 군(郡)인 청양 인구는 3만1140여 명으로, 충남 15개 시·군 중 가장 적다. 급속한 고령화에다 천안·아산처럼 대규모 산업단지나 대학도 없어 인구를 늘리는 데 한계가 많다.

이런 이유로 청양군은 박씨 부부처럼 귀농·귀촌 인구를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매년 3~4차례 귀농·귀촌 박람회에 참가, 도시민을 대상으로 농업정책과 다양한 지원책을 설명한다. 2015년부터 매년 평균 500여 명이 청양으로 귀농·귀촌을 하고 있다.

청양농업기술센터 한종권 소장은 “과거에는 SNS가 직거래 농업인의 주된 마케팅 도구였지만 최근에는 영상 마케팅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앞으로 1인 미디어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농튜버 육성에도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39.html
kolaswqetsrq 11.03 01:30
◇ 알고 보니 회색 수소, 방향 잘못 잡은 수소 경제 몰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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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보니 회색 수소, 방향 잘못 잡은 수소 경제 몰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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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산업부는 ‘그린 수소 해외사업단’을 발족하고, 30여개 기업과 수소를 수입하기 위한 MOU를 체결하였다. 연료전지에 대해 정부는 화려한 말의 성찬을 보여줬지만, 기술적 결론은 그냥 “외국에서 사온다”! 그리고 한 술 더 떠 이걸 코로나19 대책으로 포장하였다. 재난을 핑계 삼아 그냥 자기들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전형적 ‘재난 자본주의’다. 그린, 퍼스트 무버, 뉴딜, 별의별 얘기로 포장되었지만, 공무원들이 그리는 우리의 미래는 다시 한번 에너지 수입국으로 가자는 얘기다. 그럼 정책 포장지의 ‘그린’이라도 떼어내든지.

흔히 수소경제라고 불리는 연료전지는 원래는 잠수함이나 우주선같이 극도로 제약이 있는 조건에서 쓰는 기술이다. 제한적이고 특수한 용도로 썼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3년 신년사에서 수소자동차를 언급하면서 이 논의에 결정적 전환이 발생한다. 원자력 쪽을 강화하면서, 이와 맞추어 남아도는 전기로 수소를 생산하겠다는 게 부시의 선택이었다. 미국이 그렇게 간다니까 한동안 수소 열풍이 불었는데, 경제성과 대중성을 이유로 미국이 슬그머니 수소차 전면화에서 발을 뺐다. 일본에서 가정용 연료전지 정책이 강화된 것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여파다. 순환 송전을 하다 보니까 집집마다 자가 발전기를 갖추게 될 요인이 생겼다.

한국에서는 수소를 기후변화 대응 기술로 소개하지만, 현실은 아직 그렇지 않다. 세계에너지기구 배출계수에 따르면 현재 기술로 수소 1t을 만드는데, 이산화탄소는 11t이 나온다. 그래서 이걸 ‘회색 수소’라고 부른다. 온실가스 감축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2040년쯤 되면 녹색 수소가 좀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정부 주장인데, 앞으로 20년간은 수소를 만들수록 적지 않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된다. 죽기 살기로 20년 내에 녹색 수소 단계로 가보겠다는 게 정부 주장인데, 말은 그렇게 해놓고 자신들도 믿지 못하는 계획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외국에서 수입하는 거다” “수소는 걱정 말고 우선 인프라에 투자해라” 현장 공무원들은 그렇게 설명한다.

지금 한국에선 메탄(CH4)이 주성분인 천연가스에 전기를 사용해서 수소를 추출하고, 이걸로 연료전지를 작동시킨다. 계산마다 조금씩 다르긴 한데, 산업연구원 자료로는 발열 손실 60%에 송전 손실 5%가 발생, 원래 에너지의 35%만 발전에 이용된다. 그나마 이건 높은 편이다. 수소 추출과 발열 손실 등을 따지면 30% 정도라는 2015년 펠로의 연구도 있다. 천연가스와 전기를 그냥 쓰면 이것보다는 효율이 높은데, 굳이 수소로 전환하면서 에너지 손실이 꽤 크게 발생하게 된다. 수소 생산에 전기를 쓰게 되니까, 배출 계수에 따라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도 같이 높아진다.

그러면 유럽은 왜 하느냐? 재생에너지의 공급이 늘다 보니까 남는 전기를 수소 형태로 저장하는 것에 대한 시도를 하는 것이다. 지금 배터리 기술의 한계로 수소가 기술적 이득이 있기는 하다. 수소는 고압으로 액화하면 자체 에너지의 30~40%가 손실된다. 액화수소의 경우는 저장 과정에서 하루에 1%씩 손실이 생긴다. 현재 배터리보다는 낫지만 어차피 장기 저장은 어렵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워낙 남으니까 일단 해보는 정도다. 우리의 재생에너지 보급은 그 단계도 아니다.

전기차에 비해 수소차가 갖는 제일 큰 장점은 충전 시간이다. 그러나 20년이 지나면 배터리 기술도 발전한다. 무엇보다도 무선 충전 기술이 발달해서, 달리면서 바로 전기차에 충전하는 방식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20년 후에도 수소차가 기술적 경쟁력이 있을까?

더 어려운 건 주민 수용성이다. 수소 폭발 확률이 높지는 않지만, 확률상 제로는 아니다. LPG 충전소도 요건을 맞추다 보니 시내엔 못 들어가고, 폐기물 소각로도 설치할 곳을 못 찾아 쓰레기 대란을 맞게 된 나라다. 그러다 보니 수소발전기를 섬으로 가지고 가겠다는 정책을 모색 중인데, 대체 왜 이 짓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부가 방향을 이상하게 ‘수소경제 몰빵’으로 잡으면서 이미 전기차 보급에 피해가 발생했다. 출퇴근용 일상생활에서는 전기차처럼 작동할 수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정책적 피해를 봐서, 미래차 기술 로드맵의 중간단계가 깨져간다. 도요타 프리우스 플러그인이 기세를 떨치는 동안, 우리만 플러그인 보급이 지지부진하다. 플러그인으로 갈 보조금을 수소차가 다 가져간다. 전기차 요금에 대한 한전 대책도 수소차에 밀리다 보니, 가뜩이나 어려운 전기차용 전기요금도 올리겠다고 한다. 회색 수소로 회색 뉴딜을 한 결과다. 이게 어딜 봐서 그린 뉴딜인가?

이 흐름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민주당이다. 대중정치를 해야 해서 그렇다. 지금이야 정부가 “이게 녹색입니다”라고 하도 세게 홍보를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지만, 자기 동네에 수소 충전소나 발전기가 들어온다고 할 때, 주민들이 결국 도와달라고 여당과 지역 정치인을 찾게 된다. 국민의힘이야 정부 욕하면서 주민들 편에 서면 그만이다. 그때 민주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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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석훈의 경제수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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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24.html
kolaswqetsrq 11.03 01:30
◇ 가짜뉴스 뽀빠이 시금치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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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뉴스 뽀빠이 시금치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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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또래 독자들은 어린 시절 보고 자란 뽀빠이 만화를 기억할 것이다. 또 뽀빠이하면 시금치를 떠올리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뽀빠이가 위험에 처한 올리브를 구하기 위해 철분이 많이 든 시금치를 먹고 브루터스를 혼내주는 게 보통 이 만화의 클라이맥스였다.

하지만 시금치에 철분이 많다는 상식은 오래전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모든 녹색 채소에 철분이 있고 시금치에도 당연히 철분이 있지만, 시금치에 특히 철분 함량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럼 지금도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이 상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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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 잘 알려진 일설에 의하면 1930년대 독일 과학자들이 발표한 논문에서 소수점을 잘못 찍어 시금치의 철분 함량이 열 배로 과장되었는데, 이후 연구들이 이 잘못된 결과를 인용하면서 과학적 사실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즉 90년 전 사소한 실수 때문에 지금도 세계 많은 어린이가 시금치를 먹는 고역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다른 연구를 인용할 때 원래 연구를 꼼꼼히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강조하기 위한 예로 사용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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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한 연구는 이 소수점 실수 이야기 자체도 근거 없는 어번 레전드라는 걸 밝히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할 때 학자들은 보통 1981년 영국 의학 저널에 실린 논문을 인용하는데, 이 논문에서는 1930년대 독일 논문을 직접 인용하고 있지도 않고 소수점 이야기의 근거가 어디인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나중에 이 글의 저자는 이 이야기를 처음 어디에서 들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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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후 연구들이 이 1981년 연구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인용하면서 소수점 실수 일화는 과학계에서 사실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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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금치 일화는 우리가 굳게 믿는 사실이 얼마나 허약한 근거에 기반한 것일 수 있고, 또 근거 없는 이야기도 일단 사람들이 사실로 받아들이면 우리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학자 아이작 토머스의 이름을 딴 토머스의 정리라는 게 있는데,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실재하는 것으로 정의하면 우리 삶에 실질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 시작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시금치에 철분이 많다는 사실 때문에 수많은 어린이가 시금치를 먹고 자랐고, 또 학생들은 소수점 실수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근거 없는 일화의 교훈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그게 다 근거 없는 가짜뉴스로 판명 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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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학계에는 피어 리뷰와 재검증을 통해 잘못된 연구 결과를 바로 잡는 시스템이 그런대로 작동하고 있고, 또 보통 연구 결과들이 대중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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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다양한 뉴스 매체들과 SNS상의 정보는 특별한 여과 없이 고스란히 대중에게 전해지고 인용되면서 사회적 사실이 된다. 사람들이 입맛에 맞는 소식과 견해만 접하는 맞춤형 뉴스의 시대, 죽은 록스타도 재생해내는 딥페이크의 시대, 그리고 초강대국 대통령이 가짜뉴스 공장장이 되어버린 시대가 특별히 우려스러운 이유다. 지식과 정보를 비판적으로 판별해서 받아들이는 능력, 그리고 뉴스 다이어트의 정치적, 이념적 다양화가 민주시민의 중요한 덕목인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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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50.html
kolaswqetsrq 11.03 01:31
◇ 벽안의 수행자 현각스님 "혜민스님, 사업가·연예인·기생충일 뿐" 비판 왜?

◇ \벽안의 수행자\ 현각스님 "혜민스님, 사업가·연예인·기생충일 뿐" 비판 왜?

‘푸른 눈의 수행자’ 현각스님이 자신의 SNS를 통해 한 방송에서 서울 도심 자택을 공개한 혜민스님을 비판했다.

현각스님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사진 위)에 혜민스님의 사진을 올리고 “속지마, 연예인일 뿐이다. 일체 석가모니 가르침을 전혀 모르는 도둑놈일 뿐”이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아먹는 지옥으로 가고 있는 기생충일 뿐”이라고 썼다.

현각스님은 또 다른 글에서 혜민스님의 방송장면을 공유하며 “그는 단지 사업자, 배우일 뿐이다”라며 “그는 진정한 참선하는 경험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표절자임을 정당하게 입증했다. 그의 책을 접하는 유럽의 사람들은 불교의 요점에 대해 매우 피상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불평한다. 그의 헛소리 가르침의 심각한 실수를 바로 잡는데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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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N의 예능프로그램 온앤오프 에서 혜민스님이 남산타워가 보이는 서울 자택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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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스님은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남산타워가 보이는 서울 자택을 공개해 논란이 됐다. 예일대와 하버드 대학원 출신의 현각스님은 1990년 숭산 큰스님 법문을 듣고 출가를 결심했다. 현정사 주지 등을 지냈지만 2016년 한국 불교의 기복신앙과 유교적 관습 등을 정면 비판하며 “한국 불교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한국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13.html
kolaswqetsrq 11.03 01:32
◇ 연방의원 당선, 순자·은주·영옥의 아메리칸 드림

◇ 연방의원 당선, 순자·은주·영옥의 아메리칸 드림

1902년 12월22일 제물포항에서 한국인 101명을 태운 미국 상선 겔릭호가 이듬해 1월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이들의 미국행은 한인 노동자를 파견해달라는 하와이사탕수수재배협회의 요청을 고종이 받아들이면서 이뤄졌다. 사상 첫 미국 이민이었다. 이후 1905년까지 모두 7226명이 미국 이민선에 올랐다. 먹고살기 힘든 조선 땅을 떠나는 그들의 마음 한쪽에는 ‘황금의 땅’ 미국에서 새 삶을 일구겠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자리잡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미국 내 한인은 1만명을 넘지 못했다. 일제가 한인의 미국 이주를 막은 데다 미국 또한 1924년부터 한인 이민 금지법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한국에 주둔한 많은 미군들은 한국 여성과 결혼한 뒤 함께 미국으로 들어갔다. 1990년대 중반까지 미군 남편을 따라 이민간 한국 여성은 9만명이나 됐다. 1965년 미국 이민법 개정은 미국 이민의 또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팍스 아메리카’ 시대를 맞아 너도나도 미국에서의 성공을 꿈꾸며 태평양을 건넜다. 그 결과 미국은 재외동포(2018년 기준 254만명·재외국민 포함)가 가장 많은 국가가 됐다.

메릴린 스트리클런드는 1962년 9월 서울 용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한국인(김인민)이고 아버지가 미국인(윌리 스트리클런드)인 그는 어릴 때 ‘순자’로 불렸다. 두 살 되던 1964년 본국 부대로 배치된 아버지를 따라갔다. 워싱턴주 타코마 시의원·시장을 역임한 그는 올 연방선거에서 연방하원 의원이 됐다. 동양계는 물론 흑인 여성으로서도 첫 타코마 시장이었다. 그는 지금도 “나는 한국의 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미셸 박 스틸(65·한국명 은주)과 영 김(57·한국명 영옥, 사진)도 캘리포니아주에서 나란히 연방의원으로 선출됐다. 두 사람 모두 젊은 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1.5세대 한국계 미국인이다. 한인 동포의 미국 연방하원 진출은 앞서 김창준 전 의원(81)이 있었고, 연이어 뉴저지주에서 재선에 성공한 앤디 김 의원(38)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계 여성 3명이 한꺼번에 무더기로 당선된 것이다. 소수민족·여성의 차별을 딛고 성취한 순자·은주·영옥씨의 아메리칸 드림. 120년 미국 이민사에 기록돼야 할 쾌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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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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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77.html
kolaswqetsrq 11.03 01:32
◇ 화이자 백신 이끈 ‘터키 이민 흙수저’ 부부, 25조 돈방석

◇ 화이자 백신 이끈 ‘터키 이민 흙수저’ 부부, 25조 돈방석

글로벌 제약회사 화이자가 개발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90% 이상의 예방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하면서 백신 개발을 이끈 터키 이민 2세 부부가 주목받고 있다. 화이자와 공동 연구를 하고 있는 독일 바이오엔테크를 창업한 남편 우구르 사힌(55)과 아내 외즐렘 튀레지(53)다.

지난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부부는 1960년대 독일에서 일하려고 터키에서 건너온 이주 노동자 가정에서 각각 태어나 독일에서 자랐다. 이른바 ‘흙수저’ 출신이다. 사힌은 터키에서 태어나 4살 때 독일로 이주했고, 튀레지는 독일에서 태어났다. 독일 베를린 지역지 타게스슈피겔은 “이들 부부의 성공은 수십 년간 청과물 가게에서 일하는 저학력 계층 정도로 여겨졌던 터키 이민자의 쾌거”라고 평가했다. 두 사람 모두 의대에 진학했고, 연구원으로 일하던 2002년 독일의 한 대학에서 만나 결혼했다. 이들은 결혼식도 실험복 차림으로 실험실에서 올릴 정도로 연구에 매진했다.

부부가 2008년 창업한 바이오엔테크는 애초 항암 면역치료법 개발에 집중했다. 하지만 올 초 코로나19가 창궐하자 500명 규모로 백신 개발팀을 구성했다. 현재 바이오엔테크는 20가지의 백신 후보 물질을 개발해 놓고 있다.

바이오엔테크의 주가는 백신 효과가 알려지면서 23.4% 급등했다. 시가총액으로 219억 달러(약 25조원)가 됐다. 바이오엔테크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역시 5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엄청난 돈을 손에 쥐게 됐지만, 사힌과 튀레지 부부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통근하며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고 영국 데일리메일은 전했다.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5.html
kolaswqetsrq 11.03 01:33
◇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감염병에도 적용돼

◇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감염병에도 적용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승리 선언 직후 맨 처음 한 일이 ‘코로나 대응팀’ 출범이다. “코로나를 잡지 못하면 경제도, 삶의 활력 회복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은 지금 코로나로 초토화 직전이다. 매일 10만명 감염자에 500~1000명씩 숨지면서 사망자가 24만명을 넘겼다. 세계 인구의 4% 남짓한 미국인이 코로나 사망자는 전 세계 20%나 된다.

코로나는 초강대국 미국인의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사망자 24만명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등 최근 미국이 치른 5개 전쟁 전사자를 합친 수보다 많고, 2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미국인의 절반 수준이다. “미국의 비참한 실패” “치욕적 사태”라는 말이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코로나는 경선 막바지 트럼프의 발목도 잡았다.

유럽도 코로나 2차 대유행이 최악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연일 감염자 수만 명에 사망자가 수백 명씩 쏟아지고 있다. 영국은 급한 대로 값싸고 구하기 쉬운 아스피린이 코로나 치료제가 될 수 있을지 알아보는 집단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어제 하루 감염자가 8만명을 넘긴 프랑스에선 의료진 부족이 심각해지자 의료진에게 “확진 판정을 받았어도 설사, 구토 같은 증세가 하나뿐이라면 진료를 계속하라”고까지 주문하고 있다.

코로나 2차 대유행 양상은 감염병 전문가들이 올해 초 예고한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바이러스 활동이 왕성한 올겨울에 최악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 하버드대 감염병 전문가는 올 2월 “코로나가 1년 안에 인류의 40~70%를 감염시킬 것”이라고까지 내다봤다.

그런데 아시아, 아프리카에선 코로나 타격이 상대적으로 작은 게 눈길을 끈다. 북미·남미와 유럽은 각각 전체 인구의 2~3%가 코로나에 감염됐고, 확진자의 2~3%가 사망한 반면 아시아, 아프리카는 인구 대비 감염자 비율이 0.2~0.3% 수준이고, 치사율도 미국·유럽의 절반 수준이다. 코로나에 덜 걸리고, 걸려도 목숨 잃을 확률이 낮은 것이다. 먼저 겪었던 다른 감염병에서 얻은 ‘사회적 면역’ 효과일 수 있다.

아시아에서 과거 유행한 사스, 메르스, 인플루엔자 등 감염병은 이번 Covid-19(코로나의 정식 명칭)와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 계열이다. 그때 감염돼 생긴 면역력이 이번 코로나 공격을 버티는 데 도움이 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풍토병을 많이 겪는 아프리카인들도 마찬가지다. 먼저 겪은 불운이 뒤늦게 행운으로 돌아온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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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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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39.html
kolaswqetsrq 11.03 01:34
◇ 좋은 물은 무겁다...오대산 금강연 우중수牛重水

◇ 좋은 물은 무겁다...오대산 금강연 우중수(牛重水)

몇 년 전에 일본의 생수업체 몇 곳을 돌아보면서 깨닫게 된 이치는 실버 산업의 핵심이 먹는 물이라는 사실이었다. 고령 사회에서 영양제나 건강식품을 매일 복용하는 것보다는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된 좋은 물을 먹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좋은 물을 매일 먹는 것은 곧 약을 먹는 셈이다. ‘물이 좋아서 장수한다’는 옛 어른들의 이야기는 오랜 체험에서 우러난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집 앞에 좋은 샘물이 있는 집터를 최고로 친다.

전남 구례에 사도리(沙圖里)가 있다.

1000년 전쯤 지리산의 어떤 도사가 도선국사에게 풍수의 이치를 모래에 그려서 알려주었다는 동네이다. 여기에 도선국사가 개발한 ‘당몰샘’이라는 유명한 샘물이 있다. 이 당몰샘 옆에 사는 80대 토박이 노인에 의하면 ‘윗대 선조가 전국의 좋은 물을 찾아다니다가 이 당몰샘 물을 저울에 달아보니까 무거워서 여기에 집터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좋은 물은 무겁다는 게 핵심이다.

무겁다는 것은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는 뜻 아닐까?

서울 한강의 가운데로 흐르는 물을 강심수(江心水)라고 해서 특별히 중요하게 여겼다. 우중수(牛重水) 또는 우통수라고도 한다. 우중수 역시 무겁다는 부분에 방점이 찍혀 있다. 강원도 오대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비중이 높아서 다른 물과 섞이지 않고 한강의 가운데로 흐른다고 한다.

이 우중수, 강심수는 임금님이 즐겨 마시던 물이었다. 임금님 세수도 이 물로 하였다. 서울의 양반 집안에서도 한약을 달일 때는 하인을 시켜서 이 우중수를 길어다가 썼다. 그만큼 품질이 좋은 물로 평판이 자자했던 물이다.

그렇다면 우중수를 어떤 방식으로 떠 왔을까?

배를 타고 한강 가운데쯤으로 가서 두꺼운 뚜껑이 달린 옹기 또는 도자기를 강물 속으로 집어넣는다. 강물의 2~3m쯤 깊이로 옹기가 내려갔다고 여겨지면 옹기 위의 뚜껑에 연결된 줄을 잡아당긴다. 물론 옹기에도 줄이 연결되어 있고, 뚜껑에도 따로 줄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줄을 잡아당겨 뚜껑을 열어 우중수가 옹기 속에 들어가면 다시 뚜껑을 닫는다.

이런 방식으로 오대산에서 수백km 내려온 한강 물을 길어 갔다. 오대산 월정사 앞 금강연(金剛淵)이 이 우중수의 실질적인 발원지이다. 지난 장마에 갔을 때는 오대천이 범람하여 금강연의 물이 용출하는 장면을 못 보았다. 엊그제 오대산 문화포럼에 강연하러 가서 보니까 지름 3~4m, 깊이 5m 금강연에서 솟아오르는 물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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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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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91.html
kolaswqetsrq 11.03 01:34
◇ 티라노사우루스와 은행나무 그리고 고생대

◇ 티라노사우루스와 은행나무 그리고 고생대

흔해서 귀한지 모르는 게 있다. 발에 치이는 은행나무가 대표적이다. 은행나무는 화석식물의 대표 격이다. 대략 3억년 전에 등장했다. 티라노사우루스로 상징되는 공룡이 지구상에 등장하기 이전인 고생대 무렵이다. 지구과학 교과서에 빠지지 않는 삼엽충이 은행나무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생물이다. 삼엽충은 사라졌지만, 은행나무는 살아남았다.

그만큼 외로운 식물이 바로 은행나무다. 지구상에 생존한 유일한 종이다. 그의 형제자매는 모두 멸종했다. 생물분류체계에 따르면 은행나무는 식물계→은행나무문→은행나무강→은행나무목→은행나무과→은행나무속→은행나무종으로 분류된다. 유일한 종이다 보니 멸종위기종에도 올라있다.

세계적으로 은행나무가 자생하는 지역은 한국·중국·일본 정도다.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특유의 노란색 낙엽 때문이다. 독특한 색감은 사람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가로수로 간택돼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특별시는 1971년 4월 3일 서울을 상징하는 나무로 은행나무를 지정했다. 화석식물이다 보니 웬만한 병충해를 가볍게 이겨내는 것도 장점이다. 여느 식물과 마찬가지로 은행나무도 자신을 아낌없이 나눈다. 국내에선 고급 가구의 소재로 쓰인다. 나뭇결과 나이테 무늬가 촘촘해서다. 최근에는 은행나무 추출물로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딱 하나 불만이 있다면 꾸리꾸리한 악취를 내는 종자일 거다. 들여다보면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악취는 종자의 육질층에서 배출되는데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은행나무가 스스로 악취를 선택했다는 학설도 있다. 자손 번식을 위해선 공룡의 먹이가 돼야 했는데 이를 위해 악취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설명을 듣다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인다. 가로수와 호프집 안줏거리는 은행나무도 미처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최근에는 악취도 사라지고 있는데 지자체가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고 있어서다.

길을 걷다 은행의 악취가 풍겨오면 공룡을 떠올려 보자. 코끝이 한결 가벼워진다. 나아가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은행잎이 떨어지는 이 무렵은 무언가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좋은 계절이다. 사람이든 나무든 뭐든 좋다.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84.html
kolaswqetsrq 11.03 01:35
문방사우文房四友 - 종이, 붓, 먹, 벼루의 네 가지 문방구

문방사우(文房四友) - 종이, 붓, 먹, 벼루의 네 가지 문방구

글월 문(文/0) 방 방(戶/4) 넉 사(口/2) 벗 우(又/2)

文房(문방)은 학용품과 사무용품 등을 파는 문방구도 되지만 서적을 갖추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서재를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 선조들은 기품 있는 풍류를 즐겨 詩書畵(시서화)를 중요시했기에 문방에는 항상 글과 그림을 그릴 종이 붓 먹 벼루 등 四友(사우)를 갖추고 있었다. 이것을 한꺼번에 칭해 紙筆墨硯(지필묵연)이라 하기도 하고 文房四寶(문방사보)나 文房四侯(문방사후)로 높여 부르기도 한다. 사후는 이들을 의인화시켜 벼슬이름을 붙인 것인데 붓은 管城侯(관성후), 벼루는 墨侯(묵후), 종이는 好峙侯(호치후), 먹은 松滋侯(송자후)로 불렀다고 한다.

먼저 종이는 기록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다. 문자가 발명되고도 상대에 전달하려면 필수적인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돌이나 나무, 대나무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종이의 기원은 서양에서는 이집트 나일강 주변 지중해 연안에서 자생하는 파피루스(papyrus) 속을 말린 것을 친다. 동양에서는 중국 後漢(후한)시대의 환관 채륜이 105년 만든 종이를 蔡侯紙(채후지)로 부르며 오늘날 한지의 선행형태이자 완성형으로 보고 있다.

문자가 보급되고 바탕이 되는 종이가 있다면 그곳에 쓸 필기구가 필요하다. 붓을 말하는 筆(필)의 글자를 보면 원래의 붓을 뜻했던 聿(율)의 위에 대 竹(죽)이 있다. 대나무를 재료로 秦(진)나라 때 처음 蒙恬(몽염)이 만들었다고 한다. 竹簡(죽간)에다 금으로 만든 칼로 글을 새기는 것이 직업인 刀筆吏(도필리)로 漢(한)의 劉邦(유방)을 도왔던 蕭何(소하), 曹參(조참) 등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연유이기도 f하다. 그 뒤 짐승의 털을 추려서 모아 대나무 관에 고정시킨 붓으로 발전했다. 붓끝의 가는 털을 毫(호)라고 하는데 毫釐(호리)라 하면 매우 적은 분량을 가리킨다.

먹은 종이와 같이 후한시대에 오늘날과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五代十國(오대십국)의 後周(후주) 때 먹의 사용을 권장하여 李廷珪(이정규) 같은 유명한 墨工(묵공)을 배출했다. 고구려의 曇徵(담징)이 일본에 불법을 강론하고 610년 종이와 함께 먹도 전래하여 매우 귀중한 문방으로 여기고 있다.

대개 돌로 만드는 벼루는 瓦硯(와연), 陶硯(도연) 외에 보석까지 다양하고 형태도 직사각형에서 타원형까지 독특한 의장도 많다. 먹을 가는 부분이 硯堂(연당), 먹이 모이는 오목한 곳이 硯池(연지)다. 좋은 조건으로는 첫째 먹이 잘 갈리고 고유의 묵색이 잘 나타나는 것을 친다. 오늘날 서예 외에는 사우를 사용하는 일은 드물다. 먹과 벼루는 물론 종이와 펜도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는 시대에 옛날 물품이 되고 있다. 지필묵연의 기품 있는 문예가 한꺼번에 일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지 염려스럽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85.html
kolaswqetsrq 11.03 01:36
도문계살屠門戒殺 - 도살장에서 살생하지 말란다, 행해지지 않을 일을 훈계하다.

도문계살(屠門戒殺) - 도살장에서 살생하지 말란다, 행해지지 않을 일을 훈계하다.

죽일 도(尸/9) 문 문(門/0) 경계할 계(戈/3) 죽일 살(殳/7)

자신의 주제나 능력을 알지도 못하면서 허세를 부리거나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사람이 주변에 흔하다. 속담이나 성어가 많은 것도 분수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 ‘지붕의 호박도 못 따면서 하늘의 天桃(천도) 따겠단다’ 등의 속담이 잘 말해준다. 기술의 달인 魯班(노반)의 문 앞에서 도끼를 자랑한다는 班門弄斧(반문농부), 조그만 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수레에 막아서는 螳螂拒轍(당랑거철) 등의 성어는 모두 자기 역량을 모르고 위세를 부리는 夜郞自大(야랑자대)와 같다.

반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오래 기다려도 가능하지 않은 일도 있다. ‘바람벽에 돌 붙나 보지’란 말은 되지도 않을 일이거나 오래 견뎌 나가지 못할 일은 아예 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그 사람 인간되기는 백년하청’이라 말하면 사람 구실을 못할 사람이니 상종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짐승을 잡아 고기를 파는 거리(屠門)에서 살생을 하지 말라고 점잖게 훈계(戒殺)하면 생업을 포기하라는 소리이니 먹혀들 리가 없다.

부처를 논하는 屠門談佛(도문담불)도 어울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속담을 한역한 ‘旬五志(순오지)’에는 ‘개백정보고 살생하지 말란다’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비어를 등장시켰지만 더 앞서 조선 전기 문신 徐居正(서거정)의 ‘太平閑話滑稽傳(태평한화골계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로 등장한다.

내용을 간단히 보자. 서울서 경주로 내려간 젊은이가 관아의 한 요염한 창기에게 홀딱 반했다. 상경할 때 서럽게 우는 창기에게 보따리를 털어 주었으나 재물을 원하지 않는다며 앞니 빼어주기를 원했다. 할 수 없이 이를 빼어주고 온 젊은이는 이 창기가 다른 남자를 사귄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가 치민 젊은이는 하인을 시켜 앞니를 찾아오도록 시켰다. 하인이 찾아가니 창기가 비웃으며 말했다. ‘어리석은 어린놈이 백정에게 살생하지 말라고 타이르고, 창녀보고 예절을 갖추라고 하는 격이니 바보 아니면 망령든 놈이로다(癡孩子 屠門戒殺 娼家責禮 非愚則妄/ 치해자 도문계살 창가책례 비우즉망).’ 그러면서 자루를 던져 주니 그 속에는 치아가 가득했다.

자기만 사랑한다고 살살대던 창기가 스쳐간 남자에게서 하나씩 얻은 것이 한 자루였다. 기생에게 예가 없다고 꾸짖어봐야 효과 없다는 娼家責禮(창가책례)도 여기서 나왔다. 한 사람이 ‘앞니가 확 트이고 까까머리 되는 것은 장수의 조짐(齒豁頭童是壽徵/ 치활두동시수징)’이라 놀려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나라의 앞일을 항상 걱정하는 우리국회는 다른 정파의 의원들과 일치하는 의견이 거의 없다. 급박한 일이라 합의를 하고서도 돌아서면 자기 당의 이익만 따진다. 이런 국회에서 화합을 바라는 것은 어디에 훈계를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05.html
kolaswqetsrq 11.03 01:36
고명사의顧名思義 -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다.

고명사의(顧名思義) -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다.

돌아볼 고(頁/12) 이름 명(口/3) 생각 사(心/5) 옳을 의(羊/7)

이름을 남기려는 욕망은 누구나 갖고 있다. 이 난에도 더러운 이름이나 명예스런 이름이나 오래 간다는 遺臭萬年(유취만년), 流芳百世(유방백세)이 있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는 우리 속담과 똑같은 豹死留皮 人死留名(표사유피 인사유명/ 표범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란 격언도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전에 보람 있는 일을 해놓아 후세에 명예를 떨치는 것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어떤 일을 당하여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아닌지 돌이켜 보고(顧名), 또한 의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지 생각(思義)한다는 것이 이 성어다.

見危授命(견위수명)과 見利思義(견리사의)를 연상시키는 말이지만 孔子(공자)님 말씀은 아니고 王昶(왕창, 昶은 해길 창)이란 학자가 한 말이다. 그는 三國時代(삼국시대) 曹操(조조)의 아들 曹丕(조비)의 치세 때 태자의 스승으로 있었다.

왕창은 명예와 절조를 중시하여 아들이나 조카의 이름을 지을 때도 늘 그 의미를 생각했다. 하루는 아들과 조카를 불러 말했다. ‘너희들의 이름을 玄默沖虛(현묵충허)란 네 글자를 이름으로 삼은 것은 명예와 의리를 중시하게 하려고 한 것이니 어겨서는 안 된다(故以玄默沖虛爲名 欲使汝曹顧名思義 고이현묵충허위명 욕사여조고명사의 불감위월야). 무릇 모든 사물은 빨리 성공하면 빨리 망하고, 늦게 진출하면 좋게 끝나는 법이다.

아침에 피는 꽃은 저녁엔 시들고, 무성한 송백은 혹한에도 쇠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경솔하게 타인을 비방하거나 칭찬하는 것은 삼가야하며, 다른 사람이 자신을 비난하면 물러나 먼저 반성하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한 얘기가 맞으면 비난할 필요가 없고, 틀리면 자신에게 손해날 일이 없으니 보복할 필요도 없다不敢違越也/ 고 가르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27.html
kolaswqetsrq 11.03 01:37
절발역주截髮易酒 - 머리카락을 잘라 술과 바꾸다, 자녀에 대한 지극한 정성

절발역주(截髮易酒) - 머리카락을 잘라 술과 바꾸다, 자녀에 대한 지극한 정성

끊을 절(戈/10) 터럭 발(髟/5) 바꿀 역, 쉬울 이(曰/4) 술 주(酉/3)

동요에 나오는 대로 높고 높은 하늘보다, 넓고 넓은 바다보다 더 높고 넓은 것이 어머니 은혜다. 자식을 낳고 길러준 위에 바르게 커나가도록 자신은 모든 것을 희생하기에 한 사람의 훌륭한 어머니는 백 사람의 교사에 필적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감수한다. 여성들이 假髮(가발)을 위해 애지중지하던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 자녀의 학비로 보태던 때가 불과 수십 년 전이다. 눈물겨운 削髮母情(삭발모정)이다. 예로부터 곳곳에 전하던 이야기인데 유래가 있는 것으로는 陶侃之母(도간지모)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중국 東晉(동진)의 무장으로 유명한 陶侃(도간, 257 ~ 332, 侃은 강직할 간)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생을 많이 했으나 홀어머니 밑에서 반듯하게 자랐다. 또 음양지리에 능통하고 근면역행하여 주변의 신망을 얻었다. 40년간 將相(장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크고 작은 반란을 진압하여 왕실을 위해 충성을 바친 도간은 바로 陶淵明(도연명)의 증조부이기도 하다. 그가 젊었을 때 이야기에서 성어가 나왔다. 어머니 湛氏(담씨, 湛은 즐길 담)가 급작스럽게 찾아온 아들의 친구에 대접할 것이 없어 쩔쩔매다 머리카락을 잘라(截髮) 술을 바꿔(易酒) 와서 곤란한 지경을 벗어나게 했다.

唐(당)나라 房玄齡(방현령) 등이 엮은 ‘晉書(진서)’ 도간전에 내용이 실려 있다. 도간의 친구 范逵(범규, 逵는 길거리 규)는 먼저 孝廉科(효렴과)에 발탁된 인재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찾아왔다. ‘급작스러운데다 집이 가난하여 아무 음식도 대접할 것이 없었다. 도간의 어머니는 양 갈래 머리카락을 잘라내어 술과 안주로 바꿔 온 뒤 대접했다(時倉卒無以待賓 其母乃截髮得雙髟皮 以易酒肴/ 시창졸무이대빈 기모내절발득쌍표피 이역주효).’ 髟는 늘어질 표. 친구 모친의 정성에 감복한 범규는 뒷날 도간을 중앙에 추천하여 세상에 이름을 날리게 하는데 도움을 줬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무조건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慈母(자모)에 비해 賢母(현모)는 옳게 가르치는 어머니다. 잘못된 길로 빠질까 항상 노심초사하며 사랑의 매도 들 줄 아는 어머니다. 도간의 어머니는 좋은 친구를 만나도록, 또 그 친구에 체면 빠지지 않도록 정성을 기울였다. 오늘날 어머니는 귀한 자녀를 위해 희생을 하면서도 기죽을까봐 옳을 길로 가는 교육은 뒷전인 경우가 많다. 한두 명인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 피해를 주고 공정한 기회를 짓밟는 것을 배우고선 바르게 클 수가 없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87.html
kolaswqetsrq 11.03 01:37
백팔번뇌百八煩惱 – 사람이 지닌 108가지의 번뇌

백팔번뇌(百八煩惱) – 사람이 지닌 108가지의 번뇌

일백 백(白/1) 여덟 팔(八/0) 번거로울 번(火/9) 번뇌할 뇌(心/9)

심신을 시달리게 하는 괴로움이 煩惱(번뇌)다. 마음을 맑게 하여 涅槃(열반)에 이르게 하는 불교에서 그것을 방해하는 것을 번뇌라 했다. 고통을 주다, 괴롭히다, 아프게 하다, 고통을 야기하다, 괴로워하다 등을 의미하는 범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보통 사람에게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등이 끊이지 않겠지만 중생들의 한량없는 번뇌가 108가지나 된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108이란 숫자는 원래 많다는 뜻으로 씌었다고 하며 百八結(백팔결)이나 百八結業(백팔결업)이라고도 한다. 불교도가 아니라도 이 말이 친숙한 것이 기도할 때 백팔배를 드리고 108개의 구슬을 꿴 念珠(염주)로 기원한다. ‘百八煩惱(백팔번뇌)’는 崔南善(최남선)이 1925년 발행한 시조집 이름이기도 하다.

108이란 숫자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불교의 교리 발달과 함께 그 산출법이 여러 가지로 생겨났는데 대체적으로 많이 알려진 방법을 보자. 우리 몸에는 대상을 깨닫는 여섯 가지 작용이 있는데 이것의 근원이 눈, 귀, 코, 혀, 몸, 뜻 등의 六根(육근)이다.

눈으로 보는 眼識(안식), 귀로 듣는 耳識(이식), 코로 냄새 맡는 鼻識(비식), 혀로 맛보아 아는 舌識(설식), 몸으로 느끼는 身識(신식), 그리고 마음으로 느끼는 意識(의식)이 그것이고 六識(육식)이라 한다. 이들이 감각을 느낄 대 각각 좋거나 나쁘거나 좋지도 싫지도 않은 세 가지 인식 작용을 하게 되는데 계산하면 6×3 하여 18가지가 된다. 이 각각의 것을 탐하는지 탐하지 않는지에 따라 갈라지므로 18×2 하면 36가지가 된다. 이것을 과거, 현재, 미래 즉 前生(전생)과 今生(금생), 來生(내생)의 3세계를 곱하면 36×3 하여 모두 108이 나온다.

불교에서 어떻게 수행을 해서 번뇌를 원천적으로 제거할 것인가를, 사고의 영역과 실천의 영역으로 나누어 산출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번뇌를 모두 안다고 하여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괴로움이 많은데 번뇌를 더할 뿐이다.

다만 이것은 인간의 번뇌를 108종으로 세분한 것에 불과하고 근원은 하나로 모아진다고 본다. 그것은 모든 번뇌가 본래의 자기인 一心(일심)을 잃는데서 오는 것이므로 무슨 일에서나 본심을 잃지 않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일시 유혹에 넘어가 본심을 잃더라도 빨리 평정을 되찾는 것이 번뇌를 벗어나는 길이 될 수 있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8.html
kolaswqetsrq 11.03 01:38
선유자익善游者溺 - 헤엄 잘 치는 사람이 물에 잘 빠진다.

선유자익(善游者溺) - 헤엄 잘 치는 사람이 물에 잘 빠진다.

착할 선(口/9) 헤엄칠 유(氵/9) 놈 자(耂/5) 빠질 닉(氵/10)

무슨 일에서나 처음 배운 초보자는 조심스럽다. 자신의 실력을 알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남에게 과시하고 싶어진다. 이럴 때 자만하면 큰 화가 기다린다. ‘헤엄 잘 치는 놈 물에 빠져 죽고 나무에 잘 오르는 놈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는 우리 속담과 꼭 맞아 떨어진다.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가 떨어질 때가 있듯, 헤엄 잘 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물에 빠질 수가 있음을 경계한 말이다. 아무리 익숙하고 잘하는 사람이라도 간혹 실수할 때가 있으니 실력이 늘수록 겸손하라고 이 성어는 가르친다, 善游者溺 善騎者墮(선유자익 선기자타)라고 대구까지 합쳐 명언으로 서예에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재주만 믿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老子(노자)의 제자인 文子(문자)의 ‘通玄眞經(통현진경)’에 나타난다고 하고 ‘韓非子(한비자)‘의 難勢(난세)편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제일 자주 인용되는 것은 중국 前漢(전한)의 淮南王(회남왕) 劉安(유안)이 빈객과 方術家(방술가) 수천 명을 모아서 편찬한 책 ’淮南子(회남자)‘의 구절이다.

 ‘대체로 헤엄 잘 치는 사람이 물에 빠지고, 말 잘 타는 사람이 말에서 떨어지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즐기다가 그렇게 되는 것으로서 도리어 화를 자초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해를 입고 이익을 다투는 사람은 반드시 궁핍해진다(夫善游者溺 善騎者墮 各以其所好 反自爲禍 是故好事者 未嘗不中 爭利者 未嘗不窮也/ 부선유자익 선기자타 각이기소호 반자위화 시고호사자 미상부중 쟁리자 미상불궁야).

” 제일 첫머리 原道訓(원도훈)에서는 善遊者溺(선유자익)으로 나와 있는데 遊(놀 유)는 논다는 뜻으로는 游(헤엄칠 유)와 통용되지만 헤엄친다는 뜻이 잘 통하므로 游로 쓰는 것이 옳겠다. 또 착할 善(선)자가 잘한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는 것은 善戰(선전)이 잘 싸움, 善防(선방)이 잘 막아냄 등에서 용례를 볼 수 있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78.html
kolaswqetsrq 11.03 01:39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 - 복숭아와 오얏이 가득하다, 우수한 문하생이 많다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 - 복숭아와 오얏이 가득하다, 우수한 문하생이 많다

복숭아 도(木/6) 오얏 리(木/3) 찰 만(氵/11) 하늘 천(大/1) 아래 하(一/2)

우리나라 제2의 大姓(대성)인 李(이)가 ‘오얏 리‘인 줄은 모두 안다. 오얏이 무엇인지는 그만큼 알지 못하고 넘어간다. 오얏은 자두의 옛말이다. 자주색 복숭아 紫桃(자도)에서 나온 말로 살구보다 조금 크고 껍질 표면은 털이 없이 매끈한데다 맛은 시큼하며 달콤하여 대접받은 과일이다. 오얏나무 아래선 군자라도 열매에 욕심을 내는지, 의심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이란 성어는 유명하다. 복숭아와 오얏이란 桃李(도리)는 꽃이나 열매가 좋아 그냥 있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 그 밑으로는 길이 저절로 생긴다는 桃李不言下自成蹊(도리불언하자성혜)란 명언도 남겼다.

인재를 천거하거나 과거 등을 통해 발탁한 어진 인물을 복숭아와 오얏꽃에 비유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그 나무 아래로 모여들기 때문에 후진을 교육하는 일, 거기서 나아가 사제지간의 뜻도 생겼다. 복숭아와 오얏(桃李)이 천하에 가득하다(滿天下)는 이 말은 재주나 풍모가 뛰어난 문하생이 많은 것을 나타냈다. 桃李滿門(도리만문), 桃李門前(도리문전), 滿門桃李(만문도리)라 써도 같고,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제자를 가리킬 때는 門墻桃李(문장도리)라 했다.

이 성어가 더욱 잘 알려지게 된 것은 唐(당)나라의 명신 狄仁傑(적인걸, 630~700)의 고사에서다. 그는 則天武后(측천무후)가 세운 後周(후주)의 재상이었는데 인재를 발탁하여 당 왕조의 부활에 공이 컸다. 최고의 재판관인 大理丞(대리승)을 맡았을 때는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여 주위의 칭송이 자자했다. 어느 때 측천무후가 尙書郞(상서랑)이란 자리에 인물을 추천하라고 하자 아들 光嗣(광사)를 내세웠다. 처음 의혹을 샀지만 아들이 능력을 발휘하여 더 큰 믿음을 얻었다. 이후 적인걸이 추천한 사람들이 실권을 장악하게 됐다. 사람들이 말했다. ‘천하의 인재들이 모두 공의 문하에 있구려(天下桃李 悉在公門矣/ 천하도리 실재공문의).’ 悉은 다 실. ‘資治通鑑(자치통감)’ 唐紀(당기)에 나온다.

덕망이 높고 학식이 뛰어난 스승 아래에는 제자들이 구름같이 모인다. 지역마다 큰 학자를 중심으로 학파를 이루기도 한다. 그 제자들이 가르침을 받아 더 큰 학자가 되기도 한다. 무조건 스승을 답습하지 않고 발전시킨 때문이다. 오늘날 이런 학파를 이끄는 학자들은 대학과 대학원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간간이 제자들을 노예처럼 혹사하는 일이 벌어져 학식은 몰라도 덕망까지 갖춘 스승이 드물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인재가 계속하여 배출될 길을 막는 행위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77.html
kolaswqetsrq 11.03 01:39
부창부수夫唱婦隨 -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잘 따름

부창부수(夫唱婦隨) -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잘 따름

지아비 부(大/1) 부를 창(口/8) 며느리 부(女/8) 따를 수(阝/13)

부부는 二身同體(이신동체)라고 했다. 두 사람이 합쳐 1 1=2가 아니라 1 1=1이 되는 것은 각각 개성이 반만 남게 되기 때문인데 그것이 사랑이라고 一石(일석)이 풀이한 적이 있다. 속담에 ‘내외간 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것이 있다. 물을 칼로 아무리 베어도 흔적이 남지 않고 합쳐지듯이 화합하기 쉬움을 비유한다. 한 몸이 물 베기라고 해서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그래서 부부간의 화합을 바라는 성어가 유난히 많다. 대표적인 것을 든다면 琴瑟相和(금슬상화), 百年偕老(백년해로), 比翼連理(비익연리), 鴛鴦之契(원앙지계), 偕老同穴(해로동혈) 등이다.

지아비가 노래 부르면(夫唱) 아내는 따라 부른다(婦隨)는 이 성어는 부인을 자기의 의견에 따르도록 윽박지르는 남편이 즐겨 내세우는데 사용한다. 하지만 남편이 옳은 의견을 낼 때 아내가 그 뜻에 잘 따라 화합을 이룬다는 뜻이지 男尊女卑(남존여비), 바람을 피우거나 턱없는 뜻에도 잘 따른다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중국 周(주)나라 때의 사람 尹喜(윤희)가 지은 ‘關尹子(관윤자)’에서 처음 유래했다. 윤희는 中原(중원)과 關中(관중)을 잇는 험난한 요새 函谷關(함곡관)을 지키는 관리였는데 그곳을 지나던 老子(노자)에게서 道德經(도덕경)을 받았다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三極篇(삼극편)에 실린 부분을 보자. ‘천하의 이치는 남편이 노래 부르면 아내가 따르고, 수소가 달리면 암소가 뒤쫓으며, 새의 수컷이 울면 암컷이 응한다(天下之理 夫者倡 婦者隨 牡者馳 牝者逐 雄者鳴 雌者應/ 천하지리 부자창 부자수 모자치 빈자축 웅자명 자자응).’ 이러한 까닭으로 성인이 언행을 정하고 현인이 그것을 바로잡는다고 했다. 원문의 倡(창)은 광대, 노래 부른다는 뜻 외에 가무, 연극까지 더 뜻이 넓다. 암소가 내키지 않을 때는 수소를 따라가지 않듯 남편이 끌어도 일방적이지는 않고 사이좋게 잘 화합해야 한다는 뜻을 가졌다.

남남이었던 부부가 부부로 만나 같이 늙으며 같은 무덤에 묻히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쳤다는 偕老同穴(해로동혈)은 점차 옛 이야기가 되는듯하다. 자식 때문에 산다는 부부가 결혼 시킨 뒤에는 황혼이혼을 하는 부부가 큰 폭으로 는다고 하니 말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좋은 뜻은 따르고 서로 밀어준다면 노후가 더 행복할 것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31.html
kolaswqetsrq 11.03 01:40
주유열국周遊列國 - 두루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목적 없이 떠돌다.

주유열국(周遊列國) - 두루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목적 없이 떠돌다.

두루 주(口/5) 놀 유(辶/9) 벌릴 렬(刂/4) 나라 국(囗/8)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周遊(주유)다. 큰 부담 없이, 꼭 해야 한다는 목적 없이 놀러 다닌다면 늘어진 팔자겠다. 온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으면 周遊天下(주유천하)다. 동생인 世宗(세종)에 왕위를 물려주려 서민으로 가장하고 세상을 돌아다닌 讓寧大君(양녕대군)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됐다. 풍자시의 대가 김삿갓(金笠/ 김립)이 돈의 기능을 절묘하게 노래한 것에도 등장한다. ‘천하를 두루 돌아다녀도 누구나 너를 환영하고(周遊天下皆歡迎/ 주유천하개환영), 나라도 가문도 흥하게 하니 너의 힘이 가볍지 않도다(興國興家勢不輕/ 흥국흥가세불경).’

목적 없이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 말고 여러 나라(列國)를 돌아다니게 되면 별 소득 없이 떠돈 것은 맞지만 孔子(공자)에게서 나온 성어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대학자이자 사상가인 공자는 자신이 이상으로 하는 도덕주의를 현실정치에 접목하기 갖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모국 魯(노)나라에서 미관말직을 지내다 56세가 되어 형벌을 관장하는 大司寇(대사구)가 되었다. 상인들은 폭리를 취하지 않고 남의 물건이 땅에 떨어져도 줍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나라가 안정됐다. 노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이웃 나라에서 군주에게 뇌물을 주고 공자를 퇴진시켰다.

실망한 공자는 제자들을 이끌고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펼칠 수 있는 나라를 찾기 위해 13년 동안이나 헤맸다. 공자의 주유는 순탄하지 못했다. 공자가 楚(초)나라에 초빙되어 갈 때 陳(진)과 蔡(채)나라의 대부들이 길목을 막고 사람들을 풀어 포위했다. 자신들이 행했던 병폐들이 드러나 위험해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식량이 떨어지고 따르는 사람이 병에 들기도 한 陳蔡之厄(진채지액)의 봉변이다. 鄭(정)나라에선 제자들과 길이 어긋나 모두 공자를 찾아 나섰는데 한 사람이 추췌한 모습을 보고 ‘상가의 개(喪家之狗)’라고 표현하는 수모도 당했다.

공자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노나라로 다시 돌아와 후진 교육에 힘쓰게 됐다. 원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주유는 공자도 실패할 정도로 어렵다. 단지 구경만을 위한, 머리를 식히기 위한 여행은 즐겁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98.html
kolaswqetsrq 11.03 01:40
안불망위安不忘危 - 편안한 중에서도 위험을 잊지 않는다.

안불망위(安不忘危) - 편안한 중에서도 위험을 잊지 않는다.

편안 안(宀/3) 아닐 불(一/3) 잊을 망(心/3) 위태할 위(卩/4)

편안한 가운데서도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위태로움을 잊지 않는다는 좋은 뜻의 성어다. 똑 같은 의미의 居安思危(거안사위)는 태평성대가 계속될 때 장차 있을 수 있는 위험을 생각하라는 有備無患(유비무환)의 첫 단계라 했다. 이 말로 연상되는 것이 安重根(안중근)의사의 유묵이다. 見利思義(견리사의), 見危授命(견위수명)이다. 의미는 약간 달라 이익을 보면 의리를 먼저 생각하고, 위급함을 보면 목숨을 던진다는 孔子(공자) 말씀이다.

위기의식은 위험이 닥쳐서 알면 이미 늦고 항상 안락할 때 미리 대비해야 한다. 이처럼 간단한 말이

중국 고대 夏殷周(하은주) 때부터의 ‘周易(주역)’에서 유래했다니 의외다. 유학 五經(오경)의 하나로 처세상의 지혜이며 우주론적 철학이라는 평가를 받아 易經(역경)이라고도 한다. 또한 孔子(공자)가 얼마나 탐독했던지 가죽으로 엮은 끈이 여러 번 끊어졌을 정도라는 韋編三絶(위편삼절)의 고사가 나온 책으로도 유명하다. 공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주역을 체계적으로 해석하여 十翼(십익)도 남겼다고 한다.

彖傳(단전, 彖은 판단할 단), 象傳(상전) 등 7종 10편으로 이루어진 십익 중에서 가장 핵심사상이라는

繫辭傳(계사전) 하편에 이 말이 나온다. 공자가 한 말로 지금 위태한 자는 경계하는 마음이 없었던 자이고, 멸망한 자는 항상 존속할 것으로만 생각했다며 이어진다. ‘군자는 태평할 때에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순탄할 때에도 멸망을 잊지 않으며, 잘 다스려질 때에도 혼란을 잊지 않는다(君子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군자안이불망위 존이불망망 치이불망란).’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과 가정,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고 했다.

개인이나 단체나 위기에 대비하여 스스로 경계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나라를 수호하는 국군장병들이 자나 깨나 새겨야 할 말이다. 남북이 지금은 많이 호전되어 이전과 같은 대치상태가 없어졌다고 해도 언제 다시 상황이 바뀔지 모른다. 만약을 대비하는 것이 안보이고 그것은 통일이 되어서도 나쁠 것이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67.html
kolaswqetsrq 11.03 01:41
◇ 故송재호, 반세기 연기인생 남기고 떠난 국민 아버지..애도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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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송재호, 반세기 연기인생 남기고 떠난 국민 아버지..애도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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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아버지’ 고(故) 송재호가 반세기 연기 인생을 남기고 별세했다. 향년 83세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따르면 고 송재호는 지병으로 1년 이상 투병하다 지난 7일 오후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중에게는 친근한 이미지의 배우로 ‘국민 아버지’라 불리며 꾸준히 사랑받았던 고 송재호. 그의 별세 소식에 대중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평안남도 출신으로 1959년 KBS 부산방송총국 성우로 데뷔한 한 고 송재호는 1964년 영화 ‘학사주점’을 통해 배우로 데뷔, 반세기를 대중과 함께한 배우다.

1968년 KBS 특채 탤런트로 선발된 고 송재호는 200편 넘는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쳤다. 대표작으로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드라마 ‘보통사람들’, ‘열풍’, ‘부모님 전상서’ 등이 있다.

특히 고 송재호는 지난해 영화 ‘질투의 역사’, ‘자전차왕 엄복동’에도 출연하는 등 병세가 깊어지기 전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갈 정도로 연기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다.

고 송재호는 오랜 연기 생활을 하며 반항아 역할부터 인자한 아버지 역까지 다양한 색깔의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고인은 연기자로 활동한 것 뿐 아니라 979년 서울용호구락부 소속 사격연맹에 선수로 등록됐고, 국제사격연맹 심판 자격등도 갖춰 1986년 아시안게임 사격종목 국제심판, 1988년 서울 올림픽 사격종목 보조심판으로도 활동했다.

또한 99하남국제환경박람회조직위원회 홍보위원으로 활동했고 최근까지 야생생물관리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홀트아동복지회 홍보대사, 문화재사랑 어린이 창작동요제 홍보대사 지냈다.

대중과 오랜 시간 친숙한 배우였던 고 송재호. 그의 별세 소식에 대중은 “작은 거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익숙한 대한민국의 아버지, 이웃 아저씨 같은 송재호 편히 쉬길”, “좋은 연기 감사했다”, “좋은 곳으로 가시길” 등 추모를 이어가고 있다.

-OSEN-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79.html
kolaswqetsrq 11.03 01:42
◇ 코로나 청정 강원도 인구가 는다?

◇ 코로나 청정 강원도 인구가 는다?

민원홍씨 가족은 2015년 경기도 용인시에서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으로 이사했다. 경기도에 있는 중소기업에서 기계 설계 엔지니어로 한창 일하던 시절이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초등학생 아들은 모르는 사이에 훌쩍 커버렸다. 더 늦기 전에 가족과 여유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강원도로 이주한 것이다. 현재 민씨는 ‘토종 다래’ 농사를 짓는다. 민씨는 “수입은 과거의 10분의 1 수준이지만, 가족이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정말 만족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지역도 있다. 이 가운데 하나가 남한 최북단에 있는 강원도다. 통계청 월별 인구 동향에 따르면 강원도 인구는 2016년 155만1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감소했다. 올해 4월에는 153만8000여 명이었다. 하지만 5월부터 넉 달 연속 인구가 소폭 늘어나면서 8월에는 154만1000명을 기록했다. 강원도 18시군별로 보면 춘천·태백·철원·양구를 제외한 14시군이 올해 5월부터 7월 사이 인구가 조금이라도 늘어났다.

이 현상은 외지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 인구가 늘어나려면 자연 증가(출생자가 사망자보다 많음)나 사회 증가(전출자가 전입자보다 많음)가 일어나야 한다. 강원도는 사회 증가 덕분이다. 올해 들어 7월까지 강원도로 전입한 인구는 4만9192명이지만, 강원도를 빠져나간 인구는 4만8264명이다. 928명이 순유입해 인구 증가를 이끌었다.

외지인들이 강원도로 이주하는 이유로는 자연환경이 꼽힌다. 강원도 인구 담당 황삼 사무관은 “미세 먼지 걱정과 코로나19 감염 우려 등이 커지는 터라 피곤했던 도시 삶에서 벗어나겠다는 중장년층이 강원도로 이주하는 추세”라고 했다. 평창올림픽을 거치면서 원주, 강릉을 비롯해 횡성, 평창 등 강원도 주요 시군으로 KTX가 운행하는 등 교통 사정이 나아진 것도 강원도 인구 증가에 한몫했다.

이와 함께 인구 감소로 지역이 쇠락하는 것을 막으려는 지자체들의 노력도 어느 정도 빛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부터 강원도는 인구 증가 정책의 하나로 강원도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에게 부모 소득과는 관계없이 4년 동안 월 30만원씩 총 1440만원을 지급한다. 속초시 인구 담당 김연설 주무관은 “속초뿐만 아니라 고성·양양·인제에 사는 군인들은 이전에는 전입신고를 하지 않고 돌아갔지만, 수당을 주다 보니 ‘전입신고를 해서 강원도민이 될 수 있느냐’는 문의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내 18시군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이 증가한 원주시는 공공 기관과 기업들이 옮겨 간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2018년 9월 인구가 34만6000여 명이었는데, 2020년 9월에는 35만3000여 명으로 7000여 명 늘었다. 2013년 서울에서 원주로 옮겨 간 산림항공본부 천우성(35) 주무관은 “교통이 발달하면서 서울에서 1~2시간이면 갈 수 있고, 집값도 싸기 때문에 원주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81.html
kolaswqetsrq 11.03 01:43
◇ 팍스 재패니즈가 아니라 ‘팩스 재패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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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팍스 재패니즈가 아니라 ‘팩스 재패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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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겪은 일이다. 조선일보 도쿄지국이 있는 건물에서 코로나 환자가 잇달아 발생했다. 바로 위층 민간 기업 직원 2명의 확진 판정. 하는 수 없이 자택 근무를 시작했다. 집에서 일하는 도중 일본의 A 의원과 인터뷰할 일이 생겼다. A 의원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명함을 교환했던 비서관이 “질문지를 팩스로 보내달라”고 했다.

이런 답변은 도쿄에서 근무하면서 일상적으로 겪어왔기에 놀라지 않았다. 다만, 집에 프린터와 팩스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정중한 일본어로 부탁했다. “죄송하오나 코로나 때문에 자택 근무 중이므로 이메일로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비서관은 친절했으나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편의점에 가서 팩스로 보내주세요.” 설득이 통하지 않았다. 잠시 궁리한 끝에 국제 팩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한국의 후배 기자와 업무직 사원에게 각각 연락해 사정을 설명했다. 서울로 이메일 발송→편집국에서 질문지 인쇄→도쿄로 팩스 발송하는 3단계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A 의원 측은 둘 중 어느 것도 수신되지 않았다며 그제야 이메일을 알려줬다. 이메일을 그쪽에 보내고 답신을 받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간단하게 끝날 일이 질문지가 동해(東海)를 네 차례 오간 후에야 완료됐다.

일본에서의 특파원 생활은 한국에서는 사라져 가는 팩스와의 동행(同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관공서에 연락하면 대부분 팩스로 요망 사항을 보내 달라고 한다. 국회의원 사무실은 말할 것도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 26일 자 사설에 일본 공무원들의 86%가 의원들과의 업무는 팩스로 한다는 조사가 실렸다. 그만큼 나가타초(永田町·일본 국회가 있는 곳)엔 팩스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일 외무성이 리셉션을 개최할 때도 마찬가지다. 도쿄 주재 외교관과 특파원이 팩스로 답신하는 것이 매뉴얼이다. “이메일로 하면 안 되겠느냐”고 문의했다가 역시 친절한 목소리의 공무원에게 거절당했다.

일본의 팩스 문화는 올해 코로나 사태로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도쿄도(都)가 팩스 2대로 1400만 도민의 건강 상태를 취합하는 것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도내 31개 보건소로부터 팩스로 코로나 감염자를 보고받다가 ‘쨈’이 걸리는 바람에 감염자 누락, 중복 집계 현상이 발생했다.

일본은 지구에서 3억km 떨어진 소행성에 탐사선을 보낼 정도의 과학기술력을 가진 나라다. 달에 우주비행사를 보내는 미국의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엔 핵심 파트너로 참가한다. 이런 나라에서 팩스를 고집하는 부조화(不調和)에는 현기증이 난다. 일본인들은 ‘팍스 재패니즈(Pax Japanese·일본에 의한 평화)’를 꿈꿔왔는데 그 대신에 팩스를 애용하는 ‘팩스(Fax) 재패니즈’ 제국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 같다.

팩스는 보내는 사람은 힘들지만, 수신인은 즉각 문서를 집어서 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아날로그 시대의 종적(縱的) 관계를 상징하는 물건으로 꼽힌다. 일본 사회는 여전히 자민당이라는 거대 정당과 관(官)이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에게만 편리한 팩스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 사회는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하다’는 의미의 강약약강(强弱弱强) 문화가 잔존해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것들이 을(乙)의 처지를 배려하지 않는 팩스 문화로 나타나는 것 아닐까.

마침 지난달 취임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디지털 개혁상 신설, 관공서의 도장 없애기와 함께 종적 관계 청산을 중요한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부디 그의 개혁이 결실을 거둬 구(舊)시대 문화를 개선하고 한국에도 새로운 자극을 주기를 기대한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53.html
kolaswqetsrq 11.03 01:43
◇ 면역력 떨어졌을 때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들

◇ 면역력 떨어졌을 때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면역력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우리 몸의 면역 기능이 잘 작동해야 바이러스에 잘 감염되지 않고 감염되더라도 쉽게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는 환절기에는 면역력이 떨어져 병에 걸리기 쉽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우리 몸이 보내는 몇가지 신호들이 있다. 미리 알아뒀다가 이런 신호들이 나타나면 건강 관리에 더욱 유의해야 한다.

면역력이 약해지면 입 병(구내염)이 잘 난다.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가 몸에 쉽게 침투·번성하기 때문이다. 특히 입술, 입 안, 혀, 볼 안쪽 등 구강 내에 하얗게 움푹 패이는 염증성 병변이 잘 나타나게 된다.

헤르페스바이러스 보유자의 경우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입술 부근에 작은 수포가 생기는 헤르페스성 구내염도 잘 걸리게 된다. 여성의 경우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질염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대상포진도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잘 나타나는 신호다. 대상포진은 몸에 잠복해 있던 수두바이러스가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를 틈타 활동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대상포진 초기에는 발열, 오한, 근육통 등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다가 몸에 붉은 띠를 형성하며 물집과 피부 발진이 나타나게 된다. 피부가 빨개지고 누르면 아픈 봉와직염도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잘 걸리는 질환이다.

음식을 먹은 뒤 복통·설사 증상이 지속돼도 면역력 저하를 의심해볼 수 있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위장관으로 들어온 바이러스 세균을 제거하는 기능이 떨어지고 장내 유해균이 많아져 내부 염증을 유발할 위험이 커지게 된다. 위장 기능이 좋지 않아도 면역 기능은 떨어질 수 있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감기도 잘 걸린다. 기후의 변화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지면서 감기 바이러스에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보통 감기에 걸리면 미열, 콧물, 기침 등의 증상이 3~4일 정도 지속되다가 사라지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면 증상이 오래갈 수 있다.

이렇게 우리 몸이 면역력이 떨어졌다는 신호를 보내면 건강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요즘같이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상황에서는 면역력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

면역력을 강화하는 방법은 건강을 위한 상식적인 노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몸에 좋은 생활 습관을 실천하고 나쁜 것은 피하면 된다.

우리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요인은 수면부족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주일에 수면 시간이 2~3시간만 모자라도 인체의 면역 시스템은 현저하게 약해진다. 잠이 부족하면 감기에 잘 걸리거나 염증이 잘 생기는 것도 면역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7시간 이상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좋다.

운동도 면역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활동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과도하지 않은 운동은 노인의 상기도 감염을 29% 가량 감소시켰다. 하지만 과도한 운동은 오히려 면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림프구의 기능과 수를 감소시키고 감염성 질환을 오래 앓게 할 수도 있다. 피로하지 않을 정도의 꾸준한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영양 결핍이나 불균형한 영양 섭취도 면역력 약화의 원인이 된다. 단백질이 부족한 식사는 세균의 침입에 대해 피부 장벽 기능을 약화시키고 림프구 수를 떨어뜨린다. 또 비타민 A, B, C, D, E와 셀레늄, 아연 등 미세 영양소들이 면역과 관련성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영양이 균형을 이루는 식단을 규칙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면역계는 정서적 상태에도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성 스트레스는 면역세포의 하나인 NK세포의 활성도를 떨어뜨리고 림프구의 증식을 억제한다. 또 항체 생성 능력을 떨어뜨리고 여러 면역 조절 물질을 변형시킬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편안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이 면역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뉴시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80.html
kolaswqetsrq 11.03 01:44
◇ 이렇게 살면 수명 최대 15% 늘어.. 미국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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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살면 수명 최대 15% 늘어.. 미국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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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적인 생각을 하면 오래 살 가능성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보스턴대학 연구팀은 성인 약 7만 명을 대상으로 생활 및 건강습관을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시행했고 10~30년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낙관적인 생각을 자주 하는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평균 11~15% 수명이 더 길었다. 낙관적인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1.5배 높았고, 낙관적인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1.7배 높았다.

연구팀은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삶에 관한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실천하는 생활습관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연구를 진행한 리위나 리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인생에 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오래 살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위스콘신대학 매디슨캠퍼스의 신경정신과 교수 리차드 데이비슨은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갖기 위해선 명상이 도움이 된다”며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몇 분이라도 꾸준히 명상하면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Proceedings’에 게재됐고 미국 방송사 ‘CNN’이 최근 보도했다.

-헬스조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5.html
kolaswqetsrq 11.03 01:44
◇ ‘다인종 국가’ 다문화 국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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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인종 국가’ 다문화 국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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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이 ‘다문화 군대’로 불릴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2010년부터 다문화 가정 출신 청년들의 군 입대가 시작됐는데 2028년이면 한 해 입대자가 8000명가량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민 중 외국인 비율이 10%가 넘는 안산시에는 필리핀, 캄보디아 출신 경찰이 근무하고 있다. 축구 야구 배구 농구 등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는 100명을 넘었다. 필리핀 출신 국회의원, 키르기스스탄 출신 구의원이 나왔고, 농촌으로 시집온 여성이 이장과 부녀회장을 맡는 곳도 여러 곳이다.

국내 거주 외국인이 지난해 말 기준 약 222만 명으로 인구 대비 4.3%를 차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문화·다인종 국가’ 기준 5%를 4년 후면 넘고 2040년에는 7%로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국내 거주 외국인은 2009년 100만 명을 넘은 데 이어 2018년 200만 명을 돌파했다. 조선족 동포 등 중국 출신이 42.6%로 가장 많고 베트남 태국 미국 순이다. 한국 국적 취득자도 18만5728명으로 8.4%에 달한다.

외국인을 대거 받아들여 인구 구조가 바뀌는 것은 사회와 국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근로자 취업 기회를 넓히고 결혼·직업으로 국적을 부여하는 등 문을 활짝 연 것은 내국인 ‘인구 절벽’의 영향이 크다. 올 3월부터 국내 출생 신생아 수가 사망자 수보다 적어졌고, 내년에는 처음으로 절대인구가 2만 명가량 줄어든다. 합계출산율은 이미 2018년부터 ‘0명’대로 떨어졌다. 외국인 유입이 늘어도 내국인 감소를 채우기는 부족해 2029년부터는 한국 내 거주자 총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출산 장려와 양육 지원 등 대책에도 ‘백약이 무효’인 듯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외국인 증가는 노동력 공급과 사회 유지는 물론이고 다양성과 창의성을 높이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물론 비(非)백인 비율이 37%인 미국에서 종종 인종 갈등이 불거지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프랑스에서도 인종·문화 간 갈등으로 인한 비극이 잇따르는 걸 보면 다인종 국가화의 심화는 예기치 못한 문제들도 야기할 수 있다.

전 세계 176개국에 720만 명의 한국인이 진출해 살고 있는 것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차별이나 불편함이 없도록 함께 지내야 할 이웃들이다. 단순히 외국인 비율이 높아지는 것을 넘어서 다문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의식과 제도, 문화가 성숙해야 한다. 다가올 다문화 다인종 시대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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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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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69.html
kolaswqetsrq 11.03 01:45
◇ 남해 시골학교의 특별한 기적 “학교는 집, 학생은 가족”

◇ 남해 시골학교의 특별한 기적 “학교는 집, 학생은 가족”

학생과 교사가 24시간 학교에서 함께 먹고, 자고, 공부하는 학교가 있다. 서로를 “부모와 자식 같은 사이”라고 한다. 폐교 위기에서 공교육 모범학교로 변신한 경남 남해군의 남해해성고등학교다.

지난달 27일 남해해성고등학교 1학년 95명은 문화유산 답사에 나섰다. 남해해성고는 학생 80%를 전국 각지에서 모집한다. 전원 기숙사에서 지내기 때문에 정작 남해를 둘러볼 기회가 많지 않다. 이날의 목적지는 남해바래길 13코스(7.2km)였다. 노량해전 후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처음 육지에 닿은 관음포 이충무공유적에서부터 충무공의 가묘가 있는 충렬사를 잇는다. 학생들은 문화해설사의 역사 해설을 들으며 유적지를 둘러봤다. 서울 출신의 박지연 학생은 “학교 인근 역사 현장을 실제로 다녀보니 더 쉽게 알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해해성고는 10여년 전만 해도 폐교를 걱정하던 시골 학교였다. 여느 시골 학교와 마찬가지로 점차 학생이 빠져나가면서 100여명으로 주저앉았다. 반전은 2004년 농어촌 자율학교로 지정되면서 시작됐다. 학생 전국선발권과 교육과정 편성권을 갖게 된 것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2006년 이중명 아난티그룹 회장의 학교 재단 이사장 취임이었다. 아난티그룹은 남해해성고 골프장을 운영하면서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하영제 당시 남해군수가 “폐교 위기의 남해해성고를 도와달라”며 이 회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남해해성고는 골프장에서 5분 거리다. 이 회장은 “학생이 없는 지역은 미래도 없다”며 학교를 인수하기로 했다.

이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지원 사격에 나섰다. 우선 우수 학생 유치에 힘을 실었다. ‘SKY 진학 시 장학금 지원’도 초기에 내걸었다. ‘학교가 제2의 집이 되어주자’며 기숙사도 지었다. 시골 학교 부임을 꺼리는 교사까지도 불러 모으기 위한 조치였다. 학생은 물론 교감과 교사 9명도 기숙사에서 머물며 학생들과 동고동락했다. 서울 휘문고에서 34년간 몸담은 신종찬 교장도 이 회장의 스카우트로 남해해성고에 오게 됐다.

교사와 학생이 부모와 자식처럼 돌봐주는 ‘해성멘토링’은 남해해성고의 독특한 제도다. 교사 1명이 학년당 3명씩 총 9명의 학생과 연결된다. 1학년이 막내, 2학년은 둘째, 3학년은 장남·장녀, 교사가 부모가 된다. 이렇게 3년을 어울려 지낸다. 학습 지도에서부터 봉사 활동, 고민 상담, 생일 파티, 학부모 초청 체육대회도 함께한다. 올해 졸업한 누나에 이어 남해해성고에 입학한 김건희 학생은 “코로나로 등교가 늦어져 학교가 매우 어색했는데, 멘토 선배들과 선생님 덕택에 학교 생활이 즐겁다”고 말했다.

정규 교육과정 절반 이상이 토론·발표 수업이다. 이를 위해 학교 곳곳에 북카페와 소회의실을 만들었다. 교장실까지 방과 후 학생 회의 공간으로 내준다. 이렇게 10년 정도 지나면서 남해해성고 재학생은 275명까지 늘었다. 입시 명문이라는 소문도 도움이 됐다.

졸업생 100명 중 60~70%가 서울·경기 대학으로 진학한다. 지난해엔 졸업생 10%가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합격했다. 이병희 교무부장은 “학생 수 대비 진학률은 전국에서도 손꼽힌다”고 말했다. 신 교장은 “남해해성고는 공교육 모범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학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 되도록 더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17.html
kolaswqetsrq 11.03 01:46
◇ “실례지만, 거리를 두겠습니다”... 코로나엔 카누 여행

◇ “실례지만, 거리를 두겠습니다”... 코로나엔 카누 여행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서 주말마다 단풍 명소에 인파가 몰리고 있다. 이 와중에 단풍 구경을 배 타고 한다고? 올가을, 액티비티 즐기기 좋아하는 아웃도어족 사이에서 뜨는 ‘단풍 카누(카약)’ 얘기다. 인파 몰리는 곳으로 가 걸음을 보태는 대신 나 홀로 카누 타고 강이나 호수에서 만추(晩秋)를 느릿하게 즐기겠다는 이들의 선택이다. 거리 두기 여행, 자발적 고립 여행이 가능한 카누 투어에 도전해봤다. 초보자도 부담 없이 즐기는 카누 명소도 직접 찾아가봤다.

▶ 체험하기 만만한 의암호·청풍호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강원도 춘천 의암호는 카누 체험 명소로 많이 알려진 곳. 나무로 만든 우든 카누를 타볼 수 있다. 카누 체험장 네 곳에서 각기 다른 카누 투어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송도스포츠타운’ 내 춘천물레길은 ‘물레길 우든 카누 체험’을 처음으로 선보인 곳이다.

정규 카누 투어로는 의암댐 코스, 붕어섬 코스, 삼악산 코스 등 초급 코스와 중·상급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중도 코스, 애니메이션박물관 코스 등 수준별·코스별 선택 폭이 넓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 정각에 체험을 시작한다. 하절기 주말 오후 6시부터 1시간만 진행하는 노을 카누잉도 있다. 카누 체험은 성인 2인 동승 기준 3만원이다.

춘천중도물레길은 중도유원지와 무인도 자연 생태 숲길을 지나는 코스가 아름답다. 중도유원지를 배경으로 이국적인 풍광을 사진에 담을 수 있어 방송 예능, CF에 종종 등장했다. 삐걱거리는 우든 카누를 타고 서서히 노를 젓다 보면 어느새 중도유원지다. 방향을 잘못 잡아 길을 잘못 들었다간 갈대숲으로 진입하기도 하지만 비교적 다양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게 매력이다. 좁다란 무인도 자연 생태 숲길은 짧게나마 정글의 맹그로브숲을 지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최근 들어 신혼부부들이 늘었다. 춘천중도물레길에서 만난 강병수·박은미씨 부부는 “코로나로 해외 신혼여행을 못 가게 되면서 해외 기분 느낄 수 있는 액티비티를 찾다 카누 체험을 하게 됐다”고 했다. 한국관광공사 관광 100선 기념 할인 행사를 진행해 현재 카누 체험비는 성인 2인 동승 기준 2만원이다.

▶ 제천 청풍호 카누카약

충북 제천시 청풍호 청풍호 카누카약 체험장에서도 카누·카약 투어가 가능하다. 슬로시티 수산면의 청풍호와 금수산, 옥순봉, 옥순대교를 두루 둘러볼 수 있다. 청풍호는 1985년에 충주댐이 만들어지며 금성면, 덕산면, 수산면, 청풍면, 한수면 일대에 조성된 인공 호수로 물이 깊고 넓어 바다 카누 체험의 묘미가 느껴진다. 이따금 유람선이 지나가거나 제트스키가 물 위로 날아가면 물결이 일렁이며 파도 타는 듯하다. 울긋불긋 절정을 향해가는 단풍을 비롯해 기암절벽 등 볼거리도 다양한 편이다. 보트 모양 4인용 친환경 태양광 카누는 최대 4인까지 동승 가능하다. 힘들게 노 저을 필요 없이 간단한 조작으로 청풍호를 둘러볼 수 있다. 초보라면 자연의 압도적인 풍광에 투어가 다소 망설여질 수 있다.

현재 청풍호 카누카약 체험장 부근은 수산면 괴곡리와 옥순봉을 잇는 ‘청풍 물길 100리 생태 탐방로 조성 사업’ 공사로 다소 어수선하다. 내년이면 청풍호 위로 220m 출렁다리도 설치될 예정이다. 체험은 성인 1인 1만3000원이며 예약 시간을 준수하지 않으면 승선 불가. 의암호와 청풍호 두 곳 모두 수상 안전요원이 보트를 타고 ‘근접 경호’ 한다. 이따금 ‘접선’해 기념사진 촬영도 해준다.

-금강·섬진강서도 카누

소규모 동호인들을 대상으로 카누 투어를 선보이는 곳도 있다. 충북 옥천 라온 카누는 우든 카누 제작·판매 업체다. 카누와 캠핑을 함께 즐기는 백패커들에게 조용히 알려진 곳이다. 금강에서 옥병철 대표가 직접 만든 카누를 타볼 수 있다. 적삼목으로 제작한 카누를 비롯해 나무 컵, 캠핑용 식기류 등도 판매한다.

경남 하동 협동조합 노리터에선 섬진강 카누 투어를 진행한다. 초급자는 경남 하동 화개장터 주변 원점 회귀 코스를 1시간 체험해볼 수 있다. 성인 1인 기준, 원점 회귀 코스는 2만5000원이다.

모든 카누 투어는 예약 우선이다. 안전사고를 대비해 반드시 구명조끼 착용 후 출발해야 한다. 그늘 없는 물 위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기에 모자와 선크림 필수다.

운영 업체 상황에 따라 운영 기간이 다르다. 대개 11월 초·중순, 일부는 12월 초까지 카누 투어를 운영한다. 날씨와 코로나 대응 상황에 따라 운영 시간은 변경될 수 있다. 이재관 캐나디언 카누 클럽 대표는 “가을 카누를 즐기기에는 11월 초까지가 제격”이라고 했다. 서두르자. 계절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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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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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38.html
kolaswqetsrq 11.03 01:46
◇ 짧은 가을이 아쉬을 땐 제주도로

◇ 짧은 가을이 아쉬을 땐 제주도로

짧은 가을이 아쉽다고 느낄 때 정답은 ‘제주도’다. 제주는 언제 가도 좋지만 가을 제주는 좀 더 특별하다. 바람이 적게 불고, 습도가 낮아 제주 여행에 가장 좋은 계절이 가을이다. 또 억새와 단풍, 코스모스 등 가을 정취 물씬 풍기는 풍경이 도처에 자리 잡고 있다. 메밀, 콩, 감귤 등 가을에만 맛볼 수 있는 제주 음식도 입맛을 자극한다. 요즘 제주는 ‘가을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이다.

▶ 여기가 바로 억새 맛집

11월 제주의 오름과 들판은 갈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솜털 보송보송한 억새가 그 변신의 주인공이다. 제주에는 억새가 군락을 이룬 사진 촬영 명소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풍력발전단지는 수많은 억새 명소와 차별화된다. 커다란 날개가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와 함께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하얀색 발전기 날개와 금빛 억새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군데군데 순백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검은색 정장을 입은 신랑이 억새밭 사이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억새밭이 주차장과 맞닿아 있어 접근성도 좋다.

해발 400m 고지에 발달한 화산 분화구인 산굼부리에도 사람 키보다 큰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산굼부리의 특징은 구두리오름, 말찻오름, 넙거리오름 등 10개의 오름을 배경으로 억새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산굼부리 중앙에 분화구가 있는데, 하루 5차례 해설사가 설명해주니 시간을 꼭 확인하는 게 좋다. 억새밭 외에도 분화구를 따라 자란 구상나무 길을 걷거나 넓게 펼쳐진 잔디 위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억새와 수크령이 능선을 뒤덮고 있는 백약이오름도 빼놓을 수 없다. 오름에서 나는 약초가 100가지가 넘는다고 해서 백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잘 정비된 길을 따라 15분 정도 걸으면 정상에 닿는다. 정상 부근에는 형형색색의 가을 야생화들이 피어 있어 눈이 즐겁다. 분화구 형태인 백약이오름은 분화구를 따라 한 바퀴 돌면 제주 동부의 오름과 풍경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한적한 분위기여서 신혼부부나 연인들이 자주 찾는 명소다.

▶ 한라산 단풍은 바로 여기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서귀포자연휴양림은 제주의 가을 숲길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해발 600∼700m에 위치해 다양한 나무와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산책 코스도 다양하다. 길이 2.2km(약 40분 소요)의 어울림 숲길부터 숲길 산책로(5km·약 2시간 소요), 마라도와 한라산을 조망할 수 있는 법정악 전망대까지 가는 전망대 산책로(3km·약 90분 소요)가 있다. 짧게 걷고 싶다면 670m 길이의 무장애 숲길을 선택하면 된다.

서귀포자연휴양림의 특징은 승용차로 3.8km에 달하는 차량순환로를 따라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창문을 연 채 한적한 숲길을 달리다 보면 시원한 가을바람과 함께 숲 향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다만 이동하는 도중에 차량은 지정된 구역에만 세울 수 있다. 야영을 할 수 있는 덱과 숙박시설도 마련돼 있지만 사전 예약은 필수다.

▶ 방긋 웃는 코스모스

가을을 대표하는 꽃인 코스모스도 제주 곳곳에 화사하게 피어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리조트인 제주신화월드에 위치한 신화가든에는 제주에서 가장 뜨고 있는 코스모스 정원이 조성돼 있다. 축구장 면적과 비슷한 약 7500m2 대지에 코스모스가 활짝 얼굴을 내밀고 있다. 봄에는 유채꽃, 여름에는 해바라기가 코스모스를 대신한다. 꽃이 핀 정원에서 약 300m 길이의 산책로를 따라 자유롭게 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왕따나무’와 곳곳에 놓인 색깔의자가 사진 명소다.

-동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11.html
kolaswqetsrq 11.03 01:47
◇ ‘한국인’을 자랑스럽게 만든 사람들

◇ ‘한국인’을 자랑스럽게 만든 사람들

2009년 10월 파리의 ‘뉘 블랑슈(nuit blanche)’ 축제일 밤을 잊을 수 없다. 시민들이 문화예술 공연을 보며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백야(白夜)의 제전인데, 그해 축제의 주인공은 삼성이었다.

삼성은 노트르담 성당 뒤편에서 삼성 LED 제품으로 꾸민 초대형 라이트 쇼를 마련해 감탄을 자아냈다.

파리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삼성이 나눠준 빨간색 하트 모양의 LED 배지를 가슴에 단 채 축제를 즐겼다. 당시 파리특파원이던 기자도 한국인인 것이 마냥 자랑스러웠던 밤이었다.

10여년 전 네덜란드 스히폴 공항 부근의 삼성전자 유럽물류센터에 가본 적이 있다. 끝이 안 보이는 물류 창고에 삼성 TV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안내인은 “1주일이면 다 팔려나간다”고 해서 기자를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이렇게 풀린 삼성 TV가 유로 디즈니랜드 호텔 객실이며 파리의 퐁피두 센터, 초호화 유람선 객실 등에 깔려 대한민국을 알리고 있다.

몇 년 전 외교부가 세계 17국 남녀 성인 6000명을 대상으로 ‘한국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를 물었다. 1위가 ‘테크놀로지’, 2위가 ‘삼성’이었다. 삼성 휴대폰과 가전제품이 테크놀로지 강국 이미지 구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세계 최빈국이 반세기 만에 기술 강국 이미지를 갖게 된 데는 삼성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이 애견 단체 회원들의 반대 시위로 무산될 뻔했다. 한국은 ‘개를 잡아먹는 야만국’이라는 것이다. 당시 한 신문은 노 대통령이 국빈 만찬에서 여왕 애견을 보고 군침을 흘리는 만평을 싣기도 했다. 삼성이 나섰다. 이건희 회장의 애견 활동을 소개하고, 영국 애견협회가 주관하는 세계 최고 명견 선발 대회 후원을 약속하며 반대 여론을 누그러트렸다. 삼성은 지금도 그 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21만명을 고용해 세계 74곳에서 연구센터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 브랜드 가치가 올라간 만큼 대한민국 브랜드도 올라갔다. 이제는 삼성만이 아니다. 현대기아자동차, SK, LG 등 많은 우리 기업들도 글로벌 일류 반열에 올라서고 있다.

세계 유명 백화점 구석에서 먼지에 쌓여 있던 우리 기업 제품들이 이제는 가장 좋은 자리에 있다.

익숙한 풍경이 됐다. 과거 한국 출신이라고 하면 모르는 외국인이 적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도 주눅이 들었다. 지금 젊은이들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한다. 천지개벽이다. 이 변화를 이끈 사람들 중에서도 빛나는 한 분이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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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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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31.html
kolaswqetsrq 11.03 01:48
◇ 이병철의 ‘최대 업적’은 이건희 발탁

◇ 이병철의 ‘최대 업적’은 이건희 발탁

삼성그룹을 취재한 동료 기자가 ‘이건희 회장의 도쿄 까마귀’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이 회장이 도쿄를 방문했을 때 ‘도쿄 사는 까마귀가 모두 몇 마리인가’라고 느닷없이 질문해 수행 임원이 진땀을 흘렸다는 일화였다. ‘그것도 기사냐’는 비난도 있었고 ‘이 회장은 특이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 회장은 정말 ‘다른 사람’이었다.

지난 25일 타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출근하는 게 뉴스가 될 정도로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한 ‘은둔의 경영자’였다. 사물이든 현상이든 취미든 일단 관심 가지면 뿌리를 뽑을 정도로 파고들었다. 본인은 엄청나게 고민한 주제인데 어눌한 어조로 툭툭 질문하니 다른 사람 듣기엔 선문답 같았다. 금융 계열사 사장단을 모아 놓고 회사 매출을 챙기는 게 아니고 “신용카드업의 개념이 무엇이냐”고 묻는 식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이건희 회장을 ‘사상가(big thinker)’라고 표현했다.

삼성의 반도체 진출은 1983년 이병철 회장이 선언했지만, 씨앗은 한참 전인 1974년 30대 이건희 회장이 뿌렸다. 당시 사재를 털어 도산한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반도체에 대해 이 회장은 “양심 산업이자, 타이밍 사업”이라고 ‘업(業)의 개념’을 남다르게 정의했다. 박사부터 기능직까지 종업원 수천명이 300여 공정에서 단 한 번 실수 없이 합심해서 일해야 하는 ‘양심 산업’이고, 남보다 조기에 양산해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 사업’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 회장이 파악한 반도체 ‘업의 본질’이었다. 그래서 미국⋅일본 경쟁 기업들이 불황에 머뭇거릴 때 주저 없이 투자했다.

이 회장의 ‘뒷다리론’도 유명하다. “뛸 사람은 뛰어라. 말리지 않는다. 걷기 싫으면 놀아라. 안 내쫓는다. 그러나 남의 발목은 잡지 말고 가만있어라.” 세계 초일류를 꿈꾸고 일궜지만 그런 이건희 회장도 실패한 분야가 자동차 산업이다. 적자를 거듭하다 손을 떼야 했다. 당시엔 ‘문어발’ 경영이라 비난받았지만 만약 이 회장이 끝까지 자동차에 매진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일론 머스크와 경쟁하지 않았을까.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창업 1세대다. 이병철은 장남 상속의 관행을 깨고 막내아들 이건희를 후계자로 선택했다. 파격이었다. 이건희에게서 ‘무언가’를 보았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글로벌 초일류’라는 새 지평을 열었다. 이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다. 이건희를 선택한 것이야말로 이병철의 ‘최대 업적’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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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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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25.html
kolaswqetsrq 11.03 01:48
조삼모사朝三暮四 -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잔꾀로 남을 속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 -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잔꾀로 남을 속이다.

아침 조(月/8) 석 삼(一/2) 저물 모(日/11) 넉 사(囗/2)

조삼모사하다고 하면 아주 간교한 사람을 멀리하며 많이 쓰는 말이다.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朝三), 저녁에 네 개(暮四)를 주거나 반대로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줄 테니 어느 쪽을 택하겠는지 묻는다. 어떻게 하든 합은 일곱 개로 같다. 이 당연한 것에서 이랬다저랬다 하며 변덕을 부리거나 교묘한 수단으로 남을 속이는 것을 말하는 성어가 됐다. 거기에 더하여 결과는 똑 같은데 ‘우선 먹기는 곶감’이라며 먼저 차지하려는 욕심을 경계하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道家(도가)의 사상서 ‘列子(열자)’에 전하는 이야기다. 宋(송) 나라에 원숭이를 많이 기르는 狙公(저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狙는 바로 원숭이다. 이름이 말해주듯 집안의 양식까지 퍼다 줄 정도로 저공은 원숭이를 애지중지했는데 그만큼 습성도 잘 알았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하여 도토리의 수량을 줄이기로 하고 꾀를 생각해냈다.

어느 날 원숭이들을 모아 놓고 “이제부터는 아침에 도토리를 세 개씩 주고 저녁에 네 개(朝三暮四)를 주려고 하는데 어떤가?” 하고 물었더니 모두들 마구 떠들며 화를 벌컥 냈다. “그러면 아침에 네 개씩 주고 저녁에 세 개(朝四暮三)를 주마.” 이렇게 말하자 원숭이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모두 저공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

莊子(장자)도 齊物論(제물론)에서 南郭子綦(남곽자기, 綦는 쑥빛비단 기)의 입을 빌어 비슷한 얘기를 전한다. 그는 이름도 알맹이도 달라지는 바가 없는데 화를 내고 기뻐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정의 차이일 뿐이며 자신의 관점에서 옳다는 편견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조삼모사하다고 욕하지만 말고 꼭 지금 당장 좀 손해를 보더라도 멀리 내다보면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교훈도 준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32.html
kolaswqetsrq 11.03 01:49
유련황망流連荒亡 - 이곳저곳 놀러 다니며 깊이 빠지다.

유련황망(流連荒亡) - 이곳저곳 놀러 다니며 깊이 빠지다.

흐를 류(氵/7) 이을 련(辶/7) 거칠 황(艹/6) 망할 망(亠/1)

아무리 부지런한 사람도 중간에 적절한 휴식이 없다면 일의 능률을 올릴 수가 없다. 자동차왕 포드(Henry Ford)는 ‘일만 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다’고 했다. 휴식을 이렇게 예찬했다고 해서 물론 전부는 아니다. 노동 후의 휴식이 필요하지 노동 전의 그것까지 장려하지 않는다. 휴식은 좋은 일이지만 게으름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비유한 말이 있다. 천하에서 가장 쉽게 자라는 식물이라도 하루만 햇볕을 쬐고 열흘 차게 하면 살아날 수 없다. 조금 일하고 오래 쉬거나 중단이 잦으면 성공과 거리가 멀다는 말이다. 一曝十寒(일폭십한)이라 한다.

노는 재미에 빠져 집에 돌아가지 않는 것이 流連(유련)이다. 사냥이나 주색의 즐거움에 빠지는 것이 荒亡(황망)이다. 두 말을 합쳐 이곳저곳을 놀러 다니며 주색과 유희에 빠져 본분을 잃는다는 뜻이다. 流連忘返(유련망반), 流連荒樂(유련황락)이라 해도 같다. 개인이 그렇게 해도 패가망신하는데 백성들의 윗사람인 왕이나 제후는 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한 ‘孟子(맹자)’의 인용에서 유래했다.

맹자의 두 번째 장인 梁惠王(양혜왕) 하편에 왕과 어진 정치에 관한 문답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魏(위)나라 왕인 惠王(혜왕)은 즉위한 뒤 大梁(대량)으로 천도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맹자가 齊(제)나라 宣王(선왕)을 만났을 때 현명한 사람의 즐거움에 대해 논했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게 되면 천자가 유람하는 것도 자신들을 돕는 것이라며 환영했다. 그러면서 晏子(안자)가 景公(경공)에게 한 말을 예로 든다. ‘뱃놀이를 하며 물살을 따라 가다 돌아오기를 잊는 것이 流(류), 물살을 거슬러 간 뒤 오지 않으면 連(련), 사냥에 빠져 싫증내지 않으면 荒(황), 술에 빠져 멈출 줄 모르면 亡(망)이라 합니다(從流下而忘反謂之流 從流上而忘反謂之連 從獸無厭謂之荒 樂酒無厭謂之亡/ 종류하이망반위지류 종류상이망반위지련 종수무염위지황 락주무염위지망).’

안자가 이런 말을 한 것은 이전의 왕이 이렇게 하지 않았으니 잘 다스려졌다고 했다. 맹자도 제후들이 앞장서 방탕한 놀음을 경계해야 한다며 이 내용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반대로 노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일을 많이 해 왔는데 이제 주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정해 생활을 즐기도록 했다. 일과 노동의 균형은 좋은데 직종별 세분하지 않은 급격한 적용으로 혼란이 많다고 한다. 무엇이든 균형이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40.html
kolaswqetsrq 11.03 01:50
수주탄작隨株彈雀 - 값비싼 구슬로 참새를 쏘다.

수주탄작(隨株彈雀) - 값비싼 구슬로 참새를 쏘다.

따를 수(阝/13) 그루 주(木/6) 탄알 탄(弓/12) 참새 작(隹/3)

조그만 일에 너무 많은 노력을 들였으나 결과는 보잘 것 없이 잃는 것이 더 많을 때 쓰이는 말은 많다. 비뚤어진 소의 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이게 된다는 矯角殺牛(교각살우)나 굽은 나무를 바루려다 나무를 못 쓰게 만든다는 矯枉過正(교왕과정) 등이 그것이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와 ‘쥐 잡으려다가 쌀독 깬다’는 우리 속담은 더 명확한 뜻을 나타낸다. 적은 이익이나마 얻으려고 한 일이 그 방법이나 정도가 지나쳐 도리어 큰 손실을 입게 되었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냈다.

값비싼 구슬을 탄알로 사용하여 참새를 잡는다는 隨株彈雀은 이 같은 어리석음의 결정판이다. ‘莊子(장자)’ 讓王(양왕)편에 실려 전하는 이 성어의 수주는 춘추전국시대의 隨(수)나라 제후가 큰 상처를 입은 뱀을 구해준 보답으로 받은 夜光珠(야광주)를 가리킨다. 지름이 한 치나 되는 이 구슬은 완벽한 和氏之璧(화씨지벽)과 함께 隨株和璧(수주화벽)이라 칭해지는 천하제일의 보물인데 이것으로 조그만 참새를 잡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魯(노)나라의 哀公(애공)은 顔闔(안합, 闔은 문짝 합)이 도를 터득한 현자라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예물을 보내고 모셔오게 했다. 사자가 찾아가니 안합이 직접 맞이했다. 그런데 허술한 집에서 삼베옷을 입고 소에게 여물을 먹이는 모습을 보니 도저히 귀인이 아닌듯했다. 사자가 거듭 확인하고 예물을 바치니 안합은 잘못 들은 것일 수도 있다며 돌아가서 더 알아보고 오라고 돌려보냈다. 다시 찾은 사자는 그 자리에 안합을 볼 수 없었다. 진정으로 부귀를 싫어하는 안합이 멀리 사라진 뒤였던 까닭이다.

장자는 설명한다. 안합같은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부귀공명을 위해 목숨까지 건다. 만약 진귀한 수후의 구슬로 천길 벼랑위의 참새를 쏜다면 그를 비웃을 것이다(以隨侯之珠 彈千仞之雀 世必笑之/ 이수후지주 탄천인지작 세필소지). 仞은 길 인.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86.html
kolaswqetsrq 11.03 01:50
문전성시門前成市 -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집 문 앞이 시장을 이루다.

문전성시(門前成市) -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집 문 앞이 시장을 이루다.

문 문(門/0) 앞 전(刂/7) 이룰 성(戈/3) 저자 시(巾/2)

아주 쉬운 글자로 이루어진 이 성어는 문 앞(門前)에 시장을 이룰(成市) 정도로 사람이 많이 찾는다는 뜻이다. 권세가 많은 세력가의 집이나 부자가 된 집에 방문객들이 몰린다. 평시에 잘 보이려고, 또 명절이나 인사철에 상급자의 집에 뇌물을 갖다 바치는 것을 뜻했다. 오늘날 인사가 점차 맑아져 이면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이런 청탁자의 門前成市는 사라졌다. 그러다가 시장에서 어떠한 물건이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져 손님들이 꽉 차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자연스럽게 됐다. 설을 앞두고 백화점이나 재래시장 등은 제수용품을 사고파는 일로 요즘이 바로 그렇다.

司馬遷(사마천, 기원전 145년~80년)의 ‘史記(사기)’와 더불어 중국의 양대 사서로 불리는 班固(반고)의 ‘漢書(한서)’에 이같은 내용이 처음 실렸다. 鄭崇孫寶傳(정숭손보전)의 이야기에 따르면 前漢(전한) 말기 哀帝(애제) 때의 정숭은 충신으로서 이름이 높았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즉위한 왕은 외척들이 조정을 쥐락펴락하는데도 아랑곳없이 미소년 董賢(동현)과의 동성애에 빠져 헤어 나올 줄 몰랐다.

정숭은 거듭 미소년을 멀리 하라고 간했으나 왕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이내 왕의 미움만 사게 되었다. 이때 아첨배 趙昌(조창)이 나서 정숭을 종친과 내통한다고 무고했다. 애제는 즉시 정숭을 불러 ‘경의 문전이 시장과 같다고 하던데(君門如市人/ 군문여시인) 그러면서도 나로 하여금 하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하고 캐물었다. 정숭은 “신의 집 문 앞이 저자와 같을지라도 신의 마음은 물과 같습니다(臣門如市 臣心如水/ 신문여시 신심여수)‘ 하며 공정한 조사를 원했지만 옥에 갇히고 말았다. 손보가 억울함을 상소했지만 자신도 쫓겨나고 정숭은 옥사했다.

아첨배의 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인지 음습한 뜻이 내포된 門前成市와 달리 비슷한 뜻의 門庭若市(문정약시)는 간언하러 모여드는 사람들로 인해 궁전의 문과 뜰은 시장과 같았다는 긍정적인 성어다. 반면 흥청이던 집에 인적이 끊긴 경우는 문 앞에 참새가 집을 짓는다는 뜻의 門前雀羅(문전작라)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69.html
kolaswqetsrq 11.03 01:51
◇1억대 TV 등장...TV의 진화

◇1억대 TV 등장...TV의 진화

텔레비전은 길지 않은 역사에 꽤나 변신을 거듭했다. 국내 시초는 ‘VD-191’. LG전자 전신 금성사가 1966년 7월 만든 흑백TV다. ‘진공관식 19인치 1호’를 뜻한다. 가격이 한 대당 6만원대로, 당시 쌀 27가마 정도 가격이었다.

그후 나온 TV들은 한동안 비슷한 모습이었다. 채널을 수동으로 선택했고, 미세 화면조정을 위해서는 안쪽의 레버를 세심하게 돌려야 했다. 방송 전파가 약하던 시절, 안테나를 들고 집안이나 마당 구석구석을 옮겨다니며 화면을 맞추곤 했다. 비바람 심한 날에는 화면이 흔들리며 TV가 잘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도 지금 2030세대들은 믿기지 않을 테다.

1974년엔 아남전자가 처음으로 일본 마쓰시타전기와 합작해 컬러TV를 만들었다. 1980년 12월 KBS가 최초로 컬러TV 방송을 개시했다. 그때까지도 TV 뒷면에는 두툼한 브라운관이 달려 있었다. 이어 두껍고 무거운 플라즈마 방식의 PDP TV를 과도기로 거쳐 액정화면(LCD)으로 오면서 본격적으로 얇고 큰 TV 시대가 열렸다. 일본이 끌어온 TV 시장 주도권이 한국 업체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도 이맘때다. 요즘은 스스로 빛을 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가 최첨단이다. 근래 삼성·LG가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는 그 기술이다.

이젠 안 볼 때는 화면이 상자 속에 말려 들어가 있는 롤러블 TV까지 나왔다. LG전자가 지난 9일 세계 최초의 롤러블 TV인 ‘LG 시그니처 올레드 R’ (사진)출시를 암시하는 맛보기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한 대에 1억원 수준의 초고가다. 쌀 500가마 정도 값이다. 삼성은 벽면 전체를 LED 조각으로 이어붙여서 덮는 기술을 선보였다. 가정용 보급도 머잖아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한때 TV는 인터넷·PC 등에 밀려 집안에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거라고 비관하는 사람도 있었다. TV를 ‘바보상자’로 만들지 않으려면 보는 이의 노력이 필요하다. 방송의 위기가 곧 TV의 위기도 아니다. 사물인터넷(IoT) 기술 등을 업고 스마트폰까지 연동하는 TV는 크고 선명한 화면을 앞세워 당당히 거실 한복판을 지키고 있다. 학습 콘텐츠, 홈트레이닝 등을 끌어안으며 더 똘똘해졌다. TV가 어디까지 진화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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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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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tv-tv.html
kolaswqetsrq 11.03 01:51
◇ 숨을 곳은 없다, GPS가 있는 한

◇ 숨을 곳은 없다, GPS가 있는 한

지난해 대서양 근처 프랑스 생나제르 바닷가 연구소에서 지낸 적이 있다. 깊은 잠이 드는 새벽 ‘띵동’ 하면서 기습적으로 동네마트의 안내 문자가 날아오곤 했다. “삼겹살 특가 100g 2364원, 생물고등어 5000원....” 한 동료 교수는 올 8월 15일 조카들과 아무 생각 없이 서울 광화문의 책방에 들렀다가 보건소로부터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제는 세상 어디를 가도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면 세상이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세상은 점점 더 좁아지고 투명해지고 있다.

내 작은 움직임 역시 세상과 연동되고 있다. 예전처럼 숨을 곳은 이제 없다. 스마트폰의 전원이 켜져 있는 순간은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상과 연결된다. 내 위치 정보를 줘야 세상으로부터 정보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전원을 끈다면 이는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런 투명한 네트워크의 핵심엔 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있다. GPS는 지구상 어디에서든지 자신의 위치와 속도, 시간을 알 수 있는 시스템이다. 시간 역시 스마트폰을 통해 한 치의 오차 없는 시간을 전 세계에 사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현재 지구에는 24개의 GPS 인공위성이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중이다. 이 위성들은 고도 약 2만 km 상공에서 약 12시간에 한 번씩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 이 위성 안에는 10만 년 동안 1초의 오차를 갖는 아주 정밀한 4개의 원자시계가 들어 있다.

GPS 위성들은 전파를 통해 시계의 정확한 시각과 위성의 정확한 위치를 지상의 수신기로 보내준다. 전파가 수신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시간의 차이를 가지게 된다. 이 시간의 차이에 빛의 속도를 곱해주면 지상의 수신기에서 인공위성 간의 거리를 구할 수 있다. 물리학적으로 거리는 시간에 속도를 곱하면 얻을 수 있는 값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4개의 위성으로부터 나오는 전파의 시간 정보를 분석하면 공간상 한 점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이 오차는 30m까지 발생할 수 있지만 군사용 GPS는 오차 범위를 1cm까지 줄일 수 있다.

GPS는 1973년 군사 목적으로 미국 국방부에서 개발한 시스템이다. 1983년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의 영공 침범으로 격추되자, 당시 미국 정부는 민간에서의 GPS 사용을 허락하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에는 미국 정부가 정책상 고의적으로 잡음을 보내는 것까지도 중단함으로써 민간용 표준위치 서비스의 정밀도가 30m 이하로 정밀해졌다. 이후 GPS는 차량, 교통, 범죄, 해양, 항로, 항공, 측량, 지진 감지, 인명 구조 시스템 등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었다. 이제 GPS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2024년 차기 위성인 무궁화위성 6호를 띄우면 한국형 정밀 GPS 보정 시스템을 갖추고, 2035년 7기의 항법위성을 띄우면 독자적인 GPS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위치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마치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의 정확한 위치를 자리매김하는 것처럼.

-동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gps.html
kolaswqetsrq 11.03 01:52
"젊을 때 즐겨라"..황혼의 노인들이 전하는 진솔한 조언

"젊을 때 즐겨라"..황혼의 노인들이 전하는 진솔한 조언

"가진 돈을 다 써라. 젊을 때 즐겨라."

"두 다리를 모으고 있어라."

"글을 쓰기 전에 생각하라."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해라."

"말다툼했으면 자기 전에 풀어라."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해라"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황혼에 이른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솔직하고 재미있는 조언들이다.

24일 영국 대중지 더선 등에 따르면 잉글랜드 데번주의 한 요양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가족도 만나지 못하고 외부와 차단된 노인들의 지루함을 달래주면서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경험을 전해주는 행사를 진행했다.

요양원 입주 노인들의 연령대가 75세에서 104세로 모두 고령이지만 정신은 온전해 이들이 살아온 경험을 공유하면 좋을 것이라는 취지에서 착안했다.

 "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어떠한 조언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적힌 화이트보드에 자신들의 생각을 적었고, 요양원은 이들 노인의 글을 사진으로 찍어 소셜미디어(SNS)인 페이스북에 올렸다.
",

자신을 마거릿이라고 소개한 할머니는 젊은이들에게 "네 돈을 다 써라, 젊었을 때 즐겨라"라고 적었다.

그녀는 또 "만약 네가 다른 사람에게 더 친절하게 대한다면 그들도 너에게 친절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트라는 할머니는 화이트보드에 짧은 한 문장을 적었다. 그 문장은 "두 다리를 모으고 있어라"였다.

 "
이 말은 그냥 농담의 의미로 받아들여져 많은 사람의 웃음을 자아냈다. 웃음을 잃지 않는 황혼의 청춘을 느끼게 해준 대목이다.
",

코랄이라는 할머니는 "글을 쓰기 전에 생각하라. 말다툼을 벌였으면 자기 전에 화해하라"고 적었다.

요양원 최고령 104세의 로잘린 할머니는 "젊은이들의 독립을 존중한다"며 "그들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내가 그 나이 때보다 현명하다"라고 적은 글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른 노인들은 "항상 도움이 되고, 즐겁고 밝게 생활하라"거나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을 도와라"라고 적었다.

톰 할아버지는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라"고 적은 뒤 활짝 웃었다. 생활 속에서 늘 즐겁고 유쾌함을 잃지 않으려는 톰 할아버지의 삶을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 사진은 노인들의 가족과 네티즌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피터 가프니 요양원 매니저는 "코로나19로 외부인 방문이 차단되면서 노인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며 "노인들은 평생 다양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좋은 시도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노인들에게 생각을 적어달라고 했을 뿐인데 많은 사람이 노인들의 조언을 좋아했다"면서 "이유는 자신들의 부모가 했던 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98.html
kolaswqetsrq 11.03 01:53
◇ 反독점 제소된 구글...그럼 네이버는?

◇ 反독점 제소된 구글...그럼 네이버는?

1870년 정유업체 ‘스탠더드오일’을 세운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철도회사와 협정을 맺어 운임을 낮추는 혁신으로 큰돈을 벌었다. 이어서 경쟁자들에게 합병을 권유하고 거부하면 자신이 장악한 운송망을 못 쓰게 하거나 덤핑을 쳐 무너뜨리는 방법으로 석유왕국을 키웠다. 미국 석유사업의 90%를 장악했지만 반발도 커졌다. ‘셔먼 반(反)트러스트법’의 첫 적용 대상이 된 그의 회사는 1911년 법원의 해산 명령을 받아 34개 법인으로 쪼개졌다.

미국 법무부가 20일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의 반독점 행위에 대해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20년 전 혁신으로 사랑받던 구글이 지금은 검색서비스, 검색광고 시장에서 독점을 유지, 확장하기 위해 반경쟁적 전술로 제국의 초석을 쌓고 있다”고 법무부는 소장에 썼다. 미 검색시장의 80%를 차지한 구글이 크롬 등 자사 앱을 기본 탑재하도록 스마트폰 생산업체에 수십억 달러를 제공하고, 안드로이드폰에서는 앱 삭제가 불가능하도록 함으로써 경쟁업체의 시장 진입을 막았다는 혐의다.

100년 이상 시차가 있어도 구글과 스탠더드오일은 닮은 점이 많다. 1998년 혁신적 검색엔진을 개발한 구글은 검색광고로 자금력을 확보한 뒤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렸다. 2006년 ‘유튜브’를 16억5000만 달러에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플랫폼을 장악한 뒤에는 스탠더드오일이 그랬듯 경쟁자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다.

이번 소송은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MS) 소송 이후 정보기술(IT) 기업을 대상으로 한 최대의 반독점 소송이다. MS 소송은 기업 분할 없이 2001년에 합의로 끝났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만만찮다. 코로나19 속에서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여론이 좋지 않다. 일부 사업의 분할, 신규 M&A 제한 등의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록펠러는 돈 버는 일엔 독사 같았지만 대학 등에 막대한 돈을 낸 ‘기부왕’이었다. 구글의 모토도 초창기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부터 5년 전 바뀐 ‘옳은 일을 하라(Do the right thing)’까지 늘 선한 의지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구글은 유럽, 한국에서 세금을 제대로 안 내고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돈을 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도 인터넷 검색 시장의 70%가량을 네이버가 차지하는 등 포털 공룡의 독점적 지위에 따른 폐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국내외 포털 공룡들의 몸 불리기와 탐식(貪食)이 어디까지 치달을지, 어떤 반작용을 불러올지 주목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53.html
kolaswqetsrq 11.03 01:53
◇ 코로나가 소환한 랜선 야학夜學

◇ 코로나가 소환한 랜선 야학(夜學)

신경숙의 장편 <외딴방>은 서울로 올라와 외딴방에 살며 구로공단 전자부품회사에 다니던 10대 소녀의 젊은 날을 그린 자전소설이다. 눈에 띄는 것은 야학 공부다. 작품 속 ‘나’는 공장에 다닌 지 1년 만에 산업체야간학교에 입학하지만 주산·부기 위주의 커리큘럼에 흥미를 잃고 방황한다.

그때 ‘나’를 붙잡아준 이는 최홍이 교사다. ‘나’의 글재주를 눈여겨본 그는 “주산은 안 놓아도 된다”며 소설 쓰기를 권한다. 이후 ‘나’는 최 교사가 건넨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필사하며 소설 습작에 들어간다. 야학은 신경숙을 소설가로 만든 ‘인큐베이터’였다.

1970~80년대는 ‘야학의 시대’였다. 당시 야학은 가난에 학업을 놓친 이들의 배움의 충전소였다. 종일 미싱 일과 잔업에 지친 청소년들은 늦을세라 작업복 차림으로 야학으로 달려갔다. 산업체야간학교처럼 규모가 큰 인가 야학도 있었지만 교회 야학, 미인가 야학이 더 많았다. 야학은 학력 취득을 위한 검정고시 야학, 노동자 권익을 위한 노동야학, 취미·문화활동을 지향하는 생활야학으로 나뉘지만 혼재된 경우가 더 많았다. 대학생이 되고 싶어 검정고시 야학 문을 두드린 김진숙(민주노총 지도위원)은 그곳에서 <전태일평전>을 읽고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야학은 밤에 운영하는 비정규교육 기관을 말한다. 일제강점 초기 ‘사설학술강습회’로 시작한 야학은 3·1운동 직후 실력양성운동이 일면서 전국으로 퍼졌다. 이후 한국전쟁기의 천막야학, 산업화 시기의 노동자 야학으로 이어지면서 야학은 한국 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다. 그러나 소득이 높아지고 의무교육이 고교로 확대되면서 청소년 야학은 사라지고 장애인·할머니 야학이 명맥을 잇고 있다.

서울시교육청과 KT가 이달부터 방과 후 학습 프로그램 ‘랜선 야학(夜學)’을 운영한다고 한다. 대학생 1명이 비대면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중학생 3명의 학습을 지도하는 방식이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교육 격차가 심화되는 속에서 저소득층 학생의 학습공백을 줄이면서 대학생에게는 일자리까지 제공한다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소환한 ‘온라인 야학’이 단절 위기에 놓인 100년 전통의 야학을 이어갈지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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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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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75.html
kolaswqetsrq 11.03 01:54
◇ 빚투 대신 "종잣돈 모을 때"라던 부장님, 이유 있었네

◇ 빚투 대신 "종잣돈 모을 때"라던 부장님, 이유 있었네

우리나라 국민의 연령대별 저축률이 50대를 넘어서면서부터 크게 높아지는데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가 1997년 외환위기 충격을 겪은 이후부터 두드러진 것으로 분석됐다. 외환위기를 겪기 전에는 50대가 되어도 저축률이 상승하는 경향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발간된 보험연구원 ‘고령화 리뷰’에 따르면 이태열 선임연구위원은 ‘고령층 가구의 저축률 상승 현상’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도시 가구의 연령별 저축률이 50대 이상 연령층으로 갈수록 더 높아진다고 진단했다.

이 연구위원은 도시가계조사 통계의 흑자율을 저축률로 보고 연령대별 (2016년 기준) 저축률을 살펴봤다.

그 결과 60대 이상이 33.0%로 가장 높았고 50대(31.8%), 39세 이하(29.45%), 40대(23.4%)가 뒤를 이었다. 높은 교육비 부담으로 40대의 저축률이 낮다는 점을 고려해 관련 지표를 보정해봐도 50~60대 이상 저축률이 가장 높은 건 그대로였다.

1997년 말 금 모으기운동을 벌이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 새마을지회 회원들 모습. 국민일보DB

1997년 말 금 모으기운동을 벌이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 새마을지회 회원들 모습. 국민일보DB

이 현상은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뒤 두드러졌다는 게 이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1990∼2006년 40대였던 가구가 50대가 되는 10년 후 저축률 변화 추이를 추적해 비교한 결과 ‘10년 뒤 저축률 상승’이 뚜렷해진 시점은 1998년쯤으로 추정됐다.

1998년 이전 40대 가구는 10년 뒤 50대가 되더라도 저축률이 상승하는 경향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같은 기간 50대 가구가 10년 뒤 저축률이 높아지는 경우도 1999년 무렵부터 관찰됐다.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부터 50~60대가 되면 저축을 확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50대 이후 저축을 확대하는 현상이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해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금리가 빠르게 하락하면서 노후에 대한 걱정이 커진 점을 이 같은 현상의 한 이유로 꼽았다.

그는 “60세 이상 가구의 소득수준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음에도 불구하고 저축률이 가장 높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밝혔다. 그 배경으로 “금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하면서 노후를 대비해 더 많은 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기대수명이 급속도로 길어지면서 노후에 필요한 자산이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했다고 봤을 가능성도 크다”고 추정했다.

-국민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63.html
kolaswqetsrq 11.03 01:55
◇ 참치 캔 따고 5분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

◇ 참치 캔 따고 5분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

당신은 통조림 참치를 먹기 위해 뚜껑을 딴 후 어떻게 하는가? 바로 김치찌개에 넣거나 젓가락으로 꺼내 먹지는 않는지? 앞으로는 5분 정도 기다려야 하겠다.

그렇다면 왜 기다려야 할까? 이는 퓨란(Furan) 때문이다. 퓨란은 무색, 휘발성의 액체로 요리, 병조림, 통조림과 같은 전통적인 가열처리 조리 중에 일부 식품에 형성되는 화학 오염 물질이다. 식품의 주성분 중 탄수화물인 당과 단백질인 아미노산을 열처리하면 퓨란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데, 휘발성이 매우 강한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인 조리 과정에서는 이것이 공기 중으로 날아가나, 커피, 빵, 조리된 가금류, 카제인나트륨, 콩 및 통·병조림 식품 등의 가열처리 제품에서 주로 나타난다.

한국식품안전연구원에 따르면 “퓨란과 인체 발암성과의 상관성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보고된 바 없고, 식품 중 퓨란은 저농도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인체 위해 여부는 아직 불확실한 상태디”라고 말하며 “퓨란이 인체 암발생에 기여할 가능성은 있으므로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퓨란을 발암가능물질(인체 발암 증거가 부정확하고, 실험동물 발암 증거도 충분하지 아니한 경우)로 분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퓨란 섭취를 줄이는 방법은 또 무엇이 있을까? 이는 휘발성이기 때문에 캔이나 병뚜껑을 딴 후, 뚜껑을 덮지 않은 냄비 같은 곳에서 재가열하면 노출을 약 15~30% 감소할 수 있다. 이것도 불안하다면, 통조림, 병조림에 들어 있는 음식 섭취는 피하고 섬유질이 많은 곡물, 과일 및 채소가 풍부한 다양한 식품을 선택하여 균형 잡힌 식단을 먹는 것을 권장한다.

- 하이닥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html
kolaswqetsrq 11.03 01:55
◇ 코로나로 뉴욕 엑소더스 시작됐다

◇ 코로나로 뉴욕 엑소더스 시작됐다

근래 미국 미디어는 ‘뉴욕 엑소더스’라는 현상을 여러 번 소개했다. 말 그대로 뉴요커들이 뉴욕을 떠나는 것이다. 뉴욕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에서 몹시 선망받던 도시 중 하나였다. 많은 사람이 좋은 직장과 도시의 세련된 문화를 동경하여 뉴욕을 선택했다. 코로나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업무는 재택으로 한다. 공연장, 미술관, 레스토랑과 같은 뉴욕 문화의 아이콘들도 문을 닫았다. 온라인이 대세가 되면서 첨단 디자인으로 고객을 유혹했던 상점들도 사라졌고, 공연은 넷플릭스로 대체됐다.

뉴욕의 비싼 물가, 높은 세금, 바퀴벌레나 소음 등은 원래부터 있던 문제다. 하지만 근래 뉴요커들은 정치적 이유를 이야기한다. 현 시장 빌 더블라지오의 임기 동안 경험하고 있는 부정적 변화다. 범죄가 늘고, 길거리는 지저분하고, 노숙자는 돌아다니며 아무 데나 널브러져 있다<사진>.

코로나 사태로 공연을 보지 못하고 레스토랑 이용을 제한당하는 건 이해하고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거리가 더러워지고 치안에 불안을 느끼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뉴욕은 지난 3년간 인구의 10%를 잃어버렸다. 사람들이 떠나면서 건물은 비고, 상가나 아파트 대여로 유지하던 건물주들은 은행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 인구가 줄어 세금은 걷히지 않아 당장 세수 문제가 발생한다. 충분한 재정 없이는 뉴욕처럼 커다란 도시를 운영할 수 없다. 총체적 경제 생태계의 파국이 예상되고 있다.

현재 뉴욕은 30년 만에 최악의 모습이다. 코로나는 도시 미관도 감염시켰다. 도시가 추해지니까 사람들도 관용이 없어진다. 뉴욕에는 언어와 인종,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관대함과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잃어버리고 있다. 일상이 피곤해져 이상적 가치를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뉴욕은 항상 회복하고 극복해 왔다. 경제 공황, 1980년대 최악 범죄 도시, 9·11 테러, 2008년 금융 위기 등도 모두 극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이번에는 옛날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다. 현재 뉴욕은 쿨하지 않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49.html
kolaswqetsrq 11.03 01:56
◇ 코로나 이혼 급증

◇ 코로나 이혼 급증

미국 통계인데 부부는 하루 2시간 30분쯤 같이 시간을 보낸다. 코로나 사태 이후엔 ‘부부가 집에 같이 있는 시간’이 크게 늘고, 덩달아 이혼까지 증가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금슬이 좋아졌다는 나라도 있다지만 대세는 이혼 쪽인 모양이다. 이혼 전문 로펌을 통해 드러난 추세를 보면 미국 부유층은 이혼 신청이 34% 늘었고, 영국은 41%, 이탈리아는 30%쯤 증가했다는 로펌 보고서가 있다. 이 정도면 급증이라 할 만하다.

한 영국 변호사는 “코로나가 어떤 커플에겐 삶을 다시 생각하는 자명종 역할을 했다”고 봤다. 자가 격리나 이동 제한을 겪고 난 뒤 “이제 공동 관심사가 없다면 그 누구하고든 남은 인생을 같이 보내지 않겠다”는 자각이 싹텄다고도 한다. 미국 유명 스타 중에는 팝가수 켈리 클라크슨, 패션 디자이너 메리케이트 올슨, 아일랜드 보이밴드인 셰인 린치가 코로나 이후 짝과 갈라섰다.

홍콩에선 색다른 풍경이다. 그쪽 부호 중엔 해외 출장을 핑계로 불륜 상대와 관계를 지속했는데 해외여행이 금지되자 위험을 무릅쓰고 만남을 시도하다 들통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또 부동산 개발업, 프랜차이즈 요식업, 도소매업 쪽 ‘큰손’들이 보유 주식 같은 자산 가치가 급락한 틈을 타 이혼소송을 낸다고 했다. 재산 분할과 합의금은 이혼 신청 시점을 기준으로 산정하기 때문에 코로나를 ‘이혼 찬스’로 여긴다는 뜻이다. 씁쓸한 이혼 풍속도다.

우리도 지난봄부터 이혼율이 달마다 1~2%씩 꾸준히 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빚어진 가정불화 탓이라고 본다고 한다. 10월 초엔 추석 연휴까지 겹쳤다. 작년 10월에도 추석 때 생긴 부부 및 고부 갈등을 추스르지 못한 결과로 이혼율이 10% 늘었다. 매년 반복되는 추세다. 그러나 올 추석은 ‘고향 찾으면 불효자’ 현수막이 내걸렸을 정도로 시댁이나 처가 방문을 만류하는 분위기였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이웃 일본도 ‘재택 부부’들이 비명을 지른다. 아내 쪽 하소연이 많다. “남편이 술에 절어 있다” “씻지도 않는다” “고함을 지른다” 등등이다. 그러다 이혼 카드를 집어든다. 집 나온 커플을 위해 ‘일시 피난소’ 형태의 숙박업소가 생겼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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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자가 격리·원격 수업·재택근무의 뒤끝이 걱정이다. 가족끼리 신고하고 흉기를 휘두르는 일까지 있다. ‘코로나 블루(우울)를 넘어 ‘코로나 레드(분노)로 치닫는 경우다. 결혼·출산이 줄고 폭력·이혼·사망이 는다면 인간이 바이러스에게 무릎 꿇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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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03.html
kolaswqetsrq 11.03 01:56
◇ 코로나 덕분? 한우·삼겹살 자판기가 나왔다

◇ 코로나 덕분? 한우·삼겹살 자판기가 나왔다

자동판매기가 돌아오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비대면 추세가 본격화하면서다. 과거 커피·담배 자판기를 떠올리면 안 된다. 사물인터넷(IoT)과 정보통신 기술(ICU)을 적용해 상주 관리 인력 없이도 유통기한이 짧은 신선 식품과 냉장·냉동 간편식을 취급할 수 있는 진화한 형태의 자판기다.

편의점 미니스톱은 한우 등심, 돼지 삼겹살 등 고기를 뽑아 먹을 수 있는 ‘정육 자판기’(사진)를 지난달 말 도입했다. 신선 식품 플랫폼 ‘프레시스토어’가 운영하는 정육 자판기가 미니스톱에 숍인숍(shop-in-shop) 형태로 입점했다.

지난해 10월 사업을 시작해 현재 6곳에서 자판기를 운영 중인 프레시스토어 현웅재 대표는 “코로나 사태 이후 매출은 경기도 성남 본점 기준 30% 늘었고 자판기 설치 문의는 2배 이상 늘었다”면서 “대형 마트나 정육점이 문 닫는 늦은 저녁이나 이른 아침에도 구매가 가능하다는 편의성 외에도, 직원과 마주 보며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 부담이 없다는 점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호감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스크림 브랜드 ‘하겐다즈’는 지난달 아이스크림 자판기 120대를 설치하고 본격 운영에 나섰다. 24시간 연중무휴 이용 가능한 키오스크 형태 자판기로 미니컵 5종, 싱글바 5종, 크리스피 샌드위치 1종 등 인기 품목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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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자판기도 곧 등장할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2020년도 제2차 산업 융합 규제 특례 심의위원회를 열고 민간 규제 완화 대상으로 사전 성인 인증을 통해 술을 자동 결제하는 방식의 AI 주류 판매기를 선정했다. 소상공인 영업장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해 편의점까지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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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가 국내에 처음 도입된 건 1977년. 롯데산업이 일본 샤프사(社)에서 커피 자판기를 수입해 설치했다. 최초의 국산 자판기는 1980년 금성사가 출시한 커피 자판기 ‘GVK-204HS’(모델명).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황금 알 낳는 거위’로 인식되던 자판기 산업은 2003년부터 마이너스 성장, 2010년 이후로는 크게 위축된 상태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36.html
kolaswqetsrq 11.03 01:57
◇ “자네 노벨상이야” 한밤 문 두드린 80대 스승

◇ “자네 노벨상이야” 한밤 문 두드린 80대 스승

“폴. 나 윌슨이네. 자네가 노벨상을 받았다네.”

로버트 윌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83)는 12일 오전 2시경(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 지역의 한 주택 문을 두드렸다. 스탠퍼드대 동료 교수이자 과거 제자였던 폴 밀그럼 교수(72)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사제(師弟)에서 학문적 동지가 된 두 교수는 ‘경매 이론’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윌슨 교수는 이미 직전에 스웨덴 노벨위원회에서 전화를 받고 자신의 수상 소식을 안 상태였다. 반면 밀그럼 교수는 숙면을 취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설정해 놓은 탓에 미처 전화를 받지 못했다.

이에 윌슨 교수 부부는 한밤중에 직접 자택 바로 앞에 있는 제자의 집을 서둘러 찾았다. 스탠퍼드대가 이날 트위터에 올린 밀그럼 교수 집 폐쇄회로(CC)TV 동영상에는 윌슨 교수가 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울리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사진). 윌슨 교수 부부가 “(노벨위원회에서) 연락이 올 것이니 전화를 받으라”고 하자 밀그럼 교수는 “와” 하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두 교수가 한밤중에 수상 소식을 듣고 한바탕 소동을 벌인 것은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 시점까지 철저히 비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역대 수상자들 중에는 노벨위원회의 전화를 받고 장난전화라고 생각하는 일도 잦았다.

이날 오전에 열린 원격 기자회견에서는 두 교수의 주요 연구 과제인 경매 이론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팬데믹) 국면에 어떻게 활용할지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윌슨 교수는 “마스크와 손세정제 등 개인 의료 보호장비(PPE)란 희소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일에 ‘경매 이론’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가 환자 수를 가늠해서 PPE를 각 병원에 공급하고 이와 별도로 병원들끼리 PPE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밀그럼 교수는 “팬데믹 초기 인공호흡기가 부족해 미국 주마다 확보 경쟁을 하면서 가격이 급등하고 의료 체계에 부담만 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80.html
kolaswqetsrq 11.03 01:58
◇ 유시민의 김정은 계몽 군주 발언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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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의 김정은 계몽 군주 발언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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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서세동점의 압력에 직면한 일본 지식인들은 세계를 지배하는 서양 문명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에 몰두한다. 탐구 끝에 도달한 서양 문명의 핵심은 기독교 사상과 과학적 합리주의의 기묘한 이중주였다. 일본인들이 근대성의 표상으로 특히 주목한 것은 과학적 합리주의의 저변을 관통하는 ‘계몽’ 사조(思潮)였다.

칸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 논문에서 설파한 ‘계몽이란 (의타적)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 ‘과감히 알려 하라. 너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자유가 주어지면 민중은 스스로를 계몽할 수 있는 존재’ 등의 화두는 일본 근대화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간의 존엄성, 이성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불합리한 속박을 거부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자율적 인간, 그것이 계몽이 추구하는 근대적 인간상(像)이었다.

일본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계몽 사상이지만, 현재 일본 사회에서 ‘계몽’은 차별적 용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빛을 밝힌다는 의미의 원어인 ‘aufklärung’(독) ‘enlightenment’(영)와 달리 계몽이라는 번역은 우월적 존재가 열등한 대상을 교화한다는 어감을 내포하기에 현대적 맥락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일깨운다는 의미의 ‘계발(啓發)’이라는 말이 권장되고 있다.

얼마 전 모 유력 진보 인사가 김정은을 ‘계몽군주’에 비유하여 논란이 되었다. 정규 군인이 공식 지휘 계통을 밟아 비무장 표류자에게 총질을 하고 기름을 끼얹어 불태우는 행위는 정상 국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야만적 범죄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같은 인간의 행위라고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북한 동포들을 인간 존엄의 보편성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착오적 체제의 공범이자 희생자로 전락시킨 장본인을 계몽군주에 비유하는 것은 그 치하에서 인간성 상실에 고통받는 인민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왜곡하는 반지성적 궤변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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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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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01.html
kolaswqetsrq 11.03 01:58
◇ 코로나로 뉴노멀 소배 패턴 나타났다-삼성·LG 깜짝 실적을 보면서

◇ 코로나로 뉴노멀 소배 패턴 나타났다-삼성·LG 깜짝 실적을 보면서

백화점 1층부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어느 층에 사람이 몰리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4년 전엔 명품이 있는 1층부터 여성, 남성, 아동 매장까지 절간처럼 조용하다 주로 고층에 있는 면세점 층만 중국인 관광객이 바글바글했다. 2년 전부터는 한동안 조용하던 명품 매장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당시 한 백화점 바이어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중국 관광객이 떠났지만, 집값이 팍팍 뛰니 ‘자산 효과’로 강남 소비자가 대거 돌아왔다”고 말했다.

요즘은 어떨까? 명품 매장 앞 줄은 여전히 긴 가운데, 가전과 리빙 소품 매장에 사람이 몰리는 게 눈에 띄었다. 실제로 3분기(7∼9월) 주요 백화점 점포 매출에서 명품과 가전 비중이 전년 동기 대비 약 10%포인트 올랐다고 한다.

가전의 인기는 삼성전자와 LG전자, LG화학의 ‘깜짝 잠정 실적’에서도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3분기 매출이 66조 원으로 역대 최대 분기 매출 수준을 기록했고, LG전자도 컨센서스를 상회한 영업이익을 냈다. TV, 냉장고, 세탁기, 스마트폰이 잘 팔린 덕이다. LG화학은 전년 동기보다 무려 158.7% 급증한 3분기 영업이익 잠정치를 발표했는데,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뿐 아니라 가전에 들어가는 내장재가 효자 노릇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복 소비나 펜트업(pent-up·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하는 현상) 수요가 몰린 덕도 있다. 하지만 재난지원금 효과가 있었던 2분기(4∼6월)에 이어 3분기에도 깜짝 실적이 이어지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소비의 뉴노멀이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집’, ‘고급화’, 그리고 ‘자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소비의 시대다.

실제로 민간 소비 지출은 코로나19 이전 대비 위축됐는데, 집에 있는 TV, 냉장고, 가구에는 돈이 몰리고 있다. 반면 집 밖에서 필요한 옷이나 자동차 휘발유 등은 회복세가 더디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집에서 멀어질수록 장사가 안된다”고 했다. 65인치 이상 고급 TV나 1000만 원에 육박하는 냉장고가 잘 팔리는 점도 눈에 띈다. 럭셔리로 승부를 보려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

한동안 소형 엔트리카로 젊은층을 잡아 보려던 메르세데스벤츠는 다시 럭셔리카에 집중한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펜트업 소비라도 가능한 중상층 소비자를 잡기 위해선 고급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엔트리카보다 럭셔리카의 이익률이 높다.

내수가 중요한 시대라는 점도 중요한 변화다. 여행을 못 가니 전 세계 소비자들이 자기 나라에서 돈을 쓰고 있다.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삼성, LG 모두 드러내놓고 말하진 않지만 국내 가전 매출이 연일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 중”이라고 귀띔했다. 명품 시장도 들썩인다. 원래 유럽 현지에서 팔리는 명품의 절반은 아시아 관광객이 사던 물량이었지만 이제 중국인도 한국인도 자국에서 산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올해 중국 명품 소비는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소비 지출이 크게 늘지 않는 상황에선 누군가의 깜짝 실적은 누군가의 실적 쇼크다. ‘서프라이즈’와 ‘쇼크’의 갈림길에서 뉴노멀에 올라타기 위한 기업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동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lg.html
kolaswqetsrq 11.03 01:59
◇ 판도라 상자 앞에 선 BTS

◇ 판도라 상자 앞에 선 BTS

뮌헨 국제음악콩쿠르 바순 2위 수상자, 헬싱키 국제발레콩쿠르 2위 수상자, 서울 국제무용콩쿠르 현대무용 2위 수상자, 동아무용콩쿠르 한국무용 1위 수상자,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1위 수상자.... 이들의 공통점은 무얼까? 장르의 유사성 같은 데서 단서를 찾다가는 끝내 답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예술 특기자 병역특례 대상이다. 국제대회는 2위까지, (국제대회가 없는 분야의) 국내대회는 1위에게만 자격이 주어진다. 삼엄한 징병제를 가뿐히 뛰어넘는 대회들이지만, 운영 주체가 국가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국내대회에서는 온나라 국악 경연대회만 국가(국립국악원)가 주최한다.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사단법인인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가, 동아무용콩쿠르는 언론사인 동아일보가 주최자다.

적용 대상 대회는 병무청 훈령 제1402호에 대회 이름과 종목까지 깨알 같은 표로 정리돼 있다. 48개 대회(국제 41, 국내 7) 119개 종목이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지만, ‘국위 선양’ 외에 어떤 기준이 추가됐기에 뭐는 되고 뭐는 안 되는 건지, 동아일보사가 주최하는 대회가 어쩌다 거기 끼어들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체육 분야는 기준이 비교적 단순하지만, 변천사는 그렇지 않다. 1973년 시행 이후 무분별하게 대상이 늘다가 1990년에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로 축소됐다. 그 뒤로도 땜질이 잇따랐다.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르자 월드컵 16강 이상이, 2006년 세계야구클래식(WBC)에서 4강에 오르자 이 대회 4위 이상이 포함됐다가, 둘 다 2007년에 다시 제외됐다. 잡음도 많았다. 2018년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이 병역특례를 노려 선수를 선발했다는 논란 끝에 감독이 사퇴하는 일까지 있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손흥민은 되는데 방탄소년단(BTS)은 왜 안 되느냐”고 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성취만 놓고 보면, 방탄소년단의 자격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논의가 시작되면 방탄소년단이라도 병역특례의 판도라 상자 앞에 설 수밖에 없다. ‘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가.’ 다만 이 논의에서도 절대다수의 젊은이는 논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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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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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ts_8.html
kolaswqetsrq 11.03 01:59
월녀제희越女齊姬 - 월나라와 제나라의 미인, 미인이 많이 나는 고장

월녀제희(越女齊姬) - 월나라와 제나라의 미인, 미인이 많이 나는 고장

넘을 월(走/5) 계집 녀(女/0) 가지런할 제(齊/0) 계집 희(女/6)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미인에 대해 서양 격언엔 비하하는 것이 제법 된다. ‘미인과 바보는 자매간이다’, ‘자기의 미모를 내세우는 여자는 그것보다 나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과 마찬가지’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여자의 참다운 아름다움이 가지는 힘에는 지상의 어느 것도 대항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이 미인에 혹하지 말라는 경계의 뜻에서 나온 말이기 쉽다. 이런 마음에 없는 말 말고 단순히 아름다운 여인을 나타내는 성어는 유난히 많다.

중국 4대 미인을 나타내는 沈魚落雁(침어낙안)과 閉月羞花(폐월수화) 말고도 시원스런 눈동자와 하얀 이 明眸皓齒(명모호치, 眸는 눈동자 모), 버들잎 눈썹과 복숭아꽃 얼굴 柳眉桃顔(유미도안) 등 부지기수다. 또 전 세계 미인대회를 휩쓰는 나라 베네수엘라와 같이 미인이 특별히 많은 나라가 예전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부터 揚子江(양자강) 이남의 越(월)나라와 그 서쪽의 吳(오)나라, 그리고 黃河(황하) 남쪽의 齊(제)나라가 대표적인 미인의 나라였단다. 그래서 吳姬越女(오희월녀) 또는 越女齊姬(월녀제희)라는 성어가 남았다.

前漢(전한) 초기의 문인 枚乘(매승)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름 높아 산문과 운문의 중간 형식인 ‘七發(칠발)’이란 작품을 남겼다. 여기에서 누구나 다 갖고 싶어 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실은 해서는 안 될 일이라 하며 미인에 대해 조심할 것도 든다. 중간 부분에 ‘흰 이와 고운 눈썹의 여인은 목숨을 찍는 도끼이고, 달고 무르고 기름지고 맛이 진한 음식은 창자를 썩게 하는 약(皓齒蛾眉 命曰伐性之斧 甘脆肥膿 命曰腐腸之藥/ 호치아미 명왈벌성지부 감취비농 명왈부장지약)’이라며 이어진다.

 ‘월녀는 앞에서 시중들고 제희는 뒤에서 받들게 하여 쾌락에 빠지면(越女侍前 齊姬奉後往來游讌/ 월녀시전 제희봉후왕래유연)’ 독약을 마시고 맹수의 어금니와 희롱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讌은 잔치할 연.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하여 행복해지는 것을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다만 미색에 빠져 자신의 할 일을 잊는다면 나중에 모든 것을 잃게 되어 예부터 조심하라는 경계의 말이 많았다. 미는 얼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죽고 못 사는 그런 관계는 없다는 말도 알아두면 좋은 말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83.html
kolaswqetsrq 11.03 02:00
육대함이六代含飴 - 육대의 가족이 함께 엿을 먹다, 대가족이 한 집안서 사이좋게 살다.

육대함이(六代含飴) - 육대의 가족이 함께 엿을 먹다, 대가족이 한 집안서 사이좋게 살다.

여섯 륙(八/2) 대신할 대(亻/3) 머금을 함(口/4) 엿 이(食/5)

世代(세대)는 사람이 태어나서 가정을 이뤄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기간으로 보통 30년을 잡는다. 이 말을 한 자씩 떼어 世(세)는 사람의 한 평생, 代(대)는 대신하여 잇는다는 뜻이다. 집안 족보서 말하는 세는 시조부터 세어 자신까지 몇 세손이라 하고, 대는 자신을 빼고 아버지가 1대조, 증조가 3대조 등으로 된다. 그러니 대가 세보다 -1이 된다. 요즘이야 부모와 자녀만 사는 핵가족이 대부분이지만 4대가 함께 사는 집이 얼마 전까지도 그렇게 귀하지 않았다.

대가족이 함께 모여 살면 다른 사람이 볼 때 아주 화목한 집안으로 본다. 이런 가족의 세계기록이라 할 9세의 선조와 후손들이 한 집안에서 산 九世同堂(구세동당)이 있다. 중국 唐(당)나라 高宗(고종) 때의 사람 張公藝(장공예)란 사람이 주인공으로 모두 900명이나 되는 식솔들이 살았다고 한다. 고종이 화목할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참을 忍(인) 100자를 써서 바쳤다고 해서 百忍堂(백인당) 당호를 하사했다는 집이다.

이에는 약간 미치지 못해도 六代(육대)의 가족들이 함께 엿을 먹는다(含飴)는 이 말은 孔子(공자)의 집안을 가리켰다. 6대의 가족이 한 집안에서 사이좋게 살아간다니 1세대 30년을 당시 공자의 어머니가 결혼했다는 19세로 치더라도 114세의 할아버지 아래 손자가 태어난 것이 된다. 공자의 고향 山東(산동)성의 曲阜(곡부)에는 淸(청)나라 乾隆帝(건륭제)가 보낸 ‘六代含飴(육대함이)’의 편액이 남아 있다고 한다. 중국 최강의 국력을 자랑했던 건륭제가 공자 집안에서 육대가 함께 사는 것에 감동하여 한족인 대학사의 딸을 입양시켜 공주로 삼은 뒤 혼사를 맺기도 했다.

구세나 육대의 신화 같은 이야기는 물론이고 삼대의 가족이 사는 집도 드문 시대가 됐다. 아니 그보다 자녀는 한 명만 낳아 잘 기른다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더 심한 경우 아예 결혼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흔하다. 국가서 지원한다고 해도 취업에서부터 주택, 교육 문제까지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농촌 마을도 대다수라 하니 핵가족이라도 가질 수 있도록 획기적 조치가 절실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35.html
kolaswqetsrq 11.03 02:01
감탄고토甘呑苦吐 - 달면 삼키고 쓰면 뱉다.

감탄고토(甘呑苦吐) - 달면 삼키고 쓰면 뱉다.

달 감(甘-0) 삼킬 탄(口-4) 쓸 고(十十-5) 토할 토(口-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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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이익을 탐한다. 득이 되는 곳에는 들러붙고, 해가 되는 곳은 외면하는 것이 상정이다. 그것을 잘 표현한 달면 삼키고(甘呑) 쓰면 뱉는다(苦吐)란 속담이 있다. 신의를 돌보지 않고 자기의 이익만 꾀하거나 자신의 비위에 따라서 사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인심이 朝變夕改(조변석개)하는 것이 권세가 있을 때는 아부하다 몰락하면 냉대하는 炎凉世態(염량세태)나 附炎棄寒(부염기한)라는 말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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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이 엮은 耳談續纂(이담속찬, 纂은 모을 찬)에 이 말이 나온다. 이 책도 241개의 속담을 한자 8자로 표현하고 그 아래 한문으로 뜻을 적어놓아 소중한 민속자료로 되어 있다. 이 말이 나온 부분에는 이전에는 달게 먹던 것도 지금은 쓰다고 뱉는다. 사람은 이익에 따라 교묘히 바뀐다(昔以甘茹 今乃苦吐 言人情巧於自利也/ 석이감여 금내고토 언인정교어자리야)는 뜻으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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茹는꼭두서니 여, 먹는다는 뜻도 있다. 뒷간 갈 적과 올 적 마음 다르다는 것도 上圊而歸 心異去時(상청이귀 심이거시)로 올라 있다. 圊은 뒷간 청. 圊房(청방), 圊圂(청혼, 圂은 뒷간 혼)도 변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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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 따르는 나무 이야기가 있다. 나무에게는 달과 바람, 새란 친구가 있다. 달은 밤을 같이 지내주고 언제나 웃을 뿐 말이 없는 이심전심의 친구다. 바람은 변덕 많고 제멋대로 찾아왔다 후딱 가버릴 뿐 아니라 세게 불어 상처를 안기기도 하고, 새는 노래를 불러 주기는 하지만 역시 제 맘대로 왔다 가서 믿을 수 없다. 그래도 나무는 달이라 환대하고 바람과 새를 박대하는 법이 없이, 오면 다행으로 생각하고 오지 않는다고 불행해 하는 법이 없다. 득에 따라 좌우되는 인간에게 믿음이 밑바탕이 되는 朋友有信(붕우유신)의 가르침을 인간에게 준다.

쓰게 되면 뱉는 세태가 지나쳐 손가락질을 받는 일은 부지기수다. 정치권에선 노정객들이 이곳저곳을 옮기는 것이나 당리당략의 진흙탕 싸움을 보고 이익 따라 춤춘다고 욕하지만 그런 행위를 부추기거나 원인을 제공한 곳이 더 나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61.html
kolaswqetsrq 11.03 02:01
윤집궐중允執厥中 - 진실로 그 중심을 잡다, 치우치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잡다.

윤집궐중(允執厥中) - 진실로 그 중심을 잡다, 치우치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잡다.

맏 윤(儿/2) 잡을 집(土/8) 그 궐(厂/10) 가운데 중(丨/3)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中庸(중용)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특출하지 않고 보통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四書(사서)의 하나인 만큼 유가에서 말하는 중용은 알기에 쉽지 않다. 이 말이 처음 나오는 중용 제2장의 ‘군자는 중용을 하고, 소인은 중용을 어긴다(君子中庸 小人反中庸/ 군자중용 소인반중용)‘는 孔子(공자)가 한 말로 나온다. 여러 사람의 해석이 있지만 중용은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고,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어서 평범하고 바뀌지 않는 이치로 해석한다.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는다는 이 성어는 중국 고대 舜(순)임금이 禹王(우왕)에게 선양하면서 마음을 조심하고 살피라고 당부한 말에 등장한다.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참된 진리의 마음은 미약하니, 오직 정성을 다해 하나 돼야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으리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 이 때의 가운데는 때와 장소, 상황에 알맞은 생각과 처신을 뜻한다. 尙書(상서)라고도 하는 상고시대의 기록 ‘書經(서경)’의 虞書(우서) 大禹謨(대우모)편에 실려 전한다.

‘論語(논어)’의 마지막 堯曰(요왈)편에는 이보다 앞서 堯(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천하를 물려주며 당부한다. ‘하늘의 정해진 뜻이 그대에게 와 있으니, 진실로 중용의 도를 지키도록 하라. 천하가 곤궁해지면 하늘이 내려주신 자리가 영원히 끊어지리라(天之曆數在爾躬 允執其中 四海困窮 天祿永終/ 천지력수재이궁 윤집기중 사해곤궁 천록영종).’ 여기에는 允執其中(윤집기중)으로 약간 다르지만 요왕에게서 받은 당부의 말을 순임금이 우왕에게 선양과 함께 그대로 전달한 셈이다.

성군이 성군에게 신신당부할 만큼 중용을 지키기가 어렵다. 공자가 강조한 말이 중용에 다시 나온다. 천하를 다스릴 수 있고, 높은 자리도 사양할 수 있으며, 시퍼런 칼날을 밟을 용기도 있지만 ‘중용은 능히 할 수 없다(中庸不可能/ 중용불가능)’고 토로한다. 성인들도 실천하기에 어려운 중용의 길을 보통 사람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이기적이고 각박한 세상에서 한 쪽으로 치우치려는 마음을 수시로 바로잡아 중심을 잡는 노력이라도 할 필요가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57.html
kolaswqetsrq 11.03 02:02
안도색기按圖索驥 - 그림대로 천리마를 찾다, 융통성 없이 일을 처리하다.

안도색기(按圖索驥) - 그림대로 천리마를 찾다, 융통성 없이 일을 처리하다.

누를 안(扌/6) 그림 도(囗/11) 찾을 색(糸/4) 천리마 기(馬/16)

길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이 매우 무디어 이전에 갔던 길도 곧장 헤매는 사람을 길치라고 놀린다. 요즘엔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으로 처음 가는 길뿐 아니라 등산로도 겁 없이 간다. 하지만 가르쳐주는 기계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더 좋은 길을 놓치는 일이 생긴다. 그림에 그려진 대로만 따라(按圖) 천리마를 찾아 나선다(索驥)는 이 말도 원리원칙만 따지고 융통성 없이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천리마라 하면 떠오르는 대로 伯樂(백락)의 아들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伯樂子(백락자)나 按圖索駿(안도색준)이라 써도 같다.

앞서 나왔던 伯樂一顧(백락일고)로 잘 알려진 백락은 春秋時代(춘추시대) 周(주)나라의 명마 감별사였다. 본명이 孫陽(손양)인 그는 秦(진)나라의 신하로 있으면서 相馬經(상마경)이란 저작도 남겼다. 하지만 아들까지 훌륭하게 키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조금 모자라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 고르는 법을 배우려 했다. 좋은 말이란 이마는 불쑥 나와야 하고 눈은 툭 튀어나와야 하며, 발굽은 누룩을 쌓아 올린 것처럼 생겨야 한다(隆颡蛈日 蹄如累麴/ 륭상철일 제여루국)고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열심히 익혔다. 颡은 이마 상, 蛈은 땅강아지 철.

아들은 책을 가지고 좋은 말을 구하려고 곳곳을 돌아다녔다. 며칠이 지나 아들이 큰 두꺼비를 잡아 와 아버지께 보이고선 책에 있는 명마와 똑 같다고 말했다. 백락은 기가 막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겨우 진정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 말은 잘 뛰기는 하겠지만 수레는 끌지 못하겠구나(此馬好跳 不敢御也/ 차마호도 불감어야).’ 明(명)나라 때의 학자 楊愼(양신, 1488~1559) 등이 쓴 ‘藝林伐山 (예림벌산)’에 나오는 이야기다.

지식과 경험은 없이 책에 있는 내용에만 의지해서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나아가 색인이나 목록 등 기존의 자료를 이용하여 필요한 부분을 찾는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09.html
kolaswqetsrq 11.03 02:03
유월비상六月飛霜 - 유월에 내리는 서리, 여자의 깊은 원한

유월비상(六月飛霜) - 유월에 내리는 서리, 여자의 깊은 원한

여섯 륙(八/2) 달 월(月/0) 날 비(飛/0) 서리 상(雨/9)

날씨가 차가워져야 대기 중의 수증기가 지상의 표면에서 서리가 된다. 물론 찬바람처럼 냉랭하고 싸늘한 기운을 비유한 말도 서리라 한다. 그런데 속담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것이 있다. 여자의 한이 얼마나 사무쳤는지 음력으로 5월이나 6월은 한여름인데 서리가 내린다고 했을까. 여자가 한 번 마음이 틀어져 미워하거나 원한을 품으면 그만큼 매섭고 독하다는 비유의 말이다. 一婦含怨 五月飛霜(일부함원 오월비상)이란 말대로 오뉴월인 만큼 5월, 6월은 함께 쓴다.

이 말이 유래한 고사는 여럿이지만 먼저 ‘漢書(한서)’의 于定國(우정국)전의 내용을 보자. 後漢(후한)의 우정국이란 사람은 송사를 처리하는 것이 공정하기로 이름났다. 東海(동해)군의 태수로 갔을 때 그 지역은 3년 동안 큰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정을 알아보니 한 효부가 자식도 없이 일찍 과부가 되었는데 개가도 않고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했다. 누를 끼치기 싫었던 시어머니가 자결하자 시누이가 무고하여 효부는 관아에서 고문을 받고 사형 당했다. 진상을 파악한 우정국이 소를 잡아서 효부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비석을 세우니 비로소 큰비가 내려 풍년이 들었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 사람이었던 鄒衍(추연)은 燕(연)나라 惠王(혜왕)에게 중용되어 벼슬하면서 충성을 바쳤다. 그럼에도 혜왕은 주변에서 참소하는 말만 듣고 그를 옥에 가두었다. 추연이 ‘하늘을 우러러 크게 통곡하자 여름인데 하늘에서 서리가 내렸다(仰天而哭 盛夏天爲之降霜/ 앙천이곡 성하천위지강상)’. 중국 아동용 교재 ‘蒙求(몽구)’의 鄒衍降霜(추연강상) 이야기다. 元(원)나라 희곡작가 關漢卿(관한경)의 ‘竇娥寃(두아원)’에선 두아가 누명을 쓰고 망나니에 의해 목이 잘릴 때 유월 한여름인데도 눈이 내려 자신을 덮어줄 것이라 말한 것이 그대로 실현됐다.

동해 효부는 비를 내리지 않게 했고, 추연은 남자인데도 한여름 서리를, 두아는 눈을 내리게 했을 만큼 억울함이 사무쳤다. 이들의 고사는 우리 고전에 흔하게 등장하지만 오늘날에도 한을 품지 않을 정도로 평등한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다. 여자든 남자든 한을 남기지 않는 공정사회가 돼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65.html
kolaswqetsrq 11.03 02:03
진백가녀秦伯嫁女 - 진나라 공주가 시집가다, 형식만 차린 잘못된 결혼

진백가녀(秦伯嫁女) - 진나라 공주가 시집가다, 형식만 차린 잘못된 결혼

성 진(禾/5) 맏 백(亻/5) 시집갈 가(女/10) 계집 녀(女/0)

신부가 시집갈 때에 친정에서 가지고 가는 돈인 持參金(지참금)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있었다고 한다. 신부 집 재산의 사전 상속이나 부양의 목적을 위한 관습이라는데 시집에 노동력과 대를 잇는 출산 등의 희생을 하는 면에서 부당한 면이 있다. 하지만 지참금이 적다며 일어나는 분쟁은 파혼에 이르고 계급제도가 철저한 아프리카나 인도에서는 신부 살해까지 일어난다. 그런데 분수에 넘치도록 재물을 싸가지고 갔더라도 신부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했다면 말짱 헛일이다. 이런 좋은 예가 秦(진)나라 공주가 시집간다는 이 성어다.

중국 法家(법가)의 확립자 韓非(한비)는 ‘韓非子(한비자)’는 外儲說(외저설) 左上(좌상)편에서 이야기한다. 쌓을 儲(저)는 비축하다, 준비하다는 뜻이고 說은 설명하기 위한 사례를 말한다. 내용을 보자. 옛날 秦(진)나라의 왕이 공주를 晉(진)나라의 공자에게 시집보내면서(昔秦伯嫁其女於晉公子/ 석진백가기녀어진공자) 시녀를 70명이나 딸려 시중들게 했다.

공주에게는 시집가서 꾸미도록 옷감을 가득 보내며 정작 차림새는 수수하게 했고 시녀들에겐 온갖 장식으로 치장했다. 진나라 공자는 공주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시녀 중에서 한 명을 골라 첩으로 삼았다. 큰 재산을 들여 딸을 시집보내고서도 시녀들에게 좋은 일만 시킨 꼴이 되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 買櫝還珠(매독환주, 櫝은 함 독)가 있다. 진주를 팔기 위해 화려한 상자에 주옥을 달고 비취 깃을 달았더니 그것을 산 사람이 상자만 사고 구슬은 돌려주었다. 귀한 것을 천하게 여긴다는 이 말은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실상은 지나치기 쉽다는 가르침이다. 앞의 진나라 공자가 많은 재물을 갖고 온 진백의 공주보다 치장을 요란하게 한 시녀를 좋아한 것과 마찬가지다.

말을 번지르르하게 잘 하는 사람일수록 쓸 말은 적은 것과 마찬가지로 화려하게 꾸민 겉모습만 보고 실질적인 면은 잊기가 쉽다. 갈수록 과열되는 결혼 때의 신부 혼수는 일류 신랑감을 잡기 위한 형식이기 쉽다. 겉모습을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도 사랑으로 이루어진 酌水成禮(작수성례), 물만 떠놓은 예식보다 행복할 수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73.html
kolaswqetsrq 11.03 02:04
견원지간犬猿之間 -개와 원숭이의 사이. 사이가 매우 나쁜 두 관계를 비유.

견원지간(犬猿之間) -개와 원숭이의 사이. 사이가 매우 나쁜 두 관계를 비유.

개 견, 원숭이 원, 갈지, 사이 간

사이가 아주 나쁜 두 사람 사이를 말하는 犬猿之間의 개와 원숭이는 실제로 사이가 나쁜가. 개와 원숭이 모두 야생이었을 때 후각이 예민한 개가 몸집이 작은 원숭이를 먹이로 만만해 잡아먹으려 하니 서로 으르렁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미뤄 짐작한다.

원숭이는 복종심이 강한 동물이라 강한 상대엔 등을 보이며 달아나는데 개는 등을 보이면 자기보다 약하다고 바로 공격한다고 한다. 이들이 불화하는 이유를 동물학자들이 밝힌 바로는 신호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라 했다. 즉 기분이 좋을 때 원숭이는 꼬리를 내리는데 개는 올리고, 기분이 상하면 반대로 원숭이가 올리고 개는 내리니 오해에서 오는 대적관계로 숙명이란다.

중국에 이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런가 하지만 실제 쓰인 곳은 많지 않다. 중국 明(명)나라 때 吳承恩(오승은)이 쓴 장편 神怪(신괴) 소설 ‘西遊記(서유기)’에 개와 원숭이 싸움이 그려져 있다. 돌에서 태어난 원숭이 孫悟空(손오공)은 도술을 써서 천제의 궁전이 발칵 뒤집히는 소동을 벌인 죄로 500년 동안 五行山(오행산)에 갇혀 있었는데, 三藏法師(삼장법사)가 지나가는 길에 구출해 준 뒤 수행하며 벌이는 이야기다. 손오공이 도술을 부려 난리를 피우자 관세음보살이 막기 위해 제자를 보냈으나 날뛰는 원숭이의 비법엔 속수무책.

천계에서 할 수 없이 회의 끝에 옥황상제의 조카로 무술이 천하제일이라는 二郞眞君(이랑진군)에게 도움을 청했다. 개로 비유된 이랑신과 변신술을 써가며 300여 합의 결투를 벌이는데 원숭이 진영에 개를 풀어 치명상을 입혔다.

중국 사람들은 개와 원숭이가 만나면 늘 다투는 것으로 보았지만 우리는 아옹다옹이란 말이 있듯이 고양이와 개가 사이가 안 좋다고 보았다. 야옹은 고양이 소리고 다옹은 개의 소리를 나타냈다고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80.html
kolaswqetsrq 11.03 02:04
◇ BTS 병역특례 단상

◇ BTS 병역특례 단상

우리나라에서 병역특례제도가 시작된 것은 1973년부터다. 특혜가 주어지는 만큼 말도 많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자 이들에게 병역면제 혜택을 줘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이탈리아와의 8강전이 열리기 전날 병역특례 결정이 내려졌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챔피언십(WBC) 때도 한국이 3위에 오르자 기준을 바꿔 이들에게 병역특례를 줬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는 야구대표팀 선수 24명 중 13명을 군 미필자로 꾸려 병역면제를 노린 꼼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바둑기사 이창호 9단은 정부가 바둑을 체육특기자 종목에 넣는 묘수를 내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다.

현행 병역법 시행령 68조 11항은 병역특례 대상을 ‘예술·체육 분야 특기자’로서 ‘병무청장이 정하는 국내외 예술경연대회나 올림픽·아시안게임 등에서 1~3위로 입상한 사람’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예술·체육요원(보충역)으로 편입돼 4주간 기초 군사훈련을 이수하고 544시간의 봉사활동을 해야 하지만, 복무 기간에 자신의 특기 분야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BTS) 병역면제 논란이 뜨겁다. 지난달 신곡 ‘다이너마이트’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면서다. K팝의 주역인 BTS에 병역특례를 적용해야 한다는 게 찬성론자들 주장이다. 형평과 공정에 어긋난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6일 BTS의 병역특례 공론화를 주장하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논란이 격화되자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국민이 보기에 편치 못하고 본인도 원하는 일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답변해 논란이 재점화됐다.

이 문제에 대해 쉽사리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이유는 예체능 분야 병역특례의 명분인 ‘국위선양 및 문화창달’이란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BTS처럼 새로운 대상자가 거론될 때마다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병역법에 따르면 대중가수가 병역특례를 받을 방법은 없다. 차제에 정부와 정치권은 공론화 과정을 통해 병역특례 대상에 대한 합리적 개선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세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ts.html
kolaswqetsrq 11.03 02:05
◇ 지리산 천왕봉 정상석 방향 돌려놔 주세요

◇ 지리산 천왕봉 정상석 방향 돌려놔 주세요

예외가 없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면 반드시 기념 촬영을 한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 힘들게 오른 만큼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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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천왕봉에서 찍은 기념 사진은 누구나 예외없이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지리산 천왕봉 1915m이라 적힌 정상석 앞에서는 독사진 내지는 두세 사람, 많게는 네뎃 사람이 전부다. 10명 이상의 단체 사진은 찾아볼 수가 없다. 혹 있다고 하더라도 뒷면, 다시말해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힌 뒷면이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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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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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1915m라고 적힌 정상석이 서 있는 정상부의 전체 면적이 30m2에 불과한 데다 정상석 앞면에서 볼 때 사진을 찍는 사람이 뒤로 물러날 수 있는 공간이 최대 3m 남짓 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물러나면 그야말로 벼랑이다. 이 때문에 정상에 오른 뒤 약간 상기된 채 사진을 찍을 경우 항상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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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관리공단 지리산사무소에 문의를 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이 정상석은 지난 1982년 6월 2일 경남도에서 세웠다. 지금이야 지리산을 비롯한 모든 국립공원은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관할하지만 당시에는 경남도가 맡았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그보다 한참 뒤인 1987년 설립됐다.

당시 지리산 철쭉제 행사를 겸해 시민등반대회가 열려 전국의 많은 산꾼들이 정상석 제막식에 참여했다. 높은 분들로는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익현 민정당 사무총장과 이규효 도지사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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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 선생의 하늘이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라는 명문이 적힌 기존의 조그만 정상석 대신 헬기로 공수돼 온 1.5m 높이의 정상석의 제막식이 진행되면서 한쪽에선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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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석 뒷면에 경남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천왕봉은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의 경계에 위치해 있지만, 지리산은 함양 산청 이외에 하동 남원 구례 등 5개 시군에 걸쳐 있기 때문에 그 문구는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천왕봉이 한라산(1950m)에 이어 남한 땅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여서 당연히 전 국민의 산으로 인식돼야 하기 때문에 경남 대신 한국이란 표현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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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가을쯤 어느날 정상석에는 누군지만 모르지만 경남 대신 한국으로 바꿔 놓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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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기자는 정상석이 어느 방향을 봐야 한다는 원칙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공단측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미 나왔다. 안전사고 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단체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상석을 돌려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좋은 생각이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민족의 영산, 남한땅 최고봉 지리산 천왕봉이라서 머뭇거리는 점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이제는 만인을 위해 정상석 방향을 되돌려도 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자만의 생각일까.

-고니의 방랑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64.html
kolaswqetsrq 11.03 02:06
◇ KB의 실험... AI에 인사 맡겼더니 인사불만이 사라졌다

◇ KB의 실험... AI에 인사 맡겼더니 인사불만이 사라졌다

KB국민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은행원 A·B·C씨는 지난 7월 초 이뤄진 올해 하반기 영업점 직원 인사 발령 결과에 “기계가 사람보다 낫다”고 입을 모은다. 1086명을 대상으로 한 하반기 인사에 국민은행의 ‘AI(인공지능) 알고리즘 기반 인사 시스템’이 최초로 활용됐는데, AI가 사람보다 더 섬세하게 직원 및 영업점 요구를 반영해 인력을 배치했다는 것이다. 원래 금융권 인사는 조직이 크다 보니 대규모로 이뤄지느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런데 KB가 금융권 최초로 시도한 ‘AI 인사’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은행권 인사 혁신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 미취학 자녀가 있는 워킹맘인 차장 A씨는 그동안 출퇴근 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리는 영업점에서 근무하느라 육아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하반기 인사 발령으로 집 주변 영업점에 배치됐다. ‘AI 인사 시스템’이 열 살 미만 자녀가 있는 여성 직원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 시간이 40분을 넘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다. A씨는 “AI가 새로 딴 보험 관련 자격증을 고려해 원하는 직무로 배치도 해줘 매우 만족했다”고 했다.

▶ 지점장 B씨도 하반기 인사 결과에 안도했다. 작년 하반기엔 업무 경험이 많은 직원 두 명이 B씨가 맡은 지점에서 전출되고, 막 육아휴직에서 복직해 업무 공백이 있는 직원과 본사에서 온 직원이 새로 배치돼 한동안 영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B씨는 “이번엔 AI가 업무 경력과 직무를 고려해 기업 금융 담당자 등을 배치해줘 도움이 됐다”고 했다.

▶ 20년 차 팀장 C씨는 “그동안은 아무래도 사람이 인사를 하다 보니 청탁이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는 불안감을 접을 수 없었다”며 “하지만 AI 인사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공정성에 대한 걱정을 덜게 됐다”고 했다.

이들뿐 아니라 국민은행 직원들 사이에선 이번 AI 인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예전엔 인사 담당 직원이 주소만 보고 배치하다 보니 집에서 먼 영업점에 배치되는 경우가 종종 나왔지만, 이제는 AI가 자동으로 계산된 출퇴근 거리를 바탕으로 영업점을 골라주기 때문에 오류가 크게 줄었다. 직원들의 능력치도 영업점별로 고르게 분배돼 지점장들의 불만도 감소했다. 인사 업무 관계자는 “인사 발령 후 불만을 제기하는 전화가 많이 오곤 하는데 이번엔 한 통도 오지 않아 놀랐다”고 했다.

▶30개 규칙 적용해 1분 만에 배치

국민은행의 ‘AI 인사 시스템’은 네 단계를 거쳐 작동한다. 먼저 인사 담당 직원들이 전국 900여개 영업점의 인력 수요와 직원의 직무 경력·자격 사항·거주지 등 정보를 입력한다. 그 후 AI가 직원을 배치할 때 쓸 30여개의 규칙을 설정한다. ‘거주지에서 영업점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한 출퇴근 시간이 1시간 이내’, ‘영업점마다 고령 직원 균등 배치’, ‘특정 직무 직원이 쏠리지 않게 균형 배치’ ‘핵심 인력이 한꺼번에 전출되지 않도록 배치’ 등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사실상 사람의 능력으로 제한된 시간 내에 이 모든 변수를 고려해 1000명이 넘는 직원들을 점포에 배치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AI 인사를 통해 인사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공정한 인사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도 올라갔다”고 했다.

직원들의 호평이 이어지자 국민은행은 계속해서 AI 인사 시스템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내년 1월 인사에는 전국 900여명의 지점장 인사에도 AI 시스템을 활용하기로 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kb-ai.html
kolaswqetsrq 11.03 02:06
◇ 매일 30분 빨리 걷기하고 근육 키우면 암·심혈관 질환 위험 40% 줄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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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30분 빨리 걷기하고 근육 키우면 암·심혈관 질환 위험 40% 줄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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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건강을 위해 운동에 나선다. 그런데 과연 운동을 열심히 하면 정말 사망률이 낮아질까. 하지만 실제로 운동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연구는 많지 않다.

최근에 영국 의학회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에 운동 효과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미국·중국·호주 등 다국적 연구팀은 18세 이상 미국인 약 48만명을 대상으로 평균 9년 동안, 미국 보건부가 제시하는 운동 권장량을 따랐을 때 얼마나 건강해지는지를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달리기 등 유산소 운동과 근육 강화 운동을 정기적으로 한 사람은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장질환, 암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사망 위험비를 40% 이상 낮출 수 있었다. 호흡기 질환에 의한 사망률은 무려 70% 이상 낮췄다.

미국 보건부의 운동 가이드라인은 유산소 운동의 경우 중등도 강도로 할 때는, 예를 들어 빨리 걷기, 수영, 자전거 타기, 댄싱 등을 일주일에 최소 150분 해야 한다. 또는 조깅, 달리기, 테니스, 무거운 것을 들고 계단 오르기 등 고강도 운동을 일주일에 75분 이상 하는 것이다. 근육 강화 운동은 일주일에 2회 이상 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매일 30분만 빠르게 걷거나, 아니면 10분 정도씩 땀나게 운동하고, 틈틈이 근력 강화 운동을 한다면 현대인의 주요 사망 위험인 암과 심혈관질환 위험을 40% 줄일 수 있다. 운동 효과가 놀랍다. 충분히 투자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은가.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0-40.html
kolaswqetsrq 11.03 02:07
◇ 큰길 가까이 살면 치매 발생률 높다

◇ 큰길 가까이 살면 치매 발생률 높다

최근 집의 위치와 뇌 건강과 관련해서 재미난 논문이 200년 역사의 저명한 국제학술지 랜싯에 발표됐다.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진행한 연구인데, 무려 600만명 이상의 인구를 대상으로 사람들이 사는 집의 위치를 파악하고, 위치에 따라 대표적인 뇌신경 질환인 치매, 파킨슨병, 뇌척수 다발성 경화증 등의 발생에 차이가 있는지를 비교했다.

집의 위치는 그 지역 큰길에서 몇 미터(m)나 떨어져 있느냐에 따라 분류했다. 연구 결과, 큰길에서 50m 이내에 사는 경우, 300m 이상 떨어져서 사는 사람에 비해서 치매 발생 위험도가 7% 더 높았다. 큰길가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치매 위험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현상은 도시 지역일수록 더 뚜렷했다. 파킨슨병이나 뇌척수 다발성 경화증 발생은 위치에 따른 차이가 없었다.

큰길가에 가까이 살면 대기오염, 소음 공해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고, 그것이 뇌에 영향을 미치고, 인지 기능의 저하를 유발하고, 오래 지속되면 치매 발생도 높아졌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상대적으로 인지 기능과 관련이 적은 파킨슨병과 다발성 경화증은 그런 환경 영향을 적게 받았을 것이다. 큰길 가까이 살면, 인지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다른 연구도 이미 발표된 바 있어, 토론토대 연구는 신빙성 있는 결과로 보인다.

요즘 집값과 부동산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큰길가는 교통이 좋아 살기 편할 수도 있지만, 뇌 건강을 생각하면 공기 맑고 조용한 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13.html
kolaswqetsrq 11.03 02:08
◇ 박덕흠이 미국 국회의원이었다면...이해 충돌 이대론 안 된다

◇ 박덕흠이 미국 국회의원이었다면...이해 충돌 이대론 안 된다

미국 연방 형법은 공무원이 본인이나 가족의 금전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을 회피하지 않으면 처벌한다. 정부가 발주하는 공사의 담당자가 본인이나 가족이 소유한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정부의 계약 업무를 직접 관장하는 지위가 아닌데도 더 혹독한 규제를 받는다. 미국 연방 형법에는 국회의원을 콕 집어 연방 정부나 그 산하기관과 계약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다. 의원이 직접 하든 다른 사람에게 위탁하든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정부와 사업 계약을 체결하거나 이런 계약을 통해 이득을 누리는 모든 행위가 처벌 대상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계약은 아예 무효가 된다.

공공 계약의 원칙을 규정한 별도 법에도 국회의원은 연방 정부와 계약을 체결하거나 그 수혜자가 되지 못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청탁이나 대가성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있다면 뇌물죄로 처벌받는다). 딱히 비리 행위가 드러나지 않아도 무조건 정부와의 계약 관계를 금지하는 것이다.

왜일까? 국회의원은 입법 활동과 국정 감시 등을 통해 포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계약을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역으로 계약 관계를 통해 정부의 로비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계약 관계가 일종의 뇌물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직무 수행의 공정성과 이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비리의 기회조차 원천차단하는 것, 이게 바로 이해충돌 방지 제도의 목적이다.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은 본인과 가족이 지배하는 건설사가 피감기관에서 수천억원대의 공사를 수주했는데도 이해충돌이 없다고 강변한다. 공정과 신뢰의 가치를 눈곱만큼도 성찰하지 않는 변명 태도에선 공익을 추구하는 국회의원이 아닌 사익에 눈 먼 건설업자의 비루함만 두드러진다. 이해충돌을 철저히 차단하는 ‘박덕흠 방지법’이 절실하다. 특히 국회의원에 대해선 그 지위의 특수성을 감안해 별도 조항을 둔 미국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정부 사업을 통해 돈을 벌 생각이라면 국회의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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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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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34.html
kolaswqetsrq 11.03 02:08
◇ ROTC 육군총장

◇ ROTC 육군총장

학군사관후보생(ROTC)은 대학 3·4학년 때 군사교육을 받고 졸업과 동시에 장교로 임관하는 제도다. 사관학교 출신으로만 초급 지휘관을 다 채우기 어려운 데 따라 도입한 것이다. 1961년 6월 서울대를 비롯한 16개 대학에서 창설, 1963년 2월 2642명의 장교를 처음 배출했다. 올해에는 117개 대학에서 4100여명이 소위로 임관해 육·해·공군·해병대에서 복무 중이다. 전체 장교 임관자(약 8200명)의 절반이다. 여성 출신은 2013년에 처음 나왔다. ROTC중앙회 소속 회원이 22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초창기 ROTC는 등록금 없이 대학을 다닐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각광받았다. 전역 후엔 기업체 취직 등에서 이점이 있었다. 병사를 지휘하면서 몸에 밴 책임감과 관리 능력을 인정받은 덕분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특전이 줄어든 데다 병사(18개월)에 비해 상대적으로 복무기간(육군 28개월)이 길어서다. 국방부는 ROTC 지원율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후보생 단기복무장려금을 지난해보다 100만원 올려 300만원으로 인상한 것도 그중 하나이다.

군 전체 장교 중 ROTC 출신은 33%를 차지하지만 장성 비율은 매우 낮다. 준장 진급예정자를 포함해 36명에 불과하다. ROTC 출신자들에게 장군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인 셈이다. 장기복무 비율이 낮기도 하지만(임관 기준 13%) 사관학교 출신이 장악한 군 풍토도 무시할 수 없다. 육군 장성 진급자의 약 80%가 육사 출신이다.

ROTC 1기는 장군 10명을 배출했고, 이 중 박세환 2군사령관이 4성장군의 길을 열었다. 군 서열 1위 합참의장은 2기인 김진호 대장의 몫이었다. 20년 후 두 번째 합참의장이 탄생했지만 그 또한 육군참모총장은 지내지 못했다. 육군의 인사권을 쥔 육군총장은 1∼18대는 군사영어학교 및 일본군 출신이, 그 후 19~48대(현재)는 육사 출신이 독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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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C 장교 배출 57년 만에 그 견고한 벽이 깨졌다. 23기인 남영신 지상작전사령관이 49대 육군총장에 내정됐다. 남 총장 기용이 ‘육사 독식’ 구조를 깨고 다양한 출신의 장교들이 선의의 경쟁을 하는 촉진제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경향신문 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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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6월 전국 16개 종합대학에서 선발한 사관후보생 3175명이 군사교육에 들어갔다. 학생군사교육단(ROTC)의 시작이었다. 이 가운데 2642명이 1963년 소위로 임관했다. 그 뒤 59년 동안 대학생 총 22만여 명이 이 길을 택했다. ROTC는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의 약어다. ROTC는 학군단이 설치된 대학에서 3·4학년 때 군사학 교육과 훈련을 받고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한다.

ROTC는 ‘3무(無) 1존(存) 3예(禮)’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3무는 ‘학연, 지연, 정치와 종파 초월’, 1존은 ‘오직 기(期)수’, 3예는 ‘선배에게 존경을, 후배에게 사랑을, 동기에게 우정을’을 각각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육사 등 다른 출신들 이상으로 유대가 강하다. 해병대 전우회, 고대 교우회, 호남 향우회 등 우리 사회에서 결집력이 강하기로 소문난 이른바 3대 친목단체에 이어 ROTC 중앙회가 4대 친목단체로 꼽힐 정도다.

ROTC는 시쳇말로 ‘말뚝’을 박고 장기 복무를 하는 소수의 장교를 제외하곤 90%가량이 의무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뒤 사회 각 분야로 진출, 우리나라 발전에 큰 역할을 해왔다. 지난 2011년 ROTC 50주년을 맞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시 현직 장차관급만 30여 명, 현역 국회의원은 9명, CEO급 경영자는 250여 명에 달했다. 기업 오너 일가 중에도 LS그룹 등이 자녀들에게 ROTC 복무를 권한 경우가 많았다.

그동안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실천한 ROTC 장교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 2011년까지 전사 또는 순직한 ROTC 장교는 390여 명이었다. 고 김범수 대위는 2004년 35사단 신병교육대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중 훈련병이 수류탄 안전핀을 잘못 뽑아 위험해지자 수류탄을 감싸 안고 산화, 보국훈장 광복장이 추서됐다. ROTC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장이 됐던 박세환 전 재향군인회장은 1968년 경비소대장으로 주월 한국대사관을 공격한 베트공을 성공적으로 격퇴해 화랑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ROTC 출신인 남영신 육군 지상작전사령관이 육군참모총장에 내정됐다. 그동안 ROTC가 2명의 합참의장을 배출했지만 육군참모총장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육군총장은 육사 출신이 도맡아 왔다. ROTC는 올해 임관한 5000여 명의 육군 소위 중 70%를 차지할 정도로 초급 간부의 중추와 같은 존재다. ROTC 출신 현역 장성은 30여 명에 달한다. ROTC는 예비역 모임에서도 거수경례를 하고 애국가는 4절까지 부른다. 모든 ROTC에게 축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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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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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rotc.html
kolaswqetsrq 11.03 02:09
왈리왈시曰梨曰柿 - 배 놔라 감 놔라 한다, 쓸데없이 간섭하다.

왈리왈시(曰梨曰柿) - 배 놔라 감 놔라 한다, 쓸데없이 간섭하다.

가로 왈(曰/0), 배 리(木/7) 가로 왈(曰/0) 감 시(木/5)

‘사람마다 저 잘난 맛에 산다’는 속담이 있다. 남이 보기에 보잘 것 없는 처지라도 제각기 다 자기가 잘났다는 긍지와 자존심이 있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엇나가는 행동을 바로잡아 주려 해도 상관하지 말라며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건 말건’ 두라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옳게 충고하는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良藥苦口 忠言逆耳(양약고구 충언역이)란 명구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남의 말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의 말 하기는 어지간히 좋아한다. ‘남의 흉이 한 가지면 제 흉은 열 가지’라고 쓸데없이 남의 흉을 봤다가 몇 곱으로 돌아오는 낭패를 당한다. 배 놓아라 말하고(曰梨) 감 놓아라 말한다(曰柿)는 것은 ‘사돈집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라는 속담을 한역한 데서 나왔다.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 선생이 엮은 ‘耳談續纂(이담속찬)’에는 남의 잔치에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라는 ‘他人之宴 曰梨曰柿(타인지연 왈리왈시)’로 표현했다.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서 쓸데없이 간섭한다(不在其位 枉有干涉/ 부재기위 왕유간섭)는 뜻이라고 풀이를 보탠다. 나서지 않아야 할 남의 일에 공연히 간섭하고 끼어들어서는 특히 예를 차려야 하는 사돈 간의 의를 상할 일이다.

사돈의 잔치라 했지만 실제 이 말은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이란 紅東白西(홍동백서)와 같이 제사 음식을 陳設(진설)하는 순서에서 비롯됐다. 제일 앞줄에 대추, 밤, 배, 감을 차례대로 차리는 棗栗梨柿(조율이시)의 원칙을 棗栗柿梨(조율시이)로 하는 것이 옳다고 서로 싸운다는 뜻이다. 배를 먼저 놓는 집안도 있고, 감을 먼저 차리는 곳도 있어 家家禮(가가례)라 하는데 자기 것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조그마한 원칙을 놓고 서로 양보를 않고 다투기만 한다면 항상 분란만 생긴다.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나의 원칙을 지킨다면 더 좋은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조선 중기 대비와 왕비의 상례문제를 둘러싸고 禮訟(예송)논쟁으로 치달은 것은 자기들 방식만 고집했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90.html
kolaswqetsrq 11.03 02:10
호손입포대猢猻入布袋 – 원숭이가 포대 안으로 들어가다, 행동이 구속돼 자유롭지 못하다.

호손입포대(猢猻入布袋) – 원숭이가 포대 안으로 들어가다, 행동이 구속돼 자유롭지 못하다.

잔나비 호(犭/9) 원숭이 손(犭/10) 들 입(入/0) 베 포(巾/2) 자루 대(衣/5)

원숭이는 사람과 가장 닮은 동물로 아주 영리하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동물계에서 가장 진화의 정도가 높기 때문이라 한다. 원숭이를 나타내는 한자는 犬猿之間(견원지간)의 猿(원)이 대표한다. 沐猴而冠(목후이관)의 猴(후)는 제후 후(侯)가 붙어 높은 관직을 뜻했다. 여기에 더 어려운 猢猻(호손)은 후베이(湖北) 성에 사는 원숭이의 종류로 그 생김새가 胡人(호인)을 닮은 데서 나왔다고 한다. 나무가 쓰러지면 살던 원숭이들도 흩어진다는 樹倒猢猻散(수도호손산)의 성어로 잘 알려져 있다.

원숭이(猢猻)가 포대 속에 들어갔다(入布袋)는 이 성어는 행동이 구속되거나 제약을 받아 자유롭지 못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줄여서 猢猻入袋(호손입대)라고도 한다. 宋(송)나라 시인 梅堯臣(매요신, 1002~1060)이 한 말로 교류가 깊었던 정치가 겸 문인 歐陽脩(구양수)가 지은 ‘歸田錄(귀전록)’에 실려 전한다. 매요신은 당시의 사회상을 시에 반영하여 구양수와 함께 송시의 혁신과 발전에 공헌했다는 평을 받는다. 杜甫(두보) 이후 최대의 시인이라는 상찬도 받는 재주를 가지고도 벼슬에 뜻이 없고 자유로운 생활을 지향하는 사람이었다.

왕명으로 구양수가 唐書(당서)를 수찬할 때 만년의 매요신도 함께 참여하라는 명을 받았다. 책이 완성되기 전에 매요신이 죽자 대신들이 모두 탄식하며 애석해했다. 구양수는 당시의 일화를 기록에 남겼다. 당서 중수 사업을 맡자 도무지 내키지 않았던 매요신이 부인에게 말했다. ‘내가 책을 편찬하는 일을 하는 것은 원숭이가 포대 속에 들어가는 격이오(吾之修書 可謂猢猻入布袋矣/ 오지수서 가위호손입포대의).’ 여기에 부인도 남편의 벼슬살이를 ‘메기가 대나무 장대를 타고 올라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亦何異鮎魚上竹竿耶/ 역하이점어상죽간야)’라고 응대한다. 그만큼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鮎은 메기 점.

어려운 일을 맡게 됐을 때 사람들은 모든 각오를 하게 된다. 내키지 않더라도 맡은 기간만큼은 최선을 다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흔히 하는 말로 결혼하면 감옥에 갇히는 격이라 말한다. 자식을 낳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밀쳐놓는 까닭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10.html
kolaswqetsrq 11.03 02:11
월관지화越官之禍 - 남의 업무를 한 사람이 화를 당하다.

월관지화(越官之禍) - 남의 업무를 한 사람이 화를 당하다.

넘을 월(走/5) 벼슬 관(宀/5) 갈 지(丿/3) 재앙 화(示/9)

越俎代庖(월조대포)가 남의 잔치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식의 간섭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면 이 성어는 교훈을 넘어 살벌하기까지 하다. 곧 관리가 자신의 직무를 넘어(越官) 다른 사람의 일을 했다고 하여 처벌의 재앙까지 당한다(之禍)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부재중일 때 선의로 그 업무를 대신했더라도 다른 사람의 직무를 넘보는 것이라고 엄격하게 적용했다. 오늘날 말하는 越權(월권)이다.

이렇게 삭막한 말이 韓非(한비)의 ‘韓非子(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라니 납득이 된다. 한비는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의 정치사상가로 원칙에 의해서 통솔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지름길이라 생각한 法家(법가)의 확립자다. 秦(진)의 시황제는 한비자에 나오는 孤憤(고분), 五蠹(오두) 등의 주장을 읽고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한다. 이 한비자의 二柄(이병)편에 越官之禍가 유래된 이야기가 있다. 二柄은 두 개의 칼자루 즉 신하를 다스리는 刑(형)과 德(덕), 상벌을 의미한다. 蠹는 좀 두.

옛날 韓(한)나라의 昭侯(소후)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典冠(전관, 군주의 관을 관리하는 벼슬아치)이 군주가 추워하는 것을 보고 옷을 덮어 주었다. 잠에서 깨어난 왕이 누가 옷을 덮었는지 물었다. 신하들은 전관이 했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전관과 典衣(전의, 임금의 옷을 담당하는 관리) 모두 불러오게 했다. 그리고는 전관에 상을 주기는커녕 전의와 함께 문책했다. 모두들 의아해하자 이렇게 말했다. ‘전의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전관은 자신의 직분을 넘어서 越官(월관)했기 때문’이라고. 임금은 자신이 추위에 감기 드는 것보다 다른 일에 간섭하는 피해가 더 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비는 모든 신하들이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자신들이 말한 것을 실천에 옮긴다면, 신하들이 朋黨(붕당)을 지어 서로 편싸움을 하지 않을 것이란 가르침을 덧붙인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35.html
kolaswqetsrq 11.03 02:11
◇ 코로나 시대, 비뇨기과로 환자가 몰리는 이유는?

◇ 코로나 시대, 비뇨기과로 환자가 몰리는 이유는?

서울 마포구에 사는 이모씨는 이달 초 평생 처음으로 비뇨기과에 갔다. 발기부전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2년 전부터 문제가 있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씨는 “코로나로 장사가 안되는 상황인데, 성관계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우울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로나가 자영업자나 기업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지만, 오히려 환자가 늘어난 업종도 있다. 그중 하나가 ‘비뇨기과’다. 비뇨기과 업계 관계자는 “성 기능을 회복시켜 달라며 문을 두드리거나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한 제약업체가 판매하는 비아그라 복제약 A의 경우 올해 들어 매출액(1~8월)이 작년 동기보다 10%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박경식남성비뇨기과는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이 20~30% 증가했다. 한 달 평균 2~3건이던 발기부전 관련 수술도 1주일에 2~3건으로 늘었다고 한다. 한 비뇨기과 전문의는 “모든 비뇨기과에서 손 증가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비뇨기과나 발기부전 치료제 판매는 비교적 선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왜 그럴까.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남성으로서 성적 능력마저 잃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나 두려움을 갖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비뇨기과 전문의 박경식 원장은 “모든 게 힘든 시기에 그나마 내가 아직 살아 있고,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원초적 수단 중 하나가 성관계다. 그렇다 보니 비뇨기과나 약물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최대한 시도해보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안산시 ‘김비뇨기과’ 김남국 원장은 “코로나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침체해 있다 보니 가까운 곳에서 돌파구를 찾겠다는 심리의 반영”이라고 했다.

이렇다 보니, 비뇨기과의 진료 종목도 다소 변했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조루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남성들이 많았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발기부전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박경식 원장은 “예전에는 7대3의 비율로 조루 환자가 많았는데, 코로나 사태 후엔 발기가 3대7로 역전됐다”고 했다. 또한 성관계 횟수가 다소 늘다 보니 요로 결석 같은 질병에 대한 치료가 줄고 대신 각종 성병을 고쳐달라는 환자가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1997년 IMF 외환 위기 때도 일부 나타났다. 한 비뇨기관 전문의는 "IMF 시절에는 발기부전을 치료해 달라는 환자들이 몰려 한 달에 약 1억5000만원을 벌었다. 내 직업의 전성시대였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43.html
kolaswqetsrq 11.03 02:12
◇ 박쥐는 사람의 적일까, 친구일까?

◇ 박쥐는 사람의 적일까, 친구일까?

박쥐는 북극과 남극을 제외한 세계 전역에 서식한다. 1400여종으로 종류가 많아 전 세계 포유동물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생물학자들은 박쥐를 지구상에서 절대로 사라지면 안 되는 생물 5가지 중 하나로 꼽는다. 인류 진화에 통찰력을 주는 영장류, 꽃가루를 옮기는 벌, 광합성으로 산소를 만들어내는 플랑크톤, ‘자연의 청소부’ 역할을 하는 균류(곰팡이)와 함께 인류 생존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박쥐는 자연의 살충제로 기여한다. 엄청난 양의 해충을 잡아먹어 생태계를 안정시킨다. 바나나·망고 등 열대과일류의 꽃가루를 옮기는 착한 일도 한다.

그런데 박쥐는 인류를 위협하기도 한다. 박쥐는 에볼라·사스·메르스 등 대다수 감염병 바이러스의 1차 숙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의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3종류의 흡혈박쥐는 광견병을 사람에게 직접 전파한다. 체온이 높아 어지간한 바이러스에 끄떡없는 박쥐의 특성은 어디서나 생존하는 놀라운 적응력의 바탕인데, 이 때문에 박쥐는 온갖 바이러스를 가지고 사는 ‘바이러스의 저수지’로 통한다.

최근 인천·시흥·고양 등 도시 지역의 아파트촌에서 박쥐가 많이 나타나 주민들이 놀라고 있다. 대다수 박쥐들이 아파트 방충망에 한참 동안 달라붙어 있어 이를 없애달라는 민원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긴장하고 있는 시민들이 느닷없이 나타난 박쥐를 보고 감염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박쥐로 인한 감염 사례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저수지’를 함부로 접촉할 일도 없다.

박쥐들은 주로 ‘신도시’의 대단지 아파트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박쥐들이 그 지역에 전부터 살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겨울잠을 앞두고 먹이를 찾던 박쥐들이 아파트 방충망을 새로운 휴식처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아파트 개발로 인해 갈 곳 잃은 박쥐들이 사람들 세상으로 가까이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숲이나 동굴 속에서 살고 밤에 움직이는 박쥐가 도시에서 대낮에도 살게 됐다. 인간 세상의 개발에 따른 환경 변화는 도시에서 사람이 박쥐와 공존해야 하는 풍경을 만들었다. 과연 박쥐는 사람의 적일까, 친구일까.

-경향신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70.html
kolaswqetsrq 11.03 02:13
◇ 영국 런던탑의 근위병은 왜 소고기 먹는 사람으로 불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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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런던탑의 근위병은 왜 소고기 먹는 사람으로 불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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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언론들이 최근 일제히 비피터(Beefeater)가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530여년 만에 처음으로 감원 수순을 밟게 됐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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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로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런던탑의 수입이 줄어 화려한 붉은색 제복을 입고 런던탑을 지키는 근위대 비피터〈사진〉가 잘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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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위대는 1485년 창설돼 런던탑에 수감된 죄수들을 감시하고 왕가 보물을 지키는 경비병 역할을 수행했다. 현재는 유명 관광지가 된 런던탑을 방문하는 관광객 안내를 담당한다. 그런데 왜 이들이 소고기(beef) 먹는 사람들(eater)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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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귀했던 소고기를 이들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많다. 영국 매체 미러는 "1800년대까지 근위병들이 소고기 덩이를 월급의 일부로 받았다"고 했다. 토스카나 대공이었던 코시모 3세 데 메디치가 1669년 런던을 방문했을 때 "매일 많은 양의 소고기가 근위병에게 지급된다"고 말했다는 기록도 있다.

또 귀족이나 적국 왕족 등 신분이 높은 런던탑 죄수에게 보내진 소고기 배급량 일부를 간수였던 근위병들이 먹었기 때문이라고도 전해진다.

귀족에 상응하는 풍족한 삶을 영위했던 비피터들은 지금도 까다로운 조건에 의해 선발되고 있다. 런던탑 근위병이 되기 위해선 임명될 때 나이가 40~55세 사이여야 하며, 최소 22년의 군 복무 경력이 필요하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32.html
kolaswqetsrq 11.03 02:14
◇ 50년 만에 다시 대학생 되는 조동성 전 인천대 총장

◇ 50년 만에 다시 대학생 되는 조동성 전 인천대 총장

67학번 ‘총장님’이 ‘2020학번 학생’으로 돌아왔다. 조동성(71)전 인천대 총장. 지난 7월 퇴임 전, 올 1학기 편입학전형으로 한국방송통신대(방송대) 중어중문학과에 합격했고, 지난 1일부터 3학년 새 학기를 시작했다. 조 전 총장은 “이번 학기엔 6과목 18학점을 신청했다”며 “용감하죠?”라고 웃어 보였다. 18학점은 일반 대학생들이 한 학기에 듣는 학점 수준이다.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 67학번으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경영학)를 받았다. 1978년 최연소 서울대 교수로 임용돼 경영대학장을 지냈고, 36년간 재직하며 15개 해외 대학의 초빙·겸임교수로도 활동했다.

50년 만에 다시 학부생이 된 데 대해 조 전 총장은 “2년간 중국에 살며 강의했지만 중국어를 제대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며 “장기적으로 중국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4년 중국 베이징의 장강경영대학원(CKGSB) 교수로 임용됐지만 2년 뒤 인천대 총장으로 부임하며 휴직했다. 장강경영대학원 임기는 80세가 되는 2029년까지다. 코로나19가 가라앉으면 강단에 다시 설 계획이다.

조 전 총장은 “중국어는 표의문자라서 문학·역사·철학 등을 함께 배우는 게 도움이 된다”며 “향후 500년까지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역할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중국은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어설프게 배운 데서 실수가 잦다. 최근의 정치·경제적 마찰도 중국을 어설프게 알아서 생기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40년 전 방송대가 서울대 부설기관일 때 강의한 적이 있는데, 당시 가정형편 탓에 방송대에 온 학생들이 열정을 갖고 수업을 들었던 게 가슴에 남았다”고 돌이켰다.

조 전 총장은 ‘평생학습 전도사’다. 만나는 이마다 “공부를 계속하라”고 권유한다. “내 말을 듣고 박사학위를 받거나 공부 중인 사람이 서울대에만 100명쯤 된다. 다른 대학까지 하면 400명은 족히 된다”고 했다. 중어중문학 학사과정 외에도 지난 4일부터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에서 인공지능(AI) 공부도 시작했다. “AI가 경영학의 범주를 침범한 이상 AI의 수(數)를 모르면 아마추어로 남는다. 경영학자로서 AI를 배우고 경영학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게 그의 얘기다.

“생태학자인 제 친구 최재천 교수에 따르면, 사람들은 개미가 열심히 일하는 곤충으로 알지만 그렇지 않대요. 굴을 관찰해보면 공부하는 개미도, 부지런한 개미도, 은퇴해서 쉬는 개미도, 노는 개미도 있대요. 어떤 동물이든 수명의 3분의 1은 삶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공부하고, 3분의 1은 일하고, 3분의 1은 쉰다는 거예요.” 조 전 총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평균수명이 50세가 안 되던 시절엔 15세 중학교 과정까지 공부하면 사회 리더가 될 수 있었죠. 하지만 수명이 70세로 늘어나니 대학 공부가 필요해진 거고. 이제 100세 시대이니 30년 이상 공부해야 하죠. 박사학위가 더는 사치품이 아닌 시대가 올 거라고 봐요.”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0.html
kolaswqetsrq 11.03 02:15
◇ 앵커 멘트는 누가 쓰나요?

◇ 앵커 멘트는 누가 쓰나요?

얼마 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메시지를 비서관이 대신 썼다는 것이 알려지며 갑론을박이 있었다. 아나운서 출신 국회의원이 라디오에 나와 “뉴스 오프닝 멘트도 작가나 취재기자가 쓰기도 한다”고 하자 대담을 하던 앵커가 “저는 제가 쓴다”고 응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청자들이 궁금해 할 이야기가 나왔구나 싶었다. ‘뉴스 앵커 멘트는 누가 쓰는가?’하는 것이다.

리포트의 앵커 멘트는 기본적으로 취재기자가 쓴다. 15~30초로 핵심 내용을 설명해야 하는데 그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기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멘트가 그대로 방송되는 건 아니다. 담당 데스크가 2차로 다듬고, 이것을 앵커가 다시 한 번 손본다. 이 과정에서 앵커는 수시로 취재기자에게 내용을 파악하고, 때로는 멘트 전체를 수정한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도 앵커 멘트의 주인은 직접 말을 전달하는 앵커라 할 것이다.

앵커 멘트 작가를 따로 두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리포트보다는 주로 인상 깊은 오프닝(시작)과 클로징(끝) 멘트를 담당한다. 과거 아침 뉴스 작가로 일할 때 1분도 안 되는 오프닝 멘트를 위해 새벽 3시부터 신문을 샅샅이 뒤지던 기억이 생생하다.

앵커 멘트에 관한 또 하나의 궁금증은 “그 긴 말을 다 외워서 하느냐”는 것이다. 꼭 그렇지는 않다. 잘 알려진 프롬프터라는 장비가 있어서 카메라 앞 모니터에 글씨가 뜬다. 편리하지만 사고 위험도 높다. 앵커와 말 속도가 맞지 않아 엇박자가 나거나, 순서가 꼬여 속칭 ‘멘붕’에 빠뜨리기도 한다.

프롬프터 하면 기억나는 일이 있다. A와 B 앵커가 있었는데, 어느 날 A 앵커가 뒤 시간대 B 앵커에게 본인이 고친 멘트를 손대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럼 B 앵커는 A 앵커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B 앵커는 화내지 않고 알겠다고 말하더니, 정말 즉석에서 멘트를 정리해가며 뉴스를 진행했다. 프롬프터에 A 앵커가 고친 멘트가 떠 있는 상황에선 헷갈리지 않기가 상당히 어려운데도 그는 작은 실수도 없었다. 방송가는 이렇게 고수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곳이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70.html
kolaswqetsrq 11.03 02:15
◇ 차례상에 전을 빼고 피자를 올려도 되나요?

◇ 차례상에 전을 빼고 피자를 올려도 되나요?

감히 손대기 어려운 관혼상제(冠婚喪祭) 풍습을 코로나가 바꾸고 있다. 추석 차례도 예외가 아니다.

명절 예법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집집마다 다르기도 하다. 무엇이 오해이고 무엇이 진실일까. 일반적인 궁금증 다섯 가지를 ΟΧ퀴즈로 정리했다. 맞는다고 생각하면 빈칸에 Ο를, 틀린다고 생각하면 Χ를 넣으시길. 정답과 해설은 뒤에 붙인다.

▶ 퀴즈

전통 예법에 따르면 명절에는 반드시 모여야 한다( )

여러 조상의 제사를 모아서 하루에 지내면 안 된다( )

차례상에 와인, 피자, 치킨, 바나나를 올려도 된다( )

차례상 차릴 때는 조율이시(棗栗梨柹), 홍동백서(紅東白西) 같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 )

모이면 위험할 경우 큰집과 작은집에서 따로 차례를 지내도 된다( )

▶ 정답과 해설

조선 시대에 어느 삼 형제 중 장남이 평양에서 벼슬을 하고 나머지 형제와 친족은 한양에서 살았다면 명절에 다 모이기 어려웠다. 이런 경우 한양에 사는 차남 집에 모여 차례를 지냈다. 올해처럼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땐 가족이 모이지 않아도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오히려 안 모이는 게 합당하다. 집안 사정에 따라 결정하되 건너뛴다고 손가락질받을 일은 아니다.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것도 좋지만 산 자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1년에 10회 가까운 제사를 하루에 합쳐 지내는 집안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된다. 유학은 어떤 신을 모시는 학문이 아니다. 가족마다 현실에 맞게 조상을 기리면 된다.

자손이 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차례상에 올리면 된다. 요즘 사람들은 즐기지 않는 잣이나 은행은 내려도 된다. 수입 과일? 바나나면 어떻고 파인애플이면 어떤가. 치킨, 와인도 좋다. 전을 빼고 피자를 놓을 수도 있다. 단 조상에게 올린 음식을 버리면 안 된다.

조율이시나 홍동백서를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다. 음식 진설은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집안마다 지역마다 다르다. 남의 집 제사에 가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거 아니다.

추석에 두 곳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은 금기다. 서울 찍고 부산에 가야 한다면 조상이 얼마나 불편하겠나?

정답은 순서대로 ΧΧΟΧΧ다. 성균관 전례위원회 권선출 부위원장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무형유산학과 최영성 교수가 해설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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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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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60.html
kolaswqetsrq 11.03 02:16
■ 김기범 교수의운을 부 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 김기범 교수의운을 부 르는 풍수인테리어 기법

✔ 현관 풍수인테리어 기법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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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회 17회에 이어서 운을 부르는 현관 풍수인테리어 중에서 색상과 기(氣)작용의 원리로 흰색은 오행으로는 금(金)이고, 순수함을 나타내므로 깨끗한 친구, 좋은 친구를 찾고 싶을 때 활용하는 색이다. 그러나 현관 인테리어 색상으로는 너무 깨끗함은 오히려 무의식중에 부담감을 갖도록 하는 인간의 심리 작용을 할 수 있으므로 밝은 것은 좋으나 현관 전체가 흰색으로 인테리어를 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회색 및 갈색은 가능한 현관 인테리어 색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베이지색은 풍수지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사업자가 사업에 대한 자신이 없을 때나, 사업진행이 불확실할 때, 새로운 사업을 도전하고자 한다면, 사무실이나 점포의 현관 인테리어 색상으로 짤번 기간만 활용 한다면 가능한 색상이다.

남색(연꽃 색)은 아주 고귀함이라는 힘을 가진 색상이므로 풍수인테리어 원리에 맞게 활용 할 경우에는 좋은 운기(運氣)가 나올 수 있다.

♣ IFSA 국제풍수협회 선정 2018 대한민국 최고 풍수인테리어 전문가

♣ 문의 : 010-2432-5522, http://cafe.daum.net/kkb2005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22.html
kolaswqetsrq 11.03 02:16
必须 bìxū

必须 bìxū

1. 반드시 ...해야 한다

2. 꼭 ...해야 한다

3. 기필코 ...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ixu.html
kolaswqetsrq 11.03 02:17
◇ 정부 꼬집는 39세 동갑 ‘左은산 右삼호’

◇ 정부 꼬집는 39세 동갑 ‘左은산 右삼호’

▶ 시무 7조 ‘조은산’ 과 주부 블로거 ‘삼호어묵’

최근 정부 실정에 촌철살인 과시하는 닮은꼴 두 논객이 화제다. 청와대 청원 ‘시무 7조’로 신드롬 일으킨 진인(塵人) 조은산과 네이버 카페 ‘부동산 스터디’에 ‘정부가 집값을 안 잡는 이유’ 시리즈를 올려 화제 모은 주부 블로거 ‘삼호어묵’이 주인공. 각자 밝힌 바로는 39세 동갑이다. 여기에 범상찮은 필력, 어린애 기르는 부모 등 여러 면에서 닮은 데칼코마니다. 이들을 좌청룡 우백호에 빗댄 ‘좌은산 우삼호’란 말까지 등장했다. 이와 관련, 두 사람에게 서면 질의를 했다. 회신은 삼호어묵에게서만 왔다.

▶ 39세 동갑, 애 키우는 엄마 아빠

두 사람은 쏟아지는 관심에도 구체적 신상을 밝히지 않았다. 인터뷰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둘의 가장 큰 공통점은 동갑내기 엄마 아빠란 점. 조은산은 “보잘것없는 밥벌레이자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39세 애 아빠”, 삼호어묵은 “부동산 정책에 화나서 밥하다 말고 뛰쳐나온 39세 평범한 애 엄마”라고 자신을 밝혔다.

날카로운 글에도 생활 밀착형 비유, 어린애 키우는 부모의 농반진반 신세 한탄이 빠지지 않는다. 가령 조은산은 “큰놈은 등짝에 들러붙어 저의 머리털을 뽑아대고 딸자식은 변기에 손을 넣어 지(제) 똥을 움켜쥐니 도저히 이웃님들의 글에 일일이 답을 할 수 없다”고 너스레 떤다. 삼호어묵의 자기소개는 이렇다. “마트 가면 천원 더 비싼 국산 두부냐 중국산 두부냐 두부 코너 앞에서 햄릿 뺨치게 고민하고, 명품 백 하나 못 사고 에코 백 들고 다니면서 한 푼 두 푼 열심히 모아서 한 1억~2억쯤 종잣돈 만들었는데 적폐, 투기꾼으로 몰린 주부.”

비슷한 톤 때문에 초기엔 동일인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다. 삼호어묵은 기자와 나눈 서면 대화에서 “조은산님이 청와대에 ‘다치킨자 규제론’ 청원을 올렸을 때부터 제가 쓴 게 아니냐는 문의를 오조 오억 번 받았다. 나이가 같다 보니 이래저래 비슷한 면이 많은 듯하다. 괜히 혼자 동지애 품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저는 솔직히 ‘졸보’라 그래도 선은 안 넘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분은 김모 장관 추모 장관한테 붕어니 개니 말한다. 저보다 더 용감하다. 감방 동지가 생긴 듯해 기쁘고 든든할 뿐”이라며 시종일관 유머를 놓지 않았다.

이들과 동갑인 직장인 박모(39)씨는 “백일 된 아이 아빠인데, 똥 기저귀 버리러 가야 하기 때문에 댓글을 일일이 못 단다는 조은산 글 보니 내 얘기 같았다”며 “고상한 학자, 연구원이 젠체하며 현학적으로 쓴 글은 공감이 안 되는데 일상에서 부딪히는 얘기가 곁들여지니 와 닿는다”고 했다. 그는 “우리 또래가 81~82년생 마흔 언저리로, 어린애들 한둘 키우며 내 집 마련 위해 한창 아등바등 살 때다. 직장에서도 X세대 꼰대와 Z세대 밀레니얼 사이 낀 세대로 고민이 많다”며 “두 사람 글에 그런 세대적 감수성이 은연중에 묻어 있는 것 같아 감정이입하게 된다”고 했다.

▶ ‘노잼‘은 싫다

공통 특기는 풍자, 해학, 패러디 자유자재 오가는 필력. 정부 비판 글에도 웃음 한 스푼 잃지 않는다. 삼호어묵은 “뭐든 ‘노잼(재미 없음)’이면 안 보는 게 요즘 사람들”이라며 “조은산님 글은 젊은 층이 좋아하는 유머와 노년층이 좋아할 만한 엄숙함을 동시에 갖고 있고, 저는 부동산이라는 많은 사람이 관심 가지는 코드를 딱 잡아서 재미있게 말해 반응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삼호어묵이란 필명은 밥하다가 눈에 띈 어묵 봉지에서 땄다고 한다.

문체는 결이 다르다. 삼호어묵은 재기 발랄 수다체, 조은산은 묵직한 의고체(擬古體·예스러운 표현이나 문체). 이 때문에 삼호어묵에겐 “가볍다”, 조은산에겐 “고루하다”는 평도 따른다. 댓글 보면 삼호어묵은 상대적으로 20~40대 젊은 층, 조은산은 50~70대 중·장년층 호응이 크다.

◇ 둘 다 어려운 시절 보내

사람들의 공감 사는 또 하나의 포인트. 둘 다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는 자기 고백이다. 삼호어묵은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 땐 온 가족이 컨테이너에 살았고, 고등학교 땐 부모님 하시던 가게 단칸방에 살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거 없이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조은산도 “전역 후에 시작한 막일로 밑천을 벌고 그 돈으로 공부를 시작해 스물일곱 살 끄트머리에 먹고살 만한 직장의 입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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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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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9.html
kolaswqetsrq 11.03 02:18
◇ 10년간 이뤄질 변화를 1년 만에... 저무는 양복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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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간 이뤄질 변화를 1년 만에... 저무는 양복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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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얘기지만 양복은 한반도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서양의 옷’이란 뜻이었다. 조선 말기 개화파 정객들이 제일 먼저 양복을 입었는데, 1880년대 초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에 파견됐던 김옥균 서광범 유길준 윤치호 등이 그들이다. 그래서 한때 양복의 다른 이름은 ‘개화복’이었다.

조선에서 서양식 양복을 받아들인 것은 이로부터 10여 년이 더 지난 1894년 갑오개혁 이후다. 1895년 단발령이 내려졌고 1896년 고종의 칙령으로 서양식 육군복장을 제정했다. 1900년에는 문관들의 관복도 일본이 전수한 서양식으로 바꿨다. 1898년 배재학당이 검정 양복 스타일의 교복을, 1907년 숙명여학교가 자주색 원피스로 된 서양식 교복을 채용했고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한복 교복이 금지돼 양복식 교복이 퍼졌다.

‘상의와 하의를 같은 천으로 만든 한 벌의 양복’으로 대표되는 양복 정장은 한국의 현대사와 호흡을 함께하며 일상 속에서 격식을 갖춘 옷차림으로 정착했다. 경조사나 중요한 만남, 공적인 행사, 면접 등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춰, 패션과 의전 사이를 오가며 드레스코드를 충족해 줬다.

이런 양복의 시대가 끝났다는 진단이 패션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정장 수요도 줄었기 때문이다. 화상회의에 상의는 격식을 갖추고 하의는 반바지 차림으로 참석해도 되는 요즘 세태가 영향을 끼쳤다. 미국에서는 브룩스브러더스 등 전통 있는 정장 기업이 줄파산하고 국내 남성복 시장 규모도 8년 새 40%나 졸아들었다. 한 글로벌 의류업체 사장이 말한 대로, 코로나19는 “10년간 이뤄질 변화를 1년 만에 가져다주고 있다”.

양복, 특히 50대의 남성이 입은 양복은 최근 기성세대의 권위나 관행과 동의어가 돼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달 초 국회 본회의에 빨간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 논란의 중심에 선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국회 권위가 양복으로 세워지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관행이나 TPO가 영원히 한결같은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일할 수 있는 복장이면 된다는 주장이다.

요즘은 맞춤정장보다 경제적인 기성복이 대세지만 양복의 본고장 유럽에서는 여전히 맞춤양복을 선호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 맞춤정장 가게가 즐비한 영국의 새빌로(Savile Row) 거리는 ‘원탁의 기사’를 모티브로 한 영화 ‘킹스맨’의 무대이기도 하다. 인류를 위협하는 악의 무리를 막아내는 조직의 핵심에 양복점이 등장하는 상상력에서, 유럽사회가 갖는 장인들에 대한 존경과 경외가 슬쩍 엿보였다. 양복과 언택트 시대의 복장, 합일점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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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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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1.html
kolaswqetsrq 11.03 02:18
◇ 코비드 신조어, 산스장 공스장 코비디어트 코비드-20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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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비드 신조어, 산스장 공스장 코비디어트 코비드-20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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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속어를 모은 인터넷 사전을 보니 아주 불운한 사람을 ‘Covid-38’이라고 부른다. 코로나의 공식 명칭(Covid-19)에서 따온 말로, 코로나에 두 번 걸릴만큼 운이 나쁘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 동안 갑자기 몸무게가 불어난 ‘확찐자’에게 해당하는 말은 ‘Covid-20’이다. 운동을 못해 20파운드(약 9kg)나 늘었다는 말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거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멍청이(idiot)는 ‘코비디어트’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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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산스장’ ‘공스장’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헬스장을 못 가니 운동 기구가 비치된 산이나 공원을 찾아 운동 욕구를 푼다는 것이다. 재택근무 덕에 하루 세 끼 챙겨줘야 하는 ‘삼식이 남편, 등교 안 하는 자녀에게 돌아서면 밥을 해줘야 한다는 뜻의 ‘돌밥돌밥’, 집에서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집관족(族)’ 등도 유행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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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과 해학이 담긴 신조어는 코로나 사태를 견디는 데 작은 위로가 된다. 하지만 현실은 익살만으로는 버텨내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게 변해가고 있다. 수도권에서 밤 9시 이후 영업 금지 조치가 또 연장되자 자영업자들은 “이제 정말 더는 못 버티겠다”고 비명을 지른다. 급기야 두 칸 작은 방을 세 얻어 ‘노래바’ 영업을 하던 60대 자매가 “살아가기 힘들다”며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건드리면 터질 것 같다”며 인내심의 한계를 호소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절망과 분노, 울분은 결국은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돼야 해소된다. 백신 개발엔 보통 8~10년 걸린다. 가장 빨리 개발됐다는 볼거리 백신은 4년 만에 나왔고, 수두 백신은 34년 걸렸다. 에이즈는 40년이 다 돼가도 아직 백신이 없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올 11월엔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선거용일 수 있지만 전문가들은 “코로나 백신 개발 속도가 과거보단 훨씬 빠른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터널 끝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은 고통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그렇다고 백신 개발만 기다리기엔 지금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 무증상까지 포함한 코로나 감염자는 실제 확진자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한다. 그런데도 지난 8개월 동안 정부는 신속 검사, 집단 검사 운운하면서도 국민 몇%에서 항체가 형성됐는지조차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코로나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온 국민의 인내심은 폭발 임계치를 향하고 있다. ‘내가 코로나에 걸렸나’ ‘혹시 항체는 형성돼 있나’ 하는 국민 답답증만이라도 먼저 풀어주었으면 한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0.html
kolaswqetsrq 11.03 02:19
◇ 한국인 코로나19 걱정 선진국 중 최고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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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코로나19 걱정 선진국 중 최고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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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선진국 가운데 한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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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미국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14개국 국민 1만4천27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한국인의 89%가 감염병 확산을 국가의 중대한 위협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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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14개국 중 가장 높은 비율로 일본(88%), 미국(78%), 영국(74%), 캐나다(67%)가 뒤를 이었다.

퓨리서치센터는 감염병 확산 외에도 기후변화, 테러, 해외 사이버 공격, 핵무기 확산, 세계 경제 상태, 빈곤, 국가나 민족 간 오랜 갈등, 대규모 이주 등 9개 항목에 대해 각국 국민이 얼마나 큰 위협이라고 생각하는지 매년 추적 조사했다.

이 중 한국은 감염병을 비롯해 해외 사이버 공격(83%), 글로벌 경기(83%), 국가나 민족 간 갈등(71%), 대규모 난민 이주(52%)를 중대한 위협으로 보는 비율이 14개국 중 가장 높았다.

또 핵무기 확산의 경우 10명 중 8명(79%)이 주요 위협으로 봤는데, 이는 일본(87%)에 이어 대상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았다.

조사대상 14개국 중 유럽을 중심으로 한 8개국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기후변화였다.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스웨덴과 캐나다는 코로나19로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지만, 여전히 기후변화를 가장 큰 위협으로 꼽았다.

이들은 코로나19가 주요 위협 요소라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역대 가장 높은 비율로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퓨리서치센터는 정부가 유행병에 잘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주로 전염병 확산을 주요 위협으로 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염병 확산에 대한 우려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득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큰 관심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기 침체도 주요 불안 요소로 꼽혔다.

14개국 응답자 10명 중 6명이 세계 경제 상태에 우려를 표했는데, 이는 2018년과 비교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10%포인트 이상 높아진 것이다.

한국은 83%가 이를 위협으로 봤는데, 14개국 중윗값인 58%를 크게 웃도는 비율이다.

퓨리서치센터는 "자국의 현재 또는 미래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고 답변한 이들이 세계 경제 상황을 주요 위협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9_8.html
kolaswqetsrq 11.03 02:20
이시목청耳視目聽 - 귀로 보고 눈으로 듣다, 눈치가 빠르다.

이시목청(耳視目聽) - 귀로 보고 눈으로 듣다, 눈치가 빠르다.

귀 이(耳/0) 볼 시(見/5) 눈 목(目/0) 들을 청(耳/16)

귀로 볼 수 있고 눈으로 들을 수 있다면 도통한 경지다. 耳視(이시)란 직접 보지 않아도 소문을 들어서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目聽(목청)은 직접 듣지 않아도 말하는 표정만으로 알아차리는 것을 뜻한다. 이 둘을 합친 耳視目聽은 道家(도가) 수양의 한 단계라 하는데 눈과 귀의 도움 없이 정신만으로 시각과 청각이 가능하게 된 경지를 가리킨다고 한다. 여기에서 속인들은 눈치가 대단히 빠른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눈치가 있으면 어디를 가도 군색한 일이 없다며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젓갈을 얻어먹는다’는 속담도 남겼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도가의 전설적 사상가 저작이라는 ‘列子(열자)’에 관련 이야기가 전한다. 魯(노)나라의 3대 가문 중 하나인 叔孫氏(숙손씨)가 陳(진)나라의 대부를 초청했다. 노나라에는 孔子(공자)라는 성인이 있다고 말하자 진 대부도 주눅 들지 않고 자기 나라에도 훌륭한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숙손씨가 누구냐고 물으니 대부가 대답한다. ‘老子(노자)의 제자인 亢倉子(항창자, 亢은 높을 항)라는 사람인데 노자의 도를 터득하여 귀로 보고 눈으로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能以耳視而目聽/ 능이이시이목청).’ 이 말을 들은 노나라 임금이 크게 놀라 상경을 시켜 후한 예로 모셔오게 했다.

항창자가 초빙에 응해 노나라에 오자 왕이 사실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항창자는 ‘소문을 낸 사람들의 망언일 뿐입니다. 저는 보고 듣는데 귀와 눈을 사용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귀와 눈의 쓰임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我能視聽不用耳目 不能易耳目之用/ 아능시청불용이목 불능역이목지용).’ 몸이 마음과 합하고, 마음이 기운과 합하고, 기운이 정신과 합하고, 정신이 無(무)와 합하는 수양을 쌓으면 감각작용이나 지각작용에 의하지 않고서도 자연히 알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여기서 유래하여 눈치가 빠르고 감각 능력이 뛰어난 총명한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일을 처리하는데 가장 적합한 때가 있다. 이 시기보다 빠르거나 늦어서 낭패 보는 일이 허다하다.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는 눈귀로 보고 듣지 않아도 알만한데 시기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10.html
kolaswqetsrq 11.03 02:20
比较 bǐjiào

比较 bǐjiào

1. 비교하다 2. 비교적 3. ...에 비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ijiao.html
kolaswqetsrq 11.03 02:21
일신우신日新又新 - 날로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진다.

일신우신(日新又新) - 날로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진다.

날 일(日/0) 새 신(斤/9) 또 우(又/0) 새 신(斤/9)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새 옷, 새 신발, 새 집에 새 가구 등 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새 술은 새 負袋(부대)에’라는 말이 있다. 우리 속담이 아니고 성서에서 유래한 영국 격언이다. 새 술이라서 새 가죽 자루에 넣는다는 것이 아니고 낡은 부대에 넣으면 솔과 같이 못 쓰게 된다는 이야기다. 孔子(공자)도 옛것만 많이 익혀서는 쓸모가 없고 그것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것을 익혀야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溫故知新(온고지신)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나날이 새로워지고(日新) 또 새로워진다(又新)는 잘 알려진 이 성어는 日日新 又日新(일일신 우일신)의 준말이다. 중국 고대의 夏(하)나라 폭군 桀王(걸왕)은 현신의 간언을 듣지 않고 사치를 일삼고 포악한 정치를 펼쳤다. 이를 보다 못한 제후들은 걸왕을 내쫓고 신망이 높았던 湯(탕)을 천자로 추대하니 商(상)나라다. 成湯(성탕)이라고도 하는 湯王(탕왕)은 걸왕의 학정을 반면교사로 생각하며 제도와 전례를 정비하는 등 백성들을 잘 다스려 역대 聖君(성군) 중의 하나로 추앙받는다.

덕치주의의 이상을 보인 탕왕도 매일 사용하는 세숫대야에 자신을 경계하기 위한 글을 새겨놓았다. 禮記(예기)에 포함되어 있던 것을 四書(사서)로 독립시킨 ‘大學(대학)’에 나오는 부분을 보자. ‘탕왕의 대야에 새긴 경계의 말에 이르길, 진실로 새로워질 수 있다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고 했다(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탕지반명왈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 소반 盤(반)은 물을 담는 청동 그릇, 좌우명 할 때의 새길 銘(명)은 그 그릇에 새겨진 글이다. 苟는 진실로 구, 또는 구차할 구. 탕왕이 새긴 9자의 글자는 湯盤銘(탕반명), 湯銘(탕명)이라 말하기도 한다.

탕왕이 추구한 새로운 것은 하늘로부터 받은 착한 본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갈고 닦는 것을 가리킨다. 나쁜 것에 휘둘리지 않고 착한 바탕을 그대로 지켜 나가는 것이 새로운 것이 된다. 새로운 것을 강조한다고 지나간 것을 모조리 폐기한다면 그 또한 지나가면 새로운 것이 될 수 없다. 이럴 때는 경험이 많거나 익숙한 사람이 더 잘 할 수 있다는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속담이나, 구약성서에 나오는 ‘하늘 아래 새 것이 있을 리 없다’란 구절을 되살필 필요가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75.html
kolaswqetsrq 11.03 02:22
귀이천목貴耳賤目 –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기다. 멀리서 들어온 것만 중시하다.

귀이천목(貴耳賤目) –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기다. 멀리서 들어온 것만 중시하다.

귀할 귀(貝/5) 귀 이(耳/0) 천할 천(貝/8) 눈 목(目/0)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는 흔한 것은 가치를 모르고 지나친다. 그래서 자꾸 눈을 딴 데로 돌린다. ‘남의 손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남이 잡은 일감이 더 헐어 보인다’는 속담대로다. 자기 밥의 콩은 항상 작아 보이고, 제 마누라는 고마움을 모르고 남의 부인은 미인으로 보인다. 자기 집의 닭을 하찮게 여기고, 들의 꿩은 훨씬 가치를 높게 여긴다는 家鷄野雉(가계야치)란 성어와 통한다. 같은 뜻의 귀를 귀하게 여기고(貴耳) 눈을 천하게 여긴다(賤目)는 이 말은 마음의 등불이라는 눈의 가치를 낮춰 본 것이 아니라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말이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먼 곳에 있는 것을 대단하게 여기고, 가까이에 있는 것을 대단찮게 본다. 또 옛것은 귀하게 여기고 새 것은 하찮게 여긴다는 貴古賤今(귀고천금)과 같이 보면 복고주의적 성격이 강한 중국인들의 풍조를 꼬집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중국 漢(한)나라 초기의 유학자 桓譚(환담, 기원전24~기원후56)의 ‘新論(신론)’에 잘 표현한 대목이 나온다. 세상 사람들은 먼 곳의 소문만 중하게 여기고, 가까운 데서 제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천한 것으로 여긴다면서 이어진다. ‘세상 사람들은 옛것을 귀하게 여기고 지금 것을 비천하게 여기며, 귀로 들은 것을 귀하게 여기고 눈으로 본 것을 천한 것으로 여긴다(世咸尊古卑今 貴所聞 賤所見/ 세함존고비금 귀소문 천소견).’

後漢(후한)의 문인 겸 과학자인 張衡(장형, 78~139)은 ‘東京賦(동경부)’에서 더 신랄하게 꾸짖는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후학들이 속뜻은 모르고 겉만 이어받아 전하며, 들은 것만 귀히 여기고 눈으로 본 것은 천하게 여긴다(所謂末學膚受 貴耳而賤目者也/ 소위말학부수 귀이이천목자야).’ 末學(말학)은 천박한 학문, 膚受(부수) 역시 피부에 받아들인 피상적인 학문이란 뜻. 잘 알지 못하는 이론이나 귀로만 전해들은 지식을 더 신뢰하는 세태를 비판했다.

전해들은 이야기를 무작정 믿고,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을 뒷전으로 미룬다는 것은 무조건 서구 것만 좋다는 세태를 꾸짖는 말이다. 외국 이론을 들이더라도 우리 실정에 맞게 응용하지 않고 도입하다 탈이 난다. 외국의 유행을 무작정 따라가는 것도 분별 있는 태도가 아님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11.html
kolaswqetsrq 11.03 02:22
목광여거目光如炬 – 눈빛이 횃불같이 빛나다, 몹시 화가 나다, 뜻이 높고 원대하다.

목광여거(目光如炬) – 눈빛이 횃불같이 빛나다, 몹시 화가 나다, 뜻이 높고 원대하다.

눈 목(目/0) 빛 광(儿/4) 같을 여(女/3) 횃불 거(火/5)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 했으니 눈이 맑으면 온 몸이 맑을 것이다. 온화한 마음으로 남을 대할 때는 눈에 잔뜩 친절이 배어난다. 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듯이 해를 끼치는 상대에까지 친절할 수는 없다. 이럴 때는 서양 격언처럼 ‘시선은 칼’이고 우리 속담에 있듯 ‘눈에 쌍심지가 오른다’. 옛날 중국 晉(진)나라의 阮籍(완적)이란 사람은 친한 사람에겐 靑眼(청안)으로, 거만한 사람은 白眼(백안)으로 대했다고 했다. 가까이는 전 대통령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와 장관들이 꼼짝 못했다는 말도 있었다.

눈에 불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눈빛(目光)이 마치 횃불같이 이글거린다면(如炬) 무지하게 화가 많이 났겠다. 실제 성어의 주인공 檀道濟(단도제, ?~436)는 30여 차례나 전장에 나가 큰 공을 세웠음에도 시기하는 무리들에 붙잡혀 죽게 되니 그럴 만도 하다. 南北朝(남북조)시대 宋(송)을 세웠던 武帝(무제)의 북벌에 참여한 장군 단도제는 그 공으로 護軍(護軍)에 봉해졌다. 무제가 임종하면서 그의 아들 文帝(문제)가 즉위하자 더욱 중용됐다. 北魏(북위)가 쳐들어왔을 때 都督(도독)으로 참전하여 결국 남침을 저지했다. 문제는 단도제의 공을 인정하여 그의 아들까지 요직에 앉혔다. 그러고도 일부 신하들이 그를 음해하지 않을지 항상 신경을 곤두세웠다.

몇 년 뒤 문제가 중병을 앓게 되자 걱정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彭城王(팽성왕)으로 있던 劉義康(유의강)이 장수 劉湛(유담)과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거짓으로 북위가 쳐들어온다며 임지에 있던 단도제를 수도 建康(건강)으로 불렀다. 문제의 병세가 조금 호전되자 작별을 고하고 돌아가려는데 유의강 일당이 모반죄로 덮어 씌었다. 단도제는 졸지에 화를 당하게 되자 몹시 화가 나 그 눈빛이 마치 횃불과 같았다(道濟見收 憤怒氣盛 目光如炬/ 도제견수 분노기성 목광여거). 그리고는 관을 팽개치며 말했다. ‘너희들이 만리장성을 무너뜨리려느냐(乃壞汝萬里長城/ 내괴여만리장성)?’ ‘南史(남사)’ 단도제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눈에 불이 번쩍이면 무섭다. 노기를 띠고 바라볼 때는 무섭지만 어떤 일에 완전 몰두할 때도 눈이 번득인다. 眼光(안광)이 紙背(지배)를 徹(철)한다는 勉學(면학)의 태도도 그렇다. 횃불같이 밝은 눈은 몹시 화를 내는 비유에서 식견이 높고 원대함을 가리키는 말로 뜻이 변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30.html
kolaswqetsrq 11.03 02:23
▶ "카카오에 정보 주지 마".. 부동산 매물 독점한 네이버 과징금

▶ "카카오에 정보 주지 마".. 부동산 매물 독점한 네이버 과징금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사와 계약을 맺은 부동산 정보 업체가 카카오에 매물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한 네이버에 과징금 철퇴를 내렸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특별전담팀이 맡은 사건에 대한 첫 번째 제재다. 네이버는 “행정소송을 검토하겠다”며 반발했다.

공정위는 네이버가 부동산 정보업체와 배타조건부 계약을 맺으면서 카카오에 정보 제공을 막아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며 시정명령과 10억 3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6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네이버는 2003년 3월 부동산 정보 업체와 제휴를 맺고 매물정보 제공 서비스를 시작했다. 후발 업체인 카카오는 2015년 2월 네이버 제휴업체 8곳 중 7곳과 제휴를 맺고 부동산 매물정보 제공 서비스를 하려고 했지만 네이버의 방해로 실패했다. 네이버는 그해 5월 제휴 업체들과의 계약서에 부동산매물검증센터(KISO)를 통해 확인된 매물 정보의 제3자 제공 금지 조항을 넣었고, 이듬해 5월엔 이 조항을 위반하면 계약을 즉시 해지하는 조항도 추가했다.

카카오는 2017년 초에도 네이버와 제휴 비중이 낮은 부동산114와 업무협약을 맺으려다 포기했다. 네이버가 이번엔 KISO에 검증을 의뢰한 모든 매물 정보도 3개월간 제3자 제공을 금지하겠다고 업체들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결국 시장에서 퇴출됐고, 2018년 4월 이후 부동산 서비스를 직방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업체들과 카카오 제휴를 방해한 기간 네이버는 전체 부동산 매물 건수의 40% 이상(2886만 1635건), 순방문자수(UV) 70% 이상(2억 8414만 4000회), 페이지뷰(PV) 70% 이상(136억 9523만 1000회)의 시장점유율로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위를 유지했다. 공정위는 “독과점 플랫폼 사업자가 지배력을 남용해 거래 상대방이 경쟁 사업자와 거래하는 것을 방해한 ‘멀티호밍(동시에 여러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 차단’ 행위를 제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네이버의 쇼핑과 동영상 등 다른 분야 불공정 행위도 조사·심의하고 있다.

네이버는 “확인 매물 정보는 2009년 수십억원의 비용을 들여 개발한 서비스로 관련 특허도 2건 확보했다”며 “무임승차를 막고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3자 제공 금지 조항을 넣은 것”이라고 했다.

-서울신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99.html
kolaswqetsrq 11.03 02:23
◇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일단 만들고 보는 마이너스통장

◇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일단 \만들고 보는\ 마이너스통장

올 들어 5대 시중은행에서만 42만 건 이상의 마이너스통장이 새로 발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데다 주택·주식시장이 달아오르면서 ‘우선 만들어놓고 보자’는 식의 계좌 개설이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신규 발급된 개인 마이너스통장은 42만8178건을 기록했다. 작년 1~8월(35만9101건) 대비 19.2% 늘어났다. 은행 관계자는 “마이너스통장이 한 사람에 1~2개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최소 30만 명이 마이너스통장 대출을 신청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다만 올해 마이너스통장에서 실제 사용한 돈은 44조75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42조4000억원)보다 5.5%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당장 돈이 필요해서 마이너스통장을 열어 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마이너스통장은 언제든지 자금을 동원할 수 있고 이자도 매력적인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주택과 주식시장에서 기회를 엿보는 사람과 경기 악화 등에 대비하려는 사람들이 미리 마이너스통장을 마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올 들어 42만건 신규 발급

"너도나도 돈 빌리는 분위기...가계 건전성 악화 우려"

직장인 박모씨는 지난달 처음으로 마이너스통장(한도대출)을 개설했다. 당장 ‘급전’이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재정 상황이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주변에서 무급휴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뭐라도 준비해둬야 한다는 불안감이 들었다”며 “지금처럼 조건이 좋을 때 마이너스통장을 열어놓고 생활비로 쓰거나 증시에 좋은 투자 기회가 있을 때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올 들어 은행권에서 마이너스통장 개설이 크게 늘어난 것은 박씨처럼 ‘만약’을 대비하려는 수요가 몰린 탓이라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코로나19 사태와 부동산 대출규제 강화 등의 영향으로 금융소비자들의 불안심리가 극대화됐다는 얘기다. 유례없이 낮아진 금리와 개인투자자들의 주식투자 열풍도 한몫하고 있다.

▶ “필요없어도 미리 뚫어놓자”

6일 한국경제신문이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마이너스통장 발급 통계를 분석한 결과 소진율(한도 대비 대출액 비중)은 은행별로 각각 30~40%대에 머물렀다. 대부분 지난해보다 줄었다. A은행은 올해 8월 소진율이 32.47%로 전년 동월(33.66%) 대비 감소했다. B은행과 C은행도 지난해 8월 각각 46.3%와 31.7%에서 올해 8월 44.7%, 31.0%로 떨어졌다. 소진율 하락은 마이너스통장 개설이 늘었지만 실제 자금을 융통한 규모가 그에 비례해 증가하지 않아서다. 올 들어 8월까지 마이너스통장 신규 발급은 42만 건을 넘어섰다. 시중은행 영업점 직원은 “당장 대출이 필요한 금융소비자들은 금리가 더 낮은 신용대출을 선호한다”며 “주택과 주식 시장까지 상승세를 타고 있어 금리도 낮은데 ‘돈 쓸 곳이 없겠느냐’는 심정으로 마이너스통장을 열어두려는 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6월 부동산 시장 규제 이후 마이너스통장에 관심을 두는 소비자가 늘었다고 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는)’식 대출을 해서라도 내 집 마련을 하려는 분위기가 확산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금융당국은 신용대출로 집을 사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은행의 일선 영업창구에서 돈의 사용처를 일일이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 마이너스카드까지 재등장

개인 대출 수요가 늘어나자 ‘마이너스카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은행 마이너스통장과 비슷한 방식으로 수시로 쓰고 갚는 형태의 장기 카드 대출이다. 약정 기간과 한도를 정해놓으면 고정된 이자율로 이용 및 상환할 수 있는 구조다. 지난달 우리카드가 마이너스카드 상품을 내놓은 데 이어 롯데카드도 이달 관련 상품을 선보이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불어난 마이너스통장 발급과 빚에 의존하는 사회 분위기가 향후 ‘부메랑’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이미 신용대출이 급증한 상황에서 각 개인이 손쉽게 대출 규모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5대 은행의 개인신용대출 총잔액은 124조2747억원이었다. 7월 말보다 4조755억원 불어났다. 개인들이 이미 발급받은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고려하면 여기에 추가로 수십조원의 대출 여력이 남아 있는 셈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너도나도 빚을 끌어다 부동산이나 주식 시장에 넣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며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 가계 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한국경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45.html
kolaswqetsrq 11.03 02:24
◇ 주말에 직원들 주차장에 불러 ‘자가용 회의’한 시장님

◇ 주말에 직원들 주차장에 불러 ‘자가용 회의’한 시장님

6일(일요일) 오후 남양주 이패동 체육문화센터 주차장에 차량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제10호 태풍 하이선 대응’과 ‘코로나 확산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남양주시 간부들이었다.

남양주시는 이날 전국 지자체 최초로 ‘드라이브 인(Drive in) 비상대책 회의’를 주재했다. ‘드라이브 인’ 회의는 각자의 자동차 안에서 라디오 주파수를 활용하여 회의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남양주시는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인한 갑작스런 시청 셧다운 상황 등에 안정적으로 비대면 회의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 끝에 시범적으로 이 방식의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는 조광한 시장을 비롯하여 실.국.소.원장과 읍면동장들이 참석하여 각자의 차량 안에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춘 뒤 읍면동장이 제10호 태풍 하이선에 대한 조치사항을 본부에 휴대전화 연결을 통해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조광한 시장은 “휴일에 긴급회의를 소집해 미안하지만 이번 회의는 지난번의 태풍보다 강력한 태풍이 예상된다”며, “코로나 확산세가 최근 들어 굉장히 우려되고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우리가 다양한 방법으로 비대면 회의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늘 회의가 집중력 있게 이루어진 것 같다. 앞으로 드라이브인 비대면 회의를 연습해 놓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작년 겨울 아프리카돼지열병부터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마스크확보와 공급, 최장기간의 장마, 연이은 태풍으로 직원들이 고생이 많다.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절하여 휴식도 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대체로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정말 직원들의 고생을 걱정한다면 시장이 주말에 불필요한 회의는 소집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시청 셧다운 상황을 가정했다고는 하지만 요즘처럼 화상회의시스템이 잘 갖춰진 시대에 자가용 라디오 주파수 회의를 열었다는 것도 황당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시민은 “뉴스에 나오기 위한 목적이라면 성공하셨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직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64.html
kolaswqetsrq 11.03 02:24
◇ 엘리베이터 추락할 때 점프하면 살 수 있을까?

◇ 엘리베이터 추락할 때 점프하면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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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엘리베이터 사고는 바로 추락 사고일 것이다.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면서 바닥과 충돌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전문가는 세계적으로도 엘리베이터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흔히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추락 사고는 목적 층에 정지하지 않고, 지나쳐서 정지하게 되는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언급했다. 엘리베이터는 일반적으로 추락방지 시스템이 3단계로 이뤄져 있다. 추락방지 1단계는 브레이크, 2단계는 로프, 3단계는 비상정지 장치가 작동된다. 그럴 일은 거의 없지만, 만일 로프가 끊어진다면 로프에 연결된 스프링이 튀어나와 톱니에 걸리게 되고 엘리베이터가 그 자리에 멈추게 되는 비상 정지 장치가 작동되는 구조다.
",

다만 승강장 문을 강제로 연 탓에 승강로에 떨어져 추락하는 사례는 종종 있다. 층과 층 사이에 멈췄을 때 무리하게 빠져나가겠다고 강제로 문을 여는 경우에도 추락할 수 있다. 실제로 2014년 서울 송파구에서 20대 남성이 강제로 엘리베이터 문을 열다가 승강로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2017년 경남 창원시에서 술에 취한 남성들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을 열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승강로 바닥에 추락했다면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와 충돌하여 2차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이럴 경우 엘리베이터 바닥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용수철 모양인 완충기 아래 높이로 누우면 엘리베이터와의 부딪힘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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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가 안전장치 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경우는 불가능하지만, 간혹 우리는 엘리베이터가 추락할 때 지면에 닿는 순간 점프하면 안전하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옳지 않은 방법이다. 애초에 지면에 닿는 순간을 알고 점프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자유낙하하여 무중력 상태인 엘리베이터에서 점프를 하면 위로 솟구쳤다가 천장에 막혀 금세 떨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설령 지면에 닿는 순간 점프해서 바닥과 잠시 떨어진다 하더라도 조금 늦게 떨어질 뿐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는 것은 변함이 없기에 사망할 확률이 높다.
",

가장 현명한 방법은 엘리베이터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있어야 한다. 바닥에 팔, 다리를 벌려 누워있으면 인체에 가해지는 충격이 분산돼 그나마 부상을 덜 입을 수 있다. 만약 가방 같은 것을 들고 엘리베이터에 탔다면 바닥과 충돌할 때 충격 완화를 위해 눕거나 엎드릴 때 머리 뒤쪽에 받혀주면 조금이라도 충격을 덜 받을 수 있다. 또는 양손으로 안전바를 잡고 두 다리를 살짝 접어 기마자세로 버티는 것도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데일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80.html
kolaswqetsrq 11.03 02:32
◇ 홍수로 우사 탈출한 소, 천년고찰 사성암으로 간 이유는?

◇ 홍수로 우사 탈출한 소, 천년고찰 사성암으로 간 이유는?

사람만 나라를 탈출하는 게 아니다. 물론 타의지만, 때론 소도 ‘망명’한다. 1996년 7월 대홍수 때 북한의 소가 임진강을 타고 한강 하류로 내려왔다. 당연히 소의 ‘탈북’이 관심거리이겠지만, 소의 수영실력(사진 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가 떠내려온 곳이 북한의 군사작전지역 후방에 위치한 민가일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의 수영거리는 수십 km로 추산된다. 그렇게 먼 거리를 헤엄칠 수 있는 건 물을 이용하는 소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다.

말은 물을 거슬러 헤엄치려는 습성이 있어 홍수가 나면 지쳐서 죽지만, 소는 물살에 몸을 맡긴 채 흐름을 타는 까닭에 산다고 한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인데, ‘우생마사(牛生馬死)’의 지혜를 일깨운다.

소의 그런 ‘도력(道力)’은 최근 물난리에서도 볼 수 있었다. 300mm가 넘는 폭우로 섬진강이 범람해 전남 구례의 많은 지역이 물에 잠긴 지난 8일, 우사를 탈출한 소 10여 마리가 이곳 고찰인 사성암(四聖庵)으로 도피했다(사진 아래).

백제 성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사성암은 원효·의상·도선·진각 등 신라·고려시대의 고승들이 수도한 곳이라 예사롭지 않다. 해발 531m의 오산(鰲山) 정상 아래 자리한 사성암에 오르면,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지리산의 장쾌한 전모가 병풍처럼 펼쳐지고 남도의 속살을 적시는 섬진강의 유장한 물굽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성암의 이런 내력과 절경이 소들을 이끈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들의 사성암 방문은 중국 송나라 때 곽암이 그린 십우도(十牛圖)를 연상케 한다. 십우도는 선 수행과 깨달음의 단계를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10개의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주체는 동자승이다. 피부가 검은 색에서 흰 색으로 바뀌다가 마침내 형체마저 사라지는 소는 해탈의 과정을 상징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소가 스스로 수행 도량에 찾아갔으니, 사람뿐 아니라 소를 비롯한 만물에 불성(佛性)이 깃들어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전국을 수마에 빠뜨린 올해 장마는 과거 어느 때보다 시련이 컸다. 그 와중에 경남 합천에서 익사 직전의 소 110여 마리를 구출하는 등 사람과 소의 오랜 인연을 확인한 건 불행 중 다행이다. 선인들이 소를 생구(生口·사람대접할 만큼 존중한다는 뜻)라고 부른 이유다. 소는 이에 매사에 신중하라는 ‘호시우보(虎視牛步)’, 매사를 우직하게 실천하라는 ‘우보만리(牛步萬里)’ 등 교훈으로 사람에게 보답한다. 사람과 소의 아름다운 공존이다.

 "
-국제신문 도청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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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96.html
kolaswqetsrq 11.03 02:32
각의교혁刻意矯革 - 굳은 의지로 고치려 노력하다.

각의교혁(刻意矯革) - 굳은 의지로 고치려 노력하다.

새길 각(刂/6) 뜻 의(心/9) 바로잡을 교(矢/12) 가죽 혁(革/0)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는 것이 淸廉(청렴)이라고 쉽게 말한다. 주변에 그러한 사람들이, 특히 공직자가 많을 것이라 쉽게 믿는다. 이들 중 하늘과 신과 나와 그대가 안다며 황금을 거절한 楊震(양진)과 뇌물로 가져온 물고기를 매달아놓은 羊續(양속)이 유명하고, 백성의 생활에 피해를 준다며 아욱을 뽑고 베틀을 버리기까지 한 公儀休(공의휴)가 압권이다. 성어가 된 중국의 청렴관리는 이처럼 손에 꼽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선 어떨까? 조선시대에 淸白吏(청백리)는 217명이 배출되었다는데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청렴이라고 하는 것은 목민관의 기본 임무이고, 모든 선의 근원이며, 모든 덕의 근원이니 청렴하지 않고서 목민관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廉者 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 不廉而能牧者 未之有也/ 염자 목지본무 만선지원 제덕지근 불렴이능목자 미지유야).’ 茶山(다산) 선생의 ‘牧民心書(목민심서)’ 중 律己(율기) 편 淸心(청심)조의 첫 대목이다. 백성을 다스릴 벼슬아치 牧民(목민)이 지켜야 할 도리와 지방관의 폐해를 들어 깨우치는 내용으로 시대를 넘어 공직자의 필독서로 꼽히기도 하는 책이다. 같은 조의 중간에 굳은 의지(刻意)를 가지고 고쳐 나가라(矯革)는 말은 잘못된 관례라도 공직자는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인용해 보자. ‘무릇 그릇된 관례가 내려오는 것은 굳은 의지로 이를 고쳐 나아가되, 간혹 고치기 어려운 것이 있거든 나 하나만이라도 범하지 말아야 한다(凡謬例之沿襲者 刻意矯革 或其難革者 我則勿犯/ 범유례지연습자 각의교혁 혹기난혁자 아즉물범).’ 沿襲(연습)은 전례를 답습하거나 이어받는 일이고 刻意(각의)는 마음을 졸인다는 뜻이지만 굳은 의지로 해석한다. 공무원들이 손쉽게 관행이라며 이어져 온 비리를 벌써부터 근절하라고 가르쳤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86.html
kolaswqetsrq 11.03 02:33
민위방본民爲邦本 -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다.

민위방본(民爲邦本) -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다.

백성 민(氏/1) 하 위(爪/8) 나라 방(阝/4) 근본 본(木/1)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있다. 백성의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이라는 것은 민심을 얻지 않고서는 나라까지 모든 것이 바로 설 수 없다는 말이다. 나라님의 마음을 섬뜩하게 하는 ‘민심은 물과 같다’는 말도 백성의 뜻을 거스르면 물이 배를 뒤엎듯이 응징하기 때문이다. 孟子(맹자)가 민심의 중요성에 대해서 특히 강조한다. ‘걸왕과 주왕이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며, 그 백성을 잃은 것은 그들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桀紂之失天下也 失其民也 失其民者 失其心也/ 걸주지실천하야 실기민야 실기민자 실기심야).’ 그러면서 백성을 얻으려면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離婁上(이루상) 편에 있다.

앞서 소개한 民心無常(민심무상)은 백성들의 마음이 일정하지 않아 다스리는 데에 따라 착하게도 하고 무섭게도 변한다는 말이다. ‘오직 혜택을 주는 사람에게 따르기 마련(民心無常 惟惠之懷/ 민심무상 유혜지회)’이라고 書經(서경)에 실려 있다. 春秋(춘추) 이전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 尙書(상서)라고도 하는 책이다. 백성(民爲)이 나라의 근본(邦本)이라는 이 성어도 ‘서경’ 夏書(하서)편에 나온다. 하나라의 두 번째 임금 啓(계)는 시조 禹(우)임금의 아들이고, 처음 세습으로 아들 太康(태강)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그런데 태강은 사냥에만 골몰하고 정치는 돌보지 않아 后羿(후예, 羿는 사람이름 예)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났다.

태강의 다섯 동생들은 그를 기다리며 노래를 불렀다. ‘五子之歌(오자지가)’이다. 첫 번째 동생이 부른 내용을 보자. 할아버지 우임금이 훈계했다는 내용이다. ‘백성은 가까이 할 수는 있으나 얕보아서는 안 된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고,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民可近 不可下 民惟邦本 本固邦寧/ 민가근 불가하 민유방본 본고방녕).’ 끝부분에도 좋은 말이 나온다.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두려워하고, 썩은 새끼로 여섯 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모는 듯이 한다. 백성의 위에 있는 자가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어찌 존경하지 않겠는가(予臨兆民 懍乎若朽索之馭六馬 爲人上者 柰何不敬/ 여림조민 능호약후삭지어륙마 위인상자 내하불경).’ 懍은 위태할 름.

이런 백성이 사직이나 군주보다 귀하다고 한 사람도 맹자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벼운 존재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란 말이 盡心(진심) 하편에 나온다. 군주가 없는 요즘은 선거 때 민심을 들먹인다. 국민의 마음이 어디 있는가를 아는 것이 물론 중요한데 문제는 투표가 끝나면 곧 잊어버린다는 데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12.html
kolaswqetsrq 11.03 02:33
あじわう味わう

あじわう味わう

=> 맛보다, 체험하다, 감상하다;음미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89.html
kolaswqetsrq 11.03 02:34
만파식적萬波息笛 - 모든 걱정거리를 해결해 주는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 - 모든 걱정거리를 해결해 주는 피리

일만 만(艹/9) 물결 파(氵/5) 쉴 식(心/6) 피리 적(竹/5)

힘든 세상엔 어려움이 가득하다. 世波(세파)라 한다. 수많은 물결 萬波(만파)는 모든 어려움을 말한다. 이 모든 고난을 그만두게 하는 피리(息笛)라는 이 말은 참으로 신통력을 가진 귀한 피리이겠다. 그런 만큼 이것을 불면 적군이 물러나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고 또 폭우가 올 때는 그치게 하며 바람과 파도도 가라앉히는 효험이 있었다. 바로 統一新羅(통일신라) 때의 전설상의 피리 이야기에서 나온 것으로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해결하는 기원을 담았다.

신라 때의 왕은 시조 朴赫居世(박혁거세)와 삼국 통일의 기초를 닦은 29대 太宗武烈王(태종무열왕), 그 대업을 완수한 30대 文武王(문무왕)은 누구나 기억한다. 하지만 문무왕의 아들로 뒤를 이은 31대 神文王(신문왕, 재위 681∼692)은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진다. 그렇더라도 통일 이후 넓어진 영토를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지방행정 체제를 정비하고, 고구려와 백제 등의 유민들을 각지로 이주시키며 군사조직도 정비한 치적은 평가받는다.

온갖 고난을 가라앉히는 피리는 신문왕과 관계가 깊다. ‘三國遺事(삼국유사)’에 나오는 내용을 간추려 보자. 신문왕은 각처에 사찰을 짓는 등 불교 확장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아버지 문무왕을 기리는 感恩寺(감은사)를 동해변에 지었는데 바다 가운데서 작은 산이 생겨 그 위에 대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죽어서 海龍(해룡)이 된 문무왕과 天神(천신)이 된 金庾信(김유신)이 보낸 대나무였다. 신문왕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天尊庫(천존고)에 보관했다. ‘피리를 불면 병란도 멈추고 병이 나았으며, 가물면 비가 오고 장마가 지면 날이 개었으며,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졌다. 그래서 만파식적이라고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吹此笛 則兵退病愈 早雨雨晴 風定波平 號萬波息笛 稱爲國寶/ 취차적 즉병퇴병유 조우우청 풍정파평 호만파식적 칭위국보).’

전설상의 피리라고 해도 온갖 고난이 넘치는 현실 세계에 하나쯤 있었으면 모두들 좋아하겠다. 현실이 어려우니 말이다. 만파를 잠재울 피리소리는 언제 들릴 것인지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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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2:35
あしあと足跡

あしあと足跡

=> 발자취, 발자국, 행방, 업적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81.html
kolaswqetsrq 11.03 02:36
◇ 도동서원과 한훤당 고택카페

◇ 도동서원과 한훤당 고택카페

예전에는 누가 취미를 물으면 ‘절 구경 하기’라 대답했는데 요즘에는 서원 구경이 더 잦다. 지난해 ‘한국의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관심사로 떠오른 이유도 없지 않다. 낙동강 일대는 특히 흥미롭다. 안동에는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과 서애 류성룡의 병산서원이, 남쪽 달성에는 한훤당 김굉필의 도동서원이 자리잡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서원 구경은 허망할 때가 적지 않았다. 지금 서원이란 선현에 대한 제사를 제외한 다른 기능은 사실상 멈춰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훌륭한 건축물이라는 것은 잘 알겠다. 그런데 서원에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할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서원은 아름답지만 재미는 적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도동서원 일대를 둘러보면서 생각을 바꾸게 됐다. 도동서원은 낙동강이 서남쪽으로 돌아드는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에 동북향으로 앉혀 있다. 한훤당 무덤이 있는 뒷산은 대니산(戴尼山)이다. 공자의 자(字)가 중니(仲尼)이니 ‘공자를 받든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한훤당은 인간의 기본 도리를 담은 소학(小學)에 심취해 소학동자(小學童子)로 불린 인물이다. 주희가 편찬을 명한 것으로 알려진 소학은 양반집 어린아이가 8세가 되면 손에 잡는다는 기초 경전이지만, 조선 사림에게는 남을 다스리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먼저 다스리는 이치를 담은 최고의 경전이었다는 것이다. 조금의 과장은 없지 않겠지만, 그래서 한훤당은 나이 설흔이 돼서야 다른 경전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스스로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소학을 세상을 통치하는 원리를 담은 대학(大學)보다 유용하게 생각했다는 뜻이다.

이런 정도의 배경 지식만 갖추어도 도동서원의 모습은 달라 보였다. 낙동강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유형 유산으로 서원의 존재도 중요하지만, ‘소학 정신의 발신지’라는 무형의 정신 유산 또한 잊혀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이런 가르침이 서원에서 부족하게 느껴졌던 ‘오늘날에도 유효한 그 무엇’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러니 서원에서 그동안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은 상식도 없이 찾아가곤 했던 ‘내 탓’이었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도동서원을 찾는 사람 가운데는 젊은층이 많았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한훤당 고택카페가 벌써부터 ‘핫플레이스’로 떠올랐고, 카페를 목적지로 찾은 사람들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도동서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대니산 동쪽 끝에 있는 고택은 서흥 김씨의 종가다. 김굉필의 후손이 1779년 지었다고 하니 한훤당(1454~1504)의 손때가 묻은 집은 아니다.

특유의 정갈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훤당 고택카페는 커피 손님이 많았지만, 미숫가루호두스무디, 가래떡추러스, 흑임자빙수처럼 전통에 바탕을 둔 먹거리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카페의 이름은 한글로 ‘소가’라 써 놓았는데, 손님들은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사랑채인 광재헌에 걸린 편액을 보고 곧 소학세가(小學世家)의 줄임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소학의 가르침을 대대손손 이어 가는 집안이라는 뜻이겠다.

한훤당 고택처럼 대표적인 도학자 집안의 유서 깊은 종가를 카페로 만들겠다는 종손의 결심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카페를 찾는 손님의 상당 부분은 필자처럼 서원 구경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이들이라 감히 짐작해 본다. 카페는 이제 여름이면 고택음악회가 열리는 지역의 문화적 명소로 떠올랐다. 이렇게 카페는 한훤당의 가르침을 알리고 도동서원의 아름다움을 즐기게 하는 일종의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이런 게 문화재 활용의 진정한 모범 사례가 아닐까 싶다. 한훤당 후손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서울신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42.html
kolaswqetsrq 11.03 02:36
あげる挙げる

あげる挙げる

=> 팔을 쳐들다, 거행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63.html
kolaswqetsrq 11.03 02:37
◇ 한반도에 대한 끝없는 아베의 이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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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에 대한 끝없는 아베의 이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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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ᆞ27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에는 \정보기관원이 해독한 김정은의 산책\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산책하며 친밀한 모습을 연출한 데 대해 "김 위원장이 산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통역 없는 비공식 일대일 회담을 노려 외교 공작을 펼쳤다"는 내용이다. 도보다리 회담이 북한이 제안한 게 아니라 청와대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가짜뉴스\다. 남북 간을 이간질하려는 일본 정보기관의 \공작\이라는 뒷얘기가 나왔다.

한반도에 강력한 통일 국가 형성을 원치않는 일본은 남북 관계뿐 아니라 북미 관계 개선을 끝없이 견제한다. 일본 군사대국화를 일생의 목표로 추구하는 아베 총리는 대놓고 \훼방꾼\을 자처한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에서 드러난 것처럼 아베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에 너무 많이 양보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 시기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통화에서 "한국이 북한에 대화를 구걸한다. 거지 같다"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에 보도됐다. 이 역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아베 총리는 북한이 없었다면 정치적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던 인물이다. 2002년 관방 부장관 시절 고이즈미 총리를 따라 방북해 북일 수교를 강하게 반대한 안보 이미지 덕분에 총리에 올랐다. 지지율이 흔들릴 때마다 북핵 위기를 정권 안정을 위한 호재로 삼는 것도 아베 정권의 수법이다. 걸핏하면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것처럼 불안을 부추긴다. 2017년에는 "북한 난민이 오면 체포할지, 사살할지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거리낌없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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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문가들은 아베의 한미 이간질을 이미제한(以美制韓, 미국을 이용해서 한국을 제압한다는 뜻) 전술이라고 부른다. 트럼프의 푸들이라는 조롱을 들으면서까지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을 들여놓고는 한국의 뒤통수를 치는 식이다. 아베는 2018년 3차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 대통령에게 북한에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제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아베의 말을 상세히 전했지만 돌아온 것은 한국 때리기였다. 고약한 내용으로 가득한 볼턴 회고록의 한가지 긍정적인 효과는 일본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아베가 있는 한 한일 신뢰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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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27.html
kolaswqetsrq 11.03 02:38
◇ 8월부터 ‘탐정’ 간판 달 수 있다

◇ 8월부터 ‘탐정’ 간판 달 수 있다

1. 2016년 10월, 경기도 오산의 한 왕복 6차로 도로에서 승용차 여섯 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났다.

처음 경찰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채 차선을 바꾼 앞차 윤모(55)씨에게 80%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윤씨의 의뢰를 받은 민간 조사업체는 블랙박스 분석을 통해 뒤따르던 차가 규정 속도인 60km보다 높은 86km로 달렸다는 사실을 밝혔다. 경찰은 기존 판단을 뒤집고 윤씨의 과실을 20%로 조정했다.

2. 지난 4월 국내 한 기업 대표에게 협박물이 담긴 소포가 도착했다.

일본에서 발송한 소포 안에는 ‘대표직을 내려놓으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와 부엌칼, 여자 속옷, 마네킹 손가락 5개 등이 들어 있었다. 의뢰를 받은 민간 조사업체는 아세톤 시약 등 화학물질을 사용해 물건에 찍힌 지문을 검출했다. ‘협박범을 찾아 달라’며 경찰에 신고한 기업 대표는 이 지문을 소포와 함께 경찰에 제출했다. 해당 조사업체 대표는 “해외에서 ‘탐정’으로 불리는 사람과 같은 일을 한다”고 소개했다.

탐문·관찰 등 합당한 수단으로 사실관계 등을 조사하는 탐정은 교통사고나 화재, 보험 사기 등의 사건에서부터 기업 부정 조사, 해외도피자 추적까지 다양한 일을 한다. 때로는 검경의 수사 결과나 법원 판결을 뒤집는 결정적 증거를 가져오기도 한다. 한국을 제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35개국)이 탐정제도를 운영 중이다. 미국·일본·독일에선 각각 2만~6만 명의 탐정이 활동 중이다.

다음 달 5일부터 한국에서도 ‘탐정사무소’ 개업이 공식적으로 가능해진다. 1977년 이후 신용정보법에 따라 탐정업과 탐정 명칭 사용이 금지됐는데, 2018년 6월 헌법재판소가 탐정 명칭 사용 가능 결정을 한 데 이어 국회가 올해 2월 신용정보법에서 탐정 명칭 사용금지 조항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탐정업인 민간 조사원을 전업 또는 겸업하는 숫자가 이미 2000여 명이다. 유우종 한국탐정중앙회 회장은 “이번 법 시행으로 민간 조사원이 대부분 탐정 사무소를 개업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인터넷에 ‘탐정’을 검색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4년 차 민간 조사원은 “수사기관의 불성실한 조사에 불만이 있거나 재판에서 증거 부족으로 답답해하는 분이 많이 찾아온다”고 전했다. 유 회장 역시 “아무리 훌륭한 공권력이라도 시민들의 모든 억울함을 풀어주지는 못한다”며 “공정한 사건 해결을 위해 탐정은 필요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탐정 사무소의 난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민간조사업 자격증은 경찰청에 등록한 협회 9곳에서 발급해 준다. 권대원 대한탐정협회 부회장은 “탐정을 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아직 검증된 탐정 자격 제도가 정착돼 있지 않다”며 “기존 흥신소 업무를 그대로 하려는 이들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권 부회장은 “탐정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성”이라며 “경찰청 관리를 지금보다 강화하거나 공인탐정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생활 침해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유우종 회장은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위치정보법 등 제재하는 법이 많다”며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탐정 활동을 보장한다면 사생활 침해는 기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호주의 경우 탐정의 불법행위 시 자격을 박탈하고 보증인 3인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다고 한다.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8.html
kolaswqetsrq 11.03 02:38
◇ 라자르 "실패한 사과는 피해자에 또 다른 모욕"

◇ 라자르 "실패한 사과는 피해자에 또 다른 모욕"

유니클로 일본 본사인 패스트리테일링 그룹과 한국 법인 에프아르엘(FRL)코리아는 지난해 7월22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부족한 표현으로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공식 사과했다. 유니클로 임원이 한국의 일본 상품 불매운동의 영향을 평가절하한 데 대해 ‘간접 사과’를 한 뒤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나흘 만에 다시 고개를 숙인 것이다. 앞서 유니클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한국 불매운동이 장기적으로 매출에 영향을 줄 만큼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혀 소비자들의 공분을 샀다.

살면서 남에게 사과하는 일이 없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누구나 잘못을 하기 마련이다. 사과를 피해갈 수 없다면 제대로 하는 방법을 아는 게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심리학자 아론 라자르는 누구나 사과가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사과는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하고 예민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사과의 가치와 특성, 동기, 타이밍 등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진정한 사과는 어떠해야 할까. 전문가들이 꼽는 조건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개선 의지나 보상 의사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과의 대상이 모호하거나 조건이 붙은 사과는 진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사과했다.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 다시 한번 통절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의 기준에는 한참 미달한다. 비판 여론에 떠밀린 뒷북 사과인 데다 ‘피해 호소인’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를 썼다. 피해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박 전 시장의 사망을 이유로 당 차원의 진상 규명도 사실상 거부하고 책임을 서울시에 떠넘겼다.

라자르는 ‘실패한 사과’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모욕이 된다고 했다. 유니클로도 사과를 잘못해 화를 키웠다.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한 법이다.

-세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93.html
kolaswqetsrq 11.03 02:39
◇ 해발 1458m... 위용 드러낸 국내 최고 ‘발왕산 스카이워크’

◇ 해발 1458m... 위용 드러낸 국내 최고 ‘발왕산 스카이워크’

강원도 평창군 발왕산 정상(1458m)에 설치된 HJ매그놀리아 용평 호텔앤리조트(용평리조트)의 ‘발왕산 기(氣) 스카이워크’가 17일 위용을 드러냈다. 발왕산 정상에 세워져 국내에서 가장 높은 이 스카이워크에 오르면 백두대간의 웅장한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용평리조트는 ‘발왕산 세계 명산 프로젝트’를 지난해 발표하고 이를 구체화하며 지난해 7월 편도 연장 3.7km의 발왕산 곤돌라를 활용한 관광 케이블카 상품을 출시,현재까지 모두 60여만명이 탑승하며 지역의 대표 관광상품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또 지난해 여름부터 발왕산 축제를 벌여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연주회,힐링 트레킹 등을 개최하고 올해도 오는 8월 18일을 발왕산의 날로 정해 다양한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특히 현재 발왕산 케이블카의 종점인 드레곤 캐슬에 스카이워크 조성공사를 진행해왔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되는 이 스카이워크는 평창동계올림픽 스키경기가 치러진 레이보우 슬로프를 한눈에 조망하며 동해에서 떠오르는 일출과 백두대간 준령의 일몰을 감상하는 명소로 평화봉과 함께 발왕산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세계일보 / 강원도민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458m.html
kolaswqetsrq 11.03 02:39
◇ 하룻밤에 300만원... 올여름 특급 호캉스

◇ 하룻밤에 300만원... 올여름 특급 호캉스

▶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내 시그니엘 서울

바캉스의 계절이다. 하늘길이 막혀 해외 휴양지로 떠나는 것은 어렵지만, 일상을 벗어나 색다른 공간에서 여름을 즐길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프리미엄 호텔에서 즐기는 럭셔리 ‘호캉스’는 그중에서도 특히 매력적인 선택지다. 뙤약볕 없는 쾌적한 실내에서 최고급 서비스를 누리며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시그니엘 서울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호화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퍼펙트 셀레브레이션’ 패키지를 선보였다. 롤스로이스 세단을 이용한 픽업 서비스로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화려한 휴가가 시작된다. 도어맨의 환대를 받으며 호텔로 들어서면 직원이 빈틈없는 에스코트와 함께 탁 트인 스위트룸으로 안내한다.

한강이 보이는 객실 안에서는 미슐랭 3스타 셰프인 야닉 아레노가 제안하는 풀코스 디너와 돔 페리뇽 샴페인을 즐긴다. 이탈리아산 천연 대리석으로 마감된 욕실에서 통유리창 너머 야경을 보며 욕조에 몸을 담근 채 하루를 마무리해도 좋다. 가격은 하룻밤 300만 원부터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수인 요즘, 프라이빗한 호텔 객실에서는 마음 놓고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올여름은 호텔에서 쾌적하고 안전한 휴가를 보내는 것이 어떨까.

-동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00_7.html
kolaswqetsrq 11.03 02:40
◇ 지리산에 ‘칠암자 순례길’

◇ 지리산에 ‘칠암자 순례길’

지리산에 칠암자 순례길이 있다. 지리산 자락에 매달린 일곱 암자를 이은 탐방로다. 찾는 이 적으니 거리두기야 자연스레 이뤄질 테고, 오랜 기간 쓰지 않았던 몸 여기저기에 긴장감을 잔뜩 불어넣을 수 있다. 울림과 여운이 남는 수행의 여정을 원한다면 이 길이 딱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칠암자 순례길’의 들머리는 도솔암이다. 한데 문제가 있다. 도솔암 가는 길이 비법정 탐방로란 것이다. 일 년에 딱 하루, 부처님오신날에만 탐방로의 문이 열린다. 평일에 올랐다가 걸리면 꽤 많은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찾아가는 이들이 있는지,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산객들 간에 막고 피하는 싸움이 꽤 치열하다고 한다. 오지 말라고 하는 곳을 굳이 찾을 필요가 있을까. 꼭 이름만큼의 구간을 돌아야 한다는, 명분에 너무 집착하는 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산객들이 선택하는 코스는 경남 함양 영원사에서 올라 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을 거쳐 전북 남원 실상사로 내려오는 것이다. 평일에는 사실상 도솔암을 뺀 ‘육암자 순례길’인 셈이다. 칠암자든 육암자든 무슨 상관이랴. 순례길을 걷는 목적이 숫자의 정복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칠암자 순례길’은 지리산 안에서 또 다른 지리산을 보며 걷는 길이다. 등산로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리산 주능선의 삼각고지(1480m)에서 북쪽 방향으로 작은 능선 하나가 갈라져 나왔다. 이게 삼정능선이다. 칠암자는 이 삼정능선의 골짜기를 따라 매달려 있다. 그러니 암자와 암자를 잇는 순례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천왕봉 등 지리산 주능선의 수려한 봉우리들을 한눈에 담게 된다.

들머리는 함양 마천면의 영원사(920m)다. 1971년 중건된 절집이지만 거쳐 간 스님들의 법명은 그야말로 전설적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끈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항일운동사에 큰 공적을 남긴 백초월 스님 등이 이 절집에서 일정 기간 수행했다. 109명에 이르는 고승들의 면면은 이 절집에서 여태 보관하고 있는 안록(역대 큰스님들의 행장이 수록된 책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한다.

영원사 공양간을 돌아서면 오르막이 시작된다. 영원사에서 영원령을 넘어 상무주암에 이르는 1.8km 구간 중에 1km가 넘는 구간이 오르막길이다. 이후에도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지만 이 구간이 가장 힘들다.

상무주암은 순례길 암자 가운데 가장 높은 해발 1162m에 있다.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上)에 있는, 머무름이 없는 자리(無住)라는 뜻이다.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이 2년여를 머물며 “옷 세 벌과 바리때 하나만으로 지리산 상무주암에 은거했는데, 경치가 그윽하니 천하제일인지라 선객이 거주할 만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할 만큼 전망이 빼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암자와 달리 상무주암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암자 입구에 사진촬영금지 팻말이 걸려 있다. 하지만 그걸 보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낯선 객이 제집인 양 안마당을 헤집고 다니자 주지 스님께서 조용히 한마디 하신다. 사진 찍지 말라고. 멀리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재차 읍소를 하니 단박에 나가라며 축객령이다. 따지고 보면 해발 1000m를 오르내리는 순례길의 암자들은 세상과 멀어지려 일부러 외진 곳에 터를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숨은 암자를 찾으려 하고, 결국 숨자고 들어선 곳이 외려 명소가 되는 희한한 역설이 생겨난다.

상무주암 주변에 홀로 명상에 잠길 만한 자리가 몇 곳 있다. 축객령으로 내쫓긴 이들에겐 그야말로 제격인 자리다. 눈앞에 펼쳐지는 지리산의 눈부신 봄 풍경 덕에 불편했던 마음 한 자락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문수암은 커다란 바위 아래 터를 잡은 암자다. 순례길의 풍경을 말할 때 최고로 꼽는 이들이 많은 절집이다.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 1000여명이 숨었다고 전해지는 천인굴과 늘 마르지 않는 석간수로 알려졌다. 문수암은 오랫동안 암자를 지키던 도봉 스님의 보시로 유명한 절집이다. 암자를 찾는 이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먹거리를 나누곤 했다. 한데 도봉 스님이 암자를 내려간 이후로 절집은 적막한 공간이 됐다.

산객들에게 풍경으로 보시하는 최고의 절집은 삼불사가 아닐까 싶다. 독특하고 소박한 건물과 비구니 스님의 손길이 묻어나는 각종 소품들이 산객의 마음을 산뜻하게 보듬어 준다. 무엇보다 좋은 건 암자 앞 작은 뜨락에서 맞는 너른 풍경이다. 지리산으로 향한 미닫이 문이 활짝 열린 듯하다.

삼불사에서 남원 땅에 속한 약수암까지는 2.3km로 다소 길다. 내리막길이긴 해도 너덜지대의 연속이어서 결코 만만하지 않다. 약수암은 시원한 샘물이 유명하다. 목각탱화인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421호)도 고색창연하다. 종착지인 실상사는 다른 암자들에 비하면 대찰이다. 평지에 있어 은둔의 느낌도 덜하다. 볼거리는 많다. 경내 극락전 앞의 석등(보물 35호)과 2기의 삼층석탑(보물 37호)을 비롯해 딸린 암자인 백장암의 삼층석탑(국보 10호) 등 문화재가 수두룩하다.

산행 끝에 둘러볼 만한 명소 몇 곳만 덧붙이자. 함양 오도재는 지리산 전망이 멋들어지게 펼쳐지는 곳이다. 조망공원이 따로 마련돼 있다. 이웃한 지안재는 사진 좋아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출사지다. 뱀처럼 휜 도로를 사진에 담을 수 있다.

▶ 여행수첩

-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은 영원사 쪽에서 시작하는 게 낫다. 영원령 등 오르막 구간도 일부 있지만 대체로 내리막 구간이다. 반대로 실상사에서 오르면 급경사가 이어져 체력 부담이 커진다. 도솔암을 제외한 거리는 얼추 8km 가까이 된다. 소요시간은 6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 약수암에서 실상사까지는 구절양장 임도를 따라 내려와야 한다. 한데 영 산행하는 맛이 나지 않아 숲으로 난 샛길로 내려오는 이들이 많다. 다만 표지판이 없어 길을 잃고 함양 쪽 도마마을로 내려올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차를 가져갈 경우 실상사에 주차를 하고 함양 택시를 불러 영원사로 가는 게 보통이다. 영원사 앞에 차를 대고 실상사에서 택시를 불러도 된다. 어느 쪽이든 택시비는 2만 5000원이다.

-서울신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89.html
kolaswqetsrq 11.03 02:41
◇ 옛이야기 가득... 명불허전 문경새재 옛길

◇ 옛이야기 가득... 명불허전 문경새재 옛길

예고편을 자주 보면 영화를 본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전국의 유명 걷기길 중에서 문경새재 옛길이 그렇다. 산세가 높고 험해 새도 한번에 날아서 넘지 못한다는 고갯마루, 동래에서 한양까지 이어지는 영남대로에서 가장 중요하고 험한 구간, 영남의 유생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오르내리던 길,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판단을 잘못해 허무하게 내어준 전략적 요충지 등 새재에 대한 정보가 차고 넘치는 탓이다.

문경새재 제1관문인 주흘관 뒤편 산자락으로 운무가 피어 오르고 있다. 문경새재 옛길은 안전사고의 우려가 없어 비 오는 날 대안으로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문경새재를 방문하는 이들도 제1관문 주변만 산책하거나, 제2관문인 조곡관 까지만 왕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돌아오기 위해 걷는 데만 치중하면 참맛을 알기 어렵다. 제1관문에서 제3관문까지는 왕복 13km, 느긋하게 온전히 하루를 투자한다면 문경새재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이 길을 스쳐 간 인물과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문경새재 옛길을 걷기로 한 그날은 하필이면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동행하기로 한 김영숙 문화관광해설사는 걱정할 것 없다고 단언했다. 단단한 흙길이어서 산행을 통제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날이 험해도 길을 잃거나 안전사고의 우려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인근 지역 산행을 포기한 등반객들이 대안으로 이곳을 택한다고 한다.

길은 명칭만 ‘영남대로’가 아니라, 1980년대 초반까지 실제 차량이 다녔던 도로다. 전 구간이 비포장이지만 차량 두 대가 조심스럽게 비켜갈 정도로 넓다. 주차장에서 옛길박물관을 지나 약 1km를 가면 제1관문 주흘관이다. 문루를 가운데 두고 높은 석성이 계곡을 가로막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벽은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원형으로 쌓지만, 문경새재의 성벽은 길목을 차단하는 일자형이다. 성벽이 없는 부분은 지형이 험해 애초부터 진입이 불가능하다. 3개의 관문 중 주흘관과 이어진 성벽(초곡성)이 2,270m로 가장 길다. 단단한 성벽 뒤로 첩첩이 산줄기가 겹쳐지고, 계곡에선 안개가 피어 오른다. 비 오는 날의 선물이다.

주흘관을 지나면 계곡 왼편에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이 자리 잡고 있다. 2000년 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 세트로 개장한 이래 수많은 사극을 촬영한 곳이다.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130여 채에 달하는 건물 외벽과 돌담에도 세월의 때가 묻어 얼핏 오래된 민속마을의 풍모가 느껴진다.

키 큰 활엽수가 터널을 이룬 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길가에 조령원 터가 있다. 사각형으로 둘러진 돌담 안에 드라마 촬영을 위해 지은 초가가 한 채 남아 있다. 원(院)은 일종의 공립 여관이다. 10리마다 설치해 문경새재에는 조령원과 동화원이 있었다. 인적이 드문 험한 산길에는 도둑과 산짐승이 많아 상인이든 과객이든 혼자는 재를 넘지 못하고 이곳에서 일행을 이뤄 출발했다고 한다. 요즘은 매달 음력 보름 전후로 진행하는 ‘문경새재 달빛여행’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동동주를 곁들이며 잠시 옛 정취에 빠져 보는 공간으로 이용된다.

멀지 않은 곳에 사설 여관인 주막 터도 있다. 김시습, 이이, 류성룡 등 이 길을 거쳐 갔던 당대의 유명 인사들이 남긴 시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방명록이다.

조금 더 올라가면 멋들어지게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 뒤로 제법 규모가 큰 정자가 홀연히 나타난다. 새로 부임하는 경상감사와 이임하는 감사가 임무 교대를 하던 교귀정(交龜亭)이다. 짙은 나무 그늘 아래로 초록 비가 뚝뚝 떨어져 운치를 더한다. 정자 좌우에 2개의 선정비가 있다. 왼쪽에는 ‘안동부사 김수근타루비’가 세워져 있다.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귀환하는 길목에 주민들이 그의 선정을 기려 ‘눈물을 흘리며 세운 비석’이다. 오른쪽 바위에는 ‘상주부사 이인면 애휼비’가 음각과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바위와 함께 오래도록 남을 터인데, 실제 그럴 만한 인물이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바로 앞 계곡에는 폭포 소리가 청량하다. 용이 승천했다는 용추폭포다. 폭포 위 반반한 바위에 궁예가 최후를 맞은 곳이라는 안내판이 있어 자세히 읽어 보니 드라마에서 그랬다는 얘기다. 조곡관 아래 길가에는 ‘산불됴심’이라 쓴 커다란 표석이 길손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조선시대에 세운 순수 한글 비석으로는 유일한 것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조곡관은 순서상 제2관문이지만 3개 관문 중에서 가장 오래된 문루다. 조곡관은 임진왜란 직후인 선조27년(1594), 1ᆞ3관문은 숙종 34년(1708)에 세워졌다. 조곡관 앞에는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놓였고, 뒤에는 붉은 기둥을 쭉쭉 뻗은 솔숲이 멋스럽다. 이곳은 새재에서 가장 좁은 길목이기도 하다. 바로 위에 이진(二陣) 터가 남아 있는데,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친 신립 장군이 눈속임으로 인형을 세워 놓았던 곳이라 한다. 아무리 멍청이라도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할까. 패배의 원인을 찾자면 100가지도 넘는다는 말처럼 당시의 전술이 꼭 그 모양이었던 듯하다.

이곳부터 3관문까지는 제법 오르막이다. 계곡 물소리도 멀어져 다소 심심하다. 탐방객들이 대부분 2관문에서 발길을 돌리는 이유다. 이 구간에서 꼭 들어야 할 곳이 있다면 동화원이다. 조령원과 마찬가지로 여관 자리였는데 지금은 휴게소로 운영되고 있다. 방풍ᆞ곰취ᆞ두릅ᆞ엄나무와 오가피 순을 버무린 제철 산나물전이 상큼하다.

동화원에서 주흘산 부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조금만 따라가면 숲 속에 ‘조령국민학교 동화원분교’ 터를 알리는 표석이 남아 있다. 1971년 개교해 1985년 폐교할 때까지 2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단순 계산으로 한 학년에 채 두 명이 되지 않는 작은 학교였다. 동화원 인근에는 도공과 화전민, 특정 종교인들이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고 한다. 문경새재 옛길에는 동화원 외에도 3개의 휴게소가 더 있다. 라면과 전, 막걸리와 커피 등을 판매하는 카페 겸 주막이다.

고갯마루에 닿으면 드디어 제3관문 조령관이다. 문경새재 옛길이 끝나는 곳이자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다. 문경읍과 괴산 연풍면에 걸쳐 있는데 ‘문경새재’로 명칭이 굳어졌으니 괴산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명분에서 밀리면 목소리가 커지는 법, ‘백두대간 조령’이라 쓴 대형 표석으로 부족했는지 ‘연풍새재 옛길’이라는 안내판과 조형물까지 설치했다. 이곳부터 연풍 방향으로는 조령산 자연휴양림을 통과하는 숲길이 이어진다.

-한국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51.html
kolaswqetsrq 11.03 02:41
◇ 알려지지 않은 작은 해수욕장 서해안

◇ 알려지지 않은 작은 해수욕장 서해안

서해에선 푸른 바다를 보기 어렵지만 광활한 갯벌을 만날 수 있다. 밀물과 썰물 풍경도 다르다. 환상적인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서해만의 매력이다. 충남 태안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해수욕장 28곳이 있다. 지난달 6일 개장한 만리포해수욕장처럼 유명하고 북적이는 해변보다 조용하고 한적한 해변이 더 많다.

태안 기지포해수욕장은 입구의 해안사구가 먼저 눈길을 끈다. 훼손된 해안사구를 보존하기 위해 울타리를 세워두었다. 울타리를 지나면 광활한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길이 800m, 폭 200m의 해변이지만 삼봉해수욕장, 안면해수욕장과 해변이 이어져 있어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침 도착 때가 썰물이라 갯벌까지 드러나니 광활하다는 표현이 실감난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해변엔 조개와 게 등 바다 생물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발밑에서 바삐 움직이는 생명체가 신기하기만 하다. 갯벌 체험에 나선 가족들이 종종 보인다. 해변을 벗어나 주변 산책을 즐기기로 했다. 해안사구를 따라 걷는 길과 해송숲 사이 산책로가 있어 좋다. 기지포의 노을도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시간을 맞춰 방문한다면 서해 갯벌과 일몰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다.

태안 운여해수욕장에서도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해수욕장 남쪽에 소나무를 심어놓은 방파제가 있는데 밀물 때면 바닷물이 들어와 고이면서 호수처럼 비친다. 섬처럼 떠오른 솔숲과 일몰이 어우러져 장관이 된다. 초여름이면 은하수도 볼 수 있는 포인트다. 유명한 사진 포인트만 보고 가긴 아쉽다. 운여해수욕장의 탁 트인 해변 풍경도 놓치지 말 것. 썰물 때 펼쳐지는 갯벌이 광활하다. 태안의 해수욕장은 8월 16일까지 개장한다.

전남 신안 증도 우전해수욕장은 서해에서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 백사장이 어우러진 해변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해변에 짚으로 만든 파라솔이 줄지어 서 있어 이국적인 풍경이 연출된다. 짱뚱어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변이 길고 한적해 여유롭게 쉬어갈 수 있다. 짱뚱어해수욕장 앞에는 짱뚱어다리가 서 있다. 짱뚱어를 비롯해 갯벌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짱둥어다리에서 바라보는 노을도 아름다워 노을 전망대로도 인기다. 8월 16일까지 개장한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24.html
kolaswqetsrq 11.03 02:42
◇ 미륵사지 석탑, 어둠이 내리면 1400년 전 백제의 밤이 깨어난다

◇ 미륵사지 석탑, 어둠이 내리면 1400년 전 백제의 밤이 깨어난다

"백제 무왕이 이 풍경을 봤으면 무덤에서 일어났을 겁니다." 지난 4일 오후 8시 이제 전북 익산 미륵사지(규모 1296만m2)에 어둠이 내리면서 경관 조명이 하나둘 켜졌다. 미륵사지석탑(국보 11호)을 비추는 노란 조명 30여 개가 일제히 켜지자 관광객들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미륵사지석탑은 백제 무왕(재위 600~641)대에 지어졌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최대(最大) 석탑이다. 석탑 곁을 지키는 높이 3.95m의 당간지주(보물 236호)도 불기둥이 솟아 오르는 듯한 모습을 뽐내며 미륵사지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익산의 대표 유적인 미륵사지석탑은 1915년 붕괴한 부분을 콘크리트로 땜질하고 나서 80년 동안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 화강암으로 만든 탑과 콘크리트의 불편한 동거에 관광객들도 발길을 돌렸다. 지난 1992년 복원된 미륵사지동탑마저 부실 복원 논란에 휩싸이면서 미륵사지는 명성을 점점 잃어갔다.

문화재청은 지난 1999년부터 미륵사지석탑을 해체하고 보수를 시작했다. 해체 작업 10년 만에 역사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탑을 만들 때 안치했던 사리장엄구(보물 1991호) 등 1만점에 가까운 유물이 나왔다. 국보급 유적이 쏟아져 나오자 익산시와 전북도는 미륵사지를 체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해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난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미륵사지를 올렸다. 마침내 지난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미륵사지석탑 보수 작업은 지난해 6월 마무리됐다. 보수를 마친 석탑은 높이 14.5m, 너비 12.5m에 무게는 약 1830t에 달했다. 20년 만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미륵사지석탑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몰렸다.

미륵사지 등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할 국립익산박물관도 지난 1월 10일 문을 열었다. 미륵사지 바로 옆에 연면적 7500m2, 전시실 면적 2100m2 규모로 지어졌다.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지하 2층, 지상 1층으로 건립한 유적 밀착형 박물관이다. 미륵사지 유물 2만3000여 점과 전북 서북부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3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익산박물관은 개관 한 달 만에 26만8495명이 다녀갔다. 작년 동월 대비 20배가 넘는다. 조계남 익산시 홍보담당관은 "백제 유산 관광 산업을 통해 앞으로 5년 동안 5000억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
미륵사지와 국립익산박물관이 위용을 갖추자 익산시는 백제고도 익산, 관광도시 익산을 선포하고 관광산업 육성에 나섰다. 미륵사지와 백제왕궁, 무왕릉 등 핵심 유적 6곳에 예산 3600억원을 투입한다.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에 석탑을 제외하면 옛 건축물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홀로그램 등을 활용한 콘텐츠를 만들 계획이다.
",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400.html
kolaswqetsrq 11.03 02:42
번문욕례繁文縟禮 - 번거롭고 까다로운 규칙과 예절

번문욕례(繁文縟禮) - 번거롭고 까다로운 규칙과 예절

번성할 번(糸/11) 글월 문(文/0) 화문놓을 욕(糸/10) 예도 례(示/13)

복잡한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들은 다른 일이 닥쳤을 때 간단하게 이해하는 것을 바란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 아픈 일이 많은데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무시하거나 대충 처리한다. 서양 철인 세네카는 단순함의 중요성을 말했다. ‘모든 기교적인 것, 주의를 끄는 것은 피해야 한다. 단순만큼 사람으로 하여금 친근하게 하는 것은 따로 없다.’ 또 있다. ‘참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항상 단순하다. 왜냐하면 쓸데없는 일을 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다.

단순함을 찾는 사람에게 생각도 그러한데 번거롭고 까다로운 규칙(繁文)과 꾸미기만 한 듯이 세세하게 보이는 예절(縟禮)은 더 거리감을 느낀다. 번잡스런 煩文(번문)이라 해도 같고 줄여서 繁縟(번욕). 繁忙(번망)으로도 쓴다. 금침이나 자리에 꽃무늬 놓는 것이 縟(욕)인데 역시 번잡하다.

꼭 이 말이 어디에서 처음 사용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중국 西周(서주)시대 왕의 직계 혈통과 동맹관계에 있던 제후 사이의 호혜적인 관계에 근거하여 복잡한 규정이 있었다고 본다. ‘史記(사기)’ 魯周公(노주공) 세가에 예가 있다. 주공의 아들 伯禽(백금)이 魯(노)땅의 봉토를 받은 지 삼년 만에 상황을 보고했다. 姜太公(강태공)은 齊(제)에 간 지 다섯 달 만에 보고했다. 주공은 정치가 쉽고 백성들에게 친근해야 따르게 된다며 앞으로 노나라가 제나라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한탄했다.

우리나라에서 이 말은 상례나 제례 등의 규정에 대해 ‘허례다, 지켜야 한다’며 논쟁을 해 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절차, 양식 등을 요구하는 관청에서의 사무가 형식적이고 너무 까다롭다고 말할 때 많이 쓴다. 민원인의 입장에선 전혀 필요하지 않을듯한데 요구하여 비용을 낭비하고 부패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근거가 있어야 하고 책임질 일이 있을 때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는 간단하고 쉽게 행해지지 않으면 국민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다. 漢高祖(한고조)가 통일한 뒤 約法三章(약법삼장)으로 민심을 잡았다. 법이 성기면 큰 죄를 지은 사람이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며 조밀하게 규정하면 되레 피라미들만 생활하기 불편해진다. 도덕으로 충분히 규제할 수도 있는 것을 제정했다가 유명무실한 법은 또 얼마나 많을까.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31.html
kolaswqetsrq 11.03 02:43
살처구장殺妻求將 – 부인을 죽여 장군이 되다, 목표를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다.

살처구장(殺妻求將) – 부인을 죽여 장군이 되다, 목표를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다.

죽일 살(殳/7) 아내 처(女/5) 구할 구(氺/2) 장수 장(寸/8)

큰일을 성취하려면 다른 일을 생각지 말아야 한다. 큰일만이 아니라 자신이 처음 결심한 일을 해나갈 때도 잡념에 마음이 끌리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百濟(백제) 말기의 階伯(계백) 장군은 羅唐(나당) 연합군을 물리치기 위해 황산벌로 출전할 때 처자를 죽였다. 5000의 군사로 5만 대군을 막기 위해 나서면서 나라를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적의 노비가 되는 것보다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늘날 생각하면 가혹한 처사임이 분명하지만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도 명백하다.

듣기만 해도 끔찍하게 부인을 죽여(殺妻) 장군 자리를 구한다(求將)는 이 말은 명성이나 이익을 얻기 위하여 잔인한 수단도 망설이지 않는 것을 비유한다. 吳子(오자)라는 병서의 원저자로 보는 吳起(오기)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싸움터에서 부하의 상처에 난 종기에 고름까지 빨아주는 장수, 吮疽之仁(연저지인, 吮은 빨 연)의 그 사람인데 참으로 집념이 무섭다. 春秋時代(춘추시대) 衛(위)나라 사람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재산을 탕진했다. 자신을 비웃는 자들을 30명이나 죽이고 도망하면서 어머니께 출세하기 전에는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魯(노)나라에 가서 曾子(증자)에게 배우고도 어머니 초상 때 가지 않았다고 배척당했다.

그 즈음 齊(제)나라의 대부가 열심히 하는 오기의 모습을 보고 큰 인물이 될 것이라며 딸과 결혼을 시켰다. 제나라가 침입하자 병법에 능한 오기를 노나라 장군으로 기용하려 했지만 부인의 출신이 문제가 되었다. ‘오기는 공명심에 불탄 나머지 자기 아내를 죽여 제나라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吳起于是欲就名 遂殺其妻 以明不與齊也/ 오기우시욕취명 수살기처 이명불여제야).’ ‘史記(사기)’ 손자 오기열전에 실려 있다.

어떤 일을 이루려면 결심을 이어가야 하는데 쉽지 않아 作心三日(작심삼일)이 많다.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나중에야 삼수갑산을 갈지라도’ 끝장을 내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자기만 옳고 나머지에 피해를 끼친다면 큰일을 이루고도 지탄을 받을 것이다. 야심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90.html
kolaswqetsrq 11.03 02:44
관즉득중寬則得衆 - 마음이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

관즉득중(寬則得衆) - 마음이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

너그러울 관(宀/12) 곧 즉(刂/7) 얻을 득(彳/8) 무리 중(血/6)

남을 사랑하고 어질게 행동하는 仁(인)은 본래 등에 짐을 진 사람을 의미했다고 한다. 孔子(공자)가 처음으로 강조한 인은 孝悌(효제) 즉 혈연적인 사랑을 널리 퍼뜨려 나라까지 평화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후일 孟子(맹자)가 완성시킨 五常(오상)도 인이 중심이 돼 仁義禮智信(인의예지신)으로 되었고 유교에서 가장 중심덕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너그러운 마음씨를 가지면(寬則)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다(得衆)는 이 말도 공자가 인에 대해서 설명할 때 나온다.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물론 많은 사람의 사랑과 애정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4년 리더십의 덕목을 말하는 신년휘호로 이 성어를 선정한 이후 잘 알려졌다.

‘論語(논어)’의 陽貨(양화)편에 등장하는 공자와 제자 子張(자장)의 문답을 보자. 자장은 字(자)이고 이름이 顓孫師(전손사, 顓은 오로지 전)인 陳(진)나라 출신이다. 인에 대해서 여쭙자 공자가 ‘하늘 아래에서 다섯 가지 덕목을 실천할 수 있다면 사람답다(能行五者於天下 爲仁矣/ 능행오자어천하 위인의)’고 한다. 다시 그 내용을 자세히 알려달라고 하여 대답한다. ‘다섯 가지는 공손함, 너그러움, 미더움, 민첩함, 은혜로움이다.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며, 믿음이 있으면 사람들이 신임하게 되고, 민첩하면 기회가 올 때 공적을 세울 수 있고, 은혜로우면 사람들을 부릴 수 있게 된다(恭 寬 信 敏 惠, 恭則不侮 寬則得衆 信則人任焉 敏則有功 惠則足以使人/ 공 관 신 민 혜, 공즉불모 관즉득중 신즉인임언 민즉유공 혜즉족이사인).’ 이 덕목들은 인을 실천할 때 필요한 것인데 공손, 관대, 은혜로움은 특히 사람과의 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남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지녀야 하는 필수 덕목이기도 하다.

우리의 지도자들, 이러한 덕목을 잘 지니고 있을까. 대기업은 많이 가진 자가 더 욕심 부리고, 항상 시끄러운 정치판에서는 거론하기조차 부끄럽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95.html
kolaswqetsrq 11.03 02:44
주마간화走馬看花 – 말을 타고 달리며 꽃을 구경하다, 대충 보고 지나가다.

주마간화(走馬看花) – 말을 타고 달리며 꽃을 구경하다, 대충 보고 지나가다.

달릴 주(走/0) 말 마(馬/0) 볼 간(目/4) 꽃 화(艹/4)

온갖 생물이 흐드러진 萬化方暢(만화방창) 따뜻한 봄날에 느긋이 말 등에 올라타고 산천경개 구경한다고 하면 무엇이 느껴질까. 신선이 따로 없이 좋은 팔자라고 모두들 부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말을 타고 달리며(走馬) 꽃구경을 한다(看花)면 아름다운 꽃을 제대로 감상할 수는 없다. 흔히 走馬看山(주마간산)으로 잘 알려진 이 성어는 ‘수박 겉핥기’란 속담과 같이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 대충대충 훑고 지나간다는 뜻으로 굳어졌다. 처음 꽃으로 사용될 때는 일이 뜻대로 되어 마음이 즐겁다는 뜻이었는데 의미하는 바가 달라졌다.

중국 中唐期(중당기) 시인으로 유명한 孟郊(맹교, 751~814)는 韓愈(한유)와 가깝게 지내며 復古主義(복고주의)에 동조한 작품을 많이 썼다. 가정적으로 불우하여 청년 시절 청렴한 생활을 하면서 벼슬에는 전혀 뜻이 없이 시작에만 열중했다. 어머니의 권고에 못 이겨 41세가 되던 해 과거에 응시했지만 보기 좋게 낙방하고 주변에서 온갖 냉대를 다 받았다. 두 번째 도전에서도 낙방하고선 ‘두 번이나 서울 땅을 밟고서도 또 떨어져, 헛되이 눈물 머금고 꽃만 바라보네(兩度長安陌 空將淚見花/ 양도장안맥 공장루견화)’라며 피눈물을 흘렸다.

陌은 길 맥. 그러다 46세 때에 겨우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는데 세상인심이 급변했음을 실감했다. 맹교가 어느 술좌석에서 또 꽃을 등장시켜 각박한 민심을 풍자했다. ‘登科後(등과후)’란 시의 부분을 보자. ‘봄바람에 뜻을 얻어 세차게 말을 모니, 하루 만에 장안의 꽃을 다 보았네(春風得意馬蹄疾 一日看盡長安花/ 춘풍득의마제질 일일간진장안화).’ 말을 타고 달리며 장안의 꽃을 다 구경했다는 것은 하루 만에 좋은 것을 모두 맛보았다는 은유로 이전 낙방했을 때와 천양지차를 실감했다는 표현이다. 앞부분의 春風得意(춘풍득의)란 말도 벼슬을 얻게 된 기쁨을 표현하는 성어가 됐다.

다른 목적이 없이 관광을 할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구경하는 것이 더욱 흥이 난다. 하지만 학업이나 사업을 할 때는 목표가 있고 이익이 걸려 있어 대충하면 실패가 기다린다. 이것을 확연히 구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으니 탈이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75.html
kolaswqetsrq 11.03 02:45
호고파산好古破産 - 옛것을 좋아하여 재산을 다 날리다.

호고파산(好古破産) - 옛것을 좋아하여 재산을 다 날리다.

좋을 호(女/3) 예 고(口/2) 깨뜨릴 파(石/5) 낳을 산(生/6)

먼저 살았던 선인들의 지혜를 소중히 여겨 오늘날 잘 받아들이면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말은 잘못이 없으니 명심해야 한다고 ‘옛말 그른 데 없다’는 속담이 이어온다. 孔子(공자)도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한다고 溫故知新(온고지신)이라 했다. 옛 문물을 소중히 여긴다는 崇古(숭고)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무조건 과거의 일만 옳다고 여기고 따라 하기만 한다면 막막하다. 옛일을 참고는 하더라도 현재를 헤쳐 나갈 때는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존재한다. ‘흘러간 물로써는 물방아를 돌릴 수가 없다’는 말과 통한다.

옛것을 무척 좋아하여 재산을 다 날린다는 이야기는 조선의 笑話集(소화집)으로 알려진 ‘蓂葉志諧(명엽지해)’에 실려 있다. 旬五志(순오지)를 쓴 중기의 문신 洪萬宗(홍만종, 1643~1725)의 저작이다. 남녀 간의 육담과 해학을 다룬 책의 집대성 古今笑叢(고금소총)에도 포함된다. 명엽은 蓂莢(명협)이란 보름 사이 한 잎씩 났다가 그 후 한 잎씩 진다는 달력 풀의 잎이다. 촌로들의 이야기를 듣고 달력 뒷면에 기록하듯이 했다는 의미라 한다.

옛날 물건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이 깨어진 표주박을 갖고 와 옛날 중국의 은자 許由(허유)가 귀를 씻은 것이라 하니 백금을 주고 샀다. 너덜너덜한 방석을 갖고 온 사람이 공자가 杏亶(행단)에서 강의할 때 앉은 자리라 하자 또 백금을 주고 샀다. 또 한 사람이 대지팡이를 後漢(후한)의 기인 費長房(비장방)이 하늘을 날 때 썼던 지팡이라 하자 거금을 주고 샀다. 집안의 재물이 바닥났지만 얻은 것이 많다며 표주박과 지팡이를 짚고 자리를 끼고 거리로 나섰다. ‘사람들이 모두 입을 막고 웃었는데 옛것을 좋아하다 집안을 망친 것을 비웃은 것이다(人皆掩口 笑其好古而破産也/ 인개엄구 소기호고이파산야).’

옛날의 가르침과 전통을 이어나가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파산할 정도로 현실을 무시하고 옛것에 빠진다면 옳은 일이 아니다. 이전부터 내려오는 것을 새롭게 해 본다고 전면 폐기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행위다. 어느 것이나 모두의 지혜를 모아 최선의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83.html
kolaswqetsrq 11.03 02:45
양웅불구립兩雄不俱立 – 두 영웅은 함께 설 수 없다.

양웅불구립(兩雄不俱立) – 두 영웅은 함께 설 수 없다.

두 량(入/6) 수컷 웅(隹/4) 아닐 불(一/3) 함께 구(亻/8) 설 립(立/0)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 영웅이다. 오늘날 영웅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이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될 수 없는 일을 바라고만 있는 사람이 범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옛날의 영웅이라 함은 힘은 산을 뽑고 기상은 하늘을 덮는다(力拔山氣蓋世/ 역발산기개세)란 표현과 같이 비범했다. 項羽(항우)를 영웅으로 잘 그려낸 말이다. 이 영웅이 두 사람이 되면(兩雄) 함께 설 수 없다(不俱立). 이들은 반드시 싸워 어느 한 쪽이 패배하거나 둘 다 무너진다는 뜻이다. 항우의 막강한 힘이 결국 劉邦(유방)에 무릎 꿇게 되는 것도 두 영웅을 받아들이지 않는 하늘의 뜻에서 나왔다.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말기 천하 통일했던 秦(진)나라가 쇠퇴하고 楚漢(초한)을 이끌던 항우와 유방이 양대 세력으로 각축을 벌일 때였다. 酈食其(역이기, 酈은 땅이름 역, 食은 밥 식, 사람이름 이)란 사람은 사람이 곧고 글을 즐겨 읽었지만 집안이 가난하여 糊口之策(호구지책)으로 유방의 휘하에 들기 위해 찾아갔다. 유방은 선비를 업신여겼기 때문에 역이기가 자신을 고양의 술꾼(高陽酒徒/ 고양주도)라 소개하고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방이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두 여인에게 발을 씻기며 뒤돌아보지도 않는 것을 꾸짖어 선비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그러자 얼른 의관을 바로 하고 역이기를 상좌로 모신 뒤 의견을 들었다.

유방이 항우와의 싸움에서 형세가 불리해지자 일부 지역을 포기하고 병력을 몇 군데로 집결시켜 방어할 계획을 세웠다. 이 때 역이기가 나서 하늘의 명을 모르는 자는 왕업을 성취할 수 없다며 간언한다. 한 시대에 두 영웅은 양립할 수 없으니(且兩雄不俱立/ 차양웅불구립) 항우와 계속 대치만 해서는 민심이 안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유방은 제안을 받아들여 초나라에 공세로 나갔고 역이기는 齊(제)나라에 파견되어 변설로 항복을 받아내는 큰 공을 세웠다. ‘史記(사기)’ 酈生陸賈(역생육가) 열전에 실린 이야기다.

오늘날 사회에서의 영웅은 두 사람이 아니라 많을수록 좋다. 치열한 경쟁을 하는 기업에서도 맞수가 있으면 더욱 자신을 발전시키려 노력한다. 옛날같이 상대를 멸망시켜야 할 것이 아니라 상생을 해야 더욱 큰 존재가 되는 것이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48.html
kolaswqetsrq 11.03 02:50
삼일천하三日天下 - 삼일 동안의 집권, 영화를 누리는 시간은 짧다

삼일천하(三日天下) - 삼일 동안의 집권, 영화를 누리는 시간은 짧다

석 삼(一/2) 날 일(日/0) 하늘 천(大/1) 아래 하(下/0)

대중가요의 가사로 많은 사람에 오르내렸던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있다. 빨간 꽃이 아름다움을 뽐내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며 사람이 잘 나가는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하니 사후를 대비하라는 교훈이다. 권세가 10년을 넘지 못한다는 權不十年(권불십년)도 있다. 10일에 비해 까마득하지만 천하를 보면 순간이다. 중국을 처음 통일한 秦始皇(진시황)부터 淸(청)나라 마지막 황제 溥儀(부의)까지 2130여 년간 211명의 황제 평균 재위기간이 10년 남짓이란 조사도 있어 성어가 알고 만든 듯이 잘 맞다.

한 나라가 한 정권에 속했을 때 천하라 한다. 가장 짧은 3일 동안의 집권이라 하면 조선 말기의 甲申政變(갑신정변)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1884년 급진 개화파 金玉均(김옥균), 朴泳孝(박영효) 등의 청년 지식인들이 우정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閔氏(민씨) 세력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淸(청)의 개입을 요청한 세력들에 의해 3일 만에 축출되고 개화파들이 망명했다. 仁祖(인조) 때인 1624년 반정에 공이 컸던 李适(이괄, 适은 빠를 괄)이 공신에서 밀리고 반역의 모함까지 받자 군사를 일으켜 새 왕을 세웠지만 사흘 만에 진압되고 말았다.

이렇게 보면 사흘간 단기 집권했다는 이 성어가 우리나라에서 기원했을 법 하지만 중국 검색 사이트 바이두(百度)에도 일본에서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일본 센고쿠(戰國)시대인 1582년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라는 무사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암살하고 천하를 손에 넣었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토벌되었다. 이 기간이 13일이지만 통상 삼일천하라 불린다고 한다.

이 밖에 百日天下(백일천하)는 프랑스 나폴레옹이 1815년 엘바 섬에서 빠져나와 제정을 부활하고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할 때까지 지배를 말한다. 千日(천일)로 유명한 앤 불린(Anne Boleyn)은 영국 헨리 8세와의 파란 많은 결혼생활을 끝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까지의 기간이었다.

삼일이든 백일이든 차이는 있지만 모두 짧다는 것이 공통이다. 잘 나갈 때 덕을 베풀었으면 내려와서도 존경받는데 그런 사람은 드물다. 부귀영화를 누릴 때는 끝나는 시기가 없을 듯이 주위에 거들먹거린다. 아랫사람의 신망을 잃으면 그 자리가 더 짧아지는데도 그렇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99.html
kolaswqetsrq 11.03 02:51
삼불여三不如 - 세 사람보다 못하다, 유방의 용인술

삼불여(三不如) - 세 사람보다 못하다, 유방의 용인술

석 삼(一/2) 아닐 불(一/3) 같을 여(女/3)

사람은 제각기 타고난 재주가 있어 저마다의 방면에서 이름을 남긴다. 모든 면에서 통달할 수는 없기에 분야마다 특출하게 잘 하는 전문가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집단을 이끄는 리더는 부하들의 장점을 잘 파악하여 재능을 발휘하게하고 다른 사람의 능력과 융합하여 업적을 만들어낸다. 만약 부하들의 공동성과를 자신의 업적으로 가로챈다면 그 조직이 계속적으로 잘 될 리 없다. 자신의 능력이 세 사람에 미치지 못한다(三不如)는 이 성어는 부하에게 공을 돌린 중국 漢高祖(한고조)의 고사에서 나왔다.

출신도 한미하고 재주도 보잘것없는 劉邦(유방)이 떵떵거리는 집안의 천하장사 項羽(항우)와 일진일퇴 끝에 천하를 다시 통일하게 됐다. 모두의 예상을 뒤집은 결과였다. 황제에 오른 뒤 楚漢(초한)전쟁을 치르느라 고생한 신하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주연을 베풀었다. 고조는 자신이 도저히 항우에 비해 그릇이 안 되는데 황제에 오른 까닭이 무엇인지 속 시원히 알려 달라고 했다. 무신 王陵(왕릉)과 高起(고기)가 답했다. 항우는 어질고 재능 있는 자를 시기하고 공을 가로챘지만 폐하는 천하와 함께 이익을 나눠 주신 때문이라고 했다. 妬賢嫉能(투현질능)이 항우를 망쳤다는 것이다.

유방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知其一 未知其二/ 지기일 미지기이)며 설명한다. 군사를 운용하고 전략을 짜는 데는 張良(장량)만 못하고 행정과 보급은 蕭何(소하)만 못하며, 백만 대군을 통솔하고 승리하는 데는 韓信(한신)보다 못해 자신이 세 사람에 못 미친다(三不如)고 했다. 그러면서 이 세 인물을 자신이 기용했으니 范增(범증) 한 명도 거느리지 못한 항우에게 이길 수 있었다고 했다. 결국 이 漢興三傑(한흥삼걸)에 공을 돌리면서 적재적소에 잘 활용한 자신의 공도 떠올렸다. ‘史記(사기)’ 고조 本紀(본기)에 실린 이야기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많이 한다. 같이 일을 할 사람의 재능을 잘 파악하는 일이 앞서야 할 테지만 적소에 배치하여 잘 활용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연줄에 의하여 낙하산으로 온 인사는 자신의 갈 길만 찾는다. 자신이 제일 잘 안다는 무모함이 인사를 망치고 조직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81.html
kolaswqetsrq 11.03 02:51
순치보거脣齒輔車 - 입술과 이, 또는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와 같이 밀접한 관계

순치보거(脣齒輔車) - 입술과 이, 또는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와 같이 밀접한 관계

입술 순(肉/7) 이 치(齒/0) 도울 보(車/7) 수레 거(車/0)

입술과 이(齒牙/ 치아)의 관계는 서로의 도움이 필요한 밀접한 관계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성어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脣亡齒寒(순망치한)이다. 비슷한 뜻으로 輔車相依(보거상의)란 말이 있는데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를 말한다. 輔는 수레의 양쪽 가장자리에 덧대는 덧방나무란 뜻 외에 광대뼈를 가리키고, 車는 수레바퀴라는 뜻 외에 잇몸을 나타내기도 한다. 덧방나무와 바퀴거나 광대뼈와 잇몸이거나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그래서 두 성어를 합쳐 서로 돕고 의지하거나 떠날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뜻하는 말이 됐다.

春秋時代(춘추시대, 기원전 770년~403년) 북방의 강국 晉(진)나라의 獻公(헌공)은 이민족에 승리를 거두고 데려온 驪姬(여희, 驪는 검은말 려)라는 미녀에 혹해 태자 申生(신생)이 살해되고, 重耳(중이)는 망명생활을 하게 되는 악업이 있지만 文公(문공)이 천하의 패자가 되는 길을 닦았다고 평가받는다. 헌공이 주변 약소국인 虞(우)나라와 虢(괵, 虢은 나라 이름, 범발톱자국 괵)나라를 병합할 때의 일이다. 이전부터 괵을 치려했으나 그러려면 우나라를 지나야 했다. 假途滅虢(가도멸괵)의 성어는 여기서 나왔다. 이들 두 나라는 형제국으로 여기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함부로 한 곳을 침략하기가 껄끄러웠다.

대부 荀息(순식)이 꾀를 냈다. 우나라 임금은 욕심이 많아 명마와 구슬을 선물로 주면 길을 비켜줄 것이라 했다. 순식간에 마음이 돌아간 우임금에게 충직한 신하 宮之奇(궁지기)가 열을 올려가며 간했다. 괵과 우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라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 순망치한)’거나 ‘덧방나무와 바퀴는 서로 의지한다(輔車相依/ 보거상의)’란 속담과 같은 경우라며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설득해도 어리석은 우왕이 듣지 않자 궁지기는 화를 피하여 우나라를 떠났고 염려한대로 진헌공은 괵나라를 멸한 뒤에 우나라를 쳐서 병탄하고 말았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 僖公條(희공조)에 실려 전한다.

나라 사이에서도 중국이 북한을 감싸는 모습이 이를 보호하려는 속내가 들어 있다. 북한이 그렇게 말썽을 부려도 은연중 감싸는 것은 한국과 미국이 국경을 맞닿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은 기업이나 개인이나 말할 것 없지만 대립보다는 상생을 위해서는 없어서 안 될 덕목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19.html
kolaswqetsrq 11.03 02:52
상사병相思病 - 이성을 그리워하여 생기는 마음의 병

상사병(相思病) - 이성을 그리워하여 생기는 마음의 병

서로 상(目/4) 생각 사(心/5) 병 병(疒/5)

사람을 그리워하여 마음에 든 병이 相思病(상사병)이다. 동성끼리 병이 들 정도로 그리워하기는 드물 것이고 이성끼리라도 사랑으로 생긴 병이지만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생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키소스(Narcissos)는 그를 연모한 요정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아 자신만을 사랑하는 벌을 받았다. 조선 松都(송도)서 뛰어난 용모에 시서화에 능했던 黃眞伊(황진이)는 짝사랑한 이웃집 총각이 까맣게 타서 죽자 충격을 받아 기생의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모두 상사병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생긴 일이다.

相思(상사)라는 말의 연원은 오래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宋(송)나라 말기의 임금 康王(강왕)은 외치에 능력을 보였으나 주색이 문제였다. 그것을 신하가 간하기라도 하면 활을 쏠 정도로 안하무인이었다. 강왕이 시종 韓憑(한빙)의 절세미인인 부인 何氏(하씨)를 능욕하고 후궁으로 삼았다. 변방에 내쳐진 한빙은 부인을 그리워하다 자살했고 후궁 하씨도 왕과 함께 누대에 올랐다가 남편과 합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투신했다.

화가 난 왕은 유언을 무시하고 일부러 무덤을 서로 바라보게 사이를 벌려 놓았다. 그날 밤 각 무덤에 나무가 생기더니 열흘 뒤에는 아름드리가 되었고 몸체가 구부러지면서 뿌리가 맞닿았다. 나무 위에는 원앙새 한 쌍이 온 종일 목을 안고 슬피 울었다. ‘송나라 사람들은 슬퍼하며 그 나무를 상사수라 불렀다(宋人哀之 遂號其木曰相思樹/ 송인애지 수호기목왈상사수).’ 東晋(동진)의 역사가 干寶(간보)가 기이한 이야기를 모은 ‘搜神記(수신기)’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부부끼리 연인끼리 서로가 그리워하지만 맺어지지 못한 사랑이 지금은 짝사랑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이 병에 걸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정식 병으로 보지 않고 강박장애나 조울병, 우울증 등의 범주에 속한다고 한다. 조선의 시조 한 편을 보자. ‘사람이 사람을 그려 병드단 말가/ 사람이 언마 사람이면 사람 하나 병들일랴/ 사람이 사람 병들이는 사람은 사람 아닌 사람.’ 생몰년 미상의 安烟甫(안연보) 작품인데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원인 제공자를 원망하고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36.html
kolaswqetsrq 11.03 02:53
◇ 반려견과 함께 걷기 좋은 길

◇ 반려견과 함께 걷기 좋은 길

반려견은 가족 구성원이 된 지 오래다. 1인 가구가 늘면서 반려견은 외로움을 달래주고 자식이 성장해 독립한 노부부들의 허전한 마음을 메워주기도 한다. 지난해에 새로 등록된 반려견은 79만7081마리로 1년새 443.6% 증가했다. 2014년 반려동물등록제가 전국적으로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등록된 반려견은 209만마리를 넘어설 정도로 우리의 삶에 가장 깊숙하게 파고든 동물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전 국민에게 이동금지령을 내린 프랑스와 스페인 등은 ‘반려견 산책’을 합법적인 외출로 허용했을 정도다. 이에 자가격리에 지친 이들이 외출을 위해 ‘개를 빌려 달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고 스페인에서는 장난감 개를 데리고 외출을 했다가 체포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관광공사는 ‘또 하나의 가족’ 반려견과 함께 좋은 길을 소개했다. 반려견은 나한테는 순하지만 남에게는 ‘호랑이’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함께 외출할 때 목줄은 필수이고 배변봉투를 꼭 준비하는 에티켓도 잊지 말자.

1. 한탄강 주상절리길 1코스 구라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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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의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대자연이 빚은 절경을 즐기며 걷기 좋은 곳이다. 조용하게 흐르는 물소리는 팍팍한 도심의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마음의 쉼표를 찍는다. 4개 코스가 있는데 초입의 4km 구간인 ‘1코스 구라이길에 운산리 자연생태공원이 있고 데크길이 쾌적하게 잘 정돈돼 반려견과 함께하기 좋다. 걷다 보면 숲 사이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부드러운 봄바람에 나뭇잎이 서로 스치는 소리, 한탄강의 물소리가 어우러져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클래식 콘서트에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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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킹덤’의 무대이기도 하다. 1코스 구라이길에서는 천연기념물 제537호인 비둘기낭 폭포를 만나는데 바로 이곳에서 드라마가 촬영됐다. 웅장한 폭포를 지나면 길게 뻗은 한탄강을 한눈에 담는 전망대와 에메랄드빛 강줄기 사이사이를 볼 수 있는 협곡이 이어진다. 한탄강 주상절리길 1코스의 마지막 지점과 2코스의 시작 지점에서는 다양한 푸드트럭이 여행자의 허기를 달래준다.

2. 바우길 1코스 선자령 풍차길

강원도 강릉의 바우길은 모두 400km로 강릉바우길 17개 구간, 대관령바우길 2개 구간, 울트라 바우길, 계곡바우길, 아리바우길로 이어진다. 백두대간과 경포대, 정동진 등 강원도의 산과 바다들 모두 감상하며 대자연의 감동을 온몸으로 느끼는 걷기 좋은 길이다.

강릉 바우길 첫 번째 코스가 대관령에서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풍차길. 늘 거센 바람이 불어 ‘바람의 언덕’으로 불리는 선자령에는 커다란 풍력발전기가 설치돼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옛 대관령휴게소에서 출발해 선자령 계곡길과 능선길을 밟아 원점으로 돌아오는 왕복 12km의 코스다. 옛 대관령휴게소는 고도 840m, 선자령은 1157m로 약 300m 정도의 편차가 있지만 길게 이어지는 능선이라 누구나 무리없이 걸을 수 있다. 울창한 숲에서 쏟아지는 피톤치드를 깊게 들이마시며 걷다 보면 코로나19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는 모두 날아간다. 대관령휴게소~2구간분기점~한일목장길~우측숲~선자령~동대전망대~대관령휴게소 코스를 따라가면 된다.

3. 평택호 수변테크 사색의 길

경기도 평택호관광지에 마련된 수변테크 사색의 길은 1.5km의 산책코스로, 언덕이나 장애물이 없고 곧게 뻗어 있어 반려견과 보폭을 맞추며 걷기 아주 편한 곳이다. 평택호는 충청남도 아산시와 경기도 평택시 사이 안성천 하구에 아산만방조제를 건설하면서 생긴 인공호수로 드넓게 펼쳐진 호수가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걷다 보면 만나는 10개의 다양한 ‘소리의자’에서 쉬어갈 수 있다. 전통악기와 장단을 형상화한 소리의자는 추억을 남기는 포토존이기도 하다. 평택호관광안내소~전망대~요트선착장~한국소리터~모래톱공원 코스로 이뤄졌다.

4. 강화나들길 19코스 석모도 상주해안길

경기도 강화의 석모도 동쪽에 마련된 석모도 상주해안길은 10km의 도보여행 코스로 산, 들, 바다로 풍경이 바뀌어 지루하지 않다. 특히 석모대교가 개통되면서 반려견과 함께 나들이하기 더욱 좋아졌다. 농촌 풍경과 오솔길을 즐기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힐링할 수 있다. 제방길이 끝나는 곳에서 만나는 정자는 반려견에게 간식을 챙겨주기 좋은 장소이고 주변에 포토존도 마련됐다.

5. 고정리 공룡알 화석산지 탐방로

경기도 화성의 고정리 공룡알 화석산지 탐방로는 1.5km 구간으로 천천히 걸으면 왕복 2시간 정도 걸리는 평탄한 길이다. 길이 대부분 데크로 이뤄져 유모차도 무리없이 다닐 수 있는 만큼 반려견도 쉽게 걸을 수 있다. 데크길을 따라 양옆으로 드넓게 펼쳐진 갈대밭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약 1억년 전 백악기 공룡 집단 서식지로 다양한 화석이 발견돼 공룡알 화석산지로 조성됐다. 코스를 걷는 동안 누두바위, 하한염, 중한염 등 8개 지점에서 공룡알의 화석을 볼 수 있다. 데크길 중간중간 다양한 포토존 마련돼 반려견과 함께 인생샷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기 좋은 곳이다. 탐방로의 데크길 외에도 이곳저곳으로 작은 오솔길들이 이어진다.

-세계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36.html
kolaswqetsrq 11.03 02:53
◇ 숲에서, 골프장에서...제주 까마귀 도넘은 도둑질

◇ 숲에서, 골프장에서...제주 까마귀 도넘은 도둑질

“제주에 오시거던 까마귀들 조심합서.”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사려니 숲길에 까마귀들이 탐방객을 위협해 제주시가 포획에 나섰다.

최근 제주시와 한국조류보호협회 제주도지회에 따르면 최근 까마귀들이 사려니 숲길을 찾는 탐방객들의 머리나 어깨를 툭툭 치는 등 공격하거나 가방을 열려고 시도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까마귀들이 사람 머리 위로 근접해 위협적으로 날아가기도 해(사진) 일부 탐방객들은 놀라 피하다 넘어지는 일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탐방객은 최근 숲길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까마귀가 공격해 아내가 머리를 다쳤다고 하소연했다.

한라산 중산간에 있는 골프장에서는 까마귀들이 카트에 둔 과자는 물론 지갑과 옷, 심지어 휴대전화까지 물고 달아나는 일이 잦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골퍼는 “까마귀 무리가 카트를 습격해 감쪽같이 수십만원이 들어 있던 지갑을 물고 날아갔다”면서 “까마귀에 물건을 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캐디의 당부를 그냥 웃어넘겼는데 당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A 골프장 관계자는 “까마귀가 카트를 세워놓는 곳을 알고 기다리다가 사람들이 그린에 올라간 사이 카트 털이를 할 만큼 영악하다”고 말했다.

시는 한국조류보호협회 제주도지회에 의뢰해 사려니 숲길 등에서 까마귀 포획을 시도 중이다. 하지만 까마귀들이 워낙 눈치가 빠르고 영리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시 관계자는 “잡식성인 까마귀는 쓰레기 배출장소인 동네 클린하우스 주변을 어지럽히기도 한다”면서 “도심에서는 천적이 없고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고 사람 주변을 위협적으로 날기도 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12.html
kolaswqetsrq 11.03 02:54
◇ 할 말 하는 트위트와 침묵하는 페이스북

◇ 할 말 하는 트위트와 침묵하는 페이스북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도 시작된다(When the looting starts, the shooting starts).” 미국 마이애미 경찰서장 월터 헤들리가 1967년 흑인 시위 때 폭력 보복을 공언하며 처음 입에 올린 말이다. 인종차별을 담은 끔찍한 표현으로 악명이 높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동시에 이 말을 올렸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 군중을 ‘폭력배들’(thugs)이라 지칭한 뒤였다. 이후 비난이 커지자 트럼프는 “그 말의 유래를 몰랐다”고 발뺌했다.

트럼프의 겁박성 막말에 대한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대응은 정반대였다. 트위터는 “폭력 미화 행위에 관한 운영 원칙 위반”이라고 명기하며 게시글을 숨김 처리했다. 지난달 26일 ‘우편투표가 부정선거로 이어질 수 있다’는 트럼프의 메시지에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는 경고 문구를 붙인 직후 트럼프가 폐쇄 운운하며 소셜미디어 규제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뒤끝을 작렬시켰음에도 굴하지 않고 제재를 가한 것이다.

반면 페이스북은 아무 조치도 않고 게시글을 그대로 뒀다.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와 통화한 뒤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했고, “즉각적 위험을 유발하지 않는 한 최대한 많은 표현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것이다.

불똥은 페이스북으로 옮겨붙었다. 트럼프의 문제 발언을 제재하지 않는 회사 방침에 항의하는 내부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직원들은 부끄럽고, 용납될 수 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경쟁사인 트위터에 경의를 표한다는 간부도 나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재택근무 중인 페이스북 직원 수백명이 지난 1일 하루 동안 회사 정책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부재중’을 표시하는 방식의 온라인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트럼프 수렁에 빠진 페이스북이 또 큰 위기를 맞았다. 트럼프 눈치보기를 여실히 드러낸 저커버그의 위기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의 리더십이 잘못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혐오 발언은 표현의 자유와 다르다. 침묵은 공범이고, 인종차별에 중립은 없다는 구성원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이 위기를 벗어날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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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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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99.html
kolaswqetsrq 11.03 02:54
◇ 야간 산책코스 수원화성과 국립중앙박물관 정원

◇ 야간 산책코스 수원화성과 국립중앙박물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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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걷기나 자전거 여행, 캠핑, 등산 등 이른바 언택트(비대면) 여행이 유행이다. 특히 특별한 훈련이나 장비, 경제적 투자 없이 튼튼한 다리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유산소운동인 걷기 여행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선 코로나 사태로 시민의 떨어진 체력을 증진시키고자 걷기 장려 캠페인을 벌이는 중. 때마침 고궁 등 문화 시설의 야행(夜行), 야간 개장도 기지개를 켰다. 코로나 사태 속 인파를 피해 조용히 거리 두며 걷는 맛을 느낄 수 있는 산책 맛집을 찾았다. 느리게 걸으니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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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행궁 품은 성곽길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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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보름달이 내려앉은 듯 대형 보름달 조명이 설치된 경기도 수원 화성행궁(사진 위)은 달빛 아래 사부작거리는 발걸음 소리마저 운치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밤마실을 허락해준 행궁(行宮) 안에선 청사초롱 불빛들이 반갑게 마중 나왔다. 지난달 27일 시작한 경복궁 별빛야행, 28일 시작한 창덕궁 달빛기행에 앞서 20일 야간 개장을 시작한 경기도 화성행궁 관람객은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고 조용히 행궁을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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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야간 개장에 다녀간 관람객은 360여 명. 코로나 사태 속 언택트 방식으로 운영돼 별도의 공연이나 해설, 체험, 스탬프 투어 프로그램은 없었지만, 관람객들은 \보름달 포토존\ 등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며 달빛 가득한 고궁의 고즈넉한 밤을 즐겼다. 즐거움도 잠시, 수원문화재단 측은 28일 "정부의 \수도권 내 다중 이용 시설 운영 한시적 중단\ 긴급 지침에 따라오는 6월 14일까지 운영을 잠정 중단한다. 이후 코로나 대응 상황에 따라 재개장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화성행궁이 임시 휴장에 들어간 아쉬움은 수원화성 성곽길에서 달래보자. 화성행궁을 둘러싸고 있는 수원화성 성곽길도 달밤 산책 코스로 인기다. 은은한 야간 경관 조명이 어두운 성곽길을 인도하듯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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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성곽길 둘레길 코스는 전체 5.7km 총 3시간 소요된다. 화성행궁에서 서장대로 올라가는 가파른 구간을 제외하고 대부분 평지거나 완만한 언덕과 내리막 구간이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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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길에 비해 걷기도 한결 수월하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서장대는 수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 걷는 재미가 있고 볼거리가 있는 구간은 팔달문에서 창룡문 연무대를 거쳐 야경 명소인 방화수류정 부근 용연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창룡문 부근엔 수원화성 성곽길을 상공에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대형 열기구 플라잉수원이 기다린다. 직접 탑승 체험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구경만으로도 짜릿하다. 너른 잔디밭을 품은 연무대도 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하기가 수월해 만만한 나들이 장소다. 동북각루를 데칼코마니처럼 비추는 용연은 그림자를 투영한 사진을 찍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발걸음이 이어진다. 최근 용연 부근 행궁동엔 카페, 식당 등이 하나둘 문 열며 행리단길이란 별칭의 길이 뜨고 있다. 유명한 수원 통닭 거리도 지나치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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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성곽길은 야간 무료 개방한다. 공연, 해설 및 체험 프로그램은 코로나 대응 상황에 따라 추후 유동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수원화성 성곽길 스탬프 투어도 당분간 운영하지 않는다.

▶ 야외 정원서 유물 관람, 야경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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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경관 조명이 켜지는 야외 정원이나 조각 공원, 전시장엔 볼거리가 있어 걷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해가 지고 나면 박물관 야외 정원에서 산책 특별전이 시작된다. 박물관 조명은 달빛이 대신하고 음향은 새, 풀벌레가 담당한다. 달빛을 받은 석탑, 대숲에서 우연히 만나는 불상은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자연 그대로 정원에 전시된 크고 작은 유물들을 보다 보면 감상보다는 조우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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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물정원엔 신라시대에 만든 국보 제99호 김천 갈항사 삼층석탑을 비롯해 고려 때 만든 국보 제100호 남계원 칠층석탑, 보물 제2호인 서울 옛 보신각종 등이 기다린다. 석탑 사이를 걷다보면 바람결에 밀려온 인동덩굴 향기에 홀려 자동반사적으로 마스크를 내리게 된다. 작정하고 꽃과 풀 구경하러 나온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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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정원 곳곳은 한국 전통 정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박물관 앞 거울못 둘레길(사진 아래)을 따라 걷는 것도 색다르다. 박물관 건물의 네모난 프레임 너머 보이는 남산 서울타워 야경 사진과 거울못에 비친 박물관, 청자정의 그림자 사진을 찍는 게 야간 관람 필수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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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전설이 전해지는 미르폭포는 해가 완전히 지고 난 후엔 조금 으슥하다. 그럼에도 몰래 숨어 들어가는 커플들도 목격된다. 미르폭포를 지나 오솔길을 빠져나가면 용산가족공원과 만난다. 평일 밤엔 한적해 고독함마저 느껴진다. 박물관의 배롱나무못을 품은 숨은 산책로 박물관 오솔길은 밤보단 낮을 추천한다. 해가 지면 다소 어둡고 길이 잘 보이지 않아 걷기에 위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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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오후 9시까지 연장 운영하는 박물관 야간 개장 땐 좀 더 활기찬 밤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다만 국립중앙박물관 역시 코로나 상황에 따라 내부 관람 시설 운영에 변동이 있을 수 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23.html
kolaswqetsrq 11.03 02:55
あたえる与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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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다, 수여하다, 내주다;할당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39.html
kolaswqetsrq 11.03 02:56
◇ 만두 만만세

◇ 만두 만만세

식도락이 인생에서 중요한 이가 절망에 빠질 때는 먹을 게 없는 날이 아니다. 먹고 싶은 게 생각나지 않을 때다. 뭘 먹어도 즐겁지 않고, 딱히 마시고 싶은 술도 없는 날, 그런 날엔 ‘어디 고장 난 것 아닐까’ 하고 덜컥 겁이 난다.

그런 날 나는 습관적으로 냉장고를 뒤적거린다. 하지만 금세 후회가 몰려온다. 냉동식품으로 배를 채우는 일은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일단 무작정 뛰쳐나왔다. 분식집에 가긴 싫었다. 고급 정식도 부담스러웠다. 국수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날이었다. 그래서 내가 고른 메뉴는 만두.

고기와 각종 채소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데다 어떤 만두 전문점을 가도 실패할 확률이 적은 메뉴가 만두다. 평양냉면집의 이북식 왕만두도, 분식집의 꼬마 만두도 모두 맛나다. 그 다채로운 모양과 크기만큼이나 만두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구 신설동으로 향했다. 지하철 1호선과 2호선, 신설동역 바로 앞에 있는 ‘킹수제만두’의 외관은 굉장히 허름하다. 대림동 중식 먹자골목인 듯, 우리식 분식집인 듯 간판은 영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왠지 ‘이곳은 맛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고기새우 군만두’, 찐만두, 물만두, 만둣국 같은 메뉴부터 ‘마파두부덮밥’, 목이버섯 계란덮밥 같은 중식 메뉴까지 가짓수가 많지는 않지만 알찬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고기새우 군만두’와 ‘마파두부덮밥’을 주문했다.

하늘하늘한 레이스를 덧입힌 것 같은 군만두를 베어 물었다. 뜨거운 육즙에 입술이 델 듯할 때 차가운 맥주를 들이켰다. 남이 제대로 구워준 군만두만큼 맛있는 게 또 있을까? ‘마파두부덮밥’도 여느 중국집과는 스타일이 달랐다. 맵고 얼얼한 산초의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맵고 뜨거운 맛과 보들보들한 두부의 식감은 이율배반적이다. 육즙이 줄줄 흐르는 군만두와 ‘마파두부덮밥’을 함께 먹은 뒤 마시는 맥주는 그 어느 때보다 달고 시원했다.

먹고 마시는 게 지겨울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마음의 문제다.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뭐든 먹을 궁리를 하다 보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먹고 마시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한 끼는 소중하다.

-한겨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58.html
kolaswqetsrq 11.03 02:57
◇ 여당의 괴벨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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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당의 괴벨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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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가 온 나라를 뒤흔들던 작년 9월.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여론조사를 인용해 "조국 장관 후보자 임명 찬성률이 상승했다"며 "후보자 적격에 대한 판단은 국민이 하는 것이다. 누구도 국민의 판단 능력을 넘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설 최고위원은 최근 정의기억연대 논란과 관련해 국민 70%가 윤미향 민주당 의원 사퇴를 요구한 여론조사에 대해선 "국민이 정확한 팩트(사실)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판단"이라고 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여론\에 대한 시각이 180도 달라진 것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비슷했다. 작년 9월엔 조 전 장관과 관련해 "여론조사를 보니 (임명 찬반이)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바뀌었다"며 "최대한 조 후보자를 잘 지켜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윤 의원에게 불리한 여론조사가 나온 최근엔 "국민들도 시시비비를 보고 판단해주길 바란다"며 "의혹 제기에 굴복해선 안 된다"고 했다. 얼마 전 우상호 민주당 의원도 "이용수 할머니가 화났다고 사퇴시킬 수는 없지 않으냐"며 윤 의원 사퇴론에 제동을 걸었다. 우 의원은 현 정부 초기에 "장관 후보자 지지율이 60% 이상이면 임명해도 된다"며 여론조사를 인사 낙마 기준으로 삼자고 했던 자신의 주장을 기억에서 지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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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與圈)은 그동안 정권에 유리한 여론조사를 골라 신줏단지 모시듯 떠받들었다. 공수처 설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 등 각종 정책과 관련해 여론 수치를 국민적 판단이라고 내세우며 밀어붙였다. 하지만 윤 의원 사퇴 여론은 무지한 국민의 판단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정의연의 정당성이 훼손될 경우 현 정권의 반일(反日) 전선까지 흔들리는 것을 막아보려는 의도겠지만, 여권의 말 바꾸기 행보는 볼썽사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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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에 대한 여권의 이중 잣대는 탈원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8일 여야 원내대표와 회동한 자리에서 "탈원전은 이미 공론화가 끝난 상황"이라며 신성불가침의 성역임을 강조했다. 집권 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참여단 471명에게 \원전 정책 방향\ 항목을 끼워 넣는 식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원전 축소\가 53%였다는 것이 근거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3년간 한국갤럽, 한국리서치 등 많은 여론조사에서 원전 이용 찬성이 국민 70%에 달하는 데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나치의 선동가 괴벨스는 "선전에 좌절을 주는 메시지는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불리한 자료는 무시하고 입맛에 맞는 정보만 선택해 선동하면 유리한 여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심각한 \괴벨스 바이러스\가 정치권에 침투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

-조선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91.html
kolaswqetsrq 11.03 02:57
앙천이타仰天而唾 – 하늘보고 침 뱉기

앙천이타(仰天而唾) – 하늘보고 침 뱉기

우러를 앙(亻/4) 하늘 천(大/1) 말이을 이(而/0) 침 타(口/8)

입속의 침샘에서 나오는 침은 없어서는 안 될 소화액이지만 잘못 뱉으면 혼이 난다. 경범으로 처벌될 일 말고도 아주 치사스럽게 생각하여 멸시한다는 뜻이 있어 대판 싸움이 나거나 뒤도 돌아보지 않는 사이가 된다. 남이 얼굴에 침을 뱉었을 때 금방 손으로 닦아내면 상대방의 기분이 상할 수 있으므로 마를 때까지 둔다는 唾面自乾(타면자건)은 인내의 극치를 말해준다.

唐(당)나라 현신 樓師德(누사덕)의 고사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런데 ‘누워서 침 뱉기’나 ‘하늘보고 침 뱉기’라는 말대로 하늘을 향해 침을 뱉는다면 제 얼굴에 떨어질 뿐이다. 남을 해치려고 하다가 도리어 제가 당한다는 비유로 썼다.

우리 속담을 한역한 책은 洪萬宗(홍만종)의 旬五志(순오지)와 趙在三(조재삼)이 쓴 松南雜識(송남잡지), 조선 후기 朴慶家(박경가)의 東言考略(동언고략) 등 제법 있다. 이 성어는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이 엮은 ‘耳談續纂(이담속찬)’에 나온다. 이 책은 明(명)나라 王同軌(왕동궤)라는 사람이 지은 耳談(이담)에 추가하여 한국 속담 241수를 한자 8자로 번역 수록한 것이다. 하늘보고 침 뱉기는 ‘하늘을 쳐다보고 침을 뱉으면 자기 얼굴을 더럽힐 뿐이다(仰天而唾 徒汚其面/ 앙천이타 도오기면)’로 되어 있다.

이 속담성어가 이보다 앞서 불경에서 연유한 것이라 더 흥미롭다. ‘四十二章經(사십이장경)’은 불교의 요지를 42장으로 나누어 기술한 경전이라는데 중국 後漢(후한)때 인도 승려 迦葉摩騰(가섭마등), 竺法蘭(축법란)이 번역하여 전했다 한다. 적절한 비유를 들어 간명하게 풀이한 교훈집으로 8장에 나온다.

‘악한 자가 어진 사람을 해치는 것은, 마치 하늘을 향해 침을 뱉으면 하늘에 닿지 않고 땅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惡人害賢者 猶仰天而唾 唾不至天 還從己墮/ 악인해현자 유앙천이타 타부지천 환종기타).’ 이어지는 말도 의미는 같다. ‘바람을 거슬러 먼지를 날리면 상대에 이르지 않고 제게 되돌아오는 것과 같다(逆風揚塵 塵不至彼 還盆其身/ 역풍양진 진부지피 환분기신).’

상대를 향해 침을 뱉어도 안 될 일이지만 상대를 모르게 한다고 하늘을 향해 뱉더라도 피해는 고스란히 돌아온다. 남의 잘못된 점에 대해 험담을 실컷 늘어놓다가도 입장이 바뀌면 그대로 덮어쓰는 경우도 종종 본다. 상대가 앞에 있거나 없거나 한결같아야 참된 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67.html
kolaswqetsrq 11.03 02:58
あこがれる憧れる·憬れる

あこがれる憧れる·憬れる

=> 동경하다. 그리워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93.html
kolaswqetsrq 11.03 02:59
실언실인失言失人 – 말을 잘 못하고, 할 때 말을 않아 사람을 잃는다.

실언실인(失言失人) – 말을 잘 못하고, 할 때 말을 않아 사람을 잃는다.

잃을 실(大/2) 말씀 언(言/0) 잃을 실(大/2) 사람 인(人/0)

말은 하기도 어렵고 안 하기도 어렵다. 말이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 모든 재앙이 그로부터 나온다고 口禍之門(구화지문)이나 禍生於口(화생어구)란 말이 겁을 준다. ‘침묵은 금’이라며 알고 있는 것이라도 굳이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을 높이 쳤다. 그러니 장부의 한 마디 말이 값지다며 丈夫一言 重千金(장부일언 중천금)이라고 말조심을 시켰다. 그러나 이 말은 말을 해야 할 때는 해야 가치를 발휘한다고도 볼 수 있다. 불의를 보고도 꾹 참는 것은 噤若寒蟬(금약한선)이란 말대로 찬바람 맞은 매미처럼 볼품없는 법이다.

실수로 말을 잘못하는 失言(실언)은 사람들이 평시에 자주 한다. 무심중에 하지 않을 말을 불쑥 하면 실언이고,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실례되는 말을 한 것도 실언이다. 孔子(공자)는 말할 만한데도 하지 않는 것을 포함하여 모두 실언이라며 그렇게 하면 결국 失人(실인), 사람을 잃게 만든다고 가르쳤다. 衛靈公(위령공)편에 있는 내용을 보자. ‘더불어 말을 할 만한데도 그와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을 것이고(可與言而不與之言失人/ 가여언이불여지언실인), 더불어 말하지 않아야 할 때인데도 그와 말을 하면 말을 잃는다(不可與言而與之言失言/ 불가여언이여지언실언),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않고 말을 잃지도 않는다(知者不失人 亦不失言/ 지자불실인 역불실언).’ 말을 할 때하지 않거나, 하지 않아야 할 때 헛소리를 하다간 친구라도 벌어질 수밖에 없다.

‘韓非子(한비자)‘에도 유세의 어려움을 말한 說難(세난)에서 이렇게 말한다. ’간단하게 줄여 말하면 지혜롭지 못하다 하고, 쌀 소금처럼 상세하게 주장을 펴면 말만 많다고 평가한다(徑省其說則 以爲不智而拙之 米鹽博辯則 以爲多而交之/ 경성기설즉 이위부지이졸지 미염박변즉 이위다이교지).‘ 자칫하면 실언이 되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말은 입 밖에 나오면 주워 담을 수 없다. 말이 직업인 사람들이 걸핏하면 설화를 입는다. 그러니 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하고 조심해야 한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고 했으니 꼭 해야 할 때를 잘 가려 최소한의 말만 해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32.html
kolaswqetsrq 11.03 02:59
인민이후유부부人民而後有夫婦 - 사람이 있은 후에 부부가 있다.

인민이후유부부(人民而後有夫婦) - 사람이 있은 후에 부부가 있다.

사람 인(人-0) 백성 민(氏-1) 말이을 이(而-0) 뒤 후(彳-6) 있을 유(月-2) 지아비 부(大-1) 며느리 부(女-8)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결혼에 대해 의외로 부정적인 말이 많다. 결혼은 필요악이라거나, 결혼은 해도 후회, 하지 않아도 후회할 것이라고 말한 철학자도 있다. 곧이곧대로 듣지 않아야 할 것이 모두 결혼을 잘 이끌어가도록 조언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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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이 조화한 뒤에야 비를 내리고, 부부가 화합해야 비로소 집안이 번영한다(陰陽和而後雨澤降 夫婦和而後家道成/ 음양화이후우택강 부부화이후가도성)는 詩經(시경)의 가르침이나 부부 있은 후에 부자 형제 생겼으니/ 부부 곧 아니면 오륜이 갖을소냐/ 이 중에 生民(생민)이 비롯하니 부부 크다 하노라 하는 朴仁老(박인로)의 시조는 부부의 존귀함을 잘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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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있은 후(人民而後)에 부부가 있다(有夫婦)는 쉬우면서도 직설적인 이 말처럼 결혼에 대해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반드시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이 말은 顔氏家訓(안씨가훈)에 나온다. 중국 南北朝(남북조) 시대 말기의 귀족 顔之推(안지추)가 자손을 위하여 가족도덕이나 대인관계와 학문 등 다양한 내용을 담은 교훈서다. 兄弟(형제)편 제일 첫 머리에 나오는 부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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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사람이 있은 뒤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후에 부자가 있고, 부자가 있은 후에 형제가 있다(夫有人民而後有夫婦 有夫婦而後有父子 有父子而後有兄弟/ 부유인민이후유부부 유부부이후유부자 유부자이후유형제). 그러면서 한 집안의 친족관계는 부부, 부자, 형제의 三親(삼친)에서 비롯돼 九族(구족, 자기를 중심으로 위로 4대조, 아래로 4대손)에 이르기까지 근본이 되니 돈독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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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새 생명이 태어나 인류문화가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내려간다. 이처럼 중요한 결혼에 대해서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에 의하면 40% 이상이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왔다고 한다. 최근 한국의 사회지표 발표에는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2008년 68%에서 최근 50%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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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86.html
kolaswqetsrq 11.03 03:02
순갱노회蓴羹鱸膾 - 순채국과 농어회, 고향의 맛

순갱노회(蓴羹鱸膾) - 순채국과 농어회, 고향의 맛

순채 순(艹/11) 국 갱(羊/13) 농어 로(魚/16) 회 회(肉/13)

어려운 한자로 이뤄진 성어지만 뜻은 단순히 고향의 맛을 가리킨다. 蓴羹(순갱)은 순채라는 나물로 끓인 국이고 鱸膾(노회)는 농어로 회를 친 음식이다. 순나물이라고도 하는 순채는 수련과의 수초로 논에서 기르기도 하고 약용 외에 어린 순을 식용한다. 바닷물고기 농어는 타원형의 몸통에 검은 점이 많고 자랄수록 맛을 좋다. 지역에 따라 특산품이 많아 고향의 맛을 상징하는 것이 다 다를 텐데 순채국과 농어회가 오른 것은 중국 西晉(서진) 때 張翰(장한)이라는 사람의 고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장한은 吳郡(오군) 출신으로 문장에 뛰어났다. 격식을 싫어하고 예절에 구애받지 않아서 사람들이 그를 江東步兵(강동보병)이라 불렀다. 장한은 진나라 惠帝(혜제)때 司馬冏(사마경, 冏은 빛날 경)이 집정하자 그의 밑에서 벼슬자리를 얻었다. 그 후 나라가 시끄러워지고 세력을 좌우하던 사마경이 실권할 것을 예측하고는 자신에게도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해 떠날 결심을 했다. 洛陽(낙양)에 있을 때 가을바람이 불자 ‘고향 땅의 진미인 연한 나물과 순채로 끓인 국, 농어가 생각났다(思吳中菰菜 蓴羹 鱸魚膾/ 사오중고채 순갱 로어회).’ 菰는 부추 고.

그러면서 장한은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귀중한 일이다. 어찌 벼슬로 수천리 떨어져 살면서 명예나 작위를 노리겠는가(人生貴得適志 何能羈宦數千里以要名爵乎/ 인생귀득적지 하능기환수천리이요명작호)!’ 미련 없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유유자적했다. 한 사람이 한 때의 기분으로 사후에 올 명예는 생각하지 않는 행동이라 하자 장한은 지금의 한 잔 술이 죽은 뒤의 어떤 것보다 귀하다고 했다. 房玄齡(방현령) 등이 편찬한 ‘晉書(진서)’ 열전에 나온다.

장한의 결단은 상급자에 굽실거리는 것이 싫다며 歸去來辭(귀거래사)를 읊은 陶淵明(도연명)을 연상시킨다. 이 성어는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면서 인생은 자신의 뜻에 적합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개인적인 삶이 없어진 현대사회에서 직장이나 직업을 선택할 때 업무와 사생활의 균형을 갖추려는 워라밸(Work-life balance)로 발전한 셈이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小確幸(소확행)도 상통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14.html
kolaswqetsrq 11.03 03:03
报名 bàomíng

报名 bàomíng

1. 신청하다 2. 지원하다 3. 이름을 올리다 4. 등록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aoming.html
kolaswqetsrq 11.03 03:11
일엽장목一葉障目 – 잎사귀 하나로 눈을 가리다, 부분만 보다 본질을 놓치다.

일엽장목(一葉障目) – 잎사귀 하나로 눈을 가리다, 부분만 보다 본질을 놓치다.

한 일(一/0) 잎 엽(艹/9) 막을 장(阝/11) 눈 목(目/0)

나뭇잎 하나(一葉)가 눈을 가리면(障目) 당연히 앞을 보지 못한다. 자질구레하고 지엽적인 일에 눈이 어두워 문제의 본질이나 전모를 보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성어다. 또 이 말은 ‘가랑잎으로 눈 가리기’라는 속담이 말하는 대로 자기의 존재나 허물을 덮기 위해 미련하게 애쓰는 경우를 가리키기도 한다. 어느 것이나 ‘잎사귀로 눈이 가려져 태산을 보지 못한다(一葉蔽目 不見泰山/ 일엽폐목 불견태산)’는 말과 같고, 줄여서 一葉蔽目(일엽폐목)이라 쓰기도 한다.

鶡冠子(갈관자, 鶡은 관이름 갈)라는 사람이 썼다고 하는 ‘갈관자’ 天則(천칙) 편에 처음 나오는 말이다. 갈관자는 老子(노자)와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은거하면서 멧닭의 깃으로 만든 갈관을 쓰고 다녀 이름을 얻게 됐다고 한다. 그의 저작도 후대의 사람이 덧붙인 위작이라 보는 견해가 많다. 어떻든 이 성어가 등장하는 부분을 보자. ‘무릇 귀는 듣는 것을 주관하고 눈은 보는 것을 주관한다. 그러나 나무 잎사귀 하나가 눈을 가리면 태산이 보이지 않고, 콩 두 알이 귀를 막으면 우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夫耳之主聽 目之主明 一葉蔽目 不見泰山 兩豆塞耳 不聞雷霆/ 부이지주청 목지주명 일엽폐목 불견태산 양두색이 불문뇌정).’ 霆은 벼락 정.

이것은 부분에 얽매이지 말고 전체를 보라는 교훈이지만 어리석은 자의 행위를 풍자한 내용은 삼국시대 魏(위)날 邯鄲淳(한단순)이 쓴 ‘笑林(소림)’에 실려 전한다. 옛날 楚(초)나라 어떤 서생이 고서에서 매미가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면 사마귀가 보지 못한다는 내용을 읽고 흥미를 느꼈다. 자기도 투명인간이 되기 위해 매미가 숨어있던 나무를 한 아름 따와서 눈을 가린 채 부인에게 자기가 보이는지 물었다. 자꾸 묻는 말에 부인이 귀찮아 안 보인다고 하자 선비는 한쪽 눈만 가리면 안 보이는 줄 알고 시장에 나가 물건을 훔쳤다가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부부가 오랫동안 해로하기 위해선 단점을 덮기 위해 한쪽 눈을 가릴 필요는 있다. 하지만 장점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단점을 보이지 않으려 눈을 가린다면 들통이 나기 마련이다. 어떠한 일에도 보고 싶은 것만 보아서는 전체를 파악할 수 없어 목표한 일을 그르치고 만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36.html
kolaswqetsrq 11.03 03:20
◈ 해국

◈ 해국

• 학명 : Aster spathulifolius

• 과명 : 국화과

• 종류 : 초본(풀)

• 이명 : 바다국화, 빈국

• 꽃색 : 연한 자주색

• 계절 : 가을

• 분포-지리 : 중부 이남지방

• 분포-지형 : 바닷가 바위 언덕 및 섬지방 바닷가

• 생육상 : 다년생초본(여러해살이풀)

• 높이 : 30~60cm

• 개화기 : 7월 ~ 11월

• 결실기 : 9~12월

• 열매의 형태 : 수과(여윈열매)

• 용도 : 관상용, 식용(어린잎), 약용(전초)

• 특징 :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해변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햇볕이 잘 드는 암벽이나 경사진 곳에서 자란다. 키는 30~60cm이고, 잎은 양면에 융모가 많으며 어긋난다. 잎은 위에서 보면 뭉치듯 전개되고 잎과 잎 사이는 간격이 거의 없는 정도이다. 겨울에도 상단부의 잎은 고사하지 않고 남아 있는 반상록 상태다. 꽃은 연한 자주색으로 가지 끝에 하나씩 달리고 지름은 3.5~4cm이다.

잎은 풍성하게 많으며 끈적거리는 감이 있어서 여름철에 애벌레가 많이 꼬인다.

11월에 결실하는 종자를 바로 뿌리거나 냉장보관 후 이듬해 봄에 뿌린다. 종자로 번식한 개체는 2년이 지난 후 개화하기 때문에 빨리 꽃을 보고 싶으면 꺾꽂이를 하는 것이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35.html
kolaswqetsrq 11.03 03:20
채신지우採薪之憂 - 땔감을 못할 근심, 자신의 병을 겸손하게 표현한 말

채신지우(採薪之憂) - 땔감을 못할 근심, 자신의 병을 겸손하게 표현한 말

캘 채(扌/8) 섶 신(艹/13) 갈 지(丿/3) 근심 우(心/11)

사람의 몸에 이상이 생겨 병이 들면 매사가 괴롭다. 병은 우리들의 욕망과 우리들의 불안에 확실한 한계를 설정해 주기 때문에 행복의 한 형식이라거나, 병은 육체의 장애일 뿐이며 의지의 장애는 결코 아니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철인들도 있다. 하지만 기계에 고장이 나면 버려지듯이 사람들은 이상이 있는 몸으로 삶을 이어나가기가 어려우니 건강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나무꾼이 땔나무를 채취(採薪)할 수 없는 근심이 있다(之憂)면 막다른 상황이다. 이 말은 병이 들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처지를 나타내 자신의 병을 겸손하게 표현하는 말이었다.

선비의 몸가짐을 말할 때 쓴 이 말은 負薪之憂(부신지우)라 하여 禮記(예기)에서 비롯됐다 한다. 신하가 자신을 나무하는 사람에 비유하고 주상에게 자기의 병을 나타낼 때 썼던 예법이라 했다. ‘孟子(맹자)’에도 사용됐는데 부분을 보자. 公孫丑下(공손추하)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맹자가 齊(제)나라 왕을 알현하려 하는데 제왕이 마침 감기가 걸려 올 수 없으니 조정으로 나올 수 없느냐고 전해 왔다. 맹자는 자신도 병이 걸려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고선 다음 날 대부 東郭氏(동곽씨)를 찾아 조문하려 하자 제자 공손추가 병 때문에 왕 알현을 미뤘는데 옳은 일일까 하고 물었다.

맹자가 오늘은 나았기 때문이라며 문상을 간 사이 왕이 문병한다며 의의를 보냈다. 맹자의 사촌 孟仲子(맹중자)는 황망히 말한다. ‘어제는 왕명이 있었으나 나무를 할 수 없는 우환이 생겨 조회에 나가지 못했습니다(昔者有王命 有采薪之憂 不能造朝/ 석자유왕명 유채신지우 불능조조).’ 采는 采菊(채국), 采薇(채미)로 쓰이며 採와 똑같이 ‘캐다, 꺾다’라는 뜻도 있다. 그렇게 말한 뒤 사람을 시켜 맹자가 돌아오는 길목을 지켰다가 집으로 오지 말고 조정에 들라고 전했다. 맹자는 임금일지라도 신하에게 배움을 청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남의 괴로움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속담대로 마음이 쓰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터이니 우선 자신의 병을 땔감을 구하지 못하는 우환으로 낮추어 부르는 것도 방법이겠다. 采薪之病(채신지병)이라 써도 같고 자기의 병을 낮추어 이르는 微恙(미양)이란 말도 있다./제공 : 안병화 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36.html
kolaswqetsrq 11.03 03:22
과하절교過河折橋 – 강을 건넌 뒤 다리를 부수다, 도와준 은공을 잊다...

과하절교(過河折橋) – 강을 건넌 뒤 다리를 부수다, 도와준 은공을 잊다...

지날 과(辶/9) 물 하(氵/5) 꺾을 절(扌/4) 다리 교(木/12)

아주 비장한 각오를 말할 때 자주 쓰는 성어가 있다.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破釜沈舟(파부침주)다. 죽기 살기로 싸운 項羽(항우)의 고사에서 왔다. 그런데 강을 건너고 나서(過河) 다리를 부숴버린다(折橋)는 이 말은 의미가 비슷할 것 같지만 전혀 다르다. 목적을 이룬 뒤에는 도와준 사람의 은공을 잊어버리는 배은망덕을 가리킨다. 過河拆橋(과하탁교, 拆은 쪼갤 탁)로도 쓰는 이 말과 유사한 성어도 제법 된다. 냇물에서 물고기를 잡은 뒤엔 통발의 고마움을 잊어버린다는 得魚忘筌(득어망전, 筌은 통발 전),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兎死狗烹(토사구팽) 등이 유명하다.

중국 隋(수)나라 때부터 본격 시행된 과거제도는 관리로 채용할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소수 정예를 선발하여 합격자는 전원 관리로 채용돼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폐해도 드러났다. 元(원)나라 順帝(순제) 때 徹理帖木耳(철리첩목이)라는 대신이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 중에는 실제로 학문이 깊은 사람이 드물고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경학에 정통했던 伯顏(백안)은 적극 찬성했지만 참정 許有任(허유임) 등은 극렬 반대했다. 과거를 폐지하면 천하의 인재들이 벼슬길이 막혀 원한이 이어진다고 하면 급제한 사람들 중에 실제 쓸 만한 사람은 없다고 맞섰다. 계속하면 부정과 부패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 하자 그것은 과거 때문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왕은 논쟁을 그치게 하고 과거폐지에 관한 조서를 기초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선 문무백관들을 소집하여 가장 반대가 심했던 허유임에게 낭독하게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할 수도 없어 공손히 조서를 읽었다. 조회를 마치고 힘없이 나가는 허유임에게 한 사람이 놀렸다.

‘참정 그대는 강을 건넌 다음에 다리를 부숴버린 꼴이 됐군요(參政可謂過河折橋者矣/ 참정가위과하절교자의).’ 그렇게 반대하다가 돌아선 행동을 비웃은 것이다. 明(명)의 宋濂(송렴) 등이 편찬한 ‘元史(원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위기를 벗어나거나 출세를 하고 난 뒤에는 모두 자신이 잘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갈 때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이 달라지는 세태일수록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은혜를 잊지 않아야 더욱 돋보인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81.html
kolaswqetsrq 11.03 03:23
탄금무학彈琴舞鶴 - 거문고를 타니 학이 춤춘다, 한 가지 잘하면 다른 일도 잘 된다.

탄금무학(彈琴舞鶴) - 거문고를 타니 학이 춤춘다, 한 가지 잘하면 다른 일도 잘 된다.

탄알 탄(弓/12) 거문고 금(玉/8) 춤출 무(舛/8) 학 학(鳥/10)

거문고를 연주하니(彈琴) 학이 날아와 춤을 춘다(舞鶴). 신선들이 천상에서 노니는 듯한 이 말은 한 가지 일을 잘 하면 다른 일도 절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한 가지 재주만 잘 익히면 연속으로 일을 잘 해결할 수도 있으니까 복이 복을 부르는 셈이다.

거문고는 우리나라에서 관현악에 필수적인 현악기이니 이 성어도 처음 만든 王山岳(왕산악)과 연주에 이름 높았던 玉寶高(옥보고)에서 나왔다. 金富軾(김부식)의 ‘三國史記(삼국사기)’에는 雜志(잡지) 樂(악)편에 이에 관해 상세히 전한다. 高句麗(고구려)의 제24대 陽原王(양원왕, 재위 545∼559) 때 제2 재상이었던 왕산악은 중국 晉(진)나라에서 보낸 七絃琴(칠현금)을 완전히 뜯어 고쳐 6개의 줄로 된 새로운 악기를 만들었다. ‘더불어 새 악기에 맞는 100여 곡을 짓고 연주할 때,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고 하여 현학금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훗날 현금이라고만 불렀다(兼製一百餘曲 以奏之 於時 玄鶴來舞 遂名玄鶴琴 後但云玄琴/ 겸제일백여곡 이주지 어시 현학래무 수명현학금 후단운현금)’.

통일신라 35대 景德王(경덕왕, 재위 742~765) 때의 옥보고는 지리산 雲上院(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를 연주하며 새로운 곡조 30곡을 만들어 연주했다. 그럴 때는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어 신선의 도를 얻었다 한다. 곡을 들은 사람들은 인간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조선 전기의 문신 徐居正(서거정)은 ‘四佳集(사가집)’에 제목이 彈琴舞鶴(탄금무학)인 시를 남겼다. ‘달 비친 숲에 이슬 맞은 한 장의 거문고여, 흐르는 물 높은 산이 다 태고의 마음일세(月林衣露一張琴 流水高山太古心/ 월림의로일장금 류수고산태고심), 흰 소매 검은 치마가 어느 곳 나그네인지, 온종일 춤을 추어라 이게 바로 지음일세(縞袂玄裳何處客 婆娑終日是知音/ 호몌현상하처객 파사종일시지음).’ 縞는 검을 호, 袂는 소매 몌. 흰 소매 검은 치마는 바로 학을 가리킨다.

여러 가지 일을 능숙히 잘 할 수 있는 만물박사라면 좋겠지만 이러한 재주를 다 가지기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한 가지 재주를 갖고서 다른 일도 깨우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우리 속담에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 한다’란 것이 있다. 본바탕이 갖춰져 있고, 기초실력이 탄탄하면 다른 일도 성공하기 쉬운 것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06.html
kolaswqetsrq 11.03 03:23
안보당거安步當車 – 편안히 걷는 것으로 수레를 대신하다.

안보당거(安步當車) – 편안히 걷는 것으로 수레를 대신하다.

편안 안(宀/3) 걸음 보(止/3) 마땅 당(田/8) 수레 거(車/0)

걷기는 바쁜 현대인에게 가장 권장되는 운동이다. 누구나 어디서든 할 수 있어 인간이 하는 가장 완벽한 운동이라고 한다.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 및 체지방률을 감소시키는 데에도 효과가 뛰어나다며 하루에 얼마 이상씩 걷도록 모두들 예찬한다.

천천히 편안히 걷는 것(安步)으로 수레를 대신한다(當車)는 이 말은 그만큼 유유하게 청렴한 생활을 한다는 말이다. 마음 느긋하게 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는 처음 뜻에서 고관대작들이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초야에 묻힌 생활을 가리키게 됐고 단순히 걷는 것을 예찬할 때 쓰기도 한다.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齊(제)나라에 재주가 많은 顔蠋(안촉, 蠋은 나비애벌레 촉)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벼슬에 뜻이 없어 초야에 은거하며 자유스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때 宣王(선왕)이 찾는다고 하자 하는 수 없이 궁궐을 찾았다. 왕이 그를 보고 앞으로 가까이 오라고 거만하게 불렀다.

왕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지만 안촉은 까딱도 않고 도로 자신에게 오라고 했다. 주위의 고관들이 안하무인의 무례를 일제히 꾸짖자 그는 태연히 대답한다. 이에게 걸어 나가면 임금에게 굽실거리는 것이 되고, 임금이 걸어 맞이하면 선비를 존중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옛날 선비 柳下惠(유하혜)의 무덤 주변 나무를 훼손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했고 왕의 머리를 가져오는 자는 큰 상금을 내린다고 했는데 그만큼 살아있는 왕이라도 죽은 선비만 못하다고 설명했다.

선왕은 안촉이 만만찮음을 알고 벼슬과 부귀영화를 약속했지만 사양한다. ‘식사가 늦으면 고기를 먹듯 맛날 것이고, 천천히 걸으면 수레를 탄 듯 편안할 것이며, 죄짓지 않고 사는 것을 고관대작이 되는 것으로 여기며, 청렴결백하게 살아가면 스스로 즐거울 것입니다(晩食以當肉 安步以當車 無罪以當貴 淸靜貞正以自虞/ 만식이당육 안보이당거 무죄이당귀 청정정정이자우).’ 前漢(전한)의 학자 劉向(유향)이 쓴 ‘戰國策(전국책)’ 齊策(제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높은 자리를 두루 차지했으면서도 산하 기관의 자리에 불을 켜는 고관들은 청문회 때마다 온갖 망신을 당하는 것이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할 만큼 했으면 그냥 욕심 없이 시장을 반찬 삼고 천천히 걷는 것을 운동 삼아 지내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한 사람을 많이 보니 답답하다. / 제공 : 안병화 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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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3:28
요즘 공원 길가 나무에 열매들이 많네요.

요즘 공원 길가 나무에 열매들이 많네요.

이 열매 나무 이름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58.html
kolaswqetsrq 11.03 03:28
静しずか

静(しず)か

=> 조용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12.html
kolaswqetsrq 11.03 03:29
あきらめる諦める

あきらめる諦める

=> 체념하다; 단념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97.html
kolaswqetsrq 11.03 03:29
あかんぼう赤ん坊

あかんぼう赤ん坊

=> 갓난아기, 태어날 (뱃속의) 아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84.html
kolaswqetsrq 11.03 03:30
◈ 대극

◈ 대극

고려 때의 이두 향명으로는 유등칠(柳等漆)이라 하였으며, 조선시대는 유칠(柳漆)이 변하여 버들옻이라고 하였다. 요즈음은 우독초라고도 한다. 학명은 Euphorbia pekinensis RUPR.이다.

높이는 80cm에 달하고 뿌리가 굵으며 곧추 자라지만 밑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피침형 또는 긴 타원형으로 어긋난다. 표면은 녹색이며, 이면은 흰빛이 돌고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으며 중륵(中肋)에는 흰빛이 돈다.

▷ 학명 : Euphorbia pekinensis RUPR.

▷ 분류 : 대극과

▷ 분포지역 : 전남·경남·충남·경기·황해·평남·평북·함북

▷ 서식장소 : 산, 들

▷ 특징 :뿌리줄기는 비대하고, 줄기는 곧게 서며 흔히 밑부분에서 가지를 치고 가는 털이 있다. 높이 80cm 정도이고, 자르면 흰 유액이 나온다.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는 없으며 타원형의 바소꼴로 끝은 뭉뚝하거나 뾰족하고 밑은 뾰족하다. 잎 뒷면에는 짧은 털이 나고 백록색이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원줄기 윗부분에서는 5개의 잎이 돌려나고, 총포잎總苞葉은 넓은 달걀 모양 또는 삼각꼴의 원형으로 길이 5∼12mm이다.

6월경에 황록색 꽃이 배상꽃차례杯狀花序를 이루고, 1개의 수술로 된 몇 개의 수꽃과 1개의 암술로 된 1개의 암꽃이 작은 총포 안에 들어 있다. 열매는 삭과(蒴果)로 지름 6mm 정도이고 겉에 돌기가 있으며, 종자는 약간 둥글다. 어린 잎을 식용한다. 생약(生藥)으로 쓰는 대극은 뿌리를 말린 것이며 한방에서는 치습(治濕) ·사수제(瀉水劑) ·류머티즘 ·치담(治痰)에 사용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78.html
kolaswqetsrq 11.03 03:31
◈ 왕갯쑥부쟁이

◈ 왕갯쑥부쟁이

갯쑥부쟁이에 비해 크다는 뜻의 이름이다. 여러해살이풀이며, 높이는 30~60cm이다. 줄기가 붉은빛을 띠고 목질화하며, 가지를 많이 치고 털은 없다.

뿌리잎은 주걱형이고 꽃이 필 무렵이면 시든다. 줄기잎은 어긋나기하고 촘촘하게 달리며, 피침형 또는 선형이다.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톱니가 약간 있으며, 질은 두껍고 양면에 짧은 털이 있다. 길이는 3~15cm, 폭은 0.5~5.7cm이다.

왕갯쑥부쟁이는 갯쑥부쟁이와 비교할 때, 줄기가 목질화하고 여러해살이풀이며, 갓털이 짧은 점이 다르다.

▷ 학명 : Aster magnus Y.N.Lee & C.S.Kim

▷ 분류 : 국화과

▷ 분포지역 : 제주도 남부

▷ 서식장소 : 바닷가

▷ 특징 : 잎은 어긋나기하며, 두껍고, 털이 없으며, 근생엽은 주걱 모양이고, 윗부분은 이 모양이고, 가장자리에 약간의 털이 있다. 길이 15cm, 너비 5.7cm 정도 이다. 줄기잎은 피침형, 위쪽으로 갈수록 차츰 작아지며, 길이 3.2~8.3cm, 너비 0.6~2.5cm이다.

꽃은 8~12월에 줄기와 가지 끝에 1개씩 달리는 두상꽃차례에 연한 보라색으로 핀다. 두상꽃차례는 지름이 3~5cm이며, 주변부는 혀모양꽃이고 중앙부는 노란색의 관모양꽃이다. 총포는 반구형이고 총포조각은 4~5줄로 붙는다.

열매는 마르고 씨가 한 개씩 들어 있는 수과(瘦果)이고 타원형이며, 표면에 털이 있고 갈색의 짧은 갓털이 달린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88.html
kolaswqetsrq 11.03 03:31
◈ 하와이무궁화

◈ 하와이무궁화

열매는 온실에서는 거의 열리지 않는다. 번식은 씨앗, 가지심기 등으로 한다. 추위에 약하여 겨울에는 10°C 이상에서만 자란다. 양지바르고 습도가 높은 곳에서 잘 자란다. 봄에 가지를 잘라주어 새 가지가 많이 자라도록 하면 꽃이 많이 핀다. 원산지는 중국 남부, 인도 동부이며 온실에서 많이 재배한다. 주로 관상용으로 화분에 심는다.

▷ 학명 : Hibiscus rosa-sinensis

▷ 분류 : 아욱과

▷ 분포지역 : 중국

▷ 서식장소 : 중국

▷ 특징 : 줄기 높이 2∼5m(온실에서는 1∼2m)이며, 가지를 많이 친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모양이며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 윗부분에는 톱니가 있다. 잎은 쳐지지 않고 진한 녹색으로 약간 흑색이 섞여 있다. 여름에 새로 난 가지에 꽃잎이 두껍고 광택이 있는 진한 적색의 꽃이 핀다.

꽃은 하루 동안만 피어 있다가 진다. 꽃은 지름 10∼15cm이며, 꽃잎은 5개이고 암꽃술대가 길게 나와 꽃이 5갈래로 갈라진다. 품종에 따라 꽃의 색깔과 모양 등이 다르다. 꽃은 노란색, 흰색, 연분홍색 등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74.html
kolaswqetsrq 11.03 03:32
가을 등산길에서 본 꽃입니다 이름이 뭔지요

가을 등산길에서 본 꽃입니다 이름이 뭔지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11.html
kolaswqetsrq 11.03 03:33
길가 울타리에서 본 넝굴입니다

길가 울타리에서 본 넝굴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24.html
kolaswqetsrq 11.03 03:33
공원 산책하면서 만난 나무입니다. 결실의 계절이라서 열매가 많이 달리네요.

공원 산책하면서 만난 나무입니다. 결실의 계절이라서 열매가 많이 달리네요.

무슨 나무인가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66.html
kolaswqetsrq 11.03 03:34
帮忙儿 bāngmángr

帮忙(儿) bāngmáng(r)

1. 일을 돕다 2. 원조하다 3. 원조 4. 조력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angmangr.html
kolaswqetsrq 11.03 03:35
어느 사찰에 갔는데 화분에 있는 화초입니다!

어느 사찰에 갔는데 화분에 있는 화초입니다!

이름이 궁금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41.html
kolaswqetsrq 11.03 03:36
办公室 bàngōngshì

办公室 bàngōngshì

1. 사무실 2. 오피스 3. 행정 부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angongshi.html
kolaswqetsrq 11.03 03:37
석불가난席不暇暖 - 앉은 자리가 따뜻할 겨를이 없다.

석불가난(席不暇暖) - 앉은 자리가 따뜻할 겨를이 없다.

자리 석(巾/7) 아닐 불(一/3) 틈 가(日/9) 따뜻할 난(日/9)

한 곳에 오래 앉아 있으면 체온에 자리가 따뜻해질 텐데 여기저기 옮기면 더워질 틈이 없다. 주소를 자주 바꾸거나 매우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에겐 편안한 자리가 언감생심이다. 한시도 같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 좀이 쑤시거나 진득하게 한 곳에 살지 못하고 휙 떠나는 사람들에 들어맞는 말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이런 방랑벽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諸子百家(제자백가) 사상가들이 자기의 학설을 전파하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집에 머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孔子(공자, 기원전 551년-479년)가 앉았던 돗자리는 따뜻해질 틈이 없고 墨子(묵자)의 집 굴뚝은 검어질 시간이 없다’ 고 후세 사람들이 표현했다. 後漢(후한)의 역사가 班固(반고)의 ‘答賓戱(답빈희)’라는 글에 소개됐다. 孔席墨突(공석묵돌)이나 墨突不黔(묵돌불검)이라 해도 같은 말이다. 묵자는 兼愛說(겸애설)을 주창한 사상가다. 黔은 검을 검.

이런 선인들의 일화 말고 직접 이 성어가 나온 곳은 南朝(남조) 宋(송)나라의 문학가 劉義慶(유의경)이 쓴 일화집 ‘世說新語(세설신어)’에서다. 옛날 漢(한)나라에 선비들의 우러름을 받는 陳仲擧(진중거)라는 곧은 선비가 있었다. 그가 豫章(예장)이란 곳의 태수로 좌천되어 갔을 때 먼저 관서보다 그 곳의 유명한 선비 徐孺子(서유자)를 만나 보려 했다. 비서가 관에 먼저 가야 한다며 말리자 진중거가 말했다. ‘옛날 周(주)나라 武王(무왕)은 폭군 紂王(주왕)을 멸한 뒤 商容(상용)을 찾아다니느라 자리가 따뜻해질 틈이 없었는데 내가 먼저 현자를 찾아뵙는 것이 어떻게 안 된다는 말인고?.’ 暖과 煖은 모두 따뜻할 난, 더울 난으로 같은 뜻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92.html
kolaswqetsrq 11.03 03:37
다난흥방多難興邦 -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난 뒤 나라가 흥하다

다난흥방(多難興邦) -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난 뒤 나라가 흥하다

많을 다(夕/3) 어려울 난(隹/11) 일 흥(臼/9) 나라 방(阝/4)

개인이나 나라나 평안한 나날만 계속되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지 않아 好事多魔(호사다마)나 禍不單行(화불단행)이란 말이 많이 나왔다. 일면 興盡悲來 苦盡甘來(흥진비래 고진감래)라 하여 나쁘고 어려운 일 다음에는 좋은 세상이 온다고 위안을 주는 교훈도 있다. 어려운 일을 많이 겪으면(多難) 오히려 내부를 결속시켜 나라가 더욱 일어난다는(興邦) 이 성어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나라 위기 때마다 뜻있는 사람들이 인용하여 용기를 고취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 魏(위)나라에서 세력을 떨치던 司馬氏(사마씨)가 왕위를 물려받아 세운 晉(진)나라는 결국 통일을 이뤘다. 하지만 건국 초기 황족 8명의 피비린내 나는 세력 다툼 팔왕지난(八王之亂)이 16년이나 끌어 나라는 혼란의 극에 달했다. 이 틈을 타 북방의 匈奴(흉노), 鮮卑(선비) 등 다섯 민족이 남진한 五胡亂華(오호난화)까지 일어나 2대의 왕이 연속 살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광대한 영토가 유린되는 이런 난리를 보고도 좌승상 司馬睿(사마예)는 강남에서 관망만 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祖逖(조적), 劉琨(유곤)과 같은 장수들은 북벌을 단행하는 한편, 180여 명의 이름으로 勸進表(권진표)를 올리고 제위 계승을 권했다. 그 내용 중 ‘많은 재난이나 어려움은 우리나라를 공고히 하게하며, 깊은 근심은 황제로 하여금 더욱 현명하게 해줍니다’ 에서 이 성어가 나왔다. 사마예가 계승한 나라가 東晋(동진)인데 그는 현명하게 대처를 못하고 북벌은 커녕 두 장군을 의심해 죽게 만들었다. ‘晉書(진서)’ 元帝(원제)편에 실려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91.html
kolaswqetsrq 11.03 03:38
办法 bànfǎ

办法 bànfǎ

1. 방법 2. 수단 3. 방식 4. 조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anfa.html
kolaswqetsrq 11.03 03:38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 오륜의 하나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 오륜의 하나

벗 붕(月/4) 벗 우(又/2) 있을 유(月/2) 믿을 신(亻/7)

朋(붕)이나 友(우) 모두 벗을 말한다. 중국에서 老朋友(노붕우, 라오펑유)는 오랜 친구를 뜻한다. 우리나라를 이렇게 불러놓고는 중국이 사드 등으로 온갖 졸렬한 짓거리를 하고 겉으로는 태연한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말이다. 모두 벗을 뜻해도 朋友(붕우)는 차이가 있다. 論語(논어) 첫 머리에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는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의 朋(붕)은 한 스승 아래서 공부한 동문을 뜻한다고 한다. 이에 반해 友(우)는 뜻이 같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다. 朋情(붕정)이란 말은 없고 友情(우정)이 있듯이 아무래도 동문보다는 故友(고우)가 더 가까운 벗이다.

어떤 벗이든 벗 사이에(朋友) 지켜야 할 도리는 믿음에 있다(有信)는 이 성어는 三綱五倫(삼강오륜)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인륜의 기준으로 삼아 온 이것은 孔孟(공맹)의 학설에 기초하여 前漢(전한)의 유학자 董仲舒(동중서)가 논한 三綱五常說(삼강오상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삼강은 임금과 신하, 부자,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인 君爲臣綱(군위신강), 父爲子綱(부위자강), 夫爲婦綱(부위부강)이다. 붕우유신은 父子有親(부자유친), 君臣有義(군신유의), 夫婦有別(부부유별), 長幼有序(장유유서)의 뒤에 오는 오륜에 들어간다. 신라 圓光(원광) 법사의 五戒(오계) 중 交友以信(교우이신)과 통하는 말이다.

조선 世宗(세종)대왕 때 三綱行實圖(삼강행실도)를 편찬한 뒤 이에 관한 여러 종류의 책이 발간되었다. 中宗(중종)때 학자 朴世茂(박세무)가 펴낸 ‘童蒙先習(동몽선습)’은 학동들이 배우는 초급교재로 오륜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붕우편에서 논어를 인용하여 정직하고(友直/ 우직), 성실하며(友諒/ 우량), 견문이 많은 (友多聞/ 우다문) 친구를 사귀면 유익할 것이라 했다. 또 벗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어버이에게 순종하지 못한다면 벗들에게서도 믿음을 얻지 못한다.

朱子(주자)가 교열했다는 小學(소학)이 너무 어려워 우리나라에서 쉽게 풀어 쓴 ‘四字小學(사자소학)’에도 ‘사람이 귀한 이유는 오륜과 삼강 때문(人所以貴 以其倫綱/ 인소이귀 이기윤강)’이라고 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2.html
kolaswqetsrq 11.03 03:39
설니홍조雪泥鴻爪 - 눈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 눈이 녹으면 없어지는 인생의 무상

설니홍조(雪泥鴻爪) - 눈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 눈이 녹으면 없어지는 인생의 무상

눈 설(雨/3) 진흙 니(氵/5) 기러기 홍(鳥/6) 손톱 조(爪/0)

인생이 길다고 한 말은 어디에서나 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인생은 행복한 자에게는 너무나 짧고, 불행한 자에게는 너무나 길다’고 한 영국 격언만 제외하고 말이다. 생활이 지겹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형편이 나아진 이후로는 길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짧은 인생을 덧없다고 여기고, 욕심껏 이룬 부귀와 영화도 부질없다고 깨우치는 성어는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南柯一夢(남가일몽)과 같이 꿈 이야기만 해도 羅浮之夢(나부지몽), 盧生之夢(노생지몽), 役夫之夢(역부지몽), 一場春夢(일장춘몽), 黃粱之夢(황량지몽)이 있다.

꿈 이야기 말고 대조적인 비유로 나타낸 성어도 제법 된다. 인생이 풀끝에 맺힌 이슬처럼 덧없고 허무하다는 속담 ‘풀끝의 이슬’과 똑 같은 것이 人生如朝露(인생여조로)이다. 바람에 깜박이는 등불과 같다는 人生如風燈(인생여풍등)도 같은 뜻이다. 여기에 눈이나 진흙 위(雪泥)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鴻爪)이란 멋진 표현도 인생의 자취가 눈이 녹으면 사라지는 무상을 나타냈다.

중국 北宋(북송)의 문호 蘇軾(소식, 1036~1101)의 시에서 나왔다. 東坡(동파)란 호로 더 잘 알려진 소식은 부친 蘇洵(소순)과 아우 蘇轍(소철)과 함께 三蘇(삼소)로 불렸다. 서정적인 것이 많은 唐詩(당시)에 비해 철학적인 요소가 짙은 시가 많다는 평을 듣는다.

소식이 동생 소철에게 보낸 시 ‘和子由澠池懷舊(화자유면지회구)’에 성어 구절이 들어 있다. 子由(자유)는 소철의 자, 澠池(면지)는 河南省(하남성)에 있는 지명이라 한다. 澠은 고을이름 면. 앞 부분만 보자. ‘인생은 여기저기 떠도는 것 무엇과 같을까, 기러기가 눈 내린 진흙 벌을 밟아놓은 것 같으니, 우연히 진흙 위에 발자국은 남겼지만, 기러기는 동서 어디로 날았는지 어떻게 알랴.’ 기러기 발자국은 흔적도 없고, 그것을 남긴 기러기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참으로 무상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78.html
kolaswqetsrq 11.03 03:40
소리장도笑裏藏刀 - 웃음 속에 칼을 감추다, 겉과 속이 다르다.

소리장도(笑裏藏刀) - 웃음 속에 칼을 감추다, 겉과 속이 다르다.

웃음 소(竹/4) 속 리(衣/7) 감출 장(艹/14) 칼 도(刀/0)

여기서 이 말하고, 저기서 다른 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따돌린다. 속에는 딴 생각이 가득해도 면전에서 듣기 좋은 말만 꾸며대서는 오래 가지 못한다. 面從腹背(면종복배)다. 말로는 온갖 칭찬을 늘어놓고 속에 해칠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야말로 경계할 사람이다. 부드러운 솜 안에 날카로운 바늘을 감춘 綿裏藏針(면리장침)이다. 달콤하게 듣기 좋은 말만 하면서 속으로는 칼을 숨긴 口蜜腹劍(구밀복검)도 마찬가지다. 중국 唐(당)나라 6대 玄宗(현종)이 楊貴妃(양귀비)에 빠졌을 때 자신을 위협하는 충신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없앤 간신 李林甫(이임보)의 수법에서 나왔다.

속에 칼을 감춘 간신이 등장하는 성어가 더 있다. 이임보보다 앞선 2대 太宗(태종) 때의 李義府(이의부, 614~666)다. 그는 글을 잘 짓고 업무 능력도 뛰어나 임금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3대 高宗(고종)이 즉위한 뒤 태종의 후궁이었던 則天武后(측천무후)를 황후로 삼는데 적극 찬성하여 벼슬이 더 높아졌다. 이의부는 겉으로는 온화하게 웃으면서(笑裏) 태도가 겸손했지만 속으로는 해칠 칼을 숨기는(藏刀) 재주가 있었다. 이런 가면성을 아는 사람은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이의부가 어느 때 사형수가 갇힌 옥을 둘러보다가 淳于(순우)라는 절색의 여인이 눈에 띄었다. 그는 온갖 감언이설로 옥리를 꾄 뒤 여자를 빼돌려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 소문이 돌고 이의부는 모른 체하며 되레 옥리에 죄를 뒤집어씌워 자살에 이르게 했다. 이의부가 손끝 하나 다치지 않자 어사 王義方(왕의방)이란 사람이 어전에서 처벌을 주장했다. 하지만 왕의 신임을 믿고 계략을 꾸며 왕의방을 변방으로 쫓아버렸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일을 두고 ‘이의부의 웃음 속에는 칼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중국 唐(당)나라의 정사 ‘舊唐書(구당서)’에 실려 있다.

중국의 고대 병법인 ‘三十六計(삼십육계)’중에 제10계도 똑 같이 笑裏藏刀(소리장도)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하여 안심시킨 뒤에 허를 찔러 공격하는 계책이다. 적과 대치할 때는 무슨 수를 쓰든 승리해야 하지만 사회에서 이를 사용한다면 신의를 완전히 저버리는 비인간적인 전략이 된다. 어디까지나 신뢰를 바탕으로 일을 도모해야지 겉과 속이 달랐다가는 실패만 기다린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28.html
kolaswqetsrq 11.03 03:40
半 bàn

半 bàn

1. 2분의 1 2. 한가운데의 3. 매우 적은 양을 나타냄 4. 반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an_22.html
kolaswqetsrq 11.03 03:41
班 bān

班 bān

1. 반 2. 근무 3. 분대 4. 옛날 극단을 일컫던 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an_3.html
kolaswqetsrq 11.03 03:41
【무스카리】

【무스카리】

개화기는 4~5월로 염색체수는 2n=18이다. 구근은 8~9월에 심어서 프레임 속에서 재배 출하하며, 수년 동안 심어둔 채로 두면 쉽게 번식한다.

사질양토에서 잘 자라며, 화분에서는 밭흙과 부엽토, 모래를 5:3:2의 비율로 혼합하여 재배한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5~15°C의 온도에서 잘 자란다.

▷ 학명 : Muscari comosum

▷ 분류 : 백합과

▷ 분포지역 : 유럽, 북아프리카, 남서아시아

▷ 서식장소 : 높은 꼭대기

▷ 특징 : 히아신스의 근연종이다. 구근은 비늘줄기鱗莖로 작은 구형이다. 구근의 크기는 작은 것이 4~5cm, 큰 것은 10cm 정도 되는 것도 있다. 피막은 막질로 회갈색이다. 잎은 구근으로부터 7~10장이 선형으로 자라고 안쪽으로 골이 져 있다.

잎은 육질로 연약하고 선명한 회녹색을 띤다. 높이는 10~30cm로, 잎의 폭은 2.5cm 정도 된다.

꽃대의 길이는 10~30cm로 잎과 꽃대의 기부는 적갈색이며, 꽃대 끝에 남보라색의 꽃이 단지 모양으로 수십 개가 총상꽃차례로 아래로 늘어져 핀다. 임성화(稔性花)는 진한 청색.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6.html
kolaswqetsrq 11.03 03:42
◈ 수정난풀

◈ 수정난풀

수정난풀은 전국 산속에서 자라는 다년초이며 부생식물이다.

긴 줄기를 따라 끝에 1개씩 아래를 향해 달리고, 꽃받침 잎은 1~3개, 꽃잎은 3~5개이다. 열매는 8~9월에 익으며 둥근 모양으로 길이가 2.5cm, 폭은 2cm가량이며, 종자는 타원형으로 길이 0.5~1mm, 폭 0.5~1mm로 아주 작다. 전초는 약용으로 쓰인다

▷ 학명 : Monotropa uniflora L.

▷ 분류 : 노루발과

▷ 분포지역 : 제주·경기·평남·평북

▷ 서식장소 : 산지의 숲속

▷ 특징 : 이전 분류 체계에서는 노루발과로 분류했다. 한반도 각처 산지의 나무 그늘에 나며, 전체적으로 희고, 높이는 8-15cm 정도이다.

잎은 비늘 모양이며 어긋난다. 끝은 은백색으로 여름이 되면 줄기 끝에 1개씩이 피어나는데, 이때 각각의 꽃은 포엽에 싸여져 있다.

10개의 수술을 가지고 있으며, 수술대에는 털이 나 있다. 암술은 굵고 짧으며, 암술머리는 크게 부풀어 있는데 그 가장자리는 푸른 빛을 띠고 있다. 열매는 공 모양의 액과로 흰색을 띤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3.html
kolaswqetsrq 11.03 03:43
◈ 갯버들

◈ 갯버들

버들강아지, 버들개지로 더 많이 알고 있는 나무, 물가에 잘 자란다고 하여 붙여진 갯버들이 정명입니다.

꽃을 보면 왜 버들강아지라고 하는지 알 것입니다.

▷ 학명 : Salix gracilistyla

▷ 분류 : 버드나뭇과

▷ 분포지역 : 한국·일본·중국·우수리강(江) 연안

▷ 서식장소 : 강가

▷ 특징 : 포류(蒲柳)·수양(水楊)·세주류(細柱柳)라고도 한다. 강가에서 많이 자란다. 높이 1∼2m이고 뿌리 근처에서 가지가 많이 나오며 어린 가지는 노란 빛이 도는 녹색으로 털이 있으나 곧 없어진다.

잎은 거꾸로 세운 바소꼴 또는 넓은 바소꼴로 양 끝이 뾰족하고 톱니가 있으며 잎자루의 길이는 3∼10mm이다. 잎 표면은 털이 덮여 있다가 없어지고, 뒷면은 털이 빽빽이 나서 흰 빛이 돌거나 털이 없는 것도 있다.

꽃은 단성화로 4월에 잎겨드랑이에서 어두운 자주색 꽃이 핀다. 수꽃이삭은 넓은 타원형으로 수술이 2개이고, 암꽃이삭은 긴 타원형으로 꿀샘이 1개이며 붉은색이다. 포는 긴 타원형으로 털이 있고 암술머리는 4개이다.

열매는 삭과로서 긴 타원형이며 길이가 3mm 정도이고 털이 있다. 4∼5월에 덜 익은 열매를 그대로 식용한다. 제방의 방수림으로 적당하며 1∼2년생 가지는 꽃꽂이 소재로 사용된다. 내한성과 맹아력이 크며 오리나무·키버들 등과 함께 섞여 자란다. 한국·일본·중국·우수리강 연안 등지에 분포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55.html
kolaswqetsrq 11.03 03:43
【너도바람꽃】

【너도바람꽃】

너도바람꽃은 우리나라 북부 이북과 지리산, 덕유산에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산지의 반그늘에서 자란다. 키는 15cm 정도이며, 잎은 길이 약 3.5~4.5cm, 폭 4~5cm이고 깊게 3갈래로 나누어지며 양쪽 갈래는 깃 모양으로 다시 3갈래로 갈라진다. 꽃은 흰색으로 꽃자루 끝에 한 송이가 피며, 지름은 약 2cm 내외이다. 꽃이 필 때는 꽃자루에 꽃과 자주빛 잎만이 보이다 꽃이 질 때 쯤 녹색으로 바뀐다. 열매는 6~7월경에 달린다. 주로 관상용으로 쓰인다.

▷ 학명 : Eranthis stellata Maxim.

▷ 분류 : 미나리아재빗과

▷ 분포지역 : 남부, 중부, 북부지방

▷ 서식장소 : 깊은 산골짜기 개울가 숲

▷ 특징 : 미나라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며 이른 봄 산지의 반그늘에서 자란다. 덩이줄기는 공 모양이고 수염뿌리가 많이 있다. 줄기는 연약하고 곧게 서며 높이는 15cm 정도이다. 뿌리잎은 긴 잎자루가 있고 3갈래로 깊게 갈라지며, 갈라진 조각은 줄 모양이다. 줄기 끝에 있는 총포잎은 대가 없고 갈라진 조각은 고르지 못한 줄 모양이다.

4월에 포엽 가운데에서 길이 1cm 정도의 꽃대가 나와 곧게 서며 그 끝에 흰색 꽃이 한송이씩 달린다. 꽃의 지름은 2cm 정도이고 꽃받침조각은 5개이며 달걀 모양이다. 꽃잎은 2개로 갈라진 노란색 꿀샘으로 되어 있고 수술이 많다. 열매는 골돌과(利咨果)로 6월에 성숙하며 2~3개로 반달 모양이다. 종자는 갈색이고 둥글며 밋밋한 편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0.html
kolaswqetsrq 11.03 03:44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

한국 특산종으로, 학술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3년부터이다. 같은 해 전북대학교 교수 선병윤(宣炳崙)이 변산반도에서 채집해 한국 특산종으로 발표하였기 때문에, 학명도 발견지인 변산과 그의 이름이 그대로 채택되었다.

꽃이 매우 앙증맞고 예쁘장해 관상용으로 심기도 하는데, 개체 수가 많지 않아 보존이 필요한 식물종이다.

▷ 분류 : 미나리아재비과

▷ 분포지역 : 중부 이남지방

▷ 서식장소 : 산골짜기 숲 속 그늘

▷ 특징 : 변산바람꽃은 한라산, 지리산, 마이산과 변산 지방의 낙엽 수림 가장자리에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습한 지역과 반그늘 또는 양지쪽에서 자란다.

키는 5~8cm가량이고, 잎은 길이와 폭이 약 3~5cm이고 5갈래의 둥근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갈라지는 것은 새의 날개처럼 갈라진다. 꽃은 약 10cm가량이고, 꽃자루는 1cm이며 흰색으로, 꽃자루 안에는 가운데 암술과 연녹색을 띤 노란색 꽃이 있다.

열매는 4~5월경 갈색으로 달리고 씨방에는 검고 광택이 나는 종자가 많이 들어 있다. 이른 봄 남해안과 서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피기 시작하며 봄을 알리는 복수초와 함께 대표적인 봄을 알리는 꽃이다. 최근에는 일부 내륙지방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는 보고는 있지만 개체수가 작다. 주로 관상용으로 쓰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6.html
kolaswqetsrq 11.03 03:44
【가지복수초】

【가지복수초】

여러해살이풀(多年生草本)이다. 지하근경(地下根莖)은 짧으며 수근(鬚根)이 많다. 줄기(높이 25~35cm)는 보통 곧추 서고 가지를 많이 치며 털이 없거나 윗부분에 짧은 연모(軟毛)가 있고 밑부분에는 엽초상(葉鞘狀)으로 인엽(鱗葉)이 붙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복수초 4종류가 자라고 있습니다.

가지복수초/복수초/세복수초/애기복수초

▷ 학명 : Adonis ramosa

▷ 분류 : 미나리아재비목

▷ 분포지역 : 경기도 광릉

▷ 서식장소 : 산기슭 나무 그늘

▷ 특징 : 높이는 30cm 정도로 곧게 선다.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가 길다. 2회 깃꼴겹잎으로, 작은잎이 깃꼴로 깊게 갈라지는데, 갈라진 조각은 다시 갈라져서 맨끝의 조각은 줄 모양이 된다.

4∼5월에 줄기 끝이나 가지 끝에 노란꽃이 한 송이씩 달린다. 꽃잎이 많고 긴 타원형이며, 꽃받침은 짙은 자줏빛을 띤 타원형이다. 수술과 암술이 많고 씨방은 털이 있으며 짧고 작다. 열매는 수과로 머리 모양이다.

복수초에 비해 가지가 더 잘게 갈라지며 갈라진 잎조각이 다소 가늘다. 관상용으로 심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7.html
kolaswqetsrq 11.03 03:45
【흰털제비꽃】

【흰털제비꽃】

물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10~15cm이며, 잎은 뭉쳐나고 긴 타원형인데 잎자루에 흰색의 털이 있다. 4월에 엷은 붉은 자주색 꽃이 잎 사이에서 나온 여러 개의 꽃줄기 끝에 하나씩 피고 열매는 삭과(蒴果)로 6월에 익는다

흰털제비꽃의 잎자루에 있는 털은 털제비꽃보다 긴편입니다

▷ 학명 : Viola hirtipes

▷ 분류 : 제비꽃과

▷ 분포지역 : 한국·일본·중국의 북동부 및 우수리

▷ 서식장소 : 양지쪽 풀밭

▷ 특징 : 줄기는 없으며 뿌리는 흰색이다. 뿌리줄기는 짧고 잎자루와 꽃줄기에 퍼진털이 있다. 잎은 모두 뿌리에서 나오고 삼각상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4월에 피고 연한 홍자색으로 여러 개의 꽃줄기 끝에 붙는다.

꽃받침조각은 바소꼴이고 털이 없으며 꽃잎의 길이는 15∼20mm로서 옆갈래조각에 털이 있다. 꽃잎은 5장으로 달걀 모양이다. 암술 1개, 수술 5개이며 꿀주머니는 원통형이며 길이 7∼8mm이다. 열매는 6∼7월에 결실하며 삭과(蒴果)로 세모지며 달걀 모양으로 털이 없다. 한국·일본·만주·중국의 북동부 및 우수리 등지에 분포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4.html
kolaswqetsrq 11.03 03:46
搬 bān

搬 bān

1. 운반하다 2. 이사하다 3. 그대로 답습하여 사용하다 4. 잡아당기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an.html
kolaswqetsrq 11.03 03:46
회벽유죄懷璧有罪 - 옥을 품고 있는 것이 죄,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하면 재앙이 옴

회벽유죄(懷璧有罪) - 옥을 품고 있는 것이 죄,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하면 재앙이 옴

품을 회(⺖/16) 구슬 벽(玉/13) 있을 유(月/2) 허물 죄(罒/8)

사물을 분별하는 지혜가 分數(분수)다. 사람으로서 자기의 신분이나 능력을 잘 알고서 처신하면 탈이 없다. 분수에 맞게 행동하라고 선조들은 속담에서 잘 가르쳤다. ‘송충이가 갈잎을 먹으면 떨어진다’거나 ‘사주에 없는 관을 쓰면 이마가 벗겨진다’ 등이 그것이다. 같은 내용의 성어는 중국 고전에도 자주 나온다. 현재의 것으로 만족함을 안다면 욕되지 않는다는 知足不辱(지족불욕)은 道德經(도덕경)에서, 지나치게 높이 올라 간 용은 뉘우치게 된다는 亢龍有悔(항룡유회, 亢은 높을 항)는 易經(역경)에서 유래했다.

옥을 품고 있으면(懷璧) 그것만으로도 잘못(有罪)이라는 이 성어도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가지면 재앙을 부르기 쉽다는 것을 뜻했다. 左丘明(좌구명)이 쓴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실려 있는 내용을 보자. 춘추시대 虞(우)나라 임금의 동생인 虞叔(우숙)에게는 아주 값진 옥이 하나 있었다. 흠집이 없고 아름다워 누구나 탐내던 중 형인 임금도 욕심이 나서 옥을 달라고 했다. 처음 거절했던 우숙이 얼마 후에 周(주)나라 속담을 생각하고 후회했다.

 ‘필부는 죄가 없어도 좋은 옥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죄가 된다(匹夫無罪 懷璧其罪/ 필부무죄 회벽기죄).’ 공연히 이런 것을 가지고 있다가 재앙을 당할 필요가 없다며 사람을 시켜 왕에게 구슬을 바쳤다. 얼마 뒤 갖고 있는 보검을 형이 또 달라고 하자 우숙은 고민했다. 왕의 욕심이 끝이 없는 것을 보니 나중에는 나의 목숨까지 달라할지 모른다며 군사를 일으켜 형을 공격했다. 桓公(환공) 10년 조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간의 욕심이 혈연마저 등지는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지위나 재능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시샘을 받아 화를 입는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하지만 역시 분수에 맞지 않으면 필부도 유죄가 되고 화를 자초하게 된다는 뜻이 와 닿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html
kolaswqetsrq 11.03 03:47
百 bǎi

百 bǎi

1. 백 2. 많은 수 3. 전혀 4. 성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ai_1.html
kolaswqetsrq 11.03 03:47
일일삼추一日三秋 - 하루가 삼 년 같다, 몹시 애태우며 기다림

일일삼추(一日三秋) - 하루가 삼 년 같다, 몹시 애태우며 기다림

한 일(一/0) 날 일(日/0) 석 삼(一/2) 가을 추(禾/4)

시간은 대체로 귀하고 그래서 빨리 지나간다는 옛말이 많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화살처럼 날아가 일생도 문틈으로 지나가는 흰 망아지와 같다는 白駒過隙(백구과극)이란 말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용없는 百年河淸(백년하청)은 제외하고, 무엇을 기대하거나 보고 싶은 연인을 기다릴 때는 반대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百難之中 待人難(백난지중 대인난)이란 말이 있으니 말이다. 하루를 보내는 것(一日)이 세 해의 가을(三秋)을 지내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 이 어려움을 실감나게 드러냈다. 一日如三秋(일일여삼추)나 더 짧은 15분 정도의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라고도 한다.

春秋時代(춘추시대)의 민요를 모은 ‘詩經(시경)’에 이 말이 처음 등장한다. 나라 일로 멀리 타국에 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의 마음을 노래한 ‘王風(왕풍)’ 采葛(채갈)편에서다. 풍채 采(채)는 캔다는 採(채)의 뜻도 있다. 임을 기다리는 것은 하루가 마치 三秋(삼추)와 같이 세월이 더디 간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다. 삼추는 孟秋(맹추, 음력 7월), 仲秋(중추, 8월) 季秋(계추, 9월)의 석 달을 말한다고 하고, 가을이 세 번이므로 9개월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곡식은 1년에 가을에 한 번 익으므로 삼추는 3년이라고 해석한다. 어쨌든 기다리는 세월은 길게만 느껴지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전문은 짤막하다. ‘칡 캐러가세, 하루를 못 보면 석 달이나 된 듯(彼采葛兮 一日不見 如三月兮/ 피채갈혜 일일불견 여삼월혜), 쑥 캐러가세, 하루를 못 보면 아홉 달이나 된 듯(彼采蕭兮 一日不見 如三秋兮/ 피채소혜 일일불견 여삼추혜), 약쑥 캐러가세, 하루를 못 보면 삼년이나 된 듯(彼采艾兮 一日不見 如三歲兮/ 피채애혜 일일불견 여삼세혜).’ 兮는 어조사 혜, 蕭는 맑은대쑥 소, 艾는 약쑥 애.

처음 남녀 간에 헤어져 있을 때 썼던 표현이 오늘날에는 사람이나 사물이 도착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심정을 나타내는 말로 확대됐다. 사람을 기다릴 때 시간은 상대적이다. 약속한 사람이 오지 않을 때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 가고, 약속했던 상대는 시간을 지키려고 해도 다른 일로 해서 빨리 지나가게 마련이다. 애태우는 사람을 위해 계획을 잘 세워 시간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5.html
kolaswqetsrq 11.03 03:48
무슨꽃입니까?

무슨꽃입니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1.html
kolaswqetsrq 11.03 03:49
白 bái

白 bái

1. 흰색 2. 희다 3. 청결하다 4. 명백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ai.html
kolaswqetsrq 11.03 03:49
화분에있는 이꽃 이름이 뭔가요?

화분에있는 이꽃 이름이 뭔가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3.html
kolaswqetsrq 11.03 03:50
팔당 한강변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팔당 한강변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무슨 나무인지 열매가 쭉 늘어져 있네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6.html
kolaswqetsrq 11.03 03:50
까만씨가 났네요 ?난 종류?

까만씨가 났네요 ?난 종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1.html
kolaswqetsrq 11.03 03:51
吧 ‧ba

吧 ‧ba

1. 구말에 쓰여 상의·제의·청구·명령·독촉의 어기를 나타냄

2. 구말에 쓰여 동의 또는 승낙의 어기를 나타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a_1.html
kolaswqetsrq 11.03 03:52
도봉산 중턱 절벽에 있는 나무열매입니다

도봉산 중턱 절벽에 있는 나무열매입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물체가 흔들려서 선명한 사진을 담지ᅳ 못하였습니다.

잎도 퇴색되고 열매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6.html
kolaswqetsrq 11.03 03:52
【낚시제비꽃】

【낚시제비꽃】

여러 갈래로 나뉜 줄기는 땅에 닿도록 비스듬히 뻗으며, 각 마디에는 심장 모양의 잎이 어긋난다. 또한 같은 심장 모양으로 긴 잎자루를 가진 뿌리잎이 뭉쳐나와 있다. 꽃은 보라색으로, 봄이 되면 식물체의 중앙에서 꽃줄기가 나와 작은 꽃이 달린다. 열매는 삭과이다.

▷ 학명 : Viola grypoceras

▷ 분류 : 제비꽃과

▷ 분포지역 : 제주도 ·전라남도 ·충청남도 ·경상북도 지역, 일본 ·중국 등지

▷ 서식장소 : 들

▷ 특징 : 들에서 자란다. 뿌리줄기는 마디가 밀접하고 줄기는 여러 대가 비스듬히 서거나 옆으로 눕는다. 꽃이 필 때에는 길이 20cm, 열매를 맺을 때에는 길이 10∼30cm이다. 뿌리잎은 심장형이고 길이 1.5∼2.5cm, 나비 2∼3cm로 가장자리에 얕은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길이 3∼7cm로 털이 없고 바소꼴이며 빗살처럼 깊게 갈라진다. 줄기잎도 이와 비슷하며 잎자루만 짧다.

꽃줄기는 6∼10cm로서 뿌리나 줄기의 잎겨드랑이에서 나고, 위쪽에 포(苞)가 있다. 4∼5월에 엷은 자줏색 꽃이 피며, 꽃잎은 길이 12∼15mm로 털이 없으며 꿀주머니는 6∼8mm이며, 꽃받침조각은 바소꼴이다. 어린 순은 식용한다. 에 분포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1.html
kolaswqetsrq 11.03 03:53
【꽃꿩의다리】

【꽃꿩의다리】

마치 꿩 다리처럼 기다란 줄기를 지녔기에 그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꿩의다리는 이름처럼 독특하게 생긴 꽃을 피웁니다.

하얗게 만발해 그 꽃이 얼핏보면 가늘고 하얀 꽃잎들을 무수히 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꽃잎처럼 보이는 기다란 꽃술로 된 꽃이 피는 것이죠!

희귀식물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지만 적색식물목록에 멸종위기종으로 등록된 꽃처럼 예쁜 꿩의다리 종류라는 뜻에서 꽃꿩의다리라고 합니다.

▷ 학명 : Thalictrum petaloideum L.

▷ 분류 : 미나리아재비과

▷ 분포지역 : 부산·여수

▷ 서식장소 : 산지 그늘

▷ 특징 : 높이 50∼100cm이다. 풀 전체에 털이 나지 않고, 줄기는 곧게 벋으며 잎은 2∼3회 깃꼴겹잎이거나 3장의 작은잎이 난다. 작은잎은 타원형 또는 달걀 모양이며 2∼3갈래로 갈라진다.

5∼7월에 흰 꽃이 줄기 끝에 산방꼴 원추꽃차례를 이루어 핀다. 꽃받침은 4∼5장이고 길이는 약 3mm이다. 수술은 길이 10mm 정도이고 위쪽이 넓다. 꽃밥은 타원형이고 길이 1mm 정도이다. 열매는 수과로 길이 5mm 정도이고 9월에 익으며 날개 같은 능선이 있다. 어린순을 나물로 먹으며 관상용으로 심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9.html
kolaswqetsrq 11.03 03:53
【금강애기나리】

【금강애기나리】

희귀식물 금강애기나리 입니다.

금강산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유사종으로 큰애기나리, 애기나리 등이 있는데 금강애기나리의 꽃잎에 죽은깨가 점점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 학명 : Streptopus ovalis

▷ 분류 : 백합과

▷ 분포지역 : 한국 ·중국 동북부

▷ 서식장소 : 깊은 산

▷ 특징 : 깊은 산에서 자란다. 뿌리줄기는 옆으로 길게 뻗고, 줄기는 높이가 25∼50cm이며 가지가 갈라지고 윗부분이 옆으로 처진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 5∼6cm의 달걀 모양이거나 타원 모양 또는 긴 타원 모양이며 끝이 뾰족하고 잎맥은 5∼7개이다.

잎 가장자리는 잎 뒷면 밑 부분과 함께 작은 돌기가 있고, 잎 밑 부분은 심장 모양이며 줄기를 감싼다. 줄기 아래쪽에 있는 잎은 막질(膜質:얇은 종이처럼 반투명한 것)의 잎집이 되어 줄기를 감싼다.

꽃은 7∼8월에 피고 줄기와 가지 끝에 우산 모양으로 이루며 1∼3개씩 달린다. 화피 조각은 6개이고 바소꼴이며 끝이 뾰족하고 뒤로 젖혀지며 노란빛이 도는 연한 녹색이고 붉은빛이 강한 자주색 반점이 있다.

수술은 6개이고 길이가 4mm이며, 씨방은 둥글고 3실이며 털이 없고 모가 난 줄에 닭볏 같은 돌기가 있으며 황색 점이 있다. 암술대는 끝이 3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장과이고 둥글며 검은 색으로 익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2.html
kolaswqetsrq 11.03 03:54
【복주머니란】

【복주머니란】

요강꽃·작란화·개불알꽃이라고도 한다.

한국의 야생란 가운데서도 특히 꽃이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이다. 지금은 매우 진귀하여 산에서 채집하는 것이 당연히 금해져 있고 겨우 산풀 애호가에 의해 재배하고 있다. 재배된 것이 산야초를 취급하는 꽃가게에 소량 나와 있는 정도이다.

이 꽃을 만나는 일이 있으면 그 아름다움을 살려 흙냄새가 나는 질그릇 등에 한 송이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꽂는 것으로 그치고 극히 가벼운 계절의 화재를 하나 또는 두 송이 배합시키면 어울린다.

▷ 학명 : Cypripedium macranthum var. speciosum Sw

▷ 분류 : 난초과

▷ 분포지역 : 한국(제주 제외)·일본·중국·헤이룽강·사할린섬·시베리아

▷ 서식장소 : 산지의 풀밭이나 숲 속

▷ 특징 : 산기슭의 풀밭에서 자란다. 높이 25∼40cm이다. 짧은 뿌리줄기를 옆으로 벋고,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며 털이 난다. 줄기는 곧게 선다. 잎은 3∼5개가 어긋나고 타원형이며 길이 8∼20cm, 나비 5∼8cm이다. 털이 드문드문 나며 밑쪽은 잎집이 된다.

5∼7월 길이 4∼6cm의 붉은 자줏빛 꽃이 줄기 끝에 1개씩 핀다. 포는 잎 모양이며 길이 7∼10cm이다. 꽃잎 가운데 2개는 달걀 모양 바소꼴이고 끝이 뾰족하며 밑쪽에 약간의 털이 난다. 입술꽃잎은 길이 3.5∼5cm로 큰 주머니 모양이다. 열매는 삭과이며 7∼8월에 익는다. 한국(제주도 제외)·일본·중국·헤이룽강·사할린섬·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하며,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4.html
kolaswqetsrq 11.03 03:55
【애기봄맞이】

【애기봄맞이】

논 주변에 자라는 애기봄맞이입니다.

꽃이 매우 작기 때문에 꼭 밤 하늘의 별과 같습니다.

▷ 학명 : Androsace filiformis Retz.

▷ 분류 : 앵초과

▷ 분포지역 : 남부, 중부, 북부지방

▷ 서식장소 : 낮은 곳의 길가 밭둑, 논둑

▷ 특징 : 높이는 약 15cm이며, 전체에 털이 거의 없다. 잎은 달걀 모양의 타원형이고, 밑으로 갑자기 좁아지면서 잎자루가 뚜렷해지고 둔한 이 모양의 톱니가 있다.

꽃은 4~5월에 흰색으로 피고, 꽃줄기는 여러 개가 모여 나와 우산 모양으로 퍼진다. 꽃받침은 종 모양으로 끝이 5개로 갈라지고, 가장자리가 백색의 막질이며 맥이 뚜렷하지 않다. 열매는 삭과이며, 밑부분에 꽃받침이 붙어 있고 5개로 갈라진다. 종자에는 파진 주름이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 있는 들의 습지와 저지대에서 자라며, 중국, 몽골, 러시아(캄챠크), 유럽, 북미에 분포한다. 유사종으로는 명천봄맞이 등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html
kolaswqetsrq 11.03 03:55
【주걱댕강나무】

【주걱댕강나무】

희귀식물인 댕강나무나 줄댕강나무보다 꽃이 현저히 큰 주걱댕강나무는 우리나라 남쪽 일부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일본특산식물로 우리나라에는 자생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지 않던 나무입니다.

부산 근교에 많은 개체수가 자라고 있으며 국내 유일의 자생지입니다.

▷ 학명 : Abelia spathulata Siebold & Zucc.

▷ 분류 : 인동과

▷ 분포지역 : 한국(경상남도 밀양시), 일본

▷ 서식장소 : 산지

▷ 특징 : 산지에서 자란다. 높이 1∼2m이고 작은가지는 적갈색에서 회갈색이다. 잎은 마주달리고 사각상 달걀모양으로 털이 있으며 윗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짧은 잎자루가 있다.

꽃은 5월에 피고 황백색이며 취산꽃차례에 3∼5개씩 달린다. 꽃받침은 5개로 깊게 갈라지고, 화관은 황백색으로 통처럼 생기며 끝이 5개로 갈라지고 아래쪽 갈래조각 안에 황색 무늬가 있다. 수술은 4개, 암술은 1개이며, 열매 끝에 꽃받침이 남아 있다. 한국·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0.html
kolaswqetsrq 11.03 03:56
【노랑미치광이풀】

【노랑미치광이풀】

미치광이풀은 산림청 희귀식물로 등록된 식물입니다.

이 풀을 소가 먹으면 미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노랑미치광이풀은 미치광이풀의 변종으로 미치광이풀보다 더욱 귀한 식물입니다.

▷ 학명 : Scopolia lutescens Y.N.Lee

▷ 분류 : 가지과

▷ 분포지역 : 강원도와 충청도

▷ 서식장소 : 산지의 습기 있는 숲속

▷ 특징 : 노란색 꽃이 피고 미치광이풀 종류라는 뜻의 이름이다. 여러해살이풀이며, 높이는 20~60cm이다. 땅속에 퉁퉁하고 마디가 많은 뿌리줄기가 있으며, 줄기의 상부에서 가지를 친다. 땅속에 퉁퉁하고 마디가 많은 뿌리줄기가 있으며, 줄기의 상부에서 가지를 친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달걀형 또는 달걀 모양의 타원형이며, 끝이 뾰족하다. 가장자리는 밋밋한 편이지만 톱니가 있는 것도 있다. 길이는 10~20cm, 폭은 3~7cm이며 잎자루가 있다.

꽃은 4~5월에 줄기 위쪽의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대에 아래를 향해 1개씩 노란색으로 핀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는데, 개체에 따라 갈래조각의 길이가 서로 비슷한 것이 있는가 하면 5개의 갈래조각 중 유독 1개만 긴 것도 있다. 화관은 종 모양이고 가장자리가 5개로 얕게 갈라진다. 수술은 5개이고 암술대는 1개이다.

열매는 여러 개의 방에서 튀어나오는 삭과(蒴果)이고 구형이며, 익으면 뚜껑처럼 가로로 열린다.

노랑미치광이풀과 미치광이풀을 비교할 때, 둘 다 꽃받침조각의 길이가 서로 비슷한 개체가 있는가 하면 유독 1개만 긴 개체도 있다. 그러므로 노랑미치광이풀이 독립종으로 설정된 이유가 5개의 꽃받침조각 중 1개가 잎 모양으로 대형인 점 때문이라면, 노랑미치광이풀을 미치광이풀의 변종이나 품종으로 보아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0.html
kolaswqetsrq 11.03 03:56
爸爸 bà‧ba

爸爸 bà‧ba

=> 아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aba.html
kolaswqetsrq 11.03 03:57
【남방바람꽃】

【남방바람꽃】

제주도에서 처음 발견될 당시는 한라바람꽃이라고 하였으나 그후 전남, 경남 등지 남부지방에서 계속 발견되어 남방바람꽃이라고 합니다.

다른 바람꽃의 차이점은 줄기의 끝부분에 2개의 꽃봉오리가 올라 오는데 1개가 먼저 피고, 나중에 두번째의 꽃이 피며 꽃잎(실제는 꽃받침임)의 뒷편이 붉은색 계통을 띈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 학명 : Anemone flaccida

▷ 분류 : 미나리아재비과

▷ 분포지역 :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 서식장소 : 습기 있는 산기슭

▷ 특징 : 남쪽 지방에서 자라고 바람꽃 종류라는 뜻의 이름이다. 여러해살이풀이며, 높이는 15~20cm이다. 땅속에 황갈색의 뿌리줄기가 있다. 1942년 전남 구례에서 박만규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남바람꽃으로 명명되었으나, 1974년 《한국쌍자엽식물지》에서부터 남방바람꽃도 통용되었다. 2006년 제주도에서 발견되었을 때는 한라바람꽃으로 불리기도 했다.

잎은 뿌리에서 나오고 심장 모양의 원형이며, 3개로 깊게 갈라지고 갈래조각의 가장자리에 찢긴 조각 모양의 큰 톱니가 있다. 표면에 광택이 약간 있고 흰색 무늬가 있기도 하며, 양면에 거친 털이 있고 특히 가장자리를 따라 털이 있다. 잎자루는 길다.

꽃은 4~5월에 포 사이에서 나온 1~3개의 기다란 꽃대 끝에 각각 1개씩 흰색으로 핀다. 꽃의 지름은 2cm이다. 꽃대에 털이 있다. 꽃 밑에 달리는 잎처럼 생긴 포는 2개이고, 찢긴 조각 모양으로 갈라지고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와 함께 털이 있다. 꽃받침조각은 흰색이고 5~7개가 꽃잎처럼 보이며, 뒷면에 흔히 진한 분홍빛이 돌고 털이 있다. 꽃잎은 없다. 수술과 암술은 많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6.html
kolaswqetsrq 11.03 03:58
【점현호색】

【점현호색】

산림청 희귀식물로 등록된 점현호색입니다.

점현호색은 주로 중부지방에 자라고 잎에 흰 반점이 있는 것이 특색입니다.

현호색은 종류가 많이 있는데 현호색, 들현호색, 댓잎현호색, 애기현호색, 왜현호색, 갈퀴현호색, 남도현호색, 빗살현호색 등 너무 많아 다 열거하기도 어렵습니다.

특히 현호색 끼리 교잡종이 많아 정확히 분류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상세하게 분류된 종류을 합치는 일을 하고 있는 식물이기도 합니다.

▷ 학명 : Corydalis maculata

▷ 분류 : 양귀비과

▷ 분포지역 : 중부지방 경기도, 강원도

▷ 서식장소 : 산골짜기 숲 속 그늘

▷ 특징 : 잎에 점무늬가 있고 현호색 종류라는 뜻의 이름이다. 숲속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며, 높이는 10~25cm이다. 구형의 덩이줄기가 있으며, 줄기는 비늘조각잎의 밑부분에서 하나 또는 여러 개가 나온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2회에 걸쳐 작은잎(소엽)이 3개씩 달리는 3출엽이다. 작은잎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 또는 긴 타원형이고,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진다. 표면에 흰색 반점이 나타나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지만, 거의 나타나지 않는 개체도 있다.

꽃은 3~4월에 줄기 끝에 청자색으로 피며, 5~20cm개가 모여 총상꽃차례를 이룬다. 꽃의 뒤쪽은 기다란 꿀주머니로 된다. 꽃의 크기가 유사종에 비해 큰 편이고 가운데 부분이 불룩하며, 아래쪽의 바깥꽃잎이 넓다. 포는 대개 갈색을 띤다.

열매는 여러 개의 방에서 튀어나오는 삭과(蒴果)이고 납작한 방추형이며, 그 안에 광택이 있는 검은색 씨가 거의 2열로 배열된다. 씨에 당분체가 붙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3.html
kolaswqetsrq 11.03 03:58
【보춘화】

【보춘화】

보춘화(報春花)를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일본식 한자말인 춘란(春蘭)이라고 하지요.

좋은 우리말은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춘란보다는 보춘화가 더욱 정감이 가지 않나요?

보춘화 즉 봄을 알리는 꽃이라고 우리 조상들은 늘 가까이에서 키웠든 난초입니다.

이른 봄에 꿩이 먹을 것이 없을 때 먹었다고 하여 "꿩밥"이라고 남부지방에서는 방언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보춘화의 변이종들은 고가로 판매가 됩니다. 그래서 난초라고 하면 모두 비싼 것으로 알고 산채를 하여 옵니다. 그리하다 보니 보춘화도 희귀식물 후보종에 들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고 하여 보존을 하여 않으면 언제 없어질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자손만대 보존이 될 수 있도록 자연 그대로 자라게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 학명 : Cymbidium goeringii

▷ 분류 : 난초과

▷ 분포지역 : 한국(제주·전남·전북·경남·울릉도)·중국·일본

▷ 서식장소 : 산지 숲 속의 건조한 곳

▷ 특징 : 춘란(春蘭)이라고도 한다. 높이 20~24cm로 산지 숲 속의 건조한 곳에서 자란다. 육질인 굵은 뿌리는 수염같이 벋고 흰색이다. 공 모양의 비늘줄기는 밀접하게 옆으로 이어지고 윗부분이 시든 잎의 밑동으로 싸인다. 잎은 모여나고 상록이며 길이 20~50cm, 나비 6~10mm의 줄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작은 톱니가 있다.

잎집은 잎 밑부분에 있고 나비가 좁으며 짧은 형태이다. 시든 잎집에는 황갈색의 섬유가 있다. 꽃줄기는 높이 10~25cm로서 곧추서고 연한색의 육질이며 굵은데 막질인 칼집 모양의 잎에 싸여 있다. 포(苞)는 길이 3~4cm로 칼집 모양의 잎과 같은 모양이나 초(齧)가 없고 바소꼴이며 끝이 뾰족하다.

꽃은 3~4월에 피고 꽃줄기 끝에 1~2개가 달리며 지름 3~5cm이고 연한 황록색이며 다소 향기가 나는 것도 있다. 꽃받침은 약간 육질이고 길이 3~3.5cm, 나비 7~10mm의 거꾸로 선 바소꼴로 끝이 둔하며 벌어진다. 꽃잎은 꽃받침과 비슷하지만 다소 짧다.

입술꽃잎은 꽃받침보다 약간 짧고 흰색이며 뒤로 젖혀지는데 짙은 적자색의 반점이 있다. 입술꽃잎 중앙에 홈이 있고 끝이 3개로 갈라지는데 중앙 갈래조각은 입술같으며 안쪽으로 가는 돌기가 밀생한다. 꽃술대는 길이 15mm로 꽃잎과 입술꽃잎에 싸여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8.html
kolaswqetsrq 11.03 03:59
【생강나무】

【생강나무】

생강이 달리는 나무가 아니라 꽃이나 잎과 가지에서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생강나무는 어린 가지와 잎을 말려 가루로 만들어 생강 대신 사용하였으며, 생강과 비슷한 작용이 있어서 생강처럼 차로 달여서 마사면 감기 예방에도 좋다고 합니다.

참고로 김치에 넣는 생강은 인도 원산의 풀입니다.

▷ 학명 : Lindera obtusiloba Blume

▷ 분류 : 녹나무과

▷ 분포지역 : 전국 분포

▷ 서식장소 : 산지의 계곡이나 숲 속의 냇가

▷ 특징 : 산지의 계곡이나 숲 속의 냇가에서 자란다. 높이는 3∼6m이고, 나무 껍질은 회색을 띤 갈색이며 매끄럽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 또는 달걀 모양의 원형이며 길이가 5∼15cm이고 윗부분이 3∼5개로 얕게 갈라지며 3개의 맥이 있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자루는 길이가 1∼2cm이다.

꽃은 암수딴그루이고 3월에 잎보다 먼저 피며 노란 색의 작은 꽃들이 여러 개 뭉쳐 꽃대 없이 산형꽃차례를 이루며 달린다. 수꽃은 화피 조각 6개와 9개의 수술이 있고, 암꽃은 화피 조각 6개와 1개의 암술, 그리고 헛수술 9개가 있다. 작은꽃자루은 짧고 털이 있다.

열매는 장과이고 둥글며 지름이 7∼8mm이고 9월에 검은 색으로 익는다. 새로 잘라 낸 가지에서 생강 냄새가 나므로 생강나무라고 한다. 연한 잎은 먹을 수 있다. 꽃은 관상용이고, 열매에서는 기름을 짠다. 한방에서는 나무 껍질을 삼첩풍(三 風)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타박상의 어혈과 산후에 몸이 붓고 팔다리가 아픈 증세에 효과가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0.html
kolaswqetsrq 11.03 04:00
【올괴불나무】

【올괴불나무】

괴불나무의 열매가 마치 어린아이의 주머니 끈 끝에 차는 노리개 즉 색 헝겊을 귀나게 접어서 속에 솜을 통통하게 넣고 상침을 놓아 색끈을 다는 것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괴불나무 중에서 가장 먼저 꽃이 핀다고 하여 올괴불나무입니다. 인동과 식물이기 때문에 인동(=인동덩굴, 인동초)처럼 생긴 꽃이 핍니다.

▷ 학명 : Lonicera praeflorens

▷ 분류 : 인동과

▷ 분포지역 : 한국·중국(만주)·우수리강

▷ 서식장소 : 산지의 숲속

▷ 특징 : 낙엽활엽 관목으로 높이 1~2m이고 어린 가지는 흑색 반점이 있으며 갈색을 띠고 묵은 가지는 회색이며 수피는 세로로 갈라져 떨어지고 가지의 속은 백색으로 꽉 차 있다.

잎은 대생하고 난형 또는 타원형으로 길이 3~6cm, 너비 2~4cm이며 끝은 뾰족하고 밑은 둥글며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양면에 분백색이 돌며 표면에 잔털, 뒷면에 융모가 밀생하고 엽병은 길이 1~5mm이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전년지 끝에서 길이 2~3mm의 화경이 나와 2개씩 달리며 화경에는 잔털과 선점(腺點)이 있고 포는 2개로 난형이며 가장자리에 연모(緣毛)와 선모(腺毛)가 있다.

꽃받침은 불규칙하게 중렬하고 화관은 5개로 중렬하며 5개의 수술은 화관보다 약간 길다. 과실은 장과로 구형이고 5월에 붉게 익는다. 본종은 길마가지나무에 비해 잎은 흰빛을 띠고 털이 많으며 꽃은 잎보다 먼저 피고 과실은 기부만이 합쳐진다. 관상용으로 쓰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0.html
kolaswqetsrq 11.03 04:00
【산자고】

【산자고】

딴 이름은 금등(金燈) · 산자고(山茨菰) · 산자고(山茨菇)이다. 백합과 식물인 까치무릇 Tulipa edulis Bak.의 비늘줄기를 말린 것이다. 우리 나라 각지의 산에서 자란다. 초여름에 비늘줄기를 캐 물에 씻어 껍질을 벗겨 햇볕에 말린다. 맛은 달고 성질은 차며 독이 있다.

혈액 순환을 촉진하며 어혈을 없애고 가래를 삭이며 엉기어 있는 것을 흩어지게 한다. 약리 실험에서 항종양 작용이 밝혀졌다. 목이 붓고 아픈 데, 연주창, 옹종(癰腫), 창양(瘡瘍), 산후 어혈에 쓴다. 하루 3~6g을 탕약으로 먹는다. 외용약으로 쓸 때는 짓찧어 붙인다.

▷ 학명 : Tulipa edulis

▷ 분류 : 백합과

▷ 분포지역 : 제주·무등산·백양사 등 중부이남 지역

▷ 서식장소 : 양지바른 풀밭

▷ 특징 : 양지바른 풀밭에서 자란다. 높이 약 30cm이다. 비늘줄기는 달걀 모양 원형으로 길이 3∼4cm이며 비늘조각은 안쪽에 갈색 털이 빽빽이 난다. 꽃줄기는 곧게 서고 위쪽에 잎 모양의 포가 3장 달린다. 잎은 2장이 밑동에서 나온다. 줄 모양이며 길이 20∼25cm, 나비 5∼10mm이고 끝이 뾰족하다. 잎몸은 흰빛을 띤 녹색이며 털이 없다.

꽃은 4∼5월에 줄기 끝에 1∼3송이가 달리는데, 넓은 종 모양이며 위를 향하여 벌어지고 길이 2.5cm이다. 포(苞)는 바소꼴이고 길이 3cm로서 2∼3개이다. 화피갈래조각은 6개이고 바소꼴이며 끝이 둔하고 길이 2.4cm로서 흰색 바탕에 자줏빛 맥이 있다. 수술은 6개로서 3개는 길고 3개는 짧다. 씨방은 녹색이고 세모난 타원 모양이며 1개의 암술대가 있다. 열매는 삭과(殼果)로서 세모나고 둥글며 끝에 길이 6mm 정도의 암술대가 달린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7.html
kolaswqetsrq 11.03 04:01
八 bā

八 bā

1. 8 2. 여덟 3. 대체적인 수를 나타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a.html
kolaswqetsrq 11.03 04:01
링링 태풍이 지나간후 망우산 둘레길가에 피어있는 꽃입니다.

링링 태풍이 지나간후 망우산 둘레길가에 피어있는 꽃입니다.

늦게 피는 이꽃 이름이 무엇인가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2.html
kolaswqetsrq 11.03 04:02
뭔지궁금해요?

뭔지궁금해요?

다육이종류인가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8.html
kolaswqetsrq 11.03 04:03
무슨꽃인지궁금해요?

무슨꽃인지궁금해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7.html
kolaswqetsrq 11.03 04:03
按照 ànzhào

按照 ànzhào

1. ...에 비추어 2. ...에 따라 3. ...대로 4. ...에 근거하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anzhao.html
kolaswqetsrq 11.03 04:04
【복수초】

【복수초】

행복(福)과 장수(壽)를 뜻한다고 해서 복수초라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복풀"이라고 하고 눈을 뚫고 나와 꽃이 피면 근처의 눈이 녹아 동그란 구멍이 생긴다고 해서 "눈색이꽃" 또는 "얼음새꽃"이라고 합니다.

▷ 학명 : Adonis amurensis

▷ 분류 : 미나리아재비과

▷ 분포지역 : 한국·일본·중국

▷ 서식장소 : 산지 숲 속

▷ 특징 : 원일초·설련화·얼음새꽃이라고도 한다. 산지 숲 속 그늘에서 자란다. 높이 10∼30cm이다. 뿌리줄기가 짧고 굵으며 흑갈색의 잔뿌리가 많이 나온다. 줄기는 윗부분에서 갈라지며 털이 없거나 밑부분의 잎은 막질로서 원줄기를 둘러싼다.

잎은 양면에 털이 없거나 뒷면에 작은 털이 있으며, 밑에서는 잎몸이 없고 밑부분뿐이며 위로 올라가면서 어긋나고 깃꼴로 두 번 잘게 갈라진다. 최종 갈래조각은 줄 모양이고 잎자루 밑에 달린 턱잎은 갈라졌다.

꽃은 4월 초순에 피고 노란색이며 지름 3∼4cm로 원줄기와 가지 끝에 1개씩 달린다. 꽃받침조각은 짙은 녹색으로 여러 개이고 꽃잎은 20∼30개가 수평으로 퍼지며 수술은 많고 꽃밥은 길이 1∼2mm이다. 열매는 수과로 길이 1cm 정도의 꽃턱에 모여 달리며, 공 모양으로 가는털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5.html
kolaswqetsrq 11.03 04:04
【한라구절초】

【한라구절초】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에 등록된 식물입니다.

한라산에만 자라기 때문에 한국특산식물이기도 합니다.

구절초란 음력 3월3일에 3마디, 5월5일에 5마디, 7월7일에 7마디로 자라며, 음력 9월9일에 잘라서 약초로 사용한다고 하여 구절초라고 합니다.

약효는 부인병에 좋은 약초로 여성에 이로운 식물이고, 세균발생을 억제하며, 잎냄새를 없애 주는 등 효능이 좋은 약초입니다.

▷ 학명 : Dendranthema coreanum (H.Lev. & Vaniot) Vorosch.

▷ 분류 : 국화과

▷ 분포지역 : 제주도

▷ 서식장소 : 한라산 고산지대

▷ 특징 : 잎은 어긋나며 밑부분의 잎은 넓은 달걀모양으로 2회 우상으로 가늘게 갈라지며 갈라진 조각은 바소모양 또는 줄모양으로 윗부분으로 갈수록 잎은 점점 작아진다. 잎의 앞면에은 광택이 있으며 뒷면은 연한 녹색으로 조금 육질이다.

꽃은 7~9월에 피며 흰색, 분홍색의 두상화서로 피며 줄기의 끝부분에 1개씩 달린다.

다년생 초본으로 원산지는 한국이고 한국특산식물로 한라산에 분포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5.html
kolaswqetsrq 11.03 04:05
【좀어리연꽃】

【좀어리연꽃】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입니다.

연꽃 중에서 작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어리연꽃이라고 합니다.

유사종으로 노란색 꽃이 피는 노랑어리연꽃. 흰꽃이 피는 어리연꽃과, 흰꽃이 아주 작은 좀어리연꽃이 있습니다.

▷ 학명 : Nymphoides coreana (Leveille) Hara

▷ 분류 : 조름나물과

▷ 분포지역 :제주, 강원도 통천 등지

▷ 서식장소 : 못이나 호수

▷ 특징 : 다년생 수초로 물 밑 질흙에 나며 줄기는 가늘고 길며 1~2개의 잎이 물 위에 뜬다. 잎은 타원상 심장형 또는 원심형으로 지름이 2~6cm이고 밑은 깊이 갈라지며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엽병은 길이 1~10cm이며 줄기와 접속한다.

꽃은 6~7월에 백색으로 피고 엽병 기부 마디에 속생하며 소화경은 길이 1~3cm이다. 꽃받침 조각은 넓은 피침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길이 3~4mm이며 화관은 4~5개로 갈라지고 가장자리에 짧은 연모(緣毛)가 있으며 수술은 5개이고 과실은 삭과로 타원형이며 길이 4~5mm이고 종자는 평활하며 광택이 있다. 본종은 어리연꽃에 비해 전체가 소형이며 화관 가장자리에 짧은 연모가 있으며 삭과는 꽃받침보다 약간 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0.html
kolaswqetsrq 11.03 04:06
이 무슨나무 열매인지요?

이 무슨나무 열매인지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html
kolaswqetsrq 11.03 04:06
按时 ànshí

按时 ànshí

=> 제때에. 규정된 시간대로. 제시간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anshi.html
kolaswqetsrq 11.03 04:07
【한라돌쩌귀】

【한라돌쩌귀】

산림청 희귀식물에 등록된 식물입니다.

한국특산식물이며 제주도 한라산에서만 자랍니다.

다른 종과 차이점은 꽃자루에는 털이 있는데 자방에 털이 없음

많이 볼 수 있는 유사종

1.투구꽃 : 꽃잎이(실제는 꽃받침임) 투구모양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우리나라 전체에 분포하여 자라는데 한라돌쩌귀와 차이점은 꽃자루와 자방에 털이 많음

2.지리바꽃 : 지리산에 주로 분포하고 꽃자루와 자방에 털이 없음

▷ 학명 : Aconitum japonicum subsp

▷ 분류 : 미나리아재비과

▷ 분포지역 : 제주도 한라산

▷ 서식장소 : 비옥하고 습기가 풍부한 토양 조건의 양지

▷ 특징 : 잎은 어긋나기하며 길이 6.5-15cm, 폭 7.5-18cm로서 3개로 완전히 갈라지고 열편에 작은잎자루가 있으며 측열편은 다시 2개씩 깊게 갈라진 다음 다시 2-3개로 갈라진다. 중앙열편은 달걀모양 또는 거꿀달걀모양이고 결각이 있으며 길이 5.5cm-11cm, 폭 3.5-7cm로서 양면과 가장자리에 꼬부라진 털이 있거나 없다.

꽃은 9월에 피고 길이 27-36mm로서 청자색이고 겉에 꼬부라진 털이 있고 산방상 총상꽃차례에 달리며 꽃자루는 길이 2-3cm로서 겉에 꼬부라진 털이 있다. 뒷쪽 꽃받침조각은 길이 11-22mm, 폭 14-20mm로서 부리가 있고 측열편은 길이 12-19mm, 폭 9-17mm이며 앞쪽 열편은 길이 10-16mm, 폭 2-6.5mm이다. 씨방은 털이 없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html
kolaswqetsrq 11.03 04:08
【대청부채】

【대청부채】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식물 2급에 등록된 식물입니다.

처음에는 잡종이라고 생각하여 얼이범부채라고 불렀으나 서해 고도에서 퍼져 나간 점을 고려함과 동시에 대청도에 정착한 사유가 있을 것 같이 느껴져서 대청부채라고 불렀다.

자생지가 일부분이라 잘 보존해야 할 귀한 식물입니다.

▷ 학명 : Iris dichotoma

▷ 분류 : 붓꽃과

▷ 분포지역 : 대청도,백령도 등 서해 5도 일부

▷ 서식장소 : 바닷가

▷ 특징 : 대청부채는 본디 중국산 식물이며, 1920년경 만주 접경인 평안북도 벽동군에서 채집된 기록이 있다. 벽동이란 곳은 한때 여진족이 점령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대청도 역시 중국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대청부채는 본디 중국산 식물이다. 따라서 중국식물이 어떻게 들어왔느냐란 문제가 남아 있다. 벽동지방의 것은 조사할 기회가 없었고 다만 기록에만 의존하였으나 대청도에서 자라는 것은 조사할 기회가 있었다.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져서 높이 50∼90cm 정도 자란다.

잎은 밑에서부터 서로 안고 나오며 부채살처럼 퍼졌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참부채붓꽃이라고 하였으며 중국을 거쳐 몽골과 소련에 분포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꽃은 7∼8월경에 피며 오후에 피었다가 다음날 아침 스러진다. 꽃은 분홍빛이 도는 보라색이며 화려한 색채를 띄고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9.html
kolaswqetsrq 11.03 04:08
【구상난풀】

【구상난풀】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에 등록된 구상난풀입니다.

구상나무 밑에서 처음 발견된 난초와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잎이 없어 광합성을 할 수 없는 기생식물입니다.

▷ 학명 : Monotropa hypopithys

▷ 분류 : 노루발과

▷ 분포지역 : 한국(한라산 구상나무숲 밑)·북반구

▷ 서식장소 : 산지 숲속

▷ 특징 : 부생식물로 산지 숲속에서 자란다. 엽록소는 없고 식물 전체가 엷은 황갈색을 띤다. 줄기는 높이 20cm 정도이고 육질(肉質)로 원기둥 모양이며 잔털이 나 있다. 잎은 어긋나고 비늘 모양인데 밑부분의 것은 작고 빽빽이 나지만, 윗부분의 것은 크고 성기게 붙는다.

5∼6월에 줄기 끝에 꽃이 몇 개씩 피는데, 종 모양으로 아래로 숙인다. 꽃받침잎은 거꾸로 세운 바소꼴로 길이 1∼1.2mm이고 열매가 커지면서 떨어진다. 꽃잎은 4개로 쐐기형 비슷한 긴 타원형이고 길이 1∼1.5cm이다. 열매는 타원형 공 모양이며 끝에 털이 난다. 한국에는 한라산의 구상나무 숲속에서 자라며 북반구에 널리 분포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8.html
kolaswqetsrq 11.03 04:09
【황근】

【황근】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식물 2급에 등록된 식물입니다.

황근이란 노란색 꽃이 피는 무궁화라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우리나라 나라꽃인 무궁화는 우리 자생식물이 아닌 외래종입니다. 황근은 국내에 자라는 무궁화속(屬) 중에서 유일한 자생종입니다.

그러나 제주도와 전남 일부 지역의 해안가 모래땅이나 암석지에 자라는 황근은 멸종위기종이 되었습니다. 한때 남쪽 해안가에 황근이 무성했었지만, 해안도로 건설로 자생지 대부분이 파괴되어 개체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비단 황근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생종 산들꽃이 도로 절개공사 비탈, 복원지 등에도 널리 심어져 우리의 자생종이 외래종에 밀리는 현상이 더 늘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 학명 : Hibiscus hamabo

▷ 분류 :

▷ 분포지역 : 제주도와 전남 일부 지역

▷ 서식장소 : 모래땅이나 암석지

▷ 특징 : 우리나라 제주도 바닷가에서 자란다. 높이 1m 내외이고 식물체에 황회색 성모(星毛:여러 갈래로 갈라져 별 모양의 털)가 밀생한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의 원형이며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다. 꽃은 7∼8월에 노란색으로 피고 가지 끝의 잎겨드랑이에 달리며 황색이고 안쪽 밑부분은 검은 홍색이다.

작은 포는 8∼10개가 중앙부까지 합쳐지고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5개씩이다. 수술은 많고 수술대가 합생한다. 암술대는 5개이고 암술머리는 검은 홍색이다. 열매는 삭과(蒴果)로 8∼9월에 결실하며 달걀 모양으로 뾰족하고 잔털이 있으며 5개로 갈라진다. 나무껍질에서 섬유를 채취하여 사용했었다. 희귀삭물로 분류되며 환경부에서 지정한 보호야생식물로,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4.html
kolaswqetsrq 11.03 04:09
무슨꽃입니까.

무슨꽃입니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4.html
kolaswqetsrq 11.03 04:10
暗 àn

暗 àn

=> (빛이) 어둡다. 껌껌하다. 깜깜하다. 컴컴하다. 캄캄하다.

=> 우매하다. 어리석다. 미련하다. 사리분별을 (잘)못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an.html
kolaswqetsrq 11.03 04:11
安全 ānquán

安全 ānquán

=> 안전(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anquan.html
kolaswqetsrq 11.03 04:11
安排 ānpái

安排 ānpái

=> 안배하다. 배치하다. 배분하다.

=> 마련하다. 처리하다. 준비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anpai.html
kolaswqetsrq 11.03 04:12
무슨나무열매일까요?

무슨나무열매일까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5.html
kolaswqetsrq 11.03 04:13
安静 ānjìng

安静 ānjìng

=> 안정하다, 조용하다, 평온하다, 침착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anjing.html
kolaswqetsrq 11.03 04:13
【금강초롱꽃】

【금강초롱꽃】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 100번에 등록된 식물입니다.

금강산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초롱꽃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주로 중부지방 이상의 고산에 자라는 식물로 전 서계에 우리나라만 자라는 한국특산식물입니다.

삭과(튀는열매) 익으면 과피가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리는 여러 개의 씨방으로 된 열매

▷ 학명 : Hanabusaya asiatica

▷ 분류 : 도라지과

▷ 분포지역 : 중부 이북지방, 오대산, 설악산, 화악산, 금강산

▷ 서식장소 : 산골짜기 숲 속 그늘

▷ 특징 : 우리나라 높은 산지에서 자란다. 높이 30∼90cm이며 뿌리는 굵고 갈라진다. 잎은 줄기 중간에서 4∼6개가 어긋나고 윗부분의 것은 마디사이가 좁아서 뭉쳐난 것같이 보인다. 길이 5.5∼15cm, 너비 2.5∼7cm이다.잎자루가 길고 긴 달걀모양 타원형이며 끝이 뾰족하고 밑은 뭉툭하거나 둥글며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고 윤기가 돈다.

꽃은 8∼9월에 자주색으로 피는데 종(鐘) 모양이고 줄기 위에 1∼2개가 붙거나 또는 짧은 가지 끝에 붙으며 원추꽃차례를 이룬다. 화관(花冠)은 얕게 갈라지고 길이 4cm 정도, 너비 2cm 정도이다. 꽃받침조각은 5개이고 좁은 바소꼴이다. 수술은 5개이고 수술대의 밑부분이 넓으며 가장자리에 털이 있고 꽃밥은 길이 8~9mm이다. 암술대는 3개로 갈라져서 말리며 화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열매는 삭과(蒴果)이며 9∼10월에 익는다. 정원에 심을 수 있는 관상식물이다. 한국 특산종으로 백색꽃이 피는 것을 흰금강초롱(for. alba)이라고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8.html
kolaswqetsrq 11.03 04:14
【네귀쓴풀】

【네귀쓴풀】

네귀쓴풀은 우리나라 각처의 높은 산이나 들에 자라는 1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양지바른 풀숲이나 돌 틈에서 자란다. 키는 약 30cm 내외이며, 잎은 긴 달걀 모양으로 끝은 날카롭지만 뭉뚝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다. 꽃은 흰색으로 꽃에는 파란색 혹은 자줏빛 반점이 있다.

열매는 9~10월에 익으며 크기는 작다. 네귀쓴풀은 꽃잎이 네 개로 갈라져서 붙은 이름이며, 꽃잎 가운데 보면 약간 들어간 부분이 있는데 주변에는 약하게 돌기가 나있다. 관상용으로 쓰인다.

▷ 학명 : Swertia tetrapetala Pallas

▷ 분류 : 용담과

▷ 분포지역 : 한국·일본·중국 북동부·시베리아·사할린·쿠릴열도·캄차카·알래스카·캐나다

▷ 서식장소 : 양지바른 풀 숲이나 돌 틈

▷ 특징 : 산야에서 자란다. 줄기는 가늘고 길며 곧게 서고 가지를 많이 친다. 높이는 30cm 정도이다. 잎은 마주나고 잎자루가 없으며 긴 달걀모양 또는 달걀모양 바소꼴로 길이 2∼3.5cm, 나비 7∼15mm이고 톱니는 없다.

7∼8월에 자줏빛 꽃이 줄기 끝에 4수(數)로 모여 피며 원뿔형을 이룬다. 꽃받침은 바소꼴로 화관(花冠)의 1/3 정도이다.

꽃잎은 타원형 또는 달걀모양 장타원형으로 검은 자줏빛의 점이 있다. 삭과(蒴果)는 꽃잎보다 약간 길거나 같다. 개화 때에 채취하여 햇빛에 말린 것을 자주쓴풀(당약)과 함께 건위제로 쓴다. 한국·일본·중국 북동부·시베리아·사할린·쿠릴열도·캄차카·알래스카·캐나다 등지에 분포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1.html
kolaswqetsrq 11.03 04:14
【구름병아리】

【구름병아리】

‘구름병아리난초’라는 이름은 원로식물학자 이창복 교수가 1976년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서 출간한 『관악수목원 연구보고』에 발표한 이름이다. 그러나 같은 식물을 1949년에 조선생물학회에서 펴낸 『조선식물명집』에 ‘구름병아리란’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표했다.

관례적으로 먼저 발표된 이름인 ‘구름병아리란’을 정식 명칭으로 써야겠지만 현재 구름병아리난초로 불린다.

▷ 학명 : Gymnadenia cucullata (L.) Rich.

▷ 분류 : 난초과

▷ 분포지역 : 경남(지리산), 경북(가야산), 전북(덕유산), 강원(함백산)

▷ 서식장소 : 높은 산지의 풀밭

▷ 특징 : 구름병아리난초는 난초과(Orchidaceae)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북방계 식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경남(지리산), 경북(가야산), 전북(덕유산), 강원(함백산) 등 높은 산지의 풀밭이나 침엽수림에서 자란다. 지리적으로는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 등지에 분포한다.

전국에 자생하는 병아리난초(Amitostigma gracile)와 닮았는데 구름처럼 높은 곳에 자라서 구름병아리난초라고 불린다. 구름병아리란, 산나사난초 등으로도 불린다.

구름병아리난초의 외화피조각과 내화피조각은 좁은 피침형이며 길이가 6~8mm이다. 순판은 7~8mm로 곧추서고, 좁은 쐐기모양이며, 자주색 반점이 있다. 순판은 끝이 3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각 조각은 선형이며 가운데 조각이 더 넓다.

꽃에서 꽃부리나 꽃받침의 일부가 변형되어 돌출한 부분인 거(距, spur)는 앞으로 굽었고 꽃잎보다 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1.html
kolaswqetsrq 11.03 04:15
【으아리】

【으아리】

으아리는 사위질빵과 여러 가지로 비슷한데, 잎 가장자리에 톱니나 결각이 없어 매끈한 것으로 명백하게 구별할 수 있다.

두 종의 서식처는 햇빛이 잘 드는 숲 가장자리로 생육조건이 비슷하지만, 지리적 분포양식에는 차이가 있다.

으아리는 대륙적이고 보다 추운 지역을 좋아한다면, 수레나물은 해양적이며 온난한 지역을 좋아한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북쪽 지방으로 갈수록 으아리가 수레나물보다 더 흔하며, 남부지방에서는 으아리보다는 수레나물이 더욱 흔하다.

▷ 학명 : Clematis terniflora var. mandshurica (Rupr.) Ohwi

▷ 분류 : 미나리아재비과

▷ 분포지역 : 전국 분포

▷ 서식장소 : 산과 들의 숲 가장자리, 길가

▷ 특징 : 줄기는 길이 2m정도이며, 갈색이고, 세로로 얕게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며, 작은 잎 5-7장으로 이루어진 깃꼴겹잎이다.

작은 잎은 긴 난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밑은 둥글거나 넓은 쐐기 모양이다. 잎자루는 구부러져 덩굴손 역할을 한다.

꽃은 가지 끝과 잎겨드랑이에 취산꽃차례로 달리며, 흰색, 지름 2-4cm다. 꽃받침은 4-6장, 꽃잎처럼 보이며, 도란상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으로 길이 1.2-2.0cm다. 열매는 수과이며, 난형으로 길이 4-6mm, 폭 2.5-4.0mm이고, 깃털 모양의 긴 암술대가 남아 있다. 열매에 날개가 없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0.html
kolaswqetsrq 11.03 04:15
【말나리】

【말나리】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 말나리는 잎이 돌려납니다.(윤생)

백합과 식물 중 잎이 윤생하는 것으로 하늘말나리, 섬말나리, 말나리가 있습니다.

하늘말나리는 꽃이 하늘을 보며 적색에 가깝고 섬말나리는 울릉도에 자라며 꽃색이 주황색에 가깝고 말나리는 꽃은 옆이나 아래로 보고 꽃색은 적색에 가깝습니다.

남부지방 근교 높은 산 정산 부근에 자라는 귀한 식물입니다. 그 밖에 참나리, 솔나리, 땅나리, 누른말나리, 털중나리, 중나리, 큰솔나리 등이 있습니다.

▷ 학명 : Lilium distichum

▷ 분류 : 백합과

▷ 분포지역 : 남부, 중부, 북부지방

▷ 서식장소 : 높은지대 산기슭, 숲 속 그늘

▷ 특징 : 높은 지대에서 자란다. 높이 약 80cm이다. 지름 2∼2.5cm의 둥근 비늘줄기에서 원줄기가 1개씩 나와 곧게 선다. 잎은 어긋나는 것과 돌려나는 것이 함께 돋는다. 줄기 중간의 잎은 돌려나며 4∼9개씩 달리지만 10∼20개 달리는 것도 있으며 길이 약 15cm, 나비 2∼3cm로서 타원형이거나 바소꼴이다. 줄기 위쪽의 잎은 어긋나며 바소꼴이고 돌려난 잎보다 작다.

6∼7월에 1∼10개의 노란빛을 띤 빨간 꽃이 옆을 향하여 피며, 안쪽에 짙은 갈색이 섞인 자줏빛 반점이 있다. 꽃 지름 5cm 정도이며 화피는 바소 모양으로서 6장이다. 수술은 6개, 암술 1개로 화피보다 짧다. 열매는 삭과로서 달걀처럼 생긴 타원형이며 3개의 능선이 있다. 길이 1.5∼2cm이며 10월에 익는다.

비늘줄기와 줄기, 어린 잎을 식용하며 꽃은 관상용으로 쓴다. 한국, 중국 북동부, 헤이룽강, 사할린섬, 캄차카반도 등지에 분포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2.html
kolaswqetsrq 11.03 04:16
【나도승마】

【나도승마】

환경부 멸종위기식물 2급에 등록된 나도승마입니다.

잎은 승마를 닮았으나 꽃은 다소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 같습니다.

해발 800m의 산간 지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한국 고유종으로 전남 영취산, 백운산, 지리산, 중북부 일부 지역에 분포한다. 높이는 30~90cm 정도며 줄기에 털이 많고 단면은 육각형이다. 잎은 둥글고 가장자리가 얕게 갈라지고 뾰족한 톱니가 있다.

옅은 노란색 꽃이 7~9월에 핀다. 약재로 쓰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승마 종류와 잎이 비슷하게 생겨서 나도승마라 불린다. 자가수정이 잘 되지 않아 결실률이 낮고 꽃이 예뻐 남획될 우려가 있다.

▷ 학명 : Kirengeshoma koreana

▷ 분류 : 수국과

▷ 분포지역 : 한국(전남 백운산)

▷ 서식장소 : 산지

▷ 특징 : 꽃은 엷은 노란 색으로 피고 총상꽃차례를 이루며 줄기 끝에 1∼5개가 달린다. 작은꽃가지는 바소꼴의 포를 가지며, 화관은 지름이 5cm, 길이가 4cm 정도이다. 꽃잎은 5개이고 긴 타원 모양으로 끝이 뭉뚝하며 나사 모양으로 배열된다. 꽃받침은 종 모양이고 5개로 갈라지며 겉에 털이 있다.

수술은 15개로 바깥쪽의 10개는 길고 안쪽의 5개는 짧다. 씨방은 하위(下位)이며, 암술은 1개이고, 암술대는 3∼4개이며 길이가 24∼27mm이다. 열매는 삭과이고 둥근 공 모양이며 털이 없고 지름이 15mm 정도이다. 한국 특산종으로서 전라남도 백운산에서만 자라며,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html
kolaswqetsrq 11.03 04:17
【자주목련】

【자주목련】

1년에 두번 개화를 합니다.

지금 게화하는 것은 내년에 개화를 할 꽃봉오리가 계속되는 장마로 인한 저온현상으로 개화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자목련이라고 합니다만 자목련은 꽃잎 뒷면은 자주색, 안쪽은 흰색이고 자주목련은 꽃잎의 양면이 모두 자주색으로 사진은 자주목련입니다

식물이 꽃이 피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1. 감온형 : 온도에 따라 개화하는 것(저온형, 고온형)

2. 감광형 : 햇볕의 길이에 따라 개화하는 것(단일형, 장일형)

따라서 자주목련이나 자목련은 잎이 없는 상태에서 1번 개화, 1-2개월 후 잎이 있는 상태에서 1번 개화 총 2번 개화합니다. 지금 개화하는 것은 6-7월에 만들어진 꽃(내년에 개화할 것)이 장마로 인하여 개화하는 것입니다.

▷ 학명 : Magnolia liliflora

▷ 분류 : 목련과

▷ 분포지역 : 남부지방

▷ 서식장소 : 음지나 양지에서 모두 잘 자란다

▷ 특징 : 중국에서 들어온 귀화식물이다. 관목상인 것이 많으며 관상용으로 심는다. 높이 15m에 달하고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을 거꾸로 세운 듯한 모양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양면에 털이 있으나 점차 없어지고 잎자루는 길이 7∼15mm이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검은 자주색이다. 꽃받침조각은 녹색이며 3개이다. 꽃잎은 6개이고 길이 10cm 내외이며 햇빛을 충분히 받았을 때 활짝 핀다. 꽃잎의 겉은 짙은 자주색이며 안쪽은 연한 자주색이다. 수술과 암술은 많다.

열매는 달걀 모양 타원형으로 많은 골돌과로 되고 10월에 갈색으로 익으며 빨간 종자가 실에 매달린다. 꽃잎의 겉면이 연한 홍색빛을 띤 자주색이고 안쪽이 흰색인 것을 자주목련(M. denudata var. purpurascens)이라고 한다. 정원수로 가꾼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0.html
kolaswqetsrq 11.03 04:17
라벤더 맞지요? 추운 지방인데 겨울에 괜찮을끼요?

라벤더 맞지요? 추운 지방인데 겨울에 괜찮을끼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html
kolaswqetsrq 11.03 04:18
오늘의 운세2021년 7월 14일 수요일

오늘의 운세(2021년 7월 14일 수요일)



96년생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 / 84년생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지는 것은 무방하나 지나치게 얽매이지 마라. / 72년생 가까이에서 바라보지 말고 잠시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이 유익하다. / 60년생 눈앞의 것에 좌우되지 말고 한발 앞서 생각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 / 48년생 나타날 때는 화려하지만 뒤편으로 사라질 때는 쓸쓸하기 그지없다.



97년생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거나 적거나 그런 것에 연연할 필요 없다. / 85년생 내세울 것이 없어도 기죽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서라. / 73년생 등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이 있거든 사정없이 주변에서 제거하자. / 61년생 돌아가지 말고 곧바로 정진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이로운 모습이다. / 49년생 손익계산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엉뚱한 지출이 발생하니 주의하라.

호랑이

98년생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다가서면 구설이 발생하고 여러모로 불리하다. / 86년생 상승세로 접어든 상태에서 우쭐대면 주변의 시선이 따가운 법이다. / 74년생 입에 단것이라고 마구 먹어대면 탈 나기 쉬우니 잠시 수저를 놓자. / 62년생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거두기도 하고 덜어내기도 하면 길하다. / 50년생 기복이 심한 운세지만 같은 자리에 오래 머물면 크게 나쁘지 않다.

토끼

99년생 생각의 틀을 바꾼다는 건 생각보다 상당한 변화를 주는 것과 같다. / 87년생 정성을 기울인 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으나 과욕은 부리지 마라. / 75년생 틀에 박힌 것을 새로운 것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 63년생 도덕적인 문제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하게 느껴지는 하루. / 51년생 무대에 올라서서 자기 얼굴을 수많은 사람에게 확실하게 새겨두자.



88년생 내려가는 시간인데 올라가고 있으니 주변의 시선이 이상하기 마련. / 76년생 맨손으로 넓은 밭을 일구지만 뿌릴 씨앗이 없으니 상심이 큰 하루. / 64년생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물물교환처럼 나누니 여러모로 유익한 시간. / 52년생 비빌 언덕이 없어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슴속에다 새기자. / 40년생 몸도 마음도 개운하지 않을 때는 자리를 잠시 벗어나는 것이 상책.



89년생 반듯한 자세를 갖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 77년생 두드리면 열릴 거라는 믿음을 갖는 것은 좋으나 아직 때가 이르다. / 65년생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으니 그늘에서 빨리 벗어나라. / 53년생 사람이 들어오거나 나가거나 연연하지 말고 더 멀리 보고 생각하자. / 41년생 일신의 안락함을 추구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다.



90년생 조용하게 이야기하면 될 일을 괜스레 떠들어대니 정신이 산만하다. / 78년생 스스로 결정하고 나서지만, 그것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힘든 날. / 66년생 한 박자 빠르게 움직이면 얻는 것이 더 많은데 꾸물대다가 놓친다. / 54년생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말하고 행하면 주변에서 칭송한다. / 42년생 실익을 거두지만 나가는 구멍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91년생 독창적인 것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그럴만한 것이 없으니 안타깝다. / 79년생 자타가 공인하는 선에서 무언가를 추진하면 탄력을 받아서 나간다. / 67년생 초록이 우거진 곳에서 알찬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축복받은 하루다. / 55년생 자신이 이름 석 자를 어디에다 걸어두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날. / 43년생 묻어두면 좋은 것이 있고 나쁜 것이 있으니 자세히 보고 판단하자.

원숭이

92년생 조금은 색상이 바란 것을 착용하는 것이 오히려 좋은 효과가 있다. / 80년생 둘이서 힘을 하나로 받드니 크게 무리 없이 생각대로 일이 풀린다. / 68년생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가 눈에 보이는 하루. / 56년생 생각의 끝을 찾으려 들지 말고 생각의 시작을 찾아 나서야 이롭다. / 44년생 자나 깨나 건강관리에 매진하는 것은 좋으나 과한 것은 좋지 않다.



93년생 한번 옳다고 믿는다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보기에 좋은 모습. / 81년생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명심하라. / 69년생 감각적인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부단하게 노력해서 구하자. / 57년생 정상적인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여러모로 유익한 운세다. / 45년생 자식으로 인한 감정적인 변화나 고저장단이 심하게 느껴지는 하루.



94년생 묵직한 것을 손에 쥐고 바쁘게 뛰어다니지만, 체력적으로 문제없다. / 82년생 가슴에서 솟구치는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때가 다가오는 시기다. / 70년생 기다림이 끝나고 새롭게 시작하는 시점이니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 58년생 하늘이 열리고 땅이 꺼지니 평소와 전혀 다른 기운이 감지되는 날. / 46년생 물이 흐르지 않고 한곳에 고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이 변한다.

돼지

95년생 속에 두고 오래도록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목이 탄다. / 83년생 손에 잡히는 것이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만드니 많은 것을 얻는다. / 71년생 요지부동하면 얻는 것보다도 잃는 것이 많으니 융통성을 발휘하자. / 59년생 지속적인 움직임이 기대되는 날인데 미동도 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 47년생 소리가 잘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옮기지만 큰 변화는 없는 운세다.

♨ 자료 제공 : 해동철학원(010-3837-6108)

♨ 문의 메일 : mookam@hanmail.net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2021-7-14.html
kolaswqetsrq 11.03 04:19
오늘의 운세2021년 7월 13일 화요일

오늘의 운세(2021년 7월 13일 화요일)



96년생 이성에 대한 느낌이 좋거나 나쁘거나 오르내림이 심하면 곤란하다. / 84년생 앞을 가로막는 무언가가 나타나도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임하라. / 72년생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려는 모습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 60년생 주변의 인식이 어떠한가를 잘 살핀 후에 변화를 꾀하는 것이 좋다. / 48년생 적당한 선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편하게 자리를 잡는 것이 상책.



97년생 가슴에 새겨둔 말을 가볍게 전할 수 없어서 깊은 고민에 빠져든다. / 85년생 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각오를 단단히 하고 매사에 임하라. / 73년생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 61년생 질적으로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타협하지 않으면 여러모로 손해다. / 49년생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면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호랑이

98년생 작은 오해가 발생할 수 있으나 믿음이 강하면 절대 멈추지 않는다. / 86년생 감당할 수 있는 부분만 수용하고 그 이상은 내치는 것이 현명하다. / 74년생 이런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법. / 62년생 새로운 변화나 이동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억지로 구하지는 못한다. / 50년생 시작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다.

토끼

99년생 사람들과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좋으나 무리하면 넘어진다. / 87년생 내가 생각한 것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방법부터 찾아내고 움직이자. / 75년생 보완할 부분이 무엇이며 어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하는지 파악하자. / 63년생 속에 두면 곪을 수 있으니 시원하게 밖으로 끌어내서 마구 던지자. / 51년생 무언가를 자르거나 수정하려면 변형된 그림이 있어야 가능한 작업.



88년생 생각대로 실현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수정에 임하는 것이 순서다. / 76년생 감각이란 그냥 길러지기도 하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셈. / 64년생 조금은 갑갑한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깊은 상념에 빠질 수 있다. / 52년생 동기부여는 자신이 하기도 하지만 타인이 해주기도 하는 덕목이다. / 40년생 마음이 허하면 몸도 허한 법이니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자.



89년생 외형적인 부분에 만족하기 어려운 사람은 여러 가지로 힘들어진다. / 77년생 책장을 넘기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 없으니 깊은 상념에 잠기는 날. / 65년생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차분하게 임하면 순탄하게 이루는 운세다. / 53년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니 변화와 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 41년생 음양의 이치를 알고는 있으나 현실에 적용하기란 아무래도 무리다.



90년생 수수한 모습으로 나서면 별다른 반응이 없으나 이제부터 시작이다. / 78년생 초심을 잃지 않고 마지막까지 유지한다면 모든 문제점이 사라진다. / 66년생 지금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움직이지 말고 변화의 흐름을 주시하자. / 54년생 정신없이 놀아보지만, 공간이 눈에 들어오니 그냥 두기가 곤란하다. / 42년생 적당한 핑곗거리가 없으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91년생 타고난 것보다 후천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효율적이다. / 79년생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하지 말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양하게 써보자. / 67년생 기분에 좌우되기 싫어도 사람은 누구나 기분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 55년생 바닥이 단단하다고 급하게 건물을 올리면 곤란하니 속도를 늦추자. / 43년생 덤덤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불안하니 마음을 가다듬자.

원숭이

92년생 좋은 뜻으로 전하는 말이나 선물에 대해서 호감을 나타낼 수 있다. / 80년생 역주행하는 모습은 불리하지만 가끔은 필요한 예도 있기 마련이다. / 68년생 기본적인 것을 갖추지 않은 상태로 후일을 도모하는 건 힘든 선택. / 56년생 내 손에 들어온 것을 타인에게 건네주기란 생각보다 매우 힘든 일. / 44년생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지를 말고 그냥 편안하게 받아드리자.



93년생 지혜로운 모습으로 매사에 임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이 따른다. / 81년생 적막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때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 69년생 시작은 힘드나 출발 선상을 벗어나면 다음부터는 쉽게 진행이 된다. / 57년생 모자란 것이 있으면 채우려 애쓰지 말고 그대로 갖고 길을 건너자. / 45년생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체험해본다.



94년생 굽이치는 계곡에서 으뜸으로 벗어나니 주변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 82년생 뒤로 돌아서지 말고 앞으로 계속 나오면 많은 것을 담아내는 운세. / 70년생 자신의 위상이 서서히 오르는 시기니 여러모로 신경 쓸 것이 많다. / 58년생 다양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지만 무언가가 모자라는 느낌이다. / 46년생 집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바깥으로 전해지면 곤란하다.

돼지

95년생 시원한 바람이 불 때는 반듯하게 서서 바람을 맞이하는 것이 좋다. / 83년생 상하좌우가 조화를 잘 이루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에 몰린다. / 71년생 둘이서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하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 59년생 다양한 경험을 아랫사람에게 전해주는 일에 부지런한 사람이 되자. / 47년생 보는 것은 달라도 느끼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라.

♨ 자료 제공 : 해동철학원(010-3837-6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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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4:19
오늘의 운세2021년 7월 12일 월요일

오늘의 운세(2021년 7월 12일 월요일)



96년생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다정하게 손잡고 걸어가니 부러운 것이 없다. / 84년생 가면을 쓰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만 보여줘도 시간이 아까운 날. / 72년생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고 중심을 흩트리지 않으니 시야가 트인다. / 60년생 남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노라니 그곳에 진리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 48년생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밝은 태양을 벗 삼아 넓은 곳으로 움직인다.



97년생 부산한 움직임이 예상되는 시기지만 아직은 분위기가 아니지 않나. / 85년생 어둠을 뚫고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국면이니 귀한 것을 얻는 운세. / 73년생 크게 돌아가지 말고 조금만 옆으로 비켜서면 지름길을 알 수 있다. / 61년생 주변 여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핀 후에 움직일 방향을 결정하자. / 49년생 한쪽으로 기울지 말고 자기 자리를 잘 지키면 모두가 편할 수 있다.

호랑이

98년생 바람은 등지고 나서면 유리하니 바람의 방향대로 빠르게 움직이자. / 86년생 무대를 어디로 옮기는가에 따라서 자신의 역할이 색다르게 변한다. / 74년생 빈자리가 보이면 좋을 것 같지만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 62년생 불편하게 앉아서 대화를 나누면 유익한 결과를 창출할 수 없는 법. / 50년생 희비가 교차하지만 그런 것에 연연하지 말고 멀리 행하는 건 삼가.

토끼

99년생 굴곡이 예상되는 날이지만 지나고 나면 자신에게 여러모로 득이다. / 87년생 서로 동격으로 만나면 문제가 없지만, 격이 깨지면 온전할 수 없다. / 75년생 구석진 곳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봐야 들어주는 사람들이 없다. / 63년생 자신의 입지를 탄탄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만드니 기운이 난다. / 51년생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우매하니 자기 탓으로 모든 걸 돌리자.



88년생 행운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찾아 나서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 76년생 공정한 방법으로 무언가를 결정하지만, 등 돌리는 사람이 나타난다. / 64년생 한곳으로 몰아서 정리하면 수월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니 안타깝다. / 52년생 원하는 것을 얻고 싶지만, 상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 40년생 긍정적인 방향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다.



89년생 통이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의외로 잘 어울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 77년생 내 것이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하다는 간단한 진리를 잊지 마라. / 65년생 먼발치에서 달려오는 것이 누군지 모르니 답답한 마음이 가득하다. / 53년생 행하면 손해라는 피해의식에서 빠져나와야 좋은 쪽으로 가는 운세. / 41년생 비스듬한 곳에서 반듯하게 누울 수 있으니 여러 가지로 길한 운세.



90년생 자신이 결정한 일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무조건 앞만 보고 나가자. / 78년생 기가 충만할 때는 어지간한 일에는 막힘없이 월등하게 앞서나간다. / 66년생 단편적인 면만 보지 말고 깊이 있게 내다보는 눈이 필요한 시기다. / 54년생 주변 상황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행동은 유익한 모습이 아니다. / 42년생 무심코 던진 말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면 곤란한 일이다.



91년생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가 발생하면 당황하지만, 해답은 가까이 있다. / 79년생 정해진 절차를 밟으면서 나가니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해진다. / 67년생 내가 만든 판에서 수많은 사람이 흥겹게 놀고 있으니 기분이 좋다. / 55년생 금전 손실이 우려되나 그보다 더 큰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운세다. / 43년생 돌다리를 두드리니 하나가 깨지고 하나가 떠내려가니 다음에 가자.

원숭이

92년생 특별한 기억이 없다면 망설이지 말고 계속해서 밀고 나가야 길하다. / 80년생 책 속에서 진리를 찾는 것은 바람직하나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하다. / 68년생 가운데를 가로지르면 시간은 단축되지만 효율적이지 못할 수 있다. / 56년생 바람이 잔잔하고 물결도 잔잔하니 정자에 앉아서 세월을 낚는구나. / 44년생 집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운세.



93년생 많은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하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 81년생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하나둘씩 켜지니 가슴속이 후련해지는 기분. / 69년생 둘이서 하는 말과 여럿이 하는 말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는 법. / 57년생 기운이 점점 빠지는 느낌이 들지만 그런 것에 의미 부여하지 마라. / 45년생 많은 사람이 눈앞에서 서성거리지만,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94년생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가 다소 벅차더라도 자신감을 가지고 맞서자. / 82년생 내가 보는 관점에서 모든 것을 정리한다는 것은 약간 문제가 있다. / 70년생 전례가 있는 일은 판단하기 쉬우나 없는 일은 판단하기 쉽지 않다. / 58년생 부산하게 움직이지만, 생각보다 남는 것이 없으니 허무한 기분이다. / 46년생 쉬어갈 길이지만 오늘은 그런 일로 시간 낭비할 상황이 아닌 모양.

돼지

95년생 희소식을 접하지만 내가 해야 할 몫이 있으니 마냥 즐겁지는 않다. / 83년생 같은 시각에 다른 장소로 움직여야 할 상황이 닥칠 수 있는 운세다. / 71년생 생각이 많으면 머리에서 지우고 새로운 도전에 정면으로 부딪쳐라. / 59년생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인데 늘 있던 자리에서 머무르니 갑갑하다. / 47년생 정해진 순서가 있지만, 오늘만큼은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움직이자.

♨ 자료 제공 : 해동철학원(010-3837-6108)

♨ 문의 메일 : mookam@hanmail.net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2021-7-12.html
kolaswqetsrq 11.03 04:20
돌파 감염Breakthrough Infection

돌파 감염(Breakthrough Infection)

정해진 백신 접종 횟수를 마치고 2주간의 항체 생성기간이 지난 후에도 감염되는 경우로, 변이 확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지표 사례로 여겨지기도 한다.

 "
돌파 감염은 정해진 백신 접종 횟수를 마치고 2주간의 항체 생성기간이 지난 후에도 감염되는 경우를 말한다. 예컨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2차까지 마친 사람이 면역이 형성되는 14일이 경과하고 나서도 양성으로 확진되는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돌파 감염은 변이 확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지표 사례로 여겨지는데, 기존 백신을 우회하는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백신 최종 접종자가 새로운 감염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미국의 경우 2021년 4월 26일 기준으로 9500만 명 이상이 2차 접종까지 마쳤는데, 돌파 감염 사례가 9245명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은 2021년 4월 21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한 400여 명 중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례(2명)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예방 백신을 접종했는데도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이유는 백신의 예방률이 100%로 완벽하지 않기 때문인데, NEJM에 따르면 ‘돌파 감염’이 일어난 2명 모두 경미한 증상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2020년 전 세계로 확산되며 장기적인 팬데믹 사태로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예방을 위해 ▷아스트라제네카(영국) ▷화이자(미국·독일) ▷얀센(미국) ▷모더나(미국) ▷노바벡스(미국) 등을 비롯해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중국의 시노팜·시노백 등의 백신이 개발돼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reakthrough-infection.html
kolaswqetsrq 11.03 04:20
꼽등이Diestrammena coreana

꼽등이(Diestrammena coreana)

메뚜기목 꼽등이과의 곤충으로, 야산이나 민간의 습한 곳에 서식한다. 수명은 보통 1년 안팎이며, 부식질이나 썩은 사체 등을 먹고 산다.

메뚜기목 꼽등이과의 곤충으로, 야산이나 민간의 습한 곳에 서식한다. 종에 따라 다르지만 그 크기는 20~30mm로 메뚜기나 귀뚜라미와 비슷하다. 색은 밝은 갈색에서 짙은 갈색까지 다양하며, 다리가 발달되어 높이 뛰어오른다. 더듬이는 보통 몸길이의 4배 이상으로 길며, 가슴 앞쪽에서부터 배에 이르기까지 불규칙한 황갈색 무늬가 있다. 청력이 없고,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며, 모든 감각은 더듬이에 의존한다. 우리나라·일본을 포함한 거의 모든 대륙에 서식하며, 부식질이나 썩은 사체 등을 먹고 산다. 수명은 보통 1년 안팎이다.

한편, 꼽등이·메뚜기·사마귀 등에 기생하는 가느다란 철사 모양의 연가시가 주목되기도 한 바 있다. 연가시 유충은 메뚜기목 곤충의 몸속에 유입하여 어느 정도 자라면 신경조절물질을 분비해 숙주 곤충을 조종, 물가로 유인해 자살을 유도한다. 이때 연가시는 곤충의 몸에서 빠져나와 물속에서 생활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diestrammena-coreana.html
kolaswqetsrq 11.03 04:21
코파 아메리카Copa America

코파 아메리카(Copa America)

남미 국가 간에 벌이는 축구선수권대회로 1916년 시작돼, 4년 주기로 개최된다. 이 대회에는 남미축구연맹(CONMEBOL) 회원 10개국이 예선 없이 참가하며 다른 대륙 연맹국가 2팀을 초청해 함께 경기를 펼친다.

코파 아메리카는 ‘남미 월드컵’이라고도 불리는 남미축구선수권대회(South American Championship)로, 1930년 창설된 월드컵보다도 역사가 깊다. 19세기 말부터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 등지에서 영국 이민자들이 주축이 돼 클럽축구의 기반을 다져온 남미축구선수권대회는 남미축구연맹(CONMEBOL)이 창립되던 해인 1916년 아르헨티나에서 원년대회를 개최했다.

1967년까지 부정기적으로 열리다가, 8년 후인 1975년 대회가 재개되면서 코파 아메리카(Copa America)라는 명칭을 얻어 1987년까지 4년 간격으로 개최됐다. 1989년부터 2년마다 개최되다가, 2001년 대회는 개최국 콜롬비아의 불안한 치안 때문에 연기될 뻔하다가 7월 12일 개막됐으며, 당초 참가할 예정이었던 12개 팀 가운데 캐나다와 아르헨티나가 불참해 반쪽 대회로 전락했다. 그리고 2003년 개최 예정이었던 제41회 대회는 개최국 내정문제 등으로 1년 연기돼 2004년 페루에서 열렸다. 이후 2007년 대회를 기점으로 다시 4년마다 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특히 2016년 대회의 경우 코파 아메리카 창설 100주년을 맞아 2015년에 이어 2년 연속 개최됐다. 100주년 기념대회는 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CONCACAF)과 연합해 미국·멕시코·코스타리카·자메이카 등을 포함한 총 16개 국가가 참가했다. 또 사상 최초로 미국에서 개최되며 대회 평균 관중이 4만 6119명에 이르는 등 높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 참가국 현황

코파 아메리카에는 남미축구연맹(CONMEBOL) 회원국인 아르헨티나·우루과이·브라질·파라과이·페루·칠레·에콰도르·볼리비아·콜롬비아·베네수엘라 등 10개국이 예선 없이 출전하며, 1993년부터는 캐나다·코스타리카·온두라스·멕시코·미국·일본·카타르 등 다른 대륙 연맹국가 2팀을 초청해 총 12개국이 경기를 치르고 있다.

월드컵에서는 브라질이 최다 우승국이지만,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우루과이가 15번(2위는 아르헨티나의14번)으로 최다 우승국이다. 최다 출전국은 43회 출전한 우루과이, 최다 개최국은 9회 개최한 아르헨티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copa-america.html
kolaswqetsrq 11.03 04:22
청년내일채움공제

청년내일채움공제

중소·중견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한 청년들의 장기근속을 위하여, 고용노동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사업을 말한다. 이는 미취업 청년(만15세 이상 34세 이하)의 중소·중견기업 유입을 촉진하고, 청년 근로자의 장기 근속과 자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2016년 7월부터 시행되었다.

중소·중견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한 청년들의 장기근속을 위하여 고용노동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사업이다. 이는 미취업 청년(만15세 이상 34세 이하)의 중소·중견기업 유입을 촉진하고, 청년 근로자의 장기 근속과 자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2016년 7월부터 시행되었다.

청년·기업·정부가 공동으로 공제금을 적립하여 근속한 청년에게 성과보상금 형태로 만기공제금을 지급한다. 예컨대 5인 이상 중소·중견기업(3년 평균 매출액 3000억 원 미만인 기업)에 취업한 청년이 2년간 300만 원을 적립하면, 정부가 600만 원, 기업이 300만 원을 공동 적립하여 만기 시 1200만 원의 목돈을 마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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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내일채움공제는 출범 초기 청년이 2년 동안 300만 원을 적립해 1200만 원을 수령하는 2년형과 3년 동안 600만 원을 적립해 3000만 원을 수령하는 3년형으로 구성돼 있었으나, 2021년부터는 3년형이 폐지되었다. 신청은 워크넷-청년공제 홈페이지 또는 각 지역의 고용센터 및 운영기관을 통해 할 수 있으며, 운영기관의 워크넷 승인이 완료되면 중소기업진흥공단 홈페이지(www.sbcplan.or.kr)에서 청약을 신청한다. 신청은 정규직 취업일(채용일) 전후 6개월 이내 중소기업진흥공단 청약신청까지 완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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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원 대상 및 내용(청년)

연령은 만 15세 이상 34세 이하로, 군필자의 경우 복무기간에 비례하여 참여제한 연령을 연동하여 적용하되 최고 만 39세로 한정한다. 여기에 정규직 취업일 현재 고용보험 가입이력이 없거나, 최종학교 졸업 후 고용보험 총 가입기간이 12개월 이하여야 한다. 3개월 이하 단기 가입이력은 총 가입기간에서 제외하지만, 고용보험 총 가입기간이 12개월 초과자이더라도 최종 피보험자격 상실일로부터 실직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자는 가능하다. 학력의 경우 제한은 없으나, 정규직 취업일 현재 고등학교 또는 대학 재학·휴학 중인자는 제외된다.

청년 본인이 2년간 300만 원(매월 12만 5000원)을 적립하면 정부(근로자 취업지원금 600만 원)와 기업(300만 원, 정부 지원)이 공동으로 공제금을 적립한 뒤, 2년간 근속한 청년에게 성과보상금 형태로 1200만 원과 이자를 지급한다.

○지원 대상 및 내(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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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경우 고용보험 피보험자수 5인 이상 중소·중견기업(소비향락업 등 일부 업종 제외)이 지원 대상이다. 다만 벤처기업, 청년 창업기업 등 일부 1인 이상~5인 미만 기업도 참여가 가능하다. 기업에게는 2년간 채용유지지원금 300만 원(청년의 장기근속 지원을 위해 ‘기업기여금으로 적립)이 지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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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80.html
kolaswqetsrq 11.03 04:22
종합소득세綜合所得稅

종합소득세(綜合所得稅)

1년 동안 사업 활동을 통해 개인에게 귀속된 이자소득, 배당소득, 사업소득, 근로소득, 연금소득, 기타소득을 종합해 과세하는 세금으로 자진신고·납부해야 한다. 자영업자, 개인사업자, 프리랜서, 월급 이외의 소득이 발생한 직장인 등이 대상이다. 신고·납부 기간은 5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이며, 신고·납부하지 않을 경우 각종 세액공제 및 감면을 받을 수 없고 가산세를 부담하게 된다.

1년 동안 사업 활동을 하면서 개인에게 귀속된 각종 소득(이자소득·배당소득·사업소득·근로소득·연금소득·기타소득)을 종합해 과세하는 세금을 말한다. 자진신고납부 제도로 개인사업자, 급여에서 3.3%의 세금을 공제하고 지급받는 프리랜서, 월급 이외의 소득이 발생한 직장인 등이 대상이다. 특히 직장인의 경우 근로소득만 있다면 연말정산으로 절차가 종료되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다른 소득이 있다면 종합소득을 신고해야 한다.

금융소득(이자소득·배당소득)의 경우 연간 2000만 원을 초과한 금액에 대해 종합소득에 합산되고, 연금소득은 연간 사적연금소득이 1200만 원을 초과하면 연금소득 전액을 합산하며, 기타소득의 경우는 필요경비 80%를 공제한 후의 연간 소득이 300만 원을 초과하면 종합소득에 포함된다. 근로소득은 총 급여액에서 근로소득공제액을 차감, 사업소득은 총 수입에서 필요경비를 차감해 계산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02.html
kolaswqetsrq 11.03 04:23
에크모ECMO

에크모(ECMO)

환자의 몸 밖으로 혈액을 빼낸 뒤 산소를 공급해 다시 몸 속에 투입하는 의료장비를 가리킨다. 이는 환자의 심폐 기능이 정상적이지 않은 경우 사용하는 것으로, 환자의 순환기 기능을 보조하기 위한 것이다.

에크모는 심장·폐가 제 기능을 하지 않는 위중한 환자의 혈액을 빼내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몸속으로 넣어주는 장치로, ‘체외막형산화기’라고도 한다. 즉, 원활한 혈액 공급을 위해 흉부 밖의 혈관을 통해 혈액의 출구·입구를 확보하고, 이후 인공 폐와 혈액 펌프로 환자의 혈액에 산소를 공급해 체내에 넣어주는 것이다.

에크모는 기관 삽관을 통한 인공호흡기만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한다. 예컨대 폐 기능이 약화돼 자가호흡이 어려워진 사람에게는 인공폐 역할을 하며, 혈액을 직접 순환시키므로 심장 기능에 이상이 있는 환자들에게 효과를 발휘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ecmo.html
kolaswqetsrq 11.03 04:24
자치경찰제自治警察制

자치경찰제(自治警察制)

지방분권의 이념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 경찰권을 부여하고, 경찰의 설치·유지·운영에 관한 책임을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는 제도를 말한다. 자치경찰제는 ‘경찰법·경찰공무원법’ 전부개정안이 시행되는 2021년 1월 1일부터 도입돼 6월 30일까지 시범운영을 거쳐 7월 1일부터 전국에서 전면 시행되었다.

자치경찰제란 지방분권의 이념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 경찰권을 부여하고, 경찰의 설치·유지·운영에 관한 책임을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는 제도를 말한다. 국가 전체를 관할하는 국가경찰(중앙경찰)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국가 전체가 아닌 국가 내의 일부지역에 소속되어 그 지역과 지역주민의 치안과 복리를 위해 활동하는 경찰을 의미한다.

자치경찰은 생활안전, 지역교통, 지역경비 임무를 갖고 방범순찰, 사회적 약자보호, 기초질서 위반 단속, 교통관리, 지역행사 경비 등 지역주민을 위한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자치경찰은 경찰력의 운영상황과 각종 관련 통계를 국가경찰과 상호공유하는 한편, 전시·사변 등 국가 비상사태나 테러, 대규모 소요사태 시 경찰청장의 지휘를 받게 된다.

자치경찰제는 지역 특성에 적합한 경찰활동이 가능하고, 소속 지역에 대한 귀속감이 높아 경찰관의 친절봉사도를 제고시킬 수 있으며, 국가의 재정 부담이 경감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자치경찰이 정당 소속 지자체 장의 통제를 받게 됨에 따라 지방의원들의 선거 목적에 이용되는 등 공정성 저해가 우려되고, 국가목적적 치안활동을 위한 조정통제가 곤란하며, 자치단체의 재정부담 증가, 자치단체별 빈부격차에 따른 치안 서비스 차이 등의 단점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27.html
kolaswqetsrq 11.03 04:24
SDTSpecial Duty Team

SDT(Special Duty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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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내부 강력범죄, 대테러 초동 조치, 요인 경호, 도심지 기동타격, 무장 탈영병 체포 등을 수행하는 군사경찰부대로, 보통 ‘특임대’로 지칭한다. 우리나라 육·해·공군, 해병대 모두 군사경찰 특수임무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각각의 부대명은 다르지만 보통 군사경찰 특수임무대라고 불리며 군사경찰(구 헌병) 병과에서 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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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T는 각군 사령부·군단·사단급에 배치돼 군 내부 강력범죄, 대테러 작전 초기 대응, 요인 경호, 무장탈영병 체포, 특수작전, 긴급구난, 도심지 기동타격 등을 수행하는 군사경찰부대로, 보통 ‘특임대(특수임무대)’로 지칭한다.

특임대는 일반적으로 초동조치 임무를 수행하지만 필요에 따라 직접 진압을 하기도 하므로, 지원 시 많은 테스트를 거치며 대원이 된 이후에도 다양하고 강도 높은 훈련이 이뤄진다. 예컨대 대원들은 체력단련, 격투술 등은 물론 각종 대테러 전술과 폭파, 저격수 교육, 레펠 강하 등의 기술을 훈련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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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임대는 1977년 12월 육군본부 군사경찰대에 특별경호대가 창설된 것으로 시작으로, 2007년 재난구조 임무를 부여받아 현재의 특수임무대로 명칭이 바뀌었다. 우리나라 육·해·공군, 해병대는 모두 군사경찰 특수임무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각각의 부대명은 다르지만 보통 군사경찰 특수임무대라고 불리며 군사경찰(구 헌병) 병과에서 운용한다. 이들은 일반 사병과는 다르게 전투복 외에 대테러복인 흑복을 입고 검정 방탄헬멧을 착용하는데, 군별로 약간씩 차이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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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임대는 거의 지원제로 인원을 선발하는데, 지원을 위해서는 병무청 모집병 단위에서 ‘특임군사경찰’이라는 병과에 지원하면 된다. 최종 선발은 서류전형 점수와 면접평가 점수를 합하여 고득점순으로 결정되는데, 동점 시 선발기준은 ▷무도단증 점수가 높은 순 ▷출석률 점수가 높은 순 ▷생년월일이 빠른 순이다. 무도단증의 경우 2개 이상 시 높은 단수를 제외한 총단수에 가산점을 부여한다.(총단수X0.2점)

해당 과정을 거쳐 대원에 선발되면 육군훈련소에서 5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거쳐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헌병 특기병 훈련을 받게 된다. 3주간의 훈련을 마치면 각자 자신의 부대에 배치돼, 자대의 임무와 역할에 맞춘 훈련을 이어가며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sdtspecial-duty-team.html
kolaswqetsrq 11.03 04:25
골프 용어

골프 용어

○ 샷 관련 용어

・ 샷(Shot): 공중으로 멀리 치는 것

・ 퍼트(Put): 그린에서 공을 홀에 넣기 위해 치는 것

・ 투온(Two on) or 쓰리온(Three on): 샷을 두 번이나 세 번 쳐서 공을 그린에 올려놓는 것

・ 티업(Tee Up): 골프 각 홀(hole)에서 경기를 시작하기 위해 티(tee)에 공을 놓고 치는 것

・ 티오프(Tee Off): 공을 받쳐놓는 핀 위에 공을 올려놓고 침으로써 플레이가 시작되는 것

・ 티샷(Tee Shot): 홀에서 경기를 시작할 때 처음 치는 행위

・ 칩샷(Chip Shot): 20m 이내의 그린 안팎에서 홀을 향해 공을 쳐올리는 것

○ 타수 관련 용어

・ 파(Par): 티를 출발하여 홀을 마치기까지의 정해진 기준 타수. 보통 파 3, 4, 5타를 기준 타수로 정하고 있으며 여성 골퍼의 경우 6타의 홀까지 있다.

・ 오버 파(Over Par): 규정 타수(파)보다 많은 타수

・ 이븐 파(Even Par): 파와 같은 수의 타수

・ 언더 파(Under Par): 규정 타수(파)보다 적은 타수

・ 홀인원(Hole in one): 티 그라운드에서 1타로 볼이 홀에 들어가는 것

・ 버디(Birdie): 한 홀에서 파보다 하나 적은 타수로 홀인하는 것

・ 이글 (Eagle): 한 홀에서 파보다 2개 적은 타수로 홀인하는 것

・ 알바트로스(Albatross): 한 홀에서 파보다 3타 적게 홀인하는 것. 한편, 파 5홀을 2타로 넣었을 경우로 미국에서는 더블 이글이라고 한다.

・ 보기(Bogey): 한 홀에서 파보다 하나 많은 타수로 홀인하는 것

・ 더블보기(Double bogey): 한 홀에서 파보다 2타 많은 타수로 홀인하는 것

・ 트리플보기(Triple bogey): 한 홀에서 파보다 3타 많은 타수로 홀인하는 것

○ 기타 용어

・ 갤러리(Gallery): 골프 시합을 관전하러 온 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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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딤플(Dimple): 원래 보조개라는 뜻으로 볼 표면에 만든 옴폭한 모양을 일컫는다. 볼을 떠 올리거나 방향을 잡아 날아가게 하는 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즉, 골프채로 친 공은 회전하면서 날아가는데, 이때 딤플이 공기의 저항을 줄이는 효과를 내게 된다. 게다가 공 주위의 공기 흐름을 양력(뜨는 힘)으로 바꾸는 역할을 해 공의 비거리를 훨씬 늘어나게 한다. 골프공에는 약 300∼500개의 딤플이 있으며 제조사와 골프공 모델마다 그 크기와 개수가 다르다. 최근에는 무려 1000개가 넘는 딤플이 새겨진 골프공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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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41.html
kolaswqetsrq 11.03 04:25
페미니스트feminist

페미니스트(feminist)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페미니즘이란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나 사상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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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는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여기서 페미니즘은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구조로 인해 여성에게 주어지는 억압에 저항하여 성평등을 이룩하고자 하는 사상을 말한다. 이는 여성의 특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파생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페미니즘을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ᆞ경제ᆞ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라고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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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페미니즘 및 페미니스트 역사

한국에서 페미니즘 운동은 개화기 신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여성단체를 조직한 것에서 시작한다. 개화기 여성운동은 여성의 교육권 보장과 남녀의 교육 기회 균등을 중심으로 국채보상운동을 진행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며 1920년대 한국의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사회주의, 기독교 페미니즘 등 다양한 갈래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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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본격적인 여성운동 조직은 1927년 탄생한 근우회로 꼽힌다. 근우회는 근우 선언문에서 “조선에 있어서는 여성의 지위가 한층 저열하다. (중략) 우리의 앞길이 여하히 험악할지라도 우리는 일천만 자매의 힘으로 우리의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려 한다. 여성은 벌써 약자가 아니다. 여성은 스스로 해방하는 날 세계가 해방될 것이다. 조선 자매들아 단결하라!”고 외쳤다. 그러나 1928년 중반 이후 운동 노선상 갈등으로 기독교 여성들은 근우회를 탈퇴하고 독자적 노선으로 들어섰다. 한편, 이 시기 여권운동을 선도한 대표적인 페미니스트는 나혜석(1896~19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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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여성운동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반으로, 한국의 선구적인 여성운동 단체로 꼽히는 한국 여성의 전화가 1983년 설립되어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에 대한 반성폭력운동을 이끌었다. 1987년에는 한국여성민우회가 창립됐고, 이 시기 반성폭력운동의 결과로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고 1998년 여성특별위원회가 설치됐다.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는 2001년 1월 여성부로 격상됐고, 2010년에는 여성부를 개편해 여성가족부(여가부)가 발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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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페미니스트들은 호주제 폐지 성과를 이뤄냈다. 2000년 9월 137개 여성 및 시민사회단체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를 발족해 호주제 위헌소송을 준비했으며, 2005년 호주제 폐지를 중심으로 한 민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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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페미니스트들

여성을 남성과 동일한 이성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로 상정하며 여성의 자유를 주장한 대표적인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에는 나혜석, 김명순, 김일엽, 박인덕 등이 있었다.

한편, 마르크스주의를 내세우며 여성 해방에는 계급 해방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에는 허정숙, 주세죽, 정칠성 등이 꼽히며, 기독교 계몽운동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계열 페미니스트에는 김활란, 황신덕 등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feminist.html
kolaswqetsrq 11.03 04:26
한국의 특수부대

한국의 특수부대

특수부대는 특별히 편성·훈련된 인원으로 구성된 부대로 수색전, 첩보 활동, 비밀 작전, 파괴 공작, 심리전, 대테러전 등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부대를 가리킨다. 우리나라에는 육군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등의 특수부대가 있다.

○ 육군특수전사령부

한국전쟁 당시 대활약했던 북파공작부대인 켈로부대를 모체로 하여 1958년 4월 1일 제1전투단이 창설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특전사는 유사시 적진 깊숙히 침투해 게릴라전과 수색·정찰, 요인암살 및 납치, 인질 구출, 주요시설 폭파 등 각종 비정규전을 수행하며, 평시에는 무장공비 침투 시 대간첩 작전을 주도한다.

○ 707특수임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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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 특수부대로, 1981년 특전사 대원 중 정예요원만을 뽑아 창설됐다. 당시 서울이 1988년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됨에 따라 정부의 국가 대테러활동지침에 따라 대테러부대로 설립된 것이다. 평시에는 테러 진압을 주임무로 하며, 전시에는 고공 및 해상 침투를 통해 적후방을 교란하고 아군의 수월한 공격을 위해 적의 기선을 제압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야간투기경, 검은 마스크, 귀를 덮는 방탄모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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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과 해난구조대(SSU)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은 1955년 11월 창설된 해군의 특수전 부대이다. 초기에는 수중파괴 임무(UDT)만 수행했지만 현재는 폭발물 처리(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 육해공 전천후 특수타격(SEAL), 해상 대테러(CT) 임무까지 맡고 있다. 부대는1983년 부산 다대포 해안 침투 간첩선 탐색, 1998년 북한 유고급 잠수정 내부 수색작전,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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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SSU는 전군 최고 수준의 수중 작전 능력을 보유한 부대로, 1950년 9월 1일 해상공작대로 창설되었다가 1954년 8월 1일 해난구조대로 개칭하였다. 평시에는 인명구조 및 선체인양 등의 해난구조작전, 항공구조작전, 항공기·선박의 해양사고 규명 및 구조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전시에는 주요 항만 개항유지 지원 및 상륙작전 시 전투구조 임무를 수행한다. 1993년 서해 페리호 여객선 구조, 2002년 참수리 357호정 인양작전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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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특공대(868부대)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되면서 북한 특수부대에 의한 테러리즘과 국제 테러리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경찰청에 의해 1983년 창설되었다. 이후 2002년 월드컵에 대비하여 지방 경찰청에도 대테러리스트 특공대를 창설하여 운영중에 있다. 대테러와 폭발물 처리 등을 주임무로 한다.

○ 해병대 특수수색대

해병대사령부 직할 대테러 특수부대로 해상·수중·육상 특수작전에 투입돼 기존 해병수색대의 임무는 물론 대테러특수임무대 임무를 수행한다. 2018년 5월 1일 당시 해병대사령관이었던 전진구 중장(해사 39기)의 주도로 추진돼 사령부 직할부대로 창설되었다.

○ 공군 탐색구조비행전대(SART)와 공정통제중대(CCT)

공군 제6탐색구조비행전대는 1958년 8월 제33구조비행대대로 창설된 이후 1995년 전대급 부대로 확대됐다. 주 임무는 ▷전·평시 탐색구조 ▷임무 수행 중 조난당한 전투조종사나 주요 요인 구조이며, 이 외에도 육·해상 구조구난 임무, VIP공수, 화물공수, 격오지 및 서북도서 긴급환자 공수 등의 임무도 수행한다.

제5공중기동비행단 예하 공정통제중대는 활주로나 관제 시설이 없는 곳에 먼저 침투해 기상·풍향·풍속 등의 정보를 아군 수송기에 알려주고 수송기가 원하는 위치에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관제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 SDT(특수임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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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내부 강력범죄, 대테러 초동 조치, 요인 경호, 도심지 기동타격, 무장 탈영병 체포 등을 수행하는 군사경찰부대로, 보통 ‘특임대’로 지칭한다. 우리나라 육·해·공군, 해병대 모두 군사경찰 특수임무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각각의 부대명은 다르지만 보통 헌병특임대(SDT) 혹은 특별경호대(SGT)라고 불리며 헌병병과에서 운용한다. 이들은 일반 사병과는 다르게 전투복 외에 대테러복인 흑복을 입고 검정 방탄헬멧을 착용하는데, 군별로 약간씩 차이는 있다. 현재 가장 역사가 오래된 특임대 부대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헌병특임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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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54.html
kolaswqetsrq 11.03 04:29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수익비율(PER)

주가가 그 회사 1주당 수익의 몇 배가 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주가를 1주당 순이익(EPS: 당기순이익을 주식수로 나눈 값)으로 나눈 것이다. 주가수익비율(PER)은 주가가 그 회사 1주당 수익의 몇 배가 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주가를 1주당 순이익(EPS: 당기순이익을 주식수로 나눈 값)으로 나눈 것이다. 즉, 어떤 기업의 주식가격이 10,000원이라고 하고 1주당 수익이 1000원이라면, PER은 10이 된다.

PER(Price Earning Ratio) = 주가 / 1주당 당기순이익(납세후) = 주가 / EPS

이는 특정 기업이 얻은 순이익 1원을 증권 시장이 얼마의 가격으로 평가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수치인데, 투자자들은 이를 척도로 서로 다른 주식의 상대적 가격을 파악할 수 있다. 즉, 해당기업의 순이익이 주식가격보다 크면 클수록 PER이 낮게 나타난다. 따라서 PER이 낮으면 이익에 비해 주가가 낮다는 것이므로 그만큼 기업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PER이 높으면 이익에 비하여 주가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종별로 차이가 있고 절대적인 기준이 없지만 일반적으로 PER이 10 이하(주가가 1주당 순이익의 10배이내)일 경우 저PER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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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PER을 참고적인 기준 정도로 인식해 왔으나, 1992년 외국인 투자가 허용되면서 외국인들이 저 PER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이면서 저 PER주가 테마로 형성됐다. 이후 일반인들 사이에도 저 PER주 = 좋은 주식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그러나 2000년에 들어와서는 성장성이 투자판단의 가장 큰 지표로 작용하면서 인터넷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폭등하기도 했다.(당시 인터넷 주요기업의 PER는 30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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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이 높은 경우

1 주당순이익은 평균수준이지만 주가가 높은 경우와

2 주가는 평균수준이지만 주당순이익이 낮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경우 현재 이익보다 주가가 높다는 뜻이므로 시장에서 장래성을 인정받고 성장하는 기업의 경우가 해당하는데, 주로 첨단기술주가 이에 해당한다. 후자의 경우 경영에서 이익(주당순이익)이 낮기 때문에 PER이 높아진 경우이다.

○ PER이 낮은 경우

1 주당순이익은 평균수준이지만 주가가 낮은 경우

2 주가는 평균수준이지만 주당순이익이 높은 경우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경우 모기업 부도 등 외부요인이 많은 경우가 많고, 후자의 경우 주로 주식발행 물량이 적고 성장에 한계가 있거나 업계 경기 부진예상(예상수익률) 등의 영향이 있는 경우가 많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per.html
kolaswqetsrq 11.03 04:30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ebt Service Ratio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ebt Service Ratio)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의 소득 대비 전체 금융부채의 원리금 상환액 비율을 말하는 것으로, 연간 총부채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눠 산출한다.

모든 신용대출 원리금을 포함한 총 대출 상환액이 연간 소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대출 상환 능력을 심사하기 위해 금융위원회가 2016년 마련한 대출심사 지표이다. 주택담보대출 이외에 금융권에서의 대출 정보를 합산하여 계산한다.

총부채상환비율(DTI)은 소득 대비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에 신용대출 등 다른 대출의 이자를 더한 금융부채로 대출한도를 계산하는 반면 DSR은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뿐만 아니라 신용대출, 자동차 할부, 학자금 대출, 카드론 등 모든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모두 더한 원리금 상환액으로 대출 상환 능력을 심사하기 때문에 더 엄격하다. DSR을 도입하면 연소득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금융부채가 커지기 때문에 대출 한도가 대폭 축소된다. 이 DSR은 DTI 규제가 없는 수도권 이외 지역에도 적용된다.

○ DTI와 DSR 산출

• DTI = (주택대출 원리금 상환액 기타 대출 이자 상환액) / 연간 소득

• DSR = (주택대출 원리금 상환액 기타 대출 원리금 상환액) / 연간 소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debt-service-ratio.html
kolaswqetsrq 11.03 04:30
Z세대generation Z

Z세대(generation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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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젊은 세대를 이르는 말로, 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디지털 원주민) 세대라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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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출생한 젊은 세대를 이르는 말로, 밀레니얼 세대(Y세대)의 뒤를 잇는 인구 집단이다.

이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화가 혼재된 환경에서 자란 밀레니얼 세대와 달리, 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어 자라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디지털 원주민)’라 불린다. 인터넷과 IT(정보기술)에 친숙하며, TV‧컴퓨터보다 스마트폰, 텍스트보다 이미지‧동영상 콘텐츠를 선호한다. 아울러 관심사를 공유하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익숙하여 문화의 소비자이자 생산자 역할을 함께 수행한다.

한편, Z세대는 1990년대 경제 호황기 속에서 자라난 동시에, 부모 세대인 X세대가 2000년대 말 금융위기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안정성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zgeneration-z.html
kolaswqetsrq 11.03 04:31
죽창가竹槍歌

죽창가(竹槍歌)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고(故) 김남주 시인의 시에 화가 김경주가 곡을 붙인 노래이다. 가수 안치환이 부르면서 1980년대 대표적인 운동권 가요로 잘 알려져 있다.

죽창가는 동학농민운동과 전봉준을 기리기 위해 고(故) 김남주(1946~1994) 시인이 쓴 ‘노래’라는 시에 화가 김경주가 곡을 붙인 노래이다. "이 두메는 날아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진 녹두꽃이 되자 하네."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가수 안치환이 부르면서 1980년대 대표적 운동권 민중가요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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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의 모티브가 된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고종 31년) 동학교도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봉건·반외세 운동으로, 1894년 3월의 고부(백산) 봉기(제1차)와 9월의 전주·광주 궐기(제2차)로 나뉜다. 당시 변변한 무기가 없던 동학농민군은 대나무 끝을 예리하게 잘라 만든 죽창과, 대나무를 길게 잘라 둥글게 만든 장태(죽롱)을 주무기로 해 관군·일본군에 맞섰다. 하지만 신무기를 앞세운 관군을 이길 수 없었던 동학농민군은 1894년 11월 우금치전투에서 대패했고, 1895년 1월 전봉준·손화중 등 동학농민 지도부 대부분이 체포되고 교수형에 처해지면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전봉준의 죽음 이후 백성들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라는 노래를 불러 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을 표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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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창가 가사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진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웃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녁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97.html
kolaswqetsrq 11.03 04:32
마타도어matador

마타도어(matador)

흑색선전이라는 뜻으로, 투우사를 뜻하는 스페인어 「메타도르(matador)」에서 유래했다. 정치권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다.

근거 없는 사실을 조작해 상대를 중상모략하면서 내부를 교란시키기 위한 흑색선전을 뜻하는 말이다. 투우(鬪牛)에서 소를 유인해 정수리를 찔러 죽이는 투우사를 뜻하는 스페인어 「메타도르(matador)」에서 유래한 용어다.

마타도어는 주로 사설정보지(지라시)를 통해 구색을 갖춘 뒤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유포되는 경우가 많은데, 경우에 따라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정도로 파급력이 높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이에 대한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matador.html
kolaswqetsrq 11.03 04:32
부스터 샷Booster Shot

부스터 샷(Booster Shot)

백신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추가접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1회 접종으로 개발된 백신을 2회 접종하거나, 2회 접종으로 개발된 백신을 3회 접종하는 등 추가 접종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백신의 면역 효과를 강화하거나 효력을 연장하기 위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추가 접종을 하는 것을 뜻한다. 2020년 말부터 접종이 시작된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화이자·모더나 등 대부분의 백신이 2번 접종하는 방식인데, 여기에 한 번 더 추가해 3차 접종을 하는 것이 해당한다.

부스터샷은 미국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마친 접종자가 면역을 보강하기 위해 12개월 내 3차 접종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실제로 미국 정부의 백신 정책을 이끄는 데이비드 케슬러 보건복지부 코로나19 대응 수석과학담당자는 2021년 4월 15일 미 하원 코로나19 청문회에서 “백신의 추가 도스(1회 접종분) 가능성과 관련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또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 역시 백신을 맞은 뒤 1년 안에 세 번째 접종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 부족현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데, 미국이 3차 접종을 대비해 물량을 더 비축하려 들 경우 이를 확보하려던 다른 국가들의 경우 기존에 계약한 물량의 도입 시점마저 늦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ooster-shot.html
kolaswqetsrq 11.03 04:33
제페토ZEPETO

제페토(ZEPETO)

네이버제트(Z)가 운영하는 증강현실(AR) 아바타 서비스로, 국내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2018년 출시된 제페토는 얼굴인식과 증강현실(AR), 3D 기술 등을 이용해 ‘3D 아바타’를 만들어 다른 이용자들과 소통하거나 다양한 가상현실 경험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네이버제트(Z)가 운영하는 증강현실(AR) 아바타 서비스로,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여기서 메타버스는 가상현실(VR)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개념으로, 아바타를 활용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2018년 8월 출시된 제페토는 AR 콘텐츠와 게임, SNS 기능을 모두 담고 있어 특히 10대 등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2021년 현재 2억 명 이상의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제페토는 이용자와 꼭 닮은 3차원(3D) 아바타를 만든 뒤 AR 기술로 실제 사진이나 가상 배경에 자연스럽게 합성해 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우선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카메라로 자신의 얼굴을 촬영하면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사용자와 닮은 캐릭터가 생성된다. 사용자는 표정과 몸짓, 패션스타일은 물론 캐릭터의 모든 요소를 본인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 또 SNS 기능도 접목돼 있어 이용자끼리 여러 가상공간에서 문자·음성·이모티콘 등으로 교류할 수 있으며, 가상세계 안에서 이용자들이 모여 게임을 하거나 춤을 추는 등 다양한 활동도 즐길 수 있다.

제페토는 최근 유명 브랜드와 연예기획사와의 제휴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데, 국내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업체인 SM·YG·JYP·빅히트 등이 제페토를 통해 K-pop 등 다양한 콘텐츠를 내놓으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zepeto.html
kolaswqetsrq 11.03 04:34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중국 전역과 전 세계로 확산된,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에 의한 호흡기 감염질환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감염자의 비말(침방울)이 호흡기나 눈·코·입의 점막으로 침투될 때 전염된다. 감염되면 약 2~14일(추정)의 잠복기를 거친 뒤 발열(37.5도) 및 기침이나 호흡곤란 등 호흡기 증상, 폐렴이 주증상으로 나타나지만 무증상 감염 사례 빈도도 높게 나오고 있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뒤 중국 전역과 전 세계로 확산된 호흡기 감염질환이다. 초기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기 전염병으로만 알려졌으나, 세계보건기구(WHO)가 2020년 1월 9일 해당 폐렴의 원인이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 국제바이러스분류위원회 2월 11일 명명)라고 밝히면서 병원체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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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2020년 1월 21일 우한 의료진 15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며 코로나19의 사람 간 감염 가능성을 공식 확인했는데, 이 의료진 감염 여부는 사람 사이의 전염을 판별하는 핵심 지표로 알려져 있다. 이후 감염 확산세가 이어지자, WHO는 1월 30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그러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전 세계에서 속출하자 WHO는 3월 11일 홍콩독감(1968), 신종플루(2009)에 이어 사상 세 번째로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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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6명의 코로나19 환자로 부터 얻은 바이러스 고해상 전자현미경 사진(2020.2.27). 코로나바이러스 입자 크기: 80-100nm (출처: 질병관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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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환은 초기 우한 폐렴이라고 불려졌으나, 세계보건기구(WHO)가 2015년 내놓은 ▷지리적 위치 ▷사람 이름 ▷동물·식품 종류 ▷문화 ▷주민·국민 ▷산업 ▷직업군이 포함된 병명을 사용하지 말라는 권고에 따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불렸다. 그러다 WHO는 2020년 2월 11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공식 명칭을 COVID-19로 정했다고 발표했는데, 여기서 CO는 코로나(corona), VI는 바이러스(virus), D는 질환(disease), 19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병이 처음 보고된 2019년을 의미한다. 이에 우리 정부는 2월 12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한글 공식 명칭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국문 약칭 코로나19)로 명명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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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19covid-19.html
kolaswqetsrq 11.03 04:34
음성반응과 양성반응negative reaction, positive reaction

음성반응과 양성반응(negative reaction, positive reaction)

질병 감염 여부 등을 알기 위해 병원체 검사를 시행했을 때 피검체가 정해진 일정수치 이상이 나타날 때를 ‘양성’이라고 하고, 피검체가 일정수치 이하 또는 반응이 없을 때를 ‘음성’이라 한다. 따라서 병원체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해당 질병에 감염됐다는 뜻이다. 반면 질병항체 검사 시에는 항체가 있다면 ‘양성’으로, 항체가 없다면 ‘음성’으로 나오게 된다. 즉, 항체 검사 시 양성으로 나오면 항체를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므로,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도 된다.

병의 진단을 위해 병원체 검사를 시행했을 때 피검체가 정해진 일정수치 이상이 나타날 때 ‘양성’이라고 하고, 피검체가 일정수치 이하 또는 반응이 없을 때를 ‘음성’이라 한다. 만약 A 질병의 검사 결과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하면 해당 질병에 감염된 상태라는 것이며, 음성반응이 나왔다고 하면 해당 질병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예컨대 독감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를 진단하는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면, 피검체가 일정수치 이상이므로 독감에 감염됐다는 것이다. 또 메르스 검사 시 양성이라는 판정이 나오면 감염이 됐다는 뜻이며, 음성 판정이 나오면 메르스 환자가 아님을 뜻한다.

음성과 양성은 검사의 목적, 질병과 검사의 종류에 따라 그 의미에 차이가 있다. 즉, 질병 검사 시에 음성은 질병이 없는 상태를 뜻하지만, 질병항체 검사 시 음성은 우리 인체 내에 해당 질병균을 방어하는 항체가 없다는 뜻이 된다. 예컨대 예방접종 시 해당 항체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항체 검사를 시행하게 되는데, 항체가 있다면 ‘양성’으로, 항체가 없다면 ‘음성’으로 나오게 된다. 예컨대 A형간염 항체검사를 실시해 ‘양성’ 판정을 받았다면, 이는 인체가 A형간염 바이러스 항체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A형간염 예방접종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반면 음성으로 나오면 항체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므로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

○ 양성과 악성, 양성종양과 악성종양

양성과 악성은 우리 몸에 생기는 종양(멍울)을 구별할 때 나오는 용어로, 종양은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덩어리를 형성한 것을 말한다. 이는 양성종양과 악성종양으로 나뉘는데, 악성종양은 ‘암’을 말하며, 양성종양은 근종(근육층의 일부가 과다하게 증식)·선종(선상피에서 발생)·지방종(정상적 지방조직이 있는 피부 아래 조직에서 많이 발생)·섬유종(섬유, 결합조직으로 구성되는 종양) 등을 말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negative-reaction-positive-reaction.html
kolaswqetsrq 11.03 04:35
KTX-이음KTX EMU-260

KTX-이음(KTX EMU-260)

전기로 움직이는 저탄소·친환경 고속열차로, 2021년 1월 5일 서울 청량리~경북 안동 구간에서의 첫 운행을 시작했다. 최고 속도가 260km/h에 달하는 신형 준고속열차로 현대로템에서 제작하였으며, 가감속력과 수송능력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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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로 움직이는 저탄소·친환경 고속열차로, 현대로템에서 제작하였다. 2021년 1월 5일 중앙선 서울 청량리~경북 안동 구간(219.4km)을 시작으로 첫 운행을 시작했다. KTX-이음은 국민공모를 통해 지어진 명칭으로, 해당 열차는 국내 기술로 탄생한 최초의 동력분산식 고속차량이다. 이는 앞뒤에 동력차가 있는 동력집중식의 기존 KTX나 KTX-산천과 달리 열차에 동력 장치를 골고루 분산시켜 가감속력과 수송능력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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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차 제원 및 운행

KTX-이음의 최고속도는 시속 260km이며, 차체는 알루미늄 차체로 6칸이 1편성이다. 좌석 수는 381석(우등실 46석, 일반실 335석)으로, 차폭도 KTX-산천보다 넓은 3100mm이다. 아울러 KTX-산천이 2칸당 1개의 인터넷 설비가 구축돼 있던 것을 1칸당 2개로 4배 늘렸다.

KTX-이음은 청량리역에서 서원주역까지는 기존 강릉선 KTX와 동일한 구간을 운행하지만, 원주~제천 간 단선(58.2km)이 복선전철(44.1km)이 됨에 따라 서원주역부터는 신설 노선으로 제천역·영주역을 거쳐 안동역까지 운행한다. 정차역은 모두 9개로, 청량리·양평·서원주·원주·제천·단양·풍기·영주·안동역에 정차한다. 이 가운데 서원주역에서는 강릉선으로, 제천역에서는 충북·태백선으로, 영주역에서는 영동·경북선으로 환승할 수 있다.

○ 중앙선 서울 청량리역 ~ 안동역

KTX-이음의 소요시간은 청량리에서 출발해 원주까지 46분, 제천 1시간 6분, 단양 1시간 24분, 영주 1시간 43분, 안동역까지 2시간 1분이 걸리며 아직 복선화되지 않은 단양-단촌 구간이 완전히 개통되면 안동까지 1시간 30분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한편, KTX-이음의 투입으로 희방사 역은 폐지되고 새마을호 열차는 운행 중단과 더불어 기존 일반 열차도 운행횟수가 줄게 된다. 또 청량리에서 안동까지 운행되던 무궁화호는 영주역까지만 운행될 예정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ktx-ktx-emu-260.html
kolaswqetsrq 11.03 04:36
메타버스Metaverse

메타버스(Metaverse)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세계를 일컫는 말로, 1992년 미국 SF 작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메타버스는 5G 상용화에 따른 정보통신기술 발달과 코로나19 팬더믹에 따른 비대면 추세 가속화로 점차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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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는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를가리킨다. 메타버스는 가상현실(VR, 컴퓨터로 만들어 놓은 가상의 세계에서 사람이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첨단 기술)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개념으로, 아바타를 활용해 단지 게임이나 가상현실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현실과 같은 사회·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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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는 1992년 미국 SF작가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이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 언급하면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이 소설에서 메타버스는 아바타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가상의 세계를 가리킨다. 그러다 2003년 린든 랩(Linden Lab)이 출시한 3차원 가상현실 기반의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메타버스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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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메타버스는 초고속·초연결·초저지연의 5G 상용화와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즉, 5G 상용화와 함께 가상현실(VR)·증강현실(AR)·혼합현실(MR) 등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했고,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온라인 추세가 확산되면서 메타버스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metaverse.html
kolaswqetsrq 11.03 04:36
델타 변이 바이러스

델타 변이 바이러스

2020년 10월 인도에서 처음 발견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로, 당초 ‘인도 변이’로 불리다가 ‘델타 변이’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델타 변이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우려 변이(Variant of Concern)’ 중 하나로, 계통 분류체계는 B.1.617이다.

2020년 10월 인도에서 처음 발견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로, 당초 ‘인도 변이’로 불리다가 ‘델타 변이’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알파(α, 영국) 베타(β, 남아프리카공화국), 감마(γ, 브라질 )와 함께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우려 변이(Variant of Concern)’ 중 하나로, 계통 분류체계는 B.1.617이다. WHO는 변이 바이러스가 ▷기존의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전파성이 증가하거나 중증도에 변화가 있는 경우 ▷백신과 치료제 등의 유효성 저하가 확인되는 경우 ‘우려 변이’로 지정하고 있는데, 델타 변이는 2021년 5월 10일 우려 변이로 분류된 바 있다.

2021년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행되며 집단 면역으로의 과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델타 변이’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델타 변이는 기존 코로나19 백신으로 방어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지지만, 다른 변이 바이러스보다 전파 속도가 빠른 데다 더 심각한 증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인도를 비롯해 델타 변이가 확산된 지역의 코로나19 환자들은 복통, 메스꺼움, 구토, 식욕 상실, 청력 상실, 관절 통증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빠른 백신 접종률을 기록하고 있는 영국은 델타 변이에 의한 피해가 속출하자, 당초 2021년 6월 21일로 예정됐던 방역 규제의 전면 해제 시점을 7월 19일로 한 달가량 연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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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WHO는 당초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 대해 주요 발생 지역명을 따 영국 변이, 남아공 변이, 브라질 변이, 인도 변이 등으로 불렀다. 그러나 특정 지역과 국가를 차별하는 것을 막기 위해 2021년 5월 31일 ▷영국발 변이(B.1.1.7)는 알파(α)로 ▷남아프리카공화국발 변이(B.1.351)는 베타(β)로 ▷브라질발 변이(P.1)는 감마(γ)로 ▷인도발 변이(B.1.617.2)는 델타(δ)로 명명했다. 여기에 우려 단계보다 한 단계 낮은 관심 변이(Variants of Interest) 바이러스 6종에 대해서도 ▷엡실론(ε·B.1.427/B.1.429, 미국에서 발견) ▷제타(ζ·P.2, 브라질) ▷에타(η·B.1.525, 나이지리아) ▷세타(θ·P.3) ▷이오타(ι·B.1.526, 필리핀) ▷카파(κ·B.1.617.1, 인도)로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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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4:37
오늘의 운세2021년 7월 10일 토요일

오늘의 운세(2021년 7월 10일 토요일)



96년생 아무리 참신한 계획이 있어도 행동하지 않으면 쓰레기에 불과하다. / 84년생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위대한 정신에서 출발하면 하늘에 닿는다. / 72년생 물질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다. / 60년생 소심하게 생각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면 구하는 것을 얻기 힘든 날. / 48년생 한참을 망설이다가 발걸음을 옮기지만 멀리서 손을 내미니 기쁘다.



97년생 최선을 다하는 자세도 중요하나 조력자가 있어야 정상에 도달한다. / 85년생 주변 여건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상황이면 깃발을 올리자. / 73년생 근신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은 좋으나 지나치게 길어지면 곤란하다. / 61년생 곡간에 곡식이 가득한데 서생원이 득실거리니 난감한 일이 아닌가. / 49년생 바람결에 나뭇잎이 빠르게 흔들리지만 감당할 수 있으니 무방하다.

호랑이

98년생 말재주가 뛰어나면 얻는 것이 있으나 도를 넘기면 잃는 것이 많다. / 86년생 귀에 거슬리는 말도 새겨듣는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많이 힘든 날. / 74년생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임하면 모든 일에 여러 가지 난제가 해결된다. / 62년생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치고 좋으면 좋다고 크게 웃어야 행복해진다. / 50년생 아픈 곳을 숨기면 점점 깊어지니 여기저기 알리는 것이 좋은 방법.

토끼

99년생 지은 죄가 있어도 급할 때는 손을 내밀기 마련이니 다시 쳐다보자. / 87년생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어느 사람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법. / 75년생 정말 아쉬울 때 빵 한 조각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고마울 뿐이다. / 63년생 작은 기쁨을 안기는 사람과 같은 자리에 앉았으니 더없이 좋은 날. / 51년생 가까운 사람과의 인간관계는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마라.



88년생 눈은 높아도 몸은 낮은 곳으로 임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한 모습. / 76년생 자신의 의지로 맺어진 인간관계는 타인이 개입하지 않게 주의하라. / 64년생 수심이 깊어지면 상심으로 변하니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 시작하자. / 52년생 안 좋은 기억은 빨리 망각할수록 이로우니 절대 한곳에 있지 마라. / 40년생 옳다고 생각한 일이라면 돌아보지 말고 그대로 밀어붙여야 길하다.



89년생 상대방의 마음을 내 마음과 같이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바꿀 시점. / 77년생 관심을 가지면 적당한 시점이 되어 그에 따르는 변화가 생기는 날. / 65년생 옳은 것을 두고 아니라고 답하는 우매한 모습을 절대 보이지 마라. / 53년생 한적한 교외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는 시점이다. / 41년생 방금 행한 일에 대한 평가가 곧장 이루어지니 여러 가지로 힘들다.



90년생 모든 것이 내 손안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는 순간이 간혹 있다. / 78년생 손만 내밀어도 사람들이 내 손을 잡아줄 것 같지만 심한 착각이다. / 66년생 선점하지 않고서 성공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판단. / 54년생 불편한 사이라도 그냥 내버려 두면 세월이 흘러도 항상 그 자리다. / 42년생 바쁜 걸음으로 따라가지만 갈수록 격차가 더욱 벌어지니 안타깝다.



91년생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작위적일 때가 있으니 현실을 직시하라. / 79년생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한 후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 유익할 것 같다. / 67년생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행하면 답이 눈이 보인다. / 55년생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상태로 나서야 많은 것을 담는 운세. / 43년생 눈을 지그시 감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 마음이 허하다.

원숭이

92년생 기필코 해내고 말겠다는 굳센 의지가 있다면 높은 산을 넘는 운세. / 80년생 현실적인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드리면 여러 가지로 피곤하다. / 68년생 오래도록 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일이 얼마나 곤혹스러운지 느낀다. / 56년생 땅을 차고 일어서고 싶어도 지금은 그런 행동이 절대 이롭지 않다. / 44년생 시시콜콜 참견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모든 문제를 정리한다.



93년생 작정하고 덤비면 막을 방법이 딱히 없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라. / 81년생 개인주의가 팽배한 상황에서 엇박자를 낸다면 여러 가지로 힘들다. / 69년생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없는 상태로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곤란하다. / 57년생 밀고 당기는 상황에서 옆으로 빠지는 사람이 발생하면 백전백패다. / 45년생 답답한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심기가 극도로 불편할 수 있다.



94년생 요령을 피우는 것은 싫증이 났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 82년생 분출하지 못한 것이 있으나 그것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시점. / 70년생 누군가와 동사하거나 거래하는 것은 불리하니 오늘은 붙잡지 마라. / 58년생 외부적인 변화로 인해서 내부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유익하지 않다. / 46년생 무조건 자기 생각만 맞는다고 고집부리지 말고 사람들과 화합하라.

돼지

95년생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진리를 절대 잊지 마라. / 83년생 상대방의 반응이 좋으면 계속 밀고 아니면 다른 방법을 빨리 찾자. / 71년생 이것저것 얼기설기 얽힌 상태를 단번에 풀려고 애쓰지만 난감하다. / 59년생 지나간 시간이 아쉬워도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는 것이 정답. / 47년생 도리에 어긋나는 장면을 목격하지만, 무어라 간섭하기가 어렵구나.

♨ 자료 제공 : 해동철학원(010-3837-6108)

♨ 문의 메일 : mookam@hanmail.net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2021-7-10.html
kolaswqetsrq 11.03 04:37
오늘의 운세2021년 7월 9일 금요일

오늘의 운세(2021년 7월 9일 금요일)



96년생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기발한 아이템이 필요한 하루. / 84년생 가벼운 마음으로 움직이면 돌아오는 대답도 하나같이 무겁지 않다. / 72년생 귀퉁이에 붙어있는 무언가를 가운데로 옮기니 그 모습이 아름답다. / 60년생 적재적소에 알맞은 방법으로 대응하면 상당히 좋은 성과를 거둔다. / 48년생 무슨 일이든 약간의 위험성은 내포하고 있으니 담담하게 시작하라.



97년생 동편에서 서편으로 넘어가는 시점인데 힘에 부치니 안타까운 마음. / 85년생 생각이 바른 사람은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도 넘치는 일 절대 없다. / 73년생 숨어있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다면 좋은 성과를 거두는 날. / 61년생 가면을 벗어던지고 밖으로 뛰어나가니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본다. / 49년생 기차가 역에서 출발한 지 오래니 기다리지 말고 부지런히 달리자.

호랑이

98년생 옆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노를 저어가지만 쓰러지는 모양새는 없다. / 86년생 금전 문제가 머리를 무겁게 하는 운세지만 찾아보면 해결책은 있다. / 74년생 정상에 올라가 크게 소리치니 메아리가 되어 내 귓전을 때리는 날. / 62년생 엎질러진 물을 아까워하지 말고 다시 담을 물을 찾는 것이 먼저다. / 50년생 기다리는 마음이 무겁고 바라보는 눈동자가 깊어지니 한숨 나온다.

토끼

99년생 하나를 얻고자 기울인 노력이 태산과 같다면 포기할 수는 없는 것. / 87년생 보는 눈은 다들 비슷한데 느끼는 감정은 하나같이 같을 수가 없다. / 75년생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처럼 긴박하게 돌아가는 현실이 다소 버겁다. / 63년생 무거운 짐을 하나 들어내고 나서지만 남은 짐이 더 무겁게 보인다. / 51년생 건강에 좋다고 남용하면 오히려 부작용만 초래하고 건강에 해롭다.



88년생 사교성이 없다고 계속 옆으로 피하면 늘 그 자리에 혼자 서성인다. / 76년생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면 업신여김을 당한다. / 64년생 조용한 가운데 서서히 변화의 물결이 일렁이는 모양새가 포착된다. / 52년생 급진적인 모습은 지양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임하는 것이 현명하다. / 40년생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는 말이 있으나 그런 말은 부적절하다.



89년생 일정한 기준을 세우지 않은 상태로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은 모습. / 77년생 적당히 모자라고 적당히 잘난 모습으로 다가서야 부담이 없어진다. / 65년생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지되면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 53년생 챙길 것은 빨리 챙기고 서둘러 자리를 떠나는 것이 이로운 행위다. / 41년생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집안에 먹구름이 사라지고 햇살이 쏟아진다.



90년생 정성을 기울이면 그것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타나니 실망하지 마라. / 78년생 해가 저물기 전에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긴 여정을 끝내야 길하다. / 66년생 조용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는 그런 사건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 54년생 공통된 사안이 사라지면 사람들과의 대화의 폭이 갈수록 줄어든다. / 42년생 이런저런 일로 집안이 뒤숭숭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리를 잡는다.



91년생 같은 일을 하다 보면 경쟁자도 생기지만 조력자가 나타날 수 있다. / 79년생 능력이 있고 없고는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라 타인이 판단한 문제. / 67년생 사려분별이 아무리 좋아도 가끔은 실기할 때가 있었으니 오늘이다. / 55년생 책은 서재에 가득하지만 정작 필요한 책이 없어 긴 한숨만 나온다. / 43년생 집안이 편안하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얼굴이 밝으니 기운이 넘친다.

원숭이

92년생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는 그런 느낌으로 천천히 시작하자. / 80년생 기반이 아무리 탄탄해도 방해자가 있으면 갖가지 구설이 난무한다. / 68년생 내가 소유한 것이 누구에게 유익하게 쓰일 수 있다면 빨리 건네자. / 56년생 피곤한 몸으로 움직이면 사람들에게 부담감을 주니 한곳에 머물자. / 44년생 내가 결정하지 않으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버리자.



93년생 동등한 입장과 상반된 관점에서 말하는 것에 차이가 있는 건 당연. / 81년생 불변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기운이 솟는다. / 69년생 껍질이 없으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상당한 고통이 엄습해오는 법. / 57년생 이리저리 자주 움직이면 부산하기만 하고 얻는 것은 전혀 없는 날. / 45년생 주장이 많으면 시간이 지체되고 시간이 지체되면 얻는 것이 없다.



94년생 감상적인 마인드에서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점점 수렁으로 빠진다. / 82년생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있는데 주인이 없으니 시간만 자꾸 간다. / 70년생 내가 먼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주변의 시선들이 매섭다. / 58년생 한적한 거리에서 잠시 쉬어갈 자리를 발견하지만, 동승자가 있구나. / 46년생 오르지 못할 나무가 앞에 있으면 옆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은 선택.

돼지

95년생 생각이 많으면 마음에 그림자가 생기고 여러모로 심란해지는 운세. / 83년생 걸림돌이 사라지기 이전에 힘을 축적하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한다. / 71년생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전장에 꼬리표가 달라지는 날. / 59년생 숨기고 싶은 부분이 있거든 오히려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강해진다. / 47년생 당사자가 아니면서 무리하게 나서는 것은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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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4:38
오늘의 운세2021년 7월 8일 목요일

오늘의 운세(2021년 7월 8일 목요일)



96년생 누군가의 눈길이 강렬하게 어필되는 시점이 바로 오늘이 아니던가. / 84년생 무리하지 않고 차분하게 진행하면 무슨 일이든지 무난하게 이룬다. / 72년생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거든 머뭇거리지 말고 빠르게 움직이자. / 60년생 이상적인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여러모로 유익하게 작용하는 운세. / 48년생 심신이 피곤하면 건강에 무리가 올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상책.



97년생 한가하게 노닐다가 갑자기 바쁘게 돌아가니 정신없이 헤매는 하루. / 85년생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파악했다는 식의 생각은 매우 위험한 판단. / 73년생 주어진 것에 대해 부족함은 있으나 억지로 보완하려면 불편해진다. / 61년생 스스로 깨닫기 전에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현상. / 49년생 오랜 시간이 지나 묵직한 것을 들어내니 몸도 마음도 마냥 가볍다.

호랑이

98년생 모르는 사람과의 조우가 생각지 않은 사건을 만들 수 있는 운세다. / 86년생 생각의 깊이도 중요하고 폭도 중요한데 하나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 74년생 마땅한 대안이 없을 때는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 / 62년생 자리를 비워두면 다른 사람들이 와서 차지하니 아무래도 불안하다. / 50년생 정도를 넘어서는 행동이나 말은 자신과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토끼

99년생 그윽한 향기에 취해서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못 잡고 헤매는 하루. / 87년생 불만을 토로하기에 좋은 날이지만 성급하게 움직이면 많이 잃는다. / 75년생 열정적인 몸짓으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휘어잡을 수 있다. / 63년생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일의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 51년생 하는 일에 약간의 막힘은 있으나 비교적 간단하니 걱정할 것 없다.



88년생 좋은 인상만 남기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 76년생 사람들과 같은 주제로 토론하면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할 시점이다. / 64년생 가슴으로 전하는 말은 귀로 듣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휘파람이다. / 52년생 하는 일에 풍파가 닥칠 가능성이 크지만, 조력자의 도움이 큰 운세. / 40년생 명분이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자리라도 흔쾌히 수락하고 출발하자.



89년생 가는 사람도 많고 오는 사람도 많은데 내 사람이 누군지 찾아보자. / 77년생 마찰음이 발생하기 전에 거리를 두고 유연하게 대처하면 대길하다. / 65년생 잘게 썰지 말고 한 번에 굵직하게 썰어내는 것이 여러모로 이롭다. / 53년생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 되면 소망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 41년생 뜻하지 않은 재물이 들어오지만 오래 머물지 않을지는 알 수 없다.



90년생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모든 사람과 소통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 78년생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과는 절대 동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 66년생 햇빛을 오래 보지 못하면 사업적 감각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 있다. / 54년생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무슨 일을 시작하든 여러 가지로 힘든 하루. / 42년생 작은 정성으로 다가오지만 그 감동이 백배는 될 것 같은 기분이다.



91년생 준비에 철저하면 어떠한 변수가 찾아와도 적절하게 대응하기 쉽다. / 79년생 느림의 미학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지만 지나치면 부작용이 난다. / 67년생 친목 도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결코 헛된 시간 투자 아니다. / 55년생 안정을 도모하지 말고 보다 도전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이 더 좋다. / 43년생 집안이 편하고 몸 상태도 생각보다 좋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있나.

원숭이

92년생 불러주는 사람은 없어도 가야 할 곳이 너무 많아 머리가 복잡하다. / 80년생 생각이 많은 것은 결코 자신에게 이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 / 68년생 부부간에 권리만 주장하는 모습은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 아니던가. / 56년생 강온양면을 골고루 지니고 싶지만, 그것은 너무나 과다한 욕심이다. / 44년생 믿는 구석이 있으면 몸도 마음도 없는 사람보다 훨씬 더 편안하다.



93년생 주변의 여론이 자신에게 불리한지 유리한지 그것을 자세히 살피자. / 81년생 완충지역이 있다면 그곳으로 몸을 옮기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다. / 69년생 쌓여둔 것이 있으면 흘러가는 길목을 만들거나 내부에서 해결하자. / 57년생 거름이란 밭이나 논에도 필요하지만, 사람에게 거름도 필요한 요소. / 45년생 눈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보이거든 붙잡지 말고 편안하게 보내주자.



94년생 부질없는 행동이라도 아주 가끔은 유익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 82년생 위치가 높거나 낮거나 다양한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보라. / 70년생 어떠한 잣대로 가늠할 것인지 그것부터 분명하게 정하면 편안하다. / 58년생 한걸음 앞서가는 사람이 보이거든 그 사람에게 응원가를 불러주자. / 46년생 모든 것은 나누면 나눌수록 그 힘이 세지니 마음을 조금만 비우자.

돼지

95년생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것은 좋으나 지나치게 자유로우면 곤란하다. / 83년생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고 무조건 멀리하지 말고 자세히 보고 하자. / 71년생 기둥에 묶어놓은 동아줄도 오래되면 세월의 무게를 감당키 어렵다. / 59년생 인지도가 미미한 것에 몰입하지 말고 서너 걸음 뒤에 서서 살피자. / 47년생 눈에 익은 것이 있어도 덤비지 말고 차분하게 앞뒤를 재고 덤비자.

♨ 자료 제공 : 해동철학원(010-3837-6108)

♨ 문의 메일 : mookam@hanmail.net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2021-7-8.html
kolaswqetsrq 11.03 04:38
거기 당신!

거기 당신!

내일은 아침 꼭 챙겨 먹어요

아프면 미루지 말고 병원에 가고요

피곤하다고 빈속에 커피 마시는 거 그만하고요

스트레스받는다고 담배 자꾸 피우지 말고요

추우니까 따뜻하게 입는 거 잊지 말아요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

아프지 말아요, 제발!

 "
-오늘, 내 마음을 읽었습니다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42.html
kolaswqetsrq 11.03 04:39
우리 웃으며 살아요

우리 웃으며 살아요

오늘의 시련이 힘겨워

절망의 나락 끝으로

다다를 때 오늘이 끝이

아니라 내일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을 참으로 잘 인내 하여

내일을 맞는다면 어제보단

오늘이 내일 보단 그 다음날이

놀랄 정도로 가벼워짐을

느끼면 좋겠어요.

사람에게 감당하지 못할

고통을 주시지 않는것 처럼

오늘이 힘들더라도

내일은 덜 힘들거란

믿음으로 우리 웃으며 살아요.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면

인내하는 요령도 생기고

여유있는 자신감도 생겨

힘차게 살아가면 좋겠어요.

우리 웃으며 살아요.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니까요.

 "
-좋은글 모음 160 가지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13.html
kolaswqetsrq 11.03 04:40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남몰래 간직해온 그리움을

하나둘씩 삭히는 일이다.

결코 내게 오지 않는 사람을

결코 내게 오지 않는 시간을

결코 내게 오지 않는 희망을

하나둘씩 비리는 일이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꿈을 키우기도 하지만

꿈을 버리기도 하는 일이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며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나이를 제법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우리는 저 마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숫자라는 훈장을

텅빈 가슴속에 대롱대롱 달고 산다.

 "
-운명처럼 다가온 그대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44.html
kolaswqetsrq 11.03 04:40
많은 것을 가지려 할 때

많은 것을 가지려 할 때

걱정은 늘어난다.

걱정이 물밀듯 밀려오더라도

두려워하거나 조급하게 굴지 말자.

느긋하게 책을 읽고 좋아하는 노래를 연거푸 들으며

긴 호흡으로 천천히 밀어내자.

기다림도 걱정을 떠나보내는데 대한 예의니까.

 "
-괜찮은 위로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45.html
kolaswqetsrq 11.03 04:41
오늘의 좋은 글

오늘의 좋은 글

진정성 담은 말 한마디로 희망의 싹 틔워 열매 맺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자.

 "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되고,
",
 "
역경을 거꾸로 읽으면 경력이 되고,
",
 "
인연을 거꾸로 읽으면 연인이 되고,
",
 "
내 힘들다를 거꾸로 읽으면 다들 힘내가 된다.
",

오늘도 희망을 품고 힘내세요

 "
-재치 있는 말 한마디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69.html
kolaswqetsrq 11.03 04:41
행복한 하루

행복한 하루

하루라는 상자 안에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그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루가 낮과 밤으로 구분되고 밤을지나 새벽이 오고

드디어 아침이 오면 우리는

‘하루‘라는 선물을 받습니다.

이 선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누구에게나 특별합니다.

시간을 볼 때는 똑같지만

그 안에 지기만의 감정. 생각이 가득하니까요.

 "
-토닥토닥 힘내세요, 당신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22.html
kolaswqetsrq 11.03 04:42
말한 마디가

말한 마디가

긴 인생을 만듭니다

짧은 말 한 마디가

긴 인생을 만듭니다.

무심코 들은 비난의

말 한마디가

잠 못 이루게 하고

정(情)담아 들려주는

칭찬의 말 한마디가

하루를 기쁘게 합니다.

위로의 말 한 마디가

상한 마음 아물게 하며

전하지 못한 말 한 마디가

평생 후회하는 삶을

만들기도 합니다.

짧은 말 한 마디가

긴 인생을 만들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긴 인생이 짧은

말 한마디의 철조망에

갇혀서도 아니됩니다

정(情)담은 한마디 말이

행복한 하루가 됩니다

 "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88.html
kolaswqetsrq 11.03 04:42
주변에서 많이들 걱정해요.

주변에서 많이들 걱정해요.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어떻게 사냐고.

네. 사실은 저도 걱정돼요.

그런데요. 그렇지만요.

살면서 한 번쯤은 하고 싶은 일에

다 걸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나요?

그래야 더 나이 들었을 때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우리 그냥,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요.

어차피 내 인생인 걸요.

 "
-마음에 들어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25.html
kolaswqetsrq 11.03 04:43
나는 죽을 때까지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의 궤적을 따라가보면

재미 없는 나이가 어디있으랴

인생은 어느 시기건

그 알맞은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그것을 충분히 느끼며

산다면 성공한 인생이다.

 "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62.html
kolaswqetsrq 11.03 04:44
살다 보면

살다 보면

향기로운 꽃길을 거닐 때도 있고

가시가 돋친 길을 거닐 때도 있더이다.

살다 보면

시련의 아픔을 겪으며

절망의 회오리에 휘청일 때도 있고

가슴 씁쓸함에

헛웃음 칠 때도 있더이다.

살다 보면

가슴은 슬피 울고

얼굴엔 미소를

지어 보일 때도 있더군요.

산다는 건..

정답을 알 수 없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더이다.

삶은

끝없이 갈증을 느끼며

목마름의 샘물을 찾아

세월의 바람에 순응하며

순간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순리대로 현명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을..

보이는 겉모습으로 판단하려 하고

화려한 겉치장으로 꾸며본들

손으로 태양을 가려도

손가락 사이로 스미는

햇살을 가릴 수 없고

곱게 포장을 하여도

내면에 흐르는

본연의 모습은 숨길 수가 없음을

살다 보면 알게 되더이다.

살다 보면

세상살이 버거워도

깊고 깊은 어둠이 걷히면

찬란한 아침 햇살이 빛나고..

 "
-가끔은 그렇게 살고 싶다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04.html
kolaswqetsrq 11.03 04:44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곤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곤 합니다.

누구는 마음이 착하고

누구는 멍청하며

누구는 사악하고

누구는 총명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항상 변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란 흐르는 강물 같아

하루하루가 다르고 새롭습니다.

어리석었던 사람이 현명하게 되기도 하고

악했던 사람이 진실로 착하게 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을 책망하는 순간

그 사람은 다르게 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공부가 되는 톨스토이 단편선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52.html
kolaswqetsrq 11.03 04:4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난 오늘 하루를 어떤 기분으로 시작할지 선택할 수 있다. 만약 나쁜 일이 생긴다면? 화를 내는 것과 웃어넘기는 것 중 어느쪽을 택할래?

삶은 언제나 두 가지 선택이죠. 둘 중 어느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양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난 되도록이면 항상 좋은 쪽, 행복한 쪽, 기쁜 쪽으로 기웁니다.

인생의 희로애락은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오늘 나무를 흔든다해도 내일 떨어질 낙엽은 반드시 내일 떨어지는 법, 세상의 일을 예측할 순 없지만 매일매일을 행복하고 기쁘게 살기로...!

기쁨은 스스로 일깨워야 하는 것이고 행복 또한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난들... 즐겁지 않을 때 당연히 있고, 순탄하지 않을 때 있지만 우리 모두 사람이기 때문에 고통과 상처 또 괴로움에서 자유롭진 못하죠 그럴때마다 내가 자주 하는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이 아닌 긍정인 면에 집중해야죠. 그 때 비로소 인생의 향기로운 꽃 피어날 겁니다.

 "
-느리게 더 느리게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99.html
kolaswqetsrq 11.03 04:45
참 마음 편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참 마음 편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대

삶의 언저리에서

가끔씩 감당키 어려운 무게로 인해

두 어깨가 쳐저 있을때

언제든지 찾아가

아무런 말한마디 없이

엷은 미소만 보내도

다시금 힘을 얻을수 있는

참 마음 편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과의 얽히고 설킨

인연속에서 서로 정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동안

하찮은 일로 속이 상해

아픈 마음 ! 달래지 못하고 있을때

살며시 다가가 아무 말없이

등만을 토닥여 주어도

바로 마음의 평정을 찾을수 있는

참 마음 편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느 누구나

가슴에 비밀 하나쯤은

묻어두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 비밀스런 마음의 풍경마저

아무 꺼리낌 없이 다 보여 주어도

자존심이 상하거나

수치스러움을 느끼지 아니하고

오히려 비밀의 문을 열어 놓음으로서

더 답답하지 않을

참 마음 편한 사람이 되고싶습니다.

그리하여 참 마음 편안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
-잊혀지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30.html
kolaswqetsrq 11.03 04:46
모든게 내 안에

모든게 내 안에

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이웃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역시 행복한 일임이 틀림

없을 것 입니다.

생각해보면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또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생각의 한끝차입니다.

만족을 아는 사람은 비록 가난해도

부자로 살 수 있고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많이 가졌어도 가난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불행하게 느끼느냐

행복하게 느끼느냐는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지혜의 문제입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남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조건 속에서도 만족함을

발견해 내고,

어리석은 사람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조건 속에서도 눈물을 흘립니다.

남들이 보잘 것 없다고 여길지라도

내가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갖는다는 것

또한 행복한 일입니다.

지나간 일에 매달려 잠 못 이루지 말고

잊을 것을 빨리 잊도록 해야 합니다.

행복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더욱 튼튼하게 자랍니다

 "
-아름다운 가치사전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322.html
kolaswqetsrq 11.03 04:47
상대가 웃으면

상대가 웃으면

나도 웃을 수 있고

상대가 즐거우면

나도 즐거운겁니다.

원하는 것을 받기 전에

원하는 것을 먼저 주십시오.

미소, 인사, 친절, 상냥한 말투,

돈으로 살 수 없는 이러한

가치들을 상대에게 준다면

당신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인생을 빛나게 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열쇠입니다.

상대는 곧 나입니다.

 "
-내 마음 들었다 놨다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85.html
kolaswqetsrq 11.03 04:47
여유를 몸에 익히자

여유를 몸에 익히자

꽃씨를 심어 놓았다면

꽃이 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꽃은 우정입니다.

우정의 관계에서 서둘러 좋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믿음의 씨앗을 심어 놓았다면

일정기간 동안은 무심해도 됩니다.

조급하게 우정의 댓가를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작은 것을 얻으려다

정작 큰 것을 놓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달란트 이야기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14.html
kolaswqetsrq 11.03 04:48
누구에게나 하루는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리움을 간직한 사람에게는 하루가

길게 느껴질 것이고,

방학을 맞이한

초등학생에게는

하루가 너무나

짧을 것입니다.

당신의 하루는 몇시간입니까?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

최선을 다해

10분 더 사랑하고

10분 더 그리워하고

10분 더 아름답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환하게

웃는 날이 올 것입니다.

 "
-마음한테 지지 마라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29.html
kolaswqetsrq 11.03 04:48
인생은 커피 한잔

인생은 커피 한잔

처음에는

뜨거워서 못 마시겠더니

마실만하니 금방 식더라.

인생도 그렇더라.

열정이 있을 때가

좋을 때이다.

식고 나면 너무 늦다....

커피는

따뜻할 때 마시는 것이

잘 마시는 것이고

인생은

지금 이순간에 즐겁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알 때쯤

사랑은 변하고

부모를 알 때쯤

부모는 안계시고

자신을 알 때쯤

많은 걸 잃었다.

흐르는 강물도

흐르는 시간도 잡을 수 없다.

모든게

너무 빨리 변하고

지나간다.

우린 항상 무언가를

보내고 또 얻어야 한다.

있을 때 잘하자.

매일 서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
-이동연 나를 찾아가는 마음의 법칙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37.html
kolaswqetsrq 11.03 04:49
손이 손을 찾는다

손이 손을 찾는다

손이 하는 일은

다른 손을 찾는 것이다

마음이 마음에서 지고

내가 나인 것이

시끄러워 견딜 수 없을 때

내가 네가 아닌 것이

견딜 수 없이 시끄러울 때

그리하여 탈진하여

온종일 누워 있을 때 보라

여기가 삶의 끝인 것 같을 때

내가 나를 떠날 것 같을 때

손을 보라

왼손은 늘 오른손을 찾고

두손은 다른 손을 찾고 있었다

손은 늘 따로 혼자 있었다

빈손이 가장 무거웠다

겨우 몸을 일으켜

생수 한 모금 마시며 알았다

모든 진정한 고마움에는

독약 같은 미량의 미안함이

묻어 있다

고맙다는 말은

따로 혼자 있지 못한다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엊저녁 너는 고마움이었고

오늘 아침 나는 미안함 이었다

손이 하는 일은

결국 다른 손을 찾는 것이다

오른손이 왼손을 찾아

가슴앞에서 가지런해지는 까닭은

빈 손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

미안함이 그토록 무겁기 때문이다

 "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88.html
kolaswqetsrq 11.03 04:49
마음을 비우면

마음을 비우면

가끔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아주 멋쩍은 웃음과 씁쓸한 미소가

더없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아마도 그 순간

마음을 비웠기 때문이리라

마음을 비우면 모든 것이 신비롭다

바람 한 점에도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뿐만 아니라

내가 곧 하늘이요, 땅이요,

천둥 벼락임을 안다

마음을 비우면

물소리가 물소리 아니요

바람 소리가

바람 소리 아니다

일체 만물이 그대의 숨소리이다

 "
-바람에게 길을 물으니 네 멋대로 가라 한다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59.html
kolaswqetsrq 11.03 04:50
웃어요

웃어요

바위도

웃으며 사는데

인생 뭐

별거 있나요?

쇠를 재단하는 사람

어떤 삶도

잘라내야 하는 시점이 오면

온몸에 불꽃이 튀는

아픔을 견뎌야 한다.

용접공 그녀

장밋빛 꿈 대신 매달 날아드는 고지서

용접 불꽃으로 시뻘겋게 태우며

허점 많은 인생 접붙여도

내 삶은 좀처럼 행복과 용접되지 않는다.

명퇴 이후

한창

푸르러야 할 계절임에도

나의 시침과 분침은 겨울에

딱 멈춤

파도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넘어지고 넘어지며

또 넘어져도

저렇게 달려 나오겠는가?

너에게 달려가는 나도 그렇다.

-이시향 디키시집 ‘우주정거장’ 중-

※ 詩人 이시향은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2003년 계간 ≪시세계≫에 시, 2006년 ≪아동문학평론≫에 동시, 2020년 ≪시와편견≫에 디카시로 등단한 이후 디카시집 피다 와 동시집 등 여러 권의 책을 내며 다방면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디카)와 시를 결합하여 줄인 말인 디카시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를 포착한 순간 그 감흥이 날아가기 전에 사진으로 찍고 문자로 써서 결합한 다음 SNS에 올려 실시간으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영상 언어와 시라는 문자 언어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31.html
kolaswqetsrq 11.03 04:51
심장마비 걸리기 전 몸이 보내는 신호

심장마비 걸리기 전 몸이 보내는 신호

심장마비는 어느날 갑작스레 생기는 것 같지만, 사실 30일 전부터 몸에서 위험하다는 경고신호를 보낸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하버드대학 연구에 따르면 심장마비 증상이 예고없이 오는 경우는 10명 중 2명 정도로 그 수가 적답니다.

1. 이유없는 피로

집에서 침대커버를 정리하거나 가볍게 샤워 하는 것만으로 몸이 피곤하면 이는 심장마비 전조증상일 수 있어요. 특히 이런 비정상적인 피로감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흔해요

2. 복통, 소화불량

소화불량·복통 같은 증상은 평소 누구나 겪죠. 하지만 심장질환으로 인해 나타날 수도 있는데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나타나요. 미국질병관리본부 통계에 따르면 복통환자의 50� 심장마비를 진단받아요.

3. 숨이 가쁜 증상, 현기증

심장이 충분한 산소를 보내지 못할 때 숨이 가쁜 증상이 나타나는데 혈관이 막혔다는 신호일 수 있어요.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숨이 찬다면 위험한 징조입니다. 숨가쁨은 6개월 전부터 나타날 수 있어요.

4. 과도한 식은땀

 "
식은땀도 심장마비의 초기 증상일 수 있어요. 특히 여성은 폐경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데요. 심장마비 전조증상 경우는 밤에 더 땀을 많이 흘려요.
",

5. 무기력

 "
기력이 떨어지는 것은 근육 내 산소 부족이 원인일 수 있는데요. 무기력증은 보통 심장마비 증상 중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곤 해요.
",

6. 불면증 수면장애

 "
불면증은 심장마비와 뇌졸중의 위험과 관련이 큰데요. 특히 여성에게 더 흔하게 나타나요. 심장마비를 일으킨 사람은 수개월 전부터 불안감과 불면증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

7. 가슴 통증

심장마비를 겪은 대부분은 짖누르는 가슴통증이나 불편함을 경험해요. 일부는 큰 가슴통증이 없이 가슴 근처 부위에 압박감이나 쥐어짜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요. 심장근육이 충분한 산소공급을 받지 못하는 신호에요.

 "
-건강뉴스 매거진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99.html
kolaswqetsrq 11.03 04:51
다리가 무거운 느낌의 예방 및 완화를 위한 비결

다리가 무거운 느낌의 예방 및 완화를 위한 비결

다리가 무거운 느낌을 예방하기 위한 주된 해결 방안은 생활 방식의 변화이다. 상태를 예방하거나 문제가 나타날 시 발생할 수 있는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조치는 다음과 같다.

• 다리를 위로 올리기: 하루에 2~3회씩 최소 30분간 다리를 위로 올리자.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지 않고 안락의자에 받쳐 엉덩이 높이보다 위로 올려야 한다. • 매일 최소 30~60분씩 운동하기: 다리로 웨이트를 들어 올리는 운동은 피하자. 전문가는 수영, 자전거 타기, 필라테스 또는 요가와 같은 유산소 활동을 권장한다. • 과체중 예방: 저칼로리 식단을 따르자. • 열원과 지나친 햇볕 노출 피하기: 찬물 목욕이 도움이 될 수 있다. • 잘 때 다리를 10~20cm 정도 위로 올리기 • 딱 붙는 옷이나 신발 착용하지 않기: 피부가 호흡할 수 있도록 천연 섬유로 만든 옷을 착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신발의 일부 굽이 유익할 수도 있지만, 하이힐은 피해야 한다. • 변비 예방: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일일 배변 패턴을 정하자. • 혈압 관리 • 발을 올린 상태에서 마사지하기: 이는 혈액 순환을 돕고 발목의 체액 축적을 줄인다.

다리가 무거운 느낌이 들면 의료 전문가는 압박 양말이나 붕대와 같은 치료법을 제안할 수 있다.

○ 다리가 무거운 느낌에 대한 치료

다리가 무거운 느낌은 심각한 상태가 아니지만 점차 흔해지고 있다. 현재로서 의료 전문가는 다음과 같은 치료법을 권장한다.

• 압박 요법: 탄력 압박 붕대나 양말로 다리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적절한 압박, 크기, 모델을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하다. • 수치료법: 샤워를 할 때 찬물 마사지를 병행하거나 찬물과 미지근한 물을 번갈아 가며 사용해야 한다. 이는 정맥 순환을 자극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식물 요법: 일부 약용 식물은 혈액 순환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전문가가 권장하고 약사가 감독하는 약초만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일부 예시를 들자면 은행나무, 버처스브룸, 위치하젤 등이 있다. • 약: 항상 의사의 처방에 따라 정맥 환류를 개선하는 정맥 긴장제를 투여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 혈관 수술: 매우 심한 사례에서만 수행된다.

요컨대, 다리가 무거운 느낌은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첫 증상이 나타나면 의사와 상담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닥터스 매거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67.html
kolaswqetsrq 11.03 04:52
계란으로 건강 지키는 10가지 방법

계란으로 건강 지키는 10가지 방법

01. 계란을 하루 두 알 씩 꾸준히 섭취하면 건강에 좋다. - 3대 필수 영양소는 물론 두뇌에 좋은 콜린, 레시틴 등 몸에 좋은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있어 건강관리에 좋다.

02. 단백질이 부족하기 쉬운 노인층에게 계란은 보약이다. - 김치, 나물 등 단백질이 부족한 식사를 하기 쉬운 노년층이 계란을 섭취하면 콜레스테롤이 낮아지고, 균형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03. 체력관리가 중요한 직장인에게 계란은 영양제다. - 아침을 거르기 쉬운 바쁜 직장인들이 아침, 오후 하루 2회 정도 계란을 섭취하면 체력 관리에 도움이 된다.

04. 공부하기 전 계란을 먹으면 콜린, 레시틴 성분이 두뇌발달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 노른 자 속의 콜린, 레시틴 성분이 두뇌 발달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05. 계란에는 엽산, 칼슘, 철분이 들어있어 임산부 건강관리에 좋다. - 한 생명이 태어나는데 필요한 모든 영양소가 들어있는 계란은 임산부와 태아의 건강관리에 좋다.

06. 계란에 들어있는 루테인 성분은 눈 건강에 좋다. - 계란에 들어있는 루테인 성분은 자외선을 흡수해 고도근시 및 눈부심 개선에 좋다.

07. 모유에 가까운 계란 단백질은 다이어트에 좋다. - 배고픔을 느끼는 것과 관련된 호르몬인 그렐린의 수치를 낮춰 포만감을 높여주고 식욕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계란의 단백가는 100으로 식품 중 모유에 가장 가깝다.

08. 술자리 전엔 안주로, 술자리 다음 날 숙취해소제로 계란을 먹으면 좋다. - 간에서 알콜을 분해할 때 꼭 필요한 아미노산인 메치오닌이 많이 들어있어 약해진 간의 회복력을 높여준다.

09. 계란은 라이코펜 성분이 풍부한 토마토와 함께 먹으면 좋다. - 계란에 암을 예방하는 라이코펜 성분이 풍부한 토마토 등과 함께 먹으면 좋다.

10. 면에 계란을 넣으면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고, 나트륨의 짠맛을 중화시켜준다. - 면을 먹을 때 계란을 같이 넣으면 부족한 영양을 보충해주고, 짠 맛을 중화시켜준다

-‘건강 이야기‘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10_46.html
kolaswqetsrq 11.03 04:52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주방 꿀팁 15가지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주방 꿀팁 15가지

1. 김! 안 눅눅 하게 보관 하는 방법

신문지에 김을 넣고 공기가 안 통하도록 잘 싼 후, 김을 다시 한번 비닐 팩에 넣습니다. 또한 김을 냉장실이 아닌 냉동실에 넣어 보관 하면 공기 중의 수분을 막아 색이 변하지도 않고 오래도록 바삭 바삭한 김을 먹을수 있답니다.

2. 마늘 쉽게 까는 방법

1) 스텐레스 볼에 통 마늘을 넣어 주세요 2) 그 위에 스텐레스 볼을 덮어주세요 3) 마구 흔들어 주세요

3. 양파를 썰 때 눈이 맵지 않게!

양파를 미지근한 물에 살짝만 담궈 두었다가 썰면 눈이 맵지 않아요 또 양파를 썰다 눈물이 날 때엔 냉장고 문을 열어 얼굴을 들이 밀면 진정이 된다고 하네요.

4. 두부를 오래 보관 하려면

두부를 보관 해야 하는 경우, 밀폐 용기에 두부가 잠길 정도의 물을 넣고 그 위에 소금을 약간 뿌려주고 냉장실에 보관하면 3~4일은 보관 할 수 있어요.

5. 라면의 느끼함을 빼고 먹고 싶다면...

라면을 끓일 때 녹차 티백을 넣고 끓이면 기름기도 빠지고 담백한 맛으로 먹을수 있습니다. 또 라면을 끓일 때 마지막에 식초 한 방울을 넣어서 끓여주면 면발도 탱탱해 지고 식초에는 지방을 분해 하는 성분이 있어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됩니다.

6. 바삭한 튀김을 만들고 싶다면

튀김 옷을 만들 때 밀가루에 베이킹 파우더를 약간 첨가하면 더욱더 바삭하게 튀김을 만들 수 있어요. 집에 베이킹 파우더가 없다면 볼에 튀김 가루를 넣고 얼음을 몇 조각 넣어준 뒤, 차가운 물을 조금씩 부어서 반죽하고 어느 정도 반죽이 되면 얼음을 건져낸 후에 튀기면 바삭 해져요.

7. 다진 마늘 오래 보관하기

다진 마늘에 설탕을 약간만 뿌려서 냉장고에 보관하면 냄새도 덜 나고 변색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8. 떡과 식빵을 쉽게 자르는 방법

가래떡을 자를 때에는 토막 낸 무에 칼을 문질러 가면서 자르면 잘 잘려요. 부드러운 식빵을 쉽게 자르려면 칼을 불에 달구어 자르면 잘 잘라 집니다.

9. 생선 비린내 밴 프라이팬

간장 한 방울을 떨어뜨려 불에 달구면 비린내가 없어져요~ 육류나 생선 비린내가 밴 칼을 씻을 때는 식초를 희석한 물로 씻은 다음, 녹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 조각 으로 닦아내면 됩니다.

10. 고기나 생선을 자를 때

도마 대신 우유팩을 사용하면 칼자국도 나지 않고 한번 쓰고 버리면 위생적으로도 좋아요.

11. 국수를 쫄깃하게 삶으려면?

먼저 냄비에 물을 충분히 붓고 끓인 뒤 참기름 이나 식용유를 한 숟가락 넣은 다음 국수를 5분 정도 끓인다. 물이 넘치려고 하면 찬물을 한컵 정도 부어줘도 좋다.

12. 고구마 삶을 때 다시마를 넣어주면?

고구마를 삶을 때 다시마를 넣어주면 짧은 시간에 고구마를 맛있게 삶을수 있다. 다시마에 있는 알긴산과 요오드가 고구마를 부드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13. 마요네즈가 묻은 그릇, 쉽게 세척 하려면?

마요네즈는 물과 기름이 분리되기 쉬운 조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더운 물로 세척하면 기름 투성이로 변한다. 이럴 땐 찬물로 세척하면 깔끔하게 닦인다.

14. 딱딱한 콩 부드럽게 먹는 방법

콩을 삶을 때 천일염 1%를 첨가하면 먹기 좋게 부드러워 질 뿐 아니라 소화 흡수율에도 도움을 준다.

15.너무 짠 음식 맛을 약하게 만드는 법

이미 다 만들어진 음식의 간이 짤 땐 식초 몇 방울을 떨어뜨려 주면 짠맛을 약하게 만들어 맛이 한결 부드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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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뉴스 매거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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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15_19.html
kolaswqetsrq 11.03 04:53
다리가 무거운 느낌은 왜 생길까

다리가 무거운 느낌은 왜 생길까

다리가 무거운 느낌은 정맥 환류가 충분하지 않아 발생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의사의 치료가 필요할 수 있지만, 생활 방식의 변화로 호전될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의 습관은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몇 시간 동안 서 있다가 피로를 느끼는 것은 정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각이 사라지지 않으면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 다리가 무거운 느낌에 대처해야 할 수 있다.

다행히 다리가 무거운 느낌은 심각한 상태가 아니다. 그렇기는 해도 일상적인 활동을 제한할 수 있으므로 상태를 관찰하고 조절해야 한다. 무거운 다리 증후군(Heavy legs syndrome)은 성인 인구의 20~30%에 영향을 미친다. 50세 이상 인구의 50%에 영향을 미치며, 여성에게서 5배나 더 흔하다. 또한 비만이거나 대부분 앉아 있는 습관이 있거나 오랫동안 서 있는 사람에게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례에서 이러한 건강상 문제는 직업이나 하는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오랫동안 서 있거나 앉아 있는 것은 건강과 다리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다리가 무거운 느낌이란?

세포벽의 크기는 자연적인 세포 노화 과정으로 인해 증가한다. 이는 여러 세포로 구성된 혈관이 더 약해지고 효과가 떨어지게 한다. 정맥은 몸 전체에서 혈액을 모아 심장으로 돌려보내는 기능을 한다. 다리의 정맥계와 관해서는, 혈액이 중력과 반대 방향으로 상승하기 위해 되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작은 판막과 펌프질을 돕는 근육층이 있다.

혈액을 퍼 올리지 못하거나 정체되어 있어 정맥 환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첫 증상이 나타나며 다리가 무거운 느낌, 피로 및 부기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는 체액이 정맥에서 조직으로 누출될 때 발생한다. 이와 같은 문제가 확대되면 정맥벽에 의한 과도한 압력으로 인해 혈액을 내부에 담을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정맥류와 만성 정맥 부전(CVI)으로 알려진 일반적인 혈관 질환이 나타난다.

다리가 무거운 느낌은 정맥 환류가 충분하지 않아 나타날 수 있다.

○ 다리가 무거운 증상

전반적으로 다리가 무거운 느낌의 일반적인 징후와 증상은 다음과 같다.

• 다리가 무거운 느낌과 부기, 통증, 가려움, 피로, 근육 경련 • 야간 감각 이상 (다리가 저린 느낌), 얼얼한 느낌과 뻣뻣함 • 정맥류 또는 거미 정맥 (모든 혈액을 심장으로 돌려보내지 못해 팽창된 정맥. 거미 정맥은 더 작고 붉지만, 정맥류는 더 크고 푸르스름하다) • 오랫동안 서 있거나 움직이지 않을 때 심해지는 부기

또한 대부분 가장 흔한 증상은 가려움, 무거운 느낌, 통증이라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 증상의 원인

아래에서 설명하는 것과 같은 요소는 다리가 무거운 느낌이 쉽게 나타나게 하며 피할 수 있다.

• 연령: 다양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정맥 질환 빈도는 60%이다. • 개인 병력 (과거 순환계 질환의 병력) • 유전적 소인 (가족력) • 호르몬 상태 (특히 임신 및 폐경기이거나 경구 피임약을 복용 중이거나 호르몬 대체 요법을 받는 상태) • 발 구조: 평발 (보행 시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근육 수축 감소)

또한 다음과 같은 피할 수 있는 요소가 상태를 심해지게 할 수 있다.

• 신체 활동 부족 • 하루에 몇 시간씩 서 있거나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생활 • 장기간의 햇볕 또는 열 노출 • 고위험 직업군: 의료진, 호스티스, 접대원, 미용사, 가정부, 직장인, 운전사, 교사, 전화 교환원 등 • 특히 여성의 경우 과체중 또는 비만. 다리에 지방 조직이 증가하면 정맥 환류를 돕는 근육 펌프의 효과가 까다로워진다. • 변비는 복압을 높여 혈액이 심장으로 되돌아가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 정맥 환류를 방해하는 다리와 엉덩이에 딱 붙는 옷 • 고온. 열이 정맥을 팽창시켜 혈액이 심장으로 다시 흐르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요소는 증후군이 나타나기 전에 수정할 수 있으며, 불편함과 장기적인 합병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수정할 수 있는 요소가 다리가 무거운 느낌을 유발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지나치게 딱 붙는 옷을 착용하는 것이다.

-닥터스 매거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69.html
kolaswqetsrq 11.03 04:54
건강하게 매운맛 고추의 효능

건강하게 매운맛 고추의 효능

음식에 매운 맛을 더하기 위해 사용하는 고추에는 놀라운 효능들이 숨겨져 있다. 다양한 효능 가운데 가장 유명한 효능이 바로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하다는 점과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고추에는 이 밖에도 건강한 효능들이 숨겨져 있다.

고추에는 사과에 비해 무려 18배에 달하는 비타민 C가 함유되어 있으며, 이 밖에도 비타민 A, B 및 섬유소 등 다양한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그렇다면 맛있게 매운 한국인이 사랑하는 고추에 숨겨진 효능은 과연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1. 비만 예방

앞서 소개했듯이 고추는 다이어트에 좋은 식품으로 유명하다.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캡사이신 성분은 체지방을 분해하고, 지방을 연소시키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또한 고추는 저칼로리이며, 식이 섬유도 풍부해 포만감은 풍부한 반면 열량은 낮아 다이어트 식단에 포함시키기에도 알맞은 식품이다.

2. 식욕 부진

입맛이 없거나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식욕 부진이 생겼다면 고추로 만든 음식을 먹어보도록 하자. 고추의 매운 맛이 입맛을 자극해 식욕이 돌게 할 수 있다. 음식을 만들기도 귀찮다면 고추를 된장에 찍어 반찬으로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3. 감기 예방

고추에는 비타민A와 비타민C가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어 감기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호흡기 계통에 대한 저항력과 면역력을 높이고, 회복시키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 단, 잘못된 민간요법인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먹는 방법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감기약 복용 후 술을 마시는 행위는 간에 악영향을 끼친다.

4. 혈액 순환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캡사이신 성분은 다이어트뿐만 아니라 혈액 순환에도 효능이 있다. 고추 속에 캡사이신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며, 이로 인해 신경통, 관절염 등의 질환 증상을 완화시켜줄 뿐만 아니라 원활한 혈액 순환으로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

5. 소화 촉진

식사 시 소화 장애를 자주 경험한다면 고추를 먹어보도록 하자. 고추는 성질이 뜨겁고 매워 평소 몸이 차서 소화 장애를 자주 경험하는 사람에게 매우 좋은 식품이다. 고추의 매운 맛이 소화를 촉진시키고, 침샘과 위샘을 자극해 위산 분비를 촉진시킨다.

6. 스트레스 해소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캡사이신 성분은 대뇌를 자극해 자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을 분비하는데, 이 엔도르핀은 스트레스 완화에 탁월하다. 고추 안쪽에 있는 태자리라는 씨가 붙어 있는 부분에 캡사이신이 함유되어 있는데, 먹는 즉시 스트레스 해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7. 노화 예방

고추에는 항산화 효과도 숨겨져 있다. 고추에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는 항산화 성분인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E 성분은 체내의 활성산소를 제거해주는 항산화 작용을 일으켜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되며, 이러한 항산화 작용은 세포의 산화도 방지해주어 치매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8. 시력 보호

고추는 눈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고추에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는 비타민B와 비타민C 성분은 시력을 좋아지게 만드는 효능이 있다. 또한 고추에는 베타카로틴 성분도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밤눈이 어두워지는 야맹증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9. 고혈압 개선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을 섭취할 경우 자극을 통해 지각신경의 말단에서 칼시토닌 유전자와 관련된 펩타이드란 물질이 방출된다. 보통 매운 음식을 먹으면 혈압이 높아져 고혈압에 특히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는데, 고추를 섭취해 발생된 펩타이드 물질을 통해 고혈압이 개선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10. 피부 미용

고추의 다양한 효능 가운데 피부 미용 효과도 빼 놓을 수 없다. 고추에 함유되어 있는 비타민 C 성분은 사과보다 18배 정도 풍부하게 들어 있어 기미와 잡티 같은 피부 트러블을 개선시켜 피부 미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음식을 통해 비타민 C 섭취를 하고자 한다면 함유량이 높은 고추를 추천한다.

-‘건강 이야기‘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73.html
kolaswqetsrq 11.03 04:54
변비와 부인병에 좋은 건강차

변비와 부인병에 좋은 건강차

○ 다시마 : 알카리성 식품으로 변비에 유효한 작용을 함

○ 살구차 : 탄수화물의 당질과 섬유를 많이 함유하고 있으므로 변비에 효과

○ 당귀차 : 대표적인 보혈제, 변비에도 유효함

○ 동규자차 : 오래전부터 중국 황실 배변 완화용으로 사용

○ 복숭화꽃차 : 변비에 효과가 있어 미용에 각별히 신경 쓰는 여성들에게 좋음

○ 당귀차 : 산후 출혈, 외상출혈에 현저한 효과, 또한 산후복통에 유효

○ 두충차 : 자궁이 약해서 생기는 습관성 유산에도 장복시 효능

○ 잇꽃차 : 꽃은 월경을 잘 나오게 하는 통경(通經)에 좋음

○ 쑥차 : 기혈(氣血) 을 바로잡고 몸을 덥혀주는 작용

○ 대추차 : 대추의 단맛은 긴장을 풀어주는 신경안정 작용으로 히스테리증상으로 화를 잘내고 짜증을 잘 부리는 사람 좋음, 갱년기로 인한 정력감퇴에도 효능

○ 솔잎차 : 여성의 미용 그리고 불면증, 냉대하증 등 질병예방에 효과적

○ 복분자차 : 남자의 정액부족, 여성의 자궁병으로 인한 불임증 등에 좋음

-‘건강한 아침’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82.html
kolaswqetsrq 11.03 04:55
건강한 삶을 위한 십계명

건강한 삶을 위한 십계명

1. 한 시간만 일찍 자자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한 시간만 앞당겨보자. 한국인들은 너무 늦게 잔다. 아이들은 공부하느라, 오락하느라 늦게 자고, 어른들은 일하느라, 술 마시느라 늦게 잔다. 그래서 학교와 직장에는 잠이 부족한 사람투성이다. 제발 한 시간만 일찍 자라. 늦게 잔다고 해서 그 시간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히려 한 시간 더 자면 능률이 올라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한 시간만 앞당겨보자. 억지로라도 평소 잠자리에 드는 시간보다 한 시간만 앞당겨 누워보자. 처음에는 잠이 안 오겠지만, 습관이 되면 잠이 온다. 그래도 안 되는 사람은 커피를 2주만 끊어보면 의외로 잠이 잘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 물 2L를 홀짝홀짝 마시자

물의 중요성은 다시 말하면 잔소리다. 물은 미네랄이 많이 포함될수록 세포 안으로 잘 흡수된다. 생수가 정수기 물보다 좋은 이유다. 물에 레몬 반쪽을 즙을 내어 넣어 먹어보자. 더욱 풍부한 미네랄을 섭취할 수 있다. 물은 찬물보다 상온의 물이 좋다. 가능하면 소주잔처럼 작은 잔으로 홀짝홀짝 마시는 것이 몸에 쉽게 흡수되어 내 것이 된다.

3. 고기는 늘 옳다

한국인은 아직도 고기섭취가 부족하다. 한국인의 72.6%는 단백질 섭취가 결핍되어 있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식물성 단백질은 아무래도 흡수와 효율성이 떨어진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젊고 활기차게 살려면 반드시 고기를 먹어야 한다. 단백질은 근육, 피부, 장기, 머리카락, 뇌의 원료가 되기 때문에 단백질이 부족하면 우리 몸의 모든 대사기능이 떨어진다. 또 단백질은 젊음과 정력을 유지시키는 성장호르몬, 성호르몬 생성이 관여한다. 돼지고기 목살 수육이나 소고기 우둔살이 단백질 함량이 높으므로 매일 일정량 먹는 것이 좋다.

4. 밀가루와 설탕 중독에서 벗어나자

술과 담배만큼이나 몸에 안 좋은 것을 꼽으라면 밀가루와 설탕이다. ‘밀가루 중독’, ‘설탕 중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평소 장이 안 좋은가? 피부가 안 좋고 알레르기가 있는가? 밀가루와 설탕을 끊어보면 확실히 좋아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눈 딱 감고 2주만 끊어보자. 맑아진 피부, 날아갈 것 같은 컨디션 때문에 밀가루와 설탕을 멀리할 것이다. 많은 여성의 희망인 날씬한 몸매는 덤으로 따라온다.

5. 이제는 영양제를 챙길 때

음식에서 영양소를 모두 섭취하는 시대는 지났다. 땅의 영양소가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상원 보고서에 의하면 오늘날 인체에 필요한 영양소를 과일이나 채소를 통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음식물의 영양소 고갈로 인해 50년 전에는 하루 필요 철분을 보충하기 위해 사과 2알과 시금치 한단이면 족했는데 지금은 사과 13알, 시금치 19단을 먹어야 한다. 40세가 넘었는데도 영양제를 안 먹고 있는 사람, ‘나는 어떤 영양제를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는 사람은 기본 영양제 삼총사부터 시작해보자. 기본영양제는 종합 비타민 미네랄 영양제, 유산균, 오메가3다. 이 세 가지 영양제는 중년이 되면 누구나 부족해지므로 매일 먹는 밥처럼 기본적으로 보충해 주는 것이 좋다. 나머지 영양제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고르면 된다.

6. 같은 시간에 30분만 걷자

매일 30분씩 같은 시간에 걷자. 건강을 지키는 데 그리 많은 운동은 필요치 않다. 오히려 무리한 운동으로 몸에 무리가 가는 경우가 더 많다. 하루 30분만 걷자. 빨리 걸을 필요도 없다. 산책하듯이 30분 정도 걷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조건이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걷자.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양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몸이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건강이 좋아지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아침에 걷든, 저녁에 걷든 상관없다. 일정한 시간이 중요하다. 칸트는 어려서부터 허약체질이어서 쉽게 병치레를 했지만, 규칙적인 생활과 건강관리로 80 평생을 건강하게 살았다. 그가 하루도 어김없이 정확한 시각에 산책에 나섰기 때문에 쾨니히스베르크 시민들이 칸트가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7. 하루 두 번 밥 먹듯이 스쿼트와 플랭크

아침에 일어나서 그리고 저녁에 한번, 하루 두 번 밥 먹듯이 스쿼트와 플랭크를 하자. 나는 식탁 앞에다가 매일 아침 운동과 영양제 먹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붙여 두었다. 스쿼트는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을 발달시켜주고, 플랭크는 코어 근육을 발달시킨다. 둘 다 우리 몸의 기둥이 되는 근육들이다. 두 가지 운동만 해도 몸의 균형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이 두 가지 운동을 하는데 5분이면 충분하다. (스쿼트는 앉았다 일어나는 운동. 플랭크는 푸슈업 자세로 허리를 곧게 펴고 15초씩 버티는 운동을 4회씩 하는 운동)

8. 헌신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새 신발을 사자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을 들어보자. 밑창이 닳아있거나 신발의 모양이 변형돼 있다면 헌신짝처럼 버려라. 그리고 나에게 잘 맞는 신발을 새로 장만하자.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신발이 변형되었다는 것은 이미 발을 보호하는 기능이 없어졌다는 의미이다. 망가진 신발을 신고 다니면 그 충격이 발을 넘어서 무릎으로 전해져 무릎 통증이 생길 수 있다. 40대가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발의 아치가 주저앉는데, 그러면 발볼이 넓어져서 신발이 안 맞게 된다. 이때도 좀 더 넉넉한 신발로 교체해 주는 것이 좋다.

9. 가끔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자

요즘처럼 우울증, 공황장애가 많은 시절이 없었다. 사회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복잡해서인 것 같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나만 위해 살자. 그것이 나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남에게도 스트레스를 안 주는 길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이 와 닿는 시절이다. 그리고 가끔 힘들어지면 나만을 위한 공간에서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자. 잠시 나를 돌아보면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긴다. 정신이 건강해야 육체도 건강할 수 있다. 항상 긍정의 힘으로 살아가자.

10. 내 몸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내 몸은 나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싶어서 어떤 형태로든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는 약간 피곤한 정도일 수도 있고, 통증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몸이 이야기하는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거나, 아니면 분명히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몸이 하는 이야기를 무시한 대가는 반드시 이자를 쳐서 받게 됨을 명심하자. 가끔은 조용한 곳에서 내 몸이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여보자. 몸이 하는 이야기는 항상 옳다.

-‘건강해야 행복하다‘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06.html
kolaswqetsrq 11.03 04:56
갱년기란 무엇인가?

갱년기란 무엇인가?

1. 개요

갱년기, 혹은 폐경기라고 한다. 노화에 따라 생식기능이 저하되고 성호르몬의 분비가 급감하며 신체가 급격한 변화를 겪는 것을 뜻한다. 주로 여성에게서 일어난다고 알려졌으나 비교적 최근 남성에게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젊은 나이라도 난소 등의 생식기관을 적출받거나 장기간의 항암치료를 받은 여성에게서도 나타난다.

2. 증상

남편 얼굴만 봐도 화가 치밀어오른다.

증상은 여성의 경우 월경이 불규칙 혹은 양이 변하고 얼굴과 목 등이 붉어지거나 열이 난다고 느끼며, 위의 2번째 증상이 저녁에도 계속되어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잦은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느낀다. 남성의 경우 발기부전, 근육량이 감소하며 체력이 떨어지고 무기력증, 갑작스런 감정변화, 관절통을 겪는다. 대개의 증세는 남녀공통이며, 골밀도가 떨어지면서 뼈가 약해지며 키가 줄어드는 증상도 나타난다.

3. 치료와 주의점

스트레스와 지나친 긴장감을 느끼는 것은 증상이 심한 월경전 증후군과 비슷하지만, 길어야 주단위로 끝나는 월경전 증후군과 달리 갱년기는 이 기간이 매우 길다. 평균 6년 ~ 8년이다. 주로 45 ~ 55세에 나타난다. 게다가 20~30대의 젊은 층은 갱년기 증상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거나 관련 정보를 얻을 길이 적어, 갱년기에 빠진 사람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 의도치 않게 불화를 키우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

4. 남성 갱년기

여성의 경우 폐경을 기점으로 호르몬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데 반해 남성은 30대 이후로 해마다 1%씩 호르몬이 서서히 줄어드는, 즉 느리고 천천히 갱년기가 진행된다. 오래 같이 산 부부가 점점 행동이 반대로 변하는 게 이것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42~53세 이며, 여성 갱년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자각도 늦은 편. 갱년기에 들어서면 근골격계, 중추신경계, 생식계통이 노화되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잦은 피로, 무기력감, 정력 감퇴 등이 찾아온다. 근육이 빠져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신진대사가 떨어지다 보니 복부에 지방이 껴서 배가 나온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발기부전이나 발기 강직도 저하 등과 같은 성기능 장애를 겪는다. 아예 성욕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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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는 심리적 박탈감이 더해져 일시적인 심리적 충격을 받을 수 있다.
",

최근에는 스트레스와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남성 갱년기의 발생 연령이 30~40대로 낮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5. 약물 섭취시 주의 점

시판되는 치료약들의 경우,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고려를 해야한다.

갱년기의 주요 증상 중 하나가 골다공증인데, 갱년기 치료용 약물은 골다공증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 하지만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유방암 등의 확률을 높일 수 있어1 산부인과 전문의와 상의 후 치료기간을 결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
-건강뉴스 매거진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320.html
kolaswqetsrq 11.03 04:56
마그네슘의 효능

마그네슘의 효능

마그네슘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필수 미네랄입니다. 몸속의 에너지 생성을 돕고 세포의 효소반응에 관여하는 등 많은 부분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한, 마그네슘은 몸의 필수 기능을 조절하며, 당뇨, 불면증, 고혈압, 우울증을 완화하는데도 큰 도움을 줍니다.

1.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울증은 마그네슘의 수치가 떨어졌을 때도 올 수 있습니다. 2017년 한 연구에서 마그네슘이 부족하게되면 불안감이 올라가고 정신적 안정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마그네슘의 섭취로 수면을 촉진한다고 알려진 GABA라고 하는 신경전달물질을 촉진시키는데 GABA는 우울한 기분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 수치를 줄여주는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마그네슘은 세로토닌 호르몬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마그네슘의 섭취를 통해 세로토닌의 수치가 상승하며 정신적 안정감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마그네슘이 부족한 사람의 경우 세로토닌 수치 또한 낮아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마그네슘 효능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섭취하는 게 좋습니다.

2. 혈압을 낮춰줍니다.

마그네슘이 만성 고혈압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2013년 한 연구에서, 마그네슘을 섭취 후 흡수량을 조사해보니, 섭취량에 따라 고혈압의 수치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20~75세 성인 5,500명을 대상으로한 연구에서, 신체에 마그네슘 흡수량이 높을수록 고혈압을 진단받을 확률이 최대 21%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는 식습관이 좋은 사람도, 나쁜사람도 모두에게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마그네슘 효능만으로 이런 의미 있는 결과를 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 고혈압 환자 2만명을 대상으로 2017년 임상시험한 결과, 마그네슘이 고혈압의 위험을 감소시켜 준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에서 하루 100mg의 마그네슘을 섭취했더니 고혈압 발생 위험을 5%이상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3. 불면증에 큰 도움을 줍니다.

불면증은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참 무서운 질병 중 하나입니다. 잠을 잘 자지 못하게 되면 그로 인한 다른 문제들 또한 몸을 망치게 만듭니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수면의 질이 떨어지며, 잠을 자더라도 몸이 회복되지 않는 현상을 경험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수면습관이 고정되어 버리면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되고 많은 부분에서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마그네슘 효능으로는 수면을 도와주며 수면의 질을 높여줍니다. 마그네슘은 근육을 이완시켜 신경을 진정시키는 효능이 있습니다. 또한, 몸속의 염증을 낮춰주고 멜라토닌과 글루타티온을 증가시켜 수면의 질을 올려주는 핵심 역할을 합니다. 또한 마그네슘은 수면을 촉진시키는 GABA라고 하는 신경전달물질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시켜 주어, 높은 수면의 질을 유지시켜 줍니다.

2012년 연구에 따르면, 마그네슘 효능으로 수면의 질을 높여주고 특히 노년층의 수면 시간을 높여주며 효율적인 수면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발표했습니다. 마그네슘을 멜라토닌과 함께 먹으면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마그네슘과 멜라토닌 보충제를 함께 복용한 사람의 수면과 수면질이 높아졌다는 의미 있는 연구결과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4. 당뇨 예방에 좋습니다.

마그네슘이 당뇨 예방에 좋다는 사실은 마그네슘 효능 중 으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뇨는 아주 무서운 질병이며 완전히 나을 수 있는 방법도 약도 아직 없다는게 사실입니다. 많은 연구에서 마그네슘이 부족한 사람이 제2형 당뇨병에 걸릴 위험률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마그네슘이 인슐린과 포도당 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 또한 알게되었습니다. 제2형 당뇨병이 있는 사람이 마그네슘을 먹으면 당뇨병과 관려된 합병증인 망막증, 신증, 신경병증 등을 예방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또한, 선천성 당뇨인 제1형 당뇨병 환자에게도 마그네슘 효능의 많은 부분이 좋은 결과로 나왔습니다. 제1형 당뇨병 환자가 마그네슘을 꾸준히 섭취할 경우 신진대사가 좋아지고 HDL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갔으며 중성지방 수치는 오히려 낮아졌으며, 심장 질환의 위험도를 줄여준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건강 이야기‘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58.html
kolaswqetsrq 11.03 05:08
대화의 기술

대화의 기술

말을 잘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적절한 표현과 감정을 부드럽게

드러낼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하지만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말로

당황할 때가 많을 것이다

지나고 나면

그때 왜 그런 얘기를 했을까

후회도 되고 속상할 때가 많다

이미 나를 떠나버린 말은

되돌릴 수도 주워 담을 수도 없으니

난감할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대화의 기술은 듣기다

가장 쉬운 거 같으면서 어려운 일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진심으로 귀 기울여라

두 번째 대화의 기술은

리액션이다

상대는 열심히 얘기하고 있는데

반응이 없다면 딴생각하고 있다고 느낀다

적절히 질문도 하고 맞장구를 쳐라

세 번째 대화의 기술은

학생이 되는 것이다

가르치려 하면 듣는 사람이

불편하게 생각하고 대화의 흐름은 깨진다

네 번째 대화의 기술은

타이밍을 잡아라

내 얘기를 장황하게 설명하지 말고

포인트만 굵고 짧게 얘기하라

말이 길어지면 다음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기회를 놓치고 만다

이렇게 대화는 주고받는 것이다

내 목소리를 높이는 게 아니라

상대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이다

-조미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329.html
kolaswqetsrq 11.03 05:09
그리운 그 친구

그리운 그 친구

여럿이 모인 그곳에

그리운 그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많아도

둘만이 아는 눈빛으로 얘기하고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둘만의 신호를 즐거워하는

아이의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군중 안의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왁자지껄한 그곳에

그리운 그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술잔을 기울일 때

적당히 마시라고 눈짓하고

취하지 않게 안주를 챙기는

마음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기분 좋은 만남의 자리마다

그리운 그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미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71.html
kolaswqetsrq 11.03 05:09
말의 힘

말의 힘

감사하다고 말하니

감사할 일이 생기네요

사랑한다고 말하니

상대방도 사랑한다 하네요

웃으며 말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하네요

수고했다 말하니

내가 더 수고했다 하네요

말에

고운 마음이 더해져

내게 오네요

-조미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39.html
kolaswqetsrq 11.03 05:10
사람의 향기

사람의 향기

그 사람의 향기를

곁에 있을 때는 몰랐다

그가 떠난 빈자리에서

허전함을 느낄 때

그만의 향기가 전해진다

훈훈한 온기와

배려했던 마음과

가슴으로 느꼈던 그 진심이

때론 진한 장미 향기처럼

때론 은은한 라일락 향기처럼

때론 아련한 들꽃 향기처럼 퍼진다

내가

떠난 자리

어떤 향기가 배어 있을까

-조미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84.html
kolaswqetsrq 11.03 05:10
엄마

엄마

엄마 뱃속에

열 달 동안 살았다

돈 한 푼 내지 않고

공짜로 세 들어 살았다

생살이 찢어지는 산고(産苦)로

세상의 빛을 보았다

엄마가 주는 젖과 밥 얻어먹고

내 목숨 지금껏 이어졌다

엄마의 보살핌과 수고로

키가 자라고 마음도 자랐다

엄마의 쪼글쪼글한 주름살만큼

나는 엄마에게 은혜를 입었다

늙고 볼품없는 엄마 있어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다.

엄마는 온 세상에서

가장 사랑 많고 거룩한 종교

날개 없는 지상의 천사

아니, 사랑의 신(神)!

-정연복-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37.html
kolaswqetsrq 11.03 05:11
오늘 아침이 행복해지는 좋은 글

오늘 아침이 행복해지는 좋은 글

"오늘"이란 말은 싱그러운 꽃처럼

풋풋하고 생동감을 안겨줍니다.

마치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마시는 한

모금의 시원한 샘물 같은 신선함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운 오늘을 맞이하고

오늘 할 일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

하루를 설계하는 사람의 모습은

한 송이 꽃보다 더 아름답고 싱그럽습니다.

그 사람의 가슴엔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오늘’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미래로 가는 길목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아무리 고달프고 괴로운

일들로 발목을 잡는다해도 그 사슬에 매여

결코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지혜와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요.

오늘이 나를 외면하고 자꾸만 멀리 멀리

달아나려 해도 그 "오늘"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침이 행복해지는 글’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73.html
kolaswqetsrq 11.03 05:12
비가 오는 날에 그대가 그립다

비가 오는 날에 그대가 그립다

바람이 불 때면 그대가 그립다

바람결에 날리는 머리카락에 나던

그대 내음이 맡고 싶어진다

눈이 내리는 날엔 그대가 그립다

하얀 눈을 맞으며 좋아라 뛰던

그대의 청순함이 보고 싶다

비가 오는 날엔 그대가 그립다

어깨동무로 우산을 쓸 때 전해지던

그대의 체온을 느끼고 싶다

구름 낀 날엔 그대가 그립다

여러 가지 모양의 구름들 속에

그대 닮은 구름을 찾을 수 있으니까

햇빛이 따사로운 날엔 그대가 그립다

꾸밈과 숨김이 없는

그대의 맑은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금방 만나고

금방 헤어져도

또다시 그대가 그립다

 "
-함한식 그대가 그립다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58.html
kolaswqetsrq 11.03 05:12
노년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노년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늙기 마련이지만

늙어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60이든 70이든 80이든

인생은 다 살만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노년의 아름다움은 용모에서도 아니요

부와 명예에서도 아닐 것입니다.

흐트러짐 없는 생활 자세와

초월함에서 오는 여유,

그리고 당당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노년을 살아갈 수 있는 마음가짐과

행동을 실천하려고 조금씩 노력한다면

분명 얼굴에는 주름이 많더라도

마음에는 주름이 적은

아름다운 노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가 가족을 위한 희생의 시기였다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한 삶을 즐기는

시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노년에서 참된 인생의 보람을 찾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노후를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서옥-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23.html
kolaswqetsrq 11.03 05:13
신이 내려주신 최고의 덕은 겸손이다

신이 내려주신 최고의 덕은 겸손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겉모습을 보려면

반드시 거울 앞에 서게 됩니다.

거울은 정말로 정직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거울 속에 비춰줍니다.

자기 얼굴에 검정이 묻지 않았다고

완강히 고집하는 사람도 거울 앞에 서게 되면

그 모습은 일목요연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때서야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고

그것을 바로 고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겉모습은 거울로 잡을 수가 있지만,

마음속의 잘못까지는 비춰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자각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마음의 거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하는 마음이 겸손하기만 하다면

마음의 거울은 아무 데나 있습니다.

주위에 있는 모든 물건,

자신과 접하는 모든 사람,

이 모두가 자신을 비춰주는 마음의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물건이 각자의 마음을 비춰주고

모든 사람이 각자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옛 성현들은

‘자신의 눈에서 대들보를 끄집어내어라.’라고 가르쳤습니다.

좀 더 주위를 자세히 살피고

주위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여야 하겠습니다.

이 겸허한 마음, 솔직한 마음이 있으면

모든 것이 마음에 비춰질 것입니다.

-브하그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93.html
kolaswqetsrq 11.03 05:13
하루라는 큰 기적에 감사하세요

하루라는 큰 기적에 감사하세요

하루 동안에도

수많은 새 생명이 태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작별을 합니다.

하루 동안에도

세계 곳곳에선 수를 셀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사라져갑니다.

그 하루 속에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우리가 있습니다.

나도 기적이고,

너도 기적이고,

우리 모두는 기적 속에서 살아갑니다.

기적은 가장 결정적인 아름다움,

기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내일도 모래도 그리고 먼 훗날에도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기적 속에서 살아가는

기적의 은총이며 기적의 증거입니다.

하루라는 기적에게 감사하고 감사하십시오.

-김옥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50.html
kolaswqetsrq 11.03 05:14
당신은 내 마음의 꽃입니다

당신은 내 마음의 꽃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운명처럼 만난 사람!!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소중한 사람!!

때론,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마음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진솔한 감정

조건 없는 사랑으로

내 안의 온전함을 되찾고,

인생의 행로 갈림길에서

가벼운 미소로

마음의 빗장을 열고 평안함을 주는

당신은!!

당신은

이미, 꽃보다 더 어여쁜

내 마음의 소중한 꽃입니다.

-양동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67.html
kolaswqetsrq 11.03 05:14
늙지 마세요 당신!

늙지 마세요 당신!

내가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짧기에

당신을 더 사랑하고 싶습니다.

삶이 우리들의 사랑을

가끔은 아주 조금 속일지라도

우리들의 사랑 그 진실은

속일 수 없을 것 입니다.

매일 매일

조금씩 우리 사랑을 키워가고 있지만

우리들의 사랑을 혹여 신께서라도

질투하신다면 안되니

사랑한다 호들갑 떨지 말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내가 당신을 따라 갈 수 있도록

보폭을 조금 줄이세요.

그럼 당신 늙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 늙지 마세요

당신 육체야 어쩔수 없는 연륜이지만

마음까지 늙는 것은 싫습니다.

유명한 시인님의 글에

자주 꽃이 피는 것은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랑

확인 하나 하지 않으나 분명한 사랑입니다

몇 걸음 조금씩 걸어 가세요.

제가 옆에서 당신 그림자 밟지 않도록

조심 하면서 따라가겠습니다.

당신이 영혼의 순결함을 존경하면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당신 늙어 가는 것을 막고 싶습니다.

내가 살아 갈 나이가 짧기에

더 애처롭게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류경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38.html
kolaswqetsrq 11.03 05:15
내 인생의 봄날은 온다

내 인생의 봄날은 온다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말자

내 할 일도 바쁘다

안 되는 일 붙잡고 시간 낭비하지 말자

되는 일에 몰두하고 열정을 쏟자

누굴 탓하는 버릇을 버리자

모두 내 판단에 의한 것

내 탓이다

책임은 나에게 있다

복잡하게 살지 말자

단순하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이것저것 생각하다 머리에 쥐 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의기소침하지 말자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시간이 해결한다

누군가와 오해가 생기면

그 자리서 풀려고 하지 마라

풀리지도 않고 오히려 역효과다

살다 보면 내 맘대로 안되는 거 투성이다

그때마다 절망하면 세상 살맛 안 난다

자기만의 극복 방법을 정해놓으면

쉽게 이겨낼 수 있다

 "
 -조미하, 내 인생의 봄날은 오늘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71.html
kolaswqetsrq 11.03 05:16
그리운 고향

그리운 고향

저녁이면 초가지붕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저녁 향기 구수한

가마솥에

밥 냄새 풍기는

고향 마을 그리워라

논두렁에선 뜸북새 우짖고

요란스런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도

정겹기만 했다네

여름이면 당산나무

그늘 아래서

고무줄 놀이하고 즐기던

죽마고우 친구들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추운 겨울밤이면

화롯불에 둘러앉아

얘기 소리 꽃피우며

앞 텃밭 구덩이에서

시원한 무 꺼내다

깎아 먹던 옛 추억

잊을 수가 없어라

-서순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19.html
kolaswqetsrq 11.03 05:17
우리 어머니의 휴가

우리 어머니의 휴가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정채봉-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69.html
kolaswqetsrq 11.03 05:18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드리고 가렵니다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드리고 가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아침 햇살처럼 빛난다’는 어느 사랑의 글귀 처럼 당신의 마음은 고운 햇살의 봄날같이 향기로운 꽃향기를 날리고 무더운 여름날,

지친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쉴 수 있는 쉼의 공간을 마련해 주며 청명하고 맑은 가을 햇살같이 당신의 정감어린 사랑의 마음은 맑고 깨끗합니다.

추운 겨울 영하의 날씨에도 따뜻하고 포근하게 감싸주고 안아주는 넓고깊은 당신의 배려함에 너그러움도 없고 늘 채워짐이 부족하고 미흡한 아직 두잎 밖에 안되는 내가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미소와 함께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 멈출 수 있는 그래서 소박하고 아름답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날이 당신과 나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앞에 올 수 있기를..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드리고 가렵니다.

-김영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38.html
kolaswqetsrq 11.03 05:18
보고 있어도 늘 보고픈 당신이네요

보고 있어도 늘 보고픈 당신이네요

항상 무엇을 하던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밥을 먹어도 밥을 굶어도

꿈이나 생시나

불연 듯 갑자기 떠오르는 얼굴

잊은 듯 또 생각이 나고

비가 올 때도 눈이 올 때도

나보다도 걱정이 되고

무의식적으로 문자를 보내고 마는

진한 커피향속에도

자꾸만 마음이 일렁이며 생각나는 얼굴

음악을 들어도

한적한 거리를 걸을 때도

내 마음속에 풍금이 되고

남의 몸짓이 되어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

어디를 가든 많은 사람 앞에서도

확연하게 뚜렷이 떠올라

밤하늘 달덩이처럼

너무나도 잘 보이는 얼굴

종일토록 나의 마음에

아름다운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늘 보고 있어도

또다시 보고 싶은 당신입니다.

 "
-착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86.html
kolaswqetsrq 11.03 05:19
행복으로 가는 문의 열쇠

행복으로 가는 문의 열쇠

웃음을 활짝 지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고맙다고 말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
훌륭하다고 칭찬해도
",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함께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그 말이 당신에게 두 배로

메아리가 되어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이 오늘 나가는 일터와

 "
하는 일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져도
",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그 감사하는 마음이 일과 일터로부터

당신을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과 한솥밥을 먹는 가족에게

따뜻한 웃음을 보여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
수고한다. 고생한다.라고 말해도
",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그 따뜻한 웃음과 따뜻한 말이 바로

행복의 문을 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웃음으로 시작하고

감사하는 당신이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12.html
kolaswqetsrq 11.03 05:20
아침의 기도

아침의 기도

이 아침에

찬란히 떠오르는 빛은

이 땅 어느 곳에나 비추이게 하소서

손등에 햇살을 받으며

봄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병상의 아픔에도

젊은이들의 터질 듯한 벅찬 가슴과

외로운 노인의 얼굴에도

희망과 꿈이 되게 하소서

또다시 우리에게 허락되는

365일 삶의 주머니 속에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의

결실로 가득 채워

한 해를 다시 보내는 날은

기쁨과 감사를 드리게 하소서

이 해는

행복한 사람들은 불행한 이들을

건강한 사람들은 아픔의 사람들을

평안한 사람들은 외로운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손길이 되게 하소서

이 새로운 아침에

찬란히 떠오르는 빛으로

이 땅의 사람들의 영원 향한

소망을 이루게 하시고

이 아침의 기도가

이 땅 사람들이

오천년을 가꾸어온

사랑과 평화로 함께 하소서

 "
-용혜원 아침의 기도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90.html
kolaswqetsrq 11.03 05:20
힘들 때는 일상에서 벗어나보자

힘들 때는 일상에서 벗어나보자

잘 해오던 일도

어느 날은 힘들게만 느껴지고

계속해야 하나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모든 일이 한결같을 수는 없겠지만

딱 그만뒀으면 하는 날

그런 날은 마음을 내려놓으면 좋다.

바로 집으로 퇴근하지 말고

전혀 일과 상관없는 것에 시간을 보내보자.

헤어스타일을 바꾸거나

전시회를 가거나

운동화로 갈아 신고

가까운 공원이라도 달려보자.

뜻하지 않은 곳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잠시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가 될 수 있다

순간 기분으로 마지막 말을 하고

후회하는 일은 만들지 말자.

-조미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75.html
kolaswqetsrq 11.03 05:21
마음 가짐이 인생을 바꾼다

마음 가짐이 인생을 바꾼다

우리의 생각은 씨앗과 같아서 그 종류에 따라서 싹이 나고 꽃이 피어납니다. 비옥한 땅에 심은 씨앗이 튼실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우리의 마음은 어떤 생각을 심었느냐에 따라 밝아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합니다. 씨앗을 심고 잘 돌 보면, 맛있는 사과를 수확하게 됩니다. 반면 엉겅퀴 씨앗을 심으면, 가시투성이의 엉겅퀴를 얻게 되지요.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는 긍정적인 결과를 맺고, 반면 부정적인 사고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집니다. 우리에게는 날 때부터 인생 행로에 대해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철학자 나풀레옹 힐은 버지니아주 남서쪽 산지 마을의 한 칸짜리 통나무집에서 태어낫습니다. 얼마나 외딴 곳에 살았던지 열두 살 때 처음 기차를 보았을 정도라 합니다. 게다가 그는 여덟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가 새 어머니를 데려온 날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아버지는 친척들 한 분 한 분과 새어머니를 인사시켰는데 내 순서가 되자, 최대한 심술궂게 잔득 찡그린 얼굴로 팔짱을 꽉 끼고 아버지는 이렇게 소개하셨다.

 "
이 애가 내 아들 나풀레옹이고 우리 마을 최고의 악동이지. 지금도 무슨 일을 벌일까 궁리하는 중일꺼야.
",

그러자 어른들이 비아냥거리며 모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새어머니는 가만히 이렇게 말씀 하셨다.

"잘못 보셨어요. 나풀레옹은 마을 최고의 악동이 아니라, 아직 자기 지혜를 제대로 발휘할 줄 모르는 ‘영리한 소년’이란 말이에요.

새어머니가 북돋워 준 힘에 용기를 얻어 나풀레옹은 갖고 있던 총을 팔아 타자기를 사고 자기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일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람이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딱 한 가지 밖에 없다. 바로 마음 가짐이다."

나풀레옹이 남긴 말입니다.

-존 템풀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42.html
kolaswqetsrq 11.03 05:21
당신의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당신의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버려라.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오늘밖에 없는 것이다.

스스로가 더 즐겁고

더 활기차게 오늘을 산다면

당신의 진정한 삶은

오늘부터 시작되리라.

당신의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과거의 후회와 불안도, 오늘의 긴장도,

내일의 두려움도 버려라.

오직 오늘 현명한 머리와

평화로운 마음으로

당신의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해 나아가라.

-이범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40.html
kolaswqetsrq 11.03 05:22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괴로워하지 말라.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어 가더라도

너무 기뻐하지 말라.

오늘은 실패하였더라도

내일은 성공의 열매를 거둘 수 있다.

한때의 실패를 비관할 필요는 없다.

또 한때의 성공을 자랑할 필요도 없다.

일이 순조롭게 될 때일수록

마음을 여미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뜻하지 않은 고통을 겪게 된다.

-채근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90.html
kolaswqetsrq 11.03 05:23
다시 한 번 웃으며 달려가 보자

다시 한 번 웃으며 달려가 보자

인생길을 걷다보면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걸림돌을 만나게 된다.

그 돌이 걸려 넘어져 무릎이 벗겨지고

상처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새살이 돋고 상처는 치유

될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를 띠우고 다시 달려보자.

인생에서 만나는 어려움이 당시에는 힘들고 아프지만

그것을 견디고 나면 더욱 성숙한 나를 발견 할 수 있다.

어쩌면 그 걸림돌이 우리를 한 단계 성숙하게 하는

디딤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고난의 시간 견디고

다시 한 번 웃으며 달려가 보자.

-민예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68.html
kolaswqetsrq 11.03 05:23
인연을 맺는다는 것

인연을 맺는다는 것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나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부모로서, 형제로서, 친구로서,

연인으로써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눈먼 거북이 바다에서 나무토막을

만나는 것과 같이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그 소중하고 귀한 인연을

너무 등한히 하고 있지는 않았나

지금 우리는 어떠한 인연 속에

있는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사건들이나,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과거에 맺어진

인연의 결과입니다.

내가 과거에 선한 인연을 지었으면 현재에

선연의 결과를 얻을 것이요.

내가 과거에 악한 인연을 지었으면 현재

악연의 결과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악연을 선연으로 풀어 주어야만

악연의 업이 풀린다고 합니다 .

현재 나에게 주어진

그 어느 것도 원인이 없음이 없으며

그 원인대로 결과가 만들어진 다고 합니다.

이것은 과거에 자기와 어떤 형태든

인연이 맺어진 사람들이 자신의 주위에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자기와 인연이 맺어진 사람들은

그 인연의 결과로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되어 있으며 그 인연의 골이 깊을수록

더욱 자기와 가까운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랍니다.

어자피 맺어진 우리 인연 과거에도 인연이었고

지금도 인연이라면 우리는 필연이기에

그러기에 당신이 나에겐 소중합니다.

-‘월간 좋은 생각’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31.html
kolaswqetsrq 11.03 05:24
비교하지 마라

비교하지 마라

손가락의 길이는

다 제각각이지만

그중 하나라도 없으면

매우 곤란 하듯이

인생도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각자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만약 스스로

중심을 바르게 잡고

쓸데없는 비교의식을 버린다면

오롯이

나 자신에게 속한

행복이 늘 넘쳐날 것이다.

-쑤쑤 ‘인생을 바르게 보는 법~’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49.html
kolaswqetsrq 11.03 05:25
사랑은 서로 배려해 주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사랑은 서로 배려해 주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길을 걷다가 청년은 그의 여자친 구에게 물었습니다

"소현아! 너는 왜 맨날 굽이 낮은 신발을 신어?"

"그냥 편하니까........."

여자 친구는 청년의 물음에 싱겁게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여자들은 다들 늘씬해 보이려고 굽이 높은 구두를 많이 신잖아"

"작아 보이면 어때. 편하면 됐지 뭐.. 높은 구두 신으면 불편하잖아....."

"불편해도 더 커보이는 게 낫지 않니? 너 처음 보았을 때 높은 구두 신고 있으니까 보기 좋던데..."

청년은 빙긋이 웃으면서 다시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난 싫어..편한 게 좋으니까...."

여자 친구는 그렇게 말하고는 청년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말하지 않았지만 청년은 여자 친구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키 작은 자신에게 상처가 될까봐 여자 친구는 언제나 굽 낮은 신발을 신고 다닌다는 것이... 사랑은 이렇게 작지만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연탄길’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82.html
kolaswqetsrq 11.03 05:25
인생길 함께 하는 부부

인생길 함께 하는 부부

가는 길이 있으면

돌아오는 길이 반드시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만, 우리 인생길은

한번 가면 되돌아 올 수 없는 것

그 길이 인생길이라 합니다.

바둑의 명인이 인생길을 한탄 하면서 했다는

그 말 “바둑에는 ‘패’라는 게 있어

다 죽어가는 대마도 살릴 수가 있는데

우리 인생엔 패라는 것도 없으니”

살아가는 동안

사람은 누구나 실수도 후회도 하면서

살아가는 인생길이랍니다

아무 생각 없이 우린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입으로 이 말을 자주하고 삽니다.

돌아오지 못할 인생길이란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순간의 기분에 그 인생길을 잊고서...

부부가 만나

어찌 상대가 내 마음과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가는 길은 있어도

되돌아올 수 없는 인생길을 가는 부부...

내 못남을 예쁘다고 말하는 아내.

당신 못남을 당신이 어때서 변명해주는 남편.

인생길 가는 길에 꼭 잊지 말아야할

덕담 말씀입니다.

옛 속담에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는데

이제 그 속담 말이

이렇게 변했다고 하는 농담 말이 생겼다네요.

“부부 싸움은 이중 철조망치기”라고요.

사는 동안 인생길을 함께 가는

동행자가 바로 부부 입니다.

친구도 자식도 부모도 아닙니다.

여보.

당신.

최고야.

누가 뭐래도

세상 살아가는 길엔 오직 당신과 나뿐이라오~

우리 함께 가는 동행자 오직 부부뿐.

아침마다 손 한번 꼭 잡아 봅시다.

-박태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41.html
kolaswqetsrq 11.03 05:26
운명적인 사랑은 없다

운명적인 사랑은 없다

영화에서나 말할 수 있는 사랑이다.

노랫말에나 담을 수 있는 사랑이다.

운명적인 사랑이라 놓칠 수 없고

운명적인 사랑이라 떠나 보낸다는 거짓말은 하지 말자.

처음의 눈빛에서 운명을 느꼈고

단 한 번의 몸짓에 당신이 고운님인 줄 알았고

귓전에 파고든 따스한 음성 한마디로

당신을 마음에 섬길 운명이란 유치한 말은 하지 말자.

살면서 하나의 사랑인 사람이라 말하지 말자.

운명적인 사람이면 귀멀고,

눈멀어 바보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모든 것 다 내어놓고 한 사람만을 마음에 담으며

한 번의 배반도 단 한 번의 배신도 없이

그렇게 운명이라 믿으며 사랑해야 한단 말인가?

운명은 없다.

운명적인 사랑도 없다.

당신의 사랑이 작고 초라함에

운명이라는 멍에를 씌워 사랑을 부풀리고 있을 뿐이다.

일분, 일초이지만 마음 깊은 도닥거림과

가진 것 하나 없지만

둘이라서 기쁘고, 둘이라서 웃을 수 있으면 되지 않은가?

다가서 안으라...

다가서 깊이 안으라

그것이 운명을 대신하는 사랑이리라.

-김영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90.html
kolaswqetsrq 11.03 05:27
행복이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나요

행복이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나요

언제나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다.

대체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저 멀리서 누군가가

찾아오길 믿는 걸까.

언제 올지도 모르는 행복을

그저 막연히 기다리고만 있는 걸까.

기다리다보면 누군가가 나타나

기적처럼 지금의 고통에서

구원해주기라도 하는 걸까.

혹은 어느 날 신이나 천사가 내려와

축복해주기라도 하는 걸까.

그러다가는 끝내 기다리기만 하는

인생을 살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시 한 번 최선을 다해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다음 순간에도 온 힘을 쏟아

최고의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75.html
kolaswqetsrq 11.03 05:27
속상하고 화가 날 때 대처법

속상하고 화가 날 때 대처법

 "
01. 참자! - 그렇게 생각하라. 감정 관리는 최초의 단계에서 성패가 좌우된다.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화는 일단 참아야 한다.
",

 "
02.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하라. 예를 들어 고객이 속을 상하게 할 때는 고객이란 원래 그런 거 라고 생각하라.
",

 "
03. 웃긴다고 생각하라. 세상은 생각할수록 희극적 요소가 많다. 괴로울 때는 심각하게 생각할수록 고뇌의 수렁에 더욱 깊이 빠져 들어간다. 웃긴다고 생각하며 문제를 단순화시켜 보라.
",

 "
04. 좋다. 까짓 것이라고 생각하라.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는 좋다. 까짓 것이라고 통 크게 생각하라.. 크게 마음먹으려 들면 바다보다 더 커질 수 있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

 "
05.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라. 억지로라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라. 내가 저 사람이라도 저럴 수밖에 없을 거야. 뭔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저럴 거야.라고 생각하라.
",

 "
06. 내가 왜 너 때문에라고 생각하라. 당신의 신경을 건드린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고 있는데, 그 사람 때문에 당신이 속을 바글바글 끓인다면 억울하지 않은가. 내가 왜 당신 때문에 속을 썩어야 하지? 그렇게 생각하라.
",

 "
07. 시간이 약임을 확신하라. 지금의 속상한 일도 며칠 지나면, 아니 몇 시간만 지나면 별 것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라. 너무 속이 상할 때는 세월이 약이라는 생각으로 배짱 두둑이 생각하라.
",

 "
08. 새옹지마라고 생각하라.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속상한 자극에 연연하지 말고 세상만사 세옹지마 라고 생각하며 심적 자극에서 탈출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을 하라.
",

09. 즐거웠던 순간을 회상하라. 괴로운 일에 매달리다 보면 한없이 속을 끓이게 된다. 즐거웠던 지난 일을 회상해 보라. 기분이 전환될 수 있다.

 "
10.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라. 괴로울 때는 조용히 눈을 감고 위에서 언급한 아홉 가지 방법을 활용하면서 심호흡을 해 보라. 그리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침을 삼키듯 꿀꺽 삼켜 보라.
",

-Facebook 글 옮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85.html
kolaswqetsrq 11.03 05:28
나를 흔들었던 건 내 안의 바람

나를 흔들었던 건 내 안의 바람

한 곳에 가만히 뿌리내리고

진득하게 서 있고 싶은데

불어오는 바람 탓에

자꾸만 휘청거리고 넘어졌다.

태풍이 지나간 후

정신을 차리면 낯선 곳이기도 했다.

한자리에서 안정감을 바라던 나는

바람을 원먕했다.

저 바람만 불지 않으면

난 흔들릴 일이 없을텐데.

이리저리 불안하게

날아디니는 것을 반복하던 어느 때,

나는 운 좋게 바람이 불지 않고

비옥한 땅 위에 올수 있었다.

이제 내가 그동안 바라던 대로

한곳에서 안정적으로 서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도 종종 흔들렸다.

바람이 불었나 싶어 고개를 돌려보면

어디에도 바람의 흔적은 없었다.

흐트러짐 없이 안정적으로 서 있는 이들 옆에서

나 혼자만 휘청 거리니 그 움직임은 크게 보였고

바람 탓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제야 난 알았다.

나를 흔들었던 건 밖에서 불어는 바람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부는 바람이었다는 것을

그것을 알고 난

지금도 여전히 곧잘 흔들리지만

그럴 때마다 이젠 밖을 둘러보지 않고

마음 안을 살핀다.

마음에 이는 바람이 나갈 수 있게

길을 터고 기다릴 수 있는 여유와

덤덤함이 생겼다.

잠시 흔들릴지언정

내가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민미레터‘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53.html
kolaswqetsrq 11.03 05:29
작은 행복들이 모여 큰 행복이 됩니다

작은 행복들이 모여 큰 행복이 됩니다

우리는 흔히 행복은 먼 곳에 있으며

나에게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소소한 생활에서 만들어진

작은 행복들이 모여 큰 행복이 됩니다.

하루 중 재미있는 일은 몇 번이나 있습니까?

하루 중 감탄하는 일은?

하루 중 기분 좋은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하루 중 미소는 몇 번이나 짓습니까?

칭찬은 얼마나 하십니까?

행복한 사람은

사랑을 받기보다는 주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재산이 많은 사람도, 권력을 가진 사람도,

학식이 높은 사람도 아닙니다.

넉넉한 가슴으로 모든 것은 포용하며 용서하고

이웃과 더불어 나누고 베풀며 사는 사람입니다.

-김지향-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17.html
kolaswqetsrq 11.03 05:29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라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라

우리의 삶은 어떤 생각과 태도로 사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다.

우리 마음에 행복한 것, 옳은 것, 정결한 것,

칭찬 받아 마땅한 것들을 행각한다면,

자연스럽게 올바르고 좋은 행동을 하게 될 것이고

당연히 우리의 삶은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노력하라.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당신의 생각을 디자인하라.

마음이 한 결 가벼워 질것이다.

-민예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17.html
kolaswqetsrq 11.03 05:30
삶은 선택이다

삶은 선택이다

삶이 고통에 처했을 때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실망 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사람이 적응하지못할

상황이란 있을 수 없다.

특히 자기 주위의 사람들이 자신과

똑같이 고통스럽게 생활 하고 있는

것을 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자기만이 불행한 사람에 속한다고

자학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거나 겪어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지금의 불운과 고통이 없다면 미래의

행운과 안락함도 찾아올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불행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아우성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침착하고 냉정하게

그 고통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삶은 선택이다.

우리의 생활은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까지의 일련의 행위이며,

사람은 날마다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 무수한 행위 속에서

자기가 해야 할 행위를 끊임없이 선택한다.

삶에 대하여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성숙도와 맞물려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삶에 있어서의 선택도

숙성과정을 거쳐야 훌륭한 것이 될 수 있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다면

인간적인 삶도 있을 수 없다.

-톨스토이(Leo Tolstoy)-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30.html
kolaswqetsrq 11.03 05:31
작고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마십시오

작고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마십시오

양보란 전체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작은 한 부분을 내놓는 것입니다.

그 작은 한 부분을 지키려고

너무 애쓰지 마십시오.

그것을 지키려다 더 큰 것을 놓치고,

그보다 훨씬 더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 있습니다.

작고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마십시오.

작은 일은 아무리 부풀리고 시간이 지나도

역시 작은 일일 뿐입니다.

진정한 가치와 본질은 목숨 걸고 지켜야 하지만,

그외의 것들은 웬만하면 지나치고 잊으십시오.

일생 동안 그런 것들을 양보한다 해도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이 바뀌는 일은 없습니다.

-정용철-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70.html
kolaswqetsrq 11.03 05:31
불행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불행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인생의 불행은

자유롭고 안락한 생활로부터 시작되지만

방심하지 않고 노력함으로써

이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또한 불행은 사치스러운 생활에서 비롯되나

겸손하고 절약하는 생활습관으로 벗어날 수 있다.

욕망에 사로잡힘으로써 생겨나는 불행은

만족하는 마음 하나로 면할 수 있으며

지나치게 많은 일을 만들어냄으로써 생기는

불행은 신중한 행동으로 벗어날 수 있다.

-뤼신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47.html
kolaswqetsrq 11.03 05:32
행복과 불행의 크기

행복과 불행의 크기

근본적으로 행복과 불행은

그 크기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작은 것도 커지고, 큰 것도 작아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큰 불행도 작게 처리해 버린다.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마한 불행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스스로 큰 고민 속에 빠진다.

-라 로슈프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15.html
kolaswqetsrq 11.03 05:33
급할수록 여유가 필요하다

급할수록 여유가 필요하다

하루 종일 해결하기 어려운 일로

골머리를 앓았다면 일단 푹 자두세요.

머리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합니다.

억지로 서둘러서 끝을 보려고 하진 마세요.

날이 밝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너무 마음 졸이지 말고 내일까지 기다려 보렴."

어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시간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면

한숨 푹 자고 내일 다시 생각하세요.

조급한 마음이 더 큰 실수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보세요.

어려운 문제일수록

느긋하게 볼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신영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45.html
kolaswqetsrq 11.03 05:33
인생 이만하면 잘 사는 거죠.

인생 이만하면 잘 사는 거죠.

돌아갈 보금자리

인자하신 어머니

기다리는 마누라

올망졸망 자식새끼

심심한 달래주는 텔레비전

허기 달래주는 냉장고

인생 이만하면 잘 사는 거죠.

든든한 회사

반겨주는 동네 친구

인사하는 회사동료

즐거운 취미생활

한잔하자 삼겹살집

인생 등대 되어주는 스승님

인생 이만하면 잘 사는 거죠.

따뜻한 햇살 한 자락

우울할때 내리는 빗줄기

귓가를 스쳐지나가는 산들바람

포근함으로 감싸주는 눈꽃송이

한밤 외로움 달래주는 달님

언제나 그 자리에 마을 앞산

인생 이만하면 괜찮은 것 아닌가요?

-신영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17.html
kolaswqetsrq 11.03 05:34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

우리는 평생 계산에 목 매달리어 살아왔다

사는 데 핍팍해서 그런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도 계산이 빨라야 했다

내가 손해보지 않아야 살 수 있는 세상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하여 계산을 하면

졸장부라 치부 하면서도

다른 사람보다 더 빠르게 계산을 해댔다

내가 주는 사랑이

받는 사랑보다 많을 경우는

손해인 것 같아서

그래서 받는 사랑은 배불리 받고

주는 사랑은 망설이다가

잃어 버린 뒤에 후회를 하게 되었다

무작정 주는 사랑이

뜨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사는 게 팍팍해서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주는 데 익숙지 않아서였다

축의금 십만원을 주면 다시 그것을 받아내야 했고

그 사람이 오만원을 내면

왜 그랬을까 알아보기도 전에 말도 섞지 않았다

무조건 내가 손해보지 않아야 하기에

작은 것 까지도 계산을 해댔다

다 주지 못하고 망설였던 사랑

그런데 정말 소중한 무엇을 잃어버리고서야

그 헛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받는 사랑이 적을 때마다

내가 주는 사랑은 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왜 미처 깨닫지 못 했을까

-김남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57.html
kolaswqetsrq 11.03 05:35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참 행복한 일입니다.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누군가 아픈 마음을 움켜잡고

혼자 어둠 속에서 눈물 흘릴 때

난 따뜻한 햇볕 아래 있는

당신께 내 아픔 내보이며

보다듬어 달라합니다.

그러면 당신께선 따스한 손길로

따스한 웃음으로

나의 아픔을 녹여 주십니다.

참 행복한 일입니다.

이렇게 당신과 같이 있을 수 있단 것이

누군가 세상의 힘겨움에 떠밀려

고통스럽게 허우적대는 동안

난 더 높은 곳에 서 있는

당신께 날 잡아 달라 손을 내밉니다.

그러면 당신은 행여나 놓칠세라

내 두 손 꼭 붙잡으시고 천천히

당신 곁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난 이렇게 행복합니다.

누군가가 내 곁에 있으므로...

-이해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383.html
kolaswqetsrq 11.03 05:35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다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다

1925년 뉴욕 양키스의 선발 1루수 윌리 핍이 두통 때문에 경기에서 결장했다. 핍의 자리에는 루 게릭이라는 이름의 루키가 올라갔다. 루 게릭은 이때 발군의 기량을 선보였고, 이후 2,130연속 경기 출장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까지 올랐다.

윌리 핍은 이후 한 번도 양키스 1루수로 뛰지 못했다. 이후 윌리 핍이라 이름은 주전 선수가 하루 결장을 원하거나 빠질 때를 지칭하는 단어가 되고 말았다.

 "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 큰 돈을 벌기 위해서, 주전 명단에 들기 위해서, 올해의 직원이 되기 위해서, 당신은 가장 먼저 그 경기에 뛰어들어야만 한다.
",

필드에서 뛰는 선수이며 경쟁자여야만 한다. 필드에, 경기장 위에, 경주 선상에 있어야만 한다. 경주에 참가하지 않으면 이길 수도, 보여줄 수도 없다. 구덩이에 빠진 운전자를 위한 깃발은 없다. 행방불명인 직원을 위한 보너스도, 커미션도, 승진도, 주차 공간도 없다.

누군가가 당신을 필요로 할 때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항상 요청한 것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도 사람들이 기대한 것보다 휠씬 더 잘해 내야 한다. 특히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으려는, 귀찮고 손 많이 가는 일을 자처할 필요가 있다. 그것도 웃으면, 즐기면서 말이다.

한다면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엉거주춤 몸을 반만 일으키지 말고, 자신이 빛날 기회만 있으면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야 한다. 항상 경기에서 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경기용 신발을 집에 놓고 와서는 절대 안된다.

-"CEO의 저녁 식탁, 성공의 모든 원칙이 숨어 있는 곳"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03.html
kolaswqetsrq 11.03 05:36
사람의 인연이란

사람의 인연이란

언젠가 다시 만날 사람도 있겠지만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서

다시 만날 보장이란 없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너무 경솔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건 아닌지요?

옷깃이라도 스치고

눈이라도 마주치며 지나는 사람들에게

좀더 좋은 인상을 주면서

좀더 짙은 애정을 느끼며 살아가야 함에도

우린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내가 어떤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떻게 유독 그 사람과 마주치게 된단 말입니까.

그 숱한 사람들과 그숱한 세월 속에서

나와 만났다는 것은 설사 그것이

아무리 짧은 만남이었다 치더라도 참으로 그것은

우리에게 대단한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린 어느 만남이라고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름다운 기억으로써 꼭 다시 만나고 싶은

 "
잊을 수 없는 사람으로서 남의 가슴에
",

꼭꼭 간직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린 모두 아낌없는 노력을 해야 될 겁니다.

-‘행복한 중년’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13.html
kolaswqetsrq 11.03 05:37
순간순간 서로의 기쁨이 되어 줍시다

순간순간 서로의 기쁨이 되어 줍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그러나 낯설지 않은 길이 있듯이

내 인생 어느 인연의 자리에서도 가질 수 없었던

간절한 그리움으로 당신을 봅니다.

지금을 위해서만 준비된 오랜 시간

내겐 가슴에 둔 한 사람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살아 있음이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처럼

하루를 억겁처럼, 억겁이 또 찰나처럼

유한한 것도 무한한 것도 내게는 없는 듯 합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나는 당신으로 채워져 가고

나를 잊으며 사는 내 영혼의 행복을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음은 아마도...

내가 살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내가 태어나기 오래 전

당신은 어쩌면 나의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윤회하는 시간 속에서 결코 닿을 수 없는 인연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같은 시간 이 세상에 함께 있음이

내가 살고자 하는 나의 소망입니다.

한없이 힘들고 깨어져 피투성이가 될지라도

당신을 향한 그리움으로 쓰러져 가는 나를 일으켜 세워

당신으로 인해 행복하렵니다.

질기고 질긴 인연의 바다

억겁의 세월을 지난 바위가 모래가 되고

다른 세상에서 내린 빗방울 하나가

같은강을 흐르는 물로라도 같은 바다를 지나는 물로라도

닿을 수 있는 날이 있다면 죽어서라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설움의 세월이 다 지나 천년을 하루같이

천번을 살다간 불새의 전설처럼

여름 한철 잠시 피었다가 사라진 무지개처럼

그대의 엷은 기억속에 남아 있을 수 있다면

어느 한순간 후회는 없습니다.

내가 떠나고 없는 자리가 빈 자리가 될지

서로 빼앗고 싸우며 살아야 할 소유가 아님에

진정 서로를 위하여 자유로우며

조금씩만 조금씩만 우리의 인연이 슬픔이

아님을 믿으며 나를 위해서 , 당신을 위해서

순간순간 서로의 기쁨이 되어 줍시다.

-‘책 읽은 남자’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97.html
kolaswqetsrq 11.03 05:37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은 묻질 않어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은 묻질 않어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솦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병운 젊을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 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황지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23.html
kolaswqetsrq 11.03 05:38
사랑하는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사랑하는 일 인줄 알았습니다.

아무 것 가진 것 없어도

마음 하나만 있으면

충분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은 바다처럼 넓고도 넓어

채워도 채워도 목이 마르고

주고 또 주어도 모자라고

받고 또 받아도 모자랍디다.

사랑은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줄 알았습니다.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가슴에 소복소복 모아놓고

간직만 하고 있으면

좋은 줄 알았습니다.

쌓아놓고 보니 모아놓고 보니

병이 듭디다 상처가 납디다.

달아 날까봐 없어 질까봐

꼭꼭 쌓아 놓았더니

시들고 힘이 없어 죽어 갑디다.

때로는 문을 열어 바람도 주고

때로는 흘려보내 물기도 주고

때로는 자유롭게

놀려도 주고 그래야 한답니다.

가슴을 비우듯 보내주고

영혼을 앓듯 놓아주고

죽을 만큼 아파도 해봐야 한답니다.

모아둔 만큼 퍼내야 하고

쌓아둔 만큼 내주어야 하고

아플만큼 아파야 한단걸

수 없이

이별연습을 하고 난 후에야

알수 있겠습디다.

사랑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인 줄 알았는데

사랑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입디다.

-‘내 서재에는 책이 있다‘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85.html
kolaswqetsrq 11.03 05:38
멋진 인생을 사는 방법

멋진 인생을 사는 방법

1. 젊음을 부러워하지 말라.

마음의 질투는 몸까지 병들게 한다.

2. 움켜쥐고 있지 마라.

너무 인색한 중년은 외로울 뿐이다.

돈을 잘 사용해 인생을 아름답게 장식하라.

3. 항상 밝은 생각을 가지라.

중년기의 불안과 초조는 건강을 위협한다.

4. 남에게 의존하지 말라.

의존하기 시작하면 인생은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5. 감정에 솔직하라.

잘난 척, 아는 척, 있는 척하는 삼척동자는

왕따를 당할 뿐이다.

6. 종교를 가져라.

종교생활은 인생의 석양을 한결 우아하게 만든다.

7. 아무 일에나 참견하지 말라.

이제는 참견보다는 후원과 격려에 치중하라.

8. 자신에 대한 연민에서 벗어나라.

나만큼 고생한 사람, 나만큼 외로운 사람,

나만큼 노력한 사람 등의 표현을 삼가라.

이런 말은 자신의 나약함을 노출하는 행위이다.

9. 인생의 계획을 세워라.

이제는 인생을 관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Facebook 글 옮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71.html
kolaswqetsrq 11.03 05:39
당신만 있으면 돼요. 그러면 돼요

당신만 있으면 돼요. 그러면 돼요

따스한 봄날의 꽃향기가

뜨겁게 타오르는 여름 바다가

울긋불긋 옷을 입은 가을 나무가

새하얀 눈꽃 내리는 겨울 하늘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당신과 함께하는 지금이

내게는 사계절보다 더 다채로운데.

나는 더 이상

지나간 계절을 그리워하지도

돌아올 계절을 기다리지도 않아요.

당신과 함께할 멋진 풍경들을

더 이상 찾아 헤매지도 않아요.

당신은 내게

설레는 봄이고

시원한 여름이고

충만한 가을이고

포근한 겨울이에요.

당신만 있으면 돼요.

그러면 돼요.

-김재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31.html
kolaswqetsrq 11.03 05:40
더 나은 삶을 위해 매일 읽으면 좋은 글

더 나은 삶을 위해 매일 읽으면 좋은 글

01. 따져서 이길 수는 없다

02.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도 잔소리는 용서가 안 된다

03. 좋은 말만 한다고 좋은 사람이라 평가받는 건 아니다

04. 말에는 자기 최면 효과가 있다

05. 툭한다고 다 호박 떨어지는 소리는 아니다

06. 유머에 목숨을 걸지 말라

07. 반드시 답변을 들어야 한다 생각하면 화를 자초한다

08. 상대편은 내가 아니므로 나처럼 되라고 말하지 말라

09. 설명이 부족한 것 같을 때쯤 해서 말을 멈춰라

10.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 말라

11. 농담이라고 해서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12. 표정의 파워를 놓치지 말라

13. 적당할 때 말을 끊으면 다 잃지는 않는다

14. 사소한 변화에 찬사를 보내면 큰 것을 얻는다

15. 말은 하기 쉽게 하지 말고 알아듣기 쉽게 해라

16. 립 서비스의 가치는 대단히 크다

17. 내가 이 말을 듣는다고 미리 생각해 보고 말해라

18. 지루함을 참고 들어주면 감동을 얻는다

19. 당당하게 말해야 믿는다

20. 흥분한 목소리보다 낮은 목소리가 위력 있다

21. 한쪽 말만 듣고 말을 옮기면 바보 되기 쉽다

22. 눈으로 말하면 사랑을 얻는다

23. 덕담은 많이 할수록 좋다

24. 자존심을 내세워 말하면 자존심을 상하게 된다

25. 공치사하면 누구나 역겨워한다

26. 남의 명예를 깎아내리면 내 명예는 곤두박질 처진다

27.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면 진실성을 인정받는다

28. 잘난 척하면 적만 많이 생긴다

29.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해야 인정받는다

30. 말의 내용과 행동을 통일시켜라

31. 두고두고 괘씸한 느낌이 드는 말은 위험하다

32. 상대에 따라 다른 언어를 구사해라

33. 과거를 묻지 말라

34. 일과 사람을 분리해라

35. 애교는 여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36. 자기 자신을 제물로 사용해야 웃길 수 있다

37. 대화의 시작은 호칭부터다

38. 대화의 질서는 새치기 때문에 깨진다

39. 말을 독점하면 적이 많아진다

40. 무시당하는 말은 바보도 알아듣는다

41. 작은 실수는 덮어 주고 큰 실수는 단호히 꾸짖어라

42. 지나친 아첨은 누구에게나 역겨움을 준다

43. 지키기로 한 비밀을 털어놓는 건 무덤을 파는 일이다

44. 악수는 또 하나의 언어다

45. 쓴 소리는 단맛으로 포장해라

46. 말은 입을 떠나면 책임이라는 추가 달린다

47. 침묵이 대화보다 강한 메시지를 전한다

48. 첫 한 마디에 정성이 실려야 한다

49.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면 대화는 저절로 잘 된다

50. 낯선 사람도 내가 먼저 말을 걸면 십년지기가 된다

51. 목적부터 드러내면 대화가 막힌다

52. 보이는 것만 판단해서 말하면 큰 낭패를 당하기 쉽다

53. 말을 잘한다고 대화가 유쾌한 것은 아니다

54. 내 마음이 고약하면 남의 말이 고약하게 들린다

55. 타협이란 완승, 완패가 아니라 승승이다

56. 험담에는 발이 달렸다

57. 단어 하나 차이가 남극과 북극 차이가 된다

58. 진짜 비밀은 차라리 개에게 털어놓아라

59. 지적은 간단하게 칭찬은 길게 해라

60. 가르치려고 하면 피하려고 한다

61. 정성껏 들으면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62. 비난하기 전에 원인부터 알아내라

63. 내 말 한 마디에 누군가의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64. 눈치가 빨라야 대화가 쉽다

65. 불평하는 것보다 부탁하는 것이 실용적이다

66. 말도 연습을 해야 나온다

67. 허세에는 한 번 속지 두 번은 속지 않는다

68. 내가 먼저 털어놓아야 남도 털어놓는다

69. 그런 시시한 것조차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70.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어서는 안 된다

71. 지나친 겸손과 사양은 부담만 준다

72. 도덕 선생님은 선생님 자리에서 내려올 수 없다

73. 말은 가슴에 대고 해라

74. 넘겨짚으면 듣는 사람 마음의 빗장이 잠긴다

75. 말투는 내용을 담는 그릇이다

76. 때로는 알면서도 속아 주어라

77.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

78. 정성껏 들어주라

79. 한쪽 책을 읽으면 두쪽 읽은 사람의 수하에 있다

80. 오늘 걷지않으면 내일은 뛰어야한다.

-‘책 읽은 남자’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90.html
kolaswqetsrq 11.03 05:40
사소한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마음

사소한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마음

보고 싶어.

사랑해, 라는 말에

그 사람은 항상

고맙다고 말한다.

충분히 느끼고 있지만

표현해줘서 고맙다고.

사소한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마음.

그래서 그 사람이 더 사랑스럽다.

더 잘하고 싶어진다.

나의 자그만 노력을

아는 척해줘서.

-김재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47.html
kolaswqetsrq 11.03 05:41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

친구와 저녁을 먹게 되면

당신이 먹고 싶은 것을 고집하지 말고,

친구가 가자는 식당으로 향하라.

나중에 입장이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그 때 빙긋이 웃고 맛있게 먹으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수 있다면,

둘은 좀 더 가까워 질 것이다.

-에크낫 이스워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68.html
kolaswqetsrq 11.03 05:41
있을 때는 몰라

있을 때는 몰라

그토록 원해서

어렵게 만난 사람인데

익숙해지면

그 고마움을 모르는 것 같아.

그래서 함부로 대하곤 하지.

있을 때는 몰라.

다 자기가

잘 하고 있다 생각하고

힘든 상황에서

할 만큼했다고 생각해.

그런데 지나고 나면

알게 되지.

사랑한 날보다

상처준 날이 더 많았다는 걸.

-김재식 ‘사랑하게 해줘서 고마워’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11.html
kolaswqetsrq 11.03 05:42
사랑은 생각처럼 자주 오지 않는다

사랑은 생각처럼 자주 오지 않는다

망설이다가 놓쳐버린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은 시간이었다.

시간을 잃어버렸다는 건

단순히 나이가 들었다는 게 아니다.

온전히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마음에 난 상처는

아물면서 단단해지지만

그만큼 더 쉽게 닳고 무뎌져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망설이지 말고 그 사람의 손을 잡아.

사랑은 생각처럼 자주 오지 않는다.

-김재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04.html
kolaswqetsrq 11.03 05:43
당신은 지쳐 있을지 모른다

당신은 지쳐 있을지 모른다

당신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지쳐 있을지 모른다.

익숙하게 하던 일도 더뎌지고

즐겁게 하던 일들도 재미가 없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점점 무기력해지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귀찮게 느껴지고

세상의 어떤 것도 즐겁지가 않다.

숨은쉬고있지만

힘겹게 잠든 밤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당신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인지 모른다.

열심히 노력한 것들에 대해

생각과 다른 결과에 지쳐

모든 게 의미없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게으른 게 아니라

우울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혼자 길을 나서라.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라.

그 사람은 가까운 사람일 수도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일수도 있다.

사람은 사람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사람으로 치유받을 수 있다.

갑자기 쓰러진 사람이

스스로 심폐소생술을 해서

살아날 수는 없다.

그러니 쓰러지기 전에 살펴주고

보듬어주어야 한다.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09.html
kolaswqetsrq 11.03 05:43
사랑에 대한 착각

사랑에 대한 착각

누군가를 조금 만나봤다고

사랑을 다 안다고 착각하지 말 것.

하루의 일분일초가

언제나 알 수 없는 새로운 시간이듯

같은 사람이라도

나의 태도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사랑을 일반화하지 말 것.

-‘사랑하게 해줘서 고마워’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69.html
kolaswqetsrq 11.03 05:48
소망을 이루어 주는 것

소망을 이루어 주는 것

신을 열심히 믿고 기도했기 때문에

아이가 성공하고

가정이 화목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소망이 이뤄지는 것은

부처님을 믿어서

부처님이 이뤄주고,

하나님을 믿어서

하나님이 이뤄준 것이라기보다.

자신의 믿음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면

방황하게 되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믿음에 집중하기 때문에 ....

심리적 안정을 찾고

정신을 바로 차리게 되어

소망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법륜 스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55.html
kolaswqetsrq 11.03 05:48
아직도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아직도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만일 당신이 장미꽃을 본다면

아름다운 장미에 하필 가시가 달려 있다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또 당신은 이런 험한 가시덩굴 속에서도

아름다운 장미가 피어났다고 감탄할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한 공간에 존재합니다.

행복과 불행은 한 장소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물과 현상은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우리들이 보는 시각에 따라 변합니다.

아름다운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꽃동네로 보이고

불만스런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안개 자욱한

오염된 도시로 보이는 법입니다.

세상은 전적으로 당신이 어떤 마음의 눈으로 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녹슨 마음을 깨끗이 닦으십시오

밝은 생각 ,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아직도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내 삶에 휴식이 되어주는 이야기’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85.html
kolaswqetsrq 11.03 05:49
세상은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세상은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존재 이유가 없는 생명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스스로가 부족해 보이고,

딱히 세상에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고 해서

당신의 존재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당신을 필요로 하고,

당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당신이 왜 존재하는지,

당신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으세요.

이러한 과정에서 당신이 행복할 방법과

당신에게 주어진 올바른 길은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서동식-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15.html
kolaswqetsrq 11.03 05:50
나를 키운 낙서장

나를 키운 낙서장

"엄마, 학교에서 가계부를 하나씩 줬어요."

막내가 가방을 내려 놓으며 예쁘고 질 좋은 가계부 한 권을 건넸다. 처음 보는 가계부였다.

그 때 우리는 5남매의 학비 때문에 몹시 힘들게 생활했었다. 새벽4시부터 서둘러 도시락 5개를 챙겨 하나씩 학교에 보내고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남은 것은 어수선한 집안청소와 설거지뿐이었다.

그 시간이면 나는 아랫목에 배를 깔고 누워 가계부를 적곤 했다. 콩나물, 두부, 애들교통비 등 모두가 시원치 않은 것들이라 질 좋은 가계부가 아까울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나는 어느새 가계부에 낙서를 하게 되었다. 그날 애들과 이침부터 싸운 일, 돈 때문에 기분 상했던 일 등. 이것저것 적다 보면 으례 원망의 초점은 매일 과음으로 살아가는 애들 아버지에게 향했다. 좋은 일, 나쁜 일, 반성할 일 등 꽤 두꺼운 노트 한권을 낙서로 다 메워가던 어느날, 막내가 나를 불렀다.

"엄마! 학교에서 가계부 가져 오래요." "뭐? 이거 큰일났구나" 나는 차라리 꾸중을 들으라고 했지만 딸아이는 가계부를 그대로 학교에 가져 갔다.

하루는 막내가 무언가를 잔뜩 안고 들어오며 "엄마 가계부가 우리 반에서 최고래." 하고 말하더니 화장품 한 세트, 월간지, 또 새로운 가계부 한 권을 상품이라며 방바닥에 쏟아 놓았다.

"선생님께서 엄마가 흰 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써서 그 성의로 이상을 주는 거래요."

 "
낙서로 시작해서 낙서로 끝났는데 상품까지 주니 미안하고 멋적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낙서장으로 인해 나는 인내심과 함께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계부는 내게 재산 목록1호의 소중한 보물이다.
",

-이경연 ‘밥 빌어다 죽도 못 먹을 위인’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96.html
kolaswqetsrq 11.03 05:50
진실한 친구를 선택하라

진실한 친구를 선택하라

대부분의 친구는 우연의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생긴다.

분별력을 갖고 친구를 선택하라.

단지 끌리는 마음보다는

통찰력에 근거해서 선택하는 것이 좋다.

사람은 그가 사귀는 친구에 따라 평가되기 때문이다.

어떤 삶에 끌린다는 이유만으로

절친한 친구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 사람의 능력을 신뢰해서라기보다는

그와 즐거움을 나누는 사이에 생겨난

호감에 불과할 수 있다.

진실한 우정과 진실하지 못한 우정이 있다.

후자는 오락에서,

전자는 훌륭한 생각과 행동의 결실에서 온다.

진실한 친구 한 사람의 건실한 통찰이

다른 많은 이들의 호의보다 더 유용한 법이다.

그러니 우연에 맡기지 말고

직접 나서서 친구를 선택하라.

-발타자르 그라시안-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45.html
kolaswqetsrq 11.03 05:51
그래도 사람만이 소중합니다

그래도 사람만이 소중합니다

무척이나 사람이 그리운 날이 있습니다.

울고 싶을 때 기대어 울 수 있는 사람이

그리운 날도 있습니다.

가슴에 쌓인 한이 너무 많아서 내 얘기 들어줄 이가

그리운 날도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더불어 살게 되어 있고,

어울려서 때로는 보듬지만 때로는 다투며 삽니다.

그래도 사람만이 소중합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것을

사랑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 무엇을 사랑하기 전에 사람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사귀고 있나요?

나는 그에게 어떤 존재로 비치고 있나요?

내가 만나는 이들의 무엇을 먼저 보고 있나요?

그의 여건, 그의 물질적 가치 때문인가요?

무엇보다도 그의 사람됨을 우선 보아야 합니다.

그에게 나는 진정 믿을 만하고 사귀고 싶은 존재가 되고,

그 이후 어떤 상황에서도 그에게 실망을 주지 않는

진실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만나는 그들이 어떤 이들이든 간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교감을 나누는,

마음의 벗들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모습은 변해도,

상황은 변해도,

세상은 변해도 마음은 늘 한결같은

만남들이 많아져 우리 모두 행복한 미소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복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80.html
kolaswqetsrq 11.03 05:51
배려와 존중의 말

배려와 존중의 말

상처를 주면 상처로 돌아오고,

희망을 주면 희망으로 돌아온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먼저 대접할 줄 알아야 한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는 모로코 속담이 있다.

‘말은 깃털처럼 가벼워

주워 담기 힘들다.’는 탈무드의 교훈도 있다.

상대를 낮추며

자신을 올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상대를 무시하면

자신도 무시당하게끔 되어 있다.

배려와 존중의 말로

자신의 격을 높여가야 한다.

날개는 남이 달아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뚫고 스스로 나오는 것.

당신 속에 숨어있는

꿈의 날개를 활짝 펴고,

높이 날아오르는 하루를 만들어라.

-이지성-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44.html
kolaswqetsrq 11.03 05:52
토닥 토닥

토닥 토닥

나는 너를 토닥거리고

너는 나를 토닥거린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하고

너는 자꾸 괜찮다고 말한다.

바람이 불어도 괜찮다.

혼자 있어도 괜찮다.

너는 자꾸 토닥거린다.

나도 자꾸 토닥거린다.

다 지나간다고 다 지나갈거라고

토닥거리다가 잠든다.

-김재진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25.html
kolaswqetsrq 11.03 05:53
진실로 강한 사람은

진실로 강한 사람은

진실로 강한 사람은 웃음으로 무장한 사람입니다. 웃음은 상대방에게 친근감을 갖게 하고 즐거움을 느끼게 합니다.

얼굴을 찌푸린 미인보다는 바보의 웃는 얼굴이 우리를 더욱 기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웃을 일이 없을 때, 기분이 좋지 않을 때라도 웃어야 합니다. 웃음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자신의 기분도 전환시키기 때문입니다.

미소를 짓지 않는 사람은 은행에 억만 불을 맡겨 놓고 수표장을 갖지 않은 사람과 같습니다.

 "
미소란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 덕분에 나는 행복합니다. 당신을 만나 정말 기쁩니다란 무언의 신호입니다.
",

행복은 어떤 여건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행복을 원한다면 행복만 생각하십시오. 오늘 이 시간부터 미소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그러면 성공인이 되고 행복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삶의 행복을 주는 지혜’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08.html
kolaswqetsrq 11.03 05:53
봐줘라, 좀 봐줘

봐줘라, 좀 봐줘

봐줘라, 좀봐줘, 라는 말은

어머니가 제일 많이 쓰시던 말씀이었습니다.

서로 봐주니깐 우리는 살아있는거라고,

그런게 가족이고 친구고 사랑이라고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저는 별로 달가와 하지 않았습니다.

정의도 없고, 교훈도 없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는 어머니의 말씀을

다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봐주는거,

친구끼리, 사랑하는 사람끼리, 가족끼리

아니면 그냥 사람끼리 서로 봐주는거

-공지영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10.html
kolaswqetsrq 11.03 05:54
허준 선생의 건강 충고

허준 선생의 건강 충고

01. 곡기(穀氣)가 원기(元氣)를 이기면 살이 찌게 되며 장수하지 못한다. 이와 반대로 원기가 곡기를 이기면 살은 찌지 않고 장수한다.

02. 나라를 다스리는 어진 재상이 되지 못할 바에는 사람과 병을 다스리는 명의가 되겠다.

03. 5가지 맛 중에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은 소금이다. 그러나 되도록 적게 가능하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04. 배는 덥게, 머리는 차게하라.

05. 병도 긴 눈으로 보면 하나의 수양(修養)이다.

06.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다. 수명이 본래 443,200 여일, 약 120세이다.

07. 사람은 언제나 침을 삼키면 장수하며 얼굴에 광택이 생긴다.

08. 사람의 몸은 한 나라와 같으니라. 사람이 40세 이하일 때 제멋대로 놀면, 40세 후에 갑자기 기력이 쇠퇴하기 시작함을 느끼게 된다. 쇠퇴가 시작되면 여러 가지 병이 벌떼처럼 일어나기 시작한다. 손을 쓰지 않고 오래 내버려두면 드디어 구해낼 수 없게 된다.

09. 소금 : 서북인은 적게 먹기 때문에 수명이 길고 병이 적으나, 동남인은 짠 것을 즐겨 먹기 때문에 수명이 짧고 병이 많다.

10. 술이 취했을 때는 마차를 달리거나, 높고 낮은 곳을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

11. 아직 생기지 않은 병을 미리 다스린다. 양생법(養生法)은 몸에 손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장수하는 방법이니라.

12. 지금의 의사는 오직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마음은 고칠 줄 모르니 이는 근본을 버리고 말단만 쫓는 격이며, 그 근원은 캐지 않고 말로만 손질하는 것이다.

13. 추위를 물리치고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신진대사를 돕고 약 기운을 끌어주는 데는 술처럼 좋은 것이 없다.

14. 하루에 조심할 것은 저녁밥을 지나치게 포식하여서 는 안 된다. 매달 조심할 것은 월말에 월급을 탔다고 술에 대취(大醉)하여서는 안 된다.

15. 한(漢)나라 때의 괴경이라는 사람은 나이가 120세가 되었어도 기력이 아주 왕성하였는데 매일 아침 침을 삼키고 이를 악물어 마주치게 하기를 열 네 번씩 하였다고 하며, 이렇게 하는 것을 연정법(鍊精法)이라고 한다.

-허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33.html
kolaswqetsrq 11.03 05:55
그대가 나의 소중한 인연 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대가 나의 소중한 인연 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중한 인연은

소리없이 조용히 가슴에 새겨집니다.

설령 거부한다 해도

다가올 인연은 다가오게 되고

원해도 다가서지 않을 인연은

바람처럼 그저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가다가 수로에 걸리기도 하고

바위에 부딪치기도 하고

아프면 아픈 채로

슬프게 갈라지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사는 인연이고 삶이며

그대와 나의 세상입니다.

살아가면서

좋은 인연을 가슴에 새겨보십시오.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보십시오.

서로의 가슴과 가슴이 열릴 때

삶도 열리고 행복도 열릴 것입니다.

좋은 인연은

함부로 만들어지지도 않으며

또한 함부로 멀어지지도 않습니다.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 갈때

삶도 그렇게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고운 인연을 만들어 갈때

삶도 그렇게 윤택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우리 생각하는 대로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되도록 악한 인연은 만들지 말것이며

슬픈 인연도 만들지 마십시다.

그의 좋은 점을 바라만 보아도,

그냥 그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

그것이 참된 인연이며 좋은 인연일 것입니다.

믿음과 믿음의 탑을 쌓아올려

단단한 바위처럼 견고한 인연으로

오래도록 지켜가 보십시다.

삶을 향해 함께 걸어가면서

하나의 마음으로 변함없을 때

마음속에 믿음과 사랑이 싹트게 될 것입니다.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다만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킬 때

서로에게 좋은 인연이 될 것입니다.

지극한 인연이란

다시 만남을 의미합니다.

아름다운 인연이란

이별이 있을지라도 인연의 끝은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랍니다.

 "
돌아서면 그만이다. 하는 식으로
",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악연일 뿐입니다.

강물처럼 함께 어우러져 살고

바람처럼 서로 섞여 살면서

손을 내밀면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마음앞에

좋은 인연이 다가오고 좋은 싹이 트게 될 것입니다.

욕심없는 풀잎위의 이슬처럼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처럼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 가십시다.

언젠가 눈감으면

흙과 물과 바람, 햇볕이 되어

다시 자연으로 만날 우리들입니다.

사는 날까지 언제나 웃으면서

서로가 좋은 인연이라고 기뻐하며

살아가십시다.

조금도 나쁘게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만나게 된 인연,

얼마나 소중합니까!

이 아름다운 인연을 곱디곱게 간직하여

그대 함께 좋은 인연,

그대 있어 좋은 세상,

그대와 항상 좋은 삶을 생각해 보십시다.

그리하여

나는 그대에게, 그대는 나에게

진정 소중한 만남이었다고

진정 소중한 인연이었다고

가슴으로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대들이여!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가꾸어가야 할

소중한 인연인 것을,

바로 이것이 우리가 누리며 살아가야 할

소중한 삶인 것을,

우리 함께 깨우쳐 가기를 소망합니다.

-심성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07.html
kolaswqetsrq 11.03 05:55
모소대나무 이야기

모소대나무 이야기

흔히 대나무를 떠올리면 길고 곧게 뻗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하루 동안 1m까지 자라나는 대나무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극동지방에서만 자라는 희귀종인 “모소대나무”는 씨앗에서 싹이 트고 수년간 농부들이 매일 정성을 들여도 4년간 고작 3cm밖에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대나무는 5년째 되는 날부터 하루에 무려 30cm가 넘게 자라기 시작한다. 그렇게 6주만에 15m 이상 자라게 되고 곧 주변은 빽빽하고 울창한 대나무 숲이 된다.

“어떻게 6주만에 폭풍 성장을 할 수 있을까?”

6주만에 급격한 속도로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모소대나무는 씨앗이 움트고 나서 4년 동안 땅속에서 수백m2의 뿌리를 뻗친다고 한다. 성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땅 속 밑으로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모소대나무의 성장방식을 잘 알고 있는 농부들은 그 대나무가 어떻게 자랄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큰 성장이 없어도 꾸준히 물과 양분을 주며 가꿀 수 있었던 것이다.

당장 눈앞에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않고 더 크게 자라기 위해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모소대나무. 그에 비해 우리는 결과나 성과에 의존해 내면의 뿌리를 내리는 데는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우리의 모습을 다시 돌아본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다시 기억한다.

-세상의 모든 명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384.html
kolaswqetsrq 11.03 05:56
운명은 성취하는 것

운명은 성취하는 것

20세기 초, 이탈리아에 한 청년이 있었다. 그에게는 독특한 버릇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고민이 되는 상황마다 동전 던지기를 하는 것이었다.

한 때 그에겐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다. "파리의 적십자사로 전근을 가느냐, 어느 디자이너 가게에서 일하느냐" 그는 앞면이 나오면 디자이너 샵으로, 뒷면이 나오면 적십자사로 전근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결과는 앞면이 나와 디자이너 샵으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패션계에 발을 들이게 된 그는 곧 재능을 인정받아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 디오르(Dior) 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디올이 죽고 후계자로 지명된 그는 또 다시 동전을 던진다. 회사에 남아 디올의 뒤를 이을 것인가 아니면 독립하여 내 이름으로 가게를 낼 것인가? 결국, 독립을 택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만들었고, 우리는 지금 그 브랜드를 "피에르 가르뎅" 이라 부른다.

한 기자가 그에게 말했다. "운이 정말 좋으시네요. 동전을 던져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자 그는 말했다. "동전 던지기가 좋은 선택을 하도록 한 게 아닙니다. 어떤 선택이든 일단 결정한 후엔 믿음을 갖고 밀고 나간 것 뿐 이니까요."

살아가며 마주하는 많은 선택 앞에서 우리는 고민한다. 무엇이 더 옳은 선택인지를 알기 위해서..., 혹은 나보다 앞선 사람들의 조언을 주의 깊게 들어보기도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선택‘ 그 자체가 아닌 선택 후 우리의 ‘믿음과 행동’이다.

운명은 우연이 아닌 선택이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는 것이다.

-‘책 읽은 남자’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87.html
kolaswqetsrq 11.03 05:57
행복한 사랑

행복한 사랑

미성숙한 사랑은 말한다.

‘나는 당신이 필요해서(소유하려고) 사랑한다.‘

성숙한 사랑은 말한다.

‘나는 사랑하기에 당신이 필요하다.’

진정한 사랑은 실천하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빠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오로지 한 사람만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공생적 집착

또는 확장된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02.html
kolaswqetsrq 11.03 05:57
R=VD

R=VD

Realization = Vivid X Dream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라는 뜻으로, 이지성 작가의 저서 《꿈꾸는 다락방》에 소개되며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R=VD에서 R은 Realization(실현), V는 Vivid(생생한), D는 Dream(꿈)의 약자로, 생생하게 꿈을 꾸면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2007년에 출간된 이지성 작가의 《꿈꾸는 다락방》에 언급된 핵심 내용으로, 이 책은 R=VD 법칙을 직접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한편, R=VD와 비슷한 것으로 줄리의 법칙(Jully’s law)을 들 수 있는데, 이는 간절히 바라는 일은 언젠간 이루어질 수 있다는 법칙을 의미한다. 이는 모든 행운이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잠재의식을 통해 필연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우연한 기회에 행운을 잡는 샐리의 법칙과 차이가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rvd.html
kolaswqetsrq 11.03 05:58
손절매stop-loss

손절매(stop-loss)

주가(株價)가 단기간에 상승할 가능성이 없거나 현재보다 더욱 하락할 것이 예상되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가지고 있는 주식을 매입 가격 이하로 파는 것을 말한다. 로스컷(loss cut) 또는 스톱로스(stop loss)를 손절매라 하는데, 통상 로스컷은 기관투자가들의 손절매 기법을 말한다. 기관투자가들은 매입 시점에서부터 10~30% 손실이 나면 자동적으로 매도하도록 하고 있다. 물량을 매도하는 손실 비율은 기관마다 다른데 은행이 가장 보수적이다. 고객 성향 자체가 보수적이고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비율을 감안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의 로스컷 제도는 위험 관리 차원에서 더 이상 손실을 보기 전에 서둘러 팔도록 한 감독 당국의 조치에 따라 내부적으로 엄격히 시행하고 있는 주식 투자 지침으로 주식의 손실 폭이 30% 이상이면 무조건 처분하여야 한다. 매입 단가보다 30% 이상 떨어지면 손실을 무릅쓰고 더 이상의 추가 손실을 막기 위하여 자동적으로 보유 주식을 내다 팔도록 되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stop-loss.html
kolaswqetsrq 11.03 05:59
딥페이크Deepfakes

딥페이크(Deepfakes)

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특정 영상에 합성한 편집물로, 포르노 영상에 유명인이나 일반인의 얼굴을 합성하는 사례가 많아 디지털 성범죄 논란이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특정 인물의 얼굴, 신체 등을 원하는 영상에 합성한 편집물이다. 미국에서 ‘딥페이크’라는 네티즌이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 할리우드 배우의 얼굴과 포르노를 합성한 편집물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연예인, 정치인 등 유명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대상이 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됐다. 딥페이크는 온라인에 공개된 무료 소스코드와 머신러닝 알고리즘으로 손쉽게 제작이 가능하며 진위 여부를 가리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다. 피해자의 신고가 없으면 단속이 어렵고 주로 트위터, 텀블러 같은 SNS을 통해 제작을 의뢰하고 합성물을 받기 때문에 계정을 폐쇄하면 단속을 피할 수 있어 처벌이 어렵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deepfakes.html
kolaswqetsrq 11.03 06:00
육십갑자六十甲子

육십갑자(六十甲子)

육십갑자(六十甲子)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를 차례로 맞추어 쓴 것으로 60년을 일주(一週)로 한 것을 말한다.

즉, 십신장(十神將)=천간(天干) :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십이지신(十二地神)=지지(地支) :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에서 천간(天干)은 그대로 두고 지지(地支)가 5섯번 돌면 60갑자(六十甲子)가 완성되는 것이다. 천간의 처음 글자인 甲자와 지지의 처음 글자인 子자를 시작으로 천간과 지지를 순서대로 배합하여 육십개가 조직되므로 갑자에서 시작하여 갑자로 돌아오기까지 60개의 조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甲이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의 환갑(還甲)이라는 용어도 자기가 태어난 해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경진(庚辰)년, 신사(辛巳)년, 임오(壬午)년, 계미(癸未)년, 갑신(甲申)년, 을유(乙酉)년 등으로 사용된 것은 물론, 월(月)이나 일진(日辰)에도 활용되었으며, 우리의 시간(時間)에도 활용이 되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42.html
kolaswqetsrq 11.03 06:00
생활도로生活道路

생활도로(生活道路)

주거지 주변에 있는 폭 9m 미만의 도로

보도와 차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좁은 도로로, 이면도로(裏面道路)라고도 부른다. 주로 폭 3m 차도의 왕복, 좌우 1.5m 보도가 설치되면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기 때문에 생활도로의 기준을 9m 미만으로 본다.

생활도로의 경우 좁은 도로에 자동차와 보행자가 뒤엉켜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으며, 도로교통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 5392명 중 3093명이 생활도로에서 사망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17.html
kolaswqetsrq 11.03 06:01
퀴노아quinoa

퀴노아(quinoa)

고대 잉카문명 시절부터 재배된 고단백ᆞ고영양 식품으로,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명아줏과 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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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노아란 고대 잉카제국에서 감자와 옥수수를 비롯해 3대 작물로 재배된 명아줏과 식물이다. 퀴노아(quinoa)의 어원은 모든 곡식의 어머니를 뜻하는 고대 잉카어(현, 페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약 4,000년 전부터 안데스산맥 일대에서 주요 작물로 재배해 왔다. 그러나 16세기경 남미를 침략한 스페인 군대에 의해 잉카제국이 멸망하면서, 인디오들이 신성시하는 퀴노아 경작이 탄압을 받게 되고 그 결과 생산지가 상당수 감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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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재배 농가들이 사라지면서 퀴노아에 대한 수요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였으나, 다른 곡물들보다 월등히 높은 영양성분이 재조명되면서 웰빙(well-being) 시대의 건강식품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80년대부터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다양한 품종 개량과 재배기술 개발을 통해 퀴노아 생산량을 증대, 미국과 유럽을 넘어 아시아 지역까지 널리 보급되고 있다.

퀴노아의 주산지는 남아메리카의 페루와 볼리비아가 대표적이며, 에콰도르ᆞ칠레ᆞ브라질 등지까지 분포하고 있다. 해발 2,500m~4,000m의 고산지대에서 주로 자라는데, 영하 3°C부터 영상 35°C까지 다양한 기후 환경에서도 적응력이 강하고 건조한 토양에서도 재배가 용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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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노아는 쌀보다 작은 좁쌀 크기의 원형으로, 색상은 흰색, 붉은색, 갈색, 검은색 등으로 구분된다. 특히 레드 퀴노아로 불리는 붉은색 퀴노아는 다른 종류의 퀴노아에 비해 단백질과 칼슘 함량이 더 높은 편이다. 퀴노아의 성분은 평균 16~20% 정도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을 만큼 고단백 식품으로, 고대 인디오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을 담당하였다. 쌀, 보리, 밀 등 다른 곡류와는 달리 나트륨이 거의 없고, 글루텐 또한 없기 때문에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양질의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어서 동물성 단백질 식품인 우유를 대체할 수 있는 완전한 식물성 단백질 식품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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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리신ᆞ메티오닌ᆞ아르기닌ᆞ히스티딘 등 9가지 종류의 필수아미노산이 균형적으로 조성되어 있어 인체의 영양 공급에도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 이밖에도 칼슘ᆞ칼륨ᆞ인ᆞ철분ᆞ마그네슘ᆞ망간ᆞ아연ᆞ셀레늄 등의 각종 무기질과 미네랄을 비롯해 비타민, 섬유질, 녹말 등 풍부한 영양성분을 가지고 있다. 리신과 인은 근육 및 골격을 구성하는 기능으로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 있고, 마그네슘은 혈압을 적절히 유지하는 기능을, 망간과 셀레늄은 항산화 작용을 통해 노화를 방지하는 기능이 있다.

또한 오메가3ᆞ오메가9 지방산처럼 불포화지방으로 이루어져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고, 혈당지수(GI : glycemic index)를 낮은 수준으로 조절해서 당뇨 및 고혈압에도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식이섬유가 많아서 포만감이 높고 소화를 촉진해 다이어트에도 유용하다고 알려져 있다. 퀴노아에는 쌀(백미)에 비해 단백질은 2배, 칼륨은 6배, 칼슘은 7배, 철분은 20배 이상이 함유되어 있으며, 비타민 B1은 백미의 5배, 비타민 E는 백미의 30배나 많은 함유량으로 두뇌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효능이 있다.

이처럼 퀴노아는 다양한 영양소를 고루 지닌 슈퍼푸드(superfood)로 각광받으며, 어린이들의 이유식은 물론 임산부와 노인들의 건강식으로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쌀과 유사한 방식으로 조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물에 씻어서 낟알을 걸러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쌀에 부족한 영양소들을 보충해 줄 수 있어서 쌀과 함께 밥을 지어 섭취하거나, 익혀서 채소와 곁들여 먹기도 하고, 가루를 내서 과자나 음료로 만들기도 한다. 퀴노아 열매의 껍질에는 쓴맛을 내는 사포닌이 다량 함유돼 면역력 강화와 항암 작용에도 뛰어나다. 또한 껍질의 쓴맛으로 인해 병충해의 접근도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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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에서는 2013년을 세계 퀴노아의 해로 선정, 쌀을 대체하는 주요 식량원이자 완전식품으로 퀴노아를 평가한 바 있다. 반기문 국제연합(UN : United Nations) 사무총장은 식량 안보 차원에서 퀴노아의 영양학적ᆞ경제적ᆞ환경적ᆞ사회적ᆞ문화적 가치를 주목하며, 전 세계의 기아를 해결하고 빈곤을 줄일 수 있는 영양식품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이에 국제연합(UN)의 전문기관인 국제농업개발기금(IFAD : International Fund for Agricultural Development)에서 퀴노아 생산을 장려할 목적으로, 남아메리카 현지의 퀴노아 재배 농가들을 상대로 농장의 경작 시설 및 공장 설비 등을 위하여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는 우주식량의 대체식품으로 퀴노아를 개발하고자 검토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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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quinoa.html
kolaswqetsrq 11.03 06:04
코스닥KOSDAQ

코스닥(KOSDAQ)

KOSDAQ = Korea Securities Dealers Automated Quotations

첨단벤처기업 중심 시장인 미국의 나스닥(Nasdaq)시장을 본떠 만든 것으로, 증권거래소 시장과는 다른 별도의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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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거래소와 같은 특정한 거래장소가 없고 컴퓨터와 통신망을 이용해 주식을 매매하는 전자거래 시장을 말한다.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창구를 마련하는 한편 일반투자자에게 새로운 투자수단을 제공하기 위해 1996년 7월 개설됐다. 코스닥시장은 증권거래소에 비해 규제가 덜한 편이며, 비교적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다. 또 미래에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지만 위험도 높다. 한마디로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시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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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시장에서 거래를 시작하려면 증권사에서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 다만 기존 증권사 계좌(상장사매매용 계좌)가 있으면 별도의 계좌를 만들 필요가 없다. 상장 주식을 매매하는 것과 같이 주문표를 작성하거나 전화를 통해 매매할 수 있다. 매매거래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단일장이며 점심시간은 따로 없다. 최소매매 수량단위는 1주이며, 신용거래도 가능하다.

○ 코스닥 지수

코스닥시장이 발표하는 주가지수에는 코스닥종합지수, 코스닥50, 벤처지수, 업종별 지수 등이 있으며 모두 시가총액식 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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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종합지수는 코스닥시장에 등록된 전 종목을 구성종목으로 하는 것으로, 기준시점을 1996년 7월1일로 하고 기준지수를 100으로 하였으나, 2004년 1월 26일부터 기준지수가 1000으로 상향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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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50은 코스닥시장을 대표하는 50개 종목을 대상으로 산출하는 시가총액식 지수로 선물, 옵션 등 파생금융상품이나 벤치마크 기준지수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기준시점은 1999년 1월 3일이고, 기준지수는 1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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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코스닥증권시장은 2004년 1월 26일 30개의 우량 기업만으로 구성된 코스닥 스타지수를 공표했고, 코스닥50을 스타지수로 전면 대체키로 했으나 시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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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닥시장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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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986년 7월 규모의 영세성 등으로 인하여 현실적으로 증권거래소 시장을 이용하기 어려운 중소기업 등이 증권시장에서 자금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관점에서 중소기업 등의 주식거래 활성화를 위한 시장조직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1987년 4월 장외시장 조직화가 이루어졌으며, 1987년 4월 15일 (주)에어로시스템, 범양건영(주), 한국물산(주)의 3개 기업이 최초의 주권장외거래종목으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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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0월 고객과 증권회사 간, 증권회사 상호간 상대매매를 중개하기 위한 주식장외거래 중개기가 설치되었다. 1996년 5월에는 상대매매방식으로 이루어지던 낙후된 거래방식을 경쟁매매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코스닥 시장을 운영할 (주)코스닥증권시장이 설립되었으며, 그해 7월 매매시스템이 가동되었다. (주)코스닥증권시장의 주주는 중소기업진흥공단, 한국증권금융(주), 한국증권업협회, 증권예탁원, 한국증권전산(주)과 주요 증권사들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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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월에는 코스닥시장 주가지수 발표가 발표되었는데, 이는 1996년 7월 1일을 기준지수 100으로 한 것이다. 이후 1998년 10월에 시장의 운영과 감독을 분리하여 시장의 공공성 및 효율성 제고하기위해 코스닥위원회가 신설됐다. 코스닥위원회는 코스닥 시장 업무에 관한 최고의사결정기구로 코스닥 시장의 등록심사, 취소, 규정의 제·개정에 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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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의 경기침체로 코스닥 시장은 위기를 맞이했으나, 이후 경기가 회복되고 등록 요건 완화 및 세제 혜택 제공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정부의 제3차 코스닥 시장 활성화 방안(1999.5.4)의 발표로 코스닥 시장은 2000년 들어 급격한 성장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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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kosdaq.html
kolaswqetsrq 11.03 06:04
콜키지 프리corkage free

콜키지 프리(corkage free)

손님이 식당에 와인을 사가지고 가면 레스토랑에서 무료로 잔을 제공하고 코르크를 개봉해 주는 서비스이다.

손님이 식당에 갈 때 보유하고 있는 와인을 직접 들고 가면 레스토랑에서 무료로 전용 잔을 내어주고 코르크를 개봉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콜키지는 코르크 차지(Cork Charge)의 줄임말이다. 보통의 식당은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일정한 콜키지를 받지만 콜키지 프리 식당은 무료로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corkage-free.html
kolaswqetsrq 11.03 06:05
리퍼비시Refurbish

리퍼비시(Refurbish)

리퍼비시 제품은 구매자의 단순 변심으로 반품된 정상품이나 제조나 유통 과정에서의 오류로 미세한 흠집 등이 있는 제품, 단기 전시용으로 사용했던 제품 등을 보수 및 재포장해 새 상품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상품을 말한다.

‘다시 닦는다’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 동사 ‘refurbish’에서 가져온 말로 구매자의 단순 변심으로 반품된 정상품, 성능에 큰 문제가 없는 초기 불량품, 전시 제품, 미세한 흠이 있는 제품 등을 업체에서 수리, 재포장 등의 정비를 통해 다시 판매하는 제품을 말한다.

업체들이 리퍼비시 제품을 내놓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즉, 단순 변심 제품이나 초기 불량품 등을 중고로 처리하거나 폐기하게 되면 그에 따르는 비용이 발생하지만, 리퍼비시를 실시하게 되면 비록 재정비하는 비용은 들어도 어느 정도의 이익을 남기고 판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퍼비시 제품의 시중 판매 가격은 보통 새 제품보다는 저렴하고 중고 제품보다는 높게 형성돼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refurbish.html
kolaswqetsrq 11.03 06:06
잠봉뵈르Jambon Beurre

잠봉뵈르(Jambon Beurre)

잠봉뵈르는 프랑스의 대표적 빵인 바게트를 반으로 자른 뒤 그 속에 잠봉(Jambon, 얇게 저민 햄)과 뵈르(Beurre, 버터)를 채워넣은 프랑스 국민 샌드위치를 말한다.

바게트를 반으로 가른 뒤 넉넉하게 자른 버터와 잠봉만 채워넣으면 돼 누구든 쉽게 만들 수 있다. 잠봉뵈르는 바게트의 고소한 맛에 짭짤한 잠봉, 버터의 풍미가 어우러져 조화로운 맛을 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jambon-beurre.html
kolaswqetsrq 11.03 06:06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의 개념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아직 없지만 대체로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차별과 유·불리함 또는 불균형을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넓게는 성평등 의식과 실천 의지 그리고 성 인지력까지의 성 인지적 관점을 모두 포함한다. 이 말은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유엔여성대회에서 사용된 후 국제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정책 입안이나 공공예산 편성 기준 등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으며, 법조계에서는 성범죄 사건 등 관련 사건을 심리할 때 피해자가 처한 상황의 맥락과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은 2018년 4월 대법원 판결에서 등장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당시 대법원 제2부는 학생을 성희롱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대학교수가 낸 해임 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이때 판결에서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 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성인지 감수성’이란 기준이 모호하고 추상적이어서, 성범죄 관련 재판 결과가 판사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gender-sensitivity.html
kolaswqetsrq 11.03 06:07
팟캐스트pod cast

팟캐스트(pod cast)

인터넷망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기존의 라디오 프로그램과 달리 방송시간에 맞춰 들을 필요 없이 구독만 해 놓으면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는 프로그램을 내려 받아 들을 수 있다.

오디오 파일 또는 비디오 파일형태로 뉴스나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인터넷망을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다. 애플의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ing)을 합성한 신조어이다. 기존 라디오 프로그램과 달리 방송시간에 맞춰 들을 필요가 없으며, MP3플레이어ᆞ스마트폰 등을 통해 구독 등록만 해 놓으면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는 관심 프로그램을 내려 받아 아무 때나 들을 수 있어 인기를 얻고 있다.

팟캐스트는 사용자가 매번 미디어를 선택해야 하는 방식의 다른 온라인 미디어와 달리 구독 방식으로 이루어진 점이 특징이다. 구독 모델은 RSS 2.0 XML 또는 RDF XML 파일 포맷을 사용해 파일을 제공한다. 일부 팟캐스트 구독 소프트웨어는 미디어 파일을 자동으로 기기에 전송해 주기도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pod-cast.html
kolaswqetsrq 11.03 06:08
부채비율debt ratio

부채비율(debt ratio)

부채비율은 기업이 갖고 있는 자산 중 부채가 얼마 정도 차지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비율로, 기업의 재무구조 특히 타인자본의존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경영지표다. 부채비율은 부채총액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뒤 100을 곱해 산출한다.

○ 부채비율 = 타인자본(부채총계)÷자기자본(자본총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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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환해야 할 타인자본(부채총계)에 대해 자기자본이 어느정도 준비돼 있는가를 나타내는 부채비율은 기업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처럼 부채와 자본의 구성비율을 나타내기 때문에 재무구조 또는 안전성비율 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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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어느 기업의 부채비율이 200%라면 빚이 자사가 보유한 자본보다 두 배 많다는 것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100% 이하를 표준비율로 보고 있는데, 선진국에서는 200% 이하 업체를 재무구조가 우량한 업체로 간주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debt-ratio.html
kolaswqetsrq 11.03 06:08
생활지원사生活支援士

생활지원사(生活支援士)

정부에서 실시하는 노인돌봄사업의 수행 인력으로서, 일상생활 영위가 어려운 취약 노인에게 적절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여 안전과 기초적인 생활을 돌봐주는 일을 담당한다. 예컨대 안전지원, 사회참여, 생활교육, 일상생활 지원 등의 직접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부에서 2020년 1월부터 실시하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노인돌봄서비스)의 수행 인력으로서, 노인 돌봄 관련 직무 교육을 이수한 뒤에 일상생활 영위가 어려운 취약 노인에게 안전지원, 사회참여, 생활교육, 일상생활 지원 등의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한편, 기존의 노인돌봄사업이 노인맞춤돌봄서비스로 개편되면서, 6개 노인돌봄사업(노인돌봄기본서비스, 노인돌봄종합서비스, 지역사회 자원연계, 단기가사서비스, 독거노인 사회관계활성화, 초기독거노인 자립지원)이 1개 사업으로 통합되고 바우처가 폐지됐다. 이에 따라 기존 노인돌봄기본서비스사업의 ‘독거노인생활관리사(또는 생활관리사)’, 노인돌봄종합서비스의 ‘노인돌보미’와 같은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행 인력은 ‘생활지원사’로 명칭이 통일되었다.

○ 생활지원사 자격 조건

노인맞춤돌봄서비스는 보건복지부가 사업을 총괄하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 내 노인인구와 접근성 등을 고려, 권역을 설정하여 직영 또는 수행기관을 선정·위탁한다. 선정된 수행기관은 전담사회복지사, 생활지원사와 같은 수행 인력을 채용하여 사업을 운영하게 된다.

생활지원사는 수행기관의 공개모집을 통해 선발되며, 근로계약 기간 1년 단위의 기간제 근로자로 근로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자동 종료된다. 자격 조건은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수행을 위한 역량과 의지를 갖춘 자로서, 사회복지사 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 소지자를 우대한다. 기타 자격에 관한 별도 부가기준은 지역별 여건을 고려하여 시·구 및 사업수행기관에서 조정 가능하다. 단, 생활지원사는 장기요양 방문요양서비스 제공자와 겸직을 지양한다.

○ 생활지원사의 주요 업무

● 서비스 제공계획에 따른 서비스 제공 및 실적 상시 입력·관리 ● 응급안전알림서비스 신규장비 설치 가구 대상에 대한 안전·안부확인 및 응급상황 대응 ● 집단프로그램 운영지원 ● 서비스 제공 시 이용자의 상태변화에 대한 모니터링 ● 사망·사고 등 이용자 특이사항 발생 시 전담사회복지사에게 즉시 보고 ● 서비스 종결자 등에 대한 사후관리(안부확인, 자원연계 등) ● 직무상 노인학대를 알게 된 때에는 즉시 노인보호전문기관(1577-1389)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근거 법령 노인복지법 제39조의 6)

생활지원사 1명당 14명~18명의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이용자를 담당한다. 주 5일, 일 5시간 동안 수행기관 및 대상자 가정에서 근무하게 되는데, 근무시간대는 사업수행에 차질이 없는 범위 내에서 협의하에 조정하여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다. 생활지원사 1명당 일반돌봄군(80%), 중점돌봄군(20%)이 배정되나 생활지원사의 이동거리, 지역의 특성, 수행기관의 여건 등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여기서 일반돌봄군은 사회적인 관계 단절 및 일상생활의 어려움으로 돌봄 필요가 있는 노인으로, 이들에게는 월 16시간 미만의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나, 주기적인 가사지원 서비스 제공은 불가하다. 단, 수술·골절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가사지원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중점돌봄군은 신체적인 기능 제한으로 일상생활지원 필요가 큰 노인으로서, 이들에게는 월 16시간 이상 40시간 미만의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며, 주기적인 가사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생활지원사 중 3년 이상 경력자를 선임생활지원사로 지정하는 것이 가능하다(생활지원사 9인당 1인). 선임생활지원사는 팀 내 상황관리 책임, 대상자 선정조사 및 서비스 상담 업무 등을 추가로 수행하고 별도의 수당을 받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76.html
kolaswqetsrq 11.03 06:09
워라밸Work-life balance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이라는 표현은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개인의 업무와 사생활 간의 균형을 묘사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각 단어의 앞 글자를 딴 ‘워라밸’이 주로 사용된다.

워라밸은 연봉에 상관없이 높은 업무 강도에 시달리거나, 퇴근 후 SNS로 하는 업무 지시, 잦은 야근 등으로 개인적인 삶이 없어진 현대사회에서 직장이나 직업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2017년 7월 워라밸의 제고를 위해 ‘일·가정 양립과 업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근무혁신 10대 제안’을 발간했다. 책자에는 ▷정시 퇴근 ▷퇴근 후 업무연락 자제 ▷업무집중도 향상 ▷생산성 위주의 회의 ▷명확한 업무지시 ▷유연한 근무 ▷효율적 보고 ▷건전한 회식문화 ▷연가사용 활성화 ▷관리자부터 실천 등 10가지 개선 방침이 수록됐으며 잡플래닛과 공동으로 워라밸 점수가 높은 중소기업을 평가해 ‘2017 워라밸 실천기업’으로 선정하고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work-life-balance.html
kolaswqetsrq 11.03 06:09
시가총액aggregate value of listed stock

시가총액(aggregate value of listed stock)

시가총액은 전 상장주식을 시가로 평가한 것으로 여기에는 ▲개별종목의 시가총액을 말하는 경우와 ▲주식시장 전체의 시가총액을 말하는 경우가 있다.

○ 개별종목의 시가총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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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종목의 시가총액은 그 종목의 발행주식수 × 주가로, 그 회사의 규모를 평가할 때 사용된다. 예를 들어 시가가 1만 원이고 발행주식수가 1천만 주인 종목의 시가총액은 1000억 원이다. 즉, 1000억 원의 자금이 있다면 그 회사를 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매수하려고 할 경우 대주주들의 움직임이 있고, 매수를 실행하게 되면 주가가 상승하여 변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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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시가총액은 주가 변동과 함께 시시각각 변하는데, 보통 해당일의 종가에 상장주식수를 곱해 산출한다. 이 개별 기업의 시가총액은 그 기업의 실질적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다.

○ 주식시장 전체의 시가총액

주식시장 전체의 시가총액은 증시에 상장돼 있는 모든 종목의 총주식을 시가로 평가한 금액으로, 전 상장종목별로 그날 종가에 상장주식수를 곱한 후 합계해 산출한다. 이는 일정 시점에서 주식시장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를 나타내 주기 때문에 주식시장 규모의 국제비교에도 잘 이용된다.

아울러 시가총액은 우리나라의 경제지표로 사용되는 중요 지표 중 하나이다. 예를 들면 개인의 금융자산과 은행예금총액, 보험의 계약고 등과 비교해 시가총액의 신장률이 크다는 것은 주식시장으로 자금 유입이 그만큼 활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aggregate-value-of-listed-stock.html
kolaswqetsrq 11.03 06:10
채권추심債權推尋

채권추심(債權推尋)

채권추심이라는 것은 금융거래나 상거래과정에서 발생한 금전채권에 대하여 정당한 사유없이 채무내용대로 돈을 지불하지 않는 경우 이를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은 이후 부실채권이 증가하자 채권추심을 전문적으로 대행해주는 업체가 많이 생겼다. 채권추심업무는 신용정보법 제6조3항의 규정에 의해 허가를 받은 추심전담기관이 추심의뢰인으로부터 위임을 받아 채무자에 대한 재산조사, 채권에 대한 변제촉구, 채무자로부터 변제금 수령대행, 채무자 소재파악등을 통해 추심업무를 대행하는 것이다.

채권추심업무를 하기위해서는 금융감독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채시장에서 문제시 되는 불법 채권추심은 돈을 빌려간 사람이 돈을 갚지 못하게 될때 고리대금업자가 폭력배를 동원해 폭력과 협박 등으로 생명을 위협하고 고금리와 원금을 강제로 회수해 가는 것으로 심각한 경우는 돈을 빌려주면서 신체포기각서를 쓰게 하여, 여성들을 윤락가에 팔아넘기거나 장기를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74.html
kolaswqetsrq 11.03 06:11
마법 주문

마법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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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魔法)은 마력(魔力)으로 불가사의한 일을 행하는 술법이라고 정의된다. 판타지 소설이나 동화를 보면 마법사들이 등장해 갖가지 주문을 외우곤 하는데, 여기서 주문은 어떠한 의도를 담아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내뱉는 말을 가리킨다. 수리수리마하수리, 아브라카다브라, 하쿠나마타타 등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주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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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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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히브리어로, 말한대로 이루어지리라라는 뜻의 주문이다. 중세까지는 열병을 다스리기 위한 주문으로도 사용됐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동명의 가요 제목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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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트로폴로스(CastorPollux)

‘항상 행복하라’는 뜻으로, 행복을 비는 주문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이복형제이자 영웅 카스토르(Castor)와 폴로스(Pollux)를 합친 말이다.

○ 아이스쿨라피우스(Aesculap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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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잊게 해주다라는 뜻의 주문으로,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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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블리비아테(Obliviate)

기억을 지우는 주문으로, ‘나쁜 기억을 모두 지우고 좋은 기억으로 바꾸어주겠다’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 마하켄다프펠도문(Mahoken da pepeldo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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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어로 슬픔과 고통을 잊게 해주는 주문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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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버스레폴링레이디마트(Loversleporineladymart)

사랑을 이루게 해주는 힘의 주문이다.

○ 마크툽(Maktoob)

‘신의 뜻대로, 신의 생각대로 되게 해 달라’는 주문이다. 아랍어로 Maktoob은 ‘편지’, ‘쓰다’, ‘운명’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 하쿠나마타타(Hakunamat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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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마 다 잘될꺼야.라는 위로의 주문이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에서 사용하는 언어인 스와힐리어로, ‘걱정거리나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특히 디즈니의 명작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 사용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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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비디 바비디 부(Bibbidi Bobbidi Boo)

희망을 상징하는 주문으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에서 요정 할머니가 신데렐라를 무도회에 보내기 위해 외치던 주문으로, 원래는 ‘살라카둘라 메치카불라 비비디 바비디 부’이다.

○ 디에세오스타(Deaeseohsta)

자신을 사랑하도록 하는 주문이다.

○ 메로제에리제(Merojaerijae)

상대방과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는 주문이다.

○ 안단테에스프레시보(Andantaespraesebo)

프랑스어로 ‘감정을 갖고 천천히’라는 뜻으로, 짝사랑이 이뤄지는 주문이다. 음악 용어로도 쓰인다.

○ 루프리텔캄(Roopretelcham)

모든 것이 다 이뤄지도록 하는 주문이다.

○ 히투마드리수투만(Hitumadrkistuman)

미얀마의 고대 주문으로, 생명의 어머니의 힘으로 생명을 보호해주는 주문이다.

○ 수리수리마하수리

불교 경전인 <천수경>의 첫 구절로,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를 줄인 말이다. 세속에 찌들어 더러워진 심신(心身), 구체적으로 입을 씻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세 번 외우면 입으로 지은 모든 업을 깨끗하게 씻어 낼 수 있다고 한다.

○ 옴마니반메홈

불교의 주문으로, 지옥·아귀·축생·인간·아수라·천상의 육도를 벗어나게 하는 힘이 있는 주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것을 암송하면 깊은 공덕과 해탈을 얻게 된다고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54.html
kolaswqetsrq 11.03 06:11
모빌리티Mobility

모빌리티(Mobility)

모빌리티는 사전적으로는 ‘(사회적) 유동성 또는 이동성·기동성’을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이동을 편리하게 하는 데 기여하는 각종 서비스나 이동수단을 폭넓게 일컫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결국 ‘목적지까지 빠르고 편리하며 안전하게 이동함’을 핵심으로 한다. 예컨대 자율주행차, 드론, 마이크로 모빌리티, 전기차 등 각종 이동수단은 물론 차량호출, 카셰어링, 승차공유, 스마트 물류, 협력 지능형 교통체계(C-ITS) 등 다양한 서비스 등이 모빌리티에 포함된다.

○ 자율주행차(Self-driving car)

운전자가 차량을 조작하지 않아도 스스로 주행하는 자동차로, 스마트카 구현을 위한 핵심 기술이다. 자율주행차를 위해서는 고속도로 주행 지원 시스템(HDA)을 비롯해 후측방 경보 시스템(BSD), 자동 긴급 제동 시스템(AEB), 차선 이탈 경보 시스템(LDWS) 등이 구현되어야 한다. (자세히 보기)

○ 드론(Drone)

무인(無人) 비행기로, 기체에 사람이 타지 않고 지상에서 원격조종한다는 점에서 무인항공기(UAV)라는 표현도 쓰인다. 드론은 2010년대를 전후하여 군사적 용도 외에도 다양한 민간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화산 분화구 촬영처럼 사람이 직접 가서 촬영하기 어려운 장소를 촬영하거나, 인터넷 쇼핑몰의 무인(無人)택배 서비스이다. (자세히 보기)

○ 마이크로 모빌리티(Micro Mobility)

전기 등의 친환경 동력을 활용해 근거리·중거리 주행이 가능한 소형 이동수단을 일컫는 말로 전기스쿠터, 초소형전기차, 전동식 킥보드, 호버보드, 전동휠 등이 이에 포함된다. 마이크로 모빌리티는 대도시화와 1인 가구 증가에 따라 미래 교통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자세히 보기)

○ 카셰어링(Car Sharing)

한 대의 자동차를 시간 단위로 여러 사람이 나눠 쓰는 것으로, 렌터카 업체와는 달리 주택가 근처에 보관소가 있고 시간 단위로 차를 빌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1950년대 스위스에서 사회운동 형태로 처음 시작됐으며,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용적 소비 성향이 대두되면서 확산됐다. 카셰어링은 회원 가입 후 시내 곳곳에 위치한 무인 거점(차량보관소)에서 차를 빌리고 지정된 무인 거점에 반납하는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

○ 승차공유서비스(Ridesharing service)

목적지가 같은 사람끼리 한 대의 차량에 탑승하거나,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차량을 타인에게 요금을 받고 대여하는 등으로 차량이나 승차를 공유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즉, 차량과 운전자를 탑승자에 연결해 주는 것으로 일종의 공유경제로 분류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mobility.html
kolaswqetsrq 11.03 06:12
노인우울증, 사회활동 참여가 답!

노인우울증, 사회활동 참여가 답!

연구결과, 노인에서 사회활동의 참여가 우울증상의 위험을 뚜렷하게 낮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 가지 이상의 사회활동에 참여한 사람은 사회활동에 참여안하는 사람에 비해 우울증의 위험이 0.6배로 낮았다. 모임활동에 참여하는 경우 0.6배,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경우에는 0.42배, 정기적 기부를 하는 사람의 경우 0.56배로 우울증의 위험을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세 가지 이상의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약 1/4(0.28배)로 낮아지고, 2주에 한 번 이상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1/5(0.19배)까지 낮아졌다.

한편, 경제활동 여부는 우울증상과 유의한 상관관계가 없었으며, 사회활동과 우울증상 간의 상관관계는 성별에 따라 큰 차이도 나타났다. 사회활동 참여로 인한 우울증상에 대한 보호효과는 노인여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모임활동의 경우, 노인여성에서는 우울증상의 위험을 0.51배로 낮췄지만, 노인남성에서는 우울증상 위험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낮추지 못했다.

연구팀은 매개 분석 (mediation analysis)을 통하여, 사회활동과 우울증상 간의 상관관계에서 ‘정서적 지지 (emotional social support)’가 중요한 매개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는 노인들이 사회활동을 통해 비슷한 주제의 관심과 사회적 가치를 갖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들로부터 정서적/사회적 지지를 받게 되는데, 이것이 노인들에서 우울증상의 보효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규만 교수팀은 이번 연구 결과를 최근의 상황과 연결시키며,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사회적 모임 등의 대면 접촉이 줄어들게 되면서 사회활동이 위축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노인들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젊은 연령층의 경우, 대면 접촉이 줄어들더라도 SNS와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사회적 상호작용을 어느 정도 보충하는 반면, 노인들의 경우 소셜미디어 등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며, COVID-19의 치명도가 노인에서 높다는 사실 역시 젊은 연령층에 비해 노인에서의 사회활동 참여를 더욱 위축 시키기 때문이다.

한규만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노인에서 사회활동 참여가 타인으로부터 받는 정서적/사회적 지지를 증가시킴으로써 우울증상의 위험을 낮춘다는 점을 발견한 연구”라고 소개하며, “노인들에서 사회활동 참여가 우울증상의 발생 위험을 감소시켜줄 수 있다는 사실을 규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한규만 교수는 “정신 보건 정책 차원에서 노인들의 사회활동 참여를 증대시킬 수 있는 다양한 사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노인들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는 방안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대면 접촉을 통한 사회활동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과 자주 전화 연락을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 만으로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고려대학교의료원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99.html
kolaswqetsrq 11.03 06:12
당뇨인데 언제 운동하는 것이 좋을까요?

당뇨인데 언제 운동하는 것이 좋을까요?

당뇨환자의 운동요법

- 식사 후 30 분에서 1시간 사이가 가장 적당합니다.

- 공복 상태 또는 식전 운동은 피하도록 합니다.

- 인슐린을 사용하고 있다면 운동에 의한 저혈당을 방지하기 위하여 인슐린의 감량을 고려하여야 하며, 인슐린 주사 후 60 ~ 90분 이내에는 운동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 운동 전후로 자가 혈당 측정을 시행하여 운동으로 인한 혈당 변화를 스스로 확인하도록 합니다.

-국가건강정보포털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20.html
kolaswqetsrq 11.03 06:13
필요 없는 살을 어떻게 뺄 수 있을까?

필요 없는 살을 어떻게 뺄 수 있을까?

우리 몸은 잃어버린 몸무게를 재빨리 복원할 뿐만 아니라 잃어버릴 것을 생각하고 더 비축을 한다. <신속하고 영원히 살을 뺀다> 또는 <1주일에 10~15kg을 뺀다>라고 하는 것에 절대로 속지 마라. 빠르게 살을 뺀다면 그만큼 빠르게 복원된다. 몸무게를 줄이는데 아주 효과적이며, 그 몸무게를 다시 복원시키지 않는 방법은 육체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굶는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쉬운 만큼 그곳에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장기간 단식을 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지 이야기했다. 하지만 단기간 단식(1~3일)을 하는 것이 위험하지는 않지만(의학적인 견해로 무리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는 의심스럽다. 우리 몸은 잃어버린 몸무게를 재빨리 복원할 뿐만 아니라 잃어버릴 것을 생각하고 더 비축을 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그 비축량이 당신이 빼고 싶은 살의 무게만큼이라는 것이다!

갖가지 대중매체를 통해서 선전하고 있는 다양한 다이어트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미국에서는 수천 가지의 새로운 다이어트를 선전하고 있으며 과체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도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신속하고 영원히 살을 뺀다> 또는 <1주일에 10~15kg을 뺀다>라고 하는 것에 절대로 속지 마라. 당신이 빠르게 필요 없는 살을 뺀다면 그만큼 빠르게 복원된다. 인간의 대사활동은 매우 안정적이어서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과체중에서 탈출하는 중요한 방법. 비만(병이 아닌 경우일 때)과의 전쟁에서 원칙적으로 새로운 방법이라는 것은 없다. 많이 움직이고, 과식하지 않고, 고칼로리 음식을 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한가지 더 첨가할 것은 결코 <신속하고 영원히 살을 뺀다>라는 선전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이다. 두 가지의 평범한 방법만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몸무게를 줄이는데 아주 효과적이고 줄인 몸무게를 다시 복원시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 육체적인 운동(정신적인 운동을 포함해서)과 ○ 균형 잡힌 식사 이다.

근육을 움직여서 자신의 몸매를 유지하여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을 막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첫 장에서 이야기했다. 여기에 첨부를 하면 쌓여있는 지방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특히 사지에 적당한 무게를 주는 육체적인 운동, 즉 아령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가장 간편한 방법은 저녁 식사 후에 한 시간 동안 산책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 게으름은 과식을 만들어낸다. 반대로 사람이 꽉 짜이게 일을 한다면, 그것이 정신적인 노동이라 할지라도 그는 <뭔가 먹을 게 없나>하고 찾는 것에 덜 관심을 갖게 되고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음식을 조금 먹게 된다. 하지만 비만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무엇보다도 <균형 잡힌 식사>이다.

-닥터 사이언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317.html
kolaswqetsrq 11.03 06:14
열을 다스리는 방법

열을 다스리는 방법

열을 다스리는 것은 다른 가능한 합병증 예방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다스리기 힘들다면,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 의사의 진단을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른 건강 합병증을 피하기 위해서는 열을 다스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열은 체온의 증가인데, 항상 평균적으로 37°C(98.6°F) 정도여야 한다. 낮 동안 1도 정도의 변화는 정상이며 이는 반드시 문제가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식이요법, 운동, 날씨와 같은 요소들이 신체의 체온이 증가하는 원인이다. 그러나 체온이 37.5°C(99.5°F)를 넘으면 열이 있다고 정의한다.

○ 열의 의미

열은 신체가 가능한 질병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다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아기들, 특히 모유 수유 중인 경우, 37.8° (100°F)는 매우 높은 온도다. 그럴 때는 열을 다스려야 하며 아기는 입원이나 최소한 소아과 진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열은 거의 항상 다른 증상과 관련이 있다. • 두개골 전체를 감싸고 있는 지속적인 두통, 꽉 조이는 느낌, 오한과 땀 • 따끔따끔한 근육통, 탈수, 건성피부, 눈물 감소, 비뇨기 보유 • 식욕 감퇴, 일반적인 힘 빠짐

생후 6개월에서 만 5세 사이의 어린이들에게 열성 경련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경우 의사들은 환자를 눕히고, 스스로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고, 조치를 취한 뒤 의사에게

연락하도록 권한다.

열은 신체 내 반응의 징후다. 시상하부가 체온을 조절한다.

○ 원인 : 체온 조절을 담당하는 신체 부위는 뇌 내부에 위치한 시상하부다. 온도 조절기처럼 작동한다. 그러나 다른 이유로 기준 한도를 늘릴 수 있다. 이 때 유지해온 열 증가가 이뤄진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같은 전염성 인자들이 열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종양 같은 염증성 질환이나 약의 부작용도 그러하다. 마찬가지로 모든 종류의 백신은 열을 일으킬 수 있다.

○ 열을 다스리는 방법

미열의 경우, 특히 추가적인 증상이 없을 경우, 의사는 특별히 치료법을 처방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미열은 인체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싸우며 잘 반응하고 있다는 신호다. 온도가 올라가면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열이 추가적으로 불편함을 가져오거나 높을 경우 치료가 필요하다. 이 경우 의사는 이부프로펜이나 파라세타몰 등 처방전이 필요없는 약을 처방할 수 있다. 권장량만 복용해야 한다. 신장과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그것들을 과잉 또는 장기간 복용하지 않도록 한다.

이러한 약들이 열을 내리지 못한다면, 편도선염이나 폐렴과 같은 세균 감염이 있을 경우에 대비하여 그 원인을 찾는 것이 항생제의 필요성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바이러스 감염이라면 항생제는 효과가 없을 것이다. 어린이의 경우 1회 투약 후에도 열이 지속되면 소아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아스피린을 주면 안 되는데, 드물기는 하지만 치명적일 수 있는 라이 증후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열을 다스리기 위한 다른 권장 사항

특히 생후 28일 미만인 아기라면 가장 좋은 선택은 입원이다. 신생아들은 정맥주사와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심각한 질병에 취약하다. 열이 추가적인 불편함을 동반하지 않는 한, 자가 치료로 열을 다스릴 수 있다. 탈수증의 경우 물을 마셔야 하고, 구강 수분 보충액을 섭취할 수 있으면 더 좋다. 후자는 수분 보충뿐만 아니라 적절한 신체 기능을 위해 필수적인 성분인 전해질을 함유하고 있다.

게다가, 휴식은 가벼운 의복 사용과 마찬가지로 회복에 도움이 되고, 실내 온도를 낮게 유지하고, 얇은 이불만으로 잠을 잔다. 또한 이마, 겨드랑이, 사타구니, 발바닥 등에 따뜻한 물을 적신 천을 갖다 대는 것이 좋다. 또한, 열을 낮추기 위해 전신 온수욕을 시도해 보고, 약간의 꿀로 곁들인 마늘, 바질, 루, 생강, 백리향, 카모마일 차도 유용하다. 하루에 두세 번 정도 마신다. 아이들에게 열이 있는 경우 굉장히 주의를 필요로 한다. 아이들은 체온 변화에 더욱 민감하다.

○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

열이 아기의 경우 37.8°C(100°F), 성인의 경우 38.9°C(101°F)에 이를 때 의사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 사실 열이 두통, 구토, 자극, 복통, 피부 발진 등을 동반하거나 상승된 체온이 지속될 경우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당신은 침착하게 하지만 부지런히 열을 다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발작과 의식 상실과 같은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키고 심지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열이 심한 경우 진찰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건강정보 이야기‘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311.html
kolaswqetsrq 11.03 06:14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손 떨림... ‘위험신호’ 일수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손 떨림... ‘위험신호’ 일수도

신체 일부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떨림은 우리 몸의 가장 흔한 이상운동 증상으로 주로 손에 많이 나타납니다. 손이 떨리는 모든 증상을 의미하는 수전증(手顫症)이 떨림 중에도 유독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이로 인해 손으로 할 수 있는 방대한 기능에 제한을 받기 때문입니다.

 "
수전증은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하는 흔한 증세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형태와 양상은 모두 제 각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손을 들거나 물건을 잡으려 움직일 때 나타나는 운동 시 떨림, 가만히 손을 내려놓고 쉬고 있을 때 떨리는 안정 시 떨림, 물체를 잡기 직전에 손이 크게 떨리는 말단성 떨림 등으로 구분됩니다.
",

운동 시 손이 떨리는 대부분은 ‘본태성 떨림’ 일 경우가 많습니다. 본태성 떨림은 주로 컵을 들거나, 글씨를 쓰거나, 젓가락질을 하는 등 손을 움직이거나 자세를 취할 때 생기는 떨림으로, 본태성 떨림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진 바 없으나 약 50%의 환자가 가족력을 나타냄에 따라 유전적 영향이 높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 증상이 경미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치료가 필요치 않은 양성 질환이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경우 떨림의 정도를 줄이는 대증적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주로 약물치료가 진행되는데 교감신경에 대한 베타차단제가 주로 사용되며 항경련제, 향정신성 약물 등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약물요법을 최대한 적용했음에도 심한 떨림이 조절 되지 않을 경우에는 뇌의 시상핵 또는 담창구를 자극하는 뇌심부자극수술을 시행하기도 하는데요, 이는 신경외과학적으로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지만 전신마취가 필요한 개두술(開頭術)인 만큼 그 필요성과 위험성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해야 합니다. 이 외에도 약물 부작용이나 갑상선항진증, 저혈당증과 같은 내과적 질환에서도 손떨림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괜찮다가 심한 피로 및 정신적 스트레스, 추운 날씨 또는 커피나 홍차를 많이 마신 후에 경험하는 ‘운동 시 떨림’ 은 전문용어로 ‘과장성 생리적 떨림'이라고 합니다. 이런 경우는 특별한 치료 없이도 해당 유발요인들만 피하면 증상을 상당히 경감시킬 수 있으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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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손을 편안히 무릎에 올려놓거나 손을 쓰지 않고 걷고 있는 중에도 나타나는 ‘안정 시 떨림’은 신경계 퇴행성 질환인 파킨슨씨병(Parkinsons disease)이 강하게 의심되는 상황이므로 즉시 전문의를 찾아 진료를 받아야합니다. 또한 손떨림과 함께 어지러움, 발음장애, 보행이상 등의 다른 증상이 동반되었다면 소뇌 등의 뇌병변에 의한 증상일 수 있으니 이 역시 전문의의 정확한 진찰을 받아야합니다.
",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신경과 김진희 교수는 “수전증은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병은 아니지만, 환자의 생활을 곤혹스럽게 만들어 우울증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은 만큼 가볍게 여기거나 방치해서는 안 된다”라고 밝히며, “수전증은 뇌병변, 내과적 질환 및 약물 부작용 등 그 원인이 매우 다양하므로 정확한 진단이 필수적이며, 합당한 치료를 받을 경우 수전증의 불편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으므로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고 신경과 전문의를 찾아 상담해 보는 것을 권한다.” 라고 조언합니다.

-고려대학교의료원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56.html
kolaswqetsrq 11.03 06:15
남편또는 부인이 의처증또는 의부증이 심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남편(또는 부인)이 의처증(또는 의부증)이 심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반적으로 의처증이라고 할 때 그 정도가 매우 다양합니다. 부인의 일반적인 행동이나 생각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일 수도 있고 정조를 의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의심의 정도가 이유가 있는 정당한 것에서 심각하게 현실감각이 손상된 경우까지 광범위하게 포함되기 때문에 의처증 자체는 정신과적인 병명으로 보기에는 너무 포괄적입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배우자를 의심하는 행동이 계속된다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괴로웠을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나, 현재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까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정황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편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관계의 전반적인 의사소통의 문제가 이런 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가족 내에서 제일 약한 구성원이 의처증이나 의부증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처증이 의심될 때 고려해 볼 수 있는 정신과 질환은 아래와 같습니다.

남편이 부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동기를 악의가 있다고 해석하고 타인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믿지 못하고 의심을 하는 성격이 있다면 인격장애의 범주에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신과의사와의 상담 후 필요시 전문적인 정신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남편이 부인을 의심하는 정도가 심하고 그러한 잘못된 믿음이 아무리 설득을 해도 고쳐지지 않는 정도의 망상이 있다면 망상장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입원치료 나 외래 통원치료 등 향후 치료계획을 상의하셔야 합니다.

부인을 의심하는 증상 이외에 환청이 있다거나 사고 내용이 괴이하고 다른 사회적인 대인관계나 직업기능 등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들이 있다면 정신분열증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남편과 부인 모두가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좋으나 부인의 입장에서 남편을 병원으로 데려오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 부인 혼자라도 정신과로 오셔서 상담을 하시고 남편을 병원으로 데려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하십시오. 또한 이런 경우 시댁 식구들의 동의가 필요할 수 있으므로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시댁식구와 상의를 해보시는 것이 좋으며 도움을 구하도록 하십시오. 남편이 증상이 심하여 폭력을 휘두른다거나 자해, 타해의 위험성이 높다면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강제 입원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경우에 정신과 의사의 소견이 필수적이므로 이전에 정신과의사와 상담이 필요합니다.

-국가건강정보포털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64.html
kolaswqetsrq 11.03 06:16
단식을 하게 되면 장청소를 해준다는 것이 사실일까?

단식을 하게 되면 장청소를 해준다는 것이 사실일까?

<기적의 단식>의 폴 브래그와 허버트 셀턴은 “건강한 사람은 며칠, 몇 주, 그리고 두세 달 동안 음식 없이 살 수 있도록 비축물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두세 달> 동안 견딜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발언이다! 건강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삼 개월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

굶는 사람이 천천히 죽어가는 장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왜 무분별한 단식이 치료에도 도움이 안되며 오히려 치명적인 위험을 주는지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언젠가 <기적의 단식>이 폴 브래그와 허버트 셀턴에 의해서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적이 있었다. 셀턴은 “건강한 사람은 며칠, 몇 주, 그리고 두세 달 동안 음식 없이 살 수 있도록 비축물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두세 달> 동안 견딜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무책임한 발언이다! 건강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삼 개월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요즘도 계속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단식을 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브레그의 아이디어와 그 추종자들은 <장청소의 과학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단식은 건강에 매우 도움이 되어서 많은 병들을 고칠 수 있고, 젊어질 수 있으며 수명을 확실하게 늘려준다고 이야기한다.

-닥터 사이언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21.html
kolaswqetsrq 11.03 06:16
최고의 천연 항생제 5가지 및 사용법

최고의 천연 항생제 5가지 및 사용법

항생제는 의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다. 1928년에 발견된 페니실린의 빠른 항균 작용을 본 많은 의사와 의료계 종사자는 페니실린이 바이러스, 박테리아, 곰팡이로 인한 모든 질병과 감염증을 멈추는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항생제는 의료계의 필수 지원군이 됐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과도한 화학 항생제 처방은 천연 항생제 같지 않게 건강에 위협하며 사람들, 특히 어린이와 아기들에게 다양한 박테리아에 대한 내성이 생기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잦은 항생제 사용은 아동과 성인 장기능 이상 질환을 유행하게 하며 장내 세균총 불균형으로 인한 다양한 자가면역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항생제의 과도한 사용은 권장하지 않으며, 전문가들은 약물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효과가 좋고 심각한 부작용이 없는 천연 항생제를 처방한다.

○ 천연 항생제: 오레가노 오일

야생 오레가노 오일(Origanum vulgare)에는 다양한 미생물을 막는 강력한 항생 효과가 있다. 붉거나 어두운 노란색을 띠며 강한 향이 난다.

* 손발톱의 곰팡이(무좀) : 오레가노 오일 한두 티스푼과 뜨거운 물을 욕조에 넣고 10분간 발을 담근다. 또 다른 방법은 올리브 오일 1티스푼에 오레가노 오일을 한 방울을 넣어 섞은 다음 발가락과 손발톱에 직접 바르는 것이다. * 기생충과 감염 : 올리브 오일 1티스푼에 오레가노 오일을 한 방울을 섞고 혓바닥 아래쪽에 넣는다. 1분간 물고 있다가 씻어낸다. 이를 하루에 네 번 반복한다. * 축농증: 끓는 물에 오레가노 오일 한두방울을 넣고 수증기를 들이마신다.

○ 케이언 페퍼

매운 향이 나는 향신료로 강력한 치료 및 항생 효과로 고대부터 사용돼 왔다. 현재 과학계에서도 케이언 페퍼를 천연 항생제로 인정하고 있다.

* 케이언 페퍼는 여성에게 흔한 감염증인 외음부 질염 치료제로도 사용된다. 이 향신료가 질염 치료제로 상당한 항진균, 항생 효과가 있다고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다. 올리브 오일과 같은 농축 오일에 희석해서 사용하는데 매운 성분이 있어서 처음 피부에 닿으면 쓰라릴 수도 있다.

○ 마늘

의심할 여지 없이 마늘은 최고의 천연 항생제 중 하나이다. 이 천연 재료는 이로운 장내 세균총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병원균과 박테리아 및 곰팡이와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다.

* 마늘의 식물성 화학물질 및 황 성분이 활성산소를 없앤다. * 마늘에는 항박테리아, 항진균 및 항바이러스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 마늘은 강력한 항산화제이며 DNA 손상을 방지한다. * 마늘은 장내 회충과 기생충을 퇴치한다. * 상처와 손발톱의 곰팡이(무좀)을 치료하는데 아주 좋다. * 장내 감염을 예방한다.

○ 강황

강황은 소염, 소독, 항생, 진통 성분으로 인해 전통적인 약제로 종종 사용됐다.

* 강황은 천연 항생제로 위궤양과 다른 감염증에서 흔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를 예방하고 없애는 데 사용된다.

○ 천연 꿀

꿀벌이 만든 천연 꿀은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천연 항생제다. 과학적 증거들에 따르면 꿀이 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감염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 이 천연 항생제는 피부 감염 치료나 예방을 위해서도 종종 사용된다. * 치석과 충치를 유발하는 박테리아를 없애는 꿀의 효과는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 수유와 관련한 염증을 치료에도 좋다. * 꿀은 메티실린 메티실린저항성 황색포도상구균(MRSA), 메티실린 감수성 황색포도상구균(MSSA), 반코마이신내성장알균(VRE), 헬리코박터 파이로리(위궤양 유발)를 포함한 250가지 이상의 박테리아를 없앨 수 있다.

-‘건강한 아침’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5_66.html
kolaswqetsrq 11.03 06:17
뇌막염, 쉽게 생각하면 절대 안돼!

뇌막염, 쉽게 생각하면 절대 안돼!

뇌막염은 특별한 치료 없이 스스로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냥 방치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질환이다. 하지만 뇌막은 뇌와 척수에 매우 가까이 있으며 경우에 따라 심각한 신경학적 손상을 초래할 수 있고, 특히나 정도에 따라 장애를 남기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뇌막염이란 뇌를 감싸고 있는 뇌막에 염증이 생긴 것을 말한다. 주로 어린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뇌막염은 원인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결핵, 진균에 의한 감염이나 자가면역, 부종양 등의 비감염성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뇌막염은 바이러스나 세균과 같은 미생물이 혈액 속에 들어가 뇌척수액에 침입해 발병한다.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은 대부분 스스로 치유되거나 두통과 발열에 대한 보조적 치료로 충분히 나을 수 있지만 폐렴사슬알균,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균, 수막 구균 등 세균에 의한 세균성 뇌막염은 즉시 항균제 투여가 필요하다. 비록 수시간일지라도, 지연되면 뇌세포의 염증인 뇌염으로 진행되어 불량한 예후를 보이거나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때문에 뇌막염 환자의 경우 증상이 심하고 뇌척수액 검사만으로 세균성인지 무균성인지 구별이 안 될 경우에는 배양결과가 나올 때까지 경험적인 항생제를 치료해야 한다.

그래서 뇌막염의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찾아 뇌막염에 대한 전문의의 정확한 진찰과 치료가 필수다. 뇌막염을 의심할 수 있는 대표 증상에는 세 가지가 있다. 머리를 숙여 턱을 가슴 안쪽으로 붙이지 못하는 경부 경직, 발열, 두통이 그것이다. 이 중 경부 경직과 두통은 뇌압 상승에 의한 증상으로서 대부분의 뇌막염 환자에게서 나타나는데 대천문이 열려 있는 영아의 경우 대천문이 팽창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오심과 구토가 동반될 수 있다.

소아에게 뇌막염이 생기면 신경계 손상으로 인한 여러 잠재적 장애가 생길 수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난청, 의식저하, 경련, 뇌성 마비 등 치명적인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신생아기에 뇌막염이 발병했을 경우 신경계 뿐 아니라 청각과 지능에 장애가 생길 수 있어 보호자의 주의와 관찰이 필수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하재욱 교수는 “뇌막염 중 세균성 뇌막염 경우 예방 접종을 실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물게 발병이 될 수 있다”며 “소아에게 세균성 뇌막염이 발병할 경우 예후가 좋지 않아 응급 질환에 준하는 치료가 필수적이다. 보호자가 평소에 아이를 잘 관찰하고 뇌막염이 의심되는 경우 빠르게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고려대학교의료원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04.html
kolaswqetsrq 11.03 06:17
스트레스는 나쁜 것이 아닙니까?

스트레스는 나쁜 것이 아닙니까?

스트레스가 항상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적당한 긴장을 하게 되어 오히려 활력을 얻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상태(좋은 스트레스, 최적의 스트레스)에 이르면, 스트레스가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고, 계획을 성취하도록 힘을 주며, 동기를 유발시키고, 삶의 활력을 불어넣기도 합니다.

때로 집중력, 능력, 창의성, 생산성을 향상시켜주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는 기본적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아드레날린이 증가하고 감소하여 생기는 ‘밀물~썰물’효과는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건강정보포털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394.html
kolaswqetsrq 11.03 06:18
스트레스는 불필요한 것인가?

스트레스는 불필요한 것인가?

감정은 만족 센터와 불만족 센터에서 온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든 신경계가 작동을 한다. 스트레스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으며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스트레스는 우리 몸의 모든 시스템을 훈련시킨다. 특히 방어 시스템이 항상 싸울 준비를 할 수 있게 한다. 스트레스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전수 받았다.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20명의 건강한 남성에게 코미디와 중압감이 있는 두 편의 영화를 보여주었다. 실험 결과 코미디를 보면서 웃는 피실험자의 혈액순환 속도가 22% 더 빨라 졌으며 중압감이 있는 영화를 볼 때에는 35% 속도가 느려졌다. 의사들은 특히 환자에게 긍정적인 감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에는 웃음을 주는 광대 한 명이 수십 가지의 약을 대신할 수 있다.

스트레스는 약일까 독일까?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다. 스트레스는 신경계와 호르몬계를 훈련시킨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강하게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고혈압 등의 위험한 병을 유발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가능하면 받지 않도록 해야 하고 받더라도 강도를 약하게 만들어야 한다. 무엇 때문인지 사람들은 스트레스와 흥분 그리고 고통을 참는 것 등이 우리에게 해롭기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는 상관 없어>라고 생각하면서 살려고 한다. 하지만 단 일 분 동안 만이라도 완전하게 스트레스가 없는 순간을 한번 생각해보라.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아무런 걱정이 없다면 정말 인생이라는 것이 지루하지 않을까? 징역형 중에서 독방에 갇히는 것이 중형인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이러한 능력은 아직 발현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 다만 아주 드물게 상대편이 가지고 있는 <먹을 것>을 힘으로 빼앗아 오거나 상대편을 한 대 때리거나 한다(이러한 예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이 운동 경기에서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냥 없어진다. 아드레날린이 나올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이로제, 심장병, 혈관병이 생기는 것이다.

-닥터 사이언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77.html
kolaswqetsrq 11.03 06:19
다리 혈액순환 개선방법 7가지

다리 혈액순환 개선방법 7가지

1. 앉았다 일어나기

책상에 오래앉아서 일을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쉬운 ‘앉았다 일어나기’로 자주 휴식을 취해야 한다. 습관을 들이기 어렵다면 핸드폰이나 컴퓨터에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앉아있는 동안에는 다리를 앞으로 쭉 뻗거나, 자전거를 타듯이 움직여도 도움이 된다.

2.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

따뜻한 물은 혈관을 팽창시켜 혈액순환을 도와준다. 김이 자욱한 환경에서 샤워하는 것도 근육을 풀어주는 데 매우 좋다. 혈액이 잘 공급되도록 도와주는 것은 물론 피로회복에도 좋기 때문이다.

3. 매운 음식 먹기

매운 음식은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하고 부비강을 깨끗이 하는데 매우 좋다. 혈관 건강에 좋은 몇 가지 향신료를 소개하자면, 강황은 구르구민이라는 동맥으로 부터 혈전이나 치매를 예방하는 화합물을 가지고 있다. 또 붉은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은 특히 장기들의 혈액흐름을 증진시킨다. 마늘과 양파는 알리신이라는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혈액을 맑게하고 혈전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4. 압박 양말신기

압박 양말과 스타킹은 부운 정맥을 안정시키는데 효과적이다. 하루종일 서서 근무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를 활용해 보는 것이 좋겠다.

5. 녹차 마시기

녹차 안의 노화방지 성분은 동맥을 쉬게하고 팽창시킬 뿐만 아니라 혈액공급을 증진시켜준다. 카페인이 커피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기운을 나게하고, 몸도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6. 초콜렛 먹기

미국심장협회의 연구에 따르면 초콜렛은 다리에 혈액을 공급하는 데 매우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가지 팁을 주자면, 밀크 초콜렛은 해당되지 않는다. 70% 이상의 코코아를 함유한 다크 초콜렛만이 효과적아더. 혈액순환을 개선하기 위한다면 날마다 초콜렛을 조금씩 먹어보자.

7. 마사지 하기

긴 하루 끝 마사지만한 것이 없다. 올리브나 코코넛 오일을 이용해 단단하게 뭉치 다리와 발목의 피로를 풀어보자. 이때 심장 방향으로 마사지 해주는 것이 좋다. 이는 근육을 편안히 해줄 뿐만 아니라 혈관을 팽창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림프를 통해 노폐물을 배출해 붓기를 가라앉히는 데 좋다.

-‘건강해야 행복하다‘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7_13.html
kolaswqetsrq 11.03 06:19
심장질환의 종착역 ‘심부전’

심장질환의 종착역 ‘심부전’

심장은 혈액을 끊임없이 순환시켜 우리 몸 구석구석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핵심 신체기관이다. 이런 심장의 기능 이상으로 우리 몸에 충분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해 생기는 질환군을 심부전(heart failure)이라 정의한다.

심부전은 급성기와 만성기를 반복하며 점차 나빠지는데 환자나 그 가족의 고통, 삶의 질 저하가 심하고 발병 후 5년 이내 사망률이 10명 중 6~7명 수준으로 대다수 암보다도 높습니다.

심부전은 다양한 질환에 의한 일종의 합병증으로 그 원인이 매우 다양합니다. 관상동맥 질환(심근경색 등)에 의한 요인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며, 고혈압, 심근 및 판막질환, 심방세동 등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게 연령이 높을수록 고위험군에 속하며 유병율도 증가합니다.

심부전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호흡곤란과 부종입니다. 건강한 사람과 함께 걸으면 숨이 차 따라가기 어렵거나, 일상에서 조금만 심하게 움직여도 마치 물에 빠진 것과 같은 곤란을 겪는다면 심부전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또한, 심장이 혈액을 원활히 수용하고 짜내지 못함에 따라 부종, 운동기능 저하, 복수, 소화불량 등의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심부전은 원인과 증상이 매우 다양한 질환이므로 진단을 위해서는 문진과 진찰, 검사결과를 종합한 전문의의 판단이 필수적입니다. 1차 스크리닝을 위해 심전도와 엑스레이 검사가 진행되며, 가장 확실한 진단을 위해서 심장의 구조와, 기능 크기를 살피는 심장초음파검사가 활용됩니다.

심부전은 급성기 증상을 치료하는 것과 치료 후 장기적으로 기존 원인질환에 대한 중재를 병행해야 합니다. 급성기 쇼크 상태나 심한 호흡 부전 상태라면 바로 약물, 산소치료 및 기계적 순환보조나 호흡보조를 행한다. 만성기에는 생존율을 높이고 증상 조절을 위한 약물을 쓴다.

심부전은 진행성 질환으로 완치라는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다. 심근경색 등으로 시술을 경험한 경우 심장근육의 손상을 입어 위험도가 증가하며, 노화에 따라 심장기능도 계속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최적의 치료법과 증상완화법을 적용해 불편함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심혈관센터 나진오 교수는 “숨 가쁨, 부종 및 피로 등 심부전 의심 증상이 나타날 때 상당수 환자들이 노화나 컨디션 저하로 치부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노령층의 경우는 꼭 전문의를 찾아 상담을 받아야 한다” 라고 조언하며, “심부전은 여러 합병증을 동반하는 진행성 질환이지만 초기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건강한 생활습관(짠 음식 피하기, 수분 섭취 조절, 적당한 운동)을 통해 관리하면 별 지장 없이 즐거운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고려대학교의료원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46.html
kolaswqetsrq 11.03 06:20
여드름은 짜야 하나요?

여드름은 짜야 하나요?

아직 염증이 동반되지 않은 비염증성 병변, 즉 개방성 혹은 폐쇄 면포들은 짜주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집에서 혼자 염증성 병변(뾰루지)을 뜯거나 짜서는 안 됩니다.

특히 목 부위 여드름은 흉터가 많이 남으므로 손대지 않아야 합니다. 뾰루지를 짜면 더 빨갛게 되고 붓고 염증이 생겨 결국 흉터를 남기게 됩니다. 그 이유는 염증에 의해 약해진 기름샘 벽을 무리하게 짜서 파괴시키므로 염증이 더 크게 생기기 때문입니다.

피부과에서 시행하는 압출치료는 모공 입구를 깨끗이 세안한 후 뜨거운 수증기로 모공을 넓히고, 특수한 기구로 여드름을 짜므로 이런 부작용이 생기지 않습니다.

-국가건강정보포털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85.html
kolaswqetsrq 11.03 06:21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생활습관은?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생활습관은?

우울증은 흔한 정신질환으로 마음의 감기라고도 불리웁니다. 그러나 우울증은 성적저하, 대인관계의 문제, 휴학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자살이라는 심각한 결과에 이를 수 있는 뇌질환입니다.

다행히 우울증은 효과적으로 치료될 수 있는 질환으로 초기 완쾌율이 2개월 내에 70-80%에 이르는 의학적 질환입니다. 우울증에는 상담과 정신과 치료가 필수적이며, 중증도 이상의 우울증은 항우울제 투여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특히, 최근 개발된 항우울제들은 뇌내의 저하된 세로토닌을증가시켜 우울 증상을 호전시키고, 부작용이 거의 없이 안전하게 우울증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우울한 기분은 누구나 일상 생활에서 흔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우울증이란 일시적으로 기분만 저하된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내용, 사고과정, 동기, 의욕, 관심, 행동, 수면, 신체활동 등 전반적인 정신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증상이 거의 매일, 거의 하루 종일 나타나는 경우 우울증이라 하고 이 경우에는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닌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생활습관은?

-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다.

- 운동하는 습관을 갖는다.

- 규칙적이고 균형 잡힌 식습관을 가진다.

- 알코올은 우울증 치료의 적이므로 반드시 피한다.

- 명상과 요가, 이완요법이 도움이 된다.

- 낮잠을 30분 이내로 한다.

- 침대는 잠을 자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국가건강정보포털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04.html
kolaswqetsrq 11.03 06:21
우리 방 안의 산소의 양은 우리에게 충분할까?

우리 방 안의 산소의 양은 우리에게 충분할까?

어떤 장소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사람들은 산소의 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장면을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숨이 막히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방 안에는 공기가 잘 통하지 않고 공기가 머물러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숨을 쉬기 때문에 공기의 습도와 온도가 올라간다. 그리고 공기 중에는 탄산가스 등이 많이 포함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여기서 숨이 막히는 현상과 산소의 양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 중에는 산소의 양이 약 1/5 정도(나머지는 대부분 질소이다.) 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정확하게 말해서 20.9%의 산소가 거리에도, 집 안에도, 정원에도 그리고 밭에도 있다. 왜냐하면 가스의 분자는 어떠한 미세한 틈새도 통과하며, 녹색 식물들은 대기 중에 산소를 계속해서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공급되는 산소의 양은 얼마나 될까?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충분한 양이 될까?

유명한 러시아의 판타지 소설 작가인 알렉산드르 벨라예프는 『공기를 파는 사람』이라는 소설을 썼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사업가인 베일리는 사막에 비밀 공장을 세웠다. 거대한 팬을 달아서 거대한 관으로 대기를 빨아들였다. 이렇게 빨아들인 공기를 얼려서 판매를 위해서 지하 창고에 저장했다. 한편 지구상의 대기의 감소로 인해서 대기압이 낮아지는 재앙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완전히 밀봉한 집을 만들어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액화 공기가 시장에 나왔다. 다른 비싼 것들을 모두 팔아야만 했다>. 그리고 베일리는 기뻐하며 “사람들은 숨이 막히게 될 거고, 식물들은 죽어갈 것이다. 삶은 끝이 날 거야. 그리고 지구는 마치 얼어붙은 달처럼 그렇게 죽은 별이 될 거다”라고 이야기 한다.

물론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완벽하게 시설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눈에 띄게 우리 대기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대기의 무게는 대충 잡더라도 5.15×1015 톤이고 그 속에 들어있는 산소의 무게는 1.5×1015톤이다. 하루에 인간은 약 1kg의 산소를 소비한다. 일 년이면 약 350kg이다. 전체 인류에 필요한 양은 약 20억(2×109) 톤이다. 즉 지구의 전체 산소 양의 아주 작은 양만을 필요로 한다. 동물들의 경우에는 더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식물들은 일 년에 4000억 톤의 O2를 생산해낸다. 그러므로 인류가 산소 부족을 일으키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하다(게다가 학자들은 달을 개척할 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필요한 산소를 그곳에서, 즉 달의 먼지에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지구의 어느 곳이든 (적도이든, 북극이든, 바닷가든, 산꼭대기이든 그리고 당신의 방 안이든) 대기 중의 산소의 양이 20.9%인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로 돌아오자. “잠깐만!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대기 중의 산소의 양이 적어지는 것 아닌가요?” 라고 조금 지식이 있는 독자는 물어볼 것이다. 한마디로 설명을 하면 대기 중의 O2의 퍼센트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부분압력(部分壓力)partial pressure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부분압력은 함께 있는 다른 혼합물, 다른 가스와는 전혀 별개로 나타나는 압력을 말한다(이 지표는 일정한 부피에서의 가스의 분자량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해수면에서의 공기의 기압이 760mmHg일 때 산소의 부분압력(Po2)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이러한 산소의 부분압력은 우리의 신체에도 작용을 한다. 이러한 조건은 어디든지 똑같다(날씨의 변화에 의한 부분압력의 차이는 거의 없다). 사람들이 꽉 들어찬 방이나 담배를 많이 피워대는 사무실이나 다 똑같다. 우리가 이런 곳에서 괴로워하는 것은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이야기했다.

-닥터 사이언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26.html
kolaswqetsrq 11.03 06:22
식초의 효능 및 활용법

식초의 효능 및 활용법

○ 고혈압 동맥경화 치료

식초의 효능은 혈중이 콜레스테롤을 낮추어줍니다. 또한 혈액순환을 좋게 하는 것이 식초입니다. 식초 많이 먹으면 동맥경화나 고혈압 예방에 효과가 있습니다.

○ 간 기능 향상

간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도 식초의 효능입니다. 또한, 식초에는 유기산 성분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이 유기산 성분이 폐 기능을 좋게 하고 초산성분은 간 해독작용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 면역력 개선

식초 많이 먹으면 면역력이 좋아집니다. 식초를 복용하면 백혈구를 만드는 림프구의 수가 증가하게 되고 면역력이 향상됩니다.

○ 소화기능 개선

이번에 소개드릴 식초의 효능은 소화기능향상입니다. 식초는 장 기능을 좋게 해서 소화기능을 향상시켜줍니다. 또한 변비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 피부미용

식초의 효능은 피부에 좋은 효과를 보여줍니다. 식초 많이 먹으면 신진대사가 활발해집니다. 이로 인해서 피부가 맑아지고 탄력이 생겨서 피부미용에 효과가 좋습니다.

○ 다이어트 효과

식초의 효능 지방축적을 억제합니다. 그러므로 식초를 적당량 마시면 다이어트 효과가 있습니다.

○ 골다공증 예방

식초다이어트에서 칼슘을 같이 섭취하면 칼슘의 체내 흡수율이 높아집니다. 그러므로 뼈가 건강해지고 튼튼해져서 뼈 성장에 좋고 골다공증 예방에도 효과적입니다. 이외에 식초는 피로를 없애주고 항산화 작용을 해서 성인병과 암을 예방해주며, 정자의 운동성을 백내장 예방 식중독 치료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Facebook 글 편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81.html
kolaswqetsrq 11.03 06:22
소화가 안되고 체중이 줄었다, 혹시 췌장암은 아닌지?

소화가 안되고 체중이 줄었다, 혹시 췌장암은 아닌지?

췌장암은 일반적으로 췌장에서 발생하는 암을 말한다. 췌장은 우리 몸의 소화에 관련된 효소를 분비해서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과 같은 영양분의 흡수를 돕고 음식물을 소화시킬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인슐린이나 글루카곤 같은 여러 가지 호르몬을 분비하여 혈당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췌장에 이상이 생겼을 때는 소화기능 장애뿐 아니라 당뇨병이 생길 수 있다.

췌장은 복부 깊숙이 위장 뒤에 15cm 정도로 길쭉하게 위치하며 머리 부분은 십이지장과 맞닿아 있으며 꼬리부분은 좌측 비장과 맞닿아 있다. 췌장암을 검사하는 방법에는 초음파, 내시경췌관조영술, CT, MRI가 있는데, 일반적인 검진에 사용되는 초음파의 경우 위장관 가스로 인하여 췌장의 머리와 꼬리 부분은 확인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CT나 MRI의 경우 1cm 내외의 암을 찾아낼 수는 있지만 건강 검진에 항상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서 머리와 꼬리 등에 발생한 췌장암의 경우 조기 발견이 어렵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위험인자는 가족 중 췌장암 환자가 있는 경우, 또 본인이 만성 췌장염을 앓고 있는 경우, 노년에서 발생한 당뇨환자, 고지방 식이, 흡연 등이다. 또한 건강 검진에서 종종 발견되는 췌장낭종(물혹)도 췌장암의 위험인자이다.

가로로 길게 놓여있는 췌장은 종양의 위치와 주위 장기로의 전이 정도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먼저 췌장의 머리 쪽에 암이 생겼을 경우 간에서 담즙이 내려오는 길을 막기 때문에 초기에 황달이 생길 수 있고 췌장의 가운데나 꼬리 부분에 암이 생길 경우에는 복부 불편감, 소화불량, 체중 감소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췌장 가운데나 꼬리쪽에 암이 생겼을 경우 머리에 비해서 뚜렷한 특이 증상이 없어 늦게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 이유 없이 6개월 동안 10%이상의 체중감소나 식욕감퇴 ▲ 배꼽 주위에 덩어리가 만져지거나 배나 등에 통증이 발생 ▲ 눈이나 피부가 노랗게 되며 짙은 갈색의 소변이 나오는 황달 ▲ 당뇨병 가족력이 없이 갑작스럽게 당뇨병이 발생 ▲ 만성췌장염을 앓고 계신 분이 갑작스런 체중 감소를 보일 때(기존 체중의 10%이상 감소) 췌장암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고려대학교의료원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59.html
kolaswqetsrq 11.03 06:23
갑상선기능저하증에는 어떤 음식이 좋은가요?

갑상선기능저하증에는 어떤 음식이 좋은가요?

‘갑상선염이다’ 또는 ‘갑상선기능저하증이다’라고 진단을 받으면 처음 하는 질문이 ‘무엇을 먹으면 좋은가요?’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갑상선염이나 갑상선기능저하증의 경우 오히려 피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해조류를 주재료로 만든 건강보조식품입니다. 김, 미역, 다시마 등 해조류에는 요오드가 다량 함유돼 있습니다.

요오드는 갑상선호르몬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므로, 요오드가 모자라면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 필요한 요오드 섭취량의 약 20배 정도를 섭취하고 있어 요오드 부족으로 인한 갑상선 질환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갑상선 질환 환자는 요오드를 많이 섭취해야 한다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상 갑상선 기능을 유지하던 만성 갑상선염 환자가 요오드가 풍부한 다시마 가루나 정제, 다시마 차 등을 복용함으로써 오히려 갑상선기능저하증으로 되어 병원을 방문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복용하던 식품을 중단하면 1~3개월 뒤 갑상선 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됩니다. 하지만 반찬으로 섭취하는 정도의 해초류나 요오드가 다량 함유되어 있는 브로콜리, 양배추 등의 야채들은 갑상선 기능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제한하지 않고 드셔도 됩니다.

-국가건강정보포털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43.html
kolaswqetsrq 11.03 06:24
장수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장수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 몸은 피할 수 없이 늙어간다. 어떻게 이 과정을 천천히 진행되도록 해서 인간의 생명을 연장할까? 장수하는 사람에게서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 배워보도록 하자. 모든 장수자들은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했고, 긍정적이며 낙천적이었다. 이들은 스트레스와 전염병에 강했다.

우리의 인생은 짧은가 아니면 긴가? 19세기 초에 제카브리스트 이반 푸신은 헤케른이 이후 아들로 받아들이는 단테스(푸슈킨을 죽인)와의 첫 번째 만남을 다음과 같이 썼다. “단테스는 여행 중 병이 들었다. 노인은 젊은이를 가여워했다.” 당신은 헤케른이 이야기한 <노인>의 나이가 몇 살이라고 생각하는가? 겨우 마흔 일곱이었다.

선진국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 살까? 건강한 50대의 남자를 힘 없는 노인이라고 할까?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의 삶의 정점에 놓여 있다. 팔십 살의 운동 선수가 마라톤에 참여하기도 한다. 현대에 늙어가는 특징이 나타나는 것은 65세부터이며, 80세부터 나타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정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현실로 남아 있다. 우리 몸은 피할 수 없이 늙어간다. 어떻게 이 과정을 천천히 진행되도록 해서 인간의 생명을 연장할까?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첫 번째 떠오르는 것은 장수하는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틀린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성경에서 우리는 특히 오래 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대홍수로부터 인류를 구원해야 했던 노아는 950년을 살았다. 하지만 므두셀라는 노아의 장수를 비웃으면서 969년을 살았다(실제로 몇몇 성경학자들은 정정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 시기에 한 달을 일 년으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약 70~80년을 산 것이다).

오늘날에도 장수자(長壽者)들에 대한 신화가 계속되고 있다. 어떤 사람은 티베트의 라마들이 300~400년을 산다고 하기도 한다(이 라마들이 도대체 어디에 숨었을까? 게다가 유명한 달라이 라마들도 보통 사람들처럼 길지 않은 인생을 살다가 죽는 것을 우리는 보아 왔다). 폴 브래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120~130살의 남자와 여자들을 무수히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터키의 한 짐꾼 이야기를 한다. 이 짐꾼은 154살임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이만 빠졌으며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능력이 젊은이 못지 않았다고 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건강하게 오래 사는 이유는 그들의 식생활에 달려 있다고 한다. 앞의 터키 짐꾼은 흰 빵을 먹지 않았으며 태양에 의해 몸이 검게 타도록 했다는 것이다.

불행은 이 사람들의 생년월일이 정확하게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이며 어떤 사람도 자신의 나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영국인은 교회 기록에 따르면 207살에 죽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장수 챔피언으로 등록되어 있는 사람은 아제르바이잔의 시랄리 무슬리모바이다. 보도에 의하면 그는 168살 까지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쓰여진 시기에 공식적으로 기네스북에 등록이 된 것은 120년과 237일을 살고 1986년에 죽은 일본인 시게치오 이주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그루지아의 장수자들을 상대로 노인의학 gerontology(정상적인 노화과정에서 노년층에 나타나는 질병과 건강의 모든 측면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의학의 한 분야)을 연구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실제로 그렇게 많은 것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장수하는 공통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채식만을 먹었다고 했다. 하지만 고기를 먹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전혀 술을 안마셨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매일 와인을 마셨다고 했다. 대부분의 장수자들은 아내를 많이 바꾸면서 살았고 자녀가 매우 많았다. 하지만 몇몇은 독신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장수 마을은 카프카즈나 히말라야와 같은 높은 산에 있는 것 만이 아니었다. 시베리아 평원이라든가 러시아 중부와 같은 평지에도 존재했다.

모든 장수자들을 연결해주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이들은 모두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했고, 긍정적이며 살고자하는 의욕이 있었으며 낙천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스트레스와 전염병에 강했다. 대부분의 장수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시작했고 자신의 직업을 한번도 바꾸지 않았다. 이러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활력을 가지고 오래 사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 먼저 자연 수명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닥터 사이언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58.html
kolaswqetsrq 11.03 06:25
노화를 막아주는 음식 9가지

노화를 막아주는 음식 9가지

1. 녹차

매일 3잔의 녹차를 마시는 사람은 장수한다는 연구결과가 일본에서 나온 바 있습니다. 녹차에는 강력한 항산화제인 EGCG(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요. 이 성분은 심장병과 알츠하이머병, 그리고 여러 가지 암 위험을 낮춥니다. 녹차 속에 있는 항산화 성분의 하나인 카테킨은 녹내장에 걸리는 것을 막는답니다.

2. 생선

연어, 참치, 고등어 등에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오메가-3 지방산은 심혈관 질환과 같은 늙고 쇠약해져서 생기는 질병들을 물리치는 효능이 있어요. 미국심장협회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생선을 먹을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3. 견과류

호두, 아몬드, 잣, 땅콩 등 견과류를 매일 2온스(약 57g)씩 먹으면 오메가-3 지방산을 충분하게 섭취하게 됩니다. 오메가-3 지방산은 염증을 격퇴시키는 효능이 있어요. 한 연구에 따르면, 매일 견과류를 먹은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이하로 견과류를 먹은 사람에 비해 심장마비에 걸릴 가능성이 60%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 다크 초콜릿

초콜릿은 두뇌 기능을 촉진시키고 혈압을 낮춘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독일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초콜릿을 소량이라도 매일 먹으면 심장마비나 뇌졸중 위험을 40%나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5. 커피

항산화제가 풍부하게 들어 있어요. 매일 3~5잔의 커피를 마시면 치매 위험을 65%나 낮춘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또 커피가 심장병, 통풍, 전립샘암, 대장암 그리고 2형 당뇨병 등에 걸릴 위험을 크게 낮춘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6. 와인

매일 2잔 정도의 적당량의 와인을 마시면 심장병과 알츠하이머병, 당뇨병, 비만, 충치와 몇 가지 종류의 암 등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와인은 피부암 발병 전의 병변을 감소시켜 피부를 보호한다고 합니다.

7. 베리류

아사이베리, 라즈베리, 블루베리 등의 베리류에는 안토시아닌이라는 항산화제가 듬뿍 들어있어요. 안토시아닌은 노화 작용을 늦추는 효능이 있습니다. 생으로 혹은 얼린 베리류를 매일 한 컵 정도 먹으면 노화를 이끄는 염증을 물리친다고 합니다.

8. 토마토

항산화제의 일종인 라이코펜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라이코펜은 피부를 젊게 하고 심장병과 몇 가지 암의 위험을 낮춥니다. 일주일에 토마토나 토마토가 든 음식을 10번 정도 먹는 남성은 전립샘암에 걸릴 위험이 45%나 줄어든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9. 브로콜리

각종 비타민과 크롬과 같은 무기질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성분들은 노화작용을 늦추고 두뇌 기능을 촉진시킨다고 합니다. 또 브로콜리에서 발견되는 설포라판은 심장병과 뇌졸중, 암 발생 위험을 줄이는 효능이 있습니다.

-Facebook 글 편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9_67.html
kolaswqetsrq 11.03 06:25
남성 갱년기, 이렇게 극복하자!

남성 갱년기, 이렇게 극복하자!

갱년기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여성’을 떠올리지만 ‘남성’에게도 엄연히 갱년기가 있다. 일반적으로 40대부터 뼈, 근육, 성기능 등의 남성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말하며 정신 및 대인관계,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무기력하고 약한 남성으로 변하는 것을 ‘남성갱년기’라고 한다.

대한남성갱년기학회의 국내 연구조사에 의하면 남성호르몬 수치가 기준치보다 감소한 경우가 40대 이상 남성 중 15~20% 정도 된다. 또한 미국에서 실시한 역학조사(Baltimore Longitudiual Study of Aging)에 따르면 남성호르몬 수치를 기준으로 하면 50대 10%, 60대의 20%가 남성갱년기 환자라는 보고가 있다.

남성갱년기에 나타날 수 있는 증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흔하고 중요한 증상은 성욕저하 및 발기력 저하,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로 및 무기력증이다. 또한 아랫배가 자꾸 나오고 근육량과 힘이 떨어지며, 뼈마디가 쑤시고 약해졌다거나 가슴이 여자처럼 변하고 수염이 잘 자라지 않는 등의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면 남성갱년기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이 밖에 기억력 감퇴, 집중력 저하, 우울감 및 의욕 상실과 함께 자주 짜증이 나는 등 심리적인 증상이 나타나도 남성갱년기를 고려해봐야 한다. 이들 증상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개인별로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증상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갱년기인 것은 아니지만 전문의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고 적절한 관리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 남성갱년기는 어떻게 진단하나요?

남성갱년기 진단은 크게 세 가지 절차에 따라 결정된다. 먼저 자가진단 증상설문지와 전문의의 진찰을 통해 확인하고, 둘째로 혈액검사로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 수치 감소 여부를 확인하며, 마지막으로 여러 증상들의 명확한 원인이 되는 다른 질병이 없음이 확인된다면 남성갱년기로 진단할 수 있다.

여기서 남성호르몬 수치 감소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이 감소하면 근골격계, 중추신경계뿐만 아니라 성욕, 발기능, 사정능 같은 성기능에도 이상이 생겨서 남성으로서의 기능이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테스토스테론은 40세 이후부터 매년 약 1%씩 분비가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개인차는 있지만 과도한 음주, 흡연, 스트레스, 영양상태, 비만 등에 의해서도 분비량이 감소할 수 있다.

또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질환도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같은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은 남성갱년기에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 남성갱년기 치료는?

남성호르몬 저하가 남성갱년기의 원인이므로 부족한 남성호르몬을 외부에서 보충하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호르몬을 보충하면 골밀도 증가, 근육량과 힘의 증가, 근력 및 스테미너 증가, 전신 신체상태 호전, 성욕 증가, 행복감 및 기분 향상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호르몬 보충요법에는 테스토스테론을 주성분으로 하는 경구약제, 경피 흡수제, 주사제 등이 있는데 위에 언급한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수면 중 무호흡증, 적혈구 증가증, 전립선비대증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남성갱년기는 여성갱년기와 마찬가지로 치료기간의 기준은 없으나 남성의 경우 질병의 치료보다는 삶의 만족도 및 질을 증가시킨다는 의미에서 장기간 치료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 남성갱년기 유무 자가진단법

1. 성욕이 줄었다.

2. 무기력하다.

3. 근력 및 지구력이 감소했다.

4. 키가 다소 줄었다.

5. 삶의 의욕과 재미가 없다.

6. 슬프거나 짜증이 많이 난다.

7. 발기력이 감소했다.

8. 조금만 운동을 해도 쉽게 지친다.

9. 저녁식사 후 졸음이 잦다.

10. 업무 능력이 감소했다.

* 1번 또는 7번이 ‘예’이거나, 기타 3개 항목이 ‘예’라면 남성갱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대학교의료원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98.html
kolaswqetsrq 11.03 06:26
손을 떠는 증상이 나타났을 경우

손을 떠는 증상이 나타났을 경우

첫째, 잠을 못 자지는 않았는지, 현재 흥분한 상태가 아닌지 파악해 보아야 합니다.

둘째, 현재 복용하고 있는 약물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천식약이나 기관지 약, 기침약 등을 복용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카페인도 중요한 떨림의 원인입니다. 많은 두통약, 종합감기약에는 카페인이 들어 있습니다. 또한 신경안정제나 우울증 약 등도 떨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복용 중인 다른 약물이 있는 경우라면, 복용 중인 약물을 처방한 의사와 우선 상의하여야 합니다.

셋째, 어떤 상태에서 떨림이 심한지 알아야 합니다. 가만히 누워 있을 때나 앉아 있을 때 한쪽 손만 떤다면 파킨슨병일 가능성이 높고, 글씨를 쓸 때나 숟가락질·젓가락 질을 할 때, 손을 앞으로 쭉 뻗을 때 양손의 떨림이 심해지면 본태성 떨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뇌졸중이나 종양 같은 뇌의 병 때문에도 간혹 떨림(의도떨림)이 생길 수 있으므로 신경과 의사의 진찰을 꼭 받고, 다른 병일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MRI 등의 검사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국가건강정보포털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33.html
kolaswqetsrq 11.03 06:27
기쁨은 어떻게 생길까?

기쁨은 어떻게 생길까?

<만족 센터와 불만족 센터는 뇌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우리의 감정, 기분을 나타내며, 좋은지 나쁜지를 표현한다. <불만족 센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더 위험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을 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보호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지상에 천국을 열었다!> 라는 제목이 50년 전 미국의 신문에 실렸다.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킨 존 올드스와 폴 밀너의 발견에 대한 기사였다. 이 생리학자들은 쥐의 뇌의 여러 부분에서 전극을 감지했다. 전극은 작은 페달에 연결되어 있고 쥐가 페달을 밟으면(자기 발전) 전기 충격을 뇌의 이곳 저곳에 전달해준다(그림 5.11). 실험 결과 자기 충격을 주는 쥐는 계속해서 페달을 밟았으며 자기 충격을 주지 않는 쥐는 페달을 한 번 또는 두 번 정도 밟고는 그만두었다.

만족감을 느끼기 위한 뇌의 자기 충격. 자기 충격을 주는 페달을 밟는 쥐는 계속적으로 페달을 밟았다. <만족 센터>(장려 구역)와 <불만족 센터>(체벌 구역)는 인간과 같이 동물들도 서로 열려 있었다. 이 두 센터는 뇌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우리의 감정, 기분을 나타낸다. 좋은지 또는 나쁜지를 표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좋은 것, 기쁜 것 만을 겪기를 원한다. <만족 센터>를 자극 하는 실험용 쥐는 계속해서 지치지 않고 페달을 밟았다. 이 <기쁨>으로 인해서 쥐는 먹고 싶어하지도, 마시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결국 완전히 지치게 되고 바로 죽어버렸다. 이것은 자신을 항상 무엇인가로 계속해서 자극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이다!

다행스럽게도 <만족 센터>는 <불만족 센터>보다도 훨씬 더 많이 뇌 속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의 경우 기분이 좋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불만족 센터>가 필요한 것이냐고 물어볼 것이다. 그냥 좋은 기분을 망가뜨리기 위해서 필요하단 말인가요? 하고 물어볼 지 모르겠다. 물론 아니다. <체벌 구역>은 우리 의식에 불쾌함을 전해준다. 하지만 이 신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더 위험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경고이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을 이 위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도록, 보호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것 중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픔이다.

-닥터 사이언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61.html
kolaswqetsrq 11.03 06:27
어종별 효능

어종별 효능

○ 광어(넙치) : 순환계 성인병, 성장 촉진, 세포 활성화, 칼슘흡수 향상, 스트레스 예방

○ 도다리(가자미) : 발육촉진, 칼슘흡수 향상

○ 조피볼락(우럭) : 피로회복, 간 기능 향상, 노화방지

○ 농어(깔따구) : 야맹증 예방, 칼슘흡수 향상, 세포 활성화

○ 참돔(돔) : 순환계통 성인병 예방, 암 예방, 당뇨병 예방, 머리를 좋게함, 지각 기능 향상

○ 쥐노래미(게르치) : 발육 촉진, 칼슘흡수율 향상

○ 홍민어(점성어) : 발육촉진,세포 활성화

○ 전어(전어사리) : 순환계통 성인병 예방, 머리를 좋게 함, 골다공증 예방, 노화 억제

○ 참치(다랑어) : 순환계통 성인병 예방, 암/당뇨 예방, 면역력 유지, 신경질환 예방

○ 방어 ; 순환계통 성인병 예방, 암/당뇨병 예방, 머리 좋게함, 시력 회복, 노화억제, 세포 활성화, 신경질환예방

○ 병어(뱅어) : 순환계통 성인병 예방, 머리를 좋게함

○ 복어(점복) : 혈압 강하, 세포 활성화, 숙취해소

○ 붕장어(아나고): 순환계통 성인병 예방, 머리 좋게함, 야맹증 예방, 면역력 유지, 생식기능 향상, 점막 보호

○ 홍어 : 세포 활성화, 신경통 및 류머티스 관절염 예방, 노화방지

○ 대구 : 노화방지, 야맹증 예방, 면역력 유지, 신경통 및 류머티즘성 관절염 예방

○ 고등어 : 순환계통 성인병 예방, 암/당뇨병 예방, 머리 좋게함, 칼슘흡수 향상, 세포 활성화, 신경질환 예방

○ 전갱이 : 순환계통 성인병 예방, 머리 좋게함, 세포 활성화

○ 오징어 : 피로회복, 시력 회복, 노화방지, 당뇨병 예방, 코레스 테롤증가 억제

○ 전복 : 피로회복, 시력 회복, 담석 예방, 콜레스테롤 상승 억제, 당뇨병 예방

○ 개불 : 빈혈 예방, 세포 활성화

○ 우렁쉥이(멍게) : 혈압 강하, 빈혈 예방, 강정 효과, 미각장애 개선, 신경통 및 류머티즘성 관절염 예방

○ 쭈꾸미 / 낙지 : 피로 회복, 시력 회복, 노화억제, 콜레스테롤 증가 억제, 유아성장

○ 해삼 : 갑상선질환예방, 신진대사 촉진.

-Facebook 글 편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92.html
kolaswqetsrq 11.03 06:28
피부가 건조한 경우 피부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피부가 건조한 경우 피부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목욕이나 샤워의 횟수를 가능한 줄이고,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피부가 매우 민감하므로 순한 세정 제품을 사용하고, 목욕 후에는 세제가 피부에 남아 있지 않도록 충분한 물로 여러 번 씻어내는 것이 좋습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을 때에도 문지르지 말고 가볍게 닦고, 목욕 후 3분이 지나면 피부 건조가 시작되므로 바로 보습제를 바르는 것이 좋고 평상시에도 주기적으로 보습제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내 온도는 너무 덥지 않게 18∼20°C로 유지하며 가습기를 사용하고, 가습기가 없을 때에는 실내에 젖은 빨래를 널거나 물수건을 놓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피부가 민감하므로 화학 섬유나 양모 같이 피부에 마찰이나 자극을 줄 수 있는 의복을 피해야 합니다.

-국가건강정보포털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335.html
kolaswqetsrq 11.03 06:29
피로는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피로는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피로의 원인은 무엇일까? 의심의 여지 없이 운동하는 근육이 피로를 느끼게 되기 때문에 사람이 피로를 느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먼저 소위 손가락 근육과 같은 백색근(白色筋) white muscle, fast-twitch muscle이 쉽게 피로해진다. 백색근보다 훨씬 오랫동안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적색근(赤色筋) red muscle, slow-twitch muscle이다. 이 적색근에는 미오글로빈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색소가 있다. 이 미오글로빈은 비상시 쓸 수 있는 산소를 저축하고 있다. 이러한 근육의 대표적인 예는 다리 근육이다. 피로가 진행되면 근육 내부에 가지고 있는 에너지원이 적어진다. 그 중의 하나가 글리코겐이다. 산소의 공급이 지체가 되듯 글리코겐의 보충도 지체가 된다. 근섬유에는 젖산과 같은 대사의 부산물이 쌓이게 되고 근육의 수축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운동하는 근육에 맨 처음 일어나는 현상은 포도당과 산소의 부족이다. 만약 지친 사람에게 포도당을 주입한다면 그는 더 오랫동안 운동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농축 산소를 운동 선수들에게 공급하는 방식으로 피로와의 전쟁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우리 근육의 산소공급 장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동 선수들의 피로는 산소부족이 아니라 몸 자체가 견딜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피로는 힘든 것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다. 그것은 고갈된 에너지원의 회복을 도와준다.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피로는 운동 능력을 유지시켜준다. 그렇기 때문에 피로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된다. 피로는 유익하다! 하지만 지나친 피로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아래에 이야기하겠다. 인간은 거부하지 않고, 즉 피로를 느끼지 않고 끝없이 계속 운동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 만약 그 운동이 최대로 피로를 주지 않는 정도, 즉 아주 가벼운 운동에서 적당한 운동 사이의 경계일 때 가능하다. 이러한 운동을 할 때 맥박은 1분에 100회 이상 뛰지 않아야 한다. 한번 시험해봐도 좋다!

물리적 강도가 세면 셀수록 인간이 그것을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이러한 관계를 가지고 임계 파워를 계산할 수 있다. 임계 파워는 피로를 느끼지 않고 끝없이 계속 운동을 할 수 있기 위해서 근육이 견딜 수 있는 최대한의 강도를 나타낸다.

물론 인간은 언젠가는 하던 동작을 그만둘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피로를 주지 않는 강도의 운동은 특히 중년 이후의 남녀가 트레이닝을 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자신의 임계 파워를 안다면 그 사람은 달리는 속도, 자전거 에르고미터의 강도 등 자신에게 맞는 운동 강도를 적당하게 선택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운동의 강도는 현 시점에서 그의 체형에 가장 알맞는 것이다.

-닥터 사이언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91.html
kolaswqetsrq 11.03 06:29
먹어도 살 안 찌는 저칼로리음식

먹어도 살 안 찌는 저칼로리음식

1. 곤약 (0kcal/100g당)

곤약은 대표적인 0칼로리 식품으로, 구약나물의 땅속줄기를 가루를 내어 가공해 만든 식품이다. 수분 함량이 많고 글루코만난이 장을 깨끗하게 하여 변비를 예방하므로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2. 우무 (3kcal/100g당)

우무는 해조류인 우뭇가사리를 녹여 만든 식품으로 식이 섬유가 풍부하고 포만감을 주면서도 열량이 적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우무를 콩국에 넣어 먹으면 좋다.

3. 오이 (10kcal/100g당)

오이는 90%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칼륨이 풍부하여 체내의 나트륨을 밖으로 배출하는 작용을 하고 몸 안의 노폐물을 제거해 준다. 그 밖에 망간, 구리가 들어 있으며 껍질에도 비타민 A와 비타민 C가 소량 들어있다. 강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산성화된 몸을 중화하고 부기를 빼 주는 효과가 있다.

4. 방울토마토 (12kcal/100g당)

방울토마토는 열량이 낮을 뿐 아니라 비타민 A, B, C가 골고루 들어 있으며 라이코펜과 루틴, 케르세틴 등의 생리활성물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세포의 산화를 막아 각종 암과 심혈관 질환의 발생률을 낮춰 준다. 또 루테인, 제아잔틴과 같은 망막의 구성 성분도 많이 들어있어 눈 건강을 생각하는 수험생과 노인에게 좋다.

5. 샐러리 (12kcal/100g당)

샐러리는 당질과 지방질의 함량이 낮고 식이 섬유를 다량 함유하고 있다. 멜라토닌이 많이 들어 있어 불면증 해소에 좋고, 비타민 B1, B2가 풍부하고 나트륨, 칼슘이 풍부해서 인체에 해로운 독소를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기능을 하며, 세다놀 성분은 이뇨작용을 촉진시킨다.

6. 아스파라거스 (12kcal/100g당)

아스파라거스는 크게 흰색과 녹색으로 나뉘며 아스파라긴산, 비타민 A, B1, B2, C와 칼륨, 칼슘, 인, 식이 섬유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특히 아스파라긴산은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단백질 합성을 도와 피로 회복에 좋은 뿐 아니라 이뇨 작용, 혈관 강화, 항균 작용, 항염증 작용, 진정 작용, 혈압 조절 등을 돕는다.

7. 다시마 (19kcal/100g당)

다시마는 대표적인 저열량, 저지방 식품이며, 식이 섬유소가 풍부하여 장운동을 활발하게해 변비를 예방한다. 다시마과 같은 해조류에는 요오드, 철분, 칼슘, 칼륨과 같은 무기질 등의 영양이 많고 알긴산이 풍부해 중금속이 생체 내 흡수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8. 콜리플라워 (18kcal/100g당)

콜리플라워는 열량은 낮지만 비타민류가 풍부하다. 특히 비타민 C는 콜리플라워 100g을 먹으면 하루에 필요한 양을 섭취할 수 있다. 그 외 비타민 B1, 비타민 B2도 많이 함유하고 있으며, 식이 섬유도 양배추나 배추보다 많이 함유하고 있다

9. 딸기 (27kcal/100g당)

딸기는 비타민C가 풍부하여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다. 딸기 속 안토시아닌은 눈의 조절 기능을 높이고 피로를 풀어주는 작용을 갖고 있으며 고혈압과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일라직산 성분은 암세포의 아포토시스(apoptosis, 자살)를 유발하여 암세포 억제에 도움이 된다.

10. 자몽 (30kcal/100g당)

자몽의 쓴맛을 내는 나린진(narngin)은 몸 속의 불필요한 지방은 연소시켜주고, 펙틴은 체내의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때문에 동맥경화 예방과 체내의 불필요한 지방을 연소시켜줘 건강한 신체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자몽은 비타민 C가 풍부해 피부미용에 도움이 된다. 주의해야 할 사항은 자몽은 고혈압치료제, 고지혈증, 항우울제, 알레르기 약과 함께 복용하면 약물 대사에 이상이 나타날 수 있다.

-‘건강한 아침’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63.html
kolaswqetsrq 11.03 06:30
기침할 때는 손 말고 소매로 가려야, 기침 예절을 지키자!

기침할 때는 손 말고 소매로 가려야, 기침 예절을 지키자!

기침을 할 때에는 반드시 가리고 해야 한다. 휴지가 준비되어 있거나 곧바로 손을 씻을 수 있는 경우에는 휴지를 쓰거나 손으로 가린 후 바로 손을 씻어도 되지만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그렇게 준비된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럴 때의 요령은 팔꿈치 안쪽의 옷이나 소매로 가리고 기침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손바닥으로 가리거나 주먹 위쪽을 입에 대고 가리는 시늉만 하고 기침을 하는 경우가 많은 데, 우리가 기침을 한 후 손으로 하는 행동을 생각해 보자.

문고리를 돌리고, 문을 열며, 전철 손잡이를 잡고, 얼굴과 코를 만지며, 악수를 한다. 기침을 손으로 가리면 나온 미세 분비물을 다른 사람에게 묻힐 확률이 높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의외로 홍보가 잘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기침을 할 때에는 손이 아닌 팔꿈치 안쪽의 옷으로 가려야 한다.

두 번째는 자주 손 씻기이다. 의료인의 손을 통해서 감염이 전파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확인된 후 의료인들은 병원에서 손 씻기를 연습하고 서로 확인도 받는데, 아직 일반인들의 손 씻기를 보면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 손은 비누를 사용해서 구석구석 충분히 씻어야 한다. 손가락을 깍지 끼듯이 문질러서 손가락 사이를 씻어야 하고, 손톱 끝도 다른 손의 손바닥에 대고 문질러서 손톱 사이도 씻어야 한다. 자주 그리고 확실히 손을 씻으면, 직접 접촉 감염을 분명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소매로 가리고 기침하기나 손 잘 씻기 같은 위생 조치는 누구나 할 수 있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행동이다. 보건 전문가들이 적절히 대처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노력한다면, 우리나라는 큰 피해 없이 신종 플루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대학교의료원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49.html
kolaswqetsrq 11.03 06:31
피로 증상에 비타민을 복용하는 것이 도움이 되나요?

피로 증상에 비타민을 복용하는 것이 도움이 되나요?

특히 여성들에서 심한 다이어트나 불규칙한 식생활 습관이 각종 비타민의 결핍을 초래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비타민은 그 종류를 막론하고 결핍될 경우에는 피로 증상이 주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비타민을 보충하면 피로 증상이 개선되는 것은 당연하고 최근에는 반드시 비타민 결핍이 아니더라도 비타민을 보충하는 경우에 피로, 스트레스 증상의 회복이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타민 C는 피로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비타민입니다.

실제로 비타민 C 결핍이 피로 증상을 유발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비타민 C는 면역 기능을 도와줌으로써 감염증으로 인한 피로 증상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 비타민 C는 인체 내에서 바이러스에 대해서 대항해서 싸우는 인터페론의 생산을 자극하고 건강한 백혈구와 항체 생산에 필수적이기도 합니다. 체내에 비타민 C가 모자라면 히스타민 양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히스타민은 인체에서 피로 증상을 나타내게 하는 원인 물질입니다. 게다가 비타민 C는 중요한 항스트레스 비타민이기도 합니다. 비타민 C는 부신을 도와서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피로와 탈진 증상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며 소화기에서 철분의 흡수를 돕는 역할을 하는데 철결핍성 빈혈은 사춘기 및 폐경 이전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피로 증상의 흔한 원인입니다. 또 비타민 C는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해서 출혈을 줄이는 작용도 합니다.

-국가건강정보포털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52.html
kolaswqetsrq 11.03 06:32
와인이 생명을 연장시켜줄까?

와인이 생명을 연장시켜줄까?

적포도주를 조금씩 마시는 것은 심근 경색의 확률을 낮추고 생명을 연장시켜준다고 하지만 이러한 알코올 효능에 대한 정확한 보고는 아직 없다. 알코올의 남용으로 생기는 불행한 일은 흡연과 같다. 한 연구에 의하면 흡연은 평균 수명을 9년 줄이지만 알코올은 27년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문제에 대해서 완전하게 동의를 하는 전문가들은 없다. 많은 심장학 전문가들은 알코올이 혈관을 넓혀준다고 이야기한다. 적포도주를 조금(80~100ml/하루)씩 마시는 것은 심근 경색의 확률을 낮춰주고 생명을 연장시켜준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이러한 알코올의 효능에 대한 정확한 보고는 아직 없다.

알코올의 남용으로 생기는 불행한 일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흡연과 같다. 러시아의 한 연구에 의하면 흡연은 평균 수명을 9년 줄이지만 알코올은 27년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러시아인은 평균 일년에 7리터의 알코올을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인간에게 무해한 보드카의 양은 하루에 30ml, 즉 12ml의 알코올 양(보드카는 알코올이 40%이므로)이고 결과적으로 일 년에 약 4리터의 알코올 양은 무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매년 러시아에서는 약 3만 명이 알코올과 관련되어서 사망을 한다는 것이다.

-닥터 사이언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15.html
kolaswqetsrq 11.03 06:32
당뇨병 정복 10대 수칙

당뇨병 정복 10대 수칙

1. 환자 자신이 당뇨병 전문가가 되자

- 당뇨병을 알고 모르고에 따라 치료 효과가 다르다.

- 당뇨병 교육을 반복해서 받자.

2. 당뇨병과 친구가 되자

- 당뇨병을 두려워하지 말라.

- 잘 다스리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

- 긍정적인 생각이 중요하다.

3. 생활습관을 바꾸자

- 잘못된 생활습관을 바꾸면 반 이상 성공이다.

- 당뇨병도 좋아지고 합병증도 예방된다.

4. 잘 먹자

- 식사는 제 때, 적당량을 골고루 먹는다.

- 당뇨병은 배고프게 지내는 병이 아니다.

- 외식, 회식을 피한다. 야식, 간식도 피하자.

5. 많이 움직이자

- 운동은 일주일에 3번 이상, 한 번에 30분 이상

- 되도록 걷고, 엘리베이터ᆞ에스컬레이터는 타지 말자.

6. 혈당ᆞ혈압ᆞ콜레스테롤을 자주 체크하자

- 혈당을 자주 재고 당화혈색소는 3개월에 한 번 잰다.

- 혈압은 130/80mmHg 이하, 혈압약은 여러 개 쓸 수도 있다.

- 좋은 콜레스테롤과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알자.

7. 의사 말을 잘 따르자

- 본인이 알아서 약을 줄이거나 끊으면 안 된다.

- 이상한 치료법에 속지 않는다.

8. 정기적으로 합병증 검사를 실시하자

- 6개월 혹은 1년마다 당뇨병 합병증 검사를 한다.

9. 과음ᆞ담배는 피하자

- 흡연은 혈당과 혈압을 높인다.

- 과음은 금물, 소량의 술은 나쁘지 않다.

10. 발 관리에 정성을 쏟자

- 매일 씻고, 상처가 있는지 살핀다.

- 편한 운동화를 신는 게 좋다.

-Facebook 글 편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10_85.html
kolaswqetsrq 11.03 06:33
갑상선암의 모든 것

갑상선암의 모든 것

최근 유명 스타들의 갑상선암 투병 사실이 공개되면서 갑상선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갑상선은 목 중앙에 위치하는 나비 모양의 내분비기관으로 우리 몸의에너지대사에 관여하는 갑상선 호르몬을 생성 및 분비하는 역할을 한다. 갑상선암에 대해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유방내분비외과 김우영 교수와 함께 알아보자!

Q. 갑상선은 몸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나요?

A. 갑상선은 목 중앙에 위치한 나비 모양의 내분비기관 중 하나입니다. 갑상선은 우리 몸의 에너지대사에 관여하는 갑상선 호르몬을 생성 및 분비하는 역할을 하죠.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시켜주거나, 태아와 신생아의 뇌·뼈의 성장 발달을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Q. 갑상선암의 종류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A. 갑상선암은 크게 분화 갑상선암, 갑상선 수질암, 미분화 갑상선암으로 분류되며 가장 발생 빈도가 높은 것은 분화갑상선암인 갑상선 유두암입니다. 우리나라 갑상선암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주로 20~50대 여성에서 발생하죠. 보통 여성이 남성에 비해 갑상선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은데, 그 이유가 바로 여성이 호르몬 변화가 크고 자가면역질환에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
Q.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는 별명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

A. 맞습니다. 갑상선암은 다른 암에 비해 느리게 진행되고 치료도 잘 되기 때문에 ‘착한 암’ 이라고도 불립니다. 또한 갑상선암 환자의 기대 수명은 전체 인구의 기대수명과 비슷할 정도로 매우 높은 생존율을 보이고 있죠. 그러나 모든 갑상선암이 예후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분화갑상선암(유두암, 여포암)이 치료되지 않고 장기간 방치될 경우 미분화 갑상선암으로 발전될 수 있는데, 미분화암은 성장속도가 빨라 진단과 동시에 4기로 분류되고 치료도 어려워 생존율이 희박합니다. 따라서 감상선암은 무엇보다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갑상선암의 원인과 증상은 무엇일까요?

A. 갑상선은 갑상선 세포가 과도하게 증식하지 않도록 세포의 생성과 사멸이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부 자극이나 신호에 의해 세포의 성장 조절에 균형이 깨지면 종양이 형성될 수 있는데, 이러한 균형을 깨는 대표적인 원인이 방사선 노출입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일찍부터 방사선에 노출될 경우 갑상선암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그 외에 갑상선 수질암의 경우에 유전적 요인 등이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대개 갑상선암은 특별한 증상을 유발하지 않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갑상선암이 생기면 목에 결절(혹)이 만져지는데 ▲결절이 딱딱하게 만져질 경우 ▲결절이 크거나 갑자기 커진 경우 ▲목소리에 변화가 있을 경우 ▲음식물을 삼키기 힘든 증상이 있을 경우에는 갑상선암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정확한 검사가 필요합니다.

-고려대학교의료원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31.html
kolaswqetsrq 11.03 06:34
심뇌혈관질환 예방 관리를 위한 9대 생활 수칙”은 무엇인가요?

심뇌혈관질환 예방 관리를 위한 9대 생활 수칙”은 무엇인가요?

2007년부터 8개의 국내 심뇌혈관 질환 관련 학회와 질병관리 본부가 협력하여 개발한 생활 수칙입니다.

- 담배 끊기

- 술은 하루 한 두 잔으로 줄이기

- 싱겁게 먹으며 채소와 생선 섭취하기

- 적절한 운동하기

- 적정 체중유지하기

- 스트레스 줄이고 즐거운 마음 가지기

- 정기적으로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을 측정하기

-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이 있다면 꾸준하게 치료하기

- 뇌졸중, 심근경색 발생 시 즉시 병원에 가기

-국가건강정보포털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9_13.html
kolaswqetsrq 11.03 06:34
비만의 원인은 항상 과식인가?

비만의 원인은 항상 과식인가?

과식뿐만 아니라 영양부족도 비만을 유도한다. 비만의 또 하나의 원인은 앉아서 일하기 때문에 생기는 운동부족이다. 적은 에너지 사용과 필요 없는 칼로리의 섭취는 과체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렙틴은 복잡한 메커니즘에 의해 배고프다는 느낌을 없앤다. 다이어트 중인데 식욕을 참지 못하는 것은 이런 메커니즘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비만의 원인은 과식뿐만이 아니라 영양부족도 비만을 유도한다. 정확하게 말해서 음식의 질적인 측면에서 잘 못 먹게 되면 비만을 초래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빵과 감자 같은 가장 싼 음식만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경우, 그의 몸에는 단백질의 부족이 일어나는 동시에 지방으로 변하게 되는 탄수화물의 양이 지나치게 많아진다. 구 소련에서는 전 국민에게 식량의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특히 고기를 사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농담으로 두 가지 문제가 항상 걱정이 된다고 했다. 첫 번째는 <어디서 식품을 살 수 있을까?>이고 두 번째는 <어떻게 살을 뺄까?>였다.

비만의 또 하나의 원인은 앉아서 일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적어져서 운동부족이 생기기 때문이다. 현대 문명으로 인한 이러한 불행에 대해서 우리는 제 1장에서 자세하게 이야기를 했다. 게다가 운동부족이 과식과 병행이 되기도 한다. 적은 에너지의 사용과 필요 없는 칼로리의 섭취는 과체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한 사람에게 다양한 요소들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비만의 몸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든가, 유전과 대사 활동의 병력이 있고, 움직임이 적은 생활을 하며 올바르지 못한 식생활을 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커다란 불행이다.

예를 들어서 미국인 파트릭 듀얼은 42살 때 거의 0.5톤에 달하였고(뿔 달린 짐승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이용해서 몸무게를 재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당뇨, 대상부전(代償不全) cardiac decompensation, 관절염 등 비만 때문에 생기는 온갖 병으로 괴로워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각각 130kg이상 나가는 거구였다. 게다가 파트릭은 모든 것을 잘 먹는 대식가였고, 패스트푸드에 대한 갈망이 뜨거웠다. 병원에서 그는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는데 하루에 1,200kcal 만을 주었다. 눈에 뜨이게 몸무게가 줄었을 때 위를 꿰매는 수술을 시행했다(비어있는 위도 배고픔을 일으키는 하나의 원인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또 다른 미국인인 존 브라우어 미노크는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사람으로 몸무게가 635kg에 달했다. 택시 운전사였던 그도 마찬가지로 혼자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를 돌아 눕게 만드는데 13명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한가지 기록을 더 가지고 있는데 16개월 동안 419kg을 뺐다. 하지만 이것이 미노크를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했다. 그는 34살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신체는 이미 다르게 변해있었던 것이다.

-닥터 사이언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340.html
kolaswqetsrq 11.03 06:36
흔들린 아이 증후군, 왜 위험한가?

흔들린 아이 증후군, 왜 위험한가?

흔들린아이증후군(shaken baby syndrome)은 대개 2세 이하의 유아가 울거나 보챌 때 심하게 흔들어서 생기는 질환으로 뇌출혈과 망막출혈이 특징적이고 그 외 장골이나 늑골의 골절 등 복합적인 여러 손상이 동반될 수도 있는 질환이다. 이 질환이 발생했을 시 약 30%가 사망하고 생존자의 약 60%가 영구적인 후유증을 겪는데 그 후유증으로는 실명, 사지마비, 정신박약, 성장장애, 간질 등 치명적인 질병들이 있다.

국내에서는 잦은 케이스는 아니지만, 작년에 흔들린 아이 증후군으로 사망진단을 받은 사례가 있었으며, 미국에서는 매년 1000명 정도가 흔들린 아이 증후군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몇 년 전 생후 3개월 된 아기가 8시간 동안 차량에 탑승했다 2주 후 극심한 구토와 함께 뇌출혈과 망막출혈이 생긴 사례가 있다.

주로 돌 전의 아이들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어린 아기들은 몸통에 비해 머리가 크고, 목에 힘은 별로 없으며, 뇌의 혈관은 아직 덜 발달돼 있다. 따라서 아이를 심하게 흔들면 머리에 손상을 받게 된다. 특히 2~4개월 경의 아이들이 위험한데, 주로 아기를 돌보던 사람이 아기가 심하게 울면 본인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화를 참지 못해서 아기를 심하게 흔들면서 이런 손상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드물긴 하지만 장난으로 아이를 공중에 던졌다가 받는다든지 아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툭툭 치는 것, 아이를 등에 업거나 어깨에 무등을 태워 조깅하는 것, 말을 타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

일부 부모들은 아이를 얼러준다고 무릎 위에서 깡충깡충 뜀박질을 시키거나, 잠을 재운다고 옆으로 흔들어 주고, 흔들의자에 눕혀 아기를 재우는 것도 ‘흔들린 아이 증후군’을 초래할까봐 걱정하기도 한다. 흔들린 아이 증후군은 아주 심하게 아기를 흔드는 경우에만 발생한다. 부모가 안고 살살 흔들어 주거나 흔들의자에 눕혀 재우는 정도는 위험하지 않으니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실제 사례를 보면 대개 20초 이내로, 40에서 50회 정도 심하게 흔들었을 때 생기므로, 아기를 어르거나 달랠 때 너무 흔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흔들린 아이 증후군의 증상은 아이가 보채고 토하면서 처지고 심할 때는 경련을 일으키고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어린 아이의 뇌가 심하게 손상을 받으면 짧은 시간 내에 증상이 나타나고 약하게 손상을 받은 경우에는 증상이 천천히 나타나게 된다. 아기가 토하거나 보채고, 경련을 일으키기도 하고, 심하면 반응을 하지 않고, 의식이 없어진다. 어떤 아이는 호흡 곤란을 겪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아이가 너무 어려 의사표현을 할 수 없고 보채거나 토하고 잘 먹지 않는 등 상기도감염에 의한 일반적인 증상만 나타낼 수 있다. 진단에 필요한 전형적인 세 가지 특징은 뇌출혈, 뇌부종, 망막출혈이다. 머리에 손상을 입히는 힘의 정도는 아이를 달랠 때 가볍게 흔드는 정도의 힘으로는 생기지 않는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변정혜 교수는 “흔들린아이증후군이 의심되면, 일단 아이가 정말로 아픈 곳은 없는지, 엉덩이가 짓무르지는 않았는지, 피부에 뭔가 찔리거나 아픈 일은 없는지 아기 몸 전체를 살펴봐야 한다. 그 후에도 아이가 계속해서 울고 고통스러워한다면 응급구조를 요청한 후 영아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고려대학교의료원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74.html
kolaswqetsrq 11.03 06:36
혀에 백태가 자꾸 끼어요

혀에 백태가 자꾸 끼어요

구강건조증이 있으면 혀의 각질이 쉽게 탈락되지 못해 백태가 자주 끼게 됩니다. 구취 등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자주 칫솔질을 해서 제거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백태가 착색되어 검고 두껍게 끼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흑모설(black hairy tongue) 이라고 합니다. 흑색 색소를 침착시키는 곰팡이의 작용으로 인해 혀의 윗면이 흑색을 띄며 모상유두가 3mm 이상으로 길어지게 됩니다.

원인으로는 항생제 및 구강살균제의 과다한 사용, 구강 캔디다증 등이 있습니다. 임상적으로 길어진 모상유두가 입천장에 닿아 이물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고 그 외 특별한 자각 증상은 없습니다. 치료로는 칫솔이나, 살리실릭 산이 함유된 10~15% 알코올 용액으로 혀를 닦아주거나 항진균제 용액, 항히스타민 용액을 사용하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국가건강정보포털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368.html
kolaswqetsrq 11.03 06:37
신장질환의 지표가 되는 단백뇨, 조기진단이 중요하다

신장질환의 지표가 되는 단백뇨, 조기진단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신장이 혈액 내의 노폐물을 걸러내는 과정에서 소변으로 혈액 내의 단백질이 빠져 나오는 양은 매우 적은 양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떤 원인에 의해 다량의 단백질이 신장을 통해 걸러져 소변으로 혈액내의 단백질이 빠져 나가는 경우, 이를 단백뇨라고 한다.

단백뇨는 원인에 따라 신장 질환과 관련이 없는 단순성 단백뇨와 신장 질환이나 전신 질환에 따른 단백뇨로 나눌 수 있다. 단순성 단백뇨는 비교적 건강하고 증상이 없는 사람에서 다른 신장 기능의 이상이나 전신 질환 없이 일과성으로 단백뇨가 검출되는 경우를 말한다. 젊은 성인에서 과도한 운동 후나 오랫동안 서 있을 때 또는 몸에 고열이 있는 경우 일시적으로 단백뇨가 나타날 수 있으나 원인이 제거 되고 난 후에는 단백뇨가 사라져 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질환에 따른 단백뇨는 신장 질환이나 전신 질환에 의하여 나타나는 병적인 단백뇨이다. 그 원인으로 신증후군, 급성 사구체신염, 만성 사구체신염, 신우신염, 유전성 신염, 신장 종양, 고혈압, 울혈성 심부전, 당뇨병의 신장 합병증, 다발성 골수종, 루푸스, 소염 진통제 같은 약물 등 이 있을 수 있다.

소변의 단백질이 증가하는 경우, 소변에 거품이 일게 되는데 이때 단백뇨를 의심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단백뇨는 단순히 거품만으로 진단할 수는 없고 소변검사를 통해야만 정확한 진단이 이루어진다. 단백뇨가 있더라도 특별한 증상을 못 느끼다가 신체검사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도 흔하지 않게 발견된다. 그러나 단백뇨의 양이 많은 경우에는 몸이 붓고 체중이 증가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생긴다.

-고려대학교의료원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94.html
kolaswqetsrq 11.03 06:38
이갈이는 왜 생기며, 치료 방법은 어떤 것이 있나요?

이갈이는 왜 생기며, 치료 방법은 어떤 것이 있나요?

잠을 자는 중에 이를 갈거나(grinding) 악물고(clenching), 이때 생기는 자극과 통증으로 수면이 방해받는 것을 통틀어 정확하게는 이갈음(bruxism)이라고 합니다. 이갈음이 있으며 그 소음으로 인해 주변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또, 이갈음으로 인해 치아가 빨리 닳게 되고 치통, 턱 주위 통증과 두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갈음 중에는 아래위 치아들이 수평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마찰을 일으키는데, 치아는 구조상 수직방향의 힘에는 강하지만 수평방향의 힘에는 매우 약하므로 심하게 손상됩니다.

이갈음은 지능지체나 뇌성마비 환자에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특별한 신체적 문제가 없는 아동이나 성인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갈음은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한 불안과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갈음은 아동의 14~17%가 증상을 나타낼 정도로 흔하며 나이가 들면서 줄어들어 청소년은 12%, 성인이 되면 8% 정도로 줄어들고, 노인은 3% 정도의 유병률을 보입니다.

성취동기가 강하고 주의력이 높은(늘 긴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며, 치아의 교합이 잘 맞지 않는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생활스트레스, 과도한 업무, 마감일에 쫓기는 상황 등이 이갈음 유발과 관련되며, 흡연과 카페인 섭취도 수면 중 각성을 일으키고 이갈음을 유발합니다.

이갈음은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진단하고, 그 심한 정도를 평가합니다. 이갈음은 1, 2단계 비-렘수면 중에 잘 나타나며, 렘수면 중에 나타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호흡관련수면장애, 렘수면행동장애, 야경증, 간질 등 이갈음을 동반할 수 있는 다른 수면장애를 배제한 후 확진합니다.

이갈음이 있는 경우, 최근 심해진 스트레스 요인을 찾아서 제거하거나 줄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바이오피드백을 통해 스트레스 반응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흡연과 카페인 섭취를 줄여야 합니다. 이갈음이 지속되면 치아손상을 막기 위해, 치과에서 치아보호기구(mouth guard)를 제작해서 착용하고 자기도 합니다.

-국가건강정보포털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99.html
kolaswqetsrq 11.03 06:38
죽어가는 간을 살리는 음식

죽어가는 간을 살리는 음식

1) 브로콜리

브로콜리는 미국 국립암연구소가 뽑은 10대 암 예방 식품인데요, 특히 간에 좋은 음식입니다. 브로콜리는 간의 해독을 원활히 해주고, 독소 배출을 돕고, 간의 지방 흡수를 줄여줍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의 연구결과 브로콜리를 꾸준히 먹으면 간암 발병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합니다.

2) 부추

‘간의 채소’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부추는 비타민C와 비타민E 성분, 철분과 칼슘 등을 함유하고 있어 간을 건강하게 해줍니다.

3) 자몽

자몽은 비타민 C가 풍부한 과일로 꼽히는데요, 간에도 좋습니다. 간 손상을 막아주고, 체내 독소 제거에 효과적이며 세포 손상을 방지합니다. 특히 간에 지방이 쌓이는 지방간에 좋습니다.

4) 시금치

시금치의 잎에는 강력한 항산화제인 ‘글루타티온’이 풍부한데요, 글루타티온은 간을 건강하게 해줍니다. 피로감을 느낄 때 무기질과 비타민을 공급해 간 기능을 향상 시킵니다.

5) 커피

커피가 만성 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많은데요, 특히 하루에 3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면 간암 발병 확률이 50%나 줄어든다고 합니다. 커피 안에는 탄수화물, 미네랄, 단백질 등 100가지 이상의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 성분들이 서로 작용해 간을 보호합니다.

6) 당근

당근의 ‘베타카로틴’은 저하된 간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은 물론 간세포 활성화에도 효과적인 채소입니다. 그로 인해 간암 치료에도 도움이 됩니다.

7) 바지락

타우린을 함유한 바지락은 간의 해독 작용을 도와주는데요, 비타민B, 칼슘, 철분, 아미노산, 니아신, 히스티딘 등이 풍부해 간을 보호해줍니다.

8) 버섯

버섯에는 간의 독성을 완화하는 베타-글루칸이 풍부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알코올 대사를 돕는 비타민 B2, 비타민 C가 있어 알코올을 해독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9) 아몬드

훌륭한 비타민E 공급원인 아몬드는 간 기능이 허약한 사람들에게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몬드가 간에 지방이 쌓이는 것을 막아주고 간 효소의 활성화를 돕습니다. 대신 캘리포니아 아몬드 협회에 따르면 아몬드는 하루 한 줌, 약 23~24개가 적당하다고하니 섭취량만 챙겨서 드세요

-‘건강정보 이야기‘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305.html
kolaswqetsrq 11.03 06:39
겨울도 예외는 없다! -20°C에도 생존, 식중독 바이러스

겨울도 예외는 없다! -20°C에도 생존, 식중독 바이러스

노로바이러스는 사람에게 급성 위장염을 일으키는 전염성 바이러스다. 바이러스의 입자는 27~40 나노미터(nm, 10억분의 1m)로 매우 작은 크기이고, 공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연유로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된 음식은 열심히 살펴보거나 맛을 본다고 해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식중독이 종종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식중독균에 오염된 음식은 부패한 상태이므로, 맛을 보거나 육안에 의해서 식별이 가능하다. 노로바이러스의 평균 잠복기는 바이러스 접촉 후 24~48시간이나 경우에 따라 12시간 이내에도 발생하며, 증상 발생 후 24~48시간 동안 대변에서 바이러스 배출이 가장 많다. 면역은 약 14주간만 지속되므로 재감염도 가능하다.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오심(메스꺼움), 구토, 설사의 증상이 발생하며 약 2~3일간 지속되다 빠르게 회복된다. 소아의 경우에는 구토, 성인은 설사가 흔하게 나타나며 권태, 두통, 발열, 오한, 및 근육통과 전반적인 신체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발열이 절반의 환자에서 발생한다. 물처럼 묽은 설사가 하루에 4~8회 정도 발생한다. 노로바이러스 장염은 소장에 염증을 일으키지 않는 형태의 감염이기 때문에 피가 섞이거나 점액성의 설사는 아니다. 증상이 심한 경우 탈수나 전해질 불균형을 치료해야 할 수도 있다.

치료의 경우, 보통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자연스럽게 치유되곤 한다. 노로바이러스에 특수한 항바이러스제는 없다. 노로바이러스 장염에서 경험적 항생제 치료를 하지 않는다. 수분을 공급하여 탈수를 교정해주는 보존적 치료가 이루어지며, 스포츠 음료나 이온 음료로도 부족한 수분을 채울 수가 있다. 그러나 노인, 임산부, 당뇨, 면역억제상태, 심한 복통 그리고 증상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면 합병의 위험이 높아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노로바이러스는 무엇보다 예방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노로바이러스는 열에 강하나 70도에서는 5분이면 죽게 되고 100도에서는 1분이면 죽기 때문에 충분히 이정도 이상으로 익혀서 드시는 것이 제일 중요한 예방법이다. 또나 굴, 조개, 익히지 않은 생선은 피하는 것이 좋으며, 냉장 보관한 과일이나 채소도 주의하는 것이 좋으며,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씻어 먹는 것이 좋다. 또한 행사가 많은 연말인 만큼, 술자리에서 술잔을 돌려쓰는 것도 피하는 것을 권장한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감염내과 김선빈 교수는 “노로바이러스에 의한 식중독은 딱히 치료를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치유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이온음료나 보리차를 먹는 등 수분을 섭취해주는 것이 좋다”며 “하지만 설탕이 많이 함유된 탄산음료나 과일 주스는 피하는 것이 좋으며, 경도에서 중증도의 탈수는 경구 수액 공급으로 탈수와 전해질 교정이 가능하나, 심한 탈수는 정맥주사를 통한 수액 공급이 필요하므로 구토, 설사, 탈수 증상이 심할 경우 진료를 받는 것을 권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손 씻기를 통해 예방할 수 있으므로 화장실 사용 후, 귀가 후, 조리 전에 손 씻기를 생활화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고려대학교의료원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20_13.html
kolaswqetsrq 11.03 06:39
대상포진은 전염성이 있는지?

대상포진은 전염성이 있는지?

수두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대상포진 환자의 물집이 터진 후 진물에 의한 접촉으로 전염이 가능하고, 드물게 공기감염의 경로로도 전염될 수 있습니다.

수두를 앓지 않은 사람이 수두 대상포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수두의 형태로 발생하게 됩니다. 수두를 앓은 이후에는 바이러스가 신경절에 잠복하고 있다가 면역이 약화되면 재활성화되어 대상포진을 유발하게 됩니다.

따라서 수두를 앓은 적이 없는 사람이 대상포진을 앓고 있는 사람과 접촉했다면 발병을 차단하기 위하여 수두 예방접종을 받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국가건강정보포털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75.html
kolaswqetsrq 11.03 06:40
이명 원인과 관리법

이명 원인과 관리법

이명증 오래두면 우울증과 삶의 활력소 감퇴 된다. 지나치게 큰 음악소리와 시끄러운 작업장 환경, 노령화 때문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 유아·소아 이명 난청

유아기나 소아기는 말을 배우는 시기다. 이때 난청이 있으면 언어와 지능 발달을 방해,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학습에도 지장을 주니 재활이 어느 시기보다 중요하다.세계적 으로 신생아 1,000명당 2~3명이 난청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청장년 돌발성 난청

장시간 이어폰으로 음악을 크게 듣거나 인터넷 게임을 하는 것은 해롭다. 이어폰 바깥으로 음악이 잘 들릴 정도라면 이미 위험한 상태다. 소음성 난청은 뚜렷한 이명 치료법이 없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별문제가 없으나 나이 들수록 이명 두통 증세가 점점 심해진다. 귀울림, 귀에서 윙소리, 귀 멍멍할때 주로 고주파 음이 잘 안 들린다. 결국 소리 자체는 들리는데 말소리를 또렷이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 노인성 난청 이명

일반적으로 청력 노화는 40세쯤부터 시작된다. 다시 회복될 수는 없지만 보청기를 잘 쓰면 난청 및 동반

되는 이명현상 치료에 도움이 된다. 별다른 예방법도 없다. 소음과 스트레스를 피하고 알맞은 영양 공급이 이명치료 방법이다.

○ 이명 치료하기

확실하다고 알려진 이명난청 민간요법은 없지만,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 질환을 막거나 철저히 관리하면 좋습니다.

○ 연령대별 이명 원인과 이명 치료방법, 귀가 멀쩡한 상태일 때부터 미리 귀 건강을 지켜 이명 난청이 생기지 않도록, 돌발성 난청 이명 증상이 있을 경우 개선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외부로부터의 소리 자극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귓속 또는 머릿속에서 소리를 느끼는 현상을 말하며, 대부분의 경우 본인은 이명으로 인해 괴롭더라도 주변 사람은 듣거나 느낄수 없습니다.

○ 이명의 원인

1. 엄밀히 말하면 이명 그 자체는 병이 아니며, 귀와 관련된 많은 질환에 동반되는 하나의 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명은 청각 기관 자체에서 생기는것(청각성)과 근육, 혈관 같은 청각기관의 주위 구조물 에서 생겨 청각 기관를 통해 느껴지는 것(비청각성)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2. 청각 기관의 손상으로 인한 청각성 이명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85%),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청각 기관의 손상으로 인해 비정상 적인 신호가 발생하고 이것이 중추 신경계 에서 이명으로 감지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3. 청각기관의 손상을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나이에 따른 변화(노인성 난청), 강한 소음에 따른 손상(소음성 난청), 기타 원인 미상의 감각신경성 난청, 메니에르 병, 만성 중이염, 약물로 인한 청각 손상, 뇌신경 종양 등을 들수 있습니다.

4. 비청각성 이명의 원인으로는 고혈압, 동맥경화, 심장질환, 혈관의 기형, 혈관성 종양, 빈혈, 갑상선 질환, 당뇨, 근육의 경련, 외이도의 막힘, 턱관절이나 목뼈의 이상 등이 있습니다.

○ 이명과 난청 원인의 5가지

1 풍열증 : 저음성 이명이 있고 귀안이 불어나는 감, 귀가 막힌감, 청력 저하가 있으며 고막의 경한 발적 내함이 있다. 이와 함께 오슬오슬 춥고 열이 있으며 두통, 입안건조, 등이 있을수 있다. 설태는 엷고 희거나 누르며 맥은 부삭 또는 부대하다. 이 변형증은 전음기성 난청에 해당한다.

2 간화증 : 이명과 난청이 갑자기 생기고 성을 낸 후에더 심해지며 귀가 불어나는 감 두통, 현훈이 있으며 얼굴이 벌겋고 입안이 쓰며 혀는 붉고 설태는 희거나 누르며 맥은 현삭 유력하다.

3 담화증 : 양쪽 귀에서 매미우는 듯한 이명이 계속 크게 나고 머리가 어지럽고 무거우며 명치 끝이 그득하고 기침, 가래가 많으며 입안이 쓴 것이다. 설태는 누렇고 두터우며 맥은 현삭하다.

4 신허증 : 허약자와 노인에게서 흔히 보는데 신음이 허할 때에는 매미우는 듯한 이명이 밤낮 계속 되는데 특히 밤에 소리가 더크게 난다. 허리와 무릅이 시큰거리고 힘이 없으며 유정이 있고 맥은 세삭하다. 신양이 허할 때에는 높은 소리의 귀울이가 계속되며 늘 어지럽고 허리가 시리며 아프며 손발이 차며 밤오줌이 잦다. 맥은 침세삭하다.

5 비위허증 : 이명과 난청이 앉았다 일어 날때 더 심해지고 귀안이 갑자기 텅빈감 찬감이 있으면서 입맛이 없고 밥을 먹은후 배가 불어나는 감이 있다. 대변은 무르고 얼굴에 누르끼레 하며 백은 세삭하다.

대개 육체적 스트레스(과로, 수면장애 등)로 인해 악화되며 또한 주위가 조용할때 심해지고 신경이 예민해져 있을때 악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인 질환에 따라 청력 저하나 어지럼이 이명에 동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건강한 아침’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84.html
kolaswqetsrq 11.03 06:41
동맥경화 3대 위험요소 고지혈증, 예방과 치료법

동맥경화 3대 위험요소 고지혈증, 예방과 치료법

고지혈증은 고혈압, 흡연 등과 더불어서 동맥경화의 3대 위험요소이다. 동맥경화가 진행하게 되면 관상동맥 질환이나 허혈성 뇌졸중, 말초혈관 질환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합병증이 발생하고 나서야 고지혈증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50대 이상 여성, 호르몬 요법 괜찮은가? 폐경 이후의 여성에서 혈중 에스트로겐 수치가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심혈관 질환이 증가하게 되지만 에스트로겐으로 고지혈증을 치료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가 없다. 에스트로겐 요법을 하게 되면 유방암이나 자궁내막암과 같은 여러 가지 여성계통의 암들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고지혈증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에스트로겐 같은 호르몬 요법을 쓰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

○ 평소 고지혈증 예방법은?

예방을 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동물성 포화지방의 섭취를 가능한 많이 줄여야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3번 정도 하루에 30분 이상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며 식습관 개선을 위해서는 등 푸른 생선이나 콩으로 된 음식들을 많이 섭취하고 야채와 과일들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고지혈증을 개선하는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 고지혈증에 도움?

환자가 만일 심혈관질환의 과거력이 있는 경우에는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런 고위험군이 아닌데 아스피린을 심혈관질환 예방 목적으로 복용할 경우에는 위장관 출혈과 같은 출혈의 위험성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득과 실을 따져서 본인이 아스피린을 복용하였을 때 더 득이 되는 경우에만 복용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환자 스스로 그 득과 실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전문가와 상담 후에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 여성이 특히 더 주의해야 할 부분은?

폐경 이후의 여성은 앞서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혈관의 탄력이 떨어지고 혈관에 지방 성분의 침착이 증가하게 된다.

그래서 여성분들 같은 경우는 특히 폐경 이후에 규칙적인 운동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동물성 포화지방의 섭취를 줄이고 야채와 과일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고지혈증으로 진단받은 경우에는 스타틴이라는 고지혈증 개선 약제를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려대학교의료원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3_13.html
kolaswqetsrq 11.03 06:41
변비는 물을 많이 마시거나 야채나 과일을 많이 먹으면 좋아지는가?

변비는 물을 많이 마시거나 야채나 과일을 많이 먹으면 좋아지는가?

변비는 물을 많이 마시거나 야채나 과일을 많이 먹는다고 좋아지지 않습니다. 수분 섭취부족으로 변이 딱딱해지는 경우에는 수분섭취를 증가시키면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야채의 섭취도 무조건 많이 한다고 변비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며 아이들에게 야채나 과일을 충분히 섭취시키기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야채나 과일을 많이 섭취하면 변비가 예방될 뿐 아니라, 가벼운 변비는 좋아집니다. 하지만 변비가 심한 경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치료를 해서 변비가 어느 정도 좋아진 후에는 과일이나 야채의 적극적인 섭취가 원활한 배변에 도움이 됩니다. 즉 섬유질의 효과가 극대화되어서 나타납니다. 따라서 만성변비는 방치하지 말고 적극적인 치료를 하여 배변과 관련된 불편감이나 고통을 아이에게서 빨리 없애주도록 해야 합니다.

-국가건강정보포털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54.html
kolaswqetsrq 11.03 06:42
자신의 체형을 유지하고 더 좋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자신의 체형을 유지하고 더 좋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는 건강을 향상시키고 육체적·정신적으로 높은 운동 능력을 보장할 수 있는 운동의 강도는 반드시 자신의 몸의 하루 에너지 소비량을 넘어서야 한다. 운동이 진행되면서 강도는 점점 더 세어져야 하고 계획적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 이런 운동은 일반적으로 매일 아침마다 하는 운동과 체계화되고 규칙적인 육체 운동 두 가지의 형태다. 일반적으로 체형이라고 하면 운동 선수 같은 좋은 몸매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중간 정도의 건강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1. 운동 강도는 반드시 자신의 몸의 하루 에너지 소비량을 넘어서야 한다. 예를 들어서 여자들은 ‘에어로빅이 왜 필요해요, 그러지 않아도 부엌(가게, 일터)에서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는데!’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 운동의 양이 적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아니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러한 몸 움직임이 아니다.

2. 운동이 진행되면서 강도는 점점 더 세어져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일정한 시간을 두고 훈련의 강도를 약하게 만들 것도 조언한다. 그것은 그 다음에 강도를 더 높이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느낌에 따라서 마음대로 강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필요한 경우에는 의사의 조언을 들어야 한다).

3. 계획적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단지 2~3주 동안 훈련을 하지 않았다면 그 효과는 아주 약해진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운동을 쉬게 되면 (예를 들어 휴가를 간다든가) 완전히 효과가 사라진다.

4. 만약 당신이 자신의 운동에 이러 저러한 강도(달리기, 수영 등)를 보강하고 싶다면 의사와 상의를 해야 한다. 의사가 당신에게 알맞은 운동을 추천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용기 있게 자전거 에르고미터 또는 러닝머신을 통한 테스트를 하게 된다면 그것의 결과를 가지고 의사는 어떤 운동을 얼마나 오랫동안 하는 것이 좋고, 어떤 운동은 전혀 해서는 안 되는지 말해줄 것이다.

위의 운동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운동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매일 아침마다 하는 운동과 체계화되고 규칙적인 육체 운동이다.

아침 운동의 장점에 대해서는 이미 모두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아침 운동과 더불어 30분에서 1시간 동안 육체 운동을 더 해주는 것이 좋다. 모든 운동은 당신의 신체의 바이오 리듬에 맞추어서 하는 것이 좋다. 대사 물질의 양이 최대가 되는 시간, 체온과 중추신경계가 흥분한 시간 등을 고려 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활동성은 정오 바로 전인 10시에서 12시 사이와 저녁 전인 16시에서 18시 사이이다. 바로 이 시간에 운동을 해야 한다.

매 운동은 간단하게 몸을 풀고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당신의 신체를 <예열>하고, 물질대사를 활성화하고, 섬유질에 산소의 공급을 원활하게 하고, 중추신경계를 흥분시키는 것이다. 그 이후에 운동을 하는 동안 강도를 지속적으로 조금씩 높여주며 운동을 끝낼 때에는 쉬운 운동으로 마무리를 해준다. 끝 운동으로는 산책을 한다든가 가볍게 뛴다든가 하는 것이 매우 좋다.

-닥터 사이언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51.html
kolaswqetsrq 11.03 06:43
약보다 좋은 감기 예방과 치료법

약보다 좋은 감기 예방과 치료법

1. 감기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인 파

파는 비타민 A와 C, 칼슘, 칼륨 등이 풍부하여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위장기능이 활발해지도록 도와준다. 파에는 유화알린의 일종인 알린 성분이 들어 있어 소화액의 분비를 촉진해 식욕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발한, 해열, 소염 작용이 뛰어나 감기의 예방이나 치료, 그리고 냉증에서 오는 설사에 효과적이다. 감기 증세가 있는 사람은 파뿌리에 생강을 넣고 끓여 마시면 된다. 몸속까지 따뜻해지고 땀이 나면서 열이 떨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2. 목의 염증에는 배즙

배 즙은 목의 염증에 특히 좋다. 감기를 앓을 때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열이 많이 나게 마련인데, 배 즙은 해열작용이 있어 열을 내려주고, 가래를 삭혀주기도 한다. 그래서 열이 많은 감기, 목이나 폐의 염증이 있을 때 특히 좋다. 차가운 배를 그대로 먹지 말고 배에 꿀을 넣고 쪄서 그 즙을 먹는 것이 좋다. 단 설사를 하거나 몸이 찬 사람은 조심하는 게 좋다.

3. 코감기가 심할 때는 소금물

축농증으로 콧물이 흐르고 콧속에 염증이 있을 때 소금물을 콧속에 넣어 목구멍으로 뱉어버리는 것을 반복한다. 정제하지 않은 천일염이나 구운 소금을 이용한다. 처음에는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이만큼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도 드물다. 막힌 코를 뚫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염증 부위를 살균하는 작용도 한다. 도저히 이것이 안되는 사람은 끓는 물에 적신 가제나 작은 수건을 담갔다가 짠 후, 코를 덮어주어 건조를 막는다.

4. 생활 수칙까지 지키면 감기 뚝!

감기에 걸리면 충분히 쉬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몸을 편안히 쉬게 해야 감기 바이러스와 싸울 힘을 얻게 된다. 감기는 호흡기 질환이므로 공기를 쾌적하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신경 쓰는 습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맑은 공기로 숨 쉴 수 있도록 환기를 해주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실내 습도는 50~60% 정도로 유지하는데, 젖은 빨래를 널어두는 정도면 된다. 가습기를 사용해 습도를 조절하고자 한다면 물통을 먼저 깨끗이 닦은 뒤에 사용해야 미생물로 인한 오염을 막을 수 있다. 감기를 앓을 때에는 열 때문에 체내 수분 손실이 많아지고 목과 콧속이 건조해지므로 물을 자주 마셔서 수분 손실을 보충해준다. 주위 사람들에게 감기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으려면 손을 자주 씻고, 전화기나 사무용품, 세면도구를 따로 사용해야 한다.

○ 감기 증세의 기침에는 무

무는 비타민 C가 많아 일반적인 감기 증세에 도움이 되고 특히 점막의 병을 고치는 작용이 있기 때문에 가래가 끊이지 않고 기침이 자주 나올 때 좋은 효과가 있다. 유리병이나 항아리에 얇게 저며 썬 무를 넣고 꿀을 가득 부어 하룻밤 정도 서늘한 곳에 두면 맑은 즙이 우러나온다. 이 즙을 두 숟가락 정도씩 마시면 가래도 쉽게 가라앉고 몸의 피로도 풀어진다. 번거로우면 그냥 무를 껍질째 갈아 즙으로 마셔도 좋다.

○ 감기의 빠른 회복에 좋은 감

감에는 비타민 C가 사과보다 8~10배나 많이 들어 있고 다른 과일에는 거의 없는 비타민 A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이는 바이러스 등에 의한 감염증을 막고 호흡기 계통의 감염에 대해 저항력을 높여주므로 꾸준히 먹으면 감기를 예방하거나 회복을 빠르게 하는 데 효과가 있다.

-‘건강정보 이야기‘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30.html
kolaswqetsrq 11.03 06:43
잠을 두렵게 만드는 수면마비 증상, 무엇이 문제인걸까

잠을 두렵게 만드는 수면마비 증상, 무엇이 문제인걸까

흔히 가위눌림이라고 알려져 있는 수면장애 증상을 의학적인 용어로는 수면마비라고 표현합니다. 수면마비는 수면시작 혹은 수면 말미에, 흔히는 꿈꾸는 수면(REM sleep) 직후에, 골격근의 마비가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수면마비의 시작은 급격히 시작되어 1~4분 정도 지속하고 급격히 또는 서서히 끝나게 되는데 이때 어떤 소리를 듣거나 신체를 누군가 만지면 이러한 현상에서 쉽게 벗어나게 됩니다. 렘수면, 즉 꿈꾸는 수면 단계에서는 머리에서는 꿈을 꾸되 꿈의 내용이 행동으로 나타나지는 못 하도록 호흡이나 생명에 필수적인 기관들을 제외하고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근육을 마비시켜버립니다. 정상적인 수면에서는 렘수면에서 빠져나와 비렘수면 (non-REM sleep) 단계로 갔다가 깨어나게 되어 수면마비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데, 비정상적으로 렘수면에서 바로 각성이 되는 경우에는 깨어있거나 반쯤 깨어있는 상태에서 움직이지 못하며 움직이려고 애를 쓰고, 질식감을 느끼거나 환각을 경험하게 되는 수면마비 현상을 겪게 됩니다. 이 때 골격근은 마비가 되어도 눈의 근육과 호흡근육은 보존되어 있어 움직이려고 애를 쓸 때 심한 눈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합니다.

수면마비는 수면부족, 불규칙한 생활리듬, 과도한 음주, 수면제 등의 약물 과다 복용 등의 원인으로 인하여 나타날 수 있으며 스트레스, 강한 시청각적 자극 등으로 인하여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흔히 아침에 잠에서 깰 때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면마비 현상은 렘수면시 운동근육의 마비를 조절하는 기전의 미세구조 변화나 신경면역학적 기능부전이 원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장애와 관련되지 않고 다른 증상과 동반되지 않으면서 일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전체 인구의 15~40%에서, 특히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일생에 한번 혹은 몇 번 겪을 수 있습니다. 만성화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드물게 유전적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알려진 ‘가족형(familial form) 수면마비’와 ‘기면병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수면마비’가 있습니다. 가족형 수면마비는 문헌에 몇 개의 사례가 보고될 정도로 매우 드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수면마비의 경우 기면병(narcolepsy)의 하나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수면마비를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기면병이란 뇌하수체의 하이포크레틴이라는 물질의 부족으로 인하여 수면-각성기전의 기능부전이 나타나게 되며, 주간의 졸리움과 비정상적인 렘(REM) 수면의 발현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탈력발작과 수면마비, 그리고 수면이 시작되거나 끝날 때 나타나는 환각 등의 증상으로 표현되는 신경학적 장애입니다. 대략 기면병 환자의 20~40%에서 수면마비를 동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족형과 기면병 수면마비의 경우, 일반적인 수면마비와는 다르게 수면의 시작 부분에서 가위눌림을 경험하는 수가 많다고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가족형의 경우 기면병과 공통되는 병리적 과정을 갖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합니다. 가족형과 기면병에 수반된 경우에는 수면마비 증상이 만성화 경과를 밟습니다.

일반적으로 수면마비에 대해서 전문 치료가 크게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귀신 같은 물체를 보거나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느끼는 경우 놀란 기분이 오래 가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 일시적이며 별다른 후유증 없이 지나갑니다. 수면마비로 인하여 공포스러운 경험을 한 경우에 꿈이 각성상태까지 잠시 연장되어 나타난 것이므로 의미 부여를 하지 말고 공포감에 젖을 필요는 없습니다. 세 가지 형태의 수면마비 모두 불규칙한 수면 습관, 수면부족, 잦은 음주, 시차여행과 같은 수면-각성 주기의 교란을 일으키는 상태에서 쉽게 유발되기 때문에 생활습관 교정과 관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만성화되는 경우와 가족형 및 기면병에서 나타나는 수면마비의 경우는 렘수면 단계에 작용하는 약물을 사용하여 치료를 하거나 심리적 문제를 다루는 정신치료가 필요합니다.

-고려대학교의료원 건강칼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60.html
kolaswqetsrq 11.03 06:44
소방 계급消防 階級

소방 계급(消防 階級)

소방공무원은 총 11계급으로 ▷소방총감(消防總監) ▷소방정감(消防正監) ▷소방감(消防監) ▷소방준감(消防准監) ▷소방정(消防正) ▷소방령(消防領) ▷소방경(消防警) ▷소방위(消防尉) ▷소방장(消防長) ▷소방교(消防校) ▷소방사(消防士)가 있다.

○ 소방 계급의 상징

소방계급의 문양은 크게 육각수와 태극으로 구성돼 있다. 육각수와 태극 모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계급이 높아진다. 중간관리자부터 계급에 태극 문양이 들어간다. 따라서 소방위~소방정이 중간관리자급에 해당되고, 소방준감~소방총감은 고위관리자급에 해당된돠. 한편, 문양의 육각수는 맑은 소방용수와 투명한 신념의 소방청을 의미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14.html
kolaswqetsrq 11.03 06:44
사형제도

사형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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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자의 목숨을 끊는 형벌으로, 우리나라는 형법 41조에서 형벌의 종류에 법정 최고형으로 사형을 포함시키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 23명에 대한 사형 집행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엠네스티는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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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은 법정 최고형으로, 여러 방식으로 집행되는데 우리나라는 교수형으로 집행한다. 사형제를 성문화한 최초의 법은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보다 300년 정도 앞선 수메르의 우르남부 법전으로, 살인죄와 절도죄를 저지른 경우 사형으로 처벌했다고 명시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 시대의 8조 법금에 살인한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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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8세기 이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탐구가 확산되면서 사형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이에 일부 국가들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유럽의회의 경우 2003년 7월, 45개 회원국에서 전시 상황에서도 사형제를 전면 금지하는 의정서를 발효시켰다.

한편,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가 발간하는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으로 사형제 폐지국가는 142개국, 사형제도가 존재하면서 실제 집행하고 있는 나라는 59개국이다. 특히 사형제 폐지국 142개국에는 사형제도 자체는 존재하나 10년 이상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으로 분류된 32개국이 포함돼 있다.

○ 우리나라의 사형제도

우리나라는 형법 41조에서 형벌의 종류에 법정 최고형으로 사형을 포함시키고 있다. 법정형으로 사형을 규정한 범죄는 내란, 외환유치, 살인죄 등 16종이다. 그리고 특별형법인 국가보안법은 45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은 378개, 군형법은 70개 항목이 존재한다. (심신장애인과 임부의 경우 회복 또는 출산 후에 집행하고 18세 미만인 사람에겐 사형을 선고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 23명에 대한 사형 집행 이후 현재까지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국제엠네스티는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폐지국가’(10년 이상 기결수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완전한 사형폐지국가는 아니므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는 언제라도 사형이 집행될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20.html
kolaswqetsrq 11.03 06:45
부캐

부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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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게임에서 사용되던 용어로, 온라인 게임에서 본래 사용하던 계정이나 캐릭터 외에 새롭게 만든 부캐릭터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후 일상생활로 사용이 확대되면서 평소의 나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이나 캐릭터로 행동할 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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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는 본래 게임에서 널리 사용되던 용어로, 부캐릭터의 준말이다. 이는 온라인 게임에서 본래 사용하던 계정이나 캐릭터, 즉 본캐릭터(본캐)가 아닌 새롭게 만든 캐릭터를 뜻한다. 예컨대 게임에서의 부캐는 경험치 획득이나 이벤트 참여 등 특정한 이유로 키우는 캐릭터를 말하는데, ▷본래 캐릭터를 다 키우게 돼 즐길 콘텐츠가 부족해지거나 ▷새로운 캐릭터를 키움으로써 본캐릭터로는 해보지 못한 컨텐츠를 즐기고 싶거나 ▷본캐릭터로 더 이상 게임을 할 수 없는 등의 상황에 대비해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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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해당 용어가 일상생활로 그 사용이 확대되면서 평소의 나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이나 캐릭터로 행동할 때를 가리키는 말로 재정의돼 활용되고 있다. 즉, 개인이 상황에 맞게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한다는 의미로 부캐가 사용된다. 특히 미디어 콘텐츠 업계에서 부캐 활용이 활발한데, 2020년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등장한 유산슬(유재석의 부캐인 신인 트로트 가수)이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김신영(둘째이모 김다비), 혼성댄스그룹 싹쓰리(SSAK3)의 이효리(린다G)와 비(비룡) 등이 부캐로 등장하면서 큰 화제를 일으켰다. 이러한 부캐는 연예인으로서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시청자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임으로써 신선한 재미를 제공할 수 있어 점차 그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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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부캐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2020년의 소비트렌드 10개 중 하나로 제시한 ‘멀티 페르소나’와 통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는 개인이 상황에 맞게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표출하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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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10.html
kolaswqetsrq 11.03 06:46
카이로스Kairos

카이로스(Kairos)

기회 또는 특별한 시간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신으로서 카이로스의 모습은 앞쪽 머리카락은 길지만, 뒤쪽 머리카락은 없는 남성 신으로 묘사된다.

이는 재빨리 잡지 않으면 놓치고 마는 기회의 성격을 신화에 투영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또한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고, 왼손에는 저울을,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이온은 카이로스를 제우스의 막내 동생이라고 기술한 바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kairos.html
kolaswqetsrq 11.03 06:46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전 독일의 정치가이자 나치의 총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인물이다. 독일 민족에 의한 유럽 제패를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나 결국 패전하였고, 1945년 4월 30일 베를린 함락 직전에 권총 자살하였다.

오스트리아의 독일 국경부근에 있는 브라우나우에서 출생했으며, 13세에 아버지를 잃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1905년 실업학교를 퇴학하고 미술대학에 진학하지만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으며, 1907년 18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후 오스트리아 빈에서 물려받은 유산과 그림엽서 등을 팔면서 생활하였는데, 당시 오페라와 바그너에 심취하였고 매일 도서관을 다니며 독학으로 지식을 습득하였다. 히틀러는 독신자합숙소의 공영시설(公營施設)에서 생활하면서 젊은 시절이 가난하고 불우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자신의 일대기를 과장하기 위해 꾸민 것이다.

○ 반유대주의 형성과 정당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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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지내던 시기 인종이론이나 반유대주의를 익히게 되는데, 반유대주의는 히틀러가 자랐던 오스트리아의 기독교 문화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 히틀러는 란츠 폰 리벤펠스의 정치 평론이나 정치가 카를 뤼거·게오르히 리터 폰 쇠너러 등의 영향을 받아, 이후 그의 정치관념의 바탕이 되는 아리아 인종 우월주의를 배웠다. 그리고 이는 추후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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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민족지상주의자가 된 그는 1913년 오스트리아의 병역을 기피하여 독일 뮌헨으로 피신했으나 1914년 당국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신체검사에서 부적격으로 판정되어 병역이 면제된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바이에른 16보병연대 입대를 자원했으며, 여기에서 무공을 세워 1급 철십자장(鐵十字章)을 받았다. 1919년 9월 독일노동자당이라는 반(反)유대주의적인 군소 정당에 가입하였는데 이는 나치스(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의 전신이다. 그는 탁월한 웅변능력을 통한 선전활동으로 당세를 확장해 나갔으며,1920년 4월 군대에서 제대하여 당의 선동가로서 정치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 독일노동당 당수가 되다

히틀러는 당명을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당으로 변경하고, 1921년 7월 29일 마침내 당내(黨內)의 독재적 지위를 가진 당수 자리에 올랐다. 그는 군부와 보수파 등과 손을 잡고 ▷민족주의 강조 ▷베르사유 조약 타파 ▷민주정당 타도와 독재 강행 ▷유대인 배척 등을 강조하였으며 대중 집회를 통하여 민중의 지지를 획득하였다. 이후 파시스트당의 로마 진군에 자극받아 1923년 뮌헨에서 봉기하나 실패했으며, 이에 란츠베르크 육군형무소에 투옥되었다. 당시 옥중에서 출판한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에서 그는 동유럽을 정복, 게르만 민족의 생존권을 확장시킨다는 내용을 담았다. 출옥 후에는 와해된 당의 조직을 재편하고 합법적 방식의 민주공화제 전복을 도모한다.

○ 일당 독재체제의 확립

1929년 경제 대공황으로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독일 경제는 실직자 수가 600만 명으로 늘어나는 등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러나 민주 정당들은 이러한 타격 앞에서 속수무책이었고, 그 결과 1930년 9월 총선거에서 나치스는 18.3%의 득표율로 사회민주당에 이어 제2당에 등극하였다. 당시 히틀러는 연립내각에 입각하기를 거절하고 나치스의 독재지배를 요구하였는데, 1932년 4월 대통령선거에서 P. 힌덴부르크에게 패하였다. 그러나 7월 총선거에서는 37.3%를 득표하면서 압도적인 당세를 과시하였고, 이때도 연립내각에 참가할 것을 거부하였다. 이후 11월 총선거에서는 다소 지지율이 떨어졌으나, 자본가들을 비롯한 많은 지배세력들이 히틀러를 지지하게 되었다. 대통령이었던 힌덴부르크는 혼란을 수습하기 위하여 1933년 1월 30일 히틀러를 수상으로 임명하였고, 히틀러는 보수파와 군부의 협력을 얻어 반대파를 탄압하고 1933년 7월 일당 독재체제를 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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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8월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죽자 대통령의 지위를 겸하여, 그 지위를 총통 및 수상(Führer und Reichskanzle, 약칭 총통)이라 칭하였다. 이후 전권위임법에 의해 바이마르 공화국이 종말을 맞이하면서 제3제국이 시작되었고, 지방 의회가 해산되었으며 사민당은 불법화되었다. 또한 각종 단체와 조합들은 나치당의 하부조직으로 바뀌었다. 그는 민주공화제 시대에 비축된 국력을 이용, 확장하여 국가의 발전을 꾀하였다. 독일 국방군은 나치 당원에 융합되었고, 히틀러는 이러한 권력 인수와 더불어 각계 요인들의 협력 아래 외교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경제의 재건과 번영을 이루는 등 독일을 유럽 최강국으로 발돋움시키면서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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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대전 패배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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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심에 가득 차 있었고 전 세계의 수도에 해당되는 게르마니아라는 도시를 계획하기도 했다. 그리고 독일 민족에 의한 유럽 제패를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된다. 당시 나치군은 공습 및 기계화 부대의 신속한 기동력이 결합한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전법으로 초기에는 대승을 여러 번 거두었으나, 스탈린그라드의 패전 전후부터 현실을 무시한 지령을 남발하여 패전을 거듭하였다. 그러다 1944년 7월 20일 과거에 그를 돕던 장군들과 보수제정파의 정치가들이 일으킨 반란을 제압하기도 했으나, 나치스의 퇴세는 이미 만회할 길이 없었다. 히틀러는 1945년 4월 29일 베를린의 지하호에서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 날 베를린 함락 직전에 권총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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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adolf-hitler.html
kolaswqetsrq 11.03 06:47
코호트 격리cohort Isolation

코호트 격리(cohort Isolation)

감염 질환 등을 막기 위해 감염자가 발생한 의료기관을 통째로 봉쇄하는 조치를 가리킨다. 즉, 환자와 의료진 모두를 동일 집단(코호트)으로 묶어 전원 격리해 감염병 확산 위험을 줄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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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호트(Cohort)는 고대 로마 군대의 기본 편제인 라틴어 코호스(Cohors)에서 파생된 말로, 코호스는 360~800명(통상 500명) 규모로 구성된 군대 조직을 뜻하는 말이다. 이후 사회학에서 같은 시기를 살아가면서 공통된 행동양식이나 특색을 공유하는 그룹을 뜻하는 말로 코호트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통계 용어로서는 ‘동일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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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호트는 보건의학 분야에서는 특정 질병 발생에 관여할 것으로 의심되는 특정 인구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여기에 격리(Isolation)라는 단어가 합쳐지면서 코호트 격리는 바이러스나 세균성 감염 질환자가 나온 병원을 의료진들과 함께 폐쇄해 감염병의 확산 위험을 줄이는 조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코호트 격리는 특정 질병 발병 환자와 의료진을 동일 집단(코호트)으로 묶어 전원 격리하는 매우 높은 단계의 방역 조치로, 여기서 코호트 병원이란 이런 코호트 격리를 하는 병원을 가리킨다.

○ 역사적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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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던 시기에는 감염병이 창궐하면 외딴 섬이나 지역에 환자들을 가두어 감염을 차단했다. 특히 14세기 중엽 페스트 창궐 당시에는 이탈리아의 베니스와 제노아, 라구사 등 주요 항구는 페스트 유행 지역에서 온 모든 선박의 입항과 하선을 한 달간 금지하고 선상 격리했다. 이 기간은 점차 늘면서 40일이 되었는데, 영어로 검역을 뜻하는 쿼런틴(Quarantine)은 라틴어로 40을 뜻하는 콰드라긴타(Quadraginta)를 어원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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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식

코호트 격리가 내려지면 발병 병동의 환자를 모두 특정 집단(코호트)로 묶어 외부와 격리해 병의 확산을 막는다. 이에 환자와 의료진은 바이러스 잠복기가 지날 때까지 해당 병원이나 병동 밖으로의 이동이 금지된다. 또 외부인 역시 이곳으로의 출입이 금지되며, 의료진은 감염병 예방을 위해 개인보호구(고글, N95 마스크, 방진복, 장갑, 덧신 등)를 갖추고 환자를 진료하게 된다. 아울러 물품을 통한 감염이 이뤄질 수도 있기 때문에 병원에 드나드는 물품의 이동 등도 엄격히 관리된다.

○ 국내 실시 사례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메르스가 확산될 당시 병원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는 등 그 상황이 심각해지자,대전 을지대병원과 대청병원 등 전국 9개 병원이 코호트 격리에 들어간 바 있다.

또 2020년에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구·경북 지역에서 대거 발생하면서 경북 청도 대남병원을 비롯해 3월까지 4개 병원이 코호트 격리에 취해졌다. 특히 2020년 3월 7일에는 대구의 한 임대아파트(한마음아파트)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46명)하면서 국내 처음으로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코호트 격리가 시행됐는데, 해당 아파트에 거주하는 141명 중 94명이 신천지 교인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cohort-isolation.html
kolaswqetsrq 11.03 06:48
텐트폴 영화tentpole movie

텐트폴 영화(tentpole movie)

유명 감독과 배우, 거대한 자본 투입을 통해 제작해 흥행이 확실한 상업 영화를 이르는 말이다. 영화사의 수익을 보장해 사업계획의 지지대 역할을 한다.

텐트를 세울 때 지지대 역할을 하는 기둥을 뜻하는 텐트폴(tentpole)에서 나온 말로, 영화사의 한 해 현금 흐름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핵심적인 상업 영화를 뜻한다. 유명 감독과 배우를 기용하고, 대자본을 투입하여 흥행 공식에 맞춰 제작한다. 연휴‧방학 등 성수기에 개봉하는 가족 영화, 유명 프랜차이즈 시리즈물 등이 이에 속한다.

영화사는 텐트폴 영화를 통해 예측 불가능성이 특히 큰 영화산업의 위험요소를 상당 부분 개선한 사업계획을 세울 수 있다. 해당 영화사의 다른 개봉작에서 성적이 부진하더라도 텐트폴 영화를 통해 손실을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텐트폴 영화는 흥행이 보장되기 때문에 개봉 초 극장으로부터 천 개 이상의 상영관을 편성 받는 일이 흔히 발생해 스크린 독과점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흥행에만 치중된 텐트폴 영화에 대한 의존성이 커지면 영화산업의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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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03 06:48
주식 관련 용어

주식 관련 용어

주식(株式)은 주식회사의 자본을 구성하는 단위로, 주식을 보유한 주주는 주식을 보유한 만큼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 매도·매수 : 매도는 주식을 파는 것을, 매수는 주식을 사는 것을 뜻한다.

· 시가·종가 : 시가는 하루 중에서 주식거래 가장 최초로 결정된 가격을, 종가는 주식 시장이 마감될 때 마지막으로 결정된 가격을 말한다.

· 시가총액 : 시가총액은 전 상장주식을 시가로 평가한 것이다.

· 호가 : 내가 갖고 있는 종목 매도 시 판매할 가격 또는 구매할 가격을 미리 걸어두는 것을 말한다.

· 상한가 : 주식시장에서 개별 종목의 주가가 일별로 상승할 수 있는 최고가격을 말한다.

· 하한가 : 주식시장에서 개별 종목의 주가가 일별로 하락할 수 있는 최저가격을 말한다.

· 공시 :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기업의 내용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리는 제도로 주식시장에서 가격과 거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사항에 관한 정보를 알림으로써 공정한 가격 형성을 목적으로 한다.

· 손절매 : 주가가 단기간에 상승할 가능성이 없거나 현재보다 더욱 하락할 것이 예상되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가지고 있는 주식을 매입 가격 이하로 파는 것을 말한다.

· 서킷브레이커 : 주식시장의 일시적인 매매 거래 중단 제도를 일컫는다. 코스피나 코스닥지수가 전일 대비 10% 이상 폭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하는 경우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다.

· 매매거래정지 : 증권거래소에서는 상장법인이나 상장유가법인이 일정 요건에 해당되는 경우 유가증권의 거래를 강제로 정지시킬 수 있다.

· 공매도 : 특정 종목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면 주식을 빌려 매도 주문을 내는 투자 전략이다.

· 우회상장 : 비상장기업이 상장기업과의 합병 등을 통해 정상적인 신규 상장 심사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증권 시장에 상장되는 효과를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 홈트레이딩시스템(HTS) : 개인 투자자가 객장에 나가지 않고, 집이나 사무실에서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 예수금・증거금 : 예수금은 주식 거래를 위해 계좌에 넣어둔 현금으로 매매가 가능한 금액이며, 증거금은 주식을 사게 되면 매수 금액의 일정 비율을 예수금에서 차감하는 금액으로 주식을 매수시 최소한으로 있어야 하는 현금을 말한다.

· 미수금 : 미수금은 유가증권의 위탁 매매 업무와 관련하여 증권회사가 고객으로부터 회수할 금액으로, 투자자가 당장 매수를 할 금액이 없더라도 신용 거래처럼 총 투자금액의 일부만으로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것이고, 나중에 부족한 부분을 넣는 방식이다.

· 고가・저가 : 고가는 그날의 장중에 가장 높았던 가격을 말하고, 저가는 그날의 장중에 가장 낮았던 가격을 말한다.

· 선물 : 파생상품의 한 종류로 선매후물(선매매, 후물건 인수도)의 거래방식이다. 즉, 상품이나 금융자산을 미리 결정된 가격으로 미래 일정 시점에 인도, 인수할 것을 약속하는 거래를 말한다.

· 순환매 : 증시에서 어떤 종목에 호재가 발생하여 투자자가 몰려 주가가 상승하게 될 경우, 그 종목과 연관성이 있는 종목도 주가가 상승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 턴어라운드 : 기업내실이 큰 폭으로 개선되어 주가가 급등,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투자자에게 안겨주는 종목이다.

· 자전거래 : 동일한 투자자가 종목, 수량, 상대방, 가격 등을 미리 정해 두고 매도·매수 주문을 내는 것으로 증권시장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이다.

· 블록딜 : 매도자와 매수자 간의 주식 대량 매매거래를 체결시켜 주는 제도를 말한다.

· 마일스톤 징크스 : 주가지수가 특정 분기점 도달을 앞두고 주춤거리는 현상을 말한다.

· 스캘핑 : 하루에도 수십,수백 번 이상 분·초 단위로 거래를 하며 단기 차익을 얻는 박리다매형 초단타 매매 기법

· 데이트레이딩 : 매수한 주식을 당일 매도하는 초단타 매매기법으로 당일 매매(當日賣買)라고도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23.html
kolaswqetsrq 11.03 06:49
조정대상지역

조정대상지역

주택 가격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의 2배 이상이거나, 청약 경쟁률이 5 대 1 이상인 지역을 말한다.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면 주택담보대출 시 LTV와 DTI의 제한을 받게 되는 것은 물론 분양권 전매와 1순위 청약 자격 등에서도 규제를 받는다.

조정대상지역은 부동산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정부가 주택법에 근거해 지정하는 지역을 말한다. 주택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 이상이거나 청약경쟁률이 5 대 1 이상인 곳 등이 해당된다.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면 해당 지역은 주택담보대출 시 담보인정비율(LTV)이 60%, 총부채상환비율(DTI)이 50%로 제한된다. 또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장기보유특별공제 배제 ▷분양권 전매 시 단일 세율(50%) 적용 ▷1순위 청약 자격 강화 등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를 받는다.

○ 조정대상지역의 지정

국토교통부장관은 조정대상지역을 지정하는 경우 미리 시·도지사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또 조정대상지역을 지정하였을 때에는 지체 없이 이를 공고하고, 그 조정대상지역을 관할하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공고 내용을 통보하여야 한다.

주택법 63조의2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장관은 다음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서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을 충족하는 지역을 주거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1. 주택가격, 청약경쟁률, 분양권 전매량 및 주택보급률 등을 고려하였을 때 주택 분양 등이 과열되어 있거나 과열될 우려가 있는 지역

2. 주택가격, 주택거래량, 미분양주택의 수 및 주택보급률 등을 고려하여 주택의 분양·매매 등 거래가 위축되어 있거나 위축될 우려가 있는 지역

○ 조정대상지역의 해제

국토교통부장관은 조정대상지역으로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주거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조정대상지역의 지정을 해제하여야 한다. 또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조정대상지역 지정 후 해당 지역의 주택가격이 안정되는 등 조정대상지역으로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국토교통부장관에게 그 지정의 해제를 요청할 수 있다.

한편,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되면 1순위 청약자격이 완화되고, 분양권 전매제한도 6개월로 단축된다. 분양권 양도세 중과(일괄 50%)도 기간별 일반 과세로 바뀌게 되며, 1가구 1주택 비과세 요건도 실거주 2년에서 2년 이상 보유로 완화된다. 대출 조건도 ▷주택담보대출비율(LTV) 60%, 총부채상환비율(DTI) 50%에서 ▷LTV 70%, DTI 60%로 완화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386.html
kolaswqetsrq 11.03 06:50
뱅크시Banksy

뱅크시(Banksy)

영국을 기반으로 신원을 밝히지 않고 활동하는 그래피티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대표작 <풍선과 소녀> <꽃을 던지는 사람> 등을 선보이며 사회 풍자적이며 파격적인 주제의식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을 기반으로 신원을 밝히지 않고 활동하는 그래피티 작가이자 영화감독이다. 분쟁지역 등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며, 스텐실 기법을 활용해 건물 벽, 지하도, 담벼락, 물탱크 등에 거리 그래피티 작품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특유의 사회 풍자적이며 파격적인 주제의식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03년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뱅크시는 1974년생 백인 남성이며 14살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낙서화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풍선과 소녀> <꽃을 던지는 사람> 등이 있다. 2005년을 전후해서는 대영박물관이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설치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특히 그의 <풍선과 소녀>는 2002년 영국 런던 쇼디치 근교에 벽화로 처음 그려진 뒤 뱅크시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꾸준히 재생산됐다. 이 그림은 2018년 10월 영국 소더비 경매에 나와 104만 파운드(약 15억 원)에 낙찰됐는데, 낙찰 직후 액자 틀에 숨겨진 소형 분쇄 장치가 가동되면서 절반이 파쇄기에 잘린 듯 가늘게 잘리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는 뱅크시가 고의로 행한 퍼포먼스로 확인됐으며, 이후 해당 그림의 제목은 <사랑은 쓰레기통에 있다>로 변경됐고, 뱅크시의 에이전시에 의해 작품으로 공인받았다.

이후 2020년 5월 뱅크시는 영국 사우샘프턴 종합병원 응급실 벽에 <게임 체인저>라는 이름을 붙인 1m2 크기의 새 회화 작품을 남겼다. 흑백의 그림 속에는 한 소년이 슈퍼 히어로 인형 대신 마스크를 쓰고 망토를 휘날리는 간호사 인형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담겼다.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을 응원하는 뜻이 담긴 이 작품은 가을까지 전시되다가 영국 국민건강보험(NHS) 기금 모금을 위해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한편, 뱅크시는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해 다큐멘터리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2010)로 2010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데뷔했다. 이 영화는 2011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anksy.html
kolaswqetsrq 11.03 06:50
넷플릭스법Netflix法

넷플릭스법(Netflix法)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부가통신사업자에 통신서비스 품질 유지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시행령으로, 2020년 12월 10일부터 시행됐다.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부가통신사업자에 통신서비스 품질 유지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시행령이다.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기업들이 한국 이동통신망에 무임승차한다는 논란이 확산되면서 마련돼 대표적인 기업인 넷플릭스의 명칭을 따 넷플릭스법이라고 부른다. 해당 법안은 2020년 12월 10일부터 시행됐다.

넷플릭스법에 따르면 전년도 말 기준 직전 3개월간의 국내 하루 평균 이용자 100만 명 이상이면서 국내 일 평균 트래픽 양이 국내 총량의 1% 이상인 부가통신사업자를 대상으로 통신서비스 품질 유지 의무를 부과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넷플릭스,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등 5개사가 해당된다.

○ 대상 기업에 부과되는 의무

대상 기업에는 서비스 안정 수단 확보를 위해 ▷트래픽의 과도한 집중이나 기술적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 ▷트래픽 양 변동 추이를 고려해 서버 용량과 인터넷 연결의 원활성 등에 대한 안정성 확보 ▷기간 통신사업자를 포함한 관련 사업자와 협의해 트래픽 경로 변경 등 서비스 안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유가 발생할 경우 사전 통지 ▷안정적인 전기통신서비스 제공에 관한 자체 가이드라인 마련 ▷이용자를 위해 온라인·자동응답시스템(ARS) 채널 확보, 서비스 안정성 상담을 위한 연락처 고지 등의 사항을 마련하도록 의무를 부과했다.

더불어 해외 사업자들도 정부의 자료제출명령 등을 이행할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도록 했다. 의무사항을 위반하는 사업자는 1차로 시정명령을 받게 되며,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2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도록 했다.

○ 넷플릭스법 논란

넷플릭스법 도입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 입장이 갈리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사들로 대표되는 찬성 측은 그동안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면서도 망 품질 유지 책임을 지지 않아온 글로벌 CP들에도 망 품질 유지 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글로벌 CP들로 대표되는 반대 측은 넷플릭스법이 이동통신사의 의무를 콘텐츠 제공자에게 전가한다며 반발한다.

이 밖에도 넷플릭스법에서 적용 대상을 총 1%로 정한 기준에 대해서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트래픽 양이 국내 총량의 1%에 해당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넷플릭스법이 마련된다고 해도 정부가 해당 의무를 해외 사업자에게 강제할 방안도 없어 해외 기업과 국내 기업 간의 역차별이 나타날 수 있고, 외교 문제로 비화돼 통상마찰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netflix.html
kolaswqetsrq 11.03 06:51
조세형趙世衡

조세형(趙世衡)

 "
과거 부유층과 고위 권력층 저택만을 상대로 수억원대 금품을 털어 일부 금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해 현대판 홍길동, 대도(大盜)라는 별명을 얻었던 인물. 조세형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부유층과 고위층을 상대로 절도 행각을 벌이다 1982년 체포됐다.
",

이후 감옥에 15년간 수감된 뒤 1998년 11월 출소했다. 그리고 출소 후 독실한 신앙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 한 경비업체에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대학에서 범죄관련 특강을 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16살 연하의 여성과 결혼을 하는 등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듯 했다. 하지만 2000년 11월 신앙간증 차 방문한 일본에서 다시 절도행각을 벌이다 현지 경찰에게 검거돼 현지에서 절도죄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일본에서 복역하다 감형돼 2004년 3월 귀국했다. 그러나 2005년 3월 다시 주택 침입 절도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후 조세형은 2009년 금은방 사건으로 신청한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2011년 12월의 1심 재판과 2012년 7월의 항소심 재판에서도 같은 판정을 받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48.html
kolaswqetsrq 11.03 06:52
기피忌避, ablehnung

기피(忌避), ablehnung

검사 또는 피고인은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등 법에서 규정하는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법관의 배제를 신청하는 것

변호인 또한 피고인이 명시한 의사에 반하지 아니하는 때에 한하여 법관에 대한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기피신청이 소송의 지연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명백한 경우 등 법 규정에 위반된 때에는 신청을 받은 법원 또는 법관의 결정으로 이를 기각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ablehnung.html
kolaswqetsrq 11.03 06:52
신창원申昌源

신창원(申昌源)

 "
강도치사죄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1997년 탈옥했다가 2년 만에 검거되면서 희대의 탈옥수라고 알려진 인물이다. 1999년 7월 전남 순천에서 검거되었으며, 재검거 이후 22년 6개월 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

신창원은 1967년 전북 김제의 한 농가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1976년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중학교 2학년 때 중퇴하였다. 1982년부터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거리기 시작하다가 1982년 2월 절도죄로 김제경찰서에 붙잡혀 소년원에 송치됐으나 바로 풀려났다. 1983년 상경한 신창원은 음식점 배달원 등을 전전하다 1983년 절도죄 혐의로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붙잡혀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1984년 2월 다시 절도 혐의로 서울 강서경찰서에 체포돼 징역 단기 10개월 장기 1년을 선고 받았고, 1985년 7월에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서울 용산서에 체포돼 3년간 김천교도소와 안양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였다. 1988년 7월 출소했으나 1989년 3월 서울 성북구 돈암동 골목길에서 동료 4명과 함께 강도살인을 범한 죄로 그해 9월 무기형(강도치사)을 선고받았다. 신창원은 서울구치소를 거쳐 대구교도소와 전주, 대전, 청송, 청송 제2교도소 등을 옮겨 다니다가 1994년 11월 부산교도소로 이감되어 수형생활을 하였다.

그러다 1997년 부산교도소 감방의 화장실 환기통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옥했으며, 이후 5차례에 걸쳐 경찰과 맞닥뜨리고도 유유히 검거망을 벗어나며 2년 6개월 간의 도피 행각을 벌였다. 그러나 1999년 가스레인지 수리 기사의 신고로, 그해 7월 전남 순천에서 검거되었다. 당시 신창원의 검거 과정에서 그가 입었던 티셔츠가 유행할 정도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재검거 이후 22년 6개월 형을 추가로 선고받은 신창원은 2011년 자신의 독방에서 고무장갑으로 자살 시도를 하고 중태에 빠지기도 했다. 회복 후에는 경북 북부 제1교도소에서 전주교도소로 이감됐다고 알려졌다. 한편, 2012년에는 신창원의 옥중 수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담>이 개봉되기도 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67.html
kolaswqetsrq 11.03 06:53
특례시特例市

특례시(特例市)

 "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기초지방자치단체 중간 형태의 새로운 지방자치단체 유형이다. 2020년 12월 9일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에 특례시 명칭을 부여하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수원·고양·용인·창원 등 인구 100만 명 이상 대도시에 특례시 명칭이 부여되게 된다.
",

도시 행정의 특수성을 고려해 위상을 높이고 별도 구분하기 위해 편의상 적용하는 행정 명칭이다. 기존 광역시와 달리 인구가 많은 기초지자체에 부여되는 명칭으로, 기초지자체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광역시급 위상에 걸맞은 행정·재정 자치 권한을 확보하고 일반 시와 차별화되는 법적 지위를 부여받는 새로운 지방자치단체의 유형이다. 다만 특례시로 지정되더라도 권한이 달라지는 것은 없고, 도시 이름도 특별시나 광역시와 달리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된다.

 "
행안부가 2018년 10월 30일 발표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서는 특례시를 인구 100만 명이 넘는 광역시급 도시들로 명시했으나, 2017년 7월 2일 입법예고 방침을 밝힌 개정안에는 인구 100만 명 이상이거나 인구 50만 이상에 일정 요건을 갖춘 대도시로 그 기준을 완화했다. 하지만 2020년 12월 국회에서 합의된 개정안에는 인구 50만 명 이상 기준을 뺀 채 국가균형 발전, 지방 소멸 위기 등을 고려해 행정안전부 장관이 정하는 시군구도 특례시로 지정할 수 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이후 2020년 12월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는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와 실질적인 행정수요, 국가균형발전 및 지방소멸위기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과 절차에 따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정하는 도시에 특례시 명칭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56.html
kolaswqetsrq 11.03 06:54
황희 정승의 대답

황희 정승의 대답

어느 날 황희 정승에게 동네 사람이 찾아왔다.

"정승 어른~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그래 무언가? 말해보게."

"오늘이 아버님 기일이라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아들 녀석이 몹시 아파서 안사람이 제사를 말립니다. 하지만 제사는 어떤 경우에라도 꼭 챙겨야 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자네 말이 맞네, 가서 정성을 다해 제사를 드리도록 하게."

잠시 후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왔다.

"정승 어르신~!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그래 뭔가?"

"오늘이 어머님 제삿날인데, 기르던 개가 죽었습니다. 이럴 땐 제사를 건너뛰어도 되겠지요?"

"음... 그렇게 하게."

이를 보고 있던 하인이 질문을 했다.

"어르신, 어차피 똑 같은 질문인데 한쪽은 제사를 지내야하고, 또 한쪽은 건너뛰어도 된다는 말씀은 어떤 뜻으로 말씀하신 것인지요?“

황희 정승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첫 번째 사람은 누가 말려도 제사를 꼭 지낼 사람이고, 두 번째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제사를 건너 뛸 사람이네. 그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들으려고 온 것일 뿐, 내 말을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니네. 그런 자들에게 옳은 소리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오늘의 고사성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57.html
kolaswqetsrq 11.03 06:55
아침에 보면 좋은 10가지 마음 메시지

아침에 보면 좋은 10가지 마음 메시지

○ 첫 번째 메시지

우리가 무엇을 잃기 전까지는 그 잃어버린 것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얻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 두 번째 메시지

인생에서 슬픈 일은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이 당신에게 소중한 의미로 다가왔지만 결국 인연이 아님을 깨닫고 그 사람을 보내야 하는 일입니다.

○ 세 번째 메시지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하기까지는 1분밖에 안 걸리고,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기까지는 1시간 밖에 안 걸리며,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기까지는 하루밖에 안 걸리지만 누군가를 잊는 데는 평생이 걸립니다.

○ 네 번째 메시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가장 좋은 것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대부분의 것들을 저절로 다가오게 만듭니다.

○ 다섯 번째 메시지

꿈꾸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꿈을 꾸세요.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가세요. 되고 싶은 것은 되도록 노력하세요. 왜냐하면,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할 수 있는 인생은 오직 한 번이고 기회도 오직 한 번이니까요.

○ 여섯 번째 메시지

진정한 친구란 그 사람과 같이 그네에 앉아 한마디 말도 안하고 시간을 보낸 후 헤어졌을 때, 마치 당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대화를 나눈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입니다.

○ 일곱 번째 메시지

외모만 따지지 마세요. 그것은 당신을 현혹시킬 수 있습니다. 재산에 연연하지 마세요. 그것들은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당신에게 미소를 짓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세요. 미소만이 우울한 날을 밝은 날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 여덟 번째 메시지

부주의한 말은 싸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잔인한 말은 인생을 파멸시킬 수도 있습니다. 시기적절한 말은 스트레스를 없앨 수 있습니다. 사랑스런 말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축복을 가져다줍니다.

○ 아홉 번째 메시지

항상 자신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 두세요. 만약, 당신의 마음이 상처 받았다면 아마, 다른 사람도 상처 받았을 겁니다.

○ 열 번째 메시지

사랑은 미소로 시작하고 입맞춤으로 커가며 눈물로 끝을 맺습니다. 당신이 태어났을 때 당신 혼자만이 울고 있었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당신 혼자만 미소 짓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울도록 그런 인생을 사십시요.

-‘건강정보 이야기‘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10_42.html
kolaswqetsrq 11.03 06:55
괴테의 인생 교훈

괴테의 인생 교훈

괴테는 그의 인생 교훈을 5가지로 요약했습니다.

1) 지나간 일을 쓸데없이 후회하지 말 것.

잊어 버려야 할 것은 깨끗이 잊어버려라. 과거는 잊고 미래를 바라보라.

2) 될수록 성을 내지 말 것.

분노(憤怒) 속에서 한 말이나 행동은 후회만 남는다. 절대로 분노의 노예(奴隸)가 되지 말라.

3) 언제나 현재를 즐길 것.

인생은 현재의 연속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즐기고, 그 일에 정성(精誠)과 정열(情熱)을 다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4) 특히 남을 미워하지 말 것.

증오(憎惡)는 인간을 비열하게 만들고 우리의 인격을 타락(墮落) 시킨다. 될수록 넓은 아량(雅量)을 갖고 남을 포용하여라.

5) 미래를 신(神)에게 맡길 것.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미래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지(未知)의 영역(領域)이다.앞으로 어떤 일이 나에게 닥쳐 올지 알 수가 없다. 미래(未來)는 하늘에게 맡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전력(全力)을 다하는 것이 현명(賢明)하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97.html
kolaswqetsrq 11.03 06:56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여진 다리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여진 다리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여진

다리가 있습니다.

하루에 몇번씩 건너야 할

다리였습니다.

어느날인가 짧은 다리였는데

또 다른 날엔 긴 다리가 되었습니다.

내가 건너려 할 때 다리

가장자리에 꽃이 피었습니다.

향기가 진한 날 향수같은

사랑을 배웠습니다.

다리 가장자리에 바람이

찾아왔습니다

바람 시원한 날 용서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다리 가장자리에 새 한마리

찾아왔습니다

삐리리리 울음소리에 아픈

마음을 알게 됐습니다.

다리 가장자리에 쉬어가는 빗

물을 보았습니다.

고인 물속에서 여유로운

삶을 배웠습니다.

꽃은 피었다가 사라져도 내안에

사랑은 꽃보다 긴 생명을

그리움으로 채웠습니다.

용서의 마음도, 아픈 마음도

사랑이 놓여진 다리위에서 빗물처럼 곱게

만남이란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
-좋은생각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55.html
kolaswqetsrq 11.03 06:57
잘 닦은 마음은 그러하다

잘 닦은 마음은 그러하다

매일매일 투명하고 건강한 얼굴이

예뻐 보이는 나이를 지나

하루에 한두 번,얼굴에 부기가 빠진

저녁때쯤 예뻐 보이는 나이를 지나

한 달에 한 번 특별하게 차려입었을 때

예뻐 보이는 나이를 지나

자신에 대해 아무리 관대한 사람도

거울 속 자신이 예쁘다고 말할 수

없는 나이에 다다랐을 때

기회는 그때다.

얼굴에 마음이 가려지지 않기에

마음이 더 빛날 수 있는 나이

사람들은 당신의 얼굴선보다

얼굴 표정을 볼 것이다.

당신의 목소리 톤보다

무엇을 말하는지에 집중할 것이다.

혹 당신의 다리가 불편하더라도

당신의 여유 있는 위트가 사람들을

편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그때를 위해,

피부를 관리하는 것처럼

마음을 관리해야 한다.

얼굴은 세월을 비켜 갈 수 없어도

잘 닦은 마음은 그러하다.

 "
-달팽이 안에 달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82.html
kolaswqetsrq 11.03 06:57
웃음을 뿌리는 마음

웃음을 뿌리는 마음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빛깔과 느낌입니다

얼굴이 밝게 빛나고

웃음이 가득한 사람보다

얼굴이 어둡고 늘 찡그리는 사람은

쉽게 좌절합니다

얼굴은 마음과 직결되며

마음이 어두우면 얼굴도 어둡습니다

마음이 밝으면 얼굴도 밝습니다

이는 행복하다는 증거입니다

마음속에 꿈과 비전을 간직하면

행복에 익숙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웃음이 얼굴에 가득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편안한을 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건강에 유익합니다

목 위에서부터 출발하여 얼굴에

나타나는 미소와 웃음은 예외입니다

그것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얼굴의 뿌리 웃음의 뿌리는

마음입니다

 "
-쉬운 문장 좋은 글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23.html
kolaswqetsrq 11.03 06:58
늦게 피는 삶

늦게 피는 삶

꽃이 다 졌다는 말 믿을 수 없어

야생화를 찾아 길을 나섰다

안개가 덮고 있는

산길 모퉁이를 돌아

하얗게 핀 개망초의 순결을 보았다

더디게 핀 꽃의 고혹함은

얍삽하지 않은 사람의 미소처럼

화려함은 없어도 순수해 보였다

추월하지 않는 발걸음

좀 느리게 걷는 보폭이라

초조해하지 마라

더디게 핀 개망초의 모습이

더 청아해 보이는 이유를 알지 않느냐

우여곡절 다 겪어보고 피는 삶

모든 것엔 때가 있고

흘린 땀만큼의 대가는 있기 마련이다

 "
-이현수 한 걸음 뒤에 서서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28.html
kolaswqetsrq 11.03 06:59
법륜 스님의 희망편지

법륜 스님의 희망편지

너무 인정받으려고 애쓰지말고

때로는 대충 해보세요

내가 잘 보이려고 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잘 봐 주나요?

내가 잘 보이고 싶다고 해서

남이 잘 봐 줄 거라고 생각하는건

상대를 우습게 아는 거예요

다 각자 자기 눈이 있어요

남이 나를 평가하는 것에

너무 전전긍긍하면

죽을 때까지 노예생활을 해야 해요

그들에게 평가할 자유를 줘야 해요

이렇게 저렇게 평가하는 것을 보면서

 "
아, 저사람은 저렇게 보는구나
",

이러면 됩니다.

남으로부터 인정받으려고 너무 애쓰면

내 자신이 초라해집니다

그냥 생긴대로 놓아버리세요

 "
-법륜 스님 인생수업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78.html
kolaswqetsrq 11.03 06:59
마음이 아플 때

마음이 아플 때

몸이 아플 땐

먹는 약도 있고

바르는 약도 있는데

마음이 아플 땐

응급실에 갈 수도 없고

기도밖엔 약이 없네

누구를 원망하면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가만히 가만히

내가 나를 다독이며

기다리다 보면

조금씩 치유가 되지

슬그머니 아픔이 사라지지

세월이 나에게 준

선물임을

다시 기뻐하면서

-이해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22.html
kolaswqetsrq 11.03 07:00
흐르는 물과 같이 살렵니다

흐르는 물과 같이 살렵니다

흘러가는 인연 잡아 무엇하리

떠날 사람은 언제고 떠나리라

수려한 외모가 아니면 어떠리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더이다

서운한 마음 말한들 후련해지리

돌아서면 후회로 남는 것을

숨 고르고 비우리라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하나인 듯 늘 곁에 있어도

생각과 마음이 다르듯

알면서 바보스레 웃고

모르면서 장단 맞추는

울고 웃는 헛헛한 세상살이

처음 그 마음 그대로

흐르는 물과 같이 살렵니다.

-임숙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341.html
kolaswqetsrq 11.03 07:01
소중한 선물입니다

소중한 선물입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처럼

편안한 것은 없습니다.

삶에

익숙해지면 행복합니다.

사랑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편안하고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서툰 사람은

늘 불안하고 불행합니다.

여유가 없어 위태롭습니다.

태풍이 불어도 끄덕 없는

큰 나무처럼 흔들림 없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사랑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대충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소중한 감정입니다.

사랑에

익숙해지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삶처럼

소중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을 때

그 삶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익숙한 삶은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때 찾아오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
-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67.html
kolaswqetsrq 11.03 07:01
친한 친구들처럼

친한 친구들처럼

사람 사귀는 데 기술이 어디 있겠냐고 해도

분명 있는 것 같다

 "
진심은 통하게 돼 있다는 상식도
",

때로는 배신당하기 일쑤고,

아부인 걸 뻔히 알면서도

칭찬하는 말에는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과 친해지고,

어딜 가나 사랑받는 사람을 볼 때마다

때로는 부럽고 배 아프기도 하다.

한번 내 것이 된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순간순간의 잔재미보다

마음 나누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우리는

섬광 같은 매력보다 같이 있을 때 느껴지는

편안함을 선호하는지도 모른다.

마치 친한 친구들처럼.

 "
-숨쉬듯 가볍게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77.html
kolaswqetsrq 11.03 07:02
행복 잎

행복 잎

오늘 아침에 행복 잎을 닦았습니다. 잎을 닦으면서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행복 잎을 닦을 때는 한 손으로 잎 뒤쪽을 받쳐 주어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줄 알고 다른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행복 잎은 아래쪽에 있거나 오래된 잎일수록 먼지가 많고, 위쪽에 있거나 어린 잎일수록 먼지가 적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나이가 들거나 높아질 수록 지는 짐도 많고 어려움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행복 잎은 아주 어린 잎 외에는 모두 많은 상처를 입고 있으나 그것을 스스로 치유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가 많지만 스스로 치유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행복 잎은 아무리 잘 닦아도 안쪽 깊숙한 곳은 닦을 수 없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행복 잎은 한꺼번에 모두 닦을 수 없습니다. 한 잎 한 잎 정성껏 닦아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큰 행복을 한꺼번에 이루려 하지 않습니다. 일상의 작은 기쁨을 발견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입니다.

행복 잎은 어린 잎일 때는 머리를 들고 위로 자라지만 잎이 커질수록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낮춥니다.

행복한 사람은 나이가 들고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고개를 숙이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
-좋은생각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44.html
kolaswqetsrq 11.03 07:03
고맙습니다 당신

고맙습니다 당신

험난한 인생길 살아가면서 당신처럼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사람

끝내 만나지 못했다면 내 삶은 한없이

피폐하고 쓸쓸했을 것입니다

꽃처럼 하얗게 내리는 눈발 속에 서서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게

내 자신 정말 모든 것이 부족해보이고

미완의 존재임을 느꼈습니다

아직은 인생을

다 이해했다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당신으로 인해 삶의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향기로운 혜안을 지니게 되었음을

작은 것 하나에도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고맙습니다, 당신

당신이 계셔서 나는 오늘도

한 번 더 웃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슬픔과 좌절이 밀물처럼 밀려와도 다시 희망과

꿈을 되찾아 오늘의 삶을 기꺼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장세희-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30.html
kolaswqetsrq 11.03 07:03
어떤 보너스

어떤 보너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쁨

어떻게도 해석되지 않는 야릇한 끌림이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호감에 어리둥절할 때가 있습니다.

소리 중에 그런 소리가 있고

향기 중에도 그런 향기가 있습니다.

자연 속에도 그런 풍경이 많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만나는데도 친구같이 편한 사람이 있지요.

아마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잊혀진 듯

숨어 있던 향수가 그 순간 드러나는 것일 겁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뜻 모르는 기쁨

야릇한 끌림이 보물찾기의 쪽지처럼 여기저기 숨어 있습니다.

그것들이 눈에 뜨일 때는 얼른 주워 그냥 가지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실한 삶에게 주시는 보너스니까요.

행운목 잎은 한꺼번에 모두 닦을 수 없습니다.

시간을 두고 한 잎 한 잎 정성껏 닦아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큰 행복을 한꺼번에 이루려 하지 않습니다.

일상의 작은 기쁨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보면서 행복해합니다.

 "
-정용철 마음이 쉬는 의자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360.html
kolaswqetsrq 11.03 07:04
빈손의 의미

빈손의 의미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어야 한다. 내 손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놓거나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지 말아야 한다. 내 손에 다른 무엇이 가득 들어 있는 한 남의 손을 잡을 수는 없다.

소유의 손은 반드시 상처를 입으나 텅 빈손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그 동안 내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얼마만큼 잡았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어둠이 몰고 오는 조용함의 위압감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공허한 침묵 속으로 나를 몰아넣고 오만과 욕심만 가득 찬 나를 묶어버린다.

어차피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걸 무엇을 욕심내고 무엇이 못마땅한가, 오만과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내 손을 잡아 줄리 없고 용서와 배려를 모르는 한 어느 누구에게도 손 내밀 수 없다.

얼만큼 비우고 비워야 빈손이 될 수 있을까.

 "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19.html
kolaswqetsrq 11.03 07:04
사랑으로 크고 사랑으로 작아집니다

사랑으로 크고 사랑으로 작아집니다

자신이 아무리 똑똑하고 훌륭하더라도

순리를 외면하면 나중에 주변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은 나의 욕망과 자존심을 채워주는

어리석은 도구가 아님을

오늘에라도 깨우쳐야 합니다.

씨앗을 뿌려 열매를 따고 싶으면

먼저 따뜻한 사랑으로 훈훈한 바람을 일으키십시오.

합리적인 논리로 공격하기 전에

땀 배인 손으로 메마른 손을 잡아주십시오.

직책의 권위로 명령하기 이전에

상대방의 부족함과 약점을

남 모르게 함께 아파하십시오.

분명 가슴이 변해야 사람이 변하고

사람이 변해야 모든 일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가슴은 무한히 넓고 머리는 지극히 좁습니다.

가슴은 무한히 크고 머리는 너무나도 작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크고 사랑으로 작아집니다.

 "
-행복을 만드는 55가지 습관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78.html
kolaswqetsrq 11.03 07:05
가장 먼 여행

가장 먼 여행

생각하면 여행만 여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 하루하루가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통과 변화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 형식입니다. 부단히 만나고, 부단히 소통하고, 부단히 변화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일생동안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머리 좋은 사람과 마음 좋은 사람의 차이, 머리 아픈 사람과 마음 아픈 사람의 거리가 그만큼 멀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 여행이 그것입니다. 발은 여럿이 함께 만드는 삶의 현장입니다. 수많은 나무들이 공존하는 숲입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발까지 여행이 우리의 삶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만 못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발 좋은 사람만 못합니다.

 "
-처음처럼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71.html
kolaswqetsrq 11.03 07:06
지혜의 향기

지혜의 향기

자기를 아는 자는 남을

원망하지 않고,

천명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복은 자기에게서 싹트고,

화도 자기로부터 나오는 것

세상을 보고 싶은대로

보는 사람은

세상이 보이는대로 보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지는 꽃은 또 피지만 꺾인

꽃은 다시 피지 못합니다.

병없는 것이 제일 가는

이익이요,

만족 할 줄 아는 것이

제일 가는 부자이며,

고요함에 머무는 것이

제일 가는 즐거움입니다.

-Facebook 글 옮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33.html
kolaswqetsrq 11.03 07:07
사랑이 그리움 뿐이라면

사랑이 그리움 뿐이라면

사랑이 그리움 뿐이라면

시작도 아니했습니다

오랜 기다림은

차라리 통곡이었습니다

일생토록 보고 싶다는 말보다는

지금이라도 달려와

웃음으로 우뚝 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수 없는 변명보다는

괴로울지언정

진실이 좋겠습니다

당신의 거짓을 볼 때면

다른 사람보다도 더 싫습니다

하얀 백지의 글보다도

당신을 보고 있으면

햇살처럼 가슴에 비춰옵니다

사랑도

싹이나 자라고

꽃피어 열매맺는 사과 나무처럼

계절따라 느끼며 사는 행복 뿐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에

이별이 있었다면

시작도 아니했습니다

-용혜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879.html
kolaswqetsrq 11.03 07:07
5달러 짜리 자전거

5달러 짜리 자전거

외국의 어느 자전거 경매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 따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저마다 좋은 자전거를 적당한 값에 사기위해 분주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주고객인 그 경매장 맨 앞자리에 한 소년이 앉아 있었고, 소년의 손에는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소년은 아침 일찍 나온 듯 초조한 얼굴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경매가 시작되었고, 소년은 볼 것도 없다는 듯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고 "5달러요!"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곧 옆에서 누군가 "20달러!" 하고 외쳤고, 그 20달러를 부른 사람에게 첫번째 자전거는 낙찰되었습니다.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5달러는 어림도 없이 15달러나 20달러, 어떤 것은 그 이상의 가격에 팔려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경매사는 안타까운 마음에 슬쩍 말했습니다.

"꼬마야, 자전거를 사고 싶거든 20달러나 30달러쯤 값을 부르거라." "하지만 아저씨, 제가 가진 돈이라곤 전부 이것 뿐이에요." "그 돈으론 절대로 자전거를 살 수 없단다. 가서 부모님께 돈을 더 달라고 하려무나."

"안돼요. 우리 아빤 실직당했고, 엄만 아파서 돈을 보태 주실 수가 없어요. 하나밖에 없는 동생한테 꼭 자전거를 사가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에요."

소년은 아쉬운 듯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경매는 계속되었고 소년은 자전거를 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일 먼저 5달러를 외쳤고, 어느새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소년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 날의 마지막 자전거. 이 자전거는 그 날 나온 상품 중 가장 좋은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경매를 고대했었습니다. "자, 최종 경매에 들어갑니다. 이 제품을 사실 분은 값을 불러 주십시오."

경매가 시작되었습니다. 소년은 풀죽은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역시 손을 들고 5달러를 외쳤습니다. 아주 힘없고 작은 목소리였습니다. 순간 경매가 모두 끝난 듯 경매장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아무도 다른 값을 부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5달러요. 더 없습니까? 다섯을 셀 동안 아무도 없으면 이 자전거는 어린 신사의 것이 됩니다."

사람들은 모두 팔짱을 낀 채 경매사와 소년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5... 4... 3... 2... 1."

"와~아!!"

마침내 소년에게 자전거가 낙찰되었다는 경매사의 말이 떨어졌고, 소년은 손에 쥔 꼬깃꼬깃한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경매사 앞에 내 놓았습니다. 순간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소년을 향해 일제히 박수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이 자전거를 받게 된 동생은 형의 마음을 알았는지 비가 오나 눈이오나 매일 자전거를 탔다고 합니다. 이 동생이 바로 사이클을 타고 알프스산맥과 피레네산맥을 넘으면서 프랑스 도로를 일주하는 "투르 드 프랑스"대회에서 최초로 7연패를 달성한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입니다.

-Facebook 글 옮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5_13.html
kolaswqetsrq 11.03 07:08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

01. 변화를 수용 하는가 vs 변화를 두려워 하는가 : 세상은 매우 빠르고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뒤로 숨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02. 다른 사람의 성공을 원하는가 vs 은밀히 실패하길 바라는가 : 당신이 한 그룹의 일원이 됐을 때 성공하기 위해선 모두가 성공하길 원해야 한다. 만약 주위사람의 실패를 원한다면, 그런 실패한 사람과 일하고 싶은가?

03. 즐거움이 넘치는가 vs 분노가 넘치는가 : 일을 함에 있어서,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것은 항상 옳다. 이러한 행복은 전염성을 갖고 있어 다른 사람들 또한 기분을 좋게 만든다.

04.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가 vs 실패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가 : 실패한 경험에 대해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다음에 같은 실패를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05. 아이디어에 대해 말하는가 vs 사람에 대해 말하는가 : 가십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은 사실무근이며 부정적이고 시간낭비다. 주변사람을 흉보기보단, 사람들과 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해라.

06. 정보와 자료를 공유하는가 vs 정보와 자료를 축적하는가 : 타인과 정보와 자료를 공유한다면 당신은 타인의 정보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만 보기 위해 좋은 정보를 간직하고 있다면 이기적이며 삶을 짧게 보고 있는 것이다.

07. 성공의 공을 사람에게 돌리는가 vs 다른 사람의 공을 빼앗는가 : 팀워크는 성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팀을 꾸려 일을 할 때 그들의 공헌에 대해 무시하지 마라. 성공의 순간을 함께 누려야 한다.

08. 삶의 목표와 계획을 세우는가 vs 목표를 세우지 않는가 : 당신의 삶에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면 성공에서 멀어질 것이다. 길게는 10년, 짧게는 3년의 예측을 하고 각 연간 계획이 필요하다.

09. 일기를 쓰는가 vs 일기를 쓰자고 말만 하는가 : 매일 일기를 쓰면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을 수 있고 잊기 쉬운 일들을 기록해 나중에 아이디어로 승화시킬 수 있다. 휴대폰을 이용해 적을 수도 있고, 노트에 직접 적어도 무방하다.

10. 매일 독서를 하는가 vs 매일 TV를 보는가 : 꼭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블로그의 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잡지, 혹은 책. 당신이 읽는 활자는 모두 좋은 학습거리가 될 것이다. 반면 TV를 보는 것은 좋은 여가거리가 될 순 있지만 성공을 하기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11. 유연한 관점으로 일을 처리하는가 vs 틀에 박힌 관점으로 일을 처리하는가 : 유연한 사고를 가진 리더는 끊임없이 새로운 경지를 향해 도달해 간다. 그들은 팀 구성과 함께 동기부여,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면 조화로울지에 대해 고민한다.

12. 끊임없이 배우는가 vs 눈앞의 일만 처리하는가 : 쉴 새 없이 배우고 향상시키는 것은 성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또한 당신의 경쟁자를 앞설 수 있으며 아는 것이 많아지면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다.

13. 남을 칭찬하는가 vs 남을 비판하는가 : 칭찬은 사람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며, 기분을 좋게 한다. 비난하는 것은 그 어떤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14. 남을 용서하는가 vs 원한을 품는가 :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분노를 계속 품고 있는 것은 당신에게 이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다.

15. To-Be 리스트를 지키는가 vs 무엇을 할지 모르는가 : To-Be 리스트는 미래를 계획하는데 필요한 목록이다. “나는 TED의 강연자가 되겠다” 혹은 “나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될 것이다”와 같은 목록을 만들어라.

16.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가 vs 세상이나 주위 사람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가 : 당신과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라. 감사는 성공하는 사람들이 가진 가장 큰 공통점이다.

-Dave Kerpen(라이커블 로컬 경영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60.html
kolaswqetsrq 11.03 07:09
인생을 위한 10가지 작은 교훈

인생을 위한 10가지 작은 교훈

01. 여러 종류의 사람과 만나고 그들에게서 인생을 배워라.

한 사람의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당신이 경험하지 못한 간접 경험을 통해 당신을 더욱 커져있을 것이다.

02. 건강한 몸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아라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그러기에 나란 사람이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을 갖게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03. 인간 관계가 끊어지면 스스로의 탓으로 돌려라.

당신이 그렇게도 욕한 사람은 어떤 누군가와는 세상을 둘도 없을 것 같이 사이좋게 지낸다.

04.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대하지 말아라.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것은, 당신이란 사람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감정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떤 일도 능숙하게 하지 못한다.

05. 여행을 자주하고 역사적인 유물의 설명서를 읽어 보아라.

언어 하나를 배우는 만큼 사고가 확장 된다는 말이 있다. 여행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당신은 한층 깊어지는 사람이 될 것이다.

06. 긍적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와 가까이 하라.

부정적인 기운은 전염되듯이 긍정적인 기운도 전염되게 된다.

07.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비밀을 떨어 놓을 때는 두번 생각 하라.

친구를 믿는다는 것이 친구에게 나의 생사여탈권을 주는 것이 아니다. 부담감까지 전가하지는 말아라.

08. 읽을 수 없더라도 좋은 책은 곁에 둬라.

책 표지만 보더라도 당신의 인생에 도움이 된다. 그런식으로 친해지는 습관을 두는 게 좋다.

09. 더 이상 아무 것도 잃어버릴 것이 없는 사람을 조심하라.

잃어버릴 사람은 돌아갈 것도 없는 사람이다.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분명 위험하다.

10. 세상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생각을 버려라.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불공평함 그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 열등감은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자신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내 서재에는 책이 있다‘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10_40.html
kolaswqetsrq 11.03 07:09
사람들을 저절로 모이게 하는 사람

사람들을 저절로 모이게 하는 사람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거나 탐스러운 과일이 달린 나무 밑에는 어김없이 길이 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 이치로 아름답고 향기나는 사람에게 사람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상대를 위해 아량을 베푸는 너그러운 사람. 그래서 언제나 은은한 향기가 풍겨져 나오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 함께 있고 싶어집니다. 그 향기가 온전히 내 몸과 마음을 적셔질 수 있도록, 그리하여 나 또한 그 향기를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스치듯 찾아와서 떠나지 않고 늘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고. 소란피우며 요란하게 다가왔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훌쩍 떠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소리없이, 조용히, 믿음직스럽게 그러나 가끔 입에 쓴 약처럼 듣기는 거북해도 도움이 되는 충고를 해 주는 친구들이 있고, 귓가에 듣기 좋은 소리만 늘어놓다가 중요한 순간에는 고개를 돌려버리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우리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머물러 있습니까? 있을 땐 잘 몰라도 없으면 표가 나는 사람들, 순간 아찔하게 사람을 매혹시키거나 하지는 않지만 늘 언제봐도 좋은 얼굴, 넉넉한 웃음을 가진 친구들, 그렇게 편안하고 믿을 만한 친구들을 몇 이나 곁에 두고 계십니까?

나 또한 누군가에게 가깝고 편안한 존재인지 그러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싶습니다.

두드러지는 존재, 으뜸인 존재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오래 보아도 물리지 않는 느낌, 늘 친근하고 스스럼없는 상대, 그런 친구들을 곁에 둘 수 있었으면, 나 또한 남들에게 그런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Facebook 글 옮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68.html
kolaswqetsrq 11.03 07:10
보석보다 값진 교육

보석보다 값진 교육

탈무드의 한 일화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느 날 상점에서 외투 한 벌을 샀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한번 입어보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놀랍게도 거기에 보석이 들어 있었습니다.

순간 그 사람의 마음속에 두 가지의 생각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보석이 누구의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산 옷 주머니에 들어 있었잖아. 그러니 내가 가져도 될 거야.’ ‘그래도 이건 내 것이 아닌데..., 빨리 돌려주는 게 맞겠지.’

양면의 생각으로 괴로워하던 그 사람은 지혜로운 현자를 찾아가서 사실 이야기를 하자 현자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산 것은 외투이지 보석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돌려주는 게 맞습니다. 다만 상점에 가서 보석을 돌려줄 때는 꼭 자녀를 데리고 가십시오. 그리하면 어떤 보석보다 몇 배 귀중한 것을 당신의 자녀에게 주게 될 것입니다.”

자녀가 정직한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란다면, 자녀가 예의 바른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란다면, 먼저 부모가 정직하고 예의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라는 말보다 어떻게 하는지 직접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습니다.

-‘마음으로 읽은 탈무드’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55.html
kolaswqetsrq 11.03 07:11
이별 후에

이별 후에

이별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다

이별에도 품격이 있다

착한 이별

상대의 행복을 비는 이별

좋은 감정은 남았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한다면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애틋한 이별

사랑해도 헤어져야 하는 이별

사랑한다고 모두 같이 사는 건 아니다

함께하지 못해 더 애틋한 그리움이 따른다

쿨한 이별

이해의 폭을 좁히지 못해

다투고 헤어지지만 미움은 없다

나중에 봐도 안부를 묻는다

증오 이별

사람이 밉고

견딜 수 없어서 하는 이별

증오심이 함께 있으면

더 괴로운 이별

두고 보자는 마음이 깔렸다

삶에 자연스러운 만남과 헤어짐

수많은 인연이 반복되어도

기억에 남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별 후에도

좋은 감정으로 남아

한 번쯤 보고 싶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조미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68.html
kolaswqetsrq 11.03 07:11
달빛 기도

달빛 기도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 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 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이해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46.html
kolaswqetsrq 11.03 07:12
내가 더 사랑할게

내가 더 사랑할게

그땐

그랬었어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달라

늘 갈등이 생겨

서로에게 상처를 줬었고

달라도 너무 다른 성격에

우린 부딪히지 않으려고

참 많이 애썼어

몇 번 닥친 위기도

슬기롭게 잘 견뎠던 건

마지막을 얘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배려했기 때문이었지

그리고

멀리 있는 듯

가까이 있는 듯

묵묵히 내 곁을 지켜줬었지

기나긴 시간 잘 견뎌줘서 고마워

이젠

당신이 하고 싶은 거

당신이 바라는 걸 제일 먼저 해 줄게

그리고 내가 더 사랑할게

부족했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조미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11.html
kolaswqetsrq 11.03 07:13
괜찮은 사람

괜찮은 사람

알아요?

당신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거

그것도 모르면서... 바보

이제부터 당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알았으면 좋겠어

얼마나 소중한지도 꼭 알았으면 좋겠어

힘들 때 불러줘서

힘들 때 두 손 잡게 해줘서

힘들 때 토닥일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너밖에 없었어" 그 말에

혼자 느꼈을 그 절실함이 안타까워

가슴이 너무 아팠어

한 번의 실패가

한 번의 좌절이

한없이 작아지게 하지만

꼭 다시 일어날 거라 믿어

이 또한 지나가지 않을까?

언젠가 지난 얘기 하며 미소 짓지 않을까?

힘내요 힘내요 참 괜찮은 당신!

-조미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25.html
kolaswqetsrq 11.03 07:14
작은 행복

작은 행복

별처럼 빛나는

맑은 마음을 느낄 때

난 늘 부자인 거 같아

누군가를 위한 배려가 보일 때

그 사람에게서 넓은 바다가 보이곤 해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

사랑스럽고 믿음직하기도 해

인자한 모습으로 가족들을 바라보는

미소 가득한 가장의 얼굴을 보면

그 집안의 웃음소리가 들리는듯해

우리

너무 많은 것을 바라보다

순간순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행복을 놓치지 말자

작은 느낌을 그냥 지나치지 말자

작은 것이 모여 큰 행복이 된다는 걸 잊지 말자

-조미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05.html
kolaswqetsrq 11.03 07:14
12월의 일기

12월의 일기

가라고 말 한적 없는데

대책 없이 떠난 시간앞에

허락 없이 새해가 서성거린다

하얀 눈이 내려야 할 계절에

어쩌자고 자꾸 비가 내리는지

누군가의 눈물처럼 아프기만 하다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대신

질척이는 빗물에 내딛는 발걸음은

바위라도 매단 듯 무겁다

열심히 살았다고 위로해도

12월은 늘

아쉬움과 허전함으로 마음이 고프다

-조미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12_13.html
kolaswqetsrq 11.03 07:15
비우면 행복해져요

비우면 행복해져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중 하나가

마음을 비우는 일입니다

모든 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 하는데

근본 원인이 마음에 가득한

부정적인 생각이 아닐까요

불필요한 생각까지 마음을 채우고 있으니

숨 쉴 공간이 없어 과부하가 걸리는 겁니다

좋은 생각

나쁜 생각

슬픈 생각

분노와 미움이 함께 하다 보니

늘 마음은 좋은 향기 대신

불편한 향이 풍겨서 괴롭기만 합니다

마음을 비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한가지는

가장 행복하고 편안했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자신을 괴롭히는 일을 잊히도록...

수시로 습관처럼 행복한 상상을 하세요

그 작은 습관이 확대되어

더 큰 행복으로 마음이 편안해질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힘든 기억 속에서 해방되어

마음에 쉼을 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생길 겁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그만큼 행복에서 멀어져요

단순하게 살아요 우리

좋은 생각만 하고 살아도 짧은 인생이거든요

-조미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57.html
kolaswqetsrq 11.03 07:16
불가능은 없다

불가능은 없다

왜 없겠습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주저앉고 싶은 날과

포기하고 싶은 날이 얼마나 많았나요

다만 절망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지요

절망과 희망을 오가며

많은 고통과 좌절을 느끼면서

삶의 고통이 엄습해오면 그 두려움은

또 얼마나 컸습니까

그런데 말이죠

절망 속에서 희망이 보인다는 것이지요

바닥을 칠수록 가능성이 보이고

희망의 싹이 터 오릅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발짝만 떼면 작은 희망이 보이고

두 발짝을 떼면 작은 빛도 보입니다

그래요

한 번쯤 다짐하며

프로필 사진 대신 썼던 이 문장

"불가능은 없다"

우리 마음에 더 이상 절망과

불가능이 없기를 바랍니다

-조미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24.html
kolaswqetsrq 11.03 07:16
가등기假登記

가등기(假登記)

부동산등기법 제3조에 따라 장래에 행해질 본등기에 대비해 미리 그 순위 보전을 위해 하는 예비적 등기를 말함. 이 가등기가 행해진 후 본등기가 이뤄지면 본등기의 순위는 가등기의 순위로 소급됨

가등기는 본등기를 할 수 있는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장래에 행하여질 본등기의 순위를 확보하기 위해 임시로 하는 등기를 말한다. 이는 본등기의 순위를 미리 보전해 두는 효력을 가진다. 본등기란 등기의 본래효력을 완전히 발생시키는 등기로 종국등기라고도 한다.

가등기가 행해진 후 본등기가 이뤄지면 본등기의 순위는 가등기의 순위로 소급된다(순위보전의 효력). 그러나 물권변동의 시기가 가등기 시까지 소급하는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본등기를 할 때 비로소 물권변동의 효력이 생긴다. 즉, 가등기에 기해 본등기가 이뤄지면 가등기 후에 이루어진 일체의 처분행위에 의해 생긴 권리 중 본등기의 권리와 저촉되는 경우, 모두 실효되거나 후순위가 되는 것이다.

한편, 가등기에는 채권의 보전을 목적으로 한 가등기도 있는데, 이를 담보 가등기라고 한다. 이는 저당권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 이 담보 가등기는 채권 담보의 목적을 위해 가등기의 형식을 이용한 것으로 일반가등기가 본등기의 순위확보적 효력만 가져 가등기 자체만으로는 물권 변동의 효력이 생기지 않는 반면, 이 담보 가등기는 담보권에 준하는 실체법적 효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가등기와 구별된다.

한편, 가등기의 효력은 등기부상에 기재된 형식이 아닌 설정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순위보전 가등기의 형식으로 등기부에 기재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 실질 내용이 담보 목적의 가등기면 담보 가등기로 인정되는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03.html
kolaswqetsrq 11.03 07:17
니치 향수niche perfume

니치 향수(niche perfume)

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프리미엄 향수를 뜻한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남과 다른 나만의 향수를 원하는 소수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다.

외국어 표기

 "
최고의 조향사들이 최상의 원료를 이용해 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든 프리미엄 향수를 뜻한다. 니치는 틈새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nicchia(니치아)에서 파생된 말이다. 전문 조향사가 전문 퍼퓸 하우스에서 브랜드만의 철학과 정체성을 담아 탄생시킨 향수로, 매스 브랜드에서 대량생산한 제품과는 대비되는 개념이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남과 다른 나만의 향수를 원하는 소수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며, 국내에는 2000년대에 들어 소개됐다. 일반 향수보다 2~3배에서 10배 가까이 비싼 가격에도 패션계의 트렌드 리더들이 애용하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

니치 향수는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향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독특한 향을 보존해 희소성이 높다. 향을 차별화하기 위해 천연 향료나 희귀 성분 등 고급 원료를 주로 사용하는데, 천연 향료는 향을 추출하는 과정이 섬세하고 복잡한 데다 소량밖에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값이 비싸지만 합성 향료와 달리 풍부하면서도 원료 특유의 개성을 살린 향을 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niche-perfume.html
kolaswqetsrq 11.03 07:18
공감성 수치共感性 羞恥

공감성 수치(共感性 羞恥)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해당 배역이 곤란한 일이나 창피를 당하는 장면을 볼 때 자신 역시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 이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증상을 말한다.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주인공이나 어떤 배역이 곤란한 일을 당하거나 창피를 당하는 장면을 볼 때 마치 자신이 당한 것처럼 느껴지며 이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증상을 말한다. 보통 이들은 해당 장면에서 채널을 돌리는 등 그 화면을 건너뛰거나 외면한다.

이는 일본의 임상심리사인 우치다 토모아키에 의해 명명된 것으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창피를 당하는 것을 볼 때 본인이 창피를 당할 때 반응하는 뇌 부위가 반응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즉, 자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타인의 수치심에 대한 공감대가 과하게 형성되면서 마치 자신이 당사자인 것처럼 해당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96.html
kolaswqetsrq 11.03 07:18
로스쿨law school

로스쿨(law school)

법률가를 양성하기 위한 3년 과정의 전문 법과대학원으로, 우리나라에는 2009년 도입되었다. 국내에서는 사법시험이 2017년을 끝으로 폐지되면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관문은 로스쿨로 일원화됐다.

변호사를 양성하기 위한 전문대학원 과정으로, 법학 이외의 학문을 전공으로 이수한 학부졸업생을 대상으로 하여 실무 위주의 법률 교육을 시행하는 법학전문대학원이다. 미국에서 1870년부터 시행된 제도로, 일본은 2004년, 우리나라는 2009년 도입하였다.

○ 우리나라 로스쿨 도입 역사

우리나라에 2009년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법조인(판사·검사·변호사)이 되려면 사법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법조의 배타적 독점과 그로 인한 법체계의 폐쇄 회로화 현상 등의 부작용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여기에 사법시험 제도가 소위 고시 낙오생을 만들어내 국가 인력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비난도 계속됐다.

이에 따라 로스쿨 제도 도입이 추진되었고, 그 결과 2009년 전국 25개 로스쿨이 개원하면서 로스쿨이 시작됐다. 따라서 학부 전공과목과 관계없이 4년제 대학 졸업자는 로스쿨 진학을 위한 법학적성시험(LEET)을 통과하여 3년 과정을 이수하면 변호사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다만 최소 6학기를 이수한 학생에 대해 변호사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응시 횟수에는 제한이 있다. 로스쿨 제도는 2009년부터 8년 동안 사법시험과 병행 시행되다가, 사법시험이 2017년 12월 31일을 끝으로 폐지됨에 따라 국내에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관문은 로스쿨 제도만이 남게 됐다.

○ 로스쿨 입학 요건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해 학사학위를 취득한 뒤 법학적성시험(LEET·Legal Education Eligibility Test)를 치러야 한다. LEET는 로스쿨에서의 기본 수학능력과 법조인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 자질 및 적성을 평가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다. LEET 시험 성적은 보통 8월~9월 경에 발표되며, 성적 발표 후 로스쿨에 지원할 수 있는 성적을 받은 수험생들은 자기소개서 등의 서류를 준비해 10월 초 희망 로스쿨에 원서를 넣고 11월 면접을 응시하게 된다. 이외에 로스쿨에서 신입생을 선발할 때 반영하는 요소는 ▷학부성적(GPA) ▷외국어시험성적(TEPS, TOEFL, TOEIC 등) ▷사회활동/봉사활동 경험 및 면접 등이다.

○ 미국의 로스쿨

로스쿨은 1870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처음 도입된 법률가 양성학교로, 1920~30년대에 걸쳐 미국 법학교육의 지배적인 제도로 자리 잡았다(3년제). 법률 이외의 과목을 전공하여 대학 4년 과정을 마쳐야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이론보다는 케이스 중심의 실무 교육이 이뤄지며, 기간은 3년이다. 로스쿨을 졸업하면 각 주의 대법원이 관장하는 변호사 자격시험(Bar Exam)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고, 시험에 합격하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로스쿨에서는 J. D.(Juris Doctor)와 LL. M.(Master of Laws), J. S. D.(Doctor of the Science of the Law)의 세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J. D.는 로스쿨 학생을 법률가로 양성하는 기본 과정으로 전반적인 법 지식을 3년간 배운다. 미국인은 LL. M.이나 J. S. D. 학위를 취득하기 전에 반드시 이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LL. M은 1년 과정이며 한국에서 법대를 졸업하거나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코스다. J. D. 과정 중 18학점 정도를 골라서 수강하게 되며 수료자에게는 Bar Exam(미국 변호사 시험) 응시자격이 부여된다. J. S. D.는 가장 높은 학위로, 우리나라의 박사학위에 보다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미국의 법대 교수들 중에는 J. D. 학위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는박사학위 대신 법률 실무경험이 많고 유능한 사람이 주로 교수로 임용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합격률은 80%선이며, 최상위 30%선은 연방검사 및 주요 법률회사(law firm)로 가고, 10~20%는 주(州) 검사 및 기업변호사로 진출하며, 나머지는 개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law-school.html
kolaswqetsrq 11.03 07:19
토지거래허가구역土地去來許可區域

토지거래허가구역(土地去來許可區域)

토지의 투기적인 거래가 성행하거나 성행할 우려가 있는 지역 및 지가가 급격히 상승하거나 상승할 우려가 있는 지역에 땅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설정하는 구역으로, 1979년 처음 도입됨

국토교통부장관 또는 시 · 도지사는 국토의 이용 및 관리에 관한 계획의 원활한 수립과 집행, 합리적인 토지 이용 등을 위하여 토지의 투기적인 거래가 성행하거나 지가(地價)가 급격히 상승하는 지역과 그러한 우려가 있는 지역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5년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1979년 구역 지정이 처음 이뤄졌고 해마다 갱신된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일단 지정되면 토지 용도별로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거래는 시 · 군 ·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토지거래계약을 허가받은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 외에는 5년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간에 그 토지를 허가받은 목적대로 이용하여야 한다. 이를 토지이용의무라 하는데, 농 · 임 · 축산 · 어업용을 비롯해 단독주택(다중주택 및 공관(公館)은 제외), 공동주택(기숙사 제외), 복지 · 편의시설용 등은 2년, 현상보존의 목적으로 허가를 받은 경우에는 5년의 기간을 두고 있다.

만약 목적대로 이용하지 않는 경우 상당한 기간을 정해 이행명령을 부여하고, 명령 불이행 시 토지 취득가액의 10% 범위 내에서 매년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실수요자 이외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를 매입할 수 없다. ▲도시지역 내의 경우 주거지역 180m2, 상업지역 200m2, 공업지역 660m2, 녹지지역 100m2 초과할 경우 ▲도시지역 이외는 250m2, 농지는 500m2, 임야는 1,000m2 초과하는 토지를 구입할 경우 실수요자임을 입증해 해당 시장 · 군수 ·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계약 토지거래가격의 30% 이하를 벌금으로 물어야 한다.

하지만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되면 지자체의 허가 없이 자유롭게 토지를 사고팔 수 있으며, 토지구입 자금의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 토지의 용도대로 사용하는지에 대한 당국의 감독도 받지 않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754.html
kolaswqetsrq 11.03 07:20
프리저브드 플라워preserved flower

프리저브드 플라워(preserved flower)

생화를 특수 보존 처리 용액으로 가공하여 1∼5년간 생기 있는 모습이 유지되는 가공화이다. 여러 종류의 보존 용액을 이용하여 탈수·탈색, 착색·보존, 건조 과정을 거쳐 완성한다. 보존화 또는 천일화라고도 부르는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생화의 모습을 길게 즐길 수 있고 촉감이 부드러우며 생화에 알러지가 있는 사람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적합한 품종의, 싱싱하고 상처가 없는 생화를 사용해야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으며, 만들어진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직사광선과 고온, 습기를 피해야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또한 착색된 염료가 의류 등에 이염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preserved-flower.html
kolaswqetsrq 11.03 07:20
람사르협약Ramsar Convention

람사르협약(Ramsar Convention)

물새서식지로서 중요한 습지보호에 관한 협약

1971년 이란의 람사르에서 채택되어 1975년에 발효된 람사르협약은 국경을 초월해 이동하는 물새를 국제자원으로 규정하여 가입국의 습지를 보전하는 정책을 이행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습지를 바닷물 또는 민물의 간조 시 수심이 6m를 초과하지 않는 늪과 못 등의 소택지와 갯벌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7월 28일 국내에서 람사르협약이 발효되면서 세계에서 101번째로 람사르협약에 가입하였다.

2008년 10월 말 경남 창원에서 제10차 람사르 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린 바 있다. 2011년 12월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대암산 용늪, 창녕 우포늪, 신안 장도습지, 순천만ᆞ보성갯벌, 제주 물영아리오름, 충남 태안 두웅습지와 서천갯벌, 울주 무제치늪, 전남 무안갯벌, 인천 강화도 매화마름군락지, 오대산국립공원습지, 제주 물장오리습지, 한라산 1100고지 습지, 전북 고창ᆞ부안갯벌, 제주 동백동산습지, 전북 고창 운곡습지, 전남 신안증도갯벌 등이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ramsar-convention.html
kolaswqetsrq 11.03 07:22
전환사채 / CBConvertible Bond

전환사채 / CB(Convertible Bond)

일정한 조건에 따라 채권을 발행한 회사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으로 사채와 주식의 중간 형태를 띤 채권이다.

일정한 조건에 따라 채권을 발행한 회사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으로서 전환 전에는 사채로서의 확정이자를 받을 수 있고 전환 후에는 주식으로서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사채와 주식의 중간 형태를 취한 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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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는 방식은 전환사채 발행 당시에 미리 결정해 두는데, 보통 채권과 주식을 얼마의 비율로 교환할 것인가 하는 전환가격을 정해두게 된다. 이때 전환사채의 주식으로의 전환은 통상 사채 발행후 3개월부터 가능하다. 예를 들어 A사가 1년만기 전환사채를 발행하면서 전환사채 만기보장 수익률이 8%, 전환가격이 1만 원이었다고 하자. 만약 향후 1년 동안 A사 주가가 1만 원에 못 미치게 될 경우 만기까지 보유했다가 8%이자를 받으면 된다. 그러나 A사 주가가 급등해 2만 원이 됐다면 당연히 전환해 주당 1만 원에 이르는 시세차익을 누릴수 있다.
",

이처럼 전환사채 보유자는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여 주가가 전환가격을 웃돌게 될 경우 주식으로 전환해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다. 반면 주식시장 침체로 전환가격이 주가보다 낮아지게 되면 만기까지 보유해 발행회사가 발행 당시 확정한 만기보장수익률만큼의 이자를 지급받게 된다. 이때 이자율은 일반적으로 보통 회사채에 비해 낮은 편이다. 다만 만기보장수익률은 회사의 신용도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신용도가 좋은 회사의 전환사채는 수익률이 낮은 반면 그렇지 못한 회사의 전환사채는 수익률이 높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정기간 후 전환사채를 일정 가격에 팔 수 있는 풋옵션(put option)과 발행회사가 전환사채를 되살수 있는 콜옵션(call option)의 발행조건이 붙기도 한다.

전환사채는 발행회사의 입장에선 낮은 이자를 지급하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주식 활황기 때 자금조달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전환사채는 일반사채와 같이 이사회의 결의로 발행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 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전환사채 인수권을 주주에게 먼저 주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 정관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쳐 결정한다.

○ 전환사채의 종류

전환사채는 제3자 보증 여부에 따라 보증부전환사채, 담보부전환사채, 무보증전환사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또 전환 정도에 따라 회사채 액면금액의 전부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액전환사채와 액면금액의 일정 부분만 전환할 수 있는 부분전환사채가 있다.

또 사모(私募)전환사채와 공모(公募)전환사채 2가지 종류가 있는데 공모전환사채는 불특정 다수에게 균등한 조건으로 발행하는 한편, 사모전환사채는 기업이 매입자를 개별적으로 접촉해 모집하는 전환사채이다. 또 사모사채는 발행할 때 증권관리위원회에 유가증권신고서를 낼 필요가 없으며 인수 주선기관도 필요하지 않다. 특히 사모전환사채의 경우 재벌 총수의 자녀 등 특수관계에 있는 인물에게 지분을 몰아줄 수 있어 재벌들의 재산증여와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cbconvertible-bond.html
kolaswqetsrq 11.03 07:22
흑금성 사건

흑금성 사건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안기부(현 국가정보원)가 주도한 이른바 북풍 공작 중 하나이다. 당시 안기부는 (주)아자커뮤니케이션에 위장취업시킨 박채서 씨를 통해 대북사업과 관련한 공작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흑금성은 안기부가 (주)아자커뮤니케이션 측에 전무로 위장취업시킨 박채서 씨의 암호명으로, 안기부는 그를 통해 대북사업과 관련한 공작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아자커뮤니케이션은 1997년부터 북한의 금강산·백두산·개성 등을 배경으로 안성기 씨 등 남한의 인기배우와 북한의 인기가수 등이 함께 출연하는 TV광고를 찍는 프로젝트를 추진했었다. 북한의 유도선수 계순희를 모델로 한 광고도 계획했었다. 당시 안기부 공작원이었던 박채서 씨는 북한 고위관계자들과 만나 사업을 성사시키는 핵심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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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98년 3월 안기부 전 해외실장 이대성 씨가 국내 정치인과 북한 고위층 인사 간의 접촉내용을 담은 기밀정보를 폭로하면서 이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 이른바 이대성 파일로 불린 이 정보는 안기부가 1996년부터 1997년 2월까지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이뤄진 국내 정치권과 북한 고위층 사이의 접촉을 취합한 기밀정보였다. 여기에는 대북공작원 흑금성의 활약상이 들어 있었는데, 특히 1997년 대선 당시 북한 관련 정보가 어떻게 선거와 정치에 이용됐는지를 드러내는 국가 1급비밀이었다. 결국 이대성 파일에서 공개된 흑금성이 박채서 씨임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아자 측의 대북사업은 북측의 반발로 전면 중단됐다.
",

이후 아자 측은 "이 책임이 흑금성을 위장 취업시킨 안기부에 있다"며 1998년 손해배상금 78억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으며, 2003년 1월 법원은 "국가는 6억 5000만 원을 지급하고 화해하라"는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477.html
kolaswqetsrq 11.03 07:23
성희롱sexual harassment

성희롱(sexual harassment)

성에 관계된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 굴욕감 등을 주거나 고용상에서 불이익을 주는 등의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일컫는다.

성희롱은 성에 관계된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굴욕감 등을 주거나 고용상에서 불이익을 주는 등의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는 육체적 유형, 언어적 유형, 시각적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육체적 성희롱은 신체적 접촉, 즉 상대의 특정 신체부위를 만지는 행위로 불쾌감 등을 안기는 행위를 등을 말한다. 언어적 성희롱은 음란한 농담이나 음담패설, 외모에 대한 성적인 비유나 평가, 성적인 내용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행위, 성적 관계를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행위, 음란한 내용의 전화통화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시각적 성희롱은 외설적인 사진·그림·낙서·음란출판물 등을 게시하거나 보여주는 행위, 직접 또는 간접적 매체(컴퓨터 등)를 통하여 음란한 편지·사진·그림을 보내는 행위, 성과 관련된 자신의 특정 신체부위를 고의적으로 노출하거나 만지는 행위 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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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우리나라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성발전기본법,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에서 성희롱 방지를 위한 조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는 사업주·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어나 행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직장 내 성희롱의 금지 및 예방을 위한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sexual-harassment.html
kolaswqetsrq 11.03 07:24
빙의憑依

빙의(憑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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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측면에서는 일반적으로 귀신들림, 귀신에 씌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른 靈(영)이 들어온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빙의를 경험한 사람들은 특정한 때에 평소와 다르게 전혀 다른 사람처럼 말과 행동을 한다.
",

그러나 정신의학적 측면에서는 빙의현상을 개인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자아인 다중성격적인 증상으로 진단한다. 이는 평소에 자제되어 있던 내재된 다른 인격이 표출되는 것이라고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175.html
kolaswqetsrq 11.03 07:25
성추행

성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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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의 하나인 성추행은 강제추행을 뜻한다. 강제추행이 성희롱과 다른 것은 폭행이나 협박을 수단으로 추행하는 것이다.
",

성추행은 성욕의 자극, 흥분을 목적으로 일반인의 성적 수치, 혐오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일체의 행위(키스를 하거나 상대의 성기를 만지는 행위 등)로, 강제추행은 이러한 추행행위시 폭행 또는 협박과 같은 강제력이 사용되는 경우를 말한다.

형법 제298조에 따라 강제추행한 자는 10년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20.html
kolaswqetsrq 11.03 07:26
보궐선거補闕選擧

보궐선거(補闕選擧)

선거에서 당선인이 임기 개시 이후 기타 범법 행위로 인한 유죄판결로 피선거권을 상실하거나 사망, 사퇴 등의 사유로 궐석되었을 때 실시하는 선거

당선인이 임기 개시 이후 기타 범법 행위로 인한 유죄판결로 피선거권을 상실하거나 사망, 사퇴 등의 사유로 궐석되었을 때 그 자리를 보충하기 위하여 실시하는 선거로, 보결선거(補缺選擧)라고도 한다.

대통령이 궐위(闕位, 어떤 직위나 관직이 빔)된 때는 그 자격을 상실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해야 한다(헌법 제4장 68조 2항). 국회의원의 궐원시(闕員時,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인원수에 차지 않고 빔)에는 의장이 15일 이내에 대통령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이를 통지해야 한다(국회법 제12장 137조). 지역구 의원의 궐원시에는 보궐선거를 실시하며, 전국구 의원의 궐원시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해당 정당의 전국구 후보자명부에 기재된 순위에 따라 승계자를 결정하여야 한다(국회의원선거법 제11장 143조 1ᆞ2항).

국회의장은 지역구 의원의 결원을 대통령에게 통보하며(동법 제11장 143조 3항), 선거일은 대통령이 국회의장의 결원통지를 받은 후 90일 이내에 실시하며, 늦어도 선거일 17일 이전에 공고해야 한다(동법 제8장 99조). 보궐선거는 재선거(再選擧)와는 다른데, 재선거는 선거에 대한 무효판결이 있거나, 당선인이 임기 개시 전에 사망하거나 사퇴할 때, 선거 소송이 무효로 된 때, 선거 결과 당선인이 없을 때에 선거를 다시 실시하는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18.html
kolaswqetsrq 11.03 07:26
바이러스와 세균의 차이Virus, Bacteria

바이러스와 세균의 차이(Virus, Bacteria)

바이러스는 단백질과 핵산으로 이뤄진 생물과 무생물 중간 형태의 미생물로, 스스로 물질대사를 할 수 없다. 반면 세균은 생물체 가운데 가장 미세하고 하등에 속하는 단세포 생활체로, 스스로 에너지와 단백질을 만들며 생존한다.

바이러스는 단백질과 핵산(DNA나 RNA와 같은 유전물질)으로 이루어진 생물과 무생물 중간 형태의 미생물로, 스스로 물질대사를 할 수 없다. 따라서 동식물이나 미생물의 살아있는 세포에 기생해 살아가는데, 세포 속으로 침투한 바이러스는 핵산을 이용해 자신을 무수히 복제하면서 증식한다.

반면 세균은 생물체 가운데 가장 미세하고 하등에 속하는 단세포 생활체로, 스스로 에너지와 단백질을 만들며 생존한다. 구조는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 없이 세포막과 원형질만으로 간단하게 이뤄져 있으며,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다른 생물체에 기생하여 병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발효나 부패 작용으로 생태계의 물질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 바이러스와 세균의 차이

세균이 세포막·세포벽·핵산·단백질 등 하나의 독립된 세포로 이뤄진 반면 바이러스는 유전정보가 들어 있는 핵산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단백질이 그 구조의 전부다. 또 세균이 땅·물·공기 등 양분이 있는 어느 곳에나 기생하고 스스로 세포 분열을 하면서 생존하는 데 반해,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생물체의 세포를 숙주로 삼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바이러스와 세균은 크기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세균의 크기가 1~5μm(마이크로미터, 100만 분의 1m)인 데 반해 바이러스는 30~700nm(나노미터, 10억 분의 1m)로 세균보다 훨씬 작다.

아울러 세균과 바이러스가 병원체가 됐을 때 그 대처법도 다른데, 세균의 경우 그 세포벽을 약하게 만들어 감염된 세포를 죽이는 항생제로 치료한다. 반면 바이러스의 경우 백신이나 항바이러스제가 이용되는데, ▷백신은 바이러스를 약하게 만들거나 죽여서 몸속에 일부러 미량 주입하는 것이며 ▷항바이러스제는 몸에 침입한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거나 바이러스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virus-bacteria.html
kolaswqetsrq 11.03 07:27
청약저축請約貯蓄

청약저축(請約貯蓄)

아파트 분양 청약 자격을 얻기 위해 가입하는 청약통장의 하나로 국민주택을 분양 또는 임대받을 수 있다. 2015년 9월 1일부터는 신규 가입이 중단됐으며, 이후 2009년 5월 6일 출시된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할 수 있다.

아파트 분양 청약 자격을 얻기 위해 활용되는 청약통장 중 하나로, 전용 25.7평 이하 규모로 국민주택기금의 지원을 받아 짓는 국민주택을 분양 또는 임대받을 수 있는 통장이다. 주택공사·도시개발공사가 공급하는 전용면적 25.7평형 이하의 국민주택, 임대주택 등을 분양받을 수 있다. 당해 주택건설지역에 사는 무주택 가구주로서 1가구 1계좌에 한하며 20세 미만인 단독가구주는 가입할 수 없다. 저축금액은 다달이 내는 방식으로 2만~10만 원을 5000원 단위로 자유롭게 내면 된다. 가입 후 2년이 경과하고 월 납입금 연체없이 24회 이상 납입하면 1순위가 되며, 6개월간 납입하면 2순위가 된다.

한편, 기존에는 청약통장에 청약저축, 청약예금, 청약부금 3종류가 있었는데 청약저축은 2015년 9월 1일부터 신규 가입이 중단됐다. 현재는 2009년 5월 6일 출시된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할 수 있으며 2018년 7월 31일부터는 청년 우대형 청약통장도 출시됐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361.html
kolaswqetsrq 11.03 07:28
블루라이트blue light

블루라이트(blue light)

컴퓨터 모니터·스마트폰·TV 등에서 나오는 파란색 계열의 광원으로, 380∼500나노미터 사이의 파장에 존재한다.

380∼500나노미터(nm) 사이의 파장에 존재하는 파란색 계열의 빛으로, TVᆞ컴퓨터 등 스마트 기기의 디스플레이와 LED 조명기기에서 많이 방출된다. 가시광선 중에서도 가장 파장이 짧고 강한 에너지를 지닌 광원으로, 피부과에서 여드름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던 빛 파장이기도 하다.

블루라이트 유해성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는데, 그 유해성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블루라이트에 오래 노출될 경우 눈의 피로는 물론 안구건조증이 유발되며 심한 경우 눈 속의 망막이나 수정체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밤늦게 스마트폰이나 PC나 TV를 장시간 볼 경우 블루라이트로 인해 수면유도호르몬 분비가 저해돼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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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블루라이트 유해성은 블루라이트가 눈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미국 톨레도대 연구팀의 논문이 2018년 7월 영국 과학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것을 계기로 점화된 바 있다. 이에 2018년 8월 미국안과학회(American Academy of Ophthalmology)가 스마트폰의 블루라이트가 눈을 멀게 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며 톨레도대 연구를 공식적으로 반박하면서 유해성 논란으로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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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ue-light.html
kolaswqetsrq 11.03 07:28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LOL, 미국에서 개발된 온라인 대전게임

미국 라이엇 게임즈(Riot Games)에서 개발한 게임으로, 2009년 10월부터 서비스가 시작됐고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1월 정식 출시됐다. 10명이 5명씩 팀을 이루어 상대팀과 싸우는 대전게임으로, 사용자들이 직접 캐릭터를 선택해 상대방 진영을 초토화시켜야 게임이 끝난다.

라이엇 게임즈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정식 서비스로 제공하는 지역을 대상으로 공식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상위 실력을 가진 프로팀들이 참가하는 공식 프로 티어 리그인 챔피언스 코리아와 챔피언스 코리아 진출을 목표로 하는 팀들이 참가하는 공식 세미 프로 리그인 챌린저스 코리아가 열리고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league-of-legends.html
kolaswqetsrq 11.03 07:29
상속포기

상속포기

상속포기란 상속인의 지위를 포기하는 것으로, 재산과 빚 모두 물려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상속은 재산 상속만이 아니라 채무도 상속된다. 따라서 상속 재산이 하나도 없더라도 피상속인이 채무를 지고 있는 때는 상속인들이 그 채무를 상속하게 돼 이를 변제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이 경우 상속인은 상속포기나 상속한정승인을 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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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받을 재산보다 채무가 더 많을 경우 상속인은 재산과 채무를 모두 포기하는 상속포기신고를 할 수 있다. 상속포기신고는 상속 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해야 한다.
",

한편 한정승인은 상속인이 상속에 의하여 취득한 재산 한도 내에서만 피상속인의 채무와 유증(遺贈)을 변제하는 상속 또는 그와 같은 조건으로 상속을 승인하는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579.html
kolaswqetsrq 11.03 07:30
포괄임금제包括賃金制

포괄임금제(包括賃金制)

근로계약 체결 시 연장, 야간, 휴일근로 등을 미리 정하여 예정된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즉, 실제 근로시간을 따지지 않고 매월 일정액의 시간외근로수당을 지급하거나 기본임금에 제수당(諸手當,기본임금 이외에 지급되는 모든 종류의 수당)을 포함해 지급하는 임금산정방식으로 대법원 판례에 의해 인정되기 시작했다.

포괄임금제는 근로계약 체결 시 법정기준 노동시간을 초과한 연장, 야간근로 등이 예정되어 있는 경우 계산 편의를 위해 노사합의를 바탕으로 연장, 야간, 휴일수당을 미리 정해 매월 급여와 함께 지급하는 임금 산정 방식을 말한다.

본래 임금산정 방식의 원칙은 사용자가 근로자의 기본임금을 정하고 이에 연장근로수당·야간근로수당·휴일근로수당 등의 시간외근로수당을 합산하여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포괄임금제는 근로형태나 업무의 성질에 따라서 근로시간이 불규칙하거나 노동자가 재량으로 근로시간을 정할 수 있는 경우 시간외근로수당을 명확하게 확정짓기 어렵기 때문에 인정된다. 또한 계산의 편의 또는 직원의 근무 의욕 고취를 목적으로도 지급되는 경우도 있다.

포괄임금제는 근로자의 승낙 하에 기본임금에 제수당이 포함되어 지급된다는 내용이 명시된 근로계약서로 체결되어야 한다. 또한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어야 하므로 포괄임금제에 따라 지급 받은 수당액이 실제로 시간외근로를 한 수당액보다 적은 경우에는 무효라고 할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947.html
kolaswqetsrq 11.03 07:30
공소권 없음

공소권 없음

수사기관이 법원에 재판을 청구하지 않는 불기소처분의 한 유형

피의사건에 대하여 소송조건이 결여되거나 형을 면제할 사유가 있는 경우에 내리는 법원의 결정을 말한다.

1 확정판결이 있는 경우 2 사면이 있는 경우 3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 4 범죄 후 법령의 개폐로 형이 폐지된 경우 5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형이 면제된 경우 6 피의자에 대하여 재판권이 없는 경우 7 동일사건에 관하여 이미 공소가 제기된 경우 8 친고죄 및 공무원의 고발이 있어야 논하는 죄의 경우 고소 또는 고발이 무효 또는 취소된 때 9 반의사불벌죄의 경우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는 의사표시가 있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가 철회된 경우 10 피의자가 사망하거나 피의자인 범인이 존속하지 않게 된 경우 등에 있어 검사는 기소를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할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56.html
kolaswqetsrq 11.03 07:31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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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고객관계관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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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고객과 관련된 내외부 자료를 분석·통합해 고객 중심 자원을 극대화하고 이를 토대로 고객특성에 맞게 마케팅 활동을 계획·지원·평가하는 과정이다.

CRM은 최근에 등장한 데이터베이스 마케팅(DB marketing)의 일대일 마케팅(One-to-One marketing), 관계마케팅(Relationship marketing)에서 진화한 요소들을 기반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고객데이터의 세분화를 실시하여 신규고객획득, 우수고객 유지, 고객가치증진, 잠재고객 활성화, 평생고객화와 같은 사이클을 통하여 고객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유도한다.

 "
기존 마케팅이 단발적인 마케팅 전술이라면 CRM은 고객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 번 고객은 평생고객이 될수 있는 기회를 만들며, 평생고객화를 통해 고객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
",

CRM은 고객의 정보, 즉 데이터베이스를 기초로 고객을 세부적으로 분류하여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을 개발하는 경영전반에 걸친 관리체계며, 이를 정보기술이 밑받침돼 구성된다.

CRM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고객 통합 데이터베이스(DB)가 구축돼야 하고, 구축된 DB로 고객 특성(구매패턴·취향 등)을 분석하고 고객 개개인의 행동을 예측해 다양한 마케팅 채널과 연계돼야 한다.

과거 은행·증권 등 금융 오프라인 기업들이 컴퓨터응용기술로 가입자 신상명세, 거래내역 등을 데이터화해 콜센터를 구축하는 등에 많이 적용했으나 최근 회원관리가 생명인 닷컴기업들이 가입자 확보를 위해 서둘러 CRM을 도입하고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crmcustomer-relationship-management.html
kolaswqetsrq 11.03 07:32
노인돌봄서비스

노인돌봄서비스

혼자 힘으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과 독거노인에게 안전 확인, 생활교육, 서비스 연계, 가사지원, 활동지원 등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과 독거노인에게 안전 확인, 생활교육, 서비스 연계, 가사지원, 활동지원 등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독거노인에 대한 종합적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시행되고 있으며, 관련 근거는 노인복지법 제27조의 2(홀로 사는 노인에 대한 지원), 사회복지사업법 제33조의 7(보호의 방법)에서 명시돼 있다.

노인돌봄서비스는 ‘사회서비스 이용 및 이용권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시·군·구에 등록한 제공기관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노인맞춤돌봄서비스의 신청자격은 만 65세 이상 국민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또는 기초연금 수급자로 독립적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확인된 경우이다. 관련 대상자는 거주지 읍·면·동 주민센터를 방문하거나 전화·우편 등으로 신청이 가능하며, 대상자 선정은 신청 후 수행기관의 서비스 대상 선정 조사, 시·군·구 승인을 통해 이뤄진다.

한편, 기존의 노인돌봄사업은 노인돌봄기본서비스·노인돌봄종합서비스·단기 가사서비스·독거노인 사회관계활성화 등 총 6개로 중복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2020년부터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로 통합됐으며 필요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도록 개편되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227.html
kolaswqetsrq 11.03 07:33
아미시공동체Amish 共同體

아미시공동체(Amish 共同體)

현대문명과 단절한 채 자신들만의 전통을 유지하며 생활하고 있는 침례 종파 집단의 일종

17세기 말 스위스에서 시작된 침례교 종파로, 이후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주로 미국의 펜실베이니아ᆞ오하이오ᆞ인디애나 주(州) 등에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전화ᆞ자동차 등 현대문명의 이기를 사용하지 않고 교회를 중심으로 가족 단위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남성은 턱수염을 기르며, 여성은 땋아 올린 머리에 두건을 쓰고 앞치마를 두르는 것이 특징이다. 아미시 전통에 따르면 남성에게 수염은 남성성을, 여성에게 머리카락은 여성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결혼 후에는 자르지 않는다. 미국 내 아미시는 20만 명가량으로 펜실베이니아 주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amish.html
kolaswqetsrq 11.03 07:33
업사이클링up-cycling

업사이클링(up-cycling)

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그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

기존에 버려지는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디자인을 가미하는 등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업사이클링의 우리말 표현은 ‘새활용’이다. 생활 속에서 버려지거나 쓸모없어진 것을 수선해 재사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의 상위 개념으로, 기존에 버려지던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더해(upgrade) 전혀 다른 제품으로 다시 생산하는 것(recycling)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재활용 의류 등을 이용해 새로운 옷이나 가방으로 만들거나, 버려진 현수막을 재활용하여 장바구니로 만들거나, 음식물쓰레기를 지렁이 먹이로 활용하여 얻은 지렁이 배설물 비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up-cycling.html
kolaswqetsrq 11.03 07:34
아웅산 테러 사건

아웅산 테러 사건

북한이 1983년 10월 9일 당시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및 수행원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테러 사건을 말한다. 당시 아웅산 묘소에서 일어난 강력한 폭발 사건으로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후 수사 결과 해당 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이 밝혀졌고, 이에 버마 정부는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아웅산 테러 사건은 북한이 1983년 10월 9일 당시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및 수행원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테러를 말한다. 당시 전 대통령의 서남아·대양주 6개국 공식순방 첫 방문국인 버마의 아웅산 묘소에서 일어난 강력한 폭발로 인해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순직한 희생자는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서상철 동자부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이계철 주버마대사,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하동선 기획단장, 이기욱 재무차관, 강인희 농수산차관, 김용한 과기처차관, 심상우 의원, 민병석 주치의, 이재관 비서관, 이중현 동아일보 기자, 한경희 경호원, 정태진 경호원 등 모두 17명이다.

사건 발생 후 전 대통령은 나머지 일정을 중단하고 이튿날인 10월 10일 새벽 급거 귀국하였고 우리 정부는 한국정부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해 버마측과 합동 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버마 수사당국은 이 사건이 북한 김정일의 친필지령을 받은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 진모(某) 소좌, 강민철 대위, 신기철 대위 등에 의해 자행됐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건 용의자들은 미얀마 주재 북한 대사관 정무 담당 참사관 전창휘의 집에 은거한 후,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버마에 도착하기 하루 전 새벽에 아웅산 묘소로 잡입하여 지붕에 2개의 폭탄을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결과 발표 직후 버마 정부는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버마 주재 북한 대사관 요원들에 출국 명령을 내렸다. 당시 버마는 우리 정부는 물론 북한과도 수교국이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9일 양곤지구 인민법원 제8특별재판부는 테러범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렸다. 또한 이 사건으로 코스타리카·코모로·서사모아 등 3개국이 북한과의 외교를 단절하였으며, 미국·일본 등 전 세계 69개국이 대북한 규탄성명을 발표하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55.html
kolaswqetsrq 11.03 07:35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

인체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였을 때 면역 물질인 사이토카인이 과다하게 분비되어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현상을 말한다.

사이토카인 폭풍은 외부에서 침투한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 인체 내에서 면역작용이 과다하게 이뤄지면서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현상을 말한다. 즉, 면역 물질인 사이토카인의 과다 분비로 정상 세포들의 DNA가 변형되면서 2차 감염 증상이 일어나는 반응이다. 이 사이토카인 폭풍은 과거 스페인 독감 · 조류독감 등이 유행할 때 높은 사망률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한편, 사이토카인 폭풍은 면역 반응의 과잉으로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에 면역력이 높은 젊은 층에서 발생할 확률이 더 높다. 사이토카인 폭풍은 신체에 대규모 염증반응과 다발성 장기손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단기간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2015년 국내에서 메르스(MERS) 감염자가 확산될 때 기저질환이 없는 젊은 연령대에서 상태 악화를 보이는 환자들이 나타나자, 의료계에서는 이 현상의 원인으로 사이토카인 폭풍을 거론하기도 했다. 또 2019~2020년 전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중국 의료진이 2020년 2월 말 코로나19 초기 확진자를 조사한 논문을 통해 사이토카인 폭풍을 주요 사인(死因)으로 지목한 바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cytokine-storm.html
kolaswqetsrq 11.03 07:36
손정의孫正義

손정의(孫正義)

일본 최대 소프트웨어 유통회사이자 IT투자기업인 소프트뱅크사를 설립하면서 세계적인 IT재벌로 부상한 인물이다.

1957년 8월 11일 일본 남단 규슈의 사가현 도수(島栖)시, 당시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무허가 판자촌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손종경은 1914년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가 광산노동자로 일했고, 일본에서는 식민지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냉대를 받으면서 돼지와 닭을 키우며 생활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아버지 손삼헌은 생선 행상 등으로 간신히 생계를 꾸려나가다가 파칭코와 부동산 사업으로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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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는 어린 시절 조센진이라며 차별과 멸시를 받았으나, 아버지의 지원으로 후쿠오카 지역 명문고에 들어갔다. 그러다 고교 1학년 때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 영어연수를 다녀온 후 자퇴서를 내고 197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검정고시를 통해 고교 과정을 마치고 1975년 홀리네임즈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이때부터 어린 시절 한국인이라는 차별을 견디다 못해 창씨하였던 야스모토 마스요시라는 이름을 버리고 자신의 성인 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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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UC버클리대 분교 경제학부로 편입했으며, 1년에 250여 건의 발명을 해내기도 했다. 특히 일본어를 입력하면 영어로 번역해 주는 번역 장치를 개발해 10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팔기도 하였다. 1980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유니손 월드를 설립했으나, 귀국하겠다는 부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본행을 택했다.

한편, 그는 1989년까지 한국 국적이었지만 1990년부터 일본 국적으로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3/08/blog-post_681.html
kolaswqetsrq 11.14 15:12
정력에 최고인 약초와 음식

정력에 최고인 약초와 음식

•마늘 : 정력, 음욕이 동하는 강장제

•양파 : 부교감 신경을 활발하게 하여 성생활에 도움

•당근 : 스태미나 증강에 효과 있는 비타민C함유

•은행 : 생식 기능과 신장질환에 효험

•셀러리 : 권태감과 부부 사랑을 더해주는 야채

•부추 : 수컷 정자 생성을 높이는 정력제

•땅콩 : 신경쇠약과 비만 예방에 좋은 과실

•호두 : 신경쇠약과 비만 예방에 좋은 과실

•들깨 : 몸을 따뜻하게 골수를 채우는 정력 보강제

•토마토 :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성 방광염 효험

•잣 : 스트레스 및 소화장애에 도움

•참깨 : 오장을 부드럽게 하는 정력 강장제

•산딸기 : 조루증과 발기부전에 효과

•열무 : 체력이 허한 사람, 고혈압, 저혈압에 최고의 보양제

•포도 : 피로를 회복시키는 강장제

•감자 : 밥보다 칼륨이 16배 많아 고혈압 예방.산삼나라밴드

•아스파라거스 : 미네랄이 풍부한 정력 강장 식품

•꿀 : 피로회복과 정력증강을 위한 종합영양제

•홍삼 : 발기부전 치료 및 성 행위 감소 방지 효과

•머위 : 천식, 기침 편도선염과 정력 증강에 효과

•옥수수 : 양기를 강화하는 단백질

•구기자 : 정기와 정액, 정수와 골수를 보강하는 보기제

•음양곽 : 혈압 강하 작용, 신경쇠약, 월경장애에 효험

•사상자 : 성기 위축, 가려움증을 치료하는 에로틱한 미향제

•파극 : 몽정과 음경위축으로 인한 발기부전에 효과

•오미자 : 성 신경, 정력 감퇴를 항진시키는 보기제.산삼나라밴드

•둥굴레 : 뇌졸중, 심장병 심력 증강에 효과

•토사자 : 유정, 조루, 시린 무릎에 효과

•산약 : 허약, 당뇨, 피부와 털을 윤택하게 하는 강장식품

•황기 : 생리불순, 출산 전후의 산모에게 좋은 보혈제

•산수유 : 불면증, 저혈압, 당뇨에 좋은 약재

•당귀 : 생리불순, 월경통, 월경과다, 무기력에 좋은 약재

•바나나 : 당질이 풍부하고 소화가 잘되게 하는 정력 보강제

•복숭아 : 피부 미용과 담배의 니코틴 제거 효능

•파고지 : 요통, 발기에 효과

•두총 : 동맥경화, 성기능 감퇴 증강

•하수오 : 정력과 머리칼을 검게 하는 약재

•연 : 허약체질 여성의 불순한 월경에 효과

•산삼 : 정력 왕성, 갱년기 장애 해소

•생굴 : 체력증강 및 정력 증강에 효과

•새우 : 성력을 키우는 강장식품

•뱀장어 : 비타민A가 함유되어 정력증강에 효과.산삼나라밴드

•미꾸라지 : 비타민A가 풍부하며 골다공증, 정력에 효과

•자라 : 빈혈과 성욕 감퇴를 개선하는 기혈제

•해삼 : 혈을 생성시키고 진액을 윤활하게 하는 바다의 인삼

•정어리와 고등어 : 시력저하, 외경색, 치매예방에 효과

•전복 : 소모된 체력을 회복시키는 음식

•메추리 : 정력증강에 효과

•잉어 : 심장 근육의 활력을 증강시키는 영양식

•녹용 : 근육과 뼈를 튼튼, 정력 증강에 효과

•도마뱀 : 정력과 폐 기능을 튼튼하게 하는 보양강장제

•달팽이 : 신장질환에 효험 있는 정력 증강제

•녹신 : 음경 발기강화, 발기부전에 효험이 있는 정력제

•진주 : 정력 부족, 당뇨, 신경성 발기부전에 효과

•아로마테라피오일 : 불안장애, 불감증, 발기부전에 효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939.html
kolaswqetsrq 11.14 15:13
○ 와인과 양파

○ 와인과 양파

삼성병원 암센터 담당교수가 보내준 내용입니다. 시간되실 때 읽어 보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건강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냥 시험 한번 해보세요... 그 엄청난 효과에 놀라게 된답니다....

(1) 양파를 4등분, 와인에 자박하게 잠기게 한다.

(2) 2~3일 상온에서 두고 숙성한다.

(3) 양파를 건져내고 와인을 냉장보관 한다.

(4) 소주 잔에 하루에 2~3 번정도 마신다.

와인 한병에 중간 크기의 양파 4~5개 정도가 알맞습니다.

효과

1. 당뇨병의 혈당치와 혈압도 정상화 된다.

2. 얼굴 화끈거림, 갱년기, 수족냉증, 고혈압이 정상

3. 무릎통증 해소

4. 관절완치, 몸무게 10kg 감량.

5. 이명증 개선, 침침한 눈이 밝아짐, 비문증(눈에서 모기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증상)이 해소.

6. 변비, 소변통, 두통, 백발주름살 감소.

7. 성기능 회복 및 증강.

이 같이 거짓말 같은 사실을 일본의 건강 잡지 장쾌(壯快)가 명예를 걸고 수십 페이지의 체험과 사례를 소개했다.

복용 후 갱년기, 생리 다시 시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352.html
kolaswqetsrq 11.14 15:14
귀에서 자꾸 소리가 나는 이유

귀에서 자꾸 소리가 나는 이유

주변은 조용한데 귀에서 난데없이 소리가 날 때가 있다. 이처럼 귀에서 소리가 들리는 현상을 ‘이명’이라고 하는데, 이명이 발생하는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이명은 간헐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을 정도의 이명만 경험한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명이 크게 거슬릴 정도로 빈도가 잦고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이처럼 불편을 끼칠 정도의 이명이 발생하는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

1. 쨍쨍한 이어폰 볼륨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 중 유독 볼륨을 크게 키워 듣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출퇴근 버스나 지하철 안에 있을 때 혹은 야외에서 운동할 때 외부 소음으로 볼륨이 커진다. 이러한 큰 소리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소음에서 기인한 청력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대체로 이러한 청력 손실은 일시적이며 72시간 내에 회복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시적이라 해도 청력에 문제가 발생한 만큼 이명이 올 수 있다. 이명은 난청이 있는 사람들에게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나 드릴 소리처럼 공사 현장에서 나는 소음도 청력 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 만약 이런 소음에 노출되는 공간에 있다면 소음 차단 효과가 좋은 귀마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2. 가득 쌓인 귀지

귀지를 일부러 팔 필요는 없다. 귀지는 외부 이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항균 작용을 하는 성분을 통해 오히려 귀 건강을 지키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귀가 잘 안 들린다거나 이명이 들린다면 귀지가 너무 쌓인 건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다. 집에서 귀지를 제거할 때는 귀이개를 위생적으로 다뤄야 하며 습관적으로 자주 파서는 안 된다. 또한, 가급적이면 이비인후과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귀지를 제거하는 편이 좋다.

3. 중이염이나 축농증

귓속에 염증이 생긴 중이염이나 콧속에 염증이 생기는 축농증이 있어도 이명이 나타날 수 있다. 중이염이나 축농증 등이 이명 발생 원인으로 추정된다면 병원 진료를 통해 항생제 처방을 받아 증상 완화와 이명 증상 개선을 시도해 볼 수 있다.

4. 특정 약물 복용

그런데 항생제가 오히려 이명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항생제, 항염증제, 이뇨제 등 일부 약물의 부작용으로 이명이 나타나기도 한다. 퀴닌 성분의 약들도 이명을 발생시킬 수 있다. 특정 약물을 복용 중인 상태에서 이명이 나타날 땐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약의 종류를 바꿔보도록 한다.

5. 두부 손상

지나가다가 머리를 벽에 박은 이후 이명이 나타난다는 사람들도 있다. 머리에 손상을 입으면 고막 뒷부분에 피가 나고 이것이 이명을 일으킬 수 있다. 보통 6주 정도의 회복 기간을 거쳐 청력이 회복되면서 이명도 사라진다. 넘어져 뇌진탕을 입었을 때도 청력 손실, 어지러움증 등과 함께 이명이 나타날 수 있다.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회복되지만 며칠이 지나도 청력이 회복되지 않고 이명이 계속된다면 병원 검사가 필요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331.html
kolaswqetsrq 11.14 15:15
더운 계절, 면역력 높이는 식품

더운 계절, 면역력 높이는 식품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도 감기나 대상포진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름 감기는 에어컨 등을 장시간 사용하면서 실내외 온도차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져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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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면역력이 떨어지면 쉽게 찾아오는 질환인 대상포진도 여름에 많이 발생하는 까닭은 더위에 지쳐 면역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추울 때뿐만 아니라 더운 시기에도 병원균에 저항하는 힘인 면역력 강화가 필요한 이유다. 이와 관련해 하퍼스바자닷컴이 소개한 여름철 면역력을 높이는 식품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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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늘

최고의 천연 면역력 증강제로 꼽힌다. 마늘에는 셀레늄과 마그네슘, 비타민B6, 항염증 성분들이 들어있다. 이런 성분들은 세균을 격퇴하고 심장을 보호하는 효능이 있다.

2. 참다랑어, 연어 등 오메가-3 풍부 생선

참다랑어, 연어, 고등어, 멸치 등의 생선에는 오메가-3 지방산과 비타민D가 풍부하게 들어있다. 오메가-3 지방산은 백혈구의 기능을 향상시킴으로써 면역체계를 강화시키는 효능이 있다. 또 비타민D는 면역체계를 도와 유해 세균과 바이러스를 죽이는 효능이 있다.

3. 녹색 잎채소

시금치, 케일, 파슬리, 셀러리 등의 녹색 잎채소에는 엽록소가 풍부하다. 이 성분은 소화관 작용을 촉진하고 해로운 환경 독소를 제거하며, 간 기능을 돕는 효능이 있다.

4. 고구마

베타-카로틴과 비타민A가 많이 들어있어 면역체계를 강화시키는 효능이 있다. 또한 몸속의 미생물을 배출시켜 기도(숨길)와 소화관, 피부의 점막 표면이 건강하게 유지되는 데 도움이 된다.

5. 생강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파괴하는 면역세포인 T-세포의 활동을 촉진시키는 효능이 있다. 생강은 점액의 생산을 억제해 점액에 의해 콧구멍 등이 막히는 현상을 없앤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381.html
kolaswqetsrq 11.14 15:16
화장실에서 절대 하면 안되는 습관

화장실에서 절대 하면 안되는 습관

❶ 변기 뚜껑 열고 물 내리기

배변 후 물을 내릴 때 미세한 물방울이 튀면서 그 안에 있던 세균이 온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이는 변기와 가까운 수건이나 칫솔 등의 물건이 세균이 노출되도록 하는 위험한 습관이다. 실제 한 실험에 따르면 뚜껑을 닫지 않고 변기물을 내렸을 때 물이 사람 눈높이에 위치한 곳에 튀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변기 뚜껑을 닫아 놓는 것이 싫다고 해도, 물을 내릴 때만이라도 닫고 내리자.

❷ 배변 시 장시간 스마트폰 보기

화장실에 가서 스마트폰을 가지고 가서 오랜 시간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항문 건강에 치명적인 배변 습관이다. 앉자 마자 변을 보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면 상복부의 압력이 항문에 부담을 주어 혈액순환을 방해한다. 이러한 습관은 치핵 또는 치질을 유발한다. 따라서 화장실은 규칙적으로 이용하되 그 시간은 5분 이하로 하는 것이 좋다.

❸ 화장실 문 손잡이 방치하기

문의 손잡이는 집에서 사람 손이 가장 많이 닿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서 여러 사람의 손에 있던 각종 세균과 이물질 등을 옮기기도 매우 쉽다. 하지만 이런 세균이 득실한 문손잡이를 주기적으로 깨끗이 닦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특히 화장실 문 손잡이는 더욱 청결히 관리할 필요가 있지만 화장실 청소를 할 때도 변기나 레버는 꼼꼼히 하면서 손잡이는 빼먹을 때가 많다. 어쩌면 변기보다 세균이 더 많을지도 모르니 앞으로는 문 손잡이도 꼼꼼히 청소하도록 하자.

❹ 샤워커튼 청소 안 하기

문 손잡이와 마찬가지로 간과하기 쉬운 것이 샤워 커튼이다. 샤워 커튼에는 우리 몸을 씻을 때 씻겨져 나온 유기물이 뒤섞인 비누 거품들이 튀어 남는다. 더욱이 접히기 쉬운 샤워 커튼이 많은데 이는 세균 번식의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따라서 곰팡이가 떠다니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싶지 않다면, 주기적으로 샤워커튼을 청소해주자. 커튼 봉에서 샤워커튼을 분리해 락스 푼 물에 푹 담가둔 뒤, 깨끗해지면 커튼 봉에 걸어 샤워기로 세척하면 된다.

❺ 환기 안 하기

적절한 환기는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고, 필요한 환기량을 확보하게 되어 몸에 이롭다. 화장실은 밀폐되어 공기순환이 어렵고 항상 습기가 차기 쉽다. 겉으로는 깨끗해 보일지 몰라도 세면대, 변기, 욕조 등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곳에 세균과 박테리아가 항상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환기의 중요성은 더욱 중요해진다. 욕실내 습기가 잔류하면 이는 곰팡이의 번식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욕실에서 악취와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환기를 간과하지 말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015.html
kolaswqetsrq 11.14 15:17
몸을 망가뜨리는 5가지 안 좋은 자세

몸을 망가뜨리는 5가지 안 좋은 자세

❶ 엎드려 자는 자세

목뼈, 등뼈, 허리뼈에 스트레스를 줘 수면 자세 중 최악의 자세로 꼽힌다. 굽혀진 허리는 척추에 비정상적인 압력을 가해 목, 허리, 어깨 통증을 유발한다.

❷ 양반다리 자세

무릎이 130도 이상 꺾여 무릎 관절에 체중의 7~8배 되는 힘이 실리게 된다. 서있을 때보다 2배 이상의 힘이 허리에 실려 자세가 구부정해진다. 이는 척추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❸ 허리 숙이는 자세

머리를 감을 때 허리를 숙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허리를 숙이는 자세는 허리 디스크를 초래할 수 있어 위험하다.

❹ 턱 괴는 자세

무심코 턱을 괴는 습관은 두통, 시력 장애, 어지럼증까지 초래할 수 있다. 이 자세를 오랜 시간 유지하면 안면 비대칭이 나타날 수 있으며 목의 통증을 유발한다.

❺ 발목 꼬는 자세

발목을 꼬면 골반이 틀어져 척추도 틀어진다. 무릎이 엉덩이 높이보다 낮은 경우 자세가 불편해 발목을 꼬는 경우가 많다. 이때 발밑에 받침대를 놓아 무릎을 엉덩이 높이보다 높여주면 발목을 꼬는 자세를 방지할 수 있다

건강해 지는날까지 파~~이팅 하세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_56.html
kolaswqetsrq 11.14 15:18
태화강변에 꽃 축제가 한창이네요! 근데 꽃이름을 안붙여놨네요,! 무슨 꽃인가요?

태화강변에 꽃 축제가 한창이네요! 근데 꽃이름을 안붙여놨네요,! 무슨 꽃인가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856.html
kolaswqetsrq 11.14 15:19
○ 우려낸 ‘녹차물’, 이렇게 활용한다

○ 우려낸 ‘녹차물’, 이렇게 활용한다

녹차가 몸에 좋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녹차에는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 등 항산화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 노화방지에도 좋을 뿐 아니라 콜레스테롤과 혈당을 낮추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녹차에는 비타민C가 레몬의 5~8배 들어 있어 피부미용에도 좋다. 항암 효과에 대한 여러 연구결과도 이어지고 있다.

몸에 좋은 녹차지만 차를 잘 마시지 않는 이들이라면 녹차와 가깝게 지낼수 없다. 방법은 있다.

바로 ‘녹차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녹차물은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으며, 피부미용이나 냄새 제거에도 효과적이다. 녹차물을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몇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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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녹차물로 밥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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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지을 때 녹차물을 사용하면 항산화 성분이 크게 증가한다. 조금만 더 신경써서 녹차물을 미리 우려놓는다면 몸에 좋은 녹차 건강밥이 완성된다.

최근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밥을 지을 때 녹차 분말 3g을 푼 녹차물을 넣으면 항산화 성분이 크게 증가했다. 정제수로 지은 밥(2.1mg/100g)과 비교해 녹차물로 지은 밥의 폴리페놀 함량(85.1mg/100g)은 40배로 많았다. 플라보노이드 함량 역시 정제수로 한 밥에서는 0.13mg/100g에 불과했지만 녹차물에서는 32.9mg/100g로 높게 나타났다. 식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녹차물밥은 녹차를 우려낸 물에 소금으로 간을해 조금 질게 밥을 지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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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죽에 넣기

녹차물은 죽에 넣어도 별미가 된다. 쌀알이 풀어지기 시작할 때 녹차 3큰술 정도를 넣고 끓이면 녹차 특유의 고운 빛깔이 돌고, 향기도 그윽해진다.

3. 세안

녹차물 세안은 미백과 피부 진정, 부기에 효과가 있다. 1.5L짜리 생수에 녹차 티백을 두 개 넣어 충분히 우려낸 뒤 냉장고에 넣어 놓는다. 아침저녁으로 녹차물로 세안하면 피부미용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

4. 악취제거

녹차는 항균효과가 있어 악취제거에 좋다. 녹차물로 족욕을 하면 발 냄새를 완화나는데 도움이 된다. 주방용기의 악취제거나 살균에 사용해도 좋다. 컵에 녹차물을 담고 전자렌지에 1~2분간 가열하면 냄새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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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두피 진정

녹차는 예민한 두피를 진정하는데도 좋은 식품이다. 샴푸 후 마지막 헹굼을 찬 녹차물로 사용하면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322.html
kolaswqetsrq 11.14 15:20
○ 손톱이 쉽게 깨지는 이유, 건강 이상 징후다?

○ 손톱이 쉽게 깨지는 이유, 건강 이상 징후다?

부딪히거나 충격이 가해지면 쉽게 잘 깨지는 손톱, 그러나 큰 부딪힘이 없이도 유난히 손톱이 잘 깨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툭하면 깨져버리는 손톱 때문에 예쁘게 해놓은 네일도 금방 망가져 버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껍니다. 그러나, 손톱을 단순히 미용 목적으로 꾸미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쉽게 갈라지고 깨지는 것을 그냥 넘겨서는 안됩니다.

건강의 이상 징후를 나타내는 증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톱이 쉽게 깨지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먼저,

 "
▶ 첫번째로 단백질 부족으로 손톱이 깨질 수 있습니다. 손톱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어 단백질이 부족하면 손톱이 깨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해지고 갈라질 수 있습니다.
",

평소 손,발톱이 약하다면 단백질이 풍부한 견과류와 닭고기, 콩, 두부, 우유 등을 자주 챙겨먹어야 합니다. 또한 다이어트로 인해 단백질이 부족해져 손톱이 잘 깨질 수 있으니 적당한 영양소 섭취를 신경써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 두번째 이유는 비타민 부족 입니다.
",

손톱은 단백질도 중요하지만 비타민 역시 손톱을 이루는 중요한 영양소 입니다. 특히, 손톱이 쉽게 깨진다면 비타민A가 부족한 것이고, 손톱이 갈라지는 증상이 계속되는 것은 비타민B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타민A,B가 다량 함유된 과일이나 채소 등을 꾸준히 챙겨 먹는 것이 좋습니다.

▶ 손톱이 쉽게 깨지는 이유 세번째는

 "
스트레스와 피로누적 으로도 쉽게 깨질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거나 누적된 피로를 해소하지 못하면 손톱이 쉽게 깨질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가벼운 운동을 주기적으로 해주고 적당한 휴식을 취해주면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이고 손톱건강에도 좋습니다.
",

▶ 손톱이 쉽게 깨지는 이유 네번째로

 "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갑상선 관련 질병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많이 발생하는 질병으로, 갑상선 호르몬에 문제가 생겨 신진대사가 지나치게 활발해지면서 갑상선이 제기능을 하지 못해 손,발톱까지 제대로 호르몬이 다다르지 못하게 되면서 손톱이 깨질 수 있는 것입니다.
",
 "
▶ 간에 열이 많은 것 또한 손톱이 깨지는 다섯번째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

간에 문제가 생길 경우 그 상태가 손톱으로 표출이 되기 때문에 따라서, 간에 열이 많을수록 손톱이 약해지고 잘 깨질 수 있음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428.html
kolaswqetsrq 11.14 15:21
스킨십이 주는 놀라운 건강 효과

스킨십이 주는 놀라운 건강 효과

 "
내 손을 잡아, 손 잡아줘요, 라는 가사가 있듯이 연인 사이에서도 가장 설레던 기억이 용기내 처음으로 잡았던 손 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손을잡는 등의 스킨십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볼 수 있는데, 스킨십이 단순 애정표현의 방법 뿐만 아니라 동시에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스킨십을 함으로서 나타는 건강 효과는 무엇일까요?
",

❶ 스트레스 해소

 "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스티솔 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누군가와 손을 잡을 때 코르티솔이 감소해 스트레스 해소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결과로 스트레스가 야기하는 불안과 초조, 만성두통, 불명증 등을 개선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결관의 과도한 수축을 막아 심장과, 심혈관계, 뇌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

❷ 신뢰감 상승

손을 잡는 등의 스킨십은 옥시토신을 증가시키는데 옥시토신은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며 뇌에 많이 분비될 경우에 상대방을 향한 애정과 신뢰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연인과 손을 잡았을 때 안정감을 느끼고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상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연인 외에도 아이에게 칭찬을 해줄 때 스킨십을 함께 하면 안정감과 부모의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❸ 심리적 안정감

갑자기 무언가에 놀랄 때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손을 잡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갑자기 빨라진 심장 박동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반사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킨십을 할 때 스트레스 호르몬이 감소하듯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 또한 있기 때문입니다.

❹ 통증완화

보통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될 때 누군가의 손을 잡게 되는데 이는 안도감과 유대감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통증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출산 직전의 임산부가 곁에 있는 물건을 붙잡거나 남편의 손을 잡는 것도 통증을 없애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011.html
kolaswqetsrq 11.14 15:22
튼튼한 위장 유지 비결 10가지

튼튼한 위장 유지 비결 10가지

1. 아침식하는 꼭 챙겨야...

아침식사를 거르면 위액의 분비로 인해 위점막을 자극하게 되어 위를 상하게 됩니다.

아침을 거르는 것이 습관화되면 위궤양을 일으키기 쉬우므로 아침식사는 반드시 하는 것이 좋습니다.

2. 조금 더 먹고 싶을 때 수저를 놓아야...

포식, 과식하는 것보다 위속에 조금 공간을 남겨두면 음식물과 위액이 골고루 섞여 소화작용이 잘됩니다.

3. 야식은 조금만, 야식 후 잠은 2시간 뒤에...

밤참이나 밤늦게 식사를 하고 자면 무엇보다도 위에 큰 부담을 주게 됩니다. 위장에도 밤에는 위산분비를 줄이기 때문에 이것이 반복되면 위염이 걸리기 쉽습니다. 부득이 늦은 밤에 식사를 하게 될 때는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조금만 먹고 식사후 적어도 2시간 후에 잠자리에 듭니다.

4. 자극적인 음식은 피해야...

너무 차거나 뜨거운 음식, 매운 음식, 겨자/후추/생마늘 등 위에 자극을 주는 음식을 많이 먹으면 급성귀염이나 궤양/위암을 촉진하게 됩니다. 적당한 정도는 몸에 좋으나 지나치면 좋지 않습니다. 특히 봄, 가을에는 위액 분비가 왕성해지므로 이 음식들을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5. 공복의 커피, 탄산음료는 금물...

커피나 탄산음료는 위액을 증가시키므로 빈속에는 먹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금해야 합니다.

6. 규칙적인 생활, 충분한 수면...

위장이 원활하게 운동하고 제 기능을 다 발휘할 수 있도록 하려면 여유 있는 휴식과 충분한 수면,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7. 술은 기름진 안주와 함께...

적당한 알콜은 혈액순환과 식욕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음은 위점막을 자극하여 급성위염을 일으키기 쉽고 간장에 부담을 주게 됩니다. 때문에 빈 속의 과음은 피하고 술을 마실때는 기름진 안주로 위점막을 감싸주는 것이 좋습니다.

8. 지나친 흡연은 위에 부담...

니코틴은 타액(침)에 녹으므로 담배를 피우면 타액과 함께 흘러 들어가 위점막을 자극합니다.

특히 빈속의 흡연은 아주 해로우므로 삼가해야 합니다.

9. 적당한 운동으로 위장기능 활성화를...

일상생활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운동, 즉 걷기나 계단 이용하기 등 몸을 자주 움직여 위장기능 활성화를 돕습니다.

10. 취미활동으로 스트레스 해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위산분비가 촉진되어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위장 건강을 위해서는 쌓인 스트레스를 제때에 풀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폭 넓은 취미생활을 통해 푸는게 바람직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64.html
kolaswqetsrq 11.14 15:24
망가진 폐 살리는 기적의 천연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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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폐 살리는 기적의 천연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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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리향

백리향의 항생제 성분은 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줄여주며, 백리향 잎사귀와 에센스 오일은 가슴 속 담을 완화해주는 천연 치료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2. 감초뿌리

감초 뿌리는 진정, 항염, 충혈 완화 효능이 있어 디톡스 효과가 있으며 기도의 막힘을 완화해줍니다.

3. 마늘

마늘의 높은 황 계열 성분은 항산화, 항염효과가 뛰어나 폐 건강을 보호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4. 자몽

자몽에 함유된 활성 성분은 종양 예방에 꼭 필요한 세포의 악성화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어 꾸준히 섭취시 폐 질환 뿐 아니라 여러 암발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5. 당근

당근에는 비타민 A, C, E, K 가 풍부해 상피세포 및 조직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주며, 니코틴과 같이 해로운 성분을 중화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6. 생강뿌리

생강 뿌리의 항염 및 항생 성분은 혈관을 팽창시키고 과도한 점액을 제거해주는 효과가 있어 폐 건강에 도움을 줍니다.

7. 알로에 주스

천연 알로에 주스는 폐를 깨끗하게 만드는 활성 성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강력한 정화효능을 갖고 있습니다. TIP 알로에 주스에 레몬즙이나 꿀을 넣어 드시면 더욱 좋습니다.

8. 오레가노

로즈마리닉산, 카르바크롤 농도가 높은 오레가노를 섭취하거나 아로마테라피로 사용하면 독소 제거에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9. 민트

민트에는 염증을 줄여주는 활성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흡연자의 폐를 정화하는데 효과적입니다.

10. 유칼립투스

유칼립투스는 오랜 기간 간으로 인해 유발된 염증과 발진 진정에 사용되었던 치료제로 흡연자에게 좋은 효과가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029.html
kolaswqetsrq 11.14 15:25
아침 ‘공복’에 먹으면 보약보다 좋은 음식

아침 ‘공복’에 먹으면 보약보다 좋은 음식

이른 아침이나 늦은 새벽 밀려오는 공복의 배고픔은 참기가 매우 힘듭니다. 이렇게 텅텅 빈 배가 신호를 보낼 때엔 뭘 먹어야 할지 고민이 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영양이 풍부하고 소화가 잘되는, 공복에 먹으면 보약이 되는 14가지 음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당근

섬유질과 베타카로틴, 각종 비타민이 풍부한 당근은 공복 섭취시 혈압을 조절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2. 블루베리

블루베리는 황산화 물질이 풍부한 과일로 기억력을 높여주고 혈압과 신진대사를 조절해주는 효과가 있는데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블루베리는 아침 공복상태에서 먹었을 때 이런 효과가 배가 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3. 요구르트

유산균이 풍부한 요구르트는 우유와 같은 유제품이지만 공복에 섭취해도 좋은 식품입니다. 특히 흡연이나 음주를 평소하는 분들의 경우 이런 유해 물질로부터 위 내벽을 보호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4. 밀 배아 가루

밀 배아 가루는 밀의 눈 부분과 속 껍질을 가공해 만드는 것으로 공복에 먹으면 소화기관을 부드럽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외에도 비타민E와 엽산, 무기질, 효소등이 풍부해 변비에도 효과적입니다.

5. 곡물 빵

효모가 들어가지 않은 곡물 빵에는 탄수화물등 우리 목에 꼭 필요한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이런 곡물 빵은 이른 아침 먹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6. 견과류

아침 공복에 견과류를 먹으면 소화 기능을 향상시켜주고 위의 pH 밸런스를 맞춰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7. 양배추

양배추는 위장 점막 강화에 큰 도움을 줘 위염, 위궤양, 장염, 대장질환 환자들에게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타민과 식이섬유가 풍부할 뿐 아니라 섬유질도 많아 고복감을 빠르게 해소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TIP 즙으로 갈아 마시거나 다른 과일, 야채들과 함께 먹으면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습니다.

8. 메밀

단백질, 철 비타민이 풍부한 메밀에는 소화기관을 부드럽게 깨워주는 성분이 들어 있어 공복에 먹으면 위 건강에 좋으며, 특히 소화 기관이 약한 사람의 경우 공복에 메밀가루를 다른 음식과 섞어 먹으면 속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9. 꿀

피로회복에 좋은 꿀을 이른 아침 공복 섭취할 경우 잠을 깨는데에도 도움을 주며 활력을 가져다줍니다.

10. 물

공복에 물 한잔을 섭취할 경우 노폐물 배출을 도와줄 뿐 아니라 수면 중 발출된 수분을 보충해주고 장운동을 촉진시켜줍니다.

11. 감자

감자의 녹말 성분은 위 보호에 탁월한 효능이 있기 때문에 공복에 감자 생즙을 섭취하면 위궤양 예방 및 치료에 효과적입니다.

12. 수박

수박은 훌륭한 수분 보충 원일뿐 아니라 강력한 항상화 작용을 하는 리코펜 성분이 많아 눈 건강과 심혈관질환 예방에 좋습니다.

13. 계란

계란은 대표적인 고단백 저칼로리 식품으로 아침 공복에 먹으면 하루간의 칼로리 섭취양을 줄여 줘 다이어트에 효과적입니다.

14. 오트밀

오트밀을 공복에 섭취하면 위에 보호막을 형성해 산 성분으로부터 위장 내벽을 보호해주며, 수용성 섬유질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297.html
kolaswqetsrq 11.14 15:26
당신 몸에 쌓인 나트륨 제거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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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몸에 쌓인 나트륨 제거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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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음식을 짜게 먹으면 당뇨나 고혈압, 뇌, 심장질환 등에 취약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어도 이미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기는 쉽지 않는데요. 이번시간에는 우리몸에 쌓인 나트륨 배출을 돕는 7가지 식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❶ 브로콜리

브로콜리는 나트륨 배출에 효과적인 식품으로 꾸준히 섭취하면 심장과 동맥의 혈압을 떨어뜨리고 산화 스트레스가 감소되는 효능도 같이 볼 수 있습니다.

❷ 배

배는 고혈압을 유발하는 체내 잔류 나트률을 배출, 혈압을 조절하는 작용이 뛰어난 음식이며, 수용성 식이섬유인 펙틴이 풍부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데 도움을 줍니다.

❸ 검은콩

검은콩에는 혈관 확장을 돕는 칼륨이 100g당 1,240mg으로 다량 함유되어 있어 나트륨 배출 및 혈액 정화, 해독 작용에 좋은 효능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항산화제, 마그네슘, 엽산, 식이섬유가 풍부해 콜레스테롤과 ᄒᄅ당을 낮추는데 좋은 효과가 있습니다.

❹ 양파

칼륨이 풍부한 대표적 음식 양파에는 퀘르사틴 성분이 풍부해 나트륨을 배출하고 혈전과 콜레스테롤을 분해하며 혈관을 깨끗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❺ 바나나

바나나 1개에는 사과의 4배에 달하는 500mg의 칼륨과 식이섬유, 단백질이 풍부해 나트륨 배출에 좋습니다.

❻ 감자

감자의 갈륨 함유량은 밥의 16배로 나트륨 배출을 촉진하고 혈압을 낮춰주는 효능이 있어 혈압과 동맥경화 환자들에게 특히 좋은 효능이 있습니다.

❼ 키위

키위에는 100g 당 200mg의 칼륨이 함유되어 있어 매일 3개씩 섭취할 경우 혈압을 낮추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835.html
kolaswqetsrq 11.14 15:27
○ 장수를 위한 10가지 좋은 습관

○ 장수를 위한 10가지 좋은 습관

진리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멀리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려운 것은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나약함과 습관의 문제일 뿐입니다. 장수의 비결은 바로 습관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묵은 습관을 떨치고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장수와 건강의 비결입니다.

1. 배고플 때만 먹는다.

야생 동물은 배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습니다. 배고프지 않다는 것은 먹은 음식의 소화 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 음식을 먹으면 그 전에 먹은 음식과 새 음식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효가 일어납니다. 그 과정은 독소를 유발시킵니다.

2. 매일 날야채와 과일. 요구르트를 먹는다.

날야채와 과일에는 변비를 막고, 노폐물과 독소를 내보내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섬유질,두뇌에 영양이 되고 호르몬 분비를 원할하게 하는 엽록소, 그리고 생명의 기운, 프라나(氣)가 가득 들어있습니다.

3. 육체적인 일이나 운동을 매일 충분히 한다.

충분할 정도라는 것은 땀을 흘릴 수 있는 정도를 말합니다. 땀을 흠뻑 흘리며 일하면 온몸에 신선한 공기가 가득 차고 내부 기관들이 활성화됩니다.

4. 규칙적으로 단식을 한다.

한 달에 두 번 단식을 해서 몸의 독소를 내보내고 소화 기관을 쉬게 합니다.

5. 몸과 마음. 영혼을 고양시키는 수행을 한다.

꾸준하고 규칙적인 수행으로 몸과 마음, 영혼을 정갈하고 고양된 상태로 유지합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자기 종교의 가르침에 충실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6. 물을 충분히 마신다.

정상적인 신체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3리터 이상의 물을 마셔야 합니다. 조금씩 자주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7. 매일 충분한 양의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는 것은 우주의 기운, 생명 에너지를 받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얕은 호흡이 아니라 허파를 완전히 비우고 가득 채우는 완전호흡을 익히는 것도 필요합니다.

8. 이완과 휴식을 충분히 한다

사람의 활동은 일과 휴식의 일정한 리듬을 필요로 합니다. 단식, 수면 등은 각기 다른 활동이지만 모두 이완과 휴식을 위한 것입니다.

9.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한다.

매일의 봉사는 마음에 있는 이기심을 그때그때 사라지게 합니다. 봉사는 마음에 쌓인 독을 풀어내는 것입니다.

10. 좋은 도반(道伴)들과 만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공부하고 공동의 복지를 위해 토론하고 노력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를 아름답게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95.html
kolaswqetsrq 11.14 15:29
○ 뇌를 좋게 하는 5가지 습관

○ 뇌를 좋게 하는 5가지 습관

뇌는 계속 진화합니다. 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계속 수정되고, 개조되며, 향상되거나, 쇠퇴하게 됩니다. 결국 두뇌를 사용하지 않고 놔두면 뛰어난 기능을 써보지도 못하고 상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두뇌를 좋게 만드는 방법 5가지를 소개합니다.

1. 생선 자주 먹기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생선을 먹는 게 좋다. 채식주의자라면 생선 기름 보충제를 섭취하면 됩니다. 스웨덴에서 나온 연구에 따르면, 생선을 자주 먹는 사람은 언어나 공간 시각에 대한 지능이 10%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생선에 들어있는 좋은 기름이 뇌로 가는 혈류량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운동

나이가 들어가면서 뇌세포의 생성이 느려지며 뇌 조직은 그 크기가 점점 줄어든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면 이러한 노화 현상을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규칙적으로 운동하면 뇌로 가는 혈액량을 증가시켜 산소 공급을 늘림으로써 뇌 조직이 크게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 명상

현대인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케줄 속에 쫓기 듯 살아간다. 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여러 가지 생각과 걱정들은 사고력과 다른 뇌기능에 영향을 줍니다. 명상은 정신에 활력을 되찾게 하고 인지 기능을 향상하는 오래된 방법 중 하나죠. 조용하면서도 집중하는 호흡법 등을 통해 명상을 함으로써 여러 가지 활동과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명상을 꾸준히 하면 마음을 깊은 평정 상태로 유지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집중력과 기억력 등 두뇌 기능을 향상할 수 있습니다.

4. 염증 퇴치

몸에 염증이 생기면 독소와 감염, 유해 산소 등도 따라서 발생한다. 연구에 따르면, 어떤 종류의 염증이든 정신 작용에 부정적 영향을 줌으로써 지능 수준을 낮추는 것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에 든 오메가-3 지방산과 항산화제는 염증을 퇴치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5. 스트레스 해소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받으면 장기 기억력 등에 관여하는 뇌의 해마 부위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정신을 항상 선명하게 유지시키려면 스트레스에 의해 생기는 노화를 퇴치해야 합니다. 스트레스와 관련한 노화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일상생활 중에 스트레스 ‘교란 물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하루에 한 번씩은 5분 정도의 휴식 시간을 갖고 이때에는 절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해보세요. 휴식도 좋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할 때는 스트레스 분명히 풀립니다.

※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느낍니다. 머리가 복잡하고 방금 생각한 것도 생각도 안 나고 이런 것들을 방지하기 위해선 뇌를 살려야 합니다. 죽어가는 뇌에 인공호흡해서 살려야 합니다. 생선 자주 먹기, 땀 흠뻑 내며 운동하기, 잠시 눈감고 명상, 오메가-3 섭취, 스트레스 해소 많이 중요합니다. 100세 인생 뇌는 살아 있어야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_36.html
kolaswqetsrq 11.14 15:30
○ 통풍에 좋은 약초

○ 통풍에 좋은 약초

통풍이란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진 질병으로 몸 속에 요산이 쌓여 발병되게 됩니다.

통풍은 그 이름 값을 하는 질병으로 한 번 발병하게 되면 큰 고통을 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풍 진단을 받거나 몸 속 요산 수치에 이상이 생겼을 때는 즉각 관리를 해주셔야 합니다.

통풍을 관리하는데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오늘은 그 중 하나인 통풍에 좋은 약초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약초의 경우 체질에 따라 궁합이 맞을 수도, 안 맞을 수도 있으니 약초를 섭취하시기 전에는 자신의 체질과 잘 맞는지 안 맞는지 잘 알아보고 드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1. 개다래

산에 올라가면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는 개다래는 지역에 따라 말다래, 쥐다래 등으로 불립니다. 개다래는 그 열매를 약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끓는 물에 말린 개다래를 넣어 끓여 먹습니다.

이런 개다래가 통풍에 효과를 보이는 것은 몸에 쌓여 통풍의 원인이 되는 요산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여 통풍을 예방함은 물론 통풍 치료에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2. 옥수수 수염

옥수수 수염 또한 개다래와 마찬가지로 끓는 물에 넣어 끓여 마시면 되는데, 옥수수 수염이 통풍에 좋은 이유는 이뇨 작용을 활발하게 하여 몸 속에 있는 요산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옥수수 수염은 통풍 말고도 좋은 작용을 하는데, 예를 들어 옥수수 수염을 먹게 되면 신장염, 방광염, 전립선염등 이뇨 기관의 질환들이 개선됩니다.

3. 미나리

미나리는 그 독특한 향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채소입니다. 만약 자신의 입 맛에 미나리가 잘 맞다면 통풍을 개선하는데 이보다 괜찮은 것이 없습니다.

미나리의 경우 통풍을 일으키는 퓨린 성분이 거의 들어 있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저퓨린 음식이며 여기다 알카리성이여서 몸 안에 쌓여 있던 요산을 몸 밖으로 배출해 통풍을 개선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4. 견우자

나팔꽃 씨인 견우자 또한 통풍에 좋은 약초입니다.

견우자는 볶은 것과 볶지 않은 것을 섞어 가루를 낸다음 따뜻한 물에 섞어 마시는 방법으로 섭취합니다.

견우자가 통풍에 좋은 이유는 혈액 순환을 도우면서 몸 안에 있는 요산과 독소를 배출시키는데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다만 견우자는 독성을 가지고 있어 신체가 허약하거나 몸이 찬 사람이 드시기에는 부담이 있는 약초입니다.

5. 국화꽃

향과 맛, 건강 모두 동시에 잡고 싶다면 국화꽃을 추천드립니다.

보통 국화꽃은 말린 후 차를 끓여 마시는데 불면증에 효과가 있어 밤에 잠 못드는 분들이 저녁에 드시기에 좋습니다.

이런 국화차가 통풍에 좋은 이유는 몸에 열을 내리는 작용과 몸 속의 염증을 죽여주는 소염 작용, 그리고 몸 안에 쌓인 독소를 해독하고 배출해주는 효과가 있어 통풍 개선에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6. 질경이

질경이라는 약초는 개인적으로 저평가된 약초라 생각합니다.

아마 그 이유는 보도 블럭 사이에서 볼 수 있을만큼 흔하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한데, 질경이는 보도 블럭 사이에서 자라고 살 수 있을만큼 생명력도 강하고 건강에도 좋습니다.

질경이가 통풍에 좋은 약초인 이유는 이뇨 작용을 촉진하여 몸 속에 축적된 요산을 배출시키는데 효과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도 요도염, 진해거담, 해열 작용등 다양한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7. 익모초

익모초는 엄마에게 좋은 약초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통풍을 앓고 계신 여성분들이 드시면 더더욱 좋습니다. 익모초의 경우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배를 따뜻하게 하여 부인병을 예방하고 치료합니다.

거기다 소염작용이 있어 통풍으로 인해 생긴 염증을 치료해주어 통풍을 점차점차 개선시켜 나갑니다. 익모초는 끓는 물에 넣어 약한 불로 달여서 먹습니다.

8. 백선

백선은 자라풀, 수별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식물입니다.

백선은 그 꽃이 예쁘고 얕은 물에서 자라기에 관상용으로 많이 길러지는데 일부 민간에서는 민간요법으로 통풍, 황달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민간요법을 보면 통풍이 생겼을시 백선의 뿌리를 달여 먹습니다.

건강해 지는날까지 파~~이팅 하세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916.html
kolaswqetsrq 11.14 15:31
인삼 먹느니 차라리 마늘 먹어라

인삼 먹느니 차라리 마늘 먹어라

마늘을 열심히 3개월 복용하거나 아니면 적당히 7개월 복용하거나, 그도 저도 아니고 대충 21개월 복용하기라도 한다면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 그 효과가 10년전의 몸으로 되돌아 오는것이 확연히 느껴지고 장기복용 한다면 세포노화를 수십년 늦춰주는 작용을 하여 결국 언제까지나 나이를 먹지 않는 불로장수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 우화등선(羽化登仙 : 날개가 생겨 신선에 오름) 한다고 합니다^^

모든 식품에는 각자 독특한 영양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식품이 좋다하여 그 식품만 지나치게 섭취하면 영양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으니 식단표를 작성하여 골고루 꾸준히 드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 마늘의 효능.

사람이 늙으면 각종 호르몬이 고갈되는데 우선 입안의 침샘이 말라 소화기능이 떨어지고 각종 성인병을 유발시키며 정력 감퇴 및 노화가 촉진되면서 몸의 온도가 떨어진다.

이때 마늘 섭취는 부족한 호르몬을 보충하고 재생시킬 수 있는 훌륭한 대비책이다.

마늘은 ‘일해백리(一害百利)’라 불린다. 강한 냄새를 제외하고 100가지 이로움이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장수촌의 공통점은 바로 마늘의 주산지라는 것 잊지 말자.

1. 고혈압예방.

대표적인 항 산화제인 비타민E 보다 무려 2,000배나 강한 항 산화효과가 있어 혈액과 세포를 건강하게 지키며, 피 속의 콜레스테롤을 줄여혈액의 흐름을 좋게 한다. 또한 마늘 속의 칼륨이 피 속에 나트륨을 없애 혈압을 정상화 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2. 당뇨병치료.

혈당치 개선에 효과가 있다.

특히 마늘은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하여 비타민C와 함께 피 속의 포도당이 세포로 스며들게 돕는 작용을 한다.

3. 노화예방.

마늘은 체내에 흡수된 뒤 혈중 적혈구의 작용을 도와 혈구자체의 수명을 연장 시킨다.

비타민 E보다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 혈액과 세포를 건강하게 하며 말초혈관의 확장시 구석구석의 세포에 혈액과 산소를 공급하며 노화를 억제하게 한다.

4. 정력강화.

마늘은 비타민B1과 결합하여 알리디아민 이라는 성분으로 바뀌는데 알리디아민은 호르몬 활동을 조절하고 난소나 정소의 기능을 좋게 하여 정력을 증강시킨다.

5. 피로회복.

마늘의 풍부한 게르마늄이 비타민B1의 흡수를 도우며, 비타민B1은 체내에 저장되어 몸이 지치거나 피로할 때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기능을 한다.

6. 신경안정, 진정효과.

마늘은 인체의 신경에 영향을 미쳐 신경세포의 흥분을 진정시킨다.

불안한 신경을 안정시켜 스트레스해소와 불면증치료에 좋다.

7. 소화촉진, 위장기능 강화.

마늘은 위액의 분비를 촉진해 소화를 돕고 위장을 튼튼하고 건강하게 만든다.

보통성인은 2~3쪽의 마늘이 적당하고 위가 약한 사람은 하루에 한쪽 정도씩 꾸준히 복용하면 위가 튼튼해 진다.

8. 장 운동의 활성화.

마늘이 소장과 대장의 운동을 촉진하여 영양분과 수분의 흡수를 도와준다.

신장에도 영향을 미쳐 소변의 배설을 원활하게 한다.

9. 간 기능 회복.

피 속의 독성을 해독하는 효과가 있으며 술로 인한 숙취피로, 위장출혈 등의 부작용을 치료하며 또한 간세포를 활성화하여 간 기능을 회복시킨다.

10. 신경통 완화.

몸을 따뜻하게 하여 신진대사가 원활해 지도록 도와 신경을 안정시킨다. 또한 말초세포까지 피를 공급하여 통증을 덜고 세포생성을 촉진한다.

11. 알레르기 억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때 생성되는 효소를 억제하여 아토피성피부염과 알레르기증상을 완화시킨다.

12. 해독작용.

시스테인과 메타오닌 성분의 강력한 해독작용으로 간장기능을 강화하며 또한 알리신, 치오에텔, 멜가프탄,유화수소 성분을 수은 등의 중금속을 배출하고 세균을 없애준다.

13. 살균, 항균작용.

마늘은 강력한 살균작용으로 각종 식중독균,이질균, 티프스균 등 각종 세균을 살균하고 소독한다.

페니실린이나 테라마이신보다 살균력이 강해 2차 세계대전 때는 살균제 대신 사용되었다.

14. 면역력 강화.

세포나 임파구 등의 백혈구 기능을 촉진하여 면역성을 키운다.

15. 비만예방.

신진대사를 촉진하여 지방을 태우고 체지방을 분해하는 효과가 있으며 또한 대표적인 체지방인 부고환지방함량을 감소시키고

비만 단백질로 불리우는 렙틴의 함량도 줄여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390.html
kolaswqetsrq 11.14 15:32
생강이 여자에게 보약인 이유

생강이 여자에게 보약인 이유

1. 몸을 따뜻하게 해 여성 질환을 예방한다

 "
각종 여성 질병은 몸에 냉기가 흐를 때 발생한다. 생강은 부신수질이라는 호르몬을 자극해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하고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순환을 도와 몸을 따뜻하게 한다.
",

체온이 높아지니 여성 질병은 사라지고 혈액순환이 원활해 피부까지 좋아지니 1석 2조다.

2. 면역력을 강화시켜 잔병치레를 막는다

체온이 1°C 내려가면 면역력은 30% 이상 떨어져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쉽다.

때문에 감기에 걸렸을 때 생강차를 마시게 해 체온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체온을 높이기 위해 생강을 먹는 것은 아니다. 생강에 들어 있는 성분은 우리 몸속의 백혈구 수를 늘리고 혈액의 활동을 촉진하며 면역력을 강화시킨다.

3. 수분 조절로 부기를 제거한다

우리 몸은 60% 이상이 수분이다.
 "
인체의 수분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몸 안에 물이 쌓이이면 수독 현상이 온다.
",

하체가 자주 붓고 상체보다 하체에 살이 더 많은 것은 모두 수분 때문이다. 생강은 몸 안의 각종 기관을 자극해 땀을 내고 소변을 잘 보게 해 부기를 빼는 효과가 있다.

4. 가래·기침을 없애는데 효과적이다

 "
생강의 매운맛을 내는 성분은 진저롤과 쇼가올이다.
",
이 두 성분은 몸의 찬 기운을 밖으로 내보내 감기를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생강은 가래를 없애고 뇌에서 기침을 유발하는 중추신경에 작용해 기침을 멈출 수 있게 돕는다. 단, 이미 감기가 많이 진행된 상황에서 기침으로 인해 편도선이 부었을 경우 따뜻한 성분의 생강은 피하는 것이 좋다.

5. 좋은 열은 올리고 나쁜 열은 낮춘다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음식이긴 하지만 무작정 열을 올리는 음식은 아니다.

생강에는 아스피린의 80% 정도 해열 효과가 있다.

 "
감기에 걸렸을 때 열을 발생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어 해열 작용을 하는 것이다. 몸이 차가울 때는 따뜻하게 하고 몸에 열이 많이 날 때는 그 열을 낮추는 자연 온도 조절계라고 할 수 있다.
",

6. 살균 기능으로 몸속 세균을 내쫓는다

생강은 감기 바이러스나 폐렴을 일으키는 세균류뿐만 아니라 무좀의 원인인 진균에 대한 항균 능력도 뛰어나다.

원형탈모증이 있는 머리나 무좀이 발생하는 발에 생강즙을 바르면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으며, 몸속 회충이나 사상충 같은 기생충에도 효과적이다.

7. 혈중 콜레스테롤을 없앤다

여성들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기 위해 먹는 것 하나하나도 꼼꼼하게 선택한다.

그러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은 음식을 먹는 것도 좋지만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것이 먼저다.

 "
생강의 진저롤은 담즙 분비를 촉진해 피 속의 콜레스테롤을 없애는 효능이 있다. 다이어트를 결심했다면 생강을 빠뜨리지 않는 것이 좋다.
",

8. 노화 방지 효과가 있다

동안은 모든 여성의 로망이다.

수많은 안티에이징 화장품을 바르는 것도 좋지만 양념 중 최고의 안티에이징 제품인 생강을 꾸준히 섭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체에 활성산소가 발생하면서 노화가 오는데, 생강은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 노화를 예방한다.

활성산소가 억제돼 노화 예방은 물론 잔병치레도 적어지니 중년 여성들에게 필수다.

9. 진통제보다 생강이 낫다

머리가 아프거나 약간의 통증을 느낄 때 우리는 진통제를 찾는다.

특히 여성의 경우 매달 겪는 생리통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은 꼭 진통제를 먹게 된다. 하지만 이런 화학약제의 경우 위염이나 위궤양을 일으킬 수 있다.

생강은 아스피린이나 인도메타신 등의 소염·진통제와 거의 비슷한 효과를 내는데, 화학약제와 달리 위벽을 보호한다. 진통제를 먹기 전에 생강을 먹는 것이 몸을 지키는 방법이다.

10. 혈액 응고를 억제한다

나이가 들수록 혈관과 관련된 질병이 자주 발생한다. 때문에 중년 여성의 경우 뇌경색과 심근경색, 고혈압은 반드시 정기적으로 체크해야 한다.

혈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데도 생강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생강이 혈소판의 응집을 억제해 혈전을 막아 뇌경색과 심근경색, 고혈압을 예방 및 개선한다는 것.

11. 생강을 먹으면 2개의 심장 부럽지 않다

건강한 심장의 필수 조건은 일정한 혈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강은 심장을 강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
심근을 자극해 수축력을 높이지만 맥박을 천천히 떨어뜨려서 혈압을 10~15mmHg 정도로 낮춰 일정하게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강심제인 지키타리스와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하니 심장에 이보다 더 좋은 친구도 없다.
",

12. 소화 흡수 능력을 강화한다

소화불량은 여성들의 대표 질환 중 하나다.

1년 3백65일 착용하는 브래지어로 인해 소화불량이 올 수도 있고, 스트레스와 냉증 등 원인은 다양하다.

오랫동안 소화가 잘 안 될 때 생강을 먹으면 도움이 된다. 생강은 위장 내벽의 혈액순환을 도와 위장 활동을 촉진, 소화 흡수력을 높인다.

13. 식중독을 미리 예방할 수 있다

조금만 잘못 먹으면 쉽게 식중독에 걸리고 위궤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생강에는 항궤양 성분이 있어 속앓이를 하는 이들에게 보약과 다름없다.

위궤양의 원인균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비롯해 대장균과 살모넬라균, 황색포도상구균 등의 식중독균을 모두 없애 생강만 있다면 식중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14. 입덧, 생강만 있으면 해결된다

 "
임신부의 가장 큰 골칫덩이는 바로 입덧이다. 시도 때도 없이 매스꺼움이 올라오니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도 없다.
",
 "
생강의 매운맛 성분인 진저롤은 매스꺼움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어 임신부에게도 좋다.
",
유럽의 산부인과 학회지에 따르면, 입덧이 심한 30명의 임신부에게 매일 1g의 생강 분말을 먹게 했더니 매스꺼움이 사라졌다고 한다. 속이 안 좋거나 멀미, 입덧을 할 경우 생강을 잊지 말자.

 "
15. 여자 그리고 엄마를 건강하게 만든다
",

생식기능을 높이고 싶다면 생강이 특효다.

남자의 경우 정자를 조금 더 빨리 움직이게 하며, 여자의 경우 생리불순을 치료하고 임신 가능성을 높이는 등 특히 여자의 생식 기능에 좋다.

또한 임신 중에 꼭 필요한 영양소인 오메가 3와 칼슘, 엽산, 마그네슘 등이 과일보다 많이 들어 있어 엄마가 되고 싶다면 생강을 꼭 먹어야 한다.

16. 어지러움과 현기증을 예방한다

여성 대다수가 한 번쯤은 빈혈이나 현기증을 겪어본 경험이 있다.이는 귀 속의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어지러움을 느끼는 경우일 확률이 높다.

생강은 귀 속의 혈액순환을 촉진해 현기증과 귀 울림을 예방하므로 어지러움이 느껴질 때마다 생강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

17. 우울증을 치료한다

 "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지만 중년 여성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갱년기 때문이다. 갱년기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생강이 약이다.
",
 "
생강에는 기를 열고 우울한 기분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어 한방에서는 반하후박탕에 생강을 넣어 우울증 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

18. 몸 안을 깨끗하게 정화한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몸 안을 깨끗하게 할 수는 없지만, 꾸준히 몸속 독소를 배출해 정화시키는 것이 건강에 좋다. 하지만 오염된 피, 음식물 독과 체액으로 인한 독소를 배출시키는 것인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럴 때 생강을 이용하면 혈액을 순환시켜 발한, 배뇨, 배변을 촉진, 독소를 몰아내 몸 안을 깨끗하게 정화 시킬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120.html
kolaswqetsrq 11.14 15:33
숙면을 부르는 실내 화초

숙면을 부르는 실내 화초

▶ 수면제 보다 화분을 놓아요,

밀폐된 실내의 답답한 공기는 삶의 활력을 잃게 만든다. 특히 잠을 잘 때 인체는 산소를 필요로 하게 되는데 침실의 공기가 탁하다면 숙면을 취할 수 없고,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못할 것이다. 환기를 시키는 것이 좋은 방법이지만 최근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져 마음놓고 바깥 공기를 들이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는 방안에 화분을 두는 것으로 일정 부분 해소 할 수 있다. 예쁜 꽃이 핀 화분을 침실 적절한 곳에 놓아 숙면, 실내 공기, 인테리어 등 다양한 면으로 효과를 볼 수 있으니 집 내부에 변화를 주고자 한다면 참고해보자.

1. 자스민

미국의 한 연구팀은 자스민을 통해 천연 수면 보조 음료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자스민은 잠을 잘 때 숙면을 유지하게 하고 일어날 때도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작용을 해 건강한 수면에 상당히 큰 효과가 있다. 또한 엉킨 덩굴과 트럼펫 모양의 꽃을 가진 자스민은 방안의 인테리어 포인트로도 제격이다. 항상 꽃이 펴있지는 않지만 한번 꽃이 피면 다른 화초에 비해 관리하기가 쉽고 향기도 좋아 인기가 많은 화초다.

2. 라벤더

라벤더는 비누, 샴푸, 섬유유연제 등 사용 범위가 넓어 우리에게 익숙한 화초다. 이는 라벤더가 청정제로써 역할을 하기 때문인데, 여러 제품에 사용된 라벤더 향도 좋지만 실제 꽃의 향기도 인체에 매우 유용하다. 연구자들은 라벤더의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잠자기 전 라벤더 향을 맡고 기분 좋은 숙면을 취해보자.

3. 꽃치자

꽃치자는 알약 형태로 된 수면제만큼 불면증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 독일의 연구팀이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꽃치자 향은 신경 안정제와 비슷한 효과를 보였다고 한다. 꽃치자 향이 나는 공간에 있었던 쥐는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덜하고 편안히 쉬고 있는 상태를 유지했던 것이다. 이 효과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당되고 숙면에 도움을 준다.

4. 알로에

알로에는 상처, 흉터, 화상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이는 알로에가 해독작용을 하기 때문인데 더 대단한 점은 알로에가 공기 중에 오염물질을 제거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실내의 공기의 오염도가 높아지면 알로에의 표면에서 갈색 반점이 생긴다. 이는 실내 공기의 상태를 확인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5. 양담쟁이(English Ivy)

양담쟁이는 나사에서 선정한 최고의 공기 정화 식물이다. 심지어 기르기도 쉽고 적당한 온도, 햇빛만 유지되면 죽지 않기 때문에 공기 청정과 숙면을 위한 최적의 식물일 수 있다.

6. 에피프레넘

에피프레넘 역시 나사에서 선정한 공기정화 식물이다. 아래로 자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천장에 매달아 놓으면 방안에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기르는데 손이 많이 가지 않고 적은 일조량으로도 잘 자라므로 바쁜 현대인들의 삶을 활기차게 해줄수 있는 식물이다. 병충해에도 잘 걸리지 않기 때문에 식물 기르기에 소질이 없어도 키울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683.html
kolaswqetsrq 11.14 15:34
노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주범

노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주범

•무엇일까?

▶ 노화시키는 가장큰 주범은?

1 게으름

2 오줌물

3 스트레스

4 누적피로

누워서 잠을 잘 때 방광(肪胱)에 오줌물이 쌓이면 노화의 속도는 빠르게 진행된다. 그 오줌물을 빼내는 방법은 단 한가지 새벽에 일어나 소변을 보는 것.

그리고 다시 물 마시는 것.

 "
정답은 오줌물 이나 오줌을 싸기 싫어서 다리 오그리고 자는 새벽의 당신의 모습 게으름 도 한 몫을 한다는 것. 누적이 되면 한 방울의 물도 바위를 뚫어 버린다. 그것이 세월의 힘이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실천하는 것이다. 밤에 잠을 자다가 새벽에 한번 일어나서 소변을 보는일 너무나 중요하다. 아니 중요함 정도를 벗어나 누구나 지켜야 할 철칙이다.
",

얼굴에 기미가 생기지 않게하려면, 심장이 아프지 않게하려면, 방광의 센서가 작동되면 잠에서 빨리 깨어나 소변을 보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삶이며, 병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이다. 방광의 센서가 작동하여 뇌에 신호를 전달하였는데 게으름을 피우게 되면 결국 요산이 온 몸으로 퍼져 일어나 보니 병을 얻어 몸이 나른하고 일어나기 조차 싫은 경우가 있다.

이것이 바로 새벽에 병을 얻느냐 아니면 병을 쫓아내고 건강한 체질로 만드느냐는 본인의 생활의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가 여름에 시원한 수박을 먹고 잠을 자게 되면 고민하게되는 것이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잠을 깨우는 소변보는 일을 상기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박 때문에 잠을 깨서 소변을 보고 다시 잠을 자고 일어나면 평상시 다른 날보다 기분이 상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수박의 기능중 하나가 이뇨작용 에 있는데 이것은 다름이 아닌 바로 요산을 방지 해주는 것이다. 즉 요산이 방광에서 흘러나와 우리 몸 안에 쏟아지는 것을 방지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 한 컵을 자기 전에 마시는 것과 새벽에 소변을 보고 다시 물 한 컵을 먹어 주는 것. 이것이야 말로 우리 몸에 가장 좋은 보약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습관이 없었다면 당장 실천해야 한다. 오늘 저녁부터. 그리고 잠자기전 4시간 전에 반드시 식사를 끝내라는 것도 다시 한 번 잊지 말고 열심히 따라 하길 바란다.

1. 신진대사 작용

피의 흐름은 결국 물의 흐름이고 신진대사 작용을 원활하게 하려면 발끝의 온도가 정상으로 변하여야 한다. 잠을 자다가 새벽에는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새벽녘에는 발끝이 가장 먼저 차가워짐을 알게 된다. 그러나 잠에 취해 있거나, 이불 속에서 게으름을 피우게되면 엄지발가락부터 요산이 쌓이게 된다. 그러나 이 한 컵의 물이 결국 온 몸의 혈관을 타고 들어가 새벽에 영양분 공급을 받지 못해 기력이 떨어진 세포들을 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2. 변비 개선 효과

물의 작용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것이다. 입안에서 대장까지 한 순간에 타고 들어가는 물이야말로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게하는 습관을 만들어 줄 것이다. 장을 비우고 아침에 일을 나서는 것은 뇌에 태양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이다.

3. 수면 작용

물을 마시면 다시 체온이 상승하여 단 30분을 더 자더라도 깊은 수면에 빠지게 된다. 만약 물을 마시지 않고 그냥 자게 되면 깊은 잠이 아니라 불안한 잠을 자 아침에 일어나면 더욱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새벽에 일어나서 소변보고 물 한 컵 마시는것은 보약 이라고 할 수 있다.

4. 청소 작용

물을 한 컵 마시는 것은 밤새 잠을 자면서 코로만 빠지는 노폐물을 입안부터 식도 위장에 이르기까지 가득한 가스를 청소를 해주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도 입에서 냄새가 덜나며 입안이 상쾌하다. 또 새로 유입된 물은 오래된 물을 밀어내고 혈액 속에서 새로운 피로 태어나게 된다. 이 혈액이 온 몸을 돌아 다니면서 청소작용을 하게 된다.

5. 체온 상승

새벽에 소변을 본 후 물을 한 컵 마시면 새벽녘 떨어진 체온이 다시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체온이 자하되어 방광의 센서가 작동하여 눈이 떠지지만 다시 물을 투입하게 되면 체온이 정상적으로 변하여 방광의 센서가 Off 상태로 꺼지게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005.html
kolaswqetsrq 11.14 15:35
노폐물 배출과 지방분해에 좋은음식

노폐물 배출과 지방분해에 좋은음식

음식의 칼로리를 따지고 체중이 얼마나 늘어날까 걱정을 하면서 음식을 먹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 중 체지방을 태우는데 도움이 되는 음식도 있다. 꾸준히 섭취하면 노폐물도 배출하고 지방분해에도 효과적인 음식, 무엇이 있을까?

1. 오렌지

오렌지는 껍질만 까면 간단하게 먹을 수 있으며 섬유질이 많이 들어있다. 또한, 오렌지는 다른 과일들에 비해 포만감 지수가 매우 높아 공복감을 덜 느끼게 해준다.

오렌지의 섬유질은 지방 분해에 도움이 되며 군살을 빼는데 효과적이다.

2. 옥수수수염

옥수수수염은 섬유조직 다발로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 당질, 섬유소 등의 영양소를 가지고 있다.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 성분을 가지고 있어 이뇨를 도와 부기를 빼주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으며 잦은 야식생활과 짠 것을 많이 먹는 잘못된 식습관으로 체내의 쌓인 염분과 독소로 붓는 증상에도 효과가 있다.

기름진 음식을 먹거나 물 대신 수시로 마셔 준다면 체내의 노폐물도 제거되어 피부미용에도 효과적이다.

3. 녹차

운동하기 30분 전에 녹차를 마시면 지방 분해를 도와 다이어트 효과를 볼 수 있다. 녹차의 카테킨 성분이 체내의 불필요한 노폐물과 중성지방을 이뇨 작용을 통해 배출하기 때문이다.

녹차는 다양한 비타민과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노화를 억제하며 레몬의 5배나 되는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어 피부가 거칠어지는 것을 막고 탄력성과 보습성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4. 고추

고추에는 비타민C를 비롯해 비타민A, 비타민P(바이오 플라보노이드) 같은 각종 비타민도 풍부하다.

고추는 캡사이신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혈액순환을 도와 체지방을 태우는데 도움을 주며 식욕을 억제하고 식후 칼로리 연소를 많이 시켜 다이어트에 좋다.

5. 현미

현미에는 비타민B, 비타민B1, 단백질등이 총 16가지 영양분이 골고루 포함되어 있으며 백미에 비해 3배 이상의 섬유질이 많은 편이다.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이 크고 소화의 흡수를 지연시키므로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또한, 현미는 100g당 354Kal이며 채식과 함께 다이어트 식단을 계획하면 체내의 독성이나 노폐물도 효과적으로 배출하여 피부트러블에도 효과가 있다.

6. 도토리 묵

도토리묵은 90% 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음식으로 식이섬유가 풍부해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이 높은 편이라 체중감량에 효과적이다. 도토리에 있는 탄닌 성분이 담즙산과 결합해 담즙산의 재흡수를 방해, 배출하여 몸속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춰준다.

7. 곤약

곤약은 약 97%가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분 이외에도 탄수화물, 단백질, 칼륨 등을 함유하고 있다.

곤약의 글루코만난은 수분과 만나면 약 20배 정도 양이 불어나는데 식사를 하기 30분 전 곤약과 물을 섭취하면 포만감을 느껴 음식섭취량을 줄일 수 있어서 좋다. 또한, 100g당 5kcal 정도 낮은 칼로리이므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530.html
kolaswqetsrq 11.14 15:36
무심코 지나치는 암 초기 증상

 "
무심코 지나치는 암 초기 증상
",
 "
나날이 늘어가는 암 발생률에 텔레비전에서는 시도때도 없이 암을 이겨내는 법, 암에 좋은 음식 등의 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많이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쌓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을 위해 의사들이 발표한 사전에 암을 포착할 수 있는 8가지 증상에 대해 소개한다. 만약 해당 징후가 계속된다면 꼭 병원에 가보길 바란다.
",

1. 허리가 자주 아프다

배꼽 주위부터 시작해 등까지 심한 통증이 오면 췌장암일 가능성이 높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괜찮아지는 까닭에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속히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2. 가슴 부근에 덩어리가 만져 진다

한 쪽 팔을 위로 올린 뒤 다른 쪽 손가락으로 가슴 부근을 눌렀을 때 덩어리가 만져진다면 유방암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가슴에 계속된 통증이 있거나 붉어지면서 열이 난다면 빨리 병원을 가봐야 한다.

3. 소변 볼 때 피가 나온다

소변을 자주 보는데 잘 나오지 않거나 피가 섞여 나온다면 전립선암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암들에 비해 진행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4. 지속적으로 속쓰림을 느낀다

2~3주 이상 소화불량이 계속되고 복부에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위암일 위험성이 높다. 단순히 만성 위염이나 위경련이라고 생각해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기 발견이 중요한 암 중 하나이다.

5. 폐경 후 출혈이 있다

폐경 후에도 출혈이 있다면 자궁암을 의심해야 한다. 꼭 폐경 후가 아니더라도 냉이나 질 출혈이 자주 있으며 그때마다 생리통과 소화불량 증상이 있다면 병원을 가봐야 한다.

6. 대변에 피가 묻어있다

대변이 나올 때 검붉은 피가 나오거나 배변과 상관없이 피가 나온다면 대장암일 가능성이 높다. 치질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치질일 시 선홍색 피가 나오기 때문에 대장암과는 차이가 있다.

7. 목소리가 자주 쉬고 갈라진다

2주 이상 목소리가 쉬어 있고 계속 갈라진다면 후두암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후두암의 경우 목을 많이 사용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8. 밤에 계속 땀을 흘린다

잘 때마다 베개가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다면 림프종일 가능성이 높다. 연령이 낮을수록 치료가 쉽다고 하니 체중의 10% 이상이 갑자기 감소하거나 계속 발열 증상이 있다면 병원을 가봐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819.html
kolaswqetsrq 11.14 15:37
중년들이 꼭 신경써야 할 지방간에 좋은 음식

중년들이 꼭 신경써야 할 지방간에 좋은 음식

지방간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심각한 간질환의 간경변증으로 진행될 수 있다.

정상적인 간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5%정도라고 한다. 만일 이보다 지방이 더 많이 축적된 상태를 지방간이라고 한다.

지방간 무엇인가?

지방간은 간에 중성 지방이 축적되어 그 기능이 손상되는 질병이다.

지방간이 있는 사람들은 내장형 비만, 당뇨병, 고혈압, 동맥경화를 같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방간을 방치한 채로 증상을 키울 경우엔 간염이나 간경변 등의 만성 간질환으로 진행될 수 있다. 지방간에는 어떤 음식들이 좋은지 확인해본다.

1. 등푸른 생선살, 꽁치

등푸른 생선 중에서도 특히 꽁치는 불포화 지방산(EPA, DHA), 타우린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EPA는 지방간 이외에 심근 경색이나 고혈압에도 효능이 있다. 또한 DHA는 혈중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는 기능이 있다.

2. 닭 가슴살, 쇠고기, 돼지고기 살코기

지방간에 고단백질 식사는 기본, 하지만 단백질을 너무 많이 또는 극단적으로 적게 섭취할 경우 지방간을 악화시킨다.

3. 두부와 청국장

두부와 청국장은 양질의 단백질 음식일 뿐 아니라 소화도 잘되는 음식들이다.

4. 식초

식초를 섭취하면 체내에서 에너지를 활발하게 태우게 되며 지방 축적을 억제한다. 여기에 에너지 대사를 더욱 좋게 하려면 양질의 단백질도 섭취해야 한다. 식초와 함께 단백질을 섭취하면 위장의 소화 효소가 식초의 작용으로 더욱 활발해져 신진대사를 높여 준다.

5. 토란

토란은 지방간의 원인이 되는 지질개선 효과가 있다. 토란은 비만을 억제하고 혈청 지질을 저하시키는 효과가 있다. 또한 토란은 혈액속의 인슐린 농도를 감소 시킨다. 인슐린은 지방간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6. 시금치등의 녹황색 채소

시금치등의 녹황색 야채는 풍부한 베타카로틴, 비타민, 미네랄을 포함하고 있다. 지방간을 없애는 동안에는 충분한 비타민의 섭취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꼭 채소를 먹어야 한다.

7. 미역등의 해조류

지방간에는 미역, 다시마, 톳 등의 해조류가 도움이 된다. 해조류에는 비타민과 미네랄 외에도 풍부한 식이섬유가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미역은 콜레스테롤과 지방의 축적을 방지하고 암세포의 발생도 억제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695.html
kolaswqetsrq 11.14 15:38
음주 후 절대 해서는 안되는 7가지

음주 후 절대 해서는 안되는 7가지

1. 음주 후 샤워와 사우나는 금물이다

술을 많이 마신 뒤 술을 깨기 위해 사우나에 들어가거나 찬물로 샤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뜨거운 물로 샤워하거나 사우나에 들어가는 것은 알코올로 인해 몸 안에 쌓인 열기를 외부로 발산시키는 것을 방해한다.

자칫 잘못하면 심한 구토를 일으키거나 의식을 잃고 졸도로 연결될 수 있다.

찬물로 샤워하는 것도 술을 깨도록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간(肝)이 포도당을 공급하는 데 방해한다.

게다가 찬물은 혈관을 수축시켜 혈관파열과 감기 등을 유발할 수 있다.

2. 음주 후에 술 깨는 약을 먹지 마라.

술 깨는 약은 잠시 동안 술에 취한 증상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술 취한 상태를 연장시킬 뿐이다.

술 깨는 약 대신에 물을 많이 마시는 게 좋다.

또 운동음료를 마셔 전해질을 보충해주고, 산도(酸度)가 낮은 오렌지 주스를 마셔 비타민C를 보충하고 혈당수준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3. 음주 후에 전기담요 위에서 자지 마라.

술을 많이 마시면 체온조절기능이 떨어져 체열발산이 많아져 썰렁함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보온을 해줘야 하는데, 전기담요를 쓰면 혈압이 높은 사람이나 협심증 등 심장과 뇌혈관 관련 질병이 있는 사람은 혈압이 더 높아져 증세가 악화될 수 있다.

음주 뒤에 추위를 느끼면 담요를 덮거나 따듯한 물을 마셔 온도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4. 음주 후에 운동도 삼가라.

알코올은 이뇨작용을 촉발시켜 음주 뒤에 체내 수분이 많이 빠져 나가 탈수현상을 일으키기 쉽다.

이때 운동을 해서 땀을 흘리면 탈수를 더욱 가중시킬 위험이 있다.

음주 후에 수영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음주 후 수영은 체열 발산을 더욱 증가시켜 어지럼증과 저혈당성 졸도 및 넓적다리 마비 등의 증상을 초래할 수 있다.

5. 음주 후에 해열소염제를 먹지 마라.

알코올은 여러 종류의 약품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독성물지를 생성시킨다.

음주 후에 소염해열제를 먹으면 간에 치료하기 어려운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꼭 해열제를 먹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음주한 다음날 새벽 1시간 전에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인 이부프로펜(Ibuporofen)를

먹는 게 좋다.

6. 음주 후에 커피와 진한 차를 마시지 마라.

차는 심장을 지나치게 흥분시키고 신장(콩팥)에 나쁜 영향을 준다.

탄산음료도 알코올 흡수를 빠르게 하기 때문에 간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급성 위염 등을 유발시킬 수 있다.

7. 음주 후에 곧바로 잠 자 지 마라

술을 마시고 곧바로 잠을 자면 인체의 신진대사가 느려져 알코올이 간에 머무는 시간을 늘림으로써 간에 부담을 많이 준다.

술 마신 뒤에는 찬물로 세수를 하고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한 뒤 자는 게 좋다.

술을 아주 많이 마시고 곧바로 잠에 들면 알코올중독에 빠져 깨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술을 지나치게 과음했을 때는 보호자가 옆에서 2시간 마다 술 취한 사람을 일어나게 해 술이 완전히 깰 때까지 따뜻한 물이나 꿀물을 마시게 하는 게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_93.html
kolaswqetsrq 11.14 15:39
천연 청국장이 보약이다

천연 청국장이 보약이다

1. 암을 막는 탁월한 항암식품

청국장에는 제니스테인이라는 물질이 풍부한데, 이 물질은 유방암, 결장암, 직장암, 위암, 폐암,전립선암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포닌 또한 암 예방에 큰 역할을 하며,파이틱산, 트립신 억제제 같은 항암물질도 들어 있다.

2. 뇌졸중(중풍) 치료 예방제

청국장에 들어 있는 레시틴과 단백질 분해효소는 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이나 콜레스테롤을, 녹여내는 효과가 탁월하므로 뇌졸중의 치료와 예방에 최선책이 될 수 있다.

3. 치매를 막아주는 건뇌식품

청국장에 있는 레시틴이 분해되면 콜린이란 물질이 생성되는데, 이 콜린이 치매 환자에게 부족한 아세틸콜린 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늘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4. 당뇨병을 다스리는 천연 인슐린

청국장에는 섬유질이 풍부하여 당의 흡수가 서서히 일어나도록 돕고, 트립신 억제제와 레시틴은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키므로 인슐린이 부족한 당뇨 환자에게 도움을 준다.

5. 고혈압을 다스리는 천연 혈압강하제

청국장이 바실러스균에 의해 발효되면 수많은 아미노산조각들이 만들어지고, 이 조각들이 고혈압을 일으키는 주요인자인 안지오텐신 전환효소의 활성을 억제하여 혈압을 떨어뜨린다.

6. 간 기능 개선 및 숙취 해소제

청국장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비타민 B2는 알코올 분해를 촉진시켜 간의 기능을 좋게 하며,아미노산들도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된다.

7. 피부 노화를 막아주는 뛰어난 피부미용제

청국장에 있는 레시틴은 내장에 있는 독소들을 청소할 뿐만 아니라 노화로 인해 피부가 쭈글거리는 것을 방지해준다. 피부에 좋은 비타민 E와 비타민 B군도 많다.

8.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천연 칼슘제

청국장은 100g에 칼슘이 90mg이나 들어 있는 고칼슘 식품. 칼슘은 양질의 단백질과 같이 섭취하면 흡수율이 높아지는데, 청국장에는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K, 제니스테인 또한 풍부하여 칼슘의 인체 흡수율을 높여준다.

9. 심장병 & 돌연사 예방제

심장병과 돌연사는 심장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혈전으로 인해 막힐 경우 발생한다. 청국장에 있는 바실러스 단백질 분해효소는 심장관련혈관에 존재할 수 있는 혈전을 녹여주는 역할을 한다.

10. 빈혈을 막아주는 천연 조혈제

청국장에는 100g당 3.3mg의 철분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악성빈혈을 막아주는 비타민 B12도 함께 있어 빈혈 예방에 도움이 된다.

건강해지는 날까지 파~~이팅 하세요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103.html
kolaswqetsrq 11.14 15:40
○ 몸에 좋은 기름 3가지.. 종류별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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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에 좋은 기름 3가지.. 종류별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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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은 건강에 안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식물에서 추출한 ‘식물성 기름’은 혈관 속 노폐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해 건강에 좋다. 대표적으로 올리브유, 포도씨유, 카놀라유가 있다. 각 기름의 건강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는 활용법을 알아본다.

▶ 올리브유는 ‘샐러드 드레싱’으로

올리브유에 풍부한 불포화지방산은 동맥경화의 원인인 콜레스테롤을 몸 밖으로 내보낸다. 또한 강력한 항산화물질인 비오페놀도 들어있어 노화 방지에 도움을 준다. 올리브유는 다른 기름보다 발연점(기름을 가열했을 때 표면에서 연기가 발생하는 온도)이 낮아 튀김 요리보다는 샐러드의 드레싱으로 적합하다. 올리브유를 발연점 이상으로 가열하면 벤조피렌이라는 발암물질이 생성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올리브유를 샐러드에 뿌려 과일·채소와 함께 섭취할 경우 지용성 비타민의 영양 흡수율을 높일 수 있어 건강에 좋다.

▶ 포도씨유는 ‘볶음 요리’에

포도씨유는 불포화지방산 중에서도 ‘단일’불포화지방산이 더 많고 산화를 막는 ‘카테킨’이 들어 있어 다른 기름보다 산패가 느리다는 장점이 있다. 산패한 기름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나고 건강에도 좋지 않다. 포도씨유는 느끼한 맛이 덜하고 향이 은은해 볶음요리나 구이요리에 제격이다. 포도씨유를 고를 땐, 기름의 배합률도 확인하면 도움이 된다. 포도씨에서 기름을 추출하려면 상당량의 포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 중에는 콩기름이나 옥수수유를 상당량 혼합한 제품이 있을 수 있어 이런 제품은 피하는 게 좋다.

▶ 카놀라유는 ‘튀김 요리’에

카놀라유는 유채꽃씨를 압착해 뽑아낸 기름으로 다른 기름에 비해 포화지방이 적다. 또한 불포화지방산의 일종인 리놀렌산이 특히 풍부해 혈관 노화·동맥경화 등 각종 질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 당뇨병 환자가 카놀라유를 먹으면 혈당 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카놀라유는 발연점이 약 250도로 높아 튀김 요리나 구이 요리에 사용하면 좋다. 다만, 아무리 열에 안정적이어도 높은 온도에서 지나치게 오래 가열하면 트랜스지방량이 늘어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317.html
kolaswqetsrq 11.14 15:41
○ 매일 술 1잔 마시면, 심혈관 질환 사망 위험 20% 감소

○ 매일 술 1잔 마시면, 심혈관 질환 사망 위험 20% 감소

술을 간단히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가울 만한 소식이 있다. 매일 적당량의 술을 마시면, 주요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최대 20%까지 낮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하버드의대 부속병원인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연구팀은 평균 연령 57.2세인 참가자 53,064명을 조사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보고한 알코올 섭취량을 토대로, 참가자를 알코올 섭취량이 낮은 그룹(주 1회 미만), 보통인 그룹(주 1~13회), 높은 그룹(주 14회 이상)으로 분류했다.

참가자 752명은 스트레스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뇌의 활동량이 증가하는지 확인하는 PET 스캔을 받았다.

연구 결과, 전체 참가자의 15%인 7,905명이 뇌졸중이나 심장마비 같은 심각한 심혈관 이상 증상을 겪었는데, 이는 알코올 섭취량이 낮은 그룹에서 17%, 보통인 그룹에서 13%를 차지하는 수였다. 아울러, 알코올 섭취가 보통인 그룹은 낮은 그룹에 비해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20% 낮았다.

스트레스와 관련된 뇌 활동 수준이 가장 높은 그룹은 과음하는 그룹이었다. 흥미롭게도, 비음주자들의 스트레스 관련 뇌 활동이 적절한 음주를 하는 보통 그룹보다 더 높았다. 이 결과는 인구통계학적 변수 등을 통제한 후에도 유의미한 수준으로 유지됐다.

연구팀은 적당량의 알코올이 긴장을 풀고, 스트레스 수준을 낮추는 메커니즘을 통해 심혈관 질환 발생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첫 번째 연구라고 밝혔다. 또, 스트레스와 심장병 사이의 연관성이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어떻게 심장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연구를 이끈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전임의인 Kenechukwu Mezue는 "이번 발견이 음주를 장려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알코올은 암을 유발하고, 간을 손상시키는 등의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뇌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음주보다는, 운동이나 약물치료 등의 다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20.html
kolaswqetsrq 11.14 15:42
심장 건강법 10가지

심장 건강법 10가지

심장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단순 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들이 많이 있는데요. 이 모든 방법을 다 시도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에게 맞는 몇 가지라도 실천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호두를 먹어라

미국 예일대 연구팀에 따르면,하루에 호두 반 컵을 먹으면 혈관 기능이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두에는 염증을 퇴치하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2. 맥박수를 측정하라

아침에 일어나서 슬리퍼를 찾기 전에 맥박부터 재보라. 건강한 사람은 맥박수가 분당 70이나 그 이하여야 한다. 맥박수가 일주일이나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점점 높아진다면 진단을 받는 게 좋다.

3. 오염된 공기를 피하라.

미세먼지로 오염된 공기를 마시면 경동맥(목동맥)의 벽이 두꺼워져 심장마비 위험이 커진다. 새벽에 먼지 농도가 가장 심하기 때문에 이때를 피해 운동은 오후에 하는 게 좋다.

4. 악력 훈련을 하라

연구결과, 악력기로 하는 손 운동을 4주 정도만 해도 혈압이 10% 정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운동은 혈관 기능을 향상시키는 전단 응력을 발생시킨다. 양손으로 2분씩 4번 정도 악력 운동을 하는 데 매회1분 정도 휴식을 하면 된다.

5. 달걀을 믿어라

달걀을 먹으면 나쁜콜레스테롤(LDL) 이 증가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연구에 따르면, 달걀 섭취와 심장동맥이 더 맑아지는 것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른자에 들어있는 비타민 E와 B12, 엽산덕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단 달걀은 칼로리가 높으니 하루 4개 이상 먹어서는 안 된다.

6. 심호흡을 하라

잠시 일을 중단하고 오랫동안 심호흡을 해보라. 30초 동안 6번 심호흡을 하는 게 좋다. 이렇게 하면 1분 안에 수축기 혈압을 4mmHg 낮출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심호흡을 꾸준히 하면 혈압이 낮아지는 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7. 트랜스지방을 피하라

미국 콜롬비아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트랜스지방 섭취를 1%만 줄여도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크게 감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8. 칼륨을 좋아하라

매일 칼륨 1000mg을 더 섭취하면 수축기 혈압을 감소시킬 수 있다. 칼륨이 많이 들어있는 식품으로는 바나나와 고구마, 황다랑어 등이 있다.

9. 아침을 반드시 먹어라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에 따르면, 아침식사를 건너뛰는 사람은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27%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침을 안 먹으면 혈당이 오르내리고 혈액 속 중성지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10. 긍정적으로 살아라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밝은 인생관을 가지면 심장병 위험을 반이나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스트레스와 염증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5.html
kolaswqetsrq 11.14 15:43
간 해독에 좋은 음식 & 즙

간 해독에 좋은 음식 & 즙

우리나라는 특히 술을 즐겨 드시는 분들이 많고, 불규칙한 식습관과 스트레스, 유전 등으로 인해 간이 안 좋으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간에 이상이 있을 땐 심한 피로감, 황달, 안색이 어두워지고, 소화가 잘 안되고 복부 팽창감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 간기능 회복, 간에 좋은 즙은?

1. 당근 비트 신선초

암세포 억제 및 간기능 회복, 해독작용, 혈액정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2. 토마토 무즙 셀러리

간기능 회복, 간염, 신경피로, 변비에 효과적인 즙 입니다.

▶ 간에 좋은 즙, 간에 좋은 녹즙 재료

1. 케일 (철분, 엽산, 칼슘, 비타민c가 풍부하게 들어있음)

2. 쑥 ( 해독작용 및 간기능 강화에 도움이 됨)

3. 미나리 ( 간 보호, 지방간, 간경변을 막아주는 효과, 간기능 향상, 독소배출, 혈압 완화 효과)

4. 민들레 ( 위와 장을 보호해 주고, 독소배출 )

5. 비트 ( 면역력 향상 및 비타민 풍부하게 들어있음)

▶ 간기능 회복에 도움이 되는 간해독에 좋은 음식

1.알로에

알로에는 간세포 재생과 간암에방 및 치료에 효과적인 음식으로 각종 상처와 염증 치료에 효과적인 간해독에 좋은 음식입니다.

2.양파

양파는 간에 있는 독소를 해독하는 음식으로 간기능 회복 및 치료에 효과적이며, 비타민b가 잘 흡수되도록 도와주는 음식입니다.

3.부추

부추에는 비타민 A, B, C, 철분, 칼슘 등이 많이 들어있어 간기능 개선 및 회복 효과를 볼 수 있는 간해독에 좋은 음식으로 궁합이 잘 맞는

음식으로는 돼지고기가 있습니다.

4.다슬기, 재첩, 바지락

다슬기, 재첩, 바지락은 청색소가 많이 들어있어 간, 담과 같이 청색소로 만들어진 장기들에 특히 효과가 있는 음식으로 타우린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간기능 회복 및 황달, 간 해독에 좋은 음식입니다.

5.마늘

마늘에 들어있는 알리신 성분은 간 해독작용 및 간기능 회복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간의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6.우엉

우엉은 위와 간의 해독을 도와주는 효능이 있어 피를 맑게 해 주고 간기능회복에 도움이 되는 간해독에 좋은 음식입니다.

7.헛개나무

헛개나무는 간에 쌓여있는 독소를 해독해주고, 여러종류의 각종 간질환 예방에 좋은 음식으로 간기능 저하로 인하여 잦은 피로감, 지방간, 황달, 숙취해소, 간기능 향상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간해독에 좋은 음식입니다.

8.칡

칡에는 카테킨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간기능 향상, 간기능 회복, 숙취해소 및 해독작용 등의 효능을 가지고 있고 칡즙 또는 칡차를 꾸준히 드실 경우 간건강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9.쑥

쑥에는 간의 독소를 정화시켜주고 간해독, 간기능 회복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쑥차, 쑥효소 등으로 드시면 효과를 보실수 있습니다. 쑥효소는 다른종류의 효소와 동일하게 설탕과 쑥을 1:1의 비율로 1년정도 숙성시켜 준 뒤 드시면 됩니다.

▶ 간에 좋은 음식들

간에 좋은 과일으로는 감, 배, 귤, 복숭아, 사과가 있고, 간기능 회복에 좋은 음식으로는 토마토, 양배추, 버섯, 율무, 닭고기, 흰민들레, 두부, 청국장 등이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353.html
kolaswqetsrq 11.14 15:45
오이를 꼭 먹어야 하는 14가지 이유

오이를 꼭 먹어야 하는 14가지 이유

오이는 전 세계에서 4번째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야채이며 ‘수퍼 푸드’라 불릴 만큼 건강에 좋답니다.

1. 오이는 체내에 수분을 공급해줍니다.

너무 바빠 물을 충분히 마시지 못 한 경우 차가운 오이를 먹으세요. 오이는 수분이 90%랍니다.

2. 오이는 신체 안팎의 열을 식혀줍니다.

오이를 먹으면 체내의 열을 식혀줍니다. 피부에 오이를 붙이면 따가운 태양빛에 탄 몸의 열을 식혀줍니다.

3. 오이는 독소를 제거해줍니다.

오이의 수분은 체내의 찌꺼기를 쓸어내 줍니다. 규칙적으로 오이를 먹으면, 신장결석을 녹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 오이는 일일 권장 비타민을 공급해줍니다.

오이는 우리 신체가 하루에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비타민을 갖고 있습니다. 면역체계를 활성화시키는 비타민 A, B, C가 있어 몸에 에너지를 주어 활기있게 해줍니다. 시금치, 당근과 함께 먹으면 몸을 더 힘차게 해줍니다. 하루 권장 비타민 C의 약 12%를 함유하고 있으므로 피부에 바르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5. 오이는 피부에 좋은 미네랄을 공급해줍니다.

오이는 칼륨, 마그네슘, 규소를 많이 함유하고 있습니다. 피부스파에서 오이로 피부관리를 해주는 이유지요.

6. 오이는 소화와 체중감소에 도움을 줍니다.

저칼로리에 수분이 많으므로 오이는 체중감소를 바라는 사람에게 딱 맞습니다. 수프와 샐러드를 만들 때 오이를 넣으세요. 오이가 먹기 싫은 분은 저지방 요구르트에 찍어 잡수세요. 오이를 먹으면 턱 운동을 도우며, 섬유질이 소화를 도와줍니다. 따라서 매일 오이를 먹으면 만성 변비를 없애줍니다.

7. 오이는 눈에 활기를 줍니다.

눈 위에 차가운 오이를 얹는 것은 너무 많이 보는 것이지만, 오이가 갖고 있는 항염증 성분 때문에 눈 밑의 늘어진 살과 부기를 빼줍니다.

8. 오이는 항암효과를 가집니다.

오이는 세코이솔라리시레시놀, 라리시레시놀, 피노레시놀 등의 리그난을 함유하고 있어 난소암, 유방암, 전립선암, 자궁암 등에 걸릴 위험을 낮춰줍니다.

9. 오이는 당뇨를 치료해주고, 콜레스테롤과 혈압을 낮춰줍니다.

오이의 즙은 췌장세포에서 당뇨환자에게 좋은 인슐린을 만드는 데 필요한 호르몬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오이의 스테롤 성분은 콜레스테롤치를 낮춰준답니다. 또한, 오이는 섬유질, 칼륨, 마그네슘을 다량 함유하고 있고, 이 성분들은 혈압을 낮춰줍니다. 때문에 오이는 고혈압은 물론 저혈압에도 좋습니다.

10. 오이는 구강에 좋습니다.

오이의 즙은 병든 잇몸을 낫게해주고 시원하게 해줍니다. 오이를 가늘게 잘라 혀로 30초 동안 입천장에 누르고 있으면 오이 안의 화학물질이 입 속의 박테리아를 죽여 입냄새를 없애줍니다.

11. 오이는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부드럽게 해줍니다.

오이 속에 있는 기적의 미네랄 ‘2산화 규소’는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윤기나고 강하게 해줍니다. 오이가 함유하는 유황 및 2산화규소는 모발의 성장을 촉진시킵니다.

12. 오이는 뼈의 건강을 촉진시키고, 관절염과 통풍의 통증을 완화시킵니다.

오이는 2산화규소를 함유하고 있어 뼈의 연결조직을 강화시키므로 뼈의 건강을 촉진시킵니다. 당근주스와 함께 섞으면, 오이는 요산치를 낮춰줌으로써 통풍이나 관절염의 통증으로부터 해방시켜줍니다.

13. 오이는 숙취에 좋습니다.

음주 후 아침에 머리가 아픈 것을 피하려면 잠자기 전에 오이를 몇 조각 먹으세요. 오이는 비타민 B, 당분, 전해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으므로 필수 영양소를 재충전 시켜주고, 숙취와 두통을 완화시켜 줍니다.

14. 오이는 신장을 건강하게 해줍니다.

오이는 체내의 요산치를 낮춰주므로 신장을 건강하게 해줍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4_29.html
kolaswqetsrq 11.14 15:47
홍로점설紅爐點雪 - 벌겋게 단 화로 위의 한 송이 눈, 의혹이 일시에 사라짐

홍로점설(紅爐點雪) - 벌겋게 단 화로 위의 한 송이 눈, 의혹이 일시에 사라짐

붉을 홍(糸/3) 화로 로(火/16) 점 점(黑/5) 눈 설(雨/3)

눈은 포근하다. 번잡하고 사악한 세상을 포근히 감싼다. 황막한 벌판을 하얗게 덮도록, 앙상한 앞산을 고이 덮어주기를 시인은 원한다.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다. 연일 눈이 날리고 쌓여 사방이 막히면 除雪(제설)하는 사람은 죽어난다. 그 위에 서리까지 치면 雪上加霜(설상가상)이다. 그래도 눈은 약하다. 북풍한설도 봄이 되면 눈 녹듯 사라진다.

불로 벌겋게 달아오른 화로(紅爐)에 한 송이의 눈(點雪)을 얹으면 순식간에 녹는다. 시의 한 구절같이 멋진 비유인 만큼 나타내는 뜻도 다양하다. 사욕이나 의혹이 일시에 사라지는 것을 말하거나 도를 깨달아 미몽에서 깨어나는 것에서 큰 힘 앞에 맥을 못 추는 사소한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다양한 의미인 만큼 가장 먼저 사용된 곳이 명확하지 않은 채 여러 곳에서 인용됐다. 먼저 1125년 완성된 禪宗(선종)의 불서 ‘碧岩錄(벽암록)’에서는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는 자유자재의 경지를 나타냈다. ‘망념 망상의 가시 숲을 헤치고 나온 선승은 무슨 짓을 하건 자취를 남기지 않고 움직인다(透荊棘林 衲僧家 如紅爐上一點雪/ 투형극림 납승가 여홍로상일점설).’ 69칙에 나온다.

朱子(주자)와 문인 사이에 행해진 문답의 기록 ‘朱子語類(주자어류)’엔 顔子(안자)의 사욕을 멀리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안자의 극기는 마치 붉은 화로 위에 한 점 눈이 떨어진 것과 같다(顔子克己 如紅爐上一點雪/ 안자극기 여홍로상일점설).’

이처럼 딱딱한 출처 말고 멋진 용례로 우리의 고전에도 자주 나타난다. 西山大師(서산대사)가 승병장을 마치고 70명의 제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입적하면서 臨終偈(임종게)를 남겼다. 죽음은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이라고 말한 대사인 만큼 의미심장하다. 전문을 보자.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불타는 화로 속 한 점 눈일 뿐(千計萬思量 紅爐一點雪/ 천계만사량 홍로일점설), 진흙 소가 물 위를 걸어가니, 대지와 허공이 함께 무너지네(泥牛水上行 大地虛空裂/ 니우수상행 대지허공렬).’ 진흙으로 빚은 소가 泥牛(니우)인데 泥牛入海(니우입해)라 하면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다.

紅爐一點雪(홍로일점설)이라 해도 같은 뜻의 이 성어는 도를 깨달아 앞이 훤히 틔는 상태를 말하는 큰 뜻 외에 거센 불길 앞에서는 한 송이 눈이 미약하여 속수무책인 양면성이 있다. 雪泥鴻爪(설니홍조)라고 같은 눈이 나오는 말이 있다.

눈이나 진흙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이란 의미인데 이것은 녹으면 곧 사라지는 인생의 무상이다. 모든 의혹을 밝혀 앞날이 창창한 대로만 남았어도 그 또한 변하면 어찌될지 모르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 오늘의 힘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하니 말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545.html
kolaswqetsrq 11.14 15:48
어목혼주魚目混珠 - 물고기의 눈알과 구슬이 뒤섞이다, 가짜를 진짜로 속이다.

어목혼주(魚目混珠) - 물고기의 눈알과 구슬이 뒤섞이다, 가짜를 진짜로 속이다.

고기 어(魚/0) 눈 목(目/0) 섞을 혼(氵/8) 구슬 주(玉/6)

‘가짜가 진짜를 뺨친다‘고 흔히 말한다. 정교하게 모방한 가짜가 진짜를 보고 되레 손가락질하는 세상이다. 문학에서의 표절이나 명화의 진위 감정에서 종종 관심을 끌기도 한다.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른 것이 似而非(사이비)다. 이런 것을 잘 골라야 낭패를 보지 않을 텐데 진짜와 가짜가 마구 뒤섞여 있으면 낭패다.

물고기의 눈알()魚目과 진주가 섞여 있다(混珠)는 이 말은 가짜와 진짜가, 또는 천한 것과 귀한 것, 열등한 것과 우수한 것 등등이 뒤섞여 있는 상태를 말한다. 거기서 나아가 가짜를 진짜로 가장하거나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속이는 행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 성어는 비슷하게 여러 곳에서 출전한다. 먼저 前漢(전한)의 학자 韓嬰(한영)이 저술한 ‘韓詩外傳(한시외전)’에 실린 구절을 보자. ‘흰 뼈는 상아와 비슷하고 물고기 눈알은 구슬과 비슷하다(白骨類象 魚目似珠)/ 백골유상 어목사주).’ 이 표현이 널리 알려진 것은 ‘文選(문선)’이란 책에서 작품의 주를 한데서 나왔다.

梁(양)나라의 蕭統(소통)이 대표적인 문장가 130여 명의 작품을 모은 책이다. 여기에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 宋(송), 齊(제), 梁(양) 3대에 걸쳐 벼슬을 한 任昉(임방, 昉은 밝을 방)의 글이 여러 편 실려 있다.

致大司馬記室箋(치대사마기실전)이란 글에서 임방은 자신을 발탁한 조정에 감사하며, 자신은 ‘물고기 눈알처럼 쓸모없는 사람인데도 조정에서 보옥처럼 사용했다(維此魚目 唐突璵璠/ 유차어목 당돌여번)’고 스스로를 겸손하게 나타냈다. 이 부분을 唐(당)나라의 李善(이선)이 주석한 것에서 앞의 한시외전을 인용했다. 璵는 옥 여, 璠은 번여옥 번으로 아름답고 값진 보옥을 말한다.

또 後漢(후한)의 魏伯陽(위백양)이란 사람이 쓴 ‘周易參同契(주역참동계)’란 책에서는 ‘물고기 눈알이 어찌 구슬이 되겠는가. 쑥은 차나무가 될 수는 없다(魚目豈爲珠 蓬蒿不成檟/ 어목기위주 봉호불성가)’는 말이 있다. 蒿는 쑥 호, 檟는 개오동나무 가. 가차는 苦茶(고차)의 일종으로 일반차보다 쓴 맛이 난다고 한다.

물건 뿐 아니고 사람도 빈 수레가 요란하다거나 겉 다르고 속 다른 경우가 허다하니 잘 관찰해야 한다. 특히 지도자를 뽑을 때는 평시의 행실과 함께 그 사람의 면모를 잘 살펴야 함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112.html
kolaswqetsrq 11.14 15:49
일오재오一誤再誤 - 한 번 잘못한 것을 또다시 잘 못한다.

일오재오(一誤再誤) - 한 번 잘못한 것을 또다시 잘 못한다.

한 일(一/0) 그르칠 오(言/7) 두 재(冂/4) 그르칠 오(言/7)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과오와 실패는 전진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격언이 격려해도 일부러 실패할 사람도 없다. 실패를 위로하는 말은 또 있다. ‘한 번 실수는 병가의 상사’라고 勝敗兵家常事(승패병가상사)란 성어에서 온 속담이다.

최후의 결전이 아닌 옛날 잦은 전투에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니 승패에 크게 개의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실패를 딛고 다음에는 꼭 성공하라는 선의의 말이다. 그런데 한 번 잘못한(一誤) 일을 깨닫지 못하고 똑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면(再誤) 본인이나 지켜보는 사람이나 답답할 노릇이다.

선대에서 잘못 행해져 내려오는 사례를 고치지 못하고 되풀이할 땐 더 큰 잘못이다. 왕위를 물려주는 중대한 일에서 잘못된 점을 깨우친 중국 北宋(북송)의 중신 趙普(조보)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宋史(송사)’에 실려 있다.

唐(당)나라가 망하고 五代十國(오대십국)의 70여년 혼란기를 통일한 사람은 송의 太祖(태조)가 되는 趙匡胤(조광윤)이었다. 그는 後周(후주) 世宗(세종)의 신임을 받아 전공을 세우고 절도사가 되는 등 큰 세력을 떨쳤다. 조광윤의 막료로 있었던 조보는 세종의 사후 陳橋兵變(진교병변)을 일으켜 어린 恭帝(공제)에게 선양을 받게 하고 송나라를 개국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천하를 얻어 황제가 된 조광윤은 문치주의에 의한 관료제를 확립했으나 병을 얻어 왕위를 물려주게 되었다. 모후의 부탁대로 동생 光義(광의)가 2대 太宗(태종)이 되어 22년간 재위하면서 太平興國(태평흥국)을 이뤘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태종 아래 廷美(정미)라는 동생은 심보가 나빠 차기 왕위에 오르게 되어 있는데도 황제를 해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낌새를 눈치 챈 태종이 재상 조보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태조께서 이미 잘못하셨는데 폐하께서 어찌 다시 잘못을 저지르시렵니까(太祖已誤 陛下豈容再誤邪/ 태조이오 폐하기용재오사)?’ 조보는 정미가 왕위에 오르면 자기 아들에게 물려줄 것인데 그렇게 되면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며 반대했다.

장자가 아닌 형제로 계승되는 것이 태조의 잘못인데 또 다시 할 수 없다는 간언이다. 태조의 유언으로 동생에 넘기려 했던 태종이 마음을 바꿨고 정미는 유배되었다가 병으로 죽었다. 실패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한 번 잘못은 다음 다시 일어나도록 주위에서 북돋운다.

고치면 더 크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가 하는 것은 무조건 옳다며 뻗대는 사람에겐 충고가 먹히지 않는다. 똑 같은 실패를 저지르고도 잘못은 자기가 아닌 남 탓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내로남불’이란 조어를 널리 알려지게 한 공은 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721.html
kolaswqetsrq 11.14 15:50
공옥이석攻玉以石 – 돌로써 옥을 갈다, 하찮은 물건도 요긴히 쓰일 때가 있다.

공옥이석(攻玉以石) – 돌로써 옥을 갈다, 하찮은 물건도 요긴히 쓰일 때가 있다.

칠 공(攵/3) 구슬 옥(玉/0) 써 이(人/3) 돌 석(石/0)

흔해 빠진 것을 일컬어 쇠털같이 많다고 한다. 물건을 수레에 싣고 말로 될 정도로 많은 것을 車載斗量(거재두량)이라 표현한다. 풍부하면 좋을 것 같은데 기쁨이 그만큼 따라오지 않는다며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고 선인들은 말한다. 가치가 크지 않아 돌부리에 채일 정도로 흔하다고 해서 전혀 필요가 없는 것일까.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다는 비유로 ‘개똥도 약에 쓴다’는 속담이 깨우친다. 돌로써 옥을 간다는 이 성어도 마찬가지다. 보잘것없는 물건이나 사람이 때로는 긴요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다른 산의 나쁜 돌이라도 자신의 산의 옥돌을 가는 데에 쓸 수 있다는 他山之石(타산지석)이란 말과 짝으로 ‘詩經(시경)’에서 유래했다. 중국 최고의 시집으로 약 3000년 전부터 전해지는 시를 모은 시경은 孔子(공자)가 직접 정리하는 등 애지중지했던 책으로 유명하다.

小雅篇(소아편)에서 숨어사는 현인을 노래했다는 鶴鳴(학명)에 나온다. ‘학이 높은 언덕에서 우니 그 소리 들판에 울려 퍼지네(鶴鳴于九皐 聲聞于野/ 학명우구고 성문우야), 물고기 물속에 잠겨 있다가 때로는 물가에도 나온다네(魚潛在淵 或在于渚/ 어잠재연 혹재우저)’라 시작하여 끝 부분에 등장한다. ‘다른 산에 굴러다니는 돌도 능히 구슬을 갈 수 있다네(他山之石 可以攻玉/ 타산지석 가이공옥).’

여기서 돌은 소인을 가리키고 옥은 군자를 비유하여 군자도 소인에 의해 덕을 닦을 수 있다는 뜻을 의미했다. 돌을 갈아 옥을 다듬는다는 切磋琢磨(절차탁마)처럼 수양을 위하던 명구가 본이 되지 않는 남의 말이나 행동도 자신을 깨우치는 데엔 도움이 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됐다.

後漢(후한) 말의 학자 王符(왕부)의 ‘潛夫論(잠부론)’에도 비슷한 글이 있다. ‘돌로써 옥을 갈고 소금으로 금을 닦는다. 물건에는 천한 것으로 귀중한 것을 다스리며 더러운 것으로써 좋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且攻玉以石 洗金以鹽 物固有以賤理貴 以醜化好者矣/ 차공옥이석 세금이염 물고유이천리귀 이추화호자의).’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대로 평시에는 대수롭지 않은 물건이 중요하게 쓰일 때가 온다. 보통 때에는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을듯하던 사람이 의외의 실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물건이나 사람이나 하찮고 대수롭지 않은 것은 없는 법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825.html
kolaswqetsrq 11.14 15:52
삼인성호三人成虎 - 세 사람이 짜고 호랑이를 만들다.

삼인성호(三人成虎) - 세 사람이 짜고 호랑이를 만들다.

석 삼(一/2) 사람 인(人/0) 이룰 성(戈/3) 범 호(虍/2)

한 사람이 번잡한 거리에 나타날 수 없는 범이 있다고 하면 믿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 세 사람이 연속으로 말하면 믿게끔 꾸밀 수 있다. 이처럼 三人成虎는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도 자꾸 말하면 곧이듣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流言蜚語(유언비어)를 퍼뜨려 상대방을 중상 모략하는 것을 일컫기도 한다.

劉向(유향)이 전국시대 전략가들의 책략을 모은 ‘戰國策(전국책)’의 魏策(위책)에 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 魏(위)나라 惠王(혜왕) 때의 일이다. 趙(조)나라와의 싸움에 져서 태자를 인질로 보내게 되었는데 수행원으로 중신 龐蔥(방총, 龐은 높은집 방, 蔥은 파 총)이 결정됐다.

조나라의 수도 邯鄲(한단, 邯은 조나라서울 한, 鄲은 한단 단)으로 떠나기 전 방총은 왕을 알현했다. 만약 왕에게 어떤 사람이 달려 와서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겠느냐고 여쭈니 믿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두 사람이 와도 믿지 않겠지만 세 사람이 와서 말하면 믿지 않을 수가 없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방총이 ‘시장 바닥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세 사람의 말에 호랑이가 되는 것(三人之言 則成虎/ 삼인지언 즉성호)입니다.

태자를 수행해 가면 뒷말이 많을 것인데 잘 굽어 살피시기 바랍니다’라며 유언비어를 믿지 말 것을 당부했다. ‘韓非子(한비자)’에는 똑 같은 이야기에 태자를 수행한 방총이 龐恭(방공)으로 되어 있다.

여러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 그럴 듯하게 꾸며 거짓말을 전해도 많은 사람이 사실인 줄 알고 믿는다. ‘一犬吠形 百犬吠聲(일견폐형 백견폐성/ 개 한 마리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모든 개가 따라 짖는다)’이다. 이 말은 後漢(후한) 말기의 사상가 王符(왕부)의 潛夫論(잠부론)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링컨의 명언도 있다. ‘모든 사람을 얼마 동안 속일 수는 있다. 또 몇 사람을 늘 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늘 속일 수는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695.html
kolaswqetsrq 11.14 15:53
전패위공轉敗爲功 - 실패를 바꾸어 성공으로 이끌다.

전패위공(轉敗爲功) - 실패를 바꾸어 성공으로 이끌다.

구를 전(車/11) 패할 패(攵/7) 하 위(爪/8) 공 공(力/3)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듯이 승부에서 지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실력 차이가 있을 때에는 겨루기를 피하고, 우위에 있을 때는 상대를 않는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란 말은 수준 차가 나는데 굳이 승부를 가리지 않고 너그럽게 대하면서 양보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승리하는 것을 이른다.

승리와 패배는 우리들 마음속에 있다는 격언도 마음가짐에서 온다. 이는 중국 루신魯迅/ 노신의 소설 ‘阿Q正傳(아큐정전)’에서 패배해도 자위하며 정신승리로 여기는 것과 통한다. 그런데 이런 승리보다 승부에 진 것(轉敗)을 교훈삼아 반성하고 더욱 실력을 닦아 성공으로 이끌면(爲功) 더 큰 보람이다.

因敗爲功(인패위공)이라고도 하는 이 말은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의 뛰어난 정치가 管仲(관중)에서 나왔다. 管鮑之交(관포지교, 鮑는 절인물고기 포)란 말의 당사자이고 상공업을 육성하여 桓公(환공)을 春秋五霸(춘추오패)의 한 사람으로 오르게 한 수완을 발휘했다.

그가 한 유명한 말을 더 보자.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倉廩實而知禮節/ 창름실이지예절), 의식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안다(衣食足而知榮辱/ 의식족이지영욕)’, ‘사유가 해이해지면 나라가 망한다(四維不張 國乃滅亡/ 사유부장 국내멸망).’ 廩은 곳집 름, 四維(사유)는 나라를 다스리는 네 가지 강령 禮義廉恥(예의염치)다.

‘史記(사기)’의 管晏列傳(관안열전)에는 이 말에 이어 그의 능력을 더 평가한다. 관중은 정치를 하면서 ‘재앙이 될 수 있는 일일지라도 그것을 잘 이용하여 복이 되게 하고(善因禍而爲福/ 선인화이위복), 실패할 일도 돌이켜 성공으로 이끌었으며(轉敗而爲功/ 전패이위공), 일의 경중을 잘 헤아려 균형을 잡는데 신중을 기했다(貴輕重 愼權衡/ 귀경중 신권형).’

관중은 예와 의에 반하는 행동을 한 적이 있어도 孔子(공자)가 그의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정치를 펼쳤기에 제나라는 100여 년이 지나 등장하는 재상 晏嬰(안영)까지 탄탄한 국력을 자랑했다.

열세를 딛고 강자에 승리를 거두면 관전자도 짜릿하게 느끼며 열광한다. 하지만 이런 기적은 자주 일어나길 기대하지 못한다. 실패했을 때 땅을 치고 통곡만 할 것인가, 그 원인을 잘 분석하여 이겨내고 최후의 영광을 차지할 것인가는 패배를 수용하는 데서 나온다.

늘 이기다가 참패했을 때 절대 지지 않았다고 阿Q(아큐)식 정신승리만 되풀이하다간 잘 나갈 때의 영광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자세면 이기고 지는 것이 常事(상사)가 아니고 패배만 따라다닌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971.html
kolaswqetsrq 11.14 15:55
사택망처徙宅忘妻 – 집을 옮기며 아내를 잊어버리다.

사택망처(徙宅忘妻) – 집을 옮기며 아내를 잊어버리다.

옮길 사(彳/8) 집 택(宀/3) 잊을 망(心/3) 아내 처(女/5)

지나간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잊어버리는 정도가 심할 때 健忘症(건망증)이라 한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을 잘 잊을 때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또는 ‘정신을 꽁무니에 차고 다닌다’고 놀려 댄다. 이런 정도는 애교로 봐줄만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약 집을 옮길 때(徙宅) 부인을 잊어버리고 간다(忘妻)면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요즘이야 이사를 할 때 부인이 남편을 버리고 갈까봐 먼저 짐차에 올라탄다고 하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성어는 매우 중요한 일을 놓쳐 버리는 일이나 그런 얼빠진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 徙家忘妻(사가망처)라고 해도 같다.

이렇게 부인을 두고 갈 정도로 중요한 것을 빠뜨리는 사람보다도 孔子(공자)는 더 심한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말기 魯(노)나라의 哀公(애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과인은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집을 옮기면서 아내를 잊어버렸다고 들었는데(寡人聞忘之甚者 徙而忘其妻/ 과인문망지심자 사이망기처) 실제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공자는 이런 사람이 실제 있지만 더 심한 사람도 있으니 자기 몸을 잊어버리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고 아리송해하자 옛날 夏(하)나라의 桀(걸)이나 商(상)나라의 紂(주)같은 폭군이 그들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천자의 자리에서 사해를 가지는 부를 갖고 있으면서도 국사는 돌보지 않고 사치와 황음에 빠졌다고 했다. 또 권세에 아부하고 남을 비방하기 좋아하는 간사한 사람들만 곁에 두어 충성스럽고 정직한 신하들은 모두 추방시켰기 때문에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다며 말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몸을 잊은 더 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此謂忘其身之甚矣/ 차위망기신지심의).’ 중국 삼국시대 魏(위)나라 王肅(왕숙)이 편찬했다고 하는 ‘孔子家語(공자가어)’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책은 공자의 언행 및 문인들과의 논의를 수록한 책인데 賢君(현군)편에 실려 있다.

일상에서 사소한 것을 잊어도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면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더 큰 약속을 하고서도 잊거나 일부러 하지 않는 높은 사람들도 많으니 이들의 처사는 국민들이 잊지 말아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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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5:56
도도부절 滔不絶 - 물이 넘쳐 끊임이 없다, 말을 조리 있게 잘하다.

도도부절( 滔不絶) - 물이 넘쳐 끊임이 없다, 말을 조리 있게 잘하다.

물넘칠 도(氵/10) 물넘칠 도(氵/10) 아닐 불, 부(一/3) 끊을 절(糸/6)

물이 가득 넘쳐 세차게 흐르는 모양을 滔滔(도도)라 한다. 잘난 체하며 아무 데나 나서는 도도함과는 관계없다. 대신 물 흐르듯 말하는 모양이 거침없고 시원할 때 ‘도도한 웅변’같이 나타낸다. 끊임없이 흐르는 물은 말 잘하는 모습으로 곧잘 비유되는데 푸른 산에 흐르는 맑은 물 靑山流水(청산유수)가 그렇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와 같다는 口若懸河(구약현하)가 그렇다.

상대방이 듣든 말든 쓸데없이 말수가 많으면 수다가 되지만 물론 이들 표현은 때와 장소를 가려 핵심을 찌르며 조리 있게 설득하는 것을 가리킨다. 물이 넘쳐(滔滔) 끊임이 없다(不絶)는 이 성어도 마찬가지다.

중국 唐(당)나라 6대 玄宗(현종) 때의 시인이자 각종 관직을 거쳐 재상에 올랐던 張九齡(장구령, 673~740)의 일화에서 이 말이 비롯됐다. 장구령은 사람의 능력을 자격보다 앞세워 관직에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늘 황제에게도 의견을 제시하며 이해득실을 논평했다고 한다. 이로써 賢相(현상)이라는 평을 듣고 난을 일으킨 安祿山(안록산)이 위험인물임을 일찍이 간파했다고도 전한다.

이런 곧은 처신이 간신 李林甫(이임보)에게 결국 중상모략을 받아 관직을 뺏기고 외직으로 돌았다. 장구령은 바르게 말하는 것을 넘어 말솜씨도 아주 좋았다는 이야기가 ‘開元天寶遺事(개원천보유사)’라는 책에 전한다.

이 책은 당이 멸망한 뒤 五代(오대) 後唐(후당)의 한림학사 등을 역임한 王仁裕(왕인유)의 저작이다. 민간에 전해져 오던 盛唐(성당)의 고사를 모은 책이라 사실보다는 풍문과 설화위주로 음미할 만한 글이 많다고 한다. 장구령은 담론에 능하다면서 卷四(권사) 부분에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찾아온 손님과 경서의 이론을 논할 때마다(每與賓客議論經旨/ 매여빈객의론경지), 말이 물 흐르듯 끊어지는 법이 없었는데(滔滔不竭/ 도도불갈), 이는 마치 비탈길에 쇠구슬이 굴러 내려가는 듯했다(如下坡走丸也/ 여하파주환야).’ 물이 계속 흘러 끝이 없다고 한 不竭(불갈)이 不絶(부절)로 변했다.

옛날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의 변설가 이름을 따 ‘말 잘하기는 소진장의’란 말이 있듯이 蘇秦(소진)과 張儀(장의)는 말로써 七雄(칠웅)을 요리했다. 하지만 최후가 좋지 않은 비유가 ‘항우도 낙상할 적이 있고 소진도 망발할 적이 있다’는 말이다.

항상 말을 잘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앞을 내다보며 믿음을 줘야 오래 남는 좋은 말이 된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천을 하지 못하면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는 말대로 실속이 없다. 각종 선거 때마다 내세우는 정당의 호언장담이 空約(공약)이 되는 것은 말만 앞세우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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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5:57
귀이천목貴耳賤目 –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기다. 멀리서 들어온 것만 중시하다.

귀이천목(貴耳賤目) –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기다. 멀리서 들어온 것만 중시하다.

귀할 귀(貝/5) 귀 이(耳/0) 천할 천(貝/8) 눈 목(目/0)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는 흔한 것은 가치를 모르고 지나친다. 그래서 자꾸 눈을 딴 데로 돌린다. ‘남의 손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남이 잡은 일감이 더 헐어 보인다’는 속담대로다. 자기 밥의 콩은 항상 작아 보이고, 제 마누라는 고마움을 모르고 남의 부인은 미인으로 보인다.

자기 집의 닭을 하찮게 여기고, 들의 꿩은 훨씬 가치를 높게 여긴다는 家鷄野雉(가계야치)란 성어와 통한다. 같은 뜻의 귀를 귀하게 여기고(貴耳) 눈을 천하게 여긴다(賤目)는 이 말은 마음의 등불이라는 눈의 가치를 낮춰 본 것이 아니라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말이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먼 곳에 있는 것을 대단하게 여기고, 가까이에 있는 것을 대단찮게 본다. 또 옛것은 귀하게 여기고 새 것은 하찮게 여긴다는 貴古賤今(귀고천금)과 같이 보면 복고주의적 성격이 강한 중국인들의 풍조를 꼬집은 것임을 알 수 있다.중국 漢(한)나라 초기의 유학자 桓譚(환담, 기원전24~기원후56)의 ‘新論(신론)’에 잘 표현한 대목이 나온다.

세상 사람들은 먼 곳의 소문만 중하게 여기고, 가까운 데서 제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천한 것으로 여긴다면서 이어진다. ‘세상 사람들은 옛것을 귀하게 여기고 지금 것을 비천하게 여기며, 귀로 들은 것을 귀하게 여기고 눈으로 본 것을 천한 것으로 여긴다(世咸尊古卑今 貴所聞 賤所見/ 세함존고비금 귀소문 천소견).’

後漢(후한)의 문인 겸 과학자인 張衡(장형, 78~139)은 ‘東京賦(동경부)’에서 더 신랄하게 꾸짖는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후학들이 속뜻은 모르고 겉만 이어받아 전하며, 들은 것만 귀히 여기고 눈으로 본 것은 천하게 여긴다(所謂末學膚受 貴耳而賤目者也/ 소위말학부수 귀이이천목자야).’末學(말학)은 천박한 학문, 膚受(부수) 역시 피부에 받아들인 피상적인 학문이란 뜻. 잘 알지 못하는 이론이나 귀로만 전해들은 지식을 더 신뢰하는 세태를 비판했다.

전해들은 이야기를 무작정 믿고,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을 뒷전으로 미룬다는 것은 무조건 서구 것만 좋다는 세태를 꾸짖는 말이다. 외국 이론을 들이더라도 우리 실정에 맞게 응용하지 않고 도입하다 탈이 난다. 외국의 유행을 무작정 따라가는 것도 분별 있는 태도가 아님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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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5:58
막천석지幕天席地 - 하늘을 장막으로 땅을 자리로 삼다, 품은 뜻이 웅대하다.

막천석지(幕天席地) - 하늘을 장막으로 땅을 자리로 삼다, 품은 뜻이 웅대하다.

장막 막(巾/11) 하늘 천(大/1) 자리 석(巾/7) 따 지(土/3)

하늘을 지붕 삼는다는 말이 있다. 잘 곳이 없어 한데서 잠을 자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를 가리킨다. 비슷한 내용 같아도 하늘을 장막으로 삼는다(幕天)는 말은 땅을 자리로 삼는다(席地)는 말이 이어져 품은 뜻이 웅대함을 나타낸다.

포부가 하늘을 찌르고 땅을 덮을 만큼 크다니 과장이라 해도 큰 뜻을 품은 사람은 가질 만하다. 이런 큰 뜻을 가졌어도 실현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을 풍자한 것이라 더욱 흥미진진하다. 중국 後漢(후한)과 魏晉(위진)의 혼란기에 竹林七賢(죽림칠현)으로 유명한 劉伶(유령, 伶은 영리할 령)의 글에서 처음 나왔다.

부패한 정치권력에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淸談(청담)을 즐겼던 죽림칠현 중에서도 유령은 특히 술과 관계 깊다. 항상 술을 지니고 하인에 삽을 메고 따르게 하여 ‘자신이 죽으면 곧바로 묻으라(死便埋我/ 사편매아)’고 했을 정도였다. 유령이 술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 ‘酒德頌(주덕송)’이다.

앞부분에 大人先生(대인선생)을 등장시켜 해와 달을 빗장과 창문으로, 광활한 천지를 뜰이나 길거리로 삼았다며 이어진다. ‘길을 가도 지난 자취가 없고, 거처함에 일정한 집이 없어(行無轍跡 居無室廬/ 행무철적 거무실려), 하늘을 천막 삼고 땅을 돗자리 삼아, 마음 가는대로 내맡기노라(幕天席地 縱意所如/ 막천석지 종의소여).’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조롱한 것이라 해도 호방한 이 구절은 후세 시인들에 많이 인용됐고 우리 고전에도 등장한다. 고려 때의 金富軾(김부식)은 ‘늘그막에 생계가 족함을 알아(老來生計皆知足/ 노래생계개지족), 바야흐로 유령의 자리와 장막 넓은 걸 믿노라(方信劉伶席幕寬/ 방신유령석막관)’라고 ‘酒醒有感(주성유감)’에서 노래했다.

표현은 다르지만 조선시대 기행의 승려 震默大師(진묵대사)의 시도 거창하다.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 삼으며 산을 베개 삼네(天衾地席山爲枕/ 천금지석산위침), 달빛은 촛불 되고 구름은 병풍이며 바닷물은 술통이라(月燭雲屛海作樽/ 월촉운병해작준).’

청운의 뜻을 현실 세계에서 이루지 못해 술로 나날을 지새운다면 좋은 세상이 아니다. 이들이 소극적이지만 난세를 풍자하고 바로잡으려는 작품과 일화가 풍부해도 나라를 위한 직접적인 기여만 못하다.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세대들이 점점 삭막해져 가는 현실 앞에 나아갈 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일이 많다고 하니 안타깝다.

미래세대에게 큰 뜻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치인데 현실에서는 자꾸만 짐만 지운다. 이러다간 하늘과 땅을 장막으로 웅대한 꿈을 갖는 것보다 갈 곳 없어 이불과 요로 삼을까 두렵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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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5:59
목광여거目光如炬 – 눈빛이 횃불같이 빛나다, 몹시 화가 나다, 뜻이 높고 원대하다.

목광여거(目光如炬) – 눈빛이 횃불같이 빛나다, 몹시 화가 나다, 뜻이 높고 원대하다.

눈 목(目/0) 빛 광(儿/4) 같을 여(女/3) 횃불 거(火/5)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 했으니 눈이 맑으면 온 몸이 맑을 것이다. 온화한 마음으로 남을 대할 때는 눈에 잔뜩 친절이 배어난다. 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듯이 해를 끼치는 상대에까지 친절할 수는 없다.

이럴 때는 서양 격언처럼 ‘시선은 칼’이고 우리 속담에 있듯 ‘눈에 쌍심지가 오른다’. 옛날 중국 晉(진)나라의 阮籍(완적)이란 사람은 친한 사람에겐 靑眼(청안)으로, 거만한 사람은 白眼(백안)으로 대했다고 했다. 가까이는 전 대통령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와 장관들이 꼼짝 못했다는 말도 있었다.

눈에 불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눈빛(目光)이 마치 횃불같이 이글거린다면(如炬) 무지하게 화가 많이 났겠다. 실제 성어의 주인공 檀道濟(단도제, ?~436)는 30여 차례나 전장에 나가 큰 공을 세웠음에도 시기하는 무리들에 붙잡혀 죽게 되니 그럴 만도 하다. 南北朝(남북조)시대 宋(송)을 세웠던 武帝(무제)의 북벌에 참여한 장군 단도제는 그 공으로 護軍(護軍)에 봉해졌다.

무제가 임종하면서 그의 아들 文帝(문제)가 즉위하자 더욱 중용됐다. 北魏(북위)가 쳐들어왔을 때 都督(도독)으로 참전하여 결국 남침을 저지했다. 문제는 단도제의 공을 인정하여 그의 아들까지 요직에 앉혔다. 그러고도 일부 신하들이 그를 음해하지 않을지 항상 신경을 곤두세웠다.

몇 년 뒤 문제가 중병을 앓게 되자 걱정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彭城王(팽성왕)으로 있던 劉義康(유의강)이 장수 劉湛(유담)과 음모를 꾸몄다. 그들은 거짓으로 북위가 쳐들어온다며 임지에 있던 단도제를 수도 建康(건강)으로 불렀다. 문제의 병세가 조금 호전되자 작별을 고하고 돌아가려는데 유의강 일당이 모반죄로 덮어 씌었다.

단도제는 졸지에 화를 당하게 되자 몹시 화가 나 그 눈빛이 마치 횃불과 같았다(道濟見收 憤怒氣盛 目光如炬/ 도제견수 분노기성 목광여거). 그리고는 관을 팽개치며 말했다. ‘너희들이 만리장성을 무너뜨리려느냐(乃壞汝萬里長城/ 내괴여만리장성)?’ ‘南史(남사)’ 단도제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눈에 불이 번쩍이면 무섭다. 노기를 띠고 바라볼 때는 무섭지만 어떤 일에 완전 몰두할 때도 눈이 번득인다. 眼光(안광)이 紙背(지배)를 徹(철)한다는 勉學(면학)의 태도도 그렇다. 횃불같이 밝은 눈은 몹시 화를 내는 비유에서 식견이 높고 원대함을 가리키는 말로 뜻이 변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131.html
kolaswqetsrq 11.14 16:00
부지교지富之敎之 - 잘 살게 하고 가르쳐야 한다,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우선

부지교지(富之敎之) - 잘 살게 하고 가르쳐야 한다,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우선

부자 부(宀/9) 갈 지(丿/3) 가르칠 교(攵/7) 갈 지(丿/3)

교육은 중요하다. 국가의 기초는 소년을 교육하는 데 있고, 나라의 운명은 청년의 교육에 달려 있다고 철인들은 가르친다. 교육이 국가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교육 없는 국가는 반드시 멸망한다고도 말한다. 이처럼 중요한 교육보다 앞서야 되는 것이 있다.

바로 먹고 살 수 있어야 교육이고 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말을 孔子(공자)가 강조했으니 의외다. 簞食瓢飮(단사표음, 簞은 소쿠리 단)의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학문을 즐긴 제자 顔淵(안연)을 칭찬하고, 淸貧(청빈)하게 살며 분수를 지키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한 공자니 더욱 그렇다.

넘치지는 않아도 기본적인 衣食住(의식주)는 해결돼야 다음을 바란다. 공자는 백성들에게 의식을 풍족하게 한 연후에(富之) 예절을 알도록 가르치는(敎之) 것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先富後敎(선부후교)의 의미다.

이것은 공자가 올바른 정치방법을 말한 것으로 경제적으로 백성들을 안정시킨 후 인륜을 깨우치는 것을 말한다. ‘論語(논어)’의 子路(자로)편에서 공자가 제자 冉有(염유, 冉은 늘어질 염)와의 대화에서 나온다. 孔門十哲(공문십철)에 들어가는 염유는 冉求(염구)의 자이다. 정사에 밝아 후에 季孫氏(계손씨)의 가신이 됐고 재물을 모으고 세금을 올리는 등 스승의 가르침과 엇나가 서운하게 하기도 한 사람이다.

공자가 천하를 周遊(주유)할 때 衛(위)나라로 들어가면서 수레를 몰던 염유와 한 대화 내용이다. 위나라는 번창했던 나라로 많은 사람이 분주히 오갔다. 공자가 ‘참 많구나(庶矣哉/ 서의재)’ 하자 염유가 인구가 많으면 그 다음 할 일이 무엇인지 여쭈니 ‘부유하게 만들어야지(富之/ 부지)’ 한다.

‘이미 부유하면 또 무엇을 더해야 하겠습니까(既富矣 又何加焉/ 기부의 우하가언)’ 하니 바로 답한다. ‘가르쳐야 한다(教之/ 교지).’ 인간의 도리를 알고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교육도 먼저 이들이 잘 살게 한 뒤라야 가능하다는 가르침이다.

초야에 묻혀 유유자적하게 사는 安貧樂道(안빈낙도)의 삶을 최고로 여긴 선인들도 경제를 도외시할 수 없다는 명언을 많이 남겼다. 管子(관자)는 ‘의식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안다(衣食足而知榮辱/ 의식족이지영욕)’고 했고, 맹자는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바른 마음이 없다(無恒産 無恒心/ 무항산 무항심)’고 했다.

이처럼 생을 유지하기 위한 부가 있어야 교육이 되는데 오늘날 貧富(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사교육도 성행하고 학력도 크게 벌어진다고 한다. 나물 먹고 물마시며 살아도 자식 교육에는 돈이 필요하니 빈부격차 완화는 어디서나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918.html
kolaswqetsrq 11.14 16:01
우각괘서牛角掛書 – 쇠뿔에 책을 걸다, 열심히 공부하다.

우각괘서(牛角掛書) – 쇠뿔에 책을 걸다, 열심히 공부하다.

소 우(牛/0) 뿔 각(角/0) 걸 괘(扌/8) 글 서(曰/6)

오늘날 독서 인구가 점차 줄어든다고 걱정들이 많다. 하지만 도서관이나 서점마다 독서하는 사람들로 꽉 차고, 출판사마다 불황이라 해도 계속 책이 나온다. 지하철에서 신문이나 책 읽는 모습은 자취를 감췄어도 여전히 책을 사랑하고 책으로 지혜를 얻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나 독서에 관한 선인들의 좋은 경구는 차고 넘친다.

고사가 따르는 성어도 많은데 반딧불과 눈빛으로 책을 읽었다는 螢窓雪案(형창설안)이나 잠을 쫓기 위해 머리카락을 매달고 넓적다리를 찌르는 懸頭刺股(현두자고), 마당에 널어놓은 보리가 소나기에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다는 高鳳流麥(고봉유맥)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성어에 못지않게 쇠뿔(牛角)에 책을 건다(掛書)는 이 말은 길을 가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李密(이밀, 582~618)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이밀은 隋(수)나라 때의 명문가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포부가 커 천하를 구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처음 음덕으로 煬帝(양제, 煬은 녹일 양)의 하급관리로 있다가 병으로 사직하고 고향에서 독서에 전념했다. 어느 때 평소 존경하던 학자 包愷(포개)가 살고 있는 곳을 알아내고 먼 길을 가면서도 책을 읽을 방법을 찾다가 묘안을 떠올렸다.

먼저 갯버들을 뜯어 안장을 엮은 뒤 소의 등에 얹고, 양 뿔에 읽던 한서 책을 걸고서는 가면서 책을 읽었다(以蒲韉乘牛 掛漢書一帙角上 行且讀/ 이포천승우 괘한서일질각상 행차독). 蒲는 부들 포, 韉은 언치 천.

한 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책을 읽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 때 길을 지나던 재상 楊素(양소)가 보고 기이하게 여겨 무슨 책을 보고 있느냐고 물은 뒤 자신의 아들과 교유하도록 했다. 歐陽修(구양수) 등이 엮은 ‘新唐書(신당서)’의 이밀전에 실려 전한다.

이밀의 후일은 그러나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양소의 아들 밑에 모사로 들어갔다가 계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반란 집단에 가담하게 되었고, 唐(당)나라에 귀순한 뒤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가 결국 36세 되는 해 살해되고 말았다.

시간을 아껴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한 결과가 허무하다. 학문 외의 세상 흐름에 너무 무심하고 자기 길만 옳다고 여긴 결과가 아니었을까. 열심히 공부하는 태도만은 본받을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600.html
kolaswqetsrq 11.14 16:02
문장도리門墻桃李 - 스승의 문하와 가르침을 받은 뛰어난 제자

문장도리(門墻桃李) - 스승의 문하와 가르침을 받은 뛰어난 제자

문 문(門/0) 담 장(土/13) 복숭아 도(木/6) 오얏 리(木/3)

문과 담장(門墻)을 합쳐 스승의 문하를 가리킨다. 복숭아와 오얏(桃李)은 스승이 길러낸 뛰어난 제자를 말한다. 말만 듣고 도저히 연상하기 어려운데 각각의 유래가 따로 있어 뒤에 합쳐진 성어다. 스승이 길러낸 우수한 제자들과 뛰어난 문하의 인재가 곳곳에 있는 것을 뜻하는 桃李滿天下(도리만천하)와 같다.

복숭아와 자두의 옛말인 오얏은 꽃과 열매가 좋아 그 나무 아래로 많은 사람이 모여들기 때문에 후진교육이나 사제지간을 뜻하게 됐다고 한다. 준수한 인사가 줄을 이었다고 桃李成行(도리성행)이나 桃李門前(도리문전), 滿門桃李(만문도리) 등등 쓰임새도 많다.

앞선 차례대로 문과 담장을 보자. 문장은 성어가 유래한 ‘論語(논어)’ 子張(자장) 편에서 宮牆(궁장)으로 사용됐다. 孔子(공자)의 제자 子貢(자공)은 말을 잘 하고 이재에도 밝은 十哲(십철)의 한 사람이다. 이 자공이 魯(노)나라 대부에게서 스승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듣고 ‘담장에 비유하여(譬之宮牆/ 비지궁장)’ 말한다.

자신의 담장은 어깨 높이라 집안의 좋은 것을 볼 수 있으나 ‘스승의 그것은 너무 높아(夫子之牆數仞/ 부자지장수인)’ 그 안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을 뿐이라고 했다. 문을 찾아 들어간 사람이 적으니 그렇게 말들을 해도 심오한 스승의 가르침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였다.

복숭아와 오얏이 뛰어난 인재를 말한 것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데 앞선 ‘說苑(설원)’의 내용부터 보자. 戰國策(전국책)으로 유명한 前漢(전한)의 劉向(유향)이 쓴 교훈적인 설화집이다. 趙簡子(조간자)라는 晉(진)나라 대부가 아랫사람에게 배반당했다며 호소하는 陽虎(양호)에게 말하는 내용이 復恩(복은)편에 나온다.

‘복숭아나 자두를 심는 사람은(夫樹桃李者/ 부수도리자),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가을에는 열매를 얻을 수 있지요(夏得休息 秋得食焉/ 하득휴식 추득식언).’ 찔레를 심으면 얻을 것이 없다며 덕이 있는 이를 길러 재주를 가르쳐야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해악만 돌아온다고 했다.

스승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은 인재가 힘을 합쳐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훌륭한 가르침을 받으러 모여드는 제자들이 학파를 이루고 건전한 토론과 경쟁을 통하여 나라를 이끈다면 더 이상 좋을 것이 없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스승이란 말이 퇴색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스승의 날이 있지만 형식만 남아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부터 없앴으면 좋겠다고 한다. 돈이 있어야 얄팍한 지식이라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고,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예사로 교권을 무시하니 당연한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972.html
kolaswqetsrq 11.14 16:03
매검매우賣劍買牛 - 칼을 팔아 소를 사다, 전쟁을 그만 두고 농사짓다, 평화세상이 되다.

매검매우(賣劍買牛) - 칼을 팔아 소를 사다, 전쟁을 그만 두고 농사짓다, 평화세상이 되다.

팔 매(見/8) 칼 검(刂/13) 살 매(見/5) 소 우(牛/0)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 성경에 나오는 말이다. 같은 칼이라도 한쪽만 날이 있는 刀(도)는 물건을 베는데 쓰고, 양날이 있는 劍(검)은 무기로 쓴다고 대체로 분류한다. 가장 오래된 무기인 칼은 양쪽의 날로 인해 남을 위협할 수도 있지만 자신도 위험하다.

나라 사이의 전쟁에서나 세력을 모아 대항할 때도 필요한 무기, 칼을 더 이상 소용없다고 팔아(賣劍) 농사지을 소를 사게 한다면(買牛), 어리석은 일이 아니라 백성을 가장 잘 다스리는 현명한 방법이었다. 원래는 봉건 통치자들이 불만을 품고 봉기한 농민들로 하여금 칼을 놓고 농사를 짓게 한다는 뜻으로 송아지를 산다는 賣刀買犢(매도매독)도 같은 말이다.

前漢(전한)의 10대 宣帝(선제) 때 명신이었던 龔遂(공수, 龔은 공손할 공)의 이야기에서 유래된 성어다. 선제는 즉위하기 전 각지를 유랑하며 일반 백성의 생활을 체험해 고난도 이해하려 했다. 왕에 오른 뒤 渤海(발해) 지역에 9년에 걸친 한발이 닥치자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관아에서도 속수무책이었다.

왕이 파격적으로 그 지역 태수를 모집했는데 주변에서 공수를 추천했다. 당시 공수는 70이 넘은 왜소한 노인이었지만 왕이 자신을 파견하려는 목적이 도적들을 감화시키기 위한 것임을 알았다. 혼란한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은 엉킨 실을 푸는 것과 같아서 서두르면 안 되니 차분히 기다려달라고 당부하고 부임지로 떠났다.

변경에 다다랐을 때 발해 지역관원들이 안전을 위해 병사를 보내왔으나 모두 돌려보낸 뒤 공표했다. 도적을 잡던 관병들은 고향으로 가고, 낫과 호미를 들고 있는 사람은 양민으로 볼 것이니 관리들은 그들을 해치지 말라고 명했다. 부임 후 즉시 곡창을 열어 구제하니, 백성들은 도적질을 그만 두고 농사를 짓는 등 한 순간에 혼란이 가라앉았다.

공수는 만나는 사람마다 나무와 채소를 심고 가축을 기르도록 권유하고 ‘칼을 차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칼을 팔아 소나 송아지를 사게 했다(民有帶持刀劍者 使賣劍買牛 賣刀買犢/ 민유대지도검자 사매검매우 매도매독).’ 班固(반고)의 ‘漢書(한서)’ 循吏(순리)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북한의 최근 잇단 미사일 발사로 긴장국면이 이어지는 상황이지만, 머지않아 평화세상이 올 것으로 믿어 봅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102.html
kolaswqetsrq 11.14 16:04
귀지 색깔로 알아보는 나의 건강 상태

귀지 색깔로 알아보는 나의 건강 상태

몸이 분비하는 여느 이물질과 마찬가지로, 귀지는 사랑받는 대화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사실 이 끈적거리는 작은 물질은 신체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우리의 건강 상태를 알려준다. 언뜻 보기에 거북할 수도 있지만, 다음번 귀를 청소할 때 귀지를 잘 살펴보자.

귀지가 그저 귓속에 더러운 물질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었다면, 그건 경기도 오산. 사실 귀지는 세균과 먼지가 귀 속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신체가 만들어낸 방어막이다. 노폐물이 오히려 귀를 깨끗하고 건강하게 유지해준달까.

귀지는 긴 사슬 형태의 지방산과 스쿠알렌, 알코올로 구성돼 있다. 아무리 우리 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도, 귀에서 귀지가 뚝뚝 떨어진다면 그것만큼 정 떨어지는 모습도 없다. 귀지가 많이 쌓인 듯한 느낌이 들면, 젖은 천으로 귓속을 닦아내자. 이때, 무턱대고 면봉으로 후비면 고막 손상 등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특히 주의한다. 면봉은 깊이 집어넣지 말고 가장자리를 살짝 청소할 때만 쓴다.

1. 축축하고 끈적한 노란색 귀지

가장 흔한 형태의 귀지. 축축하고 끈적이는 귀지는 귀 속 건조함이나 가려움을 방지한다.

2. 회색 귀지

확실히 흔한 색깔은 아니다. 하지만, 면봉에 회색 귀지가 묻어 나오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자. 이는 귀의 자가청소 도중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온 이물질이다. 단, 귀지가 건조하고 딱딱하며 귓속이 간지럽다면, 습진이 생긴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이 보이면, 병원을 찾아가자.

3. 옅은 노란색 귀지

아이들의 귓속에서 나오는 귀지의 색깔은 대부분 옅은 노란색이다. 아이들은 보통 어른보다 많은 양의 귀지를 가지고 있다. 성장과 동시에 신체가 분비하는 귀지의 양이 점차 줄어든다.

4. 어두운 색깔의 끈적한 귀지

귀지가 보통 때보다 어두운 색깔을 띤다면, 이는 당신의 몸이 평소보다 많은 땀을 흘리고 있다는 증거다. 귀지가 어두울수록, 땀의 분비량이 늘어났다는 뜻으로, 이는 주변에 불쾌한 악취를 풍길 수 있다.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5. 어둡고 두꺼운 귀지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은 이에 반응해 더 많은 귀지를 분비한다. 또한, 땀을 많이 흘려도 귀지의 양은 늘어난다. 이렇게 쌓인 귀지는 귀 도관을 막아 일시적 청각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귀지가 어둡고 두껍다면, 건강을 위해서라도 주기적으로 귀지를 제거해주자. 당신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6. 건조하고 각질같은 하얀색 귀지

지극히 정상으로 건강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귀지를 가진 사람은, 어두운 색깔의 귀지가 나오는 사람보다 보통 체취가 덜한 편이다.

7. 검은색 또는 어두운 갈색 귀지

어두운 갈색 또는 검은색의 귀지는 보기엔 흉할 수 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두운 색깔의 귀지는 지금 당신의 신체가 많은 양의 귀지를 분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면, 귀지가 귓속에 오래 묵혀있었단 뜻일 수도 있다. 귀지에 들어있는 지방산이 점차 산화되며 어둡게 변하는 것이다.

8. 축축하게 흐르는 귀지

가끔 귀지가 귀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괜찮다. 보통 귀가 스스로 귓속을 청소하는 과정의 일부이다. 그러나 귀에서 많은 양의 귀지가 고름이나 피를 동반하며 계속해서 흘러나온다면, 이는 고막 파열이나 중이염 등의 감염을 의미할 수 있다. 이 경우, 즉시 의사를 찾아가자.

9. 피가 섞인 귀지

마치 응고된 피의 형태를 띤 이러한 귀지는 오랫동안 귀에 묵혀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러한 귀지가 나온다면, 고막이 파열되거나 손상됐을 수 있으니 바로 병원을 찾아간다. 이처럼 귀지는 여러 다양한 색깔을 띠고 있다. 다행히 건강엔 별 이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안심하시길.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992.html
kolaswqetsrq 11.14 16:05
폐의 자가 재생 능력을 높여주는 6가지 방법

폐의 자가 재생 능력을 높여주는 6가지 방법

폐가 매우 중요한 신체 기관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폐에 자가세척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신장이나 간처럼 폐 또한 스스로 재생하는 능력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수많은 요인들이 폐에 부담을 주고, 기능을 약화시킨다. 가령 알레르기나 환경오염은 우리 폐를 손상시키고 천식이나 만성 기관지염, 폐암 등의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그러나 여기 폐에서 유해물질을 신속히 제거할 수 있는 6가지 방법이 있다.

1. 잠들기 전 허브차 한 잔을 마신다. 허브차는 해독 작용을 한다.

2. 낮에는 파인애플이나 자몽주스를 틈틈이 마신다. 이들 과일은 기도를 강화시키는 천연 항산화제가 풍부하다.

3. 아침과 점심 사이에 당근주스 한 잔은 혈액의 pH수치를 올려 폐에 쌓인 독소를 제거한다.

4. 점심엔 칼륨이 풍부한 음료를 마셔보자. 특히 자두나 자몽, 오렌지 주스에는 칼륨이 풍부해 해독 작용 역할을 한다.

5. 잠들기 전 크랜베리 주스 한 잔은 세균 감염에 맞서 싸우는 신체 기능을 강화시킨다.

6. 따뜻한 수증기를 들이마시면 감기 뿐 아니라 기도의 기능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냄비에 뜨거운 물을 담고 유칼립투스 오일(eucalyptus oil)을 6~10방울 정도 떨어뜨린 뒤 몸을 구부려 냄비 가까이 얼굴을 대고, 큰 수건으로 머리와 냄비를 덮어서 증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한 다음 물이 식을 때까지 증기를 들이마시면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6_65.html
kolaswqetsrq 11.14 16:06
구강청정제에 발가락을 담갔더니... 전문가들조차 놀란 효과

구강청정제에 발가락을 담갔더니... 전문가들조차 놀란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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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 위생에 신경쓰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세면대 위에 구강청정제 하나쯤 두고 쓴다. 입안을 시원하게 헹구는 기능 이외에도, 구강청정제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아래 이어지는 설명을 읽다보면, 과연 구강청정제라는 이름이 적합한가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구강청정제의 대명사급인 리*테린이 1879년 처음 등장했을 땐 주로 소독약으로 쓰였고, 197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구강청정제라는 이름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수많은 용도로 쓰임 받아온 구강청정제, 지금까지도 유효한 다양한 쓰임새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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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체취 제거

데오드란트가 똑 떨어졌다면? 화장솜에 구강청정제를 묻혀 겨드랑이에 문질러보자. 이렇게 하면 더 이상 불쾌한 체취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2. 살균, 소독, 방향을 동시에

구강청정제를 변기에 붓는 것은 언뜻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허나, 변기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동시에 욕실에서 상쾌한 향까지 뿜어져나오니, 실은 대단히 효율적이다. 게다가 박테리아와 곰팡이도 한꺼번에 제거된다.

3. 벌레에 물려 가려울 때

모기나 벌레에 물렸다면 구강청정제를 살짝 발라보자. 가려움이 가라앉고 물린 자리도 소독되니 일석이조.

4. 비듬 예방

놀랍게도, 구강청정제로 비듬을 예방할 수 있다. 샴푸에 소량 섞어서 머리를 마사지한 뒤 꼼꼼하게 헹궈내면 끝.

5. 뾰루지 예방

구강청정제를 활용해서 뾰루지와 블랙헤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화장솜에 묻혀 트러블 난 피부에 살짝 두드려 바르면 흠없는 피부로 돌아온다.

6. 손발톱 무좀 제거

구강청정제는 손발톱 무좀에 탁월한 치료제이기도 하다. 넙적한 그릇에 구강청정제를 붓고 30분간 발을 담그면 무좀균이 제거된다.

7. 칫솔 소독

욕실처럼 습한 장소에 칫솔을 두고 쓰다보면 칫솔모에 세균이 번식하기 쉽다. 구강청정제 한 컵을 따라 칫솔을 거꾸로 꽂은 뒤 하룻밤만 두면... 박테리아, 잘 가!

8. 모니터 및 키보드 청소

모니터에 리*테린을 뿌리는 모습을 팀장이 보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화면에 낀 번들번들한 기름층을 제거하는 데 구강청정제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구강청정제를 극세사 천에 묻혀 문질러주면 새것처럼 깨끗해진다.

9. 쓰레기통 탈취제

구강청정제는 쓰레기통에 던져놔도 쓸모가 있다. 키친타올에 몇 방울 떨어트려 쓰레기통 바닥에 깔아두면 지독한 쓰레기 냄새가 확 줄어든다. 쓰레기통 열 때마다 코를 막지 않아도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531.html
kolaswqetsrq 11.14 16:07
집에서 할 수 있는 치질 치료법 5가지

집에서 할 수 있는 치질 치료법 5가지

치질, 듣기만 해도 오싹한 병명이죠.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상당수가 현실을 부정합니다. 문제가 저절로 사라질 때까지 무시하는 거죠.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99%이기 때문에 대처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치질에 효과적인 5가지 민간요법을 전수해 드릴게요. 지금부터 알려 드리는 방법들은 쉽고 간단합니다. 하지만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 요법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세요. 반드시 의사를 만나 치질에 걸린 원인을 확인하고, 더 심해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1. 커드(우유단백질이 응고된 것)

커드는 피부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작은 수건에 커드를 바르고 항문 위에 올린 뒤 20분 정도 기다렸다가, 따듯한 물로 잘 씻어내세요.

2. 좌욕

좌욕은 피부를 진정시키고 가려움증을 완화합니다. 욕조에 허벅지가 반쯤 잠길 정도의 물을 받아서 해도 되고, 아래 그림처럼 변기에 올려 사용하는 형태의 좌욕기를 사용해도 좋습니다. 따듯한 물에 카모마일이나 참나무껍질, 위치하젤 등 항염 효과가 있는 허브를 추가하면 금상첨화죠.

주의: 피부가 무르지 않도록 좌욕 물의 온도는 체온 정도에 맞춰야 합니다. 시간은 너무 길지 않게, 3~5분 정도 담가 주세요.

3. 바나나

바나나를 으깨서 작은 수건에 바르고 항문에 붙여 주세요. 1번 커드 사용법과 동일하게 20분 정도 기다리면 됩니다. 바나나껍질 안쪽은 진정 효과가 있으니까, 이걸 그대로 문제 부위에 올려도 괜찮고요.

4. 홍차

홍차 티백 2팩을 우려 식한 다음, 15분 정도 항문 위에 올려 주세요. 아니면 홍차로 좌욕을 해도 좋습니다.

5. 화장실용 발받침

용변을 볼 때 항문에 지나친 압력이 가해지면 치질에 걸릴 수 있습니다. 변기에 앉는 자세가 문제인 경우가 많은데요. 이럴 때는 어른용 발받침을 추천합니다. 여기 발을 올리면 척추와 다리가 이루는 각도가 90도보다 작아지면서 압력이 감소합니다.

그밖의 영양과 위생

변비가 심하면 치질로 악화되기도 합니다. 변비로 고통 받고 있다면 섬유질과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세요. 김치, 요거트, 콤부차 등 유산균이 풍부한 발효 식품을 먹으면 도움이 됩니다. 항문 위생을 위해서는,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부드럽고 질긴 휴지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티슈는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하네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_29.html
kolaswqetsrq 11.14 16:08
편두통 진정 민간요법, 빨래집게 하나면 해결

편두통 진정 민간요법, 빨래집게 하나면 해결

머리 한쪽이 지끈지끈하고, 속이 울렁거리고, 빛이나 소리를 엄청 민감하게 받아들이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현재 편두통을 앓고 있다. 편두통은 무척 흔한 증상이다. 여성 발병률이 남성 발병률의 무려 2배라고 한다. 대단치 않은 질병처럼 보일지 모르나, 편두통 환자들은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하고 휴식을 취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고통에 시달린다. 중요한 볼일이 있더라도 제때 마감하지 못하니, 스트레스로 병이 낫기는커녕 더 심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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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두통의 원인은 무엇일까?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보통 뇌가 고통을 인지하는 부분에 이상이 생겼을 때 일어난다. 자연 치유가 어렵고 만성으로 발전하기 쉽기 때문에, 한 번 생기면 꼭 의사의 상담을 받는 게 좋다. 편두통이 있다면 꼭 강력한 진통제를 먹어야만 할까? 정답은 아니다. 여러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진통제 복용은 줄이되 고통도 경감시키는 민간 치료법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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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이러한 가정 치료법은 트립탄이나 에르고타민과 같은 약물을 완전히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고통을 줄이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준다. 만성적인 편두통을 앓는 사람이라면, 언제 편두통이 일어나고 매일의 수면 시간과 식사 시간을 기록하는 편이 좋다. 하루 중 고통이 가장 심할 때에 민간 치료법을 시도해보면 된다. 빨래집게 도 두통을 없애는 민간 치료법 중 하나이다.
",

편두통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이 본능적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 누른다. 우리나라의 침술과 같은 이 마사지 방법을 활용하면 실제로 조금이나마 두통이 줄어든다. 두통의 중심지는 양 눈썹 사이의 미간, 눈썹의 시작점, 눈썹의 중앙이다. 우리의 신체에는 두통뿐만 아니라 발작까지도 막아주는 혈이 있다고 한다. 빨래집게는 여기를 누를 때 쓰인다.

1. 손 혈

엄지와 검지 사이의 부분을 빨래집게로 집어주자. 왠지 모르게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만약 너무 세게 집었다 싶으면, 집는 각도를 조금 바꿔보는 게 좋다. 그렇다고 집는 강도가 너무 약해서도 안 된다. 와이어가 적게 들은 최신형 빨래집게보다는 구형 빨래집게가 낫다. 한 손 당 1분에서 3분 정도 빨래집게를 끼우고 있는다. 하루에 3번 정도 반복하면, 편두통을 훨씬 줄일 수 있다.

2. 귓바퀴 혈

두통에 좋은 또다른 혈은 귓볼에 있다. 손과 마찬가지로, 빨래집게의 강도는 너무 세지 않되 충분히 압박이 느껴지는 정도로 해야한다. 1분에서 3분 정도 지나면 몸이 시원해지는 게 느껴질 것이다. 두통도 말끔하게 사라진다. 어떤 사람은 이 마사지로 큰 효과를 보기도 하고, 적은 효과를 보기도 한다. 초심자가 혈을 올바르게 딱 집기란 무척 어렵다. 우연히 빨래집게로 혈을 눌렀다가 완전히 두통이 가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독일의 한 전문가에 따르면 약을 먹지 않고 민간요법을 사용한 사람들이 오히려 고통을 덜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 만약 위 방법을 썼는데도 고통이 지속된다면, 가까운 병원을 꼭 찾아가도록 하자.

만약 다른 때보다 편두통이 심하게 오거나 편두통의 기미가 느껴진다면, 위의 지압법을 시도해보도록 하자. 더 일찍 할수록 더 효과가 좋은 편이다. 편두통이 너무 자주 있거나 심하다면, 병원을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만성 편두통은 생각보다 심각한 질환이니까! 진통제나 다른 약이 꺼려지는 사람이라면 한 번 빨래집게 지압법을 써보는 게 어떨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104.html
kolaswqetsrq 11.14 16:10
웃음의 신비한 효과

웃음의 신비한 효과

사람에게 편안함을 준다.

웃음은 원만한 성품의 필수조건이다.

웃음은 높은 혈압은 내려주고, 낮은 혈압은 높여준다.

웃음은 소화를 돕고, 노폐물의 제거를 돕는다.

웃음은 침울감에 대한 특효약이다.

웃음은 ‘아토피’를 치유케 한다.

웃음은 조깅의 효과가 있다.

일종의 ‘내적 조깅’이다.

웃음은 감기를 예방케하고, 치료도 해준다.

웃음은 암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

웃으면 살도 빠진다.

여자들이 남자보다 7년정도 더 오래 사는 것은 여성들이 남자보다 더 잘 웃기때문이다.

웃음은 심장을 부드럽게 안마해주어, 혈액순환을 돕는다.

웃음은 긴장을 풀어주고 친근감을 주어 많은 친구를 사귀게 도와준다.

맑고 진실한 웃음은 자신이 선한 사람임을 반영하는것이다.

웃음은 전염된다.

웃는 낯에 침 못뱉는다.

때와 장소를 가려 웃을때 웃어야 그 웃음은 명약이 되는 것이다.

* 월요일 - 원래대로 웃자!!

* 화요일- 화통하게 웃자!!

* 수요일- 수수하게 웃자!!

* 목요일 - 목터지게 웃자!!

* 금요일 - 금방 웃고 또 웃자!!

* 토요일- 토실토실 웃자!!

* 일요일- 일어나자마자 아침부터 웃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173.html
kolaswqetsrq 11.14 16:11
나이들면서 지켜야 할 12道

나이들면서 지켜야 할 12道

第1道 - 언도(言道)

나이가 들면 말의 수(數)는 줄이고, 소리는 낮추어야 한다.

第2道 - 행도(行道)

나이 들면 행동(行動)을 느리게 하되, 행실(行實)은 신중(愼重)해야 한다.

第3道 - 금도(禁道)

나이 들면 탐욕(貪慾)을 금(禁)하라. 욕심(慾心)이 크면 사람이 작아 보인다.

第4道 - 식도(食道)

나이가 들면 먹는 것이 중요하다. 가려서 잘 먹어야 한다.

第5道 - 법도(法道)

삶에 규모(規模)를 갖추는 것이 풍요(豊饒)로운 삶보다 진실(眞實)하다.

第6道 - 예도(禮道)

나이든 사람도 젊은이에게 갖추어야 할 예절(禮節)이 있다. 대접(待接)만 받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第7道 - 낙도(樂道)

삶을 즐기는 것은 욕망(慾望)을 채우는 것에 있지 않다. 간결(簡潔)한 삶에 낙(樂)이 있다.

第8道 - 절도(節道)

나이 듦이 아름다움을 잃는 것은 아니다. 절제(節制)하는 삶에 아름다움이 있다.

第9道 - 심도(心道)

인생(人生)의 결실(結實)은 마음가짐에서 나타난다. 마음을 비우면 세상이 넓어 보인다.

第10道 - 인도(忍道)

나이가 들어가면 인내(忍耐)가 필요(必要)하다. 참지 못하면 망령(妄靈)이 된다.

第11道 - 학도(學道)

연륜이 쌓이면 경험(經驗)이 풍부(豊富)하고 터득한 것이 많다. 그러나 배울 것은 더 많다.

第12道 - 기도(棄道)

손에 잡고 있던 것들을 언제 놓아야 하는지 이것이 나이 들며 배워야 할 마지막 (도)道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2_76.html
kolaswqetsrq 11.14 16:12
마음이 편해지는 방법

마음이 편해지는 방법

1. 불안과 걱정을 줄이는 법

-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

불안과 걱정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둘 다 ‘내 마음이 만들어 낸 것’으로 실체가 없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불안이 현재나 먼 미래에 대한 것이라면 걱정은 아주 가까운 곳, 지금이나 내일 등 가까운 미래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불안과 걱정을 줄이는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람은 행동과 고민을 동시에 하지 못한다.

2. 욕심을 줄이는 법

- 흘려보내기

무언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사지 말고, 단 며칠이라도 그 마음을 흘려보낸다. 며칠 후에도 계속 갖고 싶은 물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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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버리면 된다. 공허함을 소비로 달래는 사람들에게 권하는 방법은 ‘하루 중 단 1분이라도 멍하니 보내는 것’이다. 즉, 일순간이라도 좋으니 모든 집착이 사라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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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질투를 줄이는 법

- 남은 남, 나는 나라는 생각 갖기

매일 아침 세면대 앞에서 자기 자신과 대화하면 비교하고 질투하는 습관을 줄일 수 있다. 그때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너는 지금 그대로 만족하니?”, “이것이 네가 하고 싶은 일이야?” 사회나 남이 바라는 내 모습이 아니라 본래의 내 모습대로 나만의 행복을 찾아 살아가면 남과 비교할 일도, 남을 질투해서 괴로울 일도 없다.

4. 짜증 줄이는 법

- 감정이 격해지면 나만의 주문을 외쳐라

평소 말씨와 행동거지 그리고 생각을 정돈하면 불필요한 짜증을 줄일 수 있다. 그 방법으로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이 오면 마음속으로 나만의 주문을 세 번 외쳐 보라. 이를테면 “침착해, 침착해, 침착해.”라든가 “화나지 않았다, 화나지 않았다, 화나지 않았다.”고 외치는 것이다.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 이를테면 타인의 언행으로 인한 짜증은 어떻게 해야 할까. 포기하거나 내 생각을 바꿔라. 타인은 결코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럴 때는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시각을 바꾸는 것이 현명하다.

5. 허세와 인정받고 싶은 습관 줄이는 법

-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단 한 사람을 만들어라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꾸미는 일이나 행복하게 사는 척 연기하는 일,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좌절하는 태도가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으면 허세와 인정 욕구를 조금은 줄일 수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주는 사람, 나의 약점까지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회사 말고도 내 마음을 둘 수 있는 곳, 학력이나 외모·재산 따위와 상관없이 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197.html
kolaswqetsrq 11.14 16:13
천천히 늙는비법 10가지

천천히 늙는비법 10가지

평소 습관만 잘들여도 늙지 않는 비법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매일 매일 아래의 방법대로만 해도 나이에 비해 엄청 젊은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01. 칼로리 섭취를 절반으로 줄인다.鶴의 胃는 항시 절반만...

02. 열을 가해 조리한 음식을 가능한 삼가고단순한 재료를 단순하게 조리하여 적당량만 먹는다.

03. 물을 매일 2,000 cc 정도 마신다.

- 사람다운 체형 유지

- 식사 전후 30분, 식후 2시간에 마신다.

- 취침 전. 취침 후에 꼭 마신다.

04. 매일 30분정도 걷는다.

- 다리는 제2의 심장이라고 한다.

- 노화는 다리로부터 온다.

- 시선은 15 도 상단을 보고 걷는다.

- 땅을 보고 걸으면 다리가 벌어진다.

05. 호흡을 깊게 서서히 고요히 한다.

06. 무리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

- 과도한 운동은 수명단축,

- 무리한 유산소 운동은 활성산소(세포毒)가 생겨 세포에 악영향

07. 즐겁게 살며 보람을 갖는다.

-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다.

- 현명한 이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것

-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을 발견하는 것

-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으므로 해서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08. 항상 타인(他人)과 사귄다.

-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므로 타인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다양한 자극이 되어 생명력을 높인다.

09. 적당한 취미 생활을 한다.

- 몸이 둔하여 움직이기 싫지만 등산, 산책 등 가벼운 운동을 생활화하여유연성을 키우고

- 두뇌 활동을 많이 하게되어 치매예방에 도움이되는 독서, PC, 두뇌스포츠인 바둑, 당구 등을 많이 한다.

10. 자신에게 맞는 약제를 구입 복용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51.html
kolaswqetsrq 11.14 16:14
■ 한명회의 시대 2편

■ 한명회의 시대 2편

한명회는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는데, 첫째 딸을 당시 한명회와 더불어 세조의 최고 측근이던 신숙주의 장남에게 시집을 보냈다. 최고의 정난공신들이 사돈으로 똘똘 뭉친 것이다.

이어서 3녀를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군에게 시집보냈다. 그리고 해양대군은 형인 의경세자가 세자가 된 지 2년 만에 죽자, 의경세자의 아들을 제치고 세자가 되었다. 이는 해양대군의 장인이 한명회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편, 남편인 의경세자의 죽음으로 중전이 되어 보지도 못한 채 대궐에서 밀려 난 의경세자의 부인(나중에 인수대비)은 세자가 된 시동생인 해양대군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간파하고, 시동생인 해양대군(예종)이 죽게 되면 그 후임으로 자기 아들을 왕으로 세울 생각으로 세조에게 빌다시피 하여 한명회의 4녀를 자신의 둘째 아들 잘산군의 부인으로 맞아들였고, 결국 소원대로 자을산군은 예종에 이어 왕위(성종)에 오르게 된다.

정리해 보면, 한명회는 1녀를 신숙주에게, 3녀를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군에게, 4녀를 세조의 첫째 아들의 둘째 아들에게 시집을 보냈다. 3녀는 남편인 해양대군이 왕(예종)이 됨으로써 왕비가 되었고, 4녀는 남편인 자을산군이 예종의 뒤를 이어 왕(성종)이 됨으로써 또 역시 왕비가 되었다. 대를 이어 왕의 장인이 된 한명회의 탄탄한 권력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칠삭둥이 한명회의 영광은 전무후무한 것이었고,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계유정난 이후 곧 동생이 죽고 왕가에 시집간 딸들도 17세와 18세에 모두 죽었으며, 본인도 손자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를 당하게 되니, 인과응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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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한명회는 말년에 한강 가에 정자를 멋들어지게 지어 놓고 유유자적하였는데, 그 정자의 이름이 압구정(鴨鷗亭)이었고, 오늘날의 ‘압구정동’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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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는 말년에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부병에 몹시 시달리다가 둘째 아들인 해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해양대군(예종)이 즉위한 다음 날 거짓말처럼 세상을 뜨니 재위 13년 3개월, 향년 52세였다. 세조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상당한 치적을 쌓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식들이 모두 20세 전후에 죽었고 한명회의 딸인 며느리들도 17세, 18세에 모두 요절하였으니, 이는 세조와 한명회의 업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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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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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345.html
kolaswqetsrq 11.14 16:15
■ 한명회의 시대 1편

■ 한명회의 시대 1편

세조는 완전한 권력을 쥐게 될 때까지 안평대군 등 가까운 혈육과 김종서, 성삼문 등 시대를 대표할 만한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죽였고, 종국(終局)에는 자신의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야 만다. 세조의 이러한 폭주가 가능했던 것은 한명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정난(靖難)을 통해 왕이 된 절대군주가 원활한 통치와 안정적 왕권 확보를 위해 취하는 방식은 이런 저런 핑계를 만들어 공신들을 모조리 죽여 후환을 없애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세조의 할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이 그러했다.

그러나 세조는 한명회 등 공신들을 끝까지 예우하며 함께 정국을 운영하였는데, 이는 한명회와 신숙주 등이 계유정난의 성공에 절대적으로 기여했고, 또 이들의 재주와 처세 그리고 충성심이 워낙 뛰어나 세조 역시 이들을 없앨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한명회의 세력이 워낙 넓고 깊게 퍼진데다가, 한명회의 책사 능력이 장자방(한나라 고조 유방의 책사인 장량의 자가 자방(子房)이어서 장자방이라고 함.) 못지않았으므로, 함부로 제거하려다가는 오히려 세조의 처지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세조 시대는 공신들의 세상이었다. 이러한 공신 중의 공신은 한명회였는데, 세조 이후 연산군에 이르기까지의 왕위 승계 과정을 보면, 이 시대 한명회의 위상을 쉽게 알 수 있다. 세조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큰 아들은 세자(의경세자)의 자리에 오른 후 왕이 되기 전에 병으로 죽었고, 그 슬하에 월산군과 자을산군(잘산군)이라는 아들 둘을 남겼다.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군은 형인 의경세자가 스물에 죽자 세자가 된 후 왕(예종)이 되었으나 13개월 만에 죽었다. (독살설도 있음)

예종이 죽은 후, 예종의 아들(제안대군 4살)이 아닌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이 왕(성종)이 되었다.(큰아들 월산군은 병약해서 제외되었고 결국 요절함)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세조 이후 왕이 된 예종과 성종의 부인이 모두 한명회의 딸이었다는 것이다. 한명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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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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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318.html
kolaswqetsrq 11.14 16:16
■ 칠삭둥이 한명회 2편

■ 칠삭둥이 한명회 2편

계유정난(癸酉靖難)은 한명회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당시 수양대군의 장자방(張子房)으로서 계유정난의 전 과정을 기획하고 주도했고, 이후 세조, 예종, 성종 대까지 40년 넘게 세상을 쥐락펴락했다. 한명회는 세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고, 두 딸을 예종과 성종에게 시집보냈다. 살아생전 권신(權臣)과 외척(外戚)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누렸고, 세조가 죽은 뒤에는 신숙주와 함께 예종과 성종대의 정국을 주도했다.

한명회는 국가 경영에도 수완을 발휘하여 북방을 안정시켰고, 그가 만든 면리(面里) 제도는 오늘날까지 통용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무려 2,300여 건이나 이름이 등장한다. 왕이 아닌 인물로서 조선왕조실록에서 한명회처럼 주목받는 인물도 드물다. 지금 시각으로 봐도 한명회는 조선 역사 상 최대의 간신 혹은 최고의 책사 그리고 최고 국가경영 지도자 등 여러 가지로 평가된다. 한명회는 개인적 인생으로도 최고의 인생을 살았고, 당시로서는 아주 장수한 73세 나이로 천수를 누렸다.

하지만, 저승에서는 편히 쉬지 못했다. 1504년(연산군10년)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났을 때 정창손 등과 함께 12간신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관작(官爵)을 박탈당하고 그 시체는 부관참시(무덤에서 꺼내 목을 벰) 되었으며, 참수당한 머리는 한양 네거리에 효수(梟首:높이 매담)되었다.

출생에 관해서 꽤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한명회의 이미지는 칠삭둥이다. 칠삭둥이로 태어난 것 때문에 체구가 작고 생김이 추했다고 전해진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명회의 모습도 대체로 그렇게 보여진다. 그런데 의외로 그가 추하게 생겼다는 사실을 문헌상에서는 찾기가 힘들다. 실록에 나온 그의 기록에 칠삭둥이 얘기는 있지만 얼굴 생김에 관한 얘기는 없다. 한명회의 외모에 관해서 ‘그가 못생겼다’ ‘추하다’ 는 야담은 사실이 아닌 것 같지만, 한명회가 잘생긴 것은 아니더라도 남이 보기에도 뭔가 범상치 않은 외모를 가졌다는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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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128.html
kolaswqetsrq 11.14 16:17
■ 칠삭둥이 한명회 1편

■ 칠삭둥이 한명회 1편

한명회(韓明澮)는 개국(開國) 당시 명나라에 파견되어 ‘조선(朝鮮)’이란 국호를 확정짓고 돌아온 개국공신 한상질의 손자이다. 한명회의 자는 자준(子濬), 본관은 청주, 호는 압구정(狎鷗亭)이다.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출신으로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 어머니는 예문관대제학 이적(李逖)의 딸인 여주 이씨다. 한명회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동생 한명진과 함께 불행한 소년 시절을 보냈다.

다행히 가문의 지원을 받아 강원도 자망산에 은거하고 있던 유학자 유방선의 문하에서 권람, 서거정 등과 함께 공부했다. 한명회와 가장 가까운 친구 권람은 문종 원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집현전 교리가 되었지만 한명회는 낙방을 거듭했다. 이에 주변에서 비웃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고 마차에 술과 책을 싣고 천하를 떠돌면서 비상(飛上)의 그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좀처럼 그가 기다리던 때는 오지 않았다. 아주 늦은 나이 38세 때 간신히 문음(門蔭: 과거를 치르지 않고 관직에 오름)으로 개성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잠저(潛邸) 경덕궁의 문지기격인 경덕궁직(敬德宮直)을 얻었다. 관리로서는 말단인 초라한 출발이었다.

그 해, 문종이 죽고 12세 어린 단종이 보위에 올랐다. 당시 정권은 단종을 보좌하던 김종서와 황보인 등 대신들에게 주어져 있어 신권이 강화되었고, 조정에서 멀어진 왕족들은 크게 불만을 가졌다. 수양대군은 추락하는 왕실 권위에 분개하고 내심 권력의 야욕을 숨기면서 전국에서 책략가와 한량들을 몰래 모았다. 이런 수양대군에게 스스로 접근한 인물 중 한 명이 한명회였다.

한명회를 수양대군에게 추천한 사람은 권람이었다. 수양대군을 만난 첫자리부터 한명회는 노골적으로 수양대군의 야심을 부추기는 이야기를 했다. 수양대군은 여러 모로 한명회를 시험해 보고는, 한명회를 가리켜 “그대야말로 나의 자방(子房)이로다!”라고 하였다. 자방이란 중국 초한시절 때 유방의 책사(冊使) 장량을 말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장자방(張子房)이 되어 최측근 참모로서 왕권 탈취의 모든 단계를 진두지휘했다. 계유정난을 일사천리로 성공시킨 이후, 한명회는 단숨에 종8품 군기녹사(軍器錄事)에서 종4품 사복시소윤(司僕寺少尹)이 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지방 말단 8급 공무원이 갑자기 중앙 요직 4급 서기관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보잘 것 없는 최말단 궁지기였던 한명회의 초고속 출세 행진이 시작되었고, 좋든 나쁘든 역사에 이름을 크게 남기게 된 것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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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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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507.html
kolaswqetsrq 11.14 16:18
■ 한명회의 등장

■ 한명회의 등장

단종실록에는 김종서, 황보인 등 정승들이 왕위를 찬탈하여 안평대군을 옹립하려 했다고 되어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단지 왕이 어리고 왕실에 수렴청정을 할 어른이 없으므로 어린 왕이 성장할 때까지 나라를 맡아 관리할 수밖에 없는 대신들로서는 수양대군의 정변 시도를 우려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최소한 왕위를 넘보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성향의 안평대군을 끌어들여 수양대군을 견제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다.

대신들과 안평대군의 견제로 조급해진 수양대군은 자기 세력 확장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이는오히려 경계심만 자극할 뿐 자신의 야망을 달성할 수는 없었다. 수양대군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고심할 때, 수양대군 앞에 나타난 자가 바로 역사 상 최고의 책사(策士)인 한명회이다.

수양대군은 한명회를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자신의 야망을 이룰 수 있는 계획을 착착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한명회는 수양대군에게 “어린 임금이 있으면 옳지 못한 이가 정권을 잡아 권세를 부리게 되니, 충의로운 신하가 반정으로 이를 바로 잡는 것은 하늘이 정한 이치입니다”라고 반정의 명분을 그럴듯하게 말하니, 수양대군은 드디어 갈 길을 명확히 하게 되었다.

한명회는 안평대군과 김종서 등에 대한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는 한편, 홍달손, 양정, 유수 등의 무사를 끌어들여 기반을 마련했다. 수양대군은 신숙주, 홍윤성 등을 측근으로 영입하는 등 거사를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시켰다. 그 중 신숙주는 합류를 권하는 수양대군에게 “장부가 편히 아녀자의 품에서 죽기를 바라겠습니까” 라며 수양대군의 편에 섰다. 세종과 문종으로부터 어린 단종을 보호하라는 특명을 받은 바 있는 신숙주의 이러한 변절은 후일 ‘숙주나물’이라는 말을 생겨나게 했다. 녹두의 싹을 틔워 기른 것을 데쳐서 무친 녹두나물이 상하기 쉽다는 것을 빗대서 ‘숙주나물’이라고 붙인 말이다.

한편, 수양대군은 상중에 있는 어린 단종에게 종묘사직을 위해 중전을 맞이할 것을 강력히 권했는데, 이 때문에 어린 단종은 물론 노련한 김종서와 황보인까지도 수양대군이 왕위를 노리는 것은 아닌 것으로 오판을 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김종서 등을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수양대군과 한명회의 책략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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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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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19
■ 수양대군, 왕위에 오르다

■ 수양대군, 왕위에 오르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 다음 날 ‘영의정부사 영경연 서운관사 겸 판이병조사’라는 꽤나 이름도 긴 전무후무한 관직에 제수되어 왕을 대신해 섭정(攝政)을 시작했다. 영의정에 왕 교육전담에 천문책임자에 군사책임자에 인사 책임자까지, 말하자면 이미 신하의 지위를 넘어선 직책이다.

이어서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의 공신책봉을 한 후 공신에 책봉되지 않은 종이나 시녀들에게도 통 큰 선물을 하였는데, 김종서를 철퇴로 내려친 종들에게 상으로 내린 것이 김종서와 황보인 이 살던 집 한 채씩이었다.

총명한 어린 단종은 잠시라도 수양을 믿었던 자신을 탓하며 두려움과 서러움을 삭이면서 “모든 권한은 다 줘도 상관없다. 몇 년 만 이 자리를 지키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왕의 행보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 그로부터 1년, 민심이 수그러지길 기다리던 수양대군은 슬슬 왕이 되기 위한 단계를 밟아가게 된다. 그 첫 번째가 상중(喪中)이어서 안 된다는 단종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로 결혼을 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계유정난 이후의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편었지만, 이미 수양대군이 왕위를 넘본다는 소문이 세간에 자자했다. 단종은 급기야 살아남기 위한 포고문을 발표하게 된다.

『근일에 이르러 숙부께서 나에게 이롭지 못할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난무하나, 이는 간교한 무리의 선동이다. 숙부는 내게 ‘주공’과도 같은 분이다』

‘주공’은 주나라 무왕의 동생으로서, 무왕이 일찍 죽고 그 아들이 즉위하자 숙부로서 강력한 섭정을 편 후 왕이 성장하자 미련 없이 섭정을 그만 두고 신하의 자리로 돌아간 사람이다. 단종이 포고문에서 ‘주공’을 언급한 것은 수양대군이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미 수양대군은 왕의 허락도 없이 왕의 신하들을 죽임으로서 역모의 길에 들어섰고, 다음 순서는 왕이 되는 것이었다.

수양대군은 드디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양보 받을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기 시작했으니, 이는 끊임없이 역모 사건을 조작하여 단종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수양대군의 의도대로 신하들은 입을 모아 금성대군, 혜빈 양씨 등 단종과 가까운 사람들을 죽일 것을 청하니, 어린 단종은 실낱같은 희망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결국 수양대군에게 양위(讓位)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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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20
■ 수양대군과 계유정난 3편

■ 수양대군과 계유정난 3편

실록에 나타난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에 대한 결정적 명분은 안평대군과 김종서 등의 역모였다. 그러나 정말로 이들이 역모를 꾀했을까?

단종실록에서 안평대군과 김종서의 역모 증거로 제시되는 것은, 김종서의 측근 이징옥이 북방의 무기를 한양으로 빼돌렸다는 것인데, 안평대군과 김종서 등이 힘을 합쳤다면 역모사건을 조작한 후 한양의 군대를 동원해서 수양대군을 치고 단종을 압박하면 될 일이지, 칼과 창 같은 무기를 굳이 북방에서 한양으로 옮길 이유는 없었다.

또한 영의정 황보인의 노비 아무개가 황보인 등의 구체적 역모계획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갖바치가 등장하는데, 어떻게 일개 종이 거사계획의 내밀한 부분까지 샅샅이 알게 되었는지는 고사하고 그 아무개 종의 이름조차 실록은 밝히지 못하고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이는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만든 억지 명분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어쨌든, 수양대군은 거사일을 정하고 활쏘기를 명목으로 군사를 모은 후, 가노(家奴)인 임어을운, 양정 등 소수의 무사들만 데리고 직접 김종서의 집으로 갔다. 임어을운이 방심한 김종서를 철퇴로 내리쳐 북방의 대호라고 불리우던 천하의 명장 김종서는 허망하게 꼬꾸라지고 말았다. 김종서만 해치우면 걱정할 것이 없다던 한명회의 장담대로 김종서가 쓰러지자 수양대군의 행보를 막을 그 어떤 방해도 없었다. 수양대군과 한명회는 그동안 규합한 군졸들을 몰고 그날 밤 입궐해 안평대군이 김종서 등과 공모하여 불경한 짓을 도모하였기에 먼저 김종서 부자를 베었다고 하면서 대신들을 모두 대궐로 불러들이게 하였다.

그날 밤 입궐한 대신들은 문 너머의 책임자 한명회의 손짓 여하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었는데, 야사(野史)에는 한명회가 직접 살생부(殺生簿)를 작성한 후 문을 열고 들어오는 대신들을 죽일지 말지를 고개 짓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날로 안평대군과 그의 아들은 강화도로 압송되었다가 얼마 뒤 사사(賜死)되니, 안평대군의 나이 36세였다. 또한 잠시 살아났던 김종서 역시 그 날로 이승을 하직했고, 그 외에 수양대군의 반대편에 섰던 무수한 대신들이 죽었으며, 그들의 16세 이상의 아들은 교형(絞刑)에 처해졌고, 15세 이하의 아들은 관노로 전락했다. 처와 첩, 딸은 노비 신분이 된 뒤 공신들에게 분배되었다.

태종 이방원이 저세상에서 손자 수양대군이 형제를 비롯한 무수한 신하들을 죽이고 왕위를 넘보려 한다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면, 과연 뭐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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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21
■ 수양대군과 계유정난 2편

■ 수양대군과 계유정난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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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8년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과 55년 후 1453년에 일어난 계유정난은 거의 똑같을 정도로 전개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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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의 동생인 안평대군은 호탕하고 사람 좋아하고 예술적 재능도 있어, 문인이나 조정대신들과 잘 어울렸기 때문에 김종서와 황보인 등 조정대신들은 안평대군 편에 있었다. 그리고 안평대군은 정치적 실권을 가지려는 야심은 있었지만 왕위에 오르려는 야욕은 없다는 것을 조정대신들에게 확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이에 비해 수양대군은 김종서와 황보인 등 조정대신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왕위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만약, 이 시기에 김종서와 황보인 등이 안평대군과 힘을 합쳐 선수를 쳤으면 수양대군을 역적으로 몰아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계유정난이 성공한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수양대군은 당시 동원할 병력이 없어서 자신과 처가의 노비들을 몰고 갔다.(김종서도 수양의 노비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리고 무기도 변변치 않아 농기구 같은 것을 들고 싸웠다. 수양대군은 당시 자기 세력이 김종서나 안평대군에 비해 아주 뒤쳐져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양에게 이런 상황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조선은 명나라에 단종의 즉위를 보고하러 가는 사은사(謝恩使)를 보내야 했는데, 이 사은사를 수양대군이 자청한 것이다. 명에게 왕의 즉위, 세자 임명 등을 모두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사은사는 아무나 보낼 수 없었고, 왕족이나 정승 급은 되어야만 했다.

그 당시 명나라도 영락제가 조카를 죽이고 황제에 올라있던 시기였다. 영락제와 같은 꿈을 꾸는 수양대군으로서는 영락제와 안면을 트는 절호의 기회였고, 영락제로 부터 확실한 눈도장을 찍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조선에 없을 때 김종서나 안평대군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게 문제였다. 수양대군은 이에 대한 방비책으로 김종서와 황보인의 아들들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갔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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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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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22
■ 수양대군과 계유정난 1편

■ 수양대군과 계유정난 1편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수양대군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아마 그 시대에 살아서 그 일을 직접 보고 경험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위치에 따라 혹은 역사를 보는 시각에 따라 각자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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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건국 초 정도전에 의해 신권이 왕권보다 더 강한 나라로 만들어졌다. 정도전은 조선을 재상중심제 나라 로 만들려고 했다. 왕은 그저 상징적으로만 존재하고 국정은 재상(宰相)을 중심으로 한 조정대신들이 맡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종 이방원은 이를 왕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과 훼손으로 받아들여, 제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을 죽이게 된다. ‘제 2차 왕자의 난’을 거쳐 즉위한 태종은 왕권을 강화시켜 건국 초 흔들렸던 조선을 안정시키고 새로운 나라 조선의 기반을 확실히 닦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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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종은 달랐다. 태종 때 강화시킨 왕권을 신하에게 적당히 나누어 주어 왕권과 신권을 적절히 조화시켰다. 세종은 능력 있고 지혜로운 임금이었기에 신권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잘 이룰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세종 후기 문종이 세자로서 대리청정을 하면서 정국을 주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종 또한 세종과 비슷한 스타일로 신권을 상당히 존중해주었다. 문종이 오래 재위했다면 이 같은 정치형태가 자리 잡으면서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문종이 재위 2년3개월 만에 급사하고, 열두 살의 어린 단종이 왕으로 즉위했다.

문종은 죽어가면서도 두 동생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에게 단종을 부탁하지 않고, 김종서와 황보인 등 중신들에게 단종을 끝까지 보살펴 달라고 당부했다. 문종은 친동생들보다 중신들을 믿고 신권에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수양대군의 입장에서는 무척 서운할 수밖에 없었다. 김종서와 황보인 등 중신들은 야망이 큰 수양대군을 견제하고, 수양대군에 비해 야망이 적고 풍류를 즐기며 문인기질이 다분한 안평대군과 더 가깝게 지내 수양대군을 더 자극하게 되었다.

할아버지 태종(이방원)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수양대군이 이러한 상황을 그냥 보고 넘어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제1차 왕자의 난’과 거의 비슷한 ‘계유정난’이 일어나게 된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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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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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547.html
kolaswqetsrq 11.14 16:23
심장에 이상에 생기면 나타나는 주요 증상 6가지

심장에 이상에 생기면 나타나는 주요 증상 6가지

매년 미국에선 약 610,000명의 사람들이 심장 관련 질환으로 사망한다. 이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 중 25%를 차지하는 큰 수치로, 남녀 통틀어 주요 사망원인 중 하나다. 심장에 혈액에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며, 더 나아가 심장마비를 비롯한 심장과 관련된 여러 질환으로 발전될 수 있다.

이러한 질병은 제때 발견되면 치료가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기에 느껴지는 전조 증상을 무시하거나 다른 증상으로 치부하곤 한다. 결국 치료 시기를 놓친 후에야 제대로 된 진단을 받게 되고, 평생 질병을 안고 살아가야 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된다. 심질환이 있을 때 우리 몸에 나타나는 6가지 주요 신호를 소개한다. 기억해두고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찾아가자.

1. 숨이 찬다.

계단을 올라가는 것만으로 숨이 차는가? 좋은 징조가 아니다. 걷기와 같이 가벼운 움직임에도 호흡 곤란을 자주 겪는다면, 심혈관 질환 또는 심장 질환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천식이나 호흡기 질환 또는 혈중 내 산소 부족 등의 원인으로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을 위해 전문의를 찾아가 검진을 받자.

2. 관절 부위에 통증이 느껴진다.

고혈압은 관절염을 유발한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사실이다. 또한, 체내 혈압이 높아지면 심장 관련 질환의 발생 가능성이 자연스레 높아진다. 만약 관절이 붓고 자꾸 아프다면, 우선 혈압 수치를 체크해 보자.

3. 이유 없이 식은땀을 자주 흘린다.

덥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데도 식은땀이 난다면? 이 증상은 보통 심장마비의 전조다. 즉시 병원을 찾아가자.

4. 통증이 느껴진다.

배나 등, 팔, 다리, 어깨, 목, 턱 등 신체 여러 부위에 통증이 느껴질 경우, 여러가지 가능성 있는 원인들이 동시에 머릿속에 스쳐지나갈 것이다. 이때 딱히 심장질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오히려 심장 질환일 가능성을 가장 먼저 의심해 봐야 한다. 막힌 혈관으로 인해 근육에 충분한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 신체 부위에 통증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특히 가슴 통증의 경우, 심장 질환이 꽤 진전이 됐다는 적신호이니 하루빨리 병원을 찾아야 한다.

5. 안색이 창백하다.

물론 철분 부족 등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심장에 문제가 생겨 혈압이 떨어지면 안색이 창백해지고 회색빛으로 변한다. 심장마비가 찾아오기 전 또는 혈압 수치가 급격히 낮아지면 안색에서부터 곧바로 티가 난다.

6. 피로감을 느낀다.

심장 질환 환자들은 호흡 곤란이나 흉부 통증 외에도, 질병 발생 몇 주전에 심한 피로감을 호소한다. 특히 여성들에게 매우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혈중 산소 수치가 낮아지고 혈관이 막혀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피로해진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사전에 큰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스트레스나 고혈압, 운동부족으로 인한 비만 등은 여러 심장 관련 질환을 유발하는 1등 공신들이다. 전문의들은 심장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선 적어도 일주일에 4번씩, 40분 동안 걸을 것을 추천한다. 이와 더불어 섬유질이 풍부하고 저지방 식단의 식사를 할 것을 권고한다. 특히 잦은 흡연 및 음주 습관은 독이 되므로, 이를 차츰 줄여나가는 노력을 기울이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6_29.html
kolaswqetsrq 11.14 16:24
갑상선 기능 이상을 알리는 12가지 신호

갑상선 기능 이상을 알리는 12가지 신호

갑상선은 목 앞쪽에 위치한 나비 모양의 작은 기관으로, 다른 신체기관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몸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갑상선의 기능이 지나치게 활발하면(갑상선 기능항진증) 갑상선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고, 반대로 기능이 저하되면 호르몬이 부족해진다. 갑상선 호르몬은 대부분의 신체 대사에 관여하기 때문에 이처럼 분비되는 양이 적정선을 벗어나거나 못 미치면 종종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1. 지속적인 슬픔 혹은 우울감

갑상선 기능 장애는 극단적인 감정을 유발한다. 갑상선 호르몬 분비가 활발하지 않으면 늘 슬픈 감정에 젖어있거나, 심지어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

2. 변비

갑상선의 기능 장애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의 폐해 중 하나는 소화기능이 약화되면서 변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변비는 갑상선 질병의 대표적인 3가지 증상 중 하나다.

3. 과도한 수면

물론 아침에 일어나는 게 쉬운 사람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없다. 하지만 잠을 푹 자도 몸이 피곤하고, 침대를 벗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면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다. 갑상선이 지나치게 적은 양의 호르몬을 분비할 경우 항상 피로를 느끼면서 하루종일 가수면 상태로 움직이게 된다.

4. 탈모 및 피부 건조

갑상선 기능저하증(Hypo-thyroidism)에 걸리면 신진대사가 느려지면서 땀 분비량이 감소함에 따라 피부가 건조하고 가려워진다. 머리카락과 손톱도 퍼석해지면서 잘 끊어지거나 부서지고, 심한 경우에는 머리가 빠지기도 한다.

5. 갑작스런 체중 증가

체중이 늘어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식단이나 운동 등 생활 습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체중이 불어났다면 갑상선 기능 저하를 의심해봐야 한다. 실제 갑상선 이상을 진단받은 환자들 중에는 달리 명백한 증상 없이, 갑작스럽게 증가한 체중 때문에 검사를 받으러 온 경우가 많다.

6. 성욕 감퇴

갑상선 호르몬 저하는 성욕을 떨어트리며 종종 체중 증가, 원인 모를 통증, 탈모 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7. 근육통 혹은 근육 긴장(muscle tension)

근육통은 오랫동안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거나 몸을 많이 움직일 때 발생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분명한 이유 없이 근육통이 발생한 경우 갑상선 기능 저하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8. 심장이 두근두근, 심계항진(heart palpitations)

사랑에 빠지면 심장이 두근거린다고들 한다. 그러나 썸타는 상대도 없는데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면 걱정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심장이 평소보다 자주 움찔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우리 몸이 보내는 경고일 수 있다.

9. 지적능력 퇴화

집중력과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은 평범한 노화 증상일 수도 있지만, 이러 현상들이 갑자기 혹은 젊은 나이에 나타났다면 갑상선 질환을 의심해봐야 한다. 갑상선 환자들은 종종 치료를 시작한 뒤 두뇌 회전이 빨라진(보통 사람의 두뇌 속도를 회복한 것 뿐이지만) 것에 놀라곤 한다.

10. 고혈압

식단을 조절하거나 규칙적인 운동을 해도 여전히 혈압이 높다면 갑상선 기능을 검사해봐야 한다. 갑상선 기능 저하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 최악의 경우, 심장비대증이나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다.

11. 식욕증가 혹은 갑작스런 입맛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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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음식에서 다른 맛이 느껴지거나 식욕이 갑자기 늘어나면 이는 갑상선 기능 저하 때문일 수도 있다. 반면 갑상선 항진의 경우 식욕이 늘어나 많이 먹지만 체중은 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기적의 미라클인 것 같지만, 사실은 체내 신진대사가 지나치게 활발해져 영양 섭취가 부족하다는 뜻이므로 신속한 치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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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목이나 목구멍 통증

갑상선 기능 이상의 결과로 갑상선 자체에 통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목 안쪽이 계속 아프거나 목소리가 쉬거나 목이 붓는다면 꼭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2_29.html
kolaswqetsrq 11.14 16:25
폐암을 알리는 7가지 신로

폐암을 알리는 7가지 신로

무시무시한 질병, 암. 암은 확진만으로도 충격과 걱정을 유발한다. 통계에 따르면, 인도에서 치명적인 사망 요인 2위로 암이 꼽힌 바 있다. 암을 유발하는 원인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있어 속 시원한 규명이 어렵다. 그중에서 폐암을 유발하는 요인으로는 흡연이 자주 거론된다.

암은 세포에서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인체는 묵은 세포를 대체할 새로운 세포를 계속해서 재생산한다. 가끔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어떤 세포는 평균 이상으로 성장하고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 결과, 몸은 더 많은 세포를 만들지만 오래된 세포가 소멸하지 않고 그대로 체내에 남게 된다. 이렇게 발생한 종양은 점차 양성이나 악성으로 발전한다. 악성종양은 세포조직에 침투해 암세포 증식을 통해 조직을 에워싼다. 이런 식으로 암은 온몸으로 퍼져나가 각종 신체 기관에 전이된다.

암은 신체 어디에든 나타날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 폐암이 있다. 폐암을 경고하는 7가지 신호를 아래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1. 잇따른 기침

기침을 동반한 감기는 흔하다. 그렇기에 폐암을 의심하기 전에 먼저 기침 증상이 가라앉는지 확인하도록 한다. 공기를 통해 전파되는 전염병은 보통 일주일 이내에 치료된다. 하지만 기침이 2주 이상 지속되거나 악화되고, 피 섞인 가래가 나올 때는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2. 가쁜 호흡

숨쉬기 힘든 건 폐암 환자들이 겪는 대표 증상이다. 그 원인은 다양하나, 폐암으로 인한 증상은 액체가 폐로 유입되어 폐 기능을 급격하게 저하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아니면, 종양이 커지며 혈관을 가로막은 상황일 수도 있다. 평소 거뜬히 오르내리던 계단이 어느 날 식은땀이 날 정도로 힘들다면 꼭 병원에 가서 확인하시길.

3. 가슴이나 등, 어깨 통증

숨 쉬거나 웃을 때, 혹은 기침 날 때마다 가슴에 통증이 느껴진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이 통증은 등이나 어깨로 전이될 수 있다. 가슴 통증은 갈비뼈를 다쳤거나 어깨나 허리에 발생한 염증으로 인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정밀 진단을 통해 통증의 정확한 원인을 조속히 파악해야 한다.

4. 호흡할 때 나는 쉰 소리

숨 쉴 때, 휘파람 불 듯 바람 새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기도가 좁아졌음을 뜻한다. 이 증상은 폐암 뿐 아니라 천식과 같은 기타 호흡기 질환이 생겼을 때도 나타나므로, 숨 쉴 때 공기 새는 소리가 난다면 가볍게 넘어가지 말고 반드시 병원을 찾도록 한다.

5. 원인 모를 체중 감량

암 환자 중 약 15%가 암 진단을 받기 훨씬 전부터 급격한 체중 감량을 경험한다. 일반적으로 체중의 10% 정도가 줄어드는데, 그 이유는 암이 신진대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갑자기 살이 빠지고 한동안 입맛이 없다면 병원에 꼭 가시길.

6. 뼈 통증

폐에서 발생한 암이 뼈로 전이되면 뼈에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척추, 갈비뼈, 엉덩이뼈나 허벅지에 심각한 통증이 느껴지면 반드시 전문의의 확인을 받도록 한다.

7. 두통

두통은 폐에 생겨난 암세포가 뇌에 전이되어 혈관에 압력을 가할 때 발생한다. 전이 과정 중, 뇌로 흐르는 혈류량이 감소해 머리가 지끈거린다. 심각한 두통을 앓고 있다고 해도, 이는 일시적인 편두통일 수 있으니 속단하지는 마시길. 하지만 두통 빈도가 더 잦아지고 강도가 점차 높아진다면 병원을 찾아가 검사받아보길 추천한다

위에 소개된 증상 중 하나 혹은 몇 가지가 발견된다고 해서 반드시 암에 걸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신체가 보내는 이상 신호에 귀 기울이고, 의심되는 증상이 있다면 전문의와 반드시 상의해야 한다. 암은 조기에 발견할수록 완치율이 높으니, 명심하도록 하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_29.html
kolaswqetsrq 11.14 16:26
슬기로운 부부싸움

슬기로운 부부싸움

하나) 반드시 24시간 이내에 생겼던 갈등의 문제만을 가지고 싸워라. 공소시효를 지켜야 한다.

둘) 하나의 주제만을 가지고 싸워라. 동시 상영은 3류 극장에서만 볼수 있다.

셋) 자녀들 앞에서는 절대로 싸우지 마라. 관중은 절대 두지마라.

넷) 싸우되 1m 이내에서 싸우고 장외 경기는 금물이다. 무대를 친정 시댁으로 확대 하는것은 반칙이다.

다섯) 폭력을 휘두르지 말라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여섯) 상호 인격 모독을 하지말고 남과 비교도 하지 말라. 약점을 확인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일곱) 승부에 연연하지 말고 속전속결하라. 부부싸움은 이겼다고 해서 메달을 주지 않는다.

여덟) 싸운 뒤에는 분방하지 말고 빨리 화해 해라.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말라.

아홉) 미봉책으로 대충 끝내지 말라. 임시 휴전은 곤란하다. "두고보자" 는 비겁한 발뺌이다.

열) 제 3자를 개입 시키지 말라. 제 3자와의 동맹관계는 가족 세계대전을 낳는다.

열하나) 고함 지르지 말고 욕설도 하지 말라.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러나 최선의 방법은 부부 싸움을 안하는 것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650.html
kolaswqetsrq 11.14 16:27
웃음의 놀라운 효능

웃음의 놀라운 효능

■ 웃음은 심장을 튼튼하게 한다

최근 미국에선 많이 웃는 사람들에게 심장병 발병이 적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 몸에는 내장을 지배하는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 등 두 가지 자율신경이 있습니다. 놀람, 불안, 초조, 짜증 등은 교감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어 심장을 상하게 합니다.

반면 웃음은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심장을 천천히 뛰게 하며 몸 상태를 편안하게 해 줍니다. 심장병이 적게 생기는 이유입니다. 웃음은 스트레스와 분노, 긴장을 완화 해 심장마비와 같은 돌연사도 예방해 줍니다.

■ 하루 15초 웃으면 이틀을 더 산다

미국 인디애나주 볼 메모리얼 병원은 외래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하루 15초씩 웃으면 수명이 이틀 더 연장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UCLA대학병원의 프리드 박사는 하루 45분 웃으면 고혈압이나 스트레스 등 현대적인 질병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소개했습니다. 스웨덴의 노먼 커즌즈 박사는 환자가 10분간 통쾌하게 웃으면 두 시간 동안 고통 없이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존스홉킨스 병원은 환자들에게 나눠주는 "정신건강"이라는 책자에서 "웃음은 내적 조깅(internal jogging)"이라는 서양 속담을 인용해 웃음은 순환기를 깨끗이 하고 소화기관을 자극하며 혈압을 내려준다고 소개했습니다.

■ 웃음은 암도 물리친다

웃음은 병균을 막는 항체인 "인터페론 감마"의 분비를 증가시켜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주며 세포 조직의 증식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는 사람이 웃을 때 통증을 진정시키는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18년간 웃음의 의학적 효과를 연구해 온 미국의 리버트 박사는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에게서 피를 뽑아 분석해 보면 암을 일으키는 종양세포를 공격하는 "킬러 세포(killer cell)"가 많이 생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웃음이 인체의 면역력을 높여 감기와 같은 감염질환은 물론 암과 성인병을 예방해 준다는 것입니다.

■ 한 번 웃음은 에어로빅 5분 효과

웃음요법 치료사들은 사람이 한 번 웃을 때의 운동 효과는 에어로빅 5분의 운동량과 같다고 주장합니다. 미국 스탠포드대 윌리엄 프라이 박사는 사람이 한바탕 크게 웃을 때 몸 속의 650개 근육 중 231개 근육이 움직여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설명합니다. 크게 웃으면 상체는 물론 위장, 가슴, 근육, 심장까지 움직이게 만들어 상당한 운동효과가 있다는 분석입니다. 따라서 웃을 때는 배꼽을 잡고 크게 웃는 게 좋습니다.

■ 1분을 웃으면 10분의 운동효과가 있다.

몇 년 전 영국에서 발표된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들은 하루에 대강 4백번을 웃는다고 합니다. 이 숫자는 어른이 되면서 하루 6번 정도로 줄어듭니다. 왜 이렇게 어른들은 웃음을 잃어 버리는 것일까요? 그 당시 영국에서는 "웃음 요법(Laughing therapy)"이라는 것이 등장해서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이 치료요법은 "웃으면 복이 온다"는 속설에 근거한 것인데 심리학자인 로버트 홀덴(Robert Holdec)씨가 개발한 것으로서 그에 따르면 "웃음 요법"은 행복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건강도 가져온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076.html
kolaswqetsrq 11.14 16:28
삶에 지친 그대에게

삶에 지친 그대에게

어느 날 문득

곁에 아무도 없다는 허무가 찾아오면

고개 들어 하늘을 봐요.

혼자일 것 같은 파란 하늘도

도란도란 얘기하는 구름과 함께 하잖아요.

지치고 지쳐 주저앉고 싶으면

길가의 들풀을 봐요.

비바람이 몰아쳐도

초록빛 싹을 틔우려고 안감힘을 쓰잖아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포기하고 싶으면

어두운 밤바다 건너

희미하게 반짝이는 등대를 봐요.

다시 시작할 꿈을 주잖아요.

그리움에 눈물 뚝뚝 떨어지면

나지막이 사랑 노래를 불러요.

반짝이던 눈빛 나누던

소중한 추억이 함께 하잖아요.

- 조미하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191.html
kolaswqetsrq 11.14 16:29
■ 내조의 여왕, 소헌왕후 심씨 4편

■ 내조의 여왕, 소헌왕후 심씨 4편

소헌왕후가 병이 나자 세종은 수시로 찾아와 보았고, 신하들에게 여러 차례의 불공을 명하거나, 병에 차도를 보이면 의원과 의녀들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다. 1426년, 세종은 직첩이 복원된 어머니 안씨와 소헌왕후를 배려해, 소헌왕후가 어머니 안씨와 만나 연회를 베풀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소헌왕후는 1446년 이질로 인해 52세의 나이로 차남 수양대군의 사저(私邸)에서 눈을 감았다. 세종은 소헌왕후가 죽자 차기 왕이 부모의 합장릉을 명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이 직접 합장릉을 명하였고, 자신이 죽기 전까지 다른 왕비를 맞이하지 않았다.

1446년 소헌왕후가 사망하자 헌릉에 모셔졌다. 그 후 그 서쪽 대모산(현 서초구 내곡동)에 이실(貳室)의 형태로 조영된 세종대왕의 영능에 옮겨져 합장하게 되었다. 좌측 석실에 소헌왕후를 모시고, 우측 석실은 후에 1450년 세종이 사망하자 합장해 조선 최초의 합장릉이 되었다. 2개의 격실 사이에 48센티미터의 창문(창혈)을 뚫어 왕과 왕비의 혼령이 통하게 해 합장릉의 의도를 더욱 명확하게 했다. 그런데 세종의 능은 조성될 때부터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주장 때문에 논란이 잦았다. 지관(地官)들이 강력하게 능 자리를옮겨야 한다고 권했지만, 세종은 "다른 곳에서 복지를 얻는다고 하지만 선영 곁에 묻히는 것만 하겠는가?" 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일단 세종의 고집대로 능을 조성하긴 했지만, 세조 때 다시 강력한 천장(遷葬:이장)론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서거정이 "천장함은 복을 얻기 위함인데 왕이 되었으면 되었지 다시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라며 반대해 옮기지 못했다. 결국 예종 1년(1469)에 천장(遷葬)했는데 그곳이 풍수지리상 최고의 길지(吉地) 중 하나라고 불린다.

영릉은 이장하면서 예종 때 선포된 『국조오례의』에 따라 병풍석과 석실 제도를 폐지하고, 회격(灰隔:관을 구덩이에 넣고 주변을 회로 메움)으로 하는 조선 전기 능제의 기본을 이루었다.

만약 소헌왕후가 좀 더 오래 살아서 손자 단종의 치세 때 왕실의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로 있었다면, 계유정난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계유정난 자체가, 어린 단종 대신 수렴청정할 왕실 어른이 아무도 없어 정승들이 정치를 주도하면서, 집현전 학사들과 종친들이 불만을 품고 분열된 틈을 노리고 들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정변이었다. 소헌왕후가 살아 있었다면 명분도 없고 단종지지 세력이 분열될 일도 없어, 세력이 가장 약한 축에 들었던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치적 시각이 아닌 가족적 시각에서 보더라도, 어머니가 뻔히 살아있는 상황에서 같은 어머니에게 태어난 친동생들(안평대군, 금성대군)을 죽이고 조카의 왕위를 빼앗고, 끝내 죽이는 등의 패륜을 감히 벌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어머니한테만큼은 효자였던 수양대군이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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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30
■ 내조의 여왕, 소헌왕후 심씨 3편

■ 내조의 여왕, 소헌왕후 심씨 3편

내명부에 대한 안정적인 지도력은 후궁 문제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본인의 속마음은 어떠했을지 잘 모르지만, 후궁에 대해 질투를 드러내지 않는 모습으로 일찍이 태종과 세종에게 칭찬을 받기도 했다. 소헌왕후는 총애 받는 후궁은 더 대접하였고, 그들을 신뢰해 여러 자녀들을 후궁들에게 양육하도록 했다. 8남 2녀 중 막내인 영응대군의 양육은 신빈에게, 6남 금성대군의 양육은 태종 후궁 의빈에게, 문종의 자녀인 경혜공주와 단종의 양육은 혜빈에게 맡겼다.

하지만 소헌왕후는 마냥 부드러운 모습만이 아니라 강단있는 성품도 있었다. 세종 21년(1439) 임영대군이 궁녀들과 사통을 하여 세종이 그 관련자들을 벌주고 임영대군의 직첩까지 빼앗는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 일을 임금에게 알린 것이 소헌왕후였다. 평소 후궁 뿐 만 아니라 자녀들의 동태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였던 소헌왕후는 임영대군의 유모를 통해 이 일을 전달받았고 이를 임금에게 알렸다. 소헌왕후는 친자식의 비행이라고 하여 눈감아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문종의 폐세자빈인 휘빈 김씨와 순빈 봉씨의 만행도 소헌왕후의 귀에 들어갔고, 그녀를 통해 밝혀졌다. 평소 소헌왕후의 내명부에 대한 통솔력에 인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강단있는 성품과 통솔력 있는 소헌왕후가 있었기에 조선 역사상 가장 안정했던 내명부라고 평가받을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또, 세종 8년에 한양에 큰 불이 났을 때, 당시 사냥을 이유로 지방에 나가 있던 세종대왕과 세자 문종을 대신해서 화재 진압을 직접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이 화재는 보통 것이 아니라 천 가구가 넘는 집을 태웠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게다가 이 당시 그녀는 후일의 금성대군을 임신한 만삭의 몸이었다고 한다.

소헌왕후는 살아생전에 세종과 금슬이 좋았을 뿐만 아니라, 세종은 그녀를 깊이 존경하였다고 한다. 소헌왕후가 들어오고 나갈 때면 항상 세종이 친히 일어서서 공경의 예를 표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아버지의 죽음과 친정 몰락의 서러움을 감내해야 했던 소헌왕후. 불교에 깊이 심취했던 그녀는 아마도 드러낼 수 없는 심리적 고통을 불교에 의지했을 것이다. 소헌왕후는 결국 원망과 미움의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고, 가정와 왕실의 평안이라는 한 단계 더 높은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런 소헌왕후가 있었기에 세종은 조선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칭송받을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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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32
■ 내조의 여왕, 소헌왕후 심씨 2편

■ 내조의 여왕, 소헌왕후 심씨 2편

태종은 왕위를 세종에게 선양(禪讓)할 때, 병권은 넘겨주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 상왕으로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였다. 세종이 즉위하자, 소헌왕후 심씨의 아버지 심온은 영의정이 되었다. 그런데 소헌왕후가 시어머니 원경왕후 민씨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아 조심조심 처신했건만 결국 우려했던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심온이 명나라에 사은사(謝恩使)로 출발하기 전에 환송연이 열렸는데,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상왕인 태종이 볼 때는 ‘감히 외척이 권세를 부리며 날뛰는 것’으로 생각하고 심기가 불편했다. 명나라에서 귀환하던 중 아우 심정(沈泟)이 군국대사(軍國大事)를 세종이 아닌 상왕(上王: 태종)이 모두 쥐고 처리한다고 불평한 일로 대역(大逆)의 옥사(獄事)가 일어나고 말았다. 심온은 반역(叛逆)의 수괴(首魁)로 지목되어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국경선을 넘자마자 바로 체포되었고, 수원으로 유폐되어 곧 사약을 받았다. 그리고 뒤이어 심온의 동생 심정도 화를 당하고, 친정어머니는 관노가 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소헌왕후 심씨의 친정집은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이 일로 폐비(廢妃)의 논의가 있었으나, 내조의 공이 크고 왕자를 출산했고 당시에도 4남 임영대군을 임신 중이었기에 폐비가 되지는 않았다. (1426년(세종8년), 어머니 안씨와 가족들은 천안(賤案)에서 제명되고 직첩이 복원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했던가? 소헌왕후도 자식문제로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나중에 문종이 되는 세자 향의 아내들 때문이었다. 세자빈을 두 명이나 쫓아내야만 했다. 첫째 세자빈은 열여덟 살인 상호군 김오문의 딸이었다. 하지만, 열네 살의 세자는 세자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어릴 때 같이 놀던 중전의 시비인 효동과 덕금이와 더 어울렸다. 세자빈 김씨는 질투심이 발동하여, 남편 세자의 사랑을 받겠다고 별 해괴한 짓거리를 다하다가 결국 들통이 나서 퇴출당하고, 친정 부모님과 함께 독약을 먹고 죽었다.

둘째 세자빈은 세자와 동갑인 봉여의 여식이었다. 이때 후사를 위해서 세자의 후궁도 들이게 된다. 그것도 셋이나.......질투심 많은 봉씨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독수공방하는 신세가 되었다. 욕정을 참지 못한 세자빈은 시비(侍婢)와 동성연애를 하고 만다. 조선왕조 최초로........결국 쫒겨난 세자빈 봉씨가 친정으로 돌아오자, 아버지 봉여는 딸을 허리띠로 목 졸라 죽이고 자신도 목을 매 죽었다.

또한, 일생동안 가족에 대한 많은 비극을 겪었던 왕비이다. 그녀가 죽기 전에 자식을 셋이나 떠나보냈던 것이다. 그녀가 30대가 되고 나서 큰딸 정소공주가 세상을 떠났고, 50대가 되었을 때 5남인 광평대군이 요절하고, 이듬해 7남 평원대군마저 세상을 떠남으로서 그 충격에 소헌왕후마저 건강이 악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왕비가 되던 해에 시아버지 태종에 의해 아버지인 심온이 처형당했고, 어머니는 관비로 전락했다가 사위에 의해 복권된 뒤 세상을 떠났다. 또한 자신의 큰며느리인 현덕왕후가 원손을 낳고 하루 만에 요절했다. 이런 불행한 가족사에 소헌왕후 본인도 힘들어해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또한, 태조의 기세에 눌려 친정집의 몰락을 방관한 세종의 태도, 이에 대해 소헌왕후 심씨는 아무런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못내 서운한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그래서 소헌왕후는 유달리 불교에 매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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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33
■ 내조의 여왕, 소헌왕후 심씨 1편

■ 내조의 여왕, 소헌왕후 심씨 1편

세종에게는 특별히 대왕이라는 칭호를 붙인다. 치세기간 동안의 업적도 훌륭하고 무엇보다도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우리나라를 독자적인 문자를 가진 나라가 되게 해 주었다. 세종대왕의 곁에는 훌륭한 부인 소헌왕후 심씨가 있었다. 세종대왕이 조선시대 이상적인 군주의 롤모델로 꼽힌다면, 소헌왕후 역시 이상적인 왕비의 롤모델로 조선시대 내내 칭송을 받았다. 소헌왕후는 조선역사상 내명부(內命婦)를 가장 안정적으로 다스렸고, 이는 세종이 그 많은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내는 데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 조선 최고의 국모이자 왕비이다.

소헌왕후 심씨는 태조 4년(1395년) 9월 양주에서 본관이 청송인 심온과 어머니 순흥 안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4세에 두 살 어린 충녕대군과 혼인하여 슬하에 8남 2녀를 두었는데, 첫째가 제5대 문종이고 둘째인 수양대군은 제7대 세조가 되었다. 셋째는 문필가로 유명한 안평대군이다.

본격적으로 세종의 치세가 시작되면서부터 내조의 여왕은 그 진면목를 보여주었다. 소헌왕후 심씨는 남편 세종이 집안일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정사(政事)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심성이 후덕하고 겸손했으며, 많은 후궁을 거느린 남편에게 투기심을 보이지 않는 현모양처(賢母良妻)의 덕목을 고루 갖춘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인자무적(仁者無敵)이었다. 역대 왕비 중 가장 많은 소생을 둔 소헌왕후는 자신 다음으로 많은 소생을 둔 신빈 김씨와도 친밀하게 지냈다고 한다. 김씨는 소헌왕후가 셋째 안평대군을 낳은 직후에는 둘째인 수양대군의 유모가 되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세종과 소헌왕후의 막내아들인 영응대군의 유모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신빈의 아이들은 수양대군과 친했으며, 뒷날 세조는 신빈과 그녀의 이복 아우들도 극진히 대해 주었다.

세종은 다섯 명의 후궁을 두었는데, 중전 심씨는 후궁들에게 후덕하게 대했고 그들의 자식들도 친자식처럼 잘 대해 주었다. 세종의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되는 법이다. 세종이 정사에 치중하여 성군이 되고 대왕 칭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태종 이후 강화된 왕권의 덕도 컸지만, 부인 소헌왕후 심씨의 공(功)과 덕(德)도 무시할 수 없다. 겸손의 아이콘 소헌왕후. 하지만, 그녀에게도 가슴에 한이 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녀의 친정집안도 외척의 발호를 경계한 태종에 의해 시어머니 원경왕후 민씨와 마찬가지로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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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34
■ 색色을 탐한 양녕대군 3편

■ 색(色)을 탐한 양녕대군 3편

세자는 태종 몰래 어리와의 밀애를 계속 즐겼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어리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그 존재가 결국 발각되고 말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태종은 노발대발하였다. 태종에게 호된 질책을 받고 어리까지 쫓겨나게 되자 자중을 해도 모자랄 판에 양녕대군은 태종에게 협박에 가까운 항의 서한을 보냈다. ‘왜 왕은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면서 자신은 한명의 어리도 거느리지 못하게 하느냐’고 따졌다. 그날 밤 결국 태종은 대신들을 모아놓고 세자폐위를 발표하게 되었다. 처음엔 양녕대군의 아들을 세자로 올릴까 했었으나 후환이 생길까하여 셋째 아들 충녕대군을 세자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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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캔들로 조정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어리가 사대부의 첩이라는 점이 도덕적인 면에서 큰 문제가 된 것이다. 결국 양녕대군을 도운 김한로를 유배시키고, 주변에서 세자의 비행을 도운 수발인력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폐위를 당한 양녕대군은 유배를 가게 되었는데, 양녕대군은 유배를 가서도 기생을 부르는 등의 망나니짓을 했고, 유배지에서 도망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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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예쁘다는 이유로 강제로 남편을 떠나 궁궐에 숨어 살았던 어리는 유배의 길에 올랐다가 이 상황을 비관하여 결국 스스로 목을 매고 자결을 하고 말았다. 왕실이 엉망이 되고 양녕대군이 세자에서 쫓겨나는 상황에 이르자 어리는 매우 자책하며 괴로워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양녕대군의 여탐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말년에는 자신의 셋째 아들의 애첩을 건드려 결국 셋째 아들이 목을 매어 자결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말년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양녕대군. 왕위마저 져버린 희대의 로맨티스트(?)이자, 조선을 뒤흔든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양녕대군 때문에 주위의 문지기, 내시 등 억울하게 태종의 노여움을 받은 자가 한둘이 아니며, 개중에는 곤장과 유배, 사형을 당한 자들까지 있었다.

이런 풍파를 일으키고도 양녕대군은 계속 골치 아픈 왕족으로 살아갔다. 충녕대군은 세종으로 즉위한 후에도 양녕대군을 형님으로 보살피지만 나중에 양녕대군은 세종대왕의 손자인 단종을 죽이는데 한몫을 하게 된다. 아마 쌓인 응어리가 많았던 모양이다. 야사(野史)에서는 양녕대군이 충녕대군(세종)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일부러 미친 척을 하여 폐세자가 되고 보위를 양보했다고 하거나, 어리와의 사랑을 위해서 왕을 포기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정사(正史)에서 언급하는 양녕대군의 언행을 보면 태종의 미움을 받고 폐세자 되기에 충분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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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35
■ 색色을 탐한 양녕대군 2편

■ 색(色)을 탐한 양녕대군 2편

태종의 달램과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양녕대군의 방탕한 생활은 바뀌지 않았고, 이미 14세에 혼인하여 부인까지 있는 상황에도 양녕대군의 여색 탐하기는 끝이 없었다.

1414년(태종 14년) 세자가 매형인 이백강의 집에서 벌어진 종친연회에서 밤이 깊도록 기생 초궁장을 끼고 술을 마셔 부왕의 꾸지람을 듣게 되는데, 1415년(태종15년) <태종실록>을 보면 세자와 여러 달 사통한 초궁장은 다름 아닌 상왕이자 큰아버지인 정종을 모신 기생이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실록은 ‘세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저지른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어쨌든 큰아버지의 여인을 범한 패륜을 저질렀음은 분명하다. 1416년(태종16년) 세자는 매형인 이백강의 애첩 기생 칠점생을 궁궐로 데리고 오려고 한 일도 있었다.

태종 16년(1416년) 1월 어느 날, 세자 양녕대군은 곽선의 첩 ‘어리’가 아주 어여쁠 뿐만 아니라 춤과 노래도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었다. 곽선은 은퇴한 고위 관료들에게 관행적으로 제수되는 중추부 부사(副使)로 재직 중이던 자이다. 성리학적 유교윤리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에 양반의 첩을 넘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양녕대군은 다음 보위에 오를 세자가 아니던가?

태종 17년 어리가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도성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양녕대군은 비단주머니를 징표로 내주며 어리를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세자가 보고 싶어 한다는 전갈을 받은 어리는 남편이 있는 몸이라며 거절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양녕대군은 환관들을 거느리고 어리가 머물고 있는 집으로 달려갔다. “세자께서 납셨다”는 환관의 전갈에 집주인 이승이 나타나 엎드렸다. 이승은 곽선의 양아들이었다. 양녕대군이 어리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르자 이승은 마지못해 어리를 내보냈다. 양녕대군은 어리에게 한눈에 깊이 반해버렸고, 그 길로 강제로 어리를 데리고 함께 동궁으로 돌아갔다.

곽선은 양녕대군의 서슬에 눌려 어리를 빼앗기고도 어찌할 수도 없었다. 양녕대군은 어리를 궁에 들인 것을 태종에게 숨겼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 들키고 말았다. 태종은 세자 주변의 간신배들을 엄벌에 처하고 어리를 출궁시켰다. 그때 세자는 어리의 인생이 가엾다며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았다. 이를 딱하게 여긴 장인 김한로가 자신의 집에 어리를 숨겼주었고, 다시 만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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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36
■ 색色을 탐한 양녕대군 1편

■ 색(色)을 탐한 양녕대군 1편

태종은 장남인 양녕대군을 많이 아꼈다. 조선 건국 이후 장자(長子)계승이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태종 자신도 골육상잔의 비극을 맛보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을 것이다. 더구나 성리학에 근간을 둔 유교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자의 학문적 소양도 매우 중요하였다. 그러기에 태종의 세자에 대한 기대치가 클수록 양녕대군이 받는 스트레스는 더 커졌을 것이다.

양녕대군은 어린 시절 문무를 겸비하고 예능에도 능한 인물이었고, 태종의 정사를 일부 이양 받아 잘 처리했기 때문에 아예 왕의 자질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학문에 충실함은 물론 행동거지도 반듯하여 태종의 깊은 신임을 얻어가는 충녕대군에 비해 양녕대군은 세자교육에 대한 학업 스트레스로 점점 학문을 소홀히 하였고, 군왕(君王)이 되기 위한 세자수업의 압박을 잘 적응하지 못했다. 당시 세자의 하루 공부양은 열 시간도 넘었다고 한다.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양녕대군의 거짓말은 자꾸 늘어가고 태종에게 꾸지람을 듣는 횟수도 늘어났다. 양녕대군은 점점 태종의 눈 밖에 나면서 양녕대군과 충녕대군(세종)의 사이도 멀어지게 되고, 양녕대군은 점점 더 삐뚤어져가기만 했다. 태종에게 심한 질책을 받게 되면 양녕대군은 많은 분량의 반성문을 바쳐서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양녕대군은 품행이 자유분방하고 색을 밝혀 잦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독특한 자유연애주의자였고, 스캔들을 일으키고 다니는 문제아였다. 양녕대군은 마음에 드는 여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마구 불러다 자신의 여자로 만들었다. 심지어 큰아버지의 애첩과 매형의 애첩까지 건드렸다.

양녕대군은 17살 때부터 기생들을 가까이 했다고 한다. 태종 10년(1410년) 중국 사신을 위해 베푼 연회에 불려 나온 기생 봉지련에게 흠뻑 빠졌다. 세자는 어린 내관 2명에게 봉지련의 뒤를 밟게 한 뒤 그 집을 찾아가 몰래 사통하고는 궁중으로 불러들이기까지 했다. 이것이 발각되자 태종은 세자의 명을 받아 봉지련의 뒤를 밟은 어린 내관 2명은 곤장을 치고 봉지련을 가둬버렸다. 세자는 이에 단식투쟁으로 버텼고, 태종은 세자의 건강이 걱정되어 봉지련에게 비단을 하사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1413년(태종13년) 세자의 비선 측근들이 평양 기생 소앵을 동궁(세자궁)으로 불러들였다. 태종은 관련자들을 문책하고 곤장을 쳤고, 심지어 세자의 스승인 변계량 등에게도 “대체 무엇을 가르쳤느냐” 고 문책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세자는 단식투쟁으로 맞섰다. 어머니인 원경왕후 민씨가 달래고 어르면서 당부의 말을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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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37
■ 국제적 안목을 가진 세종대왕

■ 국제적 안목을 가진 세종대왕

세종대왕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동부승지(지금의 비서실장) 정이한(鄭而漢)에게 남긴 유언이 세종실록에 남아있다. 뜻밖에도 가족이나 후손들에게 남기는 말씀이 아니었다.

『接待倭、野人, 所係匪輕, ?於平安, 歲久日深, 凡事恐或至於緩弛, 當謹愼常如一日, 毋或少弛。" 卽命禮兵曹, 當該官戒飭之。』 <세종 32년(1450년) 2월14일>

"왜인(倭人)과 야인(野人)을 대하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평안(平安)에 빠져 있다가 혹 해이해지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는 바이다. 언제나 하루와 같이 정신을 바짝 차려 조금이라도 해이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곧 예조와 병조의 해당 관리들에게 이를 단단히 이르라고 명하였다.“

일본인과 북방인을 소홀히 여기고 태평세월의 안일에 젖어 방심한 채 지내다가는 큰일 날 수 있으니 그러지 않기를 신신당부하는 말씀이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 닥칠 불행한 미래를 예측이라도 한 듯한 당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후손들은 세종이 남긴 유언을 명심하지 않았고, 세종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150여년 후 조선은 왜란(倭亂)과 호란(胡亂)으로 초토화되었고, 그 로부터 다시 300여 년 후에는 아예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조선은 사대교린(事大交隣)을 기본 외교정책으로 삼고 있었다. 즉, 명과는 사대(事大)관계를, 일본을 비롯한 북방민족들과는 교린(交隣)정책을 펴면서 평화를 유지하고 실리를 취하려 하였다. 일본과 북방 야인들은 조선을 찾아와 조공을 바치기도 하고 물건을 교환하기도 했다.

세종대왕은 중국 뿐 아니라 멀리 이슬람문화까지도 편견 없이 수용했다. 또한 국가 경영은 유교가 중심이었지만 내면적인 신앙은 불교에 의지하고 있었다. 세종이 늘 학문적 스승으로 삼았던 측신 설순(시강관, 안동 현감, 집현전 부제학 등 역임)은 위구르족 출신이었다. 무엇보다도 세종대왕이 만 5세일 때(태종2년) 만들어진 아프리카와 유럽까지를 다 담고 있는 세계지도인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보고 자랐고, 세계인으로서의 국제적 감각과 안목을 키우게 되었다.

세종대왕의 세계적 안목과 종교를 초월한 문화적 포용력이 한글 창제, 지리지 편찬, 과학기구 제작 등 폭넓고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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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샤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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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38
농조연운籠鳥戀雲 - 새장 안의 새가 구름을 그리워하다, 속박에서 자유를 그리워하다.

농조연운(籠鳥戀雲) - 새장 안의 새가 구름을 그리워하다, 속박에서 자유를 그리워하다.

대바구니 롱(竹/16) 새 조(鳥/0) 그리워할 련(心/19) 구름 운(雨/4)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사람들이 기른 것은 사냥을 위해, 영양을 위해 등등 여러 가지라도 보고 즐기기 위한 애완 목적이 가장 클 것이다. 카나리아나 비둘기를 비롯하여 각종 애완조류 중 鸚鵡(앵무)는 사람 말을 따라하고 귀엽게 행동하니 더욱 인기다. 새를 감상하려면 우리나 새장에 넣어 기른다.

사람이 보고 즐기는데 새까지 즐겁지는 않을 터이니 ‘새장에 갇힌 새’란 말이 나왔다. 새의 처지를 느끼기는 해서 자유를 속박당한 몸을 비유해서 한 말이다. 조그마한 새가 자유를 위해 투쟁하지는 못해도 새장(籠鳥) 속에서 하늘의 구름을 그리워한다(戀雲)는 처지는 동감한다.

성어의 출처가 ‘鶡冠子(갈관자, 鶡은 관이름 갈)‘이고 중국 周代(주대)의 楚(초)나라 사람 갈관자의 저작이라 나온다. 鶡(갈)이라는 새의 깃털로 만든 관을 쓰고 있어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 저자는 老子(노자)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은둔생활을 했단다.

본래의 책은 ’漢書(한서)‘의 藝文志(예문지)에 기록돼 있으나 현존하는 것은 唐(당)나라 때의 陸佃(육전, 佃은 밭갈 전)이란 사람이 해설한 것으로 위서라 한다. 이 때의 책이 19편으로 원래 1편에서 덧붙인 것이 분명하다는데 여기서도 성어는 검색되지 않는다. 저자도 흐릿하고 남은 책도 위서라하니 그보다 새장에 갇힌 새 籠中鳥(농중조)의 처지를 생각하는 게 낫겠다.

옛날 서당에서 초학자들이 익혔다는 五言名句(오언명구) 모음 ‘推句(추구)’부터 먼저 보자. ‘해와 달은 새장 속의 새와 같고(日月籠中鳥/ 일월농중조), 하늘과 땅의 움직임은 부평초와 같도다(乾坤水上萍/ 건곤수상평).’

唐(당)나라 시성 杜甫(두보)의 시에서 따 왔는데 하늘의 해와 달까지 매번 똑같이 뜨고 지는 것이 당시 어수선한 난리 통의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는 劉備(유비)가 曹操(조조)와 함께 있었던 때를 말하며 자신의 신세가 ‘새장 속의 새요,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 같았다(籠中鳥 網中魚/ 농중조 망중어)’고 표현했다.

새나 짐승이 갇혀 있는 새장이나 우리에서 뛰쳐나가려는 본능은 모두 같아 비슷한 성어도 많다. 우리에 갇힌 원숭이를 함께 籠鳥檻猿(농조함원, 檻은 난간 함)이나 수레 양쪽에 길게 대는 끌채에 망아지가 묶이면 籠鳥轅駒(농조원구, 轅은끌채 원)다.

몸이 편안하더라도 자유가 없으면 미물도 답답하다.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속담이 있다. 구속이나 통제에서 벗어나 몸이 자유로운 것을 뜻하는데 제멋대로 행동하여 눈총을 받는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나의 자유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하니 주위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행동해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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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39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 - 먼 곳의 물로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 없다.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 - 먼 곳의 물로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 없다.

멀 원(辶/10) 물 수(水/0) 아닐 불(一/3) 구원할 구(攵/7) 가까울 근(辶/4) 불 화(火/0)

‘네 자신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예수님의 말씀이다. 이웃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셀 수 없이 많다.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는 속담은 ‘좋은 이웃은 멀리 있는 형제보다 낫다’는 영국 격언과 똑 같다.

‘세 잎 주고 집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는 속담은 중국 사서 南史(남사)에서 宋季雅(송계아)라는 사람이 이웃을 보고 시세보다 10배나 되는 집을 샀다는 ‘百萬買宅 千萬買隣(백만매택 천만매린)과 판박이다. 이렇게 좋은 말이 많이 내려와도 각박한 생활을 하는 도시에선 이웃의 얼굴도 모르고 지내는 사이가 흔하다.

먼 곳에 있는 물(遠水)로는 가까운 곳에서 난 불을 끌 수 없다(不救近火)는 이 성어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법치를 주장한 韓非(한비)의 역저 ‘韓非子(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자.

春秋時代(춘추시대) 魯(노)나라는 강국 齊(제)나라와 북쪽과 동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남쪽으로는 越(월)나라의 위협을 받는 등 항상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穆公(목공)은 왕자들을 晉(진)과 楚(초)나라로 보내 구원을 청할 생각을 했다. 이를 보고 犁鉏(이서, 犁는 얼룩소 리, 鉏는 호미 서)라는 신하가 충고했다. ‘

불이 났는데 바닷물을 끌어다 끄고자 한다면 바닷물이 아무리 많아도 불길을 잡지 못합니다. 먼 곳의 물은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는 없는 법입니다(失火而取水於海 海水雖多 火必不滅矣 遠水不救近火也/ 실화이취수어해 해수수다 화필부멸의 원수불구근화야).’

진나라와 초나라가 강하기는 해도 가깝게 있는 제나라의 침공을 받았을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앞선 역사나 민간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엮은 說林(설림) 상편에 실려 있다.

금언과 명구를 모아 놓은 한문 교과서 ‘明心寶鑑(명심보감)’에도 대구를 붙여 더욱 뜻을 명확히 한다. ‘먼 곳에 있는 물은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하고, 먼 곳에 있는 친척은 이웃만 못하다(遠水不救近火 遠親不如近隣/ 원수불구근화 원친불여근린).’ 省心篇(성심편)에 나온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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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40
관해난수觀海難水 -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관해난수(觀海難水) -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볼 관(見/18) 바다 해(氵/7) 어려울 난(隹/11) 물 수(水/0)

물은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스스로 찾기에 최고의 선이라며 上善若水(상선약수)라 했다. 물은 아래로만 흘러 나중에는 바다로 모인다. 百川歸海(백천귀해)라 하여 개천이나 강이나 모든 물이 바다로 돌아가고, 바다 또한 모두 받아들여 이루어졌다고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란 말이 나왔다.

北海(북해)의 신이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본 적이 없는 강의 신에게 깨우치는 말이 井中之蛙(정중지와)다. 자신의 세계에만 빠져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된다는 莊子(장자)의 우화다. 바다와 물을 말한 더 심오한 성어가 있다. 바다를 본 사람(觀海)은 물을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難水)는 ‘孟子(맹자)’의 말이다.

드넓은 물로 가득한 바다를 보고서 물을 말하기 어렵다고 하니 어떤 연유일까. 우물 안에서 좁게 보는 세상이 아니고 너무나 방대한 세상을 겪지 못한 사람에게 이해시키기 어렵다는 의미로 본다. 盡心 上(진심 상) 편에 孔子(공자)의 이야기부터 나온다. 부분은 이렇다.

‘공자께서 동산에 올라가서는 노나라가 작다고 여겼고(登東山而小魯/ 등동산이소로), 태산에 올라가서는 천하가 작다는 것을 느꼈다(登太山而小天下/ 등태산이소천하).’ 太山(태산)은 泰山(태산)과 같다. 아는 것이 많아져 진리를 깨우치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도 달라진다는 것을 비유한다.

그 뒤로 이어진다.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렵고(觀於海者難爲水/ 관어해자난위수), 성인의 문하에서 배운 사람은 어지간한 말로는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 어렵다(遊於聖人之門者難爲言/ 유어성인지문자난위언).’

바다는 높은 경지에 다다른 성인인데 시냇물 같은 수준 낮은 사람이나 초학자에게 넓은 세상을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게 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니 높은 태산에 오르고 드넓은 바다를 본 사람은 사소한 것이라도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고, 하늘이 좁다고 여기는 개구리들만이 다 안다는 듯이 시시콜콜 가르치려 든다.

높은 경지의 수준 높은 사람이 이끌어주지 않으니 일반인들인 초심자들은 답답하다. 친절하게 예를 들어 설명하면 좋으련만 짧은 두레박줄로는 깊은 우물물을 길어 올릴 수가 없다. 뜻이 있는 보통사람은 갈고 닦아 근처라도 가보고 싶다.

그런데 정작 최고의 전문가들은 함부로 단정 지어서 말하지 않는 것도, 조금 아는 사람이 쉽게 나선다. 무식한 사람은 알 필요 없다는 투의 경박한 태도로는 조금 아는 지식도 의심 받는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은 여기서도 겸손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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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41
도견와계陶犬瓦鷄 – 흙으로 구운 개와 기와로 만든 닭, 겉만 그럴듯하고 쓸모없는 사람

도견와계(陶犬瓦鷄) – 흙으로 구운 개와 기와로 만든 닭, 겉만 그럴듯하고 쓸모없는 사람

질그릇 도(阝/8) 개 견(犬/0) 기와 와(瓦/0) 닭 계(鳥/10)

전통공예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는 도자공예는 점토를 사용하여 陶器(도기), 瓷器(자기), 질그릇 등을 만든다. 이런 일에 종사하는 陶工(도공)들은 천변만화의 재주를 지닌 듯 작품을 빚어낸다. 도기를 만들거나 쇠를 주조하는 것이 陶冶(도야)인데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을 가리킨다.

이들이 개와 닭을 만든다면 어떨까. 아무리 신기를 지녔더라도 흙으로 구워 만든 개(陶犬)와 기와로 만든 닭(瓦鷄)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는 없다. 개가 낯선 도둑을 향해 짖거나 닭이 새벽을 깨우는 울음을 울리가 없다. 외모만 그럴듯하고 실속이 없어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성어는 중국 南北朝(남북조) 시대(420~589) 梁(양)나라의 蕭繹(소역)이 지은 ‘金樓子(금루자)’에 실려 널리 전해졌다. 남조의 제3왕조였던 양은 武帝(무제)가 502년 세운 나라였는데 소역은 그의 일곱째 아들 元帝(원제)다. 개국 초기는 내정의 정비에 힘써 제법 기강이 잡혔지만 얼마 못가 반란으로 어지러웠다.

소역은 국토 대부분이 西魏(서위)로 넘어가고 인구도 3만 명이 안 되는 소국에서 시부 읽기를 그치지 않다가 성이 함락되며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그의 문집에 실린 구절을 보자. ‘무릇 질그릇으로 구운 개는 밤에 집을 지키지 못하며, 기와로 구운 닭은 새벽을 알리는 구실을 하지 못한다(陶犬無守夜之警 瓦鷄無司晨之益/ 도견무수야지경 와계무사신지익).’

개나 닭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실제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 전하여 겉과 속이 다르거나 쓸모없는 것의 비유가 되었다. 土牛木馬(토우목마)와 같고 羊頭狗肉(양두구육), 夏爐冬扇(하로동선) 등과 뜻이 통한다.

직접 관련은 없어도 도공을 빗댄 명구가 있다. ‘옹기장이 집에는 깨진 동이를 쓰고, 기술자는 허름한 초옥에 산다(陶者用缺盆 匠人處狹廬/ 도자용결분 장인처협려).’ 淮南子(회남자)에 나온다. 宋(송)나라 梅堯臣(매요신)의 시 陶者(도자)는 숙연하다.

‘문 앞의 흙을 다 구워 내었건만, 자기 집 지붕에는 기와 한 조각 없네(陶盡門前土 屋上無片瓦/ 도진문전토 옥상무편와). 열 손가락에 진흙 한 점 묻히지 않고도,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이 있건만(十指不霑泥 鱗鱗居大廈/ 십지부점니 인린거대하).’ 가진 자와 없는 자의 까마득한 간극을 꼬집었다.

말만 앞세우거나 겉만 번드르르하게 일을 벌이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훌륭한 겉모습에 반하여 맹탕인 속을 못 보게 되면 땅을 치며 후회한다. 의욕적으로 이것저것 손대기보다 하나하나 알차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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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42
여조삭비如鳥數飛 - 새와 같이 끊임없이 날다, 부지런히 배우고 연습하다.

여조삭비(如鳥數飛) - 새와 같이 끊임없이 날다, 부지런히 배우고 연습하다.

같을 여(女/3) 새 조(鳥/0) 셈 수, 자주 삭(攵/11) 날 비(飛/0)

백조가 우아하게 물 위에 둥둥 떠 있어도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는 끊임없이 갈퀴질을 한다? 이 그럴듯한 말은 동물학자들에 의해 거짓으로 판명 났어도 섭섭하게 여기며 믿고 싶은 사람이 많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연습해야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교훈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옥그릇은 갈고닦은 장인이 있었다며 玉不琢 不成器(옥불탁 불성기)라 했고, 작은 바늘부터 높은 태산까지 갈고 쌓은 노력에 의해 磨斧作針(마부작침), 塵合泰山(진합태산) 등의 좋은 성어가 많다. 마찬가지로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도 태어날 때부터 그 능력을 가졌을 리는 없다.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다.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수없이 날갯짓을 반복했듯이 새와 같이(如鳥) 부단히 날아갈 노력을 한다(數飛)는 말은 배우기를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儒學(유학)의 四書(사서) 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論語(논어)’는 孔子(공자)와 그 제자들의 문답을 모은 책이란 것은 모두 안다. 이런 것을 알면서 그 무게감 때문에 공부할 엄두를 내지 않은 사람이라도 제일 첫머리에 나오는 말은 안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혀 나가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제일 첫 마디를 따서 지은 전체 20편의 편명 중에서 1편인 學而(학이)편이다. 물론 이 때의 말씀 說(설)은 기쁠 悅(열)과 같다는 것도 안다.

잘 알아도 더 주의해야 하는 것이 時習(시습)이다. 때때로, 시간 나는 대로가 아닌 때에 맞춰 반복해야 한다고 함께 붙여 썼다. 새가 끊임없이 날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성어는 원문이 아닌 朱子(주자)의 해설서 ‘論語輯注(논어집주)’에 익힐 習(습)을 설명하면서 나온다. 부분을 보자.

‘습이란 어린 새가 반복하여 나는 것이라(習 鳥數飛也/ 습 조삭비야), 배움을 꾸준히 하는 것을 새가 날갯짓하듯 하라(學之不已 如鳥數飛也/ 학지불이 여조삭비야).’ 셈 數(수)는 ‘자주’의 뜻으로는 數尿(삭뇨)와 같이 ‘삭‘으로 읽고, 빽빽한 그물 數罟(촉고)라 할 때는 ’촘촘할 촉‘의 독음도 있다.

새가 둥지에서 깨어나 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을 때만 연습한 것이 아니듯, 배움도 때에 맞춰 반복하여 익혀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위인전에 전해 오는 훌륭한 위인들은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한결같은 배움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잘 된 결과만 부러워하고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결실이 따르지 않는다. 배움 바로 뒤에 따르는 유명한 말도 같이 익혀 두자. 역시 많이 들어 본 말이다.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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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43
당비당거螳臂當車 – 사마귀가 팔을 들고 수레를 막다.

당비당거(螳臂當車) – 사마귀가 팔을 들고 수레를 막다.

버마재비 당(虫/11) 팔 비(肉/13) 마땅 당(田/8) 수레 거(車/0)

사마귀라는 곤충은 겁이 없다. 버마재비라는 별명대로 낫처럼 생긴 앞다리를 치켜들면 큰 동물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비루먹은 강아지 대호를 건드린다’는 속담이 철없이 함부로 덤비는 것을 비유한다.

사마귀의 한자말인 螳螂(당랑)이 들어가는 성어가 다른 곤충보다 많은 것은 부질없지만 용기를 가상하게 여겼기 때문일까. 눈앞의 이익에만 팔려 뒤에 닥칠 위험을 깨닫지 못할 때 쓰는 螳螂捕蟬(당랑포선)은 제외하고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말로는 螳螂拒轍(당랑거철), 螳螂之斧(당랑지부), 螳螂之衛(당랑지위) 등이 있다.

사마귀가 팔을 치켜들고(螳臂) 수레에 당당히 맞서는 것(當車)도 마찬가지다. 자기 능력도 생각하지 않고 강적에게 덤비는 모양새다. 자신이 대단한 능력이 있는 듯이 행세하거나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사태에 대항하려는 무모한 행동을 비유한다.

戰國時代(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道家(도가)를 대표하는 莊周(장주)는 ‘莊子(장자)’를 통해 寓言寓話(우언우화)로 우주 본체를 설명한다. 혼란한 세상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펼친 人間世(인간세) 편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魯(노)나라의 현인인 顔闔(안합, 闔은 문짝 합)이 衛(위)나라 태자의 스승으로 가게 되었을 때 위나라 대부 蘧伯玉(거백옥, 蘧는 패랭이꽃 거)을 찾아갔다. 한 사람이 있는데 아주 덕이 없어 그대로 두면 나라가 위태롭고, 막아서 규범을 지키게 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물음에 거백옥이 사마귀에 비유하여 충고한다.

‘사마귀는 팔뚝을 치켜세워 수레바퀴를 막으면서 자기가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지. 이는 자기의 재주가 뛰어나다고 믿기 때문이야.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네(怒其臂以當車轍 不知其不勝任也 是其才之美者也 戒之 愼之/ 노기비이당거철 부지기불승임야 시기재지미자야 계지 신지).’ 안합은 거백옥의 충고대로 자신의 재능도 모르고 마구잡이인 위나라 태자의 스승 되기를 포기했다. 후일 태자는 분규 중에 죽고 말았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자리에 앉았을 때 보란 듯이 업적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주변의 조언을 받아 잘 처리하면 좋을 텐데 자신이 그 자리에 합당한 능력을 가졌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무모하게 일을 벌이다 보면 자신이 다치는 것뿐 아니고 조직도 풍비박산나기 십상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273.html
kolaswqetsrq 11.14 16:44
오무은호이吾無隱乎爾 - 나는 너희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모든 일에 떳떳하다.

오무은호이(吾無隱乎爾) - 나는 너희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모든 일에 떳떳하다.

나 오(口/4) 없을 무(灬/8) 숨을 은(阝/14) 어조사 호(丿/4) 너 이(爻/10)

사람은 누구나 귀중한 존재고 태어날 때부터 한 가지 이상의 재능을 가졌다. 釋迦牟尼(석가모니)가 태어날 때 말했다는 唯我獨尊(유아독존)은 부처님 개인이 홀로 존귀하다는 말씀이 아니라 개개인 모두의 존재가 고귀하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모두가 존귀하고 재능이 있어도 한 분야에 한해서는 다른 사람이 따를 수 없는 특출함이 있을 수 있다.

그 재능은 錐處囊中(추처낭중)이란 말대로 내세우려 하지 않아도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드러나고, 어리숙하게 보이는 것이 더 어렵다고 難得糊塗(난득호도)라 했겠다. 그런데 학문의 스승 孔子(공자)가 숨기는 것이 없다(吾無隱)고 제자들에게(乎爾) 강조한 것은 왜일까.

공자와 그 제자들이 일상의 경험과 사고한 것을 문답을 위주로 남긴 것이 ‘論語(논어)’이다. 모든 방면에 대해 막힘이 없이 설명하고, 자유롭게 넘나들며 문제를 던지고 소통하는 공자는 제자들에게 즉석강의를 주로 한 셈이다.

제자들도 뛰어난데 스승의 가득한 지혜를 이해하는데 답답함을 느꼈는지 述而(술이)편에서 공자가 토로한다. ‘자네들은 내가 숨기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二三子以我爲隱乎/ 이삼자이아위은호)? 나는 그대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네(吾無隱乎爾/ 오무은호이).’ 二三子(이삼자)는 자네들, 여러분과 같은 뜻으로 여러 편에 등장할 만큼 공자가 즐겨 쓴 표현이다.

스승과 제자들이 숨김 여부로 왜 이렇게 됐는지 ‘論語輯注(논어집주)’에 해설이 나온다. 높고 깊은 스승의 지혜에 ‘미치지 못해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 여겼다(不可幾及 故疑其有隱/ 불가기급 고의기유은)’는 것이다.

‘행동을 하거나 멈추고 말을 하거나 입을 다무는(作止語黙/ 작지어묵)’ 모든 것이 가르침인데 그것을 이해 못하는 제자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며 뒤이어 강조한다. ‘나는 행하는 것마다(吾無行而/ 오무행이) 자네들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不與二三子者/ 불여이삼자자), 이것이 바로 나다(是丘也/ 시구야).’ 언덕 丘(구)는 공자의 이름.

공자는 같은 편에 이성적으로 설명 못할 존재나 현상인 怪力亂神(괴력난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고 나온다. 성인의 도는 기이한 것이 아닌 평범한 것을 말하는데 단지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할 뿐이란 것이다. 물론 공자의 제자들은 가르침을 잘 받아 훌륭하게 된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뛰어난 재능은 스스로 드러나고 제자들도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잘 따른다면 그 이상 좋은 사제가 없다. 아무 욕심도, 숨김도 없는 스승, 소신 있고 신념에 가득 찬 능력자는 제자 뿐 아닌 국가에 필요한데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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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45
삼지무려三紙無驢 - 종이 석 장을 쓰도록 나귀 驢려자가 없다,

삼지무려(三紙無驢) - 종이 석 장을 쓰도록 나귀 驢(려)자가 없다,

핵심도 모르고 허세를 부리다.

석 삼(一/2) 종이 지(糸/4) 없을 무(灬/8) 나귀 려(馬/16)

‘밤새도록 울다가 누가 죽었느냐고 한다’는 속담이 있다. 남의 집 문상을 가서 슬피 곡을 했으나 누가 죽었는지도 모른다고 하니 황당하다. 애써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의 내용이나 영문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하는 행동을 비꼴 때 쓴다.

지식이 많은 사람이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는데도 정작 핵심이 무엇인지 모를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송장 빼 놓고 장사 지낸다’고 비아냥댄다. 여기에 적합한 말이 종이 석 장(三紙)에 나귀가 없다(無驢)는 이 성어다. 나귀를 팔고 사는데 계약서 석 장을 가득 글자로 채워 넣었지만 주체인 나귀 驢(려) 글자가 없었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博士賣驢(박사매려)라고도 한다.

중국 六朝時代(육조시대)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顏之推(안지추, 531~591)는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도 온건하고 치우침이 없는 사상가였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학식은 당대 최고로 ‘顔氏家訓(안씨가훈)’을 저술했다.

가족도덕이나 대인관계 등 자손들을 위해 썼지만 당시의 다양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귀족생활을 아는 중요한 자료로 꼽는다. 옛날 어떤 선비가 살았는데 글재주도 없으면서 늘 붓을 가지고 다니며 유식한 체 자랑하고 다녔다. 사람들은 그를 박사라고 치켜 주었지만 속으로는 비웃었다.

어느 날 이 선비가 나귀를 한 마리 사게 되었다. 당시는 사는 쪽에서 계약서를 써 주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종이를 석 장이나 쓰고도 마무리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판 사람이 재촉하자 이제 나귀 驢(려)자를 쓰려는데 무식하다고 되레 호통을 쳤다.

勉學(면학) 편에 이러한 이야기를 鄴下(업하, 鄴은 땅이름 업)라는 지역의 속담이라 하면서 이어진다. ‘박사가 나귀를 샀는데 종이 여러 장을 다 쓰도록 나귀를 못 썼다. 만약 너희에게 이런 스승을 모시게 한다면 기가 막힐 것이다(博士買驢 書券三紙 未有驢字 使汝以此爲師 令人氣塞/ 박사매려 서권삼지 미유려자 사여이차위사 령인기색).’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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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46
조조삼소曹操三笑 - 조조가 세 번 웃다, 교만에 빠져 분수를 모르고 날뛰다.

조조삼소(曹操三笑) - 조조가 세 번 웃다, 교만에 빠져 분수를 모르고 날뛰다.

무리 조(曰/7) 잡을 조(扌/13) 석 삼(一/2) 웃음 소(竹/4)

자신만만하게 웃거나 마구 일을 저지르다가 망신을 당하면 ‘조조는 웃다 망한다’고 비웃는다. 우리 속담에도 등장하듯 曹操(조조)는 중국 역사상 최악의 악당이며 경망스런 잔꾀를 부리다 자멸하는 역적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실제 조조는 魏(위)를 세우게 되지만 後漢(후한)을 찬탈하려 한 것이 아니고, 병법을 잘 썼으며 군웅과 黃巾(황건)의 난을 진압한 공도 있다. 그런데도 조조가 이렇게 된 것은 魏蜀吳(위촉오)의 삼국이 關中(관중)의 패권을 다투는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가 널리 읽히면서다. 작가인 元明(원명) 시기의 羅貫中(나관중)이 劉備(유비)를 정통으로 세우기 위한 의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조조가 세 번 웃는다(三笑)는 이 말도 여기서 유래한 만큼 좋은 의미일 수 없다. 자신에 넘쳐 곧 닥칠 재앙을 모르고 분수없이 날뛴다는 비유로 쓴다. 흥미진진한 내용 중 50편에 나오는 赤壁大戰(적벽대전)은 백미라 할 수 있다.

서기 208년의 이 전투에서 조조의 80만 대군이 유비와 孫權(손권)의 소수 연합군에 참패하여 쫓기면서도 상대방의 전략가 諸葛亮(제갈량)과 周瑜(주유)의 꾀가 부족하다며 비웃었다. 갖가지 火攻(화공)을 비롯한 묘사가 실제의 전투보다 많이 각색되어 믿을 수 없다고 해도 후세에 흥미롭게 읽혀 각인된 사실은 어쩔 수 없다. 세 번 웃은 차례대로 보자.

조조가 1000명의 군사만 이끌고 쫓길 때 지세가 험준하고 산림이 빽빽한 烏林(오림) 근처에 다다랐다. 조조가 ‘말 위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호탕하게 웃었다(馬上仰面大笑不止/ 마상앙면대소불지)’. 이런 곳에 군사를 매복하지 않았다고 비웃을 때 趙子龍(조자룡)이 급습했다. 겨우 달아나 葫蘆口(호로구)란 곳의 ‘나무 밑에서 쉬다 크게 웃었다(疏林之下 仰面大笑/ 소림지하 앙면대소)’.

이번엔 張飛(장비)가 나와 혼비백산했다. 겨우 華容道(화용도) 근처로 다시 쫓기다 ‘말 위에서 채찍을 들고 큰 소리로 웃었다(馬上揚鞭大笑/ 마상양편대소).’ 곧 關羽(관우)가 나타나 앞길을 막았다. 조조는 관우의 의리에 호소하여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조조가 쫓겨 달아나면서도 연합군의 전략가의 지모가 모자란다고 비웃는 배포는 남다르다. 물론 허구에 의해 창작된 내용이라 해도 난관 속에서 웃다 망하지 않고 뒷날 아들 曹丕(조비)가 위나라를 개국하는데 기반을 닦은 일은 평가할 만하다.

일상에서는 상대방이 멋진 아이디어를 냈을 때 깊이 분석하지도 않고 효능이 없다며 일축하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흔하다. 더군다나 그것이 자신의 영역을 잠식했을 때는 이미 늦다. 항상 개인이나 조직, 나아가 국가까지 상대를 알아야 백번을 경쟁해도 지지 않는다는 병법은 여기서도 통한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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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47
오서지기鼯鼠之技 - 날다람쥐의 재주, 재능은 많아도 쓸모 있는 것은 없음

오서지기(鼯鼠之技) - 날다람쥐의 재주, 재능은 많아도 쓸모 있는 것은 없음

날다람쥐 오(鼠/7) 쥐 서(鼠/0) 갈 지(丿/3) 재주 기(扌/4)

다람쥐보다 몸집이 3배 가까이 큰 날다람쥐란 놈은 나무 사이를 날 수 있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날다람쥐의 재주는 많아서 다섯 가지나 된다고 하여 鼯鼠五能(오서오능), 또는 梧鼠五技(오서오기)라고도 한다. 그 재주는 곧 잘 날지만 지붕까지는 올라가지 못하고, 나무를 잘 타지만 나무 꼭대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또 헤엄을 잘 쳐도 계곡을 건널 수는 없고, 구멍을 팔수는 있지만 제 몸을 덮어 가리지는 못하며, 달리기를 잘 해도 사람에 앞설 수는 없는 정도의 실력이다. 곧 날다람쥐가 다른 동물에는 없는 재주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변변한 것이 없어서 제 몸을 지키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날다람쥐의 이와 같은 성격 풀이는 ‘荀子(순자)’의 勸學(권학)편에 있는 구절을 後漢(후한) 때의 고전학자 許愼(허신)이 ‘說文解字(설문해자)’에서 글자를 해설한 데서 왔다. 원본을 보자. ‘갈림길을 가는 자는 목적지에 이를 수 없고, 두 임금을 섬기는 자는 용납되지 않는다. 두 눈으로 보지 않으면 밝지 못하고, 두 귀로 듣지 않으면 밝게 들을 수 없다.

등사는 다리가 없지만 날고, 날다람쥐는 다섯 가지 기술이 있지만 궁하다(螣蛇無足而飛 梧鼠五技而窮/ 등사무족이비 오서오기이능).’ 螣은 등뱀 등, 螣蛇(등사)는 운무를 일으켜 몸을 감출 수 있는 용을 닮은 뱀이란다. 梧鼠는 후세의 주석에서 鼯鼠의 오기라고 보았다.

이처럼 날다람쥐 재주는 이것저것 잘 하지만 정작 뛰어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을 비유하거나 하찮은 재주로 남을 깔보는 사람을 빗대 말할 때 사용하기도 하는 성어다. 여러 가지 일을 얕게 닦기 보다는 한 가지를 깊이 있게 전공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한국경제가 날다람쥐를 닮아간다고 꼬집은 글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계획대로라면 전통적인 제조업과 금융, 의료 등 고급서비스업, 미래형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적 강국이 되어 있어야 하지만 이것저것 찔끔찔끔 하느라 뒷걸음질이란 것이다. 모두 잘 할 수만 있다면 더 없이 좋지만 날다람쥐의 재주 같이 남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걸림돌만 되는 일이 많으니 잘 점검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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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48
지족자부知足者富 -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넉넉하다.

지족자부(知足者富) -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넉넉하다.

알 지(矢/3) 발 족(足/0) 아닐 불(一/3) 놈 자(耂/5) 부자 부(宀/9)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켜 만족함을 아는 것이 安分知足(안분지족)이다. 남을 위하여 태어난 성인도 드문 만큼 만족을 아는 사람은 웬만한 수양을 하지 않고선 더 귀하다. 예로부터 만족이 행복의 근원이라고 말한 선현이나 금언이 많은 것도 그만큼 어려워서일 것이다. 깨우치는 내용도 동서양의 철인들이 하나같이 비슷비슷하다.

‘행복은 만족하는 인간에게 속한다’, ‘자기의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 자는, 바라던 것을 얻게 되어도 역시 만족하지 못한다’ 등이 서양이라 하면, 동양에선 유독 道敎(도교)의 창시자인 老子(노자)가 만족에 관한 말을 많이 남겨 압도적이다. 만족을 아는 사람이 바로 부자라는 노자의 이 성어가 같은 의미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말기 상하 두 편 모두 81장의 ‘道德經(도덕경)’을 남긴 노자는 자연법칙에 따르고 인위적인 것을 배격하는 無爲自然(무위자연)을 주창했다. 간단한 운문체로 심오한 의미를 함축한 것이 특징인데 33편 辦德(판덕)장에 마음의 부자 이야기가 나온다. 부분을 먼저 보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넉넉하고, 힘써 행하는 자는 뜻이 있는 사람이다(知足者富 强行者有志/ 지족자부 강행자유지)’. 스스로 도를 지켜 욕망에 끌려가지 않으면 불만이 없고, 뜻을 세워 근면역행하면 마침내 뜻을 이루게 된다는 당연한 얘기다.

이 말의 앞부분부터 좋은 말이 등장한다.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밝은 사람이다(知人者智 自知者明/ 지인자지 자지자명)’. 남을 안다는 것은 약간의 지혜로도 파악할 수 있는데 자신을 능히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혜 이상의 사물을 똑똑히 살필 수 있는 明察力(명찰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란다.

이어지는 것이 유명한 自勝者强(자승자강),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이지만,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더욱 강한 사람이란 성어다. 앞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욕되지 아니한다는 知足不辱(지족불욕)은 44장 立戒(입계)장에 나온다고 소개했다. 46장의 儉欲(검욕)장에는 만족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이 없다고 禍莫大於不知足(화막대어부지족)이라 했다.

이처럼 知足(지족)을 강조한 노자의 가르침은 ‘明心寶鑑(명심보감)’의 安分(안분)편에 다수 실려 이어 받는다. ‘만족함을 알면 즐거울 것이요, 탐하기를 힘쓰면 곧 근심이 된다(知足可樂 務貪則憂/ 지족가락 무탐즉우)’,

‘만족함을 아는 사람은 빈천도 또한 즐거울 것이요, 만족함을 모르는 사람은 부귀해도 역시 근심한다(知足者 貧賤亦樂 不知足者 富貴亦憂/ 지족자 빈천역락 부지족자 부귀역우)’. 욕심이 더 큰 욕심을 낳는 일반 사람에겐 이런 말이 들어오지 않지만 그래도 서양격언을 보탠다. ‘만족이 바로 행복이다(Contentment is happiness).’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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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49
【금창초】

【금창초】

잎의 앞면은 짙은 녹색이고 뒷면은 자줏빛을 띠고 전체에 잔털이 있는 "금창초". "금란초"라고도 함.

유사종으로 내장금창초 : 내장산에 자라며 꽃이 분홍색임.

서양금창초(=아주가) : 금창초와 닮았고 조경용 지피식물로 유럽에서 도입한 종임.

▷ 학명 : Ajuga decumbens

▷ 분류 : 꿀풀과

▷ 분포지역 : 한국, 일본, 중국

▷ 서식장소 : 산기슭, 들, 구릉지

▷ 특징 :

5∼6월(봄)에 꽃이피며, 꽃은 잎겨드랑이에 몇 개씩 달리고 꽃이 피는 줄기는 4∼6개가 5∼15cm로 곧게 자라며 몇 쌍의 잎이 달리고 보라빛을 띤 자줏색이다.

한방에서는 해수·천식·기관지염·인후염·장출혈·코피·객혈·유선염·중이염·종기·타박상 등에 처방한다.

민간요법으로는 생초를 짓찧어 종기·타박상 등의 환부에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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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6:52
칠절오상七絶五常 - 감나무의 일곱 가지 장점과 다섯 가지 덕성

칠절오상(七絶五常) - 감나무의 일곱 가지 장점과 다섯 가지 덕성

일곱 칠(一/1) 끊을 절(糸/6) 다섯 오(二/2) 떳떳할 상(巾/8)

손을 댄 것이 전혀 티가 나지 않을 때 감쪽같다는 표현을 쓴다. 이 말의 어원이 맛있는 곶감의 쪽을 뺏기지 않으려고 빨리 흔적도 없이 먹어 치운다거나, 감나무에 고욤을 접붙였을 때 나중에 표시가 나지 않은 데서 나왔다거나 분분한데 어쨌든 감과 관계가 있다.

‘감 고장의 인심’이란 속담이 있듯 누가 감을 따 먹어도 좋다고 할 만큼 마을 곳곳에 많이 기르는 과일이기도 하다. 棗栗梨柿(조율이시)라며 제사 때에도 빠지지 않는 생활 속의 과일 감에는 일곱 가지 뛰어난 장점(七絶)이 있고 다섯 가지 덕성(五常)이 있어 더욱 사랑을 받아왔다.

감은 중국서도 귀한 대접을 받아온 듯 일곱 가지 장점을 처음 남긴 사람은 唐(당)나라 때의 박학한 학자 段成式(단성식, ?~863)이라 한다. 그가 남긴 ‘酉陽雜俎(유양잡조)’는 괴이한 사건, 언어와 그리고 풍속 따위를 기술한 잡학서적인데 여기에 그 말이 나온다.

酉陽(유양)은 후난湖南/ 호남성에 위치한 산으로 한 동굴 속에 1000권의 책이 숨겨져 있다는 말이 전해 온다고 한다. 卷(권)18의 식물과 열매에 관한 글에 ‘감나무에는 널리 이르는 말로 칠절이 있다(俗謂柿樹有七絕/ 속위시수유칠절)’고 하면서 하나하나 들고 있다.

감나무는 첫째 나무가 오래 살며(一壽/ 일수), 둘째 많은 그늘이 있어 시원하고(二多陰/ 이다음), 셋째 새가 둥지를 틀지 않으며(三無鳥巢/ 삼무조소), 넷째 벌레가 끼지 않고(四無蟲/ 사무충), 다섯째 서리 맞은 단풍잎이 보기 좋으며(五霜葉可玩/ 오상엽가완), 여섯째 맛있는 열매가 열리고(六嘉實/ 육가실), 일곱째 낙엽이 넓어 훌륭한 거름이 된다(七落葉肥大/ 칠낙엽비대)는 것이다. 여기에 文武忠節孝(문무충절효)의 五常(오상)도 곁들여져 가치를 더한다.

감잎에 글을 쓸 수 있으니 文(문),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촉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武(무), 과일의 겉과 속이 다 같이 붉으니 忠(충), 치아가 불편한 노인도 먹을 수 있으니 孝(효), 나뭇잎이 다 떨어져도 과일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 않으니 節(절)이 그것이다.

감나무는 五色(오색)의 나무이기도 하는데 줄기는 검은색을 띠며, 잎은 푸른색이고, 꽃은 노란색이며, 열매는 붉은색인 데다, 잘 익은 열매를 말려 하얀색의 곶감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란다. 여름엔 그늘을 드리우고 가을에는 서리 맞은 잎이 장관을 이루며 맛있는 과일도 아낌없이 인간에게 주는 감나무에게 무엇을 배울까. 문무는 두고라도 겉과 속이 같고 끝까지 지키며 약자를 공경하는 것은 큰 교훈이 된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436.html
kolaswqetsrq 11.14 16:53
○ 이제 ‘한국 나이’ 대신 ‘만 나이’로...

○ 이제 ‘한국 나이’ 대신 ‘만 나이’로...

-국회 법사위서 통일 법안 통과

사법, 행정 등 분야에서 ‘만(滿) 나이’만 사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이 8~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내년 6월부터는 공식적으로 만 나이로 나이 표시가 통일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7일 오전 전체회의를 열고 만 나이 사용을 명확히 규정한 민법 일부개정법률안과 행정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이날 상임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8~9일 국회 본회의가 예정대로 열릴 경우 본회의에서도 통과될 전망이다.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공포 6개월 뒤 시행돼 내년 6월부터는 만 나이 통일이 공식화된다.

민법 개정안은 유상범 의원안, 박광온 의원안을 병합한 대안으로 만 나이라는 표현을 명시하고, 만 나이는 출생한 날을 포함해 계산, 연수(年數)로 표시하도록 했다. 또 아직 생후 1년이 되지 않은 경우 개월 수로 나이를 표시하도록 했다. 행정기본법 개정안도 만 나이를 명문화해 행정에 관한 나이의 계산을 만 나이로 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동안 나이 표시는 민법상 명시적 규정이 없었다. 이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는 이른바 ‘세는 나이’가 주로 사용됐다. 세는 나이는 출생일부터 1세가 되고, 다음 해 1월 1일이 되면 1세씩 늘어가는 나이 계산 방법이다. 그러나 세는 나이는 행정서비스를 받거나 각종 계약을 체결할 때 혼선과 분쟁이 발생하고 국제적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내년 6월부터 만 나이를 사용할 경우 12월생 등 일부는 세는 나이에 비해 2살이나 나이가 낮아지게 된다. 이 때문에 만 나이 통일을 반기는 여론도 있지만 ‘행정용’인 만 나이 사용이 실제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빨리 확산될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부산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814.html
kolaswqetsrq 11.14 16:54
놀라운 감자의 효능

놀라운 감자의 효능

1.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감자속에 포함되어 있는 알칼리 성분은 사과에 비하면 2배나 되고 포도보다도 더 높다고 합니다. 알칼리성 건강식품에 해당되며.. 다이어트에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2. 비타민C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노인들에 있어서는 치매를 예방하는데 그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감자에는 비타민C가 많이 들어 있어 하루 감자 2개 정도면 충분한 섭취가 된다고 합니다.

3. 빈혈을 예방하며 치료에도 효과적이다.

감자속에는 비타민C와 철분이 넉넉하게 들어 있어 장의 흡수를 도와 주고..빈혈을 막아 주는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4. 당뇨예방에 좋다.

감자가 포함하고 있는 탄수화물은 고구마 또는 밥에 비하면 낮으나..소화가 서서히 이루어져 쌀밥을 섭취한 것과 같이 혈당 수치가 급속히 올라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5. 암이나 성인병 예방에 좋다.

칼륨, 식이성섬유가 많이 함유되어 있어 암과 성인병을 예방한다. 식이섬유는 몸 속에 존재하는 나트륨(소화기관 염기)성분을 밖으로 배출시켜 주는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몸 속으로 들어 오는 나트륨도 방지하여준다.

6.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한다.

현대인의 식생활이 백미, 육류 중심의 패턴으로 고급화되어..체질적으로 보면 산성화 되어 가는데 감자를 부분적으로 주식으로 하였을 경우에 그 예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7. 장수의 비결

섭취할 때 감자생즙으로 먹는것이 훨씬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다만... 감자를 매일 꾸준하게 섭취하여 주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 된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074.html
kolaswqetsrq 11.14 16:55
내 몸의 독소를 없애주는 아침식사

내 몸의 독소를 없애주는 아침식사

1. 녹차

녹차의 카페인은 대뇌를 자극해 머리를 맑게 해주고 집중력과 기억력을 높여주며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한다.

2. 버섯

버섯은 아주 뛰어난 항암 식품이다. 또한 표고버섯을 말리면 비타민 D가 증가하여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고 B형 감염 환자의 암 발생률을 30% 정도 낮추어준다는 보고가 있다.

3. 오이

알칼리성 식품으로 수분이 많고 이뇨 작용을 해 여름에 먹으면 몸의 열을 없애고 부기가 빠진다.

4. 깻잎

엽록소가 풍부해 발암 물질 배출과 세포 재생 작용이 강하다. 특히 알레르기 환자의 가려움증을 없애고 피부를 정상적으로 재생시켜준다.

5. 부추

몸을 따뜻하게 하는 대표적인 야채로 지친 몸에 활력을 주며 정력을 높여준다.

6. 달걀

비타민 U가 많아 위궤양, 십이지장궤양에 효과가 있다. 하지만 열에 약하므로 생으로 먹거나 갈아서 마시는 것이 좋다.

7. 두부

사포닌이 풍부하며 항암과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 많이 먹으면 몸 속의 요오드가 감소하므로 요오드 성분이 풍부한 미역과 같이 먹으면 좋다.

8. 등푸른생선

머리가 좋아진다는 DHA와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EPA가 함유되어 있어 일주일에 3번 정도 먹으면 치매 및 성인병 예방에 좋다.

9. 토마토

비타민 C와 D가 풍부해 혈압을 낮추고 모세혈관을 튼튼히 해준다.

10. 미나리

혈액을 맑게 하고 혈관을 보호해 혈압을 낮춘다. 또한 섬유질과 수분도 많아 변비를 예방함으로써 체내에 노폐물이 쌓이지 않고 적절히 배출되도록 돕는다.

11. 콩

단백질의 보충 식품으로는 최상의 것이며 이소플라본을 함유하여 갱년기 여성의 골다공증 예방에 좋고 유방암 예방 효과도 있다.

12. 멸치

칼슘, 고도불포화지방산(EPA, DHA), 철분, 인, 단백질, 니아신, 타우린 등이 함유되어 있다. 특히 성인병을 예방하는 회분, 핵산, 타우린 및 칼슘의 함유량이 매우 높아 성장기 어린이와 임산부, 노약자에게 좋다.

13. 파래

양배추의 70배에 해당하는 비타민 U가 들어 있어 위궤양이나 급성 위염 치료에 아주 효과적이다. 베타카로틴, 칼슘, 마그네슘이 골고루 들어 있어 골다공증 예방과 피부 미용에도 좋다.

14. 묵

도토리묵 특유의 쓰고 떫은 맛은 천연 타닌 성분 때문이다. 타닌은 설사를 멎게 하고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여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며 심장도 튼튼하게 한다.

15. 밤

예로부터 알칼리 식품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도 좋다. 특히 백미에 부족한 염산이 풍부해서 밤밥을 해 먹으면 좋다.

16. 우유

건강 증진 효과가 큰 칼슘, 비타민 B2, 유단백질 등의 영양소가 많은 것은 물론 각 영양소가 균형 있게 들어 있다.

17. 감자

알칼로이드의 일종인 아트로핀이 들어 있어 위산 분비 감소와 위통 완화 효과가 있으므로 위궤양 환자에게 좋다.

18. 다시마

칼로리가 낮고 각종 미네랄이 많이 들어 있어 성인병 예방 및 변비 예방에 좋으며 혈압과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저하시킨다.

19. 파프리카

비타민 A와 C, 철분 등 영양 성분이 다른 야채에 비해 월등히 많으며 캅사이신도 들어 있어 지방 분해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20. 유자

레몬의 3배에 달하는 비타민 C가 들어 있으며 모세혈관을 보호해 혈액순환을 돕고 성인병 예방에도

21. 당근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항암 효과가 있다. 익혀서 먹으면 30% 정도, 기름에 볶아 먹으면 50% 정도 흡수된다.

22. 파

항암·항균 효과가 있다. 비타민 C와 셀레늄 성분은 열에 약하므로 생으로 먹거나 살짝 데쳐 먹는 것이 좋다.

23. 무

소화 효소인 아밀라아제와 비타민 C가 풍부하다. 메밀처럼 독이 있는 음식과 같이 먹으면 해독 작용을 한다.

24. 양파

콜레스테롤이 활성 산소에 의해 산화되는 것을 막아 동맥경화 등 혈관질환예방, 불면증, 간회복에도 효과적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545.html
kolaswqetsrq 11.14 16:56
토마토의 효능 10가지

토마토의 효능 10가지

1. 다이어트

토마토에는 영양소가 풍부한 반면, 칼로리와 당분의 함량이 낮다. 또한 수분과 섬유질이 풍부하기 때문에 식단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

2. 건강한 피부

베타카로틴이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데 도움을 주고 라이코펜이 손상된 피부와 주름을 개선시켜 준다.

3. 뼈 건강

토마토에 풍부한 비타민K는 우리 몸에서 칼슘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줘 뼈를 튼튼하게 한다. 라이코펜은 골밀도를 높여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기능을 한다.

4. 항암효과

항암작용으로 인정받고 있는 라이코펜이 암 뿐만아니라, 우리의 몸이 산성화가 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성인질환을 예방 및 치료해주는 효능이 뛰어나다. 또한 항암기능을 하는 비타민A와 C가 풍부하다.

5. 노화예방

이 역시 라이코펜의 효능. 노화를 유발 및 DNA를 손상시키는 활성화 산소를 억제시키고, 동맥의 노화진행을 늦춰준다. 또한 체내에 바이러스 및 세균의 침입을 막아줘 면역력을 강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6. 혈당조절

토마토는 당지수가 낮아 당뇨병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며 특히 혈당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 크롬 성분이 풍부하다.

7. 시력

토마의 비타민A는 시력을 향상시키고 야맹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최근 연구를 통해 황반변성 등 안구 질환의 위험을 줄여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8. 고혈압 개선

활성산소의 작용을 억제시켜서 혈액순환을 개선시키고, 토마토에 풍부한 루틴과 비타민C가 혈압을 낮추는 효능을 가지고 있어 고혈압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

9. 신장기능

풍부한 칼륨은 인체에 쌓여 있는 나트륨을 체외로 배출시켜 주기 때문에 신장기능을 개선하는데 좋다. 또한 신장결석이나 담석의 생성을 방지한다.

10. 만성통증

무릎이나 허리의 만성통증을 줄일 수 있다. 항염증제로 알려진 플라보노이드와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 라이코펜은?

• 밝은 녹색의 카로티노이드 색소이자 파이토케미컬

• 토마토·붉은 당근·수박·파파야·붉은 구아바·붉은 포도 등 붉은 과일·채소에 풍부

• 토마토의 라이코펜 함량은 종류와 숙성 정도에 따라 달라짐(푸른 색 토마토엔 거의 없음)

• 유해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효과(시험관 시험에선 항산화 능력이 비타민 E의 100배)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44.html
kolaswqetsrq 11.14 16:57
닭고기의 효능

닭고기의 효능

1. 닭고기 부위중 날개는 피부미용과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콜라겐 성분이 들어있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고운 피부를 원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좋습니다. 콜라겐은 일반적으로 식사만으로

충분한 섭취가 이뤄지지 않으며 자외선과 노화 등으로, 자연적으로 소실되어 미용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섭취가 필요한 영양소로 피부 미용을 위해 콜라겐이 많이 들어 있는 닭고기의 날개를 많이 먹는 것이 좋습니다.

2. 단백질이 많아 두뇌활동을 촉진합니다.

닭고기에 들어 있는 단백질 함량이 타육류에 비해 높아 두뇌성장을 돕는 역할을 하고 몸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뼈대의 역할, 세포조직의 생성, 각종 질병을 예방하여 줍니다.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한 닭고기는 뇌신경 전달물질의 활동을 촉진시키며, 스트레스를 이겨내도록 도와 줍니다.

3. 산후회복식에 좋은 영양식입니다.

임산부는 단백질과 필수 지방산을 많이 필요로 하는데 닭고기는 다른 육류에 비해 단백질이 높고, 소화가 잘되는 영양소가 많아 임산부에게 훌륭한 영양식입니다. 닭을 푹 고아서 미역과 함께 끓이게 되면 산후 회복식으로 좋습니다.

4. 간장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근육이 위축되거나 피로해지고 시력이 떨어지면 눈병이 잘 생기는데, 한방에서는 닭간을 섭취할 것을 권장합니다.

5. 암세포 증식을 막는 항암작용이 있습니다.

닭고기에는 불포화지방산 중 리놀레인산, 함유되어 있어 암발생을 억제해주는 역할을 하며 동맥경화, 심장병 등의 예방에도 도움이 됩니다. 미국암연구협회와 세계암연구재단은 암예방 식생활에서 닭고기를 비롯한, 백색육을 섭취 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6. 소화흡수가 잘 됩니다.

닭고기는 섬유질이 가늘고 연하며 지방이 근육섬유 속에 들어 있지 않아 소화흡수가 잘되며 어린이나 노인, 회복기 환자 들에게 좋습니다.

7. 감기치료에 좋습니다.

닭뼈를 진한 국물로 우려내 만든 치킨 수프는 몸살감기에 좋으며, 고급식당이나 호텔에서, 내놓고 있는 치킨스톡도 닭살을 발라낸 닭뼈로 만든 치킨수프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414.html
kolaswqetsrq 11.14 16:58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성인은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2시간 반 정도 신체활동을 해야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여기서의 신체활동은 빨리 걷기처럼

중간강도의 운동을 의미한다. 만약 달리기처럼 운동 강도를 높인다면 일주일에 75분 정도의 운동만으로도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 또 가능하다면 일주일에 2번 정도 근력운동을 병행하는 편이 좋다.

이러한 운동 시간을 준수하면 근육밀도가 높아지고 심장질환이 예방되는 등 보다 건강한 삶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이보다 적은 시간의 운동은 무가치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 10분이라도 운동을 한다면 안 하는 것보다는 건강상 이득이 많다. 단 규칙적으로 꾸준한 운동을 할 때 삶의 질이 개선되는 효과가 가장 크다는 것이다.

규칙적인 운동은 치매의 위험도를 40% 낮추고 인지장애의 위험도는 60% 이상 줄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 정기적으로 꾸준히 운동을 하는 젊은 성인들은 매년 평균 2~8퍼센트 정도 골밀도가 증가한다. 미국 언론매체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신체활동이 활발한 사람들은 확연한 건강상의 차이를 보인다.

◆ 수면의 질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6%의 사람들만이 편안한 잠을 자고 있다고 대답했다. 반면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86%가 안정적인 수면을 취하고 있다고 답했다.

◆ 안정 시 심박수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심박수가 빠른 사람일수록 수명이 짧아질 위험이 있다. 적은 양의 심박수는 심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적은 사람들은 휴식을 취할 때 1분에 60~80번의 심박수를 보이는 반면, 정기적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40~60번의 심박수를 보인다.

◆ 최대 산소 섭취량

최대 산소 섭취량은 지구력을 요하는 운동을 할 때 그 수치가 상승한다. 산소 섭취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심폐능력과 혈액 산소운반능력 등이 우수하다는 의미다.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긴 여성은 평균 25ml/kg 미만의 섭취량을 보이며 남성은 30ml/kg 미만의 수치를 보인다. 반면 운동을 하는 여성과 남성은 각각 46~50ml/kg, 48~53ml/kg의 수치를 보인다.

◆ 수명 연장

평균 연령이 40세인 미국 성인남녀의 평균 수명은 78.7세다. 반면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이보다 평균 수명이 4년 길어진다.

◆ 땀 배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앉아 있는 시간이 긴 사람들보다 땀을 배출하는 속도가 빠르다. 운동을 하면 혈액순환이 빨라지고 체온이 상승하는데 이때 정상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몸이 하는 일이 바로 땀 배출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지며, 땀을 배출하는 속도가 빨라 발한을 통한 체온조절이 보다 용이하게 이뤄진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165.html
kolaswqetsrq 11.14 16:59
체중감량에 도움을 주는 음식들

체중감량에 도움을 주는 음식들

★ 연어

맛이 풍부한 생선인 연어는 단백질 보충에 좋은 음식입니다. 건강하지 않은 지방의 섭취없이 든든히 한끼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붉은 육류보다 연어고기는 지방이 적고 단일 불포화 지방산(MUFAs)를 포함하고 있어 건강에 좋습니다. 연어는 오븐에 구워 먹기에도 좋으며 불위에서 바베큐 요리용으로도 좋은 훌륭한 식재료 입니다.

★ 블루베리

블루베리는 항노화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블루베리는 칼로리가 낮지만,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섬유질을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컵 분량의 블루베리는 80칼로리를 가지고 있으며 약 4그램의 섬유질을 포함합니다. 꽤 단맛을 지닌 과일이므로 따로 설탕을 추가하지 않아도 되며, 아침식사나 요거트와 함께 먹기 좋습니다.

★ 검은콩

검은콩은 단백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식물로, 섭취 후 장시간 동안 포만감을 줄 수 있습니다. 검은콩은 포화지방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검은콩 샐러드 등 여러가지 레시피를 사용하여 검은콩을 섭취해 보세요.

★ 브로콜리

브로콜리는 요리재료로 사용하거나 날것으로 먹어도 풍부한 향을 즐길 수 있는 채소 입니다. 1인분에 30칼로리 정도의 열량을 가진 저칼로리 음식 중 하나 입니다. 브로콜리는 항암작용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으며, 조리하지 않은 상태로 섭취가 가능하며 허브등을 넣고 여러가지 다른 재료들과 구워서 먹기도 좋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194.html
kolaswqetsrq 11.14 17:00
체리의 효능

체리의 효능

1. 항산화 효과

체리에는 항산화 물질 중 하나인 안토시아닌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데, 이 성분은 노화의 원인이 되는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암을 예방하며 노화방지 효과를 가지고 있어 젊고 탄력있는 피부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매일 체리 10개만 복용해도 안토시아닌 하루 권장량인 12mg을 섭취 할 수 있기때문에 항암효과와 노화방지 효과를 보기 위해 매일 꾸준히 드시는 것도 건강과 미용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2. 불면증 증상 완화

체리에는 멜라토닌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평소 불면증으로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과일로 생체리듬을 조절하고 수면을 유도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3. 당뇨병 예방 및 개선 효과

체리에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췌장에 인슐린을 분비하는 세포를 자극하여 인슐린의 생성량을 50%가량 늘려주고 혈액으로 포도당이 흡수되는것을 억제해 당뇨병 예방 및 완화에 도움이 되는 과일입니다

4. 근육통 증상 완화

영국의 한 대학교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체리주스를 마시면 운동 후 회복이 빠르며, 체내에 쌓여있는 피로물질이 줄어들고 염증이 완화되며 손상된 근육이 빠르게 좋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5. 성인병

체리에는 안토시아닌과 펙틴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나쁜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를 낮추고 혈전 형성을 억제해 심장질환, 뇌졸중, 고혈압을 예방하고, 체내에 있는 노폐물이 증가되는 것을 억제해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854.html
kolaswqetsrq 11.14 17:01
【가침박달】

【가침박달】

희귀식물인 "가침박달"입니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높은 산 정상부근에 귀하게 자랍니다.

▷ 학명 : Exochorda serratifolia

▷ 분류 : 장미과

▷ 분포지역 : 중부이북(경북, 충북, 강원)

▷ 서식장소 : 산기슭과 계곡

▷ 특징 :

열매는 삭과로 길이 15~17mm의 타원형이다. 9월에 익고 씨에 날개가 있다. 관상수로 심는다. 충청북도·경기도·황해도·평안남도·평안북도·함경북도 등지에 분포한다. 잎 뒤에 털이 나는 것을 털가침박달(var. oligantha)이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침박달 Common Pearlbush, 柳櫻 (두산백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405.html
kolaswqetsrq 11.14 17:02
아름답게 늙는 지혜

아름답게 늙는 지혜

혼자 지내는 버릇을 키우자.

남이 나를 보살펴 주기를 기대하지 말자.

남이 무엇인가 해 줄 것을 기대하지 말자.

무슨 일이든 자기 힘으로 하자.

죽는 날까지 일꺼리가 있다는 것을 최고의 행복이라 생각하자.

젋었을 때 보다 더 많이 움직이자.

늙으면 시간이 많으니 항상 운동하자.

당황하지 말고, 성급해 하지 말고, 뛰지 말자.

체력, 기억력이 왕성하다고 뽐내지 말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버릇을 기르자.

남의 생활에 참견 말자.

몸에 좋다고 아무 약이나 먹지 말고 남에게 권하지 말자.

의사를 정확히 말하고, 겉과 속이 다른 표현을 하지 말자.

어떤 상황에도 남을 헐뜯지 말자.

후덕한 늙은이가 되자.

즐거워지려면 돈을 베풀자.

그러나 돈만 주면 다 된다는 생각은 말자.

일을 시킬 때는 자식보다 직업적인 사람을 쓰자.

일을 시키고 잔소리하지 말자.

이웃을 사랑 하자.

늙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자.

인간답게 죽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 주자.

늘 감사 하자. 그리고 또 감사 하자.

늘 기도 하자. 그리고 또 기도 하자.

항상 기뻐 하자. 그리고 또 기뻐 하자.

- 아르테미스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550.html
kolaswqetsrq 11.14 17:03
강황믜 7가지 효능

강황믜 7가지 효능

1. 간 건강

커큐민 성분이 풍부한 강황은 간을 보호하여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데요. 특히, 음주로 인해 우리 몸에 흡수된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능이 뛰어나 숙취해소에 도움이 되며, 간세포를 재생시키는 작용을 하여 간이 건강해 진다고 합니다.

2. 소화불량 해소

음식을 먹고 소화가 안된다거나 배에 가스가 찰 때 강황가루가 들어간 카레를 먹으면 좋은데요. 강황에 함유되어 있는 커큐민 성분이 소화력을 높이는 담즙의 생성을 도와줘 소화력을 높여주기 때문에 소화불량 증상을 해소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3. 항암효과

암을 예방하는데 강황가루 효능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강황에 함유되어 있는 커큐민과 투메린이라는 성분이 체내에 암세포가 자라는걸 막아준다고 합니다. 특히, 위암이나 대장암, 전립선암 등에 좋다고 합니다.

4. 치매예방

강황가루가 치매에 좋은 이유도 풍부한 커큐민 성분 덕분인데요. 이 커큐민 성분이 체내에 들어오면 뇌신경 및 뇌세포의 활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치매를 예방해 준다고 합니다. 실제 강황가루가 들어간 카레를 주식으로 먹고 있는 인도에서의 치매환자의 비율이 굉장히 낮다고 합니다.

5. 여성질환 개선

강황은 몸속에 뭉쳐있는 혈인 어혈을 풀어주어 생리통이나 월경불순, 생리가 나오지 않는 무월경 등의 여성질환을 개선하는데 강황가루 효능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체내에 막혀 있던 혈을 뚫어주기 때문에 생리통이 심하다거나 출산모들이 챙겨 먹으면 좋다고 합니다.

6. 소염진통제

인도에서는 예로부터 강황가루를 소염진통제로 이용했을 정도로 몸에 난 염증이나 진통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는데요. 특히, 몸에 상처가 났을때 강황가루를 환부에 뿌려주면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생리통이나 근육통, 두통 등에도 좋다고 합니다.

7. 혈관질환 개선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혈액순환이 활발해 지는건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우리 몸에서 혈액이 흐르고 있는 혈관내에 콜레스테롤이나 지방 등의 침착이 많아지면 혈액순환에 장애가 생기면서 고혈압, 심장병, 동맥경화, 뇌졸중, 심근경색 등의 각종 혈관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데요. 커큐민 성분이 콜레스테롤과 지방을 제거해주고 혈관을 막는 혈전을 억제시켜 각종 혈관질환을 예방 및 개선하는데 강황가루 효능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7_47.html
kolaswqetsrq 11.14 17:04
잠, 잘 오게하는 10계명

잠, 잘 오게하는 10계명

1. 오전 중에는 태양과 마주한다.

아침은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생활로 망가진 생체 리듬을 정돈하기 좋은 때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커튼을 열고 온몸으로 태양의 기운을 맞이한다.

2. 한꺼번에 몰아 자지 않는다.

휴일 늦잠은 생체 리듬을 엉망으로 만든다. 아침에는 일단 일어났다가 낮잠으로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편이 피로 회복에 효과적이다.

3. 균형잡힌 식사를 한다.

몸에 칼슘이 부족하면 안절부절못하게 될 뿐 아니라 스트레스 원인이 된다. 되도록 정해진 시간에 균형잡힌 식사를 하는 것이 숙면의 기본 요건이다.

4. 적당한 운동을 한다.

낮에 생활 속에서 긴장감을 유지해 적당한 피로감이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로를 느끼는 육체는 밤에 체온이 쉽게 낮아져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한다.

5. 취침 전 뜨거운 목욕은 오히려 눈을 초롱초롱하게 한다.

뜨거운 목욕은 교감 신경을 자극해 기분을 업시킨다. 잠자리에 들기 전이라면 뜨거운 물이 아닌 38∼40°C의 미지근한 물에서 느긋하게 목욕하는 것이 좋다.

6. 취침 전 많은 양의 차와 알코올은 피한다.

차에 함유된 카페인과 다량의 술은 수면 리듬을 깨뜨리므로 지나친 음주는 삼간다. 카페인이 없는 차 한두 잔은 숙면을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된다.

7. 잠이 들지 않을 때 무리하게 자려 하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아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느긋하게 생각하고 긴장을 푼다.

8. 나만의 취침 방법을 찾아라.

수면에도 워밍업이 필요하다. 스트레칭이나 아로마 요법 등 숙면을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9. 침실 환경을 쾌적하게 한다.

여름에는 25°C, 습도는 50∼60%가 쾌적지수다. 밝기는 03∼30럭스 정도가 이상적이고, 간접 조명이 좋다.

10. 자신에게 맞는 침구를 선택한다.

침구는 취향, 계절, 주거 환경, 사용감 등을 고려한다. 특히 베개는 숙면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므로 신중하게 선택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84.html
kolaswqetsrq 11.14 17:05
옥수수의 효능 8가지

옥수수의 효능 8가지

1. 고혈압 개선

옥수수 수염차를 꾸준하게 섭취하시면 혈압이 안정되어 고혈압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평소에 자주 코피가 나시는 분들이 섭취하시면 출혈을 멈추는 효능을 보실 수 있습니다.

2. 붓기제거

평소에 얼굴이 자주 붓는 분들이라면 옥수수의 효능을 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출산후에 붓기가 잘 빠지지 않는 분들이나 붓기를 빨리 빼고싶은 분들이 섭취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3. 피부 건강에 탁월

옥수수에는 피부건강 에 좋은 단백질, 섬유소, 비타민 무기질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 영양소들의 외부의 감염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고 특히 노화를 방지해주는 비타민E(토코페롤)이 많아 피부의 건조를 방지하고, 피부면역력을 향상시켜줍니다.

4. 다이어트음식

옥수수는 GI지수가 75점으로 저칼로리 음식에 속하는데요, 저칼로리임에도 불구하고 높고 오래지속되는 포만감을 주기 때문에 다이어트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특히 조금 느껴지는 옥수수의 단맛은 식욕을 억제해주는 효능이 있는데요, 이러한 옥수수효능을 잘 활용하시면 좋은 다이어트 음식이 됩니다.

5. 구강건강에 좋다

옥수수의 베티-시토스테롤이라는 성분은 잇몸질환을 치료하고 충치를 낫게하는 등 구강겅강에 좋은 효능을 발휘합니다.

6. 심신진정효과

옥수수 효능 중에는 심신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평소 불안함 느낌이 많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분이시라면 옥수수를 꾸준히 먹음으로써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7. 항암효능

옥수수에는 항암에 효능이 탁월한 성분들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옥수수를 꾸준히 먹었을때 각종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8. 여름병 예방

여름병 아시나요? 식욕이 없어지고, 무기렴감과 권태감 등이 여름병의 증상이랍니다. 옥수수에는 비타민 B1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데 이 성분이 여름병의 증상을 개선하는데 효과가 탁월하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8_28.html
kolaswqetsrq 11.14 17:06
바나나의 효능 9가지

바나나의 효능 9가지

1. 면역력 강화

바나나에 들어있는 비타민B6은 백혈구를 활성화시킨다. 꾸준히 먹으면 효과를 볼 수 있다.

2. 항산화 작용

바나나는 몸속 활성산소를 제거해주고 항산화작용을 도와주는 비타민A 베타카로틴, 비타민E가 풍부하게 들어있어 노화방지에 효과가 뛰어나다.

3. 피부관리

바나나에는 비타민A, 비타민C, 비타민E가 풍부하게 들어있어 항산화효과 및 피부미백, 피부보습, 피부탄력에 아주 좋다.

4. 불면증 완화

바나나는 수면을 유도하는 세라토닌 성분이 생성되도록 도와주고, 마그네슘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불면증 완화에 좋은 음식이다. 이 밖에 불면증에 좋은 음식으로는 우유, 키위, 양파, 국화차, 상추, 아몬드 등이 있다.

5 변비 해소

바나나에는 좋은 식이섬유가 풍부하게 들어있어 장 운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변비해소, 숙변제거에 도움이 된다.

6. 설사 완화

잘 익은 바나나에는 팩틴이 많이 들어있어 설사를 멈추게 도와주는 효과가 있다.

7. 스태미너 음식

바나나에는 부포테닌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 성분은 약한 환각제로 기분을 들뜨게 하고 자신감을 높여주며 저하된 성욕을 높여주는 스태미너 음식, 발기부전과 정력에 좋은 음식이다.

8. 혈압조절

바나나에는 칼슘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몸 속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효과가 뛰어난 혈압에 좋은 음식이고, 뇌졸중으로 인한 근육경련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9. 머리에 좋은 음식

바나나는 활성산소를 제거해 뇌 기능 향상,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수험생과 건망증이 심하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음식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9_28.html
kolaswqetsrq 11.14 17:08
건강을 위해 버려야 할 식습관 10가지

건강을 위해 버려야 할 식습관 10가지

1. 외식음식 먹기

외식을 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왜냐하면 식당 주방의 위생 상태나 조리에 사용하는 식용유의 품질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주방이 더럽거나 오래된 식용유를 사용하는 곳에서 자주 외식을 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2. 아침 거르기

건강전문가들은 아침을 거르는 것이 건강에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민첩성이 떨어지고 하루 종일 피곤해질 수 있다.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과식할 수 있어 비만도 유발할 수 있다.

3. 과일과 채소에 무신경한 습관

영양을 생각한다면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건강을 위해 과일과 채소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 식생활에서는 자주 먹지 않은 사람이 많다. 당장 "내가 오늘 어떤 과일과 채소를 먹었나?" 라고 되뇌여 보자.

4. 무심코 소금을 치는 습관

국이나 수프가 나오면 무조건 소금부터 치는 사람이 있다. 짜게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나트륨 과다 섭취는 고혈압이 생길 수 있고 세포 속에 있는 수분을 빼앗아 메스꺼움과 복통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위암 등 각종 암의 원인이 된다.

5. 설탕 많이 첨가하기

식단에 설탕이 많이 첨가되면 체중이 증가하고, 혈당 수치에 이상이 생겨 결국 당뇨병에 걸릴 수 있다. 또한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감염 질병에 취약해 질 수 있다.

6. 걷거나 일하면서 먹기

다른 일에 몰두하면서 음식을 먹으면 과식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살을 빼고 싶은 사람이라면 식사 때는 먹는 것에만 집중하자.

7. 빨리 먹기

시간이 돈이라지만 건강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천천히 먹으면 침이 많이 분비되고, 그 침은 음식을 잘게 부숴 소화에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빨리 먹으면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8. 공복에 차나 커피 마시기

차나 커피 같은 음료는 위산 분비를 촉진시켜 위궤양에 걸릴 수 있다. 따라서 식사 후에 차나 커피를 마시는 것이 위 건강에 좋다.

9. 하루에 두 끼만 먹기

적게 자주 먹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이는 소화에도 좋고 신진대사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섣부른 단식이나 식사 거르기가 반복되면 다이어트는커녕 건강을 해칠 수 있다.

10.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 풀기

슬프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약 대신 음식으로 푸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는 아주 부적절한 행동이다. 비만을 유발하고 자주 반복되면 건강에 좋지 않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명상이나 요가, 사무실이나 집밖에 나가 산책을 하는 것이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41.html
kolaswqetsrq 11.14 17:09
■ 세종시대의 그늘 2편

■ 세종시대의 그늘 2편

세종은 스스로 왕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십 년을 넘게 세자로 있던 양녕대군의 연이은 돌발행동으로 급작스럽게 세자가 되었고, 세자가 된 지 두 달 만에 전혀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왕으로 즉위했다. 그리고 조선 역사 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태종이 상왕으로 버티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 2대 왕 정종도 그때까지 생존해 있었다. 세자에서 물러났지만 언제든지 왕권을 위협할 세력으로 양녕대군과 효령대군도 건재해 있었다.

우리는 대부분 세종대왕이 학문을 좋아하는 성군 이미지가 강해서 만원권 지폐에 있는 초상화처럼 근엄한 학자타입의 인자한 모습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실록에 나오는 세종대왕은 100키로에 육박하는 고도비만이었다. 세종은 고기 없는 밥은 먹지 않을 정도로 육식파였다.

『태종이 죽은 지 6개월이 되던 날에는 조정의 신하들이 태종의 유교에 따라 세종에게 고기를 먹도록 청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이 평소 고기가 아니면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던 태종이 자신이 죽은 뒤 상중이라도 고기를 먹을 수 있게 유교를 내렸던 것이다. 실록에 나온 내용이 이 정도니 세종이 평소 얼마나 고기를 좋아했는지 알만도 하다. 세종은 또 다른 의미의 성(?)군이기도 했다. 부인만 무려 6명이고, 자녀는 18남 4녀를 두었다. 조선 왕들 중에서도 기록적인 숫자이다.

세종은 또한 독서광이었다. 사경밤 1~3시에 일어나 정사를 본 까닭에 여러 병을 달고 살았다. 세종 말년에는 앞을 거의 보기 힘든 시각장애도 가졌다고 전해진다. 세종은 두통과 이질, 풍병, 심지어는 성병인 임질과 각기병, 등창에 당뇨 그리고 시각장애까지 병치레가 잦았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수준이었다. 아마도 학문을 좋아하고 업무에 대한 책임감으로 인한 정신적 과로와 운동 부족에 의한 합병증으로 보인다. 세종이 이런 몸 상태 속에서도 역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이, 18명이나 되는 아들들이 세종의 속을 꽤나 썩힌다. 특히 여자문제로 상당히 말썽을 많이 피웠다. 세종의 큰아들(후에 문종) 세자빈 봉씨가 문종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궁녀와 동침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폐 세자빈이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세자빈 봉씨는 조선의 제5대 왕 문종의 세자 시절의 두 번 째 부인이자, 세종의 며느리로 나인과 대식(동성애)을 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폐출 당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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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10
■ 세종시대의 그늘 1편

■ 세종시대의 그늘 1편

세종대왕은 1418년 22살에 왕위에 올랐다. 재위 32년 동안 한글창제를 비롯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국정 전반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백성을 두루 살펴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이룬 성군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세종대왕은 충분히 그럴만한 업적과 인품을 갖추고 있지만, 그도 인간이었으므로 흠결도 있었을 터이다.

세종 시대가 우리나라 역사상 태평성대였던 것은 확실하지만, 나름 고충도 많았다. 남으로는 왜구의 침탈과 북방에서는 여진의 침입도 있었다. 가뭄, 홍수 등의 기상재해와 기근도 있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하기도 했다.

세종 즉위 후 4년간 세종은 이름만 왕이었지 세자나 다름없었다. 모든 일은 당시 상왕(上王)인 태종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태종은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도 병권을 장악한 채 세종을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었다. 세종 원년에 있었던 대마도 정벌도 100% 태종에 의해서 기획, 실행되었다. 세종은 태종에 의해서 장인 심온이 대역죄로 몰려 죽임을 당하고 장모는 노비로 전락하는 등 처가가 몰락하는 것을 보고도 왕으로서 아무런 손도 쓰지 못했다.

심지어는 장인 심온이 심한 고문 끝에 죄를 자백하고 죽임을 당하기 직전 바로 전날에도 태종과 함께 술자리 연회를 베풀고 신하들과 함께 춤을 추고 즐겼다는 기록이 실록에 나온다. 이 실록의 기록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성군 세종의 이미지와는 완전 다른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세종은 태종이 상왕으로 있었던 4년간은 완전 허울만 왕으로서 파파보이에 불과했다.

세종이 왕으로 즉위할 때의 나이가 22살이면 충분히 스스로 왕 노릇을 할 수 있는 나이였지만, 세종은 그러하지 못했다. 신하들이 세종에게 주청(奏請)드리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도 ‘상왕에게 여쭙고 나서 결정하겠다’ 는 세종의 말이 실록에 기록된 것만 해도 4년 동안 60번이 넘는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세종대왕의 이미지와는 상반된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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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11
■ 비밀프로젝트, 한글창제 3편

■ 비밀프로젝트, 한글창제 3편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그 이면을 살펴보면 조금 다른 이유가 숨어있다. 우선 세종은 조선 건국 초 4대(代) 왕으로서 건국의 정당성을 온 백성에게 알려 조선을 빨리 안정화시키고 싶었다. 그때까지도 고려의 잔존세력이 아직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한문으로는 이 일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백성들도 배우기 쉬운 우리 글자를 연구하였는데 그것이 ‘훈민정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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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훈민정음 반포 이후 제일 먼저 용비어천가를 편찬한 것만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진정 백성을 생각했다면 세종 때 백성들을 위해 쓰여진 농사직설이나 향약집성방을 먼저 한글로 편찬해야 옳았다.
",

또 다른 이유는 세종이 원래는 한글창제가 목적이 아니라 중국 한자의 운율을 중국식으로 발음하기 위한 운율연구가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 일에는 당시 집현전 부제학이었던 최만리가 앞장섰다. 그런데 세종이 운율연구 이상을 넘어 훈민정음을 반포하자 최만리 등 조정대신이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게 된다. 그 상소문 제일 위에 최만리의 이름이 있어 최만리만이 한글에 반대한 어리석은 조정대신으로 지금까지도 오명(汚名)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만리의 상소문 내용은 당시 거의 대부분의 조정대신이나 조선의 정치와 문화를 담당하고 있던 사대부 대다수가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최만리는 세종이 가장 아끼던 집현전 학자였고 조선의 대표적 청백리였다. 세종이 그 상소문을 보고 화가 나 그를 잡아가두기는 하지만 바로 다음 날 풀어주고 집현전으로 다시 돌아와 주길 간청하나 최만리는 석방 즉시 낙향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이처럼 쉽게 만들어져 누구나 환영했을 것 같은 훈민정음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반포이후에도 조선시대 내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5살만 되어도 전부를 깨우칠 수 있는 쉽고, 과학적이고, 철학이 있는 문자 한글!!! 만약 세종이 조선사대부 지배층들의 그 거센 반대에 굴복하여 훈민정음을 반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문자를 쓰고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세종의 위대성에 감복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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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46.html
kolaswqetsrq 11.14 17:12
■ 비밀프로젝트, 한글창제 2편

■ 비밀프로젝트, 한글창제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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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리의 상소에도 분명히 나오지만 조선사대부들 생각은 중국 한자가 아닌 다른 독립적인 문자를 쓰는 것은 중화질서로 부터 벗어나려하는 무엄한 짓이었고, 야만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라고 주장했다. 즉, 야만인 오랑캐라 깔보았던 여진족, 몽고족, 서하, 티벳. 일본 등이나 고유의 독립된 문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조선사대부들은 우리나라 스스로 쓸 수 있는 고유문자 한글창제는 그러한 오랑캐와 같아지는 수준으로 여겼다. 세종은 이런 격렬한 반대를 미리 예상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집현전 학자 몇 몇과 함께 극비 프로젝트로 훈민정음 창제를 진행했던 것이다.

어느 한 시기에 글자가 만들어져 일시에 반포·사용되고, 이후 약 60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문자는 세계에서 오직 한글밖에 없다.

훈민정음의 위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우리나라는 거의 전 국민이 글자를 해독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너무 쉽게 만든 것도 탈이었다. 조선사대부들은 한글을 모든 백성들이 읽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수치로 생각하였고 모든 국가의 공식장부에서 철저히 외면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한글은 서민들과 여자들 사이에서만 비공식적으로 전승되는 글자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세종은 왜 훈민정음 반포에 매달렸을까? 공식적으로 한글의 창제 동기는 〈훈민정음〉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첫째, 우리말이 중국말과 다른 데도 중국글자를 쓰므로 불편한 점이 많아 우리말에 맞는 새 글자를 만든다는 것.

둘째, 어리석은 백성이 쉽게 글자를 배워 문자생활을 편하게 하기 위함.』

여기에서 세종의 강한 민족자주정신, 애민정신과 민본주의를 엿볼 수 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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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478.html
kolaswqetsrq 11.14 17:13
【노랑무늬붓꽃】

【노랑무늬붓꽃】

꽃이 피기 직전의 모습이 꼭 붓과 닮았다고 하여 붓꽃 흰색 꽃잎에 노랑 무늬가 있음.

화투 칠 때 5월 난초가 아니고 붓꽃입니다. 멸종위기식물 2급에 등록된 한국특산식물임.

멸종위기 야생식물 1급에 8종,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에 56종이 있습니다.

▷ 학명 : Iris odaesanensis

▷ 분류 : 붓꽃과

▷ 분포지역 : 한국(오대산, 대관령, 팔공산)

▷ 서식장소 : 산(음습하며 토양의 비옥도가 높은 곳)

▷ 특징 : 오대산, 대관령, 태백산과 경상북도 일원의 산에서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 식물로 다년생 초본이다.

6∼8월에 열매가 익는다. 관상용으로 심어 가꿀 수 있는 좋은 꽃식물이며, 어린순은 식용으로 쓰인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989.html
kolaswqetsrq 11.14 17:14
■ 비밀프로젝트, 한글창제 1편

■ 비밀프로젝트, 한글창제 1편

1443년 12월 30일, 세종대왕은 그의 인생 최고의 걸작이자, 대한민국 역사의 최고 걸작품인 훈민정음, 즉 한글을 내놓았는데, 기이하게도 이날 이전의 조선왕조실록에는 한글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 그동안 한글은 세종의 지휘 아래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적어도 실록에는 집현전이 한글창제에 관여했다거나 도움을 주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한글 창제는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글창제는 중국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당시 사대부들의 엄청난 반대에도 부딪혔다. 많은 사람들이 훈민정음은 세종의 명을 받은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훈민정음(한글)은 세종대왕이 눈병에 시달려가며 몸소 만들었고,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대왕의 지시와 가르침에 따라 한글 안내서인 ‘훈민정음 해례본’ 집필에 참여했을 뿐이다.

 "
한글은 배우기도 쉽고 과학적인 문자이다. 몇 년 전 방영한 뿌리깊은나무라는 드라마에서 한글 창제과정을 깊이 있게 다루었다. 이 드라마에서 세종은 최만리를 위시한 조정대신들이 훈민정음 창제를 결사적으로 반대할 것을 예상해서 집현전 학자 몇 명만 데리고 극비프로젝트로 진행한다. 조선 조정대신과 사대부들이 훈민정음을 만드는 데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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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사나흘이면 누구나 읽고 쓰고 할 수 있는 너무 쉬운 문자라 여자들은 물론이고 평민, 천민들까지도 문자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나라가 되어 버려 사대부들이 유교적 질서아래 통치하기가 힘들어 질 수 있고 현재의 체제가 지속되기도 힘들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문자가 바로 권력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종은 중국도 훈민정음 창제를 반기지 않을 것이라 보았다. 그래서 극비 프로젝트로 비밀리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는 중국만이 천하를 지배하는 중화질서 시대였다. 즉 모든 것은 중국을 통해야만 가능한 시대였다. 조선 사대부들이 목숨처럼 따르는 당시 천하 질서였고 동시에 성리학 질서였다. 그래서 당연히 문자도 중국의 것을 쓰는 것이 중화질서에 속한 문명국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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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15
■ 한글창제를 도운 정의공주 2편

■ 한글창제를 도운 정의공주 2편

세종대왕과 왕비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는 아들 8명과 딸 2명이 있었다. 정의공주는 그 중 둘째 딸이었다. 세자 향(문종)의 누이동생이자 수양대군(세조)의 누나였다. 맏딸 정소공주가 13세의 나이로 일찍 죽어서 둘째 딸인 정의공주가 세종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세종이 중국에서 사온 안장을 손수 고치려고 칼로 깎다가 칼끝이 다리에 박히자 공주는 술을 만들고 난 지게미醋粕를 데워 상처에 붙여 부기가 빠져나가게 한 후 자석(指南鐵)을 가지고 부러진 칼끝을 빼어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428년(세종10년) 정의공주(貞懿公主)에 봉해지고, 고려 말 조선 초 명문 출신으로 함흥 부윤을 역임한 안망지(安望之)의 아들 안맹담(安孟聃)과 혼인하여 4남 2녀를 낳았다. 세종은 정의 공주와 안맹담의 집에 수차례 이어(移御:친히 방문)하였을 정도로 이들 부부를 아꼈는데, 여기에는 정의공주의 뛰어난 재주가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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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는 정의공주는 성품이 총명하고 지혜로웠다. 역산(曆算)에 밝아 세종이 사랑하였다는 정도로만 기록돼 있다. 지금으로 치면 천문학과 수학을 아주 잘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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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공주와 남편 안맹담은 불교에 조예가 있었다. 남편 안맹담과 함께 세종 승하 후 소헌왕후와 세종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문수사(文殊寺)를 중창(重創)하였다. 안맹담도 평소 불경을 읽고, 살생을 싫어하여 양잠(養蠶)도 하지 않는 등 공주 부부는 불교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의공주는 1469년(예종1년) 지장신앙의 기본 경전인 『지장보살본원경』을 간행하였는데, 이는 죽은 연창위 안맹담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이었다. 『지장보살본원경』은 보물 제966호로 지정되었다.

동생 안평대군(安平大君)이 계유정난으로 죽음을 당한 것에 반해 정의공주의 남편 안맹담은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워 1등 공신에 봉해진 바 있다. 1477년 사망하여 남편 안맹담을 장사지낸 양주 도봉산 해촌동(海村洞) 묘원에 묻혔다. 1982년 11월 13일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이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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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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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202.html
kolaswqetsrq 11.14 17:16
■ 한글창제를 도운 정의공주 1편

■ 한글창제를 도운 정의공주 1편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라는 뜻으로,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의 결정체이다.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은 법을 제대로 알 수 없어 무엇이 죄가 되는 줄 몰라 억울한 일을 자주 당했다. 중국에서 빌려온 글자인 한자는 우리말을 제대로 옮기기도 어렵고, 먹고살기 바쁜 백성들이 배우기엔 너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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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 중에는 새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건 중국을 본받는 대신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배우기 쉬운 문자를 만들어 백성들이 글자를 알게 되면 나라의 법과 제도를 만만하게 생각할 거라고 생각하여, 유학자들은 훈민정음을 언문(諺文:상스러운 글)이라고 낮춰 불렀다. 1910년대 초반 주시경을 비롯한 국어학자들이 ‘한글’이라고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

그래서 세종대왕은 반대할 것이 뻔한 신하들 모르게 직접 훈민정음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누가 어떻게 도왔는가 하는 부분에서는 다소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같은 젊은 집현전학자들이 훈민정음 창제를 도왔을 거라고 보고 있지만, 세종의 장남인 세자 향(훗날 문종)을 비롯해 수양대군(훗날 세조), 안평대군(문종과 세조의 동생) 같은 왕자들이 도움을 주었을 거라고 보는 학자들도 많다.

세종대왕의 딸 정의공주(貞懿公主:1415~1477)의 도움도 컸다는 기록도 있다. 정의공주가 도왔을 거라는 주장은 정의공주의 시댁인 죽산 안씨 가문의 족보 ‘죽산 안씨 대동보’에 적힌 내용을 토대로 하고 있다. 죽산 안씨 가문은 정의공주의 시댁이다.

“世宗憫方言不能以文字相通 始製訓民正音 而變音吐着 猶未畢究 使諸大君解之 皆未能 遂下于公主 公主卽解究以進 世宗大加稱賞 特賜奴婢數百口”

『세종이 우리말과 한자가 서로 통하지 못함을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토착을 다 끝내지 못하여서 여러 대군에게 풀게 하였으나 모두 풀지 못하였다. 드디어 공주에게 내려 보내자 공주는 곧 풀어 바쳤다.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상으로 특별히 노비를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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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죽산 안씨 대동보는 나라에서 작성한 공식 기록이 아니라, 한 집안의 사사로운 기록이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세종대왕이 자식들에게 던진 질문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정의공주가 구체적으로 뭐라고 대답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혹시 후손들이 공주의 공적을 부풀려서 적은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학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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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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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17
■ 애민愛民을 실천한 세종대왕 3편

■ 애민愛民을 실천한 세종대왕 3편

세종은 지금 봐도 놀라운 정책인 국민투표까지 실시했다. 세종은 토지법 제정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관리를 파견하여 약 5개월에 걸친 국민투표로 민심을 파악했다.

세종은 관리등용에도 애민정책을 실시했다. 세종 초기 10년간은 가뭄으로 인한 기근이 아주 극심했다. 당시 과학으로서는 기근에 왕이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일이 기우제를 자주 지내는 일 그것 밖에 없었다. 세종은 기우제만이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천민출신이지만 과학에 뛰어난 장영실을 신하들 반대를 무릅쓰고 등용했다. 장영실은 이런 세종의 뜻에 따라서 자격루와 측우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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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종은 행촌 이암이 원나라로부터 수입한 농상집요라는 책을 참고해서 체계적인 영농법의 연구를 바탕으로 쓴 책인 농사직설을 편찬하여 농업 생산에서 혁신이 일어나게 한다. 농사직설의 간행은 그 당시 농업 생산량을 대폭 증대시켜 백성들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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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천민이라 하더라도 하늘의 백성으로서 다 똑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비록 천민이라 하더라도 인재로 쓰는 인사 정책에서 세종의 인간존중 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세종의 애민정책의 결정판은 훈민정음 창제이다. 한자만을 읽고 쓰던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들은 백성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지식이 깊어지고 힘이 커질 것을 두려워해 백성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세종은 백성의 입장에서 모든 백성이 글을 읽고 쓰는데 어려움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를 하게 되어 백성들도 문자생활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재위 32년 동안 세종이 꿈꿔온 목표는 모든 백성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애민군주의 참모습을 세종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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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18
■ 애민愛民을 실천한 세종대왕 2편

■ 애민愛民을 실천한 세종대왕 2편

세종은 여성 건강문제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 여자환자들이 남자의사의 진찰을 꺼려 병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국적으로 의녀제도를 확대하도록 지시했다.

『지역별로 여성 관리를 선발해 제생원(의료기관)에서 가르친 후, 부녀자를 치료하게 하라.』

‘세종실록’ 1423년(세종 5) 12월 4일

세종은 버려진 아이들의 입양을 자유로이 허락하고 아이를 버린 자를 찾아 고발하면 포상하게 했다. 『아이들에게는 겨울철에 먹을 것을 넉넉히 주고, 제생원에서 항상 관찰하게 하라.』

‘세종실록’ 1435년(세종 17) 6월 22일

세종은 장애인들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장애인을 위한 전문 직업까지 창출하여 일시적이 아닌 원천적으로 장애인복지정책을 실행했다. 시각장애인 단체에는 노비와 쌀 등을 적극 지원토록 했다. 세종 본인도 어릴 적부터 오랫동안 너무 많은 독서를 해서 세종 후반기에는 앞을 거의 못 볼 정도의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관현악기를 다루는 시각장애인 중 천인인 자는 재주를 시험하여 채용하라.』 ‘세종실록’ 1434년(세종 16) 11월 24일

세종의 애민의 세심함은 결혼 지원정책에서도 보인다.

『가난하여 시기를 놓쳐 혼인하지 못한 사람은, 친족에게 함께 결혼에 대한 준비를 하게하고 곤궁함이 더욱 심한 자에게는 관청에서 곡식을 주도록 하라.』 ‘세종실록’ 1435년(세종17) 9월 29일

세종의 애민은 범죄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종은 지금으로 말하면 삼심제인 삼복제(三覆制)를 시행하여 비록 사형수라 할지라도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였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는 세 차례에 걸쳐 정확히 조사해 아뢰게 하여라. 이는 사람 목숨을 소중히 여겨, 혹시 잘못된 것이 있을까 염려하는 까닭이다.』 ‘세종실록’ 1421년(세종3) 12월 22일

세종 초기 계속되는 흉년으로 재정이 기울자, 세종이 선택한 특단의 조치는 왕 가족의 재산 축소였다. 수양대군을 포함한 대군들의 토지를 50결씩 줄이고 대군(왕의 적자) 최대 250결, 여러 군(왕의 서자) 최대 180결, 자손들의 과전을 법적으로 제한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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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19
■ 애민愛民을 실천한 세종대왕 1편

■ 애민愛民을 실천한 세종대왕 1편

애민愛民은 말 그대로 백성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왕조시대의 왕은 모든 백성을 자식으로 생각하고,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없듯이 왕은 당연히 백성을 사랑해야 했다. 그러나 역사상 우리나라 왕들 중 제대로 애민정책을 실행한 왕은 거의 없다. 영조, 정조를 꼽을 수도 있겠지만 세종대왕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세계 역사 속에서도 드문 일이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책은 생명존중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세종은 노비, 노인, 여성, 아이 등 사회적 약자를 정책에 최우선으로 두었다. 또한 이들의 삶의 질 향상은 임금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로 생각했다. 세종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파격적인 노비 출산휴가 정책을 실시했다.

『여종이 아이를 낳으면 노비 남편에게도 30일의 휴가를 주어라.』 ‘세종실록’ 1434년(세종 16) 4월 26일

당시 노비들의 출산 휴가는 1주일이었다. 세종은 산후조리를 하는데 1주일은 충분치 않다며, 노비들의 출산 휴가를 100일로 늘리도록 했다. 또한 산모 혼자 있으면 그 산모를 누가 돌보겠느냐며 산모의 남편도 30일간 각종 부역을 면제하여 돌보게 하였다. 그러자 양반이 들고 일어섰다. 노비들이 다 쉬면 집안일은 누가 하느냐며 반발하였지만 세종은 "양반들은 노비들이 쉬어도 일을 해줄 사람은 많지 않느냐" 며 나무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세종의 노인 공경 정책도 본받을 만하다.

『나이 많은 사람을 존경해야 효도에 대한 풍속이 두터워진다.』 ‘세종실록’ 1435년(세종 17) 6월 21일

세종은 90세가 된 천인에게 쌀 2석(약 288kg) 하사하고, 80세 이상의 노인은 신분과 관계없이 양로연(養老宴) 참석 가능하게 했다. 고봉현(지금의 속초)에 107세의 노인이 있었는데, 세종이 관리를 파견하여 양식과 옷을 하사하자 몸이 좋지 않았던 그 노인은 감동하여 왕이 있는 궁궐을 향해서 절을 하고 하사 받은 옷을 몸 위에 덮고 잠시 뒤 죽었다는 기록도 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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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20
■ 세종대왕의 탄생 2편

■ 세종대왕의 탄생 2편

세종대왕은 1397년(태조 6)에 태종과 원경왕후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도(祹), 자는 원정(元正)이다. 형제로는 위로 14년간 세자의 자리에 있다가 폐위된 양녕대군과 나중에 불가에 귀의한 효령대군이 있으며, 아래로 성령대군이 있었다. 세종은 1418년(태종 18) 6월에 양녕대군을 대신해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두 달 뒤 태종의 선위(禪位)로 스무 살을 갓 넘어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상왕(上王)으로서 태종이 병권을 장악한 채 두 눈 크게 뜨고 살아있었다. 태종은 심지어 세종이 왕으로 있는 기간에 세종의 장인이자 영의정이었던 심온을 태종에 불충했다하여 죽이고 만다. 태종은 자기가 죽고 나서 외척세력이 성장하는 것을 우려해 미리 손을 봐 준 것이다. 그렇다고 꼭 죽일 필요까지 있었는지........

어쨌든 태종의 잔인하기까지 한 노력으로 태종이 죽고 난 뒤 세종은 거리낌 없이 자기 소신대로 정치를 펼쳐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세종대에는 우리 민족역사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와 찬란한 문화가 꽃을 피우던 시대였다. 세종은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너무 좋아해서 부왕인 태종이 건강을 염려해 책 읽기를 금할 정도였다고 한다. 남달리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세종은 자신의 넓고 깊은 학식을 국가 경영에 직접 도입해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세종 시대에 조선은 부국강병을 이루어 안팎으로 안정된 정국 속에서 한글 창제, 예치주의의 실천, 천문학 및 농업의 발달 등 가장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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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을 통하여 많은 새로운 인재가 배양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儀禮)와 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최초로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편찬한 농업 서적인 정초의 농사직설, 우리의 풍토에 맞게 집성한 의서 향약집성방, 조선 최대 과학자 장영실에 의한 측우기, 해시계의 발명, 그리고 천문학 등 과학기술의 발전, 박연에 의한 음악 정리, 법제의 정리, 공법(貢法)의 제정, 대마도정벌, 4군6진으로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하여 민족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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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 중 뒤에 ‘대왕’을 붙여서 부르는 왕들은 여럿이 있다. (영조대왕, 정조대왕)

그러나 이 분들 중에서도 대왕이 고유명사화 된 분은 세종대왕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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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22
■ 세종대왕의 탄생 1편

■ 세종대왕의 탄생 1편

세종은 우리 역사 상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칭송받고 있다. 세종시대는 우리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와 과학이 꽃을 피웠고 정치도 안정되었다. 또, 큰 전쟁 없이 백성들도 나름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외침이 많았고 전염병과 가뭄도 심했다. 그래서 세종 1년에 박위장군은 1만5천명의 군사로 대마도 정벌에 나섰고, 북방 여진족을 토벌하여 최윤덕장군에 의해 4군, 김종서장군에 의해 6진 개척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어쨌든 세종시대가 우리 역사상 최고의 시대라고 하는 것에 반론(反論)의 여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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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의 셋째 아들인 세종은 어떻게 왕이 되었을까? 어쩌면 태종의 철저한 계획 아래 만들어진 왕이라고 볼 수 있다. 태종이 처음부터 세종을 왕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다. 태종은 ‘왕자의 난’이라고 부르는 두 번의 골육상쟁(骨肉相爭)을 겪으면서 왕위에 오른 만큼, 다음 대에서는 장자승계원칙을 확실하게 자리 잡아 그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에 태종은 일찌감치 장자인 양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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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은 1404년 10살의 나이로 세자가 되었다. 세자시절 양녕대군은 품행이 자유분방하고 색을 밝혀 잦은 문제를 일으켰다. 양녕대군은 유교적 교육과 엄격한 궁중생활, 특히 왕세자로서 지켜야 할 예의법도에 잘 적응하지 못한 듯하였다. 양녕대군의 이런 모습은 태종은 물론 엄격한 규범적 생활을 강조하는 유학자들의 우려 대상이 되었다.

태종은 양녕대군에게 세자로서 모범을 보이도록 타이르고 심지어 벌을 내리기도 하였지만 양녕대군은 변하지 않았다. 한 술 더 떠서 궁으로 기생 출신의 첩을 데려와 태종이 그 기녀를 사형에 처한 일도 있었다. 이후 양녕대군은 태종에게 더 반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 반감을 표현하는 상소까지 올리는 등 양녕대군의 품행은 자제되지 않았다. 이에 대신들이 상소를 하여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위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이때 신하 중 유일하게 양녕대군의 세자 폐위를 반대한 것은 뜻밖에 세종의 충신이던 당시 이조판서 황희였다. 황희는 이 일로 귀양까지 갔다. 결국 1418년 양녕대군은 세자 책봉 14년 만에 세자에서 폐위되었다. 그리고 태종은 그동안 눈여겨 보아왔던 셋째 아들 충녕대군(세종)을 세자로 책봉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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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23
근하신년謹賀新年 - 삼가 새해를 축하하다.

근하신년(謹賀新年) - 삼가 새해를 축하하다.

삼갈 근(言/11) 하례할 하(貝/5) 새 신(斤/9) 해 년(干/3)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밝기 전에 인사를 차릴 자리에 보내는 年賀狀(연하장)이나 캘린더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謹賀新年은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는 뜻으로, 새해의 복을 비는 인사말이다. 세시풍속에는 조선시대 歲銜(세함)이라는 풍습이 있어서 새해가 되면 아전이나 교졸들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관원이나 상관의 집에 보내거나 직접 가더라도 표적으로 이를 남겼다고 했다. 또 중류 이상 가정의 부인들은 問安婢(문안비)라고 하는 자기 집의 여종을 시켜서 사돈 등 일가친척들을 찾아뵙도록 했다. 그런데 근대에 엽서가 발행되면서 지인들에게 연하장을 보내다가 요즘에는 핸드폰 문자나 카톡이 대신한다.

이 말에 대한 고사는 없지만 글자대로만 풀이하면 되는 성어다. 謹賀新年에서 먼저 삼갈 謹자의 의미자 菫(근)은 옛날 중국에서 饑饉(기근)이 왔을 때 식량 대신 사용할 정도로 입자가 고운 노란 찰흙을 가리킨다고 한다. 菫자가 붙는 글자는 조심, 정성, 부족이라는 뜻이 따라붙어 다닌다.

勤(부지런할 근), 僅(겨우 근), 饉(주릴 근), 覲(뵐 근) 등인데 槿(무궁화 근)만 예외다. 謹의 앞에 말씀 言이 붙었으니 말이 적다는 뜻이다. 조심스러운 사람을 만날 때 말수가 적어지고 공손하게 된다. 그러므로 謹은 ‘조심하다, 공손하다, 삼가다’라는 뜻을 함께 갖는다. 謹嚴(근엄), 謹愼(근신), 謹弔(근조) 등의 용례가 있다.

賀는 재물을 뜻하는 조개 貝(패)자에 더한다(加)는 글자 얹힌 글자이므로 ‘재물을 더해준다’는 뜻이다. 고대에는 축하하거나 위로할 일이 있을 때 물건을 보태주었다고 하여 ‘축하하다, 위로하다’라는 뜻이 생겼다. 그래서 謹賀는 삼가 축하하다, 新年이 뒤에 있으니 ‘공손히 새해를 축하합니다’란 뜻이 됐다. 간략히 줄여서 賀正(하정)이라고 하기도 한다. “오늘의 고사성어 회원 여러분! 하시는 모든 일에 행운과 행복이 있길 기원드립니다. 謹賀新年!”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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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24
송고영신送故迎新 - 낡은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함보낼 송辶/6 연고 고攵/5 맞을 영辶/4 새 신斤/9

송고영신(送故迎新) - 낡은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함보낼 송(辶/6) 연고 고(攵/5) 맞을 영(辶/4) 새 신(斤/9)

2022년 한 해가 저문다. 느끼기에 따라 세월이 더디 가는 사람도, 살보다 더 빨리 지나간다고 아우성인 사람도 있겠다. 매년 연말이면 국내외 큼직한 뉴스를 정리하며 多事多難(다사다난)이란 단골표현을 사용하는데 올해도 답답한 정치권이야기와 안타까운 이태원 참사 소식으로 마음이 아프다.

하루 빨리 지난 것을 보내고(送故) 미래의 희망을 그리며 새 것을 맞이하는(迎新) 이 말이 이 즈음에 딱 맞는 말이다. 원래의 뜻은 구관을 보내고 신관을 맞이한다는 뜻에서 새해맞이로 의미가 넓어졌다. 送舊迎新(송구영신), 送往迎來(송왕영래)라 써도 똑 같은 뜻이다.

後漢(후한)시대 班固(반고)의 ‘漢書(한서)’에 이 성어가 먼저 사용됐다. 王嘉(왕가)란 사람은 자가 公仲(공중)으로 어릴 때부터 성격이 강직하고 할 말은 과감하게 하여 주위의 신망을 받았다. 西漢(서한)의 13대 왕 哀帝(애제)에 의해 재상으로 발탁됐다. 왕가는 바른 의견을 제시하며 인재도 잘 골라 추천했기 때문에 왕도 크게 신임했다.

그가 올린 상소문 중에 구임자를 보내고 신임자를 맞는다는 뜻으로 쓴 예가 처음 나온다. ‘이전부터 관직은 대대로 맡았는데 倉(창)씨나 庫(고)씨처럼 창고 일을 맡아보던 집안에서의 성씨가 됐습니다. 관리가 수개월만 직책에 있다가 물러나도 보내고 맞이하느라 서로 뒤섞여 도로가 혼잡했습니다(吏或居官數月而退 送故迎新 交錯道路/ 이혹거관수월이퇴 송고영신 교착도로).’ 왕가전에 실려 있다.

애제는 董賢(동현)이란 미소년을 사랑하여 동성애를 뜻하는 斷袖之嬖(단수지폐)의 유래가 된 바로 그 왕이다. 동현을 가까이 두고 정사를 팽개쳐 여론이 좋지 않자 왕가는 이 꼴을 보다 못해 ‘천 사람이 손가락질을 하면 병이 없어도 죽는다(千人所指 無病而死/ 천인소지 무병이사)’고 하며 깨우쳤다. 그러다 도리어 왕의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히고 20일 동안 굶어 아사했다.

南唐北宋(남당북송) 초기의 관리이자 문학가인 徐鉉(서현)의 ‘除夜(제야)’란 시에 등장하는 구절을 보자. ‘찬 겨울 밤 등불은 깜빡이고 시간은 더디 가건만, 옛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는 일은 속임이 없구나(寒燈耿耿漏遲遲 送故迎新了不欺/ 한등경경루지지 송고영신료불기).’ 가는 해 오는 해 마찬가지이지만 올해의 고초는 잊고 희망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려는 사람이 많다. 모두 복 된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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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25
【큰구슬붕이】

【큰구슬붕이】

뿌리잎은 줄기잎보다 작고 옆으로 퍼지지 많으며, 꽃받침조각이 뒤로 젖혀지지 않는 것이 특징.

유사종으로 구슬붕이 : 뿌리잎이 방석처럼 퍼지며 달걀형의 마름모꼴임. 꽃받침조각이 뒤로 젖혀지고 잎은 줄기를 감쌈.

▷ 학명 : Gentiana zollingeri

▷ 분류 : 용담과

▷ 분포지역 : 동아시아 지역의 온대 지방

▷ 서식장소 : 산과 들의 숲 속

▷ 특징 :

꽃은 5∼6월(봄)에 보라색에 가까운 자주색으로 피고 줄기와 가지 끝에 몇 개씩 모여 달린다.

꽃받침은 통 모양이고 길이가 5∼7mm이며 끝이 통 부분의 반까지 깊게 갈라진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체를 석용담(石龍膽)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충수염·결핵성림프선염에 소염 효과가 있고, 종기·악창·안구 충혈에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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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26
탈모를 막아주는 기특한 식품 10

탈모를 막아주는 기특한 식품 10

1. 검은콩

모발을 구성하고 발모를 촉진 한다. 검은콩은 단백질의 주공급원으로 모발 성장에 꼭 필요한 "시스테인"이 함유되어 탈모를 방지하고 지연시킨다. 신장을 강화하고 해독력이 뛰어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영양분이 두피에 골고루 전달될 수 있게 한다.

2. 흑임자

신진대사와 원활한 혈액순환을 돕는다. 신장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혈액순환이 안 돼 두피와 모발 끝까지 영양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탈모가 생긴다. 검은깨는 신장의 기운을 보충하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레시틴과 불포화지방산, 비타민 E가 풍부해 신진대사를 활성화시킨다.

3. 다시마

모발 발육 촉진제 함유. 해조류에는 모발 발육 촉진제인 "옥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모발의 구성성분인 케라틴의 형성을

돕는 각종 비타민과 요오드, 아연, 유황, 철분, 칼슘 등이 들어 있어 모발을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4. 구기자

탈모의 원인인 두피의 열을 내려준다. 신경이 흥분하면 여성형 탈모가 찾아오기 쉬운데 이럴 때 구기자 달인 물을 마시면 신경이 안정된다. 또한 구기자는 모발을 만드는 세포와 조직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 효과가 있다.

5. 잣

모낭을 조여주고 튼튼하게 만든다. 잣은 오장의 기능을 높이는 기능이 뛰어나 피부와 모발에 근본적으로 작용하는 두피 건강 음식이다. 특히 비타민 A와 E가 풍부해 두피의 모공을 튼튼하게 조이는 효과가 있다.

6. 녹차

탈모 유발 호르몬 DHT 억제. 녹차의 "카테킨" 성분은 탈모를 유발하는 호르몬 DHT 생성을 억제해 탈모를 예방한다. 또한 녹차의 "타닌" 성분은 모세혈관을 확장, 신체의 끝부분인 두피의 혈액순환을 도와 탈모를 막고 "폴로보노이드" 성분은 모공을 조여 청결하게 해준다.

7. 사과

탈모를 막는 아연의 훌륭한 공급처. 아연이 부족하면 모낭이 약해져 머리가 쉽게 빠지고 호르몬 불균형으로 세포가 쉽게 재생산되지 않는다. 인체에 아연이 부족하면 탈모, 손톱 기형 등의 증상이 보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 사과는 아연 함유량이 많아 아연 부족으로 인한 탈모에 효과적이다.

8. 호두

비타민과 불포화지방의 보고 호두의 대표적인 영양분인 비타민 B1과 E는 두피의 노화를 방지하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발모를 촉진한다. 불포화지방산과 미네랄은 피를 맑게 하고 영양분을 공급해 탈모를 예방한다. 특히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 불균형과 신진대사 문제로 인한 탈모에 효과적이다.

9. 석류

천연 에스트로겐의 콜라겐 합성으로 두피에 영양 공급. 석류씨에 풍부한 에스트로겐은 피부의 탄력과 두피 환경에 관여하는 콜라겐 합성을 도와 모발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며,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해 영양을 공급한다.

10. 솔잎

머리털이 솟아나게 하는 양의 기운. 한방에서는 솔잎에 양의 기운이 있어 두피에 에너지를 준다고 한다. 동의보감 에도 "솔잎은 머리털을 나게 하며 오장을 편하게 한다." 고 기록되어 있다. 비타민 A·C·K는 물론 엽록소와 칼슘이 함유되어 담즙 분비를 촉진해 탈모를 예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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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27
달걀에 대한 오해와 진실

달걀에 대한 오해와 진실

달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습니다. ‘영양덩어리’라는 칭송과 ‘콜레스테롤덩어리’라는 힐난이 엇갈립니다. 그러면서도, ‘건강에 그리 좋지는 않다’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달걀은 무엇보다 고단백식품입니다. 적당한 달걀섭취는 심혈관 질환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음식물이 혈중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것은 아니랍니다. 그래서 영국은 ‘달걀섭취 상한선’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달걀과 심장병의 인과관계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없습니다. 캐나다의 ‘스콧 하딩’박사는 ‘달걀만 많이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음식도 많이 먹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건강한 성인들은 달걀 섭취를 제한할 필요가 없습니다. 달걀흰자에서 노른자를 분리해버리는 사람이 많은데, 그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노른자의 지방산은 올리브유와 같은 ‘불포화 지방산’이어서 건강에 이롭습니다. 또, 건강한 뼈에 도움이 되는 ‘지용성(脂溶性)비타민D’도 풍부해서, 노른자를 버리는 것은 달걀 영양분의 대부분을 놓쳐버리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865.html
kolaswqetsrq 11.14 17:28
하루에 얼마나 걸어야 좋을까

하루에 얼마나 걸어야 좋을까

걷기는 가성비가 가장 좋은 운동으로 꼽힌다. 걷는 데는 별다른 장비가 필요 없다. 특별한 재능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양팔을 흔들며 가볍게 발을 앞으로 디디면 된다. 그에 비해 장점은 엄청나다. 매일 일정량 이상을 걸으면 비만,심장병,당뇨병은 물론 암에 걸릴 위험도 낮아진다.

그렇다면 얼마나 걷는 게 좋을까? 답을 찾기 위해 미국 하버드 의대 연구진은 평균 나이 72세의 여성 1만 7천명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매일 몇 걸음이나 걷는지 측정하고, 그 정도에 따라 네 그룹으로 분류한 것.

제일 활동적인 그룹은 하루 8,442보를 걸었다. 평균 5,905보를 걷는 그룹이 뒤를 이었다. 세 번째 그룹은 하루 4,363보. 제일 활동량이 적은 그룹은 하루 2,718보를 걸었다. 4년에 걸친 추적 관찰 기간 동안 사망자가 생겼다. 연구진은 움직임과 사망률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하루 7,500보를 걷는 이들은 움직임이 적은 네 번째 그룹, 즉 하루 2,700보 정도를 걷는 이들에 비해 사망할 위험이 약 40%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루 만보는 어떨까? 7,500보를 걷는 것보다 몸에 좋을까? 이번 연구에 따르면 7,500보를 넘는 순간, 그보다 더 걷는다고 해서 이득이 따라 올라가지는 않았다. 얼마나 활기차게 걷는가 역시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느릿느릿 걷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빨리빨리 걷는 사람들에 비해 건강상 이득이 덜하지는 않았던 것.

\하버드 헬스 퍼블리싱\의 안소니 코마로프 박사는 이번 연구에 대해 "대상이 고령 여성들로 한정되어 있지만 기존의 논문들을 토대로 추론하면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 같은 결론을 적용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건강을 생각한다면 하루 7,500보 걷기를 시작하라" 면서 매일 몇 걸음이나 걸었는지 알려주는 스마트 폰 앱을 적극 활용하라고 충고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058.html
kolaswqetsrq 11.14 17:29
몸이 보내는 비타민D 부족 신호 7가지

몸이 보내는 비타민D 부족 신호 7가지

1. ‘뼈’가 아프다

추운 날씨 때문에 바깥 외출이 적어져 자연히 햇빛을 덜 받게 되는 겨울철은 비타민D가 부족해지기 매우 쉬운 계절이다. 홀릭 박사는 “주로 성인들이 겨울 아침 기상 시 관절이 딱딱해지는 증세를 보인다”고 설명한다. 비타민D가 결핍되면 자연히 칼슘 운반이 더뎌져 뼈와 근육에 통증이 찾아오기 쉽다. 평소 같지 않게 관절 움직임이 어렵다면 비타민D 부족을 의심해보자.

2. 우울증이 생긴다

비타민D는 뇌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 향상에 영향을 미친다. 만일 평소 우울증이 심하다면 비타민D가 부족한 것이 주요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지난 1998년 의학연구결과 중에는 겨울 동안 비타민 D 보충제를 꾸준히 섭취한 여성 70여명이 긍정적인 기분을 유지했다는 기록도 있다.

3. ‘50세’ 이상이다

50세가 넘어가면 비타민D 수치가 자연히 감소하게 된다. 미국 암협회에 따르면, 실내에서 생활하는 빈도수가 높아지는 50세 이상 연령대부터 체내 비타민D 생산량이 감소되기 시작한다. 해당 시기에는 비타민 영양제 섭취나 야외 산책 빈도수를 높여주는 것이 좋다.

4. ‘과체중’ 혹은 ‘비만’ 이다

과체중이 비타민D 생산을 저해하지는 않지만 높은 체지방 함량이 비타민D 체내농도를 묽게 할 가능성은 높다. 비타민D는 기름에 녹는 ‘지용성’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비만이거나 과체중이라면 다이어트를 해주면서 비타민 영양제 복용을 꾸준히 병행해주는 것이 좋다.

5. 피부색이 탁하다

피부색은 체내 비타민D 생산능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홀릭 교수는 “피부 색소는 천연 자외선 차단제”라고 설명하는데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은 정상 피부색을 가진 사람보다 10배 이상 햇볕을 쬐어야 평균 비타민D 양을 체내에서 생산할 수 있다. 평소 본인 피부색이 눈에 띠게 어두워졌다면 비타민D 결핍여부를 의심하고 꾸준한 영양제 섭취와 일광욕을 병행해주도록 하는 것이 좋다.

6. 두피에서 ‘땀’이 많이 난다.

홀릭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고전적인 비타민D 결핍 징후 중 하나가 두피에서 생산되는 ‘땀’의 양이다. 평소 유난히 머리가 젖어있다면 비타민D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자.

7. 장 트러블.

염증성 ‘장’ 질환과 같은 위장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지방 흡수가 어려워 자연히 비타민D 결핍으로 이어지기 쉽다. 위장이 약해지면 비타민D와 같은 기름에 녹는 지용성 비타민 흡수율을 낮추기에 평소 소화가 잘 안되거나 더부룩함이 심하다면 이를 의심해보고 병원을 방문해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d-7.html
kolaswqetsrq 11.14 17:30
탈모에 좋은 음식 & 탈모 예방법

탈모에 좋은 음식 & 탈모 예방법

1. 계란

계란 속에 들어 있는 비오틴 성분이 탈모, 비듬, 지루성 피부염까지 예방합니다. 특히 노른자는 모발이 재생되는 것을 도와서 찰랑찰랑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을 만들어 준다고 하네요.

2. 검은콩

검은콩에는 아르지닌과 아미노산이 풍부한데, 이것이 머리카락의 빠짐을 막고 발모와 성장을 돕습니다. 검은콩은 비타민 B가 우유의 3배 이상 들어 있는데 이것이 우리 몸의 해독 작용을 해 주기 때문에도 유익하고요. 특히 검은콩 속의 폴리페놀과 단백질은 두피 건강에 최고라고 하니 검은콩밥을 먹는것이 좋습니다.

3. 시금치

두피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지루성 피부염이라는 피부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지루성피부염이랑 두피에 피지가 과도하게 분비되어 빨갛게 변하고 가려우며 여드름처럼 트러블이 생기기도 하는 질환이에요. 그런데 시금치에는 두피의 피지 조절을 도와 주는 성분이 있다고 해요. 바로 비타민 A와 섬유질이에요! 과도한 피지 분비가 조절되면 건강한 두피가 된다고 합니다.

4. 견과류

견과류에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는데 이 불포화지방산은 상온에서도 액체 상태인 기름으로 우리 몸에 있는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낮추어 준다고 해요. 또 견과류에는 엽산, 비타민 B군, 판토텝산 등의 영양소가 많은데 이것이 단백질의 신진대사를 도와 준다고 해요. 머리카락도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는 것 알고 계시죠? 매일매일 꾸준히 오래오래 먹어야 효과가 있답니다!

5. 석류

두피에 과도한 피지가 유발되는 원인 중에는 남성호르몬도 있어요. 그런데 석류에는 여성호르몬이 많이 들어 있거든요. 석류를 먹을 경우 남성호르몬이 억제되어 탈모를 막고 두피 건강도 좋아집니다. 또 아하성분이라는 것이 들어 있는데 피부의 각질을 제거해주어 피부도 뽀송뽀송 예쁘게 만들어 준다고 하네요. 여자라면 탈모 예방과 피부 건강 등 여러가지 효과를 석류로 한 번에 볼 수 있겠네요.

6. 올리브오일

춥고 건조한 겨울철 날씨로 인해 탈모가 더욱 심해진다고 하는데요. 올리브오일을 두피에 바르면 모발을 강화시켜 탈모를 예방해 줄 뿐만 아니라, 거친 모발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탈모증상이 있는 분들은 꾸준히 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7. 다시마

다시마에는 머리카락을 구성해주는 성분들인 요오드와 비타민, 철분, 칼슘, 단백질 등이 풍부해 탈모예방에 좋은 음식이라고 하는데요. 탈모가 걱정되시는 분이라면 다시마를 섭취해 보시길 바랍니다.

<탈모 예방법>

1. 긍정적인 생각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웃을 일이 없는 것이 사실인데요.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체내에 있는 좋은 성분의 기능을 원활하게 해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두피 건강과 모발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2. 지나친 음주,흡연 자제

음주와 흡연은 탈모의 진행을 빠르게 하는 요인 중 하나랍니다. 과도한 음주는 모근의 피지분비를 증가시키고 체내에 있는 항산화 물질을 파괴하는데요. 이 때문에 두피의 노화를 가져오고 탈모를 촉진 하게 된답니다.

3. 과도한 찜질 피하기

온도가 높은 곳에 들어가면 두피의 모공이 확대 되면서 피지 분비가 왕성해지는데요. 탄력이 떨어지면서 모발의 수분이 증발해 두피와 모발이 약해지게 된다고 합니다. 특히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감싼 채 찜질방에 들어가면 두피의 수분이 빠져나가고 머리카락이 손상될 수 있다고 하니 탈모가 걱정스럽다면 이런 행동은 유의해야겠어요!!

4. 머리 말리는 습관

아침에 머리를 감는 습관 보다는 저녁에 머리를 감아 주는 것이 좋은데요. 오전, 오후동안 쌓인 먼지와 더러움은 저녁에 씻어내 주는 것이 모발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가급적 차가운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는 것이 좋구요. 머리카락 뿌리까지 꼼꼼히 말리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676.html
kolaswqetsrq 11.14 17:31
■ 직지심체요절 4편

■ 직지심체요절 4편

정확한 연대와 인쇄 장소, 금속 활자 인쇄본이란 사실을 증명하는 기록이 책에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사람들은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독일 인쇄술을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구텐베르크는 독일 라인 강변에 위치한 도시 마인츠에서 태어나 독일과 프랑스 국경 지역에 있는 스트라스부르라는 도시에서 활동했다. 현재 프랑스 땅인 이곳은 옛날에는 독일 영토였다. 그래서 특히 독일과 프랑스는 《직지심체요절》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란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박병선 박사의 끈질긴 연구와 자료 수집 끝에 2001년 9월, 《직지심체요절》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직지심체요절》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를 이용한 인쇄물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은 이 책을 아주 귀한 책으로 생각하여 단독 금고에 비공개로 보관하고 있다.

 "
과거 김영삼대통령과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의궤를 우리나라에 돌려주기로 했는데, 외규장각 의궤는 5년 단위의 갱신이 가능한 임대 방식의 반환에 합의함으로써 타결점을 찾아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이 주도한 ‘직지 반환 반대 시위’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아직 반환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 활자를 만들어 책을 인쇄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한 고려의 금속 활자는 밀랍(양초의 주원료로 평상시에는 고체로 되어 있다가 열을 가하면 쉽게 녹는 물질)에 글자를 새긴 후 주물토로 감싼 후에 열을 가해 밀랍을 녹인다. 그러면 밀랍이 녹아 나가며 주물토에 글자 모양의 공간이 생기고, 이곳에 쇳물을 부어 굳힌 다음 주물토를 떼어 내면 활자가 완성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활자 제조법으로는 다양한 서적을 인쇄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기존 거푸집을 재활용할 수 없어서 책을 만들 때마다 활자 제조를 다시 해야 했다. 설혹 기존에 만들어 놓은 활자를 재사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주 미미한 양에 불과하다. 표의문자인 한자를 모두 한꺼번에 금속 활자로 만들어 놓을 수는 없으므로 고려의 금속 활자 기술이 대중화되지 못한 이유는 이러한 단점 때문이었다.

반면에 서양 금속 활자 중 최초인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는 인쇄술의 대중화가 가능했다. 그 이유는 표음 문자인 알파벳은 한번 활자를 만들어 놓으면 글자 배열만 바꿔서 여러 가지 다른 책도 만들 수 있었다. 여기에 구텐베르크는 처음부터 성경책을 인쇄하여 대중들에게 팔 요량으로 대량 인쇄를 염두에 두고 인쇄기를 제작했던 것이다. 또 실제적으로도 구텐베르크에 의해 인쇄된 성경은 대량으로 팔려 나가며 유럽 사회에 인쇄 혁명을 가져왔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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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33
■ 직지심체요절 3편

■ 직지심체요절 3편

활자의 주조술과 조판술이 아직 미숙했던 고려시대에 중앙관청이 아닌 지방의 한 사찰이 전통적인 밀랍주조법으로 주조하여 찍어낸 것이기 때문에 활자의 크기와 글자모양이 다소 고르지 않고, 부족한 글자를 나무활자로 보충하여 찍어냈기 때문에 인쇄상태가 다소 조잡한 상태이다. 원래는 상권과 하권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상권은 분실된 상태이고, 현재 하권만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책이 프랑스로 가게 된 경위는 1886년 한·프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했던 콜랭드 플랑시란 사람이 수집해 프랑스로 귀국할 때 가지고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람은 이 책에 관한 우수성을 가장 먼저 알아 본 사람인지도 모른다. 표지에다 ‘한국에서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금속활자 인쇄물’이라고 써놓았다고 한다. 드플랑시는 우리나라에서 수집해 간 대부분의 고서를 모교인 동양어 학교에 기증하였다.

그 후, 1911년 프랑스 경매에 180프랑(지금 돈 65만원 가량)에 이 책이 나왔을 때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다른 한국 책 80종은 사면서도 이 책은 사지 않았다고 한다. 동양의 조그만 나라에서 구텐베르크보다 앞서서 금속활자를 만들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그 가치를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다 골동품 수집상이었던 앙리 베베르라는 사람에게 넘어 갔고, 1950년 이 사람이 죽을 때의 유언에 따라 파리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중국과 일본 책 속에 파묻혀 있던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고(故) 박병선 박사에 의하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박병선 박사는 1967년부터 1980년까지 파리에 있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박병선 박사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도서의 해’에 전시할 책을 고르기 위하여 서고를 뒤지다가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병선 박사가 발견한 《직지심체요절》 하권은 세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하권이었다. 박병선 박사는 책을 살펴보던 중 마지막 장에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이라는 내용을 발견했고, 1972년 드디어 《직지심체요절》이 ‘파리 책 역사 종합박람회’에 출품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것은 독일 구텐베르크가 제작한 성경책보다 100년 앞선 금속활자본으로 세계 출판역사를 뒤흔드는 사건이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65.html
kolaswqetsrq 11.14 17:34
■ 직지심체요절 2편

■ 직지심체요절 2편

지금까지 남아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은 1377년에 펴낸 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이다. 독일사람 구텐베르크가 서양에서 최초로 금속 활자를 만든 것이 15세기 중반이니까, 우리나라는 구텐베르크보다 70여 년이나 빠른 14세기에 이미 금속 활자로 책을 찍어 냈던 것이 증명되었다. 《직지심체요절》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목판으로 인쇄한 목판본이고, 다른 하나는 금속 활자로 인쇄한 금속 활자본이다.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금속 활자본이다. 보통 책을 만들 때는 수십 부 혹은 수백 부씩 인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직지심체요절》이 몇 부나 인쇄되었고,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된 자료는 없다. 《직지심체요절》은 원래 상권과 하권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사실은 우리나라에 보관되어 있는 목판본 책자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다. 문헌에만 전하여지고 있던 여러 종의 고려 활자본 중 유일하게 전래되고 있는 《직지심체요절》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직지심체요절≫은 승려인 백운 화상이 부처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살다 간 이름난 승려들의 말씀이나 편지 등에서 뽑은 내용을 수록해 놓은 책이다. 직지심체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에서 나온 말로 ‘참선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보면,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라는 뜻이다. 백운은 승려 경한의 호이다. 그는 13세기 말 전라북도 정읍에서 출생하여 승려가 된 뒤에 황해도 해주의 안국사와 신광사 등에서 주지를 지내고, 후진 양성에 힘쓰다 75세 때인 1372년에 성불산 성불사에서 상·하 두 권으로 ≪직지심체요절≫을 저술하였고, 1374년에 77세의 나이로 여주 취암사에서 입적(入寂:승려가 죽음)했다.

≪직지심체요절≫은 스님이 입적하신 지 세 해째 되던 1377년(고려 우왕)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인쇄됐다. 인쇄를 주도한 사람은 승려였던 석찬·달잠·묘덕이다. 석찬 스님은 ≪백운화상어록≫을 쓴 승려로 백운 화상의 비서 역할을 했던 시자(侍者:귀한 사람을 모시고 시중드는 사람)였다. 달잠스님 또한 백운 화상의 제자였다. 이 두 사람이 비구니(여승)인 묘덕 스님의 재정 지원을 받아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직지심체요절≫을 간행했다. 《직지심체요절》은 승려들이 수행과 공부를 하는 데 학습서로 사용되었다. 선(禪)에 관한 고승들의 어록을 요약한 직지심체요절의 정확한 제목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으로, 스님들의 교과서와 같은 용도로 사용된 중요한 책이었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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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35
■ 똥 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

■ 똥 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

매우 가난하다는 것을 나타낼 때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한다. 왜 딴 말 다 제쳐두고 찢어지게 란 말을 붙여서 표현할까?

이에는 그럴 만한 연유가 있다. 가장 험하고 넘기 어려운 고개는 보리 고개라고 한다. 먹는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 배고픔을 참으며 보리가 익기를 기다리며 견뎌야 하는 보리 고개(살아 넘기기가 힘들다는 의미), 그것은 정녕 생사를 넘나드는 험하디 험한 고개였다.

5,60년대만 하더라도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한다는 말은 일상으로 듣던 말이었다. 말 그대로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며 명을 이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 초근목피 중에 대표적인 것이 칡뿌리와 소나무 껍질이었다.

그 중 소나무의 껍질은 겉껍질을 벗겨내고 속껍질을 이용했는데 이를 송기(松肌)라 한다. 이 송기를 절구나 디딜방아에 찧어 부드럽게 하여, 곡식 가루와 섞어 쪄서 먹거나 나물과 섞어 죽을 끓여 먹었다.

그런데 이 송기에는 탄닌 성분이 많아서, 먹고 나면 변비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예부터 솔잎과 송기는 민간에서 설사를 멈추게 하는 약으로 써 왔는데, 그 근거는 바로 소나무의 이러한 효능 때문이었다.

어떻든 이 송기로 만든 음식을 먹고 나면 심한 변비가 생겨 변을 보기가 어려웠고, 또 어렵게 변을 보고 나면 항문이 찢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똥구멍이 찢어지게 된 근원적인 연유는 가난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래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생기게 되었고, 이 말이 줄어져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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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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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37
유생개곡有生皆哭 - 살아남은 사람 모두 곡을 하다.

유생개곡(有生皆哭) - 살아남은 사람 모두 곡을 하다.

있을 유(月/2) 날 생(生/0) 다 개(白/4) 울 곡(口/7)

天泣地哀(천읍지애) 하늘도 울고 땅도 운다는 말은 언제 쓰일까? 북한에서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이 말을 사용했다. 하지만 대규모의 천재지변이나 대형사고가 났을 때, 가까운 예로 세월호 참사나 일본 쓰나미 희생자의 영결식에 적합한 말이다. 추적추적 비라도 내리면 더욱 실감난다.

이런 재해에 비할 정도가 아닌 전쟁의 참화는 전 국토가 마비되고 시체가 온 들판에 나뒹구니 더욱 슬피 울 일이다. 살아있는 사람(有生)이 모두 다 곡을 한다(皆哭)는 이 말도 壬辰倭亂(임진왜란)의 참상을 전하는 데서 나왔다.

임진년인 1592년 음력 4월 13일, 양력으로는 5월 23일 왜국의 700여 병선이 부산으로 물밀듯 밀려 왔고 이틀 사이로 1만 8000여 왜병들에 의해 부산진성과 동래성이 함락됐다. 고립무원으로 홀로 맞선 동래 宋象賢(송상현, 1551~1592) 부사 이하 군민들은 끝까지 항전하다 순국했다.

왜란이 끝난 뒤 1608년(선조 41) 동래부사로 부임한 李安訥(이안눌, 1571~1637, 訥은 말더듬거릴 눌)은 어느 날 아침 온 성안이 진동하는 곡소리에 놀랐다. 늙은 아전을 불러 어찌된 연유인지 물어 보았다.

아전은 왜란 때 왜적이 몰려 와 성안으로 피난 온 백성들이 몰살을 당했는데 4월15일 기일만 닥치면 살아남은 백성들이 집집마다 제상을 차리고 곡을 한다고 답했다. 아비가 자식 곡을 하고, 아들이 아비 곡을 하고, 어미가 딸을, 딸이 어미를 곡하는데 이렇게 곡할 사람이 있는 집은 그래도 다행이고 곡할 사람이 없는 집도 수두룩하다고 아뢴다.

시문에도 뛰어나 李太白(이태백)에 비유되기도 했다는 부사가 이 때의 슬픔을 기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東岳集(동악집)’의 萊山錄(내산록)에 실린 장시 ‘四月十五日(사월십오일)’ 해당 부분을 보자. ‘형제나 자매나 따질 것 없이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곡을 하지요(兄弟與姉妹 有生皆哭之/ 형제여자매 유생개곡지), 이맛살 찡그리며 듣다못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네(蹙額聽未終 涕泗忽交頤/ 축액청미종 체사홀교이).’ 蹙은 찡그릴 축, 涕는 눈물 체.

栗谷(율곡)선생의 10만 양병설을 흘려듣고 방비를 소홀히 한 대가는 전 국토의 초토화였다. 일제 강점기는 물론 오늘날도 틈만 보이면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은 한시도 방심해선 안 된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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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40
혁희음생赫曦陰生 - 밝고 뜨거운 햇살 이후 음기가 생기다.

혁희음생(赫曦陰生) - 밝고 뜨거운 햇살 이후 음기가 생기다.

빛날 혁(赤/7) 햇빛 희(日/16) 그늘 음(阝/8) 날 생(生/0)

지구가 태양을 1년에 걸쳐 돌면서 위치에 따라 변화하는 四季(사계)를 세분하여 二十四節氣(이십사절기)를 만들었다. 立春(입춘), 雨水(우수)부터 小寒(소한), 大寒(대한)까지 24개로 나눈 것이 그것이다. 예부터 이에 맞춰 농사를 지었기에 일상에 영향이 컸고 중국에는 노동요로 節氣歌(절기가)까지 전해졌다.

立夏(입하)부터 시작되는 여름을 예로 들면 이런 식이다. ‘여름은 까끄라기 가득하고 여름 더위 이어지네(夏滿芒夏暑相連/ 하만망하서상연).’ 小暑(소서), 大暑(대서)까지 이어진다는 뜻이다. 낮이 가장 길고 밤이 짧은 夏至(하지)는 여름 햇살이 가장 밝고 뜨거운데(赫曦) 이후부터 서서히 서늘한 기운이 생긴다(陰生)는 이 말은 영원한 것이 없다는 의미도 가졌다.

하지를 노래한 시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唐(당)나라 시인 權德與(권덕여, 759~818)의 시구에서 나온 성어다. 그는 4세에 시를 짓고 15세에 산문 수백 편을 짓는 등 어려서부터 문사로 알려졌다. 그 재주를 듣고 12대 황제 德宗(덕종)의 부름을 받아 여러 관직을 거친 뒤 재상까지 지냈을 정도였다.

그가 하지를 맞아 지은 오언절구의 시 ‘夏至日作(하지일작)’은 ‘천체의 운행에는 머무름이 없다오(璿樞無停運/ 선추무정운)’로 시작한다. 구슬 선(璿)은 璇(선)으로도 쓰며 천문관측 기구인 渾天儀(혼천의)를 가리키기도 하고, 북두성의 두 번째 별을 나타내기도 한다. 지도리 추(樞)는 여기서 첫 번째 별인데 합쳐서 북두성을 중심한 천체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어지는 세 번째 구에 성어가 나오는데 차례대로 보자. ‘사계절이 차례를 지켜 번갈아 드네(四序相錯行/ 사서상착행), 이글거리는 햇볕에 말을 하노니(寄言赫曦景/ 기언혁희경), 오늘부터 서늘한 기운 생겨난다네(今日一陰生/ 금일일음생).’

절기의 변화에 중심이 되는 북두성의 위치에 따라 천체 전체가 움직인다고 옛사람들은 봤다. 그래서 사계절이 반복적으로 교대한다는 뜻의 錯行(착행)으로 나타냈다. 더위가 절정인 하지 즈음의 이글거리는 풍경도 이제부터는 차츰 음기가 시작되는 것을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하지 때부터 서늘한 음기를 생각하라는 계절의 변화는 비슷한 말이 많은 중에서 달도 차면 기운다는 月滿則虧(월만즉휴)가 세상 만물이 한 번 번성하면 쇠하기 마련이란 뜻을 잘 나타냈다. 높은 자리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은 세상의 이치와는 달리 자신에게는 오래 갈 줄 생각한다.

온 국민의 열렬한 성원을 받고 들어선 정부가 얼마 안 가 인기가 시드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 것도 자기 세상이라며 오만을 부리다 민심과 멀어지기 때문이다. 物極必反(물극필반),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을 명심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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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42
무언불수無言不讐 - 어느 말에도 응답이 있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

무언불수(無言不讐) - 어느 말에도 응답이 있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

없을 무(灬/8) 말씀 언(言/0) 아닐 불(一/3) 원수 수(言/16)

말이 많거나, 말을 잘못 하거나 말로 인한 재앙은 끊임이 없다. 자기가 내세우는 주장이 옳다고 고집하거나 잘못을 보고도 입을 다물거나 모두 말썽이 되니 그만큼 말이 어렵다. 말을 조심하라는 성현의 가르침이 끝이 없는 것도 그만큼 알고도 지키지 못하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섬뜩하면서도 널리 알려진 성어가 중국 五代(오대)의 장수 재상이었던 馮道(풍도)의 口禍之門(구화지문)이다. 여기에 혀가 몸을 베는 칼이라는 舌斬身刀(설참신도)가 따르니 무시무시하다. 3000년이 넘는 가장 오래된 시집 ‘詩經(시경)’이 말조심에 빠질 수 없다. 말을 하게 되면 응답이 없을 수 없다는 성어가 大雅(대아)에 나오는 無言不讐(무언불수)다.

대아는 周(주) 왕실을 노래한 것이 많고 궁중조회 때 쓴 음악이라는데 春秋時代(춘추시대) 衛(위)의 武公(무공)이 스스로 경계하기 위하여 곁에서 외우게 했다는 抑篇(억편)에 나온다. 전체 12장으로 상당히 긴데 여섯 번째 장에 등장한다. 말에 관한 세 구절만 보자.

‘나오는 대로 말하지 말고, 구차하게 말을 해서는 안 된다(無易由言 無曰苟矣/ 무이유언 무왈구의), 내 혀를 잡아주는 사람 없으니, 내뱉은 말 뒤쫓을 수 없다네(莫捫朕舌 言不可逝矣/ 막문짐설 언불가서의), 말에는 대답이 없을 수 없고, 덕은 반드시 보답이 있다네(無言不讐 無德不報/ 무언불수 무덕불보).’ 捫은 어루만질 문, 朕은 나 짐, 원수 讐(수)에는 대답하다, 갚다의 뜻도 있다.

이 장의 앞부분에 나오는 백옥의 반점이란 뜻의 白圭之玷(백규지점, 玷은 이지러질 점)도 말조심을 시키는 유명한 문구다. ‘흰 구슬의 흠은 오히려 갈면 되지만(白圭之玷 尙可磨也/ 백규지점 상가마야), 말의 흠은 어찌할 수 없느니라(斯言之玷 不可爲也/ 사언지점 불가위야).’ 論語(논어) 先進(선진)편에 관련 일화가 있다.

孔子(공자)의 제자 南容(남용)이 이 구절을 하루에 세 번 암송하는 것을 보고 믿을 만하다며 형의 딸을 시집보내 조카사위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말을 두려워하고 신중히 하는 남용의 인격과 인품을 높이 샀다.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는 禍從口出(화종구출)이나 말을 잘 하는 ‘蘇張(소장)의 혀’ 등 무수한 말이 있지만 ‘明心寶鑑(명심보감)’의 言語(언어) 편에 음미할수록 좋은 말이 많다. 두 가지만 인용한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뜻하기가 솜과 같고,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날카롭기가 가시 같다(利人之言 煖如綿絮 傷人之語 利如荊棘/ 이인지언 난여면서 상인지어 이여형극).’ ‘술은 나를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면 천 잔도 적고, 말은 기회가 맞지 않으면 한 마디도 많다(酒逢知己千鐘少 話不投機一句多/ 주봉지기천종소 화부투기일구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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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43
십년수목十年樹木 - 십년 뒤를 내다보며 나무를 심다.

십년수목(十年樹木) - 십년 뒤를 내다보며 나무를 심다.

열 십(十-0) 해 년(干-3) 나무 수(木-12) 나무 목(木-0)

나무는 인간에게 주기만 한다. 맑은 공기를 공급하고 푸르름을 준다. 열매는 식량으로, 잎과 뿌리는 식용과 약용으로, 줄기는 건축 자재를 제공한다. 그러면서 사람에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깊은 교훈도 준다.

수필가 李敭河(이양하, 敭은 날릴 양) 선생은 노래했다.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한다. 나무는 고독의 철인이요, 安分知足(안분지족)의 현인이다."

십년을 내다보고 나무를 심으라고 한 이 말은 나무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이긴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百年樹人(백년수인)과 합쳐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더 막중한 일이라고 중점을 뒀다. 春秋時代(춘추시대) 齊(제)나라의 재상으로 桓公(환공)을 보필하여 春秋五霸(춘추오패)에 오르게 한 管仲(관중)이 한 말로 나온다.

관중은 평생을 도운 鮑叔牙(포숙아, 鮑는 절인물고기 포)와 함께 깊은 우정을 말하는 管鮑之交(관포지교)로도 유명하다. 실제 후세 사람들이 썼지만 관중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는 "管子(관자)"의 權修(권수)편을 옮겨 보자.

"일 년의 계획으로는 곡식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고, 십년의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일만한 것이 없으며, 평생의 계획으로는 사람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다. 한 번 심어 한 번 거두는 것이 곡식이고, 한 번 심어 열 번 거두는 것이 나무이며, 한 번 심어 백 번 거둘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 一樹一獲者穀也 一樹十獲者木也 一樹百獲者人也/ 일년지계 막여수곡 십년지계 막여수목 종신지계 막여수인. 일수일획자곡야 일수십획자목야 일수백획자인야)."

나무를 소중히 기르듯이 사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일이니 교육을 百年大計(백년대계)라 하며 국가의 근본사업이라 하는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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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45
기명위절其名爲竊 -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의 이름은 도둑

기명위절(其名爲竊) -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의 이름은 도둑

그 기(八/6) 이름 명(口/3) 하 위(爪/8) 훔칠 절(穴/17)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쉽게 남을 평가한다. 속은 알찬 사람인데 겉으로 어리석게 보여 함부로 대하다 된통 당한다. 성인은 빛을 감춘다고 하여 드러내는 법이 없다. 일부러 어리석게 보여도 어딘가 티가 난다며 難得糊塗(난득호도)라 했는데 어리석은 자는 눈치도 못 챈다.

반면 인물이 훤하고 말을 청산유수같이 줄줄 늘어놓을 때 모두들 대단한 사람이라 여긴다. 이런 사람들 중에서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는 개차반도 있는 법이라 ‘빛 좋은 개살구’란 속담이 나왔다. 이름만 번지르르한 虛名無實(허명무실)의 羊頭狗肉(양두구육)인 사람이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고 속으로 엉망인 사람의 이름(其名)은 도둑(爲竊)이라고 꾸짖는 말까지 있다.

중국의 제자백가 중 道家(도가)를 대표하는 莊周(장주)는 ‘莊子(장자)’에서 창시자인 老子(노자)를 자주 등장시킨다. 자연과 인간의 특징을 무위와 유위로 규정하는 天道(천도)편에 성어가 나온다. 노자와 士成綺(사성기)의 대화에서다.

사성기란 정체는 周(주)나라 현인, 노자의 제자, 가상의 인물 등 구구하다. 사성기가 어느 때 노자를 찾아 와 항의한다. 먼 길을 달려왔는데 곳곳에 채소가 흩어져 물건을 아끼지 않고 음식이 쌓여 있는데도 모으니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고 했다. 노자는 무심한 듯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사성기가 잘못 생각했다며 사과하자 노자는 자신을 소나 말이라 불렀어도 그렇게 받아들였을 것이라 말한다. 또 사성기의 풍채는 위압적이고 움직임이 빠르며 사물을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면서 충고할 점을 지적한다.

‘뛰어난 지혜와 재주만 믿고 마음속의 교만을 가장한 것이 드러나는데, 이러한 행위들은 인위적인 것이라 믿을 수 없지(知巧而覩於泰 凡以爲不信/ 지교이도어태 범이위불신), 변경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도둑이라 부르지(邊竟有人焉 其名爲竊/ 변경유인언 기명위절).’ 노자가 자신에게 거들먹대며 잘난체하는 사성기에게 일침을 놓았다.

사성기는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좋아했어도 노자의 가르침은 바로 받아들인다. 잘못 생각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노자에 기러기처럼 앞서서 날지 않고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雁行避影(안행피영)의 스승으로 대한 것이 사성기다. 온갖 지혜가 가득한 사람이라도 하는 행동이 겉과 다를 때는 表裏不同(표리부동)이다.

이보다 훨씬 더 고약한 것이 내가 하는 행동은 항상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욕하는 ‘내로남불’이다. 근년의 정치계에서 너무나 잦아 我是他非(아시타비)의 새 성어나 Naeronambul이란 신조어로 세계에 알려졌다. 도적이라 꾸짖는 것보다 부끄러운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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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46
민심무상民心無常 - 백성의 마음은 일정하지 않고 늘 변한다.

민심무상(民心無常) - 백성의 마음은 일정하지 않고 늘 변한다.

백성 민(氏/1) 마음 심(心/0) 없을 무(灬/8) 떳떳할 상(巾/8)

‘민심은 물과 같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백성들의 마음은 무섭다. 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엎어버리기도 하듯이 늘 지지를 해주는듯하다 어느 순간 위정자가 방심하면 가차 없이 응징한다. 載舟覆舟(재주복주)의 성어가 말해 주는 바 다. 백성들의 마음(民心)은 일정하지 않고 정치가 하는 바에 따라 착하게도 되고 무섭게 변하기도 하는(無常) 것이다. 민심이 天心(천심)이라는 말도 있다. 天道敎(천도교)의 중심교리이기도 한 人乃天(인내천)은 사람이 곧 하늘이란 뜻이면서 세상 민심이 하늘의 뜻이라는 의미도 동시에 지녔다고 한다.

예부터 중국에선 천하를 얻기 위해선 백성들의 마음을 먼저 얻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성군 堯舜(요순)이 추앙받는 것도, 폭군 桀紂(걸주)를 지탄하는 것도 백성을 어떻게 대했느냐에 따라 갈렸다. 孟子(맹자)가 이에 대해 잘 설명한다.

‘걸왕과 주왕이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며, 그 백성을 잃은 것은 그들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桀紂之失天下也 失其民也 失其民者 失其心也/ 걸주지실천하야 실기민야 실기민자 실기심야).’ 離婁上(이루상) 편에 나온다.

민심은 늘 변한다는 성어는 春秋(춘추) 이전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書經(서경)’에 등장한다. 항상 숭상해야 한다고 尙書(상서)라고도 한다는 책이다. 요순과 夏(하), 殷(은) 다음의 周書(주서) 蔡仲之命(채중지명)편에 실린 내용이다. 채중지는 모반을 꾀했던 부친과는 달리 현명한 사람으로 周公(주공)의 추천을 받고 蔡(채) 땅의 제후로 봉해진 사람이다. 부분을 인용해보자.

‘하늘은 특별히 누구에게만 가까이하는 일 없이 오직 덕 있는 사람이면 그를 돕는다, 백성의 마음은 일정하지 아니하여 오직 혜택을 주는 사람에게 따르게 마련이다(皇天無親 惟德是輔 民心無常 惟惠之懷/ 황천무친 유덕시보 민심무상 유혜지회).’ 泰誓中(태서중)편의 ‘하늘은 우리 백성들의 눈을 통해 보고, 하늘은 우리 백성들의 귀를 통해 듣는다(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 천시자아민시 천청자아민청)’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민심보다는 輿論(여론)이라는 말을 더 쓰게 된 오늘날에도 그 중요성은 변한 것이 없다. 천심인 여론을 무시하면 한 번에 날아가니 오늘에 안주해서는 안 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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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47
매란국죽梅蘭菊竹 - 매화와 난초와 국화와 대나무, 고결함을 상징으로 하는 시서화의 대표적 소재

매란국죽(梅蘭菊竹) - 매화와 난초와 국화와 대나무, 고결함을 상징으로 하는 시서화의 대표적 소재

매화 매(木/7) 난초 란(艹/17) 국화 국(艹/8) 대 죽(竹/0)

매화와 난초, 국화와 대나무를 합쳐 梅蘭菊竹(매란국죽)이라 하고, 이것을 四君子(사군자)라 부른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많고 많은 식물 중에서 이들이 덕행과 학문이 뛰어난 군자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유교사회에서 뜻을 굽히지 않는 지조와 절개를 큰 덕목으로 지키는데 이 식물들이 각각 특유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봤다.

매화는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우며, 난초는 산중에서 홀로 은은한 향기를 멀리 퍼뜨린다. 늦가을 서리 맞으면서도 고고한 국화, 모두 잎을 떨군 겨울철에 독야청청한 대나무 등은 그래서 선비들의 시화의 소재로 사랑받아왔다.

사군자는 나라가 어지러울 때 더 발전했다는데 은둔생활을 하며 즐길 수 있기 때문으로 본다. 사군자를 각각 노래한 시문은 부지기수라도 잘 알려진 몇 가지만 보자. 먼저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워 향기를 내뿜는 매화는 우리 시가에만도 600여 수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조선 世祖(세조) 때의 문신 姜希顔(강희안)이 養花小錄(양화소록)에서 1품으로 쳤고, 退溪 李滉(퇴계 이황)의 운명 때 남긴 말이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라 했을 정도로 아꼈다. 申欽(신흠)의 ’매화는 일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란 명구는 음미할수록 와 닿는다. 중국 宋(송)나라 林逋(임포, 逋는 도망갈 포)는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아 梅妻鶴子(매처학자)로 불렸다.

연약한 잎에 굳게 솟은 꽃대에서 피는 난초꽃은 고귀한 절개를 나타내 戰國時代(전국시대) 楚(초)나라의 屈原(굴원)이 離騷(이소)에서 그 향기를 노래했다는데 역사는 오래 되지만 숫자는 가장 적다. 향기가 십리를 간다고 香聞十里(향문십리)에, 지초와 감화를 주고받는 우정 芝蘭之交(지란지교) 등 듣기만 해도 미소가 머금어지는 성어가 다수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시인, 서화가였던 申緯(1769~1845)의 시 구절은 명언이다. ‘사람 그리며 한 그리기 어렵고, 난초 그려도 그 향기 그리기 어렵네(畵人難畵恨 畵蘭難畵香/ 화인난화한 화란난화향).’

난초가 봄이라면 국화는 가을이라 春蘭秋菊(춘란추국)이라 했다. 국화라 하면 晉(진)나라 陶淵明(도연명)의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꺾어들고 아득히 저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 구절을 먼저 떠올린다. 국화가 꽃 중의 은일자라며 은자의 심경을 노래했다. 이보다 落木寒天(낙목한천)에 홀로 핀 국화의 傲霜孤節(오상고절)을 읊은 李鼎輔(이정보)의 시조나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라 한 徐廷柱(서정주)의 시가 더 좋다.

대나무는 尹善道(윤선도)가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사철 푸르다고 좋아했는데 앞서 金時習(김시습)도 그 절개를 노래한 것이 있다. ‘바위 모퉁이에 솟은 푸른 대나무, 바위 아래 땅에다 뿌리를 붙였구나(綠竹出巖嵬 托根巖下土/ 녹죽출암외 탁근암하토), 늙어 갈수록 더욱 굳어지는 절개, 우수수 밤비를 머금었구나(老去節兪剛 蕭蕭藏夜雨/ 노거절유강 소소장야우).’

사군자의 고난을 이기고 고고한 절개를 은은히 내뿜는 덕목을 시화로 예찬하기보다 실생활에서 닦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뒤로 더 구린 모습을 보일 때 더욱 그러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025.html
kolaswqetsrq 11.14 17:49
낙이망우樂以忘憂 - 일을 즐기느라 모든 근심을 잊다.

낙이망우(樂以忘憂) - 일을 즐기느라 모든 근심을 잊다.

즐길 락(木/11) 써 이(人/3) 잊을 망(心/3) 근심 우(心/11)

어떤 한 가지 일에 열중하면 좋은 결과를 얻는다. 그렇다고 바로 성공을 가져다주지는 않고 실패를 이기며 끈기를 가져야 영광을 차지한다.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은 ‘일을 옳게 하려면 결코 시계를 보지 말라‘고 했다. 1000번이 넘는 실패를 거쳐 전구를 발명한 그가 그래서 실험하다 계란인 줄 알고 시계를 삶았나보다.

사슴을 쫓을 땐 명산의 경치를 볼 여유가 없다고 逐鹿者不見山(축록자불견산)이라 했다. 오직 한마음을 가지고 한길로만 나아가면 專心致志(전심치지)로 뜻을 이룰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視而不見 聽而不聞/ 시이불견 청이불문)‘ 상태가 된다.

유교의 시조이자 仁(인)을 강조한 孔子(공자)는 학문에서도 스스로 배우는 것을 좋아하며 한 가지 일에 열중하면 침식을 잊을 정도였다. 배우는 것이 즐거워(樂以) 모든 근심을 잊을 수 있다(忘憂)는 성어는 공자에게서 비롯됐다. ‘論語(논어)’의 述而(술이)편에 이 말이 나온 전후의 사정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楚(초)나라의 葉公(섭공)이란 사람이 공자의 제자 子路(자로)에게 스승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잎 葉(엽)은 사람 성이나 지명일 때는 ‘섭‘으로 읽고, 섭 지역을 다스리던 대부 沈諸梁(심제량)이 공을 참칭했다고 한다. 겉으로만 용을 좋아했다는 葉公好龍(섭공호룡)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자로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하자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며 스승이 꾸짖는다. ‘그 사람됨이 어떤 일에 열중하면 끼니를 챙겨 밥 먹는 것조차 잊고(其爲人也 發憤忘食/ 기위인야 발분망식), 이를 즐거워하여 근심을 잊고 늙어 가는 것도 모른다(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 낙이망우 부지노지장지).’ 자신의 학문에 대한 태도를 말한 것이어서 겸연쩍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래도 공자가 어떤 일에 열중하면 끼니까지 잊는다는 發憤忘食(발분망식)의 성어와 함께 집중력을 실감하게 하는 일화가 있다. 공자가 齊(제)나라에서 舜(순)임금의 음악인 韶(소)를 듣고선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었다(三月不知肉味/ 삼월부지육미)’고 했다. 좋아하는 음악에 빠져 음률과 내용을 음미하느라 다른 것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떤 일을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낫고 그보다 즐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즐기면서 열중하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자주 사용되는 명언이 있다.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무슨 일이든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일도 하사불성)는 말과 호랑이에 온 정신을 집중해 쏜 화살은 바위까지 뚫었다는 中石沒鏃(중석몰촉)이다. 그런데 정신집중이라도 권장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돈을 움켜쥐기만 하면 다른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攫金者不見人(확금자불견인)이나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과 같이 나쁜 길도 열리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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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50
두견척촉 杜鵑躑躅- 진달래와 철쭉을 함께 이르는 말

두견척촉 (杜鵑躑躅)- 진달래와 철쭉을 함께 이르는 말

막을 두(木/3) 두견새 견(鳥/7) 머뭇거릴 척(足/15) 머뭇거릴 촉(足/13)

어려운 글자로 된 이 성어는 진달래와 철쭉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봄을 대표하여 곳곳에 축제도 벌이는 이들 꽃은 자주 일컫는 말로는 서로가 딴판이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꽃이라 하여 참꽃이라 하지만, 철쭉은 개꽃이라 부른다.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고 염소나 양도 피한다고 한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란 구절의 시 ‘진달래꽃’은 金素月(김소월)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李元壽(이원수)의 ‘고향의 봄’에도 등장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趙演鉉(조연현)은 이렇게 노래했다.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

진달래꽃을 杜鵑花(두견화)라고도 부른다. 여기에는 애달픈 이야기가 따른다. 秦(진)나라에 멸망한 고대 蜀(촉)나라의 望帝(망제)의 혼이 두견새가 되었다고 前漢(전한)말기의 揚雄(양웅)이 지은 ‘蜀王本紀(촉왕본기)’와 東晋(동진)의 常璩(상거, 璩는 옥고리 거)라는 사람이 지은 ‘華陽國志(화양국지)’에 나온다고 한다. 망제는 나라를 빼앗긴 뒤 밤마다 ‘不如歸(불여귀, 돌아가고 싶다)’라고 피가 나도록 울다 죽어 두견새가 되었다.

접동새, 子規(자규)로 불리는 두견새는 그래서 歸蜀道(귀촉도), 蜀魄(촉백), 망제의 이름을 따 杜宇(두우), 杜魄(두백)이라 하기도 한다. 망제의 피가 떨어진 곳에 피어난 꽃이 진달래꽃이다. 진달래꽃을 넣어 빚은 술이 杜鵑酒(두견주)이고 진달래 꽃잎을 따 찹쌀가루를 섞어 지진 花煎(화전)은 예전 행락객의 최고의 운치였다.

5월에 잎과 함께 가지 끝에 연한 분홍색의 꽃이 피는 철쭉꽃은 먹지는 못해도 꽃이 너무나 아름다워 그 앞에서 머뭇머뭇하게 한다고 해서 躑躅花(척촉화)가 됐다고 한다. 실제 뜻으로 결단을 못하고 우물쭈물한다는 뜻으로 많이 고전에서 사용됐다. 조선 명종 때의 문신 裵龍吉(배용길, 1556~1609)의 철쭉을 읊은 시가 있다.

‘철쭉이 못 가에서 자태를 뽐내나, 외로운 꽃떨기 힘없이 모두 기울었네(躑躅臨池欲自誇 孤䕺無力摠低斜/ 척촉림지욕자과 고총무력총저사), 봄날이 지나가니 꽃도 따라 시드는데, 이제야 술잔 잡고 꽃구경을 하려네(春光已老花隨老 始酌叵羅欲賞花/ 춘광이로화수로 시작파라욕상화).’ 䕺은 떨기 총, 叵는 어려울 파. ‘琴易堂集(금역당집)‘에 실려 있다.

봄에 흔한 꽃에 이처럼 여러 의미가 있는 것은 의외다. 아름다움에 취해, 흥에 겨워 꽃을 지나치기 전에 간단한 뜻을 새기면 더 의의가 있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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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51
유재시거唯才是擧 - 오직 재능 있는 인재를 천거하여 뽑다.

유재시거(唯才是擧) - 오직 재능 있는 인재를 천거하여 뽑다.

오직 유(口/8) 재주 재(手/0) 옳을 시(日/5) 들 거(手/14)

크거나 작거나 어떤 조직을 운영할 때 가장 중시해야 할 일이 인재등용이다. 유능하고 리더십이 강한 지도자라도 혼자서는 이루지 못하니 도와줄 인재를 찾는다. 어떤 사람을 구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니 그만큼 중요하다고 人事萬事(인사만사)라 했다.

大公無私(대공무사)하게 인품이 훌륭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찾는 任人唯賢(임인유현)이 바람직하지만 실제는 어렵다. 가까운 사람 임용하는 任人唯親(임인유친)이 많고, 소문만으로 아니면 겉모습만 보는 以言取人(이언취인)이나 以貌取人(이모취인)이 많아 亡事(망사)가 되는 일이 잦다. 오로지 재능 있는 사람(唯才)을 천거하면 등용한다(是擧)는 원칙은 曹操(조조)에게서 나왔다.

중국 晉(진)나라의 陳壽(진수)가 편찬한 정사 ‘三國志(삼국지)’의 魏書(위서)에서 유래했다. 강대국 魏(위)의 실력자 조조가 赤壁(적벽)의 싸움에서 蜀吳(촉오)의 연합군에 패하고 절박한 심정에서 求賢令(구현령)을 발표했다. 조조는 간웅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라를 경영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는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으니 현인을 급히 구해야 할 때라며 재능만 있으면 개인의 배경이나 과거의 전력을 문제 삼지 않고 등용하겠다고 공포했다. 姜太公(강태공)같은 위인이 숨어 있을 수 있고, 管仲(관중)같은 청렴과는 거리가 멀어도 발탁돼 桓公(환공)을 패자로 올렸다며 이어진다.

‘또한 형수를 범하고 금을 받아도 재능을 알아본 무지를 못 만난 자가 어찌 없겠는가(又得無有盜嫂受金而 未遇無知者乎/ 우득무유도수수금이 미우무지자호)? 그대들이 나를 돕고자 한다면 흠결이 있어도 재능만 보고 천거하라(二三子其佐我明揚仄陋 唯才是擧/ 이삼자기좌아명양측루 유재시거).’ 二三子(이삼자)는 그대들, 仄陋(측루)는 흠결이 있는 사람. 劉邦(유방)을 도와 漢(한)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 陳平(진평)은 도덕적으로 흠결이 많은 사람이었다.

項羽(항우)를 섬기다 왔고 형수와 사통했으며 뇌물을 받고 장군을 배치했다. 천거한 魏無知(위무지)란 사람은 유방이 왜 이런 사람을 추천했는지 나무라자 행실이 아니고 능력만 봤다고 했다. 실제 진평은 漢高祖(한고조) 사후 呂后(여후)들의 농단을 막고 한나라를 굳게 지켰다.

실제 조조는 인재를 발탁하여 조정을 장악하고 아들 曹丕(조비)가 위나라를 세우는데 기반을 닦았다. 그런데 그가 예를 든 유방의 진평 중용은 천하가 난리통이라 흠결 투성이도 덮이고 뒷날의 성과가 드러났다고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의 인재 등용은 어지러운 시대도 아니니 정부 등 기관에 깨끗한 사람들로 채워질까. 능력은 고사하고 도덕성을 넘어 범죄자까지 발탁되고 버젓이 청문회를 통과하는 공직자들을 너무나 자주 본다. 정권이 바뀌면 오로지 내편만을 낙하산으로 곳곳에 배치하여 이전의 비난을 무색하게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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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52
다반사茶飯事 -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 일상의 보통 있는 예사로운 일

다반사(茶飯事) -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 일상의 보통 있는 예사로운 일

차 다(艹/6) 밥 반(食/4) 일 사(亅/7)

일상에 흔히 자주 있는 일을 ‘다반사‘라 하는 것은 모두들 안다. 한자를 잘 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주 있으니 ’많을 多(다)‘로 쓸 것이라 짐작한다. 하지만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茶飯事)에서 나와 ’차 茶(다)‘를 쓴다니 의외로 여긴다. 밥은 몰라도 차 마시는 일이 일상사라니 그럴만하다.

명절 때 가족이 모여 茶禮(차례)를 지냈고, 찻잎 따기에서 달여 마시기까지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덕을 쌓는 행위를 茶道(다도)라 해도 일상과는 거리가 있다. 이 말이 흔히 있는 일상의 일을 가리키게 된 것은 불교와 관계가 깊다고 한다. 達磨(달마)의 동진과 함께 차 문화도 건너 와 중국 총림에선 차를 우려 마시는 것이 일상이었다는 것이다.

차를 심신을 닦는 수행의 하나로 보며 禪茶一如(선다일여)란 말도 나왔는데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따른다. 唐(당)나라의 선승 趙州(조주)는 유명한 喫茶去(끽다거)란 말로 차를 선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선사다. 그가 남긴 ‘趙州錄(조주록)’은 520여 가지의 일화를 일상적이고 평범한 언어로 기록했다. 이 책의 459則(칙)에 나오는 이야기다.

차를 즐겨 마시는 조주선사가 어느 때 그를 찾은 두 스님에게 여기 온 적이 있는지 물었다. 없다고 대답하자 조주가 말한다. ‘차나 한 잔 드시오(喫茶去/ 끽다거).’ 얼마 뒤 또 한 사람이 왔다. 몇 번째인가 물으니 와 본 적이 있다 했다. 역시 ‘차 한 잔 드시게.’

옆에서 차 시중을 들던 시봉 스님이 처음 온 사람이나 여러 번 온 사람이나 차 한 잔 권하는 것이 무슨 까닭인지 여쭈었다. 그랬더니 ‘너도 차 한 잔 마셔라’라고 한다. 차 마시라는 말이 실제 마시라는 말이 아니고 일상 속의 마음을 바라보라는 의미 깊은 화두 公案(공안)의 하나라는 것이란다.

끽다거는 진리를 탐구하는 參究(참구)의 방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차 마시는 일이 친숙한 일상사임을 알려준다. 宋(송)나라의 선승으로 碧巖錄(벽암록)을 완성했다는 克勤(극근)도 차에 관한 茶禪一味(다선일미)라는 말을 남겼다. 덕이 있는 사람이 마시기에 가장 적당한 것이 차라며 수행과 결부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서도 일찍부터 불가에서 다도가 수행의 일부로 일상화 됐다. 조선 후기의 艸衣(초의)선사는 禪(선) 수행을 차와 일치시켜 차 문화를 부흥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여 茶聖(다성)으로 추앙받는다. ‘동쪽나라의 차를 칭송한다’는 뜻의 東茶頌(동다송)은 한국의 茶經(다경)으로 불린다고 한다.

曹溪宗(조계종) 원로스님이었던 東日(동일)대종사가 2005년 입적 때 제자들에 남긴 悟道頌(오도송) 끝부분이 더욱 의미 깊다. ‘시작한 적도 그친 적도 없는 차 마시고 밥 뜨는 일이로다(無始無終茶飯事/ 무시무종다반사).’ 오늘의 사람들은 너무나 바쁘게 생활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다반사의 뜻을 음미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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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53
살이 찌는 과일과 살이 빠지는 과일

살이 찌는 과일과 살이 빠지는 과일

★살이 찌는 과일★

* 포도 ᅳ 작은 송이 한 개에 140kcal로 과일 중에서도 칼로리가 높다. 특히 거봉은 일반 포도 칼로리의 세 배.

* 멜론 ᅳ 작은 것 한 개가 300kcal, 얇게 썬 한 조각 이 38kcal. 달콤한 과즙에 당분이 많이 함유되어 특히 밤에 먹 는 것은 금물.

* 바나나 ᅳ 당뇨 환자들이 혈당수치를 높이기 위해 애용할 정도로 GI가 높다. 칼로리 역시 한 개에 100kcal.

* 수박 ᅳ ‘설탕 수박’이라는 말이 사실. 그만큼 당도가 높다. 흡수가 빨라서 많이 먹어도 금방 허기때문에 식사 대용으로는 좋지 않다. 큰 것 한 조각은 50kcal.

* 참외 ᅳ 반쪽에 35kcal 정도로, 칼로리는 높지 않지만 GI가 높다. 씨 부분은 먹지 말 것.

* 귤 ᅳ 중간 크기 한 개에 62kcal로 오이 큰 것 세 개에 해당한다. GI도 높아 쉽게 살이 찌는 대표주자.

★살이 빠지는 과일★

* 자몽(그레이프 프루츠) ᅳ 아주 큰 것 한 개에 100kcal. 항산화 비타민이 많이 있어 건강에도 좋다.

* 푸른 사과(아오리) ᅳ 중간 크기 한 개에 120kcal. 특히 푸른 사과는 당도가 낮아 다이어트에 좋다. 아침에 먹는 사과는 위액 분비를 촉진해 소화를 돕고, 밤에 먹으면 위액을 독한 산성으로 만들어 속을 쓰리게 한다.

* 키위 ᅳ 키위 작은 것 30kcal. GI도 낮아서 살찔 걱정 없고, 비타민과 섬유질이 풍부해 변비에도 좋다.

* 감 ᅳ 칼륨이 많이 함유되어 특히 하체 비만에 좋다. 중간 크기 한 개에 100kcal.

* 토마토 ᅳ 토마토 30개가 400kcal밖에 되지 않는다.

* 배 ᅳ 배불리 먹어도 부담 없는 과일. 한 조각에 25kcal로 크기에 비해 칼로리가 적다. 섬유질이 풍부해서 장이 나쁠 때 배즙을 먹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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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55
보약이 되는 차

보약이 되는 차

1. 기분 전환에 효과적인 과일 허브차

과일 허브차는 기분 전환 효과가 탁월하며 비타민이 다량 함유되어 환절기 감기 예방과 피로 해소, 스트레스 회복에 도움이 된다. 말린 과일과 허브를 이용할 경우 과일 맛이 우러나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뜨거운 물에 8~10분 정도 충분히 우리고, 찬물에 우릴 때는 냉장고에 하루 정도 넣어두었다가 마신다. 생과일과 생허브를 이용할 때는 찬물에 적당량을 우려 바로 마셔도 무방하다. 단. 좀 더 깊은 맛과 향을 얻으려면 뜨거운 물로 우린 다음 얼음이나 찬물을 섞어 마시는 것이 좋다.

2. 여성을 위한 재스민차

재스민차는 여자들을 위한 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스민은 모유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어 산모들에게 좋으며, 기분이 다운되고 편두통이 있거나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인, 수험생, 주부들의 머리를 맑게 해준다. 또한 몸속의 기름기를 걸러내는 효과가 있어 기름진 음식을 섭취했을 때 마시면 좋다. 물은 체온보다 약간 낮은 20~25°C 정도가 적당하므로 냉장고보다는 실온에 두고 하루에 7~8잔 마시도록 한다.

3. 항암 효과 탁월한 보이차

보이차는 꾸준히 마시면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 것은 물론 암과 고혈압을 예방하고, 폴리페놀과 카테킨성분이 노화를 억제하며, 성질이 따뜻하고 순해 위를 튼튼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특히 숙변 제거 효과가 탁월해 변비로 고생하는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차로 손꼽힌다. 보리차처럼 주전자에 2lm정도의 물을 끓이다가 불을 끄고 5~6g의 보이차를 넣어 10분 정도 우려 마신다. 보이차는 얼음이나 찬물을 넣지 말고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진 곳에서 식혀 마시도록 한다. \u3000

4. 몸이 가벼워지는 마테차

식욕을 억제하고 지방 분해를 촉진하는 성분이 들어 있어 체중 조절 효과가 탁월하며, 풍부한 사포닌 성분이 체내 면역력을 증진시켜 환절기 질환 예방에 효과적이다. 피로를 덜어주며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도 높여준다. 다만 마테차에는 소량이지만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어 임신부나 어린이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 뜨거운 물 400cc에 4g의 마테를 넣어 4~5분간 우려 마신다. 마테는 너무 뜨거운 물에 우리면 유효 성분을 잃게 되므로 한김 식힌 물(80°C 정도)을 사용하고, 차게 마실 때는 분량보다 적은 양의 뜨거운 물에 우린 뒤 얼음이나 찬물을 더해 물처럼 마신다.

5. 기관지에 좋은 도라지차

폐의 열을 내려주고, 기관지에 좋아 기침이 멎게 하는 것은 물론 목이 붓고 통증이 있을 때도 도움이 되며, 진통 해열 작용도 있다. 가슴이 답답한 것을 풀어주고 농혈을 제거하며 기혈을 보강하는 효과도 있다. 주전자에 1lm물을 붓고 말린 도라지와 감초를 10g씩 함께 넣어 끓인다. 끓기 시작할 때 불을 줄이고 약한 불에서 10분 도 더 끓인 다음 도라지와 감초는 내고 식혀서 물처럼 마시면 된다. 도라지의 쌉싸래한 맛이 싫다면 감초를 조금 더 넣고 끓여도 된다.

6.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메밀차

메밀은 오래전부터 고혈압이나 중풍 예방 식품으로 손꼽혀 왔다.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루틴과 필수 아미노산 및 비타민B 가 풍부하게 함유된 저칼로리 기능성 식품으로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활성산소를 억제해 성인병도 예방해준다. 다만 메밀차는 성질이 차가워 손발이 차거나 평소 몸이 찬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 주전자에 2lm의 물을 끓이다가 불을 끄고 3~4g의 메밀차를 넣어 10분 정도 우려 마신다.

7. 간 해독에 효과적인 오미자차

오미자차는 간 해독 작용을 도와 비뇨기를 활성화시키고 술독을 풀어주며 소화를 촉진해 내장 기능을 강화한다. 심혈관 질환이나 수족 냉증 개선 효과도 탁월하다. 또한 가래와 기침을 개선해주며 밤에 땀을 흘리거나 몸이 허약한 사람들의 체력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 물 2lm에 오미자 10g을 넣고 냉장고나 실온에서 12시간 정도 우려 냉장 보관하면서 수시로 마신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439.html
kolaswqetsrq 11.14 17:56
독소 레벨 체크

독소 레벨 체크

해당 사항에 O표를 해보자.

1. 감기에 잘 걸린다.

2. 요통이 있다.

3. 관절통이 있다.

4. 설사를 자주 한다.

5. 변비에 잘 걸린다.

6. 여드름이나 뾰루지가 많다.

7. 피부가 잘 거칠어진다.

8. 얼굴이나 다리가 잘 붓는다.

9. 냉증이 있다.

10. 식욕이 없다.

11. 만성적인 피로감이 있다.

12. 현기증이 자주 일어난다.

13. 눈이 자주 피곤하다.

14. 어깨가 잘 결린다.

15. 두통이 잦다.

16.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

17.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18. 얼굴에 기미가 늘었다.

19. 몸이 자주 저리다.

20. 체중이 갑자기 늘었다.

21. 기분이 자주 가라앉는다.

22. 집중력이 떨어졌다.

23. 화를 잘 낸다.

24. 늘 초조하다.

25. 주변에 흡연자가 많다.

26. 담배를 피운다.

27. 저녁식사 시간이 항상 늦다.

28. 채소를 싫어한다.

29. 과자를 자주 먹는다.

30. 정화하지 않은 물을 먹는다.

31. 에어컨을 오래 사용한다.

32.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33. 술을 자주 마신다.

34. 외식을 자주한다.

35. 목욕 대신 샤워로 끝낸다.

36. 자외선을 받는 시간이 길다.

37.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38.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39. 식사시간이 불규칙하다.

40. 배변시간이 짧다.

41. 장시간 같은 자세로 일한다.

42. 매일 샴푸로 머리를 감는다.

43. 수분을 별로 섭취하지 않는다.

44. 수면 부족으로 언제나 졸리다.

45. 컴퓨터를 오랜 시간 사용한다.

46. 밥을 빨리 먹거나 많이 먹는다.

47. 어패류를 자주 또는 많이 먹는다.

48. 기름기 많은 음식을 자주 먹는다.

49. 치아를 금속으로 때우거나 씌웠다.

50. 운동 후 좀처럼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진단 결과

O의 개수가 0~5개인사람 - 독소 레벨 1 : 상당히 양호하다. 지금처럼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도 독소가 몸에 쌓이지 않는 생활을 하도록 하자.

O의 개수가 6~15개인사람 - 독소 레벨 2 : 몸속에 독소가 조금씩 쌓여가는 단계다. 겉으로는 건강하게 보이지만 체내 연령은 실제 연령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O의 개수가 16개 이상인 사람 - 독소레벨 3 : 독소가 상당히 많이 쌓여 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생활습관병이 될 수 있으므로 해독주스 하루 1잔으로 독소를 몸 밖으로 내보내는 생활을 시작하자.

독소배출 해독주스 만드는법

1. 양배추, 당근, 브로콜리, 토마토, 사과, 바나나를 준비한다.

2. 양배추, 당근, 브로콜리, 토마토를 적당하게 잘라서 15분 동안 삶아 준다.

3. 10분동안 삶은 채소들을 식히고, 믹서기에 넣는다. (삶을 때 나온 육수까지)

4. 바나나, 사과, 요쿠르트를 넣고 같이 갈아 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122.html
kolaswqetsrq 11.14 17:57
【개별꽃】

【개별꽃】

들별꽃이리고도 하며, 꽃자루에 털이 있으면 개별꽃 / 꽃자루에 털이 없으면 큰개별꽃 / 꽃잎의 끝 부분이 조금 잘려 나간 것처럼 생겼으면 참개별꽃 / 줄기 끝에 꽃이 여러 개 달리면 다화개별꽃 이렇게 알고 계시면 될 것 같음.

▷ 학명 : Pseudostellaria heterophylla

▷ 분류 : 석죽과

▷ 분포지역 : 한국·일본·중국

▷ 서식장소 : 산지의 나무 밑

▷ 특징 : 4-5월(봄)에 흰색 꽃이 피며, 어린 줄기와 잎을 식용하며 한방에서 위장약으로 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390.html
kolaswqetsrq 11.14 17:58
병을 낫게 해주는 차

병을 낫게 해주는 차

1. 항암에 좋은 차 : 감초차,마름차,율무차.옥수수차, 산수유차,영지차,표고차,오갈피차,쑥차

2. 피로회복에 좋은차 : 만삼차,더덕차,박하차,검정콩차,녹차, 매실차,오미자차,인삼차,두충차

3. 기관지염에 좋은차 : 도라지차,모과차,민들레차,비파차, 살구차,감초차,더덕차,잔대차,진달래차, 질경이차,뽕잎차,박하차

4. 간(간장)에 좋은차 : 들국화,구기자,두충,들깨,모과,뽕잎, 산딸기,산수유,새삼,오갈피

5. 진통에 좋은차 : 계피차,들국화차,치자차,칡차,홍화차,으름차, 율무차,두충차,대추차,당귀차

6. 고혈압에 좋은차 : 감잎차,검정콩차,냉이차,당귀차,다시마차, 더덕차,들국화차,삼지구엽차,솔차 쑥차,연차,

7. 콜레스테롤 저하 : 더덕차,해바라기

8. 비염에 좋은차 : 은행차,산수유차,산딸기차

9. 향균작용 : 으름덩쿨차,음양각차,은행차,쑥차, 인동넝쿨차,매실차,치자차,민들레차

10. 가래에 좋은차 : 도라지차,더덕차,진달래차,오미자차, 치자차,감초차,녹차,다시마차 귤피차

11. 관절염,관절통에 좋은차 : 다래차,오갈피차,들국화차,복숭아차,삼지구엽차,결명자차,두충차, 으름덩쿨차,유자차,율무차,대추차,다시마차,모과차,검정콩,계피차박하차, 만병초차,마름차,뽕잎차,삽주차,탱주차,생강차, 해당화차

12. 피부미용에 좋은차 : 감잎차,산딸기차,구기자차, 대추차,둥굴래차,매실차

13. 해독에 좋은차 : 감초차,들국화차,민들레차,냉이차,칡차, 다래차,대추차,더덕차,마름차,검정콩차, 인동차,녹차

14. 해열,칭열에 좋은차 : 질경이차,구기자차,냉이차,대추차,도라지차,둥글래차,감국차

15. 협심증에 좋은차 : 칡차

16. 간염에 좋은차 : 감초,민들레,오미자,인동,질경이,결명자,회화

17. 천식에 좋은차 : 감초차,도라지차,들깨차,살구차,율무차,은행차,호도차

18. 눈병에 좋은차 : 현미,모과,감잎,당귀,두충,보리,복숭아,결명자,솔잎

19. 지혈에 좋은차 : 냉이차,석류차,연차,인동차,칡차,호도차

20. 치질에 좋은차 : 호도차,계피차,쑥차,탱자차,냉이차,호박차,석류차

21. 항문염증에 좋은차 : 동과차,감잎차

22. 탈항에 좋은차 : 감잎차,단너삼차,만삼차,석류차,탱자차

23. 편도섬염에 좋은차 : 더덕차,도라지차,민들레차,인동넝쿨차,홍화차

24. 폐결핵에 좋은차 : 구기자차,더덕차,매실차,모과차,산수유차,호도차

25.폐렴에 좋은차 : 들국화차,인동넝쿨차,살구차,율뮤차,모과차

26. 항알레르기 : 감초차

27. 항염,소염에 좋은차 : 감초차,들국화차,오갈치차,인동넝쿨차, 치자차,박하차,귤피차,옥수수차 으름덩쿨차

28. 황달에 좋은차 : 질경이차,다래차,삽주차,옥수수차,으름덩쿨차, 결명자차,칡차, 하늘타리차,쑥차,치자차,검정콩차

29. 건망증에좋은차 : 삼지구엽차,식창포차,솔잎차,인삼차

30. 결막염에 좋은차 : 결명자차,민들레차,질경이차,으름덩쿨차,치자차

31. 고기먹고 체한데 : 귤피차,살구차,연차,생강차

32. 콜레라에 좋은차 : 도토리차,귤피차,모과차,박하차, 생강차,삽주차, 들국화차

33. 괴혈병에 좋은차 : 감잎차

34. 구내염(입냄새)에좋은차 : 도라지차,들국화차,홍화차,결명자차

35. 구충에 좋은차 : 도토리차,매실차,살구차.식류차, 호박차,회화

36. 구토에 좋은차 : 계피차,다래차,비파차,삽주차, 생강차,칡차, 귤피차

37. 기가 약한 사람 : 보리차,검정콩차,비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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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7:59
귀한 인연이길

귀한 인연이길

진심어린 맘을 주었다고 해서

작은 정을 주었다고 해서

그의 거짓 없는 맘을 받았다고 해서

그의 깊은 정을 받았다고 해서

내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깊은 사랑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를...

한동안 이유 없이 연락이 없다고 해서

내가 그를 아끼는 만큼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만큼

그가 내게 사랑의 관심을 안준다고 해서

쉽게 잊어버리는 쉽게 포기하는

그런 가볍게 여기는 인연이 아니기를...

이 세상을 살아가다 힘든 일 있어

위안을 받고 싶은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살아가다 기쁜 일 있어

자랑하고 싶은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내게 가장 소중한 친구

내게 가장 미더운 친구

내게 가장 따뜻한 친구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이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지금의 당신과 나의 인연이

그런 인연이기를

-법정 스님 ‘무소유’ 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232.html
kolaswqetsrq 11.14 18:00
■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5편

■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5편

그로부터 3년 뒤인 1465년(세조11년) 6월11일 이순지가 세상을 떠났다. 조선을 거듭나게 한 과학자에 대한 예의였을까. 대신들은 사방지와 이씨의 관계를 2년 동안 한 마디도 거론하지 않았다. 때문에 두 사람은 정답게 부부 같은 생활을 지속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비와 양반가 여성의 애정행각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었다. 1467년(세조13년) 4월5일 조정에서 다시 사방지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다. 한명회를 비롯한 여러 신료들이 두 사람의 추문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며 세조에게 처벌을 권유했던 것이다.

“전에도 국문하지 않았는데 지금 다시 거론하면 법이 가볍다 하지 않겠는가. 그냥 둘이 살게 내버려 두어라.” 세조가 시큰둥하게 반응하자 신숙주와 심회가 나섰다. “사방지는 일찍이 비구니와 간음해서 환속시킨 바도 있습니다. 그 자를 내버려두면 도성 안에 풍속이 더럽혀질까 두렵습니다.”

그들의 공세에 지친 세조는 입시하고 있던 형조 판서 서거정에게 물었다.

“이 사실을 경도 아는가?”

“물론입니다. 무릇 하늘에 달려 있는 도리를 음양이라 하고 사람에게 달려 있는 도리는 남자와 여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한데 이 사람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니 죽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일찍이 명나라 학자들로부터 ‘해동(海東)의 기재’라는 찬탄을 받은 바 있는 서거정의 단호한 판결에 승복한 세조는 결국 사방지를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사람이 아니니 뭇 노비들과 함께 어울릴 자격조차 없다는 것으로 판단을 내렸다. 이씨의 아버지 이순지가 세상을 떠난 마당에 그들을 지켜줄 보호막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왕은 이씨의 사돈 정인지나 사방지의 주인 안맹담의 집안과는 상관없는, 사방지 개인의 질병으로 간주하고 처리해 버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에 대한 처벌은 한 마디도 논의되지 않았다. 그녀를 치죄하면 다시금 골치 아픈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어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튿날인 4월 6일 사방지는 체포되어 곤장을 맞은 뒤 도성에서 쫓겨나 신창현(新昌縣)의 관노가 되었다.

1473년(성종 4년) 11월 8일 성종이 김유악(이씨의 아들)을 경상도 도사로 임명하려 하자 대사헌 서거정이 가문의 추문을 이유로 반대하기도 했다. 연산군에 이르러서는 아예 부마를 선택함에 있어 김유악의 후손은 제외되었다. 양성인 노비 사방지와 반가의 여인 이씨의 지독한 사랑은 후손들에게도 그 여파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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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01
■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4편

■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4편

세조가 엉뚱하게 임무를 충실히 행한 사헌부 관리들을 처벌한 것은 조정에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틀 뒤인 4월 29일 의금부에서 임금의 월권을 지적하면서 사방지 사건을 법대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료들의 추궁에도 세조는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좀 찜찜했던지 그날 저녁 태도를 바꾸어 사방지에 대한 국문을 명했다. 그러면서 도승지 홍응에게 형식적인 조치만 취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것은 국가 원로인 이순지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사헌부 관리들이 계속 항의했다.

“전하께서 이 일을 묵과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부디 현명한 조치를 취하십시오.”

“정말 불쾌하구나. 그대조차 내 마음을 모르는가. 어찌하여 공멸의 길을 걷고자 하는가. 정 그렇다면 소원대로 해주겠다.”

마침내 세조는 5월2일 의금부에 명하여 사헌부 관리들을 국문하게 한 다음 이순지를 파직시켜 버렸다. 하지만 곧 이성을 되찾은 듯 열흘 뒤 그를 복직시켰고, 또 열흘이 지난 22일에 하옥되어 있던 사헌부 관리들을 모두 석방시켰다. 세조는 이순지를 불러 “그대의 딸과 관련된 사건이니 사방지의 처분은 알아서 하도록 하라.” 라고 명했다. 졸지에 임금으로부터 사방지의 처벌을 위임받은 이순지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방지를 엄히 다스리자니 딸의 부정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가볍게 처결하자니 세상의 이목이 두려웠다. 하는 수 없이 그는 형식적으로 사방지에게 곤장 십여 대를 친 다음 서울 근교에 사는 외거노비의 집으로 쫓아내 버렸다. 이같이 형벌이 가벼웠던 것은 과부가 된 딸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다는 아버지의 속 깊은 자애가 작용한 듯하다.

이순지는 그 정도로 사건을 무마하려 했지만 문제는 당사자인 딸의 행보였다. 이미 오랫동안 사방지를 지아비로 섬겨온 이씨는 온천에 목욕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를 찾아갔고, 몇 달 뒤에는 다시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아들 김유악이 사방지를 멀리하라고 울면서 간청했지만 이씨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족들의 반대와 세간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사방지를 끼고 돌았다. 늙은 아버지 이순지도 결국 그녀의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조정 대신들이 연회석상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안주꺼리로 사방지를 들먹이면 그는 얼굴을 붉히며 역정을 냈다.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없지 않은가. 사방지는 틀림없는 여자야."

-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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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03
■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3편

■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3편

이런 막강한 배경을 지닌 여인 이씨는 기이한 양성인 사방지와 여주인과 침모의 관계로 철저히 위장한 채 10여 년 동안 행복한 부부로 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경계심이 흐트러졌는지 세간에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이씨와 사방지의 행각은 결국 포도청에까지 알려졌다. 반가의 미망인이 여종과 다정하게 지낸다는 것은 과거 문종의 아내 휘빈 김씨의 경우처럼 동성애의 혐의가 다분했다.

그때부터 두 사람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던 포교는 이씨 부인이 판중추원사 이순지의 딸인 데다가 하동부원군 정인지의 사돈마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놀라서 사건을 감찰기관인 사헌부에 넘겨버렸다. 오늘날의 감사원에 해당하는 사헌부는 관원의 기강을 감찰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서는 특별히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와 같은 유교적 도덕사회에서 사방지의 정체와 행동이 허용될 턱이 없었다.

사헌부 감찰은 은밀히 사방지의 전력을 탐문한 끝에 그와 간통했던 비구니 중비를 잡아들여 사방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물었다. 중비의 대답은 “그는 분명 남자입니다.”이었다. 수사 초기에는 동성애를 의심했지만 중비의 증언에 따라 이제는 간통 사건이 되었다. 감찰은 즉시 사방지를 잡아들였지만, 겉모습이 완벽한 여인이라 함부로 손을 대지도 못했다. 그래서 여의(女醫) 반덕에게 검의(檢擬)를 하게 했더니, 사방지는 겉모습은 분명 여자이지만 몸은 남자생식기가 달려 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남녀 성별이 불확실한 부마의 노비와 공신의 딸이자 사돈마님이 얽힌 전대미문의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 고심하던 사헌부 장령 신송주는 결국 세조에게 사건의 전말을 보고했다. 1462년(세조8년) 4월27일의 일이었다. 보고를 받은 세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곁에 있던 부마 정현조에게 조사를 명했다. “듣자 하니 괴이한 일이구나. 그 집은 그대와 관계가 있으니 승지들과 함께 사헌부로 가서 직접 살펴보도록 하라.”

부마 정현조는 세조의 큰딸 의숙공주의 남편이었는데, 자칫하면 사돈마님을 욕보이는 일이라 몹시 곤혹스러웠다. 하지만 지엄한 어명이라, 승지들을 대동하고 사헌부로 달려간 정현조는 사방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여인의 모습을 한 그는 겉보기에 대단한 미인이었다. 그러나 이미 남자임이 밝혀진 이상, 사방지의 하의를 벗기고 국부를 확인해 보니 과연 음경과 음낭이 분명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정현조의 보고에 따라 세조는 사건의 내막을 파악했지만 더 이상 이 사건을 확대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사헌부의 수사 담당관인 장령 신송주를 다그쳤다.

“황당한 사람이 여식의 집을 출입하는데 이순지는 가장으로서 금하지 못하였으니 실로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너희들이 간통 현장을 잡은 것도 아닌데 재상가의 일을 경솔하게 의논하고, 또 이런 괴이한 일을 품의하지도 않고 멋대로 조사했으니 참으로 고약하다.” 라고 하며, 신송주를 비롯하여 수사에 동참했던 사헌부 관리들을 파직시켜버렸다. 모른 체 눈감아 주어도 될 일을 수면 위로 드러내 왕실과 재상가의 분란을 조성했다는 일종의 괘씸죄였다.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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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04
■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1편

■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1편

「조선왕조실록」은 정치사뿐만 아니라 문화와 사회의 변천사를 살피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왕실 뿐 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생활도 알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에는 많은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가 실려 있지만, 당시 사관들이 기록하기에도 난감한 사건들이 많았다. 어우동(於于同)이나 유감동 같은 희대의 스캔들이나 여자들끼리의 동성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세조 때 있었던 선비 김구석(金九錫)의 아내 이씨와 노비 사방지(舍方知)의 간통사건은 요즘 시대에 일어났다 해도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양반 댁 마님과 노비의 간통사건이 발각되면 재판권을 갖고 있는 수령이 두 사람을 법에 따라 처벌하고, 여인은 자녀안(恣女案)에 올리게 된다. 고려 시대부터 시작된 자녀안은 행실이 음란하고 방탕한 사대부 가문의 여자를 기록해 국가에서 그 신분을 낮추거나 자손들의 관직 등용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장부인데, 여기에 등록이 되면 당사자는 물론 가문까지도 사회적으로 매장되기 때문에 가족들에 의한 명예살인도 종종 일어났다.

그런데 이씨와 사방지의 경우는 적용할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사건 관련자들의 신분도 규정하기가 애매해서 임금과 조정 중신들이 골머리를 앓았다. 이씨는 공신의 자손으로 명문 사대부가에 시집 장가보낸 자식이 둘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애정행각을 당당하게 과시한 여걸이었고, 노비인 사방지는 남녀 구별이 모호한 양성인(兩性人)이었기 때문이다.

사방지(舍方知)는 세종의 부마인 안맹담 집안의 사노비(私奴婢)였다. 안맹담은 세종의 둘째딸 정의공주와 혼인하여 장인인 세종의 사랑을 받았지만, 술을 너무 좋아한 탓에 1462년(세조8년) 술병으로 죽었다. 그의 아내 정의공주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총명해서 아버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고, 여러 대군들이 풀지 못한 사투리 문제를 해결하여 큰 상을 받았던 바 있다. 세조는 왕자 시절부터 막내여동생인 그녀와 함께 불경을 언해(諺解:한글로 풀이하다)하는 등 매우 각별한 사이였다.

이처럼 막강한 가문의 사노비로 태어난 사방지는 기이하게도 음양인(陰陽人)이었다. 음양인은 해부학적으로 자웅동체(雌雄同體)로, 태어날 때부터 여자와 남자의 성기를 동시에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통상 ‘남녀추니’ 또는 ‘어지자지’라고 하거나 고상한 표현으로 ‘고녀(睾女)’ 또는 ‘반음양(半陰陽)’이라 부른다. 사방지는 이런 반음양 중에서도 유전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외부생식기는 남성의 형태를 갖춘 특이한 존재였다. 요즘의 트랜스젠더와는 또 다른 부류라고 할 수 있겠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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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06
■ 임금님의 이름

■ 임금님의 이름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부터 왕이나 군(서자), 대군(적자)의 이름은 모두 외자로 써왔고, 그 한 글자를 고를 때도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글자를 고르고 골라서 이름으로 썼다. 그래야만 백성들과 이름이 겹치는 일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글자 이름을 가진 임금들 중 태종 이방원은 고려 때 태어난 사람으로 이름을 지을 때는 왕이 될 사람이 아니었다. 그 외 철종은 왕족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살고 있어 왕이 될 가능성이 애초에 없었고, 고종은 흥선군 이하응의 로비로 왕이 된 경우이기 때문에 탄생 당시 이름을 지을 때 굳이 외자로 지을 까닭이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임금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굳이 두 글자 이름을 가진 사람은 단종이 유일하다. 본명은 이홍위로 이름이 두 글자이다.

조선시대 임금들 중 이름이 두 글자인 사람은 태종과 단종뿐이며, 다른 왕들은 원래부터 외자였거나 왕이 된 후 개명했다. 예를 들자면 태조 이성계는 ‘이단’으로, 정종 이방과는 ‘이경’으로, 철종 이원범은 ‘이변’, 고종 이재황은 ‘이희’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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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은 이름에 흔한 한자인 꽃다울 방(芳)과 멀 원(遠)을 썼음에도 이름을 고치려는 마음이 없었고, 백성들이 자신의 이름을 피휘(避諱:피하다)하는지의 여부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영조의 경우에는 이름이 이금(李昑)으로, 실생활에 엄청나게 쓰일 게 분명한 밝을 금(昑)자가 들어갔기 때문에 자신의 본명을 백성들에게 절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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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은 태어날 때 이름과 족보에 올리는 이름이 다른데, 단종의 경우 태어날 때 이름을 왕이 된 뒤에도 바꾸지 않았을 뿐이다. 즉위 초기에 이름을 바꾸어야 했는데 아마도 상황이 불안정하여 미처 바꾸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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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07
■ 유감동兪甘同

■ 유감동(兪甘同)

세종(世宗)때 남자 40여 명과 간통한 죄로 처벌 받은 여자로, 어우동·이구지와 함께 큰 물의를 일으킨 조선의 음부(淫婦)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생몰(生沒:출생과 죽음)년도는 미상(未詳)이다. 유감동은 김여달이라는 사람에게 강간을 당하게 되었다. 요즘으로 치면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인 셈이다. 당시 조선사회에서 정절을 잃은 사대부 여인은 남편에게 버림받고 친정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것이 당연했고,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하곤 했다. 하지만, 유감동은 여느 조선의 여인들과는 다르게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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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최중기가 무안 군수로 나갔을 때 같이 갔다가 병을 핑계로 혼자 먼저 한양으로 돌아와 방종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남편 최중기는 그녀의 행실을 문제 삼아 이혼하게 된다. 이혼 후 유감동은 스스로 기녀라 하며, 자신을 강간한 김여달과도 계속 관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여러 남자들과 관계를 맺었다. 이것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음탕한 여자로 낙인찍혀 사헌부에 고발당한 유감동이 털어놓은 불륜 상대는 김여달(金如達), 이승(李升), 황치신(黃致身), 유강(柳江), 전수생(田穗生), 이돈(李敦) 등 40여명으로 당대의 세도가들이었다. 일설에는 어쩌면 두세 배에 이르는 1백 명에 달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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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직접 의금부에 와서 친국(親鞫)을 하였는데, 전직 영의정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이름이 줄줄이 언급되자, 세종은 ‘더 이상 언급 말라’ 는 명을 내리기까지 했다. 유감동은 기녀라 자처(自處)했지만 공식 신분은 양반이었다. 간통으로 풍속을 문란하게 한 유감동과 그녀의 간부(姦夫)들에 대한 처벌은 쉽지 않았다. 조선의 법률에 따르면 양반 부녀자와 간통한 남자는 극형으로 다스렸으나, 유감동과 관계를 맺은 사람 가운데는 공신의 아들들까지 끼어 있어 형량을 결정하기가 매우 곤란했다.

조정에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남성중심 사회인 당시 조선의 조정은 유감동의 음탕함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결론 짓고, 40여 명 가운데 20명을 처벌했다. 대부분 자자형(刺字刑:먹물로 죄명을 문신으로 새기는 형벌) 및 곤장, 태형, 좌천, 파면 등 유감동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다만 최초에 유감동을 강간·폭행·위협·공갈한 김여달에 대해서는 추후에 극형 또는 중형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헌부는 유감동에 대해서 그 죄가 중한 만큼 교수형에 처할 것을 주장했지만, 결국 유감동은 ‘남편을 배반하고 도망하여 개가한 자’에 해당하는 벌을 받았다. 유감동은 곤장을 맞고 노비(奴婢)로 변방에 보내졌다가 1428년(세종11년) 석방되었다. 그 이후 그녀의 생애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녀가 지은 시와 작품들은 음부(淫婦)의 작품이라 하여 모두 인멸(湮滅)되어 전하지 않고 있다. 아버지 유귀수와 그의 일족들도 끌려와 곤장을 맞았고, 아버지 유귀수는 파직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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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08
■ 보쌈과 습첩 2편

■ 보쌈과 습첩 2편

이와 반대로 여성이 소극적이나마 주체가 되어 재혼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이를 습첩(拾妾)이라 했다. 습첩이란 남편과 사별을 했거나 소박을 맞고 시댁에 머무를 수 없어서 친정에 가 있어야 했던 여성이 더 이상 친정에도 있을 수 없게 된 경우, 새벽녘에 성황당이나 마을 어귀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자신의 저고리 옷섶을 세모꼴로 찢은 ‘나비’를 내보이며 보쌈해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여자는 그 길을 처음 지나가는 남자를 무조건 따라가야 하고, 남자에게는 그 여자를 무조건 책임질 의무가 있었다. 그 남자의 나이나 신분, 결혼여부도 상관없고 여자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가 누구이든 처음 만나는 남자를 따라가 그와 운명을 같이 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나선 남자가 가정이 있는 경우에는 정실대우는 받지 못하고 첩이 되는 것이다.

가난한 홀애비나 노총각들의 장가가기 위한 수단으로도 이용된 이 습첩은 남자가 일부러 새벽에 성황당 앞에 나가서 서 있는 여자를 데려와서 결혼을 하기도 했다. 간혹 귀향하는 고관대작의 자제나 암행어사, 급히 이동하는 관료를 만나는 행운을 잡아 운명을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남성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조선시대 여인의 삶을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이처럼 과부보쌈이나 과부들의 남성보쌈은 불경이부(不更二夫)라는 유교적 질서가 자리 잡으면서, 남편과 사별하였다고 해도 재혼하지 말고 수절할 것을 강요당한 결과 생겨난 풍습이다. 과부의 재혼을 금지한 제도는 대체로 고려 말에 등장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더욱 강력하게 시행되어,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민간에까지 깊이 뿌리내린 것으로 보인다.

고려 말부터는 자녀안(恣女案)이라 하여 양반의 여자로서 부정한 행위를 하거나 세 번 이상 개가한 여성의 소행을 기록하여 그 자손의 관직등용을 제약하였다. 조선시대 성종 때에는 ≪경국대전≫에 재가하는 부인의 자손은 과거에 응시하지 못한다는 조문을 만들어 과부의 재혼을 공식적으로 금지하였다. 이러한 제도는 1895년 갑오개혁으로 여성의 재혼이 허용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정조관념 및 과부의 수절을 강조한 사회문화적 풍토 속에서 음성적으로 행해졌다는 점에서 부작용도 있었다. 간혹 수절을 결심한 열녀(烈女)가 이러한 일을 당하면 자살을 하거나 상대방을 죽이는 살인의 비극도 일어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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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09
【각시붓꽃】

【각시붓꽃】

붓꽃 중 작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꽃자루의 길이가 5-7cm로 긴 것, 산지의 풀밭에 자람. 붓꽃이란 꽃이 피기 직전의 모양이 붓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유사종으로

-난쟁이붓꽃 : 각시붓꽃 보다 꽃줄기가 1-2cm로 짧은 것, 강원도 이북에 자람.

-솔붓꽃 : 난장이붓꽃 보다 포잎의 끝이 뾰족함(풀을 칠하는 솔을 만들어 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산지의 건조한 곳에 자람.

▷ 학명 : Iris rossii Baker

▷ 분류 : 붓꽃과

▷ 분포지역 : 한국, 일본 남부, 중국 북동부 및 북부 등지

▷ 서식장소 : 산지 풀밭

▷ 특징 :

4∼5월(봄)에 지름 4cm 정도의 보라색에 가까운 자주색 꽃이 피는데, 꽃자루의 길이는 5∼15cm로 4∼5개의 포가 있고, 맨 위의 포에 1개의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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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10
■ 보쌈과 습첩 1편

■ 보쌈과 습첩 1편

조선 초기까지는 재혼이 금지되지 않아서 재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전 남편이 재혼 한 후 가능). 성종 이후에는 재가가 금지되어, 조선시대는 원칙적으로 여성의 재혼은 불가했다. 이런 사회에서 과부와 홀아비문제는 법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음성적인 방법을 열어두었는데 그것이 보쌈과 습첩이다.

불과 100여 년 전까지도 간혹 행해졌던 보쌈은 재혼의 한 방법이었다. 남자들이 과부를 보에 싸서 데려온다 하여 붙여진 ‘보쌈’은 일종의 약탈혼(掠奪婚)으로, 과부보쌈 혹은 과부 업어가기라고 하였다. 말 그대로 과부를 납치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생판 모르는 과부를 납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통 젊어서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나 딸을 추문(醜聞)없이 재가시키는 방법으로, 먼저 적당한 사람을 알아본 뒤 직접 부탁을 하는 경우와 혼자 된 여자 쪽에서 버선을 빨랫줄에 걸어놓아 보쌈의사를 넌지시 알려주는 경우가 있었다.

보쌈을 해가는 쪽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사전에 날짜를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날은 일부러 대문 혹은 방문 고리를 잠그지 않고 알면서도 보쌈을 당해 주는 것이다. 이렇듯 과부 본인이나 과부의 부모들과 은밀한 사전 약속 후에 보쌈해가는 방식도 있었지만, 합의 없이 보쌈하여 약탈해가는 방식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는 은밀히 과부와 정을 통해오다가 혼인을 하기 위하여 보쌈의 형식을 빌어 주변의 이목을 속이면서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후자의 경우와 같이 강제로 보쌈을 할 때는 사전에 과부의 거처를 탐지해두었다가 밤중에 침입하여 보쌈한 뒤 억지로 정을 통하여 배우자로 삼았다. 이럴 때 가끔 가족들과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하였지만 법적인 문제로 비화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반대로 여자 집에서 외간남자를 보에 싸서 잡아다가 강제로 동침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남편을 둘 이상 섬겨야 할 팔자를 타고 난 딸을 위하여 조선시대 양반집에서 행하던 것으로, 양반집에서 비밀리에 외간남자또는 가노(家奴)를 납치해서 처녀와 동침시킨 후 함구령을 내린 채 풀어주거나 죽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처녀를 위한 보쌈은 불경이부(不更二夫)라는 과부 재가금지제도 때문에 생겨난 궁여지책과 같은 것이었다. 보쌈한 총각과 동침하면 그 처녀는 과부가 된 것과 같은 결과가 되어 과부의 액운을 면하게 되었다고 믿었으며, 다른 곳으로 안심하고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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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12
■ 유향소留鄕所와 경재소京在所

■ 유향소(留鄕所)와 경재소(京在所)

조선은 중앙집권체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중앙은 물론 지방 정치에 있어서도 제도적으로 서로 보좌하면서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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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각 도는 부·목·군·현으로 나누었다. 도에는 관찰사, 부에는 부사, 목에는 목사, 군에는 군수, 현에는 현령(현감) 등 수령(守令)을 파견하여 지방을 다스리게 하였다. 이들 수령을 파견할 때는 ‘상피제(相避制)’ 라 하여 자신의 출신지에는 파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물론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지방 세력화되는 것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새로 파견된 수령은 그 지역 사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으므로, 수령을 보좌하기 위해 유향소라는 지방자치 기구가 생겨났다. 이것은 그 지역 양반들의 모임으로 수령을 보좌하는 역할도 하지만,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수령이나 향리(육방)들을 감찰하며 고을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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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조선 초 중앙집권적 체제에 반발하면서 자신들이 주축이 되는 향촌질서를 도모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자율조직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유향소 조직을 통해 향론(鄕論)을 만들고, 자기들의 세력기반을 유지하여 향촌의 자율권을 확보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한편으로, 유향소를 통제하기 위한 경재소(京在所)란 기구도 생겨났다. 요즘으로 치면 ‘경상남도청 서울사무소’ 라고나 할까. 경재소는 중앙과 지방의 일을 원활하게 하고 지방 민원을 왕실에 직접 고하고 지원을 받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경재소로 유향소를 중심으로 한 지방 양반들이 토착 세력화되는 것을 견제하고, 지방 수령이 지나치게 권한을 벗어나는 일을 하면 중앙에 보고하기도 했다.

유향소가 경재소에 의해 그 권한을 통제받고 장악되자, 유향소의 양반들은 자기 보호를 위해서 점차 관권에 타협·순종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수령의 불법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고, 수령과 결탁하여 백성들을 수탈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향소의 임원을 수령이 임명하게 됨으로써 조선 초기에 수령을 견제하던 유향소가 조선 후기에는 단지 수령의 보좌역으로 격하되게 되었다.

성종 대 이후에는 경재소마저 원래 설치 의도와는 달리 유향소와 결탁하여 공권력을 침해하는 등 작폐를 자행하게 된다. 그 후 경재소는 왜란을 거치면서 불법부패로 백해무익함이 거론되다가 선조 36년 정월에 혁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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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13
■ 대代를 이은 후궁, 숙창원비淑昌院妃

■ 대(代)를 이은 후궁, 숙창원비(淑昌院妃)

숙창원비 김씨(생몰년 미상(生沒年 未詳)는 고려 충렬왕(忠烈王)의 제3비(妃)로 김취려(金就礪)장군의 손녀이며 김양감(金良鑑)의 딸이다. 뛰어난 미인으로 일찌기 최문(崔文)에게 시집을 갔으나 젊어서 과부가 되었다. 세자로 있던 충선이 궁녀 무비가 충렬왕의 총애를 독차지하면서 자신의 어머니도 죽었고 각종 폐단이 생겼다고 판단하여 무비와 그 측근 세력을 죽였는데, 세자가 부왕(父王)인 충렬왕의 마음을 위안하기 위하여 김씨를 맞아들여 숙창원비로 봉하였다.

그녀가 과부라는 사실은 당시 사회 풍습 및 과부 출신의 왕비들이 꽤 있었던 점으로 볼 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듯하다. 숙창원비가 입궁한 후 그녀의 오빠 김문연은 30세의 나이에 곧바로 정2품 첨의시랑찬성사에 올랐다. 충렬왕이 죽은 뒤에는 오빠 김문연의 집에 자주 찾아온 충선왕과 관계를 맺고 얼마 후 숙비(淑妃)에 봉해졌다. 숙창원비가 숙비로 진봉(進封)된 후에는 오빠 김문연은 원나라 관직까지 얻었다.

한편, 당시 감찰규정 우탁은 왕이 부왕(父王)의 후궁과 관계를 가진 것을 두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며, 도끼를 메고 궁으로 들어가 상소를 올리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몽고에는 부왕이 사망할 경우 모후를 제외한 부왕의 후궁들을 그 아들이 취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충선왕은 이러한 풍습을 따라 그녀를 취했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그녀가 충선왕의 후궁이 된 후 왕은 그녀에게 혹하여 정사를 중단하고 마침내 팔관회까지 중지시켰다. 또 충선왕은 원나라 황후에게 청하여 그녀에게 몽고 고유의 머리 장식인 고고를 선물하게 하였다. 그녀는 고고를 쓰고 원나라 사신을 맞이하여 연회를 열고 원의 사신으로부터 선물을 받고 축하를 받았다. 또 그녀는 어머니상을 당했을 때에도 연회를 열었는데 이 연회에는 재상들이 참여하였고, 그녀가 은자원에서 법회를 열 때에도 재상들이 참여하였다. 또 평소 그녀가 입고 다니던 의복 등은 공주처럼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녀는 충선왕의 제6비 순비 허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순비도 숙창원비와 마찬가지로 원나라에서 고고를 받았는데, 이때 고고를 받은 것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리자 숙창원비와 순비는 각자 자신의 옷과 미모를 뽐내기 위해 연회장에서 5번이나 옷을 갈아입으며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후 행적에 대한 기록이나 생몰년(生沒年),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없다. 자녀는 없었고, 시호는 숙창원비(淑昌院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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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14
집안냄새 없애는 천연 재료 냄새 제거법

집안냄새 없애는 천연 재료 냄새 제거법

1. 향초 : 왁스로 구성된 향초가 타면서 탈취 기능을 한다. 냄새를 빨아들이면서, 은은한 향기를 더해 화장실의 꿉꿉한 냄새를 잡는데 그만이다

2. 원두커피 찌꺼기 : 탈취 효과 있는 커피 찌꺼기를 스타킹이나 망사 주머니에 넣어 집안 곳곳에 두면 쉽게 빠지지 않는 냄새도 없앨 수 있다. 악취나는 신발에도 하룻밤 정도 넣어두면 냄새가 빠진다

3. 신문지 : 신문지를 뭉쳐 신발 속에 넣어두면 냄새를 모두 흡수한다

4. 쌀뜨물 :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밀폐용기에 베인 냄새를 깔끔하게 제거해준다. 밀폐용기에 쌀뜨물을 붓고 30~40분 뒀다가 수세미로 문지르면 냄새 및 얼룩도 제거된다. 김치 국물이 묻어 변색된 행주도 쌀뜨물에 담가두자

5. 식초 : 배수구에서 냄새날 때 식초를 얼음과 함께 넣고, 찬물을 틀어두면 효과가 있다. 식초물을 냉동실에 얼리면 냉동실의 퀴퀴한 냄새까지 없애준다. 혹은 음식물 쓰레기통에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려도 냄새가 줄어든다

6. 레몬 or 오렌지 껍질 : 도마나 칼 등 납작한 주방용품에 레몬을 바르고, 한 시간 정도 흡수시킨 후 햇볕에 말리면 냄새와 얼룩이 줄어든다

7. 베이킹소다 : 산과 염기 두 가지 특성을 다 갖고 있어, 많은 냄새를 흡수한다. 싱크대나 욕조, 샤워기 곳곳에 뿌리면, 퀴퀴한 냄새가 제거된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붙박이장에도 베이킹소다를 따로 담아 넣어두면 냄새가 빠진다

8. 숯 : 숯은 부패한 균의 발생을 억제해 냄새를 없애주는 탈취 효과가 있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음식의 악취 냄새를 없애주고, 밥이 탄 솥에 숯을 넣어둬도 냄새가 빠진다

9. 과일 껍질 : 집안 가득 생선 냄새가 빠지지 않을때, 껍질을 넣고 끓이면 과일향이 냄새 정화 및 방향제 역할을 한다. 먹다 남은 과일을 거실에 둬도 향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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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15
스트레스 받지 않는 비결

스트레스 받지 않는 비결

스트레스는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받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옳다고 할 게

있나요?

사실은

생각이 서로 다른

것이지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른 게

아니에요.

서로

다를 뿐이에요.

그러니

다름을 인정하면 돼요.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열을 받는 거에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 또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구나’

이렇게

자기를 한 번 돌아보세요.

-법륜 스님-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043.html
kolaswqetsrq 11.14 18:16
힘들고 지칠 때 위로가 되는 글

힘들고 지칠 때 위로가 되는 글

1. 나는 항상 많은 걱정과 고민을 하면서 살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어나지도 않을 일까지 끌어다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느라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 같다.

2. 모든 이가 널 좋아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너를 좋아할 수는 없다. 너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이 누군가는 너를 이유없이 싫어할 수 있다. 그렇다고해서 네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상황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항상 너는 너로써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

3.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잘하는 사람을 가만히 살펴보면 본인이 불행해서 그런 경우가 많다. 자라온 성장배경이나 지금 처한 상황이 불행하니 나오는 말도 아프고 가시 돋쳐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참 불쌍하다” 생각하고 넘어가자.

4. 삶이 지치고 힘들수록 과거를 돌아봐라. 지금 이렇게 못견디게 힘겨운 시간도 세월에 못이겨 과거가 되어있다.

5. 죽을만큼 좋아했던 사람과 모른체 지나가게 되는 날이 오고, 한 때는 비밀을 공유하던 가까운 친구가 전화 한 통 하지않을만큼 멀어지는 날이 오고, 또 한때는 죽이고 싶을만큼 미웠던 사람과 웃으며 볼 수 있듯이.. 시간이 지나면 이것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변해버린 사람을 탓하지 않고, 떠나버린 사람을 붙잡지 말고, 그냥 그렇게 봄날이 가고 여름이 오듯.

6.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줄 수는 없어요. 누군가 나를 싫어하면 그냥 싫어 하든지 말든지 그냥 내버려 두고 살아요. 싫어하는 것은 엄연히 말하면

그 사람의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에요.

7. 3년 전 걱정한 거 기억나? 1년 전 걱정은? 6개월 전 그 걱정은? 지금 그 걱정도 곧, 그렇게 될 거야.

-Facebook 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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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17
알아두면 좋은 생활의 지혜

알아두면 좋은 생활의 지혜

○ 화분에 식물이 잘 자라지 않을 때

마늘 몇 개를 으깨어 물에 희석해 뿌려 주세요. 화초가 무럭무럭 잘 자라요!

○ 쓰레기봉투 냄새가 심하면 고민이 되시죠?

이럴 땐 물에 적신 신문지를 쓰레기 봉투 위에 얹어 두세요. 신문지가 냄새를 쏙 빨아들인답니다.

○ 달걀을 삶을 때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리면 껍질이 잘 벗겨집니다.

○ 열쇠 구멍이 뻑뻑할 때

연필심을 열쇠에 골고루 묻힌 뒤,열쇠 구멍에 넣고 돌리세요. 여러 번 반복하면 매끄럽게 잘 열립니다.

○ 프라이팬에 음식이 눌어 잘 안 닦일 때

팬을 불에 달구었다가 소금을 뿌리고 신문지로 닦아 보세요. 냄새도 없어지고 프라이팬도 깨끗해집니다.

○ 색깔 있는 옷을 빨 때

식초나 소금을 약간 넣고 세탁 하세요. 원색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식초물에 옷이 완전히 잠기도록 넣고~ 30분 후 정도 지난 다음 세탁기에 돌리세요.

○ 흰 옷을 빨래할 때

가루세제와 함께 주방세제를 조금 넣어 세탁 하세요. 흰옷이 더욱 하얗게 됩니다. 세탁소 사장님이 알려 주신 비결입니다.

○ 유리창에 페인트가 묻는 것을 방지하려면

유리창에 비눗물을 미리 묻히세요. 그러면,페인트가 묻더라도 물걸레로 쉽게 닦입니다.

○ 냉장고 내부의 냄새가 심하면

소주 한 병을 뚜껑을 따 냉장고에 넣어 두세요. 아주 간단한 방법이지만, 그 효과는 놀랄 정도랍니다.

○ 유리나 거울의 기름때는 감자, 냄비의 탄 바닥은 소주, 생선 냄새가 밴 팬은 식초로 닦으면 좋아요.

○ 마늘을 빻아 보관할 때

마늘위에 설탕을 살짝 뿌려두면 마늘 색이 변하지 않아요.

○ 흰 옷을 삶을 때

식초를 몇 방울 넣고 삶으면 더욱 하얗게 됩니다. 살균 작용도 있어 일석이조예요.

○ 방충망에 낀 먼지는

마른 스펀지로 문질러 주면 쉽게 청소할 수 있어요.

○ 와이셔츠의 소매와 깃의 누런 때는

확실하게 지우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누렇게 변한 곳에 치약을 묻히고 햇빛에1시간 정도 둔 후 세탁기에 돌리면 감쪽같이 하얗게 변한답니다.

○ 매직펜을 화이트 보드 잘 안 지워지는 얼룩

모기약을 뿌린 후티슈로 닦아내면 몰라보게 깨끗해져요.

○ 냉장고를 청소할 때

식초를 물에 타서 수건에 묻혀 닦아 보세요. 냄새도 없어지고 소독 효과도 있어요.

○ 안경에 김이 서려 곤란할 때는

렌즈에 비누칠을 한 다음 닦아 주세요. 샴푸 몇 방울떨어뜨려 닦아 줘도 효과가 있어요.

○ 볼펜을 오래 사용하지 않다가 쓰려면

잉크가 잘 안 나올 때는 볼펜의 끝 부분을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곧바로 찬물에 담가 쓰면 잘 나옵니다.

○ 술 마신 다음 날엔

단감을 드세요. 단감의 타닌 성분이 교감신경의 흥분을 억제시켜 주고, 머리를 맑게 해 준다고 합니다.

○ 손에 음식 냄새가 배었다면

식초물에 손을 씻으세요. 혹은 설탕으로 문질러 줘도 냄새가 말끔히 없어집니다.

○ 요리하면서 기름이 튄다면

소금을 한 줌 넣어보세요. 너무 짜질 수 있으니 간 조절을 잘 하시고요.

○ 불면증 때문에 고민이라면

머리맡에 양파를 놓고 주무세요. 양파 특유의 냄새가 신경을 안정시켜 주어 편히 잠들 수 있어요.

○ 피 묻은 옷은

소금물에 담갔다가 세탁하세요. 얼룩이 감쪽같이 없어집니다.

○ 프라이팬의 눌은 때

굵은 소금을 뿌려서 닦아 보세요.

○ 구두를 닦을 때 윤이 잘 안 나면

구두약을 바른 후 가스레인지 불에 닿지 않도록 살짝 쬐어 주세요.

○ 생화를 오래 꽂아 두고 싶다면

꽃병 속에 표백제 한 두 방울 떨어 뜨려 보세요. 살균 효과가 있어서 꽃에 세균이 달라붙지 않아 오랫동안 싱싱하답니다.

○ 초고추장을 만들 때 너무 되직하다 싶으면

물 대신 사과를 갈아넣거나 사이다를 조금 넣으세요.

○ 생선 튀김을 할 때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고 싶다면

생선을 미리 녹차 우린 물에 담갔다가>요리 하세요. 비린내가 싹 가십니다.

○ 보리차를 끓인 후에 식힐 때

재빨리 식혀야 고유의 보리 향이 유지됩니다. 또 소금을 아주 조금 넣어주면 향이 더욱 진해져요.

○ 된장이 오래되어 맛이 없어졌다면

멸치 머리와 고추씨를 바싹 말려 빻아 가루로 만들어 섞어주세요. 맛이 좋아진답니다.

○ 소금을 많이 넣어 음식 맛이 짜졌다면

식초 몇 방울을 떨어 뜨려보세요. 짠맛이 덜해집니다. 반대로 음식 맛이 너무 시다면 소금을 조금 넣어 맛을 중화시킬 수 있어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812.html
kolaswqetsrq 11.14 18:18
무슨 꽃입니까? 천리향 비슷한 향기도 살짝 나네요.

무슨 꽃입니까? 천리향 비슷한 향기도 살짝 나네요.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526.html
kolaswqetsrq 11.14 18:20
현명한 생활 태도 40훈

현명한 생활 태도 40훈

01. 웃음으로 시작하고 마감하라. 여기가 천국이다.

02. 기쁨으로 수용하라. 기뻐하면 기뻐할 일만 생겨난다.

03. 힘든 것에는 뜻이 있다. 감사함으로 수용하라.

04. 믿음의 열도를 열배로 늘여라. 백배의 수확이 보장된다.

05. 모두를 위하는 사람이 되라. 나를 위하는 지름길이다.

06. 진리가 아니면 따르지 말라. 잘못 들면 평생 후회한다.

07. 인생 드라마는 스스로 연출한다. 연기를 보여 줘라.

08. 건강해야 건강한 운을 만든다. 과욕을 버려라.

09. 잠에서 깨어나라. 그래야 지혜의 눈을 크게 뜰 수 있다.

10.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늘이 좋아하게 하라.

11.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 어리석은 이는 계속 모로 간다.

12. 머리를 써라. 머리는 하늘이 나에게 준 보물창고다.

13. 실패를 뒤집어 보라. 그 속에 성공이 들어있다.

14. 아낌없이 베풀어라. 샘은 퍼낼수록 물이 솟아난다.

15. 자신의 눈을 믿지 말라. 남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라.

16. 최대 기쁨으로 하루를 맞으라. 살아있는 날은 축일이다.

17. 먼저 부모를 공경하라. 자손대대로 번영한다.

18. 나날이 향상하라. 향상하지 않으면 퇴보한다.

19. 남의 말을 좋게 하라. 없던 복도 굴러 온다.

20. 음식만 골라 먹지 말라. 말도 골라서 하라.

21. 복을 많이 지어라. 내가 지은 것만이 내 것이 된다.

22. 복을 달라 안달치 말라. 복을 담을 그릇을 먼저 만들어라.

23. 가슴 펴고 당당하게 살아가라. 병든 닭처럼 비실대지 말라.

24. 어떤 일에도 불평하지 말라. 불평은 불운을 끌고 다닌다.

25. 항상감사하라. 감사할 때 천사의 손길이 나에게 다가온다.

26. 남이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라. 외면하는 사람은 되지 말라.

27. 좋은 취미를 만들어라. 취미로 풍요로운 삶이 만들어진다.

28. 쓰러짐을 부끄러워 말라. 일어서지 않음을 부끄러워하라.

29. 신념에 불타는 친구를 사귀어라. 좋은 친구는 우량주식이다.

30. 부정적인 친구는 만나지 말라. 그는 친구가 아니라 원수다.

31. 아는 길도 물어 가라. 내가 안다고 아는 것이 아니다.

32. 안 풀리는 것은 일단 멈춤 신호다. 멈춘 다음 원인을 찾아라.

33. 남의 잘못은 한 눈을 감아라. 잘함을 볼 땐 두 눈 크게 떠라.

34. 투덜대지 말라. 투덜대봐야 보기만 싫을 뿐이다.

35.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라. 기회는 하늘의 별만큼 많다.

36. 끊임없이 기도하라.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37. 자신을 칭찬하라. 자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38. 가정은 행복을 만드는 성전이다. 성전을 빛나게 하라.

39. 활기찬 노래를 불러라. 활기찬 노래는 성공 행진곡이다.

40. 어깨동무하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라. 희망이 함께 자란다.

-SNS커뮤니티 글 편집-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40.html
kolaswqetsrq 11.14 18:21
수명을 늘이는 행동과 줄이는 행동

수명을 늘이는 행동과 줄이는 행동

○ 낙천적인 사고 : 8년

낙천적인 사람은 면역 체계가 튼튼해 질병에 잘 걸리지 않고, 걸려도 쉽게 낫는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낙천적인 사고방식은 심장병에 좋아, 협심증이나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을 줄인다고 한다.

○ 자기 비하 : -5년

자기 비하는 삶을 좀먹는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건강에도 신경을 쓰게 마련이며, 자주 행복을 느낀다. 요양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해 보았더니, 몸 건강 상태가 비슷하더라도, 자존감이 높고 우울한 감정을 적게 느끼는 사람이 더 오래 살았다고 한다.

○ 결혼 : 7년

남자와 여자 모두, 결혼 생활이 원만하면 건강하고 부유하며 행복하게 오래 산다. 연구에 따르면,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의 3분의 2가, 겉보기에는 더 건강해 보였지만 수명은 기혼자보다 짧았다고 한다.

○ 이혼 : -3년

이혼한 사람은 정신과 진료를 받는 횟수가 많다. 원만하게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보다 독신 또는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이 병원을 찾는 빈도도 높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너무 불행하다면, 오히려 이혼하는것이 건강에 좋다.

○ 일과 인생의 균형 : 3년

바쁜 일정과 계속되는 도전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며 잘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일에 치여 모든 에너지를 빼앗기고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우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며, 어떻게 해야 균형을 잡을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 스트레스 : -2년

스트레스는 죽음의 천을 짜는 실이나 다름없다. 심하게 다치거나 인간관계로 큰 상처를 입거나 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수명이 1년씩 줄어들 수 있다.

○ 운동 : 2년

운동은 우리 몸 거의 모든 장기에 마법과도 같은 놀라운 일을 한다. 운동 효과는 주로 몸에 나타나지만, 정신에도 놀라운 효과를 보인다.

○ 너무 심한 운동 : -2년

운동 속도가 너무 빠르고 격하면, 우리 근육은 필요한 만큼 산소를 충분히 얻을 여유가 없어지고, 끝내는 무산소 대사를 하게 된다. 그러면 근육 속에 젖산이 쌓여, 다리가 욱신거리고 칼로리가 엄청나게 소비된다.

○ 장수한 부모 : 10년

장수가 유전된다는 사실은 몇백년 전부터 이미 잘 알려졌었다.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장수했다면, 당신 또한 남들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크다. 이는 유전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 외동 아이 : -5년

몇몇 연구에 따르면, 우리 조부모 세대 사람들 가운데 형제가 많은 사람이, 형제가 적거나 없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았다고 한다. 외동 아이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수명이 5년쯤 짧다.

○ 작은 키 : 5년

1970년대 미국에서 육상 선수와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자료를 모아 분석해 보았더니 키가 작고 몸무게가 작게 나가는 사람이 장수하는 경향을 보였다.

○ 깡마른 몸매 : -1년

너무 마른 체형도 건강에 좋지 않다. 덴마크 코펜하겐 예방의학원에 따르면, 적당히 살집이 있는 편이 좋다고 한다. 그들은 연구를 통해, 엉덩이가 너무 작은 여성보다 엉덩이가 조금 큰 여성이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채식 : 5년

지중해 연안 사람들은 장수를 누리며, 심장 질환에 걸릴 확률이 낮다.그리고 이 지역 주민은 과일, 채소, 견과류를 엄청나게 많이 먹고, 정제된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 채식주의자는 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보다 요절할 확률이 20퍼센트나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 패스트푸드 : -4년

패스트푸드에는 방부제, 정제당, 수소화 기름이나 트랜스 지방 같은, 영양학자가 보면 놀라 소리를 지를 만큼 끔찍한 물질들이 들어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366.html
kolaswqetsrq 11.14 18:22
매육매장買肉埋墻 - 사 온 고기를 담 밑에 묻다, 남을 더 생각하다.

매육매장(買肉埋墻) - 사 온 고기를 담 밑에 묻다, 남을 더 생각하다.

살 매(見/5) 고기 육(肉/0) 묻을 매(土/7) 담 장(土/13)

푸줏간에서 사 온 고기(買肉)를 담장 밑에 묻는다(埋墻)면 모두 어리석은 행동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사정을 알고 보면 모두 감사할 일이다. ‘검은 고기 맛 좋다 한다’는 속담이 있다. 고기의 겉모양만 보고 맛이 있는지 독이 들었는지 내용을 속단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이 말대로 사 온 고기를 잘 살펴보고 해로운 것이 들어 있는 것을 알고선 사 왔던 것뿐만 아니라 가게의 고기를 몽땅 사서 담장에 묻었다면 결코 어리석다고 못한다. 더구나 집이 아주 가난하여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理埋毒肉(이매독육)이라고도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선 宣祖(선조) 때에 정승을 지낸 洪瑞鳳(홍서봉, 1572~1645)의 모친이다. 호가 鶴谷(학곡)인 홍서봉은 仁祖反正(인조반정)에 참가한 후로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했고, 丙子胡亂(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崔鳴吉(최명길)과 함께 화의를 주장한 사람이다. 홍서봉이 어릴 때 집이 매우 가난하여 ‘거친 밥과 나물국도 자주 거를 때가 많았다(疏食菜羹 每多空缺/ 소사채갱 매다공결).

먹을 食(식)은 이 때는 ’밥 사’의 뜻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루는 여종을 보내 고기를 사오게 했다. 고기의 빛깔을 살펴보니 독이 들어있는 것 같아 정육점에 얼마나 더 있더냐고 물었다. 몇 덩이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머리 장식을 팔아 돈을 마련했다.

그리고선 ‘여종을 시켜 고기를 모두 사오게 하고선 담장 밑에 묻었다(使婢盡買其肉 而埋于墻下/ 사비진매기육 이매우장하)’. 홍서봉의 이런 행동은 다른 사람들이 그곳서 고기를 사서 먹은 뒤 병이 날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훗날 어머니의 이런 마음씨가 천지신명과 통하여 자손들이 반드시 번창할 것이라고 홍서봉이 말했다. 高麗(고려) 이후의 저명인사를 여러 책에서 골라 그들의 훌륭한 말과 선행을 엮은 ‘海東續小學(해동속소학)’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朴在馨(박재형)의 저작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불량식품을 판 정육점은 당장 고발당하고 상응한 벌을 받을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악덕 상인들이 근절된다. 홍서봉의 어머니는 모든 것이 어려울 때 조그만 고깃점도 어려울 테고 자신도 모르게 실수를 했을지도 모르는 그 주인을 망하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 틀림없다. 자신에게는 손톱 끝만큼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 하고, 없는 일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711.html
kolaswqetsrq 11.14 18:23
장야지음長夜之飮 - 밤낮을 가리지 않는 호화판 주연

장야지음(長夜之飮) - 밤낮을 가리지 않는 호화판 주연

긴 장(長/0) 밤 야(夕/5) 갈 지(丿/3) 마실 음(食/4)

사회생활에서 술이 필요로 하는 만큼 그에 관해 깨우치는 말은 셀 수없이 많다. 적당히 마시면 온갖 시름을 잊고 즐거울 수 있지만 지키기가 쉽지 않아 극단적인 대비가 많다. 술은 범죄의 아비이고, 음주는 일시적 자살이라는 사람은 배척파다.

반면 술이 들어가면 지혜가 나오고, 술이 없는 곳에서는 사랑이 있을 수 없다고 주당들은 강조한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사업상, 사교상 술이 필수라며 술자리를 즐기고 밤늦게까지 술판을 벌인다. 여기에 아리따운 미희와 가무까지 곁들이면 최상의 연회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술자리가 며칠 밤을 이어 계속되는 것이 長夜之飮(장야지음)이고 바로 酒池肉林(주지육림)이 따르니 어감이 좋지 않다.

고대 중국 殷(은)나라의 마지막 왕 紂王(주왕)은 앞서 夏(하)나라 마지막 왕 桀王(걸왕)과 함께 桀紂(걸주)로 칭할 만큼 폭군의 대명사다. 이 주왕이 妲己(달기, 妲은 여자이름 달)라는 미녀에 혹해 무슨 말이든 들어주느라 苛斂誅求(가렴주구)를 일삼았다.

‘史記(사기)’의 殷本紀(은본기)와 元(원)나라의 曾先之(증선지)가 편찬한 ‘十八史略(십팔사략)’ 등 여러 곳에 질탕하게 벌이는 술판을 자세히 기록했다. 鹿臺(녹대)라는 별궁엔 보물로 채우고 沙丘(사구)라 불리는 별궁에는 술을 부어 커다란 연못을 만들었다. 악사들에게 퇴폐적인 음악, 무희들에겐 음란한 춤 北里靡樂(북리미악)을 계속 시켰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매달아 숲처럼 만든 후(以酒爲池 懸肉爲林/ 이주위지 현육위림), 남녀들을 벌거벗게 하여 그 안에서 서로 쫓아다니게 하면서(使男女裸相逐其間/ 사남녀라상축기간),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爲長夜之飲/ 위장야지음).’ 주왕의 이런 음탕한 주연을 간하는 충신들엔 炮烙(포락, 炮는 통째로구울 포)이란 형벌을 내렸으니 周武王(주무왕)에 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기 滑稽(골계) 열전 淳于髡(순우곤, 髡은 머리깎을 곤) 이야기에도 이 말이 등장한다. 齊(제)나라 威王(위왕)이 ‘수수께끼를 좋아하고 음탕하게 놀면서 밤늦게까지 술 마시기를 즐겨(喜隱 好爲淫樂長夜之飮/ 희은 호위음락장야지음)’ 순우곤이 깨우쳤다.

거창하고 호화로운 술자리에 참가한 주당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술에 관대한 우리나라서도 그에 따르는 폐해엔 생각이 달라져 처벌을 높이고 있다. 술이 취한 뒤에 싸움판이 벌어지고, 깨지도 않은 채 차를 몰다가 사고를 내 자기는 죽지 않고 엉뚱한 사람을 횡사시킨다.

타고 가던 차의 기사를 목 조르는 등 행패를 부린다. 술이 사람을 먹은 결과다. 호기롭게 술을 잘 마신다고 鯨飮(경음)이나 酒豪(주호)로 칭찬받다가 어느 새 醉中無天子(취중무천자)나 酒暴(주폭)이 된다. 이후엔 물론 저 세상에 가는 涅槃酒(열반주)도 시간문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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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24
첩섭이어呫囁耳語 - 귀에다 입을 대고 소곤거리며 하는 귓속말

첩섭이어(呫囁耳語) - 귀에다 입을 대고 소곤거리며 하는 귓속말

소곤거릴 첩(口/5) 소곤거릴 섭(口/18) 귀 이(耳/0) 말씀 어(言/7)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도록 두 사람만 귀를 가까이 소곤거리는 귓속말은 좋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귀에 대고 조용히 말한다는 것은 남의 장단점을 함부로 떠벌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하면 바로 조선 초기 黃喜(황희) 정승을 떠올린다. 길가다 소 두 마리로 밭을 가는 농부에게 어느 소가 일을 잘 하는지 묻자 다가와 귀엣말로 했다는 附耳細語(부이세어)가 그것이다.

짐승이라도 못한다는 소리 들으면 기분 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황희가 좋다, 나쁘다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아 好好先生(호호선생)이 됐다. 반면 자신은 따돌리고 앞에서 두 사람이 소곤거리며(呫囁) 귀에다 대고 말을 한다면(耳語) 기분 좋을 수가 없다.

하기 쉬운 귓속말이 이처럼 어려운 성어로 나오는 곳은 ‘史記(사기)’에서다. 魏其武安侯(위기무안후) 열전에서 後漢(후한)의 장군 灌夫(관부)가 속삭이는 상대를 보고 호통 칠 때 사용됐다. 관부는 강직하고 아첨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6대 황제 景帝(경제)의 외척인 竇嬰(두영, 竇는 구멍 두)이 吳楚(오초)의 난을 진압할 때 큰 공을 세우고 이후 부자처럼 가까이 지냈다.

경제의 처족으로 이복이라 미천했던 田蚡(전분, 蚡은 두더지 분)은 처음 두영을 섬기다 7대 武帝(무제)가 즉위한 뒤 권력이 집중됐다. 세력을 잃었다고 두영에 함부로 대하는 것을 관부가 좋게 볼 수가 없었는데 드디어 사달이 벌어졌다.

전분이 권세가의 딸을 맞아 연회를 베풀었을 때 두영의 강권으로 관부도 내키지 않았지만 참석했다. 술을 좋아하는 관부가 안하무인의 전분에게 잔을 올렸을 때 주법에 어긋나게 반만 채우라고 말했다. 관부는 화가 나 씩씩거리다 옆 자리의 친척 조카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폭발했다.

‘오늘 어른의 축배를 권하는데도(今日長者爲壽/ 금일장자위수), 그대는 계집애처럼 소곤대고만 있는가(乃效女兒呫囁耳語/ 내효녀아첨섭이어).’ 술자리에 참가한 고관들은 엉망이 된 분위기에 하나둘씩 떠나버렸다. 魏其侯(위기후)는 두영이, 武安侯(무안후)는 전분이 후일 봉해진 이름이다.

소곤거린다고 엉뚱한데 화를 냈던 관부는 그렇지 않아도 전분의 눈 밖에 나 있었는데 잔치를 망치고 성할 수가 없었다. 관부를 구하려 노력한 두영과 함께 전분이 누명을 씌워 처형시켰다. 관부가 분에 못 이겨 일부러 한 일이긴 해도 사람이 많이 있는 곳에서 귓속말을 하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남의 험담은 물론 안 하는 것이 좋고 없는 자리서는 더욱 피할 일이다. 비밀을 지킨다고 약속한 말일수록 더욱 빨리 퍼진다고 주의시킨 말이 많다. 牆有耳(장유이)는 ‘벽에도 귀가 있다’, 晝語鳥聽 夜語鼠聽(주어조청 야어서청)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대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266.html
kolaswqetsrq 11.14 18:25
흥이항이興伊恒伊 - 누가 흥이야 항이야 하랴,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다.

흥이항이(興伊恒伊) - 누가 흥이야 항이야 하랴,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다.

일 흥(臼/9) 저 이(亻/4) 항상 항(⺖/6) 저 이(亻/4)

음률이 비슷한 이 성어를 보면 먼저 興淸亡淸(흥청망청)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듯하나 거리가 멀다. 흥청망청은 황음에 빠진 조선 燕山君(연산군)이 採紅使(채홍사)를 두고 전국에서 뽑아 올린 미인을 가리켜 흥청이라 했고 그로 인해 망했다고 망청이라 했다. 여기에서 앞을 생각하지 않고 멋대로 즐기거나 돈과 물건을 마구 낭비하는 것을 뜻하게 됐다.

興伊(흥이)와 恒伊(항이)는 형제의 이름으로 누가 흥이야, 항이야 할까 라는 말이다. 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는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사돈집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는 曰梨曰柿(왈리왈시)와 상통한다.

흥이 항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형제가 상이한 뜻으로 이 성어가 유래했다고 전한다. 먼저 조선 후기의 학자 趙在三(조재삼)의 ‘松南雜識(송남잡지)’에 실린 내용을 보자. 天文(천문)에서 동식물까지 33개 부문을 기술한 백과사전인 이 책의 方言(방언) 편에 속담을 한역한 부분이 나온다.

肅宗(숙종)대 조선 후기 驪興(여흥) 閔氏(민씨) 가문에 閔百興(민백흥)과 閔百恒(민백항)이란 형제 문신이 있었다. ‘이들이 나란히 강원감사를 지냈는데 모두 선정을 베풀어 형인 흥이 낫다, 동생인 항이 낫다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론이 분분했다(兄弟相繼爲江原監司 有善政 至今稱 興伊恒伊/ 형제상계위강원감사 유선정 지금칭 흥이항이).’

다른 이야기는 중기의 문신이자 모두 영의정을 지낸 金壽興(김수흥), 金壽恒(김수항) 형제가 등장한다. 이들은 높은 자리에서 국사를 처리하면서 독단이 심했는지 세간의 평판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러자 이들 형제가 ‘우리들이 힘써서 잡은 권세를 행하는데 누가 감히 흥이야 항이야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민씨 흥이 항이 형제와 김씨 흥이 항이 형제가 각각 다른 의미로 쓰이게 된 연유다.

자신이 맡은 바를 묵묵히 잘 처리하는 사람은 남이 뭐라 해도 갈 길을 간다. 자신의 임무도 신통찮게 하는 사람이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은 잘한다. ‘사람마다 저 잘난 맛에 산다’는 말대로 설사 잘못 처리한 일이라도 남이 지적하면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남의 흉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먼저 자기 자신을 먼저 살펴볼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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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26
곡굉지락曲肱之樂 - 팔베개를 베고 자는 검소한 삶의 즐거움

곡굉지락(曲肱之樂) - 팔베개를 베고 자는 검소한 삶의 즐거움

굽을 곡(曰/2) 팔뚝 굉(肉/4) 갈 지(丿/3) 즐길 락(木/11)

가난을 일부러 원하는 사람은 없다. 물만 마시고 또는 헐벗고 살 수는 없으므로 최소한의 衣食住(의식주)는 해결돼야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게 돼도 사람의 소유욕은 끝이 없어 더 가지려는 것이 상정이다. 그런데도 마음으로는 옛날 성현들이 가난 속에서도 富(부)를 탐하지 않고 淸貧(청빈)하게 살며 유유자적한 安貧樂道(안빈낙도)를 최고로 그린다.

대그릇의 밥과 표주박의 물 簞食瓢飮(단사표음, 食은 먹을 식, 밥 사)이나 콩밥과 콩잎 국 豆飯藿羹(두반곽갱, 藿은 콩잎 곽, 羹은 국 갱) 등 어려운 말을 쓴 성어가 그것이다. 팔을 구부려 베개 삼으며(曲肱) 간소하게 사는 즐거움(之樂)이란 이 말은 더 유명하다.

가난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고 자족하라는 가르침은 孔子(공자)의 ‘論語(논어)’ 곳곳에 등장한다. 팔베개의 잠이 나오는 述而(술이)편을 보자. ‘거친 밥을 먹고 물마시며, 팔을 굽혀 베개를 삼더라도(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는 법이다(樂亦在其中矣/ 낙역재기중의).’ 그러면서 덧붙인다.

‘의롭지 않은데도 돈 많고 지위가 높은 것은 나에게는 한낱 뜬구름과 같은 것이다(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타고난 재산이나 높은 벼슬자리를 오래 하지도 못한 공자는 부귀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과 상반되는 의외의 표현도 있다.

역시 술이편에 있다. ‘부를 구해서 얻을 수가 있는 것이라면 채찍 잡는 마부라도 나는 할 것이다(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부이가구야 수집편지사 오역위지).’ 그러나 이 말이 본심이 아님은 뒤따르는 말에 있다. ‘하지만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如不可求 從吾所好/ 여불가구 종오소호).’

불의한 방법으로 얻게 되는 부라면 당연히 거절하겠다는 것인데 里仁(이인)편에 더 단정적인 내용이 나온다. ‘부유함과 귀함은 누구나 원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그것을 누려서는 안 된다(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부여귀 시인지소욕야 불이기도득지 불처야).’ 반대로 누구나 싫어하는 가난과 천함도 억지로가 아닌 정당한 방법으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친다.

옛날의 농경시대에는 모자라는 속에서도 아끼고 자족하는 생활이 가능해 욕심을 자제할 수 있었다. 복잡한 오늘날 부는 더 큰 부를 낳고, 한 번 개천에 빠진 올챙이는 평생을 노력해도 용이 되기 어렵다. 갈수록 빈부의 격차가 커져 가는데도 젊은 층의 일자리는 줄어들기만 한다.

물론 깨끗한 부를 일군 재력가들은 소외계층을 위해 아낌없이 기부하지만 그보다 골고루 잘 살게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먼저다. 최저를 넘어 孟子(맹자)의 말대로 일정한 재산이 있어야 바른 마음을 유지하니 그렇게 돼야 팔베개도 가능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249.html
kolaswqetsrq 11.14 18:28
발치역치拔幟易幟 - 적의 깃발을 뽑고 아군의 기로 바꾸다, 전쟁서 승리하다.

발치역치(拔幟易幟) - 적의 깃발을 뽑고 아군의 기로 바꾸다, 전쟁서 승리하다.

뽑을 발(扌/5) 기 치(巾/12) 바꿀 역(日/4) 기 치(巾/12)

나라를 대표하는 우리나라의 太極旗(태극기)와 같이 旗(기)는 글이나 그림 등으로 특정 단체를 상징한다. 귀족이나 왕궁의 의장기로 발달했어도 가장 필요로 한 곳은 옛날 군대의 軍旗(군기)가 아니었을까. 군의 단결을 도모하고 사기를 북돋아 전진과 후퇴를 지시하는 데는 적격이었다.

柳致環(유치환)의 명시 첫 구절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은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생명에 대한 연민을 노래했다지만 전장에서의 명령에 더 적합한 깃발을 연상해도 무방하다. 같은 기를 합쳐 된 旗幟(기치)는 이전 군기를 가리키다 어떤 목적을 위하여 내세우는 태도나 주장을 나타내게 됐다. 어려운 단어 旟旝(여괴, 旟는 새매그린기 여, 旝는 사명기 괴)도 같은 뜻이다.

기를 뽑아(拔幟) 다른 기로 바꾼다(易幟)는 이 성어는 ‘史記(사기)’에 나온다. 본래 군사용어로 적군의 깃발을 뽑고 아군의 기를 꽂아 승리를 거둔다는 뜻이라 한다. 우리 속담 ‘기 들고 북 치기’는 도저히 가망이 없어 항복한다는 비유인데 그와 반대이다.

漢高祖(한고조) 劉邦(유방) 밑에서 활약한 대장군 韓信(한신)은 뛰어난 전략으로 項羽(항우)와 垓下(해하)의 결전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뒀다. 한신이 2만의 병력으로 10배인 趙(조)나라를 공격할 때였다. 침공 소식을 들은 조나라 왕과 대장군 陳餘(진여)는 20만 대군을 집결시키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淮陰侯(회음후) 열전에 상세한 내용이 실려 있다.

조나라 명장이자 전략가인 李左車(이좌거)가 진여에 한신 군대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앞뒤에서 협공하는 것이 좋다고 건의했다. 유가 출신으로 선비인 진여는 속임수나 떳떳하지 않은 계책을 쓰는 것에 반대했다. 이를 탐지한 한신은 2000명의 깃발을 주고 기병을 적진이 잘 보이는 곳에 숨어 있도록 했다. 그러면서 한신은 주력군이 도망할 때 조나라 군이 성을 비우고 추격할 것이라며 당부한다.

‘그대들은 날쌔게 조나라 빈 진영으로 들어가(若疾入趙壁/ 약질입조벽) 있던 깃발을 뽑고 한나라의 붉은 깃발을 세워라(拔趙幟 立漢赤幟/ 발조치 입한적치).’ 작전은 대성공을 거둬 진여는 참수하고 이좌거는 사로잡아 한신을 돕게 했다.

병력이 열 배가 되면 포위하고 배가 되면 싸운다는 병법만 믿고 소수의 한신 군대를 진용 갖추도록 한 진여는 宋襄之仁(송양지인)을 연상시킨다. 죽느냐 사느냐 싸움터에서 대의명분만 따지다가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됐는데 진여는 목숨까지 잃었다.

명운이 걸려 있을 때는 속임수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兵不厭詐(병불염사)라 했다. 주고받는 협상에서 속임수는 쓰지 않더라도 양보만 하다가는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린다. 오늘날 보이지 않는 전장이라는 외교에선 앞뒤를 잘 재어 이득을 더 얻도록 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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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29
함포고복含哺鼓腹 - 잔뜩 먹고 배를 두드리다, 의식이 풍족한 태평세월

함포고복(含哺鼓腹) - 잔뜩 먹고 배를 두드리다, 의식이 풍족한 태평세월

머금을 함(口/4) 고함지를 포(口/5) 북 고(鼓/0) 배 복(肉/9)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이 없는 세월이 이어지면 太平烟月(태평연월)이다. 모두들 먹고 입고 자는데 부족함이 없어야 함이 첫째다. 이렇게 살도록 위정자들이 잘 이끌던 시절을 나타내는 성어는 많다. 평화스런 거리 康衢煙月(강구연월), 길에 떨어진 남의 물건을 줍지 않는 路不拾遺(노불습유), 밤에 집 문을 열어 놓는 夜不閉戶(야불폐호) 등이다.

이런 세월을 가져오게 한 말이 음식을 잔뜩 먹어(含哺) 배를 두드린다(鼓腹)는 이 성어다. 흔히 속어로 ‘등 따시고 배부른’ 사람들이 많아져 다른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따시고‘는 ’따습다’의 사투리지만 더 와 닿는다.

천하가 태평하여 늙은 농부가 땅을 두드리면서 노래했다는 擊壤歌(격양가)는 중국 고대 전설상의 성군인 堯(요)를 기린 노래다. 격양은 옛날 중국에서 신짝같이 생긴 두 개의 나무 중 하나를 땅 위에 놓고 다른 나무토막을 던져 맞추던 놀이라는데 노래든 놀이든 시름을 잊고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한 임금을 찬양한 것은 마찬가지다.

중국 南宋(남송) 말에서 元(원)나라 초기에 활약한 한족 학자 曾先之(증선지)의 ‘十八史略(십팔사략)’에 내용이 실려 있다. 史記(사기), 漢書(한서)를 비롯한 중국의 정사 18사를 역사와 아울러 한문을 익히기 위하여 조선 초기부터 학동들에게 읽게 했던 책이다.

帝堯篇(제요편)의 부분을 보자. 요임금은 어질고 지혜로운데다 근검하여 백성들은 하늘같이 우러러보았다. 천하를 다스리기 시작한지 50년이 되는 해 요임금이 평복으로 갈아입고 거리로 나가 실제 천하가 태평스러운지 살펴보았다. 한 노인이 무언가를 잔뜩 먹고서 불룩해진 배를 두드리며 노래하고 있었다(有老人 含哺鼓腹 撃壌而歌/ 유노인 함포고복 격양이가).

이 노래가 격양가다. ‘해 뜨면 일하고 해지면 잠자네(日出而作 日入而息/ 일출이작 일입이식), 우물 파 물 마시고 밭 갈아 밥 해먹네(鑿井而飮 耕田而食/ 착정이음 경전이식), 여기에 임금의 힘이 무슨 필요 있으랴(帝力于我何有哉/ 제력우아하유재).’

먹고 입고 자는 생활의 기본이 해결되면 걱정이 없다. 이 기본을 해결하기 위해 위정자들은 애를 쓴다. 하지만 모두에게 골고루 의식이 주어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檀君(단군)이래 가장 잘 살게 됐다는 산업화 이후다. 문제는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다. 온갖 정책을 펼치며 빈곤층을 줄이려 하지만 뜻대로 안 되고 벌어지기만 한다. 잔뜩 먹어 배 터지고, 굶주려 배를 움켜쥐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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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30
호우고슬好竽鼓瑟 - 피리를 좋아하는데 거문고를 타다, 구하는 방법이 다르다.

호우고슬(好竽鼓瑟) - 피리를 좋아하는데 거문고를 타다, 구하는 방법이 다르다.

좋을 호(女/3) 피리 우(竹/3) 북 고(鼓/0) 큰거문고 슬(玉/9)

사람들은 모두 남보다 잘 하는 장점이 있고 그 능력이 인정되기를 원한다. 가만히 있어도 사방에 빛이 나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기에 자신의 능력을 떠벌리거나 윗사람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문제는 정도가 지나쳐 알랑거리는 阿諂(아첨)으로 비치면 모두에게서 욕을 먹는다.

자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큰소리쳐도 금력이나 권세 앞에서는 ‘인간은 아첨하는 동물’이라는 말대로 모르는 새 무력해진다. 윗사람도 마찬가지다. 공정을 내세우고서 자기 취향에 맞는 사람을 발탁한다. 피리를 좋아하면(好竽) 다른 사람이 거문고를 잘 연주해도(鼓瑟) 그 능력을 알아줄 수가 없다.

멋진 비유의 성어는 중국 唐(당)나라의 문장가 韓愈(한유, 768~824)의 ‘答陳商書(답진상서)’란 글에서 유래했다. 字(자)를 써서 韓退之(한퇴지)로 잘 알려진 한유는 어려운 환경서도 재능을 발휘하여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 중에서도 첫손에 꼽힌다. 문체개혁과 불교 배격 등 논란을 달고 다녔던 그가 학식이 뛰어난 陳商(진상)이란 가상인물에게 등용이 안 되는 이유를 찾아 조언한다.

피리를 좋아하는 齊(제)나라 임금에게 거문고의 명인이 찾아가서 벼슬을 구해도 이루지 못한 것을 비유로 들었다. 난해한 문장을 쓰는 진상에게 자기만 최고인 글보다는 세상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로 바꾸도록 권유하는 내용이다.

거문고를 연주하면 귀신도 오르내리게 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이 명인에게 피리를 좋아하는 임금에게는 그 가락이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주위에서 깨우친다. 그러면서 이어진다. ‘문장을 지으면서 언제나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게 짓고 있으니(而爲文必使一世人不好/ 이위문필사일세인불호) 거문고를 가지고 제나라 궁문 앞에 서 있던 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겠습니까(得無與操瑟 立齊門者比歟/ 득무여조슬 입제문자비여).’ 문장은 실로 훌륭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니 벼슬을 구하는 데에는 이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저자세로 기는 행위는 개가 꼬리를 흔드는 搖尾乞憐(요미걸련)이나 상관의 수염을 불어주고 변까지 맛본다는 拂鬚嘗糞(불수상분), 고름과 치질을 핥아준다는 吮癰舐痔(연옹지치, 吮은 빨 연, 癰은 종기 옹) 등 지저분한 비유의 말이 많다.

반대로 인물을 구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면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을 욕할 수는 없다. 피리를 잘 부는 사람이 필요한데 거문고를 세상에서 제일 잘 타는 자신을 뽑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소용되는 곳에 적합한 인물이 가야 하는 適材適所(적재적소)가 그래서 필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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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31
사이불후死而不朽 - 죽어서도 썩지 않고 남는 것

사이불후(死而不朽) - 죽어서도 썩지 않고 남는 것

죽을 사(歹/2) 말이을 이(而/0) 아닐 불(一/3) 썩을 후(木/2)

썩지 않는 것이 不朽(불후)다. 불후의 명작은 옛날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문학 고전이나 예술 작품이다. 그것을 낳은 작가들은 오래 전에 세상을 떴어도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은 빛을 발한다. 不滅(불멸)의 李舜臣(이순신) 장군의 공로는 우리 역사에 영원히 남아 그 불후의 업적을 기린다.

죽어서도 영원히 변치 않고 없어지지 않는 작품이나 업적을 말하는 이 성어는 사용된 역사도 오래돼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서 유래했다. 魯(노)나라의 학자 左丘明(좌구명)이 孔子(공자)의 春秋(춘추)를 해석한 책 중 역사적인 해석과 인물묘사가 뛰어나 문학작품으로도 훌륭하다는 평을 받는다.

이 책의 襄公(양공) 24년 조에는 세상에서 썩지 않는 세 가지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노나라의 대부인 叔孫豹(숙손표)가 晉(진)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그곳 권력자 范宣子(범선자)가 맞으면서 물었다.

‘옛 사람이 한 말에 죽어도 썩지 않는다는 말이 있던데 무엇을 뜻할까요(古人有言曰 死而不朽 何謂也/ 고인유언왈 사이불후 하위야)?’ 언뜻 답을 못하자 범선자는 자기의 조상이 舜(순)임금 때부터 높은 벼슬을 했으니 이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의견을 구했다. 숙손표가 그것은 가문이 대대로 세습되는 世祿(세록)이라며 썩지 않는 것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 바로 三不朽(삼불후)다.

‘가장 뛰어난 것은 덕을 세우는 일이고, 그 바로 뒤는 공을 세우는 일이며, 그 다음으로는 말을 세우는 것입니다(大上有立德 其次有立功 其次有立言/ 대상유립덕 기차유립공 기차유립언). 오래 되어도 없어지지 않는 이것을 썩지 않는다고 말합니다(雖久不廢 此之謂不朽/ 수구불폐 차지위불후).’ 숙손표의 이 말에 집안 자랑을 하려던 범선자가 그만 말문이 막혔다.

여러 곳에서 썩지 않는 것을 기린 글이 많은 중 唐(당)나라의 문장가 韓愈(한유)의 묘명이 자주 인용된다. 진사 시험의 동기생 李元賓(이원빈)이 29세에 요절하자 애통해하며 썼다. ‘사는 동안 깨끗하지 못했다면 누가 오래 살았다고 기릴 것이며(生而不淑 孰謂其壽/ 생이불숙 숙위기수), 죽어서도 썩지 않는 이름 남겼다면 누가 요절했다고 슬퍼할 것이랴(死而不朽 孰謂其夭/ 사이불후 숙위기요).’

본래 좋고 훌륭한 것은 비록 상해도 그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고 ‘썩어도 준치’라는 속담이 생겼다. 준치는 생선 중에 가장 맛있다며 ‘참다운 물고기’라며 眞魚(진어)로도 불리고, 높이 솟아 우뚝한 峻峙(준치)를 연상하기도 해 가치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준치도 아니면서 자기가 제일인양 하고, 불법 부정으로 일군 지위나 부를 자식에게 물려주려 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썩지 않는 세 가지 중 덕이나 공은 없이 세인의 가슴을 후벼 파는 독설만 날린다. 이런 사람도 썩지 않는 것을 남기니 遺臭萬年(유취만년) 계속되는 냄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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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32
각골난망刻骨難忘 - 남의 은혜가 뼈에 새길 만큼 커서 잊히지 않다.

각골난망(刻骨難忘) - 남의 은혜가 뼈에 새길 만큼 커서 잊히지 않다.

새길 각(刂/6) 뼈 골(骨/0) 어려울 난(隹/11) 잊을 망(心/3)

뼈에 새길(刻骨) 정도로 잊을 수 없다(難忘)는 말은 원한을 잊을 수 없다는 뜻도 되겠지만 은혜를 잊지 못한다고 강조할 때 더 많이 쓴다. 증오나 한을 잊지 못할 때는 骨髓(골수)에 사무치다, ‘뼛골에 사무치다’로 약간 달리 표현한다.

남에게 큰 은혜를 입고도 갚을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지 ‘머리 검은 짐승은 남의 공을 모른다’는 속담이 전한다. 또 ‘큰 은혜는 갚을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작은 원한은 반드시 갚으려 한다‘고 菜根譚(채근담)에도 타이른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고사를 인용하면서 곧잘 깨우치는 성어가 많다.

뼈에 새기면서까지 은혜를 잊지 못한다는 이 말이 가장 강조된 뜻이면서도 처음 유래된 곳은 명확하지 않으나 한국성어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에서 여러 문인의 문집이나 實錄(실록)에 등장하고, 흔히 사극에서 임금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신하들이 입에 달고 다닌 말이라 더욱 그렇다.

같은 뜻으로 중국에서는 刻骨銘心(각골명심)이나 鏤骨銘心(누골명심)이란 표현을 쓴다. 은혜를 갚는 고사와 함께 가장 잘 알려진 것이 結草報恩(결초보은)이고 꾀꼬리가 반지를 물어 은혜를 갚는다는 黃雀銜環(황작함환)이란 재미있는 성어도 있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의 장수 魏顆(위과, 顆는 낟알 과)가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秦(진)의 명장 杜回(두회)를 사로잡은 이면에는 풀을 묶어 쓰러지게 한 보은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과는 부친이 죽었을 때 유언을 무릅쓰고 젊은 새어머니를 개가시켜 새 삶을 살게 해준 덕으로 계모의 아버지가 두회를 초원에서 쓰러지게 했다는 것이다.

後漢(후한)의 楊震(양진), 楊秉(양병) 부자는 부정에 흔들리지 않는 四知三惑(사지삼혹)의 주인공이다. 이들이 청렴으로 길이 빛나는 것은 그의 선조 楊寶(양보)가 어릴 때 올빼미의 공격을 받은 꾀꼬리를 구해 치료한 뒤 날려 보낸 덕분이었다. 西王母(서왕모)가 보낸 반지를 선물 받고 후손은 삼공에 오르게 됐던 것이다.

이처럼 은혜를 베풀면 언젠가는 보답이 된다. 착한 일을 많이 행하면 경사가 따른다고 積善餘慶(적선여경)이란 말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구하면 앙분을 하고 짐승은 구하면 은혜를 한다’는 말이 더 와 닿는지 홀로 사는 가구가 많아지는 만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더 크게 증가한다고 한다. 동물을 사랑하더라도 주변의 더 어려운 이웃도 살피면 더욱 좋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027.html
kolaswqetsrq 11.14 18:34
당주조한噇酒糟漢 - 지게미를 먹고 술 마신 듯 행세하다, 다 깨닫지 못한 얼치기

당주조한(噇酒糟漢) - 지게미를 먹고 술 마신 듯 행세하다, 다 깨닫지 못한 얼치기

먹을 당(口/12) 술 주(酉/3) 지게미 조(米/11) 한수 한(氵/11)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얼치기가 일을 망친다. 진짜를 교묘하게 모방하여 행세를 할 때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냥 넘어간다. ‘가짜가 진짜를 뺨친다’는 속담은 실제 재주를 가진 사람보다 더 잘 포장하여 큰소리친다는 뜻이다.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이 아니니 화려한 겉모습만으로 평가하면 낭패 본다.

불교에서 깨우치는 말로 순수한 진리를 깨우치지 못한 사람을 혼내는 성어가 있다. 술을 마신 듯이 행세하지만(噇酒) 실제는 술지게미만 먹은 놈(糟漢)이란 어려운 글자를 썼다. 禪(선)의 진수이고 선 문학의 선구라고도 평가받는 ‘碧巖錄(벽암록)’에 일화가 실려 있다.

심오하고 진지한 선승들의 話頭(화두) 100개를 담아 선가에서 남달리 귀중한 문헌으로 애송되어 왔다는 벽암록은 중국 宋(송)나라의 선승 圜悟克勤(원오극근, 圜은 두를 환, 둥글 원)이 편찬했다. 이 책 제11칙에 黃檗噇酒糟漢(황벽당주조한)이란 제목으로 황벽선사가 무명승을 꾸짖는 데서 이 말이 등장한다.

檗은 황벽나무 벽. 황벽은 希運(희운) 선사를 가리키는데 법을 이어받은 百丈懷海(백장회해) 선사와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禪傑(선걸)로 꼽힌다고 한다. 특히 그의 문하서 위엄 있게 꾸짖는 喝할로 유명한 臨濟義玄(임제의현)이 배출되어 명성을 더한다.

황벽이 唐(당)나라에 많은 선승이 모두 젠체하지만 실제진정한 선을 지도할 선승은 없다고 비판한다. ‘그대들은 모두가 술지게미만 먹고 진짜 술을 마신 듯이 흉내 내는 녀석들이다(汝等諸人 盡是噇酒糟漢/ 여등제인 진시당주조한).’ 진짜 술이 아닌 지게미만 먹는다고 喫酒糟漢(끽주조한)이라고도 하는 이 말은 당시 속어로 ‘척하는 머저리 같은 놈’이란 뜻이란다.

선수행을 하면서 불법의 대의를 철저하게 체득하지도 못하고 어록을 대충 이해한 주제에 진짜 대단한 선승처럼 행세하는 사이비 선승을 매도했다. 이어서 건들건들 수행하며 언제 불법을 닦을 수 있겠느냐며 당나라에 선사가 없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혼을 냈다.

황벽선사는 전국의 여러 총림에서 대중을 지도하는 선승들이 많다는 스님의 항의에 선은 있는데 선사가 없다고 답한다. 불법을 체득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선사의 가르침과 지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본인이 자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깨우쳤다.

뜻이 있어 자신이 깊이 닦으면 그것이 절로 드러나는 법인데 다 깨달은 듯이 중간에서 행세를 하면 들통이 난다. 성급하게 자신을 과시하기 보다는 내실을 더욱 다질 일이다. 진짜 금인 순금은 도금을 할 필요가 없다고 眞金不鍍(진금부도)라 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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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35
묘항현령猫項懸鈴 -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실행하지 못할 공론

묘항현령(猫項懸鈴) -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실행하지 못할 공론

고양이 묘(犭/9) 항목 항(頁/3) 달 현(心/16) 방울 령(金/5)

고양이는 귀엽고 영리하게 생겼다. 伴侶(반려)동물 중에서도 개 다음으로 인기가 높아 전 세계에서 2억 마리가 사육된다고 한다. 고양이를 죽이거나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불행이 찾아온다는 민화는 각국에서 전해온다.

고양이가 사람에게 가장 도움을 주는 것은 주변에 쥐를 얼씬하지 못하게 하는 점이다. 다 함께 사람 주변에 살지만 음식을 훔치고 병균을 옮기는 쥐를 쥐죽은 듯 고요하게 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덕을 잊고 살아 ‘고양이 덕과 며느리 덕은 알지 못한다’는 말이 남았다.

무서운 사람 앞에서 설설 기면서 꼼짝 못한다는 비유로 ‘쥐가 고양이를 만난 격’이란 속담을 쓴다. 쥐들은 사람들은 문제없이 눈을 피하며 먹을 것을 조달할 수 있는데 고양이는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오그라든다. 쥐들은 어느 날 모두 모여 대책회의를 했다.

‘곳집을 뚫고 쌀광 속에 들어가 살면 기름지게 살 수 있을 텐데 단지 고양이 때문에 두렵다(穿庾捿廩 生活可潤 但所怕 獨猫而已/ 천유서름 생활가윤 단소파 독묘이이)’며 이래서야 되겠는가 하고 울분을 토했다. 捿는 棲(서)와 같이 깃들일 서, 庾(유)와 廩(름)은 모두 곳집,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다. 怕는 두려워할 파.

한 마리 쥐가 나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하자 모두 좋은 의견이라며 박수를 쳤다. 어른 쥐가 점잖게 말했다. ‘옳은 이야기이나 누가 우리를 위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느냐(是則是矣 然猫項 誰能爲我懸鈴耶/ 시즉시의 연묘항 수능위아현령야)?’ 모든 쥐들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조선 중기 宋世琳(송세림)이 편찬한 한문 소화집 ‘禦眠楯(어면순)’에 실린 이야기다. ‘잠을 쫓는 방패’라는 뜻으로 육담도 많이 있어 古今笑叢(고금소총)을 이루는 책이기도 하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란 속담을 번역하여 旬五志(순오지)와 松南雜識(송남잡지) 등에도 나온다. 猫頭懸鈴(묘두현령)이라고도 한다.

단체원들이 모여 어떤 현안에 대해 의견을 말하라 할 때 갑론을박 묘안을 펼친다. 그러나 막상 책임을 맡아 실행방안을 말해 보라 하면 대부분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이론적으로는 훤히 알아도 실천은 어렵다. 卓上空論(탁상공론)이 된다. 한 조직의 비리 사실을 밝히면 바르게 고쳐질 수 있는데도 따돌림과 돌아올 보복이 두려워 총대를 멜 사람이 좀처럼 나서지 않는다. 혁신에 주춤거리는 것도 방울을 달기가 어려울 뿐더러 불이익을 감당키 어렵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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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36
진목열자瞋目裂眥 - 눈을 부릅뜨고 찢어질 듯이 노려보다, 몹시 화가 나다.

진목열자(瞋目裂眥) - 눈을 부릅뜨고 찢어질 듯이 노려보다, 몹시 화가 나다.

부릅뜰 진(目/10) 눈 목(目/0) 찢어질 렬(衣/6) 흘길 자(目/5)

사람의 눈에 관해 좋은 말이 많다. ‘눈은 마음의 창이요, 몸의 등불’이라든가 ‘사람을 알아보는 데는 눈동자보다 좋은 것이 없다’ 등은 귀중한 눈을 잘 표현했다. 서양 사람들이 곧잘 눈꼬리를 손가락으로 올려 ‘찢어진 눈’ 흉내로 동양인을 조롱하는 것은 눈이 작은 겉모습만 보고 깊은 마음을 보지 못한 행위라 되레 욕을 먹는다.

눈은 온화하게 친절을 나타낼 수 있지만 상대를 무시하는 이럴 때는 눈에 쌍심지를 돋우며 무섭고 사납게 부릅떠야 잘못을 안다. 무지무지하게 화가 났을 때 마음을 나타내는 눈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 눈을 부릅뜨고(瞋目) 찢어질 듯이 흘겨본다(裂眥)는 이 성어다.

어려운 글자로 되었어도 이런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라 출처는 여러 곳이다. 먼저 前漢(전한)의 왕족이었던 劉安(유안)의 ‘淮南子(회남자)’에는 글자 그대로 사용됐다. 戰國時代(전국시대) 燕(연)나라 태자의 부탁을 받고 秦始皇(진시황)을 암살하려던 자객 荊軻(형가, 軻는 수레 가)는 친구 高漸離(고점리)의 배웅을 받는다.

고점리는 비파와 비슷한 악기 筑(축)의 명인으로 사지로 떠나는 형가를 위해 易水(역수)를 건너기 전 비장하게 노래를 곁들인다. ‘듣고 있던 사람들은 눈을 찢어질 듯이 부릅떠 흘기고, 곤두선 머리카락이 관을 뚫을 정도였다(聞者瞋目裂眦 髮植穿冠/ 문자진목열자 발식천관).’ 이는 듣는 사람이 직접 화를 냈다기보다 고점리의 가락이 진시황의 횡포에 분노하도록 연주를 잘 했다는 이야기다. 泰族訓(태족훈)에 나온다.

‘史記(사기)’의 자객열전에는 고점리의 축 연주에 형가가 노래를 부르는데 약간 달리 표현하고 있다. 전송 나온 사람들이 감동하여 ‘모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카락이 관을 찌를 듯 노기를 띠었다(士皆瞋目 髮盡上指冠/ 사개진목 발진상지관).’

項羽(항우) 본기에는 鴻門宴(홍문연)에서 劉邦(유방) 보호를 위해 장수 樊噲(번쾌, 噲는 목구멍 쾌)가 잔치자리에 뛰어 들어갔을 때의 모습을 그린다. ‘눈을 부릅뜨고 항우를 노려볼 때 그의 머리카락은 위로 솟고 눈초리는 찢어진 듯했다(瞋目視項王 頭髮上指 目眥盡裂/ 진목시항왕 두발상지 목자진렬).’

화가 나서 부릅뜰 때 눈에 불을 켠다고 한다. 물론 이익에 눈이 어두울 경우에도 쓰지만 쌍심지가 돋을 정도로 화가 나면 눈빛이 횃불과 같이 빛난다며 目光如炬(목광여거)란 표현도 있다. 큰 공을 세웠음에도 모반죄로 죽은 南北朝(남북조) 때의 장군 檀道濟(단도제)의 눈이 이랬다는데 그럴 만하다.

없는 사실을 지어내 덮어씌우면 성인도 돌아선다. 자기만 옳다는 고집, 끊임없는 모함, 분란의 원인인 거짓 뉴스가 횡행할 때 사회는 전쟁터마냥 시끄럽다. 상대방의 사정을 이해하고 친절한 눈빛으로 대화하면 눈에 불을 켜고 흘겨 볼 이유가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852.html
kolaswqetsrq 11.14 18:38
분거지상무중니奔車之上無仲尼 – 질주하는 수레에는 공자가 없다.

분거지상무중니(奔車之上無仲尼) – 질주하는 수레에는 공자가 없다.

달릴 분(大/6) 수레 거(車/0) 갈 지(丿/3) 윗 상(一/2) 없을 무(灬/8) 버금 중(亻/4) 여승 니(尸/2)

유교의 시조요, 성인으로 추앙받는 孔子(공자)는 이름이 丘(구), 자가 仲尼(중니)다. 마구 달리는 수레 위(奔車之上)에는 공자가 없다(無仲尼)는 말만 떼어놓고 보면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재미있는 문구다. 이어지는 구절엔 伯夷(백이)가 등장한다. 그는 아우 叔齊(숙제)와 함께 周(주)나라의 전설적인 충신이다.

뒤집히는 배 아래에는 백이가 없다(覆舟之下無伯夷/ 복주지하무백이)란 말이다. 마구 달리는 말이나 뒤집히는 배는 위험하다. 그래서 성현은 위험한 곳에 있지 않는다고 본다. 앞도 내다보고 추이도 잘 생각하는 이들이 위험한 곳에 가지도 않고, 상황을 만들지도 않을 것은 당연하다.

급박한 상황 아래서는 아무리 점잖은 사람이라도 평소에 보여주던 인성을 잃어버린다는 각박한 해석도 한다. 바쁠 때에는 학문을 할 수 없고, 위태로울 때는 의리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난에 처하면 생존본능 앞에 도덕군자도 무너진다. 세차게 달리는 수레 위에서는 공자가 없고, 뒤집히는 배 아래서는 백이가 없다고 본다.

走馬看山(주마간산)의 뜻으로 보는 것도 재미있다. 달리는 수레 위에서는 공자도 없다. 아무리 공자와 같이 모든 것에 통달한 인물이라도 달리는 수레 위에서 주변의 사항을 다 알 수 없다. 바쁜 세상 느긋이 갈 줄도 알아야 돌아가는 이치도 알고 인생의 참맛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의 출처는 ‘韓非子(한비자)’의 安危(안위)편이다. 중국 法家(법가)의 확립자 韓非(한비)는 나라를 평안하게 하는 방법과 혼란스럽게 하는 행동을 나열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려면 일정한 기준을 세워야한다고 주장한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천하 사람들이 규범을 따르고 법령에 따라 살아가면 사직은 탄탄하고 나라는 오래도록 평안할 것이라며 이어진다.

‘어지럽게 질주하는 수레에는 공자가 없고, 뒤집히는 배 아래에는 백이가 없다. 그래서 호령은 나라의 배나 수레와 같은 것이다(奔車之上無仲尼 覆舟之下無伯夷 故號令者國之舟車/ 분거지상무중니 복주지하무백이 고호령자국지주거).’ 나라의 법령이 어지러우면 지혜롭고 청렴한 사람이 나오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한비자는 나라의 안정이 법률에 의거해 옳고 그름이 명확해야 하는 데서 온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그래야 현인이 나올 수 있다고 하지만 어떻게 해석하든 앞날의 큰 일이 닥쳤을 때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국민들의 지혜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484.html
kolaswqetsrq 11.14 18:39
◇ 신세계, SSG 랜더스 우승 턱 크게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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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세계, SSG 랜더스 우승 턱 크게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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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단 SSG 랜더스가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신세계그룹이 팬 감사제(고객 감사제)를 진행한다. 그룹 차원의 감사제는 다음 주 열리며 일부 계열사들이 우승 기념 이벤트를 먼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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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랜더스의 메인 스폰서인 SSG닷컴은 10일부터 오는 30일까지 SSG닷컴 X SSG 랜더스 통합 우승 축하 댓글 이벤트를 연다. 이벤트 페이지에 야구단 우승을 축하하는 댓글을 남긴 고객 중 2022명을 추첨해 경품을 제공한다. 선수단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22시즌 홈 어센틱 유니폼과 야구공, 다회용 보랭가방에 각종 먹거리를 채운 알비백 응원푸드팩, 최대 5만원의 SSG머니 등이 준비됐다. SSG닷컴 신세계백화점몰에서는 다이나핏, 스노우피크 등 인기 스포츠웨어 브랜드를 최대 70% 할인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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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백화점은 10일부터 13일까지 관련 행사를 선보인다. 신세계백화점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과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에 우승 축하 댓글을 작성하는 고객 중 추첨을 통해 경품을 준다. 조선호텔 숙박 패키지, 아디르 순금 5돈, SSG 랜더스 야구점퍼, SSG 랜더스 유니폼·모자 패키지, 푸빌라 X SSG 랜더스 인형 등을 받을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 전 점포에서는 신세계 제휴카드(씨티·삼성·신한·하나·BC바로)로 패션·잡화 단일 브랜드 30만·60만·100만원 이상 결제 시 10%를 상품권으로 되돌려주는 모바일 앱 쿠폰을 제공한다.

신세계 제휴카드로 식당가에서 당일 2만원, 식품관에서 당일 3만원 이상 구매 시 1만원 할인권을 증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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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24에서는 11일부터 17일까지 야구 관련 먹거리 상품 8종을 이마트24 앱 통합바코드 스캔 후 결제 시 2000만원대 카라반 경품 이벤트에 응모할 수 있다. 김광현 선수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구성한 김광현 KK도시락을 카카오페이머니로 결제 시 100원에 판매한다. 야구장도시락, 야구방망이김밥, 롱소시지핫도그 등 야구장 인기 먹거리 5종을 BC페이북으로 결제 시 50% 추가 할인 혜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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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컨셉은 10일부터 13일까지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6시 룰렛 이벤트를 연다. 100만포인트와 할인 쿠폰을 랜덤으로 지급한다.

-머니S-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ssg.html
kolaswqetsrq 11.14 18:40
무접무향無蝶無香 - 꽃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다, 갖춰야 할 것이 빠져 불완전하다.

무접무향(無蝶無香) - 꽃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다, 갖춰야 할 것이 빠져 불완전하다.

없을 무(灬/8) 나비 접(虫/9) 없을 무(灬/8) 향기 향(香/0)

벌과 나비는 향기를 따라 모인다고 蜂蝶隨香(봉접수향)이라 했다. 남자들이 아름다운 여인 주위로 따르는 것을 비유했다. 우리 속담 ‘꽃이 고와야 나비가 모인다’도 미인 주위로 한량들이 몰리는 것을 의미하지만 남의 완전한 것을 구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는 깨우침도 준다. 나비는 바쁘다.

‘예쁜 것도 찾고 향기로운 것도 찾고, 한가로우면서도 바빠라(尋豔復尋香 似閒還似忙/ 심염부심향 사한환사망)’고 唐(당)나라 시인 鄭谷(정곡)은 노래했다. 그런데 나비가 날지 않는 꽃 그림만을 보고(無蝶) 필히 그 꽃엔 향기가 없을 것(無香)이라고 예언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新羅(신라)의 27대 善德女王(선덕여왕)이다.

선덕은 이름이 德曼(덕만), 혹은 德萬(덕만)이고 眞平王(진평왕)의 맏딸로 나온다. 金大問(김대문)이 지은 花郞世記(화랑세기)에는 차녀인데 사랑을 따른 언니보다 여성도 왕위에 오를 수 있다는 적극성으로 왕좌를 차지했다고 한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했는데 16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며 여러 업적을 남겼다. 그 중에서 지혜가 많아 세 가지 일을 미리 알아냈다는 知機三事(지기삼사) 중에서 향기 없는 꽃을 알아맞힌 이야기는 ‘三國史記(삼국사기)’와 ‘三國遺事(삼국유사)’ 모두에 나온다. 부왕 때 당나라에서 가져온 모란꽃과 꽃씨를 보고 덕만이 말했다는 내용이다.

‘이 꽃은 비록 아름다우나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此花雖絶艶 必是無香校勘氣/ 차화수절염 필시무향교감기).’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니 답한다. ‘꽃을 그렸으나 나비가 없는 까닭에 그것을 알았습니다(畵花而無蝶校勘 故知校勘之/ 화화이무접교감 고지교감지).’ 심어 보니 과연 향기가 없어 미리 아는 식견에 탄복했다. 삼국유사에는 다른 두 가지도 실었다.

겨울인데 개구리가 玉門池(옥문지)에 개구리가 우는 것을 보고 적병이 女根谷(여근곡)에 침입했다는 것을 알아채 섬멸했다. 모두 여성의 생식기를 말해 침입한 적군을 쉽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또 자신이 죽는 연월일을 예언한 것도 정확히 맞췄다.

나비 없는 꽃 그림만으로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아챈 선덕은 총명한 만큼 첫 女王(여왕)으로 불교를 중흥시키고 긴밀한 외교도 펼쳐 三國統一(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비 없는 꽃이 향기가 없다는 데서 이 말은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이 빠져 불완전한 것을 나타내는 말이 됐다.

반면 나비가 외면하는 꽃도 생각해야 한다. 짙은 향기를 가졌던 꽃이라도 영원할 수 없다. ‘꽃이라도 十日紅(십일홍)이 되면 오던 蜂蝶(봉접)도 아니 온다’는 權不十年(권불십년)을 비유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538.html
kolaswqetsrq 11.14 18:41
의이명주薏苡明珠 – 율무를 빛나는 구슬로 보다, 억울한 수뢰 혐의

의이명주(薏苡明珠) – 율무를 빛나는 구슬로 보다, 억울한 수뢰 혐의

율무 의(艹/13) 율무 이(艹/5) 밝을 명(日/4) 구슬 주(玉/6)

나쁜 꾀로 남을 골탕 먹이거나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하는 모함에는 필히 따르는 것이 있다. 작은 것을 크게 떠벌리는 針小棒大(침소봉대), 억지로 남의 작은 허물을 들추어내는 吹毛覓疵(취모멱자)다. 식용이나 약용 등으로 두루 쓰이는 율무는 薏苡(의이)라 한다.

차로 달이거나 利尿(이뇨)와 진통에 효과가 좋다고 하더라도 귀한 구슬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도 수레에 싣고 온 율무를 뇌물로 받은 明珠(명주)라고 옭아매는 바람에 억울한 누명을 썼다. 터무니없는 수뢰의 참소를 받거나, 반대로 근거 없이 남을 비방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薏(의)는 ‘억’으로도 읽혀 薏苡明珠(억이명주)라고도 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그 동안 쌓은 명예가 땅에 떨어진 사람은 後漢(후한)의 명장이었던 馬援(마원, 기원전14~기원후49)이다. 光武帝(광무제)를 도와 북방 이민족을 평정하고, 남쪽의 베트남 북부 交趾(교지)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흉노를 정벌할 때 말가죽으로 자기의 시체를 싼다는 馬革裹屍(마혁과시, 裹는 쌀 과)의 결의를 보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마원이 교지를 정벌하러 갔을 때 땅은 비록 황폐했지만 율무라는 식물이 생산되고 있었다. 그 열매를 먹으면 몸이 건강해지고 풍토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마원은 교지에 있을 때 부하와 함께 자주 복용했고, 임무를 마치고 철군할 때 종자로 삼기 위해 한 수레 가득 싣고 돌아왔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리 없는 사람들은 싣고 온 것이 남방의 진주나 코뿔소 뿔일 것(以爲前所載還 皆明珠文犀/ 이위전소재환 개명주문서)이라며 매우 부러워했다. 犀는 무소 서. 조정에서도 뒷말이 있었으나 공을 세우고 돌아온 마원에게 더 이상 캐물을 수 없었다.

몇 년 후 마원이 변방 정벌 중 전장에서 숨지자 황제의 사위인 梁松(양송)이 옛날 수레 한 가득 보물을 싣고 온 적이 있다고 상소하는 바람에 작위가 모두 몰수되었다.마원의 부인이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바람에 진상을 알게 된 황제는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장례를 후하게 치르게 했다. ‘後漢書(후한서)’ 마원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는 남을 디디고 올라서려 하는 사람이 꼭 있다. 지도자는 구성원의 자질을 잘 파악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바람에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잘 이끄는 길이다. 물론 모함을 한 사람엔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아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570.html
kolaswqetsrq 11.14 18:42
강랑재진江郞才盡 - 강랑의 재주가 다하다, 뛰어난 재능이 갑자기 무능해지다.

강랑재진(江郞才盡) - 강랑의 재주가 다하다, 뛰어난 재능이 갑자기 무능해지다.

강 강(氵/3) 사내 랑(邑/7) 재주 재(手/0) 다할 진(皿/9)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이다. 모든 방면에 통달하는 재주가 없더라도 어떤 한 가지 방면에는 잘 하는 분야가 있기에 그럴만하다. 속담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하듯이 제 잘난 맛에 산다고 하여 各者以爲大將(각자이위대장)이란 말도 생겼다. 이렇게 한 가지 재주로 우쭐할 때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몫을 해내는 재주꾼도 있다.

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팔을 가진 능력자 三頭六臂(삼두육비)다. 이렇게 하늘이 여러 재주를 가능하게 해 준 천재는 甘井先竭(감정선갈)이라고 빨리 시드니 또한 공평하다고 할까. 이와 비슷하게 뛰어났던 재능이 쇠퇴한다고 강랑(江郞)의 재주가 다했다(才盡)는 성어가 있다.

강랑의 본명은 江淹(강엄, 444~505, 淹은 담글 엄)으로 중국 南北朝(남북조) 시대 梁(양)나라의 문인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이름난 문장가가 되고, 宋(송)과 南齊(남제) 등 세 왕조를 섬기는 동안 光祿大夫(광록대부)란 벼슬자리까지 올랐다.

강엄은 儒彿道(유불도)에 능통했고 전대 시인의 문체를 바탕으로 독특하게 표현하는 擬古詩(의고시)를 잘 지었다는데 어느 때부터 그의 글은 차차 퇴보하여 아무리 애써도 좋은 글이 나오지 않았다. 唐(당)나라 李延壽(이연수)가 南朝(남조) 네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南史(남사)’에 이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따른다.

글재주가 마른 연유로 두 가지가 실려 있다. 강엄이 태수 벼슬을 끝내고 배를 타고 여행하다 강기슭에 있는 禪靈寺(선령사)란 곳에 도착했을 때 깜빡 잠이 들었다. 꿈에 張景陽(장경양)이란 자가 나타나 전에 맡긴 비단을 돌려 달라고 하기에 품에서 꺼내 준 뒤부터 좋은 글을 쓰지 못했다. 더 기이하게 꿈에 晉(진)나라의 유명시인 겸 학자 郭璞(곽박)을 凉亭(양정)이란 곳에서 만난 것이 이어진다.

자기 붓이 오랫동안 그대에게 있었으니 돌려달라고 하기에 찾아줬다. ‘그 이후부터 좋은 시 구절은 나오지 않았고 당시 사람들은 재능이 다했다고 말했다(爾後爲詩絕無美句 時人謂之才盡/ 이후위시절무미구 시인위지재진).’

한 가지를 잘 하는 사람은 다른 방면에도 그만큼 재주를 나타낼 수는 없다. 뿔이 있는 짐승은 날카로운 이빨이 없다고 角者無齒(각자무치)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천재적인 머리를 타고 나와 지능지수가 200이 넘는다는 사람도 재주를 다 발휘할 수 없어 일찍 시든다.

뛰어난 글재주로 일찍부터 많은 인기를 끌다가 재주가 다하여 스스로 절필을 하는 작가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재주로, 또는 한 가지 업적으로 두고두고 써먹는 사람은 주위에서 지겹다고 싫증을 내는데도 느끼지 못하니 탈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945.html
kolaswqetsrq 11.14 18:43
호사토비狐死兎悲 - 여우의 죽음에 토끼가 슬피 울다.

호사토비(狐死兎悲) - 여우의 죽음에 토끼가 슬피 울다.

여우 호(犭/5) 죽을 사(歹/2) 토끼 토(儿/5) 슬플 비(心/8)

교활한 이미지로 먼저 다가오는 여우는 백발이 될지 모르나 결코 선량해지지 않는다고 낙인이 찍혔다. 九尾狐(구미호)는 간사하고 요망한 사람을 가리킨다. 반면 토끼는 정답고 친한 동물로 여겨진다. 게으름을 부려 거북에게 경주를 지지만, 자라를 속여 목숨을 건지는(鼈主簿傳/ 별주부전, 鼈은 자라 별) 지혜가 있어 사랑스러운 분신의 대명사다. 그런데 이 둘은 사이가 좋을까.

달리기에서 월등하게 앞서는 토끼와 쫓아봐야 헛일인 것을 아는 여우는 그저 그런 사이다. 여우가 죽었을 때(狐死) 토끼가 슬피 운다(兎悲)는 이 성어는 같은 처지의 동류끼리 불행을 위로한다는 뜻도 있고, 마음속으로는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슬픈 척 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중국 元(원)나라 때 완성된 ‘宋史(송사)’의 李全(이전)전에서 이 말이 유래했다. 송나라 말기, 1127년 女眞(여진)이 세운 金(금)나라가 쳐들어와 왕을 포로로 잡아갔기 때문에 강남으로 쫓겨 가 南宋(남송)이 건립되었다.

졸지에 나라를 빼앗긴 강북 지역의 한인들은 곳곳에 자위를 위한 집단을 이루었고, 옛 땅을 찾기 위한 의병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楊妙眞(양묘진)이란 여걸이 오라버니 楊安兒(양안아)가 의병을 이끌다 전투 중 죽음을 당해 무리를 이끌게 됐고 이전이란 사람도 합류했다.

이전과 양묘진은 부부가 되어 남송과 금 사이에서 교묘히 줄타기를 했다. 楚州(초주)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남송에선 夏全(하전)이 이끄는 군대가 쳐들어왔다. 하전이 남송에 귀순한 의병 출신인 것을 알고 양묘진이 사람을 보내 말을 전했다.

‘여우가 죽으면 토끼가 슬퍼서 우는 법인데 이 쪽이 죽으면 그쪽도 어찌 홀로 살 수 있겠습니까(狐死兎泣 李氏滅 夏氏寧獨存/ 호사토읍 이씨멸 하씨녕독존)?’ 이 쪽은 물론 이전, 상대는 하전이다. 이 말을 들은 하전은 옳다고 여겨 공격을 멈췄으나 배반을 당해 나중 금나라에 투항했다. 여우 죽음을 슬퍼해 주려다 속아 넘어간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918.html
kolaswqetsrq 11.14 18:44
백독불염百讀不厭 - 여러 번 읽어도 싫증나지 않다, 잘 읽히는 좋은 글, 꾸준한 노력을 뜻함

백독불염(百讀不厭) - 여러 번 읽어도 싫증나지 않다, 잘 읽히는 좋은 글, 꾸준한 노력을 뜻함

일백 백(白/1) 읽을 독(言/15) 아닐 불(一/3) 싫어할 염(厂/12)

예로부터 책을 많이 읽으라고 깨우치는 글이 많다. 책을 많이 읽으면 그 속에서 황금의 집이 나온다고 書中自有黃金屋(서중자유황금옥)라 강조해도 실제로 가까이 하기는 쉽지 않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책을 읽어 뜻을 이룬 중국 東晋(동진) 때의 학자 車胤(차윤)과 孫康(손강)은 車螢孫雪(차형손설)의 성어에도 이름이 남았다.

머리카락을 묶고 넓적다리를 송곳으로 찔러 잠을 쫓으며 공부한 懸頭刺股(현두자고)의 자학 독서인도 있다. 魏(위)의 董遇(동우)는 여러 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고 讀書百遍 義自見(독서백편 의자현)이라 했는데 이렇게 되려면 백번을 읽어도(百讀) 싫증나지 않을 만큼(不厭) 글도 좋아야 할 터이다.

이 성어는 蘇軾(소식)의 시 구절에서 나왔다. 소식이라 하면 아호 東坡(동파)와 명작 赤壁賦(적벽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北宋(북송)을 대표하는 제1의 시인이자 문장가였다. 후일 대신까지 오르는 安惇(안돈)이란 사람이 처음 향시에 낙방했을 때 풀이 죽어 술만 마시는 것을 보고 소식이 위로의 시를 써 주었다.

‘옛 책을 싫다 않고 백번이나 읽었으니, 숙독하고 깊이 생각하면 스스로 알게 될 걸세(舊書不厭回讀 熟讀深思子自知/ 구서부염회독 숙독심사자자지).’ 그러면서 벼슬자리에 올랐을 때는 그만 두지 못할까 두려워할 것이니 지금의 은거생활을 고마워하며 독서에 힘쓰라고 당부한다. 시의 제목도 ‘실의에 빠져 낙향하는 안돈을 전송하며(送安惇秀才失解西歸/ 송안돈수재실해서귀)’이다.

실제 백번 읽어 싫증나지 않는다고 한 시가 있다. 唐(당)의 유명시인 王昌齡(왕창령)과 王之渙(왕지환) 등의 작품을 읽고 ‘변새시의 명작으로 백 번을 읽어도 싫증나지 않는다(邊塞名作 百讀不厭/ 변새명작 백독불염)’고 평한 淸(청)의 施補華(시보화)다. 匈奴(흉노)와 대치한 변방을 노래한 시들인데 정서가 슬퍼서 백 번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峴傭說詩(현용설시)’에 표현했다.

왕창령이 지은 ‘出塞(출새)’의 첫 한 구절만 보자. ‘진나라 때 떴던 달 한나라 때 관문을 비추건만, 만 리 먼 길 출정한 사람들 돌아오지 못했네(秦時明月漢時關 萬里長征人未還/ 진시명월한시관 만리장정인미환).’

책을 읽는데 백번 읽어도 싫증나지 않으면 그만큼 좋은 글일 수 있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어떤 목표를 두고 꾸준히 정진했을 수 있다. 이처럼 여러 번 들어도 싫증이 안 나는 百聽不厭(백청불염)의 좋은 소리는 찾아가 듣고, 孔子(공자) 말씀처럼 ‘묵묵히 마음속에 새겨 두고 배우는데 싫증내지 않는다면(默而識之 學而不厭/ 묵이지지 학이불염)’ 학문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바람직하다.

한 가지 남을 속이는 것에 절대로 싫증내지 말라는 말이 예외다. 그러나 이 말은 생사가 걸린 전장에서 적을 속이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兵不厭詐(병불염사)이니 걱정할 일이 아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325.html
kolaswqetsrq 11.14 18:45
백리부미百里負米 – 쌀을 지고 백 리를 가다, 가난해도 부모를 잘 봉양하다.

백리부미(百里負米) – 쌀을 지고 백 리를 가다, 가난해도 부모를 잘 봉양하다.

일백 백(白/1) 마을 리(里/0) 질 부(貝/2) 쌀 미(米/0)

부모를 잘 섬기는 효도는 인간의 도리라며 예부터 중시해왔고 수많은 성어도 남겼다. 孝(효)란 글자를 보더라도 아들(子)이 노인(老의 획을 줄인 耂)를 업고 있는 모양이다. 이 근본이 잘 된 사람이 인간관계도 좋고, 임금도 잘 섬긴다. 孝經(효경)에 나오는 말을 보자.

‘어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않고, 어버이를 존경하는 사람은 남에게 오만하지 않다(愛親者 不敢惡於人 敬親者 不敢慢於人/ 애친자 불감오어인 경친자 불감만어인).’ 모두들 효를 기렸기 때문에 전해오는 효자도 많다. 元(원) 나라 때 郭居敬(곽거경)이 쓴 二十四孝(이십사효)엔 王祥(왕상), 孟宗(맹종), 老萊子(노래자), 陸績(육적) 등이 등장한다.

孔子(공자)의 제자 중에 효를 실천한 사람으로 효경을 저술했다고 하는 曾子(증자)를 첫 손에 꼽는다. 의외로 子路(자로, 기원전 543~480)도 그 안에 들어간다. 제자 중에서 가장 연장이었던 자로는 무뢰한 출신으로 성격이 강직했는데 공자의 훈계 이후 헌신적으로 스승을 받들었다.

이름이 仲由(중유)인 자로는 魯(노)나라에 있을 때 집안이 아주 가난하여 조악한 음식을 먹으면서 자랐다. 하지만 조그만 벼슬자리를 얻게 되자 봉록으로 받은 쌀을 지고 백여 리나 떨어진 집에 가 부모님을 봉양했다는 효자였다.

자로가 부모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공자에게 토로한 내용이 ‘孔子家語(공자가어)’에 실려 있다. 공자와 문인들이 주고받은 논의를 王肅(왕숙)이 편찬한 책인데 致思(치사)편을 보자. 집이 가난한 시절 부모님을 섬길 때는 봉록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았다며 이어진다.

‘항상 명아주 잎과 콩잎과 같은 나쁜 음식을 대접했고, 부모께 직접 쌀을 백 리 밖에서 져 날랐습니다(常食藜藿之實 爲親負米百里之外/ 상식려곽지실 위친부미백리지외).’ 藜는 명아주 려, 藿은 콩잎 곽.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높은 관직에 올랐을 때 자로는 호화로운 음식을 앞에 두고도 옛날 쌀을 지고 가 봉양했을 때가 행복했다고 탄식했다.

‘부모가 온 효자가 되어야 자식이 반 효자’란 말이 있다. 요즘은 핵가족이라 부모가 효도하는 것을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노인을 폄하하는 유튭 영상이나 댓글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은 것이 노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명이 늘어 자리를 차지하는 면이 있을지라도 근본원인이 거기에 있지 않고, 앞 세대부터 이어 온 나라라는 인식을 갖고 경로의 정신을 가졌으면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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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46
유인유여遊刃有餘 - 칼날을 놀리는데 여유가 있다, 기술이나 솜씨가 능수능란하다.

유인유여(遊刃有餘) - 칼날을 놀리는데 여유가 있다, 기술이나 솜씨가 능수능란하다.

놀 유(辶/9) 칼날 인(刀/1) 있을 유(月/2) 남을 여(食/7)

칼을 가지고 추는 춤 劍舞(검무)는 궁중의 잔치 呈才(정재)에도 시연됐다고 한다. 이것이 ‘망나니 칼춤’이 되면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경우다. 옛날 사형을 집행하던 사람이 망나니인데 언동이 막돼먹은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런 망나니가 칼까지 휘두르니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다.

검술이 아닌 짐승 잡을 때의 칼도 각기 용도가 달라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면 牛刀割鷄(우도할계)라며 어리석다고 욕먹는다. 소를 잡을 때 최고의 명인이라 알려진 사람이 庖丁解牛(포정해우, 庖는 부엌 포)의 성어로 남은 포정이다. 그는 칼날을 놀리는 데(遊刃) 여유가 있다(有餘)는 뜻으로 능수능란한 일솜씨를 가진 대명사이기도 하다.

戰國時代(전국시대) 梁(양)나라의 庖丁(포정)이라는 사람은 글자대로 소를 도살하는 직업을 가졌는데 그 해체하는 기술이 예술이었다. ‘莊子(장자)’의 養生主(양생주)에 포정이 文惠君(문혜군) 앞에서 소 잡는 모습을 묘사한다. 손이 닿는 곳 어깨와 발, 무릎으로 누르는 곳은 칼질하는 소리가 음률에 맞게 울려 퍼졌다.

넋을 잃고 구경하던 문혜군이 어떻게 이런 경지에 이르렀는지 물었다. 포정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기술보다 한 단계 앞선 道(도)인데 3년을 닦은 지금은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神氣(신기)로 대한다고 하며 쓰는 칼도 19년이 됐지만 숫돌에 금방 간 듯 날카로운 칼날을 유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는데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彼節者有間 而刀刃者無厚/ 피절자유간 이도인자무후), 두께가 없는 칼날을 그 틈 안으로 집어넣으니(以無厚入有間/ 이무후입유간), 넓고 넓어서 칼날을 마음대로 놀려도 항상 여유가 있는 것입니다(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 회회호기어유인필유여지의).’

눈으로 보지 않고 기로 느끼니 칼날도 상하지 않게 소를 해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포정이 처음 소를 잡을 때 소 아닌 것은 보이지 않다가 이제는 소의 전체 모양이 보이지 않게 된 경지가 됐다는 目無全牛(목무전우) 성어도 함께 유래한다.

포정이 소를 해체할 때 명검을 썼을 리는 없다. 다년간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감각으로, 정신의 작용대로 따랐으니 19년간 같은 칼을 썼을 것이다. 칼은 잘 벨 수 있는 것이 우선이다. 실력은 닦지 않고 명품만 찾다가는 실제 일을 닥쳤을 때 그르치기 십상이다.

겉만 번드르르하다고 속까지 알차고 결과까지 좋기를 바란다면 욕심이다. 명분이 그럴싸하다고 다 좋을 수는 없다. 하는 도중에 부작용이 드러나면 처음 명분을 거둬들이더라도 수정할 줄 알아야 나중에 피해가 적다. 칼만 좋다고 함부로 소를 잡다가 망나니 칼춤이 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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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48
살처구장殺妻求將 – 부인을 죽여 장군이 되다, 목표를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다.

살처구장(殺妻求將) – 부인을 죽여 장군이 되다, 목표를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다.

죽일 살(殳/7) 아내 처(女/5) 구할 구(氺/2) 장수 장(寸/8)

큰일을 성취하려면 다른 일을 생각지 말아야 한다. 큰일만이 아니라 자신이 처음 결심한 일을 해나갈 때도 잡념에 마음이 끌리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百濟(백제) 말기의 階伯(계백) 장군은 羅唐(나당) 연합군을 물리치기 위해 황산벌로 출전할 때 처자를 죽였다.

5000의 군사로 5만 대군을 막기 위해 나서면서 나라를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적의 노비가 되는 것보다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늘날 생각하면 가혹한 처사임이 분명하지만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도 명백하다.

듣기만 해도 끔찍하게 부인을 죽여(殺妻) 장군 자리를 구한다(求將)는 이 말은 명성이나 이익을 얻기 위하여 잔인한 수단도 망설이지 않는 것을 비유한다. 吳子(오자)라는 병서의 원저자로 보는 吳起(오기)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싸움터에서 부하의 상처에 난 종기에 고름까지 빨아주는 장수, 吮疽之仁(연저지인, 吮은 빨 연)의 그 사람인데 참으로 집념이 무섭다.

春秋時代(춘추시대) 衛(위)나라 사람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재산을 탕진했다. 자신을 비웃는 자들을 30명이나 죽이고 도망하면서 어머니께 출세하기 전에는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魯(노)나라에 가서 曾子(증자)에게 배우고도 어머니 초상 때 가지 않았다고 배척당했다.

그 즈음 齊(제)나라의 대부가 열심히 하는 오기의 모습을 보고 큰 인물이 될 것이라며 딸과 결혼을 시켰다. 제나라가 침입하자 병법에 능한 오기를 노나라 장군으로 기용하려 했지만 부인의 출신이 문제가 되었다. ‘오기는 공명심에 불탄 나머지 자기 아내를 죽여 제나라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吳起于是欲就名 遂殺其妻 以明不與齊也/ 오기우시욕취명 수살기처 이명불여제야).’ ‘史記(사기)’ 손자 오기열전에 실려 있다.

어떤 일을 이루려면 결심을 이어가야 하는데 쉽지 않아 作心三日(작심삼일)이 많다.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나중에야 삼수갑산을 갈지라도’ 끝장을 내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자기만 옳고 나머지에 피해를 끼친다면 큰일을 이루고도 지탄을 받을 것이다. 야심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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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49
서중사치書中四痴 - 책과 관련된 네 바보, 책을 빌리거나 빌려주거나 찾거나 돌려주는 바보

서중사치(書中四痴) - 책과 관련된 네 바보, 책을 빌리거나 빌려주거나 찾거나 돌려주는 바보

글 서(曰/6) 가운데 중(丨/3) 넉 사(囗/2) 어리석을 치(疒/8)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 이전의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책이 귀했던 옛날에 이렇게 믿었다니 이해되지 않으나 책은 지식을 위한 것이고, 그 지식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면 그만큼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실제 중세 서양의 한 수도원에서 먼지를 덮어쓰고 있던 장서를 몰래 빼내 널리 퍼뜨린 포조 브라촐리니(Poggio Bracciolini, 1380∼1459)란 필경사는 인문학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평가받기도 한단다. 책과 관련한 이야기 중에(書中) 네 가지 바보(四痴)가 있다는 말이 전하는데 책 소유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우선 이 네 바보부터 보자. ‘책을 빌리는 놈 바보, 빌려주는 사람도 바보(借一痴 借二痴/ 차일치 차이치), 자기 책 찾는 사람 바보, 돌려주는 놈 바보(索三痴 還四痴/ 색삼치 환사치)’, 모두 바보 천지다. 빌 借(차)는 ‘빌려주다’의 뜻도 있다. 중국 唐(당)나라 후기 昭宗(소종) 때 宗正少卿(종정소경)을 지낸 李匡文(이광문)의 ‘資暇集(자가집)’에 시속의 얘기라며 처음 썼다고 한다.

조금 앞서 학자 段成式(단성식)은 ‘책을 빌려주는 것도, 돌려주는 것도 똑같은 바보(借書還書 等爲二癡/ 차서환서 등위이치)’라고 ‘酉陽雜俎(유양잡조)’에서 말했다. 北宋(북송)의 呂希哲(여희철)도 같은 뜻의 ‘빌려주고 돌려주는 둘 다 바보(借書而與之 借人書而歸之 二者皆痴也/ 차서이여지 차인서이귀지 이자개치야)’라며 ‘呂氏雜記(여씨잡기)’에 썼다고 한다.

이처럼 바보 소리 들으며 책을 빌리는 사람도, 빌려주는 사람도 늘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독서에 나쁜 영향이 왔겠다. 그런데 실제 이 네 바보 이야기는 정반대로 오해에서 온 표현이라니 이 말을 더 믿어야 하겠다. 南宋(남송) 때의 문인 嚴有翼(엄유익)이 ‘藝苑雌黃(예원자황)’이란 글에서 이런 표현을 썼다고 한다.

‘옛날에는 책을 빌리러 갈 때 술 한 병, 책을 돌려줄 때 술 한 병을 들고 갔다(借書一瓻 還書一瓻/ 차서일치 환서일치).’ 瓻는 술단지 치, 목이 짧고 배가 부른 작은 항아리를 가리켰다. 책이 귀했던 시절에 고맙게도 책을 빌려 보고 돌려주지 않는 것을 도둑의 심보라며 술 한 병이라도 사례하는 것이 예의라는 것이다.

술단지를 뜻하는 어려운 글자 瓻(치)가 누군가의 장난으로 음이 같은 어리석을 痴(치)로 바꾼 것이 더 재미가 있어 후세로 내려온 셈이다. 자가 濟翁(제옹)인 이광문의 글에서는 책이 있어도 빌려주거나 돌려받는 것이 모두 어리석다며 有書借索(유서차색)이라고도 하는데 엄유익이 말한 술 한 병의 借書一瓻(차서일치)란 성어가 물론 더 훈훈하다.

이렇게 되면 책은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다는 書勿借人(서물차인)이란 말이 사라지지 않을까. 아니 그보다 책을 빌리거나 빌려 주거나 책을 옆에 두고 독서를 생활화하는 것이 먼저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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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50
관즉득중寬則得衆 - 마음이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

관즉득중(寬則得衆) - 마음이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

너그러울 관(宀/12) 곧 즉(刂/7) 얻을 득(彳/8) 무리 중(血/6)

남을 사랑하고 어질게 행동하는 仁(인)은 본래 등에 짐을 진 사람을 의미했다고 한다. 孔子(공자)가 처음으로 강조한 인은 孝悌(효제) 즉 혈연적인 사랑을 널리 퍼뜨려 나라까지 평화롭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후일 孟子(맹자)가 완성시킨 五常(오상)도 인이 중심이 돼 仁義禮智信(인의예지신)으로 되었고 유교에서 가장 중심덕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너그러운 마음씨를 가지면(寬則)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다(得衆)는 이 말도 공자가 인에 대해서 설명할 때 나온다.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물론 많은 사람의 사랑과 애정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4년 리더십의 덕목을 말하는 신년휘호로 이 성어를 선정한 이후 잘 알려졌다.

‘論語(논어)’의 陽貨(양화)편에 등장하는 공자와 제자 子張(자장)의 문답을 보자. 자장은 字(자)이고 이름이 顓孫師(전손사, 顓은 오로지 전)인 陳(진)나라 출신이다. 인에 대해서 여쭙자 공자가 ‘하늘 아래에서 다섯 가지 덕목을 실천할 수 있다면 사람답다(能行五者於天下 爲仁矣/ 능행오자어천하 위인의)’고 한다. 다시 그 내용을 자세히 알려달라고 하여 대답한다. ‘다섯 가지는 공손함, 너그러움, 미더움, 민첩함, 은혜로움이다.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며, 믿음이 있으면 사람들이 신임하게 되고, 민첩하면 기회가 올 때 공적을 세울 수 있고, 은혜로우면 사람들을 부릴 수 있게 된다(恭 寬 信 敏 惠, 恭則不侮 寬則得衆 信則人任焉 敏則有功 惠則足以使人/ 공 관 신 민 혜, 공즉불모 관즉득중 신즉인임언 민즉유공 혜즉족이사인).’ 이 덕목들은 인을 실천할 때 필요한 것인데 공손, 관대, 은혜로움은 특히 사람과의 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남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지녀야 하는 필수 덕목이기도 하다. 우리의 지도자들, 이러한 덕목을 잘 지니고 있을까. 대기업은 많이 가진 자가 더 욕심 부리고, 항상 시끄러운 정치판에서는 거론하기조차 부끄럽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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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51
노안비슬奴顔婢膝 - 종의 비굴한 얼굴과 여종의 무릎걸음, 환심을 사려 알랑거림

노안비슬(奴顔婢膝) - 종의 비굴한 얼굴과 여종의 무릎걸음, 환심을 사려 알랑거림

종 노(女/2) 낯 안(頁/9) 계집종 비(女/8) 무릎 슬(肉/11)

종은 예전에 남의 집에 딸려 천한 일을 하던 사람이다. 奴隸(노예)가 남의 소유물이 되어 물건처럼 매매도 가능했던데 비해 下人(하인)처럼 종은 고용에 의한 것이 다르다. 어려운 생활로 죽지 못해 종이 됐더라도 세습제도가 생겨 대대로 부림 받았으니 큰 차이 없게 됐지만 말이다.

종의 비굴한 얼굴(奴顔)과 계집종의 무릎걸음(婢膝)이란 말은 남에게 환심을 사려고 빌붙어 아첨하는 것을 말한다. 王侯將相(왕후장상)이 처음부터 씨가 있은 것이 아니듯 종도 태어나서부터 종이 아니니 알랑거리는 것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재산도 지위도 더 누리려고 윗사람에게 살살거리고 뇌물을 쓰는 자들은 따로 있다.

중국 東晉(동진)의 葛洪(갈홍)은 유교와 도교의 비술을 결합하려 한 煉丹家(연단가)로 자신의 호를 딴 대표작 ‘抱朴子(포박자)’를 남겼다. 당시 어지러운 전란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부귀를 탐하며 권세가를 찾았고, 정직한 자들에겐 오히려 시세를 모르고 무능하다고 욕했다. 갈홍은 이러한 세태를 명확히 지적하고 사람들의 주의를 촉구하는 글을 交際(교제)편에서 이렇게 썼다.

‘높은 산처럼 우뚝 선 사람은 굼뜨고 부끄러워하며 거칠고 서투르나(以岳峙獨立者 爲澀吝疏拙/ 이악치독립자 위삽린소졸), 종의 표정과 여종의 곁눈질을 가진 자는 세상을 잘 아는 사람이다(以奴顏婢睞者 爲曉解當世/ 이노안비래자 위효해당세).’ 峙는 언덕 치, 澀은 떫을 삽, 睞는 한눈팔 래. 婢睞(비래)는 후일 婢膝(비슬)로 많이 쓰게 됐다.

唐(당)의 시인 陸龜蒙(육구몽)은 ‘江湖散人歌(강호산인가)’에서 이렇게 꼬집는다. ‘남자 종의 비굴한 얼굴과 여종의 무릎 꿇는 태도는 그야말로 거지근성이거늘(奴顏婢膝眞乞丐/ 노안비슬진걸개), 도리어 정직한 사람을 미쳤다고 여긴다(反以正直爲狂癡/ 반이정직위광치).’ 丐는 빌 개. 인격수양의 지침서 ‘菜根譚(채근담)’에서도 점잖게 타이른다.

거친 음식을 마다않는 사람은 옥같이 맑은 사람이 많다면서 이어진다. ‘비단옷을 입고 옥 같은 흰쌀밥을 먹는 사람 중에는, 종처럼 굽신거리는 것을 달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袞衣玉食者 甘婢膝奴顏/ 곤의옥식자 감비슬노안).’ 袞은 곤룡포 곤, 고대에 천자가 입던 옷이다.

‘인간은 아첨하는 동물’이라 했다. 조금의 이익만 있으면 ‘간에 가 붙고 쓸개에 가 붙는다’는 속담대로 왔다 갔다 한다. 이러니 아첨을 나타내는 말이 수두룩하다. 상관의 수염에 묻은 티끌을 불어주는 拂鬚塵(불수진), 상사의 변을 맛보고 고름을 빨아주는 嘗糞吮癰(상분연옹), 말똥 위에서 무릎으로 기는 膝行馬矢(슬행마시)는 냄새의 극치다.

날 때부터 종이 아니라고 일찍 高麗(고려) 말의 萬積(만적)이나 亡伊亡所伊(망이망소이) 등은 난리를 일으켰다. 실패했더라도 신분 해방의 의지는 뚜렷했는데 종이 아첨의 대명사가 됐으니 억울하겠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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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52
화호유구畵虎類狗 - 범을 그리려다가 강아지를 그리다.

화호유구(畵虎類狗) - 범을 그리려다가 강아지를 그리다.

그림 화(田/8) 범 호(虍/2) 무리 류(頁/10) 개 구(犭/5)

분수를 모르고 어떤 일에든 자신만만해 하는 사람이 있다. 적극적인 것은 좋지만 일을 그르쳤을 땐 더 손가락질을 받는다. 호랑이를 잘 그리는 사람을 보고 자기도 할 수 있다고 덤벼들었다가 개를 그리고 말았다는 이 성어는 소양이 없는 사람이 잘하는 체하다가 도리어 망신을 당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또 섣불리 훌륭한 사람의 언행을 모방하려다 경박한 사람이 되기 쉬움을 깨우친다. 중국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 宋(송)의 역사가 范曄(범엽)이 편찬한 ‘後漢書 (후한서)’에 고사가 실려 있다.

後漢(후한)의 장군 馬援(마원)은 많은 전공을 올려 伏波將軍(복파장군)이란 칭호를 받았다. 당시 交趾(교지, 趾는 발 지)라 불렸던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중국의 속국정책에 반발하여 군대가 일어났다.

마원은 3년간이나 이곳에 파견돼 전쟁을 수행하게 되었는데 전장에서도 집안의 조카들이 걱정되어 훈계의 서신을 보냈다. 형의 아들인 嚴(엄)과 敦(돈)이란 조카는 남의 흉허물을 잘 보고 껄렁한 무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등 사람됨이 아주 경솔했기 때문이다.

誡兄子嚴敦書(계형자엄돈서)라는 제목의 편지를 요약해 본다. ‘사람됨이 중후하고 청렴결백한 龍伯高(용백고)란 사람과 의협심이 강한 杜季良(두계량)을 본받아 배우기 바란다. 그러나 용백고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백조를 그리려다 오리를 그린 격(刻鵠不成向類鶩/ 각곡불성향유목)이 되고 두계량을 제대로 못 따르면 범을 그리려다 개를 그리는 꼴(畵虎不成反類狗/ 화호불성반유구)이 될 터이니 조심해야 한다.’ 鵠은 고니 곡, 鶩은 집오리 목.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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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53
청운지사靑雲之士 - 학덕이 높은 어진 선비, 고관으로 출세한 사람

청운지사(靑雲之士) - 학덕이 높은 어진 선비, 고관으로 출세한 사람

푸를 청(靑/0) 구름 운(雨/4) 갈 지(丿/3) 선비 사(士/0)

작은 물방울이나 얼음 결정이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千變萬化(천변만화)란 말대로 모양이 수시로 바뀐다. 그 구름이 빛을 반사하여 形形色色(형형색색)으로 변하며 요지경을 이룬다. 구름 자체의 색깔은 희거나 회색일 듯한데 푸른 구름(靑雲)이란 말이 좋은 뜻으로 일상에 많이 사용된다.

입신출세하려는 큰 뜻을 靑雲之志(청운지지)라 하고, 큰 꿈은 靑雲萬里(청운만리), 지위의 급상승은 靑雲直上(청운직상)이 된다. 마찬가지로 고관대작으로 입신한 사람은 靑雲之士(청운지사)인데 이는 학덕이 높은 사람이나 속세를 떠나 숨어사는 선비를 가리키는 말도 된다.

청운이 이런 뜻을 갖게 된 것은 예부터 중국에서 신선이나 천자가 될 사람이 있는 주변에 푸른 구름 또는 오색구름이 떠 있었다는 데서 나왔다고 한다. 신선이 푸른 구름을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있다. 높은 벼슬자리에 올랐거나 덕을 쌓은 고고한 선비가 청운지사가 되는데 司馬遷(사마천)은 ‘史記(사기)’에서 처음 쓸 때 이것을 전하게 한 사람을 가리켰다.

列傳(열전)의 첫머리 伯夷(백이)에서 이들이 찬란한 이름을 갖게 된 것도 孔子(공자)와 같은 지사가 있었기 때문이라 말했다. 향리에서 덕행을 닦아 이름을 후세에 남기려 해도 ‘뜻이 높은 선비에 기대지 못하면 어찌 후세에 이름을 전할 것인가(非附靑雲之士 惡能施于後世哉/ 비부청운지사 악능시우후세재)’라며 전하는 사람을 중요시했다.

初唐四傑(초당사걸)에 들어가는 王勃(왕발)은 잘 알려진 시 ‘滕王閣(등왕각, 滕은 물솟을 등)’을 쓰면서 대구가 아름다운 騈儷文(변려문, 騈은 쌍말 변)으로 詩序(시서)도 함께 남겼다. 중반 뒷부분에 어려움이 닥쳐도 위축되지 말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며 성어를 썼다.

‘노년이 되면 더욱 굳세져야 할진대, 어찌 백발이 되어 마음을 바꿀 것인가(老當益壯 寧知白首之心/ 노당익장 영지백수지심), 구차할수록 마음을 굳게 다져, 청운의 뜻을 접지 말아야지(窮且益堅 不墮靑雲之志/ 궁차익견 불타청운지지).’

왕발보다 조금 뒤의 시인이자 정치가 張九齡(장구령)도 ‘거울을 비춰 백발을 보다(照鏡見白髮/ 조경견백발)’란 시에서 같은 뜻으로 인용한다. ‘옛날에는 청운의 뜻을 품고 있었지만(宿昔靑雲志/ 숙석청운지), 어느 사이에 백발의 나이 되었구나(蹉陀白髮年/ 차타백발년).’ 蹉는 미끄러질 차, 陀는 비탈질 타.

어려운 시기에 죽을 고생을 하더라도 장래가 밝으면 감수한다. 갈수록 빈부의 격차는 커지고 온갖 수단을 다해도 내 집 마련은 꿈같이 아득하게 되어버린 오늘날 결혼출산 포기세대들의 꿈은 어떻게 실현할까. 푸른 구름을 잡으러 하늘에 가더라도, 아니 더 까마득한 우주까지 가야 한다면 절망할 수밖에 없다.

미래의 꿈마저 앗아버리는 정치, 그러면서도 가붕개로도 잘 살아야 한다며 염장을 지르니 더 좌절한다. 청춘들에게 청운의 꿈을 살려주는 희망의 세상을 위해 합심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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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8:54
명주암투明珠暗投 - 구슬을 어둠 속으로 던지다, 가치를 모르고 썩히다.

명주암투(明珠暗投) - 구슬을 어둠 속으로 던지다, 가치를 모르고 썩히다.

밝을 명(曰/4) 구슬 주(玉/6) 어두울 암(日/9) 던질 투(扌/4)

선물을 주고받을 때 정성이 깃들어 있지 않거나 예의에 어긋나면 주고도 좋은 소리 못 듣는다. 복숭아를 선물로 주고 자두로 답례한다는 投桃報李(투도보리)란 말이 있다. 격식에 맞게 선물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귀한 선물이라도 그것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값을 안다.

빛이 곱고 귀중한 야광주(明珠)를 어둠 속으로 던진다는(暗投) 이 말은 선물을 주고도 알아보지 못할 때 줬기에 예에 어긋난 것으로 원망을 산다는 뜻이다. 번쩍이는 구슬이라도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듯이 재능을 가진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윗사람 때문에 썩히고 있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 성어는 ‘史記(사기)’의 雛陽(추양) 열전에서 유래했다. 前漢(전한)의 6대왕 景帝(경제)의 동생 孝王(효왕)을 모셨던 문객이 추양이다. 효왕은 태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때 내심 속셈을 갖고 여러 저명인사와 교제해 인맥을 두텁게 하려 했다.

효왕은 여러 명사들을 초청하여 주연을 베푸는 등 환대했는데 문장에 능했던 추양도 포함됐다. 하지만 효왕은 현자를 존중하고 있다는 명성을 얻기 위해서일 뿐 추양을 깊이 신임하지는 않았다. 효왕은 측근 羊勝(양승) 등이 추양을 모함하자 감옥에 가두고 처형하려 했다.

추양은 이름을 더럽힐 수 없다며 옥 안에서 효왕에게 글을 올렸다. 獄中上梁王書(옥중상양왕서)로 이름난 글이다. 효왕이 梁(양)지역을 다스렸기 때문에 양효왕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그는 진실된 사람은 의심을 받지 않는다고 알았는데 옛날 보옥을 바쳤던 卞和(변화)나 나라에 충성을 바쳤던 李斯(이사) 등이 중벌을 받는 것을 보니 빈말이었다며 이어진다.

‘어두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명월주와 야광벽을 던지면 칼을 잡고 노려보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明月之珠 夜光之璧 以闇投人於道路 人無不按劍相眄者/ 명월지주 야광지벽 이암투인어도로 인무불안검상면자).’ 眄은 곁눈질할 면.

알아보기 어려울 때는 보석이라도 좋아할 리 없다. 반대로 어리석고 깨어있지 못하다면 보물을 가질 자격이 없다. 아래에서 아무리 훌륭한 의견을 내어도 명주임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묻혀있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깊은 뜻을 깨달은 효왕은 추양을 풀어주고 상객으로 삼았다. 번득이는 재주를 가진 인재는 곳곳에 묻혀 있다. 인사를 할 때마다 잡음이 나오는 것은 알아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974.html
kolaswqetsrq 11.14 18:55
화신풍.花信風 - 꽃이 피는 것을 알리는 바람

화신풍.(花信風) - 꽃이 피는 것을 알리는 바람

꽃 화(艹/4) 믿을 신(亻/7) 바람 풍(風/0)

믿을 信(신)에는 소식, 편지란 뜻이 있다. 그래서 通信(통신)이고 번개같이 소식 전한다고 電信(전신)이다. 얼음이 풀리고 꽃이 피면 봄이 오니 春信(춘신)이 되고, 꽃이 피는 것을 알리면 花信(화신)이다. 겨우내 오그라들었던 심신에 가장 반가운 소식인데 봄철에 피기 시작하는 갖가지 꽃에 따라 꽃잎에 스치는 바람이 모두 다르다고 花信風(화신풍)이라 했다.

양력 1월 6~7일께의 小寒(소한)부터 여름이 되기 전의 4월 20일경 穀雨(곡우) 사이 8개 절기 120일을 닷새 만에 한 번씩 각기 다른 24가지 꽃바람이 분단다. 눈서리를 뚫고 가장 먼저 피는 梅花風(매화풍)에서 멀구슬나무꽃 楝花風(연화풍)까지 二十四番花信風(이십사번화신풍)이다. 기막힌 감수성이 있어야 구분하겠다.

알려진 몇 가지 꽃만 보아도 大寒(대한)은 천리향 난초, 立春(입춘) 개나리 앵두, 雨水(우수)는 유채 살구꽃, 驚蟄(경칩)은 복숭아꽃과 장미, 春分(춘분)은 해당화와 배꽃, 淸明(청명)엔 오동나무와 버드나무 꽃이 소식을 전한다고 한다. 이렇게 세세하게 바람을 나눈 것을 자료마다 출처는 구구하게 나온다.

중국 고대 풍속지 ‘歲時雜記(세시잡기)’나 北宋(북송)의 周煇(주휘, 煇는 빛날 휘)가 편찬한 ‘清波雜志(청파잡지)’에 적혀 있다고 한다. 조선 중기 실학의 대가 李瀷(이익, 瀷은 강이름 익)은 대표적인 저술 ‘星湖僿說(성호사설, 僿은 잘게부술 사)’에서 明(명)나라 문인 謝肇淛(사조제, 肇는 비롯할 조, 淛는 강이름 제)의 五雜爼(오잡조)를 상고한다며 24가지 화신풍을 상세히 소개했다.

겨울에서 봄이 왔다고 좋은 일만 이어지지 않으니 꽃이 전하는 소식을 시샘하는 바람도 있다. 여기에도 好事多魔(호사다마)가 따라 꽃샘바람, 바로 妬花風(투화풍)이다. 꽃샘바람이라 하면 高麗(고려) 때의 명문장가 李奎報(이규보, 1168~1241)의 시가 많이 알려졌다. ‘꽃 필 땐 미친바람도 많으니, 사람들은 꽃샘바람이라 하네(花時多顚風 人噵是妬花/ 화시다전풍 인도시투화)’로 시작하여 끝부분은 이렇다.

‘꽃 피는 것도 좋지만, 꽃 지는 것 또한 슬퍼할 게 뭐랴(花開雖可賞 花落亦何嗟/ 화개수가상 화락역하차), 피고 지는 것 모두가 자연인데, 열매가 있으면 또 꽃이 생기네(開落摠自然 有實必代華/ 개락총자연 유실필대화).’ 噵는 이를 도. 嗟는 탄식할 차.

봄이 오면 모두 희망에 들떠 좋은 시절이 계속되리라 여긴다. 하지만 자칫 방심하다간 ‘꽃샘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대로 더 고생한다. 중국에도 겨울보다 더 고생한다고 ‘봄추위는 뼈가 시리고, 가을 추위는 살갗이 시리다(春凍骨頭秋凍肉/ 춘동골두추동육)’란 말이 전해 온다고 한다. 꽃샘바람에서 이규보가 깨우친 것처럼 봄이 왔다고 들뜨지 말고 꽃이 지는 것 또한 자연이라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모든 일에 대비를 철저히 하여 고난의 세월을 잘 참으면 또 꽃이 핀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185.html
kolaswqetsrq 11.14 18:56
눈의 피로를 푸는 방법과 눈에 좋은 음식

 눈의 피로를 푸는 방법과 눈에 좋은 음식

1. 마사지

양손을 비벼서 손바닥에 열을 내어 양쪽 눈두덩이에 올려 줍니다. 그리고 시선을 가까운 곳과 먼 곳을 반복해서 봐줍니다.

2. 지압

눈을 지그시 감고 목과 턱의 긴장을 풀어줍니다.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눌러주고 미간과 콧등 옆을 검지 손가락으로 지긋이 눌러 눈 주위를 자극합니다.

3. 찜질

깨끗한 수건을 약 38~40도의 따뜻한 물에 적시고 물기를 꽉 짜줍니다. 따뜻한 수건을 눈에 올리고 약 3분정도 찜질을 해줍니다. 찜질은 눈에 있는 전반적인 모든 근육들을 이완시켜주는 기능을 하고 안구 건조증과 눈의 노화방지 및 예방에 도움을 줍니다. 만약 눈이 많이 뻑뻑하고 충혈이 되었을 땐 눈두덩이를 살짝 눌러주는 마사지를 해주면 더욱 좋습니다.

4. 눈운동

4~5분정도 눈알을 시계방향과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려주는 운동. 사팔뜨기 운동, 눈동자를 위아래로 올려주는 운동을 시간이 날때 마다 해주면 눈의 피로를 줄일 수 있습니다.

5. 먼 곳을 자주 본다.

멀리 있는 산, 높은 건물을 자주 보는게 눈 건강에 좋습니다. 눈은 같은 자세로 같은 곳만 오랜 시간 볼 때 가장 많이 피로감을 느끼고 시력도 급격히 떨어지므로 일하는 중간중간 먼 곳을 바라보며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지속적인 운동은 눈의 근육을 강화해 눈의 노화를 방지하고 마사지는 노폐물을 배출해 새로운 영양분이 공급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눈에 피로가 많이 쌓였을 때는 휴식을 취하는게 제일 좋으니 잠시 동안 눈을 붙이고 짧은 잠을 자는 것이 좋습니다.

★ 눈에 좋은 음식

1. 블루베리

눈 건강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노안을 예방하는데 탁월하며, 불루베리에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해 피로가 누적되어 생긴 안구건조증, 야맹증에 효과가 좋습니다.

2. 결명자

눈에 좋은 씨앗이라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식품 입니다. 결명자는 시력회복에 도움을 주고 눈을 밝게 만들어 줍니다. 차를 끓여 자주 마셔주면 눈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3. 토마토

토마토에는 눈에 매우 중요한 비타민A가 많이 함유되어 있어 시력을 향상시키고 야맹증예방에 좋습니다. 또한 각종 눈 질환 (결막염, 야맹증, 시력감퇴 등)을 예방하는데 효과가 있으며, 눈의 피로 회복에도 좋습니다.

4. 치즈

치즈에는 비타민A 와 철분이 많이 함유하고 있어 안구건조증에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5. 시금치

시금치는 망막의 노화를 예방하는 루테인이 풍부해 망막의 시세포를 구성하며 백내장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6. 가지

보라색 채소에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해 눈건강을 지키는데 효과가 좋습니다.

7. 당근

당근에는 비타민A가 풍부해 피로회복과 야맹증을 예방하며 시력보호에 매우 좋습니다.

8. 감귤

감귤에는 루테인과 오메가3 지방산, 비타민C가 많이 함유되어 있어 눈 건강에 좋습니다.

9. 달걀

달걀에 풍부한 아연은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주며 백내장 예방에도 좋습니다. 하루에 1~2개 정도 섭취하면 눈 건강과 면역력 강화에 좋습니다.

10. 전복

전복은 스태미너 뿐만 아니라 시력보호와 시신경 피로회복에도 탁월합니다. 전복속의 타우린 성분은 야맹증이나 안구건조증에 뛰어난 효능이 있습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564.html
kolaswqetsrq 11.14 18:58
익혀 먹으면 훨씬 몸에 좋은 식품 3가지

익혀 먹으면 훨씬 몸에 좋은 식품 3가지

◆ 땅콩

날것이나 볶아 먹는 것보다 삶아 먹으면 암, 당뇨병 등 질병예방에 더 좋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미국 앨라배마 농업공과대학 워커 박사 연구팀은 땅콩을 삶으면 항산화물질인 ‘파이토케미컬’이 4배 이상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를 농업·식품화학저널에 발표했다. 워커 박사팀은 일반 식료품점에서 판매하는 껍질땅콩과 껍질을 깐 땅콩을 4시간 동안 삶은 후 땅콩 속의 파이토케이컬의 함량을 조사한 결과, 이 성분은 껍질땅콩에 더 많았다. 말리거나 볶은 다른 땅콩의 추출물과 비교해도 삶은 땅콩의 파이토케미컬 함량이 많았다. 워커 박사는 “파이토케미컬에는 암, 심장질환, 기타 만성질병에 좋은 항산화물질이 많다”며 “땅콩을 삶으면 껍질에 있는 항산화물질이 땅콩에 잘 흡수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당근

당근은 베타카로틴이 풍부하다. 베타카로틴은 눈 건강을 비롯해 몸의 성장과 발달, 세포분화 및 증식에도 도움을 주는 성분이다. 이런 베타카로틴의 장점 때문에 당근이 최고의 건강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당근을 생으로 먹으면 흡수율이 낮다는 것이 단점이다. 생식의 경우 흡수율이 약 10%정도에 불과하다. 당근을 익히거나 기름에 조리하면 흡수율은 30~50%로 높아진다. 따라서 건강에 좋은 당근을 효율적으로 섭취하려면 껍질을 벗기지않고 익혀서 먹는 것이 좋다. 베타카로틴은 당근의 과육보다는 껍질 부분에 더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 토마토

토마토를 익혀 먹어야 몸에 좋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토마토에 풍부한 리코펜은 열을 가할 경우 인체에 더 잘 흡수되기 때문이다. 피자나 스파게티 등의 토마토 소스와 같이 토마토를 익혀먹을 것을 권장하는 이유다. 리코펜은 비타민C, 비타민E, 카로틴 등과 함께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고 항암 효과를 발휘하는 강력한 항산화제 역할을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3_8.html
kolaswqetsrq 11.14 18:59
무병장수 비법

무병장수 비법

●낙천적인 사고

낙천적인 사람은 몸 안의 면역 체계가 튼튼해 질병에 잘 걸리지 않고 또한 걸려도 쉽게 낫는다. 반대로 비관적인 사람은 자기 몸의 변화에 관심이 없어 건강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신앙

종교가 우리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일을 모두 막아 주지는 못하지만 나쁜 일에 대항해 싸우고 이겨나갈 힘을 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애완동물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병원에 가는 횟수와 우울증에 걸리는 일이 적다. 연구에 따르면 애완동물을 쓰다듬거나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심장박동 수가 줄어들며 혈압이 낮아진다고 한다.

●채식

과일과 야채를 하루에 2~5인분만큼 더 먹으면 암 발병률을 상당히 줄일 수 있으며 채식주의자는 고기를 먹는 사람보다 요절할 확률이 20%나 낮다.

●낮잠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약 30분씩 낮잠을 자는 사람을 연구해보았더니 심장마비 등 심장 관련 질환으로 사망하는 확률이 37% 줄어들었다는 보고가 있다.

●요가

요가의 철학에 따르면 사람의 나이를 결정하는 것은 살아온 햇수가 아니라 척추의 유연성이다. 요가를 하면 척추에 유연성이 생기고 피부가 탱탱해지고 몸 안에 쌓인 스트레스가, 사라지며 복부 근육이 강화되고 자세가 좋아져 노화 과정이 늦어진다.

●건강한 성생활

한 연구에 따르면 오르가즘을 느끼는 횟수가 많을수록 사망할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한다. 자주 오르가즘을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망 확률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이런 효과는 특히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에 나타난다.

●건강한 이와 잇몸

미국 치주과학회에서 이와 잇몸 건강을 잘 유지하면 주된 사망 원인을 예방해 장수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우리 입 속은 항상 세균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 세균이 혈액 속으로 들어오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망 좋은 방

수술을 받은 환자가 전망 좋은 방에 입원하면 벽 밖에 보이지 않는 방에 입원한 환자보다 회복이 빠르고 퇴원도 빨라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전망 좋은 방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풀려 삶이 만족스러워지고 앞날에 대한 희망이 샘솟는다.

●건강한 가족

가족 중 한 명이 아프면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에게 상당한 사회·경제적 짐을 지워주게 된다. 만성 질환에 걸려 돈을 벌 수 없게 되면 가족 전체에 위기가 닥친다. 경제적 궁핍 사회적 지위 하락, 열악한 환경, 삶에 대한 만족도 저하 등으로 나머지 가족 역시 수명이 단축된다.

●적포도주

학자들은 적포도주 속에 있는 폴리페놀 성분이 동맥 경화증을 예방하고 혈관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폴리페놀은 항산화 효과를 보이므로 적포도주를 약간 마시는 것이 암 발병률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행복한 결혼 생활

배우자와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신체 혹은 정신적 질병을 앓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었으며 병에 걸리더라도 쉽게 극복해냈다. 암에 걸렸을 때도 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이혼 했거나 혹은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보다 생존율이 높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764.html
kolaswqetsrq 11.14 19:00
질병퇴치법

질병퇴치법

1, 사무사(思無邪): 나쁜 생각을 하지 말라.

2, 행호사(行好事): 착한 일을 행하라.

3, 막기심(莫其心): 속이는 마음을 갖지 말라.

4, 행방편(行方便): 사람을 좋은 길로 이끌라.

5, 수본분(守本分): 자기의 분수를 지켜라.

6, 막질투(莫嫉妬): 샘내거나 시기하지 말라.

7, 제교사(除狡詐): 간사하고 교활한 마음을 버리라.

8, 무성실(無誠實): 모든일에 성실하게 힘쓰라.

9, 순천도(順天道): 항상 옳은 길을 따르라.

10, 지명한(知命限): 수명의 한도를 알라.

11, 청심(淸心): 마음을 깨끗이 하라.

12, 과욕(寡慾): 욕심을 부리지 말라.

13, 인내(忍耐): 참고 견디라.

14, 유순(柔順): 성질을 부드럽고 순하게 하라.

15, 겸화(謙和): 행동은 겸손하고 화목하게 하라.

16, 지족(知足): 스스로 만족할 줄 알라.

17, 염근(廉勤): 청렴하고 근검하라.

18, 존인(存仁): 어진 마음이 늘 있어야 한다.

19, 절검(節儉): 절약하고 겸손하라.

20, 처중(處中): 중용을 지켜 치우치지 말라.

21, 계살(戒殺): 생명체를 죽이지 말라.

22, 계노(戒怒): 성내지 말라.

23, 계폭(戒暴): 행동이 거칠지 말라.

24, 계탐(戒貪): 탐욕을 내지 말라.

25, 신독(愼獨): 행동을 신중히 하라.

26, 지기(知機): 순리를 잘 인식하라.

27, 보애(保愛): 연약자를 사랑으로 보호하라.

28, 염퇴(廉退): 물러날 줄 알아라.

29, 수정(守靜): 고요함을 지켜라.

30, 음즐(陰櫛): 은연중에 안정하라.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685.html
kolaswqetsrq 11.14 19:01
행복의 항아리

행복의 항아리

뚜껑이 없습니다.

울타리도 없으며

주인도 없습니다.

부족한 사람은 가지고 가고

넉넉한 사람은 채워 주기에

한번도 비워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대 행복이 넘친다면

살짜기 채워주고 가십시요

당신의 배려에 희망을 얻는

사람이 있을겁니다.

그대의 행복이 부족 하다면 빈 가슴을

담아 가십시요

당신의 웃음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겁니다.

오늘 나에게 조금 남은 것은

삶과 사랑의 희망입니다

나는 아주 조금만 채워두고 갑니다.

오늘 삶과 사랑에 힘겨웠던 것은 한 사람이

내일 아니면 그 훗날에 다시 행복의 항아리를

채워 줄 것입니다.

- 정영순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006.html
kolaswqetsrq 11.14 19:02
햇볕을 쬐야 하는 이유

햇볕을 쬐야 하는 이유

언제부터인가 햇볕을 피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유럽, 남미, 아시아 18개국 중 한국 여성이 92.1%로 비타민D 부족이 가장 심했다. 문제는 햇볕을 안 쬐면 건강에 나쁠 수 있다는 점. 햇볕은 하루에 15분~30분 산책을 하며 쬐는 것이 적절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햇볕을 거의 못 쬐면 어떻게 될까?

* 우울증 *

우울증은 환경적 요인, 유전적 요인, 호르몬 불균형 등 다양한 원인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 중 호르몬 불균형은 햇볕과 관련 깊다. 뇌와 관련된 신경전달 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은 분비되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졌다. 세로토닌은 음식에도 들어 있지만, 햇볕에 노출되면 많이 분비된다. 반대로 햇볕을 오랫동안 쬐지 않으면 세로토닌 분비량이 적어지면서

우울증이 나타날 수 있다. 겨울이나 여름 장마철에 계절성 우울증을 겪는 사람 중에는 햇볕을 쬐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나타나기도 한다.

* 구루병, 골다공증, 골감소증 *

햇볕을 생각하면 비타민D, 비타민D 하면 떠오르는 것이 구루병(rickets)이다. 햇살 속 자외선을 쬐면 몸속에 합성되는 비타민D는

칼슘이 몸에 잘 흡수되게 돕는다. 그래서 비타민D가 부족하면 생길 수 있는 것이 구루병과 골다공증, 골감소증 등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체내 비타민D가 부족한 여성이 출산하거나 모유 수유하면 아이에게도 비타민D가 부족할 수 있다고 한다.

* 비만·복부비만 *

낮에 햇볕을 많이 쬐면 우리 몸에 갈색지방이 활성화돼 체중조절에 도움된다. 체내 지방을 저장하는 역할을 주로 하는 백색 지방과는 달리 갈색지방은 열 생성 과정을 통해 지방을 태워 열량 소모를 돕는다. 햇볕을 못 쬐면 숙면을 부르는 멜라토닌 분비가 약해진다. 잠을 충분히 못 자면 살 찌는 유전자가 활성화될 뿐 아니라 평소보다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게 된다. 비타민D도 부족해지면서 인슐린 작용이 둔해져 복부 비만 원인이 되고, 체중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체중 조절 점이 올라가 지방량이 증가한다.

* 근시 *

미국의 한 연구진은 현대에 근시환자가 많아진 원인을 ‘실내생활 증가’로 보고 있다. 아이 눈의 수정체가 망막 사이의 거리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면서 발달하기 위해서는 햇볕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실내활동이 점점 늘어나면서 수정체와 망막 사이 거리가 비정상적으로 길게 유지된 시간이 길어져서 근시가 더욱 심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야외 활동 시간이 3시간인 싱가포르 아이들은 야외 활동 시간이 14시간인 시드니 아이들보다 약 9배나 근시가 많다고 한다.

* 심장병 *

겨울철 심장병을 예방하려면 실내에서 웅크리지 말고 햇빛을 충분히 쬐어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햇볕을 받으면 피부 온도가 올라가 손과 발에 있는 말초혈관이 이완되면서 혈액순환이 잘 된다. 신진대사도 원활해지면서 백혈구 기능이 활발해져 면역력이 높아진다. 상처 통증 진정과 살균 소독 기능도 있다. 또 눈 부신 햇살이 눈의 망막을 자극하면 그 신호가 시신경을 통해 대뇌를 다시 자극해 뇌 활성을 높이게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007.html
kolaswqetsrq 11.14 19:03
사과를 이용한 민간요법

사과를 이용한 민간요법

사과는 남성이 먹으면 건강해지고 여성이 먹으면 아름다워진다. 이것은 사과 안에 풍부한 산(酸)과 사과철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동시에 피부에 윤기를 준다. 그러므로 사과는 정장작용과 식체 제거의 양약이며 피부를 윤택하게 하는 미용식이 아닐 수 없다.

●이질이 멎지 않을 때

설 익은 사과 10개를 물 2되와 섞어 삶아 물이 1되로 줄었을 때 그 물을 되도록 자주 먹으면 된다. 여기에 설탕을 넣어 먹어도 좋다.

●임파선이 부었을 때

사과를 송두리째 으깨어 식간에 식초를 타서 바르면 된다.

●위장허약, 식체, 구토 설사, 또는 변비에

사과를 껍질째 얇게 썰어서 20도의 식염수에 6~7시간 담갔다가 꺼내서 찧어 즙을 낸다. 이것을 매일 수시로 100g씩 마신다. 보통 병이 없는 사람도 반 컵씩 마시면 위장을 조성하고 식체를 제거하며 통변을 한다.

●불면증, 두통

식후마다 사과 1개를 껍질째 오래 먹으면 효력이 있다. 그러나 껍질에는 농약성분이 있을수 있으므로 소금물이나 식초수에 잘 씻어서 먹어야 한다.

●변비

식후마다 찐 사과 1개씩 먹으면 된다. 찌는 방법은 사과를 껍질째 꼭지를 딴 다음 속의 씨 같은 것을 갉아내고 그 속에 설탕이나 꿀을 가득 채운 뒤 조금 전 잘라낸 꼭지로 덮고 이쑤시개로 움직이지 않게 찔러 둔다. 그 후 사과를 그릇에 담아 찜통에 넣고 30~40분동안 찐다. 찜통에 들어갈 만한 양대로 쪄도 좋다. 이것을 1개 다 먹을 수 없으면 반을 먹어도 좋다. 찐 사과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수시로 큰 숟가락으로 한 술씩 끓여 식은 물과 먹어도 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843.html
kolaswqetsrq 11.14 19:04
전복의 효능

전복의 효능

1. 스테미너 음식

전복의 대표가 되는 효능 중에 하나로 정력, 스테미너를 증강 시켜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복에 들어있는 아르기닌 성분은 남성의 정액을 이루고 있는 주요 성분으로 발기부전이나 혈관이 안좋은 분들에게도 좋은 효능을 발휘할수 있습니다.

2. 기력보충

환자들에게 좋은 음식중에 하나가 전복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전복에 들어있는 타우린과 아르기닌 성분 때문이라 합니다. 아르기닌은 기력이 떨어진 환자들에게 기력을 보충해 줄 수 있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한의학에서는 전복을 우리몸을 구성하는 물질을 늘려주는 음식으로 설명한다고 합니다.

3. 간기능 강화 및 회복

이 또한 전복에 들어있는 아르기닌 성분 때문이라고 합니다. 간에 피로가 쌓이게 되면 오르티닌 성분이 회복을 도와주는데 이 오르티닌 아미노산이 만들어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아르기닌이라고 합니다.

4. 항암작용

전복에 들어 있는 다당류에는 백혈구가 우리몸을 위해 싸울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켜 주기 때문에 면역력을 향상시켜 몸속에 암세포가 있다면 암세포가 성장하는것을 막아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5. 시력회복

전복의 껍질에 해당되는 효능으로 전복의 껍질은 찬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의학에서는 열로 인하여 충혈된 눈을 가라앉히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어 눈을 편안하게 만든다고 하며 시력회복에도 도움이 될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753.html
kolaswqetsrq 11.14 19:06
실내 독소 제거에 탁월한 화초

실내 독소 제거에 탁월한 화초

1. 알로에 베라

알로에 베라는 잎을 자르면 나오는 맑은 젤 형태의 수액이 일광화상이나 관절염 치료제로 사용된다. 알로에 베라는 이런 치료 효과 외에도 집안의 포름알데히드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 아레카 야자

가시가 없는 야자의 일종인 아레카 야자는 실내에 쌓여 있는 독소를 제거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3. 코끼리 귀 필로덴드론

코끼리 귀를 닮은 화살 모양의 잎에서 유래한 이 화초는 알로에 베라처럼 포름알데히드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4. 종려나무

종려죽이라고도 불리는 종려나무는 실내의 공기 독소를 제거할 뿐만 아니라 특히 집안에 있는 암 유발 인자들을 없애는 효과도 탁월하다.

5. 대나무

대나무는 실내의 벤젠과 트리클로로에틸렌, 포름알데히드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6. 고무나무

새로 화초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좋은 고무나무는 포름알데히드 제거 효과가 있다.

7. 서양 담쟁이 넝쿨

실내에서도 잘 자라는 서양 담쟁이 넝쿨은 벤젠과 포름알데히드를 잘 제거한다.

8. 피닉스 야자

천연 공기 정화기 역할을 한다. 특히 페인트나 솔벤트 등에 들어있는 자일렌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9. 보스턴 고사리

실내의 가구나 건축 자재에 들어있는 포름알데히드를 제거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갖고 있다.

10. 스파티필럼

스파티필럼은 아세톤과 트리클로로에틸렌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단 고양이에게 유해하기 때문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피해야 한다.

11. 거베라

거의 모든 실내 독소를 제거하는 효능을 지니고 있다.

12. 용혈수

집에서 기르기에 좋은 상록교목의 일종이다. 용혈수는 유방암의 원인으로 알려진 자일렌과 트리클로로에틸렌을 제거하는 데 좋다.

13. 팔러 팜

테이블 야자로도 불리는 팔러 팜은 실내 독소와 암 유발 인자를 제거하는 공기 청정기 역할을 한다.

14. 스파이더 플랜트

거미 식물, 덤불난초, 줄모초, 거미죽란 등으로도 불리는 스파이더 플랜트는 일산화탄소를 제거하는 효능이 뛰어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712.html
kolaswqetsrq 11.14 19:07
과일이 보약이 되는 방법

과일이 보약이 되는 방법

1. 장이 약한 사람은 아침에 먹는다.

장이 약하다면 가능하면 저녁보다 아침에 먹는다. 저녁에 먹는다고 몸에 특별히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일에는 구연산 같은 유기산이 많이 들어 있어 장 점막을 자극할 수도 있으므로 조심한다.

2. 당뇨환자는 포도를 주의한다.

피로할 때 포도를 먹으면 금방 기운이 난다. 포도의 단맛을 내는 포도당과 과당 덕분이다. 포도는 당지수가 50으로 높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당뇨병 환자나 비만인 사람은 주의한다. 일반 사람도 포도를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혈당이 급격히 상승하고 장 활동이 활발해져 설사를 할 수 있으므로 조심한다.

3. 장이 안 좋으면 참외를 멀리한다.

참외는 암 세포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참외에 함유된 ‘쿠쿨비타신’ 성분 덕분이다. 그러나 몸에 좋다고 무턱대고 참외를 먹어서는 안 된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참외를 피해야 한다. 찬 과일에 속하는 참외는 장을 자극해서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4. 날로 먹는 게 가장 좋다.

과일을 섭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깨끗이 씻어 껍질째 먹는 것이다. 과일을 갈아서 먹으면 비타민 같은 영양소가 파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키위의 본고장인 뉴질랜드에는 키위를 껍질째 섭취하는 키위 마니아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과일을 갈아서 먹었을 때의 장점도 있다. 체내 흡수율이 높아져 소화가 잘 된다는 점이다. 단, 당뇨병 환자나 비만인 사람이 과일을 갈아서 먹으면 혈당이 빨리 올라갈 수 있으므로 조심한다

5. 포도는 갈아서 먹는다.

포도는 껍질까지 먹거나 껍질째 갈아서 먹는 것이 좋다. 포도에 들어 있는 항독성 물질인 ‘레스베라트롤’을 섭취하기 위함이다. 레스테바트롤은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발전하는 것을 차단하고 이미 암세포로 변한 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성분으로, 포도껍질의 자주색 색소에 많이 들어 있다. 시판 중인 포도주스와 와인 등을 섭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6. 토마토는 익혀서 먹는다.

토마토의 붉은색을 내는 리코펜은 암 유발 물질이 생성되기 전에 몸 밖으로 배출시키고, 노화를 앞당기는 체내 활성 산소를 억제한다. 리코펜은 생으로 먹는 것보다 익혀 먹을 때 함량이 늘어나고, 기름에 조리할 때 우리 몸에 더 잘 흡수된다. 따라서 익혀 먹는 것이 좋다. 단, 비타민C가 파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살짝 익힌다.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서 먹기도 하는데, 토마토의 비타민K가 손실되므로 좋은 방법은 아니다. 토마토는 산이 많이 함유돼 있으므로 위산과다증이 있는 사람은 공복에 먹지 않도록 챙긴다.

7. 다이어트 중이라면 식전에 먹는다.

과일에 많이 들어 있는 비타민C는 철분이나 칼슘을 흡수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목적으로 과일을 섭취하고자 한다면 식사를 마치고 먹는다. 그러나 다이어트 중이거나 비만인 사람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식사하기 전에 먹어야 포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8. 후숙 과일로도 즐긴다.

과일 중에는 후숙과일도 있다. 후숙과일이란 수확한 과일이 먹기에 가장 알맞은 상태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키위가 대표적인 후숙과일이다. 키위의 신맛을 좋아하면 약간 단단한 것을 고르고, 달콤함을 즐기려면 말랑말랑한 것을 고른다. 바나나와 망고도 후숙시켜 먹을 수 있다. 키위, 바나나, 망고를 후숙시킬 때는 냉장고에 넣지 말고 신문지에 싸서 실온에 둔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496.html
kolaswqetsrq 11.14 19:08
가장 중요한 사람

가장 중요한 사람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축복과 기회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때가 있는 법입니다.

눈앞의 사람이 지금 가난하고

비천한 처지에 있다 하더라도

그를 존중하고 소중히 대하세요.

언젠가는 그가 당신에게

날개를 달아줄 사람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세요.

지금 당신 눈앞에 있는 사람이 당신에게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입니다.

 - 마틴 루터킹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212.html
kolaswqetsrq 11.14 19:09
천연소화제

천연소화제

◇매실

매실은 소화를 원활하게 도와주는 열매로 이미 유명하다. 음식점에 가면 후식으로 항상 매실음료를 내어 주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매실 안에 있는 유기산은 소화효소나 소화액 분비를 원활하게 도와주기 때문에 소화가 안 될 때 먹게 되면 소화가 잘 될 뿐 아니라 새콤한 맛 때문에 식욕도 돋궈준다. 매실에는 소화촉진과 함께 항균성분이 있어서 식중독 등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무

소화가 잘 되지 않을때 동치미 등을 마시게 하거나 무즙을 갈아서 먹기도 하는 민간요법이 있다. 무 안에는 소화효소가 많이 들어 있기도하고 무의 성질이 따뜻하기 때문에 소화에 도움을 준다. 특히 밀이나 보리, 메밀 같은 음식을 먹고 나서 속이 더부룩할 때에는 무를 먹으면 좋은데 그 이전에 무를 갈아서 넣거나 무절임을 넣어먹으면 좋다.

◇생강

생강은 주로 감기에 걸렸을 때 차로 끓여서 먹지만 소화에도 좋다. 소화가 잘 되게 하려면 몸이 따뜻해지는 것이 중요한데, 생강 역시 위장의 연동운동을 도와서 소화액의 분비를 자극하고, 꾸준히 먹어주면 몸도 따뜻해져서 활발한 신진대사에 도움이 된다. 단, 생강 껍질은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꼭 껍질을 제거하고 조리하는 것이 좋다.

◇마

‘마’는 오장육부를 튼튼하게 해주는 식품일 뿐만 아니라 원기회복에 탁월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천연 소화제로 자주 쓰였기에 익히지 않고 생으로 갈아먹어도 좋고, 쌀과 함께 죽으로 섭취하면 만성위염을 가진 사람에게도 장기적으로 좋다.

◇사과

‘사과’역시 제때 섭취해 주면 소화를 돕게 되는데요, 배변활동이 적은 밤보다는 아침에 사과를 한 쪽씩 섭취해 줌으로써 식이섬유를 통한 소화촉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양배추

음식점에 가면 샐러드로 많이 나오는 것 중의 하나가 양배추이다. 양배추가 음식점 기본찬으로 나오는 이유는 소화를 돕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양배추에는 비타민과 식이섬유, 칼슘 등 풍부한 영양소를 지녔기 때문에 위 점막을 강화시켜주고, 손상된 위를 재생시켜 준다. 양배추는 날것으로 먹어도 좋지만, 수분이 많기에 즙을 내서 물처럼 마시면 소화 기능을 향상시켜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629.html
kolaswqetsrq 11.14 19:10
젊음과 장수, 두마리 토끼 잡는 법

젊음과 장수, 두마리 토끼 잡는 법

1. 운동과 다이어트로 DNA를 보호하라

나이가 들면 염색체를 양끝에서 보호하는 마개(텔로미어)의 길이도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질병에 취약해진다.

한 예비연구에 따르면 다이어트와 운동같은 건전한 생활습관은 텔로미어의 길이를 늘이는 효소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 매사에 성실하라

80년에 걸쳐 시행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장수 여부를 예측할수 있는 최고의 변수는 성실한 성격이었다.

3. 친구를 사귀라

오스트렐리아의 연구진은 사교성이 있는 노인은 친구가 적은 동년배와 비교했을 때 10년안에 사망할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4. 친구를 현명하게 선택하라

건강한 생활방식을 가진 친구를 찾는게 중요하다.

5. 담배를 끊어라

50년간 실시된 영국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30세에 담배를 끊으면 수명이 10년 연장되며, 40세 때는 9년, 50세 때는 6년,

60세 때는 3년 수명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 낮잠을 자라

규칙적으로 낮잠을 즐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병으로 죽을 확률이 37%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7. 지중해식 다이어트를 하라

지중해식 다이어트는 과일과 채소, 곡물, 올리브유, 그리고 생선을 위주로 한다.

8. 오키나와 사람처럼 먹어라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푸른색과 노란색 채소 위주의 저칼로리 다이어트 식단을 유지함으로써 한때 세계 최장수 지방의 위치를 지켰다.

9. 결혼하라

결혼한 사람은 혼자 사는 사람보다 오래 사는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큰 혜택을 준다.

10. 움직여라

1주일에 2시간 30분 동안 적당한 수준의 운동을 하라. 이렇게 하면 심장병, 뇌졸중, 당뇨, 우울증 등에 걸릴 위험이 줄어들고,

나이가 들어도 정신력을 예민하게 유지할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11. 약간의 술을 마셔라

술을 적당량 마시는 사람은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심장병에 걸릴 가능성이 낮다. 미국심장협회는 하루에 여자는 1잔, 남자는 1-2잔 정도를 적당량으로 추천한다.

12. 신앙을 가져라

65세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12년간 실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매주 한차례이상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면역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3. 용서하라

원한을 털어버리면 불안감이 줄어들고, 혈압이 떨어지며 숨쉬기가 편안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이같은 효과는 커진다.

14. 숙면하라

잠자는 시간이 5시간 이하인 사람은 일찍 사망할 위험이 크다. 잠을 충분히 자야 각종 질병도 예방하고, 병에서도 빠르게 회복된다.

15. 스트레스를 관리하라

요가나 명상, 복식 호흡을 해보자. 하루에 몇분만 이렇게 투자하면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생활이 달라진다.

16. 목표를 가져라

취미생활을 비롯해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활동을 하면 오래 살수 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911.html
kolaswqetsrq 11.14 19:12
종아리로 알아보는 건강 상태

종아리로 알아보는 건강 상태

종아리를 만졌을 때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현재 스트레스가 아주 많이 쌓여 있거나 몸 어딘가에 분명히 이상이 있는 것이다.

1. 손바닥보다 차갑다.

2. 열이 나듯 뜨겁다.

3. 탄력이 없이 흐물흐물하다.

4. 딱딱하게 굳어 있다.

5. 빵빵 하게 부어 있다.

6. 속에 멍울이 있다.

7. 누르면 아픈 데가 있다.

8. 손으로 눌렀다 떼면 자국이 오래 간다.

그렇다면 반대로 건강한 종아리,즉 앞으로 건강하게 장수할 사람의 종아리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1.차갑거나 열이 없이 적당히 따뜻하다.

2.고무공처럼 탄력 있다,

3.갓 쪄낸 찰떡처럼 부드럽다.

4.피부가 팽팽하다, 속에 멍울이 없다,

5.손으로 눌렀을 때 아픈 데가 없다.

6.손으로 눌렀다 떼면 금방 원상태로 돌아온다.

7.통증이나 피로감이 없다.

종아리는 ‘제2의 심장’이라고 불릴 만큼 매우 중요한 근육기관이다. 우리 몸의 혈액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약 70%가 하체에 모여 있다. 혈액이 아래에 계속해서 쌓이기만 한다면 우리 인간은 당연히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종아리는 혈액이 아래에 쌓이지 않도록 혈액을 심장으로 다시 밀어 올리는 작용을 한다.

이 종아리의 기능이 약해지면 혈류가 막혀 혈전이 생기기 쉽고, 혈관이 노화되면 뇌졸중이나 심장병 같은 무서운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영양도 호르몬도 원활하게 흐르지 않고, 혈액도 몸 구석구석까지 닿지 않아 몸이 차가워진다. 몸이 차가워지면 위장과 심장, 신장이 잘 작동하지 않으므로 면역력도 떨어진다. 면역력이 저하되면 우리 몸 상태는 곳곳이 손상된다.

그래서 감기에 잘 걸리며 지방과 노폐물이 쌓여 몸이 쉽게 붓거나 살이 잘 찌며 피부가 탁해지고 머리카락이 푸석 거리기도 한다. 종아리마사지는 만병을 막아주는 장수 마사지다. 혈류를 원활하게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간단하다. 종아리를 매일 5분씩 정성껏 마사지해주기만 해도 몸이 따뜻해지면서 자율신경이 원활하게 조절되고 면역력도 한층 높아진다. 암 종양 수치와 혈압수치가 내려가고, 살이 빠졌으며, 피부에 윤기가 생기고, 잠투정이 심하던 아기가 마사지 2분만에 쌔근쌔근 잠든 사례도 있다. 종아리 근육 하나가 이렇게 우리 몸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426.html
kolaswqetsrq 11.14 19:13
혈액형의 영향력 10가지

혈액형의 영향력 10가지

1. 혈액형과 영양섭취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몸은 종일 쉬지 않고 복잡한 작용을 해낸다. 예를 들면, 소화 작용같은 것. 사람들의 몸은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 등의 영양소에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인다. 영양분을 소화 및 흡수하는 다양한 단계에서 혈액형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혈액형이 O형이라면, 단백질이 풍부한 식단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반면, 혈액형이 A형인 사람들은 가급적 육류를 피하고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혈액형이 B형인 사람들의 경우, 흰살 고기 섭취를 줄이고 (꽂히는 음식만 먹는 대신) 건강에 좋은, 다양한 식단을 따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AB형의 혈액형을 가진 사람이라면 생선이 잘 맞고 지방, 특히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음식이 몸에 이롭다.

2. 혈액형과 운동

혈액형이 좋아하는 운동의 종류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혈액형이 A형인 사람들은 요가처럼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운동이나 조깅처럼 지구력을 요하는 운동이 적합하다. 반면, B형의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암벽타기 혹은 무술처럼 체력은 물론 정신력을 강하게 다지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상대방의 RH 혈액형 또한 체크해두는 것이 좋다. 특히 여성이 RH- 형이고, 상대방 남성이 RH 형일 때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경우 태아는 대부분 RH 형일 가능성이 높고, 모체가 RH 형에 대한 항원을 생성해내면서 태아 혈액의 적혈구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아세포증이라고도 불리는 이 위험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의사와 상의하는 게 좋다.

4. 혈액형과 복부지방

남들보다 뱃살이 유독 잘 찌는 사람이 있다. 물론 성별(남자와 여자는 체내 지방 분산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혹은 평소 식습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혈액형별로도 차이를 보인다. 혈액형이 A형인 사람들은 보통 탄수화물 소화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복부에 지방이 덜 몰리는 경향이 있다. 반면 혈액형이 O형이라면, 주의하시라. 이들은 보통 당 분해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뱃살이 두둑해지기 쉽다.

5. 혈액형과 질병

같은 질병에 대해서도 사람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인다. 혈액형이 면역체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므로, 혈액형 별로 취약 질환이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자신이 특정 질환에 남보다 더 취약한지 여부를 알고 싶다면 의사와 상담할 것.

6. 혈액형과 스트레스 취약성

 "
특정 혈액형의 소심한 성격 등등의 가설에 가까운 이야기 외에, 혈액형이 스트레스 반응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한다. A형은 다른 사람들보다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왕성해 스트레스를 자가 증폭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심장 건강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좀 더 자주 휴식을 취하고 요가 등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주는 것이 좋다.
",

7. 항원

항원으로 혈액형을 판별할 수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 물질은 혈액 내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입에서부터 대장까지 소화기관 전체에서 발견된다. 심지어 폐 조직 혹은 코를 통해서도 혈액형을 알아낼 수 있다

8. 응급상황에서의 혈액형

응급실 의료진들은 혈액형 등 주요 의료 정보가 적힌 종이를 항상 소지하도록 권고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이 작은 종이 조각이 당신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수혈이 필요한 경우 필요한 혈액형을 신속하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9. 혈액형과 성격

혈액형이 신진대사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성격 역시 혈액형의 영향을 받는다는이야기가 전혀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을 것이다. O형의 혈액형을 지닌 사람들은 보통 외향적이고, 창조적이며 집단으로 행동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 혈액형이 A형인 사람들은 보통 조용한 성격에, 예술과 미학에 조예가 깊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경향이 있다. 야심만만하고 독립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면 혈액형이 B형인 경우가 많다. AB형의 혈액형을 지닌 사람들은 내향적이고 사려깊은 성격에,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긴다.

10. 혈액형과 생식능력

흥미롭게도, 혈액형에 따라 임신 가능성도 달라진다. AB형 여성의 경우 임신에 도움이 되는 호르몬 분비량이 더 많아 다른 혈액형의 여성보다 쉽게 임신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27.html
kolaswqetsrq 11.14 19:16
수분부족을 알리는 신호

수분부족을 알리는 신호

머리가 아플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한 가지, 물은 충분히 드시고 계신가요?

인체 구성의 2/3에 가까운 비율이 수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수분 섭취는 머리뿐 아니라 신체 기능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몸에 물이 부족하면 나타나는 9가지 증상을 알려 드릴게요.

1. 건조한 피부

체내 수분이 부족하면 가장 먼저 피부가 건조해집니다. 게다가 몸 속의 불순물과 독성이 원활하게 배출되지 못해 피부 트러블까지 나타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2. 눈물

수분이 부족해 안구가 건조해지면, 우리 몸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더 많은 눈물을 만들어냅니다. 눈이 건조하면 더 빨리 피로해지고, 붓기도 심해질 수 있습니다.

3. 입이 마르는 증상

침이 나오지 않아 입이 마르면 불편하기도 하지만, 세균이 번성하고 입냄새가 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4. 허기

사람들은 종종 갈증을 허기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물이 부족할 때 뭔가를 먹게 되고, 장기적으로 체중이 늘고 소화가 어려워집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손 닿는 곳에 마실 것을 상비하세요.

5. 두통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으면, 뇌에 혈액과 산소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두통을 겪게 됩니다. 머리가 아플 때는 진통제를 먹기 전에, 물 한 컵을 마셔 보세요.

6. 집중력 저하

수분 부족으로 뇌에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사고력과 집중력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학교 교실에 "물을 많이 마시자"는 표어가 붙어 있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죠.

7. 피로

수분이 부족하면 활력이 떨어지고 쉽게 피곤해집니다. 혈액이 원활하게 순환하지 못해 심장이 더 많은 일을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피로 회복을 위해 꼭 커피를 마실 필요는 없습니다. 물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으니까요.

8. 관절통

수분 섭취는 연골에도 영향을 줍니다. 물이 부족하면 연골이 뻣뻣해지면서 관절 통증이 발생하죠.

9. 소화 불량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으면 음식물을 소화하는 데 문제가 생깁니다. 음식물이 분해된 용액이 더 끈끈해져서 이동이 어렵기 때문이죠. 특히 변비가 있는 사람이라면 수분 섭취량을 늘려야 합니다. 위에 언급한 증상 말고도, 내가 물을 충분히 마시고 있는지 판별할 수 있는 간단한 검사가 있습니다. 손등의 피부를 몇 초간 잡았다 놓았을 때, 즉각 회복되지 않고 잠깐 그대로 유지되면 수분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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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17
■ 고려 최초의 혼혈왕, 충선왕 3편

■ 고려 최초의 혼혈왕, 충선왕 3편

1305년(충렬왕31년) 원나라의 성종(成宗)이 죽자 원나라에서는 황위쟁탈전이 일어났다. 충선왕은 승자가 된 무종(武宗)을 도왔으므로 그 세력에 힘입어 자신을 모함한 세력을 제거할 수 있었다. 1308년 고려 충렬왕이 죽자, 귀국하여 다시 왕위에 올랐다. 복위한 왕은 기강의 확립, 조세의 공평, 인재등용의 개방, 공신 자제의 중용, 농장업의 장려, 동성결혼의 금지, 귀족의 횡포 엄단 등 즉위교서 못지않은 혁신적인 복위교서를 발표하여 다시 한 번 혁신정치를 천명하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원나라 생활에 젖어있던 그는 곧 정치에 싫증을 느꼈다. 제안대군 숙(淑)에게 정치를 대행시키고 원나라로 건너가 한 번도 귀국하지 않고, 전지(傳旨:임금의 명을 전달)로써 국정을 처리하였다. 더 이상 혁신정치는 실행되지 못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각염법(榷鹽法)을 제정하여 그때까지 사원(寺院)과 권문세가(權門勢家)에서 소금을 독점하여 폭리를 취하는 것을 막고 소금의 전매를 단행하여, 한 해에 포(布) 4만 필의 국고수익을 늘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러번 시도했던 관제개혁은 결국 원나라의 간섭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한편, 원나라에 머무는 충선왕 때문에 본국에서 해마다 포10만 필, 쌀4,000곡(斛) 이외에도 많은 물자를 운반함으로써 극심한 폐해가 있었다. 고려의 신하들이 귀국을 빈번히 간청하고 원나라에서도 귀국을 명하였으나,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1313년 둘째 아들 강릉대군 왕도(王燾)에게 전위(傳位)하였다. 같은 해 6월 잠시 귀국하여 아들 충숙왕을 즉위시키고 이듬해 다시 원나라로 가서 연경(燕京:북경)에 계속 머물며 끝내 귀국을 피하였다. 이는 본국에 대한 애착이 없고 원 왕실에서 우대해 주는 등의 이유도 있겠으나, 본성이 담박하고, 불(佛)을 좋아하고 글과 그림을 즐기는 등 정치와 권력에는 애착이 적었던 것이다.

그 뒤 연경(燕京)에 있는 자신의 저택 안에 만권당(萬卷堂)을 세워 많은 서적을 수집하고, 조맹부(趙孟頫) 등 원나라 학자를 불러 고전을 연구하게 하였다. 또한, 고려에서 이제현(李齊賢)등의 학자를 불러 원의 학자들과 교유(交遊)하게 함으로써 문화교류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서도의 대가 조맹부의 글씨와 서법은 이제현으로 인해 고려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1320년(충숙왕7년) 원나라의 인종(仁宗)이 죽자 고려 출신 환관 임빠이엔토쿠스任伯顔禿古思의 모략으로 유배되었다가 1323년 태정제(泰定帝)의 즉위로 3년 만에 풀려났고, 원나라에 다시 돌아간 지 2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능은 덕릉(德陵)이고 개성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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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18
■ 고려 최초의 혼혈왕, 충선왕 2편

■ 고려 최초의 혼혈왕, 충선왕 2편

충렬왕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정치에 흥미를 잃었고 자신의 입지도 약화되었으므로, 충렬왕24년(1298년) 세자 왕원에서 선위(禪位)하였다. 세자 왕원은 24세의 젊은 나이로 고려 제 26대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충선왕(忠宣王)이다.

고려의 ‘충(忠)’자 돌림 왕들은 역사적으로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중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평가를 받는 왕이 충선왕이다. 다른 왕들과 달리 고려의 위기를 자각한 충선왕은 정국 쇄신을 도모하기 위해 정치와 사회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관제를 혁신하고, 권신들이 소유한 광대한 토지를 몰수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군제(軍制)·세제(稅制)를 정비하고 원나라에 대해서도 자주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취임일 새벽을 기하여 참형과 교형 이외의 죄는 모두 용서해 주었다. 충렬왕대에 권력을 잡았던 천민 출신 관료들을 배제하고, 승려의 직분을 새롭게 하고 초야에 묻혀 있는 소외된 선비들을 등용하여 문신의 힘을 키우고자 했다. 그리고 세도가에 빌붙거나 원나라에 아부하여 벼슬을 얻은 자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이들은 신분질서를 어지럽게 하고 또 그 세력을 이용해 많은 부를 누리고 있었다. 바로 이들을 정치·경제·사회의 폐단을 일으키는 장본인으로 지적하고 제거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뇌물거래와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세력가들이 농지를 탈취하고 노비를 빼앗는 것을 금지했다. 젊은 왕은 구폐를 개혁하고 새로운 정치를 실행하는 혁명을 하려했지만, 반원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어서 원나라와 기득권 세력들의 큰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리고 부인인 계국대장공주와의 불화로 원나라와의 사이도 원만치 못하였다. 이 무렵 조비(趙妃)를 질투해 오던 왕비 계국공주와 왕의 반대파들에 의하여 음모사건(조비무고사건)이 벌어졌다. 이는 개혁의 대상이었던 귀족에게 반격의 기회가 되었고, 반원적 요소에 대한 원나라의 간섭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마침내 충선왕은 즉위년 8월, 원나라로부터 강제 퇴위당하고 원나라에서 온 사신에게 국새(國璽)를 빼앗기는 사태가 벌어졌다. 충선왕은 원나라에 소환되고 선위 7개월 만에 왕위는 다시 충렬왕에게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충선왕은 10년 동안 원나라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왕실의 치정문제가 아니었고, 충렬·충선 양 왕을 둘러싼 신하들의 정치적 중상모략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원나라에 장기간 머무르는 동안 본국에서는 즉위 전부터 있던 부자간의 불화가 표면화되고 있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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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19
■ 고려 최초의 혼혈왕, 충선왕 1편

■ 고려 최초의 혼혈왕, 충선왕 1편

충선왕은 원 세조 쿠빌라이의 외손(外孫)으로 충렬왕의 셋째 아들이다. 어릴 때 이름은 왕원이고 몽고 이름은 익지례보화(益智禮普化, 젊은 황소라는 뜻)이다. 원래 셋째 아들은 왕위와는 거리가 멀지만, 충선왕의 어머니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가 쿠빌라이의 막내딸이었기에 세자가 될 수 있었다. 제국대장공주는 혈통 상 ‘황금씨족’이라고 불린 칭기즈칸의 직계 후손이기 때문에 파워가 있었다.

왕원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고려사》에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기고 있다. 총명하고 마음씀이 남달랐던 세자는 백성들의 삶이 곤궁함에도 날마다 사냥을 즐기는 부왕(父王)을 울며 말리기도 하였고, 땔나무를 지고 궁으로 들어온 자의 의복이 남루함을 보고 마음 아파하기도 하였다. 왕권을 대행할 때에는 세력가들에게 땅을 빼앗겨 억울함을 호소하는 백성들의 토지를 되돌려주기도 하였다. 원의 세조 쿠빌라이도 외손자의 영특함을에 기뻐하며 늘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1277년(충렬왕3년) 3살 때 세자로 책봉되고, 다음 해 원나라에 가서 몽고식 이름을 받았다. 18살 때 왕원은 왕영·홍문계(洪文系)·조인규(趙仁規) 등의 딸을 비(妃)로 맞아들였다. 특히 왕영의 딸 정비(正妃) 왕씨는 1287년(충렬왕13년)에 공녀로 선발되었는데, 사정을 들은 세자의 요청으로 공녀 차출을 면하게 되었고 자신의 비(妃)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4년 후인 22살 때(충렬왕22년)에 연경(북경)의 황궁에서 원나라 쿠빌라이의 증손녀이자, 진왕(晉王) 감마라(甘麻剌)의 딸인 계국대장공주(國大長公主, 몽골명 寶塔實憐보탑실련)와 혼인했다.

1297년(충렬왕23년) 제국대장공주가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나이 39세였다. 부고를 받은 세자 왕원은 그해 6월 원나라로부터 돌아와 모후의 영전에 분향했다. 제국대장공주가 죽자 충렬왕은 원나라에서 입지가 약해졌고, 대신 새로 원나라 공주를 부인으로 맞아들인 세자 왕원이 고려의 새로운 권력자로 부상했다.

세자 왕원의 편에 붙은 대신들은 하나같이 충렬왕이 총애하던 궁인 무비(無比:백야단)를 모함했다. 세자 왕원은 궁인 무비와 그 측근을 체포하여 ‘무당을 시켜 제국대장공주를 저주하여 죽게 한 사실’을 자백하게 한 후 처형했다. 또한 충렬왕의 심복인 내시 도성기, 최세연, 전숙, 방종저, 중랑장 김근을 죽인 뒤에 부왕의 측근 40여 명을 숙청하고 조정을 장악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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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20
■ 고려왕, 원의 사위가 되다 2편

■ 고려왕, 원의 사위가 되다 2편

원의 부마국으로 전락한 고려는 관제(官制)도 격하시키고, 왕실의 용어도 원에서 쓰는 용어보다 한 단계 격하된 용어로 바꾸었다. 선지(宣旨)는 왕지(王旨)로, 짐(朕)은 고(孤)로, 사(赦)는 유(宥)로, 폐하(陛下)는 전하(殿下)로, 태자(太子)는 세자(世子)로 하였다.

왕위에 오르기 위해 원에서 돌아온 충렬왕은 변발에 호복(胡服)차림을 하고 있었다. 충렬왕이 귀국하자 그를 본 많은 백성이 환호성을 질렀지만, 그가 하고 온 모습에 충격을 받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인 충렬왕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원에서 즐겼던 매사냥을 잊지 못해 즉위 초부터 응방(鷹坊)을 설치하여 사냥을 즐기는 등 향락에 탐닉하는 생활을 하였다.

비록 몽고의 침입이 끝난 뒤였지만, 원나라에 보낼 각종 공물(貢物) 때문에 전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을 생각하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었다. 문제의 응방은 대표적 공물인 매 사육과 사냥을 전담하는 기구로서 개경뿐 아니라 각 도의 역(驛)과 외군(外軍)에도 설치되었다. 응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사냥을 좋아했던 충렬왕은 수시로 사냥을 나갔고, 마음이 내키면 멀리 충청도까지도 사냥 여행을 떠났다. 당시 사냥을 할 때에는 매 외에도 개를 동원하고, 화렵(火獵)이라 해서 밭이나 산에 불을 지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엄청난 사치에 놀란 제국공주가 왕의 잦은 사냥을 나무랄 정도였다. 충렬왕은 정력가이기도 했다. 사냥 뿐만 아니라 여색 또한 밝혀서 사냥을 핑계로 왕후 몰래 궁인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무비라는 궁인을 가장 총애하여 왕이 장단 도라산으로 사냥 나갈 때에는 반드시 무비를 데리고 가서 즐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비를 ‘도라산’이고도 불렀다.

어처구니없는 일로 백성의 원성을 자아내기는 제국대장공주도 마찬가지였다. 왕후는 하찮은 익명서의 무고를 믿고 김방경 등 중신들을 함부로 투옥하는가 하면, 충렬왕의 첫 부인인 나이 많은 정화궁주를 자기 앞에 무릎 꿇게 만드는 오만한 짓도 저질렀다. 게다가 장사 수완도 좋아 일부 시종들의 말을 듣고 전국의 인삼이나 잣 등을 매점매석하고는 원나라 상인들에게 몰래 팔아 거액의 돈을 챙기기도 했다. 하지만 제국공주는 신혼 초를 빼고는 충렬왕의 바람기 때문에 무던히도 마음고생을 한 왕비였다.

그녀가 39세로 요절한 것도 아마 이 때문인 듯하다. 제국공주가 죽자 원나라에서는 혹시 궁중에 있는 임금의 총비들이 저주하여 죽은 것이 아닌가 하여 철저하게 조사했다. 애매한 여자가 한둘 희생당했고, 그녀의 아들 충선왕은 귀국하자마자 애첩 무비를 비롯한 측근들을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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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21
■ 고려왕, 원의 사위가 되다 1편

■ 고려왕, 원의 사위가 되다 1편

충렬왕(忠烈王:1236~1308, 재위 1274~1308)은 원나라 황실과 처음으로 혼인을 맺은 고려의 왕으로 원 세조(쿠빌라이칸)의 사위이다. 충렬왕은 원종의 맏아들이자 정순왕후 김씨 소생으로 1236년에 태어났다. 1267년 태자로 책봉된 이후 원나라에 입조하여 연경(북경)에 머무르다가 원 세조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하였다. 충렬왕과 원 공주와의 혼인은 1271년(원종 12) 부왕인 원종이 추밀원사 김연을 원 세조에게 보내서 정식으로 청혼하였고 그 해 6월 충렬왕은 세조를 알현하고 혼인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6개월 후 충렬왕은 천여 근의 금을 마련하여 원나라로 가서 1년 반쯤 지난 뒤인 1274년(원종 15) 5월에 원 세조의 딸 홀도로게리미실 공주(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하였다.

충렬왕이 살았던 시기는 몽고가 원(元)이라고 국호를 바꾸고 대제국을 건설한 시기였다. 세조 쿠빌라이는 몽고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의 손자이며, 고려 충렬왕의 장인이었다. 쿠빌라이는 칭기즈칸이 물려준 대제국을 잘 다스리고 더 넓힌 인물이다. 원나라에 굴복한 고려는 그들의 명령을 따르는 일개 제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더 나아가 원 황실과 고려 왕실간의 통혼으로 고려는 원의 사위의 나라가 된 것이다. 원래 고려왕들은 후비(后妃)를 왕실이나 귀족가문에서 맞아들였으나, 몽고와의 오랜 항쟁이 끝나고 나서 고려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을 해야 했다. 원이 고려왕을 부마로 삼고자 한 이유는 고려를 감시하기 위한 정략적 이유가 컸다. 이후 고려왕의 묘호(시호)는 조(祖)나 종(宗)이 아닌 원 황실에 충성을 한다는 의미로 충(忠)이라는 돌림자를 사용해야 했다. 원제국의 부마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처음으로 치러진 대륙국가와의 왕실 혼인으로, 고려는 역사의 한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양국의 우호관계를 배경으로 역대 권신들에 억눌려 오던 왕실의 지위는 회복, 강화될 수 있었으나 자주성을 잃은 종속국으로 전락하여 이후 원나라의 많은 간섭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마흔이 다 된 나이로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한 충렬왕은 이미 태자로 책봉된 직후 왕녀인 정화궁주와 혼인하여 장성한 자녀까지 둔 유부남이었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세조 쿠빌라이의 딸인 제국대장공주는 충렬왕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제국대장공주가 고려에 와서 몽고양식의 생활을 하고 사사로이 부리는 사람도 원나라에서 데려옴으로써 고려 왕실에는 몽고의 풍속·언어 등이 퍼지기도 하였다.혼례를 치르고 두 달 뒤 부친인 원종이 승하하자, 충렬왕은 왕위 승계를 위해 고려로 돌아왔다. 어린 나이에 충렬왕에게 시집 온 제국대장공주는 남편과의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는 않았다. 충렬왕에게는 이미 부인이 있었고 그 부인과 좋은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비록 금실이 좋지는 않았지만, 공주는 이듬해에 아들을 낳았고, 그가 충렬왕을 이은 충선왕이다. 고려 왕실 최초의 혼혈 왕이기도 한 충선왕 이후로 고려의 왕들은 원나라에서 일명 뚤루게(禿魯花)인 질자(質子:인질로 보낸 아들)로 성장하게 되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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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22
■ 일본 원정遠征에 동원된 고려

■ 일본 원정(遠征)에 동원된 고려

원의 부마국으로 전락한 고려는 수많은 공녀·공물 뿐 아니라 군대 징발로도 시련을 겪었다.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원정에 동원된 것이다. 원 세조 쿠빌라이는 동북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복속되지 않은 일본마저 정벌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 측에서는 경유지인 고려에 끼칠 피해와 일본의 보복 등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려는 확답을 미룬 채 시간을 끌었다. 그러자 쿠빌라이의 열화 같은 책망이 뒤따랐다. 원은 무력 침략을 하려고 고려에 지원군을 요청했다. 그리고 곧 흑산도를 전진기지로 삼아 일본 정벌을 준비했다.

1274년 5월 14일, 몽고는 일본 정벌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고려의 원종이 갑자기 사망하여 출전이 석 달이나 연기되었고, 그 뒤를 이어 충렬왕이 즉위하였다. 충렬왕이 즉위하자 여·몽연합군은 쓰시마섬을 향했다. 쓰시마를 점령한 여몽연합군은 기세를 몰아 이키(壹岐) 섬을 거쳐 하카다(博多:후쿠오카)를 공격했다. 막강한 무기를 바탕으로 일본을 제압한 여·몽연합군의 승리가 눈앞에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닥친 태풍으로 좌군사 김신을 비롯하여 연합군 1만 4천여 명이 물귀신이 되어 버렸다. 일본은 이것을 신풍(神風:카미카재)이라고 불렀다.

1차 원정은 완전 실패였다. 그로부터 6년이 흘러 원은 고려의 합포(옛 마산시)에 정동행성(政東行省)을 설치하고, 충렬왕을 좌승상행중서성사로 정했다. 고려에서도 김방경(金方慶)을 총대장으로 삼아 1만 명을 거느리고 몽고군에 합세했다. 5월에 홍다구·김방경 등이 군함을 타고 합포를 떠나 일본의 규슈로 건너가 연합군과 일본군간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여름이 되자 태풍은 또 다시 여·몽연합군을 덮쳤다. 원나라 15만 명의 병졸과 고려군 1만 명이 거의 다 태풍에 휩쓸려 수장되고, 살아남은 자는 겨우 1만9천 명이었다.

일본 원정의 대참패로 세계 통일을 이루고자 한 세조 쿠빌라이의 야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전쟁 준비 때문에 고려 백성은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몽고가 고려를 침략하기 시작한 1231년부터 고려 백성은 무려 50년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내는 비운의 세월을 겪었다.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원정에 실패한 쿠빌라이는 또 다시 일본 정벌을 계획했으나 국내 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반대 여론에 부딪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원나라는 이후에도 두 번 더 정동행성을 설치하고 정벌준비를 강요하여 그 피해가 극심하였다. 1293년 충렬왕은 공주와 함께 동정(東征)의 불가함을 직접 호소하고자 원나라로 갔는데, 이듬해 원세조가 죽음으로써 동정(東征)은 끝이 났다. 일본 정벌을 위해 일시적으로 설치했던 정동행성은 그대로 두어 고려의 내정을 간섭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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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인宮人 무비無比

■ 궁인(宮人) 무비(無比)

천인 출신의 후궁 무비(無比:생몰년 미상)는 고려 의종의 후궁이다. 원래는 남경(현재 서울)의 관비(官婢)였는데, 의종의 눈에 들어 총애를 받고 후궁이 되었다. 비교(比較) 대상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하여 이름도 ‘무비(無比)’라고 하니 아마도 뛰어난 미색(美色)으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의종에게는 이미 장경왕후와 장선왕후가 있었다. 장경왕후는 1남 4녀를 낳았고, 장선왕후는 자식이 없었는데, 무비는 무려 3남 9녀를 낳았다. 두 왕후가 언제 죽었는지, 혹은 의종이 폐위될 때까지 살아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비는 의종의 총애를 받으며 왕후 못지않은 조정 내 세력을 가지고 의종이 폐위될 때까지 그 곁을 지키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궁내(宮內)에서 무비와 가장 가까운 인물은 환관 백선연이었다. 남경의 관노(官奴) 출신으로 의종이 남경에 갔을 때 인물됨을 보고 데려와 ‘양자(養子)’라 부르며 총애했다. 무비와 같은 남경 출신에 신분도 같았으니 드넓은 궁에서 둘 사이의 연대감은 아마도 남달랐을 것이다. 이 때문에 둘이 간통을 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관리들은 이들이 추잡한 행동을 하고 미신으로 왕을 유혹해 재물을 낭비한다며 백선연과 무비를 죽이라고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환관에 대한 왕의 총애가 매우 컸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다 부러워하였고, 스스로 거세하는 자가 생겨나기도 했다.

의종실록을 보면, ‘의종 때 무신의 난이 일어난 원인은 불교와 귀신 숭배, 아첨하는 신하와 간사한 환관 및 술사, 그리고 무비이다.’ 라고 적고 있다. 즉 무비가 안에서 정사에 개입하고 감언이설로 왕의 비위를 맞추며 눈과 귀를 막아 충직한 말을 들을 수 없어서 결국 변란이 일어났다고 쓰고 있다. 쫓겨난 왕에 대해 호의적인 기록일 수는 없지만, 그 당시 무비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2명의 왕자와 왕녀를 낳은 무비도 신분적인 한계는 뛰어넘을 수 없었다. 무비의 사위가 분에 넘치는 관직에 임명되자, 사대부들이 모두 분개하고 해당 관리들은 임명장의 서명을 거부하였다. 이렇게 반발이 거셌던 것은 고려가 신분제 사회였고, 아무리 왕의 딸이라 해도 어미가 천하니 딸도 천하고, 그 남편 역시 관직에 제한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무비의 아들들도 왕자로 대우받지 못했다. 그들은 ‘소군(小君)’이라 하여 강제로 중이 되어야 했다. 무비 역시 ‘궁주(宮主)’나 ‘원주(院主)’, ‘비(妃)’ 등 다른 후궁들이 갖는 내명부 관직을 받지 못했다. 고려시대 천인 출신 후궁의 위상과 특징을 잘 보여주는 존재라 할 수 있다.

‘무신의 난’이 일어나자 무비는 개경 근처에 있는 청교역(靑郊驛)으로 도망가서 숨었다. 이를 정중부가 잡아서 죽이려 했는데, 공예태후(의종의 母)가 간청해 죽음을 면하고 왕을 따라 거제도로 갔다. 이후 3년 뒤 의종은 시해되었고, 무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도 없어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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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24
■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러브스토리 2편

■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러브스토리 2편

노국공주를 잃은 공민왕의 충격은 정말 컸던 것으로 보인다. 병이 날 정도로 슬픔에 빠져있었고, 그토록 열정을 보였던 개혁정치에서도 손을 놓고 정사를 돌보지 않았으며, 3년 동안 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 공민왕의 어머니인 명덕태후는 공민왕의 마음을 잡기 위해 새 왕비 익비를 맞이했지만, 공민왕은 익비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공민왕의 마음속에는 오직 노국공주뿐이었던 것이다. 공민왕은 노국공주를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노국공주의 초상화를 그려 앞에 걸어놓고 마주하며 식사를 하기도 했다. 같이 식사를 하며 노국공주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말을 건네기도 했다고 한다.

이같은 공민왕을 두고 ‘고려사’를 보면 공민왕이 정신병에 걸렸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고려사>는 조선 시대에 집필된 책들이기에 이런 내용이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공민왕이 노국공주를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했는가 하는 것은 분명하다. 노국공주 사후 8년 뒤에 공민왕의 어머니가 ‘왜 다른 부인들을 가까이 하지 않느냐’ 고 물어보니 공민왕은 ‘노국공주만한 인물이 없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공민왕은 노국공주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짓고, 무덤도 화려하게 만들었다. 공민왕은 노국공주의 무덤을 직접 설계했고, 공사 기간은 무려 10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공민왕은 무덤 앞에서 노국공주를 그리워하면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다 잠들기도 하였고, 자신이 죽으면 이곳에 같이 묻어 달라는 말도 남겼다. 죽어서도 함께 하고 싶은 절절한 공민왕의 사랑이었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무덤은 오늘날 개성시 개풍군에 남아있는데, 공식적으로는 공민왕이 묻혀있으므로 공민왕릉이지만, 고려의 왕릉 가운데 유일한 부부 쌍릉이다. (두 개의 무덤이 나란히 자리 잡아 쌍릉이라고 부른다.)

무덤의 벽면에는 공민왕이 직접 그린 벽화가 걸려 있고 두 무덤 사이에는 서로의 영혼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 놓았다. 이런 사랑을 담고 있는 만큼 공민왕릉은 북한의 국보 123호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능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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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25
■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러브스토리 1편

■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러브스토리 1편

원나라 지배기의 고려왕들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원의 공주와 결혼을 해야 했다. 고려는 원의 부마국으로 전락하고, 해마다 많은 공물(貢物)을 바쳐야했다. 그러니 고려로 시집 온 원의 공주는 친정인 원나라의 세력을 믿고 남편인 고려왕을 업신여기기 일쑤였고, 원의 입장에서 사사건건 정치를 간섭하기도 하고 훼방 놓기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대체로 왕과 왕비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 하지만 공민왕과 그의 왕비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는 달랐다. 비록 원에 의해 정략적으로 맺어진 부부였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지극했다.

고려 31대 왕인 공민왕은 12세부터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었다. 그리고 원나라 위왕의 딸 보타사리와 혼인을 맺게 되는데, 바로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이다. 여기서 ‘노국(魯國)’은 공자의 고향이기도 한 바로 그 노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옛 중국에서는 시집갈 때 받은 땅의 이름을 따서 공주의 칭호를 정했다. 노국공주와의 정략결혼으로 원나라의 지지를 받은 공민왕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공민왕은 왕위에 오른 후에 적극적인 반원 정책을 펴는 등 원나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던 왕이다. 노국공주는 원나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공민왕의 반원정책을 적극 지원해 주었고, 남편에게 무척이나 헌신적이었다. 공민왕에게 불만을 품은 권문세족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도 보호해 주었고, 말을 못타는 공민왕에게 승마를 가르쳐 준 것도 그녀였다. 특히 김용이라는 신하가 왕을 죽이기 위해 벌인 ‘흥왕사의 변’ 때는 공민왕이 숨은 방 앞을 가로막고 반란군들을 물러가게 하기도 했다. 노국공주가 정치 전면에 나서는 일은 잘 없었지만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공민왕의 든든한 정치적 방패가 되어주었다. 공민왕에게 있어 노국공주는 단순한 아내가 아니라 가장 신뢰할 만한 정치적 동반자였다.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무척 금슬 좋은 부부였지만 안타깝게도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한 나라의 국왕인 만큼 이 문제는 단순히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하들과 공민왕의 어머니 공원왕후는 후궁을 들여 아이를 낳을 것을 제안했고, 노국공주는 하는 수 없이 허락을 했다. 결혼 10년 만에 혜비 이씨를 후궁으로 들였지만, 공민왕은 후궁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노국공주는 드디어 임신을 하게 되었다. 결혼한 지 15년 만의 임신이었으니 얼마나 기뻐했을지 상상이 간다. 공민왕은 부인의 순산을 하늘에 빌기 위해 사형수를 제외한 모든 죄수들을 풀어줬으며, 공주가 아이를 낳는 동안 위독해 졌을 때는 사형수들까지 모두 풀어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국공주는 아이를 낳다가 난산(難産)으로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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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26
■ 몽고풍과 고려양 3편

■ 몽고풍과 고려양 3편

고려의 문화가 원나라에 퍼져나간 경로는 다양하지만, 가장 주요한 경로는 수많은 공녀들과 환관들이 끌려가서 원나라 황실 내부 고위층에 고려인이 많아지다 보니 이들을 통해 저절로 고려의 풍습이 전파되고 유행하게 된 것이다. 또, 공녀로 몽고에 끌려간 여인네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고려의 음식이나 옷, 언어 등이 전해지면서 고려의 문화는 몽고에서 크게 유행했다. 이를 ‘고려양’이라고 한다.

특히, 기황후가 원나라의 실권을 장악하면서 더욱 고려 문화의 영향은 커지게 되었다. 비록 고려가 몽고의 간섭을 받긴 했지만, 당시 고려의 문화 수준은 몽고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었던 것이다. 원피스 모양의 전통 중국식 한푸와 다른 풍성한 치마와 저고리 조합의 고려 스타일이 원대부터 명대에 이르는 중국 여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는데 이 역시 고려양이었다. 이러한 여성 복식 외에도 남성 복식도 영향을 받은 것이 있는데 두루마기를 걸치는 것이 대표적이다.

고려청자와 나전칠기, 고려의 먹과 종이 같은 문물 이외에도 우리 전통 한과인 ‘유밀과’를 ‘고려병’이라 부르며 즐겨먹었다. 시루에 떡을 해먹는 것과 상추와 같은 쌈채소도 고려인들이 몽고에 전해 준 것이다. 공녀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심어 기른 것을이 몽고인들도 즐겨 먹게 된 것이다. 몽고에 끌려간 공녀들은 ‘비파’라는 악기로 고려의 음악을 연주하며 고향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고려악’이라 하여, 지금의 K-팝이 유행하듯이 고려의 음악도 인기가 많았다. 원조 한류인 셈이다.

고려양은 원나라 때의 유행으로만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후 명나라 시대에도 한동안 유행이 계속됐으며, 명나라 건국 후 100여년이 지난 홍치제에 들어서야 원래 중국 풍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중국의 드라마나 영화 중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보면 이러한 복식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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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27
■ 몽고풍과 고려양 2편

■ 몽고풍과 고려양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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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도 몽고의 흔적은 남아있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는 설렁탕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몽고 사람들이 양고기를 삶아서 국물을 만들어 먹던 것에서 유래했다. 몽고의 주식인 만두도 고려 시대에 널리 전해졌다. 밀가루를 반죽한 것에 오이, 박, 버섯 등의 속을 넣거나 팥으로 속을 넣어 쪄먹었던 만두를 상화라고 불렀는데, 몽고말 ‘상화’를 한자로 적어 고려인들은 만두를 ‘쌍화’라고 불렀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먹는 만두이다. 당시 고려는 불교국가라 고기를 잘 먹지 않았는데, 몽고의 영향을 받아 고기를 넣은 만두를 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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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친근한 소주와 호떡도 몽고의 영향이라고 하니 놀랍다. 소주는 원래 페르시아에서 발달한 술인데, 이것이 아라비아를 통해 원나라로 들어왔고, 원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 고려에도 소주가 들어와 지금까지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비교적 독한 술인 소주는 북쪽의 추운 지방에서 즐겨 마셨고, 몽고에 의해 고려에도 소주 만드는 법이 전해졌다.

또, 몽고의 머리 모양인 변발(머리를 뒷부분만 남겨 놓고 다 깎은 뒤 남은 뒷머리를 길게 땋아 늘어뜨린 황비홍 스타일)과 옷이 유행했다. 이것은 원나라와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 고려 왕실이 일부러 관리와 백성들에게 권장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공민왕 때부터 반원 정책을 펼치면서 몽고풍이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고려 조정에서는 ‘변발’과 몽고 옷을 입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 퍼진 풍속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지금까지 우리의 문화와 풍습에 녹아있다.

원나라의 영향은 새로운 문물이 고려에 들어오는 기회가 되어, 천문·역법·의학·수학 등 새로운 학문이 전래되었다. 역법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방법으로 백성들에게 절기에 따른 농사의 시기를 정확하게 알려주어 생산량 증대를 가져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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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29
■ 몽고풍과 고려양 1편

■ 몽고풍과 고려양 1편

몽고의 침입을 받은 고려는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고 장기전에 돌입하며 치열하게 싸웠다. 결국 몽고와 강화를 맺고 강화도로 옮겼던 왕실은 39년 만에 개경으로 돌아왔다. 삼별초는 몽고와의 강화에 반대하여 계속 싸우고자 했다. 그러나 왕은 삼별초를 해산하였고, 삼별초는 끈질기게 저항하다가 제주도에서 진압되고, 고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몽고는 나라 이름을 원으로 바꾼 뒤 고려를 지배하고 간섭했다.

이 시기에 고려는 임금의 이름에 원에 대한 충성을 뜻하는 ‘충’을 넣어 지을 정도로 굴욕적인 간섭을 받았다. 충렬왕 이후 고려의 왕들은 왕세자가 되면 어릴 때부터 원나라에 가서 살아야 했다. 자연히 몽고말을 쓰고 몽고 풍습이 몸에 익게 되었고, 원나라 공주와 혼인해야만 했다. 원이 고려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이를 통해 싫든 좋든 각종 교류가 이루어지는데, 이때 고려에 들어온 몽고의 풍습을 ‘몽고풍’이라 한다. 처음에는 주로 상류층 귀족들 사이에 퍼졌으나 차츰 일반 백성들에게도 몽고풍이 유행했다.

우리의 전통 풍습이라고 알고 있는 것 가운데 몽고의 영향을 받은 것이 꽤 많다. 여자들이 귓볼을 뚫고 귀고리를 다는 풍습이나 전통 혼례에서 결혼식 때 신부들이 입는 원삼과 머리에 쓰는 족두리, 그리고 얼굴에 찍는 연지·곤지가 대표적인 것이다. 족두리는 원래 몽고 여자들이 쓰는 외출용 모자였는데, 고려로 전해지면서 혼례용 모자로 사용되었다. 또, 이마와 양쪽 볼에 빨갛게 연지·곤지를 찍는 것은 몽고 여자들이 나쁜 귀신을 쫓기 위한 풍습이라고 한다.

언어에도 몽고풍이 남아 있다. 우리말의 벼슬아치, 갖바치, 장사치 등 단어에 ‘치’가 붙는 것은 몽고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치’는 직업을 나타내는 몽골어의 끝 글자이다. 또, 왕과 왕비에게 붙이는 ‘마마’, 세자가 자기 아내인 세자빈을 가리키는 ‘마누라’, 임금의 음식인 ‘수라’, 궁녀를 뜻하는 ‘무수리’ 황제나 귀족의 아들에게만 붙이는 갓난애란 뜻의 높임말을 가리키는 ‘아기’, 시집 안 간 처녀에 대한 경어를 가리키는 ‘아가씨’ 등은 주로 원의 궁중에서 쓰이던 단어로 원 출신 공주들의 영향으로 고려 왕실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때 몽고는 일본 정벌을 위해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목장으로 운영하기 적당한 한라산 200~600m 지역에 말을 키우게 해서 제주도를 말 공급지로 삼았다. 그래서 한라산 중턱에 초지대가 발달하게 되었고, 제주도에 지금도 말이 많게 된 것이다. 그래서 몽고어의 흔적은 특히 제주 방언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몽고어에서 조랑말은 ‘조로’라고 하고 얼룩말을 ‘알락’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제주도에서 조랑말이 되었고 얼룩말이 된 것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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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30
■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4편

■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4편

기황후는 1353년 열네 살이 된 아들 아유시리다라를 황태자로 책봉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그는 고려 출신 환관 박불화(朴不花)를 군사통솔의 최고책임자인 추밀원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로 만들어 군사권까지 장악했다.

당시 중국의 상황은 몽고의 통치에 저항하는 주원장(朱元璋:명 태조) 같은 한족들의 봉기가 일어나면서 어느덧 원 제국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원제국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기씨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원 황실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으면 대제국 원나라는 중원을 점령했던 많은 북방민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향으로 쫓겨갈 것이 뻔했다. 이런 위기의 시기에 순제라는 무능한 최고경영자를 둔 원나라는 급속히 약화되었다. 1365년 제1황후가 세상을 뜨면서 25년 간 제2황후의 자리에 있던 기씨가 드디어 제1황후가 되자, 그녀는 과감한 체질개선을 다시 시도했으나 이미 원 제국은 회생불능이었다.

원사(元史)는 순제가 ‘정사에 태만하였다’고 적고 있는데 기황후는 이런 무능한 황제를 젊고 유능한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황후는 순제를 양위(讓位)시키고 황태자를 즉위시켜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기황후의 지시를 받은 자정원사 박불화가 양위를 추진하자 순제는 거세게 반발했다. 순제는 무능하고 태만할지언정 황제의 자리를 내놓을 생각은 없었다. 그는 대신 황태자에게 중서령추밀사(中書令樞密使)의 직책과 함께 군사권을 주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러나 약해진 원나라 세력을 밀어내면서 세력을 넓혀가던 주원장은 불과 1년 후 연경북경을 빼앗고, 원은 북쪽 몽골초원으로 쫓겨났다. 순제는 기황후와 황태자를 데리고 북쪽 응창부로 피난했지만, 응창부도 위험해지자 원나라의 초기 수도인 카라코룸으로 천도했고 이 과정에서 순제가 1369년 4월 23일 이질로 사망했다.

그리고 기황후의 아들 아유시리다라가 황제에 올랐지만, 그녀의 인생 역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원은 새로 일어난 명에 밀려 쇠퇴하였고, 그 이후 기황후가 어찌 되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아마도 기황후는 카라코룸에서 아들이 황제의 자리에 즉위하는 것을 보고 황태후가 되어 살다가 죽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동국여지지에 의하면 경기도 연천군에 그녀의 묘가 있었다고도 하고, 실제로 인근에서 고려시대 기와가 출토되었으며 석물 2기도 발견되었다. 이로 미루어보면 기황후가 카라코룸으로 가지 않고 고려로 돌아와 연천에서 여생을 마친 게 아닌가하는 추정도 가능하지만, 그 역시 전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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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31
■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3편

■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3편

타나시리의 친정은 이에 격렬하게 반발했다. 황후의 형제들은 순제를 제거해 가문의 세력을 보존하려 하다가 오히려 사전에 발각되었고, 순제는 1335년 승상(丞相) 빠앤白顔과 손잡고 타나시리의 친정을 황제역모 사건에 연루시켜 제거했다. 타나시리의 남매가 모반을 꾸민 혐의로 멸문하면서, 타나시리도 황후에서 폐위되어 유배 가는 길에 만 15세의 나이로 독살당했다. 타나시리를 없애는 데 성공한 기씨는 이제 황후자리는 자신의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기씨가 황후자리를 차지하기에는 몽골족의 전통이 너무 강했다. 이번에는 타나시리 친정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던 승상(丞相) 빠앤도 적극 반대하고 나선 것이었다. 관직 이름만 246자(字)에 달했던 빠앤은 사실상 순제를 능가하는 세력가였다. 순제는 결국 어쩔 수 없이 황실의 전통에 따라 옹기라트 가문의 빠앤후두伯顔勿都를 황후로 맞이했다.

기씨는 비록 황후가 되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세력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이미 일개 공녀 출신의 시녀가 아니었다. 황제의 총애에 고려출신 환관들의 지원까지 받는 실력자가 된 것이다.

기씨는 1339년 순제의 아들 황태자 아유시리다라愛猷識理達臘를 낳아 입지가 더욱 확고해진 상태로, 승상 빠앤을 축출하기로 결심했다. 기씨의 조종을 받은 순제는 스승 샤라빤沙刺 班과 손잡고 빠앤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거사 성공 직후 샤라빤이 순제에게 기씨를 제2황후로 책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이 거사의 배후에 그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빠앤까지 제거된 원 조정에서 그녀의 황후책봉을 반대할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공녀로 끌려왔던 기씨 처녀는 드디어 세계를 지배하는 원제국의 제2황후가 되었다. 제1황후(빠앤후두)가 있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황후가 된 기씨는 제1황후를 능가하는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고려 여인 가운데 원의 7대 황제인 세조(쿠빌라이)의 총애를 받은 이씨가 있었고, 10대 인종仁宗 때에 영비(英妃)가 된 고려 여인도 있었지만, 자신의 실력으로 황후가 된 인물은 기황후(奇皇后)뿐이었다. 기황후와 같이 고려 여자들이 원에서 지위가 높아지는 경우가 더러 생기자, 고려에서는 스스로 딸을 원으로 보내고, 그 덕으로 출세를 해 보려는 자들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기황후는 고려 미인들을 대신 중에 권력이 있는 자들에게 보내 주었는데, 당시 원나라 고관과 귀인들은 고려 여인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명가(名家)라고 불리었다. 순제 이후로 궁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태반이 고려 여인이었으므로 몽고 왕실에는 자연스럽게 고려의 풍습이 유행하게 되었다. 공녀로 끌려와 천대받던 고려 여인들의 처지는 그녀 덕분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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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32
■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2편

■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2편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연경(燕京:지금의 북경)에 정착한 고려 환관들은 원나라에 와 있는 고려인들과 강력한 유대관계를 갖게 되었다. 연경으로 통하는 길목인 완평현(宛平縣)에는 요즘으로 치면 코리아타운과 같은 고려인의 고려장(高麗莊)이 있었다. 고려장을 통해 고려인들은 원과 고려 사이의 국제무역에 종사했는데, 이 고려장은 당연히 궁중의 고려 출신 환관들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고려 출신 환관들은 자신들이 황제에게 받는 신임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황제를 사로잡을 수 있는 고려 여인을 물색하게 되는데, 이 때 기씨 처녀가 연경에서 고려 출신 환관 고용보(高龍普)의 눈에 뜨인 것이다.

원 황실의 고려 출신 환관들 중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던 고용보는 기씨 처녀 같은 인물이 꼭 필요했다. 기씨는 복숭아같이 예쁜 볼, 버드나무 같은 호리호리한 몸매 등 미모도 매우 뛰어났지만, 양반가 출신으로 교양이 있었으며 어린 소녀답지 않은 담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궁녀로서 황제의 총애를 받는 지름길은 황제의 주변에 있는 것이었다. 고용보는 기씨를 순제의 다과(茶菓)를 시봉(侍奉)하는 궁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원사(元史) 후비열전에 ‘순제를 모시면서 비(妃:기씨)의 천성이 총명해서 갈수록 총애를 받았다’라고 기록된 것처럼 그녀는 곧 순제를 사로잡았다. 궁녀로 시작된 황제와의 만남은 기씨 처녀의 인생을 다른 길로 이끌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은 인생역전을 의미했다. 하지만 기씨 처녀의 이런 기대는 황후 타나시리答納失里의 질투 때문에 시련을 겪게 되었다.

타나시리의 친정은 황실의 일원으로서 황제 못지않은 권력을 갖고 있는 명문거족이었다. 질투에 눈이 먼 타나시리에게 채찍으로 맞아 온몸에 검고 푸른 멍이 들었으며, 인두로 지짐까지 당하였다. 그러나 궁녀의 몸으로 황후와 겨룬다는 것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기씨는 좌절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 원이라는 대제국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어떤 난관도 이겨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기씨는 순제를 구워삶아 황후인 타나시리와 맞섰다. 타나시리의 친정아버지 앤티무르는 순제의 아버지 명종을 재위 8개월 만인 1329년 8월에 암살했으며, 이듬해 순제를 고려 대청도로 유배를 보내기도 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순제에게 황후 타나시리는 부친을 죽인 원수의 딸이었던 것이다. 기씨는 순제가 타나시리의 친정에 불만을 갖고 있어, 황후에게 전혀 애정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기씨에게 눈이 먼 순제는 궁궐에 들어온 지 2년밖에 안 된 그녀를 제2황후로 책봉하려 했다. 태조 칭기즈칸成吉思汗 이래 옹기라트翁吉刺 가문에서 황후를 맞이하는 몽골족의 전통을 무시하고 고려의 공녀 출신을 황후로 책봉하려 한 것이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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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33
■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1편

■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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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기황후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어 우리 귀에 낯설지 않은 이름으로 남아있다. 고려 말 원나라의 세력을 등에 업고 하늘을 찌르는 권세를 누리던 기씨 일족! 그 뒤에는 기황후가 있었다. 시호는 보현숙성황후(普顯淑聖皇后). 따라서 정확한 공식 명칭은 보현숙성황후 기씨(普顯淑聖皇后 奇氏)라고 해야 하지만, 기씨 성을 가진 황후였다고 해서 줄여서 기황후라고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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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출신으로 본관은 행주(幸州), 고려 말의 친원 세력인 권신 기철(奇轍)의 누이동생이며 원나라 황제 소종(昭宗)의 어머니이다. 아버지는 기자오이며, 외할아버지는 이행검(李行儉)이다. 오빠가 5명, 언니가 2명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기철. 그녀의 고려 식 본명은 알려진 바 없으나 기 솔롱고 올제이후투그(Gi Solongo Öljei Khutugh, 奇 肅良合 完者忽都)라는 몽골식 이름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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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지배하게 된 원나라는 고려에 ‘공물(貢物)’과 함께 공녀(貢女)를 요구했다. 원나라에 항복한 귀순병들에게 배우자를 마련해준다는 구실로 공녀 1천 명을 요구한 것을 시작으로 근 1세기에 걸쳐 수많은 고려 처녀들을 데려가 궁녀나 노예로 삼았다. 원은 주로 13세에서 16세까지의 처녀들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이 나이 또래의 딸을 가진 집안에서는 딸이 공녀로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머리를 깎아 출가시키거나 얼굴에 일부러 화상자국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어린 나이에 혼인을 시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조혼(早婚)하는 풍습이 생겨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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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에 끌려간 공녀들은 대부분 황제·황부(여자 황제의 남편)·황족(황제의 친척)들의 시녀로 들어가 힘겨운 생활을 했고, 그 가운데 일부는 운 좋게 지배층의 눈에 띄어 아내나 첩이 되기도 했다. 고려인 기자오(奇子敖)의 막내딸이 원나라에 공녀로 가게 되었을 때, 다른 공녀들처럼 이 길을 죽음의 길로 생각했고,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불행을 동정했다. 그러나 기씨 처녀는 피할 수 없다면 마냥 울고 있지만은 않으리라고 당찬 결심을 했다. 비록 자원한 길은 아니지만 이왕 이리 된 이상 인생의 새로운 전기로 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원나라이므로 더 많은 기회가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원나라는 공녀만을 요구한 것이 아니고, 충렬왕의 비(妃) ‘제국대장공주’가 자신의 부친인 세조(쿠빌라이)에게 환관 몇 명을 바친 것을 계기로 고려인들이 영특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원나라에서는 여러 차례 환관(宦官)들도 요구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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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34
■ 천생연분 정종과 정안왕후 김씨

■ 천생연분 정종과 정안왕후 김씨

조선 제2대 왕 정종의 비로, 이성계의 둘째 아들 영안군 이방과가 세자가 되면서 세자빈이 되었고, 후에 덕빈(德嬪)에 책봉되었다가 정종이 즉위하자 덕비(德妃)로 진봉(進封)되었다. 정종은 원래 왕이 될 생각도 욕심도 없었지만, 야망에 가득한 이방원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 일파와 세자 방석이 죽게 되자 얼떨결에 세자가 되었고, 곧이어 태조로부터 양위를 받아 왕이 되었다. 하지만, 이방원의 야심을 잘 알고 있던 터라 바늘방석 같은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이 불안한 바늘방석 같은 왕위를 이방원에게 흔쾌히 넘겨주게 된 것은 정안왕후 김씨의 조언 덕분이었다.

정종과 정안왕후는 왕위나 권력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권력욕이 컸던 동생 태종과도 우애를 유지했고, 태종은 형 부부를 예우해 주었다. 1400년 11월 이방원에게 옥쇄를 넘기고 상왕(上王)이 된 정종은 개성에 있는 백룡산 기슭에 인덕궁을 짓고 20년 가까이를 격구·사냥·연희를 즐기며 유유자적 평안한 생활을 했다.

정종은 재위기간(2년)도 짧았고 제대로 역량을 펼쳐 볼 상황도 아니었으므로 이렇다 할 치세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의 부인 정순왕후는 존재감이 미미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왕비이다. 집안이 좋거나 미인도 아니고 영민한 머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지만, 정종의 아내로 손색없는 현처(賢妻)였다. 정종은 무려 아홉 명의 후궁과 17명의 아들, 8명의 딸들을 두었다. 슬하에 자식이 없던 정안왕후는 본처로서 시기와 질투심을 가질 만도 하지만, 남편을 잘 내조하고 분란 없이 집안을 잘 다스렸다. 정종은 이런 정안왕후의 진심과 사랑을 믿었고, 그녀를 존중하고 말도 잘 들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하는 말에 걸 맞는 내조였다.

정안왕후 김씨가 만약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을 부렸다면 아마도 정종은 물론 자신도 제 명대로 살지 못했을 것이다. 일찍이 세상의 무상함과 무소유의 개념을 터득하고, 욕심을 내려놓았던 정안왕후 김씨의 성품과 현명한 처신 덕분이었다. 정종은 1419년 9월 63세로 그 당시로서는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고, 정안왕후 김씨는 정종보다 7년 앞선 1412년 6월 인덕궁에서 남편과 아홉 후궁들, 그리고 25명의 양자들의 따뜻한 임종을 받으며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능은 황해북도 개풍군 영정리에 위치한 후릉(厚陵)으로, 후에 남편 정종도 이곳에 묻혀 쌍릉으로 조성되었다.

정안왕후는 부드러운 성격에 검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친척들과도 무난하게 지냈는데, 여기에 남편 정종 역시 정직하고 바른 성격의 인물로 어찌 보면 이들 부부는 천생연분(天生緣分)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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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36
■ ‘금金’이라 쓰고 ‘김金’ 이라 부르다

■ ‘금(金)’이라 쓰고 ‘김(金)’ 이라 부르다

정도전은 고려가 망하자 왕씨 종친을 없애기 위한 꾀를 내었다. 즉 자연도(紫燕島)에 귀양 보낸다는 말로 속인 후 큰 배에다 왕씨들을 한가득 태워 바다에 띄운 다음, 몰래 배 밑에 구멍을 내어 그대로 가라앉게 한 것이다. 살아남은 왕족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깊은 산속이나 외딴 섬으로 숨어들어 왕(王)씨 성을 옥(玉)씨나 전(全)씨 등으로 바꾸어 숨어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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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그 일파들은 십팔자(十八子)위왕(爲王) 이라는 유언비어를 만들어 퍼뜨린 일이 있었다. ‘십팔자란 한문으로 이(李)자를 파자(破字)한 것으로, 나무 목(木) 과 아들 자(子)가 된다. 즉 이씨가 나라를 얻을 것이라는 억지 동요를 만들어 민심을 끌어들이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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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씨를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풀어보니 ’나무는 흙을 이기고, 흙은 물을, 물은 불을, 불은 쇠를, 그리고 쇠는 나무를 이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李)씨는 나무〔木〕의 성질을 갖고 있고 금(金)씨는 쇠〔金〕의 성질을 갖고 있으니 결국 금씨가 이씨를 이기게 된다‘ 는 결론이 나온다.

이성계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분이 찜찜했다. 하지만 금씨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은 성(姓)이라 모두 없앨 수도 없었다. 결국 이성계는 금씨의 기운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 "앞으로는 금(金)을 성으로 쓸 때는 김(金)으로 읽어라!" 는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금씨는 김씨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금씨는 \거문고 금(琴)\자를 쓰는 봉화 금씨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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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 금(金)자를 쓰는 김씨 가운데 스스로 금씨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지휘자 금난새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네의 작곡가 금수현(김수현)인데, 젊었을 때 본인 스스로 성을 한글 성씨인 금씨로 바꾸어 썼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법률상 성을 자유롭게 바꿀 수 없게 되어 있어서, 금난새도 호적상으로는 김(金)난새로 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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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37
■ 우리나라는 고인돌 왕국 2편

■ 우리나라는 고인돌 왕국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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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스톤헨지나 태평양 동쪽 끝 이스터 섬 모아이처럼 큰 돌로 만든 모든 것을 통틀어 거석(巨石)유물이라 한다. 고인돌 또한 큰 돌 유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유물 조사가 잘 되어 있는 유럽의 거석 유물이 5만 5천 기(基) 남짓 되는데, 그 가운데 고인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돌무덤이 많다고 하는 아일랜드에 1500기(基), 러시아 코카서스 지역에 2400기(基)가 있다. 그런데 한반도에는 4만(북한에 1만 5천)기(基)에 달하는 고인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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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군 고창읍 매산 마을에는 고인돌 무덤이 500기(基) 남짓 모여 있다. 강화군 하점면의 고인돌이나 북한에 있는 아주 큰 탁자식 고인돌이 당시 그 지역의 ‘부족장 무덤’이라면 전라남·북도에서 볼 수 있는 고인돌 무덤 군(群)은 ‘마을 공동묘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가운데 전남 지방에만 2만 기가 있다. 물론 아일랜드나 러시아 말고 다른 나라에도 고인돌은 있다. 중국 요령 지방에 316기, 일본 큐슈 지방에 600기, 인도네시아에 600기쯤 있지만 한반도에 견주면 그 수가 아주 적다. 더구나 한반도처럼 작은 면적에 수많은 고인돌이 한곳에 몰려 있는 곳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또 그 숫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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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세계 고고학자들은 우리나라를 고인돌의 나라라고 한다. 이 때문에 세계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는 2000년 12월 2일, 전남 화순, 전북 고창, 인천 강화 지역 고인돌을 세계문화유산 제977호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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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의 기원에 대해서는, 한반도에서 시작되어 세계 여러 나라로 퍼졌다는 자생설, 벼농사를 많이 짓는 동남아시아에서 바닷길을 타고 중국 동북 바닷가 지방과 우리나라로 전파되었다는 남방 기원설, 한반도 북쪽 시베리아 카라수크 돌널무덤이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 고인돌 무덤으로 쓰기 시작했다는 북방 기원설 이렇게 세 의견이 있다. 학자들은 이 가운데서 북방 기원설을 많이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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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38
■ 우리나라는 고인돌 왕국 1편

■ 우리나라는 고인돌 왕국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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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청동기 시대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을 배웠던 기억이 다들 있을 것이다. 크고 평평한 바윗돌을 돌로 괴어 놓은 이것을 100년 전만 해도 무덤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 옛 기록 어디에도 이것이 무덤이라는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이 거대한 돌덩이를 무덤이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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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도 바우배기, 마당바우, 떡바우, 고엔돌, 괸돌, 굄돌, 괸바우, 암탉바우, 장기바우, 띠엄바우, 거북바우, 두꺼비바우, 개구리바우, 장군바우, 왕바우, 말바우, 개바우 등으로 부른 것으로 보아 무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커다란 바위덩어리로 본 듯하다. 그래서 큰 돌이 필요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이 바위를 가져다가 쓰거나, 길을 닦는데 걸림돌이 되면 별 생각 없이 치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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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무덤인 줄 알았다면 그렇게 함부로 손대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 고인돌을 무덤으로 생각하는 마을이 없지는 않았다. 고인돌을 곡식의 양을 헤아릴 때 쓰는 되를 닮았다 해서 되무덤이라 하거나, 가장 높은 것을 뜻하는 말 도(都)를 붙여 도무덤이라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옛날 아주 높은 사람의 무덤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이도 옛부터 그랬다 기보다는 고인돌이 무덤이라고 밝혀진 뒤부터 그렇게 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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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고인돌을 켈트어로 탁자란 뜻인 돌(Dol)과 돌이란 뜻인 멘(Men)을 합쳐 돌멘(Dolmen)이라 한다. 또 영어로는 탁자돌(Table Stone)이라 한다. 중국 사람들은 돌로 지은 시렁이라 하여 석붕(石棚)이라 하고, 일본 사람들은 지석묘(支石墓)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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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부르는 고인돌은 덮개돌을 받침돌로 ‘받쳤다’ 또는 괴었다 해서 고인돌이다. 그런데 괴었으면 괸돌이라 해야 하는데 왜 고인돌이라 할까. 지금은 받치다는 뜻으로 고이다 보다는 고이다의 줄임말인 괴다를 더 많이 쓰고 있지만, 원래는 ‘고이다’가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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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이후 무덤으로는 고인돌, 돌널무덤, 널무덤, 독무덤, 옹관묘처럼 갖가지 무덤이 있다. 고인돌은 그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이 무덤은 언제부터 썼을까. 학자들마다 조금씩 의견이 갈리지만 대체로 지금으로부터 약 3000여년 전에 아주 유행했던 무덤으로 보고 있다. 물론 고인돌을 무덤으로 보지 않고 제단이나 묘지를 상징하는 기념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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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39
■ ‘초요갱’을 아십니까?

■ ‘초요갱’을 아십니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선 최고의 기생은 황진이로. 그녀는 조선 기생의 대명사가 되어 었다. 하지만 정작 ‘조선왕조실록’에는 ‘황진이’란 이름이 없다.

그런데 실록에 무려 16번이나 이름이 나오는 기생이 있다. 그녀는 초나라 미인처럼 가는 허리를 가지고 있다하여 이름이 ‘초요갱’이다. 초요갱은 수없는 남자들을 상대했는데, 그 남자들 중 왕자가 세 명 있었다. 그 세 명 모두가 세종의 아들들이었다.

초요갱의 첫 번째 왕자는 세종대왕의 정실왕비인 소헌왕후의 일곱 번째 왕자인 평원대군 이임이었다. 평원대군 이임은 세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초요갱을 궁으로 데리고 와 첩으로 삼았다. 그리고 세종시절 유명한 음악가 박연에게 부탁하여 노래와 춤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임은 열아홉이란 짧은 인생을 살고 요절하고 말았다.

이임을 만나면서 배웠던 춤과 노래 덕분에 궐 안 행사에 드나들던 초요갱에게 두 번째 왕자가 다가오게 된다. 그는 평원대군보다 한 살 위였던 화의군 이영이었다. 화의군은 평원대군처럼 정실소생이 아닌 서자였다. 화의군과 같이 살던 초요갱이 다른 남자와 있는 것을 보고 화의군이 그 남자를 때려 죽인 일이 있었다. 그 때는 수양대군이 왕위를 이어받은 세조 초기였는데, 화의군은 귀양을 가고 초요갱은 죽을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화의군의 동복동생인 계양군 이증이 초요갱은 세종 시대에 박연이 만들어 논 악무(樂舞)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죽음을 면하게 해주었다. 바로 이 계양군이 초요갱의 세 번째 왕자가 된다. 하지만 계양군도 요절하고 만다.

이것은 초요갱의 용모와 매력이 정말 출중했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초요갱은 뛰어난 미모와 매력으로 무려 세종의 세 아들을 홀려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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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40
■ 태종 선위禪位의 속셈

■ 태종 선위(禪位)의 속셈

태종의 선위(禪位:왕위를 다음 왕에게 물려줌)로 22살에 왕위에 오른 세종은, 아직은 팔팔한52살의 나이에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앉은 아버지 태종의 의중을 몰라 늘 불안했다. 불안하기는 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태종은 물러난 지 보름 만에 태종의 가신이라 할 수 있는 공신 강상인이 자신을 제치고, 세종에게 군사에 관한 일을 직접 보고한 것을 문제 삼아 강상인을 고문한 후 평민도 아닌 관노(官奴)로 보내버렸다. 이로써 권력은 여전히 태종에게 있음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태종은 세종의 장인 즉, 중전 심씨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사돈인 심온을 영의정에 임명하여 중국에 사신으로 보낸 후, 갑자기 강상인의 일에는 배후가 있을 것이라며 강상인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가혹하게 고문했고, 드디어 그들 입에서 태종이 원하는 답을 얻어냈다. 태종이 원한 답은 “영의정 심온도 군사는 마땅히 한 곳에서 명(命)이 나오는 것이 옳다는 말을 했다” 라는 것이었다.

태종은 심온이 관련되었다는 진술이 나오자마자 관련자들을 참수(斬首)와 거열(車裂)형에 처하고, 영문도 모른 채 압록강을 건너 귀국한 심온을 즉시 체포하여 서울로 압송한 후, 가혹한 고문 끝에 하지도 않은 일을 자백하였음을 이유로 곧바로 사약을 내렸으며, 그 부인과 자식들을 관노로 보내버렸다. 세종의 부인 소헌왕후 심씨의 가문은 자신이 왕비로 버젓이 있는 가운데 시아버지에 의해 멸문되어 버리고 말았으니, 중전 심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태종이 이렇게 자신의 부인인 왕비 민씨와 며느리 심씨의 가문을 초토화하는 등 외척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행위를 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었까? 이것은 아버지인 이성계의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가 이성계를 꼬드겨 개국에 공이 가장 큰 자신(태종)을 제치고 본인 소생인 방석을 세자로 삼은 것이 평생의 한이자 교훈이 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방원은 기어코 작은 계모(繼母)인 신덕황후를 이성계의 첩으로 격하시키는 조치를 취한다.)

태종은 왕비 하나로도 이렇게 나라의 권력관계가 바뀔 수 있는데, 거기에 더해 왕비의 친정이 실세를 가지게 될 경우,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태종은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우환의 싹을 초기에 제거해버린다는 심정으로 어찌 보면 잔혹하기 그지없는 외척제거를 단행하였던 것이다. 태종은 한평생을 권력투쟁에 몰두하여 대부분을 승리로 이끌었고, 역대 왕 중 가장 가혹한 숙청을 단행한 사람이었다.

아무튼 태종은 선위를 함으로써 왕이 감내해야 하는 각종 귀찮은 일은 모두 세종에게 미루고, 실제 권력은 여전히 자신이 행사하고 있었다. 이렇게 태종이 권력의 가지를 모두 쳐버렸기에 세종이라는 나무가 쑥쑥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튼 태종은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지 4년 만에 눈을 감으니 이 때 그의 나이 56세였다. 이로써 비로소 세종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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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41
■ 조선시대에 여자로 산다는 것 2편

■ 조선시대에 여자로 산다는 것 2편

조선시대의 결혼이란, 위로는 조상을 받들고 아래로는 후사를 잇기 위한 거창한 명분하에 이루어진다. 결혼을 하면 여자가 남자 집에 가서 사는 것이므로 특히 여성에게 요구되는 것이 많다. 시댁의 가부장적 질서에 적응해야 함은 물론, 대를 잇는 것이 여자로서 첫 번째 사명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결혼하는 딸에게 시집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생활교육과 함께 성교육이 이루어진다.

생활교육은 주로 말과 행동 및 여러 법도에 대한 교육이다.

걸음을 걸을 때는 발가락 끝에서 뒤꿈치까지의 길이보다 보폭이 커서는 안 되고, 어른 앞에서는 뒷걸음으로 물러 나와야 한다. 제례나 상례 때 곡은 어떻게 시작하고 그치는가,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눈물이 나오는가 등을 이불을 둘러쓰고 앉아 실습시켰다.

성교육은 아들을 낳기 위한 것이다. 남편의 양기를 해치는 음식은 삼가 해야 하고, 아들을 낳을 확률이 높은 날을 계산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다고 조선시대의 여성이 남자보다 낮은 존재로서 단지 아들을 낳는 도구에 불과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아내는 남편보다 낮은 존재이기는 하나 부부간에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부부 각자의 세계가 인정되고 여성에게도 일정한 지위가 주어졌다. 양반층 여성들은 ‘부인봉작제도’라 하여 남편 벼슬에 따라 일정한 사회적 지위가 주어지고, 아들의 공에 따라 받기도 한다.

여성은 가정을 운영하는 중심이었다. 가정 일은 남편이 간섭하지 않고 가정 내에서 부인의 지위는 절대적이어서, 가정 경영과 제사준비 및 자녀교육 등은 모두 아내에 의해 이루어진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집안 최고 어른으로서 집 안 일을 주도적으로 처리했다.

여성에게도 재산권이 있었다. 조선전기에는 제사를 지낼 큰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아들과 딸이 재산을 골고루 나누어 가졌고, 결혼한 딸도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 이처럼 여성에게 재산상의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은 재혼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유교윤리가 보다 확산되고 확고해 짐에 따라, 여성들의 지위는 점점 더 낮아지게 되었다. 여성의 재산상속에 대한 권리가 낮아지고 제사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맏아들의 권리가 커진 것이다.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이전보다 훨씬 적은 양을 상속받게 되고, 남존여비 사상으로 딸들은 아들보다 더 적게 받게 되었다. 특히 시집간 딸은 ‘출가외인’ 이라는 이유로 상속에서 배제되었다. 정절(貞節)에 대한 의무가 강조되면서 남편을 따라 죽든지 해야 겨우 ‘열녀’ 라는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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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에 여자로 산다는 것 1편

■ 조선시대에 여자로 산다는 것 1편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아 유교적 질서가 모든 생활 전반을 지배하였기 때문에 남·녀의 삶은 전혀 달랐다. ‘부부유별’ 이라는 말은 ‘부부는 상호 보완적이면서 각자의 맡은 일이 분리되어야 조화를 이루게 된다’ 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은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의미이고, 남자는 우주만물을 형성하는 근원이며 여자는 그에 종속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교육을 통해 주입된다. 교육의 내용도 완전히 달라 남자는 6살이 되면 숫자를 헤아리는 것과 동서남북 방위를 가르치고, 9살에는 삭망·육갑 등 날짜 헤아리는 것을 가르쳤으며, 10살이 되면 외부 스승에게 내보내 배우게 하였다.

반면, 여자는 10살이 되면 나다니지 못하고 방적과 양잠을 하고 비단을 짜며 옷을 만들고 제사를 보살피는 것을 배웠다. 집 구조 자체가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되고 가운데 중문이 있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문을 넘어서는 안 된다. 남자는 안의 일을 말하지 않고 여자는 바깥일을 말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여자는 문 밖 출입도 자유롭지 못해 촛불을 켜고 밤에만 다녀야 했고, 외출할 때는 얼굴을 반드시 가리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남녀의 서로 다른 교육 및 내외법은 양반들의 이야기이고, 서민의 경우는 특별히 교육이랄 것도 없었고 내외법도 지켜지지 않았다. 남자들과 같이 논밭에 나가 일해야 하는 처지에 내외란 있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반층이건 서민층이건 여성에게는 공통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삼종지도’에 대한 교육이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막혀 있는 가운데, 여성은 가정 속에서 남성의 보호 아래 살아 갈 수밖에 없었다.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삼종지도’ 는 신분에 관계없이 조선시대 전체 여성들의 숙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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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19:43
이방원의 아내 중전 민씨

이방원의 아내 중전 민씨

왕이 된 태종 이방원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향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공신들을 죽이거나 귀양 보내는 등 왕권강화를 위한 박차를 가하였다. 그 중 가장 잔혹했던 사건이 중전 민씨 가문의 대몰락이었다.

태종의 부인 중전 민씨는 18세에 이방원과 결혼하여 시아버지가 왕이 되는 것에 이어, 타고난 여장부 기질로 이방원이 왕이 되는데도 큰 기여를 한 바 있다. 중전 민씨는 민무구, 민무질 두 남동생을 남편의 심복으로 만들고 1,2차 왕자의 난에서는 거사를 성공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는 등 이방원의 후견인이자 참모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중전 민씨는 실패 시 멸문지화를 당할 것을 각오하고 남편의 거사(擧事)에 올인을 하였는데, 이것이 제대로 성공하여 남편은 임금이 되었고 자신은 국모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태종은 왕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여자를 찾았고, 이에 대응하는 중전 민씨의 심한 투기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는 싸늘히 식어갔다. 중전 민씨에게 이는 향후 밀어닥칠 엄청난 불행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중전 민씨의 친동생인 민무구, 민무질이 1차로 남편인 태종에 의해 죽고, 그로부터 6년 후 그 아래 동생들인 민무휼, 민무회 형제도 또 다시 남편인 태종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었다. 민씨가 중전의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종의 입장에서 볼 때, 장인인 민제는 보수파의 핵심인물로서 따르는 이가 많고 처남인 민무구와 민무질은 군사 부분의 실세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자가 외가에서 자란 까닭에 외삼촌인 민씨 형제와 매우 가까웠고, 나중에 원자가 세자를 거쳐 보위를 이을 경우 민씨 일가의 힘은 통제 불능일 것으로 생각했다. 태종은 민씨 가문의 발호와 세자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우려해 민무구, 민무질을 작심하고 죽였고, 6년 후에는 그 동생들이 세자를 충동질해 복수할 것을 우려해 또 다시 마누라 가문의 씨를 말려버린 것이다.

중전 민씨는 이방원의 아내로 왕비가 되는 영광을 누렸기는 했으나, 그 대가는 너무나도 혹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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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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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833.html
kolaswqetsrq 11.14 19:44
◇ 독감 판정은 1%뿐..고열·기침·폐렴 증상 알고보니 이 바이러스

◇ 독감 판정은 1%뿐..고열·기침·폐렴 증상 알고보니 이 바이러스

✔ 독감 의심환자 38.4%는 메타뉴모...독감은 1% 불과

질병청에 따르면 올해 41주차(10월 2~8일) 의료 기관을 찾은 외래 환자 중 인플루엔자(독감) 의심 환자는 1000명당 7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발생한 의심 환자는 1명이다. 직전 주(40주차) 7.1명보다는 줄었지만, 이번 절기 유행주의보 발령 기준인 4.9명을 이미 넘어섰다.

38도 이상 발열, 기침, 인후통 등 독감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은 늘고 있지만, 검체를 분석해보니 실제 독감 환자는 많지 않았다. 질병청의 급성호흡기감염증 병원체 감시 동향에 따르면, 41주차에 확인된 독감 환자는 1%에 불과하다. 38주차(1.3%)부터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41주차 기준 병원체의 38.4%는 사람 메타뉴모바이러스로 확인됐다. 38주차에는 24.8%의 검출률을 보였는데 3주 사이 크게 뛰었다. 사람 메타뉴모바이러스 때문에 입원한 환자는 349명으로, 독감 입원 환자(18명)보다 많았다. 이들의 77~86%가 6세 미만의 영유아라고 질병청은 밝혔다.

✔ 발열·기침 등 증상...심하면 폐렴까지

사람 메타뉴모바이러스는 보통 봄~여름철에 유행한다. 하지만 올해는 가을철에 환자가 늘고있다. 질병청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것이라고 추정한다.

메타뉴모바이러스 감염증은 주로 영유아에게서 발생하지만 성인 환자도 드물지 않다. 여느 감기처럼 호흡기 비말을 통해 직접 전파되거나 감염된 사람의 분비물이나 오염된 물건 접촉으로 간접 전파된다.

주요 증상으로는 발열, 기침, 가래, 콧물, 코막힘 등이 있다. 심하면 세기관지염, 폐렴 등 하기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윤기욱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독감과 메타뉴모를 일반인이 직접 구분하긴 어렵다”면서 “메타뉴모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성인은 일반 감기로 가지만, 5세 이하 아이들이 폐렴과 모세기관지염으로 가기 쉽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폐렴, 모세기관지염은 성인으로 치면 심한 열감기 정도인데, 간혹 호흡 곤란이 올 수 있다”며 “그 경우에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한테 꼭 진료를 받아야 하고, 입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치료는 해열제나 수액 등으로 대증치료를 한다. 윤 교수는 “특별한 치료제나 백신이 없기 때문에 예방이 최선이다”라면서 “대부분은 해열제 등을 먹고 지나가지만, 고열이 3일 이상 지속하고 호흡곤란 등을 동반하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질병청은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 등 기본 방역 수칙을 지키고 호흡기 증상이 있으면 필요한 진료를 받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영유아 보육시설 등에서의 집단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호흡기 증상이 있는 직원과 영유아 등원을 제한하고 환기·마스크 착용·개인물품 공동사용 금지 등 감염 원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_39.html
kolaswqetsrq 11.14 19:45
변화무상變化無常 - 늘 변화하여 일정하지 않음

변화무상(變化無常) - 늘 변화하여 일정하지 않음

변할 변(言/16) 될 화(匕/2) 없을 무(灬/8) 떳떳할 상(巾/8)

사람의 일생은 덧없다고 말한다. 사람의 삶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은 늘 바뀌어(變化) 일정하지 않다(無常). 의미하는 바는 깊어도 쉬운 글자로 된 이 성어는 ‘莊子(장자)’에서 처음 나왔다고 하니 의외다. 변화하는 정도가 비할 데 없이 심하다는 變化無雙(변화무쌍)과는 헷갈리지 않게 주의할 일이다. 늘 변화하니 인생백세시대가 왔다고 해도 草露人生(초로인생)이라 하루아침 사라지는 이슬과 같다.

산 자는 죽고 젊은 자는 늙는다. 그래서 人生無常(인생무상)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諸行無常(제행무상)도 있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소멸하며, 이어가기 때문에 한 모습으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의미라 한다.

장자의 雜篇(잡편) 중에서도 마지막 天下(천하)편은 중국 고대의 학술을 몇 개의 범주로 나누고 각각의 특징과 사상가들을 소개한다. 후학들이 편찬했다는 말대로 莊周(장주)도 설명하는 부분에 성어가 나온다.

‘적막하여 형체가 없으며 끊임없이 변화하여 일정한 모습이 없다(芴漠無形 變化無常/ 홀막무형 변화무상), 죽음과 삶은 천지와 나란히 함께 있고, 신명과 함께 변해 간다(死與生與 天地並與 神明往與/ 사여생여 천지병여 신명왕여).’ 芴은 황홀할, 희미할 홀. 芴漠(홀막)이 寂漠(적막)으로 나오는 곳도 있다. 그러면서 장자는 아득히 멀기만 하고 만물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돌아가 의지할 만한 곳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런 학술의 가르침을 듣고 기뻐하며 자기 뜻을 자유분방하게 펼쳤다. 변화무쌍한 이치를 허황되기는 하지만 우화 형식으로 변화무쌍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만물이 변천한다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얻었다고 해서 영원하지 않으니 기뻐할 수 없고, 잃었다고 해서 근심하는 일이 없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통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에 아등바등한다. 하지만 인간의 길흉화복은 돌고 돈다. ‘인간 만사는 새옹지마’라고 했으니 말이다. 짧은 인생을 무상하다며 덧없다고 비관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삶을 탄생시키는 변화의 단계로 보면 활기를 찾을 수 있다. 오늘의 불행을 나에게만 찾아왔다고 불평하며 주저앉으면 다음의 행복이 자리할 틈이 없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814.html
kolaswqetsrq 11.14 19:47
아도물阿堵物 - 이 물건, 돈을 가리키는 말

아도물(阿堵物) - 이 물건, 돈을 가리키는 말

언덕 아(阝-5) 담 도(土-9) 물건 물(牛-4)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텐데 멀리 하고 초연하게 살면 우러름을 받는다. 돈에 관한 격언을 보면 모든 악의 근원이라거나 비애와 번뇌의 시초라며 대부분 멀리 하라고 가르친다. 물론 "돈은 사나운 주인이요, 훌륭한 종이다"라고 하며 이중성을 말하거나 "무거운 지갑은 마음을 가볍게 한다"고 긍정적인 표현도 간혹 있기는 하다.

우리의 조상들도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錢可通神/ 전가통신)"는 말로 돈의 위력을 알고 있었지만, 입으로 돈을 말하지 않는 것(口不言錢/ 구불언전)이 양반의 도리라고 했다. 돈에 얽매이지 말라는 교훈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돈의 이칭으로 "이 물건(阿堵物)"이란 뜻의 이 성어도 돈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은 중국 王衍(왕연)이란 사람의 일화에서 비롯됐다. 魏晉(위진)시대 晉(진)나라 사람인 왕연은 자가 夷甫(이보)로 竹林七賢(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王戎(왕융)의 사촌이었다. 그도 당시 귀족사회에서 유행하던 淸談(청담)에 몰두했는데 이는 오랜 국정 혼란으로 유가 대신 老莊(노장)사상에 심취해 세속적 가치를 초월한 생활을 추구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재능이 뛰어났던 왕연은 속된 것을 싫어하는 고고한 사람이라 돈이라는 말을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의 부인 郭氏(곽씨)는 남편과 달리 이재에 밝은 사람이었다. 하루는 돈을 싫어하는 남편에게 돈이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기 위해 잠든 사이 여종을 시켜 침상 주위에 동전을 가득 쌓아두게 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난 왕연은 돈에 막혀 나갈 수가 없자 여종을 불러 말했다. "어서 이것들을 모두 치우도록 해라(擧卻阿堵物/ 거각아도물)!" 卻은 물리칠 각. 阿堵는 六朝(육조)시대의 구어로 "이", 또는 "이것"의 뜻이라는데 왕연의 이 일화 이후 돈의 별칭이 되었다. "世說新語(세설신어)"의 規箴(규잠)편과 "晉書(진서)" 왕연전에 전하는 이야기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110.html
kolaswqetsrq 11.14 19:48
노생상담老生常譚 - 늙은 서생의 항상 하는 이야기, 시세에 어두운 케케묵은 이야기

노생상담(老生常譚) - 늙은 서생의 항상 하는 이야기, 시세에 어두운 케케묵은 이야기

늙을 로(老/0) 날 생(生/0) 떳떳할 상(巾/8) 말씀 담(言/12)

옳은 말이라도 여러 번 들으면 좋아할 사람이 없다. 忠言逆耳(충언역이)라고 좋게 되라며 충고해주는 말도 귀담아 듣는 사람이 드물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란 속담은 되풀이되는 말에 질색인 것을 잘 말해준다. 잘 되라고 해 주는 옳은 이야기도 이러한데 늙은 서생(老生)이 늘 하는 이야기(常譚)라면 질색이라 여기는 사람이 더 많을듯하다.

늙은이가 늘 하는 常套的(상투적)인 말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의견이라고 치부해버린다. 무조건 이렇게 밀어놓을 것은 아닌데 우선 이 말의 유래와 관계 깊은 管輅(관로, 輅는 수레 로)란 사람을 보자.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 魏(위)나라의 기이한 재주를 지닌 술사였다.

陳壽(진수)의 ‘三國志(삼국지)’에 독립된 열전이 있고 劉義慶(유의경)이 쓴 일화집 ‘世說新語(세설신어)’의 規箴(규잠)편에 소개돼 있을 정도의 비중이다. 관로는 특이한 용모에 언행도 거친 면이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별자리 살피기를 좋아했고 주역을 통달하여 신동이란 소리를 들었다.

점을 잘 치고 관상술에 능했기 때문에 曹操(조조)를 비롯한 당시의 권력자들이 운세를 물었고 모두 들어맞아 유명인이 되었다. 소문을 들은 何晏(하안)이 찾아와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며 해몽해주도록 요청했다. 하안은 조조의 양아들로 학문도 뛰어났는데 푸른 색 파리 열 마리가 코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꿈을 꾸었다며 三公(삼공)의 지위에 언제 오를 수 있는지 물었다.

관로가 설명한다. 코는 산을 의미하고 산은 움직이지 않는 높은 자리를 말하는데 그만큼 파리들이 주위에 모여들어 주의가 필요하다며 옛날 周公(주공)의 덕과 孔子(공자)의 가르침을 잘 깨우쳐야 그것을 쫓을 수 있다고 했다. 하안과 같이 왔던 무신 鄧颺(등양, 颺은 날릴 양)이 곁에서 듣고 툭 쏘았다.

‘그런 말은 이 노생이 늘 하는 이야기지요(此老生之常譚/ 차로생지상담).’ 관로가 답했다. ‘노생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것도 보이고, 늘 이야기하는 자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보이지요(夫老生者見不生 常譚者見不譚/ 부로생자견불생 상담자견부담).’

하안 일행은 관로가 비법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덕행을 쌓아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을 늘어놓자 귀담아 듣지 않고 가버렸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이들은 왕의 최측근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다 司馬懿(사마의)와의 세력다툼에 몰려 참수형을 당했다.

세상을 먼저 산 사람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또 ‘나 때는 말이야’ 한다고 젊은이들은 고개를 돌린다. 설득을 하지 않고 늘 같은 이야기에 고집을 부리는 태도로 외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린아이 말이라도 귀담아 들으라고 했는데 老馬之智(노마지지)는 받아들일 것이 많을 수 있다. 다만 경험과 지혜를 말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렸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989.html
kolaswqetsrq 11.14 19:49
조운모우朝雲暮雨 - 아침 구름과 저녁 비, 남녀의 사랑

조운모우(朝雲暮雨) - 아침 구름과 저녁 비, 남녀의 사랑

아침 조(月/8) 구름 운(雨/4) 저물 모(日/11) 비 우(雨/0)

아침의 구름(朝雲)과 저녁때에 내리는 비(暮雨)라는 말은 정상적으로 날씨의 변화를 나타내겠지만 이 뜻보다는 달리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가까이 있다는 애틋한 정을 전하고 구름과 비가 농사에 큰 도움을 주니 혜택을 입었을 때 비유하기도 한다.

보통 많이 이해하기로는 남녀의 육체적 관계를 구름과 비, 雲雨(운우)로 많이 표현하는데 여기에는 雲雨之樂(운우지락)에서 소개한대로 재미있는 고사가 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巫山(무산)이 나오고 神女(신녀)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楚(초)나라의 시인 宋玉(송옥)의 ‘高唐賦(고당부)’에 실려 전한다.

송옥은 위아래가 모두 흐리다고 통탄한 擧世皆濁(거세개탁)의 충신 屈原(굴원)의 문인으로 屈宋(굴송)이라 병칭되는 美如宋玉(미여송옥)의 미남시인이었다. 그가 襄王(양왕)을 모시고 洞庭湖(동정호)에 나들이 갔을 때 雲夢(운몽)의 누대에서 高唐館(고당관)을 바라보니 그 위에서만 구름이 몰려 아래위로 솟구치고 모양이 바뀌는 등 변화가 끝이 없었다. 양왕이 송옥에게 물어보니 부왕 懷王(회왕)과 무산에 살았던 신녀 瑤姬(요희)가 사랑을 나누며 그 흔적으로 남은 朝雲(조운)이라 답했다. 조운이 어떤 구름인가 물어보니 자세히 설명한다.

옛날 선왕이 고당에 유람 왔다가 피곤하여 낮잠을 자게 됐을 때 꿈속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자신은 무산에 사는 신녀인데 ‘왕께서 고당에서 노니신다고 하기에 잠자리를 받들고자 왔습니다(聞君遊高唐 願薦枕席/ 문군유고당 원천침석)’라 말한다. 꿈속에서 정을 나눈 왕에게 여인은 떠나면서 말한다.

‘저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양대 아래에 있을 것입니다(旦爲朝雲 暮爲行雨 朝朝暮暮 陽臺之下/ 단위조운 모위행우 조조모모 양대지하).’ 아침에 보니 여인의 말대로 구름이 걸려 있어 그 곳에 묘당을 짓고 朝雲廟(조운묘)라 했다는 것이다. 한 번 인연을 맺고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경우는 그 이후 陽臺不歸之雲(양대불귀지운)이란 말로 쓰게 됐다.

아침저녁 변한다는 朝令暮改(조령모개)나 朝三暮四(조삼모사) 등과 같이 朝暮(조모)에는 부정적인 말만 포함하지 않는다. 몸은 멀어도 마음만은, 초목과 농사에 도움을 주는 비구름같이 남녀의 사랑 이전의 뜻은 숭고하다. ‘님의 침묵’의 민족시인 韓龍雲(한용운)은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에’란 글에 묘사한 부분을 인용해 보자.

‘붉은 듯하다가 푸르고 푸른 듯하다가 희어지며 가늘게 떨리는 그대의 입술은 웃음의 조운이냐 울음의 모우이냐.’ 논개의 높은 애국심과 순국행위를 천추에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예찬했다는 시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424.html
kolaswqetsrq 11.14 19:50
백홍관일白虹貫日 -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다, 정성에 하늘이 감응하다, 임금의 신상에 위해가 닥치다

백홍관일(白虹貫日) -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다, 정성에 하늘이 감응하다, 임금의 신상에 위해가 닥치다

흰 백(白/0) 무지개 홍(虫/3) 꿸 관(貝/4) 날 일(日/0)

하늘에 장엄한 색색의 무지개가 펼쳐지면 모두들 환호한다. 비가 그친 뒤 태양의 반대쪽에 걸리는 반원형의 무지개는 우리나라에선 선녀가 타고 내려와 목욕하는 미끄럼대가 되고, 그리스(Greece) 신화에선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여신 이리스(Iris) 자신이 된다. 무지개를 나타내는 한자 虹(홍)은 연못의 물을 빨아올리는 벌레로 하늘에 닿으면 용이 된다고 봤다.

빛의 반사에 따라 쌍무지개도 뜨는데 희미한 것이 암무지개이고 둘을 합쳐서 虹霓(홍예, 霓는 암무지개 예)라 하기도 한다. 특이하게 흰 무지개(白虹)가 실제 보였는지 전설에 의한 것인지 종종 등장하여 해를 꿰뚫었다(貫日)는 성어가 남아있다.

이 때의 흰 무지개는 지극한 정성을 뜻해 하늘이 감응했다는 뜻과, 해가 임금을 말해 신상에 해로움이 닥친다는 전조의 의미를 지녔다. 중국 前漢(전한) 시대 문필로 명성이 높았던 鄒陽(추양)이란 사람이 쓴 말로 ‘史記(사기)’ 열전에 나온다.

추양은 齊(제)나라에서 태어나 제후국 梁(양)나라 孝王(효왕)의 문객으로 지내다 羊勝(양승)이란 사람의 참소로 옥에 갇혔다. 잘못도 없이 억울하게 죽게 되자 진실한 사람은 의심을 받지 않는다며 獄中上梁王書(옥중상양왕서)를 썼다. 여기에 戰國時代(전국시대) 때의 협객 荊軻(형가)를 등장시켜 충신과 간신, 의로움을 추구하는 선비를 군주는 알아야 한다고 읍소했다.

성어 부분을 보자. ‘옛날 형가가 연나라 태자 단의 의로움을 사모했는데(昔者荊軻慕 燕丹之義/ 석자형가모 연단지의), 흰 무지개가 해를 뚫는 현상이 있었지만 태자 단은 형가를 의심했습니다(白虹貫日 太子畏之/ 백홍관일 태자외지).’

秦始皇(진시황)의 볼모로 있다 탈출한 燕(연)나라 태자 丹(단)이 복수를 위해 형가에 부탁했을 때 하늘도 감동하여 흰 무지개(형가의 칼)가 하늘의 해(진시황)를 꿰뚫었으나 깊은 신임을 주지 못해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실제 형가는 진시황 암살 일보 앞에서 실패했다. 추양의 간곡한 글은 물론 효왕의 마음을 움직여 옥에서 풀려난 뒤 상객의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간절한 정성은 천지의 자연현상까지 바꾸어도 믿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가르침도 준다. 반면 해를 뜻하는 군주의 입장에서 칼이 꿰뚫으면 신상에 위해가 닥쳐옴을 알고 잘못을 돌아보며 바로잡도록 깨우친다.

해가 아닌 달을 흰 무지개가 관통하듯 걸리는 白虹貫月(백홍관월)은 우리 고전에서 검색되는데 왕비나 후궁에 변고가 생긴다고 인식했다 한다. 또한 병란이 일어날 조짐으로 보기도 했는데 어찌됐든 흰 무지개는 태평한 시기에는 불길한 징조이고, 어지러운 시기에는 세상이 바뀌도록 희망하는 상징으로 여긴 셈이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480.html
kolaswqetsrq 11.14 19:51
병입고황病入膏肓 - 고칠 수 없이 깊이 든 병

병입고황(病入膏肓) - 고칠 수 없이 깊이 든 병

병 병(疒/5) 들 입(入/0) 기름 고(肉/10) 명치끝 황(肉/3)

도저히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위중한 병이 들었을 때 膏肓(고황)에 들었다고 한다. 고황은 우리 몸의 심장과 횡격막 사이를 말한다. 膏(고)는 기름, 지방, 고약을 말할 때 쓰는데 고대 의학에서 심장의 아랫부분을 가리켰다고 한다.

소경 盲(맹)과 1획 차이로 잘못 읽기 쉬운 肓(황)은 횡격막의 윗부분을 나타낸다. 이 사이에 병이 나면(病入) 아무리 뛰어난 명의가 와도 고치기 어렵다는 이야기에서 성어가 유래했다. 膏肓之疾(고황지질)이나 病入骨髓(병입골수), 二竪爲烈(이수위열, 竪는 더벅머리 수)이라 해도 뜻이 같다. 여기에서 나쁜 습관이나 사상에 깊이 물들어 도저히 치유할 수 없을 때 비유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의 景公(경공)이 꿈에서 유령을 봤다. 머리를 땅에 늘어뜨린 유령이 자기 자손들을 죽였기 때문에 경공에게 벌을 주겠다고 하며 대문과 침실의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혼비백산한 경공이 그날로 병이 들어 위독한 상태가 됐다. 나라 안의 용하다는 의원은 모두 불러 치료하게 했으나 효험이 없자 이웃 秦(진)나라의 桓公(환공)에게 부탁해 명의를 모셔오게 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환공은 緩(완)이라는 최고의 명의를 보내기로 했다.

명의 완이 도착하기 전에 경공은 또 이상한 꿈을 꾸게 됐다. 병이 두 사람의 더벅머리 소년으로 변하더니 그 중 하나가 용한 의원이 온다는데 자기들을 상하게 하면 어디로 도망치지 하고 말했다. ‘다른 하나가 말했다.

횡격막 위와 명치끝 아래에 가 있으면 우리를 어떻게 하겠어(其一曰 居肓之上 膏之下 若我何/ 기일왈 거황지상 고지하 약아하)?’ 명의가 와서 진맥했는데 꼬마들의 말대로 병이 침을 놓아도 이르지 못하는 곳에 났고 약도 효험이 없으니 다스릴 수 없다고 했다. ‘左氏傳(좌씨전)’ 成公(성공) 12년조에 실려 있다.

현대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고칠 수 없는 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 덕으로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선진국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등 자랑할 만하다. 하위권에 드는 부문도 많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갈등, 남을 헐뜯는 무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무질서, 끊임없는 경쟁으로 삶의 만족도 저하 등등은 국력에 비해 까마득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 치유할 수 없을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속히 손쓰지 않으면 명의를 불러도 소용없게 될지 모른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105.html
kolaswqetsrq 11.14 19:52
공의행즉치公義行則治 - 공적인 의리를 행하면 잘 다스려 진다.

공의행즉치(公義行則治) - 공적인 의리를 행하면 잘 다스려 진다.

공평할 공(八/2) 옳을 의(羊/7) 다닐 행(行/0) 곧 즉(刂/7) 다스릴 치(氵/5)

우리는 모두 정의가 산처럼 굳게 행해지고, 바다처럼 평등하게 대접받기를 원한다. 고대 철인은 인간이 바르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 민주주의는 생겨난다고 했다. 인간은 어떤 면에서 분명히 평등하지 않으나 자존심이나 상호 존경에 있어서는 평등해야 하고, 더군다나 법 앞에서는 평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義(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한다’고 성경에서도 말했다(구약 잠언). 이런 공정을 실천하는 최전선의 사람들이 공직자다. 공평하고 의로운 도의가 행해지면(公義行) 나라는 잘 다스려져(則治) 강대해진다는 이 말은 ‘韓非子(한비자)’에서 나왔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말기 법치주의를 주창했던 정치사상가 韓非(한비)는 飾邪(식사)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飾(식)은 본래 ‘수식하다, 꾸미다’의 의미지만 ‘경계한다’는 뜻으로 사용돼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데 사악한 행위를 멀리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중의 하나로 공사의 구분이 분명하면 군주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신하라도 맡은 일에 충실히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요약해 보자.

군주는 필히 공사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법과 제도를 분명히 해서 사사로운 온정을 없애야 한다. 또 명령은 꼭 실행하도록 해야 하며, 금지한 것은 반드시 그치도록 하는 것이 바로 公義(공의)라 하면서 이어진다.

‘사사로운 의리를 행하면 나라는 어지럽게 되지만, 공적인 의리를 행하면 잘 다스려진다. 그러므로 공과 사는 구분이 있어야 한다(私義行則亂 公義行則治 故公私有分/ 사의행즉란 공의행즉치 고공사유분).’ ‘오직 공평하면 지혜가 생기고, 오직 청렴하면 위엄이 생긴다(惟公則生明 惟廉則生威/ 유공즉생명 유렴즉생위)’는 菜根譚(채근담)의 가르침도 공직자가 공정하고 깨끗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위의 뜻과 통한다.

한국의 부패인식지수와 부패순위는 2000년대를 최고로 이후 계속 하락하거나 정체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니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고 불만만 쌓인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212.html
kolaswqetsrq 11.14 19:53
선부지설蟬不知雪 - 매미는 겨울의 눈을 모른다, 견문이 매우 좁다.

선부지설(蟬不知雪) - 매미는 겨울의 눈을 모른다, 견문이 매우 좁다.

매미 선(虫/12) 아닐 불, 부(一/3) 알 지(矢/3) 눈 설(雨/3)

여름철 도심이나 교외서나 끊이지 않고 울음소리를 내는 매미는 五德(오덕)이 있다고 칭송받는다. 머리가 선비의 갓끈이 떨어진 모습을 연상해 文(문), 이슬만 먹고 곡식은 해치지 않아 淸廉(청렴), 집이 없이 儉(검), 때를 잘 지켜 信(신)이라고 중국 西晉(서진) 때의 문학가 陸雲(육운)이 노래했다.

또 ‘매미의 성품이 자못 고결하다(爾性頗高潔/ 이성파고결)’고 본 조선의 문신 李荇(이행, 荇은 마름풀 행)은 ‘본래 삿된 마음이 없다(此物本無機/ 차물본무기)’고 예찬했다. 모두 그렇지는 않고 매미도 蛙鳴蟬噪(와명선조, 噪는 지저귈 조)라 하여 개구리의 울음소리와 같이 시끄럽다고 쓸데없는 의론과 형편없는 문장에 빗대기도 했다.

요란하다는 것은 약과이고 매미를 견문이 좁고 아는 것이 없다고 형편없이 깎아내린 성어가 겨울철 눈을 모른다는 이 성어다. 매미는 여름 한철 치열하게 살다가 죽으니 겨울철 눈을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前漢(전한) 때 소금과 철의 전매에 관한 여러 논의를 학자 桓寬(환관)이 ‘鹽鐵論(염철론)’에 정리한 글에 나온다. 여기에 ‘말은 잘하지만 변화를 모르면, 말을 잘한다고 말할 수 없다(善言而不知變 未可謂能說也/ 선언이부지변 미가위능설야)’며 한 가지 이치만 알아서는 전체의 균형을 잡을 줄 모르는 것과 같다고 매미 비유를 들었다.

부분은 이렇다. ‘자신이 보지 못했다고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으로(以所不睹不信人/ 이소불도불신인), 마치 매미가 눈이 오는 겨울을 모르는 것과 같다(若蟬之不知雪/ 약선지부지설).’ 보고 들은 것이 없고 학식이 얕으면 상식에만 얽매여 그 이상을 모른다. 매미의 눈과 같이 전혀 모르는 분야는 나설 수도 없는데 조금 알고서 잘난 체 나서는 비유의 성어는 수두룩하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 개구리가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 井底之蛙(정저지와)에서 井蛙之見(정와지견), 井中觀天(정중관천), 井中視星(정중시성), 埳井之蛙(감정지와, 埳은 구덩이 감) 등이다. 작은 못의 송사리 尺澤之鯢(척택지예, 鯢는 도롱뇽 예)나 술독 속의 초파리 甕裏醯鷄(옹리혜계, 醯는 식혜 혜), 울타리에 앉은 메추라기 藩籬之鷃(번리지안, 鷃은 메추리 안)과 같이 어렵고 독특한 비유도 있다. 모두 견식이 좁은 소인을 말한다.

오덕을 지닌 매미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겨울철 눈에 대해 떠벌릴 일은 없겠다. 금빛 매미는 허물을 벗어야 만들어진다는 金蟬脫殼(금선탈각)을 병법에서 말하는 몸을 살짝 빼내 달아난다는 뜻 말고 부족한 점을 닦아 새로 난다는 뜻으로 알면 좋겠다.

경험과 견문이 적어 앞을 내다보는 것이 모자란다면 인정하고 부단히 배우면 된다. 모두 알 수가 없으니 탓할 수도 없다. 문제는 자신이 나가는 길이 무조건 옳다고 고집하는 일이다. 옆에서 잘못된 점을 지적해도 뜻대로 밀고 가면 주위가 피곤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345.html
kolaswqetsrq 11.14 19:56
발본색원拔本塞源 -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다.

발본색원(拔本塞源) -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다.

뽑을 발(扌/5) 근본 본(木/1) 막힐 색(土/10) 근원 원(氵/10)

범죄를 끝까지 추적하여 소탕할 때 악의 뿌리까지 뽑는다(拔本)는 말을 자주 쓴다. 물이 넘쳐 농사를 망칠 때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그 근원을 막아야(塞源) 더 이상 새나오지 않는다. 잡초를 벨 때 뿌리까지 없애라는 斬草除根(참초제근)과 닮았다.

이와 같이 좋지 않은 일의 근본 원인이 되는 요소를 완전히 없애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의지를 보일 때 이 비유를 쓴다. 그런데 春秋時代(춘추시대) 魯(노)나라의 학자 左丘明(좌구명)이 쓴 ‘左氏傳(좌씨전)’과 ‘國語(국어)’에 이 말을 사용할 때는 약간씩 다른 의미였다.

晉(진)나라 獻公(헌공)은 이민족에 승리를 거두고 驪姬(여희, 驪는 검은말 려)라는 미녀를 데려왔다. 절색에다 수단도 간교한 여희에 혹해 왕후를 폐하려는 헌공에게 史蘇(사소)라는 산대 점쟁이가 간했다.

이런 미색은 나라를 망친 妺喜(말희)나 妲己(달기), 褒姒(포사)와 같다며 ‘나무를 벨 때 뿌리까지 베지 않으면 반드시 다시 살아나고(伐木不自其本 必復生/ 벌목부자기본 필복생), 물을 막으면서 그 근원을 막지 않으면 반드시 다시 흐르는 법이며(塞水不自其源 必復流/ 색수부자기원 필복류), 재앙을 없앨 때 그 바탕을 없애지 않으면 반드시 다시 난리가 난다(滅禍不自其基 必復亂/ 멸화부자기기 필복란)’고 말렸다. 그러나 헌공은 듣지 않아 진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국어의 晉語(진어) 1편에 실려 있다.

좌씨전 昭公(소공) 9년조에는 이렇게 나온다. ‘의복에 갓과 면류관이 있는 것은 나무와 물에 뿌리와 근원이 있는 것과 같다. 갓을 찢고 면류관을 부수며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으면(若裂冠毁冕 拔本塞原/ 약열관훼면 발본색원) 오랑캐라도 업신여길 것이다‘. 周(주)나라 景王(경왕)이 국경을 침범한 진나라를 꾸짖으며 한 말이다. 여기선 하늘의 이치를 알고 욕심을 버리라는 것으로 근본을 망치는 행위를 뜻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351.html
kolaswqetsrq 11.14 19:57
무자가색務玆稼穡 - 씨 뿌리고 거두어 농사에 힘쓰다.

무자가색(務玆稼穡) - 씨 뿌리고 거두어 농사에 힘쓰다.

힘쓸 무(力/9) 이 자(玄/5) 심을 가(禾/10) 거둘 색(禾/13)

‘농사가 천하 모든 사람들의 근본(農者天下之大本/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이 귀에 많이 익을 것이다. 요즘이야 농악 공연 때 펄럭이는 깃발에서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서 한두 세대 이전만 해도 농민이 다수고 농사가 가장 중시됐다. 이 말을 사시사철 계절 변화를 알아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데서 하늘과 땅의 진리를 깨닫게 하려는 지혜가 담겼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보든 이 말은 後漢(후한) 역사가 班固(반고)의 ‘漢書(한서)’에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이 된다고 실린 부분에서 왔다. ‘농사는 천하의 큰 근본으로 백성들은 이에 의지하여 살아간다(農天下之大本也 民所恃以生也/ 농천하지대본야 민소시이생야).’ 文帝紀(문제기)에 있다. 恃는 믿을 시.

백성들의 살아가는 근본인 농사를 위정자들이 중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農政(농정)을 통해 농토를 개간하고 식량을 자급자족해야 富國(부국)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근본인 농사에 힘써(務玆)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稼穡)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된다고 했다.

이 성어는 ‘千字文(천자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중국 南朝(남조) 梁(양)나라의 周興嗣(주흥사)가 하룻밤에 다 쓰고 나니 머리가 허옇게 셌다고 白首文(백수문)이라고도 하며 옛날 학동들이 처음 배우는 교재였다. 입문서라 쉽게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 250句(구)에 2구씩 125聯(련)으로 된 명시를 모아 아주 어려운 한자도 다수다.

天地玄黃(천지현황)에서 시작하여 4개 장으로 분류되는 1000자에서 네 번째인 處身治家之道(처신치가지도)에 성어가 나온다. ‘농사짓는 일로 나라 다스리는 근본을 삼아(治本於農/ 치본어농), 이에 씨 뿌리고 거두는 일에 힘쓰게 한다(務玆稼穡/ 무자가색)’로 짝이 되어 있다.

심을 稼(가)는 이삭이나 씨, 거둘 穡(색)은 수확한다는 것을 나타내다가 합쳐져 농사를 의미했다고 한다. ‘社稷署儀軌(사직서의궤)’란 조선시대 각종 의식을 기록한 책에서도 이 말이 등장한다. ‘좋은 종자를 내려주니 농사에 힘을 쓰고(誕降嘉種 務玆稼穡/ 탄강가종 무자가색), 온갖 곡식이잘 영그니 많은 백성이 두루 혜택을 받도다(百穀用成 群黎徧德/ 백곡용성 군려편덕).’

농사가 천하의 근본에서 지금은 그렇게 중시하지 않는다 해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음식이 가장 소중하다.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以食爲天(이식위천)이 그것이다. 먹는 음식이 노력을 곁들이지 않고 나오지 않으니 그 과정인 농사가 중요하다.

찬 기운이 오면 더운 여름이 가고 그렇게 결실을 맺은 곡식은 가을에 거두어들여 겨울에 갈무리한다는 구절 寒來暑往 秋收冬藏(한래서왕 추수동장)도 의미가 상통한다. 일상에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좋은 결실만 욕심내지는 않는지 곰곰이 생각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143.html
kolaswqetsrq 11.14 19:58
온고지신溫故知新 -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다.

온고지신(溫故知新) -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다.

따뜻할 온(氵-10) 연고 고(攵-5) 알 지(矢-3) 새 신(斤-9)

"論語(논어)"를 읽지 않은 사람도 들은풍월로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교단에서 강조하거나 학급에서 급훈으로 자주 등장했던 말이다. 옛것을 익혀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면 가히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가 원래 글이다. 爲政(위정)편에 나온다.

지나간 과거로부터 역사를 배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깨달음을 얻되, 옛것이나 지금 것이나 한 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남을 가르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과거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현재를 잘 알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닥쳐올 미래의 사태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 성어와 같은 문구는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 먼저 孔子(공자)의 손자인 子思(자사)의 저작이며 四書(사서)의 하나인 "中庸(중용)"에 있다. 여기서는 溫故(온고)를 중국 後漢(후한) 말기의 대표적 유학자 鄭玄(정현)이 주석하며 고기를 뜨거운 물속에 넣어 따뜻하게 하듯이 옛것을 가슴 속에 품고 거듭 반복해서 익히는 것이라 했다.

朱子(주자)는 끌어와서 탐구하다는 뜻으로 풀고 있다. 반면 "禮記(예기)"에는 피상적인 학문으로는 남의 스승이 되기에 부족하다며 그런 것을 記問之學(기문지학)이라 했다.

儒家(유가)가 중국의 다양한 사상 속에서도 우선적으로 존중받는 것은 공자의 후예들이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추구한 정신을 이어받아 살렸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인류가 살아오면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나간 일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면서 역사를 중시하고 전통문화를 지켜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로워지는 일에 관해서는 "진실로 날로 새로워지고, 날이면 날마다 새로워지며, 또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는 大學(대학)에서의 표현이상 강조한 것이 없다.

옛것을 낡았다고 무조건 배척할 수 있겠는가.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을 객관화하고 取捨選擇(취사선택)하여 새로운 문화 창조에 힘써야 한다. 눈부실 정도로 세계가 바뀌어 가는데 그 변화에 적응하고 응용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새 사실을 깨달아야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하여 가르침에만 해당되진 않는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102.html
kolaswqetsrq 11.14 19:59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 허무한 인생 욕심은 멀리해야 한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 허무한 인생 욕심은 멀리해야 한다.

빌 공(穴/3) 손 수(手/0) 올 래(人/6) 빌 공(穴/3) 손 수(手/0) 갈 거(厶/3)

사람의 삶이 허무하고 덧없다는 것을 나타낼 때 꿈이나 이슬에 비유한 것이 유난히 많다. 꿈이 든 말로 자주 쓰이는 것이 南柯一夢(남가일몽)과 役夫之夢(역부지몽), 邯鄲之夢(한단지몽), 黃粱一夢(황량일몽) 등 이외에도 부지기수다. 아침 이슬은 해가 뜨면 스러지니 인생에 비유해 人生朝露(인생조로), 草露人生(초로인생)이다.

이보다 더 쉬우면서 자주 인용되는 것이 빈손으로 와서(空手來) 빈손으로 간다(空手去)는 이 성어다. 갓난아이로 태어날 때 맨 손이고, 한 평생 모은 재산으로 떵떵거리고 살았더라도 저 세상으로 갈 때는 맨주먹이다. 인생무상과 허무를 말하면서 물질적인 것에 얽매이지 말라는 가르침을 준다.

쉬운 비유라 보통 사람들도 불교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정작 출처는 의외로 뚜렷하지 않다. 불교 의식을 집대성한 ‘釋門儀範(석문의범)’의 永嘉法文(영가법문)에 수록돼 있다는데 이는 근대의 승려 錫贊(석찬)이 1935년 편찬했으니 물론 최초는 아니다.

고려 말의 懶翁和尙(나옹화상)이나 임진왜란 때 승병의 총수 西山大師(서산대사)가 원작자로 자주 거론된다. 하지만 문헌상으로 나옹의 법통을 잇는 無學(무학)의 제자 己和(기화)의 涵虛堂得通和尙語錄(함허당득통화상어록)에서 처음 확인된다는 연구가 있다. 일반에도 익은 만큼 원저자 찾기는 어렵지만 실제 그것이 원뜻대로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보다 허무한 인생을 노래한 시 구절은 세월이 지날수록 의미가 변하지 않는다. 부분을 보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여(空手來空手去 是人生/ 공수래공수거 시인생), 날 때에는 어디서 왔으며, 죽을 때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 나는 것은 뜬구름 한 조각이 일어나는 듯하고, 죽음은 그 구름이 사라지는 것(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뜬 구름이 본래 실체가 없듯, 삶과 죽음도 실체가 없기는 마찬가지라(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부운자체본무실 생사거래역여연).’

돌아갈 때 빈손으로 가는 것을 일찍 깨우친 고승들은 무소유의 삶을 살아 불도들의 우러름을 받는다. 덜 깨우친 승려는 이면으로 풀소유의 호화생활을 했다고 지탄받기도 한다. 굳이 불도가 아니라도 ‘인생은 나그네길’이라 빈손으로 가는 삶을 실천한 이름 내세우지 않는 사람들은 주위에 숱하다.

일전에 세상을 뜬 한국 최고의 재벌은 한 회사 주식만 30조원이고 그 절반이 상속세가 된다고 했다. 이런 막대한 재산도 갈 때는 한 푼 노잣돈이면 된다. 이익을 앞세워 눈이 시뻘건 대다수의 중생들은 이를 보고도 깨닫지 못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842.html
kolaswqetsrq 11.14 20:00
배궁사영杯弓蛇影 – 술잔에 비친 활을 뱀으로 알다.

배궁사영(杯弓蛇影) – 술잔에 비친 활을 뱀으로 알다.

잔 배(木/4) 활 궁(弓/0) 긴뱀 사(虫/5) 그림자 영(彡/12)

남을 무턱대고 믿는 일도 안 될 일이지만 의심부터 앞세우는 것도 못할 일이다. ‘지나친 의심은 과오를 낳는다’거나 ‘지혜 없는 자 의심 끊일 날이 없다’고 불경에서 가르쳤지만 중생들은 따르지 못한다.

‘만일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좋을 것인가?’ 하고 침식을 잊으며 걱정했다는 옛날 중국 杞(기)나라 사람의 걱정은 옛날만의 어리석음이 아니다. 의심의 결정판이 속담에 있다. 물건을 잃게 되면 누구나 다 의심스럽게 여겨진다며 ‘도둑맞으면 어미 품도 들춰 본다’고 까지 했다.

술잔 속에 비친 활 그림자를 뱀으로 잘못 알았다는 이 성어는 쓸데없이 의심을 품고 지나치게 걱정한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魏(위)나라에 뒤이어 건국된 南北朝(남북조) 시대의 晉(진)나라 때 樂廣(악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독학을 했지만 영리하고 신중해서 주위의 신망을 받았다.

뒷날 벼슬길에 천거되어 河南(하남)의 태수로 있을 때 일이다. 그의 친한 친구가 찾아 와 술상을 차리고 대접했다. 하지만 그는 무슨 근심이라도 있는 듯 말수도 적고 술도 얼마 마시지 않고 돌아갔다. 자주 오던 친구는 그 뒤로 웬일인지 발을 딱 끊고 찾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여긴 악광이 찾아가 보니 자기에게 찾아온 이후 병이 들어 앓아 누웠다고 했다.

온갖 약을 써도 차도가 없다는 친구에게 원인을 물어보니 전번 술 마신 잔에서 뱀이 보였다고 했다. 언뜻 생각이 미친 악광은 다시 친구를 초청하여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잔을 보게 했다.

다시 뱀이 어른거리자 뒷벽에 있는 활을 벗겨 낸 뒤에 보라고 하니 없어졌다고 했다. 술잔에 비친 활 그림자를 뱀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물론 친구는 의심이 사라지고 병도 깨끗이 나았다. ‘晉書(진서)’ 악광전에 실린 이야기다.

杯中蛇影(배중사영) 또는 蛇影杯弓(사영배궁)이라 해도 같은 말인데 사람은 달리 비슷한 이야기가 後漢(후한) 應劭(응소, 劭는 아름다울 소)라는 사람이 엮은 風俗通義(풍속통의)에도 전한다. 列子(열자)가 말한 의심하면 이치에 어긋나는 망령된 생각이 난다는 疑心暗鬼(의심암귀)라는 말과도 통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9062.html
kolaswqetsrq 11.14 20:01
◇ 고금리·거래절벽에 속수무책.. 서울 아파트값 10년 만에 최대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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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리·거래절벽에 속수무책.. 서울 아파트값 10년 만에 최대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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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값이 주간 기준 10여년 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하면서 20주 연속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13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0월 둘째 주 주간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은 0.22%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주(-0.20%)보다 하락폭이 커지면서 20주 연속 하락세가 이어진 것이다.

서울 강북 14개구 중에는 도봉구(-0.40%)와 노원구(-0.40%)가 가장 큰 하락폭을 보였다. 이어 은평구(-0.29%)는 진관·녹번·응암동 대단지 위주로, 서대문구(-0.28%)는 남가좌동 대단지와 홍은동 구축 위주로 매물 적체 지속되며 하락폭이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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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권에서는 송파구(-0.31%)는 하락거래 발생한 잠실·송파·문정동 대단지 위주로, 강서구(-0.23%)는 내발산·가양동 주요 단지 위주로 하락하는 분위기다. 강동구(-0.22%)는 고덕·명일·암사동 위주로 하락하며 하락폭이 확대됐다. 서초구는 0.05% 하락하며 서울 자치구 중 하락폭이 가장 적었다.

인천(-0.31%→-0.38%)은 하락폭이 더욱 확대됐다. 금리인상 등 부동산 경기 하락 우려로 매수문의가 감소하며 서구(-0.45%)는 가정·마전동 위주로, 연수구(-0.43%)는 송도신도시 위주로, 중구(-0.40%)는 중산·북성동 위주로 하락했다.

경기도(-0.26%→-0.30%) 지역도 하락세가 짙어졌다. 이천시(-0.02%)는 관망세 짙어지며 하락 전환했다. 수원 영통구(-0.79%)는 입주물량 영향 있는 망포·매탄동 위주로, 성남 수정구(-0.70%)는 창곡·태평동 위주로 하락하는 모습이다. 이외에도 성남 중원구(-0.50%)는 금광·상대원동 위주로, 양주시(-0.44%)는 고암·옥정동 위주로, 파주시(-0.44%)는 목동·동패동 위주로 하락하며 하락세가 지속됐다.

아파트 전세 시장에서는 지난주 서울(-0.20%→-0.22%)이 임차인들의 갱신계약·월세·반전세 선호현상으로 전세매물 적체가 지속 중인 가운데, 추가 금리인상의 우려로 신규 전세매물의 가격 하향조정이 꾸준히 진행되며 하락폭이 확대됐다.

한강 이남에서는 송파구(-0.52%)가 잠실·송파동 주요 단지 위주로, 강동구(-0.28%)는 암사·고덕·강일동 위주로, 관악구(-0.23%)는 신림·봉천동 주요 단지 위주로, 양천구(-0.22%)는 신정·목동 대단지 위주로 하락하며 하락세가 더욱 짙어졌다.

한강 이북에서는 종로구(-0.32%)는 숭인·창신동 대단지 위주로, 은평구(-0.31%)는 응암·불광동 대단지 위주로, 서대문구(-0.30%)는 남가좌·북가좌·현저동 중·소규모 단지 위주로, 성북구(-0.30%)는 길음·돈암동 위주로, 중구(-0.28%)는 신당·만리동 위주로 하락하며 하락세가 계속됐다.

수도권 전체는 0.32% 하락했고, 지역별로는 인천과 경기가 각각 -0.37%를 기록하며 가격이 더욱 떨어지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인천의 경우 신규 입주물량 영향으로 매물 적체 지속되는 가운데, 서구(-0.48%)는 신현·가정동 위주로, 중구(-0.43%)는 중산·운남동 위주로, 부평구(-0.38%)는 삼산·산곡동 위주로 하락하며 하락폭 확대됐다.

경기도는 이천시(0.07%)가 직주근접성 양호한 증포동·부발읍 위주로 매수세 증가하며 상승했다. 반면 의정부시(-0.78%)는 낙양·민락동 위주로 매물 적체 영향 지속되며, 수원 영통구(-0.77%)는 망포·신동 소규모 (준)신축 위주로 하락거래가 발생하며 하락했다. 이외에도 파주시(-0.70%)가 동패·목동동 노후 단지 위주로, 하남시(-0.60%)는 망월·신장동에서 하락거래 이어지며 전주 대비 하락폭이 더욱 커졌다.

-아시아경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3.html
kolaswqetsrq 11.14 20:02
하필성문下筆成文 - 붓을 들기만 하면 문장이 이루어진다, 글재주가 뛰어난 사람

하필성문(下筆成文) - 붓을 들기만 하면 문장이 이루어진다, 글재주가 뛰어난 사람

아래 하(一/2) 붓 필(竹/6) 이룰 성(戈/3) 글월 문(文/0)

단번에 막힘없이 시원하게 쓴 글씨를 一筆揮之(일필휘지)라 한다. 대체로 붓을 떼지 않고 쓴 글씨를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시간에 완성한 그림도 포함한다. 감상하는 일반 사람들이야 순간적으로 쓴 글씨나 그려낸 명화를 보며 작가의 타고난 재주라고 탄복한다. 하지만 정작 작가의 갈고 닦은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磨穿鐵硯(마천철연)은 쇠로 된 벼루가 닳아서 구멍이 나고, 如筆堆山(여필퇴산)은 닳아진 몽당붓이 언덕과 같이 쌓였다는 말이다. 秋史體(추사체)의 명필 金正喜(김정희)도 禿盡千毫(독진천호), 천 자루의 붓을 닳게 한 노력의 결과였다.

막힘없는 글씨와 그림에 비해 단숨에 지은 문장에 대한 성어도 있다. 붓을 드리워 쓰기만 하면(下筆) 문장이 이루어진다(成文)는 기막힌 글재주다. 주인공은 중국 ‘三國志(삼국지)’ 魏書(위서)에 나오는 曹操(조조)의 셋째 아들 曹植(조식)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0세가 되면서 시론과 시부 수십만 구절을 통독하고 시와 문장에도 뛰어났다. 어느 때 조조가 조식의 문장을 보고 그 뛰어남에 놀라 남에게 대필시킨 것이 아니냐고 캐물었다. 조식은 무릎을 꿇고 답한다. ‘제가 말을 하면 경론이고, 붓을 드리우면 문장이 됩니다(言出爲論 下筆成章/ 언출위론 하필성장).’ 이런 재주를 가졌는데 누구한테 대신 써 달라고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자신만만했다.

조식의 이런 자부심은 조조가 銅雀臺(동작대)를 지었을 때 면전에서 賦(부)를 지었고, 형 曹丕(조비)의 트집으로 일곱 걸음을 디딜 동안 완성한 七步詩(칠보시)에서 煮豆燃萁(자두연기, 萁는 콩대 기)라는 멋진 비유를 남겨 입증됐다. 조식은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재주를 평가한 데서도 이런 표현을 썼다.

당대의 석학 蔡邕(채옹, 邕은 막힐 옹)이 재능을 인정했던 王粲(왕찬, 粲은 선명할 찬)에 대해 ‘문장은 봄꽃과 같고, 생각은 샘처럼 솟아오른다. 하는 말마다 읊조릴 만하고, 붓을 놀리면 작품이 된다(文若春華 思若湧泉 發言可詠 下筆成篇/ 문약춘화 사약용천 발언가영 하필성편)’고 높이 칭송했다. 下筆成章(하필성장), 下筆成篇(하필성편) 모두 같은 말이다.

후세의 문인들은 더욱 조식의 재주를 높이 평가했다. 南北朝(남북조)시대의 이름난 산수시인 謝靈運(사령운)은 천하의 글재주가 모두 한 섬이라면 조식이 八斗之才(팔두지재), 여덟 말을 차지한다고 했고, 淸(청)나라 시인 王士禎(왕세정)은 조식과 李白(이백), 蘇軾(소식)을 신선의 재능을 지닌 단 세 사람이라 극찬했다. 하지만 조식의 이런 재주가 타고난 재주만으로 된 것은 아니란 것은 모두 안다.

베스트셀러를 뚝딱 내놓는 천재작가들도 단숨에 썼다는 일필휘지라는 말을 멀리 한다고 한다. 좋은 글을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쓰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907.html
kolaswqetsrq 11.14 20:04
불효자오不孝者五 – 다섯 가지 불효

불효자오(不孝者五) – 다섯 가지 불효

아닐 불(一/3) 효도 효(子/4) 놈 자(耂/5) 다섯 오(二/2)

인간의 도리라며 예부터 중시하고, 고금의 효자를 기리며 상찬해도 불효는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악독한 위인이라도 부모 앞에서는 말을 잘 따르는 순둥이가 된다. 그래서 남이 볼 때는 어버이를 효성스럽게 잘 섬기지 않아 손가락질 받는 불효자라도 부모는 감싸고 싶어 한다.

또 모두들 욕하는 부모님일지라도 자식이 정성스럽게 섬기면 효일 수 있다. 이처럼 상대적인 불효에 대해 명쾌하게 규정한 글이 있다. 세상에서 하지 않아야 할 다섯 가지 불효를 孟子(맹자)가 설명한다. ‘맹자’ 離婁(이루) 하편에 나온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齊(제)나라에 匡章(광장)이란 장군이 있었다. 秦(진)나라가 공격해 왔을 때 양국의 깃발을 섞는 전술로 대승을 거두었고, 燕(연)나라에 내란이 일어난 틈을 타 수도를 함락시키는 등 공이 컸다. 그런데 그는 온 나라 사람들이 불효한 자라고 욕을 듣고 있었다.

광장의 어머니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의 아버지가 살해한 뒤 마구간에 파묻었다. 광장은 여러 번 이장을 요구했으나 부친은 죽을 때까지 끝내 듣지 않았다. 그 후 부모에 죄를 지은 몸으로 처자의 봉양을 받을 수 없다며 처를 내보내고 자식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맹자는 이런 광장과 교유하고 예를 갖춰 대하므로 제자 公都子(공도자)가 어떤 연유인지 물었다. 세상에서 불효라고 말하는 것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世俗所謂不孝者五/ 세속소위불효자오)며 설명한다.

첫째 제 몸을 게을리 놀려 부모 봉양을 하지 않는 것(惰其四支/ 타기사지), 장기나 바둑 같은 노름에 빠지는 것(博奕好飮酒/ 박혁호음주),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식만 편애하는 것(好財貨 私妻子/ 호재화 사처자), 제 욕심만 차려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從耳目之欲 以爲父母戮/ 종이목지욕 이위부모륙), 만용을 일삼아 사납게 싸워 부모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好勇鬪很 以危父母/ 호용투흔 이위부모)이 그것이다. 광장은 한 가지도 해당되지 않으니 불효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很은 말다툼할 흔.

맹자는 舜(순)임금의 부친이 만약 살인을 했더라도 아버지를 업고 도망쳐 조용히 살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렇게 부모를 감싸는 것이 옳다고 말하지만 모두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임금에게도 잘못을 간해야 하는데 잘못을 법에 알리지는 못해도 자수 등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다섯 가지 불효를 않더라도 효도하기는 이처럼 어렵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446.html
kolaswqetsrq 11.14 20:05
목지절야필통두木之折也必通蠹 -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좀 벌레가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목지절야필통두(木之折也必通蠹) -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좀 벌레가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나무 목(木/0) 갈 지(丿/3) 꺾을 절(扌/4) 이끼 야(乙/2) 반드시 필(心/1) 통할 통(辶/7) 좀 두(虫/18)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는 千里之行 始於足下(천리지행 시어족하)라 하여 무슨 일이나 시작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마무리는 더욱 중요하다. 구백구십 아홉 걸음을 갔더라도 한 걸음이 모자라 일을 완성하지 못하면 앞의 노력은 헛수고다.

‘다 된 밥에 재 뿌리기’란 말과 같이 조그만 부주의로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적절한 비유의 성어도 많다.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산을 쌓다가 와르르 무너지는 功虧一簣(공휴일궤, 虧는 이지러질 휴, 簣는 삼태기 궤)가 그렇고, 커다란 둑이 개미구멍에 의해 무너지는 堤潰蟻穴(제궤의혈)이 그렇다.

완성하기 전의 마지막 정성이 중요한 것과 같이 이루고 난 뒤에도 조그만 원인에 와해될 수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단단한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木之折也) 반드시 좀 벌레가 속을 파먹었기 때문(必通蠹)이란 쉬운 비유가 ‘韓非子(한비자)’의 亡徵(망징)편에 나온다.

중국 法家(법가)의 대표 韓非(한비)는 공을 들여 건국한 나라가 사소한 잘못을 방치하다 망하는 징조를 마흔일곱 가지나 예로 든다. 군주와 신하, 경제나 군사, 외교, 사회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놓치기 쉬운 일을 들면서 사소한 조짐을 잘 관찰하고 법에 의해 그것을 막아야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좀 벌레가 파먹었기 때문이고(木之折也必通蠹/ 목지절야필통두),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반드시 틈이 생겼기 때문이다(牆之壞也必通隙/ 장지괴야필통극).’ 그러면서 나무에 벌레가 먹거나 담장에 벌레가 생겼다 하더라도 강풍이나 폭우가 내리지 않으면 유지할 수 있지만 그것을 간파한 나라가 쳐들어오면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

사전에 잘 대비하고 잘못된 점은 고쳐야 튼튼해진다는 이야기다. 前漢(전한)의 劉安(유안)이 저술한 ‘淮南子(회남자)’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담이 무너지는 것은 조그만 틈새에서 비롯되고, 칼이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빠진 날에서이다(牆之壞也於隙 劍之折必有齧/ 장지괴야어극 검지절필유설).’ 齧은 깨물 설. 人間訓(인간훈)에 있다.

한비는 또한 五蠹(오두)편에서 나무나 곡식을 갉아먹는 다섯 가지 좀 벌레는 五賊(오적)과 같이 나라를 갉아먹어 황폐하게 하는 사람들을 지칭했다. 힘에 의하거나 권력 등을 동원하여 서민들의 고혈을 빠는 사람들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좀 벌레들이 없을까.

수시로 드러나는 이런 범죄인들 말고도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세금을, 모자라면 빚으로 흥청망청 쓰는 공직자들은 더하다. 선인들이 힘겹게 쌓아올려 세계 10위권 경제국으로 살게 된 나라다. 小隙沈舟(소극침주)라 했다. 커다란 배가 작은 틈으로 스며드는 물에 의해 가라앉는 일은 없어야 되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038.html
kolaswqetsrq 11.14 20:06
운우지락雲雨之樂 - 남녀의 육체적인 사랑

운우지락(雲雨之樂) - 남녀의 육체적인 사랑

구름 운(雨/4) 비 우(雨/0) 갈 지(丿/3) 즐길 락(木/11)

구름과 비를 가리키는 雲雨(운우)는 비구름이 농사에 도움을 주니 혜택을 입었을 때 비유하는 말도 된다. 여기에서 멀리 나아가 남녀의 육체적인 사랑을 더 많이 뜻하게 된 것은 고사를 모르고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중국 쓰촨四川/ 사천성의 동부 巫山(무산)에 살았던 神女(신녀)가 먼저 나오고 그와 꿈에 만났던 楚(초)나라 왕이 등장한다.

신녀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된다는 朝雲暮雨(조운모우)의 변화를 가졌다고 하여 이 말이 나왔다고 한다. 戰國時代(전국시대) 초나라의 시인 宋玉(송옥)의 ‘高唐賦(고당부)’ 서문이 梁(양)나라 蕭統(소통)이 엮은 시문집 文選(문선)에 실리면서였다.

전설 속 三皇(삼황) 중에 神農(신농)씨의 셋째 딸 瑤姬(요희)가 그 신녀이고, 懷王(회왕)이 그와 사랑을 나눈 초왕이었다. 서문에 실린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보자. 회왕의 아들인 襄王(양왕)이 송옥을 대동하고 오늘의 뚱팅호洞庭湖/ 동정호라는 雲夢(운몽)의 누대에서 놀고 있었다.

송옥은 초나라 충신 屈原(굴원)의 제자로 美如宋玉(미여송옥)이란 비유를 남길 정도의 수려한 궁정시인이었다. 일행이 高唐館(고당관)을 바라보았을 때 그 위에만 구름이 몰려 있고 갑자기 하늘로 솟구치다 또 모양이 바뀌는 등 변화가 끝이 없었다. 왕이 이상하게 여겨 송옥에게 물어보니 그것이 바로 朝雲(조운)이라며 그 사연을 설명했다.

옛날 부왕이 고당에서 노닐다가 피곤하여 낮잠을 자게 되었는데 꿈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자기는 무산에 사는 여인이라며 왕께서 노니신다는 말을 듣고 잠자리를 받들고자 왔다고 했다. 꿈속에서 잘 즐긴 왕에게 여인은 떠나면서 말했다.

‘저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양대 아래에 있을 것입니다(旦爲朝雲 暮爲行雨 朝朝暮暮 陽臺之下/ 단위조운 모위행우 조조모모 양대지하).’ 아침에 깨어난 왕이 무산 쪽으로 보니 아름다운 그름이 걸려 있어 그곳에 사당을 짓고 朝雲廟(조운묘)라 했다는 이야기다. 陽臺(양대)는 해가 잘 드는 누대를 가리키는데 남녀의 은밀한 사랑도 뜻한다.

무산 신녀와의 꿈속의 사랑은 뜻하지 않았는데도 이뤄져 변화하는 비와 구름과 함께 무수한 관련 성어를 남겼다. 巫山夢(무산몽), 巫山雨(무산우), 巫山雲(무산운)에서부터 巫山之夢(무산지몽), 巫山之樂(무산지락), 巫山雲雨(무산운우), 雲雨之夢(운우지몽), 雲雨之情(운우지정), 雲情雨意(운정우의) 등등이다.

우리의 풍자시인 김삿갓金笠/ 김립이 이 운우의 묘사에 빠질 수가 없다. 남녀의 정은 싫지 않고 끝이 없다는 것을 야하지 않고도 절묘하게 나타냈다. ‘爲爲不厭更爲爲 不爲不爲更爲爲(위위불염갱위위 불위불위갱위위).’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849.html
kolaswqetsrq 11.14 20:07
중반친리衆叛親離 - 군중이 반대하고 친근한 사람들이 떠나다.

중반친리(衆叛親離) - 군중이 반대하고 친근한 사람들이 떠나다.

무리 중(血-6) 배반할 반(又-7) 친할 친(見-9) 떠날 리(隹-11)

고독을 즐긴다는 사람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제일 굳세게 사는 자는 혼자서 사는 사람이라고 한 입센의 말을 신봉해서일까. 하지만 강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이웃과 가까이 지내고, 직장 동료와 친하게 지내며 취미가 비슷한 사람과 어울린다.

대중의 주목을 받고 큰 인기를 누리다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면 고통이 더 심할 것이다. 뭇 백성들이 등을 돌리고(衆叛) 친근한 사람마저 떨어져 나간다(親離)는 이 성어가 그런 경우를 가리킨다. 기반이 무너지고 고립무원인 상태에 빠졌을 때 사용한다.

春秋三傳(춘추삼전) 중에서 左丘明(좌구명)이 쓴 "左氏傳(좌씨전)"은 실증적 해석을 중심으로 했기에 잘 알려져 있다. 左傳(좌전)이라고도 하는 이 책 隱公(은공)조에 魯(노)나라 대부 衆仲(중중)이 한 말로 나온다. 春秋時代(춘추시대) 周(주)나라 중기 桓王(환왕) 때의 일이다.

제후국 衛(위)의 莊公(장공)은 아들이 없다가 후궁에서 난 桓公(환공)을 후계로 세웠다. 물론 五霸(오패)의 한 사람인 齊(제)의 환공과는 다른 사람이다. 장공은 환공을 후계로 삼고도 천첩에게서 얻은 州吁(주우, 吁는 탄식할 우)를 총애했다.

충신 石碏(석작)이 포악한 주우를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진언했지만 장공이 그대로 두다 후일 환공이 시해되는 화를 키운다. 군주를 시해한 주우가 성공할까라고 한 은공의 물음에 중중이 대답한다. "무력을 믿으면 대중이 떨어져 나가고, 잔인한 짓을 하면 친한 사람들을 잃게 됩니다.

대중이 떠나가고 측근들이 떠나가 버리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阻兵無衆 安忍無親 衆叛親離 難以濟矣/ 조병무중 안인무친 중반친리 난이제의)." 과연 주우는 석작이 이웃 나라의 도움을 받아 세운 계략에 걸려 참살된다. 주우를 도와 반역에 가담한 석작의 아들도 가차 없었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799.html
kolaswqetsrq 11.14 20:08
과하지욕胯下之辱 -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다, 큰 뜻을 위해 굴욕을 참다.

과하지욕(胯下之辱) -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다, 큰 뜻을 위해 굴욕을 참다.

사타구니 과(肉/6) 아래 하(一/2) 갈 지(丿/3) 욕될 욕(辰/3)

억울하고 분한 일이나 어려움과 괴로움을 잘 참는 것이 忍耐(인내)다. 참는 자에게는 복이 있고, 참으면 모든 문이 열린다고 동서양의 속담이나 격언들이 예찬하지만 실제 부닥쳤을 때 보통사람들이 이를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당장의 굴욕을 내일을 위해 참고 견뎌낸다는 성어는 숱하다.

장작더미에 자고 쓸개를 맛보는 臥薪嘗膽(와신상담), 옻칠을 하고 숯을 삼키는 漆身呑炭(칠신탄탄), 얼굴에 뱉은 침을 마를 때까지 참는다는 唾面自乾(타면자건) 등이 먼저 떠오른다. 여기에 동네 불량배들의 가랑이 사이(胯下)를 기어가는 치욕을 당한(之辱) 韓信(한신)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한신은 처음 項羽(항우)의 휘하에 있다가 劉邦(유방)의 책사 蕭何(소하)의 추천으로 옮긴 뒤 漢(한)의 천하통일에 지대한 공헌을 올린 장군이다. 그와 관련한 성어도 많다. 배고플 때 밥 한 그릇을 준 아낙네에 一飯千金(일반천금)으로 보답한 것에서 背水之陣(배수지진), 四面楚歌(사면초가)의 작전, 유방과의 대화 중에서 多多益善(다다익선)이나 言聽計用(언청계용)이 있고 나중에 兎死狗烹(토사구팽)당하는 것도 한신이다.

가랑이 밑을 기면서 모욕을 잘 참은 이 성어는 앞서 소개한 受袴下辱(수과하욕, 袴는 바지 고, 사타구니 과)과 같고, 跨下之辱(과하지욕, 跨는 넘을 과), 絝下之辱(고하지욕, 絝는 바지 고) 등 여러 가지로 쓴다.

‘史記(사기)’의 淮陰侯(회음후) 열전에 굴욕을 이긴 한신의 이야기가 상세하게 나온다. 그는 가난한 중에서도 장차 명장이 되기 위해 병법을 공부했으나 출세의 기회는 오지 않아 하급관리의 식객이 됐다. 한번은 푸줏간 패거리 중의 한 사람이 칼을 차고 다니는 한신에게 겁쟁이라며 시비를 걸었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나를 찔러 봐라(信能死 刺我/ 신능사 자아), 죽는 것이 두려우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不能死 出我袴下/ 불능사 출아고하).’ 물끄러미 불량배를 바라보던 한신은 ‘몸을 굽히고 그의 가랑이 밑을 기어갔다(俛出袴下蒲伏/ 면출과하포복).’ 俛은 구부릴, 힘쓸 면, 蒲는 부들 포. 한 때의 모욕을 견딘 한신은 대장군이 됐고 이 불량배를 거둬 수하에 두기까지 했다.

인내는 인내치 못하는 인내를 인내하는 인내가 인내의 참 인내다. 말장난 같아도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참된 인내라는 말로 굴종이나 체념과는 다르다. 참을 忍(인) 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고 했다. 큰 뜻을 품은 한신이 사소한 시비에 휘말려 살인이라도 저질렀다면 미래는 없었을 것이다.

菜根譚(채근담)의 좋은 말을 기억하자. ‘역경과 곤궁은 호걸을 단련하는 한 개의 도가니와 망치이다(橫逆困窮 是煅煉豪傑的 一副鑪錘/ 횡역곤궁 시단련호걸적 일부로추).’ 鑪는 화로 로, 爐(로)와 같다. 錘는 저울추 추, 쇠망치의 뜻도 있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212.html
kolaswqetsrq 11.14 20:10
타산지석他山之石 - 다른 산의 돌, 좋지 않은 돌로 도움 되는 일을 하다.

타산지석(他山之石) - 다른 산의 돌, 좋지 않은 돌로 도움 되는 일을 하다.

다를 타(亻/3) 메 산(山/0) 갈 지(丿/3) 돌 석(石/0)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닥쳤을 때 흔히 선인들의 지혜를 구한다. 그들은 앞선 경험으로 해결책을 제시해 주므로 좋은 점을 본받을 수 있다. 반면 옳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

나쁜 점을 보고 교훈을 삼는다는 말이 다른 산의 나쁜 돌이라도 나의 옥을 가는 데 도움 되는 돌이 될 수 있다는 이 성어다. 본이 되지 않은 남의 말이나 행동도 자신의 지식과 인격을 수양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말한다. 反面敎師(반면교사)와 똑 같은 말이다.

약 3000년 전부터 중국에서 전해지던 시를 수록한 ‘詩經(시경)’에 이 말이 처음 나온다. 小雅篇(소아편) 鶴鳴(학명)의 두 구절만 떼어보면 이렇다. ‘다른 산에 있는 돌이라도 여기 돌을 가는 숫돌이 된다네, 다른 산에 있는 돌이라도 여기 옥을 가는데 쓸 수 있다네(他山之石 可以爲錯, 他山之石 可以攻玉/ 타산지석 가이위착 타산지석 가이공옥).

’ 錯은 섞일 착, 또는 맷돌 착. 여기서 돌은 소인에 비유하고 옥은 군자를 가리켰다. 군자도 소인에 의해 수양과 학덕을 쌓아 나갈 수 있음을 가르친다. 대수롭지 않은 물건도 중요한 일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으며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後漢(후한) 말기의 유학자 王符(왕부)도 이런 말을 남겼다. ‘돌로써 옥을 갈고 소금으로 금을 닦는데 물건에는 천한 것으로 귀중한 것을 다스리며 더러운 것으로써 좋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且攻玉以石 洗金以鹽 物固有以賤理貴 以醜化好者矣/ 차공옥이석 세금이염 물고유이천리귀 이추화호자의).’ 난세에 처하여 세속에 영합하지 않고 문란한 정치를 비판하여 쓴 책 ‘潛夫論(잠부론)’에서다.

이와 같이 他山之石 可以攻玉은 처음에는 옥을 잘라 갈고 다듬어 닦는다는 切磋琢磨(절차탁마)와 함께 예부터 수양을 위한 명구로 많이 사용돼왔지만 후세로 가면서 본받아선 안 되는 것으로 의미가 변했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649.html
kolaswqetsrq 11.14 20:11
성혜成蹊 - 지름길이 생기다, 덕이 있으면 흠모하는 사람이 찾는다.

성혜(成蹊) - 지름길이 생기다, 덕이 있으면 흠모하는 사람이 찾는다.

이룰 성(戈/3) 지름길 혜(足/10)

사람들은 모두 지름길을 좋아한다. 老子(노자)가 ‘큰 길이 평탄하고 쉬운데도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한다(大道甚夷 而民好徑/ 대도심이 이민호경)’고 말한 것은 당장의 작은 안일을 경계했다. 같은 목적지를 갈 때 이왕이면 빨리 도착하려 지름길을 찾는다.

지름길을 나타내는 어려운 글자 蹊(혜)는 사람의 다리와 배가 이어지는 홈 부분 샅고랑을 나타내는 鼠蹊部(서혜부)와 ‘샛길이 생긴다(成蹊)’는 뜻의 이 성어 외에는 쓰임이 적다. 물론 이 말은 밑에 저절로 지름길이 생긴다는 下自成蹊(하자성혜)의 준말이고, 또 이 구의 앞에 桃李不言(도리불언)이 와야 완전하게 뜻이 통한다.

이 난에서 앞서 桃李滿天下(도리만천하)나 桃李不言(도리불언)을 소개할 때 나온 그대로 복숭아와 자두는 꽃과 열매가 아주 좋아 가만있어도 찾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이 나무 아래로 지름길이 생기듯이 덕이 높은 사람은 자기선전을 하지 않아도 흠모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의미를 가졌다.

李廣(이광)이란 사람은 중국 前漢(전한)의 6대 景帝(경제, 재위 기원전 157∼141)때 명장으로 활을 잘 쏘아 호랑이라 여긴 바위에 화살을 꽂는 中石沒鏃(중석몰촉)의 이야기가 따른다. 변방의 匈奴(흉노)족을 70여 차례나 물리쳐 飛將軍(비장군)이라 불리며 그가 지키는 곳에는 국경을 넘보지 못할 정도였다.

이광 장군이 100여기만 이끌고 적진을 기습했다가 곧 포위당했을 때 이야기다. 정면 돌파가 불가능하다고 여긴 이광은 부하들에게 내려 안장을 풀라고 명령했다. 대담한 행동에 계략이 있을 것으로 여겨 적군이 주춤할 때 장군은 10여기를 이끌고 질풍처럼 돌진하여 적장을 베었다. 혼비백산 적이 달아날 사이 이광은 한 사람의 병사도 잃지 않고 무사히 개선했다.

‘史記(사기)’의 李將軍(이장군) 열전이나 ‘漢書(한서)’의 李廣蘇建傳(이광소건전) 등에 예부터 내려오는 말이라며 이광을 평했다. ‘복숭아와 오얏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아래 저절로 길이 생긴다(桃李不言 下自成蹊/ 도리불언 하자성혜).’ 孔子(공자)의 ‘몸이 바르면 영을 내리지 않아도 실행된다(其身正 不令而行/ 기신정 불령이행)’는 말을 실천한 셈이라 했다.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큰 성과만 노려 지름길을 찾는다면 오래 가지 못한다. 빨리 가는 길을 찾다가 숲에 갇히고 물에 빠질 수도 있으니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라고 했다. 오늘날은 자기 PR시대라며 기초를 충분히 닦지 않고서 대가연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많은 사람이 찾았다가 일시적인 지름길이라 밑천을 알고선 금방 흩어진다. 조급히 서두르지 말고 실력을 갖춘다면 지름길이 생기고 찾는 사람이 생기는 법이다. 그러니까 찾는 사람도 무작정 빠른 길만 찾지 말고 어떤 지름길인지 살필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945.html
kolaswqetsrq 11.14 20:13
일사천리一瀉千里 - 물이 흘러 천리를 가다, 거침없이 일을 처리하다.

일사천리(一瀉千里) - 물이 흘러 천리를 가다, 거침없이 일을 처리하다.

한 일(一/0) 쏟을 사(氵/15) 일천 천(十/1) 마을 리(里/0)

옛날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로 썼던 1里(리)는 약 0.393km라 하는데 실제 10배를 부풀렸다. 십리길이라면 40km 정도 됐고, 우리나라 전체를 三千里(삼천리) 강산이라 한 것도 서울 중심으로 진주, 의주, 경흥까지 거리가 각 400km 정도인 데서 나왔다고 한다.

물론 천리를 정확한 거리가 아닌 먼 길이란 뜻으로 비유해서 썼다. 시작이 중요하다고 한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부터 牛步千里(우보천리)는 느릿느릿 걷는 소가 결국엔 목표를 달성하니 서두르지 않아야 하고, 惡事千里(악사천리)는 나쁜 일은 천리 밖에 소문이 난다고 말조심을 하라는 교훈이었다.

이런 말보다 더 많이 일상에 사용되는 것이 물이 쏜살같이 흘러(一瀉) 천리까지 간다(千里)는 이 성어다. 강물이 빨리 흘러 먼 바다로 흐른다는 데서 일이 조금도 거침없이 빨리 진행되거나 말이나 글이 조금도 막힘없이 명쾌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막힘없이 줄줄 쓰는 명문이라면 중국 詩仙(시선) 李白(이백)의 九天直下(구천직하)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廬山(여산)의 폭포를 읊으면서 ‘날아 흘러 떨어지니 길이 삼천 척,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하구나(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비류직하삼천척 의시은하락구천)’란 문장에서 땄다. 천리까지 가는 물은 長江(장강)과 黃河(황하)에서 왔다.

성어의 유래는 몇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南宋(남송)의 학자 陳亮(진량)은 ‘與辛幼安殿撰(여신유안전찬)’이란 글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장강과 황하의 물이 한 번 흘러 천리 가는 것에 아무도 괴이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다(長江大河 一瀉千里 不足多怪也/ 장강대하 일사천리 부족다괴야).’

淸(청)나라 관리 黃六鴻(황육홍)이란 사람이 지방관을 위해 쓴 지침서 ‘福惠全書(복혜전서)’에는 ‘엄연한 계곡 사이를 가벼운 배는 삽시간에 일사천리로 내려간다(儼然峽裡輕舟 片刻一瀉而千里/ 엄연협리경주 편각일사이천리)’란 표현이 들어 있다.

강이 쉼 없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듯이 시원하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속을 후련하게 한다. 가슴에 닿는 웅변은 폭포수 같다며 口若懸河(구약현하)나 푸른 산에 흐르는 물처럼 막힘없다며 靑山流水(청산유수)에 비유했다. 시원하게 계획을 말하고 일사불란하게 밀고 나가면 모두에 박수 받는다. 이런 말대로 일이 척척 처리된다면 아무 걱정이 없다.

남을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이런 자세로 말대로 실천했다면 살기 좋은 나라는 벌써 됐을 것이다. 훌륭한 복안이 있더라도 이루지 못하면 천천히 걷는 황소보다 못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987.html
kolaswqetsrq 11.14 20:14
자광藉光 – 남의 남는 빛을 사용하다, 남의 덕을 보다.

자광(藉光) – 남의 남는 빛을 사용하다, 남의 덕을 보다.

깔 자(艹/14) 빛 광(儿/4)

깔 藉(자)란 혼동하기 쉬운 글자는 깐다는 뜻 외에 자리란 의미로는 독음이 ‘자’이지만 짓밟다, 업신여기다란 뜻일 땐 ‘적’, 빌리다, 의지하다란 뜻일 땐 ‘척’으로도 읽는다. 머리부수가 대 竹(죽) 아래 글자 문서 籍(적)과도 자주 헷갈린다. 남의 남는 빛을 쓴다는 이 성어는 의미가 바로 떠올리기 쉽지 않아도 남의 덕택에 거저 이익을 보게 된다는 ‘남의 떡에 설 쇤다’는 속담과 딱 어울린다.

비슷한 뜻의 속담이 ‘남의 떡으로 조상 제 지낸다’, ‘남 켠 횃불에 조개 잡듯’, ‘남의 팔매에 밤 줍는다’ 등등 많다. 어떻게 보면 옛날이나 오늘이나 전혀 피해를 주지 않아도 노력도 없이 남들 덕으로 편리를 본 얌체를 미워했던 듯한 말이다.

戰國時代(전국시대) 楚(초)나라 甘茂(감무)라는 사람이 있었다. 秦(진)나라 惠王(혜왕)을 섬겨 좌승상으로 있다가 昭王(소왕) 때 참언에 몰려 齊(제)나라로 달아났다. 국경지대인 函谷關(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진나라로 사신을 오던 제나라의 蘇代(소대)를 만났다. 소대는 유명한 종횡가 蘇秦(소진)의 동생 그 사람이다.

감무는 소대에게 이야기를 주고받다 ‘강변처녀(江上之處女/ 강상지처녀)’를 들려주었다. 처녀들이 모여 촛불을 밝히고 일을 하는데 형편이 구차한 한 처녀는 초를 살 돈이 없어 밤마다 남의 불빛 아래 일을 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다른 처녀들이 아니꼽게 여겨 쫓으려 하자 하소연했다.

자신은 대신 일찍 와서 자리를 정돈하고 청소를 한다며 어차피 남아도는 불빛을 빌려 쓴다고 해서 손해가 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여러 처녀들이 들어보니 일리가 있어 그 뒤로는 같이 일하게 했다. ‘史記(사기)’의 감무 열전과 ‘戰國策(전국책)’ 秦策(진책)에 실려 있다.

감무는 소대에게 제나라에서 자신이 가난한 처녀와 같이 피해를 끼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으니 남는 빛으로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간청했다. 사신을 마치고 온 소대는 감무를 추천하여 上卿(상경)의 자리를 앉게 했다.

조그만 도움이라도 받은 사람은 감지덕지한다. 자신이 크게 힘을 쓰지도 않았으면서 남이 조금 잘 됐다 싶으면 온갖 생색을 내는 사람이 있다. 언제 도움을 받을 처지가 될지 모르는데 낯 간지러운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407.html
kolaswqetsrq 11.14 20:15
항산항심恒産恒心 - 일정한 생업이 있어야 변함없는 마음이 있다

항산항심(恒産恒心) - 일정한 생업이 있어야 변함없는 마음이 있다

항상 항(忄/6) 낳을 산(生/6) 항상 항(忄/6) 마음 심(心/0)

사람에게 필요한 衣食住(의식주)는 아주 최소한이라도 있어야 생명을 유지한다. 저절로 나는 것이 없어 재물이 있어야 구한다. 재산은 속박이고 많으면 근심만 커진다며 멀리 하는 군자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명리가 싫어 초야에 들어간 은자라도 나물 먹고 물은 마시며, 누더기 옷이나 오두막집은 필요하다.

마음을 닦고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성인이 도움을 주려 해도 맨손이어서는 되지 않는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나타내는 바다. 또 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보통 양민이라도 ‘사흘 굶으면 포도청의 담도 뛰어 넘는다’고 했다. 성인이고 속인이고 다소를 떠나 재산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德治(덕치)를 주장한 유교의 亞聖(아성) 孟子(맹자)가 명쾌한 답을 했다. 일정한 재산이나 생업이 있어야(恒産) 변함없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恒心). 맹자가 각국 유세에서 돌아왔을 때 고향서 가까운 소국 滕(등, 滕은 물솟을 등)나라의 文公(문공)이 초청해 백성을 위한 바른 정치에 대해서 조언을 구했다.

맹자가 말한다. 백성들이 살아가는 도리는 ’일정한 생업이 있으면 변함없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有恒産者有恒心/ 유항산자유항심), 안정적인 생업이 없으면 안정된 마음이 없게 됩니다(無恒産者無恒心/ 무항산자무항심)’고 했다. 나아가 방탕 편벽 사악 사치(放辟邪侈/ 방벽사치) 하게 되니 생업을 갖게 해 먹고 살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 것이다. 滕文公(등문공) 상편에 나온다.

재산이 있고 없고 전혀 반대의 이야기 無恒産 無恒心(무항산 무항심)과 같이 대비하여 나오는 곳이 또 있다. 齊(제)나라의 宣王(선왕)이 맹자에게 인정으로 나아가는 길을 도와달라고 했을 때 답한다. ‘일정한 생업이 없지만 변함없는 마음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선비만 가능합니다(無恒産而有恒心者 唯士爲能/ 무항산이유항심자 유사위능),

백성이라면 일정한 생업이 없을 때 변함없는 마음이 없어집니다(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 약민즉무항산 인무항심).’ 일정하고 떳떳한 마음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은 수양한 선비라야 가능하고, 일반 백성들은 딴 길로 빠지니 그 뒤에 죄를 물어봐야 소용없다는 이야기다. 梁惠王(양혜왕) 상편이다.

일정한 직업, 생업을 영위하여 재산을 모았을 때 욕심이 앞서는 것이 상정이다. 항심을 유지하기는 맹자 말대로 수양한 사람이 아니고는 어렵다. 속담에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는 말대로 보이는 것 없이 거들먹거리는 졸부가 되고, 돈이 돈을 번다고 이익에 눈이 어두워 나쁜 길로 쉽게 빠진다.

지도층 인사들도 잊을만하면 비리가 드러나니 이런 사람들에겐 러시아 톨스토이(Tolstoy)의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재화는 쌓여 있을 땐 썩은 냄새를 피우고, 뿌려졌을 때엔 땅을 기름지게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294.html
kolaswqetsrq 11.14 20:17
작사도방作舍道傍 - 길옆에 집짓기, 의견이 많아 얼른 결정하지 못함

작사도방(作舍道傍) - 길옆에 집짓기, 의견이 많아 얼른 결정하지 못함

지을 작(亻/5) 집 사(舌/2) 길 도(辶/9) 곁 방(亻/10)

어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때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한다.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막상 결정이 늦으면 갈피를 못 잡는다. 이 사람 말도 옳은 것 같고, 저 사람 말도 맞는 것 같다. 이럴 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우리 속담이 정확히 나타낸다.

주관하는 사람이 없이 사람마다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집을 짓는데(作舍)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길 옆 터에서 공사(道傍)를 한다는 이 말은 지나가는 이 사람이 한 마디, 저 사람이 한 마디 하는 바람에 결정하지 못하고 부지하세월이 된다는 뜻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趙在三(조재삼, 1808~1866)의 백과사전 ‘松南雜識(송남잡지)’ 중에서 방언류에 ‘길가에 집을 지으면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다 듣다 보니 삼년이 걸려도 이루지 못한다(作舍道傍 三年不成/ 작사도방 삼년불성)’는 말이 나온다.

실제 훨씬 그 이전부터 비슷한 뜻으로 사용된 예가 나온다. 서양 동화 중에서 잘 알려진 ‘팔려가는 당나귀’도 같은 가르침이다. 부자가 당나귀를 팔러 가는데 길가 사람들의 말을 듣고 끌고 가다, 타고 가다, 메고 가다 나중에는 개울에 빠뜨리고 만다.

가장 오래된 중국의 시집 ‘詩經(시경)’에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나온다. ‘마치 길가는 사람에게 집 지을 일 의논함과 같으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리로다(如彼築室于道謀 是用不潰于成/ 여피축실우도모 시용불궤우성)’라고 했다.

潰는 무너질 궤. 小雅(소아)편에 실려 있는 小旻(소민)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여기서 築室道謀(축실도모)는 똑 같은 뜻으로 사용됐다. 거의 비슷한 표현은 宋(송)의 역사가 范曄(범엽)이 쓴 ‘後漢書(후한서)’에 나온다.

후한 3대 章帝(장제) 때의 학자 曹褒(조포, ?~102)가 왕명을 받고 禮制(예제)를 정리하고 冠婚凶吉(관혼흉길)의 제도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생들마다 자기주장을 펼쳐 그들에 너무 휘둘리지 말라며 장제가 힘을 실어준다. ‘속담에 이르길 길가에 집을 지으면 삼년가도 못짓는다(諺言作舍道邊 三年不成/ 언언작사도변 삼년불성)’고 했으니 밀고 가라는 의미였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524.html
kolaswqetsrq 11.14 20:18
군자지교 담여수君子之交 淡如水 -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다.

군자지교 담여수(君子之交 淡如水) -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다.

임금 군(口/4) 아들 자(子/0) 갈 지(丿/3) 사귈 교(亠/4) 맑을 담(氵/8) 같을 여(女/3) 물 수(水/0)

사람과의 사귐을 말하는 交際(교제)는 남녀 간이면 사랑을, 사업상이면 이익을 위한 것이라 그 목적이 뚜렷하다. 친구간의 友情(우정)은 오랜 기간 상대를 위하고 희생을 감수해야 더 빛나는 관계가 되는 성어가 많다. 보통 사람은 아무래도 손익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

孔子(공자)님도 益者三友(익자삼우)라 하여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 견문이 많은 사람과 사귀는 것이 좋다고 했다. 또 남과 사이좋게 지내도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아야 한다는 和而不同(화이부동)과 끼리끼리 모여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群而不黨(군이부당) 등의 좋은 가르침을 남겼다.

모두의 스승인 공자에게 조언하는 사람이 있다. 子桑雽(자상호, 雽는 성씨 호)라 불리는 은둔자다. 물론 가상의 인물인데 寓言(우언)으로 비유하여 통쾌하게 핵심을 찌르는 ‘莊子(장자)‘에 나온다. 자상호에게 공자가 찾아와 魯(노)나라에서 두 번이나 쫓겨났고, 陳蔡(진채) 국경에선 포위당하는 등 여러 재앙이 닥쳐 지인들과는 소원해졌고 제자들은 흩어졌는데 왜 그런지 물었다.

여기서 ’군자의 교제(君子之交)는 물같이 담백하다(淡如水)‘며 설명하는 것이 山木(산목)편에 나온다. 세상일에 대하여 마음을 비우고 자기를 버려야 험난한 사회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교훈적인 예화를 담은 곳이다.

자상호의 설명을 들어보자. ‘대체로 이익을 매개로 맺어진 관계는 어려움이 닥치거나 재앙을 만나면 서로 버립니다(夫以利合者 迫窮禍患害相棄也/ 부이리합자 박궁화환해상기야), 하늘이 맺어준 관계는 어려울 때 서로 보살피지요(以天屬者 迫窮禍患害相收也/ 이천속자 박궁화환해상수야).’

그러면서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싱겁고(君子之交淡若水/ 군자지교담약수),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합니다(小人之交甘若醴/ 소인지교감약례)’고 했다. 醴는 단술 례. 무심한 듯 담백한 교제가 오래 가며, 이익이 개재된 달콤한 사귐은 오래 가지 못하고 끊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장자가 곳곳에 유교를 풍자한 것 중의 하나라도 군자와 소인의 사귐을 구별한 것은 옳다. 이 말은 明心寶鑑(명심보감)에도 인용됐다. 交友(교우)편에 이익만 앞세우지 말고 오래 겪어봐야 한다는 명언이 많은데 두 가지만 더 인용한다.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흘러야 사람 마음을 알 수 있다(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 노요지마력 일구견인심)’, ‘술자리서 형 동생 하는 친구는 많으나, 위급할 때 도움을 줄 친구는 없다(酒食兄弟千個有 急難之朋一個無/ 주식형제천개유 급난지붕일개무).’ 旬五志(순오지)의 속담도 있다. ‘그릇은 새것이 좋고, 사람은 옛 친구가 좋다(器非求新 人惟求舊/ 기비구신 인유구구).’/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096.html
kolaswqetsrq 11.14 20:19
모수자천毛遂自薦 – 모수라는 사람이 자신을 추천하다.

모수자천(毛遂自薦) – 모수라는 사람이 자신을 추천하다.

털 모(毛/0) 드디어 수(辶/9) 스스로 자(自/0) 천거할 천(艹/13)

보통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나서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속이 찬 사람이라도 잘난 체 하면 ‘제 코도 못 씻는 게 남의 부뚜막 걱정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꼭 나온다. 그래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싶더라도 뒤로 빠진 채 남에게 미루는 일이 많아 ‘제가 춤추고 싶어서 동서를 권한다’는 속담이 남았다.

하지만 아주 가끔 ‘제 팔 제가 흔들기’란 속언이 있듯 만류를 무릅쓰고 자기가 앞장서서 일 처리를 나서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이 이룩한 일을 보고는 뒤늦게 평가하는 것이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주인에게 스스로 추천한 사람의 원조는 毛遂(모수)라 이런 성어가 전한다. 그는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趙(조)나라에 살았던 平原君(평원군)의 식객이었다. 각 제후국에서는 지혜와 술수를 갖춘 빈객들을 수천 명씩 거느렸는데 평원군도 戰國四公子(전국사공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다른 세 사람은 유명한 齊(제)나라의 孟嘗君(맹상군), 魏(위)의 信陵君(신릉군), 楚(초)의 春申君(춘신군)이다. 조나라 惠文王(혜문왕)의 동생이었던 평원군은 이름이 勝(승)으로 세 번이나 재상에 오를 만큼 빈객들의 지혜로 능력을 발휘했다.

당시의 강국 秦(진)나라가 조의 도읍 邯鄲(한단, 邯은 조나라서울 한, 鄲은 한단 단)을 포위하자 조왕은 평원군을 시켜 楚(초)나라에 합종하도록 명했다. 평원군은 식객들 중에서 문무에 정통한 20명을 골라 데리고 가려 했다.

19명을 쉽게 고르고서 적당한 1명을 찾지 못해 고심할 때 모수라는 사람이 자청했다. ‘한 사람이 부족하면 원컨대 저를 수행원으로 데려가 주십시오(今少一人 願君卽以遂備員而行矣/ 금소일인 원군즉이수비원이행의)’. 그는 문하에 온지 3년이나 되었어도 별다른 재주를 보이지 못한 터라 평원군은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모수는 송곳이라도 주머니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뛰어날 기회가 없었다며 합류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囊中之錐(낭중지추)라는 고사도 여기서 나왔다. ‘史記(사기)’ 평원군열전에 실려 있다.

후일담은 어떻게 됐을까. 모수는 다른 19명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 초왕과 직접 담판하여 합종을 성사시켰다. 평원군은 귀국한 뒤 상객으로 대접했다. 이처럼 모수는 자신을 천거하여 어려운 일을 스스로 맡아 나선 격이니 제 팔을 잘 흔들었다. 그러나 낄 때나 빠질 때나 일의 전후도 모르고 나서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차츰 의미가 변질되기도 했으니 조심해야겠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691.html
kolaswqetsrq 11.14 20:20
사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유형이 있다

사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유형이 있다

그런데 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취향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희망하는 유형은 마음이 넓은 사람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좁고 작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다른사람을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은 사랑받고 싶어한다.

때문에 그런 자신을 이해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넓히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마음이 넓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땅에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적다.

처음 만났을땐 마음이 넓은것 같지만 조금 지나면

그도 역시 우리 만큼밖에는 안되는 속 좁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러면 또 다시 마음 넓은 사람을 찾아간다.

세상에는 자신보다 넓은 마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를 맞는 것보다 넓은 마음을 만나는 것이 더 어렵다.

사랑 받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 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참된 주인공이다"

 "
-법정스님의 인연법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7438.html
kolaswqetsrq 11.14 20:21
나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나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마음속에서 큰 소리로

세상을 향하여 외쳐보십시오

"나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삶에 큰 기대감을 갖고 살아가면

희망과 기쁨이 날마다 샘솟듯 넘치고

다가오는 모든 문을 하나씩 열어가면

삶에는 리듬감이 넘쳐납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 중에서 단 한 사람도

필요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 희망을 주기 위하여

세상에 사랑을 주기 위하여

세상에 나눔을 주기 위하여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달라지고

새롭게 변 할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까

나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밝아질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자신을 향하여 세상을 향하여

가장 큰 소리로 외쳐보십시오

"나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 용혜원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547.html
kolaswqetsrq 11.14 20:23
정말 좋은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은 숨소리가 다르다.

몇 마디 말에도 심장이 울리고,

짧은 침묵에도 가슴이 막힌다.

정말 좋은 사람은 살내음이 다르다.

스치는 몸짓에도 향기가 나고,

멀어져 있어도 향기가 깊다.

정말 좋은 사람은 미워 할 수가 없다.

미워할 수도 없게 정말 좋은 당신

옆에 있어 좋은 사람

옆에 있어 행복한 사람

옆에 있어 든든한 사람

옆에 있어 편한 사람

옆에 있어 설레이는 사람

당신은 내게 있어 그런 사람입니다.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해도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기만 해도

같은 공간에 마주 서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사람

당신은 내게 있어 그런 사람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
-참 좋은 사람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259.html
kolaswqetsrq 11.14 20:24
예쁜 마음

예쁜 마음

귀에 들린다고 생각에 담지 말고

눈에 보인다고 마음에 담지 마라.

담아서 상처가 되는 것은 흘려버리고

담아서 더러워지는 것은 쳐다보지 마라.

좋은 것만 마음에 가져올 수 없지만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은 지워버려라.

귀에 거슬린다고 귀를 막아버리지 말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눈을 감지 마라.

귀를 열어 놓아야 노래를 부를 수 있고

눈을 뜨고 있어야 예쁜 것들을 마음에 가져올 수 있으리라.

세상에는 슬픈 일보다

기쁜 일이 더 많기에 웃으면서 사는 것이다.

 "
-아름다운 나무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672.html
kolaswqetsrq 11.14 20:25
사람의 관계란

사람의 관계란

사람의 관계란

우연히 만나 관심을 가지면

인연이 되고

공을 들이면 필연이 됩니다

3번 만나면 관심이 생기고

5번 만나면 마음의 문이 열리고

7번 만나야 친밀감이 생깁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으로 만나

착한 사람으로 헤어져

그리운 사람으로 남아야 합니다

사람은 만나봐야 그 사람을 알고

사랑은 나눠봐야 그 사랑의

진실을 알 수 있다

꼭 쥐고 있어야 내 것이 되는

인연은 진짜 내 인연이 아닙니다

잠깐 놓았는데도 내 곁에 머무는

사람이 진짜 내 사람입니다

얼굴이 먼저 떠오르면 보고 싶은 사람

이름이 먼저 떠오르면 잊을 수 없는 사람

눈을 감고 생각나는 사람은 그리운 사람

눈을 뜨고도 생각나는 사람은 아픔을 주는 사람

외로움은 누군가가 채워줄 수 있지만

그리움은 그 사람이 아니면

채울 수가 없다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면

늘 배려해 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면 시간의 흐름속에

잊히지 않는 소중한 인연으로 남을 겁니다

 "
-사람과 사람 사이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4701.html
kolaswqetsrq 11.14 20:26
우리 마음에 필요한 열매

우리 마음에 필요한 열매

* 겸손하고 섬기는 마음

* 자기 이익만 생각 아니 하는 마음

* 덮어 주고 감싸는 주는 마음

* 시기 질투하지 아니하는 진리를 기뻐하는 마음

* 매사에 감사하고 만족감을 느끼는 마음

* 좋은 것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창조하는 마음

* 내가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 맞추는 마음

* 상대방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융통성 있는 마음

* 모든 일에 성급하지 않는 마음

* 꾸준하고 지속적인 마음

* 언행에 경솔하지 않는 마음

* 분명하지 않는 일에 나서지 않는 마음

* 매사에 근면하고 적극적인 마음

* 포근하고 부드러운 마음

사람을 좋아하고 만남을 그리워하며 책갈피에 끼워 놓은 예쁜 사연을 사랑하고 살아있는 숨소리에 감사하며 커다란 머그잔에 담긴 커피 향처럼 향기로운 하루의 행복이다.

어디서 끝날지 모르는 여정 길에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고 말이 통하고 생각이 같고 눈빛 하나로 마음을 읽어주는 좋은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
-행복이 따로 있나요 중-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1619.html
kolaswqetsrq 11.14 20:27
건강한 삶의 20가지 수칙

건강한 삶의 20가지 수칙

1.영양,휴식,운동의 3박자가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어야 건강하다.

2.평소 우리 생활 중 참으로 사소한 일들이 쌓여 습관이 되고 잘못된 생활습관이 몸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병을 만든다.

 "
3.생활 전반에 걸쳐 작은 생활습관을 다듬어나아가는 트라밍을 통해 삶의 균형을 회복하고 건강해질 수 있다.
",

 "
4.트라밍이란 쓸데없는 가지를 치듯이 내 몸을 다듬는 활동을 말한다.
",

5.잘못된 생활습관이 가장 큰 사망원인이다. 사망원인의 50%는 잘못된 생활습관이며 생활환경이 25%,유전전 체질적 요인은 20%도 채 안 된다.

6.40대는 방어체력이 약해지기 시작하여 생활습관이 가장 고약해지는 나이다.

7.면역의 주력부대는 장내세균이 맡는다. 장내 유해균이 증가하면 노화를 촉진한다.

8.교감신경 우위의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면 몸은 정상한계치에 이른다.뱃살은 정상한계치에 이른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다.

9.40대를 위협하는 비만과 대사증후군부터 벗어나자. 잊지마라. 소식다동!

10.토탈 트리밍으로 아름다움,군더더기 없는 몸매,건강을 고루 갖춘 건강체를 만들 수 있다.

11.속이 아름다우면 겉도 아름다워진다. 속부터 아름다워지는 이너뷰티를 가꾸자.

12.생기 있고 밝은 얼굴,날렵하고 탱탱한 몸매는 건강의 바로미터이다. 슬림 작전이 필요하다.

13.허리둘레 5cm 줄이기는 정상한계치에 이른 중년의 몸을 가장 쉽게 변화시킬수 있는 1차 목표다.

14.터닝포인트에 이른 당신,젊은 날처럼 방방 뛰어선 안 된다.순간적인 불꽃 같은 순발력이 아닌 여유로운 지구력이 필요하다.

15. 마음이 움직이면 몸이 움직이고 몸을 움직이면 습관이 된다.마음,즉 뇌를 관리하는 것이 몸을 관리하는 것이다.

15.식습관,운동습관 등은 모두 마음,뇌의 습관이다.뇌의 원리를 통해 쉽고,즐겁게 건강습관을 시작해보자.

16.작은 계획을 점진적으로 실천해서 습관화해야 뇌가 반발하지 않는다.뇌가 반발하면 잘못된 습관의 개선은 요원하다.

17.뇌는 새로운 걸 배우려는 학습본능이 강하며 창조적 자극을 좋아한다.새로운 시도가 있는 창조적 삶을 가꾸되 기쁘게 즐겁게 해야 한다.그래야 지속성이 생기고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18.잠재의식을 활용하면 우리 몸은 좋은 쪽으로 저절로 따라간다.

19.생활에 리듬습관을 들이자. 사람은 자연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자.100세 장수자 중에 야행생활자는 드물다.

 "
20.식습관의 모토는 맛있게,건강하게,푸짐하게 즐기는 것이다.푸짐하게 먹으란 것은 무조건 많이 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만복보다 만족감을 느껴야 한다.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0_26.html
kolaswqetsrq 11.14 20:28
나를 변화시키는 방법 10가지

나를 변화시키는 방법 10가지

1. 버리는 일부터 시작하라.

쓸데없는 것은 소유하지 않는 일,

바로 이것을 습관화하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 진다.

그저 시간 떼우기식으로 만났던 인간관계도

산뜻하게 정리 할 필요가 있다.

2.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라.

쓸데없는 잡담이나 나누면서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

책을 읽는 편이 훨씬 생산적인 일이다.

3.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부터 하라.

행복의 기준은 자신이 만들어라.

평범하긴 하지만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은 건강이다.

지금 당장 건강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고 건강관리에 시간을 투자한다.

건강한 몸 안에서 자라나게 될 무한한 가능성을 떠 올린다면

행복도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4. 계획보다 50% 여유 시간을 잡아라.

하루 활동하는 시간 중에도

일의 능률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있게 마련이다.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아내

그 시간 내에 하루 처리할 업무의 대부분을 해결하라.

지금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는 일은 나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커다란 해를 입힐 수 있다.

5. 단순하게 생각하라.

무슨 일이든 단순하게 생각하면

중요한 부분에 자신의 능력을 집중시킬 수 있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피하려고 하기 보다는

어떻게 쉽게 생각할지 방법을 궁리하면

어느 순간 집안사정처럼 환히 꿰뚫어 보게 될 것이다.

6. 쉽게 그리고 즐겁게 일하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곧장 행동으로 옮겨라.

아주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대견해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즐겁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일에 뛰어든다.

지금이라도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보자.

7. 나만의 능력을 찾아라.

능력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남들이 하챦게 여기는 것이라도 스스로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나만의 능력이다.

능력은 단시간에 생기는 게 아니다.

바로 그점이 도전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가진 사람

모두에게 자신감과 긍지를 갖게 된다.

8. 목표는 구체적으로 숫자화시켜라.

목표는 나는 할 수 있다.

나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세우는 게 효과적이다.

이왕이면 목표를 숫자화시키고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결과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1%정도라면 누구나 쉽게 도전할 만한 수치다.

일단 1%를 달성한 다음 자신감이 생기면 수치를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

매일 1%의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한다면 한 달 아니 1년 후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9. 일을 인생의 수단으로 삼아라.

일은 인생의 수단일 뿐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언제든지 회사를 박차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웬만한 일은 대수롭지 않아, 할 만한 베짱이 생기지 않겠는가,

가치 있는 자리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 법이다.

자신감과 노력이 뒤따르는 그 정도의 배짱은 일상의 여유를 선물 해 줄 것이다.

10. 한 가지 일에만 집착하지 마라.

한 가지 일에만 너무 집착하지 않도록 하라.

단지 하고 싶다는 이유로 자신을 몰아치는 동안

내안에 잠자고 있는 진정한 재능이 그대로 잠들어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0_26.html
kolaswqetsrq 11.14 20:29
부부가 함께 넘어야할 일곱고개

부부가 함께 넘어야할 일곱고개

첫째 고개는

환상의 고개로 신혼부터 3년 쯤에

갖가지 어려움을 비몽사몽 간에

울고 웃으며 넘는

" 눈물 고개 "

둘째 고개는

타협의 고개로 결혼후 3~7년 동안에

서로에게 드러난 단점들을

타협하는 마음으로 위험한 권태기를 넘는

" 진땀 나는 고개"

셋째 고개는

투쟁의 고개로 결혼후 5~10년을 사는동안

진짜 상대방을 알고 난 다음

피차가 자신과 투쟁하며 상대를 포용하는

현기증 나는

" 비몽 고개 "

넷째 고개는

결단의 고개로 결혼후 10~15년 지나면서

상대방의 장. 단점 을 인정하고

보조를 맞춰가는 돌고도는

" 헛바퀴 고개 "

다섯째 고개는

따로 고개로 결혼후 15~20년 사이에

생기는 병으로

함께 살면서 정신적으로 별거나

이혼한 것처럼

따로따로 자기 삶을 체념하며 넘는

" 아리랑 고개"

여섯째 고개는

통일 고개로 결혼후 20 년이 지나면

과거에 있었던 모든것을 덮고

새로운 헌신과 책임을 가지고

상대방을 위해 남은생을 바치며 사는

" 내리막 고개 "

일곱째 고개는

자유의 고개로 결혼후 30년이 지나면

완숙의 단계로 노력하지 않아도

눈치로 이해하며

행복을 나누는

" 천당 고개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562.html
kolaswqetsrq 11.14 20:32
포도의 효능

포도의 효능

1. 포도당 다량 함유

1) 인슐린 대체 역할

2) 동화능력이 탁월(피로, 활력, 원기 회복)

3) 포도당 연소 활발(단백질 조절 효과)

2. 비타민 A, B1, B2, C, E, P 등 함유

1) 강력한 산화 방지제(비타민 A, C, E)

2) 비타민 B1 - 신경 안정제

3) 비타민 B2 - 면역체계 강화

4) 면역성 강화, 세포 재생, 각종 염증에 탁월한 효능

3. 포도의 과질산과 염류는 체내 산성증을 억제, 개선한다.

1) 유기산, 능금산, 구연산, 주석산 함유

2) 칼륨, 나트륨, 칼슘, 인, 철 같은 염류 함유

(알카리화 작용, 산성 억제, 이뇨제, 강장제 역할)

4. 포도는 효소 작용이 탁월함

1) 소화기능 정상 유지

2) 피부를 아름답게 하고 세포의 생성, 새 조직 형성을 가속화 시킴

5. 포도는 완벽한 평형 상태 유지

1) 잘 섞이지 않는다.

2) 소독과 치유의 역할(건포도, 냉동포도)

3) 류마티스성 질병 주범인 산성증에 탁월한 해독제다.

6. 포도는 정혈작용이 탁월함

1)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정화제다. (완전한 건강은 완전한 혈액순환에서 온다)

2) 정혈작용, 독소 제거

3) 암 - 피가 정화되면 어떠한 병도 근본적으로 치유된다.

7. 치료 효과를 가장 빠르게 진행시킴

1) 포도당이 매우 빠르게 흡수되어 에너지로 전환됨

2) T 임파구 생산 강화(흉선 축소 억제) 젊음을 유지하는 최적의 비결

8. 20여종의 지방산 함유

1) 리놀레산, 리놀렌산, 아라카드산, 올렌산, 파밀트산 등이 들어 있다.

2) 이러한 지방산들은 종양을 녹이고 콜레스테롤을 조절하여

혈관을 부드럽게 하고 혈압 조절, 자율신경계 조절, DNA 합성에 기여함

9. 함암성분 함유

1) 레스메라트롤 화학물질 다량 함유 - 암 억제작용(과학전문지 사이언스 보도)

2) 파이토알렉신 함유 - 스트레스 억제와 항독성 물질을 배출함

3) 항암 작용 - 동물 실험 결과 68~98% 암세포 감소

4) 혈액암(백혈병) 세포생산 중단, 정상세포로 전환함

10. 약 효능을 향상시킴

1) 과다 약물 복용으로 간을 상하게 할 때 피해감소

2) 장내 분비되는 약효 감소, 효소활동 억제 작용

3) 인체에 유입된 독소에 화학변화를 일으켜 중화시킴

11. 심장병을 예방

1) 포도 특유의 식물성 색소(플라보노이드) 성분이 혈전 생성을 억제하여 심장병을 예방함

(혈액을 묽게하여 순환작용을 원활하게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715.html
kolaswqetsrq 11.14 20:33
어느 소나무의 가르침

어느 소나무의 가르침

소나무 씨앗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바위틈에 떨어지고

다른 하나는 흙 속에 묻혔습니다.

흙 속에 떨어진 소나무 씨앗은

곧장 싹을 내고 쑥쑥 자랐습니다.

그러나 바위틈에 떨어진 씨는

조금씩 밖에 자라나지 못했습니다.

흙 속에서 자라나는 소나무가 말했습니다.

"나를 보아라. 나는 이렇게 크게 자라는데

너는 왜 그렇게 조금밖에 못 자라느냐?"

바위틈의 소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이깊이 뿌리만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바로 태풍이었습니다.

산 위에 서 있는 대부분의 나무들이 꺾이고 뽑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뽑힌 나무들 속에는 흙 속에 있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태풍속에서도 바위틈의 소나무는 쓰러지지 않고

꿋꿋이 서있었습니다.

바위틈에 서 있던 소나무가 말했습니다.

"내가 왜 그토록 모질고 아프게 살았는지 이제 알겠지?

뿌리가 튼튼하려면 아픔과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거란다."

어떠한 아픔과 시련이 찾아와도 잘 참고 견뎌내셔서,

그 어떤 비바람과 태풍에도 꿋꿋히 서 있을 수 있는

뿌리깊은 나무가 되시길 바래봅니다.

-좋은글중에서-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602.html
kolaswqetsrq 11.14 20:34
오늘의 명언

오늘의 명언

바람을 마주보고 맞으면 역풍이지만

뒤돌아서서 맞으면 순풍이 됩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뀝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이 바뀌고

상대가 바뀌기를 원합니다.

- 잭 웰치 -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863.html
kolaswqetsrq 11.14 20:35
◇암이 싫어하는 음식 25가지

◇암이 싫어하는 음식 25가지

1. 브로콜리

암세포를 억제하고 위암,대장암을 방지해 준다.

2. 새우젖

면역력을 키워주고 항암 작용을 한다.

3. 율무

율무의 콘시롤라이드 성분이 풍부해 암세포를 억제해 준다.당뇨병에도 효과적이다.

4. 고구마

베타카로틴 이라는 성분이 유방암,폐암 등을 방지해 준다.

5. 콩

아이소플라본이 풍부하여 항산화 작용과, 항암작용을 해준다.

6. 도라지

항암작용과 위반분비를 억제해 준다.

7. 부추

간의 기능을 좋게해서 암을 예방한다.

8. 호박

위암과 폐암을 억제 해준다.

9. 고추

위암을 억제해 준다. 하지만 너무 매운 고추는 암을 촉진함

10. 미나리

독서를 제거해 주고 캠프페놀 이라는 성분이 항암에 효과가 있다

11. 미역

셀레늄이 성분이 풍부하여 암 발생을 억제해 준다.중금속 배출에 탁월함

12. 양배추

암을 억제하는 이소티오시안염이 들어 있고 발암물질을 억제해 준다.

13. 양파

당뇨병에 효과적이며 알리신 성분이 암을 예방해 준다.

14. 토마토

토마토에는 항암물질인 클로겐산이 들어있어 암예방에 효과적

15. 배

배는 발암물질을 배출해 주는 효과가 있다.

16. 시금치

카로틴이 항산화작용을 하고 활성산소를 제거해 준다.

17. 인삼

암 세포의 전이를 억제시키고 염증을 억제해 준다.

18. 카레

면역력을 증가시키고 암예방과 노화방지

19. 생강

생강은 몸을 따뜻하게 해서 기혈을 좋게 해주며 대장암,당뇨병을 예방한다.

20. 알로에

염증을 치료 하며 궤양에 좋고 간암을 억제해준다.

21. 케일

골다공증에 좋으며 암 유발물질을 해독시켜 준다.

22. 청국장

콩을 발효 시켜서 만든 음식이기 때문에 단백질이 풍부하고 뇌졸중,동맥경화에 좋다.

트립신이 암증식을 막아준다.

23. 머루

비타민E가 들어 있어 항산화 작용을 하고 함암효과가 있다.

24. 현미

현미에는 안토시아닌이 들어있는데 이는 항산화와 노화를 방지한다.

25. 올리브오일

암을 유발할수 있는 유해산소를 제거해 준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5_26.html
kolaswqetsrq 11.14 20:36
◇ 암과 걷기 와 등산

◇ 암과 걷기 와 등산

사람의 면역세포는 밤에 활동합니다. 인간의 몸은 스스로 손상된 세포를 탈락 시키고 새로운 세포를 생성하여 돌연변이가 생기는 것을 방어합니다. 이 과정은 잠을 자면서 전개되고 이 활동이 가장 활발해지는 시간대가 새벽 1~ 2시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엔 반드시 잠에 들어 있어야 합니다. ‘저녁 11시 이전엔 잠자리에 들 것’을 권합니다. 20년간 종양과 싸우며 말기 암환자 2만명을 진료한 서울대학병원 김 박사는 암을 극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의 하나로 ‘잠’을 꼽았다.

김박사는 보약을 지어 주거나 여타 질병을 치료해주는 일반 한의사와 달리 ‘암’ 하나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21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가 ‘수면과 암’에 대해 말을 이었다.

“수면은 ‘암’에 영향을 미칩니다. 암 중에서도 특히 유방암이 수면과 관계가 깊은데요, 젊은 여성에게 유방암이 생겼다면 십중팔구 늦게 자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일찍 잠들기가 쉽지 않다. 네온사인이 밤새도록 돌아가고, TV 등으로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방법은 낮에 "햇빛"을 많이 쬐는 것입니다. 수면을 주관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뇌의 송과체에서 분비됩니다. 그런데 송과체는 낮에 햇빛을 많이 받아야 활동이 왕성해 집니다.

그리고 멜라토닌은 암세포를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낮에 햇빛을 쬐면서 운동을 하면 항암효과와 숙면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다. 이것은 그 어떤 약이나 주사보다 효과가좋다.”

김 박사는 ‘낮에 햇빛을 받으며 하는 효과적인 운동’으로 걷기"등산"을 꼽았다. “암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선 암세포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암세포는 태아세포다. 아주 빠르게 분열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리고 저산소 세포다. 그래서 산소 공급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도 대사가 이뤄집니다. 그리고 40도가량의 열에 취약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현대 의학은 이런 특성을 이용해 간암에 고주파 (열)치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용부담 없이, 신체에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손쉽게 체온을 상승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게 바로 걷기 와 등산입니다.”

김 박사는 “몸을 튼튼 하게 하는 근본적인 건강법은 신체를 많이 움직여서 체내에 산소를 풍부하게 하는 것” 이다. “병 치료에 산소가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수술이든 항암제든 방사선이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반드시 신체에 산소 공급을 원활하게 해야 합니다. 특히 암세포는 체내에 산소가 부족할 때 생겨납니다. 따라서 암 환자는 항상 풍부한 산소를 공급해 줘야 하는데. 걷는것 과 등산은 이 점에서 탁월한 효과를 준다.

또 걷기 와 등산을 하면 체내 온도가 높아져 온 몸 에서 땀이 흘러 나옵니다. 게다가 평평한 아스팔트 보다 흙을 밟으며 걷는 산행을 통해 정신적 안정을 취할 수 있고. 삼림욕의 효과도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1석 4조인 셈이죠.”

김 박사의 암의 특성에 관한 이야기 ;

 "
“암 세포는 이성단백질’ 이라 불리는 일종의 독성물질을 뿜어냅니다. 그러면 체내의 면역 세포가 이걸 찾아내 공격을 가합니다.
",
이 기능을 강화시켜주면 돌연변이 세포를 제거 하는 신체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이런 역할을 강화해주는 가장 좋은 식품이 \물"입니다. 물은 체내의 나쁜 요소를 씻어내고 정화하는 데 탁월한 역할을 합니다.

성인 남자의 경우 하루 2리터 가량의 물을 마시는 것을 강추! 합니다.”

*건강요점 : 걷기,잠, 햇빛, 등산, 물

*아무리 건강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도 일장춘몽이기에 죽음 앞에 설 때는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268.html
kolaswqetsrq 11.14 20:38
◇뇌종양

◇뇌종양

"손이 떨리는 증상이 큰 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 때 직장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얘기한 적이 많아 스트레스가 이렇게까지 나타나나 싶었지요.

가끔 손을 잡고 있으면 손이 떨리는 느낌이 왔어요.

2년마다 건강검진을 받았고 위, 대장내시경도 했기 때문에 큰 병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지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가족 해외여행까지 계획했는데...."(40대 뇌종양 환자 가족)

김 모(42, 주부)씨는 지금도 남편의 뇌종양 진단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대학병원 정신과을 찾았더니 남편은 잠깐 있는 동안에도 손을 떨었고, 정신과 의사는 신경과에 협진을 의뢰했다.

정밀 검사 일주일 후 신경과 전문의는 김 씨만 따로 불렀다.

"아이들 아빠가 뇌종양인데, 종양도 아주 큽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청천벽력이었다.

꿈을 꾸는 것 같아 허벅지를 꼬집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불과 몇 달 전 건강검진으로 몸이 아주 건강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정신과적인 질환이 아닌 다른 병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뇌종양은 김 씨 남편의 사례처럼 뒤늦게 발견해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손이 떨리는 증상이 지속돼도 스트레스 후유증으로 알고 무심코 넘겨버렸다.

뇌 및 주변 부위에 생기는 뇌종양은 조기 발견이 최선이다.

원인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다른 암처럼 음식을 조심하는 등 특별한 예방법이 없다.

- 두통과 메스꺼운 증상, 소화불량

뇌종양이 오면 머리가 아프고 메스꺼운 느낌이 자주 올 수 있다.

두개골 내에 생긴 종양이 커지면서 뇌압이 올라 두통과 구토, 소화불량이 생긴다. 종양이 주위 신경을 압박하면 김 씨의 남편처럼 손 떨림이 일어날 수 있고 신경마비가 동반돼 팔, 다리 마비가 발생할 수 있다.

종양이 커져 뇌가 밀리면 시력장애나 안면신경 마비 등도 나타날 수 있다.

뇌종양에 의한 두통은 낮에 나타나는 일반 두통과 차이점이 있다.

잠을 자기 위해 오래 누워 있던 새벽에 심해지는 특징이 있다.

자고 일어나도 계속 머리가 아프고 동시에 구토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기상 시간 전후의 두통의 경과를 잘 살피면 뇌종양을 조기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뇌종양은 종양 크기가 커질수록 뇌를 압박하면서 악성으로 변하게 된다.

- 시력 감퇴, 냄새를 잘 못 맡아

시력이 떨어지는 것도 뇌종양의 흔한 증상이다. 한 개의 물체가 두 개로 보이거나 그림자가 생겨 이중으로 보이기도 한다. 뇌압이 상승해 시신경이 부어올라 걸을 때 옆 사람과 자주 부딪칠 정도가 된다. 시력장애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 실명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치료를 서둘러야 한다.

뇌종양이 생기면 냄새를 맡는 기능에 이상이 올 수 있다. 뇌종양의 40% 정도는 중이염이나 부비동염(축농증)에서 염증이 커져서 생긴다.

축농증으로 알고 치료시기를 늦추면 후각신경 부위에 종양이 있는 사람은 후각을 아예 소실할 수 있다.

뇌종양 치료에는 방사선의 일종인 감마선을 이용한 감마나이프나 사이버나이프 등과 같은 특수 치료기기를 이용한 방사선 치료가 흔히 사용된다. 조영현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뇌종양 크기가 커 나눠서 하는 분할 치료가 필요하거나 중요한 신경, 뇌 조직이 가까이 있는 경우 사이버나이프가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 예방법 없어 조기진단만이 최선

아직까지 뇌종양을 예방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조기진단만이 최선이다.

뇌종양은 증상이 매우 다양해 치매나 정신질환으로 오인해 정신과에서 오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시력저하가 두드러지면 안과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소화기 내과 등 다른 진료과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뇌종양 증상이 있는 경우 신경과나 종양내과를 찾아 전문의와 상담해 정밀 검사를 받아 조기 진단이 되도록 해야 한다.

즉 시력감퇴나 시야결손, 감각 및 운동장애, 보행 장애, 청력감퇴, 이명증, 언어장애, 학습장애, 무월경증, 유즙분비, 성기능장애, 간질발작-경련, 피부반점 및 결절, 뇌종양 가족력이 있으면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5922.html
kolaswqetsrq 11.14 20:39
◇누가 버린 꽃을 꽂았을 뿐인데..

◇누가 버린 꽃을 꽂았을 뿐인데..

어느 기업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회사 건물에는 층마다 청소하는 미화원이 따로 있는데, 11층 할머니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항상 싱글벙글 미소를 짓습니다.

11층 화장실에 가면 늘 꽃향기가 가득합니다. 할머니가 꽃을 꽂아두기 때문입니다.

기업 특성상 행사가 많고, 행사 후 버려지는 꽃들이 많은데, 할머니가 그중에 싱싱한 꽃들을 잘 간추려서 화병에 꽂아두는 것입니다.

화장실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꽃향기를 맡고는 아, 이게 무슨 향기지 하며 반가워 합니다.

삭막한 화장실 구석이 마치 갤러리 처럼 변했습니다.

그동안 미화원이 숱하게 바뀌었지만, 하루 하루 바삐 지내는 회사 사람들은 어떤 직원이 바뀌는지 관심 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할머니가 바뀐다고 하니 모두 아쉬워 했습니다.

그러던 중 11층 직원들과 사장이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습니다. 사장이 “건의할 것 있으면 말씀 하세요"라고 하자 직원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 11층 미화원은 바꾸지 말아 주십시오. 옆에 있던 다른 직원도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11층 미화원 할머니 정말 좋습니다.” 라고 많은 직원들은 사장님께 그렇게 건의를 하였고 미화원 할머니는 우수 직원으로 뽑혔습니다.

회의 때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할머니는 “누가 버린 꽃을 가져다 꽂은 것뿐인데... ” 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 그 일을 즐겁게, 감사한 마음으로 하는사람, 그런 사람이 꼭 필요한 사람, 없으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BAND 글 옮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278.html
kolaswqetsrq 11.14 20:40
◇오이의 놀라운 건강 효능

◇오이의 놀라운 건강 효능

1. 칼로리는 적고, 영양소는 많다

300그램짜리 오이 한 개에는 비타민C 하루 권장량의 14%가 들어있습니다.

비타민 K는 62%, 마그네슘은 10%, 칼륨은 13%가 포함돼 있죠.

반면에 지방은 없고 탄수화물이 11그램, 45칼로리에 불과한 야채입니다.

2. 항산화제가 풍부하다

항산화제는 암 발병과 연관성이 있는 유해산소를 조절하는데 도움이 되는데요.

오이에는 쿠쿠르비타신, 글루코사이드, 리그난, 아피제닌 등의 생체 활성 화합물이 들어있습니다.

오이가 함유하고 있는 플라보노이드는 DNA와 세포를 산화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해서 강력한 암 퇴치 작용을 합니다.

3. 해독을 돕는다

오이는 소화 기관과 간에게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오이는 혈액이나 장으로부터 쌓인 독소나 노폐물을 제거함으로써 소화 기관을 돕습니다.

오이는 천연 이뇨제 역할을 하는데, 배설물을 통해 더 많은 독소를 제거하는데 효과가 있죠.

4. 수분을 공급한다

체내 수분을 잘 유지하는 것은 건강을 위해 정말 중요합니다.

특히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철에는 수분이 부족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데요.

오이는 95%가 수분으로 이뤄져 있어서 오이를 먹으면 물을 마시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습니다.

게다가 각종 영양소와 항산화제도 가득하죠.

5. 체중 조절에 도움이 된다

오이는 칼로리가 낮고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섬유질은 오이의 껍질에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껍질째 잘 씻어서 통째로 먹는 게 좋습니다.

6. 배변을 원활하게 한다

수분이 많이 든 오이는 배변을 잘 되게 하고 변비를 막아줍니다.

또 오이에는 펙틴으로 불리는 수용성 섬유질이 풍부해서 장운동을 촉진해주죠.

7. 혈당 수치를 낮춘다

당뇨병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이를 식단에 추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 실험을 통해 오이가 혈당 수치를 감소시킨다는 사실이 입증됐는데요.

당뇨병으로 인한 여러 가지 합병증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8. 뼈를 튼튼하게 한다

오이에는 비타민K가 풍부합니다.

우리 몸에 비타민K가 부족해지면 골절 위험이 커지는데요.

오이를 많이 먹으면 비타민K가 부족해질 염려가 없습니다.

비타민K는 칼슘을 흡수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뼈와 치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영양소입니다.

9. 두통을 막는다

오이를 먹으면 탈수 증상이 사라지면서 두통을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오이 외에 두통에 좋은 식품으로는 감자, 바나나, 수박, 파인애플 등이 있습니다.

10. 심장에 좋다

오이에 들어있는 항염증 성분은 심혈관 질환을 퇴치하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오이에는 칼륨과 마그네슘이 함유돼 있어서 심장 건강에 좋습니다.

또 오이에 들어있는 리그난이라는 항산화 성분은 나쁜 콜레스테롤, LDL을 낮춰서 혈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11. 피부 건강에 좋다

오이 팩 많이 하시죠? 오이 즙은 피부에 수분을 공급하고 피부를 진정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강렬한 햇빛으로 인해 손상을 입은 피부에 오이를 잘라서 붙이면 냉각 작용을 해서 부기나 홍반을 감소시킵니다.

12. 신경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

오이에는 피세틴이라는 항염증 성분이 있는데요.

피세틴은 뇌 건강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피세틴은 노화로 인한 신경 질환이 뇌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알츠하이머 환자의 인지 기능을 유지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976.html
kolaswqetsrq 11.14 20:41
◇ 피를 해독하는 4가지 방법

◇ 피를 해독하는 4가지 방법

1. 아침저녁으로 들기름 한스푼!

들기름은 오메가3의 비울이 60%로 혈액순환 개선과 두뇌 활동 촉진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혈관 속 독소 제거와 노화 예방에 탁월한데요. 들기름은 열에 약하기 때문에 생으로 드시거나 요리 후 마지막에 살짝 뿌려 향과 맛을 내면 좋습니다.

하지만 들기름의 약점은 산패인데요. 산패되면 오히려 독이 되기 때문에 산패를 막기 위해서는 저온 압착된 들기름을 구입해 8:2(들기름:참기름) 비율로 참기름과 섞거나 빛이 통하지 않는 용기에 넣어 냉장보관하면 됩니다.

※산패: 들기름을 공기속에 오래 방치해 두었을때 산성이 되어 불쾌한 냄새가 나고. 맛이 나빠지거나 빛깔이 변하는 일.

2. 아침에 한잔! 청혈주스 마시기

청혈주스는 지방분해에 효과적인 양파와 생강이 피를 맑게 해주고 채소와 과일은 장 기능을 활성화 시켜주며 갈아서 마시기 때분에 흡수율이 높습니다

● 청혈주스 만드는 법

재료: 당근400그램. 사과200그램. 귤100그램. 양파10그램 생강즙10그램--귤이 없을 경우 오렌지, 딸기, 자몽, 포도, 키위등으로 대체할수 있어요

a 재료를 모두 깨끗하게 씻은후 물기를 뺀다.

b 믹서기나 원액기에 사과, 오렌지, 당근, 양파 순서대로 넣어 간다.

c 먹기 좋게 컵에 담아 준다

-원액기를 사용하면 건더기 없이 원액만을 섭취할 수 있다.

-양파, 생강의 향이 너무 강하게 느껴질 경우 재료를 살짝 데치거나 볶는다.

※청혈주스 Tip!!!

1 위장이 약하거나 열이 많은 경우 양파와 생강의 약성때문에 통증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스를 제조할 때 생강 양파의 양은 절반으로 줄여줍니다.

2 고혈압 약을 먹는 환자의 경우, 귤 대신 넣으라고 작은 포도와 자몽은 피합니다.

3 평소 수분이 부족한 사람이 마시면 피를 맑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4 생강은 따뜻한 성질을 가진 뿌리채소이므로 열이 많은 체질은 껍질째 먹는 것이 좋습니다.

●해독주소와 청혈주스의 차이점

#청혈주스 는 피 해독작요이 놓은 음료로 수용성 비타민기름을 분해하는 생강과 양파를 섭취하기 때문에 배변 활동이 원활해지고 혈관의 기름때를 제거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해독주스 는 체내 흡수율을 높여 식이 섬유 섭취가 가능하고 체내 면역력을 상승시키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3. 하루 20분 이상 햇볕 쬐며 걷기!

햇볕을 쬐면 체온이 상승하고 면역기능이 향상되어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 또 비타민 D가 생성되어 심장병과 뇌경색을 예방해 줍니다. 운동을 통해 근육을 발달시키면 근육 속 미토콘드리아가 독소를 제거해주고 그 기능이 향상됩니다.

또한, 20분 이상 땀이날 정도로 발바닥 경혁을 자극해주면 혈액 순환 개선으로 독소가 배출, 숙면을 돕고 피로를 풀어주기 때문에 좋습니다.

4. 낮은 베개,베개만 바꿔도 피 해독이 된다!

혈액이 해독되는 시간은 바로 수면 시간입니다.

피 해독을 위해선 머리,심장, 발이 같은 높이를 유지해야 하는데 높은 베개는 그렇지 못합니다. 7cm정도로 높으가 낮고 굴곡이 있고 조금 딱딱한 베개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베개를 이용하 머리와 목을 마사지해 주는데요.

자기전 딱딱한 베개에 누워 머리를 상하좌우로 움직여 머리와 목의 혈을 마사지해주면 뇌혈류의 흐름이 원활해져 피로가 감소하고 숙면을 유지하게 해줍니다. 만약 딱딱한 베개가 힘드시다면 베개를 이 운동을 30분 동안하고 잠을 잘 때는 평소 사용하는 베개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물론 평소 사용하는 베개도 낮은 베개를 사용하시는게 더 좋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더 건강하게아픈사람은 병을 고쳐주는 피 해독주스입니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4_21.html
kolaswqetsrq 11.14 20:42
◇암을 이기는 식습관 54가지

◇암을 이기는 식습관 54가지

01. 주식을 바꿔라- 현미콩밥

02. 선조가 즐겨먹던 오곡밥의 비밀- 잡곡

03. 유방암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미강

04. 결장암에 탁월한 항암효과- 율무

05. 하루 반 개로 대장암과 폐암을 예방하는- 고구마

06. 유방암과 전립선암에 좋은- 콩

07. 성인 남자 간암에 효과가 큰- 작두콩

08. 암을 이기는 탁월한 효과- 청국장

09. 콩의 발효과정에서 더욱 높아지는 항암효과- 된장

10. DHA로 암을 예방하고 장수한다- 등푸른 생선

11. 면역력을 증강시켜 암을 예방한다- 새우젓

12. 녹색 밥상을 차려라- 녹황색채소

13. 녹즙으로 즐겨 먹는 항암식품- 케일

14. 유방암, 대장암에 효과 큰 설포라판 풍부- 브로콜리

15. 어리지만 효능 뛰어난- 새싹채소

16. 식이섬유 풍부한 십자화과 채소- 배추와 콜리플라워

17. 위, 대장, 직장암 등에 좋은- 양배추

18. 항암음식의 총체- 김치

19. 흡연자의 항산화효과 높이는- 신선초

20. 손상된 DNA 복구할 암 예방성분 풍부- 시금치

21. 끓는 소금물에 데치면 효과가 2배- 미나리

22. 저공해 산나물의 힘- 곰취

23. 일본에서 먼저 주목한- 가지

24. 암세포의 소멸을 돕는다- 도라지

25. 폐암과 유방암을 억제하는- 당근

26. 위암을 억제하는- 고추

27. 미 국립암연구소가 선정한 으뜸 항암식품- 마늘

28. 매운 맛이 항암효과의 핵심- 생강

29. 껍질 부분에 항암 물질이 풍부한-양파

30. 주황색 식물의 대표 주자- 호박

31. 부추가 들어가면 항암효과가 두 배 - 부추

32. 양지바른 언덕에 항암효과 가득한- 쑥

33. 경제적인 암예방 식습관 - 버섯

34. 초기 위암, 폐암, 후두암에 효과 높은- 차가버섯

35. 가공식품에 항암효과가 풍부한- 토마토

36. 암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막는- 알로에

37. 바다에서 나는 최고의 야채- 다시마

38. 풍부한 섬유질이 발암물질 배출- 미역

39. 해조류 중에 암예방 효과 최고- 김

40. 포도껍질과 씨에 풍부한 레스베라트롤- 포도

41. 발암물질의 배출을 돕는다- 배

42. 구강암, 식도암 등을 예방하는- 딸기류

43. 일반 포도보다 10배 뛰어난 항암효과- 머루

44. 암 없는 장수 비결- 요구르트

45. 대장암 예방에 확실한 효과- 유산균

46. 한국인이 많이 먹는 항암식품- 들깨

47. 생산량이 적어 더욱 귀하다- 아마씨

48. 지중해에서 온 기적- 올리브오일

49. 세계적으로 발돋움한 항암식품- 인삼

50. 가까이 있으면서 몰랐던 항암효과- 홍삼

51. 전립선암과 유방암에 예방 효과- 감초

52. 하루 2잔만으로 암예방 효과 보는- 녹차

53. 카레의 색소 성분으로 암을 예방하자- >커큐민

54. 최근 가장 주목받는 항암 물질- 셀레늄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54.html
kolaswqetsrq 11.14 20:44
■ 태종과 영조의 세자교육법

■ 태종과 영조의 세자교육법

두 임금은 장자(長子)를 세자로 삼았지만, 그 세자들이 문제가 많아 속을 엄청 썩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세자를 대하는 방법은 아주 달랐다. 둘 다 폐세자(廢世子)를 하기는 했지만, 폐세자 후 세자에 대한 대처방법도 달랐고 두 세자의 운명도 달랐다.

태종은 정실 소생으로서 어려서부터 무인기질이 있었고 항상 자신감에 넘쳐있었다. 언제든지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신만만한 스타일이었지만,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형제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는 흠이 있었다.

이에 비해 영조는 천민 무수리 아들로서 출생에 치명적인 약점과 열등감이 있었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노론 덕택에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선왕이자 이복형이었던 경종 독살설의 주모자로 의심을 받았다. 그래서 즉위 초 영조는 소심했고 흠을 잡히지 않기 위해 몸가짐을 올바르게 하면서 신하들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할 상황이었다.

태종의 인생을 살펴보면 과감하고 냉정하며 그리고 철두철미했다. 그리고 왕권도 조선의 전(全) 시대를 통틀어 가장 강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는 조금 약했던 거 같다. 양녕대군이 그렇게 심하게 말썽을 피워도 크게 혼내지 않고 많이 참아주고 지켜 봐주는 편이었다. 태종보다는 유교 성리학에 빠진 신하들이 더 받아들이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폐세자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태종은 자기가 걸었던 골육상쟁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장자인 양녕대군을 끝까지 보호하고 지켜주고 싶어했다. 그러나 양녕대군 스스로가 왕위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 스스로 세자 자리를 물러났다. 태종은 세자에서 물러나 지방으로 내려가는 양녕대군에게 충분한 노비를 주고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도록 조치를 취해주었다. 덕분에 양녕대군은 당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를 누리면서 천수를 다 채우고 죽었다.

영조는 원래부터 학문을 좋아한 호학(好學)군주였지만, 성격이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였고 사람을 한번 미워하면 끝까지 미워하는 편집증적인 병세도 보인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어려서 총명하게 공부에 열중할 때는 너무나도 예뻐했지만, 세자가 커면서 공부보다는 무예나 유흥을 더 즐기자 세자를 미워하는 것이 도를 넘어 벌레 보듯이 대했다. 영조의 편집증적인 지독한 미움과 증오에 시달린 사도세자는 급기야 정신이상증세 까지 보이다가 마침내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굶어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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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0:46
■ 양녕대군과 효령대군

■ 양녕대군과 효령대군

야사(野史)에는 세종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다 간 양녕대군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우선 양녕대군의 세자폐위에 대해서도 여러 설(說)이 있다.

 「양녕대군이 세자로 있을 때 태종의 뜻이 세종(충녕대군)에게 있는 것을 알고, 양녕대군이 일부러 미친 척하고 자리를 사양하니 태종이 곧 폐하여 충녕을 세웠다」 《자해필담》

「세자(양녕)의 계속된 비행을 태종이 몇 번 질책하자, 양녕대군이 이에 불만을 품고 태종에게 “자신은 잘못이 없으며, 아버지(태종)는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하시면서 왜 저만 못하게 하시느냐”는 상소를 올리자, 이에 분노한 태종은 세자를 폐하여 이천군으로 귀양보내고 동생 충녕대군에게 세자 자리를 넘겨주었다」 《조선왕조실록》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양녕대군 스스로 충녕대군에게 양보하기로 결심하고 일부러 미친 짓을 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어쨌든 양녕대군은 세자를 포기하고 자유를 얻었으며 세종, 문종, 단종, 세조대까지, 당시로서는 장수한 69세의 나이까지 슬하에 10남 17녀를 두고 별 탈 없이 한 평생 잘 살았다. 하지만 양녕대군의 말로(末路)는 아주 추했다. 수없는 엽색행각을 마다않던 양녕대군은 급기야 자신의 며느리까지 범하는 등 인간 이하의 행위도 서슴지 않았고, 이에 충격을 받은 아들이 목을 매 자결할 정도였다.

양녕대군은 1453년에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수양대군의 편을 들어 그를 독려한다. 그리고 쿠데타 성공 후에 안평대군을 사사시키라고 간청까지 했다. 단종을 죽이라고 한 사람이 양녕대군이라는 설도 있다.

태종의 둘째 효령대군에 대해서도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양녕대군이 폐세자 되면 세자 자리가 자기에게 올 것이라는 생각에 품행을 더 단정히 하고 지내던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에게 양녕대군이 찾아가, 아버지 태종의 마음은 셋째 충녕대군에게 있으니 꿈 깨라는 말을 해, 이에 충격을 받아 머리 깎고 스님이 되었다」

이 일화가 사실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효령대군은 슬하에 7남을 두었고, 생전에 손자 33명 증손자 109명으로 후손이 아주 번성하였고, 그는 91세까지 천수를 누렸다. 효령대군은 생전 태조,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8명의 왕의 시대를 거쳤다. 그러나 효령대군도 양녕대군처럼 수양대군의 계유정난과 단종폐위 때 수양대군 편을 들어 후세의 유학자들로 부터 많은 지탄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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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0:47
■ 왕자의 난, 기록과 진실

■ 왕자의 난, 기록과 진실

실록은 왕자의 난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정도전 등이 임금의 병을 핑계로 왕자들을 대궐로 불러들인 다음 궁궐노비, 갑사 등을 동원하여 공격하고 자신들도 밖에서 응하기로 계획하였다.(중략)..........이윽고 왕자들이 궁궐 앞에 이르렀는데, 이방원은 궁문 앞에 불이 켜져 있지 않은 것으로 위험한 형세를 짐작하고, 집으로 돌아와 이숙번, 조영무 등 40여 명을 무장시켜 광화문 앞으로 내달았는데, 세자가 이방원 등의 군세에 놀라 전의를 상실하였다.(중략)........... 당시 정도전 등은 남은의 첩 집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방원 등이 찾아가 집에 불을 지르고, 울며 살려주기를 구하는 정도전을 그 자리에서 참하였다. 이방원은 정도전파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신하들을 죽이고, 이성계에게 ‘정도전 등이 반역을 꾀해 왕자와 종친들을 죽이려 하여 부득이 이들을 죽였다’는 보고를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야말로 승자(勝者)의 기록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정도전이라 해도 임금의 허락 없이 어떻게 왕자들을 모조리 죽일 생각을 할 수 있었겠으며, 왕자들을 죽이려고 궁으로 부른 정도전 등이 남은의 첩 집에서 놀고 있었다는 것은 또 무엇이며, 이방원이 40명으로 정도전과 궁궐의 관병을 모두 제압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이방원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은 이방원이 하륜 등 참모와 상의하여 철저한 준비를 했고, 이성계가 병환으로 누워 있는 때에 맞추어(이성계가 누워있지 않고 직접 진압에 나섰다면 이방원의 난은 성공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일으킨 쿠데타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방원은 결국 이날 밤 정도전 등 무수한 이성계의 신하들을 죽였고, 세자를 비롯한 이성계의 전처소생 아들 두 명과 사위까지 모조리 척살(刺殺)하는 등 쿠데타를 확실하게 성공시켰다. 이로써 이성계와 정도전의 모든 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이성계는 이방원의 쿠데타로 하룻밤 사이에 평생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 평생에 걸쳐 이루어 놓은 지위와 명예, 자부심까지 모조리 잃고 말았다. 그것도 아들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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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0:48
■ 태종과 하륜 3편

■ 태종과 하륜 3편

하륜이 나이 어린 이방원의 참모 역할을 하면서도 쩔쩔맬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방원의 능력에 대한 고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고려 말에 문과 과거시험에 급제하고 ‘왕자의 난’이란 쿠데타를 지휘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방원은 선비와 무장의 자질을 골고루 갖춘 인물이었다. 또 이방원은 상당히 잔혹하고 과격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정몽주를 적시(適時)에 암살함으로써 이성계 세력을 보호하고 조선 건국을 가능하게 했다.

이방원은 기획력과 추진력도 갖춘 인물로, 참모가 없어도 상당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륜이 이방원의 눈치를 살핀 데는 그런 점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륜은 자기보다 어리지만 자기 못지않게 유능한 주군을 모시려면 허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방원이 하륜을 끝까지 비호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이방원은 하륜이 고려를 지키려 했다가 조선으로 얼른 돌아선 의리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았고, 또 그가 온갖 부정부패로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다는 것도 잘 알았다.

하지만, 이방원 자신이 건재한 동안에는 하륜이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하륜을 끝까지 살려주면서 최대한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하륜은 이성계-정도전이 구축한 조선왕조의 기틀을 허물고 이방원과 함께 새롭게 기틀을 세운 인물이다. 새롭게 세운 기틀의 상당부분은 정도전의 구상을 모방한 것도 있지만, 하륜의 기여도도 무시할 수 없다.

이처럼 적지 않은 역할을 했는데도 하륜이 후세의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한 것은 그가 시대적인 소명을 고민하기보다는 일신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보신(保身)형의 참모였기 때문이다. 그의 뛰어난 능력은 그러한 그의 비굴한(?) 처세 때문에 상당 부분 빛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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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0:49
■ 태종과 하륜 2편

■ 태종과 하륜 2편

하륜은 태종 집권기인 1414년에는 육조 직계제를 신설했다. 의정부 산하의 6개 행정부서의 수장인 판서들이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주상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한 이 제도는 왕권을 한층 더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태종시대에 단행된 네 차례의 정부조직 개편 중에서 세 차례를 하륜이 주도한 사실에서도, 그가 태종의 왕권 강화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가 드러난다.

하륜은 이성계의 참모인 정도전과 정반대로 왕권을 극대화하는 데에 치중했다. 정도전이 재상의 정치적 주도권을 관철시키려 한 것과 달리, 하륜은 이방원의 뜻대로 국왕의 정치적 주도권을 관찰시키는 데 주력했다.

또 하나의 비결은, 그는 자신의 의견이 주군의 의견과 충돌할 경우에는 주군의 생각을 바꾸기보다는 자기의 생각을 바꾸는 스타일이었다. 하륜은 자신의 책략이나 제안이 이방원의 비위에 맞을 때까지 계속해서 수정해서 의견을 내놓았다.

하륜과 이방원의 관계는, 만약 이방원이 열아홉 살 많았다면 자연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하륜이 열아홉 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륜이 이방원을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모셨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국왕이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해도 일반적으로 참모들이 왕의 스승 같은 존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륜의 태도는 얼른 이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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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세습적인 왕들 중에는 무능한 사람들도 있으므로, 훌륭한 재상이 왕을 보좌해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재상이 이끌어가는 대로 왕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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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서거정이 왕명으로 편찬한 문집인 <동문선>에 실린 하륜의 글에 따르면, 하륜은 군주가 위에 있고 재상이 아래에 있는 상태에서 서로가 잘 협조하는 것을 이상적인 군신관계로 인식했다. 군신 간의 협조를 강조하면서도 군주 쪽에 힘을 실어주었던 것이다. 그는 참모는 군주의 의중을 잘 헤아리고 군주의 의지를 실천해야 한다 고 믿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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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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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0:50
■ 태종과 하륜 1편

■ 태종과 하륜 1편

하륜은 고려 말 개혁파 신진사대부의 일원으로 역사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보수파의 수장인 이인임의 조카사위가 되면서 개혁·보수 양대 세력과 동시에 어울리며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는 고려왕조 하에서도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성계의 왕조 창업에는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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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 조선이 세워지자 하륜은 정치무대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려 멸망 직전에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과 맺어둔 인연이 유리하게 작용한 덕분에, 그는 조선 건국 이듬해 정치무대에 복귀하여 이방원의 참모로 활약하게 된다. 관상학에 조예가 깊은 그는 고려 멸망 직전에 열아홉 살 연하의 이방원에게 코와 이마에서 제왕의 기운이 흐른다 는 점을 확신시켜준 적이 있었다. 이것이 이방원과의 인연을 만드는 발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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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에 복귀한 하륜은 1398년에 이방원과 함께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성계-정도전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다. 그때부터 1416년에 사망할 때까지 하륜은 태종 정권 하에서 영의정을 네 번이나 역임할 정도로 부귀영화와 권력을 양 손에 쥐고 있었다. 숱한 부정부패 스캔들에 휘말리면서도 끝끝내 신변과 명예를 지킨 점으로 볼 때 그가 태종과 얼마나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륜이 이방원의 신임을 얻은 비결은 무엇일까?

하륜은 사전에 주군의 의중을 확인한 뒤에 그에 맞는 국가정책을 수립하는 데 주력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건국 직후까지 도평의사사란 기구가 있었다. 신하들이 모여 국가의 최고정책을 결정하는 이 기구는 왕권을 견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제1차 왕자의 난 직후 정종 때 하륜은 정부조직 개편을 지휘했다. 이때 그는 도평의사사를 의정부로 바꾸면서, 도평의사사가 갖고 있던 군사권을 의정부에 부여하지 않았다. 왕권을 견제하는 최고정책결정 기구의 힘을 약화시킨 이 같은 조치는 곧이어 등장할 태종 정권이 신하들의 간섭을 덜 받으며 강력한 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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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0:51
■ 이방원 VS 이성계 3편

■ 이방원 VS 이성계 3편

이방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태조의 증오심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자 그의 분노는 극에 달하여, 아예 태종과는 한 궁궐 내에서 살고 싶지도 않았는지 태종이 즉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강산으로 훌쩍 떠나버리고는 함경도 안변까지 행차했다. 이후에도 태조는 자주 순행에 나섰고 점차 그 횟수는 늘어났다. 심지어 태종이 배웅을 나오는 것도 싫었는지 순행을 나갈 때면 일부러 항상 한밤중에 출발하기도 하였다.

특히 태조는 소요산에 순행 나가는 것을 매우 좋아했는데, 이에 태조는 소요산에 아예 행궁을 지어놓고 그곳에 거주하며 돌아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오명을 씻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던 태종의 입장에선 체면이 말도 안 되게 구겨져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를 강제로 끌고 올수도 없으니 매우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소요산에 자주 행차하여 태조를 직접 만나는 것 뿐 이었다. 이후 태종은 수차례나 소요산 행궁으로 행차하였으며, 여의치 않을 때는 태조와 친했던 대신들을 보내 환궁을 건의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태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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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태조와 태종의 관계는 계속 좋지 못했는데, 태종 2년 11월 5일, 드디어 일이 하나 터져버렸다. 그것은 함경도 안변부사 조사의가 신덕왕후의 복수를 하겠다며 난을 일으킨 것이다. 반란이 일어난 당일, 태조가 느닷없이 고향으로 가서 조상들의 묘를 참배하겠다며 바로 그 곳으로 떠났다. 그래서 이에 대해 태조가 조사의를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게 했다는 추측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북면에 별다른 기반이 없었던 조사의가 무려 7,000명의 군사를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뒷 배경이 없는 상태에서는 가능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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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태조는 마지막 힘을 모아 증오했던 아들 태종과 맞서려고 했던 것 같지만, 얼마 안가 결국 반란은 진압되었다. 태조는 조사의의 난이 실패하자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쓸쓸히 환궁했다. 그리고 이후 그는 여전히 순행 길을 이어나갔지만, 이전처럼 돌발행동이나 발언은 일체 하지 않았으며, 아예 술과 고기를 끊고 불교에만 매진했다. 그리고 태조는 태종 8년 5월 24일,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아들 태종 이방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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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0:53
■ 이방원 VS 이성계 2편

■ 이방원 VS 이성계 2편

이성계를 가슴 아프게 만든 것은 힘을 잃은 자신의 처지가 아닌, 가족들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일 것이다. 사랑했던 아내 신덕왕후는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병으로 사망하였고, 그녀 사이에서 낳은 2명의 아들들은 모두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했다. 또한 넷째 이방간은 친동생인 이방원과 권력다툼 끝에 겨우 목숨만 건져 유배 보내졌고, 둘째 이방과와 셋째 이방의는 이방원의 눈치를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더군다나 아끼던 사위 이제는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맏딸마저 출가(出家)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태조는 사실상 모든 가족을 잃어버린 셈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이방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조는 점점 이방원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태조는 이방원의 얼굴조차 보기 싫었는지, 자주 외출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때 그는 주로 오대산이나 금강산 등과 같은 유명한 산과 이름난 절을 순행하며 슬픈 마음을 달랬는데, 이를 계기로 불교에 매진했던 것이고, 이후 태조는 옛 기억에 애정이 남아 있었는지, 번번이 개경으로 환도하여 죽은 이방번의 옛 집에서 살겠다고 고집을 피웠다고 한다. 또한 유배 간 이방간을 다시 불러올 것을 명령하기도 하였는데, 이방원에 의해 매번 좌절되자, 이방원에 대한 증오 역시 점점 높아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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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태조의 이러한 행동들은 이방원의 입장에선 상당히 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는 훗날 형인 정종에게 양위를 받아 태종으로 즉위하고, 태조가 태상왕이 되었을 때도 여전했다. 왜냐하면 동생을 죽이고 형을 내쫓고, 아버지를 구박하는 불효자라는 여론이 점차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상당히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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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태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데, 먼저 신료들 앞에서 이에 대해 해명을 함과 동시에 불효자라는 오명을 씻기 위하여 매일 태조에게 문안인사를 드렸고, 성대한 잔치도 열었으며, 본인은 불교를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태조를 위해 불교행사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또한 태조가 외출을 나갔다가 돌아올 때면 직접 마중을 나가기도 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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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0:54
■ 이방원 VS 이성계 1편

■ 이방원 VS 이성계 1편

‘제 1차 왕자의 난’은 성공적으로 끝이 나, 이방원의 가장 큰 라이벌이었던 정도전이 사망했고, 이복동생인 이방번과 세자 이방석도 모두 죽었다. 더군다나 이방원은 태조와 함께 조선을 건국했던 개국공신들은 물론이고 조정 대다수 신료들의 지지까지 받게 되었으니, 그는 왕은 아니었지만 왕에 버금가는 조선의 실권자가 되었다.

한편, 태조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이 모든 결과에 대해 분기탱천하였다. 그가 가장 아끼던 신덕왕후 소생의 두 아들과 사위가 이방원에게 살해당했고, 개국공신이자 그의 오랜 친구였던 정도전마저 죽었다. 또한 자신에게 충성을 바쳤던 개국 공신들 대다수가 이방원의 편으로 넘어가버린 이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이로 인해 태조는 날이 갈수록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만 갔다. 이미 조정은 이방원의 세상이 되어버린 마당에 그는 더 이상 왕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싫었는지, 정변이 시작된 지 10일 뒤인 9월 5일, 결국 세자 이방과에게 양위할 뜻을 밝혔고, 자신은 상왕으로 물러났다. 은퇴한 태조는 갑자기 종교에 심취하여 불교에 빠져들기 시작하여 불교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남다른 열정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이방원은 태조가 불교에 빠져든 것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태조가 살아있을 동안은 어느 정도 불교를 묵인하였지만, 태조가 죽자마자 곧바로 불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차 왕자의 난’으로 심란했던 이성계를 또 다시 분노하게 하는 사건이 하나 터지게 되는데, 바로 둘째 이방과가 정종으로 즉위한지 2년 후, 이방원의 형인 이방간이 이방원을 제거하고자 정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제 2차 왕자의 난)

물론 결과는 이방원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또 다시 자식들 간의 싸움을 봐야만 했던 태조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했던 일이었다. 제 2차 왕자의 난이 끝나고 이방원에게 패배한 이방간이 유배를 떠나게 되자, 태조는 마음은 더욱 우울해져갔다. 그러던 중, 엎친데 덮친격으로 맏딸인 경순공주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출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로써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개국 10년도 되지 않아 자식들의 싸움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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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0:55
■ 제 2차 왕자의 난

■ 제 2차 왕자의 난

1차 왕자의 난 당시 태조 이성계는 병석에 있었다. 이성계는 이방원의 쿠데타에 분노했지만 이미 병권을 빼앗겨 어쩔 수 없었다. 이성계는 방석과 방번을 살려준다는 이방원의 약속을 믿고 쿠데타를 용인했다. 그러나 이방원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방석과 방번을 함께 살해했다. 이 때 방석의 나이 17세였다.

제 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일파와 세자 방석을 제거한 이방원은 바로 세자의 자리를 탐하지는 않았다. 이방원은 장자승계의 법칙을 따르기 위해 난을 일으켰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정당화시키려 한다. 그래서 굳이 세자자리를 사양하고 야망이 없고 착하기만 한 둘째 형인 이방과에게 넘겨주었다. 이방원의 이러한 행위에는 자신이 야심이 없다는 것을 신료와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였다. 고려시대에 17살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기도 한 이방원답게 머리를 잘 썼고 기다릴 줄도 알았다. 아비를 치고 아우들을 살해한 주동자로써의 책임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태조이성계는 이방석과 무안군 이방번, 그리고 사위 흥안군 이제의 죽음에 분노하고 충격을 받아 모든 일에 흥미를 잃고 지내다가 왕자의 난 한 달 뒤에 이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주니 그가 곧 정종이다. 태조이성계는 상왕(上王)이 되고, 이방원은 정종이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세제(世弟)가 되어 실권을 잡고 뒤에서 모든 일을 처리한다.

이방원은 자기와 성정이 비슷하며 왕에 대한 야망이 있고 사병도 엇비슷하게 보유하고 있는 넷째 형 이방간과 백성들의 여론이 가장 경계의 대상이었다.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이방원은 어쩔 수 없이 친형 이방간과 전투를 치른다. 그리고 승리한다. 제 2차 왕자의 난이었다. 그리고 2년 후 정종이 바늘방석만 같았던 왕위에서 스스로 내려와 세제 이방원에게 왕위를 전위(傳位)하니, 그가 바로 조선의 3대 왕인 태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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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0:56
■ 1차 왕자의 난 3편

■ 1차 왕자의 난 3편

이방원은 이성계와 정도전이 위화도회군 이후 역성혁명을 계획할 때부터 직접 참여했기에 마음속에 큰 야망을 품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위로 4명의 형이 있었기에 왕이 될 엄두를 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생각지도 않게 장형인 이방우가 세자는 싫다며 낙향하고 그 뒤 1년 만에 죽자, 이방원은 왕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방원 위로는 3명의 형과 아래로는 친동생과 두 명의 이복동생, 그리고 무엇보다도 넘기 힘든 모든 군권과 실권을 가진 정도전이 버티고 있었다.

이방원은 방석이 세자가 되고도 6년 동안은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방원도 어느 정도 사병을 가지고 있었고 현존 왕의 친아들이자 개국공신이라는 명분은 있었다. 그러나 당시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정도전 일파가 마음만 먹으면 이방원을 역모로 몰아 쉽게 죽일 수도 있었다. 정도전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정도전은 이방원의 야망이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기가 방원을 살려두어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으리라 자신만만했다. 그리고 한 때 제자였고, 자기를 친삼촌처럼 따랐던 현재 왕의 친아들인 이방원의 목숨까지 빼앗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군권을 장악한 정도전은 명나라의 심한 간섭과 자신을 압송하라는 명의 요구에 화가 나 요동정벌을 주장했다. 태조 이성계로 부터 요동정벌을 허락받은 정도전은 그 명목으로 사병을 혁파하고 군권을 장악해 나가려 한다. 정도전의 요동정벌은 여러 의미가 있었지만 왕자들의 사병, 특히 이방원의 사병을 혁파하여 그들의 손발을 잘라 놓으려는 의미가 컸다.

이에 이방원은 배수진을 치고 죽기 살기로 정도전일파를 불시에 기습하여 반격을 가한다. 이방원을 경시하여 별 대비를 하지 않았던 정도전은 이방원 기습 한방에 살해되고 정도전의 꿈은 멀리 날아가 버린다. 쿠데타에 성공하여 정도전과 방석, 방번 이복동생들까지 살해한 이방원은 실권을 장악했으나 당장 왕이 되지는 않았다. 이것이 1차 왕자의 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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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0:57
■ 1차 왕자의 난 2편

■ 1차 왕자의 난 2편

이성계에게는 이방우 말고도 7명의 아들이 있었다. 큰아들 이방우의 죽음으로 7명의 아들 모두에게 세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특히 조선건국에 가장 공이 큰 다섯째 이방원은 자신이 세자가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방원에게 있어서 장자(長子)인 이방우는 넘을 수 없는 산이었지만, 이제 그 산이 제거되었으니 당연히 다음 차례는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방우 죽음 이후 세자 책봉 문제가 일어났을 때 배극렴, 조준 등이 이방원의 세자 책봉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때 이방원의 친모 한씨는 이미 죽고 없었고, 계비 강씨가 이성계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계비 강씨 신덕왕후의 의향에 따라 태조 이성계는 무안군 방번을 세자로 세우려고 내정까지 했다. 하지만 정도전, 남은 등 개국 공신들이 방번은 “성격이 광망(狂妄)하고 경솔하다.”고 반대하여 세자 자리를 친동생이자 막내인 방석에게 빼앗겼다.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개국공신들은 왕실 중심의 정부가 아니라 관료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강력한 힘을 보유하면서 삼십대 성인이 훨씬 넘어버린 이방원보다 나이가 가장 어린 방석을 후계자로 선정하려 했다. 신덕왕후 강씨도 자기의 두 아들 중 누가 왕이 되어도 별 상관없는 일이라 순순히 정도전 일파의 말에 따랐다.

그리하여 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방석은 방번의 연년생 아우로 태조의 여덟 째 막내아들이었다. 불과 11세밖에 안 된 나이로 조선의 왕세자로 책봉된 방석은 어머니 강씨의 보살핌과 정도전, 남은 등 개국 공신들의 지원에 힘입어 6년 동안 세자로서의 자질을 익히고 있었다. 그 6년은 이방원에게는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인고(忍苦)의 세월이었다. 이 시기에 정도전은 이방원을 얼마든지 제거 할 수 있었지만 정도전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이방원을 그냥 무시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이 넘치는 그 자신감이 결국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꼴이 되었다.

방석이 세자가 되고 나서 6년이 지나면서 방석 친모인 강씨가 죽고 태조마저 병석에 눕게 되자 세자의 배후 세력은 급속히 약화되었다. 이방원에게 다시 기회가 오고 있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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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0:58
■ 1차 왕자의 난 1편

■ 1차 왕자의 난 1편

이방우는 이성계의 첫 번째 아들로 이방원과는 13살 차이가 나는 아버지 같은 장형(長兄)이었다. 실제로도 이방원은 큰형 이방우를 아주 어려워했다. 이성계가 뛰어난 장군으로 고려에 공을 많이 세우고 고려정계로 진출한 이후 이방우도 이방원에 이어 과거에 급제해서 고려신하가 되었다.

이방우는 할아버지인 이자춘과 그 이전의 선조들이 고려인으로서 원의 신하였던 것을 많이 부끄러워 했다. 그래서 이방우는 고려의 더 충직한 신하가 되고자 했다. 이성계가 장자인 이방우를 세자로 세우려하자 이방우는 격렬하게 반발한다. 그리고 만약 자기를 세자로 세우면 왕이 되자마자 왕위를 다시 고려 왕씨에게 반납하겠다고 까지 극언을 한다. 이방우는 고려신하로서 고려왕조에 불충된 일을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선건국 직전과 건국초기는 토지개혁, 노비해방, 권문세가 타도 등 백성들이 바라는 개혁정책들이 줄을 이었다. 이방우가 진정 백성들을 생각했다면, 자신이 왕이 되어 백성들을 위해 더 개혁적인 정책을 풀어 가면 될 것이었다. 이방우는 백성에 대한 도리 보다 다 쓰러져가는 고려에 대한 충정만을 내세웠던 것이다.

이방우는 당시의 시세(時勢)를 전혀 읽지 못했다. 한 왕조에 대한 충정보다 더 큰 의리나 충정을 생각하지 못 할 정도로 이방우는 시야가 좁고 고지식하기만 했다. 조선이 건국되자 격렬하게 반대하던 이방우는 느닷없이 황해도 해주로 내려가 버린다. 이에 이성계는 한숨을 쉬며 이방우를 세자로 정하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이방우에게 자기 고향인 함흥에 정착하도록 해준다. 이방우는 함흥에서 자기 선조들이 고려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며 당시 몽고에서 전해져 온 새로운 술인 소주를 날마다 마시고 한탄하며 세월을 보내다 함흥에 온지 1년 만에 죽고 말았다.

이방우가 자살했다는 설도 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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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0:59
■ 이방원 2편

■ 이방원 2편

우리나라 역사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 중 한사람으로 태종 이방원을 꼽을 수 있다. 태종보다는 왕이 되기 전의 이름인 이방원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태종 이방원은 과단성과 무자비함 그리고 추진력과 정치력까지 함께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이방원은 25살 때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단숨에 제거함으로써 역성혁명을 완성시켰고, 조선 개국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이방원이 정몽주를 제거하지 않았다면 정몽주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에 의해 이성계와 정도전은 역습을 당해 조선건국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당시 신생국 명도 정몽주를 선호했고, 고려가 계속 유지되길 바라고 있었다. 또 정도전도 귀양가는 중이었고, 이성계는 낙마하여 병석에 누워있었다. 역성혁명 세력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역성혁명 반대파의 거두 정몽주를 단숨에 제거해버리는 과단성있고 무자비한 행동에 의해 상황은 곧 바로 역전되고 조선건국은 이루어 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로 이방원은 이성계와 정도전의 눈에서 벗어난다. 둘 다 이방원을 아주 위험한 인물로 경계하게 된 것이다. 이성계는 정도전이 없었다면 새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고, 이방원의 과단성이 없었다면 조선건국은 이루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도전은 멋진 혁명가나 개혁가일지는 몰라도 무자비하고 냉혹한 권력가는 아니었다. 그게 정도전과 이방원의 승부를 가리는 이유가 되었고 정도전을 죽음으로 이끈 이유이기도 했다.

제1차 왕자의 난 당시 모든 군권과 권력을 손에 쥐고 있던 정도전은 너무도 어이없이 이방원의 기습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방원은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거치고 왕위에 오른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한 왕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을 알면서도 왕실 족보를 정리하고, 외척과 공신 들을 과감히 제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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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00
■ 이방원 1편

■ 이방원 1편

이성계는 고려의 권문세가인 강씨 일족 출신인 강씨와 정략결혼을 하였는데, 이 강씨가 후에 세자로 책봉된 방석의 어머니 신덕왕후이다. 강씨는 이성계보다 20살가량 연하였고, 개경의 명문가 귀족 출신의 딸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성계는 첫 부인 한씨(韓氏)와의 사이에 이미 장성한 6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다. 그 중 다섯째가 이방원이다.

이방원은 1367년(공민왕 16)에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방원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이성계의 사랑을 받았다. 자라면서 유학 공부에도 심취해 문무를 겸비하였으며, 17세가 되던 1383년(우왕 9)에 문과에 급제했다. 이성계 가문에서 최초로 이방원이 형들을 제치고 고려의 과거시험에 합격한 것이었다. 이성계는 이방원의 과거 급제에 뛸 듯이 기뻐했다. 한미한 가문의 변방 촌놈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고려의 중앙귀족으로 신분상승 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이때까지도 이성계는 고려의 귀족이 되는 것이 희망이었지, 고려를 뒤엎고 조선을 건국하리라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이방원은 달랐다. 이방원은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스스로 익힌 무인 기질과 이성계가 생각하지도 못한 더 큰 야망을 가슴 속에 키우고 있었다.

한편, 고려를 뒤엎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역성혁명의 꿈을 키우던 정도전은 자기의 생각을 뒷받침해 줄 무력 즉 군대가 필요했다. 당시 상황으로서는 최영이 적격이기는 했지만, 최영은 권문세가 출신의 기득권세력이었고, 고려에 대한 충정이 맹목적이었으므로 정도전의 제안에 동조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정도전이 찾아낸 사람이 바로 이성계였다. 조선건국과정을 살펴보면 이성계는 정도전의 말을 철저히 따른다. 그리고 조선건국 이후에도 정도전이 하자는 대로 거의 다 한다.

그러나 이 관계를 산산이 부셔버린 사람이 이방원이었다. 이방원은 정도전을 아저씨라 부르며 스승으로 모시고 자랐다. 이방원의 야망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392년(공양왕 4)에 정적인 정몽주를 제거하면서 부터이다. 이성계가 함흥을 떠나 고려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때와 같은 나이 스물 다섯 살 때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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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01
■ 위대한 기록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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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기록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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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기록한 책이다. 1,707권 1,188 책(약 6,400만자)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이면서 조선시대의 정치, 외교, 경제, 군사, 법률, 통신, 종교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총망라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우수한 역사기록물이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일시에 편찬된 것이 아니라 국왕 사후에 임시로 실록청을 설치하고 전왕대의 실록을 편찬한 것이 대대로 축적되어 이루어진 역사서이다. 실록을 편찬할 때 이용하는 자료는 정부 각 기관의 문서들을 정리한 춘추관시정기(時政記), 전(前)왕이 재위할 때 사관들이 작성한 사초(史草),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의정부등록(議政府謄錄) 일성록(日省錄) 등의 정부 기관의 기록과 개인 문집들이었다.

특히 사초는 사관(史官)이 국가의 모든 회의에 참여하여 보고들은 내용을 적은 것으로, 사관 이외에는 국왕조차도 볼 수 없게 하여 사관의 신분을 보장하고 기록의 객관성과 진실성을 확보하였다. 편찬이 완료된 실록은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에 1부씩 보관하였는데, 조선전기에는 서울에 있던 춘추관과 충주, 성주, 전주사고 등 4대 사고에 보관하였다.

그러나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전주사고본만 남았고, 이를 바탕으로 재출판 하여 춘추관, 태백산, 묘향산, 마니산, 오대산의 5대 사고에 보관하게 된다. 이후에도 보관처는 변동이 있다가 정족산(강화도), 태백산(경북 봉화), 적상산(전북 무주), 오대산(강원 평창)등 네 곳의 사고에 보관하였다. 그 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오대산본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거의 소실되었고, 현재 우리나라에는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이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한 왕조의 역사 기록으로는 가장 긴 시간에 걸쳐서 작성되었고, 가장 풍부하면서도 세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국왕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조선인들의 일상적인 생활상을 자세히 보여 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활자로 인쇄되었고, 보관과 관리에도 만전을 기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여러 번의 큰 전쟁을 거치면서도 보전되어 온 조선왕조실록은 1973년 12월 31일에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10월 1일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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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02
■ 정도전 개혁의 한계

■ 정도전 개혁의 한계

정도전은 개국의 중요한 일 중 하나로, 도읍을 새로 정하려 물색하다가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했다(1394). 풍수지리에도 능했던 정도전은 한양을 둘러보고 단숨에 간파했다. 당시 한양은 한반도의 한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거대한 한강을 끼고 있어 교통도 편리했고, 산으로 둘러싸여 방어에도 유리하였다.

정도전이 아닌 무학대사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했다는 설도 있으나, 무학대사는 지금의 계룡산 부근을 더 선호했다는 말도 전해져 내려온다. 어쨌든 당시 상황으로서는 정도전의 동의가 없었다면 한양이 도읍지로 결정되지 못했을 것이다. 정도전은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하고 도성을 지으면서 4대문(大門)을 세웠는데,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유교적 덕목을 반영하여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이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경복궁, 근정전등 궁궐의 이름도 정도전이 손수 지었다. 한양은 이듬해 한성부로 이름이 바뀐다.

정도전의 개혁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개혁이었다. 그러나 당시도 기득권 세력은 강했다. 나라가 바뀌어 중앙 지배층 내에서는 큰 변화가 있었지만, 전체 지배층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정도전의 개혁 또한 실제로 제도를 운영하는 방안을 보면 소수 공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처음의 개혁의도와는 달리 조금 시간이 지나자 개혁 층 속에서도 부패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정도전이 개혁을 단행하려 했던 시기도 너무 짧았다. 조선을 건국하고 개혁을 시작한 지 7년 만에 정도전이 이방원에 의해 살해당함에 따라 정도전의 개혁도 끝이 나고 말았다.

우리 역사 발전으로 봤을 때도 안타까운 일이다. 정도전이 죽지 않고 그 개혁이 성공하여 유교민본주의 이념 아래 재상중심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물론 정도전이 죽은 뒤에 신흥사대부 개혁세력이었던 조준과 손을 잡은 태종 이방원에 의한 개혁도 외형상으로는 정도전 개혁과 비슷했지만 겉모습만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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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03
■ 정도전이 꿈꾼 이상理想정치

■ 정도전이 꿈꾼 이상(理想)정치

조선건국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 정도전과 이방원이었는데, 건국 후 왜 이방원에 의해 정도전은 잔인하게 살해 되었을까? 정도전이 죽고 난 뒤 사관(史官)은 그를 이렇게 평했다.

『개국할 즈음 가끔 취중에 중얼거리기를 “한 고조가 장량을 쓴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 고조를 썼도다!”라고 했다. 무릇 나라를 세울 적에 그의 꾀를 쓰지 않은 것이 없었다. 큰 업적을 이루어 진실로 으뜸의 공을 세웠다. 그러나 국량이 좁고 시기심이 많았으며, 또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해치고자 했고 묵은 감정을 꼭 갚으려 했다. 매양 임금에게 사람을 죽여 위엄을 세우라고 권했지만 임금은 모두 듣지 않았다.』 《태조실록》 권14, 7년 8월조

앞부분은 정도전의 행적을 나타낸 것이지만, 뒤의 인물평은 다른 역사 기록에 비추어 볼 때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이 분명하다. 태조실록은 정도전을 죽인 이방원이 태종이 되었을 때 쓰여진 것이니 사관이 태종의 비위를 맞추어 썼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관도 인정할 만큼 정도전의 건국 과정에서의 역할은 이성계를 넘어 설 만큼 절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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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이 꿈꾼 나라는 왕조체제를 갖추되 ‘왕’은 상징적 인물로 남아있고, 실질적인 운영은 재상들이 운영하는 재상총재제였다. 정도전은 자신이 지은 조선경국전에 자신의 건국의 이념을 제시하고 정책화하여 재상, 즉 신하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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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의 자질에는 어리석음도 있고 현명함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 같지 않으니, 재상은 국왕의 좋은 점은 순종하고 나쁜 점은 바로 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는 일은 막아서, 임금으로 하여금 대중의 경지에 들게 해야 한다』고 했다.

정도전의 주장은 지금으로 보면 유럽의 입헌군주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조선에는 왕이 재상을 임명하는 시스템이었으므로,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려는 왕 아래서는 정도전이 말하는 재상총재제는 별 의미가 없다. 정도전이 그런 한계를 몰랐을 리 없다. 그래서 정도전은 다루기 쉬운 나이 어린 방석을 세자로 세우고 이성계 사후 전권을 잡고 재상총재제의 기반을 닦으려고 했을 것이다. 정도전의 이상(理想)적인 생각은 기반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대를 너무 앞서 갔다. 그리하여 절대군주권자 이방원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 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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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05
■ 정도전의 시대 2편

■ 정도전의 시대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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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다른 방법을 모색하여 힘을 가지려고 했는데, 바로 자신이 직접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가지고 있는 힘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태조 2년, 직접 태조에게 말하여 이른바 진법훈련을 시행토록 하였다. ‘진법훈련’이란, 말 그대로 진법을 훈련시킨다는 것인데, 각 지방에 있는 군사들 중 뛰어난 인재를 뽑아 훈련시킨다는 것이었다. 당시 각 지방의 군사권은 공신들과 왕실 종친들에게 있었는데, 그들의 군사들 중 일부를 뽑아 ‘진법훈련’을 시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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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을 깊게 신뢰하던 태조의 입장에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고, 더군다나 태조 역시 공신들과 종친들이 지나치게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의흥삼군부의 수장으로 임명된 정도전은 진법훈련을 주도하면서 군사권을 손에 쥐는데 성공하였다. 정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전국의 군사권을 중군, 좌군, 우군 3군 체제로 변환하여 그 지휘권을 의흥삼군부에 귀속시켜 버렸다. 또한 군사 재판권까지 그가 수장으로 있는 의흥삼군부에서 가져감으로써 사실상 의흥삼군부가 전국의 군사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각 공신들과 종친들이 가지고 있던 사병들은 자연스럽게 불법적인 군대가 되어, 더 이상 공신과 종친들이 사병을 유지할 명분이 사라졌고, 이는 정도전이 공신과 종친들의 힘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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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태조 3년 5월 30일에 정도전은 직접 저술한 조선경국전을 태조에게 바쳤는데, 이 책은 국가 형성의 기본적인 틀과 6조의 관할 사무를 규정한 것이다. 조선 건국의 정당성과 그 기본 강령도 기재되어 있어, 태조는 매우 기뻐하며 정도전을 치하하고 후한 상을 내렸다. 더군다나 태조 3년에는 직접 한양으로 내려가 새로운 수도 건설을 총 감독하기도 하였다. 이쯤 되면 정도전은 조선에서 왕을 제외하면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정도로 자신의 입지가 절정에 다다른 상태가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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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도전의 입지가 높아질수록 그에게 불만을 품은 반대파들도 많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정치적 실권은 물론, 군사권까지 장악한 정도전을 두고 수많은 공신들과 종친들, 그리고 여러 신하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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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06
■ 정도전의 시대 1편

■ 정도전의 시대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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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의 일곱 번 째 아들인 이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자, 이방원은 엄청난 실망감과 분노에 휩싸였다. 만약 장자상속원칙에 따라 맏형인 이방우가 세자에 책봉되었다면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조선 건국과정에서 수많은 공을 세운 자신이 세자에 책봉되어야 함이 당연한데, 계모인 강씨 소생의 막내아들 이방석이 세자에 책봉되었으니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더구나 당시 세자로 책봉된 이방석의 나이는 겨우 11살이었다. 그러나 이방원은 자신의 분노를 당장 표출하기보다는, 내색하지 않고 철저하게 숨기며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왜냐하면 당시 조선은 정도전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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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는 건국 초기 정도전, 남은, 조준 등 일부의 공신들을 철저히 신임했고, 이 중에서도 정도전에 대한 태조의 신뢰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정도전은 조준과 함께 고려사를 편찬하는가 하면,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알리는 표문을 가지고 직접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정도전은 정치적 능력은 물론이고, 야망도 대단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정도전은 이미 태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태조는 이미 나이가 들었고, 세자 책봉과정에서 이방석을 지지하면서 이방원과 갈등을 빚게 된 상황이라, 만약 태조가 갑자기 병석에 눕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신변이 상당히 위태롭게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도전은 자신의 세력을 뒷받침해줄 또 다른 힘, 즉 군사력이 필요했는데, 원래 무관 출신이 아닌 그의 입장에선 그럴만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또한 당시 무관 출신이 아닌 이상 합법적으로 군사력을 키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반면에 그를 제외한 무관 출신의 공신들이나 이방원과 같은 왕실 종친들은 이미 사병(私兵)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병들은 국가가 아닌 자신의 주인에게만 충성을 바쳤기 때문에, 여차하면 그들의 사병이 정도전의 목을 칠 수 도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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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07
■ 골육상잔의 서막 2편

■ 골육상잔의 서막 2편

이방원은 아버지 태조를 가장 많이 닮은 인물이기도 했는데, 조선 건국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과단성이나 추진력, 야망은 물론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그의 성향은 오히려 아버지인 태조를 능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개국공신을 포함한 조선의 여러 신하들은 이방원을 꺼려하고 두려워하였으며, 아버지인 태조마저도 이방원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한편, 장남이 세자에 책봉되어야 한다는 원칙대로 한다면 이성계의 장남 이방우가 세자가 되어야 했지만, 이방우는 그 사람됨이 세자가 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방우를 제외한 태조의 아들들 중 가장 임금의 자질과 능력, 그리고 야망을 가지고 있는 이방원이야말로 가장 유력한 세자 후보였다.

이에 태조는 1392년 8월 20일, 공신인 배극렴, 정도전, 조준을 불러들여 세자 책봉에 관한 일을 비밀리에 논의하기 시작했다. 태조의 부름에 달려온 세 공신은 처음에는 나이와 그 공로를 따져 세자를 세울 것을 청했다. 그런데 나이로만 따지면 이방우가 세자가 되어야 하지만 이방우는 술먹기만 좋아하는 인물이라 세자로 책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반대로 공로를 따지면 이방원이 세자가 되어야 하지만 이는 태조가 꺼려하고 있었기에 공신들은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태조는 은근슬쩍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치는데, 그는 현(現) 부인인 강씨 소생의 아들 중에서 세자를 책봉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강씨 소생의 아들인 일곱째 이방번은 세자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인물이었으므로, 남은 것은 막내 이방석 밖에 없었다. 한참동안의 격론이 벌어진 끝에 결국 지친 태조는 타협안을 내게 되는데, 강씨의 소생이자 막내아들인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고 한 것이었다. 이에 태조의 눈치를 보며 장자책봉을 주장하던 공신 배극렴이 적극 찬성하고 나섰다.

태조가 타협안을 제시하고, 배극렴과 정도전까지 동조하고 나서자 이방원의 책봉을 주장하던 조준은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게 되었고, 결국 막내아들 이방석이 1392년 8월 20일, 조선의 첫 번째 세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이방원은 그 누구보다도 크게 실망하고 분노하게 된다. 이로 인해 왕위를 두고 형제끼리 피를 튀기며 싸우는 골육상잔의 서막이 열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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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08
■ 골육상잔의 서막 1편

■ 골육상잔의 서막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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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7월 17일, 이성계는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을 몰아내고 임금의 자리에 올라앉는다. 이른바 역성혁명이 일어나 약 500년간 존속되었던 고려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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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된 태조는 새로운 국가 체제 정비를 시작하였는데, 단 11일 만에 양반의 품계를 정하여 새 왕조에 어울리는 관제를 새로 편성하였다. 또한 태조는 조선이 개국되는 데에 큰 공을 세운 정도전과 조준, 이지란, 남은, 배극렴 등 44인을 개국공신으로 삼아 그 공로를 치하했으며, 옛 고려 왕조의 흔적을 없애고자 궁중에 남아있던 왕씨들을 지방으로 모두 내쫓았다. 더불어 신왕조 개국에 반대했던 온건파 사대부인 이색, 우현보 등을 귀향 보내게 된다. 유교정치 이념 속에 불교와 관련된 국가행사인 팔관회와 연등회는 폐지되었으며, 관리의 임명과 수령의 임기에 대한 규정을 마련했고,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태조의 즉위를 알렸다.

더불어 그는 둘째 부인 강씨를 현비(顯妃)로 삼아 왕실의 맏어른 역할을 하게 하고, 맏아들 이방우를 진안군으로, 둘째 이방과를 영안군으로, 셋째 이방의는 익안군으로, 넷째 이방간은 희안군으로, 다섯째 이방원은 정안군으로 봉하여 새로운 왕실을 만들었다. (여기까지가 이성계의 첫째 부인인 한씨 소생의 아들) 또한 일곱째 아들 이방번을 무안군으로 삼았으며, 막내아들 이방석은 아직 나이가 어려 봉직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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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장 중요한 세자 책봉 문제가 남아있었다. 여기서 세자로 책봉된다는 것은 차기(次期) 임금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통은 장남을 세자에 책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첫째 부인인 한씨는 이미 사망한지 오래였기 때문에, 이성계는 아무래도 현(現) 부인인 강씨 소생의 자식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줄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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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처소생으로 태조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이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조선이 건국되기까지 태조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이방원이었고, 그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조선 건국의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정몽주를 살해하는 등 이성계가 임금으로 추대 받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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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09
■ 정몽주 2편

■ 정몽주 2편

정몽주는 현실개혁을 도모하되 고려왕조를 유지하면서 고려를 유교국가로 만들어 가려했다. 하지만, 정몽주 쪽에서 보기에 이성계의 세력은 너무 커지고 있었고, 더욱이 정도전, 조준, 남은 등의 신진 세력들은 이성계의 명망을 등에 업고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새 왕조 개창을 추진하려 하였던 것이다. 정몽주는 먼저 손을 쓰기로 했다. 정몽주에게 그런 기회가 왔다. 1392년 세자가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성계는 세자를 마중하러 황주로 가는 길에 해주에서 사냥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부상을 당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정몽주는 천재일우의 기회로 여겨, 정도전을 비롯하여 조준, 남은 등을 탄핵하여 귀양 보내고, 이어서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때 반전이 일어난다. 이방원이 나선 것이다. 이방원은 부상당한 이성계를 개경으로 모시고 와서, 이성계의 동생 이화, 사위 이제 등 휘하 장수들에게 외쳤다.

“이씨가 왕실에 충성하는 것은 온 나라 사람이 다 아는 바이다. 지금 정몽주가 모함을 하여 악명을 덮어씌우니 후세에 누가 이를 알아 분별하리요.” 그러고는 정몽주 제거를 결정하였다.

이성계가 개경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정몽주는 이성계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이성계의 집으로 찾아 갔다. 정몽주를 맞은 이성계는 전과 전혀 다름없이 친절하게 정몽주를 맞이하며 대해 주었다. 이때 이방원이 정몽주의 심중을 떠보려고 ‘하여가’를 읇자, 정몽주는 ‘단심가’로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정몽주가 이성계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간다고 하자, 이방원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조영규 등 장사 대 여섯 사람을 급히 보내 선죽교에서 그를 때려 죽였다.

이때 이성계가 정몽주 제거에 동조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공식 역사서에 이성계는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인 것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며 정몽주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나온다.

정몽주는 역적으로 몰려 목은 저자에 내 걸리고, 남은 정몽주의 세력들도 모두 제거 됐다. 다시 권력의 핵으로 복귀한 정도전은 이성계를 떠 받들고 급진적 개혁을 단행하고, 최고 실세로서 권력을 누리면서 기어코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건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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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10
■ 정몽주 1편

■ 정몽주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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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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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이같이 얽혀 천년만년 누려보세 《하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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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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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단심가》
",

새 왕조 개창에 끝까지 반대하며 버티던 정몽주를 구슬리기 위해 이방원이 정몽주와 마주 앉아 술 한 잔을 나누며 《하여가》를 읊자, 정몽주가 《단심가》를 읊었다고 하는 일화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정몽주는 57세이고 이방원은 25세인데, 30살 넘게 나이 차가 나는 두 사람이 서로 마주 앉아 저런 시조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는 것은 사실여부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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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에서 보면 정몽주가 이방원 앞에서 단심가를 읊고 죽임을 당할 줄 미리 알고, 선죽교를 지나기 직전 주막에서 쉬다가 다시 말에 오르면서 말을 거꾸로 말을 탔다고 한다. 이런 야사와 함께 이 시조들도 정몽주가 죽은 후에 후세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고려사’ 등 공식 역사서에는 이 시조들이 나오지 않고, 청구영언이라는 시조 모음집이나 정몽주가 죽은 뒤에 나온 포은집에만 나온다.
",

정몽주는 고려를 개혁하여 유교국가로 만들어 가는 데는 정도전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고려를 멸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데는 반대했다. 즉 정몽주는 고려 왕조를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천천히 개혁을 해 나가고자 한 온건파 사대부이고, 정도전은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워야 한다는 혁명파(급진파) 사대부였다.

정도전은 정몽주를 이색 문하에서 같이 동문수학 한 존경하는 친구이자 선배로 깍듯이 대우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서로 존경하고 의지하는 처지였다. 정도전과 이성계는 어떻게 해서든지 정몽주를 설득하여 함께 가고 싶었고, 조선 건국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정몽주 등 온건파 사대부들을 설득하려 하였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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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12
■ 조선의 헌법 경국대전

■ 조선의 헌법 <경국대전>

통치의 완성은 법률의 완성이다. 조선을 다스리는 기본법으로 ‘경국대전’이 만들어졌다. 법전에는 한 나라의 모든 것들이 담겨져 있는데, ‘경국대전’은 보물 제152호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조선의 법률이 담겨져 있다.

‘경국대전’은 조선이 건국된 지 약 100년 후인 성종 때 완성되어 반포되었다. 그렇다고 ‘경국대전’이 100년에 걸쳐 계속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조선의 법전은 정도전이 만든 <조선경국전><경제문감>을 시작으로, 태종 때는 <속육전> 세종 때는<육전등록> 등 임금이 바뀌면서 법전들도 계속 만들어지고 보완되었다. 그러다가 세종의 둘째 아들인 세조가 지금까지 만들어진 여러 법전을 분석하고 연구하여 항구적으로 쓸 수 있는 법전 편찬사업에 착수하였다. 역대 어느 임금보다 법전 편찬사업에 온 힘을 기울인 세조의 노력으로 ‘경국대전’은 그 뼈대를 잡아갔다.

조카인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자신의 정치적 약점 때문에 더욱 더 새로운 법전 편찬사업에 몰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세조는 ‘경국대전’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손자인 성종 때(1470년) 완성되었다. 이로써 조선은 독자적인 법전을 가진 나라가 되었고 ‘경국대전’은 그 후 400년간 조선을 통치하는 기본법으로 자리 잡았다.

‘경국대전’은 오늘날 적용해도 무방할 만큼 합리적인 법 조항들이 들어 있다. 예를 들면 살인사건의 경우 1차 판결은 관찰사가, 2차 판결은 오늘날 법무부 격인 형조, 그리고 마지막 3차는 임금과 대신들이 최종 판결을 하는 오늘날의 3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또한 아무리 중죄인이라도 15세 이하와 70세 이상은 구속을 하지 않았고, 곤장을 칠 때도 1회 30대 이상은 때리지 못하게 했다. 또한 출산휴가와 동시에 남편에게도 15일 휴가를 주어 아내의 출산을 돕게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경국대전’에는 관리들에 대한 처벌 조항이 매우 많다. 관리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조선왕조의 기본 통치이념이 잘 반영된 것이다.

법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가장 잘 반영한다고 한다. ‘경국대전’은 최고 권력자인 임금이 지켜야 할 법부터 힘없는 한 명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법까지 두루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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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13
미조이모未兆易謀 - 조짐이 있기 전에 계획해야 일이 쉽다, 화근의 싹을 미리 잘라야 한다.

미조이모(未兆易謀) - 조짐이 있기 전에 계획해야 일이 쉽다, 화근의 싹을 미리 잘라야 한다.

아닐 미(木/1) 억조 조(儿/4) 쉬울 이(日/4) 꾀 모(言/9)

큰 사건이나 재난이 닥칠 때 훨씬 전부터 조짐이 보인다. 대부분 알아채지 못해 스쳐 지나가고 일을 처리한 뒤 원인을 규명하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조그만 움직임으로 결과를 아는 예지력은 나뭇잎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아는 一葉知秋(일엽지추)의 고승이나, 폭군 紂王(주왕)의 상아 젓가락을 보고 殷(은)의 망국을 알아차린 象箸玉杯(상저옥배)의 箕子(기자)같은 성인만 가진 것은 아니다.

거센 비바람이 닥칠 것을 대비하여 뽕나무 뿌리를 물어다가 둥지를 튼튼히 만드는 未雨綢繆(미우주무, 繆는 얽을 무)의 현명한 새들도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행차 뒤에 나팔’을 불고도,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기는 미룬다.

無爲自然(무위자연)의 老子(노자)는 조짐이 있기 전에(未兆) 미리 계획을 세우면 쉽다(易謀)고 말한다. 그가 남겼다고 하는 ‘道德經(도덕경)’의 제64장 작은 일부터 지켜야 한다는 守微章(수미장)에 실려 있다. 내용을 보자.

‘편안할 때에 위태한 것을 잊지 않으면 보전하기가 쉽고(其安易持/ 기안이지), 아직 조짐이 나타나기 전에 미리 대책을 세우면 일하기가 쉽다(其未兆易謀/ 기미조이모).’ 그러면서 ‘취약한 것은 깨뜨리기 쉽고 미세한 것은 흩어지기 쉬우니(其脆易泮 其微易散/ 기취이반 기미이산)’ 어려운 일이 닥치기 전에 사전에 조치해야 쉽다는 가르침이다.

뒷부분에 잘 알려진 명구가 이어진다. ‘아름드리나무도 붓털 같은 싹에서 나왔고(合抱之木 生於毫末/ 합포지목 생어호말), 구층의 높은 건물도 한 줌의 흙이 쌓인 것이며(九層之臺 起於累土/ 구층지대 기어루토), 천리 먼 길도 한 발짝부터 시작한다(千里之行 始於足下/ 천리지행 시어족하).’ 큰일도 처음의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니 시작이 중요하다.

노자의 사상을 비유 해설한 ‘韓非子(한비자)’의 喩老(유로)에도 ‘어려운 것을 도모할 때는 쉬운 것부터 시작하고, 큰 것을 하고자 할 때는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圖難於其易也 爲大於其細也/ 도난어기역야 위대어기세야)’고 했다. 큰 둑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는 堤潰蟻穴(제궤의혈)이 따르는 성어다.

우리는 예사로 악의 근원을 뿌리 뽑아야 한다며 拔本塞源(발본색원)을 남발한다. 조그만 낌새를 알고 사전에 막으면 낙원이 됐을 텐데, 보통사람들은 조짐도 모르고 약간 이상해도 미루고 무시하다 대형 사고를 맞는다. 그런 연후에 다시 대책을 세운다며 부산을 떨다가 언제 그랬느냐며 싹 잊어 人災(인재)는 되풀이된다.

자그마한 낌새를 알아채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불여튼튼’이다. 한비자의 경구를 더 보자.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좀벌레가 파먹어서이고(木之折也必通蠹/ 목지절야필통두),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반드시 틈을 통해서이다(牆之壞也必通隙/ 장지괴야필통극).’ 蠹는 좀 두. 亡徵(망징)편에 나온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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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14
반근착절盤根錯節 – 구부러진 나무뿌리와 얼크러진 마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

반근착절(盤根錯節) – 구부러진 나무뿌리와 얼크러진 마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

소반 반(皿/10) 뿌리 근(木/6) 어긋날 착(金/8) 마디 절(竹/9)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혀 있는 것이 葛藤(갈등)이다.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다르면 서로 으르렁거린다. 이와 비슷하게 둥그렇게 서린 나무뿌리(盤根)와 얼크러진 마디(錯節)란 뜻의 성어도 있다. 소반 盤(반)에는 굽다, 둥그렇게 감긴 모양 서리다란 뜻도 있다. 줄여서 盤錯(반착) 또는 槃根錯節(반근착절, 槃은 쟁반 반)이라 쓰기도 한다.

갈등이 적대시하거나 충돌할 정도로 악화된 상태라면 이 말은 일이 복잡하게 얽혀 처리가 곤란한 사건이나 그로 인한 고통을 의미한다. 거기에서 세력이 깊이 뿌리박고 있어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중국 後漢(후한, 서기 25~220)의 6대 安帝(안제) 때 虞詡(우후, 詡는 자랑할 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강직한 성품으로 어릴 때부터 학업에 힘썼고 효행도 지극해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를 위해 관직을 사양할 정도였다. 할머니의 사후 주위의 천거로 郎中(낭중)의 벼슬에 나가게 됐다.

앞서 5대 殤帝(상제)는 출생 후 100여 일만에 즉위하였다가 8개월 만에 죽고 안제도 13세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외척인 鄧騭(등즐, 騭은 수말 즐)이 정사를 좌우했다. 그 무렵 이민족이 국경지대에 있는 幷州(병주)와 涼州(양주)를 침입해 오자 국비부족을 이유로 등질이 양주를 포기하려고 했다.

이에 우후가 나서 장군이 나오고, 재상이 나오는 땅을 버리면 안 된다고 주장하여 맞서자 등즐의 미움을 샀다. 얼마 뒤 朝歌(조가)라는 지역에서 민란이 일어나 태수가 살해되는 일이 생겨 등즐이 보복으로 우후를 그곳 군수로 파견했다.

사지로 가는 우후를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이 모였다. 우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태평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구부러진 뿌리와 뒤틀린 옹이마디를 만나지 않고서야 어찌 날카로운 칼날의 진가를 알 수 있겠는가(不遇槃根錯節 何以別利器乎/ 불우반근착절 하이별리기호)?’ 험지에 가서야 진가를 발휘한다는 이야기였다. 과연 우후는 민란을 깨끗이 수습하고 역량을 인정받았다. ‘後漢書(후한서)’ 우후전에 나온다.

세상사에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는 곳이 없겠지만 항상 시끄러운 곳이 정치판이다. 정권을 잡는 것이 존재 이유인 정당이라 이해할 만하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산적한 민생을 두고 싸움만 한다고 여긴다. 협상과 양보는 얽힌 뿌리와 가지를 헤치는데 도움이 되련만 그것이 좀처럼 어렵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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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15
소중유도笑中有刀 - 웃음 속에 칼이 있다, 겉으로 웃으며 속으로 해치다.

소중유도(笑中有刀) - 웃음 속에 칼이 있다, 겉으로 웃으며 속으로 해치다.

웃음 소(竹/4) 가운데 중(丨/3) 있을 유(月/2) 칼 도(刀/0)

말과 행동이 하나로 들어맞는 言行一致(언행일치)를 이상으로 생각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은 연유인지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속담이 생겼겠다. 얼굴은 험상궂게 생겼어도 마음은 천사인 사람들이 속상해 하면서 ‘까마귀가 검기로 마음도 검겠나’고 항의할 일이다.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교훈인데 그럼에도 실천은 어려워 따끔한 말이 많이 생겼다. ‘속 각각 말 각각’에서부터 하는 말에 악의가 들어있는 경우는 ‘속에 뼈 있는 소리’라 했다. 악의 정도가 아니라 해칠 마음이 있을 때는 ‘웃음 속에(笑中) 칼이 있다(有刀)’고 한다. 그대로 번역한 속담성어인 듯해도 유래가 있다.

중국에서 악명을 떨치는 간신이 많은 중에 李義府(이의부)는 唐(당)나라 초기의 대표적인 아첨배였다. 그는 미천한 집안에서 났어도 열심히 학문에 정진했고 문장력도 좋아 과거를 통해 등용됐다. 이의부는 웃으면서 겸손하게 사람을 대하지만 속에 칼을 감췄다는 笑裏藏刀(소리장도)의 음흉함이 있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에겐 가차 없이 보복을 가해 사나운 살쾡이 李猫(이묘)라 불릴 정도였다. 2대 太宗(태종)에 아첨으로 신임을 받고 3대 高宗(고종)이 선왕의 후궁이었던 武則天(무측천)을 왕후로 들일 때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높은 벼슬에 올랐다.

이의부가 절세의 여죄수를 빼돌려 첩으로 삼으려다 발각된 일이 있었다. 두려움에 옥리가 자살했는데 감찰하던 王義方(왕의방)이 주범 이의부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청했으나 신임하던 고종에 의해 오히려 외지로 쫓겨났다. 안하무인이 된 이의부는 더욱 매관매직에 힘써 거금을 긁어모았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의부의 웃음 속엔 칼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故時人言 義府笑中有刀/ 고시인언 의부소중유도).’ ‘舊唐書(구당서)’의 열전에 교묘한 수법을 말한 내용이다. 칼보다 더 큰 검을 숨긴 간신도 있다. 당 玄宗(현종)의 신임으로 날뛴 李林甫(이임보)다. 정적을 제거할 때는 한껏 상대방을 추어세운 다음 뒤통수를 치는 口蜜腹劍(구밀복검)의 창시자였다.

이런 간신배들의 수법을 마음속으로 좋지 않게 생각하면서 보통사람들도 겉으로만 좋은 것처럼 꾸미는 경우가 많다고 오래전부터 믿어왔다. 지위의 높고 낮음은 관계없이 자주 보는 일이다. 보는 앞에서는 굽실거리다 돌아서면 욕을 해대는 面從腹背(면종복배)의 사람들이다. 이보다 더 분통터지게 하는 높은 사람들도 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정의를 위한다는 지도급 저명인사는 알고 보면 시정잡배보다 더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난다.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파는 懸羊頭 賣狗肉(현양두 매구육)이 이들을 말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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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16
문도어맹問道於盲 – 맹인에게 길을 묻다.

문도어맹(問道於盲) – 맹인에게 길을 묻다.

물을 문(口/8) 길 도(辶/9) 어조사 어(方/4) 소경 맹(目/3)

아는 길도 물어 가랬다. 잘 아는 일도 세심하게 주의를 한다. 하물며 자신이 모르는 것은 당연히 물어야 한다. 물음은 배움의 시초이며 하나도 묻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모른다는 격언도 있다. 물어보는 것을 누구에게나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不恥下問(불치하문)이라 했다. 어려운 글을 술술 읽은 주인이라도 농사에 대해서는 모를 수밖에 없어 머슴에게 묻는다.

잘 아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耕當問奴(경당문노)다. 앞을 못 보는 장애인에게 길을 묻는다면 길을 알 수가 없다. 효과가 없거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물어보는 어리석은 태도를 비유하는 말이다.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소문을 캐어보는 借聽於聾(차청어롱)도 같은 뜻이다.

唐(당)나라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韓愈(한유, 768~824)는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의 첫손에 꼽힌다. 유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내치며 친구인 柳宗元(유종원)과 함께 古文(고문) 부흥에 힘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한유는 사회의 여러 폐단에 대해 논문이나 서신을 통해 날카로운 의견을 제시하여 다수의 문인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9대 德宗(덕종)때인 802년 陳商(진상)이란 젊은 문객으로부터 편지와 시 작품을 받고 답장을 쓴 것이 ‘答陳生書(답진생서)’다. 후일 진사에 급제하게 되는 젊은 학자에게 답하면서 한유는 질문에 대답할만한 사람이 못되는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 어리석다고 했다.

대학자인 한유가 한껏 겸손하게 말하는 부분을 보자. ‘이는 이른바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소리를 구하고 눈 먼 사람에게 길을 구하는 것입니다. 비록 청이 간절하며 부지런히 가르침을 받으려 하지만 답을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是所謂借聽於聾 求道於盲 雖其請之勤勤 教之云云 未有見其得者也/ 시소위차청어롱 구도어맹 수기청지근근 교지운운 미유견기득자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학자는 내면의 어질고 의로운 마음을 확충하는 것이 우선이며 출세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고 있다.

오늘날같이 인터넷으로 쉽게 지식을 찾는 시대에도 각 분야의 전문가는 숱하다. 그러니 한 문제를 깊이 알기 위해서는 어디에, 누구에 의견을 구하는 것이 좋은가를 아는 것이 힘이다. 여러 방면에 얼치기로 많이 안다고 믿고 일을 맡기다가 망치는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합당한 전문가를 잘 찾아 의견을 들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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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18
이정대화以靜待譁 - 고요히 하여 적이 시끄러워지기를 기다리다.

이정대화(以靜待譁) - 고요히 하여 적이 시끄러워지기를 기다리다.

써 이(人/3) 고요할 정(靑/8) 기다릴 대(彳/6) 지껄일 화(言/12)

중국의 뛰어난 병서 武經七書(무경칠서)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이 ‘孫子兵法(손자병법)’이다. 책을 저술한 孫武(손무)는 기원전 6세기 春秋時代(춘추시대) 여러 나라에서 활약한 전략가다. 병서를 모르더라도 일상에 자주 쓰는 知彼知己(지피지기)가 손자에게서 나왔다고 대부분 안다. 그 뒤의 百戰不殆(백전불태)와 함께 무슨 일이든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그르치지 않는다는 뜻의 좋은 말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지만 살벌한 전쟁판에서 피할 수 없을 땐 적을 알고 싸워야 위태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아군의 태세를 고요하게 가다듬어(以靜) 적이 시끄러워지기를 기다린다(待譁)는 것도 심리전으로 물리치는 방법이 된다.

싸움이 나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니 기필코 이겨야 하고 적을 속이는 것도 불사해야 한다고 병법에선 강조한다. 바로 전쟁판에서는 속임수도 꺼리지 않는 兵不厭詐(병불염사), 속이는 계책인 詭道(궤도)가 상수가 된다.

13편이 있는 이 책의 첫 부분부터 능력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能而示之不能/ 능이시지불능), 먼 곳을 노리면서도 적에게는 가까운 곳을 노리는 것처럼(遠而示之近/ 원이시지근) 등등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심리전의 성어가 나오는 제9편 軍爭(군쟁)편은 적보다 유리한 위치를 이용하기 위한 전략을 모은 곳이다. 여기서도 적이 예측한 방향과 정반대로 속임수를 쓰면 전쟁을 이길 수 있다고 설명한다.

병사들의 사기를 다스리는 방법을 잘 알아야 강군이 될 수 있다며 예를 드는 부분에 성어가 나온다. 적이 사기가 왕성할 때를 피하고 나태해지고 쉬고 싶을 때 공격하는 것이 기를 다스리는 기본이라며 이어진다.

‘아군의 태세를 엄정하게 다스려 혼란스런 적을 상대하고(以治待亂/ 이치대란), 침착하게 가다듬어 시끄러운 적을 상대하니(以靜待譁/ 이정대화), 이것이 심리를 다루는 방법이다(此治心者也/ 차치심자야).’ 속으로 실력을 닦고 겉으로는 적에게 약한 척하여 때를 기다린다. 그러면서 피해야 할 점을 당부한다. ‘깃발 정렬된 군대를 맞지 말고 당당한 진지를 갖춘 적은 공격하지 말라(無邀正正之旗 勿擊堂堂之陣/ 무요정정지기 물격당당지진).’

생사가 걸린 전쟁판에서 정정당당해야 한다고 적의 사정을 보아주다간 어리석기 짝이 없다. 후세에 두고두고 손가락질 받는 宋襄之仁(송양지인)이 그것이다. 적이 전투할 준비가 안됐다고 기다려주며 여러 차례 유리할 때 군사를 내지 않아 결국 망했다.

경쟁이 치열한 오늘날이라도 상대를 꺾어야 자신이 잘 된다고 야비한 속임수를 써서는 지탄받는다. 떳떳한 방법으로 상대가 갈 길을 예측하여 이기는 것은 누구도 탓하지 못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기다리지 않고 중구난방 공격하다가 제 덫에 자주 걸리는 사람들이 명심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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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19
봉공여법奉公如法 - 공적인 일을 법대로 처리하다.

봉공여법(奉公如法) - 공적인 일을 법대로 처리하다.

받들 봉(大/5) 공평할 공(八/2) 같을 여(女/3) 법 법(氵/5)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다. 만인은 법 앞에서 공평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이제는 유명한 성어가 된 지강헌표 有錢無罪 無錢有罪(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계속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그만큼 공정하게 법이 집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法(법)의 옛 글자 灋(법)은 집행이 물 흐르듯(氵 去) 공평해야 하고, 유무죄를 아는 동물 해태 廌(치)가 들어있는 이유가 된다고 법 관련 성어를 말할 때마다 얘기했다. 作法自斃(작법자폐), 法不阿貴(법불아귀) 舞文弄法(무문농법) 등이다. 하지만 권력에 막히고 재력에 막혀 잘 흘러가지 못한 적이 없지 않았기에 유사한 말이 많이 전해졌다.

모든 사람에게 두루 관계되는 공적인 일(奉公)은 법에 의해 처리해야 한다(如法)는 이 말은 ‘史記(사기)’에서 나왔다. 廉頗藺相如(염파인상여, 頗는 자못 파, 藺은 골풀 린) 열전에 실렸다. 戰國時代(전국시대) 趙(조)나라의 두 명신은 刎頸之交(문경지교, 刎은 목자를 문, 頸은 목 경)란 말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성어의 주인공은 趙奢(조사)라는 명장이다. 그가 젊을 때 전답에 대한 조세 업무를 담당하던 하급관리로 있었다. 전국시대 말기 각 제후국에서 빈객을 거느리고 있던 귀족이 있었는데 조나라에선 平原君(평원군)이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자신의 지위를 믿고 평원군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 했다. 강직한 조사는 법에 따라 집사 아홉 명을 붙잡아 처단했다. 크게 화가 난 평원군이 해치려 하자 조사가 설득했다. 나라의 공자인 집에서 세금을 내지 않으면 국법은 무너지고 나라가 쇠약해지면 공자도 부를 누리지 못한다고 했다.

‘공과 같은 고귀한 분이 공적인 일을 법과 같이 받들면, 온 나라가 한 마음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라가 부강해집니다(以君之貴 奉公如法則上下平 上下平則國彊/ 이군지귀 봉공여법즉상하평 상하평즉국강).’ 평원군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조사를 현인이라며 왕에게 천거해 국방을 튼튼히 하는 장수를 맡겼다.

‘법의 날’은 1964년 처음 제정되었을 때는 노동절을 법의 날로 정한 세계추세에 따라 5월1일로 했다가 2003년부터 바뀌었다. 이 날은 근대적 사법제도를 도입하는 계기가 된 재판소구성법이 시행된 날로 국민의 준법정신을 높이고 법의 존엄성을 진작시키는 것이 목적이라 한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법을 집행함에 있어 조금도 사사로움이 개입되지 않는 만인 앞에 공평하다는 것을 체감하도록 하는 것이 앞서야 할 것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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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20
소국과민小國寡民 - 작은 나라 적은 백성, 욕심 없는 이상사회

소국과민(小國寡民) - 작은 나라 적은 백성, 욕심 없는 이상사회

작을 소(小/0) 나라 국(囗/8) 적을 과(宀/11) 백성 민(氏/1)

땅덩어리도 좁고(小國) 사는 인구도 적은(寡民) 그런 나라가 세력 다툼에 여념이 없는 세상에서 견디기는 어렵다. 강대국은 틈만 나면 작은 나라를 넘보고 땅을 넓히려 안간힘이다. 옛날 중국의 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부터 근대의 帝國主義(제국주의)까지 아니 오늘날까지도 호시탐탐한다.

그런데 작은 땅덩이와 적은 백성을 가진 나라가 참으로 살기 좋은 이상적인 형태라고 한 사람이 老子(노자)다. 나라가 크면 클수록 국민들의 욕심만 커져 오히려 불행을 가져온다고 봤다.

자연법칙에 따르고 인위적인 것을 배격하는 無爲自然(무위자연)은 道家(도가)의 근본개념이다. 도가의 창시자답게 노자는 나라도 문명의 발전이 없었던 때가 가장 평화롭고 살기 좋았던 때라고 했다. ‘道德經(도덕경)’ 제80장의 獨立章(독립장) 첫 부분에 이 말이 나온다. ‘나라는 작고 백성도 적어서 열 가지 백 가지 온갖 이기가 있어도 사용하지 않게 된다(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부용).

백성은 목숨이 중한 것을 알아 멀리 옮겨가는 일도 없고(使民重死而不遠徙/ 사민중사이부원사),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탈 일이 없고, 무기가 있어도 쓸 곳이 없다(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이렇게 작은 나라가 되면 자신들의 먹는 것과 입는 것을 최고로 여기며, 사는 곳을 최고로 여기게 된다. 또 이웃나라가 바라보이고 닭 울음과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지척에 있더라도 오갈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된다고 했다. 땅이 좁고 인가가 인접해 있다는 鷄犬相聞(계견상문)이란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

문명의 발달도 없고 갑옷과 무기도 소용이 없는 나라가 살기 좋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땅도 넘기고 인간도 줄여야 할까. 백성들의 살 근거가 되는 땅을 일부러 넘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일이다. 또 이웃나라를 쳐서 땅을 차지하고 국민을 노예로 삼았던 강국들은 욕심이 지나쳐 서로 원수가 됐다.

노자는 주거나 뺏거나 인위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초창기처럼 이웃과 잘 지내는 이상적인 나라라고 본 것이다. 지구촌에 하루도 총성이 들리지 않는 날이 드물다고 하니 이상사회는 까마득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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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21
점수청정點水蜻蜓 - 잠자리가 꼬리로 수면에 대다,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다.

점수청정(點水蜻蜓) - 잠자리가 꼬리로 수면에 대다,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다.

점 점(黑/5) 물 수(水/0) 잠자리 청(虫/8) 잠자리 정(虫/7)

갸름한 몸매에 날개를 펴 비상하는 곤충 잠자리는 어여쁜 여인에 자주 비유된다. 잘 차려입은 여자는 ‘잠자리 나는 듯하다’고 하고 ‘잠자리 날개 같다’고 하면 속이 비칠 만큼 매우 얇고 고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곁눈과 홑눈이 잘 발달하여 6m 앞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한자로 蜻蛉(청령)이나 靑娘子(청낭자), 또는 蜻蜓(청정)이라 하는데 유충이 물에 살기 때문에 물가 주변에 특히 많이 날면서 곤충을 잡아먹는다. 잠자리가 꼬리를 물속에 넣었다가 금방 날아오르는 모습을 蜻蜓點水(청정점수)라 하여 앞서 소개했다. 앞뒤를 바꾸어 쓴 이 성어도 같은 뜻으로 유래도 동일하다.

중국에서 가장 시가 왕성했던 唐(당)나라에서 詩仙(시선) 李白(이백)과 함께 우뚝한 詩聖(시성) 杜甫(두보)는 시운을 잘못 타고나 벼슬자리에 등용되지 못했다. 安史(안사)의 난으로 어지러운 속에서 시름에 겨워 있을 때 長安(장안)의 한 연못을 노래한 시가 ‘曲江(곡강)’이다.

인생 칠십 古稀(고희)라는 말이 나오는 시로 유명한데 두 번째 수에 나온다. ‘몇 푼 안 되는 술빚은 가는 곳마다 있기 마련이지만, 인생살이 칠십년은 예부터 드물었네(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 주채심상항처유 인생칠십고래희).’ 이 3, 4구의 바로 뒤에 수면 위로 분주히 날고 있는 잠자리가 등장한다.

‘꽃 사이로 호랑나비는 깊숙이 날아들고, 수면을 스치는 잠자리 떼 한가롭게 나는구나(穿花蛺蝶深深見 點水蜻蜓款款飛/ 천화협접심심견 점수청정관관비).’ 蛺은 호랑나비 협, 항목 款(관)은 느리다는 뜻이다. 마음으로는 여유가 없었더라도 그림 같은 풍광을 노래한 이 시를 宋(송)의 유학자 程頤(정이)는 혹평한다. 경치의 묘사에 아무런 교훈이 없어 ‘이런 것은 아무 쓸모없는 언어(如此則閒言語/ 여차즉한언어)’라고 한 것이다.

우리 고전에는 그러나 제법 많이 인용된다. ‘물 위에 나는 잠자리 얇은 날개 푸르고.. 궁녀의 허리 같은 버들이 바람을 띠었다(點水蜻蜓綃翼綠.. 宮女腰輕柳帶風/ 점수청정초익록 궁녀요경류대풍)’는 고려 李奎報(이규보)의 시구다. 조선 徐居正(서거정)은 ‘발 걷고 훈훈한 남풍 속에 종일 앉았노라니, 잠자리는 천천히 날고 나비는 깊이 보이네(簾捲南薰坐終日 蜻蜓款款蝶深深/ 염권남훈좌종일 청정관관접심심)’라 노래했다.

이처럼 그림 같은 연못 위의 잠자리 나는 모습이 사람마다 좋게 보이지는 않는 모양이다. ‘잠자리

부접대듯 한다’란 속담이 있듯 붙었다가 금방 떨어지는 것을 비유하여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것을 빗대기도 하니 말이다.

한 가지 일에 꾸준히 몰두해서 성공시키는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 한 가지 일을 벌여놓고 마무리하지 않으면 실패로 간주한다. 옛날과 달리 산업의 중심이 자고나면 휙휙 바뀌는 오늘은 한 우물만 파는 고집이 시대에 뒤떨어질 수도 있으니 상황을 잘 살필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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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23
천발견묘薦拔畎畝 - 농사짓는 사람 중에서 유능한 사람을 추천하다, 묻힌 인재를 찾아 등용하다.

천발견묘(薦拔畎畝) - 농사짓는 사람 중에서 유능한 사람을 추천하다, 묻힌 인재를 찾아 등용하다.

천거할 천(艹/13) 뽑을 발(扌/5) 밭도랑 견(田/4) 이랑 무, 묘(田/5)

어떤 조직이 뻗어 나가려면 수장만 뛰어나서는 안 된다. 조직원이 튼튼히 뒷받침돼야 발전한다. 훌륭한 인재를 발탁하기 위해 숱한 성어가 남은 것도 그만큼 인사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손님이 찾으면 식사 중이라도 열 번이나 일어난 一饋十起(일궤십기)의 禹王(우왕), 吐哺握髮(토포악발)의 周公(주공), 초옥을 세 번이나 찾아가 맞은 三顧草廬(삼고초려)의 劉備(유비) 등은 인재 초빙에 자주 인용된다.

초야에 묻힌 사람의 등용은 성벽을 쌓고 소를 키우다 중책을 맡게 된 傅說(부열)과 寗戚(영척)의 고사 版築飯牛(판축반우)가 있다. 또 밭고랑과 이랑(畎畝) 사이에서 농사짓고 있는 숨은 인재를 발탁하자(薦拔)고 한 좋은 말이 더 있다.

‘견무’라고도 읽는 밭고랑과 이랑 畎畝(견묘)가 농사의 대명사가 된 것은 孟子(맹자)에서 먼저 볼 수 있다. 중국 태고의 舜(순)임금이 堯(요)임금에 발탁될 때를 소개한 告子(고자) 하편에서다. ‘순임금은 밭에서 농사짓다 기용되었고, 부열은 성을 쌓다가 등용되었다(舜發於畎畝之中 傅說擧於版築之閒/ 순발어견묘지중 부열거어판축지한)’고 한 부분이다.

순임금은 악독한 계모에게도 효성을 다했는데 歷山(역산)이란 곳에서 농사짓다 선양받고 왕위에 오른 것을 가리켰다. 순임금은 널리 알려진 후 발탁된 경우지만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 중에서 숨은 인재를 널리 찾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사람은 조선 실학자 李瀷(이익, 1681~1763)이다.

호가 星湖(성호)인 그의 대표적 저술 ‘星湖僿說(성호사설, 僿는 잘게부술 사)’에서 사회개혁에 대한 폭넓은 주장을 한 人事門(인사문)에 실려 있다. 널리 인재를 발탁해야 한다는 薦拔畎畝(천발견묘)편을 따로 두었다.

높은 사람들은 지식이 많아 알 수 있다지만 ‘염소로 밭을 갈고 쌀을 심으면 싹이 난다(駕羊耕菑 種米生苗/ 가양경치 종미생묘)’고 할 정도로 백성들의 고통은 모른다고 질타한다. 그래서 파벌과 지위에 따라 등용하는 것을 깨뜨리고 ‘몸소 농사의 고통을 아는 자 가운데 재능과 덕망 있는 자(躬知稼穡艱難者 得以材徳/ 궁지가색간난자 득이재덕)’를 가려 중책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穡은 거둘 색.

밭이랑 사이서 고생하는 사람 중 실제 인재를 찾으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백성들의 실생활과 고통을 잘 아는 사람이라야 좋은 정책을 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좋다. 여러 방면에서 인재를 찾는데 이론만 아는 것보다 실무에 밝은 사람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데 적임일 것은 물론이다.

한 때 우리 공직자들의 인사원칙으로 현장을 아는 사람 중에서 재능과 덕망 있는 인재를 고른다고 내세운 적이 있다. 그런데 갈수록 원칙은 허물어지고 같은 진영의 사람들만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는 인사는 늘어난다. 성호선생이 통탄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450.html
kolaswqetsrq 11.14 21:24
허령불매虛靈不昧 - 텅 빈 마음이 형체가 없으나 신령스러워 어둡지 않다.

허령불매(虛靈不昧) - 텅 빈 마음이 형체가 없으나 신령스러워 어둡지 않다.

빌 허(虍/6) 신령 령(雨/16) 아닐 불(一/3) 어두울 매(日/5)

흔히 ‘마음을 비웠다‘라는 말을 듣는다. 마음에 어떤 것이 가득하기에 비운다고 할까. 사람마다 마음속에 욕심이 한 가득인지, 남을 위한 慈悲心(자비심)으로 뭉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란 속담이 나왔을 터다.

천차만별의 사람이 살아가면서 욕심이 생기고 집착이 쌓인 각각의 결과이지 모두 처음 세상에 올 때는 어떠한 것도 없이 純眞無垢(순진무구), 天眞爛漫(천진난만)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런 마음을 나타낸 말로 텅 빈 가운데 신령스럽기 그지없지만(虛靈) 그 기능은 맑고 환하다(不昧)는 좋은 표현이 있다.

성어를 간단히 이렇게 말을 했어도 처음 유래한 ‘大學(대학)’과 그 연구한 유학자들의 설명을 찾아가면 복잡하다. 유학 四書五經(사서오경) 중의 하나인 대학은 성인이나 군자가 되기 위한 학문이라 하며 禮記(예기)에서 분리됐다.

제일 첫머리에 세 강령이 나오는데 밝은 덕성을 밝히고(明明德/ 명명덕), 백성을 아끼고(親民/ 친민), 지극한 선의 경지에 머무는(止於至善/ 지어지선) 것이 그것이다. 중국 주자학을 집대성한 宋(송)나라의 朱熹(주희)는 ‘大學章句(대학장구)’에서 明德(명덕)을 해설하면서 앞의 성어를 썼다. 그 부분을 간단히 보자.

‘명덕은 사람이 하늘로부터 얻은 것으로(明德者 人之所得乎天/ 명덕자 인지소득호천), 텅 비고 신령스러우며 어둡지 않아서(而虛靈不昧/ 이허령불매), 온갖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以具衆理 而應萬事者/ 이구중리 이응만사자).’ 타고 날 때 사람의 물들지 않은 본래의 마음을 형용한 내용이란다.

이렇게 빙빙 둘러 어렵게 말해도 부분만 떼놓고 본 뜻이 좋아 우리 고전에서 많이 인용되었다. 그중 한 곳 고려 말 三隱(삼은)의 한 사람인 李穡(이색)은 牧隱詩藁(목은시고)에 남긴 구절이다. ‘사방 한 치 허령한 우리 마음은, 밝고 밝게 상제께서 임하시는 곳이지(方寸虛靈地 明明上帝臨/ 방촌허령지 명명상제림).’

이렇게 신령스럽게도 좋은 마음을 타고 난 初心(초심)을 모두 유지한다면 살만한 밝은 세상일 것이다. ‘마음을 잘 가지면 죽어도 옳은 귀신이 된다’는 말처럼 살다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면 옳은 길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일수록 다른 욕심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 점점 믿음을 떨어뜨린다.

‘마음의 바탕이 밝으면 어두운 방 속에서도 푸른 하늘이 있고(心體光明 暗室中有靑天/ 심체광명 암실중유청천), 마음속이 어두우면 밝은 햇빛 아래에도 악귀가 나타난다(念頭暗昧 白日下生厲鬼/ 염두암매 백일하생려귀).’ 菜根譚(채근담)에 나온다. 厲(려)는 ‘갈다’는 뜻 외에 ‘귀신’이란 의미.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607.html
kolaswqetsrq 11.14 21:25
도은무명道隱無名 - 도는 숨겨져 있어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도은무명(道隱無名) - 도는 숨겨져 있어 이름을 붙일 수 없다.

길 도(辶/9) 숨을 은(阝/14) 없을 무(灬/8) 이름 명(口/3)

道(도)가 사람이 걷는 길만이 아니고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은 다 안다. 도를 닦는다, 도를 깨친다, 도가 트인다는 말도 많이 하는데 깨달음이나 기예의 경지가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정도면 어느 수준 안다고 해도 깊이 있는 연구나 종교에서 말하는 도는 일반 사람의 머리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불교선 인간의 고통을 없애주는 여덟 가지의 길 八正道(팔정도)를 말하고,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朝聞夕死(조문석사)라 했던 孔子(공자)는 하늘의 길을 따르는 것이 도라 했다. 더욱 老子(노자)는 도를 도라고 하지 않으면 이미 영원한 도가 아니라고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라 하니 알쏭달쏭하다.

노자는 여기에 더해 도는 숨겨져 있어(道隱) 이름이 없다(無名)고까지 했다. 고대 중국 周(주)나라의 관문을 지나면서 그곳을 지키던 尹喜(윤희)에게 남겼다는 ‘道德經(도덕경)’에서다. 無爲(무위)의 處世訓(처세훈)이 전체 81장의 대부분인 이 책 41장 同異章(동이장)에서 도는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도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현묘한 존재이기에 뛰어난 사람이라야 그것을 알고 부지런히 실천에 옮긴다고 했다.

그 부분의 표현은 ‘뛰어난 인사는 도를 들으면 힘써 실천한다(上士聞道 勤而行之/ 상사문도 근이행지)’이다. ‘어중간한 사람은 반신반의하고(中士聞道 若存若亡/ 중사문도 약존약망), 정도 낮은 사람은 크게 비웃는다(下士聞道 大笑之/ 하사문도 대소지)’로 이어진다.

그 뒤에 예로부터 전하는 말이라면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르게 심오한 말이 펼쳐진다. 몇 가지만 옮겨본다. ‘밝은 도는 컴컴한 것 같고, 도에 나아가는 것은 물러나는 것 같으며(明道若昧 進道若退/ 명도약매 진도약퇴).. 무한대의 모난 모양은 모퉁이가 없고, 큰 그릇은 이루어지는 것이 늦으며(大方無隅 大器晚成/ 대방무우 대기만성), 큰 소리는 귀로 들을 수 없고, 큰 모습은 형체가 없다(大音希聲 大象無形/ 대음희성 대상무형).’ 그러므로 절대존재인 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며 결론 낸다. ‘도는 숨어 있어 이름이 없어도 오직 만물에 힘을 빌려주고 잘 생성되도록 할 뿐이다(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도은무명 부유도 선대차성).’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大器晩成(대기만성)도 여기서는 큰 그릇에 가득 채워지기까지는 아득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었단다. 뛰어나게 훌륭한 작품은 보통 사람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큰 도는 이름이 없으면서도 모든 것을 받아들여 부족한 사람이 평소에 느끼지 못할 뿐이다.

이렇게 보면 뛰어난 완성미를 보지 못하면서 이렇다, 저렇다 불평을 늘어놓는 보통 사람들은 이런 어려운 도 말고, 본래의 걷는 길,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지켜야 하는데 그것도 어려우니 탈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925.html
kolaswqetsrq 11.14 21:26
살계경후殺鷄儆猴 - 닭을 죽여 원숭이에 경고하다.

살계경후(殺鷄儆猴) - 닭을 죽여 원숭이에 경고하다.

죽일 살(殳/7) 닭 계(鳥/10) 경계할 경(亻/13) 원숭이 후(犭/9)

본보기는 좋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남에게 설명하거나 증명하기 위한 모범은 흐뭇하다. 반면 여러 사람을 훈계하기 위해 잘못한 사람을 징계하는 본보기는 다수를 위한 것이라도 당하는 사람은 죽을 맛이다. 실제 사람의 목숨을 끊은 본보기는 성어에 제법 된다.

중국 蜀(촉)나라의 군사 諸葛亮(제갈량)이 군령을 어겨 패배를 가져온 부하의 목을 울면서 벤 泣斬馬謖(읍참마속)이 있다. 병법에 능통한 孫武(손무)가 세 번 훈령하고 다섯 번을 거듭 말해도 시시덕거린 왕의 총희를 베어 버렸다. 三令五申(삼령오신)이다. 무시무시한 조치 이후 군기가 바싹 잡힌 건 물론이다.

많이 쓰이는 一罰百戒(일벌백계)나 殺一儆百(살일경백, 儆은 경계할 경)이란 말도 같다. 한 사람을 죽여 백 사람에게 경계가 되도록 한다는 뜻이다. ‘漢書(한서)’가 설명한다. ‘하나로써 백을 경고하면 모든 사람들이 복종하게 된다. 공포감은 스스로를 새롭게 변화시킨다(以一警百 使民皆服 恐懼改行自新/ 이일경백 사민개복 공구개행자신).’ 사람이 너무 심하다면 다른 방법도 동원한다. 풀을 두들겨 뱀을 놀라게 한다는 打草驚蛇(타초경사), 산을 울려 범을 놀라게 하는 敲山震虎(고산진호, 敲는 두드릴 고) 등이 있다.

닭을 죽여(殺鷄) 원숭이에게 본보기가 되게 한다(儆猴)는 같은 뜻의 성어에는 다음 이야기가 따른다. 한 노인이 기르는 원숭이에게 곡예를 가르쳐 장터에서 돈을 벌기로 했다. 구경꾼들이 모여 들었지만 원숭이가 도통 평소 잘 하던 묘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노인은 피를 싫어한다는 원숭이의 속성을 알고 닭의 목을 쳤다.

시뻘건 피를 보고 공포에 질린 원숭이는 그제야 재주넘기를 시작했다. 본보기를 잘못 고른 성어도 있다. 하찮은 물오리를 잡으려다가 아름다운 원앙새를 놀라게 하여 달아나게 하면 어리석다. 打鴨驚鴛鴦(타압경원앙)은 경계를 주지 않고 놀람만 주었다.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하면서 얻은 교훈은 아무 짝에도 쓰지 못한다. 이끄는 사람은 효과를 봤다고 우쭐댈 때 그 조직은 곪는다. 예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 설치로 경색됐을 때 중국이 한국기업에 보복하면서 살계란 표현을 써 반발을 샀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전에 펼쳤던 정책과 사람을 대거 바꾸면 공무원들은 바싹 엎드린다. 본보기를 잘 쓰면 희생은 적게 하고 발전을 가져 온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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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28
본립도생本立道生 - 기본이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

본립도생(本立道生) - 기본이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

근본 본(木/1) 설 립(立/0) 길 도(辶/9) 날 생(生/0)

모든 일에 기초와 근본이 중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큰 건물이 무너지고, 튼튼한 다리가 끊어지는 것은 처음 시작할 때 기초가 부실한 데서 온다. 지금 훌륭한 인물이 처음부터 우뚝했을 리 없고, 오랫동안 찬탄을 받는 기념물도 탄생 때는 미약했다. ‘낙락장송도 근본은 종자’라는 말처럼 처음엔 보잘 것 없던 것이 쉼 없이 아끼고 가꾸는데서 자라났다.

老子(노자)도 道德經(도덕경)에서 기초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작은 싹에서 자라나고, 아홉 층 높은 다락도 한 삼태기 흙에서 세워진다(合抱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합포지목 생어호말 구층지대 기어루토).’

기본을 세우면(本立) 나아갈 길이 생긴다(道生)는 당연하고도 중요한 말은 ‘論語(논어)’에 나온다. 기본 없이 시작할 수는 있지만 일을 계속하고 성취할 수는 없다. 빨리 이루려고 건너뛰어서는 부실만 남으니 기초를 다질 수밖에 없다. 논어의 學而(학이)편 제2장에서 有子(유자)가 한 말로 등장한다. 유자는 顔子(안자, 顔回)나 曾子(증자, 曾參)와 같이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존칭을 붙여 거명되는데 본명은 有若(유약)이다. 孔門十哲(공문십철)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공자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은 제자로 후인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유자가 말한 내용을 보자.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공손하면서 윗사람을 거스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면서 이어진다. ‘윗사람을 거스르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불호범상 이호작란자 미지유야). 군자는 근본에 힘쓰는 것이니 근본이 확립되면 사람의 도리도 생겨난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 군자무본 본립이도생).’ 그러면서 사람의 도리가 생겨나는 근본은 孝弟(효제)에 있다고 했다. 부모를 섬기는 도리, 형과 어른을 섬기는 도리가 효제인데 孝悌(효제)와 같이 쓰인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라도 기본이 다져져 있으면 크게 염려할 것이 없다. 한 해가 시작될 때 정치나 경제계 지도층 인사들이 잘 인용하는 말도 이 성어다. 광범위한 방면에 기초가 각각 다를 수 있지만 끔찍한 사고가 잇따르고, 법과 질서를 예사로 어기며, 아랫사람을 하찮게 여기는 인성 부재도 기본적인 도리를 소홀히 한 데서 비롯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502.html
kolaswqetsrq 11.14 21:29
굴묘편시掘墓鞭屍 -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하다, 통쾌한 복수를 넘어 지나친 행동을 말함

굴묘편시(掘墓鞭屍) -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하다, 통쾌한 복수를 넘어 지나친 행동을 말함

팔 굴(扌/8) 터 기(土/8) 채찍 편(革/9) 주검 시(尸/6)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스페인 영화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이나 이탈리아 동화 ‘엄마 찾아 삼만리’란 작품이 있었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혈육을 찾아 나선 과정을 그려 당시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같이 감동을 주는 스토리는 없어도 반대되는 말이 떠오르는데 日暮途遠(일모도원), ‘해는 지고 갈 길은 멀다’라는 뜻이다.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을 펼치고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한 伍子胥(오자서)의 변명이었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의 楚(초)나라 명문 출신 오자서에서 유래한 널리 알려진 성어 중 무덤을 파고(掘墓) 시체에 매질을 했다(鞭屍)는 이 말도 그 중의 하나다.

오자서의 부친은 楚平王(초평왕)의 태자를 가르친 스승으로 간신 費無忌(비무기)의 모함을 받고 형과 함께 죽음을 당한다. 오자서는 복수를 위해 이웃 나라를 떠돌다 吳(오)나라에서 10년이 넘도록 절치부심 끝에 마침내 기회를 잡는다.

오나라의 공자 闔閭(합려, 闔은 문짝 합)를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한 뒤 중책을 맡고 병법의 대가 孫武(손무)와 함께 대대적으로 초나라를 침공하게 됐다. 당시는 不俱戴天(불구대천)의 원수인 평왕과 간신 비무기가 이미 사망한 이후였으나 원한에 사무친 오자서는 평왕을 이은 昭王(소왕)이 도주한 뒤에도 수도 郢(영)을 유린했다. ‘史記(사기)’ 오자서열전에는 이 부분을 간략히 기술했다.

‘오자서는 소왕을 찾는데 실패하자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에 300번이나 매질을 했다(伍子胥求昭王 既不得 乃掘楚平王墓 出其尸 鞭之三百/ 오자서구소왕 기부득 내굴초평왕묘 출기시 편지삼백).’ 여기에 ‘東周列國志(동주열국지)’ 등에는 살을 붙인다. 평왕은 보복을 예견하고 호수 속에 무덤을 만들고 50여 명의 석공을 시켜 가짜 석곽 아래 관을 따로 만들게 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석공을 무덤 속에서 살해했는데 유일하게 살아나온 한 노인이 원귀들의 한을 푼다며 오자서에게 가르쳐줘서 복수를 할 수 있었다. 상세한 묘사는 이렇다. ‘손에 아홉 마디로 된 구리 채찍을 들고 평왕의 시신을 300번이나 후려치니, 살이 문드러지고 뼈가 부러졌다(手持九節銅鞭 鞭之三百 肉爛骨折/ 수지구절동편 편지삼백 육란골절).’

오자서의 친구 申包胥(신포서)가 복수의 수법이 잔인하다고 질책하자 갈 길이 멀어 순서를 거꾸로 하게 됐다고 해명하는 倒行逆施(도행역시)가 더 따르는 이야기다. 오자서의 원한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죽은 원수의 시체를 찾아 매질을 가했을까. 일견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시체까지 욕보인 점에서는 지나치다는 평이 따른다.

아득한 옛날이 아니라도 잘못을 고치면서 더 어그러지게 하는 일은 흔하다. 근래의 사건 하나만 보자. 이전 정권의 미운 놈 몰아내기 블랙리스트를 단죄하면서 그보다 더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서도 뻔뻔한 처사를 보면 시체 매질 그 이상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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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30
■ 함흥차사咸興差使

■ 함흥차사(咸興差使)

우리가 쓰는 말 중 ‘함흥차사’ 는 ‘가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비유할 때 사용한다.

함흥으로 떠나버린 태조 이성계를 모셔오기 위해, 태종이 사신(차사)을 보낼 때마다 태조가 이를 죽여 돌아오지 못했다는 일화에서 생긴 말이다.

태조가 함흥으로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태조 7년 1398년. ‘1차 왕자의 난’ 으로 신덕왕후 강씨 소생인 세자 방석과 방번이 이방원(태종)에 의해 죽임을 당한 데 분개한 테조 이성계는 왕위를 둘째 아들(정종)에게 내주고 상왕(上王)으로 물러났다. 태조는 48세 늦은 나이에 강씨에게서 얻은 막내 방석(세자)을 무척 사랑했는데, 그가 이복형인 이방원에 의해 비참하게 죽자 충격을 받은 것이다.

2년 뒤, ‘2차 왕자의 난’ 이 다시 일어나 방원과 친형인 방간 사이에 살육전이 벌어지고, 방간은 방원에 의해 유배를 가게 되자, 방원을 미워하던 태조의 증오는 더욱 심해졌다. 뒤이어 형인 정종을 내몰고 방원(태종)이 임금으로 즉위하자, 태상왕(太上王)이 된 이성계는 개경을 떠나 고향인 함흥으로 가버렸다. 이는 태조가 이방원의 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방원에게는 커다란 손실이었다. 태종은 태조를 설득해 서울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인물들을 물색해 함흥으로 보냈는데 이들이 바로 함흥차사이다.

이성계는 정말 이들을 모두 죽였을까?

태조의 옛 친구인 성석린이 함흥차사를 자청하고 나서서 두 번이나 함흥에 갔으나 결국 빈손으로 돌아와 태종에게 “태상왕(太上王)께서 빨리 돌아오실지 늦게 돌아오실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라고 보고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성계는 그를 죽이지 않은 것이다.

야사(野史)에는 이성계가 태종이 보낸 차사들을 셀 수 없이 죽였다고 전하지만, 실제 죽은 것으로 전해지는 유일한 인물인 박순도 이성계가 아니라 사실은 반란군인 조사의에 의해 죽었다고 한다. 실록에 의하면 태조에게 보낸 많은 인물들의 이름을 전하는데 그 중 태조에게 죽은 인물은 없다. 더구나 이성계는 함흥에서 돌아와 평양에 머무를 때, “내가 동북면에 있을 때 국왕(태종)이 사람을 보내지 않았고, 맹주에 있을 때도 사람을 보내지 않았으니 감정이 없지 않다.” 고 한 것으로 보아 차사를 보내지 않아 오히려 섭섭해 한 것 같다.

이런 기록으로 보면 ‘함흥차사’는 후세에 지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3700.html
kolaswqetsrq 11.14 21:31
■ 담뱃대 길이는 신분과 비례

■ 담뱃대 길이는 신분과 비례

담배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해진 것은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인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로, 일본을 거쳐서 들어왔다. 처음에는 ‘담바고’ ‘남령초’ 라 부르다가 ‘남초’ ‘연초’ 라고 불렀다. ‘담바고’는 담배를 뜻하는 타바코라는 발음에서 유래하였고, ‘남령초’는 남쪽 나라에서 들어온 신령스러운 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17세기 초엽에는 담배를 약초로 간주하였고, 흡연인구가 차츰 늘어나 담배가 기호품으로 정착한 뒤에도 약초라는 생각은 여전하였다. 담배의 주요 성분인 니코틴은 살충 효능을 갖고 있어서 담배를 담아 두었던 물을 농작물에 뿌려 이용하기도 했으므로 약초로서의 인식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차츰 흡연의 해로움을 깨닫게 되어, 성호 이익은 ‘냄새가 나빠 재계하고 신을 접할 수 없는 것’ ‘재물을 소모하는 것’ ‘할 일이 많은 데도 상하노소가 시간을 허비하는 것’ 등으로 해가 더 크다고 하여 흡연의 10가지 해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의 보급 속도는 매우 빨랐다.

18세기 말엽에 쓰여진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의하면, ‘비천한 자는 존귀한 분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고 하였고, ‘조관들이 거리에 나갈 때 담배 피우는 것을 금하기를 심히 엄하게 하며, 재상이나 홍문관 관원이 지나가는데 담배를 피우는 자가 있으면 우선 길가의 집에다 구금시켜 놓고 나중에 잡아다가 취조한다’ 고 되어 있다.

담배가 처음 도입되어 보급된 17세기는 예와 명분을 강조하는 성리학적 질서가 강화된 시기였다. 이에 따라 상놈이 양반 앞에서, 아이가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흡연 문화가 형성되었고, 흡연행위는 사회적 권위와 연결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담뱃대는 담배를 담아 불을 붙이는 담배통과 입에 물고 빠는 물부리, 그리고 담배통과 물부리 사이를 연결하는 설대로 구성되어 있고, 설대가 긴 것을 장죽, 설대가 없거나 짧은 것을 곰방대라 불렀다. 처음 일본에서 들어왔을 때는 담배통도 작고 설대도 짧았는데, 18세기 풍속도를 보면 이미 담배통이 커진 장죽이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장죽은 혼자서 담배통에 불을 붙이면서 물부리를 빠는 것이 어려우므로 불을 붙이는 하인이 있어야만 했다. 즉 양반층은 장죽을 일반 상민은 곰방대를 애용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담뱃대 재료도 재산이 많은 사람은 오동나무로 만들기도 하고, 금이나 은으로 무늬를 넣은 장죽을 쓰기도 하였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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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32
■ 본관本貫과 관향貫鄕

■ 본관(本貫)과 관향(貫鄕)

우리는 모두 성씨(姓氏)와 이름을 갖고 있다. 또 성씨 앞에는 경주 김씨, 여주 이씨, 안동 권씨, 밀양 박씨, 동래 정씨 같은 동족(同族) 집단을 표시하는 지역 이름이 붙는다. 이것을 본관(本貫) 또는 관향(貫鄕)이라고 한다. 본관(本貫)은 성씨의 시조(始祖)가 출생한 땅이나 임금에 의해서 봉해진 지역 이름을 따서 지었고, 시조(始祖) 이후의 모든 후손들은 본관이라는 동질성으로 연결되므로 꿴다는 뜻의 관(貫)자를 썼다. 줄여서 본(本), 또는 본향(本鄕)이라고도 한다. 근본이 없다거나, 본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그 조상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다는 뜻이므로 전통 사회에서는 매우 모욕적인 표현이었다.

우리나라는 삼국 시대에 들어와 일부 상층 계급만이 성씨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그 이전에는 대부분 성씨가 없었다. 조선 후기까지도 백정이나 노비는 성씨가 없었다. 본관은 보통 예전에 나라에 큰 공을 세워 임금이 어떤 지역을 식읍(食邑:국가가 땅을 내려주어 조세를 받을 수 있게 해준 지역)으로 내려주어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리면, 그것을 계기로 그 지역 이름을 가지고 본관으로 삼았다. 후대로 오면서 하나의 본관에서 여러 개로 나뉘어 갈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후삼국시대 견훤과 왕건이 안동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왕건의 부하인 경주 김씨 김행(金幸)은 안동 김씨의 시조 김선평, 안동 장씨의 시조 장정필과 함께 군사를 모아 견훤의 수천 대군을 무찔렀다. 왕건은 김행에게 그 공을 치하하고, 변화의 기미를 잘 살펴 권도(權道), 즉 임시변통의 수단을 잘 취하였다하여 그에게 권(權)씨 성을 내려 이름을 권행(權幸)으로 고치게 하였다. 이것이 안동 권씨의 유래이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본관(本貫)은 자신의 뿌리라는 큰 의미를 지닌다. 반면 일본 사람들은 성을 바꾸는 일을 쉽게 생각한다. 자신이 유명해지면 아버지 성을 따르지 않고 별도의 성씨를 만들기도 한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달리 성씨에 집착할까? 가문(家門)과 족보(族譜)를 중시하는 유교 전통 속에서 본관은 집안의 결속력을 다지게 하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씨(氏)와 가(哥)는 모두 성씨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하지만 웃어른이 내게 성을 물으면 \경주 김가\라고 해야 하고, \경주 김씨\라고 하면 안 된다. \가\는 \씨\보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낮추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방에 대해 말할 때는 "그의 성은 박씨이다.“ 라고 하지만, 나를 상대방에게 말할 때는 저는 김가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 예의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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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33
■ ‘조祖’ 와 ‘종宗’의 차이 2편

■ ‘조(祖)’ 와 ‘종(宗)’의 차이 2편

그렇다면 ‘조’ 와 ‘종’ 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를 딱 잘라 나누기는 다소 어렵기는 하지만, 대체로 창업(創業)에 공이 있는 왕에게는 ‘조’를, 태평성대를 이루거나 큰 업적을 이루어 수성(守成)에 공이 있는 왕에게는 ‘종’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근거는 <예기>에 ‘공(功)이 있는 자는 ’조‘ 가 되고, 덕(德)이 있는 자는 ’종‘ 이 된다’ 는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한국학 중앙연구원이 편찬한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대체로 나라를 처음 일으킨 왕이나 나라의 정통이 중단된 것을 다시 일으킨 왕에게는 조(祖)를 썼고, 왕위를 정통으로 계승한 왕에게는 종(宗)을 붙였다고 했다.

격에 있어서 별 차이는 없으나 대체로 ‘종’ 보다 ‘조’를 높게 보기도 한다. 조선시대 왕 중 7명이 ‘조’를 썼고, ‘군’의 칭호를 받은 2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종’ 을 묘호로 사용하였다. ‘태조’ 라는 묘호는 중국이나 우리나라 역사에서 엿볼 수 있듯이 초대 왕에 대한 칭호로 흔히 쓰였는데, 다른 왕들은 어떨까? 세조는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지만, 단종 시절 문란한 국정을 바로잡았다고 하여 ‘조’의 묘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조선 최악의 왕으로 평가 받는 선조와 인조는 지금의 우리 생각과는 정반대로 선조는 임진왜란을 극복했고, 인조는 폭군 광해를 몰아내고 정묘, 병자호란을 잘 넘겼다하여 ‘조’라고 했다. 중종은 인조와 마찬가지로 반정으로 왕이 됐지만, 성종의 직계왕통을 지켰다 하여 굳이 ‘조’ 를 붙이지 않았다.

영조와 정조는 처음에 영종과 정종이었다가 나중에 다시 영조와 정조로 추존(推尊)되었고, 순조도 처음에는 순종으로 묘호가 정해졌다가 철종 때에 순조로 다시 추존(推尊)되었다. 영조와 정조 그리고 순조는 당시 이렇다 할 전쟁도 없었고 국가적 큰 위기도 없었다. 그런데도 조를 써서 앞서 말한 조와 종의 차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고종황제 때 이르러 영조와 정조가 고종의 직계조상이라는 이유로 영종과 정종을 영조, 정조로 바꾸고, 순종 역시 강화도령 철종의 정통성 강화를 위해서 순종을 순조로 바꾸었던 것이다. 조와 종의 차이를 가장 헷갈리게 만드는 분들인 것이다.

이렇듯 당시 왕들은 ‘종’보다는 ‘조’를 사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여 아들들은 아버지를 위해서 ‘조’를 사용하기를 원했다. 이렇게 ‘조’ 와 ‘종’을 나누는 기준은 애매하기도 하고 바뀌는 경우도 있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기도 한 것 같다.

세종보다 순조가 더 낫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2_28.html
kolaswqetsrq 11.14 21:34
■ ‘조祖’ 와 ‘종宗’의 차이 1편

■ ‘조(祖)’ 와 ‘종(宗)’의 차이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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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 하며 줄줄 외웠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터이다. 세종대왕의 정식 명칭은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 이다. 너무 길어서 앞에 두 글자를 따서 세종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왕 본인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자신이 어떻게 불릴 지도 모르는 채 죽었다. 이런 왕호는 종묘에 모실 때 사용되는 호칭으로 묘호(廟號)라고 하는데, 죽은 왕의 재위(在位) 동안의 행적에 대한 평가로 붙여진다.
",

종묘(宗廟)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셔 두는 왕실의 사당이다.

종묘에 사용되는 묘호에는 보통 조(祖)와 종(宗)을 붙이게 된다. 조선왕조 500년 27명의 왕 중 연산군과 광해군 두 임금은 반정(反正)에 의해 쫓겨났으므로 왕자에게 붙이는 ‘군’의 호칭에 머물렀는데, 왕으로써 인정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또, 왕의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연산군과 광해군은 실록이 아닌 일기로 표현한다. 반면, 덕종(성종의 생부) · 원종(인조의 생부) · 진종(정조의 양아버지) · 장조(정조의 생부) · 익종(헌종의 생부) 등은 왕위에 오른 적은 없지만 왕의 생부로써 왕의 대우를 받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양반의 경우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태명을 가지고 있고, 어릴 때는 아명, 성인이 된 이후에는 호를 사용하고 다양한 이름을 대신하는 별호가 있었다. 이들의 이름을 직접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임금과 스승이나 부모뿐이었다. 양반이 그럴진대 임금은 더욱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외국에 서신을 보내는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름을 거의 쓰지 않았다. 하지만 왕들도 모두 이름은 있었다. ‘이산’이라는 드라마에서도 봤듯이 정조의 이름은 이산, 세종은 이도이며 연산은 이융이다.

이처럼 왕족들은 이름을 외자로 쓰는 것이 원칙이다. 태종 이방원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왕족으로 태어나지 않았고, 이성계가 왕이 된 후 왕자가 되었으므로 이름이 외자가 아니다. 왕이 생존해 있을 때 보통 신하들이 왕을 지칭할 때에는 금상, 전하, 또는 주상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생존해 있을 때 왕들은 자신의 묘호가 무엇이 될지 ‘조’가 될지 ‘종’이 될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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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36
■ 나이별 호칭 3편

■ 나이별 호칭 3편

* 71세 - 망팔(望八)

팔십 살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71세가 되면 이제 80세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 77세 - 희수(喜壽)

희(喜)자를 초서(草書)로 쓸 때 "七十七" 처럼 쓰는 데서 유래했는데, 일종의 파자(破字)이다.

* 80세 - 산수(傘壽)

산(傘)자의 약자(略字)가 팔(八)을 위에 쓰고 십(十)을 밑에 쓰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 81세 - 반수(半壽)

반(半)자를 파자(破字)하면 "八十一"이 되는 데서 왔다. 또는 망구(望九) 라고도 하는데 구십 살을 바라본다는 의미니, 81세에서 90세까지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말이다. ‘할망구’ 라는 말 의 어원(語源)이기도 하다.

* 88세-미수(米壽)

미(米)자를 파자(破字)하면 "八十八" 이다. 혹은 농부가 모를 심어 추수를 할 때까지 88번의 손질이 필요하다는 데서 여든 여덟살을 표현하기도 한다.

* 90세 - 졸수(卒壽)

졸(卒)의 속자(俗字)가 아홉 구(九)자 밑에 열 십(十)자로 사용하는 데서 유래하였다. 또는 동리(凍梨) 라고도 하는데 얼어 있는 배(동리=凍梨) 라는 뜻이다. 90세가 되면 얼굴에 반점이 생겨 얼은 배 껍질 같다는 말이다.

* 91세 - 망백(望百)

71세 때 80을 바라본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91세면 백 살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 99세-백수(白壽)

백(百)에서 일(一)을 빼면 백(白)자가 되므로 99세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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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37
■ 나이별 호칭 2편

■ 나이별 호칭 2편

* 48세 - 상년(桑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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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桑)의 속자(俗字)는 `十자 세 개 밑에 나무 목(木)을 쓰는데, 이를 파자(破字) 하면 `十`자 4개와 `八`자가 되기 때문이다.
",

* 50세 - 지명(知命)

공자가 50세에 천명(天命;인생의 의미)을 알았다는 뜻으로, 지천명(知天命)을 줄인 말이다.

* 60세 - 이순(耳順)

공자가 60세가 되어 어떤 내용에 대해서도 순화시켜 받아들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 61세 - 환갑(還甲)

회갑(回甲), 환력(還歷)이라고도 하는데, 태어난 해의 간지(干支)로 다시 돌아간다는 뜻이다. 또는 화갑(華甲) 이라고도 하는데, 화(華)자를 파자(破字)하면 십(十)자 여섯 번 과 일(一)자가 되어 61세라는 뜻이 된다.

* 62세 - 진갑(進甲)

우리나라에서 환갑 다음 해의 생일날. 새로운 갑자(甲子)로 나아간다 (진=進)는 뜻이다.

* 64세 - 파과(破瓜)

과(瓜)자를 파자(破字)하면 `八八`이 되는데 여자는 8 8해서 16세를 과년이라 하는데, 남자는 8×8로 64세를 말하고 벼슬에서 물러날 때를 뜻하는 말이다.

* 70세 - 종심(從心)

공자가 70세에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했는데,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의 준말이다. 또는 고희(古稀)라고도 하는데, 두보(杜甫)의 시 `곡강(曲江)`의 구절 -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사람이 태어나 70세가 되기는 예로부터 드물었다)" 에서 유래하였다.

- 3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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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38
■ 나이별 호칭 1편

■ 나이별 호칭 1편

* 막 태어났을 때 : 남-농경(弄璟), 여-농와(弄瓦)

예전에는 아들을 낳으면 구슬(경=璟) 장난감을 주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유래하여 아들을 낳은 경사를 농경지경(弄璟之慶)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딸을 낳으면 실패(瓦)를 장난감으로 준 것에서 딸을 낳은 경사를 농와지경(弄瓦之慶)이라고 한다.

* 2~3세 - 제해(提孩)

제(提)는 손으로 안는다는 뜻이고, 해(孩)는 어린아이란 뜻이다. 아기가 처음 웃을 무렵(2~3세)을 뜻하는 것으로, 해아(孩兒)라고 쓰기도 하고 아해라고도 한다.

* 15세 - 지학(志學)

공자(孔子)가 15세 때 학문(學文)에 뜻을 두었다는 데서 유래 되었다. 또는 육척(六尺) 이라고도 하는데 주(周)나라의 척도에 1척(尺)은 두 살 조금 지난 아이의 키를 뜻한다. 그래서 6척은 15세를 뜻하고, 삼척동자(三尺童子)는 10살이 채 안된 아이를 일컫는 말이다.

* 16세 - 과년(瓜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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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瓜)자를 파자(破字)하면 `八八이 되므로 여자 나이 16세를 말한다. 특별히 16세를 강조한 것은 옛날에는 이때가 결혼 적령기였기 때문이다.
",

* 20세 - 약관(弱冠)

20세를 전후한 남자로 요즘은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원복(元服;어른이 되는 성례 때 쓰던 관)식을 했다고 한다. 예기(禮記)의 `곡례편(曲禮編)\에 "二十弱 하니, 冠이라" 하여 `20세는 약(弱)하지만 갓을 쓴다\는 뜻인데, 그 의미는 갓 쓰는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약하다는 뜻이다.

* 20세 - 방년(芳年)

20세를 전후한 왕성한 나이의 여자로 꽃다운(芳) 나이(年)를 뜻한다.

* 30세 - 이립(而立)

공자(孔자)가 30세에 자립(自立)했다고 말 한데서 유래했다.

* 40세 - 불혹(不惑)

공자(孔子)가 40세에 모든 것에 미혹(迷惑) 되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또는 강사(强仕) 라고도 하는데 예기(禮記)에 "사십일강 이사(四十日强 而仕)"라는 구절이 있다. "마흔 살을 강(强)이라 하는데, 이에 벼슬길에 나간다" 는 뜻이다.

- 2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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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39
■ 새 왕조의 시작

■ 새 왕조의 시작

이성계는 새 왕조의 체제를 정비하면서 동시에 향후 화근이 될 가능성이 있는 왕씨 성을 가진 왕족의 씨를 말리겠다는 듯이 왕씨들을 집단적으로 죽이고, 고려의 진짜 마지막 왕인 공양왕도 교살했다. 야사에는 이 때 왕씨들이 전(全)씨나 옥(玉)씨 등으로 성을 바꾸어 자손을 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성계는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신하들의 거듭된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을 저지른 것처럼 실록에 나와 있지만, 실제로 위화도 회군을 강행하고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무릅쓰고 개국 4년 만에 한양천도를 단행할 정도의 강단이 있는 인물인 점을 고려하면, 실록의 이성계에 대한 기술은 이성계에 대한 미화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태조는 즉위 초에는 국호를 그대로 ‘고려(高麗)’라 칭하고 법제도 모두 고려의 고사(故事)를 따를 것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차츰 새 왕조의 기틀이 잡히자 고려의 체제에서 벗어나려 했다. 명나라에 대해 사대정책을 쓰면서, 명나라의 양해 아래 새 왕조의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확정하고, 1393년(태조 2)부터 새 국호를 썼다.

다음에는 새 수도의 건설이 필요했다. 1393년 9월에 착공해 1396년 9월까지 태묘·사직·궁전 등과 숙정문(肅靖門: 北門)·흥인지문(興仁之門: 東大門)·숭례문(崇禮門:南大門)·돈의문(敦義門:西大門)의 4대문, 광희문(光熙門)·소덕문(昭德門)·창의문(彰義門)·홍화문(弘化門)의 4소문(小門) 등을 지어 왕성의 규모를 갖추었다. 숭유척불정책(崇儒斥佛政策)을 시행해 서울에 성균관, 지방에는 향교를 세워 유학의 진흥을 꾀하는 동시에 불교를 배척하는 정책을 폈다. 이처럼 그는 새 왕조의 기반과 기본정책을 마련했다.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나라의 재정, 병권, 세자교육까지 몽땅 맡기고, 정도전을 비방하는 신하를 귀양까지 보내는 등 정도전의 동조자이면서 적극적 후원자였다. 정도전은 나라 운영에 무한의 능력을 보이면서도 이성계에게 진심어린 충성을 다했다. 무엇보다도 사심, 즉 부정축재를 한 것이 없는 등 이성계에 있어 그는 능력 있고 충직하고 믿음직한 신하 그 자체였다. 정도전은 이성계의 신임을 바탕으로 조선의 기틀을 빠르게 잡아 갔으나, 이로 인해 반대세력의 미움을 사게 되는 것도 필연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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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40
■ 경복궁

■ 경복궁

경복궁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다섯 개의 궁궐 중 첫 번째로 만들어진 곳으로,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으뜸궁)이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후 종묘, 성곽과 사대문, 궁궐 등을 짓기 시작하는데 1394년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인 1395년에 경복궁을 완성했다. ‘큰 복을 누리라’는 뜻을 가진 ‘경복(景福)’이라는 이름은 정도전이 지은 것이다. 조선 초기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경복궁은 궁궐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다가 세종 때에 이르러 정치가 안정되고 비로소 이곳이 조선 왕조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불이 나 무너지게 되는데 조선 말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지휘 아래 새로 지어졌다. 경복궁 중건(重建)을 통해 조선 왕실의 위엄을 높이고자 하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건청궁(乾淸宮)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이곳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가게 되니, 단청의 색이 채 마르기도 전에 또 다시 빈집이 되어 버리는 비운을 겪었다.

일제 때 조선총독부 건물을 경복궁 내에 만듦으로써 조선 왕조의 상징을 훼손하고 조선의 자존심을 무너뜨렸으며, 정문인 광화문 또한 해체해 지금의 건춘문 자리 근처로 옮겨버렸다. 광화문은 이후 1968년 복원되었는데 당시 남아 있던 중앙청 자리를 기준으로 해서 세우다 보니 원래 경복궁 건물들이 이루고 있는 선상에서 벗어나 삐뚤게 놓이게 되었다. 현재는 다시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한 복원 공사를 마치고 광복 65년을 맞은 2010년에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광화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경복궁의 중심인 근정전을 만난다. 2층 월대 위에 장엄하게 서 있는 건물로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이자 공식 행사나 조회 등에 사용한 건물이다. 근정전 월대 난간에는 주작, 백호, 현무, 청룡이 각 방위에 따라 새겨져 건물을 지키고 있다. 근정전 뒤로는 임금의 사무실이라 할 수 있는 사정전과 침실인 강녕전, 왕비가 거처하였던 교태전이 이어진다.

근정전을 바라보고 왼편으로 나가면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던 경회루가 있다. 인공 연못 위로 지어진 2층 누각 건물로,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에서 크기로도 또 아름답기로도 손에 꼽히는 건물이다. 경복궁에서 빠뜨리지 말고 보아야 할 것이 교태전 아미산과 자경전 장생 굴뚝으로, 굴뚝 원래의 기능적인 역할에 더하여 여성이 거주하는 공간답게 미학적인 요소도 함께 고려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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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41
■ 혁명의 첫걸음, 토지개혁 2편

■ 혁명의 첫걸음, 토지개혁 2편

이색을 비롯한 온건파 신진사대부가 있는 한 정도전과 조준이 꿈꾸어온 토지개혁이 불가능했으므로 정도전은 결단을 내렸다. 정몽주를 제외한 권근, 이숭인, 하륜 등 온건파 신진사대부에게 있는 죄, 없는 죄를 다 뒤집어 씌워서 그들을 탄핵했다. 심지어 자신의 스승인 이색까지도 탄핵하고 고문을 시키고 유배를 보냈다. 그러나 정도전은 정몽주만큼은 믿었기 때문에 살려두었는데, 결국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만다.

온건파 신진사대부에게는 정몽주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아주 치사한 방법으로 정치 정적들에게 보복을 한 정도전에게 정몽주는 아주 크게 실망했고, 40년 지기 친구이자 절친 선, 후배 관계였던 두 사람은 완전히 적이 되었다. 정몽주는 정도전에 비하면 온건한 개혁파이던 조준을 설득했다. 정몽주의 설득에 넘어간 조준은 결국 정몽주의 주장대로 과전법(科田法)을 실시하는데 동의한다.

과전법은 공전(公田)과 사전(私田)을 막론하고 매 1결(結)당 10분의 1조(租)인 30두(斗)의 조를 받게 하는 것이었다. 당시 보통 50%에 달했던 수조율을 대폭 경감하고 농민들의 세금 부담을 줄이고자 한 것이다. 이 과전법은 조준이 처음 주장한 ‘계민수전법’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미온적인 정책이었다. 그러나 고려의 백성들은 이 정도의 토지개혁도 감지덕지하여 환영하였다.

정도전은 과전법이라는 토지개혁이 양에 차지는 않았지만, 그 덕에 백성들의 지지 속에 조선 창업이라는 과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고작 조선개국 4년 만에 과전법의 도덕성은 흔들리고, 토지개혁 주창자인 조준과 혁명세력들이 오히려 부패에 앞장서고 있었다.

정도전은 창업의 기반이었던 혁명세력들과도 다투게 되었고, 창업의 또 다른 기반인 왕가의 왕자들과도 타협하지 않고 대립하였다. 그러면서도 정도전은 오히려 개혁의 속도를 더 높이려고 들었으므로, 그의 비극은 이미 시작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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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42
■ 혁명의 첫걸음, 토지개혁 1편

■ 혁명의 첫걸음, 토지개혁 1편

정도전은 이성계를 설득하여 위화도회군으로 쿠데타에 성공한 뒤, 중국 한나라를 세운 한 고조의 군사 전략을 일러 준 장량을 자처했다. 이때부터 조선왕조라는 새 나라를 열고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할 때까지 거의 모든 정책과 조선건국의 기반은 정도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정도전이 가장 관심을 가진 분야는 토지개혁이다. 고려의 기득권층인 권문세가를 무너뜨리고 백성들의 환호를 살 수 있는 최우선 정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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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토지개혁은 아무때나 할 수 없다. 기득권층이 강할 때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고, 혁명적인 상황인 새로운 나라가 건국 될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공민왕 시절 신돈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고 토지개혁을 추구하다 고려 권문세가 기득권층에 의해 비참하게 최후를 마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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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정도전 앞에 조준이 나타난다. 조준은 정도전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유배생활을 경험한 신진사대부였다. 그 역시 유배생활 동안 백성들의 삶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권문세족의 횡포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도 몸소 체험했다. 정도전이 유배생활을 통해 역성혁명을 꿈꿨다면, 조준은 유배생활을 통해 토지개혁의 필요성을 느꼈다. 고려 권문세족을 몰아내고 신진사대부가 힘을 가진 이때가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 조준은 과감한 토지개혁을 건의했다. 그런데 조준이 건의한 토지개혁의 내용이 지나칠 정도로 과격했다. 조준이 제시한 토지제도의 내용은 사전(私田)의 혁파와 토지의 균등 분배였다. 쉽게 말하자면 땅의 사유재산제를 없애고 모든 백성들에게 땅을 주어 가난한 사람이 없게 만드는, 지금으로 따지면 거의 공산주의식 토지개혁이었다. 이런 과격한 토지개혁 안에 당연히 반대가 빗발쳤다.

정몽주, 권근, 이숭인, 하륜 그리고 모든 신진사대부의 스승인 이색까지도 토지개혁에 강력히 반대했다. 정도전, 조준 등 토지개혁파를 급진파 사대부라고 한다면, 이들에 비해 반대파는 온건파 사대부로 불리우게 된다. 이 일로 정도전은 자신의 스승인 이색과도 갈라서게 되었고, 결국 이색, 정몽주를 비롯한 온건파 사대부의 극심한 반대로 조준이 제시한 토지개혁은 좌절된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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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43
■ 조선 건국에 대한 명의 태도

■ 조선 건국에 대한 명의 태도

명은 처음에 조선건국을 그리 달갑지 않게 여겼다. 새 왕조의 건국이 아니라 정몽주의 온건사대부들이 유교국가로 고려를 개혁하여 왕조가 유지되면서 명에 사대(事大)하기를 바랬다. 그런데 이성계, 정도전등이 정몽주를 죽이고 새로운 국가를 세웠으므로, 명은 정도전을 철저히 미워했고, 조선건국에 대해서도 별별 꼬투리를 다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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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 뒤 정도전은 새 왕조의 국호로 조선(朝鮮)과 화령(和寧)으로 정하여 명에게 올린다. 화령은 이성계가 태어난 곳의 지명이다. 원래 중국 황제들만 자기가 태어난 지명을 국호로 쓸 수 있었기에 명이 국호로 화령을 내려 줄 리는 만무했다. 정도전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정도전은 이미 조선이라는 국호로 결정했지만, 명에 보고 한다는 명분을 위해 두 가지 국호를 명에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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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리는 단군을 시조로 보고 있지만(일연의 삼국유사), 당시 유교 성리학자들은 중국에서 망명 온 것으로 알려진 기자를 우리의 시조로 여겼다. 정도전이 선택한 조선이라는 명칭은 사실은 고조선 그 중 중국에서 임명한 기자조선의 후예임을 자처한 것으로, 조선을 국호로 선택하면 명이 반대 하지 않으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철저한 사대주의로 민족적 자존심이 없는 일로 보이지만 당시는 그런 생각이 주류였다. 고려 중기 유학자였던 김부식도 ‘삼국사기’를 쓰면서 단군은 빼고 ‘기자조선’부터 우리 역사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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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는 조선의 국호를 공식 승인하지 않은 채, 조선이라는 명칭을 쓰고 싶으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답해 왔다. (후에 명은 기자조선을 이어 받는다는 의미의 조선이라는 명칭을 공식 승인하기는 한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 된 뒤 약 10년간 명나라에서는 공식외교 문서를 보낼 때 이성계를 ‘고려 권지국사’ 로 불렀다. 권지權知란 오늘날 용어로 말하면 인턴. 임시 등의 뜻이다. 따라서 권지국사란 정식 국왕이 아니라 임금 준비를 하는 임시국왕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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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는 조선이라는 새 왕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사건건 따지고 들었다. 게다가 명은 정도전이 써서 보낸 외교문서가 불손하다 하여 정도전을 명으로 압송하라는 지시까지 한다. 이에 화가 난 정도전은 명에 대항해서 요동정벌까지 준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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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45
■ 정도전의 ‘건국 프로젝트’ 2편

■ 정도전의 ‘건국 프로젝트’ 2편

이성계는 1389년에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추대했다. 이 시점에 이성계의 세력은 이미 상당히 공고해져 있었지만, 무리하게 왕위를 탐내지 않고 공양왕이 스스로 왕위를 내놓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공양왕은 의외로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이성계 정권은 공양왕을 몰아내기로 했다. 하지만 고려 왕실의 웃어른(공민왕 부인)이 공양왕을 폐하고 이성계를 왕으로 세우는 형식을 취했다. 왕조 국가에서는 왕이 유고인 경우에 태후(대비)나 왕후를 비롯한 왕실 여성 어른들이 비상 대권을 행사했는데, 이성계는 이런 관행을 활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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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는 고려 태후의 결단에 의해 고려 왕권을 넘겨받는 형식을 취했으므로, 왕위에 오른 1392년 8월 3일(양력)부터 1393년 3월 26일까지 이성계는 형식상으로는 고려왕이었다. 1393년 3월 27일부터 정식으로 조선왕이 된 것이다. 실제로는 고려왕조를 무너뜨리면서도 형식적으로는 고려왕조를 이어받아 조선을 세우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모인 정도전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정도전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안정적인 방법으로 이성계를 고려의 왕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심했다. 이런 고민이 있었기에 최대한 합법적이고 단계적인 건국 프로젝트 가 나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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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정도전이나 이성계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 백주대낮에 수도 개경에서 철퇴로 정몽주를 죽이는 방법으로 반대파를 제거하였다. 이런 야만적인 방식은 고려 지식인들이 이성계 정권에 환멸을 느끼도록 만들었고, 이들 중 일부가 백년 가까이 조선왕조와의 타협을 일체 거부한 데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성계 옆에 정도전이 없었다면 이성계 정권은 매사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이방원의 저돌적인 방식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이성계의 대권이 이미 공고해진 상태에서 이방원이 거사를 벌였기 때문이다.

만약 정도전이라는 특급 참모가 가세하지 않았고, 대권이 공고해지기도 전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건국 문턱에 가보지도 못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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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46
■ 정도전의 ‘건국 프로젝트’ 1편

■ 정도전의 ‘건국 프로젝트’ 1편

정도전은 고려가 망하기 50년 전인 1342년에 출생했다. 그의 친가는 세습적인 향리(지방공무원)에서 중앙 공무원으로 변신한 가문으로 고려 말에 떠오른 신진사대부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정도전은 서얼의 혈통을 타고났다. 그의 외할머니는 승려와 여종 사이에서 태어나서 남의 첩이 되었고, 거기서 생긴 딸이 정도전의 어머니이다. 이런 약점을 지닌 정도전은 타고난 두뇌와 아버지의 후원에 힘입어 당대 최고의 석학인 이색의 문하생이 되었다.

정도전은 스물한 살 때인 1362년 진사시험에 급제하여 관료로 진출했다. 그는 서른 살 때부터 공민왕의 신임을 받았지만, 공민왕은 정도전이 서른세 살 때 암살당했다. 그 뒤 우왕을 옹립한 이인임의 보수파 정권에 정면으로 맞서 저항했다가 서른네 살의 나이로 유배를 당한다.

함께 유배를 떠난 동지들은 다들 관직으로 복귀했지만, 정도전만큼은 2년 만에 유배가 풀린 뒤에도 복귀하지 못했다. 보수파들에게 단단히 미움을 샀던 것이다. 그 후 정도전은 재야를 맴돌며 후진 양성에 주력했다. 그렇게 30대 후반을 보내고 불혹을 맞이했지만, 기회는 여전히 찾아오지 않았다. 관직에서 쫓겨난 지 8년이 됐을 때, 그는 더 이상 기회를 기다리지 않고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마흔 두 살 되던 해인 1383년, 정도전은 \귀인\을 찾아 동북방으로 떠났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최영이나 이인임 같은 개경의 유력자를 찾아갔겠지만, 그가 간 곳은 이성계 장군의 군영이었다. 처음 만난 이성계에게 정도전의 한마디. 그 말이 <태조실록>에 실려 있다. "훌륭합니다. 이만한 군대로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이성계가 "거 무슨 말이오?"라고 묻자, "아, 이 정도면 왜구를 격퇴할 수 있겠다고요" 라며 그는 말을 돌린다. 책략가 정도전과 무장 이성계는 이렇게 만났다. 한쪽은 두뇌를 가지고 있고 한쪽은 군대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혼자의 힘으로는 더 큰 일을 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그로부터 9년 뒤, 두 사람은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는데 성공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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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47
■ 위화도 회군

■ 위화도 회군

위화도회군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는데 있어서 결정적 사건이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지 않고 우왕이나 최영의 뜻대로 요동을 점령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14세기 후반 새롭게 일어난 한족의 나라 명은 원을 북쪽 몽골지역으로 밀어냈으나 요동지방 때문에 골치 아파했다. 요동에는 원의 지방 태수 나하추가 맹위를 떨쳤기 때문이다. 나하추가 명에 투항하면서 요동에 대한 근심은 사라지고 요동지역에 힘의 공백이 생기자, 명은 고려를 원의 뒤를 이은 자기들의 속국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1387년, 명나라는 오만불손한 태도로 공민왕이 원에게서 빼앗은 철령 이북의 함경도 땅이 자기들 땅이니 다시 내 놓으라는 서신을 전해왔다. 명의 오만불손한 태도에 발끈한 우왕과 최영은 요동을 쳐서 차지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당시 고려 내부 상황은 최영이 우왕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다. 반면 최영을 견제 대상으로 여기고 있던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는 요동정벌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 이유는 이긴다고 해도 최영의 입지만 강화시킬 것이며, 만약 진다면 이성계가 그 책임을 뒤집어 쓸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는 위화도회군 이전 두 차례나 우왕과 최영에게 회군을 요청했으나, 우왕과 최영은 이성계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조건 요동 진격을 명했다. 이성계는 4불가론을 내세웠다.

첫째,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거슬려서는 안 된다.

둘째, 여름철에 군사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셋째, 군사를 동원하여 정벌에 나서면 그 틈을 노려 왜구가 쳐들어 올 것이다.

넷째, 장마철이라 활에 먹인 아교가 풀리고 군사들이 전염병에 걸릴 염려가 있다.

드라마에서 보면, 정도전이 이성계를 설득하여 위화도회군을 한 것으로 나온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고려에 충성스러운 무장 출신인 이성계가 단독으로 위화도회군을 결정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해야겠다는 야망이나 포부를 품었을 것 같지는 않고, 그럴만한 세력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정도전의 설득으로 이성계가 돌아섰고 이성계는 같은 급 사령관인 조민수를 설득하여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렸다. 이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는 고려에는 반역을 한 결과이지만, 새 나라를 건국하기 위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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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48
■ 이성계의 등장

■ 이성계의 등장

고려 후기인 1250년경, 전라도 전주에서 스무 살 남짓의 이안사라는 사람이 고을 관기를 건드린 죄로 수령으로부터 문초(問招)를 당하게 되었다. 이에 이안사는 식솔들을 거느리고 삼척까지 야반도주를 해 그곳에서 자리를 잡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지난번 살던 곳의 수령이 삼척 수령으로 발령을 받아 오는 바람에 다시 식솔들을 거느리고 멀리 도망을 간 곳이 동북면(현재 함경남도 함흥부근)이었다.

이안사는 대단한 리더십을 가진 자로, 동북면에 정착해 1천여 호(戶)의 수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때 세계를 제패한 몽고군이 이안사에게 투항하여 복속할 것을 요구하자, 이안사는 몽고에 투항하여 원제국의 관리가 되었다. 이안사는 이때부터 더욱 실력을 쌓아 동북면의 실력자로 크게 성장을 하였으니, 이 자가 바로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이다.

이로부터 100여년 후, 영원할 것 같던 원이 쇠약해지고 대륙 전역에 주원장 등이 일으킨 한족의 난이 일어나자, 동북면의 실력자 이안사의 증손이자 이성계의 아버지인 이자춘은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이자춘은 원나라가 머지않아 망할 것을 예견하고 원나라의 관리를 때려치우고 고려 공민왕에게 스스로 복속하여 고려 국적을 회복하였다. 고려 공민왕은 이자춘에게 고려군이 쇠약해지는 몽고군을 칠 때 동북면에서 협조해 줄 것을 명하였으며, 결국 공민왕의 동북면 회복 작전에 이자춘은 큰 공을 세워 동북면의 패권자가 되게 되었다.

공민왕은 원나라를 등에 업고 왕 이상의 권세를 누리던 기철(원나라 기황후의 오빠)과 그 일당을 몰아내고, 이자춘의 도움을 받아 동북면을 회복하는 등 고려의 독립과 개혁을 추진하였지만, 고려로 밀려들어오는 홍건적과 여진족에 왜구의 침입 등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 위기는 이자춘의 아들 이성계의 화려한 정계 진출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원나라에 쫒기던 홍건적이 개경을 함락하자, 고려는 대대적인 개경 수복작전을 펼치는데 이 때 이성계는 홍건적 수장의 목을 베어버리는 등 대활약을 하여 변방의 무명 장수에서 일약 대스타로 발돋음하게 되고, 최영과 함께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명장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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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aswqetsrq 11.14 21:50
◇옌틀로운 법칙

◇옌틀로운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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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행복지수 1위 덴마크는 옌틀로운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옌틀로운은 덴마크 작가 악셀 산드모스가 1933년에 쓴 소설에 나오는 법칙으로 소설 속 가상의 마을 옌트를 다스리는 법칙을 말합니다. 덴마크인들은 평등의 모토인 옌틀로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는데 새로운 옌틀로운 법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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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네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지 마라.

둘째, 모든 사람이 똑같이 중요하다고 믿어야 한다.

셋째, 네가 다른 사람보다 영리할지는 몰라도 더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넷째, 모든 사람이 너만큼은 잘 한다고 믿어야 한다.

다섯째,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은 알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여섯째, 모든 사람이 너와 동등하다고 믿어야 한다.

일곱째, 모든 사람이 각자 잘하는 것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여덟째, 다른 사람을 비웃어서는 안된다.

아홉째,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고 믿어야 한다.

열째, 누구한테나 무언가 배울 점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옌틀로운 법칙은 세상 사람 누구라도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마땅히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말합니다.

-Vingle 글 옮김-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2965.html
kolaswqetsrq 11.14 21:51
◇ 식초로 고치는 지병 18가지

◇ 식초로 고치는 지병 18가지

인류가 식초를 섭취 시작한것은 1만년전에 우연히 술이 발효되면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식초는 신맛으로 우리입맛을 돋우는 역할과 건강을 지켜주는 식품으로 인기가 있는데 그럼 식초의 효능과 식초 활용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식초의 역할

식초는 산성이지만 몸속에 들어가면 혈액 속의 무기질을 알칼리성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에 산성 체질을 약알칼리성으로 바꿔 건강을 유지시킨다. 식초에는 초산과 구연산, 사과산 등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도와주는 유기산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식초의 주성분인 초산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부신피질 호르몬을 만들므로 근육에 쌓이는 피로물질인 젖산을 분해하므로 피로 회복을 돕고, 노화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 식초의 효능

식초의 효능1.

산 중화역할을 한다. 식초는 신맛의 대명사로 불리 운다. 식초의 신맛은 체내에 들어가면 알칼리성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체내에 생긴 산을 알맞게 중화시키고 혈액과 체액의 PH(수소이온)안정을 유지한다. 또한 예비 알칼리를 저장하는 저항력이 있는 신체를 유지시켜 주는 필수 아미노산이 포함되어 있다.

식초의 효능2.

소화를 촉진하고 변비를 예방한다. 소화기에 효소를 공급하여 식품의 소화, 흡수율을 높이고 장 기능을 좋게 한다. 즉 장내의 대장균을 비롯한 유해 세균을 죽여 변비를 예방한다. 살균력에 의해 장내 환경이 개선되어 변비나 치질 등에도 높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식초의 효능3.

잉여 영양소를 분해한다. 음식물을 과잉 섭취하게 되면 당분이나 글리코겐은 지방으로 변하여 몸에 축적되며 지방의 축적은 비만의 제 1원인이 된다. 식초성분에는 영양소의 체내 소비를 촉진하는 기능이 있어 과잉 당분이나 클리코겐을 연소시켜 비만에 높은 효과가 있다.

식초의 효능4.

유산을 분해, 피로를 없앤다. 신경을 많이 쓰거나 운동하는 등 활동을 하면 에너지가 소비된다. 에너지가 소비되면서 유산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 발생되는 유산은 소변에 섞여서 배설되지만 그래도 체내에 너무 많이 증가되면 배설되지 못하고 혈관과 신경에 달라붙게 된다. 유산을 분해, 피로를 없앤다.

식초의 효능5.

비만을 방지하고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식초 속에는 결합한 지방 화합물의 합성을 방지하는 항비만, 아미노산도 들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식초가 지닌 비만 방지작용이 바로 혈압을 내리는 효과를 가져온다. 비만과 혈압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살이 찌면 늘어난 지방조직까지 효소나 영양을 보급하기 위해 혈관이 넓어져야 하고 그 결과 혈압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식초는 비만을 방지하고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양쪽의 효과가 있다.

식초의 효능6.

야채의 비타민 C를 보호한다. 비타민 C는 주로 채소나 과일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 비타민 C는 열에 약하고 불안정 하므로 저장법이나 조리법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미량 영양소이다. 그러나 이 비타민 C는 체내에서 생성, 축적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매일 섭취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영양소이다. 파괴되기 쉽고 다루기 까다로운 비타민 C를 가장 잘 보호하고 그 효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식초이다. 즉 초절임으로 야채를 보존하면 비타민 C가 파괴되지 않고 보존된다.

식초의 효능7.

성인병 예방 식초의 신맛이 소금의 섭취량을 줄여주기 때문에 성인병 예방에 효과적이다. 소금을 과다하게 섭취하면 나트륨 성분 때문에 혈압이 높아지고 고지혈증과 같은 질병이 생기기 쉽다. 소금을 적게 넣고 식초로 간을 하면 싱거운 맛이 덜하기 때문에 음식을 짜게 먹는 습관을 점차적으로 고칠 수 있다.

식초의 효능8.

암에 대한 면역을 높인다. 노벨상을 수상한 식초 연구가 크러브스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하루에 100mg의 천연식초를 매일 섭취하고 있으면 남성은 6년, 여성은 8년 평균수명보다 장수가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더욱이 담배를 피우고 몸무게는 초과, 운동이나 식사에 주의를 하지 않더라도 천연식초를 섭취하고 있는 사람은 장수를 한 것이다. 장수를 하기 위해서는 암과 같은 성인병에 걸리지 않아야 하는데 천연 식초 섭취는 암의 예방 접종과 같은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많이 얻고 있다. 면역학적으로 말해서 식초를 많이 섭취하고 있으면 암이 발생되는 비율이 반으로 줄어든다. 특히 간암, 위암, 대장암, 유방암에 효과적이다. 하루에 100mg의 천연식초를 섭취하면 암의 출현을 지연시키는 데에는 충분하다. 보다 안전을 기한다면 칼슘을 영양 보조식품에서 섭취한다.

식초의 효능9.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유기산은 동맥을 보호한다. 야채나 과일과 천연식초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콜레스테롤을 늘려서 나쁜 콜레스테롤을 줄이고 고혈압을 낮추어 혈관벽을 강하게 해 혈액이 진득진득 하지 않게 한다. 평균해서 하루에 식초 한잔(30ml)도 먹지 않는 사람은 최대 혈압에서 11, 최소혈압에서 6mmHg정도 높아진다.

식초의 효능10.

고혈압 예방 매일 아침 식사 후 식초 반 잔 마시면 좋다. 식초는 피를 항상 깨끗한 상태로 유지시켜준다.

식초의 효능11.

백혈구의 면역기능을 높인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같은 외적과 싸우기 위해 우리들의 몸은 림프구로 불리는 백혈구의 군대에 소집령을 내린다. 매일 100mg의 천연식초를 섭취하고 있으면 림프구를 많이 만들 수 있게 된다. 식초는 바이러스에 대한 항생물질과 같은 작용을 한다. 더욱이 식초는 면역이 바르게 기능하는데 필요한 항산화제 글루타티온의 체내 레벨을 끌어올린다.약간 유기산이 결핍하기만 해도 몸의 면역 방어력은 급강하한다. 매일 100mg의 천연식초를 섭취하고 있으면 적혈구의 글루타티온 농도는 50% 증가하며 노인의 백혈구를 생화학적으로 젊게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평균 76세인 노인이 매일 천연식초를 100mg 섭취한 결과 젊었을 때와 똑같은 백혈구수가 되었다는 결과도 있는데, 다른 연구에서는 식초를 30 ~ 50mg 섭취한 것만으로 백혈구가 생화학적으로 젊어진 것이다.

식초의 효능12.

정자의 손상을 치유한다. 유기산의 레벨이 낮은 남성의 정자에는 결함이 생기기 쉽고 선천성 결손증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유기산을 1일 5mg으로 제한한 남성의 경우, 유전자 물질 DNA에 대한 활성산소의 손상이 정자세포에서 2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1일 60에서 250mg으로 올린 결과 한달도 채 되기전에 정자의 DNA손상은 원상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즉 하루에 3 ~ 5잔의 천연식초가 정자의 손상을 치유하는 것이다.

식초의 효능13.

폐 기능을 강화한다. 유기산을 섭취하고 있으면 폐의 기능이 좋아진다. 천연식초를 충분히 섭취하고 있는 사람에게 만성기관지염이나 천식은 적은 것이다. 폐기종이나 혈관에 혈전이 떼지어 몰리거나 들러붙거나 하지 않도록 한다.

식초의 효능14.

괴혈병을 억제한다. 식초는 잇몸의 조직에 대한 활성산소의 파괴적 공격을 피하게 한다. 유기산의 레벨이 낮은 사람에게서는 3.5배정도 빈번하게 잇몸의 출혈이나 치주병을 볼 수 있었다. 유기산은 당연히 비타민 C를 다량 함유하고 있다.

식초의 효능15.

백내장의 발병을 억제한다. 백내장이 되는 사람은 되지 않는 사람의 30% 밖에 유기산의 영양 보조식품을 섭취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의 석기시대의 조상들은 야생의 풀이나 발효된 나무열매를 먹고 하루에 100mg의 유기산을 섭취하고 있었다. 이 사실은 건강한 사람은 적어도 그 정도는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유기산은 망막을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

식초의 효능16.

아토피성 피부염에 효과 천연식초의 유기산은 변의 상태도 좋게 한다. 숙변이 제거되기 때문인데, 이 숙변제거로 장이 깨끗해질 뿐 아니라 피부도 좋아진다. 게다가 하루에 한 잔씩 매일 마시면 알레르기의 한 종류인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에 효과가 있다. 동양의학에서는 피부의 윤택성이 소화 기능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또 아토피성 피부염에 효과가 있는 천연식초는 위장약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는 장내 환경과 피부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며, 아토피성 피부염의 개선에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식초의 효능17.

초란, 초콩을 활용하면 보다 효과적이다. 식초는 비타민C 등의 야채 성분 뿐 만이 아니라 쌀이나 콩 등의 곡류, 콩류 성분, 미역, 다시마 등 해조류의 성분에 대해서도 훌륭한 상승효과를 발휘한다. 초란, 초콩 등이 몸에 좋은 이유도 다 이런 성질 때문이다. 미역무침을 할 때 식초를 듬뿍 뿌려 먹으면 해조류의 성분이 상승 효과를 일으켜 좋은 영양소를 몸에 공급하게 된다.

식초의 효능18.

야채, 과일 농약 제거까지 책임진다. 야채나 과일 겉면에 묻어있는 농약을 식초로 제거하면 어떤 세척제보다 안전하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18_73.html
kolaswqetsrq 11.14 21:52
◇ 잠잘 때 왼쪽으로 자면 생기는 신체 변화

◇ 잠잘 때 왼쪽으로 자면 생기는 신체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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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듯 충분한 수면은 몸에 활력을 주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렇듯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적정한 수면 시간 만큼이나 올바른 수면 자세가 이뤄져야 한다. 올바른 수면 자세에는 오른쪽보다는 왼쪽 방향으로 누워 자는 것이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생의 3분의 1을 잠을 자면서 보내는 가운데, 왼쪽으로 자면 당신의 몸에 생기는 놀라운 신체 변화 7가지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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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속쓰림, 더부룩함 등의 증상을 완화한다

왼쪽으로 누우면 위산이 식도로 역류되는 현상을 방지해 속쓰림 완화와 소화 불량 개선에 도움이 된다. 반면 오른쪽으로 자면 식도괄약근이 이완돼 속쓰림을 더 악화시킨다.

2. 코 고는 것을 방지한다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이 발생하는 경우 왼쪽으로 자세를 비틀어 누우면 아래턱이 처지는 것을 방지해 코를 고는 것을 줄일 수 있다.

3. 소화력을 향상시킨다

왼쪽으로 누워 자면 옆구리와 복부를 자극시켜 장 기능이 개선돼 소화력이 증진된다. 내장 기관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시켜 변비 개선에도 탁월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4. 심장 질환을 예방한다

심장은 인체의 가장 중요한 장기이다. 왼쪽으로 누워서 잘 경우 심장을 원활하게 박동시켜 전신에 피를 공급할 수 있다. 이는 혈액 순환에도 좋기 때문에 숙면에도 도움이 된다.

5. 태아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임신부일 경우 왼쪽 방향으로 똑바로 누워 자면 태반에 연결된 탯줄에 혈액순환이 더 원활해져 태아의 건강에 유리하다. 반면 오른쪽으로 누워 자는 경우 태아에게 산소, 영양분 등을 공급할 수 없다.

6. 기억력을 높일 수 있다

순환계의 발달에 도움을 주고 지능 발달과 기억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또 정맥혈의 역류를 방지해 혈액 순환을 향상시킨다.

7. 독소를 배출한다

림프계의 순환을 도와 몸에 쌓인 독소를 배출해주며 혈액 순환을 돕는다. 혈액이 원활이 공급되면 얼굴이 붓고 피부가 푸석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주의사항! 왼쪽으로만 자면 척추가 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다양한 자세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한쪽만을 치중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한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8008.html
kolaswqetsrq 11.14 21:54
◇ 만나면 독 되는 식품

◇ 만나면 독 되는 식품

1. 장어, 복숭아(설사)

장어를 먹은 다음에 입가심으로 복숭아를 먹으면 설사에 시달릴 수 있다. 장어는 속을 든든하게 해주는 반면 소화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장어에 들어있는 지방 때문이다. 장어에는 21%나 되는 지방이 들어있는데 이는 소장에서 리파아제에 의해 지방산으로 분해되는 과정을 거친다. 분해가 채 끝나기도 전에 복숭아를 먹으면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 복숭아의 상큼한 맛을 내는 유기산이 장에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2. 게, 감(식중독)

게 요리를 먹은 다음에 후식으로 감이나 곶감, 수정과를 먹으면 소화불량을 동반한 식중독에 걸릴 수 있다. 게는 고단백 식품으로 식중독균의 번식이 빠르다. 만약 게의 유해한 성분이 있으면 그 즉시 설사로 배출돼야 하는데, 감을 먹으면 그 속의 탄닌 성분 때문에 변비가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해로운 균이 몸속에 남아 식중독에 걸릴 수 있다.

3. 조개, 옥수수(식중독)

조개도 게처럼 상하거나 세균이 감염되기 쉽다. 산란기에는 스스로 보호하려고 독성물질을 만들기도 한다. 또 옥수수도 소화가 안 되는 음식이다. 조개를 먹은 다음에 옥수수를 먹으면 소화가 더뎌지고 유해균 배출이 원활하지 않아 배탈이나 식중독이 발생할 수 있다.

4. 문어, 고사리(소화불량)

문어와 고사리는 둘 다 위에 부담을 주는 식품이다. 문어는 고단백이지만 소화가 잘 안 되고, 고사리는 섬유질이 많아 위가 약한 사람이 소화하기엔 어렵다. 이 둘을 함께 먹으면 엎친데 덮친격으로 소화불량이 악화될 수 있다.

5. 스테이크, 버터(콜레스테롤 상승)

스테이크용 안심과 등심은 지방이 많아 부드럽고 맛이 좋다. 단, 지방이 많아서 고열량 고 콜레스테롤 음식이다. 이는 버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스테이크를 요리하면서 버터를 함께 사용하면 입에서는 부드럽게 살살 녹겠지만, 혈액이 부드럽게 흐르기는 어렵다.

6. 라면, 콜라(칼슘 결핍)

탄산음료인 콜라는 칼슘 흡수를 방해한다. 이는 라면도 마찬가지다. 라면은 화학적으로 칼슘과 결합을 잘 하는 성질이 있어 칼슘 부족을 일으키기 쉽다. 만약 라면을 먹고 입가심으로 콜라를 마시면 몸 암에 저장된 칼슘까지 모조리 끌어들여 뼈와 치아를 약하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골다공증과 충치를 유발할 수도 있다.

7. 우유, 초콜릿(생활습관병)

우유와 초콜릿은 둘 다 유지방이 풍부한 식품이다. 유지방은 천연 지방이기는 하지만 과잉으로 섭취하면 비만과 고혈압, 고지혈증 등 생활습관병을 유발한다.

8. 고구마, 쇠고기(소화불량)

탄수화물인 고구마와 단백질과 지방으로 이뤄진 쇠고기는 소화에 필요한 위산 농도가 서로 다르다. 그래서 이 둘을 함께 먹으면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소화가 잘 안 돼 배탈이 날 수 있다.

9. 치즈, 땅콩(생활습관병)

치즈와 땅콩을 함께 먹으면 열량이 높고 지방이 많아 생활습관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또한 땅콩에는 많은 양의 인이 들어있는데, 치즈와 함께 먹으면 인산칼슘이 만들어져 칼슘이 손실될수가 있다.

10 수박, 튀김(소화불량)

수박의 91%는 수분이다. 수박을 먹으면 위액이 희석돼 소화가 더뎌질 수 있다. 이때 튀김처럼 소화시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음식을 먹으면 소화불량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출처: http://hongdaearea.blogspot.com/2024/03/blog-post_69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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